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

 

서양 철학 과제 (총회신학교 2008년 통신학부 최 보 연)

 

#과제1. 신화적 사유와 철학에 대하여 설명하시오.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주로 이오니아의 여러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그들은 주로 우주 혹은 자연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는데, 이러한 관심은 미숙하기는 하지만 철학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그리스인들은 이미 다양한 형식의 독자적인 우주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철학자라 불려질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의 관심이 주로 신화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우주관의 신화적인 표출방식에 관한 기록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詩)에서 나타난다. 그들의 시에서 나타나는 내용은 세계의 발생에 관한 이론(Cosmogony)이다. 예컨대 호메로스의 신화해석에 의하면 모든 발생의 원인은 바다의 신인 오케아노스와 테티스 및 물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神統記 : Theogony)는 혼돈(Chaos)과 에로스(Eros)를 만물발생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도 우주의 시원을 황소와 사자 이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용으로 보는 설명이 주어지기도 하는 등 여러가지의 신화가 탄생되었다.

이러한 신화적 설명방식이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철학적 사고의 맹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증명을 제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즉 철학자들에 의해서 취해질 견해는 아니었다. 최초의 철학자들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견지하면서 자연을 고찰해 보고자 했다는 의미에서 전통적인 신화적 설명방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다.

즉 그들의 사고를 지배했던 것은 뮈토스가 아니라 로고스였다. 초기의 철학자들은 정신적 미성숙 내지는 지식의 깊이에서의 한계 등으로 인하여 만족할 만한 형태의 이론은 제시하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인 신화적 사고방식은 그들을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었다.

 

#과제 2. 변화성과 불변성에 관한 논쟁을 정리하시오.

1)밀레토스 학파

밀레토스 출신인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는 생애가 부분적으로 겹칠 뿐 아니라 그들이 서로 사상의 연계성을 지니기 때문에 하나의 학파에 속하는 것으로 기술되곤 한다. 이들의 눈에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비쳐졌다. 자연 속에 있는 다양한 사물들은 한시도 쉼이 없이 성장하고 쇠퇴하고 있으며 지속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감각에 비쳐진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 만족하지 않았고 이런 변화를 꿰뚫고 지나가는 영속적인 어떤 것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들은 이 영속적인 것을, 세계를 궁극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 간주했다. 그래서 그들의 물음은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하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일체의 변화를 꿰뚫고 지나가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영속적인 근본물질(arche)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들의 탐구대상이었다.

(1) 탈레스(Thales: 640~550 B.C.)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혹은 만들어져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탈레스는 물 또는 습기라고 대답하였다. 탈레스가 왜 이런 대답을 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는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이러한 진술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물은 증기증발이라는 현상을 통하여 기체로 될 수 있으며 또한 결빙 현상을 통하여 고체로 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물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게되는 모든 물질 중 사물의 변화를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물질로서 등장한 것 같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추측한 것처럼 “탈레스가 이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아마도 모든 것의 양분에 수분이 있는 데서, 그리고 열 자체가 물기 있는 것에 의해서 생길 뿐 아니라 또한 그런 것에 의해서 살아있게 됨을 보고, 그리고 또 모든 생물의 씨가 물기를 지니고 있으며, 물이 모든 물기 있는 것들의 본성의 기원이라고 본 데서 비롯되었다.”

두번째 이유는 탈레스의 또 하나의 명제 즉 ‘만물은 신(神)들로 가득찼다’는 명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탈레스는 세계의 기본물질이 곧 생명의 기본물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물은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물질로서 등장한다. 따라서 위의 명제에서 이야기하는 신은 우주의 근원적 존재로서의 신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적 존재 혹은 생명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탈레스가 들고 있는 예는 자석인데,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이 자석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쇠를 끌어당긴다고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활론적(物活論的) 사고방식은 인간정신의 발달사에서 비교적 초기의 사고방식으로 물질과 정신의 분화가 의식되지 않은 시대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만물은 물이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일 뿐만 아니라 물은 생명의 관념과 연결되어 있다. 수분은 먹을 것과 씨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생명의 열 즉 살아있는 신체의 온기는 언제나 축축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보았을 때, 탈레스는 유물론자(materialist)로 간주되었음직하나, 그의 사고는 물질과 정신이 구별되기 이전의 미숙한 단계였으므로 그를 유물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선언지가 주어지고 전자가 취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유물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물활론적 사고단계에 있는 철학자에게 유물론자란 명칭을 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설명은 밀레토스 학파에 속하는 다른 철학자에게도 해당된다. 밀레토스 학파에 속하는 세명의 철학자는 모두 물활론적 사고방식을 견지했기 때문에, 그들이 탐구한 근본물질은 한결같이 만물의 구성물질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원리인 것이다.

우리는 탈레스가 물활론적 사고방식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의 대답이 유치하다는 것 때문에 그의 업적을 낮추어 평가해서는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지칭했듯이 그는 철학의 아버지라 기릴만한 충분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세계의 궁극적 본성은 무엇인가’ 혹은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제기했다는 사실에 놓여 있는 것이지, 그가 실제로 제시했던 대답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전 사람들과는 달리 자연의 원리를 신화적인 접근태도로부터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2)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610~540 B.C.)

아낙시만드로스도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의 궁극적인 원리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골몰하였다. 그러나 그는 탈레스의 입장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 의하면 물은 특수한 종류의 물질로서, 변화와 대립의 근저에 놓여 있는 물질이라기보다는 그 자체 대립하는 물질 중 하나이다. 즉 여러 물질들은 물이 존재하는 여러 방식이 아니라, 물과 서로 대립해 있는 여러 존재인 것이다. 예컨대 물은 불을 생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것이다. 따라서 만물의 근본물질은 물과 같은 어떤 특수한 물질에서 찾아질 수 없다.

물이 다른 물질과 ‘대립’된다는 사실에서부터 물은 다른 물질에 의해서 양적으로 제한될 뿐만 아니라 성질적으로 구별된다는 사실이 도출되어 나온다. 이러한 설명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에도 타당하다. 그러므로 일체의 대립을 넘어서 있는 만물의 근본물질은 양적 제한을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물질과 성질상 구별되는 물질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러한 물질에 ‘아페이론’(apeiron)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페이론은 공간적 의미에서 무한정하고(Boundless) 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Indeterminate)이다. 대립자들 또는 규정되어 있는 것들은 바로 이 무한정한 무규정자로부터 생겨나서, 그것에로 사라지기 때문에, 이 무한정한 무규정자는 대립자들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세계를 대립하는 성질들 즉 온,냉과 건,습이 서로 다투는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를 잠식하는 것을 부정(不正)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온은 여름에 부정을 범하고 냉은 겨울에 부정을 범한다. 규정되어 있는 것들은 무한정한 무규정자 즉 아페이론에로 흡수됨으로써 자신들의 부정을 보상한다. 이것은 법칙개념을 인간생활로부터 우주론에로 확대한 예라 할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규정되어 있는 것들이 이 아페이론으로부터 어떻게 분리되어 나와서 이 세계가 형성되었는가를 설명한다. 그는 선회운동에 의해서 이것을 설명한다. 선회운동에 의해서 냉하고 습한 요소가 차츰 하나의 습한 흙덩어리로 되어 중심부에 위치하게 되고 건조한 불은 주변에 놓여 있게 되며, 공기는 그 사이에 위치한다. 그런데 주변에 위치해 있는 불의 영향 때문에 지구의 여러부분들은 말라버리기 시작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처음으로 생물이 따뜻한 진창 내지 진흙 속에서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난 다음 이들 생물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여러 육지동물이 진화되어 나왔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사고는 만물의 근본물질을 눈에 보이는 어떤 물질 중에서 취한 것이 아니라 보다 추상적 사고를 통해 찾아보려는 점에서 탈레스에 비해 보다 깊은 사고의 일면을 보인다. 더 나아가서 그는 또한 자신의 독특한 우주 진화론을 통해서 세계가 이러한 근본물질로부터 어떻게 생성되어 나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대답하고자 노력했다.

(3)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588~525 B.C.경)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근본물질을 공기로 보고 있다. 그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용어에 따라 규정되어 있는 물질을 선택하여 탈레스적 길을 따름으로써 아낙시만드로스의 견해보다 후퇴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그가 공기를 채택한 데에는 그럴 듯한 이유가 있다.

사람은 숨을 쉬는 한 생명을 유지하고 숨을 쉬는 것은 곧 공기의 들이쉼과 내뿜음이기 때문에 공기는 생명의 원리인 것처럼 보인다. 물활론적 사고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초기 희랍 철학자로서는 이 세계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공기라고 생각했음직 한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이 가지는 보다 큰 설득력은 만물이 어떻게 해서 공기로부터 생겨 나오게 되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를 그가 독창적인 방식으로 설명한 데에 있다. 여러가지 구체적인 물질들이 아르케인 공기로부터 어떻게 형성되느냐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는 농축과 희박이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 되고, 농축되면 바람, 구름, 물, 흙, 돌로 된다. 버네트에 의하면 이러한 이론은 밀레토스학파의 우주론을 일관성있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단일한 원질의 형식으로 설명하는 이론은 일체의 차별을 양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공기의 농축과 희박은 일정한 공간에 있어서 공기의 양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것이다.

2) 피타고라스 학파

피타고라스(Pythagoras: 580~500 B.C.경)를 정점으로 해서 형성된 피타고라스 학파는 복잡한 계보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아주 짧은 역사와 단순한 계보를 가진 밀레토스 학파와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오직 학문 그 자체를 위해서 만들어진 학파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념, 생활방식, 정치적 신념, 학문적 방향 등등 여러가지 점에서도 동일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는 학파라는 점에서 밀레토스학파와는 구별된다. 피타고라스 자신은 원래 이오니아 지방의 사모스 섬 출신이지만 그가 활약한 곳은 남부 이태리의 크로톤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적 성향은 이오니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이태리적인 것이라 여겨진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이론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에 관한 논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들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상은 영혼윤회사상이다. 즉 우리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이 세계로부터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육체, 경우에 따라서는 동물의 육체에 깃들어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인간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들의 표현법에 따르면 육체 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혼이 육체에의 갇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속죄와 보다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들에 의하면 이런 속죄 및 각고의 노력이 없으며 육체의 단순한 변경으로 인간 윤회의 인고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은 당시 이미 상당히 유포되고 있었던 신비주의적 종파 특히 오르페우스교의 믿음과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윤회적 인고의 벗어남에 관한 방식에 관해서 차이를 나타낸다. 오르페우스교와 같은 기존의 종교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 및 시체를 피하는 것과 같은 금기사항을 기계적으로 지키는 것에 의해서 윤회로부터 벗어나려고 했는데 반해서, 피타고라스학파는 비록 이런 유의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었지만 이와 더불어 보다 합리적인 철학의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즉 이들은 영혼을 정화하는 것만이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혼을 정화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금기사항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여러가지 정신적 작업 특히 철학과 수학, 음악, 체조 등에 몰두했다. 따라서 피타고라스 학도들의 여러 활동들은 그들의 종교적인 교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중 수학에 관한 깊은 연구결과 그들은 이 세계에 있어서 수가 가지는 중요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만물은 수로 세어질 수 있으며 두 사물 사이의 관계 또한 수적 비율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특히 감명을 주었던 것은 리라로 연주되는 악보의 음정들이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는 사실이었다. 음의 고저는 길이에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수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음계 또한 수적 비율에 따라서 표현될 수 있다. 음악에서의 조화가 그들의 사고는 음악에 있어서의 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전 우주에 있어서 수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깨달음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이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골몰했다. 예컨대 ‘책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고 물어 보았을 때 우리는 ‘나무’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도 피타고라스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이 나무가 어떤 방식으로 재단되고 모양을 갖추지 않으면 책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즉 나무라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에 어떤 제한을 부여함으로써 책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밀레토스학파는 질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데 반하여 피타고라스 학파는 형상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아낙시만드로스를 사로잡았던 개념이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 혹은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피타고라스의 사고를 맴돌았던 개념은 제한되어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질료의 개념은 자연스럽게 아페이론의 개념에 연결되는 반면에 형상의 개념은 페라스(peras)의 개념에 연결된다.

그런데 이러한 형상 혹은 제한의 개념은 항상 수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것에 대한 가장 좋은 예는 음악에서 보여진다. 소리 그 자체는 높고 낮은 반대 방향으로 뻗어가는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은 것인데, 여기에다가 어떤 일정한 비율로 제한을 가함으로써(리라를 연주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 예에서 볼 때 ‘아름다움’(음악적 조화)은 형상의 개념과, 그리고 수적 제한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은 이러한 예를 우주에까지 확대시켰는데, 따라서 그들에 있어서 우주는 조화로운 우주, 질서있는 우주이며, 이 우주를 조화롭고 질서 있게 만드는 것은 수적 조화 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학적 개념을 물질적인 사물의 질서에다 전이시켰다. 그리하여 여러 점들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수학자의 학자적인 상상력에서가 아니라 바깥에 있는 사물 속에서 선이 산출된다. 동일한 방식으로 면은 여러 선들을 나란히 함으로써 산출되고, 마지막으로 물체는 여러 면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산출된다. 따라서 점, 선, 면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를 구성하고 있는 실제적인 단위들이며, 이런 의미에서 모든 물체들은 수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이 밀레토스인들과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다른 사고유형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흥미를 유발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로 하여금 탐구의 계기가 되도록 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종교적인 것이지만, 그들은 이를 훨씬 넘어서 자신들의 사고영역을 수학적 형이상학에까지 확대시켰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밀레토스적인 우주관으로부터 벗어나서 우주를 다른 방식으로 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플라톤은 여러가지 점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큰 감명을 주었던 것은 이 학파에서 보여준 수학적 사변이었다. ‘불변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플라톤적 사고는 수학적 인식에 대한 그의 이해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과제 3. 원자론과 원소론의 차이를 설명하시오.

*원소론자들:

자연 내의 질적으로 다양한 사물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질적으로 다른 여러가지 종류의 원소를 생각해 내었다. 엠페도클레스는 4가지 종류의 원소의 다양한 결합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사물들이 생성된다고 주장한다. 아낙사고라스는 물질의 종류의 수만큼 원소의 종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원자론자들에 따르면 원자들은 모두 같기 때문에 질적인 차이는 없다. 다만 원자들 간에는 양적 차이 즉 형태, 크기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원자론자들은 원소론자들과는 달리 자연 내의 물체들의 다양성을 원자들의 양적 차이에 의해서 설명한다. 예컨대 나무토막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을 수 없는 데 반해 물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을 수 있는 까닭은 물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이 나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에 비해 훨씬 엉성하게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가 매운 것은 고춧가루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은 뾰족한 것이어서 혀를 찌르기 때문이요, 설탕이 달콤한 것은 설탕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은 매끄러운 것이어서 부드럽게 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모양의 원자라도 배열에 따라서 다른 물질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와 공간 이외에 어떠한 존재도 부인하기 때문에 영혼에 대해서도 동일한 설명을 줄 수밖에 없다. 영혼도 원자들의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영혼이 다른 물체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다고 한다면,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는 가장 미세한 까닭으로 운동이 가장 민활한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일반물체와 영혼과의 차이도 결국 원자들의 양 차이에 불과하다.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를 불의 성질을 띤 원자 즉 화성(火性) 원자라고 한다. 화성원자가 곧 영성(靈性) 원자이다. 이 종류의 원자가 우주 내에 골고루 흩어져 있으므로, 어떤 물체이고 간에 다소간 이것을 포함 아니한 것은 없다. 다시 말해서 모든 만물이 약간씩의 영성을 띠고 있으나 인간의 육체에는 그것이 비교적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으므로 다른 물체에 비하여 영성이 현저하게 나타난 것뿐이다. 결국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의 정신현상까지도 그의 원자론에 입각해서 설명했다. 즉 정신도 어떤 물체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사후에는 정신을 구성했던 원자도 흩어져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런 까닭에 데모크리토스를 엄격한 의미에서 최초의 유물론자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원자론자들: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미움의 힘도, 아낙사고라스의 누스도 가정하지 않았다. 어떠한 외부의 힘도 최초의 운동을 위해 필요한 원인으로 가정되지 않았다. 단지 원자들의 외적 운동만으로 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만일에 무한한 빈 공간과 그 안에 자유로운 상태로 무한한 수의 원자들이 주어져 있다면 원자들은 필연적으로 운동을 할 것이며, 목적없이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것이라고 그들이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이 원자들은 서로 부딪쳐 튕겨져 나가기도 하며 그런 가운데 서로 맞물려 결합되기도 한다. 원자론자들은 운동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주지 않았다. 원자와 빈 공간이 있다는 설명만으로 충분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 양자가 주어지면 운동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원자론자들의 이러한 입장은 인과적이고 기계론적인 자연관을 표방한 것이었다.

 

#과제 4. 자연철학에서 아테네 시기의 철학으로 옮겨 온 이유를 설명하시오.

기원전 6세기 내지 5세기는 각기 다른 그리스 생활권마다 거의 동시에 갖가지 철학사상이 발흥하면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정신적인 대단원을 펼쳐보이게 된다. 자연현상 그 자체 속에서 세계의 근원까지도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싹트기 시작하였으니, 그리스와 서양에 있어서의 모든 철학적 방향도 바로 이것을 연원으로 삼고 있는가 하면 또한 많은 철학사상가들이 바로 여기서 철학의 보금자리를 찾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페르샤전쟁 후 철학에도 전환의 시기가 도래한다. 기원전 5세기 후반에 이르러 종래의 철학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 자연학이었는데 지금은 인간의 문제, 특히 그 정신생활의 문제가 철학의 중심문제가 된다. 자연에 골몰하던 인간의 정신이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 자신을 살펴본다. 소피스트들에 의하여 시작된 이 새로운 경향의 철학은 소크라테스에 의하여 확고한 토대가 놓여지고, 다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장엄한 체계로 전개되었으니, 이 시기는 그리스 철학의 전성기이다.

당시 페르샤전쟁의 승리로 아테네의 세력은 절정에 다다랐는데, 얼마 안가서 펠로폰네소스의 패전으로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패권을 빼앗겼고, 스파르타도 또한 그것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으니 아테네, 스파르타, 테에베와 같은 도시국가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어 민족적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북방의 마케도니아의 세력은 점점 강대하여 338년 카리오네이아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항복한 후 그 정치적 자유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문화는 여전히 번영하였고, 특히 아테네는 그리스 전체의 문화중심지였다. 소피스트들을 비롯하여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 이 시기의 철학은 아테네를 무대로 전개되었다. 이 시기의 철학적 정신은 처음에 소피스트의 계몽정신으로 등장한다. 그것은 외면적 권위를 배격하고 내면적 자유를 강조한다. 그들의 철학원리는 감각주의, 회의주의, 상대주의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에 의하여 무너진 권위의 빈 터전에 다시 확고부동한 보편적 윤리의 기준을 바로 잡아 세우려고 힘쓴다. 그러나 아직 객관적 내용을 갖추기에 이르지 못한다. 플라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학은 이데아란 객관적 존재에 그 근거를 잡는다. 그러나 그의 이데아는 현실에서 유리된 고답적 이상에 불과하였다. 이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현실의 발전과정 속에 실현되는 본질로서 파악한다.

 

#과제 5. 헤라이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자연관을 비교하시오.

1)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30~470 B.C.)

헤라클레이토스는 새로운 문제 즉 변화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중요명제 중 하나는 ‘만물은 유전(流轉)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당신은 동일한 강물에 두번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물이 계속 당신에게 밀어닥치기 때문이다’라는 진술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이토스가 변화를 겪는 그 무엇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변화의 흐름 속에 있는 어떤 동일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변화하는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이 어떤 것을 ‘불’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불은 밀레토스 학파에서 원질로서 논의되었던 물이니 공기니 불이니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이다. 말하자면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 불은 변화를 설명해주는 개념으로서 도입되었다. 우리의 감각에 의하면 불은 항상 무엇인가를 섭취하면서 그것을 태워버린다. 불은 많은 대상으로부터 발생함으로써 그런 대상을 자신으로 변화시키며, 따라서 재료를 공급하지 않고서는 불은 죽어버린다. 이처럼 헤라클레이토스가 불을 선택했을 때, 그는 변화하는 물질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변화의 원리 그 자체를 고려한 것이었다. 따라서 만물이 유전한다는 말은 세계가 하나의 ‘영원히 타는 불’(ever-living fire)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운동은 ‘타는 정도와 연소되는 정도’에 의해서 보증된다. 이 ‘정도’는 타는 것과 연소되는 것 간의 일종의 균형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은 경제적 비유로써 쉽게 이해된다. ‘만물이 불의 교환물이고, 불은 만물의 교환물이다. 이는 상품이 금의, 금이 상품의 교환물인 것과 같다.’이 교환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물은 계속 변화하되 궁극적으로 잃는 것도 얻는 것도 없다는 점이다. 불이 만물을 태워서 자신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만물로부터 그 무엇을 받는다면, 받는 만큼 준다. 그리하여 각 종류의 물체가 변화하는 반면에 집합량은 항상 동일한 채로 남아 있다.

헤라이클레이토스에 의하면 불의 변화과정은 두 가지 길 즉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구분된다. 그는 변화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설명하고 우주는 이것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다. 불이 응축할 때 습기가 되고, 압축 하에서 물로 된다. 응결되어진 물은 흙으로 변화하고, 이것을 그는 내려가는 길이라 부른다. 또한 흙은 그자체 용해되고 그로부터 물이 되며 그로부터 모든 다른 것이 나온다. 이것이 올라가는 길이다.

이상에서도 이미 드러났지만 헤라클레이토스에 있어서 불은 변화과정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싸움을 설명해 주는 상징이었다. 불은 다른 것을 태워서 죽임으로써만 스스로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은 불과 태워지는 물질 사이의 투쟁을 상징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위에서 설명한 변화라고 하는 것은 투쟁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말하기를 ‘싸움은 만물의 아버지요, 다툼은 정의이다.’ 만물을 이처럼 투쟁의 관점에서 보려고 하고 이러한 투쟁을 통해서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입장은 변증법적 사고의 일면을 보여줌으로써 후세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변화와 투쟁의 과정은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로고스(Logos)에 따른 운동이다. 그런데 이 로고스의 개념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종교적 신념 즉 만물 중 가장 실재적인 것은 영혼이며 그 영혼의 가장 판명하고 중요한 속성은 지혜 혹은 사유라는 그의 신념에서 출발했다. 그는 만물의 변화과정에서 신성한 법칙을 파악했던 것이다. 그런데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러한 로고스를 자연의 문제에만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그들 자신의 본질 속에 신적인 어떤 것 혹은 불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 보편법칙을 분유한다. 그래서 그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있어서 로고스는 자연의 보편법칙인 동시에 인간사회의 법칙이며, 인간의 행위의 법칙인 것이다.

2)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520~440 B.C.)

파르메니데스는 통상 헤라클레이토스와 정반대의 견해를 품었던 철학자로 평가되어 왔다. 즉 헤라클레이토스가 변화의 측면을 강조한 데 반해서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의 개념은 논리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파르메니데스는 변화를 인정하는 주장들은 모순을 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모순된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만약 변화의 개념이 이해될 수 없는 개념이라면 우리는 변화의 사실에 대해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 변화는 환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계를 불변적인 어떤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에 호소하지 않고 이성에 호소하게 될 때 이러한 결론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변화하는 세계는 우리의 감각 때문에 생기는 가상(假象)에 불과하다. 따라서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는 속견(俗見)에 불과하다. 우리는 더 이상 속견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진리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진리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이성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된다.

파르메니데스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 ‘존재하는 것’은 오직 존재할 뿐이요, 그 외의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만이 존재한다.

둘째, 변화 즉 생성-소멸은 없다. 만약 어떤 것이 존재하게 된다면 즉 생성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만약 그것이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존재하게 되는 것(생성)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은 같은 것인데, 우리는 자기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변화의 개념을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면, 존재하는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기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이미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으로부터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도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게 되는 것(생성)이 아니다. 다만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성은 없으며 소멸도 없다.

셋째로, ‘존재하는 것’은 불가분적(不可分的)이다. 만약 그것이 분할된다고 한다면 존재하는 것에 의해 분할되든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 분할되어야 한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에 의해 분할된다는 것은 분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에 의해서 분할된다는 것은 양자가 동질적으로 연속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며, 결국 분할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서 분할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전혀 분할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의해서 분할된다고 말할 때 그 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만약 존재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면 존재는 일자(一者)요, 유일자(唯一者)라고 할 수밖에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물질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졌다. 파르메니데스는 생성의 의미에서의 변화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운동의 의미에서의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운동 또한 있는 것이 그것 아닌 것으로 됨을 의미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서 파르메니데스가 의미하는 것은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빈 공간은 존재가 아닌데,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실재의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물질덩어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영원하고 변화없는 정지 속에 언제나 머물러 있다.

 

#과제 6. 소피스트 철학의 상대주의와 회의론을 설명하시오.

페르샤전쟁(기원전 500~449년)을 통하여 자유를 위한 그리스인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자 그리스의 본토, 특히 그 중에서도 바야흐로 문화적 내지 정치적 중심지로 도약한 아테네는 풍요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부와 사치에 이어서 이제는 고도의 교양을 쌓고자 하는 욕망도 또한 팽배해지기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또 나라의 민주적 헌법은 웅변술이 지니는 의미를 더욱 고양시켜 줌으로써 국민의회나 재판소에서도 이제는 자기의 논지를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누구에게도 못지 않은 유창한 형식으로 공표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마련이었다. 그리하여 출세를 꿈꾸는 사람이면 누구나가-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원칙적으로 입신출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졌던 까닭에-정치가며 동시에 웅변가로서의 철저한 훈련을 쌓아야만 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욕구에 부응할 수 있었던 것이 소피스트들이었다. ‘지혜의 스승’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의 ‘소피스타이’(Sophistai)라는 말이 실제로는 오직 이와 같은 뜻으로만 사용되어 왔었다. 이들 소피스트들은 마치 방랑자와도 같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떠돌아다니면서 일정한 보수를 받고서 갖가지의 기술이나 능력을 가르쳐 주었던 바, 그 중에서도 특히 대화술을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은 본래의 의미에서는 철학자가 아닌 실천가였던 까닭에, 그밖의 모든 실천가들이 그러하듯이 이들도 역시 이론적 인식에는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더욱이 전술한 바와 같이 철학의 전반적 상황에 곁들인 이들 소피스트의 처신으로 말미암아서, 결국 그들 자신은 대부분이 객관적 인식이란 도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게끔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가지 가세한 것이 있다면 교양수준이 점증함에 따라서 광범위한 계층까지도 타민족이나 그들의 관습 및 종교에 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짐으로서 그 때까지만 해도 확고부동한 상태를 유지하던 선입견마저도 동요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약 여기서와 같이 실제로 어떤 특정한 문제에 있어서 과연 어느 편이 ‘옳은가’하는 것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하등의 객관적 기준도 없다고 한다면 이제 남는 문제란 다만 어느 편이 옳다고 ‘자처하는가?’ 다시 말해서 어느 편이 더욱 재치있게 자기의 입장을 관철시킬 줄 아는가 하는 것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그런데 일단은 이와같이 이론적 회의에 불과했던 것이 어느덧 도덕적 영역에까지 비화하면서, 이제 그들은 이론적 대결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종국에 가서는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도 역시 어느 편이 좀 더 다대한 성과를 올리는가 하는 데에 모든 문제의 관건이 달려 있다고 주창하고 나섰다. 그리하여 소피스트적 입장에서 볼 때는 웅변술이란 것도 역시 설득이라기보다는 한낱 설복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졌는가 하면, 윤리적 측면에 있어서도 또한 그들은 일체를 규제하는 객관적인 법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다만 강자의 권리만이 인정될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진리와 정의에 대한 객관적 가치기준을 부인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이들 소피스트들은 자기들이 제공하는 학습의 대가로서 적지 않은 보수를 받아왔다는 점(그리스에서는 원래 수입을 올리기 위한 노력제공은 옳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까닭에), 그리고 다시 플라톤이 주도했던 그들에 대한 투쟁의 결과로서 이들은 결국 오늘날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는 어딘지 탐탁치 못한 뒷맛을 남기는, 궤변가라는 의미의 소피스트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과제 7. 소크라테스의 “덕은 앎이다”를 설명하시오.

그의 판단에 따르면 덕을 획득하는 일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이 덕을 획득하려면 그는 자신의 존재목적을 수행해야 한다. 인간의 경우에 이것은 그의 전 본성이 조화롭게 발전되어 가는 것을 의미할 것이요, 이것은 현순간 혹은 바로 뒤의 순간보다는 전체로서의 인생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덕만이 영혼에 만족스러움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이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것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무엇이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감각적 쾌락·물질적인 부·공적인 존경 등등 이와 유사한 목적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이들이 가장 큰 양의 만족을 가져다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목적이 도달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된다. 따라서 영혼으로 하여금 진·선·미를 사랑하게끔 영혼을 계발함으로써만 인생의 참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악한 것 혹은 해로운 것이라고 그 자신 알고 있는 것을 추구하는 법은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항상 그가 알고 있는 최선의 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쁜 짓을 가끔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따르면 나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할 때 다른 행위를 했을 때보다도 더 큰 만족을 얻게 된다고 믿고서 그런 행위를 한다. 그들의 잘못은 바로 이점에 있다. 악한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악한 행동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가 유일한 악이고 앎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을 날게 하는 날개이다.”

선한 생활의 의미에 관한 앎은 선한 결정을 하는데 요구되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민주정치를 비판했다. 그가 믿기로 이러한 형태의 정부에서는 전체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무지하고 무능한 자도 현명하고 유능한 자와 똑같은 기회를 얻게 된다. 현명한 자와 선한 도덕적 성격을 갖춘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일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깊은 확신이었다.

 

#과제8.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지식론을 정리하시오.

그는 처음에 메가라로 가서 유클리드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그는 이집트, 키레네, 크레테, 남부 이태리 등 긴 여행을 떠났고, 그런 여행을 하면서 피타고라스 학파, 헤라클레이토스 학파 엘레아 학파의 철학자들과 직접 접촉을 했다.

약 390 B.C., 플라톤이 거의 40살이 되었을 때, 정치적 포부를 실현시키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그는 젊을 때부터 항상 정치적인 일에 관심을 쏟고 있었고, 여러가지 관찰을 통해서 잘 교육받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통치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시실리섬 해변에 위치한 국가인 시라쿠스 왕의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이것을 기연으로 해서 플라톤은 자기의 정치이론을 현실적 조건하에서 현실화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왕인 디오니시우스는 유능한 학생이 아니었고, 플라톤이 그의 무능함을 나무랐을 때, 그 독재자는 플라톤을 사슬로 묶고 사형을 언도했다. 그러나 곧 그는 감형을 받아 노예로 되었고, 어니세리스가 돈으로 그의 자유를 산 후 곧 아테네로 귀환되는 것이 허용되었다.

아테네로 돌아온 이후에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라는 학교를 하나 세웠다. 그는 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대화편을 저술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시라쿠스의 왕이 죽은 이후에 두번이나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시도를 했는데, 이때마다 강의와 저술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결국 두번 다 실패로 끝났으며, 끝내 아테네로 돌아와 그의 생애의 마지막을 강의와 저술에 바쳤다. 그는 347 B.C에 죽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사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대화의 형식으로 글을 썼다. 대화의 목적은 독단적 방식으로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독창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고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표현형식은 특히 플라톤이 생각했던 목적에 적절한 것이었다. 이러한 표현형식에 의해서 논의하는 주제에 대해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제시된 견해와 대조되는 점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방법은 제기된 문제점들에 대한 궁극적인 해결책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실망을 주지만, 주어진 주체들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힘을 부여할 것이다. 플라톤 자신의 이름은 전 대화편에서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 자신의 견해는 주로 소크라테스의 진술에서 나타난다.

