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를 일으킨 기적
본문 행3:1-10
여기 본문을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 된자를 날마다 사람들이 메고 와서 성전 미문 밖에 두면 이 사람은 성전을 출입하는자들로 구걸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구걸하여 받는 것으로 연명을 부지하였습니다. 이날도 전과같이 그일을 하러 나온 것입니다.
1. 여기 나면서 앉은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배안에서 병신 되어 나온 것입니다. 이같은 처지는 사람의 힘으로나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요 사람의 기술로나 어떤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임을 말해 줍니다.
2. 그리고 여기에서 이 불쌍한 생명을 불쌍히 여겨 동정심으로 이 앉은뱅이를 날마다 메어다가 성전문 밖에 놓아 주는 사랑의 실천자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즉,
첫째, 병든 영혼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둘째, 지옥으로 가는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셋째,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 생명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넷째, 약한자 불구자 불행을 당한자 생명들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1. 예수의 이름이 머무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 거지를 바라보는 베드로는 그 마음에 앉은뱅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자의 근본 문제를 해결의 방법이 예수의 이름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물론 저들에게서 은과 금도 없지만 만일 은과 금이 있어서 그것을 앉은뱅이에게 준다고 해도 그 물질적 도움이란 임시적으로 그 육체의 굶주림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로써 이 앉은뱅이는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 이름을 준다는 것은 그 인격과 그 능력을 아울러 주는 것이 됩니다. 사람의 이름에는 언제나 그 인격 전체가 포함됩니다. 그 이름이 욕을 먹으면 그 인격이 욕을 먹게 되며 그 이름이 영광 받으면 그 인격이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준다는 것은 예수의 인격과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때 "예수 믿으십시요"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주는 행위로 전도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과 아울러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임하는 곳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가는 곳에 사탄이 두려워 쫓겨 갑니다. 육의 병든 부분이 고침을 받습니다. 마음이 상한자가 평안을 얻습니다. 낙심된 자가 소망을, 슬픔을 당한 자가 위로를 얻습니다. 천한 자가 귀해지고, 악한 자가 선해지고, 어두운 곳이 광명해지고,영원히 죽을 자가 영원히 살게 됩니다.
2. 나의 시선을 주님께 맞추라는 뜻입니다.
여기 이 앉은뱅이는 지나가는 사람을 자세히 쳐다 보지도 않고 그저 손만 내밀고 한푼만 도와 달라고 구걸했지 누가 주고 가는가를 자세히 쳐다 보지도 아니했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를 보라하고 쳐다 보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앉은뱅이의 눈과 성령받은 베드로와 요한의 눈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는 즉 은혜의 촛점이 마주친 것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렌즈의 촛점이 잘 맞아야 사진이 선명하게 잘 나오는 것입니다. 촛점이 잘 맞지 않으면 사진이 흐릿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은혜를 받는 것도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의 마음과 주님의 마음이 똑바로 맞아야 합니다. 시선이 흐트러진 자세는 정신이 흐트러진 상태입니다. 목표없는 흐트러진 자세 광적인 태도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처럼 정신이 주님을 향해 집중 될 때 주님과의 올바른 만남으로 은혜와 축복과 갖가지의 기적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신앙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한 것은 저 은혜받은 자의 도움이 필요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는데 예수님의 이름이 주요했지만 은혜받은 주의 사자들의 도움이 또한 필요했습니다.
그와 같이 영적으로 불구된 사람을 일으켜 고치는데도 먼저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없이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전히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성이 파괴된 영적인 불구자입니다.
이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구원받는 사람으로 만들려면 우리 먼저 은혜받고 구원 얻은 성도들이 저들에게 주의 이름을 줌과 아울러 오른 손으로 붙잡아 일으키는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생명을 구원해 낼 수가 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역할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영적으로 불구된 앉은뱅이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같이 저들에게 주의 이름을 주어 일으켜 세우는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4. 성도는 성전에서 항상 기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들은 제 9시 기도시간을 가졌습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의 일정한 시간을 따라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거룩한 풍습이었습니다(시55:17)(단6:10). 그들은 때를 정하여 놓고 기도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힘으로 한날 한날을 걸어가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주일 낮과 밤뿐 아니라 규칙적으로 기도합시다. 또한 매일 새벽에 기도의 시간을 가집시다. 이것은 신앙 생활에 오래 유지하게 하는데 큰 유익이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간 것은 합심하여 기도하기 위해서 인줄로 생각합니다.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합심하여 여럿이 기도하는 것은 더욱 뜻이 큰 것입니다. 우리도 항상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 같은 목적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 제자들의 기도시간은
첫째,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시간
둘째, 진심으로 하나님께 바치는 시간
셋째, 은혜와 영혼의 위로를 받는 시간
넷째, 항상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부탁까지 하셨으니 우리도 성전에 나와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5. 이 병자를 통해 주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은
첫째, 성전 밖의 인간을 성전안의 신자로 변화케 하시려는 주님의 교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계3:20)에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했습니다.
