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속사
하나님의 구속사 과제
(총회신학교 2008학년도 통신학부 최보연)
제1부 모세오경
1. 구속사(救贖史)의 의미는?
구속사(救贖史)라는 말은 창조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그 백성들에게 미리 보여주시는 계시의 역사와 그 계획들을 하나님께서 직접 이루시는 섭리의 역사를 합해서 일컫는 말이다.
하일 게슈힛테(Heilgeschichte)로 표현된 독일어는 원상으로 회복하다는 의미의 하일(heil)과 역사를 의미하는 게슈힛테(geschichte)의 합성어이다. 영어로는 [구속의 역사](Redemptive History)라고 두 개의 단어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한자로 표현되는 구속사(救贖史)가 독일어의 하일 게슈힛테(Heilgeschichte) 보다도 그 의미를 더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 그것은 속(贖)이란 글자에는 값을 지불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속(救贖)은 노예의 몸값을 지불하고 사서 자유롭게 해방시켜 준다는 속량(贖良)을 의미한다. 또한 저당되었던 물건이나 재산을 도로 사서 원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속사(救贖史)란 죄악에 팔려있는 채 영원한 멸망의 자리에서 죽어 가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값을 지불하시고 도로 사서 원래의 자유로운 모습으로 회복시킨다는 역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움이 입혀지고 또 의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 기독교 구속의 특징이다. 죄악에 얽매인 인간을 되찾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불하신 대가(代價)는 바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였다.
성경에는 그리스도를 값으로 지불한 역사만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기희생을 계시한 것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설명하시지만, 때로는 어떠한 사건들을 통해서 구속의 의미를 나타내시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은 인류를 그 죄악의 얽매인 상태로부터 해방시켜준 사건이며, 절망 중에서 희망을 가지고 담대히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새 사람이 되었다면 그의 과거나 신분이나 또 과거의 행위가 들추어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축복은 성경을 구속사적(救贖史的) 입장에서 바르게 읽고 깨달으며 배워서 복음을 바르게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이다. 바른 구속의 개념을 가져야만 참된 축복이 무엇인지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이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이 참된 축복이다.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주권자가 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실 수 있는 근거는 창조와 구속에 의해서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것이며, 죄악에 팔려있던 죄인을 구속하시고 해방시키셨기 때문에 소유권이 하나님께 속해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축복은 하나님의 것으로 회복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못하던 어둠의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축복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복적(祈福的) 신앙으로 일그러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매우 슬픈 사실이다. 그러므로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바른 삶의 자세를 갖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임무이다.
구속사(救贖史)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구속행위와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성도의 심령을 통치하시는 역사까지를 통틀어서 구속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희생이 바로 구속이며, 현재 계속되는 하나님의 구속행위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성도의 심령을 계속적으로 통치하시는 성령의 역사와 은총까지를 포함한다. 이것은 성도에게 어떠한 이론이나 가르침보다 훨씬 더 실제적인 상황이다.
구속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진다.
하나님은 구속하신 성도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서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고 그 백성들과의 교제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취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사(人間事)에 깊이 개입하신다. 만약에 하나님의 관심과 개입이 없다면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신이 통치하시는 세계와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저버리지 않으시는 창조주이시며 또한 왕이시다.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3-4)
하나님은 진실하신 하나님으로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그들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스스로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우주를 계속적으로 개선시키려는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통치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고 구원의 절정에 이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이며,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고 불러서 교제하는 영원한 나라의 축복에 참여하는 백성들이다.
신약성경에 계시되는 구속사(救贖史)와 구약성경이 보여주는 구속사(救贖史)의 의미는 때에 따라서 전연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창조와 구속은 하나의 일직선(一直線)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곧 구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구속사를 결코 중단하지 않으신다. 비록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사람이 실패하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범죄한 다음 왜 사람을 저주하지 않으셨을까?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3. 창세기 6:3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령(וּר)께서 함께 동반자가 되어주실 때에만 인간은 행복할 수가 있고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진다.
성령(וּר)과의 분리는 자기 육체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처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에서 두 가지 중요한 단어를 살펴보아야 한다.
