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학 과제
(총회신학교 2008학년도 통신학부 최보연)
1. 목회자의 어원적 의미를 진술하라.
목회자란 말은 한국교회의 독특한 사용어로서 영어에는 Minister, Pastor, Bishop 등, 세 가지의 낱말이 있다.
1. Minister
이 용어는 라틴어 Minuere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본래 그 말은 ‘가장 적다, 저하시키다, 감소시키다, 일과(Lesson)' 등의 뜻을 나타내며 그 말이 동사 Ministrare로 쓰여져서 ‘섬기는 것’(to serve), ‘종속되어지는 것’(to be Subordinate)이란 뜻으로 통용되어 거기서 Minister라는 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은 신약에서 세 가지의 다른 헬라어 어휘를 번역한 것인데 첫째는 διακονοs(Diakonos)로서 ‘노동자, 집사’ 뜻이 있고, 다음은λειτουργοs(Leitourgos)로서 ‘공공 봉사자, 일 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며, 그 다음은υπηρετηs(Huperetes)로서 ‘제 2인자, 보조자’ 란 의미가 있다. 그러면 좀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말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Diakonos는 그 유래가 확실치 않다. 로버트슨(A.T.Robertson)은 그것을 Dia(통해서)와 Konis(먼지)의 합성어로, 봉사하기 위해 서두르느라고 먼지를 뒤집어쓰는 사람으로 본다. 테이어(Thayer)는 이를 거부하는데, 그는 이것을 Diako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Diako는 Dioko와 동류 어인데, 과제나 목표를 추구하는데 근면하고 신속한 것을 암시하는 뜻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Diakonos 를 주인 격인 다른 사람의 명령을 이행하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봉사자를 대표 한다” 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이 말의 최종적인 의미는 사실상 똑같다. 예수는 명예나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봉사하는 일 그 자체가 기쁨이기에 바로 그 기쁨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하셨다(마20:26). 같은 본문에서 그는 자기 자신의 교역을 말하는데 Diakoneo라는 동사를 쓰셨다(마20:28, 참조5:8). 또한 이 말은 보통 ‘종’에 대해서도 씌어져있는 말로 ‘하인’(요2:5,9), ‘섬기는 자’(마20:26, 23:11 ; 막9:35,10:43, 요12:26) 등으로 쓰여 지고, 특별히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의 일군을 가리키는 말로 이 용어를 많이 사용했다(롬16:1;고후3:6,6:4,11:15,23;엡3:7,6:21;골1:7, 23,25,4:7;딤전4:6).
2) Leitourgos는 신약성경에서 이 말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공무를 집행하는 사람으로 쓰였다(롬13:6,참조, Diakonos로 롬13:4). 또한 하늘의 성전에서 사제직을 맡은그리스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히8:6,참조,1:7). 바울은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이라고 이 말을 한번 썼다(롬15:16). 그런 의미에서 이 말은 공중예배와 복음의 공중선포를 인도하는 두 가지 개념을 내포한다.
3) Huperetes는 ‘아래’ 를 가리키는 헬라어 υπο(hupo)와 ‘노 젖는 사람’ 을 말하는 ερετηs(eretes)의 합성어로서, “아래의 노 젖는 사람” 을 뜻한다. 따라서 시중드는 종이나 하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은 다른 사람 밑에서 시중드는 하인이나 공무원에 적용되어 왔다(참조,마5:25,26:58). 그리스도인 이라는 의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 으로서 자기와 아볼로를 가리키는데 썼다(고전4:1). 더우기 이 말속에는 종속의 의미가 들어있다. 그들은 그리스도 밑에 있는 일꾼들이거나 ‘양의 위대한 목자’ 이신 우리 주 예수 밑에 있는 하층 목자이다(히13:20). 게다가 바울은 Huperetes를 “청지기:οικονομοs”(딛1:7;벧전4:10), 또는 “하나님의 신비를 돌보는 사람”(House Mansger)과 같은 말로도 사용했다.
그러므로 Minister란 말속에는 하나님의 종, 일군, 청지기 등으로서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발견케 된다. 구약에서는 Minister란 말의 의미를 내포하는 용어 중에 폭넓게 쓰여지고 있는 ‘(Ebed)’ 는 “남을 섬기고 쓰이는 일에 종사하는 자를 총칭” 하는 말로서 구약에 799회 씌어 있다. 성서에서는, 이스라엘(사4:8), 아브라함(창26:24), 모세(출14:31), 여호수아(수24:29), 다윗(삼하3:18); 왕상3:6), 선지자 아히야(왕상14:18), 선지자(왕하9:7,21:10), 욥(욥1:8), 이사야(사20:3), 스룹바벨(학2:23), 바울(빌1:1), 야고보(약1:1), 베드로(벧후1:1), 유다(유1:1), 요한(계1:1) 등 하나님의 일의 대행자로 택함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고 있다(시105:42,등).
이처럼 Minister로서의 목회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섬기는 일에 본이 되어야함을 이 말의 어원적 고찰을 통하여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우기 Minister로서의 목회자는 성찬을 집행하는 자 곧 성찬식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교인들에게 상징적으로 공급하는 봉사자이기도 한 것이다.
2. Pastor
이 용어는 ‘보호한다’(to Protect)는 의미의 어원에서 유래된 헬라어 ποιμην (Poimen)에서 번역한 말인데, 기본적으로 ‘목자’ 를 뜻한다. 또한 이 용어는 ποιμην 과 같은 뜻인 라틴어 Pastores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신약에서 18회나 사용되었는데, 8회는 양의 ‘목자’와 관계되는 것으로(마9:36,25:32;막6:34;눅2:8,15,18,20;요10:2), 7회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마26:31;막14:27;요10:11-2,14,16), 1회는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말하는 것으로(히13:20), 또 한번은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쓰여졌고(벧전2:25), 이 용어가 ‘목사’ 로 번역되어 유일하게 쓰여지는 것은 신약 전체에서 단 한번 나타나
엡4:11이다. 그러나 이 용어의 동사형인 ποιμαινω (Poimaino)는 신약에 11회가 나타나는데 4회는 다스린다는 뜻으로(눅2:6;계2:17,12:5,19:15), 1회는 양을 친다는 말로(눅17:17,참조,고전9:17), 또한 한번은 자기의 양을 먹이시는 어린양으로(계7;17), 그 외에는 유다서 1장 12절을 제외하고 “그리스도의 무리를 먹이시는 영적 목자”(요21:16;행20:28;벧전5:2)로 쓰여지고 있다.
구약 성경에는 ‘목자’ 란 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1) ‘ (Anshe Miqneh)’ : 이 말의 의미는 “가축의 사람들” 인데 “목축업으로 사는 자”(Keepers of Cattle)로 개역 되어 있으며, 요셉이 친형제를 바로에게 소개할 때 사용한 표현이다(창46:32,34).
2) ‘(Boqer)’ : 이 말은 ‘묻다, 구하다, 찾다’ 는 뜻의 ‘(Baqar)’ 에서 유래된 것으로 ‘목자’ 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말은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도록 부르심을 받기 이전에 그가 가졌던 직업을 가리키는 말로 단 한번 사용되었다 (암7:14).
3) ‘ (Noqed)’ : 이 말은 아카이어의 ‘Neqidu’ 에서 온 것으로 ‘양 사육자’ , ‘양 관리자’(감시인), ‘목자’ 등의 의미가 있다(왕하3:4;암1:1). 그리고 이 말은 ‘목자’(Shepherd)로 번역되어 아모스의 직업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고 또 한번은 모압 왕 메사에 대하여 “양을 치는 자”(Sheep Breeder)로 번역 되어있다.
4) ‘ (Roeh)’ : 이 말은 ‘돌보다, 기른다, 풀을 먹게 한다, 친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 ‘ (Raah)’ 의 분사인데 명사로서 취급되며, ‘목양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구약에 인용되어 있는데 한글 개역에는 ‘목자’ 로 거의 번역되어 75회나 쓰여 지고 있다. 또한 이 말은 형용 적으로 지배자에 대하여 쓰여졌다(사56:11;렘3:15;겔34:2;슥10:3,11:5,13:7).
위를 정리하면 Pastor라는 말은 목자가 양을 치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양을 먹이고, 치고, 다스리시는 영혼의 큰 목자로서 지칭하는데 대부분 쓰여 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엡4:11에는 목사로 번역되어 유일하게 쓰여 지는데, 이를 통해서 목자로서 큰 목자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의 양 무리를 먹이고, 치고, 다스리는 목회를 하는 자임을 깨닫게 된다. 특히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서 희생제물이 되어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자기의 양을 먹이시는 분으로 묘사될 때에도 이 용어가 쓰여졌음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계7:17). 곧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 혹은 일군 및 청지기로서 뿐만 아니라 양을 보살피는 목자로서의 직능이 있으신 분이심을 알 수 있다.
3. Bishop
이 단어는 교회 곧 양떼를 인솔하여 다스리는 ‘감독’ 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헬라어인 ‘επισκοποs(Episkopos)’ 와 라틴어인 ‘Episcopus’ 의 대응어이다.
70인 역은 이 말을 교회, 국가, 군대의 ‘감독권’ , ‘감찰’ ,‘조사’ (민4:16,31:14) 등의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고전적 헬라어에도 나타난다. 또한 이 단어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의 성직의 지위에 있어서 성직자의 최고의 지도자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현재 감리교회에서는 최고의 지도자를 ‘감독’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 용어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으로서의 목회자의 의미로 지칭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신약 성경에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벧전2:25)” 라고 그리스도 자신에게 적용되어 쓰여 지고 있으며 바울 서신에는 ‘장로(Presbuteres)’의 의미로 자주 언급된다. 이렇듯 ‘목회자’ 란 말을 영어의 Minister, Pastor, Bishop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이나 사용할 수 있고, 또 그 셋을 한꺼번에 사용해서 나타내는 삼중 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살펴본 바와 같이 Minister는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이며 봉사자인 동시에 ‘성찬을 집행하는 자를 의미’ 하는데 이처럼 목사는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그리스도의 몸을 영적으로 공급하는 신령한 봉사자라는 의미에서 ‘목회자’란 단어 속에는 얼마든지 Minister라는 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Pastor 는 ‘목자’ 라는 뜻인데 ‘목회자’ 는 목자가 양을 치는 것 같이 목회자도 교회를 진리로 가르치며 기르는 영적인 목자인고로 Pastor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Bishop은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으로서 ‘목회자’ 가 하는 일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니 ‘목회자’ 란 칭호는 우리만의 기쁨이요 자랑이라 하겠다.
2. 목회자의 성경적 의미와 명칭을 진술하라
목회자의 어원적 의미를 성경에서는 ‘목자와 양’ 의 관계 속에서 찾게 된다. 또한 목회자의 이런 직능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그의 양 무리를 보살피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따라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는 상호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서 ‘양’ 이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인간’ 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또한 양 무리는 교회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목자와 양’ 과의 관계성을 말할 때 요한복음 10장과 시편 23편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먼저 요한복음 10장을 퀘일 감독(Bishop Quyle)이 “신약에 있는 목자 시편(The Shepherd Psalm)의 대헌장” 이라고 주장했듯이 이 말씀은 하나님의 종 된 모든 목회자들의 모델로서 ‘선한 목자 상’ 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다음으로 시편 23편은 다윗의 시이다. 그는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는 목자로서(삼상16:11)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능력을 행하기도 했던(삼상17:34-6),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다(삼하2:1-4,11). 그런데 그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 라고 찬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일과 델리취는 시편 23편을 “압살롬의 치하에서 반란이 있었던 때에 속하는 것” 이라고 했는데 그런 상황 하에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다윗이 여호와를 찬양한 것은 과연 여호와께서는 양을 만족시켜 주시는 완전하신 목자이시며 그는 여호와께 속한 양으로서 선한 목자의 모든 은택을 받아 누리며 모든 면에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모든 목회자의 모범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며 또한 그의 보살핌과 인도하심을 받는 행복한 양을 바라보게 된다.
더우기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자기들만 위하고 양들을 괴롭히며 파멸의 길로 몰아넣었던 이스라엘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고 명령하시면서(겔34:1-10),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모아 좋은 꼴로 먹이고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겔34:11-16).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와께서 선한 목자이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다윗이 여호와를 가리켜 ‘목자’ 라고 한 말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확증되었는데, 그가 하신 말씀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 선한 목자는 양을 알고(요10:14), 양과 함께 있으며(눅22:27), 양 무리보다 앞서가며 인도하고(요10:3-4), 양을 보호하고(요10:10), 양들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불사한다(요10:11,15,17,18).
뿐만 아니라 선한 목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훈련 하셨으며 그의 양들을 인도하는 목회자(목자) 들이 되게 하셨다. 특별히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요21:15)”, “내 양을 치라(요21:16)”, “내 양을 먹이라(요21:17)” 고 세 번이나 목양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목양을 명령받은 베드로는 ‘장로’ 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 하였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2-3).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고 세움을 받아 그의 양들을 목양 하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영혼의 목자임을 명심하여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목회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바쳐 우리를 충성 되이 여겨 맡겨주신 그의 양 무리를 두렵고 떨리는 심정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스리고 먹이고 보살피고 양육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기에서 목회자의 진정한 의미를 간략하게나마 찾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목회자와 관련된 다른 많은 명칭들이 나타나 있는데, 이 명칭들을 목회자란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고 치리하는 목자와 감독으로 정리 할 수 있다. 또한 이 목회자는 교사, 전도자, 청지기로서의 사명이 있음을 알게 된다.
1) 그리스도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이므로 그리스도의 종 혹은 그리스도의 일군(고전4:1;고후3:6;빌1:1).
2)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는 자이므로 목자(벧전5:2-4).
3) 그리스도의 교회와 교인들을 치리 하는 자이므로 장로 혹은 감독(벧전5:1-3; 딤전3:1-2).
4) 하나님께서 보낸 자이므로 복음의 사신(使臣) 혹은 사자(계2:1;고후5:20).
5) 교훈하고 가르치는 자이므로 교사(딛1:9;딤전2:7).
6) 복음을 전하는 자이므로 전도자(딤후4:5).
7) 주인의 위임을 받아 일하는 자이므로 청지기(눅12:42;딛1:7;벧전4:10).
