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중풍병자의 기적

 8.중풍병자의 기적


▨ 마9:1-8, 막2:3-12, 눅5:18-25 ▧

예수님께서 "가다라"지방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고 난후 다시 "가버나움"동리에 오셔서 한집에 들려 말씀을 강론하실 때 어느 덧 많은 사람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각 지역에서 모여 들었습니다.

당시 그 마을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이 자에게 믿음이 좋은 옛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 환자를 메고 주께로 왔는데 마침 사람이 너무나 많아 예수님 앞으로 갈 수 없어서 지붕에 올라가 구멍을 뚫고 그곳으로 환자를 달아 내려 예수님 앞으로 내려 놓았습니다. 이 환자는

(1) 나이 어린자가 중풍병에 걸렸습니다.

(2) 자기 혼자 움직일 수 없는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3) 친척이나 부모의 도움을 못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4) 다만 그에게는 생명을 걸고 돕는 네 친구가 있는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아무리 자기의 처지가 비관스럽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지혜를 찾고, 기회를 찾고, 삶을 찾고, 영생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시련과 연단도 있지만 그 속에는 참 행복의 길도 있는 것입니다.

1. 파괴가 없이는 건설이 없다고 하심입니다.

씨앗은 먼저 땅에 묻혀져서 껍질이 썩어 터지고 난후에야 흙을 뚫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새싹이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자연과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닭의 알은 적합한 온도를 거쳐 껍질이 파괴되어야 병아리가 나와 닭으로 성장합니다.

먼저 죄인된 자기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받아서 다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성장과정입니다.

네 사람의 도움을 얻어 예수를 만나려고 지붕을 뚫은 것은 파격적인 행위이며 그 자체가 생명으로 연결되는 거룩한 파괴입니다. 또한 지붕을 뚫은 것도 물질적인 파괴이며 이미 가련한 중풍병자의 육체는 파괴된 상태인 것입니다.

집주인에게도 피해요 군중들에게도 피해이며 자신의 추한 모습이 대중 앞에서 드러나는 수치를 다 감수하고 오직 온전한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어려운 난관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앞에 나온 중풍병자는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이사람의 진정한 불구는 영적인 죄악에 있었기에 이 죄악이 파멸되므로써 근본적인 치유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지붕을 뚫는 이 조그만한 파괴가 그에게 새 생명을 얻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 형제의 생명을 불쌍히 여기고 관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네 친구는 환자의 생명에 대한 관심을 먼저 가지고 그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결국 환자의 생명을 예수 앞으로 인도하여 구원하려고 하는 동기가 된 것입니다.

이들과 같이 우리 성도들은 영적으로 중풍병자와 같은 불신앙의 가족, 불신앙의 이웃, 불신앙을 가진 친구의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저들을 긍휼히 여길 마음과 자비롭게 여기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꼭 예수 앞으로 인도해야 할것입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이 환자를 치료하심 같이 개인 개인 형편에 따라 치료와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3. 적극적인 봉사심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친구들이 환자를 예수 앞으로 인도할 때 누구의 권고를 받은 것도 아니요 누가 시킨것도 아니고 오직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자발적으로 봉사를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믿음이 있고 형제와 이웃의 생명을 사랑한다면 자발적으로 영혼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희생이 읽더라도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원병이지 징집이 되어 나온 의무병이 아닙니다.

내가 세례 교인이니까 의무적으로 봉사해야 되겠다 하면 많은 부담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 직책이 없는 사람은 아무일도 안하게 됩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 진정 예수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누구의 권고와 부탁이 있기전에 의무감에 앞서 자발적으로 선교와 봉사를 해야 합니다.

자원적 봉사는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을 뿐더러 가벼운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보다 능률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마음을 같이 하는 협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사람이 한결같이 생명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위해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함께 하였습니다. 네 사람중에 한사람이라도 마음이 변하여 협력을 아니 했으면 일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들의 협동정신이 친구의 생명을 중풍병에서 구원케 한 것입니다. 교회 본래의 사명은 많은 영혼을 구원해 내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힘을 합치어 영혼을 구원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함께 기도하니 패전하던 전쟁이 이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사람이 의합지 아니 하고는 같이 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온 성도가 이웃들을 주께 인도하는데 협력해야 하겠습니다.

