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구속사 (1)

그리스도의 구속사 과제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

 

1부 시험 문제

(복음서를 중심으로 한 구속사)

(답을 구속사와 신앙고백적으로 기록하기 바랍니다)

1. 신구약 중간사를 간단하게 설명하라.

구약의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약 400년(B.C400-A.D4) 동안 예수의 탄생까지 영적 침 체기가 계속되었다.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한다. 이 때의 정치적인 상황과 종교와 사회적인 상황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했다.

 

2. 기독교 문화를 형성시킨 배경은 무엇인가?

1) 유대교 : 기독교의 뿌리가 되었다.

2) 헬레니즘 : 기독교가 성장한 지적 토양이 되었다.

3) 로마의 제국주의: 기독교가 밖으로 성장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되었다. 로마의 안정된 정 치와 법률, 건축기술, 세계 각처로 뻗친 도로와 조직력 등은 후에 신약교회의 구조에 큰 도 움을 주었다.

 

3. 마태의 족보에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떠한 방법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속(救贖)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탄생의 통로로 만드셨다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다.

 

4.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의 특별한 사항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광야로 나가셨다. 시험은 꼭 거쳐야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마귀와의 한판 승부이며, 꼭 승리로 통과해야 되는 시험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은 꼭 승리해야 되는 시험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우셨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5. 베다니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과 마지막 부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 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 (요11:25-27)

예수께서 자신의 하는 사역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해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능력을 주시며, 또 심판하는 권세를 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경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영생이 주어진다. 그 언제인가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다시 살아나게 된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변호하셨다.

성경이 자신에 대해서 증거한 사실과 사람들이 믿음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 심판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리라』

(요5:28-29)

 

6. 베드로는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칭찬을 들었으나 그 다음 순간에 사탄이라고 하는 다른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탄󰡕이 되어버린 것이다(롬8:7).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마16:23)

 

7.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첫째 조건은 무엇인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야만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25-26)

8.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기도하셨지만 그 기도가 거절되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희생양으로 자기 독생자를 사용하기로 이미 작정하고 계셨기 때문에(독생자의 기도가 거절되어야 인류의 구원계획이 성취되는 것이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 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

 

9.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 세 번씩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가룟 유다보다 그 죄가 가벼워서 용서를 받았는가?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통곡하며 울며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 받았다.

 

10. 예수의 부활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막달라 마리아. 예수께서 생존하실 동안에 사랑을 받았으며, 이제 단순히 시체에 향유를 바 르기 위해서 무덤을 찾은 것이었다.

 

2부 시험 문제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

1.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왜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을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와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명령하셨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부으 시려는 목적이 아주 뚜렷해졌고 그에 걸맞는 사명 때문이다.

 

2. 오순절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할 것.

오순절은 교회의 탄생을 가져온 날이 되었다. 이것은 결코 인위적일 수 없는 사건이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하늘로서 오는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와 불의 혀가 갈라지는 현상들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인간이 직접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구속사의 의미에 대해서 전연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3. 성령세례를 받은 사도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하였는가?

교회의 반석으로

 

4. 사도행전 8장에서 시몬은 돈을 주고 성령의 능력을 살려고 했다. 오늘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어날 수 없다. 그 어느 때이든 아무 때라도 하나님의 선물은 돈 주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 할지어다” (행8:20)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 라” (행8:21)

 

5. 사울의 개종(改宗)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박해자를 복음의 증인으로 택하셨으며, 고난과 시련을 받으며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것을 직접 보이셨다.

박해자가 복음의 증인이 될 때에 전도의 효과는 커진다.

 

6. 사도행전 12장과 16장에서 옥문이 저절로 열리는 기사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널리 퍼지며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 게 하신 줄 알겠노라󰡕 (행12:11)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 지라』(행16:26)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10)

 

7. 하나님께서는 왜 아시아로 복음을 전하려는 바울의 계획을 막으셨을까?

야벳 족속에 대한 축복이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바울은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을 지나 무시아에 도착했다. 바울은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셨다.

무시아를 통과한 바울은 드로아에서 유숙(留宿)하게 되었다. 그날 밤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그를 부르는 것이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마게도냐에 먼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줄로 깨달았다.

아시아가 최후의 선교 기지가 되어야 하지만 유럽에 먼저 복음이 전파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게도냐를 향해 떠나게 되었고 복음은 유럽을 거쳐서 서쪽으로 진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셈족이 거주하는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하나님께서는 야벳족속이 거주하는 마게도냐를 먼저 선교의 기지로 예정하셨던 것이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읋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9:26-27)

 

8.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체포될 것이라는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왜 예루살렘으로 갔는가?

동족을 생각하는 바울의 마음(롬9:1-5)과 예루살렘의 성도들에게 구제헌금을 전하는 사명이 그로 하여금 위험을 향해서 나아가게 했던 것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21:13)

바울의 각오와 결의에 성도들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더 이상 만류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맡겼다.

 

9.. 바울은 왜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청하였는가?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바울은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청했던 것이다. 복음은 신분의 높고 낮음을 초월할 뿐 아니라 국경도 초월하고 있었다. 멀거나 가까운 곳에 복음이 전해졌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로마의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바울과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셨던 것이다.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 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27:23-25)

 

10. 멜리데 섬에서 일어난 사건에 포함된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의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

었다. 선교사가 일부러 들어갈 수 없는 섬에 하나님께서 복음이 전해지게 하신 것이다.

 

 

3부 시험 문제

(서신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

1. 바울이 스스로를 사도라고 말한 근거와 그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갈1:1)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도로 부르셨을 뿐만 아니라 성도를 은혜 가운데로 직접 부르시는 아버지이시다.

바울이 유대교에 있을 때는 교회를 핍박하는 자였다. 그러나 어머니의 태로부터 바울을 택정(擇定)하고 부르신 하나님에 의해서 이방에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베드로를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서 15일을 함께 지내며 야고보를 만났지만 그들도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한 사실을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지위(使徒的地位)에 대한 자기변호(自己辯護)의 근거로 삼고 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 (갈1:1)

 

2. 율법중심의 삶과 믿음중심의 삶의 차이점은 무엇인가?(갈3:1-14)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얻을 수 있는 약속을 성도들의 소유로 만들어주기 위해서이다. 믿음이 모든 척도의 기준이 되기 전에는 율법이 그 척도였고, 삶을 인도하는 선생과 같았다. 그것도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제는 믿음이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에 다시는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예수를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지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되어지는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었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따라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참여했다는 믿음을 가지면 국적과 신분을 초월해서 모두 똑같이 거룩한 신분이 되는 것이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갈3:3)

갈라디아 교회에 형식주의가 스며들자 사람들이 따라가기 시작하였다. 어리석은 모습을 가지고서도 그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처음 예수 믿고 은혜를 받은 후, 신앙고백할 때는 성령의 감동으로 했는데 어느새 형식과 외식이 만연되어서 종교적 행위를 강조하는 사상에 젖어들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시고 살리신 다음 성령을 주신 이유는 바로 믿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약속하셨던 것처럼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약속을 이루어주신다는 사실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에 믿음의 후손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던 모든 축복을 똑같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9)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약속대로 하나님의 유업을 계승할 자로 확정된 것이다. 국적과 신분, 직업이 구원에 있어서 조건이 될 수 없다. 과거가 문제되어도 안 된다. 진정한 심령의 변화를 통해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에 참여하며, 하나님은 회개한 자의 구원을 기뻐하신다.