이상의 명칭들을 요약하면, 목회자란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고 치리하는 목자와 장로 혹은 감독이며, 또한 그는 교사, 전도자, 청지기 등의 사명이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목회자와 관련된 다른 명칭들 중에서 “청지기: οικονομοs” 란 명칭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수 가 있는데, 그것은 1)수탁자로서의 청지기 2)수호자로서의 청지기 3)사도적 가르침의 전승자로서의 청지기 4)경영자로서의 청지기이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수탁자이다(고전4:1). 또 청지기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움을 지키라” 는 수호자이다(딤후4:8,13). 그리고 청지기는 사도바울이 선한 청지기로서 그가 가르친 바를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던 것처럼 ‘사도적 가르침의 전승자’ 인 것이다(딤후2:2). 더우기 청지기는 예수님께서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의 복” 이 있으며,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고 하신 것처럼(눅12:42,44), 청지기는 경영에 참여하여 효율적으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은 절대적 창조주시며 만물의 소유주이시다(창1:1;시24:1;학28:8;요1:3).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언젠가 결산할 날이 온다는것을 기억하고(롬14:12), 몸, 시간, 봉사, 재물, 복음 등의 청지기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여야만 한다.
3. 성경에 나타난 minister의 종류와 특성을 논하라
구약시대에 나타난 목회자상은 시편 23편에서 제시된 목자로서의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 선지자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복음서에 나타난 ‘종-지도자’ 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12제자들, 특히 베드로와 그 후 바울에게서 발견 할 수 있다. 그런데, Minister 곧 하나님의 종 혹은 일군으로서의 직분들을 보면 구약에서는 족장들, 민족 지도자들, 사사들, 왕들, 제사장들을 들 수 있고 신약에 와서는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사와 교사를 들 수 있다.
1. 구약
구약의 Minister, 곧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적 직분들은 신약의 목회자와 동일시 할 수는 없으나 그들이 가지고있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의 일면들을 살피면서 목회자의 그 특성을 밝혀보려고 한다.
a. 족장들
하나님의 택한 자손에게 하나님의 종 또는 지도자로서 목자의 역할을 한 족장은 아브라함(창18:19)과 요셉(창37:2) 등을 들 수 있다. 족장들은 가정의 ‘재판관’(참고,창21:,22:,27:)이며 하나님과 종족들 사이의 제사장으로서의 직권이 주어졌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예배했으며 또한 여호와 하나님을 각기 자기 가문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의 하나님이 되시며, 하나님은 족장을 축복하시고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축복을 받게된다(참고,창12:2-3,18:18,26:4,28:14).
b. 민족의 지도자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지도자로서 Minister의 역할을 한 지도자는 모세와 여호수아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출3:1-10)와 여호수아(민27:18-23;수1:1-9)를 그 백성들의 지도자요 목자로 세우셨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내는 임무가 주어졌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송들과 함께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고 지도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하였다.
c. 사사와 왕들
사사들은 하나님의 영이 주어지고, 그 힘에 채워져 활약한 사람들로서, 주위에 있는 나라들의 압박에 의한 위기에 처하여 군사적 지도를 한 군사 지도자이고, 평시에는 백성을 다스려 인도한 정치적 지도자이다. 그들의 기능은 첫째, 자기 민족을 원수들의 압박으로부터 영웅적으로 구원했다는 점과 둘째, 왕국을 세우지 않고 죽기까지 집정관으로서 지배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편2:10에 보면 이들은 왕과 대등한 권위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참조,호7:7).
다음으로 왕직은 제사장 직분, 선지자 직분과 아울러 봉사직 이었다. 그들은 백성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관리하고 보호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최초의 적극적인 왕인 다윗은 하나님의 권위와 지도력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태도와 뛰어난 통치에 의한 나라의 번영으로 인해, 그는 후에 이스라엘 왕의 이상상(理想像)으로 되었다.
d. 제사장, 선지자들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회중이 바로 하나의 교회였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그들을 지도하고 보호하는 것이 곧 목회였기 때문에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구약 시대에 나타난 목회자들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 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로서 그의 직무는 1)여호와 앞에 있는 성소와 재단에 쓰이는 일(민16:40,18:5), 2)하나님의 율법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대하15:3;렘18:18;겔7:26;미3:11), 3)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일(우림과 둠밈에 의해, 출28:30;스2:63), 이 밖에도 소송을 취급하고 전쟁 시에는 양각 나팔을 불고 언약궤를 메는 일, 또는 문둥병자를 식별하는 일 등을 임무로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직분을 행하게 하셨다(출18:1).
또한 하나님께서는 제사장 외에 선지자들을 세워서 백성들을 돌보게 했다. 선지자(豫言者)들은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불러 모으고 구속 주의 강림을 선포함으로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였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범죄한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사1:8). 또한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 시대에는 선지학교를 세우고 목회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나단과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왕들(예: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을 위한 특별 목회를 했다. 더우기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께 잘못된 제사를 드리는 당시의 백성들의 그릇됨을 지적해 주고 올바른 제사를 드리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양들을 지도하게 하셨다(말1:7-14).
2. 신약
신약 성경에 있는 Miister 의 종류는 첫째로 사도, 다음은 선지자, 셋째는 복음전하는 자, 넷째는 목사, 끝으로 교사라고 부른다(엡4:11). 이 중에서 끝에 있는 둘만이 교회내의 평상직이요, 처음 셋은 주께서 그의 나라의 초창기에 세우셨고 필요에 따라 가끔 부활시키신다.
a. 사도들(Apostles)
사도란 명칭은 엄격하게 구분하면 다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열 두 제자와 사도 바울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 교수가 지적하듯 사도는 바울을 도와서 복음에 수종 든 사도적인 사람들과 사도직의 은사와 은혜가 아울러 부여된 사람들까지도 일컬어진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바나바와 다른 동역자들을 포괄하여 지칭한다.
사도들이 하는 일의 성격은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어 죄 사함을 얻게 하는 것이다(마28:19;막16:15). 주께서는 이미 그들에게 자기를 본받아 그의 몸과 피의 거룩한 상징인 떡과 잔을 분배하라고 명령 하셨다(눅22:19-20). 여기서 “사도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신성불가침의 영원한 법이 부과되었고, 이 법에 의해서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며 성례를 집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우신 사도들은 온 세상에 복음의 교리를 선포하고 교회를 세우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는 직분을 가진 자들이었다.
b. 선지자들(Prophets)
신약성서에서도 선지자들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데, 이 선지자들로 말마암아 교회의 덕을 위하여 말하는 은사는 크게 발전되어 졌었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비밀을 계시하거나 미래의 사건을 예견하는 도구로 쓰여졌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단지 예언자들로 불리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때로 어떤 특별한 계시를 받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는 현재 없거나 아니면 옛날같이 흔히 볼 수 없다. 그들의 일은 교회에 있어서 다만 어떤 하나의 신분이지 ‘직분’은 아니었다. 여기서 비밀을 계시하는 것은 교회 안에 영속하고 있으며 이는 개혁교회에 의해서 명백하게 승인되어 졌다.
성경은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고 했다.
c. 복음 전하는 자들(Evangelists)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을 새로운 곳에 전하는데 그들을 선교사들이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이다. 사마리아에서 첫 번째로 복음을 전한 빌립(행 8:6-14)은 가이사랴 해안을 따라 복음을 전했다(행8:40). 그리고 그 다음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복음을 전 2). 또한 마가, 디모데, 디도, 등 적은 수의 사람들이 이같이 복음전하는 자들로 알려 졌는데 그들은 사도들과 동행하면서 때론 특수선교를 위해 파송 되기도 했으며 더우기 그들은 말씀을 가르치고 세례도 주었으며 장로들을 세우고(딤전5:22;딛1:5),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일도 했던 것이다(딛3:10).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움직였던 힘은 그들과 동행하시는 주님의 선물(은사)과 성령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d. 목사와 교사
목사와 교사는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직책들이다. 칼빈은 이 둘 사이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믿는다고 한다.
교사들은 제자훈련이나 성례집행이나 경고와 권면하는 일을 맡지 않고 성경을 해석하는 일 만을 맡았다. 이는 신자들 사이에 건전하고 순수한 교리를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목사직은 이 모든 의무를 겸한다.
따라서 목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바른 교훈으로 권면 하고(딛1:9)”, 참된 경건을 가르치며 거룩한 성례를 위해서 사역하는 일을, 목사들은 각각 자기가 맡은 양떼를 위해서 일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받은 직분이다.
이상과 같이 목회자란 누구인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목회자의 어원적 의미와 성경적 의미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른 명칭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을 정리해보면 목회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그에게 맡겨진 주님의 양 무리를 목자와 감독의 위치에서 진리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며 다스리는 직능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는 주님의 양떼를 보살피고 다스릴 때에 부득이 함이나 더러운 ‘이(利)’ 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종-지도자로서의 본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참된 목자의 본을 보여 주셨듯이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즐거운 뜻으로, 또는 ‘종’ 의 정신으로 항상 양 무리의 본이 되어 그들을 다스려야 하며, 더우기 목회자는 양떼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는 이것이야말로 성경에서 본 하나님의 종, 혹은 지도자로서 목회자 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성경의 지도자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모두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 양떼를 다스리는 지도자로서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없고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서 그들을 섬기고 자기의 몸을 그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바람직한 목회자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이러했다. 그는 양떼를 섬기려하고 자기 몸을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대속물로 내어주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상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막10:45).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 있는 모든 지도자와 목회자들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 상을 발견할 수 가 있고, 또한 그 모델을 제시할 수 가 있다고 본다.
4. 구약에 나타난 목회자의 자격을 진술하라
* 구약 성경에 나타난 목회자의 자격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족장으로서 하나님의 종의 역할을 한 아브라함을 시험 하셨다(창22:1). 그 시험은 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는 것이었는데 그는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였다(창22:2-12).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조상” 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대 하셨던 것은 “하나님을 경외” 하는 신앙이었던 것이다. ‘경외’ 라는 것은 구약에 있어서 “하나님을 정서적으로 두려워하는 것만 아니라, 실상 하나님의 무한히 크신 권위 밑에서 안식하며 순종하는 태도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함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권위아래서 안식하며 순종하는 태도를 지닌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구약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의 자격을 가장 구체적으로 언급한 구절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이 명령으로 모세의 영적, 국가적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보조역할을 할 70인의 장로 선택과 자격이 기록되어 있고, 또 하나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제안에 따라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하고 다스릴 지도자의 자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출18:13-25). 이 출애굽기 18장의 사건을 다시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를 뽑는 이야기가 신명기 1장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것과 너희의 무거운 짐과 너희의 다툼을 담당 할 수 있으랴/너희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자를 택하라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두령을 삼으리라...”(신1:12-13).
모세가 여기서 세우려는 지도자는 “단순히 백성들의 송사를 재판만 하는 자가 아니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괴롭고 힘든 문제들을 해결하고 인도 해줄 지도자” 였다. 출애굽기 18장과 신명기 1장에서 제시하는 목회자인 지도자의 자격은 다음과 같다.
1. ‘지혜’ 가 있는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서 택하라고 한 지도자의 첫번째 자격조건은 “지혜” 가 있는 사람이었다(신1:13).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혜란 다음 과 같이 3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기술적인 재능을 가리킨다. 금이나 은으로 어떤 물건을 잘 만들줄 아는 장인을 가리켜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한다. 예로서, 광야교회에서 성막을 만들 때 금과 은과 놋으로 여러 가지 공교한 것을 만든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불렀다(출31:1-11).
둘째, 사물에 대한 올바른 통찰력, 판단력, 혹은 처리능력을 가리켜서 지혜라고 한다(전8:5,7;호14:9). 그러므로 이러한 지혜를 가진 자는 왕의 고문이 되었고(참고,삿5:29), 또한 솔로몬은 이러한 지혜를 갖기 위해 하나님께 특별히 간구하였다(대하1:10).
세째로 가장 중요한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구약에 있어서 모든 지혜서의 가장 핵심 되는 내용 중에 하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는 말씀이다(잠9:10,15:33;욥28:28;시110:10,등). 그러므로 출18:21에는 “지혜로운 자” 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자” 를 지도자의 첫째 조건으로 말한다. 즉, 모세를 도울 지도자의 자격 중 제일 중요한 조건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이다. 따라서 잠언기자가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며 악을 떠나나..”(14:16) 라고 했듯이 지도자로 선출될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악에서 떠난 자가 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셨던 “하나님을 경외” 하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창22:12). 그리고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하며 그들의 제반 문제들을 해결해 줘야하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사물에 대한 올바른 통찰력, 판단력, 혹은 처리 능력을 가진 ‘지혜’ 의 사람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솔로몬 왕도 하나님께 이러한 지혜를 간절히 구하여 얻으므로 왕이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직분을 훌륭하게 수행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대하1:10,11).
2. ‘지식’ 이 있는 사람
모세가 제시한 지도자의 자격조건 중에 두 번째는 “지식” 이 있는 사람이다(신1:13). 여기서 말하는 ‘지식’ 은 “타고난 재능이라 할 수 있는 이해력이나 판단력과는 달리 배워서 아는 것들을 가리키는 것” 으로 생각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택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물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지식을 가진 자들” 이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식을 소유한 지도자가 선출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문제들과 사건들을 옳바르게 처리 할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잠1:7에는 “여호와를 경외” 하는 신앙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기 위하여 지혜를 구할 뿐 아니라 지식도 구하였던 것이다(대하1:10-12). 그런 까닭에 목회자(指導者) 는 ‘지식’ 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3. ‘유명한’ 사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릴 지도자의 자격 중에서 세 번째로 “유명한 자” 가 되어야 함을 말했다(신1:13). 출18:21에는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를 지도자의 세 번째 자격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니까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기적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자를 미워할 뿐만 아니라 물질 관계에도 깨끗한 자가 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을 지도자로 뽑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실하며 이기적이 아닌 즉 도덕적인 자격을 갖춘 유능한 사람들을 지도자로 선택하여 백성들을 정의로 다스리는 일을 맡겨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지도자) 는 지혜와 지식이 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적 자격을 갖추어야 할 뿐 아니라 불의한 이(利) 를 탐하지 않아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하나님의 ‘신’ 을 받은 사람
민수기 11장에 보면 모세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인도하는 책임이 너무도 무거워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민11:14-15). 그때 여호와께서는 70인의 장로를 뽑아 모세와 함께 짐을 나누어지도록 섭리하셨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장로 70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임한 신을 70인 장로들에게도 임하게 하셨던 것이다(민11:16,24,25). 따라서 지도자는 하나님의 신(神) 곧 성령을 소유한자가 되어 능력을 받아 맡겨진 직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세운 목회자들에게 여호와의 신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바르게 성공적으로 이끌게 하셨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령을 받고 지혜와 지식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영적 자격을 구비해야 하며, 또한 진실하고 이타적인 생활을 하여 모든 사람들로 터 좋은 평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도덕적 자격을 갖춘 유능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5. 거룩한 사람
목회자는 거룩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 더우기 목회자의 자격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거룩하다” 는 말은 여호와께서 어떤 특별한 목적을 두고 구별 선택한 것이나 여호와께 바쳐짐으로 여호와의 소유가 된 모든 것에 대해서 쓰여지는 선택 용어(Election term)이며, 상관어(Relationship term)이다. 성경에 보면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린 자를 일컬어 나실인이라고 했는데(민6:2),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자(민6:8) 가 된다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려진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이니라” 는 말씀을 많이 강조하셨다(참고, 레20:8,15,23, 22:16,32).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내게 거룩 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20:6)” 고 하셨다. 그러기에 모든 신자의 모범이 되어야하는 목회자는 신자 중에서도 또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자이니 더더욱 거룩한 자가 되어야함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직분을 행하게 하되...(출28:1)” 라고 하셨는데, 민3:2-3에 보면 “이는 아론의 아들들의 이름이며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다” 라고 말함으로서 제사장들이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 있어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으로 특별히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지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것이다. 곧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셨기에 거룩한자요 구별하시고 선택하시고 그의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에 구별된 자, 선택된 자, 하나님께 바쳐진 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제자들에게 대하여 거룩하다는 말을 쓰셨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하며, 그러한 자격을 갖출 때 바람직한 목회자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5. 신약에 나타난 목회자의 자격을 진술하라
신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목회자의 자격요건을 말씀하셨다. 그중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된 말씀을 보면 딤전3:1-7;딛1:5-9;벧전5:1-3, 이다.
