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사사시대

성령과 사사시대

(삿14:5-9)


  여호수아의 영도아래 약속의 땅이요 축복의 땅에 도착한 이스라엘의 새세대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음으로 인해 모든 전략, 교통, 경제, 문화의 중심지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의 중심지였던 가나안 민족의 신들에게 분향하는 큰 범죄를 저지릅니다.


  사사시대의 모든 역사는 이스라엘의 타락→하나님의 책망→백성의 회개→하나님의 구원 사역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악함과 반복되는 죄악성을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적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신 여호와의 신실성이야 말로 참으로 위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구약시대 중에서 가장 암흑했던 불운의 시대였던 사사시대를 통해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가 어떤 것이었는지 이시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사시대는 약 350여년동안 우상숭배와 죄의 역사가 먹구름처럼 휩싸여 있었지만, 하나님이 위기의 순간마다 옷니엘, 에훗, 드보라, 바락, 기드온, 입다, 삼손같은 사사를 통하여 성령의 권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사시대에는 어려움이 많았을까요?


1. 철저하게 가나안 본토민을 징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① 인정 때문에

② 힘들기 때문에

③ 자만심 때문에

④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철두철미하지 못하기 때문)


2.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3. 시시때때로 편안하기 하면 하나님을 버린 죄를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사시대에서 성령이 어떻게 역사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은 사사들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삿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삿 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임할 때 어떤 관념이나 이론 혹은 교리로 임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감동으로 역사하신 구절은 참으로 많습니다(대상12:18, 대하24:20, 삼상10:26, 삼하 24:1, 대하 36:22, 습1:1)


삼상 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타종교와 비슷한 신의 일종으로 혹은 틀에 박힌 사상이나 교리 속에 하나님을 묶어 놓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격의 신이시고 감정이 풍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종교적인 유일신 정도로 이해하고, 기독교가 타종교보다 내용이 있고 건전하기 때문에 믿는 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신이해에 있어서 사람들은 영의 세계를 허공이나 꿈속이나 혹은 공상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으며 과학적으로도 증명될 수 없기에 마음의 안위나 받는 그런 상상적인 신이 아닐까 잘못 추론한 결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은 지.정.의를 가지신 인격의 신이십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그런가 그렇치 않은가 찾아보겠습니다.

① 성령 하나님은 사랑도 하십니다.(롬15:30)

② 성령 하나님은 용서도 하십니다. (사55:7)

③ 성령 하나님은 한탄도 하십니다. (롬8:26)

④ 성령 하나님은 책망도 하십니다. (요16:8)

⑤ 성령 하나님은 질투도 하십니다. (약4:5)

⑥ 성령 하나님은 근심도 하십니다. (엡4:30)

⑦ 성령 하나님은 기뻐도 하십니다. (눅10:21)


  성령하나님은 인격의 신이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 어떤 논리나 이론이나, 고전이나 신학문 탐독이듯 하려는 태도는 결코 허용해서 안되겠습니다.


  인격이신 성령하나님을 육신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니 습관적이고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찬송도 마음의 위로나 기쁨을 위해 부르고, 기도도 허공을 치는 감정 발산의 막무가내 기도를 하고, 봉사도 하나님보다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의 잘못된 신앙관이 바뀔때가 되었습니다.


  성령은 감동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인간이 만든 로보트나 마네킹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 분에게 참된 예배를 드려서신앙의 성공자들이 다 되어야 겠습니다.


  감동없는 예배, 감동없는 찬송, 감동없는 기도, 감동없는 봉사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뼈 같은 성령(겔37장)의 소유자요, 사데교회처럼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자(계3:1)요, 입술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도 마음은 주님께 멀어(마15:8, 막7:6)오히려 자존심이 꽉차있고 하나님보다 자기가 주체가 된 자(마16:24,막8:34,눅9:23)요, 신앙을 한갖 정서적인 안식처나 마음의 위로로 그래서 육신의 생활에 필요한 생활필수품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자요, 혹은 하나님을 어떤 종교적 산물로 얽어 메어놓은 나머지 그저 도와주지도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돌부처 정도로 매도하는 자들의 신앙을 저는 막연한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신앙이 타락하여 그저 종교적이고 의식적인 교권주이로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눈먼 것, 병든 것, 버릴 것, 쓸모없는 것(말1:8)을 드린 걸 잘 압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귀는 우리가 세상에 찌들고 죄악에 시달려, 영적 불감증 성도를 만들려고 오늘도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넘어가지 않도록 항상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겠습니다.


둘째, 성령은 사사시대의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삿 3:9-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 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여기를 보면 옷니엘에게 임한 성령을 알 수 있습니다.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첫 사사로써 성령의 권능으로 강한 이방나라인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8년동안의 멍에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40년동안 태평시대를 만들었습니다. 옷니엘 사사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사기를 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깁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진노하사 이방나라의 손에 빠져서, 이방나라 종살이를 하게 합니다. 그러자 육신이 너무 고통스러워 선조때부터 믿었던 하나님께 회개의 부르짖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에 감동받은 사사를 세우셔서 이방인의 손에서 건져내게 하시므로 태평한 시대를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대시대마다 사람들을 택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셨고 지금도 사용하고 계십니다.


  중세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했을 때 루터와 칼빈을 쓰셨습니다.

  영국이 부패했을 때 요한웨슬레를 쓰셨습니다.

