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학 강의 요약 노트
제 1장
1.철학자: “신은 존재 않한다”
Aristoteles
↓
↓
중세
↓
↓
르네상스
↓
↓
하이덱거
↓
Ayer, Hare
↓
↓
Bradley and Bosanquet
<노골파>
(2) 서구 철학은 기독교에 대한 일관된 도전이다 -Dooyeweerd-
Voltaier
↓
↓
Marx
↓
↓
Sartre
< 은근파 >
1>아리스토텔레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우주론적 증명>을 발견하였다.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하나님을 믿었는가 하는가이다. 그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제1원인>으로서의 하나님을 믿었다. 모든 원인을 소급해 올라가면 제1원인으로서의 원리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신인 것이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알지 못했으며, 그의 신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생각한 신이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보면 무신론적 입장에 서있다.
2>하이덱거
하이덱거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가 믿은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인간 실존>에 있었다. 그것은 불경의 5도와 같았다. 그가 자신을 수양해서 진리에 도달하는 원리를 제시하였다.
3>언어분석 철학
<Ayer, Hare>
아이어는 분석철학의 창시자이다. 언어분석철학이란 언어를 분석하는 철학이다. 하나님의 언어, 교리를 분석함으로서 실존을 파헤치려는 학파이다.
1)참된 종교는 논리적이어야 한다.
2)참된 종교는 경험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언어분석철학이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도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Hare(수정주의)>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관을 파악해서 진상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
믿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생관을 배우기 위해서 공부하려고 하는 것이다.
4>Bradley, Bosanquet
이성→ 하나님 →인간
유심론철학자들은 하나님 대신에 마음을 믿는다. 신과 인간은 이성에 지배를 받는 것이다. 이성의 최고 법정에서 이성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성에 판단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성의 법칙만을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람도 역시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사상구도를 가지고 있는 입장이 유심론(唯心論)이다. 이성의 자율성을 인정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하나님은 큰 형님이고, 사람은 동생이다. 하나님도 완전한 것이 아니며,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가고 하나님은 절대 이성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들을 비판하였다.
노골파
볼테르- 理神論
하나님은 이성의 하나님이다.
막 스- 物神論
하나님은 물질이다. 유물론적 무신론
사르트르- 殺神論
인간의 절대 자유를 주장, 만약하나님이 존재한다면 나의 자유가 방해를 방 해받음으로 하나님을 제거하겠다고 함.
2.과학자
(1)自信派
<칸트 이전 과학> 임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성자체의 한계를 인정하는 명저였다.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 칸트 이전에는 과학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과학만능주의 사상으로> 나아갔다. 과학만능주의자들이 칸트의 저서를 통해서 칸트 이후에는 겸손해 진다. 그래서 과학상대주의로 나아갔다.
갈릴레오, 뉴튼 등
實證主義者들> 과학이 증명하면 진리이고, 과학이 증명하지 못하면 진리가 되지 못한다.
과학적 실증주의자들, 스펜스,밀,콩트, 렛셀, 아인슈타인,
進化論者들>
과학의 절대주의를 인정,
p.115
(2) 謙遜派
Romanes
불순 不可知論- 하나님이 안계신 것을 전제하여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없다.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면서,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주장.
순수 不可知論 -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과학의 미명 하에 성급하게 그의 존재를 불법화하려고 들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동 교심 또는 신의식을 현상학적으로 관찰, 연구,
어떤 류의 지식이나 정보를 고려하고 심사숙고한다는 사고방식
그러나 이 순수불가지론도 역시 무신론적 입장에 서 있다.
<알지못하는 신>은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아덴 사람들에게 한 말 인데, 그 알지못하는 신에 대해서 바울은 그들로 하여금 알게하겠 다고 함
<결론> p.125
오늘날 현대 과학자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자들이든지, 은근히 내용적으로 부정하는 자들이든지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모두 기독교 유신론을 부정하였다.