 

#과제 9.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학의 주장을 요약하시오.

지금까지 우리는 개별적 사물을 정적으로 분석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동일한 것을, 만듦과 성장의 과정에 대해 특별히 언급함으로써 역동적으로 고찰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과 만듦의 과정에 의해서 상대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 규정되어 있는 것으로 된다. 그래서 질료와 형상의 대비가 가능태와 현실태의 대비로 전환된다. 이러한 대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쉽게 파악된다. 예컨대 식물의 싹이 주어졌을 때 그것이 어떤 식물의 것인지를 확실하게 알기는 힘들다. 그러나 구별할 수 없는 싹 중 하나는 참나무가 되고 다른 하나는 느릅나무가 된다. 우리가 그 두 개의 싹을 아무리 구별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이들은 자신 안에 상이한 잠재적 생장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주어진 싹에 대해서 “이것이 현실적으로는 참 나무가 아니라 하더라고, 가능적으로는 참나무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그 싹이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제때에 참나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어떤 방해를 받더라도 그것은 느릅나무나 너도밤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변화의 과정이란 가능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도토리는 현실적인 참나무가 되고, 아기는 현실적으로 어른이 되며, 구리는 현실적 그릇으로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질료와 형상에 대해, 질료는 지속적이며 바탕이 되는 기체이며, 이런 기체 속에서 형상의 발전이 일어난다고 혹은 개별자는 형상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규정될 때 현실태이고 발전되지 않은 질료는 그 현실태의 가능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실체들의 현실상태와 이들 실체가 유리한 사정만 마련되었을 경우 도달하게 되었을 보다 완전한 실재와는 다르다. 이 완전한 실재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태(entelechy)라고 부른다. 도토리의 완전태는 참나무가 되는데 있고, 소년의 완전태는 성인이 되는 것이며, 성인의 완전태는 행복에 있다. 따라서 완전태란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제10.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을 설명하시오.

형상과 질료의 대립, 가능태와 현실태의 대립으로 설명되던 세계의 개념은 소위 4원인설에 의해서 보다 완벽한 설명을 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론은 그리스철학의 중심문제가 되었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해결책이라고 본다. ‘현재 그러그러한 상태로 사물이 존재하게 된 원인을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보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4가지 측면에서 물어 볼 수 있다고 한다.

i) 그것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ii) 그것은 무엇인가?

iii) 그것은 무엇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iv) 그것은 어떤 목적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이러한 질문은 사람이 만든 물건에 대해서는

i) 질료인 ii) 형상인 iii) 작용인 iv) 목적인에 대한 질문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

i) 대리석으로

ii) 입상(入像)

iii) 조각에 의해

iv) 장식을 위해라고 대답할 수 있다.

또한 자연 내 유기체의 발전에 대해서는

i) 참나무의 잠재적 가능성이었던 싹

ii) 이러한 싹을 참나무로 되게 하는 일정한 성장법칙

iii) 참나무의 싹은 어느 곳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어버이 참나무에서 성장했다.

어버이 참나무와 도토리를 배태하는 어버이나무의 활동이 바로 현 참나무의 작용인이다. vi) 성장의 전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가 있으며,

이 단계에서는 새로운 도토리를 배태하고 있는 장성한 참나무가 존재한다.

이 단계가 과정의 마지막(목적)이다.

 

#과제11.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설을 설명하시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이데아와 감각계에 존재하는 질료가 어떤 식으로 결합되는가 하는 문제를 만족스럽게 설명하는 일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어떤 무규정적인 질료 속에 이데아가 현현함으로써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사물이 존재하게 된다. 예컨대 우리가 어떤 존재를 ‘개’라고 부르고 ‘사과’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사과의 이데아가 아니라 개의 이데아가 어떤 무규정적인 질료 속에 현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데아는 분명히 2중적으로 사용된다.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이데아와 개별물 속에 현현하는 이데아 바로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독립적 실재로 보는 것은 필요없는 중복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에 남는 것은 개별적 사물이며 이는 실체라 불린다. 렇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데아 혹은 형상이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그에 의하면 개별물로서의 실체는 질료와 형상의 결합에 의해서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과학자는 ‘말’과‘소’의 구성조직이 같다고 말한다. 가죽, 뼈, 피, 살 등등 구성조직에 관해서만 말한다면 소와 말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은 소가 아니고 소는 말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이 양자를 구별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과 소의 구성조직이 아닌 다른 요소가 이러한 구별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런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자 속에서 두 가지 요소를 구별했다. 하나는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적인 형성 혹은 배열법칙이다. 전자는 소와 말의 경우에서처럼 동일할 수도 있지만, 후자 때문에 소와 말이 구별된다. 개별적 사물 속에서 이 두 요소는 불가분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 사물 속에 두 측면 중 전자를 질료(hyle), 후자를 형상(eidos)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개별자는 일정한 구조원리 즉 형상에 따라서 조직화된 질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와 형상의 분석을, 개별적 실체의 범위를 넘어서서 유추의 방법에 의해서 우리가 비교적 무규정적인 ‘그무엇’과 그것에 규정을 부여하는 배열법칙을 구별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확장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어린아이에 비해 비교적 고정화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어른에 대해 고찰한다면, 이러한 성격은 가공화되지 않은 성벽으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고난 성벽을 성격이 만들어지는 재료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이란 어른이 좋은 국가의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 요구되는 형상을 이러한 질료에 정확하게 각인시키는 훈련체계를 고안하는 일이다. 사람의 성격은 실체가 아니므로 방금 설명했던 것은 실체의 범주를 넘어서서 질료와 형상의 개념을 확장한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질료란 물질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고, 구조적 법칙 혹은 형상에 의해서 보다 완전한 규정을 받아들이는 상대적으로 무규정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질료와 형상이 엄격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음을 보게 된다. 질료란 그것에 그 이상의 규정을 부여하는 형상과 비교해서만 질료라 불린다.

형상이란 개별물로 하여금 그것의 완전한 성격을 획득토록하는 마지막 규정을 의미하고 질료는 이 마지막 규정을 아직 받아들여야 할 어떤 것이다. 그리하여 구리공의 경우에 구형의 모습은 그것의 형상이고, 질료는 그것의 재료이다. 인간의 육체의 경우 질료는 여러가지의 조직, 근육, 뼈, 살 등등이다. 그러나 구리는 원소가 아니라 원소들의 특수한 결합이며, 이러한 점은 보다 복잡한 생물체의 조직에도 해당된다. 그리하여 공이나 생물체에 비교했을 때 질료인 바의 것은 그 질료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이미 형상에 의해서 규정된 질료인 것이다. 소위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 즉 물, 공기, 흙, 불이 모든 합성체의 질료이다. 그리고 그런 합성체의 형상은 그것의 특수한 구성법칙이다. 이 점은 좀더 복잡한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생물체의 조직에도 타당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아갈 경우 결국 모든 개별적 사물의 궁극적 질료는 우주전체에 걸쳐서 동일하며 어떠한 일정한 구조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질료 즉 순수질료는 결코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순수질료는 우리의 사고의 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난점을 피하고 있다. 실제로 질료가 발견되는 가장 조잡한 형상은 4원소이다. 그러나 이론적인 측면에서만 볼 때 이들 원소보다도 더 궁극적인 질료가 있을 것이다.

 

#과제12.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설을 설명하시오.

그는 윤리학이 난해하고 복잡한 주제이고 따라서 성숙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절한 주제라고 하는 것을 깨달았다. 윤리학에 관한 그의 입장이 가장 잘 드러난 책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이 저서가 윤리학사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큰 것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현대 윤리학자의 견해 사이에 많은 차이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 주제에 관해서 쓰여졌던 가장 중요한 저서 중 하나라고 간주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 속에 존재하는 만물에게는 성취하려는 목적이나 수행하려는 기능이 존재한다는 그의 신념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처럼 만물이 목적으로 삼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선(goodness)이라고 부른다. 자연의 모든 변화 뿐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했는데, 인간이 지향하는 목적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두 종류로 구분한다. 하나는 도구적 목적으로서, 이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행해지며, 다른 하나는 본래적 목적으로서, 이는 그것 자체를 위해 수행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위들은 어떤 목적을 지향하지만, 그것들이 완성되어 있을 때는 그것은 결국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예컨대 목공의 목적은 책상을 만드는 것이지만, 이 책상은 어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책상이 만들어지면 목공의 기능은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목공과 그에 의해서 만들어진 책상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도구적인 것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선’이라는 개념은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기능과 연결된다. 예컨대 어떤 망치가 선하다고(좋다고)하는 것은 사람들이 망치에 기대하는 수행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은 바로 기능의 실현이며, 이 기능의 실현은 그 자체 목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윤리학은 선한 인간의 문제에 관계하는 학문인데,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선한 인간이란 다름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윤리학의 목적은 인간의 기능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으로 전환된다. 우리의 신체는 각각 어떤 기능을 수행한다. 눈은 보는 기능을, 귀는 듣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직업인으로서의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독특한 기능을 실현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목공이거나 교사이거나 요리사이거나 선장이거나에 관계없이 그들이 인간으로서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은 없는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답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본성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을 크게 세 가지고 나누어진다. 첫째 영양과 생식의 기능, 둘째 감각과 욕망의 기능, 셋째 이성의 기능이다. 이들 중 앞의 두 기능은 비이성적인 것으로서 이성적인 원리에 대항하거나 방해한다. 그런데 비이성적인 것 중 첫 번째 것은 식물로 가지고 있는 기능이요, 둘째 것은 동물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고유한 기능은 이성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간의 선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성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의 기능을 수행하는 행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셈이 된다.

바로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행동들이 목적과 수단의 고리에 의해서 연결된다고 진술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자연의 목적체계들을 규명하는 형이상학이 궁극적으로 다루는 것이 제1형상이라면, 윤리학은 궁극적으로 인생의 궁극목적 즉 최고선을 다루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궁극목적은 자족적이며 최종적인 것이어서 그것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의해서 도달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야말로 명칭의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의 궁극목적 혹은 최고선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 명예, 여가 등등은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으로 간주될 만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다른 그 무엇에 도달하기 이한 수단으로서만 추구된다. 최고선은 수단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목적 자체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행복이 실현될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는 영혼의 이성적 부분이 비이성적 부분을 통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영혼의 비이성적 부분으로서의 욕망은 자신의 외부에 있는 것들, 즉 대상들이나 다른 인간들에 의해 영향을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에 따르는 행위 즉 도덕적 행위는 결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덕’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습관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습관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천성이 아니다. 따라서 도덕은 습관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즉 도덕은 올바르게 사유하는 습관, 올바르게 선택하는 습관, 올바르게 행동하는 습관의 발전과 관계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도덕적 덕과 지적 덕으로 나눈다. 도덕적 덕은 다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지적인 덕은 목적 자체이다. 후자의 덕은 이들이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때조차도 적극적 가치를 가진다. 예를 들어 보면 절제는 도덕적 덕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건강한 육체와 마음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에 대한 인식과 감상은 지적 덕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스스로 가치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중용이론에서 발견된다. 이 이론은 과도와 부족이라는 양 극단 사이의 중간으로 정의되는 도덕적 덕에 관계한다. 예컨대 용기의 덕은 만용과 비겁의 중간이요, 만용과 비겁은 악덕이다. 절약은 인색과 낭비의 중간에 놓여 있는 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방식으로 중용에 관한 긴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중용은 만인에게 동일하지도 않으며 모든 행동에 대한 하나의 중용도 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중용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각각의 인간에게 상대적이다. 식사의 경우에 있어 성인운동가와 어린 소녀에 알맞은 식사량은 다르다. 그러나 그 양자에 있어서도 적절한 중용이 존재하는 바 그것은 절제이다. 여기서의 양 극단 즉 포식과 절식은 악덕이다. 어쨌든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중용은 산술적 중간이 아니라 가치론적인 의미에서 정점인 일점이다. 이러한 중용의 행위는 환경에 따라 변화할 것이지만, 감정이나 욕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의 구사에 의해서 결정된다.

 

#과제13. 헬레니즘․로마시대 철학의 특징을 설명하시오.

그리스 철학에 있어서 최고 전성기는 아테네기의 철학이다.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철학의 새로운 전환이 모색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전환은 플라톤, 아리스토델레스를 거쳐서 방대한 체계가 수립되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은 더 이상 독창적인 철학을 가지지 못하고 종래의 철학을 약간씩 변경시킨, 말하자면 아류의 철학에 불과하다.

이처럼 이 시대의 철학이 그 전 시대에 비해 독창성을 가지지 못하게 된 까닭은 이 시대의 철학이 주로 실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이론적인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소크라테스 이후의 그리스 철학은 실천적인 문제에 궁극적인 관심을 두었지만, 이 경우에는 이런 실천적인 문제를 기초지우기 위한 이론에 대한 심도있는 탐구를 시도하였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은 주로 개인윤리 즉 어떻게 하면 안심입명(安心立命)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더 이상 체계적인 이론이 요구되지 않았고, 다만 안심입명만 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체계적인 이론 따위는 불필요한 것이고, 다만 자기의 실천에 편리한 이론을 전통 철학 중에서 그때 그때 빌려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이처럼 이 시대의 철학사상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존해 있을 때,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에 합병되었고, 알렉산더가 죽고 난 다음에 그리스는 종종 전란의 도가니로 화하였다. 그 이후 그리스는 강력한 군사국가인 로마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불행한 정세 하에서 그리고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폴리스의 붕괴로 인해서 나타나는 허무감, 고향상실감 등 때문에 철학자들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철학에 몰두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급적 국가적 상황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직 개인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그리스적 전통은 로마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해 갔다. 그래서 로마시대의 철학조차도 그리스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제14. 스토아․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을 비교하시오.

*스토아 학파의 사상은

한 사람, 한 시대의 소산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오랜 시일에 걸쳐서 형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상의 세밀한 점에서는 여러가지 차이가 있으나, 그 근간에 있어서 조류를 같이하는 사상을 통틀어서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라고 한다. 이 학파의 창시자는 그리스 사람이 아니고 패니키아 사람으로 짐작되는 키티움의 제논(Zenon of Citium)으로서 그는 기원전 316년경 아테네에 와서 스토아․포이키레(채색한 전당)에 학교를 창설하고, 오랫동안 교수하였다. 스토아 학파란 명칭은 이에 기원한 것이다. 클레안테스(Kleanthes)가 그의 뒤를 이었고, 또 크루싶포스(Khrusippos)에 이르러 아테네 학계에서 군림하게 되었고, 파나이티오스(Panaitios)에 의하여 로마에 전파되었다. 로마에서는 대체로 통속적이고 절충적인 도덕설로 되었는데, 이 시대에 유명했던 스토아 학자로서는 벌률가요 또 정치가이며 폭군 네로의 스승이기도 하였던 세네카(Seneca), 에피크테토스(Epiktetos), 또 명군 안토니누스(Antoninus, Marcus Aurelius) 황제 등이다.

스토아 학파의 사상은 학설로서도 큰 세력을 폈지만 그 시대의식에도 적합하여 마음의 수양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특히 로마에 전파된 후에는 무(武)를 숭상하는 로마인들의 기풍에 맞아 수도에서 성행되었다. 스토아 학파는 철학․논리․물리․윤리를 구분했다. 그러나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윤리에 있었고, 논리와 물리는 윤리의 기초과목에 해당하였다.

스토아 학파는 사물에 공통되는 보편적 성질을 실재라고 보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그런 보편은 우리 주관이 생각해서 언어로 표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은 감관을 통해 지각함으로써 성립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감각에서 시작하여 이 감각을 통해 성립되는 지각이 후에 남아서 기억이 되고, 기억이 쌓여서 경험이 되고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하여 보편적 관념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지식은 외물의 인상을 통해서 성립되므로 우리의 관념이 진리냐 아니냐 하는 점은 그 관념이 대상과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다. 그런데 이 일치․불일치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참된 관념은 그 관념이 직접 진리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진리가 스스로 진리임을 나타내고, 다른 것이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님은, 마치 빛이 다른 것에 의해서 비추어지지 않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스토아 학파의 형이상학은 유물론이다. 실재하는 모든 것, 인간의 영혼이나 신은 물론이요 사물의 성질 그리고 덕이나 정욕까지도 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물체는 물질과 힘으로 양분된다. 양분되면서도 하나의 것이다. 물질 그 자체에는 아무런 성질이 없으며, 거기에 힘이 가해져 운동하게 됨으로써 여러가지 성질이 나타나게 된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이 힘의 근원을 헤라클레이토스를 따라 로고스라고 하였고, 또 만물의 근본원소도 불(火)이라고 했다. 이 불이, 곧 신이요 로고스이다. 이러한 스토아 학파의 형이상학은 범신론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즉 로고스요 신인 불의 일원론을 주장했으나 이 불은 일면 물질이면서 다른 면에서는 힘이요, 또한 정신이기 때문에, 불을 근본 원소로 하는 이 우주는 이성적인 것이어서, 거기에는 질서․조화․목적과 미가 있다. 인간의 영혼은 우주의 신화의 일부분을 받은 것으로 인간에서 가장 존귀한 이성은 우주의 이성인 로고스가 깃들어 있다.

인간의 인간다움은 이성에서 찾아야 하는데, 이성은 또한 이 우주․자연을 지배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다운 생활, 인간의 본성에 맞는 생활은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스토아 학파의 모토(motto)는 ‘자연에 순응하여 생활하라’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천리와 인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덕․부덕의 구별은 외형상으로 나타난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태도에 있다. 정신적 태도가 도리에 어긋남이 없고 이성에 맞으면 덕행은 스스로 따르게 마련이다. 그리고 덕과 부덕과의 중간 단계는 없다. 인간에는 다만 유덕한 사람(즉 현인)과 부덕한 사람(즉 어리석은 자)이 있을 따름이다. 소크라테스나 알렉산더같은 성현은 모두 덕을 갖추어, 그 행하는 바 모든 일이 도리에 어긋남이 없고, 그 외에는 모두가 어리석은 자들뿐이다. 이러한 엄격주의는 후에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되어 양자의 중간에 정진(精進)하는 계급을 두게 되었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인간이 갖추고 있는 덕성은 선한 것이고 부덕은 악한 것이라 하고 기타 여하한 것에도 선악의 구별을 두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부귀․공명․쾌락․생사 등은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닌 아디아포라(adiaphora), 즉 중립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아디아포라적인 것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이, 곧 부덕의 근원이요, 또 그것이 곧 번뇌이다. 이성에 따른 생활, 즉 유덕한 생활이란 소극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러한 번뇌에서부터 해탈된 생활이다. 스토아 학파의 윤리설은 유덕한 생활을 주로 이 소극적인 면에서 보려고 하였다. 수양이란 아디아포라적인 사물에 대해서 완전히 무관심할 수 있는 아파테이아(apatheia)(不動心)를 얻는 데 있다. 이 부동심으로써만 우리는 안심입명(安心立命)할 수가 있는 것이다. 부동심을 존중하고 생사까지도 가벼이 생각함으로, 스토아 철학자들 중에는 의지력에 의해서, 호흡을 멈추어서 자살한 자가 많다고 한다. 이 학파의 창시자 제논과 클레안테스 또 세네카 같은 사람들도 자살하였다. 살아 남아서 아디아포라적인 것에 의해서 지배되기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아 이 학파에서는 자살을 시인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윤리사상은 개인주의적 경향에 흘렀으나, 스토아학파만은 도덕의 사회성을 중요시했다. 그들은 가정과 국가에 대한 의무를 중요시하였고, 나아가서는 모든 인간은 이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민족이나 혈통의 구별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곧 이 학파의 세계주의이다. 이리하여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명백하게 박애의 덕을 강조하게 되었다. 또 이 세계주의는 여러 이민족을 통합한 로마대제국의 성립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스토아 학파는 우주의 이법(理法)인 로고스가 곧 신이라고 보아 범신론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다. 우주의 이법인 신의 섭리는 필연적인 것으로, 의지가 있는 인간이나 의지가 없는 기타 만물을 막론하고 이 필연적인 섭리, 다시 말하면 천명에 따라야 한다. ‘천명을 욕구하는 자는 이를 선도하고, 욕구하지 않는 자는 이를 이끌고 간다’라고 스토아 학파에서는 말한다. 이 말을 자연에 순응해서 생활하라는 그들의 모토(motto)와 견주어 볼 때에 당시와 같은 세태에서도 자연과 천명에 순진스럽게 자신을 내맡기려는 낙천적인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그들의 태도는 자포자기하는 태도는 아니다. 그것은 부동심을 말하는 그들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스토아 학파는 안심입명을 구한 것은 당시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러면서도 자력을 강조하기를 잊지 않은 것은 로마적 기운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에피쿠로스는

철학을 개인의 쾌락, 즉 행복을 찾는 수단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처세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학문이건 도덕이건 모두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쾌락이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했다. 쾌락을 지상으로 삼는 그는 쾌락이란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적극적인 쾌락이 있기는 하지만, 쾌락이 생애의 지상과업이 될 때에는 다소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현명한 쾌락주의자는 무작정 모든 쾌락을 취하여 도리어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고통에 빠지지 않고 지각에 의해서 쾌락과 고통을 비교·선택하여, 영속적인 쾌락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쾌락은 일시적인 환락에 취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욕망을 끊음으로써 불만이 없는 생활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쾌락주의자의 궁극적 목적은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적극적 쾌락을 취하는 것보다, 오히려 마음이 안정된 무욕의 상태에 있다고 하겠다. 마음의 이러한 상태를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ataraxia․平靜心)라고 불렀다.

이와같이 진정한 쾌락은 오로지 내면적인 마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쾌락은 다만 현재만 있을 따름이므로 일시적인 것이나, 정신적 쾌락에는 과거와 미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강도(强度) 또한 육체적 쾌락보다 강하다. 또 육체적 고통은 정신력으로써 억압할 수도 있다. 에피쿠로스는 ‘나에게 빵과 물만 있다면 나의 행복은 신의 그것과 겨누리라’고 말했다. 현자는 아타락시아를 얻기 위해서 외물에 대해 욕망을 품지 않고 따라서 외물에 의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한 점은 스토아 학파의 유덕한 현인과 마찬가지라 하겠으나,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철저한 개인주의여서, 스토아 학파에서와 같은 의무감이나 책임감 또 보편적 법칙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에피쿠로스는 학문이나 도덕할 것 없이 개인의 쾌락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한, 무용의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자연계에 대한 연구는 헛된 망상과 미신을 타파함으로써 헛된 공포와 번뇌를 없애주는 한에 있어서만 유용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에서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물리설 즉 원자론이 그러한 목적에 적합한 것으로 보아 이를 채택하였다. 존재는 오직 허공(공간)과 그 속에서 운동하는 원자뿐이고 만물은 예외없이 원자가 뭉쳤다 흩어졌다 하는 데 따라서 생성·소멸되기 때문에 세계에는 불가사의한 요괴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원자론을 취함으로써 철저한 기계론을 주장한 점은 스토아 학파가 유물론을 주장하면서도 정신적 원리를 허용하여 목적론을 주장한 것과는 반대된다.

인간의 영혼은 매끈매끈하고 작아서 움직이기 쉬운 불의 원자로 되어 있는 뜨거운 숨결(호흡)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이 원자가 흩어져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가 죽은 뒤에도 영혼은 남아 내세에서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후에 어떤 벌을 받을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죽음과 전연 관계가 없다. 우리는 죽음과 부딪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없는 것이며, 또 죽음이 올 때에는 이미 우리는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 학파에서는 신이 있기는 하나, 그 신은 ‘신주단지 뚜껑을 떼어서 멀리 골짜기 아래 내던지고, 그 술통 옆에 잔뜩 누워 있어, 인간에 대해서 아무 관심도 없고, 광택있는 세계에 둘러싸인 신의 황금의 궁전 위에는 잔 비늘구름이 떠 있다’고 했고, 또 신은 창조주가 아니고, 인간과 같은 자연의 소산으로서 지상의 행복을 누리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를 예배할 필요는 전연 없다고 했다.

지각은 외물의 형상(eidola)이 감관을 통해 들어와 영혼의 원자에 부딪쳐 운동을 일으킴으로써 일어난다. 상상 또한 지각과 마찬가지의 것으로 외물과 관계없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은 전에 일어났던 영혼원자의 운동이 다시 일어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또 관념은 감각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기억에 의해서 축적된 것을 우리가 이름을 붙여 부르곤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의 표준은 감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감각적 경험론은 스토아 학파의 그것보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에피쿠로스는 의지란 영혼원자의 운동이 신체에 전달될 때에 일어난다고 했다. 이렇듯 에피쿠로스는 모든 심리작용을 유물론적으로 설명하였으나, 의지의 자유만은 철저히 주장했다. 이것은 에피쿠로스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약간 수정해서 원자들이 허공 속에서 수직으로 하락운동을 할 때에 그 속도에는 차이가 없을 터인즉 원자간에는 충돌이 일어날 리 없다고 보아, 충돌이 일어나기 위해서 각 원자는 제멋대로 조금씩 가속할 수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점과 관련이 있다.

 

#과제15. 플로티노스의 유출설을 설명하시오.

유출설(流出說): 만물의 태원인 신, 즉 일자는 무한하고 형태가 없고 여하한 성질도 붙일 수 없어 모든 대립과 차별을 초월한 유일 절대의 실존이다. 세계 만물은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터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오듯, 또 영원히 빛을 발하는 태양에서 광선이 흘러나오듯이 일자로부터 유출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존재와 자기충족의 창조자인’ 일자가 감소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일자는 변함없이 일자로서 원만하고 증감이 없고 늘 충족한 채로 있는 것이다.

일자로부터의 유출은 3단계로 나누어진다. 일자로부터 제일 먼저 유출되는 것이 누스(정신․사유)이다. 정신이요 사유인 이 누스(Nous)에서 벌써 주관과 객관 즉 사유와 존재로 나누어지는데 그러면서도 양자는 하나로서 누스의 사유대상은 그 자신과 또 그의 근원인 일자, 또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계이다.

다음에 일자로부터 유출되는 것은 프쉬케(Psyche, 영혼)이다. 플로티노스는 이 프쉬케를 상위의 프쉬케와 하위의 프쉬케로 나누었는데, 상위의 것은 자각이 있고 이성이 있어 활동하는 것이고, 하위의 것은 형체적인 것과 결부되어 그것에 속박되어 있다. 그는 또한 우주 전체에 편재하고 있는 프쉬케가 있다고 보아, 이것을 「세계영혼」이라고 불렀다. 하위의 세계영혼 즉 형체와 결부된 세계영혼이 곧 자연이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상위의 영혼은 육체와 결부되지 않은 불멸의 것이고, 하위의 것은 육체의 생기(生氣)이다.

누스와 프쉬케까지는 아직 형이상학적인 것이나, 다음 마지막 단계로 유출되는 것은 형이하학적인 물질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플로티노스는 이원론을 피하고자 하여 물질은 유출의 극한으로서 소극적인 비실재라고 보고 일자와 대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빛이 태양으로부터 유출되어 점차 멀어지는 면은 어두워가다가 드디어는 빛과 반사되는 암흑으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플로티노스는 일자로부터 유출에 정연한 단계를 둠으로써 일원론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과제16. 고대철학에서 중세철학에로 발전된 이유를 설명하시오.

간 영혼의 정화와 개인의 안심입명에 대한 희구는 신플라톤 학파와 같은 종교적 철학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자의 지성적 종교이었다. 그러나 동방의 히브리민족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자, 억눌린 자, 죄지은 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주만물을 창조한 신에 의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서, 민중과 사랑의 종교이었다. 중세철학은 바로 이 그리스도교적 철학이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을 이성적 인간이 어떻게 이해하고 옹호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의식에서 싹트고 전개된 것이 곧 중세철학이다.

 

#과제17. 중세의 시대적 배경을 약술하시오.

예수가 설파한 종교는 전통적인 유대교 위에 성립하는 것이었다. 즉 그는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을 이어 받아, 스스로 신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구세주․그리스도)라는 확신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신의 뜻에 따를 것을 권고했던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인간 이성에 의해 산출된 체계화된 철학도 아니고, 단지 단순히 유대인의 마음 속 깊이 놓여 있었던 전통적인 종교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이 유대교의 가르침과 다른 점은, 후자가 율법(특히 모세의 율법)을 신성한 것으로 보고 이것을 중시한 데 대해서, 전자는 이러한 것을 넘어서서 다만 사랑이라는 것을 그의 가르침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율법이란 유대인의 풍속․습관 위에 성립하는 여러가지 법규․의식들이고, 따라서 율법을 중시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유대교를 어디까지나 유대인의 종교로 그치게 하고 결코 다른 민족의 종교로 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이러한 외형적인 것들을 배격하고 다만 자기 마음으로부터 신을 사랑하고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을 설파했던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전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도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종교로 될 수 있는 까닭이 있다. 나아가서,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교에 있어서는 이 율법이 극히 복잡했기 때문에, 그것은 종교적 전문가에게만 완전히 실행될 수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 종교는 특정한 계급의 사람들의 종교이지 결코 민중의 종교로 될 수 없었던 데 대해서,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계급의 구별없이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만인의 종교로 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가 그 당시 세상에서 활동하던 때에는 그의 새로운 종교를 다만 유대인들 가운데 다소의 신자 또는 추종자를 얻었던 데 불과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은 천대받던 노예와 부녀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으로서 벌판의 불처럼 번져 나갔는 데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일시에 그 기세가 꺾이는 듯 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과 그것에 대한 신앙에서 다시 힘을 얻어 친히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그와 같은 삶을 체험한 사도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는 우선 유대인에게 전도되고, 그런 뒤에 성․바울(St. Paul)에 의하여 널리 다른 민족들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이야 말로 그리스도교를 진정한 세계종교로 되게 한 사람이었다. 그 뒤 많은 순교자를 내면서 마침내 민중 속에 깊이 뿌리를 박아 도도한 세력을 이루었고, 드디어 313년 그 당시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기에 이르고, 나아가서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로마 국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가 겨우 수백년 동안에 모든 이교(異敎)를 극복해버렸다고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생각될 수 있겠다. 로마에 의해 세계제국이 형성되었다는 정치적 사정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권 내부에서 그리스어가 공통어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등의 여러가지 사정들이 그리스교의 전파를 빠르게 하였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카이사르의 것은 카아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 하여, 정치적 욕망을 떠나 순수히 인간의 내면성만을 중요시하는 듯한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정치력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세계제국의 통치를 위해 유용하기조차 했다고 하는 것이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도교는 그 시초에 있어서는 전혀 철학을 가지는 것이 아니었고, 또 거기에 커다란 장점이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세력이 증대하여 교회조직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그 교리(dogma)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동시에 다른 종교에 대해 그리스도교를 변호할 필요도 생겼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이 생겨 나왔다.

예수의 가르침을 바울이 어느 정도 체계화해 놓은 바탕 위에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확립한 사람들은 교부(patres ecckesiae)들이었다. 그들에 의한 철학이 교부철학이다. 교부철학 시기는 대체로 2세기경서 8세기 말경까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5세기 전반의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 그 정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부철학은 시대적으로는 고대철학 말기의 종교철학과 거의 같은 시기를 차지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대체로 고대사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지반 위에 서있고 스콜라 철학의 성립에 기초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세철학의 테두리 안에 속하게 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세철학은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이다. 스콜라 철학은 9세기 이후에서 중세말까지 이르는 동안 교회에 소속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던 교사들의 철학인데, 이 경우 교부철학에 의해 이미 확립되어 있는 교리를 어떻게 논증하고 해명하여 체계화할까 하는 것이 그 주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을 조리있게 밝히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된다.

 

#과제18.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을 설명하시오.

