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종합자료백과
기 도
성 경 활 용
1. 기도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 가르침
(1) 기도를 들으심
(시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 이다
(사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2) 기도할 것을 명함
(대상16:11)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105:3-4)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3) 성령의 간구
(롬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4) 기도의 귀중함
(계5:8)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2. 방법과 형태에 따른 기도의 종류
(1) 공적인 기도
(마18:19)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눅1: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4:24)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행12:12)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행21:5)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기를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2) 개인적인 기도
(고후12:8) 이 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왕하20:2) 히스기야가 낮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느2:4)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단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합1: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눅2:37) 과부된 지 팔십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행9:11) ‥‥유다 집에서 다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행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행10:9)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행10: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 때까지 내 집에서 구시 기도를 하는데
(3) 무릎 꿇고 드리는 기도
(왕상8:54)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대하18:42)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스9:5) ‥‥속옷과 겉옷을 찢은 대로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단6:10)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눅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려 가로되
(행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행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행21:5)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엡3: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4) 서서 드리는 기도
(삼상1:26)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대하20:9)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막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눅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5) 손을 들고 드리는 기도
(출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왕상8:22)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문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왕상8:54)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일어나
(시28:2)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시63:4)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시88:9)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께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6) 땅에 엎드려 드리는 기도
(창85: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마26:39)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막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7) 하늘을 우러러 보며 드리는 기도
(요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8) 낯을 벽으로 향하고 드리는 기도
(왕하20:2) 히스기야가 낮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9) 소리를 내지 않고 기도
(삼상1:12-13)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통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10) 심한 통곡과 눈물로 드리는 기도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11) 가족이 함께 드리는 기도
(창35:3-7)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모든 자에게 이르되‥‥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벧엘이라 불렀으니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말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12) 합심으로 드리는 기도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3) 금식하며 드리는 기도
(행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14) 묵상으로 드리는 기도
(창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약대들이 오더라
(삼상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통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15) 통성으로 드리는 기도
(눅23: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16) 통곡하며 드리는 기도
(스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신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3. 기도하는 목적에 따른 분류
(1) 감사 기도
(삼상9:13)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라
(롬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고전10:30-31)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딤전4:3-5)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마14:19)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마26:26-27)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행27: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2) 불평 기도
(민11:11-15) 여호와께 여짜오니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옵소서
(수7:6-9)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왕상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쯤 행하고 한 로뎀 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욥10:18-22) 주께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찜이니이까
(렘4:10)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시102:1-11) 여호와여 주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케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3) 탄원 기도
(창32:9-12) 야곱이 또 가로되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출33: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며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신9:25-29) 그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여호와께 간구하여 가로되
(수7:7-9) 여호수아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삼하7:25-29)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왕하19:15-19)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사63:17-19)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와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강팍케 하사
(시89:49-51)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시86:1-5) 여호와여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귀를 기울여
(시143:11-12)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시119:153)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범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4) 중보 기도
① 성도의 중보 기도
(창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렘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엡6:18-19)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딤전2:1)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약5:14-1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② 제사장의 중보 기도
(레10:17)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로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기도를 위한 중보 기도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④ 원수들로부터 구원을 위한 중보 기도
(사37:4)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시더이다
⑤ 병자를 위한 중보 기도
(약5:14-1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라‥‥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⑥ 듣지 않으시는 중보 기도
(렘7:16) 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렘14:11) 여호와께서 또 네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⑦ 예수님께서 자기를 죽이는 살인자를 위한 중보 기도
(눅23: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⑧ 스데반의 중보 기도
(행7:60) 무릎을 끌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⑨ 베드로와 요한의 중보 기도
(행8:15)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인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⑩ 연보자를 위한 중보 기도
(고후9:14) 또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의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를 인하여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⑪ 바울의 중보 기도
(롬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엡1: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빌1:3-5,9)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살전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살후2:16-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에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⑫ 중보 기도를 간청함
(민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되‥‥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롬15:30-32)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엡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살전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5) 저주를 위한 기도
(민16:15)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삿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시5:10) 하나님이여 저를 정죄하사 자기 죄에 빠지게 하시고‥‥ 저희가 주를 배역함이니이다
(시50:5)주께서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저희를 멸하소서
(갈1:8-9)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딤후4:14-15)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6) 외식하는 기도
(마6: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엔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눅18:10-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4. 기도하는 곳에 따른 분류
(1) 성전에서 드리는 기도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행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2) 산꼭대기에서 드리는 기도
(출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멜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3) 감옥에서 드리는 기도
(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4)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
(마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5) 지붕에서 드리는 기도
(행10:9)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6) 배 안에서 드리는 기도
(행27:35-37)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육인이더라
(7) 다락방에서 드리는 기도
(행1:13-14)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8) 강변에서 드리는 기도
(행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9) 고기배 속에서 드리는 기도
(욘2:1) 요나가 물고기배 속에서 그 하나님께 기도하고
(10) 땅위에서 드리는 기도
(삼하12:15-16) ‥‥다원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달에 엎드렸으니
5. 기도한 시간에 따른 분류
(1) 새벽에 드리는 기도
(막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2) 아침에 드리는 기도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88:13)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이다
(시143:8)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33:27)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3) 정오에 대한 드리는 기도
(행10:9)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육시더라
(시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여 내소리를 들으시리로다
(4) 오후에 3시에 드리는 기도
(행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쌔
(5) 저녁에 드리는 기도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가시더니
(6) 밤에 드리는 기도
(사26: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 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7) 하루에 세 번 드리는 기도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8) 밤이 맞도록 드리는 기도
(눅6:12)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9) 밤낮으로 드리는 기도
(시88:1)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의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딤후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10) 쉬지 말고 드리는 기도
(살전5:17) 쉬지말고 기도하라
(11) 항상 드리는 기도
(골4:2)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12) 무시로 드리는 기도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6. 기도의 내용
(1) 찬양
(단4:34)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 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영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119:164)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150: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지어다
(2) 감사
(빌4:6)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3) 자백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4) 간구
(딤전2:1-3)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5) 중보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7. 기도할 때 지녀야 할 자세
(1) 마음에 죄악을 품지 않음
(시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2) 믿음으로
(약1:5-8)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라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마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막11:22-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며 그대로 되리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3) 하나님의 뜻대로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4) 성령으로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5) 용서하는 마음으로
(마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6) 겸손한 마음과 회개함으로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사57:15)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눅18:10-14)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7) 감사함으로
(빌4:6)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8) 합심으로
(마18:19-20)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9) 힘써서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
(10) 목적을 세우고 기도함
(눅18: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11) 금식하며 기도함
(단9:3) 내가 금식하며 배움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행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12) 강청함으로 기도
(눅11: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13) 열렬하게
(마7:7-12)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4) 신중함으로
(전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15) 중언부언으로 하지 말 것
(마6:7) 또 기도할 매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16) 예수님의 이름으로
(요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15:16)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8. 기도의 능력
(1) 승리케 함
(출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2) 하나님의 진노를 막음
(민11: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생명을 연장시킴
(왕하20:5-6) 너는 돌아가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겠고 네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4) 생사를 결정함
(창20:7)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줄 알지니라
(5) 병을 고침
(약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6) 눈을 열거나 어둡게 함
(왕하6:17-18)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원컨대 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7) 비를 오게하고 오지 아니하게 함
(약5:17-18)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 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8) 귀신을 내어 쫓음
(막9:28-29)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도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9) 교회를 부흥케 함
(행2: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하나님을 찬미하며‥‥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9. 기도드릴 때 성령의 도움
(1)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줌
(슥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리니
(2) 성령이 기도를 도와주심
(롬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 느니라·.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10. 기도에 대한 명령 ·권고들
(1) 명령
(대상16:11)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105:3-4)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사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매에 그를 부르라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히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2) 권고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눅21:36)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이름으로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빌4:6)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살전5:17) 쉬지말고 기도하라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11. 성도가 기도할 때
(1) 마음이 괴로울 때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2) 환난 날에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3) 세례 받은 후
(눅3:21) ‥‥예수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4) 사명을 앞두고
(마26:36-39) 이에 애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5) 감사할 때
(느11:17) ‥‥저가 기도할 때에 감사하는 말씀을 인도하는 어른이 되었고
(6) 성전 건축 후
(왕상8:28-30) 참조
(7) 주의 종을 택할 때
(행1:24)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웃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8) 사도가 옥에 갇혔을 때
(행12:5) 이에 베드로가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9) 전도자를 파송할 때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10) 병든 자가 있을 때
(약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12. 기도의 응답
(1) 응답받는 기도
① 환난 날에 드리는 기도
(출6:5-6) 이제 애굽 사람의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86:7)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②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응답하심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애3:25)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요9:31)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히11:6)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 들에게 상 주시는 이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약4:8, 10)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③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시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나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받은 줄로 믿으라
④ 회개함으로 드리는 기도
(대하7:14) 참조
⑤ 전심으로 드리는 기도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⑥ 순종함으로 드리는 기도
(요일5:14)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2) 기도 응답에 대한 약속
(출33:17-20) 참조
(신4:29)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시10: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사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잠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눅11:9-13) 참조
(3)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① 율법을 듣지 않았기 때문
(잠28:9)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②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
(대하15:2)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③ 하나님을 진노케 했기 때문
(신3:26)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미3:4) 그 매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④ 마음이 완악하기 매문
(슥7:12-13)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잠21: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⑥ 마음에 죄악을 품었기 파문
(시66:18)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⑦ 동기가 잘못 되었을 때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⑧ 죄 때문에
(요9: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사59: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⑨ 타인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
(마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⑩ 의심을 갖고 구했기 때문
(약1:6-7)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⑪ 외식함으로 구했기 때문
(마6:5) 또 너희가 기도할 매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⑫ 믿음이 적어서
(마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⑬ 겸비하지 않았기 때문
(대하7:14) 참조
⑭ 악인의 기도
(삼하22:42) 저희가 둘러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니다
(잠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관련원어풀이
1. vj'l' 라하쉬
원래의 뜻은 "속삭거림, 작은 소리로 말하는 기도"이다.
(1) 주문, 마술.
(사3:3, 렘8:17)
(2) 속삭이며 작은 소리로 기도
(사26:16)
(3) 호신패, 부적.
(사3:20)
2. a[;B] 베아-
(1) 찾다.
(단2:13,6:5)
(2) 요구하다.
(단2:16,18)
3. W[B; 바-우
기도, 탄원
(단6:8,14)
4. hl;a;v]mi 미쉬알-라-
기도, 간구·
(시20:6, 37:4)
5. ar;q; 카-라
(1) 만나다, 일어나다, 생기다.
(창42:4, 레10:19)
(2) 만나게 되다.
(출5:3, 신22:6)
(3) 일어나게 하다
(렘32:23)
6. rt'[; 아-타르
(1) 신에게 향을 태우다, 간구하다, 기도하다.
(창25:21, 출8:26)
(2) 듣고 응답하다.
(삼하21:14, 사19:22)
7. [g'P; 파-가
(1) 맞부딪치다, 마주치다, 돌진하다, 기습하
다.
(삼상22:17, 룻2:22)
(2) 죽이다, 학살하다.
(삿8:21, 삼하1:15)
(3) 공격하다, 강권하다.
(창23:8, 렘7:16)
(4) 우연히 만나다.
(창28:11, 민35:19)
(5) 이르다, 도달하다.
(수16:7, 17:10)
(6) 언약을 맺다, 화해하다.
(사47:3,65:4)
(7) 간청케 하다.
(렘15:11)
8. ll'P; 팔-라
(1) 심판하다.
(삼상2:25)
(2) 판결하다.
(겔16:52)
(3) 형벌을 가하다, 처벌하다.
(시106:30)
(4) 기대하다, 생각하다, 추측하다.
(창48:11)
(5) 중재하다, 조정하다.
(신9:20, 욥42:8)
(6) 간원하다, 기도하다.
(대하7:14, 시5:3)
9. la'v; 솨-알
(1) 요청하다, 요구하다.
(신14:96, 삼상8:10)
(2) 구하다.
(왕상3:10, 사7:10)
(3) 구걸하다, 구제를 청하다.
(잠20:4)
(4) 묻다, 질문하다.
(창24:47, 욥8:8)
(5) 상의하다.
(삿1:1, 삼상22:10)
(6) 인사하다, 안부를 묻다
(창43:27, 삼상10:4)
(7) 떠나도록 하다.
(삼상20:6,28)
10. hN:jiT] 테힌나
(1) 은혜, 자비,
(수11:20)
(2) 기도, 간구.
(시6:10, 55:2)
11. hL;piT] 테필라-
(1) 중재, 조정.
(왕하19:4, 사37:4)
(2) 간구, 청원, 기도.
(시4:2, 6)
(3) 찬송가, 성가.
(시72:20)
12. ajgwnivzomai 아고-니조마이
(1) 시합에 들어가다, 공공시합에서 격투하다.
(고전9:25)
(2) 적과 다투다, 싸우다.
(요18:36)
(3) 고난이나 위험과 더불어 투쟁하다.
(골1:29, 딤전4:10)
(4) 열심으로 구하다, 노력하다.
(눅13:24, 골4:12)
13. eujchv 유케-
(1) 말함, 큰소리로 말함, (하나님께 대한)소원, 기도.
(약5:15)
(2) 맹세, 서약.
(행21:23)
14. e[nteuxi" 엔튜크시스
원래의 뜻은 "만남, 경험"이다.
담화, 청원, 기도, 탄원, 중재.
(딤전2:1, 4:5)
15. devhsi" 데에-시스
(1) 소원, 간구, 기도, 탄원.
(눅1:13, 2:37)
(2) 사람과의 관계에서 구하는 것, 어린아이와 같은 신임, 하나님께 진심으로 청원하는 기도.
16. devsmai 데오마이
(1) 결박하다, 감금하다.
(마14:3, 27:2)
(2) 훼방하다,저지하다.
(딤후2:9)
(3) (물건을)묶다, 동여매다.
(마13:30)
(4) 법이나 도덕적인 속박으로 얽어매다.
(롬7:2, 고전7:27)
(5) 억지로∼시키다.
(행20:22)
17. proseuchv 프로슈케-
(1) 하나님께 기도함
(마17:21, 막9:29)
(2) 회당이 없는 곳에 있는 노천 기도회.
(행16:13, 16)
18. prosevpcomai 프로슈코마이
(1) ~에게 오다, 가다, 접근하다, 신적 존재에게로 나아가다, 오다.
(히4:16, 10:1)
(2) 긍휼이나 자비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다.
(히7:25, 11:6)
(3) ~에 동의하다.
(딤전6:3)
설교예화자료
성당에서의 기도
미국의 남부 지방에서 흑인 차별이 몹시 심하던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하루는 흑인 한 사람이 기도를 드리러 성당에 들어가려는 데 순경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이 순경은 흑인을 가로 막으며 성당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흑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순경 나으리 저는요, 성당 청소를 하러 온 사람입니다요. "
그랬더니 그 순경은 흑인을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들어가도 괜찮아. 그러나 만일 성당에서 기도하다간 혼날 줄 알아, 알았지? "
어거스틴의 기도문
저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당신께서는 저희들에게 기도하는 일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선한 생활을 힘쓰면서 당신께 간구하면 당신께서는 저희들이 구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저희들은 이 어두운 세계에서 떨면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들에게 당신의 손길을 뻗쳐 주시고, 당신의 빛이 저희들 앞에서 빛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미로의 거리에서부터 저희들을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께서는 저희들의 안내자이시니, 저희들이 당신을 따라 천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 아멘 .
나이팅게일의 기도는 그녀를‥‥‥
프로랜스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은 항상 손님들로 붐볐고, 어머니는 파티를 열어 손님을 청하는 것을 즐기셨습니다.
프로랜스는 언제나 조용히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거웠습니다. 언니의 생일날이었습니다.
프로랜스는 언니의 방에 들어가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는 언니를 보았습니다.
"여자는 아름다움이 제일이야, 난 제일가는 미인이 되고 싶단다. "
"그래, 언니는 아주 예쁜 여자가 될 거야."
언니의 방을 나오면서 프로랜스는 생각합니다. '난 좋은 부모님을 만나 이렇게 편히 살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 있을거야.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무언가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프로랜스는 매일 같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게 갈 길을 인도하여 주세요. 제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알게 해 주세요‥‥‥‥
프로랜스의 마음 속 깊이 울려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프로랜스, 너는 나의 뜻을 위해 봉사하여라. '
프로랜스 나이팅게일은 병들고 가난한 자를 위한 간호원이 되었습니다.
한나의 기도
아기가 몹시 갖고 싶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다른 여자들이 아기를 안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한나는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의 이 아픈 마음을 아세요?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제게 아들을 주세요. 그 아기가 크면 하나님께 바치겠어요."
한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제사장 엘리는 술취한 여자인줄만 알고 마구 나무랍니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오? 바른 정신으로 와서 기도하세요."
"아닙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겁니다. 하나님께 제 간절한 소원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제사장님도 제 소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려 주세요."
그제서야 제사장 엘리는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겁니다. "
이에 한나는 기뻐하여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 후 정말 한나는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 아기가 주님의 귀한 종이 된 사무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인의 눈물 어린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기도실, 보조 타이어
· 첫 번째 이야기
국방부 장관 넬빈 R. 메어드는 국방성 내의 한 방을 명상과 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로 제공했습니다. 메어드씨는 국방성 내의 방을 기도실로 개조한 것에 대해 "비록 우리가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Christian Victory)
· 두 번째 이야기
몇몇의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일종의 보조 타이어로 간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운전자가 자동차를 몰고 가다 갑자기 타이어가 펑크가 났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보조 타이어 정도로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잘되고 있을 때는 주님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곤궁하고 절망스러운 일에 처할 때 울부짖고 기도하며 주님이 빨리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 (Sunday)
감사의 기도
자비로 충만하신 하나님이여 !
믿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은혜로 들어오게 된 것을 감사하나이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는 다 열려 있으며 또한 이 문을 통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음을 감사하나이다.
무거운 짐에 눌려 있는 우리로 하여금 쉴 수 있도록 성령이여,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죄가 싫증나도록 하여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땅에서 지치게 되는 것에 감사하나이다.
영원한 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얼굴을 뵈옵고 누릴 그날을 그리워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자비하신 하나님이여 !
당신은 우리에게 귀한 약속을 주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시며 우리가 갈급할 때에 이미 응답을 주시나이다.
오늘 우리가 주님이 베푸신 사랑의 상에 더욱 가까이 얽어매어지게 하시고, 이 복음의 잔치상에서 주님과 더불어 앉아 있도록 허락하옵소서. 우리와 더불어 자애로운 교통을 하시고 우리의 영혼이 사함을 받고 감사의 교제를 나누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
(J. 헨리)
목사님의 설교 시간
한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로 원고에만 의지하여 설교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는 교회에서 주일 저녁 예배를 인도하였고 갑자기 설교 도중에 전기가 나갔습니다.
목사는 누군가가 예배 시간에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빨리 불을 켜라고 엄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정말 전기가 나갔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에 목사는 매우 당황하여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될지 다급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원고만 보고 설교를 하던 목사가 설교 시간에 불이 나갔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러나 이 때 목사의 재치있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여러분 지금 전기가 나갔다면 그것은 지금이 조용히 기도할 시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 이리하여 예배는 기도회로 변하였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남궁억 선생의 기도
「삼천리 반도 금수 강산」이라는 낯익은 찬송가를 지은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명문의 집안에서 태어나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순탄한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유달리 정의감이 강한 남궁억 선생은 1907년 11월 그의 나이 44세 때에 외국 세력과대결할 목적으로 대한 협회라는 민간 단체를 조직하고 스스로 회장이 되었으나 별로 괄목할만한 활동은 못했습니다.
나라가 드디어 일본에 합방이 되자 그는 수염을 길게 기르고 무언 중 일제에 항거했습니다. 그때부터 남궁억 선생은 기독교에 눈을 돌리고 빼앗긴 나라를 바로 찾는 길은 물리적인 힘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에 있음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는 장기적인 안목을 두고 계속적으로 나라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는 뜻한 바 있어 서울을 떠나 강원도 홍천에 있는 보리골이란 촌락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다 교회를 세우고 모곡학교를 세웠습니다. 그의 뜻은 가장 배우지 못한 농촌으로부터 신앙 운동과 교육 운동을 일으켜 보자는 높은 뜻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60이 넘었습니다. 그는 힘차게 뛰어노는 어린이들과 함께 기뻐했습니다. 주일이면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모곡 학교를 보리골에 세우고 그 실습지에다 무궁화를 심어 가꾸도록 했습니다. 거기서 가꿔진 묘목은 각 지방 학교와 교회에 기증했습니다.
학생들은 무궁화를 직접 가꾸는 동안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점차 널리 퍼져 일본 경찰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일경들은 남궁억 선생의 가택을 수색하고 책을 압수했고 그가 나가던 교회의 목사와 그의 가족까지 모두 검속하여 구류하였습니다.
그때 강원도 경찰부에서는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 길러놓은 묘목 8만주를 뽑아다 불질러 버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남궁억 선생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린도전서 9장 25절 이하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은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기도는 영혼의 호흡
한 청년이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 "목사님,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 청년을 데리고 강가로 갔습니다. 목사님은 청년의 옷을 벗게 하고는 무턱대고 손을 끌고 강으로 들어갔습니다.
깜짝 놀란 청년은 "아니, 목사님. 저는 수영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닌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려는 것일세."라고 말한 다음, 갑자기 청년의 머리를 잡아서는 물 속으로 집어넣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물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그제서야 그 목사님은 청년을 건져내 주었습니다.
겨우 살아난 청년은 숨을 몰아 쉬며 "아니, 목사님, 제가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했지 물 속에서 죽여달라고 했습니까? "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그래, 물 속에 있으니까 어떻던가? 숨을 쉬고 싶지? 살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을거야. 이것이 바로 내가 자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일세. 기도는 바로 그렇게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네."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호흡하듯 항상 기도하십시오.
주기도문 '거룩'의 뜻
초대 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유명한 시릴이라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주기도문에 관해 설교를 할 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그 자체가 본래 거룩하시다. 기도의 뜻은 본래 거룩치 못해서 거룩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할 때에 우리 자신이 거룩해지고 우리가 거룩한 일을 할 때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해 지는 까닭이다. "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사이프리안 목사는 주기도문의 '거룩'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기도의 뜻은 그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하여지게 하여 달라는 뜻이다. "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말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행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기도 응답
믿음이 좋은 가난한 과부가 이미 지불한 계산서를 거래처에서 보내 온 것을 받고 실망이 컸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지불한 영수증을 쓸어버렸기 때문에 또 돈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몹시 걱정을 했습니다. 거기다가 남편의 장례식 때문에 있는 돈마저도 다 써버렸으므로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단 한 가지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로써 간구하기를 그녀가 잃어버린 영수증을 찾을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며칠 후 채권자가 과부의 집을 방문하여 협박하기를 수일 내에 현금 지불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녀를 걸어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때 열린 문을 통하여 나비가 한 마리 날아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어린 자식이 그 나비를 잡으려고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의 곤충 채집 숙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비는 소파 뒤에 내려 앉아서 밑으로 기어 내려갔습니다. 어린 아이는 그 가구가 너무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으므로 자기 어머니와 또 그 집을 방문한 채권자에게 부탁하며 그 가구를 옮겨 달라고 했습니다.
셋이서 그 가구를 밀어서 옮길 때 종이 쪽지가 마루에 떨어졌습니다. 그 과부가 그 종이를 집어들고 들여다보던 눈이 놀라움으로 커졌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 종이 쪽지는 잃어 버렸던 영수증이었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응답하시었던 것입니다.
지혜를 주시는 주님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업계의 왕인 힐튼은 원래 신파 연극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단원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공연을 했지만 연극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날씨는 춥고 배도 고프고 빚은 나날이 늘어만 가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살길이 막연해진 그는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이 곤궁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호텔업을 시작하라는 암시를 받았습니다. 호텔 경영에 문외한이었던 그였지만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호텔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호텔 역사상 가장 방대한 체인을 가진 힐튼 호텔을 건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암시는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91:15)"
@온 국민의 기도
1942년 독일군이 북아프리카를 침공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치 독일군에게 밀린 영국군은알렉산드리아 시에서 50마일 떨어진 곳까지 후퇴를 하였습니다. 2년 동안의 싸움 과정에서공격해 왔던 독일군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한편 영국은 영국군이 이와 같은 위기에 처한 사실을 알고 영국 왕을 비롯해서 의원들과 정부 고관들 그리고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단합하여 "하나님에서 후퇴하고 있는 영국군을 지켜주시고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시켜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상황은 극박해져 우수한 성능을 가진 독일군의 80밀리 포 앞에 영국군은 마지막으로 고수하고 있던 '엘알마인' 진지마저 포기하고 후퇴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닥쳐왔습니다. 영국군은 사막에서의 전쟁은 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무기이므로 '엘알마인'에 급수전을 설치하고 한창 실험을 하던 중이었지만 할 수 없이 진지를 내놓고 후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원래 물이 귀한 곳이라 영국군들은 짠 바닷물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독일군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24시간 동안 물 한 방을 마시지 못하고 강행군을 했던 독일군은 고지를 점령하고 나서 보니 급수전이 있으므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수전에 있는 물을 마음껏 마시고 말았습니다.
소금물을 잔뜩 마신 독일군의 몸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국 독일의 오천 정예 부대가 항복함으로써 영국은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할머니 권사님의 기도
어느 할머니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자그마한 교회에 나가시는 이 할머니 권사님은 언제나 철야 기도를 쉬지 않고 하시는 믿음의 자녀였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목사님은 밤새도록 할머니 권사님의 눈물의 기도로 흥건하게 젖은 베개를 짜서 세탁을 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습니다.
개척 교회, 새로운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서 발생하는 인간 관계의 문제, 오래 믿은 교인들과 새로운 교인들 사이의 알력, 목사님의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어느 집사님의 입방아도 눈물의 기도 앞에는 맥을 출 수 없었습니다.
또한 잘 맞지 않고 그다지 음악적이지도 못한 할머니 권사님의 찬송 소리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네.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오." 더듬거리며 때로 숨이 차서 조금씩 쉬었다가 이어지는 찬송 소리였지만, 그 어느 대교회 성가대의 찬송도 그 깊음을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각기 다른 주장을 가지고 자기 주장이 관철되지 않음을 괴로워하고 심지어는 그 교회를 떠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주위에서 일어납니다.
빠른 행동은 바로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유혹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일조일석간에 결과를, 열매를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네 마음에 어려움, 고통, 울분이 있느냐, 먼저 달려가서 주먹질이라도 한번 해야 될 문제가 있는가? 그러면 먼저 기도해 봐라. 어렵지 물론. 어려운 줄 알지.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길은 좁은 길이라고 하지 않던‥‥‥‥
어머니의 기도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변화되고 거듭난 존 뉴턴의 예화를 소개합니다.
위대한 복음 전도자요, 신학자요, 찬송가의 작시자로 알려진 존 뉴턴은 영국 태생으로, 7살 때 어머니를 잃고 비뚤게 자라다가 3년 후에는 학교 공부 마저 그만두고 지중해를 항해하던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뱃사람들의 좋지 않은 습성들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비정한 사람이 되어 온갖 나쁜 짓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아프리카 선단에 가입하여 그 배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 넘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인정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주 흉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노예들을 상어에게 먹이로 주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신앙을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헛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뉴턴이 대서양을 항해하는 데 큰 폭풍우가 몰아 닥쳤습니다. 순식간에 배는 파선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배안은 온통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뉴턴은 어릴 적 어머니의 기도를 떠올리게 되었고, 항상 호주머니 속에만 넣어 두었던 성경을 꺼내 들고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어머니의 하나님이시여,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저에게 단 한 번만 기회를 주시옵소서, 저를 이 죽음에서 구해주시면 내 일생을 주님께 바치겠습니다. "
이런 기도를 드리는 순간,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쓴 물이 단 물로 변화된 것이었습니다. 그 무섭던 바다가 잠잠해졌을 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정 새롭게 거듭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는 늘 속죄의 눈물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는가운데 그는 신앙시를 쓰게 되었고, 그것에 곡이 붙어 찬송가가 되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 인 것이 오늘날 우리가 즐겨 부르는 "크신 은혜 복된 말씀 죽은 나 살렸네"라는 찬송입니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가 강퍅한 아들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이자 큰 힘입니다.
아디스 휘트만의 기도의 유형
1. 감사와 기쁨의 기도
어느 날 아침 우리는 풀잎 사이에 피어난 한송이 꽃과 그 이파리에 맺힌 이슬과 그 위에서 노래 부르는 새를 발견하고는 주님의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에 기쁨과 찬양의 기도를 아니 드릴 수 없게 됨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감사의 기도는 더 큰 슬픔 속에 더 깊은 주님의 섭리를 깨닫게 합니다.
2. 회개의 기도
우리의 죄는 우리 어깨 위의 짐이 되어 우리의 생활을 짓누릅니다. 회개의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며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회개의 기도는 또한 남을 용서하는 힘을 우리에게 줍니다. 그러나 회개의 기도는 항상 구체적이어야 하며 해서는 안될 일을 했을 때와 해야 할 일을 안했을 때에 이 기도가 모두 적용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이웃을 위한 기도
이 기도는 우리를 이기심에서 구하며 그 기도하는 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게 합니다. 이 기도는 물론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삶은 변화합니다. 기도는 인간이 지닌 가장 큰 에너지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4. 발견과 명상의 기도
기도는 우리 자신을 재발견케 하며 재정립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일방로가 아니라 나와 주님과의 서로 주고 받는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호소일 뿐 아니라 귀기울임이며 기다림입니다.
5. 은총의 기도
은총이란 주님으로부터 받는 값없는 선물입니다. 이 은총으로 말미암아 바울은 사도가 됐고 죄인이었던 우리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이 은총의 갈구로써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주님의 명령을 수행할 힘의 은총을 구하며 주님은 오직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써 쓰시도록 기도합시다.
6. 행동을 위한 기도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며 알 수 없는 것들 속에 싸여 있습니다. 이때 기도는 그 일을 수행할 힘과 용기를 줍니다. 키르케고르의 말대로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를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
기도를 습관처럼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입니다. 호흡의 장애는 생명을 위태롭게 합니다. 목사들이 모여서 예배를 위한 토론이 벌어졌는데 놀랍게도 데살로니가 전서 5장의 17절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것 인지에서 막혔습니다. 어떻게 숨을 쉬듯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 이때 청소부 아줌마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기도해요. 나는 잠자리 에 들면서 주님의 품안에 쉴 수 있는 기쁨을 감사하지오. 내가 다음날 아침 깰 때는 주님께서 내 눈을 뜨게 해서 하나님 말씀의 새롭고 기이한 것을 보게해 달라고 기도하지오. 내가 목욕할 때는 내 숨은 죄들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오. 옷을 입을 때는 주님께 겸손과 사랑으로 옷입혀 주실 것을 간구하지오. 불을 피울 때는 주님께서 내 마음속의 영혼들에 대한 사랑의 불을 피워 달라고 기도하지오. 식사 때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기도하는 생활 태도를 설명했습니다. 기도는 그녀의 습관이었던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기도는 호흡이라고 옛 사람들은 잘 말해 주었다. 나는 왜 호흡하는가. 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다른 호흡을 계속하는 것으로써 세계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신진대사로써 활동력을 다시 얻으면 되는 것이다.
(S. A. 키르케고르)
엄격한 생활의 희열을 느껴라. 그리고 기도하라. 끊임없이 기도하라. 기도는 힘의 저 장소이다(의지의 재단.- 힘찬 모럴.- 성례전의 요술.-영혼의 위생).
(C. P. 보들레르/ 내밀의 일기)
기도할 수 있는 신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의 하나다.
(M. 로슈발트)
식사를 들 때 기도를 올리는 습관은 아마도 이 세상 상고시대-제대로 차린 식사를 먹기가 수월치 않고, 넉넉히 먹는다는 것도 보통의 은혜 이상의 일이며, 배불리 먹는다는 것은 뜻밖의 횡재이고 특별한 천운이라고 생각되던 수렵 시대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독한 절식의 한때를 겪고, 다행히도 사슴이나 염소의 고기를 전리품으로 획득하여, 소리를 지르고 개가를 올리며, 그것을 집으로 메고 들어오는, 그런 데서 근대의 기도의 싹이 트지 않았나 합니다.
(C. 램/ 엘리아 수필집)
기도란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어둠에서 하느님을 보는 거울이다.
(F. 헤벨)
죄와 악의 결과로써 생겨난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벽은 기도에 의해 제거된다.
(요한 바오로 2세)
편안히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라. 너의 힘에 알맞는 일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너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
(P. 브룩스/ 예루살렘으로 가다)
기도가 마음과 마음의 메아리라면, 하비루 노예들의 한숨과 아우성이 기도인 거죠. 그것은 하비루 노예들의 기도인 동시에 야훼의 기도인 거죠. 두 아픈 마음의 부딪침에서 치솟는 불길이지요.
(문익환/ 히브리민중사)
기도는 낮에는 열쇠, 밤에는 자물쇠가 되어야 한다.
(T. 풀러/ 금언집)
겸손한 사람의 기도 소리는 구름을 꿰뚫는다.
(집회서)
기도는 혼을 지키는 성채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아침의 기도로 하루를 열고 저녁의 기도로 하루를 끝내야 한다.
(0. 펠섬/ 결의)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새롭다.
(조향록/ 기도할 수 있는 축복)
병을 앓고 있는 자가 병을 앓고 있는 자를 위해 기도할 때는 그 기도의 힘은 배가 된다.
(유태 격언)
하늘에 올리워진 감사는 완벽한 기도이다.
(레싱/ 바른헬름의 사랑)
자기 밭에 쪼그리고 풀을 뽑는 농부의 기도, 노를 젓느라 구부린 사공의 기도, 그들의 기도는 세계 어디에서나 들리는 참다운 기도이다.
(R.W. 에머슨/ 수필집)
열심히 기도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일은 없다.
(R.W. 에머슨/ 수필집)
고생은 기도를 가르친다.
(독일 속담)
말로 하는 기도는 기도의 가장 끝머리, 가장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 기도는 몸으로 살림으로 하는 기도이다.
(함석헌/ 너는 언제까지 그 꼴일 터이냐)
자기 영혼을, 기도 속에다 함빡 적신 사람들은 모든 고민을 조용히 견딜 수 있다.
(F.M. 밀른/ 라비아의 어록)
기도는 중얼거리건 잠자코 있건, 영혼의 성실한 욕망이요, 가슴속에서 떨고 있는 숨겨진 불꽃의 운동이다.
(J. 몬거머리/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 한 번, 임전의 경우 기도 두 번,출항의 경우 기도 세 번, 결혼할 때 네 번도 불안, 출산의 때는 아무리 기도해도 부족하다.
(어느 제독의 유서)
기도를 습관으로 하고 있는 사람의 기도는 진실하지 않다.
(탈무드)
비록 신앙은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참으로 편안한 일이다.
(A. 체호프)
기도할 때, 유쾌한 마음의 찬동이 없으면 입술이 결코 승리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
(R. 해리크/ 마음)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심정은 하느님 앞에 무릎 꿇는 기도와는 다르다. 저는 요행을 바라는 절망이요, 이는 영혼을 쏟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좀처럼 기도를 올리지 못한다.
(오화섭/ 영웅적 장거와 수도물)
사랑이 지나친 법이 없듯이 기도가 지나친 법은 더욱 없다.
(V. M. 위고)
신념없이 기도드리는 사람은 그의 기도가 용납되리라고 희망할 수 없다.
(페늘롱/ 금언집-기도에 대하여)
기도의 가치를 모르고 기도하는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다.
(M.K. 간디/ 영 인디아)
보통 사람들은 기도를 하지 않고 구걸할 뿐이다.
(B. 쇼/ 잡록)
하느님은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그러나 기도를 올린 사람들 중에 누가 하느님의음성을 들은 적이 있는가?
(호메로스)
기도란 하늘에 고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오히려 하늘의 말씀을 사람이 듣는 일이 참다운 기도라고 한 사제가 깨우쳐 주셨다.
(김남조/ 심연을 위해)
기도는 놀라움을 주목하는 것, 모든 존재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신비와 모든 성취의 성스런 테두리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기도는 삶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놀라움에 대한 우리의 겸손한 응답이다.
(A. J. 헤셸)
기도는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도록 하느님을 초대하는 것이다.
(A.J. 헤셸)
기도란 때 맞추어 사용할 수 있는 전략도, 오다가다 머무르는 도피처도 아니다. 기도는 오히려 가장 깊은 데 있는 자아를 위해 마련된 거처라고 하겠다. 모든 것이 보금자리를 갖고 있다. 새는 등지를, 여우는 굴을, 벌은 벌통을.기도하지 않는 영혼은 보금자리 없는 영혼이 다.
(A. J. 혜셸)
기도의 참된 근원은 감정이 아니라 통찰이다.
(A.J. 헤셀)
기도는 그것이 무각감, 증오, 기회주의, 거짓의 피라밋을 무너뜨리고 뒤집어 엎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A.J. 헤셸)
자를 비는 목소리, 정의를 바라는 울음 소리, 평온을 구하는 탄원으로서의 기도는 정치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기도의 정신이 세계를 지배하게 하라. 기도는 사적인 것이고 사람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도에서 솟아나는 관심과 동정심이 공공의 삶을 지배하게 하라.
(A. J. 헤셸)
기도하며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직장을 성당으로 바꿀 것입니다.
(직장 복음화를 위한 참된 행복)
나로 하여금 험악한 가운데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 험악한 것들을 두려워하지 말게 기도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움을 그치게 해 달라고 빌 것이 아니라/내 마음이 그것을 정복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R. 타고르/ 나의 기도)
무릎을 끓고 머리를 숙이면 기도인가/ 그것은 어두운 생각에 불과하다/ 손을 모으고 머리를 쳐들면 기도인가/ 중얼거리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설득은 아니다/ 기도란 아버지와의 관계이다/(아버지는 존재의 뿌리다)/ 때문에/ 결단의 때는 언제나 기도한다//‥‥ 그분 자신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기도했다/ 말씀을 발하시는 일 없이/직접 빠져들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스며들 때까지
(모리타 스스무/ 기도)
하늘을 가리키는 시소의 한쪽에 매달려/제멋대로 희망의 살모넬라균이 증식되는 데 맡겨진 언어를/ 뿌려 흩어지게 하는 것을/기도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는 우선/ 천상의 저울에/ 이름과 마음과 나라에 관한 소원을 싣고/ 뒤이어/ 지상의 저울에는/ 사람으로 나날이 살게 하는 세 가지 소원을 놓아/멋지게 균형 잡힌 기도의 메뉴의 저울을 가르쳐 주셨다.
(가가와 히로코/주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김현승/ 가을의 기도)
정녕 기도는 희망의 외침인 것이다 ! /우리 향해 대답하라고 신에게 말을 걸어 보세나.
(A. 뮈세/ 신을 향한 희망)
우리가 주님 앞에 굻어 엎드릴 때 주위는 어둡게 느껴지오나/ 다시금 일어설 때는 저 멀리까지 태양 빛이 밝게 빛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 숙이고 꿇어앉으오나, 일어설 때는 용기가 넘치나이다 !
(R.C. 트렌치/ 기도하라 끊임없이 기도하라)
이 깊은 밝,/ 늘상 별빛으로 깨어있는/ 네 눈물의/ 절절한 기도.
(엄창섭/ 기도 · 24)
기도의 자세로/ 두 손 모으면/ 열리는 하늘 문/ 그 곁에서/ 초록빛 꿈으로/ 신앙을 물들인다.
(이기반/ 초록빛 꿈으로)
영혼이 주름을 필/ 아늑한 내 영토다// 가만히/ 황혼을 깔고 와/ 목 축이는 이 샘터.// 묵념 아닌 대화라서/ 귀에 담는 호소되다. //뜨거운 밀어들이/ 씨앗같이 영근 정이/ 가라앉은 못물 위에/ 퐁당 던진 돌과 같다.
(정기환/ 기도)
주께서/ 손을 모아 보였습니다. / 텅 빈 손입니다. / 그 손 위에/ 다만 제 슬픔이/ 눈처럼쌓입니다. /주여 비로소 당신 손이/충만하여졌습니다. / 눈에 실린 상록수 가지처럼.// 저는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여 ! 모조리 증발하여버린/ 그 쓸쓸하고 허전함으로 하여/ 오히려 거룩하게 하옵소서./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빈 항아리처럼.//‥‥ //제 안에 엷은/갈증이 깔립니다. / 보라빛 어스름이 어리는/섣달 들판같이/ 비웃음 반, 뉘우침 반의/ 찬 강물을 건너서/ 주여. 당신 앞으로 갑니다. /차라리 더운 볼을 적셔/ 은혜로 삼게 하옵소서.
(박목월/ 祈禱四章)
닭 울음 소리로 울리는/새벽 모아 꿇을 때/하늘나라 분들도 일찍 일어나/ 옷 스치며,옷 스치며/ 기도하러 가는 소리 들린다//‥‥ 내 기도가 풀에 숨겨진/ 길 하나 겨우 찾아나설 때/ 말씀은 자일처럼 깊이 하늘에 던져져/ 튼튼한 끈을 타고 오르고
(김선영/ 새벽기도 풍경)
기도의 길,/ 꿈꾸는 길/ 사랑 하나 보듬은/그리움의 길
(김선영/ 붓)
하루의/ 짜여진 일들/ 차례로 악수해 보고/내 영혼과 / 나만의/ 기도시간/ 밤 이슥히/먼데서/오는 듯싶은// "주님 ! "/단지 이 한마디에 천지도 아득한 눈물,/ 날마다의 끝 순서에/ 이 눈물/ 예비하옵느니// 새해에도/그 다음 해에도/ 나는 이렇게만 살아지이다/깊은 밤에 / 눈물 한 주름을/ 주께 바치며/살아지이다.
(김남조/ 밤기도)
백 천만 만만 억겁/ 찬란한 빛살이 어깨에 내립니다. // 자꾸 더 나의 위에 압도하여 주십시오/ 이 리도 새도 없고, / 나무도 꽃도 없고, / 쨍쨍 영겁을 볕만 죄는 나 혼자의 광야에/온 몸을 벌거벗고/ 바위처럼 끓어/ 귀, 눈, 살, 터럭,/ 온 심혼 전 영(靈)이/ 너무도 뜨겁고 당신에게 닿습니다. / 너무도 당신은 가차히 오십니다. // 눈물이 더욱 더 맑게 하여 주십시오/땀방울이 더욱 더 진하게 해 주십시오./핏방울이 더욱 더 곱게 하여 주십시오.// 타오르는 목을 축여 물을 주시고, 피흘린 상처마다 만져 주시고,/ 기진한 숨을 다시 불어넣어 주시는,// 오오,/ 당신은 나의 힘/ 당신은 나의 주,/ 당신은 나의 생명, 당신은 나의 모두 ‥‥‥
(박두진/ 天禱)
무릎 꿇고 그는 기도하고 있었다/ 거칠게 맑은 수정 사이로부터/ 갈릴리 물고기 한 마리가 고요히 헤엄치고 있었다/ 군중과 예언으로 좁혀진 골짜기를 흘러/ 신약의 잔은/위기를 안은 늪에 떠있었다.
(다니가와 간/ 겟세마네의 밤)
낚시바늘이 하늘에서 드리웠어라/ 환상에 어린 황금빛 고기들/ 쓸쓸해서/ 쓸쓸해서/ 그 바늘을 삼켜라
(야마무라 보쵸오/ 기도)
눈 먼 상태에서 더듬어 찾지 말게 하시고/ 맑은 비전으로 언제 희망의 말을 할 수 있고/ 언제 좀더 유익한 원기를 더할 수 있는지/알 수 있게 하여 주소서.
(S.E. 키서/ 한 작은 기도)
여기 엎딘 나의 열원은/ 사랑에 녹아 흐르는 용암일지니/ 님은 정녕 깊이 되어 주시리라// 하늘과 땅 맞닿은 곳으로부터/ 내림하는 오호 저 신비는/ 그날, 님을 나타내는 구름 기둥이던가/ 인간의 대지를 다스리며/ 기슭을 타고/생수 토한 표징의 바위 맥을 짚으며/서운 빛다이 오신 구름 기둥이/ 내 기도의 지성소에 머물러라.
(김성영/ 구름기둥)
지난밤/ 우리네 남루한 허물을 벗기우고/ 새로이 심장에 내리꽂히는/ 새벽 기도여/ 가장 싱싱한 빛살의 칼끝이다//‥‥ 온몸은 사그라져 재로 날리고/ 남는 건 오직/ 뜨거운 눈물뿐/은총의 품안을 향하여/ 잠시도 쉬임없이 흐르는/ 새벽기도여/ 가장 순수한 눈물의 강줄기다.
(허형만/ 새벽기도)
글자 배우는/ 꼬맹이처럼/ 서툴은 내 기도 한 줄// 마음은 뜀박질인데/ 입술새로 나오는 기도는 / 더듬더듬 말 더듬이// 당신이 내게 주신/ 기도 한마디/ 은총인 줄 알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예배당 시계 추// 기도는/ 당신을 위해/ 내가 드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선물
(이영옥/ 기도)
신선한 아침 빛으로/ 얼굴을 씻듯이/ 기도의 빛으로/ 마음을 씻어내고// 날마다/ 또 날마다/ 정결한 모습 갖추어/ 주님을 바라보면/눈부신 영광으로/ 내리는 음성/ 부드러운 그 음성//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선아/ 음성)
아아 하나님/ 우린 당신의 참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손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긴긴 기도를/ 타는 불꽃되어 열렬하게 시작합니다.
(조순애/ 지금은 떠나야 하는 때)
기도는/ 소등성의 유황불처럼/ 세상의 언어를 / 불태우시다// 기도는 얼음처럼/ 세상의 언어를 결빙하시다// 기도는 모세의 지팡이처럼/ 멀리서/ 파아란 언어를 불러오시다/기도는 바울의 방언처럼/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주시다.
(최규창/ 기도와 말씀)
어느 날의 찬란한 빛발 속에서/ 다시 깨어나/ 영원을 호흡하는 기도이게 해 주십시오.
(최규철/ 아겔다마 頌)
나는 낡은 백지/ 주께서 더러운 먼지를 지우시고/ 원하시는 대로 적어 가소서// 나는 띠끌, 아니면 진흙/ 불면 날아가고 허물어버리면 무너지나/ 주께서 영광을 위해 빚어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배명식/ 기도)
그들은 모두 마호멧의 자손/ 이슬람의 식구/궁등이를 들고 머리를 조아려/ 중얼중얼 기도에 열중하고 있다.
(성기조/ 다란에서)
한낱 사람에의 내쉬임 없던 관여의 정을 옮겨 지금은 이 한 포기 어린 꽃나무를 향기롭디 향기롭게 가꾸게 하옵소서// 아침엔 정결한 햇빛과 향(向)을 잡아 주고 밤이면 혼곤한 어린 잠을 지키는 결곡하고 따스한 등불이 되게 하옵소서//‥‥// 구리를 갈아 거울을 이루는 값진 견딤과 기다림의 길을 돌아 시간을 돌아 지금은 환히 내 얼굴을 비쳐보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왔고 다시는 아무 데도 떠나지 않을 내 종착의 자리 매양 외곬으로만 모이는 기찬 바라옴으로 여기 서 있는 기도의 문이 되게 하옵소서.
(김남조/ 祈禱의 門)
기도보다/ 사람을/ 더욱 부요하게 하는/ 열쇠는 없노라.
(임춘남/ 성경)
내가 숲이기 이전/숲을 먼저 동경한 하나님/ 가장 낮게 내려 앉은 나를/ 가장 꼭대기 소나무 위에서/ 손짓하시고/ 소나무는 나를 위해 울고/ 바람이 멎는 기도원
(최명희/ 첫날의 기도원)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꽃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이해인/ 민들레의 영토)
솔로몬 왕의 당부를 못잊어/ 검은 옷을 입고/ 하느님이 앉을 자리/ 둥근 모자를 정수리에 얹고/ 귀밑머리를 길렀다// 하늘의 영광/ 땅의 평화/ 머리를 조아리고/ 고개를 아래 위로 흔드는/ 기도는 먹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성기조/ 통곡의 벽)
밤에 묻어 길게 따라오는/어제의 일상/그 너덜한 아픔들이 얽혀/ 끈적이는 이불을 개고/하루를 열어 주신이에게/아침때의 재잘거림을 드립니다.
(황국명/ 아침 기도)
언 논배미/ 상채기 난 이랑마다/ 들불을 놓고/ 밟혀지기만을 기다리는 / 청보리/ 아픔으로만 떨던 찬바람 속에/ 빼앗긴 지난 겨울은/ 가슴 밑바닥 어둠을 뚫고/ 한가닥 당신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얼어버린 꿈/ 뻐꾸기 울음만 애가 타다/ 재가 되는 밭언덕엔/사랑의 움들이/ 눈을 뜨지 못한 채/ 지금 기도를 올리고 있다.
(유화은/봄을 위한 기도)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 날마다 그 매출한 졸가리 옆에 가서/ 기쁜 마음으로 한번씩 매만져 주면/ 빨간 꽃송이는 맺히리니/그것은 당신의 영혼으로 알겠습니다. // 한밤 포근히 좋은 꿈 꾸고 난 아침/ 파란 잎은 돋아나리니/ 그것은 당신이 준 생명으로 알겠습니다. //내 마음 깊이 뿌리 박히여/낙락히 뻗어 나간 우람한 가지 끝/한가히 뒷짐 지고 학의 둥주리를 쳐다보는 날./ 비와 바람과 별과 태양과/ 아 나는 그때사/ 창창한 당신의 뜻을 은혜로 알고 살겠습니다.
(박지원/ 기도)
수많은 영혼들이 뒤엉켜 울부짖을 때 기도란 하느님의 왕좌로 가는 길을 열어 주는 마음의 노래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기도는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일 수 없다. 기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해 주소서./ 당신에게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절망하게 하소서./미친 듯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할게 하소서./ 모든 치욕을 맛보게 하소서./ 제 자신을 지탱하기를 돕지 마시고/ 제가 뻗어 나가는 것을 돕지 마소서./ 하나 저의 온 자아가 이지러질 때/그때에는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보내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가는 고뇌를 보내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어가고 싶습니다만/ 저는 오직 당신 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세/ 기도)
주여, 제가 당신께 아뢰기 전에/ 제 마음을 고요 속에 잔잔케 하소서./ 주여, 제 마음이 당신의 임재 속에서/ 포근해지고 제 게 평화가/ 깃들게 하소서./ 주여, 고요와 평온과 평화가/ 당신을 위해 저를 준비케 하소서./주여, 제가 당신의 경청을 구할 때/ 저의 마음이 평안케 하소서.
(반디 무어/ 기도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
기도란 진정 무엇인가. 생명의 하늘 속에 그대들 스스로를 활짝 펴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안락을 위해 허공에 그대들의 어둠을 쏟아 버림은 또한 기쁨을 위해 그대들 가슴의 새벽 빛을 쏟아 내는 것./ 그리하여 영혼이 그대들을 기도에로 부를 때 그대들 울지 않을 수 없다면 기도는 다시, 비록 울고 있을지라도 또다시 그대들을 격려하리라. 기적이 웃음에 이를 때까지./ 기도할 때면 그대들은, 바로 그 시간에 기도하고 있는 무수한 이들을 만나기 위해 허공에 일어서야 한다. 기도 속에서가 아니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이들들 위하여./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사원으로의 그대들의 방문을, 황홀과 달콤한 영교(靈交)를 위함 외엔 아무 뜻도 없이 하라./ 왜냐하면 그대들 비록 구하는 것 외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들어간다 해도 그대들은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기에./ 또한 다만 겸양하고자 들어간다 해도 그대들 결코 구원될 수 없을 것이기에/ 또는 그대들 심지어 타인의 행복을 빌기 위해 들어간다 해도 그대들의 기도는 들어지지 않으리라./ 보이지 않는 사원으로 들어감, 그것으로 충분할 뿐./ 내 그대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어떤 말로써 기도해야 할 지를./ 신은 결코 그대들의 말을 듣지 않으시는 법, 다만 그분 스스로 그대들의 입술을 시켜 말씀하실 뿐./그러므로 내 그대들에게 가르칠 수 없다, 무수한 바다와 숲과 산의 기도를./ 다만 그대들이, 산과 숲과 바다에서 태어난 그대들만이 가슴속에서 그들의 기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을./ 그리하여 만약 그대들 한밤중의 고요에 귀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대들은 침묵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되리라./저희의 신이여, 날개 달린 저희의 자아여, 명하는 것은 저희 속의 당신의 뜻이 명하는 것이옵니다. / 욕망함은 저희 속의 당신의 욕망이옵니다. / 당신의 것인 저희의 밤을 역시 당신의 것인 낮으로 변하게 하는 것, 그것도 저희 속의 당신의 강한 충동이옵니다./ 저희는 당신에 게 아무것도 청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속에 욕구가 생기기 전에 당신은 이미 알고 계시기에./ 저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 스스로를 더욱 주심으로써 당신은 저희에게 일체를 주시옵니다.
(K. 지브란/ 예언자)
웬일이냐/ 요즘은/ 눈물이 자주 난다/ 실없이 짧은 기도에도/ 눈물강 이루니
(허형만/ 눈물이 자주 난다)
기도하지 않는 날 밤/ 나는 어둠이 무겁다/ 새벽으로 돌아눕는/ 내 등이 시리고/ 추운 몸으로 받는/ 공간이 무겁다. // 기도하지 않는 아침/ 나는 두 발이 무겁다/ 비틀거리는 걸음/ 비틀거리는 마음/ 대낮이 어두워/ 햇볕 아래서 길을 더듬다.
(신달자/ 자전)
눈 오는 밤에는/ 기도하고 싶습니다. / 당신께 드리는/ 내 편지의 온갖 얘기
(유안진/ 눈오는 밤의 기도)
그분은/ 산처럼/ 그분은/ 바다처럼/그분은/하늘만큼/ 비어 있기에/ 가득한 우리들/ 피는/산처럼/ 피는/ 바다처럼/ 피는/ 하늘만큼/ 넘치기에/ 부족한 우리들/ 홀로/ 자라지도/ 홀로/ 채우지도 못해/ 매달린/ 당신을 껴안습니다. / 손짓해 주소서
(황도제/ 우리의 기도)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삶은 기도이어라./하늘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다시 비추어보고/별에게 비추어보고 또 비추어보고/ 사람에게 비추어보고 사람에게 비추어보고/ 잎 다 떨어진 나무처럼 홀로 될 때/마지막 제 영혼에 비추어보는 기도이어라.
(이성선/ 기도)
소녀는 향불이다. / 향불이다. / 향목이 타듯이 타고 있다. / 소녀의 기도는 파란 빛깔/ 모두 잠들어자는 이 밤에/ 소녀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 향연이 다 오르고 나면/ 남은 것은 재뿐이다. / 소녀는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다.
(황금찬/ 소녀의 기도)
설 교 노 트
교회와 기도
마18:15-20
서론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얼마나 큰 특권을 주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18-20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 중요한 원칙이 몇가지 있습니다.
1. 땅이 하늘을 지배하는 원칙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를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움직임은 땅의 움직임에 의해서 결정되고 지배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매거나 풀거나 하는 것이 하늘에서 먼저 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땅에서의 행위가 하늘에까지 미치는 것은 땅이 하늘을 지배하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하고 싶어도 사람이 원치 않으면 안된다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교회를 통하여 이룩하는데 교회가 가만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안 나타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강하고 능력있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의 조화
하나님은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을 창조하신 이후 하나님은 독자적으로 하실 자유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도 자유 의지를 가지셨고 인간도 자유 의지를 가졌으므로 이 두 의지가 조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제한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로 인해서 인간을 만드신 이후에 오늘날까지 제한을 받아오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날부터 오늘날까지 사람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권위를 수락할 수도 있고 방해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장차는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일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교회는 장차 천국에 들어갈 영원한 세계의 사람을 대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행위는 전부 교회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뜻과 인간의 뜻이 조화되어야 행하시고 거기에 영광을 받으십니다.
3. 세 가지 원리
교회는 설교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또 하나의 일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에 있는 뜻을 땅으로 끌어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끌어내리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그 원리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뜻을 선포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그것을 존중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아무것도 행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폭을 넓혀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많은 기도를 드리면 많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큰 역사를 이룩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가 무관심하거나 버리면 버림받고 교회가 심판하면 심판을 받습니다. 땅에 있는 교회에서 하는 대로 하늘에서도 행하십니다.
(2) 성령 안에서 일치
하나님께서 교회가 구하는 것을 다 시행하시되 땅에서 합심해서 일치하는 마음으로 구할 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일치하는 마음은 성령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교회가 마음을 같이 하여 합심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일치, 뜻의 조화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3) 함께 모이는 것
자주 모이고 기도할 때에 그곳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모이고, 주 예수 이름으로 모이고, 주의 영광을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결론
교회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주고,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서 명령을 하면서 구하면 그것이 다 이루어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잘하는 교회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깨닫는 사람은 사업에도, 개인 생활에도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합심하여 담대하게 교회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자
롬12:9-13
서론
본문은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권고하신 말씀으로, 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기도에 항상 힘쓰라는 데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에 참는 비결은 오직 영적 생활에 호흡이 되는 기도에 있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는 사람은 성도들의 궁핍함을 보고 그대로 묵과하지 않고 돕기를 힘쓰게 되며, 나그네를 동정하므로 선대하고 남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만능입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에 등한히 하며, 기도에 힘쓰지 못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항상 기도하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기도하지 않는 것은 큰 죄가 됩니다.
사무엘 선지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일반 신자들은 살인이나 강도, 도적질, 시기, 질투, 거짓 등만 죄로 생각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여 기도를 등한히 여기게 되고 기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으며, 기도하되 힘써 기도해야 됩니다.
2.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공관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에서 온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실 때 특별히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셔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려 기도하시되 피와 땀과 눈물의 세 액체를 전부
쏟으시며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가시니 그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주님 깨서는 베드로에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고 잠만 자던 제자들은 주님을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기도를 등한히 하면 신앙이 점점 약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또 심령상 죄악을 중대시하지 않고 육적 생활에 무서운 죄만 근근히 회피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간신히 신자 이름이나 유지하면서 바리새인이 되어갑니다. 그러다가 무서운 환난이나 핍박, 시험을 당하면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와 여러 제자들의 경우에서 보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신 주님의 음성을 시간시간, 아니 시시각각으로 들으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120명 문도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 500명 문도가 보는 가운데서 그들에게 최후 유언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명심하고 예루살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사람은 500명 문도 중 120명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힘써 기도하는 중에 오순절날(행2:1)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복음의 투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120명 문도 중의 한 사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기도의 대열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어 힘써 기도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힘써 기도합시다. 나의 심령에 기도의 불이 붙을 때 봉사의 불도 전도의 불도 사랑의 불도 붙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되 사무엘 선지처럼 기도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않도록 합시다.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신 주님의 음성을 시시각각으로 들으면서 120명 문도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힘써 기도하여 날마다 은혜 넘치는 생활로서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 가지 참된 기원
잠30:7-9
서론
본문은 인생의 황혼기에 처한 종교 철인이 자기의 허무했던 과거를 뜻깊게 회상하면서 남아 있는 여생이나마 알차고도 참된 삶을 살고 싶은 심각하고도 비장한 심정으로 독백을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에게 참된 기도의 방법을 명시해 주었으니 이 두 가지 기원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 소원의 차원이 고상하냐, 저급하냐, 참되냐, 무가치하냐에 따라 그 인격과 생의 보람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가 생전에 간구한 이 겸손한 기원은 무엇입니까?
1.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라고 했습니다.
'허탄'이라는 말은 속 마음이 정직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며, 거짓말을 멀리하는 것은 언어가 진실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웃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고 자기 자신마저 스스로 기만하는 때가 있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에는 가책됨이 없이 깨끗하고 언어 행동에는 흠이 없는 생활하기를 기원한 것이니 목적이 분명한 중언 부언하지 않은 모범적 기도라 하겠습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17)"고 하였습니다.
이 불신 사회 속에서 서로 속이지 않고 사랑하면서 피차 존경하고 상부 상조하여 살아간다면 얼마나 살기 좋은 행복한 사회가 되겠습니까?
전도자의 이 기도야말로 허위가 진실인 체, 가짜가 진짜인 양, 악이 선한 체하고 불의가 정의를 짓밟는 이 모순과 전도된 시대에 처해 사는 우리로서 날마다 드려야 할 기도가 아닐 수 없는 귀중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소외된 인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상실한 인간들이 사는 시대는 불안하고 공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금단의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손 불순종 불신앙인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는 허탄과 허위를 내게서 멀리 하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2. 자족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나로 하여금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제가 배가 불러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너무 가난하여 남을 속이고 도적질하여 내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 멀리 하옵소서" 한 첫 번 기도는 정신 생활에 관한 소원이라면 "가난하게도 너무 부하게도 마옵소서 " 한 이 구절은 물질 즉, 경제 생활에 관련된 기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면서도 궁극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욕 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하는 기도입니다. 이 분수를 지킬 줄 아는 기도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쓸 줄 아는 자족하면서 겸손히 감사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성도들이 빈부간에 피차에 간구해야 할 생활 신조라고 믿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나 인간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 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나로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옵시며 오직 필요함으로 채워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함
엡3:14-21
서론
우리는 기도할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이 아버지 되시기에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어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역대하 6장 13절에 보면 솔로몬 왕도 화려하게 지은 성전을 봉헌할 때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무릎을 끓고 기도한 내용을 찾아, 우리의 기도 제목을 찾으며, 은혜받으려고 합니다.
1. 성령으로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진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바했습니다. 성령만이 속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며, 구원의 확증이 있습니다. 한 번 성령으로 거듭난 심령은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으로만 성별과 인침의 역사가 있으며, 성령으로만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며 인도하십니다. 또 속사람이 병든 자는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능력을 힘입어야 살 수 있고 강건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이 병들면 모든 사물의 관찰력이 병들어 이성마저 병들고 맙니다.
2.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뿌리가 박힌다"는 말은 나무를 두고 한 말이고, "터가 굳어진다"는 말은 집을 두고 한 말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든든히 서고, 터가 굳어진 데 세워둔 집처럼 견고히 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뿌리를 깊이 박으면 세찬 바람이 불더라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더욱 굳세게 서 있습니다.
3.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달라고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이 말씀은 그 백성을 향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좀더 분명히 이해하고 확고하게 믿게 되기를 바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알고 믿으면 더욱 더 잘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모르면 내 마음에 들 때는 좋고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주님을 멀리 하게 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을 아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크신 사랑을 알게 해 주셔서 어떤 환경과 처지에 이른다고 해도 행복하게 감사하며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이 충만한 것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하신 분이십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안겨 주십니다. 충만히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어느 때는 후히 주시는 하나님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5장 18절에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병들이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우리의 영적 키가 자라는 것입니다.
결론
성령으로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위하여 무릎 끓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지식이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충만한 것으로 충만케 되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요16:23-24
서론
이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당해보지 아니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고통을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찢기고 할퀸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어떠한 형태의 상처로 남든지 간에 한 번 새겨진 상처의 흔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아니합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게도 인간의 언어로써 온전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상처'가 있습니다.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상처를 바라볼 때 우리는 끝없이 악한 인간의 죄성을 통감하며 결국 주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든지 '상처'가 주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상처입은 제자들
본문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수심에 가득찬 얼굴로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스승을 죽음의 자리에 내주어야 하는 슬픔과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키워 온 모든 기대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허탈감은 크기만 했을 것입니다. 또 그 당시 그들을 향해 적의에 불타는 핍박의 세력이 커다란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오는 시점에서 제자들은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위로하시면서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든지 구하는 기도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자에게 더없이 좋은 최상의 기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 "무엇이든지"에 담긴 위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기도는 엄밀히 말하면 기도의 원칙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기도는 정욕적으로 구하는 내용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권하고 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바른 대답은 이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위로가 "무엇이든지"라는 말 속에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상처 입은 자가가장 원하는 기도는 무엇일까요?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털어 놓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기도입니다. 예수님이 상심한 제자들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신 의도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이 '자유'를 가진 기도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서두나 논리도 없이 마음속에 있는 것을 쏟아 놓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구하라"에 담긴 놀라운 위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위임받으셨기 때문에 간청하실 필요가 전혀 없으신 분이 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어떠합니까? 어린 자녀가 아버지께 떼를 쓰듯이 간청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입니다. 더욱이 기도의 절차를 따지지 못하고 하나님께 매달리지 아니할 수 없는 곤경을 자주 체험하는 현대인입니다. 절박할 때는 오직 염치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해야 하는 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상처입은 우리에게 놀라운 자유를 주셨습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은 기도 내용의 '자유'를 의미하며, "구하라"는 말은 '기도하는 행동의 자유'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내용의 제재를 가하거나 행동에 속박을 가하시기를 원치 않으시는 놀라운 자비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날마다 웃고만 살 수 없는 상처투성이 인생임을 부정할 수 업습니다.
지금이야말로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상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려 구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답답할 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외면하는 것은 죄 중의 죄이며 교만 중의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안한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병들고 상처 입은 영혼들을 위하여, 미성숙한 나 자신을 위하여 이미 응답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확신 속에서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합시다.
기도의 용기
눅11:5-13
서론
본문 9절 말씀에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응답을 받은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님께서는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1. 기도의 동기
응답받는 기도는 그 동기가 다 순수하고 좋아야 합니다. 구할 때는 꼭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꼭 필요한 것을 구해야지 허영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것을 구해도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꼭 필요한 것이면 담대히 간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혹은 사랑의 동기에서 하는 기도라야 합니다. 그러한 기도는 힘이 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겉으로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것같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하는 것 같은데 그 중심이 탐욕과 정욕으로 꽉 차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가장 좋은 동기는 먼저 자신의 무력함과 부족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력함과 절망을 깨닫는 것이 훌륭한 기도이기 때문에 그것이 곧 은혜요, 축복입니다. 무력함이 기도의 본질입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절망에 사로잡히는 순간이 강한 기도의 동기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절망하지 않고 참 평안의 생활을 하는 비결은 자기의 무력함을 항상 절감하고 무슨 일이 잘되고 성공할 때에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나는 절망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생활입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난관에 봉착해도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면 된다는 확신을 가질 때 늘 평안한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자기의 약함과 무력함을 깨닫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몸에 가시가 있는데 세 번이나 기도했는 데도 제거해 주시지 않은것은 인간이 약하고 무능함을 느낄 때에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기 때문에 바울을 가시로 끊임없이 자극시켜 언제나 자신의 무력함에 사로잡히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에 대하여 절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2. 기도의 용기
기도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사람은 한편으로 자기의 무력함을 깊이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에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악한 인간들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아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지 않겠으며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성령 충만받는 비결이며 기도는 능력의 비결이며 교회 부흥의 비결입니다.
결론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기도하고 오래 기도하고 강력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가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마귀는 기도를 못하게 하려고 계속하여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도 많은 기도를 하여서 하늘문이 열리고 응답받는 축복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박국의 기원
합3:1-15
서론
선지자 하박국은 요시아 시대의 예언자로서 그 이름은 포옹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기 동족을 안고 기도하는 동시에 민족적인 타락의 책임을 절감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앞에 엎드려 신, 인간의 중보적 탄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박국은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 앞에 탄원하는 기원을 하였습니다.
1. 기원의 중심 내용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 "라고 했는데 수년 내라는 뜻은 나이의 중앙을 가리키는 뜻입니다. 중앙은 사람의 중년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중년에 쇠망하지 말고 좋은 끝을 보게 하여 달라는 기원입니다. 유대민족이 메시아 오시는 것을 보기까지 그 역사의 중도에 쇠망치 않도록 흥왕하는 민족이 되게 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여기 부흥케 하여 달라는 것은 생명 있게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면서 내리신 권능과 은혜로 부흥케 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 운동을 재연시키시는 것으로 주님의 재림시까지 되어야 합니다. 중도에 중단되어서는 안됩니다. 주의 일을 부흥시키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우리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심령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전부를 하나님의 생명과 그의 질서에 맡겨서 생명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부흥을 간구해야 하는데 그 민족적인 부흥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 즉 교회의 일을 부흥케 해야 합니다. 교회가 잘 되어야 민족이 살고, 가정이 살고, 개인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기원 성취의 방법
(1) 적기에
수년 내는 중앙이니 적당한 때입니다. 너무 일찍이 부흥을 주셔도 사람이 자기를 믿는 마음이 남아 있어 교만해 질 염려가 있고, 너무 늦게 주시면 사람들이 모두가 해이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과 그 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부흥을 위해 기도하면 적기에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때를 더 잘 아신고로 적기에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의 긍휼
진노 중에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근거해서 기원 내용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유대 민족을 말하는 중에도 불쌍히 여겨 다시 구원해 달라는 기원입니다.
생명 있는 운동은 하나님의 긍휼이 움직일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곳에 우리에게는 소망의 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부흥 운동은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고 부르짖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오심이 부흥이요, 하나님의 임재가 부흥의 길이요, 하나님을 말하게 됨이 생명운동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요,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시는 곳마다 생명운동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우리 중에 오셨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오심이 생명의 시작이요, 부흥 운동입니다.
니느웨는 하나님이 떠났으나 회개할 때 하나님이 돌이켜 그 성을 구원했습니다. 모든 생명 운동, 부흥 운동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오심에 있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하박국의 기원이 상달되어 부흥운동이 일어나니 찬송과 그 영광이 하늘을 덮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부흥의 결과는 흑암에서 광명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빌1:9-11
서론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내용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되어야지, 위해서 기도해 준다고 하는 기도자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말을 전달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이기도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향해 비는 주님의 대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기도했는지, 나아가 주님은 우리를 향해 어떻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1. 너희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어지기를 기도한다고 했습니다(9-10절).
이 기도 속에는 두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이 풍성하게 되어질 것과 아울러 지식 총명이 겸전하여 더 풍성하게 되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본문에 쓰여진 사랑이라는 용어는 헬라어로서 '아가페'라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을 가질 뿐만 아니라 교인과 교인끼리의 상대적인 것도 같이 포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절대적 사랑을 가질 뿐만 아니라 성도끼리 서로 사랑함이 없이는 우리가 주님을 뵈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 이제는 불신자들까지도 사랑이라고 답변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모든 성도가 이 사랑을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어지기를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2.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했습니다(10 절).
우리는 진실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습니다. 시편 51편 6절에서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라고 했으니 이 진실은 하나님과 관련을 맺고 있는 성도에게는 떼놓을 수 없는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에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 깨끗한 세마포를 입도록 요구받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세마포는 옳은 행실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를 수 있게 되어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우리는 분명히 압니다. 그 방법은 우리의 처해져 있는 환경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를 해 나간다고 할지라도 거기에서 우리가 분명한 삶의 표준을 세우고 자신이 행하여야 할 바를 분별하며 이 세대 중에서 자기를 지키는 길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서 허물없이 진실된 모습으로 서게 되는 것은 얼마나 귀한일인지 모릅니다.
바울은 그의 또 다른 하나의 서신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 기를 원하노라(살전3:13) "고 밝혔고, 베드로 또한 그의 서신 중에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시 기를 힘쓰라(벧후3:1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녕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게 되어지는 것을 생각하는 성도라면 이렇게 허물없이 서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는 것은 가장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어지기를 기도한다고 했습니다(11절).
성경은 우리에게 거듭하여 당부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1) 이유를 살펴보자면, 요한복음4장 36절에,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으니 열매 맺는 일이야말로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 열매를 맺지 못할 때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그러합니다. 마태복음 3장10절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했습니다.
(3) 그리고 열매 맺는 것은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1장 4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결론
여러분들도 이렇게 되어지기를 기도합시다. 사랑과 지식이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원하고계시는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를 수 있게 되어지기를 원하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어지는 삶이 되어지기를 원하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함으로써 여러분의 생애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시다.
끈질긴 기도의 승리
눅18:1-8
서론
본문에 보면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가서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간청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갔는데 재판관에게 냉대를 받고 거절을 당했으나 계속 찾아가서 끈질기게 애원하였습니다.
이 재판관은 위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하도 끈질기게 찾아가니까 귀찮아서 들어주었다고 했습니다.
1. 문제의 해결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과부가 끈질기게 간청하여 해결을 본 것 같이 우리의 원한이나, 억울함,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뿐이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 여자는 남편도 죽고 권세도, 배경도 없는 나약한 과부입니다. 오직 이 문제 해결자 되는 재판관에게 끈질지게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이 과부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과부와 같습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할 곳이 없고 하소연 할 데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 외에 의지하거나 하소연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문제를 아뢰어서 해결해야지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서는 안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실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응답받는 기도의 자세는 자기의 부족과 결핍과 나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2. 끈질긴 기도가 승리합니다.
본문 1절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해서 예수님은 이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기도하다가 쉽게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을 잘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끈질기게 좌절하지 말고 계속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과부는 거절당하고, 냉대를 받고, 멸시를 받아도 끈질기게 매달렸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끈질겨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이렇게 끈질긴 기도를 올려야 응답받는다 너희 부모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왜 너희가 끈덕지게 기도하면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정반대의 현상이 생기면서 응답이 안오는 것 같아도 끈질기게 기도하면 시험이 큰 만큼 큰 축복과 응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야말로 문제 해결의 열쇠요, 능력의 원천입니다. 누가 말하기를 "기독교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의 역사다. "고 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왔고, 기도하는 교회가 부흥되어 왔습니다. 역사를 지배하고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 안하는 한 민족보다 강합니다. 기도는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강력한 무기입니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온 밤을 새워 가며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도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결론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는 부모들보다 더 좋은 국민은 없습니다. 기도는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정력을 필요로 합니다.
사탄은 가장 연약한 그리스도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볼 때 떨게 됩니다. 기도는 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자체가 바로 더 위대한 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위한 우리의 더 높은 위력의 행사입니다. 기도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의 열쇠는 오직 기도밖에 없으니 날마다 기도하여 승리하는 생활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와 영상
막11:20-25
서론
본문을 통해서 기도와 영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 자신도 기도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까지 권면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 신령한 생활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생활을 하려면 무엇보다 나에게서 기도가 떠나지 않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 생활에 항상 신경을 쓰고 전력을 다해야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음의 기도를 드리고 응답받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에는 불타는 소원,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그 기도가 믿음의 기도가 되고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2절에도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분명하게 약속을 해 주셨고,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아야 그것이 귀한 줄 알고 감사하게 되는 것이지, 너무 쉽게 응답을 받으면 감사할 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2. 영상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영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서 드리는 기도가 빨리 응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 기도한 후에는 그 목적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마음속에 그 영상을 그리십시오. 그러면 언젠가는 그 영상이 실상으로 나타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어떤 목적을 위해서 기도를 했으면 그 즉시로 다 이루어진 것 같이 마음속에 그대로 믿어 버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하게 될 때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이 이루어지려면 자나깨나 항상 마음속에 잊어버리지 않게 그려가면서 애타게 소원해야 그 소원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영상을 가지는 데는 두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1) 구체적인 영상을 가져야 합니다.
즉 막연하게 믿지 말고 구체적인 믿음을 가지고 구하라는 말입니다.
(2) 긍정적인 영상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부정적으로 되고 맙니다. 마음속에 혹 나쁘게 될 것이나망한게 될 것을 믿으면 그것도 하나의 믿음인고로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낙관적으로 좋게 생각하고 성공적인 꿈을 그리면서 나가게 되면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결론
영상이 없으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불타는 소원과 긍정적인 환상과 꿈을 가지고 영상을 그리며 기도하여 모든 일에 응답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에 기도한 여자라
삼상1:26
서론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는 원래 자식이 없어서 항상 슬프고 마음이 괴로운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여서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는 어떠한 여자였는지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1. 자식이 없어서 번민하던 여자였습니다.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에게 아내가 둘이 있는데 한나와 브닌나였습니다. 엘가나는 두 아내 중에 한나를 더 사랑하였지만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고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브닌나는 자식이 없는 한나를 심히 멸시하고 조롱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나는 심히 번민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도 슬프고 힘이 드는데 브닌나의 멸시를 받게 되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는 모욕이었으며 참을 수 없는 수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식이 없다는 것 즉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도 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더 심한 번민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남편 엘가나의 사랑과 위로도 그 번민하는 마음을 달래주지 못하였습니다.
2. 악한 여자로 오해받았습니다.
한나는 계속해서 자신의 자식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전에 나가 기도하고 통곡하며 시원하였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기도에 도취되었는지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제사장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것으로 오해하고 한나에게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한나는 그런 오해를 받은 것이 매우 억울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말하기를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 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라고 변호하였습니다.
선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악한 행동으로 오해받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님을 해명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3.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한나는 기도의 응답을 받아 아들을 낳아서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젖을 뗀 후에 사무엘을 데리고 엘리 제사장에게 가서 말하기를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고 하며 그 아들을 여호와께 서원한대로 여호와께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서원 기도한 일은 반드시 그 기도의 서원대로 시행하여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아들을 바치기로 서약하고 기도해서 얻은 아들이니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도록 참으로 헌신케 해야 옳은 것입니다.
한나는 자기가 기도한대로 하나님께 약속을 지켰습니다.
결론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는 여호와의 응답을 결국 받았습니다.
우리도 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한나와 같이 절실하게 다른 사람에게 술에 취한 것 같다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축복을 받도록 각자의 신앙생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기도할 뿐이라
시109:4
서론
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보수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본편은 다 윗의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까?
1.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의 역사를 자신의 거룩하신 예정 속에서 섭리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 역사가 흘러가고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국가의 흥망 성쇠와 개인의 생사 화복까지 주장하시고 계시며 모든 인생의 언행 심사를 따라 선을 상주시고 악을 벌하십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다윗과 같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대적들이 자기를 포위하고 있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의 무고한 저주를 한몸에 다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 어려운 난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다윗에게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여 약속을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서 기도할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그리고 대적들에게 포위당하여 있을지라도 사람을 붙잡고 하소연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의 무기인 것입니다.
3.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는 선인을 대적하는 원수들은 마땅히 대적하고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원은 원수들을 위하여 할 일은 기도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장 19-21절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 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매에 그들의 마음이 녹아지고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묵묵히 기도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언제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또한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그들의 마음이 물처럼 녹아지고 친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기도 이상의 묘약이 없고 기도처럼 위대한 것이 없으며 기도하면 모든 일이 다 형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기도할 것뿐입니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하라
시105:3-4
서론
본문에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세 가지 구하라고 했는데 여호와를 구하고, 그 능력을 구하고, 그 얼굴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구한다는 뜻은 그를 바라고 원한다는 뜻입니다.
1. 여호와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인간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은 쉬운 일이든지 어려운 일이든지 어떤 이유를 붙이지 말고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지배하시는 일들을 역사를 통하여 주시해야 합니다. 또한 그의 계시에 의하여 성취되어 나가는 일들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을 구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하고도 신비로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구해야 합니다. 그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면 인간은 과오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씀과 행사의 계시로 우리가 할 일을 바로 알아서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2. 그 능력을 구합니다.
주님은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하여서 그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역대상 16장 11절에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18장 46절에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에서 달려 갔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능력을 구하여 얻은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목상의 거짓 선자자들에게 승리하는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만 의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면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싸우시는 것이므로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그 능력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3. 그의 얼굴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소망과 힘은 그 아버지, 어머니의 온화한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앙망함으로 가장 큰 기쁨이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27편 8절에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얼굴만 구하여 보아도 만족한 생활이되며 가장 큰 기쁨이 됩니다. 나약한 자에게 힘을, 마음 상한 자에게 위로를, 불안한 자에게안정을, 방황하는 자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시므로 그 얼굴을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보게 됩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을 구하고, 그 능력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언제나 구하는 자는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주시 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와 같이, 엘리사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시88:1
서론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성도도 있습니다.
본문은 시종 일관 괴로움과 어두움에 싸여서 애절하고 비참하게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는 어느 때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1. 고난을 당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하였으니 고난당하는 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평안할 때에도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닥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고난을 당한 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의 문제 해결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일이요, 이 일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권세 있는 자를 의지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성도로서 잘못된 자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되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긍휼하심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2. 주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드리는 기도는 한 두 번 해 보다가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13절에도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말하리 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주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아침에도 밤에도 기도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계속적인 간절한 기도입니다.
"항상 기도하여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죽을 지경에 빠진 자가 자신의 입장을 살펴보면 기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등한히 하지 못합니다. 그 기도가 달성되지 못하면 자신은 멸망할 것이므로 필사적인 기도로 목적을 달성해야만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기도할 때에 주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부르짖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그저 보통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이 터지도록 큰소리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간절하고 참된 기도는 부르짖는 대로 응답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신 분이시며,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자식의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그 필요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아무리 아비된 자가 악할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만은 좋은 것을 주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이 넘치시는 분이신데 부르짖는 자녀의 음성을 외면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결론
우리가 기도할 때는 응답받기 까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애 절하고도 간절히 하는 기도를 하나님 깨서는 마침6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을 때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또 아무런 감정도 없는 기도가 아니라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니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친구를 위한 기도
욥42:10
서론
욥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경건함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고 악한 일을 행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자녀들이 범죄하지 않도록 늘 기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재난을 당하였을 때에도 원망보다는 기도를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을 비웃고 조롱하였지만 그 친구들을 위하여도 기도하였습니다.
1. 남을 위한 기도는 귀한 기도입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대부분은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의 어떤 소원과 간구를 달성하기 위하여 열렬하게 기도하는데 이것도 귀한 기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고상한 기도는 남을 위한 기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는 언제나 이기적인 입장에서 드리는 기도이며 또 개인주의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한 기도는 상대방을 생각하면서 타인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사랑이 넘쳐흐르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듯이 남을 위한 기도는 매우 귀한 것입니다. 성도된 자들은 자신만 위하여 기도할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벗을 위한 기도는 더욱 귀합니다.
남을 위하여 하는 기도는 그 대상이 많지만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하는 기도는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는 자는 드뭅니다. 그렇게 참된 친구를 가졌다는 것은 매우 축복받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 중에서도 밤중에 찾아온 벗을 위하여 이웃이 사는 벗에게 가서 떡 세 덩이를 빌리는 이야기를 말씀하시면서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눅11:5-8).
용에게는 세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데만 사람 앨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인데 그들은 욥이 당한 재난을 듣고서 욥을 위로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욥이 당한 불행이 너무 컸기 때문에 욥이 범죄를 한 것으로 오해하고 용을 비난하고 공격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이 처음에 욥을 찾아온 목적은 욥을 위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욥이 자신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며 그 기도는 더욱 귀중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 명하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 엘리바스에게 속죄번제를 명령하시면서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기도 제목이니 또 얼마나 귀한 기도입니까? 원수를 위하여도 기도해야 하는데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시니 기쁨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친구가 아닌 친구요, 원수가 아니 원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벗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을 거역하지 않고 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기쁘시게 받으셨으므로 욥도 기뻐하며 감사하였을 것이고, 기도의 제목이 되었던 그의 친구들도 기뻐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기도를 잘 감당하였을 때 기쁨이 넘치며 감사가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욥은 참으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비난한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자신을 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욥은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대로 전심전력을 다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욥이 벗들을 위하여 기도하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용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자의 자세
대하6:13
서론
본문은 솔로몬 왕이 성전 봉헌을 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놋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참으로 진지하고 경건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하는 자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1.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세에 대해 여러 가지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마26:39)"라고 하였고 "몸을 굽혀 경배하며(시95:6)라고 하였고 "서서 기도할 때(막11:25)"라고 하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막6:41)"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는 여러 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엎드려서도 하고, 굽혀서도 하고,서서하기도 하고, 하늘을 우러러보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하기도 합니다. 그 어떤 자세가 더 옳은 자세이고, 어떤 자세가 나쁜 자세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무릎을 꿇고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2.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시5:2, 마4:10), 그리스도(눅23:42), 성령(살후3:5) 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곧 삼위 일체되시는 하나님 이 십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어디든지 계시지만 하늘에 계시다고 믿습니다.
기도하는 자가 하늘을 향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참된 우리의 기도의 대상자이십니다. 그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실 수 있는 신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데를 향하여 기도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 또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분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3. 손을 펴고 기도하였습니다.
시편 28편 2절에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도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애2:19)"라고 하였고,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사1:15)"라고 하여 기도할 때에 손을 펴고 기도한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손을 들거나 손을 편 것의 뜻은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습을 말하며 호소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태도와 마음으로 당신 앞에 나와 기도하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결론
우리는 솔로몬이 많은 회중 앞에서 대표하여 드린 기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회중을 대표하여 기도할 때에 경솔하게 드리거나 미사 여구만 늘어놓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드리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 경건한 자세와 태도로서 그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이어야 합니다.
솔로몬은 전체를 대표하였으므로 그 책임이 더욱 중대하였기에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
@능력 있는 기도
약5:13-20
서론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 영적 생활의 호흡인 동시에 유일의 무기로서 이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위로와 능력을 받아 이 세상과 마귀를 승리하게 됩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우리 주님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힘이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능력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힘이 있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1. 믿음으로 하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의심을 품고 하는 기도는 힘도 없고 하나님의 응답도 받을 수 없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로써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는 아무 쓸모없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구할 것을 구하지 못하고 중언 부언하여 자신이 무엇을 구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확신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믿음을 기반으로 해서 간절하게 할 때 힘이 있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가 힘이 있는 기도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기도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힘이 있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정욕을 따라 하는 기도는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자기 욕심에 따라서 하는 주관적인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드리는 기도라야 힘도 있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의를 구하라"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3. 불의와 죄를 회개하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서로의 죄를 고하고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도 않고 응답을 받을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죄를 버리는 기도가 힘이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의로워지려면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은 자는 승리하는 생활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힘이 있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힘이 있는 기도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 드려야 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욕에 의하여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결코 응답받지 못할 것이며 능력있는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힘이 없는 기도이며 결코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도는 종교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위대한 일을 하고 승리하는 비결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
마26:36-46
서론
주님께서는 이제 눈 앞에 다가오는 십자가를 놓으시고 밤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겟세마네 기도는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멀리하고 있다면 주님과 가까워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기도를 하셨습니까?
1. 가장 깊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시편 기자도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불러 아뢰오니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습니다만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기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하는 기도라야 주님앞에 가장 접근해 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성도의 기도는 멀리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정력을 필요로 합니다. 조용하고 겸손하게 뜻을 물어 마음과 힘과 뜻과 정성을 다 쏟는 기도라야 가장 깊은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주님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는데 우리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는 기도라도 했는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참 기도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이는 기도 중의 참 기도인 것입니다.
자기의 소원과 뜻과 욕망을 꺾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기도가 바른 기도, 참기도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야말로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들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하였습니니다.
3.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도록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즈음 우리 교인들이 한다는 철야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않은 시간을 기도하시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는 데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밤새도록 기도하고 가룟유다를 향하여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배신하고 돈을 받고 팔아 넘긴 제자를 예수님은 미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잠 자느라고 기도하지 못한 베드로는 검으로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자를 사랑이 넘치게 합니다. 그리고 의가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많은 기도를 하신 것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주님과 나와의 거리는 기도와 나와의 거리에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그 마음에 합한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셨고, 참 기도를 하셨습니다. 온전히 모든것을 주님께 맡기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하신 기도를 본받아서 열심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의 기도
왕상17:21
서론
엘리야는 하나님껴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모든 면에서 능력있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도의 사람인 것은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기도 중에서 특수한 상황에서 기도한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는 어떤 기도를 하였습니까?
