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위로 걸으신 기적
▨ 마14:22-33, 막6:45-54, 요6:16-21 ▧
예수께서 5천명을 먹이신 큰 이적을 행하신 후 육신적인 메시야로 착각한 군중들을 피하여 산에 가서 기도하시다가 밤 사경에 내려 오셨을 때 제자들은 세찬 풍파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바다위를 걸어서 공포에 쌓인 제자들에게 안심을 주신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의 인생들은 마치 어두운 밤 파도에 시달리는 예수의 제자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오늘의 시대적 위기를 예수님이 오셔서 해결 해 줄 것을 믿고 또한 예수를 바라보고 베드로처럼 바다위를 걸어 갈 수 있는 믿음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1.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는 방해의 장벽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배를 타고 건너 마을에 가고자 하는 중에 항해중 풍랑을 만난것처럼 큰 소망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을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첫째, 경제의 장벽이 있기도 합니다.
돈이 있으면 문화가 발달 되어서 인간들이 생활하는데 참 만족을 누리며 살수가 있는데 이 돈이 없어서 고생과 염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둘째, 질병의 장벽이 있습니다.
건강하기만 하면 아무 어려움없이 집안이 평안하게 지내겠는데 이 질병이 불행을 가져옵니다. 질병은 원치도 달갑지도 아니하는데도 따라옵니다. 이로써 고통과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아니하며 심지어 가정이 파탄에 이르기도 합니다.
셋째, 권력의 장벽이 있습니다.
예컨데 (눅18:1-8)에 기록된 이 과부는 권력이 없어서 자기 남편이 억울하게 죽어 과부가 된 것입니다. 권력의 장벽에 부딪혀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넷째, 언어의 장벽이 있습니다.
발람이 나귀의 말을 듣지 못하고 이해 못해서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민22:28-33). 나귀가 왜 나를 때리느냐고 하는 말만 잘 이해 했더라면 그는 망신을 당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다섯째, 사상의 장벽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있습니다. 한반도의 이 장벽이 무너져 비록 작은 땅이지만 남북이 상호 개방하고 왕래 할 수만 있다면 경제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섯째, 무지의 장벽이 있습니다.
인격도 있고 체력조건, 배경도 있지만 배운 지식이 없어서 출세하지 못하는자도 무수합니다.
일곱째, 약자의 장벽도 있습니다.
힘의 강자 앞에는 불가항력입니다. 체력조건이 약하면 강자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여덟째, 자원 고갈의 장벽이 있습니다.
기술도 있고 경제력도 있지만 지하 자원이 없을 때에는 아무런 소득원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벽을 무너뜨리는 힘은 오직 능력 많으신 예수를 믿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풍랑에 대한 의문점
첫째, 좁은 바다위에 풍랑이 심했다는 점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습니다. 그래서 게네사렛 호수라고 했습니다. 남북 20킬로미터 동서 12킬로미터 총면적 166평방킬로미터입니다. 노를 저어도 2-3시간에 통과할 정도의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제자들이 헤어나지 못하고 사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삶도 짧습니다. 잘 살아야 70-80세, 키가 170센티미터가 평균치이고요 몸무게 60킬로그램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고생과 질병 염려 고통이 많은가 의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둘째, 순종하여 떠난 뱃길인데 풍랑이 심했습니다.
요나는 불순종의 길을 가다가 풍랑을 만났던 일이 있었으나 이 경우에는 예수님이 가라고 명해서 갔습니다(마14:22). 그런데 풍랑을 당하여 사경에 이른 것입니다.
셋째, 바다에 익숙한 자들인데 고난을 당했습니다.
제자들 중에는 그 바다에서 자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피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은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유능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훌륭한 정치가, 종교가, 학자, 경제가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여전히 죽을 듯이 고통스러운 일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3. 주님과 떨어져 있던 제자들의 형편
첫째, 풍랑이 심해 고통만 당하고 있었습니다.
배가 파선직전에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세상 풍랑이 닥치는 원인 중에 하나는 주와 멀어져 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이 고통이 오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는 "주님이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아니 죽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요15장에서는 "네가 내안에 내가 너안에 있으면 저는 절로 과실을 맺는다"고 했습니다.
둘째, 무서움의 공포에 쌓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으로 오인할 정도로 공포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평안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공포와 불안이 없어지고 평안함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셋째, 목적지를 가지 못하고 표류중에 있었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니라"했으니 예수없이는 천국도 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예수를 오인한 제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물위로 걸어 오시는 예수님이 유령인가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한 귀신에 속하는 요물은 아닙니다. 이밖에 예수님에 대한 오인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 정치적 임금으로 알았던 이들도 있었습니다(마2:2).
둘째, 땅의 재판관으로 알았던 이들도 있었고(눅12:14)
셋째, 혁명의 주모자로 알았던 이들도 있었고(요12:13)
넷째, 거짓말장이로 알았던 이도 있었고(요8:57)
다섯째, 단순한 선생으로 아는 자도 있었고(마26:25)
여섯째, 도덕가로 알았던 이도 있었고(막10:17)
일곱째, 질병이나 고치는 자로 알기도 하고(마8:16)
여덟째. 율법을 폐하려 온자로 오인했습니다(마5:17)
이것은 자들은 예수의 전부를 모르는 자들의 판단입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예수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의 주요(히12:2)
(2) 사랑의 주시요(요14:8)
(3) 진리의 주시요(요14:6)
(5) 생명의 주시요(행3:15)
(6) 평강의 주시요(살후3:16)
(7) 영광의 주시요(고전2:8)
(8) 전능하신 주시요(고후6:18)
(9) 능력의 주시요(눅6:17)
(10) 소망의 주시요(롬8:24)
(11) 부활의 주시요(요11:25)
(12) 은혜의 주인이십니다(벧전5:10).
