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학

 

성경 해석학 과제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

 

1. 성경해석의 필요성을 쓰라.

로마교회는 "성경의 비밀"이란 교리 하에서 성경해석 권은 성직자가 독점하고 최종 해석 권은 교황에게 있는 것으로 교육하지만, 개혁교회는 '성경의 명백성'이란 교리 하에서 신자면 누구나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성경이 명백하다면,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는가? 성경은 명백하지만 인간은 죄 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명백한 성경 내용을 오해한다. 따라서 성령의 조명으로 성경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명백한 성경의 풍부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피상적으로 보면 오해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오해했고, 제자들이 "나사로가 잔다."는 말씀을 오해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깊이 연구 해석할 필요가 있다(시 119:18).

해석이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성경해석은 당연히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곧 성경을 읽는 자는 성경의 해석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기 전에 올바른 성경해석방법부터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그냥 무턱대고 성경을 읽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그러한 성경 읽기는 올바르고 건전한 해석방법을 통하지 않고서 자신의 잣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사실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성경의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왜곡되기도 하며,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인간의 생각이 더 많이 지배하게 되는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단(異端)들을 봐도 한결같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 똑같은 성경을 두고서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모든 잘못된 신앙도 잘못된 해석이나 잘못된 해석에 입각한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성경해석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성경해석이 필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첫째는 언어적인 차이(Language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언어에는 문화와 역사, 사상과 관습 등이 담겨 있으므로 성경의 기록 당시와 독자들 간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하여 엄연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둘째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Chronological and Regional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과거의 문서인 성경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라고 하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며, 성경의 배경이 된 팔레스타인과 근동 지역 그리고 헬라 반도와 로마 등에 대하여 생소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의사소통의 차이(Communication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 기록자들과 우리들 간에 지식, 경험, 문화, 상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본문의 의도를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것이다.

넷째로는 표현의 차이(Expressional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성경은 많은 문학 장르를 포함하고 있다, 내용과 표현법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해석학은 필요한 것이다.

 

2. 성경해석의 목적을 쓰라.

① 시간적·공간적 또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드러내어 읽는 자로 하여금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도달하도록 함이다.

②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3. 성경해석의 용어들을 해설하라.

성경해석은 주석(註釋), 석의(釋義), 주해(註解), 주경(註經), 강해(講解), 해석(解釋), 해석학(解釋學)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1) 해석학, 해석

성경해석 관련 용어들의 상관관계는 주석에서부터 석의, 주해, 강해, 해석, 해석학의 순서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간다.

먼저, 해석학(Hermeneutics, Biblical Interpretation)은 해석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앞에서 말했듯이 해석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해석(Interpretation)은 광의적으로 해석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말하므로 다시 주해와 강해로 구분한다.

주해(註解)가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강해(講解)는 본문을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들을 나누는 것은 앞에서 성경해석의 목적이 나눠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해석의 개념은 학문적으로 정의할 때와 일반적인 의미에서 다르게 사용된다. 학문적인 정의로는 위에서 말한 대로 해석이란 주해와 강해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 되지만, 일반적인 해석의 개념은 적용(Application)에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단순히 뜻을 아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주해를 가리키는 협의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2) 주해

주해는 주경(註經)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Exegesis 라고 하는데, 어원은 '길을 안내하다, 설명하다, 나타내다'의 뜻을 가진 헬라어 엑세게오마이에서 비롯되었는데 From 뜻의 전치사와 인도 하다라는 뜻의 동사가 합성하여, ∼로부터 인도함을 받는다는 뜻이다.

만일 성경을 해석할 때 자기 사상을 개입시키면 주해가 아닌 외삽(外揷)이 된다.

외삽은 Eisegesis라고 하는데, 사람 생각을 가지고 성경본문 속으로(Into)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주해는 말뜻에서 보듯이 Into가 아닌 From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

즉, 주해의 원리는 경험, 가치관, 철학, 신조, 교리 등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성경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안 된다. 오직 성경에서 비춰져 나오는 빛을 겸허하게 받겠다는 정신으로 성경을 대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3) 주석, 석의

주해는 다시 세분하면 주석과 석의로 나뉘어 진다. 주석과 석의라는 용어는 서로 많이 혼용되지만, 실제로 의미상에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주석이 일반적으로 석의라는 말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주석(註釋)이란 영어로는 Explanation이라고 하며 무엇에 대하여 설명한다는 뜻이다. 곧 주석은 어느 일정 본문 내에서 단락 내지는 어느 일부 구절들을 택하여 뜻풀이를 하는 진행하는 과정이다. 즉, 본문 전체가 아닌 한 구절씩을 어귀의 뜻풀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해석하는 석의보다 좁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 주해이다.

반면, 석의(釋義)는 Commentary인데, 주석을 통해 구절들의 뜻풀이를 모아서 본문 전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석의는 주해와 비슷한 개념으로서 두 가지 용어는 흔히 동의어로 사용된다.

강해가 말씀을 적용하는 측면이라면 석의나 주해는 성경 본문의 최초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작업으로 이해하면 된다.

주해와 주석과 석의의 관계를 요약하면 주해는 강해에 대조되는 큰 개념으로 볼 수 있고, 주해의 세부내용은 다시 어귀 해석의 주석과 본문 해석의 석의라는 개념으로 구분한다고 보면 된다.

4) 강해

강해(講解)란 영어로 Exposition인데, 뜻풀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의 삶에 적용하도록 설득시키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즉, 강해 설교(Expository Message)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주해가 본문의 최초 의미를 드러내는데 주력하고,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역사적 이해(Historical Particularity)를 추구하는데 있다면, 강해는 본문의 최초 의미를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 본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곧, 강해는 본문과 나와의 관련성(Contemporary Relevance)을 발견하고 현재 나에게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찾아내어 적용시키는 실존적 이해를 다루는 것이다.

주해와 강해의 관계를 본다면 결국 주해도 해석이고 강해도 해석이라는 뜻이나, 주해는 단순히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자 하는 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강해는 주해를 바탕으로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주해가 성경 말씀을 가능하면 성경이 기록되어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의 현재적 삶의 문제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으며, 강해는 그러한 주해를 바탕으로 삶의 증거들과 연관지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은 이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해와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해를 모두 포함하여야 완벽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평형을 잃게 되며, 건전한 해석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주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뜻을 아는데 그치고 실천이 약한 '지식적 그리스도인'을 양산할 것이며, 강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 따라 신앙의 기복이 심한 '감각적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해석은 주해와 강해를 병행하면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4. 예수님의 성경해석에 대하여 쓰라.

1) 예수님의 성경 해석은 기독교 구약 해석의 패러다임이 된다.

예수님의 성경 해석은 기독교 구약 해석의 패러다임이 되고, 기독교의 성경해석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한다. 기독교인들은 구약 성경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다루어야 하는지를 그리스도에게 배웠으며 그리스도의 구약 해석은 기독교의 구약 주석의 패러다임이 되었다.

2) 예수님은 독자적인 권위로 성경을 해석하셨다.

(1) 예수님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셨다. 일점일획의 의심도 하지 않으셨다. 이 면에서는 예수님은 그 당시 서기관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해 의견을 같이 했다. 예수님은 마 5:17-20에서 율법의 영원한 가치를 강조했고 성경의 내용을 바리새인들이 남용하는 것을 책망하셨다.

(2) 예수님은 계시의 정신에 따라 성경을 해석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역사를 실제의 역사로 인정하고 구약을 사용하셨는데 구약 역사를 인용하실 때 그 사건을 통해서 중요한 기독교 진리를 증명하거나 설명하셨다. ‘이혼 논쟁’에 있어서 예수님은 율법 계시의 정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혼에 대해 강하게 금지하셨다. 당시 전통으로는 이혼이 흔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해석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셋째, 예수님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의 전통으로 성경을 대신할 때 이들의 방법을 책망하셨다(막 7:6-13; 마 15:1-9).

‘안식일 논쟁’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심으로써 그의 인생에 안식을 주셨다. 병고침을 통해서 안식을 주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대해 자구적인 해석을 했던 바리새인들의 해석에 도전하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성경을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사용한다는 이유로 비난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구약을 정확하게 인용하셨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권세 있는 것을 생각했다(마 7:28,29).

(3) 예수님은 ‘신적 권위’로 해석하셨다.

예수님은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시면서 조상이 말한 것보다 자신의 말씀이 더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사도들도 예수님의 해석을 따라서 기독론적으로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회당의 원칙에 의해 해석되던 당시의 유대주의적 해석 분위기에 일종의 해석학적 원칙(천)을 제공했다. 메시야로 받아들이든지, 저주받은 죄인으로 받아들인지 신적 권위로 독자적인 해석을 하셨고 이런 해석은 당시 사람들에게 찬양을 받기도 했지만 거부당하기도 했다. 예수님에 대해서, 해석의 원칙을 제공한다는 입장과 성경을 뒤바꾼다고 생각하는 입장이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예수의 등장은 해석학적 원천이다.”(P. Stuhlmache)

3) 예수님은 자신을 구약 예언의 문자적 성취로 보셨다.

(1) 종말론적 성취

예수님은 자신을 구약의 종말론적 성취로 보고 구속론적-폐셰르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셨다.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는 말씀은 ‘This is That’으로서, 폐셰르적 해석 방법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과 임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생각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예수님은 자신이야말로 구약에서 예언하던 예언이 종말론적으로 성취된 대상이라고 강조하셨다. 예수님이 ‘너희 귀에 응했다’고 하셨을 때도 이 해석은 페셰르적이다 (눅 4:18).

(2) 예수님은 모형론적 해석 방법을 사용하여 구약을 해석하셨다.

예수님은 요나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한다고 하셨다. 광야의 뱀에게 나음을 입은 것처럼 장대에 달려 죄인들을 용서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종말론적인 해석과 모형론적인 해석은 사도들에게 계승되었다. 예수님은 요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모형론적으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하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40-44).

(3) 예수님은 일반적인 뜻을 사용하여 진리를 설명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의 역사적 기록의 풍유적 뜻이나 신비적 뜻을 찾아 진리를 설명하기 보다 일반적인 뜻을 사용하여 진리를 설명하셨다. 창세기 4:8의 가인과 아벨 사건을 이용하셔서 누가복음 11:51에서 심판에 대한 교훈을 하셨다.

 

5. 초대교회 교부들의 성경해석에 대하여 쓰라.

1) 유대주의와 이단에 대한 방어

기독교인들은 구약을 성경으로 가진 유대인들과 싸우면서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느꼈다. 예컨대, ‘처녀가 잉태하여…’라는 말씀에서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알마’를 처녀가 아니라 ‘젊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기독교의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말시온이 등장하여 성경해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말시온은 기독교가 바울적인 종교가 되어야 진정한 종교라고 생각했다. 구약과 유대인들이 생각한 메시야는 세상적이며, 예수가 말한 메시야는 구약이 생각한 메시야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를 구약의 성취’로 봐서는 안 된다며, 예수를 구약의 성취로 보는 것은 유대교적인 왜곡이라고 보았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으로서 분노와 진노의 하나님이며, 신약의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므로, 바울적으로 기독교를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이상에 이르지 못하므로 구약을 제거하고자 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교부들은 유대주의와 이단과 싸우면서 전통적 해석과 알레고리칼 해석을 하게 되었다.

2) 전통적 해석

교회를 키워나가야 하고 이단을 막아야 하는 문제가 대두되자 교부들은 전통적 해석을 강조하게 되었다. 사도들은 구약에 정통했고 신약에서 구약을 인용하여 메시야를 설명했고, 예수님 자신도 구약으로 자신의 메시야 되심을 강조하셨으므로, 교부들은 사도들의 전통적 해석을 취했다.

그래서 이레니우스(Iraeneus)는 ‘신앙 규범’(the rule of faith)이라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성경을 해석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진실한 지식이며 온 세계에 있어서 교회의 옛 질서는 진실이다. 또한 감독의 계승에 따른 그리스도의 몸의 형성도 참되다. 사도들은 각지에 있는 교회를 감독에 위임하였다. 그리고 그 교회는 어떤 한 문서에 의함이 아니라 더하지도 않고 감하지도 않은 신앙의 규율로 철저히 지켜져서 우리들에게까지 도달하였다. 교회 안에서만 오류없이 성경을 읽을 수 있으며 성경의 정당하고도 근실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레니우스는 ‘권위 있는 해석’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성경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사도적 권위’가 보존되어 있는 교회에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결국 성경 본문 자체에 대한 주의 깊은 해석보다도 초대교희 지도자들의 해석으로부터 권위 있는 ‘의미의 틀’을 찾으려 하는 전통을 출발시켰다. 이 전통은 종교개혁 이후 트렌트 공의회가 교회의 불오류성을 단언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시기에 콘스탄틴 황제가 개종하여(312년) 교회 지도 체제의 사도적 계승이 권위을 갖게 되었다. 교회의 분열이 로마를 흔들기 시작하고 안정을 위협하자, 세속 권력이 정통교리를 정립할 것을 요구했다.

주후 312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과 함께 정치가 교회의 성경 해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정통 주류와 이단 지류 사이에 교리적인 논쟁은 교황의 정치적인 안정을 위협했다. 콘스탄틴은 교회에 압력을 가해서 교리상의 차이점을 해결하고 표준화된 교리를 정립하도록 했다. 그러나 정통을 지키려고 성경에 단순히 호소하는 것은 교리적인 교착 상태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비정통 집단들 역시 자신이 견해를 성경을 통해서 뒷받침했으며 종종 설득력 있게 이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정통 신학자들 자신도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방식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학파의 갈등은 성경에 호소하는 정신을 손상시켰다. 기독교회는 성경의 의미를 완전하게 결정지을 만한 일종의 권위가 필요했다. 교회는 사도적 계승 속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발견했다. 콘스탄틴 하에서 정통 교회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계승자인 자신들만이 성경의 참된 해석자들이며, 그 이유는 오직 자신들만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원리를 이행하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은 일련의 교회 회의를 소집해서 공식적인 교리를 규정했다. 올바른 기독교 신앙 체계를 규명하여 교리적인 결정 사항들은 교회 전통에 커다란 권위를 부여하게 되었다. 전통의 권위는 성경의 권위 이상으로 올라갔다. 교리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선언들이 교회가 옳다고 생각했던 성경의 해석들을 결정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교회의 선언들을 결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초에 어거스틴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해석자는 원래의 저자가 이야기하려고 의도했던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이 원리는 성경의 가르침이 분명할 경우에는 잘 적용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분명치 않은 본문들의 올바른 의미를 발견하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① 해석자는 믿음의 법칙(rule of faith)-성경의 보다 분명한 구절이 주제에 관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② 교회의 권위나 본문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해석을 참고해야 한다.