예수가 설파한 종교는 전통적인 유대교 위에 성립하는 것이었다. 즉 그는 유대교의 메시아 사상을 이어 받아, 스스로 신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구세주․그리스도)라는 확신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신의 뜻에 따를 것을 권고했던 것이다. 그것은 원래 인간 이성에 의해 산출된 체계화된 철학도 아니고, 단지 단순히 유대인의 마음 속 깊이 놓여 있었던 전통적인 종교적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이 유대교의 가르침과 다른 점은, 후자가 율법(특히 모세의 율법)을 신성한 것으로 보고 이것을 중시한 데 대해서, 전자는 이러한 것을 넘어서서 다만 사랑이라는 것을 그의 가르침의 중심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율법이란 유대인의 풍속․습관 위에 성립하는 여러가지 법규․의식들이고, 따라서 율법을 중시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유대교를 어디까지나 유대인의 종교로 그치게 하고 결코 다른 민족의 종교로 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서, 예수는 이러한 외형적인 것들을 배격하고 다만 자기 마음으로부터 신을 사랑하고 또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을 설파했던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전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도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종교로 될 수 있는 까닭이 있다. 나아가서, 율법을 중시하는 유대교에 있어서는 이 율법이 극히 복잡했기 때문에, 그것은 종교적 전문가에게만 완전히 실행될 수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 종교는 특정한 계급의 사람들의 종교이지 결코 민중의 종교로 될 수 없었던 데 대해서,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계급의 구별없이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만인의 종교로 될 수 있는 바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가 그 당시 세상에서 활동하던 때에는 그의 새로운 종교를 다만 유대인들 가운데 다소의 신자 또는 추종자를 얻었던 데 불과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은 천대받던 노예와 부녀자들에게는 기쁜 소식으로서 벌판의 불처럼 번져 나갔는 데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일시에 그 기세가 꺾이는 듯 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과 그것에 대한 신앙에서 다시 힘을 얻어 친히 예수의 가르침을 받고 그와 같은 삶을 체험한 사도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는 우선 유대인에게 전도되고, 그런 뒤에 성․바울(St. Paul)에 의하여 널리 다른 민족들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이야 말로 그리스도교를 진정한 세계종교로 되게 한 사람이었다. 그뒤 많은 순교자를 내면서 마침내 민중 속에 깊이 뿌리를 박아 도도한 세력을 이루었고, 드디어 313년 그 당시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기에 이르고, 나아가서 395년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는 로마 국교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교가 겨우 수백년 동안에 모든 이교(異敎)를 극복해버렸다고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생각될 수 있겠다. 로마에 의해 세계제국이 형성되었다는 정치적 사정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권 내부에서 그리스어가 공통어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등의 여러가지 사정들이 그리스교의 전파를 빠르게 하였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카이사르의 것은 카아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 하여, 정치적 욕망을 떠나 순수히 인간의 내면성만을 중요시하는 듯한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정치력과 크게 충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세계제국의 통치를 위해 유용하기조차 했다고 하는 것이 커다란 원인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리스도교는 그 시초에 있어서는 전혀 철학을 가지는 것이 아니었고, 또 거기에 커다란 장점이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세력이 증대하여 교회조직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그 교리(dogma)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동시에 다른 종교에 대해 그리스도교를 변호할 필요도 생겼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교 신학이 생겨 나왔다.

예수의 가르침을 바울이 어느 정도 체계화해 놓은 바탕 위에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확립한 사람들은 교부(patres ecckesiae)들이었다. 그들에 의한 철학이 교부철학이다. 교부철학 시기는 대체로 2세기경서 8세기 말경까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5세기 전반의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 그 정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부철학은 시대적으로는 고대철학 말기의 종교철학과 거의 같은 시기를 차지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대체로 고대사에 속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지반 위에 서있고 스콜라 철학의 성립에 기초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중세철학의 테두리 안에 속하게 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세철학은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이다. 스콜라 철학은 9세기 이후에서 중세말까지 이르는 동안 교회에 소속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던 교사들의 철학인데, 이 경우 교부철학에 의해 이미 확립되어 있는 교리를 어떻게 논증하고 해명하여 체계화할까 하는 것이 그 주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그리스도교 신학을 조리있게 밝히기 위한 도구나 수단이 된다. 어쨌든 중세철학의 근본 문제는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 속에 들어 있다.

 

#과제19.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 인간, 인식, 역사의 문제를 약술하시오.

교부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

tinus, 354~430)이다. 그는 원죄설로써 그리스도교 교리를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는 악이란 선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결핍(privatio substantiae)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은 신과 성질이 같기는 해도, 그것은 없음으로부터 생긴(creatio ex nihilo)것이기 때문에 불완전하며 잘 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지에 의해서 신의 주권과 권능에 반대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에 의해서 신의 주권과 권능에 반대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에 의한 신의 뜻을 거역하였으므로, 인간이 그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인간의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원죄를 범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구원을 요구할 수 없으며, 구원은 오직 신의 뜻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생각하는 내면적 의식 현상만이 확실한 것을 말하며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Si fallor sum)고 하였다. 의심하거나 오류를 범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근거로서의 정신적 존재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 내면적 정신에서 인간은 신의 계시에 의해서 비추어지는 영원한 진리를 파지할 수 있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근세의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의 선구가 된다. 이와 같은 내면적 정신적 탐구와 더불어 그에게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시간론이다. 이우구스티누스는 지나간 것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가 있어서, 그 각각은 기억과 시각과 기대에 존재한다고 말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신앙이 이성에 앞선 것이었으며, 이성은 신앙을 위하여 필요할 뿐이고, 또한 신의 인식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한에서 존중되었을 따름이다. 신의 계시는 우리를 신앙으로 초청하고 있으며 그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영원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뿌리인 셈이다. 그런데 그는 신의 계시와 뜻이 펼쳐지는 곳은 지상이고 그 지상에서 실현되는 과정을 역사로써 설명하였다. 그에 의하면 역사의 의의는 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데 있다. 세계의 역사는 지상국과 신국(神國)의 투쟁 과정으로서 지상국은 파멸되어야 할 국가이고 신국은 영원히 올 국가이다. 신의 최후 심판에 의하여 세계사가 끝나고 신의 긍정이 성립하여 신국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인간의 저주받은 자유 의지가 부정되고 선한 신의 자유 의지가 보장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세계를 지상국으로 보고, 그것에서 시간성을 부여했고 신국은 참다운 국가로 보아 그곳에서는 영원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과제20. 토마스 퀴나스에 있어서 신존재증명을 설명하시오.

아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리스도교화하였으며, 그의 신학은 오늘날 카톨릭의 공인철학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이성이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긴 해도 신의 본질을 파악할 수는 없는 것으로서, 자연의 빛으로서의 이성은 논리적 추론에 의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 뿐 신의 본질을 알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본다. 신의 본질을 아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아무런 보상없이 거져 주신 은총의 빛에 의해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이성에 의해 신을 알려는 것은 이성의 권한을 넘어서는 행위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인간 이성을 논리적 추론에 의해 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증명할 수는 있다. 이런 증명은 신의 존재를 확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존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성적 짐작일 것이다. 토마스․아퀴나스는 모든 존재의 제일 원인으로서의 신의 존재를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방법으로 증명하였다.

① 운동의 원인으로서의 신: 자연의 모든 운동은 그 원인으로서 부동(不動)의 원동자를 가져야 한다.

② 우연적 존재의 원인으로서의 신: 현실의 사물은 우연적인 것으로서 우연적인 존재에 대한 현실적이며 필연적인 존재가 있어야 한다.

③ 모든 존재의 선과 참다움 및 완전성의 원인으러서의 신: 모든 사물에는 참되거나 선하거나 고상함에 있어서 계층적 구조를 가지는 데 이러한 구조에 있어서 최상의 가장 완전한 존재가 있어야 한다.

④ 모든 존재의 목적으로서의 신: 인과 계열의 맨 위에는 모든 작용의 궁극 원인이 된다. 토마스․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은 자연의 빛으로서 창조주인 신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보았다.

토마스․아퀴나스는 보편과 특수의 관계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의 관계를 이용하였다. 개별적 사물은 신의 지혜에 의해서 주어지는 형상이 질료에 가해져서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질료도 신에 의해 창조된다고 한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차이가 난다. 어쨌든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전 사상에 걸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융화를 꾀하였다. 그의 철학은 도미니코 교단의 공인 철학이 되었다. 그러나 점차로 프란체스코 교단과 신비주의자들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적 이론에 반기를 들게 되었으니, 말기의 스콜라 철학은 그와 같은 움직임이 겉으로 나타난 것이다.

 

#과제21.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설명하고 철학사적 의의를 밝히시오.

데카르트가 일련의 철저한 회의를 통해 그가 추호도 의심하지 못할 사실로 발견한 것은 바로 내가 지금 무엇에 관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금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너무 확실한 것이었고, 이것은 바로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원리는 그것에 대해 의심한다는 사실자체가 터무니없을 만큼 자명한 절대적인 확실성의 원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는 논리적 추리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 명증적으로 획득된 것이다. 이 코기토는 의심한다는 좁은 의미로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긍정하며 의지하고 지각하고 상상하는 의식활동일반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술어이다. 데카르트가 가장 확실한 원리로 발견한 이 ‘Cogito ergo sum’은 그가 수학적 공리와 같이 자명한 것으로 발견한 그의 철학의 아르키메데스적 기점이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자신의 존재 확실성을 신이나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심하는 자신, 즉 사유하는 자신으로부터 보증하려고 했다.

내가 나의 존재를 직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자아는 사유하는 실체임이 분명해진다. 실로 자아는 직접 인식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은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최초의 존재일 뿐만아니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확실성을 위한 두 번째 단계는 신의 존재증명이다. 데카르트는 이성이 다른 존재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성의 권위에 대한 보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의 존재 안에서 그것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데카르트는 관념의 종류를 먼저 검토한다. 그에 의하면 관념은 세 가지 종류의 것이 있다. 외래관념, 인위관념, 본유관념이 그것이다. 그는 말하기를 “내 마음 속에 외계의 사물에서 온 것(외래관념)도 아니요, 내 의지의 결정을 따라 생긴 것(인위관념)도 아닌 바, 오로지 나의 생각하는 능력에 유래하는 관념이 있음을 관찰했을 때, 이 관념을 나는 본유관념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러한 본유관념으로서 사유하는 자아, 수학적 원리나 도덕적 원리, 그리고 신의 관념을 든다.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를 이러한 본유관념과 관련시켜 논증하고 있다. 즉 본유관념으로서의 신의 관념 안에는 유한자로부터 온 것이 아닌 여러가지 것들이 있다. ‘무한, 영원, 전지전능’ 등의 개념은 유한자로부터 온 것들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무한개념들을 유한자 속에 집어넣어 준 또다른 존재가 있어야 한다. 유한자 안에 신의 관념을 가져다 준 원인의 구실을 한 그 존재는 그 결과로서 유한자가 가지고 있는 신의 관념에 못잖은 완전성을 구비해야 한다. 다른 유한자의 관념은 나 자신이 만들어 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 또한 유한하고 생명을 가진 실체이므로, 신의 관념은 그 관념 속에 내포된 바와 같은 완전성을 가진 존재로부터 와야 한다. 이와 같은 존재는 바로 신뿐이다. 그러므로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데카르트 자신은 신에 대한 자기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만약 그 관념이 진실로 무한한 실체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면, 나 자신은 유한자이므로 무한한 실체에 관한 관념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성의 최초 단계가 이성적 존재로서의 자아개념을 확립한데 있다면, 2단계의 신의 존재증명은 이성으로써 신의 존재를 논증한 것이된다. 결과로부터 원인에로의 추론이 이성적인 것이라면, 유한자가 가진 신의 관념으로부터 신의 존재이론의 추론도 이성적이다.

데카르트의 세 번째 단계는, 물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단계인데, 이는 자연계를 구성하는 존재에 관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마음의 권리와 능력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 권리와 능력은 방법론적인 회의를 목표로 한 최초의 단계에서는 부정된 것들이다. 그러나 그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그 권리와 능력이 회복되었다고 믿었다. 즉, 완전한 존재로서의 신에게는 속임이나 거짓이 불가능하므로 그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이성의 능력도 역시 불완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간이성에 유래하는 것은 거짓일 수가 없다. 문제는 이 이성을 어떻게 올바로 사용하느냐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명석하고 판명하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경우에 판단을 보류한다면 인간은 결코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이성으로써 우리는 외적대상의 존재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리의 정신밖에 ‘연장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명석판명한 이성적 인식이라고 주장하여 물체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데카르트가 회의를 통해 그 확실성을 문제로 삼았던 것은 정신, 신, 물체였다. 그리고 그는 이 세 가지의 존재를 차례로 확실히 그리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 가지를 각각 실체로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실체란 자신이 존재하기 위하여 자신이외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를 의미한다. 즉 자신의 존재 근거를 자신이 갖고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만이 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만이 엄격한 의미에서 자기자신 속에 자기근거를 가진 자기 원인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정신과 물체는 상호 독립되어 의지하지 않는다고는 하더라도 신의 피조물로서 신에게 의존한다. 그리하여 신을 무한실체라고 한다면 정신과 물체는 비록 실체이기는 하지만 신에 근거하므로 유한실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데카르트에 따르면 유한실체로서의 정신과 물체는 사유하는 자와 연장하는 것으로서 상호 독립적인 존재로 철저히 구별된다. 정신의 속성은 사유함이요 물체의 속성은 연장함이다. 결국 세계는 비연장적 존재인 정신과 비사유적 존재인 물체로 구별됨으로써 이원론적으로 파악되게 된다. 그리고 그에 비하면 물체는 기계론적인 운동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제 연장적 존재인 자연은 더 이상 목적활동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죽어있는 거대한 기계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이는 근대 자연과학의 요구에 부합되는 주장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근대의 자연과학은 중세의 목적론적 자연관과는 달리 기계론적 자연관 위에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의 실체사상은 다음의 도식으로 나타내질 수 있을 것이다.

1> 무한실체 : 신

2> 유한실체 : 정신 물체

3> 속 성 : 사유 연장

4> 양 태 : 의심, 판단, 상상 위치, 운동, 수, 모양

의욕 등등 행태 등등

 

 

#과제22. 스피노자의 범신론적 일원론을 설명하시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체 혹은 육체를 비록 유한하기는 하지만 실체로 봄으로써 이원론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정신과 물체를 무한실체인 신에 의존하는 것으로서 생각한 것은 이미 신만이 엄격한 의미에서 실체라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일원론적인 체계로 전환시킨다.

스피노자 역시 실체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그는 실체를 ‘그 자체에 의해 이해되는 것’ 즉 ‘자기원인(causa sui)’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실체란 신밖에 없다. 정신과 물체는 더 이상 데카르트에 있어서처럼 실체일 수 없다. 그것들은 신이 가지고 있는 많은 속성 중의 두 가지가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신은 무한히 많은 속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즉 사유와 연장만이 알려진다. 연장은 물체로 드러나고 사유는 정신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해서 정신과 물체는 데카르트에서 처럼 더 이상 실체인 것이 아니라 유일한 실체인 신의 두 가지 모습 즉 양태로 된다.

스피노자에 있어서 이 세계의 모든 정신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은 신의 속성인 사유와 연장의 표현인 양태이다. 이 정신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들은 우연적이고 가변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이것은 단독 실체인 신의 속성의 표현인 만큼 신의 본질과 필연적 연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스피노자에 있어서는 정신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은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양면이며, 신은 바로 자연이라는 범신론적 사상이 가능하게 된다. 신은 자연과 결코 분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이란 바로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신은 능산적 자연(natura naturans)이고 물리적 세계는 소산적 자연(natura naturata)일 뿐이다. 결국 신은 원인으로서의 자연이고 자연은 결과로서의 신일 뿐이다. 이처럼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실체에 관한 견해를 철저화함으로써 결국 「신 즉 자연」이라는 범신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와 같이 스피노자는 정신적 현상과 물리적 현상을 동일한 실체인 신을 다른 측면에서 본데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함으로써, 데카르트에 있어서 문제가 되었던 정신과 육체 사이의 상호관계가 전혀 문제거리로 등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이제 정신적인 존재만도 아니고, 육체적인 존재만도 아니며, 그렇다고 정신적인 실체와 물체적인 실체가 함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실체의 측면에서 보면 정신도 물체도 아닌 그 무엇이다. 이 어떤 것은 연장과 사유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연장을 통해서는 육체로 사유를 통해서는 정신으로 드러난다. 그리하여 육체적인 사건과 정신적인 사건은 별개의 두 가지 사건이 아니라 동일한 어떤 사건이 두 가지 측면에서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는 동일한 시간이 가되 위에서는 그 시간의 흐름이 바늘의 움직임에 의해 드러나고 밑에서는 추의 운동으로 드러나는 괘종시계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럽다는 생각과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동일한 어떤 사건의 두 가지 측면일 뿐이다. 따라서 정신적 사건과 육체적 사건 사이에는 필연적인 평행적 대응관계가 존재하게 된다.

이상에서 설명한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적 체계는 다음과 같이 보다 구체적으로 도식화될 수 있을 것이다.

1> 단독실체(무한한 속성을 지닌) : 신

2> 두 개의 알려진 속성들 : 사유 연장

3> 일반적 무한 양태들

a) 직접적인 무한양태 : 무한지성 운동과 정지

b) 간접적인 무한양태 : 전 우주의 유형

4> 특수 유한 양태들 : 정신들 물체들

이상의 스피노자의 사상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범신론적 일원론으로 극복하긴 했지만, 그는 무한실체인 능산적 자연으로서의 신으로부터 소산적 자연으로서의 유한한 사물이 실제로 어떻게 생겨나오는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난점을 지닌다. 즉 그는 신과 세계사이의 논리적 필연성만을 강조했을 뿐이지 실질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실체사상은 들어가는 발자국은 많지만 나오는 발자국은 없는 사자의 동굴에 비유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예를 들어 삼각형은 여러 성질을 가지지만 그 성질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실제로 그려진 삼각형은 결국 세변으로 둘러싸인 평면도형으로써 다 동일한 모습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이, 개체적이고 개별적인 것들은 자신의 존재근거를 자신이 가지지 못하게 되고, 따라서 그들은 개체성 혹은 개별성의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즉 그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신의 손짓이나 발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과제23. 라이프니쯔의 단자론을 설명하고 합리론의 문제점을 지적하시오.

대륙합리론의 중심 문제인 실체문제에 있어서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갖는 문제점을 극복하는 길은 두 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그 하나는 스피노자에서와 같이 실체의 수를 하나로 줄이든가 아니면 아예 실체의 수를 여러개로 하든가 하는 길이다. 라이프니쯔는 후자의 길을 택한 철학자이다. 이와 같은 그의 방향전회는 고대자연철학에서 일원론의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다원론자들의 사상, 그 중에서도 원자론의 사상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프니쯔는 스피노자가 유한적 존재들을 그들을 초월하는 무한실체에 의해 설명하려는 데 반해, 오히려 일체의 유한적 존재들이 각각 실체라고 주장한다. 이제 그에 의하면 개별적인 다양한 것들이 모두 자신들의 존재근거를 자신들이 소유한 실체인 것이다. 라이프니쯔는 이러한 실체들을 단자(monad)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나드로서의 실체들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아톰과 같이 각각 모양과 크기가 다른 연장적인 것들인가? 라이프니쯔는 모나드를 원자와 엄격히 구별한다. 원자로는 물론 개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아무리 미세하다고 하더라도 연장적인 이상 기계론적인 운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당시의 과학의 신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인간을 설명하는 데 문제점이 생긴다. 이에 따르면 인간도 움직여지는 기계덩어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라이프니쯔는 실체로서의 모나드는 원자와 같이 연장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연장적인 것, 즉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모나드는 결국 데카르트의 res cogitans 인가? 물론 그것이 비연장적이란 측면에서는 그와 유사하지만 단순히 정신적인 것만은 아니다. 라이프니쯔는 종전의 입장에서 벗어나 실체에 힘, 혹은 작용이라는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역동성이 부여된 개별적 실체인 모나드는 어떤 정적인 주체가 아니라 힘의 중심이다. 따라서 모나드는 단순히 사유하는 자(res cogitans)인 것이 아니라 이제 활동하는 자(res agens)로 바뀌어야 한다.

라이프니쯔에 있어서 실체는 모나드로서 그 모나드는 개별적인 것이고, 또한 비연장적인 것이며, 그 자체 힘이고 작용이다. 그러면 모나드는 각기 어떤 작용을 하는가? 각각 모나드는 항상 시간적인 경험을 구성하는 모든 관념이나 표상을 자발적으로 산출한다. 각각의 모나드는 능동적으로 여러 의식상태의 내용을 표현하려는 힘과 충동을 가진다. 그러면 모양과 크기가 다른 원자와는 달리 비연장적인 존재로서의 모나드는 어떻게 그 개별성이 보장되는가? 그것은 각각의 모나드가 상호독립적인 것으로서 스스로 자기자신을 나름대로 표현 혹은 표상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것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는 각각의 모나드가 어떤 외부의 영향도 받지 않는 것으로서 독립적이고 자기완결적 혹은 자기폐쇄적일 때에만 가능하다. 라이프니쯔는 이러한 모나드의 성격을 단자는 창을 갖지 않는다는 말로 표현한다. 이것이 단자무창론이다. 이처럼 자기완결적 존재로서의 각각의 모나드는 자신의 세계를 각자의 고유한 방식으로 나름대로 표상한다. 따라서 각각의 모나드 하나하나는 모든 우주를 자신 속에 표현하고 있는 우주의 거울이요, 소우주이다.

그런데 각각의 모나드가 서로 교제할 수 있는 창을 갖지 않은채 자기 세계를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서로 다른 모나드에게 빛을 비추어 주듯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말하자면 각각 모나드적인 고립적 세계를 가지면서도 상호 공동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라이프니쯔는 이것을 신에 의해 이미 예정된 조화로 설명한다. 이것이 이른바 그의 예정조화설이다.

라이프니쯔는 정신과 육체간의 관계도 예정조화설로 설명한다. 예컨대 처음부터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조금도 틀림이 없는 두 개의 시계가 같은 시각을 가리키는 것처럼, 정신과 육체도 각기 고유한 법칙에 따르면서도, 항상 완전히 일치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라이프니쯔는 데카르트나 스피노자보다 더 수학적 체계를 철학에 끌어들이는데 기여했다. 그는 모든 개념을 수학적 기호를 사용해서 가장 단순한 진리에서 일체의 진리를 수학적으로 연역하는 보편학을 확립하려 했다. 이처럼 라이프니쯔는 합리적 인식을 존중하였다. 그러나 그는 순수이성에 의해 발견되는 이 합리적 인식으로서의 이성의 진리 혹은 영원의 진리와 함께 어떠한 논리적 추리에 의해서도 얻어질 수 없고 단지 경험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사실의 진리 혹은 우연의 진리를 구별했다. 그는 전자를 논리적 필연성을 가진 절대적인 확실성으로서 규정하는데 반해 후자를 논리적으로 연역될 수 없고 사실에 근거한 우연적 진리로 규정한다. 물론 라이프니쯔는 이성적 인식을 궁극적 진리로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합리론을 따르고 있지만, 이것과 구별해서 사실의 진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가 경험의 확실성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는 새로운 의미를 고려할 수 있다. 그는 비록 감각적 경험을 인식의 충분한 조건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연적 사실의 진리를 근거 지우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감각과 이성적 사유는 그 종류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고 명석성과 판명성의 정도에 있어서만 다를 뿐이라고 한다. 라이프니쯔가 이와 같이 사실의 진리를 이성의 진리와 구별하고 있는 것은 데카르트나 스피노자의 합리론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다른 한편 그 독단성을 지적하고 동시에 경험론적 지반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과제24. 로크의 인식론을 통해 경험론의 근본입장을 설명하시오.

로크가 모든 인식이나 신념이 경험으로부터 생겨난다고 지적한 점에서는 경험론자임에는 틀림이 없고 또한 인식론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은 그의 공적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실질적인 인식론을 제공하지도 못했고, 또한 실질적인 의미의 경험론자도 아니다. 말하자면 로크는 모든 인식의 기원이 경험이라고만 주장했을 뿐, 실지로 경험으로부터 인식이 생겨나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데카르트적인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인 의미의 경험론자가 되기 위해서 로크는 ‘경험이 바로 인식’이라는 주장을 철저하게 고수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런 입장을 고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경험론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로크의 이런 입장은 다음의 몇몇 사실들에서 나타난다. 첫째, 로크는 경험을 외적 경험인 감각과 내적 경험인 반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반성을 인식과정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은 감각경험이 바로 인식이라는 철두철미한 경험론자로서의 면모를 상실하고 있다. 둘째, 로크가 물질의 제1성질과 제2성질을 구분하는 것은 이미 경험론자로서의 입장을 떠나고 있다. 우리의 경험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제1성질들의 미지의 담지자는 인정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로크가 지식의 등급을 나누면서 직관적 지식을 가장 확실한 것으로 보고, 감각적 지식을 우연적이고 불확실한 지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미 경험론자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이와 같은 로크의 불충분한 경험론적 입장을 실질적인 의미의 경험론으로 끌고 가려고 한 사람이 버클리이다.

 

#과제25. 버클리의 “존재는 지각됨”이란 명제를 설명하시오.

버클리의 경험론적 입장은 로크가 구분한 물체의 제1성질을 제2성질로 환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로크는 물체의 제1성질을 인정함으로써 그 물체가 우리의 경험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설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런 입장은 진정한 경험론의 토대 위에서는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왜냐하면 진정한 경험론의 입장에서는 어떤 물질적 세계도 나에게 경험되지 않는 한, 어떤 독립적 존재성격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크의 입장은 이런 의미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전통 속에 머무르고 있다. 로크에 있어서 색, 맛, 냄새 같은 제2성질은 지각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모양, 크기와 같은 제1성질은 지각됨이 없이, 그와 무관하게 물체자체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버클리는 물체의 모든 성질은 모두 나에게 지각됨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 말하자면 물체의 제1성질과 제2성질을 구분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며,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지각된 물체의 모양이나 지각된 물체의 색이 같은 성질의 것이며 서로 분리되어 설명될 수도 없다. 따라서 버클리에 있어서 물체는 한갓 허구(fiction)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나에 관계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말하자면 물체는 지각하는 주체인 정신에 의해 지각됨으로써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버클리는 ‘존재는 지각됨이다’(esse est percipii)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버클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버클리가 물질세계의 존재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물체가 나에게 지각 혹은 경험되지 않고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경험되지 않은 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데카르트의 독단론이나 로크의 소박한 경험론이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물체도 그것이 나에게 지각되어 나의 관념으로 환원되지 않는 한, 스스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며, 이것을 우리는 ‘주관적 관념론’(subjective idealism)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제26. 흄의 회의론을 통해 경험론의 한계를 지적해 보시오.

모든 인식은 관념과 관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예를들어 ‘이 꽃은 붉다’라는 인식은 ‘꽃’이라는 관념과 ‘붉음’이라는 관념이 결합된 것이다. 그런데 흄은 이 관념과 관념의 결합이 로크의 경우처럼 오성의 능동적 작용(반성)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명하지 않고 수동적인 연상작용에 의해 설명한다. 흄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연상심리학을 끌어들여 인식의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흄은 철저한 경험론자로서, 즉 경험=인식이라고 믿는 자로서, 경험에서 인식이 구성되는 과정 속에 어떤 경험 외적인 작용을 개입하기를 철저히 거부한다. 따라서 관념과 관념의 결합도 경험심리학의 관점에서 연상작용에 의해 설명한다.

흄은 관념의 결합법칙을 유사성(resemblance), 시간 혹은 공간에 있어서의 근접성(contiguity), 원인과 결과(cause and effect)라는 인과성의 법칙으로 설명한다. 그는 인식이 어떤 논리적 필연성에 의해 구성되는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심리적 연상, 즉 반복적 경험에 의한 기대나 누적된 기억에서 파생된 신념(belief) 혹은 습관(habit)에 의해 결합된 우연적이고 상대적인 것으로 설명한다. 흄은 로크와 마찬가지로 복합관념을 관계, 양상, 실체로 구분하지만, 이것이 로크에서처럼 어떤 오성적 작용에 의해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연상적 작용에 의해 결합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관계’라는 복합관념, 특히 인과관계 역시 일종의 신념적 결합의 유형이다. 우리가 불이 붙고 연기가 나는 것을 공간적으로 근접해서 그리고 시간상 계기적으로 여러번 반복해서 경험한다. 이런 반복된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습관적으로 ‘불이나면, 연기가 난다’는 식으로 마치 불이 원인이고 연기가 결과인 것처럼 결합한다. 그러므로 이 불과 연기 사이에 어떤 필연적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고 개연적인 연관성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흄은 인과관계를 근거로 이루어진 모든 인식은 어떤 객관적 근거도 가질 수 없다는 회의론적 입장에 이르게 된다. 또한 양상이나 실체도 단순관념의 우연적인 결합물에 지나지 않는다. 흄은 특히 모든 실체라는 복합관념은 개별적 감각경험의 다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물리적 실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실체 역시 지각의 다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흄은 인상에 대응하지 않는 어떠한 단순 혹은 복합관념도 그 실재성을 가질 수 없다는 철저한 경험론자로서, 결국 버클리가 부정한 물질의 실재성뿐만 아니라, 정신의 실재성마저 부정하는 데까지 이른다. 지금까지의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륙의 합리론자들은 인식의 엄밀한 체계성만을 독단적으로 강조하는 독단론에 빠지고 만데 반해, 영국 경험론자들은 인식의 내용만을 과대 평가함으로써 결국 회의론적 상대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 양 입장은 모두 극단적인 것으로서 지양되어야 함이 시사되고 있다. 라이프니쯔는 ‘이성의 진리’ 못지 않게 ‘사실의 진리’를 중요시하고 경험의 확실성과 실증성을 요구하였으며, 흄 역시 경험이 바로 인식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하였다.

 

#과제27. 칸트에 있어서 선천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살펴 보시오.

칸트는 처음에는 라이프니쯔와 볼프의 영향을 받아 합리론적 입장에서 있었지만, 그 자신 흄에 의하여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술회하고 있다. 칸트는 우선 일차적으로는 철저하게 경험론의 입장에서 출발한다. 「모든 인식은 경험에서 시작되며 경험의 범위 내에 머문다」. 러나 그는 흄처럼 「모든 인식은 경험에 의한다」고 하여 자연과학의 확실성을 의심할 수도 없었으며 또한 모든 형이상학의 설립을 단념할 수도 없었다. 자연과학적 인식의 확실성은 이미 뉴턴의 물리학에 의하여 사실로서 확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칸트의 비판철학의 근본의도는 수학이나 자연과학과 같이 이미 사실로서 확립되어 있는 학적인식의 근거를 밝힘으로써 자연과학적 인식의 보편타당성을 정초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연과학처럼 하나의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의 설립여부를 밝혀 보자는 데 있었다. 그래서 칸트는

① 「순수수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② 「순수자연과학은 어떻게 가능한가」

③ 「어떻게 형이상학 일반은 가능한가」

④ 「어떻게 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은 가능한가」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들이 곧바로 󰡔순수이성비판󰡕을 구성한다.

①은 「선험적 감성론」에서 ②는 「선험적 분석론」에서 ③은 「선험적 변증론」에서 ④는 「선험적 방법론」에서 각각 다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칸트는 앞선 두 문제제기를 다시 「어떻게 선천적 종합판단은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 바꾸어 제기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즉 그는 모든 판단을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나눈다. 분석판단이란 술어개념이 주어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 판단으로서 한편 「설명판단」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판단은 주로 해명적 역할밖에는 못하는 것으로서 우리의 인식은 조금도 확장시켜 주지 못한다. 그러나 종합판단이란 주어개념에다 주어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술어개념을 첨가해 주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이 판단은 「확장판단」이라고도 하며 특히 학문적 인식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만약에 이때 종합판단이 경험판단이라면 그 판단은 결코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종합판단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기 위해서는 선천적 종합판단이 아니면 안된다.