O.E.J. Carnell과 과학적 방법
“과학은 신을 발생했는가?”
Tompson, Millikan, Curtis, Mather
급진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다 믿을 수 없다.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변증할 때, 변증자 자신이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인데, 그것은 지식에 근거한 인식론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성경을 읽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하는 반면, 철학을 통해서,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파들이 있다.
로마·카톨릭
알미니안
칼빈주의자
3 부류가 있다.
3. 기독교인
(1) Roman Catholic
定義: 교황중심의 적을 둔 교회의 의미.
原義: 본래적인 은혜, 사람이 이중구조로 창조되었다. 흙고 생령으로 사람이 되었다. 사람은 영과 육이 결합한 인격체이다. 이 결합된 관계가 상부의 영혼이 하부의 육신이, 영과 육의 갈등과 긴장관계가 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본래적인 은혜를 주셨는데 그것이 조화의 은혜이다. 이 은혜가 죄로 말미암아 깨어졌다. 육신이 영의 인도와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결국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영혼이 이성을 온전히 이끌어 갈 수 없다.
理性健在設(반 펠라기우스주의):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 힘을 써면 이성에 의해서 바른 길로 갈 수 있다. 전적 부패를 믿지 않고 부분적 부패를 믿는다. 이성은 약간의 부패를 입었다. 그러므로 이성은 건재하다. 이성적인 사고를 잘 사용하면 하나님의 말씀없이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신학>이라고 한다. 성경은 특별계시인데 성경 없이도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자연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
비존재----------------(사람)-------------- 신 <존재론적 유추> |
사람은 벌레 같은 존재인데 인간은 중간적인 존재이다. 인간의 절반은 하나님을 닮았고 반은 짐승을 닮았다. 그래서 인간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고 우애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통해서 동물학적인 세계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비존재와 신 사이의 중간적인 존재이다. 이것도 이성주의적 성격을 띤 자연주의적 신학이다.
◉ 카톨릭의 진리관
|
은 혜 |
신 학 |
|
이 성 |
철 학 |
< 이층 구조적 진리관>
이성적인, 철학적인 사고를 잘 이용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지만, 구원에 대한 진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것이 이중진리관이다. 하나님의 존재 만큼은 철학적으로 알 수 있고, 인식론적으로 알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계시와 성경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카톨릭의 이중 진리관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시므로 상대적인 주권자가 아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사상이 카톨릭에서는 희박하다. 철학에서는 하나님이 주권자가 아니라 철학이 주권자라고 믿기 때문에 이성주의적 발상을 비판해야 한다.
Ex Cathedra( 교황석에서) - 교황 무오설
|
신학 |
철학 |
역사 |
과학 |
등등 |
교황이 교황석에서 발표하는 선포문은 교황이 절대 무오라는 것이 아니라, 교황이 선포하는 것만은 절대 무오라는 것이다. 왜 이것이 이성주의라는 것이냐? 이것은 권위주의다. 그러나 그 해석은 이성주의적이다. 신학자,철학자, 역사학자, 과학자들이 노력한 결과에 대해서 진리라고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될 수 없다. 연구 결과를 수렴하여 교황이 선포하는 것을 Ex Cathedra이다. 그들은 이성위주로 나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침해하고 인본주의적 경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마리아 무죄설
교황무오설
마리아 승천설
<교회의 유죄성>(버카우워리) 로마의 갈등
교황이 전적으로 무오하지 않다. 그럼에도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종교개혁의 죄는 둘로 찢어 놓았다. 상처투성이라하더라도 그것을 치료해야함에도 루터와 칼빈은 교회를 둘로 찢어 놓는 과오를 범했다고 주장한다.
