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중심 철학사

인물중심 철학사 과제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

 

1. 철학을 정의해 보라.

철학(philosophy)은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와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타당하고 적절한 해제를 구하는 행위를 뜻하며, 그와 관계된 모든 사유(思惟)와 노력(努力)을 의미한다.

철학은 우리의 실천과 참여로서의 삶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의 구조와 질서와 법리를 타당하게 설명하기를 권고하며, 철학은 우리가 참여와 실천으로서의 삶을 사는 동안 우리 자신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철학이란 스스로 체득하는 어떤 이념의 체계를 말하기도 한다.

철학은 존재의 학이다. 일반적인 존재 자체의 원리 원칙과 그 근원자체를 연구하는 학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이란 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철학은 어떤 면으로 보면 전체의 학이요 보편의 학이다.

철학은 어떻게 보면 도덕의 원리이며, 가치의 학이다.

철학은 신학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철학이란 무엇이냐 묻는다면 사색의 학이요, 인간이성의 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철학은 사변적이요, 전체적이며,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자각의 학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2. 철학을 분류해 보라.

↗ 존재론 - 본체론(실존) 우주론(생성)

↗ 이론철학

↘ 인식론 - 경험론 합리론

철학

 

↘ 실천철학 → 가치론 - 도덕, 과학, 예술, 종교, 역사, 사회

 

3. 철학사를 개요해 보라

1) 고대 :

철학은 기원전 600년경부터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이 시기에서 기원후 4,5세기, 즉 고대사가 끝날 때까지의 철학을 고대철학이라고 하고, 이 고대철학은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 창시기(創始期)의 철학 : B.C. 6~5세기를 말하며 자연을 대상으로 그 속에 존재하는 변화하지 않는 원질(原質)을 탐구하였다. 원질을 물로 본 탈레스, 무한정한 것이라고 생각한 아낙시만드로스, 공기로 본 아낙시메네스, 또 불생불멸의 ‘있는 것’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파르메니데스, 불이라고 본 헤라클레이토스, 다수의 원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다원론자들이 이 시기에 속한다.

〈제2기〉 아테네기(期)의 철학 : B.C. 5세기 후반이 되자 지금까지 자연을 대상으로 하던 철학은 인간문제를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아스가 이런 전회(轉回)의 첫발을 내디딘 사람이었는데, 결코 객관주의적인 해답은 얻을 수 없다는 상대주의의 입장에 있었다. 이에 반해 인간의 영혼을 철학의 주제로 삼은 것은 소크라테스였다. 그 근본 사상은 ‘덕(德)은 지(知)’라는 것이었고, 제자인 플라톤은 이데아론 사상을, 또 그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사상을 이어 받으면서 독자적인 철학체계를 만들었다. 이 아테네기의 철학은 고대철학의 최성기였다.

〈제3기〉헬레니즘·로마시대의 철학 : 아리스토텔레스 사후에서 고대말까지의 철학을 말한다. 이 시기 초에는 키프로스의 제논이 창시한 금욕주의인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를 창시자로 하는 쾌락주의인 에피쿠로스학파, 퓨론이 창시한 회의학파가 있었으며, 이들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구하려 하였는데, 후기에 이르러 점차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신을 찾고 구원을 얻으려 한다. 피론의 철학,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2) 중세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한다. 395년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자리를 굳히자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확립할 필요가 생겨 교부(敎父)들이 이를 담당하였다. 최대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학파의 철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진정한 기독교적인 철학을 세웠다. 그러나 중세 철학은 역시 스콜라 철학이 이를 대표한다. 본래 교회부속학교 교사들이 세운 철학인데 9세기에서 15세기 중반에 이르며 흔히 초기·중기·후기로 나뉜다.

〈초기〉 9~13세기 초로 대표적인 사람은 안셀무스 등이다. 안셀무스는 ‘알기 위해 나는 믿는다.’고 말하며 신앙내용을 지식에 의해 기초로 삼으려는 생각을 분명히 하였다.

〈중기〉 약 13세기이며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교회의 정통적인 견해와 잘 융합시켜 큰 체계를 세운 스콜라 철학의 제1인자이다. 여기서는 신앙과 지식의 일치라는 확신은 다소 흔들다.

〈후기〉 14~15세기 전반이며 스콜라 철학의 쇠퇴기이다. 대표자 W.오컴은 경험적인 지식을 중시하고그리스도교의 교리는 결코 지식적으로 기초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이런 신앙과 지식의 완전한 분리라는 주장은 스콜라 철학의 붕괴를 의미한다.

3) 르네상스기 :

신앙과 지식의 분리를 주장하게 되자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구애됨 없이 자유로 생각하려는 근대적 정신이 생긴다. 이런 중세적 속박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위한 과도적인 시기가 르네상스시대이다.

이 시기의 철학은 먼저 그리스 철학의 부흥으로 시작된다. 이른바 인문주의이다. 그 중심은 이탈리아였고 대표적인 사람은 플레톤이다. 이런 인문주의운동에서 J.뵈메는 우리들 내부에도 신의 생명이 활동한다는 신비적 범신론을 끌어내었다. 또 신은 자연 속에 내재하여 우주에는 전체적으로 완전한 조화와 미(美)가 성립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자연철학을 말한 G.브루노 등이 있다. 종교개혁을 한 M.루터나 J.칼뱅, 국가를 강대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N.마키아벨리, 근대자연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겔.그로티우스는 근대적 정신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4) 근대 :

이런 과도기를 거친 후 17세기에 근대철학이 성립된다. 인간자신의 입장에 자신을 가지며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려는 것을 그 근본성격으로 한다

〈합리론과 경험론〉 근대에 이르러 먼저 생긴 것은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한 합리론적 철학과 영국에서 성행한 경험론적 철학이다. 이 두 입장은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다. 합리론철학의 창시자는 R. 데카르트이다. 그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신뢰하고, 우리가 이성적으로 확실한 것에서 확실한 것으로 추리해 가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기치로 거기서 신의 존재, 물체의 존재라는 것도 추리에 의해 확실한 신뢰로서 연역된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의 뒤를 이어 합리론 중에 꼽히는 사람은 A.괼링크스, N.말브랑슈 등의 우인론자(偶因論者),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자신의 저서 《에티카(倫理學)》를 논증하려던 B.스피노자, 기계론적 자연관과 종교적 목적관을 조화시켜려 한 G.W.F.라이프니츠, 독일계몽주의 철학자 C.볼프 등이 있다.

경험론 철학은 인간의 인식에서 경험이라는 것이 수행하는 역할을 중시한다. F.베이컨은 경험을 중히 여기며 자연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연연구에서의 귀납법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T.홉스도 기계론적 자연관을 절대라고 생각하고 정신적인 것도 똑같이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둘 다 경험론적 입장에 섰으나 진정한 경험론 철학의 기초를 세운 것은 J.로크이다. 로크는 인간의 인식은 모두 감각과 반성이라는 두 가지 경험에서 생기며 이 경험으로 단순관념이 주어진다. 아무리 복잡한 관념이라도 그 기원은 단순관념으로 분해 된다. 로크의 이런 개념은 G.버클리, D.흄 등에 의해 전개되고, 흄은 경험적으로 보증되지 않은 것을 모두 의심한다는 회의론적 경향을 보인다.

〈칸트의 비판철학〉 이런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을 넘어서려는 것이 I. 칸트였다. 칸트는 인식은 경험 없이 성립될 수 없다는 경험론의 주장을 인정했으나 경험론에 철저하기에는 너무 강한 형이상학적 요구를 가지고 있어 합리론철학에 대한 공감을 버릴 수 없었다. 칸트는 ‘우리의 인식은 결코 사물 그 자체의 모습, 물자체의 세계를 포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식의 대상은 현상계(現象界)에 한정되는 것이나 물자체 세계의 존재의 여지가 남는 것이며 여기에 형이상학이 성립되는 길이 열린다고 말하였다. 칸트는 도덕적 실천의 입장에서 이 형이상학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칸트는 우리의 인식능력 그 자체를 비판함으로써 철학의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으며, 스스로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 불렀다.

〈독일관념론〉 칸트의 철학을 이어 독일에서 일련의 철학이 생겼다. J.G.피히테·F.W.J.셸링·G.W.F.헤겔의 철학, 즉 독일관념론이 그것이다. 피히테는 칸트 철학에서 출발하여 현상계와 물자체라는 이원론을 넘어 절대적 자아(自我)라는 것을 생각함으로써 통일적인 체계를 만들려고 하였다. 셸링은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라는 개념을 넘어 모든 것의 근저에 존재하는 자기 동일적(自己同一的)인 절대자라는 개념에 도달하고, 헤겔은 셰링 철학에서 출발하여 절대자를 자기 동일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기를 실현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헤겔의 철학은 이성을 본질로 하는 절대자의 자기전개에 의해 모든 사상을 설명하려는 것이며 이성주의 적 형이상학이라고 할만한 것이었다.

5) 현대 :

헤겔의 철학은 헤겔 생존에는 큰 세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의 사후 비판을 받게 되었다. 즉 이성주의 적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 비이성주의 경향이 강하게 대두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러므로 헤겔 이후(1830년대 이후)의 철학을 흔히 현대철학이라고 한다. 헤겔 철학의 비판은 실증주의적 입장과 비합리주의적 입장으로 나눈다.

실증주의적 입장으로부터의 비판은 헤겔학파 내부 즉 L.A.포이어바흐 및 칸트.마르크스·F.엥겔스이다. 포이어바흐는 철학은 육체를 가지며 공간적·시간적으로 존재하는 감성적(感性的) 인간을 존중하고 거기서 출발하는 인간학이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주장하였다. A.쇼펜하우어와 S.A.키르케고르는 비합리주의적 입장으로부터 헤겔 비판을 하였다.

쇼펜하우어는 세계의 본질은 이성이 아니며 오히려 비합리적 맹목적인 삶의 의지라 생각하고 염세적 철학을 내세워 생의 철학의 연원이 되었고, 키르케고르는 헤겔과는 달리 역사 속에서 살고 행위 하는 실존으로서의 인간의 입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른바 실존철학의 연원이 되었다. 헤겔 비판으로 생긴 이런 비 이성주의 적 경향은 그 후 계속 이어져 현재에 이른다.

실증주의적 경향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지금도 하나의 세력을 가지고 있으며, E.마흐 등의 실증주의, C.S.퍼스·W.제임스·J.듀이를 주로 한 미국 철학자가 주장하는 프래그머티즘, R.카르납 등의 분석 철학이 있다. 이 분석철학은 현재의 영미철학의 주류를 이룬다.

비합리주의적 경향으로는 철저히 생이라는 것을 긍정하려고 한 F.W.니체, 비약적·창조적인 생을 직감으로 포착하려는 헤겔.베르그송, 생을 해석학적으로 잡으려 한 W.딜타이 등의 생의 철학이 있으며, 실존으로서의 인간을 포착하려는 M.하이데거·칸트.야스퍼스·J.P.사르트르 등의 실존철학이 있다. 이 밖에 후설의 현상학도 극히 유력하며 실존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최근 영미계(英美系) 언어분석철학에서는 마흐나 전기(前期)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논리실증주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경향도 보인다. 즉 프래그머티즘의 입장을 발전시킨 W.O.콰인 등의 네오프래그머티즘과 또 하나는 후기 비트겐슈타인·G.라일·P.F.스트로슨·J.오스틴 등의 영국 일상 언어학파이다.

1960년 이후 위와 같은 활동은 상호비판과 융합을 보이며 광범위한 영어권 철학으로 부상하였다. 영미 외에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포함, 공통 사색의 장을 이루고 활동한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사회정세의 변화로 실존철학이 급속히 약화되고 E.후설의 현상학이 재조명되어 여러 과학과 교류하는 현상학운동이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확대되었다. 해석학도 헤겔.G. 가다머 등이 새로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구조주의는 정신분석·민족학과 관련을 가지며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흐름을 탄 비판적 사회이론은 영미계의 언어 행위 론을 받아들이며 J.하버마스가 독일에서 추진하고 있다.

* 서양 고대철학

서양의 고대철학은 그리스의 아테네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지만 그 시초는 본토가 아니라 식민지인 이오니아지방, 특히 그 중심지인 밀레토스 시에서 발생한 자연철학이었다.

◦ 그리이스에서 철학이 발생한 배경

▫ 도시국가의 발전 : 소아시아, 이태리 남부에 걸친 거대 도시 국가 형성되었다.

▫ 노예가 육체노동을 담당 - 자유 시민은 정치 문화에 전념하였다.

▫ 장사꾼들이 생겨 잔머리가 발달하고 그것이 합리성의 출발점이 되었다.

◦ 그리이스 철학의 주요 과제

▫ 자연의 진행 과정에 대한 자연스러운 해석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 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바뀔까?

▫ 이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제 제기

◦ 모든 것이 생겨난 원래의 물질, 즉 원재료가 있을까?

◦ 물이 포도주로 변할 수 있을까?

◦ 흙과 물이 어떻게 살아있는 개구리가 될 수 있을까?

이 자연 철학자들은

◦ 자연 및 자연의 진행과정에 관심을 가짐

◦ 자연의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심을 가짐

◦ 변화의 이면에 숨어있는 원질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함

◦ 밀레토스인 주된 관심사는 사물의 '물질적 원인(arche)'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음.

 

4. 서양고대철학의 분기를 쓰라

제1기 최초 3학파의 철학(자연의 연구, 600-450년경 B.C.)

미레토스학파(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피타코라스학파(피타코라스)

에레아 학파(파르메니데스, 제논,)

 

제2기 원자론자 및 선험적 철학(인간의 연구. 450-400년경 B.C.)

엠페토크레스, 아낙크사고라스,

 

제3기 개명시대의 철학(체계의 연구, 400-322년경 B.C.)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소크라테스. 프라톤, 아리스토텔레스

 

5. 탈레스에 대하여 쓰라

탈레스 (Thales : B.C 6세기) : 철학의 시조

=만물의 기원(arche)은 물이다. =

밀레토스(Miletos, 에게 해의 이오니아 서쪽 해변에 자리 잡은 작은 항구도시)에서 철학의 불꽃을 점화시킨 탈레스에 관해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것만큼 많은 것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솔론(solon) 및 크로에수스(Croesus)와 동시대인이었고, 그의 모든 활동은 기원전 624년에서 546년 사이에 행하여졌다. 페르시아와의 전쟁 기간에 그는 강물의 흐름을 바꾸는 수로를 파고 더 좁아진 두 개의 강에 다리를 놓음으로써 리디아 왕의 군대로 하여금 넓은 할리스 강을 건널 수 있게 하는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다고 한다. 또한 탈레스는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하는 방식을 고안해 내었는데, 그것은 어떤 사람의 그림자가 그의 키와 같아지는 시간에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재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그는 또한 이집트 여행기간에 습득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식을 통해 기원전 585년 5월 28일의 일식 현상을 예견할 수 있었다. 밀레토스에서도 그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해상에 보이는 배의 거리를 측정하는 도구를 만들었고, 항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선원들에게 작은곰자리가 북쪽을 가리키는 가장 확실한 안내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고대의 사람들은 탈레스를 일곱 사람의 현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꼽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플라톤은 트라키아의 하녀가 그를 비웃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데 탈레스가 왜 비웃음을 샀느냐 하면, 천체(이 지상을 초월한 것)를 관찰하는 데 몰두하여, 구덩이에 빠지는 추태를 연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면서 바로 발밑에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a. 아르케로서의 물

최초에 철학하기를 시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영역에 있어서의 최초의 근원(원리,arche)을 찾아 헤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근원들은 사물의 참된 실체(본질)이며, 이 참된 근원들에서 사물들이 생겨나서는 다시 그것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탈레스는 모든 것의 원리를 물이라고 보았다.

b. 지혜

탈레스가 행한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모든 존재의 기본적인 근거라고 하는 관념인데, 이 개념은 그가 제일 처음으로 제기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형이상학은 특수(개별)과학들처럼 단지 존재의 한 부분만을 잘라내어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존재 자체를 다룬다. 그리고 또 그 형이상학은 제일 근거를 찾아 헤메며, 그렇게 함으로써 감춰져 있는 곤란한 영역에까지 파고들며, 실제적인 목적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앎(지식)자체를 위해서 추구하는 그런 앎이다. 탈레스가 얻으려고 애썼던 것은 바로 이런 앎이었으며, 따라서 그의 학문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요, 형이상학이요, 철학이었던 것이다. 즉 일상적인 인간이나 직접 철학을 하고자 하지는 않지만 개별과학을 하고 있는 사람도, 세계와 삶 전체에 관함 모습만은 항상 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서는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도 없으며, 행위를 할 수도 없으며, 정서가 안정될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즉흥적이고, 아무런 방법도 없이 생각을 한다. 학문적인 형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동기를 제일 처음으로 부여했다는 사실이, 탈레스로 하여금 실제로 철학의 아버지가 되게 했던 것이다.

c. 물활론.

우리는 만물이 물이라고 하는 명제와 만물이 신(紳)들로 가득차 있다고 하는 탈레스의 제이의 명제를 함께 묶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최초의 철학적인 사고가 항상 세계를 인간의 측면으로부터 해석한다는 것, 즉 인간이 자기의 특수하고 독자적인 삶에서 알아낸 범주를 통해서 세계를 질서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탈레스의 신들은 초인간적인 존재이다. 우리는 탈레스가 자석도 쇠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영혼, 즉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아, 특별히 이런 태도를 알아낼 수 있다. 탈레스는 이 끌어당기는 힘을 생명의 측면으로부터만 이해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소위 이런 물활론(物活論)은 자연철학적이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인식론적인 유형에 속하는 태도이다.

d. 신에 관한 학설.

탈레스에게 있어서는 세계가 정말로 신들에 의해서 가득 채워져 있다. 바로 원리(원질)사상이 이런 생각으로 인도해 준다. 생각을 하는 지성(오성)은 백성들이 믿고 있는 신들을 증명해내지 못하나, 피지스(자연)라고 하는 현실에 관한 새로운 경험은 모든 것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적인 것을 다시 보증해 준다.

탈레스에 대하여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Theaetetus)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탈레스가 하늘의 별을 쳐다보다가 개울에 빠졌을 때 한 영리하고 재치 있는 트라키안인 하녀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그녀는 탈레스가 하늘에 떠있는 것을 알려는 열망이 너무 강해서 자신의 발 앞에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고 놀렸다." 플라톤은 계속해서 "이것은 모든 철학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의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들을 열심히 알려고 했던 탈레스의 다른 약점을 모르고 있는 모든 철학자들에게 말이다."

[정치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탈레스가 말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하나의 이야기는 돈을 버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그는 가난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왜냐하면 가난은 철학의 무용성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기상학적 지식으로부터 얼마 안 되는 금액으로 그 해 초 밀레토스와 키오스의 모든 올리브 창고들을 선약했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매우 낮은 값으로 창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여름이 되자 갑작스럽고도 동시적인 수요가 생겨났다. 그는 자신이 선약해 두었던 창고들을 모두 풀었다. 많은 재산을 모은 그는 철학자들도 그들이 원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러기를 원하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러나 탈레스가 유명한 것은 그의 일상적인 지혜나 명민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유(思惟)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유에서 그가 최초의 철학자라는 칭호 및 모든 학문의 발화자라는 존경을 받는 것이다.

탈레스의 새로운 탐구는 사물들 본성에 관한 것이었다. 만물은 무엇으로 되어 있으며, 어떤 종류의 [재료]가 사물을 구성하는가?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그가 파악하려 했던 것은, 우선 땅과 구름과 바다 같은 서로 다른 사물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과 이들 중 몇몇 사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어떤 것으로 변화한다는 사실과 또한 그것들이 어떤 점에서는 서로 닮았다는 사실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착상이었다. 즉 다양한 사물들 간에는 차이점들이 존재하지만, 그것들 모두에게는 어떤 근본적인 유사점이 존재한다는 생각, 다시 말해 다자(多者 : the many)는 일자(一者 : the one)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생각으로는, 모든 물질적 실재의 근저에는 몇 개의 단일 요소들, 몇 개의 재료(stuff)들, 즉 그 자체의 행동이나 변화의 원칙을 내포하는 어떤 재료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일자(一者) 혹은 이 재료는 바로 물(水)이었다.

탈레스는 우주(cosmos)가 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행위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롭고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 또한 universe 나 world 라는 용어 대신 cosmos 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이 후의 그리스인들은 cosmos 라는 말을 사용할 때 모든 현상에 대해 질서 있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러한 까닭에 탈레스를 유물주의 철학의 창시자로 보는 견해가 널리 인정되었으며, 그 추종자들은 우주가 어떤 간단한 것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물질의 기본적인 요소가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물질로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 탈레스가 물이 모든 사물의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단순한 사건들의 관찰에서 그 결론을 이끌어 내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아마도 만물의 영양소가 수분이라는 사실을, 또한 열이 수분에서 발생하여 수분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관조함으로써 .... 또한 만물의 씨앗들이 수분을 가지며 그 수분의 근원이 물이라는 사실로부터 그는 그의 생각을 끌어냈다."고 하였다. 또한 동양철학의 노자(老子) 역시 물을 만물의 원천으로 생각하여 찬미하였으나 탈레스의 물과 노자의 물은 그 성격이 판이하다고 할 수 있다. 노자의 물은 하나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에 불과한데 비해 탈레스의 물은 물질의 본원적 근원이며, 모든 물질의 궁극적 형태라는 논조를 취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논의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스의 만물의 구성에 대한 분석은 그가 세계의 본질에 관계된 질문을 제기하였다는 사실 자체에 비할 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며, 그의 그러한 자세는 새로운 탐구로의 길을 열어 주어 이후의 분석을 통해 그의 주장의 타당성을 논의할 수 있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지되거나 반박될 수 있게 하였다. 비록 그에게는 "만물은 신(神)들로 충만 되어 있다."는 사고방식 - 탈레스에게 있어 그것은 어떤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암석들 자체가 품고 있는 자기력(磁氣力)이나 그 외 여러 속성과 같이 사물들이 본유(本有)한 힘을 설명하기 위한 것 -이 있긴 하지만, 탈레스는 사유(思惟)의 초석을 신화적 근거로부터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탐구의 지평으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선택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탈레스의 이러한 원초적인 출발점을 따랐으며, 그것은 그들의 역사에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열도록 촉발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6. 아낙시만더에 대하여 쓰라

아낙시만더 (Anaximander : B.C 610 - 545)

= 만물은 Apeiron(무한자)에서 생긴다 =

아낙시만드로스도 탈레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역시 밀레토스에 살았었다. 유럽최초의 철학책은 그의 손으로 쓰여진 것이다. 이 책에는 '자연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뜻의 자연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철학이나 형이상학을 뜻하고 있다. 그는 지도, 천체의(天體儀) 및 해시계 등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a. 아페이론.

그에 의하면 아르케(원리, 원질)는 아페이론(Apeiron)이다. 이 아페이론은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것, 또는 무한하게 규정되지 않은 것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아페이론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더 자세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뜻함과 동시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끝이 없는 것, 영원한 것 및 어디에나 항상 있는 것 등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낙시만드로스는 결과적으로 탈레스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존재의 원리를 파악하게 되었다.

b. 세계의 형성.

