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작석학

문장작성학과제

(총회신학교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

 

Ⅰ. 문장표현의 개요

다음 글들을 읽고, 대학생활 중 자신의 문장력 향상 계획에 대하여 200자 원고지 10 매 내외로 작성해 보시오.

1. 인간과 언어

인간은 언어를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호모 로쿠엔스라는 학명을 붙이고 언어적 인간이라 부른다.

진화설과 창조설이 서로 상반되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양설을 그 나름대로 타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전자를 따를 경우에는 보잘 것 없는 미물이 차츰 진화하여 인간이 된 시점부터 인간은 언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어떤 미물이 진화하여 언어를 구사하게 되었을 때부터 비로소 인간이라고 불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운명적인 조건이며 다른 존재와 인간을 구별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기준이 된다고 하겠다. 반면에 우리가 창조설을 따를 경우, 전능한 신에 의해 인간이 피조 될 때부터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인간에게만 언어가 주어졌을 것이다.

인간이 진화되었던 창조되었건 이것과 관계없이 언어가 오늘날의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만큼 완전한 구조체계를 언제부터 갖추었는지에 대한 견해 역시 불확실 하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가 발전을 거듭해 온 이상 인간과 운명을 같이 하는 언어 또한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음을 우리는 지나간 시대의 문헌어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불과 3∼4세가 되면 그는 자신의 모국어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다. 흔히 어린 아이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말을 배운다고 하지만 말을 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어린 아이는 선천적으로 타고 태어난다. 어린 아이는 그의 어머니로부터 모국어를 배운다기보다 어머니를 통해 모국어로써 언어적인 자극을 받을 뿐이다. 이 자극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의 잠재적인 언어능력이 작용하여 그의 모국어를 말하게 된다. 어머니의 말은 어린 아이에게 있어서는 언어적 환경요인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는 유한한 언어경험을 통해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모국어의 문장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성해 낸다.

영국인이나 중국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어린 아이를 그가 말을 하기 이전에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의 가정에서 키우면 그 아이는 한국어를 쉽게 말하게 된다.

그는 한국인의 핏줄을 받고 태어나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어린 아이와 조금도 다름없는 한국어를 구사한다. 반대로 한국인의 어린 아이를 영어나 중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라게 하면 그 아이는 영어나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다.

인간의 언어능력은 어느 한 특정의 언어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모든 언어를 생성하여 부려 쓸 수 있는 인간만이 가진 본유적인 언어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원리는 흡사 수학의 공식과 같아서 그 공식에 여러 가지의 숫자를 대입 하면 서로 다른 정답이 도출되듯이, 보편전인 언어원리에 서로 다른 개별언어의 특징(매개변인)을 입력시키면 전혀 다른 종류의 언어가 출력되어 나온다. 그러니까 지구상의 인간들에 의해 사용되는 언어의 숫자가 수천을 헤아리지만 그 많은 언어들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보편적인 언어원리뿐이다.

인간이 가진 동일한 언어원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한 존재라는 점과 모든 동물 중에서 인간을 가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본질적인 근거가 된다. 만일 인간이 말을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능력을 갖지 못했다면 어떤 근거에 의해 인간의 평등과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존엄한 존재이지만. 인간만이 선천적으로 언어능력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을 객관적으로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잡다한 생각들을 조용하게 정리한다고 해보자 많고 많은 생각들의 앞 뒤 순서의 틀이 우리가 늘 사용하는 언어의 구조 체계에 맞추어 이어가게 됨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언어적인 구조로 정리되지 못한다면 한갓 잡념에 지나지 않는 무가치한 것이다.

언어로 나타나기 전까지 인간의 생각은 하나의 혼돈과 같으며, 언어와 더불어 인간의 생각에는 가치와 질서가 차지하게 된다. 결국 인간은 그가 사용하는 언어구조에 따라 자기의 생각을 엮을 수밖에 없다. 이것을 거꾸로 보면 인간에게 하고 하는 능력이 있으므로 인간의 언어구조를 유지 발전시켜 나간다고 하겠다. 밝고 건전한 생각과 사려 깊은 통찰력을 가진 이의 말에는 그대로 그의 생각이 투영 되어 나타나며, 생각이 건전하지 못하고 경솔한 이의 말은 가볍고 온전하지 않다. 바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올바른 말을 하며, 말을 조리 있고 알차게 하는 사람은 역시 그의 생각이 알차고 조직적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언어능력과 고차적인 사고기능은 서로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며, 이 둘은 사실상 표리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인간은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고 역사적인 존재이며 본능적인 존재가 아니라 창조적인 존재이다. 주어진 환경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인간은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 나은 환경을 창조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이러한 노력이 긴 역사를 발전시켜 왔으며, 역사 발전의 바탕에는 언제나 인간의 언어적 역량이 관여해 왔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간단히 더듬어 보더라도 언어적 역량이 크게 발휘되었을 때는 나라의 문화가 융성하게 일어났고, 그렇지 못했을 때는 국운이 기울어져 혼란을 면치 못했다.

우리말에는 2. 3인칭 대명사의 높임 형은 있으나, 화자 스스로를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의 높임 형은 없고 오히려 낮춤 형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문장 종결어미에 화자가 청자를 대우하는 등분이 아주 세분되어 있으며, 화자의 물음말에 대한 청자의 대답은 언재나 상대방을 기준으로 한 문장이 실현 된다. 이러한 몇 가지의 예에서 보더라도 우리말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을 중시하는 언어구조라 할 수 있다.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우리말의 구조에서 우리 민족은 본디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민족임이 드러난다. 남을 존중하는 마음 이것은 바로 예의 바탕이다. 우리말의 구조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이타적 정신을 알 수 있는데, 이 정신은 '홍익인간'에 부합하는 한국인의 심성 세계인 것이다. 우리말에 내재하는 이러한 정신과 얼은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그 뿌리가 깊이 박혀 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고 한 주시경 선생의 말씀을 되새겨 보자.

 

2. 인간과 삶

*방향을 읽은 현대인*

인간은 전통적인 규율을 포기하고 나서 새로운 과념에 따라 어떻게 개인 생활을 영위해 나가야 할지 모르고 있다. 우리는 정열적으로 자유를 애타게 그리워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든 속박을 포기하는 데서 당연히 생겨나는 혼란과 무관심 속에서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했다. 그러니 전통적 규율의 배후에는 유물적(唯物的)자유주의 창시자들의 '약 속의 땅'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리들 중에는 묵상(默想)을 좋아하여 그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합리주의의 발달로 인하여 자유를 얻은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은 우리 조상들에게 일찍이 주었던, 희망에 찬 표정을 부여해 주지는 않는 것이다.

해방된 사람들은, 무한한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는 독수리와는 사뭇 다르다. 오히려 개집에서 도망쳐 나와 이리저리 부딪치면서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개와 비슷하다. 그들은 정말 이 개처럼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 있으며,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것은, 어디로 가야 좋을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위험으로부터 어떻게 몸을 지켜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지될 수 없을 정도의 미생물인 것에 만족하고, 공허한 대개(大氣) 속으로 깜박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하나의 티끌이라고도 할 만한 이 지구 위에서 무의미하게 살고 있다. 인간의 기쁨도 희망도 고민도 아무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이 신비의 세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낯선 타인이며, 결코 성령(聖靈)과 만나는 일이 없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신과 물질이 통일된 세계'*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성자, 시인이 존재하는 세계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 정신의 세계는 물질의 세계와는 매우 다르면서도 역시 분리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현실이라고 하는 끝없이 넓고 큰 바다 한가운데에 처하여 인간은 구하는 것만을 찾아낸다.

아시시(Assisi)성당의 성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oso, 1182∼1226, 가톨릭의 성자)는 신을 발견하고,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차원을 넘고 지성을 초월한 그 설명할 수 없는영역에서만 신을 만날 수 있는 것이며, 존경할 만한 뤼스브렉(Ruysbreck, 1292∼1381, 네덜란드의 신비가의 말을 빌리면, 사랑과 열망에 의해서만 신에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물리학자가 말하는 세계도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세계도 똑같이 굳게 닫혀 있다. 전자의 세계는 우리에게는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수학적 공식에 의하여 기호로써 나타내지며, 후자는 우리에게는 이미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게 된 중세 철할 특유의 말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말들은 양쪽 다 그 지식을 가진 몇몇 사람에게밖에 이해되 않는다.

오늘날에는 영혼의 영역과 물질의 영역 사이에는 아무런 교류가 없는 것이다. 일찍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의 사람들을 위하여 멋지게 설명한 것을 오늘날 우리를 위해 사용하려는 사름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각자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낼 수가 있고, 정신면과 물질 면이 격리되어 있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는 통일된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나침반이나 뱃길 안내자도 없이 인생 항로를 걷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를 뒤덮고 있는 허영과 위선의 정신 풍조*

이 위험을 깨달으면서도 합리적으로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사실 이 위험의 중대성을 확실히 깨닫고 잇는 사람은 아직도 극히 드물다. 자유방임주의의 정책이 국가의 운명에 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활에도 마찬가지로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거의 마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만이 엄하게 도덕적 계율을 계속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지만, 이 싸움은 승리할 가망이 거의 없다.

오늘날 그 수효가 엄청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즐겁게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과학 기술의 대단한 발달로 인하여 초래된 물리적인 편리성에 도취되어, 현대 문명이 주는 특권은 단 하나라도 버릴 생각이 없는 것이다. 자유주의에 의하여 빚어진 전신적 풍조 가운데서 이익이라는 관념은 인간 의식의 모든 분야를 침해하고 있다. 업무상의 거래는 신성시되고 있다. 물질적인 이익의 추구는 은행업부나 산업 무역으로부터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로 번져 가고 있다. 인간 활동의 원동력은, 어떤 개인적인 이익을, 그 중에서도 특히 금전적인 이익을 획득하려는 욕망인 것이다.

또 인간은 승진이나 직함이나 훈장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하여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싶어 한다. 이 이기심은 교묘한 위선의 탈을 쓰고 있다. 그리하여 이타적 행위로 위장되기도 하고, 혹은 가지각색의 오묘한 방법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군대나 대학, 행정기구나 입법기관에서 위험한 경쟁 상애에 대하여 장기간에 걸쳐 책략이 꾸며지거나 배신 행위가 조심스럽게 위장되어 있거나 어둠 속에서 뒤로부터 단칼에 찌름을 당하거나 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기적이고 비천하고 무자비한 얼굴은 흔히 헌신 지식 자선, 나아가서는 순결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무엇이든 돈으로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이익에 대하여 이토록 열중하는 것이다.

돈은 우리의 욕망을 모두 만족시겨 주는데, 그것은 욕망 그 자체가 천하기 때문인 것이다.

*욕망과 쾌락만이 추구되고 있다*

우리의 생활 과념은 맹목적으로 욕망을 만족시키는 데에 있다. 우리는 영양의 법칙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먹고만 있다. 음식물의 선택을 그르치고, 때로는 조리법도 부적당하다. 여성들은 이미 요리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문명인은 차나 커피 알콜 사과주 담배 등을 지나치게 섭취하고, 날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습관화 되어 버렸다. 서구인은 상업 광고 덕택으로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알콜 음료를 갈망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현대의 퇴폐로 인한 것이리라. 문명화된 사람들은 또한 성적 욕구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그 일탈적인 행동은 노인에게도 젊은 이에게도 극히 해롭다. 그러나 성적 절제를 깨거나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것처럼 표면으로 확실히 드러

나지는 않지만, 이 밖에도 좀 더 미묘하고 해로운 욕구가 있다. 남을 중상하거나 거짓말하기를 좋아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을 떡 먹듯이 하고, 궤변을 일삼거나 오랫동안 장황하게 지껄여대거나 그럴 듯한 험담을 하는 것을 즐기는 장난이 그것이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절도가 없는 것도, 위험한 점에서는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바보 행위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목적도 없고 규율도 없는 생활은 자연히 쾌락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기 쉽다.

짐승과 같이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에서도 어떤 만족을 맛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인생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결국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는 사이에 예로부터의 행동규범은 모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환상이 도처에 지배하고, 집단으로서의 인간생활은 정신이 낳은 환영인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에 젖어버린 것이다. 개인의 생활에서 우리는 감각과 지성에 의한 환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연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본질도 역시 어떤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추정(推定)했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들의 우주의 질서에 지배되지 않고 좋을 대로 행동하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 자고, 성교(性交)하고 자동차나 오디오를 갖고, 춤을 추고, 영화관에 가고,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속에서 술을 마시고는 흐리멍텅하게 기분이 좋아져 가지고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나름으로 인생을 즐기는 것이다.

 

 

 

 

3. 대학생과 독서

*독서의 중요성*

황산곡은 "선비가 사흘 동안 책을 읽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가 무미건조해지고, 자기 얼굴이 역겨워진다."고 하였고, 안중근은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힌다."고 하였으며, 그리고 이규태는 "빈농 출신의 링컨,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프랭클린, 기계공 출신의 포드, 차가운 지하실에서 쥐와 함께 생활했던 디즈니-그들은 무엇으로 찬란한 인생의 문을 열 수 있었는가? 그것은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책 때문이었다. 즉 독서를 통하여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기수가 될 수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상은 한 마디로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가치에 대한 의견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하여 부연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학문의 분화 심화와 더불어 나날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렇듯 복잡다단하고 전문화된 시대에 발맞춰 살기 위해서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는 개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독서를 통하여 전세계를 섭렵하고, 수천 년의 세월을 넘나들어야 하며, 새로운 정보 중 필요한 지식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전 세계가 하나의 국가로 변한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명실상부한 세계 시민권을 획득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좁은 시야를 확대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세상을 바라다보는 안목이 별로 차이가 없지만,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차이가 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시야를 넓히는 방법에는 교육 대화 사색 체험 신앙생활 독서 등이 있겠지만, 이중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의 좁은 시야를 확대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즉 인간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고, 그중 특히 독서는 위대한 인물과 그리고 그의 사상과 만나는 귀중한 시간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셋째, 독서를 통하여 우리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다.

적어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나름대로 세상만사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관(觀)을 가져야 하고, 그 관은 주관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사고에 기초하여 형성되어서는 곤란하다. 사회인을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초적인 정신적 덕목은 올바른 가치관을 견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첫째, 내가 관심을 가지고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부터 책읽기를 출발하라고 말하고 싶다. 독서 안내서 책자 말미에 보면, 한결 같이 동서양의 대표적 고전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고전이란 것을 대체로 흥미성 보다는 교훈성이 강조된 지루한 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까닭에 인내심이 없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독서에 싫증을 느끼기 쉽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식사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맛있게 먹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단 내가 좋아하는 글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독서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일단 시간이 날 때마다 무엇보다 먼저 책을 읽는 습관이 길러지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고전 탐독의 길을 산책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독서를 하여야 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독자들로부터 검증을 받아 온 고전을 읽어야 한다.

한 마디의 말과 한권의 책이 인생의 진로를 바꾸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러한 영향을 줄 확률이 높은 고전을 읽어야 하고, 고전을 읽어 나가는 가운데 전율에 가까운 영감을 자주 느껴야 하고, 그런 감전의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깊어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베스트셀러는 재미를 준다는 장점과 더불어 당 시대의 관심을 나타내는 풍향계이기에 이 역시 충분히 읽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공동 관심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그리고 그것은 베스트셀러를 읽음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고 또한 문학의 기능 중 하나인 문학적 흥미의 원천을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그것은 우리들을 대중성을 확보하는 문학 창작의 길로 안내해 줄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편식은 영양실조를 초래하듯 편독은 지식의 편중 화를 가져와 편향된 인간을 만들어서 결국 대인관계의 폭을 좁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사회는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집합체이므로,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구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감성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예술분야의 기초지식을 나의 것으로 소화하고, 나아가 자신의 전공 영역과 상반되는 분야에 대한 지식도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어떻게 읽을 것이가*

첫째, 단순한 지식의 습득에 연연하지 말고, 그 지식의 저변에 깔려있는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이란 우리의 두뇌에 들어왔다가 대부분 망각곡선 너머로 사라지기 때문에 그 속에 깔려 있는 진리의 정신에 입각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의 수준으로까지 우리의 사고를 확대 심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단순한 지식의 차원을 ㄷ어서러사회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산지식을 얻게 되고, 그 결과 사람이 바뀌고, 세계가 바뀌는 기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고 생각될 때 깊이 생각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힘, 바로 그것이 독서와 공부의 주된 목적이며, 그것은 한 마디로 지식의 대사회 응용력과 인생을 통찰할 수 있는 예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공자가 학문의 태도로"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란 말을 한 것처럼 독서할 때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어야(讀而思)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참으로 위대한 인물들은 맣은 책을 읽기보다는 대체로 깊은 명상을 즐긴다고 한다. 독서는 사색과 반성의 반복 작용이며, 좋은 책이란 재미와 지식을 전해주는 차원을 넘어서 책장을 잠시 덮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글은 모두 책을 읽되 그 내용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되고, 때로는 동조를 때로는 비판을 그리고 때로는 나의 경우로 환치시켜 생각해 볼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을 가져야 함을 말한다고 하겠다.

