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론 과제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
1. 성령께서 인격체이신 증거를 논하라.
(1) 칭호에 나타난 인격성
◈ 약속의 성령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3)
성령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사실 때문에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신빙성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도의 중생(重生)을 통해서 구원의 약속을 확정하신다.
◈ 생명의 성령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2)
성령께서는 죄인이었던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는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해주신다.
◈ 지혜의 성령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7)
세속적인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있는 영적 지혜를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하신다.
◈ 성결의 성령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
성도들이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성결(聖潔)의 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 심판의 성령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사4:4)
성령은 하나님의 심판의 영으로써 죄악 세상을 책망하시며(요16:8-11), 적 그리스도의 세력을 심판하실 뿐만 아니라 회개하는 자의 죄를 깨끗하게 소멸시켜 주신다.
(2) 속성에 나타난 인격성
◈ 지적 속성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2:10)
영적 문제에 대한 지식을 갖게 해주시므로 하나님 자신의 비밀을 알게 하신다.
◈ 정적 속성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4:30)
성령께서는 근심하시고 책망하시며, 죄악을 미워하시고(롬12:9) 육적인 행실을 싫어하시는(갈5:16-17) 반면, 성령은 사랑하시고(롬15:30) 위로하실(행9:31) 뿐만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탄식하시며 도우신다(롬8:26).
◈ 의지적 속성
이 모든 일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12:11)
성령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도록 주관하신다. 그것은 은사를 통해서 표현되며, 은사는 성령의 결정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3) 사역에 나타난 인격성
◈ 말씀하심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행28:25)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 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3)
성령께서 말씀하신다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 가르치심
보혜사 곧 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성도들이 잊어버렸던 진리를 문득 생각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르쳐 주시므 로 바르게 살도록 하신다.
◈ 도우심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 연약함으로 도우시나니(롬8:26)
성령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신다.
◈ 명령하심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행8:29)
성령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령이다.
성령께서는 항상 성도와 함께 하시면서 때로는 책망도 하시고 또 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쳐 주 시고 명령하신다.
◈ 제어(制御)하심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3)
성도가 육신의 정욕에 이끌려서 죄를 범하게 될 순간에 성령께서 양심을 일깨워 죄악의 소 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하시고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해주신다. 무조건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기쁨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자신을 조절하며 헌신하게 하시는 것이다.
2. 성령의 존재양식과 그리스도의 존재양식을 비교하라.
하나님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은 영(靈)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만질 수도 없고 또한 느낄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위해서까지도 아무런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 까닭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인간의 상상에 따르는 어떠한 형상으로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를 제한하거나 손상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존재양식은 성육신(成肉身)이시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구속(救贖)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만날 수도 있고 또 볼 수도 있으며 대화를 나누며 십자가에서 처형되어야 할 육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육체로 존재하신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구속(救贖)은 오직 육신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담당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靈)은 하나님의 존재양식(存在樣式)이며, 또 활동양식(活動樣式)이기 때문에 성령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다.
3. 오순절 성령 강림의 신학적 의미를 간단히 설명하라.
◈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사건이다.
오순절(Pentecost)의 성령강림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오래 전부터 미리 예언되었던 사실들이 성경에 기록되었던 대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즉 구원의 첫 열매를 거두신 사건이다.
◈ 오순절 사건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한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되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와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증이다.
◈ 오순절 성령강림은 교회탄생을 가져온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출발하는 시발점이었으며, 구원의 사명을 맡게 될 교회의 탄생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 오순절 성령강림은 세계종교로의 출발점이다.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은 혼란이 환각이나 환청으로 생각되고,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마가의 다락방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그 지방의 언어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듣게 되었기 때문에 더 할 수 없는 신비로움과 기쁨의 체험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밖에서 본 불신자들은 [새 술이 취하였다]고 말했을 정도로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열광적인 사건이었다.
◈오순절 사건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체험한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크고 강한 바람소리와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 같은 현상을 사람들이 직접 체험한 사건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간증이나 어떠한 교육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직접 체험하고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오순절 사건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성령체험을 육신의 눈으로 보고, 육신의 귀로 듣기를 원하도록 만드는 동기가 되기도 하였다.
◈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영원한 현재적인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를 단 일회적인 사건으로 취급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기 때문에 오순절 사건은 오늘날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영원한 현재적 사건이다. 오순절은 이 때부터 그 의미가 절기로서보다는 성령의 역사(役事)가 나타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오순절에 나타났던 성령강림은 단 1회적인 사건이지만 언제나 나타날 수 있는 영원한 현재적 사건인 것이다.
◈ 오순절 사건은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한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열광적인 분위기에서 솟아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인간성이 새롭게 창조된 역사였다.
부자들이 자기의 소유를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누면서도 오히려 즐거워하였고, 자기의 미덕을 자랑하거나 우쭐대지도 않았다.
이것은 인간성의 변화를 가져온 새로운 창조의 역사였다.
◈ 오순절 성령강림은 복음전도의 명령이었다.
오순절 사건은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성도들이 직접 받은 것으로 믿게 된 사건이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던 말씀과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나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라(행1:8)는 주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파하는 성도와 항상 함께 해주시겠다(마28:20)고 약속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믿을 수 있게 된 사건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임재(臨在)는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복음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명령이었던 것이다.
부름 받은 성도들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된 예루살렘 교회는 흩어져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을 깨닫고 가정과 사업을 떠나서 선교사로 나가는 복음전도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와 관계없는 성령체험이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15:26)
◈ 오순절 사건은 기독교를 생명의 종교가 되게 하였다.
복음의 전파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복음을 전할 정도로 생명을 초월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생명력이었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인간적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결과였다. 예루살렘 공회(公會) 앞에서 했던 베드로의 설교는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섶을 지고서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생명의 결단이었다.