세계가 형성되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가지 대립들, 즉 따스함과 차가움, 축축함과 마름과 같은 것들이 아페이론을 구별 짓는다. 이러한 분리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 무한히 많은 세계와 그 내용들이 생겨난다. 이런 세계들이 이미 '코스모스'라고 생각되고 있었다는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세계는 서로 대립되는 것들로 질서 지워져 있다고 하는 생각에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는 지구란 그 직경이 높이의 세 배가 되는 하나의 원기둥이다. 그리고 이 원기둥의 주위를, 지구의 반경의 아홉 배( 3 x 3 = 1 x 9 )되는 거리에 떨어져서 별들이 돌고 있으며, 십팔 배 ( 2 x 9 ) 되는 곳에서 달이 , 이십칠 배 ( 3 x 9 ) 되는 곳에서 태양이 돌고 있다. 원래 액체로 되어 있던 지구 위에, 분리되는 과정이 진행되어, 그런 결과로 습기로부터 생물이 생겨났다. 이 생물은 처음에는 가시 돋친 피부로 감싸여져 있었으나, 이 피부들이 찢겨지고, 다른 형태의 피부가 생겨났다. 인간도 역시 애초의 원시적인 형태에서 생겨났다. 인간의 직접적인 조상은 물고기였는데, 이 물고기는 옛날에는 상어처럼 물 속에 살다가, 뭍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육지로 올라왔다. 이것이 최초의 진화론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무한한 세계를 생물, 즉 정령(精靈)들과 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사물의 근원적 실체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내세운 것 이외에도, 아낙시만더는 그의 새로운 생각을 위한 몇 가지 설명을 시도함으로써 철학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탈레스는 제 1 재료가 어떻게 현실의 많은 개별적 사물들이 되어 가는가를 설명하지 못하였지만 아낙시만더는 이 문제를 정확히 표현하였다. 즉, 모든 물질은 그 속성이나 성질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사물이 형성되는 초기에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제 1 실체의 운동의 결과로 분리되어 온(溫 : 불)과 냉(冷 : 공기)과 습(濕 : 물)과 건(乾 : 땅)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설명에도 애매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지식의 발전에 있어 진일보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의 불가능한 신비로운 용어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대신,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가설로 다루려는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물들의 기원에 관한 주장에는 몽상가적 사색의 기호가 엿보인다. 왜냐하면 비결정적인 무한성을 근원적이며 파괴될 수 없는 제 1 실체로 묘사하면서도, 이 실체가 영원한 운동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결과로 다양한 특정한 요소들이 그 근원적 실체로부터 하나의 "분리(separating off)"로서 생겨나며, 이처럼 "하나의 영원한 운동이 있어 이를 통해 만물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한 아낙시만더는 천체(天體)와 지상의 공기 유동을 설명하려 했고, 별들의 질서 정연한 운동에 대해 기계적인 설명을 하였다. 땅을 물 위에 떠 있는 원판형의 평면이라고 생각했던 탈레스와는 달리 아낙시만더는 땅을 원통 모양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다루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태어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다로부터 땅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다른 종류의 피조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아낙시만더에 의하면, 다른 피조물은 빨리 독립하는 데 반해 인간만이 오랜 기간 동안 양육되므로 따라서 만일 현재의 인간이 인간의 원형(原型)이었다면, 인간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낙시만더는 생멸하는, 즉 창조와 파괴가 부단히 교체되는 많은 세계와 많은 체계의 우주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에게 있어서 그 세계를 하나의 연결로 묶는 어떤 순환 과정은 엄격한 필연성에 따라 정연한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 정연함의 배후에 비결정적이며 무한한 성능이 존재하였으며, 그것은 필연성 자체를 이루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본질상 반대되는 힘들의 상충은 그가 시적으로 표현했던, 그것들의 궁극적 파멸을 요구하는 이른바 불의(不義 : injustice )를 낳기 때문이다.

"만물은 자신들이 파멸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생겨났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그 곳에서 그들은 처벌받고 시간의 질서에 따라 서로서로 자신들의 불의를 배상한다."

 

7. 아낙시메네스에 대하여 쓰라.

아낙시만더 (Anaximander : B.C 610 - 545)

= 만물은 Apeiron(무한자)에서 생긴다 =

아낙시만드로스도 탈레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역시 밀레토스에 살았었다. 유럽최초의 철학책은 그의 손으로 쓰여진 것이다. 이 책에는 '자연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뜻의 자연철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철학이나 형이상학을 뜻하고 있다. 그는 지도, 천체의(天體儀) 및 해시계 등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a. 아페이론.

그에 의하면 아르케(원리, 원질)는 아페이론(Apeiron)이다. 이 아페이론은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것, 또는 무한하게 규정되지 않은 것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아페이론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더 자세하게 규정할 수 없는 것을 뜻함과 동시에, 시간적 공간적으로 끝이 없는 것, 영원한 것 및 어디에나 항상 있는 것 등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낙시만드로스는 결과적으로 탈레스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존재의 원리를 파악하게 되었다.

b. 세계의 형성.

세계가 형성되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그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는 여러 가지 대립들, 즉 따스함과 차가움, 축축함과 마름과 같은 것들이 아페이론을 구별 짓는다. 이러한 분리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 무한히 많은 세계와 그 내용들이 생겨난다. 이런 세계들이 이미 '코스모스'라고 생각되고 있었다는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세계는 서로 대립되는 것들로 질서 지워져 있다고 하는 생각에서 분명히 알 수가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는 지구란 그 직경이 높이의 세 배가 되는 하나의 원기둥이다. 그리고 이 원기둥의 주위를, 지구의 반경의 아홉 배( 3 x 3 = 1 x 9 )되는 거리에 떨어져서 별들이 돌고 있으며, 십팔 배 ( 2 x 9 ) 되는 곳에서 달이 , 이십칠 배 ( 3 x 9 ) 되는 곳에서 태양이 돌고 있다. 원래 액체로 되어 있던 지구 위에, 분리되는 과정이 진행되어, 그런 결과로 습기로부터 생물이 생겨났다. 이 생물은 처음에는 가시 돋친 피부로 감싸여져 있었으나, 이 피부들이 찢겨지고, 다른 형태의 피부가 생겨났다. 인간도 역시 애초의 원시적인 형태에서 생겨났다. 인간의 직접적인 조상은 물고기였는데, 이 물고기는 옛날에는 상어처럼 물 속에 살다가, 뭍에서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육지로 올라왔다. 이것이 최초의 진화론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무한한 세계를 생물, 즉 정령(精靈)들과 신들이라고 생각했다.

사물의 근원적 실체에 관한 새로운 생각을 내세운 것 이외에도, 아낙시만더는 그의 새로운 생각을 위한 몇 가지 설명을 시도함으로써 철학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탈레스는 제 1 재료가 어떻게 현실의 많은 개별적 사물들이 되어 가는가를 설명하지 못하였지만 아낙시만더는 이 문제를 정확히 표현하였다. 즉, 모든 물질은 그 속성이나 성질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며, 사물이 형성되는 초기에 서로 상반되는 것들이 제 1 실체의 운동의 결과로 분리되어 온(溫 : 불)과 냉(冷 : 공기)과 습(濕 : 물)과 건(乾 : 땅)이 나온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설명에도 애매한 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지식의 발전에 있어 진일보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의 불가능한 신비로운 용어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대신,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가설로 다루려는 시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물들의 기원에 관한 주장에는 몽상가적 사색의 기호가 엿보인다. 왜냐하면 비결정적인 무한성을 근원적이며 파괴될 수 없는 제 1 실체로 묘사하면서도, 이 실체가 영원한 운동을 갖는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결과로 다양한 특정한 요소들이 그 근원적 실체로부터 하나의 "분리(separating off)"로서 생겨나며, 이처럼 "하나의 영원한 운동이 있어 이를 통해 만물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또한 아낙시만더는 천체(天體)와 지상의 공기 유동을 설명하려 했고, 별들의 질서 정연한 운동에 대해 기계적인 설명을 하였다. 땅을 물 위에 떠 있는 원판형의 평면이라고 생각했던 탈레스와는 달리 아낙시만더는 땅을 원통 모양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기원을 다루면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태어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다로부터 땅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이 다른 종류의 피조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아낙시만더에 의하면, 다른 피조물은 빨리 독립하는 데 반해 인간만이 오랜 기간 동안 양육되므로 따라서 만일 현재의 인간이 인간의 원형(原型)이었다면, 인간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낙시만더는 생멸하는, 즉 창조와 파괴가 부단히 교체되는 많은 세계와 많은 체계의 우주가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에게 있어서 그 세계를 하나의 연결로 묶는 어떤 순환 과정은 엄격한 필연성에 따라 정연한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 정연함의 배후에 비결정적이며 무한한 성능이 존재하였으며, 그것은 필연성 자체를 이루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본질상 반대되는 힘들의 상충은 그가 시적으로 표현했던, 그것들의 궁극적 파멸을 요구하는 이른바 불의(不義 : injustice )를 낳기 때문이다.

"만물은 자신들이 파멸되었을 때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생겨났던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그 곳에서 그들은 처벌받고 시간의 질서에 따라 서로서로 자신들의 불의를 배상한다."

 

8. 피타고라스학파에 대하여 서술하라

피타고라스(Pythagoras 582-496 B.C.)

= 만물은 수의 조화로 규정 된다 =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82년에 소아시아 사모스섬에서 태어나, 532년(B.C.)경 남부 이탈리아의 크로오톤으로 이주하여, 주로 메타폰툼 시에서 철학 활동했음이 틀림없고 기원전 496년 거기서 죽었다. 그는 이론적이며 종교적인 교단인 오르페우스(Orpheus)를 창립하였고 학문과 정치에도 활동하였다.

오르페우스교(敎)란 신화적 시인 오르페우스가 시작하였고 영혼의 전생(轉生)과 영생을 믿고 금욕적 도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즉 윤회 및 사후의 응보설을 주장하고 육식을 금하였으며 피타고라스는 이 교리의 영향을 받아서 정화에 의하여 인간을 육체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a. 수의 철학과 페라스와 아페이론 조화와 코스모스.

피타고라스는 수가 만물의 원리(Arche)라고 가르침으로써 형이상학에 이름을 남겼다. 이렇게 됨으로써 존재자의 원리는 종전처럼 질료에서 찾아지지 않고 형상 속에서 찾아졌다. 수는 형상을 부여하는 자요, 이 형상을 통해서 규정되지 않았던 것이 규정된 것으로 된다.

페라스(규정을 내리는 자)가 수로 하여금 수이게 해주며, 이 수는 피타고라스가 그들의 형이상학을 도맡게 하는 원리가 된다. "위대하고 완숙하고 모든 작용을 다하며, 하늘과 인간의 삶의 근원이고 지도자이며, 모든 것에 참여하는 것은, 수의 힘이다. 이 수의 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한계 지워지지 않고, 불명확하며, 볼 수가 없다."

수는 홀수와 짝수로 이루어지고 있다. 피타고라스는 그 두 종류의 수에 성격을 다음과 같이 부여했다.

홀수(1,3,5,7,9) - 한계 , 하나 , 오른쪽 , 남 , 고정됨 , 직선 , 빛 , 선 , 정방형

짝수(2,4,6,8,0) - 무한 , 많음 , 왼쪽 , 여 , 움직임 , 곡선 , 어둠, 악 , 구형

보라! 1은 하나의 점이요 (*), 2는 하나의 선( *---*)이며, 삼은 하나의 면(세 꼭지 점은 삼각형의 면을 형성한다), 4는 하나의 입체(네 꼭지 점은 하나의 입체를 형성한다)이다. 이처럼 수로부터 입체의 물체를 형성시켜 가졌다.

옥타브는 2:1 의 비율에 의해서 생기고, 제5음은 3:2 , 그리고 제4음은 4:3 의 비율에 의해서 각각 생긴다. 완전한 협화음이라 불리우는 음계의 음정이 1, 2, 3, 4의 수 사이의 비율로서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알아냈다. 이것들은 함께 합하면 10이 되는 수들이고, 10이라는 수는 수학과 신비주의의 저 진기한 피타고라스적 결합에 있어서 완전수로 일컬어졌다. 그것은 도식으로는 tetra칸트tys 라 불리는 도형, 즉

*

* *

* * *

* * * *

에 의해서 설명되고 있다. 10개의 점은 가장 완벽하고 안정된 삼각형을 만든다.

음악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음들이 현(弦)의 길이와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화음은 확고부동한 수의 관계에 의해서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옥타아브의 진동수는 기본음에 대해서 2대1, 제5도의 진동수는 3대2, 제4도는 4대3의 관계에 있다고 한다.

b. 대우주년.

대우주년의 학설에 의하면, 세계(우주)의 과정은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커다란 원(순환)을 그리고 있다. 별들과 체계는 항상 거듭해서 다시 같은 장소에 되돌아온다. 그리고 세계 시계는 새로이 진행하는데, 영원히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만물이 이렇게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것은 가장 작은 사물들에 있어서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만물이 영원히 순환한다고 하는 학설 속에 우주가 조화 잡혀 있다고 하는 생각이 들어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코스모스(조화가 이룩된 세계) 개념의 기초는 수이다.

 

9. 파르메니데스 학설을 서술하라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540- 470. B.C.)

=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

파르메니데스는 순수한 엘레아 출신이며, 이 도시국가에다 국법을 제정해 주었다고도 한다. 크세노파네스가 파르메니데스의 스승이었다고도 한다. 파르메니데스의 저작은 전해져 내려오는 그대로(관례대로) '자연에 관해서'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저작은 육중하고 당당한 육보 구(六步句)의 시체(詩體)로 쓰여져 있다. 제1부는 진리에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고 있다. 이 길은 존재에로 나아가는 길이며,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은 바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시의 2부는 억견(臆見)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억견의 길은 가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며, 일반적인 죽어버릴 자들이 걸어가는 길이다.

1) 진리에로의 길.

존재자는 있다. - 사람들은 항상 오직 존재자만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무(無)는 없다. 파르메니데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성은 없고 존재만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명제에서 '존재자'라는 말을 강조하고 이 말을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성'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란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정지해 있다는 뜻을 갖는다.

사고는 존재다. - 사고와 존재는 동일하다. 사상과 우리들이 그것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은 동일하다. 왜냐하면 말해지는 그 존재자가 없으면, 사고를 만날 수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있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반대편에 서서, 생각되어질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일종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와 모든 것. - 서로 연관이 되어 있는 존재가 있다. 이런 존재는 하나(一)요, 모든 것(萬物)이다. 여러 개의 세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존재 전체는 하나요, 보편적이어서 항상 도처에서 동일한 것이다.

2) 억견(臆見)의 길.

억견이 이성적인 인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각적인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세계의 생성과 다수성이라고 하는 모습은 이런 감각을 바탕으로 해서 생긴다. 이런 모습은 사실에 있어서 망상이요 공상이다. 감각적인 인식이 이상(理想)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대중은 억견과 가상(假象)으로 만족하고 있다. 학문적인 진리는 그것이 참된 진리인 한, 영원히 동일한 진리다.

 

10. 제논의 학설들을 서술하라

제논(Zenon, 기원전 460년경)

= 변증법의 창시자 =

제논도 순전한 에레아 출신이며, 파르메니데스가 가장 귀여워했던 제자다. 제논은 다수성과 운동은 없고, 오직 정지해 있는 한 가지의 존재만 있다고 하는, 파르메니데스의 학설을 기초 지려고 하면서 운동을 부정하는 네 가지의 유명한 증명을 가지고 있다.

1) 운동을 할 때에는, 우리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운동은 없다. 모든 구간들은 연장된 것으로서 무한히 많은 조그마한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다. 무한히 많은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재려고 하는 것은, 끝이 없는 어떤 것의 끝에 이르려고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낼 수 없다. 즉 그가 앞서 있는 거북이에게까지 가는 동안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에 거북이도 그만큼 멀리 간다. 계속해서 이렇게 된다.

3) 나르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 화살은 겉보기로만 움직이고 있을 뿐, 사실에 있어서는 매순간마다 공간의 일정한 부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어떤 장소에 있는 것으로서의 '존재(있음, 있는 것)'는 원래 정지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화살이 날아가는 그 거리는 무한히 많은 이런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화살은 움직이고 있지 않다.

4) 모든 운동은 환각(幻覺)이다. 왜냐하면, 두 개의 물체(a,b)가 꼭 같은 속도로 동일한 공간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이 두 개의 물체가 같은 공간에 정지하고 있는 물체(c)를 지나, 서로 교차할 때, 원래의 속도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11. 엠페이도클레스의 학설을 서술하라

엄페이도클레스(Empeido칸트les, 492-432. B.C.)

엄페이도클레스는 아크라가스, 즉 오늘날의 시칠리아 섬의 아그리겐토 출신으로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심신의 정화를 주장하는 종교의 사제요, 선지자요, 신비 가였으며, 다른 편으로는 순회설교가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으며, 정치가요, 의사고 시인인 동시에 냉정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정화(淨化)"와 "자연에 대하여"라는 저작들 중의 유명한 단편이 아직도 남아 있다.

1) 원소.

엄페이도클레스가 첫 번째로 제기한 문제도 역시 원리(Arche)문제였다. 밀레토스학파의 사람들이 오직 한 가지의 근본 질료만을 가정했던 것과는 반대로, 그는 네 가지의 근본적인 실체를 주장하는데, 이 네 가지의 실체는 불, 물, 공기, 흙이다. 이것들은 존재의 네 가지 '뿌리'다. 이 네 가지의 뿌리들이 섞여지고 흩어지고 함으로써,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 네 가지는 질적으로 궁극적인 것으로서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는다. 존재의 뿌리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말로 해서, '원소'의 개념이라는 말로 남아있다. 원소와 관련되어 있는 세계의 궁극적인 구성요소가 영원하다고 하는 그의 두 번째 생각은 후세의 사람들이 "물질보존의 법칙"이라고 한다.

2) 사랑과 미움

엄페이도클레스는 질료에다 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원초적인 실체는 어떻게 하든 움직여야만 한다. 이 운동은 두 가지의 원초적인 힘, 즉 사랑과 미움에 의해서 생긴다. 당장 모든 것들이 사랑 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다가, 당장 다투는 미움 속에서 하나하나의 사물로 분리되어 버린다.

3) 기계론.

끊임없는 혼합과 분리는 '서로 뒤바뀌면서', '차례와 시간이 바뀌면서' 행해진다. 이러한 혼합과 분리는 존재 그 자체인 법칙에 의해서 생긴다. 따라서 스스로 생기는 것이며,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12. 데모그리토스의 학설을 서술하라

데모크리토스(Demo칸트ritos, 460-370.B.C.)

1) 존재 - 원자.

데모크리토스 철학의 기본사상은 원자에 관한 이론이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있어서도, 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한 가지 모양의 존재가 있을 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파르메니데스의 하나밖에 없는 존재를, 그 이상 나눌 수 없기 때문에 원자(Atom = 나눌 수 없다는 뜻)라고 불리는 궁극적이고 가장 작은 분자로 분해 시킨다. 원자는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꿰뚫고 나갈 수 없는 것이며, 무겁고, 영원하며, 파괴할 수도 없는 것이다. 원자의 수는 무한하다. 원자에는 질(質)이 없다. 모든 원자들은 꼭 같은 종류다. 그러나 원자의 모양과 크기들은 다르다. 또 원자들은 서로 다르게 배열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위치를 택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해서, 즉 순수히 양적인 계기들에 의해서 사물들 사이의 차이가 설명될 수 있다.

2) 공간.

원자의 개념에는 텅 비어 있는 공간의 개념도 속한다. 모든 것들이 다 함께 엉켜 붙어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있지 않는 이상,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탁 벌어져 있는 존재 사이에는, 있지 않은 것, 즉 텅 비고,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있다. 이 텅 비어 있는 공간은 물체들이 구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체들 안에도 있고, 또 부분적으로는 물체의 밖에도 있다.

3) 운동.

원자들은 텅 빈 공간에서 움직인다. 운동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운동은 영원하며, 강제적으로, 즉 압력과 충돌에 의해서 생기며, 자동적이다.

 

13. 아낙사고라스의 학설을 서술하라.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500-428.B.C.)

= 원자는 불생불멸이다 =

아낙사고라스는 이오니아(클라쓰메나이)의 철학을 아테네로 가지고 간다. 그런데 이 아테네는 물론 그 도시의 최초의 철학자에게 신을 모독했다는 판결로 보답했다. 그 이유는 아낙사고라스가 태양은 신이 아니라, 이글거리는 돌덩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이런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람프샤코스로 피해 가서, 거기서 최고의 존경을 받다가 죽었다. 그가 타향에서 죽는 것을 불쌍히 여겼을 때, 그는 저세상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서나 거리가 같다고 말했다.

a.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

아낙사고라스는 인간이 섭취하는 영양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 " 어떻게 해서 머리칼이 아닌 것에서 머리칼이 생겨나고 고기가 아닌 것에서 고기가 생겨나는가?"고 묻는다. 그래서 그는 어떤 것으로 된 소재(자료)는 앞으로 될 것과 종자로서는 이미 동일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궁극적인 구성요소는 씨앗이며, 따라서 완성된 산물과 질적으로 꼭 같다. 이 궁극적인 구성요소는 동질소(同質素)이다. 완성되어 있는 사물들은 영원하며, 파괴되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는다. 한 가지 정해진 질이 우세함으로서, 개별적인 사물이 그 특색을 갖게 된다. "그 중에서도 하나의 사물에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것, 그것이 가장 분명하게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서, 하나의 개별적인 사물을 형성하고 있으며, 또 형성해 왔다."

b. 세계는 물질 이상의 것이다.

형상론적-목적론적으로 존재를 해명하는 일은, 논리적임과 동시에 다이나믹(역동적)이기도 한 한 가지의 원리를 전제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아낙사고라스는 사고하는 힘임과 동시에 의지의 힘이기도 한 정신을 이 원리라고 생각했다. 그의 NOUS(누스,정신)는 만물들에 있어서의 운도의 근원이며, 동시에 질서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 NOUS는 무한한 것이요, 자주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전지하고 전능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14.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쓰라.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에 아테네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조각가였고, 어머니는 산파(조산원)였다. 그 자신의 관심을 끈 것은, 돈벌이가 아니라 철학이었다. 그렇다고 그의 관심을 끈 철학이 옛날 이오니아의 철학은 아니었다. 그의 사고의 중심이 된 것은 인간이었다. 인간이라도, 진리와 가치가 그를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써서 남긴 것이 없다. 그 대신에 그는 살아있는 철학을 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항상 거듭해서 꼭 같은 것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문제들은 본능적인 수치감이 있을까? 결코 해서는 안 될 것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으며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으며 올바른 인식은 안에서 비롯한다고 보았으며, 무엇이 옳은지 아는 사람이라야 옳은 일을 한다고 설파했다.(지행합일)

소크라테스의 젊었을 때의 일에 관하여 확실한 것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낯익은 것은, 늙은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거리나 체육 장에서 아름다운 청소년들을 상대로, 또는 마을의 유력한 사람들을 상대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착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에 관하여 묻고 있는 모습이다(이것을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라 함). 이와 같은 문답의 주제는 대부분 실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문답은 항상 “아직도 그것은 모른다.” 라고 하는 무지(無知)의 고백을 문답 자가 상호간에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 때 상대방은 소크라테스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은 자기는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 여기에서 자기의 무지를 폭로당한 사람들은 때로는 소크라테스의 음흉한 수법에 분노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참뜻은, 모든 사람이 자기의 존재 의미로 부여된 궁극의 근거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 그것을 묻는 것이 무엇보다도 귀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촉구하는 데 있다. 물론 소크라테스가 이 근거를 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궁극적인 근거에 대한 무지를 깨닫고(무지의 지), 그것에 대한 물음을 통하여 이 “막다른 벽” 속에 머무는 데 소크라테스의 애지(愛知:철학)가 있다. 그것은 내 자신을 근원부터 질문당하는 곳에 놓아두는 것이며, 이러한 방법으로 내 자신이 온통 근원에서부터 조명(照明)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두 눈이 튀어나왔으며, 코는 짜부러진 사자코로 그 용모는 추하였다. 그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그의 말에 매료되고 그의 내면에 사로잡혔다. 이렇듯 외면과 내면의 이율배반에 그의 존재의 본질이 있다. 그 때까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의 원리를 묻곤 하였는데, 소크라테스에서 비로소 자신과 자기 근거에 대한 물음이 철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내면(영혼의 차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에 대한 물음은 자기를 지탱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초월)에 대한 물음이라는 의미에서 그는 형이상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내면은 근거에 의해 질문당하는 데서 생기는 막다른 벽 안에 끝까지 머무는 애지의 동반자로서만 제시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외부와 내면의 틈을 통해 개시(開示)되는 근원의 문제를 철학적 관심을 중심으로 그 생(生)과 사(死)의 증거를 가지고 정착시킴으로써 서양철학의 무게를 한 몸에 짊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크세노폰은 적과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대한 그의 용기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플라톤은 밤새워 술을 마시고도 그가 끄떡없었다고 전해주고 있다.