셋째, 정독과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독서의 방법도 다독 남독 정독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가 평생 읽을 수 있는 독서량이 제한되어 있기에, 이왕이면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그중에서 가능한 한 많은 자양분을 섭취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독을 해야 할 것이다. 즉 다른 사람보다 적은 책을 읽고도 많은 지식을 얻는 경제적 독서방법은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쳐 가면서 읽는 정독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창조의 전 단계로 모방의 단계를 거친다. 그러기에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새로운 지식 감동을 주는 문학적 표현 삶의 지혜에 해당되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나중에 메모장에 옮기는 일은 교양을 확대하고, 표현을 모방하고, 접근시각을 배운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장차 글을 쓸 때 요긴한 자료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메모 습관은 독서와 창작의 한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넷째, 독서할 때는 선현들과 만난다는 경건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매사에 어떠한 마음으로 임했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천양의 차이를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독서 역시 안락의자에 앉아 시를 소리 내어 읽듯이 하여서는 그 글 속에 담겨진 심오한 사상과 지혜의 정수를 발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김정희가 독서하기 전에 향을 피우고, 재배하고, 단좌하였듯이 우리는 짧은 기간이지만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듯 집중하여 행간의 의미와 그 글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작자와 영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평생 독서의 길*

첫째, 내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선 책방 순례를 정기화하여 "바로 이 책"이란 영감의 기회를 자주 갖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책의 홍수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주로 점철되어 있는 책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둘째, 주의집중이 가능한 조용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기에 휴식 시간 등하교 시간 체중감량시간(?) 기다리는 시간 등 깨어진 시간을 책을 읽는 데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스러기 시간만 잘 활용하면 일 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어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독서의 위력은 자신도 모르게 안개처럼 서서히 산을 감싸며 바위처럼 어

떠한 폭풍우에도 씻기지 않기에, 그 위력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평생 독서를 하여야 한다. 그리고 천하에 독서를 즐기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이 별로 없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한 사람으로 서서히 변하여, 결국 그 감화가 자손에게까지 유전되도록 하여야 한다.

넷째, 혹자는 책 선물을 주고받을 때 가장 행복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다 읽고 난 후 깊은 감명을 받았을 때 선물한 사람이 새롭게 생각되어질 것임은 당연하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좋은 책을 읽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증여이고, 후자는 투자이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간간이 자식에게, 제자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그리고 서점이 없는 곳에 살고 있는 미지의 독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습관을 생활화할 때, 이 세상은 좀도 행기나는 인간의 마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다운 행복은 책을 읽는 기쁨 속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책을 읽는 재미만 일단 읽혀 두면 어떠한 궁지에 빠지더라도 결정적으로 불행해지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안중근도 윤동주도 찬바람이 이는 혹한의 감방에서 독서를 통하여 꺼져 가는 삶의 심지를 재 연소시켰음을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하여 할 수 있다.

 

4. 대학생활의 길잡이

*강 건 기*

대학의 문에 들어선 여러분들을 환영해 마지않습니다. 여러분들의 오늘은, 수많은 인고(忍苦)의 아픔을 딛고 선 것이기에 더욱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아마 지금 여러분들의 가슴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흥분과 호기심, 그리고 기대감으로 설레리라 믿습니다. 그러한 여러분들의 대학생활이 알차고 보람되기를 바라면서 평소에 가졌던 생각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여러분들을 대학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을 '대학인(大學人)'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대학에 있다는 뜻의 대학인(大學人)이 아니라, 큰 학인(學人)이라는 뜻의 대 학인(大 學人)말입니다.

대학생이란 말이, 잘못된 교육의 결과로 평가 절하되어 그저 삶의 테크닉쯤을 배워나가는 사람이라는 천박한 인상을 떨쳐버리기 어려워서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학인(學人)이요, 학인 가운데서도 대학인입니다.소학인(小學人), 중학인 (中學人)이 아니라 큰 학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의미의 대학인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좋습니다.

그러면 대 학인은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 사람들일까요? 대 학인은 삶의 방편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꾸려는 학인들입니다. 그들은 인간 자체, 사람 되는 일 자체를 배움의 본질로 알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그들은 또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더 사랑하는 학인들입니다. 지식이란 많이 아는 것이요, 양적인 것이며, 자꾸 쌓아가는 외적인 앎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본질적으로 변혁시키는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따로따로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지혜는 우리들 삶의 본질로 꿰뚫어 보는 슬기이며, 그것을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워가는 데서 나타나는 근원적인 앎입니다. 또 그것은 안으로, 존재의 바탕으로부터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의 빛이 번뜩일 때 우리는 더 우리다워지고, 아는 대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갖추게 됩니다.

대 학인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증진시키는 학인들이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여러분들이 사람되는 길―지혜 사랑하는 큰 학인들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알다시피 우리는 지금 과학과 물질이 최고도로 발달된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하여 우리들의 생활은 많이 편리해졌고 물질적으로도 어느 정도 풍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들이 과거의 선인들보다 정말로 더 잘 사로 있는 것일까요? 정말로 더욱 인간답고 의미 있는 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과연 그렇다'고 자신 있는 답변을 할 수 없는 데에 우리 시대의 고민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과학과 산업의 발달이나 그로 인한 생활의 편익, 물질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핵전쟁의 공포, 환경의 오염 등은 인류의 존망을 가늠하기 어렵게 하는 어두운 그림자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인류의 공존과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70년대 말까지 우리가 보유하고 있었던 핵폭탄은 당시 세계 인구 일인당 화약 15톤씩 할당될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을 죽이는데 화약이 1kg까지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정신적 질식 상태 속에 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또 1971년 발표되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로마클럽 보고서는 맹목적인 성장일변도의 산업화와 공업화의 촉진이 끈내는 환경을 오염시켜 지구의 종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놀라운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그 문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이러한 외적인 징후들은 현대가 앓고 있는 내적인 병의 표현에 불과합니다. 내적인 병은 눈에 보이지 않과,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Ⅱ. 문장표현의 기초

다음은 학생이 쓴 글인데, 이 글을 읽고 비문법적 문장을 찾아서 고쳐 보시오.

1. 통일시대의 언어정책

우리의 어문학 분야는 정부의 북방정책과 북한관계 문헌의 개방에 힘 입어 지난 5 년여에 걸쳐 공산권의 언어정책을 비롯하여 북한의 언어정책과 언어 연구의 실상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업적을 쌓아왔다. 처음에는 주로 개설적인 단행본을 중심으로 내용을 평설 이해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나 중국과의 왕래가 허용되고 옛 소련이나 동유럽의 많은 나라들과 외교관계가 수립됨에 따라 전문적인 서적과 학술잡지를 구입할 수 있게 되어 이제는 북한의 어문관계 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1984년 학술원의 자문기관으로 문을 연 '국어연구소'는 북한 어문문제를 그런대로 관장해 오다가 1991년부터 문화부 산하에 정식으로 '국립국어연구원'이 발족됨에 따라 북한의 어문문제를 조직적으로 조사 연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는 정부의 북방정책이 추진되기 전까지는 북한의 어문문제에 대하여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였다. 언어에 대한 태도도(역시) 북한과는 다르거니와 우리의 어문문제를 총괄할 수 있는 국가적인 기관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북한의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는 '국립국어연구원'을 발족하였고 그 사이 담을 쌓고 지내던 북한과의 교류 가능성이 날로 중대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을 둘러볼 때 통일에 대비한 어문정책의 수립은 필연적이라고 믿는다. 북한은 분단 이후부터 지금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남한의 어문문제에 관심을 두면서 그들의 관점에서 비판도 하고 통일 후의 언어정책을 그 나름대로 수립하여 왔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북한의 어문문제에 대한 연구업적을 발판으로 삼아 통일에 대비하는 우리 나름의 어문정책을 필자 나름대로 그려내 보고자 한다.

우리의 어문 정책은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이웃나라 언어를 학습하고 이를 관장하였던 기구가 국가기관으로 설립되어 사대교린을 뒷받침하여 왔다. 삼국시대의 사대, 고려시대의 통문관, 이조시대의 사역원과 승무원, 갑오개혁 이후의 외국어학교 등을 통하여 언어정책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우리의 어문정책은 당시의 공용문자였던 한자와 공용문이었던 한문이나 이의 변종인 이두문을 바르게 쓰고 정확하게 구사하는 면에만 정책적인 배려가 가해졌다. 물론 민족문학자였던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를 계기로 하여 표기법이 마련되고 민족공통의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히기는 하였으나 한자와 한문의 위세에 눌려 올바른 발전의 길을 걷지 못하였다.

우리의 어문정책이 민족문자와 민족어 중심의 정책으로 방향을 바꾼 것은 오랫동안 천시되던 언문이 한자 한문을 대신하여 공용 성을 얻으면서부터 비롯된다. 옛 대한제국 시대 말에 정부 안에 세워진 '국문연구소'가 수 년 간에 걸친 연구 끝에 내놓은 <국문연구의정안>은 우리의 문자와 표기법에 관련된 역사적인 연구가 집성되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숨을 쉴 수 있는 어문정책의 뼈대를 잡았다는 점에서 큰 역사적 의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모처럼 일기 시작한 자주적인 어문정책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로 말미암아 된서리를 맞고 말았다.(맞게 된다)

일제는 한 동안 '언문철자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말 표기법을 만들어 우리말 교육과 그 사용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였지만 형식에 그칠 뿐이었고,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말 대신 일본어를 민족어로 바꾸겠다는 언어동화정책의 추진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언어동화정책에 항거하는 우리 어문학자들의 민족수호운동도 만만치 않았다. 옛 한국시대에 주시경 선생과 같은 애국적 어문학자들의 손으로 싹이 튼 민족어 연구와 그 수호 발전 운동은 특히 1920년대 후반부터 열기를 더하여 조선총독부의 표음적 맞춤법을 표의적 맞춤법으로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사전 편찬을 기획하여 학회를 강화하여 마침내 맞춤법을 제정하고 표준말을 사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사전 편찬으로 열매를 맺으려는 즈음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옥살이를 해야만 하고, 그 가운데는 일제의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이윤재 한징 선생과 같이 유명을 달리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일제통치기간의 어문정책은 주체를 달리하는 민족어 말살정책과 민족어 수호정책의 대립 항쟁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현재의 남북한의 언어정책은 각각 다른 정책적 기조 위에서(위에)(위에서) 있느니만큼(있느니만큼)(있는), 객관적으로 보면 독립된 나라의 국어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양쪽 다 자신들의 처지에서 통일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으로 보면 한 나라의 언어정책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과 같이 민족과 언어가 기본적으로 다른 경우데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원래 같은(한) 나라였고 같은(한) 민족으로 구성된 한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는 설마 흡수통일이나 된다고 하더라도 식민지 언어정책론은 적용되기 어렵다. 필자는 통일에 대비한 남북한의 언어정책을 그 나름의 특수성을 존중하여 잠정적으로 '통일어문정책'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러면 한반도의 통일어문정책은 어떠한 모습을 띠어야 할까? 우선은 각종 언어규범을 한 그릇에 담아 동질성을 확인하고 이질성을 극복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작업이 상호 이해의 관점에서 시도되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양측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어문학자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각각 마련한 통일안을 절충하여 <민족어규범 통일안>을 제정하는 일에 손을 대는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남북한의 어문학자들은 나라 안팎에서 공식적으로나 비공식적으로나 끊임 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대고 의견 교환을 하는 기회가 많아야 한다.

분단 반세기는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어문문제 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 걸친 그 동안의 이질화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야 할지 신통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어는 민족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보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 어문정책에 그만큼 비중이 주어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많은 것이다.

 

2. 나의 대학생활 설계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일주일의 계획은 월요일에 세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의 대학생활 설계 또한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라 생각한다. 일생 중 언젠간 거쳐야 할 통과제의라는 점에서 대학생활은 그리 낭만적으로만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취직의 예비학교여서도 안 될 것이다. 나는 늘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삶의 지혜와 지식은 20대 초의 학문적 욕구와 성취에 달려 있다."란 충고를 다시 생각하며 나의 삶의 지혜와 지식 역시 대학생활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이것을 토대로 나의 대학생활에서 찾으려는 것과 해야 할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첫째, 1학년 2학기 이후 적어도 한번은 장학금을 받고 싶다.

이것은 나의 학문에 대한 성의와(열의) 부모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성격의 개조이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자라온 나는 매사에 적극적이질 못한 점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러나 험난한 세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취적, 개방적, 적극적, 실천적 사고와 행동이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세 번째는 견문을 넓히고 싶다.

1학년 여름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2학년 여름방학엔 유럽을, 3학년 때엔 중국을, 4학년 때엔 미국을 견학하고 싶다. 세계를 한국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너무 편협(안일)하지 않은가. 보다 폭넓은 교양 지식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 내 욕심이다.

네 번째는 건강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사고가 깃든다는 말이 있듯이 짧은 인생을 젊은 시절의 나약과 게으름 때문에 생긴 질병에 허덕이고 싶진 않다. 물론 건강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 수 있는 한 건강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특히 음주는 절제해야 한다.(하겠다)

다섯 번째는 학문적 지식의 습득이다.

물론 이 속엔 전공과 외국어 공부도 포함된다.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자신의 모국어도 모르는 자이다."란 괴테의 말처럼 어학 전공에 대한 사막에서 물을 찾는 듯한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말 것이다.(시킬 것이다)

여섯 번째 자격증 획득이다.

현대는 자격증(license)의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나의 전공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진출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2급 정교사 자격증, 판매사, 의류기사 등등 위에서 제기한 이를 위해 내가 선택한 이 학과의 공부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부수적이지만 여기에 한가지 더 첨가를 한다면 앞으로의 생활은 컴퓨터의 시대라 생각되어 컴퓨터의 조작과 기본적 이해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운전면허증 또한 시간을 절약해서 대학생활 중 취득해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누구나 일생의 한번은 해야 할 일 즉 나의 잃어버린 갈비뼈를 찾는 것이다. 물론 이 일은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겠지만 나를 찾아 헤매는 외기러기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보아야겠다. 사랑이란 일생에 단 한번 앓는 홍역 같은 것이라 한다.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나의 배필을 찾고 싶다.

이상으로 나의 대학생활계획의 핵심을 대충 설명한 것 같다. 나는 어디서 들은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젊은이가 이상을 갖지 않는 것은 정신적 자살이나 다름없다."는 말과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은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며, 우리의 출발은 오직 그것을 위해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을 항상 뇌리에 간직할 것이다.

"당장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공과 실패는 이 차이일 뿐이다."란 말을 인용하면서 대학생활 설계의 나래를 접는다.

 

Ⅲ. 작문의 절차

다음 글들을 읽고, 구조를 분석한 후 200자 원고지 10매 내외로 개요를 작성해 보시오.

1. 민족문학론의 논리와 실천

민족문학에 대한 관심과 그 논의가 문학사적인 차원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의 급격한 사회변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 당시 우리 사회는 봉건적인 사회체제의 모순 극복을 위한 개혁운동이 각 방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침략적인 서구 자본주의 세력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주독립운동이 지식층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된 바 있다.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갑신정변 갑오개혁 등의 근대화 작업이 시도된 바 있으며, 동학 농민혁명을 통해 민중적인 의식의 성장도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와 같은 사회단체가 결성되어 자주민권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애국계몽운동이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추진되기도 한다.

이 같은 사회적 격동기에 민족적인 자기 인식의 가능성을 촉발하게 된 것은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신문학운동이다. 19세기 말엽에서부터 이미 문학은 개인적인 정서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봉건적인 질서에 대응하는 새로운 삶의 요구를 대변하기도 하였으며, 사회현실의 비리와 모순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리고 침략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적 저항의식을 구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문학정신의 변화는 곧바로 새로운 시대의식을 형상화할 수 있는 문학적 형식의 전환을 초래하여, 민족문학으로서의 요건과 그 방향에 대한 자각과 인식을 심어 주게 된다. 그 결과 국문운동을 통한 민족문학의 기반 확대와 함께 민족정서와 시대적 요구에 부합되는 문학적 형식의 새로운 추구도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민족문학 운동은 일제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반봉건적인 시대정신과 민족적 자기 인식을 문학적으로 실천해 나아가는 데에까지 전개되지 못한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는 우리 민족의 모든 권한과 소유를 박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민족의 존재와 그 정신마저 말살시키고자 하는 방향으로 확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강탈에 대응 도전하기 위한 민족의식의 구현을 위해 문학은 반제 반식민주의의 저항성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지만, 일본은 고도의 문화 통제를 통하여 이를 왜곡시킨다. 3 1운동 이후 민족문학 운동이 사회운동과 결합되면서 계급문학 운동의 사회적 실천에까지 투쟁적인 의식을 고조시켜 나아갔음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후반에 신체제의 논리 속으로 상당부분 함몰된 것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학의 방향과 그 지표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해방과 함께 다시 구체화되고 있다. 식민지 시대의 모든 반민족적인 문화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족국가의 수립을 계기로 민족문학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족적 자기 인식과 문학의 형상성의 문제가 가장 감격적으로 조우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대변해준다. 하지만, 논리와 실천의 조화를 추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단의 비극을 다시 체험하고 전쟁의 혼란을 겪는 동안, 민족문학의 개념마저 변질되기 시작한다. 민족 전체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민족문학에 대한 논의는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민족문학론의 전개 과정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면서 민족문학의 논리를 정립시키기 위한 노력이 다시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년대 초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의 민족문학론은 우리 근대문학의 성과에 대한 문학사적인 정리 작업을 바탕으로 문학을 통한 역사의식의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 출현의 논리적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봉착하게 된 정치 사회적 상황의 위기, 사회계층의 대립과 갈등, 정신문화의 위축 등은 민족의 주체적인 생존과 그 대다수 구성원의 삶의 균형이 절대적인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현실인식을 가능하게 했고, 문학의 측면에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민족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의미 추구와 그 동질성 회복이 요구되자, 자연스럽게 민족문학론의 현실적인 근거 확립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70년대의 시대 상황 속에서 민족문학론은 문학과 사회 전반을 포괄하는 가장 역동적인 주제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70년대의 민족문학론이 민족의 현실과 역사적 조건에 대한 문학적 자기 인식과 그 확대를 통해 논의의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기왕의 민족문학론과 근본적인 세 가지의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는, 민족문학론의 전개과정으로 볼 때 문학에 대한 민족적인 자기 논리를 정립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노력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전후하여 논의되었던 민족문학론이 민족과 문학에 대한 대타적인 인식에서 출발되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70년대의 민족문학론은 민족문학의 자기 정립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민족문학론의 성격 자체의 전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왕의 민족문학론은 문학의 민족적 고유성과 특수성을 문제삼거나 문학의 보편성과 본질 문제를 민족의식과 연결시켜 논의하고자 하는 일종의 표현론적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을 통해 그 민족적 독자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났으며, 민족적 정서와 감각의 불변상을 문제삼기도 하였다. 하지만, 70년대의 민족문학론은 민족의 주체적인 생존을 중시하고 그 역사의식의 문학적 형상성을 문제 삼음으로써 민족 전체의 삶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추구하는 일종의 가치론적 개념을 제기하고 있다. 민족문학론이 표현론의 범주를 벗어나 가치론의 차원으로 그 논의의 방향을 전환하고 있는 것은 민족문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라는 문제보다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당위론적인 과제에 더 집착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민족문학론이 그 문제적 범주를 가치론의 차원으로 전환함으로써 문학의 가능영역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역사성을 부여받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70년대의 문단에서 이루어 리얼리즘론 제 3세게문학론 농민 문학론 민중문학론 등은 모두 민족문학론의 실천적인 논리이면서 동시에 그 가치 추구의 방법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 같은 70년대 민족문학론의 긍정적인 성격은 그 자체 안에 보다 논리적으로 규정되어야만 하는 몇 가지 문제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문학과 이념, 문학과 민족적 주체화의 논리, 문학적 형상성과 민족의식 등의 논의로 확대될 수 있으며, 특히 최근의 민중문학론의 논리와 한계를 동시에 규명하고자 하는 비평사적인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민족문학론은 우리 근대비평의 가장 커다란 쟁점의 하나로서, 민족과 문학의 문제를 동시에 포괄해 나아갈 수 있는 정신사적인 과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2. 한국문학의 연속성 문제

한국문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단일 개념만이 있을 따름이라고 주장되어야 할 것임은 새삼 물을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고전문학> <한국 현대문학> <신문학> 등의 용어가 실제 통용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목도한다. 물론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없는바 아니다. 이유를 든다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한국사 자체에서 연유된다. 19세기 말, 소위 서구의 충격이 한국에 가해 왔을 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한국은 국가 개념을 상실하여 해방될 때까지 36년간 식민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즉, 국가 개념이 없고 민족 개념만 존속되어 온것이다. 이 국가 개념을 우리가 강조한다면 1910년에서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의 기간은 그 전과 후를 구분케 하는 것이다. 그 의식 구조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국가회복의 염원이 우선하게 되며, 문학에서 그것은 父意識의 회복의지로 드러난다.

