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입에서 동전을 얻음
▨ 마 17:24-27 ▧
세리는 가버나움으로 오다가 베드로를 만나 "너의 선생이 반세겔을 내지 아니 하느냐"하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인의 남자 모두에게 부과된 성전세였습니다(출30:11-16, 대하24:9). 이 세금 혹은 속죄의 돈은 외국에 사는 유대인들에게서 거두었으며 성전 창고에 보관했다가 성전 사업에 사용되었습니다. 성전의 사업을 위하여 세겔들을 모아 들이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와서 주님께서 세금을 내셨냐고 물은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단지 순회 설교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부과금을 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모략에 불과한 것입니다.
1. 주님이 세금을 내신 것은
첫째, 저희로 오해하지 않도록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성전세도 안내는 사람이라고 오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성전세를 내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납세할 의무가 없으신 분입니다(요5:18, 수12:6).
(2) 하나 예수님은 자진하여 납세를 하신것입니다(마17:27).
* 오해가 있으면 미움이 옵니다.
* 불화가 생깁니다.
* 협조가 안됩니다.
* 사랑이 단절됩니다.
* 오해가 극심하면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인간들의 이같은 행동의 가능성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이들의 의심을 풀기 위해서 세금을 내신 것입니다.
둘째, 의무를 다 하며 사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뜻입니다.
(1) 셋돈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것이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국민의 한사람으로 보았으므로 국민이면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세를 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표면적으로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 하는 것을 옳게 여긴 것입니다.
*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 공무원이면 공직의 의무를
* 사원이면 사원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이면 성도의 의무가 있습니다.
(1) 교회에서 헌금의 의무: 구약의 성전 신약의 교회 유지를 위한 헌금(출30:13)
(2) 사회에서 납세의 의무
국가의 발전과 의무를 위해 공세와 국가의 국세를 내어야 합니다(롬13:7)
(3) 단체에서 회비의 의무: 교회나 사회단체에서의 회원된 의무를 다할 것이며 (롬15:1) 교회의 직분자이면 직분자로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일 의무를 못하면 모든 자격에서 박탈되는 것입니다.
셋째, 본이 되기 위한 뜻입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면에서는 성전 자체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성전세를 안내도 되지만 표면적으로는 유대 사회의 랍비며 지도자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본이 되기 위해서 내신다는 뜻입니다.
이외에도 예수님은 본을 보이신 예가 많이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일 : 이 세례는 안받아도 되지만 죄인들에게 본이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2)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은 일: 제자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하는데도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3) 예수님의 기도생활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신성을 가지신이가 기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약한 인간들에게는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교회의 봉사 생활에도 본이 되고 율법의 제도에도 본을 보여야 하며 사회에서의 공중 도덕과 인간사의 윤리도덕을 지키는 데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2. 우주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호수에 있는 수많은 고기들 가운데서 베드로의 낚시에 걸렸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을 그 분의 뜻에 맞추어 복종케 하시는 바로 그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창1:3)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1:9)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물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창1:11)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의 풀과 씨맺는 채소와 각기 그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빛을 향하여 발광케 하였습니다. 물을 명하여 솟게 하고 흐르게 하고 증발하여 이슬이 되게 하였습니다. 비는 위에서 내리게 하고 폭풍은 먼 곳에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구름은 비를 싣고 이리 저리 옮겨 골고루 뿌려 지면을 적시게 하고 지면의 모든 식물들은 이 단비에 싹이 트여 꽃이 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은 노아때 지구상에 40주야로 비를 내리시므로 그 시대의 관영한 죄악을 숙청하기도 하시고(창6:17, 7:11-12) 애굽의 바로왕 당시에는 물들과 하수와 운하들을 명하여 피가 되게도 하셨습니다(출7:19-25). 땅의 티끌을 명하여 이가 되게 하여 사람과 생축을 괴롭히기도 하고 (출8:16-19) 풀무의 두 움큼을 재가 되게 하여 독종이 발하게 하여 애굽 술객들로부터 애굽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더하게 하며(출9:8-12) 우박을 명하사 고센땅 이외의 모든 애굽 땅에 내리게하므로 바로 왕의 항복을 받도록 하시고 (출9:13-35) 또한 흑암을 명하사 3일 동안 애굽 천지를 덮게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바로 왕과 그 백성의 패망을 미리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사는 애굽의 고센땅에는 여전히 광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황불을 명하사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므로 지구상에 새로운 사해의 이름이 기록되도록 역사하시고(창19:24-25) 하나님은 홍해를 명하사 벽을 이루게 하시므로 이스라엘을 추격하여 오던 바로 왕의 군대에서 구원하시고 다시 그 벽을 이룬 물을 명하사 합류시키므로 추격하여 오던 애굽병들을 수장시켜 버렸습니다(출14:1-31). 배의 고물에서 주무실때에 제자들이 심한 폭풍으로 두려워하여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자 주님은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고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막4:39)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무화과는 그 기능이 중지되어 말라 버렸습니다(마21:19). 그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 즉 병까지 물러거 버리기도 하고(막1:29-31) 주님의 명령을 받은 물은 갑자기 포도주로 변하여 잔칫집의 기쁨을 되찾게 하여 주었습니다(요2:1-11).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약한 마음을 돕기 위해 일영표가 정상의 운행 궤도에서 10도나 물러가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사38:1-8). 이외도 무수한 사건을 소개하여 증거할 수 있지만 이만 약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자체가 주님의 주관에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순종 봉사자에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첫째, 세금을 주님이 내어 주시었습니다.
