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린 아이를 고침
▨ 막9:14-29, 마17:14-21, 눅9:37-43 ▧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주님은 한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아버지는 그 아이가 자기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벙어리 귀신이 들린 아이입니다. 귀신이 그를 잡으면 거꾸러지게 하고 거품을 흘리게 하고 이를 갈고 파리해져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왔는데 예수님이 안 계시므로 제자들에게 좀 고쳐 달라고 했으나 저희가 능히 고치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주님이 크게 탄식 하시기를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앞에 온 그 아이는 다시 귀신의 침노를 당하여 심히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리고 뒹굴었습니다.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 장면을 보신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 묻기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나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께 청하기를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비가 소리질러 고백하기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명하시기를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 귀신은 소리를 지르면서 최후 발악을 하고 나갔습니다. 이로써 그 아이는 건강하게 되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 인간사에는 괴로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죄의 댓가로 에덴 동산을 상실한 인간들의 세상은 평안보다는 괴로운 나날이 더 많은 것같습니다.
첫째, 병자의 부친의 고통입니다.
그의 아들은 벙어리 귀신들린것입니다. 그 아이는 넘어지는 병을 가졌으며 그의 병이 발작하면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어디서든지 병의 발작이 일어나면 귀신이 저를 잡으며 그를 거꾸러 뜨리고 그 몸이 찢겨질 것처럼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도 매우 비통한 일이지만 그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도 두려움과 괴로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발작하면 그는 입에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지며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그 발작이 끝나더라도 그는 아주 쇠약하고 창백하고 뼈만 남다시피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102:3-5)에 "대저 내날이 연기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괴리 같이 탔나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이것은 참으로 자애로운 아버지에게 끊임없는 고통인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할 수 있는 모든 보살핌과 치료를 어릴 때부터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였으며 더욱 괴로움이 심했습니다.
둘째, 질병자 아들의 고통입니다.
그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왔을 때에 그는 너무나 비참한 상태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보았을 때에 발작이 일어나 엎드러졌습니다. 귀신이 즉시 그를 거꾸러 뜨리고 경련을 일으키고 그를 괴롭게 하였습입니다. 또한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게 했습니다. 이때에 그리스도께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시매 어릴 때부터 이 고통을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이 병자는 이제는 절망과 좌절 상태에서 예수님 앞에 오게 되었으니 참 다행한 일이며 이제 고통을 덜어도 되는 순가에 이른 것입니다.
셋째, 애매하게 받는 고난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니"(벧전2:19) 세상 살다보면 큰 잘못도 없고 조심스럽게 살려고 노력하는데도 고난을 받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나봇은 이스라엘 부근에 좋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아합왕이 그 포도원을 탐하여 자기 소유로 만들고자 하여 여러 방면으로 교섭을 하였지만 나봇은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이 거절로 나봇은 왕의 압력으로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즉 권력의 압력으로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이같이 본인의 죄와는 관계없이 고난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셉도 아무런 잘못이 없이 종으로 팔리기도 하고 애굽사람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써 감옥에 가서 고생을 했습니다(창39:7-23).
성도여 때로는 이같은 고통이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욥같이 인내하는 믿음을 가지며 어떠한 난관도 지지말고 승리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믿음과 힘의 위력을 교훈해 주시는 기사입니다.
"내가 믿나이다"고 했습니다.
첫째, 자기를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마음속에는 두가지 마음이 있는데 하나는 욕심, 혈기, 시기, 질투, 교만, 거짓된것, 악독과 못된것, 온갓 더러운 마음이 있고 또한 다른 한편의 마음이 있으니 착하고 인자하고 양과 비둘기 같이 순하고 남을 위해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천사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롬7:18-25). 자기를 이긴다는 말은 못된 마음을 이긴다는 뜻이고 못된 마음을 이긴다는 것은 악한 맘을 이기었다는 뜻입니다(갈5:24).
둘째, 죄악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다 죄 아래서 죄의 종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죄의 굴레를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나의 죄를 대신한 대속의 십자가로 믿음으로 죄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었고 의롭다 함을 얻었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에서의 승리입니다.