③ 만약 모순된 견해들이 이상의 두 기준과 충돌될 경우 해석자는 문맥을 참고함으로써 어느 견해가 가장 좋은가를 살펴야 한다. 보다 평이한 본문과 교회 전통이 불분명한 구절들의 문맥보다 우선한다는 의미이다. 수용된 교회 전통이 성경의 궁극적인 해석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전통적인 해석은 곧 사도들의 가르침(analogia fidei)이요 권위있는 교회의 해석이다.

3) 알레고리칼 해석

(1) 바나바 서신과 Justin Martyr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부시대에는 이단과 싸우면서 알레고리칼 해석을 강조하게 되었다. 바나바 서신을 보자. “이제는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어떤 사람처럼…언약이 저의 것이며 또 우리의 것이라 하는 자가 되지 마시오. 언약은 우리의 것입니다.”(바나바 서신 4:6 이하) 바나바 서신에서는 구약은 처음부터 유대인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구약의 역사를 모형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지나치게 알레고리칼하게 해석한 예가 된다. 바나바 서신에서는 아브라함의 318명의 부하를 예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했다(300+1+8=십자가+예수 그리스도). 이는 구약에서 예수를 찾다가 극단적으로 해석하게 된 경우가 된다.

Justin Martyr가 트리포(유대인)와 나눈 대화에서 그의 알레고리칼 해석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저스틴은 이방 철학을 통해서 진리를 찾고자 하다가, 130년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는 에베소에서 가르치면서 유대인과 논쟁을 했다. 그는 얍복강에서 야곱이 천사와 싸우는 장면을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을 이기는 이야기로 해석하며, 야곱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임을 변증했다. (

(2) 오리겐(Origen)과 알렉산드리아 학파

터툴리안이 서방신학의 선구자였다면 오리겐(주후 185-254)은 동방신학의 전통을 세워놓은 인물이었다. 오리겐은 클레멘트(Clement)에 의해 시작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꽃이었다. 오리겐의 스승인 클레멘트는 철학을 신학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게 다루었지만 오리겐은 철학은 신학을 위한 준비 과목이라고 했다. 오리겐은 최초로 성경을 학적으로 주석했고 거의 모든 성경을 주석한 성경 신학자였다.

오리겐의 성경해석은 알렉산드리아 신학 전통에 서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성경해석은 유대인들의 세 가지 해석 방법 중 하나이다. 이 해석 방법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헬라 철학의 개념을 성경 해석에 적용하여, 성경은 히포노이아(hyponoia)라고 불리는 보다 깊은 진리 또는 영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영적인 의미는 단어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에 풍유적 해석법으로 발견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리겐은 히브리어에 능통했으며 유대인들의 수중에 있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원본을 수집했다. 오리겐은 성경의 원문을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성경의 참된 의미는 문자적 해석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리겐은 인간이 몸, 혼, 영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성경도 삼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경의 삼중적인 의미는 ‘문자적 의미’(본문의 사건, literal or physical meaning), ‘도덕적인 의미’(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 숨겨진 원리들, moral meaning), ‘영적인 의미’(교리적 진리, spiritual meaning)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깊은 의미는 영적인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오리겐은 한 본문의 의미를 항상 문자적, 도덕적, 영적인 3분법적 의미로 정확하게 나누어서 조직적인 방법으로 진행하지 않았고,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그는 복음서 본문에 대해서 문자적, 율법적 해석을 엄격히 지키기 위해 스스로 성장애자가 되었다. 그는 성경의 기적을 접하면 먼저 그 사의 역사적 실재성을 중요하게 다루고 나서 그 사건의 의미에 담긴 우화적 해석으로 넘어갔다. 한편, 어느 경우에는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아주 무시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경의 모든 본문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모든 본문이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오리겐은 자신이 유대인들처럼 레위기 본문을 주석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하나님께서 이 법을 주셨다고 주장하기도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레위기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이 틀림없지만, 모든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유태인들과 말시온주의자들의 오류라고 보았다.

오리겐의 해석이 본문을 갖고 노는 듯한 인상을 주자 오리겐은 하나님은 원래의 성경 저자를 영감하셔서 풍유적인 의미를 그의 저작 속으로 통합하도록 하셨다고 주장했다. 그러기에 오리겐이 성경의 최고의 의미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보다 깊은 영적인 진리를 말한다. 그것은 이미 성경에 암시되어 있는 것이지 해석자가 고안한 그 무엇이 아니라고 했다. 오리겐의 풍유적 해석은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스럽게 단순한 의미를 무시하는 성경해석이다. 오리겐은 성경 자체보다도 성경이 말하는 그 이상의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데 있어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리겐의 풍유적 해석은 다른 초대 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6. 어거스틴의 성경해석에 대하여 쓰라.

어거스틴의 알레고리칼 해석의 근거는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이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죽이는 것이요 풍유적이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살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를 들어, 그는 환도뼈 안에 축복받은 사람과 위골된 사람이 있다고 해석하고 믿는 자는 축복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깊은 사상에서 나온 알레고리적 해석을 했기 때문에 큰 흐름을 보면 그의 해석에서 따뜻하고 영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거스틴은 성경을 해석하는 이유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고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 덕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성경 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면 성경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 덕을 증진시키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이며, 하나님을 향유하고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증진시키는 데 언어 지식, 일반 교육 등 애굽에서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학문을 가져다가 차용해서 성경을 해석하면 신앙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7. 마틴 루터의 성경해석에 대하여 쓰라.

마르틴 루터는 16세기 해석학적인 대변혁을 주도했다.

첫째, 루터는 오직 성경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적인 권위를 갖고 있다고 했다.

루터는 오랫동안 확립되어 온 원리, 즉 교회 전통 그리고 성직에 있는 교회 지도자 들은 성경과 동일한 무게의 교리상의 권위를 갖고 있다는 기존의 원리와 결별했다. 그러므로 그는 종교 개혁의 기초 전제인 오직 성경으로의 원리를 세워 놓았다. 루터 는 성경 자체가 성경의 가장 좋은 해석자라는 원리를 천명했다. 결과적으로 독자들 은 더 이상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교부들의 주석에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둘째, 루터는 알레고리칼 해석 방법론을 배격했다. 그 이유는 이 방법론은 헛된 추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성경은 하나의 단순한 의미, 즉 역사적 의미만을 가지 고 있다고 했다. 이 의미는 성경의 역사적 문맥에 비추어서 평범한 문법의 법칙들을 적용함으로써 발견된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의 창을 통해서 성경을 읽었으며, 전 체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기에 알레고리를 배격하 는 반면에 루터는 신약의 전형적인 특징인 모형론적 해석을 채택했다.

루터는 올바른 해석 역시 주관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루터가 말하는 바는 성령의 조명이 그리스도인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성경 해석에 적용하는 과정을 인도하신다는 점이다. 성령의 조명은 성경의 독자로 하여금 주어진 본문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치는 바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보았다.

루터의 성경 해석 원리들은 다음과 같다.

① 심리적 원리 : 믿음과 조명은 해석자의 개인적이고 영적인 필수 요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이성으로써만 성경을 비판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되며, 기도와 명상 가운데 성실하게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② 권위적 원리 : 성경의 권위는 신학적인 면에 있어서 최종적인 것이기에 교회의 권위를 넘어선다. 그것의 교훈은 교회의 권위들-교회의 인물들이나 자료들-에 의해 승인 되거나 또는 종속될 수 없다.

③ 문자적 원리 :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선 행되는 원리이다. 성경의 문자적 의미만이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완전한 본질이 된다. 그러한 까닭으로 루터는 문자적 해석 을-위하여 우화적 해석을 배격하고 대신 원어적 의미 연구와 본문의 역사적, 문법적 연구에 치중했다. 특히 그는 알레고리칼 해석을 ‘먼지’, ‘쓰레기’, ‘오래되어 헤어진 누더기’ 등으로 표현했으며, 매춘 행위나 의미없는 놀이에 비유했다.

④ 충족의 윈리 : 신실하고 유능한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제시된 성경 해석을 위한 공식적 지침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⑤ 리스도론적 원리 : 문자적 해석은 성경 해석의 마지막이 아니다. 모든 해석의 가능은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다.

⑥ 율법과 복음의 원리 : 해석자는 성경 속에 있는 율법과 복음을 신중하게 구별해야 한다.

루터는 ‘Total Scriptura’를 강조하면서 “전체 성경이 개별 성경을 해석한다”고 했다. 그리고 루터는 ‘Sola Scriptura’를 강조했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가르키느냐에 따라 성경을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려고 했다. 루터는 그리스도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에 야고보서가 기독교적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루터의 이런 면은 비평주의가 성경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는 데 영향을 주었고, 실제로 루터파는 성경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었으며 비평주의가 루터파로 가장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루터는 구약은 율법(Law)이고 신약은 복음(Gospe)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루터는 성경 해석 원리 중에서 그리스도론적 원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성경 본문의 자연적 해석, 문자적 해석의 결과를 왜곡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8. 현대에 대두된 성경해석 방법들에 대하여 쓰라.

20세기에 들어와서 1차 세계대전 이후(1910- )19세기 역사주의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1차 대전 후 성경 연구가 진전되면서 성경 기사는 단순하게 사실을 기록한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구체적인 한 예로 전 복음서는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전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즉 성경은 객관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며 신자와 신앙 공동체를 위한 선교 목적으로 기록된 문서임으로 19세기 연구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속적인 다른 책과 같이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슈바이쳐(A.Scheitzer)는 19세기 성경 연구가들이 예수의 메시아성을 단순히 이적 적인 것으로 보고 있음을 지적하고 1세기의 예수로 돌아갈 것을 호소하였다.

그래서 20세기 초의 성경 해석은 대개 역사 비평적 방법으로 진행되었고 최근에 와서는 역사비평 법을 뛰어 넘는 사회학적 성경 해석 방법에 까지 이르고 있다.

1) 역사 비평적 방법(Historical Critical Methood)

(1) 브레데(w.wrede), 틔뢸취(Toeltsch)등은 19세기 합리주의의 바탕 위에서 성경을 역사 비평적 지평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과거의 전통적인 초자연주의적 해석에 대하여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2) 하르낙(A.Harnack, 1851~1930)

자유주의 신학의 수뇌로서 ‘기독교의 본질’이란 저서로 유명하다. 그는 기독교를 종교로 보는 기본 이해에 있어 트뢸취와 완전히 맥락을 같이하며 또한 20년대 초에 트륄취의 의 미로 비판적인 신학을 바르트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호하려고 시도했던 학자이다. 그 는 성경의 초자연적 내용을 부인하며 예수를 단순한 보통인가, 즉 위대한 종교적 인물 정도로 보며 부활과 부활 메시지를 구분한다. 부활 사건 없이도 부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3) 딜타이(W.Dilthey, 1933~1911)

쉴타이엘마허의 기초를 가지고 ‘정신과학적 해석’을 수립하였다. 쉴타이엘마허처럼 딜타 이는 해석학을 “문서로 고정된 삶의 표명들에 대한 이해의 기술론”으로 정의하면서 작품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작품을 창작할 때의 심리를 따라 이해해야 한다는 데 ‘심리학 적 이해’의 강조점을 둔다. 즉 해석자는 저자의 인격, 생활 및 정황 속으로 자신을 옮겨 놓아야 하고 해석학적 수법의 최종 목표는 ‘저자가 자신을 이해했던 것보다 그 저자를 더 잘 이해하는 일’로 본다. 이렇게 틔륄취, 하르낙, 딜타이의 논증들은 역사적 이해의 근 본 의도와 관련하여 한 지평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4) 쉴라터 (A.Schlatter, 1852~1938)

튀빙갠 학파로 성경이 하나의 역사책이라고 하는 통찰로부터 출발하여 사람이 그것을 그 역사성과 그 증언 의도가 있어서 아주 진지하게 다룰 때, 이 책은 가장 경이롭게 읽혀진 다고 하여 성경 해석의 역사적 비평 방법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경을 믿었기 때문에 성 경을 비판적으로 생각하였고 또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었기 때문에 성경을 믿었다고 말 한다. 그의 성경에 대한인지는 자연과학과 옛 언어학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정통주의와 경건주의에 의해 극단화 된 영감론을 거부하지만 그러나 브레데 나 다른 이들처럼 그것을 학문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근원적인 의미를 되돌려 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성경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움직여진다는 것을 부인하 지 않으며 종교 개혁자들과 함께 성경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한다.

2) 칼 발트(K.Barth)의 변증법적 신학

자유주의 신학과 역사 비평적 연구에 반기를 들고 나온 바르트는 1919년 ‘로마서’로 유럽 신학 사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성경 연구의 역사적 비평 방법은 그것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결코 불필요하지 않은 이해의 준비를 하는 쪽으로 지시해 준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것과 옛 영감론 사이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후자를 골라잡을 것이다. 이것은 더 크고, 더 깊고, 더 중요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며, 하나님이 제일 관심사요 가장 앞자리에 계신다.” “하나님의 전적 타자” 라고 주장하였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준엄하게 대립시키고 창조물과 피조물의 격차를 강조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존귀한 자리로 회복시켰다. 자유주의에 대한 시원한 교정 제 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개혁 정신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 학은 19세기 역사주의, 자유주의를 넘어선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역사적 연구나 언어학적 연구를 위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3) 불트만(R.Bultmann)의 실존주의적 신학(1884~1976)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자유주의 비탄적 신약학 연구가로서 바르트와 맞선다. 그러면서 바 르트와 같은 지평인 변증법적 신학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다.