아르기누스의 재판에서, 그는 분노에 들떠 있는 백성들에게도 자기의 의견을 꿋꿋이 주장했고 30인의 참주들이 국가의 권능을 이유로, 정치적인 살인에 편들어 주기를 요구했을 때, 그는 직위와 생명을 무릅쓰고, 과감히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거부를 당한 사람들의 미움과 광란은 가라앉지를 않았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정치가 개입되어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알키비아데스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399년, 사람들은, 그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새로운 신들을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그를 신을 모독한 자라고 재판했다. 그는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를 않았었다. 그 이유는 자기 안에 있는 소리, 즉 다이모니온이 자기 자신과 동포들을 시험(음미)하라고 한 델포이의 신이 그에게 내린 과업을 충실히 지켜야 한다고 속삭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를 변호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친애하는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에게보다도 신을 더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숨을 쉬고, 힘이 있는 한, 진리를 추구하고 여러분에게 경고를 하고 계몽을 하며,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나의 여태까지의 방법대로, 양심적으로 이야기하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여, 가장 위대하고 정신적인 도야로 뛰어난 도시의 시민인 너는, 너의 지갑을 가능한 한 많이 채우고, 명성과 존경을 받으려고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덕적인 판단, 진리 및 너의 영혼을 개선하는 데는 조금도 관심이 없고, 또 노력도 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는 죽지 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최후까지 친구들과 더불어 영혼의 불멸에 관해 철학하면서, 조용히 그리고 점잖게, (독인삼의 잔)을 마셨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모습을 갖춘 철학 그 자체다. 그는 지성만 가지고 철학했던 것이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지고 철학했었다. 우리들은 그의 본질(존재) 전체 속에서, 진리가 무엇이며,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의 철학은 실존적인 철학이었다.

 

산파술(maieuti칸트e)

소크라테스의 대화 방법이다. 여기에는 소극적 측면인 소크라테스적 반어(反語:eironeia)와 적극적 측면으로서의 산파술을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대화의 상대자로부터 로고스(論說)를 끌어내어 무지(無知)의 자각, 아포리아에로 유도하는 소크라테스의 독특한 무지를 가장(假裝)하는 태도이고, 후자는 상대방이 제출한 논설이나 질문을 거듭함으로써 개념규정을 음미하고 당사자가 의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을 낳게 하는 문답법이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스스로 이제 새로운 지혜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은 없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낳는 것을 도와 그 지혜의 진위(眞僞)는 식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활동을 어머니의 직업인 산파에 비유, 산파술이라고 불렀다.

 

15. 플라톤의 철학의 개요를 약술하라.

최초의 철학자들인 밀레토스 학파는 주로 물질적인 자연의 구성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 도덕의 기초에는 관심이 없었다. 엘레아 학파의 파르메니데스와 제논 역시 실재(實在)란 하나의 변화하지 않고 단일한 실재, 즉 유일자(有一者)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와는 다르게 피타고라스 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실재는 항상 변화하고 유전(流轉)하는 것으로 파악했고, 또한 그 실재가 다양한 사물들로 구성되었음을 보여 주었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들은 물질적인 자연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 대신 철학을 도덕의 영역으로 개편하였다. 플라톤의 위대한 바는 그 모든 관심을 하나의 통합된 사상 체계로 포섭했다는 점에 있다.

플라톤은 다양한 사물들에 대한 상식적인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 수많은 사물들의 이치를 파악하기 위해 정신은 우선 이 현상적인 사물들이 움직이는 이유를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이를 위한 시도를 통해 사물들의 배후에 존재하는 세계를 채택하였다. 그것은 사유(思惟) 및 이데아들의 세계, 즉 과학의 세계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물질적인 사물들은 정신을 물리학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에 대한 지적 이해가 요구되었다. 왜냐하면 사물들- 개별적인 사물이 아니라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는 모든 사물들 -을 이해하기 위해서 정신은 우선 사물들이 그것들의 활동에서 준수하는 원리들과 규칙들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규칙들에 관한 사유의 모델이 수학이었다. 왜냐하면 수학은 개별적인 것과 연결되지 않고도 사유(思惟)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수학은 플라톤을 형이상학의 영역에로 이끌 수밖에 없었다. 물리학이 현상(現象)의 세계로부터의, 즉 가시적 사물들의 위에 혹은 배후에 존재하는 이데아의 세계에로의 정신의 유입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면, 이 단계에서 또 하나의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대두되는데, 그것은 이 이데아의 세계가 존재하는가 혹은 실재하는가의 문제이다. 실로 상식과는 반대로, 플라톤은 가장 실재적인 것이 바로 이 이데아의 세계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두 개의 사과는 사라져도, 사과라는 이데아, 둘이라는 이데아는 초시간적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플라톤은 진리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는 그들이 이 두 세계를 혼동하는 데서 연유한다고 주장했다. 현상계(現象界)가 속견(俗見)만을 낳는다면, 초시간적인 이데아의 세계는 참된 지식을 제기할 수 있다. 여기에서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에 대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논박을 계승했다. 어떤 사물에 대한 참된 지식은 획득될 수 없다는 소피스트들의 주장은 학문과 지식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한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도덕적 상대주의를 거부했고, 자신의 인식론은 형이상학에서 윤리학에 이르는 확고한 다리를 놓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만일 우리가 사물의 참된 본성인 실재(實在)- 인간의 참된 본성을 포함하는 -에 대해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을 동시에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은 처음에는 한 개인의 문제였다가 그 다음에는 동료들을 포함하는 문제가 되며, 결국에는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 관한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러한 인간의 관심의 세 측면은 윤리학, 정치학, 종교라는 세 가지의 분리된, 그러면서도 서로 연관된 분야들에 의해 취급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인식론을 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 종교 문제, 그리고 예술론과 결합시켜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탐구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의 인식론을 그만큼 신중하게 접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서구인의 정신을 기초하였다. 서구 문명의 도덕 철학과 과학적 전통은 본질적으로 플라톤의 사상이 이룩한 업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철학은 거대했고 긴 생명력을 발휘하였다.

플라톤의 전작품은 하나의 철학 체계를 구성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플라톤 자신은 그의 사상을 그렇게 명료한 체계로 조직화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 체계의 수립이란 인위적인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의 많은 대화편은 하나의 충실한 철학 체계의 요소들을 내포함에 틀림없지만, 우리가 그의 사상에 대해 체계적인 정리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은 하나도 없다. 플라톤은 정신의 자유가 보존되기를 원했으며, 이러한 이유에서 그에게 새로운 생각이 찾아들면 자신의 개념들을 수정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주제에 관해 서술했었다고 해서 그 주제에 관한 그 이후의 논의의 여지를 폐쇄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대화편들은 그의 지적 발전 과정을 반영하고 있으며, 강조와 통찰력에 있어서의 변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지만 플라톤의 작품들에는 명확한 주제들과 그 주제들을 취급한 독특한 방식들이 존재한다.

가. 이데아<Idea>

이데아 혹은 에이도스(eidos)의 원뜻은 '눈에 보이는 형상'인데,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플라톤에 있어서는, 그것은 육안에 보이는 형상을 기연(起緣)으로하여, 사유의 눈에 의하여 관득(觀得)되는 제사물의 진 실재(眞實在)를 의미한다.

플라톤 철학의 기본 개념. 동사 이데인(idein:보다, 알다)의 파생어로, 원래는 ‘보이는 것’, 모양 모습, 그리고 물건의 형식이나 종류를 의미하기도 했다. 플라톤 철학에서는 육안(肉眼)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아이데스(보이지 않는 것)라고 불리며, 이성(理性)만이 파악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고 단일한 세계를 이루어, 끊임없이 변천하는 잡다한 감각세계의 사물과는 구별된다. 생성하는 감각세계의 사물은 이데아를 본떠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은 진실한 존재가 아니고, 이데아야말로 진실한 존재, 즉 우시아[實有]이며, 궁극의 진실을 추구하는 애지(愛知), 즉 필로소피아(철학)의 궁극의 목적이다. ‘선(善)의 이데아’나 ‘미(美)의 이데아’는 이와 같은 이데아의 전형이다. 이데아는 대개의 경우 ‘자체’라는 말을 붙여 ‘미(美) 자체’ ‘선(善) 자체’라고 말하는데 이는 보편적인 명사(名辭)가 있을 때 그 명사를 의미하는 보편자(普遍者)가 이데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데아설(說)을 비판할 때 가한 해석인데, 그 뒤에도 이 해석이 답습되어 이데아는 보편개념의 실체화 또는 개념실재론이라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데아론의 참뜻은 소크라테스의 애지(愛知) 속에 그 연원(淵源)이 있다고 생각된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인간적 지혜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인간의 최대사(最大事)를 묻는 일에 있는데, 이 물음은 그 최대사가 아직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무지(無知)의 자각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애지는 이 근원적인 물음이며, 이데아란 이 애지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을 할 때 돌연히 나타나는 것이며, 묻는 자의 존재를 포함하여 이 세계 일체의 존재를 되물어 오는 진리 그 자체의 시현의 모습인 것이다.

나. 국가론<Politeia>(國家論)

플라톤의 저서. 총 10권 중 제1권은 청년시절에, 나머지 9권은 BC 387년 아카데미아 창설 후 집필하였다. 플라톤은 국가를 커다란 인간으로 보고, 개인의 영혼이 이성 기개 욕구의 3가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국가도 통치자(이성) 군인(기개) 생산자(욕구)의 3계층으로 구성되며, 이들의 조화에 의해 ‘정의’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이상국가는 철인(哲人)에 의해서 통치되는 국가라고 보고, 가장 바람직한 정치로 철인정치를 주장하였다.

다.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ia So칸트ratous>

플라톤이 저술한 철학서. BC 399년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신(神)들을 믿지 않고,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혐의로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되었으나, 그는 이에 대하여 당당한 변론을 시도하였다. 이 변론은 최초의 변론, 유죄선고 후의 변론, 사형선고 후의 변론의 세 부분으로 되었다.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진수(眞髓)로서, 또한 소크라테스의 고발 판결 사형의 관련을 밝히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플라톤에 의한 소크라테스 문학은 때로 작자의 창작이 섞인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 저작의 주요 부분은 역사적으로도 충실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문체로서는 플라톤의 작품 중 백미(白眉)에 속하고, 예로부터 그리스 문학사상 산문문학의 주옥편으로 중히 여겨왔다.

 

16.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서술하라

1) 형상과 질료, 현실태와 잠세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은 플라톤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지체하지 않고 스승의 교육방식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플라톤과의 대립은 먼저 방법의 수준에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은 경험적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는 실제적인 것을 지배하는 원리들을 탐구하였으나, 플라톤과는 반대로 경험의 교육을 따르면서 이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감각적 세계"와 대립된 "가지적 세계"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에서 두 가지 측면을 구별하였다. 하나는 형상(forme)으로서 사물이 현재 존재하는 것이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질료(matiere)로서 형상을 지탱하여 주는 것이다.

제우스의 조각상이 있다고 하자. 그 질료는 조각될 수 있는 대리석 덩어리이다. 그 형상은 그리스 신의 모습을 표상하는 결정적인 내용들의 집합이다. 물질은 본질적으로 비결정적이며, 대리석 덩어리는 조각상이나 다른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질료는 변화의 주체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이 질료는 권능(puissance, dunamis)이며 잠재성(virtualite)이다.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형상을 실현함으로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en acte, energeia)과 대립된다. 대리석 덩어리는 잠재적인 제우스의 조각상이며, 완성된 작품은 현실적인 제우스의 조각상이다.

2) 논리학과 삼단논법 la logique et le syllogisme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일반적이며 필연적인 학문(science)이 있다. 이 필연성을 고려하게 하는 도구(그리스어로 오르가논 Organon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작품의 일반적 명칭이다)는 삼단논법이며, 이것은 두 개의 전제로부터 필연적인 결론을 이끈다[연역법]. 삼단논법을 발명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내용과 독립된 형식 논리학[외연 논리학]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추론의 정식화 작업은 사물에 대한 효과적인 과학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고, 따라서 삼단논법의 결론을 필연적이게 하는 형식적 이성은 또한 사실 자체를 필연적이게 하는 실재적 원인을 나타나게 한다.

3) 형이상학 metaphysique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의 내용들은 BC 1세기에 분류되었다(Andronichos). 그 당시 물리학 다음에 놓여있는 본문(내용)들 모두를 형이상학이라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 이 형이상학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목은 작품의 내용과 관계없지 않다. 그러면 그의 형이상학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두 가지 방식으로 규정할 수 있다.

첫 번째로 형이상학은 제일원인과 제일원리를 연구하는 과학(학문)이다. 두 번째로 형이상학은 '존재인 한에서 존재'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즉 존재가 여기 저기에 있게 하는 것 [존재자들]이 아니라 존재가 한 존재이게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란 여러 수용 방식이라 말 할 수 있다(l'etre se dit en plusieurs acception)"고 자주 말한다. (이것은 엘레아 학파와 반대이다. 엘레나 학파에서 "존재가 있다(l'etre est)"라고 하는 것과 달리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의미는 존재가 여러 가지[10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카테고리는 담론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존재의 부류(genre 하위 개체를 포함하는 상위 외연 개념의 의미)들이다. 이리하여 존재를 실체, 질, 양, 위치 …[10가지]에 따라서 성질을 부여할 수 있다.

제일원인이나 제일원리의 학문은 신학 즉 신적인 것에 대한 학문이며 신학은 순수한 현실태이며, 우주의 움직이지 않는 제1 원동자이다. 신학이란 학문은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높은 실재성에 접근하며 "존재인 한에서 존재인 학문" 즉 존재론(l'ontologie)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형이상학은 학문의 분류에서 제 1학문 도는 제 1철학으로 나타난다.

4) 자연학; 물리학

자연학은 제2 철학이다. 자연학은 두 개의 측면을 허용한다. 한편으로는 운동의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잠재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이라고 정의하고 그 운동 속에는 고쳐질 수 없는 불완전함이 있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완전하게 정돈된 세계는 정지된 세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두 번째 측면은 우주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지구는 여러 개의 '하늘들' 또는 '천구들'로 구성되고 폐쇄된 우주의 중심이다. 이 우주 속에서 달 아래 세계인 제 1의 하늘과 달 너머 세계(supralunaire)사이에 단절이 있다. 달 너머 세계는 순환운동 (지구의 주위를 도는 별들의 순환 운동), 즉 운동들 중에 가장 완전한 운동이 있다. 왜냐하면 그 세계에서는 시작도 장소도 할당할 수 있는 목적도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달 아래 세계는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생성과 소멸을 겪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저작들에서 또한 생물학적 관심들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영혼을 소유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영혼을 완성태(entelechie) 즉 유기화의 원리라고 부른다. 살아있는 존재는 이 영혼의 본성에 따라 위계적으로 구별된다. 이 본성의 위계적 구분이란, 식물에서는 식물적(vegetative) 영혼, 동물에서는 감각적(sensitive) 영혼, 그리고 [그 상위에] 인간에게만 합리적(rationelle)영혼이 있다.

5) 도덕과 정치

인간에게서 최고 선, 다른 목적을 위하여 수단이 아니라 자체로서 탐구되어야할 선, 그것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행복(le bien, Eudaimon)이다. 행복은 모든 존재에게서 자기 본성의 실현에 있으며, 덕의 실행에 있다. 그런데 이성을 지닌 인간의 고유한 덕은 이성적(raisonnable) 삶을 살고자 하는 소질이다. 이 덕은 습관에 의해 습득된 성향이며 의지와 책임을 가정하는 것이다. 이성적 삶은 도시국가 안에서 가능하다. 사실상, 인간은 자연적으로 공동체에서 살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animal politique)"이며, 도시 국가는 가정이나 마을 보다 우수한 사회적 삶의 가장 수준 높은 형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 즉 다양한 부분들이 협력하여 고유한 기능을 자극하게 하는 유기체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그에게 노예와 성적 불평등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게 했다.

그는 정부의 형태를 여러 가지로 구분하였다 : 군주정, 귀족정, 공화정 등이 있다. 그러나 『공화국(Politeia)』에서 이상적 도시 국가와 닮은 정도로 위계질서를 만든 플라톤과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각의 정체에서 그 실현 방식과 안정성의 구체적 조건들을 탐구한다.

 

17.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에 대하여 쓰라

에피쿠로스가 만물의 기원을 기계론적으로 설명했고 쾌락 추구를 본질로 하는 인간을 또 하나의 작은 메커니즘으로 사물의 본질 속에 위치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에게 자신의 욕망을 규제하는 힘과 의무를 부과하였다. 그는 인간을 신의 섭리에 대한 공포에서 해방시켜주었지만 그렇다고 정욕과 방종의 수문을 개방할 의사는 없었다. 그는 쾌락을 선(善)의 척도라고 확신하였지만, 쾌락이라고 하여 모두가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만일 누군가가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이 선의 척도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쾌락과 고통의 차이를, 다시 말해 고통보다는 쾌락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쉽게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쾌락을 우리 안에 본유하는 제 1의 선으로 인식하여 쾌락으로부터 선택 및 금지의 행위를 결정하고 우리는 다시 쾌락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말에 의하면, 감각이 진리에 대한 시금석이 되듯이 감정은 선악에 대해 직접적인 척도가 되는 것이었다.

더욱이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가장 행복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쾌락을 구별하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음식의 경우처럼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욕망이 있는가 하면, 성의 쾌락에서처럼 자연적이지만 필연적이 아닌 욕망도 있으며 또한 사치나 인기처럼 자연적이지도 않고 필연적이지도 않은 욕망도 있다. 그는 그것들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기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쾌락이 곧 목적이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방탕한 자의 쾌락도 아니며 무지하거나 우리와 의견을 달리하는 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상되는 성의 쾌락도 아니다. 그것은 육체의 고통과 정신의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연일 음주와 연희를 벌이는 것도 아니고 또 정욕의 충족, 평안한 생활을 하는, 즉 생선을 즐기고 호화로운 식탁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사치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취할 것을 취하고 금할 것을 금하는 동기를 탐구하거나, 정신이 매우 혼란할 때 생기는 잘못된 의견을 떨쳐 버리는 건전한 사유이다.”

에피쿠로스는 육체의 쾌락을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러한 괘락에 너무 관심을 두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불행과 고통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임을 밝히고자 한 것뿐이었다. 어떤 육체적인 쾌락은 결코 완전하게 만족되지 않는다. 만일 그러한 쾌락에 계속 빠지게 된다면 그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항상 불만족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항상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더욱 많은 돈이나 대중의 인기, 혹은 외국산 음식이나 고관직을 원하게 된다면 그는 항상 현재의 상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늘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그의 본성을 최소로 억제할 수 있고, 쉽고 빠르게 필요한 만큼 만족시킬 수 있다. 적절한 욕구가 만족될 때 인간의 본성은 균형을 이룬다. 식도락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과식할 때보다는 현명한 사람이 적절한 빵과 물을 먹을 때 행복을 더 쉽게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은 음식을 조금만 먹도록 익혔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먹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쾌락은 마음의 평정이다. 에피쿠로스는 그것을 육체적인 고통이 없고 정신의 평온한 안정 상태라고 말한다. 평정의 느낌을 얻으려 한다면 욕망을 점차 줄여 가며 불필요한 근심을 극복하고 가장 온전하게 지속되는 정신의 쾌락에 의지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정신의 쾌락은 육체적인 일에 깊게 빠지는 일과 그것에 수반하는 고통을 방지해 주는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그것들은 육체적인 쾌락과 다름없는 것이기도 하다고 그는 믿었다.

 

18. 스토아학파 학설을 요약하라

1) 스토아학파는 우선 자연주의로 특징지을 수 있다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산다"는 계율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스토아학파는 그리스 도시 국가의 몰락 순간에 정치적인 형식으로 생겨났다. 스토아의 자연주의는 문화적 삶과 정치적 삶으로부터 관심의 이탈에서 나온다. 그 현자는 정치적 삶과 연관으로부터 은퇴할 것을 권하고 인간을 진실한 조국으로 여기는 우주 가운데 재정립 할 것을 설교한다. 이 우주는 이 학파의 두 번째 특징이며 물질적이다.

2) 스토아학파는 유물론이다.

물질만이 존재하며 물질은 그 자체 물체처럼 정의되며 작용할 수 있는 것 또는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스토아학파의 유물론은 그 결과로서 도덕론을 갖는다. 예를 들면 정념은 비난을 받는다. 왜냐하면 정념은 헛된 노력으로 영혼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정념은 후회하면서 과거로 향해 있고, 걱정과 희망 속에서 미래로 향하고 있다. 그런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비형체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물들의 배열은 어떤 총체적 일치를 형성하는 우주 속에 묘사되어 있다.

3) 사실상 스토아학파는 합리주의이다.

물질은 스토아학파가 때로는 영혼이나, 이성 또한 원인이라 불리는 형체적 원리(principe corporel)에 의해 생명을 얻는다. 세계의 영혼은 미묘하게 형체적 요소의 총합(집합)에 스며들고, 이 형체적 요소로부터 우주도 구성되고, 그것으로부터 물리적 응집과 정합성도 확인된다. 세계는 하나의 체계이며, 거기서 각 부분은 전체와 연관도 있고 "공감(sympathie)"도 있다. 따라서 우주는 어떤 변화에도 여지를 남겨주지 않는 필연성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일어나야 할 것이고, 일어나야 할 모든 것은 일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영혼은 운명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아학파는 숙명론이 아니다. 이 우주 안에는 행동과 자유를 위한 자리가 있고 도덕론은 행위와 자유에 대한 규칙과 조건을 세운다.