* 함께 하다(딘: ןי):
심판하다(judge), 변론하다(plead), 통치하다(rule), 다투다(contend)
성령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은 더 이상 인간의 심령을 다스리지 않으시고 방임해 두시며, 그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도 간섭하거나 책망하지도 않으시겠다는 뜻이다.3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7-8)
성령께서 성도의 심령을 다스리며, 작은 잘못에도 일일이 간섭하시는 것이 귀찮게 느껴질는지 몰라도 그것이 곧 구원의 은총이며, 참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도를 떠나지 않으시며 버리지 않으시고 또 항상 함께 해주시는 은혜로운 아버지이시다.
*육체(바사르 : ר)
히브리어 바사르(ר): 단순히 살(flesh)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육체(바사르:ר)를 인간의 반역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마음](겔11:19, 44:7)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려는 그 의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영어 번역에 바사르(ר:flesh)를 육체(mortal: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존재)라는 신학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육체라는 말은 눈에 보이는 몸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육체의 정욕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창6:3의 말씀은 성령께서 [육체가 되어버린 인간의 악한 마음과 생각으로 인한 범죄를 더 이상 간섭하거나 통치하지 않으시며 버리고 떠나시겠다]는 뜻으로 인간구원을 포기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동반자가 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과 영적으로 교제를 포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땅을 홍수로 멸하실 것을 오직 한 사람의 의인 노아에게만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실 때에는 그 일을 누구에게든지 꼭 알리시는 것이다. 그것은 원망이나 불평할 수 없게 하시려는 것과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까닭이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암3:7)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축복하셨던 그대로 사람이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있는 만물을 다스리는 삶을 기대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삶을 보실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뜻이 모두 악한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5)
하나님이 후회하셨다는 말씀은 은혜와 축복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그 뜻을 이루기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홍수]라는 방법으로 이 땅에 임하게 된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방주를 만들고 역청(카파르:ר)으로 방주를 칠하였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통해서 악인들에게 무서운 심판을 내리셨지만, 얼마의 사람들과 동물들을 살려두어서 그 종족을 보존시키셨다. 또 수 이후에 사람들이 계속 죄를 범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세계를 약속하신다.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8:22)
범죄자에게 주어진 것으로는 너무나 커다란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인류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으며,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축복을 받았다. 그 축복은 본래 창조 당시에 주어졌던 것이다.
이제 사람에게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이 처음으로 허락되었으나 그 피를 먹는 것은 금지되었다. 왜냐하면 피에는 생명이 있으며,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의 피를 흘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갖는 것은 곧 하나님의 존엄성에 대한 반응이 되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9:6)
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사람을 멸망시키는 대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멸망시키는 대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한 사람을 택하여 성별 시키셨던 것이다.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역사가 새롭게 바뀌어 다른 사람들이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된 것이다.
이 첫 단계가 바로 소명(召命)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응답을 요구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족하시게 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여러 가지로 축복의 약속을 주셨다.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12:3)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창12:7절)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도록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자기 안전을 위해 아내를 자신의 누이라고 속이는 불 신앙적인 행동을 하였다(창12:10-20). 그러나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브라함을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의 약속도 계속 유효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와의 약속]을 아브라함과 또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 이루시는 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실수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지 못하도록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입증하셨던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그의 고향에서 떠나게 하셨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시고 보호하시려는 것일까?
하나님의 주권에 모든 처리를 맡겨버린 야곱의 믿음.
지금까지 자신의 수단과 방법만을 의지하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존재가 두려운 한편으로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다가온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래서 죄를 범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그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것이다.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28:16절)
야곱이 들판에서 만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항상 여기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고 벧엘:לי(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 순간부터 하나님을 향한 야곱의 믿음이 더욱 강해지게 되었다.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무사히 귀향(歸鄕)할 수 있게만 해주시면 하나님께 십일조를 하겠다고 서원하였다. 그 서원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뜻만을 중심으로 하는 세속적 서원이었다. 야곱의 세속적이며 조건적인 기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기로 결정하셨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과거의 야곱에게는 간접적 만남이었으나 이제 직접적인 만남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은 야곱에게도 언약(땅, 자손, 축복)의 당사자가 되어주셨다. 이제부터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으로서 뿐만 아니라 야곱에게 있어서 [자신의 하나님]까지 되신 것이다.