 

3. 인간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야 소망을 가질 수 있는가?(갈5:16-26)

자유를 획득한 자는 자유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잘 믿던 성도들이 진리에서 떠나면 문제이다. 작은 누룩처럼 번지는 이단사상은 결국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다른 복음을 따르지 말고 굳게 믿음을 지켜야 한다.

 

4. 성령의 열매가 가진 특성과 의미는 무엇인가?(갈5:22-23)

성령의 열매(καρπος:카르포스)는 단수이다. 하나의 열매 안에 9 가지 특성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 송이에 각각 다른 특성들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열매 =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성도들은 자유를 바르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로 육체의 쾌락을 위해 방탕한 삶이 되어버리면 멸망하기 때문이다. 승리의 비결은 성령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다. 가끔씩 밀려오는 육체적인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성령의 통치에 따르는 길밖에 다른 길이 없다.

육체적 욕망과 성령의 의도는 서로 적대관계에 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적인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육체의 욕망에서 비롯된 삶은 더러운 죄를 범할 뿐, 천국을 소유할 가능성은 전연 없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면 창조 당시에 주어졌던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상태로 내적인 변화가 생기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위해서 오래 참고 버티면서 자비를 베풀며 선행을 하게 된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충성하고 온유하며 스스로를 절제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가 되어진다.

이러한 것을 법으로 금할 수 있는 어떠한 강제규정도 없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면 육체적인 욕망과 헛된 정욕과 잘못된 욕심을 이미 십자가에 못박아버린 사람이다. 그래서 교회의 덕을 세우며 서로를 도와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된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 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5:25-26)

 

5.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갈5:24)고 말하는 의미는 무엇일까?(골3:1 참조)

신령한 자(πνευματικοι)란 성령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령 충만한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온유한 심정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부드럽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신령한 자의 특징은 초신자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처럼 생각하면서 타이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조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있지만, 율법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든다(행15:10, 마23:4).

 

 

6. 스스로 속이는 죄의 위험성은 무엇인가?(갈6:7-8)

스스로 속이는 자기기만(自己欺瞞)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속이면 죄책감에 빠지므로 고칠 수도 있지만, 자신을 속이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자아도취(自我陶醉)로 속였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멸시하며 대적하는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신앙의 목적을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육체를 목적으로 하는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니다. 그러나 성령을 목표로 설정하면 영생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성도의 심령에 바른 생각과 새로운 삶을 주시고 윤리적으로 안내하신다. 육체를 위해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결국 멸망밖에 거둘 것이 없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삶은 그 열매가 쉽게 맺히지 않는다 해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신앙의 열매는 끝까지 참고 견딘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삶을 통해서 열매를 맺혀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자신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서 한번 지나간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7. 율법주의적 행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변론이 틀린 이유는 무엇일까?(갈6:1-18)

아무리 바르게 가르쳐도 교회 안에는 언제나 율법주의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항상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일들이 발생한다. 육체의 할례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 하는 문제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를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눈치를 겁내지 않는다.

바울에게 가장 위대한 자랑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바울은 자신의 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하였다. 그것은 성령세례를 통해서 현재 성령의 통치를 받고 있는 삶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8. 휴거의 의미는 무엇이며, 성도들은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도들이 기다려야 할 대망이며,

바른 신앙이어야 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자녀의 권리와 축복을 받은 존재로 의무와 책임을 가진 존재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향해 가지신 목적이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살전4:3)

성도들이 거룩해져야 할 이유는 교회가 휴거(携擧)될 때에 동참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날에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성도들과 교회를 낚아채 서 데리고 올라가신다는 뜻이다.

 

9.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

주의 강림하시는 날이 성도들은 영적으로 깨어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빛의 아들답게 살아야 한다. 항상 근신하는 자세로 주님의 날을 기다리면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믿음과 사랑의 삶󰡕으로 기다려야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 바로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증거이므로 피차 권면하며 덕을 세워야 된다.

지도자들의 수고와 인내를 성도들이 기억해야 되는 까닭은 지도자들이 성도들을 위해 항상 기도했기 때문이다(히13:17). 성도들과는 화목하고 절제하는 삶으로 연약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한 성도를 위로하고, 가르칠 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선을 행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뻐하는 삶, 기도하는 삶,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도들을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거나 예언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며, 어떠한 일에서도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고 악한 모습은 흉내도 내면 안 된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2)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강림하시는 날까지 성도들을 온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거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영과 혼과 몸을 보존해서 휴거에 참여시켜 주실 것이다. 아멘.

 

10. 종말의 징조를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영적으로 거짓 예언자들이 활동하며, 설교를 통해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날 때에 많은 배교자 (背敎者)들이 속출(續出)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험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할 이유는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까지 그리 스도의 재림이 아직 오지 않기 때문이다. 󰡔불법의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그 미혹하는 자가 멸 망의 아들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로 항상 하나님의 자리에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자가 되고싶어 하였다. 지금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막는 자가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아직 안전한 것이다(살후2:8; 단8:25).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까닭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안전한 것이다. 불법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여 그 입 기운으로 죽이시고 멸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는 악한 자가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에 속기 쉽다는 사실이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 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며 구원함을 얻 지 못함이니라』 (살후2:9-10)

그러나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영적 분별력을 주시기 때문에 멸망될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믿지 않고 진리를 소홀(疏忽)하게 생각하던 자들에게만 임하는 것이다. 거짓 된 진리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란 결국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이며, 여기서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

 

시험 문제

(고린도서를 중심으로 구속사)

1.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고전1:18)

바울이 전한 십자가의 도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한 진리로 취급받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그 진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롬1:16).

유대인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하면 마음에 깨름직했다. 지혜와 철학을 사랑하는 헬라인들에게는 십자가가 흉악범을 사형하는 도구인데, 십자가에서 구원이 나온다는 말은 어리석고 미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될 뿐만 아니라 지혜까지 되었다. 이것은 인간적인 지혜로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그 사역자가 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지혜로운 자보다는 어리석은 자가 많고, 학벌도 문벌도 좋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세상 지혜로 하나님의 신비를 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지혜󰡕는 세상에서 어리석고 미련한 것을 통해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며, 천하고 멸시받는 자들을 택하여 부자와 지식인의 화려한 이력서와 경력을 폐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수 없다는 진리를 선포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에게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이 되시며, 구속함이 되셨다. 그 사실은 성도들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2. 고전 2:14과 3:1에서 세 가지 신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육에 속한 사람과 또 육신에 속한 사람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육에 속한 사람󰡕(ψυχικος: 프슈키코스: 혼적인 사람) 여기서 육이란 혼(ψυχη)을 의미한다.

