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신학 방법론

실천신학 방법론

신학은 항상 그 방법론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방법으로 신학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는 상상외로 다른 결론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근대신학의 아버지인 슐라이엘마허는 실로 신학 방법상의 혁명을 일으킨 샘이었다.

올바른 신학적인 기초를 떠나서는 실제적 활동을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고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목안의 원리의 가장 확실한 기초는 성경 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신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가 성경 적이고 신앙적이라면 방법과 과정도 역시 성경 적이고 신앙적이어 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신학의 경우 방법과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과정은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1.슐라이엘마허(Schleiermacher)의 방법론.

슐라이엘마허(1768-1834)는 현대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울만큼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실로 슐라이엘마허의 "실천신학"의 발견은 신학계의 새로운 방향과 이정표를 제시하게 되었다.

테오리와 프락시스의 관계가 없는 신학을 학문적 실제성이 없다고 본 때문이다. 그래서 교리적 신학과 실천신학은 항상 병행하는 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슐라이엘마허는 실천신학을 가리켜 "교회를 유지하고 완전하게 하는 방법" 이라고 정의하였다.

우선 그의 방법론을 개요 해보면, (a)성도의 개인적인 종교경험을 학문의 냉용으로 다루고 있다. (b)실천신학을 모든 신학의 윗자리에 두면서 비신학적인 보조학문을 실천신학을 위하여 연결시킨 것 등이다. 그의 방법론은 주관적이요 경험적이다.

슐라이엘마허의 방법론을 받는다면 신학의 원천이라고 가정한 크리스천의 공동경험은 어떤 특정시의 경험일 것이며 시간과 공간이 달라지면 따라서 그 원리도 바뀌어질 터이니 그가 터득한 진리는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일 것이 분명하다.

2. 투루나이젠(Thurneysen)의 방법론.

투루나이젠(Eduard Thurneysen, 1888-1974)은 슐라이엘마허 이후 독일이 낳은 가장 큰 실천신학자였다.

그의 대표작인 "목회학 원론" 제 1 부에서 그는 말하기를 "목회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개개인에게 전달하는데 그 본질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실천신학의 한 분야로서 이것에 봉사하는데서 그 학문의 소재를 찾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실천신학의 일부로서의 목회신학과 또한 설교학, 성례전, 기도, 예꓁학, 기독교 교육 등을 역사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목회 학을 가리켜서 교회를 형성하고 생존케하며, 개개인을 영적 타락과 부패에서 건져내서 삶을 보존시켜주는 성화와 훈련의 행위를 이론적으로 해설하여 준다.

투루나이젠은 목회의 대상을 인간의 영혼으로 보게 됨으로써 새로운 인간학적인 연구가 목회학 영역으로 깊이 들어온 셈이 된다. 특히 그는 방법론에 있어서 인간의 생물학적, 철학적, 심리적, 신학적 이해를 역사적으로 취급하고 이런 제반 인간의 측면을 목회의 관점에서 포착하려고 한다. 그런데 투루나이젠에게 있어서 인간의 영혼문제는 반드시 영혼만의 구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곧 전인 즉 영과 육의 두 가지가 하나로 합일된 인간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제 2부에서는 목회의 전반적인 기능은 인간을 돌보아 주는 것이라고 봄으로써 그 구체적인 도구를 "대화"라고 규정한다. 이런 목회대화의 형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인간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어야 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를 전달하는 것을 유일한 내용으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사죄를 선언하는 목회에 대한 인간 쪽의 응답은 회개를 통한 신앙의 결단이며, 목회는 결국 인간이 이런 신앙적인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 한 가지 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의 방법론에는 정신치료법과 정신의학의 방법이 끝내 배제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아담스(J. Adams)가 이미 지적한대로 신관과 인간관에 있어서 이미 개혁주의 입장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목회학이 신학의 부수적 과정이 아니고 포괄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3. 힐트너(Hiltner) 의 방법론

힐트너(Seward Hiltner) 박사는 미국이 낳은 가장 큰 실천신학의 거장이다.

힐트너는 당시 황무지 같은 실천신학계에 선구자적인 노력으로 말미암아 조직적인 목회신학 이론정립에 새로운 디딤돌을 놓았다.

그는 "산 인간자료"들을 중요한 실천신학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의 경험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신학적 문제에 연결시킨다는 것이다.

힐트너는 세상과 교회를 한눈에 두고 그 전체를 포괄하는 실천신학적인 프락시스를 a)복음전달의 중심, b)인간화 중심, c)조직훈련 중심으로 상호관련의 퍼스팩티브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목회신학의 내용을 보면 치료, 지탱, 인도하는 일 등으로 나누고 우선 임상목회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의 방법을 택하였다. 그래서 힐트너에게 있어서 목회는 바로 치료한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이 분석 과학적 방법의 프락시스를 실천신학의 원천으로 과감하게 채용한 셈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힐트너는 사회학, 정신의학, 임상심리학 등에서 얻은 프락시스를 실천신학의 프락시스로 바꾸는 방법을 사용하여 왔다.

4. 화버(Faber), 스털ꓪ(Stollberg), 샤펜버(Scharfenber)의 방법론

위의 세 실천신학자들은 현재 독일에서 가장 권위를 달리는 학자들로서 1970년대에 매우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이들은 앞서 말한 힐트너의 방법과 같이 인간학적인 치유형태를 답습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I. 화버(H. Faber)

그는 목회심리학자로서 미국의 심리학적이고 분석학적인 것을 과감히 채용한 사람이다. 이른바 전승에의 적응과 상황에의 적응에 대한 요구로써 치유 적인 방법은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II. 스톨ꓪ(D. Stollberg)

화버보다 더 강하게 심리학의 치유적 체험들을 목회에 적용하고 있다. 그의 방법은 심층 심리학적인 경향을 강하게 띤 방법들이라고 말한다.