인간이 궁지에 몰리는 것이 하나님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야곱은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에 축복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사람들을 에서에게 보낸 야곱이 혼자가 된 그 밤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야곱의 영적 판단력에 의하면 그는 천사가 분명했다. 천사에게서 생명의 보장을 받기 위해 야곱은 그 천사를 보내주지 않고 밤새도록 그 천사와 씨름을 하였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화합이 필요했던 것이다.
자기 형 에서와의 화해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천사는 날이 밝기 전에 돌아가기 위해서 야곱에게 씨름(기도)의 승리를 의미하는 새 이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름의 변화는 곧 야곱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였다.
그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야곱에게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벧엘에서 본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것이다.
천사와 야곱이 가진 씨름은 단순한 씨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과의 화해를 이루는 깊은 기도였다. 하나님과의 화해가 없이는 어떠한 화해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곱을 만나는 에서의 마음은 이미 녹아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선물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그대로 하나님은 야곱을 떠나지 않으셨으며, 버리지 않으셨고 또 계속 함께 해주시는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셨던 것이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일곱 번이나 엎드려 절했다. 그런데 야곱은 밤에 만나서 씨름하던 하나님의 사자의 얼굴을 에서의 얼굴에서 보게 된 것이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창33:10)
그것은 단순히 아첨의 말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화해되어진 상태에서 보았던 하나님의 얼굴을 야곱은 이미 화해가 된 형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야곱 일행은 에서의 보호를 받으면서 숙곳에 정착하였다.
6. 하나님께서 유다의 며느리 다말을 그리스도 탄생의 통로가 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다말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다말을 구속하시고、
그리스도 탄생의 통로가 되게 하신 것이 바로 구속사(救贖史)이다.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아들을 세 명 낳았다. 그들은 엘과 오난과 셀라였다(창38:1-5). 유다의 장자 엘이 다말이란 여인과 결혼했으나 엘이 여호와께 범죄한 까닭에 일찍 죽음을 당했다. 그래서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형수와 계대결혼(繼代結婚)을 하고 함께 살았다.
오난은 엘의 대를 이어줄 아이를 낳아 주기를 원하지 않고 설정(泄精)하여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난도 죽이셨다. 유다는 며느리에게 막내아들 셀라가 성장한 다음에 결혼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아들이 죽을까봐 두려워한 그는 며느리 다말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창38:11-12).
얼마 후에 유다가 상처하고 자기 양털을 깎는 곳에 갔을 때 다말은 창녀처럼 면박(veil)을 쓰고서 유다를 유혹하여 동침한 후에 그 몸값으로 유다의 인장과 끈과 지팡이를 받아 두었다. 그 후에 다말은 임신하게 되었으며, 그 소문이 유다의 귀에도 들리게 되었다. 진노한 유다는 다말을 불태워서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 때 다말은 유다에게서 받아 두었던 신물(信物)을 보이면서 자기가 잉태한 아기의 아버지는 바로 이 물건들의 임자라고 말하였다. 그 물건들을 보고 유다는 며느리를 풀어주었다. 그 후에 다말은 쌍둥이를 낳았으며, 장남 베레스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게 되었다(마1:3).
7.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사건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은?
요셉은 애굽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가 하인으로 일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에 보디발의 집은 축복을 받게 되었다. 요셉은 노예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신임을 얻으므로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의 총무가 되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잘 생긴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하였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불응함으로 하나님과 자기의 주인에게 죄를 범하지 않았으나 결국 주인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요셉이 있는 곳은 그 어디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곳이었다.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흔들림이 없었다. 요셉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채 고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기억하셨을 뿐만 아니라 더욱 큰 은혜 가운데로 그를 인도하셨던 것이다.
8.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고통을 당하는 백성들을 왜 단번에 구원하지 않으셨을까?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20여 차례나 정지하여 진을 쳤었다(민33:16-36).
여호와의 영광의 구름이 항상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 위에 덮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애굽에서 노예의 생활을 했었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 노예 생활하던 때가 더 안정된 삶이었다고 불평할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선동까지 하였다.