혼이란 선천적인(natural), 마음의, 영혼의(of the soul or mind), 또 이성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성령의 통치를 받지 않는 상태이다(유1:19).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 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은 이지적으로 믿으면서도 성령은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육신에 속한 자󰡕(σαρκινοις: 사르키노이스)는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자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영적 어린아이라고 하였다.

고전2:14의 󰡔육에 속한 자󰡕 와 고전3:1의 󰡔육신에 속한 자󰡕는 그 의미가 엄연하게 다르다.

육신에 속한 자는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성장하면 신령한 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육에 속한 이지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용납하지 않는 대신에 육신에 속한 본능적인 사람은 이단을 따라갈 위험도 있기 때문에 바울은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나 진리를 가르치기보다 우유처럼 이해하기 쉬운 진리를 가르쳤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히5:13-14)

 

3. 성도 상호간에 재판문제를 세상 법정에 소송하는 것을 왜 책망했을까?(고전6장)

고린도 교회에서 그런 문제를 세상의 법정에 고소한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성도들은 천사까지도 심판할 수 있는 신분인데, 교회 안에서 발생한 사건을 세상법정에 소송하는 부끄러운 일을 했던 것이다.

조금 손해를 보거나 속아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전혀 손해보지 않겠다고 거짓을 증언하거나 속이는 불의한 일을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름 받은 형제에게 행한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유업으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죄 씻음 받고 거룩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의로운 자라고 하나님의 판결을 받았기 때문에 의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4. 고전 6:19-20 말씀을 해석하고 느낀 점을 기록할 것.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보신다.

그렇기에 더러움이 가득한 인간의 몸이지만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게 된 이상 회개로 성령님

거하시기에 합당하고 깨끗한 성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율법적으로 음식 때문에 제한 받거나 비평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음식이 다 유익하지 않은

것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성생활도 쾌락과 향락만을 추구한다면 난잡한 생활 때문에 건강을 해

치면서 질병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단순히 육체적인 생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몸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져야 한다.

성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일부분이므로 거룩하게 보존하고 몸으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성도의 몸은 하나님에게서 받은 몸일 뿐만 아니라, 성령의 거하실 성전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전으로 지정하시려고 독생자를 값으로 지불하고 사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몸이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 성도는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뜻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헌신해야 되는 것이다.

 

5. 성령의 은사는 어떻게 주어지며,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가?(고전12:1-27)

은사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주신 성령은 같은 분이며, 직책이 각각 달라도 모든 직책은 같은 주님이 주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역사(役事)와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다.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성도와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각각 다른 은사를 소유하는 것이 당연하다. 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과 영들 분별하는 은사,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 등 여러 가지 은사를 한 성령께서 나누어주시는 것이다.

은사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성도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다. 그래서 국적이나 남녀의 차별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한다.

손과 발이나 각 지체가 서로의 장점이나 권리만을 주장하면 그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더 귀중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교회에서 은사를 받은 각 사람들이 서로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돕는 연합체여야 한다.

 

6. 인간의 몸은 부활 때에 어떻게 변화되는가?(고전15장)

부활은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이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는 몸으로 변하며, 또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이다. 인간은 흙에 속한 첫째 아담의 형상을 입고 있지만, 부활한 몸은 하늘에 속한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은 마지막 나팔 소리에 변화되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야만 된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될 때에 󰡔사망󰡕은 더 이상 능력을 발휘할 수 없고 󰡔생명󰡕에게 삼켜진다. 사망의 해독은 죄이며, 죄는 율법을 통해 죄책감으로 죽음의 공포를 주지만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사망이 멸망되는 것이다.

성도들은 오직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의 일에 항상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은 상급을 위해서 일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수고한 대가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7. 고후 5:17의 새로운 피조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목적대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고(요일4:9) 그리스도를 위해 살도록 하신 것이다(고후5:15).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그리스도 대신 사신이 되어서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시킬 직책을 수행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8. 불신자와는 같은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고후6:14-16)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시킬 책임을 가진 바울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생각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도록 경고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서 복음을 수용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은

혜의 시간에 다른 예수를 전파하고 다른 복음과 다른 영을 받게 하는 거짓 교훈에 따르지 말라

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주님에게서 받은 직책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나 그 어떠

한 경우에도 거리끼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역경에 인내하며, 환난과 궁핍과 육체적인 수고와 매맞으며 갇히고, 굶주리며 잠 못 자는 고생

중에도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주시는 은혜를 통해 극복하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

로 삼아서 이길 수가 있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그를 속이는 자라고 욕하며 이름도 없는 자라

고 혹평했다. 그런데도 바울이 아름다운 이름을 간직할 수 있었던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9. 고후7:1의 약속이란 무엇이며, 그 약속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후7:1)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가졌다면 영육간(靈肉間)에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보존하면서 인격적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도록 세상의 더러운 일에서 자신을 지켜야 되는 것이다.

거룩함이란 물론 성령의 사역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을 마음으로 영접하기를 원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거나 불의를 행하지 않고 속여서 빼앗은 적도 없었다. 그들의 심령에 사도들이 들어갈 자리가 마련되어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거짓 교사들의 악선전에 미혹된 사람들이 의심하고 피해도그들을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고 함께 교제하며 함께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자가 되려고 자신을 영접하라고 말했다.

고린도 교인들과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사랑의 공동체이며, 복음의 사역을 위해서 함께 선택받은 동역자이기 때문에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할 공동체이다.

 

10. 연보의 정의를 내리고 연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연보는 사랑으로 나누는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원칙인 󰡔평등󰡕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연보의 성격은 먼저 자신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철저한 헌신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8:9)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길은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성도에게 있어 참『부요』는 믿음, 사랑, 하나님과의 화평, 성령 의 능력 안에 있는 상태 등,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제공해 주는 영적 풍요로움이다.

성령으로 시작한 일을 사람의 생각대로 중간에 포기한다면 그것이 마음의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6:6)

연보에는 반드시 상급이 따른다.

인색한 마음이나 강요에 따르는 연보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연보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그 은혜가 넘쳐서 더욱 선한 일을 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시험 문제

(로마서를 중심으로 한 구속사)

1.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로움이란 어떠한 의로움인가?(롬1:17)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로움󰡕은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속죄제물이 되셨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의 구주(救主)󰡕로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선포로 죄인이 의롭게 되어질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을 복음에 나타내셨던 것이다(롬3:21-26).

복음에 계시된 하나님의 의로움의 특징은 자신에게 속한 믿음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ㄹ로서의 믿음으로 바뀌어 지고 그 믿음에 의해사 구원 받는 것이다.

