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
김 영 선
72.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人性論)에 대해서 비교․설명하시오.
맹자-성선설 :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
인간의 본래 모습은 어떻게 해서 선한가. 맹자는 여기에 대해서 ‘사단설’(四端說)로써 이론 정립을 시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면 인간에게는 네 가지 종류의 공통된 마음이 있다고 한다. 바로 사람에 대해서 측은해하는 마음(惻隱之心), 불의나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의 네 가지이다. 이러한 네 가지 마음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네 가지 마음은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 되겠다. 그런데 맹자는 현실적인 이 네 가지 마음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무언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이 네 가지 마음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네 가지 마음이 나오는 근원을 맹자는 인(仁)․의(義)․예(禮)․지(智)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인의 예지는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본성이고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하는 주장을 하게 된다. 여기서 인의예지의 본성과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네 가지 마음과의 관계를 端(실마리, 萌芽)으로써 나타내고 있다. 즉 측은해 하는 마음은 仁의 端이고, 수오의 마음은 義의 端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端이고, 시비의 마음은 智의 端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端이란 어떠한 일이 밖으로 나타나는 첫머리라는 뜻이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 정도뿐인데, 인간 내면에 있는 본래 모습의 선악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바로 端이라는 관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맹자에 있어서는, 본성은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인간의 본래 모습이고, 마음이란 이러한 본성이 밖으로 표현된 것이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규정하고 이러한 마음이 무엇의 端이냐를 찾게 되고, 그 결과 인의예지라는 본성을 찾게 되고 또한 성선설을 성립시키게 됐는데, 맹자의 이러한 사상이 사단설이다.
맹자는 이러한 사단설로써 성선설을 성립시키게 됐는데, 그렇다면 인간은 항상 선을 행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서 악이 있을 수 있는가. 그 원인은 인간의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타고난 본성을 항상 지켜 밖으로 나타나게 하지 못함에 있다고 하고 있다. 즉 인간은 비록 본성에 있어서는 선하지만, 현실적으로 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금방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적 수양 공부는 인간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하겠다.
순자-성악설 :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순자는 인간에 대해서 성악설(性惡說)의 입장을 내세우고, 예와 같은 도리의 지식을 매개로 하여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고 마음을 선으로 향하게 하고자 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한 것이고, 저 선이라고 하는 것은 위(僞) 즉 후천적인 작위(作爲)의 결과이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인간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거기에 따라가기 때문에 타인과 서로 다투고 뺏고 하게 되고, 양보하는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또 선천적으로 질투하거나 미워하는 경향이 있고 거기에 따라가기 때문에 타인을 해롭게 하게 되고, 성심(誠心)의 덕이 없어지는 것이다. 또 선천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듣고 싶어하는 이목의 감각적인 욕망이 있고, 거기에 따라가기 때문에 무절제하게 되고 예의나 조리가 없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의 선천적인 성질이나 감정에 맡기게 되면 반드시 다투어 서로 빼앗게 되어 사회적 조리가 깨어지게 되고 마침내는 세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반드시 교사에 의한 규범의 감화나 예의에 의한 지도가 있고 나서 비로소 타인과 서로 양보하게 되어 사회적 조리도 지켜지게 되고, 마침내는 세계가 평화롭게 다스려진다. 이상의 사실로부터 관찰한다면,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하는 것은 명료하다. 그 선이라고 하는 것은 후천적인 작위(作爲)의 결과이다.”