그들의 불평에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불을 내리셨다(민11:1). 백성들은 깜짝 놀래서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언제든지 불평과 불만으로 일관하는 그들을 위해서 모세는 또 다시 중보기도를 했으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므로 그 재앙은 중지되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민11:5-6)
자유보다도 노예생활이 더 좋았었다고 말하는 그들의 불평 때문에 모세는 하나님께 차라리 자신을 죽이고 무거운 짐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다(민11:15). 모세의 탄원에 응답하신 하나님께서는 장로 70인을 선택하도록 지시하셨다. 그리고 그 선택된 장로들에게 모세에게 주셨던 성령의 권능을 균등하게 베풀어 주셨다(민11:16-17). 그 중에서 엘닷과 메닷 두 사람이 예언하는 것을 보고 여호수아가 예언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모세에게 충고할 때에 모세는 모든 사람이 선지자가 될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답변하였다.
9. 하나님은 40일이면 갈 수 있는 가나안 땅까지 왜 40년이 걸리게 하셨는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행사(行事)가 이스라엘의 신앙고백 중에서 축하되고 있다. 백성들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행사를 찬양하며 신앙 고백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땅까지도 선택하셨던 것이다.
여호와가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신26:9)
팔레스틴 땅이 그 규모는 매우 작은 땅이지만,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일컬어져 왔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는 그 길이가 240㎞ 밖에 안되며, 요단강의 서쪽으로 중앙부의 넓이가 대략 64㎞ 정도이다. 이 땅은 주로 네 부분으로 되어 있다. 즉 요단 동편의 고원지대(高原地帶), 요단 계곡, 산악지방, 그리고 해안 평야이다.
가데스 바네아는 이스라엘이 광야를 방랑하던 시절에 체류했던 장소 중의 하나이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 지파에서 한 사람씩의 대표자를 선출하여 가나안 땅에 침투시켰다. 그런데 40일 간의 정탐을 마친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할 때 두 가지의 상반된 보고가 있었다. 그것은 그 보고자들의 믿음에 따르는 보고였다(민13:25-33).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족장에게 언약하셨던 땅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고 또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보고함으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땅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듣고 불평을 조장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애굽에서 나올 당시 20세 이상 되었던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입성에서 제외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지내도록 하셨다.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40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40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민14:34)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믿고 인정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오직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10.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가나안 땅을 향해서 가는 이스라엘 백성은 물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들은 습관처럼 또 다시 불평하기 시작했다. 광야에서의 물은 곧 생명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들의 불평은 타당하게도 보였다. 그러나 많은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으면서도 원망하는 백성들을 보는 모세의 마음은 상해 있었다.
모세와 아론은 총회를 떠나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성막으로 갔다. 영광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을 위해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서 지팡이를 취한 후 백성들에게 갔다. 그러나 불평한 백성들을 보는 순간 자제력을 잃은 모세는 백성들을 향해서 폭언을 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쳤다. 물이 솟아 나오므로 백성들과 짐승들이 기갈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모세가 유일하게 희망으로 삼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저희가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저희로 인하여 얼이 모세에게 미쳤나니, 이는 저희가 그 심령을 거역함을 인하여 모세가 그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시106:32-33)
지도자로서 단 한번의 실수가 언약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야 할 책임이 있다(엡4:29-30).
사람을 향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큰 죄가 된다는 사실을 지도자들은 항상 기억해야 된다.
제 2부 가나안 정복과 통일왕국 시대
1.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어떠한 보장을, 왜 주셨는가?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보장은 여호수아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고 어떠한 명령이라도 담대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할만큼 완전한 보장이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5-9)
2.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해야 되었던 것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요단 강변에 유숙시킨 다음 그들에게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명령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적은 거룩함 속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그 자신들에게 있는 불의하고 가증스러운 요소들을 모두 버려야만 했다.
3. 가나안 여인이며 기생인 라합이 구속의 대상자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여리고 성을 함락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대로 매일 성을 돌기 시작하였다. 여리고 백성의 마음은 두려워서 떨기 시작하였다. 여리고 전쟁은 하나의 심리전이었다. 따라서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군대 앞에서 무너지게 되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신7:2)
가나안 정복에 대해 그 백성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너무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가나안 사람들은 너무 타락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저히 그대로 참고 계실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생 라합과 그 가족들을 제외하고 가나안 사람들을 모두 칼로 멸하였다.
