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로마서 강해설교

Expository Preaching on the Book of Romans

최정인 목사

배톤루지한인중앙교회

Korean Central Church of Baton Rouge

서문 Preface

이 설교 모음은

부족한 이 종이 섬기는 배톤루지한인중앙교회에서

2008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설교한 로마서 강해설교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나누면서 먼저 이 종이 은혜를 체험했으며,

또한 성도들도 동일한 은혜를 체험했으리라 생각됩니다.

54회의 설교 중에 한 번은

뉴올리언스침례신학대학원의 렘키(Dr. Steve Lemke) 교수가 오셔서 전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렘키 교수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자료를 공유하면서

이 설교가 다시 읽히고

온 세상에 주님의 복음이 선포되는 도구가 되어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께로 돌아오고,

한 성도라도 더 주님 안에서 믿음이 성장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2010년 10월 20일

배톤루지에서 최정인 목사

- 차례 Contents-

(1) 9/14/08 “성도-예수 그리스도의 것”[The Saints-The Called of Jesus Christ] 1:1-7 / 1

(2) 9/21/08 “우리가 해야 할 두 가지”[Two Things That We Have to Do] 1:8-17 / 6

(3) 9/28/08 “이방인의 죄”[Sins of the Gentiles] 1:18-32 / 11

(4) 10/12/08 “죄와 벌”[Sin and Punishment] 2:1-16 / 16

(5) 10/19/08 “표면과 이면”[Outward & Inward] 2:17-29 / 21

(6) 10/26/08 “이신칭의(以信稱義)”[Justification by Faith] 3:1-31 /27

(7) 11/9/08 “구약의 칭의”[Justification in the Old Testament] 4:1-8 /32

(8) 11/16/08 “할례인가? 믿음인가?”[Circumcision? Or Faith?] 4:9-16 /37

(9) 12/16/08 “진정한 믿음”[A Genuine Faith] 4:17-25 /42

(10) 1/11/0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Through Christ] 5:1-5 / 47

(11) 1/18/09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Christ Died for Us.] 5:6-11 / 53

(12) 2/1/09 “누가 나를 다스리는가?”[Who Does Rule Me?] 5:12-17 / 58

(13) 2/8/09 “그리스도와의 연합”[Being United with Christ] 6:1-11 / 64

(14) 2/15/09 “의, 성화, 영생”[Righteousness, Sanctification, and Eternal Life] 6:12-23 / 70

(15) 3/1/09 “그리스도를 통하여 살라”[Live through Christ] 7:1-6 / 75

(16) 3/8/09 “율법은 거룩하다”[The Law Is Holy] 7:7-13 / 82

(17) 3/15/09 “죄의 노예”[A Bondage to Sin] 7:14-20 / 88

(18) 3/22/09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Wretched Man That I Am!] 7:21-25 / 94

(19) 3/29/09 “성령 안에서의 삶”[Life in the Spirit] 8:1-14 / 99

초청설교자[Guest Speaker]: 스티브 렘키 박사[Steve Lemke]

(20) 4/18/09 “성령의 증거”[The Testimony of the Holy Spirit] 8:14-18 / 103

(21) 5/17/09 “피조물의 구속”[The Redemption of the Creations] 8:19-25 / 108

(22) 5/24/09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The Spirit Helps Us] 8:26-27 / 114

(23) 6/1409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God Who Works for Us] 8:28-30 / 120

(24) 6/21/09 “우리는 넉넉히 이긴다”[More Than Conquerors] 8:31-39 / 126

(25) 11/15/09 “약속의 자녀들”[The Children of the Promise] 9:1-13 / 132

(26) 12/6/09 “하나님으로 말미암음”[Depending on God] 9:14-24 / 141

(27) 12/13/09 “믿음을 의지하는가, 행위를 의지하는가?”[By Faith or By Work?] 9:25-33 / 147

(28) 1/10/10 “주의 이름”[The Name of the Lord] 10:1-15 / 153

(29) 1/24/10,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Faith Comes from Hearing] 10:16-21 / 159

(30) 2/7/10 “택하심을 입은 자들”[The Elect] 11:7-10 / 166

(31) 2/14/10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Life from the Dead] 11:11-16 / 173

(32) 2/21/10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The Kindness and Sternness of God] 11:17-24 / 182

(33) 2/28/10 “하나님의 긍휼”[God's Mercy] 11:25-32 / 189

(34) 3/7/10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God's Wisdom and Knowledge] 11:33-36 / 195

(35) 3/15/10 “산 제사”[A Living Sacrifice] 12:1 / 202

(36) 3/21/10 “변화”[Transformation] 12:2 / 208

(37) 4/4/10 “은사와 직분”[Gifts and Functions] 12:3-8 / 215

(38) 4/18/10 “아가페”[Agape] 12:9-13 / 224

(39) 5/16/10 “선으로 악을 이기라”[Overcome Evil with Good] 12:14-21 / 229

(40) 5/30/10 “권위의 근원 하나님”[God the Source of Authority] 13:1-7 / 234

(41) 6/6/10 “사랑의 빚쟁이”[Debtor to Love] 13:8-10 / 240

(42) 7/4/10 “예수로 옷 입으라”[Clothe Yourselves with Jesus] 13:11-14 / 245

(43) 7/11/10 “하나님의 심판대”[God's Judgment Seat] 14:1-12 / 251

(44) 7/18/10 “사랑으로 행하라”[Act in Love] 14:13-23 / 257

(45) 8/1/10 “서로 받으라”[Accept One Another] 15:1-7 / 264

(46) 8/8/10 “소망의 하나님”[The God of Hope] 15:8-13 / 269

(47) 8/15/10 “복음의 제사장 직무”[The Priestly Duty of Gospel] 15:14-21 / 274

(48) 8/29/10 “예루살렘에서 스페인까지”[From Jerusalem to Spain] 15:22-33 / 282

(49) 9/5/10 “우리 자매 뵈뵈”[Our Sister Phoebe] 16:1-2 / 288

(50) 9/12/10 “브리스가와 아굴라”[Priscilla and Aquila] 16:3-5 / 292

(51) 9/19/10 “로마 교회”[The Church of Rome] 16:3-16 / 300

(52) 10/3/10 “주를 섬기라”[Serve the Lord] 16:17-20 / 308

(53) 10/10/10 “고린도 교회”[The Church of Corinth] 16:21-23 / 314

(54) 10/17/10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Gospel and Jesus Christ] 16:25-27 / 322