(1) 은혜밖에 생활에서 은혜속으로 깊이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 물질 이상의 장소로 그는 자리를 옮기게 된 것입니다.
* 인간의 위치 이상의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 하나님의 집안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 이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만 받으면 살게 된 것입니다.
(2)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요2:17)에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했습니다.
* 직업 본위의 생활에서 성경 본위의 생활로 변화되게 하였고
* 구걸하던 생활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생활로 변화케 된 것입니다.
* 그의 생활은 180도 변화되어 육적인 자가 신령한 영적 사람이 된 것입니다.
둘째, 인본 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변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1) 그는 사람을 쳐다보던 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쳐다보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 일부러 사람들에게 불쌍히 여김을 받고자 하던 생활에서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것을 자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 슬픈 소리 애걸하던 목소리가 견딜 수 없는 기쁨이 넘치는 찬송하는 소리로 변해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 사람들의 비난과 간섭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동조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2) 그는 사람들에게 말하던 것이 이제는 하나님께 찬송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 이는 신자의 기도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눅18:9-14)의 바리새인과 새리의 기도 태도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과 하나님께 말하는 기도의 차이점을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 이 앉은뱅이는 지금까지 줄곳 사람에게만 말을 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 찬송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 그는 음악을 해도 거지 음악 밖에 못하던 자였으나 이제는 천국의 노래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3) 사람들에게 구걸하던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 그의 상태는 하루 종일 인간의 노래를 하는 사람이였으나 이제는 자나 깨나 오직 하나님만을 찬송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 물질을 초월한 신령한 생활이 그의 일과가 된 것입니다.
* 하루 종일 앉아 있어 슬픈 노래를 부르던 것이 이제는 하루 종일 뛰면서 주를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셋째, 의타주의에서 자립주의로 변화케 하시는 교훈입니다.
(1) 그의 전신은 전 생활이 의타주의였습니다.
* 성전에 나오는 일도 남의 도움을 얻어 메어다 주어야 겨우 올 수가 있었습니다.
* 와서 하는 일도 사람만 바로보는 일이었습니다.
* 푼전을 벌어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도 역시 그는 남의 충분한 도움이 없이는 살지 못하는 자입니다.
(2) 그는 변화로 자립하는 인간이 되었습니다.
* 그는 이제 스스로 걸어 다니게 되었습니다.
* 이제 성전안으로 돌아다니며 은혜의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 스스로 독립된 생활을 영위하고 사람을 기대하거나 사람에게 도움받던 생활은 이제 완전히 청산 된 것입니다.
6. 자립적 정신으로 살으라는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오니"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불구자와 그를 메고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바로 모든 인간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의 저주 아래 놓여 있으며 출생시부터 죽음에 이를때 까지 남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 앉은뱅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의 시각을 사람에게 두고 있습니다. 남편을 보고 살고, 아들을 보고 살고, 상관을 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앉은뱅이의 40연년간의 불행한 삶은 바로 그런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를 의지하고 바라 보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7. 영혼까지 고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8절에 "하나님을 찬미하고"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지만 하나님을 찬미하기는 커녕 오히려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가 앉아 있던 장소와 그의 영적 상태는 이처럼 엄청난 대조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하루 하루 겨우 연명해 가는 그에게는 영적인 문제보다 우선 눈에 보이는 일 육신의 일을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에게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나올수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라는 이름이 지닌 권세를 체험했으며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앉은뱅이와 같은 영적 상태를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는 일어나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는 영적 상태로 변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감사보다는 원망만 했으나 이제는 하나님께 찬양하는 삶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예수를 만났으므로 영혼이 살수 있었습니다.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생명력있는 영혼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 론
1. 남의 불행을 제거해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앉은뱅이의 평생의 은인이었던 베드로 요한같이 이웃에게 행복을 주는 기억에 남을 일을 하며 삽시다.
2. 인간들의 참욕망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해결해준 사도들 같이 우리가 은과 금으로는 주지 못하지만 예수의 이름은 줄수 있으니 이같은 일에 인색하지 맙시다.
3. 사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서 충만한 사람이니 우리 마음속에는 무엇이 충만한가 자신을 조명해 보아야 하겠으며 이제부터 사도들과 같이 예수만 충만한 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