(1) 회의주의

불트만은 19세기의 역사주의에 회의를 가지고 철저한 회의주의의 도구를 써서 ‘역사적 예수’를 파괴하며 ‘신앙의 그리스도, 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성경에서 역사적 예수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케리그마

불트만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성령의 힘으로 신앙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능이라는 데서 그 출발점을 삼고 있다. 바르트가 칼빈과 더불어 개혁 교회 신학에 유래 한데 반해 자신을 루너파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신앙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이 말씀이 개개인을 마음에 두고, 따라서 그를 자유롭게 하며 양심에 부딪히며 그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고 따라서, 그를 자유케 하며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린 새로운 실존이 되게 한다.

(3) 실존주의적 역사 개념

개개인의 실존과 삶의 결단에로 지향되어 있는 역사 개념이다.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전개된 현존의 역사성이라는 역사 개념에다가 신학적 노작을 첨가하여 실존주의적 역사 개념을 만든다. 즉 “움직이는 역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실존에 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 전체의 상황에서 심판과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4)비 신화화와 실존적 해석

신약성경의 실존적 해석은 성경에 나타난 신화를 인간 실존으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즉 옛 이야기를 오늘 우리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자는 것이다. 이것은 곧 신화에 대한 재해석으로 비 신화이다. 비신화화는 신화의 제거가 아니라 신화에 대한 실존론적인 해석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5) 전이해와 주석

ㄱ. 성경 주석은 모든 다른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선입판단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

ㄴ. 그러나 주석은 그것이 역사적 해석으로서 역사 비판적 연구 방법을 전제하기 때문에 전제 없는 것일 수 있다.

ㄷ. 주석자의 삶과 성경에서 문제되는 내용의 연관성, 그와 함께 전이해가 전제된다.

ㄹ. 전 이해는 결코 종결된 것이 아니라 미결된 것이어서 텍스트와의 실존적 해후에 그리고 실존적 결단에 이를 수 있다.

ㅁ. 텍스트 이해는 결코 확정된 것이 아니고 개방된 것이다. 그때그때 미래에서 새로이 계시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읽는 자의 관심과 전제가 최단 거리에서 있을 때 그만큼 그 물음이 진실하며 그것에서 얻는 답이 우리를 살린다.

4) 새 해석학(New Hermeneutics)

후시 불트만(post-Bultmann)제자들은 불트만의 사상과 전제를 받아들이면서 불트만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새 해석학을 제창한다. 즉 훅스(E. Fuchs)와 에벨링(G.Ebeling)에 의해 실행된 해석학이다.

(1) 훅스(E.Fuchs)

성경은 해석학적으로 이미 본문 분석을 위한 학문적, 역사적 노력에 앞서 그 자신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며 또 말한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성경은 본문 자체에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질문이 들어 있는데 해석자는 이 질문 속에 들어가서 이 질문을 마무리 지어야 하며 설교는 성경 본문에 봉사해야 한다 고 한다.

(2) 에벨링(G.Ebelsing)

'신학적 언어론‘을 해석학의 도구로 삼는데서 훅스와 같은 지평을 걷고 있으며 그는 교회 사가로서 성경이 해석되려면 말하는 자(본문)와 듣는 자(읽은 자)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하는데 그 커뮤니케이션은 기독교적 사고, 언어 전통에 관여 할 때 일어나며 기독교 신앙은 현대의 생활 경험, 현실성 경험의 맥락 안에서 제시될 때 비로소 고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이 둘은 현재의 해석학에 공헌한 바가 크다. 결국 지나치게 실존주의적 자기 이해에 빠진 것이 흠이다.

5) 사회학적 성경 해석

본문 비평- 양식사, 비평- 편집사 비평 연구가 주로 종교사 학적인 면에서만 추구되어 종교와 교회에만 관심을 기울여 옴으로, ‘사회적인 면’ 이 무시되어 왔다. 이런 약점을 보완키 위해 성경의 사회학적인 물음으로 시작하는 학문적인 노력이 사회학적인 성경 해석 방법이다. 이 방법은 위에 제시한 방법론의 약점을 극복하고 보완하기 위해 나온 방법론이다. 성경은 천 여년 동안 엮은 책으로 어떤 개인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공동체들의 생활 기록이다. 그런고로 공동체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 사회학적 시각을 갖추기 위해서는 성경의 각 문서들이 형성된 때의 사회적 조건을 알아야 한다. 최근 타이쎈(G.Theissen)은 “신약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양식사적 연구의 갱신이요,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시대사가 사회사로 발전하듯 양식사, 문화사도 사회학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양식사에서는 교회의 틀을 정하나 여기에서는 ㉠사회경제적인 요인 ㉡사회 생태학적인 요인 ㉢사회 정치적 요인 ㉣사회 문화적인 요인을 중요시 여긴다.

 

9. 성경 해석의 역사상 제 학파를 약술하라.

1. 우화주의(寓話主義)해석학파

1) 희랍의 우화주의

우화적 해석은 문자나 명백한 사실 아래에 그 구절의 진의가 따로 있다고 믿는다. 그 우화의 취지를 보여 주거나 또는 그 암시하는 취지가 매우 분명하다면 해석의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문헌이 신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 숨은 뜻에 대해 아무런 암시나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할 때 해석은 지극히 어렵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실제로 그 구절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희랍인들은 성경에는 무관심했으나 자기들의 저술에는 관심이 대단했다. 헬라의 종교적인 전통은 공상적, 기괴적, 불합리적, 비도덕적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희랍의 우화화의 전통이 유대인이 많이 모여 사는 알렉산드리아까지 나아가서 결국 많은 그리스도인에게까지 미치게 된 것이라는 점이다.

2) 유대의 우화주의

대표적인 유대인의 우화적인 해석자는 필로이다. 그는 철저한 확신을 가진 유대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성경은 플라톤과 희랍철학 보다 더 우월하였다. 그러나 희랍적 철학을 좋아했다. 필로는 문자적 의미를 무가치하다고 생각지 않고 다만 이해의 미숙한 수준이라고 했다. 문자적 의미는 성경의 體요, 우화적 의미는 성경의 魂이라고 했다.

3) 그리스도교와 교부들의 우화주의

이방 희랍인 가운데서 생겨나온 우화적인 해석 체계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 모방하고 다시 기독교에 전수되, 안디옥의 수리아 학파와 중세기의 빅토리아 학파를 예외로 하고는 종교 개혁시까지 주석계를 석권했다.

교부들의 우화적 해석방법에 대해 언급해야 할 두가지 사실이 있다. 교부들은 구약을 기독교 문헌으로 만들자는 데에 전력했다. 교부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우화적인 해석방법에 따른 문제점들도 많이 있다.

(1) 우화적 해석가들은 주석 상 순수한 역사적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 성경구절의 역사적 의미를 결여하고 있다. 성경구절의 역사적 관련이 흔히 전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2) 우화적인 해석가들의 구약인용방법은 그들이 계시의 진행과정을 지극히 유치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3) 글들은 구약(특히)과 신약은 온통 비유와 불가사의와 수수께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4) 그들은 우화적인 해석과 모형론적인 해석을 혼동하고 있다.

(5) 그들은 희랍적 철학이 구약 안에 있으며 거기서 희랍적 철학을 발견해 내는 방법은 곧 우화적 해서방법임을 믿는다.

(6) 우화적 해석주의가 지나치게 독단주의적이라는 점에서, 자연히 그것은 성경의 독단적 해석을 촉진하게 되었다.

4) 카톨릭의 우화주의

해석학에 대한 카톨릭교의 주장을 연구하는 가운데서 명백히 드러나는 사실은 신교도들의 성경연구의 발전은 바로 카톨릭교적 접근의 정신위에 효과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카톨릭 신학자는 신약의 교리는 씨(Seeds)로서 성장하고 발전한 것인데 , 사실 현대 카톨릭의 사원에서 보여 지고 있는 모든 것이 사도행전의 사도적 교회에서는 씨의 형태로 내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믿는다.

2. 문자주의 적 해석학파

1. 유대교의 문자주의

에스라는 최초의 유대인 해석자와 또 유대교적 팔레스틴의 강력한 문자주의 학파의 결정적인 창시자로 인정되고 있다. 바벨론의 포로시대에 의해 유대인과 그들의 성경 사이에 언어의 간격이 생겼다. 그래서 히브리어를 아랍어로 의역함으로서 성경의 의미를 드러내고 또는 기타방법으로 성경의 의미를 해설하는 것이 에스라의 과업이었다.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은 성경의 문자적 이해에 접근하는 징표를 드러내는 소수의 건전한 주석원리를 개발했다. 랍비주의의 주요한 결함은 하나의 과도한 문자주의나 자구주의(字句主義)의 개발이다. 세부 문맥에 과잉 충성을 하던 나머지 그들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보수적인 것을 크게 확대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런 해석의 체계는 신비주의자들의 체계로 나아갔다. 신비주의자들의 해석 체계속에서는 자구주의와 우화주의가 기묘한 연합을 이루고 있다.

2) 안디옥의 시리아학파

안디옥의 시리아학파는 교의적 주석을 피했다. 교의적 주석은 이단들과 많이 논쟁하던 관계로 서방에서 계속 번성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로마 카톨릭의 권위적의 권위적 주석으로 발전해 버렸다. 그러나 시리아 학파가 주장한 것은 성경의 의미는 역사적 문법적 의미이며, 따라서 해석도 그런 의미로 할 때에 정당한 것이라고 한다.

시리아의 학파는 구약을 우화적으로 해석하는 대신에 보다 더 분별력있는 모형적 접근을 제시했다. 구약과 신약은 모형적인 것이지 우화적인 것이 아니다.

시리아학파는 계시의 발전을 인정한다. 시리아 학파는 성경의 통일성은 기독론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3) 빅토리학파

빅토리학파는 자유적인 예술, 역사, 지리가 주석에 근본적이라고 주장했다. 빅토리학파는 주장하기를 신비적 또는 영적 의미는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전에는 참으로 알려질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의 문자주의는 자구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한 문장의 참되고 적절한 의미를 뜻하는 것이다.

4) 종교개혁파

해석학 견지에서 본 종교개혁의 길을 예비한 두개의 주된 요소가 있었다.

이중 첫 요소는 옥캄의 철학적 체계였다. 옥캄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은 계시와 인간 이성의 분리이다. 둘째 요소는 히브리어 및 희랍어에 대한 새로운 연구이다.

루터의 해석학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심리적 원리이다. 신앙과 조명은 해석자에게 인격적,영적 전제요건이다.

믿는 자는 성령님이 인도하심을 추구해야 하며 그 인도하심에 의존해야 한다.

둘째, 권위적 원리이다. 성경은 신학적 문제에 있어 최상위며 최종적인 권위다. 따라서 모든 교회의 권위 위에 성경이 임한다.

셋째, 문자적 원리이다. 루터는 우화를 배격한다. 그는 우화적 해석을 “추잡하고 ” “찌꺼기 이며” “낡아빠진 넝마조각”이라고 부른다. 루터는 원어의 우월성을 주장했다. 하나님의 원시적 계시는 히브리어 및 희랍어 성경에서 되찾기 전까지는 진실로 되찾아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문법적 원리. 이것은 문자적 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넷째, 성경해석의 유자격 원리이다. 유능한 그리스도인은 성경해석에 충분한 유자격자이다. 성경은 또 신자들에게 그 의미를 드러낼 만큼 그 내용에 있어서 충분하게 명료하다. 더 나가서 성경은 그 자체의 부족이 없는 하나의 세계로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다섯째, 기독론적 원리이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이 해석의 목표는 아니다. 모든 해석의 기능은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일이다.

여섯째, 율법 대 복음의 원리. 루터는 갈라디아 교회의 근본적인 이단이 그대로 카톨릭 교회 안에 여러 다른 형태로 이식(移植)된 것을 보았다.

5) 종교개혁 이후

일반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 규칙들이 신교의 정통주의적 해석의 지배적 원리가 되었다.

3. 경건주의적 해석학파

경건주의 해석이란 성경의 건덕적(建德的)인 면에 강조를 두어 영적 생활의 발전을 목적하고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말한다.

경건주의는 신조주의 및 공상적인 주석에 명백히 반기를 들고 일어난 반응이다. 경건주의자들의 통찰력은 오늘날 까지 상실되지 않고 있다. 성경의 가르침에 있어서 경건하고도 실제적인 강조점은 절대로 필수적인 일이다.

생동적이며 개인적이며 영적인 요소는 몾든 말씀 사역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건주의적 해석의 두 가지 약점도 있다. 그것은 구약을 사용할 때에 특별히 우화화의 경향에 들어가기가 쉽다는 점이다. 둘째, 경건주의의 해석은 필요적절한 성경의 주석적 교리의 연구를 대신하려는 위험성이 따른다.

4. 자유주의 해석학파

지금에 있어서의 성경에 대한 논쟁은 합리주의 대 권위주의의 논쟁이다. 다음 원칙들은 종교적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연구에 임한 때 지배했던 원칙들이다.

(1) 종교적 자유주의자는 근대지성이 우리의 성경연구를 통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2) 그들은 축자적, 완전, 동적 영감, 모든 형태의 진정한 영감을 배격한다. 계시란 종교적 진리에 파고드는 인간의 통찰력, 또는 종교적 진리에 대한 인간의 발견이라고 재정의 했다.

(3) 초자연적인 것을 재정의 한다.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일이 성경에 나타날 때에 그것은 민간 전승이나 산화나 시적 작품으로 여긴다.

(4) 진화의 개념이 이스라엘의 종교와 거기에 따른 이스라엘 종교의 문헌에 적용되다.

(5) 성경은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해석해야 한다. 철학이 종교적 자유주의에 영향력을 끼쳤다.

5. 신정통주의 해석학파

칼 바르트에서 최초로 나온 사상이다. 자유주의의 사회복음과는 대조적으로 기독교의 순수한 복음을 재발견하려한 시도였다.

해석학적 원리를 살펴보면,

(1) 계시적 원리-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대변할 수 있다. 계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아니 바로 그 때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어란 말씀이 아니며 , 다만 개인적인 임재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의식 속에 제시된 하나님 자신이다.

(2) 기독론적 원리 -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성경의 부분만이 구속력이 있다.

(3) 종합적 고찰 원리 - 성경의 한 본문이나 또는 다수 본문을 인용해서 어떤 교리를 증명해 낼 수는 없다고 했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 가르침의 종합적인 고찰을 통해서 결정된다.

(4) 신화적 원리 - 성경은 우주의 창조, 인간의 창조, 인간의 무죄,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은 주제들을 담고 있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신화적으로 해석한다.