크리스챤 메이쳔이 주장한 바는 카톨릭은 보수주의다. 문제는 이 보수주의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믿는 다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너무 적게 믿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도 카톨릭은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p. 134 < 알미니안의 말 >
Arminian
J. Butler - 알미니안주의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저서를 읽어야 한다.
<천부적인 능력인 이성을 바로 이용함으로써 자연과학적 지식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 거기에 추가하여 이성을 바로 사용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된다. 초자연계시의 필요성을 알 수 있다.> 로마 카톨릭과 매우 흡사한 경우다. 이성적인 사고를 잘 계발하면 하나님의 존재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는 성경에 의존한다. 半페라기우스주의에 속한다.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는 믿는데 섭리는 믿지 않는 것이 페라기우스주의인데, 알미니안주의도 거기에 가깝다는 것이다.
異性共存主義 -
|
신 자 |
불 신 자 | |
|
가 능 |
God's Providencd |
Chance |
|
蓋 然 |
Scriptural Teaching |
상기 의미의 심화 |
C. Van Til
Apolozetics
N, Geislen Christian Apoloetics
Creation, No providence --- NO Creation ---- No God
<이 신 론> < 범 신 론 > < 무 신 론 >
<중간퀴즈예상문제>
1. 기독교 변증학은 하나님의 ( 존재 )를 변호, 중명함으로써 우리가 왜 ( 기독교 )를 믿는가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2. 서구철학은 고대 희랍으로부터 현에데 이르기까지 창조, 타락, 구속을 그 주제로 삼고있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도전이다. 이 말을 한 학자의 이름은?
( 헤르만 도이빌드 )
3. 정답을 연결하라.
아이어 --------- 언어 분석 철학
볼테르 --------- 자연신론
사르트르 ------- 실존철학
부타르지 ------ 유심론 철학
4. 죠지 로렌스는 불가진론을 <순수한 불가지론>과 <불순한 불가지론>으로 나누고 후자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존재문제에 대하여 충분한 객관적 검토도 하지 않고서 ( )적인 대답들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5.버나드 램 박사를 따르면 과학주의는 세가지 과오를 번하고 있다. 하기한 거들 중에서 어느 것이 램 교수가 말한바 3대 과오에 들지 않는 것인가?
황뱆의, 축소주의 ,맹목적 사고,
6.아인슈타인 -------- 하나님은 진선미이다.
마터 ------------ 하나님은 인격을 제조하는 우주적 에너지이다.
7.알미니안 변중학의 고전적 권위인 죠셉 버틀러는 하나님의 존재나 우주의 도덕성에 관하여 그 가능성과 개연성을 신자가 불신자에 대하여 <지혜로운 이성의 구사>로서 섭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자와 불신자가 생각하는 가능성과 개연성의 개념부터가 다른 것을 어쩌랴!
신 자 불 신 자
가능성 신의 (예정) 우연
개연성 예정론적 사고 상기한 의미의 (강화)
8.웟 필드 박사의 구원교리에 입각한 <기독교인 분류>를 따르면 희랍 정교의 교언은?
초자연주의임녀서 성령론자이다.
9.웨스트민스트 신조 개요 제 3장 6 절을 따르면 인간은 죄의 상태에 빠진 결과로서
ㄱ. 구원을 성취하는 어떠한 정신적 신도, 의지하는 능력을 상실하였으나 의지 그것은 소유하고 있다.
10.요셉 버틀러는 그의 저술 Analogy of Religion에서 말하기를:
과학에서 과학자들이 개연성 이사의 확실성을 찾지 않는 고로 계시 또는 기독교의 구원진리의 영역에서도 우리는 그 이상을 찾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11.칼비니스트는 주장하기를 사람의 심주에 존재하는 신지식은 죄로 인하여 가리워져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과 (성령)의 역사와 감동이 있을 때 비로서 그것이 참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1)험증학은 기독교 교리를 변호 증명함으로써 왜 기독교는 진리인가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는 학문이다.