(행 2:14-36)
4. 오순절 성령역사의 영향에 대해서 논하라.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단순히 사람들을 즐겁게 하거나 개인의 환상적인 체험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세계 교회로 출발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어떠한 사람을 환상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는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는 또한 사도들이 평안함 속에 안주하려는 사람으로 남아있지 않고, 오히려 고난과 역경 속으로 뛰어들면서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만든 것이었다.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목표로 성령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로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져본 적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6:5)
◈ 하나님이 주도하신 세계 복음화의 역사이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역사는 인간이 주도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스스로 복음의 주체가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이 받은 영적인 명령은 예수께서 지상에 생존하시던 당시의 명령이었으며, 성령께서는 그 명령을 생각나게 하셨고 또한 그 명령대로 살도록 능력까지 주셨다.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명령을 자신이 현재 받는 명령으로 자각하도록 하는 체험적 사건이었던 것이다.
오순절의 성령 역사는 모여서 회의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체계적인 형태를 갖춘 형식화된 종교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없는, 그러면서 그리스도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주체가 되시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이루도록 하신 사건이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가만히 앉아서 참선이나 명상이나 하는 죽은 종교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성도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그리스도께서 주체가 되어 활동하신 사건이었다. 그들이 순교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 자신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의 심령 속에 직접 능력을 주심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 오순절 성령역사의 특징은 현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할 수 없었던 신앙고백을 통해 교회를 세우는 초석으로 지명을 받기도 했었지만, 죽음의 위험 앞에서 두려움을 느껴 주님
배반하고 그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었다. 그러나 그가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함을 입은 후에는 자기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생명을 노리는 자들 앞 에서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심령 속에서 현재 역사(役事)하시는 성령의 임재(臨在)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학자들은 오순절 사건을 A.D 33 년경에 일어났던 단 일회적인 사건으로만 취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계시며 또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시는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러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오순절 사건은 영원히 현재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5. 초대 기독교에 나타난 성령역사를 논하라.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자신들의 사명을 깨닫게 된 사도들과 성도들은 복음전파를 위해서 유대라고 하는 작은 나라를 벗어나서 세계의 여기저기로 흩어져 나갔다. 복음 전파에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지역에서 신봉되어지던 종교와의 마찰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 사역은 결코 평탄한 사역이 아니었다.
때에 따라서는 마술사가 그 지방에서 신격화되기도 하였고, 로마와 헬라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신화와 우상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는 사실은 언제든지 생명의 위험이 따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심령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을 귀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도처에 깔린 위험 속으로 들어가서까지 복음을 전하게 만들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이러한 사역은 그들의 출신 성분을 보아서도 그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이 틀림없었다. 오히려 그들 안에서 지금도 살아서 역사(役事)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본래의 자기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 일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6-2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
그러나 성도들의 삶의 방향이 잘못되어질 때는 성령께서 개입하시고 간섭하시며 때로는 책망도 하신다. 성령 충만의 일차적인 현상은 성령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죄를 발견하고 깨닫도록 책망하시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심령을 책망하심으로써 성도들이 그 책임을 더욱 뚜렷하게 느껴서 책임적인 존재가 되어지게 하신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 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8-9)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요15:22)
성령께서는 죄를 깨닫도록 책망하고 책임감만 부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능력을 주시며 도우시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16:13-14)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5)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삶을 주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알맞는 존재가 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이었다.
초기 기독교에 나타난 성령역사의 특징은 복음을 이방 세계에까지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이 역사는 물론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되어질 것이다.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파한 후 갑자기 사막 가운데로 이끌림을 받아서 에디오피아의 내시 간다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 내시를 통해서 복음이 그곳에 전해지도록 하시려는 성령의 역사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오직 이스라엘 사람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성령의 보내심을 받으면서 그 사고방식이 변하게 되었다.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행10:47)
바울도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령께서는 그를 아시아가 아닌 마케도냐로 보내셔서 그곳을 세계 복음의 시발점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물론 현재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역자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입혀졌고, 그들은 능동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었다. 물론 이 복음전파의 목적은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Providence)란 성경에 기록된 내용, 즉 하나님께서 세우셨던 계획을 하나님 자신이 그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을 의미한다.
6. 성경계시에 나타난 성령역사를 논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에게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령께서만 하나님의 계획을 아시며, 그 계획을 인간에게 알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성도들이 순종할 수 있도록 역사(役事)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숨은 계획과 구상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기록한 것으로 오직 성령께서만 이러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1-12)
성경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성도들이 알고 성도들이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소원대로 일하도록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계시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이나 인간적인 지혜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경우에 커다란 과오를 빚게 되는 것이다. 현대 신학의 문제점은 바로 인간적인 기준과 인간적인 생각으로 성경을 해석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때에 성경은 그 자체로서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다. 성서 비평학(批評學)에서는 역사적인 관점과 문학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란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에게 접근해 오고 또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면서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말씀들이 믿어지고 실행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화(文字化) 되었지만 성령께서 감화하시고 감동을 주시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말씀이 되어지고 만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3:16-17)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는 자들에게 감동을 주셨다는 것은 기록자 자신의 의지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성령의 감동하시는대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지나치게 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할 때에 오히려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게 된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θεοπνευστος
God inspired :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
God breathed : 하나님 입김이 서린
Divinely inspired : 신적으로 영감된』
성경은 인간적인 어떤 요소보다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하나님의 입김이 서려 있음을 뜻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1:21)
[성령의 감동을 입은·····ύπο πνευματος άγιου φερομενοι]
be born by Holy Spirit·············성령에 의해 태어난
carried along by the Holy Spirit···성령을 따라서 옮겨진
being moved by the wind············바람에 밀려 움직인
influence of the Holy Spirit·······성령의 영향을 받아서
impelled by the Holy Spirit······성령에 의해 억지로 시켜진
[감동을 입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훼로(φερω)란 단어는 나르다. 운반하다(carry)는 의미로 성경의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사도행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이고 있다.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서 가는대로 두고 밀려 가다가] (행27:15)
하나의 작은 배가 바람이 부는대로 밀려서 가는 상태가 바로 훼로(φερω)이다. 이 단어는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운반하거나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존재(他者)에 의해서 그 행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그 기록된 내용의 의미도 모르는 채 기록한 경우가 많다.