KCCBR, September 14, 2008

로마서 이야기 (1)

“성도-예수 그리스도의 것” [The Saints-The Called of Jesus Christ]

로마서 [Romans] 1:1-7

1.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장 과정에서 저의 부모님들은 때로는 말씀은 안 하셔도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셨습니다. 우리의 부모님들보다, 우리를 훨씬 더, 아니 완벽하게 아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그분이 누구일까요? 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 소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우리 자신의 소리를 듣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자존감도 좋아집니다. 그러나 때로는 자존감이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자존감이 왔다갔다 흔들립니다. 최악의 경우는 사탄이 우리에게 속살거리는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사탄은 때로는 우리를 우쭐하게 해서 교만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나만 잘나고, 나만 의로운 것처럼 행동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만듭니다. 또 사탄은 나의 죄를 집요하게 공격하여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것을 오해하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장 정확하게, 아니 가장 완벽하게 내가 나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누구라고 해 주셨는지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분명하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는 대로 내가 나를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내가 나를 사랑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신분을 정해주신 그대로 살면 나의 삶이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로마서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제3차 선교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고린도에서 로마의 성도들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연대는 대략 56년 겨울 혹은 57년 봄경입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의 심장의 수도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로마교회가 탄생해서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교회에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기록하여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로마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써 보냄으로써 성령의 교제를 체험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시라면, 또 그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라면, 마땅히 같은 복음을 믿을 것을 그는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평소에 자기의 선교 현장에서 말로 전하던 복음을 이제는 글로 써서 로마교회에 먼저 보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부분은 그의 서신을 시작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는 이 인사말을 통하여, 먼저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또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루신 복음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로마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 소개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지 함께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2.

먼저 바울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1절 말씀을 봅시다.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1Paul, a bond-servant of Christ Jesus, called as an apostle,

set apart for the gospel of God,

(1)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종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둘로스”의 번역입니다. 둘로스는 문자적으로 말하면 노예(a slave)를 의미합니다. 노예는 주인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주인의 유익을 위해서 일합니다. 바울은 그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나를 위해 살던 삶이 주인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2) 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사도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아포스톨로스”의 번역입니다. 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바울을 불러서 보내었습니다. 보냄을 받기 이전에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부르는 분이 있습니다. 부른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불렀습니다. 부르신 목적은 하나님의 기쁜 소식,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사람으로 그를 따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이루라고 바울을 불러서 사도로 삼으셔서 보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보냄을 받는 사도라는 자기 정체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열 두 사도를 포함하여 예수님께 직접 부름을 받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사도적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적인 사명이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따로 세우심을 받아 보냄을 받은 존재이다.”라는 사명입니다. 먼 곳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든,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복음을 전하든 간에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곧 사도적인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시급하게 회복해야할 정신이 무엇입니까? 복음에 대한 열정, 복음에 대한 부담감입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을 망각하여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사는 삶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분명히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대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3.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복음입니까? 2절을 읽어 봅시다.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2which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선지자들을 세우셔서 미리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복음의 내용은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두 가지 내용으로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3절을 봅시다.

3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3concerning His Son,

who was born of a descendant of David

according to the flesh,

(1)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유다 지파에 속하십니다. 유다 지파의 다윗 왕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조가 영원하리라고 하신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왕이시기에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윗의 왕조가 영원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예수님이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사람으로 태어났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육신은 더럽고 영혼만이 깨끗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육신과 영혼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을 이원론(二元論, dualism)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런 사상이 만연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철저하게 일원론(一元論, monism)을 가르칩니다. 모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셨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 요셉과 정혼한 다윗의 후손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 사람이 되셨습니다.

4절 말씀을 계속 볼까요?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4who was declared the Son of God with power by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

Jesus Christ our Lord,

(2)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도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도 헛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사람이신 동시에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씀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는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들려주시기 원하시는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기 원하시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안에 예수님이 없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의 값을 치르시기 위하여 죽으셨고,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라는 사실이 곧 복음의 핵심이 되는 내용입니다. 복음 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나타납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갚아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죽음에서 성자 하나님을 부활시키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평생 전하는 종이며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4.

그 사실을 다시 5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5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5through whom we have received grace and apostleship

to bring about the obedience of faith

among all the Gentiles for His name's sake,

사도 바울은 예수님에게 두 가지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은혜를 받았고,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을 곧 은혜를 받았다.”라고 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단지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바로 사명을 받습니다. 그것이 곧 바울에게는 사도의 직분입니다. 먼저 믿은 자가 이제는 믿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다단계 판매와 비슷합니다. 내가 먼저 사서 써 보니까 좋아서 다시 파는 것입니다. 연쇄적인 것입니다. 핵폭발과 같은 것입니다. 진정한 생명은 이렇게 전염력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할 일이 곧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곧 사도로서 할 일입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있을 때, 사도 바울과 같은 은혜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은혜는 받았는데, 사명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는 곧 사명을 받은 자입니다. 먼저 믿음의 순종을 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믿음의 순종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도적인 사명입니다.

5.

이제 6절을 봅시다.