1. 죽은 아이를 살리는 기도를 했습니다.
엘리야는 사렙다 과부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아들이 죽었으므로 과부는 엘리야에게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의 애절한 호소를 듣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21-22절에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죽은 자도 살리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한 기도였습니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죽은 아이의 혼이 다시 그 몸으로 돌아가서 살아나게 하신 것입니다.
2. 불을 내리게 한 기도
왕상 18장에 나타난 대로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도전하여 아합이 섬기는 우상의 선지자인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상대로 여호와와 바알 중 누가 '참 신'인지를 증명하기로 하였습니다.
갈멜산에 서로 재단을 쌓고 그 제단 위에 불이 내려오는 쪽이 참 신인 것으로 하고 먼저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며 자기들의 몸을 칼로 찔러대며 피를 흘리면서까지 불을 내려 달라고 외쳤지만 바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목숨을 걸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하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 제단 위의 제물을 다 불사르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은 선지자들을 다 처벌하였습니다.
3. 비를 오게 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절에 보면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 문을 닫기도 하고 하늘 문을 열기도 하였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게도 하고 다시 비가 내리게도 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결론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통하셔서 모든 기도 에 응답하시고 이루어 주십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죽은 아이도 살리는 기도를 하였고, 불을 내리게도 하였으며, 비가 내리지 않게도 하였고, 비가 내리게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엘리야의 기도의 응답일 뿐이지 엘리야 자신이 한 일은 아닙니다. 모든 역사는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기도의 응답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도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
요17:1
서론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는 보통 "대제사장의 기도"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 아론과 그의 직계 자손인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예복을 갖추어 입고, 백성의 죄를 속하는 제사와 기도를 드린 것처럼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서 대표적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신 것입니다.
1.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행동을 하시고,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그리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보면 항상 기도하시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언제나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하시는 모습은 성경에 여러 가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때로는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고(요11:41), 때로는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마26:29).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아버지를 향하여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하여 있다면 그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가장 경건하고도 하나님께 향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 기도의 대상자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하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바울도 기도의 대상자를 기록하기를 에베소서 3장 14,15절에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7장 가운데 "아버지"라고 부른 것이 무려 39회나 기록되었습니다. 과연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친히 사용하신 것으로 매우 적절하신 칭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의 대상도 역시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곳에 대고 기도한다면 그것은 우상에게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열심으로 간절하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 수난의 때는 곧 아들의 수치와 모욕의 때가 아니라 영화롭게 되시는 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난과 승리의 부활과 영광스러운 승천 등의 중대사를 달성하므로 속죄의 대업을 완성하시는 때를 가리키고 그때는 곧 '성자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인 것입니다. 또한 성자의 영광은 곧 성부의 영광인 것입니다. 성자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마27:54),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높여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빌2:9).
우리 성도들도 세상에서 주어지는 영광을 나의 것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것으로 돌려야 합니다. 이 세상의 영광을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보다 더 아름답고 깨끗하고, 높은, 사랑의 기도는 하늘이나 땅에서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기도는 위대하고 은혜가 충만한 기도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경건한 모습으로, 가장 엄숙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된 자들도 기도함에 있어서 예수님의 참 기도를 본받아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하신 일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시간도 아울러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모여서 기도함
행12:12
서론
야고보 사도가 순교하고 베드로 사도는 옥에 갇히는 대수난의 때에 교인들은 배후에서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모여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큰 힘을 주십니다. 성도들은 순교를 하는 것도 조금도 겁내지 않았으며, 이상하게도 옥문이 저절로 열려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1.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는 말씀은 한두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합심기도인 것입니다. 이 기도하는 데 모인 사람은 사도들이나 집사같이 지도자급이 모인 것이 아니라 모든 평신도들도 다 함께 모여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이 기도는 완전한 기도입니다. 혼자서 하는 기도도 놀라운 힘을 하나님에서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각자 다른 기도를 하지 않고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하는 기도는 더욱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합하여 하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음을 모아서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하겠습니다.
2.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성도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은 마가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집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제자들과 같이 종종 모이던 곳입니다(마26:18).
또 오순절에 120명이 모여서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은 곳도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이곳은 초대교회의 집회 장소였으며 예배당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교회의 건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모여 있는 성도들이 과연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드리기 위해서 모였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3.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성도들은 모여서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주의 사도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그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매우잘한 기도입니다. 그들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베드로가 석방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석방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베드로가 용감스럽게 믿음을 지키면서 모든 당하는 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추진되고 있으니 기적적인 역사로 이 수난을 이기며 혹은 면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을 위하여 일하다가 고난을 받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악의 세력이 주의 성도들을 괴롭히고 옥에 가두고 할지라도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크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더욱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교회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진행하여 기도로 완성을 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의 사도들이 고난을 받을 때 뒤에서 함께 모여서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을 행하실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믿고 그 능력을 의지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신앙을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무효인 기도
사16:12
서론
본문에 "모압 사람이 그 산당에서 피곤하도록 봉사하며 자기 성소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무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기도를 피곤할 정도로 봉사하면서 하여도 무효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도는 하나마나인 것이니 진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기도가 무효가 되는 기도입니까?
1. 무능한 우상에게 하는 기도는 무효입니다.
모압 족속이 섬기는 대표적 신은 그모스라는 신이었습니다(왕상11:7). 모압 족속은 그모스의 백성이라고 불렸습니다(민21:29). 그 제사 행위는 참으로 잔인하고 가중스러운 것으로 아이들을 번제물로 드리는 일이 예배의 일부를 차지하였습니다(왕하3:27).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함부로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일은 하나님께서 가장 경멸하시는 일일뿐 아니라 가장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더구나 어린이를 번제물로 드리는 행위는 너무나 끔쩍하고 비인간적인 일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지역의 높은 곳에 그모스 신전을 만들었는데 요아스 왕이 이것을 파괴하였습니다.
무능한 우상에게 아무리 피곤하도록 기도를 해도 그 기도는 아무 효험이 없을 것입니다.
2. 하나님께도 잘못 드리는 기도는 무효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신이시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도 잘못하는 기도는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1) 형식적인 기도는 무효입니다.
이것은 외식과 가장된 입술로 드리는 기도이니 이는 입술로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기도입니다. 이러한 형식적인 기도는 오히려 가증스러운 기도가 되기 쉽습니다.
(2) 교만한 기도는 무효입니다.
교만한 기도를 한 대표로 바리새인을 들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서 기도하면서 세리를 멸시하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며 자랑하는 내용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으실 뿐 아니라 가증히 여기시니 이 기도는 무효가 됩니다.
(3) 회개가 없는 기도는 무효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메는 먼저 자신의 생활 중에서 우선 회개할 것을 완전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간구해야 들으실 것인데 죄를 품고 하는 기도는 들으시지 않으십니다. 그 기도는 헛된 기도가 되므로 무효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4) 믿음이 없는 기도는 무효입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는 믿음을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의심하는 자는 주께 얻기를 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라고 야고보 사도는 말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받으시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기도하여도 우상에게 하는 기도는 무효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더라도 형식적이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하거나 회개가 없는 기도를 하거나 믿음이 없는 기도는 무효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하는 기도를 해서는 안됩니다. 그 기도는 모두 무효가 되는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진실하고 믿음으로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기도의 응답
사65:24
서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본문에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아시고 또 미래부터 축복을 예정하시고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기도 응답의 확실성
하나님의 백성이 그 신앙을 참되이 지키는 한 기도의 응답이 확실할 것을 보여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막히는 장벽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이 짧아서 못 주심이 아니요, 귀가 어두워서 못 들으실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해주심을 확신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장벽을 없애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성립되는 것입니다.
2. 구하기 전에 주십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6장 8절에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지 이미 다 알고 계시며 기꺼이 즐거움으로 이루어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소한 일을 이루어 주시기보다는 큰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말씀하시기를 "네 입을 열면 내가 채우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위대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이 위대한 기도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 위대한 기도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너무나 사소한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3. 큰 것을 구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3장 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자인 존 낙스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내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큰 것을 구하는 기도를 우리는 해야 합니다. 위대한 기도는 일개 사단의 힘보다 더 강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기도를 하는데 왜 응답을 받지 못합니까? 그 이유는 허공을 치는 잘못된 기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고 그저 허공만 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듣도록 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욕을 위하여 구하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심을 믿고 확실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여서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기도
단6:10
서론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사람으로 항상 하나님께 기도로써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의 생활을 합니다.
다니엘이 이방 나라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고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도 생활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1. 그는 평소에 기도한 사람입니다.
본문에 보면 다니엘은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하면 죽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다리오 왕이 자신 외에 다른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집어넣을 것이라는 조서를 이미 찍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번 사건이 생기기 전에 평온한 생활 가운데서도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평소부터 해온 기도가 그 힘이 축적되어서 그렇게 무서운 시련에서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성도된 자들은 모두 평소부터 기도하는 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소에 기도하고 있지 않다가 갑자기 큰 일을 당하면 당황하고 감당하기도 힘들 것이나 평상시의 기도 훈련이 비상시에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대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였는데, 특히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것은 의무적인 기도의 횟수입니다.
세 번 기도하는 시간은 제 3시(오전 9시), 제 6시(정오), 제 9시(오후 3시)입니다. 그 밖에도 새벽이나 밤중에도 수시로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이 특별히 때를 정하여 놓고 기도한 것은, 항상 하나님과 영적 교제의 생활을 하며, 언제나 그가 공급해 주시는 신령한 능력과 지혜를 힘입어서 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생활을 힘쓴다면 다니엘과 같이 승리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목숨을 걸고 기도하였습니다.
평소에도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었는데 이를 왕이 모르고 자신에 대한 충성심으로 받아들여서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자신이 기도를 계속하면 꼼짝없이 사자굴에 던짐을 받을 것이 분명한 데도 불구하고 기도를 계속하였으니 목숨을 내걸고 하는 비장한 각오가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이 기도는 참으로 큰 힘이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목숨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생명을 내걸고 하였으니 그 기도는 과연 간절하고 진실하며 뜨거운 눈물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기도, 즉 목숨을 내걸고 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까지도 움직이는 귀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결론
지금 이 시대에도 다니엘과 같은 신앙인이 필요합니다. 물질에 의지하고, 권력에 의지하며, 사람에 의지하려는 성도가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나라가 평안하든지, 적국에 포로로 사로잡혀 가든지 변함없는 기도를 한 다니엘은 사자굴에까지 던짐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자들의 입을 봉하셔서 다니엘을 건지시고 오히려 그 대적자들이 사자굴에 던져져서 처형당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항상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시65:2
서론
시편 기자는 이 시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도 응답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확신 있게 쓴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1. 높은 곳에서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에 게 나오는 것을 원하시며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할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성도들이 간구할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온전하며 충만한 권능을 보여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품 안에서 쉬게 하며, 그의 뜻에 맡기는 생활을 하게 하며 그의 은총과 미쁘심을 신뢰토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성령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그의 자비를 알게 하시며, 그들의 기도에 대해 관대히 처리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성도들의 기도가 연합될 때에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다스림을 알게 하십니다.
2. 지극히 높으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언제든지 가까이 나아 오기를 원하시고 계시며 이 시간에도 보좌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자유로운 마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일들 즉, 세상적인 것이든 영적인 문제이든 모든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에 대해 즉시 응답하심으로써 지체하시지 않음을 보이십니다. 우리가 조급한 마음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이 응답을 지체하시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그 응답이 늦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우리를 꾸짖지 않으시고 후하게 응답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약1:5). 하나님에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이상의 것도 주십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에 감동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감동하십니다.
3. 모든 우상과 구별되셔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참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거짓 신들은 기도를 듣지 못합니다.
거짓 신들은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의 기도 소리를 판단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 기도에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기도를 들을 수 없으며 실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허망하고 속이는 자인 것입니다. 또 우상들은 생명과 의지, 깨달음이 없습니다.
4.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를 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필요나 요구하는 것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그의 자비를 보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함에 있어 하나님 깨서는 우리가 그의 자비를 구하기를 기다리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은총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한낱 무가치하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자 하시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분의 자비와 은총이 무한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기도가 상달되도록 도우시는 중보자가 있습니다. 그분은 그의 피로 우리 죄를 대 속하셨고, 하나님께 순종하시므로 우리의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분은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낙심치 말고 항상 그를 향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는 냉냉하고 생명 없는 사람처럼 간구하지 말고 열심을 품고 하나님께 간절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외식적인 기도 생활
욥27:10
서론
기도를 하는 데 있어서 진실함으로 하지 않고 형식적인 방법으로 기도를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자들에 대해 관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들에게는 진정한 소망이 없으며 권능자를 기뻐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1. 외식 자들이 기도 생활을 하는 이유
그들은 일반적인 교훈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기도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옥에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도 생활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감동을 충만히 받으면 흥분과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의 상태가 유지되는 동안 하나님께 간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소망을 불러일으키려는 마음에서 일시적이나마 기도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한 불행에서 평강으로 인도해 주셨다고 믿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소망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신앙생활의 기쁨과 즐거움을 품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하나님에 대한 생생한 감격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얼마간 기도 생활을 지속하게 됩니다.
2. 외식 자들이 기도 생활을 중단하는 이유
그들은 개인적인 기도에, 즉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마음을 두기보다는 정해진 회중 기도나 가정 기도 시간에 참여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과 의의를 둡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체면과 강요로 마지못해 기도 모임에 참가하지만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를 드리지 못합니다.
기도 생활의 중단은 점차적으로 일어나는데 처음은 몇 가지 유혹에 넘어가서 한두 번 빠뜨리다가 쉽게 습관이 되어서 나중에는 전혀 기도에 마음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옛날의 소망을 되찾고자 가끔 기도를 합니다. 그것은 자위적 기도인 것입니다.
3. 외식자들이 기도를 소홀히 하는 이유
기도의 영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영은 거룩하고 자비로운 영입니다. 그러나 외식하는 자들은 날로 새롭게 기도하게 하는 성령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외식자가 거짓 회개를 한다면 그는 이미 마음 가운데 괴로움을 느끼게 되며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서 구할 것이 없게 됩니다. 그는 오직 지옥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외에 아무런 소망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외 식자들도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만 일단 지옥에서 벗어났다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면 성경에 나타난 명령을 순종하는 데 게을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식자들은 하나님 이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자비로운 언약이나 새상 끝날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성령의 충만함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렘23:40, 살전5:22,23).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시지 않으면 바로 설 수가 얼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어떤 기도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외식적인 기도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진실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고서도 기도 생활을 하지 않는 다면 하늘나라의 귀한 소망을 바라면서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역사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산으로 가신 예수님
요6:15
서론
예수님께서 산으로 가신 일은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큰 무리에게 오병이어로 많은 사람을 먹이시는 큰 표적을 보이신 후의 일입니다. 갑자기 예수께서 왜 산으로 가셨는가 하면 사람들이 예수를 어떤 정치적인 인물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주 산에 가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기를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고 하면서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서 유대인의 임금을 삼고 로마에 반항하여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었기에 사람들의 심리를 움직이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리는 예루살렘 입성 때에도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부르짖던 군중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론 왕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왕국을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 왕국을 실현시키려고 하시는데 그 방법은 인간들의 방법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들은 권력과 부귀로써 왕국을 건설하고 힘이 있는 자를 왕으로 세우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써 그 왕국을
실현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2. 중대한 때마다 산으로 가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14:23)"라고 하였고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막6:46) "라고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조용히 들어가신 것입니다.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 마다 산으로 하도하시려고 가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따라야 할 것입니다.
제자들을 선택하시려고 하실 때에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눅6:12). 천국 복음을 전파할 중대한 임무를 가질 제자들을 소홀히 부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많은 사람이 주의 일을 한다고 나서지만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고 나서는지걱정스럽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는 거짓 목자요, 삯군 목자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밤을 새도록 하는 기도는 밤이면 자야 하는 인간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 제자를 데리고 가셨지만 그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혼자서 기도를 하시게 되신 것입니다.
3. 혼자 산에 가셨으나 혼자가 아니셨습니다.
수난을 앞에 두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다 흩어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31절-32절에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편에서 볼 때 항상 외로우셨고 혼자이셨지만 사실은 혼자가 아니시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항상 같이 계셨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중대한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을 피하여 조용한 산으로 가셨고 그 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군중들에게 그의 몸을 의탁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홀로 계셨지만,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의 뜻대로 구하라
요일5:14-15
서론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대로 구하면 이루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그것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두 가지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 두 가지란 믿음이 있는 기도와 간절히 드리는 기도입니다.
1. 믿음이 있는 기도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특성 중에 '진실하심'이 있는데 그를 의심하는 것은 그를 진노케 하는 큰 죄악입니다. 우리는 그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가 우리의 간구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도 믿어야 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때로는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욕을 위해서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올바르지 못하면 그 기도는 이루어 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드리는 불의한 기도가 다 응답받게 된다면 이 세상은 불의로 가득 차서 살기가 곤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다스리시는 심판관이 시 기 때문에 불의한 일은 엄격하게 제한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행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는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믿음없이 하는 기도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인 것입니다.
2. 간절히 드리는 기도
기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기도 드리는 자의 간절함입니다.
인간은 원래 게으르고 망령된 근성이 있어서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도를 드릴 때에 간절하게 드리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형식으로 치우치고 외모로만 인간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는 다 잘못된 기도인 것입니다.
성경은 아주 간절하게 기도하는 자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사무엘을 낳기 전에 자신의 무지함을 인하여 너무도 간절히 기도하였으므로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볼 매에 술에 취하여 있는 줄로 생각하였을 정도였습니다(삼상1:12-13).
또 벗이 밤중에 찾아왔는데 그 벗을 위하여 떡 세 덩이를 빌리러 왔을 때 그 벗을 인하여서는 빌려 주지 않으려 하였으나 계속하여 간청하자 일어나서 주었다는 말씀도 있습니다(눅11:5-8).
그리고 한 과부가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계속하여 간청하자 그 재판관은 그 간절함으로 인하여 그 원한을 풀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눅18:1-8).
이러한 예들은 다 간절한 기도의 공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간절함으로 인하여 그 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만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에 믿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아침에 기도함
시5:3
서론
성도는 기도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성도는 기도하는 일에 열심으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눅21:36). 그러나 또 때를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하는 기도는 더욱 귀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아침에 드리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침 기도는 주님을 본받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 기서 기도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침 중에서도 아주 이른 아침에 예수님이 기도하심으로 우리에게 아침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침 기도를 게을리하거나 부정하는 자는 예수님께서 하루를 시작하시는 첫 걸음을 따르지 못한 자입니다. 그런 자들이 어떻게 주의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신앙생활을 옳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은 아침(새벽) 기도에 열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기도로 시작하는 하루는 주님의 은혜가 넘치는 하루가 될 것입니다.
2. 제사장들은 아침부터 일하였습니다.
새 아침이 밝아올 때마다 제사장들은 일찍 일어나 성전에서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제사행위를 시작하였습니다. 제단을 정돈하고 불을 켜 그날의 시작이 되면 곧 아침 희생이 드려지곤 하였습니다(레6:8). 여기에 큰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새 날이 밝아올 때마다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신선한 헌신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먼저 네 눈을 뜰 때에 네 영혼을 드리어라"는 명령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이같이 아침 제사에 치중하였으니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성도들도 아침 기도를 등한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침 기도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다윗도 "내가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고 노래하였습니다.
3. 응답이 잘 되는 기도입니다.
시편 88편 13절에 "여호와여 오직 주께 내가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달하리 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지만 특별히 아침 일찍 드리는 기도에 더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지켜보실 것입니다.
아침 일찍, 아니 오히려 미명에 기도하는 모습은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만나도 해 뜬 다음에는 좋지 않았던 것과 같이 우리의 기도도 한 날의 첫 생각을 주께 드리면 하루 종일 그와 교통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
아침에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이며 응답도 잘 되는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스펄젼은 말하기를 "아침의 한 시간은 저녁의 두 시간보다도 더욱 값진 시간이다. "라고하였습니다. 하루 중에서, 깨어 있는 시간 중에서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많은 성도를 생각할 때 가슴 아프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귀한 시간에 기도하여 큰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악인과 의인을 위한 기도
시7:9
서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모든 죄에 대항하여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마치 질병에 대항하여 행하는 모든 일이 환자를 위한 것이 되듯이, 죄에 대항하여 기도하는 것은 곧 죄인을 구하기 위한 일이 됩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들은 더욱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 기도의 내용
(1) 악인의 악을 끊어 달라는 간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악을 끊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악한 삶의 원리가 폭로되어 버려지기를 기도해야 하며 사람들이 선과 악, 의와 불의, 하나님과 그들, 현세와 내세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리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인의 회심을 위해, 사악한 행동들이 금지되어지고 억제되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악인의 악이 끊어져서, 적어도 그들의 악이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의인을 세워 달라는 간구입니다.
우리는 의인들이 그들의 선한 삶의 원칙과 그에 대한 굳은 결의 가운데 세움을 받아 그 원칙들을 충실하게 고수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선한 사람들도 환난을 당하게 되면, 마음이 요동하기가 쉽고 그들의 신앙이 근본부터 흔들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굳건한 믿음 가운데 서서 사탄의 권세가 결단코 교회를 이길 수 없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악인이 악을 끊어버리기 위하여 성도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기도할 이유
신자들은 누구나 하나님과 주 예수의 이름과 영광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의 명예에 대해서 신령한 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그의 영광을 최고의 관심거리로 여기며 세상의 그 어느 즐거움보다도 더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자애로운 사랑과 현세와 내세에 주어질 그들의 축복에 대한 진정한 소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인간의 영혼을 해치는 모든 것들이 소멸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 은혜의 권위와 능력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죄인들이 새롭게 되고 의인들이 굳건히 서도록 그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또한 이 은혜는 교회에 주어진 약속으로서, 교회를 온갖 더러움과 우상으로부터 정결케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원할 때에만 이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게 구해야 하고, 구하면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악인의 악을 끊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우리의 행실이 복음에 합당하며 엄격하고 양심적인 것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인을 세우고 선한 일을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아 훈계와 권고와 격려를 계속해야 합니다.
기 독 교
성 경 활 용
1. 기독교의 기본 진리
(1) 회개
(마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히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음
(롬 3:24-25)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3) 구원
(고전1:18-2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5:3-4)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4) 세례
① 물세례
(마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막1:8) 나는 너희에게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행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② 성령 세례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5) 안수
(창48: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민8:10) 레위인을 여호와 앞에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자손으로 그들에게 안수케 한 후에
(신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마19:14-15)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니라
(막6: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눅13: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행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딤전4:12)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행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6) 죽은 자의 부활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고전15장) 참조
(7) 영원한 심판
(마25:46) 저희는 형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계14:9-11) 참조
2.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짐
(고전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3. 모든 족속을 대상으로 함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4. 절대적 종교
(행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5. 성화시킴
(고전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 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느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나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설교예화자료
기독교의 뿌리의 줄기
위대한 성자 성 프랜시스가 큰 은혜를 받아 거듭나게 된 계기도 그가 십자가 앞에서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은혜를 받고 온전히 그 자신을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또 모라비안 교회를 창립한 진젤돌프도 어떤 미술관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성화를 바라보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에 큰 은혜를 받아서 온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후 유명한 모라비안 교회를 창립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계기들을 통해 교회가 발전하고 수많은 기독교인이 생겨남으로 이제는 전 세계의 3분의 1이라는 인구, 10억의 인구가 기독교를 믿고 변화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그 뿌리와 줄기가 튼튼하고 무성한 종교입니다.
예수를 택하리라
40년전 베보 쉐어(Bev Shea)는 오타와(Ottawa)에 자리잡고 있는 성경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찬송 부르기를 즐겨할 뿐만 아니라 주위로부터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뉴욕의 한 방송국에서 실기 시험을 보았고, 계약을 맺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계약조건은 찬송가 위주보다는 인기가 높은 대중가요를 부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계약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기도한 후, 어머니께서 작사, 작곡을 했는데 가사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은이나 황금보다는 예수님을 택하리라 세속적인 명성보다는 예수님을 택하리라 그의 성스러운 이름에 충실하리라"
베보는 계약을 거절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는 후 시카고 라리오 방송국에서 그가 좋아하는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일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으로 빌리 그래함(BillyGraham)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다음의 이야기는 이미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기독교인 향기
태어나기 전부터 기독교와 맺어진 환경을 입고서, 선택이나 거부없이 기독교인 인 우리는 너무도 당연히 주어진 상황에서, 제대로 갖추어진 자연스러움 때문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지닌 향기도 갖지 못한 채 지금까지 온 것입니다. 채소 파는 아주머니의 소박한 초록빛 향기와 톱밥더미 속에서 대패질해대는 목수의 방법인 나무향과 가슴속 후련한 한마디를 위해 깊은 밤에도 불끄지 않는 시인의 방 속에 나뒹구는 원고지들의 글내음과 새벽 일찍이 아침식사 준비하시느라 도마 두드리는 엄마의 치맛자락 향기처럼, 이제 우리에게서도 서서히 우러나올 향기를 지닐 때임을 느낍니다.
깊고 추운 겨울밤 돌아갈 나의 좁고 작은 집이 있다는 것과 온 가족이 함께 건강하다는 것을 깊이 만족하는 감사의 향기 떡사발을 들고서 이웃집으로 나누러 가는 아줌마와 신문배달원에게 손수 뜬 장갑을 선사하는 아줌마의 굴뚝연기 같은 훈훈한 향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용솟음치는 감흥을 세상 친구들에게 전하려는, 고뇌의 잔등 속에서 기도하려는, 기쁨의 순간을 감사하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행하려는, 하나님 바라시는 향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오래 전부터 그리스도와의 엮인 끈을 인정하는 믿음의 향기, 인생에 살 가치를 부여해주는 소망의 향기, 주고 또 주는 기쁨에 넘치는 사랑의 향기로 은은히 솟아나는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지니고 싶습니다.
기독교인이 된 이유(I)
기독교인은 사도 바울의 말같이 '그리스도에 붙잡힌 사람들'입니다. 자기의 모든 삶을 맡긴 사람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로 믿고 용기를 갖는 확신의 삶을 영위해 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그리스도 삶을 가진 것이 우리가 기독교인 이 되어야 하는 이유의 하나입니다.
어느 친구가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이 많은 책중에서 단 한 권을 택한다면 어느 책을 택하겠는가?" 그는 서슴없이 "그 책은 욥기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쇼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임을 믿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감사히 여겼다는 그 사실에 깊은 의미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고 있음에 대하여 감사하는 삶을 갖는 것이 기독교인이 된 이유입니다
기독교인이 된 이유(II)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한 율법사의 물음에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 대답하셨습니다. 이웃이 누구냐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이웃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겠는가로 답을 하신 사실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우리의 의무 이상의 봉사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의 그같은 사랑의 정신을 실천하려는 삶의 태도를 견지함이 우리가 기독교인 이 된 이유의 하나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들이 계획한 그대로 이루어진 일이 몇 번이나 있겠습니까? 노력하고 애쓰는 것은 인간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이루어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항상 우리는 어떤 일의 완성되는 전환점 및 이루어짐은 역시 하나님의 섭리임을 확신합니다. 폴틸리히는 하나님의 '지향적인 창조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 의 지향성 속에서 우리의 삶은 엮어져 나갑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소련 종교현황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소련 북서지역 침례교 연맹회장 세르게이 니콜라브 목사가 소련 종교현황에 대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까지 숨어서 종교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숫자는 알 수 없습니다. 대충 제가알기로는 러시아정교회 신자가 5,000만-6,000만 명쯤 되고, 마호멧교인이 4,000만∼5,000만 명, 공산주의자가 1,800만 명 정도 됩니다. 복음주의 계통의 교인은 100만 명 정도이고, 교회는 5,000-6,000개 정도됩니다. 한국의 개신교 신학대학이나 대학원 과정과 비슷한 신학교는 아직 없으며, 대신 전도자 양성 학교(성경학교)가 손가락에 헤아릴 정도로 있습니다. 모스크바 성경통신 학교가 3년 과정인데, 이 학교를 앞으로 신학교와 같은 학교로 승격받으려 합니다. 외국인 선교사는 전혀 없으며, 장기 체류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단기로 전도 성경 학교를 1~2개월 코스로 개설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와서 짧은 기간 동안 도와줄 수 있는데, 짧은 기간이라도 선교할 수 있는 분이 와서 도와주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초청하는게 당연하지만 우리의 경제는 극심하게 나쁘기(very very bad, very very poor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때문에 여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는 정부가 공짜로 교회 건물을 제공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원래 교회 건물이었던 것을 교인들이 되돌려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공산주의 치하 73년 동안 3,000여 교회가 폐쇄되었던 것인데, 이제 이 폐쇄된 교회를 하나씩 되찾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
쟈니 캐시라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컨트리 가수의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그는 스타덤에 오름으로써 명성과 재산 위에 또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는 고민들이 생겼습니다. 그의 개인 생활은 점점 바빠진 것입니다. 정신적 압력으로 인해 그는 신경 안정제들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곧 그는 암페타민에 중독되었습니다 그는 1965년 천 개의 암페타민 알약을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몸무게는 200파운드에서 140파운드로 떨어졌고 약의 부작용 때문에 그는 교통사고도 일으켰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코가 부러지고 이도 4개나 부러졌습니다. 그는 서서히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1971년 5월 9일 그는 그가 사는 도시의 조그만 교회에 갔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향해 앞으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쟈니 캐시는 일어서서 통로를 걸어갔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손을 내미신 것이었습니다.
남 · 북의 모임
한국이 1945년에 남북으로 분단된 이래 최초의 남 북의 크리스찬들이 한 자리에 모였었습니다. 지난 9월, 세계교회협의회의 국제문제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된 이 모임은 스위스에서 있었습니다. 6명의 한국대표와 북한 대표 3명, 미국 · 영국 ·소련 일본 ·오스트리아 · 캐나다·프랑스 쿠바 그리고 인도 대표를 포함 22인이 이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남·북한 크리스찬 대표들은 '평화', '남북통일' 이슈에 관한 성서적 · 신학적 견해가 담긴 문서와 아울러 성경 · 찬송가 · 신학서적 등을 선물로 상호 교환했습니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관계 인사인 드와인에프스씨는 북한에는 단지 25명의 임직된 목사만이 남아 있으며, 약 1만 명의 북한 크리스찬들이 '북조선 기독교연맹'이란 단체에 가입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도와 천주교도를 포함, 적지않은 크리스찬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정책적으로 구성된 형식적기구인 '북조선 기독교 연맹'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북한의 미약한 교세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크리스찬 수는 한국 전체 인구의 1/4인 1천만명을 헤아리고 있고, 한국의 수도인 서울에는 50만 명 이상의 성도를 헤아리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습니다.
복음주의의 물결
포크랜드 전쟁의 참사와, 뒤이은 신정부수립, 선거열기로 아르헨티나에서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복음주의의 물결이 높이 일고 있다는 점입니다. 불과 수년 사이에 교인과 교회조직이 엄청나게 증대되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나타난 교회의 증가율은 지난 20년의 총 증가율을 넘어섰다.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신학교 교수인 밀턴포프(Mil-ton Pope)의 말입니다.
또한 그늘 "신은 우리에게 특별한 기회를 주셨다. 그 기회가 지금 눈 앞에 와 있다. "라고 주장하면서 전후 계속된 국내혼란의 해결책은 '정신적 통일'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비록 새 대통령에 알폰신(Alfonsin)이 당선되어 민주화의 깃발이 올려졌지만, 많은 시민은 정신적 안정을 갈망합니다.
아르헨티나 유명인사 중 하나인 아나콘디아(C. Annacondia)예수교 복음주의자는 "82년 이후 백만을 상회하는 개종자가 발생했다. "며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을 찬미했습니다.
그는 계속되는 기도모임과 집회에 참석하면서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전쟁에서의 승패는 결국 정신력의 싸움에 좌우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르헨티나의 움직임은 점차 기독교세력이 약해지는 유럽과 대조적인 양상을 띠고 있으며, '정신적 황폐'가 전쟁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적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독인의 종교관
'종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최근 서독의 한 연구소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줍니다.
단적으로 볼 때 서독시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를 구시대 적으로, 쇠퇴해 가는 의식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겨우 20%정도가 종교를 '현대 문제'의 해결안으로 보고 있으며 57%가 교회의 예배의식에 거의 무관심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여론조사는 서독시민의 종교관을 여실히 대변해 줍니다.
응답자의 37%가 성경의 모든 기록을 믿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그나마 믿음을 갖는다는 사람들도 성경 자체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하나의 종교서적으로 인정한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겨우 15%만이 성경을 '진리의 보고'로 믿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응답자의 약 9%가 성경을 '인위적 이야기' 즉 픽션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증가하는 감리교인
최근에 간행된 세계감리교연감(The World Methodist Handbook)은 1981년 이래로 감리교인의 증가가 약 5%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는 약 5천4백만의 감리교인이 있으며 여기에는 298개의 '세계감리교협회'의 회원이 포함됩니다. 특히 놀랄만한 것은 최근 아프리카지역에서 교인수가 급증했다는 사실인데 1981년 이래 거의 23%의 증가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미의 감리교회 증가율은 81년 이래 약 1.7%의 추세를 보이고 있고 이와 대조적으로 태평양지역 교회는 21%의 감소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유럽감리교회도 거의 8%의 감소추세에 있는 실정입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인 윤치호
남감리회 최초의 교인이었던 윤치호는 1876년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에서 윤응렬 씨의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윤응렬은 박영효, 김옥균, 민영익 등과 함께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다녀왔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군대인 별기군의 창설에도 공헌을 했던 인물입니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했던 윤치호는 부친의 배려로 16세가 되던 해인 1881년 고종의 특명으로 일본의 개화문물을 시찰할 목적으로 파송되는 신사 유람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885년 1월 윤치호는 상해로 망명 겸 유학의 길을 떠났는데, 이때 그는 일본 나가사키에 들러 비로소 머리를 깎고 양복을 착용하였으며 푸트의 소개장과 상해주재 미국 총영사 스탈의 주선으로 미남감리회에서 경영하는 중서서원(Anglo-chinese College)에 입학했습니다.
윤치호는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중에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1887년 지도 교수인 본넬 목사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써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남감리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때에 스스로 세례받기를 원하여 신앙고백으로 남긴 말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어떠한 인간의 힘으로도 진정한 의미의 죄없는 생활이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과거에 유교의 사서를 정독하면서 많은 교훈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은 영혼의 요구를 추구하는 바의 것을 얻지 못했다. 나는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많은 고약한 행실을 떨어버리고 단꿀처럼 사랑하던 죄악을 어느 정도 없이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지금 세례 받기를 원한다. 그 이유는, 내가 가진 재능이 다섯 달란트든지 한달란트든지 간에 나의 시간과 재능을 다하여 기독교에 대한 지식과 신앙을 증진하여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자신과 내 형제를 위하여 생을 살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소련에서의 종교의 자유
레이건-고르바초프의 정상회담으로 동서 간의 데탕트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소련 내에서의 신앙의 자유가 제한된 가운데서나마 보다 신장되리라는 조심스런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같은 예측은 소련 내에서 마르크시즘이 이미 국가의 주도적인 철학과 이데올로기의 자리에 있지 못하는 젊은 세대들에 의해 배척당하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러시아 민족주의와 보다 건전한 형태의 사회주의가 등장하게 되리라는 관측과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소련의 젊은 지도자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의지하여 소련국민들을 이끌어 나가려는 생각들을 사실상 포기하고 애국심과 역사 그리고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유지 보존하는 일에 호소함으로써 국민들을 이끌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국내정세의 변화와 젊은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국제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화해무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인권을 탄압하는 나라라는 인상을 불식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이에 따라 복음주의자들을 포함한 다른 종교단체들에 대한 보다 많은 자유가 허용되리라는 관측이 타당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소련을 포함한 동구 공산국가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인정의 수준도 나라마다 달라서 폴란드 같은 경우는 소련보다도 오히려 많은 종교적 자유가 주어져 있고 불가리아의 경우는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소련의 경우는 나라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등록된 교회와 불법으로 간주되어 공식적인 인정을 못받은 미등록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공산국가에서 위정자들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기는 동일합니다. 종교는 언젠가 사라져야 하며 사라질 것이라는 확신을 숨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태의 실상은 공산주의자들의 이런 속셈과는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확실하게 그 수효를 어림할 수는 없지만 지난 68년 동안의 지독한 탄압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소련에서의 크리스찬 신자들의 숫자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불어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귀의
지난 10년간에 걸친 중공 교회의 급격한 성장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중공 선교사였으며 「중공을 통치하시는 하나님(God Reigns in China)의 저자인 레슬리 리알(Leslie Lyall)은 1980년부터 1983년 사이에 중공에서는 매일 27,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귀의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중공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정확한 수를 추산하기는 곤란하나 대충 500만에서 1억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홍콩에 있는 「기독교 전파 선교회」는 중공에 3,500만에서 5,000만명의 그리스도인 이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또 홍콩에 있는 「중공 교회연구소」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중공 전인구의 5%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현재 중공 당국의 교회에 대한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교회성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공교회만이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움직이는 세계(Operation World)」의 저자인 P.J.존 스톤은 "지난 십년간이 교회 역사상 가장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던 기간이었다. "고 하면서 "복음주의자가 2억 6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수치는 지난 10년간을 세계인구 증가율에 대비 1.2% 증가한 것이다. "고 했습니다.
현재 소위 기독교국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나라-서구나 미국-보다는 그 외의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있습니다. 존 스톤은 중공에서의 놀라운 교회성장으로 인해 아시아와 서구의 복음적 그리스도인의 수도 거의 비슷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기독교도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그 순간 이후 복음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은 이미 그가 살아온 것의 정반대, 즉 화음(禍音)이었다.
(F.W. 니체/ 반그리스도)
서양인의 기독교와 한국의 그것과를 비교할 때, 전자는 생활화한 종교요, 후자는 관념적 신앙생활에 머물러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말을 달리 한다면 서양인의 기독교는 실사회 생활에서 구현되고 있는데 한국의 그것은 교회 안에서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식/ 신앙의 생활화)
종교는 신을 찾으려는 인간성의 반응이다.
(화이트헤드/ 과학과 현대세계)
기독교는 인간 정신세계에 세상에서 가장 미묘하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풍요로운 문제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P. 발레리/ 유럽 정신의 위기)
원래 기독교도는 천국의 시민이면서 또 지상의 현세적 국가의 시민이기도 하다. 그는 자연법으로 표현되며, 신법(神法)에 의거하는 교회의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실정법으로 통치되는 한 국가에 예속하기 때문이다.
(김태관/ 한 고위성직자의 대로시위)
불사불멸은 기독교의 영광 있는 발견이다.
(W.E. 채닝/ 不死)
사실에 있어서 기독교적 전통은 지금까지 구라파가 시종일관 지켜 온 유일한 논리이거니와 이는 2, 3의 역설과 기적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과 기적을 논리상으로 반박하자면 아주 쉬운 일이지만, 삶을 통해서 이를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역시 쉬운 일이다.
(G.K. 체스터턴/ 이교도)
내세가 없다고 한다면 기독교의 교의는 영원히 남는 세계의 기만이다.
(W. 스콧/ 종교와 상식)
기독교의 신앙은 두 개의 진리, 즉 인간의 자연성의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양립시키는 데에 있다.
(B. 파스칼/ 팡세)
기독교는 황제를 멸망시켰지만 백성을 구제했다.
(L. C.A. 뮈세)
기독교는 우리더러 모욕을 관대히 봐주라고 하고, 정치는 모욕이 우리를 보아주는 것처럼 만든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
근대적인 옷을 입은 기독교의 신기한 운명은 신에 관해 게으르게 잡담이나 하는 무용지물로 인간을 타락시킨 바로 그것이다.
(G. 배허니언/ 신의 죽음)
기독교란 인간의 영혼에 일어난 일, 일어나리라고 생각되는 일에 대한 교리이거나 이론이 아니다. 기독교란 인간 생활의 현실적인 프로세스를 기술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죄의 의식」도 현실의 프로세스이고, 절망도 신앙으로 얻는 구제도 그렇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속세의 지혜는, 사랑이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라고 말하지만,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랑은 인간과 신과의 사이의 관계라고 말한다. 그 근거는 신이 사랑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S.A. 키르케고르/ 사랑의 생명과 섭리)
기독교는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 말살된 사람들,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들의 소리를 듣는 종교이다.
(지명관/ 고통의 의미)
기독교는 모든 사람의 위에서는 자유스런 군주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는 종이며, 누구에게나 종속한다.
(M. 루터/ 기독교도의 자유)
기독교인이란 토요일에 한 일을 일요일에 회개하고, 월요일에 또 하려는 사람이다.
(T.R. 이바라/ 기독교인)
그토록 많은 기독교인 이 부족한 것이야말로 바로 겸양이다!
(T. 후드/ 윌슨에게의 송시)
기독교는 시도 아니요, 극도 아니요, 오직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다.
(김교신/ 弄談無用)
다른 종교는 몰라도 적어도 기독교만은 형식에 떨어지고 세속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김교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오라)
기독교의 신앙생활을 요약하면 그 실은「망하면 망하리라」는 생활이 그 전부다. 아브라함이 그 독자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모세가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군중을 거느리고 출애굽할 때, 저들은 후세에 우리가 읽는 바와 같은 신기한 이적(異蹟)이 으레 있을 것을 미리 알고 행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알기는 망하면 망하더라도 절대 명령에 순종할 것 뿐이었다.
(김교신/ 망하면 망하리라)
오늘날 기독교는 완전히 자기 영역에 숨어버렸고 기독교 관념을 기독교 관념으로만 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사상과의 일치점을 증명해 보려는 데 역점을 두지 않고 기독교 관념이란 사상 밖에 서서 그것을 능가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려고 한다. 이와 같이 하여 그것은 그 시대 생활과의 관련을 잃어버리고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기독교는 한동안 게르만족을 통일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이 통일을 파 괴했다. 독일은 통일된 국가다. 기독교가 실패한 곳에서 국가사회주의는 성공을 거두었다.
(A. 히틀러)
기독교의 신앙은 선량한 사람들을 포학 부정한 자들의 먹이로 만들고 말았다.
(N. 마키아벨리/ 군주론)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고 부르는 사람일수록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보다도 멀리 그를 떠나는 자가 많다. < * 알맹이가 없는 기독교도는 이교도보다도 죄가 깊은 무리들이다>
(A. 단테/ 신곡)
기독교는 계획적인 정치 혁명이었지만, 그것에 실패하고는 도의적인 것이 되었다.
(J.W. 괴테/ 격언과 반성)
옛날은 가난한 자의 한 법. 지금은 부자의 조합. <*기독교 정신을 비판한 말>
(G.S. 클레망소)
유대교도들은 통곡의 벽으로 가고/ 모슬렘은 오마르 모스크/황금빛 돔이 있는 성전을 가고/ 기독교인은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구유광장에 간다//세 개의 종교가 사이좋게/공존하는 도시/ 그래서 평화의 성 에루샬라임/하늘의 길은 정말 에루샬라임에서 열릴 것인가/ 욕설은 많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성기조/ 에루샬라임)
카톨릭 교도들과 공산주의자들은 커다란 죄를 저질간지만, 적어도 그들은 기성사회처럼 한 옆에 비켜서서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나는 빌라도처럼 물로 손을 씻기보다는 차라리 내 손을 피로 적시겠다‥‥ 당신이 만약 한가지 신앙을 버렸다 해도, 모든 신앙을 다 버리지는 말라. 우리가 잃는 신앙의 대치물은 항상 있다. 아니면, 다른 이름을 가진 똑같은 신앙일까?
(G. 그린/ 희극배우들)
친구와 박람회엘 갔다(세계 종교 박람회). 무슨 산업 박람회가 아니라 종교 박람회였는데도, 경쟁은 못지 않게 치열했고 선전 소리도 못지 않게 높았다. // (유대관)에서 우리가 얻어들은 것인즉, 하느님은 정의로우시며 유대인이 하느님의 선민이라는 것이었다. 유대인이 하느님의 선민이라는 것이었다. 유대인! 어느 민족도 유대인만큼 선택된 민족은 없다나.// (이슬람관)에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인즉, 하느님은 대자대비하시며 마호멧이 하느님의 유일한 예언자이시라는 것이었다. 예언자! 하느님의 유일하신 예언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거기서 구원이 온다나.// (크리스찬관)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인즉,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교회! 교회에 들어오라 아니면 영원한 저주를 무릅쓰라나.// 나오는 길에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자낸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나?"/ 친구의 대답 . "편벽하고 광신적이고 잔인하구먼."/ 집으로 오는 길에 나는 하나님께 여쭈었다:"주여, 어떻게 이런 일을 참고 계십니까? 기나긴 세월을 두고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더럽혀 왔음을 모르십니까?"/하느님이 말씀하셨다 . "내가 그 박람회를주최한 건 아니다. 나로선 챙피해서 구경도 못 가겠는걸.
(앤소니 드 멜로/ 종교 박람회)
설 교 노 트
기독교의 자유관
갈5:1, 13-15
서론
자유는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고찰해 보아도 옛적이나 지금이나 오로지 영적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며 발전해 온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 의하여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난으로 입국한 역사가 그러합니다.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제국주의와 유대의 율법주의와 싸우면서 신앙의 자유를 수호해 왔습니다. 자유는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1. 자유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몇 가지 특권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셨고, 우주만물을 주관하고 통치할 수 있는 통치권을 부여해 주셨으며 영생할 수 있는 영원 불멸의 생명을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적자유를 위시하여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의 유혹으로 범죄하여 만물의 통치권도 상실하고, 생명도, 자유도 상실하고,마귀의 종,사망의 종, 만물의 노예가 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자유를 상실한 비극적인 인생들에게 생명과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 자유의 개념
자유라는 것은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자유의 범주는 광범위하여 양심의 자유, 도덕상 자유, 법률상 자유, 정치적인 자유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적인 자유와 영적인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이 영적 신앙 자유가 육체의 기회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 자유가 사회에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켜서 는 안되고, 방탕과 타락을 초래해도 안되며, 충돌과 파괴를 가져와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이 자유로 육체의 사리 사욕을 초월하고 서로 사랑하고 일치 단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타고라스는 "모든 자유로운 행동의 원칙은 그 내부에 질서가 있는 목표가 분명해야 된다 "고 하였습니다.
3. 기독교의 자유관
역사적으로 기독교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때로는 정치적인 자유, 경제적인 자유,사회적인 자유를 초월하면서까지 투쟁하기도 하였습니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기독 신자들도 현실적인 정치, 경제, 결사, 집회, 언론의 자유도 향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더 고귀한 것은 영적 신앙의 자유를 수호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자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신앙생활에 구속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 양심에 따라 사는 신앙생활에 구속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교회 집회 및 예배 행위와 복음선포의 구속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 신앙의 자유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할 것을 방해하고 구속하려고 하는 세력 이 있는데, 마귀요, 적그리스도요, 향락주의와 세속주의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유린하고 탄압을 해 올 때는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바쳐서싸우며 그 자유를 쟁취해야 합니다.
스펄젼 목사는 "국민 생활의 자유도 가치가 있고 귀하지만 종교의 자유는 더욱 귀하고 나아가서 영적 자유는 지극히 값진 보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자유와 전도를 위해서 순교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신이 자유를 지키는 정신입니다.
기독교의 적
요일4:1-6
서론
기독교의 적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답이 있습니다. 유대 율법주의라고 하는데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하였고 지금도 기독교를 반대하는 종교입니다. 또 공산주의나 진화론을 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독교의 적을 악령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이 악령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영, 예수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영, 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악령인 마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마귀의 존재
이 세상에 마귀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신이 없느냐, 있느냐에 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마귀는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마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이 마귀가 어떠한 실존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존자냐, 피조물이냐 하는 문제는 일원론이냐, 이원론이냐 하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히 일원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한 자존자로서 온 우주 만물을 다 창조하셨다고 하였으니 마귀도 피조물이라는 말입니다.
다음은 하나님이 왜 악한 마귀를 창조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근거하면 본래 악한 영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범죄하여 타락해서 악해졌다고 합니다. 본래 천사가 하나님과 비등해지려고 하는 교만과 지위 이탈과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침해하려다가 징벌을 받아 타락하여 지금은 공중에 권세잡은 마귀가 되었다고 합니다.
2. 마귀의 본성
마귀의 본성은 신비에 속하는 문제로서 성경이 아니면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범죄의 원인자를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죄에 대해서 성경은 불법과 불신앙과 불의가 죄라고 차였으니 마귀는 이러한 본성을 지니고 인생들에게 죄악의 씨앗을 뿌려 죄악의 잡초를 발생시켰다고 합니다. 이러한 죄악이 인간에게 뿌려지게 되면 인간의 심중이나 행동 속에서 죄악의 잡초가 발생되는데 그것은 시기와 질투 · 증오 · 탐심 · 거짓 분쟁 · 악독·음행 ·살상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귀의 독소를 제거하는 운동이 바로 우리의 신앙과 회개운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을 열어 마귀의 독소를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면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3. 마귀의 활동
마귀는 인간을 미혹하여 타락시키려고 백방으로 활동을 하는 중에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다면 미혹한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사람의 약점을 노리고 틈타 온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물질로,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명예로, 세상 권력을 좋아하는 자에게 부귀영화로 시험해 옵니다. 마귀가 나타나 활동하는 양상을 성경에서 고찰해 보면 동물의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뱀과 사자로 역사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광명한 천사로도 나타나 역사합니다.
이러한 기독교의 적마귀를 이기는 비결은 오직 십자가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을 얻은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골2:15). 십자가는 마귀를 이기는 능력입니다(고전1:18).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마귀를 대적하는 유일한 무기입니다(엡6:11).
결론
기독교의 적은 마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는 인간생활에 죄를 가지고 와서 유혹합니다. 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조심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이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는 길이 구원 완성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유연성
눅5:33-39
서론
예수님 당시의 종교 생활은 세 가지 점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선과 기도와 금식입니다. 그들은 매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금식하는 규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에 들어오시기 전에 40일 금식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음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항의하였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사회성
금식은 고대 종교의 중요한 행사로 많은 정신적 유익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비난을 듣고 당시 결혼 풍습을 들어서 설명하셨습니다. 유대의 결혼식은 아주 화려하여 일주일간 계속하였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금식하지 않고 즐거워하며 친구들과 기쁨을 나눕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신랑이고 제자는 친구로 참여하고 있으니 금식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슬픔과 어두움으로 표현할 성격을 가진 종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약 너희가 금식을 해야 될 일이 있어 금식하는 경우가 있어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절대로 남 보기에 금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없도록 형식이나 외모에 치우치지 않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우울하고 고독하고 슬프고 괴로운 종교가 아니라 즐겁고 기쁜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하는 기독교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결혼식 축제에서 신랑의 친구는 금식할 수 없다는 기독교의 특성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신 말씀입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와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2. 기독교인의 유연성
주님께서는 35절에서 새 천의 한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새것과 옛것이 서로 당기어 찢어지고 말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의 태도는 언제나 선명한 색을 보여야 합니다. 검거나 희거나이지 회색과 같은 중간색을 가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애매하고 모호한 발언이 기독교인의 언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마음은 항상 부드럽고 유연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포용성 · 수용성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과 독단은 매우 유사하면서 다릅니다.
우리는 여기서 헌옷과 새옷이 서로 당겨서 찢어지는 것을 세대차로 인한 구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이 양보하고 하나간 희면 찢어지지 않지만 서로 맞서서 대립되면 찢어져 분열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유연성을 지녀 서로서로가 이해하고 존경하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3. 기독교인의 신축성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념과 진리를 심어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인간 관계에 유연성이 필요한 것같이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는 새 진리를 담는 그릇의 신축성이 문제였습니다.
새 포도주를 빚어 넣으면 발효가 심해서 헌 부대는 신축성이 없기 때문에 터지고 맙니다. 그러나 새 가죽 부대는 신축성이 있기 때문에 포도주를 잘 보관할 수가 있습니다.
옛것이 제일 좋다는 극단적인 보수성이 문제입니다. 무조건 새것만을 취하려는 진보성도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은 새로운 마음 부대에 넣어야 할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도 옛 관습과 전통에만 젖어서 방법과 제도까지라도 옛것만을 지키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새 술을 새 부대에 넣는 모험성이 필요합니다.
결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요한의 제자들에게 금식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사회성도 있어야 하고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유연성도 있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신축성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는 기도에 힘쓰는 경건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요3:16
서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만 기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기독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아야 합니다.
1. 기독교는 하나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의 원천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은 모든 자연 계시의 원천이십니다. 그리고 인간 생명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사람을 지으신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구원의 원천이십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는데 큰 죄가 하나님을 떠난 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죄, 불신앙의 죄가 모든 죄의 모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원적인 죄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 우주의 시작을 둡니다.
하나님께 인생의 기원을 두고, 구원의 근거를 둡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서 노력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는 하나님 편에서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나의 삶의 근원이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2. 기독교는 세상의 종교입니다.
여기 "세상"은 창조 세계 전체를 말하며, 모든 일반 인류의 전투를 총칭하며 악의 영역을 의미합니다.
죄는 사람만의 것입니다. 예컨대 아버지를 모르는 곳,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곳을 가리켜서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곳, 사단에 소속되어 있는 곳, 신자를 미워하는 곳, 신자가 환난을 당하는 곳, 하나님과 원수된 곳, 하나님 사랑 운동을 방해하는 곳을 세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죄인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피의 생명을 나타낸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자기와 사랑을 확증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는 무궁하고 무한하며 불변적이고 영원히 효과적입니다. 변하거나 가버리거나 없어져 버리는 움직이는 사랑은 이 세상의 사랑입니다. 갈수 없고, 변할 수 없고, 없어져 버릴 수 없는 사랑, 살려주는 사랑, 구원의 사랑이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3. 기독교는 유일한 은혜의 종교입니다.
구원 얻는 진리는 하나뿐이라는 말입니다. 그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하나님의 독생자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함을 얻을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색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공로 없이 거저 주고 받은선물을 의미합니다.
4. 기독교는 믿음과 영생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영생의 조건은 믿음입니다. "믿는 자마다"라고 하였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멸망입니다. 영생 얻을 자의 범위는 "누구든지"입니다. 결코 만인 구원은 아닙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사후의 영원한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고 아들의 생명, 예수님의 생명과 함께 천국에서사는 이것이 영생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하나님의 종교이며, 세상을 위한 종교이며, 유일하며, 은혜와 사랑과 믿음과 영생의 종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하여(성부), 하나님께서 진행하시고(성자), 하나님께서 성취(성령)하는 절대 타율주의 계시 종교입니다. 하나님(성부)이 창조했고, 하나님(성자)을 믿게 하여 구원을 이르게 하는(성령) 생명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실제
눅20:27-47
서론
본문 성경 누가복음 20장 27-47절에는 예수님께서 사두개당 사람들에게 질문을 당하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 사두개인들은 영혼불멸을 부인하고 천사나 귀신에 대하여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부활(復活)도 영생도 불신하는 현대의 물질주의를 대표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 주님께서는 부활 후에는 다시 결혼하는 일이 없고 오직 부활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의 만족밖에 없으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산 자의 하나님이심을 명시하시고 자신이 참 메시아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이 말씀 중에는 실로 기독교의 실제적 의의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1. 기독교는 실천적 종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발자취를 보아서 기독교가 실천적 종교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예언된 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구속의 대업을 십자가로 성취하셨습니다. 또 주님의 행하신 사실로도 기독교가 실천적 종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서 소경의 눈을 고치신 이적에서 소경을 앞에 놓고 불필요한 이론을 전개하는 무리들에게 눈을 뜨게 하심으로 이론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이것은 이론보다 실천을 하심으로 기독교가 실천적 종교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만 내세우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직 행동실천의 종교입니다.
2. 기독교는 참 하나님만을 믿는 종교입니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인 이 많으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과연 영웅 숭배자들로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엘리야 등 구약에 나타나는 위대한 인물들에게는 오금을 못쓸 정도이었으나 영웅 숭배자가 낳는 최대의 비극인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불신에 빠졌고 오히려 사람을 믿는 약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믿는 자기 신앙의 과대망상증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믿어 죽은 관념적 종교를 탈피해야 합니다.
3. 기독교는 자기 자신을 찾는 종교입니다.
본문에 "삼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론을 좋아하는 사두개인이라도 비평하지 말고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서기관을 악평하지 말고 삼가란 말씀으로 다만 자기 자신을 살피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주의하고 삼가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을 신랄하게 책망한 인물이나 그가 하나님을 뵈온 후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라"고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 눈속에 있는 들보를 뺀 후에라야 밝히 보고 남의 눈의 티를 뺄 것이니라"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실제는 이같이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찾아 뉘우치고 회개함으로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는 실제적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실제는 실로 여기에 있습니다. 곧 한낱 이론에 사로잡히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선행의 실천으로 모든 이론을 파하십시다.
결론
사람을 과대히 믿지 말고 오직 참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자다운 신자가 되십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의 정체를 성령으로 양심의 음성을 들으며 말씀 진리에 놓고 살피고 찾아서 삼가 회개하고 삼가 하나님의 일꾼되기 힘써서 기독교의 실재를 세상에 보이고 세상에서 승리하는 빛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진정한 실천적 신앙생활로 하나님 한 분만 믿고 자신을 철저히 찾아 기독교의 실제를 보여주고 증거하여 승리하기 바랍니다.
살아 있는 종교
요일5:1-12
서론
기독교는 어떠한 종교입니까? 기독교는 한마디로 말해서 "생명의 종교"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생명'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생명도 있고 영적인 생명도 있지만, 그중에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생명은 육신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을 말하며 이 영적인 생명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입니다. 이것은 오직 생명의 떡으로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고 말씀합니다. 생명이 있는 종교는 살아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 있는 종교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1. 죄에서 자유함을 얻게 합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인간의 죄문제를 처리하지 못한 종교는 죽은 종교입니다. 이 죄를사할 수 있는 종교가 살아 있는 종교입니다. 우리 인생은 다 죄의 종이 되어서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포박되어 신령한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죄의 종이 된 인간은 그 상전의 지배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죄는 영혼을 망하게 하며 이와 같이 범죄한 인간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가련한 신세가 되어 불안과 공포와 근심으로 살게 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가 헤매게 됩니다.
그래서 "죄의 값은 사망이니라(롬6:23)"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았고 죄 없다고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죄의 종에서 해방되고, 죄의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에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몸소 체험하고 감사하며 감격하는 신앙이 진짜 살아 있는 신앙이고 이렇게 만드는 종교가 살아 있는 종교입니다.
2. 살아 있는 종교는 넘치는 환희와 기쁨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슬픔보다는 기쁨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쁨보다 슬픔 속에 처해질 때가 더 많습니다. 흔히 이 세상을 눈물의 골짜기, 괴로운 바다, 한숨의 벌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기뻐하는 시간보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이렇게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오염된 인간들은 죄의 종이 되어서 찌드러지고 괴로움에 지쳐 얼굴과 그 마음은 항시 먹구름이 감돌고 기쁨을 잃어버린 상태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고 죄사함 받아 천국을 소망으로 삼았으니 이제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염려는 다 주께 맡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생활하고 환희가 넘치고 찬송이 터져 나오는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종교요, 살아 있는 신앙입니다.
3. 살아 있는 종교는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이기는 것은 너무 허황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이길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이기신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요6:33)"고 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인 이 세상과 싸워서 이긴 역사는 허다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믿는사람으로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사자가 입을 대지 못하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7배나 가열한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그곳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살아 나왔습니다. 기독교 초기의 대로마의 박해에서도 신앙인들은 굴하지 아니하였고, 네로 황제나 도네시안 황제의 극심한 탄압과 중세기 천주교의 대환란 속에서도 신앙인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고 마틴 루터나 칼빈이나 쯔빙글리 같은 위대한 인물을 낳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기독교 신앙인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을 완력이나 죄로 이긴 것이 아니었고, 오직 무저항을 방법으로, 정의와 신앙의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굳게 버티어 낸 것입니다.
결론
살아 있는 종교는 살아 있는 신자를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살아 있는 종교는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며, 넘치는 기쁨으로 의를 위하여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의 발 앞에서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살아있는 생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원동력
행2:1-4
서론
이천년 동안 이 지상에 교회가 건설되고, 발전되고, 승리해 나온 비결은 무엇입니까? 시대마다 그 벅찬 환난과 박해 속에서 우리 기독교가 건설되고, 부흥이 되고, 이겨 나온 그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은 오순절에 임하였습니다. 이 오순절은 주님의 약속이 성취된 날이며, 제자들이 권능받아 증인이 된 날입니다. 또 지상에 교회가 탄생된 날입니다.
이 성령의 바람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위로를 주고, 소망을 주고, 소생시키고,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1. 원동력의 근원
이 성령의 바람은 지상이나, 인간의 집단이나, 어떤 개인에게서 불어온 바람이 아니라 저 하늘에서부터 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은 높고 장엄하며, 깨끗하고 거룩한 의미가 있습니다. 또 신령하고 신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 바람이 타락한 인간을 새롭게 하고, 악한 사회를 정화시키고, 절망적인 역사 속에 소망과 생명을 불어넣어 줍니다.
우리에게 이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야 되겠습니다.
2. 원동력이 임하는 방식
이 원동력이 되는 성령의 바람이 "급하고 강하게" 불어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갑자기 불어 왔다는 말이며, 힘차게 불어왔다는 말이며, 불가항력적으로 불어 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우리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방법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원동력인 성령의 성격과 역사는 어떻습니까? 바람같이라고 했습니다. 바람은 시원하게 하고, 동요하게 되고, 넘어지게도 합니다. 이는 우리를 위로하고, 감동하고, 주님에게 항복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불과 같이 임했습니다. 이는 밝게 하고, 뜨겁게 하고, 소멸하게 한다면, 성령은 우리 마음을 밝고 뜨겁고 깨끗이 한다는 말입니다.
혀와 같이 임했습니다. 혀는 맛을 분별하고, 음식섭취하게 하고, 말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로 진리의 맛을 알게 하고 섭취하고 진리를 증거하게 합니다. 이것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한 증거요 결과입니다.
3. 원동력이 임한 대상
이 원동력인 성령의 바람은 어디로 불어왔습니까? 예루살렘으로 불어 왔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약속성취의 중심지요, 축복의 중심지요, 생명운동의 중심지입니다. 이 예루살렘 중에서도 "120문도"에게로 불어 왔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자요, 회개하면서 기도하는 자요, 권능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려고 하는 자입니다.
성령의 바람은 믿음의 자세와 동기와 목적이 바른 사람에게 불어옵니다. 우리도 바른 자세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원동력인 성령의 바람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이 원동력으로 제자들이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고, 합심하여 교회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우리도 이 성령을 받아 이 시대적인 사명을 힘차게 감당해 봅시다. 이 성령에 관한 바른진리를 인식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 시대적인 사명을 완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성령의 은혜와 능력만이 우리 개인에게나 교회에 원동력이 되어 불의와 비진리를 정복하고, 바르고 참된 교회와 사회를 형성해 나아가게 합니다. 이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독교의 삼대 원리
요14:4
서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이 심히 상심하여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서 너희 있을 곳을 예비하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면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으리라"고 위로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기독교의 삼대 원리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는 길이십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주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는 구주되심과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되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가는 길이 두 길이 있는데 천국으로 가는 길과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예수로 말미암아 가는 길이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가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없는데 그 이유는 죄인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의인이시므로 예수의 피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는 진리입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인데 예수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십니다. 세상의 과학이나 세상의 것은 시대를 따라 변하지만 예수의 속에 있는 진리는 영원히 불변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변하려고 하여도 변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단이 많이 나와서 예수의 진리의 말씀을 자신들이 변형시켜 가르치지만 원래 그 말씀은 변함이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진리는 또한 영원 불멸합니다. 진리와 함께 한 자도 그 영혼이 불멸합니다. 또한 진리는 무한한 힘이 있습니다. 예수는 진리이므로 무한한 시험과 고난을 이기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는 자는 어떠한 시험이나 고난이 있을지라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는 생명이십니다.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재일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진리로 천하의 그 무엇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버려 만인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그 귀하신 생명을 내놓으셨지만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주님의 생명을 다시 살리시고, 우리의 죄 값으로 죽을 생명을 살리셨으니 주님은 진실로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또한 예수는 생명의 근본이 되십니다. 삼라만상의 만물 가운데 생명 가진 물건이 예수없이 지음받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요1:3). 그런즉 예수는 생명의 근본이 되십니다. 무엇이든지 근본을 따르는 것은 정한 이치요 원리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나 중간에 죄로 인하여 죽었던 것을 예수로 인하여 다시 살게 되었으니 생명의 근본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원리요 정한 이치 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근본을 따르지 아니하는 것은 그 속에 정욕과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하나님의 도리를 배반하며 방탕한 길로 가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천국 가는 길이니 누구든지 예수를 통하여 천국 갈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은 진리이시므로 그 진리를 믿어야 죄에서 구원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니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생명되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삼대 특색
요14:6
서론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는데 무슨 이유로 기독교를 믿는지 기독교인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보다 특별히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모든 종교가 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삼대 특색은 무엇입니까?
1. 진리가 특색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곧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세 가지 방면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습니다.
(1) 물질방면에 대한 진리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 창조하신 것들에 대하여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좋다는 말씀은 반드시 진리가 있게 지으신 까닭입니다.
모든 물질은 사용하는 것에 따라서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어 오히려 사람을 해치게 됩니다. 사람이 진리를 알기 전에는 해방될 소망이 없으나 진리를 알면 해방될 것입니다.
(2) 도덕방면에 대한 진리
부자간이나 부부간에, 그리고 친구간에 서로 잘 지내고 사랑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서로 원수같이 속이며 지내는 것은 도덕의 진리를 위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덕의 진리, 즉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3) 신에 대한 진리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천지의 주인이 되셨으니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유일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만 믿는 것이 신에 대한 진리입니다.
2. 속죄가 특색입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는 사람을 속죄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벌받는 이치와 무엇이 죄가 되는지는 가르치나 죄지은 사람의 죄를 사하고 의인되게 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하시며 죄인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기독교는 어떤 종류의 죄인이라도 다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돈 많은 자, 권세 있는자, 박식한 자 등 너무나 잘난 사람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가 지금 그러한 특색을 잃어버렸다면 반성하고 그런 특색을 다시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생명이 특색입니다.
참으로 기독교는 생명이 풍성합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케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요, 예수는 생명이시니 교회도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안에 있으면 예수와 같이 죽어도 영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산 사람이 되어야 하겠으며 믿는 사람이 모인 교회는 산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은 다 한 아버지의 소생으로 알고, 한 아버지를 공경하고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돌이켜 살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결론
기독교의 삼대 특색은 진리·속죄·생명입니다. 우리는 이 삼대 특색을 언제나 잊지 말고 어디서든지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계는 평화의 세계가 될 것이요, 천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삼대 특색을 잃지 말고 실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기독교의 특색
요2:1-12
서론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의 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에 대한 기록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 중 최초의 것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작은 풀 한 포기의 성장 결실을 비롯하여 대우주의 운행 모두가 이적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행하신 이적 뒤에 숨어있는 진리를 터득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것을 기독교의 특색이라고 합니다. 그 특색은 무엇입니까?
1. 잔칫집과 같은 기독교
예수는 최초의 이적을 잔칫집에서 행하셨으니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은 종교입니다. 성경에는 잔치하는 내용이 여러 군데 나와 있습니다. 죄인을 불러 잔치하고(눅14:16),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도 잔치하며(눅15장), 예수와 같이 있는 동안애도 잔치하며(마9:15), 재림의 주를 영접하여 잔치하고(마25장), 영원한 천국 생활을 할 때도 잔치하니(계19:9) 기독교는 잔칫집입니다.
잔칫집은 기쁨이 충만합니다. 번민과 고통속에 있던 자라도 기독교에 들어와서 예수를 영접하게 되면 기쁨을 가지게 되니 이것이 기독교의 특색입니다. 잔칫집은 또 음식이 풍성합니다. 배고픈 자와 목마른 자들이 다 와서 배불리 먹고 즐거움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아무리 잔칫집과 같을지라도 성령이 떠나고 은혜가 없어지면 쓸쓸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계심으로 우리는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2. 변화시키는 기독교
모세의 최초 이적은 물을 변하게 하여 피가 되게 한 것인데, 이것은 저주와 사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주 예수님의 최초 이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니 생명과 축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죄인이 변화를 받아 의인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변화를 받은 사람은 그 모양까지도 달라집니다. 그리고 죄인이 변화되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있는 자리가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불의의 자리에 있던 자가 변화하면 의에 소용되는 것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변화를 받으면 아무 재미도 없는 인생이라도 새로운 진리의 맛이 있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물이 한 번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보니 모든 것이 변하는 동시에 잔칫집의 근심도 변하여 기쁨이 되었고, 또 불행이 변하여 다행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불행이 없습니다.
3. 처음보다 나중이 더 풍은 기독교
예수님께서 만드신 포도주가 연회석에 나오자 빈객들은 맛본 후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먼저가 좋고 나중이 나쁜 것은 세상 법 이요, 먼저보다 나중이 좋은 것은 예수님의 법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오늘보다 내 일이 더 좋고, 이 달보다 다음 달이 더 좋고, 금년보다 명년이 더 좋고, 이 세상보다 내세가 더 좋으니 이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다른 서적은 처음에는 제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두 번 읽기가 싫어지지만 성경은 처음 읽을 때는 아무 재미도 없는 것 같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참맛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슬픈 자는 와서 기쁨을 얻으며, 영이 기갈한 자는와서 배부름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또 변화시키는 기독교니 모든 죄인은 돌아와서 변화를 받고 새로운 삶을 살 것입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기독교니 처음에 맛이 없다고 하지 말고 나중 맛이 더 좋을 때까지 믿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재발견
요3:16, 고전12:12
서론
1. 세계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재발견
우리는 흔히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만 임재하시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늘 그리스도를 앞세우지만 일단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되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머리되시며 세계의 주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에 속하여 있는 성도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세속 세계에서 매일 같이 방황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되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고난 가운데 살게 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까지 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오늘의 교회를 향하여 새로운 존재 양식을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희망과 빛이 되실 뿐 아니라 세계의 희망이시며 빛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전삶을 통하여 고백되어야 하며 재발견되어야 할 것입니다.
2. 모인 교회와 흩어진 교회의 재발견
교회는 모여 있을 때에만 아니라 흩어져 있을 때에도 여전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여 있는 교회"에만 관심을 가지며 모든 노력을 그곳에 기울이므로 참된 교회를위한 봉사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기가 일쑤 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속한 우리의 참된 임무가 오히려 "흩어진 교회"의 형태에 있어서 더욱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각기 속하여 있는 가정과 직장에서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서 생활을 하는 것이며 이 생활을 보다 힘있고 생명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이는 교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참된 교회의 모습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3. 신도의 재발견
최근 교회 안에서도'평신도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아졌으며, 그 결과로 평신도의 운동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이 여러 모양으로 싹트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에 속해 있는 교회를 향해서도 스스로의 뜻을 성취시키기 위해 우리를 불러 깨우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와 교회의 재발견과 함께 그의 백성인 신도를 재발견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신도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발견은 교회가 아직 한 번도 동력 화하지 못한 큰 힘을 자각하고 발견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사는 평신도는 그리스도가 임재하시는 땅 끝까지 신도들의 원을 확대시켜 가야 하겠습니다 신도의 자각은 곧 신도들의 본래적인 모습인 동시에 변천하는 현대 사회와 대결하기 위한 사회 과학적인 요구이기도 합니다.
결론
오늘의 교회가 이상에서 논급한 세 관점을 바르게 포착하고 새롭게 발견하지 못할 때, 기독교는 이 시대와 사회로부터 버림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가지를 새롭게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부활신앙
고전15:1-28
서론
기독교의 삼대 신앙이라고 하면 ①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것이요 ②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것이요 ③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고 인식하는 일이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고전 15장에는 이러한 기독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활 진리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기독교의 부활 진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복음의 핵심입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고전15:1-2에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설 것이라 너희가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전제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사흘만 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의 핵심이요, 골자라는 의미이며 기독교에서 이 부활 교리를 제거해 버리면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 점이 이 세상 다른 종교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이 세상 타종교의 교조라고 하는 석가모니나 공자나마호멧 등, 이들은 모두 죽고 다시 살아나지 못한 보편적인 인간들입니다마는 예수 그리스도는 요11:25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들의 부활 신앙의 골격이 된다는 말입니다.
2. 부활은 신앙의 기초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12-19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정하면서 도전해 오는 불신앙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기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고 하면
(1) 전파하는 복음이 헛 것이 되고
(2) 우리의 신앙도 헛 것이고
(3) 기독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불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활의 신앙은 우리 복음 전파에도 기초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신앙생활에도 기초가 되고 나아가서는 우리 삶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주는 기초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이 부활이 있기에, 이 세상에서 불의와 죄악과 사망의 권세에 도전하여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며, 참된 생명과 영생을 추구하여 우리 삶을 승리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이 부활을 믿는 신앙이 나 자신의 순결을 유지하게 하고, 바른 진리와 정의를 주장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사탄의 권세와 싸워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3. 최후 승리의 확증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고전15:55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으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에 대한 승리를 확증해 주시느냐면,
(1) 불의와 죄에 대한 진리의 승리를 확증해 주고
(2) 사탄에 대한 크리스찬들의 승리를 확증해 주고
(3) 사망에 대한 부활신앙의 승리를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사망이란 인생의 강적으로서 황금의 위력으로도 정복하지 못하고, 과학의 위력으로도 정복하지 못하되, 오직 부활 신앙의 위력으로만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위대하고 강한 사람이냐면,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 크리스찬들이 제일 위대하고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소유한 크리스찬에 의해서 기독교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고, 지상에 교회가 설립이 되길,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전내용이며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활의 소망을 두고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와 십자가
고전1:18-25
서론
기독교의 중심 문제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도는 우리 기독교에 중대문제가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십자가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1) 십자가는 그 당시 로마에서 사용하던 십자형으로 만든 나무 형구입니다.
(2) 이 십자가에는 그 당시 식민지 백성이나 노예들이나 극악한 죄수들을 처형하였습니다.
(3) 그 당시 이 십자가에는 강도 두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혀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1. 십자가 도의 가치성
이 십자가의 도에 대한 두 가지 관점에서 한 사람은 어리석게 보았고 한 사람은 매우 고귀하게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고 믿었습니다.
(1)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게 보는 사람들
① 십자가에서 누가 죽었느냐는 물음에 저들은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가 죽었다고 답을 합니다.
② 왜 죽었느냐는 물음에는 로마정부를 반역하고 유대교를 훼방하다가 죽었다고 답을 합니다.
③ 무엇을 위해서 죽었느냐는 물음에는 정권의 야욕을 품고 유대인의 왕이 되려다가 죽었다고 답을 합니다.
이러한 대답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예수를 반대하고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의 관점이요, 공통적인 대답입니다. 그러나 (2) 십자가의 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는 사람들은
① 십자가에서 누가 죽었느냐는 물음에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죽으셨다고 답을 합니다.
② 왜 죽었느냐는 물음에는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환성하기 위해서 죽으셨다고 답을 합니다.
③ 무엇을 위해서 죽으셨느냐는 물음에는 모든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죽으셨다고 답을 합니다. 여기에 십자가의 도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2. 십자가 도의 의미
(1) 십자가는 하나님의 예언 완성의 표요, 인간 속죄 사역의 성취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과 언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죄악에서 구속하여 주시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가로막힌 죄악의 담을 파멸하고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목을 성취하셨습니다(엡2:16-17).
(2) 십자가는 하나님 사랑의 극치요, 인간욕구의 성취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4:8).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표현이 되셨습니다. 그 사랑이 마침내 범죄한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시고 인간의 진정한 욕구도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3)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과 인간 구원을 완성하신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인은 심판하사 벌하시고 의인은 사랑하사 구원하시는 법칙입니다. 이 십자가에는 모든 죄인들의 죄를 벌하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죄와 벌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신 내리셨고 그 공로에 의해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결론
기독교와 십자가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십자가는 구원 계획의 완성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인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십자가를 모른다면 그의 믿는 것도 전하는 것도 헛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바로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완성이요 사랑이기에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
고전1:18-25
서론
우리 인체에는 중요한 심장부가 있습니다. 기독교에도 중요한 심장부가 있다면 그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십자가입니다. 즉 기독교의 본질은 십자가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만을 자랑하며 붙들고 살았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이기에 기독교의 본질이요, 핵심이 되는지 알아보기로 합시다.
1. 십자가는 하나님의 언약과 인간의 속죄 사역의 완성입니다.
(1)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창 3:15에 하나님은 범죄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를 통하여 환성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언약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이고, 진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2) 인간의 속죄 사역 의 중심이 십자가입니다.
인생이 범한 죄악은 인간의 노력이나 어떤 고행이나 또는 훌륭한 공로로 속죄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범죄의 결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형벌의 대상이 된 인간들을 위하여 애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해결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이 십자가는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인 동시에 인간 속죄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구원의 성취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성된 종교라고 합니다. 사랑이란 어떤 기체도 아니고, 액체도 아니고, 고체도 아닙니다. 그런고로 우리에게 보이지도 아니하고 잡히지도 아니하지마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독생자를 보내주신 사건은 ① 범죄한 인생을 최고로 대우하여 주신 사건이요, ② 최고의 선물을 주신 사건이요, ③ 최고로 사랑하여 주신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신 내용은 십자가를 통해서 실현하신 것입니다. 사랑이란 남을 도와주고, 남의 유익을 추구하고, 남의 생명을 살려주는 행위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남을 사랑하는 사랑을 실현하려고 하면 ①먼저 노력이 수반이 되고 ② 다음 수고가 수반이 되고 ③ 희생이 뒤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이 범죄한 인생을 구원하시는 십자가라는 말입니다.
3.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 심판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과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공의라는 말은 공평하다, 공정하다라는 말씀인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긍정과 부정 또는 Yes, No를 바로 한다는 말입니다.
공의의 골자는 ① 죄는 미워하시고 의를 사랑하신다는 뜻이요, ② 죄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은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인 실례를 들어보면 홍수로 심판하실 때 죄인은 멸하시고 의인 노아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인 동시에 죄인들의 심판을 실현한 사건입니다.
결론
기독교의 본질은 십자가이며 이는 하나님의 언약과 인간의 속죄 사역의 완성입니다. 또한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구원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십자가의 내용을 알고 십자가를 자랑하며 기독교의 본질을 알아 전해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사명
마28:16-20
서론
우리들이 믿고 있는 기독교는 어느 한 개인의 종교이거나 어느 한 민족의 종교가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요 전인류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사명은 너무나 위대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세계적인 사명인 동시에 전인류적인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사명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독신자 한사람 한 사람에게 맡겨주신 과업이요 사명인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읽어 보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갈릴리로 불러모으시고 최종적으로 지상 사명을 분부하셨는데 그 내용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1. 모든 민족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28:19).
여기서 제자를 삼으라는 말씀은 두 가지 의미와 교훈이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소개하고 증거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소개하고 증거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승천하시기에 앞서 그리스도께서는 행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중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세상에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지 아니하면 마귀는 몽땅 자기의 제자를 만들어 가지고 기독교를 대항해 을 것입니다.
(2) 다음은 인간 혁명과 개종의 뜻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어지는 길은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아서 우리 인격과 생활이 변하여 새로워져야 되기 때문입니다. 마11:28-29에 이른 바와 같이 참 제자가 되려고 하면 예수님을 배워서 잔인하던 사람이 온유해져야 하고 교만하던 사람이 겸손해지고 거짓된 사람이 진실해지고 불의한 사람이 정의의 사람이 되어질 때 오늘의 사회도 교회도 새로워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기독교의 첫째 사명은 예수님을 증거하여 모든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2. 모든 민족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28:19) .
여기서 세계를 주라는 말씀은 역시 두 가지 의미와 교훈이 있습니다.
(1) 죄사함받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는 아무에게나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는 사람에게 죄를 씻는 표로 시행이 됩니다. 이 점에 대해 베드로는 행2:38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기독교의 사명은 범죄한 민생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여 죄를 용서하는 종교입니다.
(2) 생명 구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가 지니고 있는 근본 의미는 구원의 징표라고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벧전3:21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여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하신 말씀은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저들의 죄를 사함받고 구원을 얻게 하라는 사명입니다.
3.모든 민족에게 예수님의 교훈을 가르쳐 지키게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세 번째 사명은 예수님의 교훈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한다는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1) 불의하고 암흑한 사회를 개혁하고 정화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던 시대는 밝고 명랑한 사회가 되었지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저버린 시대는 불의하고 암흑한 시대로 타락이 되었습니다. 중세기 암흑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새 나라 건설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전락되어 지키는 그곳에 사탄의 권세와 나라가 산산조각이 나고 하나님의 새나라가 건설되어 확장이 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세계에 참된 안식과 평안과 행복이 있습니다.
결론
본문에서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사명은 바로 예수님의 지상 대 위임 명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깨달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기독교교육
성 경 활 용
1. 기독교 교육에 대한 성격적 표현
(1) 예수의 가르침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눅24:27) 이에 모세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요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요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2) 국가가 마련한 교육
(대하17:7-9) 저가 위에 있은 지 삼년에 그 방백‥‥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 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성읍으로 순행하여 인민을 가르쳤더라
(단1:3-5)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3) 경계에 경계를 교훈에 교훈을 더하는 교육
(사28: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4) 가르침에 주의할 것을 명함
(잠4:1-2)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잠23:12)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저를 기울이라
(5) 교육의 결핍
(대하15:3)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이제 오래였으나
(6) 교육을 소홀히 함
(느13:23-24) ‥‥그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 못하니
(7) 교육을 미워하고 싫어함
(시50: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잠1:29-30)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더라
(잠5:12-13) 말하기를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고‥‥ 내 선생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나를 가르치는 이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던고
(램32:33) ‥‥네가 그들을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칠지라도 그들이 교훈을 듣지 아니하며 받지 아니하고
(눅20:1-2)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쌔 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가로되
2. 교육의 소재 및 자료
(1) 자연
(짐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잠24:30-34)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발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마6:25-30) 참조
(2) 인간 본성
(잠3-12장) 참조
(3) 율법
(롬2: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고
(갈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통학선생이 되어
(4) 잠언
(잠1:1-6, 20-30) 참조
(5) 노래
(신31: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6) 역사
(고전10:1-11) 참조
(7) 하나님의 말씀
(딤후3:15-16)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3. 가르치는 자들
(1) 부모
(신6:6-8)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 육하라
(2) 후견인
(갈4:2-3)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제사장
(신24:8) 너는 문둥병에 대하여 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4) 선지자
(렘32:33) 그들이 등을 내게로 향하고 얼굴을 내게로 향치 아니하며 내가 그들을 가르치되 부지런히 가르칠지라도
(5) 전도자
(엡4:11) 그가 복을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6) 레위인
(대하17:8-9) 참조
(7) 교사
(엡4:11) 참조
(8) 학자
(행22:3) ‥‥가말리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열심하는 자라
(9) 보혜사 (성령)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관련원어풀이
1. ld'G: 가-달
원래는 "함께 묶다"의 의미이다.
(1) 위대하다, 위대해지다, 자라다.
(창21:8,출2:10)
(2) 위대하게 만들다, 자라게 하다, 돌보다, 단련시키다.
(민6:5, 왕하10:6)
(3) 높이 평가하다.
(욥7:17, 시69:31)
(4) 존귀해지다, 찬양을 받다.
(삼상26:24, 시35:27)
2. h[;r; 라-야-
(1) 먹이다, 방목하다, ∼을 돌보다.
(창37:13, 민14:33)
(2) 다스리다, 통치하다.
(삼하5:2)
(3) 양육하다, 먹이다.
(호9:2)
(4) 친구가 되다, 자신을 결합시키다.
(삿14:20)
3. @m'a; 아-만
아이를 돌보거나 보살피는 사람.
(왕하10:1, 5)
4. paideiva 파이데이아
(1) 아이를 훈련시킴, 연단, 가르침.
(딤후3:16)
(2) 교훈, 훈련, 훈육.
(엡6:4)
(3) 교정, 징벌.
(히12:5, 7)
설교예화자료
위고의 어린 시절 교육
프랑스가 낳은 문호 빅톨 위고는 1802년에 태어났습니다. 불후의 명작 「레 미제라블」을쓴 것은 그의 나이 예순 살 때이었는데 이 밖에 수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위고가 대성하는 데는 천재적 소질도 지녔었거니와 그의 가정에서 빈틈없는 교육을 받은데 연유하기도 합니다.
위고가 여섯 살 때에 그의 이웃에 천문 학자가 살았는데 그 집 정원에 사과 나무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사과 나무가 제법 자라서 열매가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인은 새삼스럽게 울타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사과를 도둑 맞을까 봐서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위고의 어머니는 이웃집을 찾아갔습니다.
"우리집 아이 때문에 울타리를 하실 모양인데 쓸데없는 수고를 마세요. 울타리가 생기면 두 집 분위기가 딱해집니다. 우리 애를 댁의 정원에 들여 보내지 않겠습니다. 안 갈거예요."
위고의 어머니의 말을 따라 울타리는 생기지 않았으나 옆집에서는 늘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푸른 사과가 빨갛게 익어갔습니다. 어린 위고는 사과를 볼 적마다 침을 삼켰습니다.
"엄마, 아저씨네 사과가 빨갛게 됐어요."
현명한 엄마는 사과를 탐내는 아들의 말뜻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그래, 참 아름답지, 하지만 저것은 이웃 아저씨네 사과란다. "
귀여운 아들에게 곱게 타일렀습니다. 며칠 후였습니다. 사과 나무 아래 익은 사과 네 다섯알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엄마,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졌어요 떨어진 것은 주워도 괜찮죠? "
"다른 사람의 것은 떨어진 것이라도 집으면 안되는 거란다. "
위고의 어머니는 남의 것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린 아들에게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도 이웃집정원에 어린이 발자국은 발견하려 해도 없었습니다.