(2)변증학은 목적 수행에 있어서 주로 무신론 사상을 가진 <철학자들>을 상대로 해야 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 즉 구원교리를 변증하는 학문인 험증학은 그 목적을 수행할 때 주로 과학만능사상을 소유한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3)버나드 램은 험증학이 철학저이며 이론적이라기보다는 과학적인 영역에서 기독교의 변증을 수행하는 학문임을 지적하면서 <험증학은 기독교의 사실성의 증명에 관심을 가지는 학문이다> 또한 코넬리우스 반틸은 < 험증학은 과학의 공격으로부터 기독교 유신론을 변호하는 학문이다>
(4) 기독교 변증학이 하는 일 - 기독교와 기독교 신학을 반기독교적 공격으로부터 수호하는 일이다. 기독교 변증학의 활동없이는 기독교 신학의 진흥을 기대할 수 없고 기독교의 존속마저도 위태로워질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자체의 수호와 변증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변증학을 <선교의 학>으로 생각할 수 있다.
(5)근거리 전투, 시가전--- 험증학
엄호사격의 지원 --- 변증학.
(6)헤르만 도이빌드 -- 1894. 10.7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출생. 자유대학에서 공부. 신칸트주의 사상가들을 비판, 자유대학 취임 강연에서 그의 기독교 철학의 기초가 되는 우주법 개념을 강론함.
<도이빌드의 기독교 철학의 역사적 의의와 그 개척자적 공헌인정
<한편으로는 진보주의적 경향이 오늘날 화란 개혁파 교회와 자유대학의 사상적, 신앙적 좌경에 직접 간접으로 기여하고있다.>
(7) 도이빌드에 의하면 모든 학리사상은 그것 자체와 종교적 신앙을 연결짓는 어떤 필연적 전제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리사상의 자율성은 하나의 초학리적 편견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상은 종교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종교적 중립이나 객관적 입장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상을 하는 인간은 사상 자체를 초월하는 존재로서, 신의 피조물인고로 신과 신이 창조한 우주에 대한 결단을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8)도이빌드의 학리사상 비판 - 4대 종교적 사상 동인 발견 -- 형상과 질료라느 종교적 사상동인을 갖고 있다. 성어거스틴에 의해서 표현된 기독교 사상은 창조, 타락,구속이라는 종교적 사상 동인을 가졌으며, 중세 니콜라 철학은 자연과 은혜라는 종교적 사상 동인을 가졌고 근대철학 사상(휴머니즘)은 자연과 자유라는 종교적 동인을 갖고 있다.
(9) 도이빌드에 의하면 고대 희랍 철학의 종교적 사상 동인은 형상과 질료 개념인 것이다. 그런데 이 개념은 고대 희랍의 두 종교사상의 연합을 의미한다. 질료의 개념과 형상의 개념을 취해서 양자의 변증법적 종합과 진행을 그 특징으로 삼게 된 것이다.
(10)고대 희랍 사상의 배후에는 생을 이분으로 보고 저변에는 무상한 질료로, 고등한 부분에는 미의 조화를 이루는 이데아(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2의 종교적 동인은 창조, 타락, 구속의 주제 개념이다.
(11) 제 3의 종교적 사상 동인 -- 중세 스콜라 철학 사상이 가졌던 <자연과 은혜>라는 주제개념이다. 그것은 본래 성경적 주제개념과 고대 희랍사상의 주제개념을 종합 수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자연과은혜개념은 존재를 이분해서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고 초자연계, 즉 은혜계에 있어서만은 신의 계시에 의존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뜻하는 것이다. 철학은 자연계에 존재하고 신학은 초자연계에 존재한다고 생각한 결과, 기독교 철학의 존재의의가 무시되었고 철학은 희랍사상과 휴머니즘의 영향하에서 방치되었다.
(12) 자연과 은혜라는 두 극을 종합하고자 하는 아퀴나스적 시도는 <은혜는 자연을 제거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표어에서 명백히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 있었던 유명론적 사상운도에서 우리는 저 아퀴나스적 종합 시도가 지탱하지 못하고 초자연으로 가는 모든 통로를 차단, 철학적 관심이 자연계로 쏠리게 하는 결과를 목격할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철학의 세속화의 제일보였다고 할 수 있다.