둘째, 1910년대 새로운 문학을 시작한 사람들이 계몽주의를 표방하고 나섰다는 점을 들수 있다. 어느 나라든지 계몽주의란 신구세대의 교체 및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의 중요한 이슈로 내세우는 것이다. 19세기 말 서구의 제국주의 침략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충격해 왔을 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3국에는 맹렬한 계몽사상이 일어났다.

우리는 우리의 재산 -정신적이나 물질적- 의 전부를 우리나라 우리 자손을 위하여서만 사용되어야겠고 요하거든 조상의 묘지도 헐고 부모의 혈내도 우리 양식을 삼아야겠다. 우리는 선조도 없는 사람, 부모도 없는 사람(어떤 의미로는)으로, 금일금시에 천상으로서 오사에 봉임한 신 종족으로 자처하여야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조상의 묘지와 혈내도 양식으로 삼아야 된다는 주장이 당시로서는 파천황의 만용에 속한다는 점이다. 오늘날과는 달리 이 주장은 유교에 대한 극단적인 발언인 것이다. 그러나, 이광수의 이러한 견해는 중국 일본쪽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중국 일본이 국가개념을 지녔음에 대해 한국은 주권을 상실한, 이미 식민지 상태에 처해졌다는 점이다.

만일 아직도 조선왕조가 국가 개념으로 놓여 있는 상태에서 이러한 이광수의 풍속 개량의 계몽주의가 감행 되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역사의 올바른 방향성에 결부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가 상실의 마당에서는 그러한 과격한 풍속 개량의 계몽사상은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그가 공격하는 그 풍속 내용이야말로 바로 상실된 조선이라는 국가 개념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독립을 찾아야 한다는 명제와 풍속 개량으로 근대화해야 한다는 명제는 완전한 모순 개념으로 놓이게 되었던 것이다. 1920년 이후 이광수가 도리어 철저한 민족주의자로 둔갑하여 조선주의 신봉자로 탈바꿈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남선의 경우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한국 신문학이 마치 신 종족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생각함으로써 출발되었다는 사실은 고전문학과 신문학을 단절케 한 중요한 이유로 삼을 수 있다. 셋째, 한국 문학이 학문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26년 경성제국대학 설립 이후로 볼 수 있다.

보통 학문의 대상으로서는 고전적인 것을 택함이 일반적이다. 가치 및 평가의 안전성 때문일 것이다. 그 위에 식민지 시대였기 때문에 일본관학 측의 정책적 연구방향이 고전과 민속 및 언어학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신문학은 논의의 대상도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고전 중에서도 가급적 한글로 표기된 것을 한국문학의 정통으로 잡은 것이다. 이 때문에 사리 부재한 조선 문인들을 공격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대부분 중요한 기록문학은 한문으로 되어 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남녀상설지사도 물론 문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남녀의 상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최량의 예술일 수 없음은 하나의 상식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식민지시대에서는 한글을 지킨다는 것이 조선적인 것의 숭상이라는 의미에서 오히려 타당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 역사적 제약성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고가 해방 후 국가가 회복된 마당에서도 그대로 연장되는 데 비판의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한글이란 하나의 특정한 문자이며 이 개별문자가 세계 제일이라든가 우수하다고는 할수가 없다. 또 문자가 배우기 쉽고 간단하다고 해서 꼭 편리하다든가 좋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발달은 그리스어의 어미 변화의 복잡성, 그 판별력의 훈련과 깊은 관계를 가진다.

넷째, 식민지 기간 중의 한신문학은 그 내용상 노예상과 저항성과 창조성이 共存되어 있기 때문에 고전문학의 평민 문학과 양반 문학의 二元性보다는 매우 다른 요소가 스며 있음을 들 수 있다. 또한 古典文學이 중국문화권의 영향 하에 있었다면 新文學은 일본 및 서양문학의 영향권에 놓였기 때문에 신문학이 마치 단절된 것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단절 의식은 마땅히 소멸될 수밖에 없다.

첫째, 韓國史를 國家 개념의 측면보다 韓民族의 역사 전개의 과정으로 본다면 韓民族이 존속하는 한 엄연한 연속성이 놓이는 것이다. 문학이 만일 본능, 정서 쪽을 취급하는 것이라면 이 民族의 의미가 훨씬 직접적인 것이다. 朝鮮王朝 때나 日帝 때나 解放 후나 그 민족, 그 정서의 깊은 바닥의 연속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둘째, 그렇다면 그 韓民族의 역사 전개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몫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韓國語를 통한 저항과 창조의 측면이다. 國家 회복의 명제의 실질적인 모든 양상은 식민지 정책에 대한 應戰力을 뜻하는 것이며, 문학에서의 그것은 한국어의 세련과 그것을 통해 사회적 모순의 표현 및 포착에 임하는 것이다. 이러한 指向性과 함께 또 하나의 方向性으로서의 近代的이라는 것이 놓인다. 世界史 속에 편입되면서 독자의 민족사를 전개함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方向性은 식민지 治下에서는 왕왕 모순개념으로 봉착된다. 自由權과 生存權의 개념이 민족주의 문학과 계급주의 문학으로 대치되었다든가, 朝鮮主義의 추구가 六堂 春園에서처럼 식민지 경사가 길어질수록 타협주의로 전락할 것은 이 두 命題의 동시 수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증거하는 것이다. 이 어려움은 近代 하나만을 全力으로 추구한 국가, 가령 日本 같은 나라와 비교할 때 얼마나 불리한 입장인가는 새삼 물을 것이 돗 된다. <강도 일본 치하에서 文化가 다 무엇이냐!>라고 丹齋 申采浩는 1924년 [朝鮮革命宣言]에서 주장한 바 있다. 이어서 그는 <식민지 통치 하에서의 모든 合法的 文化行爲는 奴隸文化다.>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러한 丹齋의 命題가 반드시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상황 하에서 知識人이 택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文化를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것이냐 저것이냐고 질문을 제출하는 兩斷法은 事實 자체를 놓치기 쉽다. 情山理 전투는 과연 일본 정규군 一個聯隊를 섬세한 抗日 게릴라戰의 白맹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복으로 한국인 마을의 男女老少 수만 명이 학살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느 쪽에 더 큰 比重이 놓이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물음을 제출하면 아무도 정확한 해답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상 이러한 모럴과 사실의 問題가 식민지 기간 속의 한국문학의 평가 기준을 설장하는 데 있어 크게 作用해 오는 것이다.

셋째로 우리가 살펴 두어야 하는 점은 이러한 특수 상황에서 形成된 한국 문학의 特性에 관한 것이다. 그 특성은 한 마디로 民族文學이라는 用語속에 집약된다. 민족 문학이란 말은 近代이후 국가를 형성해 온 나라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用語이다. 국가가 있는 민족이면 國民文學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上位槪念으로서의 民族文學 속에는 민족주의 문학과 계급주의 문학이 각각 下位槪念으로 놓인가. 이 경우 민족주의 문학이란 1924년 무렵 대두된 新傾向派 및 프로문학(KFPF)에 의해 對他意識化된 것으로 六堂 春園 金東仁 廉想涉으로 대표된다. 한편 계급주의, 즉 프로문학은 金八峯 朴英熙 林和 金南天 등으로 대표되어 대립되었던 것이다. 이두 가닥의 흐름은 해방 후에 그대로 연속되어 한국 문학의 두 개의 바퀴를 이루게 된다. 餘他는 전부 이 두 흐름 속에 포함시킬 수가 있다. 가령 染柱東으로 대표되는 척쇄파라든가, 李한求로 대표되는 海外文學派란 그 이데올로기상에서 민족주의 문학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 上位槪念으로서의 민족 문학의 특성을 든다면 ①女性的 偏向(female complex), ②父意識의 回復 내지는 옹호, ③自嘲的인 풍자성 등으로 볼 수 있다. 여성적 편향성이란 金素月 金永郞 韓龍雲 기타의 韓國時의 전통적 흐름이 그 어두나 발상면에서 현저히 여성적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이 소위 純粹時의 모습을 띠었고 그 理論的 기초가 朴龍喆의 [詩的 變容에 대하여] 및 A.E. 하우스만의 時論이다. 父意識의 옹호란 朝鮮主義로 대표된다. 특히 그것은 李光洙의 [端宗哀史],

月 의 [錦 의 피] 및 李泰俊으로 대표되는 {文章}(1939)派의 고전주의 이다. 王朝에의 애착 및 소멸되어 가는 美學의 탐구인 것이다. 한편 自嘲的 풍자성인 理想의 정직한 絶望과 김유정의 토착적인 유머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특히 이후자는 한국 고전인 [興夫傳] 등의 전통에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김동리의 [巫女圖]에서 보여주는 일종의 허무 의지나 유치환 서정주 등의 인간 탐구도 고려될 수 있다. 또 염상섭의 [三代]나 천만식의 [太平天下](1937) 등이 보여 주는 개인과 사회의 발전과 그 관계 파악의 문제도 지적될 수 있다.

넷째, 한국 문학을 하나의 연속적인 單一槪念으로 볼 때 고전에서 현대까지를 동일한 次元으로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중간항(das Zwischenheit)의 하나로 한국인의 가족 구조와 그와 결부된 도덕관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상 朝鮮朝 모랄의 기준은 父子關係 中心의가족게도 속에서 빚어진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한일합방 전과 그 후 그리고 8 15 해방 후의 윤리 교과서 분석에서 이 사실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開化期 이래 허다한 서구 사조의 도입은 그 모럴 척도가 夫婦關係 中心의 가족 제도에서 분비된 것이다. 이 충돌이 소위 자유 연애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간항을 염두에 둔다면 韓國文學의 연속성 회복의 문제는 보다 확실해 진다 변하지 않는 측면은 이뿐만 아니라 문학의 樣式에서도 構造槪念으로 엄연히 놓여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속성 회복에서 자세히 검정해 두어야 할 부분은 20세기 초의 開化期 文學과 新文學이 접하는 부분과 日帝末에서 解放문학이 접하는 부분인 것이다. 실상 이 接點에 대한 해명은 전문적인 것이라서 이 자리에서 논의할 여유가 없지만, 요컨대 韓民族의 역사 전개 과정의 언어로서 이룩된 총제성이 그 전제로 놓인다는 점만은 지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民族文學이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3. '스승'에 대하여

처음에는 '제사장과 행정의 머리'의 뜻으로 불리는 '자충(慈充∼次次雄 = )'으로 쓰이었으나, 중세어로 오면 승려 왕 무당 선생의 뜻으로 쓰이게 된다. 하지만 현대로 넘어 오면서 함경도 지역에서 '무당'으로 쓰일뿐, 일반적으로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으로만 쓰인다. 이르자면 뜻의 바꿈이 일어난 셈이다.

자충(慈充)과 관련하여 특히 신라 전기에 파찰음소가 아직 자리 잡지 못하였음을 고려한다면 마찰음으로 표기되는 '스승'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러한 가능성은 함경도의 말에서 '스승'이 무당을 가리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볼 개연성이 높아 진다.

'스승'은 마립간(麻立干) 니사금(尼師今) 거서간(居西干)과 함께 한 때 임금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던 것이다. 형태소의 짜임을 보면 '스승'은 '사이(間)'를 뜻하는 '슷(間)' {훈몽자회}하에 접미사 '-응'이 붙어 연철되므로 굳어진 말로 보인다. 의미로 보아 '사이'에서 비롯되었음을 드러내었는데 그러면 '스승'이 무슨 사이에서 어떤 기능을 하였을까.

당시의 통치형태는 제정일치의 부족국가 형태였음을 떠 올린다면 '스승'의 구실은 크게 종교지도자 곧 제사장의 일과, 정사를 돌보아야 하는 행정의 책임이 있었음을 인정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앞의 경우 '스승'은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신의 뜻을 인간에게로, 인간의 뜻을 신에게로 전달함으로써 신과 인간의 상호관계를 이어 놓는 중간의 다리-'사이'의 구실을 하였다고 하겠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람을 일러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거니와 동물적으로 육신은 약한 갈대이지만 그 정신은 위대하여 존재들에 대한 참된 값과 그리움, 또한 기다림의 미학을 안고 고뇌하면서 온 날을 떠돌아 살지 않는가.

유엠부찐의 {고조선}에서 밝힌 겨레의 구성을 보더라도 그러하다. 오늘날의 러시아 영토인 우수리강에서 내몽고, 황하강가의 지역에 이르는 중국의 영토에 값하는 광대한 영역에서 크게 예(濊)족과 맥(貊)족이 자리잡고 살면서 조선족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영역에 현재의 한반도를 포함함은 물론이다. 뒤의 경우는 바로 앞에서 풀이한 광활한 영역에 걸치는 예맥의 '사이'에서 배달의 겨레를 다스려간 행정의 통치자임을 뜻함이니, 비유하자면 '스승'은 서구의 역사에서 일천여년을 다스려온 교황에 걸 맞는 거룩한 영혼과 육체의 지도자였다고 볼 수 있다. 단군이 그러하고 환웅이 그만큼 거룩한 '스승'이었다. 단군의 이야기를 쪼갈라 보면 환웅은 환인과 단군의 '사이'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함께 갖춘 통치자였고, 단군은 환웅과 웅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마침내 황웅과 단군 스승은, 예족과 맥족으로 이어지는 조선족을 다스려 나아갔다.

'사이'란 개념은 흔히 시간과 공간을 함께 안은 관계의 내용으로 이해된다. 관계는 사물과 사실들의 상호작용이니 우리의 삶이 이러한 상호작용이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란 거의 없다. 특정한 사물에 대한 인식도 우리들의 정신과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사이'라는 의미바탕을 터 삼아 갈라져 쓰이는 사물이나 사실들의 낱말겨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사이'[sai]로 불리워지는 말들 곧 동음이의어의 분포는 적지 아니하다. 가령 새(鳥) 쇠(鐵) 새-(新)

새(草) 새(日) 새(舌)의 경우는 '사이'와 어떤 유연성(有緣性, motivation)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사이'라는 의미특징으로 볼 때, 이들 동음이의어들은 어떤 유연성을 보이는지 풀이해 보기로 한다. -새(日)의 경우 닷새(五日)에서와 같이 지금도 날짜 단위를 헤아리는 데 쓰이지만 근대어 자료로서 {박통사언해}에도 '-쇄(새)(日)'였다. 지금이니까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았지 이런 말이 쓰일 때에는 해가 지구를 향하여 아침에 돋았다가 하늘과 땅 '사이'로 져 버리는 걸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나머지도 그렇게 '사이'로 풀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가령 하늘과 땅 사이를 난다든지(鳥), 나무와 돌 사이로 보았다든지, 윗턱와 아래턱 사이에 만들어진 근육조직이라든지와 같이 '사이'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흔히 의미는 다른데 그 소리가 같은 동음이의어일 때 흔히 동음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다른 소리나 형태로 나갈 수 있는 말들이 갈라져 감으로써 서로가 함께 무리없이 쓰이게 된다. 그 보기로 '-새(日)>해 셰( )>혀 셰-(白)>희-'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음운론적으로 보아 조음방법의 같음을 따른 형태들로 갈라짐으로 보인다.

 

Ⅳ. 논문작성법

다음 글들을 참고하여, 200자 원고지 30매 내외로 '국어순화방안'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작성해 보시오.

