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베드로 장모의 치병의 기적
본문 마8:14-17, 막9:29-31, 눅4:38-40
서 론
예수께서 안식일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뒤에 "안드레"를 따라 "시몬 베드로"의 집에 가셨는데 거기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서 앓고 있습니다.
그 열병은 당시 유행하던 병중에 하나인 것으로 보는데
(1) 파상열이라는 열병이요.
(2) 장질부사
(3) 말라리아
이중의 어느 병인 것으로 앓고 있습니다. 이같은 환자에게 손을 얹으사 병을 고치시니 그 여인은 고침을 받고 예수님께 수종 들었다는 것이 본문의 뜻입니다.
1. 예수와 함께 있는 곳에 고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는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기를 우리 연약한 것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고 예언하였고 예수께서는 이사야 예언대로 질병을 담당하사 만병의 의사로써 역사를 하시였고 지금도 하십니다.
옛날 갈릴리와 유다에서 권능으로 역사하는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니 우리는 능력의 주를 힘입어 육신의 질병과 심령의 질병을 고침받고 평강의 주를 모시고 천국생활을 향유해야 할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때 많은 기적을 행하시되 특히 병자를 많이 고치셨습니다.
*주님이 병을 고치실 때에는
첫째, 무슨 병이든지 고치셨습니다.
이는 질병의 성질을 초월하시어 고치신 것입니다(마4:24). "그의 소문이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병과 고통에 걸린자 귀신 들린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병자가 많건 적건 병명이 다양하게 많이 있었지만 모든 병의 전문 의사가 되어 고치신 것입니다.
둘째, 어디에서든지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고치시는 장소는 어떠한 병원이 아니고 어디나 자유롭게 환자가 있을때는 고치신 것입니다. 즉 장소에 제한이 없이 고치시는 것입니다(마8:14). 이는 가정집에 심방가셔도 고치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누구든지 고치십니다.
인종, 성별, 국경등의 차별을 아니하시고 고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마15:21-28)에 이방 사람인데도 주님은 치료하셨습니다. 그는 또한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넷째, 어느 때라도 고치셨습니다.
요즘 병원에는 시간제로 치료를 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시간 제한 없이 어느 때든지 병자가 있을시는 치료했습니다(마21:14). 예수께서 성전에 계실때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다섯째, 얼마든지 고치셨습니다.
즉 사람이 많든지 적든지간에(마14:34-35) 사람들은 한계가 있어 많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 예수님은 기술로 하지 아니하고 능력으로 하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일을 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병고치신 방법
첫째, 만지며 안수하시고 고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라는 상황 묘사는 안수 하심으로써 그 병이 낫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예수께서 안수하시여 병자들을 고치신 일이 많으니(막6:5) 소수의 각종 병자들에게 안수하시어 고치셨고, 벙어리를 고치실때에 안수하시어 고치시었고, (눅13:13)에 18년간 귀신에 붙잡혀 고생하던자를 안수하시니 구부렸던 허리가 펴져 고치신 일도 있었습니다.
(행28:8)에 바울이 보불리오 부친의 열병을 안수기도 하므로 고치기도 했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연약함을 익히 아실 뿐 아니라 그 연약함을 보완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인이심을 보여 준 기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수하시어 병자를 고치신 것은 오직 사랑의 표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말씀과 명령으로 고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으로 병을 고치셨다는 것은 그가 권위를 나타내심을 의미합니다. 이 예수님 말씀의 권위는 앞으로 재림시에는 심판의 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계19:15).
(눅4:35)에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시니 귀신이 나가 기도 했고" (막10:52)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니 소경이 곧 보게 되었다"고 하셨고 (마8:8)에는 백부장이 말씀해 달라고 하므로 그의 원대로 말씀하시니 저의 하인 아들이 병을 고치게 되었고 (마15:28)에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저의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는 안되는 것이 없고 그 말씀의 권세 앞에는 항거와 주저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의 말씀인 것입니다.
3. 병을 고침받은 자가 보답하라는 것을 교훈하시는 기사입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병고침을 받고 예수께 수종을 들었던 사건은 구원받은 자로서 갖추어야 할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의 선물을 받은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즉시 일어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수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을 하여야만 됩니다.
받은 모든 축복과 응답 받은 모든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더욱 섬기도록 합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 교회의 일을 위해서 자유롭게 봉사하는것 모두가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한 조그만한 보답인 것입니다.
(행2:43-47)에 은혜를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보답으로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여"했습니다. 이같이 받은 은혜를 보답해야 합니다.
4. 질병은 어느 가정이나 온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가정에도 들어왔으니 말입니다. (눅4:38)에서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 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고 했습니다. 이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회당안에 있던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다음에 베드로의 집에 오셨습니다. 그때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중한 열병이란 원어적으로 큰 열병이란 말이고 고대 의사들은 병을 큰병과 작은 병으로 구별했습니다. 어찌하든지 병은 어느 가정이나 침투하여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며 살것입니다.
5. 질병이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질병은 원래 죄와 더불어 이세상에 왔습니다. 질병의 근원은 사탄입니다. (욥2:7) 사탄은 질병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고통과 불행에 빠지도록 합니다. 질병은 대체적으로 인간이 죄 때문에 당하는 일반적이고 구체적인 징벌이며 그것이 짧은 인생의 삶을 근심과 고통속으로 몰아 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에나 그 긍휼의 손길을 펴시고 계십니다. 질병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축복하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질병은 곧 하나님과 만남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질병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질병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무능을 깨닫게 함으로써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갖게 하는 유익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가장 좋은 마음 자리를 삶속에 제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큰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때 질병은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을 나에게 오시도록 하는 은총의 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바로 이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6. 질병은 인간의 무능을 깨닫게 합니다.
(눅4:38)절에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했습니다. 질병은 병에 걸린 본인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무능"을 실감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질병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무능의 확인, 이것처럼 인간을 슬프게 하고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세균에게 조차 대항할 능력이 없고 나뿐만 아니라 그밖의 모든 사람에게서 질병에 대한 무능함을 느낄때 절망과 공포가 찾아 옵니다.
거기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집 사람이 예수께 병고쳐 주시기를 구한 것도 그들이 그들의 철저한 무능과 절망과 공포로부터 구출되기를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열병을 앓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나 그녀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우리 모든 인생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때때로 처절한 무능감에 빠지고 절망과 공포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습니다.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는 것입니다.
7. 신유는 하나님의 속죄 은총입니다.
(눅4:39)에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열병을 꾸짖으셨다는 것은 병이 마귀로부터 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열병을 꾸짖으신 것은 병마를 꾸짖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속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질병은 죄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마9:2, 막5:2, 눅5:20)는 말씀은 예수께서 병자들이 고침받는 다는 것이 베드로의 장모처럼 속죄와 봉사(수종듬)의 이중적인 은총을 입음을 뜻합니다. 찬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며 감사할것은 그분의 은총뿐입니다.
결 론
성도들이여, 예수께서 우리들 집에 오시며 계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마치 마리아가 증거함 같이 저는 "주님이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으리라"고(요11:32)했으니 즉 주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에 형통이 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그 가정에 이르시니 이미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시었습니다. 본문에도 베드로의 장모 고통받던 그녀 집에 주님이 오시므로 고침받을 뿐 아니라 바로 일어나 일을 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주님이 함께하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성도들이여, 예수님과 늘 함께 하는 가정이 되어 평안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