(「性惡篇」) 그런데 순자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하게 태어난 것이고, 天의 규범성은 부정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을 정의하여 “대개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자연한 선천적인 것이고, 후천적인 학습이나 노력에 의해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性惡篇」)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는 것은 최초의 출발점이고, 소박한 소질(素質)이다.”(「禮論篇」)라고 하여, 고자(告子)의 소위 성에 선악없다라고 하는 설과 같은 생각을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는 그의 성악론에 파탄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겠다. 대체로 그는 선악을 정의하여, “선이라고 하는 것은 정리평치(正理平治) 즉 도리에 딱 맞는 평화적인 것을 말하고, 악이라고 하는 것은 편험패란(偏險悖亂) 즉 치우쳐 도리에 어긋난 난폭을 말한다.”(「性惡篇」)라고 하고 있는데, 앞의 논증에서의 사실을 보면 본성 그 자체가 편험패란(偏險悖亂)하다라고는 인정하기 어렵다. 본성 중에 있는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나 감각적인 욕망 등에 따르는 결과로서 악의 상태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따르는가 어떤가는 그에 의하면 ‘체내의 가장 중심에 있어서 오관을 제어하고 있는 천군(天君) 즉 자연스런 지배자’(「天論篇」)라고 이야기되는 心의 작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성인은 그 천군으로서의 心을 청명하게 하여 오관의 작용을 정상적으로 조절하여…… 자연스러운 본래의 감정을 도야한다.”(「天論篇」)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心의 능력 그 자체는 도리어 성선의 증거라고 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73. 공․맹(孔․孟)유학의 윤리관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1) 공자의 윤리 사상 ① 공자 사상의 출현 배경 : 춘추 전국 시대의 사회적 혼란을 도덕성 회복 통해 극복하고자 함. ② 인(仁)의 사상 : 의미 - 인간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사랑의 정신(唯仁者能好人能惡人) - 사회적 존재로 완성된 인격체의 아름다움 : 실천을 위한 기본 덕목 - 孝와 悌 : 인의 실천 - 애인(愛人), 서(恕 = 如(같을 여)+心), 주충신(主忠信) - 성실과 신뢰를 위주로 생활함 ③ 예(禮) 사상 : 仁은 내면적 도덕성이면, 禮는 외면적 사회 규범 : 극기복례(克己復禮) - 사욕을 극복하여 진정한 예를 회복 : 군자(君子) - 인을 바탕으로 예를 실천하는 사람 ④ 정치.사회 사상 : 정명(正名) 사상 - 각자의 신분과 지위에 따라 맡은 바 역할을 다함 (논어의 君君臣臣父父子子). : 덕치(德治) - 도덕과 예의로 백성을 교화 : 수기이안인(修己以安人) - 통치자가 군자다운 인격을 닦아 다스려야 함. - 재화의 균등한 분배를 도모하야야 함. : 대동(大同) 사상 - 만민의 신분적 평등과 재화의 공평한 분배와 인류의 구현, 더불어사는 대동 사회를
궁극적인 이상 사회로 설정함 * 공자의 사상은 법칙론, 절대론, 의무론이다. +- 내면적 도덕성인 仁은 禮를 통해 실현된 +- 외면적 사회 규범인 禮는 仁에 기초함 +- 仁과 禮의 조화에 의한 건전한 사회 질서 회복을 원함
2) 맹자의 윤리 사상 ① 성선설 ㄱ.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 남에게 잔혹하게 굴지 못하는마음, 남의 불행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 ㄴ. 사단(四端)과 사덕(四德) ㄷ. 이상적 인간상 : 集義한 浩然之氣를 기른 사람 - 大丈夫, 大人 ㄹ. 왕도 정치 사상 : 백성>국가>군주, 왕도(가장 으뜸이 되는 사상) - 역성혁명 : 군주 학정때 他姓의 유덕자에게 사직 넘겨줌 * 맹자의 浩然之氣기르는 방법 : 부단한 노력과 인내의 필요
3) 순자의 윤리 사상 ① 성악설 -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기적 존재 : 사회 혼란의 원인 - 재화의 희소성 ② 사회 혼란의 극복 방안 - 화성기위(化性起僞) : 僞(사람의 인위의 뜻) ③ 예치 사상 : 禮 - 인간 사회 생활의 외적으로 규제하는 도덕 규범 * 순자의 禮(능력 차별의 예) - 현사회의 분배정의에 해당
74. 한대(漢代)의 천(天), 기(氣)에 의한 인간해석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天과 地는 부부이기 때문에, 땅(地)에 있는 인간사회가 인정된다고 하면 하늘(天)에 있어서도 인간사회와 닮은 어떠한 형태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왕충은 인간세계에 대응하는 세계를 별의 세계에 설정해 두고, 인간세계의 사람의 수만큼 사람에게 해당되는 별이 있고, 그러한 별의 존비대소(尊卑大小)의 위치에 따라 거기에 대응하는 인간의 지위가 정해진다고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대응되는 것은 그러한 별의 氣가 인간에게 부여됨으로 해서이다. 그러한 별의 氣가 인간에게 부여되는 것은, 별의 움직임에 따라 별의 氣가 밖으로 나와서 天의 氣 속에 포함되어 있다가 인간에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세계는 하늘(天)에 설계된 별의 세계로 인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야만 하겠다.
부귀빈천 등 모두가 어떠한 별의 氣를 받는가에 의해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버린다. 인간의 어떠한 힘에 의해서도 바뀌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자질의 현우(賢愚)에 관계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왕충은 인간의 가치를 사회적인 관직이나 빈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선한가에 그 기준을 두고 있다.