1. 우리말 만들어 쓰기 방안 고찰

말이란 애초부터 필연적인 뜻을 갖고 태어나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공감과 역사적 계승이라는 '사람의 뜻'에 따라 생겨나는 인위적 현상이다. 이렇게 말의 뜻과 쓰임은 순전히 버릇에서 온다. 그럼으로, 세속 된 감정 속에서 싹튼 말도 이성의 단비를 맞히려 키우게 되면, 그 말의 품위가 높아지고, 또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의 삶의 품위가 함께 높아진다.

이렇게 버릇의 결과로 쓰이는 말은 다시 사람의 생각을 이끌어 간다. 개 짖는 소리를 '멍멍'과 '바우바우'와 '왕왕'으로 달리 말함으로써 이 소리를 듣는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가? "사물-말-생각"이라는 삼각관계에서, 말은 사물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한다. 그러므로 말은 사물과 생각의 중간 세계에서 사물의 색깔을 결정하는 색안경과 같으므로, 인식이 대상의 가치를 결정한다면, 말은 인식을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말 속에 담긴 알맹이 구조의 힘이다.

20세기는 언어학의 시대라고 한다. 말의 알맹이 구조인 '얼'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말에 좋은 얼을 담아 써야 한다. 남의 정신으로 헛소리를 지르며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을 닮으려고 한다. 애 쓸 것이 아니라, 제 정신으로 제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 멋대로 여유 있게 살아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우리말을 그대로 담는 훌륭한 한글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사람은 사물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의미 속에서 산다고 볼 수 있는데, 말 속에 담긴 '사물의 의미'가 곧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의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이 사회적으로 널리, 역사적으로 오래 말 속에 담겨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의 바탕이 되는데, 이가 곧 말 속의 얼이며 혼이다. 이렇게 볼 때, 말은 죽어 있는 기호의 세계가 아니라, 살아 꿈틀거리는 영혼의 세계이며, 빛이 눈으로 볼 수 있

는 모든 것들의 겉모양을 드러낸다면, 말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사물의 주관적 가치를 드러낸다. 그런데도, 우리말에는 새롭고 좋은 뜻을 담아 써버릇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바로 우리말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큰 절벽이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애국 애족을 강조할 때, 우리 역사나 문화의 우수성과 자랑거리를 앞세운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의 출발점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소중한 내 생명의 뿌리인 조상 대대가 살아 온 이 땅이니 조국과 민족이 소중한 것이지, 우수하고 자랑거리가 많아서 소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존중'이라는 생각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은 '자기'와 관련된 절대 가치인 조국이나 부모, 그리고 우리 문화와 우리말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우리말의 소리는 발음하기 쉬우며 부드럽고, 알아듣기가 쉽고 아름다워야 하며, 그 발음이 통일되어야 한다. 소리내기가 까다로운 말은 생명이 짧다. "한아버지→할아버지, 폐염→폐렴, 곤난→곤란"들이 그 예이다. 또 "나는 새"하면 알아듣기가 어려우므로 "날으는 새"라고 말하는 이가 많은 것도 당연한 흐름이다. 같은 말을 누구는 '사건' 또 누구는 '사껀'이라고 발음하는 국어의 혼란이 온다. 요즈음 "창

고→창꼬, 등기→등끼, 사진기→사진끼, 닦다→ㄸ다, 굽다→꿉다, 참된→참뗀"식으로 딱딱하게 발음하는 현상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야 좋다는 쪽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또 외래어의 발음은 우리말 발음식에 길들여야 한다. 굳이 원래 소리에 가깝게 한다고 '뉴욕'을 '뉴우요오크'로 쓰고 이렇게 발음하려고 애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낱말은 생명체처럼 생겨났다가 번창하다가 쇠퇴하여 죽어 간다.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낱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의 생각의 폭이 넓고 생각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낱말의 생명력을 높이려면 우리 가슴에 살아 꿈틀거리는 쉬운 말을 더 넓깊게 써야 한다.

이러한 말의 감성적인 힘은 고사하고 그 뜻의 전달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먹는 피임약"이라고 이름 붙이면 좋았을텐테, "경구용 피임약"이라 이름 붙여서 많은 여성들이 이 약을 먹지 않고, 엉뚱한 곳에 넣는 사람이 많다 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소리'와 '사물'이 직접 결합돼야 한다는 것은 우리말의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길거리의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차 서행'이라는 구체적인 말을 중심으로 좀더 자세히 밝혀 보고자 한다.

위험한 걸거리 공사장이니 모든 차가 천천히 다니도록 안내판을 세워야 하겠다는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안내글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소리'(안내글)와 '사물'(상황)을 별개로 보는 사람은 사물과는 별도로, 필요한 내용을 모두 안내 글에 담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제차 서행(모든 차는 천천히 가시오)'이라는 말을 생각해 냄.

'소리'(안내글)와 '사물'(상화)을 함께 보는 사람은 상황을 보고 알 수 있는 내용은 생략하고 꼭 필요한 말란 안내 글에 담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천천히'하는 말을 생각해 냄.

한글 전용은 한자말을 한글로 쓴다거나, '제차 서행'을 "모든 차는 천천히 가시오"하고 풀어 쓰는 것이 아니라, 사물과 함께 '천천히'라고 쓰는 것이며, 우리 의식의 체계를 허상에서 실상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큰 정신 혁명이 아닐 수 없다. 또 이 길이 우리말을 줄기차게 발전시켜서 모든 이의 가슴에 꿈틀거리게 하고, 살아 있는 이 말들이 다시 우리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구체적인 현실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국어 문제는 경제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이면서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복잡미묘한 말의 생리와 이 말이 사람의 정신과 문화의 바탕이 되는 이치를 밝히는 일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며, 이 국어가 국민 정신을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우리는 국어 문제에 소홀했다. 모든 국가 정책의 바탕이며 시작이 되는 국어 정책을 바르게 펴는 길을, 첫째로 국어 정책 추진 기관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여 국어의 연구 및 정책의 수립과 추진을 맡기는 것이다.

국어의 껍데기 구조인 음운 의미 문법들에 관한 연구는 깊었으나, 알맹이 구조인 얼의 힘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한 듯하다. 이러한 연구를 적극 지원하고, 국어의 앞날을 내다보며 계획하고, 특히 남북한의 국어문제까지도 포함되는 국어 정책의 효율적인 추진을 맡을-지금의 국어 연구소보다 훨씬 강력한-국가 기관을 세워야 한다.

둘째로, 사회의 지도자들이 모범된 국어 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

말은 물과 같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 사회의 지도자들이 우리말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말을 바르고 품위 있게 쓰면 자연히 모든 사람들이 이를 본받게 된다.

셋째로, 우리말을 잘못하고서는 기를 못 펴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대학 시험은 물론 각종 취직 시험이나 학위 받는 시험 등에 국어 시험의 폭을 훨씬 넓혀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국어 시험에 떨어지면 진급할 수 없고, 석사 박사 학위 심사 때에도 국어 시험에 떨어지면 학위를 주지 않으며, 교사나 교수도 국어 시험에 붙은 사람에게만 자격을 준다고 한다. 대학생에게도 받아쓰기 공부를 시키고, 학위 논문 심사도 철자법부터 따진다고 하니, 초등학교 1∼2학년 때만 받아 쓰기를 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국어 시험도 지금처럼 한자를 쓰게 시킨다거나 문학 작품의 작자나 연대를 묻는 식의 내용이 아니라, 말에 대한 섬세한 감각과 말의 논리성을 볼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넷째로, 새로 태어나는 어린이의 이름을 우리말로 짓도록 호적법을 고쳐야 한다.

지금 우리의 이름을 한글로 외우면 잘 외워지지 않으나, 한자로 외우면 쉽게 외워지는 까닭은 한자 이름을 한글로 쓰면 그 뜻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예 뜻이 있는 우리말 이름으로 붙여 주면 한글로 써도 쉽게 외울 수 있고 아름답게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딸 이름을 '봄빛' 아들을 '한별'이 지었더니, 둘레 사람들이 잊지 않고(10여년 전에 내 강의를 슬쩍 들었던 사람들까지도) 아이

들 이름을 부르며 좋다고 한다. "한밭, 밤골, 새재"들의 우리말이 "대전, 율곡리, 조령"들의 공식적인 땅이름이 있는데도 끈질기게 불리는 것은 이런 말이 우리 가슴에 살아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땅 이름을 수천년 지켜 온 우리말로 되돌리고, 사람 이름도 옛날처럼 우리말로 지어 부를 때, 우리말과 우리 얼의 튼튼한 뿌리 위에 우리 문화가 무성하게 번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같이 신문 방송이란 대중 전달 매체가 발달한 상황에서는 신문말과 방송말이 국어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신문말과 방송말은 어떠했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쓰고 있는 숱한 외국말들을 신문과 방송에서 퍼뜨려 놓지는 않았는가? 원고를 빨리 쓰긴 해야겠는데, 선뜻 우리말이 생각나지 않아 할 수 없이 영어를 쓴다는 어느 기자의 말처럼, 우리말 실력보다 우수한 영어 실력으로, 세계를 내다본 탁 트인 안목(?)으로, 읽는 이나 듣는 이들이 이 정도의 외국말을 모르겠느냐는 착각과 서양을 닮아 간다는 즐거움과 환상으로 즐겨 외국말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스 데스크, 영 스튜디오, 베스트셀러 극장, 스포츠 하이라이트"들의 제목이 과연 우리말의 발전을 위하여 보탬이 될 것인가? 그나마 이들 말들이 대부분 일본의 신문이나 방송에서 따온 말들이 많다니, 이제 깊이 뉘우쳐야 할 일이다. 신문 방송이 '보도 기관'이란 쪽에서 보면 사회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지만, '언론 기관'이라는 쪽에서 보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이다. 일본이나 미국을 닮으려는 이들에게 정신 의학자 이동식 박사의 다음 글을 읽히고 싶다.

개인 노이로제의 경우를 보면, 자기의 독립심과 주체성이 침해 당하고 오랜 시일 외부의 침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계속되면, 마음 속에 나를 압박하고 구속하고 나의 주체성을 침해하는 원수의 대리기관이 자리를 잡는다. 이것이 내재화 된 적이요, 내부의 적이다. 이 마음 속에 자리를 잡은 원수는 항상 마음 속의 나를 보고, "너는 못난 놈이다. 세상에서 너와 같이 못난 놈이 어디 있느냐?"고 압도해 온다. 그러면, 그는 늘 이러한 굴욕적 상태에서만 머물러 있기가 너무 비참하기 때문에, 바로 이 원수를 숭상하고 닮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이것은 민족에서도 개인과 같다.

학교의 분위기는 교사들의 말씨에 달려 있다. 교장과 교사가 우리말 사랑의 마음이 깊어 몸소 실천한다면 학생들은 이를 본받게 될 것이다. 말을 가르치는 데는 웃 사람이 모범을 보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지 않은가?

다음으로 국어 시간에 말하기 짓기 쓰기들의 지도를 많이 해야 한다. 국어 교사가 청산유수로 박학다식하게 말 잘하는(?) 강의를 해야 실력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학생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정리하도록 이끌면서, 우리말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가르쳐야 한다. 학문이란 결국 차분하고 섬세한 생각으로 사물을 보면서, 이를 분석하고 체계를 세우며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에 대한 섬세한 감각이 필수 요건이며 공부 잘하는 기본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혀야 한다. 책을 많이 읽으며 새롭고 좋은 말들을 만나면서 생각이 깊어진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공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라면, "학교, 선생님, 숙제, 참고서, 어렵다, 성실히"들의 낱말만 눈에 띌 뿐 "연구, 밝히다, 이치, 깨닫다, 분석, 궁리하다"들의 본질적인 낱말을 쓸 줄 모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국어 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1주당 국어 평균 시간이 230분인데, 잘 사는 나라들은 300∼600분이라고 한다. 국어는 우리 말이므로 쉬운 교과이며, 많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은, 말에 대한 깨달음이 곧 삶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이치를 모르는 무딘 생각이다. 이렇게 국어 교육을 바르게 펼치면, 우리말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생각과 삶이 깊어질 것이다.

철학은 삶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돕는 학문인데도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식 한자말을 통하여 철학을 했기 때문에, 오히려 철학이 삶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이해되고, 대학을 졸업해도 뿌리잡힌 생각의 체계를 펼치지 못하는 철학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에 뿌리를 박은 쉬운 말을 바탕으로 철학을 함으로써, 우리말의 철학적인 깊이를 개척하면서, 우리 생각을 깊이 있고 체계 있게

세워 나가야 하겠다. 칸트의 '이데아(Idea)', 키에르케고르의 '실존(Existenz)'이라는 말도 평범한 말이었는데, 철학적인 뜻을 담아 쓰는 버릇함으로써, 오늘의 좋은 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좀 거친 느낌이다. 말이 거칠고 생각과 삶의 모습이 거칠다. "말-얼-삶"은 "피-살-뼈"처럼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면서 결과이기 때문에 한가지가 거칠면 모두 거칠어진다. 그런데, 얼(생각)과 삶은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가장 구체적인 우리말을 바르고 곱고 아름답고 힘차게 발전시킴으로써 우리의 생각과 삶을 또 이렇게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말을 발전시키는 첫째의 길은 '자기 존중'을 바탕으로 우리말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 다음으로 말에 대한 감각이 곧 삶에 대한 감각임을 깨닫고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각으로 우리말을 가다듬어 써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우리말은 쉬운 새 말이 자꾸 만들어져 어휘가 풍부해지고, 말의 소리가 아름답고 뜻이 높아지고 깊어질 것이며, 말뜻, 말맛, 말의 짜임이 바르게 될 것이다.

 

2. 세계화와 한국어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은 여러 방면에서 비상이 걸려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방면에서 국민 모두가 마음을 졸이고 있을 정도로 사정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수입 초과가 엄청난 액수이고, 외국 빚의 이자와 원금 일부를 갚는 데 수조 원이 들어간다고 하는데, 그 가장 큰 책임은 국민에게 잇는 것 같습니다. 외국 것이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풍조가 나라의 경제를 좀먹고 있습니다. 양담배, 양주, 고급 골프채, 화장품, 외국 자동차, 심지어는 세간이나 건축 자재나 옷이나 먹거리에 이르기까지 외국에서 들여오고 잇습니다. 국산이 그보다 못할 것이 없는 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이 지나치게 외국을 우러러보고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심리로 말미암아 최근에는 외국말에 의해 우리말과 글이 심하게 더렵혀지고 있습니다. 언론 기관마저 이에 앞장을 서고 있는 형편입니다. 거기에다 최근의 '세계화' 바람은 이 경향을 극한에까지 몰아 붙이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세계화인 것처럼 생각하고, 초등 학교 아이들까지 영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교육 방침을 세우고 있으니, 학부모들은 다투어 영어 과외에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쏟아 붓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과외로 나라가 망할 판이데, 영어 과외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요즘 외국 연수 바람은 수조 원의 나라 돈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며, 무슨 일들이 그렇게 많은지 외국 나들이에 6조 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도 우리 나라 국민이 지나치게 외국을 우러러보고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심리는 그 뿌리가 매우 깊은 데서 있습니다. 옛날 우리 한 아버지(선조)들은 중국을 우러러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중국과 같아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땅이름 사람 이름마저 중국에 팔아 버렸습니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물론이고, 한글이 말들어지고 난 뒤에도

자기 말과 자기 글자는 낮보고서 중국의 한문 한자에 매달려 살아왔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나라 밖으로 향하는 이 마음이 일본으로 '강제 이동'을 당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일제 찌꺼기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뿌리에 지금은 미국의 줄기와 잎이 무성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우리 국민의 정신세계는 병들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자라는 아이들에게 민족 자주 정신과 민주주의 정신을 심어 주는 것을 교육의 근본 목표고 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를 잊고 밖으로만 향하는 국민 정신을 바로 잡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길러 주는 교육의 방법은, 올바른 국사를 가르치고, 그 나라의 말과 글을 잘 가르쳐서 겨레의 자주 정신을 굳건히 심어,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 지금 서두르고 있는 교육 개혁 방안은 이러한 사실을 별로 머리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국사를 소홀히 다루러 하고 있는 것 같고, 영어에만 치우친 언어 교육은 국어를 소홀히 하려는 것 같은 인상마저 강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민족 교육의 앞날을 위해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며, 세계화를 위한 바른 길도 아닙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형편은 매우 위험한 지경에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국민 모두가 굳건한 민족 자주 정신으로 무장함과 동시에 자라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정신을 심어 주어,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힘을 길러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사와 국어 교육을 강화하여, 겨레의 자주 정신을 굳건히 세워야 할 것입니다. 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바로 보는

눈을 길러 주는 길이며, 우리말은 우리의 정신 세계와 밀착되어 있고 우리 한글은 우리말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그것을 적는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는 겨레 역사의 필연적인 길입니다. 그러나 국민 모두에게 영어를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서두르고 있는 초등학교의 영어 교육은 그 방향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초등학교의 영어 교육에 막대한 돈을 들이고 있는데, 이 돈을 중 고등 학교의 외국어 교육으로 돌린다면, 지금과 같은 부작용 없이, 그 효과는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세계화'의 길은 이런 가까운 데에 있는 것입니다.