 

19. 아우구스티누스의 학설에 대하여 약술하라

1) 계시론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의 어떤 관념들의 확실성에 관한 인식에 관한 사항만큼 그 기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상기(想起) 및 일종의 생득관념(生得觀念)을 거부하는 동시에 추상의 개념을 더욱 가까이하였다. 실제로 인간의 육체의 일부인 눈이 대상을 감각할 때, 그 대상이 빛에 드러나 있는 경우에만 정신은 그것에 대한 상을 형성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대상 역시 그 자신의 고유한 빛에 싸여 있을 경우에만 정신은 그 대상을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눈이 이 육체의 빛 속에서 그 주위의 모든 사물을 보는 것과 같은 이유로, 창조주의 배려에 따라 본래 지성적인 실재에 속하는 정신은 독특한 종류의 어떤 비물질적인 빛 속에서 수학적 진리와 같은 진리를 볼 수 있도록, 지적인 정신의 본질이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다. 요컨대 인간의 정신이 영원하고 필연적인 진리를 “보고자” 원한다면 그것은 계시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태양 빛 없이는 세계 속의 사물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어떤 계시 없이는 지성의 지적인 대상인 진리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불변의 진리를 볼 수 있게 하는 영원한 이성의 빛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고 간결하게 그의 계시론을 언급하였다. 그가 이 이론에 의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지 않다. 단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분명한 것은 태양으로부터 멀리까지 빛이 비치듯이 계시는 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를 좀 더 고려해 본다면 신성한 빛은 그것이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사물, 혹은 관념을 비추어야 한다. 우리는 태양 빛에 의해 나무와 집, 또는 강물 위에 흐르는 나룻배 등을 볼 수 있다. 신성한 빛이 그와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면 이 빛 또한 무엇인가 우리의 관념을 비추어야 한다. 이 빛은 우리가 관념 속에서 진리와 영원의 성질을 인식하는 조건은 되겠지만 관념의 원천은 아니다. 다시 말해 신의 계시는 관념의 내용이 우리의 정신 속에 몰입되는 과정이 아니며 어떤 관념이 필연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포함하는가를 구별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판단에 대한 계시인 것이다. 이 빛의 원천인 신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인간의 지성은 신의 영원한 관념의 일부로 활동한다.

2) 신(神)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존재에 관한 사색에만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신에 대한 그의 철학적인 고찰은 지혜와 정신적인 평화에 대한 그의 광범위한 추구의 산물이었다. 한때 그가 감각적인 쾌락 속에 깊이 빠졌던 경험에 의해 영혼은 육체적이거나 감각적인 쾌락 속에서 평화를 찾을 수 없음을 통감하였다. 마찬가지로 지식의 확실성을 추구하던 그는 사물의 세계가 변화와 무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였다. 또한 정신은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것 역시 불완전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돌연 어떤 영원한 진리를 인식하는 경험과 마주하였고, 이 경험을 통하여 그는 진리를 사유하는 경험과 쾌락 및 감각의 기쁨을 얻는 경험을 비교할 수 있었다. 이 두 경험 가운데 그는 정신의 활동이 더욱 지속적이고 심오한 평화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신은 곧 진리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신은 인간 안에 있다. 또한 신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초월한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기술함으로써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신의 존재를 정의하는 것보다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신이 유한한 사물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함은 중요한 진보였다. 모세에게 주어진 신의 이름, “나는 존재하는 그로다(Ego sum quisum)”를 성경에서 발췌하면서 그는 이것을 “신은 곧 존재 그 자체이다”라는 의미로 전의(轉意)시켰다. 마찬가지로 신은 플로티누스의 존재 없는 유일자가 아닌 최고의 존재이며, “어느 것도 그보다 더 훌륭하고, 더 거룩할 수 없는 존재”라고 기술하였다.

안셀무스(Anselmus)는 이 구절에 영향을 받아 그의 유명한 존재론적 증명을 제시했었다. 최고의 존재로서의 신을 곧 완전한 존재라고 하는 것은 그가 자존적이며 불변이고 영원한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에게 속하는 어떠한 복합적인 속성도 모두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는 완전하기도 하지만 단순하기도 하다. 그의 지식, 지혜, 선(善), 능력 모두가 하나이며 그러한 것이 그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일상 세계는 신의 존재와 활동을 반영하여준다. 우리가 보는 사물들이 점차 소멸되어 간다는 점에서는 가변적이지만 그것들이 존재하는 한, 정해진 형상을 가지며 이 형상 또한 영원한 신의 반영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렇듯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물들이 그 존재를 가지는 것은 오로지 존재의 근원인 신에 의한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의 사물과는 달리 신은 “장소의 어떠한 간격 속에서도, 연장 속에도 있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신은 “시간의 어떠한 간격이나 연장 속에도 있지 않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그는 신을 순수한 혹은 최고의 존재로 기술하며 따라서 신 안에서는 비존재에서 존재로 혹은 존재에서 비존재로의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신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는 “존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이 가지는 힘은 그것의 철학적인 엄밀성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정신적인 고민의 해결과 연관시켜 탐구되어야 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이제 그에게, 존재와 진리와 유일하고 영원한 실재의 근원으로서의 신은 사유와 사랑의 합법적인 대상이 되었다. 신으로부터 정신의 계발과 의지의 힘이 솟아난다.

더구나 신은 진리의 표준이기 때문에 모든 다른 지식이 가능하다. 그의 본질은 존재이며 존재는 곧 행위이고, 행위는 인식하는 것이다. 영원하고 전지전능한 신은 항상 창조 안에서 반영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식을 알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의 모습을 이루는 다양한 형상들은 전형(典型)으로서의 신 안에 항상 존재한다. 그러므로 만물은 신의 영원한 사유의 유한한 반영이다.

신의 사유는 “영원”하므로 신은 앞일을 “알고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이미 우리의 언어가 가지는 한계를 난점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와 신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선(善)이 세계와 동일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초월한다고 하여도 세계는 신의 영원한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불변한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믿었고 이것이 그에게는 중요한 점이었다.

신과 세계 사이에 이러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한쪽을 안다는 것은 곧 다른 한쪽의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과 같다. 신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세계의 참 본질, 그리고 인간의 참 본질과 운명을 가장 심오하게 이해하는 자(者)라고 아우구스티누스가 확신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비록 어느 곳에서나 삼위일체의 증거를 증거 할 수 있다고는 하였지만 그가 신에 대해 주로 사용하였던 말은 성부(聖父)였다. 이는 다른 사람들, 세계, 그리고 정신은 하나이며 동일한 존재를 공유한다는 사실에서 정신을 강조하더라도 같은 실체로 된 모두와 연관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3) 창조된 세계

신은 사유와 사랑 모두에 대해 가장 적합한 대상이며, 물질적이고 가변적인 세계는 인간에게 참된 지식 혹은 정신적인 평화를 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세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우선 인간의 생활은 물질적인 세계 안에서 행해져야만 하고 인간이 그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가 앞서 지식의 본질과 신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부터 그가 세계를 신의 피조물로 보고 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의 「고백론」에 의하면 우리가 어디를 둘러보건 만물, 예를 들어 꽃이나 너도밤나무는 “우리는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신이 우리를 창조하여 영원히 살게 하였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한한 사물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영원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독특한 창조론에서 하나님은 세상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다.

a)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신이 만물을 무에서(ex nihilo) 창조하였다는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독특한 교의(敎義)이다. 세계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항상 제각기 존재하는 조물주(Demiurge)의 형상과 그 모사(模寫)와의 결합이라고 본 플라톤의 견해와는 대조를 이룬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신의 자유로운 행위의 산물이며 이러한 행위를 통하여 신은 무(無)로부터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사물에게 존재를 부여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만물은 자신의 존재를 신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과 피조물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플로티누스는 세계를 유출된 것으로서, 신의 연장이라고 본 반면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전에 없었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존재라고 설명하였다. 물질이란-제 1 형상에서조차도- 이미 어떤 것이었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물질로부터 창조했을 리는 만무하다. 무형의 물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실제로는 무를 나타내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사실상 물질을 포함하는 만물은 신의 창조적인 행위의 산물이라 지칭되었다. 형태가 갖추어질 수 있는 무형의 물질이 있다 하여도 그것의 기원은 신 안에서 구해지며, 신에 의해 무로부터 창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물질이 신에 의해 창조된다는 사실은 곧 물질이 선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은 모두 선(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물질이 지닌 본질적인 선이 그의 도덕론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컸다. 왜냐하면 이 교의는 육체는 어둠으로 구성되어 있고 악의 원리로 가득 차 있다는 마니교의 교리와 현격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만물은 하나님의 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고 있었던 그는 창조된 질서 속에 있는 모든 사물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을 반박하고 그 논조를 타파해야 하는 일을 자신의 또 다른 과제로 삼았다.

b) 배아(胚芽)의 이유(rationes seminales)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연의 다양한 종(種)들이 결코 새로운 종을 생성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주목하였다. 강낭콩은 강낭콩을 낳고 엉겅퀴는 엉겅퀴를 낳으며, 당나귀는 당나귀를, 원숭이는 원숭이를 낳는다. 인간에게 있어 부모는 자식을 낳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사실에 매료된 이유는 이러한 사실과 인과율에 대한 일반적인 몰이해의 관련성 때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부모는 자식의 원인이고 꽃은 새로운 꽃의 원인이라 하더라도 어느 것도 자연 속에 새로운 형태의 종을 발아(發芽)시키지 못한다. 창조된 질서 속에서, 존재하는 사물들은 이미 존재하는 형태를 진작시켜 향상된 존재로 변환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종의 창조에 간여할 수는 없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사물이 형성된 배후에 있는 인과율(그는 이 사실에 대한 결정적인 경험적 정보를 갖지 못한 시대의 사람이었다)은 곧 신의 지성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사물 내에 새로운 형태를 창출할 수 있는 원초적인 인과적 능력이 없다면 사물이나 동물, 그리고 인간은 어떻게 그 자손을 낳을 수 있는가?

그의 대답은, 신은 창조의 과정에서 물질 속에 배아(胚芽)의 이유를 주입시켜 주었기 때문에 자연은 모든 종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태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 배아의 이유가 곧 사물의 종자(種子)인 것이다. 그것은 비가시적이며 인과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종은 현재의 상태에 이르기 위한 비가시적이고 잠재적인 힘을 소유한다. 종이 존재하기 시작하면그것의 배아의 이유, 즉 그 가능태가 실현되며 이어서 실제의 씨가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정해진 종을 이어 받게 된다는 것이다. 원래 단 한 번의 행위에 의해 완전한 창조를 이룬 신은 모든 종에게 생성의 원리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의에 힘입어 아우구스티누스는 배아의 이유가 비롯된 신의 정신 내에 종의 원인을 위치시킴으로써 종의 기원을 설명하였다. 이 배아 이유 설에 의해 그는 성서에 관한 난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 내용은 창세기에 나오는 것으로써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구절이었다. 왜냐하면 신이 왜 점차적으로 창조해야만 했는가의 논제가 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의문과 닿아 있었고 전지전능한 신관(神觀)에도 모순 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6일이라는, 특히 “4일째까지도 태양이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의문도 상당하였다. 마침내 그가 배아 이유 설을 가지고 결론에 이른 것은 다음과 같았다.

신은 한 번에 세상을 창조했으며 그것은 곧 그가 모든 종에게 동시에 종의 원리를 부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종자들은 가능태의 원리이므로 아직 발아된 것은 아니며 곧 존재하게 될 사물들의 운반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종이 한꺼번에 창조되었다고 해도 그것들 모두가 동시에 완전한 형태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 그것들 각각은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그들의 가능태를 실현시켜야 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배아 이유 설은 종의 진화론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고, 직간접으로 그 길을 열어놓고 있었던 셈이 되었다.

4) 악의 원인으로서의 자유의지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의 원인이 단순히 무지(無知)에 기인한다고 해석한 플라톤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에 의하면 분명이 인간은 궁극적인 선을 인식하지 못하는, 즉 신을 인식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죄 많은 사람들조차도, 인간의 행위의 대부분을 나무라거나 올바르게 칭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일상의 행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칭찬받을 만한 행위를 해야 하며 비난받을 만한 행위는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경우에만 그가 칭찬이나 비난 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인간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은 인간이 무지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양자택일의 선택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인 것이다. 그는 신을 향하거나 신에게서 멀어지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서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선택의 자유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어느 쪽을 택하건 그의 의도는 행복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는 신에게서 멀어져 유한한 사물이나 사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애정을 쏟을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은 단지 자유의지의 행위이다”고 말하며 결국, 악(惡) 또는 죄(罪)는 의지의 산물임을 입증하려 하였다. 플라톤의 말대로 그것은 무지가 아니며, 마니교의 교리처럼 육체에 퍼져 있는 어둠의 원리의 작용도 아닌 것이다. 원죄에도 불구하고 만인은 의지의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고 아우는 신념 하였다. 더욱이 이 의지의 자유(liberum)는 정신의 자유(libertas)와 같은 것이 아니라고 신념 하였는데, 왜냐하면 진정한 정신의 자유는 현세에서 결코 충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동시에 설령 올바르게 선택하여 올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택한 선을 행할 온전한 정신의 능력을 지닌 존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의 은총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악은 자유의지의 행위에 의해 야기되는 반면, 덕이나 정의는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은총의 산물이 되는 것이다. 도덕적인 법은 인간에게 그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주지만 실제에 있어 그의 행위와 무관한 목록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은총을 구해야만 법이 존재하며 법이 충족되어야 은총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는 또한 “오직 신만이 줄 수 있는 사랑에 의해 그리고 우리가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친 신과 인간의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속죄 받을 때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5) 두 개의 나라와 역사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신을 사랑하는 부류와 자기 자신과 세계를 사랑하는 부류로 구분된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이러한 집단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물에 대한 동일한 일치감에 의해 결속된 이성적인 존재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에 그 집단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지며 따라서 서로 상반되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을 사랑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형성한 국가를 신의 나라(civitas Dei)라고 부르고, 자신과 현세를 사랑하는 부류를 지상의 나라(civitas terrena)라 불렀다.

그는 이 두 나라를 각각 교회와 국가로 구별하거나 동일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를 그 구성원들의 지배적인 사랑으로 보고 있으며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와 국가 양자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신의 나라라고 불리우는 사회 전체와 동일한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국가 안에도 신을 사랑하는 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두 나라는 교회와 국가 양자 모두를 포함하며 눈에 띄지 않게 자체적인 독립성을 유지한다. 그러므로 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신의 나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며,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지상의 나라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20. 보편자에 대한 각 학자들의 주장을 쓰라

1) 보에티우스의 견해

보에티우스는 포르피리우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입문을 주석하면서 포르피리우스에 의해 제기된 보편자의 문제를 거론했었다. 이 문제들은 주로 특정한 사물과 정신의 개념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유로 경험되는 유(類)나 종(種)과 특정한 대상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관한 것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을 제기하였다.

1) 유와 종은 실재로 자연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단지 정신의 구상물에 불과한가?

2) 그것들이 실재라면 물질적인가, 비물질적인가?

3) 그것들은 감각적인 사물과 별개로 존재하는가, 혹은 그것 내에 존재하는가?

보에티우스는 이 문제가 대단한 난제임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사유가 정신 외부의 실재에 대응하는가, 대응하지 않는가를 발견하는 것이 논점의 전부라면 외부에 대응하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관념을 우리의 정신 속에서 찾아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리스 인들이 메두사를 생각해 낼 수는 있었지만 메두사라는 개념과 대응하는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는 기하학자가 하듯이 선분이나 삼각형에 대해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한 종류의 선분이나 삼각형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메두사의 개념과 삼각형의 관념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메두사의 개념에 대해서는 그것이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삼각형의 개념은 “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각형의 개념이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보에티우스가 여기에서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은 정신이 개념을 형성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즉 “합성”(괴물과 인간을 혼합시키는)에 의한 것과 개체의 대상에서 술어를 부분적으로 이끌어내는 “추상”에 의한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의도하는 바는, 유와 종과 같은 보편 관념들은 정신에 의해 현실의 개별 사물들로부터 추론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참”관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편자는 개별자로부터 추론된다고 말한 보에티우스는, 유나 종은 개별 사물 “속에 존재하며,” 그것들이 정신에 의해 “사유”될 때 곧 보편자가 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식으로 보에티우스는 유와 종뿐만 아니라 정의(正義), 선(善), 미(美)와 같은 다른 성질을 포함하는 사항까지라도, 보편자는 대상과 정신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면서, 그것은 사물 안에 “내재하고” 정신에 의해 “사유”된다고 서술하였다. 두 그루의 각기 다른 나무가 둘 다 나무라고 불리우는 것은, 그것들은 존재에 대한 동일한 근거, 즉 동일한 실체인 보편자를 포함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서로 유사하게 보이며 유사하게 지각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정신은 두 나무속에서 동일한 보편적인 요소를 발견하기 때문에 양자를 모두 나무라고 “사유”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보편자가 자연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정신 안에 존재하는가 하는 첫 문제에 대한 보에티우스의 답변이었다. 그에게 있어 보편자는 사물과 정신, 양쪽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보편자가 물질적인가 비물질적인가 하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그것은 사물 속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며 정신 속에서는 비물질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존재한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보편자가 개별적 대상과는 동떨어져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것들 속에 내재하는가? 하는 세 번째 문제에 대해 그는, 그것은 사물 안에 존재하며 정신 안에서는 사물과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대답하였다.

2) 기욤므의 보편자에 대한 과장된 실재론

보편자가 실제로 실재하는 사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과장된 실재론자라고 불렀다. 그들은 유(類)나 종(種)은 실재 안에 존재하며 개체들은 이 보편자를 공유한다고 주장하였다. 보편자는 형상이나 이데아이며 개체와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말한 플라톤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인간성과 인간은 존재하지만 이것들은 다수의 인간 안에 항상 존재한다고 하는 견해가 과장된 실재론자들의 입장이었다.

이러한 실재론이 주목을 받은 것은 토우르나스(Tournas)의 오도(Odo, 혹은 Odo Tornacensis)의 저서 때문이었다. 그는 토우르나스의 가톨릭 학교에서 가르쳤으며, 성 마르틴 수도원을 건립하였고 캄브라이의 주교가 된 후, 1113년 안킨(Anchin)에 있는 수도원에서 삶을 마쳤다.

그에게 실재론은 어떤 정통적인 신학 교리의 근거를 이루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원죄설을 설명하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실재론적으로 기술해야 했었다. 실재론에 의하면 한 종의 모든 구성원 속에 포함된 보편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본성의 조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아담과 이브가 죄를 범하였을 때 이미 인간 혹은 인간성의 실체가 영향을 받고 오염되었으며 그 이후의 모든 세대는 그들의 행위의 결과를 물려받게 되었음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실재론이 부정된다면 아담과 이브의 행위는 그들 자신에게서 끝나게 되며 원죄설의 설득력은 부당한 논거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는 삼위일체설을 설명하려면 실재론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만일 동일한 하나의 실체가 여러 구성원들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부인된다면, 삼위일체론은 삼신론으로 화할 것이며, 각 구성원은 전체적으로 독립적이며 다른 존재로 군림할 것이라고 그는 파악하였다.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1050~1125)에 의해 전개된 이 추론 방식에 대답을 한 안셀무스는 “모든 사람이 단지 하나의 보편자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각각의 위격(位格, persona)은 신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일한 신을 이룬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이다”라고 말하였다.

또 다른 과장된 실재론자인 샹포오의 기욤므(Guillaume de Champeaux 1070~1121)는 두 가지의 다른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 하나는 동일성 이론인데 인간성과 같은 보편자는 모든 구성원 속에서 동일하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었다. 보편자의 “총체적인” 실재는 각 사람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며 특정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차이는, 단지 그들의 본질 혹은 실체가 우연하게 변형된 성질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아벨라르두스(Petrus Abaelardus 1079~1142)는 다음과 같이 기욤므의 추론을 반박하였다. 각 개인이 총체적인 인간의 종이라면 인간성은 로마에 있는 소크라테스나 아테네에 있는 플라톤 내부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고, 이럴 경우 인간의 본질이 발견되는 곳이면 어디에나, 즉 로마와 아테네에 소크라테스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아벨라르두스는 이것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고 그와 같은 생각은 곧 범신론으로 귀착된다고 비판하였다. 기욤므는 이와 같은 반박 때문에 수정된 이론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것은 무 차별론으로서 반실재론적인 견해였다. 그는 수정된 견해를 가지고 주장하기를, 하나의 종에 대한 개체들이 동일한 것은 어떤 공통된 본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부분적인 측면에서만 그것들은 구별되지 않는다는, 즉 그것들은 “무차별적”이라는 사실에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논거 하였다.

3) 로슬랭의 유명론(唯名論)

과장된 실재론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 중의 한 사람인 로스켈리누스 혹은 로슬랭(Roscelin 1050~1125)은 콩피에뉴 태생이며, 영국, 로마, 토우르나스 등지를 여행하고, 투르, 콩피에뉴, 브장송에서 교편을 잡은 후 아벨라르두스의 스승이 되었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개체만이 자연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단어와 같은 일반적인 용어인 보편자는 어떤 사물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문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어의 발성에 의해 표현되는 한 단어(voces) 혹은 명사(nomen)에 지나지 않으므로 최종적으로 종과 유는 실재 사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스켈리누스의 입장에서 볼 때 논리학은 단어만을 다루는 학(學)인 셈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에게 보편자에 대한 논의는 단어에 관한 것이지 실재 사물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러한 논거로부터 분명한 결론에 도달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들은 제각기 독립적인 존재이며 그들에게 공통된 것이라고는 한 단어에 불과하며 실제로 근본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수아송 공의회는 1092년 삼신론(三神論)을 주장하였다는 죄목으로 그를 기소하여 로스켈리누스 스스로 자신의 이론을 번복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켈리누스는 어떤 유(類)의 추상, 즉 보편자는 하나의 사물과 대응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과장된 실재론을 비판하였다는 점에서 보편 논쟁 사에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일정한 지분을 행사할 수 있었다.

4) 아벨라르두스의 개념주의 : 온건 실재론

실재론자들이 그들의 관점에 극단적이었던 것처럼 로스켈리누스의 유명론 또한 극단적인 측면이 있었다. 양쪽의 견해가 모두 극단적이라고 하여 이 양극단의 견해를 지양하고 있는 것이 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Petrus Abaelardus 1079~1142)의 입장이었다. 그는 격정적인 삶을 살면서 그의 스승들과 격론을 벌이기도 했고, 엘로이즈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또한 브르타뉴 대수도원의 원장을 역임하였고 프랑스에서 학자로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기도 하였다.

그의 이론은 상당 부분 이단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노센트 2세는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려 클러니(Clunny)로 물러나도록 하였다. 1142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연인이자 제자였던 엘로이즈는 시신을 인수하여 매장하고 무덤을 22년간 지켰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12통의 편지를 모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서한』은 13세기 하나의 유행처럼 읽혀졌다.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성은 원래 단어에서 연유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한 단어가 다수의 개별자에게 적용되는 경우에 그것은 보편적이라 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소크라테스”라는 단어는 보편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단어가 단지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였다. 반면에 “인간”이라는 단어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보편적인 용어의 기능은 개체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나타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보편적인 용어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해 아벨라르두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사람은 몇몇 개체들의 존재 방식에 의해 그 사물 모두에게서 어떤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위 이 유사성이란 실재론자들의 본질(essentia) 혹은 실체(substantia)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개체를 경험할 때 우리는 그것을 지각할 뿐 아니라 그것을 사유하거나 이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상이 있어야만 하는 눈과는 달리, 정신은 개념을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물질적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정신은 두 가지의 일을 수행할 수 있는데, 첫째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개체의 개념을 형성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인간과 같은 보편자의 개념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논거에는 개체의 개념을 분명하지만 보편자의 개념은 확연하지 않은 점이 있다. 우리는 보편자가 의미하는 바를 사실상 인식할 수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정신의 개념으로서의 보편자는 개별적인 감각적 대상과는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개체에 적용된 단어들로서의 보편자는 이들 대상 안에만 존재한다고 그는 파악하였다. 여러 개체에게 같은 용어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각각 개체가 이미 다른 개체와 같은 방식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자는 개체로부터 추론되며 추론의 과정에 의해 우리는 보편자의 존재 방식이 아닌 보편자에 대한 이해 방식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물들로부터 그것들이 진정으로 소유하고 있는 성질들을 추론해야만 사물들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자란 이 개념에 대한 근거를 제공하는 어떤 실재를 나타내고 있는 하나의 단어이자 개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근거란 곧 유사한 사물들이 존재하는 방식이며 우리 정신에 스며드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보편자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는 이 정도이지만 그렇다고 이 근거가 실재론자의 주장대로 사물의 의미에 있어서 실재하는 어떤 것은 아니었다. 또한 아벨라르두스는 보편자는 단지 주관적인 관념이거나 어떠한 객관적인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에 불과하다는 엄격한 유명론자는 아니었다.