한편, 수학과 자연과학의 제명제를 살펴 볼 때, 「7+5=12」라고 하는 수학적 명제, 「직선은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이다」라고 하는 기하학적 명제, 또는 「물체적인 모든 변화에 있어서 물질의 양은 일정불변이다」라고 하는 자연과학적 명제는 모두가 종합판단이면서도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기 때문에 선천적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선천적 종합판단이다.

이와같이 해서 수학적, 자연과학적 여러 명제가 곧 바로 선천적 종합판단이 되니까, 「순수 수학이나 순수 자연과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당연히 「선천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칸트는 순수수학이나 순수자연과학의 가능근거의 해명은 결국 선천적 종합판단의 가능근거의 해명에 달려 있다고 보고 이 물음을 「순수이성의 일반적 과제」로서 제시했다.

 

#과제28. 칸트에 있어서 도덕성의 근본원리를 정언명법을 통해 설명하시오.

칸트의 도덕률은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펀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위하라」라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바꾸어 말하면, 「너의 인격과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의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고, 결코 다만 수단으로서 사용하지 않도록 행위하라」는 것이 된다. 이들은 실천이성의 근본법칙이다. 그런데 이 도덕률은 자유없이는 결코 성립될 수 없으며 자유는 또한 이 자율적 주체적인 도덕률 없이는 인식될 수가 없다.

과거의 실천윤리는 행복을 그의 주내용과 목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행복의 원리는 대상이 주관에게 가져다주는 쾌, 불쾌의 감정을 의지의 규정원리로 삼기 때문에 질료적이다. 그러므로 그 내용은 사람들 각자의 주관에 따라 상이한 경험적인 것이어서 결코 보편타당적인 실천법칙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각개인의 본능이나 경향성과 같은 저급한 욕구능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타율에 그치고 만다. 이와는 반대로 도덕률이란 모든 이성적 존재가 지니는 선천적, 보편적, 필연적인 것으로서 주체적 이성이 어떤 구체적 내용에 구애됨이 없이 다만 형식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이것은 감성적 실천적 내용에 구애됨이 없는 순수의지, 자유의지요 자기에게 법칙을 부여하는 자율적 의지다. 이것은 순수이성의 유일한 사실이며 만인에게 타당한 보편적 법칙 또는 입법으로 모든 상대적인 실질적 주관적 준칙(Maxime)과는 구별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가언적 명법(hypothetischer Imperativ)이 아니라 정언적 명법(kategorischer Imperativ)이다.

이와 같은 정언명법으로서의 도덕률은 당연히 행위의 객관적인 강제로서 당위의 형식을 띠게 된다. 유한한 인간은 이성을 의지의 유일한 규정원리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의 의지는 책임과 의무에 종속하게 된다. 그러나 도덕률, 당위, 책임, 의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역시 자율이, 그리고 이들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자유가 요청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현실세계에 있어서 덕과 행복의 불일치는 내세 즉 영혼의 불사성과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과제29. 칸트철학에 대한 비판과 독일 관념론 철학의 전개를 피히테와 셀링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피시오.

현상과 물자체 즉 감성적 세계와 초감성적 세계, 필연과 자유 즉 자연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 자연계와 예지계, 인식의 세계와 실천의 세계가 바로 그것이다. 칸트는 이 대립된 두세계를 자연의 합목적성으로 설명한다. 󰡔순수이성비판󰡕에 있어서의 판단력이란 특수를 보편에 포섭하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범주를 통각의 내용이나 심지어는 감성의 세계에까지 적용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범주와 같은 규칙, 원리, 법칙이 보편으로서 미리 주어져 있기 때문에 판단력은 이들 특수를 다만 한정하기만 하면 된다. 이와 같은 한정적 판단력은 독자적인 원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수만이 주어져 있고 그것을 포섭할 수 있는 보편이 주어져 있지 않을 때, 그 보편을 발견하는 것이 반성적 판단력이다. 그러니까 반성적 판단력은 자기의 원리를 스스로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해서 자연현상은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많은 경험적 법칙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와 같은 경험적 법칙을 통일하여 체계지울 수 있는 보다 높은 원리가 선험적으로 요구된다. 이것을 찾아내는 것이 반성적 판단력이다. 이 반성적 판단력에 의해서 발견된 것이 자연의 합목적성이다. 그러나 이 선천적 원리는 반성적 판단력이 발견해서 사용하는 원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의 합목적성이란 어디까지나 반성하는 주관에 있어서만 성립된다.

자연의 합목적성을 나타내는 첫번째의 것은 미의 대상이다. 미란 자연이 판단력의 원리에 합치할 때 수반되는 쾌감이다. 그러므로 미는 하나의 자연적 대상에 대한 주관적 형식적 합목적성이며 현상에 있어서의 자유이다. 여기서는 대상의 존재에 대해 욕구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대상의 표상에 관한 판단력자체의 조화의 쾌감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미란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도 보편적인 쾌감과 만족을 줄 수 있는 주관적 보편성이다. 더군다나 미는 어떤 의지가 특정의 목적을 가진 흥미나 관심이 아니기 때문에 이때의 합목적이란 목적 즉 특정한 의도가 없는 합목적성이다.

자연의 합목적성을 나타내는 두번째의 것은 자연에 있어서의 유기적 생명이다. 미는 어디까지나 주관적 감정적 합목적성이지만 유기적 생명은 객관적 내용적으로 파악된 합목적성이다. 모든 생물은 자연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전체는 각부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성립되는 동시에 역으로 전체가 각부분의 존재방식을 결정하는 관계이다. 생물은 바로 이런 존재이다. 그러나 자연의 모든 합목적성도 그 사실에 있어서는 우연한 유기적 조직체에 불과하다. 다만 반성적 판단의 원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합목적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의 유기적 인과성과 합목적성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인간이성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가 원인이고 결과인 유기체나 심지어는 모든 자연현상까지를 유기적 인과성으로도 볼 수 있고 합목적성으로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하튼 주관적 합목적성인 미나 객관적인 유기체 즉 자연목적을 우리는 보다 높은 자연의 목적으로 통일하여, 전우주 곧 전자연을 수단으로 체계화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의 입법자요 도덕의 주체로서의 우리 인간이 끝내 주관적으로 정립하는 궁극목적 아래에서 이러한 관계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칸트에 있어서 필연과 자유의 근원적 통일이 원리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끝내 필연과 자유의 근원적인 통일을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피히테, 셀링에서 헤겔에 이르는 독일관념론으로 전개된다.

칸트철학은 한편으로는 경험과학의 방법적 원리를 확립하여 회의론과 낡은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방법적 원리의 자기한정에 의하여 경험과학을 초월하는 영역에서 인간의 실천의 근거를 확립함으로써 근세적 인간이성의 합리적 자각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면 칸트철학의 결점은 인간의 두 사실적 세계 즉, 자연계와 도덕계, 감성계와 초감성계를 다만 병렬적으로 정립했을 뿐이지 이들 사이에 하등의 통일적 연관을 찾아내지 못한데 있다. 칸트 자신이 이 점을 분명히 자각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판단력 비판』에서 자연계와 도덕계, 필연과 자유의 왕국을 종합, 통일하려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종합도 결국에 가서는 참된 종합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이 두세계 사이에 목적의 왕국이라고 하는 제3의 세계를 설정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피히테, 셀링, 헤겔로 이어지는 독일관념론 철학자들은 이 감성계와 초감성계 즉, 필연과 자유의 세계를 통일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피히테는 이론이성과 실천이성 위에 이 둘을 결합하고 통일하는 주체로서 절대적 자아를 유일한 실체로 정립하고 세계를 자아의 도덕적 활동의 소재(素材)로 보는 주관적 관념론을 수립했다. 그리고 셀링은 다시 피히테에서 출발하는 ‘절대적 자아’는 어디까지나 ‘절대자’인 만큼 자아와 비아, 주관과 객관을 초월하는 무차별자(Indifferenz)라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예술적 활동이야말로 절대자의 참다운 계시(Offenbarung)라 하여 객관적 관념론을 수립했다. 다시 또 헤겔은 셀링 비판에서 출발하여 상대자와 대립되는 절대자를 상대적 절대자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는 참 절대자는 모든 차별과 대립을 심지어는 모든 상대자를 자기 안에 포괄하여 자기발전, 자기완성의 변증법적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절대자 즉 절대정신이라고 하는 절대적 관념론의 체계를 완성하였다.

 

#과제30. 헤겔의 변증법을 설명하시오.

첫째는 추상적 혹은 오성적 측면이고 둘째 변증법적 또는 부정적-이성적 측면이며 셋째는 사변적 혹은 긍정적-이성적 측면이다. 이는 세계의 본질인 절대자의 운동법칙일 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인간의 사유법칙이기도 하다. 즉 변증법이란 존재의 법칙이자 동시에 인식의 법칙인 것이다.

모든 인간의 정신적 사고나 논리적 전개는 먼저 추상적, 오성적 사유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오성적 사유는 하나의 규정만을 고집한다. 그리고 이 규정을 다른 규정들과 분리하여 사물을 하나의 규정으로만 고찰해 간다. 그러기에 이 사유는 곧 대립적 규정에 부딪히게 된다. 여기에 반대 혹은 모순규정이 생성된다. 이것이 부정적, 이성적 사유이다. 이러한 대립과 모순을 통일하는 것이 제삼의 사유 즉 긍정적, 이성적 사유이다. 긍정적 사유는 이러한 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대립되는 규정들을 폐기, 보존, 발전을 통하여 보다 높은 단계의 새로운 규정으로 이행시킨다. 이 이행을 헤겔은 지양(aufheben)이라 한다. 이제 여기서의 통일성은 오성적 사유에서의 추상적이고 공허한 통일성이 아니라 모순과 대립을 지양한 구체적인 통일성이다.

그리고 헤겔은 변증법적 계기의 첫번째 단계를 즉자적(an-sich), 두번째 단계를 대자적(für-sich) 그리고 세번째 단계를 즉자대자적(an und für sich)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피히테 식으로 정립, 반정립, 종합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은 우선 절대자의 자기전개, 자기발전, 자기운동의 과정이며 또한 절대자는 인간의 정신을 통하여 현상하기에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인류적 정신의 발전단계이기도 한 것이다.

 

#과제31. 헤겔의 절대자에 대해 설명하시오.

겔의 철학은 피히테가 칸트에서 출발하고 셀링이 피히테에서 출발한 것과 같이 셀링의 철학에서 출발을 하지만 점차 셀링을 비판, 극복하면서 독자적 철학을 완성하였다. 셀링에 있어서 절대자란 무차별적 동일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유한자도 생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절대자는 유한자의 근저에 있고 또한 유한자를 초월하고 있기 때문이다. 셀링은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의 개념을 더욱 철저화시켜 절대자를 자연과 정신의 근저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절대자와 유한자 사이의 절대적 단절은 여전히 해소될 수 없었다.

그러나 헤겔은 유한자를 초월하여 유한자로부터 단절된 절대자란 참다운 의미의 절대자일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절대자는 유한자를 자신의 외부에 가지는 바, 그렇게 되면 이 절대자는 유한자와 대립되기에 참된 절대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절대자란 따라서 유한자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유한자를 자기 안에 포괄하는 것이라야 한다. 헤겔은 이것을 악무한(惡蕪限)과 진무한(眞蕪限)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악무한이란 유한자와 대립되는 무한이며 진무한이란 유한자를 포괄하는 무한자이다.

진무한이란 무한자와 유한자의 대립을 넘어서 이 양자를 자신의 계기로 포괄한다. 진무한이란 악무한과 유한자의 종합이며 통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유한자가 진무한 안에서 그의 구체적 내용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유한자를 제거한 후에 남는 것은 진무한이 아니라 공허한 악무한에 불과하게 된다.

다음으로 헤겔은 절대자를 실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파악한다. 실체란 모든 규정이 그의 술어로 부가되지만 그러나 어떠한 규정도 그것의 본질을 나타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실체란 모든 규정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실체로 생각된 절대자란 모든 규정의 근저에 단지 자기 동일자로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어떤 규정도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규정은 그것이 규정인 한에 있어서 유한자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체란 모든 규정을 제거해도 그 뒤에 남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나 규정성을 결여한 실체는 공허한 추상물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주체로서 절대자에게는 모든 규정성이 그의 본질을 형성한다. 모든 규정은 절대자 자신의 자기규정, 자기운동, 자기실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유한자에서 추상된 무한자가 아니라 유한자를 자신 속에 포괄하는 무한자이며 유한자와 무한자의 종합이다. 왜냐하면 주체란 그것이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며, 자기정립이란 ‘자기가 타자가 되는 것을 통하여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체란 분열이며 대립이며 이중화며 부정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시 회복되는 동일성이며 타재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의 반성이며 그래서 결국 절대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헤겔의 주체로서의 절대자는 유한자의 변화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규정하고 발전해 간다. 절대자는 유한자와 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절대자의 구체적 내용은 유한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한자는 절대자의 자기실현이다. 그러므로 절대자는 유한자의 변화를 매개로 해서 비로소 자기의 변화적 발전적 자기 동일성을 지니게 된다. 이와 같은 주체로서의 절대자를 헤겔은 정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주체적 정신은 변증법적으로 자신을 전개, 완성해 간다.

 

#과제32.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유물론에 대해 정리하시오.

(1) 헤겔좌파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철학은 보수적인 면과 혁명적인 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헤겔은 자신의 철학과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최종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당시 일어나기 시작한 사회의 변동에 비추어 볼 때 하나의 정지상태를 표현한 것이었다. 헤겔 자신의 철학이 이제 새로이 나타나는 사회적·정치적 갈등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의해 지양(止揚)될 운명에 처하였다. 헤겔 이후의 철학은 헤겔의 철학체계에 대한 반발에서 모두 그 시발점을 찾았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헤겔은 결국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서로 다른 두 입장에서 헤겔 철학에 대한 반기를 들었다. 그 하나는 헤겔 우파라 불리어지는데, 법학자 사비니(Savigny)와 역사학자 랑케(Ranke)가 중심이 된 역사학파와 낭만주의자들에 의한 보수적 성격을 띤 반발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헤겔은 모든 역사적인 것을 단순히 세계발전의 부수현상으로만 간주하고 신과의 연결성을 무시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헤겔 철학에 반기를 든 또 다른 하나는 소위 헤겔 좌파라 불리어지는데, 헤겔이 소홀히 했던 자연과학을 강조하고 동시에 오히려 헤겔 철학에 신학의 잔재로 남아 있는 종교적·사변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려 함으로써 철저한 실증주의적·유물론적 입장을 고수한다. 헤겔 좌파 중에서 중요한 두 사람은 슈트라우스(D. F. Strauß)와 포이에르바하(L. Feuerbach)이다. 두 사람 모두 헤겔에서 출발했으나 후에 헤겔 철학과 결별한다. 두 사람의 저서는 당시 헤겔 철학에 젖어 있던 독일에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물론 그들의 중심 과제 중의 하나인 종교비판은 이미 18세기에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Voltaire)가 시도한 것과 유사점이 많다. 차이가 있다면 보수적인 독일에서 시민혁명이 늦게 일어났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뒤늦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며, 또 그 사이 발전된 자연과학의 결과로 비판이 날카로워지고 객관적으로 된 점이다. 슈트라우스는 신학자였는데 그의 저서 󰡔예수전󰡕(1835)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는 주로 교회신앙이 역사적 비판이라는 안목에서 공격되었다. 즉 복음이란 결코 역사적 현실성을 갖지 못한 신화, 혹은 상징적 의미만을 갖는 창작이다. 그의 후기 저서 󰡔옛 신앙과 새 신앙󰡕(1872)에서는 범신론적(汎神論的) 색체가 두드러진다. 그는 “아직도 우리는 기독교인인가?”라 묻고 확고하게 “아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종교를 갖고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긍정적으로 답한다. 그가 말하는 종교는 진보와 문화를 신봉하는 낙관적인 현세종교이다. 여기서는 신 대신에 우주가 들어선다.

포이에르바하는 칸트가 죽은 1804년에 독일의 도시 란츠후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학자 가문의 법률가였다. 포이에르바하는 처음에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신학적 합리주의를 표방한 다우브와 파울우스에게 신학강의를 들은 후 실망하고, 1824년 헤겔의 강의를 듣기 위해 베를린 대학으로 옮겨 갔다.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며 신학을 포기하고 철학으로 넘어간 것은 헤겔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점차 헤겔 철학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헤겔 철학은 철학을 위장한 신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이란 인간이 자기의 소원과 이상을 객관세계로 투사하여 마치 그것이 독립한 실재인 것처럼 상상한 것에 불과하다. 상상에서 만족을 채우려는 인간의 행복추구, 이것이 바로 신의 정체인 것이다. 헤겔 철학은 종교와 학문과의 용납할 수 없는 야함이며, 논리의 겉치레를 한 신학이다. 헤겔의 이른바 절대정신은 실상은 망령에 불과하다. 포이에르바하는 「철학의 개혁을 위한 제언」에서 헤겔 철학을 폐기하지 않는 자는 신학을 폐기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신학의 비밀은 인간학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같이 포이에르바하는 헤겔 철학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자신의 출발점을 찾는다.

 

(2) 감각주의와 인간학

독일 시민계급의 시대적·정치적 의식은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적 시도에서 그 윤곽을 얻는다. 그의 철학은 다른 헤겔 좌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관념적인 헤겔 비판을 넘어서서 새로운 존재론적 기초를 정립하려 한 점에서 고전적 독일철학의 종말로서 지칭된다. 그는 철학 자체 속에 머물지 않고 철학 외부에서, 즉 과학, 산업, 정치 등을 고려하면서 전통적인 형이상학이나 신학을 비판하는 점에서 18세기의 기계론적 유물론자와 구별된다. 포이에르바하의 인간학은 다른 말로 하면 인간중심적인 원리이고 자연주의적이고 감각주의적이며, 이런 점에서 휴머니즘적이라고도 표현된다 그의 저술 속에 나타나는 근본 테마의 하나는 물론 종교, 신학에 대한 비판이지만 그의 무신론은 헤겔 철학의 비판이 깃들어 있는 철학적인 것이다. 그의 종교 비판이 결국 인간학에 기인함을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무신론자라는 것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른다. 신이 존재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 즉 유신론과 무신론 사이의 논쟁은 17, 8세기의 것이지 19세기에 속하지 않는다. 신을 부정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인간의 부정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포이에르바하는 인간을 인간 자체로 고찰하고 현실적인 인간을 철학의 중심에 두어야 하는 인간학을 헤겔의 추상적 관념론과 대체한다.

포이에르바하가 이성이나 관념의 추상성 대신에 감각과 자연의 구체성을 철학의 기초로 둔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물론적 성향을 띤다. 그의 인간학적 유물론은 두 가지의 면에서 종래의 철학과 논쟁한다. 한편으로는 관념론과 신학의 비판에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 자체에 대한 비판에서이다. 전자를 철학 속에서의 비판이라 한다면 후자는 철학 밖에서의 철학에 대한 비판이다. 일반적으로 철학의 본령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감성을 출발점으로 그는 󰡔예비명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은 그러므로 그 자체와 더불어서가 아니라 그것의 부정인 비철학과 더불어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속에 있는 이러한 사유와 구분되는 비철학적인, 절대적으로 반(反)스콜라적인 본질이 감각주의 원칙이다“, 논리적 사유로서의 철학에 대한 거부는 인간 외부에서가 아니라 인간 자체 속에서 규명된다. 인간을 자연의 도구로 고 물질에서 인간으로 나아갔던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이에르바하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두 요소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그 어느 것에도 우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영국 경험론자들이 주장하는 감각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물론 포이에르바하는 이들처럼 주관적 관념론자가 아니다. 그 이유는 그가 실제적인 것을 관념의 다발이나 복합체로 환원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실제적인 것이 인간의 사유나 지각의 밖에 존재하고 대상이 사유에서 유출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유가 대상에서 유출된다. 그러므로 그의 감각주의 원칙은 실재론이다. 이러한 객관적인 실재성과 연관되는 것이 감각이고 따라서 감각만이 유일한 인식의 근거이다. 감각은 직접적인 지식의 비밀이다. 감각주의 원칙이란 그러나 결코 고정된 사실만을 수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감성은 사유되거나 고안된 것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것의 통일이다. 감성은 이 두 가지의 모순을 동시에 내포하고 감성 속에서 그것은 중재되어 나타난다.

헤겔의 사변철학(思辨哲學)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진 자연이 오히려 사유의 주체로서 인정되어야 하고, 또한 자연은 그 자체 속에 근거를 갖고 있으므로 결코 헤겔에서처럼 정신의 외화현상(外化現象)이 아니다. 물론 포이에르바하는 감각, 자연, 인간 등의 존재를 독단적으로 전제하고 거기에서 정신을 도출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정신에 의해 정립된 것이고 정신은 또한 자연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헤겔의 자연철학은 가장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자연은 논리학으로부터 유출되는 범논리주의의 산물이 아니다. 논리학이 자연을 통찰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사고하는 주체가 논리학의 밖에서 직접적인 존재, 즉 자연을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발견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직접 인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연이 없다면 순결한 처녀와 같은 논리학은 아무 것도 산출하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연역해 낸다는 것은 환상이다. 헤겔 철학은 현실의 추상화에서 성립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의 철학은 구체적인 인간을 소외시킨다. 헤겔에 있어서는 자연의 본질을 자연 밖에, 인간의 본질을 인간 밖에 그리고 사유의 본질을 사유 밖에 갖다 놓음으로써 직접적인 통일성이 결여되었고 확신도 없어졌다. 헤겔의 추상으로부터 구체성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은 이론에 불과하고 참된 객관적 실재성은 이론적으로 도려내어진 것이 아니다. 자연과 실재성이 이념에 의해 정립된다는 이론은 자연이 신에 의해 정립된다는 신학이론의 합리적 표현에 불과하다. 결국 포이에르바하는 관념론의 폐허에서 새로운 철학, 즉 이론을 지양하는 실천철학을 구상하였다.

 

#과제33. 맑스의 소외론에 대해 쓰시오.

맑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소외의 제 양태를 분석하고 그 해결방안을 찾는 데서 그의 철학을 출발시키고 있다. 맑스의 소외론은 직접적으로는 헤겔 철학에서 유래한다. 헤겔은 세계의 본질을 절대정신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절대정신은 자기소외와 자기복귀의 이중성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논리적으로 실현시켜 나간다. 절대정신의 공간적 소외 또는 외화(Enttäußerung)가 자연이며 시간적 소외가 역사이다. 절대정신의 자연화, 역사화는 절대정신의 본성인 자기활동성에 기인한다. 따라서 자연이나 역사는 절대정신이라는 실재의 외양에 지나지 않으며, 자연이나 역사에의 소외의 극복도 절대정신의 관념적 자기 극복일 뿐이다. 이러한 극복은 헤겔은 지양(Aufheben)이라 불렀으며, 그 결과는 자유라는 것이다.

헤겔의 소외개념에 대한 맑스의 핵심적 비판은 실재의 정신성, 소외의 추상성, 지양의 사변성에 관한 것이다. 맑스는 실재는 물질적인 것이며, 소외는 구체적인 것이며, 아울러 지양은 실천적인 것이라야 한다. 즉 세계의 본성은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며, 소외도 정신적 관계의 추상적 양태가 아니라 물질적 관계의 구체적 양상이며, 지양도 사변적 해소가 아니라 실천적 변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맑스는 헤겔 철학의 관념성, 추상성, 사변성을 물질성, 구체성, 실천성의 철학으로 전도시킨다.

초기 저술에서 맑스는 소외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논의하고 있다. 맑스는 <종교적 소외>에서 출발하여 <철학적 소외>, <정치적 소외>를 거쳐 <경제적 소외>로 이르는 다양한 유형을 검토하면서 그 중에서도 경제적 소외를 소외의 근본 양태로 간주하였다. 종교현상은 인간의 자기소외가 반영된 사회현상이다.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 비판을 차용하고 철저화한다. 신은 인간의 자기의식의 투사이며 신학은 인간학이다. 종교는 현세의 억압받는 인간의 욕망구조를 내세에 해방된 인간의 환상구조로 대치시키는 역할을 한다. 종교는 인간의 소외를 지속시키는 이데올로기로서 인민의 아편이다. 따라서 종교의 철폐는 인간해방의 선결조건이라는 것이다.

철학도 인간의 소외를 반영한 이데올로기이다. 철학, 특히 헤겔의 사변철학은 종교의 신 대신에 추상적 정신을 대체함으로써 인간정신의 계몽화를 꾀하나 세속화된 신학 이외의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변철학 역시 소외된 인간의식의 투사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사변철학의 폐기는 인간의 철학적 소외를 극복하여 그 철학적 이념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맑스는 동일한 분석을 정치적 소외에도 적용시킨다. 국가제도, 특히 브르조와 국가제도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실현하는 기회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 기회를 박탈한다. 일자의 기회획득은 타자의 기회상실이라는 모순구조를 국가제도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계급대립을 영속화시키며 인간의 정치적 소외를 야기시킨다. 따라서 국가는 폐지, 소멸되어야 한다. 맑스는 소외의 근본양상으로서 경제적 소외의 4가지 양태를 고찰한다.

1. 생산품으로부터의 소외,

2. 생산활동으로부터의 소외,

3. 사회생활로부터의 소외,

4.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소외 등이다.

맑스는 이러한 소외는 노동자 계급에 가장 잘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계층에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경제구조가 가지는 모순이기에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일어나는 소외현상이라는 것이다.

 

#과제34. 맑스의 사적유물론의 중심 내용과 그 한계점을 정리하시오.

맑스의 유물론적 역사 이해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독일 관념론이고, 두번째는 프랑스 사회주의 그리고 세번째는 영국 고전 경제학이다.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 칸트는 실천이성의 이론이성에 대한 우위를 주장하며, 이성의 실천성과 능동성에 기인한 역사의 합리적 진보에 관해 이야기한다. 피히테 역시 인류의 역사를 합리적으로 보았으며, 헤겔은 역사를 자유의식의 진보로 정의하였다. 절대정신의 자기전개로서의 역사는 절대정신의 본성인 자유의식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논리적으로 볼 때 변증법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가 보기에 헤겔의 변증법은 거꾸로 서 있는 변증법이며, 이런 전도된 관념 변증법을 유물 변증법으로 재전도시킨 것이 사적 유물론이다.

프랑스 사회주의에서 생 시몽(Saint Simon)은 공업중심주의와 정치경제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를, 푸리에(Fourier)는 합리적 윤리적 사회주의를, 프루동(Prouhdon)은 평화적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를 주장하였다. 맑스는 이들의 사회주의 사상 중 경제가 중심이 되는 정책은 인정하였으나, 이들의 방안을 이상에 그치는 실현성이 없는 ‘공상적 사회주의’라 불렀다. 그는 자신의 사회주의를 이와 대비해서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영국 고전경제학에서 아담 스미스(Smith)는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어떻게 운용되는가를 설명하였고, 리카르도(Ricardo)는 노동가치설을 수립하였는데, 맑스는 이 이론들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사회 내의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의해 착취당하는 과정을 증명할 수 있었다. 자본증식의 경제학에 내재한 노동착취의 구조를 폭로하는 것이 사적 유물론의 또 다른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사적 유물론’이라는 용어는 맑스 자신에 의해 사용된 적이 없는 개념이다. 그는 오히려 ‘유물론적 역사이해’ 또는 ‘유물론적 생산조건’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는 사적 유물론을 충분히 발전된 이론 체계라기보다는 하나의 방법이나 수단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유물론적 역사이해의 핵심은 “사회변화의 관건은 인류가 생활을 공동으로 생산하는 방식에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생산활동이 기본적이고 이런 생산활동을 해석하고 조직하는 이념체계, 즉 정치, 철학, 종교, 예술 등은 부차적인 것이다. 전자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로서 ‘하부구조’에 해당하고, 후자는 이 하부구조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정치·법률적 구조와 그것이 관념적으로 반영된 이데올로기적 구조로서 ‘상부구조’에 해당한다. 역사에 있어서 궁극적인 결정요인은 생산관계의 총화이며, 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하고 이러한 현실적 기초 위에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구축되며, 이에 대응하여 일정한 형식의 사회의식이 생겨난다. 역사 변천의 원동력은 사회의 경제적 요인이며, 이는 필연적 법칙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맑스는 경제적 요인의 역사 결정론과 더불어 혁명적 주체의 역사 변혁론을 함께 논구하고 있는데, 이는 자유와 필연의 통합이라는 서구의 형이상학적 과제를 사적 유물론에서 해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역사적 현실에서의 그런 과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맑스 철학의 특성이며 동시에 한계이다.

 

#과제35. 꽁트의 실증주의 정신을 말하시오.

꽁트(Auguste Comte, 1789~1857)는 몽펠리에에서 가톨릭 계통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14세 때 자신은 더 이상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선언하고는 이때부터 공화주의자가 되었다. 1814년 그는 에꼴 폴리테크닉에 입학하여 2년 동안 저명한 과학자들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그의 과학주의적 정신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하였다. 특히 1817년부터 7년 동안 생시몽(Saint-Simon)의 조수생활을 한 것이 그의 과학적 정신을 더욱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1826년 그는 실증주의에 대한 강의를 시작하면서 1833년 7월부터 󰡔실증철학강의󰡕(Cours de philosophie positive)를 계속 여섯 권으로 출판했다. 그후에도 이 책을 보완하기 위해『실증주의 정신에 관한 강론』(Discours sur l'esprit positif)(1844)과 󰡔실증주의 전반에 관한 강론󰡕(Discours sur l'ensemble du positivisme)(1848)을 출간했다. 1851~1854년 사이에 󰡔실증정치 체계󰡕(Systeme de politique positive)를 네권으로 출판하고 󰡔실증주의 교리문답󰡕(Catechisme positiviste)도 1852년에 출판했다.

꽁트 철학의 최대목표는 사회체계를 재조직하는 것이었다. 1830년을 전후하여 프랑스는 정치․경제적으로 큰 혼란기였고, 이에 대한 철학사상들도 여러 대안으로 난무하였던 시기이다. 이에 꽁트는 사회학을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와 철학 모두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의 실증주의는 단순한 하나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과학적 해결방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증주의는 사물의 본질이나 형이상학적 실체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이 사실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과학적 방법으로 인식하려는 태도이다. 이것은 구체적 사실을 추상적인 의식의 경험으로 환원하였던 헤겔의 사변적 형이상학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것은 프랑스 철학이 갖고 있는 데카르트적인 명석성과 판명성을 철학의 기준으로 삼아 왔던 것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명석하지 않은 것은 프랑스적이 아니다는 말처럼 꽁트의 철학은 헤겔의 관념적 추상성에 식상한 그 당시의 프랑스 지성인들에게 요구된 것이다.

꽁트는 부질없이 사변을 희롱하여 현상의 배후에 그 어떤 형이상학적 근거를 탐구하는 따위를 일체 배제하고 오로지 현상을 관찰하는 데서 그 속에서 법칙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의 스승 생시몽의 영향을 받아 무엇보다도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사회학을 수립하여 사회의 개혁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일정한 원칙 아래에 다양한 과학들을 정돈하고 종합하는 데서 실증철학의 체계를 세웠으니, 인류의 지식발달의 3단계와 단순한 대상에서 복잡한 대상에로 나아가는 과학발달의 순서와 같은 것이 곧 그러한 원칙이다.

 

#과제36. 꽁트의 지식 3단계설을 정리하시오.