(13) 서구사상에 있어서 <제 4의 종교적 사상 동인>은 근대 휴머니즘이 갖고 있는 자연과 자유의 주제개념이다. 자유라는 개념은 르네상스에서 온 것으로 인간을 우주의 통치자로 군림시키는 태도를 유발한다. 신의 형상으로의 인간 창조를 번복해서 인간의 형상으로 창조되는 신을 운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초자연에 대한 모든 사념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우주의 통치자로 추대한 휴머니즘적 인간은 그의 창조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연에서 그의 활동의 무한대한 가능성을 찾게 되었다. 여기서 근대 휴머니즘의 자연개념이 성립하게 된 것이다.
(14)도이빌드에 의하면 신에 의하여 창조된 만물은 신의 법칙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개념인 것이다. 피조계는 우주법 아래 존재하고 신은 우주법위에 존재한다.
(15)도이빌드의 공적 > 도이빌드의 기독교 철학은 학리사상의 자율성에 도전해서 그 도그마를 파괴하는 일에 기여했다. 모든 철학이 어떤 전 학리적 전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그의 기독교 철학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게 해주었고 현금 진행중인 많ㅇ느 철학적 연구와 토론이 그런 이유 때문에 무의미함을 자각하게 했다.
둘째, 신본위적 우주관을 제시
비판> 이분설적 인간론을 거부하고 영혼의 실재에 대해서 회의를 표명함녀서 인간을 마음 또는 자아라는 한계개념으로 표현한 것은 비성경적인 일.
둘째, 기독교 철학을 기독교 신학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도이빌드의 전인생적 종교론은 결국 교회 대신에 사회를, 신학 대신에 철학을, 신앙 대신에 이론을, 예배와 전도 대신에 교육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비성경적이며 역사적 기독교의 계시주의 입장에 도전하는 이성주의적 사고가 빚어낸 이론이라고 보고 우리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16)도이빌드는 그의 교회론에서 조직교회와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몸으로서의 교회를 구별함녀서 전자를 경시하는 한편 후자의 중요성을 극대화하였다.
(17) 도이빌드는 기독교 학교와 기독교 노조 및 기독교 정당 등을 그리스도의 가시적인 몸으로서의 교회로 보고 강조하면서, 성전에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를 경시하며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18)도이빌들의 잘못된 종교관 및 교회관은 잘못된 선교관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이 시공적 우주의 집약점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의 타락은 이 시공적 우주 전체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 뿐만 아니라 바윗돌과나무, 강, 그리고 특히 인간적인 공동체인 가정과 학교와 정부의 국가 등도 타락했으므로 죄와 멸망으로부터의 구속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선교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19)물론 성경은 가르치기를 죄의 영향 또는 결과와 죄 그 자체를 구별하고 있다. 물론 성경은 가르치기를 죄의 영향이 전 우주에 미치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만물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신다고 한다.
그러나 죄는 인간만이 짓는 것이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죄의 결과이며, 그것들이 죄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학교나 노조나 정당이 죄의 영향을 받는 것은 확실하지만 죄를 회개하라고는 할 수 없다.
(20) 도이빌드의 기독교 철학은 이렇게 해서 종교와 교회 및 선교의 개념을 전우주적으로 확대시켜서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소위 하나님의 <문화적 계령>을 오늘날 조직교회가 제1차적인 사업으로 산고 있는 구령 및 선교사업보다 더 중요시 하는 사상 풍토를 개혁파 교회 내에서 그리고 특히 개혁주의 신하계에서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21)오늘날 도이빌드의 문화적 계령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그의 제자들이 카나다와 미국에서만도 많은 기구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계시진리인 성경을 뒷전으로 돌리고 하나님의 일반 계시에 입각한 학술적이며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활동을 맹렬히 전개하고 있다.