 

3. 조선어학회 수난의 뒤안길

일제가 우리 나라를 삼키고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이 땅에서 물러갈 때까지 36년 동안 우리 배달 겨레가 그들에게 당한 곤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여기 '조선어학회 수난'에 연유된 그 당시의 시대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1919년 3 1전쟁을 겪은 일제 군국주의자들은 무단정치의 잘못을 깨치고 잠시 누그러져 한 때 언론 집회 결사 등이 허용되어 1920년부터 우리말 신문과 잡지가 나오게 되고, 1921년에는 우리 학회가 '조선어연구회'란 이름으로 활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불만이 가시지 않아 우리 겨레의 반일사상을 처단하기 위하여 세월이 갈수록 악법과 학정을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1936년 12월에는 '조선사상범 보호 관찰령'을 만들어 그들의 비위에 거슬린 사람들을 '요시찰인'이라 하여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뒤이어 1937년 6월 7일에는 '수양둥우회' 회원들을 무조건 검거하였고 1938년 2월에는 '홍업구락부'에 검거 선풍이 일어났으며 1938년 4월 1일부터는 '조선교육령 개정령'(칙령 제103호)에 따라 그나마 이름만 남아 있던 '조선어'를 모든 학교의 교과목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고 1940년 2월 11일부터는 '조선인 씨명에 관한 건'(제령 제20호)을 공포, 이른바 창씨개명을 강제로 시행하였다. 그 해 8월 10일에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고 우리말 잡지들을 점차로 폐간시켰으며, 1941년 3월2일에는 '반전 운동 계획'이 발각되어 관계한 이들을 모두 검거하였다. 그해 3월 10일에는 '사상범 예비구금령'(부령 제48호)을 내리어 독립 운동을 할 우려가 있는 이를 미리 구속할 수 있게 하였다. 1941년 12월8일 미국과 싸움을 벌여 우리 학도병을 모집하여 전장 회전선에 내세워 먼저 죽거나 위험을 당하게 하고, 1942년 봄부터는 조선 국산 장려 단체와 국사 연구 단체들을 모두 해산시켰다.

조선어 학회는 이처럼 일제의 강압 정책이 시행되는 가운데서도 1926년 11월 4일 (음력 9월 29일)에 훈민정음 반포 480돌을 맞이하여 제1회 기념식을 발기하여 신민사 주최 동아일보, 조선일보 및 각 우리말 잡지사 후원으로 식도원에서 거행하고 이 기념일을 '가갸날'이라 했다. 1928년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치고, 1932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29일로 정하였다.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이 발견되어 훈민정음 반포날(정통 11월9일 상한)이 10월 9일로 확인되었으나 집회를 엄금하는 때이라 '한글날' 기념을 하지 못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이하여 '한글날'을 기념하게 되었다.

1926년 11월 6일 중앙 기독교 청년 회관 대강당에서 우리말 우리글의 계몽 강연회를 열었고, 1927년 2월 10일 동인지 《한글》을창간했다. 1932년 5월 1일부터 기관지로서의 《한글》을 펴냈으며, 1929년 10월31일 경향 각계 인사 108명의 발기로 당시 수표동회관에서 '조선사전편찬회'를 조직하고, 그 업무 진행의 선행작업이 되는 한글 맞춤법의 표기 방법을 먼저 제정할 것을 조선어 학회가 맡기로 했다. 1930년 12월 13일 조선어 학회 총회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을 결의하여 3개년의 시일과 125회의 회의를 거쳐 1933년 10월에 완성하였다.

1931년 7월부터 8월까지 여름 방학기를 이용하여 동아일보사 주최와 조선어학회 주관으로 여름 순회 강습회를 열어 학회 회원10여 명이 전국 40개 도시를 분담하여 3년간 실시하였는데, 1934년부터는 일경의 방해와 금지로 중단되었다.

1934년 10월 27일부터 사흘 동안 훈민정음 반포 488돌 기념 사업으로 그 당시 보성 전문학교 자리에서 '조선어학 도서전람회'를 열었다. 1934년 10월부터 표준말 사정 준비에 착수하여 사정위원 73명 가운데 37명이 경기 출신(이 중에 서울 출생이 26명), 그밖의 36명을 각 도별로 인구 비례에 따라 대표자를 선정하여 한 개의 낱말을 처리함에 있어서, 처음에는 경기 출생의 위원에게만 결정권이 있고 혹시 지방 출생 위원 중 이의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이를 다시 심리에 붙어 그 말의 분포를 조사하여 전수가결로 결정했다. 뜻에 대한 이상한 점은 일일이 대가에게 물어서 작성하고 각 전문어는 각기 전문가에게 문의하고, 작업상 전용어는 그 현장에 가서 실지 조사를 했다. 사정이 끝났을 때에는 더욱 신중히 처리하기 위하여 인원 이외의 여러 인사에게 널리 의견을 물을 양으로 이 사정 안을 인쇄하여

각 교육 기관, 언론 종교 기관, 문필가 및 명사 500여 곳에 보내어 비평을 받는

등 신중에 신중을 다하여 1936년 한글날 기념일인 10월 28일에 공포하였다.

1931년 1월 24일 각계 권위 있는 45명으로써 '외래어 및 외래 문자 표기법 협의회'를 조직하여 서양식 외래어 표기법, 일본어 표기법, 조선어 로마자 표기법, 조선어 음성 기호 표기법 등의 일을 연구 고안할 책임위원 3명을 뽑아 각계 전문가 및 나라 안팎의 학계 권위자 60명과 각종 학술 기관의 협력을 얻어 1940년 6월 25일 발표하였다.

1936년 봄에 일찍부터 학회 기관지 《한글》의 편집비를 전담해 오던 이우식을 비롯하여, 전날부터 사전 편찬회 발기인이었던 인사들 중에서 14명의 특지로 사전 편찬을 촉진하기 위한 후원회가 조직되었고, 앞으로 3개년 동안에 편찬 작업을 완수할 약속으로 소요 자금 1만원을 기증 받게 되어 1936년 3월 20일에 종전의 사전 편찬회 측과 조선어학회 측의 합의로써 종전의 편찬회는 발전적 해체를 하는 동시에, 사전 사업 일체를 조선어학회가 전담하여 수행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그 해 4월 1일에 학회 직원 전원이 화동의 새 회관에서 집무를 시작하였다. 1936년 10월1일 집무 분담에서 당시 주위 환경과 내부 사정의 여러 가지 복잡한

현실 관게로 정상적인 분담 진행이 도저히 불가능함을 확인하고 어쩔 수 없이 현실 상항에 수시 응변함으로써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대의 힘과 능률로 매진할 것을 서로 굳게 맹세하였다. 1937년 3월3일에 각계 인사 (김성수, 이윤재, 이극로, 이은상, 이종린, 안재홍, 이인)들의 협의로 '조선 기념 도서 출판관'을 조직하여 학회 안에 두었다. 기념출판은 인간의 길흉대사에서 흔히 과분한 허식으로 소모되

는 경제력을 경제난으로 간행이 불가능한 도서의 출판에 출자할 수 있도록 알선하는 것인데, 때마침 이인 변호사 양친의 회갑이 모두 이 해(1937년) 여름에 당하여 이 출판관의 알선으로 국어학자 김윤경의 저서 《조선문자 금 어학사》를 이인의 출자로써 제1회로 출판하고, 이어 그 해 11월에 오세억의 결혼 기념으로 소설 작가 노양근의 저서 《날아 다니는 사람》을 제2회로 펴냈다.

조선어학회는 끊임 없이 일제의 태도를 주시해 가면서 1940년 3월3일에는 조선어 사전 출판 허가를 간신히 받고, 1942년 3월에 원고 작성이 거의 90% 진전됨에 이르러 대동 출판사 노성식 사장의 봉사적 노럭을 얻어 《큰사전》원고 일부의 조판과 교정을 촉진하던 중 그 해 9월 5일에 사전 편찬원으로 일하던 정태진이 함남 흥원 경찰서에 붙들려 가게 되었다.

정태진이 갑자기 붙들려 가게 된 연유에 대해서 여러 사람을 통해서 발표 되었으나 서로 다른 점이 있다. 내가 보기엔 그중에서도 가장 신빙성이 있는 것은 김상필이 쓴 "조선어학회 수난 사건의 전모"(《나라사랑》제42집, 1982년)이다.

김상필은 이상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네 갈래로 요약하였다.

1. 함남 흥원경찰서 형사가 함흥 영생고등여학교 학생의 사신을 검열하다가 불온 사상이 있다 하여 수사에 착수하였다. 〈김윤경, 함경남도지〉

2. 흥원경찰서 형사가 전진역에서 박병엽과 말씨름이 생겨서 그의 집을 수색하돈 중 여학생 박영희의 일기장에서 볼온 문구를 발견, 그것을 트집 삼아 수사에 착수했다. 〈이희승 권영준. 홍원군지〉

3. 함흥 홍원간 통근 열차 속에서 함흥 영생고등여학생들이 "태극기, 무궁화, 국어 사용자 처벌"등등의 소근거리는 말투를 엿들은 홍원경찰서 형사가 불온 학생이라 단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정인승 이병기, 조선일보〉

4. 정태진이 함흥 영생여학교 학생 사건의 증인으로 흥원경찰성 불려 가서 자백서를 쓴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한글학회 50년사〉

이상 네 가지 사건 발단 설에 대하여 엄밀히 고찰을 해 본다면, 그 어느 설이고 다소의 차이점은 있으나 그 가운데도 제2설과 제4설이 합쳐져야 비로소 사간 발단 진상 파악에 충실한 기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글을 쓰기에 앞서 1973년 11월25일 오후에 이 사건 발단의 장본인인 박병엽, 박영희, 최복녀와 회합을 가지고 되어 그 당시의 사건 진상을 다시 종합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

을 다행하게 생각한다고 한 것을 보면 사건의 전모를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하려는 성의를 엿볼 수 있다. 박영희 씨가 우연하게도 조선어학회 사건과 관계된 것은 함흥 영생여학고 4학년에 재학중이던 18살 때(1942), 그 해 7월 박씨의 삼촌 박병엽 씨(지금 65살)가 함남 홍원읍 전진 정거장에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일본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반일 감정이 컸던 박씨는 퉁명스레 대답했다가 가택 수색을 당했고, 이 때 문제의 일기장 2권이 발간됐다. 그 일기장은 박씨가 영생여학교 2학년 때 쓴 것으로, "오늘 국어를 썼다가 선생님한테 단단히 꾸지람을 들었다."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박씨는 우리말(한국말)을 쓰다 혼이 났던 일을 그렇게 표현했으나 경찰은 그 때 국어인 일본말을 사용하다 혼이 난 것으로 해석했다. 형사들은 그 선생이 일본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줄 알고 박씨에게 "꾸지람을 한 선생이 누구냐?"고 다그치며 고문한 끝에 "2년 전 철 없을 때 동급생끼리 조선어를 '국어'라고 썼다."는 자백만 받아냈다. 형사들은 박씨의 동급생 4명을 불러 심한 매질과 고문을 가해 그 당시 선생이 영생여학교에서 근무하다 조선어학회로 옮긴 정태진 선생과 공민 담당 김학준 선생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중앙일보, 1982. 8. 20.〉

박영희는 이 기사에 대하여, 대체로 같은 내용인데 앞에 말한 대로 일기장 기록과 문초받은 상황만 고쳐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정태진이 홍원경찰서에 붙들려 간 발단은, 위의 《중앙일보》기사에서, 박영희가 일기장에 몇 마디 감상적인 글을 썼다는 것과, 고등계 형사에게 불려 갔지마는 고문당한 일이 없다는 것으로 고쳐 생각해 보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붙들려 간 정태진은 천성이 어

질고 과묵한 탓으로 취조 형사들의 잔꾀에 넘어갈 뿐이 아니었는데 너무도 혹독한 갖은 고문 때문에 생각을 달리했다. 이를테면, 귀신도 모르게 맞아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형무소에 가서 징역살이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면 재판장에 가서 경찰의 고문에 이기지 못해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자의 단체라는 등의 자백서를 쓰에 되었던 것이다. 이 날조된 자백에 따라 일본 경찰은 조선어학회 회원 및 학회와 관계가 있는 분들을 총독부 시정 기념일인 10월 1일 새벽을 기하여 일제히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검거된 이는 다음과 같다.

°1차로 검거된 이들(1942. 10. 1) : 이중화, 이윤재, 이극로, 최현배, 김윤경, 장지영, 이희승, 정인승, 한징, 권승욱, 이석린(11분)

°2차로 검거된 이들(1942. 10. 10∼21.) : 이우식, 김법린, 정열모, 이병기, 이만규, 이강래, 김선기(7분)

°3차로 검거된 이들(1942. 12. 23) : 이인. 안재홍, 김양수, 장현식, 서승효, 정인섭, 윤병호, 이은상(8분)

°4차로 검거된 이들(1943. 3. 5∼6) : 김도연, 서민호(2분)

이상 29분(정태진 포함)이 검속, 이극로, 정인승, 권승욱등 세 분은 함흥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다가 흥원경찰서로 옮겨지고, 이인은 끝내 혼자 함흥경찰서에 구속을 면했고, 1943년 3월 31일에는 신윤국, 김종철이 각각 불구속으로 흥원경찰서에서 증인 심문을 받았다. 그 뒤를 이어 방종현, 백낙준, 곽상훈등 무려 48분이 흥원경찰서에서 증인 심문을 받았다. 구금된29분은 감방에서 말할수 없는 악형을

당하여 억지 자백을 강요당하였다. 물 먹이기, 공중에 달고 치기, 비행기 태우기, 메어치기, 난장질하기, 물로 지지기, 개처럼 사지로 서기, 뺨치기, 얼굴에 먹으로 악마그리기, 동지끼리 서로 치게 하기…등, 이때 취조를 맞은 경찰은 10명 가운데 6명은 한국 사람이었는데 특히 오하라(주병훈), 야스다(안정묵), 시바디(김건치)는 고문의 명수 '사람백정'으로 이름이 난 정도였다. 그들은 고문으로 얻어낸 자백이 사람마다 다르므로 넉 달이 지나도록 심문 조서를 쓰지 못하다가 엉뚱한 일을 붙여 치안유지법 제1조에 해당하는 내란 죄로 몰아서 1942년 1월 하순에 조서를 쓰기 시작하여, 3월 15일에 대체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그때는 미국의 본격적인 반격을 받아 일본의 전세는 이미 수습이 불가능한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총독부 경무국은 각도경찰부에 1급 비밀 지령을 내려 "요시찰인중에 특히 위험 분자로 인정되는 자는 모조리 예비 검소하라."는 엄명이었다. 이 비밀 지령을 받은 함남 경찰부는 조선어 학회 사건은 필경 이 지령에 해당시켜 처리하라는 지시라고 억지 해석을 하여, 흥원경찰서에서 1943년 4월 중수에 조서를 붙여 함흥 지방 검사국에 서류를 내게 됐다. 그 해 9월 상순에 아오야기 검사의 심문을 받은 결과 기소 16명(이극로,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김양수, 김도연, 이우식, 이중화, 김법린, 이인, 한징, 정열모, 장지영, 장현식, 정태진), 기소유예 12명(이강래, 김윤경, 김선기, 정인섭, 이병기, 유병호, 서승효, 이은상, 서민호, 이만규, 권승욱, 이석린)인데, 기소유예를 받은 12명은 검사의 심문이 끝나지 않아 함흥형무소에 이감되어 구류 만기되는 날인 1943년 9월 18일에야 석방되었다.

기소된 16명은 즉시로 예심에 돌려져서 무기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갖은 고문과 악형에 시달리면서 고초를 격었고, 영영실조로 쇠약한 몸은 이끌고 옥고를 치르던 이윤재는 1943년 12월 8일에, 한징은 1944년 2월 22일에 함흥형무소에서 무참히 세상을 떠났다. 1944년 9월 30일에 낙가노 판사의 예심 종결에 의하여 장지영, 정열모는 무죄로 풀려나고, 남은 12분은공판에 넘어갔다. 1944

년 12월 21일∼1945년 1월 16일 사이에 니시다 판사의 주심으로 9번에 걸친 공판에서 변호사 유태성, 한격만, 박원삼 및 일인 변호사 나가시마의 변론이 있은 뒤 다음과 같은 판결이 내렸다.(판결 내용은, 지금까지 발표되 글에서 틀린 데가 있어서, 최종 판결문에 따라 다음과 같이 밝힌 것이다.)

 

이극로 : 징역 6년(미결 구류 일수 중 600일 통산)

최현배 : 징역 4년(미결 구류 일수 중 700일 통산)

이희승 : 징역 3년 6개월(미결 구류 일수 중 700일)

정인승 : 징역 2년(미결 구류 일수 중 440일 통산)

정태진 : 징역 2년(미결 구류 일수 중 570일 통산)

김법린, 이중화, 이우식, 김양수, 김도연, 이인 : 징역 2년(집행유예 4년)

장현식 : 무죄

 

이리하여 무죄와 집해유예를 받은 7분은 함흥형무소에서(이인은 그 때까지 함흥형무소에 수감되어있었다.) 풀려났고, 징역 선고를 받은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4분은 1945년 1워 18일에 고등법원에 상고해고, 정태진만은 가정사정으로 차라리 복역하고 일찍 출옥하는 편이 나으리라는 계산으로 복역했다가 7월 1일에 만기 출옥되었고, 상고 중에 기각 판결을 받았으므로 함흥지방법원의 판결을

확정시킨 것이다. 징역 선고를 받은 4분은 8월 17일에야 함흥형무소에서 풀려나 18일에 서울로 돌아왔다. 옥고에 시달린 몸의 피로도 채 가시기도 전에 동지들을 모아 우리 말과 글의 올바른 교육을 위하여 교재를 꾸미고 학원을 설립하여 국어 교육을 맡을 교사를 양성했으며, 조선어 학회의 이름을 '한글학괴'로 박구고 우리다운 문화를 창조하는 우리말과 우리 겨레의 글기의 상징인 한글을 위하여 온 힘을 다해 온 기둥들은 지난날 조선어학회 수난에 관련된 분들이었다. 그래서 한글학회는 우리말 글 연구만을 위한 기관이 아니고, 겨레의 소망을 지고 있는 배달겨레의 학회인 것이다.