꽁트에 의하면 우리의 지식은 3단계를 취하여 발달하는 것이다. 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실증적 단계가 그것이다. 신학적 단계에서는 인간은 극히 제한된 관찰을 기초로 한 위에 상상력을 움직여서 초자연적 신을 생각하고, 모든 현상을 신의 의지에서 설명하려고 한다. 형이상학적 단계에서는 본질적으로 신학적 단계와 다를 것이 없으나, 다만 신이라는 인격적 존재 대신에 개별적 궁극 원리를 세우고, 상상력 대신에 사면적 추리가 행해진다. 실증적 단계에서는 어디까지나 경험적 사실에 입각하여 사실들 상호간의 불변적 관계를 탐구하는 것으로써 만족한다. 현상을 초월한 궁극 원인과 같은 것을 구하지 않고 다만 현상 속에 지배하는 법칙을 탐구할 뿐이다. 이리하여 법칙을 인식하면, 우리는 현상의 생기(生起)를 예견할 수 있다. 예견하기 위하여 관찰한다는 것, 장래를 위하여 현재를 연구한다는 것이 실증적 단계에서의 인식의 목적이다. 그는 14세기 이후 발달한 과학의 성과를 종합의 정신으로써 조직화하는 실증철학이 완성되면, 그 때야 비로소 허물어진 정신적 권위가 재정립되고 형이상학적 단계에서 발생한 사회적 혼란도 극복된다고 말한다.

그는 실증주의의 원리에 입각하여 실증철학을 수립함에 있어서 먼저 지식의 보편성의 감소로부터 복합성의 증가로, 또는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고 파악했다. 다시 말해 그는 모든 과학은 대상의 단순성과 보편성에 따라 수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실증철학으로 나누어 이것들의 서열을 다음처럼 작성하였다.

 

#과제37. 쇼펜하우어는 왜 염세적 허무주의자인가.

쇼펜하우어(1788~1866)는 세계가 이성에 의해 지배된다는 헤겔의 이성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여, 세계의 본질을 의지로서 파악한다. 그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살려는 맹목적 의지가 세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의 본질이 맹목적인 비합리적 의지라는 것은 어떻게 파악되는가?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우리는 세계를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인과율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으로 본다. 시간과 공간은 칸트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선천적 직관형식이고, 인과율은 오성범주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율을 통하여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경험적 세계는 한갓 표상(Vorstellung)의 세계일 따름이지,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는 아니다. 이 점은 칸트의 견해와 같으나 범주를 인과율 하나 뿐이라고 보는 점이 다르다. 그러면 물자체를 파악할 길은 전혀 없는가? 칸트는 이 길을 인간의 도덕적 행위에서 구하였지만,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신체를 통하여 이것을 파악할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신체를 가지고 있다. 경험적 인식에 대해서 신체는 물론 하나의 표상에 불과하고 인과율에 의하여 규정되는 하나의 객관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체는 동시에 우리 자신 속에 의지가 있다는 것을 직접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의지는 신체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는 살려는 맹목적 의지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 운동과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무의식적 의지이다. 의지작용과 신체운동은 인과관계에 의하여 결부된 두 개의 객관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의지작용은 필연적으로 신체의 운동이라는 관계에 있다. 이 양자는 동일한 것이 두 가지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하나는 직접적으로 또 하나는 간접적이고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리하여 신체를 통하여 표상세계 이면의 물자체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데, 한번 이러한 인식에 도달하면, 여기서 우리는 신체 이외의 다른 객관적 사물 속에서도 그 본질로서 의지가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잡다한 표상세계는 본래 시간과 공간에 의하여 개별화된 세계이다. 시간과 공간은 말하자면 개별화의 원리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에 의하여 개별화되기 이전의 물자체의 세계는 아무 것도 없는 잡다한 하나의 근원적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체를 통하여 물자체가 의지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모든 객관적 사물의 본질 역시 의지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쇼펜하우어는 인간 자신의 경우에서 유추하여 비단 동물과 식물뿐 아니라, 무기물에 이르기까지도 그 근저에 의지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의지는 일정한 목표가 없는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충동에서 움직인다. 따라서 의지의 활동은 결코 쉬지 않고 만족할 줄을 모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살려고 애를 쓸 뿐이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구하여 움직이는데, 그것을 얻자마자 다시 또 다른 무엇인가를 욕구한다. 그것은 영원히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는 고뇌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살려는 부단한 욕망으로 말미암아 세계는 필연적으로 고해(苦海)로 된다. 이 고해에서 해탈할 길은 없을까. 의지를 버리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이 길은 우선 예술적 관조에 있어서 달성된다. 예술적 관조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 주관을 버리고 무의지, 무고통, 무시간의 순수한 주관으로 높여진다. 엑스타시스, 즉 탈아(脫我)란 이러한 주관의 상태를 말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세계의 고뇌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심미적 해탈로서 결국 일시적 해탈에 불과하다. 그러면 영속적 해탈은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이것은 윤리적 해탈에서 가능하다. 즉 도덕에서 비로소 달성된다. 펜하우어에 의하면 도덕은 동정(Mitleid)에서 성립한다. 동정은 우리가 자기를 버리고 타인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서 동감하는 동고(同苦)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 동고의 도덕에 의해서도 결국 궁극적 해탈을 얻지 못한다. 동정은 자기의 개성을 버리고 인간 상호간의 공통한 고통을 동감하는 데서 인간의 고뇌를 덜어 주기는 하나, 살려는 맹목적 의지를 긍정하고 있는 이상 고뇌로부터의 완전한 해탈일 수는 없다. 유정․무정의 일체가 고해이고, 이 고해의 근원이 의지에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차라리 이 의지 자체를 근절함만 같지 못할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금욕과 무의지에 있어서 비로소 진정한 해탈이 가능하다고 본다. 진정한 해탈을 구하는 자는 공허한 무로 몰입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해탈한 자의 눈에는 세계란 그것이 본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이였던 것이다. 이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염세적 허무주의에 도달했다.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불교적 요소로 뚜렷하게 채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제38. 니체는 어떤 점에서 긍정적 허무주의자인가.

독일 관념론 철학에서는 한편으로 유한자와 생성이 가치없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낮추어지는가 하면, 다른 편으로 모든 유한자를 삼켜서 자기 속에 포함한 무한자 즉 절대자 혹은 이른바 참된 존재는 공허한 도식에 불과한 것으로 된다. 이러한 경향에 항거하여 니체는 유한자, 생성, 유동하는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에 대한 열렬한 변호자가 된다.

니체에 의하면 현실의 세계를 초월한 피안의 무한자, 절대자, 신과 같은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부단히 유동 생성하는 모든 유한자와 인간의 생명과 이 놀라운 현실, 즉 초현실적 절대자 앞에 너무나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이 현실을, 저 허구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어 참다운 문제로 삼으려는 것이 니체의 관심사였다.

이리하여 니체는 절대자를 그 초세계성에서 세계내재성으로 돌이키고 무한자의 모든 속성을 유한자에게 귀속시킨다. 그럴 적에 초세계적인 무한자는 벌써 무의미한 중복에 불과한 것으로 된다. 여기에서 초인간적인 것은 인간 속으로 옮겨 놓여져서 초인(超人, Übermensch)으로 되고, 영원성은 시간 속으로 옮겨져서 영겁회귀(ewige Wiederkehr)가 되고, 존재는 생성 속으로 옮겨 놓여져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된다. 이리하여 니체는 인간을 초인으로, 시간을 영원으로, 생성을 존재로 높인다. 그러나 이렇게 높여진 존재는 어디까지나 생성 속에, 영원은 어디까지나 시간 속에, 초인은 어디까지나 인간 속에 머문다. 초월하되 어디까지나 인간 속에 머무는 초인, 시간을 초월하되 어디까지나 시간 속에서 되풀이되는 영겁회귀, 생성을 넘어 있으되 어디까지나 생성에서 벗어나지 않는 디오니소스적 생성, 이와 같이 초월과 내재와의 모순을 지양한 동일성에 그의 이른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가 있다. 이 세계는 힘에의 의지이고,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니체의 이른바 힘에의 의지는 쇼펜하우어의 맹목적 의지를 수정한 개념이다. 니체에 있어서도 쇼펜하우어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세계의 본질은 의지이다. 그러나 이 의지는 맹목적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부단히 보다 더 큰 힘을 추구하는 의지이고, 부단히 성장하고 강화되려는 의지이다. 힘의 성장에는 물론 파괴가 수반한다. 우리는 힘의 성장에서 환희를 느끼고, 힘의 파괴에서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전체로서의 세계에 있어서 힘의 총량은 불변이다. 힘의 총량은 유한한 일정량이지만, 그 작용은 무한하다. 이 세계는 발단도 종말도 없는 힘의 괴물이다. 그것은 전체로서 증감도 없고 생멸도 없으나 부단히 유동․변화한다. 이 세계는 온갖 힘과 힘과의 물결의 출렁거림으로서, 여기에 쌓이는가 하면 저기서는 줄어들어, 영원히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파괴하는 디오니소스적 생성이다. 세계는 확실히 모순에 차있고, 모순에 차 있는 세계에 있어서의 인생은 비극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통의 총량은 쾌락의 총량을 능가한다고 봄으로써 생을 부정하고 의지를 근절하려고 하는 약한 염세관을 니체는 취하지 않는다. 창조의 반면에 파괴가 따르는 자기 모순적인 디오니소스적 생성, 언제나 같은 것이 영원히 되풀이되는 영겁회귀의 세계, 그것은 확실히 허무한 세계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허무한 세계를 허무한 그대로 받아 들여, 이런 것이 인생이더냐, 좋다. 그러면 다시 한 번! 이렇게 크게 생을 긍정하고 나서는 운명애(運命愛)의 태도, 이것이야말로 도래한 인간인 초인이 지녀야 할 태도라고 니체는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허무주의를 극복한 유럽 최초의 긍정적인 혹은 적극적인 완전한 허무주의자로 자처한다.

 

#과제39. 현상학의 근본이념은 무엇인가.

헤겔에 대한 직접적이 반동으로 시작한 실증주의는 모든 학문의 모델로 쉽게 받아들여졌다. 특수과학들의 반전과 일반 대중사회에서 얻은 그 특수과학들의 성공으로 인하여 철학이 스스로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실증주의에 힘입고 등장한 과학적 제국주의(Szientismus)는 철학의 학문성까지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이에 맞서 철학의 독특한 주장들을 재정립해야 할 과제가 에드문드 후설(E. Husserl)에게 부과되었다. 그러므로 후설은 특수 경험과학에 의해 철학의 영역이 침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일종의 세계관에 지나지 않는 천박한 외양에서 탈피해 철학을 엄밀한 학으로 재정립해야 할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특히 19세기와 20세기 초를 지배했던 심리학주의는 철학의 영역을 자연과학적으로 변조시켰다. 후설 역시 헤겔의 관념적 추상성을 철학에서 배제시키려는 실증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그는 현실을 어떤 특정한 형이상학적 선입견이나 전제에 의해 굴절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입장을 취한다. 즉 현실을 그 원본적인 명증성 속에서 파악하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현상, 즉 스스로 나타나는 것(Phänomenon)에 관한 학은 ‘사태 자체에로’(zu den Sachen selbst) 돌아가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꽁트와 같이 본질을 심리적 여건이나 물리적 사건으로 환원해 버리는 소박한 실증주의자와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소박한 실증주의자들은 본질 자체를 물리적 사실로 환원하려는 자연과학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고, 이들에게는 현실이 단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후설은 소박한 실증주의와 구분하여 자신을 진정한 실증주의자로 칭한다. 이 현상학적 실증주의자는 모든 실증적 학들이 의미토대로 전제하고 있는 생활세계를 해명함으로써 근대 실증주의에 의해 초래된 학문의 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 학문적 대상들이 의식의 활동과 무관하게 즉자적으로 존재한다는 소박한 태도는 실증주의가 남긴 유산이다. 이 유산은 대상과 의식활동의 엄밀한 상관관계, 즉 대상은 이것을 구성하는 의식활동에 의해 성취된 산물이라는 선험적 반성을 통해 비로소 폐기된다. 그러므로 현상학의 길은 일차적으로 모든 대상구성의 영역인 의식에로 돌아가야 하며, 이를 통해 의식과 대상사이의 상관관계를 드러내어야 한다.

 

#과제40. 후설이 근대학문을 위기에 빠진 것으로 진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후설은 그의 마지막 유고로 남긴 저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1936)에서 근대학문, 즉 근대과학의 위기를 고발한다. 후설은 근대과학의 의미토대인 생활세계, 즉 우리의 일상적인 관습을 통해 익숙하고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알려진 세계를 다시 부활하려는 과제를 가진다. 근대의 실증주의적 낙관론은 과학적 활동과 이에 앞서는 실행적 생활세계와의 연관성을 의식적으로 차단하였다. 근대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갈릴레이와 데카르트는 다같이 물리학주의의 성과를 등에 업고 생활세계를 단순한 물리적 공간으로 추상화하였다. 근대의 수학적 자연과학의 발달을 촉진시킨 갈릴레이는 발견자인 동시에 은폐자라고 후설은 비난한다. 갈릴레이의 물리학은 시·공간적 형태를 수학화함으로써 자연을 수학적 우주로 설계하였다. 이 수학화의 과정을 통해 생활세계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이념의 옷으로 위장되어 버렸다. 우리의 직관의 대상인 확실한 경험의 세계가 비직관적인 이념화에 의해 그 의미가 추상화된다.

근대의 물리학적 객관주의는 모든 이념화의 전제가 되는 직접적으로 주어진 세계를 방법적으로 추상함으로써 직관적인 생활세계 대신에 비직관적인 과학의 세계가 들어선다. 과학의 소박한 명증성이 생활 세계의 근원적 명증성을 대신하여 과학의 탈세계화가 이루어진다. 우리에게 경험되는 자연공간은 기하학적 공리체계에 의하여 일종의 수학적 집합과 같은 형태로 변형되었다. 이와같이 현실을 수학화하는 물리학적 객관주의가 초래한 근대과학의 위기를 데카르트는 선험철학을 통해 치유하려 한다. 그러나 객관주의와 자연주의에 끊임없이 저항하였던 데카르트에서 헤겔까지의 철학 역시 이 생활세계에로 돌아가는 데는 실패하였다. 후설은 선험적 현상학을 통해 이 길을 열어 간다.

모든 과학적 활동과 개별적 학문들은 과학적 활동 이전의 경험, 즉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생활세계라는 보편적인 신념토대에로 돌아가서 다시 되물어져야 한다. 이 생활세계는 우리가 언제나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식작업과 학문적 규정에 토대를 부여하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물리학적 공간개념으로 추상화될 수 없는 지각의 세계이며 우리와 친숙한 세계이다. 근대의 정밀과학은 이 세계에 입혀진 하나의 옷일 뿐이다. 학문의 모든 성과는 이 직접적 경험세계에 자신의 기반을 갖는다. 이 기반을 상실한 근대 물리학주의는 이 세계의 구체적 의미를 이념화하고 형식화함으로써 학문을 삶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후설은 이와 같이 현대 자연과학적 인식의 고향상실, 의미가 공동화된 소외현상을 밝힘으로써 현대인들이 처한 위기를 철학적으로 치유하려 한다. 근대 이후의 물리학적 객관주의가 자신의 의미기반인 생활세계뿐만 아니라 선험적 주관성까지도 망각하였기 때문에 학문과 인간성의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는 바로 철학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성과 학문의 위기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 즉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인 공생관계를 회복하려는 생태학적 진단과도 연결된다.

 

#과제41. 실증주의에 대한 딜타이의 근본적 태도는 무엇인가.

헤겔의 범논리주의와 신칸트주의자들 그리고 실증주의자들에 있어서 철학은 다만 논리적 체계성을 지닌 철학이었고 동시에 강단의 철학이었다. 이들 철학은 인간의 구체적 삶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어떻게 체계적 완전성과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는가에 더 관심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제 대중들의 관심은 삶의 철학으로 모아지기 시작하였다. 이 삶의 철학은 20세기초를 지배했던 기계론적 사고, 도식화하는 사고, 표면에만 붙어 있는 사고, 수학적-합리주의적 사고, 정적인 사고에 반대하고, 오히려 비합리적인 것, 일회적인 것, 내면적인 것, 영혼적인 것, 체험적 인 것, 역동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 이제 이들에게 중심이 되는 개념은 이념이나 논리나 사유작용이 아니라 바로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삶 자체이다.

딜타이(W. Dilthey, 1833~1911)는 이미 낡은 시기에 속하지만 그의 영향은 제 1차 대전 후에 전개되었다. 그 역시 역사가로서 그 당시를 지배했던 실증주의에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는 칸트의 선험적 계기도 받아 들인다. 삶의 현상들을 자연과학적 방식으로 도식화하고 객관화하려 했던 실증주의적 사고는 결국 삶 자체를 무역사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고, 정신과학이 자연과학에 대해 가지는 고유성을 차단시켜 버리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딜타이가 그 이후의 역사철학이나 정신과학에 남겨 준 유산은 바로 자연과학과 정신과학의 방법론은 ‘설명’과 ‘이해’의 방법으로 이원화하였다는 점이다.

딜타이의 중심 문제는 삶과 삶의 이해(Verstehen)이다. 삶은 그에 있어서 목적론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자기완결적 통일체이다. 이것을 자연과학적으로 설명(Erklären)하려는 실증주의적 태도는 기계론적이고 결정론적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심리학에서 ‘이해’라는 단어를 받아 들인다. 그는 ‘설명하는’ 심리학에 반대했다. 이 심리학은 자연과학과 그 보편화해 나가는 도식적인 방법에 바탕하고 있어, 바로 살아 있는 영혼에 고유한 것, 즉 삶의 일회성을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삶은 그 자체가 자기완결적 통일체이고 그 고유한 개성을 지닌 개별적 대상으로서 자연과학적 방식에 의해 보편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딜타이는 기계적 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연상심리학을 반대하고 심리적 사실을 꿰뚫고 있는 구조연관, 즉 심리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체험연관에로 돌아갈 것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비로소 인간의 정신적인 것에 관한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역사가로서의 딜타이는 객관적 역사적 사실 자체를 맹목적으로 보편화하려는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거부하고 역사의 문제를 삶의 이해의 문제와 연결하여 해석하려 한다는 점에서 해석학(Hermeneutik)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정신과학의 역사에서 이런 구조에 들어 맞는 것은 정신사적인 ‘유형’ (Typus)이다. 언어, 종교, 국가 등은 비교를 하는 방법에 의해, 변화의 유형, 발전의 방향, 규칙 등을 알려주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세계관에 있어서도 이와 똑 같은 것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신사(精神史)의 여러 현상들 역시 일정한 유형, 즉 삶의 형식으로서 모든 개별적 삶의 현상들을 꿰뚫고 흐르는 보편적 형식들에 바탕하여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개별적 삶의 하나의 일정한 형식 하에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역사적 보편성을 가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딜타이가 헤겔 이후 기계론과 결정론적 사고에 의해 매몰되어 버린 인간의 구체적 삶과 역사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다시 꺼집어 내려는 노력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극단적인 상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는 정신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지만, 그가 발견해낸 것은 개별적 유형들과 다양한 입장들 뿐이었다. 헤겔에게는 하나의 절대자가 있었지만, 딜타이에게는 상대주의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딜타이가 역사적 상대주의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이름을 버리진 못했지만, 정신과학적인 이해의 방법을 자연과학적인 설명의 방법과 구분하여 실증주의의 유령을 역사 속에서 몰아내려 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런 점은 이후의 역사철학이나 학문의 방법론적 논의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과제42. 베르그송의 지성과 직관을 구분하시오.

베르그송에 의하면 어떤 사물을 인식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가지 방식이 존재한다. 즉 지성과 직관이다. 이것은 바로 딜타이가 구분한 설명과 이해의 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지성은 우리가 대상의 주변을 맴돌면서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이고, 직관은 우리가 대상안으로 들어가서 대상을 직접 인식하는 방식이다. 지성은 우리가 대상을 관찰할 수 있는 장점을 갖지만 관찰자에 따라 다른 상대적 지식을 제공해 준다. 분석적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지성은 특정한 관점에서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대상을 그 전체로서 파악하는 데는 실패한다. 이 지성은 과학적 추론에는 적합한 능력이긴 하지만, 이것은 결국 분석적 작업이기 때문에 대상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분석은 대상을 이미 알고 있는 요소로 환원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대상의 본질을 역동적이고 생동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실패한다. 대상의 본질은 본래 역동적이고, 생동적이며 연속적인 존재, 즉 지속이기 때문에 분석은 이 지속을 방해하고 삶과 운동을 정지시킨다. 과학적 분석의 일상적 기능은 바로 대상을 정태적인 여러 부분으로 쪼개는 일이며, 자아를 파악하는 방식 역시 심리학적 방식으로서 자아를 여러 심리상태로 분리해서 연구하는 방식이다. 베르그송은 바로 이런 과학적 분석의 일을 담당하는 지성에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직관을 대체시킨다.

베르그송은 자아를 파악하는 방법이 직관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들의 누구나 내부로부터, 즉 분석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관에 의해서 파악하는 실재가 이것은 자아의 주위를 맴돌면서 자아의 여러 형태들을 분석하여 개념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아 안으로 파고 들어가 자아와 하나가 되는 방법이다. 따라서 베르그송은 직관을 일종의 ‘지적 공감’이라 부른다. 그에 의하면 직관으로 사유하는 것은 곧 지속 안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지성은 비운동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데 반해 직관은 운동에서 시작한다. 이처럼 베르그송은 그의 모든 관심을 사물 내에 있는 지속이라 불리는 과정에 쏟는다. 그가 고대 여러 철학들을 비판하는 것도 그들이 지속, 또는 생성을 심각하게 다루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전통적인 철학은 항상 정태성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베르그송은 운동, 생성, 지속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특히 그의 시간개념에 대한 분석은 그의 철학의 핵심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에 관한 논고」에서 수학적-물리학적 동질적 시간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시계에 의해 측정되는 시간은 시간의 공간화에 불과한 것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시간이 아님을 강조한다. 물리학적으로 측정가능한 시간은 순수한 의식의 흐름으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단순히 시계 자판 위에 공간적으로 표현된 시간일 뿐이다. 이것을 베르그송은 “의식의 그림자를 떠도는 공간의 환영”이라고 불렀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우리가 만일 공간화된 용어로 시간과 운동을 사유하게 된다면, 우리도 역시 제논이 쳐 놓은 그물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사실상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화살은 매순간 공간상의 한 점을 점유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순간 화살이 정지해 있음을 의미한다. 베르그송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제논의 가정이 옳다면 제논의 논거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논은 시간이란 공간 속에 실재하는 위치에 있으며, 시간의 불연속적인 단위구간이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오류를 범하고 있다. 시간이 일정한 단위구간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성의 분석적 활동에 의해 비롯된 억측일 뿐이다. 시간은 결코 불연속의 파편들이 아니다. 음악의 멜로디가 분할될 수 없는 지속적인 흐름이듯이 시간 역시 지속이다. 이 지속을 마치 일정 구간을 지닌 파편들로 생각하는 것은 지성이 인위적으로 공간화하는 작업 때문이다.

멜로디나 제논의 화살의 경우에서 보듯이, 지성이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정태적인 부분들을 파악하는 일일뿐, 운동이나 지속을 파악하지는 못한다. 삶의 본질을 형성하는 시간은 마치 두루마기가 풀리고 감기는 것 같은 연속적 흐름이다. 이 연속적 흐름이 바로 의식적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지성의 분석적 추론에 의해 파악될 수 없다. 이상과 같은 베르그송의 입장은 기계론적인 사고인 진화론에 대해 가졌던 그 당시의 지배적인 성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태도와 연결된 것이다. 특히 삶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파악하려 한 그 당시의 실증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을 구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이것은 그의 주요 저서인 󰡔창조적 진화󰡕에서 두드러진다.

 

#과제43. 베르그송의 “삶의 약동”은 무엇을 말하는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에서 베르그송은 지성과 직관의 기준을 도덕과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시킨다. 직관이 적용되는 곳은 운동이고, 지성이 적용되는 곳은 부동성이다. 개방된 도덕은 운동을 함축하고, 폐쇄적 도덕은 부동성을 함축한다. 운동과 부동성은 사실상 그가 주장하는 도덕의 두 원천이다. 사회적 결속을 위해 폐쇄사회가 규정하고 있는 의무의 감정이 부동성을 토대로 한다면, 운동은 위대한 도덕적 인물들의 모범에 의해 작용하는 개방된 사회의 창조적 감성의 토대가 된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의무의 감정은 사회적 억압의 감정이다. 의무의 목소리는 신비로운 것이 아니며 그 사회 밖에서 들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목소리이다. 사회적 명령들은 각 개인에게 관계하기 때문에 각 개인은 의무감을 느낀다. 이렇듯 의무를 폐쇄사회가 그 구성원에게 부과하는 억압이다. 사회적 결속을 위해 요구되는 의무는 그 기원을 지성에 둔다. 이에 반해 개방된 동적인 도덕은 초이성적 기원을 갖는다. 개방된 도덕은 위대한 도덕적 이상주의자들이나 예언자들의 삶을 기원으로 한다. 이들의 삶은 기원으로 하여 도덕에 있어서 비약이 이루어진다.

지성은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규율을 부과한다. 지성은 도덕을 폐쇄사회에 한정하려 한다. 그러나 공감과 감정의 폭을 이루는 직관은 폐쇄사회를 넘어 적용되는 도덕을 발전시킬 수 있다. 즉 신비주의자이건 성인이건 위대한 도덕적 삶의 영웅들이 나타나야 비로소 의도적 진보가 일어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성을 새로운 문명으로 고양시키며, 그들의 마음의 눈으로 새로운 사회의 분위기를 보고 그 분위기 안에서 삶에 가치를 더욱 더해 준다. 지성이 제아무리 법을 체계화시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체계적인 억압수단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도덕가의 직관은 감정의 더욱 풍부한 원천을 개방시키며, 그로 인해 새로운 삶의 양식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열망을 유발시키고 그러한 창조력을 제공해 준다. 베르그송은 도덕의 두 가지 유형과 관련해서 종교도 두 가지 유형, 즉 정태적 종교와 역동적 종교로 나눈다. 두 가지 유형의 도덕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두 가지 종교에서도 그것들의 기원은 부동적인 지성과 역동적인 초지성, 즉 직관이다. 물론 정태적 종교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삶의 특정한 근본적인 요구를 해결해 주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종교란 본질적으로 안전과 확신, 그리고 공포에 대한 위안을 구하기 위해 인간이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은 인간에 의해 그리고 사회에 의해 곧 제도화되며, 그것들은 비판적인 이성으로부터 보호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전환되고 의식과 계율에 의해 보호되며, 결국은 사회의 구조 속에 끼여들어 간다. 이것이 바로 정태적 종교이다. 그러므로 정태적 종교는 지성의 표상에 대항하는 자연의 방어행위로 정의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역동적 종교는 신비주의를 본질로 하며, 그것의 궁극적 목적은 창조적 노력, 즉 신적 노력과의 접촉이다.

이 때 신비주의가 신화형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신비주의는 개개의 존재를 삶의 약동, 또는 참된 존재와 연관시키는 것으로서 매우 보기 드문 것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신비주의를 행할 수 있는 몇몇 안되는 예외적인 사람들의 힘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면, 인류의 삶은 달라지고 사람들은 인류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신비주의자는 신의 도움을 통해 신의 창조를 완결시키는 자이다. 신을 통해서 그는 신적 사상으로 모든 인류를 사랑한다. 세계의 모든 신앙도 신비주의자들로부터 나왔다. 그것은 사막이나 심산유곡에서 명상이나 신비적인 경험을 통해 나온 결과이다. 대부분의 동양의 신비주의가 그렇다. 불교는 이성의 세계를 넘어 모든 생물에 대한 절대적 외경(畏敬) 그리고 무념, 무상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가르친다. 기독교 역시 신비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신비주의는 기존의 교회나 경직된 종교를 넘어 흐르는 작렬하는 불꽃이요, 용암이다. 그것은 기존의 교회와 종교를 밝히고 그들의 문을 열어 놓지만, 그들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의 사도로서 초대교회의 활기에 찬 임무에로 복귀시키려 하는 것이다. 신비주의와 기독교는 서로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그 어느 하나도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신비주의자들은 예수를 계승하고, 참된 존재에의 몰입 또는 접촉을 수행한다. 그들은 언제나 인간의 영혼 속에 뜨거운 생명력을 자신의 행위를 통해 불어넣어 준다.

 

#과제44.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의 의미는 무엇인가.

‘실존’이란 개념은 인간 속에 있는 어떤 아주 명확하고 결정적인 체험 능력을 사상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이 실존이란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삶을 표현하는 생계와 같은 외면적인 실존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들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계를 잃는다’거나 ‘잘산다’ 혹은 ‘죽지 못해 산다’는 등의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개념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인간의 외면적인 삶의 양식인 경제적 부나 육체적 건강 혹은 지적 풍요로움에서 오는 상대적인 실존경험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핵심, 즉 마지막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삶의 체험을 지칭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경제적 부나 건강이 비록 인간의 삶의 외면적 치장을 해줄 수 있을지라도, 모든 인간이 근본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사건, 예를들어 죽음이나 불안과 같은 것들 앞에서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체험하는 실존이란 사건은 인간의 외면적인 삶의 내용들이나 형편들을 초월한다. 실존은 Existenz의 번역어인데, 이 말은 existentia라는 중세의 용어에서 연유한다. 이 말은 중세의 본질(essentia) 개념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 이 본질은 “어떤 무엇이 바로 그것인 바”, 즉 나무가 나무인 소이를 일컫는다. 즉 어떤 것의 우연적인 속성들을 제거하고 남는 보편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이래 전통철학은 존재자의 본질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왔다. 말하자면 본질철학이다. 예를들어 ‘망치’란 대상의 본질은 망치를 못이나 책상 등과 구분하여 주는 보편적 속성, 즉 ‘못을 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실존을 의미하는 existentia는 영원불변한 실재로서의 본질이 아니라, 현실적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개개의 현실존재, 즉 현존(Dasein)을 의미한다. 여러 내용적인 규정들을 다 제거하고 남아있는 오직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그런데 실존철학에서는 이 현존이란 개념의 외연이 좁아진다. 즉 인간의 현존을 특히 실존으로 부른다. 인간을 제외한 여러 존재자, 예컨대 산이나 나무, 신과 고양이 등은 존재하지만, 인간은 실존한다. 인간만이 자신의 존재를 부채로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에 있어서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신에게는 존재가 문제될 필요가 없고, 동물에게는 문제화할 능력이 없는데 반해, 인간은 마치 달팽이가 자신의 껍질을 평생 짊어지고 살듯이, 자신의 삶을 항상 문젯거리로서 짊어지고 산다. 이와 같은 인간의 특이한 존재방식은 실존이라고 칭한다. 이런 맥락에서 샤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전통철학에서는 본질이 실존에 항상 앞선다. 플라톤에 있어서 개체는 보편자인 이데아를 모방으로 하여 제작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데아란 본질이 먼저 주어져 있고 이를 모방으로 비로소 개체의 존재가 가능하게 된다. 이것은 중세철학에서도 실존은 본질에 대한 보충물이나 우연적 속성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실존철학의 형성과 더불어 인간의 구체적 현존을 실존으로 지칭하게 되었고, 이 실존을 본질에 앞서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인간과 사물은 똑 같은 현실존재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개별성과 주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현존이 본질에 대한 단순한 부가물로서 생각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망치는 못쓰게 되면 ‘저’ 망치로 대체될 수 있지만, ‘이’ 인간은 ‘저’ 인간으로 대체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인가”하는 전통적인 물음은 인간의 개별성과 주체성을 제거한 이후 개념적으로 본질을 규정하려는 물음이다. 사물과 신은 단지 거기에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항상 자기의 문제로 끌어 안아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본질이라는 추상적인 껍질에서 튀어져나와 각자 독자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와 씨름해야 한다. 인간에게는 어떻게 사는가가 일차적인 문제이다. 인간에게는 현실적 존재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본질이 정해진다. 이것을 샤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철학의 근본명제로 정식화했다.