왕충은 인간의 사회생활 면뿐만 아니라, 수명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인간이 태어날 때 받은 氣의 양에 의해 그 사람의 수명은 결정되어 버리고 -氣의 양이 많으면 수명이 길고, 氣의 양이 적으면 수명이 짧음-인간의 노력여하와 아무 관계없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은, 무위자연적 氣에 의해서 인간이 형성될 때 이미 필연적으로 정해져 버리는 운명결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회에 있어서의 인간의 필연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필연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인간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노력하게 되지만, 결과는 필연적으로 결정된 운명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는, 인간사회의 모든 것이 항상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氣의 측면에서 보면 필연적이고, 인간의 의지로부터 보면 항상 우연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氣의 자연한 세계의 일부분으로, 氣의 세계로부터 본다면 자연한 세계로밖에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氣의 자연스러운 세계 위에 인간의 필연적인 세계가 있고, 그러한 인간의 세계 속에서 인간은 항상 우연성을 맛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이 무위자연한 天과 氣의 성격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세계의 자연성․필연성․우연성을 이야기한 것은 결국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기의 처지로부터 본 사회의 비합리성, 또한 사회상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인간세계의 정립으로부터 당시 사회상이 전면적으로 부정되었는데, 그러한 부정은 달리 말하면 당시의 가치관에 대한 부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당시로 봐서는 천인감응설이 유행하던 시대였으니까, 부귀가 곧 훌륭한 자질로 연결되고 그것이 곧 가치있는 것이 됐다. 원래 천인감응설은 도덕적 인간을 만들기 위한 도식으로써, 인격신인 天을 내세움으로써 항상 성실한, 즉 명실상부한 인간이 되도록 하였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실(實)은 버려버리고 명(名)에만 급급하게 됐는데, 당시의 세태가 바로 그러하였다. 그래서 왕충은 높은 관직, 장수(長壽) 등의 인간 외적인 것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인간의 정신(心)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우기 위해서, 인간의 心 이외의 것에는 전부 필연성을 부여하고, 인간의 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오로지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75. 한대이후 유․불․도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위진(魏晉) 이후로 되면 점차 도가사상이 유행하게 되고, 그에 힘입어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가 세상에 점차 퍼지게 되면서 사상계는 유불도 삼교가 서로 교섭하면서 변화해가는 시기가 된다.
유교는 처음 후한말 경학의 유행을 이어서 문자를 훈고하는 말절(末節)에 치우쳤지만, 이윽고 노장의 철학을 받아들인 새로운 경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새로 일어난 경학은 진(晉)의 천도와 함께 강남으로 옮겨지고, 북방에는 훈고를 중시하는 옛 경학이 남았기 때문에 이에 남북양조의 분립과 함께 경학도 또한 남학(南學)과 북학(北學)으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수(隋)가 천하를 통일했기 때문에 경학도 자연히 절충적 경향을 가지게 됐는데 결국 남학이 우세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고 마침내 당대(唐代)에 들어가서 ‘오경정의’(五經正義)가 편찬됨에 이르러 남학중심(南學中心)의 경학으로 통일됐다.
다음에 노장의 철학은 새로 들어온 불교사상 중 특히 노장학에 유사한 반야사상에 이해를 도와서 마침내 삼론학(三論學)의 융성을 재촉하고, 삼론학(三論學)은 다시 천태(天台)의 흥기를 재촉했는데, 현장(玄奘)에 의해서 가져와진 유식종(唯識宗)에 의해서 일변되어 마침내 화엄종(華嚴宗)이 성립됐다. 마지막으로 후한말에 일어난 민간의 신앙은 처음 노장의 철학을 채용하고 나중에는 불교의 철학도 받아들여 여기에 도교라고 칭하는 종교를 확립시켰다.
76. 도기일원론(道器一元論)과 도기이원론(道器二元論)의 차이점을 설명하시오.