성경을 3중적 의미로 보고 있다. 그들은 창조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동일시 하는 경향을 개탄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이나 교리가 아니라 인간을 감동하고 사로잡는 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22)도이빌드와 암스텔담 철학자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견해 - 신정통주의 신학의 성경관 및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소위 신성서해석학의 성서관과 유사.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화될 수 없으며 인간에게 어떤 지식이나 명령 또는 약속을 제공함 없이 오직 인간을 변혁하는 힘이 될 뿐이라는 도이빌드와 그를 따르는 암스텔담 철학자들의 이론은 신정통주의 신학을 포함한 모든 자유주의계 신학의 입장을 그대로 수락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23)그는 땅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문화창달의 계령을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진리를 증거하고 전파하라고 하는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전도 및 선교의 계명보다 선행시켜 생각하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함으로써 오늘날 자유주의계 기독교 인사들에 의해서 전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그리스도 없는 사회 및 문화운동에 박차를 가해 주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24)헤르만 도이빌드 - 그는 좌경하는 기독교 철학의 기수, 급속히 좌경하는 기독교 철학의 기수가 되고 만 것이다.
< 코넬리우스 반틸 >
1895년 화란에서 태어남. 1905년 미국으로 이민, 칼빈 대학교와신학교에서 수학, 프린스토신학교에서 연구 신학석사를 취득, 프린스톤 대학에서 박사학위취득
프린스톤 대학에서 1년간 변증학 강사. 자유주의화의 바람으로 프린스톤 신학교 교수진이 개편될 때 머물러 있기를 요청바다았으나 거절하고, 필라델피아에 신설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가서 변증학 교수, 1987년 부름받음.
(1)반틸의 사상은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프린스톤 신학교의 3대 핫지 교수들과 워필드의 사상을 종합했다고 볼 수 있다.
(2) 탕자와 같은 현대 인간
- 현대 인간은 그의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 신의 계시적 말씀이니 성경을 부인하고 그가 신의 피조물인 것을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며 자기 자신을 문화와 진보의 창조자로 생각하고 있다.
현대인은 창조의 교리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섭리와 이적 등에 관해서도 꼭 마찬가지로 부인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신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인간이 소원하는 자유는 신으로부터의 자유이며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의 자유인것이다.
(3)현대인이 소원하는 자유, 신으로부터의 절대적 자유는 기독교의 신의 존재를 부인하며 인간의 이성을 신의 자리에 앉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대 인간은 그의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유일의 법칙으로 삼게 된 것이다. 현대 인간은 최초의 인간보다 훨씬 더 고상한 철학과 세련된 이론을 갖고 있지만 신으로부터의 자유와 인간의 이성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점에 있어서 최초의 인간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4)반틸은 말하기를, 우리가 기독교의 복음적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서 탕자와 같은 현대인들에게 접근할 때 우리의 철학과 그들의 철학의 다른 점을 잘 알고 있어야만 우리가 기독교의 변증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끌려가지 않고 그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 올 수 있다.
신을 궁극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 철학이며, 인간을 궁극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비기독교 철학이다.
<존재론, 지식론, 윤리론> 철학의 3 분야를 통해서 알아보자.
(1)존재론 - 기독교 철학은 2 층으로 된 존재론을 갖는다고 한다. 신의 존재는 궁극적이지만, 인간의 존재는 파생적이다. 비기독철학은 존재를 하나로 생각하고 그 한 존재 안에서 신과 인간을 다 포함시켜서 생각한다.