200년 이상 지속될 보편 논쟁은 아벨라르두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아퀴나스, 오캄을 비롯한 일군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생명을 걸고 논쟁하였으며, 더욱 정교하고 면밀한 개념과 용어를 통하여 중세 철학의 독특한 노선을 걸어갔다.

이 노선이 스콜라 철학이며 스콜라 철학은 논리와 증명을 통하여 보편을 입증하려는 처절하고 놀라운 집념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보편 논쟁에 뛰어든 집념의 중세 철학자들에게 보편자 논쟁은 신의 존재에 관한 증명의 전편(前篇)이라는 것을 누구나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보편자 논쟁은 신의 존재 증명과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논의되었으며,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허다한 철학자들이 그 생애의 일정부분을 아낌없이 헌정했었다.

그들은 이 하나의 논제를 입증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이나 영혼을 송두리째 내던질 순교자적 자세로 논쟁에 뛰어들었다.

 

21. 안셀무스의 신의존재론적 증명에 대하여 약술하라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는 그의 유명한 신의 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증명으로 사상사에 각인되었다. 그는 1033년 북부 이태리의 아오스타에서 태어나 베네딕트 교단에 입문하여 대주교가 되었으며, 1109년 켄터베리에서 삶을 마감한 안셀무스에게는 철학과 신학이 구분되지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그는 이미 신앙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이성적인 근거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는 신앙과 이성은 결국 같은 결론에 이르리라고 확신하였다. 더구나 안셀무스는, 인간은 이성에 의해 합리적으로 일관된 그리고 합리성 이외의 어떠한 권위에도 의지 않는 자연 신학 혹은 형이상학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였다. 그렇다고 안셀무스가 자연 신학과 신앙간의 어떠한 연관 관계를 부정하였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의도는 자연 신학에 의해 신앙의 대상에 대한 이성적인 설명을 마련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거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추종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에 대한 진리를 단지 이성에 의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믿고 있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성을 도입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의 방법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인 셈이며, “나는 믿기 위해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는 그의 논제는 그에게 철저한 진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신의 존재 증명을 위한 자신의 계획이 출발도 못할 것이라고 명백히 밝혔다. 인간의 정신은 신의 심오함을 꿰뚫어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나의 지성에 의해 그러한 심오함을 보기란 어쨌든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안셀무스는 고백하였다.

신의 존재에 대한 이성적인 증명으로부터 안셀무스는 단지 약간의 기대만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다음의 글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진리를 조금만이라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대어록(Proslogion)」이라는 제목의 저서에 나오는 존재론적 증명을 제기하기 전에 출간된 「독어록(Monologion)」에서 그는 세 개의 다른 증명을 제시했었다. 이 세 논증은 그의 철학적인 방향을 보여 주는, 즉 유명론을 부정하고 실재론을 수용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그의 실재론은 단어란 단지 소리나 문법적인 약속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정신이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 사물을 지칭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세 증명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은 이른바 그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유하려고 한다. 우리는 사물들을 서로 비교해야 선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사물들은 유일하고 동일한 선의 성질을 공유해야 한다. 이러한 선성(善性)이야말로 선 자체이며 최고선(最高善)과 같은 것이다. 위대함에 대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의 논증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선하고 가장 위대한 것이 존재해야 한다.

2) 존재하는 만물은 유(有)를 통해서건 무(無)를 통해서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사물은 분명히 무에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남은 선택은, 하나의 사물은 여타의 사물에 의해서나 혹은 그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물이 존재하기 전에 그것은 무이므로 그 자체로는 존재할 수 없다. 사물이 여타의 사물에 의해 생겨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물들 서로가 상대방을 생성한다는 의미이므로 이것 또한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홀로 존재는, 또한 모든 다른 사물의 존재 원인인 하나의 사물이 필요하다. 이것이 곧 신(神)이다.

3) 존재에는 여러 가지의 정도 혹은 단계가 있다. 동물은 식물보다는 더 우위의 존재를 소유하며 인간은 동물보다는 더 우위의 존재를 가진다. 따라서 인간이 무한히 많은 단계를 반복하여 올라가지 않으려면 최상의 그리고 완전한 존재에 도달해야만 한다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이 세 논증 모두가, 존재하는 유사한 사물에서 시작하여 존재의 전체 단계 중에서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이어진 단계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추론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사한 사물은 우리의 언어로 선(善), 위대함, 원인(原因), 존재(存在)라 불리우는 것을 분유해야 비로소 이들 단어가 어떤 존재하는 실재를 지칭하며, 따라서 유한한 사물은 한 단어뿐만 아니라 어딘가에 최대의 완전성을 지니고 존재하는 존재를 분유한다는 안셀무스의 실재론은 아우구스티누스나 플라톤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안셀무스는 이러한 논증들이 수학적인 증명과 같은 명증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동료 수도사들은 그가 이 논증들을 간단히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안셀무스는 이 문제에 대해 더욱 사유한 후 더욱 단순하고 명확한, 그리고 그의 생각에 전혀 아무런 결함이 없는 논증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대어록 ;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편에 실려 있다.

훗날 같은 논제를 들고 성찰한 아퀴나스의 증명들이 어떤 경험적인 증거로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에 신에게로 옮겨 가는 논리적인 가정에서 출발한다면, 이와는 달리 안셀무스의 논증은 그의 정신 내부로부터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안셀무스는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확실한 진리를 가져다 준 아우구스티누스의 계시론을 본받아 독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하였다. “당신의 정신 내부의 방으로 들어가 신을 제외한 모든 사물과 신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이외의 모든 사물을 차단시켜라.” 또한 그는 “내가 믿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시작도 하기 전에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었다.

안셀무스의 말에 의하면, 신은 “우리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사유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존재는 실재하는가? 이 질문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셀무스는 시편 14:1의 “우둔한 자는 다음과 같이 진심으로 말했나니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를 인용하며 이 구절에서 “우둔한”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분석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우둔한”이라는 의미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는 곧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우둔한 자가 “우리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사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가 그 말을 이해하면 그가 이해한 것은 그의 지성 안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지성 안에 존재한다는 것과 실제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화가가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미리 생각한다고 할 때 그의 지성 안에는 그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해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그려지지 않은 작품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마침내 그가 작품을 완성하였을 때, 그는 그의 지성 안에 그 둘 다를 가지고 있으며 그는 그가 완성시킨 작품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것이 증명하고 있는 점은 지성이 어떤 사물을 인식하기도 전에 그것이 지성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인식할 수 없는 존재”라는 구절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그의 정신 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둔한 자가 그 구절을 들었을 때 그는 그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것은 그의 정신 속에 존재한다. 또한 이해되는 것은 무엇이나 지성 안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둔한 자일지라도 우리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인식할 수 없는 존재가 그의 지성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안셀무스는 그의 논증의 핵심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즉 우둔한 자일지라도 그 누구나 하나의 관념으로써 단지 지성 안에 있는 존재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존재가 그 이상의 더 위대한 존재의 현실적 존재이다. 우둔한 자, 그 스스로 발견하는 모순은 신의 의미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다. 즉 그는 현실적 존재는 지성 안에 있는 그것의 관념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긍정하면서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안셀무스는 “우리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을 사유할 수 없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실재 속에나 지성 속에나 모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마지막 기도를 하면서 그는 하나님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드린다. “당신의 온유하신 은혜로 내가 이전에 믿었던 것을 나는 이제 당신의 신성한 계시를 통하여 이해하였나이다.”

 

22. 스코투스 에레우게나의 학설을 약술하라.

자연 구분론

에리우게나의 「자연 구분론」의 복잡한 논거는 그의 저서의 제목에 나오는 두 단어의 이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연에 의해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이해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런 노력의 배후에는 자연은 신과 피조물 모두를 포함하는 것임을 은연중에 의도하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가 자연의 구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신과 피조물, 즉 전체의 실재(實在)가 구분되는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서 구분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실재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구분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구분은 우리가 실체를 유형적인 것과 무형적인 것으로 구분할 때처럼, 더욱 보편적인 것에서 덜 보편적인 것으로 이행함을 의미한다. 또 무형적인 것은 “생명이 있는 것”과 “무생명적인 것” 등등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분석에 의해서는 구분의 과정이 역전되어 실체로부터 구분된 각 요소들은 합쳐져 단일의 실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리우게나의 구분과 분석의 방법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것은 그의 다음과 같은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신념은 인간의 정신은 형이상학적인 실재들과 일치되어 활동한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구분”하고 “분석”할 때, 그것은 단지 “개념들”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행동하는가를 기술하는 행위와 닿아 있다는 것이다. 신이 궁극적인 통일체라면 사물과 세계는 이 근본적인 통일체의 구분된 요소들이며 분석은 사물들이 신에게로 회귀(回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에리우게나에 따르면 사유의 법칙은 실재의 법칙과 동일하거나 혹은 평등한 것이었다.

이러한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에리우게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여타의 모든 사물이 그것에 의지하며 그것에로 회귀하는 유일한 참된 실재가 존재하는 바, 이 실재가 곧 신(神)이다. 그는 자연의 모든 실재 내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구분이 가능하다고 하며, 1) 창조할 뿐 창조되지 않는 자연, 2) 창조되며 창조하는 자연, 3) 창조되며 창조되지 않는 자연, 4) 창조하지도 창조되지도 않는 자연이 그것이라고 하였다. 에리우게나는 이 구분들에 대한 그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기술하기 위한 기독교적이고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그리고 특히 신플라톤주의적 개념들을 사용하여 그 각각의 구분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세밀하게 고찰하였다.

1) 창조할 뿐 창조되지 않는 자연

에리우게나는 이것이 만물의 원인이지만 자신은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신(神)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신은 무(無)로부터 모든 피조물을 존재하게 한다. 무명의 필자 디오니시우스가 했던 구별에 의하면 신에 대한 지식은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대상들로부터 이끌어내는 속성들은 자신의 무한성 안에 모든 완전성을 소유하고 있는 신에 대해서만은 어떤 의미에서든 적용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지혜나 진리와 같이 있을 법한 속성들도 무조건 신의 속성으로 돌릴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에리우게나는 그러한 속성에 초월적이라는 단어를 첨가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신에 대해 초월적 진리니 초월적 지혜니 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술어 혹은 범주 또한 신에게 적용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범주는 어떤 형태의 실체를 가정하고 있지만-예를 들면 “양”은 크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과 같이- 신은 정의 가능한 영역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에리우게나가 신의 본질과 “무(無)로부터의” 창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내용의 대부분은 기독교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신과 피조물과의 관계를 다루는 경우에는 신플라톤주의가 지배적이어서 그는 신과 피조물 사이에 현전한 구별이 없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려웠다. “신이 만물을 만들었다는 말을 우리가 듣는 경우, 우리는 신이 만물 속에 내재한다는 의미 이외에 어떠한 것으로도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에리우게나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는 것은 신만이 “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며, 결국 모든 사물 속에 내재하는 것은 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창조되며 창조하는 자연

이것은 모든 피조물의 각 원형(原型)인 신의 형상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모든 창조된 종들의 “원초적인 원인들”이다. 에리우게나에 의하면, 그것들이 “창조 된다”고 하는 것은 그것들은 시간의 어떤 지점에서 존재하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는 통시적(通時的) 계열이 아닌 논리적인 계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신 안에는 만물의 창조적 원인들을 포함하여 만물에 대한 모든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창조적 원인은 신의 형상이자 사물의 원형이며, 인간의 지혜가 초월적 지혜와 연관되는 것처럼 모든 피조물들이 창조적 원인들과 연관된다는 의미에서 그 창조적 원인들이 “창조 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여기에서 창조란 단어를 사용하였지만 그에게 창조란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의 형상과 피조물간의 영원한 관계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3) 창조되나 창조하지 않는 자연

이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의 세계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그것은 창조적 원인의 집합적인 외적 결과를 가리킨다. 무형적(無形的)이건(예로 천사나 지성, 영혼 등) 유형적(有形的)이건(예를 들어 인간과 사물들), 이들 결과는 신의 형상의 참여인 것이다. 특별한 사물들이 개별적인 존재의 상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이들 존재의 전체적인 위계질서의 근본은 신이라고 에리우게나는 강조하였다. 그는 사물들의 이러한 위계적 조명을 공작의 깃털 위에서 반사되는 다양한 색깔에 비유하였다. 각각의 색은 실재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깃털에 따라 다른 것처럼 색은 독립적인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된 세계에서 각 개체는 신의 정신 속에 내재하는 자신의 창조적 원인에 의해 실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통일체이므로, 그의 정신 안에 있는 이데아나 원형에 대해 말하는 것은 비유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것들 모두가 하나의 통일체를 구성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세계도 또한 공작처럼 하나의 통일체이며, 신은 만물 속에 내재하기 때문에 신과 세계 사이에는 마침내 포괄적인 통일체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은 초감각 자에게 귀속되고 또 그것과 융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지 신의 형상의 반영이나 “회귀하는” 일련의 유(類)와 종(種)으로서 “표출되는” 하나의 패턴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에리우게나의 의도는, 신의 형상은 신과 피조물의 중간에 서서 마치 신의 형상이 신을 향해 “올려다”보기도 하고 외적으로 표출된 형상들을 “내려다”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신플라톤주의에 의해 형상과 신과 피조물간의 “간격”을 없애고, 그것들 모두를 하나의 통일체로 흡수시켜 범신론으로 이끌게 되었다.

 

4) 창조하지도 창조되지도 않는 자연

이 마지막의 것은 창조된 질서의 목적으로서의 신을 가리킨다. 만물은 신으로부터 나와서 다시 신에게로 회귀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비유를 사용하여 신을 움직이지도 않고 사랑에 빠진 자를 견인하는 연인에 비유하였다. 한 원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시 그 원리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편적인 원인은 자신에게서 생겨난 많은 사물들을 다시 자신에게로 끌어들인다. 이러한 회귀와 더불어 모든 악에 대해서도 하나의 목적이 존재하며 인간은 이러한 관계로부터 최종적이며 궁극적인 신과의 결속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23.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약술하라.

토마스의 독창성과 강력한 힘[정력적 노력]은 이 선책을 반박하는데 있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성서의 신앙과 대립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신앙은 지성을 필요로 하며, 지성은 신앙을 밝혀주고 강화한다. 그는 (Quodlibet, IV)에서 "만일 우리가 유일한 [종교적] 권위에 의해서 신앙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텅 빈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확실하게 진리를 소유할 것이다."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신학은 최고의 지식이며, 이성과 철학은 신학의 시녀(servantes)가 되어야 한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다시 생각하면서, 그 철학 속에 창조, 인격의 불멸성, 자유 등의 이론을 통합하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384-322)의 신은 선지자의 신과 동일한 신이라고 확신하였고, 유일한 신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는 세계의 우연(contingence)을 함축하고 있는 창조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 입장(이 입장은 시간 속에서 세계 최초에 대한 미묘한 해결하는데 이르지 못했었다)과 양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24. 둔스 스코투스의 철학을 약술하라

우리의 자연적 지식은 감각적인 직관으로 확인되는 범위 안에서 확실하다. 그래서 초자연적 사물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정확하고 매개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적 이성으로 접근 할 수 없는 것에 이르기 위하여 계시를 필요로 한다. 형이상학의 대상은 신이 아니고 존재(l'etre)이다. [우리가 보기에 인식론의 대상은 형상 존재이며 형이상학의 대상은 질료존재이다. 이 질료 존재에 자기 정체성(자아 정체성) 문제가 제기된다는 점에서 실천과 공동체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형이상학은 신에 대한 추상 개념에, 신학은 구체적 개념에 이른다.

존재(l'etre)는 존재인 한에서, 가장 보편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하나이자 동일한 의미(univoque)에서 모든 존재자들을 위하여 발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존재가 더 넓은 어떤 규정성(결정성, determination)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존재를 신과 세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말해야지, 유추에 의해서만 말할 것이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둔스 스코투스는 초월자들(les Transcendantaux, 이 말은 모든 존재자에 타당한 술어라는 의미이다) 가운데 교환 가능한 술어(passiones convertibles)와 선택적 술어(passiones disjonctae)를 구별한다. 전자는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이자 진리이자 선이며, 후자는 부분적으로만 존재에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며, 유한-무한, 필연적-우연적 등이다.

스코투스는 지성에 대해 자유의지의 우선성을 옹호한다. 의지는 분명히 오성이 인식할 수 있었던 것에 영감을 줄 수 있으나, 오성이 제시한 내용을 선택하는 것은 의지이다. 스코투스에서 신은 또한 의지를 소유한다. 자신의 총체에서 창조는 신적 의지로부터 나오며, 신은 논리적 모순이 없는 것만을 원한다. 그래서 도덕적 질서도 신적 의지에 의존한다. 결국 선하다는 것은 신이 원한다는 점에서 선하다. [신의 의지를 강조한 것] 의지의 우선에는 사랑의 중요성에 대응한다. 인간의 완성은 모든 도덕성의 근본인 신의 최고 사랑에서 이루어진다.

우리의 행동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생겨났을 때 선하다. 스코투스는 두 개의 계명(Commendements)을 구별한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타당한 계명이며,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신도 변경할 수 없는 계명(이것은 신에 연관된 초기 10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의 조건에 필수적이라면, 신이 변경할 수 도 있는 계명(예를 들어 일부일처)이다. 그러나, 이 후자의 계명도 신이 오랫동안 다른 명령을 하지 않을 만큼 인간에게 타당하다.

 

25. 데카르트의 철학을 약술하라.

뚜렌느 지방의 라 플레쉬(La Fleche)에서 교육을 받은 후, 데카르트는 수학만이 관념의 명석함과 이성의 확실성을 유지한다고 보았다. 그는 보편 수학의 원리에 따라서, 인식을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아야 할 모든 대상들은 수학적 공리와 같은 방식으로 '계열화되어 있다(s'entresuivre).' 이 보편 수학은 지식[학문]의 보편성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지식의 보편성이란 자연의 통일성 위에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의 다양성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도일한 방식으로 대상에 적용할 수 있는 정신의 통일성에서 성립한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제 3장에서 학문의 단일성과 그 도구로서 인식의 단일성에 이란 두 가지의 단일성이 선결문제의 오류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1) 직관과 연역

그러므로 우선 중요한 것은 방법이다. 모든 인식을 이성의 유일한 질서에 복종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 가지 과학 논문[기하학, 광학, 기상학]의 서문으로 쓰여진 『방법서설(Discours de la methode, 1637)』에서 데카르트는 4가지 규칙을 발설한다.

먼저 명증성(l'evidence)은 이 방법의 원리이다. 명증성은 주의 깊은 정신이 부여한 확실함에 대해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진리로서 인정하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다른 세 가지 규칙이 이 방법의 작업에 관여한다.

무엇보다 먼저 아직 모르는 크기를 방정식으로 작업하는 수학적 방식에 영감을 얻은 분석(l'analyse)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까지 작은 부분들로 나누는 작업이다.

그리고 나서, 단순한 것, 즉 가장 쉽게 잘 알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가장 복잡하고 복합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종합(la synthese)가 있다. 이것은 유크리트의 『기하학 원론(Elements)』에서 기하학이 연역적 순서로 따라가는 것을 표본으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성에 의해 [사물의] 연쇄계열을 다시 열거(la recapitulation)하는 것으로, 정신이 한눈에[단번에] 표상하기 위해서이다. [이 전체를 매거하는 것은 당연히 진리의 전제이다.] 그래서 명증성은 모든 진리의 모델이 되며, 진리는 명증성이다. 이 명증성은 직관에 의해서 파악되고, 방법의 3번째 규칙(종합)에 부합하며, 그래서 진리는 명증성에서 연역된다.

우리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이 규칙들을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오류를 범할 가능서이 있는 것은 우리의 자유재량[자유의지] 때문이다. 만일 오류를 범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 다시 말하면 판단하는 우리 능력이 무한하고, 유한한 오성(l'entendement)의 명석 판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 오성의 한계를 분명하게 밝히는 작업은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자유의지나 우리의 인식 능력의 무한함이 오류의 가능성이라기보다 진리 생성의 권능(또는 창조의 가능성)으로 개방성을 주장하는 것은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서 표출될 것이다.]

2) 의심(회의, le doute)

의심할 수 없는 것을 명백히 밝히는 최상의 수단은 체계적 의심을 거치고 난 뒤에 진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의심은 정신이 불확실성에 사로 잡혀있는 자발적 의심과 다르다. 데카르트의 의심은 또한 판단 중지를 지혜의 결정적 규칙으로 삼는 회의주의의 의심과도 다르다. 그의 의심은 방법적이고 임시적이다. 그것은 진리에 접근하려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판적 기능이며 어원적으로 보아 경계설정의 기능이다. 그래서 그 수단을 통하여 확실함과 의견[속견]을 구별할 수 있다. 이리하여 데카르트는 매우 야심적인 방식으로 한편으로는 이미 진리라고 주장된 과거의 모든 유산을 거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앞으로 올 과학을 결정적으로 보증하려고 하였다.

3) 코기토(le cogoto):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의심을 통하여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첫 번째의 확실함은 사유의 확실함 즉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이다. 세 가지 계기가 이 확실함을 구성한다. 첫째로 확실함은 "내가 있다. 내가 존재한다(je suis, j'existe)"이다. 의심은 이 확실함을 공격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심이 확실함을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한다는 것, 그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의심은 사유의 양상(modalite)이기 때문에, 나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나는 생각 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나의 존재를 확신한다. 셋째로 그러므로 나는 하나의 영혼이다. 데카르트는 영혼을 생명(la vie)의 모호한 원리로서가 아니라 사유하는 실체(res cogitans) 또는 사유하는 사물로서 규정한다. 사유 주체의 자신에 대해 무매개적으로 현전(la presence)하는 의식은 이리하여 모든 가능한 진리의 근거가 된다.

4) 선천성과 이원론(Inneisme et dualisme)

이 코기토로부터 두 가지의 귀결이 나온다. 첫 번째로 인식이 전자의 밖에서 그 기원을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석판명하며 진실한 관념은 선천적(innee)이다. 둘째로 의심의 방법과정에서 나는 순수사유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혼과 신체, 즉 정신과 물질을 따로 분리해야 한다. 영혼과 신체는 두 개의 실체이며, 이들의 본질은 절대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즉 사유이며, 비물질적이며, 다른 하나는 기하학적 순수 너비(l'etendue pure)이며, 보편기계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유 주체에 마주하고 있는 세계는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것으로 영혼이 없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들이 자연에 부여하고자 했던 의도도 신비적(occulte) 힘도 없다. 이 기계적 세계는 수학적 탐구에 종속되고, 자연의 지배자이자 소유자로서 기술자의 기획에 지배받고 있다.

5) 신

데카르트는 우리 속에 있는 완전한 관념으로부터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이 관념은 오성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명석 판명한 관념이다. 그리고 오성은 자신의 고유한 힘으로는 이 관념을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성 그 자체는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존재는 우리의 정신 속에 있는 완전한 관념의 원인이다. 신은 두 번째의 확실성이며 사유하는 주체의 확실성으로부터 도출된다.

그러나 또한 세계는 신에게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여전히 과학의 관심과 종교의 관심을 화해시키려고 시도했다. 즉 기계적 자연조차 신적 "기술자"를 함축하고 있지 않은가?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는 순수 기계론적이기 때문에 세계는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없고 세계는 신적 창조("연속적 창조"이론)에 항구적으로 매달려 있다.