6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6among whom you also are

the called of Jesus Christ;

이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언급합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다.” 즉, “로마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믿고 순종한 이방인들 가운데 속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역시 우리를 그대로 대입할 수 있습니다. “배톤 루지 한인중앙교회 성도 여러분들도 믿고 순종한 이방인 가운데 속합니다.” 그러면서 또 무엇이라고 합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와우! 저와 여러분이 누구의 것입니까? 예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예수님의 소유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소유권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호적에 우리의 이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는 그대로 삽니다. 우리 교회에서 자신을 가장 잘 인식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누가 맞추어 볼까요? 예, 우리 청소년부의 신인식입니다. (좀 썰렁한가요?) 왕이라고 인식하면 왕처럼 삽니다. 거지라고 인식하면 거지처럼 삽니다. 남자인데 여자라고 알고 있으면 여자처럼 삽니다. 여자인데 남자라고 알고 있으면 남자처럼 삽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소유인데 아직도 사탄에게 매여서 살지는 않습니까? 사탄이 와서 소유권을 주장할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응합니까? “네가 그런 죄를 짓고도 예수님의 것이라고? 넌 틀렸어. 너는 영원히 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갈 수 없어.” 이런 음성이 들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흥, 나는 예수님의 소유야. 내 죄도 예수님이 용서해주셔. 넌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난 영원토록 예수님꺼야!”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7절에서 다시 한 번 이렇게 강조합니다. 7절을 볼까요?

7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7to all who are beloved of God in Rome,

called as saints:

Grace to you and peace from God our Father and the Lord Jesus Christ.

(1) 하나님이 사랑하심을 입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노랫말대로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기에 사랑을 받았습니다. 계속적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그것이 끝입니까? 아니죠, “당신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받은 사람입니다.” (You are beloved of God in order to love God and others).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목적입니다.

(2)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다: 둘째로 우리는 성도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성도”(聖徒, saints)는 무엇입니까? 성도는 모든 사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따로 구별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거룩해서 구별한 것이 아니라, 구별되었기에 거룩한 것입니다. 구별된 사람들은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의 회원들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성도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모든 성도를 합하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됩니다. 모든 성도들의 합이 곧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6.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자,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소유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다.” 그러면 우리를 부르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알고,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 앞에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지름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고 헌신하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 제가 주님 보시기에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저의 사명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도록 해 주세요.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저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립니다. 주님께서 저를 인도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KCCBR, September 21, 2008

로마서 이야기 (2)

“우리가 해야 할 두 가지” [Two Things That We Have to Do]

로마서 [Romans] 1:8-17

1.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나와 내가 아닌 사람으로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장 이기적인 방법 같습니다. 나의 가족과 남들로 나누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시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로 나누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늘 그렇게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8월에 있었던 올림픽 경기를 볼 때에 저도 정말 그랬었습니다. 또 “이 세상의 반은 남자, 이 세상의 반은 여자” 이렇게 나누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해할만 합니다. 재산이 있는 자본가와 그 밑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나누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물론을 믿는 공산주의에서 그렇게 나눕니다. 문명인과 야만인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 시대의 그리스 사람들이 그랬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구분법입니다. 야곱의 자손이거나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을 유대인 혹은 유대교인이라고 합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사람들은 다 한 가족입니다. 한 분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한 가족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의 유명한 도시 아테네에서 전도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얻어 산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For we also are His children.')(행 17:28)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이 말은 헬라 철학자 클레안테스(Cleanthes)가 한 말입니다. 물론 그 철학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제우스를 가리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말을 접촉점으로 이용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매우 주의 깊게 사용해야만 합니다. 이때 자녀들이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또 하나님에 의해서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말입니다. 인종과 종교와 성별의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미입니다. 육체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본인들이 그것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한 분이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에 온 세상의 사람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단지 육체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육체적으로도 당연히 그렇지만 더 영적인 의미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 편지가 바로 우리가 지금 보는 로마서이지요. 이 편지에서 그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다 언급합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로마에 가고자 하는 그의 강력한 소망을 표현합니다. 그 소망은 이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 그가 가진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 1:8-17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2.

8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8First, I thank my God through Jesus Christ for you all,

because your faith is being proclaimed throughout the whole world.

먼저 사도 바울은 8-12절 말씀을 통해서 그가 로마교회 성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말해줍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에 대하여 들은 말을 그들에게 다시 전합니다.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교회 성도들로 인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로마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이 선교한 지역은 주로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 문화권의 도시들이었습니다. 로마교회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세워졌을 것입니다. 비록 로마는 로마 제국의 수도였지만, 정확하게 누가 그 교회를 세웠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첫 번째 오순절 성령 강림 때에 사도 베드로를 위시한 120명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는 마침 오순절 명절이라 온 천하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였을 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모두 열여섯 군데 이상의 지역과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로마입니다. 아마 이때 복음을 듣고 로마로 돌아간 사람들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며 함께 모이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그 교회를 세웠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로마교회는 자라나서 그들의 믿음이 다른 곳에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자신이 세운 교회도 아닌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자기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의 관점(the Kingdom of God perspective)입니다.

9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9For God, whom I serve in my spirit in the preaching of the gospel of His Son,

is my witness as to how unceasingly I make mention of you,

이제 9절을 봅시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 말씀에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부른 것을 이제 1:9 말씀에서는 “그의 아들의 복음”(the gospel of His Son)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쁜 소식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우리의 심령(spirit)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기도할 때마다 늘 쉬지 않고 로마교회 성도들에 관하여 하나님께 말씀드린다고 고백합니다. 사도는 로마에 가기 이전에 기도로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로마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렇게 먼저 편지로 보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성도들과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함으로, 기도 안에서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또 실제적으로 만남 가운데서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교제란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영적인 교제는 영적인 것을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서로 영적인 복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들은 서로 연결되어 서로의 사이에서 모든 것이 흐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세포인 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모든 것이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성령의 교제 혹은 성령의 교통하심(fellowship of the Holy Spirit)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함께 함으로 성령의 교통하심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10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0always in my prayers making request,

if perhaps now at last by the will of God I may succeed in coming to you.

그래서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로마로 가기를 강력하게 소망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11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11For I long to see you

so that I may impart some spiritual gift to you,

that you may be established;

사도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서 자신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직접적으로 만나기를 원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어떠한 영적인 은사(恩賜)를 나누어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영적으로 견고하게 하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은사란 임금이 신하나 백성들에게 주는 은혜로운 선물을 의미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성령 하나님이 교회를 튼튼하게 자라게 하도록 각각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선물을 의미합니다. 은사는 성도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만 튼튼해지고, 자신만 교만해지고, 다른 성도들을 무시하는 것은 은사를 오용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사도 바울이 말하였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 곳에서는 성령 하나님의 일하심이 풍성하게 나타나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신령한 은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2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2that is, that I may be encouraged together with you while among you,

each of us by the other's faith, both yours and mine.