(5) 실존적 원리 - 성경을 읽으려면 실존적으로 읽어야한다. 이 실존적으로 읽을 때에만 성경은 독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다.

6. 구원사적 해석학파

호프만은 말하기를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그 근원은 과거에 있고 그 의의는 현재에 있고 그 전망은 미래에 있다고 했다. 호프만은 성경의 유기적 견해로 보고 있다. 개개의 모든 사건이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를 직시하여 미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성경은 이 거룩한 역사를 연구하는데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역사의 중심점이다. 호프만은 주장하기를 모든 성경의 장절은 어떤 교리를 증거 하는 데 에 참된 의미와 비중을 주는 역사적 사건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사죄와 구원의 선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생애의 체험에서 부터 우리 영혼이 갈구하는 것이 바로 이상의 사실임을 발견한다.

7. 불트만과 신 해석학파

불트만의 해석학의 원리는 아래와 같다.

(1) 과학적 원리 -문제는 과학적 방법에 의해 해결되며 , 모든 역사적 진술도 그것들이 역사가의 일반적인 연구과정을 통해 입증될 경우에만 용납된다.

(2) 비판적 원리 - 불트만은 당시의 지배적인 신구약 비평가 아래서 연구했다.

(3) 신화적 원리 - 불트만은 제1세기의 교회는 신화적 용어로 교회의 신앙을 표현했다고 가르친다. 이런 신화들은 대개 유대주의의 묵시적 신화와 희랍의 신비종교의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런 신화론은 불트만의 해석학에 아주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졌다.

이외에 불트만은 비 신화론적 실존적 원리, 변증법적 원리, 계시적 원리, 율법적 원리를 사용했다.

 

10. 개신교의 해석 체계를 진술하라.

1. 영감- 이것이 해석의 기초이다.

성경의 신적 영감은 역사적 프로테스탄트의 해석학 및 주석의 기초이다. 영적인 관점을 보아 신교도의 새로운 해석의 일면이 추가 되는바 이하에 새로운 면을 열거한다.

그것은 도덕적 또는 영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옛말에다가 새 내용을 추가시키는 계시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신교주의는 성경의 완전 영감설을 인정하기 때문에 신교주의는 믿음 ,신뢰, 기도, 경건의 영적인 면에서 성경에 접근하고 있다. 신교주의는 신교가 속임을 당하거나 미혹을 받거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되기 위해서 성서비평에 관여하고 있다.

2. 교화 : 이것이 해석의 목표이다.

신교의 성경해석은 성경의 완전영감에 그 기초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진리에 대한 반영으로서 성경의 위대한 목적, 말하자면 이 성경을 읽는 사람의 생애에 영적인 영향력을 일으킬 수 있는 과업도 지니고 있다.

성경의 모든 역사적, 교리적, 그리고 실제적인 진리는 하나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영적 번영을 촉진하는 일이다. 성경은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수단이다.

3. 프로테스탄트의 해석방법

(1) 신학적 전망

신교의 성경해석방법은 확고한 신학적 확신 위에 근거하고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는 뜻은 해석을 신학적 문맥에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① 해석의 명료성 -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명료성 문제 이다. 루터는 성경의 외적 명료성은 성경의 문법적 명료성이라고 했다. 성경의 내적 명료성은 믿는 자의 마음이나 정신 속에서의 성령님의 역사인 바 , 성경의 진리를 하나님의 진리로 알도록 믿는 자의 마음을 성령님이 비쳐주는 행위이다.

② 조절된 계시 -성경은 인간이 능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지성에 조절된 하나님의 진리이다. 그러한 조절을 통해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전해지며 또한 의미가 이는 계시가 된다. 하나님의 계시의 조절된 특성은 말하자면 성막과 그리스도인의 비유의 가르침 같은데서 특별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③ 점진적 계시 - 점진적 계시라고 해서 성경의 계시가 문화적 종교적 영역에서의 진화의 과정이란 의미는 아니다. 점진적 계시로 의미하는 내용은 성경은 하나님의 운동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점진적 계시는 계시의 일반적인 형태이다.

구약은 시대를 통한 그 진행에 있어서 일정하지 아니했다. 마침내 하나님은 완전한 계시인 신약을 낳게 하셨다.

히브리서의 특별한 가르침은 구약계시는 물질적 계시로서 ,지상적이고 문화적인 껍질 속에 들어있는 영적 진리이며 , 모형과 그림자와 비유로 나타난 진리인데 비해서 , 신약은 영적 계시로서 옛 언약 형태의 실체며 실질이며 성취이다. 해석자는 신약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를 기대해야 한다.

④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 - 또는 성경의 불명료한 구절은 명료한 성경구절에 맡겨야 한다. 개혁자들은 성령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사실을 선포했었다.

⑤ 신앙의 유추 - “신앙의 유추란 믿음과 행위의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의 성경의 일관적이며 영구한 조화인데 , 이것은 영감받은 성경기자들이 이런 것에 대해 명백하고 간단한 지적인 언어로 직접적 또는 분명하게 논의한 바 있는 성경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⑥ 성경 의미의 단일성 - 성경 의미의 단일성을 우리가 강조한다 해서 성경의 의미를 편협한 문자주의로 하락시키거나 또는 성경의 예언적 모형적 깊이를 몰라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⑦ 해석과 적용의 관계 - 성경의 참된 목적은 영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도구이다. 성경은 신학적인 책이거나 또는 신학의 추상적인 논문집이 아니라 독자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책이기 때문에 해석은 적용을 의도하고 있고 가르침을 순종하게 된다.

(2)언어학적 원리

성경해석상의 참된 언어학적 정신 또는 비평적 정신, 또는 학문적 정신은 본문의 원래의 의미와 의도를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성경 주석에 있어서의 언어학적 방법의 가장 근본적인 가정(假定)은 모든 주석이 진정 유능하고 신실성 있는 주석이 되고자 할진대 본래의 원어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교리는 원어를 해석함으로써만 책임이 있고 유능한 방법으로 설정되어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원어를 모르는 사람이 정확한 해석을 내리는데 실로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실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해석으로 만족해하고 말 것이다. 에베소서 5장 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단지 영어만 아는 사람은 본받는 다는 개년 배후에 무슨 말이 있는지 전연 모른다. 불행스럽게 영어에서 “본 받는다”(모방)는 말은 흔히 순수한 예술품을 값싸게 복사한다는 의미이거나 또는 어떤 유명인사의 인품을 인위적으로 모방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이세상은 하늘이나 영적 세계의 모방이라는 개념을 플라톤의 예술 제일 원리는 예술이라는 자연 모방이라고 말한다.

1. 단어들

단어들이란 대개 우리의 생각과 기록의 단위들이다. 이 단어들은 우리 개념의 형성의 벽돌이다. 성경을 참으로 신중하게 공부하려면 먼저 낱말 공부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어원학적인 단어 연구

우리는 낱말을 어원학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이것은 그 단어가 그 형성된 방법에 따라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희랍어나 히브리어 낱말들은 ,단지 어원학적으로만 분석하는 일은 큰 가치는 없다. 어떤 경우 그것도 실로 단어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희랍사람들이 자기들이 사용하던 낱말들을 함께 결합시켰던 대표적인 방법들을 연구 검토해서 낱말의 의미에 어떻게 접근하느냐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2) 비교 분석적 단어 연구

우리는 단어를 비교 분석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이 말은 성경에 나타난 한 단어의 모든 출연회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히브리어 및 희랍어 성구 사전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어떤 다른 말에 대한 동의어로서 어떤 말을 생각하고 있었던가를 우리가 알아냄으로서 저자가 처음에 의미했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참된 암시를 얻을 수 있다.

3) 문화위주의 단어 연구

신약이나 구약 안의 한 낱말 배후에는 흔히 문화의 행습이 있는 바, 우리는 단어의 풍부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 문화적 행습을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4) 동족어군 및 고대역본을 통한 단어 연구

같은 언어계열에 속한 언어를 연구하고 고대역본을 통해 단어를 연구한다.

2. 문법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문맥은 어떤 단어에 대한 순수한 언어학적 고찰 그 이상으로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보다 많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음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첫째로 단어의 의미를 고찰하는데 관해 언급된 모든 것은 문법과 관련되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단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동일한 근원들이 역시 문법 이외에도 도움을 준다.

둘째로 문법연구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이해할 사항은 언어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분석적 언어는 근본적으로 어순을 강조하는 언어이다.

셋째로 해석자는 구문론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문법은 일반적으로 문장들이 어떻게 규칙에 의해 조성되었는가를 제시해 준다. 한 문장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을 보다 기술적으로 가르키는 용어를 구문론이라 한다.

넷째로 문법적 해석은 문맥을 고려하고 있다. 모든 성경 구절의 제1문맥은 전 성경이다. 이것은 곧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모든 성경구절의 제2문맥은 글 구절 속에 있는 구약 또는 신약이다.

다섯째로 문법적 해석은 병행구절 또는 참고구절은 고려해 보도록 이끈다. 이 원리는 사실상 동의어 연구나 같지만 , 다만 더 광범위한 재료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3. 문학 형태 또는 장르

일반적인 문법적인 고찰로서 이해되어질 수 없는 사상을 표시하는 방법들이 있다. 이 때 특수한 표시방법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특수한 종류의 표현은 문학 형태, 또는 장르라고 부린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어떤 형태의 장르 안에서 표현되고 있다.

성경에는 3가지 형태의 문학의 장르들이 있는데 각 형태는 다른 형태보다 더한층 확대되고 있다.

(1) 말의 비유 - 말의 비유란 저자가 일반적인 확신의 방법을 넘어서서 특수한 방법으로 자기 사상을 표현하는 한 완전한 문장의 한구(句)를 말한다.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는 은유, 직유, 가정법이 있다.

(2) 더 넓은 범위의 본문 속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특수한 문학적 표현의 광범위한 형태도 있으니 , 이런 것들은 열거하자면 비유, 우화, 신화, 수수께끼 등이다.

(3) 성경의 어느 책이든지 모두 다 어떤 형태의 광범위한 문학의 장르 속에 들어있다.

성경이 어느 특수 책이나 특수구절이 어떤 종류의 문학의 장르(양식)를 표현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주석가들에 따라서 각이하게 나눠지며 각이하게 취해지며 해석하고 있다.

 

11. 근대의 그릇된 해석들을 쓰라.

1) 소시니안 파의 해석

성경해석에 인간의 이지를 도구로 사용할 뿐 아니라 그것을 진리 판단의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성경을 오석 했다.

2) 재세례파의 해석

성경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일개의 경험 문서로 보고 성령의 내증만을 중시하였다. 성경의 글자들을 무생명한 것들로 보고 성령을 받은 인물들에게는 성경이 불필요하다고 하였다. 이것은 성경의 객관적 가치를 모른 오해이다.

3) 레몬스트랜쯔(Remonstrants)의 해석

이 학파는 중립불편의 태도로써 성경을 해석하겠다는 학파로서 전통과 교리에 예속되지 않고 해석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인간의 이지를 성경의 신률(神律)이상에 두는 것으로서 인간의 이지 자체가 편견이 없는 줄로 착각하여 합리주의적 해석으로 전락될 위험이 있다.

4) 합리적의 해석

이 학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도 않고 성경을 인간의 지식과 지연에 의하여 해석하는 학파이다.

5) 편향 주의적 해석

여자적(如字的) 해석의 극단과 지나친 영해의 극단이다.

6) 심리적 해석

이 학파의 대표 슐라이엘마허는 성경 저자들의 심리작용의 독특성을 살려 해석하려고 했다. 각 저자의 독자적 심리를 강조하여 성경 전체가 성경 한 저자의 일관성 있는 작품임을 무시한다. 또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간섭은 무시하고 일반 과학적 방법에 의해 저자의 심리는 파악하려는 착오를 범한 학파이다.

7) 양식사학파

궁켈로부터 시작된 이 학파는 성경(특히 공관복음)이 본래 정체가 없는 설화로 있다가 구전을 통하여 다소 변이되어 후에 현존의 정형이 나타났다고 보고, 해석자는 현존의 정형에서 전승사를 통하여 부가 또는 감삭된 요소들을 탐지하고 그것을 제거 또는 첨가하여 설화의 원체를 회복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적 진실성(눅 1:1-4)을 무시한 것이고, 성경이 유일회적 역사적 계시임을 무시한 오류이다.

 

12. 성경해석의 원칙적 원리들을 쓰라.

1) 일반적인 원리

해석에 대한 주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원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1)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전통, 성경, 이성 어느 한편에 궁극적 권위를 부여한다. 카톨릭은 전통, 합리주의 신학자들은 이성 복음 주의자들은 성경에 둔다.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 되었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지식에 앞서 결단이 필요하다. 즉 알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 동정녀 탄생에 대한 해석

(2) 성경 자체에 해석이 들어 있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 한다.”는 기본 원칙이다. 성경 외의 것을 더 첨가하거나 삭제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 자체가 주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성경의 한 대목만 볼 것이 아니 라 성구의 전체 문맥을 보아야 한다. 즉, 성경의 전체 사상과 참조해야 한다. 예) 마 27:27-50, ‘십자가 사건’에서 ‘옷’ 참조) 시 22:18, 막15:24, 눅23:24, 요19:23-24 비교

(3) 믿음과 성령의 도움으로 해석 믿음을 전제로 하며 영의 도우심으로(요 16:13) 해석해 야 한다.

(4) 개인적인 체험에서 해석하지 말고 개인적인 체험을 성경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성 경 전체에 걸쳐 전개된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 그 진리에 기초하여 해 석되어야지 그 반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예로서,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부활하신 것이다.

(5) 성경의 예들은 계명의 배경에서만 권위를 가진다. 성경의 모든 예들을 꼭 따를 필요는 없다. 예수님의 미혼, 의복, 걸어 다니심 등의 예는 따를 필요는 없다. 신자는 성경이 금하진 않는 것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다.

(6) 성경의 근본 목적이 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변화에 있다. 성경의 말씀이 우리 의 삶을 이루도록 응용해야 한다.

(7) 교회의 역사가 성경 해석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2) 문법적 해석의 원리

본문에 나타난 언어들을 다루는 것이다. 즉 언어의 문법을 습득한 후 문법 해석을 지침으 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해석자는 일반적인 문법적 규칙에 비추어 성급하게 성경의 문법 적 오류를 지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원저자의 뜻이 어떻게 전달되는가를 찾아야 한다.