(2)지식론 - 신의 지식은 절대적 지식이며 인간의지식은 상대적 지식이다. 그러나 비기독교철학은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1)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은근히 말하는 철학자들 (온건파)
화란의 기독교 철학자 헤르만 도이빌드는 < 서구철학을 고대 희랍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창조, 타락, 구소을 그 주제로 삼고 있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일관된 도전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는 고대 희랍 철학은 기독교 사상이나 유대 사상과는 전혀 관련성이 없는 고대 희랍의 구파종교와 신파종교, 올림피아 종교 간의 긴장관계로부터 유발되 형상과 질료라는 주제개념의 응결로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 - 우주론적 논증 -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하나님은 <제 1 원인>이었다. 인격도 없고 동작도 못하는 한 개념상의 존재인 이 우주의 제1원인이 기독교가 믿는 바 영원부터 자존하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데모크리투스 - 우주가 맹목적인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피노자 - 우주에 편재하며 물질과 정신을 두 개의 속성으로 갖고 있는 신의 존재를 암시한 철학자
원자가 하나님이라는 데모크리투스와 우주 자체가 하나님이라는 스피노자
하이덱거(실존주의 철학자)는 인간을 <자유자>로 보는 입장에서 죽음과 고뇌의 긴장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철학적 자기관조를 통한 어떤 오도를 인간에게 주어진 사상과제인 <실존>을 생각했다.
<불트만> 하이덱거의 실존주의에 심취, 그것을 기독교화, 실존주의 신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불트만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무신론 철학자 하이덱거를 그의 신학 속에서 기독교화하기는 커녕 그의 신학 자체가 하이덱거의 영향으로 삼위일체를 부정하게 되었다.
언어분석철학, 분석철학이 대두하여 기독교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일삼게 되었다.
분석철학 - 아이어 : 원래 하나님이 존재한다 안한다 하는 말 자체가 철학적,논리적으로 사색불가능하고 인간의 경험과도 동떨어진 말이기 때문에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해어 - 종교적 언어는 어떤 특정된 종교인들의 인생관을 나타내기 때문에 유
(3) 칼비니스트
우리가 받아들이는 칼빈주의는 유럽의 칼빈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트에 의해서 해석된 칼빈주의만 우리는 받아 들인다. 칼빈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개혁교회다. 우리는 장로교다. 그러므로 장로교 신학자들에 의해 해석된 칼빈주의만 받아들인다.
기독교인 ··· 초자연주의····성령주의자(말씀) ···제한구원
자연주의 교회주의 보편구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 속에 있다. 그러나 조물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긴다. 그런데 신지식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데 그러한 행동을 한는가? 그것은 죄 때문에 신지식이 가리워져서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
p. 144
기독교 강요 1. 4, (4)
<불신자들도 하나님에대한 자연적 지식, 느낌을 가지고 있다.(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 마음 속에 살아있다.>
<기독교 강요> 1.2.(I)
그러나 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연적 지식은 사람의 타락이 없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신지식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죄 때문에, 그러나 신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신지식 +말씀 + 성령 = 구원적 지식
신지식(눈)- 안경이 필요악이다. 말씀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말씀이 필요하다. 신지식은 눈과 같다. 안경은 말씀과 같다. 여기에 더 필요한 것이 빛이다. 즉 성령의 사역이 필요하다. 이 3자가 협력해서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진정한 신지식이다.
이 3가지가 협력하여 기능을 잘 발휘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에 하나가되는 믿음이 좋은 믿음이 될 수 있다.
<신지식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신지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이성이 허물과 죄로 죽었지만 그나마도 필요하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죽으신 몸이 있었기 때문이다.
G.B. Weaver “Van til 과 토마스 주의” (예루살렘과 아테네 중에서)
제2장 하나님 존재는 증명할 수 있는가?
하나님 존재에 대한 증명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증명론
1. 신의 존재의 전제
하나님의 존재는 증명되기보다는 전제되어야 한다. 칼비니스트는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전제하고서 이론을 벌이는 것을 타당한 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전제주의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1)전제주의자에 대한 합리주의자의 비난
전제주의자가 하나님을 전제하고 이론을 정립할 때, 그 이론은 인정을 받게 된다.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이론이 성립될 수 없다. 그러나 합리주의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너무나 고지식하고 사회현실을 알 지 못하는 권위주의적인 착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이념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결국 증명하지 못하는 것이 되는 것이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한다는 것은 누구나 거저 받아들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비난한다.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전제하기 때문에 <순화론적 논법>의 과오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합리주의자도 전제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 지식의 공백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없이는 비난할 수 없다. 시작할 수 없다. 모든 변론은 순환적이다.