명도 철학의 특징은 “형이상을 도(道)라 하고 형이하를 기(器)라 한다. 그러나 표현은 이렇게 하지만 도 역시 기이고 기 역시 도이다.”라고 하는 ‘즉도즉기’(卽道卽氣)의 ‘상즉논리’에 있다. 따라서 명도 철학에는 세계의 바깥에서 세계를 규제하는 어떠한 초월적인 원인이나 힘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즉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 하는데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도는 만물을 생겨나게 하며, 이러한 도를 계승한 것이 선(善)이다. 이처럼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 생명 현상 그 자체를 ‘道’라 하여, 도는 언제나 세계의 내오에 세계의 본질로 존재하며, 이것은 또한 인(仁)이며 생생의 원리로서 도덕적으로는 선이 된다고 했다. 이는 생지위성(生之謂性)에 대한 긍정으로서 고자(告子)의 인성관에 근접하는 것이다. 또 세계는 허망한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의 통일체로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이다.
인식의 문제에서도 명도는 “배우는 자는 먼저 인(仁)을 알아야 한다. 인이라는 것은 혼연(渾然)하여 만물과 더불어 한몸이다. 이러한 이치를 깨달아 성(誠)과 경(敬)으로 그것을 보존할 따름이다. 애써 방검(防檢)하거나 궁색(窮索)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이러한 명도의 인식 방법은 이천 및 주자의 이원적 세계관에서 출발하는 인식 방법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이천과 주자는 리와 기를 분리하며,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거친 다음에 천리를 활연관통(豁然貫通)하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명도는 이러한 분개(分開)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세계는 그대로 하나의 살아있는 세계이며, 주․객(主․客)이니 리․기(理․氣) 등으로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명도의 인식론은 격물궁리의 방법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궁리․진성․지어명(窮理․盡性․至於命)의 세 가지 일은 동시에 이루어짐으로, 원래 단계가 없는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명도의 주장은 이천과 주자의 격물궁리를 통한 천리의 체득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이처럼 명도에서는 인식 이론 역시 도기일체관(道器一體觀)에 근거, 이천이나 주자에서처럼 격물과 궁리의 단계를 통하여 진리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내외양망(內外兩忘)을 통한 직관에 의해서 천리를 체득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먼저 인을 알아야 한다”(學者須先識仁)고 했지만, 그러나 어떻게 인을 이해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명도철학의 근본적인 특징이 도기일원에 있다고 한다면 이천은 분명한 도기이원에 입각해서 자신의 철학을 체계화했다.
이천은 “한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道)라고 하지만 도가 바로 음양인 것은 아니다. 한 번 음이 되게 하고 한 번 양이 되게 하는 소이(所以)가 도이다. 기의 운동(一闔一闢)은 변(變)일 뿐이다.”라 하였다.
이러한 이천의 논리 구조는 명도가 일음일양의 변화 발전과정을 도라하여 도를 기 운동의 내재적 자기 법칙으로 파악하고, 음양을 떠나서는 도가 있을 수 없다고 한 논리와는 분명히 다르다. 이천은 도가 곧 음양이 아니라 능히 음이 되게 하고 양이 되게 하는 까닭을 도라고 했던 것이다. 즉 기 운동의 내재 법칙이 아니라 기 운동의 내재 법칙의 가능 근거, 다시말해서 기 운동의 소이의 소이가 도인 것이다. 따라서 명도가 도라고 하였던 일음일양의 전개 과정을 이천은 다만 ‘변’(如一闔一闢, 謂之變)이라고만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천은 장횡거의 태허(太虛)에 대해서는 ‘리만이 가장 완전한 실재이기 때문에 태허같은 존재는 없다’하고 태허를 리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리는 자신은 움직이지 아니하면서 자신 아래에 종속해 있는 모든 사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운동의 원동자라고 했다.(莫之爲而爲, 莫之致而至)
인성의 문제에서도 이천은 명도와 뚜렷이 구별된다. 명도에서의 인성론의 기본 입장은 생지위성(生之謂性)이다. 따라서 즉성즉기(性卽氣 氣卽性)가 된다. 그러므로 선(善) 역시 성(性)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악을 성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도의 사상은 성선의 필연성을 주장하는 맹자뿐만 아니라, 이천 및 주자, 그리고 횡거와도 다르다.