빨갛게 잘 익은 사과 한 광주리를 들고 위고네 집을 찾아온 옆집 아저씨는 위고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스스로 내버려두라(? )
한번은 코울리치가 어린아이들에 대한 종교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론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을 어느 한 방향으로의 편견을 갖게 해서는 안되며, 수년간 신중히 생각한 후에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종교적 견해를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코울리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 방문자에게 자신의 정원을 보여주겠노라고 제의했습니다. 그리하여 코울리치는 그를 데리고 정원으로 나왔는데 거 기에는 잡초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는 놀라서 코울리치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걸 정원이라고요! 여긴 잡초밖에 없는 걸요!", "글쎄요, 보십시오" 하고 코울리치가 대답했습니다. "어쨌든 나는 정원의 자유를 침해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나는 단지 정원에게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신의 산물을 선택할 기회를 주고 있을 뿐입니다. "
학생이 없는 학교 I
1438년 영국 옥스포드(Oxford)에 설립된 올 소울즈 칼리지(All Souls College)는 세계에서 유일한, 학생이 없는 교육 기관입니다. 법과 역사에 대한 학식에 의해 뽑혀진 50명의 특별 연구원과 2명의 교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학교의 유일한 기능은 특별 연구원의 지위를 수여하는 것입니다. 이 학교는 원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죽은 영국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조직되었으며, 여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가장 작은 국민 학교 II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초등학교가 서 있는 것은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올해 유일한 졸업생인 15살의 김철두 군을 위한 졸업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김군은 남서해안에 있는 요룍도에 6년 전 요룍분교가 문을 열었을 때에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2, 3, 4학년 각각 1명씩, 그리고 2명의 5학년 학생이, 한 분밖에 안 계시는 김종민 선생님 밑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졸업식에서 졸업생 김군은 그의 다섯 명의 후배들에게 연필 한 자루와 지우개 한 개씩을 선물했습니다.
교육에 얽힌 명언들
(1) 교육이 지성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주요 장애물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역설적인 사실에 우리는 직면하고 있다.
- B.러셀 -
(2) 너무 많은 교육과 너무 적은 교육은 지성을 방해한다.
- 파스칼 -
(3) 대중 교육의 중요성은 자유와 정의에 버금간다. 이것이 없이는 자유도 정의도 영구히 지탱될 수 없다.
- J.A. 가필드 -
(4) 지극한 즐거움은 책을 읽는 것만한 것이 없고 지극히 필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만한 것이 없다.
- 명심보감 -
(5) 아마도, 모든 교육의 가장 가치있는 결과는 꼭 이루어져야 할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해야 할 일을 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 T.H. 헉슬리 -
(6) 교육은 번영할 때는 더욱 빛을 더해 주는 장식품이요, 역경에서는 몸을 위탁할 수 있는보호처가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 -
(7) 교육의 참다운 목적은 우리 내부에 뿌려진 불멸의 씨를 고이 간직하고 싹트게 하며, 나아가서는 우리를 만들어 준 신이 우리에게 준 모든 종류의 능력을 십분 신장시키는 것이다.
- A.B. 제임슨 -
(8) 자녀를 정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의 시작이다.
- J. 러스킨 -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
현대 사회의 급속한 변화는 인간 자체 뿐만 아니라 교육의 방향과 가치 및 방법 등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과학의 고도 발달은 인간을 도구로, 물질로, 기계화 과정으로, 또는 양으로 파악하는 심각한 교육의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보통 학자들의 의견도 3살의 경험, 영양 등은 인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자녀 교육에 있어서 어렸을 때의 자녀 교육은 철저했습니다. 5세에 시편을 암송했고, 7세에 율법서, 8세에 5경을 통독할 정도의 신앙을 토대로 유아 교육에 소홀히 하지 않는 자녀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일본의 하야시 박사는 사람은 일생 동안 자기의 뇌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가장 고상한 작품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이란 부모가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어 따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성자의 형상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되게 복종하는 일, 진정한 인간애를 실현하는 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 속에서의 실재적 삶을 통한 봉사의 생활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기념탑
1620년에 청교도인 120명이 매이플라워호를 타고 거칠고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 북미 대륙 플리머스라는 해안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120명의 청교도인 이야말로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장본인들입니다. 코들이 처음 도착했던 플리머스 해안이라는 곳에 지금 가보면 그들이 처음 발을 디딘 바위 위에 유명한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기념탑은 높은 대 위에 네 사람이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자유의 상징이고, 한 사람은 법의 상징이고, 한 사람은 도덕의 상징이고, 마지막 한 사람은 교육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그 네 사람 위에 다른 대가 하나 더 있어 그 위에는 한 여자가 한 손에는 성경을 펴서 들고 있고 한 손은 높이 들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국가를 이룩하기 위하여 자유, 도덕, 법, 교육, 종교가 필요하다는 의미를 전해 주는 기념탑입니다.
그만큼 교육은 국가를 이룩하는 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고 교육의 흥망성쇠는 국가의 장래와 직결됩니다.
최고의 교육
우드로우 윌슨이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었을 때입니다. 윌슨은 어느 날 학교 등교길에서 한 신입생의 어머니가 대학에 대해서 그에게 호된 추궁을 했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명문 하바드 대학을 나온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프린스턴 대학 졸업생이었기 때문에, 자식을 남편의 뒤를 발개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대학이 솔직히 못미더웠습니다.
그녀가 윌슨 씨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들을 훌륭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요. 이 대학에서 잘 될 수 있을까요?"
이에 윌슨 시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부인, 우리는 당신을 만족시켜드릴 것을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를 되돌려 보냅니다. "
도산의 전인 교육
강인한 민족주의자였고 교육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평소 교육 기관 설립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사업 중의 하나는 평양의 대성 학교 설립과 그 운영이었습니다. 학교의 교육 목표는 민족 운동의 전개와 국민 교육의 사부를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산의 교육 방침은 '건전한 인격을 가진 애국심 있는 국민의 양성'에 있었습니다.
도산이 주장하는 건전한 인격이란 정직함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인격을 말하는 것입니다.어떤 일을 행하든 거짓이 없고 속이는 행실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산은 생도의 가장 큰 죄는 거짓말과 남을 속이는 일이라 하여 이에 대해서는 한치의 용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죽더라도 거짓이 업어야 한다. '는 교훈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만인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됨으로서 우리 민족이 만국의 신뢰를 받게 되는 것만이 나라를 이룩하고 영광되게 하는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행여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마시오. 행여 꿈에서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슬퍼하고 통회하시오"
기독교의 확장
약 A.D. 110년에 비더니아의 총독이었던 플리니 2세가 로마 제국의 황제인 트라얀에게 보낸 편지에서 플리니는 기독교도와 그들의 예배에 대해서 자기가 아는 바를 묘사하였습니다.
"그들은 일정한 날 일광이 비치기 전에 만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찬양하여 성가를 부르는 것을 관습으로 하고 있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급속한 확장에 당황한 비더니아의 총독은 기독교 신앙이 전파되는 이유를 로마 황제에게 설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너무도 급속히 확장하여 이교도들의 제단이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는 기독교 신앙의 위력과 그 세계적인 전파의 비밀을 말로써 분명히 나타낸 것입니다.
한국판 섬머힐
성적과 체벌이 전혀 없는 '열린 교육'을 실천하는 한국판 섬머힐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옛 운현궁 터에 자리잡고 있는 운현 초등학교는 한 학급 학생이 30명이고 전교생이 120명인 학교입니다. 이 초등학교는 동그란 테이블에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이 둘러앉아 자유릅게 학습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첫째, 시험이 없어서 성적이 없고 그래서 등수가 없는 학교.
둘째, 체벌이 없고 자유 토론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게 하는 학교.
셋째, 현장 학습을 통해 고구마를 캐고 잠자리도 잡고 도자기도 굽는 학생들.
넷째, 모든 일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학생,
다섯째, 교사가 전교생의 얼굴과 이름을 다 아는 학교.
이런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우리 선생님은 공부하라고 야단치지 않아요."
"학교 생활이 너무 즐거워요."
"나는 산수를 잘해서 산수 시간이 제일 재미있지만 다른 시간도 지겹지는 않아요."
이렇듯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가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며 생활할 수 있는 곳이 될 날'이 오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교육하는 사람들이 임한다면 우리 교육의 장래도 어둡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인의 자녀 교육
이스라엘인들은 자녀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마자 아이에게 낱말과 문장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가르치는 낱말들이 처음에는 매일 외우는 기도문 가운데서 축복의 말로, 이를 기억하게 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말들 가운데서 한마디를 하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말들을 외웁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어머니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로 「탈무드」와 「토라」에 있는 내용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어린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력이 왕성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게 되면 기뻐하고, 더욱이 새로운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을 때 어머니의 칭찬과 격려가 따르면 즐거움은 배가 됩니다. 이런 가운데 아이는 성서의 인물들을 흠모하게 되며 올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되며, 또한 상상력과 사고력도 발달하게 됩니다.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있을 나이가 되면 아이에게 처음으로 「탈무드」를 읽히는데, 그때 부모는 반드시 꿀물을 한방을 책장에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거기에 입맞추게 합니다. 「탈무드」가 지루하고 엄격한 율법책만이 아니라 꿀처럼 달콤하다는 관념을 심어 주고 거기에 애착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좋고 옳은 것이니까 배워야 한다고 자녀의 머리에 지식을 무조건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자발적인 동기를 존중한 교육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이탈리아의 종교 교육
이탈리아 교육성은 최근 학부모들과 14세 이상의 학생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 종교 교육을 실시하는 문제에 대한 찬반의견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학부모들과 학생들 대부분이 공립학교에서 종교 교육이 실시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당국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결과였습니다.
이탈리아 교육성이 한 이 조사는 조사에 응한 학부모의 95% , 학생의 94%가 종교 교육을 받길 원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전문가들은 대부분의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종교 교육을 거부하리라고 예상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여론조사가인 독사(Doxa)가 얼마 전에 실시한 조사 결과가 이탈리아 국민의 종교열이 식고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사의 조사에 따르면 30년간 이탈리아 국민의 미사 참석률은 69%에서 28%로 떨어졌고, 현재 젊은 층에서는 겨우 8%만이 매주 성찬배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교육
가장 훌륭한 랍비가 북쪽 나라에 두 사람의 시찰관을 보냈습니다. 시찰관은 그 도시를 지키고 있는 사람과 만나서, 잠깐 조사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 북쪽 도시에서는 치안을 책임 맡은 제일 높은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아닙니다. 우리들은 도시를 지키는 사람과 만나고 싶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자, 다음에도시의 수비대장이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의 랍비는 "우리들이 만나고 싶은 것은 경찰서장이나 수비대장이 아니라 학교의 교사입니다. 경관이나 병정은 파괴할 뿐, 진정 도시를 지키는 것은 교사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랍비 요한나 벤 자카이
요한나는 유태 민족이 사상 최대의 정신적인 위기에 직면했을 때, 크게 활약한 랍비입니다. 기원 후 70년에 로마인이 유태의 사원을 파괴하고, 유태인을 전멸시키려고 뫼했을 때, 요한나는 비둘기파였습니다. 그래서 매파가 항상 이 랍비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나는 유태 민족이 영원히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로마의 장군과 어떤 결말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 유태인은 모두 예루살렘의 성벽 안에 들어박혀 있었으므로 들어갈 수도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한나는 한 계교를 생각해 내어 탈출했습니다. 병자의 흉내를 낸 것입니다. 그는 대승정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상에 위문하려 왔습니다. 마침내 그는 곧 죽는다는 소문이 퍼지고, 얼마를 지나자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관 속에 넣어 성벽 밖으로 들고 나가 드디어 전선의 후방으로 가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랍비는 관을 열고 나와서 사령관과 만나고 싶다고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의 사령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며,
"나는 당신에 대해서 로마의 황제에 대하는 것과 같은 경의를 표한다. "고 말했습니다. 황제라고 불린 사령관은 황제를 모욕했다고 해서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아니,내 말을 믿으시오, 당신은 반드시 이 다음의 로마 황제가 될 것입니다. "라고 잘라말했습니다. 그러나 시령관은
"그 말은 그만둡시다.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한 가지만 원이 있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독자라면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잠시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랍비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조그만 방이라도 좋소. 열 명 가량의 랍비가 들어갈 학교를 만들어 주시오. 그리고 그것만은 파괴하지 말아 주시오." 랍비는 늦든 이르든 예루살렘이 결국 로마에 의해서 점령되고 파괴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학살이 생길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학교만 있으면 유태의 전통은 남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령관은 "좋소, 그렇게 해드리죠."라고 약속했습니다. 얼마 지나서 로마의 황제가 죽고, 이 사령관이 황제가 되자 새황제는 로마 병사에게 "한 개의 작은 학교만은 남겨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작은 학교에 남아 있던 학자들이 유태의 지식, 유태의 전통, 유태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전쟁이 끝나고부터 유태인의 생활 전부를 그 학교가 계속 지켜 이끌어나가게 되었습니다.
주일 학교를 먼저
미국의 죤 워나메카는 백화점의 왕으로 이름이 나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대단히 존경하였으며 정부에서는 그를 장관으로 등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부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장관이 되기 때문에 주일 학교에 출석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면 큰일입니다. " 하면서 처음에는 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일 주일이 되면 어떤 일이 있든지 자기 자신의 고향인 필라델피아에 돌아가서 교회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면 장관이 되어도 좋다는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결국 정부에서는 그 워나메카를 장관에 등용시켰습니다.
물푸레 나무
선비가 제자와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길가에 한 그루의 물푸레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선비는 걸음을 멈추고 옷깃을 여미더니 공손하게 세 번씩이나 그 나무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행동에 놀란 제자는 선비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고명하신 선생님께서 물푸레 나무에게 절을 하셨을 리는 만무하고 도대체 누구에게 절을 하셨습니까?" 이때 선비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네. 나는 물푸레 나무에게 절을 했네."라고 태연히 말했습니다. 더욱 이상하게 생각한 제자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말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때 선비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네에게는 이해가 안될 걸세, 그러나 여보게 자네가 나를 훌륭한 선생이라고 존경하듯이 저 물푸레 나무는 나에게 있어서는 훌륭한 선생이라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망나니였지. 그래서 언제나 아버지는 물푸레 나무로 나의 종아리를 때리셨지. 나를 사랑하시며 장래를 걱정하시던 아버지는 저 물푸레 나무로 가지가 부러지도록 종아리를 때려 피가 흘러내리게 하였지. 그리고 아버지는 피가 흐르는 나의 종아리를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네, 그때야 나는 나의 잘못을 깨달았네. 그리고는 다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하지 않고,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지 말며, 다시는 나 때문에 아버지께서 우시지 않게 하리라 결심했네. 그후 나는 그 부러진 물푸레 나무를 내 방의 벽에 걸어놓고 들고 나며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다운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였네, 결국 나는 물푸레 나무 때문에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었던거야. 그러니 물푸레 나무가 어찌 나의 스승이 아닐 수 있겠는가?"
망쳐진 아이가 더 심각하다
유명한 웨지우드 도자기 회사의 설립자인 조시아 웨지우드가 어느 날 한 귀족에게 공장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 공장의 종업원이던 한 소년이 그들과 동행했는데, 그 귀족은 상스럽고 저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 그 소년은 그 귀족의 상스러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그의 저속한 농담에 끌리어 웃고 말았습니다. 웨지우드 씨는 그러한 광경을 보고는 고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견학이 끝날 때쯤에 그는 독특한 디자인의 꽃병을 귀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귀족은 그 꽃병의 우아한 모양과 보기 드문 아름다움에 매혹되었습니다.
그가 그 꽃병을 만지려 하자,웨지우드 씨는 그것을 마루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귀족은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나는 저 꽃병을 살 생각이었소. 그런데 당신이 그걸깨뜨려 버렸으니‥‥‥‥
웨지우드 씨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 아무리 꽃병이 귀하다 해도 그보다 훨씬 더 귀한 것이 망가졌습니다. 선생은 방금나간 소년에게, 그의 부모들이 수년간 그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신성한 것에 대한 경외심을망가뜨렸습니다. 당신은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단 말이오 ! "
어록·시·묘사
기독교 교육은 사람들을 참 인간성으로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선교사명에 참가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대해서 주어진 그리스도의 초청에 자발적으로 기쁘게 참여케 하는 일이다.
(레티 레셀/ 선교에 있어서의 기독교 교육)
기독교 교육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의 전삶에 초점을 두며, 개인들과 그룹들을 기독교적 삶의 스타일로 개발시키는 신앙공동체의 계획적, 조직적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J. 웨스트호프 III세)
종교 교육의 목적은 '젊은이들을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하여 하나님의 민주주의에 효과적인 헌신을 하게 하여 거기에서 행복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죠지 코우/ 종교 교육의 사회론)
기독교 교육의 목적은 '기독교적인 이해와 행동과 사랑을 동등하게 학생 개인의 경험에 다 융합시키는 것'이다.
(J.M. 리)
교육의 참다운 목적은 우리 내부에 뿌려진 불멸의 씨를 고이 간직하고 싹트게 하며, 나아가서는 우리를 만들어 준 신이 우리에게 준 모든 종류의 능력을 십분 신장시키는 것이다.
(A.B. 제임스/ 교육론)
대중교육의 중요성은 자유와 정의에 버금한다. 이것이 없이는 자유도 정의도 영구히 지탱될 수 없다.
(J.A. 가필드)
인간의 인간다운 현존을 위한 인간해방은 필육의 목적이다.
(파울러 프레어/ 페다고지)
만약에 사람이 사소한 가르침이라도 깨뜨린다면 결국에 있어서는 중대한 가르침까지도 깨뜨리게 되고 만다. 만약에 사람이 「네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깨뜨린다면, 거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가르침, 즉 「복수를 하지 말라.」 「악을 행하지 말라.」 「너의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는 등의 모든 가르침을 깨뜨리게 되어 결국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인내력을 기르려면 음악가에 못지않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들은 거의 언제나 선생님이 언제 올 것인가 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J. 러스킨)
새로운 통찰에 이르거든 그것을 새로운 선행으로 연결시키라.
(A. J. 헤셸)
기도하는 것보다는 공부하는 것이 더 쉽다. 학자가 되는 것보다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어렵다. 악령은 사람이 '탈무드'의 논리를 공부하는 것은 내버려둔다. 왜냐하면 그 방면의 학위를 따는 것은 그의 허영심을 만족시켜주고 명성을 더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도덕률에 대한 책이거나 법전(율법에 관한 책)을 펴들고 있으면 방해를 한다. 그것을 공부하면 그 사람 안에 외경심이 자라나겠기 때문이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토라를 공부하는 것은 그것이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위대하다.
(A.J. 헤셸)
교육 또는 교양의 목적은 지식 가운데에 견식을 키우고, 행위 가운데서 훌륭한 덕을 쌓게 하는 데 있다. 교양이 있다는 사람이라든가, 또한 이상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란 반드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나 박식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옳게 받아들여 사랑하고 옳게 혐오하는 사람을 뜻함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우리는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우리 자신이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
(T.W. 윌슨)
교육은 순경(順境)에 있어서는 장식, 역경에 있어서는 피난처이다.
(아리스토텔레스)
교육은 도덕과 지혜의 두 개의 기반 위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 전자는 미덕을 받들기 위해서, 후자는 남의 악덕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전자에 중점을 두면 사람 좋은 사람이나 순교자밖에 안 나오고, 후자에 중점을 두면 타산적인 이기주의자가 나온다.
(S.R.N. 샹포르/ 격언과 반성)
교육은 천부(天賦)의 가치를 높이고, 올바른 수련은 마음을 굳세게 한다.
(호라티우스/ 송시집)
큰 소리로 칭찬하고, 부드럽게 나무란다.
(러시아의 카테리네 II세/ 어록)
교육의 참된 목적은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강청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착한일을 하는 그 자체에 기쁨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결백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 결백함을 사랑하도록 함에 있다. 정의를 지키게 할뿐 아니라 정의에 대해서 목마르게 희구하게 만드는 데 있다.
(J. 러스킨)
책상에서 글을 읽는 에비의 고질을 물려받아/ 뼈가 굽은 이지러진 불운한 아이/ 침침한 교실 뒷줄에 유순하고 어린 숨어 앉는 놈/ 그의 눈은
이 교실 아닌 나무에서 노는 다람쥐놀이의 꿈을 꾼다.
(S.H. 스펜더/ 빈민굴의 초등 학교 교실)
어와라 젊은이여 나의 젊은이/ 좋고 그름 가릴 줄 아직 모르니/ 손을 잡아 그대로 끌 뿐 아니라/ 사실 들어 명확히 밝혀 주면서/ 면전에 맞대이고 알릴 뿐더러/ 귀를 잡아 당겨서라도 일러 주려네
(시경)
사람이 삼겨나서 배우지 않으면은/ 어두운 밤길을 걸음 같다 하였으니/ 어화 저 소년들아 배우기에 힘쓸지라.
(지덕붕)
그러자 이번에는 한 교사가 말했다. 저희에게 가르침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 어떤 자도 그대들 깨달음의 새벽에 이미 반쯤 잠들어 누워 있는 것 외엔 어떤 것도 가르쳐 줄 수 없다. / 제자들에 둘러싸여 사원의 그늘 아래를 거니는 선생이란 그대들에게 신념과 사랑을 줄 순 있으나 지혜를 줄 순 없는 법./ 그가 진실로 현명하다면, 그는 그대들에게 저의 지혜의 집으로 들어올 것을 명령하지는 않으리라. 그보다 그대들로 하여금 그대들 자신의 마음의 문으로 인도케 하리라./천문학자는 그대들에게 우주에 대한 그의 지식을 말해 줄 수는 있어도, 그러나 자기의 깨달음을 말해 줄 수는 없다. / 음악가는 그대들에게 이 우주 어디에나 있는 리듬을 노래해 줄 수는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 리듬을 포착하는 귀마저, 또 그것을 울려 내는 목소리까지 줄 수는 없다. /또 수학자는 무게와 길이의 세계에 대하여는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러나 그대들을 그리로 인도할 수는 없는 법./ 왜? 인간의 상상력이란 타인으로부터 그 날개를 빌릴 수는 없기에./ 그리하여 그대들 누구나 홀로 신을 깨달아야 하듯이 그대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와 떨어져 홀로 신을 깨닫고 홀로 대지를 이해해야만 하리라.
(K. 지브란/ 예언자)
우리의 젊은이들 문제는 젊은이에게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 시대의 정신이다. 초월을 부정하고, 간 있는 것을 시들게 하고,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고, 정신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에 점차로 무감각하게 하고, 전통의 세계와 개인의 내면 세계 사이의 대화를 끊어버리는 오늘의 시대 정신이 문제이다. 문제의 알맹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법, 기도하는 법, 우는 법, 그 숱한 설득자들의 속임수에 항거하는 법을 모르는 데 있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나는 일곱 살 때부터 갈릴리 호수가 보고 싶었다. 주일학교 반사의 실팍한 손과 부리부리한 눈이 베드로를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분이 베드로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나도 좋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물을 걷어 울리던 손이 갑자기 전류에 잡힌 듯, 허둥지둥 버리고 간 베드로 형제들의 배를 타보고 싶었다. 집 안의 뒷일일랑 오직 하늘에만 의지코 떠난 그들의 무심한 행동을 이해하기엔 아직도 나는 소년이었다.
(윤혜승/ 갈릴리 호수)
우리 어른들은 우리의 도덕적인 책임을 학교에, 사회 기관에, 혹은 공공 재단에 맡겨 버 렸다‥‥ 의미 심장하게도 성경은 우리에게 아이들을 훈련시킬 선생을 임명하라고 명령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명령은 부모가 선생이 되라는 것이다‥‥ 선생은, 유다의 전통에 따르면, 아버지의 대리인일 뿐이다. 남에게 시킬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 그들을 부지런히 가르칠 일이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우리는 학생에게 긴장을 뚫고 나가도록, 시련과 고난을 정면으로 맞서도록 준비시켰는가? 인간은 유혹을 만나고 결단을 내리도록 태어났다. 그는 반항하기 위하여, 그리고 마찬가지로 주장하기 위하여 태어났다. 신앙의 어려움과 순수성을 지키는 일의 힘들을 깨닫지 못하고는 신앙도 순수성도 있을 수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은 정신적인 뱃심과 함께 확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설 교 노 트
지혜를 배우자
잠30:34-28
서론
우주는 학교요, 인생은 학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 만물을 통해서 일평생을 배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솔로몬은 땅에 기어다니는 작은 미물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미물에게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개미에게서 근면성을 배워야 합니다(25절).
개미는 아주 작고 매우 약한 곤충이지만 자기에게 필요한 양식을 모으는 데 있어서 개미만큼 부지런한 것도 없습니다. 잠언 6장6-8절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여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이 되면 일할 수 없을 것을 내다 본 개미는 일하기 좋은 여름 동안에 부지런히 일하여 상당한 양식을 비축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힘써서 일해야 할 것입니다.
2. 사반에게서 견고성을 배워야 합니다(26절).
사반은 약한 종류로되 집을 바위 사이에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까치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오리는 갈밭 사이에 집을 짓고, 그 밖의 많은 짐승들은 토굴 속에 집을 짓습니다. 나무위에 지은 집이나 갈밭 사이에 지은 집, 그리고 흙 속에 지은 집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괜찮지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물에 젖고, 떠내려 가고 무너지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위 틈에 사는 사반은 아무런 위험 없이 산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집을 짓되 영원한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집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사반처럼 견고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만이 흔들리지 않는 성공자가 됩니다. 편안하다고 쉽다고 모래 위에 집을 지어서 비가 오면 와르르 무너지는 실패의 삶을 살지 말고 견고하여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3. 메뚜기에게서 단절성을 배워야 합니다(27절).
메뚜기는 임금이 업지만 전투 대형을 벌인 군대처럼 떼를 지어 나갑니다. 우리는 이 메뚜기에게서 질서 정연함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요엘 2장 2절에 보면, 메뚜기를 하나님의 큰 군대라고 말했습니다. 메뚜기 한 마리 한 마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단결을 가장 잘하는 나라로 꼽힙니다. 이스라엘은 아랍의 연합국에 싸인 나라이지만 단결 하나로 부흥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단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시기하고 헐뜯는다면 우리 가정이나 교회, 사회, 그리고 국가까지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뭉쳐질 때 강한 힘을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도마뱀에게서 관찰성을 배워야 합니다(28절).
도마뱀은 미끄러운 담벽이라도 기어오를 수 있는 발을 가졌기 때문에 어디든지 들어갈 수있으며, 왕궁 깊은 곳이라도 숨어 들어가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제각기 전문 분야에 깊이 들어가서 관찰하고 연구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날마다 성경을 읽고 말씀대로 살기를 전문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물에게서 배울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개미에게서 근면성을 배우고, 사반에게서 견고성을, 메뚜기에게서 단결성을, 도마뱀에게서 관찰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양과 질의 문제
삿7:1-8
서론
질이나 양은 그 중요성을 따지기에 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질이 좋아도 양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며, 아무리 양이 않아도 그 질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0만불의 돈을 1불짜리로 셀 때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새어도 다 못 센다고 합니다. 100만불도 다 못 새고 가는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 이와 대조적으로 수억의 아랍 국가들과 2-300만의 이스라엘 국가가 싸워서 오히려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같이하셔서 승리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질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질이냐 양이냐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병아리가 먼저냐 하는 토론의 대상처럼 국가, 사회, 교회에서도 항상 대두하는 질문입니다.
1. 양의 중요성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하셨으니, 생후 번성 충만하는 것이 복임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이 필요치 않고 중요치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모든 자연의 현상을 보더라도, 양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증가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시고 약속하실 때에도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많아지리라고 했습니다. 숫자가 많아지는 것, 양의 증가를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민수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백성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민수기입니다. 많은 숫자, 양이 필요 없었다면, 성경에 민수기라는 책은 없었을 것입니다. 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도 중요한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아도 숫자와 양을 따졌습니다. 이익을 남긴 숫자에 비례해서 상의 크기가 달라진 것입니다.
양의 증가가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 양이 어떤 종류의 양으로 또한 어떠한 역할을 하는 양으로 증가하느냐 하는 것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자선 사업가가 많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살인 강도가 많이 생기면 결코 안될 것입니다. 믿지 않은 자가 악한 짓을 하는데도 그 사업이 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물질의 증가는 더 악한 일을 계속하게 되고, 공의의 하나님의 보응을 언젠가는 받게 되어 있습니다.
2. 질의 중요성
양이 없으면 질도 없습니다. 질이 없으면 양이라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고 미디안 사람과 싸움을 하려고 합니다. 수만 혹은 수십 만 명의 미디안 백성과 싸우려고 32,000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였는데, 하나님께서 그중에서 300명 만을 고르게 했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부하 300명이 수만 명의 미디안 군대를 완전히 전멸시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이 문제가 아니요, 질이 문제인 것을 보았습니다.
현대인은 양보다 질을 더 좋아합니다. 질이냐? 양이냐?
하나님의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로서 이루어지며, 구원받은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가는 중요한 것입니다. 많이 모이는 교회라고 해서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며, 믿지않던 자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양이 중요하지만 질을 무시하는 양은 아무 가치가 없으며, 오히려 질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씀해서 많은 양 속에 있는 질의 도수를 높일 수 없다면 오히려 작은 양 속의 질로서 만족하는 것이 나온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믿음이 있는 교회는 양적으로 반드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질이 좋으면 반드시 양의 증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질적으로 좋은 교회가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양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교회가 질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하려면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교육, 교육, 교육, 질적인 향상을 위하여 모두 노력할 것입니다.
결론
비록 양적으로 성장하더라도 자랑하고 교만할 것이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으시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일해야 할 것입니다.
양과 질 이 두 가지는 다 필요한 것인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올바른 양과 질의 성장을 위하여 성도 여러분들은 모두 교육에 참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닮자
막10:44-45
서론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십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신이시면서 우리 인간과 똑같이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도 한 인간으로서 어려운 일을 당할 떼 기도하셨고 남을 위해 봉사하셨고, 자기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좋은 신앙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배워서 닮아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그를 닮아가야 합니다.
1. 예수의 온유한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은 타인의 허물을 덮어 주고 선의와 화평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손해를 당하거나 멸시를 받아도 쉽게 성질을 내지 않으며, 자기 기분대로 안되고 마음이 상한다고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악을 악으로 되갚기보다는 모든 것을 인내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또한 온유한 마음은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 잘 아는 사람, 힘이 센 사람, 권력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사람에게도 똑같이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런 마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희생적인 삶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 사신 분이 아닙니다. 완전하게 남을 위해서 태어나셨고 사셨으며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당하신 십자가의 수치와 고난은 자기 때문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배우고 닮겠다는 오늘날의 우리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입니다. 나만 편하면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적인 삶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회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거짓으로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남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사신 예수님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3. 남을 섬기신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입니다. 주님은 스승으로서 자기 제자들의 발을 몸소 씻겨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 났다고 하며 자기를 주장하고 자존심을 내세웁니다.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물질을 내세우고 자기의 재능을 자랑하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승으로서, 또한 인류의 구주이셨는데도 제자들의 냄새 나는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우고 닮아야 할 섬김의 자세입니다. 이 예수님의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가진 것으로 남에게 자랑하며 내 세우면서 교만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를 칭찬하십니다.
4. 순종하신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전적으로 우리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적이고 게으른 사람은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고 이익을 계산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가르침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를 닮고 싶어합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그의 온유하심과 희생적인 삶과 남을 섬기는 자세와 순종하신 삶을 배우고 닮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성품과 삶과 모습을 닮은 작은 예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배우자
빌2:1-11
서론
교육이란 말은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일 또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역사의 주인공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배우는 것은 예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음에 아름다운 변화가 온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1. 아가페적인 사랑을 배워야 됩니다(1절).
예수님은 바로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사랑이 없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3장 18-19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중심에 충만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사도 요한도 사랑을 매우 강조하여 하나님께 속한 자의 모습과 우리가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의를 행하는 것이나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속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 속한 자의 증거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내신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배워 충만히 중심에 채워서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2.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3-7절).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종의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나 종의 형체를 입어 사람이 되셨습니다. 인간들보다 더 낮추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겸손하셨기에 구속 사업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님의 겸손을 꼭 배워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약4:6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될 예수님의 겸손은 자신의 영광을 희생하는 원칙입니다. 또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를 취하셨으니 그것은 낮은 데서 봉사하시는 생활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는 종의 자리에서 순종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겸손으로 하여금 지극히 높아지셨습니다. 높아짐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겸손은 높아지기를 원치 않으나 필경 하나님께서 높아지시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워서 일생을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3. 순종을 배워야 됩니다(8절).
8절에 보면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십자가에 죽는 데까지 가셨습니다. 우리들은 꼭 순종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순종의 종교입니다. 신약, 구약에 적고 크고 간에 일어난 기적의 동기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완전히 순종하는데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생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은 우리의 양식이 됩니다(요4:34).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신앙이 성장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영원토록 있다고 하였고(요일2:17),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하였습니다(요7:17).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고 그대로 기도하는 자는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고 하였으니 큰 소망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면 도리어 응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론
사람은 일생 동안 배우며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더욱 열심히 배우며 살아야 합니다. 배움으로 발전이 되며, 성공의 길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사랑과 겸손과 순종을 배워서 예수님을 닳아 성공적인 성도의 생애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교육
호3:1-5, 6:1-3
서론
이 말씀은 하나님이 호세아 선지에게 음녀 고멜과 결혼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사건을 통하여 사랑의 교육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사랑의 교육은 무엇입니까?
1. 호세아의 가정적 체험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인 "고멜"을 아내로 취하여 가정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결혼하여 자녀를 낳습니다. 그런데 고멜은 불의한 관계를 계속하여 자녀를 낳았으니 그것도 만족지 못하여 집을 나가서 창녀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탕한 아내 고멜을 다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창녀 소굴로 찾아가서 고멜을 돈 주고 사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리고 호세아는 고멜에게 부드러운 말로 이르고 깨끗하고 정숙한 아내가 되어 주기를 신신 부탁하였습니다(호3:3). 이와 같이 호세아의 가정적 체험 즉 비극적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예언하게 하시며 사랑의 교육을 행하신 것입니다.
2. 음녀 같은 이스라엘
영적으로 음란한 여자 같이 참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사신(邪神)우상을 따라가는 부패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은 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택한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저버린 것이요, 즉 결혼 계약을 저버린 부정한 아내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크리스찬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죄를 사랑하게 되면 음행으로 이혼당한 자와 같이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채찍으로 때리십니다. 잘못을 깨닫고 바른 자녀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쓰라리고 뼈아픈 고통을 주어서
사랑의 교육을 행하시기도 합니다.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요셉은 옥중에서,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나사로는 무덤에서 각각 하나님의 사랑을 배웠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윤리를 배웠나이다(시119:71)"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황송한 사랑
하나님이 죄인들을 택하여 자기 백성을 삼은 것은 호세아가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은 것같이 황송한 사랑입니다. 집을 버리고 창녀로 타락한 고멜을 호세아가 찾아가서 은 15개와 보리 한 호멜반을 주고 산 것은 하나님이 귀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 남편을 버린 불의한 아내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끝까지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결국은 그 백성을 회개시켜 구원하십니다(호3:5). 탕자가 자기의 죄된 생활을 청산하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깊은 사랑에 감격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눅15장).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이 하나님의 황송한 사랑에 깊이 감격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 하늘로서 내리사 우리 마음에 항상 계셔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황송한 사랑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또 감사합시다. 그리고 이 사랑에 보답하는 자가 됩시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를 그냥 벌하신 것이 아니라 꾸준한 사랑으로 참으시며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속죄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는 사랑의 섭리로 우리들을 교육하시며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이 은혜를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하는 교회
벧후3:14-18
서론
베드로는 본문 17-18절에서 신앙의 확실한 터전과 계속적인 성장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뿌리를 깊이 박고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누구를 교육하고,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교육을 통한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1. 누구를 교육할 것인가?
(1) 먼저 교회의 지도자를 교육하여야 합니다.
목사가 기독교 교육의 근본이념을 알아야 교회를 바로 교회답게 지도하여 발전시킬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는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목회의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 교육을 받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사 자신이 교육받는 데 열심이고, 목사 교육을 위해서 교회가 크게 관심을 갖게 되어야 합니다.
(2) 어린이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이들의 머리는 백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의 교육은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 교육이란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3) 청년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의 운명은 청년 교육에 달려 있다. "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십대 청소년의 교육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과학 문명의 급속한 발달과 제 2차 대전의 퇴폐주의 사조가 그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와 기성 체제에 대해서 반항적이고 그리고 물질 문명에 대해서 매우 염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 교육이 그들에게 참으로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바른 인생관·바른 역사관·바른 세계관·바른 처세관·바른 윤리관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4) 평신도 교육도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죽을 때까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낙후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 평신도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우리는 부지런히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2.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베드로는 15절에 "바울은 그 지혜대로 이같이 교육했다"고 했는데 그 바울이 어떤 것을 교육하였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1) 은혜에 대해서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이 은혜란 죄인들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꼭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 다.
(2) 인간 자유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인간은 창조 당시부터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 생활의 자유, 생각하는 자유 등 자유가보장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외에는 무엇에든지 속박을 당할 수도 없고 또 당해서도 안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본 권리입니다.
(3) 믿음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의지하고 의탁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요, 죄사함 받고 구원받는 열쇠 입니다. 보지 못한 것을 확실히 증거하는 것입니다.
(4) 성경을 가르쳐 주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정확한 유일의 법칙입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5) 사랑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 학교의 특색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에 어떻게 봉사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은 집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은혜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사랑을 교육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 교육입니다.
신앙과 교육
요4:1-26
서론
기독교의 신앙은 다른 종교의 신앙과 다릅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의 노력으로, 수양적 공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여 그 결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 귀중한 기독교의 신앙을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얻을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가르치시고 (교육 사업), 전도하시고(선교 사업), 병 고치시는(병원 사업) 이 3대 사업을 하신 것을 보아 교육에 중점을 두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과 교육의 관계를 세 가지로 말하려고 합니다.
1. 준비에 필요한 교육
집을 지으려면 먼저 기초공사가 필요합니다. 지저분한 것을 다 치우고 메울 곳을 메우고, 파낼 곳을 파내서 집을 지을 준비 공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과거 정신적 배경은 유교와 불교와 샤머니즘의 혼합체입니다. 이런 사상에 젖은 우리 한국 교인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실상 엄격히 따지고 보면 우리는 교육으로 먼저 신앙의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준비없이 귀한 것을 받지 못합니다. 유교나 불교나 샤머니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길가도 아니고 돌밭도 아니고 가시덤불도 아닌 옥토의 마음밭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2. 성장에 필요한 교육
준비가 되어진 심령에는 믿음의 씨가 주님께로부터 떨어집니다. 이 귀한 씨는 계속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곡식이 자라는 데는 몇 가지 필요한 것이 있어야 하듯이, 신앙에도 필요한 요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의 양식이 되는 성경 말씀을 때를 따라 계속적으로 심령의 귀에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풍습과 습관이 다르고 역사적 배경이 다른 오랜 옛날의 사람을 위하여 씌어진 성경을 잘 알려면 유대 풍속과 문화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또한 기도는 신자의 호흡이라고 말하는데 기도 역시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원리 방법 등을 가르쳐 당면 문제에 알맞은 기도를 함으로 우리의 신앙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외롭고 답답할 때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섭리자이신 하나님께 기도로 호소하면 우리 심령을 마르게 하는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그 안에 안기운 믿음이 자라날 것입니다.
3. 결실에 의한 교육
신앙이 어느 정도 자라면 결실하게 됩니다. 신앙의 열매는 경건·순결·복종·사랑·희락 ·온유·동정·자비·긍휼·정의·책임감 등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과 같이 사는 데 필요한 모든 덕행들입니다. 신앙의 열매는 교육으로 키우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인의 신앙을 보면 "철야기도·새벽기도·부흥회" 등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을 만큼 열심인데 그 반면에 싸우기도 제일 잘합니다. 우리 한국인, 특히 기독교인은 열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을 뒷받침해 주는 신앙이 부족합니다. 건전한 신앙으로 전체를 보면 사소한 문제들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불건전한 편견으로 자기 그룹만을 보기 때문에 독선주의에 빠지고, 독선주의는 자기 이외의 것은 전부가 다 못 쓸 것이라고 속단합니다.
현재 교회는 사랑의 집단이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 진정한 사랑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신앙으로 한데 뭉친 교회라면 그 안에 분열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원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과거 우리의 걸어온 길을 반성하여 평가하고, 널은 세계의 기독교 운동에 호출을 같이해야 합니다. 먼저 교육으로 신앙의 터전을 잘 닦아 건전한 신앙을 키워 장부의 믿음이 되게 하고, 그 다음, 신앙의 열매를 다듬어 알곡의 신앙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교육 방법
왕상17:1-24
서론
당시 아합 왕 때, 이스라엘은 바알이란 우상을 따라 모두가 이방신을 따라 살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이 바알 우상 섬기는 자들과 싸운, 영웅적인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850:1이라는 엄청난 다수의 힘 앞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함으로 저들을 무질러 이길 수 있었고, 또 한번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되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토록 했던, 한 마디로 능력이 많은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도 처음부터 그렇게 능력 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능력 있게 쓰임받기까지에는 하나님의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밧에서 하나님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교육 단계는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은 자기의 쓸 자들을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한꺼번에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엘리야에게 "너는 여기를 떠나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물이 점점 말라지게 하였습니다. 웅덩이가 드러나게 되었고 물은 점점 더 말라 모래만 남게 되었을 때 다음 단계로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으로 들어가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말해 주리라"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한꺼번에 다 알려주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씩, 한 단계씩 인도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함으로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겨만 놓으면, 하나님은 또 다른 발걸음을 옮길 곳을 마련해 줍니다.
우리는 너무 한꺼번에 모든 일을 다 보게 해 달라고 하고 한꺼번에 성취시켜 달라고만 할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사용하려는 인물들일수록 할 수 없이 발을 옮겨 놓도록 이끌어가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결국은 쫓겨가는 걸음이요, 피해가는 걸음이요, 포기하는 걸음일지라도,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교육 방법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 감추인 생활의 가치를 배우도록 훈련하십니다.
지나치게 머리만 믿고 자부심에 차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숨으라는 교육을 시키십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위에서 큰 성공을 하였지만 그 뒤에 이세벨의 추적을 받고 쉽게 낙담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위대해서 갈멜산의 승리를 하였다고 착각을 하였기 때문에 쉽게 낙심한 것입니다.
병고의 그릿 시냇가에, 실패의 그릿 시냇가에, 실망과 좌절이란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신 연후에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도, 다윗도, 모세도, 다 좌절의 그릿 시냇가에서 숨어서 철저히 훈련을 받은 인물들이었습니다.
이 훈련의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또 다른 곳으로 인도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육 방법은, 이렇게 한 걸음씩 인도해 가고 감추인 생활의 가치를 배우게 할 뿐 아니라 말라가는 시냇물을 보게 하는 방법으로 교육하십니다. 인간이 어떻게 그 껍질을 벗고 이성적인 지성, 신앙적인 순종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가 하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말라가는 시냇가를 보는 엘리야, 초조하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되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낙심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말라가는 시냇가에서 인간의 고독과 좌절을 아직도 인간 이성과 지성의 힘으로 극복해 보려는 사람은 없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마르게 하는 것은, 더 풍성한 삶을 얻게하려는 하나님의 교육 방법입니다.
시편 기자는 "겨와 같이 말라서 바람에 불리어 흩어질 존재들과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같이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계절을 따라 열매를 달리는 그런 사람"을 구별해서 말하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들처럼 마르지 아니하는 싱싱한 소망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 교육에 대해서
마4:1-11
서론
오늘의 교육에서는 지식이란 실천을 위한 수단으로 되어 있고, 이념이나 사상이라는 것은 단순한 가설에 그치고 이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진실로 하나님 부재, 인간 부재의 현실이라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오늘의 교육은 비인간화 혹은 인간 부재, 하나님 부재의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일반 교육은 과학 기술에 의하여 형성되는 인간성 창조에 줄달음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 교육은 과학 기술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은 그 한계도, 제약도 없이 줄달음치는 과학획일주의, 과학만능주의에 대하여 긍정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은 인간에게 행복도 주고 있지만 동시에 인간을 기계화하고 있어 인간을 비인간적 존재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육이 서야 할 땅은 어디입니까?
1. 기독교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기독교 교육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인간이 이 말씀과 만나게 하여 그곳에서 새로운 변화의 경험과 계기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서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하는 모든 인위적 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기독교 교육은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분명한 교육의 선언을 시작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곧 현실 너머 영원성 속에 깃들이는 인간됨, 용기와 긍지 녹에서 비로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지상적인 것, 기술 왕국이 인간의 궁극적인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역사의 비극 바로 저 편에서 인류와 우주의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만이 해결이라는 믿음 위에 기독교 교육은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2. 기독교 교육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기독교 교육은 사람이 모르모트처럼 실험되어지는, 배우는 기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엄숙한 존재와 가능성임을 믿는 신앙에 서 있는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을 창조한 것이 인간이라면, 역사와 사회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은 기계나 제도의 종이 될 수 없음을 기독교 교육이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비인간화 속에 있는 모든 사람, 젊은이들 속에서 찾아내야 할 근거인 것이니 바로 이것이 인간화로서의 기독교 교육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3. 기독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습니까?
기독교 교육은 전달하고 암기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일반 사조에 대하여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 창조에 있으며 이 인간 창조는 계속되는 만남과 대화 속에서만이 가능하다고 믿는 신앙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새로운 인간 형성이 목적이 되어야 하며, 그 방법은 부딪힘, 만남, 대화를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교육은 소외되어지고 삶의 깊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젊은이, 현대인들이 나의 삶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라는 궁극적인 물음들을 제기하는 바로 그곳에서 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육이란 일반 교육이 형성하고 있는 인간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별개의 독특한 형으로 교육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지난날 기독교 교육은 사회나 현실이 타락되었다는 이유로 반사회적인 인간을 만들어 온 것이 과거의 우리의 '가장 큰 과오와 실패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반사회적이고 독선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 실패, 결국은 이러한 기독교 교육은 인간을 또 한번 종교라는 이름으로 비 인간화시켜 놓은 것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강요되고 있는 기술인간교육으로 비인간화 되어가는 젊은이들에게 인간을 과학 기술, 정치, 경제 모든 것위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피조된 창조의 주체임을 일깨워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 교육은 과학 기술, 진학, 취직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인간들을 향하여 과감하게 도전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지금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야 할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이 세속의 영에게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날 애굽 왕 바로의 명을 따라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나일강에 버려졌듯이 오늘날 수많은 우리의 자식들이 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죽음의 나일강 물에 익사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기습하는 이 위기에서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그 아들을 숨겼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안전 지대로 숨깁시다(시12:5). 이 죽음의 파도에서 우리의 가정을 지키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녀를 교육하는 길밖에는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치심
눅3:23
서론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될 매에 누가는 새삼스럽게 예수의 족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족보를 존중히 여기는 것은 유대인의 사상으로 유대인을 상대로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는 맨 첫 머리에 족보부터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족보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나이는 삼십세였습니다.
1. 삼십세는 유대인의 완전한 성년의 나이입니다.
유대인의 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의 지도로 시작하여 6세가 되면 '쉐마(Shema, 신2:4)'를 암송하기 시작하고, 10세에 율법의 해석인 '미쉬나(Mishina)'를 배웁니다. 그리고 12세에는 율법의 아들로 본격적으로 율법을 배우며 절기, 금식 등 율법의 법규를 지키게 됩니다.
그러나 사회적 또는 종교적으로 출세하며 하나의 지도자급에 이를려면 30세가 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삼십세는 레위인이 성전을 봉사하기 시작하는 나이라고 민수기 4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십세는 유대인의 완전한 성년의 나이가 되는 것입니다.
2. 큰 일은 삼십세에 시작하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이를 명시한 유일의 성경 구절로서 역사가인 누가의 공헌은 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굽에 가서 총리 대신이 된 요셉도 삼십세였습니다. 창세기 41장 46절에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세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윗이 유대의 왕위에 오른 나이도 삼십세였습니다. 사무엘하 5장 4절에 "다윗이 삼십세에 위에 나가서 40년을 다스렸으되"라고 하였습니다. 또 산헤드린의 공회 회원 자격도 30세 이상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삼십 세라면 자신의 야망과 포부를 널리 떨칠 수 있는 그런 나이인 것입니다. 이 나이는 큰 일을 시작하기에도 합당한 나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완전 성년의 때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삼십 세부터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삼십세 이전에 관한 기록은 성경에 별로 언급된 것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삼십세 이전의 역사는 소개된 것이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열두살 때에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려고 그 부모를 따라간 일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신약 외경에는 예수님의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그 신빙성은 약합니다. 그러나 삼십세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마귀의 시험을 다 이기고 승리하신 후에 비로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직접 헌신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물로 삼십세 이전에도 가르치셨고, 세상을 떠나신 후에도 그의 가르치심은 만민에게 전달되고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삼십 세부터 정식으로 가르치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의 가르치심은 주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하며 그 뜻에 순종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학교에서 가르치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연을 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결론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성숙해져야합니다. 육적으로도 원숙해져야 하지만 지도력도 원숙해져야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예수께서 삼십세에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교육관
욥33:13-18
서론
교육이란, 두 가지 개념을 제시해 주는데 그 하나는 ① 바른 것을 깨달아 알게 하는 지식 전달의 개념이 있고, 다음은 ②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니게 하는 개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유명한 교육가 '힐티'는 "교육이란 바른 것을 알게 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교육 철학자 '루소'는 "그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들고 문명을 창조해 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바른 사람을 만들고 명랑한 사회를 형성해 나아가 는 데 있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우리 인간을 바로 교육할 수 있는가? 교육자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점에 대하여 우리는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많은 교육가들이 출현하여 교육 제도를 창설했고,교육 방법을 제시했고 교육 행정을 통해서 보다 더 착실한 교육을 해 보려고 몸부림쳐 오고 있습니다.
1. 기독교 교육의 이념
본문에서 욥과 그의 친구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와의 대화 내용에서 기독교 교육의 원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원리는 진정한 종교 교육만이 바른 사람이 되게 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교육의 이념을 생각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불완전한 인간을 온전하게 하여 선한 일 행하기에 더욱 온전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2) 마귀에 유린당한 인생들을 해방하셔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3) 이 부조리하고 험악한 인간 사회를 아름답고 평화로운 사회로 조성해 나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입니다.
2. 기독교 교육의 방법
본문 14절에 "사람은 무한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히4:12-13에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위력을 가지고 있는데 살아서 운동하는 말씀이라고 했고, 인간의 영혼을 수술하여 치료하는 말씀이라고 했고, 시비를 가려내는 준엄한 심판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위력있는 말씀으로 교육하신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보면
(1)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교훈하셨습니다. 이는 아담으로부터 노아 시대까지입니다.
(2)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교훈을 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부터 모세 시대까지입니다.
(3) 선지자들을 통하여 교훈하셨습니다. 이는 모세 시대로부터 세례 요한까지입니다.
(4) 예수님을 통해서 직접 교훈하셨습니다. 히1:1-2에 밝히고 있습니다.
(5) 성력을 통하여 교훈하십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를 통해서 말세에는 목사들을 통해서 교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삼가 조심하여야 할 것은 거짓 선지자나 이단자들을 조심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3. 기독교 교육의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교육하시는 목적을 본문에 몇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1) 사람의 죄를 버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17절).
이 죄라는 말은 히브리어에 "마이세"라고 하였는데 이는 불의하고 악한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들이 이 꾀를 부리다가 모두 범죄하고 타락합니다.
(2) 사람의 교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17절).
성경에 교만은 멸망의 앞잡이라고 하면서 주님에게 겸손을 배워서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마11:29).
(3)사람의 혼이 구덩이에 빠져 멸망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밝힌 "구덩이"는 히브리 원문에 "솨-하드"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짐승을 잡기 위해서 파놓은 함정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함정을 파놓고 우리들을 빠뜨리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하였습니다(벧전5:8).
결론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교육을 받아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선한 행동을 가지고, 자신들의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자녀를 위한 신앙 교육
신6:1-9
서론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바 자녀의 신앙 교육에 관한 것입니다.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부모는 자녀의 모든 신앙 교육을 책임져야 할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자녀를 바로 교육하려면 자신이 먼저 말씀을 상고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생활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신앙 교육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한 분이심을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 4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와 같은 신이 없다(출15:11)"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발견하였고, 그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의 신들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역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하였습니다.
부모는 바로 이 하나님 절대자요,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경배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신명기의 중심 사상이요, 예수께서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랑해야 합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게는 하나도 남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자는 자기가 없고 오직 하나님만 사모하고 사랑하는 생활을 합니다.
3.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6절)"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 모든 경건생활의 기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사사 시대를 암흑기로 만들었던 것은 자녀들을 교육하지 못한 데서 온 것입니다.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여호수아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주민들을 내몰고 각지파마다 땅을 분할하는 데 바랐습니다. 그 시기에 교육을 받지 못한 후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신을 성기고 따르다 하나님의 징계를 수없이 받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고 봉사를 합니다. 그러나 자녀에게 참으로 신앙의 모범이 될 만한 위치에 서 있습니까? 참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 우리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합니까? 이 시간 우리는 이 점을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대학 입시나 취직을 위한 교육은 걱정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교육을 등한시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갑니다.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바를 어려서부터 가르쳐서 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거룩한 백성으로서 본문을 다하고 살도록 합시다.
결론
자녀는 부모를 보면서 성장합니다. 부모를 통해서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듯이 부모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녀들에게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모범자가 되어 보임으로, 그 자녀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받는 자녀가 되도록 합시다.
기독신자의 가정 교육
삼상2:12-17
서론
엘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사요, 제사장이라는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지도자의 가정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 문제없는 가정이 있을까만은 여기 엘리는 가정의 문제점을 바로 해결하지 못해서 하나님에게 버림당하는 비극을 초래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문제점을 취급해서 우리들의 가정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가정의 좌표와 방향을 바로 설정해보려고 합니다.
1. 가풍이 무너진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이나 가풍이라는 것이 있고 이 가풍에 따라서 그 가정의 사회적인 위치와 가치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1) 가정에는 가풍의 바탕이 있는 법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불교적인 가풍에서 목탁 냄새가 나고 유교적인 가풍에서는 형식적인 고루한 냄새가 나고 미신적인 가풍에서는 무당들의 굿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가풍에서는 애수 그리스도의 냄새가 풍기게 됩니다.
여기 엘리 가정은 유일신 하나님을 신앙하는 바탕 위에 사사적인 가풍, 제사장 가정의 가풍을 새워 나아갔습니다.
(2) 가풍이 무너진 데는 원인과 내용이 있습니다.
가풍이 무너졌다는 것은 그 가정의 신앙적인 권위, 지도자적인 권위가 무너지고 가정적인 규율과 방향을 상실하였다는 뜻입니다.
엘리 가정의 가풍이 무너진 이유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 신앙 중심이 아니 라 의식 중심, 말씀 중심이 아니라 자기들의 정욕 중심에 이 훌륭하던 가풍이 송두리째 무너져 마침내 그의 아들들은 불량자가 되어 다시 돌이킬 여지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중심, 신앙 중심, 말씀 중심의 가풍을 바로 세워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2. 가정의 자녀 교육에 실패하였습니다.
우리들의 가정 교육은 매우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교육자들은 가정 교육에 대하여 부모님은 스승 중에 스승이요, 가정은 학교 중에 학교라고 하였습니다. 교육이란 힐티의 말대로 바른 것을 알고 바로 행할 수 있는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지적 했습니다. 교육가 루소는 말하기를 "교육이란 기계를 만들거나 문명을 창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고 바른 사회를 형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이 교육을 중요시하여 많은 자원을 동원하여 교육제도와 방법을 쇄신해 가면서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 교육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 엘리 가정의 교육상의 헛점이나 과오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본문 29절에 "너희가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이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에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보다 자녀들을 더 중요시한 것이 교육상 과오를 범한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보다 자녀를 더 중요시하였습니다.
(3) 자녀들의 영혼보다 그 육체를 중요시하 였습니다.
그래서 엘리는 가정 교육에 실패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 부모된 자들은 하나님 중심의 가풍을 수립하여 사랑하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여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자녀들이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내 아들아
잠1:8
서론
잠언은 아버지가 아들을 교훈하듯이 지혜로써 간곡히 타이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도 역시 관계가 있으며 그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내 아들아"라는 말이 본장 중에 8절, 10절 15절에 세 번씩이나 연속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기 위한 말씀입니까?
1. 부모의 훈계와 법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표자들 입니다. 신명기 11장 19절에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교사들 역시 부모와 같은 자세로 교육해야 합니다. 법도가 있는 것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교훈하여야 할 것이 절실합니다. 어머니의 법은 하나님의 법에 의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의 훈련을 잘 받고 또한 그의 법을 떠나지 않고 잘 지켰던 인물입니다.
2. 악한 꾀를 좇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10절에 "내 아들아 악한 자가 너를 필지라도 좇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시편기자도 1편 1절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아니하며 죄인이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에 아담, 발람, 삼손, 여호사밧 등 여러 사람이 이 율례와 법도를 안지켜서 결국 범죄하고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여기 "내 아들"이란 결코 한 가정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만을 상대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아들을 대하셔서 말씀하시는 뜻이 더욱 다분히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아야하겠습니다.
3. 악한 길로 행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15절에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악한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 악한 길을 밟고 따라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서중에서도 "사특한 자의 길로 들어가지 말며‥‥그 길을 피하며 돌이켜 떠날지어다"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친구들과의 교제에서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악한 벗들의 행위에 가담하지 말며, 그들과 동화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악한 자들과는 일반적인 교제도 삼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를 악으로 끌고 가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내 아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이 넘치고 자비가 충만한 부모님의 간곡한 부름이요, 우리 하나님이 자기의 택한 성도들을 부르셔서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자기 교육
딤후2:15
서론
어렸을 때에는 자기의 단점을 타인으로부터 지적받아 시정하지만, 성장해서는 자기의 잘못이나 부족한 점을 스스로 발견하여 고치고, 버릴 것을 버리고 개발할 것을 개발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교육입니다.
자기를 교육하기에 부지런한 사람은 자기 일이나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남의 일이나 생활 속에서도 자기에게 필요한 교훈을 찾아내어 자기를 교육합니다. 이렇게 어떤 대상이나 상황으로부터 자기에게 필요한 교훈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1. 예수님의 인간 교육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자기 교육의 기능을 통하여 인간을 교육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마6:26)와 들의 백합화(마6:28)를 가리키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며 믿음 없이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을 돌이켜보게 하십니다(마6:31). 신랑을 맞으러 간 열 처녀의 비유를 들어(마25:14-30), 작든 크든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는 생활 자세를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이 아니고 호소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취하도록 촉구하는 진정입니다. 예수님의 호소는 종종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듣고 깨달으라",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말씀에서 진정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이러한 주님의 음성 앞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 순간에 직면해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2. 자기 교육열을 가진 사람들
요시야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발견하고서 그 율법대로 우상과 제사장들을 몰아내고 제기를 불사르는 등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왕하22:3-23 , 25). 삭개오는 세리였으나 주님을 집에 영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자, 그 앞에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면서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는 철저한 자기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뜨거운 자기 교육열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결론
기독교인들은 항상 주님의 음성 앞에 깨어있어 하나님의 새로운 관계에 서도록 내면적 존재를 가다듬고 스스로를 교육하는데 뜨거워야 합니다. 우리는 혹 우리 자신을 다를 때 너무 순하고 부드럽고 큰 아량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는데, 좀더 과감하게 적극적으로 자신을 쳐 복종케 하여(고전9:27), 온 마음을 주님께 쏟으며 생활 자체를 하나님께 바치도록 힘쓸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51)"
기 쁨
성 경 활 용
1. 성격에 나타난 기쁨의 종류
(1) 먹고 마시는 육적 기쁨
(전9:7)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2) 무지한 자의 기쁨
(잠15:21) 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여도
(3) 일시적 기쁨
(마13:20) 돌 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4) 비유적 기쁨
(사52: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지어다
(5) 미래에 얻을 기쁨
(마25:23).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6) 어미가 되는 기쁨
(시113:9)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2. 기뻐하는 자의 표현
(1) 찬송함
(시9:2)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
(2) 노래함
(창31:27)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냈거늘
(3) 하나님을 찬미함
(행3:9)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4) 춤을 춤
(삼하6:16) 사울의 딸 미갈이 창에서 내다 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5) 연보를 풍성히 함
(대하24:10) 모든 방백과 백성들이 기뻐하여 마치기까지 돈을 가져다가 궤에 던진지라
(고후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기쁨의 요인
(1) 좋은 소식으로 인해
(눅2:10)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 주의 구원으로 인해
(시13: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사12:3)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쾌락이라
(3) 죄인이 회개함으로
(눅15:10)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4)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마28:8)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아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5) 감추인 보물을 발견함으로
(마13:1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6) 하늘에 이름이 기록됨으로
(눅10:20)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7) 진실된 믿음으로
(벧전1:8)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4. 기쁨의 특징에 대한 성경의 표현
(1) 충만함
(요일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시16:11)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서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요15:11)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2) 한량없음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3) 영원함
(사61:7) 너희가 수치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통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4) 큼
(눅24:52) 저희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마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5. 성도의 기쁨이 존재하는 곳
(1) 하나님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행16:34)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시104:34)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
(눅1:47) 내 마음이 하나님 제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2) 주 안에
(빌: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3) 하나님의 말씀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4) 주의 이름
(시89:16) 종일 주의 이름으로 기뻐하며 주의 의로 인하여 높아지오니
(5) 성령
(살전1:6) 또 너 회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
(6) 예배
(느12:43)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시71:23)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로다
(7) 기도
(사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8) 성도의 교제
(빌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6.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유
(1) 창조하심으로
(창1:31) 하나님 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2) 주권을 행사하심으로
(시135:6) 여호와께서 무릇 기뻐하시는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3) 백성을 택하심으로
(삼상12:22) 여호와께서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고로
(4) 성도의 진실한 행함으로
(잠12:22)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5) 성도의 온전한 행위로
(잠11:20)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6) 자기 백성으로 인해
(시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7) 성도의 정직함으로
(대상29:17)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8) 의로운 제사로
(시51:19)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9) 하나님을 경외하고 인자를 바람으로
(시147:11)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0) 의와 공평을 행함으로
(잠21:3)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11) 죄인이 회개함으로
(마18:13)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2) 그의 나라를 주심으로
(눅12:32)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13)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에게
(롬14:18)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14) 영적 예배를 드림으로
(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5) 성도의 믿음으로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16) 성도의 선한 일로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니느니라
(17)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마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7.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자의 축복
(1) 이스라엘의 왕이 됨
(대상28:4)내 부친의 아들 중에서 나를 기뼈하사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느니라
(2) 구원을 받음
(삼하22:20) 나를 또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구원하셨도다
(3) 약속한 땅을 주심
(민14:8)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4) 성령을 주심
(사42:1)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5) 원수와 화목하게 됨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신 것
(1) 신자들 속에 거하심
(요15:11)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2) 십자가의 고난을 이김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3) 말씀을 통하여
(요17:13)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함이니이다
9.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1) 믿음이 있는 자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이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2) 육신에 있지 않는 자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3) 지혜로운 자
(잠10: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로 기쁘게 하거니와
(4) 은혜를 받는 자
(히12:28)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10.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나
(1) 순종으로
(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딛2:9)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2) 행위로
(잠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3)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히12:28)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4) 복음 전파로
(살전2:4)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5) 의인의 입술로
(잠10:32) 의인의 입술은 기쁘게 할 것을 알거늘
11. 성도가 기뻐해야 할 이유
(1) 구속의 은혜 때문에
(시35:9)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2) 전능자 하나님 때문에
(욥22:26) 이에 네가 전능자를 기뻐하여 하나님께 얼굴을 들 것이라
(3) 하나님의 구원 때문에
(시21:1)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뼈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4) 하나님의 보호 때문에
(시63: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5) 주의 인자하심 때문에
(시31: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6) 예수님을 영접함 때문에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7) 영혼을 위해 재물을 허비함 때문에
(고후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8) 범사에 담대함 때문에
(고후7:16) 내가 너희를 인하여 범사에 담대한 고로 기뻐하노라
(9) 성도의 강함 때문에
(고후13:9)우리가 약할 매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12. 성도가 특히 기뻐해야 할 때
(1) 고통이나 질병 중에 있을 때
(욥6:10) 무정한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니이다
(2) 시험을 당할 때
(벧전1:6)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3) 항상
(빌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 궁핍 중에 있을 때
(고후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 노니
(5) 환난이나 핍박 중에 있을 때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살전1:6)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약1:2)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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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m'v; 사-마호
(1)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뛰며 좋아하다.
(삼상2:1, 시16:9)
(2) 기쁘게 하다, 즐겁게 만들다.
(신24:5,잠2:14)
2. dm'j; 하-마드
(1) (~에) 즐거워하다.
(욥20:20, 잠1:22)
(2) 즐거워하다, 기쁨을 느끼다.
(아2:3)
3. $pej; 하-페-츠
(1) ~를 사랑하다, 좋아하다, 바라다.
(삼하15:26)
(2) 좋아하는, 기뻐하는.
(대상28:9)
(3) 만일 당신이 기꺼이 한다면.
(왕상21:6)
4. cWc 수-스
기뻐하다, 즐겁다.
(신28:63, 욥3:22)
5. hx;r; 라-차-
즐거워하다, 만족하다, (시람이 가져온 선물을)은혜스럽게 받아들이다.
(대상28:4, 대하10:1, 시51:16)
6. rc'a: 아-솨르
행운이나 행복하다고 말하다.
(창33:10)
7. lyG 길-
기뻐 돌아다니다, 기쁜 마음을 가지다, 춤을 추다.
(욥3:22, 시9:15)
8. hj;m]ci 시메하-
(1)기쁨, 즐거움.
(왕상1:40, 시4:8)
(2) 즐거운 음성, 외침.
(대하23:18, 느12:43)
(3) 즐거운 연회, 쾌락.
(느8:12, 잠12:17)
9. $p,je 헤-페츠
(1) 기쁨, 즐거움.
(삼상15:22, 왕상10:13)
(2)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전5:3)
(3) 바람, 소원.
(욥31:16)
(4) 추구, 열심, 일, 사건.
(욥21:21, 사44:28)
10. c/cm; 마-소-스
즐거움, 기쁨.
(시48:3, 사24:8)
11. hN:rI 린나-
(1) 기쁨의 환성.
(왕상22:36, 시30:6)
(2) 애통스런 외침, 울부짖음.
(시17:1, 61:2)
12. @/cc; 사-손
기쁨, 즐거움,
(시45:8, 사22:13)
13. ![en: 나-엠-
유쾌하다, 즐겁다, 사랑스럽다.
(삼하1:26, 잠24:25)
14. br'[; 아-랍
원래의 뜻은 "섞다, 혼합하다"이다.
(1) 교환하다, 장사하다, 무역하다.
(겔27:9, 27)
(2) 보증이 되다, 타인의 생명에 보증이 되다.
(창43:9)
(3) 책임이 있다.
(잠11:15, 20:16)
(4) 유쾌하다, 즐겁다.
(시104:34)
(5) 교제하다.
(시106:35)
15. ajgallivzsi" 아갈리아시스
환희, 광희.
(눅1:14, 히1:9)
16. eujfrosuvnh 유프로수네
기쁨, 즐거움, 유쾌함.
(행2:28, 14:17)
17. carav 카라
(1) 기쁨, 즐거움, 믿음으로 오는 기쁨.
(빌1:25)
(2) ∼에게 기쁨을 주다.
(행15:3)
(3) 큰 기쁨으로 채워지다.
(42:10)
(4) 기쁨의 대상.
(마25:21, 23)
(5) 잔치, 연회.
(마25:21, 23)
18. oJninhmi 오니네-미
쓸모 있다, 이익을 얻다, 기쁨을 가지다
(몬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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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시스의 기쁨
기독교의 역사상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사람 중의 하나는 성 프란시스입니다. 부잣집 아들인 그는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겸손한 봉사의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복종하여 예수님의 본을 받아서 살려는 철저한 목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프란시스에게 우리는 배울 것이 많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을 무조건 신뢰하면서 거리낌없이 주님을 따라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웃의 고통과 고민을 우리의 문제처럼 느끼며 봉사해 주는 점도 볼 수 있고, 세속적인 재물과 명예를 포기하는 것을 통하여 얻게 되는 마음의 해방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 프란시스는 더욱 더 훌륭한 일을 했다고 봅니다. 그는 끝까지 웃을 줄 알았습니다. 생의 기쁨을 알았습니다. 프란시스의 생애에 관한 신화와 같은 전설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에 하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멋이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황 앞에 찾아가서 자기의 집단생활 계획에 대해서 설명할 때 프란시스와 같이 교황청에 들어간 동지들이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엄숙한 교황의 자리 앞에서 진지한 신학적인 토론을 하는 대신에 춤을 추었던 모양입니다.
성 프란시스도 그와 같은 행동까지 한 것인지 확인을 할 수 없으나 그의 생활 태도 전체가 그와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명랑한 표정과 가벼운 마음으로 그 태도 깊은 동정을 하면서, 그는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자연을 보고 노래를 했으며 새와 짐승에게까지 설교도 했습니다. 성 프란시스처럼 우리가 가장 의미 깊은 역을 할 때에도 기쁜 춤을 출 수만 있다면, 우리의 세상이 많이 밝아지지 않겠습니까?
기뻐하시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불평과 불만에 가득찬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옛 속담에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들은 쉽게 부모를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렇게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면 생활에 즐거움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에 즐거움을 가지면 밝고 환해집니다.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고 감사하며, 기쁨으로 생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기쁨은 생활의 활력소이자 삶의 원동력입니다. 이 세상에는 가장 귀한 것 중의 하나가 기쁨입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의 샘이 마르지 않는 한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쉼 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우리로 하여금 불평이나 짜증을 느끼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므로 기쁨은 인생의 모든 역경을 물리치고 창조적인 삶을 살게 해 주는 위대한 근원이 됩니다. 항상 기뻐하고 또 기뻐하는 감사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그러면 세상은 우리의 마음처럼 아름답게 변하여 갈 것입니다.
미소론 I
표정은 그 사람의 오랜 마음가짐이 만들어내는 예술입니다. 니이체가 크리스찬을 비난할 때 "그들이 만일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면 좀더 밝은 표정을 보였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불평 불만으로 사는 사람은 얼굴이 그것을 나타내고, 늘 자족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은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카네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별로 소비되는 것은 없고, 건설하는 것은 많으며, 이것을 주는 사람에게는 해롭지 않고, 받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넘치며, 짧은 인생으로부터 생겨나서 그 기억은 길이길이 있으며, 이것 없이 참으로 부자가 될 사람이 없으며, 이것을 가지고서 정말 가난한 사람은 없다. 이것은 가정의 행복을 더하며, 사업에 호의를 찾게 하며, 친구의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하고, 피곤한 자에게 휴식이 되며, 실망한 자에게 소망이 되며, 우는 자의 위로이고, 인간의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살 수도 없고, 벌 수도 없고, 꿀 수도 없고,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이다. "
카네기가 여기서 이것이라고 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미소'입니다.
정중한 부인의 미소는 남편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부모의 미소는 자녀에게 용기와 희망이 됩니다. 죤와나메이커는 '미소는 길가에 핀 장미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길가에 핀 장미꽃은 은연 중에 행인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듯이 미소도 그러한 것입니다.
미소론 II
우찌무라 간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아주 무력하여 인류를 위해 아무런 공헌도 못했다고 생각되거든 만나는 사람마다 미소로써 대하시오. 피소는 큰 재산이며 힘입니다. "
TV를 통하여 종종 판문점의 광경을 보면 북한 사람들은 모두 마르고 근엄하며 미소를 모르는 표정입니다. 미소는 부유한 나라 사람일수록, 그리고 민주주의 나라일수록 많습니다. 아이크가 100만불 짜리 미소를 터뜨리는 것은 누구나 보았지만 브레즈네프가 미소를 터뜨리는 것은 본 일이 없습니다.
프랑소아즈 사강의 소설에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슬픔은 어둡고 무거운 것이지만 다정한 친구를 만나 인사하듯이 '봉쥬르' 라고 말하는 태도에서 달관의 미소를보는 듯합니다.
이제 우리도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미소를 담는 훈련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절제의 기쁨
절제라는 한자말은 절약(節約)의 '절(節)'과 제어(制御) 또는 자제(自制)의 '제(制)'와의 합성어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풀이한다면, 스스로 삼가고 아낀다는 뜻이 됩니다.
중국 사람들도 옛날부터 철학, 정치, 윤리의 교훈서로 내세웠던 사서(四書) 가운데 중용(中庸)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중용지도(中庸之道)'가 절제 사상을 주창한 논리이기도 합니다. 우리 옛 선비들도 중용을 덕성의 하나로 숭상했습니다.
청결한 마음에서 이룩되는 절제는 형이하학적 면에서 풍요와 행복을 약속합니다. 청결한 마음에는 불만과 분노가 깃들이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통찰력과 현상세계 위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는 특권을 가집니다. 그러기에 아무것에도 견줄 수 없는 고매한 정신력 곧 신앙인으로서 영혼의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의 능력을 지님으로써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은 절제의 바탕이니 그에게 적이 없고, 화목과 겸손은 그가 삶의 터전이 되는땅, 바꿔말하면 생산의 기회와 평화가 유업을 보장받는 기쁨이 있기 마련입니다.
가난한 마음, 겸허한 심령은 절제의 원동력이니 그러한 절제를 새로운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영혼과 육신에서 받아들일 때 그에게는 미래에 영원한 구속과 영광의 세계가 약속되며, 현실에서 의로운 나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지를 건설하는 자부심과 기쁨 또한 클 것입니다.
기뻐하며 경배하세
우리가 익히 잘알고 있는 "기뻐하며 경배하세(찬송가 13장)"는 헨리 밴 다이크(He-nry Van Dyke) 목사의 시입니다.
헨리 밴 다아크 목사는 185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져맨타운에서 독일계 이민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르크린과 프린스턴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1876년에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그는 장로교회 목사가 된 후, 아일랜드 주에 있는 뉴포드 연합회중교회의 목사로 20여 년간 봉직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적 감화를 주었습니다. 특히 그의 영어구사 능력과 뛰어난 구문 설교는 전미국에 명성을 떨쳤고 마침내는 1883년 뉴욕시 머리 힐(Murray Hill)지구에 있는 부릭장로교회로 초빙되었습니다.
17년간 뉴욕에서의 그의 설교는 조직적이며 체계적이어서 여러 출판사에서는 다투어 그의설교를 펴내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모교인 프린스턴 대학의 동문이 그를 뉴저지 대학의 영문학 교수로 초빙하였는데 그의 영문학적인 재능을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밴 다이크 목사는 프린스턴 시절에 그의 모교 동문인 윌슨 대통령과 매우 가까이 지냈는데 윌슨 대통령은 1913년 그를 홀랜드와 룩셈부르크의 미국공사로 파송하여 1917년 전쟁 발발시까지 해외 공사직에 있었습니다.
이 찬송시의 작시 동기에 대하여 밴 다이크 목사의 아들인 터티어스는 설명하기를 이 찬송시는 밴 다이크 목사가 윌리암즈 대학의 설교 초청을 받았을 때 작시한 것이라고 합니다. 밴 다이크 목사가 이 원고를 아침식사 테이블에서 윌리암즈 대학 총장인 가필드 박사에게 내어 주면서 "자, 당신을 위한 찬송을 하나 지었는데 그게 바로 이것이요.' 하고는 "버크셔즈에 있는 당신의 산을 보고 받은 영감을 적은 것입니다. " 하고 말했습니다. 이 시는 베토벤의 '환희의 찬가'에 맞추어 불러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습니다. 버크셔 주는 산들도 아름답지만 템즈 강은 그곳에 있는 산맥들을 아름답게 조화시켜 줍니다.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창조 작품을 통하여 밴 다이크 목사는 한층 더 하나님께 감사하며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새끼 돼지와 어미 돼지
손자병법에 나오는 새끼 돼지와 어미 돼지의 이야기입니다. 새끼 돼지 몇 마리가 어미 돼지를 따라 늪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가까운 길로 소 몇 마리가 관리들에게 이끌려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두 빛깔이 곱고 몸집이 좋은 살찐 것들이었는데, 뿔도 발톱도 구슬처럼 반짝거렸습니다. 털도 부드럽고 비단같이 윤기가 흘렀습니다.
새끼 돼지들은 놀라서 흙탕투성이의 코를 쳐든 채 보고 있었습니다. 소들이 길을 돌아서수풀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자 돼지 한 마리가, "우린 왜 돼지로 태어났을까? 저렇게 예쁜 소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 하고 말하자 다른 새끼 돼지들도 "그래 그래.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워,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돼지야." 하고 한탄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러자 어미돼지가 말했습니다. "꿀꿀꿀, 이것들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불평이냐! 아까 끌려간 그 소들은 곱게 태어났기 때문에 관리들에게 징발되어 도움으로 끌려가는 거란다. 도읍에 가면 맛있는 것을 실컷 먹여주고 날마다 씻어 주지. 그렇게 소중하게 길러진다는건 퍽 좋은 일 같지만 멀지 않아 웬만큼 깨끗해지면 뿔에는 금 은으로 장식하고 몸에는 금실을 수놓은 아름다운 옷을 입 게 된다. 그것도 대단히 좋은 일 같지만 그 다음부터가 나쁘단다. 왜냐하면 끌려가서 제물로 바쳐지거든." "제물이 뭐예요?" "죽음을 당하는 거야." "죽게 된다구요?" "암, 죽게 되지. 그때 가서 울어도 외쳐도 소용없다. 죽음을 당하게 되거든."
새끼 돼지들이 조용해지자 어미 돼지가 말했습니다. "곱게 태어나서 사람들에게 소중히 다루어진다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갖고 오는지 잘 알겠지! 지금 이대로가 너희들에겐 가장 좋단다. 이 속에서 불평하지 말고 기뻐해야 한다. 옳지, 그곳에 큰 미꾸라지가 있구나. 빨리 코로 눌러서 먹어 치워라. 놓치면 안돼. 꿀꿀꿀."
준비된 기쁨
한번은 죽음이 강을 건너 이 세상이 시작되는 곳을 찾아왔습니다. 거기엔 한 가난한 거위지기가 흰 거위를 치며 살고 있었습니다.
"여보게 친구, 자넨 내가 누군지 알고 있지?" 죽음이 물었습니다.
"물론 알고말고, 자넨 죽음이 아닌가. 난 자넬 강 건너에서 종종 봤다네."
"그럼, 내가 자넬 데려가려고 여기 왔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저 건너편으로 말일세."
"알고 있네. 하지만 그건 오랜 뒤의 일이겠지."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다네. 말해 보게. 두렵지 않은가? "
"아니." 거위지기가 말했습니다. "난 여기 있은 이래 줄곧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네. 난 그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지."
"그렇다면 뭐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은 없는가? "
"없네, 난 아무것도 갖고 싶은 게 없어."
"없다구, 그러면 여기서 뭘 기다리고 있지? "
"아냐, 아무것도 기다리고 있지 않아."
"그렇다면 내 지금은 그냥 더 가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넬 데려가겠네. 필요한 게 또 있는가? 뭐 바라고 싶은 것은?"
"난 필요한 게 없다네.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거든" 거위지기가 말했습니다. "바지 하나,속옷 한 벌, 겨울구두 한 켤레, 그리고 모자 하나. 이게 전부일세. 난 피리도 불 줄 알지. 그걸 불면 흥겨워지네. 거위들이야 음악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죽음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뒤를 따라왔는데, 죽음은 그들을 강 건너로 안내하였습니다. 그들 중엔 구두쇠 부자도 한 사람 끼어 있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가치가 있건 없건 온갖 것에 욕심을 부려 각종 잡동사니, 잡살뱅이, 금, 주식에다 2 ·3층 건물을 다섯 채나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세를 한탄하며 욕설을 퍼부어 댔습니다. "5년만 더, 5년만이라도 더 살았다면 다섯 채는 '더 가졌을텐데 ! 이런 불상사가 있다니, 이런 빌어먹을 불행이 또 어디에 있나!" 그에겐 너무도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그 뒤에 오는 자동차 경주 선수는 지금까지 큰 상을 타기 위해 고된 훈련을 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5분만 더 있었으면 우승을 했을 텐데 그만 죽음이 그를 붙잡아 왔습니다.
훈장을 받은 유명한 인물도 있었습니다. 그는 훈장을 받기 위해 온 힘을 다 바쳤는데, 죽음이라는 벗이 그를 데려오고 말았습니다. 그에겐 큰 불행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젊은 남자도 있었는데 그는 자기 새색시에게 매달렸었습니다. 부부는 금실이 너무 좋아 둘 중 한 사람만 없어도 도저히 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 머리가 긴 아름다운 소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더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게된 부자들과 가지고 싶었던 것을 가질 수 없게 된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노인은 자진해서 그들과 함께 왔지만 기뻐하는 빛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70평생을 살아오면서 갖고 싶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에게 정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이 끝나는 강가에 다다랐을 때, 거기에 거위지기가 앉아 있었습니다. 죽음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는 벌떡 일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강을 건너갔습니다. 그에겐 강 건너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 곳을 바라볼 시간도 충분했고 그 곳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그가 즐겨 부르던 피리 소리도 들려왔습니다. 그는 매우 즐겁기만 했습니다. 그에겐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참, 거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을 돌보는 거위지기가 새로 왔답니다.
기쁘다 교회의 결혼식
천막동 산동네 '기쁘다' 교회에 경사가 났습니다. 비록 천막을 치고, 바닥에는 가마니를 이어 깔아 예배를 드리고는 있지만 교회가 초라하다고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늘 허전하고 초라한 차림으로 주님 앞에 나서는 것 같은 기분으로 죄스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말씀하시길 부유하고 교만한 사람들보다는 헐벗고 믿는 자들이 축복받는다 하셨고 하늘나라도 그들의 것이라 하셨기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것도 인지상정이었습니다. 하긴 신·구약을 통틀어서 부유하고 교만한 자들이 축복받고 하늘나라에 갔다는 사실은 한 군데도 찾을 길이 없는 것을 보면 사실은 사실인가 봅니다.
경사란 다른 게 아니고 기쁘다 교회가 첫 예배를 시작한지 상당한 세월이 지났는데도 단 한 차례의 혼인식도 교회에서 없었습니다. 예식을 치르기엔 교회가 너무 초라하다 보니, 그렇다고 없는 처지에 비싼 돈 주고 예식장을 빈다는 것도 어림없는 소리고, 결국 경제적 여건을 빌미로 사랑을 빙자해 죄를 짓는다는 강박감을 뒤로 한 채 '슬쩍' 식도 치르지 못한 채 동거해 왔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일에 정식 혼인식을 겸한 축하 예배가 있게 된다는 것은 경사 중에 큰 경사였습니다.
아랫동네에 있는 '최고'장로 교회는 봄, 가을이면 주일마다 몇 쌍씩의 부부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쑥쑥' 산출될 때면 기쁘다. 교회 교인들은 부러움과 자패감에 젖어 눈물 어린 눈길을 보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차려입은 흰 면사포와 웨딩드레스, 검은 예복, 그것은 장래의 축복을 나타내는 청신호였습니다. 그러나 기쁘다 교회는 교회를 다 팔아도 그런 것을 마련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기사 천막을 팔아서 양복과 웨딩드레스를 산다 해도 예식 올릴 장소가 없게 되겠지만.
천막 교회 전도사님을 주축으로 혼인식 준비가 토의되었습니다. 우선 신랑과 신부가 입장할 때 필요한 주단을 마련하는 데는 시장에서 생선 노점을 하고 있는 집사님이 나섰습니다. 집사님의 수입으로 볼 때 거의 한 달치의 수입분이 될 것입니다. 집사님은 두고두고 쓸 것이니 아까울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랑의 예복과 신부의 웨딩드레스와 면사포는 전도사님이 떠맡았습니다. 그의 6 개월치의 월급을 미리 가불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준비물은 각자가 성의를 다하기로 했습니다.
주일 아침 예배에 이어 혼인식이 거행되었습니다. 피아노가 아닌 풍금 주악에 맞춰 검은 예복을 입은 신랑이 가마니 한 장을 들어내고 붉은 주단을 깐 바닥을 당당히 걸어 들어왔습니다. 이어 흰 면사포와 드레스로 치장된 신부가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본래 잘 사는 집안의 처녀였습니다. 그러나 못 살고 잘 나지 못한 남자를 택한 이유로 집안에서 내쫓기다 시피해서 초라한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그녀 옆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몇 명 안되는 성가 대원 중에서 두 명이 들러리를 서 주었습니다. 그 얼굴이 화사하기가 마치 백합같이 보였습니다.
교회는 1월이라 춥기가 혹심했지만 누구하나 찬 가마니 바닥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석유난로 하나가 신부 옆에 놓여졌습니다. 어느 신자의, 신부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어쩌면 어여쁜 신부를 성탄에 오신 예수님이라고 여겼는지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고난과 질곡을 택할 사람이 없을 것이므로.
어록·시·묘사
여자들은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끼면 백발이 될 때까지도 어린애 같은 기쁨을 느끼는 법이다.
(H.M. 몽테를랑)
모든 기쁨은 소득이다. 아무리 적더라도 소득은 소득이다.
(R. 브라우닝/ 파라셀수스)
기쁨이란 얻었을 때의 감정이요, 슬픔이란 잃었을 때의 감정이다.
(윤오영/ 생활의 정)
기쁨이 없는 인생은 기름이 없는 램프다.
(W. 스콧/ 해적)
뜻하지 않게 얻은 기쁨은 한층 더 크다.
(프랑스 격언)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선행을 몰래하고 그것이 우연히 드러나는 일이다.
(C.램/ 茶話)
참된 기쁨이란 그야말로 진지한 것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기쁨은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강한 용수철, 기쁨이야말로 대우주의 시계장치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이다.
(J.C.F. 실러/ 기쁨을 노래한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
(J.W, 괴테)
기쁨으로 신의 속삭임의 고동을 듣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T. 케빈스)
늦게 찾아온 기쁨은 쉬 떠나지 않는다.
(L.J. 베이츠/ 즐거운 날)
노고 후의 수면, 풍랑 뒤의 항구 정박, 전쟁 뒤의 평온, 삶 뒤의 죽음-이것이 최대의 기쁨이다.
(스펜서/ 요정여왕)
마음이 기쁘면 얼굴 빛이 아름다워진다.
(J. 데이비스/ 바보의 천벌)
기쁨은 인생의 요소이며, 인생의 욕구이며, 인생의 힘이며, 인생의 가치이다. 인간은 누구나 기쁨에 대한 욕구를 갖고 기쁨을 요구할 권리를 갖고 있다.
(J. 케플러/ 더 기쁨을)
천상의 기쁨은 소박하다. 거기에는 평화가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쁨이야말로 종교생활의 핵심이요, 신앙의 본질이며 다른 모든 종교적인 덕목들보다 위대한 것이다.
(A. J. 헤셸)
하느님은 땅과 하늘을 지으신 분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을 창조하신 분이다.
(A. J. 헤셸)
온전한 기쁨은 명예와 함께 온다. 얻는 바 있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P. 코르네유)
참된 기쁨은 고뇌를 외면한 기쁨이 아니라 고뇌에도 불구하고 기쁜 기쁨이다‥‥ 들끓는 부조리의 가마솥으로부터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통해서 진정한 기쁨은 솟아나는 것이다.
(A.J. 헤셸)
기름은 우리가 우리 자신이 된다는 목표에 점점 접근해 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시들해 가는 물건도 기쁘고 따뜻하고 화사한 웃음 속에 담그면 이맛살을 찌푸리고 보았던 싱싱한 것에서보다 일이 잘 되어 간다.