모든 변론이 순환적이라면 그 중에서 가장 진리가되는 변론을 선택해야 한다. 비진리가 되는 전제를 선택한다면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
진리와 길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모든 변론은 순환적인데, 이왕에 진리가 되는 변론을 서택해야 한다>
리차드슨은 <도덕적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투루불루드는 <과학적 방법>으로 하나님을 증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카넬은 <조직적인 일관성, 모순율,전시야적 식견, 도덕적 자기 수용, 점잖은 사회>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보고 있다.
158 페이지>
160 페이지
(2) 前提主義者의 답변
"All reasoning is circular"
<모든 이론은 순환적이다> 합리주의자들은 전제주의자들에 대해서 전제하고 출발하는 것은 부당하다. 육상선수들이 출발점에서 뛰기 전부터 승리를 보장받고 있다면 다른 선수들은 도전받지 못한다. 이에 대한 답변은 모든 이론은 순환적이라는 것이다. 전제하지 않는 이론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진리를 전제하는 이론은 참된 것이다. 비진리를 전제하고 출발하는 이론은 실패한다. 문제는 전제하느냐 하지 않는냐가아니라 어떤 것을 전제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선택하는가 아니면 어떤 다른 것을 전제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엉뚱한 Calvinist - 합리주의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성주의자가 왜 반칙적, 불법적 사상가들인가? 그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주권사상에 절대적인 인정을 하지 않는다.
*진 짜 Calvinist
*반칙적 Calvinist
<기말시험준비>
Masselink and De Boer 의 비평
163페이지>
마세링크는 반틸을 비난하면서 < 불신자와 신자와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반틸의 변증학은 신자와 불신자 상에 공통점이 하나도 없다 >
드 보어는 반틸에 전제주의제 대해서 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드 보어는 반틸을 오해하고 있다. 신지식을 가지고 있다.
<절대적인 윤리적인 상관성> - 불신자는 죄인이요 신자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된 것이다. 절대적인 도덕적인 상관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는 더 풍성하다.
◉ Van Til의 3대 칼빈주의자 비평
Warfield
Kuyper
Bavinck
<결론>
<어깨를 딛고 서는 신학>
왜 반틸 박사가 전제주의자로서 칼빈주의자를 비난하는가 하면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신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목적에서이다. 선배 학자들과 선배목회자들을 딛고 일어서서 나아가는 신학이 필요하다. 이것이 발전적인 신학이다.
반틸은 월필드, 카이퍼, 바빙크의 어깨를 딛고 일어서는 신학을 하였다.
<변증학 퀴즈>
1. 합리주의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전제하고서 진행하는 변론을 보고서 ( 순환)논법이라고 비난하면서 그와 같은 이론은 하나님의 존재를 변증함에 있어서 (전혀 유익이 없다)고 한다.
2.하기한 방법(명제들)들 중에서 Carnell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①모순율이다( ㅇ )
②도덕적 자기 수용이다(x)
③전시야적 식견이다(ㅇ)
④논리적 합법성이다(ㅇ)
3.마세링크------------“반틸을 따르면 기독교 변증학의 하는 일은 신자와 불신자간에 공통점이 없음을 선포하는 것 뿐이다.”
제스드볼 -----------“반틸의 입장은 질식할 것 같은 초자연주의이다.”
4.하기한 학자들에 대하여 성경적 권위주의자이면 권, 성경적 합리주의자이면 합으로 표시하시오.
Carnell , Buswell, Clark----- 합리주의
Rushdooney, Van Til , J. Frame ------ 권위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