이렇게 사도 바울과 로마 성도들이 만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납니까? 서로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나눔으로 서로 세워주는 것입니다. 서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됩니다. 영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 제가 많은 말을 했지만, 성도가 성도를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영적인 사귐을 나누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 안에서, 성자 하나님 안에서, 성령 하나님 안에서,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영적인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내적인 성숙입니다. 내적으로 성숙하지 않고는 외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의 이름으로 모일 때 반드시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격려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서로에게 영적인 사귐을 통하여 영적인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모이든, 가정에서 모이든, 주일에 모이든, 평일에 모이든 간에 교회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모였을 때에는 반드시 영적인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대화를 주의해야 합니다. 모이기는 교회의 이름으로 모여서 교제를 나누기는 하는데, 그 소재와 주제가 세상적인 것으로 시작하여 세상적인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너무나 공허한 모임이 되고 맙니다.

성도의 사귐은 단지 우리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어와 인종과 교단과 지역과 국가 등 각종 한계를 벗어나서 할 수 있는 대로 힘을 다하여 모든 성도들과 사귐을 나누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교회 안에서만 교제를 나눈다면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강단을 나누며 서로 영적 사귐을 갖는 것입니다. 자, 성도와 성도가 만나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사귐과 나눔을 통해서 신령한 것을 나누고 서로가 격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하나님이 교회 안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러한 일들이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러면 성도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13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3I do not want you to be unaware, brethren,

that often I have planned to come to you

(and have been prevented so far)

so that I may obtain some fruit among you also,

even as among the rest of the Gentiles.

사도 바울은 로마에 가고자 하는 시도를 여러 번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들이 다 막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먼저 편지를 보냅니다. 그가 로마에 가고자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가 지금까지 복음을 전했던 다른 도시들에서처럼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네, 그것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두 번째 일입니다.

14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4I am under obligation

both to Greeks and to barbarians, both to the wise and to the foolish.

로마 성도들에게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주고, 믿음의 교제를 하기 강력하게 소망했던 사도 바울에게는 이렇게 두 번째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 소망은 두 번째 소개하지만, 사실은 사도 바울의 머리끝까지 차오른 사도 바울의 존재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문명인이든 야만인이든, 지혜로운 자이든 어리석은 자이든-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엄청난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 모두에게 빚진 자였습니다. 마치 우편배달부가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는 것처럼 그에게는 배달해야할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빚진 자의 심정으로 표현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심정이 없으면 우리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게 이런 심정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15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5So, for my part,

I am eager to preach the gospel to you also who are in Rome.

사도 바울이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할 대상들에는 로마에 있는 사람들, 로마에 살지만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멀리 가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도 복음의 빚진 자의 역할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빛과 소금이 되는 생활을 통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6For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for it is the power of God for salvation to everyone who believes,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자, 이제 16절에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그렇습니까?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인종의 차별이나, 다른 어떠한 차별이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곧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먼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이 다시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수많은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지금까지 여기까지 우리에게 왔습니다. 우리도 비록 무명의 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받은 복음을 또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하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음을 자랑스러워하는지, 아니면 부끄러워하는지는 그 누구보다 우리가 제일 잘 압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기회가 있든 없든 간에 전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겨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는 열정을 달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For in i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BUT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

이제 사도 바울은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설명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죄로부터 구원하여, 그가 이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조건입니다. 이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누구도 하나님과 살아있는 영적인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복음에 어떻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까?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죄에 대한 형벌을 반드시 내려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그 죄로 인하여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받아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죄는 벗어지고, “하나님의 주시는 의”가 우리에게 임하게 된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 예수님 안에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마치 우리가 음식을 믿고 먹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비행기를 믿고 타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첫 발을 떼어 놓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곧 의인입니다. 그들은 이제 믿음으로 삽니다. 이것이 곧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삶입니다.

4.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 살아있는 영적인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성도를 만나면 믿음의 교제를 하면서 서로 풍성해집니다. 이때 주님의 교회가 안으로 성숙을 이룹니다. 성도가 아직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복음을 나눕니다. 이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그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이때 주님의 교회가 밖으로 성장을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 교회가 밖으로 성장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고 성령의 교제가 있도록 합시다. 또한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겨서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에게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KCCBR, September 28, 2008

로마서 이야기 (3)

“이방인의 죄” [Sins of the Gentiles]

로마서 [Romans] 1:18-32

성경은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책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성경을 통하여 사람이 누구인지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누구라고 말씀하십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사람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사람은 진화에 의해서 생겨난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부모를 통해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의 부모의 부모들을 따라 계속 올라하면 그 끝에는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우리의 또 하나의 모습은 “죄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하나님께 죄를 지은 존재들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의 현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이전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로마서 1장의 뒷부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은혜를 입기 이전의 사람의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병원에 가면 진찰을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진단하십니다. 그리고 그 병이 곧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진단을 내리십니다. 그 병이 무엇입니까?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의 모습이 곧 죄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로마서를 통하여 사람들을 진단하신 진단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상 숭배의 죄 (18-23)

먼저 18-20 말씀을 봅시다.

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18For the wrath of God is revealed from heaven against all ungodliness

and unrighteousness of men who suppress the truth in unrighteousness,

19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19because that which is known about God is evident within them;

for God made it evident to them.

20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20For since the creation of the world His invisible attributes,

His eternal power and divine nature,

have been clearly seen, being understood through what has been made,

so that they are without excuse.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보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여기 있고, 세상이 여기 있으니, 나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창조주라고도 부릅니다. 하늘이라고도 부릅니다. 신이라고도 부릅니다. 이렇게 결과를 보고 원인을 추정할 수 있는 힘이 곧 이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이성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계신 것은 분명히 알게 됩니다. 대우주인 온 세상을 보면 얼마나 대단합니까? 또 소우주인 나 자신을 보면 얼마나 오묘한지요? 피조물의 신비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지혜를 더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여 주지 않으셔도, 하나님의 지으신 만물을 보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도 상고시대부터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곧 옛날 사람들이 피조물을 보고 찾은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상고 시대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모두 다 하늘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 혹은 조물주를 하늘이라고 불렀던 것이지요.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21-23 말씀을 봅시다.