셋째, 병을 이기게 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많은 난치의 병들이 치료를 받습니다.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했습니다. 믿음은 병을 예방도 하지만 물리치기도 하고 병을 이깁니다. 만병의 의원이신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시기 때문입니다(시105:3). 우리 교단은 중생, 성결, 신유, 재림, 사중교리 중에 3번째로 신유의 교리를 택해 신조로 삼고 포교하고 있습니다.
넷째, 마귀를 이깁니다.
마귀는 예수님도 시험하고 택한 자들도 넘어 드릴 수만 있으면 넘어뜨릴려고 시험해 옵니다. (마24:24)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벧전5:8) 마귀는 삼킬자를 찾으려고 두루 다닙니다. 이 마귀를 이길 힘은 다른 것 가지고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이름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 믿음으로 기도할 때 마귀는 물러 갑니다.
* 믿음으로 찬송을 불러도 마귀는 물러갑니다.
* 믿음을 가지고 대적하면 마귀는 쫓겨 갑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믿음만이 마귀의 세력을 이기는 것입니다.
다섯째, 세상의 시험을 이깁니다.
세상은 신자들을 유혹하여 마음과 시간을 빼앗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 섹스, 스포츠, 영화, 텔레비젼, 바둑, 장기, 카드놀이, 도박, 낚시, 등산등이 우리 신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대략 이상의 것들이 신자를 하나님과 교회를 멀어지게 합니다. 오직 믿음이 없으면 이 수렁에 빠져서 나올 도리가 없습니다. 정신 없이 세상에 얽매여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5:4-5) 믿음만이 세상을 이기고 천국으로 향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건져내 줄 수 있는 힘은 믿음 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가질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만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여섯째, 믿음만이 고난도 슬픔도 이길 수 있습니다.
인생고해란 말이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하루라도 잔잔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직업을 잃을 수도 있고,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경제 불항으로 인하여 가난과 곤궁이 엄습해 오고, 가정이 화합되지 못하여 파괴되는 가정도 많고, 갑자기 사고로 인하여 불구자가 되고, 죽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여 각종 괴로움과 슬픔과 한숨과 탄식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러한 인생고를 무슨 힘으로 이기며 살 수 있습니까? 이는 오직 믿음을 가질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의 믿음을 가질때 고난과 슬픔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일곱째, 믿음은 불가능이 없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23절에 하였고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있어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행하면 태산같은 어려운 문제도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고 의심치 않고 행해야 합니다. 믿음의 행동력에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간질 병자의 형편과 나의 형편을 살펴 봅시다.
첫째, 간질로 고생하며 불에도 넘어지고
이 병자는 증세가 발작되면 죽는 곳인지 사는 곳인지를 모르고 물과 불속으로 방향없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 신자들이 자기 영혼이 죽고 신상에 손해가 되는 줄도 모르고 죄인들이 있는곳과 오만한 자리를 가리지 않고 드나들며 만악을 범하고 있는것과 같은 것 입니다.
우리 교회 모신자는 남편이 외국에 나간 사이 유흥가에 드나들다가 신앙의 상실은 물론 있는 재산 집까지 다 팔아 버리고 빚도 많아지고 화장품 장사하던 것까지 못하고 완전히 세인으로 흘러가 패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라면 때와 장소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하며 매사에 조심하여 출입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발은 악으로 달려 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잠1:15-16)고 했습니다.
둘째, 거꾸러 뜨리고 거품을 흘리고 이 갈고 온몸이 파리해졌습니다(막9:21).
이는 환자의 고통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 뜻을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병자와 같은 행동을 하니 주택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춤을 추는 자들이 이 병자와 같은 행동을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춤의 리듬을 잘 모르나 주위에서 그들의 태도를 보면 요절 방광한다고 표현을 하는데 마치 이 환자의 증세가 악화되면 이같은 표정을 짖습니다.
지금 우리 믿는자들의 행동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자신을 살펴보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체 하고 대문작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아기스가 그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삼상21:13-14)고 하였습니다.
셋째, 어려서부터 이같은 짓을 했다고 했습니다.
이는 조기 치료를 하지 못해서 지금까지 이 병으로 불행하게 지내었습니다.