5. 제자들의 절대적 순종한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이들은 예수님과 같이 선교하다가 배를 타고 건너 마을로 가라고 하셨을 때에 비록 밤이었지만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둘째, 풍랑을 만났을 때에도 "나도 물위로 걸어가게 하소서"라고 말하고 "걸으라"고 하실때에 걸어갔으니 소중한 모습입니다. 이같이 때로는 어두운밤 풍랑의 항해 길이라도 주님의 명령이라면 걸어갈 수 있는 순종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풍랑으로 위험 지경에 있으면서도 허락없이는 구조를 요청하지 않고 명령만 기다리던 베드로와 같이 세상 살기 피곤하고 시달림이 많아도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들을 구조하심 같이 우리들의 문제를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6. 예수님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십니다.
예수님은 혼자 따로 한적한 곳에 가시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일상 생활화 하셨습니다. 하루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에 기도를 먼저 하셨습니다(막1:35).
이밖에 예수님에 기도하신 일을 생각해 보면
첫째,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하셨고(눅3:21)
둘째, 역사를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하셨고(마4:2)
셋째, 기도를 가르치시기도 하셨고(마6:9)
넷째, 감사 하실때도 기도하셨고(눅10:21)
다섯째,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도 기도하셨고(눅22:42)
여섯째, 제자들 위해서 기도하셨고(요17:1)
일곱째, 자신의 운명을 위해 기도하셨고(히5:7)
여덟째, 못박는 죄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고(눅23:34)
아홉째,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기도 하셨고(마27:46)
열번째,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시는 기도도 하셨습니다(눅23:46).
7. 고난에 처한자들을 도우려 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풍랑으로 인해 고통중에 있는 이들을 구하려 오시었습니다.
이외도 주님은 인간들의 불행에 처한자들을 구제해 주신 사건들이 많이 있으니
첫째, 귀신들려 고통받는자를 고쳐 주시기도 하시고(눅8:27)
둘째, 간질병으로 자주 불에도 물에도 넘어지는자를 고쳐 주시고(마17:150
셋째, 중풍병자도 고쳐 주시고(마9:2)
넷째, 문둥이도 고쳐 주시고(눅17:11-17)
다섯째, 죽은 아들을 살려 주시기도 하시고(눅7:11-17)
여섯째, 눈먼자들도 고쳐 주시고(눅18:41)
일곱째, 앉은뱅이를 일으켜 주시기도 하시고(마11:5)
여덟째, 귀먹어 듣지 못하는 자를 들리게도 하시고(막7:32)
아홉째, 손병신도 고쳐 주시고(막3:1)
열번째, 혈루병 환자도 고쳐 주시고(막5:25)
열한번째, 골고루 풍성히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요10:10).
8. 예수와 같이 능력에 이르는 행동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풍랑과 파도에 위험을 느끼었던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 오시는 예수를 확인하고 예수와 같이 물위로 걸어 갔지만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이지 절대자이신 예수님과 같이 능력의 자리까지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 어떤이들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40일 기도했으니 나도 40일 기도해야 하겠다고서 기도하고 자랑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같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둘째, 어떤이들은 예수님도 물속에 들어 가서 침례를 받았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 같은 성령의 세례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셋째, 어떤이들은 성령을 받아 땅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심을 인용하여 성령 받으라고 외치면서 마치 성령을 몰아 주는 것같이 군중들에게 내모는 시늉을 하는 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상을 쫓으려고 힘을 쓸 지언정 그에 능력까지 모방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9. 예수 자신의 신분을 보여준 기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풍랑을 명령하여 파도를 안정케 하심으로 광풍조차 명령으로 움직이신 이임을 친히 보이시었습니다(마8:23-28).
(1) 만물이 창조자시요 지배자임을 실력으로 증거하시고(골1:16-20)
(2) 이세상 풍파들을 안정케 하심으로 실력을 과시하시고(히1:1-)
(3) 말세의 환난들을 평정케 할 것을 능력으로 증거하셨습니다(계19:11-16).
둘째, 거센 파도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마14:22-23).
(1) 초자연적 능력을 실력으로 과시하시고(마28:18)
(2) 이세상을 이기고 전진하시는 실력을 과시하시고(요16:33)
(3) 그는 어부들에게도 고기를 지적해 주시므로 많은 고기를 잡게도 하셨습니다(요21:6).
셋째, 예수님은 특별히 본문을 통해서는 말씀하십니다.
(1) 자연을 지배하시고 창조자 이심을 보이셨습니다.
(2) 우리가 위험할 때 구하면 도와 주심을 보이셨습니다.
(3) 예수가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기쁨으로 변케 하심을 보이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이 사건에 대하여 주석하기를 "예수는 파도를 밟고 오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인생에 넘치는 모든 환란을 발아래 밟아 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찬이여 왜 두려워 하는가"라고 했습니다.
결 론
1. 풍랑은 일어도 배는 더 빨리 갑니다. 우리의 신앙도 풍랑으로 연단되면 더 빨리 갈 것입니다.
2. 풍랑은 일어났어도 목적은 달성하였습니다.
고생은 했으나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3. 우리는 지금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한사람만 잘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잘해야 망하지 아니합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어둠속에서 종종 괴로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로써 예수의 필요함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하시고 우리를 잠시 홀로 남겨 두십니다.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갈 수 있는 힘이 부족하면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오셔서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6. 우리가 곤경에 처해 있으면 예수님은 내내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염려말고 믿기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