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1For even though they knew God,

they did not honor Him as God or give thanks,

but they became futile in their speculations,

and their foolish heart was darkened.

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2Professing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3and exchanged the glory of the incorruptible God

for an image in the form of corruptible man

and of birds and four-footed animals and crawling creatures.

사람들은 점점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람이나, 짐승, 벌레 등의 우상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님이라고 섬깁니다. 이것이 가장 첫 번째 되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을 종교성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종교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종교성은 하나님이 오실 때 하나님을 맞을 수 있는 그런 본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른 지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깁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피조물을 하나님이라고 섬깁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이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모세라는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려고 모세를 40일 동안 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모세가 자기들의 눈에 보이지 않자, 하나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었습니다. 이집트에서 본 그대로 했습니다. 나무로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금으로 도금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금송아지가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이라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이스라엘이 이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였던 다른 민족들은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모든 종교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무엇인가로 바꾸어서 섬깁니다. 하나님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합니다. 하나님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합니다.

가장 근본적인 죄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에 교회에 모여서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내가 여기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깁니다. 피조물을 섬깁니다. 이것이 가장 첫 번째 되고 무서운 죄입니다. 이 죄 다음에 다른 죄들은 그 결과로써 따라 옵니다. 그러한 죄들이 무엇일까요?

(2) 동성연애의 죄 (24-27)

24-25 말씀을 봅시다.

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4Therefore God gave them over in the lusts of their hearts to impurity,

so that their bodies would be dishonored among them.

25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5For they exchanged the truth of God for a lie,

and worshiped and served the creature rather than the Creator,

who is blessed forever. Amen.

사람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제일 무서운 심판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형벌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제일 먼저 사람들이 사람들의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됩니다. 사람들이 피조물을 창조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면,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있어야할 바른 모습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곧 하나님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존엄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존엄성을 잃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무엇일까요?

26절 말씀과 27절 말씀을 읽어 봅시다.

26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6For this reason God gave them over to degrading passions;

for their women exchanged the natural function for that which is unnatural,

27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27and in the same way also

the men abandoned the natural function of the woman

and burned in their desire toward one another,

men with men committing indecent acts

and receiving in their own persons the due penalty of their error.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Genesis 2:24 말씀을 봅시다.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24For this reason a man shall leave his father and his mother,

and be joined to his wife;

and they shall become one flesh.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주신 성의 아름다움입니다. 남자아이가 자라서 소년이 됩니다. 소년이 자라서 청년이 됩니다. 또 여자아이가 자라서 소녀가 됩니다. 소녀가 자라서 처녀가 됩니다. 이제 한 청년과 한 처녀가 서로 사랑하여 그 부모를 떠나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곧 결혼입니다. 이것이 곧 성입니다. 성은 근본적으로 자녀를 낳는 것 이전에 남편과 아내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고, 우상을 숭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자들이 여자들과 부적절한 사랑을 합니다. 남자들이 남자들로 더불어 부적절한 관계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동성 간의 사랑을 이렇게 가장 무서운 죄로 말씀하십니다. 동성연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죄입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말로 동성 간의 사랑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바뀔 수는 없습니다.

(3) 그 외의 죄들 (28-32)

이제 28-31절의 말씀을 봅시다.

28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8And just as they did not see fit to acknowledge God any longer,

God gave them over to a depraved mind,

to do those things which are not proper,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29being filled with all unrighteousness, wickedness, greed, evil;

full of envy, murder, strife, deceit, malice; they are gossips,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0slanderers, haters of God, insolent,

arrogant, boastful, inventors of evil, disobedient to parents,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1without understanding, untrustworthy, unloving, unmerciful;

또 사람들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기를 싫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기를 싫어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엇입니까? 그들을 그냥 내어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각종 죄들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 죄들이 여기에 21가지로 나옵니다. 이 21가지 죄들을 한글 “쉬운 성경”으로 봅시다. (1) 불의 unrighteousness (2) 악행 wickedness (3) 탐욕 greed (4) 악독 evil (5) 시기 envy (6) 살인 murder (7) 다툼 strife (8) 속임 deceit (9) 적의 malice (10) 남에 대한 말 gossip (11) 비방 slander (12) 하나님을 미워함 haters of God (13) 거만함 insolent (14) 건방짐 arrogant (15) 뽐냄 boastful (16) 악한 일을 계획함 inventers of evil (17) 부모님께 불순종 disobedient to parents (18) 양심이 없음 without understanding (19) 약속을 지키지 않음 untrustworthy (20) 친절하지 않음 unloving (21) 동정심이 없음 unmerciful.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언제라도 이러한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언제나 죄인입니다. 마치 지난번 허리케인 구스타프로 인하여 정전이 되었을 때, 전기가 없으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던 것과 같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참담한 상황이 됩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나아가서 또 무엇이라고 합니까?

32절 말씀을 봅시다.

32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32and although they know the ordinance of God,

that those who practice such things are worthy of death,

they not only do the same,

but also give hearty approval to those who practice them.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형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을 할뿐만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옳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표준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표준으로 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할 때, 이것은 사회의 관습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에서 세운 법을 어긴 죄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다다르지 못한 것을 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서 죄인이라고 선고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여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않으시면, 우리에게는 죄와 사망과 심판과 지옥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시기 위해서 진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진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죄와 죽음과 지옥이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린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치료자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죄와는 상관이 없는 하나님의 의를 가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죄인이 의인이 됩니다. 죽은 자가 산 자가 됩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던 자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아들 예수님을 모셔 들이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KCCBR, October 12, 2008

로마서 이야기 (4)

“죄와 벌” [Sin and Punishment]

로마서 [Romans] 2:1-16

1.