 

2. 칭의론에 나타난 구속사적 의미는 무엇인가?(롬3:21-26)

화목제물(和睦祭物)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시키기 위해 드리는 제사에 사용된 제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이 의인으로 인정받게 된 원인은 그의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

과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의인이 된 것이다(창15:6).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되는 것은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다. 성도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음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경건치 않

은 불의한 자를 의인으로 인정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고용주가 노동의 대가를 지불한다면 은혜가 아니라 채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행위가 의롭기 때문에 의인취급을 한다면 그것 역시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망각할 때에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부 자신의 의로움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로움으로 여기신다(로기조마이: λογιζομαι)는 말은 사실은 그렇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는 뜻이다.

믿음 자체는 의로움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대속(代贖)하심을 믿기 때문에 구원받고 하나님에게 의롭다고 인정받는 칭의(稱義)의 통로가 될 뿐이다. 다윗은 허물과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찬양하고 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32:1-2)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인으로 인정받았던 때가 할례를 받기 이전이라고 강조한 것은 할례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하고 믿음이 구원을 얻는 통로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3. 인간의 원죄는 유전되는 것인가?(원죄를 설명할 것)

인간은 죄를 범하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씌워진 원죄(原罪)이다.

자아(自我)는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서 자신을 통치하려는 옛 사람이다.

이것은 원죄에 의한 것이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죄 때문에 사망이 이르렀다.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기 때문에 아담의 범죄는 인류 전체의 범죄이다.

그러므로 인류에게서 사망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율법이 제정되기 전에도 죄가 존재했지만, 죄의 판정기준이 없어서 죄로 여기지 않았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류가 사망에게 노예가 된 것과는 반대로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죽음으로 죄인들이 은혜를 입어서 의인으로 인정받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된다.

 

4. 세례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롬6장)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해서 옛 사람이 죽은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된 것이다.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에서 죽었다는 것은 죄의 몸이 죽어서 다시는 죄의 종노릇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탈출하여 의로운 자로 인정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어서 다시는 사망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서 새롭게 태어난 존재로서 죄에 대해서는 죽은 존재이며, 하나님을 향해서는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여겨야 된다. 성도는 세례를 통해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지만, 완전히 죄가 통치하는 영역을 벗어나지 못해서 죽을 몸 그대로 있는 것이다. 죄의 통치를 벗어나고 불의한 도구로 자신의 몸을 제공하지 말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인류의 구속을 위해서 바치셨던 것처럼 성도의 몸도 의로운 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

따라서 은혜로 자유를 얻었다면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된다. 죄의 뜻에 따른다면 죄의 종이 되는 것이며, 의(義)에 순종할 때에만 의(義)의 종이 되기 때문이다. 옛날 죄의 종이던 존재들이 복음을 받고 말씀에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고 의(義)의 종이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다.

옛 생활은 자신의 몸을 죄의 요구대로 더러움이나 불법에 따르고 하나님의 공의(公義)를 버리고 죄에게 몸바쳐 살던 죄의 종이지만 이제부터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뜻대로 헌신함으로 거룩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의 종노릇할 때는 아무런 얽매임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의로움의 지배력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끼며 살게 된다(20절). 그래서 수치와 사망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에서 해방되면 영생을 소유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5. 선을 행하려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악을 행하게 되는 인간의 이중성과 구속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총은 어떠한 것인가?(롬7장)

선과 악이 자신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은 성도에게 있어서 슬픈 일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고민이다. 윤리와 도덕을 알고 선을 알면서도 악을 행하면서 살게 되는 인간 자아의 고민이다.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서 살게 되는 이중성을 스스로 발견하게 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며 부르짖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육체적으로는 죄의 법에 따라서 살고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모든 문제를 맡기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도들은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죄의 법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가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롬3:20).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판정을 받는다. 육체적으로는 죄의 법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가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 때문이다.

율법에 속한 사람은 정죄를 받을 수밖에 없다.(롬3:20)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고 판정을 받는다.

 

6.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롬8:장)

육체를 입고 사는 존재이지만 성령의 통치를 받는 성도라면 육체의 욕구대로 죄를 범하면서 살지 않아야 된다. 육체적인 삶은 죽음 자체이다. 영적인 삶으로 육체적인 욕구와 그에 따르는 삶을 통제해야 영생을 누린다. 성령의 통치에 따르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종의 영󰡕을 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도록 성도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상속을 똑같이 받을 수 있도록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게 하시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받는 고난은 때로 너무도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영광의 시간이 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7. 성령께서 성도를 대신해서 기도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롬8장)

성도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그 기도가 성령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신 기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간구(懇求)하시는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응답하시는 것은 성령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삶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役事)로 선한 결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8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계획은 무엇인가?(롬11장)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사52:7)

죄악에 포로가 되어 있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사명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의 발은 먼지로 인해 더럽혀졌고 옷이 낡아졌어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그 사실은 더 없이 귀중한 것이며 아름답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전도자의 말을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죽였으나 아직도 복음은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복음을 들었으나 그 복음에 믿음을 화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데도 그들은 불순종하였다.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에는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서 먼저 선택하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기하므로 구원을 얻도록 계획을 세우셨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신32:21)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신 것은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구원으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선택하셨던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던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의 예정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救贖役事)를 보여주셨다.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돌아와서 구원받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게 내가 여기 있노라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사65:1)

 

9. 성도들의 헌신생활은 하나님의 뜻이다. 어떻게 헌신해야 되는가?(롬12장)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헌신해야 된다. 무조건 헌신해야 된다는 맹목적인 신앙은 위험을 가져온다.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분별하고 헌신해야만 인생의 목표를 바르게 설정할 수 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필요한 헌신의 방법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해서 제시해주고 있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한 권면(勸勉)은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신 뜻에 의지해서 권면하였다. 의로움과 구원의 진리는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란 󰡔구원의 진리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신 은총 가운데 있다󰡕는 사실 때문에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다. 몸이란 자신의 인격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힘까지 의미한다.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獻身)하는 것은 부분적 헌신이 아닌 전인적 헌신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서 자신을 주셨던 것처럼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큼 살아있는 제물(祭物)로서의 자신을 하나님께 몽땅 헌신하는 것이 󰡔영적인 예배󰡕가 된다. 위선과 거짓이 섞이지 않은 헌신이야말로 하나님과 인간이 정직하게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성도는 세속적 삶의 모습을 따르지 말고 심령으로 인격적 변화를 받아야 한다.

성도 자신이 새롭게 갱신(更新)될 때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선하신 의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건을 이루셨다.

구원받은 성도의 믿음을 통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구속 사건을 만족하신다. 성도의 몸을 살아있는 제물로 헌신할 때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영적인 변화는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변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롬14: 8).

 

10.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삶을 지향해야 되는가?(롬14장)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된다. 그리스도께서 모범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행하는 것이다. 성경은 성도들로 하여금 안위를 얻고 소망을 갖도록 기록된 것이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된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큼 자신의 신분과 처지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된다. 지혜로운 생각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의 분량만큼 생각하는 것이다. 실현 가능한 생각은 겸손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 있는 지체(肢體)는 그 존재목적과 역할이 각각 다르다. 지체의 통일성과 기능성 및 다양성은 몸을 보존하는데 꼭 필요한 것들이다. 교회에도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의 통일성과 기능성과 다양성이 주어졌다.