오늘날 인본주의적 성경해석의 문제점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의도와 사상」을 찾아내려는 것이다. 성경해석은 어떤 이유로든지 [기록한 사람의 사상]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으로 믿고 해석할 때에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또한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셨다는 사실도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성도들의 자세는 [하나님의 뜻을 성령에 의해 태어난(감동된) 사람들(ύπο πνευματος άγιου φερομενοι)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기록했다]는 사실을 믿는 가운데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경계시의 특징은 성도들의 신분이 그리스도에게 소속되었다는 것을 확증하는데 성령께서 그러한 내용을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보증해주시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회개하고 구원받은 사람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 즉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나누어 가진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7)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8:9)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4-16)
성경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셨고 성령을 통해서 역사 하셨음을 알게 해준다.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은 아무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무려 1,500 여 년에 걸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기록하였다.
성경의 기록자들은 그 태어난 환경과 사상, 그리고 역사적인 배경이 다른데도 성경이 통일성을 갖는 것은 성경이 인간의 사상과 인간의 관심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관심사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직접 저자가 되시고 편집자가 되셨다는 증거인 것이다.
7. 성령께서 성도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의미를 논하라.
성경은 성도들로 하여금 올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데 그 목표를 두고 기록되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처럼 연약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도의 심령 안에서 능력을 주시고 도우신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예수의 제자인 사도들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지만, 막상 그 자신들 앞에 생명의 위험이 다가오는 순간, 그들은 모두 스승인 주님을 버리고 달아나는 비겁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이 주님을 따라다니며 어떠한 능력을 받았을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비겁자였으며, 타고난 상태의 연약한 천성을 버리지 못했었다. 그래서 스승의 수난을 보면서도 달아나게 되었고, 좋은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툼을 벌리기도 하고 작은 일에 흥분을 잘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사도들의 가치관이 변했으며, 삶의 모습이 변하였다. 그들의 믿음이 확고해졌고, 그들을 잡아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너희들이 죽인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구세주시다] 라고 담대히 증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능력이 결코 아니었다.
그 능력과 그 담대함은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었다. 사도들에게 역사하셨던 성령께서 복음을 듣는 사람들 심령 속에서도 역사하신 증거가 나타났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다.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 이기심 많던 삶을 돌이켜서 자신들의 재산을 교회 공동체에 바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겸손한 모습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기쁨만 충만하였던 것이다.
성령 충만케 된 사람들의 삶이 자신을 위한 삶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삶으로 변했다. 복음전파의 삶은 고난과 역경과 죽음의 삶인데도 그들은 생명을 아끼지 아니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사도들에게 능력과 표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당황하게 된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은 사도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에 대하여 증거하지 말아달라고 은근하게 위압적으로 당부하기도 했지만, 사도들은 사람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여전히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사람(신학자)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며 그 뜻을 따르는 경향을 버리지 못하는 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듣는 것이 마땅하니](행5:29)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행5:41-42)
그들은 생명을 아끼지 아니했고, 고난을 즐거워하였으며 삶의 목표를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데 두었다. 이것은 분명히 새로운 창조의 역사였으며, 새롭게 태어난 삶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인 구원을 이루는 한 과정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들은 제 각각의 은사와 체험을 가졌지만 그들이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초월하면서 한 마음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령께서 연약하고 비천하며 무능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그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목표로 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하시는 것을 발견해야만 성령의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가능해진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은 십자가의 죽음뿐만 아니라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서 살도록 하시는 성령의 역사까지 포함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성도들 안에서 역사(役事) 하시는 구체적인 증거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시는 성령
나아감(프로사고게:προσαγωγη)이란 헬라어는 사람들이 왕 앞에 나갈 때 고개 들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죄인이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고 나가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성령께서 죄책감을 씻어주셨기 때문에 죄인이 의인의 자격으로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2:18)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 라] (엡3:12)
모든 종교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자신들의 노력이나 의로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그 길이 바른 통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이 있다고 해도 바른 통로를 찾지 못하면 온전한 믿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바른 길과 진리를 통해서만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한 것이다(롬5:1-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 자유롭게 하시는 성령
인간은 죄에 얽매인 상태를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참된 자유란 언제나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향해 바른 헌신을 할 수 있고, 또 어떠한 유혹에도 이길 수 있는 죄로부터의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만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하여 책임적인 존재로써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5:1-2)
죄로 향하는 마음은 자유로운 마음이 아니라 죄에 얽매여 있는 마음이다. 자유로움을 얻으면 자신의 몸을 의로운 도구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드려야만 한다. 만약에 그 자유를 인간적 목적을 위해서 쓰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의식이 없는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의 노예로 전락되어서 스스로 패망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자유는 영적인 자유로 성령 안에서 진리를 따르면서 살아가는 승리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리가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또 믿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진리라는 사실을 통해서 그들에게 깨닫게 하시려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자유하리라](요8:36)
◈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부으심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때에만 가능해진다. 사랑을 받지도 못한 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생명에 속한 것이며(요일3:14), 죄를 덮어주고(벧전1:22), 율법까지 완성시키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롬13:10). 이처럼 위대한 능력을 가진 사랑을 성령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부어주심으로 성도는 비로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되는 것이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롬5:5)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2-3)
◈ 성도와 교통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성도와 교제하신다는 것은 잘못된 일에 교훈하고 책망하며 꾸중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과의 교제는 성도의 삶을 절제하게 만들고 또 거룩한 삶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위로와 격려를 주시며 때로는 책망을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성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빌2:1)
성령의 임재 자체가 곧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시며 교제하신다는 증거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
함께 하다는 히브리어 단어 딘(ןי)은 심판하다(judge), 다투다(contend), 변론하다(plead), 다스리다(rule) 는 뜻이다.