(N. 호손)
기쁨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생활만 바르고 옳으면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비용이 들지 않는, 필요에 의해서 얻어지는 기쁨이 가장 좋은 기쁨인 것이다.
(C. 힐트)
사람이 벼락에 서 있으면서 어두운 낭떠러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즐거워하는 것은 무책임한 기쁨이다.
(A.J. 헤셸)
기쁨에서 맛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쁨을 나는 슬픔에서 찾는다.
(S. 티스데일/ 대답)
기쁨이란 사람들이 아직 빨갛게 역지도 않았는데 먹는 과일이다.
(A. 제그리)
이 세상의 기쁨은 완전하지는 않다. 기쁨에는 고통의 맛이 섞이고, 벌꿀은 쓴 즙을 가해서 조리된다.
(로렌하겐/ 개구리와 쥐의 싸움)
슬픔은 저절로 해결이 된다. 그러나 기쁨이 그 진가를 찾으려면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한다.
(마크 트웨인)
기쁨도 신열과 마찬가지로 단 하루뿐인 일이다.
(텐마크 격언)
환희는 짧고 무상한 것이며, 쾌활은 정착되어 항구적이다.
(J. 스위프트)
사람들은 이름 있고 지위 있음이 즐거운 줄만 알고 이름 없고 지위 없는 즐거움이 가장 참 즐거움인 줄은 모른다. 사람들은 주리고 추운 것이 근심인 줄만 알고 주리지 않고 춥지 않은 근심이 더욱 심한 줄은 모른다.
(채근담)
커다란 기쁨은 커다란 고통과 마찬가지로 말이 없다.
(W.M. 새커리)
어떠한 기쁨도 등에는 고통을 업고 있다.
(그리스도 격언)
기쁨은 머물러 있지 않고, 날개를 펼쳐 날아가버린다.
(마르티알/ 경구집)
네가 기뻐서 껑충껑충 뛸 때, 네 발 밑에서 땅을 기고 있는 사람은 없는가 주의하라.
(S. 레크/ 다듬지 않은 사상들)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괴로움을 극복하고 기쁨을 획득한다.
(L. 베토벤)
기쁨에는 가족이 없지만 슬픔에는 처자가 있다.
(이탈리아 격언)
인생에 있어서의 최고의 행복과 최고의 순수한 기쁨이라고 할지라도 마침내는 닳아 없어진다.
(괴테/ 타우리스 이피게니아)
때때로/ 급하고 강한 사도행전의 바람이/ 교향곡의 휘날레처럼 몰려오면서/ 잔잔한 기쁨의 물결을 출렁이게 하고/ 우수의 성을 무너뜨린다.
(김상길/ 바람 詩抄)
새벽을 헤치며/ 향품을 안고 달려간/ 막달라 마리아// 슬픔에 잠긴/ 절망에서 / 주님을 뵈옵고/ 그 발 앞에 꿇어 앉은/ 숨가쁜 기쁨
(배정희/ 4월의 이야기)
다시 태어난 기쁨으로/ 아침마다/ 눈을 뜬다// 어제를 벗어버린/ 웃는 얼굴로/ 아내의 손을 잡으면 환하게 올려오는/ 축복의 햇살.
(유승우/ 날마다 거듭나는)
눈물이 천천히 볼로 흘러 떨어진다. 그녀는 그 찰나의 감정이 기쁨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분간하지 못했다. 아니 그녀는 그것을 영원히 판단치 못할지도 모른다. 꼭 같은 두 개의 감정-기쁨과 슬픔이 무서운 기세로 한 찰나에 물맞침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터질성을 가진 두 개의 물건이 맞장구를 칠 때와도 같았고 보니 어떤 것이 세고 약했던 것인지 분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무영/ 3년)
우린 지금/ 잃어버린 삶의 한 자락을 바라봅니다. / 참으로 참으로/ 기쁨 속에 땀 흘리며일한/ 부지런했던 여름이었습니다.
(조순애/ 지금은 떠나야 하는 때)
간절히 바라건대/ 선생이여!// 목줄기 탁 트이는/ 시원한 생명수를/ 내게도 허락하소서// 참된 삶의 발견/ 벅찬 환희 몰고 와// 빗장문 열어 젖히고/ 누워 잠든 자들 속을 헤치며/ 달려가는// 나,/ 수가, 성의/ 한/ 여인이외다.
(이영옥/ 우물가의 여인)
아아, 거룩한 사랑을 노래하리니, 성모의 마음에 넘치는 기쁨이여!/ 기쁨이 타오를 때 우리 또한 노래하리니,/ 할 말이 이어지지 않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나 노래하리니/ 내 가슴에 감추인 기쁨의 깊고 많음이여!/ 기쁨이 타올라 외침 이 되고/ 사랑의 마음에 사로잡혀 계속 타오르나니/ 외침소리 날카로워 도 부끄럽지 않도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기쁨을 느끼나니/ 말씀을 생각하며 마음이 불타는 모습을/ 사람들은 비웃으며/ 계속 화제 삼을지나/ 아아, 기쁨이여, 마음의 즐거움이 여,/ 외치지 않고 마음에 가두어 두라./ 이 세상 사람은 나를 미쳤다 하겠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이 기쁨을/ 세상 사람들 어찌 알 수 있으리오.
(야코포네/ 마음에 기쁜 소리 들릴 때)
아픔을 통해 나를 찾으시는 기쁨이여/ 당신을 향해 나는 마음을 닫을 수가 없나이다.
(G. 마데슨/ 태초에 하나님이 사랑하셨다)
눈보라 살을 에는 죽음의 세월 밀어내고/ 해마다 거듭 나는 눈부신 기쁨과 사랑이여!
(임춘남/ 부활꽃)
그대 자신과도 같이 정다운/ 기쁨을 선사하라/ 우리들로 하여금 천국을 예감케 하는 그 기쁨을
(노발리스/ 밤의 찬가)
"내게는 이름이 없어요/ 나는 태어난 지 이틀째랍니다"/ 나는 너를 무엇이라 부르냐? /"나는 행복입니다/ 기쁨이란 것이 내 이름이랍니다"/ 귀여운 기쁨이 네게 있을지어다!//어여른 기쁨!/ 귀여운 기쁨, 태어난 지 이틀째!/ 귀여운 기쁨이라 너를 부르리라/ 너는 미소짓고/ 나는 노래한다/ 귀여운 기쁨이 있을 지어다!
(블레이크/ 기뻐하라 아기야)
오오, 눈부시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들은 옷는다// 나뭇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괴테/ 오월의 노래 · 1)
하늘로부터 기쁨을 모아 들일지어다.
(홉킨즈/ 부활절)
흥이란 한없이 곱고 한없이 사납고 철석같이 미쁘다가 바람같이 변한다. 너르자면 온누리에 차고 잘자면 겨자알도 오히려 크다. 활달할 적엔 양양한 바다에 봄바람이 넘놀고 까다롭자면 시기하는 지어미도 물러앉을 지경이다. 그리고 온갖 조화를 다 가진 듯 고대 여기 있는가 하면 까마득하게 사라지고 분명히 손아귀에 들었거니 하다가 돌아서면 간 곳을 찾을 길 없다. 어느 때는 푸드득 나는 새 나래에서 그대로 뚝 떨어져서 품 속으로 기어들고 어느 때엔 발부리에 밟히는 조약돌에서도 불쑥 그 안타까운 모양을 나타낸다.
(현진건/ 無影塔)
불만도 만족도/ 넘어선 곳에 / 그는 있다// 기쁨도 슬픔도/ 넘어 선 곳에/ 그는 웃고 있다.
(하오주/ 천치의 노래)
오늘밤 조금 후에/ 달은 잠들고 말겠지만/ 별들은 눈뜨고 있으리라./ 네 노래의 가락이 기쁨의 이슬을 뿌리는 동안/ 나뭇잎은 하나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P.B. 셸리/ 제인에게)
쓸쓸해 아픈 상처 달래져/ 더욱 붉은 향기 내뻗고/ 살아 있음에 출렁이던 기쁨/ 너로 하여 번지던 빈 들
(허의행/ 들꽃의 노래 · 11-패랭이꽃)
상하기 쉬운 가슴/ 다독이며 살아갑니다/ 슬픔 먼저 오고/기쁨 늦게 오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시련입니다.
(한병윤/ 시간)
비워 있으면서/ 이를 채우기 위해/ 기쁨과 사랑의 충만으로 가득하다면/ 이는 이미/ 비워 있으면서도 / 가득함이 된다.
(하오주 / 無)
웃는다// 초가을 볕에 꼬스라진/ 노랑머리/ 반지르르 아주까리 기름에/ 동긋 꽃아 빗어 올리고// 맥없이 기분 좋아/ 속이빨 내놓고/웃는다.
(박영남/ 옥수수 밭에서)
나 춥고 서러울 때는 언제나/ 투명한 기쁨으로 그대를 처음 만났던/ 수초 아늑한 물가로달려갑니다.
(이동회/ 물의 노래-강변 · 15-)
그대들의 기쁨이란 가면을 벗은 그대들의 슬픔./그대들의 웃음이 떠오르는 바로 그 샘이 때로는 그대들의 눈물로 채워진다. /‥‥ 그대들의 존재 내부로 슬픔이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그대들의 기쁨은 더욱 커지리라/‥‥ 그대들 기쁠 때 가슴속 깊이 들여다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그것이 그대들에게 슬픔을 주었음을./ 그대들 슬플 때에도 가슴속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라. 그러면 그대들, 그대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이제 울고 있음을 알게 되리라.// 그대들 중의 어떤 이는 말한다. 「기쁨은 슬픔보다 위대한 것이라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말한다. 「아니 슬픔이야말로 위대한 것.// 하지만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이들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것./ 이들은 함께 오는 것, 한편이 홀로 그대들의 식탁 곁에 앉을 때면 그러므로 기억하라, 다른 한편의 그대들의 침대 위에서 잠들고 있음을.// 진정 그대들은 기쁨과 슬픔 사이에 저울처럼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오직 텅 비어 있을 때에만 그대들은 멈추어 균형을 이룬다. / 보물지기가 자기의 금과 은을 달고자 그대들을 들어올릴 때, 그러니 그대들의 기쁨, 혹은 그대들의 슬픔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
(K. 지브란/ 예언자)
설 교 노 트
불변의 기쁨
빌4:4-7
서론
바울은 본서를 기록할 때 로마의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권장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불변의 기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육체가 기쁠 때나, 고통에도 관계없는 "불변의 기쁨"인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구원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의입니다.
그러면 불변의 기쁨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1. 하나님 앞에 구원받고 있다는 거룩한 신념입니다.
이 신념에 비한다면 세상에 어떤 졸은 것도 비교가 되지 아니하고 세상에 어려운 것도 문제가 되지 아니하며 오직 기쁨이 우리 마음에 깊이 잠재하여 있는 움직일 수 없는 기쁨의 근간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말하기를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족속이며 베냐민의 지파이고 히브리 사람 가운데 히브리 사람이요 바리새파 사람으로 율법에 흠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어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내어 버릴 뿐 아니라 분토처럼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얻고 예수를 통한 거룩한 구원을 생각할 때 그런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깊은 구원에 대한 감격이 바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느껴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구원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심령의 구원을 잊어버리고 살 때 우리 생활에서 도든 잡다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소망의 기쁨입니다.
1장 21-26절의 말씀을 보면 그는 생과 사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풀려서 살 수도 있었고, 사형 선고를 받아서 순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고백하기를 "이 두 사이에 내가 처해 있으니 무엇을 택할지는 알 수 없으나 원컨대 떠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내게 더욱 좋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살 수 있는 길과 죽을 수도 있는 길 사이에서도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소망 때문에 고통도 그를 괴롭히지 못했습니다. 재난 중에 소망이라는 것은 빛과도 같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눈에 빛을 띤 사람과 같습니다. 소망의 빛을 가진 사람은 기쁨이 있을 뿐입니다.
3. 바울의 기쁨은 그의 상조하는 기쁨입니다.
1:12에 내가 당하고 있는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유익한 점을 너희가 알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옥중에 있음이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유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15에 보면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고 그를 대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울에 대하여 악의로 대하고 사도권을 부인하며 괴롭게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기뻐했습니다. 내게 괴롭게 하든지 기쁘게 하든지 간에 복음이 전파된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쁨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캄캄한 밤에는 무엇이든지 구분을 할 수 없게 되고 색깔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침에 하나의 태양이 떠오르므로 모든 것은 명백해집니다. 이 태양빛이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우리 생명의 빛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해서 구원의 소망을 가질 때 우리의 마음이 밝아옵니다. 만물을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를 보십시오. 추호의 의심도 없는 명백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빛은 불변의 기쁨입니다.
결론
구원받음에 대한 거룩한 불변의 기쁨, 소망에서 오는 거룩한 불변의 기쁨, 생동에서 오는 거룩한 불변의 기쁨이 우리 가슴속에 가득차서 우리 마음을 비춰주고 우리 생활을 비춰주고, 주 앞에 올바르게 갈 수 있는 은총을 입혀 주시기를 바랍니다.
핍박당할 때 기뻐함
행5:41-42
서론
사도들은 전도를 하다가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주님이 당하신 핍박을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당하는 핍박으로 오히려 강사하며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짐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살이 찢어지도록 매를 맞고도 기쁘고 몸이 상하여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전도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태복음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 한 핍박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되고,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아도 그것은 육체적인것 뿐이지 결코 영혼까지 죽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핍박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그 핍박을 받음으로 복을 받게 되니 기뻐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2. 핍박을 기뻐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베드로 사도는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벧전3:14-16).
그러므로 핍박을 당하면서도 기뻐하는 사람은 비방할 것이 없이 선을 행하는 자이어야 하며 생명을 주님께 맡기고 사는 신앙인이어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하였고, 또 계속하여 말씀하시길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빌1:20-26).
3. 핍박 중에 기뻐한 자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핍박을 받았으나 기뻐할 자들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았지만, 그 핍박은 주님을 위한 고난이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기뻐하였다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거짓 증인들의 증언으로 인하여 돌에 맞아 순교하는 핍박을 당하였지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나고 기쁨으로 순교를 당한 것을 압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생과 사의 기로에서도 기쁨으로 찬송하며 기도하였다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 당하는 핍박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핍박은 오히려 복이 되며,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함으로 그 핍박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핍박 중에 기뻐한 자들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기쁨을 가져옴
눅15:1-7, 10, 22-24
서론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여러분은 어느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까? 성경은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바된 사람들이 구원을 체험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기쁨을 발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언제 하늘과 땅에서 기쁨이 있습니까?
1. 죄인이 회개할 때입니다.
이 본문의 비유는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가슴 아픈 심정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회개해야 할 사람들로 보십니다. 마음과 가슴의 회개는 하늘과 땅에서 기쁨을 가져오는 인간의 반응입니다.
'회개'는 현대인이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종교적 술어입니다. 회개는 죄를 슬퍼함 그 이상입니다. 회개는 곧고 좁은 길을 가기로 한 간단한 결정 그 이상입니다.
회개는 결과적으로 다른 종류의 삶과 행동을 가져다주는 깊은 내적인 마음의 변화인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죄에 대하여, 자아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 대하여, 사물에 대하여 있는 태도의 변화인 것입니다. 회개는 하늘과 땅에서 기쁨을 가져다주는 인간편에서의 태도와 방향의 변화인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아니 회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을 들을 때입니다.
2. 하늘과 땅의 기쁨
사람이 회개할 때 땅에서는 기쁨이 있습니다. 다시 찾은 양의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용서를 체험하고, 영적으로 깨끗함을 누리게 되며,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본성을 받게 됩니다. 또 영적인 것들에 대한 욕구가 발전합니다. 그리고 천국 본향에 대한 확신이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또 사람이 회개할 매 하나님의 가족에 기쁨이 있습니다. 교회가 기뻐하며 모든 믿는 가족들이 기뻐합니다.
사람이 회개할 때 하늘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5장 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누가 기뻐합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우리 구주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성령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하나님의 사자들이 기뻐하십니다.
3. 하늘에서 기쁨을 가져오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순수한 기독교적 동정심이 우리 마음에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전 존재 속에 침투해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적 가치의 최고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1) 우리는 잃은 양에 대해서, 잃은 동전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 밖에 있는 잃은 아들에 대해서 선하신 하나님이라는 복된 소식을 열심히 선포해야 합니다.
(2) 예수 그리도의 성령 충만한 제자들인 우리는 어두운 곳에서 빛으로서 그리고 목마름을 일으키는 소금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3) 우리는 전도와 구제와 도움의 사역에서 교회로서 협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속에서 우리 주님의 대명령에 개인개인이 다 순종해야 합니다.
(4)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의 간증을 받으시고 그것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야 할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불러 일으키시도록 그분을 신뢰해야 합니다.
결론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잃은 자를 찾아 회복하고 새롭게 하는 것을 몹시도 보고 싶어 하십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모두 기쁨을 가져오기 위해 우리의 소유인 기회를 기뻐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셨다면 지금 그분을 영접하심으로써 오늘 하늘과 땅에서 기쁨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즐거움으로 감당하는 신앙
빌4:4-7
서론
사람이 사는 한 평생이 고생으로 일관될 수도 있고, 기쁨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괴롭게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아모스 선지자 시대에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는 안식일로 온종일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고통으로 느끼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월삭이 언제나 지나서 우려로 곡식을 팔게 하며 안식일이 언제나 지나서 우리로 밀을 내게 할꼬‥‥‥(암8:5)"라고 불평하였습니다. 구원의 복된 소식 안에 사는 성도가 신앙이 짐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현상인 것입니다.
즐거움으로 감당하는 신앙이란 어떤 것입니까?
1. 마음속에 주께서 주신 기쁨으로 충만케 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속에 가진 기쁨은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것은 상대적인 기쁨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어떤 환경이냐를 막론하고 기뻐하는 자세입니다. 그것은 지금 바울이 옥에 갇혀 있다는 현실을 뛰어 넘어 누리는 기쁨이요, 장차 내 앞에 일어날 사건이 어떤 예기치 못할 불행스러운 일이 기다리고 있느냐 하는 여부를 막론하고 가지는 기쁨입 니다.
특별히 신앙생활하는 이들 가운데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는 동기 중 많은 경우, 같은 성도들끼리 관용을 지니지 못함으로 인해서 생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용납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생겨지지 않을 때, 그만 마음속에 신령한 세계에서 누리는 기쁨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된 이가 이 땅 위에서 살아갈 때 실로 주님께서 주신 기쁨으로 기뻐할 조목들은 얼마든지 많을 줄 압니다. 그것을 몇 가지로 살펴보면,
(1) 영생의 나라를 상속받은 사실 때문에 가지는 기쁨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 때문에 가지는 기쁨도 있습니다.
시편 106장 5절에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기업과 함께 자랑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3) 나의 이름이 이미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 때문에 갖는 기쁨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4) 그중에 또 다른 하나의 기쁨은 우리가 함께 진리 안에서 살아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요한삼서 1장 3-4절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2. 반드시 주께서 보상해 주시는 순간이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성도가 이 땅 위에서 즐거움으로 신앙을 감당해야 할 이유는 필연코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보상받게 해 주는 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가 주신 구원을 믿는다는 말은, 곧 이날에 내게 주실 하나님의 보상 때문입니다.
주를 믿는 모든 성도가 우리에게 복된 안식에서 갚으실 하나님의 날을 기억한다면 실로 이 세상을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른 태도가 아니라, 맡기워진 삶을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합당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3.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즐거움으로 신앙을 감당할 수 있는 귀중한 원천은 바로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이러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즐거움으로 감당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초는 바로 이 원리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은 우리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해 줍니다. 더구나 그 하나님의 지각은 우리의 모든 지각보다 뛰어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9-30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신 신앙을 즐거움으로 감당하는 모든 발걸음이 되어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담을 안겨 주시기 위하여 신앙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얼굴에 감사와 웃음과 기쁨을 담고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십시오. 바라건대 즐거움으로 신앙을 감당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께서 주시는 평강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잃은 것을 찾은 기쁨
눅15:1-32
서론
본문은 세 가지 비유, 즉 길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기쁨과 잃어버린 돈을 찾은 여인의 기쁨과 방탕한 자식이 돌아온 데 대한 아버지의 기쁨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중요한 교훈은 고통 중에 있고 의지할 데 없고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빠진 죄인에 대한 동정을 표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친 것이요, 둘째로는 잃어버린 영혼이 하나님 편으로 보아서 얼마나 귀한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1. 무엇을 잃었습니까?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무엇을 잃었다는 것은 마음이 섭섭한 일이며 가슴 아픈 일도 있습니다. 현대를 가르쳐서 상실 시대 즉, 잃어버린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도시화, 산업화, 기계화, 기술화 내지는 지능화가 되고 이러한 현대 상황에서 상실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자아상실입니다. 현대는 점점 대중화, 전체화, 집단화, 통제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개인은 몰락되고 희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다운 인간상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대하여도 책임을 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나만이 아니라 나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삶의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물질 문명이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서 생의 주객이 뒤바뀌어서 인간의 가치를 상실하여 삶에 대한 자포자기, 자학 자살 등이 늘어만 가는 현실이 되었고, 그리스도인들도 얼마나 여기에 편승하고 있으며 물질의 노예, 돈의 종, 명예와 권력의 로보트, 꼭두각시 인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 양심 상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인간에게 선한 양심을 주셨는데 시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로 바울이 롬7:19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을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던 바 죄악을 행하는도다 "라고 탄식한 것처럼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이 탄식이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 상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사회는 불신 풍조로 가득찼다는 말씀입니다. 이 불신 시대에 불신 사회 속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극히 적은 믿음성조차도 잃어버린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불신 풍조에 휩쓸려서 처음 받은 믿음, 처음 사랑을 잃어버려서 영생의 소망까지도 잃어버린 기독신자도 많이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상태에 있는 인간은 허무하고 불안하고 가련하고 비참하고 절망적입니다.
2. 잃은 것은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방임 상태에서 귀한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나 아버지를 떠난 탕자는 모두
방임, 방심, 방종의 상태와 불순종하는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실수로 잃어버렸습니다. 귀한 보화일수록 조심성 있게 잘 간수해야 하는데 어두운 집 안에서 부주의로 인한 실수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또 간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잃은 것을 찾으려면 접근해야 합니다. 목자가 길 잃은 양을 찾아가듯, 또한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듯이 접근해 가서 대상자에게 찾아가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 상태는 어떠한 형편에 있습니까? 우리는 비록 버려진 영혼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실되어져 가는 형편에는 있지 아니한지오? 만일 주님과 멀리 떨어져 있다면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동행해야 할 것이며 주님 안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아직도 길 잃고 헤매는 뭇심령들을 찾아 접근해서 구원해 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여 소망의 심지를 돋워서 사랑의 빛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또 결심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3. 잃은 것을 찾으면 기뻐합니다.
본문에서 잃은 것을 찾고 기뻐한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물건의 주인은 소유물에 대한 애착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특히 자기의 자녀된 택한 성도들은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잃어버린 심령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소유물에서 돌아와서 본래의 원상을 회복할 때에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라야 자기 자신의 기쁨도 있습니다.
결론
참된 기쁨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기쁨이 없고 염려와 걱정, 불안과 초조한 상태에 있다면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주님과 동행합시다.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십시다. 어디로 간들 고통과 불안이 없으리요마는 하나님 안에서 주님 한 분만 굳게 붙들고 죄악과 악령의 도전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즐거움의 회복을 간구함
시51:12
서론
다윗은 기도하는 가운데 이미 잃어버린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범죄자로서의 가장 비참한 고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속에 기쁨과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범죄한 자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자는 자신의 범죄를 고하고 하나님께 그 즐거움의 회복을 위해서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즐거움을 잊어버린 다윗
다윗은 일찍이 베들레헴 목장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하여 하나님의 축복에 도취되고 만족하여 기쁨이 넘치는 노래를 불렀던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과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지은 시들을 보면 대개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여 기쁨으로 부른 노래들이 많습니다.
그러던 다윗이지만 그가 일단 범죄하고 나니 마음이 괴롭고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심령의 불안과 고통으로 잠을 이를 수가 없었으며 무슨 일을 하여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으며 하나님 앞에 두렵기만 하였습니다.
그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들에서 양을 치면서도 항상 기쁨이 충만하였으며,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아무 거리낄 것이 없던 다윗이었지만 범죄한 이후에는 그렇게 즐거움은 찾아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2. 즐거움의 회복을 간구함
다윗의 자기 굴욕과 용서를 갈구하는 처절한 부르짖음보다 더 비통한 것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의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시키시는 은혜에의 갈망보다 더 처절하고 간절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심령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해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하며 주의 성령을 거두어가지 말아 달라고 부르짖는 모습은 너무도 가련하고 처량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무가치한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에는 즐거움이 있습니까? 범죄하여 심령의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다윗처럼 철저하게 범죄의 용서를 받고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즐거움을 다시 찾는 회복 운동입니다.
3. 주의 기뻐하심이 나의 즐거움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아니하시나이다(16절)"라고 했습니다. 또 "그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제사나 의식적인 예배를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니 온전한 번제란 참된 회개가 있는 의의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눅15:7). 하나님의 기쁨은 곧 성도의 기쁨입니다.
회개하는 심령의 제사를 즐기시는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로 받으실 만한 제사를 드리고 사유함을 받을 때 기쁨은 회복될 것입니다.
결론
인생의 최대 기쁨은 하나님과의 정당한 교제 생활입니다. 범죄한 자는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회개를 한 자는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시고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죄된 것이 있으면 다 사죄함을 얻고 참 기쁨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온 웃음
창21:1-7
서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그 아들 이삭을 낳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참 진정한 웃음이란 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웃음입니다. 이삭은 웃음의 아들이란 뜻이 있으니 이는 위에서 하나님이 약속의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참 진정한 웃음이란 어떠한 웃음이어야 합니까?
1. 남들과 같이 웃을 수 있는 웃음이어야 합니다.
큰 집안에서 산해진미를 먹으며 큰소리로 웃을지라도 그 대문 밖에서 헌 데를 앓으며 얻어먹고 있는 거지 나사로가 신음하고 있는 한 나의 웃음은 진정한 웃음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눅:16).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술을 따르며 희희낙낙하는 암소같은 여인들의 살진 웃음을 아모스는 규탄하는 책망했습니다(암4:1-3).
날마다 호화로이 열락하며 자색옷을 입고 땅땅거리던 부자의 웃음은 필경 음부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내 이웃이 헐벗고 있는 한 잘입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내 민족 중에 굶주리고 있는 형제가 있는 한 배부른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있는 자들은 없은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도와서 부한 자는 가난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은 부한 자들과 함께 소리 높여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웃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쁨을 더욱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웃과는 화해와 사랑의 웃음을 같이 웃어야 합니다.
2. 영원히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벨사살 왕은 일천 명의 귀빈과 함께 흥겨웁게 주흥에 취해 웃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벽에 손이 나타나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경고 한 마디로 그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단 5).
부정한 소득으로 한때는 웃으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기나긴 감방에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날이 기어코 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슨 영원한 기쁨이 있는 것이리오
멀지 않아 웃음이 눈물로 바뀔 수밖에 없었던 벨사살 왕의 웃음을 향하여 다니엘은 동정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4장 9절의 말씀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진정한 참 웃음은 위에서부터 와야 하며 하나님이 주서야 합니다.
3. 하나님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웃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시고 근심하시고 계시는 데도 자기 혼자 웃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내 영혼아,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자고 하는 어리석은 부자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리하면 네가 예비한 것이 뒤것이 되겠느냐(눅:12)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기쁨의 웃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웃기를 원하십니다.
결론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하여 얻은 즐거움은 오히려 웃음을 빼앗아 갈 뿐이지 웃음을 주지 못하고 근심과 불화와 눈물의 씨앗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웃음을 웃으려면 남과 같이 웃을 수 있어야 하며, 영원한 기쁨의 웃음이어야 하며, 하나님과 함에 운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웃음은 하나님편에서 만들어 주시는 웃음이라야 합니다.
심히 즐거워 함
느12:43
서론
예루살렘의 성곽을 재건하고 이를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식을 할 태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성곽을 재건하는 일은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많았고 외부의 방해도 많았기 때문에 다 재건한 후에는 더 큰 기쁨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셨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즐거워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크게 즐거워하게 하신 것입니다.
1. 하나님께 드림은 즐거운 일인 것입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고 감사하였습니다. 70년간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키셔서 꿈에도 그리던 모국에 귀환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중대한 일을 치를 때 많은 방해 공작이 있었습니다. 외부의 대적자들의 계속되는 침투와 내부에서의 비협조적 태도 내지는 낙심하여 포기하는 자가 연속하였어도 꾸준한 역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회생과 수고와 봉사 끝에 거대한 건축 공사가 끝이 나고 하나님께 바치는 봉헌식을 거행하게 되었으니 기쁨이 충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예배당이 세워지고 있고 또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께 바치고 즐거움을 누리는 성도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으로 지은 성전은 당연히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인데도 개인의 소유로 변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심히 즐거워하였습니다.
이 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예사로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심히 즐거워하였다 "고 했습니다. 어른들뿐 아니라 부녀와 어린 아이들도 즐거워하였으니 전국적으로 전국민의 큰 경사였던 것입니다.
참된 성도들의 진실한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받는 것만 기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주님께 드리오리까? "라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정성어린 제사는 많은 물질이 내게서 나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보답하는 뜻에서, 감사함을 표시하는 뜻에서 헌물 제사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기쁨이 한량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그것을 자랑한다든지 아까워하는 것은 참으로 기뻐하는 일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도 않으십니다.
3. 하나님께서 즐거워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신앙 표현과 받아 누리는 은사의 근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들이 마음의 기쁨이 넘치는 것도 자신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즐거워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즐거움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요, 기쁨의 근거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6장22절에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시는데 슬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이요, 불가피적인 즐거움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이 즐거웁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즐겁게 하여 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을 능히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 우리는 참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큰 기쁨이 넘침
행8:5-8
서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단순한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라큰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빌립이 전도한 사마리아 성에는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 기쁨은 어떤 기쁨이기에 이렇게 큰 기쁨이라고 하였습니까?
1. 정신이 건전하게 됨을 기뻐하였습니다.
7절에 보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마술사 시몬을 위시하여 미신과 우상이 가득하여 귀신들린 자들이 많았습니다. 자기 정신을 옳게 가지지 못하는 미친 사람이 되었으나, 이제 빌림이 전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고 온전한 정신을 되찾게 되었으니 그 당사자와 가족들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입니다. 이 일은 그 가족만 기뻐한 것이 아니라 이웃 사람들도 같이 기뻐하며 축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정신 이상자가 되고 미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진정한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귀에게는 진정한 기쁨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아무리 건강하여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차라리 육신이 병든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이제 빌립이 전한 예수의 이름으로 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자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으니 큰 기쁨이 넘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이 건전해지기를 원한다면 온갖 미신과 우상의 소굴에서 나와서 참 하나님을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큰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2. 육신이 건강하게 됨을 기뻐했습니다.
7절 하반절에 "또 많은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육신적으로 불구자가 되고, 중한 병으로 고통과 불행속에서 울던 자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낫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앉은뱅이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걷는 것입니다. 중풍 병자의 소원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의 그러한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앉은뱅이가 걷게 되고 중풍병자가 완전해지며 기타 모든 질병에서 고침을 받고 건강하게 되었으니 그 기쁨은 한량없이 큰 것입니다.
의약의 치료를 받고 나아도 기쁜데 성령의 은사로 나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큰 것입니다. 건강은 돈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또한 건강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건강해 짐을 인하여 크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3. 심령이 평강해짐을 기뻐했습니다.
범죄한 자들의 마음은 늘 불안하고 공포에 떨게 됩니다. 이것은 죄를 진 자마다 죄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말씀을 듣고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니 그 심령은 평강을 되찾게 되었고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6장 22절에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뻬앗을 자가 없느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기쁨은 체험한 자만이 아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은 자기만 누릴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전하여 다른 사람들도 예수를 믿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보니 심히 기쁘다
요이1:4
서론
본문에 "너희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싣히 기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의 기쁨은 곧 하나님의 기쁨이 되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심히 기쁘다고 하신 이유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행하니 심히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너희 자녀 중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교회 내에는 진리를 행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께 받은 계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구약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함으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타내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주를 믿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얽매여서 그것만 지키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형식적으로 그것을 지키고는 사람들앞에서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기쁨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의 계명대로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요일3:23에 말씀하시기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진리에 행하는 자를 보니 심히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라고 하였으며 요한 삼서에도 3절에 "형제들이 와서 내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행하는 일이 주의 종들을 기쁘게 하며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행해야 합니다. 진리를 행하는 자들이 바로 주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진리를 행한다고 하고 불의를 행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행하는 자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에 행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3. 내가 보니 심히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영적 즐거움을 따를 수 없으며 주의 종들이 위로를 받고 기쁨을 누리는 것은 물질적인 융숭한 대접이나 경제적인 후한 사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진리에 행하는 일을 볼 때 심히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목자의 심정이요, 훌륭한 지도자가 가질 품성인 것입니다.
아무리 교역 생활에 시달리고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어도 이런 기쁨을 누릴 때 만사가 만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인들이 믿음의 제물과 봉사를 기쁨으로 한다면 자기는 그 위에 제물로 피흘리며 희생이 된다고 할지라도 기쁘고 기쁘겠다고 빌립보서 2장 17절에 말했습니다.
주의 종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으시다면 진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이 넘치게 되며 이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기뻐하심
눅10:21
서론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서 그의 여러 가지 양상과 심정을 살필 수가 있는데 본문에는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독특한 기사가 있습니다. 이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도성인신하셔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성품을 소유하신 것이 분명하십니다. 이 기쁨도 그 인성에 포함되는 것이므로 인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살펴보면, 그는 잡수시지 않으시면 시장해 하셨습니다(요4:14). 그리고 마시지 않으시면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피곤하시면 주무셨습니다(막4:38). 또 슬플 때는 우셨습니다(요11:35, 히5:7). 그리고 본문의 말씀처럼 기뻐하셨습니다(눅10:21). 또 완악함을 근심하시고 노하셨습니다(막3:4). 아이들의 찬송을 만류하는 것을 분히 여기셨습니다(마21:15). 그리고 마음이 민망하시다고 하셨고(요12:27),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셨습니다(막8:12).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마27:50).
이렇게 모든 인간과 같이 성품을 소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죄까지 있으신 분은 아니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 보면 "그러나 죄는 없으시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육신으로 오셔서 기뻐하신다고 했으니 우리는 그 기쁨을 주님과 같이 누려야 할 것입니다.
2.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성을 소유하셔서 기뻐하신다고 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으로 기뻐하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육신적인 즐거움을 누리셔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보통 인간들의 기쁨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세상에서 희희낙락하는 속된 기쁨과는 전혀 다른 성스러운 기쁨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뻐하사"라는 말은 "축하함, 찬양함, 상승됨, 간청함"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의 기쁨은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물질로 인하여 기뻐하지는 않습니까? 명예나 권력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으로 기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기뻐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이전에 소개된 70인의 제자들이 전도 파송에서 귀환하여 드린 보고를 받으셨습니다. 전들이 기뻐하며 돌아와서 주께 보고하기를 "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너희가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고 하셨습니다.
과연 전도자들은 어떤 일의 드러난 업적에만 기뻐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칫하면 자만에 빠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오히려 이런 때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전도 성공을 기뻐하셨습니다. 동시에 천국이 겨자씨나 누룩같이 자라고 퍼지는 것은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의 크고 넓으신 경륜의 실현이라"고 기뻐하셨습니다.
결론
우리는 육체의 즐거움보다도 거룩한 즐거움을 누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전도를 성공으로 한 제자들로 인하여 기뻐하셨으니 우리는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며 예수님과 더불어 충만한 즐거움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
잠16:33
서론
잠언서의 표현대로 이해한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며 복된 자입니다. 그 반면에 하나님을 경외 할 줄 모르는 자는 미련한 자이고, 그 끝은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의 태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경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과 통치를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롬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했습니다. 선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경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며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마음의 생각(2절)과 입술의 말을 조심하고 겸손하게 행동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멀리서도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며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시139:2에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갈 수 없는 자입니다. 오직 우리는 정직과 성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6절).
2. 화목케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입니다. 인간이 원래부터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이 아니지만 죄에 미혹되어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에 빠진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방법,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화목되는 길이며 하나님과 화목한 자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실 수 있습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뿐 아니라 이웃과도 화목하는 자입니다. 화목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마5:9). 그 예수님이 친히 죄악의 담장을 헐어버리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해를 이루시고 선민과 이방인 사이의 담장을 헐어버리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화목을 이루는 자입니다. 잠언 기자는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7절)"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겸손한 자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겸손한 자라야 합니다. 베드로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벧전5:5)"고 하였습니다. 잠언 기자도 본문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8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며 겸손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겸손한 세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천만의 바리새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교만은 한없이 올라가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지옥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5절).
결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라면 아무리 작아 보이는 것이라도 결코 소홀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일점일획이라도 우주보다도 더 무겁고 귀중하게 다루는 자입니다(20-22절).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입니다.
옥중에서도 기뻐함
행16:24-25
서론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을 전도할 때 귀신들린 여종을 불쌍히 여겨 귀신을 내쫓고 구원하여 주었지만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었으나 바울은 오히려 옥에 갇혔지만 기쁨으로 찬미하였습니다. 억울한 일에 도리어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성도의 기쁨의 이유에 대해 살펴봅시다.
1.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해 놓고도 책망을 받는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변명을 하고 원망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그렇게 하지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태도는 고난을 당하고 애매하게 매 맞는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단지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그 발을 착고에 채워진 채(24절) 기도하였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호소하였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을 폭행한 그 여종의 주인과 억울하게 판결을 내린 법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했겠습니까? 바울과 실라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을 뿐 아니라 또한 귀신들렸던 여종을 위해서도 기도했을 겁니다. 또한 애매히 옥에 들어갔으나 자신들의 믿음을 잃지 않고 이 일로 인해 더욱 신앙의 성숙과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기를 위해 기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울은 빌1:12에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는 어떠하든지 복음이 전파가 된다면 그것으로써 기뻐하고 기뻐한다(빌1:18)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렇듯 기도하는 자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인간이 만족해서 얻어지는 기쁨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참된 기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판단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재판을 받았지만 상관들은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지 않고 한쪽의 주장만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처럼 억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문제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사건이나 그들은 하나님의 판단에 맡겼던 것입니다. 벧전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고 오직 기도하고 찬미하였던 것입니다.
빌립보서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쓴 바울의 서신인데 그는 여기에서도 "기뻐하라"고 빌립보 성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바울이 이렇게 쓸 때 그는 빌립보 성에서 전도할 때 갇혔던 때를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기쁨'에 대해 확신을 갖고 빌립보서를 기록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런 억울한 일 가운데 찬송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망과 불평, 불만과 비난을 토로하는 대신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이루실 하나님을 찬미하였던 것입니다. 어떠한 자가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쁨이 넘치는 자이어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한 일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기쁨으로 하나님께 찬미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성도의 기쁨은 어디에서 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에게서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리고 맡길 때 기쁨이 옵니다. 본문을 통해 볼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미하는 태도에서 성도의 기쁨은 넘칩니다. 매사를 하나님의 판단에 맡길 때 우리는 기도와 찬미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나 태
성 경 활 용
(1)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킨다.
(잠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으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2) 안일한 여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32:9) 너희 안일한 부녀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3) 이스라엘의 안일한 자는 화가 있다.
(일6:1) 화있을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4) 안일한 열국
(슥1:15)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관련원어풀이
1. lx'[; 아-찰
게으르다, 나태하다.
(삿18:9)
2. hp;r; 라-팍-
(1) 느리다, 게으르다, 나태하다.
(출5:8, 17)
(2) 자신의 무기력함을 나타내다.
(잠18:9)
3. hl;v; 솨-라
방황하다, (무지함으로)범죄하다.
(대하29:11, 스4:22)
4. hY:m]r] 레미야-
게으름, 손을 내림, 나태함
(잠10:4, 12:24, 27)
5. ajrgov" 아르고스
게으른, 일하기 싫어하는, 수고 없이 사는, 아무 일도 안하는, 무익한, 속이 빈, 거짓의.
(딤전2:13, 딛1:12, 벧후1:18)
6. kopiavw 코피아오-
피곤하다, 지치다, 약해지다, 타격을 받다.
(계2:3)
7. nwqrov" 노-드로스
느린, 우둔한, 어리석은, 패역한.
(히6:12)
8. ojknhpov" 오크네-로스
늦은, 지체하는, 게으른, 마음이 좁은.
(마25:26, 롬12:12)
설교예화자료
나태란 선택이다
오랫동안 일을 질질 끄는 것.
인생이란 결코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싫어합니다. '나태'는 '개인적으로 충실하게 현재의 순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태란 선택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 찾는 것이며 당신의 생활에서 없앨 수 있는 자기 패배적인 또 하나의 항복인 것입니다.
일을 이를 때 당신은 일을 하는 대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현재의 순간을 보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면 결국 나태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리는 나태를 주변 환경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도시는 정말 무미건조하다. "
"정말 재미없는 연사로군."
도시나 연사가 재미없는 것이 아닙니다. 권태를 느끼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순간에 마음과 정력을 다해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그 권태를 없앨 수 있습니다.
사무엘 버틀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권태로움을 느끼도록 내버려 둔 사람은 남을 권태롭게 만드는 사람보다 훨씬 더 경멸해야 한다. "
자기가 선택한 일을 하고 현재 창의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마음을 쏟음으로써 앞으로는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선택이란 항상 그렇지만 당신의 것입니다.
나태의 전형적인 예들
수줍음 또는 공포증과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를 거부하는 것, 그러한 문제에 건설적인 어떤 조치를 취하고자 하기보다는 단순히 개선하고자 기다리는 것.
알코올 중독, 약품 중독 또는 흡연 등과 같은 습관에 대 결하지 않는 것. "언젠가는 끊겠다. "라고 말하지만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이를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청소, 수선, 바느질, 잔디하기, 페인트칠과 같은 힘들고 단순한 일을 미루는 것, 그러한 일들이 될지 안될지 정말로 걱정이라고 가정하는 것, 오랫동안 기다리기만 한다면 저절로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권위있는 사람, 친구, 애인, 세일즈맨 또는 서어비스맨 같은 사람들과 대면하기를 회피하는 것, 그러한 대면이 관계나 일을 개선시킬지 모르는 데도 그저 기다림으로써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내일 또는 다음주에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고 결심하는 것, 일을 미루기 위한 이유로서 피곤이나 수면 부족의 핑계를 대는 것.
나태의 전형- "괜찮다"
얼마 전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일본인이 서울에 있는 동안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의 하나가 "괜찮아요."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어떤 일에 있어서도 별다른 문제점이 없으니 그대로 지나가도 좋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나 차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 말의 심각성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말을 너무 쉽게 쓰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본래 '괜찮다'는 낱말은 '그만하면 별일없다, 또는 별로 나쁘지 않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생활면에서 쓰여질 때에는 다소 무책임함과 현실도피적인 안일한 말이 되어서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 한때 이른바 3저의 혜택을 누리면서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을 하고 있을 때는 90%의 정도의 정확성만 가지고도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떨어진 우리의 수출경쟁력은 그 회복이 불투명한 상태에 있으며 게다가 중동 사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유가및 환율의 불안정 등 대외적인 요인이 우리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타성에 젖은 적당주의에서 벗어나 뚜렷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주도 면밀한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가 쓰는 "괜찮아요"라는 말은 과연 괜찮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시점인 것입니다.
개미와 매미
다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개미와 매미의 이야기입니다. 게으른 매미는 결국 추위에 떨어 빈궁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느 여름 날, 매미는 한가로이 나무 그늘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무 아래에는 뜨거운 길바닥에서 개미들이 땀에 젖어 헐떡이며 먹이를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불쌍하고 딱하게 여긴 매미는 이 더운 날에 뭘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느냐고 개미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나 개미들은 이렇게 부지런히 일을 해놓아야 겨울에 식량걱정을 안하고 살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느새 겨울은 닥쳐와 추운 바람과 차가운 눈보라가 몰아쳤습니다. 매미는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개미집 문을 두드려 식량을 좀 나누어 달라고 애걸하였습니다. 개미가 식량들 가져다주자 매미는 여름에 개미의 부지런함을 비웃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 했습니다.
게으름은 지옥
어느 사람이 죽은 지 며칠 후 눈을 떠보니 그곳은 천국이었습니다. 한없이 넘고 푹신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평안한 곳에서 며칠 동안 잘 지내었습니다. 그곳에는 출근하라고 깨우는 아내도 없었고 과장의 잔소리도 물론 없었습니다. 하인이 늘 곁에서 무슨 일이나 거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이런 평안한 세월에 그는 싫증이 났습니다.
그는 하인을 불러 부탁했습니다. "내 손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좀 달라." 의외로 하인은 그 청을 거절했습니다. "이곳에는 당신이 원하는 것은 다 되지만 한 가지 당신이 직접 일을 하는 것만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 그는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옥이 낫겠다. 심심해서 살 수가 없지 않은가?" 하인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여 기가 천국인 줄 아셨던가요. 여기가 바로 지옥입니다. "
게으른 새와 삼씨
봄이 되자 부지런한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준비를 하였습니다.
"이 밭에는 무엇을 심을까? "
농부는 밭을 갈며 말했습니다.
"그렇지, 새들이 익은 곡식을 다 파먹어서 작년 농사를 망쳤으니 이곳에 삼씨를 심자. 그래서 그물을 만들어 못된 새들을 모조리 잡아야지."
농부는 밭에다 삼씨를 심었습니다.
"씨앗을 뿌리는구나. 곡식이 익으면 신나게 먹어야지!"
농부가 씨앗을 뿌리자 새들은 즐겁게 조잘댔습니다.
"아니야, 저건 삼씨야."
눈치 빠른 제비가 얼른 삼씨를 알아보고 말했습니다.
"삼씨? 그게 뭔데?"
"삼씨가 자라면 그것으로 그물을 만들어서 새들을 잡는거야. 그러니까 싹이 생기기 전에미리 씨앗을 없애야 해."
제비는 애써 설득했지만 아무도 제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봄비가 내리고 밭에는 싹이 돋아났습니다.
"여기를 봐. 새싹이 돋았어. 빨리 이걸 뽑아야 해!"
제비가 놀라 외쳤지만 다른 새들은 나무 위에 앉아 노래만 부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으니 이곳을 떠나겠어."
제비는 다른 새들과 작별하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났습니다.
삼씨는 쭉쭉 자라 여름이 되자 농부는 삼줄을 벗겨 그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물로 새들을 모조리 잡았습니다.
꾀 많은 당나귀
당나귀가 무거운 소금을 지고 장터를 찾아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언덕을 넘고 시내를 건너게 되었는데 시냇물 속의 돌멩이에는 이끼가 끼어서 매우 미끄러웠습니다. 힘이 빠져 비틀거리던 당나귀는 그만 발이 자갈에서 미끄러져 시냇물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한참 후에 일어나니 물 속에서 소금이 녹았기 때문에 등에 진 짐이 매우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꾀가 생긴 당나귀는 그때부터 자주 물에 빠지곤 하였습니다.
'아, 가볍다. 내가 왜 이걸 몰랐을까!'
이러자 주인은 몹시 속이 상했습니다.
소금이 물에 녹아 큰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옳아, 네 놈이 이제 재미를 붙였구나. 어디보자.'
주인은 곰곰 생각한 끝에 돌아오는 길에는 솜을 사서 당나귀 등에 올렸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는 당나귀는 시냇물을 건너게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아, 시원하다. 이젠 짐도 제법 가볍겠지.'
당나귀는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가벼워져야 할 등의 짐이 몇 배나 더 무거워져 일어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어서 가거라."
주인은 사정없이 당나귀를 때렸습니다. 겨우 몸을 일으킨 당나귀는 전보다 훨씬 무거워진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걸었습니다.
머슴과 닭
많은 일꾼을 거느리고 사는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부지런하였기 때문에 새벽닭 울음 소리만 나면 일어나서 일꾼들을 깨워 일을 시켰습니다.
"저놈의 닭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이게 무슨 꼴이람. 꼭두새벽만 되면 저렇게 울어대니‥‥‥‥
"정말 힘들어 죽겠어."
날마다 고된 일을 하는 일꾼들은 잠이 모자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봐, 우리 저 닭을 죽여버리자."
"그래, 저 닭을 죽여버리자."
일꾼들은 의논 끝에 새벽잠을 깨우는 괘씸한 닭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새벽부터 울던 닭이 없어지자 주인은 다음 날부터 일꾼들을 더욱 일찍 깨우는 것이었습니다.
닭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자 주인은 시도 때도 없이 일꾼들을 깨우게 된 것입니다.
"아니, 세상에 닭이 있을 때보다 더 고생하게 생겼잖아? "
"닭이 없으니까 주인은 시간도 모르고 마구 깨우는군!"
"괜히 닭을 죽였어!"
그리하여 더욱 힘들게 된 일꾼들은 닭을 죽인 것을 후회하였지만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금단지
한 상인에게 늦잠꾸러기 아들이 있었습니다. 나태에 대한 아버지의 거듭되는 훈계에도 불구하고 그 게으른 아들은 여전히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는 좀처럼 일어나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 상인은 아들을 일찍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익 동기를 이용하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돈 좀 벌고 싶지 않니? "라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사람이 잃어버린 금단지를 줍는다. "는 속담이 있지 않니!"
이에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그 금단지를 잃어버린 사람은 더 일찍 일어났을 것이 틀림없어요."
어떤 학생이 신문에 낸 지름길
하루는 캔자스 시티 '스타'지의 구직란에 실린 여러 개의 광고 중에 8개의 단어로 된 광고가 있었습니다. 그 단어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비난할 만한(reprehensible), 특이성(idiosyncrasy),하찮은(extrapolate), 진부한(platitudinous), 근면한(assiduous),과다(ple-thora), 안락사(euthanasia), 희망(desiderata). 그것은 로니 존슨의 광고였습니다.
편집자는 무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니 존슨을 찾기 위해 젊은 기자를 보냈습니다. 로니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인데, 그의 영어 선생이 학생들에게 1학기 동안 8개의 단어를 신문에서 찾는 사람에게 A학점을 주겠다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날 이유가 전혀 없다
1976년 2월에 온타리오 주 정부는 약 300마리의 살찐 캐나다산 거위들을 트윈 오터 비행기에 태워서 플로리다로 날았습니다. 거위들이 스스로 그곳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제멋대로일 것이라고 생각되어서였습니다. 10년전 정부는 오웬 사운드 주위의 작은 땅에 거위떼를 살게 했습니다. 거위들이 비행기에 태워지기 전,한 관계자는 거위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위들은 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그것들에게는 이미 만들어진 음식이 제공되고 있으니까요."
잠수함 '드레숴'
핵 잠수함 드레숴는 1963년 4월 10일 우리의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로 인해 드레숴에 탔던 129명의 승무원이 수장되었습니다.
어설픈 정비 기술과 엉성한 검사로 인한 참사였을 것입니다. 잠수함이 가라앉게 된 추정 원인은 추진 장치를 냉각시키는 소금물을 파이프로 끌어올리는 기계의 파손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파손은 잠수함으로 바닷물이 넘쳐들어오게 했을 것이고 결국은 모든 전력을 끊었을 것입니다.
드레숴는 8천 피트 깊이의 물 속에 잠기기 전에 뉴햄프셔의 포츠머드 군항에 있는 해군 조선소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드레숴의 소금물을 끌어올리는 기계 장치는 5퍼센트만을 검사 받았습니다. 심지어 7개의 검사 중 하나의 표본 추출 검사에서도 배관및 설치가 기준 이하라는 지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태만은 가난의 어머니이다.
(미상/ 富의 길)
게으름은 마음의 잠이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나태는 살아 있는 사람의 무덤이다.
(J.G. 홀랜드/ 금박지)
태만은 오로지 마음이 약한 자의 피난처요, 미련한 자의 휴일이다.
(체스터필드 경/ 서간집)
게으른 자에게 부족한 것은 일을 할 시간이다. 왜 쉬느냐 하는 이유는 결코 부족한 법이없다.
(F. 뤼케르트)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길이다.
(N. 하우에/ 격언의 장)
태만은 살아 있는 사람의 무덤이다.
(J.G. 홀런드/ 금박집-태만)
나태는 녹이 스는 것처럼 사람을 쇠퇴하게 만들며, 쇠퇴의 속도는 노동함으로써 지치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근심 걱정은 태만에서 샘솟고, 쓰라린 노고는 불필요한 안일에서 생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태만은 그처럼 서서히 움직이니까 가난이 곧 그를 따라잡는다.
(B. 프랭클린/ 부자의 길)
근면한 자에겐 모든 것이 쉽고, 나태한 자에겐 모든 것이 어렵기만 하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나태와 오만은 왕과 의회보다 혹독하게 세금을 거둬들인다.
(B. 프랭클린/ 인지세법에 대한 서신)
민첩한 사람을 가장 크게 칭찬하는 사람은 바로 게으른 사람이다.
(W. 셰익스피어/ 시저와 클레오파트라)
무기력이란 정신의 가면 상태이다.
(L.C. 보브나르그/ 잠언과 성찰)
태만은 언제나 우유부단의 근원이다
(루카누스/ 시민전쟁)
사람은 몸의 게으름보다, 마음의 게으름이 더 많다.
(라 로슈푸코/ 금언집)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듯이, 태만은 둔한 몸을 쇠약하게 한다.
(오비디우스/ 폰토로부터의 서한집)
하느님의 베푸심도 자고 있는 인간을 깨우지는 않는다.
(니그리치아 속담)
세상 사람들은 돼지처럼 먹고 하루 종일 빈둥거린다. 모두가 학문에 힘을 쓰고, 덕의 향상에 노력할 수는 없다. 다만 흐리멍텅하게 빈둥거리면서 세월을 보내면서, 눈빛을 반짝거리며 명예와 이익을 찾고 있다.
(포박자)
무기력하면 행운도 함께 주저앉는다.
(루마니아 속담)
게으른 선비 책장 넘기기. <*글 읽는 데에는 마음이 붙지 않고 얼마나 읽었나, 얼마나 남았나 책장만 뒤지고 있다는 뜻>
(한국 속담)
일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고통스럽다.
(Q. 엔니우스/ 단편)
게으르게 사는 이의 백년은 노력하며 사는 이의 하루만 못하다.
(법구경)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잡초가 아니라 경작자의 태만이다.
(중국 격언)
사랑과 게으름을 노래 부르자/ 그 밖에 가질 것은 없느니라// 많은 나라에 살아 봤지만/사는 데는 그것밖에 없느니라.
(E.L. 파운드/ 부도덕)
우리들은 지상에서 행복해질 것이다. / 더이상 궁핍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열심히 노동하는 자의 손이 획득한 것을/ 게으름뱅이의 배가 포식하게 해서는 안된다.
(하이네/ 독일 겨울이야기 · 1)
사실 인간이 모든 사회적 제약을 벗어난 환경에 놓인다면,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 문제를 제외하고는 늘어지게 나태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증좌로서 언제나 사상의 본질을 제시하고 스스로 실천하는 동양의 심오한 옛 철인들은, 오직 무위유타(無爲遊惰) 속에 인생 최대의 삼매경을 체득함을 보아서도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유 환/ 나는 고독하지 않다)
물 쓸 때는 나비잠 자다 물 들어야 조개잡듯. < * 게을러서 좋은 때를 놓치고 뒤늦게 나대는 어리석음을 이름>
(한국 속담)
보소서, 일하지 않는 나의 손이 여기 있나이다/ 주님 앞에 불과 향을 사루어야 할 내 손/ 보소서, 일하지 않는 나의 손이 여기 있나이다. // ‥‥나는 아직 마음이 약하고 사특하여/ 게으른 손으로써 이 세상에 눈멀었을 때/ 그녀는 내 눈을 감게 하고 두 손을 모두게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말을 내게 가르쳤더라.
(베를렌/ 예지)
일어나라, 요 귀여운 게으름뱅이,/ 종달새 노래 벌써 하늘에 높고,/ 찔레꽃 위에 앉아 꾀꼴새도/ 지저대고 있지 않니 정다운 노래를
(피에르 드 롱사르/ 마리의 사랑)
게으름과 미치지 못함에 묶여서/ 늘/ 한없이 어려운 그날에/ 외로운 몸에 매어놓은/ 줄이 끊어지면서부터/ 꿈 가운데 묶어 놓은 시간들이/ 이 욕망을 기다려주지 않는구나.
(김성애/ 드센 욕망의 꿈)
사랑과 게으름을 노래하느니/ 그 밖에 가질 것은 없느니라.
(에즈라 파운드/ 부도덕)
밥 먹고 누우면 소가 된다는데/ 정말 소가 되는 것이나 아닐까
(채성병/ 하수구를 뚫던 날)
부자를 구슬려 먹는 데는/ 납작한 아첨이 최고란다/ 돈이란 게 아마 납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납작하게 구슬려 먹는 것이다. //신성한 황금 송아지 앞에라도 가게 되면/ 향로를 마음껏 흔들어 줘라/ 쓰레기 속에서도 절하고 똥 속에서도 절해라 그러나/ 찬양할 때는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극구 찬양해라// 금년에는 빵값이 비싸다/하지만 최고의 아첨은/ 무료란다 한 푼도 들지 않는/ 주인의 개라도 추켜세워 주고 배 터지게 먹어라.
(하이네/ 룸펜근성)
설 교 노 트
게으른 자의 포도원
잠24:30-34
서론
잠언은 지혜의 임금 솔로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루는 왕이 시찰을 하다가 추수할 때가 된 대지를 돌아보았는데 포도원 하나가 가시덤불이 퍼졌고 거친 풀이 지면을 덮었으며 돌담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포도원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포도원은 때로는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우리의 영적 마음의 밭으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의 포도원, 내 영적 포도원의 상태는 지금 어떠한 상태에 있습니까?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1. 가시덤불이 퍼지고 거친 풀로 덮이지 않았습니까?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는 다 잘 가꾸지만 눈에 보이 지 않는영적 세계는 무관심하여 외면하고 등한히 여기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황폐하게 버려진 상태의 심령이 되기 쉽습니다. 돌보지 않고 가꾸지 않아서 잡초만 우거져있는 '게으른 자의 포도원'처럼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육에 속한 정욕, 혈기, 시기, 탐욕, 인색, 나태 등의 가시덤불로 우리의 마음이 뒤덮여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정리된 마음에 거하시지 가시덤불과 거친 풀이 가득한 밭처럼 상실한 마음 그대로는 성령이 내주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심령에 내주하시지 않으면 성령의 열매는 더더욱 맺을 수 없습니다. 밭을 갈고 돌을 줍고 잡초를 제거하고 옥토에 씨를 뿌리듯 우리의 마음에 추악한 모든 것을 추방하고 마음과 영혼의 정원에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등이 자라고 꽃피고 결실하도록 자신을 가꾸고 다듬어 살아야겠습니다.
2. 돌담이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습니까?
들짐승이 못들어 오도록 경계도 해야 되고 도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허술하지 않게 견고히 되었어야 하겠는데 돌담은 무너져 쑥대밭이 되었는데도 무방비 상태로 그냥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 요해처에 '밀로'라고 하는 건축물들을 구축해 놓은 일이 있는데(삼하5:9, 왕상9:15) 대적은 항상 밀로의 취약점을 이용하여 침공하여 왔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울타리도 이성적인 사고방식, 황금 만능주의, 혈기, 교만, 고집 등 작은 취약점 때문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정치, 경제,문화, 군사 사업이 다 잘 되어도 공의와 사랑의 뚝이 무너지고 국민의 양심의 벽이 넘어지면 그곳으로 대적이 들어와 황폐하게 되고 맙니다. 신앙의 담을 튼튼히 하고 울타리를 재정비하여 쳐들어오는 유혹과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3. 게으름과 어리석음이 문제입니다.
추수 때는 다가오고 있는데 게으르게 잠만 자고 있으며, 겨울은 분턱에 왔는데 어리석게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탈입니다. 우리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은 씻을 수 없는 후회를 가져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왕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포도원을 살피실 때 황폐하여 있는 포도원을 보시면 얼마나 탄식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열심을 내어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처녀들과 같이 등에 기름을 준비하고 주님 맞을 준비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론
우리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하는 사이에 밭에는 가시덤불이 퍼졌고 거친 풀이 지면을덮고 담은 무너져 내려 여우들의 소굴이 되어버렸으며 가난은 강도처럼 쳐들어오고 곤핍이군사처럼 몰아닥쳐 왔습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영혼의 포도원을 잘 가꾸도록 하시려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마음의 포도원을 잘 가꾸어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하겠습니다.
게으른 자의 보응
잠6:10-11
서론
게으름은 인생의 삶을 좀먹는 벌레와도 같습니다. 순간의 편안함과 잠시 동안의 게으름은 그 순간은 편하고 좋지만 일생을 망치게 하고 마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쓸데없이 상상만 하고 있을 때, 멸망이 옆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받는 보응은 무엇입니까?
1. 가난하게 됩니다(10'4).
잠언 19장 15절에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잠만 자고 그로 말미암아 배를 곯게 되는 것입니다. 또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여 부귀가 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잠12:27). 또 봄에 밭을 갈지 아니한 자들은 추수 때 구걸을 하러 다녀도 외면을 당하는 수치를 맛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잠20:4).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봄에 씨를 뿌려 일하지도 않으면서 추수 때 다른 사람이 일한 것을 구걸하러 다니니 누가 그 사람을 좋은 얼굴로 음식을 주겠습니까?
게으른 자는 마음에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없고,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빈궁과 곤핍뿐입니다(잠6:11).
2. 남의 종노릇하게 됩니다.
잠언 12장 24절에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며, 그 손으로 일하기 싫어하므로 빈곤과 궁핍의 수모를 당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는 남을 부리지만, 게으른 자는 남의 부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게으르면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겠습니까(잠19:24)? 우리는 우리가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않고 그저 나태하게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부귀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땅을 치고 울게 될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남의 종노릇밖에 할 수 없으나 누가 게으른 자를 종으로 써 주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한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자가 되려면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남의 종노릇도 안하게 될 것이며 오히려 다른 게으른 자를 부리게 될 것입니다.
3.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게으른 자를 살펴보면 특징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잠자기를 좋아합니다. 잠자는 것을 좋아하니 당연히 일하는 것도 싫어합니다. 또 부질없는 핑계가 많습니다. 그들은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고 증오하게 됩니다.
결국은 게으름으로 역경을 겪게 되는데 "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울타리 같다(잠15:19)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쇠퇴한다고 하였고(전10:18) 모든 것을 빼앗기며(마25:26-30), 패가망신을 당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부지런하여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증오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인간이 게으르면 자기의 인생을 망치게 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다 패가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그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만물의 영장으로 세움을 받은 인간이 한낱 미물인 개미에게서 부지런함을 배운다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해야 하겠습니다.
고의적 태만
민9:13
서론
본문은 종교적인 율례에 대하여 고의로 게으르게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는데 그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그것도 고의적으로 지키지 않으려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종교적인 율례에 대한 고의적인 태만
본문에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제정되었습니다. 의식적인 부정이나 출타 이외에는 유월절을 꼭 지켜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고의적으로 종교적인 율례를 태만히 하는 사람이 불행하게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곳은 많이 있습니다. 예배는 종교적 의식의 본능적인 행동이며 필연적인 것입니다. 예배의 감사 요소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탁월하심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자리하고 있고, 예배의 기원적인 요소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의 인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공중 예배에 참석할 수 있음에도 그것을 습관적으로 태만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고의적인 태만은 죄입니다.
고의적으로 유월절을 지키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죄를 당할지며"라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인간이 임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인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종교적인 율례를 태만히 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1) 그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존경을 받으실 확실한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감탄을,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의 흠모하는 사랑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2)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경시합니다.
예배는 의무인 것과 동시에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의 율례를 제정하신 것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지극한 자비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은혜롭게 열납하시는 것은 엄청난 양보인 것입니다. 공중 예배를 태만히 하는 것은 그 의식을 경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사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3) 그는 그의 최고의 능력을 연마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태만히 합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표현과 만족을 추구하는 종교적 성향과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배를 태만히 하면 우리는 반드시 가장 극심하고 비참한 자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고의적으로 종교적인 율례를 태만히 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의 본성에 대한 죄이고, 하나님께 대한 죄입니다.
3. 고의적인 태만은 벌을 받을 것입니다.
본문에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백성 중에서 끊쳐진다"라는 표현은 사형이나 선택된 민족의 공동체와 특권으로부터의 축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종교적인 율례를 경시하여 태만히 하면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죄로 인한 직접적인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고의적인 태만에 의해서 그는 삶의 최고의 기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위축시키고 타락시킵니다. 또 지상에서의 가장 훌륭한 교제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대하여 나태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의적으로 태만히 행한 것은 자신의 형벌을 스스로 재촉한 것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영광을 입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이 함께 모여 드릴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위한 지당하고 필연적인 준비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종교적인 율례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태만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더욱 열심을 품고 하나님의 일에 앞장서고 그 율례를 지켜 행해야 하겠습니다.
부지런히 주를 섬기라
롬12:11-13
서론
이 세상에서 제일 미련한 사람은 게으르고 때를 모르고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를 모르고 살던 사람은 때가 이르면 슬피 울며 후회하고 이를 갊이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요, 추수할 때라고 하였습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고 있습니다(요4:36).
1. 부지런하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일꾼이 되고 하나님 앞에 먼저 인정받고 칭찬을 받은 자를 부지런한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구하는 일에 부지런하지 못하고 게으르게 있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성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열심으로 주를 섬겨도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 부지런하지 못하고 나태하여 제대로 자신의 일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부지런함으로 마음의 풍족함을 얻고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야 되겠습니다.
2. 게으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름은 일시적으로 평안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적인 것이 아닙니다. 게으름이 계속되는 동안에 다른 한편에는 또 다른 불행이 생기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면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게으른 자가 부유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꿈일 뿐입니다. 헛된 상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될 것입니다. 또 남의 부림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게으른 자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게으르게 살았기 때문에 자신의 소유는 하나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집에 가서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증오의 대상이 됩니다. 남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러 다니니 열심히 일한 사람이 게으른 자를 증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게으르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의 일생을 망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3. 열심으로 주를 섬겨야 합니다.
요한복음 9장 4절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되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밤이 오기 전에 열심을 내야하고, 사명 완수를 위하여, 좋은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갈4:18).
더욱 중요한 것은 여호와를 위하는 열심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게으르게 섬긴다면 주님께서 오실 그때에 "나는 너를 모른다"고 외면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일할 때입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열심을 내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현대를 사는 사람은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잠시 동안 나태하게 있으면 다른 사람은 저만큼 앞에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으로 주를 섬겨야 합니다.
낮이 지나면 일할 수 없는 밤이 온다고 하였으니 밤이 오기 전에 열심을 내어 일해야 하겠습니다.
등한히 여김
히2:1-4
서론
본문은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자들에 대한 위험의 극심한 증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의식적인 형벌로부터의 구원은 큰 구원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개입이었습니다. "등한히 여긴다"는 것은 관심을 방해하는 어떤 선입관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신앙 고백을 포기하고 다시 그들의 형식적인 옛 유대교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세 가지의 중대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큰 구원입니다.
인간의 구제와 인간을 돕기 위한 하나님의 개입과 하나님의 불변적인 사업은 그의 백성을 구속하는 일입니다. 그 일의 최고의 목표는 백성을 죄로부터 구속하는 것입니다.
이 큰 구원의 영역은 죄의 형벌과 권세이고, 그 한계는 모든 인간이며, 그 대리 행위는 개인적인 굴복과 자기 회생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본문을 기록한 저자의 마음에 즉각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것들을 통해서 큰 구원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구원을 성취하시는 대행자를 통해 또 그 구원에 대해서 보고하는 대행자들을 통해, 그리고 그 대행자들을 지지해 주는 기사를 통해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큰 책임입니다.
3절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간구는 "특권은 책임을 수반한다. "라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법칙은 주님의 가르침 가운데 확실하게 나타나 있었던 진리 중의 한 가지입니다.
또 이 말은 잘 알려진 위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멎은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릴 심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언약에 따르면 우리 모두가 신실하지 못하므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전과 동일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특권을 얻게 되는데 이 특권에는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은 자들이 다시 옛날에 우상 숭배를 하여서 다시 옛 것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지식에 비추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3. 큰 정리입니다.
"등한히 여기면"이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부하지 아니하고 단지 등한히 여겼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하여 한 말입니다.
일반적인 회중들에게 있어서 위험은 거부가 아니라 '등한'입니다. 이 등한에는 무관심으로 인한 등한이 있고, 선입관으로 인한 등한이 있으며, 흔들리는 확신으로 인한 등한이 있습니다.
'거부'는 여기저기 있는 한 사람의 죄입니다. 등한은 많은 사람들의 죄 입니다. 등한은 거부보다 훨씬 더 절망적입니다. 거부하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할 수도 있지만,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등한히 즉 나태하게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상실해 버리는 불행이 있게 됩니다.
결론
우리는 복음을 받은 자들로서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특권을 소홀히 하여 등한히 여긴다면 우리는 주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받은 바 특권을 등한히 여기지 말고 귀중하게 여기고 열심으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낙 심
성 경 활 용
1. 낙심을 가져오는 요인
(1) 고초와 재난
(애3:19-20)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2) 흉한 소문
(렘49:23) 흥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라 바닷가에 슬픔이 있고 평안이 없도다
(3) 여호와의 목소리로 인하여
(사30:31) 여호와의 목소리에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4) 여호와께서 낙담케 하시므로
(겔21:15)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5) 믿음 없는 형제들의 말로 인하여
(신1:28) 우리가 어디로 갈꼬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6) 일이 어려워서
(느4:10)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2. 낙심의 결과
(1) 무릎이 서로 부딪힘
(42:10) 거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낮이 빛을 잃도다
(2) 몸이 돌과 같이 됨
(삼상25:37) 아침에 나발이 포도주가 깬 후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 일을 고하매 그가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3. 낙심하지 않을 때3.
(1) 기도 할 때
(눅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 주의 꾸지람을 들을 때
(히12:5)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고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3) 답답한 일을 당할 때
(고후4:8)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행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4) 선을 행하다가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5) 환난 날에
(잠24: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엡3:13)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6) 직분을 수행하다가
(고후4:1)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7) 피곤할 때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4. 낙심에서 벗어나는 방법
(1) 하나님을 바람
(시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2) 주를 기억함
(시42:6)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3) 예수님을 생각함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5. 낙심자에 대한 위로
(1) 일어나 머리를 들라.
(눅21: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2)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사7:4)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3)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시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치 아니하시리로다
(4)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
(사41:13)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마14:27)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행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관련원어풀이
1. vWB 보-쉬
(1) 수치를 당하게 되다, (희망과 기대가)무
너지다, 잃게 되다.
(욥6:20)
(2) 혼란되다, 괴로움을 당하다.
(왕하2:17)
(3) 부끄러운 일을 행하다, 수치스럽게 행하다.
(잠12:4)
2. b;le 레-브
마음, 정신, 생각, 감정, 슬픔, 멸시.
(신1:28, 삼상17:32, 25:37)
3. ha;K; 카-아-
원래의 의미는 "비난하다. 책망하다, 두려워지다, 연약해지다"이다
(1) 슬프게 하다, 괴롭히다.
(겔13:22)
(2) 비난받다. 추방당하다.
(욥30:8)
(3) 낙심되다. 고통받다, 풀이 죽다.
(시109:16, 단11:30)
4. ss'm; 마-사스
(1) 녹아지다, 흐르게 하다.
(출16:21)
(21 (두려움이나 슬픔으로) 쇠약해지 다.
(시22:15)
(3) 두렵게 하다.
(신20:8)
5. gWm 무-그
(1) 흘러내리다, (두려움과 공포로)녹다.
(겔21:15)
(2) 녹여 없애다,사라져 가다.
(출15:15, 렘49:23)
6. hp;r; 라-파-
던지다, 풀리다, 이완되다, 내려앉다
(잠24:10)
7. &K'r' 라-카크
(1) 부드럽다, 여리다, 섬세하다, 세밀하다.
(신28:56)
(2) 연약하다, 약해지다, 회개하다.
(왕하22:19, 시55:22)
(3) 마음을 깨뜨리다.
(욥23:16)
8. aWn 노-
(1) 거절하다, 기울다.
(시141:5)
(2) 외면하다, 비키다, (설득하여)단념시키다.
(민32:7, 9)
9. j'Wv 수-아흐
(1) 잠기다, 가라앉다.
(잠2:18)
(2) 숙여지다, 내려앉다.
(애3:20)
10. ajqumevw 아두메오-
실망하다, 낙담하다, 용기가 없어지다, 상심하다.
(골3:21)
11. ejkkakevw 엥카케오-
(1) 용기를 잃다, 지치다, 약해지다.
(눅18:1, 살후3:13)
(2) 실망하다, 낙심하다.
(고후4:1, 엘3:13)
12. ejkluvw 엑클루오-
(1) 풀어지다, 연약해지다, 맥이 풀리다.
(마9:36, 갈6:9)
(2) 낙심하다, 실망하다.
(히12:3, 5)
13. ejxaporevomai 엑사포류오마이
곤경에 빠지거나 절망하다, 당황케 하다.
(고후1:8, 4:8)
14. kavmnw 캄노-
피로해지다, 지치다, 진노하다, (테-푸케-)와 함께.
(히12:3)
설교예화자료
어린아이들의 죽음
유엔아동기금(UNICEF)은 현재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하여 하루 만 명 가량의 어린아이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80년에는 예방 접종을 받지 못해 전염병으로 하루 만 사천 명의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유엔아동기금은 20세기 말까지 하루 어린이 사망자수를 천 명으로 축소시킬 목표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는 전 세계의 모든 어린이에게 예방 접종을 실시하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 유엔아동기금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세네갈은 어린이 예방 접종을 위한 야심적인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세네갈 당국은 1988년 4월 7일(세계 보건의 날)까지 자국 내의 모든 어린아이들에 대한 예방접종을 실시하기 위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유엔아동기금은 매 주일 5세 이하의 유아들 중 2십 8만 명이 영양 실조와 질병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는가
종교 개혁 당시 많은 적들 가운데서 홀로 고전분투하던 마틴 루터가 하루는 극히 낙심한 모습으로 기운을 잃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기운을 잃고 낙심해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본 그의 아내 캐더린은 얼른 안방에 들어가 검은 상복을 입고 나와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뜻밖에 상복을 입고 나오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루터는 깜짝 놀라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이게 웬일이오? 상복을 입고 있다니, 도대체 누가 죽었단 말이오?"
머리를 수그린 채 이 질문을 받은 캐더린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편에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셨단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루터는 더욱 깜짝 놀란 기색으로, 흥분한 어조로 반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떠나시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소! 하나님이 어떻게 죽으실 수 있단 말이오? "
그때 캐더린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남편에게 되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당신이 그렇게까지 용기를 잃고 낙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
루터는 아내의 이 간단하고도 지혜로운 교훈을 통해 낙심한 마음에 큰 감화를 받아 종교개혁의 대업을 잘 완수했다고 합니다.
새옹득마
새옹득마란 말이 어떤 점에서는 운명론자의 탄식처럼 들리기도 하겠으나, 실제로 우리는우리의 불행과 실패를 불행과 실패로만 받아들여 좌절에 빠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극복함으로써, 혹은 그것 너머에 있는 더 큰 행복과 성공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먹구름 배후의 푸른 하늘과 폭풍우 배후의 밝은 태양을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시인 밀턴은 40세에 불행히도 소경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낙심 가운데서도 "주께서 내 눈을 멀게 하심으로써 오직 주님만을 볼 수 있는 속눈을 열어 주셨다. "고 말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만일 밀턴이 눈이 멀어 장님이 된 사실에 대해 비관하고 절망하여 운명을 저주하며 살았다면 그의 남은 일생은 얼마나 더 불행하게 되었겠습니까?
염세주의자
이 세상 안에 라이프니쯔와 같은 낙천주의자(optimist)와 쇼펜하우어와 같은 염세주의자(pessimist)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라이프니쯔는 "이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서 가장 좋은 최선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다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생의 기본 요소가 고통이며, 쾌락이란 고통이 끝났다는 소극적 상태에 불과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 세상에 선이 있다면 그중의 최대의 선은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악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엘리샤 호프엔(Elisha Hoffman)은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거기에서 목사로서 그의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는 어느 날, 아주 큰 시련을 당한 여자를 심방하였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절망하여 "오, 나는 어떡하면 좋지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라고 절규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그녀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말하기를 "아, 알겠어요. 나는 모든 것을 주님께 고백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엘리샤 목사님의 뇌리에 그녀의 말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마음 가득히 평온을 가져다 주는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이란 찬송을 짓게된 것입니다.
조약돌을 던지던 어느 날
찰스 킨슬리(Charles Kinsley)씨에 따르면, 위대한 화가인 터너(Turner)는 채색이나 스케치를 하는 일 없이 오로지 명상만을 하는 것으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었다고 합니다. 그것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터너는 호수에 조약들을 던지며 온종일을 바위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저녁 동료 화가들이 찾아와서는 그에게 자신들의 스케치를 보여 주며 아무 것도 해놓지 않은 그를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 "난 적어도 이런 일을 했지.조 약돌이 던져졌을 때의 호수면의 방향이 어떠한가를 배웠단 말일세." 후에 그의 동료 중 어느 누구도 터너가 그린 것만큼 파문을 그릴 수는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의 기회가 그들에게 찾아와도 결국은 그것을 놓친 다음에야 당황과 슬픔을 맛보게 되는데, 그것은 마음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풀턴의 실수
로버트 풀턴이 그의 증기선을 처음으로 작동시켰을 때 그는 군중들로부터 비난의 소리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증기선을 '풀턴의 실수'라고 단정지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증기선이 대양을 횡단함으로써 실수를 범한 쪽은 군중들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스스로 처량하다고 느꼈을 때
한 판매원이 경험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은혜가 될 것입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일을 적어 놓았습니다. "일년이 조금 더 된, 어느 비가 몹시 오는 날 밤, 나는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몸서리나는 냉랭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으며, 거센 바람 때문에 우산은 아무 쓸모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차가 늦게 도착하였기에 난 한 구석에 서서 45분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고, 빗줄기는 온몸을 적셨으며, 그로 인해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난방 장치가 안되어 있는 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습니다.
정작 집에 도착했지만 나를 위해 준비된 마른 옷도, 따뜻한 저녁 식사도 없었으며, 난로불까지 꺼져서 집안은 몹시 추웠습니다. 그분은 내가 즐거운 기분이 되도록 축복해주셨습니다. 우울증이 나를 자주 괴롭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놈들은 그날 밤 그 곳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난 생각했습니다.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어떤 저녁 식사라도 상관하지 않겠으며, 바로 잠자리에 들어가 소리치리라.
난 젖은 옷들을 벗 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까 내가 생각했던 일을 실행하자마자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내 마음 속에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처럼 쓸쓸하고, 오늘 밤처럼 기나긴 밤이 결코 없을 것이야. 그러나 나를 믿는 영혼은 언제나 어디서든지 노래를 찾게 된단다. '
살았지만 법적으로는 죽었다
살인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한 죄수가 어느날 그의 방에 앉아 있을 때 의사가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죄수는 그에게 재판 결과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얼마의 종이와 펜, 그리고 잉크를 넣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자신이 처형되기 전에 의사 전달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자네의 의사도 아무 소용이 없네. 자네의 의지를 나타내기에는 너무 늦었네. 판사가 자네에게 사형을 선고한 때부터 자네는 법의 눈으로는 죽은 사람이 된 것일세. 선고가 실제로 집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닐세. 이제 자네가 만드는 어떠한 서류도 이 땅에 있는 법원에서는 효력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네."
그제서야 자신의 처한 상태를 깨달은 가엾은 이 사람은 자신의 팔에 얼굴을 묻었습니다.그는 살아 있을지라도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신에게 내린 은총을 생각하시오!
J.C. 맥콜레이(J. C. Macaulay)는 자신이 북캐롤라이나 주 애쉬빌(Asheville)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빌트모어 사유지를 방문했던 때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선교 분야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사역을 준비하고 있는 일단의 대학생들과 같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눈부신 보석처럼 화려하고
찬란한 주위의 경치에 반해 있었습니다.
하기 회의 장소로 돌아온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토지며 황금 등을 가진 사람들을 바라볼 때 기억하여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를 약속하셨네. 당신에게 내릴 은총을 생각하여라. 하늘나라에서의 당신의 상급이나 그 곳에 있는 어느 것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네."
맥콜레이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온갖 보화로 가득찬 이 세상의 성의 주인보다, 자신들의 삶을 하나님께 바친 이 젊은이들이 얼마나 더 부요한 사람들인가!
핫도그! 핫도그! 핫도그!
내가 항상 좋아하는 일화는 전에 내가 시골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그 일은 어느 주일 아침에 메릴랜드 주의 엘크톤에 있는 성서 침례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침 예배가 막 시작하려는 순간, 그 전에는 한 번도 우리 교회에 보이지 않았던 한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 큰 교회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두려움과 놀라움이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교회 안을 죽 둘러보면서 천천히 복도를 걸어 내려와서 앞에서부터 두번째 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내 설교를 아주 열심히 들었습니다.
초대의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말했습니다.
"자, 여기 계신 분들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채, 구원받기를 원하고 있으며, 또 우리가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바라고 계신지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그가 손을 번쩍 들었고, 그리고는 내가 그의 손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때까지 계속 앞 뒤로 흔들었습니다. 내가 주의 인도하심을 바라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하자, 그는 말 그대로 벌떡 일어서서 제단 앞으로 뛰어나왔습니다.
그는 몸을 똑바로 세우고 뻣뻣하게 섰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예수께서 죄지은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걸 믿습니까? " "예, 나리, 바로 그것을 믿습니다. " 그는 자신에 대한 승리의 빛을 얼굴에 띤 채 기쁘게 말했습니다.
그가 세례당으로 들어오자 나는 그를 물 속에다 넣었고, 이제 새 생명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를 다시 꺼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가 끝난 뒤, 물 밖으로 나오면서 그는 "핫도그, 핫도그, 핫도그"라고 외치며 손뼉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신도들이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나는 즉시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이른 다음 이렇게 이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가련한 사람은 예배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고, "아멘, 주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라는 말들을 알지 못했으며, 그가 알고 있었던 단 하나의 말인 '핫도그'라는 말로써 주님을 찬양한 것이었다고.
그는 48년을 기다렸다
매지 쿰버는 89세 되신 늙은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렌 페칭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렌이 첫번째로 구혼했다가 거절당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지 48년이 경과된 후의 일이었습니다. "매지는 내가 사랑한 단 한 사람의 소녀였기에 나는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돌아가서 그녀를 다시 찾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신랑이 말했습니다 과연 그는 뉴사우스 웨일즈에 있는 공과 대학 교수직에서 퇴직한 지난 여름, 17살의 어린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랑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마침내 그가 지방 방송국의 도움으로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미망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주일 안에 약혼했습니다.
절망적인 카터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여러 형태의 정신질환을 관찰하기 위해 정신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마음을 어지럽히게 하였습니다. '절망적인 카터'라고 불리우는 한 사나이를 기억하는데,그의 병세는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병의 희생자로 뇌가 손상되는 마지막 증세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신을 잃기 전에 의사에게서 치료법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구하였으나 정신 질환을 거쳐 죽게 된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점차 뇌가 손상되어 더욱 절망적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가 죽기 약 2주 전에 창살로 된 작은 방에서 정신적인 고통으로 방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은 멍청했고 얼굴은 창백하게 일그러진 채로 계속해서 절망적이고 처참한 두 마디의 말을 했습니다.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다!"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낙심하지 말라
일본에서 어떤 만형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나를 보자 무척 반가워하면서 "목사님 덕분에 제가 살아났습니다. " 하고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보는 사람이라 어리둥절하고 있으니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그 분은 유명한 외과 의사로서 어느 날 수술을 하다가 실수를 하여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자기를 실패자로 낙인찍고 그 이후부터는 환자도 돌보지 않고, 자신이 입원실에 누워 깊은 절망에 빠져서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그가 자책과 패배감으로 자신을 학대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병문안 왔던 조카가 책 한 권을 놓고 가면서 꼭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책이 바로 나의 저서였답니다. 그는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실패를 한다. 그런데 어떤 일에 실패를 했다면 그 일에 실패한 것이지 인생 자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다. "
이 구절을 읽자 그는 '내가 그 수술에 실패한 것이지 의사로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용기를 얻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망 중에 기도하라
이사들이 모두 독실한 크리스찬인 회사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의 이사들은 늘 회사의 발전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사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어찌된 일인지 계속 어려워지기만 하다가 급기야는 도산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사표를 내고는 회사를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려운 중에서도 이사들은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점점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회사의 사장이 아주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그 사장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 주셨더라편 그 사장이 회사의 재산을 가로챘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발전을 하지 못하고 계속 기울어지자 사장은 회사를 나갔고, 사장이 나가서 회사가
재정비되자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해 주셨던 것입니다.
나중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사들은 "하나님, 그동안 축복해 주시지 않았음을 감사드립니다. 만일 그때 축복을 받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안중근 의사
전에 안중근 의사가 두만강을 건너와 당시 일본 군경과 악전고투를 하다가 겨우 동지 몇사람과 같이 다시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땅으로 갔습니다. 당시 해상위에 있던 우리 동포들이 크게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번은 그가 그 곳을 떠나 흑룡강 상류를 여행할 때에 어떤 곳에서 20여 명의 한국인에게 붙잡혀 도리어 매를 맞고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그들은 소위 당시 일진회의 잔당으로 친일분자들이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할 때는 이런 경우를 만나는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낙심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면 전공(前功)이 가석(可惜) 합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낙심하지 아니해야 합니다. 꾸준히 계속하여야 합니다
어록·시·묘사
'회의의 성'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성이 있는데, 그 소유자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거인이었다.
(J. 번연/ 천로역정)
기쁨이 천국의 좋은 날씨인 것처럼, 절망은 지옥의 안개이다.
(J. 단)
인생이 괴롭고, 희망이 희미해지면 세상은 '가라'하고, 무덤에선 '오라' 손짓한다.
(A. 기터먼/ 빈랑나무의 열매)
절망은 불행을 더욱 악화시킬 뿐더러 허약을 더욱 조장한다.
(보브나르그/ 회상록)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키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절대절망으로 피할 수 없는 그런 불행은 극히 드물다. 아직 벗어날 구멍이었건만 사람들은 스스로 절망해 버린다. 인생은 희망에 속느니보다 오히려 절망에 속고 있다.
(훼날크)
희망 없이 빵을 먹는 것은 천천히 굶어서 죽는 것이다.
(P.S. 벅/ 나의 사랑하는 딸들에게)
절망과 자신감 모두 공포를 몰아낸다.
(W. 알렉산더/ 최후 심판일, 제9시)
절망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였다.
(G. 그린/ 권력과 영광)
낙담은 절망의 어머니이다.
(J. 키츠/ 희망에 대하여)
우리들은 울부짖으면서 태어나고,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고, 실망하면서 죽어간다.