게츠(Getz) 박사는 위의 성경 구절들을 (中心) 하여 목회자의 자격에 대하여 20가지를 제시하였다. 1)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딤전3:2). 2)한 아내의 남편(딤전3:2). 3)절제(딤전3:2). 4)근신(딤전3:2;딛1:8). 5)아담함(딤전3:2). 6)나그네를 대접함(딤전3:2;딛1:8). 7)가르치기를 잘함(딤전3:2;딛1:9). 8)술을 즐기지 아니함(딤전3;3;딛1:7). 9)제 고집대로 아니함(딛1:7). 10)급히 분내지 않음(딛1:7). 11)다투지 아니함(딛1:7). 12)관용함(딤전3:2-3). 13)돈을 사랑치 않음(딤전3;11-3). 14)구타하지 않음(딤전3:3). 15)자기 집을 잘 다스림(딤전3:4). 16)외인에게 선한 증거를 얻음(딤전3:7). 17)선을 행하기 좋아함(딛1:7,8) 18)의로움(딛1:7,8). 19)경건함(딛1:7,8). 20)새로 입교한자가 아닌 자(딤전3;6). 그리고 김득룡 교수는 성경의 내용들을 1)하나님께 대한 자질 2)자기 자신에 대한 자질 3)교회에 대한 자질 4)가정에 대한 자질 5)대인관계에서의 자질로 구분하여 다루었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 구분에 의한 목회자의 자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하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대한 자격
a. 근신하는 사람
“...근신하며...(딤전3;2;딛1:8)”
목회자는 모든 일에 ‘근신’ 해야한다(딤후4:5). ‘근신하며’ 란 말은 모든 일에 “근신하며 깊이 생각하는 심적 자세” 와 “건전하고 균형 있는 판단”으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근신’은 사색에 있어서 순전하고 단정함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자기 마음속을 잘 단속하며 단정히 해야 할 것이다. 더우기 ‘근신’ 이란 말을 마음의 욕심을 절제하며 깨어있음을 가리키는바 외부적 행위에는 절제하면서도 마음속 욕심의 동작을 절재 하지 못하는 자는 1)그의 생활에 영적 은혜가 없고 2)그에게 기쁨이 없고 고민이 있으며 3)신앙의 성장이 없는 것이다.
스펄젼은 “사색은 그 능력을 개발하고 가꾸는 영혼의 단련” 이라고 했는데, 죠지. 폭스(George Fox)는 예리한 칼을 가지고 승마용 가죽바지를 한벌 찢어서 이 세상의 유행을 등진 채 아름드리 나무 속에 숨어사는 동안 한달 내내 생각만 했다. 그 결과 그는 책을 가진 사람들을 뺨칠 정도로 생각이 많은 사람으로 자랐다. 그는, 당대의 카톨릭교, 고위 성직자, 장로교 뿐 아니라 미국교도들 사회에서도 명성을 날렸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영적인 깊은 사색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지키고 늘 깨어있는 근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b. 의로운 사람
“...의로우며...”(딛1:8)
목회자는 의로워야 하는데 ‘의로우며: δικαιοs’ 는 신적인 재판관 곧 주님의 법적 승인을 받은 행동을 의미하는데 이는 오직 주님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 ‘의인: δικαιοs’ 이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함, 곧 구속을 받은 자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으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고후5:21). 이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의로워야 하는 것이다.
c. 거룩한 사람
“...거룩하며 (οσιον)...” (딛1:8).
이 자격조건은 앞서 구약에서 제시한 목회자의 자격 조건에서도 언급했다. 성경은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5-6) 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이점에 있어서 특히 모범적이었다. 그는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살전3:10)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부르셨을 때는 거룩한자가 아니라 오히려 주를 박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거룩은 스스로 노력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몸을 주시므로 인해서 의롭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효력으로 친히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요17:17) 라고 기도하셨다. 실로 우리의 거룩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살전2:13)이라고 말씀하심 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감히 목회자로서 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본대로 목회자는 먼저 하나님께 근신하는 사람이 되어 언행을 삼가고,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1:13)” 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하면서 의롭고 거룩한 목회자가 되어 주와 더불어 영교하며 성별된 자 답게 겸허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d. 主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요21:15-7).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세 번이나 자기를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주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세 번이나 물으셨다. 주님께서 이렇게 세 번씩이나 물으신 참뜻은 베드로로 하여금 자기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으나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있는 것을 스스로 깊이 깨달아 앞으로 과거의 일 때문에 구애받지 말고 일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참마음으로 고백하는 그에게 주님은 그의 양을 맡기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연약해서 누구나 실수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중심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늘날도 주님은 그의 양을 맡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구약에서 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자의 마음속에 우러나오는 한 심성이라 생각 할 수 있다.
2. 자기 자신에 대한 자격
a.온전한 인격의 사람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의 가장 탁월한 덕목인 겸손으로 구체화 되신 것 같이 목회자의 온전한 인격은 목회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목회사역은 목회자의 인격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고 했다(잠4:23). 따라서 목회자의 마음은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필립스 부룩스(Phillips Brooks)는 인격에 대하여 말하기를 목회를 준비하는 것은 “사람을 만드는 바로 그것” 이라고 했는데 결국 우리의 삶으로부터 우리가 하는 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온전한 인격을 갖추어야 하며 바로 그의 갖추어진 인격은 목회적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튼튼한 기초가 된다. 더우기 목회자의 인격은 지식을 뒷받침해 주어야하고 그래야 참된 지식이 되며 또한 그 지식은 인격이 성숙하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다간(E. C. Dargan)은 영국 청교도 역사에 있어서 전형적인 지도자였던 리챠드 백스터가 전향적인 지도자가 된 것은 “지성이나 혹은 학문적 탁월성 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덕스러운 그의 인격에 의한 것이었다” 고 했다. 온전한 인격자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본받는 생활이 되어야만 한다. 목회자는 선한 목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기 위하여 날마다 경건의 시간을 갖고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열심히 하여야 한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또한 마음속 깊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그 말씀을 순종하는 진실한 삶이 될 때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되어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다.
b.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
이미 구약에서 제시한 목회자의 자격요건 중 성령을 받은 사람을 논했다. 사도바울은 목회자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성령의 능력임을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고린도 교우들에게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행했다고 한다(고후2:4). 또한 가르칠 때도 신령한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므로 오직 성령의 인도를 통해 가르쳐야 할 것을 강조한다(고후2:13).
곽안련 목사는 “교육은 받았으나 신령하지 못한 목사가 있고 무식하더라도 신령한 목사가 있을 때 양자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물론 무식하더라도 신령한 목사를 택하여야 한다” 고 했다(고전21:14). 그러나 유, 무식을 막론하고 신령한 능력을 받았을 때는 유식한자가 더 좋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오순절에 예루살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 충만은 이제껏 무지하고 이기적이며 비겁하고 무기력하던 제자들을 능히 변화시켜 전무후무한 능력 있는 목회자들로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성령은 인간의 힘으로, 능력으로,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슥4:6). 따라서 목회자는 성령 충만을 지속하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더우기 목회자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놀라운 신비적인 체험을 가졌으나 육신의 생각과 정욕을 쳐서 끊임없이 영적생활의 향상에 힘쓴 것처럼”(고전9:24-7;빌3:11-6) 성령충만 해야 한다. 목회자가 영적 능력을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첫째로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둘째는 열심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생활을 힘써야 한다. 그리고 세째로 목회자는 건강한 생활을 통하여 영적 능력을 지속하고 향상시킬 수 있다. 몸이 병들면 주의 일을 승리롭게 끝마칠 수 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2)라고 했다. 건강을 위해서 목회자는 먼저 “성령의 전” 이 되는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날마다 끊임없이 드려야 한다. 그리고 절제하는 생활을 함으로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피하여야 한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직책은 아론 자손들에게 맡기워졌으나 몸이 상한 자나 불구자는 그 직책을 계승하지 못하였다(레21:16-24). 사실인즉, 목회자가 건강하지 못하면 목회를 제대로 감당할 수 가 없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항상 자기 몸을 돌봐야 하는 것이다.
에딘버러의 유명한 알렉산더 화이트(Alexander Whyte) 는 “너의 생명을 낭비하라 그러나 너의 건강을 유의하라” 고 했다. 이 말은 목회자가 비 이기적인 목회에는 그의 생명을 아낌없이 투자해야 할 것이나 더욱 온전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위하여 그의 건강을 보존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건강할 때 영적 능력을 유지하며 더욱 힘차게 그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전진을 할 수 있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c. 실력(지적, 학적) 을 갖춘 사람
바울은 목회자의 자격으로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2),“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 있는 자”(딤전1:9)여야 함을 말한다. 더우기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을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 할 것이며,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권면 했다(딤전4:13,15). 따라서 목회자는 제일먼저 성경학자가 되어야 한다. 구약에서도 모세는 목회자의 자격으로 ’지식 있는 자’ 여야함을 지적했다(신1:13). 많은 목회자들이 여기에서 실패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목회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목회자는 신학의 전문적 기초 없이 목사가 되려는 것은 콘크리트를 하지 않고 그냥 맨땅에다 고층건물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신학적 기초를 튼튼히 하여야 한다.
위 필드(Warfield)가 신학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우주에 대한 관계를 논하는 학”이라고 정의했듯이 신학은 하나님께 대하여 설명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들 즉, 창조, 섭리, 구속 등을 논하는 학문인 것이다. 신학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 하신 대로 하나님께 대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학은 성경을 통해 자신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주신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대한 연구이므로 성경을 떠나서 신학 혹은 하나님에 관한 연구를 운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신학은 모든 학문의 최고의 봉오리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의 학문을 폭넓게 수용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책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책들은 목회자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고 경건한 열정 속에 타오르게 해주기 때문이다. 위대한 설교자 찰스 스펄젼(Charles Spurgeon)은 죤 번연의 ‘철로역정’을 백 번이나 읽었으며 항상 많은 경건 서적들을 읽었다고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하나님과 동행했던 모든 분들의 서적들과 글들을 읽으므로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한 사람들과 접촉하여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유익한 것을 습득함으로서 수준 높은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d. 절제할 줄 아는 사람(딤전3:2; 딛1:8)
게츠 박사는 하나님의 사람은 잠제력을 지니고 삶의 분명한 전망을 가지고서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똑바른 위치에 서야하며, 그는 믿음의 사람이요 소망의 사람이며 사랑의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박윤선 목사는 “절제하며: νηφαιον(딤전3:2), εγκρατη(딛1:8)”는 극기(克己)를 의미하는바 죄 된 행위의 단절을 말하며 경성하여 이 세상 것에 취하지 아니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렌스키는 ‘절제’ 는 문자적으로 “힘을 조절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항상 불의를 행할 수 있는 힘을 충분히 억제하고 명령을 위반 할 수 있는 힘을 억제하는 이 두 가지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목회자는 경성하여 이 세상의 죄악된 모든 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 목회자는 자기의 몸을 처 단련 할 수 있어야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의 몸을 ‘의의 병기’로 주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말로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자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멸망뿐 아니라 수많은 영혼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참고, 레4:1 ff.; 약3:1).
e.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딤전3:3; 딛1:7)
“술을 즐기는 자: παροινοs” 는 술 옆에 도사리고 앉아 쉽사리 떠나지 않는 자를 말하는데 곧 술주정뱅이를 지칭하는 것이다. 성경은 재앙, 근심, 분쟁, 원망, 까닭 없는 창상, 붉은 눈이 모두 술에 잠긴 자에게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다 했다(잠23:29-30). 또한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말할 것이며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고 말씀했다(잠23:31-35). 이처럼 술은 1)사람으로 하여금 방종하게 만드는 것이니 만큼 진리의 파수군에게는 금물이고 2) 술 취함은 육신의 오락을 탐하는 향락주위니,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할 목회자에게 우상이 되기 때문에 목회자는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한 생활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엡5:18).
f.선을 좋아하는 사람(딛1:8)
구약에서는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선한 행위를 목회자의 조건으로 말하였다(출18:21). 이 조건은 특별히 그당시 지도자가 재판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 즉, “선을 좋아하며: αγαδον” 는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고 돕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선을 사랑하되 선을 행하고 또 선하게 되는 일에 자신을 즐겁게, 또 희생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딤전 3:7에는 “의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 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선을 행하고 사랑하며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서 악을 이기는”(롬12:12)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g. 확실한 말씀을 굳게 잡은 사람
고전14:8에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라고 하였다. 목회자는 복음의 확실한 말씀을 굳게 잡아야 하며, 자기가 가르치는 진리와 자기가 믿고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3. 가정에 대한 자격
a. 한 아내의 남편이 되는 사람(딤전3:2; 딛1:6)
목회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그의 품을 족히 여겨야 한다. 초대교회에는 복음으로 전향한 자들이 곧 성적으로 완전한 순결상태로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바울은 감독이 될 사람의 자격을 규정할 때 서두에서 이와 같은 규정을 두어 오직 감독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엄격하게 성실해야함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목회자는 온전한 의미에 있어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귀감이 되어야 하며, 또한 자기아내를 사랑하고 돌보는 그 태도면에 있어서 교회 앞에 하나의 모범을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게츠박사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는데, 1)아내와 더불어 친절한 대화를 지속 시켜야만 하는데 여기에 만족할 만한 성생활이 내포되어야 한다. 2)유혹을 받아서 서로 다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성적으로 매혹하는 것들이 많이 있으므로 주의 해야하며 정욕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3)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통하여 우리자신을 강화해야 한다. 4)불필요한 게으름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윗의 도덕적 타락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유혹이 강할 때 게으름을 부리는 것은 전적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심지어 영적 지도자들에게 까지도 게으름은 타락의 길을 걷는 첫 단계가 되어지는 것이다. 5)문제가 생겨질 때면 우리가 믿을 만한 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해야한다. 유능한 상담자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친구나 기도의 동지 또는 조언자의 자문을 받는 것이 지혜스럽다고 했다. 이는 목회자에게 있어서 꼭 지켜야할 매우 유익한 것이라 여겨진다. 참으로 원만한 부부생활이란 더없이 중요하다 할 수 있다.