육체가 되어서 죄를 범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성취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성령께서 동반자 역할을 더 이상 계속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은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의 목적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사람과의 동반자로 일하시던 하나님의 신(루악흐: וּר)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는 사실은 더 이상 사람에게 책망하거나 간섭하지 않으신다는 뜻이며, 사람과 교제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사람과 교제하시는 동안은 잘못된 일을 책망하고 간섭하시지만, 잘못된 길로 가더라도 모르는 척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통치하실 때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이며, 성령께서 그 사람을 포기하시면 양심이 마비되어 죄를 범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뜻대로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성령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그 말씀을 지키도록 마음에 좋은 소원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심령을 감화 감동하시므로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할 수 있는 능력까지 주신다. 성령충만한 삶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하는 삶을 의미한다.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 할찌라] (겔36:27)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하시는 성령
성도는 진리를 꼭 배워서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 안에서 성령의 은총과 역사로 말미암아 스스로 진리를 깨닫게 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잘못된 교육은 아무리 배워도 제 자리에서 맴돌지만, 성공적인 교육은 하나를 배우고서도 열 가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성도들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도우시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것을 깨달아서 알 수 있게 된다(히8:11).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31:34)
성도들은 학문적인 배움을 통해서만 모든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그 지식이 완전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노력보다도 하나님의 더 크고 위대한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한 지식과 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하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히6:1-3)
◈ 권능을 주시는 성령
성도에게 능력을 주시므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나갈 수 있게 하시는 성령께서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하시는 것은 물론, 세상의 죄(다른 사람의 죄까지도)를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것은 단순한 책망이나 교만으로서가 아니라 회개의 촉구와 설득으로서 구원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3:8)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눅24:49)
◈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거듭나다(γεννηθη ανωθεν-be born anew)는 말은 위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수동적 상태로서 옛날에 자신이 자신을 다스리던 자로서가 아니라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순종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즉 천국의 특성에 알맞도록 변화된 자가 바로 거듭난 자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3:3, 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실로, 진실로」란 말은 「아멘」이란 단어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서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절대 진리인 것이다.
◈ 위로의 성령
사람이 험한 죄악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사람을 통해서나 환경과 조건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상처를 입고 슬픔에 빠지거나 절망 가운데서 스스로 침몰되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그런 때에 위로를 주셔서 모든 환경과 조건으로부터 이기게 하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14:16-19)
◈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성령
성령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자기가 받은 능력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는 위험한 순간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영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성도를 진리(αληθεια) 자체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서 거짓없는 깨끗하고 진실된 삶을 살게 하신다. 진리를 떠나서는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그를 성령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양보한다고 해도 진리만큼은 절대로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3)
◈ 은혜로 주신 것을 알도록 하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를 알도록 도우신다. 은혜를 잊는 것이야말로 배신의 첫 발걸음이다. 무엇이 은혜인지 알게 되어야만 감사의 삶이 가능하며, 결코 원망하거나 배신하지 않게 되므로 범죄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2:12)
◈ 유익이 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뜻은 성도를 유익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반면 사탄의 역사는 성도들로 하여금 어떠한 경우에든지 영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계략을 베푼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께서 진리를 통해서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면서 유익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무궁 무한한 사랑을 항상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7)
◈ 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생명이 넘치고 거룩한 삶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전으로 사용하시려고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생각을 통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6:19)
◈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품을 떠나 죄를 범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도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 안에 증거를 갖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요일5:10).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던 까닭에 유대인들로부터 참람(僭濫)1하다고 고소를 당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추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시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야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으며 비로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4: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6)
◈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나라는 의로운 나라요 기쁨과 평화의 나라이다. 의롭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악한 생각을 하며 슬픔과 걱정에 사로잡힌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한다면 누가 천국을 사모할 것인가. 성령께서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씻어내고 평화를 누리며 의롭게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서부터 체험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롬14:17)
◈ 성도를 위하여 간구(懇求)하시는 성령
보혜사이시며, 대언자이신 성령께서는 성도를 위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대신 간구하신다. 성도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에도 성령께서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성도를 대신하여 성도의 입술로 친히 간구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6)
◈ 소망을 갖게 하시는 성령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존재로 부르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망할 수밖에 없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지만, 성령께서는 소망과 이상(vision)을 갖게 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성령께서 자신의 심령 속에 소망을 심어주시기 때문에 소망으로 인한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13)
◈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요구 중에서 성도들이 지키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명령이다. 현실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로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거룩함을 이루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성령께서는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되어지게 하신다. 거룩하게 해주시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면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섭리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15:16)
◈ 인치시는 성령
성도의 신분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낙인을 찍어서 사탄이 해하지 못하게 하신다. 성령의 인치심을 받아야만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는 삶이 되는 것이다.