#과제#

1.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진술하라.

학문에 왕도(王道)가 없다고 하지만 옛적부터 널리 알려져 오는 몇 가지 본보기를 찾아보기로 한다.

중국의 진사도(陳師道)란 이는 {후산시화(後山時話)}라는 책에서 이른바 삼다(三多)의 법을 든다. 삼다는 무엇인가. 글에 하였으되, "구양영숙(歐陽永叔)은 문장을 지음에 있어 세 가지가 있으니, 많이 보고(看多), 많이 지어 보고(做多), 많이 생각하여야 한다(商量多)."의 속내를 들어 풀이하였다. 조금 더 풀어 생각하여 보기로 한다.

 

첫째, 많이 읽어야 한다.

붓글씨를 배울 때에 잘 쓴 글씨를 모방하여 자꾸만 연습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개성이 있는 글씨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인다. 다른 이의 좋은 글을 많이 읽어서 그 솜씨를 배워야 한다. 비교적 입말은 스스로가 익혀 터득이 된다고 하지만 글은 그렇지가 않다. 배운다는 것은 먼저 남의 글을 많이 읽는 데서부터 비롯한다. 그렇다고 덮어 놓고 많이 읽기만 하면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잘 가려서 읽을 것이요, 바로 읽어야 하며, 그리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것이다. 박이정(博而精)이라고, 넓게 그리고 정통하게 읽어야 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울까. 어려워도 좋은 글을 쓰려는 이가 끊임 없는 박이정 갈닦기를 하지 않으면서 좋은 글을 쓰려 함은 그림 속의 떡이 되고 말 것이다.

둘째, 많이 지어 보아야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 히포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른다. 가장 슬기롭게 같은 일을 처리하고 빠른 시간 안에 경제적인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하였을 때 흔히 솜씨가 좋다 혹은 기술이 좋다고 한다. 기원적으로 문법(文法, grammar)이라는 말의 뿌리도 '말을 가장 정확하게 말하고 정확하게 쓰는 기술(技術)'을 이른다.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라고 하여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기술 얻으려면 자신이 마음먹 있는 특정한 분야에 대하여 엄청난 땀을 흘려야 한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는 하지만, 한 분야에서 빼어난 기술인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요, 우리 모두의 큰 자산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도 그 기술이 사람의 죽어 가는 목숨을 살리고 배고픈 이들의 민생고를 해결하여 주는, 인류의 앞날에 큰 빛을 남겨 주는 기술이 있다면 그야말로 거룩한 기술이요, 찬사를 받아 마땅할 것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의 보기를 잠시 들어 보기로 한다. 그가 [파우스트]를 짓기 위하여 쓴 육필 원고를 볼라치면 참으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고치고 또 고치고 이건 원고가 아니라 숫제 낙서의 종이라 하여 좋을 것이다.

셋째, 많이 생각할 것이다.

흔히 상량다(商量多)라 함은 많이 생각하라는 말이다. 되풀이하여 곰곰이 생각한다는 표현이 좀더 속뜻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지은 글에 대하여 여러 모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다듬는 일을 이른다.

흔히 퇴고(推敲)의 고사를 많이 끌어다 예를 들기도 한다. 그 줄거리를 간단하게 이르자면 다음과 같다.

당 나라의 시인으로 가도(賈島)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시를 지었다.

"새는 날아 연못가 나무에 깃들이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鳥宿池邊樹僧敲月下門)"

문제는 이 글에서 두드릴 고(敲)에 이르러서였다. 밀 퇴(推)로 할 것이냐, 아니면 두드릴 고(敲)로 할 것인가. 며칠이 가도록 결정을 못 내리고 노새를 타고 길거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노새 등 위에서도 글자의 결정을 하지 못한 채 고심 하였다. 마침 지금의 서울 시장격인 경윤(京尹)이 지나는 줄도 모르고 행차 길을 피하지 못하여 마침내 경윤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 까닭을 물으니 글자의 선택 때문에 행차를 피하지 못하였음을 아뢰는 것이 아닌가.

경윤은 웃으면서 잠시 뒤에 "그건 퇴(推)보다 고(敲)가 나으리라."고 하였다. 그 경윤은 다른 아닌 당대의 유명한 대문호 한유(韓愈)였다고 한다. 과연 이렇게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좋은 글을 쓸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 좀 더 보태고 기워야 할 것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저 유명한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선생은 일찍이 "난을 그리는 데 법이 있다 함이 옳지 않으며, 법이 없다고 함도 옳지 않다.(寫蘭有法不可 無法亦不可)"고 함도 이렇게 다양하고 끝없는 글쓰기의 길을 암시하여 주고 있다.

 

먼저 풍부한 체험을 들 수 있다. 모든 존재들의 터전이 흙이듯이 글을 짓는 밑 바탕이 자신의 넉넉한 체험임은 말할 것 없고, 자신의 체험은 아닐지라도 다른 이에게서 듣고 보는 것이라도 자신이 절실하게 쓸 수밖에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면 이는 반드시 좋은 글감의 거리가된다. 한마디로 체험이란 듣고, 보고, 생각하고, 행하는, 느끼는 모든 것이라고 할 것이다. 독일의 시인 릴케(Rilke)도 일찍이 [말테의 수기]에서 "시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기실 체험(體驗)인 것이다."라고 충고한 것은 아주 주요한 가르침이라고 본다.

다음으로 개성 있는 관찰(觀察)이다.

개성이 무엇인가. 그 어느 누구도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알아 내지 못한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면 표현이 다소 약하다고 하더라도 이는 참으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글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여기 개성 있는 발견에서 '발견'이 바로 관찰의 알맹이가 되는 것이다. 하찮은 사물이나 사실에서도 그 빛과 거기에 알맞은 소리를 부여하고 찾아서 드러내는 것이 개성 있는 표현이며 좋은 글인 것이다.

개성 있는 발견의 기쁨을 가지려면 같은 경우라도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않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된다. 하늘에서 내리는 같은 눈을 보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눈이 온다고 표현하였을 때는 그리 개성이 있는 글이라고 할 수가 없다. 예로 보건대, 한 깊은 사연 혹은 배고픈 이의 허기를 없이할 수 있는 쌀로 본다면 이는 하나의 개성 있는 표현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문학적인 표현의 제일 첫 걸음을 은유(隱喩, metaphor)라고 하거니와 딱히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에서라도 자신만의 은유로 표현해 봄은 좋은 글을 쓰는 길이 됨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하물을 그리는 데는 가장 정확한 표현은 하나밖에 없다고 설파한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Flaubert)는 개성 있는 관찰의 필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세상에는 꼭 같은 두 알의 모래, 두 마리의 파리, 두 개의 손, 두 개의 코는 있을 수가 없다. 하나의 타오르는 불, 또는 한 그루의 나무를 묘사하는 경우, 우리는 그 불, 그 나무에 대하여 눈앞에 그것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그것이 다른 불, 다른 나무와 전혀 틀린 점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셋째, 정확한 낱말의 가림이다.

글이 말이고 말이 글임은 앞에서도 이른 바와 같다. 말을 떠나서는 글이 있을 수가 없다. 마치 물을 떠나서는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글에 쓰이는 말은 정확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다. 하나의 경우에 하나밖에 없는 말을 찾아 가리는 작업이야말로 아주 중요한 일이다. 흔히 일물일어설(일물일어설, single word theory)로 플로베르의 유명한 문학이론이기도 하다,

가령 "해야, 솟아라." 하는 것과 "태양이여, 솟아라." 하는 것은 그 느낌과 전달 강도에 있어 사뭇 다르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분위기에 따라서 각각 알맞은 낱말을 골라 써야만 되는 것이다.

"세월이 물같이 흘러 갔다."고 할 것을 "세월이 화살같이 흘러갔다."고 표현한다면 무슨 말인가는 알겠지만 우리들의 표현 정서에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넷째, 아름다운 우리말을 많이 살려 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같은 값이면 다홍 치마라고 좋은 우리 말이 있는데 외래어를 쓰고 어려운 한자어를 써야만 한다는 생각은 좋은 글을 쓰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령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이 어려운 한자 혹은 고사 성어 투성이라면 아무리 잘 쓴 글이라고 할지라도 백반이 넘는 독자들이 읽었겠는가. 마음이 있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정다운 우리말을 많이 살려 쓰는 버릇을 길러야 한다고 본다. 그렇잖아도 외래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오는 세상인데 우리 생각마저 외래문화를 선호하고 그런 글을 쓴다면 우리 문화 침식당함은 물론이요, 우리가 발 딛고 설 땅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가령 '감사하다'와 우리말 계통인 '고맙다'를 비교할 때, '고맙다'는 우리의 영혼이 담긴,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이 말은 세계적으로 내놓을 인사말이라고 본다. 여기' 고마'란 어머니요, 조상신이니까 고맙다는 말은 당신의 은혜가 어머니의 은혜와 같다 혹은 조상신의 은혜와 같다고 함이니 예서 더할 인사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넉넉하게 낱말을 부려 쓸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우선하여 책을 많이 읽고, 다른 사람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고, 같은 말이라도 사전을 찾아 정확한 뜻을 자주 찾아보아야 한다. 표준말을 익힘은 물론이요, 사투리 말이나 외래어, 은어나 비속어까지도 알아 두면 적절한 낱말을 찾아 씀에 많은 도움이 된다.

다섯째, 적어놓기를 힘써야 한다.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 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억을 사라지게 마련이다. 마치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먼저 연필로 우선그리기-사생(寫生)을 하고 나서 뒤에 이를 밑그림으로 한 뒤 본격적인 그리기를 하여 훌륭한 그림을 완성하듯이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인상 깊게 느끼고 본 것이면 일기장이나 수첩에 적어 놓는 그런 습관을 길들이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여섯째, 글 쓰는 실마리-동기를 잘 설정하는 버릇을 지그는 것이 중요하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같은 유명한 음악도 잘 들어보면 처음 나오는 아주 간단한 가락을 살려서 거기에 살을 붙이고 변화를 주어 소리의 세계로 전원에 대한 그리움과 상상을 마음대로 표현하였음을 어렵쟎이 알 수 있다.

지난 번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설악산의 불도 작은 불씨에서 말미암은 것임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다. 긴 글이든 짧은 글이든 실마리랄까 동기유발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꽃의 향기나 빛깔을 보고 멀리서 가까이서 벌이나 나비가 날아 들 듯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동감 있는 동기유발이 될 때 일단 그 글은 시작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째, 주제가 확실해야 하며 자연스러운 논리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봄이 되면 스스롭게 새가 울며 꽃이 피어나듯이 이런 자연스럽고 뼈가 든든한

글을 쓴다면 예서 더 무엇을 바라랴. 아무리 좋은 낱말이나 그럴싸한 글을 썼다고 할지라도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불분명하면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 그러니까 주제 의식이 강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어떻게 글의 틀을 짜야 할 것인가 하는 글의 얼개를 잘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준비가 반은 이루어진 셈이라고 볼 수 있다.

여덟째, 문법에 맞으면서도 기품 있는 글을 쓰도록 한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呼應, correspondence)이 잘 안 된다든가, 화식부사(話式副詞)와 용언의 일치가 잘 안 된다든가, 지나치게 '따라서'와 같은 접속부사를 되풀이한다든가, 같은 낱말이 하나의 문장 안에서 까닭 없이 여러 번 되풀이됨은 아무래도 좋은 습관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 그밖에 너무나 긴 문장을 써서 주제 파악을 흐리게 한다든지,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고사 성어를 너무 많이 들어서 자신의 지식을 뽐내려는 듯 한 인상은 결국 독자를 지치고 피곤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 올 수가 있다.

글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누구인가 보는 사람이 전제되는 문장인 것이다. 자신이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소리를 내어 자기가 쓴 글을 작은 소리로 되읽어 가면서 철저한 원고 마무리 작업을 반드시 거치는 끝내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

 

2. 우리말의 기본 문형을 쓰라

글의 길이에 따라서는 아주 긴 것과 짧은 것 그리고 복잡한 문장도 있다. 아무리 긴 문장이라 하더라도 한정된 몇 개의 기본 문형 속에 들어간다. 즉 복합문은 기본 문에서 가라져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영어와 같은 인구어에 비하여 대화형(對話形) 언어 곧 술어 중심의 특징을 가진 말이긴 하지만, 이러한 특징을 고려하면서 몇 개의 기본 문형을 들어 보자면 아래와 같다.

㉮ (주어)+ 서술어

꽃이 핀다. (무엇이 어찌하다<동작문>)

산이 푸르다. (무엇이 어떠하다<상태문>)

나는 돌이다. (무엇이 무엇이다<판단문>)

㉯ (주어)+ 목적어+ 서술어

아이는 꽃을 꺾었다.

(무엇이 무엇을 어찌하다)

㉰ (주어)+ 보어+ 서술어

구름이 비가 된다. (무엇이 무엇이 된다)

그는 학생이 아니다. (무엇이 무엇이 아니다)

검기가 먹과 같다. (무엇이 무엇과 같다)

개는 늑대와 비슷하다. (무엇이 무엇과 비슷하다)

㉱ (주어)+ 목적어+ 보어+ 서술어

나는 강산을 벗으로 삼는다. (무엇이 무엇을 무엇으로 삼는다)

꺽정이는 나를 동지로 여긴다. (무엇이 무엇을 무엇으로 여긴다)

㉲ (주어)- 감탄어

슬프도다.

우리말은 대체로 위의 다섯 가지 기본 문 가운데 하나로써 이루어진다. 감탄어 하나로 이루어지는 글에 대하여 의견은 있지마는 이른바 감탄문이라 하여 느낌을 드러내는 한 마디의 말로써 이루어지는 문장의 형태가 우리말에서는 예로부터 있어 왔으니 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문장의 유형을 기본문형(基本文形)이라고 이른다.

위의 문형에서 공통된 것은 주어를 손톱묶음 속에 넣은 것인데 이는 주어가 생략이 되어 쓰이는 일이 많음으로 서이다. 이 게 바로 우리말이 대화형의 술어 중심 언어라는 속내가 되는 것이다.

위와 같이 문장을 이루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성분들이 있으니 이를 핵 성분이

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어와 목적어, 보어와 같은 체언을 주성분(主成分)라 한다. 이들 주성분을 수식하여 주는 성분 곧 관형어와 같은 것을 일러 관형어라 이르며, 동사나 형용사를 꾸며 주는 성분을 부사어라 이른다. 관형어와 부사를 통틀어 수식 성분(修飾成分)이라 한다. 수식성분을 부속 성분이라고도 한다.

한편 감탄 어와 같이 독립하여 문장을 이루거나 문장 전체를 수식하여 주는 성분을 독립성분이라고 한다.

 

아! 아름다운 무궁화 꽃이 곱게도 피었구나.

(독립어)(관형어) (주어) (부사어)(서술어)

 

위 글에서처럼 주성분을 도와서 완전한 뜻을 펴내는 수식 성분이 덧붙는 경우가 흔히 있다.

 

3. 원고 용지 쓰는 법을 기술하라

원고용지는 인쇄를 하기 위한 본이 되는 글을 담는 그릇이다. 원고용지에 글을 쓰는 데에 일정한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원고용지의 사용은 읽는 사람의 눈에 이상스러움이 없이 실용적이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기준과 보기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원고지 첫 줄은 비워 두는 수도 있고, 또 원고 종별을 표시하는 수도 있다. 가령, 수필이면 <수필>이라 쓰고, 그밖에 <단편> <기행> <일기> <희곡> <론>등으로 표시한다. 나무 내려다 낮추어 쓰지 않고 위에 한 칸쯤 비우고 쓴다.

② 제목은 둘째 줄과 셋째 줄 사이에 좀 큰 글자로 쓰는 것이 좋다. 제목 글자가 너무 작으면 보기에 흉하다.

③ 자기 이름을 넷째 줄에 쓰는데 너무 왼쪽 편에 쓰지 말고 오른쪽 적당한 자리에 쓰는 것이 좋다.

④ 원고지 다섯째 줄, 즉 이름을 쓴 다음 칸은 한 줄 비워 두는 것이 보통이다.

⑤ 따라서 원고가 쓰여 지는 줄은 여섯째 줄에서부터이다.

⑥ 여섯째 줄에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첫째 한 칸은 띄우고 둘째 칸에서터 쓰기 시작 한다.

⑦ 문단이 바뀔 때에는 반드시 줄을 바꾸고, 한 칸 들여쓰기를 한다.

⑧ 한글 맞춤법에 따라 조사를 제외한 모든 품사는 반드시 띄어 쓴다.

⑨ 이 경우 원고지 맨 밑 마지막 칸에서 말이 끝나고 그 다음 줄 맨 윗칸을 비워야 될 때에는 그것을 비우지 않고 그대로 쓰며, 그 대신 앞의 줄의 말이 끝난 맨 아랫 칸 밖에다가 ∨표를 해서 띄움 표시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⑩ 띄어 써야 할 것을 잘못 붙여 썼을 때는 ∨표를 해서 띄우라는 표시를 한다. 가령 <푸른 물결>이라고 썼을 때에는 '푸른'과 '물결'사이에 ∨표를 한다.

⑪ 붙여 써야 할 것을 잘못 띄어 썼을 때에는 그것을 붙여 쓰라는 ⌒표를 해야 한다.

 

4. 작문의 절차를 기술하라.

작문이란 자기의 상상이나 감정을 문자로 기록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작문의 기능으로는 사실이나 사상을 독자에게 전하는 전달적 기능, 사회의 발전이나 생산품의 산출에 기여하는 사회적 생산적 기능, 사고와 정서를 정리하고 이를 일정한 형태로 드러내게 되는 사고와 창조의 기능, 문장화됨으로써 정착 보존되는 기록적 기능 등이 있다. 글쓰기의 수련을 위해서는 예로부터 중국 송나라 구양수가 말한 간다(看多:多讀) 주다(做多:多作) 상량다(商量多:多思), 즉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 왕도로 전해 오고 있다.