 

#과제45. “실존”이란 개념의 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

전통철학이 논리적 체계를 구축하는 일에 몰두하는 가운데 인간의 실존에 대한 자각은 뒷켠으로 물러나 있었다. 헤겔의 범논리주의는 논리적-객관적 체계를 이론적으로 구축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을 뿐 인간의 현실존재에 대한 주체적 반성은 결여되어 있었다.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진리를 확보하기에 급급했던 전통철학은 인간의 개체적이고 주체적인 진리를 한갓 체계의 부산물로 여기고 말았다. 이와 같은 상황하에서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골(Kierkegaard)은 실존철학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문장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감탄사” 또는 “줄 사이에 거꾸로 인쇄된 활자”라는 키에르케골의 말은 거대한 논리적 체계만 갖추면 철학은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내었다는 헤겔 철학의 거만함을 꼬집는 말이다. 객관성과 보편성이란 이름으로 거대한 논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의 구체적 실존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거대한 궁전을 지어 놓고서 그 자신은 오두막에 살아가야 하는 가련한 모습이 될 것이다. 키에르케골은 젊은 시절의 일기에서 아무리 빈틈없는 체계를 세웠다 하더라도, 내가 그 속에 살고 있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고 외친다. 그는 어떤 종교강연에서 한 저술가의 예를 들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저술 때문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그 저자가 불행한 고난의 시련에 허덕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고민 끝에 어떤 목사를 찾아가서 충고를 구했는데, 그 목사는 찾아온 사람의 하소연을 다 들은 후 “그 누가 지은 󰡔하나님의 사랑󰡕이란 책을 읽어보시오. 그 책을 읽으시고도 만일 구원을 얻을 수 없다면, 당신은 구원될 길이 없는가 보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진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타당할지는 몰라도, 그 보편타당성이 나의 구체적 실존을 확인시켜주는 주체적 진리는 되지 못한다. 이 주체는 근대 이성주의에서의 추상적인 주관이나 인식론적 주관을 의미하지 않고 예외자, 단독자로서의 주체를 말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결단하며 살아가는 실존하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주체적 진리가 논리적 명제에 국한하여 생각해서는 안된다. 진리를 명제에 국한되어 생각하는 한, 진리는 한갓 논리적 추론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주체적 진리는 자신의 삶에 성실함을 의미하며 자신의 본래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주체적 결단을 의미한다. 그것은 육체를 가지고 원죄에 허덕이는 존재로서, 그러기에 부단히 자기 자신의 존재방식에 관심을 쏟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적 실존의 양식을 말한다. 그러므로 실존적인 의미의 진리는 한갓 명제적 진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성실한 것을 뜻한다.

키에르케골은 개인이 자신의 개별실존을 성취하는 바로 거기에 자신의 진리에 도달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그는 개별 실존이 보편으로 약분되어 버릴 수 없음을 강조한다. 헤겔의 전체주의는 인간 개별 실존을 사변의 추상물로 환원하여 버림으로써, 개별 인간의 주체적 실존이 진리의 장이 되어야 함을 간과하였다. 키에르케골은 이 실존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설명한다. 첫째는 감성적 실존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감성적 욕구의 충족, 즉 향락을 추구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이 단계는 결국 인간을 쾌락의 노예로 전락시켜 버린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의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기회도 가질 수 없다. 이제 두번째의 단계인 윤리적 실존으로 비약하게 된다. 이 단계는 양심을 가지고 윤리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윤리적 사명을 다 할려고 하면 할수록 항상 한계에 부딪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윤리적 단계로부터 종교적 실존의 단계로 비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인간의 참된 실존이 가능하게 된다.

신 앞의 단독자로서의 실존체험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실존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과제46. 야스퍼스의 포괄자이론에 대해 정리하시오.

모든 개별적인 존재자들을 포괄하는 존재 자체는 그 존재방식이 이중적이다. 즉 한편으로는 개별적 존재자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전체로서 현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 존재자에게 규정된 형태를 취하면서 나타나는 방식으로 현존한다. 것은 바로 존재가 우리에게 나타나면서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이중적 존재방식을 가진다. 말하자면 존재 자체는 우리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자신을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특이한 성질을 가진다. 그러므로 인간은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포괄적 존재이라는 특성을 갖는다. 이것은 다른 모든 존재는 항상 우리 인간에 대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존재 자체는 인간 존재를 통해서 비로소 형태를 취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은 존재 자체인 포괄자를 드러내는 포괄적 존재가 된다. 이 포괄적 존재의 존재방식들에 대해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설명한다.

먼저 우리 자신으로서의 포괄자인 현존재가 첫번째의 것이다.

존재 물음으로 중재되는 첫번째 근본 경험은 “나는 거기에 있다”는 말로 표현된다.

나는 시간의 한계 내에서 현존과 권력의 관심에 이끌려 살고 있는 존재인 포괄자이다. 그러나 이 포괄자인 현존재는 시공간적으로 규정된 대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포괄자로서의 현존재는, 어느 것이든 나에게 현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들어가야 할 현실의 장이다. 나의 존재는 모든 대상성이 근거를 두고 있는 바탕으로서 그 자체는 비대상적이고, 단순히 시간과 공간에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존재는 결코 그 자체가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전체로서의 현재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 현존재는 항상 죽음에 직면하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현존재는 더 이상의 근원적인 포괄자를 지시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의 포괄자는 의식 일반이다. 개인적이고 사실적인 의식으로서의 나는 나의 현존재를 체험적으로 이해하는 반면에, 나는 의식 일반으로서 보편타당한 오성의 사유와 “나는 사유한다”의 확실성에 참여한다. 이 의식 일반의 범주들은 대상의 사유를 위한 필연적 사유형식으로서 우리에게 모든 대상의 존재 조건이 된다. 따라서 의식 일반을 모든 대상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포괄자이다. 그러나 이 의식 일반 역시 절대적인 보편성과 그리고 사유할 수 없는 것에 직면할 때 한계를 갖는다.

세번째의 포괄자는 정신이다. 무시간적 의식 일반의 추상성과 살아있는 현존재의 구체성과는 달리 정신은 나의 앎에 대해 자신 안에 폐쇄된 대상이 되지 않고 이념으로 남아 있게 되는 이해가능한 사유와 행위 및 느낌의 전체성이다. 이 이념은 모든 개별적 연구에 전제된 것이고 그 연구를 개별적 제약들과 인식들의 완결될 수 없는 계열에로 이끌어 가는 무제약적 전체이다. 이 이념은 또한 현존재의 우연성을 간직한 보편타당한 오성적 앎의 통일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식의 보편 타당성의 필연적 조건인 오성의 단순한 형식적 통일성과는 달리 정신은 역사적 통일성과 시간적인 사건으로서 현실적인 것이다. 정신은 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때마다 언제나 역사적이며 직업, 이념, 문화 이념, 민중 이념 등에서 전제되며 장소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 때문에 이념의 현실성인 정신의 통일성은 역사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형태이며, 이것을 받아들이느냐 혹은 거부하느냐가 한 시대의 모습을 새겨 놓는다. 세계와 시대의 역사적인 변동과 붕괴는 바로 이념의 좌초와 정신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네번째의 것은 세계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오성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근원적인 사실인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세계는 비록 우리 존재에 대해 마주 서 있긴 하지만, 객체화될 수 있는 대상 또는 세계 내부의 존재로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는 우리가 세계 존재에 접근 할 수 있게 되는 모든 현상들이 우리와 만나는 근거이다. 세계는 대상으로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안에서 직관의 형식들과 사유 형식들에 의해 개개의 대상성이 구성되는 곳이다. 세계는 우리의 대상적 사유에 의해 완전히 파악될 수 없다.

모든 추정적인 세계 인식은 무너지게 된다. 세계는 우리의 유한한 인식에 대해 결코 개방될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다.

다섯번째는 실존이다. 실존으로서의 자기 존재인 포괄자는 앞의 다른 포괄자들과는 달리, 나 자신과의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존을 자신의 결의에서 나온 결단에 의해 존재에로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실존은 자신과의 관계를 맺게 하는 가능한 경험으로서 야스퍼스가 말한 “한계상황”에 직면하여 비약을 준비하는 단계이다. 실존은 모든 포괄자들의 근거가 되는 포괄자로서 “나는 스스로가 될 수 있다”는 경험에서 나온다. 실존은 스스로 대상이 되지 않으면서 모든 다른 포괄자들의 의미를 드러낸다. 실존은 자유를 통한 자기 존재이므로 파악될 수 없는 근원이다. 실존은 대치될 수 없는 역사적 절대성을 가지며 해석될 수 없는 방식으로 갑자기 현실이 되는 존재가능성이다. 실존은 세계를 향한 자유이며 그 완성은 나 자신의 역사적 제약성인 현존재의 현실을 자유롭게 떠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서 비로소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실존은 객관적 역사 전체에 내가 현사실적으로 결속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를 수행하는 실존이 개별자의 독백적 행위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실존은 ‘실존적 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실존은 초월과의 연관성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실존은 초월자와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월자와 연관되지 않은 실존은 존재의 확신을 결여하기 때문에 비본래적인 삶에 빠진다. 이처럼 실존은 초월자에 의해 선사된 것이다. 따라서 야스퍼스는 “실존은 자기 자신과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의 초월과 관계하는 그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이 되도록 하는 힘인 초월에 대한 앎과의 일치 속에서만 오직 실존일 뿐이다”. 초월은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며, 실존은 초월과 그때그때 역사적으로 일치하는 장소이다. 야스퍼스는 실존이 초월과 분가분리의 관계를 맺는 방식을 “철학적 믿음”이라 부른다.

여섯번째는 초월이다. 초월은 우리의 철학적 믿음 속에서 현전하게 된다. 이때 이 현전은 그때그때 대변될 수 없는 한계상황의 경험과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초월하는 사유에 의해 만회될 수도 혹은 보편 타당하게 발언될 수도 없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이란 무규정적인 이름들인 “존재”, “현실”, “신성”, “신” 등이다. 이것은 그 자체상 내용이 텅빈 것이며 실존적인 경험 속에서 비로소 그 내용이 충만해 진다. 그것들은 대상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초월이 그 안에서 역사적 결단에 의해 접촉되고 느껴질 수 있는 경험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하나인 인격적 신에로의 약진인 존재의 접촉은 직접적이지 않고 “암호”의 상징적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암호는 어떤 저 세상의 신을 지시하는 기호가 아니라, 하나인 무한한 신이 유한하게 실존하는 인간에게 세계적 존재자 안에서 감각적으로 현재하는 방식이다. 이 현재하는 방식은 그 자체가 역사적인 것이다. 초월은 역사적으로 자신을 수행하는 실존에게만 암호 속에서 현전적일 수 있기 때문에 초월의 나타남도 역시 실존에게는 역사적이 되어야 한다.

끝으로 이성이다. 초월로서의 일자와 결단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관계를 맺음으로써 포괄자의 보든 방식에 관통하는 자기 자신이 되는 운동은, 일자에 의해 근원적으로 자기 자신이 관계되도록 내맡길 수 있음을 전제한다. 이러한 처신이 비로소 개별 존재자들 및 포괄자의 모든 방식들을 초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주고 동시에 그것들의 일치도 가능하게 해 준다. 이 실존의 진리를 가능하게 하는 운동을 야스퍼스는 이성으로 파악한다. 이 이성은 모든 포괄자들의 “연결매듭”이다. 이성은 어떤 것도 산출해 내재하지 않으면서 모든 불일치를 일치시키려는 전체적 교제의 의지이다. 이성은 일치에로의 의지와 비역사적 절대적 일자에로의 의지로서 오성의 모든 고정과 논리를 넘어서는 사유이다. 이성은 일자를 탐구하는 철학함의 추진력이며 그 스스로 초월을 수행한다.

 

#과제47. 샤르트르의 실존사상을 정리하시오.

르트르가 야스퍼스나 마르셀과 달리 인간 실존을 무로 규정하고 어떤 신적인 존재로부터 규정될 수 없는 자유로운 존재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이다. 실존을 가능성으로 규정함으로써 인간 실존의 개방성과 자유를 선언하려고 한다. 신의 도덕률, 선천적인 가치, 형이상학적 본질 등을 통해 인간의 실존을 규정하려는 것을 거부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실존을 형성하고 창조해 가는 존재이다. 버려진 채 세계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고 그의 실존에 대해 홀로 책임을 지고 자기 자신을 선택하고 선악을 스스로 결정한다. 스스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입법자이다. 자신 이외에는 다른 입법자도 있을 수 없고 스스로 선택하고 실존을 매꾸어 간다는 점에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또한 그의 실존주의는 인간을 탈자적(脫自的) 존재로 간주하는 휴머니즘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 밖에 있다. 인간은 자신을 외부로 기투하며 스스로를 초월하면서 실존한다. 이 경우 초월의 주체는 바로 인간 자신이다. 왜냐하면 탈자적 인간이 신으로부터 탈락한데 치러야 할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실존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저주받았다. 이 선택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의 존재와 동일한 것이다. 이 선택은 바로 인간 존재가 자유임을 말한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와 선택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인간은 무에 의해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이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무한히 자유롭게 한다. 그러나 이 자유는 무한히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타인의 자유와 마추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타인의 시선에 붙들여 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는 하나의 대상이 된다. 나의 상황이 다른 상황이 되고 여기서 나의 자유는 제한을 받는다. 타인은 나의 가능성을 마비시켜 버린다. 타인의 시선은 메두사의 눈처럼 나를 하나의 가능성에 고정시키고, 그에 의해 내게서 다른 가능성들이 거부된다. 나는 나의 자유의 한계 속에서 타인의 자유를 경험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타인의 자유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그러므로 샤르트르에 있어서 자유와 선택 그리고 책임은 분리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실존을 실현해 가는 가운데 인간의 본래적 실존이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어떤 초월적 존재도 인간의 실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실존은 휴머니즘적이다.

 

#과제48. 하이데거의 “세계 내 존재”를 설명하시오.

현존재는 거기(Da), 즉 이미 세계에 처해 있는 존재이다. 현존재는 이미 세계에 묶여 있는 존재이다. 이 세계 내 존재(In-der-Welt-sein)란 술어를 마치 ‘공간적으로 안에 있음’이란 식으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잉크 병 속에 잉크가 들어 있듯이 그렇게 세계 내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는 세계와 떨어질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해져 있고 세계에 던져져 있음을 말한다. 이 세계는 사유하는 존재와 동떨어져 있는 연장적 실체(res extensa)로서의 존재자의 총체가 아니라, 현존재 자체의 구성적 실존범주이다. 따라서 세계 내 존재는 우성 주위 세계를 이해하고, 주위 세계와 친숙해 있음을 말하며, 이 때의 이해 방식은 곧 존재자를 다루고 사용하며 존재자에 관심을 쏟는 그런 왕래이며, 존재자는 이런 배려 속에서 “도구”로 만나게 된다. 도구는 봉사 가능성, 사용 가능성 등과 같은 자신의 “무엇을 위함”(Um-zu)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그것은 이미 나름대로 도구 전체 속에, 다시 말해 하나의 지시 연관 속에 있다. 이 지시연관은 현존재에 최종적인 근거를 둔다. 예를들어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있고, 못은 시계를 고정시키기 위해 있으며, 이 시계는 현존재의 시간 계획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이 도구의 존재성격은 이론적 관찰에서가 아니라 오직 도구를 다루는 교섭 속에만 드러난다. 도구적 존재는 바로 하이데거에 의하면 “손안에 존재”(Zuhandensein)이다. 이것은 바로 이론적 관찰에 의해 도구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의 둘러보며 관심을 쏟고 배려하는 것(Besorge)을 통해서만 발견된다. 이 도구는 손안에서 존재를 잃어버렸을 때, 즉 예컨대 망치가 망가졌거나 잃어버렸을 때 지시연관성이 드러난다. 이 지시연관성은 바로 현존재가 자신이 세계 내 존재임을 발견하게 해 준다. 현존재는 이 세계 안에서 만나는 존재자를 통해 임 세계와 친숙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현존재는 도구 존재와는 다른 존재인 타인과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그런데 타인은 도구처럼 배려될 수 없고 심려(Fürsorge) 속에서 만난다. 이 타인은 바로 대중(Das Mann)이다. 이 대중들은 모든 존재 가능성들을 평균화시켜 버리고 일상적으로 누구라도 대신할 수 있는 그런 보통의 타인으로서 대중이다. 현존재는 이 대중 속에 몰입함으로서 실존의 본래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 대중들은 비본래적인 실존의 양상이며, 이 양상 안에서 현존재는 자신을 바로 자기 자신의 가능성들로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가능성들로부터 자신을 풀어 주어 그것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짐을 없애준다. 그러나 이 대중의 비본래성 역시 현존재의 본래성과 함께 실존을 구성하는 범주이다.

 

#과제49. 하이데거에 있어서 “죽음”의 실존적 의미는 무엇인가.

현존재의 실존범주로서의 염려(Sorge)는 걱정이나 근심과 같은 것과는 다른 것이다.

현존재의 존재로서의 염려는 자신을 실존가능적 존재로 앞질러 이해하고(실존성) 세계 내에 이미 존재함(현사실성)과 세계 내부에서 만나는 존재자들에 머물러 있음(퇴락)을 포괄하는 것이다. 현존재는 그에게 세계 내 존재로서 그 자신의 존재가 문제가 되는 한, 현존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염려이다.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로서의 염려의 탁월한 방식을 불안으로 설명한다. 현존재는 근본적으로 불안이라는 기분에 젖어 있으며 이 불안 속에서 그 자신의 가능성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공포와는 다른 불안은 현존재를 향상 주위세계로부터 단절된 혼자 있는 상황으로 몰아 넣는다. 그런데 이 불안을 통해 현존재는 그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로 던져 준다. 이 불안을 통해 현존재는 자유롭게 자신의 실존가능성을 선택하게 된다. 실존의 본래성을 선택하는 것은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에서 가능해진다. 이 양심의 부름을 현존재가 듣는다는 것은 어떤 사실적인 역사적 과오나 선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함을 경험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무력감에서 비롯되는 실존범주이다. 현존재가 이 양심의 부름을 올바로 듣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에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부름은 현존재가 이미 부채를 떠맡고 있는 무력한 존재임을 자신의 고유한 실존의 가능성으로 받아 들이도록 한다.

이와같이 현존재가 자신의 무력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면, 죽음이야말로 현존재를 가장 무력하게 만든다. 그런데 만약 이 죽음이 현존재의 실존의 끝을 의미하거나 생물학적인 혹은 물리학적인 의미에서 삶의 줄이 끊어진다는 사망이란 개념이 아니라면, 이 죽음은 인간을 가장 무력하게 만들어 동시에 이 죽음은 인간을 가장 고유한 실존의 가능성에로 들어서게 한다. 이 죽음은 단지 종말이 아니라, 현존재의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으로서 현존재 안에 항상 깊이 파고들어 와 있다. 현존재는 이미 죽음의 그림자에 드리워져 있으며, 지금도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죽음이 현존재가 종말의 사건으로 연장하거나 피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현존재의 실존에 깊이 관여해 있다면, 죽음은 바로 현존재를 가장 본래적인 실존가능성에로 옮겨 주는 적극적인 범주가 된다.

현존재에 있어서 죽음은 그 자신의 가능성에로 미리 달려감(Vorlaufen)이다. 이 미리 달려간다는 것은 죽음을 가장 고유하고 확실한, 그리고 규정되어 있지 않고 건너 뛸 수 없는 현존재의 가능성으로 내보이고, 이해하며 다가가는 것을 뜻한다. 죽음을 향상 존재는 불안에 직면하고 이 불안은 현존재를 고유한 본래적인 실존의 장으로 이끌어 준다. 그러므로 죽음에로 미리 앞질러 가 본다는 것은 현존재를 불안에 몰아 놓는다. 하지만 이 불안은 바로 현존재로 하여금 자신의 고유한 실존적 결단을 가능하게 하는 근원적인 범주이다.

 

#과제50. 분석철학의 발생배경은 무엇인가.

현대철학의 특징을 헤겔적 관념론에서 실재론에로, 거대한 체계확립보다는 엄밀한 철학적 분석에로 그리고 관념의 추상성에서부터 구체적 사실에로의 전환으로 규정한다면, 분석철학 역시 이와 같은 시대정신을 가지고 발생한다. 우리는 분석철학의 철학사적 기원을 통상 무어(G. E. Moore, 1873~1958)와 러셀(B. Russell, 1872~1970)로 삼는다. 이들은 캠브리지 대학 재학 중 헤겔주의자였던 매타가아트(McTaggart)와 브래들리(Bradley)의 영향은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곧 관념의 의미는 정신과 전적으로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실재론적 착상을 하게 되었고 마이농(Meinong)이나 프레게(Frege)와 같은 독일철학자들의 후원을 얻음으로써 실재론적인 전회를 이룩하였다. 무어와 러셀은 실재론의 입장에서 세계 전체를 포괄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철학의 임무로 생각하였다. 이들의 관심은 세계 전체를 기술하는 실재론적인 형이상학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때 이미 철학의 유일한 과업은 진술의 의미를 분석하는 일이지 세계 전체에 관하여 사색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여 주고 있었다. 사실의 세계에 대한 기술로부터 개념의 분석에로 옮겨가기 위한 토대를 이미 마련하고 있었다. 세계를 거대하게 기술하는 일보다는 세계의 그림인 언어의 의미를 분석하는 일에 철학이 전념해야 한다는 분석철학의 임무를 일찍이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이들은 분석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옛 실재론의 동지들과 결별하게 된다. 바로 이 분석적 관심이 카르납이나 비트겐슈타인의 업적과 연결되는 고리이다.

이들은 다 같이 언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만 그들이 대상으로 하는 언어는 차이점을 갖는다. 러셀은 무어에 비해 수학과 논리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러셀을 장래가 촉망되는 수학자로 일찍 칭찬하였다. 러셀은 무어에게 화이트헤드로부터 수학 개인교습을 받으라고 충고할 정도로 무어는 러셀에 비해 수학적 재능이 모자랐다. 그러나 무어는 이 충고를 받지 않았고 그 자신이 고백하듯이 이 충고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러셀과 다른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게 된 결과라고 생각하였다. 러셀은 수학적 훈련을 삼으면서 언어를 수학적 기호와 같은 인공언어로 구성하는 데 익숙한 재능을 보인다. 그는 일상언어에는 무관심하고 단지 사유체계를 수학적 부호로 논리화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것은 바로 논리실증주의자들과 초기의 비트겐슈타인에게 유산으로 남겨진다. 이에 반해 무어는 언어의 기호화 내지는 논리화에 대한 상식의 철학의 입장에서 반대한다. 무어에 있어서 분석은 일상언어에 대한 충실한 번역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공동으로 지은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는 무어에게는 일상성과 상식성을 벗어난 한갓 기호의 체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무어의 일상언어에 대한 관심은 후기 비트겐슈타인과 오스틴을 통해 일상언어학파를 형성하는 데로 이어진다.

 

#과제51. 무어와 러셀의 기본 입장은 무엇이며 그 차이점은 무엇인가.

(1)무어

무어는 처음에는 브래들리나 맥타가트의 형이상학적 영향하에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 자신 비록 관념론에서부터 실재론으로 옮겨 왔지만, 역시 형이상학에 기울어 있었다. 물론 헤겔과 같은 관념론적이고 일원론적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실재론적이고 다원론적 형이상학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전통적인 플라톤적 형이상학에서부터 이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가 「관념론 논박」이란 논문을 발표하고 나면서부터 차츰 무어의 관심은 거대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성하는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무어는 궁극적 실재를 탐구하거나 철학을 하나의 거대한 체계로 각색해내는 일에 식상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관심은 거대한 체계를 구성하는 도구인 언어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분석에로 모아졌다. 세계를 하나의 체계로 몰아 넣기 위해 사용된 허황하고 애매한 말들을 하나 하나 분석하는 일을 자신의 철학의 과제로 삼는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세계나 과학이 나에게 철학적 문제를 암시해 줬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게 철학적 문제를 암시해 준 것은 다른 철학자들이 세계와 과학에 관해 말한 것들이다.”라고 말하고 이어서 “어떤 특정한 철학자가 말한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진실로 명백히 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한 철학자가 의미하는 것이 참 혹은 거짓이라고 생각할 어떤 진실로 만족스러운 이유가 있는가를 발견하는 일이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의 동기가 언어에 대한 분석적 반성에 있음을 표현한다. 예를들어 “신은 자비하다”나 “실체는 관념이다” 혹은 “이데아는 영원하다”는 등의 형이상학적 진술은 마치 “토요일이 침대에 잔다”와 같이 허황하고 무의미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무어는 철학의 과제가 일차적으로 개념이나 의미의 분석에 있다는 사실은 그후의 분석철학자들에게 크다란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모든 존재의 궁극적 실재를 찾고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확인하려는 돈키호테적인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철학은 스스로 작지만 매우 중요한 일, 즉 의미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자신의 철학의 일차적 과제로 삼는다. 대륙의 철학이 상식을 경시하고 주어진 것을 관념의 산물로 추상하였던 데 대해, 무어는 상식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철저하게 반박한다. 만약 철학이 관념과 언어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면 철학자는 현실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창백한 관념론자에 지나지 않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헤겔의 추상적 관념론에 반대하여, 현실을 주어져 있는대로 기술하려는 현상학과 무관하지 않는다. 단지 현상학과 달리 무어를 통해 형성된 분석철학은 그들의 관심을 사실에 대한 기술에서 개념과 언어에 대한 분석에로 방향을 정했다는 사실에서 갈라지게 되었다. 무어가 이와 같은 방향으로 자신의 철학을 몰고 나가게 된 사상적인 추진력은 그의 「관념론 논박」과 상식의 철학 때문이다.

신실재론의 운동은 무어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1903년 그의 유명한 「관념론논박」에서 당시 영국 철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관념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전통적인 관념론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정신 안에 있는 관념들 외에는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

모든 실재는 정신적인 것이다.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됨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진실로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외부에 물질적 사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잠시도 믿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어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나 “모든 실재는 정신적이다.”는 추상적 진술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이 진술들을 ‘이’ 연필 혹은 ‘저’ 책상 등과 같은 개별적 대상을 포함하는 팽창되지 않은 진술로 환원하려고 한다. 어느 날 유명한 관념론자가 물질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논증하기 위한 강의를 하고 있을 때, 청중의 한 사람이었던 무어가 강단 앞으로 나가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강의탁상을 손으로 화를 내면서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처럼 무어는 상식을 대변하여 철학을 건전한 상식에 토대한 철학으로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심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간에 감각소재(sense-data)가 우리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무어가 이처럼 보편적 개념이나 궁극적 실체를 감각소재로 환원하는 것은 영국의 유명론(唯名論)적 전통에 따른 것이며, 건전한 상식에 근거한 실재론을 토대로 관념론자들의 오류를 분석하는 일과 연결된다. 무어는 전통적인 관념론의 범례인 버클리의 관념론은 논박한다. 이 논박을 통해 무어는 버클리의 관념론은 우리의 의식 외부에 이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세계를 부정하는 모순을 범한다고 반박한다. 감각소재가 우리의 정신에 관계는 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정신에 의존적인 것은 아니다. 감각소재는 우리에게 지각되지 않고서도 그 자체로 존재한다.

무어는 이와 같은 관념론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우리의 정신 외부에 있는 대상과 이 대상에 대한 지각사이에는 논리적 거리가 있음을 주장한다. 말하자면 대상이 우리의 의식에 의해 지각된다는 사실 때문에 대상이 의식에 의존한다고 생각하여 대상을 정신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을 한다. 관념론자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대상과 지각을 혼동하여 모든 존재가 정신적인 것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관념론자들은 존재를 의식 혹은 감각 속에 잘못 흡수시킨 것이다.

그러면 감각이나 지각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상을 우리의 의식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채널이 아니라 단지 외부에 있는 대상을 단순히 경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지각은 항상 의식의 외부에 대상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할 때 일어나는 인식작용이다. 그러므로 관념론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우리들의 의식과 독립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 세계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이 버클리를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관념론자들에게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객관적 세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무어의 답변은 간단하다. 그것은 우리의 상식에 호소하여 증명할 수밖에 없다.

무어는 철학적으로는 매우 순진한 것처럼 보이는 물음을 묻는 데 관심을 가진다. 즉 관념론자들처럼 고상하지도 휘황찬란하지도 않지만 가장 건전한 태도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볼려고 하지 않았던 것을 보았고 또한 본 것을 용감하게 “황제는 옷을 입지 않았다”고 말한 소녀처럼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그 당시 영국사회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관념론에 대한 논박을 통해, 대상이 우리들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식에 호소해서 증명한다. 전통적으로 상식은 보편화되지 않은 단편적인 지식으로 경시되어 왔지만 무어에 있어서 우리 모두에게 갖추어져 있는 건전한 양식(良識)인 것이다. 무어는 그의 논문 「상식의 옹호」(A Defence of Common Sense)에서 그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련의 상식적 신념을 나열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그는 물질이 존재한다거나 정신이 존재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나의 신체가 존재한다는 확실한 사실에서부터 자신의 논의를 전개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독자들에게 독자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기를 요구한다. 감각적으로 주어져 있는 손을 지각한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지식은 있을 수 없다. 물론 똑바른 막대기가 물 속에서는 휘어져 보이고, 달리는 기차는 바퀴가 없는 것으로 지각되지만, 어떤 상황하에서든 감각소재만큼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다. 이 감각소재의 객관적 존재를 관념으로 추상화하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엉뚱한 생각이다. 무어가 상식을 옹호하는 예를 하나 더 들면,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철학적 주장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약 이 명제가 참이라면, 우리가 점심을 먹기 전에 아침을 먹었다는 사실을 수정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반문한다. 무어가 상식을 옹호하면서 전통적인 철학에 반기를 드는 것은 철학자들이 상식과는 정반대로 논리의 조작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지식과 하나의 지식을 논리적으로 잘못 연결하는 데서 혼란을 일으킨다. 사실과 사실을 논리적으로 잘못 연결함으로써 사유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무어의 철학의 관심은 논리적 착각에서 비롯된 엉뚱한 결론은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그 혼란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이와 같은 관심은 그가 러셀이란 동지를 만남으로써 더욱 가속화되었다. 우리가 무어를 분석철학에 토대를 마련한 사람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그의 철학적 태도일 것이다. 그는 철학적인 문제에 하나의 완전한 답을 내리기를 거부하고, 단지 논리적인 착각으로부터 초래할 수 있는 사유의 혼란을 지적함으로써 그릇된 언어사용이나 논리적 조작에 의해 병든 지성을 치유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 이런 그의 철학적 태도는 그 당시 우리의 사고를 지배했던 전통적인 관념론에 날카로운 분석의 매스를 가함으로써 어떤 형이상학적 독단으로부터도 자유스러워지려는 그의 철학적 스타일에서 비롯된 분석철학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2) 러 셀

버틀랜드 러셀(B. Russell, 1872~1970)은 오늘날까지 서방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이다. 특히 1차대전 이후 러셀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주원인은 그가 한때 옥고를 치를 정도로 철저한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영국인 특유의 비타협성을 가진 러셀은 지배적인 견해나 선입견에 끝까지 항거하는 자세를 말년까지 고수하였다. 그는 많은 저술활동을 했으며, 철학 이외의 정치적인 문제나 그 밖의 여러 방면으로도 그의 영향은 미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러셀은 무어와 함께 분석철학에 기초를 마련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특히 그는 수학자로서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고,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1861~1947)와 함께 저술한 󰡔수학원리󰡕는 수학을 학문적으로 정초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러셀의 사상은 크게 전·후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수학연구에 몰두했던 청년 러셀 역시 무어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브래들리로 대표되는 영국 관념론에 심취하여 있었다. 그는 플라톤 주의자로서 수학을 연구했다. 그는 경험적 현실밖에 관념이나 보편자가 존재한다는 입장을 굳게 견지하였다. 그의 󰡔수학원리󰡕는 바로 철학을 경험으로부터 독립한 연역적 학문으로 생각한 그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는 저서이다 이처럼 러셀은 그 당시의 형이상학적 전통에서 그리 이탈하지 않고 수학을 관념적 실재를 다루는 학으로 규정하는 브래들리나 화이트헤드와 같은 플라톤주의자의 모습을 지녔다.