(T. 풀러/ 격언집)
절망이 순수한 것은 단 한가지 경우밖에 없다. 그것은 사형선고를 받은 경우이다.
(A. 카뮈/ 수첩)
절망이란 싸워야 할 이유를 모르면서 정말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A. 카뮈/ 수첩)
절망은 수도사를 만든다.
(R. 버튼/ 우울의 해부)
평화와 휴식이 발붙일 수 없는 곳에는 만인을 찾아주는 희망도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밀턴/ 실락원)
절망은 끝내 견디어 내면 완전히 원이 이루어져서 그것은 다시금 뜨겁고 보람있는 희망으로 변한다.
(칼라일)
사람이 가지는 소망이나 절망은 언제나 그 사람을 앞질러 간다. 그러므로 누구도 거기에도달할 수는 없다. 도달점이라 생각한 곳에 이르면 그것들은 벌써 그곳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한무숙/ 나를 앞질러 간 소망과 절망)
우리들의 병은 철저하게 고민하지 않고, 철저하게 절망하지 않는 데 있다 사람은 어렴풋한 희망이나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언제나 자신과 그 주위의 어둠을 기만하려 든다. 그러나 인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그 미지근한 희망도 아니며 가면을 쓴 기대도 아니다.
(이어령/ 증언하는 캘린더)
절망은 겁쟁이에게 용기를 준다.
(T. 풀러/ 격언집)
절망이란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밀려서 얹힌 체증과 같은 것이다.
(신일철/ 출구를 잃은 파리)
실망없이 희망하지 말고, 희망없이 절망하지 말라.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간집)
나와 세상에 절망함으로써 우리는 한갓된 일상성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것 없이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의 발전을 추구할 수 없다.
(지명관/ 절망에서 자아를 발견)
그러니 서로 헤어져 있습시다/ 당신은 거기에 나는 여기에/그저 문만을 열어 놓은 채/여러 바다를 사이에 두고 기도만 드릴 뿐/ 거기에 절망이라고 하는/그 하얀 생의 양식만으로.
(E. 디킨슨/ 당신과 함께 살아서는 안됩니다)
상심을 덧들여 서럽게 울며/ 길게 한숨을 쉬는구나!/ 세상은 혼탁하여 나를 아니 알아주며/사람들 마음은 일깨울 수도 없구나.
(屈原/ 회사 · 5)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대는 울겠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 말을 다시 한 번 들려다오/‥‥//내 마음은 슬프고 희망은 사라졌다/ 가슴에 흐르는 피는 싸느랗게 바뀌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버린다면 너만이/ 내가 잠든 곳에 서서 한숨을 쉬어주리라// ‥‥하지만 아름다움조차도 나를 진정케 못하나니/ 한숨짓기 위해서만 창조된 가련한 사나이이다.
(G. 바이런/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 아홉 가지 기도)
그것은 쓰디쓰고 무익한 절망감이었다
(D.H. 로렌스/ 날개 돋친 뱀)
우리가 한 쪽 팔을 잃고 고통에 소리칠 때/우리의 마음 절망으로 꺾이지 않게 하소서.
(도종환/ 저녁 기도)
내 무슨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기에/ 스산한 밤 바람에 입술을 적시고/ 어느 곳 지향없는 지각을 향하여 한 옛날/ 정열의 창랑한 자취를 그리는 거냐// ‥‥아-내 하나의 신뢰할 현실도 없이/ 무수한 연령을 낙엽같이 띄워 보내며/무성한 추회(追侮)에 그림자마저 갈가리 찢겨
(김광균/ 空地)
절망의 그림자를 지을 때까지/새벽별의 눈물을 위해 기도를 하고
(김수복/ 기도하는 나무)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은 돌무덤에 갇힌/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깨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 게 하소서.
(이해인/ 기도)
눈물 한 방을 방울진 것/ 영원하도록/ 신뢰하는 신에 의해서, 아니면 절망의 구렁에서.
(마리아 필라 알버디/ 인간)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겨울 밤은 길어서 눈만 내리어/ 돌아갈 길 없는 오늘 눈 오는 밤/ 하루 일을 끝낸 작업장 부근/ 촛불도 꺼져가는 어둔 방에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눈 맞으며 기다리던 기다림 만나/ 눈 맞으며 그리웁던 그리움 만나/ 얼씨구나 부등켜 안고 웃어 보아라/ 절씨구나 뺨 부비며 을어 보아라//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봄눈 내리는 보리밭길 걷는 자들은/ 누구든지 달려와서 가슴 가득히/ 꿈을 받아라/ 꿈을 받아라.
(정호승/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가 곧 이해했던 것은/다만 수렁 속에 같이 있을 때뿐이었다.
(하이네/ 그들은 나를)
자조(自嘲)와 절망의 구덩이에 내 몸이 몹시 흔들릴 때/ 나는 구토를 했다. / 삼면기사를,/ 객혈과 함께 비린내나는 병든 기억을‥‥‥
(오장환/ 海獸)
사람마다 가슴은 무덤이 되어/ 희망에는 혁명이 /절망에는 눈물이 필요한 것인가.
(정호승/ 눈발)
산마루 높은 바위벽/ 내가 올려놓아야 할/ 크고 소중한 절망이려니
(정복선/ 山居)
나의 하나님은 나의 무한한 표현이요/ 나는 결코 낙망치 않으며 기쁨의 말들을 사용한다.
(루우린 토우어/ 나의 하나님)
주여 당신은 끝내/ 향기로운 해일로 오소서/ 우리들도 꿋꿋한, 물줄기로 합류해/ 당신과 함께 절망의 계곡 침몰시키리다.
(박선욱/ 주기도문)
설 교 노 트
바울의 낙심과 재기
고후1:1-11
서론
본문에 나타나 있는 사상과 교훈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씀드리면 백성들의 환난과 하나님의 위로에 대한 기록입니다. 여기 바울 사도는 자기가 당한 환난을 고백하면서 성도들에게 위로를 하였습니다. 환난에 대한 원인을 세 가지로 말하면 첫째는 사탄의 역사로 보는 경우도 있고, 둘째는 인생의 범죄로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영광과 성도의 유익을 위한 환난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쨌든 그러한 환난이 마침내 우리들을 절망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낙심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환난과 절망의 경지에서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받고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요, 바른 해답인 것입니다.
1. 절망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기의 절망의 원인과 상태를 본문8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 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바울 사도는 자기가 당한 환난에 대하여 먼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모두 알기를 원했고, 다음은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환난이라고 했고 셋째는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하는 절망적인 환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환난의 내용과 원인을 주경 신학자들은 세 가지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1) 외부적인 핍박과 박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복음을 전하는 바울 사도를 죽이려는 무리들이 일어나 심지어는 바울을 죽이지 못하면 밥도 먹지 아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2) 바울의 육체적인 질환과 질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에 열중한 나머지 몸과 건강을 도외시하다가 마침내 심한 질병으로 건강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3) 바울의 심리적인 약화와 약점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사람인 고로, 외부적인 환난과 핍박도 극심하고, 게다가 육체적인 질병으로 몸의 건강을 상실하고 나니 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약화되어 마침내 절망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나의 성공을 방해하여 실패하게 하고, 나의 평안을 시기하여 고난을 당하게 하고 나의 행복과 영광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시험과 환난이 마침내 우리들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재기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기가 당한 환난을 바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체험하여 재기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장 9절에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을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가 당한 환난의 원인을 바로 깨달아야 하고 그 다음에 머리를 쳐들고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절망에서 재기할 수 있었습니까?
자신을 바로 인식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하는 환난이므로 그 환난은 자신을 바로 발견하게 하는 방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회개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을 바로 찾아 신뢰케 하는 환난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인생이란 절망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덕이라고 유익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는 환난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와 같이 환난과 절망에서도 재기할 수 있는 비결은 먼저 자신을 발견해야 하고, 다음 하나님을 찾아 신뢰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환난은 인생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하는 방편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환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낙심하지 말라
시43:5
서론
인간은 역시 인간입니다. 아무리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환경이 어지럽고 복잡하면 인생은 나약하기 때문에 종종 낙심하고 비관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환경이 하나님의 수중에 지배되고 있음을 생각할 때에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낙심할 까닭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라도 낙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1. 악자의 일시적 성공으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의로운 자가 복되게 사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불의한 자나 악한 자들이 일시적으로 성공을 하여 잘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 처하게 되면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던 성도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일에 의심을 품고 낙심하기 쉬운 사람들이 생깁니다. 과연 하나님이 살아서 역사하신다면 악한 자들이 성공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며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그런 일에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레미야서 1장 1-3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범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예비하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2. 환경과 때가 악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내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라고 하는 원리와 같이 우리들의 주위 환경이 복잡하고 어려운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굳게 믿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든든한 신앙에 서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 의하여 이방인들에게 팔렸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겸손히 받아들여 자신이 처한 환경을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승리하는 생활을 하였고, 그의 형제들이 오히려 요셉에게 와서 절하며 식량을 사가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환경과 때가 험악하여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견디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속히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일이라면 결국에는 다 성취되고 말 것입니다.반드시 결실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에 응답이 없으면 인간들의 조급한 생각은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업에만 힘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축복하여 주신다는 원리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위한 사업에는 주님이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즉각 응답하실 때도 있고 얼마 동안 기다리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참지 못하고 낙심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인내하지 못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결론
낙심은 가중적인 실패입니다. 우리는 악한자의 성공이나, 환경과 때의 험악함이나, 응답이 속히 없다고 해서 낙심하면 안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조종하시고 때에 따라 응답하시니 우리는 그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살면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느4:10
서론
70년간의 포로 생활 끝에 귀환하여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대 적자들의 방해는 이미 각오하고 나왔으나 유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담부하는 자의 힘이 쇠하였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낙심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곧 사기의 저하인 것입니다
먼저 마음이 약하여 져서 낙심하면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귀국하여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은 선한 일들 가운데 선한 일들입니다. 처음부터 대적자들의 방해는 각오하고 나섰던 일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생긴 일이나 돌발적으로 야기된 일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예기하였던 사건인데 지금 산발랏이나 도비야가 날뛴다고 하여 걱정할 것이 무엇이며,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연합하여 대적한다고 해서 겁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열매를 주시는데 오래 참고 견디는 덕을 배양한 후에, 참고 견디는 덕을 배양한 후에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을 행하는 자는 난관을 겪으면서라도 참아야 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려 하는데, 아니 행하고 있는데 그것을 시비하며 방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받을 화를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들은 주위의 비방이나 시비를 전혀 개의치 말고 그저 묵묵히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처분만 바라야 할 것입니다.
2. 낙심하는 것은 실패의 촉진입니다.
대적자들이 성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예견한 상태로 그것은 그들의 방해 작전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앞질러서 "우리는 성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발언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수들과 대적해서 싸우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식들의 힘이나 재간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로 의지하고 믿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므로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결국 낙심한다는 사실은 스스로 실패를 촉진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원수들이 가장 좋아하고 뒤에서 박수치는 것은 우리가 낙심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 낙심도 우리 안에서 스스로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는 자가 생긴다면 그것은더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열의 구열이요, 내분의 위험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밖에서부터 오는 방해는 사실 낙심보다는 더 협조하여 힘을 뭉치게 하여서 열심히 일하게 하지만, 안에서의 분열은 하던 일을 망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을 내걸고 바른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축복하시며 능력을 더하여 주십니다. 지혜도 주시고 기회도 만들어 주십니다. 모든 일은 실지로 하나님께서 다 하시는 것이지만 사람을 시켜서 감당하게 하십니다.
결론
안에서 낙심하는 자가 생기면 지도자들은 힘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강력한 지도자들은 오히려 배나 더 힘을 내게 됩니다. 이것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욱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하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 강력한 힘을 주셔서 그 일을 더 능력있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낙심하지 말라
고후4:16, 18
서론
우리 인간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낙심을 잘 합니다. 낙심은 개인의 실패 감으로도 오고여러 사람들의 불신에서도 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정탐꾼 12명을 보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나쁘다고 평하고, 그곳 거민들은 장대하여 자신들은 그저 메뚜기 정도라고 하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심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낙심하면 따라서 다른 사람들도 다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데서, 즉 불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낙심해서는 안되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겉은 낡아지나 속은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이 육체인 겉사람은 세상을 사랑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겉사람이 공격을 받으므로 약해졌습니다. 그때에 속사람은 힘을 얻어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세상이 주는 유익이나, 명예, 즐거움 등이 끊어질수록 더욱 속사람의 생활, 곧 신앙생활은 힘 있게 됩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그 나라의 의만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겉사람이 강하게 되면 자기 뜻대로 살려고 하며 자기 뜻만을 이루려고 합니다.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패한 인간에게는 환난이 양약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늘 환난을 받았기 때문에 그 겉사람이 무명한 자 같았고, 죽은 자 같았고, 징계를 받는 자 같았고, 근심하는 자 같았고, 가난한 자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환난으로 속사람이 더욱 강성하여 어떠한 어려움이나 환난에 처해 있을 때도 찬송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환난은 잠깐이요 영원히 축복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시편에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평생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사는 것에 비하면 우리가 받는 환난은 잠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노하시는 것은 바르게 살도록 교정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도 성도에게는 은총이기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슬픔과 기쁨이 번갈아 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연약성 때문에 평안만 계속되면 그것을 복스럽게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슬픔을 당해야 평안과 기쁨의 참 맛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안의 축복을 보존할 수 있는 겸손과 감사도 가지게 됩니다. 환난은 이 세상에서 성도의 영혼을 건전하게 보존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을 당하여도 낙심해서는 안되며 도리어 감사해야 합니다. 그 환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는 것이며 잠간의 환난이 영원한 축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결론
환난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내적으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환난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몸의 행실을 죽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며 하늘의 것으로 만족해야.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기쁨도 슬픔도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모두 다 유익된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라
빌3:10-16
서론
전진의 대열에서 떨어질 때 누구나 마음속에 어두운 실망을 느끼고 인생의 패배자가 된 듯한 좌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회에서 버림을 받는 듯한 낙심 때문에 자기의 불우한 처지를 저주한 나머지 자포 자기하여 불행과 타락의 어두운 골짜기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은 긴 마라톤입니다. 단숨에 달리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꾸준히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경주인 것입니다. 그것이 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낙심할 일이 생기면 다시 시작하는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다시 시작하여야 합니까?
1.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3-14절에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경주를 하다가 출발이 잘못되면 '플레이 어개인(play again)'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은 피와 눈물과 땀의 산물입니다. 꾸준한 노력없이 큰 일이 이루어진 일이 없고, 보람된 일이 성취된 일이 없습니다.
지난날의 살아온 때를 반성하면서 다시 한 번 인생의 삶을 시작하는 자가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힘으로 민족을 구하려 다가 실패하여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힘써 마침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성실과 노력을 인생의 신조로 삼고 꾸준히 달리는 자는 반드시 성공과 승리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무엇을 가지고 낙심하고 있습니까?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성취시켜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나간다면 반드시 낙심하던 마음이 희망찬 믿음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2. 용기를 가지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인생에게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든 위대한 일은 용기의 열매입니다. 용기란 무엇입니까? 고난을 당해도 늠름한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실패할 때 마음 가짐을 잘해야 합니다.
성공할 때 성공하였다고 자랑하거나 교만하거나 방심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실패하였다고 낙심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도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용기라는 것은 고난 당할 때 참고 견디는 힘입니다. 고난을 이기고 살아나가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계속해서 넘어지고 실패하더라도 한번 더 일어나자고 하며 전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슬프다고 하여도 마음이 죽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습니다. 마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다 활기가 없고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서운 환난을 당할지라도 결코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용기를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믿는 자들은 뒤엣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과거의 실패에 낙심하지 말고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다시 시작하는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주어지는 미래의 일들을 생각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꾸준히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낙오자의 활로
요5:1-9
서론
예루살렘 양문곁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다섯 행각 속은 몸이 건강하고 돈이 많고 권력있는 호화로운 인생들의 수양처가 아니었고 이와는 정반대로 몸이 병들고 돈이 없어 가난하고 권력 없이 세상에서 멸시받는 불행한 인생들의 집합소라고 하였습니다. 이중에는 38년 동안이나 된 환자 하나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신 예수님은 이 호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여기 인생의 대열에서 낙오된 불행한 인생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불행한 인생을, 더구나 38년 동안이나 병들어 신음하신 환자를 그저 보고만 지나갈 수가 없어서 그 숲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하시니 환자의 대답이 "주의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38년 동안 신음하던 환자는 그 마음이 낙심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살아날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1. 낙오된 원인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낙오자란 '시대 진보에서 떨어진 자'라고 설명되어집니다.
여기 38년 된 병자가 낙오된 원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에게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장기적인 난치병에 걸려 38년 동안이나 신음하다가 보니 낙오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는 자기 자족도, 친구도 모두 그를 버렸기 때문에이 세상에는 의지할 곳 없는 불행한 낙오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 현실 사회에 있었습니다. 이 베데스다 못은 '자비의 집' 또는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 38년 된 환자도 그 자비와 은혜를 받으려고 찾아왔으나 아무도 그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었고, 물이 동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갔기 때문에 그는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낙심되어 견딜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사회의 현실은 너무나 냉냉하며 무정하였고 무질서했으며, 혼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극단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전락된 사회 현실이 이 38년 된 병자로 하여금 낙오자가 되게 한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냉대받는 자는 절망하게 되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38년이나 된 환자가 다시 살 수 있었던 길은, 좋은 약이나, 명의나, 신비스러운 못물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었습니다.
38년 된 환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살아났습니다. 이는 환자가 자의로 찾아 만난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만나 주셨습니다. 자기의 가족도 버리고 친구들까지도 버린 이 환자를 주님은 버리지 아니하시고 찾아오셔서 만나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 환자가 주님의 크신 긍휼과 은총과 축복을 받은 증거입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낙오자들을 주님은 찾아 구원하여 주십니다. 이는 만고 불변의 진리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순종하는 길입니다. 주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환자의 진상을 깨닫게 하고, 소원을 환기시키고, 나아가서는 새로운 희망과 활력소를 공급하여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낙오자들에게 진상을 인식시키고 소원을 성취시키고 새 희망과 생명의 활력소를 공급하여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낙오자는 먼저 신뢰하고, 다음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오늘날도 낙오자들의 사는 길은 오직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길뿐입니다.
결론
낙심된 마음을 어디에서 위로받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가족과 친구들까지도 버리고 사회에서도 돌아보지 않아 낙오된 자들은 어디에서 살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 낙심하고 절망 상태에 빠져있던 환자가 다시 일어난 사건은 현대에 모든 낙오자들에게 유일의 복음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신뢰하고 순종하여 다시 사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영혼의 낙망
시42:5
서론
다윗은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특히 그의 생애 중에서 골리앗을 조그마한 돌로 쓰러뜨린 것은 감탄하게끔 만듭니다.
다윗은 많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꿋꿋하였으며, 하나님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싸웠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자신의 영혼이 낙망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영혼의 낙망한 모습들
우리가 지금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간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여 있는가?"하고 질문을 던지게 되는 그러한 상황을 이해해야 됩니다. 영혼이 그렇게 낙망하게 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 말속에는 그의 양어깨에 놓인 무거운 짐에 짓눌려 꾸부정한 모습을 한 채, 자신이 현재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견디지 못해 하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마음은 혼란과 근심과 불안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쓰러져서 낙망하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렇게나 많은 하나님의 섭리를 입고 특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그들에게 닥쳐오는 모든 시험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적절치 못한 처사이겠습니까? 당신은 왜 얼굴에 우울함을 띠우고 또한 불안한 마음을 보임으로 해서 당신의 원수들로 하여금 기독교 신앙에 어떤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게끔 기회를 주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나쁜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하나님께 대해 그런 식으로 반응해 왔다는 것을 우리 자신부터 인식해야 합니다.
2. 영혼이 낙망하게 되는 원인들
어떤 불쌍한 영혼은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그것에 대해 죄책을 느끼며, 죄를 증오하므로 낙망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기 죄에만 집착해 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당신은 아마도, 시험에 지쳤기 때문에 영혼이 낙망하게 되었다고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당신 자신이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때까지 이런저런 사악한 생각들이 늘 당신에게 붙어 따라다니고 있다고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안개가 당신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둠 속에서도 그분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원수들을 멀리 쫓아내 주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로해주실 것이며 시험하는 마귀를 벌하실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자신에게 시련이 잇따른다고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한 시련이 끝나고 나면 다른 시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잠시만이라도 평안하게 있고 싶은 마음에 오늘만이라도 시련이 닥쳐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른 폭풍이 당신을 덮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만일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면, 분명 낙망하여 마음이 불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낙망한다고도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3. 영혼의 낙망을 이겨내는 승리
시편 기자는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속에서 낙망이 되나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의 모든 고통이 우리의 불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불신은 우리가 위로를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두려움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것을 다 견디어 내도록 해 줍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우리의 고통은 너무나도 큰 것이기에 결코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 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그분을 찬송하리라"하고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를 "내 하나님께서는 나를 끝까지 돌아보아 주실 것이다 나는 내 영혼이 낙망되더라도 그분을 찬양하리라 나는 그분을 다시 뵈옵게 될 것이며 과거에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그분을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결론
우리는 한 불쌍한 영혼이라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을 당신의 안식처로 삼으며, 당신의 영혼이 낙망한다 할지라도 "그분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구원하심을 소망하고 믿는 자들의 믿음이 완성되고 그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들을 도우십니다. 심지어 우리 주 예수께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계십니다.
낙망 중에 찬송함
시42:1-5
서론
본문5절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다윗은 몹시 낙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한지 본문을 통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낙망하고 있는 모습
다윗은 지금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드릴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그전에는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을 부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기쁨을 누릴 만한 형편이 되지를 못합니다. 더구나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던 무리들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고 하면서 조롱하였습니다. 그 받은 수치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종일토록 울어서 그 눈물이 주야로 자신의 음식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낙심은 정말 너무나 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바라라고 합니다.
그는 그렇게 낙심하여 있으면서도 자신을 행하여 질책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침체된 신앙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낙망하여 불안해하는 자신의 실상을 정확히 인식하고는 그 해결책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로 자기 병의 원인과 그 병의 처방을 정확히 알았던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주위의 사정과 형편이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그 주위 형편을 보고 가지는 낙망과 불안입니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정확한 해결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낙망과 불안을 타개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낙망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에 바로 서지 못하여 낙망하고 불안해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을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3.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낙망과 불안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장 형편이 바뀌어서 성전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다 정리되고 낙심했던 마음도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찬송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낙망하였다면 그 마음을 잘 정리하여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찬송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찬송할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가 어떤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여 다른 사람에게 조롱받고 있을지라도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이 처하여 있는 형편을 잘 알아서 그것을 잘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해결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한숨이 변하고, 낙심이 변하여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낙심과 불안의 자리에서 담대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 갇혀서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가운데 있었지만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고 기도와 찬송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낙심 또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낭 비
성 경 활 용
1. 나쁜 의미의 낭비
(1) 병고침을 위해 재물을 허비함
(막5: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2) 탕자가 재산을 허비함
(눅15:13)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3)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함
(눅16:1)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선한 의미의 낭비
(1) 그리스도를 위해
(마26:8)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2) 그리스도를 위한 신자의 봉사
(고후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관련원어풀이
1. ajswtiva 아소-티아
버림 받고 방탕한 생활, 방랑, 낭비, 난행.
(엡5:18, 딛1:6, 벧전4:. 4)
설교예화자료
돈의 귀중함을 모르는 사람들
돈을 벌기는 어렵지만 쓰기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물론 돈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쓰기가 더 어렵고, 그 쓰임새에 대해 신중하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어마어마한 돈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200만 달러를 써버린 '석탄과 기름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틸(Steele)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옷을 사는데 하루에 8,000달러를 쓴 일도 있었다 합니다. 또한 놀라운 일은 필라델피아에서 그가 묶고 있는 호텔의 종업원이 자신의 시중을 제대로 들지 못한다고 해서, 자신의 의중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호텔 전체를 하루에 1만 달러를 주고 빌린 후 그 종업원을 해고한 일도 있다 하니, 그 사치의 극이 어떤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헤이스팅즈(Hastings)후작이란 사람은 물려받은 유산 전부를 경마 한 게임에 걸어 몽땅 날려 버렸다 하니 돈에 돌고, 돈과 인생을 몽땅 날려버린 낭비꾼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매일마다 갈아 낄수 있을 만큼의 많고 다양한 보석단추, 반지, 소매장식 등 악세사리를 갖고 있는'다이아몬드의 사나이'란 별명을 가진 브래디(Brady)라는 사람은 그의 파티에 참석한 합창단원인 여성들에게 각기 1,000달러를 준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가히 분명코 돈의 귀중함을 모르는 돈에 돈 사람들이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이 엄청난 소비를 아십니까?
우리들 모두가 별 생각없이 쓰고 있는 나무젓가락의 수입이 금년에는 1천만 달러를 훨씬 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철저하게 1회용 소비품으로 전국 어느 곳에서나 소비되고 있는 나무젓가락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년 70억 원을 웃도는 수입품은 전체소비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1회용 나무젓가락을 쓰기 시작했는지 또는 꼭 나무로 된 젓가락을 써야만 되는지를 따지기 전에 과연 국민 모두가 아무 의식도 없이 귀중한 목재로 만들어지는 나무젓가락을 계속 써야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일반가정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나무젓가락이 음식점에서는 필수적으로 쓰이고 있는 오늘의 현상은 우리나라와 국민들이 제한된 자원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습니다.
비단 나무젓가락의 문제가 아니라, 요즈음 우리 주변에는 자원 낭비와 직결되는 소비행태가 점점 더 극성을 부리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자판기의 보급 증가로 1회용 컵의 소비는 매년 급증하고 있고, 각종 휴지와 포장지의 낭비는 나날이 심해져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연말 연시가 되면 고급지로 만든 호화판 달력이 홍수를 이루고, 연하장도 불필요하게 고급지를 낭비하는 측면도 많습니다. 우리보다 잘사는 구미 각국에서도 회사선전용 달력이 우리처럼 흔히 나돌지 않습니다.
각종 에너지 절약도 중요하지만 목재같이 지구상에 제한되어 있는 자원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을 절약해 쓰고 1회용 사용을 자제하는 자세가 아쉬운 상황입니다.
무분별한 사치와 낭비
한국 경제는 지난 30년간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과거의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성장 우선 정책의 와중에서 계층간 소득 불균형 현상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특히 일부 가진 자들의 무분별한 사치와 낭비는 사회의 위화감을 조장하는 한편, 어른에서 아이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가 분수를 넘어선 과시적 소비 생활로 비틀거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연초에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도 한국 사회가 과소비로 휘청거리고 있음을 "국민 소득이 미국의 4분 1도 안되는 나라에서 2백 달러짜리 앤 클레인 블라우스나 2천5백 달러짜리 가죽점퍼가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다. "고 신랄하게 꼬집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점은 호화 사치의 와중에서 물질적으로 소외된 계층과 일부 가진 계층간의 위화감이 커져 양자간의 적대감으로까지 발전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63빌딩 59층의 의미?
Mr.정과 Miss.서는 어느 날 데이트를 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63빌딩을 갔습니다. Miss.서는 양식을 원했는데 지하에는 레스토랑이 없었으므로 59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입구에서 Mr.정은 휘황찬란한 불빛과 바닥에 깔린 카페트를 보고 분명 음식값이 비쌀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Mr.정의 주머니에는 35,000원이 전부였습니다.
자리에 앉았을 때, 나비넥타이를 멋지게 맨 종업원인 듯한 남자가 다가와 몸에 밴 듯한 친절과 말씨로 맞이하면서 메뉴판을 내밀었습니다. 그곳에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던 음식의 이름들이 가득 메워 있었습니다.
Mr.정은 당황하여 가격표를 훑어 내려 읽으면서 그만 얼굴이 홍당무가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음식 한끼 값이 최하가 39,000원이었던 것입니다. 180,000원이나 하는 음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홀 가득 이미 예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거듭 미안하다는 말을 뒤로한 채, 다시 내려오면서 Mr.정은 영 불쾌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하루 세끼도 못먹는 불우한 이웃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현실에서 한편에선 쌀 한가마니 값에 해당하는 한끼 음식을 먹고 지내는 사람들을 비교할 때, 진정 삶의 색다름에 괴로웠습니다.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돕고 사는 참된 인간 사회가 그립다 하겠습니다.
낭비와 쓰레기의 함수 관계
근래 우리나라에 놀고먹는 알부자들이 많다고들 합니다. 주로 이런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놀고먹는 향락 산업들이 크게 번창하고 낭비 풍조가 일어난다고 야단들입니다. 이것은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알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보면 1974년에 276만 톤이던 것이 1984년에는 806만 톤으로 해마다 약 11.2%가 증가하였습니다. 이 증가율은 그 동안의 인구 증가율이 3.8%, GNP성장률이 8.4%인 것을 감안할 때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쓰레기가 많이 불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만도 해마다 약 300억 원이나 됩니다. 이 돈이라면 서울시에서 쓰레기를 치우는데 들어가는 돈 2년치만 모으면 독립 기념관 하나 거뜬히 짓는다는 말이니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에 쓰레기를 버리는 법이 거의 없었습니다. 종이나 유리 조각이나 금속 같은 것도 거의 없었고 나무 태우고 남은 재나 분뇨나 음식 장만하고 남은 쓰레기를 모두 퇴비로 사용했습니다. 이는 마땅히 퇴비로 하여 농사 지을 수 있는 자원을 강물에 버린다든지 하는 것을 큰 죄악으로 알고 쓰레기 버리는 것을 고을에 따라서는 형벌로 다스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몇 십년 전부터 잘 산답시고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하더니 요즘 와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버리는 쓰레기 양은 다른 개발도상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월등히 많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땅을 낭비로 말미암아 더럽히고 있는 것은 통탄할 일입니다.
제비와 젊은이
어느 큰 부자의 집에 외동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몹시 낭비가 심한 젊은이였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그는 그때부터 더 많은 돈을 썼고 날마다 잔치를 베풀고 친구들과 먹고 마셨습니다.
마침내 그 많던 돈도 차츰 줄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이며 집까지 몽땅 팔아먹고 말았습니다.
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입고 있는 두툼한 털외투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돈을 마련할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제비 한 마리가 날아와 지붕 위에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야, 제비로구나! 제비가 돌아왔으니 이제 봄이 되었구나."
젊은이는 마지막 재산인 외투마저 팔아서 몽땅 써버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음 날부터 날씨가 또다시 추워 졌습니다.
"아아 추워라."
그는 몸을 웅크리고 걷다가 길가에서 얼어죽은 제비를 보았습니다.
"쯧쯧, 성급한 제비야! 너무 일찍 날아와서 추위에 못이겨 얼어죽다니‥‥ 너 때문에 나도얼어죽게 되었구나." 하며 탄식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집을 이을 아이는 인분도 금처럼 아끼고, 집을 망칠 아이는 금도 인분처럼 쓴다.
(명심보감)
낭비는 부의 권태를 부채질한다.
(세네카)
조급함은 낭비를 부르고, 낭비는 결핍을 낳으며, 결핍은 착한 남편과 그의 아내를 싸우게 한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수전노는 자기 것을 훔치고, 낭비가는 상속인의 것을 훔친다.
(T. 풀러/ 격언집)
자기가 버는 것을 전부 쓰는 사람은 거지로 되어 가는 도중에 있다.
(S. 스마일즈/ 검약론)
인색하다고 욕 먹을까 두려워 무익한 돈을 쓰지 말라.
(홉슨)
국수 먹은 배. < * 실속이 없고 헤프다는 뜻>
(한국 속담)
돈 지갑의 밑바닥이 드러났을 때의 절약은 이미 늦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가난한 자가 물건을 아끼지 않는 것은 낭비라고 불려진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내게 있어서 존경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가 생산해 내는 것보다 더 많이 소비하는 사람이다.
(E. 허버트/ 속물)
돈을 다루고 있는 부잣집 부인은 그것을 사려 깊게 쓴다. 그러나 결혼해서 비로소 돈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게 된 부인은 그것을 쓰는 것이 재미가 나 많이 낭비하게 된다.
(S. 존슨)
여편네 활수(滑手)하면 벌어들여도 시루에 물붓기. <*아무리 벌어들여도 그 집안의 주부가 헤프면 저축할 수 없다는 뜻>
(한국 속담)
창고가 뚫려 있음에도 가리지 않아 쥐와 새들이 어지러이 먹어댐이 첫번째 낭비요, 거두고 씨뿌림에 때를 놓치는 것이 두번째 낭비요, 곡식을 퍼뜨리어 더럽고 천하게 다루는 것이 세번째 낭비다.
(명심보감)
남자가 마시면 집이 반 타지만, 여자가 마시면 집 전체가 탄다.
(러시아 속담)
인간은 과로가 원인이 되어 죽지는 않는다. 낭비와 고민이야말로 곧 죽음의 원인이 된다.
(T. 휴스)
동풍 닷 냥이다. <*난봉이 나서 돈을 함부로 날려 낭비함을 조롱하는 말>
(한국 속담)
낭비와 탐욕-이런 역병은 모든 국가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M. P. 카토)
공금을 낭비하는 것은 성령을 거역하는 죄나 마찬가지다.
(J. 몰리/ 회상록)
우리는 가난과 전쟁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낭비와도 싸워야 합니다.
(L. B. 존슨)
낭비를 없앤다는 것은 새어 들어오는 물을 배에서 퍼내는 작업과 같아 한시도 그 일에 손을 뗄 수가 없습니다.
(L. B. 존슨)
과부 은 파먹기. < *벌지는 못하고 저축했던 돈을 쓰기만 하는 뜻>
(한국 속담)
시간을 만물 중의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낭비하는 것은 최대의 낭비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B. 프랭클린)
사치하는 심리는 덕망이나 인격이나 지식이 남만 못하여 스스로가 남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하여 물질의 넉넉함을 과시해 보려는 얄팍한 심리에서 하는 짓이다. 사치는 지각없는 사람이 관심을 끌기 위한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한갑수/ 사대주의 · 작당 · 사치 벽)
호사스럽게 치장을 한 당나귀가 짐 안장을 단 말보다 훨씬 훌륭하게 보인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범의 차반. <*모을 생각을 안하고 생기는 대로 다 써 버림을 비유하는 말>
(한국 속담)
누가 자기의 돈을 남에게 맡기겠는가? 그러나 자기의 시간과 생명을 남에게 맡기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허다하다. 우리는 한 푼 돈에는 인색하면서도 시간과 생명은 한없이 낭비하고 돌아봄이 없다. 돈에 인색한 만큼 시간과 자기 생명에 대해서 인색하다면, 그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며 칭찬할 일이라 할 것이다.
(M. E. 몽테뉴)
부음 1건:3만원/ 결혼 3건:6만원/ 회갑 1건:2만원// 에라, 홧김에 술값 5만원// 토요일, 일요일은 거덜나는 날
(김대규/ 어느 우울한 주말)
그 넉넉한 그리움도 탕진했어라.
(김현숙/ 마른 풀의 노래)
부페 식당에서/배 두드리며 먹고 싶은 마음도 버리기
(양왕용/ 버리기 · 1)
그는 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최상급 호텔에서/ 제일 비싼 술 최고의 음식을/ 먹고 마셨다// 그의 기분은 천당이었다/ 먹고 마시며/ 웨이터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글라스를 높이 들고/ 축배했다// 옆으로 다가선 소녀에게서/ 꽃을 받아들고 그는/ 빳빳한 지전을 건네었다/
장미꽃은 빨갛고 차디찼다/ 그는 30마르크를 지불했고/ 받은 소녀는 울었다// 6인조 밴드는 그에게서 6백 마르크를 받았다/ 밴드는 녹초가 되도록 연주했다/ 비틀거리며 붐바붐바 연주했다// 댄서/ 웨이터/견습접대원/ 펨프에 게도/ 그는 돈을 뿌렸다//계산서는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호주머니의 지전을 꺼내 팽개치고/ 그는 호텔을 나왔다//눈이 휘둥그래진/ 댄서/ 웨이터/ 악사들이/우루루 배웅을 나왔다/ 그는 환하게 웃음지으며/ 소리 쳤다/ 아, 수고들 했소.// 그리고 그는 맡겨 놓았던 외투와 모자를 받아들었다. /클로크 룸의 아가씨가/ 손을 내밀었다/ 보관료는 삼십 페니예요!// 그는 발을 멈추고 웃으며/ 호주머니를 뒤 졌다/ 이젠 동전도 한 푼 없었다/ 꽃파는 소녀/ 펨프/ 견습접대원은/모르는 체 서 있었다/ 그는 도움을 청하듯 둘러보았다/ 모두들 벙어리처럼 서 있었다//그는 외투를 벗어/ 클로크 룸의 아가씨에게 던져주고/ 호텔을 나왔다.
(E. 케스트너/ 갑자기 난 결말)
설 교 노 트
연락을 좋아하는 자
잠21:17
서론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연락이라 함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으로 재물을 낭비하고 향략을 일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재물의 낭비뿐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연락을 좋아하는 자의 결과에 대해 살펴봅시다.
1.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됩니다.
사람의 경제라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즉, 사람은 자기의 의지대로 재물을 얻을 수도 축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재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은 그 소유를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낭비라는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낭비라는 말에는 이미 그 소유가 자기의 것임을 인식하고 자기의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연락을 즐기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의 소유를 심히 낭비하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가난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낭비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재물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재원의 근원이 마르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연락이라 함은 '주색잡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음주, 음란한 교제, 도박, 이러한 것을 즐기는 자는 결국에 망할 것입니다. 한때 흥왕한다 할지라도 그 종국은 비참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재물과 몸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2. 정신적으로 가난하게 됩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해지는 동시에 그 정신은 더할 나위 없이 피폐해집니다. 그 정신은 공허로 가득차게 됩니다. 향락 뒤에는 늘 공허가 자리잡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온 정신을 연락에만 쏟았기 때문에 더 이상 지혜와 지식을 갖고 사리 판단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방탕한 생활은 그의 뇌를 약화시키고, 쾌락은 흥분케 하여 사고력을 파괴하며 정신적 소모를 강요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설이나 영화를 즐기고 음탕한 생활과 기타 부도덕한 향략은 그 생활 자체가 정신적인 파멸을 초래하고 결국은 자신도 모르게 폐인이 되고 말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삶의 모습입니다.
3. 심리적으로 가난하게 됩니다.
연락을 즐기는 자는 종종 친구들에게 재미거리를 제공하고 또 재미있는 친구라는 이유로 성품이 좋은 자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는 그런 자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것입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이기적이며, 무정하며, 잔인합니다. 연락을 즐기기 위해 다른 연약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예사로 박탈하는 것입니다. 그 한 예가 로마의 '콜롯세움(원형극장)'입니다. 이곳에서 열어지는 각종 행사는 수많은 기독교인 또는 노예들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와 동일한 가치가 있는 또 다른 생명들을 짓밟는 것입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심리적으로도 가난해져 결국에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술수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그 영혼까지도 가난하게 됩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을 상실하여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결과일 것입니다.
우리 성도의 삶은 더욱 절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소유를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값진 낭비
막14:2-9, 마26:6-13, 눅7:36-50, 요12:1-8
서론
예수께서 베다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와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머리에 붓는 사건에 대해 왜 비싼 향유를 낭비하느냐고 책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진정한 낭비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옥합은 향유를 담는 귀한 그릇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서 죄인인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되었을 때 육을 가꾸고 단장하는 데 필요했던 향유를 담는 옥합은 이제 아무런 필요가 없고 오히려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옥합이 귀하지도 않았고 보존할 가치조차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옥합은 주님 앞에서 마땅히 깨뜨려 버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이 깨어지고, 육을 버리고 영에 속하게 되는 엄숙한 결단의 행동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우리를 감싸고 있던 것들을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새술을 새 부대에"라는 말씀과 같이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고후5:17) 과거에 얽매었던 틀에서 벗어나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서 자신의 가치있는 것을 버리는 것은 낭비일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는 가치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1. 향유를 쏟았습니다.
그야말로 값진 향유였습니다. 이 향유의 값은 대략 삼백 데나리온이었는데, 일 데나리온이 한 일꾼의 일년 받을 품삯이었으니 그 값으로 따진다면 엄청난 액수의 돈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본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말하기를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 하는 것이 잘못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이 향유의 값은 엄청난 것이며 이것으로 가난한 자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향유를 쏟은 것은 깊은 의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장사를 미리 준비하려고 향유를 쏟았는지는 모르나 예수님은 이것을 이용하시어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자신이 장사 지내게 됨을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귀한 향유이었으나 그 향유는 그저 쏟아져 허비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하며 암시해 주는 데 사용되었으므로 귀히 쓰여진 것입니다. 이것은 참된 낭비인 것입니다.
3. 참된 낭비
낭비라는 것은 아무런 목적없이 허비하는 즉 쓸데없는 데 사용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여인의 행동을 사람들은 허비라 하였으니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값진 일에 소용이 되었으니 값진 낭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복음은 전 세계적으로 전세대를 통하여 전파될 것인데 이때에 이 여인의 행한 일이 기념된다니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도무지 살 수 없는 영광입니다. 아무리 값진 것으로 치룬다 할지라도 치를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낭비없이 절약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 나라에 관계되는 일에서는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그것은 낭비일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하는 일에 우리가 절약한다면 이는 참된 절약이 아니며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참된 낭비의 의미를 깨달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시온의 딸들의 사치
사3:16-26
서론
'시온의 딸들'이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부녀자들을 일컫는 이름인데, '시온의'라는 의미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뜻하므로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교만하고 사치스럽고 낭비하는 아주 형편 없는 여인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이 어떠한지를 모르는거나 알면서 행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역전시키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시온의 딸들의 교만과 음란
16절에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다 하시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자지도자의 교만도 불의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죄없다 하지 않으시거늘 하물며 부녀들의 교만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녀들의 교만이란 결국은 음란한 생활을 위한 교태인 것을 성경은 말해
줍니다.
"정을 통하는 눈"은 흔히 성적 사랑의 음란한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와 같은 성격인 것으로 언급되는 것입니다. 이는 추파를 던지는 눈으로 남자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는 태도로서 수치감을 모르는 누추한 행위인 것입니다. 교만은 이렇게 자신의 수치를 깨닫지 못하고 누추한 행위를 계속하도록 해줍니다.
2. 시온의 딸의 낭비와 사치
사치는 곧 낭비입니다. 본문 19절 이하에 그 부녀들의 사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장식 품목의 열거를 살펴보면 "발목 고리 머리의 망사 반달 장식 귀고리 팔목 고리와 면박 화관과 발목 사슬과 띠 향합과 호신부 지환과 코고리‥‥‥‥ 등 참으로 사치스럽고 무절제의 용품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옷과 장식은 여자들에게나 남자들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정한 도를 지나치면 그것은 사치요, 낭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낭비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그것을 잘 선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절제와 생활을 하고 남은 것으로는 이웃을 위해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갈수록 황금만능주의요, 개인주의가 팽배해 가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나타나는 한 가지 방법은 절제하여 검소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인들이 사치한다고 해서 그들을 따라 사치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볍게 여겨 낭비한다면 이는 세상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3. 사치와 낭비의 결과
시온의 딸들의 사치와 낭비 그리고 교만의 결과는 17절과 24절 이하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이 아무리 멋을 부리려고 사치한다고 해도 이는 인간의 허망한 생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고, 그들의 하체가 드러나게 하시리라" 하였으니 그녀들의 교만과 음란은 곧 수치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향대신 썩은 냄새와 대머리로 그녀들의 숱한 머리털을 대신한다고 하였으니 그들의 사치스러운 모습은 수치와 조롱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낭비와 사치를 일삼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경고일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어떻게 사용해야 될 것인가를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부녀들의 사치와 허영에 대한 결과로서 26절 하반절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는 말씀은 그녀들에게 역전되어지는 단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은혜와 영광의 표현인 시온의 모습이 황무하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시온의 딸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며, 온유 정결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당연한 삶인데, 육신적 향락에 심취하여 사치하며 범죄하였으니 이제는 멸망의 대상이 되었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노 동
성 경 활 용
1. 일의 종류
(1) 성전 재건의 일
(학2:4)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제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2) 자기 일
(살전4:11)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 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3) 하나님 나라의 일
(골4:11) 저희는 할례 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4) 하나님의 일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2. 일한 자의 보상
(1) 삯을 받는다.
(레19:13)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눅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2) 성문에서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
(잠31: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3) 일한 대로 복을 받는다.
(계14:13)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3. 맡겨진 일에 대한 자세
(1) 힘을 다하여 함
(전9:10)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2) 추수할 일꾼을 청할 것
(마9:38)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3) 충성할 것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4)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함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5)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 것
(살후3:10) 너희에 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6)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을 것
(살후3:12)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7) 부끄러움이 없이 일꾼이 될 것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4. 일하지 않을 때
(1) 매주 안식일
(레23: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2) 특별한 안식일 및 금식일
(레23:7-8)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도 노동도 하지 말지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3) 오순절
(레23: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4) 나팔절
(레23:25)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관련원어풀이
1. rb'D; 다바르
(1) 말, 말씀, 연설, 담화.
(창44:18, 출4:28)
(2) 일, 사건, 사물.
(창20:10, 레23:37)
(3) 어떤 것.
(민31:23, 신17:1) (4)
(4) 이유, 원인.
(창43:18, 렘7:22)
2. hr,k;D, 디브라-
(1) 걸어가는 행동, 여행.
(창30:36, 왕상18:27)
(2) 길, 도로.
(출13:7, 신1:19)
(3) 길, 방법, 진로, 삶 혹은 행동의 방식.
(삼상18:14, 사8:11)
(4)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 종교.
(시139:24, 암8:14)
(5) 경험한 것, 운명.
(욥3:23, 사10:24)
3. hk;ylih} 하리-카
(1) 감, 진행.
(나2:6)
(2) 경건한 행렬.
(시68:25)
(3) 길, 방법.
(합3:6)
(4) 행동방식.
(잠13:37)
(5) 동반자들.
(욥6:19)
4. aijtiva 아이티아
(1) 원인, 이유.
(마19:3, 딛1:13)
(2) 죄, 형벌받아야 할 이유.
(요18:38)
(3) 고소, 항소의 근거.
(행25:18, 27)
(4) 관계, 사정, 입장.
(마19:10)
5. diakonevw 디아코네오-
(1) 성기다, 시중들다, 직무를 수행하다.
(요12:26, 행19:22)
(2) 식사 시중을 들다.
(마4:11, 요12:2)
(3) 생활을 필요한 것을 공급하다, 돕다.
(마25:44, 히5:10)
(4) 마련하다, 보살피다.
(행6:2)
(5) 돌보다, 유의하다, 간호하다.
(고후3:3, 벧전1:12)
6. diakoniva 디아코니아
(1) 섬김, 봉사.
(딤후4:11, 히1:14)
(2) 봉사, 섬기는 일.
(행6:4, 히1:14)
(3) 집사의 직분.
(롬12:7)
(4) 준비하는 일.
(눅10:40)
(5)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전파하는 사람.
(고후3:7, 롬9:13)
7. e[rgon 에르곤
(1) 일, 행하거나 행해진 어떤 것, 일, 행위, 행동.
(히4:3, 10)
(2) 행한 일, 성취, 공적.
(마11:2, 행13:41)
(3) 일, 직업, 과업, 임무.
(요17:4, 빌1:22)
(4) 사물, 사건.
(행5:38, 딤전3:1)
설교예화자료
가시없는 장미가 없다
게르만 민족의 국민성은 단결, 백절 불굴의 투지, 피나는 노력, 검약과 내핍 생활 등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그들은 '근면히 일하는 백성'입니다. 그들은 부지런합니다. 노동을 즐기는 민족인 것입니다. "노동이 너를 귀족으로 만든다. "는 격언도 게르만 민족의 것이며 "가시 없는 장미가 없다. "라는 말도 그늘의 말입니다. 그들은 발걸음이 매우 빠릅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베짱이의 유희를 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맡은 바의 일은 묵묵하게, 책임있게 실천해 나갑니다.
독일의 민요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일은 삶을 즐겁게 할 뿐 고통을 주지 않고 일하기 싫은 자는 바로 그 슬픔을 가진 자. 자연은 우리에게 내일과 임무 수행을 위한 힘을 안겨준다. 저 게으른 자에겐 한탄뿐 삶이란 없다. "
이것이 그들의 생활 속에 배인 노래 가락이요, 근면성을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단결심, 근면, 검약과 내핍 생활을 배워야겠지만, 특히 노동을 사랑하고 노동을 즐기는 정신, 말없는 책임 있는 실천의 좋은 국민성을 배워 생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일하면서 생각하는 삶
인생의 40%는 미래를 염려하고, 30%는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고,20%는 잠을 자고 ‥‥ 인간은 무엇으로 삽니까?
어디에 의미를 두고 어디에 자신의 가치를 부여하고 살아야 합니까?
현실과 현상의 갈등 속에서 허덕이며 아쉬운 시간을 허비하는 수없이 지속되는 시행착오를 우리는 늘상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람된 삶을 산다는 것.
현실을 강하게 음미하면서, 미래를 계획하는 삶.
현실의 연속이 미래를 결정하듯,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얼 할 것입니까?
공허하게 앉아있는 것, 무료하다고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는 것, 구두가 많았다는데 새 구두를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것,T.V 프로그램을 외우고 다니는 것, 이런 종류의 것들은 아무데도 쓸데없는 허황된 것들입니다.
일을 합시다.
공부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방을 쓸고, 부서진 신발장을 고치고,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아내와 대화를 하고, 그리고 내일 할 일을 구상하고, 일기도 써 보고 잠자리에 들어봅시다.
살아 있는 존재 의식
안세원 씨는 공장 작업장에서 작업 도중 실수로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다행히도 접합 수술이 잘 되어 결과를 보아야 하므로 4주간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지겨운 작업장 일을 한동안 하지 않고 쉴 수 있다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2주일쯤 지나니, 병원 생활이 창살없는 감옥이고 밤에 밖으로 비치는 시가의 불빛이 그리도 아름다울 수 없었고, 창밖에서 내다본 거 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도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안세원 씨는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움직이며, 일하며 소리내며 웃고 사람 만나며 대화하는 그 자체라는 것을. 안세원 씨는 갑자기 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귀가 멍할 정도로 시끄러운 작업 실의 풍경이 눈 가득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퇴원하고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면 열심히 일하고, 다달이 받는 많지 않은 월급을 아껴서 저축하고 내년쯤에는 결혼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남은 병원 생활 동안 체력을 다지고 영양 보충이나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삐쭉 웃었습니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일하라, 그러면 돈을 얻을 것이다. " 많은 사람이 돈만을 바라보며 직접 일을 하거나 남에게 일을 시킵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오직 돈 버는 기구나 노예로 여기게 되면 기쁨이나 웃음, 양심이나 동정심은 물론 가족이나 자신의 건강까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돈 모으는 일에만 열중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있어 돈은 인생의 목표이며 하나님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나타나는 노동기피 현상은 애써 수고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잘 사는 경우를 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평범한 노동자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자신도 목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를 '농부'라고 소개하시며(요한15:1) 옹기장이, 대장장이, 씨 뿌리는 사람, 관리인, 청지기, 어부, 상인 등 여러 형태의 노동자의 모습을 들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강경하게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단순히 노동의 결과로 얻어지는 이익만을 위해서 일하지 않습니다. 노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발전시켜 나가며 이웃에게 유익을 줍니다.
"무슨 일이나 사람을 섬긴다는 생각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듯이 정성껏 하십시오(골3:23) "
"여러분이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습니다(마5:12) "
꽃의 뿌리와 줄기
화분에 한 송이 꽃이 피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꽃이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면서도 꽃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뿌리나 줄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찬사를 보내주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의 생산 활동과 농민들의 경작에 의해서 생활하는 데도 그들에 대해서는 별로 고맙다는 생각을 갖지 않습니다. 무리 사회에서는 정치 지도층이나 재벌과 같은 유명인사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일거 일동까지 매스컴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업 사회의 현장에서 기름때를 묻혀가며 낮이나 밤이나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이나 그들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사회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 구조처럼 생명이 있습니다. 머리가 아픈 데도 다른 부분이 아프지 않다고 해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에게 고통이 있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노동자와 농민의 수는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 없는 노동을 창조하거나 즐거운 노동만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노동의 고통과 부자유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소년의 죽음
온도계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15세 소년이 수은중독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1백 15일 만에 숨졌다.
2일 새벽 2시 30분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 성모병원 7층 직업 병동에서 합성계공 노동자 문송면(15. 충남 서산군 원북면 양산리 163)군이 서울대병원에서 이 병원으로 옮긴 지 이틀 만에 전신 마비와 구토 증세를 보이다 숨졌다.
병원측은 "문군이 지난 달 29일 오후 서울대병원에서 이 병원으로 옮긴 뒤 1일 오후부터 장 마비 증세를 보이다 2일 새벽 심한 구토로 이물질이 숨통을 막아 질식해 숨졌다. "고 밝혔다.
문군은 지난 해 12월5일 영등포구 양평동에 있는 합성계공에 취업, 온도계에 수은을 담고압력계를 신나로 세척하는 작업을 해오다 심한 두통과 요통, 불면증에 시달려 지난 2월8일 휴직한 후 여러 병원을 거쳐 3될 9일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에서 진찰을 받은 결과 수은 및 신나 중독으로 밝혀져 치료를 받아 왔었다.
회사측은 "수은 중독이 분명치 않다. "며 산재처리를 미루어 오다가 카톨릭의대 박정일 교수 등 역학 조사팀이 수은 중독임을 밝혀내자 6월 20일에야 산재처리를 한 바 있다.
- 한겨레 신문, 1988년 7월 3일자 -
예수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예수 시대 유다인들은 대부분 농업, 어업, 목축에 종사하면서 가정에서 필요한 물품을 거의 직접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실을 뽑아 천을 짜 옷 ·천막 밧줄을 만들었는가 하면 그릇을 빚고 바구니를 세공하는 등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해결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자체 내에서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빵 굽는 사람, 옷 · 천막 만드는 사람, 밀가루 장사, 샌달 제조공, 조공, 석수, 벽돌장이, 염색업자, 악사, 곡(哭)꾼, 시체 염하는 사람, 광부, 재단사 등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직인들은 직업을 알리는 표식을 달고 다녔습니다. 목수는 나무 조각을, 염색업자는 물들인 천 조각을 귀에 달고, 옷 만드는 사람은 큰 뼈바늘을 웃옷에 꽂고, 서기들은 펜을 들고 다녔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일감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에는 표장을 달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율법에서 금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직종들 가운데 이발사, 소매 상인, 마부, 목동, 의사, 푸줏간 주인, 오물수거 자, 세금 징수 관리 인, 세리 등 남을 속이기 쉽거나 불결한 것을 다루는 직종, 여자들과 접촉하는 직업은 사회에서 천시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세관원인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고,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시며(마태9:9-13) 함께 일하심으로써 직업에 귀천이 없이 모두가 평등함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일을 싫어하는 견해
- 부제:성경적인 노동관 I
일을 싫어하는 견해는 고대 헬라인들이 가졌던 견해입니다. 그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고상한 최고의 영역은 인간의 지적인 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활동은 지적인 활동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명상하고 생각하고 사고하는 데 최고의 가치를 두었습니다. 반면에 육체라는 것은 정신에 비해 훨씬 낮은 위치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동물들도 신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눈으로 보이는 신체적인 측면은 바로 동물과 유사한 하찮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직업 가운데 가장 고상한 직업은 지적인 직업이었습니다. 철학자는 가장 고상한 직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늘 생각만 하기 때문에). 반대로 가장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은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노예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같은 사람도 노예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사회였습니다. 심지어 손 기술을 가지고 일을 하는 기술자조차도(수공업에 종사하는 사람) 인간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만이 시민이 되었습니다.
일을 사랑하는 견해
- 부제:성경적인 노동관 II
이 견해는 기독교에서 생긴 것입니다. 성경은 노동(일)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견해가 생겨난 것은 서구의 종교 개혁을 통해서였습니다. 종교 개혁가들은 '만인제사장직'을 주장, 모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하는 일은 다 중요하고 제사장들이 하는 일에 속할 정도로 고귀한 것이라고 자신들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목회자들만 하나님 앞에서 고귀한 것이 아니라 상인들도, 농민들도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영국의 종교 개혁자 가운데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윌리암 틴데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데 어떤 일이 다른 일보다 더 좋은 그런 일은 전혀 없다. "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물을 붓는다든지 접시를 닦는 일, 구두를 깁는 일도 사도들이 하는 일과 똑같이 고귀한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데는 두 가지 다 마찬가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루터 역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용하는 도구를 말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바늘을 보든지 아니면 다른 도구를 보든지 그런 것을 자세히 보십시오. 이 모든 도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도구입니다. 또한 설교가 하나의 도구이듯이 그 도구를 통해 이웃을 섬기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칼빈은 우리의 경제 공동체, 일을 통한 서로의 관계 역시 서로를 섬기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종교 개혁은 우리가 하는 모든 종류의 일을 훨씬 더 높은 위치로 옮겨가게 했습니다.
이윤 분배 계획
만 에르테첵은 놀라운 사람입니다. 히틀러의 폴란드 정복 이후 그와 그의 아내는 무일푼인 상태로 유럽의 피난민들 가운데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어떻게 다음 끼니를 때울 것인지조차 막연했던 상황에서 폴란드에서부터 유럽까지 걸어서 횡단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에르테첵은 미국의 가장 훌륭한 란제리 회사들 중 하나인 올가 회사의 사장입니다. 그는 10달러로서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겠다는 굳센 공약을 하고 그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오늘날 그 회사는 연간 1,400만 달러가 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1970년 2월 에르테첵은 뉴욕의 오찬 모임에서 평신도 운동 회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사업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언급한 첫번째의 것은 이윤 분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올가 회사의 연간 이익 중 20% 이상은 직원들에게 분배함으로써 회사 내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회사의 성공에 대하여 보상을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모든 직원들과 개방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직공이 문제나 불만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의 상관과 문제점을 논의하지만 그 직공이 그 선에서 만족하지 못할 때에는 서슴없이 자신을 찾아오게 한다고 에르테첵 사장은 강조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그 일을 잘 해결하도록 애쓴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정신을 사업에 적용하는 또 하나의 시도는 직원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에 나타납니다. 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을 때, 회사는 그가 시정해야 할 면모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해 주는데 그때 즉시 해고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직원이 다른 직업을 찾을 때까지 급료 지불 명부에 계속 남아 있게 됩니다.
여가 선용은 책 읽는 것으로
1958년에 아래 같은 포스터가 시카고의 어느 상점에 붙어 있었습니다. "이 가게는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저녁 9시에 문을 닫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가게 바닥을 청소하고 먼지에 쌓여 있는 카운터, 선반, 진열대 등을 청소하고, 등의 심지를 돋우며 아침 식사 전에 물과 석탄을 준비해 놓습니다. 15시간의 일이 끝나면 휴식 시간에는 책을 읽습니다. "
오래 된 좋은 규칙들
웃음을 자아낼는지는 모르지만 다음에 제시되는 사무실 규칙들은 재커리 U. 가이거가 제정하여 1872년에 시행한 것으로 분명히 아주 건전한 원칙들에 기초한 것들입니다.
(1) 사무실 직원들은 매일 바닥을 쓸고, 가구, 서가, 진열장의 먼지를 턴다.
(2) 매일 램프에 기름을 채우고, 굴뚝을 청소하고, 양초의 심지를 교환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유리창을 닦는다.
(3) 모든 사무원은 날마다 물 한 양동이와 석탄 한 동을 운반한다.
(4) 펜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되 각자의 기호에 맞게 펜촉을 다듬는 것은 허용한다.
(5) 사무실은 매일 오전 7시에 열고 오후 9시에 닫되 안식일에는 종일 문을 닫는다. 모든 직원은 안식일에 교회에 출석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자유롭게 봉사하는 일로 보낼 것을 요망한다.
(6) 남자 직원들은 일주일에 하루 정도 연애를 목적으로 하는 휴가를 얻는다. 그들이 정규적으로 교회를 가면 이틀 저녁 휴가를 얻을 수 있다.
(7) 직원은 사무실에서 13시간 노동을 마친 후,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상고하면서 성경과 다른 좋은 책들을 읽는 데에 시간을 보내야 한다.
(8) 모든 직원은 수입 중 상당한 액수를 급료에서 따로 떼어놓아서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지지 않도록 한다.
(9) 신실하고 잘못없이 5년간 일하면서 검소하고 종교적 의무에 충실한 생활을 하여 동료들에 의해서 진실되고 법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 여겨지는 직원에게는, 사업 이윤의 환원이 허락하는 한, 급료를 일당 5센트 인상하여 지급한다.
파업에 관하여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이래, 노동자의 요구가 사회 혁명을 촉진시키는 핑계로 이용되었는데, 그때에 노동 쟁의의 엄청난 증가가 있었습니다. 서구 국가들에서는 때때로 파업이 있어 오곤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연속되는 파업을 보고 있습니다.
숨긴 것 찾아내기
챠리라는 개와 레벨이라는 개는 미국 세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 둘은 독일개로서 그들의 임무는 시카고에서 세관을 통하여 밀수되는 물건을 찾아내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일에 충실했고 이런 일에 적임자였습니다.
생후 20개월 된 검붉은 개 차리는 마리화나가 들어있는 소포를, 숨겨진 뼈를 찾는 강아지처럼 열심히 찾았습니다. 그는 검사용 운반기로 운반되는 것을 차례로 검사하는 것과 같이 정밀하게 모든 뭉치를 검사했으나, 뭉치가 너무 천천히 오면 같은 것을 두 번씩 검사해야만 했기 때문에 점차 싫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냄새로 알기 위해 소포에 머리를 댔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우체부가 한 뭉치를 갖고 와서 다른 소포 밑에 넣었습니다. 챠리가 이것의 냄새를 맡았을 때 다른 뭉치가 파손되지 않도록 두드리면서 찾아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험하는 뭉치다. "라고 공군에서 4년간 개훈련을 시켰던 23세 된 린치가 설명했습니다.
어떤 개라도 잠시 동안에 찾아내지 못하면 흥미를 갖게 하고 성취감을 주기 위하여 소포에 마리화나 또는 마취제를 넣습니다. 철저한 보초 임무와 공격형 개를 만드는 방법은 마리화나나 마취제를 잘 찾아내는 소질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챠리나 레벨에게 필요한 것은 조그마한 냄새까지 맡는 것이고 개들은 이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즉 예민한 후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린치 씨는 다른 개들이 일하도록 뒷바라지하면서 45분 동안만 일합니다. 개들이 뭉치를 찾아내는 즉시 숨긴 것을 찾아 세관원이 개봉해 확인하고 곧 재포장하여 목적지로 보냅니다. 가끔 소포가 접수될 때 체포되기도 하고 또 의심나는 몇 사람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 몇 개의 뭉치는 배달하고 나서 체포하기도 합니다.
노동과 건강
인도 어느 지방에 일을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을 하지 않고 매일 놀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지는 다른 때와 같이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우연히 석가가 지나갔습니다. 거지는 "여보세요, 나리님, 한 푼 보태 주십시오."라고 구걸했습니다. 석가는 불쌍해서 이곳 저곳에서 받은 음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거지는 "참 고맙습니다. "하며 두 손을 내밀어 받으려 했으나 웬일인지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거지는 깜짝 놀라 어떻게든 그 손을 움직이려 했으나 도저히 안되었습니다.
게으른 거지는 우는 얼굴로 "나리님, 이게 웬일입니까? 지금까지는 다리가 움직이지 않더니 이제는 손까지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 하였습니다. 석가는 한참 동안 이 거지의 거동을 주목하여 보고 있다가 "당신은 젊은 데도 불구라고 일하기 싫어서 구걸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고 지적하고 다시 말했습니다. "수족은 일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하지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불필요하므로 나중에는 눈도 귀도 다 움직이지 않아 마지막으로 죽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거지는 눈물을 흘리며 석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마음을 돌이켜 일을 하시오. 그러면 손발도 움직이고 몸도 건강해져서 오래 살 수 있을 것이오."
거지는 석가의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하여 훌륭한 농부가 되었습니다.
도지사와 거지
한일 합방 후의 일입니다. 도지사 자리를 일본 사람들이 차지하였으나 한동안 강원도 만큼은 우리나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몹시도 부지런했습니다. 공무를 마치면 반드시 밭에 나가 일을 하였으며 아침 저녁으로 농사일을 돌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을 해도 잘살기가 어려운데 편히 쉬기만 해서 되느냐?" 하며 항상 부지런했습니다.
물론 강원 도민 대부분은 이 지사를 닮아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래서 도시마다 전국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혹 지사집에 거지가 오면 반드시 주인을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지사는 거지를 만날 때마다 "얼마나 고생이 되오? 오늘은 나하고 같이 먹읍시다. " 하며 똑같이 차린 상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기지가 송구스러워하며 함께 먹기를 거절해도 꼭같이 먹고는 "오늘은 밥을 내집에서 먹었으니 내 논에 가서 일이나 좀 거들어 주시오." 하며 농사일을 부탁했습니다.
밥만 얻어 먹고 그냥가면 좋겠는데 융숭한 대접을 받고서 거절할 수 없어 거지는 하루종일 농사일을 해야 했습니다. "사람이란 일을 해야 하는거야." 지사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후부터 일하기를 싫어하며 얻어만 먹는 거지는 그의 집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어록·시·묘사
노동은 생명이며, 사상이며, 광명이다.
(V. M. 위고)
곤궁은 기도하는 것을 가르친다. 노동은 어떻게 해서 곤궁을 막는가를 가르친다.
(J.W.L. 글라임/ 피타고라스 금언)
노동은 이야기에 있는 마법자의 지팡이, 철학자의 돌, 또한 복신의 모자이다.
(J. 존슨)
일은 그것을 끝내는데 유효한 시간을 채우려면 확대된다.
(C.N. 파킨슨/ 파킨슨의 법칙)
모든 일은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쉬워 진다.
(T. 풀러/ 격언집)
위업을 고안하는 것은 천재이고 이를 성취하는 것은 다만 근로일 뿐이다.
(J. 주베르/ 팡세)
인간은 일상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속에 자기의 세계관의 기초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J. H. 페스탈로치)
노동은 최선의 것이기도 하고 최악의 것이기도 하다. 자유스런 노동이라면 최선의 것이며, 노예적인 노동이라면 최악의 것이다.
(알랭/ 행복어록)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을 먹이지 않고 남이 나를 먹을 것을 강요하는 자는 식인종이나 마찬가지다.
(R. 타고르)
노동은 인간의 창작력을 늘리고 찬양하는 것이며 노동에는 기술상의 의의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의의도 있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너는 두 개의 손과 한 개의 입을 갖고 있다. 그 의미를 잘 생각해 보라. 두 개는 노동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식사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뤼케르/ 판테온)
인간은 사회에서 당연히 다른 사람의 희생에 의하여 생활하고 있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때문에 일한다는 것은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부득이 한 의무이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강자나 약자나, 놀며 살고 있는 시민은 모두 사기꾼이다.
(J.J. 루소/ 에밀)
내 일생의 정칙은 일을 즐거움으로 만들고 즐거움을 나의 일로 만드는 것이다.
(A. 버/ 피콘에의 서신)
온갖 육체적 노동은 인간을 고상하게 한다. 자기의 자식에게 육체적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그에게 약탈 강도의 준비를 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탈무드)
일을 부지런히 하여서 손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은 식탁의 제일 윗자리에 앉아서 따뜻한 밥을 먼저 먹을 수 있지만, 아무 일도 아니하고 빈둥빈둥 놀아서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사람은 식탁의 제일 아랫자리에 앉아서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의 찬밥을 맨 나중에 먹어야 한다. 이것이 이반이 사는 사회의 법률이요, 종교요, 도덕이요, 철학이다.
(L.N. 톨스토이/ 바보 이반)
일이 낙일 때 인생은 즐겁다. 일이 의무일 때 인생은 노예이다.
(M. 고리키/ 빈민굴)
노동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땅을 지배하고 변용하도록 하신 것은 인간이 지성과 노력에 의해 창조적인 신의 행위를 계속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인간은 고용되었을 때 가장 만족한다.
(B. 프랭클린/ 자서전)
그림을 그리든, 노래하든, 조각하든 -즐거움을 위하여 일하라. 육체가 굶주리더라도, 네가 가장 사랑하는 그것을, 명예를 바라고 일하는 사람은 자주 그 목적을 잃는다. 돈을 바라고 일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을 돈과 바꾼다. 일을 위하여 일하라. 그러면 명예와 돈이 네게 첨가되리라.
(K. 콕스/ 예술의 복음)
사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모두 노동에 의해서 얻어진다. 문명이란 노동의 산물이다.
(S. 스마일스)
노동은 인생을 감미롭게 한다. 노동을 증오하는 자만이 고뇌를 갖는다.
(W. 부르만)
근로하면 착한 마음이 나고 편안하면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인정이다.
(정도전/ 삼봉집)
노동은 미덕의 원천이다.
(J.G. 헤르더/ 맹세)
노동은 우리를 권태 · 악덕 · 욕심이라는 3대 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볼테르/ 캉디드)
근로는 둔재를 천재로 만든다.
(영국 속담)
시장기, 일, 땀은 으뜸가는 조미료이다.
(아이슬란드 속담)
모든 쾌락 중에서, 노동의 과실은 가장 감미롭다.
(L. C. 보브나르그)
노동은 신에게 드리는 기도이다. -수확은 밭의 은덕이라기보다 노동의 대가이다.
(스페인 속담)
노동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빈곤은 도망쳐 나간다. 그러나 노동이 잠들어 버리면 빈곤이 창으로 뛰어들어온다.
(R. 라이니크)
노동은 건강의 절반이다.
(스페인 속담)
영원히 살아야 하는 것처럼 일하라.오늘밤 죽은 듯이 기도하라.
(우크라이나 속담)
노동은 인간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이 노동을 욕되게 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U.S. 그랜트)
바쁜 사람은 눈물을 흘릴 시간이 없다.
(바이런/ 2명의 포스카리家人)
정말로 바쁜 사람은 그의 몸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E.W. 하우/ 시골 속담집)
1분 동안이나마 쉴 틈이 없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일하는 것, 그것만이 사는 보람이다.
(J. H. 파브르/ 곤충기)
노동은 인류를 괴롭히는 온갖 질병과 비참에 대한 최대의 치료법이다. <*에든버러에서의 강연>
(T. 칼라일)
노는 입에 염불하기. <*입도 가만히만 있기보다는 염불이라도 외는 것이 좋다 함이니, 할 일 없이 그저 노는 것보다는 무엇이나 하는 것이 낫다는 말>
(한국 속담)
벼농사는 힘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물을 대주기도 하고 빼주기도 합니다. 그 리듬은 아이를 토닥거리는 것 같은 애정의 손길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우듯, 아니면 아름다운 꽃을 가꾸듯 하는 농사이기 때문에 동양인에게 있어 노동은 단순한 형벌, 죽지못해 하는 고역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이어령/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
노동은 적당한 때에 시작할 것, 향락은 적당한 때에 끝맺을 것이다.
(F.E. 가이벨/ 유월의 노래)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갖도록 하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에 고용되도록 하라. 최선을 다 했노라는 양심을 갖고 죽게 하라.
(S. 스미드/ 직업론)
자기 일을 자기 능력 이하로 생각하는 자는 그 일을 잘 해낼 것이다.
(A. 체이스/ 전망)
사람들이 그들의 일에서 행복하게 되는 세 가지란 첫째로 그 일이 그들에게 맞아야 하며 둘째로 그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지 말아야 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일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J. 러스킨/ 전 라파엘주의)
수입이 바로 뒤따르는 일은 항상 그 일의 바퀴에 기름칠을 한다.
(W. 쿠퍼/ 은퇴)
가장 슬픈 것 중의 하나는 사람이 매일 하루에 8시간씩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노동'이라는 사실이다. 하루에 8시간 먹을 수 없으며, 하루에 8시간 동안 마실 수 없고, 8시간 사랑을 할 수도 없다.
(W. 포크너)
기쁨이 없는 노동은 비천하다. 슬픔이 없는 노동도 그렇다. 노동이 없는 슬픔은 비천하다. 노동이 없는 기쁨도 그렇다.
(J. 러스킨)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 일에 습관을 붙이고 하고 싶지 않는 일이 있으면 그 일로부터 물러서라
(에픽테투스/ 어록)
근로를 단순히 물질 수확의 들을 가는 쟁기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동시에 우리들의 들판을 개척하는 귀중한 쟁기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노동에 의하면 우리들의 심신은 강화되며 마음에 번식한 여러 가지의 사악의 잡초 뿌리가 뽑힌다. 그리고 그곳에 행복과 기쁨의 씨앗이 뿌려져서, 춘하추동을 두고 무성하며, 꽃이 피게 되는 것이다.
(B. 파스칼)
의심할 수 없는 순수한 희열 중의 하나는 노동 뒤에 오는 휴식이다.
(I. 칸트)
노동 속에서만 평화가 머물고, 노동 속에서만 안식이 있다.
(B. L. B. 퐁트넬)
하늘나라는 완전한 휴식의 축복이지만 이 세상은 노동이 축복이다.
(H. 반 다이크/ 페릭스의 노동)
노동이 너무 기계적이어서 사고에 소재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일체의 사고까지 금지해 버린다는 데 있어 생각한다는 것은 바로 속도를 늦춘다는 얘기야.
(시몬 베유/ 노동일기)
노동의 기쁨도 자기가 이룬 일의 가치를 판단하고 알아주는 사람이나 동료 또는 상사가 없으면 불완전한 것이 된다. 대개의 경우 같은 부품에 관한 다른 작업에 종사하는 동료나 상사는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쓸 뿐 극복된 곤란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같은 무관심이 언제나 약간은 필요한 인간적인 따뜻함을 빼앗아 버린다. 자존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도 남들이 자기 일의 결과에만 관심을 쏟을 뿐 그 과정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에서는 심한 고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의 기쁨은 생기자마자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인상 속으로 잡기고 마는 것이다.
(시몬 베유/ 노동일기)
모든 노동에서 가장 강력한 요인이란, 해야할 일이 있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감정이다.
(시몬 베유/ 노동일기)
노동은 휴식을 즐긴다. 인생을 완전히 향락하기 위하여는 양자가 같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R. 번스)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김남주/ 나물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직립보행의 인간으로 된 것은 노동의 덕이 아녔더냐/ 피를 맑게 해주고/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고/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은/사람이 토지에 가하는 그날그날의 노동이 아니더냐/ 우리 주변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더럽게 타락하더냐/ 남의 노동으로 피둥피둥 살이 찐 유한계급이 아니더냐
(김남주/ 일 찾아 사람 찾아)
오늘도 다 새거다 호미 메고 가자스라/ 내 논 다 매거든 네 논 좀 매어 주마/ 올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스라.
(정 철/ 송강가사)
그대의 아름다움에 담빡 취해/ 개울물이 태 질하누나/ 흐르며 속삭이누나/ 고향의 정든 처녀 제일 곱다고/ 일손 좋은 고향처녀 제일 좋다고.
(이상각/ 고향처녀 머리를 감네)
온 하루 손에 일을 쥐고/ 아내는 바빴습니다/ 그래도 웃었습니다.
(임효원/ 잠자는 아내)
나무단을 지고서 산을 내리다/허리 굽혀 입을 대고 목을 축이던/ 아, 츠렁바위 그늘 아래 샘물로 솟는/고향은 언제나 내 가슴에
(정철/ 고향은 언제나 내 가슴속에)
때로는 해비로 때로는 그늘로/ 집안 일 바깥일에 손발이 텄습니다.
(김성휘/ 아내)
그러자 농부 한 사람이 물었다. 저희에게 일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는 대답해 말했다. / 그대들은 대지와, 또한 대지의 영혼과 함께 발맞추어 나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게으름이야말로 계절에의 이방인이 되는 것이며, 자랑스런 복종으로 장엄하게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삶의 행렬을 벗어나는 것.//그대들 일할 때면 그대들은 피리가 되어, 그 속으로 시간의 속삭임은 음악으로 변해 울려 나간다. / 그대들 중 누가 모두 어울려 한 음으로 노래할 때 말 못하는 벙어리 갈대가 되고자 하는가? // 그대들은 언제나 일이란 재앙이요, 노동이야말로 불운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 그러나 내 말하노라, 그대들 일하고 있을 때 그대들은 대지의 가장 깊은 꿈의 한 조각을 채우는 것이라고, 오직 그대들에게만 맡겨진 꿈을./ 또 스스로 노동함으로써만 그대들은 진실로 삶을 사랑할 수 있으며,/ 또 노동을 통해 삶을 사랑하는 길만이 삶의 가장 깊은 비밀을 알게 되는 일이라고.// 허나 만일 그대들 괴로워 태어남을 고통이라 부르고 육신으로 살아감을 그대들 이마에 씌어진 저주라 일컫는다면 내 감히 대답하리라, 그대들 이마에 흐르는 땀만이 그 저주를 씻어 줄 것이라고./ 그대들은 또한 삶은 암흑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리고 피로 속에서 그대들 또한 지친 자들의 그 말을 되풀이 한다. / 허나 내 말하노라, 강한 충동이 없을 때야말로 삶은 진실로 암흑이라고./ 그리고 또한 모든 충동이란 깨달음이 없을 때엔 쓸모없는 것이 라고,/그리고 또한 모든 깨달음은 노동이 없다면 헛된 것,/ 그리고 모든 노동은 사랑이 없다면
공허한 것임을/ 그대들 사랑으로 일한다면 그대들은 스스로를 스스로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며, 그리고 서로서로, 마지막엔 신에게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 그러면 사랑으로 일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들 심장에서 뽑아 낸 실로 옷을 짜는 것, 마치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입기라도 할 것처럼./ 그것은 자비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거두어들이는 것, 그대들 사랑하는 이가 그 열매를 먹기라도 할 것처럼./그것은 또 그들이 형상짓는 모든 것에 그대들만의 영혼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그리하여 그대들 곁에는 언제나 모든 복받은 죽음들이 서서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 나는 가끔 그대들이 잠꼬대인 양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다. "대리석을 쪼으며 일하는 이, 그리하여 돌 속에서 제 영혼의 모습을 찾아내는 이는 흙을 가는 이보다 고상한 밥./또 무지개를 잡아 헝겊 위에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이는 우리 발이 신을 신발을 만드는이보다 고상한 법"이라고./ 허나 내 잠 속에서가 아니라 활짝 깨어 있는 한낮에 말하노라, 바람은 커다란 참나무에게라고 해서 하찮은 풀잎에게 보다 더 다정하게 속삭이지는 않는다고./ 그러므로 바람소리를 자기만의 사랑으로 보다 부드러운 노래로 변화시키는 이. 그만이 홀로 위대하다고./ 노동이란 보이게 된 사랑./ 그대들 만일 사랑으로 일할 수 없고 다만 혐오로서 일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그대들은 일을 버리고 신전 앞에 앉아 기쁨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구걸이나 하는게 나으리라./ 왜냐하면 그대들 만약 냉담하게 빵을 굽는다면, 인간의 굶주림을 반도 채우지 못할 쓴 빵을 굽는다면, 인간의 굶주림을 반도 채우지 못할 쓴 빵을 구울 것이기 때문에./또한 그대들 원한에 차서 포도를 짓이긴다면, 그대들의 원한은 포도주 속에 독을 뿜으리라.
(K. 지브란/ 예언자)
주여, 노동자들에게 주님의 가르침 따라/삶의 올바른 뜻을 알도록 해 주옵소서.// 주여, 노동의 존엄성과 정직성을/ 알도록 해 주옵소서.// 주여, 노동하는 이들을 위협하는/ 허다한 과오와 수많은 유혹을 면할 수 있도록 가르치옵소서.// 서로 미워하는 대신 서로 사랑하며, 우리들 자신의 이익이 공동의 이익이 되도록/ 일함으로써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우리들 동역자들 가운데서 친구가 되고/ 사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신앙과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을/ 귀히 여기고 위로받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옵소서.
(로마교황 바울 6세/노동자를 위한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근로자들에게/ 은혜를 내려주소서. 생각하는 일꾼과 일하며 사색하는 자들 사이에/ 심한 차별이 없게 하소서./ 저들은 모두 당신의 창조적 능력에 동참하여/ "땅에 충만하여 이를 정복하라"하신 명령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그리하여 정직한 봉사와 물자의 생산으로/ 사회는 번영할 수 있사옵니다. / 당신은 이 세상을 일터로 만드셨고/ 인류를 위한 시험장소로 만드셨으니/ 여기 모든 사람이 증오심과 욕심을 버리고/ 사랑과 봉사로 공익을 증진시키는/ 자기 물의 사명을 완수토록 하옵소서.
(R.M. 맥키온/ 일터에서 드리는 기도)
오늘도 저물었습니다. / 밭에는 씨를 뿌렸고/논의 물코도 막았습니다. / 올 농사도 당신이거두어주소서.// 저는 믿습니다. / 해마다 당신은 거두어 주셨지요./ 당신이 원하시는 그때에,/ 아내와 자식/ 며느리와 손자들/ 논밭의 곡식들// 땅을 파는 이 손은 기억하고 있지요./ 마른 논바닥 같은 이 손/ 당신이 꼭 쥐어주는 이 손// 사람들은 두런거립니다. / 땅에 찌든 이 몸뚱이 보고/ 개 냄새가 난다고,/ 허리 굽은 이 몸뚱이 보고/ 무덤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그래요/ 그래도 저는 일을 하지요./ 밤낮없이 일을 하지요./ 당신이 여기 계시기에/ 당신이 그걸 원하시기에// 이네 이 몸도/ 당신이 거두어주소서.
(김형경/ 한 늙은 농부의 기도)
산발 타고 산넘어 흐르는 물이/ 두메라 이 산골에 풍년모 길러/ 써레질에 신이 난 뜨락 똘소리/ 그 소리가 하 좋아 하늘에 나오// 비탈밭 마른밭에 보습날 박던/ 감자골 이 고장에 논농사 좋아/ 물풍년 쌀풍년 노래 넘치니/ 해종일 머리 위에 감돌아드오.
(박화/ 산새)
제주도 여인들은 바다를 떠메고 온다// 머리에/ 등허리에/ 잔뜩 잔뜩/ 떠메고 와서/마당 가운데 풀어 놓는다// 싱싱한 바다의 소리들 이/ 집안 가득/ 별빛으로 빛나고//‥‥ 제주도 여인들은/ 바다보다 먼저 일어난다.
(김용길/ 제주바다)
오늘 하루 또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루의 잔을 찰찰 넘치게/ 일 할 거리를 주셔서/ 다시 감사합니다.
(안혜초/늘 이렇게 신록의 아침이게 하소서)
이 땅에서 쫓겨나지 않으며/ 동료로서 받아들여지고/ 의심받지 않고 손가락질 당하지 않으며/ 법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고도/ 이처럼 양식을 벌어/ 식탁 앞에 앉으니/ 감사합니다. 하느님 .
(양애경/ 기도-정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 언제 갈려 하나니.
(남구만)
콩을 남산 밑에 심었더니/ 풀만 무성하고/콩모종은 드물다/ 새벽에 일어나 김을 매고/달빛 속에 호미 메고 돌아온다.
(도연명/ 歸團國居)
우리 마을 진영이 아재 쟁기질 솜씬/ 예쁜 계집애 배 먹어 가듯/ 예쁜 계집애 배 먹어가듯/ 안개 헤치듯, 장갓길 가듯.// 샛별 동곳 밑 구레나룻은/ 싸리밭마냥으로, 싸리밭마냥으로/ 앞마당 뒷마당 두루 쓰시는/ 아주먼네 손끝에 싸리 비마냥으로, 수박꽃 피어 수박 때 되면/ 소소리바람 위 원두막같이,/ 숭어가 자라서 숭어 때 되면/ 숭어 뛰노는 강물과 같이
(서정주/ 진영이 아재 초상)
내 가슴에 밭을 갈고, 씨를 묻고, 꽃을 꽂으려는가/ 속을 뒤흔드는 바람소릴 틈틈이 듣는다/ 누가 삽질을 해대는가/ 이제 나는/내가 태어난 마을에 고요히 선다.
(김현숙/ 산은 홀로)
지금도 착한 여인들/ 당신께 드릴 옷을 밤새워 꿰매고/농부들은 당신과 함께 먹을 곡식을 심는데/ 주여/ 날마다 닳아지는 이 시대의 지문 위에/ 입맞추며 오소서
(박선욱/ 주기도문)
지심 뚫는 막장속을/ 탐조등 밝히듯이/ 멎지 않는 풀무질로/ 불 붙이는 혼이 있고/ 도도한 순리의 물길/ 도랑치는 손이 있네
(강호연/ 겨울에서 봄까지)
땅의 다툼에 높낮이로 달리는 산과 들/ 객토하는 농부의 사위스런 노랫가락
(성덕용/ 주버기 · 5)
심은 대로 거두리라고 섭리를 종교처럼/ 하늘 뜻 섬겨사는 농부님네 귓결에는/ 저물녘/ 개구리 울음이/ 권농가로 들린다// 허욕의 군살계고 마음건강 지켜가면/ 복록은 오곡처럼 섬을 지어 영글 것을/ 참인생/옳은 경작의/ 사랑법을 깨친다.
(강호연/ 여름 들녘에서)
욕심없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일하는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경쟁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 진정한 동료를 얻을 것입니다// 봉사하기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며 일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직장을 성당으로 바꿀 것입니다//함께 일하는 동료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지치지 않을 것입니다// 실수한 동료를 기다려 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랑을 얻을 것입니다// 억울하게 소외된 동료를 챙겨주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빛이 될 것입니다// 일하는 수고와 보람을 봉헌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만날 것입니다.
(직장복음화를 위한 참된 행복)
내 나이 열 다섯부터 공장엘 나갔지/ 나는 언제나 부끄러움에 젖어/ 노동자라는 내 이름/ 숨겼다네.// 언제부터였나 / 스무살 방직공장 시절이었지/ 다정한 언니들을 따라/지 친 마음 녹여 줄/ 사랑을 찾아다녔네.// 아아, 억압도 눈물도 없는 곳/ 친구야. 가난한 노동자들의 집에서 나는 배웠다네/노동자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노동자라는 내 이름/ 감출 이유가 없어졌다네.// 싸움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모진 비바람 몰려올수록/노동자라는 내 이름/ 세상에서 가장 당당하게 빛난다네.
