일하면서 참자!
야고보5:7-11
대강절기의 ‘대’자는 기다린다는 뜻이다.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이다. 기다릴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참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초림 예수를 보고 배우면서 재림 예수를 기다리는 생활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덕이 바로 참는 것이다. 영국 속담에 ‘참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대한 덕’이라고 했다.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루는 선교사를 지망하는 청년이 이렇게 물었다. “선교사님, 어떻게 하면 선교사님처럼 위대한 사역을 할 수 있을까요? 위대한 선교사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첫째는 참는 것이고, 둘째도 참는 것이며, 셋째도 참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려면 하루 열두 번씩 참아야 한다. 총각 때 선배네 집에 놀러가니, 선배 부인이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정말 못해먹겠다고, 하루에 수십 번은 도망가고 싶다고 하소연 하였다. 행복하게 깨소금 나게 살줄 알고 찾아갔다가 너무 실망했었다. 부부가 행복하게 살려면 참는 남편, 참는 아내가 있어야 한다. 참으니까 사는 거지, 아니면 누구 말대로 부부는 ‘평생 원수’여!
학생들이 공부를 하려고 해도 하루 몇 번씩 놀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한다.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참을 줄 알 때 자기 공부를 감당할 수 있지, 참을성이 없어지면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고 할 수 없다.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 수준이 높아질수록 엉덩이가 무르도록 잘 참고 책을 보는 사람이 공부를 잘 하게 되어 있다. 장사하는 사람도 참아야 할 때가 많고,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참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 제일 못난 사람이 자기 집에 온 고객하고 싸우는 장사꾼이다. 아무리 무례하게 기분 나쁘게 해도 참아야 장사가 잘 된다.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으려 해도 참고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점수를 낼 때까지 조급해 하지 말고 참아야 한다. 한국 축구 선수들, 정말 답답하다. 바레인하고 축구 하다기에 잠도 안자고 늦게까지 기다려 보았는데, 그렇게 기대만큼 하지 못하다니! 그러나 참고 기다리니 골을 하나 넣더라! 아이들에게 구구단을 하나 가르치려 해도, 참으면서 잘 돌보고 기다려야 한다. 금방 가르쳐줘도 또 잊어버린다고 꿀밤을 먹이고 욕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벌벌 떨려서 더 안 되는 법이다.
그런데 참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고 우리 인생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는데, 참지 못할 때가 많다. 화를 참지 못하고, 슬픔을 참지 못하고,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모욕을 참지 못하고, 기분 나쁜 것을 참지 못하고, 섭섭함을 참지 못하고, 잘 안 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해 본 것을 참지 못 하고… 이 참지 못하는 것이 일을 그르치거나 인간관계를 깨지게 만든다. 그리고 참지 못해 한번 잘못된 것은 돌이키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현대인이 가장 크게 잃어버린 것을 들라고 한다면 바로 참는 덕, 인내의 능력이 아닐까? 노인들은 비교적 인생을 많이 살아봐서 잘 참는다. 참아야 하는 것을 많이 배웠고, 참아보았기에 참을 만하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일수록 잘 참지 못한다. 예배 시간에도 몸을 비비 꼬고 이리 저리 산만하게 뒤채는 것은 ‘젊은 것들’이다. 여름에 더운 것을 참지 못해 주보로 부채를 부치고, 그것도 야단스럽게… 겨울에 추운 것을 참지 못하여 몸을 웅크리고 발을 구른다. 목사가 잘못을 꾸짖기라도 하면 금방 참지 못하고 대들거나, 무슨 회의 때에도 사소한 문제로 화를 내고 감정 표현을 하는 것은 주고 인생의 경험과 수양이 부족한 사람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길이 참으라고 말씀한다. 오늘의 본문은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하는데, 7절과 8절에만 ‘길이 참으라’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이 길이 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참기가 힘든지, 야고보는 분명하고도 간절하게 참을 것을 가르쳐 준다. “참아라, 참아야 하느니라!” 교회는 참음으로 주의 뜻을 이루는 공동체이다. 길이 참음으로 기다리는 데 성공하는 것이 성도의 갈 길이다.
조금 더 참아라! 그러면 된다. 아직은 잘 보이지 않고, 지금은 너무 힘에 부치며,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지배된다 하더라도, 조금 더 참아봐라. 우리 선배들도 그렇게 겪었지만 참아보니 되더라! 우리 어버이들도 그랬는데, 참으면서 조금 더 해보니 되더라! 이게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핵심 교훈이다.