b.“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사람(딤전3:4-5)
목회자(감독)는 먼저 모든 단정함으로서 자기의 집을 잘 다스릴 때 자녀들이 그에게 순종하게 될 것이며, 그럴 때에 일반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어 교회를 잘 지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스린다” 는 말은 원문 헬라어 성경에 “προισταμενον” 이다. 이 단어는 “주제하다, 통일하다, 다스리다, 감독하다” 등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잘못되지 않도록 통할하여 잘 인도해 가는 아버지여야 함을 시사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가정을 지나치게 엄한 명령이 아닌,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여 내버려두는 것도 아닌 다분히 교육적인 가운데 단정함으로서 그에게 자녀들이 복종하게 하는 것이 더 없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기가정부터 잘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즉, 가정목회에 성공할 때 교회의 목회도 성공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좋은 목회자로 인정받을 때에 자연적으로 교회에서도 좋은 목회자라는 평판을 듣게되어 교회를 잘 다스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c.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람 (딤전3:2)
“나그네를 대접하는 사람” 이란 ‘손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에서 바울 당시에 핍박으로 인하여 의지할 곳이 없어 유리 하는 신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잘 대접하는 일은 초대교회의 중대한 당면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와 사모는 친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불쌍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돌봐 주어야 한다. 그리할 때 자녀들도 부모를 본받게 되어 자연적으로 그의 가정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성경 적인 가정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크리소스톰(Chrysostom)은 친히 빈한한 생활을 하면서 병자와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였다. 목회자는 아브라함과 같이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대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 교회에 대한 자격
a. 새로 입교하지 않은 사람
“새로 입교한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 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3:6).
목회자(감독)는 새로 입교한자를 세워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저가 자기 자신의 육적인 교만함을 제어할 성화에 이르지 못하여서 교만하므로 마귀를 정죄 하는 그 정죄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 입교한자” 는 ‘새로 복음이 그 마음에 심겨진 자’, ‘새로운 신자’ 또는 ‘최근에 회심한 자’ 를 가리킨다. 이러한 자가 신속히 교역자가 되려함은 어리석은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신앙적 깊이가 없어 교인들을 이끌어 갈수 있는 기초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b.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
“...가르치기를 잘하며...”(딤전3:2;딤후2:24)
“가르치기를 잘하며: διδακτικοs”는 적절한 혹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잘 가르칠수 있는 것은 단순히 능변을 말하지 않고 자신의 믿는 도리를 분명하게 밝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실한 교사일수록 그는 더욱더 그가 가르치는 진리의 지식을 알아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어 자신이 먼저 주께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범사에 모범을 보임으로서 그는 그의 가르침을 성취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선생은 적절하게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숙련된 방법을 사용할 줄 알며 사람들이 배우려는 동기를 잘 포착하여야 될 것이며, 또한 ‘가르치는 은사’ 를 통해서 그 자질을 향상시켜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c. 바른 교훈을 적절하게 가르치는 사람
성경은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리워져 자기의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딤후4:3,4)고 한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진리에 확고하게 서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엡4:14). 오히려 영적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교훈을 확신 있게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성경의 교훈들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되 생생하게 살아있는 교훈이 되도록 만들어 줄줄 아는 유능한 교사가 되어야 한다.
d.억지로 일하지 않고 기쁨으로 일하는 사람(벧전5:2)
목회자에게 있어서 자원하는 태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명 하셨다는 진실을 알아보는 가장 좋은 테스트의 방편이 된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자기의 일을 돈 때문에 일하는 직업적 봉사로 여겨서는 안 된다. 또한 양 무리를 ‘지배하려는’ 욕망이 없어야하고 절대로 주장하는 자세도 금물이다(벧전5:3). 목회자는 오직 자신의 영적인 힘을 얻기 위하여 주님께 경건히 자기 자신을 헌신하며 기쁨으로 자신을 언제든지 겸손하게 드리는 ‘종’ 의 삶을 영위해야 한다.
e. 믿는 자, 양 무리의 본이 되는 사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 함으로 하지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2-4)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에서 ‘본: τυποs’ 은 ‘τυπτω’ 에서 유래된 것으로 표적, 허물, 흔적, 표, 형상, 전형, 모범 등의 뜻이 있으며 한글개역 성경에는 ‘자국’(요20:25), ‘현상’(행7:43), ‘식’(행7:44), ‘표상‘(롬5;14), ‘본’(롬6:17;딛2:7), ‘겨울’(고전10:6,11)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그 의미는 모범을 가지고 양떼를 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칠 때에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것이다. 즉 목회자가 “돌보고 감독할 범위에 속한 신도에 대하여 강압적 태도, 거만한 거동을 해서는 안된다. 특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도에게 압박” 을 가하지 말고 “겸손하고 사심이 없이 희생정신으로서 그들의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우기 “실천생활에 있어 모본을 보여” “그들을 감화” 시킴으로서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존 웨슬리는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는 말씀을 주해할 때 “이것은 가장 즐겁고 자유로운 복종을 초래한다” 고 했다. 참으로 목회자는 “맞아서 죽음으로 그 죽음의 흔적이 맞은 자리로 나타나듯이” 게으름과 탐욕, 독재 등의 죄악들을 멀리 경계하되 순교적 자세로서 자원적, 이타적(利他的) 헌신과 몸소 모범을 보이는 실천적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양무리를 돌보아야 할 것이다.
황의영 목사는 목회자가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을 말했다. 1)자기가 증거한 말씀대로 사는 사람 2)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 있는 사람. 3)자기의 옛 성품을 죽이고 낮아질 줄 아는 사람. 4)말씀을 따라 믿음이 자라나는 사람(능한 그리스도인) 5)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사람. 참으로 옳게 보았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는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 에 있어서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딤전4:12의 말씀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1)말과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자기가 증거한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전파의 사명이 천직인 줄 알아 죽기까지 충성했던 사도 바울은 뜨거운 사명감에 불타서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 고백하였다. 참으로 목회자는 사도 바울과 같은 “뜨거운 가슴” 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할 때 그가 증거한 말씀은 살아 역사하시는 생동력 있고, 능력이 있으며 모든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화력 있는 말씀이 전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라는 권위를 앞세우지 말고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증거한 말씀에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자기(목회자) 자신이 먼저 받아 “말씀과 생활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리차드 백스터는 “말과 행실이 일치하는” 참된 목회자가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자기 자신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당신이 설교하는 복음의 효율적인 역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타인이 되거나 이 세상을 향하여 구원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등한시하거나 주님에 대해 관심과 그의 구원의 은혜로부터 멀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멸망의 길을 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파멸로 치닫고 있지나 않은지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식량은 준비하면서 자신의 식량을 준비하지 못해 굶어 죽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항상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참여하는 자가 되며 넘치는 은혜 속에 살면서 풍성한 양식으로 자신이 만족할 뿐만 아니라 그의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되 그의 행실을 통하여 그가 증거한 대로 그리스도를 보여 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할 때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돌이키게 하는 자에게 별과 같이 빛나게 해 주겠다는 언약” 이 그에게 성취될 것이며 믿음 안에서 신실한 그의 ‘사역에 따르는 노고’ 는 그에게 ‘더 큰 영광을 약속해주는 조건’ 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은 진리를 등한시하고 악용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말하고 다니는” 삯군 목자를 항상 경계하고 목회자 자신은 항상 겸손의 옷깃을 여미어야 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은 ‘유능한 설교자’ 라고 해서 그 사람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언행이 일치되어 신자의 본이 되는 그러한 목회자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유창하게 설교하는 그가 “성경을 펼칠 때 성경 안에서 자신의 사형선고를 읽게 되지나 않을까 하여 떨리는 마음을 품게” 된다면 “설교를 써 내려가면서 자기 자신의 영혼에 고소장을 쓰고 있다는 생각” 이 든다면? “죄에 대해서 공박할 때 자기 자신의 죄를 더욱더 가중시키고” 있다고 그의 양심이 외쳐 댄다면? 그가 청중들에게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요함과 은혜에 대하여 선포할 때에 그의 선포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요함 속에 거하지 못하는 자신의 불행을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그의 양심이 울부짓는 소리를 그가 듣는다면 그가 어찌 ‘믿는 자의 본이’ 될 수가 있겠는가? 그러기에 참된 목회자는 ‘은혜를 받았다고 스스로 만족’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가’ 온전히 활동하도록 힘쓰고 항상 자신이 연구한 설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또한 목회자가 “보여주는 행동과 가르치는 교리”가 서로 일치되도록 할 때에 그러한 목회자야말로 ‘양 무리의 본’ 이 되는 바람직한 목회자라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2) 사랑(αγαπη)의 ‘본’ 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요일3:18)” 할 때 “신자의 모범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4:12), 여기서 ‘사랑: εν αγαπη’ 은 사람을 대하는 기본자세이다 이는 거룩한 종교적 사랑 인 것이다.
(3) 믿음의 ‘본’ 이 되어야 한다.
“...말과 행실과...믿음과...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4:12). 여기 “믿음: εν πιστει” 은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를 말하는데 “바른 교리에 대한 확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님께 대한 충실한 봉사” 를 의미하며 이것은 ‘신실’ 로 표시할 수도 있는데 그 뜻은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성실한 태도” 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믿음(πιστιs)은 흔히 충성된 의미로 사용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충신(忠信) 과 진실(眞實)” 이시다(계19:11).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자장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봉사를 통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정절의 ‘본’이 되어야 한다.
“...말과 행실과...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4:12)
“정절: εν αγνια” 은 언제나 도덕적 의미를 가지고 육체적 죄에만 행하지 않고 동기와 행동의 성결을 포함하는데 곧 이성관계나 물질 거래에서 정결한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정결에 대하여 칼빈은 정욕의 반대가 아니라 생활의 철저한 순결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회개의 삶을 통해 자신을 정결케 하여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만을 위한 생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거스틴은 별세전 10일 동안 기도와 눈물과 회개로 보냈으며, 그는 그때에 시편의 회개 시들을 침대를 향한 벽에 쓰고 끊임없이 거기에 주목하여 보면서 별세하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앞에서 점도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고 했다. 그리고 바울은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3:13)고 하였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죽는 생활’ 을 통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정결케 하는 일에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대인, 대물 관계에 대한 자격
a. 책망 할 것이 없는 사람(딤전3;2; 딛1:6).
“책망 할 것이 없으며” 란 말은, 죄과가 전혀 없는 신분을 의미하지 않고 사적으로 거리끼는 죄책이 없음을 가리킨다. 또한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책망 할 것이 없고: ανεγκλητοs” 란 사회적으로 받는 도덕적 혹은 법률상 책잡히는 것이 없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목회자는 어느 것에나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히려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 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b. 아담한 사람(딤전3:2)
“아담하며: κοσμιον” 는 인격의 외부에 규칙이 있고 질서 있음을 가리키는데 이는 작업상에 가지는 규칙 생활 보다도, 도덕상 규칙의 엄격미를 염두에 둔 말이다. 즉 목회자는 자기 허물에 대하여는 크고 적음을 가리지 말고 용서치 않는 것이 규율 있는 생활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올바른 인격을 갖추어 질서 있고 예의바른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c. 제 고집대로 하지 않는 사람(딛1:7)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μη αναδη” 는 융통성이 있고 자기주장에 강한 태도가 없어야 된다는 말인데 제 고집이란 1)하나님의 뜻과 부합하지 않는 자기의 주장과 2)자기의 선한 주장이라도 남의 선한 주장을 세워주기 위하여는 양보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양보하지 않는 고집을 말한다.
칼빈은 “제 고집대로 하는 자는 흔히 광신자가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어 진리를 사수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항상 양보하고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d. 급히 분내지 않는 사람(딛1:7)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μη οδγιλον” 는 쉽사리 성내는 것을 뜻하는데 사람이 성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약1:10).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고 노하기를 더디 해야 한다(잠16:31). 또한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행위를 본 받아서 영혼을 올무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잠22:24-25).
e. 구타하지 않는 사람(딤전3:3; 딛1:7)
“구타하지 아니하며”는 혈기로서 남을 때리는 악행을 가리킨다. 구타하는 자는 성급한 자로서 주먹을 쓰기 좋아하는 싸움꾼인데, 목회자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그래서는 안되며 더우기 그렇게 성난 표정도 금물이다. 성경에는 가인(창4:1-15)이나 모세(행7:20-29;출32:19), 그리고 베드로(요18;1-23)등이 목회자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남을 구타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백해무익한 죄된 행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f. 관용하는 사람(딤전2:3; 딤후2:24)
“관용하며: επιεικηs” 는 온순하고 양보적인 존재를 말한다. 세상은 정말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들에 굶주려 있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참으로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목자는 때로 얼울한 누명이라도 뒤집어쓰고 고통을 당할 때도 있는데 그때에도 참고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g. 다투지 않는 사람 (딤전3;3; 딤후2:24)
“다투지 아니하며: αμαχον” 는 결코 싸우지 않는 자를 말한다. 이것은 관용의 결과로서 남을 너그럽게 대하는 자는 다툴 수 없는 것이다. 오직 목회자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유3), 선한 싸움을 하는 사람이지 포악한 말과 태도로 괸한 정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h. 사랑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
목회자는 뜨거운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 사랑은 목회자를 진실된 목회의 자리로 이끌어주는 힘이요 원동력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교인들과 모든 사람들을 대면하여야 한다.
i.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딤전3:3),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딛1:7), 목회자는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미혹되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물욕이다. 성경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 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리요”(전5:10-11), 라고 했다.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망은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 욕망은 오히려 멸망을 가져 올 뿐임을 사도 바울은 교훈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딤전 6:9).