신자로 말하면 처음 믿을 때에 철저히 회개하지 않고 믿는자와 같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처음 믿을 때부터 회개하지 않고 교회 생활하면 성경중심, 은혜중심, 교회중심의 봉사 생활을 하지 못하고 불순종과 반역의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닌지 수십년이 되어도 십일조 생활, 성수주일, 헌신봉사 하지 못하고 마귀의 앞잡이 짓을 하는 신자가 많이 있습니다. 다행히 이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고 고침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조기 치료를 하지 못하고 각고의 불행을 입은자 같이 되지 아니하려면 지금 회개 하여 영과 육이 건강한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서1:2)고 했습니다.
넷째, 몸에 경련을 일으켜 뒹굴며 넘어집니다.
이는 마귀로 부터 완전 굴복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많은 신자 가운데는 성령에 이끌림 보다는 마귀의 세력에 이끌리어 진리사수와 계명과 순종과 선한면은 찾아 볼 수 없고 발악적 행위를 하니 시기와 질투, 분쟁, 당짓는 것과 거짓을 일삼으며 참신자를 충동하여 반역의 행위를 하는가 하면 매사에 시비만 하는 자도 적지 않습니다.
4. 제자들과 같이 우리들도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첫째, 예수를 떠나 있었던 연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능력 받는 것을 떠난 연고입니다.
* 주를 의지하려는 믿음이 떠난 연고입니다.
* 병자를 고치고자하는 자신감이 떠난 연고입니다.
* 한 병자를 불쌍히 여기는 맘이 떠난 연고입니다.
* 한 생명의 심령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떠난 연고입니다.
* 주의 역사 하시는 일에 협력코자 하는 마음이 없어서 입니다.
둘째, 믿음이 없는 연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다고는 하지만 흠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순수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믿음에 대해서 말하기를
* 신앙없는 인간의 생활은 짐승의 생활입니다.
* 신앙은 인생의 힘이며
*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믿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기도가 없는 연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조용히 주께 묻기를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막9:28)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신앙의 세계는 기도하는 세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귀신을 물리칠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염려가 신앙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염려하고 의심하는 일이 믿음의 분량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 요한 번연은 말하기를 작은 신앙가는 빗방울이 내리기만 하여도 홍수가 날까 두려워하며 길 가다가 지푸라기에도 걸려 넘어질까봐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5. 진실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막9:24)에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고 했습니다. 확신이 없는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를 향하여 예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병이 낫게 된 것은 예수께서 병자를 치료할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아버지가 예수의 능력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아이의 아버지는 믿음을 고백함과 동시에 자신의 믿음 없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고백이 연약한 고백이었지만 주님은 그의 연약한 고백도 인정하시고 그의 소원대로 아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기적을 원하면서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것은 우리의 고백이 없었음을 인식하고 늘 고백하며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6. 믿음이 없어서 병자를 고치지 못하고
(마17:20)에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느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이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간질병을 고치지 못한 이유로 그들의 불신앙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신 "겨자씨 믿음"은 기도에 충실한 삶과 거기에 동반되는 참된 믿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인간의 시각으로는 겨자씨 만한 믿음이 별 가치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그 겨자씨만한 믿음안에 내포되어 있는 무한한 생명력과 가능성을 알고 계십니다. 당시 제자들은 그들의 믿음이 겨자씨 만큼도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믿음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생명적인 교제가 지속될 때 그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형적인 믿음을 전시하는데 급급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을 갖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7. 기적에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9:29)에 "이르시되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께로부터 귀신을 내어 쫓는 권능을 부여 받았던 것입니다(마6:7). 또한 그러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그런 권능을 자기들이 행사할 수 없었는지 궁금하여 예수님께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일이 있을수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분명히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자기들 안에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귀신을 쫓는 일에 있어서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로써 도움을 청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그러했기 때문에 이들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아무리 악화된 병과 어떤 귀신에 사로잡힌 병일지라도 권능을 지니고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고치기 힘든 병이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이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아이를 떠났으며 아이가 그때부터 나았습니다. "내가 네게 명하노니"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신도 감히 굴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귀신은 아이에게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