  미국이 부패했을 때 무디목사를 쓰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빌리그레함 목사 같은 분을 쓰시고 각 나라마다 지역마다 특별한 능력의 사역자들을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사사시대에도 하나님은 옷니엘 뿐만 아니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을 세우셔서 모압사람 일만명 가량을 죽였고(삿3:29), 사사 삼갈을 통해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삿3:31),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를 통해 승리를 주셨으며(삿4:4), 기드온의 삼백용사를 통해 이방의 많은 군대를 정복하고 승리케 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셋째, 사사시대의 성령은 권능의 신이었습니다.


  사사 삼손에게 임한 성령님은 권능의 신이었습니다. 그가 딤나에 내려가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 사자가 나타나 소리를 지를 때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삼손은 그 사자를 염소새끼 찢음 같이(삿14:5-9)찢어 죽였습니다.


삿 15:14-15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 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명을 죽이고


삿 3:31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넷째, 사사시대에 역사한 성령은 지혜와 모략의 신이었습니다.


삿 6: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사사기 6장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행한 악은 어떤 도덕적인 범죄라기 보다는 우상숭배였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지도자들인 사사들이 살아 있을 동안은 우상숭배에서 멀어졌던 것 같으나 사사의 치리 기간이 끝나면 다시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이처럼 타락, 하나님의 징계, 이스라엘의 회개, 하나님의 구원이 반복되던 역사가 곧 사사시대였습니다.


  여사사가 드보라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서 건지시고 40년동안 태평을 허락하셨지만, 여호와 목전에서 다시 악을 행한 이스라엘 자손을 보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브람의 후처인 그두라에게서 난 후손들인 미디안 족속에게 7년동안 곤란을 겪게 하십니다. 비록 7년이었지만 어느때 못지 않게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미디안인들의 침략으로 산에 동굴을 파서 피난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들이 올라와서 다 약탈해 가버리니 그 고통이 너무 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열조들이 애굽의 압제에 못이겨 고통으로 신음할 때와 같이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때 기드온이라는 사사를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그는 므낫세 지파의 아비에셀 족속 출신인데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강림하사 그가 나팔을 불었는데 군사가 3만 2천명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숫자를 사용하시지 않고, 삼백명을 통해 미디안을 섬멸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보더라도 전쟁에서 특히 그 전쟁이 백병전일 경우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유리하다는 것이 분명한데, 하나님은 왜 삼만이천명 중에서 삼백명만 사용했겠습니까? 이것은 전열을 갖추지 못한 오합지졸일망정 이 많은 숫자를 다 쓰면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수가 많아 싸움에서 이긴 것으로 착각하여 교만해질까봐 하나님은 적은 숫자를 통해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승리케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적전쟁에서도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사용하기보다는 소수의 선택받은 성령 충만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영광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적인 권세나 부귀 혹은 지식에 의존하는 자가 교회를 이끌어 가다보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은 고사하고 결국 타락의 길로 접어들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모략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 지혜와 모략의 신인 하나님을 인간이 전적으로 신뢰할 때 인생의 승리도 영적전쟁도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거창한 계획, 꿈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흩어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아무리 많은 재산을 쌓아놓은 부자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면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나폴레옹이 전세계를 삼키려 했지만 결국은 세인트헤레나 섬에서 불쌍하게 여생을 보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포악한 연산군도 나중에는 역적모의에 몰려 비참하게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고로 인생의 근본은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서 시작되어야 하며, 그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거창한 계획이 있습니까? 훌륭한 꿈이 있습니까? 모든 초점을 여호와 하나님께 맞추시고, 주의 영광을 위해 사시길 바랍니다. 이런 자만이 참으로 인생의 본분을 아는 자이며, 자기 인생에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일시적 향락이나 일시적 승리보다 영원한 것을 택하시는 생활을 하시길 바랍니다.


  기드온과 삼백명의 용사들과 싸운 적군은 메뚜기의 중다함같고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이 많았다고(삿7:12)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백용사는 나팔과 빈항아리속의 횃불로 그 많은 수를 물리쳤습니다.


사 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하나님은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의 신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십시오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사업의 인도자로 모십시오

  그 하나님을 여러분들의 특별 카운셀러로 모십시오

  그 하나님께 간구하기만 하면 보지 못한 것까지 볼 수 있는 축복을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사사시대의 성령은 하나님께 부르짖게 하셨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죽은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과 결혼할 때, 하나님은 주변의 민족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민족이 깨달을때가지 매질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깨닫게 하고, 회개케하는 역사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악의 암흑시대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 것도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을때마다 사사를 보내주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특히 사사기 16장을 보면 들릴라의 꾀임에 넘어가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깍히고 두눈을 뽑혀 블레셋인들의 포로로,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된 삼손이지만 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삿16:28)을 때 잃었던 권능을 되찾아 우상의 전당인 다곤신당을 무너뜨리고 원수들과 더불어 죽은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보람된, 그리고 놀랍고 영광스러운 시간이 바로 기도시간입니다. 기도는 신비적인 환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는 실질적인 시간입니다.


  따라서 기도가 없는 신앙생활은 마귀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됩니다. 기도가 없는 성도를 하나님은 슬퍼하시며 애통하십니다. 다윗은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라(시116:1-2)했습니다. 기도없이 좋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 없는 제직을 하나님이 과연 흡족히 받으시겠습니까?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성령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 요한, 바울도 모두 기도의 인물이었음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