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12:1-19
악한 헤롯왕이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유대인들이 기뻐하다가 다시 베드로를 체포하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감옥에 깊이 가두었으며 베드로는 두 쇠사슬에 매여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사형당할 시간이 시시 각각 다가오는데 어찌 잠을 잘 수가 있었을까요? 자기의 생사운명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 염려없이 자는 것은 안도의 잠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옥중에서 당황하여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염려를 주께 맡기고 잠자는 믿음이 더욱 차원 높은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 같이 안도의 잠을 잘지라도 죄악의 잠을 자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1. 환난 속에서도 평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첫째, 베드로는 그 와중에서도 잠을 잘 정도로 평안을 가졌습니다.
둘째, 예수께서는 풍랑을 만난 배안에서도 주무시는 평안을 가지시었습니다.
사람에게 임하는 환난은 각양 각색입니다. 그런데 각자에게 임하는 환난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환난입니다. 그를 거룩하게 하고 그를 연단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서서 완전한 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반드시 임하지 않으면 안되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가정의 환난을 필요로 하고 어떤 사람은 병의 환난을 요하며 어떤 사람은 빈곤의 환난을 요하며 어떤 사람은 실패 낙담의 환난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각 그 시달리는 병에 따라 특수한 약을 필요로 하듯이 각자의 결점을 보충하기 위해 특수한 환난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환난은 전세의 보응이 아니고 내세의 준비입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특수한 환난에 의해 즐거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연마하고 또 장식되며 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그에게 임하는 환난을 감사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잠깐 고난을 받는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없는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의 귀중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온 교회가 베드로를 위해 철야 기도할 만큼 하나님의 사람은 귀한 존재이였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를 보낼 만큼 베드로는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이같은 일은 특별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다는 의미를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가 되도록 사명에 불타는 자가 되며 귀히 쓰임받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치 아셀라 선지자 바알선지자 850명은 버리되 엘리야 한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심 같이 하나님께 귀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박해 속에서도 교회는 성장한다는 뜻입니다.
초대 교회는 많은 핍박 속에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의 순교는 큰 손실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교는 제자들의 용기와 결심을 더해 주었고 박해자들에게는 불굴의 능력을 보여준 결과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이와 같은 순교의 피위에 세워졌습니다. 순교의 피는 생명력과 진실을 뜻합니다. 구명의 보편성을 뜻합니다. 오늘도 순교의 정신이 교회나 개인에게 요구되는 때입니다.
4.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의 힘과 재능으로는 막을 수 없음을 알수 있습니다.
사울의 계획은 교회를 핍박하고 기독교 신자를 말살하려고 다메섹으로 의기 양양하여 갔지만 그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성령에 붙잡히여 예수를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 뿐 아니라 주를 위해 순교까지 하였습니다. 헤롯왕이 예수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는 하나님에 저주를 받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생각은 그의 눈으로 기독교가 없어지는 것을 보려고 했지만 기독교는 부흥하고 그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석방하지 아니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5. 온 교회가 뜨거운 기도의 열의로 석방됨
교회가 지도자가 어려움을 당할 때 온 교회가 기도했습니다. 이는 아주 귀한 일인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것은 귀한 일이며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사랑입니다. 이들의 기도한 일들을 살펴보면
첫째,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두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심기도였습니다. 사도급이나 집사급인 지도자들만 모인 것이 아니고 "로뎀"과 같은 계집아이 평신도들도 같이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혼자 하는 기도보다 여러 사람이 합심하여 하는 기도는 위대한 힘이 있으며 기도를 하는 자들도 힘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집합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였습니다. 모인곳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마26:18, 막14:15-16) 또 오순절에 120명이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은 곳도 마리아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이 집이 초대 교회의 집합 장소요 예배당이 된 것입니다(행1:12-14)
셋째,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5절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주의 사자 석방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 간절히 한 기도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1) 하나님의 뜻이면 베드로를 석방시켜 달라는 기도요
(2) 베드로가 용감하게 믿음을 지키면서 모든 당하는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3) 하나님의 일은사람들이 예상치 못하는 초자연적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으니 기적인 역사로 이 수난을 이기고 은 면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헤롯의 행한 악의 세력이 크지만 하나님의 하시는 능력은 더욱 크시고 이 능력이 행하시도록 하는 성도들의 기도의 힘은 욱 더 컸던 것입니다.
6.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만이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이 에서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여기 감옥안에 있던 베드로의 착고가 저절로 풀려지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의 문제도 하나님이 스스로 해결하사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 지라" 천사가 베드로를 옥에서 데리고 나올때 베드로의 손에 묶여 있던 쇠사슬도 감옥에서 밖으로 나오는 쇠문의 문도 스스로 풀렸습니다.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즉 인간의 모든 문제를 인간들이 해결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것입니다.
특히 구원에 있어서는 인간의 어떠한 공로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너희에게서 난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엡2:8-9)고 했던 것입니다.
7.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는 천사의 인도로 옥에서 나온 후에야 비로소 "나를 헤롯의 손과 유다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옥에서 나온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무지했지만 끝까지 무지 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돌이켜 봄으로써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과정 속에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을 깨닫지 못하더라도 지난 후에는 알아야 합니다. 결코 무지가 자랑일 수 없고 자기 합리화의 근거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한편 강도는 끝까지 무지함으로써 구원에 이르지 못했던 반면 다른 한편 강도는 비록 죽음 직전이었지만 깨달았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같이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계산 할수 없는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돌이킬수 없는 길로 나뉘게 되는 것입니다.
결 론
감옥이나 죽음을 개의치 않고 전도의 사명을 수행하려던 베드로 같이 나의 남은 여생을 주님의 병기로 쓰임 받도록 봉사합시다. 나의 여생을 주님을 위해 쓰임 받기를 원하고 충성할 때 베드로가 감옥에서 탈옥케 된 것 같이 하는 일들이 잘 풀리어 형통케 될 것이며 주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이 언제나 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