성도에게 주어진 이상의 생각을 갖거나 다른 사람의 은사에 대해 간섭하면 그 존재의미와 존재목적을 상실하기 때문에 믿음의 분량만큼만 생각하고 헌신해야 된다.

성령의 은사도 하나님의 뜻대로 활용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은사를 비판하거나 간섭하면 교회를 혼란에 빠트리게 된다. 사랑은 거짓이 없기 때문에 진실한 사랑과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고 봉사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며 성도의 은사도 더욱 빛나는 것이다.

성도는 서로 우애와 존경으로 더욱 부지런하며 열심히 주를 섬겨야 한다. 그러면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움이 올 때도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도하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어려움까지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에 대해서 저주보다 오히려 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성도들은 이웃과 함께 기쁨과 슬픔, 아픔과 즐거움을 나누며 항상 겸손하게 살면 모든 사람과 교제할 수 있고 지혜로운 척하지 말고 악에 대해서 선으로 갚으며,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과 화목하고 억울한 일이 생길 때에도 하나님께서 직접 처리하시는 대로 맡겨야 한다. 원수가 주릴 때에도 관심을 가지고 선으로 갚는 것이 악으로부터 승리하는 비결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훈으로써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신 것들이다.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 평화로운 마음은 다른 사람과 화목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이룬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구속사(救贖史)의 목적이다.

강한 믿음의 소유자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가 시험에 빠질만한 제한을 두거나 행동하지 말아야 된다.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하신 모든 것은 생각에 따라 선하거나 악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성령 안에서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의로움(롬6:13)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누리는 평화(빌4:7)와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자들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성령께서 함께 해주시는 삶을 통해 거룩한 열매를 맺어야 칭찬을 듣는다. 하나님은 교회가 화평하고 성도들이 덕을 세우며 서로 화목하기를 원하신다. 음식 때문에 교회에 혼란을 초래하지 말고 성숙한 믿음으로 연약한 자를 도와야 한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가 되기 때문이다.

 

시험 문제

(옥중 서신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

1. 구원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구원을 획득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엡2장)

세상의 유행과 공중권세를 잡은 불순종의 영(靈)의 통치에 따르면서 허물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사망에 처했던 죄인을 구원하셨다. 전에는 육체의 욕심에 이끌려 사는 본질적으로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신 사랑으로 살려주셨다.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을 수 있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구원하신 그 사실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며, 그 은혜와 사랑을 믿어서 구원받았다. 그 믿음도 성도 자신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셨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의 능력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2. 선민이 아닌 이방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어떻게 열렸는가?(엡2장)

복음을 받기 전의 이방인은 유대인처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흔적도 몸에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무 할례자라고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도 없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도 없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지 못한 자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지도 않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은혜 때문에 그들이 가까워졌다.

성전에는 중간에 담이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은 그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選民意識) 때문에 이방인을 죄인처럼 생각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조건이나 율법 때문에 화합할 수 없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을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죽음을 통해서 그 막혀있던 담을 헐고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사건(救贖事件) 안에서 다시 태어난 새 사람으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가 되어지도록 평화의 복음을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똑같이 전하신 것은 한 성령 안에서 똑같은 자격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방인이었던 사람도 외국인이나 손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도들과 똑같은 시민권을 가진 권속이 되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피 흘리며 전한 복음의 터전 위에서 구원받은 자들은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 교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통일된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실 거룩한 처소로 함께 건축되어지는 것이다.

 

3. 성도는 잃어버린 시간들을 구속해야 된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세월을 아끼라(εξαγοραζω:엑사고라조)󰡕는 잃어버린 세월을 구속하라, 도로 찾으라는 뜻이다.

영적으로 지혜로운 성도는 악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살펴보아야 한다.

헛된 목적을 위해서 낭비해 버린 시간들을 도로 찾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으며, 술 취한 것처럼 자아를 상실했던 삶을 청산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어둠에 속했던 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성도는 빛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결하고 진실한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이 변화된 자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이다. 성도는 믿음의 열매를 맺는 헌신적인 삶을 통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입증해야 된다.

성도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고 그들이 숨어서 행하는 부끄러운 죄를 책망하고 자신에게 비치는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야 된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느니라󰡕(엡5:14)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심령으로부터 신령한 노래를 화답할 때, 세상의 욕망을 잠재우고 하나님께 감사와 그리스도를 경외하며 형제를 서로 사랑하고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목적대로 살아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겸손과 온유로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유지시켜야 한다. 의를 행할 때에는 오래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 의견이 같지 않은 사람에게도 인내로 상대 의견을 수렴하고 또 잘못까지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성령의 감동대로 행하지 않을 때에 사탄의 역사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의 하나가 되게 해주신 은혜를 보존해야 된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교제하도록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공동체이다. 주님과 믿음, 세례 그리고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존재를 통일시키시고 만유(萬有) 가운데 존재하신다.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은 만물을 그 주권 아래 충만케 하기 위해서 성도들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도 주셨다.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세우신 것은 성도들의 신앙을 바로잡고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히 성숙된 모습처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지식이 온전해지게 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어리석은 아이들처럼 이상한 교훈이나 풍조에 휩쓸리지 않고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만큼 성장해서 교회가 사랑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총명이 흐려지고 무지(無知)와 마음의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허망한 생각대로 살던 이방인처럼 불신자는 감각이 무뎌져서 자신을 방탕에 빠트린 채 욕심껏 살지만,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배운 대로 살아야 한다.

예수 안에 있는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는 유혹에 끌려가던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변화된 거룩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의롭고 진실하며 거룩한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성도는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된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에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말하며, 혹시 분을 내게 되어도 해를 넘기지 말고 풀어버려서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도적질하던 자는 그 습관을 버리고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것을 위해서도 자신의 손으로 일하며 선을 행해야 된다.

더러운 말은 입에 담지 말고 선한 말로 덕을 세우고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를 받게 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낙인찍혀진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모습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또 서로 용서하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해야 된다.

 

5.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운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골1장)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만물을 자신과 화목케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신성(神性)이 충만케 하셨다. 전에 원수처럼 지내던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이방인들도 믿음에 거하며 순교의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 견고하면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6.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삶을 지향해야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골3장)

성도는 세상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존재이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도록 새롭게 살리심을 받은 존재이므로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만 한다. 성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승리를 차지할 신분이다.

그래서 세상에 속한 육체의 욕망을 단호하게 제거해야 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롬6:10-11). 음란한 생활과 부정한 생각과 행동들, 사욕으로 인한 지나친 애착과 부끄러운 정욕, 다른 사람보다 많이 가지려는 탐심 등은 하나님의 영광을 멸시하는 우상숭배가 된다. 하나님의 목적을 가진 인간이 죄를 범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구속(救贖)되기 전에는 육체적 욕망으로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았지만,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과거의 추악한 모습을 벗어버려야 한다. 이웃에 대해 분노하며, 이웃을 해치려는 악한 기질, 중상모략, 및 입에도 담기 부끄러운 음담패설, 거짓말 등은 옛 사람의 나쁜 습관이기 때문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의(義)를 옷으로 입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새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새 사람󰡕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본래 모습으로 회복된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자는 국적과 신분의 차별 없이 사고방식과 영적인 지식에 있어서 창조의 목적에 따르는 새 사람이 되었다.

