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8:5-13, 눅7:1-10 ▧
종의 생명까지 좌우하는 권위를 가진 로마의 한 백부장이 그 종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님께 간청한 그의 신앙을 주님은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더우기 예수님께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 사람의 믿음을 더욱 훌륭하다고 평가 하신 것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큰 기대와 소망을 주는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이 백부장의 인격과 생활을 약술해 보면
(1) 유대 백성을 많이 사랑한자니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가진자요(롬10:11-12)
(2) 회당을 지어 바쳤으니 봉사심과 물질로 헌금을 많이 한 충성자이다(빌4:18)
(3) 유대인들에게서 많은 칭송을 받은자이니 덕망이 높은 도덕군자요(눅7:1-10)
(4) 병든 종을 위해 예수님께 간구하였으니 인간의 차별함이 없는 자이고(마25:40)
(5) 로마군의 장교이니 지위상 고관입니다(행10:24-33). 고로 이는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이는 어느 모로 보나 훌륭한 인격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인간 차별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종에 대한 관심과 배려심이 대단하였습니다. 누가는 그 하인은 그의 주인에게 사랑스러운 또는 매우 소중한 종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둘 사이에는 원래 사랑의 띠가 있었지만 그 극진함은 사랑을 넘어서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고통받는 귀중한 종을 주인은 마음속에 진실로 아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명령만 하던 그였으나 아픈 종을 위해서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었던 것이 사람의 차별이 없는 하나의 사랑함이었습니다.
성서는 이같은 일에 더욱 격려하기위해 표현하기를
* 형제를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라고(약5:14)하고
* 종은 상전에게 상전은 종에게 그리스도께 하듯하라고 하고 (엡6:5)
* 그리스도인의 증거는 형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확산이라고 (엡4:25)하였습니다.
이같이 우리가 무가치하다고 생각된 자라도 그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미천하다고 생각 된 자도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2. 이 백부장 같이 겸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그는 로마 시민으로서 당대의 일등 국민이었습니다. 더우기 그는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군국주의 장교였습니다. 세상 권세를 말하면 피지배 민족인 유대인은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계급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구도자라는 입장에서 자기를 평가한 것입니다. 그는 종교적 입장에서 자기를 보았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대하여 "내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한 것은 자기집이 누추해서가 아닙니다. 적어도 로마의 장교 신분이라고 하면 꽤 고급주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눅7:5)에 그가 유대인들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어준 일이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에 그가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을만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예수의 방문하시는 일을 거절했나 그것은 그 자신이 이방인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볼때 용납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밖에 달리 해석이 필요치 않을 것같습니다. 실로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 백부장은 자기의 처지를 아는 겸손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란 이말은 지극히 겸손한 신앙을 가진자의 고백입니다.
*스웨덴의 외교관 "함마르쉬케트"씨는 신앙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진정한 겸손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두렵게 여기는 겸손한 신자를 요구한다고 루터는 말했습니다. 사울은 겸손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일국의 왕으로 등용하였으나 그가 교만 해졌을때 그 자리를 겸손한 소년 다윗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잠18:21)에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하였습니다. *죤 번연은 천로 역정에서 낮은대 거하는 자는 떨어질 걱정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의인보다 겸손한 죄인을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겸손한 마음 속에만 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과 같이 겸손한 백부장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3. 백부장은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치유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하인이 낫겠나이다"이는 손을 대거나 마법을 걸어서 어떤 마술적인 작용을 일으킬 필요가 전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보이는 표적도 바라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보고 있었던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스펄전은 백부장의 굳건한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백부장의 신앙심은
* 예수님의 병고치시는 능력을 믿었습니다.
* 예수님을 공간초월(거리의 원근)하시는 능력자로 믿었고
* 백성을 사랑하고 사랑에 몸소 실천하는 자이고
* 예수님을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자로 믿었고
* 개인적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믿음이고
* 간절하게 주님께 간구하는 믿음의 소유자이고
* 백부장이면 꽤 높은 권세자인데 예수님을 찾는 겸손의 믿음이 있었고
* 실제적으로 체험하면서 믿는 신앙자이고
* 예수님께로 부터 칭찬 받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성도여 이같은 믿음의 소유자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4. 믿음이 있는 곳에는 주님은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13절에 네 믿음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백부장의 위대한 신앙의 장면이니 이같은 신앙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에게 칭찬하시기를 이스라엘중에서 찾아 볼수 없는 믿음의 소유자라고 하셨습니다.