(1) 성경 본문은 한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의미는 문법적, 자의적으로 해석해야 다. ‘화목’을 하나님과의 화목이 아닌 인간 끼리만의 화목을 생각하거나 ‘구속’을 죄에서의 구원이 아닌 사회적 구원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 해서 내 선입 관에 맞지 않는다 해서 문자적 이해를 게을리 함으로 상징적, 비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2) 단어들은 저자가 기록할 당시의 의미와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

요2:19-21 ‘성전’이 유대인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이 달랐다. 그 단어가 예수님에게 는 ‘자신의 몸’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3) 문맥의 전후 관계를 보아야 한다.

‘믿음’이 갈1:23에서는 ‘복음의 교리’, 롬14:23에서는 ‘확신’의 의미이며, 고전 7:1을 결혼 을 금지시키는 것이나 여자와 악수하는 것까지도 금한 것이 아니고 단지 부정적 음행 을 금지한 것이다. 그런고로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1) 그 대목의 말씀이 그 대목의 주변 자료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2) 그 대목의 말씀이 나머지 다른 책들 부분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3) 그 대목의 말씀이 그 책 전체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4) 그 대목의 말씀이 기록되던 당시의 배경, 환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4) 비유적으로 해석할 것도 있다.

생명 없는 물체가 살아 있는 존재로 설명하는데 사용된 경우에는 그 말씀이 비유적으 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생명의 떡, 빛, 양의 문’ 이다.” 등이다.

또한 어떤 표현이 거기에 말하고자 하는 사항의 성격에서 전혀 벗어났을 경우에는 비유 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빌3:2-3 “개들을 삼가라”, “우는 사자”등

(5) 어원학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 역사적 해석의 원리

본문의 역사적 해석을 다루는 것이다. 즉, 책의 저자, 수신자, 기록 동기, 배경, 사회적 상황 등을 살피는 것이다.

(1) 성경적 역사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그 책이 기록되던 당시의 배경과 상황에 위치시키고 그 당시 관련된 사람들과 더불어 느끼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하는 저자의 호흡과 맥박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2)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에서 이해해야 한다. 구원 사의 과정에서 예언과 성취의 도식에서 이해해야 한다.

(3) 역사적 사실, 사건은 성경이 영적 진리에 대한 상징이라고 지목 한데서 영적 진리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예) 갈4:22-24, ‘아브라함의 두 아들’의 의미

4) 신학적 해석의 원리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며 이 세상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학문이다.

성경은 그 원전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신학적 해석의 원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인간의 본성은, 구원의 교리는 무엇인가 하는 등등의 내용을 취급한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해야 한다.

롬5:15-21의 ‘의’는 인간적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이다. 즉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예수의 공로로 의인이 되는 것이다.

(2) 성경 전체의 신학 사상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

1) 읽은 양의 비유(마18:11- , 눅15:3- )

2) 구약의 정의적 하나님, 신약의 은총의 하나님

두 개의 교리가 서로 모순 될 때 그 교리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3) 암시나 함축 부분은 연관되어 있는 다른 부분과 관련해서 해석해야 한다.

예) ‘여자들이 성만찬에 참여 할 수 있느냐’ 는 문제는 성경 본문이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럴 때,

1)첫째 전제: 고린도 교회는 성만찬에 관해 가르침을 받았다

2)둘째 전제: 여자들은 고린도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

3)결론: 여자들도 성만찬에 참여할 수 있다.

 

13. 성경해석의 기본 규칙들을 쓰라.

1) 성경은 반드시 문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성경이 영어 단어의 상용 의미와 영어 문법의 표준 규칙에 따라 해석되어야 함을 뜻한다. 해석의 기본 원칙으로 이 이상의 것은 없다. - 이 원칙을 벗어나면 단지 문학적 혼란을 낳을 뿐이다.

이 관점에서 적용되어야 할 세 가지 "법"이 있다.

(1) "직접 서술문(Direct Statement)"의 법

a. 정의

성경의 모든 구절은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말씀하는 바의 의미를 정확히 취해야 한다. 직접 본문이나 어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른 의미를 낳는다.

b. 추론

"평범한 의미가 상식으로 통하면, 다른 의미를 찾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넌센스가 될 것이다"

c. 예

i.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가 된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다. 고린도전서 10:32은 분명하게 "유대인"과 "하나님의 교회"를 구별함으로써 그러한 자유로운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ⅱ. 가나안은 가나안이다.

많은 찬송가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졌지만, 믿는 이는 "약속의 땅" 이나 "가나안의 행복한 나라"에 묶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의 마지막 목적지 (가나안이 아니라) 하늘이다 - 가나안은 항상 이스라엘 나라의 일부인 문자적인 땅을 가리킨다. 스바냐 2:5에 따르면, 가나안(분명히 하늘이 아니다)은 주님의 날에 황량한 폐허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영적으로 적용하더라도 (해석이 아니다), 가나안은 하늘로 대비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나안은 승리한 그리스도인이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는 승리와 축복과 안식의 장소를 의미한다. 히브리서 3:11~4:11을 볼 것.

ⅲ. 시온은 시온이다

시온은 그 위에 예루살렘이 세워진 언덕이다(삼하 5:7). 시온은 자주 예루살렘으로(예; 시 147:12), 그리고 하늘에 속한 의미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바뀌어 사용된다(히 12:22). 그러나 시온은 교회도, 하늘도 아니다.

ⅳ. 천년은 천년이다.

비록 숫자가 상징적 의미를 갖을지라도, 만약 분명하게 확실하지 않다면 모든 숫자들은 반드시 그대로 취해져야 한다. 계시록 20:2~5에서 "...천년"은 문자적인 1000 년을 의미하지 시간이나 영원의 어떤 정해진 기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David Cooper는 말하기를 "....본문의 사실들이 분명하게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는 한 각 단어의 주된(primary), 보통의(ordinary), 일상적(usual) 의미를 취하라"고 했다.

(2) 본문의 법(The Law of Context)

a. 정의

성경의 모든 구절은 본문의 빛 안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b. 추론

"본문(context)에서 취한 구절(text)은 구실(pretext)이 된다" 성경 구절의 본문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다음 사항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i. 직접 본문(The Immediate Context)

* 구절이 위치한 장(Chapter) : 성경에서 모든 절은 앞서거나 뒤따르는 것이 있다. 이것이 직접본문이다. 직접본문은 구절을 올바르게 해석하고자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가 있다. 낙담한 사업가가 마침내 성경에서 인도를 받기로 하였다. 그가 임의로 성경을 열고 손가락으로 집은 구절은 마태복음 27:5였다. "..스스로 목을 맨지라" - 이 충고가 너무나 격하다고 생각되자,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누가복음 10:37을 집었다. - "가서, 너도 이같이 하라." 그는 좌절 하였으며, 다시 시도했다. 이번에는 요한복음 13:27을 집었다 -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행하라" 이 익살스러운 이야기는 본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구절을 취하여 잘못된 메시지와 교리로 끝나는 심각한 오류를 보여준다.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단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유명하다.

ⅱ. 두 번째 본문

* 구절이 위치한 성경 기록 : 하나님의 말씀에서 각 성경기록들은 적어도 한 개의 주요 주제를 가지고 있다. 특정 구절을 해석할 때 반드시 이 주제를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는 교회의 질서를 다룬다.

갈라디아서는 유다주의를 다룬다.

디모데전서는 목양서신이다.

신명기는 율법의 두 번째 부여이다.

말라기는 후기 바벨론 포로 대언자의 선포이다.

전도서는 삶의 의미를 상고하는 것을 다룬다.

ⅲ. 넓은 본문(The Broad Context)

* 구절이 위치한 유언서(Testament) : 전(全) 성경에서 본문의 위치를 고려하면 역사적, 경륜적, 예언적 요소들을 얻을 수 있다.

ⅳ. 주제 본문(Topical Context)

* 성경의 다른 부분에 있는 대비 구절(parallel passage)

v. 교리적 본문(Doctrinal Context)

* 하나님의 말씀의 관련된 교리적 구절 : 성격상 교리적인 구절(text)은 동일한 가르침을 다루는 다른 구절(passage)과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의 근본 교리는 결코 한 개 또는 두 개의 "증거 본문(Proof texts)"에 기초하지 않는다 - 그들은 함께 짜여져서 조화롭게 전체를 이루는 많은 구절들(어떤 것은 중심적이고 어떤 것은 주변적인)에 기초한다.

c. 예

i. 여호와의 증인들은 소멸설(Annihilation)의 사악한 교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욥기 7:9을 취한다. 그렇게 해서 이 구절을 (1) 세상에 속한 관점에서 욥의 경험에 관련한 직접 본문으로부터 억지로 떼어 놓고 - 10, 21절을 보라. (2) 둘째 구문으로부터 억지로 떼어 놓고 (왜냐하면, 욥은 죽음 후의 삶을 믿었 - 14:12~15, 19:25~27) (3) 넓은 본문에서 억지로 떼어놓고 (왜냐하면 죽은 구약의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까지는 직접 주님이 현존하신 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 엡 4:8~10을 볼 것) (4) 교리적 본문에서 억지로 떼어놓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죽음 후의 의식적 생명을 가르친다. - 눅 16:19~28을 볼 것)

ⅱ. 유사한 양식으로 몇몇 이단들은 전도서 3:18~22와 9:5,10을 사용하여 혼수면설과 소멸설을 가르친다. 전도서 전체의 둘째 본문은 "해 아래 삶", 곧 외적인 감각의 삶이다. 솔로몬의 결론(12:13,14)은 명백하게 죽음 후의 삶을 가르친다.

ⅲ. 직접 본문에서 발췌한 빌립보서 2:12f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치는 것 같다. 그러나 13절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를 설명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우리 안에 있는 구원은 반드시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역사하는 구원이다.

ⅳ. 이사야서 53 장은 실로 모든 죄인을 위한 보배로운 구절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한 놀라운 예언이다. 그러나 그 본문은 올바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이 장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들이 찌른 자를 바라 볼 것이요"(슥 12:10)라는 절망적인 이스라엘의 외침의 일부이다. 이 장은 유대인의 회개와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을 다루는 큰 부분의 일부이다.

v. 마태복음 25:31~46에 기술된 심판은 영원한 상태가 시작되기 전 "크고 흰 왕좌" 에서 구원받은 자와 잃어버린 자를 나누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본문은 천년 왕국(34절) 전에 여호사밧 계곡에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발생할 민족의 심판임을 보여준다(요엘 3:12). 구원받은 자는 "크고 흰 왕좌" 심판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ⅵ. 몰몬교는 죽은 자를 위하여 침례 - 구원을 위한 대리 세례(proxy baptism) -를 베푸는 그들의 실행의 기초 본문으로 고린도전서 15:29을 취한다. 본문은 이 구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첫째로, 이 장은 부활을 주제로 다룬다. 이 장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하여 믿는 이의 부활로 끝나며, 중간에 부활이 없는 경우의 결과를 다룬다. "죽은 자(the dead)"는 29 절에서 3 번 나오며 15 장의 다른 구절에서 11 번 나온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13절)... 우리의 그리스도는 헛되고(13,16절), 우리의 선포도 헛되고(14절), 우리의 구원도 헛되고(14,17,18절), 우리의 소망도 헛되고(20절), 우리의 싸움도 헛되고(30~32절), 우리의 거룩한 삶도 헛되고(32,33절), 우리의 세례도 헛되다(29절). 세례는 죽음(잠김)과 부활 (올라 옴)을 예표 한다. 세례를 받을 때 물에서 올라옴으로 믿는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자신의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선언한다. 29절의 "혹(else)"은 다음과 같이 묻는다 : "부활이 없다면 왜 세례를 받는가?" 그러한 경우 세례는 영원한 잠김이어야 할 것이다.

 

ⅶ. 종종, 본문의 선행사가 중요한 경우가 있다.

마태복음 16:19에 언급된 "왕국의 열쇠"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베드로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16절에 있는 선행사인 "내 교회"에게 주어졌다. (주님의 교회에게 위임된 이 "열쇠들"은 구원의 문을 여는 복음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2:16에서 사도 베드로의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니..." 는 요엘서 2:28~32의 대언의 성취로서 오순절 날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역사한 성령님과 그분의 가시적 영향을 가리킨다. - 그것은 요엘서 2:28에서도 언급된 것이다. 베드로는 술 취했다는 고소에 대하여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ⅷ. 본문을 결정하여 성경의 난제들을 푼다.

요엘서 3:10 은 보습을 두드려서 칼을 만드는 것에 관해 말한다. 그러나 이사야서 2:4 은 칼을 두드려서 보습을 만드는 것에 관해 말한다. 이러한 분명한 모순은 근접하는 본문으로부터 이들 두 구절이 각각 그리스도의 재림 전 후와 관련됨을 이해하면 해결된다.

ⅸ. 많은 경우 단어나 구절이 그것이 등장하는 연결부에 의해 수정되거나 제한 받으며,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하여 본문을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 로마서에서 "율법"이라는 단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본문 또는 배경에 의하여 결정된다.

· 모세의 법 - 롬 2:14 (처음 3 번 언급)

롬 2:20,23

· 자연의 법 - 롬 2:14 (마지막 언급)

· 직관의 법 - 롬 2:15

· 규칙 - 롬 3:27f

· 원칙 - 롬 7:21

예. 사도행전 2:38의 단어 "for"는 침례의 목적에 대하여 이 구절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켐벨파는 세례를 통하여 죄의 사면을 받는다는 그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for"가 "..하기 위하여(in order to)"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단어 "for"는 또한 ".. 때문에(because of)"를 의미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림이 절도로(for) 교도소에 수감된다고 말한다면, 이는 절도를 범하기 위하여(in order to) 수감된 것이 아니라 절도 때문에 (because of) 수감된 것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5:14에는 "for"에 대한 이 두 가지 용례가 다 보여 진다. 시도행전 2:38을 "...각자 세례를 받아...죄들의 사면 때문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세례 죄 사면(baptismal remission)에 관한 의견을 명확하게 반박하는 많은 다른 성경과 완전히 일치한다.