5. 우정이 깊은 신앙심을 찾아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정 있는 신앙이 있는 곳에 예수의 자비의 손길이 같이 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남의 신앙의 도움으로 병고침을 받거나 죄사함을 받은 예가 많이 있습니다. (마15:21-28)에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어머니의 끈질긴 간청 덕분으로 고침을 받았고, (마8:5-13)에 백부장의 신앙을 보시고 그 하인의 아들이 고침을 받기도 하고, (왕상17:10-24)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도 그 어머니의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왕하 5:1-14)나아만도 자기집 계집종으로 인해서 고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11:40)에 죽었던 나사로도 그 누이들의 신앙으로 살아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네가 이것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셨습니다.

성도들이여, 나의 열정이 많은 영혼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하겠으며 지극한 우정으로 이웃을 주께로 이끌어 멸망에서 생명길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6. 자기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하셨습니다. 올때는 사람을 의지하고 왔지만 갈때는 제힘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혼자 일어서고 혼자 침상을 챙기고 혼자 힘으로 집을 찾아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왜 갖고 가도록 했을까요.

첫째, 가서 다시 죄를 지으면 침상에 눕게 된다는 교훈이신 것입니다.

둘째, 이젠 남의 신세를 지지말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라는 뜻인 것이며,

셋째, 이 침상은 이제 필요없는 것이니 집에 갔다두라는 뜻입니다.

신앙에는 철저하고 모험적 신앙이 필요합니다. 참된 신앙은 언제나 모험을 동반합니다. 될 수 없어도, 막연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는 그것이 모험적 신앙입니다. 노아가 홍수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짓는 신앙이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본토와 친척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나 떠난일, 얻은 이삭을 바친일, 이는 다 모험의 신앙이었습니다.

성도여 이들과 같은 신앙이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7. 나의 참 친구가 있는가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 네 친구들은 친구의 질병을 고침과 영원히 구원의 문제인 죄 문제까지 해결케 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친구들이었습니다. 성인들의 친구의 우정에 관해서,

* 가장 훌륭한 만병통치약이 친구다. (서머빌)

* 친구라는 말은 흔하지만 우정있는 신뢰는 드물다. (파에드루스)

* 친구없는 인생은 증인 없는 죽음입니다. (하버트)

* 취미는 바꾸더라도 친구는 바꾸지 말라. (불테르)

이는 참으로 훌륭한 친구관을 말해주는 명언들입니다. 어떤 저명한 인사가 당신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때 나에겐 변함없이 줄곳 도와 준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명예와 재산과 행복의 정상에 이를수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단3:13-23) 청년의 친구들은 행동을 같이 하여 죽음에도 같이 하였습니다. 이같은 좋은 친구가 우리들도 사귀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눅11:5-6)에 밤중에 밥을 달라고 찾아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평시의 우정이 어떠했나 하는 것을 짐작할 만 합니다. 즉 이들은 어느 경계선이 없는 사이였던 것입니다. (잠19:7)"가난할때 가까히 하는 친구였습니다" 내가 어려울때 도와 주는 자가 참 친구인 것입니다.

8. 고통중에 있는 자에게 사랑과 동정을 주라는 것입니다.

동정이란 말은 하나님의 덕성중 하나로서 그의 백성 곧 언약의 백성을 다루시는 섭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긍휼(동정)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으로 표준삼고 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미덕중의 하나입니다. (출3:7, 신30:3, 마25:31-46)에 나오는 만국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에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제일 우선적인 심판의 기준은 그들의 생활에 긍휼이 있었느냐 또는 없었느냐 였습니다.

그렇다면 동정은 어떻게 짐작되는가 동정은 가련한 자의 상태 물질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그의 상태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재발시킴으로써 짐작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련한 자에게 그의 동정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동정은 본능적인 것이지 이해 타산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또 가련한 자를 구별지어 동정을 베푸는 식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 주위에 도와 주어야 할 대상이 있으면 조건없이 동정을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9. 예수님의 능력을 증명하신 기사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것은 기술이나 마술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주님은 하시므로 곧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눅4:33-37)에 각종 병자와 귀신들을 쫓아 내실때에 많은 사람들이 "이자가 누구이기에 권세와 능력으로 귀신을 명하니 나가는고"했습니다. 이같이 주님의 능력을 불신자까지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아쉬움은 오늘날 주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 주의 능력을 믿지 아니하고 의심하니 안타까운 일인것입니다. 성도여 우리 주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심을 믿어 영광을 돌리어야 하겠습니다.

결 론

네 청년들의 신앙, 열심, 우정을 우리 모두 본받아 우리의 가정, 친구, 이웃들에게 나누어서 주님의 능력을 힘있게 전파하여 불행한 자들이 축복으로 변하는 일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