낙인이란 양이나 소를 불로 달군 인두로 그 몸에 표식을 남겨서 자신의 소유권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목장에서 이웃 목장의 가축과 자기 소유를 구별하기 위해 뚜렷하고 확실한 표식을 남기려고 인두를 불에 달구어서 낙인을 찍는 것이다. 성령의 인 치심을 받아야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삶이 되어진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14)
◈ 구원의 보증이 되시는 성령
보증(아라본: αρραβων)이란 말은 틀림없는 사실에 대하여 미리 선불금을 지불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축복이 틀림없이 있다는 사실을 보증하기 위해서 선불금을 지불하심으로 보증하신다. 즉 우리 자신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서 스스로 낙망하거나 구원을 포기할 때에도 성령께서는 그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구원의 보증으로 선불금을 지불하시는 것이다.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고후5:4-5)
◈ 성도를 연합하게 하시는 성령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영적인 연합이므로 성령께서만 이를 이루실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은 [내가 저안에, 저가 내 안에] 란 예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 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13)
◈ 열매를 맺게 하시는 성령
성경에 기록된 열매(καρπος)는 단수이다. 즉 성령의 열매는 한 송이로서 아홉 가지 열매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열매가 맺힌 모습은 그리스도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가 맺힌 성도는 곧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도를 그리스도의 완전히 장성한 모습만큼 영적으로 자라도록 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 이 열매의 특성은 인간을 창조 당시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주고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8. 성령의 열매의 특성을 논하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
창조 당시에 하나님이 주셨던 성품으로써 내적으로 거듭난 성도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고 기쁨과 평화를 느끼게 만든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질서와 사랑의 관계로 거듭난 성도들이 이웃과 더불어서 사랑을 나누며 베푸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충성과 온유와 절제]
사람이 가져야 할 하나님과의 본래적인 관계로서 거듭난 성도들이 갖게 된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헌신의 모습이다. 절제로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또 겸손한 자세로 충성하는 것들이 모두 결합될 때에 성령의 열매는 성도에게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다.
9. 그리스도의 사역에 역사하신 성령에 대해 논하라.
예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는 비록 자기 백성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실 자로 오셨지만,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서는 그 능력의 한계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役事)하시어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 하셨으며,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아서 기적과 가르침과 병 고침으로 인간 구원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성육신의 방법으로 오지 아니하면 인간의 죄를 대신할 수 있는 구속(救贖)을 이룰 수 없으므로 대속(代贖)할 수 있는 몸을 입고 성육신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육신은 십자가의 죽음을 위한 몸을 입으신 것이다.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하심이 없기 때문이다(히 9:22).
그리스도의 탄생 방법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했던 것은, 인간의 몸을 입은 그 어떠한 존재라도 죄인이므로 인간의 구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양식인 영으로써 오시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으로 그 존재양식을 삼으셔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목적으로 한 하나님의 특별 섭리이다. 예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되었던 것은 초능력, 즉 성령에 의한 잉태였다. 처녀가 아이를 잉태하면 돌로 쳐죽여야 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천사를 통해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또 하나님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 그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므로 아이를 잘 양육하게 하셨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1:20)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1:35)
◈ 늘 함께 하시며 충만케 하심
예수님께서 자신의 연약할 때에 간절히 기도하신 것은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성령에게 이끌리심을 받았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전적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사역이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61:1)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 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써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6-17)
마귀의 시험을 꼭 통과해야만 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해서는 성령께서 그 시험에 들 어가도록 이끌어 주셨고 또 그 시험에서 승리할 수도 있게 해주셨던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4:1)
◈ 부활하게 하심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날 수는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성령께서 개입하시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부활은 죄의 권세인 사망으로부터 승리를 뜻하며, 성도의 영생까지 확실하게 약속되어진 사건이다. 따라서 부활은 단순히 죽음으로부터 살아나는 것만 뜻하지 않고 사탄의 마지막 보루(堡壘)인 죽음을 깨트리시는 완전한 승리를 모든 인류에게 알리시는 하나님의 선포이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4)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 리시리라](롬8:11)
◈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심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제물(贖罪祭物)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의인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사실은 그가 의인으로서 죄인을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실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입으신 의로움은 성령의 역사로 얻게 된 영적인 의로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의로운 사람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도 하나님의 의로움이 그에게 입혀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죄인을 의인으로 인정하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복음에 계시되어 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 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 3:1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5-26)
◈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심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일군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성령께서는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므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역을 이루게 하셨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 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9:14)
◈ 이적을 행하게 하심
예수께서 이적을 나타내시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구원의 방편에 역사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신 증거이다.
[그러나 내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 하였느니라] (마12:2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 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행10:38)
◈ 예수가 주님이심을 증거하심
주(κυριος)님이라는 말은 자신의 주인을 뜻하는 말이다. 주님은 하나님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다시 말하면 성도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자신의 주님이라고 부르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이다.
이것은 단순히 입술로만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 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15:26)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요16:14)
성령께서는 인간의 구원에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계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셨던 성령은 예수의 탄생을 직접 주관하셨던 그 성령이시며,
기적들과 병 고침의 역사도 성령의 역사였다. 이런 모든 성령의 역사는 인간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포함된 것이며, 인간 구원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직접 인간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臨在)를 성도들이 체험하고 순종하게 하시는 것이다.
10.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의미를 논하라.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무리, 즉 성령의 전으로 확정된 성도들의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시고, 또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도록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인간을 통해서 사탄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이단 사상이 나타났던 사실도 바로 그러한 사탄의 역사였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 게] (고전1:2)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음부의 권세는 사탄의 권세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탄의 권세보다 더 크고 강력한 그리스도의 권세로 세워진 교회는 사탄의 권세가 뿌리내릴 수 없도록 영구한 하나님의 권위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신다. 그래서 교회는 먼저 하나로 묶여져야만 된다.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의 목적과 하나의 통일된 행동만이 강력한 사탄의 능력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 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 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4:3-6)
교회는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통일성이 없는 교회는 분명히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가장 비싼 대가(그리스도)를 지불하고 매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일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역시 하나님께서 똑같은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한다. 따라서 교회와 모든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의 뜻에 따라가는 사람의 종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도록 노력하고 헌신해야 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20:28)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7:23)
목회자는 자기 스스로 목회자가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목회자로 삼아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하나님 중심의 목회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에는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 사명을 거두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다양한 은사를 주시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기능적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도록 하시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성화(聖化)시켜 교회가 유기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게 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겸손하게 섬겨야만 한다.[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 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1-12)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사명의 연장으로서 죄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 사명을 위하여 성령께서는 교회에서 역사하신다. 그러면 이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의 사명을 간추려본다.