(박영근/ 대열-노동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 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신동문/ 내 노동으로)
설 교 노 트
때를 아는 사람
고후6:2
서론
"인생은 누구나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고 전도서 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사 화복은 인생에 의해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근로자의 날을 맞이하여서 크리스찬 근로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때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주어진 때는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기도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열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올바른 일이 되도록 기도해야 하며, 그 일로 인해서 자신과 가족이 살아나가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기독교인이 아닌 것처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근로자들은 항상 기도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같이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과 회사의 장래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같이 일하는 자들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만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등지고 서 있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인물들이 각 분야에서 일하기를 이 민족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바울이 전에는 주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잡아가는 박해자였으나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주님의 사랑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기회는 있지만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하는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전도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그저 돈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한다면 크리스찬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크리스찬은 자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면서 죄인과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찾아다니시면서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파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면, 믿으면 영생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디도서 1장 3절에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명령입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서 개인과 사회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뜻을 따라 전도하는 근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일거리가 많은 국가, 교회, 가정에 속한 우리는 진실로 감사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것은 기회의 패를 놓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려고 할 때 주어지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잘 붙잡아야 합니다. 일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시대나 환경이 초월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할 일이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같이 불쌍한 사람은 다시없을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처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전도하면서, 그리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디에서나 빛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하는 때인지를 잘 분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갈6:6-10
서론
모든 것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자기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것이고 선을 행하였으면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는 우리 근로자들은 열심히 일한 만큼 거두게 된다는 진리를 터득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정을 받지 아니하시나니"라고 하셨는데, 세상에는 스스로 속아서 패가 망신하고 영원한 멸망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편 14편에 있는 말씀대로 스스로 마음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신이 부패하여 온갖 죄를 짓고도 하나님의 형벌이 없을 줄 알고 있으므로 스스로 속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생사 화복과 모든 성공과 실패의 운명이 하나님께 매여 있는데 사신 우상이나 미신 행위에 화복이 있는 줄 믿고 따르는 자는 스스로 속는 자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스스로속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고 나의 생사 화복과 운명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줄 믿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의 말씀인 것을 깨닫고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스스로 속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이며,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심은 대로 거두게 됩니다.
본문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은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은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육체를 심는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과 성령을 위하여 성령에 심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두 가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좁고 험한 생명의 천국길을 가는 자와 넓고 쉬운 사망의 길, 지옥의 길을 가는 자,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반석 위에 짓는 자, 양의 무리와 염소의 무리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물욕과 정욕과 감정과 향락과 허영과 사치 등 자기 중심의 생활을 하여 멸망당하지 말고, 성령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영생의 축복을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일을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3.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선악간에 금방 보응이 없다고 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과 보상이 없다고 부인하고 의심하거나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여 마지막에 천국과 지옥의 상벌이 있음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은 착하고 성결하였지만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 복을 누리게 되었고, 욥은 많은 고통을 받은 후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데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잘못 심어서는 안됩니다. 때가 이르면 자신이 심은 것을 결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악을 심으면 죄가, 선을 심으면 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주를 위한 일이라면 때가 되면 승리의 생활이될 것입니다.
자기의 맡은 바 일에 선하고 충성됨으로 감당하면 결국은 하나님의 칭찬이 따르게 될것입니다.
일하는 것의 의미
마25:14-30
서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허무를 말하고 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아무런 목적도 없이 왔다가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일하는 것도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우리에게는 확실하게 일하는 것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 일하는 것은 생의 의미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물론 천국에 대한 비유이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각자의 의 미가 다 있습니다. 즉 의미 없는 생을 사는 사람은 이 땅에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최소한 자기의 생계를 위하여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하도록 하신 것은 물론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전에도 역시 일을 하였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그냥 무작정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정하여 놓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원하시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개인개인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이 목표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2. 재능을 받아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의 의미를 주셨다면 그 목표를 이를 수 있는 재능도 우리에게 주셨을 것입니다. 이 재능을 성경에서는 달란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은 두 달란트,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은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각기 다른 인생의 재능을 받았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도 어떤 사람은 설계를 하고, 어떤 사람은 기초를 세우고, 어떤 사람은 벽을 쌓고, 어떤 사람은 목공일을 합니다. 그 건물이 다 완성되면 실내 장식은 또 다른 사람이 합니다. 이처럼 각자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었다는 말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모두가 유일한 존재로서 하나님이 주신 재료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사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또 이 재능을 단순히 사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신장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재능은 무엇인지 각자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세상의 일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하나님께 헌신함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3. 일한 후에는 주인과 계산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고용인으로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을 마친 후에는 고용주와 계산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와서 이 땅에서 받은 재능대로 열심히 살았다면 그 끝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여 배나 남긴 사람은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되지만 반대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뺏기고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기고 말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일하는 것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저 일만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가지고 주인과 계산해야 되듯이, 우리 인간들이 주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였는가 하는 것은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설 때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만이 최고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 때만이 참 성공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일보다 하늘 나라의 일에 더 열심인 자들이 됩시다.
부지런한 일꾼
고전4:1-2
서론
모든 인간은 부지런히 일해야 살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각박한 세상에서는 누구에게 의지하여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 고용된 일꾼들입니다. 주인이 멀리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그 소유를 맡긴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일꾼된 자는 부지런함으로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주인의 일을 잘 돌보고 순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일꾼된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깨어 있어야 합니다(막13:34).
깨어 있는 자는 온갖 시험과 유혹과 절도를 막을 수 있습니다. 일하는 자가 계속하여 잠만 자게 되면 그 집안은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불의를 행하거나 죄를 짓지 아니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인이 시킨 일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은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고용된 일꾼들입니다. 깨어 있어야 사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잠들어 있거나 졸고 있으면 마귀를 대적할 힘을 잃게 됩니다.
본문 1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인되시는 예수께서도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2.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부지런하게 일만 잘한다고 주인에게 칭찬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 지혜가 있다면
그것은 간사한 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일을 잘 돌보기 위해서 지혜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롭지 못한 자의 수고는 주님께서 오실 때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리석은 이론에 치우쳐서 일을 그르치지 말고 지혜로이 행하여야 주님께서 칭찬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종이 하는 것을 보고 주인이자신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는 자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일꾼이 주인에게 충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한다면 그것은 악한 종이 되는 것입니다. 또 자신에게 일을 맡겨 놓고 주인이 먼 길을 떠났는데 그 종이 주인이 먼 길을 갔으니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여 같은 종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도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주인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을 엄히 때리고 쫓아낼 것입니다. 그때를 당하여 슬퍼하지 말고 주인이 있든지 없든지 충성을 다해야 참 일꾼의 자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꾼은 예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께 충성해야 주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부지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주인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을 맡기시면 우리는 부지런히 그 일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부지런한 일꾼은 항상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로워야 합니다. 주인이 일일히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능력 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그런 일꾼들은 세상에서나 하늘에서나 칭찬받게 되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지런하라
잠10:4
서론
성도의 직업은 주께서 인정한 그 분야의 적합한 것이라는 소명감으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재능과 최선을 다하여 사회와 자신에게 충실한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직업에 자신을 가지고 아무런 부끄러움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름없는 회사에서 제일 말단의 자리에 있더라도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직업으로 여기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1.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좀더 자자 좀더 눕자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에게는 빈궁이 강도같이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게 됩니다. 인간은 할 수 있으면 육신이 편해지기를 바라는 습성이 본능적으로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립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되려면 부단히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훈련이 따라야 합니다. 물론 이 훈련이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게으르게 살려고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에게 가난이 있을 뿐이며, 다른 사람의 증오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기를 원하고 기도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써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훈련을 꾸준히 해야 할 것입니다.
2. 부지런한 사람이 부하게 됩니다.
사회의 한 일원이 되어 그곳에서 인정받기를 원한다든지 소기의 목적 의식으로 일해야 한다면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는 것은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다 중요한 시간입니다. 하루에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여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그 손에 부가 찾아올 것이고 삶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부지런한 자는 축복이 뒤따르므로 언제나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부지런한 자는 다른 사람을 부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부지런해야 하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부지런함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이 직업은 누가 준 것입니까?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직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직장에서의 업무에 충실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도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노력과 희생에 의하여 원하는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직업을 주시지만 악한 일을 하는 직업은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정당하고 선한 일을 하는 직업을 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직업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을 기본으로 하여 일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부지런히 일하는 자를 칭찬하시고 그런 자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게으른 생각을 버리고 부지런히 일하여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직업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감사히 생각하며 열심히 일합시다.
귀히 쓰는 그릇
딤후2:20-21
서론
이 세상에는 맡은 사람들이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는 곳에서 어떤 사람은 존경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무시를 당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도 여러 사람이 모입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일꾼들을 여러 가지 종류의 그릇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릇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그들을 구별하는 방법
그릇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귀하고 값비싼 금이나 은으로 만든 그릇이 있고, 천하고 값싼 나무나 흙으로 만든 그릇이 있습니다.
또 만드는 가공에 따라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기술껏 정교하게 만드는 그릇이 있고,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만드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리고 용도에 따라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이라도 선한 용도로 쓰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지만 금그릇이나 은그릇이라도 천하게 쓰거나 악용하면 천한 그릇이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힘이 없고 지혜가 부족한 자라도 열심으로 일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귀히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식이 많고 지혜가 뛰어나도 그것을 악용하면 하나님께도 버림받고 직장에서도 내쫓김을 당하게 됩니다.
2. 귀히 쓰는 그릇이란 어떤 것입니까?
(1) 큰 그릇이라야 귀한 그릇입니다.
큰 그릇은 작게도 사용할 수 있으나 작은 그릇은 크게 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작정이므로 큰 그릇이라야 많은 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완전한 그릇이라야 귀한 그릇입니다.
아무리 큰 그릇이라도 깨어졌거나 구멍이 뚫어졌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많이 담아도 결국 새버리고 말 것이니 완전한 그릇이라야 합니다.
(3) 깨끗한 그릇이라야 귀한 그릇입니다.
크고 완전하다고 하더라도 깨끗해야 좋은 것을 담아서 잘 보관하거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4) 비어 있는 그릇이라야 귀한 그릇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더러운 것이 이미 담겨 있으면 좋은 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깨끗하게 비어 있어야 필요한 때 좋은 것을 많이 담을 수 있습니다.
3. 귀하게 쓰는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깨끗한 사람으로 보여야 귀히 쓰임을 받는 일꾼이 됩니다. 이것은 외모의 단장보다 속마음의 사람을 단장해야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릇은 사용하는 주인에게 편리하고 쓰기 좋아야 합니다. 그릇이 스스로 높아지려해도 주인이 귀하게 쓰지 않고 아무것이나 담아두면 귀한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해도 겉으로 드러나게 자신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열심히 일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귀히 쓰임을 받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사명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스스로의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학벌이나 박식함 때문에 교만히 행하여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겸손하고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십니다.
큰 집의 주인인 주님의 손 안에 붙잡히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의 교훈
갈6:7-10
서론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물론 모든 만물을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땅처럼 널은 면적을 차지하는 것도 드물 것입니다. 이 땅은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줍니다. 그러나 땅에서 많은 것을 얻는 만큼 사람도 땅 위에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땅이란 어떤 성격이 있는지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1. 땅은 진실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리디아서 6장 7절에서 땅의 진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땅은 거기에다 무엇을 심던지 심은 대로 내어 놓습니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납니다. 땅은 참으로 진실합니다. 우리는 땅으로부터 먼저 진실의 교훈을 받게 됩니다.
땅은 가꾸어야 합니다. 농부들은 결코 땅을 자연 그대로 방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진실하고 속이지 않는 땅이라고 해도 가꾸지 않고, 거름도 주지 않고, 토질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버려두면 산성이 되어서 못쓰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인격을 가꾸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심령을 잘 갈고 닦으면 옥토에서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2. 농부는 많은 수고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삶을 농부의 농사짓는 일에 비교하여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농사는 많은 수고가 따르는 일입니다. 씨뿌리는 일, 김매기, 거름주기, 농약치기 등 수많은 수고를 한 후 알곡을 거두어들이는 추수 때도 또다시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땅 위에서 하는 일들이 수고 없이 되는 일이 없겠지만 농부처럼 수고의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농부처럼 수고와 노력을 요구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불신자보다 몇 배나 더 노력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3. 농부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7-8절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보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하면서 농부에게서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농부는 이른 봄에 씨를 뿌려놓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추수할 때까지 많은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도의 생활도 역시 인내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욥은 인내의 표본 인물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좋은 일보다는 역경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내의 훈련이 되지 못한 사람은 승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인도 예수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오늘의 고난과 고달픔과 비극을 능히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땅은 결코 그 땅 위에서 수고하는 자를 속이지 않습니다. 농부가 수고한 대로 결실을 내어 줍니다. 그러므로 농부가 수고하지 않고, 가꾸지 않았다면 그 땅에서의 열매는 기대할 수도 없고 엉겅퀴와 가시덤불만 무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을 가꾸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열매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먼저 열매를 얻기 전에 우리의 마음의 밭을 새롭게 하는 운동이 급선무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농부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논에서 일을 합니다. 성실하게 땅을 일구고 보호합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성실함으로 주님의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힘껏 일하자
마25:14-30
서론
사람에게는 반드시 삶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잘 나타나 있는 실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되게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은 달란트 비유로 주인이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나누어주는 내용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달란트를 세어 보아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대개 나면서부터 받은 선천적 재능이 있습니다. 곧 일반적 재능입니다. 이것을 잘 익히고 배우면 아주 좋은 재능이 됩니다. 또 한편 성령의 능력으로 받는 특수 재능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주셔서 주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사용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재능은 하나님께로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재능을 받은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재능을 주심은 우리로 더욱 열심히 일하라는 명령이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달란트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재능 이외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정말 사람의 몸은 기적의 집이며 사람들의 지능은 세기의 경이라고 할 만큼 신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2. 힘껏 일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달란트를 주셨는데 그것을 땅에 묻어 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쓸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 인간의 그럴듯한 핑계나 구실이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열심을 내어 힘껏 일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분량이나 결과보다는 마음가짐과 충성과 순종에 주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흡족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자녀된 도리인 것입니다.
힘껏 일합시다.
3.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됩니다.
성심 성의껏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주인이 보상을 해 주십니다. 그것은 감히 종된 자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 것입니다.
자기의 맡은 바 사명을 그저 순종함으로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 결과는 너무도 큰 것이었습니다. 종으로서 아들의 지위에 올라가게 되는 것이니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은 어떻게 하십니까?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로 열심히 일하지 않고 땅속에 파묻어 두고 일시적으로 평안을 누렸으나 주인이 먼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회개할 때 그 종이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아 열심히 일한 자에게 주고 그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 나서 영원히 슬퍼하며 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시적인 평안은 누렸으나 영원히 멸망당한 것입니다.
열심으로 일한 자와 게으른 자의 차이는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어떤 자리에 서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바깥 어두운 데서 슬퍼 울고 있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기를 훤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힘껏 일해야 합니다. 일하는 것은 신성한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영적인 은사로서 열매 맺는 자에게 더 큰 영력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포도원에 들어가라
마20:1-16
서론
본문의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한 모습을 보인 것이며 먼저 믿는 이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옛날 유대에서는 일꾼들이 아침 일찍부터 거리에 나가서 고용주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일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12시간 노동이었습니다. 특히 일이 많을 때는 시간을 다투어 일해야 했습니다.
1. 노동은 신성합니다.
(1) 노동은 신성한 것이며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해야 합니다. 땅을 파는 사람이 건, 고기를 잡는 사람이 건, 어부건, 직장에 나가 일을 하는 회사원이건, 공장에서 흙짐을 지어나르는 인부건, 국회 의원이건 일하는 그 자체는 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하면 그것은 벌써 귀한 일인 것입니다.
(2) 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일하려는 마음이 없이 일하는 현장에 나가 있다면 그 일은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시작한다고 해도 끝을 맺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시작을 안하는 것이 중도에서 그만두는 것보다 훨썬 현명한 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지내고 부유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망상일 뿐입니다. 자신이 땀 흘리며 일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은 우리 성도들부터 고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2.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품꾼들은 자신을 써 주기를 기다리며 길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찍 온 자들은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나가보니 삼 시에도 육 시에도 구 시에도 십일 시에도 계속하여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느 시간에 하라고 부름받았던 간에 주어진 보수는 꼭 같았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는 먼저나 나중이 없으며 언제나 현재이십니다.
사람들은 흔히 현재의 고달픔과 슬픔 때문에 낙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망치 않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쓰실 것입니다.
3. 뜻밖인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루 12시간의 노동의 품값으로 한 데나리온을 정하였으므로 하루 종일 일한 자들에게는 그 한 데나리온이 정당한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늦게 들어온 자들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십 일 시에 들어온 품꾼은 겨우 한 시간을 일하고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뜻밖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저녁에 온 사람은 자신이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같은 삯을 받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저녁 시간이라 불러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그나마 불러준 것이 감사해서 열심으로 일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양보다도 질을 더 중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일을 하였더라도 어차피 받을 품삯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위를 피해가며 쉬엄쉬엄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선 자와 뒤진 자가 바뀌는 일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자기의 하는 일을 기쁘게 성의껏 노력하면 일하는 사람에게 생각하지도 못했던 뜻밖의 축복을 내리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열심히 일하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나에게 고통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면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오른편에 던지라
요21:1-11
서론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할 동역자를 선택하여 부르셨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다시 갈리리로 나간 제자들은 밤새도록 고생했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바다에서 열심히 일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주님께서 나타나심으로 풍성하여진 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어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어부는 넓은 바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계절과 위치에 따라서 고기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인간 세계에서 시달리던 사람들도 하루의 낚시로 마음이 정화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평생을 바다에서 사는 어부들의 마음은 얼마나 순박하겠습니까? 베드로의 성격을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가를 유다는 계산이 빨랐기에 결국 주의 제자로서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해변가에 사는 이들은 거의가 다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매우 부지런하여 깊이, 멀리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부름을 받은 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다시 어부의 생활로 돌아온 것입니다.
2. 밤새도록 부지런히 일함
제자들이 고기를 잡기 위하여 밤새도록 고생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어부들은 밤중에 떠나서 새벽까지 일합니다. 어떤 때는 며칠이고 바다에 머무르면서 힘겹게 일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순종하였을 때 많은 고기가 잡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죄송함과 감격함이 교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밤새도록 일하여도 고생만 하고 얻는 것이 없는 제자들의 모습이 안쓰러우셨을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만큼 노력하는 가에 따라서 열매를 거두어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도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도록 수고한 것과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3.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기뻐하고 놀라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다정하신 음성으로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벌써 떡과 생선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열심히 수고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언제나 고달프게 시달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며 몸도 마음도 안식하게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을 하다가 낙심되고 실망되면 주저앉게 됩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아니 그렇게 되기 전부터 주님과 꾸준히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시며 평화를 주십니다.
결론
우리는 이 세상의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도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고기를 낚는 어부들을 부르시고 제자를 삼으신 후 그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을 낚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바다에 나가서 고생하듯이 사람의 영혼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바 은혜를 생각하며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보화를 얻음
마13:44-45
서론
예수님의 비유 중에 보물에 대한 비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있는 것은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만난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아주 귀한 내용입니다.
모든 사람이 찾는 것은 가장 귀중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값진 진주를 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습니까?
1. 꾸준히 일해야 합니다.
본문 44절에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 같으니 사람이 이들을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농부가 꾸준히 일하며 밭을 갈다가 우연히 땅속에 있는 보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보화를 발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밭을 갈아 농사를 짓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며 농사를 지으려는 그에게 뜻밖에도 값진 보화가 발견된 것입니다.
다윗은 꾸준히 자기에게 맡겨진 양을 치고 있을 때 부름받아 왕위에 오르는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다윗의 형들은 다 집에서 쉬고 있었으나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므로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주의 제자로 부름받은 베드로와 안드레도 자신의 생업인 어부로서 고기잡이를 하고 있을 때 주께서 부르셨고, 마태도 세관에 앉아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때 주께서 부르셨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뜻밖에도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가장 좋은 것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뜻밖에도 큰 것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 45-46절에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소유를 판 것입니다.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더 좋은 것을 사면 그 소유보다 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큰 성과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확신이 있어야 하며, 꾸준히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3. 하나님과 동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크고 작은 일이건 간에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셔야만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혜와 능력만 믿고 하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과 같이 해야 더 크고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장사를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간에 우리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고용인이 되어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며 열매를 많이 맺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세상에서 값지고 귀한 것을 얻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히 일하여야 얻게 되는 축복인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는 귀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일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그러면 많은 수확을 하나님께서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자기 양식을 먹으라
살후3:12
서론
주기도문 가운데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조문은 하나님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기본적으로 보장하고 계시지만 신자들은 하나님께 구하여 얻어야 하는 인간의 노력과 수고가 수행되어야 할 것을 교훈해 주셨습니다.
"자기 양식을 먹으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자작 자급 정신입니다.
태초에 지음받은 시조 아담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낙원인 에던 동산에서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수고하면 소산을 먹으리라는 보장은 해 주셨습니다(창3:17).
언제나 인간들의 걱정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염려를 하지 말라고 교훈하셨습니다.
게으르거나 불신함으로 자기의 먹을 것도 마련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너무나 무능한 사람입니다. 조그만 더 부지런히 일하면 자기의 먹을 것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양식까지도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무능한 사람은 자기 노력에 의지하여 자작 자급하는 기본 생활을 확립해야 합니다.
구제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은 기본적 조건이 벌써 결여된 낙오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좋아하거나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그들도 열심히 일하여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자기가 열심히 일하여 자기의 음식은 자기가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정상적 생활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상황은 재림에 대하여 그릇된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금방이라도 재림할 것처럼 착각을 하여서 다 된 세상에서 사업을 해서 무엇하며 직장과 가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하는 식으로 되는 대로 살다보니 생활이 정상에서 벗어나고 먹을 것이 없어서 남의 신세를 지게 되는 자들인 계속하여 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종용히 일하라"고 권고하며, "자기 양식을 먹으라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그런 그릇된 사상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내년에 예수가 재림하신다, 후년에 하신다고 하면서 자기들 멋대로 예수 재림설을 파다하게 퍼트리고 민심을 동요시키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은혜받는데 열심으로 다닌다는 핑계로 가정 살림도 안하고, 하던 사업이나 직장도 다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가 집단생활을 하는 광신적인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3.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자격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순행하면서도 자기의 의식문제 때문에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친히 장막을 만들어 가면서 자신의 의식을 해결해 가며 전도하였습니다. 물론 교인들이 자진하여 헌금하거나 바울을 대접하는 일이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교인들의 신세를 지거나 염려거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생활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정말로 주님을 바로 섬기는 자는 남에게 패를 적지치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걱정하며 그 사람에게 바른길로 돌아서라고 권면합니다.
결론
만약 예수님께서 멀지 않아 재림하신다면 어떤 사람들을 귀하게 보시겠습니까? 아무일도 안하고 방종적인 생활을 하는 자들을 귀하게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끝까지 열심으로 일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는 것이 올바른 생활인 것입니다.
심을 때와 거둘 때
요4:35
서론
곡식을 심을 때와 거둘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준비해야 할 때가 있고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할 때가 있고 그 수고의 대가를 거둘 때가 있는 것입니다. 농부는 결코 이 때를 놓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이 전파되어 이제는 거둘 메가 되었다고 하시며 그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에 더욱 헌신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제 인생의 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1. 심을 때(막4:26)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은 풍성한 결실을 기대합니다.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는 정해진 때에 씨를 뿌려야 합니다. 또한 건실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에서도 심을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는 젊을 때 땀을 흘려야 합니다. 젊을 때 씨를 뿌려야 후에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땀을 흘려야 할 때 흘리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시126:6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만이 기쁨으로 단을 거둘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 하겠습니까? 성경에서 비유되는 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농부와 같이 열심히 씨(복음)를 뿌려야 하겠습니다.
2. 가꿀 때(마13:26)
농부가 씨를 뿌렸다고 해서 할 일이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싹이 나고 이삭이 영글 때까지 보살펴주어야 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면서 힘들더라도 꾸준히 해야만 곡식은 계속하여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라지가 더욱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마13:29). 성실을 식물로 삼고(37:3) 인내를 가지고 나아가는 인생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하여 결신한 자를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그를 계속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는 법과 공부하는 법, 기도하는 법, 또한 교회 생활 등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스스로 말씀의 꼴을 먹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를 때까지 계속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3. 거둘 때(요4:35)
농부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몇 번이고 닦다보면 어느덧 추수할 때가 옵니다. 농부는 심을 대로 거둡니다. 열심을 심은 자는 풍성한 열매를 얻을 것이지만(갈6:9) 그렇지 않은 자는 취할 열매가 적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긴급한 때입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현대는 복음이 더욱 빨리 전파됩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사명일 수 있는 것은 세계 복음화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땀을 흘려야 하겠습니다. "희어져 추수할 때"는 전도의 시급됨을 암시해 줍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땀을 흘리며 애쓰며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구 시작과 끝을 생각하게 되는데 그때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에겐 최선의 노력을 들여야할 시급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입니다. 예수님의 "희어져 추수한 때가 됐다. "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복음 전파에 더욱 노력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노 력
성 경 활 용
1. 노력의 정도
(1) 집중적:아합에 대한 공격
(왕상22:31)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2) 소극적:수건을 푸는 것
(요11:44)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2. 노력의 구분
(1) 단순성:사울 왕
(삼상26:8) 나로 참으로 그를 찔러서 단 번에 땅에 꽃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다
(2) 단일성:그리스도의 십자가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연합성-바벨론에서
(스1:5)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3. 노력의 결과
(1) 노력의 헛됨, 불순중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여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2) 노력없이 얻은 승리
(대하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관련원어풀이
1. lm'[; 아-말-
(1) 수고하다, 일하다.
(시127:1, 잠16:26)
(2) 그가 하는 모든 수고의.
(전2:20, 5:17)
2. lme[; 아-멜-
(1) 수고하는.
(전2:22, 4:8)
(2) 슬픔, 곤고한.
(욥3:20, 20:22)
3. kopiavw 코피아오-
(1) 피곤하다, 지치다, 약해지다.
(요4:6, 계2:3)
(2) 피곤한 자들.
(마11:28)
(3) 열심히 일하다, 수고하다.
(눅5:5, 요4:38)
4. kovpo" 코포스
(1) 때림, 슬픔으로 가슴을 침, 수고, 노동, 어려움.
(마26:10, 막14:6)
(2) 수고, 노동, 노고.
(고전3:8, 15:58)
(3) 수고의 열매, 결과.
(요4:38, 고후10:15)
설교예화자료
절차 탁마
한문에 십 년 공적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 가지 일에 십 년 동안 공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떤 직업을 선택하면 그 일에 적어도 십 년 동안은 일심 불란(一心不亂)의 자세로 몰두하고 집중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십 년 공적을 하지 않고 성공자가 되고 명인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밥 안먹고 배불러 보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입니다.
또 십년 고절(十年昔節)이라고 옛사람은 말했습니다. 십 년 동안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남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고그 방면의 권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구슬도 닦아야 빛이 납니다. 절차 탁마 없이는 결코 명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절차 탁마는 돌 아니 구슬을 갈고 닦고 다듬어서 하나의 완성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것은 백련 천마(百練千磨)의 산물입니다. 백 번 갈고 천 번 닦을 때 명작이 나오고 신품이 나오고 명인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한 목표가 집중된 계속적 노력처럼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한자리에 줄곧 떨어지는 낙수 물방울은 바위에 구멍을 뚫는 것입니다.
천리길도 발밑의 한 발자국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그리고 샘물이 날 때까지"이것이 슈바이처의 명언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세로 한 가지 일에 십년 동안 몰입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대성(大成)의 길이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인생을 너무 쉽게 살려는 이가 많습니다. 쉽게 성공하고 쉽게 돈을 모으고 쉽게 유명해지고 쉽게 대가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 년 고절, 십 년 공적, 절차 탁마의 노력은 쌓지 않고, 왜 나에게 좋은 대우와 자리를 주니 않느냐하고 불평 불만만 토로합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 가지 일에 십 년 동안의 열(熱)과 성(誠)과 힘을 경주하면 누구나 반드시 사회의 유능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전력 투구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확고한 생애의 목표를 갖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고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는 존재입니다. 위해서 살고 위해서 죽을 대상을 갖지 못할 때 우리는 인생의 허무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인생관의 가치관의 근본 문제는 내 몸 바칠 곳을 찾는 것입니다. 나의 시간을 쏟고 정열을 기울이고 생명을 연소시키고 젊음을 불사를 수 있는 생애의 사업, 인생의 사명, 삶의 목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만든 것이 아니라 파우스트」가 괴테를 만들었다는 명언이 있습니다. 「파우스트」는 시인 괴테가 50년을 걸려서 쓴 생애의 명작입니다. 괴테는 「파우스트」라는 작품을 가지고 50년 동안 생각하고고민하고 거름하며 집필했습니다. 그러한 고심 참담의 노력 속에서 괴테라는 인물이 형성되었습니다.
인간이 한 가지 일에 일심 불란(一心不亂)의 자세로 헌신적 노력을 집중할 때 그 사람은 커지고 깊어지고 높아집니다.
일이 사람을 만들고, 사업이 인물을 형성합니다. 소설가건 예술가건 기업가건을 막론하고 적어도 그 방면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일인자가 된 사람은 모두들 어딘지 남과 다른 데가 있습니다.
성공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요, 승리는 절대로 요행의 결과가 아닙니다. 피눈물과 피땀의 산물입니다. 남이 한 번하면 나는 열번하고 남이 열 번하면 나는 백 번하는 백련천마의 지구력과 노력의 결과, 그런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나의 시간과 정열과 젊음을 바칠 수 있는 생의 목표를 확립하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전력 투구를 하는 사람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사회의 대업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투혼으로 창조된 작가와 예술가
사람들은 대부분 그 유명한 작가 내지 예술가에 대해 갑론 을박하며 그 천재성을 우선 말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1%의 천재성과 99%의 노력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재적이라 가히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투혼을 볼 것입니다.
플라톤(Platon)은 그의 첫번째 작품인 「국가(Republic)」를 완성하기까지는 다른 여타의서술 · 연구방법으로 아홉 번을 써 본 다음이었고, 키케로(Cicero)는 자신의 웅변술을 완벽하게 하기 인해서 30년 동안은 매일같이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했다 합니다. 노아 웹스터(Noah Webster)는 자료 수집을 위하여 대서양을 두 번씩 횡단하면서 36년 동안 그의 사전을 만들기 위해 일했습니다.
밀튼(Milton)은 「실락원(Paradise Cost)」을 쓰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났고, 기본(Gibbon)은 「로마 제국의 멸망」을 쓰기 위해 26년간을 일했고, 그리고브라언트(Bryant)는 그의 시가 발표되기 전에 99번이나 다시 써 보았다고 합니다.
아이작 뉴톤(Isaac Newton)은 그의 작품을 위해 새벽 2시 전까지는 절대로 잠을 잔 적이없다 하고, 베토벤(Beethoven)은 음악에 대한 정열이 아주 강렬하여 그는 청각 장애 등의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작곡을 했고 최소한 하나의 곡을 열두 번은 다시 썼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Michaelangelo)는 그 당시 12개의 걸작 중의 하나인 「최후의 심판」을 8년 동안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완성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vinci)는 「최후의 만찬」을 10년간 그렸는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하루 종일 먹는 것도 잊었다고 합니다.
라인강에 기적은 없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부처가 서독을 방문 했을 때 육영수 여사의 수행원이었던 한국여성이 독일 여성을 보고 '라인강의 기적'에 관하여 칭찬하면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때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독일 여성은 "결코 라인강에는 기적이 없었다. "고 부정하면서 "서독의 부흥은 기적이 아니다. "라고 했다고 합니다.
독일이 제 2차 대전의 패전국에서 오늘의 독일이 된 것은 하나의 기적이라기보다 독일국민의 노력이었습니다. 독일 민족은 오늘날 '불사조의 민족'이라고 불리웁니다. "프랑스인은 먹기 위해서 살고 우리는 일하기 위해 먹는다. "는 신조를 가진 피곤을 모르는 근면한독일 민족은 폐허에서 일등국으로 발전시키는데 말없는 실천자, 생산의 명장으로 칠전팔기의 노력을 한, 정말 애국의 불사조들입니다.
독일의 부흥은 라인강의 기적이 아니라 독일 국민의 노력의 결정체라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독일인들의 피와 땅과 눈물에서 얻어져 국민들이 생산한 것입니다. 독일의 옛 격언은 "자신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잃은 것이 아니다. 정신을 잃은 것이 매우 큰 손실이며 명예를 잃은 것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2차 대전을 통해 혹시 재산을 잃었는지 모르나 소중한 개미의 정신, 노력의 중요성을 잃은 것은 아니기에 그들은 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독일인의 1년간의 국민 소득은 미국, 캐나다, 스웨덴 이상의 수준에 있습니다. 독일은 그동안 패전국에서 부유한 승리의 나라로 발전한 것입니다.
거친 들에 고운 장미꽃 피어
"거친 들에 고운 장미꽃 피는 것을 볼 때에‥‥‥‥라는 찬송가는 이스라엘을 두고 하는말입니다. 본래 이스라엘이라는 말 자체가 "씨름하여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사막과 씨름하여 승리한, 기적을 가져온 나라입니다. 그들은 사막 위에 푸른 낙원을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의 4천 년의 역사는 그리 단순한 것은 못됩니다. 침략의 역사, 방랑의 역사, 포로 생활의 역사, 흩어짐의 역사, 모임의 역사의 악순환이 그들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오랜 종교적 전통을 이어받은 늙은 나라이지만, 현실적 이스라엘은 정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늙은 새나라'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에게 말은 필요없습니다. 국가의 건설은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과 실천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들은 2천 년이라는 세월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제 다시 잃어버릴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
이 말은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 벤 구리온이 1948년 독립 선언식에서 행한 취임 연설의 한 구절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좋은 입지조건에서 그들과 같은 해에 독립이 되었지만 우리 한국 민족이 '입'으로 나라를 부흥시키려고 싸워온 동안 그들은 '노력'과 '실천'으로 푸른 낙원을 만든 것입니다.
그들은 입으로 씨름하지 않고 믿음과 실천, 땀과 피눈물의 노력으로 씨름하여 승리를 거둔 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뻬이징의 눈물 투혼
"드디어 해냈다. "
카누 선수 천인식은 끓어오르는 기쁨을 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뻬이징 아시아 경기대회 3관왕' 아득한 꿈속의 일처럼 느껴졌으나 손에 잡힌 금메달 3개는 엄연한 현실임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동안의 숱한 고통의 나날들은 오직 이날을 위해 존재했던 것입니다.
천인식은 뻬이징 대회가 '인생의 전기'로 작용할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국내 관계자들도 천인식의 '3관왕'은 예상밖이라고 놀라며 뜻밖의 수확에 크게 기뻐했습니다. 기껏해야 2개 정도의 메달을 예상했으며, 카누가 비인기 종목이라는 굴레도 동시에 벗어 던졌습니다. 카누는 이제 비인기 종목들에 대해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천인식은 카누를 '유망 종목'으로 끌어올린 수훈 선수가 되었으며 국내 '엘리트 스포츠'정책에 또 다른 이정표를 제시해 준 셈이었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야만 성공은 물론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벗어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창단 몇 년 만에 전국에 걸쳐 선수가 700 명뿐인 협회는 이런 기대 효과를 위해 각별한 공을 기울인 셈입니다.
경남 통일군 산양면의 섬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적 소아마비를 앓은 한 약한 소년에게 '패들' 하나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한 것처럼 ‥‥‥
신령님의 동상
아주 가난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 사나이는 재산이라고는 오직 하나 부모님들로부터 물려 받은 신령님의 동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상은 보통 동상과 달리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과 함께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게으른 청년은 그것만 믿고 일은 하지도 않고 날마다 무릎 꿇고 신령님의 동상 앞에 앉아 기도하였습니다.
"신령님, 저에게 큰 재산이 생기도록 도와 주십시오." 그러나 신령님은 사나이의 소원을 들어주기는 커녕 사나이는 날이 갈수록 생활이 점점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끼니거리조차 없자 화가 난 사나이는, "뭐 이런 엉터리 신령님이 있어! 내가 다시또 이 앞에서 무릎을 꿇으면 사람도 아니다. 동상 앞에서 기도를 하느니 차라리 내일부터 나무라도 해야지!" 하며 신령님의 동상을 번쩍들어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떨어져 나간 신령님의 동상 속에서 수많은 금화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사나이 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수북히 쌓인 번쩍이는 금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게으른 농부
몹시도 게으른 농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농부는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이웃 마을로 가게 되었습니다. 들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 곧 이웃 마을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자, 빨리 가자. 조금만 더 가면 되겠구나."
농부는 급하게 재촉하였습니다. 농부가 너무 급하게 소를 몰자 수레 바퀴가 그만 도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구, 이거 큰일이구나."
농부는 꿇어앉아 신령님께 빌었습니다.
"신령님 , 제발 소에게 힘을 주세요. 수레 바퀴가 도랑에 빠져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으니 제발 소에게 기적적인 힘을 주셔서 수레를 끌고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소는 눈만 꿈벅거릴 뿐 조금도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신령님, 제발 저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소에게 힘을 주십시오."
농부는 계속 빌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신령님이 나타났습니다.
"이 게으른 농부야, 너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빌기만 하면 해결될 줄 아느냐? 빨리 소의 고삐를 잡고 힘껏 끌어라. 너도 노력을 하란 말이다. 어리석은 놈!"
신령님은 크게 농부를 꾸짖었습니다.
지혜로운 까마귀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목이 마른 까마귀가 물을 찾아 이리저리 날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물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유, 목말라서 죽겠네."
까마귀는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까마귀는 들판 구석에 있는 병을 발견했습니다.
"응, 목동들이 가지고 다니는 물병이구나!" 까마귀는 반가워서 물병 있는 곳에 내려앉았습니다. 병 속에 보니 물이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이 좁아서 부리를 채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애써 부리를 밀어도 물 있는 곳까지는 닿지 않았습니다.
물을 보자 까마귀는 갈증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물을 마실 수 있을까?"
까마귀는 골똘히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었습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까마귀는 마침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저만치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돌맹이 하나를 물고 와서 병 속에 넣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까마귀는 물이 올라올 때까지 계속 돌멩이를 물어다 병 속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후에는 물이 제법 위로 올라와서 마침내 까마귀는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북해를 뛰어 걷는다.
맹자가 제(濟)나라 선왕(宣王)을 뵙고 인의(仁義)를 설명할 때의 일입니다.
"왕은 언젠가 제사에 희생되기 위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양으로 바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앞에 있는 소는 불쌍하게 여기시고 보이지 않는 양은 불쌍하지 않으셨습니까? "
"옳거니! 듣고 보니 소나 양이나 똑같은 것이군, 허나 나는 그때 소가 가까워서가 아니었어."
"알겠습니다. 가엾은 모습을 눈으로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인정입니다. 왕의 그 마음이 곧 왕도(王道)입니다. "
"아무래도 선생의 말뜻을 나는 잘 모르겠는 걸‥‥‥‥
"그러면 아시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내 힘은 수천 근의 무게를 능히 들 수 있는데 한 개의 새것을 들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한다면 왕께서는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또 '내 눈은 털끝만한 것도 볼 수 있는데 수레에 산더미 같이 쌓인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고 하면 그 말을 믿으시겠습니까? "
"그야 신용할 수 없지."
"그렇지만 지금 왕의 은총은 금수에까지 미치고 있으시나 중요한 백성들은 편안하게 해 주시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것은 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
"다시 말씀드리면 새 깃 하나를 들 수 없다는 것은 힘을 내지 않은 까닭이며 수레에 실린 나무를 볼 수 없다는 눈을 뜨지 않을 때입니다. 백성을 사랑하지 않으심은 왕이 은총을 베풀지 않으신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이 하실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왕이 하지 않으신 것이올시다. "
"그러면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구별을 쉽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시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고 싶은데 아무래도 안된다. '고 말했다면 그것은 정말 될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나뭇가지를 하나 적고 싶은데 잘 안 된다. '고 하면 그것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 어진 왕이 될 수 없다고 하시는 말씀은 태산을 옆구리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려는 것이 아니라 나뭇가지 하나를 꺾을 수 없다고 하시는 말씀과 같습니다. "(맹자에서)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노력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믿는 자들은 더욱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흑인 교육을 위한 노력
1881년 미국의 알라바마 주의 타스케기라는 곳에 흑인 교원 양성소가 설치되었습니다. 그초대 교장은 부키 워싱턴이라는 혹인 교육자였습니다. 그가 처음 부임하자 교회 옆의 빈 집 하나가 교실로 맡겨 졌습니다. 학생은 300여 명이며 그로써 학교가 개교되었습니다. 교실이란 이름뿐이고 비가 오면 지붕이 새서 모두 우산을 쓰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장도 학생도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수업하는 사이사이 목수일을 하고, 교내 빈터에 밭을 만들어 자급 자족의 생활부터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그후 학생과 교사가 늘어나고 학생들은 자기들 손으로 교사를 신축하고, 교장은 때로는 애용하던 회중 시계를 전당포에 잡혀 경비를 조달하였습니다. 이리하여 타스케기의 흑인 교육은 그 성과를 거두고 유능한 흑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였습니다. 마침내 대통령 맥킨레이가 흑인 학교에 참관을 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흑인들의 동포 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했고 또 학문에 굶주려,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애쓴 혹인들 전체의 노력의 결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지 일관의 의지
황해도 두메 산골에서 한 소년이 석양에 산을 바라보며 "도대체 저 산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고산자 김정호였습니다. 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역경 속에 일생을 보냈습니다. 수만 리를 걸어야 했고, 굶주리며 길가에서 잠을 자고, 모아놓은 자료를 몽땅 잃어버리고 병이 나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만류에도 김정호는 "나는 평생 소원이 좋은 지도를 만들어 보는 것이오."하며 20여년 동안 전국을 세 번이나 돌고 백두산을 일곱 차례나 오르내렸습니다.
김정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아내는 이미 죽고 딸만 혼자서 외로이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정호는 딸의 도움을 받아 판목을 하나씩 새겼으며 10년 후에는 판목을 완성하였고, 1861년 철종 12년에 종이에 찍어냈습니다.
베토벤의 성공
베토벤의 생가를 방문하는 자는 누구나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베토벤이 기거하던 거실의 한 가운 데에 베토벤이 애용하던 피아노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 피아노의 건반은 움푹움푹 패여 있습니다. 그 자국은 베토벤이 얼마나 열심히 쉬지 않고, 또 절실히 수많은 낮과 밤을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며 살았는가를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천재는 우연히 생기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쿠퍼 박사의 인내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 사전 학자로 유명한 토마스 쿠퍼는 8년이나 걸려 사전의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히스테리 환자인 그의 아내는 남편이 집에 없는 동안에 서재에 들어가 그 자료들을 전부 난로에 넣어 태워 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쿠퍼는 크게 놀랐습니다. "누가 그랬어?"라고 쿠퍼는 고함을 쳤습니다. 부인은 "제가 했어요, 당신이 그 일에 몰두하다가 세상을 떠날까봐 그랬어요."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의 말에 쿠퍼는 몇 번이나 한 숨을 쉬고 난 후 "지독한 고생을 하게 만들었군." 하고 한 마디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서재에 들어가 즉시 처음부터 다시 자료 수집을 시작하였습니다. 또 다시 8년이 걸려 33,000 단어를 수록한 대사전을 만들었습니다.
음악가의 집념
독일의 고전 음악가 바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으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형님에게서 오르간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잘 가르쳐주지 않고 악보마저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바하는 형 몰래 밤마다 달빛을 이용하여 악보를 베꼈습니다.
덥수룩한 차림의 베토벤은 어느 날 빈에 있는 레스토랑을 들어섰습니다. 그는 피로에 지친 듯 의자에 푹 파묻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옆에 있던 메뉴 뒤에 악보를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웨이타가 "여보세요, 손님."하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베토벤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웨이터를 보더니만 "아아! 미안! 값은 얼마요? "라고 말하면서 호주머니를 뒤적였습니다. 이때 웨이타는 웃으면서 "손님! 손님은 아직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았는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아! 그랬던가? 그럼 무엇이든지 좀 가져와요."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계속 악보를 적었습니다.
청년의 꿈
수십 년 전 어느 맑은 가을날, 한 이탈리아인 청년이 커네티커트 주 하트로드에 있는 언더우드 공장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붉은 벽돌 건물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행인이 그옆을 지나가다가 넋을 잃고 건물에 몰두하고 있는 그 청년을 보았다면 한번쯤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나하면 청년이 아주 열중하고 있는 볼품 없이 낡은 붉은 벽돌에는 진기하거나 색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건물들은 뉴잉글랜드의 다른 수많은 공장들과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청년 안드리아노 올리베티에게 그 낡은 건물은 필생의 꿈을 의미했습니다.
그 당시 '언더우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타이프 라이터로 크게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기도 언젠가는 그와 같은 회사를 소유하고 '올리베티 ' 라는 이름을 타이프 라이터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세상에 부각시키겠다고 굳게 맹세했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실제적 이며 물질적인 건물을 새기면서 그가 기도를 집중시킬 수 있는 정신력인 이미지를 창조하고 있었습니다.
34년 후 이 청년은 올리베티 회사의 사장이 되어 미국을 다시 방문했습니다. 그때 그는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있는 회사로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언더우드 회사를 매입 했소." 수화기 속에서 흘러나온 그의 음성은 감격으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8백 7십만 달라를 지불하고 오랜 꿈이었던 타이프 라이터 회사를 인수한 것입니다.
안드리아노 올리베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언더우드 회사를 매입함으로써 그의 34년간의 꿈을 실현했습니다.
노력 없는 기도
몇년 전 한강 상류에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청년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 중간쯤 왔을 때 배에 구멍이 뚫리면서 강물이 배안으로 들어와 배는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두 청년은 즉시 그 배를 박차고 헤엄쳐 나왔으나 한 청년은 배에 그대로 앉아, 빨리 헤엄쳐 나오라는 두 청년의 외침에 모른 척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해 주시도록 나는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니 염려 없습니다. "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청년은 잠시 후에 배와 함께 물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어록·시·묘사
경건하게 기도하되, 힘있게 두드리라.
(W.G. 베넘/ 격언집)
노력이 없는 인생은 유죄고 기예가 없는 근면은 야비하다.
(J. 러스킨/ 예술에 관한 講話)
열심히 일하는 것의 대안은 없다.
(T.A. 에디슨/ 인생론)
'불완전'이 우리들의 어머니이고, 노력이 우리들을 강하게 해 줄 우리들의 매일의 양식이다. 고뇌와 비참과 근심과 슬픔을 환영하여라. 그러면 너희들은 쉽게 그것들을 감당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J. 반네스/ 현대 휴머니스트의 고백)
우리의 큰 원수는 방황과 주저이다 할까 말까하여 '말까'에 머물러 있는 것이 방황이요 주저이다.
(안창호/ 용단력과 인내력)
고개에 오르려고 하다가 꼭대기에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얼마나 칭찬할 만한 일인가.중도에서 넘어진다 해도 커다란 일로 애쓰는 사람들을 존경하라. 자기의 현재의 힘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본성의 힘을 되돌아보고 정 신의 소유자로서도 해치울 수 없는 일보다도 더 커다란 일을 자기의 마음에 그려본다는 것은 대단히 귀중한 일이다.
(L.A. 세네카/ 행복한 생활)
노력은 소수의 자가 다수의 자로부터 훔치는 것이다.
(필립스)
쓰고 단 것은 외부에서 생기고, 어려운 것은 내부에서,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부터 생긴다.
(아인슈타인/ 나의 최근 몇 해 이전)
쉴 사이 없이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곳에 인생의 참된 일은 전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보다 나아지는 것은, 우리들의 노력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
(L. N. 톨스토이)
명예는 정직한 노력에 있습니다.
(S. G. 클리블랜드)
입신함에 의 있으니 효도가 근본이요, 상제(喪祭)에 예 있으니 슬퍼함이 근본이요, 전진 (戰陳)에 질서 있으니 용기가 근본이요, 치국에 방도 있으니 농사가 근본이요, 왕위에도 있으니 계승이 근본이요, 재물을 생산함에 시기 있으니 노력이 근본이다.
(명심보감)
생각함으로써 생기고 노력함으로써 이루어지며 교만함으로써 실패한다.
(관자)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은 없다. 그렇지만 결의, 자신, 근면을 가지고 이를 오르지 않으면 안 된다.
(J. G. 안데르손)
겸손한 자만이 다스릴 것이요, 애써 일하는 자만이 가질 것이다.
(에머슨/ 보스론 찬가)
아몬드를 먹으려면 껍질을 까야 한다.
(T. M. 플라우투스/ 쿨크디오)
떨어지는 물은 돌에 구멍을 낸다.
(루크레티우스)
저 사람의 마시는 것이 나의 갈증을 풀 수 없고 저 사람의 먹는 것이 나의 주림을 구하지 못하나니 어찌 노력해서 내가 마시고 내가 먹지 않겠는가. 나는 장년기에서 쇠년기까지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기초를 삼아 먹을 때에는 식량을 달리 하지 아니하고 의복은 반드시 균등하게 입었고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 때에는 자신의 노력이 여러 사람보라 앞섰다.
(최치원/ 西山碑文)
힘쓸지어다. 부지런히 힘쓸지어다. 자포자기 이는 어떤 물건인가.
(이 색/ 목은집)
어제의 불가능이 오늘의 가능이 되며 전세기의 공상이 지금 사실로서 우리들의 눈앞에 출현하고 있다. 실로 무서운 것은 인간의 노력이다
(M. G. 마르포니)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P.A. 만졸리/ 기울어진 황도)
만사가 노력이나 성의만으로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면, 또한 그런 확고한 결과가 보증되어 있다면, 누가 성의를 다해 노력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와 같은 결과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 없음에도 자기의 길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전심전력하게 되고 성의를 다 바치는 그것이 오히려 인간이 살아가는 참된 자세이다.
(박목월/ 이름의 향기)
별로 즐기지도 못하고, 별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의기소침한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보다는, 실패로 뒤얽히더라도 큰 일을 감행하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얻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전자는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회색빛 황혼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T. 루즈벨트)
항상 좋은 목적을 잃지 않고 노력을 계속하는 한 최후에는 반드시 구제된다.
(J.W. 괴테/ 파우스트)
기(驪)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지만, 노마(鷺馬)도 열 마리면 곧 이에 미친다. <*바보도 노력하기에 따라 현명한 자가 된다.>
(순자)
편안을 생각하면서도, 노력은 계속하라.
(G. 허버트/ 명궁)
노력을 다하라. 숙명적인 노력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윈차 단편)
일생의 노력의 결과가 무엇이냐 하면 그것을 화폐 가치로 환산할 길이 없음은 물론이지마는 화폐말고라도 무슨 숫자로 표현할 성격이 별로 없다.
(이광수/ 흙)
노력해서 해결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
(테렌티우스/ 안드로스의 여인)
신의 왕국은 노력에 의하여 파악된다. 이것은 결국 악으로부터 탈각하여 선인이 되기 위하여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L. N 톨스토이)
닫는 말도 채를 치 했다. < *달리는 말에도 채찍을 치라 함이니, 일이 잘되어 가면 한층 더 노력하여 더욱 잘되게 하라는 뜻>
(한국 속담)
영달에 이르는 길은 노력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B. 프랭클린)
인생은 나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도록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생은 성공이 내 노력의 필연적인 결과가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었다. 나에게 노력 그 자체에서 생계를 찾으라고 가르쳐 주었으나, 또한 그 결과는 신에게 맡겨둘 것도 가르쳐주었다.
(A. 페이튼)
뜻을 세워 공부하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는 일과 같다. 뿌리와 싹이 날 때엔 아직 줄기가없고, 줄기가 생길 때엔 아직 가지가 없다. 가지가 자란 다음에야 잎이 달리고, 잎이 달린 다음에야 꽃과 열매가 달린다. 오직 북돋아 기르는 노력만을 잊지 않는다면, 어찌 가지와 잎이나 꽃과 열매가 자라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랴!
(왕양명)
위대한 사람은 단번에 그와 같이 높은 곳에 뛰어 오른 것이 아니다. 동반자들이 밤에 단 잠을 잘 적에 그는 일어나서 괴로움을 이기고 일에 몰두했던 것이다. 인생은 자고 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아가는 속에 있다.
(R. 브라우닝)
우공(愚公)이 산을 옮긴다. < *우공이란 사람이 태형(次形)과 왕옥(王屋)이란 두 산의 위치를 여러 해 걸려서 옮겼다는 고사에서 노력하면 결실을 본다는 뜻>
(列子)
나는 다음의 규칙을 죽을 때 다른 이에게남기겠다. '항상 네가 옳다고 확신하며 매진하라'
(D. 크로케트/ 자서전)
그대는 지휘하여 승리할 때나, 섬겨 손해볼 때나, 고통을 당하거나, 정복할 때나 늘 모루가 되든지 아니면 망치가 되어야 한다.
(괴테/ 콥타 할아버지)
인생이란 문제는 너무나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인생은 더 피할 수 없는 자신의 문제다. 어렴풋한 감상에 사로잡혀 공허한 깊이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자신의 사실로 돌아오면서 진정한 깊이가 어디 있는가를 깨쳐야 한다. 그리하여 우선 가까이 할 수 있는 손쉬운 일부터 나의 전심전력을 다하여 새로운 면을 개척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노력, 그것이 인생이다. "최선의 노력을 나는 다하였노라"고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거룩한 인생이리라. 빛나는 인생이리라
(박종홍/ 인생을 말한다)
승리의 여신은 노력을 사랑한다.
(G.V. 카툴루스/ 시집)
가마 속의 콩도 삶아야 먹는다. <*다 된 듯하고 쉬운 일이라도 실지로 손을 대어 힘들이지 않으면 제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말>
(한국 속담)
옥도 닦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않는다.< * 애쓰지 않으면 훌륭한 인간을 키워 낼 수가없다>
(예기)
감나무 밑에서도 먹는 수업하여라.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하에서도 제가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런 수확도 거둘 수 없다는 뜻>
(한국 속담)
하느님은 자기 날개를 쓰는 새를 키우신다.
(덴마크 속담)
하느님께 기원하면서 어깨로 밀라.
(스페인 속담)
부는 하느님의 것이지만 노력은 사람의 것이다.
(아라비아 속담)
나는 그에게 대꾸해 줬다 가소롭다는 듯이/ 당신의 노력은 허사로 끝날 것이요!/ 당신은어느 모로 보나/과거의 것에 속한 존재외다.
(하이네/ 독일 겨울 이야기 · 7)
명성을 위해서라면 누구나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누구인가/ 알려지지 않는 일에 혼신의노력을 하는 사람은?
(브레히트/ 비합법 활동을 찬양한다)
이 산을 오르려는 자,/ 골짜기에선 큰 괴로움을 만나리/ 그러나 올라감에 따라 떨어지리라./ 그러기에 신고(辛苦)도 즐거움으로 바뀔 때/ 오르는 것이 퍽 수월하게 보여,/ 빠른 흐름을 작은 배 타고 내려감과 같도다.
(A. 단테/ 신곡, 연옥편)
대륙을 발견하거나, 산맥을 횡단하고 나면, 그 저쪽에 또 다른 대양이나 또 다른 평원이 있게 마련이다‥‥ 오, 수고로운 인간의 손이여! 오, 지친 발은 어디 가는지 모른다! 이제 곧, 이제 곧, 똑똑히 보이는 산봉오리에 오르면,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지는 해를 배 경으로 황금향(黃金鄕)의 첨탑이 어렴풋이 나타날 것만 같다.
(스티븐슨/ 소년 소녀를 위하여)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
설 교 노 트
느헤미야의 사역
느4:15-23
서론
하나님을 중심하여 신앙으로 건설되었던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하여 마침내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의 침공으로 무너지게 되었고 유대 민족들은 비참하게도 고국 산천을 등에 지고 낯설은 이국땅으로 사로잡혀가 70년 동안이나 포로 생활들 하였습니다. 나라 잃은 민족의 쓰라린 서글픔을 지닌 유대 민족들은 일구월심 조국과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였습니다. B.C.536년 파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이때 유대 민족의 두 지도자가 등용되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여 정치 경제면에 부흥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그는 신앙에 대한 노력을 본받아 충성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느헤미야의 사역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사용하는 심정으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느헤미야 1장 2절 이하에 "유다에 남아 있던 하나니와 두 형제가 수산궁에 있는 느헤미야를 찾아와서 예루살렘 성읍이 황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저앉아 울면서 수일 동안이나 금식하면서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느헤미야의 불타는 심정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힘은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지 건설하는 원동력이 되어집니다. 가정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정을 바로 건설해 나아가고,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 사회를 바로 건설해 나아가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은 교회를 바로 건설하여 발전시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지상의 교회는 주님이 피흘려 건설하신 유일의 유산인 동시에 주님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2. 느헤미야는 하나님만 믿는 신앙의 자세로 사역을 했습니다.
느헤미야서 1장에 나타난 느헤미야의 기도의 내용에서 "예루살렘성 재건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리라는 신앙"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느1:11에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라고 하신 것을 보면, 예루살렘 성 건설은 어떤 사람의 힘이나 방법에 앞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막9:23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은 신앙의 사람들이 수행하여 나왔습니다. 여기 신앙으로 역사하였다는 말씀은
(1) 어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하는 행위입니다.
(2)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와 말씀대로 하는 행위입니다.
(3)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헌신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헌신이요, 봉사라고 하였습니다.
3. 느헤미야는 결사적인 자세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본문 4:15-23에 있는 말씀의 내용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려고 하고 결사적인 자세와 사역에 대하여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성스러운 사역을 수행하여 나아가는 차제에 산발랏과 도비야라는 두 인물이 나타나 건설 공사를 방해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응하여 느헤미야는 결사적인 각오와 자세로 사역을 수행하였는데 그 내용은
(1) 역군들을 절반은 무장을 하고 파수하며, 절반은 건설 공사로 사역하도록 하였고
(2)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에는 도구를 들고 사역하도록 하였고
(3)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까지 나팔을 불면서 사역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건설하고자 하는 불타는 사명감의 발로인 것입니다.
결론
이와 같이 예루살렘은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결사적으로 건설하고자 한 근본 요인은
(1)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2) 이스라엘이 은혜를 받고
(3)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최후의 필요한 사람
딤후 4:9-18
서론
성경 본문의 내용을 읽어 보면 사도 바울과 같이 선교 운동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의 이름과 행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을 중심하여 네 가지 사람이 나타납니다.
(1) 바울을 배신하고 떠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가는 "데마"가 있고 다음은 환난과 핍박을 회피하여 갈라디아로 가는 "그레스게"가 있고, 자신의 안일과 평안을 도모하여 달마디아로 가는 "디도"가 있었습니다.
(2) 바울과 고락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옥중에 있는 바울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의사 "누가"입니다.
(3) 바울에 최후 요구되는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선교 사업과 순교하는 일에 최후로 필요한 "마가"라는 인물입니다.
(4) 바울을 항상 반대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구리장색 "알렉산더"입니다. 이는 바울을 항상 괴롭히고 해를 많이 준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사람이 있다고 보는데 그중 최후의 필요한 사람인 "마가"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1. 마가는 자기 갱신에 노력한 사람입니다.
마가는 항상 자신을 반성하여 자기의 실수와 과오를 살펴서 깊이 뉘우치고 자기를 고쳐가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1) 자신의 연약하고 비겁한 점을 갱신하였습니다.
막14:51-52에 베 홑이불을 두루고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너도 예수님의 제자냐? "고 묻자 벌고벗고 도망갔습니다. 이와 같이 연약하고 비겁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회개하고 이제는 믿음이 강하고 담대하여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 최후의 필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2) 자기 안일과 평안을 추구하던 점을 갱신하였습니다.
행13:13에 보면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당시 바울을 따라 구브로 지방으로 전도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마가는 이처럼 자기 자신의 안일과 평안을 추구하는 잘못을 고치고 이제는 주님과 바울과 같이 환난도 핍박도 감수하기 위하여 바울에게 필요한 인물이 되어 로마에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웃사람에게 도의와 의리를 배신하였던 점을 갱신하였습니다.
행15:36-41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 때문에 투쟁을 벌이다가 전도의 노선을 달리하였던 것입니다. 그 내용은 마가의 과거 도의와 의리를 배신하고 떠났던 문제입니다. 이제는 뉘우치고 회개하며 신앙의 지조와 의리가 두터운 사람이 되어 바울에게 최후 필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2. 마가는 주님 앞에 유익한 사람입니다.
여기 마가는 본래 주님의 일에 유익하였던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는 깊이 회개하고 새로워져서 주님의 일에 매우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신앙인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매우 훌륭하다가 나중에 시원치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여기 마가는 처음에는 그의 신앙이 시원치 아니했으나 나중에 참으로 좋아진 사람입니다. 여기 마가가 주님의 일과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는 점은
(1) 순교를 할 바울과 같이 생사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신앙의 용기와 담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연약하고 비겁하여 주님을 버리고 도망쳤으나 이제는 그의 신앙이 강하고 담대해졌다는 말입니다.
(2) 주님을 위해 바울과 같이 십자가를 질 각오가 서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또는 바울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기 싫어서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도망가는 "데마"를 위시하여 "그레스게"와 "디도"와는 달리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각오하는 마가는 바울을 찾아 로마로 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3) 지도자 바울을 끝까지 아끼고 위로하고 도와주려는 의리의 사람입니다. 방금 옥중에서 순교를 당해야 할 바울에게 진정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줄 사람은 마가뿐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본받을 만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일과 순교자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은 믿음이 강하고 다음은 십자가를 각오하고 주님의 복음 사역을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는 자입니다.
결론
마가는 바울과 주님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믿음이 자기 갱신에 부단히 노력하여 주님 앞에 유익한 사람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전진하는 삶
빌3:10-16
서론
우리들은 중단 없이 전진하는 신앙의 사람이 되고, 다음은 우리 교회도 중단 없이 전진하면서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보자는 의도에서 "전진하는 삶"이라는 제하에서 몇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본서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신앙 고백에 의지하면 그는 중단 없이 전진하는 삶을 살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의 신앙생활의 전진은 결코 맹목적인 전진이 아니고 분명한 푯대와 방향을 설정하고 명분있는 전진을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 사도 바울의 신앙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참여함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의 신앙의 푯대가 바로 우리 전체 크리스찬들의 삶의 푯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 가지의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전진하였습니까?
1.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혀 전진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전진은 스스로 전진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붙잡고 가시므로 중단 없이 전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빌3:12). 그러면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혀 중단 없이 전진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 내가 고의적으로 예수님을 저버릴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 다 버리고 살 수 있어도 예수님을 저버리고서는 ① 우리 양심이 괴로워 살 수가 없고 ② 마음이 불안해서 살 수가 없고 ③ 나의 삶이 허무하고 무의미하여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하늘나라의 영광을 사모하여 전진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어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여 전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백하기를 ① 이 세상 많은 물질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② 높은 지위와 명예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③ 부귀와 영화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배설물같이 버리고 전진하노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전진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 약속의 말씀위에 건설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뿌리요, 행위는 열매라고 합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상급을 위해서 바울이 힘써 전진한 행위는 두 가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써 전파한 생활입니다. 이 복음 전파는 ①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②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행위요 ③ 나 자신이 복받는 첩경입니다. 복음 전파는 나를 통하여 주님을 나타내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복음을 전파하는 행위 이상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 없다고 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설하고 봉사한 생활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어떠한 고난도 사양치 아니하고 전진하였습니다. 이는 ① 주님 사업에 승리요 ② 주님의 나라 확장이요 ③ 현재와 미래의 가장 귀중한 유산을 창조해 가는 것이 교회 건설이요, 발전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본문 빌15-16에 자기완성을 위해서 중단 없이 전진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나의 신앙이 성장치 못하고 전진없는 원인을 바로 파악해야 됩니다.
(1) 나 자신의 부족을 자인하고 자기완성을 위해서 전진해야 됩니다.
(2) 나 자신의 약점을 자인하고 근면 노력해야 됩니다.
(3) 나 자신의 무능을 자인하고 인내로써 성실하게 전진해야 됩니다. 바울은 전파한 후에 버림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쳐 복종시킨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가 중단 없이 전진할 이유는
(1) 주님 재림이 임박했고
(2) 나의 구원 완성을 위해서 전진해야 합니다.(히10:37-39).
생산적인 삶
눅19:11-17
서론
본문의 비유에는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가면서 하인들을 불러 은 한 므나씩을 주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여 이익을 내라고 부탁하였는데 이 하인들 중에는 크게 두 가지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① 첫째 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생산적인 사람과 ②다음은 은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온 비생산적인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신령한 자본을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긴 하인과같이 생산적이기를 바라면서 그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받은 은사를 최선을 다해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생산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최선을 다해서 활용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 활용을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1)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선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9:4에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아무도 일할 수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언제나 밝은 낮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없는 밤도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환난의 밤도 찾아오고 노쇠의 밤도 찾아오고 죽음의 밤도 찾아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시기를 바로 포착하여 일하면서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나에게 주신 재능을 선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롬12:6-8절에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일곱 가지 은사를 각 사람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받은 은사대로, 또는 내가 받은 직책대로 최선을 다해 선용함으로써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나에게 주신 건강과 힘을 선용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롬6:13에 "너희 자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평화의 도구로 또는 거룩한 도구로 하나님께 바쳐 활동함으로써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2. 받은 은사의 선용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받은 바 은사를 선용하는 생산적인 사람의 생활은
(1)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활동한다고 하였습니다.
롬12:11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 "고 하였습니다. 모든 예배에 참석은 물론 교회 일에 적극 참여하여 열심으로 봉사해야 될 것입니다.
(2) 힘써 노력한다고 하였습니다.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3) 수고와 고난을 감수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20:24에 환난과 박해가 기다려도 자기가 받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죽음도 사양치 않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열심으로 노력하고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이 생산적인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3. 받은 은사를 선용하는 사람의 양상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선용하는 생산적인 사람은
(1) 자기의 책임을 포기하지 아니 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맡은 책임을 도피하거나 포기하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해 감당해 나아갑니다.
(2) 이 현실을 방관하거나 도피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현실을 도피하여 염세주의나 고행주의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이 현실에 깊이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다고 하였습니다.
(3) 이 현실을 정화시키는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어두워가는 세상에서 빛 노릇을 바로 하고 썩어 냄새나는 세상에서 짠소금 노릇을 바로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역사 속에 위대한 유산을 생산해 놓을 수 있는 생산적인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왜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라는 그 이유에 대해서
(1) 우리 주님의 소원과 요청 이 기 때문입니다.
(2) 나 자신의 구원 성취와 상급을 위해서입니다.
(3) 이 역사 속에 위대한 유산을 남겨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만 위해 살지 말고 남을 위해 살면서 비생산적인 사람이 되지 말고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심으로 주를 성기라
롬12:11
서론
롬12장은 우리 성도들의 의무와 일상에 행할 일체 선행들을 한데 모아 기록하여 놓은 것입니다. 그중에서 11절 말씀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인데 이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의 태도에 대해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 것
사도 바울이 성도들의 신앙 태도에 대해 권면하신 본문의 내용 중 "열심을 품고"라는 말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더욱 노력을 해야 할 것을 말해 줍니다. 계3:14 이하에 보면 나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책임과 권면이 나오는데 이 교회의 문제는 그들의 신앙 태도가 미지근한 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든지 덥든지" 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데 이는 "차든지"에 강조가 있지 않고 그들의 신앙 태도에 있어서 더욱 노력하여 뜨거워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열심을 품지 않고 노력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게으름입니다. 게으른 자는 노력할 수 없습니다. 잠6:9-11에 보면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라고 게으름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열심에 반대되는 것은 게으름인 것입니다.
2. 열심으로 주를 봉사하자
인생은 하나님을 따라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 사람들은 이미 죽은것입니다. 요15:4에 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연합은 하나님 편에서의 무궁한 은혜의 발로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이 인간에게 무엇인가 내세울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간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예수님과 연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가 일컬음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성경이 주는 교훈은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 열심히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봉사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태도로 주님을 섬기는가를 보십니다. 그렇다면 열심으로 봉사하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1) 전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온전한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의심 없이 굳건한 믿음을 소유하여 흔들리지 않고 더욱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2)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8:19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제자를 삼아 그들을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신 것과 같이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하기를 명하신 것입니다. 즉 열심히 전도하는 일뿐 아니라 양육과 제자 훈련을 통하여 제자 삼는 일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일의 대표적인 예가 바울과 디모데, 디모데와 충성된 사람, 충성된 사람과 다른 사람들(딤후2:2)입니다. 이를 두고 영적인 4세대라고 합니다.
결론
사도 바울이 롬12:11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대한 권면을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은 게으름이 우리 신앙생활의 최대 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할 것과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일에 우리는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과수원지기의 애원
눅13:1-9
서론
예수님께서는 중대하고 깊은 교훈을 하실 때에는 언제나 비유를 들어서 하셨습니다. 본문은 세 가지 실례와 비유를 들어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6절부터는 포도원에 열매 맺지 아니하는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동산 주인과 과수원지기의 대화를 통하여 깊은 진리와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과수원지기는 예수님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유대인을 가리킨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과수원지기의 애원은 바로 예수님의 하나님께 향하여 호소한 애원인 것입니다.
1. 포도원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경고에 대하여
본문 7절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고 하셨습니다. 이 경고는 매우 심각한 경고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저주와 형벌의 선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심판의 선고를 하시게 된 이유는
(1) 삼 년 동안이나 기다렸으나 열매를 맺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삼 년 동안이나 복음을 받고 은혜를 받았으면,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2) 귀한 땅만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인의 요구와 기대를 거부하고 손해만 끼친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땅도 노력도 시간도 낭비시키는 비생산적인 존재가 될 뿐 아니라, 백해 무익한 존재가 되었으니 생존의 가치가 없다는 말입니다.
(3) 나무로서의 구실을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커지고 잎만 무성할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열매는 나무로서의 본성과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는 길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신자로서의 많은 은혜를 받고도 자기의 본성과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는 눅3:9에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고 하였습니다.
2. 과수원지기 되시는 예수님의 애원에 대하여
본문 8-9절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라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리면 그대로 두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과원지기의 이 애달픈 애원 속에 함축되어 있는 깊은 의미는 첫째, 나무를 사랑하여 생명 보존을 위한 애원이고, 둘째는 어찌하던지 주인에게 필요한 나무가 되게 하겠다는 애원이고, 셋째는 자기의 본성과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나무로 만들어 보겠다는 애원이기도 합니다. 이제 간절한 애원을 정리하여 보면
(1) 금년에도 그대로 두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시간적인 유예를 하여 달라는 애원입니다. 이 시기는 매우 중요한 결단의 시기요, 기회라는 말입니다.
(2) 두루 파고 거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과원지기로서의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자기희생을 각오하고 약속하는 애원이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눈물과 땀과 피를 쏟아 회생하여 구속 사업을 완성하시겠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3) 이후에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찍어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①기름진 땅에 심어진 무화과나무 ②삼 년 동안이나 많은 은혜를 받은 무화과나무 ③최후 열매를 맺도록 시간적인 여유와, 과원지기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이 세상에 주재 가치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이는 그 책임이 주인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과원지기에게 있는 것도 아니라 무화과나무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년으로 미루지 말고 금년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신앙의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들은 하나님의 포도원 되시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성장하여 이제는 열매를 맺을 시기가 왔습니다. 열매를 많이 맺어 과수원지기 되시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모든 일에 궁구하며
전9:1
서론
본문에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이라고 하였는데 여기 "궁구"라는 말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속 깊이 연구한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보통 예사롭게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심사숙고하는 일입니다. 전문적으로 철저하게 알아보고 바로 파악하려는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1. 모든 일에 궁구하라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을 압니다. 이런 때 우리는 모든 일에 궁구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적은 일이라고 해서 경홀히 여기는 경거 망동은 큰 손해를 초래합니다. 적은 일 하나의 실수는 큰 일을 바르게 처리할 수 없다는 전제가 되니 오히려 적은 일 처리가 더욱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도다"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모든 일에 궁구해야 할 것이나 작은 일에 더욱 힘써서 궁구해야 할 것입니다.
2. 신령한 일에 더욱 궁구하라
일반 세속적인 일과는 달리 우리는 신령한 일에 더욱 궁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엡1:1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마음 눈이 밝아져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과 능력이 어떠함을 알게 하신다고 하였으니(엡1:18-19) 신령한 하나님을
밝히 알면 그 밖에 모든 신령한 일들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자라나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궁구해야 하며 신령한 일에 더욱 궁구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과 그의 예정하심과 섭리하시는 모든 뜻을 알아야 옳은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더욱 풍성하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3. 모순 같은 진리를 궁구하라
우리 성도는 모든 일에 궁하고 신령한 일에 더욱 궁구하여야 하겠는데, 성경이 교훈하시는 하나님 말씀의 중심 뜻은 모순 같으나 진리인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부자보다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라든지 "살고자 하면 죽고 죽어야 산다"라든지 "낮아지는 자가 높아지고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진다"는 등등의 말씀은 세상의 일반 상식에 비추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모순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은 모순이 아닌 참으로 진리입니다. 선한 자가 핍박을 받아 수난을 겪으며 악인들이 치부 출세하는 모순 같은 세상 일을 신령한 눈으로 바로 보는 궁구가 필요합니다. 이런 일을 이해하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아 그 진리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말씀을 더욱 깊이 궁구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결론
세상 일에도 궁구해야 하나 그래서 바른 걸음을 걸어야 하겠거니와 더구나 신령한 일에 더욱 궁구하여 하나님의 오묘하신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또한 말씀에 깊이 궁구하며 세인에게 숨겨진 진리의 비밀들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온전하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노 인
성 경 활 용
1. 노인의 의미
(1) 노인
(시1l9:100)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2) 백성의 어른들
(렘19:1) 가서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백성의 어른들이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을 데리고
(3) 수가 높은 자
(창25:8)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4) 장로
(사24:23)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고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니라
2. 노인에 대한 성경의 묘사
(1) 지혜로운 노인
(욥12:12)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
(2) 의로운 노인
(잠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 신앙심 깊은 노인
(눅2:37) 과부된 지 팔십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4) 모범적인 노인
(딛2: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며
3. 노인에게 나타나는 육체적 징후
(1) 자식을 낳지 못함
(창18:11)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2) 눈이 어두워짐
(창27:1)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삼상3: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창48: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이지 못하더라
(3) 감각 기관이 퇴보함
(삼하19:35) 내 나이 이제 팔십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까
(4) 오한에 시달림
(왕상1:1)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5) 힘이 쇠약해짐
(시71:9)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4. 노인의 구분
(시9O: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락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5. 노인이 할 일
(1) 백성을 지도함
(수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2) 옛날 일을 전승함
(신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3) 결실을 맺음
(시92:14) 늙어도 결실하며 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6. 노인의 영광
(1) 지혜와 명철을 얻음
(잠3: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2) 원숙함
(욥5:26) 네가 장수하다가 무덤에 이르리니 곡식단이 그 기한에 운반되어 올리움 같으니라
(3) 영적 아름다움
(잠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4) 결단적 신앙을 소유함
(수24:15)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5) 견고한 믿음을 소유함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6) 주를 경외함
(사34:11)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라
(7) 아름다운 백발
(잠20:29)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7. 의로운 노인에 대한 축복과 약속
(1) 하나님이 돌보심
(사46: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기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2) 생명의 연한을 다 채움
(사65: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3) 공경을 받음
(레19:32)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4) 버림을 당하지 아니함
(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5) 손자를 얻게 됨
(잠17:6)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6) 구원을 받음
(시91: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7) 평강을 얻게 됨
(잠3:2)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8) 평안히 죽게 됨
(창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9) 꿈을 꾸게 됨
(행2:17)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8. 노인에 대한 젊은이의 자세
(1) 공경할 것
(잠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2) 부모에게 하듯 할 것
(딤전5:1-2)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3) 시종동
(왕상1:15)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종하였더라
(4) 먼저 말을 하도록 기다릴 것
(욥32:7) 날이 많은 자가 말을 낼 것이요 해가 오랜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으나
(5) 교만하지 말 것
(사3:5)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6) 긍휼히 여길 것
(대하36:17)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7) 지식을 빼앗지 말 것
(욥12:20) 충성된 자의 말을 없이 하시며 늙은 자의 지식을 빼앗으리라
9. 노인이 장수하는 비결
(1) 부모를 공경함
(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2) 탐욕을 미워함
(잠28:16) 무지한 치리자는 포학을 크게 행하거니와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하리라
(3) 여호와를 경외함
(잠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4) 의로운 길로 걸아가야 함
(신34:7) 모세의 죽은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5) 어미를 놓아줌
(신22:7) 어미는 반드시 놓아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10. 노년에 당하는 어려움
(1) 영적 분별력을 상실함
(왕상11:4) 솔로몬의 나이 늙은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2) 완고해짐
(전4: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소년은 늙고 둔하여 간함을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3) 소외당함
(신28:50)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4) 존경을 받지 못함
(애5:12) 방백들의 손이 매어달리며 장로들의 얼굴이 존경을 받지 못하나이다
11. 노인에게 임하는 재난 및 심판
(1) 잡히게 됨
(렘6:11) 그것을 거리에 있는 아이들과 모인 청년들에게 부으리니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히리로다
(2) 멸망하게 됨
(신32:25)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청년 남자와 처녀와 젖 먹는 아이와 백발 노인까지리로다
(3) 성문에 앉지 못함
(애5:14) 노인은 다시 성문에 앉지 못하며 소년은 다시 노래하지 못하나이다
(4) 수치를 당함
(사20:4)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뵈이리니
(5) 인맞지 아니한 노인은 죽음
(겔9:6)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관련원어풀이
1. !yn quz: 제쿠- 님
노년, 늙은 나이.
(창21:2, 44:20)
2. hb;yce 세- 바
(1) 백발.
(창42:38, 44:29)
(2) 백발을 한 사람.
(신32:25)
(3) 노년, 늙은이.
(창15:15 , 룻4:15)
3. vyviy: 야 쉬- 쉬
노인, 늙은이.
(옵12:12, 15:10)
4. @qez: 자- 켄-
(1) 노인, 늙은이.
(창18:11, 욥32:4)
(2) 이스라엘의 장로들, 우두머리, 통치자.
(출3:16, 신19:12)
5. !ymy: 야-임
(1) 시간, 시기, 때.
(창47:8, 왕상10:21)
(2) 생명의 때에, 일생.
(수13:1, 욥38:12)
(3) 오랫동안 살다, 늙은이.
(렘6:11)
6. presbuvth" 프레스부테스
나이 많은 사람, 노인.
(눅1:18, 딜2:2)
7. presbuvtero" 프레스부테로스
연상의, 나이 많은 장로, 노년의 노인
(행2:17, 딤전5:1)
설교예화자료
미수(米壽)
미수란 문자대로 '米의 해'란 것이지만, 동양에서는 88년째의 탄생일을 나타냅니다. 米라는 글자가 쓰이는 것은 음식과는 관계없이 米라고 하는 한자 그것 자체 때문인 것입니다. 米를 3개로 분리하면 八十八이 되며, 맞추면 88이라는 뜻이 됩니다. 비슷한 호칭이 77세, 99세의 나이를 나타내는 경우에도 쓰입니다.
'喜'라고 하는 한자를 흘려 쓰면 " "가 되고, 七과 十과 七이라는 3개의 요소가 결부되면 '기쁨의 나이', 즉 '희수(喜壽)'가 됩니다. 99세는 '백수(百壽)' 즉 '하얀 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노년의 백발이나 대머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百이라는 한자에서 一을 빼면 白이 된다는 것뿐인 것입니다.
나이를 축하하는 의식은 60세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약간 너무 빠르지 않은가 생각되지만, 수세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일본의 속담에 "인생 불과 50년"이라는 것이 있고, 이전에 중국에서는 장수 축하가 40세에 시작된 적도 있다 합니다.
만 60세는 환갑, 회갑(일본에서는 '환력')이라 불리워지며, 동아시아의 60년 역법에 있어서도 태어난 해와 같은 간지의 해에 해우할 수 있다는 뜻에서 특히 중요한 측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60년째의 탄생일이나 출생의 날을 회상하는 것이 되어, 일종의 환생이라고 간주됩니다.
이전에는 이 해에 이르는 남성을 지역 사회에서의 자기의 임무에서 해방되어 가정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할 수가 있었던 것이어서 그들은 '노인장' 즉 '은퇴한 주인'이라 불리웁니다. 생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일적이 은거하여 스스로가 선택한 길에 몰두한다 하여, '낙은거' 즉 '즐거운 은퇴'라 부른 것입니다.
늙은 나이가 문자대로 '기쁨의 나이'가 되기 위해서는 한층 더 노력이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교과서
"일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손자들은 노동의 신성함을 알게 되지요, 열심히 일하는 할아버지를 지켜본 이들이 밖에 나가 흥청망청 놀거나 못된 짓만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
대한 노인회 마당에서 열린 '할아버지 할머니 솜씨 큰 잔치'에 참가해 소형 지게를 만드느라 바쁜 손길을 놀리던 한 할아버지는 "일하는 노인은 근면 정신을 가르치는 살아있는 교과서"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부산 출신인 그 할아버지가 소형 지게 등 공예품을 만들게 된 것은 2년 전부터 였습니다. 젊었을 때 목수일을 하기도 해 손재주가 남다른 그는 하는 일 없이 노는 자신이 점점 무력감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집 주위에 흩어져 있는 나무 조각을 주워 모아 소형 지게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만든 지게는 크기는 작지만 농촌에서 쓰이는 지게와 흡사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지게를 사려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소형지게가 팔려 나가는 것이 신기해 이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손은 마디마디에 못이 박히고 상처투성이가 됐지만 삶의 활력을 되찾는 데에 큰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집안 어른인 자신의 변모에 따라 집안의 분위기가 크게 바뀐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자들이 자신의 공방을 기웃거리며 일을 돕기도 했고 평소 집에 붙어 있기보다는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던 손자들이 책과 씨름하는 시간도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생의 원숙경(圓熟境)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하고 70을 종심(從心)이라 하는데, 이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공자는 73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70을 넘어 자기의 긴 인생을 회고했습니다.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어,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이라고 합니다. 50세에 천명을 알아,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에 남의 이야기를 순순히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되어,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70세에 이르러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하여도 인간의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유명한 말입니다.
이순이란 어떤 경지입니까? 이순은 '역이(逆耳)'와 반대되는 말입니다. 역이란 귀에 거슬린다는 뜻입니다 충언역이(忠言逆耳)라, 양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고 했습니다.
이순은 문자 그대로 귀가 순하다는 뜻입니다. 귀가 순하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공자는 60에 이르러 인생의 많은 지혜와 경험과 견식을 쌓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원숙경에 이르른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이 넓고 원만하여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곧 이해가 되었습니다. 나와 생각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런 경지를 가리켜 이순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넓은 아량과 포용력을 가지고 정성스럽게 경청하고 깊이 이해하는 것이 곧 이순인 것입니다.
실로 공자가 60세에 이르러 이순했다는 말이나 성 인(聖人)의 성(聖)자가 귀 이(耳)자로 시작한다는 사실은 모두 함축된 뜻이 깊다 하겠습니다.
겨울 나이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보기가 쉽습니다. 산도 보이지 않고 꽃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보이지 않기가 쉽습니다. 그야말로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쳐다보지(looking)만 살펴서 보지(seeing)는 않고, 남의 말을 듣기(hearing)는 하면서도 경청(liste-ning)하지 않고, 만지(touching)면서도 진실로 느끼지(feeling) 않기가 쉽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주마 간산격으로 대충대충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찮은 풀 한 포기에서 생명력을 읽고, 시시한 매미 소리에서 우주의 심포니를 듣고, 여리디 여린 코스모스에서 짙은 프랑스 향수의 냄새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겨울마는 무엇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우리는 자연 질서의 위대함, 인생의 무상함,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인간의 본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보통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겨울 나이에 와서 느끼고 있습니까? 왜 전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해 특별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인생은 오십부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 나이 사람들은 역시 인생이란 오십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사항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늦게 의학 공부를 시작한 슈바이처 박사의 예를 들먹이기도 합니다.
좀 지나친 발상일지도 모르지만 사철로 치면 오십세는 이미 싱싱한 봄의 나이, 푸르른 여름 나이, 성숙한 가을 나이를 지난 겨울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겨울 나이의 앙상한 나뭇 가지는 오늘도 싱싱한 봄, 푸르른 여름, 성숙의 가을나이들에게 "인간의 본질을 읽으라.", "삶의 본질을 터득하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변화를 창조하는 노인
엘파소(ELPASO)의 제일 은행에 이 은행의 처사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이항의자들은 그들 소규모 회원들을 위하여 자유로운 당좌 예금과 신용 거래 카드를 요구하기 위해 몰려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행장의 대답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항의 자들은 연좌 농성을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항의 단체 중 67세 된 마가렛 쿠흔이라고 불리는 무뚝뚝하지만 재빠르고 감각이 뛰어난 부인이 만든"Gray Panther"라고 불리우는 단체가 있었는데, 각기 다른 교회에서 은퇴한 그녀와 그녀의 동창생 5명으로 구성된 이 "Gray Pan-ther"라는 단체는 엘파소의 천막 교회에 본부를 설치했습니다.
그들의 근본 목적은 새로운 생활 양식의 개발과 프로그램의 계획 그리고 노인들을 위한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조직의 확대 재생산과 끊임없는 자신들의 변화 발전에 의해 그 위원회에 노인들의 가정을 연구할 수 있는 법률 조직과 노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좋은 법을 만들기 위해 위원회에서 교섭하는 조직이 있습니다.
마가렛 쿠흔 여사는 "노인이 노망이 드는 것은 절망과 부패에 의해서 가속화되고 있다. 고정된 은퇴 관념은 인간성을 상실시키며 이것은 우리의 사회가 어리석게도 한창 일할 나이에 그 능력을 묶어버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힘없고 가련한 노인이 아니라 변화를 창조할 능력을 갖고 있다. "고 말합니다.
이제 이 "Gray Panther"의 위력은 물론 그 회원들 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고물장수 할머니
"애를 포데기에 싸서 고물이랑 같이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키웠어요. 그러다가 애가 폐병에 걸려 다 죽게 되었죠. 그래 낮에 고물장수해서 번 돈으로 저녁마다 병원에 가서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그때 병원 수녀님과 천주님께 약속했어요. 애만 살려 주면 죽을 때까지 성당에 나가겠다고요. 그게 벌써 13년됐어요."
영락 모자원에 살고 있은 안나(70세)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백일도 채 못 되어 부모를 잃은 손녀 마리아는 보살핌으로 바르고 맑게 자라 이제는 어엿한 초등 학교 졸업반 소녀(13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들어 부쩍 몸이 불편해진 할머닌 그나마 고물장수도 할 수 없게 되어, 동회에서 나오는 양곡과 모자원에서 주는 생활 보조비 이외에는 전혀 생활 대책이 없는 형편입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걱정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주위에선 앨 미국에 입양시키라고들 해요. 한편으로 그러는게 애에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디 지 부모 밑에 있는 것만 하겠어요. 그래도 지한텐 내가 어미나 마찬가진데‥‥ 더 바라는 건 없어요. 그저 이놈 공부시켜 중학교, 고등 학교 가는 거 보고 죽는 것밖엔, 무조건 천주님께 빌어요, 이때까지 돌봐주셨으니 앞으로도 돌봐주시겠거니 하고요."
늙은이를 버리는 지게
옛날도 아주 오랜 옛날, 어느 산골에 나쁜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나이에게는 늙은 아버지가 계셨는데, 나이가 많아 일을 못하시게 된 데다가 오랫동안 병을 앓아 늘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나이는 갈수록 늙은 어버지를 싫어하고 천대를 했습니다.