이천은 ‘생지위성’(生之謂性)과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을 하나로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하여 생지위성과 천명지위성은 “다같은 성자(性字)이지만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생지위성의 성은 드러난 현상에서 말하는 성이고 천명지위성은 성의 리를 말하는 것이다.... 성의 리로서의 천명지위성은 선하지 않음이 없다.”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심(心) 역시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라는 대립되는 양항의 구도로 나타난다. 그리고 사욕을 제거함으로써 천리가 회복된다고 하여 “인심은 사욕이므로 위태하고 도심은 천리이므로 정미하다. 사욕을 없애면 천리가 밝아진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천의 입장은 ‘리일분수관’에 입각한 것으로, 이는 인식론에서는 격물치지를 통한 천리 회복의 가능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천리가 내재되어 있고, 이러한 필연 법칙으로서의 천리가 인간의 본질이므로 성선의 필연성이 확보된다. 그러므로 이천은 현실적인 인간 존재의 불선을 재(才)에서 찾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천의 체계에 입각해 본다면, ‘생지위성’(生之謂性)의 성은 ‘재’에 불과하다. 또 그의 ‘리일분수관’은 그의 인식 문제에도 관철된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하는 정주 성리학의 인식방법의 특징은 인식의 문제가 수양의 문제와 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격물’은 곧 대상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卽物窮理)하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백지’인 인식 주관으로서의 심(心)에 경험적 사실을 써넣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객관 세계의 원리를 인식하고 그것을 유추(類推)함으로써 세계와 인간의 존재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격물궁리는 객관 세계의 법칙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아니라, 윤리의 본성을 깨닫고자 하려는 것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주관적 심 혹은 성의 궁격(窮格)이며 윤리적 천리(天理)를 궁격하여 완전한 인간, 즉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격물궁리의 과정은 이미 단순한 인식의 과정이 아니라 수양의 과정이며(‘格物亦須積累涵養’ 遺書卷15), 이렇게 격물궁리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천하의 이치에 통달(脫然貫通)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천의 인식 방법은 경험과 직관의 종합으로서 불교의 점수(漸修)를 통한 돈오(頓悟)와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즉 점수의 방법을 통하지 않고는 돈오에 이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천의 인식 방법은 명도의 점수의 측면이 배제된 직관적․돈오적인 인식론과는 궁극적으로 다르다.
77. 주자(朱子)의 주리론(主理論)의 특징을 설명하시오.
주기론자들은 기는 무궁(無窮)하다고 본다. 즉 일기장존(一氣長存)이다. 그러나 주리론에서는 일기장존을 인정하지 않는다. 만약 일기장존을 인정한다면, 이는 리와 기가 시원에서부터 항상 함께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따라서 리가 일차적․근원적인 존재일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주기론의 성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주자에서는 이미 흩어진 기는 ‘무’(無)가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기는 리에 의해서 그 존재 근거가 설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기는 리의 생멸 원리에 따라서 생멸하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생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주자의 주리적 입장에서의 리와 기의 관계는 “이 리가 있고 나서야 기가 생겨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비질료적인 기에서 질료적인 리가 인과 생출(因果生出)된다는 말은 아니다. 만약 인과 생출된다면 리는 이미 질료성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는 흩어져 버리면 없어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주자에서 리와 기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가? 리는 기를 화생(化生)하게 하는 원리이다. 그러므로 기는 이 리라고 하는 기의 화생의 원리에 따라서 생멸을 거듭한다. 따라서 주자적 주리론의 입장에서는 기에 대한 리의 일차성이 인정되지 않을 수 없고, 기는 리에 의존하는 이차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즉 리는 기보다 ‘선’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을 지라도 무한한 존재로서의 리가 있는 한 세계의 계속성은 확보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의 궁극적 존재 근거로서의 리의 독립적 실재성이 인정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논리이다. 따라서 주자에서의 리기 관계는 ‘리선’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때의 ‘선’은 시간적인 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는 리에 의존하는 존재이므로 리의 일차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의 선이다. 주자의 용어를 빌려서 본다면 “그 근원에까지 미루어 올라가면”(推其向上根源), 혹은 “위로 미루어 올라가면”(推上去) 리는 기보다 일차적인 존재, 혹은 ‘리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78. 양명학(陽明學)을 양지학(良知學)이라고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양지는 맹자에 보이는 용어로, 인간이 생득적으로 갖추고 있는 선한 도덕심을 말한다. 양명은 양지에 대한 깨달음 이후 스스로 ‘자신이 올바르다는 것을 마음대로 행하여 조금도 숨김이 없었다. 소위 미친자의 심경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하고 있다. 이는 양지가 이미 인간에 본래적으로 갖추어져 있고, 다른 가공의 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완성되어 있는 것, 즉 현성(現成)한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 사욕에 은폐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치양지’하는 공부가 필요했다.