예. 단어 "믿음(faith)"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에 대하여 역사하는 것"을 뜻하나, 본문에서 결정되어야 하는 몇 가지 의미상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에베소서 2:8에서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가리킨다.· 유다서 3 절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친 교리의 체계(body)를 가리킨다.· 로마서 14:23에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을 의미한다.

(3) "언어"의 법

어떤 이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성경의 모든 부분을 절대적으로(신비적으로) 문자적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성경이 직접 (문자적) 구문의 형태로 있지만, 성경은 또한 비유적 언어나 비문자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수용 가능하다.

a. 정의

"문자적인 해석이 명확한 모순과 불합리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단어들은 문자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b. 추론

성경에서 상징적 언어나 비유적 언어를 사용하는 부분에 대해서 해석자가 해석에서 문자적 방식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주(註) : 모든 비문자적 언어는 뜻이 통하기 위하여 반드시 문자적 단어에 근거하여야 한다.

c. 비문자적 언어의 예

성경의 일부는 직접 구문이 아닌, 예표, 우화, 상징, 비유(비문자적) 언어로 기록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할 때, 이들에 대한 해석에는 각각에 대하여 적용 가능한 해석 규칙을 따라야 한다.

i. 직유법

직유법은 비교를 나타내는 어법이다. 직유법을 쓰는 목적은 그림을 보는 것 같이 생생하게(graphic form)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직유법을 구분하는 '열쇠'는 단어 "like" 또는 "as" 이다.

성경에서 직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출 24:17

- 시 2:9

- 시 11:1

- 시 68:13

- 시 102:6

- 솔로몬의 노래 2:9

- 사 1:8

- 사 1:18

- 마태 18:3

- 벧전 5:8

- 계 9:5~10

 

ⅱ. 은유법

은유법 역시 비교를 보여주는 어법이지만 한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주장함으로써 비교를 나타낸다.

성경에서 은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시 18:2

- 시 22:6

- 시 57:4

- 잠 7:4

- 호 7:8

- 호 10:1

- 눅 13:32

- 눅 22:19

- 딤후 2:21

- 요한복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I AM" 명칭은 모두 은유법의 예이다.

벌콥은 하나님께서 (1) 인간의 감정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생각하는 주의(主義)(anthropopathisms) 에 의해 (예를 들면 창 6:6, 신 13:17 엡 4:30),

(2) 인간의 육체적 특성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의(主義) (anthropomophisms)에 의해 (예를 들면, 출 15:16, 시 34:16, 약 5:4, 등) 종종 은유적으로 묘사된다고 지적했다.

 

ⅲ. 알레고리

알레고리는 확장된 은유법이다. 알레고리는 비유와 비슷하다. 주요 차이점은 비유는 문자적 언어를 쓰는데 반하여 알레고리는 은유적 언어를 쓴다는 점이다. 시편 80:8에서 이스라엘 민족은 "포도나무"로 불렸다. - 은유. 9~16a 절은 이 은유를 출이집트에서 군주 정치까지의 역사적 사건으로 발전시켜서 전개한다. 알레고리의 다른 예는 갈라디아서 4:19~31에 있다. 여기서는 은혜와 율법 사이의 차이점을 사라와 하갈의 실제 이야기로 설명한다.

ⅳ. 환유법(換喩法)(Metonymy)

* 그리스어 어원 - 이름을 바꾸기

환유법은 한 단어나 표현을 원인이나 결과와 관련한 다른 단어나 표현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환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이사야 22:22 : "내가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 위에 두리니..." 여기서 집의 열쇠는 열쇠를 가지고 있는 효과, 즉 집을 통제하는 것을 나타낸다.

- 눅 16:29 : "그들에게 모세와 대언 자들이 있으니..." 여기서 '모세와 대언자들' 이란 용어는 모세와 대언 자들로 인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표한다.

- 행 22:16 : "...침례를 받고, 네 죄들을 씻어 버리라..." 우리는 다른 성경구절에서 침례가 죄들을 씻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과, 바울이 세례를 받기 전에 거듭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것이 환유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죄들을 씻어 버리는 것"은 침례가 묘사하는 바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효과로부터 온다.

v. 제유법(Synecdoche)

제유법은 전체를 일부로, 또는 일부를 전체로 나타내는 어법이다. 예를 들면, 종류(種類 : genus)는 종(種 : species)의 일부로 나타나거나 또는 종(種)이 종류의 일부로 나타낼 수 있다.

성경에서 제유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창 2:16 - "동산의 각종 나무에서 나는 것은 네가 자유롭게 먹되" 여기서 전체(나무)는 일부(열매)로 나타내어진다.

- 마 6:11 -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빵은 일부로서, 필수적인 음식(전체)을 나타낸다.

- 행 27:37 - "배에 있는 우리 모두의 수가 이백 일흔 여섯 혼이더라" 여기서 부분(혼)은 전체(사람들)를 나타낸다.

ⅵ. 과장법(Hyperbole)

과장법은 개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과장 또는 허풍을 사용하는 어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과장하는 구절을 확인할 때, 극도의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 과장법의 예는 다음에서 볼 수 있다

- 창 22:17 - "별들과 같이 네 씨가....모래와 같이..."

이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의 수가 정확히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의 수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후손들이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 대하 27:4 - "...그가 산에 도시들을 세우고,..숲에 성들을 세웠더라..."

이는 분명히 요담 왕이 모든 산에 도시를, 모든 숲에 성을 세울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의 왕국이 어떻게 번영하는지를 설명한다.

- 요 21:25 - "이 세상만으로는 기록된 책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하리라.." 이는 그리스도의 많은 사역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ⅶ. 반어법(Irony)

반어법은 찬양 또는 찬사를 이용하여 비난 또는 조소를 하는 어법이다. 성경에서 반어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왕상 22:15

- 욥 12:2

- 고전 4:8,10

어떤 경우, 반어법은 빈정거림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예 : 삼상 26:15, 왕상 18:27, 암 4:4

ⅷ. 의인법(Personification)

의인법은 비인격적 대상에 인격적 특성을 부여하는 어법이다.

예를 들면,

- 시 22:17 "제가 제 모든 뼈를 말할 수 있나니, 그들이(제 뼈들이) 저를 보고 빤히 쳐다보나이다."

- 시 68:16 "높은 언덕들아, 어찌하여 뛰느냐?"

ⅸ. 관용어법(Idioms)

사람들의 언어와 관습에 대하여 특유한 어법이다. 예를 들면, 성경이 어떤 이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아 올리는 것에 관하여 말할 때, 이는 머리 위에 놓여진 그릇에 불을 붙이기 위하여 숯불을 나르는 성경시대의 관습을 가리킨다. 서양적 사고에서 이 성경 구절은 정확히 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 대적임에도 불구하고 선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적들에게 선대함으로 대적을 해치는 것이다.

x. 생략법(Ellipsis)

어떤 문장에 단어가 생략되어 독자로 하여금 빈칸을 채우도록 하는 경우, 이러한 생략을 생략법이라고 부른다.

성경에서 생략법의 예는 다음과 같다.

- 창 3:22 - 하나님의 말씀은 끝나지 않았다 ; 그것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23절이 나타낸다.

- 출 32:32 "네가 그들의 죄를 용서하기를 원한다면..."

- 시 6:3, 90:13 "오 주님, 언제까지니이까?" 독자는 그의 마음에 "주께서 행하시기 전"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주) 문자적 간결의 기타 형태로는 요어 생략(brachyology)과

액어법(Zeugma)이 있다

xi. 완곡어법(Euphemism)

완곡어법은 통상 부드러운 효과를 낳기 위하여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주목할만한 한 예는 믿는 이에게 관련된 "죽음(death)"에 대한 완곡어법이다 - "잠잔다(sleep)" : 행 7:60, 고전15:51, 살전4:13~15를 볼 것

xⅱ. 곡언법(曲言法)(Litotes)

곡언법은 반대를 부정(negation)함으로 긍정이 되는 어법이다. "그는 강하다"라고 말하는 대신 곡언법은 다음과 같이 표현 한다; "그는 약하지 않다" 곡언법의 성경적 예는 시편 51:17 과 사 42:3에서 볼 수 있다.

기타 수많은 종류의 비문자적 언어와 어법이 있다. - 반복법(epizeuxix), 모순어법(oxymoron), Paronomasia, 등. 그러나 이 어법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용례가 드문 어법이다.

2) 단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경에 나타난 단어의 뜻을 본래의 뜻과 달리 이해하고 있다. 우리들이 성경을 묵상하거나 해석할 때 적용이 안 되거나 내용 파악이 잘 안 되는 근본 원인은 단어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 1차적으로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를 먼저 바로 파악해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단어를 혼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에겐 잘 알고 있는 성경본문이라고 생각하여 본문을 대충 읽는 버릇이 있다. 속독하듯이 대충 읽어서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다. 의미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으면 자세히 살펴서 따져보며 읽어야 한다.

* 막14:12-14 물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 - '남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어려운 수수께끼가 아니라 쉽게 그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당시 문화로 볼 때 일반적으로 물동이는 여자들이 이고 다녔고, 남자들은 가죽부대에 물을 날랐다. 그러므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남자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단어의 뜻을 제대로 모르면서 그냥 계속 읽기만 하면 본문의 뜻이 모호해지고 만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잠시 읽기를 멈추고 그 뜻을 찾아보야야 한다. 단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뜻이 변하고, 성경에는 현재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말들도 많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뜻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보라. 그러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도 시편에 나오는 인자(仁慈)를 인자(人子)로 알고 설교한 적이 있다고 한다.

① 한자어

개역성경을 해석할 때 한문을 보지 않으면 전혀 다른 낱말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국한문 성경을 참고하면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 마1:1 세계(世系) - 계보(Genealogy)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세대가 열림, 즉 새 창조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한 세대가 끝나고 새로운 세대가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 말은 창세기의 '톨레돗'과 같은 말이다.

* 행4:36 권위자(勸慰子) - 바나바(비교/바요나,바디매오,바사바,벤야민,벤허)

* 빌3:2 손할례당(損割禮黨) -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 몸에 상처 있는(할례) 것을 자랑하고 드러내는 자들, 즉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들이다. 여기서 '損'은 손해볼 '損'이다.

* 단 10:13 바사 국군(바사國君) - 바사(페르시아)를 지키는 (악한)수호천사, 즉 군장(君長)천사장을 의미한다.

* 단 10:20 바사군(君)과 헬라군(君) - 바사(페르시아)의 악한 천사(수호신)와 헬라 악한 천사(수호신)를 의미한다.

* 시 23:5 상(床) - 상(賞)이 아니라 상(床)이다. 하나님이 원수들 앞에서 잔치를 베설해 준다는 뜻이다. 시 23:4 '해'도 하늘의 태야(sun)이 아니라 해(害)이다.

* 창 43:15 차착(差錯) - 착오라는 의미이다.

② 한글

국어사전과 다른 번역본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 시 106:32,33 '얼', '심령'은 '현대인의 성경'에는 '궁지에 빠졌으니'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얼'은 단순하게 정신이나 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 드러난 흠, 남에게 당하는 해(害)를 의미한다. NIV성경을 보면 '얼'은 곤경, 폐(trouble)로, 심령은 하나님의 영(the spirit or God)으로 번역되었다.

* 욥 10:17 '갈마 들여'는 서로 번갈아 가며(교대로)이다.

* 욥 1:3 '겨리'는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를 의미한다.

* 욥 39:10 '쓰레'는 밭갈 때 쓰는 쟁기와 같은 농기구를 의미한다.

* 사 19:6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아니라 강가에 나는 갈대 종류의 골풀을 의미한다.

* 막 4:38 '고물'(뒤) 배 뒷 편을 의미한다.

* 행 27:29-30,41 '이물'은 배 앞 편을 의미하고, '거루'(거룻배)는 작은 배를 의미한다.

* 히 2:2 '공변된 보응'은 정당한, 공정한, 그에 상응하는 보응이다.

* 사 34:13 '엉겅퀴와 새품'은 표준 새 번역에는 '엉겅퀴와 쐐기풀'로 나와 있다.

③ 기타 혼란들

* 헤롯'(마2:1)은 헤롯 대왕을 가리키고, '분봉왕 헤롯'(마14:1)은 헤롯 안티바(여우)를 '다른 헤롯'(행 12;1)은 헤롯 아그립바 1세이다.

* '야고보'(마10:2) - 사도 야고보, '야고보'(행15:13)-주님의 동생 야고보를 의미한다.

* '빌립'(마 10:3) - 주님의 제자, '빌립'(행 8:5) - 집사 중의 한 사람을 의미한다.

* '수리아 안디옥'(행11:19)과 '비시디아 안디옥'(행13;14) - 안티오커스는 자기 이름을 따서 도시를 여러 개 세웠다.

* 이스라엘과 이스르엘 계곡(평원) - 갈릴리와 갈멜산 사이에 있는 평원을 의미한다.

* 여로보암 - 북이스라엘 초대 왕과 여로보암 2세 - 경제적 번영기의 북 이스라엘 왕이다.

◎ 구분하기 어려운 한자어

* 창 21:8 배설(排設)은 자리를 마련함, 빌1:8 심장(心腸)은 내장을 의미하고,

* 빌2:19 사정(私情)은 개인적인 형편을 의미하고,

* 벧전2:12 권고(眷顧)는 돌보아 줌을 의미한다.

◎ 단어나 어구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것

이러한 것들을 피하기 위하여 전후 문맥은 물론이고 단어나 구문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자세하게 관찰하는 것이 성경해석의 지름길이다.

* 마 26:74(마14:71참조) '저(베드로)가 저주하여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만일 내(베드로)말이 거짓이라면 내가 저주를 받아도 좋습니다'라는 의미이다.

* 고전 1:21 '전도의 미련한것으로'는 흔히 알고 있듯이 전도의 방법이 아니라 '전파의 내용'을 의미한다. 다음 구절인 23절에 의하면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 고전 12:31 '더욱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에서 '더욱 큰 은사'는 제일 좋은 길 즉 사랑을 의미한다고 했으나, 더욱 큰 은사는 '단수'가 아니라 더욱 큰 은사들이라는 '복수'이다. 다라서 31절은 고전 12장 28절에 등장하는 중요한 은사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14. 성경해석의 특별 법칙들을 쓰라.