6) 도덕과 정념

만일 영혼, 세계, 신에 관해서 반성하는 형이상학이 지식의 나무의 뿌리를 구성한다면 물리학은 나무의 줄기이고, 역학과 의학과 도덕학은 나무의 가지들이다. 그러므로 도덕학은 이미 구성된 지식의 전체로부터 연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형이상학과 물리학의 확실성을 발견한 시대를 가정한 것이며, 이런 확실성으로부터 도덕론은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의 본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 품성(행동)의 과학으로 연역될 수 있고 생겨날 수 있다. 그 때까지는 잘 행동하고 품성(행동)의 규칙에 복종해야 한다. [규칙이 완성되기 전에는 일반적인 관습의 방식에 따라서 평소대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를 데카르트는 주장한다.] 여기서 임시적인 도덕의 관념이 나온다, 이 도덕관념이란 확실하지 않지만 그럴듯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이 신중함의 규칙은 데카르트에게 자신의 철학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조용함을 얻을 목적으로 나온 것이다.

결정적인 도덕론의 목적은 행복을 위하여 영혼의 정념(passion)과 감화(affection)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정념은 신체적 매카니즘의 자발적(involontiare)운동의 결과이며 영혼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반면에 의지적(volontiare)운동의 경우에 영혼은 신체에 작용하고 권고한다. 그래서 정념에 의해 생겨난 표상들은 자연히 혼동되어 있어 진리의 탐구를 모호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유의지의 결과에 의해서 정념을 막을 수 있거나 "치유(guerir)"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에 따라 이용할 수 있고 이성에 의해 절제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들을 변경시키면서 우리는 우리 신체를 변모시킬 수 있고 우리 정념을 평화롭게 할 것이다.

 

26. 파스칼의 철학을 약술하라

1) 인간, 분할된 존재, 모순 된 존재

『빵세(Pensees, 1657-1662)』는 무신론자들을 크리스트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쓰여졌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 존재를 갈래로 갈라놓은 분할(division)에 관해 강조하였고, 독자들에게 신앙만이 유일한 구원이며 모순을 드러내어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라고 설득하고자 했다. 감각과 이성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사실상 인간에게 직접적이고 손쉬운 쾌락에 빠지지 않도록 하며. 또한 쾌락을 거부하는 것이나 진리에 접근하는 것이나 똑같이 못하도록 한다. "천사도 짐승도 아닌" 인간은 자신 속에서 생겨나는 근본적인 불만으로부터 대립되는 경향성들에 복종하고 있다.

파스칼에 따르면 철학에 의해 제시되었던 인간에 대한 여러 개념들은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역설을 만들어 낸다. 스토아학파는 현자가 진리를 소유할 수 있고 신과 동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피론학파(고대 회의주의철학자 피론(Pyrrhon, env. 340-275 av.J.-C.) 의 제자들)와 몽테뉴(Montaigne, 1533-1592)는 반대로 어떤 확실함에도 도달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리하여 철학의 이 두 학파는 두 종류의 과도한 길로 나아갔다. 한 경우에서 오만의 길로 다른 경우에서는 절망과 나락의 길로 나아갔다. 그런데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의 동기(raison)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두 과도함 쪽으로 정신을 쏟기보다 오히려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부분들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인간의 비참함과 위대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2) 자기 사랑[이기심], 상상, 심심풀이

(l'amour-propre, l'imagination, le divertissement)

사유를 그 자체로 내버려두면, 사유는 곧바로 존재의 무상(l'inanite)과 공허(la vanite)를 발견한다. 그러나 많은 장애물이 사유가 가는 길을 막고 있다. 파스칼에서 자애(l'amour de soi)를 의미하는 자기 사랑[이기심]은 인간의 주의를 유일한 대상인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하고 모든 삶을 위협하는 무(le neant)와 삶을 조금 씩 조금씩 파멸하게 하는 시간(le temps)에 관한 [인간 스스로에게] 생각을 회피하게 한다. 인간이나 사물에 존재하지 않는 성질들을 부여하는 상상은 허구적으로 빈 것(le vide)에 [무엇인가를] 채우거나 설치하게 하는데 여기서 빈 것이란 인간 존재의 조건을 괴롭히는 것이다. 결국 심심풀이는 우리를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멀어지게 한다. '심심풀이하다'는 것은 어원적으로 어떤 사물에 등을 돌리다(se detourner de quelque chose) 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할 일이나 주요 관심사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직분을 잊고서 딴 짓을 하며 놀고 있다는 의미이다]. 시합이나 단순한 일이 중요하다면, 이기고자하거나 성취하고자하는 희망이 우리 정신과 의지를 사로잡는다. 반대로 휴식은 자유로운 흐름을 반성에 의해 생긴 고민으로 가게 내버려두기 때문에, 휴식이란 것은 거스르는 것이 된다.

3) 자존심(dignite)과 사유의 무능

만일 파스칼이 인간 조건의 비천함을 묘사하려 하고, 이 비천함을 가리는 눈속임을 고발하려 애썼다면, 그는 이 조건에서부터 위대함을 구성하는 어떤 것이 있음을 무시하지 않았다. 인간은 아무리 비천하다하더라도 자기 조건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유는 어떤 다른 존재와도 차이 있는 인간에게 비할 바 없는 자존심(dignite)을 부여한다.

그러나 파스칼이 인간을 미천하게 보는 자들의 견해를 약화시킨다면, 그만큼 그는 인간의 위대함을 선양하는 자들의 견해에 반대해서 일어난다. 결국 사유의 힘은 한계가 있다. 감각, 자기 사랑, 상상, 심심풀이 등과 같이 외적인 방해는 사유를 혼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사유는 내재적 한계를 허용한다.

「기하학적 정신」이란 제목이 붙은 글에서 파스칼은 모든 것을 정의하고 모든 것을 증명하는 이상적 방법을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접근할 수 없다고 제시한다. 『빵세』에서 그는 무한히 큰 것과 무한히 작은 것으로 이해된 무한성(l'infinite)을 인간의 정신으로서는 감싸 안을 수 없다는 생각을 전개한다.

 

27. 스피노자의 철학을 약술하라.

우리가 사유함을 배우는 것은 지고의 선, 소통할 수 있는 진실한 선, 최고의 만족과 또는 지복을 주는 선을 발견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 선은 우리를 정념의 혼란으로부터 "구출(sauver)" 하는 이성에 따라서 사는 것이다. 스피노자 탐구의 도덕적 목적성은 『오성 개조론(Traite de la reforme de l'entendement, 1661)』의 앞부분부터 제시되어 잇고, 스피노자의 중심저술의 지도 선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는 『윤리학』을 안전을 이유로 출판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이 책은 사후에 출판되었다]

(1) 기하학적 방법: 스피노자는 『오성 개조론』속에 이미 제시했던 방법을 시험하고 있다. "가장 완전한 존재의 관념"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관념과 모든 인간적 실천을 끌어내기 위해서 [기하학적 방법을 사용한다] 『윤리학』은 가장 높은 반성적 도덕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반성적 도덕은 스피노자가, 수학자가 행하는 것처럼, 정의를 먼저 제시하면서 형이상학적 원리를 풀어놓고 있다. 책의 각 부분들은 정의, 공리, 명제 그리고 증명이 뒤따르고, 명제들을 부명제(scolie)와 부록 속에서 전개하기로 한다. 연속적으로 다섯 부분을 다루고 있다. 즉, 「신」,「정신의 본성과 기원」,「감정의 본성과 기원」, 「인간의 예속과 감정의 힘」,「오성의 권능 또는 인간의 자유」

 

(2) 형이상학적 원리들: 스피노자는 정의에 의해서 자연 속에는 신이외 다른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모든 것은 속성이나 양태라고 정립한다. 신 즉 "자연"으로부터 존재하는 모든 것(존재의 양태들)이 자연적 필연성에 의해서 나온다. 모든 사건들은 엄격한 결정론에 의해 복종된다. 그리고 목적인은 없다 [결과에 이르는 목적인은 스피노자의 원인과 전혀 다르다]. 자유의지는 환상(illusion, 착각)이다. 사물(그것의 속성은 너비l'etendue)과 관념(그것의 속성은 사유la pensee) 사이에 충만한(adequate, 또는 상관적인) 완전함이 있다.

(3) 세 가지 종류의 인식과 정념의 지배: 일상의 인간은 소위 말하는 획득된 지식 즉 비판적 시각이 아니라 '듣고 말하고' 또는 '모호하게 경험하는' 지각에 의해 만족한다. 이 첫 번째 종류의 인식은 정념적 행동으로 표시되고, 특히 미신적이고 열광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을 받기 시작한 사람은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에 따라 정의하고 연역할 수 있는 방식을 배운다. 그래서 그는 그 방법으로부터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면서 정념을 넘어설 수 있다. 즉 그는 "두 번째 종류의 인식"에 따라서 산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종류의 인식"은 즉 직관적 인식에 도달한 사람은 각 사물이나 각 사건을 신적 본성으로부터 다시 말하면 자연적 필연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으로 여긴다. 그는 모든 사물을 그의 독특성(단일성)뿐만이 아니라 그와 총체성과의 연결을 동시에 인식한다. 그는 걱정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반대로 그는 가장 높은 환희를 느낀다.

(4) 거짓 도덕과 진실한 선: 스피노자는 『윤리학』제4부에서 모든 거짓 감정, 걱정, 수치, 슬픔 등과 같은 거짓 행동을 분석하며, 이 거짓들은 사회적 삶에서 거짓 화해에서 생겨나는 것이라 한다. 그는 거짓 감정을 오성의 긍정적 관념 위에 기초된 진실한 감정을 대립시킨다. 즉 환희. 진실한 관념을 위한 사랑, 이성에 의해 인도된 한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은 진실한 감정이다. 이렇게 진실한 선은 인식하는 권능(puissance)의 확장에 근거한다. 합리적 도시국가에서 이성에 따라 사는 인간보다 더 유용한 인간은 없으며, 진실한 인식에 참여하는 것[나누어 가지는 것]이 증오, 복수, 죽음 등과 같은 슬픈 관념을 멀리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의 환상을 멀리한 후에 스피노자는 『윤리학』제5부에서 자유에 대해 진실한 지위를 다시 부여한다. 철학자는 진정한 자유에 접근하며 철학자의 지복은 덕 그 자체이다. 그래서 철학자는 "신의 지적 사랑" 다시 말하면 신의 영원성을 경험한다.

 

28. 라이프니쯔의 철학을 요약하라.

1) 호기심 많은 정신

라이프니쯔는 확실히 그의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이자 가장 교양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은 그는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였다. 즉 역사, 법률, 생물학, 수학[미적분은 뉴톤과 거의 동시에 발명하였다], 물리학 등. 그에 있어서 이런 다양한 접근은 산만한 표시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이중확신의 결실이었다.

이성은 모든 곳에 현존하고 있고, 실재성은 길어 올릴수록 무한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데카르트의 합리론에 대립하고 있지만, 데카르트의 합리론과 반대로 라이프니쯔의 합리론은 변화하는 감각적 실재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는 그것을 끌어안고 갔으며, 그것을 설명하고자 했다. 통일성(단일성)을 거부하지 않고서 다양성을 사유하는 것, 또한 다양성을 거부하지 않고서 통일성을 사유하는 것, 그것은 근본적으로 그의 모든 철학을 활기 있게 하는 요청에서 나왔다.

2) 모나드(la monade) - 진실한 단위(l'unite, 통일성, 단일성)

게다가 라이프니쯔에 따르면, 모든 실재성의 근본을 구성하는 것은 단위(단일성)과 다양성의 결합에서이다. 그러면 무엇이 진실로 존재하는가? 라이프니쯔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 말로 단위(unite 단일성)를 의미하는 개별적 실체, 이것을 그는 모나드{monade, 모나드 자체가 그리스 말 monas에서 온 말이다]라고 불렀다. "그는 하나(un etre)의 존재가 진실로 있지 않다는 것은 존재(un etre)가 진실로 더 이상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썼다.

그러나 모나드의 단위는 단순한 집적물의 단위가 아니며, 왜냐하면 집적물의 단위는 예를 들어 조약돌 무더기의 통일성(unite, 현대적 의미의 집합, ensemble)처럼 순수히 외적인 단위이기 때문이다. 모나드의 단위는 진실한 단위이며, 내적이며, 살아있는 유기체의 경우처럼 복합물에 응집력이 있는 단위이다. 항상 나누어 질 수 있는 수학적이고 물리적인 점과 반대로 진실로 "형이상학적 점"인 모나드는 하나일 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것과 차이(difference)있는 유일한(unique)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모나드는 진실로 실체이다. 결국 실체가 속성에 적용될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정의 될 수 있다면, 거꾸로 그 자체는 이번에는 속성으로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주어로서 사용될 수 있지만, 술어로서 사용될 수 없는 것이다] 개별적 실체 즉 모나드로서 케사르(Jules Cesar)를 생각해보자. 그는 황제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그와 다른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그가 케사르이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속성을 지지해 주는 실체로부터 그런 속성을 분리할 수 있다는 것은 추상에 의해서 일 뿐이다. 실제로, 속성의 총합은 실체를 구성하기도 하고, 개별화하기도 한다. 실체는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규정을 포함한다. 결국 모나드는 "대문도 창도"없다. 그 때문에 수동적으로 밖으로부터 자기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 반대로 모나드는 능동적 힘이며, 그의 고유한 깊이에서부터 그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내고 있다.

3) 예정 조화

그래서 각 모나드가 포함하고 있는 것은 자기의 고유한 역사뿐만이 아니라, 그가 흔적을 그리고 있는 전 우주를 포함하고 있다. 모나드의 활동은 점점 더 우주의 총합에 연결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지각은 무의식적인 "미세지각(petite perception)"의 총합이다. 내가 바다의 물결(파도) 소리를 지각할 때, 나는 물방울 각각의 소리를 이해하고 있지 않고 있다하더라도 지각하고 있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며 우주에서 순행하면서 내는 소리가 굉장하더라도, 즉 인도에서 이 소리를 '옴'이라고 한다하더라도, 우리는 듣지 못하나, 그래도 우리 온몸은 지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방앗간의 주인이 방아소리를 계속 듣게 되면 방앗간의 소음에 주목하지 못하고, 음식 만드는 요리사가 같은 음식을 만들면서 그 음식의 냄새를 잊고 있듯이.] 이렇게 각 모나드는 마치 거울처럼 전 우주에 반향(반사)을 행하고 있고, 그 모나드는 집중화되어 있으며, 또한 자기 자시의 관점으로부터 표현한다. 이런 생각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하여, 라이프니쯔는 극장의 비유를 이용한다. 그 극장에서 구경꾼은 그가 앉아있는 그 자리에서, 옆 사람과 동일 광경을 본다.

이처럼 한 모나드가 다른 모나드에 외적 행동을 행함이 없이, 모나드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있다. 왜냐하면, 모나드들은 그 각각이 다른 것과 동의[합의]가 있다는 의미에서 보면 신에 의해 규제된 우주에서 서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라이프니쯔가 영혼과 신체의 결합에 대한 어려운 문제에 대답하려고 한 것이 예정조화라는 주제이다. 그래서 [이 주제에 따르면] 이 둘 사이에 상호 문제되는 행동을 가정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하다. 그러나 이 양자가 일치하거나 서로 만난다면, 그것은 아주 단순하게, 영혼과 신체가, 마치 모든 모나드들 사이의 관계처럼, 서로 서로 "일치되어(accomodes)"있기 때문이다.

4) 가능한 최상의 세계

조화의 세계란 여기에서 고유한 의미로, 즉 음악적이고 미학적으로 쓰여졌다. 세계는 조화로운 총합이며, 그 아름다움은 부분들의 일치에 있다.

세계는 가능한 최상의 세계이다. 왜냐하면 세계는 통일과 다양의 이중요구, 다시 말하면 최대의 질서와 최대의 다양성의 이중요구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중요구 그 자체는, 한편으로, 연속성(continuite)의 원리에 부합한다. 여기서 연속성의 원리에 따르면, "자연에는 비약(sauts)이 없다"는 것이며, 세계에 질서와 통일성을 보장한다. 다른 한편 분간불가능성(indiscernable)의 원리에 부합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자연 속에 정확하게 닮은 두 개의 존재는 없다는 것이며, 그래서 존재의 다양성을 확정해 준다.

결국 만일 라이프니쯔가 세계는 가능한 한 최상의 세계이라고 확정한다면, 그것은 볼테르(Voltaire)가 거기에 대해 비난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순진한 낙관주의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주제는 충분 이유율의 원리에 부합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충분이유율에 따르면, "왜 어떤 것이 무가 아니라 존재인가 또는 왜 이렇게 달리 있지 않고 이렇게 있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만일 모든 가능한 세계가 똑 같이 선하거나 악하다면, 신은 이들 중에 어느 하나를 초조하기 위하여, 어떤 이유도 가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신은 반드시 선한 세계를 창조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이유를 충족하기 위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최상의 세계는 완전한 세계가 아니다. 악이 존재하나, 신은 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각 세계는 할 수 있는 한에서 그리고 모나드가 가능한 한 최상으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행하는 노력에서 이 한계를 넘어서고자 애쓴다.

 

29. 룻소의 주장들을 약술하라.

1) 인간 불평등 기원론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토대에 관한 담론(인간 불평등 기원론, 1755)』에서 방법론적 가설을 세운다(이 가설 작업은 역사적으로 정립된 진실은 아니다). 인간이 그 기원에서 자연의 자유로운 상태에서 살았다는 것을 전제로 삼는다. 인간은 완전히 자연적인질서 속에서 출현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그리고 첫 번째로, "자기애(amour de soi)"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루소에 따르면 모든 동물도 지니고 있는 자연적 감정은 자기를 보존하는 것이다(연민 pitie이 종의 상호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이로부터 모든 감정, 특히 정열의 감정도 도출된다. 또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합리적 상태 이전 상태'에서 산다. 루소가 그것을 설명하는 대로 "반성의 상태는 자연에 반하는 것이며, [명상하며] 생각에 골몰해 있는 사람은 타락한 동물이다."

이러한 자료로부터 출발하면, 원시적 사회 질서가 근원적 평등과 자유에 영향을 주지 않고서도 발달한다. 그런데 결정적 파국이 노동 분업과 사유재산(사적 소유)의 도입에서 일어난다.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과 반대로, 루소는 소유(재산)를 절대적으로 반대하지 않았고, 사실상 그는 노동에 기초하지 않은 소유를 단죄한다. 여기서 소유는 악을 만들고 인간을 타락하게 한다)

소유 양식[소유관계, rapports de possession]의 출현은 인간을 경쟁의 전투로 내몬다.

본래 선하기만 한 자기애는 이기심(amour propre)으로 바뀐다. (사람들은 타인보다 자기를 더 돌본다) 그리고 자연적인 평등도 사라진다.

문화의 발달은 인간에게 사슬을 채우고, 법률에 의해 [구속을] 더욱 더 가속화한다.

"이 법률은 약자에게 새로운 족쇄를 채우고 부자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한다."

언어, 학문, 예술의 발달도 마찬가지로 이런 진화(사슬을 채우는 것을 강화하는 것)에 기여한다. [베르그송도 그 시대의 언어 과학, 상식이 그 시대를 폐쇄성으로 내몬다고 보았다. 또한 "이성"과 "학문"은 풍습에 따라 자연적인 감정을 약화시킨다. "사치"는 인간을 유약하게 하고 기교는 인간을 불성실하게 만든다]

이에 대립하여 루소는 자유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내세운다. 그 한가지 길은 그의 교육 이상이다.

2) 에밀

『에밀(1762)』에서 그는 자신의 교육학을 본보기로 소개한다.

교육은 무엇보다도 학생이 사회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들 한다.

루소의 목표는 정신과 똑같이 마음(심정)을 형성하는 것이고, 이를 실현하는 길은 "소극적 교육(education negative [여기서 소극적이란 부정적 표현은 나쁜 영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다. 루소가 당시의 교육에 대해 비난한 것처럼 교육은 주입식이어서는(endoctriner) 안 된다.

어린이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워야만 한다. 그러기 위하여 교육이 어린이의 발달에 적응해야만 한다.

이리하여 루소는 『에밀』의 제1부에서 어린이는 독립성을 간직해야 하고 사물 자체에서 배워야 한다고 한다. 청소년 시절에 학생은 예술, 문학, 종교 등의 분야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고, 사회에 대한 학생의 요구가 반영되어야 한다. 선생은 건전한 주변 환경을 마련해서 그런 환경에서 어린이가 육체적으로도 튼튼하도록 해야 한다.

수공[기술]을 한 가지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데포(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1719)』와 같은 기초적인 책을 읽는 것도 단순하고 행복한 삶을 시작하는 데 기여한다.

3) 사회계약론

자유의 부활에 이르는 루소의 두 번째의 길은 그의 사회 철학과 정치 철학이다. 그의 근본적인 생각은 『사회계약론(1762)』에서 전개된다. 여기서 구성원들은 계약상태에서 공동체에 개입한다.

"우리들 각각은 일반의지(volonte generale)의 최고 지도 아래서 자신의 인격과 자신의 모든 권능(puissance)을 공통으로 삼는다."

각각은 일반의지에 개입함으로써 각각의 자유와 모든 사람의 평등을 보증한다. 왜냐하면 개인의 의지는 동시에 일반 의지에 속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의 법률에 복종할 따름이다.

자연적인 자유의 양도가 시민적인 자유를 구성하도록 해준다.

시민이 되기 위하여 말하자면, "결집체(associe, 연합체, 조합체)"가 되기 위하여(루소는 결집체라는 개념은 라틴어 사회(socius)에서 나온 단어인데 사회(societe)보다 선호하였다.), 개인은 자연적인 인간이기를 거부해야 한다.

"[자연적인] 인간을 만들거나 시민을 만들거나 이를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양자를 동시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계약에서 인민 주권이 나온다.

"법률"은 일반의지와 일치하여 공포될 경우에 타당한 법률(loi)이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법률은 그저 개인적인 시행령(decret [시행령, 조례])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어떤 개별 의지가 부여[관철]되는 경우를 구별[배제]해야 한다. 전체의지(volonte de tous. 개별의지의 총합)로부터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최상위의 규범으로서 일반의지의 타당성은 변하지 않는다.

인민 의지는 "법률"에서 표현되고 "행정부"가 다시 법률을 집행한다.

"사람들이 즉각 통찰하는 점들은 입법이 누구의 관할인지를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으며 - 왜냐하면 법률은 일반의지의 행위이기 때문에 - : 정부의 수반이 법률 위에 있는 지도 물어볼 필요가 없으며 - 왜냐하면 그는 국가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 : 법률이 부당할 수 있는 지를 물어볼 필요가 없으며 - 왜냐하면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해 부당하지 않기 때문에 - : 어떻게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법률의 지배를 받는가를 물어볼 필요가 없다 - 왜냐하면 법률은 오직 우리의 의지의 결정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 :"

루소는 소규모의 민주주의 정체를 [정부의 이상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이러한 정체에서 인민의회가 쉽게 조직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풍습의 측면에서는 소박하고 자연권과 재산의 측면에서는 평등해야 한다.

또한 공동의 시민 종교가 있어야만 한다. 몇 안 되는 실정적인 종교의 교리도 다른 종교처럼 사회 계약과 법률의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 1794년 5월 로베스삐에르(Maximillien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Arras 1754 - Paris 1794)는 최고 존재의 축제를 마련하였다. 테르미도르(더운달, 7월)의 반동으로 그도 1794년 7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다.