이러한 양명의 입장은 현실적인 인간의 마음이 그대로 절대적인 선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욕의 근거에 대해서 양명은 침묵한다. 만약 그것을 인정하면 사욕의 극복을 통한 본연의 회복이라는 주자적 입장의 긍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욕을 인정한 이상 이것을 제거하는 수양의 방법이 필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 양명은 문인들에게 ‘정좌’(靜坐)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문인 가운데는 정(靜)만을 중시하여 현실적인 실천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여기에서 양명은 사상마련(事上磨鍊)을 역설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양지설은 명도의 ‘만물일체의 인’과 결합된다. 이는 인간의 보편적 평등성을 주장한 말이다. 또 횡거에게도 역시 ‘민오동포’(民吾同胞)라는 인간적 평등성에 대한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송유들에게서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인간적 평등성은 그들의 ‘분’(分)의 논리에 의해서 차단되었다.
양명의 양지는 성인이나 천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지는 만인의 보편적 평등성을 매개해줄 주 있다. 이러한 양명학의 체계는 계급적 대립의 해소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보편적 평등성에 대한 긍정은 공맹이래의 유가사상 속에서도 찾아볼 수는 있다. 다만 그것이 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과정에서 본래적인 모습이 현실적 상황 속에서 기능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쨌건 양명에서는 모든 사람이 양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배자이든 피지배자이든, 사대부이든 천민이든 인간적인 차별은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어느날 제자인 왕심재가 외출하고 돌아오자 양명이 무엇을 보고 왔느냐고 물었다. 심재는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성인인 것을 보고 왔습니다(滿街聖人)”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서 양명은 “상대방도 그대가 성인인 것을 보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만가성인설’은 양명 좌파의 사람들에 의해서 그대로 실천되었고, 이러한 만인의 평등성에 대한 긍정으로 말미암아 양명의 제자 가운데는 위의 왕심재가 염전 노동자였던 것을 위시하여 상인이나 농민 천민들이 많았다.
79.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의 이기관(理氣觀)의 차이를 설명하시오.
퇴계는 장횡거와 소강절의 사상을 절충,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확립한 서화담의 기철학에 대해서 리를 기로 삼은 잘못을 범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천이나 퇴계의 입장은 횡거류의 기철학이 이중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 바탕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말해서 태허가 규정을 받아들일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미 자신은 무규정적 규정자로서의 리에 다름없다는 말이다.
율곡에서도 횡거나 화담의 기철학의 이중 구조에 대한 이해는 퇴계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는 리의 일차성을 부정하고 주기설(主氣說)을 주장한다. 따라서 개별의 기를 초월해 있는 태허를 설정하는 초월관적 입장에는 동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태허에서 음과 양이 나온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여, 퇴계의 주리설 뿐만 아니라 화담의 초월관적 기철학 역시 부정했다.
퇴계는 정을 ‘유중이발’(由中而發), 즉 심의 리적인 측면에서 발하는 사단의 정과 ‘촉기형이동어중’(觸其形而動於中), 즉 외물(外物)과의 관계에 의해서 발하는 칠정의 정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사단의 정은 순선한 정이요 칠정의 정은 ‘혹유선악’(或有善惡)하는 정이라 규정짓고 있다. 그러나 ‘기발리승일도’(氣發理乘一塗)설을 주장하는 고봉이나 율곡에게서는 ‘유중이발’하는 사단의 독자적 영역은 인정될 수 없다. 다만 ‘기포리’(氣包理), ‘칠정포사단’(七情包四端)만이 가능할 뿐이다.
80. 송명학(宋明學)과 청학(淸學)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명(明)대 사회는 만력(萬曆, 1573~1620) 연간부터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토지의 집중, 중소지주층의 몰락, 농민의 빈곤화는 구조적인 문제가 되었고, 대외군사비의 증대를 주된 원인으로 해서 증세가 계속되자 납세능력이 없는 농민들은 점점 더 궁핍해졌다. 한편 조정에서는 환관들까지도 가세한 관료들의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혼란스런 중앙정부는 더욱 사회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급기야 숭정(崇禎, 1628~1644) 연간에는 농민폭동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고, ‘유적’(流賊)이라는 대규모적인 폭동으로까지 확산되었으며 이것이 곧 명나라의 운명을 마감하게 했다.