◈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워졌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눅19:4)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쫓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4:6)
◈ 경건한 생활을 훈련하여야 한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가운데서만 하나님과의 원활한 교제를 이루고 성도끼리도 원만해진다. 그러므로 경건한 삶이 훈련되어져야 한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행2:42)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 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6-8)
◈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때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찬양이 끊어질 때 심령은 병들고 그 삶이 삭막해지게 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 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 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엡1:5-6)
◈ 세계를 복음화 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세계의 복음화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며 그리스도의 구속 목적이기 때문에 인종과 신분의 차별이 없는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질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교회가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28:19-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16:15)
◈ 잘못된 것을 징계해야 한다.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은 자기 자신의 삶을 살펴서 사람들의 비판을 받지 않도록 해야 된다. 영과 육신의 거룩함을 이루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교회의 명예를 더럽히면 징계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1:31-32)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사] (고후7:1)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느니라] (요15:2)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18:17)
아멘.
11. 성령세례의 의의를 간략하게 논하라.
세례는 일반적으로 구약의 정결 의식에서부터 그 근원을 갖는다. 그런데 바울은 세례를 단순히 [죄를 씻는 것]으로만 말하지 않았다. 바울은 세례 받는 사람이 물 속에 잠겼다가 나오는 것을 그가 죽고, 장사 지내고, 부활하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어지는 사건으로 이해하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6:4)
성령세례는 옛 사람인 자아의 죽음과 더불어 죄가 소멸되어지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연합되어 새롭게 영적인 생명을 소유하는 성도로 인 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통해서 능력을 받게 된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 앞에서 비겁하게 도망치던 자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로 바뀌었던 것이다.
12. 성령충만의 의의를 설명하라.
[충만]이란 무엇이 그릇에 가득 채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완전히 압도되어진 상태이며,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를 의미한다. 성령께서 성도를 완전히 점령하셨기 때문에 인간적인 목적을 향해 살거나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감동을 거역하며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으로 가득 채워진 상태가 성령충만인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나진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 대해서 새로운 삶의 방법을 요구하신다. 그 삶의 방법이란 비록 하나님의 요구일지언정 억지로 강요된 삶이 아니라 순전히 자율적이고, 기쁨이 동반된 헌신의 삶이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 행동하는 삶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거나 수동적 의무감 때문에 소극적 삶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성도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13. 칭의와 중생과 성화의 관계를 설명하라.
칭의와 중생과 성화는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이루신 구속을 성도에게 적용시키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 구분되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적일 때도 있고, 다를 때도 있는 것이다. 칭의(稱義)는 구원받은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법적인 선포이며, 중생(重生)은 실질적인 변화로서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성품을 갖는 것이다.
1) 칭의 (Justification :稱義)
칭의란 의인이라고 불려진다는 뜻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가 의인이 되었다고 불러 주시며,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법적인 선포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의인(義認)이라고도 한다.
윤리적으로는 의로움을 완전하게 갖추지 못했어도 의인이 되었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일컬어 주시는 것이다. 칭의는 죄인이 의인으로 승격된 신분의 변화이다. 인간적인 노력이나 공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 바로 칭의(稱義)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3:23-24)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3:7)
2) 중생 (重生:Regeneration)
중생 또 거듭남이란 자연인이 아닌 거룩한 영적 성품을 지닌 존재로 위로부터 태어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1 어머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성령에 의해서 새로워지는 영적 변화로 인간적인 지혜로는 풀 수가 없는 하나의 신비(神秘)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중생이다. 따라서 중생은 완전히 새로워졌다는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의인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시 죄를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죄의 형벌은 면제되었지만, 계속적으로 죄를 범한다면 죄를 용서받은 사실 자체가 무효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밀려오는 죄의 세력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지르게 되는 범행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성령세례를 통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생하여 완전한 자유를 누릴 때에만 죄에게 다시 얽매이지 않을 수 있으며, 성령께서는 성도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중생 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자유는 이성(理性)과 지식으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여기서 말한 육에 속한 사람(ψυψικοςσ δε ανθρωπος)이란, 바로 혼적(魂的)인 사람을 일컫는데 합리적이며 이지적이요 지성적인 사람, 즉 인간적인 사람을 뜻한다. 이 말은 육신에 속한 사람(σαρκινοι-고전3:1-육체의 정욕에 얽매인 자)과는 그 의미가 전연 다른 것이다. 인간적인 지식이나 이성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성령의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신령한 사람(πνευματικος-고전3:1)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중생을 뜻하는 단어는 다음과 같다.
◆ 거듭나다(겐네데 아노덴-γεννηθη ανωθεν)
「위로부터 태어나다」(be born from above-요3:3)
◆ (아나겐나오-αναγγενναω)
「다시 태어나다」(beget again-벧전1:3)
◆ 중생(팔링게네시아-παλιγγενεσια-딛3:5)
「중생, 재생, 부활, 갱생」(regeneration-엡5:26, 고전6:11, 벧전3:21)
인간에게 중생이 필요한 까닭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남으로서 죽음에 처해진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통해서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은 수동적인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는 거듭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해서만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거듭나져야겠다」(요3:7)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그 순간 그는 영적으로 죽은 것이므로 아담(인간)은 영적인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존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주 아래 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한 것이다.