4) 잘못의 발생학[계보학]: 자연 상태와 사회상태

『에밀(Emile, 1762)』속에서 사브와 지방의 부사제는 "나는 지상에는 잘못이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잘못(le mal)이란 예속, 정치적 재량, 사회적 위선, 인위적인 것, 이기주의적 계산을 의미하며; 또한 잘못이란, 루소가 인간의 자기 보존을 의미하는 자연적 배려인 자기애(l'amour de soi)로부터 구별한 이기심(l'amour-propre)을 의미하며; 권력, 명예, 돈과 같은 인간에게 불길한 정념들에 지배당하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 자신이나 타인에게 분리된 인간이 투명성을 상실하는 것, 존재들 사이에 유대를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확실한 사실(ce constat)은 사회 속에서 사는 인간에 관해서 이다.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이미 자연으로부터 변형된 결과를 말한다. 만일 루소가 원죄의 독단을 거부했다하더라도(인간은 본성상 나쁜 것은 아니다), 그가 신을 고발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서 타락한 것은 인간 그 자신이다.

사회적 삶보다 앞서서 "자연 상태"의 지극한 행복은 『인간 불평등의 기원과 토대에 관한 담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egalite parmi les hommes, 1755)』에서 제시한 단순한 가설일 뿐이다. 이 가설은 잘못이란 태어나면서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기 위한 필연적이고 단순한 가설이다. 인간은 자신의 유일한 완전성에 의해서[통해서] 그의 근원적 순진무구함으로부터 - 순진무구함의 측면에서 보면 인간은 외톨이고 독립적이지만 도덕도 이성도 알지 못한다 - 잘못을 끌어낼 수 있으리라.

인간은 태어나면서 외롭고 독립된 존재이지만,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는 서로 공감하는 연민의 정이 있다. 이 본성은 순진무구하여 현실적으로 부딪히면서 잘하는 수도 있겠지만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그래도 잘못을 범한 인간도 잘한 인간도 내적으로 순진함 연민의 정이 있다. 누구든지 언제나 잘 할 수 있다는 것(완전성을 실행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인간 사이에 공감, 이것을 회복하고 확장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길이다. 원래의 완전이 있는 것은 아니라 순진무구가 있다: 이런 순진 무구를 라캉(Lacan)이 지위만 있는 상징으로 표현하였다면, 들뢰즈에서는 이것이 특이성으로서 존재이며, 순수 사건이며, 중성적 존재, 대상인 셈이다. 자연주의 전통은 프랑스 철학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성과 사상에 내재하여 면면히 흘러왔으나, 권력과 유일 신앙에 가리어 있었을 뿐이다. 전 인민이 주체로 등장함에서 중성적 순진무구는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 완전성(perfectibilite)은 칸트(Emmanuel 칸트ant, 1724-1804)나 꽁도르세(Condorcet, 1743-1794)가 보는 것처럼 진보의 근원이 아니라, 본성 왜곡의 근원이다. 그래서 사회적 삶이란 본성 왜곡에서 생긴 황폐의 한계이다.

5) 교육에 의한 안녕(le salut)

사회 계약은 사회적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을 해결한다고 말하는가? 아니다, 해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실재성이란 불행하게도, 사실상 보면, 권리의 원칙을 요구하는 것과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루소는 근본적으로 염세주의자이다.

로베스피에르(Maximillien Marie-Isidore de Robespierre, 1758-1794)와 생 쥐스트(Louis Antoine de Saint-Juste, 1767-1794)가 루소에게서 발견했다고 믿었던 것과 반대로, 루소는 집단적 안녕(구원)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사회 계약론』은 인류가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말한 것이 아니고, 만일 인류가 자기의 완전성을 최상의 용도로 사용할 경우에 인류가 무엇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불행에 대한 안녕[구원]이 있다면, 그러면 그 안녕은 개인적일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교육 작품에서 이루어진다. 『에밀』에서 그는 자연[본성](이것은 자연적 존재처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번역어로 우리는 '본성'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에 따라서 형성된 그리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부패한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된, "상상적 학생(l'eleve imaginaire)"의 교육을 묘사한다.

6) 도덕의식과 종교

『에밀』제 4권에서, 루소는 그 유명한 "사브와 지방의 부사제 신앙고백(Profession de foi)"을 서술한다. 거기서 전개된 첫 번째 주제는 도덕의식을 "신성한 본능(l'instinct divin)"즉 무매개적 보편적 감정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자연 상태"의 무도덕성(a-moralite)과 모순 되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연민을 느끼는 자연적 인간은 자신 속에 도덕적 씨앗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상태"란 인간의 현실적 타락을 알 수 있게 하는 허구(une fiction)일 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신앙 고백"은 도덕성의 구조를 정확하게 하고자 애쓴 것이다.

심장[가슴] 또는 감정의 도덕을 옹호하면서, 루소는 이성의 도덕에 반대한다. 그러나 도덕의 원리를 논리적 논증으로부터 연역하는 "추론적인 도덕(la morale raisonneuse)"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반대로 도덕적 감성은 심오하게 이성적이며 그 보편성에서 칸트(칸트ant)의 "실천 이성(la raison pratique)"과 재결합한다.

"신앙 고백"에 의해 전개된 두 번째 주제는 종교에 관해서 이다. 루소는 이 주제에서 자신을 자연 종교의 신봉자(un adepte)로 확정한다. 신은 심장[가슴]의 길을 통하여 접근할 수 있으며, 성스러운 문자나 목사들을 매개로 하여 접근할 수 없다. 이 주제는 유물론과 무신론을 비판할 목적이었다. 그래도 이 주제가 『에밀』을 단죄하는 기원에서 덜 관여한 것은 아니다.

 

30. 칸트의 철학을 요약하라.

칸트의 철학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봉건제로부터 자본제로의 이행이라는 역사적 상황에 의해 결정되었다.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18세기에 봉건제로부터 자본제로 이행했으며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이러한 역사적 변화의 절정을 이루었다. 칸트 철학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운동이 추상적인 철학의 차원에서 표현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칸트의 철학을 "프랑스 혁명에 관한 <독일적 이론>"이라고 불렀다. 또 엥겔스는 "프랑스의 정치 혁명은 독일의 철학 혁명을 수반했다. 칸트는 라이프니츠의 낡은 형이상학 체계를 무너뜨림으로써...철학 혁명을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자연 과학, 특히 뉴턴의 고전 역학은 칸트의 철학의 형성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칸트는 자연 과학적 인식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적 인식 자체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비판철학 이전의 시기>에 칸트는 자연과학과 자연 철학 문제를 특히 집중적으로 탐구했었다. 그는 <일반 자연사와 천체 이론>(1755)이라는 논문에서, 태양계는 공간상에 흩어져 있는 미세한 물질 입자로 구성된, 회전 운동을 하는 성운 덩어리들로부터 생겨났으며 이것이 뉴턴 법칙에 따라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칸트는 이러한 방식으로 진화론적 생각을 역학 법칙에 따르는 천제 운동의 과학적인 설명과 결합시켰다. 엥겔스는 바로 이 점에서 칸트가 형이상학적 세계상을 극복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보았다. "현재의 모든 천체가 회적 운동을 하는 성운 덩어리로부터 발생했다는 칸트의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이래 천문학이 이룩한 가장 커다란 진보였다. (이를 계기로) 자연은 시간적인 역사를 갖지 않는다는 관념이 최초로 흔들리게 되었다...여기서 칸트는 형이상학적 사유 방식과 완전히 일치하는 이러한 관념을 극복할 수 있는 최초의 돌파구를 마련했는데, 이 돌파구는 그가 사용한 증명 근거들이 대부분 오늘날 까지도 타당성을 인정 받을 정도로 과학적인 근거를 지닌 것이었다." 이로써 칸트는 변증법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영원하며 불변적인 세계 질서라는 관념이 우세한 동안에는 변증법적 사고가 전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하계 밖에 존재하는 은하를 가정한다든가 지구 자전이 조파(潮波)의 방해를 받는다는 등의 생각 또한 칸트의 자연 과학적 세계상에서 중요한 것들이다. 칸트는 데카르트와 갈릴레이로부터 출발해 운동과 정지의 상대적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러나 (칸트에게서 발견되는) 변증법적 자연 이해의 단초들은, 칸트 사상 속에 들어 있는 관념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생각들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칸트는 발전의 근원적인 시원을 신(神)에서 찾았으며, 생명체가 엄격히 자연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견해를 옹호하였고, 또한 동시에 유기체를 기계적인 운동으로 소급하는 기계론적 환원에 반대되는 사상을 옹호하였다. 칸트는 <철학에 부정량(否定量) 개념을 도입하려는 시도>(1763)라는 논문에서 논리적 근거와 실재적 근거를 정확히 구별하는데, 이 구별 역시 변증법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여기에서 칸트는 논리적 모순과 실재적 대립을 구별하며, 후자를 실재적 적대라고 명명했다.

<비판적 시기>의 칸트는 이론 철학, 윤리학, 자연철학 등을 적극적으로 완성할 수 있으려면 인간의 인식 능력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가는 <순수이성비판>과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저술된 <프롤레고메나 Proloegomena>(1783)에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앎이 도대체 가능한지의 여부와 또한 어떻게 가능한지의 여부를 묻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모색한다. 그는 우선 그러한 앎이 경험에서 유래할 수는 없다는 흄의 견해에 찬동한다. 그러한 앎의 원천은 선험적인, 즉 모든 경험에 앞서 주어진 감성의 형식과 오성 인식의 형식에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앎은 단지 판단의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 분석 판단이란 그 술어가 주어 안에 이미 포함된 것만을 포함하는 판단인데, 그러한 판단은 선험적(a priori) 판단이다. 그러나 분석 판단은 참으로 새로운 앎을 전혀 전해주지 않는다. 그에 비하여 술어가 주어 안에 아직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것을 항상 포함하는 종합 판단은 참으로 새로운 앎을 포함한다. 경험판단은 후천적(a posteriori) 판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 판단은 새로운 앎을 포함하기는 하나 보편 타당한 앎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칸트의 인식론적 물음은 선험적 종합 판단의 가능성, 즉 보편 타당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앎을 전달하는 판단의 가능성에 집중된다. 칸트는 이러한 물음을 수학, 순수 자연 과학, 형이상학 등과 관련하여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수학과 순수 자연과학이 선험적 종합 판단을 포함한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에, 그러한 학문들에 관련하여 제기되는 물음은 종합 판단이 그러한 학문들 내에서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뿐이다. 그에 비하여 형이상학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물음은 선험적 종합 판단이 형이상학 안에 과연 포함되어 있는가, 그리고 형이상학이 도대체 이론적인 학문으로서 가능한가라는 물음이다. <순수이성비판>의 주요 세 장(章)은 이러한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구하고 있다. 즉 초월적 감성론(Transcendental Aesthetic)에서는 감성적 직관이 탐구되며 초월적 분석론(Transcendental Analytic)에서는 오성의 활동이 탐구되며 초월적 변증론(Transcendental Dialectic)에서는 이성이 탐구된다. 그리고 초월적 분석론과 초월적 변증론은 초월적 논리학을 이룬다.

칸트에 따르면 수학의 경우에 선험적 종합 판단의 가능성은 수학적 인식의 대상을 형성하는 선험적 직관형식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러한 직관 형식들에는 외감(外感)의 형식인 공간과 내감의 형식인 시간이 있다. 기하학적 선험 판단의 가능성은 공간의 선험성에 의존하며 대수학적 선험 판단의 가능성은 시간의 선험성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공간과 시간은 객관적 실재가 갖는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직관의 형식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직관과 독립하여 있는 물자체가 어떠한 성질의 것인지는 원칙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칸트 철학의 주관적 관념론적이고 불가지론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그러나 물자체에 관한 칸트의 학설은 주관과 독립해 있는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유물론적 계기를 동시에 포함한다. 그런데 레닌은 칸트 철학의 근본 특징이 이러한 내적 모순성에 있다고 보았다. "칸트 철학의 근본 특징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화해이고 그것들 사이의 타협이며 그리고 서로서로 모순된 상이한 철학적 방향들을 하나의 체계로 결합시킨 것이다. 칸트가 우리의 표상이 우리 밖에 있는 어떤 것. 즉 어떤 물자체에 상응한다는 점을 인정할 때, 그는 유물론자이다. 칸트가 물자체를 인식 불가능하고 초월적이며 피안에 잇는 것이라고 단언할 때, 그는 관념론자로서 등장한다."

이론적 자연 과학에서의 선험적 판단을 가능하게 해주는 오성 활동의 선험적 형식을 칸트는 일반적 오성 개념 혹은 <범주>라고 부른다. 범주에는 양의 범주, 질의 범주, 관계의 범주, 양상의 범주가 있으며, 이들은 다시 각각 세 가지 범주를 포함한다. 즉 양의 범주는 단일성, 다수성, 전체성을, 질의 범주는 실재성, 부정, 제한을, 관계의 범주는 실체, 원인, 상호성을, 양상의 범주는 가능성, 현존, 필연성을 포함한다.

칸트는 범주들을 전통적인 형식 논리적 판단표로부터 연역해 낸다. 모든 판단 형식의 근저에는 순수 종합 개념이 놓여 있으며, 이 순수 종합 개념이 각각의 범주이다. 범주의 기능은 직관된 것을 일정한 방식으로 종합적으로 총괄하는 것이다. 각 범주는 사유의 종합을 규정하는 일종의 규칙을 의미한다.

이러한 범주적 종합이 이루어짐으로써 직관의 다양은 대상으로 사유된다. 모든 사물은 범주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리고 이 범주는 직관 형식인 공간과 시간처럼 보편타당하다.

즉, 칸트적인 의미로 객관적이다. 칸트는 이로써 순수 자연 과학에서 보편타당하고 필연적인 앎이 가능한가를 묻는 물음에 답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범주의 도움을 빌어 사유된 것은 각 범주 안에 포함된 종합 규칙의 보편타당성 때문에, 역시 보편타당함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에 따르면 원인 범주의 도움을 빌어 성취된 인과 관계는, 즉 직관된 다양들을 원인 범주 안에 포함된 종합 규칙에 따라 총괄된 것은 객관적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인간의 사유도 이러한 범주의 도움 없이는 사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트는 동시에 이러한 범주적 종합 일반과 더불어서만 비로소 합법칙적인 관계가 성립한다는 관점을 옹호한다. 그 결과 법칙을 생산하는 것은 바로 오성이다. 칸트에 따르면 자연은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서 규정되는 한에서의 사물들의 현존이기 때문에 자연도 역시 법칙 부여적인 오성의 산물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볼 때 오성 활동에 관한 칸트의 구상은 본질적으로 관념론적이다. 동시에 이러한 구상은 이론적 인식에 대한 변증법적 해석의 단초를 포함하고 있다. 범주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이러한 변증법적 해석의 단초에 속한다. 범주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서 칸트는 범주들의 각 그룹에서 처음 두 가지의 범주를 상호 대립하는 것으로,

마지막 세 번째 범주를 그것들의 통일로 파악한다. 그러나 인식에 관한 변증법적 구상의 발전에 무엇보다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점은, 칸트가 이론적 인식을 본질적으로 종합적 활동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칸트는 이미 헤겔에 앞서 이론적 인식에 관한 변증법적 구상을 위한 지반을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변증법적 구상은 그 후에 마르크스에 의해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상승이라는 이론으로 발전되었다.

칸트에 따르면 학문적 인식은 단지 감성적 직관과 개념적 인식의 통일로서만 가능하다. 또한 그에 따르면 순수 오성 개념의 도식(Schemata)과 생산적 구상력(produktive Einbildungskraft)이 감성적 직관과 개념적 사고를 매개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감성적 직관과 개념적 사고를 그것의 통일성 안에서 파악하고, 그럼으로써 감각주의와 이성주의의 역사적 대립을 극복하려는 칸트의 시도는 그 구상의 관념론적 토대로 말미암아 실패하였다. 오성은 감성 안에 주어진 다양한 종합적 통일을 범주들의 도움을 빌어 성취한다. 그리고 칸트에 따르면 이 종합적 통일의 근거는 통각(Apperzeption)의 선험적 통일이라 불리는 의식의 통일이지 인식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 실재적 통일이 아니다.

선험적 변증론에서 칸트는 이성 인식을 탐구함으로써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이 도대체 가능한지를 묻는 물음에 답하고자 한다. 칸트에 있어서 이성 인식이란 인간 사유가 순수 오성의 원칙들에서 출발하고 또 그것들에 의해 인도되어, 개념적 사유를 통일시키고 오성 인식의 피제약자에 대해 무제약자를 발견하기 위하여, 즉 예를 들어 그때그때의 제약된 원인에 대해 무제약적 원인을 발견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칸트에 따르면 이러한 노력을 경주하는 이성은 경험 가능한 한계를 넘어서며, 따라서 초월적(transzendent)으로 된다. 그러한 사유는 학문적인 이론 인식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어떠한 인식도 제공할 수 없다. 이러한 사유는 이념(Idea)으로 나아간다. 이 이념이란 이성 개념을 말하는데, 이 이성 개념에 상응하는 대상은 직관 속에 전혀 주어질 수 없다. 칸트는 영혼의 이념과 세계의 이념 및 신의 이념을 구분한다. 즉 영혼의 이념은 사유하는 주관의 완전한 통일성이며, 세계의 이념은 모든 현상들의 제약 계열의 무제약적 통일성이며, 신의 이념은 모든 현상들 일반의 절대적 통일성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념들은 초월적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는 학문적 인식을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문적 인식이란 오성과 직관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이념을 연구하면서 칸트는 이 경우 사유가 필연적으로 이율배반에 빠지게 됨을 지적한다. 이율배반은 각각이 똑같은 정도로 증명될 수도 있고 반박될 수도 있는, 서로 모순 되는 명제들로 이루어져 있다.

칸트는 수학적 범주와 역학적 범주를 구분한다. 수학적 이율배반은 세계가 유한 한가 혹은 무한한가, 그리고 세계가 단순한 부분들로 구성 되었는가 혹은 무한하게 분할 가능한 부분들로 구성 되었는가 혹은 무한하게 분할 가능한 부분들로 구성되었는가에 관한 이율배반적 진술을 포함한다.

칸트에 있어서 이러한 이율배반의 해소는 정립과 반정립이 모두 다 거짓임을 증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역학적 범주들은, 세계 내의 모든 것이 오로지 필연적인가 아니면 자유에 의한 원인도 있는가, 달리 말해서 세계 안에는 단적으로 필연적인 존재가 있는가, 혹은 없는가라는 물음과 관련된 이율배반적 진술을 포함한다.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을 그때그때 상이한 차원에 병렬시킴으로써 이러한 이율배반을 해소한다. 그의 윤리학에서 중요한 세 번째 이율 배반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해소된다. 즉 경험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필연성, 자연법칙에 완전히 종속되지만 예지적인 이성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칸트는 변증법의 핵심 문제인 모순의 객관성과 필연성에 대한 문제를 이율배반이라는 형태로 제기했으며, 그에 따라 이 문제를 이율배반은 사유 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한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칸트는 이율배반의 문제를 오직 전통 논리학의 수단에 의해서만 그리고 이원론적 세계관의 토대 위에서만 해소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칸트에 따르면 이성의 이념은 초험적 특성을 지니기 때문에 그 이념에는 구성적 의미 즉 대상들의 인식을 구성한다는 의미는 전혀 없다. 오히려 이성의 이념은 오성의 사용을, 단적으로 그것의 체계적 통일성 안에서만 규정하기 때문에 단순한 규제적 의미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칸트의 노력은 기독교를 가장 크게 위협하였다. 그의 이성의 능력의 제한과 지식의 범위를 축소하여 현상계에 국한함은 기독교의 존립을 크게 위태롭게 한 결과를 내게 하였다. 지식의 영역을 시공세계에 국한함은 곧 신의 존재와 그의 계시 내세 등을 다 불가지의 영역에로 추방하여 마침내 초월세계를 현상계와 무한한 것으로 단절한 결과를 냈다.

하나님은 알 수 없으니 없는 것과 같고 계시는 초월세계가 현상계와 연관 없으니 볼 수가 없어서 재래종교가 말한 계시는 내세계적 사적 일뿐이다. 단지 윤리적 생의 가능성을 위해 신과 내세와 자유가 요청될 뿐이다.

따라서 칸트 이 후에 신학의 진행은 그 이전과는 정반대였다. 또 신학뿐 아니라 다른 모든 학문은 다 그 영향을 입을 경험을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시의 영역을 감각세계에만 국한함으로 초월세계와의 단절을 초래하였다. 그러므로 칸트 이후의 신학은 계속적인 비 신학화의 연속이라고 할 것이다. 계속적으로 초월의 세계가 부정되고 인간의 경험영역에 국한되었고 형이상학적인 것들은 다 신화의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종교는 감정의 일로 가치와 관련을 갖는 의지의 일로 인정되고 지식의 영역은 아니게 되었다. 따라서 신학은 학적인 작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지식의 영역에 점차 멀어지게 되어 기껏 한계개념으로 존재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필요한 가설이 아니다. 모든 학문 활동의 전제에서 밀려나 전환적 반성의 맨 마지막에 오는 관념정도에 불과 되었고 창조주로서 하나님은 아니었다. 신학에서도 비 신학화의 작업을 통하여 계속 하나님의 자리는 한계개념으로 밀려나 우리 가운데 게신 하나님으로 인정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 기독교는 순전히 내세계적인 일이요 감성적 흥기 일이 된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어찌 말로 섬기며 우리의 삶을 바로 영위할 수 있겠는가? 표준이 없는 세상에서 방심과 불신앙을 어찌 바른 신앙에서 구분해 낼 것인가?

우리의 감각적 기관에 의해 하나님이 포착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고 또 인식할 수 없는 자로 여길 것인가? 인격적 존재인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받고 순종하는 길밖에 없는데 그것도 내세계적인 것으로만 볼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 기독교신앙이 믿고 전제하는 존재요 따라서 그런 존재는 칸트를 포함해서 만인이 그의 양심 깊이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31. 쇼펜 하우어의 철학을 약술하라.

칸트(칸트ant. 1724-1804) 가 구별한 현상과 사물 자체의 구별을 받아들이면서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라이프니쯔가 말하는 모나드가 세계의 모든 시각(vision)을 가졌다고 하는 것과 닮았다고 보고, 다른 한편, 베르그송이 세계는 이마쥬(image)의 총체라고 하는 것과 표상의 세계와 닮은 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는 현상의 세계이며, 쇼펜하우어는 이 현상의 세계는 착각(환상)즉 힌두이즘에서 마야(maya)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만일 현상으로서 세계가 착각이라 하더라도, 인과성(causalite)의 범주를 통하여 지각된다. 이때 네 가지 인과성이 있는데, 물리적, 논리적, 수학적, 도덕적 측면이 있다. 반면에 사물자체로서 실재세계는 현실 뒤에 감추어져 있어서, 지관에 의해 접근할 수 있다. 이 실재세계는 인과성도, 이유(raison)도, 없는 세계이며, 불합리의 세계이고, 맹목적 의지 즉 "생의 의지(vouloir-vivre)의 장소일 뿐이다. 쇼펜하우어는 맹목적 의지의 세계가 "세계의 수수께끼의 열쇠"를 구성한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불합리 일뿐만 아니라, 이 세계는 인간에서 보면 비극과 고통이다. "생의 의지"의 개인적이고 의식적인 표현인 욕망(Desir)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욕망의 포만에 사로잡혀(assouvissant)서, 자신의 이익에만 봉사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종[류적 인간]에도 봉사하며, 이런 경우는 성(sexualite)의 경우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욕망은 고통이다. 왜냐하면 욕망은 본질적으로 부족이고, 따라서 포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로부터, 인간에서 구원이란 욕망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무관심(이익을 추구하지 않는)과 미적 관조로서 예술(art)은 자유로운 "생의 의지의 정지"를 제공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길로 인도하고 있다. 연민의 도덕, 다시 말하면, 동정(compassion)의 도덕은 인간에게 "생의 의지"의 이기주의를 거부하게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각각에게 고통(번민)을 단죄하고, 또한 지혜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거부(부정)와 금욕주의를 통하여 인간을 진실한 지혜로 접근하게 하고, 또한 욕망과 생의 의지의 부정 즉 불교에서 니르바나(nirvana 열반)라고 말하는 부정에도 접근하게 하는 것은 철학과 명상(성찰)이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격정적으로 무너뜨리려고 한 것은 이 신비적 허무주의의 형식이다. 니체는 그 허무주의에서 사제들의 금욕적 이성의 표현, "권능의 의지"의 병든 퇴폐적 표현을 보았다. 그래서 니체는 권능의 의지의 개념을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의 개념으로부터 형성하였으나, 그런데 쇼펜하우어와는 반대적 의미를 띤다.