많은 분들이 러시아의 작가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1910)를 기억할 것입니다.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가 도스트예프스키(Fyodor M. Dostoevskii, 1821∼1881)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 특히 유명한 것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The Brothers of Karamazov, 1880) 그리고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 1866)입니다. 러시아 작가들의 장편들은 너무나 길어서 끝까지 읽는 분들은 참으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중학생 그리고 고등학생 때 읽지 않으면, 이런 장편들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우리의 생애 가운데 없다고 합니다. 저도 “죄와 벌”을 읽다가 그만 둔 기억이 납니다. “죄와 벌”의 첫 장을 펼치면, 아주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됩니다. 간단하게 내용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시대는 1860년대, 장소는 러시아의 대도시 페테르스부르크의 빈민가입니다. 주인공은 법대 중퇴생인 라스콜니코프(Rodion Romanovich Raskolnikov)입니다. 그에게는 부친이 작고하시고 그 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홀어머니와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하숙비를 몇 달치나 밀리고, 학비를 낼 수가 없어서 그는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딱 두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凡人, “ordinary”)이고 다른 하나는 비범한 사람들(非凡人, “extraordinary”)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들에게 복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 비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짓밟고 일어나서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책임과 권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프랑스의 나폴레옹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문제는 라스콜리코프는 자기 자신이야말로 비범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데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을 죽이고 그의 돈을 자기가 사용하는 것은 아무런 죄라고 여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전당포의 주인 노파를 살해하고 그녀의 돈을 빼앗을 계획을 세웁니다. 품속에 손도끼를 품고 전당포에 찾아 가서 손쉽게 노파를 죽였습니다. 마침 그곳을 찾아온 노파의 여동생까지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이렇게 두 명을 죽인 후에 금품은 챙기지도 못한 채, 허둥지둥 범행 현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후 그는 뜻밖에도 심한 악몽에 시달렸고, 열병을 앓으며 며칠을 몸져누웠습니다. 극심한 불안감과 고독 속에서 자신의 죄를 자백해 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습니다. 또 자기가 죽인 두 노파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라스콜리코프는 우연히 독실한 믿음을 가진 창녀 소냐(Sonia Semyonovna Marmeladova)를 만나게 됩니다. 소냐는 정신착란증에 걸린 계모와 자기 동생들을 위하여 몸을 팔았지만, 더없이 순결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구에겐가 자신의 범행을 털어놓고 싶었던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에게 그 모든 것을 고백합니다. 소냐는 그의 두 손을 꼭 쥐고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셔서 네거리에 서세요. 그리고 몸을 굽혀 먼저 당신이 무고한 사람의 피로 더럽힌 땅 위에 입을 맞추세요. 그리고 온 천지에 머리를 조아리고 모두가 듣도록 큰소리로 ‘나는 사람을 죽였소.’라고 외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새 빛을 보여 주실 겁니다.”

이튿날 라스콜니코프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작별을 고하고 소냐에게 갔습니다. 소냐는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꺼내 그의 가슴에 달아 줍니다. 경찰서로 행하던 그는 광장에 잠시 멈춰 섭니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뭉클한 감정이 솟아나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기쁨에 넘쳐서 발아래 땅에 입을 맞춥니다. 먼발치에서 그를 따라오던 소냐도 이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제 라스콜니코프는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합니다. 재판을 통해서 그는 의외로 8년형의 언도를 받고 시베리아 강제 노동소에 수감됩니다. 이는 그가 자수를 했기 때문에 그 정상을 참작해서 판사가 관대한 선고를 내린 것이었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가 자기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또한 시베리아로 라스콜니코프를 따라간 소냐도 형기가 끝날 날을 기다리며 행복한 마음으로 라스콜니코프를 기다립니다.

2.

우리는 지금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로마서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2:1-16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로 시작합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들은 로마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이 지적한 모든 죄를 지은 사람들, 즉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이 말들을 듣고 유대인들이 “나는 그런 죄를 지은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라스콜니코프 같이 사람을 죽인 일이 없다. 나는 그런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절 말씀을 볼까요?

(1) 심판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1-3).

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1Therefore you have no excuse,

everyone of you who passes judgment,

for in that which you judge another, you condemn yourself;

for you who judge practice the same things.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행동의 결과를 보지 않고 동기를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과 살인을 동일하게 보십니다. 음욕을 품는 것과 간음을 동일하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심판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사람은 그 동일한 정죄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게 됩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것은 사람을 심판하는 것(to judge)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2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2And we know

that the judgment of God rightly falls upon those who practice such things.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은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3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3But do you suppose this, O man,

when you pass judgment on those who practice such things

and do the same yourself, that you will escape the judgment of God?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4-8).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4Or do you think lightly of the riches

of His kindness and tolerance and patience,

not knowing that the kindness of God leads you to repentance?

지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과 인내를 멸시하는 것이 됩니다. “사랑과 용납과 인내”가 없다면, 오늘의 우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과 인내입니다.

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5But because of your stubbornness and unrepentant heart

you are storing up wrath for yourself

in the day of wrath and revelation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날에 받을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입니다.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6who WILL RENDER TO EACH PERSON ACCORDING TO HIS DEEDS:

이처럼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7to those who by perseverance in doing good seek

for glory and honor and immortality, eternal life;

만약에 인내로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영원한 것을 구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바로 참고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영원한 것을 따르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8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8but to those who are selfishly ambitious and do not obey the truth,

but obey unrighteousness, wrath and indignation.

그러나 진리이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들, 오직 불의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당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다 (9-15).

9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9There will be tribulation and distress for every soul of man who does evil,

of the Jew first and also of the Greek,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불문하고 영원한 환난과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0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10but glory and honor and peace to everyone who does good,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1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11For there is no partiality with God.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으로 보시고 심판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을 보시고 심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동기를 보십니다.