여기 ‘침륜’ 이란 곧 손실을 뜻한다. 따라서 목회자가 돈을 사랑하게 될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쓸모가 없게 된다. 또한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라고 했다(딤전6;10). “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 자” 를 가리킨다. 그런데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 라고 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청지기 직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러기에 목회자는 성경적인 물질관을 바로 알아 그대로 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더우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말씀하셨다(마6;26). 구약 성경에 보면 재물 때문에 ‘아간’ 은 이스라엘 군대에 패배를 가져다 주었으며 그 자신과 가족에게 죽음을 가져왔음을 볼 수 있다(수7:). 또한 발람은 물질에 매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려 했다. 그는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였다. 이처럼 물질에 대한 욕망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돈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의한 이를 탐하다가 세상향락의 노예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물질을 맡은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관리할 것이며, 또한 목회자는 물질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을 수가 없으나 물질로 인하여 양심이 흔들리지 말고, 오히려 마귀의 물질적 시험을 물리치신 예수님을 본 받아 단호히 말씀으로 물리치고 오직 주님이 명하신 사명자의 길을 걸어가되, 주님 향한 믿음과 정절이 견고해지는 사람, 세상 등지고 십자가만 바라보고 주님만 뜨겁게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소명을 받고 성경에 나타난 모든 자격이 구비된 목회자가 될 수 있다면 그가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수행 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목회자는 이사야와 같이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할 때에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자원하는 심령이 되어 그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의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목회자를 붙들어 사용하실 것이라 믿는다. 아멘.
6. 소명 받은 증거들에 대하여 진술하라
*소명에 대한 증거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그 목양의 일을 위해 부름 받았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사명감에 넘치는 목회자가 될 수 없고, 죽도록 충성하는 목회자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를 부르신 자의 부름을 의식하지 못할 때 그에 대한 충성심이나 그를 부르신 목적을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처럼 목회자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후4:1). 곽안련 목사는 목사 되기에 합당한 부르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부르심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온다.
2) 부르심은 직접 각 개인에게 온다.
3) 객관적으로만이 아니라 주관적으로도 부르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4) 부르심은 안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목회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을 때에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확신해야하며 그에 따른 증거가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면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내적, 외적 증거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내적 증거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내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죤 칼빈은 목회자의 소명을 “외적소명” 과 “내적 소명” 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는데, 내적 소명은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아는 일이며 교회는 증인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이 직책을 받는 것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려는 소원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의 속마음이 잘 증거한다” 고 했다. 이와 같이 소명을 받은 목회자는 그 확신이 성령의 내적 운동 가운데서 틀림없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증거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겸손에 기초” 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길목에 있음을 가르쳐준다. 사람을 어둠에서부터 빛으로, 영적인 죽음에서 삶으로 부르시는(마11:28-9;요6: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 중에서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 로 주시고(엡4:11), 그들이 성장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되게 하신다(엡4:12-16). 더우기 성령님께서는 온 양떼들 가운데서 목회자로 세우신 자들을 감독자로 삼아 교회를 치게 하셨다(행20:2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교역에 종사케 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적 확신을 가졌다(딤전1:12). 더우기 그는 주께서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9:14,참고,민18:8-20;고전9:1-19)고 명하셨다는 성경적인 원칙을 선포함으로서 영적인 봉사를 위해 물질적 추구를 떠나야함을 암시하였는데, 이것은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내적 확신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곧, 주님에 의해서 공급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의 삶 자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의 결과이며, 특히 성령의 개인적인 내적 체험은 “가장 숭고하고 축복받은 기독교 생활의 본체” 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분명한 내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2.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외적 증거
목회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내적 확신과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가시적인 신앙 공동체의 확증이 또한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요구되는 은사와 자질들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주께서는 목회자의 소명을 주신 자들에게 우선 그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무기를 주셔서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다. 실제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그들에게 필요한 무기와 도구를 주셨는데, 그것은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 할 수 없는 구재(口才)와 지혜”(눅21:15)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되는”(막16:16-8)것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말하는데(행1:8;눅24:49), 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의 사명을 수행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소명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주시는 영적 은사와 천래적(天來的)으로 타고난 자질들이 과연 내게도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서 그 외적증거를 인정받아야할 것이다.
3. 목회자의 소명에 대한 성경적 증거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목회자들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어떤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부르셨지만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직접 부르셨으므로 그들 자신이 분명히 알았다. 또한 소명 받은 목회자는 그 소명에 응답함으로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는데, 그들 중에 때론 곁길로 피하려는 자들도 있었으나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 하였으며 명하지 아니 하였나니 그들이 내 백성에게 아무유익이 없느니라(렘23:32)” 고 하신 말씀을 보면, 목회자의 소명은 하나님의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소명 받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전 생애를 바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소명은 분명하고도 독특한 부르심인 것이다.
a. 구약에서 소명 받은 목회자들의 증거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그러면 그들 중에서 모세, 이사야, 예례미야, 이렇게 세 사람을 택하여 고찰하려고 한다.
(1) 모세의 증거
하나님은 모세를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2-4).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에는 이미 애굽에서 학문을 익히고 난 뒤 목회자의 과정을 밟고 있었으며, 세상의 아름다운 모든 문명을 버린 상태에 있는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이유는 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족속, 아모리족속, 브리스족속, 여부스족속의 지방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었다(출3:8,10).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때 그는 무려 5번이나 이유를 들면서 사양했다.
1) 그는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3:11)” 라고 겸손하게 사양하였다. 그가 일찌기 자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도우려고 했을 때에는 온전히 실패하였었다(출2:11-15). 그는 실패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일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겸손하게 사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나설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을 주기 위하여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출3:12)” 라고 하신다.
2) 모세는 아직도 용기를 얻지 못하고 또 하나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제기하는데, 그것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고 물을 때에 답변이 곤란하다는 것이다(출3:13).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신다(출3:14,15).
3) 모세는 또 하나님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내게 나타나지 아니 하셨다 하리이다”(출4:1) 라고 했는데, 이는 모세가 아직도 자신을 가지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모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약점을 깊이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모세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의 표적을 통해서 그의 신앙을 강화시키고, 그의 백성들에게 그가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게 하셨다.
4) 모세는 또 다시 말이 능치 못하다는 이유로 사양한다(출4:10).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양하는 이유에 대하여 해결책을 말씀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입” 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니 모세의 입과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시겠다는 것이다(출4:11-2).
5) 모세는 이제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사양한다(출4:13). 하나님은 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다시 대책을 세워 주셨는데, 그것은 그의 형 ‘아론’ 을 그의 대언자로 세워주신 것이다(출4:14-16). 그리고 모세에게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적을 행하라고 하셨다(출4:17). 이렇듯 하나님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사양하는 모세에게 끝까지 사랑과 인내하심으로서 그가 주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말씀하시고 표적을 보여 주신대로 모세와 함께 하셨고 권능을 주셨으며,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동안에 수 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삶을 살았다.
(2) 이사야의 증거(사6:)
이사야는 예언자들 중 가장 전형적인 예언자로 간주되어진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택하시고 선지자로 부르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사6:8중) 그때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6:8하)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자원하는 심령이 되어 응답하였다. 이 응답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의 가장 모범적인 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그의 소명을 네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1) 신 의식에 뒤따르는 죄의식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이사야는 주권자이시고 전능자 이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다(1-4절). 하나님을 본 것은 이사야로 하여금 예언자가 되게 한 모든 것의 기초였다. 이 환상! 즉 이 하나님 의식은 곧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적인 결과에로 다다르게 되는데 곧 죄의식이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이사야는 하나님의 빛 안에서 자신 위에 있는 빛을 보았고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데서 그의 생명과 그의 길을 보았다. 하나님 인식에 기초한 罪의식은 하나님의 예언자 즉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의 삶과 사역에 근본적인 것이다.
2) 죄의 고백 후에 따르는 죄 씻음(5:7)
이사야에게 있어서 죄를 의식하는 것은 바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었다. 그는 당장 죄를 고백하는 일에 그의 영혼을 쏟아 놓았다. 그는 부정한 입술에 관하여 그 자신이나 국가가 실패한 것을 알았다. 만군의 주인 되시고 왕이신 하나님에 대한 환상이 전과 달리 이 사실들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는 것은 곧 죄 씻음을 받는 것이었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 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사6:6,7).
이사야는 즉각적이고도 완전하며 확실하게 죄 씻음을 받은것을 경험하였다. 하나님의 불이 단번에 그리고 철저히 그 일을 행하셨다. 이사야가 이렇게 죄 사함을 받았을 때 하늘의 진정한 모습이 분명하게 보였다.
3) 하나님의 소명에 뒤따르는 하나님께 헌신
이와 같이 죄를 깨닫고 죄 사함을 받은 예언자 이사야는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더 깊은 계시를 받기에 영적으로 적합하게 준비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있었고(1절), 민족의 죄악이 하나님의 행위를 불러 들였다(5절). 우리가 하나님을 뵙고 우리의 죄를 알고 하나님의 용서을 받고 그 용서를 알 때만이 우리는 소명을 깨닫고 그 소명에 응답하며 전심으로 헌신을 하게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는 이제껏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과 죄를 지은 백성들 중에 거하였다는 인식이 분명히 그로 하여금 이태까지 앞으로 나와서 그 백성에 대한 심판을 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깨끗게 하시고 사명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게 하셨으므로 이제 이사야는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즉각적으로 응답할 수 있었다. 이사야는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하였던 것이 이제는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응답하는 사명자가 되었다.
4) 하나님의 위탁 후에오는 하나님과의 영교
보내심을 받을 준비가 되자 곧 하나님의 위임이 따랐다. ‘가서 말하라’ 는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이사야는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라고 질문하며 하나님과 영교하는 자가 되었다. 이사야는 이처럼 신 의식에 뒤따르는 죄의식, 죄의 고백 후에 따르는 죄 씻음, 하나님의 소명에 뒤따르는 하나님께로의 헌신, 그리고 하나님의 위탁 후에 오는 영교라는 독특하고 분명한 소명을 받은 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대로 예언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응답하는 그의 순종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게 된다.
(3) 예례미야의 증거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소명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내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자리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렙1:4-10).
예례미야가 예언하기 전에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초자연적으로 주어진 임명의 말씀은 그의 선지자직의 신적 기원과 그의 예언의 신적 권위를 확증해 주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못하고 자신의 연약함과 영적 무력함을 고백하였다(6절). 그러나 하나님은 손을 그의 입에 대시며 강권적으로 그를 부르셨다(9절).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예언의 내용과 방법과 그 성취가 하나님에 의해 직접 이루어질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명이 중차대하며 매우 촉급하다는 사실을 두 환상을 통해 보이셨다. 하나는 살구나무 가지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그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시겠다는 것이며(11-12절), 또 하나는 그 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보이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게 하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들을 섬긴 유다 백성들을 치게 하며,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13-16). 이어서 하나님은 사명을 수행하는 그에게 함께 하시며 보호해 주시겠다는 격려와 약속의 말씀을 주셨다(17-19).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예례미야는 소명의 확신을 가지고 모두 50년의 예언활동 기간을 하나님께 신실하게 헌신했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이 만연한때에 하나님께 세움을 입어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므로서 그가 참 선지자임을 보여주었다. 이로서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증거를 확실히 보여준 것이다.
b. 신약에서 소명 받은 목회자들의 증거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은 먼저 세례요한의 부르심으로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제자들을 부르시는 소명’ 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우기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도 계속적인 복음전파를 위해 사도와 설교자들을 부르셨다. 신약적소명의 특징은 몇몇 특별한 직접적인 소명을 제하고는 은사 및 교회의 요구, 그리고 내적 확신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명 받은 자들 가운데서 세례요한, 베드로, 바울, 이렇게 세 사람을 택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1) 세례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3:2)”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보내시고(눅1:57), 그에게 성령이 임하여 말씀 전파자로 나서게 하셨다. 여기에서 성령의 임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상징해 주고있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출생하기 전에 그의 부친 사가랴에게 주의 사자를 보내셔서 세례요한을 특별한 사명자로 보내실 것을 예언하셨다. 하나님은 세례요한과 함께 계셔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서 사역을 준비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서 그를 부르셨는데, 요한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요단 계곡으로 나가 예언자로서 하나님의 때가 가까왔음을 선포하였다(막11:32;마14:5). 그는 이사야 선지자의 책에 쓴바와 같이, 주의 길을 예비하고 평탄케 하는 사명을 훌륭히 수행하였는데, 그는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증거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 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눅3:16-7).
또한 세례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3:30), 고 그리스도를 밝히 증거하였으며, 결국 그는 목베임을 당하는 순교를 통하여 하나님깨서 주신 사명을 다 이루었다. 이로서 그는 하나님의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2) 베드로의 증거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베드로를 부르셨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는 곧 그물을 버려 두고 그를 쫓았다(마4:20). 베드로는 예수님의 주권적이며 불가항력적인 부르심에 응답하였으나,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였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다시 찾아주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실 때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고 조심스레 대답했고, 이에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고, 치라” 고 목양의 사명을 부여하셨다. 그리스도의 소명을 받고 목양의 사명을 부여받은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권능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으며, 강하고 담대한 설교자가 되어 수 많은 양떼들을 주께로 인도하고 지도한 위대한 목회자가 되었다. 이제 그는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한 확신은 불변했고, 이로서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3) 바울의 증거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극적인 소명은 사도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유대교에 속해있으면서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고(행7:58), 그 후에는 예수 믿는 자를 진멸하려고 유대교의 공문을 받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리스도의 소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부르실 때에, 하늘에서 빛이 저를 둘러 비취게하여 그의 눈을 보지 못하게 하였고 “사울아 사울아 내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고 말씀하셨으며 사흘동안을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하게 하셨다(행9:3-9,11).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제자 아나니아를 환상 중에 부르시고 바울에게 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라고 하셨으며,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부르신 이유를 설명하셨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그에게 가서 안수할 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었고 세례를 받으며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다(행9:17-19). 그 후 그는 곧바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행9:20) 하였으며 주님께서 소명하사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위해 온전히 바쳐진 삶을 살았다. 이로서 그는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바울은 대부분의 그의 서신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의 소명을 지적하는 말을 그의 개인적인 이름에다 하나, 혹은 둘 이상의 서술적인 구(句)로 첨부했다.
로마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롬1:1) 라고 했고, 고린도전서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고전1:1)이라고 했고,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도된 바울”(갈1:1),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엡1:1;골1:1)이라고 했다. 이렇듯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도’로 부르셨음을 누누히 그의 서신들을 통해서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부르시고 맡겨주신 사명을 생명을 바쳐 수행하였으며,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였다. 이상과 같이 바울은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었다.