중생을 통해서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고 성령께서 그 삶을 통치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삶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칭의가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관계인 것처럼 중생은 그 성향과 기질이 하나님을 향해서 이루어지는 내적이며 주관적인 변화이다. 중생으로 새 생명을 소유할 때, 아담이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3) 성화(Sanctification)
성화는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큼 성도의 삶이 거룩해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성화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고서도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고, 온갖 유혹에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성도가 거듭나서 성령 충만이 계속되면 성령께서 그 삶을 통치하시기 때문에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거룩한 삶으로 변해진다. 육신의 몸을 입은 상태에서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을 만큼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성화는 성도들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는 모습이며, 성령께서 성도의 생애를 주관하시므로 생각이나 모든 삶의 모습까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거룩한 모습으로 바뀌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어떻게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있을까.
이것은 엄연히 빌립보 교회에 쓰여진 편지이다. 그것도 이미 구원받은 빌립보의 성도들에게 쓰여진 편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현재의 삶에서 받는 마음(혼)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생각이 거룩해지고 삶의 모습이 거룩해지는 성화의 구원을 뜻한다. 다음의 구절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해진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3)
세례는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키시는 칭의와 중생과 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행위이다.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삶을 이룰 수 있도록 영적이면서도 내적인 능력을 충만케 하셔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중생의 필요성은 인간의 본성이 부패하여 영적인 거룩함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영적인 거룩함에 참여할 자격을 갖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한편 성화는 새로 태어난 본성을 가지고 점점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자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성도에게 의지(意志)를 허락하셨으며, 참되고 영원한 영적 지식으로 하나님의 영성(靈性)을 알게 하시려고 지식(知識)을 주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즐길 수 있도록 감정(感情)을 주신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화(聖化)를 통해서 영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며, 또 삶의 모습을 아름답고도 도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려고 의지력을 주시는 것이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10)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4:24)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기쁜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감격적인 심정을 주신다. 그것은 감격을 통해서 찬양과 감사가 넘치게 하시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과 감사와 사랑의 삶이 되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그러나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면 성령의 통치를 받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통치하기를 더 좋아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통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성령충만을 다시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에게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천국시민다운 삶이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성령께서 그의 삶을 통치하셔야만 내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그 변화를 통해서 삶의 모습까지도 변하게 되는 것이다.
4) 영화 (Glorification)
육의 몸((σομα ψυχικον:소마 푸슈키콘)1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야만 된다.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거룩한 삶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흠이 없는 존재, 즉 성화로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한 존재가 되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고, 천국에 들어갈 때에 육의 몸((σομα ψυχικον:소마 푸슈키콘)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고 영화로운 몸이 되어진다. 그러므로 칭의와 중생을 과거의 구원으로, 성화를 현재의 구원으로, 영화를 미래의 구원으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칭의(Justification)········과거의 구원··········영적인 구원
중생(Regeneration)·······과거의 구원··········영적인 구원
성화(Sanctification)······현재의 구원··········마음(혼)의 구원
영화(Glorification)·········미래의 구원··········몸의 구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 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고전6:11)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 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30)
14.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활용해야 될지를 설명하라.
은사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도록 주셨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이 되게 활 용해야 된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서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에게 성령에 의해 주어진 특별한 속성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사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교회의 지체로서 성도들이 올바르게 헌신하고 봉사하도록 각종 은사를 주신다.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근본 목적은 개인의 신앙적 유익을 위한 것은 물론,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주시며 공적이고 제도적인 봉사를 위해서 주신다. 또 하나님의 은사가 때로는 사회를 위해서 주신 것일 때도 있다.
이 은사는 계속 선용되어야 하지만, 남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성도가 받은바 은사를 향상시켜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또 다른 은사를 주신다.
성경은 은사를 소멸시키지 말라고 경고해주고 있다.
은사를 받을 때까지는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바르게 봉사하던 사람이 그 소중한 은사를 자신의 고유한 소유로만 생각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사용하거나 교만해지는 것들이 성령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은사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 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 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4-11)
15. 성령의 구속사적인 역사를 설명하라.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한 책이다.
구속(救贖)이란 말은 팔았던 것을 그 대가를 지불하고 도로 산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속사란 죄악에 스스로 팔린 채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서 죽어 가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값을 지불하고 도로 사들여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도로 사들이기(救贖) 위해 궁극적으로 지불하신 대가(代價)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값으로 지불하신 역사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다른 각도에서 계시한 것을 많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설명하시지만, 때로는 어떠한 사건을 통해서 그 구속의 의미를 나타내시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救贖)은 인류를 죄악에 얽매인 상태로부터 해방을 가져온 사건이며, 절망 가운데서 희망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원동력이 주어진 것이다.
축복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만 내 삶의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 있는 근거는 창조와 구속에 의해서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것이며, 죄악에 팔려있던 죄인을 도로 사들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참된 축복은 하나님의 소유로 회복되어졌다는 사실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행위와 또 계속적으로 통치하시는 역사를 합해서 구속사(救贖史)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행위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기희생으로 이루신 구속(救贖)이란 서구의 신학자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실제적 상황이다.
그러므로 구속의 행위(救贖行爲)는 단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심령을 계속적으로 다스리시는 성령의 역사와 은총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구속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구속한 성도들을 그 백성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고 그 백성들과 교제함으로써 자신의 영광을 취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인간사(人間事)에 깊이 개입하신다. 만약 하나님의 관심과 간섭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이 창조하신 그의 우주를 저버리지 아니하시는 창조주이시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3-4)
하나님은 오직 진실하신 하나님으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계시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를 구속으로 개선시킨다는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통치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절정에 도달할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이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영원한 그 나라의 축복에 참여시키는 백성들이다.