III. 샤펜버(J. scharfenber)

샤펜버는 치유 적인 방법들을 신학적으로 묻는 과제를 주제로 삼는다. 그리고 그는 신학과 치유적방법과의 만남을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게 촉진한다.

5. 카이퍼(Kuiper), 아담스(Adams), 클라우니(Clowney)의 방법론.

정통개혁주의들의 신학 위에다 실천신학 이론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앞서 논한 슐라이엘마허나 힐트너, 투루나이젠 같은 인간의 경험이나 정신분석학 또는 임상학적인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교회의 모든 프락시스는 성경을 표준하고 성경에 의해서 비판받고 교회의 성장과 목양의 원리를 성경에서 찾고자하는 것이다. 상담에 있어서도 임상심리학이나 로저스의 비지식적인 방법이 아니고 성경 적인 인간관 위에 성경 적인 위로와 지도를 원칙으로 하였다.

I. R. B. 카이퍼의 방법론

R. B. 카이퍼는 개혁주의 실천신학자로서 웨스트민스트 신학교의 실천신학교수 및 교장을 역임하다가 1966년에 죽은 학자요, 설교가요, 저술가였다.

그의 실천신학 방법론은 성경 신학적인 방법이었다. 또하나의 원칙은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니라는 단순한 성경교리가 그의 신학을 풀어 가는 기준이 된다. 그의 주장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교인들의 숫자를 불리는 것은 도리어 그리스도의 몸된교회에 욕돌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탈취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우선 카이퍼는 그의 전도 학을 "하나님 중심의 전도학" 이라고 밝힘으로 벌써 방법론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난 셈이다. 하나님 중심의 전도는 인간중심의 전도와는 반대된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중심의 방법을 그의 실천신학의 틀로 삼고 있다. 또한 그의 설교 학의 원리도 기교나 기술적인 면보다 신학적인 내용을 중요시한다. 그의 두 가지 큰 설교의 근본 되는 원칙은, 첫째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할 것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 전부를 선포할 것이다. 결국 그는 실천신학의 원리와 교회의 모든 프락시스를 성경에서 시작하고 성경으로 끝맺으려고 한다.

II. 아담스(J. E. Adams)

아담스는 현재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실천신학 교수이며 "목회 실천 잡지"의 편집국장으로서 목회학, 목회 상담학, 설교학 등 퍽 다양한 저작들이 많다.

그는 주장하기를 "성경은 그가 모든 판단을 하는 기초이며 기준이다"라고 말하면서 또한 "그는 과학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설명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과학을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환영하며 독특성을 가진 일반화를 위해서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학생들이 성경을 제 연구하도록 하기 위해서 과학을 부가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하였다.

목회일반 특히 상담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가장 크게 보고 있다. 그는 성령의 사역이 모든 참된 퍼스날리티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근원이다.

"실천신학의 추구는 자신의 신학을 표현하는 성경 적인 방법의 연구와 적용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실천신학자들은 신학과 목회활동을 분리시키지 않고 둘 사이에 완전한 관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천신학이 교회의 프락시스를 취급할지라도 그것이 바른 신학적 조명 아래서 만이 바로 된다는 것이다.

III. 클라우니 (Edmund P. Clowney)

에드문드 클라우니 교수는 현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실천신학 교수겸 교장으로 재직중에 있다.

그의 실천신학방법은 그의 선배 격인 카이퍼와 아담스의 방법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결국 성경신학을 알지 못하고는 바른 설교를 할 수 없으며 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프락시스를 바른 성경해석의 기초 위에서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6. 베인호프(Veenhof), 피레트(Firet) 및 기타 화란 개혁교회의 실천신학자들의 방법론.

I. 베인호프교수는 오랫동안 화란의 캄펜 신학대학의 실천신학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은퇴한 분이다. 그는 언제나 세상과 교회를 한 하나님의 주권아래 놓고 생각하는 전체성을 강조한다. 그의 실천신학 방법론을 한마디로 말하면 교회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프락시스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피조물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다 두고 있다. 베인호프 교수는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언약, 이 세 가지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II. 피레트교수는, 현재 화란 뿌라야대학의 실천신학 교수겸 실천신학연구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실천신학을 신학의 실천적 이론으로 규정하고 "실천을 위한 가장 큰 조력자는 바로 좋은 이론"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실천적인 것은 인간과 상황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그는 또한 실천신학의 이론정립을 위해서는 비신학적 학문들도 도구로는 쓸 수 있다고 하였다.

III. 봐델잉크는 교육학을 주로 "실천에의 이론"으로 규정하고 교육학을 철학의 분과가 아닌 실천이론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하나님 중심 사상과 하나님 주권에다 모든 사고 출발과 결론을 삼으려고 한다.

IV. 브릴렌ꓪ 부르트 박사는 그의 방법론 역시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으로 보고 칼빔주의적 신학과 신앙을 생활전역에 응용하는 응용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대심리학적 측면에서 본 기독교 목회학"에서 그는 근대의 실천신학 이론가들의 학설을 광범위하게 연구하면서도 교회와 사회의 모든 프락시스를 성경으로 말미암아, 다시 비판받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테오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볼 때 만일 방법론이 잘못되면 그것은 모든 이론신학의 과제가 허물어지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인 교회를 손상시켜 버리게 된다. 실천적인 신학, 즉 프락시스를 중심한 신학이라고 해서 정신분석학이나 임상 실험적인 방법, 과학적 분석방법을 그대로 도입해서 쓴다면 그 결과는 중대한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때 우리의 실천신학의 현주소를 바로 파악하고 성경 적이고 칼빈주의적인 입장에서 실천신학을 정립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