글쓰기의 과정은 ① 글의 주제 마련[設題], ② 소재의 선택 정리[取材], ③ 글의 줄거리 짜기[構成], ④ 작문의 기술[敍述], ⑤ 글의 정정과 삽입[推敲]의 5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5. 작문의 기술을 진술하라.

구상이 끝나면 실제로 글을 쓰는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기술(記述)이라 한다. 기술의 방식에는 설명(說明) 논증(論證) 묘사(描寫) 서사(敍事) 등의 네 가지가 있다. 설명이란 일정한 주제를 쉽게 풀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인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서술 양식이다. 논

증은 분명하지 않은 사실이나 원칙을 놓고 그 진실의 여부를 증명하는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쓰는 이가 증명하는 바를 믿게 하는 것으로, 필자의 의견이나 신념을 독자가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씌어지는 서술 양식이다. 묘사는 사물의 현상 곧 형태 색채 감촉 향기 소리 등 감각적 요소가 어울려 겉으로 드러난 인상을 관찰하여 감각적으로 그리는 서술 양식이다. 서사는 일정한 시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행동의 전개에 따른 행위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어떤 특정한 사실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서술 양식이다.

(1) 설명

어떤 의문이나 질문에 대해 알기 쉽게 해답해 주는 설명(說明)의 방법에는 정의지정 예시 비교와 대조 구분과 분류 분석 등이 있다. 정의는 어떤 일정한 대상의 속성을 해명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병원체는 병의 원인이 되는 생물이다."등과 같은 것이다.

지정은 "무엇이냐?" "누구냐?" 하는 질문에 "무엇이다." "누구다." 하고 답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이순신은 누구냐?" 하는 질문에 "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장군이다."라고 대답하는 것 같은 것이다. 예시는 어떤 무리에 속하는 특정 개체를 보기로 들어서 설명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사회의 부조리를 설명하기 위해 뇌물의 성행을 예로 드는 것 같은 것이다.

비교와 대조는 둘 혹은 둘 이상의 대상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견주는 것인데, 유사점을 찾아 설명하는 것이 비교요, 차이점을 가려내어 설명하는 것이 대조다. 이를테면 사람의 눈의 구조를 사진기의 구조와 견주어서 공통점을 설명하면 비교요, 여성의 사고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남성과의 대조적인 면을 들면 대조이다.

구분과 분류는 여러 사물의 부류를 계층화하여 가르거나 모우는 조직의 방식인데, 큰 것(유개념)으로부터 작은 것(종개념)으로 내려오면서 가르면 구분이고, 작은 것(종개념)들을 모아 큰 무리(유개념)으로 묶어 가면 분류이다. 이를테면 "문학 작품의 분야는 시 소설 희곡 수필로 나눈다."는 구분이고, "한국어 만주어 퉁구스어 몽고어 터키어 등은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분류이다.

분석은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분해하여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각 요소들로 나누는 것으로, 이를테면 학문을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으로 세분해서 밝히는 것 같은 것이다.

(2) 논증

사물의 옳고 그름을 사리에 맞도록 논술하고 증명하는 논증(論證)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의심할 수 없는, 혹은 부정할 수 없는 진술인 명제(命題)에 관해서만 행할 수 있다. 논증의 구성 요소에는 명제 논거 추론(推論)이 있다.

명제란 "S는 P다." 또는 "S는 P가 아니다."는 판단의 표명이다. 예를 들어 "나는 한국인이다."고 하면 사실 명제의 진술이고, "남녀 공학을 즉각 실시하여야 한다."고 하면 정책 명제의 진술이 된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와 같은 것은 가치 명제이다.

논증을 효과적으로 이끌어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추론이 필요한데, 추론은 확실한 근거 위에서 이루어지며 근거의 확실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논거이다. 논거에는 사실논거와 소견논거가 있다. 목격자의 증언이나 현장 및 현장 사진 기록 유물 녹음 등의 물적 증거는 사실을 입증하고, 법정에서는 전문가의 소견을 듣는 증언을 증거로 채택하기도 한다.

추론은 일정한 자료 또는 논거에서 출발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인데, 이에는 연역추리(演繹推理)와 귀납추리(歸納推理)가 있다. 연역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진리에 근거를 두어 다른 사실을 논증하는 것이요, 귀납은 개개의 구체적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명제 및 법칙을 유도해 내는 일을 말한다.

귀납추리에는 일반화와 유추가 있는데, 일반화에는 종종 귀납적 비약이라는 오류가 있게 된다. 이를테면 "나는 바나나를 좋아한다. 철수도 바나나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바나나를 좋아한다."는 비약이 심한 논증의 예이다. 연역추리의 가장 전형적인 경우가 3단 논법이다.

 

연역추리 : "사람은 왜 죽는가?"를 논하는 경우

생물은 죽는다. (일반적인 법칙)

사람은 생물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는다. (구체적인 사례)

귀납추리 : "생물은 반드시 죽는다."를 논하는 경우

사람 짐승 새 곤충 등은 반드시 죽는다. (구체적인 사례)

사람 짐승 새 곤충 등은 모두 생물이다.

그러므로 생물은 반드시 죽는다. (일반적인 법칙)

 

(3) 묘사

보고 들은 것이나 마음에 느낀 일을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묘사(描寫)는 같은 대상인 경우에도 대상에 대한 인식의 정도 관찰의 각도 관심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드러난다. 묘사에는 객관적 묘사(기술적 묘사 설명적 묘사)와 주관적 묘사(문학적 묘사 암시적 묘사)가 있다.

객관적 묘사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것이 목적인 묘사이고, 주관적 묘사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생생한 느낌이나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인 묘사이다.

객관적인 묘사에는 필자의 주장이나 사상이 극도로 억제되어 있어서 묘사하는 대상(얼굴 집 건물 상황 등)의 외적인 형태만을 보여 주고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주제에 도달하도록 하며, 주관적인 묘사에는 필자의 느낌이나 사상 그리고 정서가 대상에 깊이 투사되어 있다.

객관적 묘사의 예문 :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 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주관적 묘사의 예문 :

이놈이 썩 묘하게 생겼습니다. 우선 부룩 송아지 대가리 같이 머리가 곱슬곱슬하고 노랗기까지

한 게 장한 게 장관이요, 그런 대가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큰지, 남의 것 같습니다. 눈은 사팔 이어서 얼굴은 모로 돌려야 똑바로 보이고 코는 비가 새면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나이는 스물 인데 그것은 이 애한테만 세월이 특별히 빨리 갔는지, 열 살은 에누리 없이 모자랍니다.(채만식의 [태평천하]에서) (4) 서사

일정한 시간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행동의 전개에 따른 행위에 초점을 두는 서사(敍事)는 "무엇이 발생하였는가?"하는 질문에 답하는 기술 양식이다. 서사의 기본 요소에는 움직임(행동) 언제(시간) 의미(내용)의 세 가지가 있다.

서사는 스토리 자체 곧 움직이는 정경, 활동하는 대상, 움직이는 생명을 우리 눈에 제시한다. 행동 또는 사건은 시간의 과정이다. 그러나 서사는 단지 시간의 순서로 사건을 아무렇게나 모아서 배열한 것이 아니라 의미의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

서사문의 구성은 사건이 최초로 야기되는 사태 즉 발단으로 시작되어, 긴장된 분위기로 이행해 가는 중간 부분인 분규를 거쳐, 다시 발전하여 새로운 사태가 결정되는 대단원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 분규와 대단원 사이에 파국이라는 극적인 사태가 돌발될 수도 있는데, 이를 정점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충돌사건' '상인동 가스 폭발사고'등은 서사라는 양식으로 기술해 볼 수 있다.

서사의 예문 :

1911년의 5월, 용정촌(龍井村) 대화재는 시가의 건물 절반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진(砂塵)을 거슬러 올리며 달겨든, 오월에 흔히 부는 서북풍이 시가를 화염의 바다로 몰아넣고 걷잡을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아직 공사가 진행 중에 있는 절 [雲興寺]에 피신한 서희(西姬) 일행은 용이와 길상 월선이 임이네 홍이, 그리고 간도에 오면서부터 서희 시중을 들게 된 새침이와 부엌일을 하는 달래 오망이, 일꾼 두 사람이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

 

6. 논문이란 무엇인가 진술하라.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곳이므로,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학구적인 태도와 창의적인 능력을 신장시키면서 연구의 경험을 쌓아야 한다. 진리 가운데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많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으며, 잘못 밝혀진 것도 있다. 진리 탐구란 기성의 권위를 맹종하거나 기성의 성과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실증적인 노력과 합리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활동에서 나오는 연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어떤 학문이나 사물에 대하여 연구한 결과를 적어 발표하는 글을 논문이라 하는데, 일반적으로 논문이라 하면 연구논문 또는학술논문을 말한다. 이러한 연구논문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며 실증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연구논문은 새로운 자료, 새로운 방법이나 해석, 새로운 결론을 지녀야 한다. 이처럼 연구 논문은 자료 방법 결론 중에서 어느 하나 또는 그 이상이 새롭고 다른 것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표현이나 논지의 전개 등이 우수하고 정당하다 하더라도 이미 다른 사람이 다룬 꼭 같은 자료, 꼭 같은 방법, 꼭 같은 결론이라면 그 논문은 가치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연구논문 작성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데 있다고 하겠다.

논문은 논리적 해명이나 이론적 고찰 또는 비평이 따르는 데서, 조사 답사 관측채집 실험 등으로 얻어진 사실이나 결과를 정리하여 보고하는 report와는 구별된다.

 

7. 논문 작성의 준비 작업을 쓰라

논문을 작성하려면 논제의 결정, 자료의 조사 수집, 자료의 분류 분석, 논문의 구성 기술, 논문의 퇴고 교정 등의 5단계가 필요한데, 여기서는 논문의 준비 작업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1) 논제의 결정

논문을 쓰려면 먼저 문제를 발견하고 주제를 선정해야 하는데, 이러한 문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이루어진다.

기성의 연구가 잘못된 점이 있거나 보완이 필요한 점이 있을 때, 해결할 문제가 있으나 아직 그 문제에 대한 연구가 행하여지지 않고 있을 때, 자료의 정리나 실험 등에서 특수한 사실이 발견되었을 때, 현재까지 무의미한 사실로 보고 있으나, 사회적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이 인정될 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자료가 발견될 때, 논문의 주제가 선정될 때 독창성 또는 참신성이 있는 문제인지, 자료 수집이 가능한 문제인지, 명확한 결론의 도출이 가능한 문제인지 등도 아울러 고려되어야 한다.

(2) 자료의 수집

연구란 일정한 방법으로 자료를 검토 분석하여 문제를 해명하는 것이고, 자료는 증명과 논거의 토대이므로, 자료의 수집이 일차적 과제가 된다. 그러므로 논문의 주제가 결정되면 곧바로 자료 수집에 착수하여야 한다. 연구 주제와 관련된 자료는 구하기 힘든 희귀한 것이라도 포기하지 말고 철저하게 수집해야 한다. 자기가 선정한 문제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전류를 찾아보고 그 문제의 전체적인 개념을 파악한 뒤 도서관 등을 찾아 단행본을 위시해서 모든 학술지를 상세하게 조사하고, 특히 최근에 발표된 논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조사해야 한다.

연구 관제에 관한 자료 조사가 되었으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채록하는 단계에 들어가야 하는데, 채록은 노트보다 카드 작성이 편리하다. 카드 작성에는 참고서 목록 카드의 작성과 내용 카드 작성의 두 가지가 있다. 참고서 목록은 저자와 서명 또는 논문 명 외에도 자기가 인용 또는 참고한 면수와 출판 연월일까지 상세히 밝혀 두는 것이 나중에 참고문헌 일람표를 만들 때 편리하다. 내용 카드는 직접인용 카드와 간접인용 카드가 있는데, 원문 그대로 인용하는 직접인용 카드를 작성할 때는 원문을 충실하게 전사하고, 오자 탈자 등을 바로잡거나 밑줄을 치거나 또는 윗점(방점)을 찍을 때는 필자가 했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

(3) 자료의 정리

수집한 자료는 여러 면으로 분류해 봐야 하며, 특히 연구 문제에 필요한 면은 주의 깊게 분석해 봐야 한다. 자료를 연구 목적에 합당한 방향으로 집계 분류 해석해 나가는 것이 분석이다.

자료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결론을 얻게 되고 논문의 뼈대가 서게 되면 논문을 만들기 위한 개요(outline)를 만들어야 한다. 개요란 전체 목록을 구성하여 각 분절의 내용을 몇 자씩 적어두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 논문을 쓰는 데 길잡이가 되지만 논문을 써 나가는 동안에 수정되기도 한다. 개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논지의 전개에 따른 자료의 배열이 조리있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까운 자료라도 논지의 전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낌없이 버리든가 보류해 둬야 한다. 개요가 작성되면 집필에 들어가기 전에 지도교수 등의 지도나 조언을 받아 수정 보완하는 게 좋다.

 

8. 논문의 구성에 대하여 진술하라

논문의 체제는 서두 논문 본문 참고 자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서두에는 논제 표지 목차(차례)가 들어가는데, 학위 논문의 경우에는 인준서가 있어야 하며, 원할 때는 사사(謝辭)도 넣을 수 있다. 필요에 따라 머리말 도표 목록 삽화 목록을 넣기도 한다. 논문 본문에는 서론 본론(연구 보고) 결론(요약 및 남은 문제점)이 들어간다. 참고자료에는 참고문헌과 필요시 영문으로 된 요지(abstract)가 들어간다. 그밖에 부록이나 색인도 필요시 참고자료로 넣기도 한다.

이제부터 논문 본문의 구성을 살피기로 한다. 서론에서는 문제 제기와 기존 연구 검토(연구사의 개략 소개) 및 연구 방법 연구 범위 등이 다루어진다. 본론에서는 자료의 체계적 분석과 논의가 있게 되는데, 논의의 일관성 논리성 객관성을 갖도록해야 하며 논증에 비약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본론 부분은 본론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각장의 개별적인 제목으로 표현한다. 결론에서는 서론에서 제시한 문제와 본론에서 다룬 내용을 요약(summary)하는데, 과대한 결론은 피해야 하고, 손대지 못한 문제점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둔다.

 

9. 논문의 목차 형식을 기술하라

목차의 형식에는 장절식(章節式) 수문자식(數文字式) 동일숫자식(同一數字式)의 세 가지가 있다. 장절식은 '제1편, 제1장, 제1절, 제1항, 제1목……' 식으로 하는 것이며, 동일숫자식은 '1., 1.1., 1.1.1.,……' 식으로 하는 것이다.

장절식은 분량이 많은 저서의 경우에 많이 쓰였으나 지금은 잘 쓰지 않으며, 동일 숫자식은 앞의 분절 또는 단락을 뒤에서 인용 지시하는 경우가 많을 때 편리해서 언어학이나 자연과학의 논문에서 쓰이고 있으나, 현재 국내의 각종 논문에서 보편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은 다음의 수문자식이다.

 

Ⅰ.

Ⅱ.

1.

(1)

(2)

1)

2)

그런데 일부 단행본이나 논문집을 보면 괄호가 붙은 (1)을 반괄호가 붙은 1)의 아래에 두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반괄호를 온괄호 위에 둬야 한다는 주장은, 마치 반달(조각달)이 온달(보름달)보다 크다는 주장처럼 어처구니없는 엉터리다.

 

10. 주에 대하여 서술하라

논문에서 주로 인용한 내용의 출전을 밝히는 데 쓰이는데, 특정 부분이나 개념에 대한 보충 설명이 필요할 때나, 본문에서 다루기 곤란한 자료를 처리할 때도 쓰인다. 주가 남용되거나 그 양식이 적절치 못할 때는 논문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주에는 일반주(一般註)와 각주(脚註, footnote, turabian style)가 있다. 일반주는 다시 후주(後註, endnote)와 내주(內住, APA style)로 나뉜다. 후주란 절이나 장의 끝 또는 본문의 마지막 장의 끝에 주를 한데 모아 일괄하여 다는 것을 말하는데, 각 장 끝이나 책의 맨 끝을 번거롭게 다시 찾아 봐야 하는 단점이 있다. 내주란 주를 요하는 바로 다음에 괄호를 치고 작은 글자로(한 줄 또는 두 줄로 적음) 다는 것을 말하는데, 흔히 저자명과 간행 연도를 ( )로 묶어 표시한다. 내주는 각주나 후주에 비해 조판이 쉽고 지면이 절약되는 좋은 점이 있어 언어학 분야나 자연 과학 계열에서 많이 쓴다. 각주란 가로쓰기 논문인 경우 각 면마다 논문 하단에 주를 표시하는 줄을 짧게 긋고 본문 글자보다 한 급수(#) 작게 잔 글씨로 다는 것을 말하는데, 같은 면에서 그 본문에 나온 인용문의 주를 바로 볼 수 있는 점에서 편리해서 가장 널리 쓰이지만, 제자리 맞게 지면이 할당돼야 하고 활자의 크기도 본문과 다르게 조판해야 하는 편집상의 어려움 때문에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다.

 

11. 각주 형식을 쓰라

각주는 본문의 인용문 끝 상단에 작게 '1), 2), 3)……' 등의 표지를 붙이고 같은 지면의 하단에 같은 표지를 붙이고 주를 단다. 각주의 형식은 대체로 "저자명, 서명, 판차사항, 발행지, 출판사, 출판연도, 면수 표시"의 순서로 되어 있다. 논문인 경우에는 필자명 다음에 논문의 제목이 오고 바로 뒤에 게재지의 이름이 들어간다. 최근에 와서는 출판연도를 저자명 뒤에 넣기도 한다. 저자명 뒤나 발행지 다음에 쌍점( : )을 넣기도 하나 무조건 쉼표( , )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 저자명

저자명의 경우 영문에서는 자기 성명을 그대로 기입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각주에서 자기 저서인 경우 졸저(拙著), 자기 논문인 경우에는 졸고(拙稿)라는 말

을 쓰고 있다.