성도는 거룩하고 사랑스럽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불행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며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할 수 있는 자비와 이웃을 섬길 수 있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무례한 자에게 부드럽게 대하는 온유함과 어려운 상황에서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내를 갖추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로움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어야 된다. 성도는 평화를 위해 부르심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자신 안에 충만케 하여 영적인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며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된다.

 

7.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가?

종들은 육신의 상전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된다. 눈가림으로 순종하는 것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기쁘게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의 행동을 살피고 계시기 때문에 어떠한 일에서도 주님에게 하는 것처럼 해야 된다. 성도의 받을 상급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遺業)으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에게는 불의의 보응을 하신다. 상전들도 의로움과 공평(公平)함으로 종들에게 지불할 것은 지불하고 편벽하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권력자의 횡포를 심판하시기 때문이다(골4:1).

 

8. 성령께서 성도 안에 거하신다는 의미는 무엇인가?(빌2장)

교회가 한 몸을 유지하고 성도들이 지체로 서로 연합하는 데 따르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권면해야 된다는 사실이다. 세속적 방법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권면(勸勉)하는 것이 한 몸을 이루는 기본원칙이 된다.

둘째, 사랑의 위로가 있어야 한다. 신앙생활에서는 연약한 믿음 때문에 실족할 때도 생기지만 사랑으로 위로하는 것만이 쓰러진 자에게 힘을 더해준다.

셋째, 성령의 교제이다. 성도들은 영적 교제를 통해서 한 마음과 한 뜻이 될 수 있다. 성령께서 성도의 심령 속에 거하시면 성도들은 순종과 평화로운 심령이 되는 것이다.

넷째, 긍휼과 자비이다. 긍휼이란 내부에서부터 솟아나는 감동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비란 연약한 자에 대한 동정심을 뜻한다. 믿음이 강한 자는 연약한 자들을 항상 마음에 두고 위해서 기도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지체가 질서 있게 연합되어야 한다. 한 마음과 한 뜻의 교회는 목적만 아니라 방법까지도 같아야 되는 것이다. 같은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겸손이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질서를 세우는 기초가 된다. 자기를 비운 모습은 무가치한 존재처럼 만든다는 뜻으로서 케노시스(κενοσις) 기독론이 나오게 되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된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어떠한 마음일까?

첫째, 그리스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시면서도 하나님의 권위와 영광과 능력을 행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겸손한 마음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둘째,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며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아들로서의 순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에게 모든 이름들보다도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들을 그리스도 예수께 무릎꿇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

성도들이 승리의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마음에서 솟아나는 여러 가지 의혹과 미혹으로부터 구원을 이루게 된다. 성도의 심령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도록 성도의 심령에 소원을 심어주실 뿐만 아니라 소원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것이다.

이 세상은 영적으로 어둠에 잠겨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악한 세대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흠이 없고 순전한 모습으로 영광의 빛을 비취도록 부름 받은 자들이다. 성도들이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삶을 통해서 바울 자신이 고난 속에서 지낸 시간들이 헛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주님 앞에서 자랑할 수 있기를 원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성도들을 위한 믿음의 봉사(奉仕) 뿐 아니라 희생의 제물 위에 붓는 포도주(관제:灌祭)가 된다고 하여도 성도들과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함께 기뻐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9. 바울이 세운 목표와 자신이 도달한 상태를 어떻게 설명했는가?(빌3장)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교훈은 바울의 사상일 뿐만 아니라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살전5:16).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주님 안에서는 기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의 말씀은 주님의 승리를 성도들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그러나 거짓 교사들과 들개처럼 성도들을 괴롭히는 무리와 손할례당을 경계해야 된다.

진정한 할례당이란 성령으로 봉사하되 인간의 전통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선행이나 공적을 자랑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자이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뢰하는 자들이다. 바울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인간적으로 자랑거리가 매우 많았다.

그는 태어난 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으며, 베냐민 지파로서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다. 가장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받았고, 유대교인으로 기독교를 가장 열심히 박해했으며 심지어 스데반의 죽음에 찬성투표를 한 사람이다. 율법적으로도 아무런 결점이 없는 자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유리한 특권이나 화려한 이력서를 포기했다. 화려한 이력서를 배설물(排泄物)처럼 모두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것들을 해(害)로 여긴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高尙)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 가장 귀중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발견되어지는 것만이 그의 소망이 되었다. 바울의 의로움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의로움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지식으로만 알지 않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대해서 체험을 통해 알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만 되며(골1:24), 또 그리스도와 완전하게 하나가 될 때,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활을 기다리는 소망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완전하게 성취하지 못했고 믿음도 완전하지 못하다고 고백하였다. 당시 이단자들이 영적 은사와 축복만 강조했기 때문에 완전주의로 기우는 경향이 있었다. 성도들이 과거의 은혜에 집착하여 발전하지 못하고 침체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미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과거의 업적이나 공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을 본받지 말고 앞에 있는 골인지점을 향해서 금메달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서 경주하며, 과거는 잊고 오직 미래의 소망을 향해 끝까지 달려야 한다(딤후4:7-8).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지 말고 그러한 함정을 벗어나서 원리대로 행해야 된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勸勉)한다(고전11:1). 바울과 동역자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것은 비록 갇혔지만 교회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국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전락되었다. 그들의 신(神)은 그 육체의 쾌락을 위한 돈이며 그 영광은 방종한 삶을 통한 부끄러움이다. 그들은 땅의 일만 생각하다가 결국 멸망할 자들이다.

성도들의 시민권은 천국에 속했기 때문에 십자가의 원수로 지내는 자들과 차원이 다른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릴 때에 현재의 연약한 상태의 몸에서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거룩한 몸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10.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비결은?(빌4장)

주님 안에서 굳세고 진실하게 서야만 된다. 왜냐하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가 오기 때문이다. 다툼이나 분파적인 삶을 버리고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한 사람들은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첫째,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비록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때에도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관용해야 된다. 관용이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이다. 신분과 빈부귀천을 구별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구원하시려던 그 사람들에게 관용해야 된다.

셋째,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 삶에서의 모든 문제를 주님께 알려드리고 문제를 주님께 맡겨야 된다.

그리하면 세상의 이성과 지혜를 초월한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

켜주어서 헛된 염려와 걱정에 빠지지 않게 된다.

