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어진 여인을 고침
▨ 눅 13:10-17 ▧
예수께서 어느 안식일날 회당에 들어가시니 때마침 허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녀가 요구하지도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은혜로 그를 고치셨습니다. 이는 오직 주님만 베푸시는 능력이요 그만 가지고 있는 사랑이었습니다.
18년간 고생한 이 여인을 고치고나니 그곳의 회당장이 이를 못마땅히 여기면서 왜 안식일을 거역하느냐고 질책을 하였습니다.
이때에 주님이 "이는 아브라함의 딸인고로 고치어야 하며 나는 의료행위가 아니고 마치 너희들이 안식일날 소나 나귀를 기갈을 면하기 위해 물을 먹이는 것과 같이 이 여인은 짐승들에 기갈과도 비교가 아니되는 18년간 장기간 고생한 자이니 고치은 것이 마땅하다"고 설명시며 참안식일을 지키는 교훈까지 하신 기사입니다.
1. 이는 신체적으로 동정을 받을 만한 처지였습니다.
이 여인은 18년간 귀신에 붙들려 허리를 피지도 못하고 구부러진 상태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지낸 것입니다. 이로써 그 생활하기가 얼마나 불편했으며 사람에 구실을 못한 것은 이루말할 것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같은 처지를 잘아신 사랑이 많으신 주님이 그를 그냥 돌려 보내시지를 아니하고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특별히 이 여인은 예수의 원수인 마귀로 부터 이같은 불행을 받고 있으니 더욱더 동정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이 여인의 신앙을 보아서라도 동정을 받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대다수의 신자들이 병이 장기화 되면 실망하고 낙망하여 신에 존재를 무시하고 주를 떠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초기 증세에는 하나님의 어떠한 섭리가 있다고 하며 기도하고 이 시험을 이기어야 된다고 하다가 좀처럼 낫지 아니하면 기도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섭리도 없어지고 의술에만 의존합니다. 그래도 고치지 못하면 생을 포기하고 나날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어떠한 심적 동요없이 주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로 부터 동정을 받아 고침을 받게 된 것입니다.
2. 예배의 참예심이 대단한 신앙자였다.
허리를 피지도 못하는 불구가 된 육체로 여인은 회당에 모이는 예배시간만은 늘 빠지지 아니하고 꼭 참예한 신앙의 소유자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구의 몸으로 18년간 교회를 출입했지만 신의 도움도 얻지 못하고 세인들로부터 비난도 받으며, 신앙 생활하기엔 힘든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세상인들이 바라는 육적 만족보다 자기가 믿고 있는 신관과 미래의 소망만 가지고 실망없이 성전을 출입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이 처지에 있다면 교회에 빠지지 아니하고 나갈 수 있는 신앙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눈에 보이는 세상의 만족스러운 일이 없어도 여인과같이 신앙에 열의를 가져야 합니다.
3. 타락한 모든 인간의 영적 상태를 묘사해 준 기사입니다.
꼬부라져 있는 상태는 죄악에 빠진 상태로 하나님의 얼굴조차 올려다 볼 수 없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시40:12)에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 마을이 사라졌음이니이다"
사람들의 대개의 생활을 보면 자기들의 생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곳에 매여 자유로운 몸이 못되고 속박적 생활을 하는 것을 봅니다.
여인은 꼬부라진 상태를 헤어나지 못하고 그 고통을 18년간이나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환자는 예수를 만나서 그 고통이 제거되고 새로운 삶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나의 환경은 어떠한가요. 이 환자처럼 꼬부라진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면 오늘 예수 만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자유로운 생활, 고통이 없는 평안과 기쁨의 생애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4. 예수를 믿어도 불행은 계속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여인을 보시고 이는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하셨습니다.
첫째, 욥은 마귀의 시험으로 자기의 질병은 고사하고 자녀들의 생명 재산의 손실 부인의 배척 친구들의 조롱 등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기도 했습니다.
둘째, (눅16:19-31) 거짓 나사로를 생각해 보면 이 나사로도 아브라함의 아들이었는데 죽는날까지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며 살은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막5:35-43)에 회당장의 딸도 이는 앞서 말한 것보다도 더 심한 것은 죽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백성들이 때로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연단을 통하여 온전케 하기 위해서(약1:4)
*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는 까닭에(히12:6)
* 하나님의 은혜주심을 더 깨닫게 하기 위해서
*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 세상이 약하기 때문에 의인도 괴로움을 당함
5. 이날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면 이같은 은혜를 입지 못할 뻔한 것임
18년 동안을 귀신들린 이 여인은 어느날 강한 경련을 일으켜 꼬부라져 있었으며 조금도 피지 못하는 병신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러한 와중에도 불구하고 안식일마다 성전에 나왔다는 것이 이병을 고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신자들은 명심하여 들어야 할 말씀이요 또한 이 여인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성도 가운데 공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성도여 이 불구자처럼 언제나 예배에 참예하여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고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같이 하신다고 했습니다.
6. 어떤 피조물보다 가장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이 안식일에 축복을 베푸시는 것을 본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날 병고치시는 것을 불법이라고 질책하면서 다시는 이같은 일을 하지 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들의 소행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주일날에도 소나 말을 끌어다가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한데 나도 이 아브라함의 딸의 육신을 위한 나의 능력을 공급해야 한다"고 하신 뜻으로 그를 치료 시키신 것입니다.
또한 이 여인은 짐승이 아니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자녀이니 그녀를 치료해 주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무엇보다도 많이 사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7. 안식일은 기쁨을 얻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17절에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여인을 절망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 기쁨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기적을 본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질병, 모든 고통, 모든 근심에서 해방되어 기쁨을 얻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통하여 사탄에 얽매인 죄의 사슬을 끊고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안식일에 진정한 안식,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면 그것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사탄의 구속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또한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이 자비를 베풀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안식과 기쁨을 줄수 있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예배 의식으로 인해 우리가 하늘의 기쁨을 얻는데 방해를 받아서는 아니 될것입니다.
결 론
본문에 예수께로 부터 치료를 받은 여인은 어떻게 보면 그 꼬부라진 몸으로 회당에 출입만 했지 어떠한 예배의식도 없고, 또한 목적 의식이 분명치 못한 가운데 회당뜰만 밟고 다닌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이날도 예수님이 계셔도 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예수께서 먼저 보시고 고쳐 주시었으니 말입니다. 성도들이여, 우리는 이 여인과 같이 목적없이 교회에 다니지 말고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께 모든 소원을 구하여 축복을 받아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찾으면 이 여인처럼 하지 못한것까지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