7. 목회 목적에 대하여 논술하라
목회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목회를 한다. 곧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성경은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 하리라”(사42:8)고 했다. 목회자가 겸손하게 기도하며 추수를 위해 충성을 다해 일하고 있다면 사람들의 판단이나 평가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직 그의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며 감사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1). 이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그가 아버지의 영광을 최우선적으로 여기셨음을 발견하게 된다.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세번이나 구원의 긍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확증하고 있다(엡1:6,12,14).
그러므로 목회자는 몸으로(고전6:19-20),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음으로(빌1:19-22), 또한 착한 행실로서(마5:16),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더우기 목회자는 자기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에게 부여된 직무를 준행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할 때, 그의 죽음조차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요21:18-19).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을 미리 아시고는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 고 하셨다(요12:23). 또한 주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고,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 될 것” 을 말씀하셨다(요12:24-5). 여기의 ‘열매’ 는 죽음을 통하여 얻는 열매를 말한다. 예수님은 죽음으로서 많은 열매를 가져오는 밀알과 같은 분이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가장 풍성한 밀알의 죽음이었다” 고 했다.
참으로 목회자가 자기 생명을 온전히 바침으로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때, 그는 주님의 참된 제자요(요15:8), 바람직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여러 직분들을 말하면서 그 직분들을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행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이 목회에 온 정성을 다 기울여서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8. 목회자의 직무에 대하여 열거하라
목회자의 목회는 한 직무 이상의 일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헌신하는 생활이다. 채드워크(Chadwick)는 “우리 주님의 이 세상에서의 목회는 목회자의 직무를 이행하신 것으로 간주 된다” 고 믿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목회자의 목자로서의 사명에 있어서 모범이 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 라 하였고(시80:1), “하나님은 목자 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사40:11), 라고 하였으며,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고 말씀하셨다. 퀘일(Quayle)감독은 그의 책에서 “선한 목자 그리스도” 라는 한 장(章)을 썼다. 거기에서 그는 시편 23편을 “주는 나의 목자이시므로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번역일 것이라고 말했다. 목자는 자기의 모든 양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안전하게 돌보는 사람이다. 시편 23편은 목자와 양의 관계를 가장 잘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을 9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개개의 양에 대한 관심
“여화와는 나의 목자시니”(시23:1),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며”(요10:3), 그는 “저희를 알며”(요10:27),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밖으로 나간다”(눅15:4),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라고 했다. 목회자의 목회란 이처럼 신자 한사람 한사람을 바로 알고,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며 온전케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가 잃어버린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여 회복시킬 만큼 선한 목자요, 이해심이 깊은 목자요, 관심을 가진 목자이신 것이다.
2) 안식을 주심
“그가 나를...누이시며”(2절). 양들은 두려움, 긴장, 괴로움, 배고품에서 벗어난 분명한 자유감 혹은 만족감이 있어야만 비로소 편히 쉬고 눕게 된다. 목자는 양이 편안히 누워야 할 곳과, 그리고 어떻게 돌보아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계신다. 목자의 근면은 양들을 쉬게 하는 방편이 된다. 성경은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4:8)라고 하였다.
3) 매일의 필요를 공급함
“푸른 초장...쉴만한 물가”(2절). 목자는 날마다 수고하며 양들의, 먹을 음식과 마실 음료를 공급하여 준다.
4) 피곤하고 지치고 낙심될 때 회복과 격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3절). 목자는 양들이 자기 인생에서 패배를 맛보고, 소망이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고, 기력이 쇠진 한데서 비롯되는 견디기 어려운 괴로움에 빠져 있을 때 그를 회복시키고 격려 해 준다. 다윗은 외쳐 말하기를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며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11)라고 했다.
5) 안내와 인도
“그가 나를...인도하시는 도다”(2절). 목자는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서 그들을 인도한다(요10:3-4). 성경에 보면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신다고 했다(계7:17상).
6) 교훈과 바르게 함
“...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3절). 사도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고 했다(딤후3:16).
7) 목적과 동기 부여
“자기 이름을 위하여”(3절).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는 목적으로 양들로 하여금 그 목적에 이르도록 동기를 부여하신다.
8) 안전과 보호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절). 목자는 넘어지는 것과 안팎에서 오는 이리들의 공격으로부터 양들을 보호한다. 베드로사도는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 왔느니라”(벧전2:25)고 했다. 여기서 그는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 라고 하셨다(요10:14-15). 이처럼 목자는 양들을 이리 가운데서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것이다.
9) 개인적인 교제와 다정한 우정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6절).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고 하셨다(요10:14,15). 목자와 양과의 관계는 사랑스런 돌봄과 관심의 관계이다. 목자는 ‘목자장’(벧전5:4) 과 ‘큰 목자’(히13:20)로부터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 직무를 준행하는 자는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 이다(벧전5:4).
이상의 내용은 시편 23편을 중심으로 목자의 책임에 비추어본 목회자의 직무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목회자는 이 직무를 기본 정신으로 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목회자의 직무를 크게 설교자, 교사, 상담자, 행정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목회자는 이 일을 수행함으로 양 무리를 돌보아 온전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다.
1. 설교자
목회자의 직무 중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절대적인 주님의 명령이다. 마9:35에 보면 에수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고 했다. 곧 주님의 지상 사역의 핵심은 가르치심(Teaching), 설교(Preaching), 치유(Hoaling) 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 ‘설교’ 사역은 그의 공생애의 출발과 함께 시작되었다. 곧 주님은 공생애의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 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그의 제자들에게 분부하셨다. 사도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했다. 그리고 그는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상)고 전도 할 것을 권면 하였다. 하나님께 부름 받았다는 확신이 있는 목회자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임한다” 고 하는 투철한 사명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할 때 그가 전하는 복음은 생명력이 있어서 그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심령에 만족을 주고 본성을 새롭게 하며 영혼을 위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설교자로서 목회자는 사랑과 겸손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여야 한다. 여기서의 권위는 세상적인 권위가 아니라 자신이 먼저 섬김으로서 오는 권위이다. 이런 권위가 없이는 이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Robert K.Greenleaf는 현대인들이란 Servant-Leadership의 정신을 지니지 않은 지도자를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장 으뜸으로 섬기는 자가 될 때 모든 사람들은 그가 증거 하는 복음을 듣고 그의 지도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는 효과적으로 회중에게 전달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7가지 규칙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 효과적인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2) 청중들을 평가하여야 한다.
3) 올바른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4) 선입견의 장벽을 깨야 한다.
5) 청중들이 알고 있는 경험에 대하여 언급해야 한다.
6) 지도자의 주장을 충분히 입증해야 한다.
7) 욕망에 호소함으로 행동을 유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의사전달의 자질을 잘 활용하여 이 직무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 할 수 있다. 더우기 설교자는 메시지를 아주 극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할 때도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대화체를 써야 한다. 의사전달은 항상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가능하면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를 택하여 그들에게 맞게 바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목회자가 원만한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는 그가 발견한 진리에 대하여 미쳐 버려야 한다. 그래야 그것으로 먹고, 그것으로 자고, 그것 하나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자든지, 깨든지 입만 열면 그것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리듯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영원한 진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번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설교자는 유우머를 필요 적절하게 사용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설교자와 회중들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보다 효과적으로 그의 직무를 수행 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교사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증거 하는 복음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뿐 아니라, 그와 병행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육적 사명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모세에게 율법을 가르쳐 지키게 할 것을 명령 하셨다(신6:6-9).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육할 때 안식일만이 아니라 수시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쳤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행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자녀에게 가르치되 “집에 앉았을 때에 든지 누웠을 때에 든지 일어날 때에 든지” 부지런히 상론하라고 했다(신6:1-9). 또한 하나님의 종 에스라는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려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든 유다 백성들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새벽부터 오정까지 낭독했다(느8:1-6). 그리고 예수아, 바니, 세레뱌 등 여러 사람과 레위 사람들이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깨닫게 하매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고 다 울었다(느8:7-9). 또한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에스라의 곳에 모여 그와 함께 율법책을 보면서 초막절의 준수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거기에 기록된 대로 실행에 옮겨 초막절기를 바르게 지키게 되었는데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크게 즐거워하면서 7일 동안 에스라가 날마다 율법 책을 낭독하고 가르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나라가 새롭게 갱신 되었다(느9장). 그러므로 교사로서의 목회자는 스스로 겸비해져서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올바로 해석해주고 열심으로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신약에서 보면 마9:35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라고 했다. 예수님의 가르치시는 목회사역은 교사로서의 목회자의 모범이 되신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고 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목회자는 자기 자신이 먼저 주 하나님을 사랑으로 섬기며 겸손함으로 주께 배우며, 그의 계명을 힘써 지킬 뿐 아니라 교회의 신자들을 진리로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그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온 성도들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순종하여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던 것이다(행2:42-7). 신약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중심이다. 그래서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또한 가르쳐야할 사명이 있다. 교사로서 목회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칠 수 있다면 그는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 된다. 더우기 그는 가능한 한 쉽고도 간단하게 잘 가르쳐서 모든 신자들이 다 알아듣도록 힘써야 한다.
3. 상담자
목회자의 목양 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목회상담은 신자 개개인의 인생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는 것으로, 목회자의 사명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Narramore) 박사는 “상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거나 상담을 실행하지 않는 목사는 절름발이 목사” 라고 했다. 황의영 목사는 목회상담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내담자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
2) 생의 적응을 도모해 준다.
3) 단란한 가정생활의 기틀을 마련해 준다.
4) 시험의 요소를 제거해 준다.
5) 지도자로서의 신뢰와 존경을 받게 한다.
6) 아름다운 신앙의 공동체를 형성케 한다.
7) 목회자가 더욱 은혜 있는 설교를 하게 된다.
8) 승리하는 생활을 하게 한다.
9) 목회자로 하여금 바른 지도자로서의 자세를 가지게 한다.
10) 목회 성공의 비결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목회상담은 성령님을 떠나서는 상담 할 수 없으며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과 성화 시키는 사역의 조화 속에서 상담은 이루어 져야만 한다. 따라서 목회상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얻고 끊임없는 회개를 통하여 죄 사함을 얻으며 나아가 하나님 앞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온전히 살게 하는 성령의 사역인 것이며, 또한 그 본질은 죄로 말미암아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며, 나아가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셨고, 인생의 문제를 상담을 통하여 해결하여 주셨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실례로서 예수님은 밤중에 찾아온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의 영생의 문제를 대화를 통하여 해결해 주셨고(요3:1-5), 유대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삭개오를 만나 그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소망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으며(눅19:1-10), 수가성 여인에게는 대화를 통하여 그녀로 하여금 인생 본연의 자세를 되찾도록 도와주시기도 하였다. 이처럼 예수님은 인생들과의 인격과 인격의 만남 속에서 그들이 안고 있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고, 인간성을 회복하도록 하셨으며, 또한 그들이 높은 이상과 영적 갈망 및 참사랑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 중에서 상담사역을 구체적인 문제들 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문제들을 지혜롭게 다룸으로서 그들의 신앙을 바르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다.
그는 교인들과 일대 일 혹은 교회와 직접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혹은, 그들 스스로 문제를 알고 해결하도록 도와줌으로서 신앙의 성장을 가져다주었으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새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했다. 따라서 성경적 상담의 목적은 인간의 영혼 구원이며, 죄로 인한 영적 고통과 육체적 질병으로부터의 전인적 치료를 통해 평안함을 주는 것이며, 더우기 자기를 알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풍성한 삶이 그 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회 상담자로서의 올바른 자격을 구비하고 자기를 찾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런 문제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통하여 스스로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돌아가 예배와 봉사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상담은 심방, 치유, 봉사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자세히 다룰 수 있다.
a.심방
목회자가 사람을 찾아가는 경우는 첫째로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도 방문이며, 둘째로, 신자를 신앙으로 돌아보고 권위 하기 위한 심방이라고 할 수 있다.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는 “나는 신자들에게 들려준 나의 설교에서 보다 심방에서 성공의 외적인 표적을 더 많이 발견했다. 고 말했다.
목회자의 방문 사역의 목적은 1)영혼 구원을 위한 것(마28:19-20;막16:15;눅24:47; 요17:18) 이며, 2)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한 것(엡4:10-13;롬10:17; 딤후3:14-17) 이며, 3)복음의 생활화를 위한 것(행15:26;엡4:10-13) 이다.
성경에서 최초의 방문은 하나님께서 죄 범한 아담과 하와를 찾아 방문하신 것이다(창3:8-9). 그리고 창세기의 심장부라고 불리워 지는 12장 첫 머리와 15장 첫 머리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방문하신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방문사역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문을 찾아 볼 수 있다.
1)전도 방문이다. 마4:23-4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너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지니라” 고 했다. 예수님은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의 가정을 방문하여 구원받게 하셨던 것이다.
2)축하 방문이다. 예수님은 공생에 초기에 가나의 혼인집을 찾아가셔서 포도주 문제도 해결해 주셨다(요2:1-11).
3)환자 방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병자들을 방문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의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셔서 그의 장모가 앓아누운 것을 보시고 건강을 회복하게 하셨다(마8:14-5).
4)상가 방문이다. 에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의 집을 찾아가셔서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며 부활의 소망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요11:17-44).
또한 베드로, 아나니아, 바울과 바나바의 방문도 찾아볼 수 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피장 시몬의 집 옥상에서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중에, 역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욥바로 보낸 이달리아 대의 백부장 고넬료의 하인들을 따라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고 말씀을 가르쳐 고낼료의 가족과 거기에 모인 친척과 일가를 모두 구원했다. 베드로의 이 방문으로 역사적으로 묶이었던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다(행10:1-48).
그리고 주님께서는 다메섹에 있는 제자 아나니아를 환상 중에 불러 주님에 의해 앞을 못 보게 된 사울이 기도하고 있는 직가의 거리 유다의 집으로 보내어 그로 하여금 사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다(행9:10-18). 뿐만 아니라 목회자의 방문 사역에 있어서의 심방은 목회자가 영혼 구원의 목적을 가지고 교인들의 가정이나 불신자의 가정 혹은 기관을 방문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위로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고 전도하는 일이므로, 목회자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목자가 양떼를 찾아가듯이 목회자가 성도들을 찾아 그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쳐주는 목회 방법이다. 목회자는 심방사역을 통하여, 1)환자를 위문하고 격려 할 수 있으며, 2)새 신자를 돌아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며, 결석한 성도를 찾아 권면 할 수 있고, 3)믿음이 약한 자나 교회출석이 불가능한 신자를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행20:28-9), 4)슬픈 자를 위로하며(요11:17-43) 기쁜 자를 축하 할 수 있고(요2:1-11), 5)불신 가족들을 전도 할 수 있고, 6)교인들의 가정 사정을 알 수 있고 그들과 상담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런 방문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와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 양육하는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b. 전인적 치유
교회는 전인적 치유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마9:35에서 예수님의 3대 사역 중에 하나인 치유사역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복음전파를 명령하시고 아울러 믿는 자들에게 여러 가지 표적이 따를 것을 말씀 하셨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나가 두루 복음을 전파 할 때에 주님이 함께 역사 하셔서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게 하셨다(막16:20). 따라서 목회자의 전인적 치유목회는 복음전파의 사역과 함께 진행되어야 할 목회자의 중요한 직무이다.