성도들은 참되며, 경건하고 옳으며, 정결하고 사랑할 만하며, 칭찬할 만하며, 덕이나 기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덕목이 있더라도 실천할 줄 알아야 한다.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의 가르침에서 배운 것과 만남에서 받은 것과 설교를 통해서 들은 말씀과 바울의 삶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서 행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시험 문제

(목회서신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

1. 바울은 자신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을 어떻게 감사했는가?(딤전1장)

바울은 자신을 능하게 해주신 그리스도께 감사했다.

그것은 바울을 충성스럽다고 여겨주시고 또 귀중한 직분까지 맡겨주셨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훼방 자요, 핍박 자이며, 포악하고 무례했던 자신은 그럴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데 자신이 사도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지도할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주님이 능력을 주시고 도우셨기 때문이다.

 

2. 목회자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딤전2장)

목회자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자여야 한다.

사람들의 필요를 위한 간구와 진실한 기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와 응답에 대한 감사기도 등이 그것이다.

간구(데에시스: δεησις)는 긴박한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이미 아시지만 그래도 알려드리는 기도를 해야 된다.

기도(프로슈케: προσευχη)는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εω: 입맞추다. 예배하다) 즉 예배라는 기본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기도이다.

도고(엔튜크시스: εντυξις)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보(intercession)와 탄원(petition)의 기도이다. 목회자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자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이다.

감사(유카리스티아: ευχαριστια)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카리스: χαρις)에 더 좋은 것을 뜻하는 유(ευ)라는 접두사가 붙여진 단어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보다 더 좋은 은혜󰡕를 의미한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유일한 방법이 감사이다. 자신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할 때에 감사기도를 드리게 된다.

전체적으로 이 4 가지의 기도는 목회자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언제나 정치지도자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만 된다.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선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고 진리대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3. 교회 직분자의 자격기준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딤전3장)

초대교회에 있어서 감독(에피스코페: επισκοπη)은, 방문해서 감독하는 직책으로 구약에서 간역자를 의미한다(대하34:17). 감독은 두 가지의 뜻이 있는데 어떠한 일을 치리 감독하는 자와 자기를 임명한 상관에게 책임을 지는 자이다. 초대교회의 감독은 교회의 생활과 사업을 감찰하는 직능과 더불어 교인들의 신앙생활 전반을 보살펴주는 책임을 맡고 있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감독은 권위주의적 직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이다.

교회에서 직제가 발전하며 연로하고 경험이 있는 지도자를 뜻하는 장로와 구분되었지만 처음에는 똑같이 사용되었다.

감독의 자격조건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며 세속적 욕망과 명예에 얽매이지 않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여자의 남편이면서도 스스로 절제하고 근신하며, 아담해야 된다. 대인관계에서 나그네를 잘 대접하며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차별하지 않고 초라한 사람이라도 인격적으로 대하는 사람, 술을 즐기지 않으며 사람을 구타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한다. 감독은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나며, 자신이 복음진리로 무장되고 자신의 가정부터 철저하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새로 입교하거나 믿음의 뿌리가 약한 자는 사회적 명성과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감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겸손한 믿음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범죄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불신자에게서 칭찬 듣는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선한 증거를 얻지 못한다면 사람들의 비방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마귀의 올무에 걸려들기 쉬운 것이다.

집사는 단정한 생활모습과 일구이언(一口二言)하지 않고 술에 인박히지 않으며,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고 깨끗한 양심과 믿음의 비밀인 영적 체험을 가져야 한다.

살림을 맡은 자들이 더러운 이익을 취하려 할 때에 교회가 병든다. 술은 하나님께 거룩한 모습으로 헌신할 수 없도록 한다. 하나님 앞에 떡을 드릴 때에도 누룩이 섞이지 않은 무교병을 사용한 것은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라는 것이다.

술에 인박히거나 즐기는 자는 바른 판단력을 상실하고 술기운으로 일을 처리하며, 술 취했을 때와 술이 깨었을 때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인격적으로 신임을 얻지 못한다.

집사의 선발은 먼저 일정기간 동안 시험을 거친 후에 책망할 것이 없을 때에 임명해야 된다. 집사는 비방(誹謗)을 받지 않아야 할뿐더러 존경도 받아야 한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자녀들과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여자 집사의 경우도 다른 사람을 참소(讒訴)하지 않고 스스로는 절제하며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스러운 자를 선택해야 한다.

집사의 직분을 잘하면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의 확신 속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직분을 주실 때에 자신의 구속사(救贖史)를 이루기 위해서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주신다.

바울은 자신이 늦어질 경우에도 디모데가 교회의 모든 일에 완전하게 처리하도록 이 편지를 기록하였다. 그리스도께서 동행하시는 교회가 완전한 승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어떠한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가?(딤전4장; 참조 엡4:19)

바울은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세에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이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게 될텐데 이들은 바로 양심에 화인(火印) 맞아서 외식과 거짓을 일삼는다. 영지주의 자들은 혼인을 금하고 육식과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금했다. 금혼(禁婚)은 성적 방종을 조장하고 음식에 대한 규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창조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는 사람.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

해가 지도록 분을 품는 자.

도둑질 하는 자.

더러운 말을 하는 자.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늕 것과 비방하는 자.

 

5.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란 어떠한 마음인가?(딤전6장)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 자체가 신앙에 큰 이익이 된다.

인간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 것처럼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해야 한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지나친 욕망 때문에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빠져서 스스로 멸망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가지 악의 뿌리가 된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혹을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되며, 결국은 세상 근심 걱정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결과만을 얻는다.

 

6. 성도들은 어디에 삶의 목표를 두어야 하는가?(딤전6장)

성도는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자가 되며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어려운 자를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장래 자신의 생명을 위한 터를 쌓는 것이다.

지금까지 명령한 것을 지키면서 거짓된 지식으로 말미암는 망령되고 헛된 말이나 토론을 피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길을 따르는 자들은 이미 믿음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멸망의 늪에 깊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7.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딤후1장)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救贖史的)인 섭리(攝理).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간에게 군림하던 사망의 권세를 폐하셨고, 복음을 통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썩지 않을 영광을 주시는 것.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구원에 대한 소망과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이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한 것.

 

8. 바울이 체포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어떠한 일을 이루셨는가?(딤후2장)

은혜 안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칠 때에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 그 사역을 부탁하면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쳐서 그 사역이 계속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자세로 일해야 된다.

군인은 어떠한 고난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뒤로 도망칠 수는 없으며,

개인적인 삶에 얽매일 수도 없는 것이다. 군인은 직무에 충실해야 주어진 일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군인은 오직 군인으로 자신을 선발한 왕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사명을

다해야 되는 것이다.

운동 선수는 어렵고 힘든 훈련과정을 거쳐 최선을 다해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규칙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비겁한 승리는 면류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승리

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농부는 땀을 흘려서 일한 다음 수확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된다. 농부가 자신의 수확을 맨

먼저 차지하는 것처럼 복음의 사역자에게 하나님의 상급이 주어질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다.

이처럼 복음 전도자들도 충성스러운 군인처럼 자신의 삶에 얽매이지 않고, 운동선수처럼 원칙을 중요시하며, 농부처럼 땀흘려서 일해야만 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성령께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실 때에 깊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복음 전도자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항상 기억해야 된다.