"밭일이 바쁜데 일 하나 도와주지도 않고 누워만 있으니 어디 견딜 수가 있어야지."
사나이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되레 괜찮겠지마는, 뭣이 먹고 싶다고 별의별 걸 다 찾지요. 그러면서도 대소변까지 혼자 못보니 사람이 못살 지경이라구요. 다른 집 늙은이들은 일 못할 나이가 되면 시원시원히 돌아가시던데, 우리 집은 운수가 나빠 그런지 참 속상해 못살겠군요." 하고 눈살을 찌푸립니다.
늙은 아버지는 앓아 누워서도, 맘속으로는 몹시 야속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 귀히 안아 기른 내 아들이 지금와서는 저렇게 불효하는구나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쇠약해진 노인이 마음까지 괴롭게 되니 병은 점점 더 중해지고, 아들 내외의 천대는 나날이 심해만 갔습니다.
"오냐,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싫어한다면, 차라리 산에 갖다 버리든지 물에 집어넣어 버리든지 해라. 나도 더 살고 싶지 않다. 내 목숨 내가 끊지 못해 이러고 있는거니까 어서 나를 내다 버리려무나."
늙은 아버지는 기가 막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이 그날 밤에 제 아내와 의논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가 싫어서 이 집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모양이니, 내보내 드리는게 좋겠소. 산이나 물에 가고 싶어하니 그렇게 해 드립시다. "
아내가 반가운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시구료. 늙은이의 소원을 모르는 체 하고 있어서야 되겠어요? "
"됐소, 내일 아침에 내보내 드리기로 합시다. "
이튿날 아침 사나이는 뒤꼍에서 다 낡아 버리게 된 지게를 내어와서, 병든 아버지를 지게에 올려 앉혔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웬일인가 싶어 물었습니다.
"산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그럽니다. 가만히 앉아 계십시요."
"산 구경이라니, 늙어 병든 사람이 산 구경을 해서 무얼 한단 말이냐? "
"방에 누워 있기보다 좋을 거예요."
사나이는 아버지를 지게에 올려 앉혀 지고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던 사나이의 아들이 할아버지를 지고 가는 자기 아버지를 보고 달려왔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를 지고 어딜 가세요? "사나이는 아들을 보자
"참, 너 잘 왔다. 네가 좀 져라."하며 지게를 벗어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네 할아버지는 집에 있느니보다 산에 가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지금 이사를 가는 길이다. "
"이사를요? "
"어서 짊어져, 저 골짜기로 들어가자."
산길은 점점 험해지고 나무는 우거져, 대낮에도 어두운 깊은 산속이 되었습니다. 성한 사람도 길을 찾아 나오기 어려운 곳에까지 오자, 사나이는 큰 바위 밑에다 노인을 내려놓게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들더러 되돌아가기를 재촉했습니다. 아들 아이가 "아버지, 할아버지를 혼자 두고 가시면 어떡해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나이는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이놈아, 네 할아버지는 죽을 때가 됐으니까, 산에 버리고 가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와!" 하며 부리나케 산길을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아이는 할아버지를 버리고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고는 사나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지게를 가지고 가야지요."
"이놈아, 그 지게는 못쓰게 된 게 아니냐, 버리고 그냥 빨리와."
아버지가 재촉을 하는 데도 아들은 할아버지 곁에까지 가서 그 다 찌그러진 지게를 짊어졌습니다.
"할아버지, 여기서 잠간만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꼭 다시 모시러 오겠어요."
그리고는 아버지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아니, 그 지게는 원하러 가져오느냐?"
"아버지, 이 지게는 잘 두어야겠어요. 두었다가 아버지가 늙으시면, 아버질 버리러 갈 때 또 써야 하지 않아요? "
이 말을 들은 사나이는 갑자기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같이 머리가 명했습니다.
'내가 늙으면 그땐 아들 놈이 나를 지게에 담아 갖다 버리겠구나!'
사나이는 우두커니 서서 아들이 지고 있는 낡은 지게를 노려보았습니다. 지금 그 지게에실려온 건 늙은 아버지였지만, 이 다음에 자기가 늙었을 때 아들이 자기를 지고 산에 버리러 오는 광경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 내가 참으로 천하에 못할 짓을 했구나. 아버지도 나를 기를 때는 귀여워하며 길렀을텐데. 내가 그 아버지가 늙었다 해서 산에다 버리고 가다니니 ! '
사나이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도로 산을 올라갔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누워 있는 앞에 서서, 사나이는 땅에 두 손을 짚고 엎드려 절하며
"아버지, 제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어서 집으로 내려가십시다. "
하고 사죄한 후, 노인을 업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 후부터 사나이는 아주 딴 사람이 된 듯이 늙은 아버지를 잘 부양하였습니다.
귀성(歸省)
날 바람부는 쪽으로 데려가다오
아들아, 우린 내가 아닌 곳에 와 있다
어느 비안개 심한 이른 아침
논밭마다 쓰레기차가 들락거리고 차가 들락거리고
부동산 투기꾼의 자가용이 몰려오고
여기저기 공장 굴뚝이 높아 가면서
당산나무 아래 얼굴들이 하나 둘 줄어 들더니
그리하여, 날밤 새우며 수작하는 젊은 것들과
앞개울 버들강아지 같던 아이들 웃음마저 끊기더니
눈보라 폭풍이 몇 차례 더 지나간
어둡고 흐린 어느 저녁 무렵
대대로 이어온 일거리조차 빼앗긴 채
우두커니 공원 주변을 서성이는 천덕꾸러기
그저 정부미나 축내는 양로원 식객으로 내몰렸구나
어느새 추억의 잔가지만 늘었구나
그러나 우리가 그 땅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와 나 추방당한 사람들
그러니 행여 날 슬픈 눈물로 위로하지 말아라
이제 얼마나 더 고되고 외로워지겠느냐
오오 그만, 흰 그리움의 뼈대마저 버리리니
아들아, 제동장치 없이 달려가는 고속버스
이 속도 빠른 문명의 열차에서 날 내려다오
그리고 바람의 길따라 열리는 그곳
저 소문으로 떠도는 약속의 땅을 보여다오
지혜로운 늙은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젊고 착한 내외가 땀흘러 가꾸는 가나안
젖과 물이 흐르는 그곳에 안착할 때까지
끝끝내 잠들지 못한 혼으로 떠도는 날들이여.
-임동학 모이세(시인)-
늙은 것도 서러운데 갈수록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노인들.
비록 현재 젊었기에 피부로 느끼지는 못할지 몰라도 바로 몇 십년 후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토막 이야기
동물들의 세계에는 힘이란게 지배하나 인간세계 이끄는건 노인들의 지혜로다
크고작은 가정일과 공동체의 어려움을 슬기로써 풀어가는 젊은사람 귀감되니
옛날노인 말씀중에 그릇됨이 없다하듯 집안살림 나라살림 귀담을건 노인말씀
하루하루 늙는것도 애닯고도 서러운데 늙은이라 괄시하는 세상모습 한번보소
며느리와 자식들은 말끝마다 토를달고 이웃노인 죽더라도 누구하나 관심없네
나라서도 교회서도 노인들은 뒷전이니 어디어디 두고보세 당신들은 안늙는가
평균수명 자꾸늘어 육십에도 청춘인데 노인이라 이름하여 자리잃고 일도없네
자식에게 얹혀살기 허구헌날 눈치뵈고 내힘으로 일하자니 힘없다고 무시하니
일하면서 삶의보람 찾고픈건 똑같건만 산업사회 그늘속에 커져가는 노인의한
해가뜨면 질때있듯 사람나면 늙건마는 이진리를 무시하는 어리석음 그득하네
가정에서 잘모시고 사회에서 보살핌은 이제까지 수고하신 노인들께 마땅한일
할배할매 손을잡고 기뻐함께 사는세상 주님평화 이뤄지는 그분나라 아니런가
그런 날에는
구약 성서 가운데 「전도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전도자 혹은 설교자의 말이 수록된 책입니다. 전도자나 설교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코헬렛은 오늘날 전도자나 설교자와는 그 뜻이 다르다고 하여 흔히 히브리어 그대로 코헬렛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코헬렛」은 속담이나 격언이나 금언, 경구 등을 모으는 사람, 인생 경험을 수집하는 사람, 회중 앞에서 말을 하는 공식 대변인, 인생 경험, 속담, 격언, 경구 등으로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의 코헬렛은 그 책 끝부분에서 젊은이들에게 젊을 때 인생을 마음껏 줄기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코헬렛은 사람이 늙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를 짓궂게도 은유와 상징과 비유로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자 그대로 번역하여 놓으면 단순한 독자들을 전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해 하기 일쑤입니다. '개역 성서'의 직역을 그대로 봅시다.
그런 날에는(즉 늙마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 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전도12, 3-5).
여러 가지 해석이 많지만 위의 은유, 비유, 상징들은 다음과 같이 풀어 볼 수 있습니다. "집을 지키는 자들"은 두 팔, "힘있는 자들"은 두 다리, "맷돌질하는 자들"은 이빨들,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는 두 눈, "길거리 문들"은 두 귀, "맷돌소리가 적어질 것이며"는 이가 빠져 잘 씹지 못합니다.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는 노인이 되어 잠이 없어서 새처럼 일찍 일어납니다. "음악하는 여자들"은 목소리 등을 비유한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는 백발이 된다는 것을,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는 성행위도 부담이 된다는 뜻으로, 그리고 "원욕이 그친다"는 양기를 돕는 정력제도 효력이 없다는 뜻으로, "영원한 집"은 무덤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인 복지의 실태
노인 빈곤의 현황과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나, 최근 우리나라 노인들을 대상으로 행한 여러 조사에서는 상당수의 노인들이 경제적 궁핍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하영 조사(1975년)에서는 35.0%의 노인이 경제적으로 궁정하다고 했고, 경제 신문 조사(1973년)에는 26.5%,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조사(1976년)에서는 33.3%의 노인이 경제적 궁핍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 했습니다. 현장 조사에서 나타난 우리나라 노인들의 빈곤의 실태 또는 유형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① 결식(缺食)하는 노인
노인들이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를 알아본다는 것은 앞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본 연구소가 노인정이용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본 바에 의하면, 외식을 하는 노인은 22.6%, 대부분의 경우 점심은 굶는다고 답한 노인이 13.4%였는데, 외식을 하는 노인의 경우는 우유, 빵, 라면 등을 매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한국노인문제연구소. 1983년 노인여가시설 및 그 프로그램에 관한 조사연구 20쪽).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결식하는 노인의 경우입니다.
이들이 결식하는 원인은 식욕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집에 다녀오기가 귀찮아서 그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점심 식사를 굶는 날이 많다고 답한 노인들은 대부분 생활 정도가 하위에 속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결식 노인과 빈곤과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인정 책임자들의 말에 의하면 집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온다고 답한 노인 중에도 상당수는 결식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파고다 공원에 나오는 노인 중에는 약 40%가 점심을 결식하고 있고, 관악산 등산로에 나오는 노인은 약 25%가 결식한다고 비공식 통계도 있습니다.
② 거처할 곳이 없는 노인
노인정은 노인들이 주간에 이용할 수 있는 여가시설입니다. 따라서 이 시설에는 숙박할 수는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사에서 거처할 집이 없는 노인들이 이곳에 와서 유숙하는 경향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인정 회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한 노인정에 평균 2∼3명씩의 노인들이 유숙한다고 답한 비율이 11.6%, 5명 이상씩 유숙하는 노인정도 6.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노인정 기거 노인들의 유형을 크게 나누어 3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유형으로는 자녀들이 있고 또한 그 자녀들과 는 정의(情誼)도 두터운 처지이지만, 단칸 셋방살이를 하는 등의 주택 사정으로 인해서 유숙은 시설에서 하고 식사는 집에 와서 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자녀들은 있으되 그들과는 의견 대립 등 충돌로 인해서 가출을 하기는 했으나 독립 세대를 구성할 경제력이 없어 노인정 신세를 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 유형은 자녀들이 없거나 또는 별거하는 자녀들은 있으되 그들과는 피차 거래가 단절되어 있는 상태의 노인들입니다. 이러한 노인들은 노인정에서 라면을 끊여 먹기도 하고 동료 노인들이 가져다주는 쌀, 김치 등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나이로 늙음을 논하지 말자
나이 40이 된 늙은이가 있는가 하면 나이 70이 다 된 젊은이가 있습니다. 나이 40이 된 사람들이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희망도 없이 염세적이고 회의적이고 소극적이며 스스로 자신을 늙었다고 생각하여, 매사에 피곤을 느끼며 주저앉아 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면서 매사에 의욕적이고, 실제로 여러 가지 일들을 척척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90회 생신을 지나서도 힘있게 열심히 일했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었습니다.
미국의 대법원 판사였던 올리버 웬델 홈즈가, 미국의 저술가이며 사회 개혁가였던 줄리아 위드 하위 여사의 70회 생신을 맞아 생일 카드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고 합니다.
"70년 젊었다는 것이 때로는 40년 늙었다는 것보다 훨씬 더 기쁘고 소망스럽다. "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은 1956년에 로스앤젤레스에 왔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신념이 있으면 젊고, 의심이 있으면 늙습니다. 자신을 가지면 젊고, 두려움을 가지면 늙습니다. 희망을 품으면 젊고, 절망을 품으면 늙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녹음실이 있는데 이 녹음실에 아름다운 희망과 격려와 용지에 관한 말이 들려오는 동안에는 우리가 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선이 다 끊어지고 당신의 마음이 염세라는 눈덩이와 회의라는 얼음으로 뒤덮이게 되면 그때에야 비로소, 오직 그때에야 비로소 당신은 늙게 되는 것입니다. "
타고르의 말
인도의 유명한 시성 타고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점점 나이가 많아 감으로 내가 젓는 노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제는 돛대를 높이 달고 바람이 의지하노라."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때에 신령한 눈이 밝아집니다. 하늘나라를 보도록 힘써야 됩니다. 그러기에 사도 요한은 젊었을 때에 계시를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이 많을 때에 밧모섬에 가서 육신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될 때에 하늘나라의 영광이 그 눈 앞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축복은 누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다 허락된 축복입니다. 기억하세요. 나뭇잎은 떨어질 때에 제일 아름답습니다. 과실은 가을에 다 익을 때에 제일 아름답습니다. 곡식도 거두게 될 매에 제일 아름답습니다. 햇빛도 서산 낙조가 제일 아름답습니다. 노년시대는 인격과 믿음이
완숙하고 아름다워질 때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원만하고, 이행성이 많고, 온전한 그리스도의 인격을 기를 때입니다.
선조들의 업적
모세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나이 80세였으며 그의 죄에 대하여 용서를 빌었으나 그의 늙은 나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70세에 유명한 철학을 세계인에게 주었고 그런 나이인데도 악기 연주법을 배웠습니다.
플라톤은 50세에 겨우 학생이었고 60세에 이른 이후부터 최선을 다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죽을 때까지 시를 썼고, 89세에 그의 삶을 설계했으며, 90세 가까이 예배당의 천정을 조각했습니다.
페트라르카는 70세에서 80세 사이에 라틴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루도비코는 115세에 그의 자서전을 썼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노년기
사실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같은 이는 나이 많을 때에 새 악기를 배워서 음악을 했다고 합니다. 고대의 유명한 정치가 케토 같은 사람은 여든 다섯 살에 헬라 말을 배웠다고 합니다. 여기 이탈리아의 문예 부흥 시대의 유명한 학자 피토락 같은 사람은 일흔 살 때에 라틴어를 처음으로 배웠다고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 김성무 권사님은 환갑이 지나 신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우리 교회 김성준 장로님은 환갑이 지난 지 4, 5년 되었는데 금년에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나이 많을지라도 계속해서 새 것을 배워야 됩니다. 여러 청년들과 접촉해야 됩니다. 청년들의 꿈과 이상에 감화를 받아야 합니다.
노년을 넘어서
수염이 텁수푹하게 난 70살의 미국의 모험가 월리엄 윌리스는 가로 32, 세로 20피트의 강철 뗏목을 이용하여 페루에서 출발하여 태평양을 건너 사모아 섬까지 표류했습니다. 그는 130일 동안 조금만 뗏목 위에서 지냈습니다. 그는 그 뗏목의 이름을 "노년을 넘어서"라고 붙였는데, 그것은 나이에 한계가 있다는 통념에 도전하고, 제멋대로 퇴직 연령을 한계짓는 데 대한 항의의 의미로 했다는 것입니다.
노년에 인생을 새롭게 산 사람들
비스마르크는 83세에 죽었는데, 그가 이룬 업적 중 가장 큰 업적은 70세가 된 이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글래드스톤은 80세 때에도 여전히 정치계나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고, 70세 때에는 새로이 외국어를 습득했습니다.
파라구트는 남북 전쟁이 시작될 때 이미 60세의 나이였습니다.
라마르크는 78세의 나이에 위대한 동물학적 저작 「무척추 동물의 역사」를 완성했습니다.
라플라스는 천문학자로서 78세 당시 죽음이 임박했을 때까지 일에 몰두하였는데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구나."
켈리는 80세가 지나서도 여전히 암 전문의로 일했습니다.
프랭클린은 50세부터 자신의 철학적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78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건너가 조국을 위해 봉사하였으며,80세가 넘어서 자신의 전기를 집필하였습니다.
반더빌트는 70세부터 83세로 죽을 때까지의 기간 동안 그의 정기선들의 운항 거리를 1백마일에서 1만 마일로 늘었습니다. 이것으로 그는 1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더 늘린 것입니다.
스트라우스는 80회의 생일을 맞이한 후에도 여전히 작곡에 전념하였고, 패데레프스키는 79세에 피아노를 훌륭하게 연주하였습니다.
하이든은 67세에 유명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썼습니다.
베르디는 74세에 유명한 그의 걸작 「오델로」를 만들었고, 80세 때에 「홀스타이프」를만들었고, 85세 때에 유명한 「아베마리아」,「성모의 애가」, 「테데움 성가」를 만들었습니다.
티티아(Titia, 이탈리아의 화가,1447∼1576년)는 80세가 된 때에 "최후의 만찬"그림을 완성하였고, 그 후에도 계속 몇 년동안 그림을 계속하다 98세 때에 역사에 남을 "레판토 전투"를 그려 냈습니다.
틴토레토는 74세 때 폭 30피트, 길이 74피트의 거대한 그림 "낙원"을 그렸으며, 볼테르는 60세 이후부터 훌륭한 저서들을 썼고 84세에 일생의 역작을 출간했습니다. 필립부룩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가들 중 한 분으로 84세 때에도 무척이나 사람을 감동시키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집안에 노인이 있다는 것은 좋은 간판이다.
(J. 레이/ 히브리의 격언)
늙어가는 사람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소포클레스)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행복한 노년에는 말할 수 없는여명이 비친다.
(V.M. 위고/ 레 미제라블)
나라 상감님도 늙은이 대접은 한다 <*누구나 노인은 우대를 하여야 한다는 말>
(한국 속담)
이성과 판단이 발견되는 것은 노년기에서다. 노인들이 없었더라면 그 어떤 나라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키케로/ 노년)
노년은 청춘에 못지 않은 좋은 기회다.
(H.W. 롱펠로/모리투리 살루타무스)
나이 40세는 청년의 노년기이며, 50세는 노년의 청춘기이다.
(V. M. 위고)
자기의 청춘을 노년이 되어 비로소 경험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장 파울/ 어족과 횡적)
젊음은 듬직하고 강건하고 사랑을 담고,또한 우아하고 힘차고 매혹에 차 있다. 그런데 노년도 거기에 못지않은 우아함과 힘과 매력을 지닌 채 찾아온다는 것 또한 아는가?
(W. 휘트먼/ 젊음 ·늙음 ·밤)
노경에 활기를 주는 진정한 방법은 마음의 청춘을 연장하는 것이다.
(M. 콜린즈/ 마을의 희극)
사람의 충실한 세 벗, 그것은 노파와 노견(老見)과 현금이다.
(미국 속담)
노년은 투철하고 원숙하며 고요하여 인생의 황금시대이다.
(M.T. 키케로/ 노년을 논함)
노인을 모신 가정은 길조가 있다.
(이스라엘 속담)
집에 노인이 안 계시면 빌어서라도 모셔라.
(그리스 속담)
오래된 나무를 절감으로 쓰고, 오래된 포도주를 마시고, 오래된 친구를 신용하고, 오래된 작가를 읽으라! 아라곤의 알론소는 노경을 두둔하여, 늙었다는 것은 위의 네 가지 점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멜키오르/ 폴로레타 에스파뇰라 경구명 언집)
나는 늙어가겠지만 인생에 대한 흥미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가는 길의 마지막 모퉁이가제일이기 때문이다.
(H. 반 다이크/ 인생의 흥미)
어떻게 노년으로 성장하는가를 아는 것은, 지혜의 걸작이며, 생활의 위대한 기술에 있어서의 가장 어려운 장의 하나이다.
(H.F. 아미엘/ 일기)
사람이 곱게 늙는다는 것, 늙을수록 내면세계가 빛을 발한다는 것, 그것은 신의 뜻이며 모든 인간의 궁극적인 소망이고 가치이며 의미다.
(유주현/ 신의 뜻)
노년을 오래 유지하려면 일찍부터 노련해질 필요가 있다.
(M.T. 키케로/ 격언집)
사람들이 늙은 후에 비로소 덕성을 쌓는 것은 악마가 남긴 것을 신에의 제물로 할 뿐이다.
(A. 포우프/ 다제다상)
젊은이는 용모가, 노인은 마음씨가 예쁘다.
(스웨덴 속담)
노인은 민중의 위엄이다.
(J. 주베르/ 팡세)
오늘날 우리는 주위에서 수많은 노인들을 볼 수가 있고, 그들이 비록 풍부한 학식이 없다 할지라도 경험은 풍부하다. 그들의 지식은 정적이 아니라 동적이다. 노인은 모두 그들 나름대로의 관점이 있다. 그들은 강렬한 싸움을 즐기지 아니하고 높고도 먼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다시는 청년들처럼 저돌성이 많지는 않다. 그들은 회억하기를 좋아하고 심지어는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마저 희망한다. 이런 때 그들의 심경은 때로 어린아이처럼 천진무사(天眞無邪)하다. 그들이 본 것은. 너무도 많고 아는 것도 너무 많아서 그들은 이미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는 세태 변화의 법칙을 투시하고 있다.
(장기물/ 중국철학사)
노령의 열매는 이전에 얻은 넘치는 축복의 추억이다.
(키케로/ 노년)
아무리 나이 많은 노인도 얼만가는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웨덴 속담)
오래 살았다는 것밖에는 남긴 것이 없는 늙은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것은 없다.
(세네카/ 부동지점)
노인네는 유리그릇 다루듯 해야 되고 어린애는 기르듯 모셔야 한다.
(이동주/ 애정의 관리)
우리가 늙은이들에게 지불해야 할 것은 공경이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는 것은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버림받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마땅히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을 동등한 자리에 밝히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 아버지는 열두 아들을 기를 수 있지만 열두 아들은 한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늙은이를 돌보는 일이 최고의 특전으로보다는 하나의 자애로운 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십계명이라는 불멸의 법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나를 위하라, 나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대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함 없이 하느님 공경없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심장병이나 암을 치료하는 의술보다 늙은 나이의 흔적을 감추는 의술에 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늙는다는 것은 패배요 부끄러워할 일이 되었다. 순수하게 솔직하게 살아가야 할 인생들이 어느새 가짜 홍안으로, 위장으로, 속임수로, 기만으로 바뀌고 말았다. 백발은 승진 기회를 무산시키고 판매 사원을 직장에서 몰아내고 아들을 아버지에게서 떨어지게 할지도 모른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노인이란 아이를 둘 합친 것 같은 것이다.
(W. 셰익스피어/ 햄릿)
노인지 되어 참을 수 없는 것은 육체나 정신의 쇠약함이 아니고, 기억의 무게에 견뎌내는 일이다.
(W.S. 모옴)
사람들을 시험해 보려면, 그들이 늙은이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된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아무리 지독한 독재자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점에서는 별로 다름이 없다. 그러나 늙은이들,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돌봐줄 이 없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아보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진짜 금광맥이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늙은이들이 앓고 있는 근본적인 정신질환은 무엇인가? 가정과 사회에 쓸모없는 신세가 되었다는 생각, 가정과 사회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생각,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허탈감과 권태, 고독과 시간에 대한 공포.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나는 말하고 싶다, 인간의 변화하고 성장하는 가능성은 우리 자신이 용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늙은이는 정지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잡은" 사람이라고. 늙은이는 환자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의 은퇴도 사직의 연장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A.J.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나이 많은 사람의 망각증, 젊은 사람의 무분별
(영국 속담)
노경을 그토록 슬프게 만드는 것은 즐거움이 없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장 파울/ 타이탄)
스스로 노인인 것을 아는 자는 없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노인의 망령은 죽지 않으면 낫지 않는 병이다.
(영국 속담)
노인들은 때로는 그들의 걸은 시절을 감상적으로 뉘우치고 때로는 재치 있게도 그것을 잊어버린다. 또 더러는 어리석게도 늙은이를 비난하고, 더욱 어리석게도 젊은이를 타이르고, 더러는 무엇보다 어리석게 젊은이를 방해하고 억제하는 일이 있지만 그들을 감시하는 일은 거의 없다.
(J. 러스킨/ 참깨와 백합)
첫눈을 맞아도 옛날 같은 감흥이 일지 않을 때, 나는 늙어 감을 깨닫게 될 것이다.
(L.B. 존슨/ 대통령 부인)
노년의 세월에 있어서의 인생은, 비극의 제 5막과 같다. 인간은 비극적 최후가 가까운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아직 모른다.
(A. 쇼펜하워/ 행복을 위한 금언)
아이 제 늙은이보고 백발을 비웃더니/ 그 덧에 아이들이 날 웃을 줄 어이 알리/아이야 하 운지 마라 나도 웃던 아이로다.
(辛啓管)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앉아 탄식하기만 하고 중풍든 노인은 몇 개 안남은 백발을 슬퍼하며
(키츠/ 나이팅게일에게 부쳐서)
늙지 말려이고 다시 젊어 보렸더니/ 청춘이 날 속이고 백발이 거의로다/ 이따금 꽃밭을 지날 제면 죄지은 듯하여라.
(우탁)
거울앞 수십년이/ 반백의 나를 보고/ 다섯 손가락이/ 열 손가락이 빗질을 한다// 어영부영 살아 온 주름살이/ 세월의 훈장에 나이를 먹이고/ 핼쑥한 낯빛으로 가르마를 탄다// 못다 읽은 서책의 돋보기가/ 꽁초를 물고/ 벗겨진 이마에 윤을 내다가 가는 귀를 먹는다// 유치를 칫솔질하다가/ 틀니가 바람을 먹고/ 온돌방의 아랫몫자리 지킴은/ 까부라진 눈까풀 사이사이/ 꼬부랑길을 간다// 휘날리는 눈발인가/ 추위타는 제 나이
(안명호/ 새치)
늙은이 저 늙은이 임천(林泉)에 숨은 저 늙은이/ 시주가금여기(詩酒歌琴與棋)로 늙어오는 저 늙은이/ 평생에 불구문달(不求聞達)하고 절로 늙은 저 늙은이
(안민영)
헛되게 65년을 보내고 일삼던 일을 그만 두고/ 고향에 몸을 맡기고자 하노라/ 가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하니/ 구름과 노을을 바라보네/ 아무 근심 없이 불빛이 이끄는 대로/음료수 얻어 한 바가지 마시니/마음은 만족하노라/ 능히 만리를 떠돌아다니며 호인, 현인과/ 벗하고자 하나/ 오늘에 더욱 더 근면하여/ 마땅히 영광된 좌석 앞에/ 영화롭게 돌아가고자 하노라.
(금림/ 퇴휴)
노년은 늘 죽음의 그림자 밑에서 산다. 그것은 데모클레스의 칼처럼 언제든지 내려칠 수 있다.
(S. 버틀러/ 육체의 길)
이제 때가 왔다. 늙었다. 돛을 감아 들일 때가 왔다.
(R.W. 에머슨/ 종착역)
나이 팔십이 지나/ 머리카락 점점 드물어지네/ 수염과 눈썹은 빛나고/ 부모형제와 보국하려는 마음/ 아직도 건재해 고향에 돌아오니/바라던 것과는 오히려 어긋나네/ 태어난 날은 마침 좋은 가을계절이라/ 술있고 게가 살이 올랐다.
(황사경/ 팔심감회)
노인은 꿈을 꾼다/ 여러 친구와 술을 나누고/ 그들이 죽음의 길을 바라보던 전날을./노인은 입술에 미소를 띠고/ 쓰디쓴 감정을 억제할 수가 있다. / 그는 지금의 어떠한 순간도/ 증오할 수가 없었다. / 노인은 죽음을 원하기 전에/ 먼뎃날이 더욱 영원한 것처럼 생각되며 자기와 가까이 있는 것이/ 멀어져가는 것을 분간할 수가 있었다.
(박인환/ 행복)
쭈글쭈글한 노파는 그 귀여운 아기를 보자 마음이 퍽 기했다. 모두가 좋아하고 뜻을 받아주는 그 귀여운 어린아이는 노파처럼 이가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C.P.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아침및, 땅나무터 출근종 울리기 전/ 사립문 너머로 아기들을 받아 안는/ 탁아소할머니 넓은 가슴은/ 푸른 하늘 저 한끝까지/ 발돋음해 보라는 디딤돌// 한낮, 귀염둥이들 단잠에 묻힐 때/ 지저귀는 산새무리 후-여 쫓아버리고/ 조용히 부드럽게 여운 남기며/ 탁아소 할머니 들려주는 자장가는/ 애어린 꿈 튕겨주는 가야금소리// 흰머리카락 오리오리에/탁아소 할머니 젊음을 되찾아 오는가/ 저녁에는 웃음핀 집집마다에/ 달덩이되여 가라고 아기들을 바래주며/ 그 마음 요람인 할머니의 행복이여
(허홍식/ 행복)
여든 살 노인이 나무를 심었다. / "집을 짓는다면 몰라도, 그 나이에 나무를 심다니."/ 이웃의 세 청년이 말했다. /정말 노인은 노망이 들었다. / "왜냐하면, 제발 너희들이 해보지,/ 이 수고의 어느 열애를 너희들이 거둘 수 있을까?/ 족장만큼이나 너희들이 늙어야 할텐데,/ 인생을 너희 것도 아닌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채워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 이제부터는 예전의 과오밖에는 생각하지 말라./ 그 오랜 희망과 막연한 생각을 거침없이 버리라./ 이것은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 너희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지."/ 노인은 다시 일을 계속했다. 이름은 늦게 오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 "운명의 여신은 창백한 손으로 너와 나의 앞날을 똑같이 가지고 논다. / 우리의 종말은 짧다는 점으로 비슷해 우리들 중의 그 누가 맨 마지막으로 창공의 광명을 즐길 수 있을까? / 단 일초라도 너희 것이라고 보장해 주는 순간이 있을까?/내 자손들이 즐길 이 나무 그늘은 내 덕분이지./ 그래, 너희들은 현인이 남들의 즐거움을 배려해주는 것을 금하고 있지./ 이것도 오늘 맛보는 과일이야./내일도 난 그걸 즐길 수 있고, 앞으로도 그렇지./ 나는 이제 너희들 무덤 위에 비치는 새벽빛을 셀 수 있어."/ 노인은 옳았다. 세 청년 중 하나는 아메리카로 가다가 항구에서 익사하고, 다른 하나는 출세하기 위해 공화국 군대에 입대했으나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었다. 세번째 청년은 그 자신이 접목하려던 나무에서 떨어졌다. / 그래서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대리석 위에 새겨 놓았다.
(라 퐁테느/ 노인과 세 청년)
나니 아이 적에 늙은이를 희롱터니/ 이제 내 늙으니 아이 웃음 되언지고/ 아이야 늙은이 희롱 말고 아이대로 놀아라.
(무명씨)
늙음의 입구에 서기까지/ 남달리 즐겨왔던 나의 젊은 시절을』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떠남을 숨겼던 나의 펄은 시절을,/ 나는 슬퍼한다. / 그 시절은 걸어서 가버린 것도/ 말을 타고 가버린 것도 아니니 도대체 어떻게 가버렸단 말인가? / 결국 느닷없이 날아가 버린 채/ 나에게 남겨준 것 아무것도 없어라.//그 시절은 가버리고,/ 나는 세금도 연금도 가진 것도 하나 없이/ 슬프고 막막하여 검은 오디 열매보다도 더욱 암담한 모습으로/ 이곳에 머물러 있다. / 사실 말이지만, 친척 가운데 가장 하찮은 자가/ 내 수중에 몇 푼의 돈이 없다 하여/나를 모른 체하기에 급급하니.// 아, 한심하도다. 미친 듯한 내 젊은 시절 배움에 열중하고/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였다면,/ 나도 지금들은 집도 푹신한 침대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건만,/ 허나 어떠했는가! 마치 악동처럼/ 나는 학교를 등지고 떠났으니,/ 이 글을 쓰면서도/내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아라.//그 옛날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그토록 노래 잘하고 말 잘하며/ 언어와 행동of 그토록 유쾌하던/ 우아하고 상냥한 친구들,/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몇몇은 죽어 차디차게 굳어버렸으니/ 그들에게서 남은 것 이제는 아무것도 없어라./ 천국의 안식이 그들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살아 남아 있는 자에게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또 몇몇은/ 다행히도 대영주나 기사가 되기도 하였으나,/또 몇몇은 온통 헐벗은 채 걸식하며/ 창문을 통해서나 음식을 구경할 뿐이고,/ 또 몇몇은/ 굴따는 사람처럼 각반 차고 장화 신고/ 셀레스텡이나 샤르트뢰 수도원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 신분 다양도 하지 않은고?
(비용/ 회한)
봄이 꿈틀거리고 있는/ 오후를 노려서 외출하는 길에// 악의가 아닌 장난끼로/ 노인 회한을 기웃해 본다// 아직은 덜 하얀 머리들을 맞대고/ 장기를 두고/ 화투를 치는 //그런 장난들이 못마땅해서/ 황급히 눈길을 돌려 / 도망쳐 나온다. // 어쩌나 서울에 나들이갔다가/ 파고다 공원에 들러본다// 아직은 젊은 사람들까지/ 벤치에 섞여 앉아/ 멍청하게 하늘만 쳐다보는 얼굴/ 아니면/ 표정도 없이 비둘기 떼만 들여다보는// 그 정물화가/ 역겨워서/ 도망치듯 정문을 뛰어나온다. //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들/ 어차피 헤어져야 할 사람들/ 나와는 관계없는 것 같았는데// 아 자꾸만 다가오는/ 종점이 저만치서 손짓을 한다.
(장수철/ 종점 · 6)
시인이나 웅변가나 성인이 뭐라고 하여도,/ 노인은 노인이다. / 그것은 하현달이지 상현달은 아니다/ 해가 저문 것이지 한낮의 뙤약볕이 아니다/ 힘에 차 있지 않고 힘이 빠져 있다/타오르는 욕망이 아니라 식어 있는 욕망이다/ 불의 뜨거운 열기,/ 훨훨 타고 연소시켜 버리는 불이 아니라 잿더미이며 타다 남은 장작개비이다.
(H. W. 롱펠로)
하루가 끝날 무렵 예전보다 좀더 피곤을 느끼고,/ 자기 생각을 이제는 덜 고집하게 되고/ 남을 욕하고 책망하는 데도 전처럼 성급하지 않으며/ 형제의 이름을 좀더 아끼고/그러면서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길로 다가선다. / 그 곳에선 현재와 영원이 서로 만나며 조화를 이룬다.
(R. J. 웰스/ 노년)
뉘라서 날 늙다 하는고 늙은이도 이러한가/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면 웃음 난다/ 춘풍에 흩나는 백발이야 낸들 어이하리오.
(李仲集)
묶을 잊는 것처럼 잊어 버립시다/ 한때 새차게 타오르던 불을 잊듯이/ 영원히 영원히 아주 잊어 버립시다/ 세월은 고맙게도 우리를 늙게 하오
(S. 티즈테일/ 잊어 버립시다)
센털은 노년을 재촉하고/ 불빛은 세모를 몰아친다.
(맹호연/ 세모에 남산으로 돌아가며)
늙었다 물러가자 마음과 의논하니/ 이 님 버리고 어드러로 가잔 말고/ 마음아 너란 있거라 몸만 먼저 가리라.
(무명씨)
어떤 어린 시절의 꿈/ 아직 내 곁에 있어/강물을 비추는 달빛처럼 부서져/ 나의 인생을 비춘다. / 겉잡을 수 없는 빛인 나의 인생을./내가 움직이면 움직이고/ 나를 영원히 인도한다.
(J.T. 트로브리지)
설 교 노 트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
잠16:31
서론
본문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늙음을 싫어합니다. 그것은 늙음은 인생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힘을 자랑하지만(잠20:29), 노인은 백발을 자랑합니다.
1. 백발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백발은 장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백발은 다 되었다는 의미보다는 무엇인가 관록이 그 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할 일이 끝났다기보다는 노련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하기를 나이가 많아지면 뒤에 물러나서 그런 관망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진취적이고 고학적인 면에서는 나이 드신 분들의 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나 인생의 체험이라든가 경험 등은 오히려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지혜로움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 들었다고 해서 노인되신 분들이나 젊은 자들은 뒤로 울러나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고 노련미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2. 영화의 면류관
사람이 주 안에서 의로우면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몸과 마음이 평안하게 됩니다. 따라서 육신의 생명도 건강하여 장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장수하는 것이 존경을 받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귀찮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본문의 "영화의 면류관"은 존경받은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남에게 해로운 일만 하고 기생충과 같은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결코 존경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연세가 많아져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분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사람이 된다면 참으로 그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 될 것이며 참 믿음의 삶을 산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의로운 길에 서야 합니다.
백발과 영화의 면류관은 단순히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로운 길에 설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의롭지 못한 불의한 자를 누가 존경하겠습니까?" 어느 누가 의로운 길에 서지 않은 자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겠습니까? 히틀러와 같은 사람을 존경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를 가리켜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로운 길에 선 자의 삶만이 백발을 자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로운 길에 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으로 하여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결론
나이가 많아지면 백발도 가득해집니다. 백발이 많은 사람은 그의 행한 업적과 믿음이 영화의 면류관을 얻기에 충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 늙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못 산 결과로 비참하게 될 뿐입니다.
백발은 끝이 아닙니다. 관록입니다.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하실 수가 있기 때문에 결코 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계속 일을 하며 푯대를 향하여 아직도 남아 있는 경주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
딤후4:7-8
서론
천국은 모든 성도가 소망하는 곳입니다. 성도된 자는 누구나 이 천국을 사모하며 마침내 그곳으로 인도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젊은 자들보다도 나이드신 성도들께서 더 소망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천국으로 갈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하여 상세히 대답하여 주고 있습니다.
1. 선한 싸움은 싸우는 삶입니다.
선한 싸움은 전쟁과 다른 싸움입니다. 전쟁은 남을 해치며 살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선한 싸움은 진리를 가지고 남을 유익케 하며, 자신은 그 일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 선한 싸움을 여태까지 살아온 믿음의 생활로 어두움의 세력과 악한 영들, 그리고 정사와 권세자들과 대항해 왔던 싸움인 것입니다.
이 싸움은 타인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남은 생애를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믿음의 생활을 잘하며 남을 유익하게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유혹을 이기며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달려갈 길을 마치는 삶입니다.
달려갈 길은 자기가 할 본분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맡기시든지 그 일에 충성하여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면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시는 분은 그들대로 할 일이 있고, 정년퇴직하신 분들 역시 나름대로 하실 일이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역시 나이드신 분들이 계속하여 하실 일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주어진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달려갈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은 끝까지 신앙으로 견디는 자만이 마칠 수 있는 것이지 의기소침하여 기력을 상실하면 다 달려가기도 전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게 될 것입니다. 또 불평과 원망이 있는 자는 갈 수 없는 길인 것입니다.
3. 믿음을 지키는 삶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믿음을 계속적으로 지켜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을 때는 계속하여 믿음을 지켰지만 나이가 들어 그 믿음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래서 세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면 결코 천국을 소망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교회안에서 직분을 맡은 자는 자신의 임무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믿음을 등한히 하기 쉽습니다.
결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자들은 의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되었습니다. 이 면류관의 본질은 영생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받으려면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을 살고, 달려갈 길을 마치는 삶을 살아야하며,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뒤로 물러나면 그 시기는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을 키워나가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될 것입니다.
노인을 공경하라
레19:32
서론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효도하는 사람에게는 오래 사는 복을 주고 범사에 잘되는 축복을 주며 그 자손들에게까지 길이 잘되게 하지만 만약에 부모를 업신여기거나 부모의 물질을 노략질하거나 구타하거나 천대하는 사람은 성 밖에 끌고 나가서 돌로 때려죽이라고 하였습니다.
1. 왜 노인을 공경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며 노인을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옛 글에도 내 집 노인을 생각하여 남의 집 노인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인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노인을 업신여기면 망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의견을 무시하다가 열 지파를 빼앗기고 남북으로 분열되는 비극을 낳았습니다. 롯의 사위들도 어른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다가 결국은 유황불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도덕의 원리인 것입니다. 오늘이 있음은 노인들의 희생이 뒤따른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잠언 16장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노인들은 우리들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나십니다. 세상의 실력도 귀하지만 그 경험은 더욱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인들을 공경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 도덕률이 깨어질 매 그 사회는 곧 부질서요, 패망이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2. 노인을 어떻게 공경해야 합니까?
"센머리 앞에 일어서라"고 하였습니다. 곧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로사상이 강하여서 노인이 들어오면 반드시 일어서고 노인과 한 상을 받으면 반드시 노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하며, 노인이 일어나기 전에는 일어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즘의 많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노인들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예레미야 35장 18-19절에 "너희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명령을 존중하였기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노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공경이라는 말은 삼가 공손히 섬긴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지 않고, 공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되 순종함으로 섬겨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효성이 지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효성은 일생이며 환경을 초월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도 그의 효성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순종하며 본을 보이신 것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도와주면서 대접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쉽게 피곤하여지고 쉽게 노하며 쉽게 시장해진다고 합니다. 살아계실 때 윗 어른들을 대접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딤전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부모님은 물론 이웃의 어른들까지도 나의 부모처럼 존경하고 공경하며 효도하고 대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어른들을 잘 대접하여 기독교가 노인을 존경하는 종교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노인을 존경하면 그 대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우리 자손들이 축복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노인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결국 젊은이들도 다 노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므로 존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장막
딤후4:7-8
서론
본문 7절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을 나그네, 경주자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자세히 살펴보며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성경이 말한 우리의 삶
모든 인생은 나그네와 같은 삶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본향이 있어야 합니다. 본향이 있어야 외롭지 않은 것입니다. 본향이 없는 자는 더욱 외롭고 쓸쓸한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입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의 삶을 경주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주하는 자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결승점이 있어야 끝까지 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달리는 사람에게 결승점이 없다면, 즉 목표가 없다면 그 경주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동반자가 없는 여행은 더욱 쓸쓸한 것입니다. '경주자'는 지도자가 있어야 더 좋은 경주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모든 육신은 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육신'은 노쇠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자연 현상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60세가 넘으면 기력과 세포조직과 기타 순환 계통이 쇠퇴해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학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성경도 "인간의 장막집"은 후패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은 후패하지 않는 새집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늙습니다. 그러나 이 육신은 늙어서 아무 쓸모없이 되더라도 주님께서는 새로운 처소를 마련해 두시고 우리를 기다리시므로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 70 고래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가르쳐 주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3. 인간은 영원한 새집을 짓는 건축자와 같습니다.
"쏘로비요푸"는 죽음을 영원히 새집으로 이사하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거할 처소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새집을 짓는 것입니다. 늙게 되면 지금까지 지은 집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견고하게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새집을 완성시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면 더 활발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슬퍼할 것도 없고,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영원한 처소인 새집을 짓는데 주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나그네 같기도 하고, 경주자 같기도 한 삶을 우리는 모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 가장 필요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께서 우리 삶 속에 함께 계시면 그 삶이 나그네와 같고, 경주자와 같이 고달픈 삶일지라도 전혀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새집을 짓는 건축자와 같습니다. 지어진 새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필요한 것, 온전한 것, 그리고 만족한 것으로 나를 영접해 주십니다.
늙어도 결실
시92:12-15
서론
본문의 말씀은 인생은 늙어도 생활은 늙지 않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몸이 늙으면 마음도, 생활도 다 같이 늙어서 기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올바른 양심으로 행해야 합니다.
오랜 인생을 살게 되면 감각이 무디어지기 쉽고 오랜 경험으로 양심도 마비되기 쉽습니다. 사리 판단을 옳게 하기 위해 양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올바른 삶의 방향 감각을 갖기 위해서 사람은 지혜와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 지혜와 총명은 어디에서 생깁니까? 그것은 양심에서 일어나는 운동이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늙었다고 해서 남은 인생을 그저 되는대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를 옳게 사리 판단하기 위해서는'양심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늙었다고 마음이 흔들리거나 비양심적인 생애를 산다면 그 모든 인생은 잘못 산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서 올바른 양심을 가지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2. 무슨 일이나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노인이 되면 자신에게 주어진 일도 하려고 하지 않고 뒤전으로 물러나려고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늙으면 욕심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노역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이가 많아지면 정욕이나 허영은 줄어들게 되는 반면에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권세욕은 더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늙어도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려면 무슨 일이나 성심 성의껏 해야 합니다. 특히 교회 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도 생활과 성경 연구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돌보는 생활을 성의껏 해야 마지막 남은 생애를 더욱 주님과 가까이 하게 될 것입니다.
3.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나이가 많아져서 몸이 굳어지면 마음도 굳어지고 행동도 굳어지게 됩니다. 특히 노인들은 다른 일반 사람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셨기 때문에 사고가 굳어지기 마련입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도 고집이 없는 것은 아니나 노인들의 특징은 완고한 고집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여러 사람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늙었다고 고집스럽게 하거나 완고함을 나타내기보다는 오랜 경험을 토대로 하여서 그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어 잘못된 것은 고치고 잘할 수 있는 것은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하는 일 중 잘된 것은 칭찬해 주고 같이 협력함으로써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특히 노인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젊은 사람들보다 더 많으므로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고 젊은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더욱 풍성한 결실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성도의 최대의 기쁨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이 되었다는 것은 비록 이 세상에서의 생은 별로 남지 않았어도 주님과 만날 수 있는 날은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늙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더욱 풍족한 결실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양심으로 모든 것을 행하고 무슨 일이나 성실하게 하며 완고한 고집을 버려서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이할 것입니다.
마라나타
고전16:21-24
서론
본문 22절 끝부분에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말은 옛 성도들이 괴롭고 어려울 때 감옥이나 광장에서 중얼거렸고 동굴과 돌에도 새겨놓았던 말입니다. 또한 죽음 앞에서도 이 말을 부르짖으며 신앙 고백으로 외친 말이기도 합니다.
"마라나타(Maranatha)", 이 말은 영광과 소망의 부르짖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 오시옵소서." 하고 외치는 간절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1. 회개 재촉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던 마음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2장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임하시기 전에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2. 깨끗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거룩한 생활의 동기와 자극이 되는 것입니다. 노인된 자들은 오랜 삶의 경험으로 인하여 세상에 오염된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할 자가 아니라 축복과 사랑을 받을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들입니다. 세상의 지나친 오락과 문화 생활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점점 타락되고 있기도 합니다. 노인들은 더 많은 삶을 사셨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분들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대부분의 분들은 사는데 지치고, 자녀들을 돌보느라고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약간의 잘못은 덮어두고 인생의 길을 계속하여 달려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더욱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순결한 마음을 우리 주님은 원하십니다. 노인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 역시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3. 충성과 봉사를 격려합니다.
주님계서 심판주로 오실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또한 노인들의 여생도 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남은 힘을 다하여 주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봉사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주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노인된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의 눈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남은 생애를 주의 나라를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일보다는 저 하늘나라에 더 많은 관심과 소망을 두어야 할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노인 분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충성된 종으로서 칭찬받도록 남은 생애를 다 주의 일을 위하여 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 주님 오시옵소서"하는 말은 노인된 자들에제 더욱 간절한 소망일 것입니다. 노인분들은 자신들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17:24).
세상에서의 헛된 꿈을 버리고 주님께 향한 마음이 식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주의 사업을 위해서 주님 앞에 갈 때까지 더욱 충성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늙어 머리가 희었고
삼상12:2
서론
사무엘 선지는 이제 노경에 이르렀으므로 자신의 나이가 많아 늙어진 것을 자인하며 백성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왕 사울을 뽑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울을 중심하여 모든 일을 행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은 뒤로 물러가려는 태세를 취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늙어 머리가 희어졌다고 했는데 그는 어떤 말로 늙음을 표시하였으며,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나는 늙었다"고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역사가 지나노라면 누구나 사람은 나이가 많아 늙어지는 것과 그 후에 죽는 일까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이 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생의 공도입니다(히9:27). 늙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공도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수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차별이 없이 똑같이 당면하고 지나가야 하는 과정을 공도라고 합니다. 늙어지는 것은 인생의 공도입니다.
늙는 것이 싫다고 하여 아무리 젊어지려고 해도 그것은 다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무엘과 같이 담담하게 자신의 늙음을 자인하는 것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2. 늙으면 머리가 희어집니다.
사람이 나이가 많아서 늙게 되면 머리가 희어지는 것은 생리학상으로 정한 이치인 것입니다. 전도서 12장에 보면 사람이 늙어진 모습을 묘사하는 중에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5절)"라고 한 말은 머리털이 희어져 살구나무에 꽃이 희게 핀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나이가 많을 때 그 아들들이 애굽에서 요셉에게 호소하는 말 중에 "흰 머리로 슬피 음부에 내려가리라(창44:29)"고 설명하기도 하였습니다.
육체적인 면에서 보면 흰머리는 곧 늙어지는 모습으로 기력이 쇠하고 의지도 쇠하기 때문에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신령한 뜻으로 보면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잠16:31) "고 하였으며 "백발은 아름다운 것이라(잠20:29)"하며 노인 우대론을 말하였습니다. 머리가 희어져 백발이 되는 것을 슬프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3. 늙도록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살아왔는데 여호와 앞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증거하는 말이 "내가 뉘 소를 취하였느냐 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했습니다.
이 고백은 사무엘이 공직을 수행함에 있어서 청렴 결백 하였다는 고백입니다.
사람이 늙도록 살면서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산다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인 것입니다.
결론
아무리 위대한 영웅일지라도, 천재일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도를 깰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위대한 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도 늙는 길은 막지 못하고 오는 백발을 쫓지못하였으니 인간의 공도를 뉘가 감히 피하리요, 피할 수 없으므로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에청렴 결백한 삶을 살아서 늙어 백발이 되어도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 앞에서 떳떳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늙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강건함
수14:6-12
서론
갈렙은 85세의 나이로 젊었을 때와 같이 싸움이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이가 많아 기력이 최하여지면 모든 일을 쉬고 여생을 즐기는 모습이 태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달려갈 길을 다 가지 아니하고 쉬는 것은 죄악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갈렙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는 지난 45년간 광야와 가나안 전쟁에서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앞에 놓인 당면 과제를 처리할 때 늘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고 행하였습니다.
그는 85세가 되었으나 기력이나 의지, 신앙에 있어서 결코 약해지지 않았습니다(13-15절). 그뿐 아니라 가나안 원주민 중에 가장 강대한 아낙족속을 소탕하여 계속 승리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용기를 복돋우어 주었고 항상 노익장의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갈렙과 같이 최선을 다하여 나이가 들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충성을 다하면 갈렙처럼 하나님께 많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인격의 척도는 약속에 대한 성실성 여부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약 45년 전의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고 저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합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갈렙은 자신의 나이가 많은 것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많은 것을 구실로 하나님에 좋은 땅을 구한 것이 아니라 개간하여야 할 산지의 땅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믿음의 조상들과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갈렙은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유서 깊은 헤브론, 고요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곳을 요구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특별대우를 받는 것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특별대우를 받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며 영광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그는 그의 모든 생애를 하나님의 뜻과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봉사해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 특별대우를 받았던 것입니다.
결론
노인이 된 자들은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고 남의 위에 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갈렙과 같이 봉사하는 자를 원하십니다. 그가 85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가서 싸워 승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 가운데 특히 노인된 분들은 후진을 위해 기도에 힘쓰고 신앙인으로 인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며 교회 안에서의 또 다른 부분을 담당해야 합니다. 항상 겸손하므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이 많은 것을 자랑삼아 말며, 언제나 위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믿음의 선한 행진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논 쟁
성 경 활 용
1. 논쟁에 대한 성경의 표현
(1) 다툼과 싸움
(사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2)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
(신25:1)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3) 이웃과의 다툼
(잠25:9)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4) 하나님께서 거민과 쟁변
(호4:1) 여호와에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논쟁이 일어나는 이유
(1) 판단과 평존으로
(롬14:2)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골2:16)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2) 음식 먹는 것 때문에
(행11:3)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유12)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3) 음식을 사는 것 때문에
(고전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해서 묻지 말고 먹으라
(4) 안식일을 준수 때문에
(갈4:10-11)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하노라
(5) 할례를 받는 것 때문에
(고전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관련원어풀이
1. lykir; 라-킬
(1) 중상, 비난.
(겔22:9)
(2) 중상하려고 돌아다니다.
(레19:16, 잠11:13)
2. byrI 리-브
(1) 다툼, 투쟁.
(창13:7, 신25:1)
(2) 나의 대적.
(욥31:35)
(3) 법적인 소송.
(출23:2)
(4) 법적인 소송을 가진 자.
(삿12:2)
3. ll'P; 파-랄
(1) 심판하다.
(삼상2:25)
(2) 판결하다.
(겔16:52)
(3) 기대하다, 생각하다, 추측하다.
(창48:11)
4. $['y: 야-아츠
(1) 조언하다, 충고하다.
(삼하17:11, 16:23)
(2) 상담자, 조언자, 충고자.
(잠11:14, 24:6)
(3) 상의하다, 협력하다, 정하다.
(사7:5, 렘49:20)
(4) 어떤 사람에 대해 묻다, 고려하다.
(시16:7, 사9:5)
(5) 서로 상의하다, 숙고하다.
(왕상12:6, 시71:10)
5. dialevgomai 디아레고마이
(1) 담조하다, 논의하다, 토의하다.
(행17:2, 24:12)
(2) 연설하다, 말하다.
(히12:5)
(3) 다투다, 쟁론하다.
(막9:34, 유9)
6. sumbavllw 숨발로
(1) 담화하다, 협의하다.
(행4:15, 17:18)
(2) 고려하다, 심사숙고하다.
(눅2:19)
(3) 만나다, 싸우다.
(행20:14)
(4) 논쟁하다, 다투다.
(눅1:53)
7. acivsma 스키스마
(1) 찢어진 곳, 터진 틈.
(마9:16, 막2:21)
(2) 분열, 불화.
(요7:43, 고전1:10)
8. dialogivzomai 디아로기조마이
원래의 의미는 "생각을 굳히다"이다.
논의하다, 생각하다, 숙고하다, 간주하다.
(마16:7, 18)
(2) 논쟁하다, 다투다.
(막8:16, 눅20:14)
9. katalaliva 카타랄리아
악담, 비방, 욕지거리.
(고후12:20, 벧전2:1)
설교예화자료
누가 먼저 불을 끄는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두 개의 소방대가 누가 먼저 불을 끄느냐로 논쟁하여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집 한 채가 완전히 타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근교 덴더리유의 소방대가 이를 알고 먼저 왔습니다. 또한 알스트에서 전임 소방대가 곧 왔습니다. 텐더리유 소방대 책임자가 자신들이 이 불을 꺼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안 알스트소방 대원들이 호수로 물을 뿌렸습니다. 그러나 애상과 달리 불길은 더욱 거세졌으며 덴더리유 소방대는 이러한 행위를 비난하였습니다. 결국 리드게르크로부터 다시 소방대가 출두하여야만 했습니다. 그 집은 완전히 탔으며 근접해 있는 두 채의 집까지도 손해를 입었습니다.
선장의 잘못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증기선 센트럴 아메리카호는 대양 한가운데서 배에 구멍이 생겨 물이 새기 시작하였습니다. 선박 하나가 이것을 보고 센트럴 아메리카호에 다가갔습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다가온 배의 선장이 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수리를 할 수가 없으므로 물이 들어와 배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 아침까지는 괜찮으리라 생각됩니다. "라고 센트럴 아메리카호 선장은 대답하였습니다. 구조선의 선장은 말했습니다. "지금 당신 배의 승객들을 갑판 위로 나오게 하십시오." 그러나 센트럴 아메리카호 선장은 지금은 밤이고 또한 혼란속에 승객 몇 명이 낙사할 것 같고, 배 역시 내일 아침까지는 떠있을 것 같았으므로 "내일 아침에 합시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구조선의 선장은 말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로 하여금 옮겨 타게 하는 것이 나을 텐데요." 그러나 센트럴 아메리카호 선장의 "내일 아침에 합시다. "라고 다시 한 번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시간 반 후에 센트럴 아메리카호는 완전히 가라앉았으며 갑판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에 구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에게 지금 구원이 주어진다면 주님을 영접하는 시간을 지체하지 마십시오.
노아의 절망적인 이야기
하나님이 노아에게 묻기를 "내가 너에게 만들라고 한 방주는 어디에 있느냐?"
노아가 이에 대답하기를 "진실로 여쭈오니 세 명의 목수가 병이 들었으며, 일 년전에 주문한 잣나무가 아직 도착되지 않았으니, 주여! 제가 어떻게 하나이까?"
그러자 하나님이 노아에게 "앞으로 칠일 안에 완성토록 하여라."라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자 다시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번에는 무슨 일이냐?"고 묻자, 노아가 대답하기를 "제 하청 업자가 도산했으며, 방주의 안감에 바르라고 하신 역청이 도착하지 않았으며 배관공이 파업을 일으켰고 방주 일을 돕던 제 아들 셈이 형제인 함과 야벳과 어울려 토론회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그래서 하지 못했나이다. "
하나님이 화가 나서 말씀하시기를 "그럼, 지상에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암수를 맞춰 모든 동물을 모으라고 한 것은 어떻게 됐느냐?" 노아가 대답하되, 다른 주소지로 배달되었으나 금요일엔 도착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럼 유니콘과 일곱 쌍의 새들은 어찌 되었느냐? " 노아가 손을 꼭 잡고 울며 말하기를 "유니콘은 불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돈이면 몰라도 사랑만으로 어쩔 수 없으실 겁니다. 그리고 새들은 단지 한 마리씩만 팔고 있습니다. 하나님, 어떡해야 하나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아들 노아야, 내가 알고 있느니 라, 너는 내가 지상에홍수를 내리려 한다고 생각하느냐? "
온 유럽인으로 하여금 듣도록 하시오!
1831년 드레스덴에서 오스트리아의 대사, 메테르니히는 '평화'에 관해 나폴레옹과 토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에게 "각하, 불란서는 평화를 필요로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나폴레옹은 "아니오, 불란서는 평화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영광을 바랍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메테르니히가 다시 응수하기를 "불란서는 진정으로 정화를 원합니다. 내가 이 드레스덴에 올 때 나는 당신의 그 많은 병사들 사이를 지나왔습니다. 당신의 병사들은 모두 젊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다 총에 맞아 쓰러진다면, 당신은 그들 대신으로 200,000명 어린이들을 내세우실 겁니까? "
나폴레옹은 화가 나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그의 모자를 카페트 위에 던지고는 소리쳤습니다.
"메테르니히, 당신은 군인이 아니오. 당신은 캠프 생활을 해본 적도 없고, 인간의 삶을 경멸해 본 적도 없는, 200,000명의 인간이 당신한테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이요? 인간의 삶이란 저주받은 것이오." 메테르니히는 비꼬면서
"자, 그러면 창문을 열어젖히시지요. 온 유럽인이 당신의 이 말을 듣도록 하시지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아랍인 안내인을 죽임
사무엘 베이커 경이 다음과 같은 사건을 말하였습니다. 얼마 전 이집트 군대가 누비아를 처음 정복했을 때, 누비아 사막을 횡단하던 연대 하나가 갈증으로 전멸하였습니다. 모두들 극심한 갈증으로 고생했으며, 아름다운 호수의 신기루를 보고는 아랍인 안내인에게 그리로 안내하라고 우겨댔습니다.
아랍인 안내인은 호수가 진짜가 아니라고 하였으나 소용없었습니다. 그리고 쓸데없이 헤매이다 시간을 소모할 수 없다고 하자 군인들은 그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군인들의 생명은 안내인에게 달려있었습니다. 마침내 신기루는 사라지고 가짜 호수는 불타는 사막으로 변했습니다. 극심한 갈증과 무서운 절망! 길도 없는 사막과 살해당한 안내 인! 그들은 모든 것을 잃은 채 아무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나중에 그들은 아랍인들이 보낸 수색조에 의해 말라 죽어 있는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안식일에 말은 안되지만 책은 무방하다
오후에 나는 예루살렘의 헤브루 대학의 교수인 클라우스너 박사에게, 내 사인첩에 사인해 주시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안되겠는데요. 오늘은 안식일이니까."라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두 마디 이상의 말을 계속해서 하는 것도 일을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안식일에 자기 이름을 사인하는 사람은 계율을 어긴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 밤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의 서재에 모여서 이것저것 토의할 때, 클라우스너 박사는 작은 사다리를 올라가서 책장에서 무거운 서책을 가지고 내려와서, 그걸 열고, 몇몇 관계되는 구절을 지적하고는 책을 다시 꽂아놓고, 다른 책을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탈무드에는 선반에서 책을 내리는 것을 일로 규정한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두 마디 이상의 말은 노동이지만, 두꺼운 책을 땀흘리며 가져와서 그것을 토의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니!
이것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막7:7)"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의 의미를 완벽하게 예증하는 것입니다.
장군에게 머리속인 대왕
프레드릭 대왕은 비웃기를 좋아했으며, 븐질랜드 장군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집회에서 왕은 예수에 대해 좋지 않은 농담을 해서 사람들이 크게 웃었습니다. 장군이 일어나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아십니다. 저는 폐하를 위해 38번을 전쟁에 나가 싸워 이 겼고 이젠 늙었습니다. 저는 죄로부터 저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곧 갈 것이옵니다. 폐하께서 모독하신 예수님께로, 저는 예수를 사랑하는 늙은이로서 영원의 가장자리에서 경의를 표합니다. " 프레드릭 대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븐질랜드 장군, 용서하오. 용서하오. 용서하오!"
사람들은 조용히 흩어졌습니다.
여권 운동은 여성들이 한 계단 물러서는 것
한 저명한 인류 학자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이며, 여성들이 남성과의 평등을요구하는 것이란 다만 그들을 끌어내리는 결과밖에 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애슐리 몬타규는 버어지니아 공공 복리 대학에서, 남성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은 오히려 "한 계단 물러서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몬타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열등한 사람들만이 자신이 우월하다고 고집하는데, 현재 남성들이 바로 이와 같은 고집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
여성들은 이미 오래 전에 그들의 우월성을 발견했으며 "그 우월성에 대해 침묵을 지킬만큼 훌륭한 센스를 가지고 있다. "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여성들은 그들의 매일의 경험-대부분의 남성들의 경험과는 다른 -으로 해서 훨씬 지혜롭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체질적으로 우월한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임신하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기 때문이며 두 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생물학적으로도 우월하다고 말했습니다.
상상의 이야기로 인해 야기된 말다툼
나이 많은 작가가 밤중에 산보를 나간 두 형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산보를 하던 두 형제가 하늘을 보며 이야기하였습니다. "밤 하늘만큼이나 넓은 목초원을 가졌으면." 곧 동생이 하늘을 보며 말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별들만큼이나 많은 소들을 가졌으면."
"그러면 너는 그렇게 많은 소들을 어떻게 먹일 거니?"라고 형이 물었습니다. "나는 형의 초원으로 그들을 몰고 갈 거야."라고 동생이 말하였습니다. "무엇이라고? 내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물론, 형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곧 그들은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싸움으로 한쪽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불신앙과의 대화
우리 주위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끔 그런 이들과 대화를 하게됩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분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 줄 길이요, 진리요,생명입니다. "
"여보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예수 타령이요,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아니 그게 아니고‥‥‥‥
"예끼, 그만두쇼."
이상과 같이 불신앙인들과의 대화는 거의 말싸움이나, 서로의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논쟁으로 끝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세상을 향해서, 우리의 이웃을 향해서 호소력 있는 복음 증거를 할 수 있을까요.
말로써가 아니라 몸소 신앙의 실천으로써 이웃과의 논쟁을 피하고 진정 예수께서 보이신 신앙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우리가 됩시다.
어록·시·묘사
논쟁의 가장 큰 매력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의견을 발견하는 데 있다.
(M. 데이비)
진정한 논쟁 자들은 참된 스포츠맨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모든 기쁨을 추적하는 데 있다.
(A. 포프/ 단상)
어떤 논쟁을 하는 것은 언제나 쓸데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면 그와 반대로 논쟁의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A. 로브그리예/ 자연 ·인본주의 ·비극)
논쟁 업이 과학· 정치 ·종교에 있어서의 위대한 진보는 없다.
(R. 비처)
논의는 천천히, 그러나 행동은 재빠르게 하라.
(B. 하트/ 게티스버그의 존 번즈)
논쟁에 응하는 경우 쌍방에 있어서 가장 불유쾌한 욕은 화는 나지만 가만히 참는 일이다. 왜냐하면 공격 자측은 일반적으로 침묵을 경멸의 표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F.W.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논쟁의 태풍에 휩쓸린 지식의 나무는 열매 대신 말라빠진 잎들만 만들어낸다.
(J. 데넘 경/ 학문의 진보)
어제 하나의 사상을 받아들인 자들과 내일 같은 사상을 받아들일 자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만큼 치열한 것도 없다.
(C. 물리/ 신앙일지)
비록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든가, 알고 있더라도 열띠고 시끄러운 논쟁은 결코 지속하지 말라.
(체스터필드 경/ 서간집)
논쟁할 전 조용하라. 맹렬은 잘못을 결함으로 만들고 진실을 무례로 만들기 때문이다.
(G. 허버트/ 사원)
농담으로 시작된 논쟁은 이기려는 욕망과 함께 계속되어 마침내는 허영심이 분노로 불타오르고 대립이 적개심으로 화한다.
(S. 존슨)
논쟁에는 귀를 기울이라. 그러나 논쟁에 끼어들지는 말라. 가령 어떠한 사소한 말 속에도 분노나 격정을 불어넣는 것을 경계하라.
(N. V. 고골리)
논쟁이란 언제나 진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혼란에 끌어넣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익었을 때에는 논쟁 없이도 얼마든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이다.
(L. N. 톨스토이)
자기의 사상을 얼음 위에 놓아 둘 것을 마음 먹고 있지 않는 사람은, 논쟁의 열 속에 몸을 던져서는 안 된다.
(F.W.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논쟁을 이기는 최선의 길은 옳은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헤일셤 경)
열띤 논쟁에서는 진실의 시야를 잃기 쉽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사람들이 오랫동안 논쟁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들이 논하고 있는 일이, 그들 자신에게 불확실한 증거다.
(볼테르)
그대가 언쟁을 하고 가슴이 뭉클해지고 반발심이 생기면 한때는 승리를 성취할 수 있겠으나, 그 결과 상대방과의 친선을 잃고 말기 때문에 그 승리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B. 프랭클린)
논쟁에 종사하는 도당은 문제의 정당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다만 듣는 사람에게 자기의주장을 설득시키려고만 조바심한다.
(플라톤)
언쟁을 통하여 무식한 사람을 이겨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W. G. 매카두)
오랜 논쟁을 그치자! 거위가 백조이고 백조가 거위다.
(M. 아놀드/ 최후의 말)
논쟁에는 이성도 우정도 필요치 않다.
(이비쿠스/ 단편집)
논쟁은 남성적이고 대화는 여성적인 것이다.
(L. M. 올컷)
가장 훌륭한 언쟁 방법은 언쟁을 회피하는 것이다.
(D. 카네기)
불가피한 것에 논쟁을 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북풍과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버코트를 입는 것이다.
(J.R. 로얼)
말다툼은 피하도록 끝장을 내어라. 그렇지 않으면 말 꼬리총을 조금씩 뽑아 내듯 그대의 논거의 더미가 줄어들어 내 사리(事理) 앞에서 무너지기까지 한 단위 깎아 내리라.
(호라티우스)
반대할 여지가 있는 모든 것을 논쟁하자면 끝이 없다.
(W. 펜/ 고독의 과실)
소용이 없네 낡아빠진/ 웅변술의 언어조작도/ 삼단논법의 화술도 쥐를 잡지 못하네/ 녀석들은 그따위 궤변쯤은 뛰어 넘어버리네.
(하이네/ 유랑의 쥐)
남과 싸움 말라 싸움이 해(害) 많으뇨/ 크면 관송(官訟)이오. 작으면 수욕(羞辱)이라/ 무슨 일 내 몸을 그릇 다녀 부모 수욕 먹이리.
(김상용)
설 교 노 트
결례에 관한 논쟁
막7:1-23
서론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손틀 씻지 않고 식사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결례에 관한 논쟁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바리새인의 유전 파괴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의식적 율법주의를 언제나 배격하셨습니다.
1. 바리새인들이 유전시키지 않음을 힐난하였습니다 (1-5절).
바리새인들은 의식적 불결을 과하려고 식사 전에 새수법이 규정되었습니다. 손으로부터 팔뚝까지 두 번씩 씻는 법으로 이것은 유대인들이 음식을 손으로 먹기 때문에 위생상 필요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율법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장로들이 만들어서 율법에 첨부하여 율법처럼 교훈하였고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는 까다롭게 트집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뿐 아니라 조상들이 구전으로 전한 계율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트집잡은 것입니다.
2. 부정한 손으로 식사하는 것에 대한 설명(6 -16절)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 당시 타락한 종교가들을 향하여 책망한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이 말만 유전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파괴하는 예를 들어서 책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주장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 위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대신하였기 때문에 위선자들입니다. 그들은 인습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비인간적인 행위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한 것을 비난하셨습니다. 고르반 맹세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부모에 대한 봉사보다 우선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인간에 대한 봉사를 분리해서 생각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고르반"이라는 서원을 가지고 그들의 모순된 사상을 타파하신 것입니다.
3.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17-23절)
그것은 외면의 정결보다는 이면의 성결을 요망하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음식 이 입으로 들어가서 마음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위 속으로 들어가 배설되는 것이므로 모든 식물은 깨끗하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오는 것은 무엇 입니까?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것이 다 속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음행, 도적질, 살인, 간음은 강행범이기 때문에 행위상 죄요, 탐욕 이하는 성질상 죄니 마음의 죄인 것입니다.
결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오랜 인습에 젖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더 많음을 보게 됩니다. 특히 성도들의 그러한 모습은 참으로 위선적 행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만은 열심히 하면서 마음이나 행위가 그렇지 못하다면 바리새인과 다를 바가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말이나 마음의 생각이나 행위가 다 하나님께 속하고 하나님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쓸데없는 일로 논쟁을 일삼지 말고 경건한 자세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교권자들과의 논쟁
눅20:1-47
서론
백성들의 열광적인 환영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직접 해칠 수 없게 된 교권자들은 말의 함정으로 우선 예수님과 백성들을 이간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본장은 유대의 교권자들과 논쟁한 내용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때는 수난 주간 중 제 2일인 화요일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1. 권위에 대한 질문(1-8절)
성전 숙청에 악한 감정을 품은 교권자들의 첫번째 질문은 권위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 일들을 행하여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냐"라고 그들은 따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서냐"라고 반문하셨는데 하늘로서라면 왜 진리에 순종하지 않느냐고 할 것이요, 사람에게서라고 할 것이면 백성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므로 두려워서 알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저들의 저자세로 인하여 예수님의 권위는 더 높아졌습니다.
2. 악한 농비의 비유(9-19절)
본 비유는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계명과 율법을 주시고 성전과 제단을 주시고 선지자와 파수꾼을 보내시고 제사장과 교법사들을 세워서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또 이성과 양심을 주시고 인간의 정의를 요구하시는 심판의 때를 설정하셨습니다. 또 선지자와 종들을 보내서 가르쳤으나 도리어 그들을 학대하였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더니 오히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므로 로마 군대를 파송하여 나라와 백성을 진멸하리니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싫어서 버린 그리스도가 이방을 구원하실 교회의 머리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들 때문에 부딪치고 깨어지는 것은 예수님을 박대한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판이 임할 때 받을 형벌이 두려움을 보여주신 비유의 교훈입니다.
3. 납세와 부활에 대한 질문
본문 20절에 "저희가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가이사에게 납세함의 가부를 물을 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비애국심을 공격하고 진정한 애신 정신을 교훈하셨습니다.
또 사두개인들이 부활 문제에 관하여 질문하였는데 예수께서는 부활의 사실을 성경으로 증명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것이 가능함을 말씀하시고 내세에는 결혼의 필요성이 없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4. 다윗의 자손 문제(41-44절)
다윗과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일반 유대인의 인식을 시정하셨는데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 중에서 출생하는 것은 유대인 일반의 신념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다윗보다 예수님이 먼저 계신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결론
주님께서는 서기관들의 소행을 경계하셨습니다(45-47절). 그들의 허영심을 경계하셨는데 곧 외식하는 일이요, 또 그들의 탐심을 경계하셨는데 과부의 재산을 탈취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사1:18-20
서론
본문 18절에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우상 숭배, 음란, 배 신, 방종 등의 최악이 극에 달하여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이사야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땅의 인류를 향하여 주님께서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초청하시고 계십니다.
1. 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초청입니다. 주께서 오라고 하시는 말씀의 의미는 사랑의 표현, 회복의 표현, 축복의 표현인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는 나가라고 하였습니다(창3:23).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전에는 멀리 있던 우리를 오라고 부르십니다(엡2:13).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실 때 기쁜 마음으로 그 초청에 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서로 변론하자고 하십니다.
이것은 초청의 내용인 것입니다.
변론의 뜻은 보다 더 넓은 시야에서 볼 때, 상담한다, 면담한다. 대화한다, 토론한다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서로 변론하자고 하시는 것은 같이 이야기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자고 하시는 것입니까?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면 그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자백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아니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 더 옳습니다. 자신의 죄를 내부 깊은 곳에 감추어두고 혼자 은밀히 들여다보며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된 생각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들어주시며 그러한 죄된 생각에서 나오게 하여 주십니다.
3.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초청하셔서 그 초청을 받아들인 자의 결과인 것입니다.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진홍은 조개껍질을 삶은 물에 여러 번 흰 천을 삶아 말린 것입니다. 주홍은 찰나무 곤충의 알을 삶은 물에 흰 천을 여러 번 삶아 말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의 뜻은 중복된 죄악, 만성적 죄악, 고질적 죄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이러한 죄악일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하여 주십니다. 기억도 하시지 않으십니다. 없었던 것으로 해 주십니다. 새것으로 인정하십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의인은 없습니다. 즉 모두가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자백하기만 하면 모두 용서해 주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나와서 이야기하자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고하고 용서를 구하면 깨끗하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죄가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 모든 거리낌을 고백함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축복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논쟁에 대한 교훈
막9:33
서론
주님의 제자들은 서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가장 큰 자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노중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주님에서 이 논쟁에 대하여 묻고 계시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1. 모든 신자들은 주님께 심문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삶이 곧 장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주님의 인도로 천국을 향해 여행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가 길을 걷는 동안 어느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는가에 따라 여행이 끝난 후 우리의 종국이 결정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말은 앞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때에는 우리에게 유리한 증거와 불리한 증거가 공평하게 제시될 것입니다.
모든 일은 주 예수께 위임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심판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요5:22, 고후5:9, 10).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심판하여 자신이 한 일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우리가타인을 심판하거나 벌주지 못할 것입니다.
2. 모든 신자들은 그들의 대화에 대해 책임지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대화를 주목해서 듣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마음에서는 선한 말이 나와 선한 목적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한 대화를 듣고 계십니다. 비록 선한 말이 은밀하게 되어졌다고 해도 모든 사람 앞에서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악한 대화도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3. 신자들은 특히 그들의 논쟁에 대해 책임지게 됩니다.
논쟁이란 차이와 다툼 그리고 상호간의 모순과 그로 말미암은 적대적 입장 등을 전제합니다. 논쟁은 보통 의견 차이에서 발생합니다. 또 이해 관계의 대립에서 비롯됩니다. 또 다투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논쟁에서의 적절한 처신은 참되고 옳은 편에 서는 것이며,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동정을 베풀 수도 있어야 하며, 주님앞에서 져야 될 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주도권을 위한 논쟁은 심히 책망받게 됩니다.
제자들은 "우리 중에 누가 크냐 "는 것이 논쟁의 주제였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을 못마땅히 여기셨는데 그것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왕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논쟁은 주님의 겸손과 사랑의 법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교만하여 이 세상에서 크게 되려는 것은 겸손의 법에 어긋나며 크게 되려고 다투는 것은 사랑의 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의 모범과도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제자 직분에 적합하지 못함이 드러났습니다. 이 논쟁은 선교 사역에 타격을 입히고, 교회의 확장에 방해가 되며, 평화를 깨뜨리며, 원래는 하나였던 교회를 무수히 많은 분파들로 분열시키는 것이기에 이렇게 타락한 기질은 교회의 걸림돌이 됩니다.
결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누가 큰가를 놓고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경멸스럽고도 위험한 짓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애써서 가장 선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전보다 더욱 선을 행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뇌 물
성 경 활 용
1. 미치는 영향
(1) 죄인이 되게 함
(시26:10)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2) 눈을 어둡게 함
(출23: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3) 정의를 벗어나게 함
(사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4) 재판을 굽게 함
(삼상8:3)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느니라
(잠17:23)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5)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함
(암5:12) 너희는 의 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자로다
(6) 나라를 멸망시킴
(잠29:4) 왕은 공의로 나라를 견고케 하나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는 자는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rp,Ko 코-페르
(1) 속죄의 대가, 죄를 가리움.
(출21:30, 사43:3)
(2) 총애를 얻기 위해 드리는 선물, 뇌물.
(삼상12:3, 암5:12)
2. rp'K; 카-파르
원래의 의미는 "덮다, 덮어버리다, 가리다"이다.
(1) 용서하다, 덮다.
(신21:8, 시65:4)
(2) 속죄하다.
(출32:30, 레4:26)
(3) 선물에 의해 분노를 가라 앉히다.
(창32:20, 잠16:14)
3. ryjim] 메히-르
(1) (어떤 물건이 팔리는) 가격, 값.
(잠17:16, 사45:13)
(2) 임금, 보수.
(신23:19, 미3:11)
(3) 뇌물.
(단11:39)
4. hn:T;m' 마타-나
(1) 선물. 뇌물.
(잠15:27, 전7:7)
5. hm;WrT] 테루-마-
(1) 선물, 거제물.
(레10:14-15, 민6:20)
(2) 뇌물.
(잠29:4)
6. dj'v' 쇼하르
뇌물, 선물.
(출23:8, 신10:17, 삼상8:3, 욥15:34, 시26:10, 잠17:8, 미3:11)
7. !WLvi 실 룸-
뇌물.
(미7:3)
8. rk's; 싸-카르
뇌물.
(스4:5)
설교예화자료
관원의 뇌물
후한 양속이 남양군 태수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태수라 하면 한 나라나 한 성의 군주 이상의 권세가 있어 모두들 그 아래에 와서 아첨하고 뇌물을 바치려 하는 자리였습니다. 허나 양속의 사생활은 늘 검소하였고 그가 타고 다니는 마차도 허술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어떤 관원이 귀한 물고기를 산 채로 구하여 양속이 없는 사이에 그의 집에 놓고 갔습니다. 얼마 후 양속이 집에 돌아와 그 물고기를 발견하고는 한인을 시켜 뜰에 있는 나무에 그것을 메달아 두도록 했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양속이가 기꺼이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관원은, 며칠 후에 다시 산 고기를 구해 들고 양속의 집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양속은 집에 있었습니다.
관원은 "필시 그 생선을 좋아하실 줄 아옵고 또같은 놈을 구해 왔습니다. " 하였습니다. 양속은 "그것을 모처럼 보내준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되었소."라고 말하고는 나무에 매달려둔 생선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그 생선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습니다.
망신을 당하고 집에 돌아온 관원은 또 다시 뇌물을 양속에게 가져가는 일은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위의 청백리
위나라 호위는 아버지 호질과 함에 청렴 결백한 인물이었습니다. 위는 형주 지사가 되었으나 언제나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사라면 그 당시 굉장히 수입이 좋은 벼슬이었건만 청렴한 위는 한 번도 돈이나 뇌물에 신경을 쓴 일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오랜만에 시종이나 부하도 거느리지 않고, 단신 노새를 타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귀임하려 서두르자 아버지되는 질이 명주 한 필을 주었습니다. 명주는 동화와 똑같이 가치가 있는 귀중품이었습니다. "이 명주는 도대체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걱정하지 말라,내 봉록 중에서 저축한 것이니." 그는 기꺼이 받아 들고 아버지 앞을 물러 나왔습니다. 그러나 위는 그 명주를 자기 것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신세를 지고 계신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하면서 위는 그 명주를 아버지의 부하에게 선사했습니다.
위나라 임금 무제가 하루는 위를 불러 물었습니다. "경과 경의 가친의 청렴한 점에서 누가 위인고? " 잠시 생각하고 난 위는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청렴함이 남에게 알려 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계십니다만 저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버님께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순수성을 잃은 선물
추석이나 설날 같은 우리 고유의 명절에는 조상에 대한 차례를 올리고 부모 형 제, 이웃을 찾는 선물이 오가게 됩니다. 평소 은혜를 입은 분에 대한 마음의 정성도 이런 때에 간단한 선물로써 대신할 수 있습니다.
선물은 그만큼 마음과 정성이 담긴 하나의 표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물은 자신과 상대에게 부담이 가서는 안되고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값이 너무 비싼 것이어서도 안되고 무리해서 보내져도 안되는 것입니다.
선물은 자연스러운 것이로되, 상대의 취향이나 요구에 가장 일치되는 것이면 더욱 안성맞춤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물 문화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선물을 보내야만 할 때, 안보내는 몰인정도 문제지만 지나친 선물 과시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선물은 마음과 정성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선물의 효과에 초점을 둔다면 선물의 본뜻과는 멀어져 갈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이 선물을 보내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혹은 비싼 선물을 보내서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심으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지 이미 선물은 아닌 것입니다. 선물은 주는 이의 외경과 순수성을 잃었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값비싼 선물을 받으면 당혹해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받은 만큼 갚아주어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입니다.
상대가 승진을 목적한다면 그에 응해야 할 것이며, 취직을 원한다면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하기 때문에, 선물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남발되고 있는 현실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를 선물이라 하지 않고 뇌물이라 이름합니다.
안타까운 경찰관
K씨는 자가 운전을 하는 회사원입니다. 영등포 구청 앞에서 퇴근을 하던 중, 앞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미처 신호등도 보지 못하고 따라가다가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직진을 하는데, 길모퉁이에 숨어있던 경찰차에 걸려 도로 옆으로 차를 세웠습니다. 잠시 후, 경찰관이 다가오더니 면허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 면허증을 제시하자, "당신 무슨 배짱으로 경찰차가 있는 데도 신호를 무시하고 직진하는거야." 하고 대뜸 반말로 윽박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 경찰관은 "당신 말이야, 벌칙금 30,000원에다 20일 면허 정지야, 알겠어? " 하고 겁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K씨는 "아니, 벌칙금은 이 해가 가는데,20일 면허 정지가 뭡니까? " 하고 반문하자, 그 경찰관은 "뭐라고, 이 사람이 어디다 대고 따지는 거야? " 하면서 계속 겁을 주더니 "그러나 어쩔거야? " 하고 인상을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질질끌며 K씨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K씨는 그 경찰관이 무얼 원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지갑을 꺼내어 20,000원을 면허증 뒤에다 숨겨 주었습니다. 그 경찰관은 아무소리도 않고,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K씨는 기분이 착찹했습니다. 그 경찰관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면서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있는 뇌물이라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면서 한편으로는 그 경찰관과 같은 말단 공무원들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우면서, 상류 계층이나 고위층들이 솔선 수범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이 더 뒷배경과 뇌물로 일삼는 그릇됨을 보여, 서민들의 사회 속까지 썩고 있는 세태가 되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뇌물은 주면 다음에 또 주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므로, 받지도 주지도 말아야 합니다.
양진의 청빈
중국의 후한 시대 방진이라는 사람은 학문이 깊고, 또 청렴 결백하기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그는 동래군의 태수로 임명되어 가는 길에 창읍이라는 곳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태수님, 참 반갑습니다. 저는 전에 많은 도움을 받은 왕밀이올시다. " 하였습니다. 그러자 태수는 "아, 참으로 오랜 만일세."라고 말하였습니다. 태수가 일찍이 형주의 감찰관으로 있을 때 왕밀의 학식을 알아보고 관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시켜 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왕밀은 슬그머니 금 열 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양진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전부터 그대의 학식이나 인물을 잘 알고 있는데, 그대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렸는가? "라고 양진이 말했습니다. "아니올시다. 태수님, 얼마나 고결하신 분임은 마음속에 뚜렷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뇌물이 아닙니다. 다만 입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뜻입니다. " 하였습니다. "자네는 내가 미리 짐작한 대로 훌륭히 성장하여 현령이 되었네. 앞으로 더 높은 자리에 나아가 많은 일을 해줄 줄 믿네. 나에 대한 은혜는 그것으로 갚아지는 셈이 아닌가."라고 점잖케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왕밀은 "태수님, 그렇게 딱딱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은 깊은 밤입니다. 또 여기는 저와 태수님뿐, 아무도 모르는 일이옵니다‥‥‥‥라고 사정하였습니다. 양진은 조용한 눈으로 왕밀을 바라보다가 "아무도 모른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네. 우선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거기에다 자네와 내가 알고 있지 않는가?" 했습니다.
이 말에 왕밀은 얼굴을 붉히며 돌아갔는데, 그 후 양진의 고결함은 날로 더 빛나서 드디어 태위(병사의 최고 관리자)의 지위에 이르렀습니다.
청렴한 최영 장군
최영 장군이 기울어져가는 고려 사직을 붙들 수 없었던 것은 시대가 너무 부패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울어가는 시대에 장군은 백전 백승의 대훈을 세우고, 일흔 세 살에 이태조파에게 피살되어 대자산에 묻혔으나, 무덤에 풀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참살될 때 "내가 청렴 결백하였으면 무덤에 풀이 나지 않으리라."라고 한 말 그대로였습니다. 장군은 어려서부터 부친의 "시금여석(視金與石:황금 보기를 돌같이 함) 하라"는 유훈을 지켜, 부정 부패가 만연한 조정에서 유일하게 청렴결백의 생을 살았습니다.
어록·시·묘사
뇌물로 얻은 충성은 뇌물로 정복된다.