4. 아이 성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여리고 성을 함락시킨 이스라엘 백성은 자만에 빠졌었다. 그래서 작은 성 아이를 침공할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전투에서 패배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 전투에서 패배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수아는 아간 이라는 사람을 색출해내고 그가 숨겨둔 모든 물건들을 찾아낸 후 아골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아간은 돌로 쳐죽이고 그 물건들을 불태운 후 그 위에 돌을 쌓았다.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승리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이처럼 엄한 형벌로 다스리게 하신 것이었다.
아간을 처치한 후에야 이스라엘 백성은 비로소 아이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주 사소한 죄까지도 그들 가운데 남겨두기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성도들이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과 거룩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부름 받은 사실을 항상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5. 모압 여인 룻의 구속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는 영적인 면에서 구속사이며, 다른 하나는 윤리적인 면에서 룻의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의리를 지키는 효도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룻을 구속하신 것은 룻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종교적으로 개종한 사실과 시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함께 보셨던 것이다.
6.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이유는?
사무엘의 아들들은 브엘세바에서 사사로 봉직하면서 옛날에 엘리의 아들들처럼 뇌물을 받거나 이익을 취하기에 급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을 때 사무엘은 내심으로 그들의 요구에 찬성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왕을 세워 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결국 왕을 선택하게 되었다.
7.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씩이나 가졌었다. 그런데도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에 대한 처리는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다는 원칙이 지켜질 때에 하나님은 영광을 나타내신다.
8. 다윗의 엄청난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위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것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의 특징은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에게 의인으로서의 영광에 처할 수 있게 해주신 다는 사실이다.
9. 다윗은 성전건축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위해 준비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의 타락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솔로몬은 자신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이 금하셨던 경고를 무시하고 너무 많은 금과 수많은 말을 소유하였으며, 수백 명의 아내와 첩을 거느렸던 것이다.
결국 솔로몬은 대적으로 인한 괴로움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음 후에는 나라가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기 약 450여년 전에 주셨던 하나님의 원칙을 통해 살펴볼 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가 있다.
10. 그처럼 놀라운 지혜와 축복을 받고 또 경고까지 받은 솔로몬이 타락하고 죄를 범한 사실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하나님의 경고가 솔로몬에 의해서 무시되어졌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제 3부 분열왕국의 죄악상
1.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분열된 원인은 무엇인가?
이 시대는 다른 어떠한 시대보다도 더 복잡하고 급변하며, 죄악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지도자들의 사고방식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으며, 세속적인 쾌락과 사치로 인해서 가장 거룩하고 깨끗해야 할 성소와 제사장들까지도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2. 엘리야는 믿음의 사람이 자기 혼자만 남은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는 호렙 산에서 아직도 7,000 명이나 되는 사람이 남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역자가 빠지는 함정은 혼자서만 하나님께 충성한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서 무엇을 요구하셨는가?
사랑
4. 선견자 예후가 여호사밧 왕을 책망한 말씀에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5. 웃시야 왕은 왜 문둥병에 걸렸으며,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성공이 교만으로 이어져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단 불을 웃시야가 스스로 드리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문둥병이 걸렸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성공할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6.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인가?
메시야에 대한 것.
미래의 소망적 약속은 모두 메시야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7. 요나 선지자의 활동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구속사는?
죄인의 멸망이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여 구원을 얻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육축까지도 사랑하시는 분이다. 하물며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사람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번 하나님의 구속사적(救贖史的)인 은총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8.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왜 바벨론에 항복해야 된다고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바벨론을 섬기라고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이유는 새로운 질서 가운데서 나타날 하나님의 섭리와 포로시대에 이방인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그리고 이방인의 왕들이 포로들을 귀환시키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속사적 의미를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9. 예레미야의 새 언약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새 언약은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지는 특성으로 타락과 범죄로 상실되었던 자율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불순종하거나 거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억지로 지키지도 않는다. 오직 성령께서 감화하실 때에 저절로 순종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옛 언약은 법률의 준수에 근거한 율법적 언약이므로 율법을 어기면 형벌에 처해지는 것이었다. 새로운 언약은 이스라엘의 내적 거듭남과 하나님의 은총의 회복에 대하여 토대가 될 그리스도의 희생적 피에 근거하고 있다. 새로운 언약은 죄책감이 없는 상태에서 그리스도에게 받아들여지고 그 후에 성령의 역사로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지며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하게 되는 것이다.
