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두 소경을 고치심


두 소경을 고치심

▨ 마 9:27-31 ▧

예수의 소문을 들은 두 소경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 오며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애원하며 예수께서 고쳐 주실 것을 확신하는 신앙으로 간청할 때 예수께서 그 눈을 만지시며 보게 하시였습니다.

두 소경은 믿음으로 광명을 찾았고 감격하여 예수님을 온 땅에 증거하였습니다. 복음서에는 소경을 고치신 일이 여섯번이나 기록되고 있는데 많은 병자의 치료중 일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사회에는 세가지 종류의 소경이 있다고 말합니다. 과연 나는 소경이 아닌지 자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육신눈의 소경이 있습니다.

(1) 만물의 형태를 보지 못하는 소경(신28:29)

"소경이 어두운데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했습니다.

(2) 사람의 얼굴을 알아 보지 못하는 소경(창27:21-22)

이삭이 야곱을 알아 보지 못했습니다.

(3) 자기의 갈길을 가지 못하는 소경(왕하6:19)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이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지식의 눈이 어두운 소경도 있습니다.

(1) 글자의 뜻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단5:8)

"왕의 박사가 다 들어 왔으나 능히 그 글자를 읽지 못하며 그 해석을 왕께 알게 못하느니라"했습니다.

(2)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 자(마13:14)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를 보아도 이해를 못하는 자들

셋째, 영안의 소경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눅24: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했습니다.

(2) 가치관이 희미하여 분별력이 없고 (마23: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하셨습니다. 이상의 세가지 소경중 어떤 소경도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소경은 측은히 여겨야 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측은히 여겨야 할 대상은 영적 소경들입니다.

그 이유는

① 생명의 길을 못보고 죽음의 길로만 가고 있기 때문이요.

② 모든 죄중에서 불신앙이 가장 큰 죄인 줄 모르기 때문이요.

③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우리 앞에 계시지만 그것을 모르고 붙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④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죄인인 줄도 모르기 때문이요.

⑤ 형제를 비판할 줄은 알면서도 자기의 추한 모습은 볼줄 모르기 때문이요

⑥ 자기는 알지만 이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⑦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인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⑧ 현실을 볼줄 알면서도 내세는 볼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⑨ 인간의 귀중성을 알면서도 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때로 영적 소경이 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영적 소경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영안이 떠지도록 빛되신 예수님 앞으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민족이 사는 길은 영적 눈이 열리며, 영이 밝아져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생명이신 예수를 알게 되고, 이로써 양심이 밝아져 죄를 두려워 하게 되고, 부정, 부패, 불의에서 멀어지게 되고, 의를 찾아 광명의 생활로 나가 올바른 인도를 걷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축복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라는 뜻이 있다(27).

이 소경들은 가버나움에서 야이로의 집까지 따라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장애는 눈이 어두운고로 예수님을 쫓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소경과 같이 예수를 바로 알고 따라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를 어떻게 아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까?

메시야란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으로 죄에서 자유를 주시며, 사단의 속박에서 해방을 주어 모든 고통에서 평안을 주는 분, 어둠에서 광명을 주며 절망에서는 소망을 사망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분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이 예수를 바로 아는 것이며 이렇게 알고 따르면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당시 소경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놓칠까봐 지팡이로 더듬으며 모든 불편을 무릎쓰고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따라 갔습니다. 이는 오직 예수님에게 믿음과 유일한 소망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자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를 때에는 이 소경들과 같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때로는 미움과 핍박을 받고 못난이 취급도 받고 인본주의, 물질주의, 현실주의 자들 앞에 따돌림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를 따라야 합니다. 여기에 참 소망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첫째, 나를 완전케 해 주시는 소망

둘째, 영안이 밝아지는 소망

셋째, 광명한 생활을 가지는 소망

넷째, 모든 육적 영적 병에서 치료를 받는 소망

다섯째, 부활의 소망

여섯째, 천국의 소망

일곱째,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는 소망

이 모든 소망이 예수에게서만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예수에게만 소망을 걸고 살 것입니다.

2. 믿음이 치유의 전제조건 임을 알게 된다(28하).

믿음을 가진자에게 예수님은 은혜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들은 그 믿음 때문에 흑암에서 광명을 찾았습니다. 믿음은 귀합니다. 믿음없이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것입니다. 구하지도 말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곳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가진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첫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벧전5:7)

둘째,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고(눅11:13)

셋째,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고(롬1:5)

넷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롬12:1)

다섯째, 하나님을 시인 하는 것입니다(롬10:10).

여섯째,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엡5:10).

일곱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요15:7).

여덟째,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믿음입니다(빌4:6).

트렡치는 특유한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즉 믿음이란 인간의 공허함과 하나님의 충만한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이며 그것이 없이 결코 그 샘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길러 올릴 수 없는 은총의 샘에 내려진 두레박이며 그것 자체로는 그 주인을 부유하게 할 수 없으나 그 안에 담겨 있는 보물에 의해서는 부유하게 해 주는 지갑이라고 말했습니다.

3. 소리쳐 간구하라는 뜻입니다.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한 부르짖음은 겸허한 자세로서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을 요청하는 하나의 기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언제나 그런 자세에 서야 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왜 응답하지 안하셨을까요?

첫째, 저들의 열성과 간절한 소원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기 위해서라고 생각이 되고

둘째, 저들의 진정한 요청을 알기 위해서이고

셋째, 저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기 위해서이고

넷째, 어느 시점에 가서 이루어질 은혜의 가치에 귀중성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곧 응답이 없다고 기도를 중단하거나 낙심하면 안됩니다. 더욱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 올때 오히려 은혜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성경에는 기도하라고 하신 일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이 기도하여 조카 롯을 구원했습니다(창19:22).