영문으로 저자명을 쓸 때는 각주에서는 이름을 앞에 쓰고 성(last name)을 뒤에 쓴다. (각주에서는 "T. S. Eliot,……"가 참고문헌일 때는 "Eliot, T. S.,……"가 된다.)

저자가 2 ∼ 3 명인 경우에 가운뎃점( )을 이용하여 저자명을 다 기입하고, 4명 이상인 경우에는 최초의 저자명만 쓰고 '등' 또는 '외 O인'이라 쓴다. 영문에서는 2명일 때는 and로 연결하고, 그 이상일 때는 저자명 다음에 'and others' 또는 et al.(라틴어 et alii의 약자)을 붙인다.

편찬의 경우에는 편자명 뒤에 한 자간 뛰우고 '편'(영문은 ed.)을 붙이고, 번역의 경우에는 서명 다음에 쉼표를 찍고 번역자의 이름을 쓰고 나서 한 자간 띄우고 '역'(영문은 trans.)을 붙인다.

나) 서명과 논제

서명은 단행본이나 게재지 가릴 것 없이 앞 뒤에 쉼표를 찍거나, 다른 사항과 구별하기 위해 겹낫표({ })를 붙이기도 한다.

기사나 논문의 제목은 일반적으로 낫표( [ ])를 붙이나 따옴표(" ")로 묶기도 한다.

영문 제목인 경우는 인쇄시에 이탤릭체를 사용하고, 기타의 경우에는 밑줄을 쳐서 구분한다.

다) 출판사항

출판 사항은 판수 개정판 정정판 증보판 등을 표시하며, 영문인 경우에는 2nd, rev. 등으로 표시한다.

출판연월일은 저서인 경우 연도만 밝히지만, 논문집이나 잡지는 연월, 신문은 연월일을 다 밝혀야 한다.

<예> 동아일보, 1972. 2. 1., 2면.

출판사항은 서명 뒤에 ( )로 묶어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라) 면수 표시

면수는 흔히 p.(page의 약자)로 표시하는데, '면' '쪽'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를테면 단수일 때는 p.15하 표시하고, 복수일 때는 pp. 15∼16이라 표시한 후 맨 끝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를테면 p. 11∼p. 15의 여기저기서 인용했을 때는 'pp. 11∼15참조'라고 한다.

'참조' 대신에 'passim'을 쓰기도 한다.

 

12. 각주에 쓰이는 생략 부호를 쓰라.

주에는 상게서(上揭書) 또는 ibid.(라틴어 ibidem의 약자), '상게서 같은 면' 또는 loc. cit.(loco citato의 약자), 전게서(前揭書) 또는 op. cit.(opere citato의 약자) 등의 생략 부호를 사용한다.

상게서란, 바로 직전에 인용한 주를 반복해서 주로 인용하는데 면수만 틀리는 경우에 쓰고, '상게서 같은 면'은 반복 인용하는 주가 바로 직전에 인용하는 주와 면수까지 같은 경우에 쓰며, 전게서는 한 번 그 앞에서 인용했던 책을 다시 반복해서 인용하는 경우에 쓰인다.

상게서는 저자명이나 서명과는 함께 쓰이지 않고, '상게서 같은 면'은 면수가 들어가지 않으며, 전게서는 반드시 저자명을 맨 앞에 적어야 한다. ibid. 와 op. cit. 뒤에는 다시 쉼표(,)를 찍고 면수를 적는다.

 

13. 참고 문헌 기재요령을 기술하라

논문을 쓰면서 인용하였거나 참고한 문헌은 모두 모아서 정리하여 논문의 결론 부분 뒤에 일람표를 만들어 달게 된다. 그러므로 각주 란에서 기록된 문헌은 반드시 논문 끝에 붙는 참고 문헌 란에 다시 소개되어야 한다.

참고문헌을 기재하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배열은 동양서 서양서로 구분하되, 동양서는 한국 문헌 중국문헌 일본문헌의 순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저서와 논문으로 구분하는데, 자료 편 단행본편 논문 편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순서는 동양서는 '가나다......'순, 서양서는 'ABC......'순으로 배열한다.

동일인의 저서나 논문이 여러 개가 있을 때는 출판 연월일순으로 배열한다.

참고 문헌을 적는 순서는 각주와 같으나 면수는 생략한다. 다만 학술잡지에 실린 논문의 경우에는 해당 면수를 적기도 한다.

 

14. 서간문(편지)의 형식과 쓸 때 유의할 점을 쓰라.

서간문(편지)은 하고 싶은 말 즉 소식이나 용건을 특정한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쓰는 글이다. 서간문은 해야 할 말이 무엇이고, 상대는 누구이며,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일까를 생각해서 써야 한다.

서간문을 쓸 때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① 쓰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경우와 자기 분수에 맞추어 쓴다.

② 예의를 갖추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써야 한다.

③ 상대편의 교양의 정도나 직업과 기호 등을 헤아려서 써야 한다.

서간문은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과 평소에 말하듯이 쓰면 된다. 서간문에는 일반적으로 호칭(呼稱) 시후(時候, 季節人事) 문안(問安) 자기안부(自己安否, 自己近況) 사연(事緣, 用件) 끝인사(祝願) 연월일(年月日)과 서명(署名)이 들어간다. 서간문의 형식은 다음과 같다.

전문(前文)

서두(序頭) … 서간문의 맨 첫머리에 쓰는 말. (아버님 보시옵소서 사랑하는 명식 군 등)

시후(時候) … 일기에 관한 말이나 계절인사. (국화 향기 짙은 요즈음 날씨가 고르지 못한 이때 등)

문안(問安) … 먼저 저편의 건강 사업 등에 관해 묻고 이쪽의 근황을 전한다. (그간 안녕하십니까. 이 곳 다 무고합니다. 등)

 

본문(本文)

기사(起辭) … 본문 사연을 적기 전에 꺼내는 말. (아뢰올 말씀은 다름이 아니옵고 등)

사연(事緣) … 쓰고자 하는 실제 용건.

 

말문(末文)

축원(祝願) … 끝 인사말. (내내 평안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등)

연월일 서명(署名) … 편지를 쓴 날짜를 쓰고 나서 그 다음 줄에 서명한다.

추신(追伸) … 다 써 놓고 나서 꼭 해야 할 말을 빠뜨린 경우에 덧붙여 쓴 글.

 

15. 기행문 쓰는 요령을 기술하라

기행문이란 여행 중의 견문 체험 감상 등을 기록한 글로, 여행지의 자연환경 생활습관 언어 민속 복식 명승 고적 역사적 사실이나 유래 등을 인상적으로 감회 있게 솔직한 내면의 심정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기행문을 쓰는 목적은 여행에서 얻은 감동을 더욱 깊게 하고, 여행에서 얻은 지식을 완전히 하며, 느낀 것이나 본 것을 남에게 전달할 수 있고, 다음 여행에 도움이 되며, 아울러 문장 수련이 되기 때문이다.

기행문을 쓰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① 여행할 곳에 대해 미리 조사하여 예비지식을 갖추도록 한다.

② 독특한 관찰과 개성 있는 표현이 나타나게 한다.

③ 지방의 특색을 살려서 쓰게 한다.

④ 기록한 내용이 사실과 달라서는 안 된다.

⑤ 노정(路程)을 분명히 밝히고 도중의 풍경을 그려야 한다.

⑥ 글 속에 그림 사진 등을 넣거나 시를 인용하면 좋다.

⑦ 메모를 활용하는 것이 좋다.

⑧ 여행 출발의 즐거움이 나타나도록 한다.

⑨ 끝에는 전체적인 느낌을 적는다.

기행문의 형태는 기행문이 일종의 수필이기 때문에, 일기체 형식 서간체 형식 보고체 형식 안내체 형식 수상체 형식 등 쓰고 싶은 형식이면 무엇이든 좋다. 여행은 출발 노정 목적지 귀로(歸路)로 구성된다. 출발에서 귀로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통하여 보고 듣고 느낀 것은 새로운 체험이다. 신기한 것, 인상적인 것, 흥취있는 것, 가치있는 것 등 새로운 체험을 쓴다. 기행문은 이 새로운 체험의 기록이므로,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여행 동안의 모든 체험을 정리하는 보고서가 된다. 기행문은 개인적 여행뿐 아니라 단체여행, 전문성을 띤 학술답사 고적답사 참관 견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좋은 소재를 얻을 수 있다.

 

16. 기사문 쓸 때 유의할 점을 쓰라

기사문은 어떤 사건의 상태를 자기가 보고 듣고 체험한 대로 기록하는 글인데, 이의 대표적인 것이 신속 정확 공정을 모토로 하는 신문 기사이다.

기사문을 쓸 때 유의할 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무엇에 대해 쓰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한다.

② 취재에 즈음해서는 메모를 정확하게 해 두고, 5W 1H의 하나하나에 대해 내용을 분명히 파악 해둔다.

③ 사실과 사실 이외를 구별해 쓴다.

④ 적절한 어구를 사용하고, 문장은 짧게 하여 읽기 쉽도록 한다.

⑤ 필요에 따라 제목과 소제목을 붙이고, 전체의 구성을 분명하게 한다.

신문 기사의 종류로는 보도 기사 해설 기사 논설 기사 기획 기사 읽을거리 기사 광고 기사 등이 있다. 보도 기사는 좁은 의미로 뉴스만을 가르키고, 해설 기사는 사건과 문제를 분석 정리하여 설명한 기사를 말하며, 논설 기사는 진실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기획 기사는 르포라든가 좌담회 같은 것을 말하고, 읽을거리 기사는 흥미 위주의 기사를 말하며, 광고 기사는 선전 광고를 말한다.

신문 기사의 특성 또는 성격으로는 일반적으로 객관성 간략성 보도성 시간성을 들 수 있다. 이를 작성하는 기자는 안목이 정확해야 하고, 정확한 판단력이 있어야 하며, 여론의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취재와 조사가 광범위하고 풍부해야 한다. 일간지의 경우는 시간의 제약과 지면의 제약까지 고려해야 한다.

뉴스는 표제(headline) 리드(lead) 본문(body)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는 기사의 내용과 종류를 간략하게 표시한 제목을 말하고, 리드는 구체적으로 엮어

짠 부분이다. 내용을 정확하고 알기 쉽게 하기 위해 누가(who, 주체) 언제(when, 시간) 어디서(where, 장소) 무엇을(what, 대상) 왜(why, 이유) 어떻게(how, 상태 방법)라는 이른바 5W 1H를 빠짐없이 나열하고 객관적이면서 공평 무사하게 써야 한다.

 

17. 식사문 작성 시 유의할 점을 쓰라

식사문이란 일반적으로 결혼식 입학식 졸업식 취임식 환영식 추도식 같은 여러 가지 의식을 거행하는 곳에서 낭독되는 문장을 말한다.

식사는 경우에 따라 즉흥적으로 하는 수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미리 써서 준비한 것을 낭독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식사에는 대개 즉흥적인 말로써 하는 연설식 식사와 문장을 읽어서 하는 낭독식 식사가 있다. 이를 다시 내용면을 중심으로 분류해 보면 경조(慶弔)나 공사(公私)로 나눌 수 있다. 경조에 관한 식사로는 결혼 회갑 입학 졸업 같은 기쁜 일인 경우의 축사와, 영결 추도 같은 슬픈 일인 경우의 조사가 있다. 공사에 관한 식사로는 제헌절 광복절 같은 공적인 경우와, 결혼 회갑 같이 사적인 경우가 있다. 이밖에 환송사 환영사도 있다. 그리고 하나의 의식을 행하는 데도 개회사 기념사 축사 격려사 폐회사 등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식사 문을 작성할 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① 언제나 공손하고 정중한 표현을 해야 한다.

② 읽기 좋게 낭독조로 써야 한다.

③ 사적인 내용에 치우치지 않게 써야 한다.

④ 지루하지 않으면서 참신미가 있게 써야 한다.

⑤ 의식 참석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게 해야 한다.

식사 문을 쓰려면 자기가 맡은 식사의 성격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의식의 취지 동기 경과 같은 것을 해야 할 개회사에서, 엉뚱하게 그 의식의 의미나 가치 등을 찬양하는 축사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남의 경사스런 결혼식장에 가 주례사를 하면서 자기의 슬픈 추억 같은 것을 끄집어 내어 하객들을 슬픔에 잠기게 한다든가 해서는 안 된다.

작성된 식사문을 직접 식장에서 낭독할 때는 청중의 반응을 고려하여 즉석에서 첨가하거나 제거하기도 하고, 표정이나 제스처 및 음성 등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도 좋다.

 

18. 광고문 작성 시 유의할 점을 쓰라.

광고문이란 어떤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설명함으로써 그 사람들의 이해와 공명을 얻고 이쪽이 바라는 행동을 상대방에게 일으키게 하는 글이다. 광고문은 일종의 상업 행위이므로 거짓은 금물이지만 과장은 허용된다. 유명 인사의 추천 형식으로 효과를 얻는 광고도 있고, 고객의 무의식에 호소하는 광고도 있다.

광고문을 작성할 때의 문제점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압축되고 기발한 글이어야 한다.

② 사실보다는 다소 과장된 글이 효과적이다.

③ 인간의 욕망과 허점을 이용한 글이 효과적이다.

④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⑤ 신뢰감을 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선전 광고문을 읽거나 보고 나서 상품을 사게 되는 과정까지는 주의(attention) → 흥미(interest) → 욕망(desire) → 기억(memory) → 행동(action)의 5단계가 있다. 우선 독자의 주의를 끌어야 하고, 관심을 불러 일으켜 결국 흥미를 갖게 되도록 하며, 광고를 보고 사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켜야 하며, 지금 당장 사지는 않더라도 뒷날에 사게끔 기억해 두게 하고, 마지막으로 상품을 구매하도록 한다. 이러한 5단계의 심리적 변화를 염두에 두고 광고문을 작성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광고문의 작성 형식은 표제와 본문으로 나누어 나타낸다. 표제는 간결하고 요령 있는 문구, 기발한 문구, 리드미컬하고 세련된 문구, 가벼운 유머를 섞은 문구, 인상적인 표현의 문구를 사용하는 게 좋다. 표제에는 상품의 품질과는 관계 없으면서 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쓰는 catch word와, 상품의 내용과 관련 있으면서 독자의 흥미와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slogan이 쓰인다. 본문에는 알기 쉽고 간결하게 상품의 내용 품질 가격 구매 방법 등을 알린다.

 

19. 자기 소개서 쓸 때 유의할 점을 쓰라

자기 소개서란 자기의 환경 성격 사고방식 가치관 특기 사항 등을 위시해서 상대방이 알고자 하는 내용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글이다. 자기소개서의 대다수가 인물의 선발 곧 취업과 연결된다. 자기 소개서를 통하여 개인의 가정 환경 성장 과정을 살필 수 있고, 자원 동기와 장래 포부 또는 문장력과 필체까지 알아볼 수 있게 된다.

자기 소개서를 작성할 때 유의할 점은 다음과 같다.

① 성장 과정을 언급하라.

② 장래 희망과 포부를 밝혀라.

③ 지원 동기를 구체적으로 밝혀라.

④ 자신의 장점과 특기를 내세워라.

⑤ 솔직하게 작성하라.

⑥ 깨끗하게 정서하라.

⑦ 평상적인 어투로 시작하지 말라.

자기 소개서는 한글과 한자를 병용해 서술하는 것이 좋고, 같은 말의 반복을 피해야 하며, 문맥 연결이 논리적이어야 하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어야 한다. 고사 명언 해학 등을 써서 나쁠 것은 없지만 잘못 하면 개성 없는 문장이 될 수도 있다.

자기 소개서는 반드시 제목(표제)을 의무적으로 써 넣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을 이루는 요점을 따 붙이면 응시자의 한 단면을 대번에 알아 차릴 수 있어 좋다. 자기 소개서는 보통 200자 원고지 6매 정도의 분량(타자의 경우 A-4 용지로 2매 이내)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인데, 요구하는 분량보다 조금 초과되는 것은 괜찮지만 많이 미달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자기 소개서는 사전에 미리 작성해 둔 것을 제출하는 경우와, 현장에서 직접 써서 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평소에 충분히 연습해 두는 것이 좋다.

 

20. 이력서 쓸 때 유의 할 점을 쓰라.

이력서는 지금까지 거쳐 온 학업 직업 등의 경력을 쓴 글로, 취업할 때 필수적으로 제출하는 가장 중요한 서류이다.

이력서를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① 상세하면서도 간단명료해야 한다.

② 내용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③ 필체나 글씨에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④ 깨끗하고 깔끔하게 작성해야 한다.

⑤ 사진은 최근의 것으로 규격에 맞아야 한다.

⑥ 긴급 연락처를 반드시 명기해야 한다.

이력서 작성에는 따로 모범답안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기록을 빠짐없이 기록하되 간결하면서도 일목요연하게 써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장점을 살리되 결코 허위 사실이나 과장된 내용을 기재해서는 안 된다. 국문 이력서의 경우 자필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며, 영문 이력서는 반드시 타자로 작성하되 마지막 서명만은 자필로 해야 한다. 글씨가 깨끗하지 못하거나 이곳저곳을 여러 번 뜯어 고친 지저분한 이력서는 결코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연락처(전화번호)는 반드시 이력서 우측 상단에 기입해 둬야 한다.

 

 

 

문장작성학 과제 마침

(2008학년 통신학부 최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