바울은 옥에 매여 있으나 복음은 결코 속박되지 않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것이다.

자신의 고난이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광의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격려하고 믿음을 지키게 해주려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주님의 신실성(信實性:미쁨) 때문에 믿음으로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영광에 참여하게 되며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모른다고 부인 당할 것이다.

 

9. 성도들이 최후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딤후2장)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받는 자,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가 참 일군이다.

헌신은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일군(그릇)은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보존해야 된다.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영적으로도 거룩한 자라야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군은 모든 선한 일을 위해서 준비된 자들이다.

젊은 객기(客氣)로 자신의 업적을 이루려는 헛된 졍욕(情慾)을 버리고 성도들과 함께 의로움과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해야만 어리석은 다툼을 피할 수 있다. 주의 종은 온유하면서 가르치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거역하는 자를 징계할 수도 있어야 한다. 징계하는 것은 그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와서 회복시키려는 까닭이다.

 

10.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에 예비된 면류관을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는가?(딤후4장)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했을 뿐만 아니라 믿음을 지켰기 때문이다.

 

 

시험 문제

(공동서신을 중심으로 한 구속사)

1. 믿음의 시련에 대한 구속사적인 의미는 무엇인가?(벧전1장)

하나님께서 성도를 선택하시는 목적은 천국에 예비해두신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의 기업을 계승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말세에 나타내실 구원을 미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성도들은 찬송해야 된다.

성도들은 믿음의 훈련과정을 완전히 거쳐야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훈련의 과정이 인간적으로 볼 때에 근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용광로에서 제련된 순수한 정금(正金)처럼 믿음의 시련을 거쳐야만 세속적인 욕망이 불태워진 순수한 믿음으로 바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하나님을 갖기 위해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지만,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는데도 그를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은 영광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소망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영혼의 구원인 것이다.

소망을 갖게 된 성도들은 마음의 허리를 동여매고 온갖 시련이나 환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택하신 것이 아니라 그 행하는 모든 삶을 보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순종하여 영혼의 구원을 얻은 성도는 마음으로 뜨겁게 형제를 사랑하고 자신이 거듭난 것이 인간적인 어떤 요소 때문에 구속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인간의 영광은 시들어버릴 풀처럼 일시적이지만(사40:6-8),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2.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영적인 방법은 무엇인가?(벧전5장)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고,

염려를 주께 다 맡기고,

근신하고 깨어야 하며,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마귀 대적해야 한다.

 

3. 지구는 마지막에 어떻게 될 것인가?(벧후3장)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난다.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는다.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는 것처럼 모든 만물이 녹아질 뿐만 아니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심판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4. 시험을 기뻐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약1장)

하나님의 선택받은 성도로서의 기쁨이다.

여기서 시험이란 베드로가 말했던 󰡔믿음의 시련󰡕(벧전1:7)을 뜻하고 있다.

왜냐하면 믿음의 시련이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시험은 믿음을 견고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가 포함되어 있다.

신앙의 실천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인내이다.

시험을 통해 인내가 생기기 때문에 시험은 믿음의 성숙을 가져다준다.

시험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위험을 만날 때에 넘어질 위험이 있지만 인내로 단련된 사람이라면 그 시험을 무사하게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시험을 참고 견딘 후에 그것이 입증되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 인정되고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5. 간음하는 여인들이란 어떠한 사람을 의미하는가?(약4장)

세속적으로 물들고 하나님을 떠나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보다 세속적 일에 몰두하는 것.

 

6. 히브리서에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히1-3장)

그리스도는 천사보다도 더 뛰어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통치자로 즉위하실 때에 천사들은 그 앞에 경배하게 되며, 또한 천사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하나님의 후사(後嗣)가 될 성도들을 섬기도록 보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통치자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본래 존귀하신 분으로 천사보다 못한 위치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고난과 십자가 죽음으로 영광과 존귀를 얻으셨다.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만물의 원인과 목적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인간의 원형으로 완전케 되시는 것이 당연하다. 또 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된 성도들은 한 하나님의 아들과 형제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모양이 되신 것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려는 것이었으며, 죽음이 두려워서 마귀에게 평생 종노릇하던 자들을 해방시키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을 위해 자신이 고난 당하신 것은 대제사장으로 시험받는 자들을 돕고 구속하기 위해서 그들과 같이 되셨기 때문에 능히 그들을 도우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앙고백처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다. 모세가 하나님의 교회에 사환으로 충성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는 아들로 아버지께 충성하셨기 때문에 모세보다 더욱 존귀하시며 영광을 받으셔야 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집을 맡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백성인 공동체 즉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7. 대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히7-9장)

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계시면서 성소와 참 장막에서 자기 직책을 수행하신다. 대제사장은 세상을 통치하시며,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신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차례 속죄제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세상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하나님께 단번에 드리므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 창조에 속하지 않은 더 좋은 장막으로 인해 동물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고 성소에 들어가셨다.

동물의 피 제사도 용서를 받는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옛날 죽은 행실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고 또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서 범한 인류의 죄를 속(贖)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 안에서 부름 받은 성도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상속받도록(히6:`7-20) 하셨기 때문에 새 언약(히8:7-8)의 중보(中保)가 되시는 것이다. 유언이란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을 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유언들(요4:34, 6:38-39, 11:25-26, 16:7)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완전한 것이 되었다. 한번 죽는 것이 인간에게는 정해진 것이며, 그 후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도 그 정해진 절차에 따르기 위해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자신에게는 죄가 없으면서도 단번에 속죄 제물로 드리셨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재림하실 것이다.

 

8. 피할 수 없는 신앙의 경주에서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히12장)

신앙생활에 장애가 되는 무거운 강박관념과 근심이나 걱정거리

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게 만드는 주관적인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인내의 정신으로 목표만을 향해서 꾸준하게 달려야 된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오히려 자신의 삶을 가다듬고 육체의 욕망대로 끌려 다니지 말고 바른 삶이 되도록 해야 된다.

성도들은 모든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가져야 되며, 거룩한 생활을 추구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주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자신을 살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자가 될까 두려워하며, 또 이단적인 요소들은 없는지, 다른 사람을 타락시킬 요소는 없는지, 우상숭배와 일시적인 재물 때문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린 에서처럼 넋빠진 존재가 될까 두려워해야 된다.

 

9. 사랑이신 하나님은 성도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입증하셨는가?(요일4장)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해준다.

󰡔사랑󰡕이란 인류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인류를 사랑하셔서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사실이다.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어떠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요일5장)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자가 하나님에게서 난 자이며,

아들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두 아들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들을 지킬 때에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며, 결코 그의 계명이 무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을 이긴다는 그 사실이 곧 성도의 믿음인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자 외에는 세상을 이길 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아들이 있는 자는 영생이 있지만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신 안에 성령의 증거가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내적 증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영생 자체도 없는 것이다. 아멘.

 

 

그리스도의 구속사 과제 마침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