이러한 국가의 위난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 학문은 세상에 실제적으로 역할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자각이 생겨났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동림학파(東林學派)이다. 이러한 ‘경세(經世)의 학’을 주창한 일단의 사람들은 학문적으로 주자학을 신봉했고, 정치적으로는 환관세력에 대항하였다. 이들은 군주에게 충성하고, 환관과 권문세족의 횡포를 꺾어 조정과 민생의 혼란을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관료=사대부’라는 가장 정통적인 입장에 선 집단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경세의 학문을 주장하고 절의(節義)를 숭상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주장한 경세의 학문도 역시 정치나 경제를 연구하는 학문은 아니었으며, 또한 이후 크게 발전․성장하지도 못했다. 다만 이들 학문의 의의는, 다음 세대의 새로운 학문의 주역인 황종희(黃宗羲, 1610~1695), 고염무(顧炎武, 1613~1682), 왕부지(王夫之, 1619~1692) 등에게로 계승되어 그들 학문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명나라는 비록 유적들의 손에 멸망되었지만, 그 때까지 명나라와 대립․전투를 계속하고 있던 만주족이 즉시 북경을 점령함으로써 중국은 결국 청조(淸朝)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한족(漢族)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수모였고, 따라서 강남지방을 중심으로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군사활동이 일어났다. 또한 청조가 만주풍속(특히 변발)을 강요한 것은 한족 지식인들로 하여금 맹렬한 반감을 고조시켰고, 이러한 저항에 대한 잔학한 탄압은 다시금 반감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결국 청조의 강력한 무력 앞에 전 중국은 완전히 제압당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 동안 광범위하고 강렬한 민족사상이 폭발했던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명말청초’부터 형성된 이러한 ‘경세치용의 의식’과 ‘민족사상’은 바로 청대학문의 특징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송명시대의 학문과 청대학문의 특징을 한마디로 개괄하면 이학(理學)과 기학(氣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송명이학(宋明理學)의 최대공헌은 도덕적 이성의 자각과 그 확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수립하고자 한 학문의 중심이 대체로 순수사유․순수이론, 즉 추상적인 본체론쪽으로 심하게 치우쳤기 때문에 이로 인한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이(理)에 너무 치중하여 사(事)를 경시한다”거나 “심(心)을 강조하고 물(物)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은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송명시대의 이러한 학문적 경향은 바로 다른 민족(만주족)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고, 다른 문화(서구과학문명)의 도전 앞에 무기력한 존재가 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중요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송명유학자들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입각한 이분법적 시각, 즉 ‘이는 기에 선행한다’거나 ‘이가 기를 낳는다’고 보는 주종(主從)관계, 그리고 ‘천명의 성’(天命之性)은 순수하여 선하고 ‘기질의 성’(氣質之性)은 잡박(雜駁)하여 악하다고 하는 ‘성정이원’(性情二元)의 문제는 당시 학자들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인간의 본성 속에서 ‘욕망을 제어하고 천리를 회복해야 한다’(存天理, 去人慾)는 수양방법을 택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상하분절(上下分截), 중도경기(重道輕器: 정신본체를 중시하고 물질현상을 가벼이 여기는 태도)의 학문태도는 송명유학자들의 가치관에까지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즉 송명이학은 점점 관념적인 ‘하늘의 이치’(天理)만을 중시하고 실제적인 ‘인간의 일들’(人事)에 대해서는 경시하는 실천행위 홀대의 사조로 굳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경향성은 급기야 독선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뼈아픈 비판을 받게 된다.
송명이학의 극단에 이르러, 중국철학이 줄기차게 지켜오던 현실 중심의 전통이 무너지고 또한 형이상과 형이하의 연결이 끊어지는, 즉 형이하의 세계를 단절시킨 관념철학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대진(戴震, 1723~1777) 같은 학자는 “송나라 유학자들은 인(仁)․의(義)․예(禮)를 통합하고 있는 것이 이(理)라고 보며, 그리고 이는 하늘이 갖고 있는 덕을 사람이 태어나면서 품부해 온 ‘아무런 조짐없는’(無朕) 형이상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고 하며, 그리고 심지어는 “송나라 유학자들이 이러한 이(理)로써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송명이학과 청학은 우주론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입장과 형식을 취한다. 송명이학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주리론(主理論)으로서 ‘이’를 ‘기’의 위, 그리고 앞에 위치시킨다. 특히 ‘소종래’(所從來: 근원, 이유)를 탐구할 때에는 ‘이’를 더욱 추상화시켜서 결국에는 ‘이’를 근원적인 무형의 세계에 별도로 소속시켜 놓고 이것으로부터 천지만유가 생겨나오는 생성론적 근원과 원리 그리고 그 과정을 설명한다.
81. 양계초가 말한 청대학술사상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한 가지 뜻을 정립하게 되면 반드시 그 증거를 확보한다. 증거없이 억측을 부리는 것은 단호히 배척한다.