큰 신앙, 진실한 신앙, 겸손한 신앙, 인간을 사랑하는 신앙은 예수님께 인정 받는 동시에, 인정 받은 신앙이 있는 곳에는 주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첫째, (마9:2) 한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사람의 신앙을 보시고 그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둘째, 12년 혈루증 여인의 (마9:22) 신앙,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낫겠다고 하는 신앙자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셋째, (마9:27) 두 소경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 주시었습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입니다.
상대를 의심하면 상통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상통이 없을 시는 단절이 되는 것입니다. 단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 지는게 없습니다.
성도여 우리들의 소원한 것마다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는 자가 되도록 복을 받읍시다.
5. 말씀의 능력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8절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시옵소서" 백부장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모든 우주를 통치하시는 전능의 주로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같은 말을 할수 있겠습니까? 이 자는 예수님의 말씀이면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진다는 믿음입니다.
* 마틴 루터는 "주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에서라도 능히 살아갈 자신이 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백부장은 그가 친히 자기집에 오시지 않더라도 말씀 한마디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1) (눅17:11)에 열 문둥이들이 주의 말씀대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려 하다가 치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2) 베드로도 주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두배에 가득 채우는 고기를 잡는 축복을 받았습니다(눅5:1-11)
(3) 가나안 혼인집에도 말씀대로 순종하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요2:1-10).
(4)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눅1:37). 말씀을 안 믿는 것은 성경을 부인하는 것이요 성경을 부인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는 주에 말씀에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믿는 것이니 이같은 말씀에 의한 신앙을 가집시다.
6. 예수님께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로마에서 가버나움까지 하인의 아들 병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 온것입니다. 질병의 문제나, 사업의 문제, 인간들 행위의 문제, 죄의 문제를 주님 앞에 나와 고함으로서 해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가지고 우물거리면 결국 손해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 (마15:22-28)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딸의 귀신들린 것을 고하므로 고침을 받게 되었고
* (눅19:4) 삭게오는 뽕나무가 있는 길가에 나와서 주님을 보려고 하므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자신과 가정 식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 (막2:1-12) 반신불수도 주님을 찾을 뿐더러 예수님 앞에 다가 오므로 저가 고침을 받게 되고
* (막10:46) 바디메오는 예수님의 지나가는 길목을 지키다가 그의 능력을 힘입어 눈이 뜨게 되었습니다.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모든 백성은 주님 앞에 나오므로 영과 육이 쉼을 얻어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7. 자기의 부족을 알라는 것입니다.
8절에 "주여 수고하지 마시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즉 그가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셔들일 만한 가치가 없는 자라고 한 것은 주님을 모시어 들일 만한 모든 준비가 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 같은 분이 자기 집에 오심을 감당하지 못함은 자기는 모든면에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도여 나의 부족함을 주님께 시인하면 그 부족하다고 시인 한 것 이상으로 채워 주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 (마3:11) 사도 요한은 자기는 예수님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 (사6:5) 이사야는 망하게 되었다고 실토를 하였고
* (고전15:8) 사도 바울은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였고
* (눅15:21) 탕자는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음을 시인하고 아버지의 집을 찾아 돌아왔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앞에 가치없는 자라고 실토 할때에 이 백부장과 같이 신의 능력을 입게 되고 크신 역사를 나타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8.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0절에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주여 주여" 하는 자는 많았으나 주의 뜻대로 행하고 믿는자는 적었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이방인이면서 말씀대로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 (눅21:3) 어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시는 것을 보시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하시었다고 인정하셨고
* (요1:47) 나다나엘의 간사함이 없는 점을 주님은 인정하셨고
* (행10:1-2)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 한 것도 주님은 인정하셨고
* (마19:16-22) 한 부자 청년이 계명을 지킨 것도 인정하셨고
* (마26:12) 향유한 옥합을 드린 여인의 헌신도 인정하셨고
* (마25:21) 이익을 남긴 종들에 충성도 인정하시사 칭찬하셨고
* (눅18:14) 기도하던 세리 겸손함도 인정하셨고
* (눅23:43) 구원을 요청하던 우편 강도의 소원도 인정하셨고
성도들이여, 이들과 같이 주님께로 부터 인정받는 행위를 합시다. 예수님은 인정하시고 곧 상급을 주십니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께 인정받었기 때문에 저의 요청에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 론
사람마다 원하고 바라는 것들이 산적해 있으면서 그 바라고 소원을 이루는 비결을 알지 못해서 고통과 불행 가운데 지내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한데 여기 본문은 그 소원을 이루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주님께 나오는 것이요, 뜻하고 있는 바를 구하는 것이요, 또한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확신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백부장과 같은 행동과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생애도 복되게 살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