10.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멸망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고난과 역경이 닥치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체면만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따른다면 멸망뿐이다.
제 4부 포로 및 포로귀환 시대
1. 선지자 다니엘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 권위는 어떠했는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과 존귀함을 발견하게 하신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꿈을 해석하는 다니엘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백성들에게는 다니엘에게 예물을 바치도록 명령하였다(단2:46). 왕은 아무에게도 절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에게서 신 중의 신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고 다니엘을 신처럼 생각하게 되어 절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을 바벨론에 있는 모든 박사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어른을 삼고 바벨론을 다스리는 지위에 올려놓았다.
2.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이 섬기는 하나님을 어떠한 하나님으로 생각했는가?
통치자이신 하나님.
느부갓네살 왕은 다시 한번 하나님의 무궁한 능력과 권세를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에 바벨론을 통해서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세계 만방에 전하게 하셨던 것이다.
3. 선지자 에스겔이 본 여호와의 영광에서 깨닫게 되는 진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는 것.
자신의 배만 불리는 목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4. 에스겔이 본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복음의 물결
생명수
5. 의인의 범죄와 죄인의 회개에 대해서 에스겔이 전한 하나님의 뜻은?
자신들의 죄를 상기(想起)시키는 것.
장차 있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 백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
6. 모르드개의 애국심과 신앙은 무엇을 얻어냈는가?
에스더가 왕후로 선택되었다(에2:17)
왕후의 위에 오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7. 바사(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의 배경의 의미는?
모르드개라는 유대인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을 듣고서도 자신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을 알고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며 바사 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까지 몰살시킬 음모를 꾸몄다. 그래서 하만은 왕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고발하였다. 고발의 내용은 「그들의 율법이 바사의 국법과 달라서 왕의 국법을 무시하고 거역하기 때문에 무익하다」는 것이었다(에3:8). 이 음모를 실행하기 위한 비용으로 하만은 자신의 사재까지도 기꺼이 헌납하기로 했다(에3:9). 성급한 왕은 하만의 보고를 듣고 모든 처형권을 하만에게 주었다(에3:10-11). 하만은 완전히 유대민족을 몰살시킬 계획으로 B.C 473년 2월 28일에 각 도에 있는 유대인들을 도륙(屠戮)하라는 조서를 각 도의 문자와 방언으로 준비하고 칙령을 알리기 위해 역졸들을 파견할 준비까지 갖추었다.
8. 고레스 왕의 조서를 보고 다리오 왕이 내린 조서의 내용과 그 의미는?
선한 역사가 중단될 때에도 하나님의 구속사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다리오 왕은 성전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고레스가 성전건축을 하도록 칙령을 내렸는가를 조사케 하였다. 고레스의 칙령을 발견한 다리오 왕은 칙령에 기록된 내용을 읽고 성전건축을 계속하도록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그 비용을 전부 국고에서 지원하라는 칙령을 내렸다(단6:1-12).
B.C 516년 2월 18일 새 성전이 완공되었다(스6:15). 그리고 4월에는 예루살렘에서 60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유월절이 지켜졌다(스6:19).
9. 에스라와 느혜미야가 가졌던 관심은 각각 무엇인가?
에스라 = 성전재건
느헤미야 = 성벽재건
10. 말라기 선지자가 외친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 하나님께 대한 충성
1) 하나님에 의한 이스라엘의 선택(말1:2, 2:4-6, 10)
2)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의 부정(말1:6, 2:11, 17)
3) 메시야에 대한 선포(말3:1, 4:2)
4)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십일조와 헌물의 봉헌(말3:8-12)
5) 국가들에 대한 환난(말4:1)
6) 마지막 때의 이스라엘의 정화(말3:2-4, 12, 16-18, 4:2-6)
우리가 완전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므로 사랑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하고 부족한 인생에게 관심과 사랑을 항상 가지신다. 아멘.
하나님의 구속사 과제 마침
(총회신학교 2008학년도 통신학부 최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