∙증거를 선택하되 ‘옛 것을 우선한다’[尙古主義]. 한당시대의 증거로써 송명시대의 오류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송명시대의 증거로써 한당시대의 오류를 지적할 수는 없다.
∙불충분한 증거는 정설(定說)이 될 수 없다. 이것을 반증하는 사람이 없으면 임시로 두되, 계속 증거를 제시하여 점차 믿게 해야 하며, 그러한 때라도 유력한 반증이 나타나면 폐기한다.
∙증거를 숨기거나 증거를 곡해하면 부덕(不德)으로 인정된다.
∙같은 종류의 사항(事項)을 나열하기를 좋아하며, 비교연구를 거쳐 ‘공정한 법칙’[公則]을 얻는다.
∙이전 사람의 학설을 채용할 때는 반드시 그 출처를 밝히며, 다른 사람의 학설을 도용(盜用)하는 것을 큰 부덕으로 여긴다.
∙합당치 못한 것을 보게 되면 서로 꾸짖어 비록 제자라도 스승의 잘못을 지적하여 반박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스승도 역시 피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러한 경우를 당해도 원망하지 않는다.
∙변론과 힐책은 문제를 근본으로 하여 그 범위로 삼고, 글의 뜻은 독실함과 온후함에 힘써서 비록 자기 의견을 주장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동시에 존중한다. 이를 어기고, 기개만 부리거나 지루하게 간섭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웃는 듯 하는 행동을 보이면 부덕으로 인정받는다.
∙전공을 중시하여 좁고 깊이 연구하기를 좋아한다.
∙문체는 박실(樸實), 간결해야 하며, 말에 가지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82. 중국 근대 기론(氣論)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과학성이 강화된 반면 철학성은 묽어졌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손문의 사상에서, 철학개념으로서의 기는 이미 기본적으로 소멸되어 버렸다. 손문은 전통문화와 서양 근대과학문화의 융합 속에서 만물의 본체와 시원(始原)의 이론에 대해 고도의 추상적 개괄을 하고 종래의 기론 대신 과학적 물질 개념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전통 기론은 더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곧 근대 중국의 기론이 과학적 물질 개념으로 바뀌면서 아울러 자신의 본래 기능인 철학적 본체론의 기능을 점차 잃어감을 보여준다.
서양문화의 전래는 기론의 오랜 역사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었고 동시에 그것이 철학적 본체론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욱 가속화하였다. 이 때문에 대륙의 학자들은 기론의 근대적 발전을 “과학성이 끊임없이 강화된 반면 철학성은 끊임없이 묽어지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83. 이대조의 사회주의사상이 중국적 사회주의사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대조는 중국 공산당 창립자 가운데 중요한 한 사람으로서, 중국에서 맑스주의의 최초 전파자이기도 하다. 그가 중국사상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맑스주의를 인간의 도덕과 의지를 중시하는 경향으로 받아들이는 등 이른바 중국적 재구성을 최초로 시도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중국 공산당 이론의 기원을 이루는 것으로서 평가받는다. 이대조의 사상중 농민들의 해방이 중국 전체의 해방이라는 진단 아래 중국의 청년들에게 농촌에 가서 직접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인민주의적 측면은 바로 모택동의 혁명관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이대조의 사상중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전의 선배사상들의 객체적․수동적 인민관을 완전히 바꾸어, 중국인 한사람 한사람이 주체적 사상을 갖는 인민총체로서 바로 이들에 의해 역사가 창조된다고 파악했다는 점이다.
84. 현대 신유가의 일반적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첫째, 현대 신유가는 철학을 객관 사실에 관계하는 학문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인생)가치에 관계하는 학문으로 파악한다.
둘째, 그러므로 현대 신유가는 철학이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현대 신유가는 그 철학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직관적 사유를 존숭한다.
85. 현대 신유가에서 말하는 ‘직각(直覺)적 사유’란 무엇을 말하는가.
현대 신유가는 오늘날 중국 학술계를 점점 더 깊이 파고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대륙 내의 현대 신유가 학맥의 단절은 이들 사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망설이게 한다. 이것은 현대 신유가의 후기 발전이 주로 대만․홍콩․미국 등지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현대중국의 역사적 경험․현실적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중국 내에서의 현대 신유가는 아직 창조적 작업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호기심어린 조심스러운 탐구 대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사실은, 앞으로 현대 신유가에 대한 가장 창조적․주체적 작업은 중국 대륙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