참는 일에 모범이 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믿음의 삶이란 순종의 삶이고 순종의 삶이란 참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잘 참으셨고, 우리들을 향하여 참도록 가르치신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히12:2-3) 예수님은 참는 데 챔피언이다. 잘 참는 사람은 예수님 닮은 사람이요, 참지 못하고 늘 감정과 생활의 절제를 깨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지 못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잘 참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오늘 야고보서의 본문에서 ‘길이 참음’은 고대 헬라어로 ‘마크로뒤미아’라고 쓰는데 이는 ‘오래 고통을 받음’ 혹은 ‘길게 화난 상태가 되어 있음’이라는 뜻이다. 마크로는 영어로 ‘long’ 즉 ‘길게, 오래’라는 뜻이고, ‘뒤미아’는 견딜 수 없는 상태, 힘든 상태를 말한다. 그러니 이 말씀을 잘 상고해 보면,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때를 오래 버티는 사람이 오래 참는 사람이다. 화가 났는데도 금방 화를 터뜨리지 안고 오래 가지고 있을 줄 아는 사람이 오래 참는 사람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상태야 말로 우리가 참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오래 참을 수 있는 고상한 사람,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우선 성령을 받을 때, 인간으로 참지 못하는 것을 참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인내’와 ‘절제’이다. 잘 참을 때 인내할 수 있고 절제할 수 있고, 이것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도 아주 중요하고도 위대한 열매이다. 성령을 어설프게 받아서는 안 되고, 충만할 때 오래 참을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오래 참음이나 절제의 덕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격의 열매이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 받기를 사모하고, 성령의 역사에 마음을 열라! 성령님과 동행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기력하고 쉽게 흔들리는 것은 참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면 누가 뭐래도 이겨낼 힘을 얻게 된다.
한국 선교 초기에 펜윅이라는 선교사가 계셨다. 이 분은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겠다는 신조를 가지고 시골로만 다니면서 선교를 하셨는데, 특별히 원산을 중심으로 사역하셨다. 그가 한번은 어떤 사람의 집에서 전도하고 있는데, 밖에서 예수 전하는 것을 싫어하는 동네 청년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서양 악귀 물러가라! 여자를 도둑질하는 놈은 물러가라! 아이들 유괴해서 잡아먹는 양코백이 물러가라!”
초기 전도할 때는 선교사가 여자들과 아이들을 꼬여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이런 욕을 해댄 것이다. 그런데 펜윅은 이런 비난과 욕설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웃으면서 평상시처럼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집주인이 놀라 물었다. “당신은 화도 안 납니까? 당신더러 서양 악귀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때 펜윅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서양 악귀가 아니라 편위익(펜윅의 한국 이름)이요. 사람들이 뭐라든 사실이 아니면 나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소.” 성령이 충만했기에 성령께서 노여움과 두려움을 막아주시고 참을 수 있게 했다.
성령 충만하면 내가 참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 마음을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덮으셔서 저절로 참아지게 한다. 나에게 못할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이 아니라 죄의 역사요 마귀의 역사인 것을 통찰하면서 오히려 불쌍해지고 안타까워져서 더욱 기도하게 된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에 이끌릴 뿐이나, 내 안에서 성령께서 참도록 인도하신다.
‘부부싸움은 성령님도 못 말린다!’ 그런 말이 있다! “정말 그렇데…?”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밀접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빈번한 싸움이기에 그런 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성령님께 자신을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어려운 문제이지만, 성령님은 부부싸움도 말리신다! 그렇게 믿고 행하자.
또 한 가지 우리가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은 일할 때이다. 본문은 농부의 참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 땅의 농사는 씨를 10월에 뿌린다. 그리고 10월에서 11월에 비가 온다. 이게 이른 비다. 이른 비는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뿌려진 씨가 잘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도록 돕는다. 그리고 3-4월에 늦은 비가 내리는데 이는 결실을 도와 수확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농부는 이른 비가 온 뒤인 11월에서 늦은 비가 오는 3월까지 겨울동안은 별로 할 일이 없다. 게으른 농부, 결실을 기다릴 줄 모르는 농부는 이때 술 마시고 도박하고 놀다가 패가망신을 한다. 이 기다림의 시기를 어떻게 지내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지혜로운 농부는 일하면서 참는다. 퇴비를 만들고 밭을 정리하며, 농기구를 정비하고 잡초를 제거한다. 얼마나 일이 많은지… 일하는 농부는 일이 많으나, 게으른 농부는 일이 없고 놀 것만 있는데, 나중에는 농사가 다 나가 자빠져 버린다.
일하면서 수확을 기다리면 차츰 일에 재미가 붙고 결실도 놀랍게 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기다리는 일하지 않는 농사꾼은 자꾸 불평이 생기고 농사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서 점점 농사에 흥미를 잃게 된다. 일하면서 기다리라! 일하면서 참으라! 그러면 기다리기가 쉽고 참기가 쉽다. 일하지 않으면 자꾸 상황에 불평하고 남을 원망하며 부정적인 생각과 말로 피폐해져 가기 때문에 참기 어려워진다.
교회에서도 주의 일에 힘쓰는 이들이 이 어려운 인생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일하지 않는 이들은 참기 어렵다. 자꾸 부정적인 생각과 의심의 그림자를 마귀가 들여와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 오늘 농부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일하면서 참으라는 말씀이다. 지금 어렵고 지금 화가 나고 지금 힘이 든다면, 작은 일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서 참아보라! 그러면 훨씬 참기가 쉬워진다.
대강절에 인생의 비결을 배우자!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매일 참아야 산다. 어떻게 참을까?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스스로를 지키면, 성령께서 참게 하신다. 또 참기 어려울수록 일을 피하지 말고 일하라! 일하면서 참으면,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참을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생긴다. 지혜로운 농부처럼 일하면서 참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