- Robert J. Sargent -

첫 번째 언급의 법칙

점진적 언급의 법칙

충분한 언급의 법칙

적용의 법칙

이중 관주(關註)의 법칙

예증의 법칙

삽입어구(Parenthesis)의 법칙

성경해석학의 대원칙에 추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데 반드시 고려해야할 많은 특별법칙이 있다. 이들 법칙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I) "첫 번째 언급"의 법칙

A. 정의

"일정 주제에 대한 첫 번째 언급(First Mention)은 뒤따르는 의미를 여는 열쇠를 제공 한다"

B. 추론

단어, 표현, 가르침과 연관된 필수 진리는 성경의 첫 번째 언급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일정 주제(主題)가 언급된 첫 번째 장소는 일반적으로 전체의 해석을 정한다.

주제나 진리에 대한 첫 번째 언급에서 성경 전체에 걸쳐 그 주제나 진리가 어떻게 다루어지는가를 예견할 수 있다.

C. 예

1. 사탄의 첫 번째 언급

창세기 3:1에서 악한 자(Evil One)에 관한 첫 번째 언급은 그가 다음과 같은 자임을 계시 한다:

a. 교활함(subtle)

b. 하나님의 말씀에 대적함

뒤따르는 성경은 마귀가 창세기에서 계시된 그 이상의 어떤 존재로 계시하지 않는다. - 고후 11:3은 그가 교활하다고 말한다 ; 마 4:3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했음을 계시한다.

2. 바벨론의 첫 번째 언급

바벨론 도시는 창 10:10; 11:9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반역과 혼란의 도시로 묘사되었다.

바벨론은 성경 전체에 걸쳐 결코 창세기에서 계시된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아니다.

계 17, 18 장에서 바벨론은 여전히 "악의 표본"이다.

3. 타언어(Tongues)의 첫 번째 언급

사도행전 2:4~11에서 발견된다. 이 구절은 타언어를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알려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나라 언어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확증케 한다.

이 사실은 다른 신약의 관주에도 어려움이 없이 적용되며, "횡설수설 하는 것"이 "성경의 타언어"라는 개념을 반박한다.

4. 주님의 날의 첫 번째 언급

이 용어는 이사야서 2:12에 처음 언급되며, 주님께서 진노와 심판으로 오시는 날임을 계시한다.

이 용어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 뒤따르는 성경기록은 동일한 의미를 계시한다.

- 사 13:6; 욜 2:1~11; 28~32장; 암 5:18~20; 슥 1:14~18

5. 예루살렘의 첫 번째 언급

그 이름의 의미가 "평화의 도시"인 이 고대 도시 예루살렘은 사사기 1:7,8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 인용절에서 예루살렘은 함축적으로 투쟁(싸움)과 관련된다 - 이 사실은 눅 21:24에서도 언급되었다.

D. 주(註) :

1. 이 법칙과 관련해서 창세기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주요한 교리들이 이 책에서 처음 언급되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의 묘판(苗板)"이라고 칭해져 왔다.

2. 스코필드 관주 성경은, 교리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전적으로 추천하는 바는 아니지만, 첫 번째로 언급되는 구절을 많은 관주로 시작함으로 이 법칙을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

2) "점진적 언급"의 법칙

A. 정의

"일정 주제에 관한 계시가 성경이 펼쳐짐에 따라 점점 더 명확해 지는 것."

B. 추론

어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초기 진술이 뒤따르는 관주에 의해 그 계시가 세워져 가는 것.

주제에 관한 첫 번째 언급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언급까지 계시가 발전한다.

이것이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 교리에 대한 설명이다 -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점진적인 방법으로 계시하신다.

주 : 이것은 점진적 영감(progressive inspiration)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C. 예

1.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예언

a. 여자의 씨 -창 3:15

b. 아브라함의 씨 - 창 12:2,3

c. 이삭의 씨 - 창 21:10, 26:4

d. 야곱의 씨 - 창 25:23; 28:4

e. 유다의 씨 - 창 49:10

f. 다윗의 씨 - 삼하 7:12~16

g. 처녀의 씨 - 사 7:14

h. 출생 장소 - 미 5:2

i. 출생 시간 - 단 9:25

2. 희생양

a. 창 4 장 - 기뻐 받을만한(acceptable) 헌물

b. 창 22 장 - 대체 헌물

c. 출 12 장 - 적용된(applied) 헌물

d. 요 1:29 - 확인된(identified) 헌물

주 : 이 법칙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정전(正典)의 순서보다는 연대적으로 성경이 고려되어야 한다.

3) "충분한 언급"의 법칙

A. 정의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떤 영적 주제에 관한 계시에 그분의 충만한 마음을 담아서 주신다.

B. 추론

성경은 자주 어떤 일정 주제에 관한 가르침을 하나의 핵심 구절로 요약한다.

C. 예

다음은 성경에서 잘 알려진 "핵심 장(章)"이다.

1."하나님의 말씀 章" - 시 119 편

2. "율법 章" - 출 20장

3. "십일조 章" - 말라기 3장

4. "잃어버린 자와 찾은 자" 章 - 눅 15장

5. "지옥 章" - 눅 16장

6. "새로운 출생 章" - 요 3장

7. "교회 기율 章" - 고전 5장

8. "주님의 만찬 章" - 고전 11장

9. "영적 은사 章" - 고전 12~14장

10. "사랑 章" - 고전 13장

11. "부활 章" - 고전 15장

12. "주는 章" - 고후 8~10장

13. "휴거 章" - 살전 4장

14. "믿음 章" - 히 11장

15. "혀 章" - 약 3장

16. "배도 章" - 유다서

17. "세계 교회 章" - 계 17장

18. "재림 章" - 계 19장

19. "심판 章" - 계 20장

20. "하늘 章" - 계 21,22장

기타 많은 핵심 章들이 있다.

D. 주 :

반복이 있는 경우,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1. 유혹에 관한 두 가지 주요 구절

a. 고린도전서 10 장 - 유혹을 벗어나는 것을 다룸

b. 야고보서 1 장 - 유혹을 견디는 것을 다룸

2. 교회 기율에 관한 두 가지 주요 구절

a. 마 18 장 - 기율의 원칙

b. 고전 5 장 - 기율의 실행

3. 이스라엘과 유다 왕에 관한 두 가지

a. 사무엘서, 열왕기 - 인간의 관점에서 본 유대 왕의 이야기. 세속적 관점

b. 역대기 -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유대 왕 이야기. 종교적 관점

4. 사복음서 -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관한 충만한 기사

a. 마태 - 왕(王)으로서의 그리스도 - 유대인에게 쓴 것

b. 마가 - 종으로서의 그리스도 - 로마인에게 쓴 것

c. 누가 -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 - 그리스인에게 쓴 것

d. 요한 -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 - 믿는 이에게 쓴 것

 

5. 다니엘서에서 이방 세계 권능의 두 상세 기사

a. 다니엘서 2 장 - 장엄한 형상 - 사람의 시각에서 본 이방(異邦)의 권능

b. 다니엘서 7 장 - 굶주린 짐승 -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 이방의 권능

4) "적용"의 법칙

A. 정의

"성경은 적용하기 전에 반드시 정확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B. 추론

어떠한 성경 구절도 해석은 하나다, 그러나 적용은 많다

어떠한 상황에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를

주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1. 훈령(precepts)

성경이 확실하게 선언하는 것들; 명령들.

예를 들면, 알콜 음료와 관련하여 성경이 뚜렷하게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알콜 음료를 마셔서는 안 된다. - 잠 20:1; 고전 6:10, 등

2. 원칙들(Principles)

성경에 함축되어 있는 것들, 확신.

예를 들면, 믿는 이의 육체적 몸은 섬김을 위하여 순결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성경적 원칙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

3. 선호(Preference)

성경이 침묵하는 것들; 선택.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은 교회 모임을 위하여 넥타이를 착용해야 할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령하지 않거나 언급하지 않은 실행

C. 예

1. 역사적 이야기는 종종 영적으로 적용된다.

a. 노아의 방주 이야기 - 창 7 장

안전한 방주를 세우는 것과 대홍수에 관한 역사적 기사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방주"로 적용할 수 있다. 누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의 '홍수'로부터 구원하는가? 오직 방주 안에 있던 자들만 구원을 받았다 -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구원을 받는다.

b. 다윗과 므비보셋 - 삼하 9 장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사울 가문에 대한 다윗왕의 친절에 관한 이 기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영적으로 적용하게 한다.

타락한, 절름발이, 저주받은 가문 출신이며, 로데바(목초지가 없는) 에 살던 므비보셋은 그리스도 밖의 죄인을 예표한다. 다윗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며, 다른 이를 위하여 친절을 보이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가족 관계를 맺으며, 구원받은 죄인을 그분의 상(床)에 앉도록 초대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예표이다.

c. 쓴 샘을 고침 - 왕하 2:19~22

여리고에서 엘리사가 일으킨 기적은, 자연적으로 혈액을 유도하는 것- 그리스도의 피 - 을 적용함으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쓴 샘을 치료해 주시는 주님의 방식(方式)을 영적으로 훌륭하게 적용하게 한다(막 7:21~23; 약 3:11~18).

d. 나만의 치유 - 왕하 5 장

이 역사적 사건은 구원의 부요한 그림을 표현한다.

나병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전염시키며, 나병환자를 분리시키며(레 13:44~46), 사형 선고를 전하며, 하나님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죄의 예표이다.

나만은 잘못된 값을 드리며(5절), 잘못된 사람에게 와서(6절), 잘못된 처방을 구하는(11절), 독선적인 죄인의 예표이다.

씻음은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가를 보여주는 - 곧, 믿음(10절), 겸손(12절), 순종(14절)을 요구하는 - 예표이다.

e. 폭풍을 잠잠케 함 - 막 4:35~41

이 구절의 해석은 간단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바다에서 어떻게 폭풍과 제자들의 두려움을 잠잠케 하셨는가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하나님의 자녀들 역시 '인생의 폭풍'을 지날 때 이 사건을 영적으로 적용함으로 두려움을 잠잠케 할 수 있다. 다음을 생각하라.

ⅰ. 폭풍은 올 것이다.

ⅱ.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에도 폭풍은 온다 - 35절. 예. 요 16:33

ⅲ.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폭풍을 상관하지 않으신다 - 38절; 시 121:4.

ⅳ. 폭풍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 38b 절

ⅴ. 폭풍은 우리의 문제를 드러낸다 - 40절

ⅵ. 폭풍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새로운 것을 드러낸다 - 41절.

2. 특정한 가르침은 종종 폭넓게 적용된다.

a. 자유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

행 15:20,29; 롬 14장; 고전 8장

이들 구절에 관한 명확한 해석은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다른이들이 범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된다. '다른 이들에게 걸리는 돌이 되지 말라'는 원칙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관습의 모든 범위에 걸쳐 폭넓게 적용된다.

예를 들면, 많은 '서양' 그리스도인은, 다른 나라에서는 관습적인 순수한 '거룩한 입맞춤'으로 관습을 벗어날 수도 있다.

b. (소위) "주기도문"

마 6:9~13; 눅 11:1~4

이 기도에 관한 명확한 해석은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소서"라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적 답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단어를 그대로 암송하라고 제의하지 않으셨다 - 마 6:7 - 의도하는 바대로의 올바른 적용은 이 기도가 모범(model) 기도라는 것이다.

이 모범 기도 안에 포함된 것은 관계, 경외, 기대, 복종, 의뢰, 용서, 사랑, 겸손, 믿음, 이타적임, 등과 같은 성공적인 기도 생활을 위한 기본 태도와 필요이다

3. 특정한 곳으로 보내지기 위해 쓰여 진 구절들이 종종 폭넓게 적용된다.

대부분의 성경은 최초에 어떤 특정한 사람, 민족, 모임에 보내지도록 쓰여졌으나, 종종 다른 것에 적절히 적용된다.

a. 부부 관계에 대한 교훈 - 고린도전서 7장

이 장은 교회가 사도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가르침은 독신, 결혼, 혼합 결혼, 별거, 이혼, 재혼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부부 상태에 적용될 수 있다

b.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 계시록 2,3 장

이들 편지는 처음에 세상의 특정 지역에 있는 특정 도시에 위치한 특정한 일곱 교회에게 보내진 것이다. 이것이 해석이다. 그러나 적용에 있어서, 이러한 칭찬, 훈계, 경고는 모든 시대의 교회에게, 일반적인 교회 일원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D. 주(註)

1. 올바르게 해석된 구절에서 얻은 영적 진리를 적용하면 성경의 명시된 가르침과 항상 조화를 이룰 것이다 (다르게 적용하면 영해가 될 것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의 많은 가르침과 선포가 이 법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른다. 그러므로 적용하는데 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3. 구절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결정하는 데에는 "5 대 요점 질문 규칙"을 사용해야 한다.

(1) 누가 말하거나 기록한 것인가?

(2) 누구에게 말하거나 기록한 것인가?

(3) 무엇을 말하고 기록한 것인가?

(4) 언제 말하고 기록한 것인가?

(5) 왜 말하거나 기록하였나?

5) "이중 관주(關註)"의 법칙

A. 정의

"성경은 때때로 동일한 구절에서 가까운 주제와 먼 주제를 언급한다."

B. 추론

⊙ 바로 가까이 있는 특정 인물이나 특정 사건에 적용되는 성경 구절은 미래의 인물이나 사건에도 적용한다.

이 법칙은 종종 구약의 예언에 적용된다.

C. 예:

1. 에스겔 28:1~19

이 구절은 표면상으로 두로의 왕 에스발 2세에게 쓴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명백하게 직접적인 관주를 넘어서 에스발의 배후에 있는 악한 자, 곧 사탄의 최초 지위와 타락에 관하여 매우 상세하게 알려준다.

2. 호세아 11:1

이 성경기록은 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되지만, 성령님은 이 구절을 하나님의 '위대한'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사용하신다 - 마 2:14,15.

3. 예레미아 50 장, 51 장

이 예언은 메데와 페르시아의 힘으로 바빌론 왕국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 역사적으로 B.C. 586에 성취된 사건 - 관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 예언은 또한 미래를 들여다보며, 계시록 17 장과 18 장에 예언된 바빌론의 운명에 대한 관주가 된다.