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2For all who have sinned without the Law will also perish without the Law,

and all who have sinned under the Law will be judged by the Law;

“율법 없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율법이 없어도 죄를 범하고, 또 그리하여 결국 멸망하여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가게 됩니다. “율법이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율법이 있어도 죄를 범합니다. 또 그 율법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13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3for it is not the hearers of the Law who are just before God,

but the doers of the Law will be justified.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율법은 듣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율법대로 사는 것이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해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14(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4For when Gentiles who do not have the Law

do instinctively the things of the Law,

these, not having the Law, are a law to themselves,

하나님은 이방인들도 그들의 본성이 율법의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5in that they show the work of the Law written i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 bearing witness

and their thoughts alternately accusing or else defending them,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주신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이 곧 양심입니다. 악한 일을 할 때에 양심이 경고를 합니다. 선한 일을 할 때는 양심이 기뻐합니다. 이렇게 양심이 율법의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유대인에게는 율법을,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을 주셨습니다.

(4)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온다(16).

16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16on the day when, according to my gospel,

God will judge the secrets of men through Christ Jesus.

이제 16절 말씀을 봅시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는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날 거기서 예수님을 심판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결코 심판이 없습니다.

3.

자,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적용해야 할까요? 요한복음 John 3:18 말씀을 볼까요?

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8"He who believes in Him is not judged;

he who does not believe has been judged already,

because he has not believed in the name of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한 개인의 최고의 급선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압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는 우리가 모르는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 밖에서는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드러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더 이상 하나님의 정죄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의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죄와 형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극악무도한 죄를 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죄를 범하기 이전에는 여러 가지 말로 죄를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후에는 엄청난 죄책감으로 죄의 고백과 죄의 용서를 간절하게 구하게 됩니다. 죄를 지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형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벌”에서 나오는 라스콜니코프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지탄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속기 쉽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신은 의롭게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배웁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심각한 죄인이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죄이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님 대신 받으신 정죄와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형벌로 말미암아 우리의 가장 큰 문제인 죄와 정죄와 죄책과 심판과 형벌과 진노와 멸망과 지옥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각자가 예수님 안에 있는가? 그리고 예수님이 그 각자의 마음속에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으로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그러면 더 이상 정죄가 없습니다. 심판도 없습니다. 죄책도 없습니다. 형벌과 진노와 멸망과 지옥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진리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주신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도 그 은혜 안에 들어오도록 기회를 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우리 교회는 그 은혜를 우리의 이웃들에게 전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체험하고 살면, 우리는 또한 이웃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나눔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는 하나님의 일군들로 드러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KCCBR, October 19, 2008

로마서 이야기 (5)

“표면과 이면” [Outward & Inward]

로마서 [Romans] 2:17-29

지금 온 세상은 진짜와 가짜의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하기야 진짜 같은 가짜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는 것도 주요 기술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가짜도 가짜 나름입니다. 명품 가방 대신에 명품보다 더 명품처럼 생긴 가짜 명품 가방을 들어도 큰 문제는 생기지 않습니다. 다만 가짜 명품에 합당한 가격을 치렀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가짜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은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서 유통시키는 것이 위험한 것인지 새삼스럽게 다시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먹어야 하는 분유에 생명을 위협하는 물질을 넣은 일로 많은 아이들이 죽고 심각한 병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살리는 것인지 죽이는 것인지 알지 못하고 먹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도 잘 모릅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는 중에, 그 마취약이 가짜라서 결국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또 한 때는 가짜 학위로 온통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은 논문을 통째로 조사해서 그 논문이 어떤 특정한 저자의 논문을 불법적으로 표절했는지 검사해주는 프로그램이 나왔다고 합니다. 자격증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자격을 갖추어서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하는 질문입니다. “나는 진정한 진품(genuine)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짝퉁 그리스도인가?”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의 뒷부분에서 하나님 앞에서 진품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1)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The Jews Who Boast the Law)(17-20)

17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7But if you bear the name "Jew"

and rely upon the Law and boast in God,

18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18and know His will and approve the things that are essential,

being instructed out of the Law,

19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19and are confident that you yourself are a guide to the blind,

a light to those who are in darkness,

20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20a corrector of the foolish, a teacher of the immature,

having in the Law the embodiment of knowledge and of the truth,

사도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이 자랑하는 이유들을 열거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이라는 이유로 아주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자부심의 내용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율법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고, 아직 하나님의 율법을 모르는 다른 민족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것입니다.

(2) 율법을 범하는 유대인(The Jews Who break the Law)(21-24)

21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 하느냐

21you, therefore, who teach another, do you not teach yourself?

You who preach that one shall not steal, do you steal?

22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 하느냐

22You who say that one should not commit adultery, do you commit adultery?

You who abhor idols, do you rob temples?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3You who boast in the Law,

through your breaking the Law, do you dishonor God?

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24For "THE NAME OF GOD IS BLASPHEMED AMONG THE GENTILES

BECAUSE OF YOU," just as it is written.

사도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은 그들을 죄인으로 선언하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유대인들 때문에 하나님이 욕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늘 하나님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율법대로 사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과 동기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율법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3) 할례와 율법(Circumcision & the Law)(25-27)

25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한즉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25For indeed circumcision is of value if you practice the Law;

but if you are a transgressor of the Law,

your circumcision has become uncircumcision.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6So if the uncircumcised man keeps the requirements of the Law,

will not his uncircumcision be regarded as circumcision?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27And he who is physically uncircumcised,

if he keeps the Law,

will he not judge you who though having the letter of the Law

and circumcision are a transgressor of the Law?

사도 바울은 다시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할례를 거론합니다. 할례야말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외적 표시(mark)였습니다. 목장의 주인들은 자기 가축들에게 낙인을 찍어서 소유권을 표시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임을 표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후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할례 그 자체가 한 유대인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할례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한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선언합니다. 만일 한 이방인이 하나님의 율법에 맞는 삶을 살았다면 오히려 유대인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율법으로 말하자면, 온전하게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선언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입니다.

이에 대하여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야고보서 James 2:10-11 말씀을 볼까요?

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10For whoever keeps the whole law and yet stumbles in one point,

he has become guilty of all.

11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1For He who said, "DO NOT COMMIT ADULTERY,"

also said, "DO NOT COMMIT MURDER."