전인적 치유목회에 대하여 힐트너(S. Hiltener)는 “치유는 온전하게 만드는 일, 다시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방향이나 계획에서 손상(病)을 입었던 기능적인 불완전성을 다시 회복하여 회복 이전에 단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 한다. 그리고 그는 목회학적인 의미에서 치유란 단지 육체적 질병에서 치유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치유라고 할 수 없으며, 어떤 수단에 의하여 그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든지 간에 목회자는 전인적 회복, 즉 구원에의 관심 하에서 목회사역을 행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너희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하셨다(막16:15-8).
그러면 목회자의 치유사역에 대하여 성경을 중심으로 살피고자 한다.
먼저 구약성서의 최초의 치유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찾아 주시고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사실(창3:21) 에서 발견하게 된다. 최초의 치유 자로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기도를 들으셔서 질병을 치유하신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셔서 생산케 하셨고(창20:17), 모세를 원망하던 미리암이 문둥병이 발병하여 7일간 격리된 후 모세의 기도로 치유되었다(민12:9-16).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원망으로 인하여 염병이 시작될 때에 아론이 기도함으로 염병이 그쳤고(민16:41-50),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게 물려 죽은 자가 많게되자 모세가 기도하매 하나님께서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게 했고, 그것을 보는 자는 다 치유되게 하셨다(민21:6-9).
엘리야는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살아났다(왕상17:17-24). 히스기야 왕은 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기도함으로서 하나님께 병도 고침 받고 생명을 연장 했다(왕하21:1-11).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은 그분의 절대 주권이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서의 치유는 죄범 한 자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치유의 역사가 육체나 정신이나 영혼, 그리고 환경과 사회 생활에 전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음으로 신약 성경에 나타난 목회자의 치유사역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예수님은 인간을 가장귀한 존재로 보았기에 사회적 편견을 버리고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 갈 수 있었다(요3:5-42). 또한 예수님은 인간을 ‘전인’ 으로 보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치유 사역에서도 육체와 영혼의 전인적인 치유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중풍병자(마9:2; 막2:3; 눅5:13)를 치유하실 때 잘 나타난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말씀하심으로 병의 근원이 죄에 기원하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이 육신의 병의 근원인 죄를 해결해 주심으로 그 병과 영혼과 육신의 문제를 구분하시지 않고 전인적인 문제로 해결해 주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말씀’(요11:43;눅17:14;막5:8;요4:50)과, ‘손’(마3:15,8:3,9:29;막6:5;눅13:11) 에 의한 신체적 접촉이었다. 이 방법은 때로는 함께 쓰여지기도 했다. 말씀의 선포는 때로는 명령형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명령은 환자 자신이나 악령들에게 선언되기도 했는데, 복음서에 나타난 치유사역의 절반 정도가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어떤 때는 ‘타액, 흙’(막8:23;요9:6-7) 또는 ‘기도’(요11:14-4;마9:29,15:25-8)가 치유의 매체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환자 자신의 믿음이나 제 삼자의 믿음이 치유의 잠제력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치유하셨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의 특징은 첫째로 그가 메시야, 즉 구세주라는 자기 인식에 근거한 복음 선포의 한 부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그리스도의 치유의 기적들은 악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나타낸다.
세째로,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천국의 새 시대의 도래의 증거이기도 하며, 천국 복음이 가는 곳에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천국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것이다(마10:7-8;막3:14;행2:33,4:30).
예수님은 그에게 오는 병자를 치료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게도 같은 일을 하도록 위임 하셨다(참고눅9:1-2,6). 베드로는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리기도 했고(행9:40-1), 바울도 앉은뱅이(행14:9-10)를 고치고 앞치마를 가져다 덮기만 해도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행19:11-2). 그 외에도 수많은 치유의 사건을 일으켰다. 목회자는 초대교회가 특별한 치유의 공동체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도 전인적인 치유를 통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하는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클라인벨과 같은 이는 교회는 ‘치료의 센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인의 상처가 무엇인지 바로 진단하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바로 처방하여 치료해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치유사역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고, 사도들의 뒤를 이어 계속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전인적인 치유 공동체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c. 친교 및 봉사하는 자로서의 목회자
그리스도의 지체된 모든 성도들은 모두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러한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한피 받아 한몸 이룬 형제요 자매인 천국의 백성으로서 나누는 사랑의 키스요, 감격의 악수 인 것이다. 초대 교회에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행2:42상)하였는데, 그 교제는 “모든 교인끼리의 서로의 교제 뿐 아니라 사도와의 교제” 를 말 해 준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의 신자들을 진리로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과 “교제: κοινωνια” 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두텁게 하면서 피차가 하나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 이듯이 성도의 친교 속에는 ‘의와 평강과 희락’ 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는 화평의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사신‘ 으로서 모든 신자들에게 “하나님과 화목” 하고 신자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화목 하는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가 되게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더우기 섬기는 자로 오셔서 일생을 헌신적 봉사의 모습으로 사역하신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기 까지 하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요13:14) 예수님을 본 받아 서로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참된 봉사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나 그 희생은 하늘의 영광스런 상급이 예비 되어 있기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리스도를 본 받아 십자가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으로 목회자는 묵묵히 맡은바 봉사의 소임을 다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목회자는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는 태도를 가지고 이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상담자는 교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치료해 주며, 위로, 권면 등을 통한 상담사역에 헌신적으로 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4. 행정가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현대 교회의 발전을 위한 균형 있는 목회행정 관리가 요청된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듯이 그 교회에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지켜 보호 해야 할 행정가로서의 사명이 있는 것이다. 다변화되어 가는 현대의 목회에 있어서는 더더욱 균형 있는 목회를 강요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교회의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올바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목회 행정에 대한 연구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교회 관리자로서의 목회자의 직무에 대하여 고찰하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에게 무엇을(What) 목회하라고는 일러 주셨지만 어떻게(How) 하라고는 그의 선택에 맡겨 주셨다. 이를테면 출애굽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라고 명령을 내리셨지만 ‘어떻게’ 의 방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지도할 때에 처음에는 혼자서 그들을 재판했다. 그러다 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는 그들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백성들은 그의 곁에 서서 있어야 했다. 이것을 본 장인 이드로는 모세가 하는 일이 현명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고 하나님이 인가하시면 온 백성 가운데서 지도자를 세워 일을 분담하도록 조언해 주었다(출18:13-27).
그래서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옳게 여겨 무리 중에서 백성의 두목 곧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그들로 백성을 재판하게 하되 어렵고 큰 일만 모세에게 가져와 해결토록 했다. 또한 모세가 백성들을 지도하는 일이 너무 중하여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70인의 장로들을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령을 삼아 모든 일을 분담하게 하셨다(신1장).
여기서 중요한 행정의 원리를 몇 가지 발견하게 되는데, 첫째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일로서, 본문 중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참되게 살며, 욕심이 없고, 유능한 자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번째로서는 계층의 원리로, 즉 통제의 범위를 말하는데, 천명, 백명, 오십명, 열명 씩 나누어 다스리게 함을 말한다.
세번째로는 행정의 분권 제도로서 중요한 것만 모세가 해결하며 나머지는 능력에 따라 천명, 오십 명, 열명을 다스리는 자들로 해결하라고 하는 행정 분권의 원리를 볼 수 있다. 구약시대의 이 행정의 원리는 현대의 행정원리 면에서 비추어 볼 때 고칠 것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원리이며, 이것이 성서에 근거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목회자는 교회행정 관리자로서의 목회자의 직무를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교회와, 교인의 영적 성장과 갱신이다. 현대의 세계 교회에 크게 영향을 준 4가지는 1)교회의 갱신운동, 2)교회 성장운동, 3)개인전도 운동, 4)성령의 은사 운동이다. 이런 동향을 볼 때 교회의 갱신과 성장은 목회자의 중요한 책임임을 알 수 있다. 교회성장은 교인의 성장과 같이 생각 할 수 있다.
목회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할 때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성장하게 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목회자의 행정 관리적 책임은 세계와 공동체 속에 있는 인간들의 영적, 육적,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역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양으로 하여금 풍성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목회자는 균형 잡힌 목회관리가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한다. 칼빈은 목회자의 직능을 예언자적 직능, 제사장적 직능, 왕적 직능이 있다고 했는데 목회자는 이 세 가지가 균형을 이루는 목회를 하여야 한다. 첫째로 예언자의 직능이다. 교회 안에서의 성례를 행하고 용서와 치료의 목회를 하며 곧 교인들의 문제를 상담하는 목회이다. 예언자의 직능과 더불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세째로 왕의 직능을 도외시했던 것을 보충한 것이 하나님 중심관리, 교인에게 지향된 관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정가로서의 목회자는 능력있는 조력자를 뽑아 임무와 권한을 부탁하여 주의 양 무리를 다스려야하며 하나님 중심의 균형 잡힌 목회행정이 이루어지도록 힘써야 한다.
9. 목회자의 직무 수행 방법을 진술하라
1.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 목회자의 직무수행 방법의 첫 번째는 ‘하나님과의 교제’ 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수행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신다. 사도바울은 그가 도왔던 교회의 하나인 빌립보 성도들에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고 말한다. 하나님 자신이 힘의 원천이 되시지만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힘의 원천을 우리의 목회사역에 끌어 쓸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우리 자신과 하나님과의 ‘교제’ 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의 목회자는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위해 힘쓰되, 가까스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를 깊이 내린 신앙 생활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바로 이런 목회자는 하나님과 생명력 있는 교제를 통하여 놀라운 힘을 공급받아 그 직무를 능히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의 교제의 삶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사는 자를 발견하게 되면 그에게 풍성한 능력과 지혜를 퍼부어 주시며 그의 삶을 친히 인도할 뿐 아니라 그를 통하여 역사를 일으키시고 세계를 변화시키게 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 목회자에게 말씀하시고 그는 ‘지고’ 를 통해 하나님께 말씀드리게 된다.
더우기 이 기도는 신학 교육의 중심이 되고, 또한 목회의 중심이 된다. 참으로 목회자가 기도하지 않으면 그에게 맡겨진 교회가 점점 빈약해지고 기도하면 성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꾀하고, 영적 능력을 소유함으로서 그 사명을 수행 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강하고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 실천 해야할 두 번째의 방법은 ‘강하고 담대함’ 이다. 곧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지도자는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후계자로서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 받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말씀하신다(신31:6,23; 수1:6-9). 여기 이른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는 말은 ‘강하라: 로 번역되어야 한다. 히브리 원문엔 마음이란 말은 없다.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할 목적은 곧 가나안땅을 얻기 위함이요, 또한 율법을 지키기 위함이다(수1:7-8). 특별히 아직도 믿음이 약하고 단결력이 부족 하기만한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 가야할 막중한 사명이 있기에 그는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그처럼 ‘강하라’ 고 강조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담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약속 때문인 것이다(수1:5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함께 하여 주심으로 모든 싸움에서 승리 할 것을 그들에게 말하였다(수10:25).
그런데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의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 할 때에 때론 환란과 핍박, 수치와 멸시를 당하며, 또한 생명의 위험을 당할 때도 있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예로 예례미야를 들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렘20:7하-8하)는 말씀을 받았으나 그가 맡겨진 사명을 수행 할 때에 그를 반대하는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에게 매를 맞아야 했고 착고에 채워짐을 당해야 했으며(렘20:1-2), 치욕과 모욕거리가 되고 사람들에게 종일토록 조롱을 당하기도 하였다(렘20:7-8).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그와 같은 고통을 받았기에 다시는 그가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더욱 큰 은혜와 능력으로 사로잡으심으로 그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렘20:9). 예례미야는 그가 바룩을 통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여호야김 왕이 불태우는 것을 목격하였고(렘36:23), 시드기야 왕 때에는 그의 방백들에게 매를 맞고 토굴옥 음실에서 여러 날을 보내야 했으며(렘37:15-6), 또한 물도 없고 진흙뿐인 구덩이에 빠뜨림을 당하는 그야말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혹심한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여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을 때 빛을 잃은 많은 백성들이 소망을 얻고 멸망하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또한 신약에서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베드로를 위시한 사도들은 공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말라고 위협하는 대제사장과 그 무리들에게 “사람 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5:29)고 담대하게 말하였다. 또한 베드로와 사도들은 그들에게 채찍을 맞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자로 여기고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 하였다(행5:41-2).
그리고 바울이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는 내용가운데 보면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행20:23) 고 하시지만 바울 자신은 이런 결박과 환난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담대하게 그 복음전파의 사명을 수행 할 것을 말하였다(행20:24).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의 목회자는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세상을 이기신 주님과의 교제를 힘쓰며 항상 동행함으로 그 힘을 지속하고 더욱 강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될때 믿음이 약하고 유혹과 시험에 빠지기 쉬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강하고 담대함은 오직 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두려워할 때에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교회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희생 및 봉사 정신으로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그 당시의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마9:36). 또한 주님은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헤매다 찾으면 기뻐서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목자와 같이 잃어버린 영혼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가지셨다. 사도바울은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그 자신을 내어주신 사랑이라고 말한다(엡5:25).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한 바울은 교회를 위하여 해산하는 고통을 감수 할 뿐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훈계로 교인들을 기르고 가르쳤음을 그가 에베소교회 장로들과 헤어지는 설교를 하는 중에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행20:31)고 한 것을 볼 때, 그가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며 얼마나 교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가를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 목회자는 이처럼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만일 그가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이 목회 한다면 그의 목회는 기계적이며 무력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종-지도자의 본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그의 삶 속에 성령의 지배로 인해 주어지는 사랑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며(참고,신6:5;갈5:22-3),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줌으로 이웃을 사랑해야한다. 더우기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겸손(마11:230,18:3-4)을 본받아 그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보증 수표와도 같은 것이다. 겸손한 목회자는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복종시키며 도움을 주려하고 정중하다(참고, 빌2:3-4). 겸손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성취하는 방법이 된다. 하나님은 겸손한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의 뜻을 이루신다(벧전5:5-6).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지도자로서의 삶을 사셨지만 잘못된 세상의 섬김에 대한 방식을 따르지 아니하고 거꾸로 바꾸어 놓으셨다(마20:25-8). 그리하여 그는 목회자에게 종-지도자로서의 본을 보여주셨다. 육적인 리더쉽과 영적인 리더쉽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히 구분되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고 하셨다(막10:45).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섬김의 봉사와 희생의 생애 이셨다.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서로 이렇게 섬겨야함을 가르치셨다(요13:14).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자신이 한 알의 밀처럼 희생되실 것을 말씀하셨다(요12:23-25).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는 희생과 봉사정신을 가지고 그 직무를 준행하여야 함을 주님의 생애와 교훈에서 발견케 된다.