4. 다니엘 8 장

이 대언적 장(章)의 일부는 유대인을 박해하고, 성전을 더럽힌 사악한 과대망상증 환자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 B.C)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 단 8:9~12.

그러나, 구절은 계속하여 오는 적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술한다. 그는 장차 훨씬 더 큰 방법으로 유대인을 박해하고 성전을 더럽힐 것이다(계시록 12장; 살후 2장) - 단 9:23~25. 이 동일한 "이중 관주"는 다니엘서 11:21~33(안티오쿠스)과 다니엘서 11:36~45(적그리스도)에서 보인다.

D. 주 :

이 원칙을 적용할 때는 많은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6) "예증"의 법칙

 

A. 정의 :

"대부분의 중요한 성경 진리의 경우, 하나님은 사람의 가슴과 마음에 간절히 호소하기 위하여 그분의 말씀 안에 적어도 하나의 모범적인 예증(classic illustration)을 주신다."

 

B. 추론

하나님의 말씀은 예증으로 그 가르침을 뒷받침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기사를 통하여 그분의 진리를 보강하신다

C. 예들

1.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미덕의 예를 제공한다.

a. 고난의 예

성경은 욥의 기사를 보여준다 - 약 5:10,11

b. 믿음의 예

성경은 아브라함의 기사를 보여준다 - 히 11:8~19

c. 담대함의 예

성경은 엘리야의 기사를 보여준다 - 왕상 17,18장

d. 도덕적 순결의 예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 창 39:7~18

e. 기도의 예

성경은 다니엘의 기사를 보여준다 - 단 6 장

2.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실패의 예를 제공한다

a. 다시 타락하는 예

성경은 롯의 기사를 보여준다 - 창 13,19장

b. 절망의 예

성경은 곱향나무 아래의 엘리야 기사를 보여준다 - 왕상 19 장

c. 자기의지의 예

성경은 바위를 친 모세의 기사를 보여준다 - 민 20장

d. 불순종의 예

성경은 요나의 기사를 보여준다 - 욘 1장

3.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죄를 증오하시는 것의 예를 제공한다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하면 성경에 나열된 대부분의 죄는 하나님께서 불 경건을 혐오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로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a. 이상한 신들을 경배하는 죄

성경은 바벨탑의 예를 보여준다 - 창 11장

b. 우상 숭배 죄

성경은 금송아지의 예를 보여준다 - 출 32장

c. 신성모독 죄

성경은 벨사살의 잔치의 예를 보여준다 - 단 5장

d. 부모 불경죄

성경은 압살롬의 예를 보여준다 - 삼하 15,18장

e. 살인죄

성경은 카인의 예를 보여준다 - 창 4장

f. 간음죄

성경은 다윗의 예를 보여준다 - 삼하 12장

g. 훔치는 죄

성경은 삭개오의 예를 보여준다 - 눅 19장

h. 거짓말 죄

성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예를 보여준다 - 행 5장

i. 탐욕 죄

성경은 아간의 예를 보여준다 - 수 7장

j. 동성애 죄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의 예를 보여준다 - 창 19장

k. 술 취함 죄

성경은 노아의 예를 보여준다 - 창 9장

l. 속이는 죄

성경은 야곱의 예를 보여준다 - 창 27장

m. 불순종 죄

성경은 사울의 예를 보여준다 - 삼상 15장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죄를 혐오하신다는 것을 증명하시려고 '심판'이라는 한 가지 결정적인 예증을 주신다. 만약 주님께서 그러한 심판으로 모든 죄를 벌하신다면, 이 땅의 인구가 줄었을 것이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예증을 주시고, 심판의 날까지 침묵을 지키신다.

D. 주

성경은 예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대부분의 구약 이야기는 성경의 교리와 교훈을 보강하며, 그 목적을 위하여 주어졌다 - 롬 15:4; 고전 10:11

가르칠 때 (또는 선포할 때) 일상(日常)의 삶에서 취하는 것보다는, 성경적 예증을 사용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7) "삽입어구(Parenthesis)"의 법칙

또는 "간격 원칙(The Gap Principle)"으로 알려졌다.

A. 정의 :

"어떤 성경 구절에는 설명이 없이 어떤 (시간의) 기간이 무시된다"

B. 추론

⊙ 대언적 구절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구약의 대언자들도 그리스도의 탄생(예. 사 7:14; 미가 5:2),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사 53:1~12),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왕국(사 2:1-3; 61:2)에 대한 산봉우리를 보았다. 그러나 "현 시대의 계곡"을 보지 못했다. 구약은 주님의 교회가 세워짐(마 16장), 성령님의 내주하심(요 14장), 이스라엘을 제쳐 놓음(롬 11장), 성도의 휴거(살전 4장) 등에 관해서 대언하지 않는다.

C. 예 :

1.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

많은 구약의 대언서는 현 중간 시대를 언급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두 번의 강림을 예언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예는 주님께서 친히 누가복음 4:17~20에서 인용하신 것이다 - 사 61:1,2.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주님의 기뻐하시는 해" 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 때 구원을 의미하며, "보복의 날"은 그분의 두 번째 강림이기 때문이다.

2. 인간 정부의 마지막 형태

다니엘서에 있는 대언들이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는 것 같이, 이방 세력의 경로를 상세하게 보여주며,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 "연합 왕국"의 지배 아래 있을 것임을 가르친다. 이 연합은 옛 로마 제국의 연장이 될 것이나, 다니엘은 '옛(old)'과 '회복된(revived)' 사이의 시간 간격을 보지 못했다. 현시대는 다니엘서 2:40 과 2:4 사이에, 다니엘서 7:7의 마지막 세미콜론과 "열 개의 뿔을 가졌으니"라는 구절 사이에, 그리고 다니엘서 9:26과 9:27 사이에 잘 들어맞는다.

3. 장래의 부활

다니엘 12:2(그리고 요한복음 5:28,29)에 의하면 두 개의 부활이 있다 - 의로운 자 (구원받은 자)의 부활과 불의한 자(구원받지 못한 자)의 부활. 그러나 성경은 이 두 부활 사이에 있는 시간의 요소를 "보지" 못한다.

첫 번째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시작하였고, "휴거"를 반영하며, 환란 시대의 성도를 포함한다 - 고전 15:22,23. 두 번째 부활은 그리스도의 1000 년 통치가 끝날 때까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 계 20:13

 

15. 교리적 성경 사용 시 통제 원리를 쓰라.

(1)신학자는 하나님의 계시의 영역에 서있는 구속함을 받은 자라야 한다.

(2)교리적 교훈의 주된 근거는 성경의 문자적 의미에 기초해야 한다.

(3)우리 신학의 주된 근거는 신약의 교훈에 기초해야 한다. 시간 상으로는 구약이 앞서 있으나 , 방법상으로 신약이 앞서 있다. 신약은 계시의 관석(冠石)이다. 신약은 하나님의 최종이고도 완전하며 명백한 계시이기 때문에 신약을 구약의 둘레에 회전시킨다는 것은 무한한 일이다.

(4) 주석은 어떠한 신학 체계보다 우선한다. 성경은 그 자체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다. 그 성경으로부터 신학의 체계가 나온다. 우리는 성경을 올바로 주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리를 알 따름이다. 그러므로 주석은 어떤 신학체계보다 우선한다.

(5)신학자는 그의 교리를 성경적 증거 이상으로 확대시켜서는 안 된다. 신학자는 성경에 함축되어 있는 것을 정확히 찾아내기 위하여서 자기가 가진 모든 세심한 주의와 지식과 학문을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신학자는 자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할 수 있는 데까지 가까이 성경의 자료에 밀착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의 자료를 떠나서 이론을 전개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단순한 규칙은 하나도 없다. 그렇게 할 위험은 언제나 해석자와 신학자의 마음속에 있는 있을 수 있는 만큼, 성경의 자료의 한계선 안에서 주석과 신학 연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6)신학적 해석자는 체계를 추구한다. 하나의 체계란 상호관계가 있는 주장을 집대성한 것이다. 신학자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의 체계를 제시하려 한다. 여기엔 두 가지 사실이 내포된다.

첫째, 전 성경의 영역에서 지적으로 수집된 자료를 가지고 성경의 개개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형성하는 경우. 이로 인해서 하나님, 인간, 죄, 그리스도와 같은 주제에 대한 주석적, 신학적 연구가 나오게 된다. 모든 중요한 참고구절을 주석적으로 연구한다. 그 다음 개개의 참고구절은 어떤 주제에 대한 통일적 성경교리를 만들어 내는 데에 쓰인다.

둘째, 개개의 교리가 연관성 있는 조직 신학 안에서 상호관계를 맺을 경우 ,하나님의 인격을 이해하는 방법은 직접적으로는 구속 계획을 생각하는 방법과 관계되고 있다.

(7)신학자는 참조성구를 사용하되 자기의 인용방법을 적절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참조 성구는 완전히 합리적이어야 한다. 자유주의와 신정통 주의는 정통주의의 참조성구 사용을 격렬하게 혹평하고 있다.

(8)계시에 관한 문제가 아닌 것은 신조나 신앙의 문제가 될 수 없다.오직 성경에서 가르쳐 진 것만이 양심에 직접적으로 구속력을 지닌다고 한 것은 종교개혁이 낳은 유산이다. 우리는 성경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계시위에 교부들의 도덕적 동의 ,교회의 신조, 교회 회의의 결정, 교황의 권위 있는 선언 따위를 추가시키는 카톨릭시즘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단종파를 반대한다. 이단 종파들은 성경에다 공인된 책의 형식으로 인간의 소리를 더 추가하고 있으며 또는 모든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공인 서적의 권위를 잡고 있는 그들 지도자의 저서를 추가시키고 있다. 우리들은 자기들의 해석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 시 하는 사람들을 반대한다.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문제에 대해서 터무니없이 상상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런 상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떠나게 만든다.

우리는 자기들의 도덕적인 판단을 성경의 확실성과 권위로 여기는 사람들이 기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반대한다.

(9)신학적 해석자는 심중에 성경의 실제적인 성품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성경이 온갖 모든 것을 다 다루지는 않는다. 그것은 성경의 내용은 성경의 중심목적, 곧 하나님의 사랑과 구속 에 관한 이야기에 전적으로 통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호기심은 이것 이상을 문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중심 메세지에 주의를 집중하고 성경의 요구조건에 머물러 있을 줄 알아야 한다.

(10)신학적 해석자는 교회에 대한 자기의 책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16. 경건적 성경 사용 시 성경의 실례에서 온 지침을 쓰라.

(1)우리는 성경의 기록과 성경의 시인(是認)과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무엇이나 성경이 시인해주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는 수가 허다하다. 그리하여 자기들의 행위가 영감 받은 성경문헌에 있는 사람들의 행위와 유사하게 병행하고 있다는데 기초하여 자기들의 저지른 행위를 무비판 적으로 옳다고 두둔하게 된다.

(2)우리는 성경이 직접적으로 비난하거나 시인하는 모든 실례들에서 직접적으로 생활에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

(3)개개인에게 내린 특별한 명령은 우리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4)성경에 나타난 인물 등의 생애 가운데서 특이한 영적 원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로부터 우리 나름대로 특이한 교훈을 이끌어내려고 마침내 성경을 이중적인 의미로 해석하려는 위험에 빠지고 만다.

(5)성경의 예들을 우리 생활에 적용함으로서 , 우리는 성경의 상황을 문자대로 재현할 필요는 없다. 가령 주님의 만찬을 갖고자 해서 예루살렘의 다락방으로 달려가야 할 필요는 없다.

 

17. 모형 해석의 타당성을 쓰라.

(1) 구약이 신약을 지지하고 있는 일반적인 관계가 바로 곧 모형적 성경해석법의 기초이다. 구약에 있는 강력한 예언적 요소가 신구약을 잇는 진실 되고도 생동한 연결선을 형성한다.

(2) 우리 주님이 친히 구약을 사용하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구약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토록 초청하는 일이다.

(3) 구약의 성격과 관련된 신약의 어휘는 보다 더 구체적으로 명백하다.

구약 예언은 모형적인 것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우리 주님께서도 그 모형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는 구약에 와서 그리스도를 찾아보라고 요구하신다. 또 신약의 어휘들이 구약의 모형적 요소를 지시하고 있다는 이런 모든 사실로 인해서 모형론의 신학적 연구는 참으로 타당한 것이라 하겠다.

 

18. 예언 해석의 원리를 쓰라.

예언 해석에는 왕도가 없다. 왕도가 없는 만큼 해석이 구구하다.

첫째, 예언적인 언어 자체가 다소간의 모호성(이중의미)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해석자들 간의 견해의 차이가 넓어진 이유는 예언적인 성경의 범위문제다.

(1) 우리는 예언서의 구절을 해석할 때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야 한다.

(2) 예언자는 예언서의 구절의 명백한 본질을 파악해야만 한다. 구절의 본질 또는 핵심은 그 구절의 성격, 내적 특성을 의미한다.

(3) 예언에 있어서의 성취의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4) 해석자는 예언구절의 문자적 의미를 해석자의 결정적 또는 통제적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5) 모든 예언해석 가운데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깊게 투입되어야 함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19. 비유 해석의 원리를 쓰라.

첫째는, 전망적 원리이다. 이 원리는 우리가 비유를 적절하게 해석하려면 그 비유들을 기독론과 하나님나라와의 관계 면에서 이해해야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전망적 원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원리다. 하나님의 나라 원리는 현재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성질상 종말론적이다.

둘째는, 문화적 원리이다.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비유를 하나님의 나라와 기독론적 견지에서 보아야할 뿐만 아니라 문화적 배경에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세째는, 주석적 원리이다. 비유가 가르치려고 시도하는 하나의 핵심적인 진리를 파악하라. 주님 자신은 비유를 어느 정도나 해석하셨는지 파악하라. 비유의 의미에 관계된 문맥 안에 어떤 암시가 있는지 파악하라. 비유를 성경의 다른 부분과 비교하는 원리를 잊지 말라.

넷째는, 교리적 원리이다. 하나의 비유를 교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역사적 의미를 관찰해야만 한다. 비유들이 교리를 가르치기도 한다. 우리는 비유에서 교리를 이끌어 낼 때에는 우리는 비유해석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

 

 

 

 

성경 해석학 과제 마침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