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애니야의 고침을 받는 기적

애니아의 고침 받은 기적

본문 행9:32-35

사울의 회개가 있은 후 성령의 역사는 베드로에게 임하니 저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을 찾아 위로하며 또 그 신앙을 격려하기 위하여 사방으로 돌아 다니다가 "롯다"라고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에서 위대한 이적을 행했습니다.

여기 "롯다"에 "애니아"라고 하는 사람은 중풍병으로 인하여 팔년이나 기거동작을 할 수 없는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허다한 재산을 허비하였을 것이요 또한 여러 방법도 써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효력을 얻지 못하여 죽을 날을 기다리는 소망이 없는 병자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대하는 베드로의 가슴에서 솟아 오르는 동정의 마음은 그를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여 병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1.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특권입니다.

병자가 고침받아 건강하게 되는 기적이 따르므로 제자들은 더욱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찾아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개인들에게 감동과 감화와 느낌으로 깨닫게 하시어 부르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의 존귀한 기적을 나타내는 데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나니 사사, 선지자, 사도, 목사 등을 통해서 일어나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기적을 많이 나타내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도 육신을 입으시고 행하셨고 그 기간은 아주 작은 3년 뿐이었습니다. 기타 기독교의 육천년 역사 대부분을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을 하셨습니다. 특히 이때의 기적은 사도들에게 주님이 부탁하신 예언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기적에 영혼구원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은 그 자체가 유명하기 보다 60만이라고 하는 많은 이스라엘인을 구원하였기 때문에 유명하며 가치가 큰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진도"앞바다가 매년 한차례씩 봄이 되면 갈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아무런 큰 의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영혼 구원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적은

첫째, 그 주변 온 마을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롯다"와 "사론"에 거하는 모든 주님들 곧 "욥바"로 부터 "가이사랴"에 이르는 연안 약 48km 정도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치유받은 사람을 보았으며 그 기적이 사실임을 확신했습니다(행3:9).

둘째, 이 일을 목격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선포하는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목격했던 증거는 그것이 하나님의 기적임을 부정하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강한 신의 역사이기 때문에 하지 못하고 주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는 기적입니다.

"영화"란 말은 몸이 귀하게 되어서 이름이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45:13)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간 요셉이 만고의 역경 끝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으로 그 몸이 귀하게 되었습니다. 양식을 구하려 왔던 형들에게 자기의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자기의 생활을 공개하면서 영화롭게 사는 것을 보이며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 신자들도 귀인이 되어 주님께 영광이 돌려 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같은 일이 나타나기 위해 요셉과 같이 역경과 고난이 와도 굴하지 말고 주님만 충성스럽게 믿고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1:20)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 가운데는 세상 영화만 바라고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조금 생활에 원만해 지면 자기의 재능을 자랑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 같이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했든지 주님만 높이려는 맘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기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요셉 같이 사랑과 축복을 내리시어 존귀히 되게 하시며 주님께는 영광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희랍말로 "크리오"기름 부음이란 동사에서 나온 뜻으로 기름 부음자란 뜻입니다. 신약에는 이것을 히브리말로 "메시야"로 쓰며 기름 부은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히브리 사람에게 국왕, 제사장, 예언자의 직분을 성별하는 표현이었습니다(출29:7).

(삼상10:1, 왕상19:16) 그리스도란 이름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사렛 예수에게 이 말이 적용되었고 예수 자신이 이 명칭을 요구하였습니다(요4:26).

그리스도란 이름을 통해서

첫째, 그리스도의 이름은 듣는 자에게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권세가 있습니다(요5:25).

둘째, 천문학자에게는 그의 의는 태양이시며(말4:2)

셋째, 건축가에게 그는 중요한 머릿돌이 되시며(벧전2:6)

넷째, 목수에게 그는 문이시기도 하며(요10:9)

다섯째, 농부에게는 씨뿌리는 자요 추수하는 주인이시고(마13:37)

여섯째, 화초 재배자에게는 사론의 장미요 계곡의 백합이시고(아가2:1)

일곱째, 보석상에게는 보배로운 산돌이시고(벧전2:4)

여덟째, 법률가에게는 입법자시고(사9:6)

아홉째, 노동자에게는 안식을 주시는 자이시고(마11:28)

이외에도 그리스도의 명함이면 아니되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근본 뜻은 구원을 이루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얻게 하는 다른 이름을 주시지를 아니했다고(행4:12)하시였습니다.

본문에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와 그의 사도의 권위와 그리고 능력을 과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었습니다. 이로써 예수의 이름은 이적과 더불어 증거가 되게 한 것입니다.

5. 사람들을 구원얻게 하는것이 본 이적의 목적입니다.

이같은 이적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며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을 보이신 것은 한 영혼을 살리시는 뜻도 있었지만 많은 유대인들을 구원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12:11)에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으니라"했습니다.

근자에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여 능력을 행한다는 소위 신령파들 중에는 개인의 인기나 얻으려 하며 이는 마치 마술사 시몬 같은 사람들 입니다. (행8:18-19)에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하였습니다. 또한 금전을 탐하는 자들이 많이 있어 기독교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들을 구원키 위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할때에 주님이 기뻐하시고 기독교도 명예로우며 영혼 구원 사업이 활발하게 전개 될 것이며 우리 주님의 요구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6. 믿는 성도들에게는 질병으로 고생 같은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에 기적중 90%이상이 병자를 고치신 기적이었습니다. 본문의 뜻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을 상항에 따라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중에 한 면을 분석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병석에서 신음하여 재산과 육체의 후패를 원치 않으시며 건강하여 세상을 소망되게 사는 중 주의 일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도 건강을 원하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늘 나라에는 육체가 회복되고 건강한 자만 사는 곳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지나갔음이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뜻은 자기 백성들이 금생과 내세에서 다 건강하고 평안히 지내기를 원하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를 죄와 질병으로 오염케 말고 관리를 잘하여 건강을 보존해야 할 것입니다.

7. 범죄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34절에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주의 명령은 예수께서 병자를 고치실때도 많이 하신 명령입니다(마9:6, 막2:4, 요5:8). 그런데 이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과거에 대한 완전한 청산의 뉘앙스가 짙게 풍겨 나옵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사람에게 병상이란 이미 과거요 그 과거란 별로 아름답지 못한 과거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범죄의 자리를 의미하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저주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러한 자리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벗어났다는 결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시는 그 자리에 앉지 않은 것 또한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갈 소지를 완전히 없애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과거의 완전한 청산을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관시켜 여러번 언급했습니다(갈2:20, 5:24, 6:14) 즉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자리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육신인 자아와 과거의 죄악이 죽은 자리였던 것입니다.

결 론

애니아의 치유 그 자체는 죄있는 영혼의 서글픈 표징으로써

첫째, 고통스러운 질병은 죄의 댓가로 오는 중풍병과 마찬 가지로 영의 힘을 마비시킨 것입니다.

둘째, 오래 지속되는 질병이었습니다.

죄와 고통은 단지 8년만이 아니라 평생토록 지속됩니다.

셋째, 인간적인 수단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혹시 애니아의 질병이 일상적인 치유법으로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할지라도 영혼의 질병은 어떠한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도 결코 치유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만으로 영과 육이 고침받아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