죤 헨리 조웨트(John Henry Jowett)는 “아무 희생도 이루지 않는 목회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고 했다. 목회자는 자기 자신을 희생함으로서 우리의 불쌍한 영혼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다면 또한 모든 신자들이 주님의 말씀으로 풍성해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면 그 얼마나 복된 일일까? 를 생각하면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막10:45)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희생, 사랑을 본받아 날마다 기쁨으로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께서 맡겨주신 목회적 사명을 온전히 준행 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성경적인 바람직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다.
4. 자기를 부정하고 제 십자가를 지면서
목회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제 십자가를 져야한다. 자기부정의 삶을 사신 예수님께서는 따르려는 무리들을 향하여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마16:24).
주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눅14:26-7). 실제로 예수님을 따른 자들은 자기를 부정한 후에야 따를 수 있었다(막10:28;눅5:28).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앞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자신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부정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고 했다(빌3:8-9). 그가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이유는, 그런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생활에 붙잡아두고 그리스도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가 유익하던 것을 해로 여기게 되고 방해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빌3:7,8).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의 욕망 마져 버렸다(고전9:27).그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고전9:27)고 하였다.
다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절대적인 것이나 제자들의 십자가는 각양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개개인에게 부여해주신 사명의 십자가가 있다. 바로 그 십자가를 스스로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때론 이 십자가를 지는 일에 박해와 고난이 있을지라도 기도와 찬송으로 이겨내야 함을 사도바울의 복음전파를 위한 일사각오 정신에서 배울 수 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그 사명을 불순종하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겸허한 태도를 지니고 그 직무를 수행하였다(고전9:16). 그는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4)고 하여 일사각오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리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노라”(행21:13)고 했다. 그는 언제나 복음전파를 위하여 생명까지 바칠 각오를 가지고 사역에 임하였다. 과연 그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항상 순교적 정신으로 생활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복음전파로 인하여 핍박과 고난이 연속되는 생활 속에서도 오히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사명에 헌신하였다(참고,행16:16-25; 빌4:4). 과연 바울은 주님께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5:11,12상)고 말씀하신 그대로의 삶을 산 자였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명에 죽도록 충성했던 사도 바울을 본받아, 순교자적 정신을 가지고 사역에 임할 때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을 완수하게 되는 것이다.
10. 목회자의 내적 리더쉽 개발에 대하여 논술하라
1. 비젼(Vision)
리더쉽의 내적 개발에 있어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지도자가 노력해서 성취해야할 비젼이다. 그것은 “한국교회는 큰 그림을 볼 줄아는 리더가 필요하다” 는 것이다. 곧 리더는 비젼의 사람, 큰 꿈을 꾸는 사람이어야 한다. 잠언 29장 18절에는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고 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는 “비젼이 없으면 백성들이 방종 한다” 는 뜻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신이 명확한 비젼의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로 하여금 항상 비젼을 소유한 자들이 되게 해야 한다. 지도자는 또한 비젼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며 전심전력하는 실천이 있어야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종으로서 지도자에게 비젼이 주어졌다. 모든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인 하나님의 종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그의 믿음은 그 백성들에게 비젼을 주었다. 엘리사는 그의 사환이 볼 수 없었던 자기들을 에워싸고 있는 적들로부터 보호해주는 무적의 천사들의 무리를 보았으며, 그의 믿음은 사환에게 비젼을 주어 그도 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군대를 생생하게 보았다. 요셉은 17세에 꿈을 두 번이나 보았다. 그의 생애(生涯)가운데서 불평하는 것은 한마디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요셉의 꿈은 너무도 선명하고 확실했기 때문에 어떻게 흔들 수가 없었다. 그에게 닦쳐온 시련은 오히려 그의 리더쉽을 개발하고 그의 꿈을 성취하는 유익이 될 뿐이었다.
느혜미야는 예루살렘 주의에 성벽을 재건하려는 꿈을 가졌다.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1,500km 떨어진 곳에 포로로 잡혀있는 몸으로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 관원이었다(느1:11). 예루살렘의 거룩한 도시는 함락되었으며, 도시 대부분이 파괴 되었었다. 그러나 느혜미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루살렘 벽을 튼튼히 다시 쌓을 비젼을 가졌다. 그리고 그의 사명은 그 비젼을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그다음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한 목표를 정성스럽게 세웠다. 그의 첫 번째 단계는 기도였다(느1:). 그 다음 그는 그의 목적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아뢰었다(느2:5). 그리고나서 그는 성벽 재건 계획을 시작하고 반대를 극복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는 뛰어난 신앙의 소유자로서 믿음과 담력(느2:17-20;4:1-23), 결단력, 치밀함, 추진력, 친화력(느5:14-9) 등 지도자로서 필요한 모든 자질을 고루 갖추고 있었으며, 이로서 성벽재건의 위업을 단시일에 마칠 수 있었다. 느혜미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력의 본보기를 보여준 한사람이다.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비젼에 응답한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 대한 비젼을 주었고, 그는 준행 하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도시에 대한 비젼을 주셨고, 그는 그것을 찾았다. 하나님께서는 느혜미야에게 성벽재건에 대한 비젼을 주셨고, 그는 그것을 세웠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세계 복음화에 대한 비젼을 주셨고,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지상에 퍼지게 하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계속하여 지도자들에게 비젼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이러한 비젼을 받은 바람직한 지도자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두려운 책임임을 자각하고 그의 비젼을 소중히 여기게 되며, 하나님과 고독한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 명확하게 듣고, 그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결국 성취하고야 마는 것이다.
2. 목표설정과 창의력
리더쉽의 내적 개발에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목표설정과 창의력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의 초점을 끊임없이 응시하면서,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효과적인 목표설정을 하여야하며, 계속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만족스러운 계획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사고력이 개발되어야 한다. 목회자의 목표가 명확하면 명확할수록 그 비젼을 성취하기 위한 초점도 점점 뚜렷해진다. 목회자는 그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훌륭한 목표설정을 하여야하는데, 이것은 S-M-A-B-T 라고 부르는 것이다. 곧 구체적이고(Specific), 측정할 수 있고(Measurable), 도달 가능하고(Attaimable), 사실적이고(Bealistic), 확실한 것(Tangible)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나가게 되는데, 오늘날의 사람과 장소, 그리고 사물의 변화의 가속화는 목회설정에 대한 끊임없는 검토와 변화를 요구하게된다. 그래서 목회자는 그 목표를 이룰 수있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창의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만족스럽고 효과적인 목표와 계획을 새롭게 수립하여야 하며, 그럴 때에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성취하게된다. 목회자의 창의력이 자랄수 있는 최선의 길은 주님과 깊이 교재하는 삶을 통해서 순간 순간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는 것이다.
3. 헌신(열정)
리더쉽의 내적 개발에 있어서 세번째로 중요한 것은 헌신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지도자는 집착력, 또는 헌신의 사람이어야 한다. 이 집착력은 꿈이 없이는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신 그 비젼을 보면서 목표를 향해서 그 사람은 집착력과 헌신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가 내 마음과 내 뜻과 정성을 다하여 내 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지도자는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이 주신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의 정신과 몸과 마음을 바치는 헌신이 필요하며, 또 사람에 대해서도 헌신이 있어야한다. 골로새서 3:23에 “무엇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 고 했듯이 모든 지도자들은 주님께서 주신 사명, 특히 자기와 만나는 사람, 알게된 사람에 대해서는 지도자가 주님께 헌신하듯 철저한 헌신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의 연합은 영어로 Cleave인데, 이것은 종이 두 장을 풀 발라서 붙인다는 뜻이다. 일단 붙어놓으면 안 떨어지듯이 지도자는 인간을 사랑하고 헌신할 때에 바로 이러한 끈질긴 집착력이 있어야한다.
무조건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잘 개발된 지도자의 지도력의 자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런 헌신과 자기의 꿈에 대한 헌신과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철저한 헌신을 개발하면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가 되어 주신 사명을 잘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의 리더쉽의 내적개발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열정이다. 이것은 목회자가 하나님과 사람에게 헌신의 삶이 끊임없이 지속되어 지는데 꼭 필요한 것이다. 이 열정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열정이다. 목회자는 언제나 긍정적인 면을 본다. 왜냐하면 믿음은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되는 것이기에 항상 되는 쪽, 밝은 면만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비젼이 너무 중요하고 자기 자신을 통하여 한사람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자신을 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열정이 용솟음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목회자는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이런 사람과는 누구나 함께 있고 싶어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쓰신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긍정적인 열정의 리더쉽을 잘 개발하여야 하는 것이다.
11. 목회자의 외적 리더쉽 개발에 대하여 논술하라
1. 훈련(Discipline)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회자의 리더쉽이 외적으로 개발 되어야할 첫번째로 중요한 것은 훈련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이는 다른 은사들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고 그것들의 가장 높은 가능성들을 결코 실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훈련받은 사람만이 가장 높은 능력에 도달할 것이다. 리더는 자기 자신을 정복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제자(Diseiple)와 훈련(Discipline)은 같은 어원에서 연유된 것이다. 리더란 외부로부터 더욱더 엄격한 훈련을 자기 자신에게 부과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도자를 꿈꾸는 젊은 인물들은 다른 사람들이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일을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잘 동안 공부하며, 그들이 노는 동안 기도해야 할 것이다.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이나 의상에 있어서 흐트러지지 않으며 단정치 못한 습관들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그는 식사와 품행에 있어서 군인다운 훈련을 준수하게 쌓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선한 싸움에서 승리로운 댓가를 기대하게 된 것이다. 그는 아무런 칭찬도 불러일으킬 수 없거나 아무 인정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즐겁지 않은 어떤 일이나, 다른 사람들이 회피하는 숨겨진 일을 기꺼이 떠맡아야 할 것이다.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지도자는 어려운 상황이나 곤란한 사람들을 직면하여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필요한때는 자진하여 그 어려움과 싸울 것이다. 그는 친절하면 서도 필요할 때는 용감하게 책망할 것이며, 주님의 사역에 유익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기꺼이 필요한 징계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지도자는 그 자신이 그렇게 강하게 훈련받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깨달으며, 지도자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훈련에 협력하여 기꺼이 응하게 된다. 더우기 하나님 종으로서의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회생하기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는 친절, 봉사, 사랑 등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훈련에 자신을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2. 밝은 자아상
리더쉽이 외적으로 개발되어야할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밝은 자아상이다. 리더쉽의 외적 개발에는 밝은 자아상이 있는데 이것은 의사소통의 개발과 함께 꼭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리더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밝은 이미지를 잘 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이미지라는 것은 자기 있는 모습대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리더는 자기에 대해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감사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가져야한다.
성경에는 “누구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라고 했다(엡5:29). 곧 이 말은 아무도 자기를 미워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잘 먹이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내가 이제는 내 것이 아니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피로 산, 매우 중요한 자신임을 깊이 자각하는 자가 바로 강한 리더쉽을 소유한 자인 것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받들기 때문에 그런 대접을 받는 사람들마다 감동되어 좋은 지도자가 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이러한 리더쉽을 잘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3.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
리더쉽이 외적으로 개발되어야할 요소 중에 네 번 째는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이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그 목표를 향해서 사람을 움직일 수있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이것이 리더쉽이다.
교회는 세상의 권위나 지도력만 가지고 움직일 수 없다. 오직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일 때, 그때 움직이는 것이다.
목회자가 그들을 움직일 수 있으려면 첫째,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비젼을 보았고, 아이디어가 있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사람들과 만나서 비젼을 펼칠 때에 그 설득을 통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둘째, 감동이다. 그 마음에 감동을 일으켜 움직이는 것이다. 세째, 동원하는 것이다. 네째, 자진성의 창조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자원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이렇게 할 때에 무서운 힘이 나오는 것이다.
모세가 장막을 건축할 때에도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그들이 장막에 필요한 헌물을 가져왔는데 너무 많이 가져와서 나중에는 그만 가져오라고 까지 했던 것이다(출36:3-7). 가슴속에서부터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복음운동이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에 자기의 시간도, 돈도, 자기의 재능도 그저 바치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부터 우러나도록 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움직여지는 것이다.
느혜미야서에도 보면 사람들에게 일하고자 원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한 마음을 일으켜주는 것이 지도자인 것이다. 그 비젼을 보여주고 설득과 감동을 통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여기에 성령님께서 감동하심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며, 목회자는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의 리더쉽을 더욱 개발시킴으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게 되는 것이다.
4.조직과 권한 위임
리더쉽이 개발되어야할 외적 요소 가운데 네 번째는 효율적인 조직과 권한 위임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뜻)대로 행하여야 하는 자로서 그 일을 행할 때에 우선 순위를 바로 정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항상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또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온전히 이루고자 원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최고일 때 그는 우선 순위를 바로 인식한 자이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고 그 일을 수행할 때에 그는 혼자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할 리더를 발굴하여 그를 잘 훈련시켜서 그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야한다. 특히 지도자는 사람을 정확히 볼 줄 아는 눈을 개발함으로서 꼭 필요한 리더들을 선출하고 그들에게 리더싑을 연습할 수 있도록 방향을 보여주며 또한 동기를 부여하고 자원하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어야한다. 더욱이 지도자는 그들을 훈련시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의 적재적소에 그들을 배치시켜서 일하게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종-지도자로서의 목회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힘입어 어떻게 하면 정한 시간 내에
가장 큰 효과를 낼 것인가를 생각하며 훈련된 지도자들을 중심한 효율적인 조직을 통하여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믿고 위임할 줄 알아야한다. 또한 그가 위임한 리더가 자기의 자발성과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일할 수 있도록 그를 이끌어주고 격려해주어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자질과 훈련된 리더쉽을 가지고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더욱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지도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서 모든 분야에 하나님이 주신 그분의 영적 은사에 따라 맡겨서 그 사람이 자기은사를 사용하여 일할 때 합력해서 유익이 되어 그 비젼은 성취되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지도자는 이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는 것을 명심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권한을 위임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하나님의 종이요 지도자인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더욱 온전히 수행할 수가 있는 것이며, 더 많은 열매를 맺으므로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아멘.
목회자학 과제 마침
(총회신학교 2008학년도 통신학부 최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