신약에서 보여주는 구속사와 구약에서 보여주는 구속사의 의미가 때에 따라서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창조와 구속은 하나의 선(線)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구속사(救贖史)는 창조의 목적을 완성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창조와 구속은 절대로 분리시킬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삼위이시다. 창조와 구원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철저하게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계획을 성자께서 구속(救贖)으로 이루어 놓으셨다. 그러나 그 구원의 은총을 인간이 올바른 믿음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거부한다면 그는 멸망할 수밖에 없으므로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총을 수용하고 또 자신의 삶에 적용하며 그 구원을 완전하게 이룰 수 있도록 성령세례를 통해 성도를 인 치시는 것이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8-19)
따라서 성령에 대하여 구속사적 관점에서 조명하지 않으면 성령의 사역을 미신종교의 신비한 강신체험과 다를 것이 없는 값싼 체험으로 여기기 쉬운 것이다. 구속사(救贖史)는 현재 자신의 생명과 관계를 가지며 미래까지도 관계를 맺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태초의 창조사역에 함께 참여하셨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에도 역사하시므로 구속의 역사(救贖役事)를 완전하게 감당할 수 있도록 하셨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므로 그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도록 하셨다. 성경계시에 역사하셨던 성령께서는 역시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해 성도들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를 수 있도록 하신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진리를 알지 못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진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성도들이 자발적인 헌신과 찬양을 드릴 수 있도록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만드시는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 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6-27)
마지막 때에 성도의 심령 속에 그 거하실 곳을 정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성도와 함께 동행하시며, 언제든지 성도를 감화 감동하신다. 성도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만날 때에도 그 심령 속에서 그리스도의 기쁨과 그리스도의 평화를 맛보게 하시며, 슬픔을 위로하시고 절망에서 소망을 주시며, 좌절에서 용기와 믿음을 주신다.
그러나 성도의 삶이 잘못 되어질 때 성령께서는 근심하시고 슬퍼하신다. 그래서 즉각 그 잘못된 것을 책망하시므로 죄를 깨닫게 하신다. 따라서 성령의 책망에 따라 삶의 방향을 고쳐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삶이 되어진다.
그러나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는데도 회개치 아니하면 그 심령 상태가 불안해지고 점점 죽음으로 내려가는 듯한 체험을 갖게 되어진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시28:1)
그러나 성령께서 감동 감화하실 때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를 통해 사죄의 은총을 받으면 비로소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다시 사명을 받게 된다. 성령은 창조와 구원사역에 있어서 처음부터 계속 관계하셨으며, 이 세상 마지막 날까지 성도와 함께 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성령께서 감화 감동하실 때에 따라야만 가능해진다.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것은 성령의 감동하시는 은혜에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할 때에 시작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화목한 좋은 관계를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성도들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이 되어지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구원이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창조 당시의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도록 도우시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의 구원사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으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을 확정적으로 수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거룩한 삶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다 하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분이시다. 초월적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관계를 맺어야만 이 세상이 멸망을 면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이 인간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활동하시는 존재양식인 것처럼, 성령(聖靈)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救贖)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시고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양식(活動樣式)인 것이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 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15:13)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중생과 성화와 영화, 부활에까지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성령세례로 인치고 성도 안에 충만하시면서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삶이 되게 해주신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성령세례를 통해서 구원의 첫 열매로 거두신 사건이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성령 충만케 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계승하여 복음전도를 감당하므로 교회가 탄생하였다.
부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인간성의 새 창조가 이루어지고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출발하게 된 모든 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성령 충만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도 성령 충만을 간구해야 하며, 거룩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통치에 철저하게 굴복하고 순종해야 된다.
결국 성도들의 삶이 순종으로 거룩한 삶이 이루어지면 비로소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이다. 패배하고 근심하며 염려하는 삶은 결코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이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옛 자아로부터 오는 모든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한다. 물질의 유혹을 피해야 하며, 이성과의 관계도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더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명예에 대한 욕망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2:15-16)
세상(世上)은 성도들이 싸워서 이기기에는 너무도 힘든 상대이다. 그것은 세상을 통치하며 주관하는 영이 바로 사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기 위해서도 성도는 성령충만이 필수적이다. 일시적인 영적 체험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충만해져 있어야만 성령께서 주도(主導)하시는 삶이 이루어진다.
육신적인 욕망이 자신의 이익을 향하도록 만들 때에도 성령께서 진리를 생각나게 하시고 그 진리를 가르쳐 주시며, 또한 그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성령 충만키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만한 상태가 그 심령 속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려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죄 사함 받은 상태가 바로 심령이 청결한 상태이며, 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상태이다. 죄를 고백하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심령은 성령께서 그 안에 거하실 수 있는 조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완전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자신의 역사(役事)이다. 성령께서 이루시려는 사역은 곧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제 성도들은 자신의 심령 속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하심에 따라서 세상과 자아로부터 승리하므로 하나님의 구원과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해야 할 것이다.
성령의 역사(役事)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역사(役事)이다. 성도에게 은사(恩賜)를 주시는 것도 구원을 완전케 하시려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가득 찰 때에 은사로서 그 능력을 완전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고난을 통과한 후에 승리의 영광이 오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도 회개(悔改)를 통해서만 성도들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거룩함을 이루어 천국에 알 맞는 개성(個性)을 갖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과 관계없는 성령의 역사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의무이며, 또 하나님이 맡기신 일에 대한 책임(責任)을 다하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성도에게 약속된 권리이며 축복이다.
성도는 성령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어야 하며,
기쁨과 평화와 사랑의 조화를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멘.
성령론 과제 마침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