Now if you do not commit adultery, but do commit murder,

you have become a transgressor of the law.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 성경의 율법은 600여 가지 이상이 됩니다. 그 중에는 행동을 규정한 율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10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내지 말라.”는 말씀처럼 동기를 규정한 율법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다 함을 얻을 사람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4) 표면과 이면(Outward & Inward)(28-29)

28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28For he is not a Jew who is one outwardly,

nor is circumcision that which is outward in the flesh.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29But he is a Jew who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that which is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letter;

and hi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속이 진짜여야 진짜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중요한 세 가지 단어를 말해줍니다. (1) 마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바로 우리의 속사람, 우리의 영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엇으로 믿습니까? 바로 우리의 마음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2) 신령: 여기에서 신령이란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시는 성령님에 의해서만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율법의 문자, 즉 의문은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합니다. 율법의 조항을 지켜서는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3) 하나님: 우리를 옳다 혹은 그르다고 하시는 칭찬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난 이만하면 되었다,” 혹은 남들이 “넌 훌륭해”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 외에는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표면적 유대인”과 “이면적 유대인”을 날카롭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겉모양의 유대인과 진정한 유대인을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짜 유대인과 진짜 유대인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진품 유대인과 짝퉁 유대인을 구별합니다.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 진정한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이러한 구분을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적용을 위해서 28-29 말씀을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바꾸어 읽어 봅시다.

28대저 표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침(세)례가 침(세)례가 아니라

28For he is not a Christian who is one outwardly,

nor is baptism that which is outward in the flesh.

29오직 이면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며

침(세)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29But he is a Christian who is one inwardly;

and baptism is that which is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letter;

and hi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그리스도인들도 표면적 그리스도인과 이면적 그리스도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표면적 그리스도인들이란 누구일까요? 교회에는 나오지만 그 마음에는 예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 문화나 사회 속에 살면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모가 그리스도인이니까 자신도 그리스도인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국가에서 태어나 자라났으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표면의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 국가에 의해서 혹은 부모에 의해서 영세나 유아 세례를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면의 그리스도인 속이 그리스도인인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의 침(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다시 낳아주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어느 날, 니고데모라고 하는 유대인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에서 가장 종교적이라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산헤드린이라는 유대 최고 입법 사법 기관의 의원이었습니다. 또 그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 교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당신은 다시 태어나야만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는 것은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태어나는 것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모에게서 육체적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태어남을 말씀하셨습니다. 부모에게서 육체적으로 태어났듯이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면의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지킴으로 개선되는 삶이 아닙니다. 이면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자녀들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혈통이나 사람의 욕심이나 사람의 뜻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낳아주셨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이면의 그리스도인, 마음으로부터 변한 그리스도인, 성령께서 다시 낳아 주신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칭찬이 그에게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진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과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믿음을 계속적으로 지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표시, 하나님의 인을 맞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Revelation 14:12 말씀을 볼까요?

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2Here is 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

who keep the commandments of God and their faith in Jesus.

그리스도인들에게 계명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사랑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이루는 사람은 모든 율법을 다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Romans 13:9-10 말씀을 봅시다.

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찌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9For this, "YOU SHALL NOT COMMIT ADULTERY, YOU SHALL NOT MURDER,

YOU SHALL NOT STEAL, YOU SHALL NOT COVET,"

and if there is any other commandment,

it is summed up in this saying,

"YOU SHAL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0Love does no wrong to a neighbor;

therefore love is the fulfillment of the law.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을 행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을 고백하는 우리의 믿음을 지켜나갈 때, 우리는 진품 그리스도인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때로는 죄에 빠질 때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시 깨끗하게 씻음을 받고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몇 십 년을 다녔으면서도 아직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거듭났는지,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믿는지, 내가 성령님으로 어떻게 태어났는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내가 거듭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지금부터 150여 년 전에 영국에서 활동하던 찰스 스펄젼(Charles Haddon Spurgeon, 1834-92) 목사님의 회심 이야기를 다시 들어 볼까요? 스펄젼은 1850년 1월 6일, 그의 나의 열다섯 살에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방학을 맞이하여 고향 집으로 돌아온 고등학생 스펄젼은 주일이 되어 자기가 다니던 교회에 가려고 주일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집밖은 진눈깨비가 날리는 아주 험한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가려던 교회에 가지 못하고 “원시 감리교”(primitive Methodist)에 속하는 한 작은 교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곳에는 남루한 옷차림을 한 약 열다섯 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아마 날씨 탓에 그날 설교를 하실 목사님이 오시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한 집사님이 그래서 대신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이사야 Isaiah 45:22 말씀을 읽었습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Look unto me, and be ye saved, all the ends of the earth: for I am God, and there is none else.) 그리고 이 집사님은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바라보면 됩니다. 아무 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열심히 설교한 집사님은 이제 더 이상 설교할 밑천이 떨어진 것처럼 잠시 설교를 쉬었습니다. 그리고 스펄젼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보게, 젊은이. 내가 자네를 보니 참으로 불쌍해 보이는군. 자네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평생토록, 아니 영원토록 불쌍할 것일세.” 겉모습은 그 설교자가 더 불쌍해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달랐습니다. 그 설교자 집사님은 이미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스펄젼은 그때까지 아직 거듭남의 체험이 없었습니다. 스펄젼은 이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모셔 들였습니다. 신앙의 눈을 뜨고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스펄젼은 곧 전도자가 되고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겉모습은 화려할 수도 있습니다. 옷도 잘 입고, 음식도 잘 먹고, 공부도 잘 하고, 가정도 좋고, 건강도 좋고, 인간관계도 좋고, 돈도 필요한 만큼 쓸 수 있고,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겉모습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적인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람을 보십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인지, 아니면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인지를 보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토록 불쌍할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겉에 보이는 것, 세상의 것, 일시적인 것만 따르다가 죽은 후에 불과 유황의 못에서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하기에 불쌍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으로부터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렇게 속으로부터 진정한 그리스도인 된 사람이 열매를 맺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능력으로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 드림으로 성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진정한 이면의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