(2) 모세의 기도에는 홍해바다가 갈라졌습니다(출14:21-27).

(3)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는 불이 임했습니다(왕상16:36).

(4) 솔로몬의 기도는 지혜를 얻었고(왕상3:11-12)

(5) 한나의 기도는 아들 사무엘을 얻었고(삼상1:17)

(6) 구하면 주고 찾으면 찾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하셨습니다(마7:7)

(7) 주님께 소원을 아뢰면 결코 거절하지 아니한다고 하셨고(막7:29)

모든 문제를 주님께 아뢰면 해결을 받습니다.

4. 볼 수 없던 자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하신 뜻입니다.

(요9:41) "너희가 소경이 되었다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이 자기들의 영안이 어두운것을 깨닫고 겸손하게 예수께 나왔다면 그 죄는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을 것입니다. 영계에 대해서는 소경이면서도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교만해져서 예수께 나오지 아니하여 저들의 죄는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고 따라서 심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23:17)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우맹이요 소경들이여"란 말은 도덕적인 면에서 그들의 태만함까지도 의미하는 것으로 지혜의 언어로 말할 때 우맹은 죄인을 일컫습니다.

(벧후1: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소경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이웃에게 사랑을 공급하지 아니하는 자가 소경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소경들은 보지 못했으니 교만, 죄가 성장하지 않았으며,

둘째, 소경들은 보지 못했으니 탐욕의 죄가 적었습니다.

셋째, 소경들은 보지 못했으니 행위죄가 적었습니다.

이 소경들은 아는 대로 행하고, 들은 대로 다윗의 자손을 불러 소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를 찾아야 하고 섬겨야 할 바리세인들은 배우고 듣고 보고서도 조그만한 지식 때문에 주를 섬기지 아니하고 부르지 아니한 것에 대해 주님은 지적을 한 것입니다.

5. 뜻이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첫째, 그들은 자연적인 빛을 보았습니다.

(1) 세상의 여러가지 현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2) 이로써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었습니다.

(3) 기쁨과 피해야 될 위험한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이들은 영적 빛을 보았습니다.

(1) 듣기만 하던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2)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3) 예수에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이들은 이제부터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1) 거지로써 거리를 누비던 자들이 자립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졌습니다.

(2) 도움받는 자에서 주는 자로 바꾸어졌습니다.

넷째, 건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1) 육신적인 장애가 없어졌습니다.

(2)도움없이도 어디든지 다닐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영적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이들은 가버나움 일대에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6. 소경들의 의견일치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사회에서 공동으로 도움을 받던 자들이었습니다.

(1) 무엇보다도 같은 소경이어서 도움을 받던자들이 었습니다.

(2) 또한 이들은 경제적으로 빈곤하여서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3) 이들은 같은 처지에서 마음이 통하는데가 있었습니다.

둘째, 이들은 똑같이 보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1) 그러므로 이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2) 또한 이들은 믿음이 일치하였습니다.

(3) 그리고 이들은 인내심도 일치하였습니다.

셋째, 용기가 일치하였습니다.

(1) 예수께서 반응을 아니하여도 그들은 물러서지 아니했습니다.

(2) 실망하지도 아니하고 보겠다고 따랐습니다.

(3) 조롱과 핍박 저지를 당해도 이에 굴하지 아니하고 예수만 불렀습니다.

넷째, 행동이 일치하였습니다.

(1) 서로가 보지는 못했지만 예수를 따르는데는 행동이 일치했습니다.

7. 예수를 만남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소경은 소리만 질러 구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 거지의 눈을 만져 주시니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독 신자가 기도는 많이 하는데 기도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과 만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했는데 응답이 없다면 예수님과 만나지 못한 증거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만나면 의견이 교환되고 상대방의 처지를 알게 되며 해결방법을 공동으로 노력하고 연구하며 좋은 일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결 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삭게오는 예수님을 만나 죄문제를 해결받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눅19:10).

둘째, 혈루병자인 여인도 예수를 만나고 근원의 치료를 받았습니다(막5:25-34).

셋째,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 대화를 나누고 영생의 방법을 알게 되었고(요3:1-10)

넷째, 베드로도 사업에 실패했지만 예수님을 만남으로 두배에 가득찬 고기를 잡았고(눅5:1-20)

다섯째, 반신불수도 지붕을 뚫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니 올때는 메고 왔지만 만난 후에는 제발로 걸어 갈수가 있었습니다(막2:1-12).

여섯째, 베데스다 못가에 38년 된 앉은뱅이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고질적인병인 앉은뱅이가 뛰어 다니게 되었고(요1:1-9)

일곱째,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도 상여타고 갔지만 예수님 만나니 살아났고(눅7:11-17)

이외에도 예수님 만나서 모든 문제를 다 해결받고 생애를 복되게 산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야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결 론

1. 소경들은 그리스도의 표적 행하시는 소문을 이미 듣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소경이었으나 귀머거리 아닌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귀로 듣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던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 메시야로 믿었습니다.

3. 간절한 마음이 불타서 소리지르며 뛰쳐 나섰습니다.

4. 많은 사람이 꾸짖고 잠잠하라 하되 이를 극복하고 나섰습니다.

5. "주여 우리의 눈뜨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호소했습니다.

6. 고침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습니다.

7. 이로써 이제 저는 예수님을 쫓아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