그러나 말년의 러셀의 모습은 실증주의자의 모습으로 차츰 변한다. 󰡔수학원리󰡕의 공동 집필자의 화이트헤드가 형이상학에 깊이 빠져 들어 소위 하르트만(N. Hartmann)과 함께 신형이상학에로 방향을 정한 반면에, 러셀은 논리 실증주의자와 연결되는 실증주의자로-꽁트의 고전적 실증주의에 대해 신실증주의자로서-변신을 한다. 보편자의 문제는 이제 그에게는 구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고 형이상학은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철학은 이미 연역적 학문이 아니라 영국 전통의 경험론을 잇는다. 수학은 이제 과학은 연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는 자연과학적 방법만이 인식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과학주의자가 된다. 러셀은 확고한 체계를 수립하는 형이상학자들의 일에는 싫증을 느낀다. 자연과학만이 제대로의 기능을 다 할 수 있는 인식수단이다. 철학은 자연과학을 통해서만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철학이 도덕이나 종교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함으로써 차차 실증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된다.

이와 같이 러셀의 실증주의적 경향은 그가 관념론에 철저하게 반대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는 개체와 개체간의 본질적인 내적 관계가 있고 이 관계를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브래들리의 관념론에 반대한다. 러셀은 존재하는 것은 감각소재(sense-data)뿐이며 무수한 개체들만이 실재임을 주장함으로써 다원론적 입장을 취한다. 또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나의 세계는 덜 무성한 것이 되었다. 오캄의 면도날은 점차 보다 깔끔한 실재의 그림을 나에게 제공하였다.”라고 말하는 데서 그가 전통적인 영국 경험론의 맥을 잇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될 수 있는 한, 세계를 개체로 분석하여 오류를 피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러셀의 입장은 그의 기술이론(theory of description)과 논리적 원자론(logical atomism)에서 체계화된다.

그는 󰡔기술이론󰡕에서 한 낱말은 그 낱말이 지시하는 대상을 가질 경우에만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즉 한 문장은 실제로는 어떤 것을 지시하거나 주장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들어 “한국의 현재 왕은 대머리이다”와 같은 문장은 이 문장이 지시하는 어떤 대상도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한 사이비문장이다. 어떤 종류의 진술에 있어서 이름같이 보일지라도 사실은 이름이 아니고 위장된 기술(記述)이다. 한 문장의 의미를 그 문장을 구성하는 낱말의 의미가 있고 없음에 따라 결정된다는 명제함수개념을 소개하였다. 예를들어 “나는 한 일각수를 만났다”란 문장은 그 자체로는 문법적 구조를 가지긴 하지만 ‘일각수’란 낱말은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따라서 그 문장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러셀은 의미분석이라는 철학의 과제를 기초하였으며, 언어분석이란 과제를 철학으로 끌어 온다.

이름과 그 이름이 지시하는 대상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확인한 러셀의 기술이론은 그의 논리적 원자론에서 더욱 드러난다. 언어와 세계사이에는 논리적 대응관계가 있다는 러셀의 확신은 세계를 수학적·논리적 구조로 환원하려는 입장과 연결된다. 언어는 세계에 대한 그림이라는 그림이론은 그의 친구면서 제자인 비트겐슈타인의 초기의 입장이었는데 아마 러셀은 이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러셀은 세계가 수학적 논리적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것을 이상언어 혹은 인공언어인 수학적 부호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그가 “나는 항상 가능한 가장 작은 수의 장치를 가지고 철학을 진행시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오류의 위험을 감소하기 때문이다.”고 말하는 데서도 나타나듯이, 논리분석에 의해 관념론이 범한 오류를 방법적으로 차단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화이트헤드와 공저한 󰡔수학원리󰡕는 기호논리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와 같은 러셀의 입장은 상식과 일상언어를 중시했던 무어와는 다른 점이다.

러셀은 우리가 이상언어를 구성할 수 있다면 그 언어는 실재의 구조와 동일하다는 신념을 가진다. 우리는 그 언어를 가지고 세계의 진정한 구조를 적절하게 기술할 것이라는 확신에서 논리적 원자론이 형성된다. 이상언어는 일상언어처럼 모호하거나 애매한 것이 아닌 정확한 언어이다. 우리의 일상언어는 세계의 논리적 구조를 표현하기에는 너무 다의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러므로 이상언어를 통해 논리적 구조가 충분히 표현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모든 복합명제는 러셀이 ‘원자적 사실’이라 칭하는 요소명제로 그리고 이 원자적 사실은 그것의 관계항인 개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고유명사로 표현된다. 이 사이의 논리적 구조는 다름아닌 세계의 다원적인 구조와 동일한 것이다.

 

#과제52. 논리실증주의의 근본정신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2차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편의상 ‘후기’ 혹은 ‘당대’의 (contemporary, current) 현대철학으로 부른다. 이 시기의 사상적 발전 역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몇가지로 간추리는 데는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시기를 흐르는 현대철학의 공통적인 얼굴을 반실증주의적인 태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학문의 방법론으로서 제기된 1930년대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다양한 논쟁들이 이 시대를 특징 지우고 있다. 이 반실증주의적 흐름들을 몇가지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철학을 통해 가다머에 와서 그 체계적 완성을 보게 된 해석학이다. 가다머를 대표로 하여 형성된 현대의 해석학은 분명 이 시기를 특징 지우는 중요한 철학적 조류이다. 두번째는 20세기를 시작하면서 현대철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등장한 문제는 언어문제이다. 이것은 언어분석철학이란 이름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20세기 전반을 지배했던 언어에 대한 관심을 이제 새로운 지평으로 확장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이 오직 언어의 의미분석이라는 좁은 주제에 한정되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사상을 출발로 하여 언어의 문제를 실천적이고 선험적인 차원과 연결시켜 다루려는 새로운 언어철학의 운동이 확산되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특히 아펠이란 철학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흐름은 영·미철학의 전통에서 발생한 반실증주의적 견해들이다. 아마 여기에는 칼 포퍼를 중심으로 한스 알베르트, 토마스 쿤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비판적 합리주의가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헤겔철학의 르네상스로 불리는 변증법의 현대적 부활이다. 소위 ‘신맑스주의’로 불리는 일련의 비판이론가들의 등장은 바로 변증법을 철학적 방법으로 다시 부활시킨 현대철학의 새 얼굴이다. 비판적 합리주의와 비판이론가들 사이의 논쟁은 1960년대 후반의 현대철학을 특징 지우는 배경이 된다. 마지막으로 헤겔의 합리주의의 몰락 이후 등장한 비합리주의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포스터모더니즘, 즉 탈현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우리는 여기에 구조주의를 포함시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과제53.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사상의 변화를 설명하시오.

전기는 그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다듬어진 논리적 원자론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당시에는 러셀과 함께 논리적 원자론을 형성하는 데 관심을 가졌고, 의미문제 역시 의미지시설(referential theory of meaning)의 입장을 나타낸다.

즉 의미있는 문장은 사태에 대한 주장을 담고 있는 명제이다.

의미있는 문장은 사태에 대한 그림이다. 명제는 “실재의 그림”이지만, 어떤 그림도 그 그림이나타내려는 사태와 일대일의 대응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러셀의 입장과 같다. 의미있는 문장은 그 문장이 지시하는 사태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지시설은 신비적이고 형이상학적 발언은 무의미한 것으로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논리실증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비트겐슈타인 역시 철학이 많은 종류의 사이비 문제를 일으키는 언어적 혼란을 치유하는 과제를 가져야 한다는 언어 분석철학의 정신에 깊이 동조하고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이나 논리실증주의자인 카르납과 마찬가지로, 일상언어를 철학적 표현의 운송수단으로 사용하는 데 불신을 했고,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부호나 기호보다 훨씬 정확성을 띠고 있는 부호나 기호를 가지는 기호논리학의 언어와 같은 이상적이고 인공적인 언어의 구성을 선호했다. 그러나 1930년대와 40년대를 거치면서 그는 이제 수정같이 맑은 얼음에서부터 거친 땅으로 돌아가기를 선언한다. 이제 이상언어의 정확성을 포기하더라도 우리의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마당으로 돌아가자는 태도의 변화를 보인다. 그는 후기 저술인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Investigation)에서 이와 같은 자신의 변신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논리-철학 논고󰡕를 완성한 후 자신의 입장에 회의를 품고 철학을 떠났다. 그는 다시 철학에 돌아오면서 자신의 초기 입장과 러셀의 논리적 원자론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물론 전·후기의 사상의 연속성 혹은 불연속성에 관련된 논쟁들이 제기되지만 우리는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의 사상의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초기의 그림이론을 포기한다. 말하자면 표현의 의미는 그것에 대응하는 지시체의 현존에 달려 있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표현의 쓰임새(use)에서 찾으려 한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언어의 형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점은 이미 무어에 의해 강조되었었고 그 이후 옥스포드학파의 분석철학자들에 의해 강조된 것이다. 언어는 마치 연장이 각각 기능을 가지고 있듯이 그 고유한 쓰임새가 있다. 이 쓰임새가 바로 언어의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즉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의미이다. 이 방법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유의미한 언어사용이다. 우리가 베개를 가지고 못을 칠 수 없고, 못을 베고 잠을 잘 수 없듯이, 언어는 그 고유한 기능과 쓰임새를 가진다. 이 쓰임새에 맞게 언어게임을 한다. 언어를 수단으로 우리는 한 종류의 담화에서 다른 종류의 담화에로 이동해감에 따라 여러가지 게임을 한다. ‘언어게임’에서 낱말들은 사람과 사물들을 서술하고 배열하고 지시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인공언어는 일상적인 개념 사용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심각한 왜곡이나 편견을 가지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공언어를 가지고서는 사실을 진술하고 주장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노출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의 복잡한 삶의 형식을 표현하기 때문에 인공언어를 갖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비트겐슈타인은 ‘의미용도설’(use theory of meaning)로 넘어 간다. 이런 비트겐슈타인의 태도는 1919년 자신을 천재라고 불렀던 러셀과는 단절하고 오히려 무어의 입장을 수용하는 데로 나아간다. “당신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물음으로써 일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였던 명석한 두뇌의 무어도 비트겐슈타인의 강의에 참석한 후, 비트겐슈타인의 방법을 성공적인 방법으로 인정하였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의미용도설을 간추려 보자.

그는 󰡔논리-철학 논고󰡕에서 마치 물리학자처럼, 모든 언어는 원자적 진술로 분해될 수 있고, 이 진술은 하나의 사실을 지칭하는 한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의미지시설을 견지했었다. 일상언어는 우리에게 애매하고 모호한 의미를 전달해 주기 때문에, 이상언어로 환원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는 머지 않아 초기 자신의 언어관을 인위적이고 언어의 고유성을 왜곡시킨 상상적인 구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결코 획일적인 그물로 싸잡아 넣을 수 없는 다양성과 신축성을 갖는다. 만약 언어의 의미를 언어의 지시체로 규정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많은 언어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폐기된다. 예를들어 “어머나!” 혹은 “아! 아름답다”란 문장은 그 지시체를 갖지 않지만 우리는 사용하면서 의미를 서로 이해하고 전달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초기 그림이론에 대해 스스로 회의를 품게 된 것은 자기 동료인 경제학자 피에르 스파라와의 토론을 벌이던 중이다. 어느 날 비트겐슈타인이 명제는 그것이 묘사하는 사실과 동일한 논리적 형식을 갖는다는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고 있을 때, 스파라는 네아폴리타 사람의 몸짓을 하며 조소하는 듯 비트겐슈타인에게 그 논리적 형식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질문 때문에 초기의 입장을 포기하게 되었음을 회고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사과’라는 단어는 하나의 이름으로서 그 대상을 가지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붉은 사과’란 단어 역시 그렇다. 그리고 ‘하나의 붉은 사과’란 문장도 우리가 그 대상을 확인하여 이해할 수 있는 유의미한 문장이다. 그러나 ‘다섯 개의 붉은 사과’라고 하면 좀 어려워진다. ‘다섯’이란 단어가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단어가 어떤 경우에 사용되는가를 익히고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진 않지만 말이다. 나는 사과나 붉은 색상을 가리킬 수는 있으나 ‘다섯’이라는 수를 가리킬 수는 없다. 그러면 ‘다섯 개의 붉은 사과’란 문장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되는가? 가령 어떤 사람을 ‘다섯 개의 붉은 사과’라고 쓴 쪽지를 주어 가게에 보냈다고 하자. 그 가게 주인은 ‘사과’라고 표시된 상자로 가서 색상표를 보고 붉은 색을 골라 다섯을 셀 것이다. 그가 만약 ‘넷’이나 ‘여섯’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런 행동을 했다면 그가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 단어나 문장의 의미는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이는가에 달려 있다. 그 가게 주인은 ‘다섯’이란 단어의 쓰임새를 올바로 알았기 때문에 그 쪽지에 쓰인 것을 이해한 것이다. 예컨대 ‘망치’란 단어가 무엇의 이름인지만을 알고 그 쓰임새를 모르는 사람은 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말하자면 ‘망치’란 단어를 이해하는 것은 그 단어의 용도를 알기 때문이다. 바둑게임의 규칙을 모르는 사람이 바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의미 역시 그 사용규칙을 모를 때는 이해하지 못한다. 게임의 규칙을 알 때 비로소 바둑을 이해하듯이, 언어의 사용규칙을 알 때 비로소 의미를 이해한다. 이런 상황을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language-game)으로 규정한다.

초기의 󰡔논리-철학 논고󰡕에서는 단어가 반드시 이름이어야만 의미를 가졌다. 그러나 󰡔철학적 탐구󰡕에서는 단어가 이름이 아니고, 이름으로 쓰일 수 있으나 다른 식으로도 얼마든지 쓰일 수 있다. 즉 단어의 고정된 의미체계란 있을 수 없다. 이것을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만약 언어가 더 이상 세계의 그림이 아니라면, 언어를 가지고 하는 놀이는 어떤 고정된 규칙도 없이 일어나는가? 이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놀이에는 모종의 공통된 속성을 가지듯이, 언어 역시 한정적인 공통된 속성을 가지 않지만 일종의 유사성을 가지고 일어나는 게임이다. 이것은 바로 그가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이라 부른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종의 유사성을 가진 것처럼, 언어 역시 모종의 유사성을 가지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일상언어가 가진 애매성과 다양성을 회피하여 이상언어에로 돌아가기보다는 일상언어로 되돌아와 이상언어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유의미한 것을 이해하기 위한 변신을 수행한다. “만세!”, “됐어!”라는 단어는 무엇의 이름이나 그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해한다.

이상과 같은 일상언어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관심은 그의 철학적 입장을 대변해 준다.

말하자면 무수한 일상언어의 수많은 쓰임새를 제시하는 일이 아니라 철학적 문제를 유발하는 잘못된 언어사용을 지적하는 일이 그의 관심이다.

이것은 마치 파리통에 빠져 있는 파리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릇된 언어사용에서 비롯된 병든 지성을 치료적으로 분석(therapeutic analysis)하는 일과 같다.

 

#과제54. 라일은 정신-몸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라일은 정신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철학자들이 과오를 범한 것을 분석한다. 특히 데카르트는 정신과 몸이 마치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처럼 이원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범주착오(category mistake)이며, 데카르트의 신화로 지적한다. 이것은 마치 정신이 몸이라는 기계 속에 유령처럼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착오를 범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라일은 데카르트적인 이원론을 일종의 데카르트적인 교리(doctrine)로 고발하면서 철학적 분석을 일상언어에 호소하여 수행한다. 그는 󰡔정신의 개념󰡕에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당신이 대학을 방문하여 안내자로부터 경기장, 운동장, 도서관, 기숙사 등을 안내받고 난 이후, 당신이 나는 “여러 대학의 시설들을 눈여겨 보았소, 그런데 대학은 언제 보여 줄 작정이오?”라고 안내자에게 말한다면, 당신은 바로 범주착오를 범한다. 왜냐하면 마치 대학을 대학의 부속건물들과 동일한 실체로서 가정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대학의 건물과 따로 실재하는 것처럼 착각한 것이다. 대학은 바로 당신이 본 바 있는 모든 것들이 조직되어 있는 그 방식을 따름이다. 이것은 마치 데카르트가 정신을 몸과 다른 실체로 생각한 착오와 동일한 것이다. 라일은 또 하나의 예를 든다. 일개 사단이 행진을 하고 있는 군대 행렬을 보고 있는 어린애의 예를 든다. 그가 각종 대대와 포대와 기병대 등을 보고 나서 사단은 어디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똑 같이 범주착오를 범한 것이다. 이 역시 사단이 각종 대대와 같은 어떤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일에 따르면, 데카르트는 공간 내의 물체에 적용되는 갈릴레오의 기계론적 이론은 채택하여 이것이 정신에 적용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정신은 몸과 달리 기계적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교리인 것이다. 정신은 비물리적인 데 반해, 몸은 비정신적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렇다면, 정신과 몸은 어떻게 작용을 하는가? 데카르트는 이 둘을 마치 대학과 대학의 건물을 분리하여 생각한 것처럼, 상호 분리시켜 놓고서 어떻게 상호 작용을 설명해야 하는가를 고심하는 큰 실수를 범하였다. 정신과 몸은 전적으로 같은 범주에 속할 수 없는 것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동일한 두 실체로 분리하여 놓은 데카르트의 신화를 벗어나기 위해 라일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한다.

라일은 정신적 개념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분석하여 전통적인 이원론을 제거하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을 지적인 사람이라고 부를 때, 우리가 그를 그렇게 부르는 근거는 무엇인지를 말해 보자. 물론 그의 머리 속에서 일련의 지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교양있는 행위를 하려는 성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를 지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행위가 바로 그를 지적인 사람으로 판단하게 한다. 이 지적인 능력인 지능은 사적이고 은밀한 개인적인 정신현상이 아니라 지적 행위와 구분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어떤 행위자가 어떤 행위가 지적인지를 알아야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능이라는 정신적 현상과 지적 행위를 따로 구분하는 착오를 범한다. 지능은 어떤 개인적인 비물리적 사건이 아니라 공개적 행위를 통해 표현된다. 논리학을 배우고 재치가 있고 글을 잘 쓰며, 바둑을 잘 두는 것은 모두가 지능의 증거이다. 지적인 것은 바로 지적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라일은 이와 같은 사실을 간과하고 정신과 몸을 안과 밖과 같이 이원화하는 것은 데카르트가 저지른 큰 실수임을 지적한다.

라일은 이와 같은 것을 일상언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다시 분석한다. 예를들어 “그의 행위는 허영심에서 유발되었다”는 문장을 생각해 보자. 그는 마치 사과나무 줄기를 잘랐기 때문에 그것이 원인이 되어 사과가 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듯이, 허영심이란 감정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 허영심에 찬 물리적 행위가 일어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라고 말한다. 이것은 허영심이란 내부적인 정신적 감정과 그 감정에 의해 유발된 외부적이고 신체적인 행위를 두 개의 독립된 현상으로 설명하는 것은 데카르트적인 범주착오이다. 우리가 정신과 몸이란 두 개의 실재물을 가지고 있고 이 사이에는 신비로운 연결이 있어서, 인과적 상호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라일의 생각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로써 이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단체정신으로 무장한 야구팀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경우에 데카르트적인 범주착오를 일으키면, 우리는 단체정신이란 것이 선수들의 동작을 야기시키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물이라고 잘못 생각하지, 그 팀의 모든 행동과 형태 속에 나타나는 그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다.

라일의 입장은 정신의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들은 정신이 아니라 정신의 행위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식하고, 지성을 고양시키고, 이해하고, 의지하며, 느끼고, 상상하는 등등의 행위는 모두 육체와 상관없이 정신에 의해 일어나는 결과로 생각한 것이 전통적인 입장이었다. 라일은 이에 반대하여 정신에 관한 모든 주장 속에는 몸의 행위에 관한 사실들이 관련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아낸다는 것은 단지 어떤 종류의 일을 할 수 있고, 또한 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 보는 것에 불과하다. 정신의 활동은 다름아닌 정신적 행위 자체의 활동이다. 따라서 정신의 작용을 기술하는 것은 바로 정신적 행위들이 일어나는 방식들을 기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제55. 오스틴의 언어수행이론이란 무엇인가.

오스틴은 수행문과 진술문의 전통적인 구분점을 지워버림으로써 모든 발화는 수행적 성격을 가짐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진술도 수행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오스틴은 발화가 다음의 세 가지 행위를 수행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첫째, 발화행위(locutionary act)는 문장의 뜻과 지시를 결정하는 행위이다.

둘째는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로서 발화행위에 따르는 진술, 명령, 질문, 약속 등의 행위이다. 그리고 발화효과행위(perlocution-ary act)로서 발화로 인해 결과적으로 청자를 설득하고 놀라게 하고 바쁘게 하는 등의 효과행위이다. 발화행위는 단순히 어린애가 응얼거리는 것과 같이 단순히 소리를 내는 행위이다. 발화수반행위는 이 발화행위가 구체적인 의미를 가짐으로써 특정한 행위를 수반하는 힘을 가진 행위이다. 발화효과행위는 상대편으로 하여금 모종의 행위를 하도록 하는 강한 힘을 가진 행위이다. 예를들어 제한속도가 시속 80킬로인 거리를 100킬로로 달리는 차안에서 운전석 옆에 앉은 사람이 “이곳은 제한 속도가 80킬로이구만!”하고 새삼 강조를 할 경우에, 아마 이 발호는 단순히 어떤 사실을 진술하거나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줄여 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발화효과행위가 될 것이다. 이처럼 오스틴은 서얼(J. Searle)과 함께 ‘어떤 것을 말한다’는 것은 바로 ‘어떤 것을 행한다’는 소위 언어수행 혹은 언어행위론의 토대를 확립하였다.

 

#과제56. 실용주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절대적 진리란 것은, 가령 그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전혀 무익한 것이다. 실용주의는 진리의 의미를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타당성에서 찾지 않고 상대적 효용성에서 찾는다. 즉 진리의 표준을 실용적 가치에 두려는 실용주의(實用主義, Pragmatism)는 하나의 철학적 방법론 또는 인식론상의 진리설로서, 영국계통의 경험론 철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결합시키는 데서 주로 미국과 영국을 지반으로 발달하였다. 이 입장은 미국의 퍼어스에 의하여 주창되고, 윌리암 제임스에 의하여 보급되고, 존 듀이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영국에서는 쉴러 등의 인본주의에서 이 입장이 주장되고 있다

이 입장에서도 물론 철학자에 따라 각기 주장하는 바에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그 근본사상은 대체로 경험 또는 생활을 중요시함으로써 지식이란 본래 생활에 유용한 것이라야 한다는 데 있다. 우리의 생활은 환경에 대한 적응에서 성립되는 바, 지식은 이를 가능케 하고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진리를 위한 진리라느니, 영원불변의 진리니 하는 것은 한갓 망상에 불과하다.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진리란 있을 수 없다. 진리는 항상 산진리로서 역사적 현실에 따라 생성·변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실용주의적 사상은 일찍이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설파한 희랍의 저명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에 있어서도 나타났으나, 그것이 하나의 인식론상의 입장으로 제창된 것은 미국 학계에서 각광을 받아 점차 유럽 각국에까지 전파된 이른바 프라그마티즘이다.

퍼어스(Charles S. Peirce, 1839~1914)는 ‘프라그마티즘’(pragmatism)이란 말을 쓰기 시작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서 우리의 관념을 명료하게 만들 것인가」(How to make our ideas clear?. 1873)라는 논문에서 아래와 같이 논하고 있다. 우리의 관념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그런 것이 아니라 실용적 의미(practical meaning)를 가진 것, 이를테면 펜이란 관념은 글을 쓰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여기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것이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져 있는가 하는 따위가 아니고 글쓰기 「위한 것」이라는 실용적 의미에 있다. 일반적으로 사물의 「무엇임을 어떤 목적에 적합함」(is=agreeable to any purpose)이다. 관념의 의미는 그것에 따라 행동할 때 행동의 목적이 달성되느냐 안되느냐에 있어서 명료하게 나타난다. 이리하여 실천에 유용한 관념은 진리이고, 그렇기 못한 관념은 거짓이다. 관념의 가치는 행위에 대하여 지니는 바의 유용성 여부에 달려 있다. 이러한 것이 대체로 퍼어스의 의견이었다.

모든 지식은 상대적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식은 본래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고, 경험은 각자 자기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각 사람에 대하여 상대적이며, 처음에는 다만 진리요구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진리요구가 우리의 실생활에서 검증되었을 때 비로소 타당한 진리로 된다. 진리는 인간이 자기의 생활을 통하여 제작하고 사용하는 데서 진리로 되는 것이다. 진리로 하여금 진리되게 하는 것은 실용이라는 가치에 있다. 진리는 본래 처음에는 진리요구로서 나타나는 바, 그것들 상호 간에 생존경쟁과 같은 것이 일어난다. 그 결과 인간사회에 가장 유익한 것이 가치있는 진리로서 인정된다. 이른바 객관적 진리란 이와같이 사회적 승인을 얻은 진리이며, 그런 한에서 개인적 평가 이상의 것이다.

물질, 힘, 원자, 영혼, 자유, 의지, 절대자 같은 것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편이 실리를 가져오며, 그런 의미에서 진리라고 생각되어도 좋다는 것이다.

 

#과제57. 가다머의 해석학의 근본입장은.

가다머는 선 이해이론을 선입견이론으로 연결시킨다.

어떤 의미전체의 선이해와 부분의 해석 사이에 작용하는 해석학적 순환은 특수한 해석학적 과정 속에서 영향사(Wirkungsgeschichte)로 나타난다.

한 사건 속에는 여러 시대의 다양한 이해지평이 융합되어 있기 때문에 영향사적 연관을 떠나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특히 가다머의 이와 같은 입장은 역사해석에 있어서 헤겔적인 변증법적인 관계에 동조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역사를 통일하는 내적 연관성이 하나의 ‘전통’으로서 이미 주어져 있음을 가다머는 강조한다. 가다머는 랑케처럼 역사적 경험을 반복가능한 경험으로 단순히 재구성해 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부정과 비판을 통해 새롭게 의미가 인식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이미 딜타이에 의해 언급된 사실이다. 그러나 가다머는 딜타이가 아무리 역사적 경험의 반복불가능성을 부정했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추체험적인 단순재생산이라는 자연과학적인 실증주의적 모델에 종속되어 있음을 비판한다. 가다머는 후설을 통해 역사적 경험에 대한 보편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지반을 발견한다. 소위 후설의 생활세계 개념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가다머에게 유산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하이데거 역시 이 선험적 기반으로서 세계내존재라는 선구조를 가다머에게 남겨 준다. 이 선구조는 가다머에 있어서 선입견과 전통으로 나타난다. 가다머는 선입견과 전통을 계몽주의자들처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지평으로 규정한다. 말하자면 모든 이해나 해석은 언제나 이미 일정한 관점이나 예기 등에서 생기는 선입견 혹은 선판단(Vor-urteil)에 의해 제약당하고 있다. 가다머는 이와같이 해석이 선입견이나 전통에 제약당하고 있음을 ‘영향사’란 개념으로 규정한다.

이 ‘영향사’란 전통에 속해 있는 것들에 대해 전통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간과한 계몽주의자들은 선입견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과제58. 하버마스와 가다머의 근본입장 차이는 무엇인가.

가다머의 견해에 대해 막시즘의 흐름을 따르는 하버마스(J. Habermas)는 가다머가 주장하는 ‘전통’이 그 자체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가진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 이해나 합의를 불가능하게 한다고 비판한다. 가다머는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경제적 혹은 물질적 요인을 간과함으로써 오히려 전통의 이데올로기적 폭력성을 표출하고 있다. 물론 가다머는 이 사회경제적 요인까지도 전통 속에 함축시키기 때문에 하버마스의 비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지적한다.

하버마스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의사소통과 같은 이상적 담화상황 모델에 의해 합의를 차단하는 이데올로기적 요인들을 비로소 치유 내지 폭로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 이에 대한 가다머의 입장은 일체의 선입견과 왜곡의 결과들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합의라는 하버마스의 이상은 충격적일 만큼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이 무제약적 의사소통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임을 강조하면서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과제59. 선험적 화용론이 전통적인 언어철학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20세기 후반의 현대철학이 공통된 주제로 삼는 것은 한결같이 언어이다.

얼핏보기에는 모든 철학적 관심이 언어에로 집중되어 있는 것같이 보인다.

소위 우리는 이 시기의 철학적 경향을 언어지상주의(Sprachlogismus)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언어에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분석철학이 형성되는 가운데 언어의 문제는 철학의 근본적인 주체가 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언어철학적 관심은 그 방향을 달리한다. 이들은 오직 언어에만 매달리는 철학은 결코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고 자부할 수 없음을 스스로 고백한다. 이 고백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 개념에 자극을 받고 해석학의 영향하에서 성숙된 것이다.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초기의 이상언어이론에서 후기의 언어놀이개념으로 전회를 이룰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인식하면서, 그 속에서 언어를 행위나 삶의 형식 혹은 실천의 문제와 연결시키려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문제를 가족유사성이라는 상호주관적 지평으로 확장하여 다루는 것은 언어철학의 선험적 지반에 대한 반성의 문을 열어 준다. 이를 계승하여 아펠은 언어행위의 실용적 측면의 선험적 요구를 정당화시켜 나간다.

칼 오토 아펠(Karl Otto Apel)은 2차 대전 후 독일의 본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공부하였다. 여기서 그는 해석학의 전통에 서서 정신과학 이론을 계승한 로트하커(E. Rothacker)와 언어 철학자 바이스게베르(L. Weisgerber)의 영향을 받으면서 철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이 철학계를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펠은 인식과 언어의 문제를 선험적-해석학적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언어 분석철학과 퍼어스의 실용주의 철학을 처음으로 독일에 소개하였다. 특히 그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와 퍼어스의 기호론(Semiotik)을 연구하였다. 아펠은 러셀과 초기 비트겐슈타인 속에 함축되어 있는 논리적 원자론과 카르납을 통해 이어지는 논리실증주의의 언어에 대한 비실용적 측면을 선험적 차원에서 정당화한다. 아펠은 순수 논리분석에만 치중하는 전통적인 언어철학의 편협함을 선험적으로 보충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은 아펠이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관심을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이론과 종합하는 데로 나아가게 한다. 보편적 언어이해를 단순히 논리적 형식이나 순수한 이상언어에 토대하여 정초하려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언어를 인간의 사고와는 독립되어 있는 사실들에 대한 그림으로서 규정함으로서 언어의 실용적인 측면에 대한 선험적 반성의 문제를 고려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펠은 칸트로부터 ‘선험적’이라는 술어를 빌어와서 자신의 언어철학을 ‘선험적 화용론’(Transzendentale Pragmatik)으로 완성해 나간다. 이 때 ‘화용론’이란 단어는 실용주의(Pragmatismus)에서 나온 말인데 단순히 기호의 논리적 관계만을 문제삼지 않고 기호와 사용자간의 관계를 문제삼는 학을 지칭한다. 아펠은 칸트의 선험적 통각 자리에 보편적 언어이해의 선험적 기반으로서 의사소통 공동체라는 개념을 대입한다. 그는 칸트의 범주적-선천적 인식기능에 언어의 역할을 새로 첨가한다. 그 역시 이상적 언어상황을 모든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조건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선험철학의 이념을 자신의 철학적 방법으로 가져온다.