"너는 한 세겔을 얻으리니 그것으로 나와 너 두사람을 위한 세금으로 가져다 내어라"하셨으니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과 베드로의 세금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자들은 그와 함께 그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와 함께 빛날 것입니다. 여기에 베드로를 위하여 지불한 것이 그에게 베푼 주님의 호의였습니다.
4. 예수님의 관찰력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다속에 있는 고기입에 돈이 들어 있는 것까지도 아신 예수님입니다. 이로 보아서 예수님은 사람의 가슴속과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까지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십니다.
첫째, 나다나엘의 간사함이 없는 것을 아시었습니다(요1:45).
빌립집사의 전도를 받아 예수 앞에 나올때에 "이때에 나다나엘이 나를 어떻게 아시나이까 하니 내가 너를 무화과 나무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과부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한 것도 관찰하신 예수님이십니다(막12:41-44).
많은 사람들이 연보를 하는데 어떤자는 많은 액수로 헌금하고 어떤자는 적당하게 하지만 여기 한 여인은 "두렙돈 곧 한 고드란트"을 헌금했습니다. 이때에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 여인은 참으로 헌금을 많이 했다고 극찬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칭찬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인정을 하지 않으려 할 때에 주님은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임의로 하였지만 이 여인은 생활비 전부를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이같이 주님의 관찰은 많은 사람들의 헌금하는 것까지 보신 것입니다.
셋째, 한 여인이 군중속에서 자기에 옷자락을 만진 것도 관찰하신 예수님이십니다(막5:25-34).
12년간 혈류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보니 소문보다 더 위대하게 보였으며 그 옷에 손만 대어도 자기의 불치병이 낫겠다는 믿음이 생기어 손을 댄 것입니다. 이때에 주님은 그 사실을 아시고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고 하시니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지금 우리의 일행이 많아서 서로 부딫쳐서 잘못 손을 댄것 같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찰은 한 여인이 고의로 행한 것을 아셨습니다. 또한 그 여인은 예수님이 벌써 자기의 행위를 알고 계심을 짐작하고 그 앞에서 떨며 발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은혜를 입어 고침을 받았습니다.
넷째, 악당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적에도 알고 계셨습니다(마26:48-50).
저희들은 이 흉계를 숨기려고 예수님께 정답게 인사하면서 예의를 표시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아신 주님은 너희들이 온 목적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앞에는 아무것도 숨길수가 없는 것입니다.
5. 이는 물질관이 분명하라는 뜻입니다.
첫째, (마22:15-22)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세금에 관한 질문을 할 적에 이에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애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즉 국민의 의무인 국세는 나라에 내고 하나님께 드릴 헌금은 감사함으로 드리라는 뜻입니다.
둘째, (눅19:4)에 삭게오는 "만일 뉘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다고"예수님 앞에 맹세를 했습니다. 이 삭게오는 세금을 거두어 드리던 세리장이었습니다. 이 삭게오는 세금을 거두던 자이므로 혹시나 세금을 거두다가 잘못 계산해서 부정이 되었다면 그 액수에 사배나 값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물질관이 분명해야 함을 잘 묘사한 기사이기도 합니다. (출22:1)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다섯으로 갚고 양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 찌니라"고 했습니다.
셋째, (수7:22-26)에 아간이 전쟁터에 나가서 노획한 물건 때문에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간은 전쟁터에서 노획한 물건중 외투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얼마를 감추어 두었다가 여호수아가 이 사실을 알고서 공개하므로 그는 그 죄값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부터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넷째, (행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물질관이 분명하지 못해서 멸망 받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게 자기의 전 소유를 팔아 헌금한다하고서 이중 절반은 감추어 두고 절반만 헌금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것이나 바치라고 명한 십일조 헌금도 꼭 바쳐야 영과 육이 살게 될 것입니다. 영과 육이 사는 길은 바로 물질관이 분명한 것에 있음을 알야야 할것입니다.
6. 예수님의 이해력과 양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세를 주도록 베드로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저희로 오해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즉 복음 전파와 구속 사업의 성취를 위하여 쓸데 없는 오해와 충동을 피하려는 것이며 이것은 지혜롭고 덕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넓은 아량과 양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세리에게 쓸데 없는 오해와 충돌을 피하여 거룩한 사업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양보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다 같은 죄인들이 하찮은 일에도 사소한 감정을 가지고 쓸데 없는 오해와 충돌을 불러 일으켜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가정과 국가에 해가 되는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나의 작은 양보와 희생 그리고 관용만 있으면 잘 해결 될 일을 나의 고집과 혈기로 주장하다가 일을 그르치고 화를 초래하는 일들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성도들이여, 양보하시면서 복음전파와 구속사업 성취에 충성을 다하신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고 나의 고집을 양보하며 서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주님의 사랑을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7. 양보 속에서 신성한 권리가 나타났습니다.
오해와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마땅히 면세되어야할 성전세를 바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낚시로 잡은 바다 고기입에서 얻은 돈 한세겔로 세금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하실 수 있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양보와 희생을 할때 하나님께서는 그 권리를 더 높이시고 더 빛나게 하시며 그 양보로 입은 손해를 당신의 능력과 기적으로 변상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은 죄인을 구속키 위하여 모든 권리와 모든 능력을 포기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죽음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시고 하늘에 올리사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혀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의 능력을 의지하고 그를 배우며 그를 따라갈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 론
첫째,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체로써 그 주인은 마땅히 하나님이시니 예수님도 창조에 참예하신 (요1:1-3) 하나님으로 그 주관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을 그의 뜻에 따라 임의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겸허한 순종에 늘 수반되는 초자연적인 영광을 지니시고 그의 거룩한 위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넷째, 자유로운 그리스도의 자발적인 복종에서 그의 생애는 남을 위한 복종과 희생의 연속인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