 

32. 헤겔의 철학을 요약하라.

헤겔 철학의 입장은 절대적 관념론이다. 이것은 그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의 모순, 대립을 매개하여 통일한 것에서 연유한다. 헤겔 철학의 원리는 절대자의 개념에서 설명될 수 있다. 헤겔은 절대자가 무차별적 동일자로서의 고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현실의 차별상으로서 분열시키고 발전시키는 자기 활동의 주체로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내용은 그의 '정신 현상학'에서 설명되는데, 이 책은 절대자의 자기 인식 곧 절대지(絶對知)의 생성 과정을 기술한 것이다. 의식의 출발점은 직접적인 감각의 확신이다. 이것이 지각 및 오성의 단계를 거쳐서 자기 의식으로 발전하고, 이것은 다시금 더 보편적인 자기 의식으로서의 이성으로 높여진다. 이성은 개인적인 자기 확실성과 현실 사회와의 일치로서의 객관적, 사회적인 이성의 단계로 발전한다. 이것이 곧 인륜적 세계이고 거기에 정신의 세계가 열린다.

이러한 정신은 인류.교양과 계몽.도덕성과 도덕적 세계관 등의 여러 단계를 거쳐서 종교로 높여진다. 종교도 자연 종교와 예술 종교를 거쳐 마지막으로 계시 종교(啓示宗敎)로서 완성되고 여기서 다시금 절대지에 이르게 된다. 이 최후의 단계에서는 지식과 대상, 사유와 존재가 떨어질 수 없이 완전히 통일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존재가 사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가 곧 사고인 것이다. 이와 같이 정신 현상학이 도달한 성과는 헤겔이 그의 철학 체계를 그 위에 세워야 할 바탕이 된다.

사고와 존재의 완전한 동일성의 주장, 곧 이성적인 것만이 진실로 현실적일 수 있으며, 현실적인 것은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할 것이라는 근본적인 전제 밑에서 헤겔은 자립적이며 자기 운동으로서의 절대자의 현실적인 운동 과정의 인식을 대상으로 하는 절대 이념의 철학을 확립하게 된다.

철학은 이성 개념(=絶對者)의 체계이거니와 이 이성 개념은 과정이다. 곧 모든 이성 개념은 원래 자기와 반대되는 것을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정립(These)은 반드시 부정되어 그 반대자로 옮겨지고 또한 그 반대자 역시 또 부정되어서 다시금 새로운 제 삼의 더 포괄적이고 높은 단계의 개념으로 발전하여 갈 수 밖에 없다. 이때 처음의 두 모순 개념은 제 삼의 개념의 계기 구실을 하게 된다.

곧 정립. 반정립(反定立, Antithese).종합(綜合, Synthese)의 3단계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아주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새로운 형태로 살려서 보존한다. 그리고 긍정과 부정을 함께 간직하는 새로운 긍정도 아직 완전한 전체적 진리일 수가 없고, 다시금 그 반대자로 전화(轉化)하고 또 이것과 저것은 새로운 통일의 단계로 자기 내 복귀된다.

이렇게 절대자가 자기를 자각하는 과정이 변증법이고, 이 3단계의 변증법으로 구성된 것이 그의 철학 체계의 전체를 이룬다.

 

33. 키엘케고르의 철학을 요약하라. 실존(實存, Existenz )

(1) 실존을 강조하게 된 동기 성직자가 되려고 했던 Kierkegaard는 당시 널리 확산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오해의 중요한 원인중 하나는 인간들이 인간의 삶 혹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생각을(의식을) 상실한 것이라고 믿었다.기독교국가인 덴마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이다 라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외면적인 교칙이나 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추구를 계속하고 회의하면서 뜨거운 내적 경험을 하는 데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철학 혹은 사색의 대상이 아닌 삶, 혹은 존재하는 것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2) 실존의 개념 덴마크어, 독일어, 그리고 다른 어군에서는 영어의 존재한다(exist)-혹은 실존한다-라고 번역될 수 있는 수개의 용어들을 가지고 있다. Kierkegaard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존재의 독특한 종유와 관련되어 있는 존재에 해당하는 하나의 용어를 포착하고서 그 것에다 새롭고 깊이 있는 의미를 부여했다.󰠓 물론 Kierkegaard의 실존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독교를 빠뜨릴 수는 없다. 그가 말하는 실존은 신 앞에 있는 실존인 것이다.(실존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Existenz ist vor Gott). 다시 말해서 실존은 신 앞에 자기 스스로를 자각하여 자기가 진정한 자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실존은 신 앞에 있을 때 되는 것이며 거꾸로 신 앞에 있을 때만이 진정한 자기 즉 실존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의 신은 단독 자, 외톨이가 된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신이며 완전히 좌절된 자, 마음이 가난하고 절망한 자만의 신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홀로 신 앞에 서는 존재, 신 앞에 홀로선 단독자를 참된 실존으로 보았다.

(3) 실존과 진리 실존이란 객관성이 아니고 주관성이다, 외면성이 아닌 내면성이다, 보편자가 아닌 단독자이다, 영원한 필연성이 아닌 시간적 우연성이다. 결국 Kierkegaard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개별적이고 주체적인 자기 존재를 최대의 관심사로 삼아, 진리는 객관적,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이라 하여 주체성이 진리이라고 했다. 주체성이란 육체를 가지고 원죄에 허덕이는 존재로서, 그러기에 부단히 자기 자신의 존재 방식에 관심을 쏟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적 실존을 말한다.

실존의 3단계 Kierkegaard는 실존의 자기 형성의 과정을 실존의 3단계로 표현하고 있다.

첫째는 감각적(미학적) 실존으로서, 이는 내적인 분열과 무익한 자기반성, 목표도 없는 인생의 향유 및 그로 인해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인간을 보여준다.

둘째는 윤리적 실존으로서 이는 미학적 실존의 불완전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자아의 선택을 내용으로 하며 최고의 규정임을 선언한다. 또 자아에 대한 인식 및 특히 그러한 인식에 의거한 행위를 요구한다.

이러한 두 실존 양식을 넘어선 세번째의 단계는 본질적, 종교적 실존으로 종교세계의 가치에 따라 살면서 신앙에 의해 본래적 자기를 찾으려는 삶이다. Kierkegaard는 윤리나 양심이 아니라 절대적인 신앙으로 사는 것이야 말로 종교적 실존이며 자신이 부단히 추구했던 진정한 실존으로 생각하였다.

Kierkegaard는 거의 확실히 실존주의적 운동을 자기 자신과 무관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오직 기독교국가에 기독교를 다시 소개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정열에 찬 열정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절망을 통하여 주관적으로 경험한 그 시대의 비합리성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만약 우리가 그의 논리적 결론을 따라 어느 정도 그와 같은 노선을 따른 다면, 불신앙 보다는 신앙을 더 선호해야 할 필요가 없고(진리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에 관한 객관적 지식도 인간의 조건에 따르는 주관적 지식으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34. 니체에 대하여 비평하라.

니체는 독일의 철학자이자·시인이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5살 때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나움부르크로 이사하였다. 포르타 김나지움 시절에는 음악과 그리스·로마 문화에 심취하였고, 1864년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古典文獻學)을 배웠으나 A.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이 시절 동안 A.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고, R. 바그너와 음악을 통해 깊은 관계를 맺었다. 69년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스승 리츨의 추천을 받아 스위스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70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이 터지자 위생병으로 종군하였으나 병에 걸려 제대한 뒤 평생 병고에 시달리는 몸이 되었다. 당시 유명한 작곡자로 알려졌던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했으며, 특히 비극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를 듣고 매혹된 나머지 처녀작인 《비극(悲劇)의 탄생(Die Geburt der Tragodie, 1872)》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는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을 빌려 그리스비극의 정신이 진실한 문화 창조의 원천임을 인식하고,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의 두 가지 원리로 그리스비극을 독창적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정신을 현대에서 부흥시킨 것이 바그너의 음악임을 논하여 그의 신예술운동을 지원하려 하였다. 뒤이어 발행된 《반(反)시대적 고찰(Unzeitgemaasse Betrachtungen, 1873∼76)》 4편은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독일 국민과 문화에 통렬한 비난을 가하는 한편 유럽문화에 대한 회의를 나타내고 천재(天才)를 위대한 창조자로서 문화의 이상으로 삼았다.

1편은 헤겔학파의 신학자 D.F. 슈트라우스의 《교양(敎養)을 가진 속물(俗物)》에 대한 공격으로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2편은 역사를 기념비적·골동품적·비판적인 3종류로 구분한 역사주의에 대한 비평이었다. 3편은 쇼펜하우어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동시에 니체 자신의 실존적 결의의 표명이기도 하다. 4편은 바그너가 바이로이트에서 공연한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 관한 찬사이다.

그러나 이 저술을 계기로 바그너와 절교하였으며, 이리하여 천재적인 재질에 의하여 새로운 게르만적 헬레니즘문화를 세우려고 한 낭만적 이상은 무너졌다. 그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79년 대학에서 퇴직하고 알프스산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해변을 전전하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사색을 계속하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1878∼80)》 《서광(Morgenrote, 1881)》 《기쁜 지혜 (Die frohliche Wissenschaft, 1882)》 등을 저술하였다. 이 저서들은 잠언(箴言)과 사상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속에서 종래의 낭만주의를 파괴하고 실증주의적·심리적 요소를 드러내고 있다. 83∼85년에 걸쳐서는 전에 알프스 산중에서 깨달은 <영원회귀> 사상을 기반으로 한 <초인(超人)>의 이상을 그린 철학적 서사시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1883∼91)》를 저술하였다. 이 저서에 니체의 사상이 상징적으로 모두 표현되고 있으나, 이 추상성에 불만을 품고 구체적 논문식으로 해설한 《선악(善惡)의 피안(彼岸, Jenseits von Gut und Bose, 1886)》을 저술하였다. 이 저술에서는 고귀한 정신적 귀족의 육성을 주장하고 장래의 위대한 입법자를 암시하는 한편 퇴폐적인 근대의 여러 현상과 단순히 객관에만 치우치고 있는 과학정신, 동정(同情)에 기반을 두었다는 그리스도교적 도덕, 역사의식의 과잉 등을 예리하고 독특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 후 《도덕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1887)》가 유럽 윤리사상의 비판서로서 출판되었으며, 이때 이미 《권력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가 준비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사망 후에 유고(遺稿)만이 수집되어 출판되었다. 88년에는 《바그너의 경우》 《우상(偶像)의 황혼》 《이 사람을 보라》 《안티 그리스도》 《니체와 바그너》 등이 저술되었다. 그 중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1889년 1월 정신착란 증세에 빠져 바이마르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여동생의 간호 아래 여생을 보냈다. 니체는 근대유럽의 정신적 위기를 일체의 의미와 가치의 근원인 그리스도교적 신의 죽음, 즉 <신은 죽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단정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사상적 공백상태를 새로운 가치창조에 의해 전환시켜 사상적 충실을 기했다.

이리하여 신 대신 초인을, 불멸의 영혼 대신 영원회귀를, 선(善)과 참(眞) 대신 권력에의 의지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기쁨 대신에 심연(深淵)을 거쳐서 웃는 인간의 내재적(內在的) 삶으로 가치를 전환시켰다. 그의 사상은 원숙한 문장과 함께 주로 문학자들에 의해 높은 평가를 받았고, 시대 변천과 함께 사상적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날의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그들의 선구자로 불리게 되었다.

크리스트교에 대해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비난한다.

- 크리스트교는 인간을 나약하게 하는 데에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 크리스트교는 고대의 역설적인 관념 세계에 대해 믿을 수 없는, 독단적인 유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 크리스트교는 존재하지 않는 저 세상에 위안을 삼지만, 저 세상을 아무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 크리스트교인들은 자신이 믿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에 따라서 살지 않는 위선자들이다.

이러한 공격은 『즐거운 지식』에서 신을 찾는 미친 사람을 묘사하는 데에서 절정을 이룬다. 여기서 니체는 지평도 없고 위도 아래도 없이 뒤집히기(chavirer) 시작하는 세계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왜냐하면 신을 죽었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였다!"

 

니체는 허무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서구 문화를 진단한다.

"가치, 의미, 소망(le desirable)을 그 뿌리까지 거부하는 것"

최고의 가치는 평가 절하되고, 나약한 크리스트교적 사유의 거짓 세계와 소크라테스의 유산을 계승한 철학의 거짓 세계는 그 자체로 무너지고 있었다. 니체가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그리스-크리스트 전통은 자기 속에 허무의 씨앗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니체는 그 씨앗의 결과를 확인한다. 그는 이러한 비전을 창출한 점에서 동시대인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좋은 것[선]인가? - 권능의 감정을, 권능의 의지를, 인간 안에 있는 권능 자체를 고양시키는 모든 것은 좋은 것[선]이다.

무엇이 나쁜 것[악]인가? - 약함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나쁜 것[악]이다.

무엇이 행복인가? - 권능이 성장한다는 감정이 [행복이다]......

만족이 아니라 더 많은 권능이, [일반적]평화가 아니고 전쟁[치열한 생존경쟁-다윈의 관점?]이, 덕목이 아니고 열렬함이 [행복이다]"

1888년 니체는 특히 『반크리스트교인』과 『이 사람을 보라』와 같은 일련의 비장한 글을 작성하였다. 첫 번째 글에서 그는 또 한번 크리스트교에 분노를 터뜨린다. 두 번째 글에서는 그가 자신을 과대 평가 하고 있음이 명백히 드러난다. 과거를 회고하면서 그는 "왜 나는 이토록 영리 한가", "왜 나는 이토록 좋은 책들을 쓰는가" 등의 표현을 하고 있다. 1889년에 니체는 정신 나간 상태(ailenation)에 빠진다.

 

35. 싸르트르의 철학을 요약하라.

자유는 항상 "설정되어(situee)" 있으며, 다시 말하면, 자유는 사람들이 처한 조건과는 가능한 한 단절되어 있다. 이 자유의 참여는 단절의 계기이며, 이 계기에서 용어(언어적 행위), 행위(신체적 행위), 창조 등은 자유를 실현한다. 『근대시대(Temps Modernes)』를 소개하면서, 사르트르는 그 잡지에서 "당대에 참여하고 있는" 작가들, 즉 자유의 가능성의 영역을 개척하려고 애쓰는 자들의 것만을 출판할 것이라 선언하였다.

그러나 약자에 대한 강자의 자유는 없다. 왜냐하면, 약자를 짓누르면서, 강자는 생호 주관성의 영역을 폐쇄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정치적 이론을 구성하지는 않았으나 억압받는 자의 측면에서 자유 사회주의 전망에 위치하고 있다.

『변증법적 이성비판(La 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 1960)』에서, 실존주의를 "개방된 맑스주의(marxisme ouvert)"의 중심에 서 있는 주체의 이데올로기라고 소개한다.

개방된 맑스주의는 이 시기에 20세기의 철학의 "넘어설 수 없는 수평(l'horizon indepassable)"이라 불린다. 왜냐하면, 실존주의는 경제적 궁핍의 세계, 억압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를 부여한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자신에 반대되는 "공식적(officiel)" 또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정지된" 맑스주의의 견해를 바꾸게 하려고, 자기 잡지에 "소위 사회주의 국가"의 분파주의에게 또는 공산주의 투사들에게 지면을 할애했다.

좌파의 운동에서 보면, 모험이라고 판단되는 그의 입장은 "스탈린주의자"처럼 "자유 당원(liberaux)"에 의해서도 그를 비판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는 확고하게, 개인적으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자유롭기 위한 투쟁"을 위한 자신의 초기 기획을 유지하고, 68년 5월의 봉기 측면에서 보면, 라르작(Larzac)의 농부의 투쟁에 참가자인 그는 1973년 신문 『해방(Liberation)』의 창간에 참여한다. 그에게서 철학은 정치학에 관한 반성일뿐만 아니라, 자유의 반성, 비판과 참여, 구체적이고 지적인 행동과 뗄 수 없는 것이다.

 

36, 야스퍼스의 철학을 요약하라.

* 사랑하는 가운데의 투쟁 (Liebender Kampf)

실존은 교제 속에서 비로소 실존의 가치가 나타난다. 이러한 실존의 상호교제가 <사랑하는 가운데의 투쟁>이다. 투쟁은 인간의 한계상황이어서 인간은 이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은 투쟁을 상호부정적인 폭력적인 투쟁에서 서로 남을 인정하는 <사랑하는 가운데의 투쟁>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여기에서 승리에 의한 우월 대신 자타에 공통되는 진리가 나타난다. 실존간의 내적 평화는 <사랑하는 가운데의 투쟁>에 의해 가능하며, 이 내적 평화는 외적인 세계평화를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 실존조명 (實存照明 Existenzerhellung)

M. 하이데거에 의한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에 해당되는 것이 K. 야스퍼스의 <실존조명>인데 이는 그의 저서 《철학》 제2권의 표제이기도 하다. 실존조명이란, 실존을 대상으로 하여 외부에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내부에서 비추어내면서 그 내적 구조를 밝혀내려는 시도이다. 교제와 역사성에 있어서의 <자아자신>의 조명에서 시작하여, 이어서 <자유로서의 자기존재>가 밝혀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제약적(無制約的)인 존재임과 동시에 유한한 존재인 실존이 여러 가지 상(相)에서 조명된다. 실존의 무제약적인 자유는 초월자에게 계박(繫縛)된 운명적 필연성과 하나여서, 이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실존의 존재의식이 변혁되어 초월자가 주재(主宰)하는 참된 현실이 실존에 개시(開示)된다.

* 암호해독 (暗號解讀 Chiffrelesen)

《철학》 제3권의 《형이상학(形而上學)》에 나오는 용어이다. 실존의 존재의식이 최종적으로 변혁됨으로써 여러 가지 사상은 초월자의 <암호>가 되고, 세계는 <암호의 세계>가 되는데, 실존은 이들 암호를 <해독>하는 형태로 초월자가 주재하는 참된 현실을 확인한다. 암호는 실존이 알아듣는 초월자의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야스퍼스에 의하면 암호 가운데에도 한계상황에서의 좌절 경험이 <결정적인 암호>여서, 이에 대해서는 이미 어떤 해석도 불가능하며 다만 침묵에 의해서만 대답할 수 있다.

* 포괄자 (包括者 das Umgreifende)

야스퍼스의 《철학적 논리학》의 용어이다. 여러 가지 존재가 그 가운데 현상하고, 따라서 그러한 지(知)가 그 가운데 처음으로 성립하게 되는 포괄적인 지평을 가리킨다. 즉 포괄자는 본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체이며, 주체와 객체는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나, 우리들이 이를 확인하려고 하면 즉시 주객으로 분열하여 <존재 그 자체인 포괄자(세계, 초월자)>와 <우리들이 그것인 포괄자(현존재, 의식일반, 정신, 실존)>로 나뉜다.

* 한계상황 (限界狀況 Grenzsituation)

한계상황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이 <상황=내(內)=존재>로서 항상 상황 속에 있음을 가리키며, 구체적으로는 싸움이나 고민 없이는 살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이 가책을 받아들이고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인간은 일상 속에서 눈을 감고 이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나, 실존에 눈뜬 인간은 이 상황을 직시하여, 좌절을 통해서 오히려 참된 자기로 희생하는 것이다.

 

37. 하이데거의 철학을 요약하라.

그의 사상 형성에 처음부터 영향을 끼쳤던 것은 중세 아리스토텔레스 해석과 관련된 가톨릭의 신 스콜라철학과 바덴의 신 칸트주의였다. 이어 E. 후설의 《논리학연구》를 읽고 결정적으로 계발되었으며 15년 프라이부르크대학 강사로 임명됨과 동시에 후설의 조교가 되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상학적 해석에 몰두하였다.

철학사를 깊이 연구해가는 동안 후설의 초월적 관념론과 결별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속에 있는 초기 그리스사상의 존재경험의 경향을 심화시켰으며 이로써 R. 데카르트에서 비롯된 근대적 사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힘썼다.

23년 마르부르크대학에 초빙되었으며 29년 프라이부르크로 돌아와 후설의 후계자로서 정교수가 되었다. 1927년 《존재와 시간》을 발표하면서 그의 고유한 철학적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이것은 K. 야스퍼스의 실존철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동시에 후설의 현상학과 F.E.D. 슐라이어마허와 W. 딜타이의 해석학을 기초로 삼고 있었다. 이 밖에도 F.W. 니체·S.A. 키에르케고르·F.W. 셸링·G.W.F. 헤겔·F. 횔덜린·R.M. 릴케·F.M. 도스토예프스키·G. 트라클과 고대·중세 철학사의 영향을 받았다.

그 뒤 나치스당원이 되었고 33년 모교 총장에 취임하였으나 곧 사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강단에서 추방되어 슈바르츠발트의 산장에서 은퇴생활을 하면서 《존재와 시간》의 문제를 재고하는 데 몰두하였으며, 특히 횔덜린의 시와 니체의 형이상학과 비판적 체득이라는 작업 속에서 전향을 준비하였다. 50년 프라이부르크대학에 복귀, 후기사상으로 평가될 만한 논구(論究)의 출판이 이루어졌다. 35년 무렵부터 뚜렷한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 그의 사상적 전향은 《존재와 시간》의 단계에서 다루어진 기초존재론의 주관적 관념론적인 관점에서 객관적 관념론적인 존재철학, 즉 신비적인 존재철학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는 50∼60년대에 이러한 후기 철학적 입장을 더욱 발전시켰으며 유럽사와 세계사를 관념적·정신사적으로 고찰, 1953년∼69년에 걸친 방대한 양의 해석과 논술을 통해 더욱 확장시켰다. 그는 존재를 존재자(存在者)의 존재, 즉 현존재(現存在)로 규정하고 존재를 이해하는 통로를 자각적 존재인 자신에게 찾았다. 인간은 현존재요, 현존재는 <세계내존재(世界內存在)>이므로 세계와의 관련성과 시간성에서 인간존재를 분석하고 인간존재의 근본적 구조가 관심이요 불안이며 인간은 죽음에의 존재, 즉 무(無)에의 존재임을 밝혔다. 특히 언어는 인간의 현존재를 대표하며, 존재이해의 원천이 된다고 하였다.

말년에는 시(詩)연구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의 사상은 O. 베커, T. 발라우프, W. 슐츠 등의 철학자와 특히 새로운 수정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한 70년대 중반 이후 일본·미국·라틴아메리카 등에서 하이데거철학에 큰 관심이 일어났다.

 

 

 

인물중심 철학사 과제 마침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