이성의 타당성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 현대철학은 철학의 변형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후설에 이르기까지 선험적 주관의 절대적 확실성을 정초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것은 결국 의사소통적 연관을 차단하는 유아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펠의 입장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성의 기능을 단순한 반성능력에 국한하지 않고 의사소통과 대화로 확장하려고 한다. 칸트가 수학이나 뉴튼 물리학의 형이상학적 가능근거를 정초하였다면, 아펠을 정신과학의 선험적 가능근거를 확인하는 데 관심을 가진다. 물론 논리 실증주의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상호주의적 근거가 전혀 문제시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카르납은 보편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규약’(convention)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규약이 어떻게 정당성과 합리성을 가질 수 있는가는 문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 규약의 정당성이 합리적으로 마련되지 못하는 한, 임의적인 가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물리주의적 통합과학의 이념으로 끌고가는 형식적 과학주의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통합과학적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명하게 노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 점에서 아펠의 선험적 화용론은 논리 실증주의자들에게 간과된 주체에 대한 반성, 즉 보편적 삶의 형식을 구성적 토대로 가져온다. 보편적 담론을 가능하게 하는 합리적인 의사소통 공동체를 그 토대로 가진다. 모든 사적 언어가 가지는 임의성이나 우연성을 배제한 합리적 논증을 근거로 한 합리적 언어놀이와 언어사용이 상호주관적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아펠은 신실증주의자들처럼 형식적 규약에서 보편적 이해의 근거를 찾지 않고 합리적 의사소통이라는 규범적 원리에서 찾는다. 󰡔해석학과 이데올로기󰡕란 저서를 1968년 아펠과 공동으로 집필할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던 하버마스 역시 합리적 의사소통을 강조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선험적’이란 술어를 사용하기를 꺼리고 ‘보편적 화용론’으로 지칭한다. 왜냐하면 선험철학이 의식의 한계 내에 머무르는 한, 합리서의 상호주관성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과제60. 비판적 합리주의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해석학이나 선험적 화용론과 마찬가지로 20세기의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은 과학론의 영역에서 제기된다. 후기 현대철학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한결같이 신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물리학주의에 토대한 카르납의 통일과학의 이념이나 노이라트(Neurath)나 슐릭의 기초명제에 대한 신앙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 신실증주의는 명제의 논리성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기초명제가 경험적 사실과 실지로 어떻게 상관관계를 갖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명제의 논리성을 과학의 유일한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은 전통적인 형이상학 못지 않게 독단적이다. 현상에 대한 보편타당한 법칙을 추구하려는 논리실증주의와는 달리, 비판적 합리주의는 인간의 지적 능력과 이성은 한계를 가지기 때문에 항상 오류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이제 과학적 합리성이 관찰명제나 기초명제의 논리성에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추측과 반박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탐구의 과정에서 확인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과학의 기준을 설정되기에 이른다. ‘명제의 논리’로부터 ‘탐구의 논리’에로의 전환이 시급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소박한 과학적 검증주의는 그 자체가 과학적 제국주의라는 폭력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검증가능성이라는 소박하고 편협한 기준에서 비판적 검사의 과정을 중시하는 반증주의에로 전환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칼 포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칼 포퍼(K. Popper, 1920~1994)는 역사의 발전과정을 변증법이라는 실증주의적 도식으로 체계화하는 헤겔과 맑스의 역사이해를 역사주의로 고발하면서 열린 사회의 적으로 규정한다. 칼 포퍼는 딜타이의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고 정신생활을 이해한다.”는 방법적 이원론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포퍼는 자연과학적 방법을 사회과학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이해의 논리를 설명의 논리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방법적 일원론을 주장한다. 헤겔과 막스의 변증법은 물리학적 방법을 단순히 역사의 발전과정에 적용시킨 과학주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퍼의 입장을 물리학주의에 물든 소박한 실증주의자로 규정할 수 없다. 그가 비록 과학적 방법으로 일원화한다는 점에서는 실증주의와 견해를 같이 하지만 우리가 그를 ‘비판적 합리주의’로 부르는 것은 그가 반증주의를 들로 있고 “가설-연역적 방법” 내지는 “시행착오”의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귀납주의를 벗어나 과학적 방법을 가설-연역적 방법으로 전환하였으며 관찰의 이론의존성을 주장함으로써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기준인 검증가능성의 원리를 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의 상황의 논리는 바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설명과 이해의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때문에 딜타이의 방법적 이원론이 의미가 없다. 과학은 철학에 뿌리를 박고 있고 철학은 과학의 성과 위에 존립한다는 근본적인 통찰이 포퍼에게는 하나의 신앙으로 남아 있다. 이와같이 해석학과는 달리 이해를 설명하려는 포퍼의 입장은 비판적 합리주의를 주도하는 한스 알베르트(H. Albert)에게로 전수된다.

가설-연역적 방법과 비판적 검사의 이념을 이어받은 한스 알베르트 역시 편협한 실증주의를 넘어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이의 낡고 오래된 대립을 벗어나고자 한다. 포퍼의 추종자인 알베르트는 자연주의적 설명 모델을 인문사회과학 영역에까지 적용한다 그는 해석학은 일종의 신화이며, 이것은 합리적 설명을 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해석학은 일종의 이해의 기술에 지나지 않으며, 이해도 과학의 법칙적 모형에 종속되어야 한다. 특히 비판적 합리주의는 사실과 가치의 문제를 불리하여 학문의 몰가치성(Wertfreiheit)과 가치중립성을 주장한다. 이들은 막스 베버(M. Weber)의 영향하에서 학문에서 가치판단의 영역을 제외하려고 한다. 학문은 경험적 대상만을 토대로 해야 하며, 학자는 가치를 설정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베버의 신념은 이들에게 전수된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 즉 비판이론가들에 의해 신랄하게 비판받는다. 비판이론가들은 비판적 합리주의자들에 대해 그들의 가치중립적 “비판적 검사의 이념”은 한갓 망상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의해 인식행위가 결정된다고 막스적인 입장에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비판이론가들의 견해를 살필 것이다.

이와 같은 비판적 합리주의의 새로운 실증주의적 경향은 문헌학상으로는 포퍼주의자로 불리는 또 다른 한 사람인 토마스 쿤(Th. Kuhn)에 의해 비판을 받는다. 그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1962)는 새로운 과학론을 등장시킨다. 주로 분석철학의 영향하에 있었던 포퍼와 알베르트와는 달리, 쿤은 독일철학의 흐름 속에서 해석학적 배경을 가지고서 과학론은 제기한다. 해석학은 과학적 지식은 이미 선이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학은 생활세계의 선과학적 활동에 이미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은 학문의 가치중립성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쿤 역시 과학은 과학적 대상이 될 수는 없는 전제조건을 이미 가지고 비로소 성립한다는 과학의 역사성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과학은 이미 사회와 전통 속에 주어져 있는 일종의 패러다임을 가진다. 그는 과학의 이론의 혁명적 전환구조를 분석하여 과학이론들 사이의 비교불가능성, 불가양립성,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을 강조한다. 그는 포퍼의 입장에 잠재되어 있는 과학의 누적적 진보이념을 실증주의의 유형으로 비판하면서 과학의 발전은 패러다임에서 패러다임으로의 혁명적 변환일 뿐 결코 점진적 진보로 대상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패러다임은 어떤 과학공동체의 구성원에 의해 공유되는 과학이론, 법칙, 지식, 방법, 가치 심지어는 습관 등과 같은 것을 통틀어 지칭한다. 이것은 정상과학을 가능하게 하는 전과학(prescience)의 단계이다. 정신과학은 위기에 처하고 다시 혁명의 단계를 거쳐 새로운 정상과학으로 그리고 새로운 위기를 거쳐 새로운 혁명의 단계에로 이른다. 이 과정은 점진적 진보의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적 진보이념은 과학주의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쿤은 과학자는 패러다임을 기본으로 하여 새로운 이론들을 수용하고 이론들 사이의 모순을 조정하면서 마치 수수께끼를 풀듯이 비판적으로 수정해 간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을 거쳐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고 이를 혁명적으로 선택하는 일련의 비판적 조정의 과정을 거친다.

 

#과제61. 파이어아벤트의 과학철학의 기본정신은 무엇인가.

그는 쿤의 패러다임의 변환의 논리를 변증법의 논리와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였으며,

밀(Mill)의 정치적 자유주의의 이념을 첨가하여 과학론은 ‘무정부주의적 인식론’으로 규정하였다. 파이어아벤트는 준변증법적 방법을 토대로 하여 포퍼주의자들의 비판적 합리주의에 남아 있는 준실증주의적 잔재를 해체하려 한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아나키즘적 영위이다·는 말로 대변되는 파이어아벤트의 입장은 과학주의적 방법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해체하려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를 맹신하지 않으며 과학이 다른 어떤 지식보다 우월할 수도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과학에서는 어떠한 방법이라도 다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진다는 다원론적 입장을 가진다. 과학자는 반드시 어떠한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어떠한 방법도 다 좋다는 다원론적 입장은 과학이론들의 불가공약성을 전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어떤 이론이든간에 나름의 가치를 가진다. 그리고 과학이 미신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 무궁화 2호 발사를 앞두고 과학자들이 돼지머리 앞에서 고사를 지내는 것이 과학과 미신은 결코 분리된 두 영역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미신이나 주술 등도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에 토대를 마련해 준다. 그리고 그는 과학은 개인적인 자유에 의해 선택되어져야 함을 강조한다. 과학은 스스로 이데올로기적으로 경직된 속박에서 사회를 해방시키는 임무를 가진다. 그는 방법론적 아나키즘을 주장함으로써 과학과 비과학이라는 전통적인 구분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규정한다. 특히 그는 이 과학과 비과학을 어느 한쪽으로 일원화시키지 않고 방법적 다원론을 주장함으로써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쓸데없는 논쟁’을 지양하려고 한다. 변증법의 논리를 끌어들여 비판적 합리주의의 실증주의적 잔재를 해체시키려는 파이어아벤트의 입장은 비판이론, 즉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근본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과제62. 비판이론(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형성 배경은 무엇인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19세기 독일 민주주의의 발산지이며 한 때 자유도시의 성격을 강력히 지녔던 프랑크푸르트 시민들이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1914년에 세운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부설된 「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 연구소는 1923년에 창설되어 나치정권이 들어 선 그 이듬해인 1934년에 스위스, 프랑스를 거쳐 뉴욕으로 옮겨가서 그곳 콜롬비아 대학의 부설기관이 되었다가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옮겨왔다. 우리가 다루려는 ‘비판이론’이란 개념은 막스 호르크하이머(M. Horkheimer)에 의해 주조된 것이다. 파시즘에 대한 역사적 경험과 스탈린적 왜곡이 가져다 준 환멸감 그리고 이민의 고립적 상황 등은 호르크하이머를 위시한 비판이론가들은 막스의 플로레타리아 계급혁명에 식상하고 동시에 헤겔의 긍정 혹은 동일성의 변증법에 환멸을 느낀다. 그러므로 비판이론은 헤겔의 변증법을 부정의 변증법으로 재구성하고 막스의 교조주의적 성격을 청년 막스의 인본주의의 얼굴로 다시 읽으려는 지성적인 막스주의자들의 이론이다.

호르크하이머는 그의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에서 데카르트 이래 비판적 합리주의에까지 이르는 실증주의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스탈린에 의해 왜곡된 막스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전통이론이 이론과 실천을 대립시켜 놓은 것에 대해 비판이론은 이론의 사회적 실천성을 강조하며 이 양자사이를 동태적·변증법적으로 매개한다.

소위 프랑크푸르트학파로 불리는 비판이론은 헤겔의 관념론에 대한 직접적인 반동으로 생성된 실증주의가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헤겔의 변증법을 부활하여 그것을 토대로 해체시키려는 헤겔의 르네상스 운동에 시발점을 두고 있다. 특히 비판적 합리주의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이 비판이론가들에 의해 날카롭게 공격을 당한다. 헤겔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고 막스의 철학을 정확하게 다시 읽어냄으로써 비판적 합리주의가 만들어 놓은 이론과 실천, 인식과 가치사이의 이원주의를 변증법적 이성의 힘으로 해체하려고 한다. 물론 비판적 합리주의에 의해 비판이론은 교조주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공격을 받는다는 사실도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등의 비판이론가들의 입장을 비판적 합리주의와 비교하여 다음의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가치판단을 여과시키는 태도는 학문의 사회적 역할을 분석적으로 인식하려는 작업을 포기한다.

둘째 자연과학의 논리를 사회과학의 논리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학문의 가치판단적 성격을 추출해버리는 것이다.

셋째 현실을 전체로서 파악하지 않고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분리하여 고립적으로 다루는 것은 학문의 몰가치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학문의 계도적 과제를 소홀하게 다룬다.

우리가 비판이론가들에 대해 다루기에 앞서 이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루카치(G. Lukács, 1885~1971)와 칼 코르쉬(K. Korsch, 1889 ~1961)의 입장을 간략하게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루카치는 그의 󰡔역사와 계급의식󰡕(1923)에서 헤겔 변증법의 르네상스를 부채질한다. 루카치는 헤겔의 변증법을 통해 맑스의 이론을 굳건하게 다시 다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막스주의를 다시 굳건하게 다진다는 것은 전통적인 막시즘이 앓고 있는 필연적인 문제를 오히려 헤겔로 돌아가서 극복하려는 입장으로 나타난다. 그는 단순한 유물론에 반대하면서 헤겔의 관념론을 부활하여 막시즘의 정통성을 다시 구축하려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또한 칼 코르쉬는 속물화된 막스주의를 비판하고 헤겔의 변증법에로 돌아가 유물변증법이나 자연변증법에 의해 실증주의적으로 채색된 요소를 해체하려고 한다. 속물화된 막스에 의해 지양된 헤겔의 변증법이 지닌 생동력을 부활하려 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비판이론의 형성배경이 되어 소위 신막스주의의 태동을 가속화하게 된다.

 

 

#과제63.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에 대해 정리하시오.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은 주체와 객체의 비동일성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아도르노는 헤겔에 의해 의식의 동일자로 규정되어버린 칸트의 물자체를 총체적 타자 혹은 비동일자로 부활한다. 헤겔의 동일성의 사고는 일반적 개념하에서 특정한 개체들을 포섭하는 것이 목적인데 반해,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은 객체를 그것이 가진 기준에 따라 주체와는 결코 동일화될 수 없는 구체적인 면들을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은·전체는 비진·라는 근본명제에 근거한다.

전체라는 것은 단지 특정한 기원없이 상호 작용하는 성좌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를 발생학적 중심이나 창조자, 주체로 전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와 같은 아도르노의 입장은 벤야민(W. Benjamin)으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도르노는 자신의 비판이론을 미학이나 예술, 문학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다양하게 정립해 나간다. 벤야민은 그의 󰡔독일비극의 기원󰡕에서 개별적 현상이 보편자 속에서 파악된다는 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보편자가 개별자 안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관념들은 구체적인 요소들이 특정하게 구성된 개념들에 의해 표현될 수 있다는 벤야민의 주장은 아도르노에게 그대로 전수된다. 특히 아도르노가 미학에로 이행하여 자신의 비판이론의 토대를 새롭게 다지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벤야민의 영향이다.

이론이 끝나는 곳에서 바로 예술이 시작된다.

1970년에 발간된 아도르노의 󰡔미학이론󰡕은 예술을 통해 자본주의의 허구성을 비판한다.

특히 그의 음악미학은 독창적인 필체로 우리들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사회학적 예술이론으로 안내해 준다. 그러나 여기서 그 많은 부분들을 소개하기는 힘들다. 단지 그가 미학적 영역에로 옮겨가게 된 동기만을 언급한다. 이론으로서의 철학이 끝나야 하는 곳에서 예술의 영역에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미학적 가상은 처음부터 어떤 다른 것을 가정하지 않는 까닭에 거짓을 말하지 않는 유일한 가상이기 때문이다. 모든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진리는 예술에 의해서만 기대될 수 있다. 예술은·행복의 약속·이라는 스탕달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면, 예술은 사회적 모순과 이율배반을 가장 여과없이 반영하는 거울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속물화된 막스주의에 의해 은폐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는 예술비평이라는 맑은 프리즘을 통해서만 노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확신아래 아도르노는 우리에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미학이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과제64.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마르쿠제의 정신분석학적 비판을 정리하시오.

인류의 문명은 인간본능을 영원히 굴종시키는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는 프로이드의 명제에 따라 마르쿠제는 억압된 사회로부터의 자유로운 해방을 그려내고 있다.

마르쿠제는 프로이드의 도식에 따라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관계를 설명한다.

인간의 본능인 쾌락원칙이 사회적 규범이나 문명적 제도라는 현실원칙에 의해 억압당하는 구조를 사회비판의 모형으로 인용한다. 이 현실원칙에 의해 억압된 쾌락원칙의 힘은 끊임없이 꿈틀거리면서 남아 있다. 현실 원칙 아래에서 본능이 억제되어야 하는 것은 결핍에서 비롯된다. 사회가 인간이 본능구조를 변형함으로써 경제적인 절제와 성적인 절제를 합리화시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은 정력발산을 합리적으로 억압하는 장치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일은 현실원칙을 강요하는 쾌락원칙의 단념을 뜻한다. 이 일은 더 이상 인간의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생산성 향상에 동원하는 억압의 틀이 된다. 산업사회에서 현실원칙이 보다 많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업적원칙(performance principle)의 형태로 바뀐다. 이에 따른 과잉억압은 경제적 업적에 따라 계급적 분화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며, 노동이 인간을 노예화시키게 된다. 노동은 개인에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또한 인간의 성적 욕망은 억압의 대상이 아니라 해방되어야 할 대상이다.

산업자본주의는 이 성적 욕망을 억제하는 가운데 생산성 향상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원활히 이루어 낸다. 산업사회에서의 진정한 인간해방은 성적 충동의 해방을 요건으로 한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은 태어나서 5년간 신체의 여러 기관이 성감대였는데 업적원칙에 의해 이 성감대의 탈성화(desexualization)가 이루어져 성욕은 성기에만 집중되고 나머지 신체기관은 노동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마르쿠제는 이러한 탈성화의 현상을 재성화(resexualization)함으로써 비로소 자본주의적 지배로부터 인간의 해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과제65. 하버마스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의 만남에 대해 정리해 보시오.

하버마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은 상호소통적 과정 속에 구체화되어 있고 전통 속에 왜곡되고 은폐되어 있는 권력관계들을 드러내는 데 해방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순수하게 해석학적인 접근만으로는 이 이데올로기의 해체가 가능하지 않다. 하버마스는 보다 충분한 대안을 찾는다. 그는 일차적으로 막스를 통해 실증주의와 해석학을 통합하는 비판이론을 형성하려고 한다. 경험적·분석적 방법이 현실을 기술적 지배의 관심에서 다루고, 해석학이 사회적 행위의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상호주관적 지평을 확립하려는 실천적 관심이 주도한다. 그러나 이 양자는 한계를 가진다. 이 양자는 다같이 자기반성적 계기를 결여한다. 그러므로 하버마스는 일차적으로 막스로부터 이 반성적 계기를 찾지만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판정한다. 하버마스는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기원을 탐구할 수 있는 틀로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끌어들인다. 프로이드의 이론은 막스가 간파하지 못한 구조를 제시한다. 사회제도는 의사소통을 왜곡하는 틀이며 문화전통은 무의식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 막스에게는 충분히 감지되지 못했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정신분석학은 방법적 자기반성을 구체화하는 학문의 유일하고 명백한 예이다. 정신분석학은 비판적 사회이론의 구성을 위한 중요한 지침들과 반성적 과학의 논리를 제공해 준다. 신분석학의 분석절차는 경험·분석학의 설명과 해석학의 이해의 절차를 통합하는 과정이다. 피분석자에 대한 분석은 인과적 설명에 의해 변증법적으로 매개된 상호소통적 이해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이런 관점에서 프로이드가 사용했던 과정과 방법들을 ‘심층해석학’으로 부른다.

 

#과제66.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에 대해 정리하시오.

첫째, 서로가 알아 들을 수 있게 표현한다.

둘째, 참된 명제를 전달해야 한다.

셋째, 진실되게 표현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올바르게 표현해야 한다.

하버마스는 이상적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여러 조건들을 밝히고 이들을 재구성하는 분야를 「보편적 화용론」(Universalpragmatik)이라 부른다.

이와 같은 정상적인 대화상황 하에서만 정당화된 합의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담론(Diskurs)을 통한 합의로서의 진리설은 사회이론의 인식론적 근간이 되었다.

이 보편적 화용론은 촘스키(N. Chomsky)의 언어학과 오스틴(Austin)이나 서얼(Searl)의 언어행위이론에 토대를 둔다. 보편적 화용론은 일반적으로 언어적 상황의 하부구조(언어술에 있어서 문장을 사용하는 규칙들)에 관심을 갖는다. 이 하부구조는 모든 문장이 언술됨을 통해 함축되어 있는 ‘실재와의 관련성’을 검토함으로써 드러낼 수 있다. 특히 오스틴이 주장하는 언어의 행위수행적(illocutionary) 기능을 강조함으로써 하버마스는 언어행위이론을 모델로 하여 자신의 의사소통능력이론을 형성해 간다. 모든 언술은 화자와 청자가 상호 작용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즉 청자는 화자에 의해 의도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 자유로운 언어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일련의 규칙들을 재구성하는 것이 보편적 화용론의 과제이다. 특히 서얼이 자유로운 언어행위를 위해 든 4가지의 유형은 위에서 든 하버마스의 4가지 규칙으로 연결된다.

 

#과제67. 신실용주의가 정초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초주의(fundamentalism)는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피부 밖으로 나가 실재와 대면할 수 있을 경우에만 성립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로티에 의하면 우리는 언어 밖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없다.

언어의 체계 안에서만 세계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언어는 생활양식의 일부이다. 이런 언어를 보편적으로 규정지으려는 노력은 인간의 생활세계를 하나의 논리체계로 파악하고, 그 논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모두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분석철학의 정초주의적 발상이다.

인간은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없고 자신의 언어라는 감옥에 얽매여 세계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언어가 세계의 그림이라는 주장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로티는 포스트분석철학의 입장에서 분석철학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정초주의적 독단은 이제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해체되어야 한다.

 

#과제68. 데리다의 “차연” 개념은 무엇인가.

하나의 언어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차이, 즉 그 언어가 다른 언어와 구분된 차이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빨간 신호등의 멈춤의 의미를 갖는 것은 파란불의 의미와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전의 순간이 아무리 생생하게 체험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지나간 것의 꼬리, 즉 비현전의 계기를 자체 속에 포함하고 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어떤 독립적인 시니피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시니피앙과 단절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시니피에는 영원히 유보된 채 시니피앙만 끝없이 흩어진다. 따라서 데리다는 기호학을 문자학으로 대치한다. 이 끊임없이 흩어지는 과정을 데리다는 ‘차연’이란 개념으로 규정한다. 이 차연(differance)이란 낱말은 공간적으로는 differ를 시간적으로는 defer를 동시에 의미하는 신조어이다.

 

#과제69. 푸코의 역사관을 정리하시오.

푸코(1926~1984)는 니체의 역사해석의 도식을 빌어서 전통적인 역사주의적 발상을 비판한다. 푸코는 진정한 역사 혹은 쓸모있는 역사는 최초의 원인을 가정하는 전통적인 역사학과는 달리 사건의 불가피성이나 연속성을 거부하며 목적론적이고 변증법적인 역사해석을 거부한다. 전체적 역사는 사건을 거대한 설명체계와 단선적인 과정 속에 해소시켜 큰 계기와 영웅을 찬양함과 아울러 시원점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에 반해 계보학적 분석은 사건들의 단일성을 강조하고, 중요시되어 왔던 사건에서 눈을 돌려 경시되어 왔으며 일정한 역사를 통해 부정되어 왔던 모든 현상들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계보학은 기원을 확립하는 일보다는 역사형식의 가변성 뒤에 숨겨져 있는 복잡한 구조들의 발생과 유래를 추적한다. 푸코의 계보학적 분석은 총체적-전체적-거시적 역사이론에 의해 차단된 국지적 비판을 수행한다.

푸코는 󰡔성의 역사󰡕(1976년과 1984년)에서 서양 근대문화가 성억압의 문명으로 전개되어 온 과정을 추적한다. 근대인들은 성을 일종의 죄의식과 결부시켜 표현하도록 훈련받았다. 17세기부터 19세기 청교도 시대에 더욱 강화되어 성과 성욕에 대해 억압과 침묵을 강요받아 왔다. 19~20세기에 들어와서 그 침묵이 고백의 강요로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성과 성욕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받는다. 이 성에 대한 죄의식과 성에 대해 알려는 의지가 낳은 성과학 그리고 성에 대한 고백을 강요받는 사회체제는 이제 성을 관리의 대상으로 삼는다. 70년대 이후 푸코가 발전시킨 권력-지식 연계론은 모든 사회에서의 지식형성이 권력작용과 분가분리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근대적 주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권력의지와 그것의 결과에 관심을 갖는다. 그의 권력/지식론은 거대한 근대적 사유 속에 잉태되어 있는 앎에의 의지에 의해 발생된 권력실체를 미시적으로 해체하기 위한 전략적 지렛대이다. 따라서 권력은 지배계급이나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회에 편재해 있는 관계의 그물이다. 권력은 개인이나 집단의 손에 쥐어지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의 부분들을 가두는 전략적 그물망이다. 모든 사회의 부분들을 관리하기 위해 편재하는 유폐적 그물망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푸코의 권력-지식 연계론은 국가의 권력이 모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한다는 막스식의 패러다임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해방의 논리를 생산적으로 창출하는 전략적 메카니즘이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막스는 미세한 통로를 통해 일상생활에까지 운반되어 있는 미시권력들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푸코는 통치권의 중심에 있지 않고 주변에 여러가지의 형태로 일상생활에까지 편재해 있는 권력과 지식의 연계상황을 미시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과제70. 라깡의 자아론에 대해 정리하시오.

라깡(J. Lacan 1901~1981)은 주체성의 생성과정을 거울의 단계인 상상적 단계와 상징적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아이가 갓 태어나서 24개월 사이에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서 비로소 자기동일성을 확립한다. 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타인의 영상으로 지각하다가 차츰 거울 속의 영상이 결국 자신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과정을 통해 자기동일성을 확립한 아이는 자기 바깥의 모습을 통해 가능한 것이며, 자기 자신 속에 내재적인 자아가 거울에 비쳐 나타난 것이 아니라, 거울이라는 타자를 통해 비로소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는 자신의 ‘자기’를 ‘자기가 아닌 것’, 즉 타자에서 얻어 온 것이다. 아이의 자기동일성은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구성된 동일성이다. 그러나 이 거울의 단계인 ‘상상적 단계’에서는 거울 속에 비친 상이 내 자신이 아닌 타자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말하자면 거울 속의 상이 결국은 자기 자신의 상으로 지각하고 그 상을 자신과 동일시한다. 이 단계에서는 자기가 타자이고 타자가 자기이다. 그러므로 이 단계에서는 아이가 스스로 거리를 둘 수 있는 타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아이는 자기 자신이 거울 속에 비친 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상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신에 대한 완벽한 재현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상 ‘쪼개진 주체’, 즉 다른 것에서 자신을 차용해 온 주체로 구성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상이 자신의 상이라고 상상하는 이 거울의 단계에서는 자신과 거울 속의 자신의 상사이의 이자적(二者的)관계가 이루어지지만 이 사이에 완전한 타자가 들어섬으로써 삼자적(三者的)관계가 형성되어 주체의 분열이 일어난다. 이 단계를 라깡은 ‘상징적 단계’로 부른다. 이 단계에서는 주체는 근본적으로 타자를 통해, 즉 자기 자신과의 분리를 통해 가능한 것임을 인정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주체의 심적 상태와 언어활동의 상징적 연쇄사이에 금이 간다. 즉 ‘상상적인 것’과 ‘상징적인 것’사이에 입벌림이 일어나며, 후자가 전자를 이기는 단계가 생긴다. 이 입벌림이나 틈에 의해 무의식이 구조화된다. 아이와 어머니사이의 이자적 관계가 형성되는 상상적 단계에서부터 제 3의 타자인 아버지가 들어서는 상징적 단계로 나아간다. 즉 상상적 단계에서는 아이와 어머니가 일치를 이루었지만 아버지라는 절대적 타자의 등장은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이제 서로 종속되어야 할 보편적 질서인 상징적 단계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와 어머니의 이자적 관계로부터 아버지라는 제 삼자가 절대적 타자로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얻고 이름을 통해 가족과 사회의 관계 그물 속에 일정한 자리를 얻게 된다. 절대적 타자로부터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려짐으로써 비로소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왜냐하면 아이와 어머니 사이의 직접성의 관계만으로는 아이의 전체성이 확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욕망이 아이를 통해 충족될 수 없고 아이는 어머니의 단순한 부속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외부의 법(아버지의 존재)과 같은 상징적인 질서가 필요하게 된다. 이 상징적 질서는 언어를 통해 짜여진 질서이다. 그러므로 아이는 언어의 질서를 통해 자신의 동일성을 확립한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타인의 언술의 그물속에 놓여 있다. 이 그물, 즉 언어로 표현되는 금지, 명령, 욕망, 기대, 의무와 가치판단 등의 체계 속에서 자신의 자아동일성을 정립해 간다. 마치 빨강색이 푸름이라는 다른 색깔에 의해 비로소 빨강색으로 규정되듯이, 자아 역시 그 자신이 아닌 타자의 자리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이처럼 라깡은 데카르트이래 당연시되어 온 자아의 확실성에 대해 정신분석학적 매스를 가함으로써 이성중심적인 근대의 이데올로기를 허물어 트린다.

 

#과제71. 리오타르의 “작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리오타르는 헤겔이나 맑스나 휴머니즘 철학과 같은 거대한 이야기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에 부합하는 소프트웨어 체계의 작은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새로운 질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지난 40년 동안 인공두뇌와 컴퓨터, 정보저장과 자료은행과 단말기 등의 등장은 우리의 지식의 체계를 보편화시켰다. 지식은 이제 더 이상 무엇이 옳은가를 묻지 않고 무엇이 쓸모있으며 어느 만큼 생산성이 있는가가 문제이다. 이제는 인간의 정신적 삶이나 인류의 해방과 같은 거대한 이야기는 말의 치장에 지나지 않는다. 컴퓨터 시대의 지식문제는 이제 정부의 문제 이상의 것이 되었다. 규제와 재생산의 기능이 관료의 손을 떠나 기계로 넘겨졌다. 포스트모던한 사회에서는 정보를 전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보편성에 대한 모던적 신앙은 신앙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에서 학문의 목표는 진리가 아니라 수행성(performativity)이다.가장 이상적인 투입/산출관계를 가져오는 것이다. 과학자, 기술자 그리고 기구는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힘을 증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말하자면 지식의 장사화(mercantilization)가 이루어진다. 교육은 단말기에 의해 이루어지고 선생의 역할을 기계가 부분적으로 대신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필요한 자료의 효율적인 활용이다. 자료은행(data-bank)은 내일의 백과사전이다. 이런 사회의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보편성이나 총체성으로 짜여진 권위에 맹종하기보다는 단편화된 작은 이야기의 창조성을 강조한다.

 

 

 

 

-서양 철학 과제 마침-

(총회신학교 2008년 통신학부 최 보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