(세네카/ 아가멤논)
나는 어떤 정치가를 뇌물로 매수하고 싶을 때 늘 반독점자들이 가장 매수하기 쉽다는 것을 발견한다.
(W. H. 벤더빌트)
한 번 팔렸던 양심은 두 번 팔릴 수 있을 것이다.
(N. 비너/ 인간의 인간적 활용)
뇌물을 주고받는 일을 누군들 비밀히 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마는 밤중에 한 일이 아침이면 이미 널리 퍼지기 마련인 것이다.
(정약용/ 목민심서)
부처님 위하여 불공하나. < *남에게 뇌물을 줌은 그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실상은 자기의 희망을 위하여 한다는 뜻>
(한국 속담)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될 때 받는 것은 자기의 청렴을 손상시키고, 주어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될 때 주는 것은 자기의 은혜를 손상시키며, 죽어도 되고 죽지 않아도 될 때 죽는 것은 자기의 용기를 손상시키는 것이니라.
(맹자)
모욕적인 선물과 존경의 상징인 선물을 구별하라.
(K. 지브란/사람의 아들 예수)
한 재상이 청음 김상헌에게 말하기를, "우리집 여자는 번번이 뇌물을 받는다는 비방을 듣습니다. 장차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김공이 말하기를, "부인이 청탁하는 것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면 비방은 없어질 것입니다"고 하였다. 재상이 크게 깨닫고 한결같이 그의 말대로 하였다. 그 부인이 항상 김공을 욕하여 말하기를, "저 늙은 것이 자기나 청백리가 되었으면 그만이지 어째서 남으로 하여금 본받게 만들어서 나를 이렇게 고생을 시킨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고 한다.
(정재륜/ 圍繼錄)
뇌물은 공짜로 얻어진 돈 같지만, 불로소득인 뇌물을 받으면 공짜로 생겼기 때문에 헤프게 쓰기 쉽고, 돈을 헤프게 쓰다 보면 가정을 파괴하고 귀중한 자식을 망치게 하여 결과적으로 무서운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다.
(정비석/ 돈의 공해)
뇌물은 번영이 없다.
(영국 속담)
기름 먹인 가죽이 부드럽다. < *뇌물을 써서 두루 통해 놓으면 모든 일이 다 순조롭게 풀 린다는 뜻>
(한국 속담)
뇌물을 받는 버릇은 일단 시작되기가 무섭게 정의를 수호하는 법원도 나라를 지키는 군부도 휩쓸어, 결국 나라를 제왕의 독재에 넘겨주었다. 왜냐하면 무력도 금력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권자에게 유흥과 뇌물을 제공하는 버릇을 처음으로 시작한 자가 나라를 망쳤다고 한 것은 지당한 말이다. 이 악습이 은밀히 로마로 숨어 들어와서 오랫동안 발각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에 있어서 처음으로 백성과 법원을 뇌물로 매수한 자가 누군지를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아테네에 있어서 법관에게 금품을 주고 석방된 첫 사람은 안테미온의 아들 아니루스였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뇌물에는 서약을 잊어버린다. <*서약도 이욕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일본 속담)
죽음의 뱃사공은 뇌물을 받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송시)
신은 뇌물을 받은 재판관에게 좋은 꾀를 내려주신다.
(터키)
천금은 죽지 않고, 백금은 벌받지 않는다. <*죄를 범해도 천금을 뇌물로 주면 사형을 받지 않고, 백금이 있으면 형을 벗는다.>
(尉 子)
노나라의 재상 공의휴는 생선을 좋아했다. 그에게 한 지방의 제후가 생선을 상납했으나 그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제자가 충간(忠諫)했다. "선생님은 생선을 좋아하시는데 왜 받지않으십니까?" 이에 공의휴가 답했다. "바로 내가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이다. 생선을 받고 재상의 자리에서 면직된다면,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생선일지라도 내 스스로 사먹을 수 없는 처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선을 받지 않으면 재상의 자리에서 면직되지 않을 것이니 오래도록 생선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 공의휴는 어떻게 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라 하겠다.
(회남자)
뇌물을 바치는 데에도 눈치가 있어야 한다. 눈치가 없으면 열 냥을 바쳐도 될 것을 백냥이나 더 주어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백 냥을 바쳐야 될 때 열 냥을 디밀다가 더 큰 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한 눈은 버림받은 하늘을 보고/ 한 눈은 마음의 가책을 보며,/ 유혹자의 뇌물을 서서히/ 물리쳤을 때의 승리.
(디킨슨/ 여러 가지 종류의 승리)
모욕적인 선물과 존경의 상징인 선물을 구별하라.
(K. 지브란/사람의 아들 예수)
쇠 먹은 똥은 삭지 않는다. <*뇌물을 먹으면 반드시 효과가 있다는 말>
(한국 속담)
설 교 노 트
네 양심을 속이지 말라
출23:1-9
서론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심이 있어서 해야 할 일을 하면 마음이 평안하고 해서는 안될 일을 하면 마음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대부분이 양심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때가 적지 않게 많음을 우리는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양심을 속이면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신은 항상 괴로워하고 때로는 고민도 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괴로움을 덜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생을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양심을 속이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심을 속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근거 없는 말은 전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말"이란 근거가 없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을 하는 것은 비 양심적이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근거없는 말을 듣고 그것을 전파하여 타인을 곤경에 빠지게 해서는 더욱 안될 것입니다. 만약 근거 없는 말을 해서 그것으로 인하여 한 사람이 충격이나 상처를 받는다면 이는 평생을 두고 후회하게 되는 일입니다.
2. 악인의 죄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적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다수는 전부가 아니며 진리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원칙은 진리입니다.
물론 다수의 의견이 선한 것이라면 개인의 의견을 버리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이 악이라면 순교를 각오하고서라도 반대하고 따르지 아니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악을 따르면 언제나 마음이 편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3.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8절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의롭다 하시지 않고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자도 좋아하시지 아니하십니다. 특히 재판장은 땅에 있는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본받아서 공의를 행하여야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고 판결하고 의인을 악하다고 판결한다면 이는 비 양심적인 행동이고 평생 후회할 일인 줄 알아야 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아니하려면 뇌물을 받지 말고 공정한 재판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론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은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으려고 단단한 각오를 가지고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죄는 감추고 타인의 죄만 간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그를 치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고 다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다(벧전3:21)"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에 가책 받는 일들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뇌물은 모든 양심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판결을 굽게 함
삼상8:3
서론
사무엘은 위대한 사사였으며 그 성품이 청렴 결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브엘사바에서 사사가 되기는 하였으나 아버지 사무엘의 뜻을 따르지 않았고 자기 사욕을 위해서 뇌물을 받고 판결을 일부러 굽게 하여서 타락하였던 것입니다.
1. 판결은 언제나 바르게 해야 합니다.
판결이라는 것은 어떤 사건의 선악과 시비를 가려서 결정하는 일을 말하는 것인데 곧 재판하는 일입니다.
재판은 법을 적용하여 행하는 공권적 판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재판의 담당자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이성으로 뿐만 아니라 월등한 하나님의 지혜로서 임하여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출애굽기 18장 19절에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계실지로다 그대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판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2. 뇌물을 취하여 판결을 굽게 합니다.
삼상 12장 3절에는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뉘 손에서 취하였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뇌물이란 결국 마귀의 물질입니다. 뇌물을 취한 자가 판결을 곧게 할 수 없고, 결국은 악인을 의롭다고 하고, 의인은 악하다고 하며 굽게 판결할 것은 불은 보듯이 명백한 사실인 것입니다.
뇌물은 이성의 눈을 멀게 하고 양심을 마비시키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올바른 판단을 원하십니다.
예로부터 판결은 하나님을 대리하여 하는 원리가 서야 하기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도 사법자들은 바른 판결을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 굽게 판결하는 자는 자신이 판결을 받게 됩니다.
재판관이 뇌물을 받고 판단을 굽게 한다면 그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욱이 양심의 교육을 시키는 학교에서 정의를 가르치는 자들이 뇌물을 받고 학생들을 입학시킨다면 이 사회의 정의라는 것은 그리고 진리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를 찾을 수 없으니 믿을 자가 없어 백성들은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불의의 세력이 팽창해지고 악인이 득세하는 무법과 불법의 천지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불법 판결 자들은 하나님께서 판결하셔서 자신들이 자신들의 판결과 정죄당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뇌물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을 방황하게 하며, 자신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더욱 큰 결과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의 아들들이 뇌물을 받고 굽은 판결을 하였으므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불의한 자들이요, 자기 부친의 이름을 욕되게 한 불효한 자들입니다. 뇌물을 받는 것은 자신을 멸망시키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능 력
성 경 활 용
1. 능력의 근원
(1) 하나님의 능력
(대상6:27)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2) 하나님의 능력
(고전1:2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3) 왕의 능력
(에10:2) 왕의 능력과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이
(단2:37) 하늘의 하나님 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4) 장자의 능력
(창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5) 이적의 능력과 힘
(마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2.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표현
(1) 어떤 신도 하나님의 능력을 따를 수 없다.
(신3:24) 천지간에 무슨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 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2) 능히 막을 사람이 없다.
(대하20:6)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으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3) 능력이 많으시다.
(시147:5)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4) 능력이 강하시다.
(사40:26)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시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5) 많은 사람이 놀라는 능력이시다.
(마13:54)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6) 귀신을 지배하신다.
(눅4:36)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7) 능력이 매우 크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8) 죽은 자를 살리시는 능력이다.
(고후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3. 하나님 능력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1) 주에 구한 일을 알게 하신다.
(단2:23) 주께서 이제 내게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2)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심
(히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3) 보존하심
(시79:11) 죽이 기로 정한 자를 주의 크신 능력을 따라 보존하소서
(4) 공의를 사랑하심
(시99:4) 왕의 능력은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라
(5) 보호하심
(벧전1:5)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6) 믿음의 역사를 이루게 하심
(살후1:11)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7) 능하게 하심
(골1: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8) 속사람을 강건하게 함
(엡3:16)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4.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1) 세계에
(시93:1) 여호와께서 능력을 입으시며 띄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요동치 아니하도다
(2) 주의 팔에
(시89:13)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3) 하늘에
(시68:34)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 위엄이 이스라엘에 있고 그 능력이 하늘에 있도다
(4) 성소에
(시96:6)존귀와 위엄이 그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 성소에 있도다
(5) 능력의 궤와 함께 있음
(대하6:41) 여호와 하나님이여 일어나 들어가사 주의 능력의 궤와 함께 주의 평안한 처소에 계시옵소서
5. 하나님이 언제 능력을 행사하시는가?
(1) 세계를 심판할 때
(마24:30)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 큰 권세로 다스릴 때
(단11:3)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3) 구원하실 때
(시140:7)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
(4) 이적을 행하실 때
(눅5:17)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5)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실 때
(시77:14) 주의 기사를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6) 노하실 때
(시90: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7) 백성을 인도하실 때
(민14:13) 주의 능력으로 이 백성을 인도하여 내셨거늘 그리하시면 그들이 듣고
(8) 흩으시고 낮추실 때
(시59:11) 우리 방패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저희를 흩으시고 낮추소서
(9) 우뢰가 발할 때
(욥26:14)그 큰 능력의 우뢰야 누가 능히 측량하랴
(10) 크고 강하게 하실 때
(대상29:12)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6. 어떤 자에게 능력을 베푸시는가?
(1) 여호와의 얼굴을 항상 구하는 자
(대상6:11)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2) 자신의 무능을 아는 자
(대하20:12)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3) 하나님을 생명의 능력을 삼는 자
(시27:1)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4) 주를 사모하는 자
(눅6:19)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
(5) 복음을 전하는 자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6) 기다리는 자
(눅24:49)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7.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1) 소경을 고치심
(마9:28)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2) 만물을 복종시킴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3) 시험받는 자들을 도우심
(히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4) 천사를 부릴 수 있음
(마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명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 믿은 자를 구원하실 수 있음
(히7:25)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8. 성도의 능력과 역할
(1) 지혜와 성령으로 원수를 대적함
(행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며
(2) 모든 지식이 차서 권면할 수 있음
(롬15:14)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3) 반대자들을 책망할 수 있음
(딛1:9)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4)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케 됨
(약3:2)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5)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함
(고후1:4)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6) 그리스도의 사랑을 앎
(엡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람을 알아
9. 능력받은 자의 생활태도
(1) 말씀을 지키며 그리스도를 배반치 않음
(계3:8)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2)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음
(딤후1:8)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3)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수고함
(골1:29)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4) 소망이 넘침
(름15:13)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주께서 돕는 힘으로 살아감
(시89:19) 내가 돕는 힘을 능력있는 자에게 더하며 백성 중에서 택한 자를 높였으되
(6) 안연히 거함
(미5:4)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관련원어풀이
1. hr;WbG] 게부-라
(1) 힘, 능력.
(시90:10, 전10:17)
(2) 군대력.
(삿8:21)
(3) 능력.
(신3:24, 시21:14)
(4) 승리.
(출32:18)
2. jKo 코-아흐
(1) 힘, 세력.
(삿16.6)
(2) 당신은 나의 힘이요.
(창49:3)
(3) 능력, 활력,
(단1:4)
3. h/os];x][oT] 테아추모-트
힘, 세 력,
(시68:36)
4. #yQiT' 티-티-프
강한, 능력 있는.
(단3:33)
5. lkey] 웨킬
할 수 있다, 능력이 있다.
(단2:47, 3:17)
6. ryDia' 아디-르
(1) 큰, 매우 위대한, 전능한.
(시93:4)
(2) 세력있는, 능력있는.
(삼상4:8, 시136:18)
(3) 고상한, 높은.
(시16:3)
7. lIa' 엘-
(1) 권세, 강력한 자.
(사9:5, 겔31:11)
(2) 세력, 능력.
(신28:32)
(3) 하나님
(창33:20, 시18:3)
8. qzej; 하-자-크
(1) 견고한, 완고한.
(겔2:4, 3:9)
(2) 강한, 전능한.
(사40:10)
9. @ys"j; 하신-
강한 권세 있는
(시89:9)
10. lyIj' 하일
권력, 조대, 힘, 용사, 덕행, 보물.
(삼하22:40, 시59:11)
11. br" 라브
(1) 많은.
(왕상10:2)
(2) 큰, 위대한, 넓은.
(창7:11)
(3) 능력있는.
(시48:3)
(4) 전능자.
(욥35:9, 사53:12)
(5) 나이 많은.
(창25:23)
12. ab,Do 도베
부귀, 능력.
(신33:25)
13. [/rz] 제로-아
(1) 팔.
(사17:5, 40:11)
(2) 힘, 세력, 능력.
(창49:24)
(3) 군대, 군력.
(단11:15)
(4) 힘, 도움, 원조.
(시83:9, 사33:2)
14. zWz[> 에주-즈
강력, 힘.
(시78:4, 사42:25)
15. z[o 오-즈
힘, 세력, 사나움, 영광, 피난.
(대상16:11, 잠31:25)
16. #qoT] 테코-프
강함, 능력.
(단2:37, 4:27)
17. ajdunatevw 아두나테오-
힘이 없다, 약하다, 불가능하다.
(마17:20, 눅1:37)
18. duvnamai 두나마이
할 수 있다, 능력이 있다.
(마6:24, 행27:15, 고전3:2, 10:13)
19. dunamovw 두나모-
강하게 하다, 견고케 하다.
(골1:11)
20. dunatov" 두나토스
(1) 할 수 있는, 힘 있는, 영향력이 큰
(눅1:49, 행25:5)
(2) 영적으로 강한.
(롬15:1, 고후12:10)
(3) 가능한, 행해질 수 있는.
(마19:26, 막10:27)
21. ejndunamovw 엔두나모오-
(1) 힘 있게 하다, 활기있게 하다.
(빌4:13, 딤후4:17)
(2) 능력을 얻다, 활기를 띠게 하다, 강해지다.
(행9:22, 엡6:20)
22. ijscuvw 이스쿠오-
(1) 몸이 건강하다, 튼튼하다, 건장하다.
(마9:12, 막2:17)
(2) 힘을 가지다.
(행19:16, 20)
(3) 쓸모가 있다.
(마5:13)
(4) 할 수 있다.
(마8:28, 막5:4)
23. ijscuv" 이스쿠스
힘, 능력, 강력.
(엡1:19)
24. kravto" 카라토스
힘, 세력, 권능.
(행19:20)
설교예화자료
인생의 성공은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은 뛰어난 재능을 갖는 데 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잘 활용하는 데 달려 있다. "
사람이 실패할 때 가장 쉬운 행동은 능력 부족이나 불운을 탓하며 자신을 책망하는 일일 것입니다. 가장 잊기 쉬운 것은-특히 모든 일에 운명의 장난이 끼어드는 것 같을 때-인간은 성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자기 자신을 맡겨 버린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며, 아무런 의미나 목적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이상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손수레를 끌고 골목을 다니며 빈병이나 휴지를 줍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런 재주가 없다고 믿는 한 그의 지저분한 손수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제한된 능력만을 가진 사람들이 굉장한 업적을 이룩해서 커다란 주목을 끌게 되었을까!" 케네스 한드브랜드는 말했습니다. 실로 케네스 한드브랜드는 '우범지대'의 낙오자들까지도 고개를 들고, 더 나은 생을 열망하도록 만들 수 있는 보기드문 능력을 가졌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무종파 교회인 시카고 중앙 교회에 몰려들었고, 그의 설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까지 알려져서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밝혀 주는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 합니다.
이름은 고유 명사
김민수 씨는 지금 청계천에서 조그만 도금공장을 하며, 월수입이 몇백만 원이 되고 아내와 아들 둘을 둔 행복한 가장입니다. 그는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공장의 기술자들에게 넉넉한 월급을 주는 보기드문 사장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김민수 씨가 어릴 적부터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형님과 형수의 구박 속에 중학교에 다니면서 성적은 늘 밑바닥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그를 보고, 좀 모자라다고 놀리면서 아무일도 못할 것이라고 인정해 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15살 때, 서울로 도망을 해야만 했고,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식당 배달부, 구두닦이 등 온갖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기술을 배워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조그만 도금 공장에 들어가 보수도 없이 먹고 재워 주는 대가로 열심히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고 그래서 기술을 인정받고 무일푼으로 공장을 차릴 때, 그의 성실성과 기술을 믿고 주위의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빌려주어 사업에 성공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를 구박하고 매질했던 형과 형수 그리고 고향사람들도 서로 다투어 서울로 찾아와 아쉬운 소리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능력 이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손재주가 좋은 사람,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등.
사람은 모두 자기의 이름이 있습니다. 철수, 순희, 영숙이‥‥‥‥
또한 그 이름은 고유 명사입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개개인은 고귀한 존재이며, 각기 능력이 다름을 의미합니다. 현대인들은 복제인간처럼, 너나 할 것 없이 한곳으로 몰리고 그곳에 끼이지 못하면 능력 없고 인생의 낙오자로 버림받고
맙니다. 그러나 개개인은 소중합니다.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남극과 북극에 꽃은 성조기
리차드 버드란 사람의 생애를 통해 평범한 사람이라도 확고한 결의와 뜨거운 열의를 갖고 임할 때 놀라운, 비범한 성과를 거두는 일을 보게 됩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먼 지방을 탐험해 보고픈 야심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 때 그는부상을 당하여 발목의 뼈를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해군 현역으로 입대할 수는 있었으나 28세 때에 생긴 발목뼈의 기능 장애 때문에 신체 부적격자라는 판정을 받고 퇴역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버드에게 뚜렷한 목표와 능력이 없었다면,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종사가 되어 다시 해군 현역 복무로 되돌아 올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훌륭한 자격을 가진 조종사였을 뿐만 아니라 해군의 경비행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에게는 불행이 겹치게 되었습니다.
그가 비행선으로 북극 비행에 나서려고 계획했을 때, 그의 첫번째 시도는 비행선의 추락으로 그만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똑같은 발목 상처의 재발 때문에 또다시 해군에서 퇴역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버드는 비공식적인 탐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모든 어려운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북극에 성조기를 꽂아놓았고, 다음으로는 남극을 향해 거기에도 역시 성조기를 꽂아 놓았습니다.
결국 미국 해군은 그들이 두 번이나 퇴역시켰던 사람에게 제독의 호칭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의 사윗감
어떤 부자 나라의 임금님이 아름다운 공주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혼기에 찬 공주를 시집보낼려고 훌륭한 사윗감을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임금이 공주에게 의견을 묻자 공주는 "용감한 사람이면 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은 전국에서 용기있는 자를 모집하여 강가로 데리고 갔습니다. 물론 그들의 용기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첫 번째 시험은 소용돌이치며 아우성대는 강물을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반수 이상이 실패를 했으나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강을 건넜습니다. 이번에는 활터로 데리고 갔습니다. 힘센 장수가 쏘는 화살을 몸으로 막는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얼마후 "제가 해보겠습니다. "하고 한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너도나도 하며 줄을 이었으나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그 청년은 "저는 저 화살을 가슴으로 막을 만한 용기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때 임금은 그 청년을 단상으로 오르게 하여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이 젊은이야말로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똑바로 알고, 그것을 속이려 하지않는 것보다 더욱 큰 용기가 어디 있겠는가? "
예수의 눈길
나는 주님과 퍽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청하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찬양도 하며 감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늘 나에게는 정정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내가 그분의 눈을 들여다보기를 그분은 늘 나에게 바라지만, 나는 결코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곧잘 말씀을 여쭙고자 하면서도, 그분이 날 바라보고 계시다고 느끼면 그만 그 눈길을 피해 달아나는 것입니다. 언제나 나는 그 눈길을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까닭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눈길 속에서 뭔가 뉘우치지 아니한 죄에 대한 나무람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떤 요구가 있으리라고, 뭔가 나에게 원하시는 바가 있으리라고, 은근히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기어이 용기를 내어 마음을 가다듬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 책망도 없었습니다. 아무 요구도 없었습니다. 그 눈은 그저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고 말할 따름이었습니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살피듯 바라보았습니다. 그래도 역시 그 눈길이 전해 주는 말씀은 한마디뿐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 나는 밖으로 뛰쳐나와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치 베드로처럼 말입니다.
능력의 통로
프랭클린이 전기의 원리를 터득했을 때, 그는 구름에서 번개를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지상과 구름 안에 있는 모든 전기는 그의 손안에 있었으며 그는 그것으로 자기 용무를 전달해 보탤 수 있었습니다.
제임스 와트가 증기의 팽창력에 대한 원리를 터득했을 때, 그는 그의 어머니의 차주전자끝에서 나오는 작은 증기 방울만 마음대로 다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저장된 연료에서 나오는 모든 증기를 참으로 그의 손안에 마음대로 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신앙의 능력에 대한 진리를 터득할 수 있었을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무한하신 영적 자원이 그의 것이 됩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여기에 저수지가 있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능력을 우리 생활에 전하여 그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통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어느 나라에도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이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게 됐다는 기록은 없다.
(H.L. 멘컨/ 편견)
산속에서 보물을 찾기 전에, 먼저 네 두 팔에 있는 보물을 충분히 이용하도록 하라! 그대의 두 손이 부지런하다면 그 속에서 많은 것이 샘솟듯 솟아 나을 것이다.
(스탕달)
각자는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제 나름대로 느끼고 있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중심에 도달하는 것은 그 주변을 포괄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고 우리는 곧잘 생각한다. 세계의 볼 수 있는 넓이는 분명히 우리의 능력보다 앞선다. 그러나 우리는 미소한 사물보다 앞서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허무에 도달하려면 일체에 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의 능력을 알도록 하자.
(B. 파스칼/ 팡세)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재질을 힘껏 발휘함으로써 보호를 자기 자신에게 의탁해야 할 것이다. 변화무쌍한 이 불안정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한 발디딤은 오로지 자기 스스로에 대한 믿음뿐임을 깨달아야 한다.
(D. H. 로렌스)
이 세상에서 말을 타거나 소를 부리거나 할 때에는 짐이나 일에 한도가 있어, 짐의 경중에 따라 하루의 행정(行程)도 정해지며, 행로의 원근도 숫자로 나타난다. 짐이 무겁다고 나중에 짐을 던다면 이는 애초에 자신의 부담 능력을 모른 소행이고, 짐이 가볍다고 나중에 다시 더한다면 이는 애초에 그릇의 크기를 몰랐던 탓이다.
(관자)
힘에 겨운 집을 머리에 이다가 무릎이 굽어져서 바로 짐을 내려놓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 *자기 능력 이상으로 행동하다가는 웃음거리가 된다>
(S. 프로페르티우스)
능력과 욕망이 평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일수록 절대적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J. J. 루소/ 에밀)
인간은 자신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그런 뜻에서 능력은 근로 의욕의 기초가 된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것이, 잃고 소비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보다 낫다.
(W. 해즐리트/ 배운 사람들의 무지에 대하여)
나이 듦에 따라 우리 능력의 한계를 안다.
(프로트/ 대문제에 대한 소연구)
탑의 높이는 그림자로 잴 수 있지만 사람의 능력은 그를 질투하는 사람의 수효로써 알 수 있다.
(중국 속담)
수제비 잘하는 사람이 국수도 잘한다. < *한 가지 일을 잘하는 사람은 다른 일도 잘한다는 뜻>
(한국 속담)
인간이 현명해지는 것은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험에 대처하는 능력에 따라서이다.
(G.B. 쇼/ 혁명주의자를 위한 격언)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자원 중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능력뿐이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타인을 위하여 진력하는 것으로써 자기의 능력을 계량할 수 있다.
(H. 입센)
모든 땅이 모든 것을 길러낼 수는 없다.
(베르질리우스/ 농경시)
모기는 산을 짊어질 수 없고, 작대기는 큰 집을 버틸 수 없다.
(이 황/ 퇴계집)
네게 부족한 것을 생각하기를, 네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듯이 하지 말라.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안이한 삶을 기원하지 말라! 더 강한 사람이 되기를 기구하라! 너의 능력에 맞먹는 일을 기구하지 말라. 너의 일에 맞먹는 능력을 기원하라.
(P. 브루크스/ 설교집)
자기가 그만한 능력이 없으면서 커다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손하다. 또 자기의 가치를 실제보다 작게 생각하는 사람은 비굴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새도 염불을 하고 쥐도 방귀를 핀다. <*보잘것없는 새나 쥐라도 사람이 하는 일을 하려 하는데 왜 못한다고 자기 능력을 낮추느냐는 뜻>
(한국 속담)
눈 먹던 토끼 얼음 먹던 토끼가 다 각각, <*사람은 자기가 겪어 온 환경이나 경우에 따라 그 능력을 각기 달리한다는 뜻>
(한국 속담)
어떤 점에서는 자기가 남보다 뛰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어떤 점에 있어서 자기가 남보다 열등하더라도 그것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잘난 사람도 다른 점에 있어서는 남만 못할 것이며 못난 사람도 어떤 점에 있어서는 남보다 나을 수 있다. 자기를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리어 무거운 짐을 짊어진 거나 다름이 없는 것이며, 또 자기가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의식도 하나의 정신적 부담을 가하는 일이며 자칫하면 남을 시기하고 혹은 고독에 빠지기 쉽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다른 것으로 메우도록 노력하라.
(D. H. 로렌스)
소리 없는 고양이 쥐 잡듯, <*능력 있는 사람은 언제나 말이 없다는 뜻>
(한국 속담)
조타수는 파도를 누그려뜨릴 수도 없고, 바람을 잠잠하게 할 수도 없다.
(플루타르쿠스/ 마음의 안정에 대하여)
나날이 불어나지 않는 능력은 나날이 조금씩 없어져 가는 것이다.
(중국 속담)
벼슬자리가 없음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벼슬자리에 설 능력을 근심할 것이고, 자기가 알려지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알려질 수 있는 실력을 갖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논어 里人篇)
지능은 능력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이해가 빠른 것을 말하며, 능력은 이해된 것에 따라 현명하게 행동하는 역량이다.
(A.N. 화이트헤드/ 화이트헤드의 대화)
불분명은 무능력의 은신처이다.
(R.A. 하인라인/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
뛰어난 재능은 이미 트인 길을 경멸한다. 그것은 아직까지 탐험되지 않는 지역을 추구한다.
(A. 링컨/ 스프링드의 젊은이의 회합시의 연설)
경영자에게 과해지는 요구사항은 점차 많아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전혀 새로운 다른 일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P.F. 드러커/ 경영의 새로운 차원)
지도력의 유일의 유효한 테스트는 그에 앞서는 능력, 즉 그것은 왕성한 기백을 갖고 선도하는 능력이다.
(J. F. 케네디)
천재-그것은 무엇보다도 고생을 아끼지 않는 비상한 능력이다.
(T. 칼라일)
오 하나님, 저는 약하고 피로하나이다/ 저는 알 수가 없나이다/ 때로는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모든 일을 할 수 있으나/그렇지 않은 때도 있나이다/ 왜 그럴까요? / 제가 할 일이 제 힘에 과할 때/ 저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나이다/ 주님께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제 마음의 틀에 가득 찬/피로를 아시나이다/오 주여, 저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허락해 주소서/ 사랑하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 저의 특권인 줄을 제가 아나이다/ 오 주여, 오늘 하루 이 피곤한 날을 위해/위로부터 당신의 힘을 내리시옵소서.
(헬렌 밀러/ 괴로워하는 이의 기도)
나는 하나님께 능력을 구했습니다. 내가 일을 잘 성취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나는 연약해졌습니다. 그것은 겸손히 순종함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작자 미상/ 기도)
우리의 발걸음 앞에/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예수 이름이 있게 하시고/뱀을 집어도 해를 입지 않을 능력의 말씀이 있게 하소서.
(김지향/ 능력의 말씀으로)
나의 하나님은 모든 능력 이요/ 그는 언제나 나를 지킨다.
(루우린 토우어/ 나의 하나님)
나로 하여금 작고 약해서/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한 소리가/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말할 능력 이 없는/모든 무력 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하게 하소서/ 이 모든 겁내고, 집없고, 굶주린 미소한 자들을 위하여/ 내 심정을 하늘에 올렸나이다. / 나는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외치나이다/ 누구든 내가 도울 수 있고/ 필사적 부르짖음에 응답이 있으면,/ 그들 모두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답해 주신 줄로 알겠나이다.
(헬렌 인우드/ 무력한 이들을 위한 기도)
설 교 노 트
능력 있는 사랑
마3:1-12
서론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암흑을 뚫고 외치는 권세 있는 세례 요한의 위대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때는 절정에 달한 로마 문명이 붕괴하기 시작한 때요, 무신론 사상과 유물주의자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성직마저 여지없이 더럽힘을 당하고 있던 시대입니다. 이런 암흑의 절정의 때에 세례 요한은 하늘의 권능의 사자로서 나타나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자같이 외치는 세례 요한 앞에 각계 각층의 인물들이 장소도 불편한 요단강까지 찾아와 하나같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오늘도 세례 요한 같은 능력의 사람이 요구됩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의 능력의 외침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1. 철저한 광야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광야에 독처하면서 하나님과 깊은 영교의 생활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는 장성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자기 출생의 경위와 사명을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입니다.
즉, 아버지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 있었던 천사의 예고와 이를 불신함으로 인하여 벙어리가 되었던 아버지의 형편, 또 주의 모친 마리아가 방문해 왔을 때 복중에서 뛰어놀았던 경험, 그리고 메시아를 소개할 사명을 띠고 출생한 사실들을 수시로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말씀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주여 이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주시옵소서 "
그는 오랜 세월을 두고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앉은 지 15년,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 마침내 하나님의 음성에 접하여 능력을 받아 비로소 사명의 길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과연 오늘도 능력받기 위해 광야의 생활(기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2. 철저한 경건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생활은 금욕적 절제 생활로 일관했습니다. 이것이 또한 능력 있는 외침을 외친 비결이라 확신합니다. ' 그는 제사장 사가랴의 독자입니다.
그런고로 육적으로 부유한 환경에 처해 있었으나 세상 부귀 영화를 분토같이 버리고 약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양식을 삼아 경건
생활에 전심한 것입니다. 과연 능력있는 외침은 경건한 생활이 뒤따라야 합니다.
3. 세례 요한이 외친 첫 음성은 회개를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외침은 우국의 비정이 아니요, 애국의 열변을 토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누구나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불문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부하는 동포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도끼를 나무 뿌리에 놓았으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진다"고 책망하며 회개를 촉구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강단에서 무엇보다도 강하게 외쳐야 할 말씀이 곧 회개입니다. 거기에 주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4.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만을 전했습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그의 사명은 천하 만민이 고대하는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바로 소개하는이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광야의 생활도, 회개의 외침도, 물세례를 베풂도 다 이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런고로 그가 요단강에서 예수님을 발견한 때의 기쁨은 형용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점 점 높아지고 반사적으로 시들어져가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섭섭해 하는 제자들을 향해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하며 세례 요한 자신은 도리어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특성을 두 가지로 소개했습니다.
하나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자입니다. 이는 중생과 성결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장차 만왕의 왕으로 오시어 온 인류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말해 줍니다.
결론
이 사실을 강조할 때 주의 능력이 같이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영적 기갈이 혹심하여 어느 때보다도 능력 있는 외침이 기다려집니다. 그리스도의 부름받은 우리들은 모두 능력받아 이 시대의 작은 세례 요한이 되어 시대적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빌4:10-13
서론
바울은 어떤 경우에 있더라도 자족하며, 인내하며, 극복하며, 악을 미워하며 교회를 위하여 살 수 있었습니다. 이는 자기의 능력에 의함이 아니라 바울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얻어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모든 경우에 처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고 모든 일을 능히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여기 바울이 그리스도의 힘을 얻어 능히 할 수 있게 된 몇 가지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궁핍 중에서도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극부 귀자는 솔로몬이요, 극빈천자는 나사로라고 생각합니다. 솔로몬의 영화는 전무 후무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는 자족함이 없고 오히려 교만하여 각 이방인 처첩들이 섬기는 사신 우상의 산당을 예루살렘 앞산에 세우고 거기에 분향하며 제사를 하였습니다. 따라서
신성해야 할 예루살렘 도성이 다신교의 도성으로 변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여로보함의 반역이 일어나 국가는 두동강이 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제일 저열한 성품은 부하면 교만하여 방약 무인이 되고 빈하면 용기 저락하여 비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궁 중에 있어도 비루하지 않고 부하게 되어도 교만하지 않고 어떠한 경우에라도 자족하여 동일한 태도를 갖는 것이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2. 박해 중에서도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주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이 18번 나오고 "주 안에서 기뻐하라 "는 말이 5번이나 나옵니다. 이 서신서는 바울이 감옥 안에서 쓴 것인데 과연옥 안에 있는 자가 옥 밖의 사람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옥중에서도 기뻐하며 지낸다는 형편을 표현한 말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옥중 생활이 그에게 기쁜 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매인 몸이므로 자기의 고통이 그리스도의 고통에 참여함인 줄 알고 기뻐한 것입니다. 그는 옥중 생활뿐 아니라 복음 전파와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인 줄 깨닫고 기뻐하며 인내한 것입니다.
3.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할 수 있었습니다.
롬12:9에 보면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말씀합니다. 악을 요한은 세상으로 표현하였고 바울은 악을 육체라는 말로 많이 표현했습니다.
인간은 악을 미워하기 어렵습니다. 세상을 미워할 수 없고 육체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미워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세상을 사랑하고 육체를 사랑합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께서 능력 주시면 능히 미워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능력으로 악을 미워하였고 또 미워하라고 권면 하였던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찌하여 교회를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엡1:23). 이런 사상에서 바울은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고 보호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여러 가지로 극한 고난을 당하였으나 그보다도 더 괴로운 것은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11 "28)"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능력을 믿지 않으면 교회를 생명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내 몸같이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결론
진실로 그리스도인의 능력의 원천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란 말은 인간의 능력과 지혜로서가 아닌 무한한 능력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의 능력
왕하19:14-19
서론
본문의 내용은, 앗수르 나라의 산헤립 왕이 185,000이나 되는 대병력을 이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한 다음 유다 나라 히스기야 왕에게 무조건 항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방어하고 물리칠 힘이 없는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찾아 올라가서 결사적인 기도를 드린 결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앗수르를 군대 185,000을 모두 진멸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의 능력은 민족의 안보력이 되기도 합니다. 세계적으로 어수선한 요즈음 우리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위력 있는 기도의 내용을 살펴봄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능력 있는 기도의 성격
여기 히스기야 왕의 능력 있는 기도의 성격을 세 가지 면에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통회라는 기도입니다.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베옷이란
①기쁨 대신 슬픔을 상징하고
②행복 대신 불행을 상징하고
③영광 대신 수치를 상징하는 옷입니다. 그러므로 베옷을 입고 기도했다는 것은 죄를 통회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려는 자세의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사건의 진상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항복하라는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당면한 문제의 진상과 중대성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3) 합심 협력한 기도입니다.
히스기야는 신하들과 함께 합심 협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합심 협력하는 기도의 능력은 더 크다고 하였습니다. 마18:19-20에 합심 합력의 기도는
① 서로의 생각과 뜻을 통일하는 기도요
② 저녁과 행동을 단결하는 기도요
③ 목적을 관철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위력이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2. 능력 있는 기도의 결과
기도는 허공을 치는 허사가 아닙니다. 약자들의 하소연이나 할 일 없는 한가한 사람들의 노름이나 미신자들의 공념불이 아니라 신앙인의 기본적인 활동입니다. 여기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린 히스기야 왕의 기도 결과
(1)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 기도의 응답은
①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② 절망에서 희망을 갖게 하고
③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아갑니다.
(2) 하나님의 사자들을 동원시키었습니다.
이는 천군 천사들이 동원되어 이스라엘의 강적 앗수르 군대를 격파하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 천사가 동원되어 구출하여 주신 사건을 예를 들면
① 롯을 구출해 주었고
② 다니엘을 구출해 주었고
③ 베드로를 옥중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3) 대적 185,000명을 진멸하고 승리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 결과 적군 185,000명이 일시에 죽고 나라와 민족을 보호하고 구원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선민의 편이 되어 언제나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고 승리케 하십니다. 이 점에 대하여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들쥐가 나와서 적군의 가죽 활줄을 모두 씹어서 실패했다고 하나, 이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도 운동을 약화시키려는 잘못된 견해요, 주장입니다.
결론
여기 히스기야의 기도는! 유대 민족의 위대한 안보력과 방위력이 되어 대적을 멸하고 나라와 민족을 구출하는 능력있는 기도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응답은
(1)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입니다(마7:7)
(2)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입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의 발휘입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경성하여 능력있는 기도를 합시다.
약한 데 머무르는 능력
고후12:7-10
서론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에게는 그를 찌르는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항상 그를 괴롭힌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그는 이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가시 때문에 없이하여 달라고 기도를 3회나 했습니다.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비슷합니다(마26장). 그런데 응답은 가시가 없어 진 것이 아니라 큰 능력으로 감당케 하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하게 나타나게 하심을 알 수 있게 됩니다.
1. 사람마다 제로는 가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게는 가시처럼 찌르며 괴롭히는 고통이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람의 시험, 마귀의 유혹, 환난, 슬픔, 실패 등이 그것입니다.
가시의 종류가 다르고 찌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이때에 인간은 시달리는 고통 속에서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험한 새상에서 나약한 몸으로 주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지만, 너무나 견디기 어려운 육체의 가시가 거르기 때문에 때로는 낙심도 하고 자포자기 하기도 쉽습니다.
기도를 해도 제거되지 아니하며 설상가상으로 더욱 심해지기도 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도 도저히 삶을 더 이상 지속해 나갈 수가 없게 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씨름을 계속할 수 없이 환난때가 부러진 상태인 것 같기도 합니다(창32:25).
2. 약한 데 머무르는 능력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 머무르며, 오히려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약함을 느껴야 합니다. 자신을 강한 줄 아는 것은 스스로 속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약함을 느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강하게 사용하십니다. 토기장이의 능력과 기술은 흙이 부드러워야만 온전히 나타날 수 있는 것이며, 대장장이는 쇠가 불 속에서 녹아서 물과 같이 될 때에만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참 믿고 의지하게 되며 자기 부족을 느낄 때 더욱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 자체가 선이거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고통속에서 주의 능력을 온전히 나타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묵시를 보고 하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고독하게 버림받은 것 같을 때였습니다. 이태리의 문호 단테는 원래 플로랜스의 부호의 아들로 태어났고 처음에는 정치적 지도자로 활약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당의 충돌로 패배자가 되어 도망하여 타향에서 유리 방황할 때 천당과 지옥의 비전을 보고 유명한 신곡을 했습니다.
제2의 성경으로 알려진 「천로역정」도 청교도의 한 사람인 죤 번연이 감옥에서 12년 동안이나 옥중 생활을 하면서 쓴 책입니다. 야곱이 하늘의 문을 보고 하늘의 전을 보며 땅으로 펼쳐진 사다리를 보고 천사가 왕래함을 본 것도 광야에서 였습니다(창28).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데 머무르며,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제2의 삶을 창조해 내는 기계와 같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성도들에게 가시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온전히 하나님만을 신뢰하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약한 데서 강하고 부족한 데서 온전하여 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에게 능력으로 다가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사랑의 위력
아8:6-7
서론
아가서는 사랑에 관한 노래입니다. 사랑에는 서로의 대상이 있어야 하는 법인데 본서에 나타난 사랑의 대상은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자와의 서로 사랑하는 내용이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인물이나 사랑은 모두 상징적이고 또한 영적 깊은 교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기 솔로몬 왕은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술람미 여자는 우리 성도들을 상징한 교훈이라고 합니다. 그런고로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자와의 사랑은 예수님과 우리 성도들과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고상하고 순결한 사랑에 대하여 서술해가는 저자는 본문 6-7절에서 사랑의 위력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하다는 사실을 힘있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고 하신 말씀은 죽음이 모든 사람을 정복하고 승락함같이 진정한 사랑도 모든 사람을 정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위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힘이 있느냐고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어떤 이는 황금이라 했고 어떤 이는 과학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정의라고도 했으며 죽음이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을 황금이나 과학이나 정의의 능력으로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랑의 위력이 죽음같이 강하다고 한 것을 사랑의 본체가 되시고 근원이 되시는 (요일4:8) 하나님은 그 사랑의 위력으로 인생들에게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인생의 강적인 죄악과 사망과 지옥의 권세를 파멸하고 의와 천국과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주셨다는 것입니다(고전15:55-57).
2. 사랑은 불과 같이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랑은 불과 같이 강하다"고 하신 말씀은 불이 모든 물체를 소멸하고 정복하는 것과 같이 사랑의 위력도 모든 것을 정복하고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불의 위력은
(1) 뜨거운 감동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어두운 것을 밝히는 힘이 있습니다.
(3) 모든 것을 소멸하고 개조하는 변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모든 사람을 뜨겁게 감동시키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의 인격과 생활을 밝히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은 불보다 더 뜨겁고 더 밝고 더 힘이 있습니다.
3. 사랑은 홍수보다 더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라고 하신 말씀은 사랑의 위력은 큰 홍수보다 더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홍수가 위력을 발휘하는 그 비결은 적은 물방울들이 서로 연합해서 위력을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되어지는 그 과정은
(1) 물은 언제나 낮은 데로 흘러 내려갑니다.
(2) 물은 어느 물이나 서로 연합합니다.
(3) 물은 흘러 내려가면서 정화되고 마침내는 큰 바다를 이루게 됩니다.
이 물을 통해서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 사랑은 나를 높이거나 자랑하지 아니하고 낮추는 겸손이 있습니다.
② 사랑은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아니하고 서로 아끼고 연합하게 합니다.
③ 사랑은 서로 허물을 가리우고 순화시켜 포용하게 합니다(고전13:1). 호수가 모든 것을 엄몰시키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이 사랑도 모든 것을 관용하고 포용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랑의 가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지불해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결론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고 불과 같이 강하며 홍수보다 더 강하다고 하였던 바, 이러한 사랑의 위력을 소유한 성도는 그 능력을 사회 곳곳에서 발휘하여 힘차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
롬1:1-7
서론
당시에 예수님을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원수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깊은 굴속에 매장하고 부활하지 못하도록 세 가지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1) 큰 돌로 굴문을 막았습니다.
(2) 가이사의 어인을 찍어 인봉했습니다.
(3) 로마 군인으로 파수토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 사흘이 되는 새벽에 예수님은 이 돌을 굴리고 인봉을 파괴하고 파수꾼을 거꾸러뜨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잠시 생각해 봅시다.
1. 자연계에 나타난 부활의 능력
(1) 여기 큰 바위를 굴려 내고 다시 살아 나오셨다는 말씀은 이 세상에 물리적인 힘도 위대하다고 하지마는, 부활의 위력은 이보다 더 위대함을 입증하여 주신 사건입니다. 제아무리 위대하다라고 하는 황금의 힘이나 과학의 임도 부활의 위력 앞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2) 로마의 황제 가이사의 권력을 상징하는 인봉을 파괴하고 다시 살아 나오셨다는 말씀은, 이 세상 정치적인 힘도 위대하다고 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력은 이보다 더 위대함을 입증하여 주신 사건입니다. 현하 온 세계가 권력 만능을 외치고 있지마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력은 이러한 세속적인 권력보다 더 위대하다는 말입니다.
(3) 로마의 병정들을 거꾸러뜨리고 다시 살아나오셨다는 말씀은 인간의 완력이나 무력도 위대하지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력은 이보다 더 위대함을 입증하여 주신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제아무리 완전 무장을 하고, 세계적인 강한 군대라 하지마는 부활하신 주님 앞에는 속수 무책이라 모두 거꾸러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자연계에 물리적인 힘이나, 세속적인 권력이나 인위적인 무력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력이 더 강하고 위대하다는 말입니다.
2. 인간 세계에 나타난 부활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지구촌에 태어났다가 죽어가는 인간의 역사를 혁신해 놓으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항거할 수 없는 죽음, 인간의 지혜로 도피할 수 없는 죽음, 인간의 도의로 연결시키거나 대신 보낼 수 없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과 생명의 새세계를 창조해 놓으신 것입니다.
(1)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인생을 해방하사 환희와 기쁨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2) 죽음 앞에 떨고 있는 인생들을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하사 진정한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하신 사건입니다. 당시 죽음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선포하여 주셨습니다.
(3) 죽음 앞에서 실의와 절망 상태에 빠진 인생들을 해방하사 진정한 소망과 청명을 소유하게 하신 사건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력은 우리 인성들을 슬픔에서 해방하사 기름을 주셨고 절망에서 해방하사 희망을 주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3. 영적 세계에 나타난 부활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위력은 자연계나, 인간계에만 아니라 영적 세계에도 나타내셨습니다.
(1) 비진리에 대한 진리의 승리를 웅변적으로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2)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를 웅변적으로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3) 사망에 대한 생명의 승리를 웅변적으로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4) 마귀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영원히 선포하신 위대하신 사건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인생들을 아니 우리 기 독신자들을 비진리의 세계에서 진리의 세계로, 불의한 세계에서 정의의 세계로, 사망과 마귀의 흑암한 세계서 생명의 세계로 옮겨주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이는 곧 하나님 백성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의 소망이 되며 부활의 능력은 성도들에게도 부활의 능력을 가져다줍니다. 그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와 능력
고전4:14-21
서론
본문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하선 말씀의 의도는 이론만 전개하면서 신앙생활의 올바른 실천이 없는 신자들 또는 교리만 주장하면서 올바른 헌신과 봉사가 없는 신자들 또는 역사적 전통만 자랑하면서 당파를 조성하여 교회 분쟁과 분열을 조장하는 독선적인 신자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인간의 이론이나 수단이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성취되어 나아간다는 진리를 강조하면서 실력 있는 신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설이 되고 발전이 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이 능력은 변화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신자는 먼저 자기 자신의 인격과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고 다음은 그가 처해 있는 그 환경과 영역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마17:1-8에 예수님은 변화 산상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세 가지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얼굴의 변화입니다. 이는 사상과 인격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둘째는 의복의 변화인데 이는 그 윤리와 생활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셋째는 주님이 계신 환경의 변화입니다. 이는 기독 신자들이 처해 있는 환경과 영역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본 요소는 낡은 인간 세계를 변혁해 나가는데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종교입니다.
2. 이 능력의 활동력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은 활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능력을 받은 신자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지적하는 활동력은 두 가지 성격을 의미하는데
(1) 자기 자신이 신자답게 바로 사는 생활의 힘을 가리키고
(2)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봉사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기 독신자라면 누구나 주님 말씀에 따라 세상의 빛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또한 착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진정한 봉사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하여 죄인 줄 알면서도 끊어버리지 못하고 선인 줄 알면서도 실행치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초대 교회 신자들이 이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은 후
①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을 바로 실천 실행할 수 있었고
② 선한 일을 봉사할 수 있었고
③ 복음을 힘있게 전파하는 활동력 있는 신자와 교회가 되었습니다.
3. 이 능력은 승리력을 의미합니다.
지상의 교회들을 전토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항상 사탄의 도전과 공격을 당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와 같이 도전을 받는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1) 자기 자신과 싸워 승리하게 하고
(2) 악한 사탄과도 싸워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적은 외부에도 있지마는 내부에도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혈기와 욕심과 교만과 탐심 등입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적을 쳐서 이겨야 되겠습니다. 다음은 외부적으로 공격해 오는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마귀는 가난한 자에게 돈으로 유혹하고 명예 , 지위 좋아하는 사람에게 세상 부귀영화로 유혹해 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 나 자신 안에 있는 적과 싸워 승리해야 하고 다음은 외부의 적과도 싸워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이 능력을 받으면
(1) 변화를 받아 나 자신이 새로워지고
(2) 나 자신이 바른 생활과 선한 봉사가 활발해지고
(3) 나아가 마귀를 물리치고 정복할 수 있는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집니다.
나귀의 새 턱뼈
삿15:15
서론
세상에서는 가장 미천하고 쓸모없이 보이는 것들이 어떤 때에는 매우 요긴하게 사용되는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나귀의 새 턱뼈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그저 길바닥 위에 있으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일 것이지만 큰 힘을 가진 자의 손에 들어가면 큰 무기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1. 무기가 된 나귀의 새 턱뼈
삼손은 늘 위험한 원수들 중에 두루다니면서도 부하 한 명도 거느린 일이 없었으며 무슨무기를 가지고 다닌 일도 없이 오직 맨 주먹으로 다녔던 사람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살았으며 이미 자기 육체에 이상한 힘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그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로부터 큰 힘을 부여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없는 것을 택하사 있는 것을 폐하시는 것입니다(고전1:29).
나귀의 새 턱뼈는 아무리 따져보아도 도저히 전쟁 무기로 꼽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삼손이 그것을 늘 지니고 다닌 것도 아니었고 그가 위기를 당하였을 때 그것이 공교롭게도 눈에 띄었으므로 집어서 무기로 사용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사건히 지난 후에는 그것을 실컷 사용하고는 계속 쓸모가 없다고 느껴서 버렸습니다.
16-17절에 보면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며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명을 죽였도다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 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무기였다면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그냥 내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쓸모없던 나귀의 턱뼈로 일천 명이나 죽였지만 쓸모가 없으므로 아무 미련없이 내버렸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
하나님은 위대하신 능력자이며 인간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한 자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으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손에 들리워지는 것들은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같이하실 때 큰 힘을 발휘하는 위대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손에 들리운 지팡이는 하수를 칠 때 피가 되게 하였고, 홍해를 가르기도 하였으며, 반석을 쳐서 샘물이 솟아나게도 하였습니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지팡이였지만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이 그 지팡이의 주인인 모세에게 임하자 놀라운 도구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삼갈 사사의 손에 들리운 소 모는 막대기는 불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는 무기가 되었으며(삿3:31) 기드온의 군대의 손에 들리운 나팔과 빈 항아리는 미디안 군대를 혼비백산시키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던 것입니다(삿7:16).
다윗 소년의 손에 들리운 물맷돌은 불레셋의 거인 장사 골리앗을 명중시켜 죽이는 놀라운 위력 있는 무기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삼상17:49).
이것은 모두 그 사람들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의 힘인 것입니다. 그 능력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하니 그 손에 들리워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이 놀라운 것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비록 나귀의 턱뼈였지만 삼손의 손에서 큰 힘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잘난 자도 없도 능한 자도 없지만 하나님의 손에 잡힌 바 되면 큰 역사를 나타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되어서 주님이 사용하시므로 말미암아 큰 능력을 나타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놀라움
단3:24
서론
당시 느부갓네살 왕의 권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꾸만 높아져 갔기 때문에 이웃 나라에까지 크게 파급되었습니다. 그러하니 느부갓네살 왕이 웬만한 일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므로 놀라는 일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라는 세 청년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박하여 7배나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졌는데 그 결과로 인하여 왕은 크게 놀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놀랐겠습니까?
1. 세 사람이 네 사람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왕은 세 명의 청년을 결박하여 풀무에 던지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는데 그 불 속에 있는 자는 네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 사람 그대로 있거나 한 사람이나 둘로 되었다는 것은 몰라도 넷이 된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아도 분명히 네 사람이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2. 결박되지 않았습니다.
세 청년을 결박하여 불 가운데로 던졌습니다. 중한 죄수들은 결박하여 자유를 박탈하고 함부로 도주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결박을 하였는데 그 결박이 풀어져서 자유로운 모습을 하였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세 청년이 뜨거운 풀무 속에서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걸어 다닌다는 것은 활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활동이 가능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능동적 위치에 있고, 누가 그를 제재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거나 무슨 활동을 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놀랐던 것입니다.
3.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보통 일어나는 불에도 사람은 화상을 입거나 죽습니다. 풀무라는 것은 보통의 불보다는 씬 더 센 불로 원만한 물체가 다 타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뜨거움이 7배나 더하도록 증가하였으니 그 불의 뜨거옴은 우리의 상상으로는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뜨거우면 불에 타는 시간도 없이 흔적도 없을 정도로 타버리고 재도 남지 않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불 가운데서 타지도 않고 그냥 평상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전혀 괴로워하는 기색이 없이 있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놀라운 능력이 임재해 계셨던 것입니다.
4. 넷째 사람은 신의 아들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분명 세 명을 던졌지만, 한 사람이 더 늘었는데, 그 넷째 사람은 신들의 아들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신 것입니다.
신의 아들은 그 의로운 청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청년들이 불 가운데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기 때문입니다.
결론
아무리 하늘에서 나는 새를 떨어뜨릴 권세가 있다고 하여도 이렇게 놀라운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권능의 두루마기
왕하2:7-14
서론
선지자 엘리사는 그 선생인 엘리야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입니다. 성경 중에 맡은 선지자와 성군이 있었으나 이 엘리사처럼 주의 권능을 나타낸 사람은 희귀한데 이것은 권능의 원동력 되시는 주께서 함께 하신 결과입니다. 결코 그의 인격과 재능 등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그의 성령받은 원인을 생각해봅시다.
1. 견고하고 확실한 결심(2:1-6)
미구에 승천할 엘리야는 그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 노상에서 작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폭군 아합의 난폭하고 무도한 흔적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민간의 종교와 도덕이 극도로 부패하여진 세대입니다. 이러한 세상에다가 그 사랑하는 제자를 두고 미구에 영광의 나라로 떠나갈 엘리야의 마음에는 금하기 어려운 동정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길 수 없는 주의 명령인 줄 알고 세 번이나 다정한 음성으로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육간 경험이 아직 충분치 못한 엘리사는 필사의 결심으로 영생하신 여호와와 당신의 생명을 가르쳐서 맹세하노니 결단코 당신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갈길에서 벧엘로 여리고로 요단강 저편까지 따라갔습니다. 굳고 굳은 그의 결심은 마침내 그 선생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이것이 권능받은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권능의 신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반드시 이러한 결심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정의의 요구(2:9)
그때에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요단강 언덕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선생 엘리야는 제자 엘리사에게 이르기를 "네가 무엇이든지 구하라 "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대답하기를 "청컨대 당신의 받을 바 신을 배나 나에게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실로 그 선생의 생각에도 증대하지 정각할 만한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스승의 뒤를 이어서 퇴락한 이스라엘 집을 부흥케 하고 큰 선지자의 귀중한 사업을 계승할 책임을 진 그에게는 이 요구가 무엇보다도 제일 긴요한 요구입니다. 이것은 물질, 권세, 부귀에 멀리 떠난 순결한 기도이니 여기에 대선지자의 의량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기도에도 먼저 그 정신이 순결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주는 우리의 기도의 소리를 들으시기 전에 먼저 그 기도의 정신이 어디 있는가를 알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기자는 이에 대하여 "너희가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함이라 "고 하였고, 주께서도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나니 이는 곧 기도자의 마땅히 가져야 할 정신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약속에 대한 신앙과 그 실행(2:10-12)
"취함을 입어 승천할 때에 네가 나를 보면 그대로 되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이루지 못하리라"는 약속을 그 사제 양인간에 견고히 체결하고 두 사람이 한 가지로 나갈 즈음에 홀연히 불수레와 불만은 그 두 사람을 격리시키고 난데없는 회리바람은 은사 엘리야를 휩싸여 하늘로 올라가게 하였나니 실로 엘리사가 권능의 두루마기를 받을 때는 이 찰나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전날의 약속에 의하여 힘껏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문득 공중에서 엘리야의 두루마기가 표연히 지면으로 떨어졌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고대하던 그는 그것을 받아 입었습니다. 동시에 놀라운 주의 권능이 저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는 저의 참된 신앙과 참된 실행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행함이
없는 신앙과 신앙 없는 행함은 다 죽은 것"이라고 하였으며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책망하시기를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라고 하셨나니 이는 불신자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 아니라 3년 동안 순종하던 당신의 제자를 향하여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결론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우리는 믿는 자로서의 능력을 나타내게 됩니다. 이때에 우리는 견고하고 확실한 결심과 정의의 요구와 약속에 대한 신앙과 실행한 엘리사와 같이 주님의 능력의 도구가 되어질 것입니다.
든 손과 강한 팔
렘21:5
서론
본문에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든 손과 강한 팔이라고 하신 그 뜻은 무엇입니까?
신명기에는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희를 지켜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리니"(4:34, 5:15, 7:19, 11:2, 26:8)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손과 팔의 능력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뜻은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구출하시는 강한 손과 팔이십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에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호소하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과 강하신 팔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출애굽기13장 14절에 보면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은 바로의 강팍한 억압정책을 파하시고 이스라엘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팔로 안으시며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사 시내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여러 가지 난관을 돌파시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2. 축복하시는 손과 팔이십니다.
특별히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그 능하신 팔로 우리를 안아 주셔서 마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시고 그 자애스러운 손으로 어루만지시사 모든 질병 환자들을 다 고쳐주셨으며 약한 자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주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귀찮게 여겨 쫓아보내려는 제자들을 도리어 꾸짖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마19:15). 또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도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며 올라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0-5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주님의 손과 팔은 남을 저주하시는 손과 팔이 아니라 축복하시는 손과 팔임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3. 진노를 베푸시는 손과 팔입니다.
"내가 든 손과 강한 팔 곧 노와 분과 대노로 친히 너희를 칠 것이며"라고 하신 본문의 말씀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방임해 두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징벌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공의나 사랑과 미움이 반비례로 작용되나니 사랑이 극진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범죄 상태에 있게 되면 대노를 발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보통 예사로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큰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으로서 하시는 일이므로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시대에는 홍수로 심판하시고,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진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마다 그냥 지나치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징계의 채찍을 드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크신 능력을 발휘하십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의 백성이 어려운 지경에 있을 때에는 구원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지만 범죄하였을 경우에는 조금도 양보하시지 않으시고 크신 권능으로 징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능하신 손과 강하신 팔로 선한 일만 하실 수 있도록 우리는 오직 순종하여 선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 오른손
시98:1
서론
본문에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 오른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오른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오른손은 어떤 역할을 하는 오른손입니까?
1. 권능을 행하신 오른손입니다.
출애굽기 15장 6절에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출애굽의 대역사 중 홍해를 육지같이 가르시고 이스라엘 대중을 무사히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추격해 오던 애굽의 기마병들을 홍해 물 속에 몰사시키신 대권능을 행하시므로 기쁨과 감격을 억제하지 못하여 부른 찬송인 것입니다. 이 중심의 뜻은 하나님의 권능이 그 오른손을 통하여 나타났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은 그저 평범한 손이 아니라 대사건을 이루시는 능력의 손이십니다.
2. 율법을 장악하신 오른손입니다.
신명기 33장 2절에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 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것은 하나님 의 말씀을 장악하고 계신 오른손을 뜻하는 것입니다. 특히 불같은 율법이란 찬란한 빛을 발하는 불, 뜨겁게 역사하는 불을 상징하는 것으로 말씀의 능력을 표방하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 율법을 그저 글로써만 이해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입니다.
3.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오른손입니다.
아가서 2장 6절에 "그가 왼손으로 내 머리에 베게하고 오른손으로 나를 안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의 찬미로 솔로몬의 사랑의 포옹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애인이 그 연인을 오른손으로 감싸안고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받아 누리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4. 심판권을 가지신 오른손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1절에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언한 것인데 이 봉한 책은 곧 생명책이요, 심판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의 인봉을 뗄 자는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인 예수 그리스도께 서 만이 하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백성의 심판이 그 장중에 붙들려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구원받는 생애를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 행위를 기록한 책에는 선한 행실로 가득 차있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위의 네 가지 뜻 이외애도 구원의 손, 축복의 손, 위로의 손 등 여러 가지 뜻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하나님의 오른손의 보호를 받는 축복이 있습니다.
너희 능력 있는 자들아
시29:1
서론
본문에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권능 있는 자들은 그 영광과 능력을 최고 권능자인 여호와께 경배하라는 뜻입니다.
1. 권능 있는 자란 누구를 말합니까?
권능이란 헬라어로 '위대한 힘의 소유'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권능 있는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진정한 권능자는 하나님뿐이십니다. 마가복음 14장 62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라는 말의 권능자는 곧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양하게 천사나 악마를 언급할 떼 사용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21절에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또 골로새서 2장 10절에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뜻은 인간 사회의 권세 잡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이 타당한 해석입니다.
2. 권능의 유래
하나님은 권능의 소유자이십니다. 대권을 장악하신 신이십니다. 감히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권능을 가지시고 매를 따라 선용하시며 인간들에게 적당하게 이 권능을 부여하십니다.
심지어는 불신자에게 주시는 세상의 정치적 권능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권능을 소유한 자는 그를 행사하기 전에 엄숙히 하나님 앞에 그 책임을 져야합니다. 함부로 남용하거나 악용해서는 안되며 그 권능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먼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다스리시는데 각기 그 형편과 처지를 따라 필요한 대로 주십니다. 건강, 지혜, 권능, 물질, 지식, 사회적 지위, 가족 등 그 밖에 무엇이든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신 뜻이 있으므로 각기 적당한 축복과 은혜를 주십니다.
즉, 그때에 그 사람이 그 주신 바 축복을 선용하여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목적에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잘 알고 연구하여 그 뜻에 맞도록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혜나 권능이나 물질이나 지식 등이 자신이 잘나고 똑똑해서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것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결론
특히 권능은 자신을 위하여 쓰기 쉬운 것입니다. 그 능력으로 인하여 교만하게 되고 자신 만만하게 되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신 것은 결코 자신을 위하여 쓰여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거룩한 사업을 위하여 쓰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대하20:5-6
서론
본문은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서 기도한 기도문입니다. 6절에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라고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였습니다.
1.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는 하늘에서 하나님이십니다. 또 땅에서는 모든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하늘의 하나님, 만국의 하나님이시니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땅에서는 홀로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를 위시하여 모든 영들을 지배하시고 천국과 지옥을 관할하시며 우주의 모든 기상계를 조정하여 운행하시는 위대한 능력의 신이십니다. 지상에 만국이 있으며 만왕이 각기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큰 권세를 지니신 하나님께서 각기 권세를 저들에게 주셔서 통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각 나라의 흥망 성쇠의 열쇠는 다 하나님 장중에 붙잡혀 있으며 왕권과 통치자들의 집권과 실천의 기회를 우리 주님이 허락하시는 여부에 따라서 결정지어집니다. 주의 권세는 무한하시며 그의 장중의 능력은 진실로 위대하신 것입니다. 감히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주님의 능력으로는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우리는 오직 주의 능력을 찬양해야 할 뿐입니다.
2. 능히 막을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권세와 능력 이 특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는 무조건 믿고 순종하면 되는데 미련한 인간들은 감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역행하려고 합니다.
시편 2편 1-4절에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비웃으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열왕들이 동맹하여 메시아를 대적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가소롭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에서 떠들고 소란스럽게 하여도 주님께서 노하시면 그 모든 것은 다 망하고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영웅 호걸이나 지혜 있고 박식한 자나 항우 장사라도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은 땅위를 기어다니는 개미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미약하고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에 미치지 뭇하는 것을 하려고 나서는 것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제왕이라도 아니 그보다 더한 세력이라고 감히 막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권세와 능력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된 인간이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대항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본분은 오히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찬송을 돌리며 순종함으로 믿음을 간직해야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행3:6
서론
본문의 말씀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더니 베드로가 "나사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표적은 위대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참으로 능력의 이름 '나사렛 예수'이며 구원의 그리스도이십니다.
1.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나사렛은 예수님이 성장하신 갈릴리의 한 촌동네 이름입니다(눅2:16). 그런데 이 동네는 어디 내놓을 만큼 자랑스럽고 훌륭한 곳이 못되며, 원래 이 성의 주민들은 무식하고 풍속이 천박하여 이 곳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천시하였습니다.
빌립이 나다니엘에게 전도할 나사렛 예수를 소개하니 나다나엘은 빌립을 반박하여 말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1:46)"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나사렛을 천시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이름이 못되고 천대와 멸시와 조롱의 칭호였지만 베드로의 외침에 '나사렛'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천시당하는 예수님의 입장을 승리자로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받은 병자에게 소망을 주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천한 사람은 늘 아래로 여기며 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멸시받는 자들을 위하여 더 큰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고 그들을 위로하십니다.
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멸시하고 조롱하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명하여 일어나 뛰게 하였으니 그 이름의 위대한 능력이 여실히 들어나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죽은 자의 헛된 이름이 아닙니다.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의 이름이요,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위대한 이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본체를 내어 놓으시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이 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석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낮아진 이름 같으나 오히려 높아진 이름이요, 천한 이름 같으나 귀하신 이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하니 앉은뱅이가 일어나서 걷게 되었던 것이니 참으로 그 이름의 권능이 모든 사람을 놀라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서도 어려운 일이 많고, 남에게 천대를 받은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힘들어 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말 것은 큰 능력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살면 되는 것입니다.
결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2:21) "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는 위대한 이름입니다.
쓸데없이 바알의 이름을 수천 번 불러보아도 아무 응답이 없을 뿐이지만, 모든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천시받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병든 자를 낫게 하고 앉은뱅이가 된 자를 걷게도 하고 뛰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이 놀라우신 능력의 주님을 찬양하십시다.
하나님의 능력
출8:19
서론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아시면서도 바로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스스로 이스라엘 민족을 지키시고 계신 것을 알게 하시려고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는데 깨닫는 자만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내리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하나님께서는 권능의 신이심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 모든 재앙은 하나님의 권능 행사입니다.
8장에는 둘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과 셋째 재앙인 이 재앙과 넷째 재앙인 파리 재앙으로 모두 무서운 재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지 않는 바로에게 개구리가 무수하게 생겨 왕궁과 침실과 화덕의 떡반죽 그릇에까지 들어가서 모든 애굽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또한 애굽 온 땅에 있는 티끌이 다 이가되어 사람과 살아있는 모든 가축에 올라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파리 떼가 온 애굽 사람의 집마다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재앙들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의 행사이시니 감히 어느 누가 그 재앙을 막을 수 있으며 피할 수 있겠습니까?
2. 애굽의 술객들도 흉내내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여러 가지 표적들을 행하여 바로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완악한 마음을 가진 바로는 자신의 생각대로 애굽의 술객들을 동원하여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여 표적을 보이게 하였으므로 어떤 메는 술객들도 표적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술객들도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까지는 하였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출7:10-12).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로 하수를 쳐서 그 물이 피가 되었는데 애굽의 술객들도 자기들의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였습니다(출7:20-22).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그들을 이용하여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즉 더욱 크신 하나님의 권능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3. 애굽 술객들의 항복
지금까지 모세와 아론을 대항하여 온갖 술법을 부리던 애굽의 술객들도 티끌을 쳐서 이를 만드는 것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자기들의 능력의 한계를 알았던 것이며 자신들의 잠정적인 능력 행사도 결국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도 내의 것인 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깨달은 술객들이 바로에게 고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대적자들 스스로 하나님의 권능임을 증언하였으니 더 이상 유력한 증언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결국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의 역사 자체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단 결
성 경 활 용
1. 성도는 누구와 단절해야 하는가?
(8) 여호와 하나님
(왕하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2) 민족
(겔37:17) 그 막대기들을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3) 성도
(골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부요에 이르러
(4) 그리스도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2. 단결하는 방법
(1)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씀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2) 짐을 서로 짐으로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주의 이름으로 모임
(마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3. 선한 단결에 대한 교훈
(1) 낮을 데 처하며 지혜 있는 체 말라.
(롬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2) 서로 뜻이 같게 하라.
(롬15: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이 하여 주사
(3) 온전히 합하라.
(고전1:10)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4) 서로 문안하라.
(고후13:11)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 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5) 하나되게 하라.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랴
(6)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
(빌1:27)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7) 같은 사랑을 가지라.
(빌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8) 겸손하라.
(받전3:8)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관련원어풀이
1. qb'D; 다-바크
(1) 밀착하다, 찰싹 달라붙다.
(창2:24, 욥31:7)
(2) 닿다, 이르다, 도달하다.
(창19:19, 신28:60)
(3) 견고하게 밀착하다.
(욥38:38)
(4) 맞붙이다, 달라붙게 하다.
(겔3:26)
(5) 급히 따르다, 바싹 따라가다.
(삿18:22, 삼하1:6)
(6) 접근하다, 가까이 하다.
(시22:16)
2. rb'j; 하-바르
(1) 함께 묶다, 연결시키다, 결합하다, 붙다, 모으다.
(창14:3, 겔1:9)
(2) 마력의 힘으로 묶다, 매혹하다.
(신18:11, 시58:6)
(3) 줄로 표시되다, 얼룩지다.
(출26:6)
(4) 관계를 맺다, 동맹을 맺다.
(대하30:26)
3. dh'y" 야하드
(1) 연합, 연결.
(대상12:17)
(2) 함께.
(삼상11:11)
(3) 즉시로.
(삼하21:9)
(4) 전적으로, 전부.
(욥10:8)
4. hw:l; 라-와-
(1) 맞붙이다, 밀착시키다.
(전8:15)
(2) 빌리다, 부채로 받다.
(신28:12, 시37:21)
(3) 돌려지다. 붙게 되다, 연결되다.
(민18:2)
5. jp's; 사-파흐
(1) 보태지다, 자신을 결합하다.
(사14:1)
(2) 함께 모아지다.
(욥30:7)
6. dm'x; 차-마드
(1) 붙여지다, 조여지다, 섬기다.
(민25:3, 시106:28)
(2) 매어지다, 채워지다.
(삼하20:8)
7. br'q; 카-라브
(1) 접근하다, 가까이 오다.
(창47:29, 신15:9)
(2) 접근케 하다.
(사41:21, 호7:6)
(3) 허락하다, 받아들이다.
(시65:5)
(4) 사람을 가까이 데려오다.
(출38:1, 겔22:4)
(5) 데려오다, 가져오다, 드리다.
(신1:17, 삿3:18)
(6) 함께 가져오다.
(사5:8)
8. hx;r; 라-차-
(1)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욥14:6, 시102:15)
(2) 만족시키다, 전부 갚아 버리다.
(레26:34, 대하36:21)
(3) 연합하다.
(시50:18)
9. tyvi 쉬-트
(1) 두다, 놓다.
(시2l:4, 132:11)
(2) 음모하다.
(시140:6)
(3) 모으다, 함께 두다.
(창30:40)
10. sumbibavzw 숨비바-조-
(1) 함께 연결시키다, 모으다, 연한시키다.
(엡4:16, 골2:2)
(2) 결론을 짓다, 추론하다.
(행16:10)
(3) 증명하다, 논증하다.
(행9:22)
(4) 가르치다, 충고하다.
(행19:33, 고전2:16)
11. suvmfuto" 숨푸토스
함께 자라난, 연합된, 가까이 얽힌.
(롬6:5)
설교예화자료
교회 종에 새겨진 옥수수 이삭
독일의 북쪽 지역에 그로스라스비츠라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마을 교회의 꼭대기에 종이 매달려 있는데, 그 종에는 여섯 이삭이 열린 옥수수 줄기가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날짜는 1729년 10월 15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옥수수 줄기 그림이 조각되었을까? 그 교회의 종은 너무 낡아서 종을 쳐도마을 전체에 들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그 당시에는 종소리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종을 사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교구민들이 거의 다 가난한 처지였으므로, 이 일은 힘에 겨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의껏 돈을 냈지만 그래도 새종을 사기에는 여전히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구역의 학교 교장 선생님이 교회로 가던 중 교회 경내의 벽에서 자라고 있는 강인한 옥수수 줄기를 보았습니다. 갑자기 그에게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줄곧 그는 그 옥수수 줄기에 잘 익은 여섯 이삭이 열릴 때까지 열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이삭이 열리자, 그는 이것들을 따서 이듬해 봄에 땅에 심었습니다. 매년 계속해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들을 이웃에 나눠주고 이를 키우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8년 후에는 종을 살 돈이 충분히 모이게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협동한 결과, 그들은 종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그리고 이러한 사연은 종에 조각된 여섯 이삭이 열린 옥수수 줄기와 함께 전해오고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예리함이 쇠라도 끊게 된다. 마음을 같이 한 사람의 그 향기가 난초의 그것과 같다.
(주역)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는 인화(人和)만 못하니라
(맹자)
단결에 의해서 작은 나라는 번성하고 불화에 의해서 큰 나라는 망한다.
(살스티우스)
나라에 불화가 있으면 출군하지 말아야 하고, 군에 불화가 있으면 출군하지 말아야 하며,진(陣)에 불화가 있으면 나아가 싸우지 말아야 하고, 싸움에 불화가 있으면 결전(決戰)을 벌이지 말아야 한다.
(오자)
모기도 모이면 천둥소리 난다.
(한국 속담)
공동의 위험은 가장 사이가 나쁜 적들까지도 결속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작은 알의 모래도 많이 쌓이면 배가 가라앉는다.
(영국 속담)
세상에서 가장 합치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권발/ 중제집)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
(아풀레이우스/ 소트라테스전)
만 사람이 마음을 달리하면, 곧 한 사람도 쓸모가 없다. < *사람 수가 많아도 단결하지 않으면 한 사람도 쓸모가 없다>
(유안/ 회남자)
악인들의 결탁에 선인들은 단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E. 버크/ 현재의 불평불만의 원인에 대한 고찰)
지푸라기가 많으면 코끼리도 묶을 수 있다.
(영국 속담)
단합되지 않은 집안은 오래 갈 수 없다. 그러므로, 절반은 자유로, 절반은 노예 상태로의 이 정부는 오래 견딜 수 없다.
(A. 링컨)
입이 여럿이면 금도 녹인다. <* 단결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뜻함>
(한국 속담)
도둑질을 해도 손이 맞아야 한다.
(한국 속담)
'중국 사람은 한 줌의 흩어진 모래'라고 말한다. 이러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것은 바로 일반 인민에게는 다만 가족주의와 종족주의가 있을 뿐 국족주의가 없기 때문이다.
(손문)
거미줄도 결합하면 사자를 묶을 수 있다.
(이디오피아 격언)
하늘의 법도를 잃으면 충만되었다 해도 반드시 고갈될 것이며, 상하가 협화(協和)롭지 못하면 일시 안태(安泰)롭다 해도 반드시 위태롭게 될 것이다.
(管子)
약한 사람들로 모였을지라도 단결은 강한 힘을 부여한다.
(호메로스/ 일리아드)
통일은 힘을 만든다. 우리는 강해져야만 하므로 역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바덴/ 프러시아 지배하의 독일 통일론)
여러 관리들이 권리를 다투지 않으면 대동단결이 되고, 장관들이 공적을 내세우지 않으면 다같이 힘쓰게 된다.
(장자)
우리들은 서로 단결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딴 교수대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B. 프랭클린)
무서운 공포는 사람들이 주먹을 꽉 쥐게하며, 공포 속에서는 사람들이 결속한다.
(생텍쥐페리/ 바람과 모래와 별)
그들은 독재에 반대하고/ 더러운 특권에 반대하여 단결하고/ 당연한 권리를 달라고/요구서를 내흔들었다/ 그들은 무기와 돌로써 단결하고/ 민병과 여자들로 구성된 민중들은 대오를 지어/ 의기도 양양하게/ 보고타와 그 귀족령 위를 전진했다.
(네루다/ 소꼬로의 봉기자들)
단결, 단결이야말로 이 시대의 절실한 요구다/ 고립분산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었다. 그러나/ 단결만 하면 우리들은/ 폭군들을 타도할 수 있는 것이다. // 단결이다! 단결이다! 그러면 승리한다/ 그러면 저 야만적인 독점지배도 붕괴될 것이다.
(하이네/ 아타트롤 · 6)
혼자로는 풀이 아니로다. / 거친 박토에 뿌리내릴지언정/ 함께 어우러져 부대끼며/ 이슬방울을 나누어 가지고/ 서로 등을 기대어 살아감이로다/ 흙과 흙이 뭉쳐서 황토이듯/ 잎과 잎이 하나로 풀이 되어/ 한반도 곳곳에 함성으로 깔리느니/ 뉘가 뉘를 함부로 업신여기며/뉘가 뉘에게 칭뱉고 손가락질 하느냐,/ 바람부는 대로 누웠다가 일제히 일어나고/ 밝힐수록 더욱 꼿꼿히 서며/ 죽었어도 다시 풀이로다.
(서덕석/ 풀에 대하여)
우리들은 결의한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죽음보다 비참한 삶을 두려워하자.
(브레히트)
이렇게 애국자가 말하자 회의장은/ 당나귀들의 박수갈채로 떠나갈 듯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국수주의적으로/발을 구르며 마루를 쳤다.
(하이네/ 당나귀 선거)
설 교 노 트
그리스도인의 하나됨
엡4:3
서론
에베소서의 전반부(1-3장)는 몇 가지 중 요한 교리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후반부(4-6장)는 몇 가지 심각하고 중요한 권면들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전반부는 사람들에게 실제 생활에서의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신자들 상호간의 일치와 조화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1. 연합의 방법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겸손과 온유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겸손을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에 대해 중용을 지킬 수 있으니 이는 곧 교만과 반대되는 태도입니다. 또 온유함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쉽게 화나지 않게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모욕에도 쉽사리 화를 내거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됩니다.
또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자기가 입은 피해에 대해 끈기있게 참는 것입니다. 또 사랑 안에서 서로를 용서한다는 것은 사랑을 원칙으로 삼아 그들의 연약함과 허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 본성의 완고함 때문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최선을 다하여 서로를 대해야 하므로 서로 격노케 하지 말고 오히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격려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 없이는 온유함도 인내도 용서도 없으며,또한 이런 것들 없이는 하나 됨도 없습니다. 교만과 격노는 평화를 깨뜨리며 온갖 불행을 초래합니다. 교만에는 다툼이 따르지만(잠13:10), 겸손에는 사랑이 따릅니다. 겸손이 있는 곳에 하나 팀도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일을 감당치 못할 것입니다.
2. 연합의 본질
영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심령 중심에서 하나가 됩니다. 우리의 심령을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됨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며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 됨을 위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평화로 연합해야 합니다. 평화는 사람들을 하나 되게 하는 줄이며 그들로 하여금 우호적으로 지내게 합니다. 평화로운 연대는 사회의 힘입니다. 사람들은 매사에 같은 의견을 가지고서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평화로운 연대가 이루어지면 사람들 사이에 불필요하게 고집부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을 때에는 힘이 약하지만 다같이 단결하면 센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3. 연합의 원동력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하나이며 소망도 하나입니다(l절).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입니다(5절). 그리고 모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하나이십니다(6절). 몸이 하나며 성령도 하나인 이상 우리의 심령도 하나입니다.
한 분 성령께서 한 몸인 교회에 생명을 주십니다. 모든 신자들은 같은 소망을 위해 부르심을 받아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같은 주님을 섬기게 되었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같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 된 모든 신자들을 소유하십니다.
모든 신자들은 서로를 돕기 위하여 저마다 은사를 부여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은사를 주신 목적은 그의 교회를 유익되게 하심이요, 사람들 사이에 그를 널리 전파하려 하심입니다. 이 모든 은사는 주님에 있어서 모든 신자들이 형제의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하며 서로의 은사를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은사들은 성도들을 격려하고 힘을 복돋아주며, 확신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전체의 유익에 이바지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웁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그 나라의 상속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쓰라
히10:25
서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야합니다.
본문에는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모이는 것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 모이므로 건전한 신앙을 유지합니다.
교인은 교회에 모이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교회의 권위와 법적 제재를 받으며 지도자들의 훈도와 감시를 받게 됩니다. 만일 모이지 않고 개인 행동에 방임하면 교인들의 신앙은 타락되고 신앙 운동도 문란해집니다. 그러므로 신앙 운동은 교회 안에서 되는 운동이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각 개인인 신자들의 행위도 허황해지고 진리의 전승도 건전히 될 수 없으며 안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개인 중심의 신앙 운동은 반드시 불원한 장래에 폐단을 가져오고 파국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로 설 것이 아니라 모여서 건전한 신앙을 유지해야 되겠습니다.
2. 모이므로 복음 운동이 유력해집니다.
이 세상의 일에 있어서도 사람들이 합심하여 뭉치면 강하고, 흩어지면 약해지는 법입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개인 신자들보다 모인 신자들과 같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합심하여 모인 신자들의 단체인 교회가 영적으로 유력할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신자들이 모여서 함께 복음 운동을 하면 더 힘이 생기고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혼자서 하는 것도 좋지만 같이 모여서 하는 것이더 바람직한 것입니다.
3. 교회는 자주 모여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는 곳이기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하는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 가지 귀한 작용을 합니다.
말씀으로 거듭나며(벧전1:23), 말씀으로 성장하며(벧전2:2), 말씀으로 심령과 행실이 깨끗하여지며(요15:3, 시119:9), 말씀으로 거룩하여지며(요17:17), 말씀으로 보호를 받으며(앱6:17, 말씀으로 심판하게 됩니다(요12:48).
교회는 모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잘 상고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가 주님께서 영원히 거하실 수 있는 처소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요즈음은 핵가족 시대라고 하여 가정에서도 자꾸자꾸 분열되어 소수의 가정을 이루려고 합니다. 육적인 생활에 있어서는 그것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도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꾸자꾸 모여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신앙을 유지할수 있고, 복음 운동이 유력해집니다.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교회의 모임은 생명같이 귀합니다. 교회를 부인하는 사상은 이단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서 세운 제단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사랑하여 모이기를 힘써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단결하는 교회
요17:20-26
서론
하나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간곡히 기도하시고 원하시던 것도 역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교회는 단결을 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1. 단결해야 하는 이유
이것은 주님의 요청이요, 간절한 소원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실 때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악한 세상에서 살기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한데 이 악한 세상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인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단결하여 하나로 뭉칠 때 사탄은 역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2) 복음이 증거되기 위하여 단결해야 합니다.
21절에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하고 아끼고 협력할 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도 연합하는 데 있었고(행2:46), 성령받은 후에도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할 때 크게 부흥한 것입니다.
(3) 영광을 얻기 위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2절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신만 잘 되려고 한다면 그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회를 부흥시키고 자신들도 존귀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단결하는 비결
(1) 겸손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사이에는 겸손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아들은 아버지를 위하여 살았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오셔서도 그 아버지를 위하여 사셨습니다. 겸손과 희생 그리고 자기 포기가 있어야 단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버리시면서까지 우리 인간과 하나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희생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고집, 내 의견만 내세우지 말고 나를 낮추고 포기해야 합니다.
(2) 사랑과 포용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하나가 될 수 없고 싸매어줌이 없을 때에는 하나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덕이 있을 때 그곳에는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를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에게 관대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해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진실과 성결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는 진실해야 합니다.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의 시초가 욕심이라(약1:15) 하였는데 이 욕심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사욕도 죄악도 없으십니다. 자기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할 때 거기에는 하나됨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험한 이 세상에서 세상을 이기고 교회를 부흥시키며 우리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하여는 온 교회가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연합해야 합니다. 겸손과 희생으로 하나가 되고 관용과 포용으로 하나가 되고 진실과 성결로서 하나가 됩시다.
믿음도, 뜻도, 정성도, 노력도 한데 뭉쳐서 힘있게 전진하면서 놀라운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원합니다.
기도의 단결
행1:12-14
서론
부활하선서 승천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던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 들어가 찬송하고 예수께서 만찬을 베푸시던 방에 모여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그들이 기도하던 상태는 마음을 같이 하여 모두 기도에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기도의 단결입니다. 기도의 단결로 오순절에 성령 강림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단결하여 기도하였습니까?
1.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때 모인 사람의 수는 120명이었습니다. 그 모인 사람 가운데는 사도 베드로도 있었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있었으며 그 외에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계급이나 간격도 없이 같은 신자요, 같은 형제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같은 목적으로 하는 같은 마음의 기도는 응답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19-20절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단결된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힘써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노동과 같이 힘듭니다. 농부가 노동으로 인하여 맡은 땀을 흘린 후에야 알곡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또 노동하는 자들도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해야 그 삯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는 땀의 기도가 있어야 응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힘써 기도하지 않는 자가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은 농부가 거도 뿌리지 않고 결실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열심히 땀을 흘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을 담대히 이기고 기도에 승리하는 자가 되려면 힘써 기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참 승리하는 길을 주십니다.
3.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120명은 모여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열흘간을 금식하며 철야기도를 하였으니 그들의 열심있는 기도를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이 열심히, 그리고 항상 기도한 후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기도와 성령의 역사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지 않고는 결코 성령의 역사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도들은 매우 성질이 급합니다. 하룻밤 철야하고, 하루 금식하였다고 하면서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조바심을 냅니다.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령을 보내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신자라도 기도하기를 쉰다면 신앙이 자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결론
우리 성도에게는 큰 무기가 있으니 그것은 기도로 단결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사탄을 이기고 모든 생활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마음을 같이 하고, 힘써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의 단결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일치 가결함
행15:26
서론
그동안 의견이 분분하여 격론이 생겼던 예루살렘 종교 회의가 그 결과를 일치 가결로 폐회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은혜스러운 회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비결은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1. 자유스러운 토론이 필요하였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맹렬한 반대와 냉철한 비판은 충격적이었으나 문제를 표면화하여 해결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성실한 보고는 자신들이 이방 전도에서 얻어진 경험을 토대로 하여 진상대로 밝혔기 때문에 좋은 자료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의 체험적 간증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이 합동하여 선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의 온갖 회의에도 발언에 억압이 없고 신앙 양심에 눌림이 없이 지극히 자유스러운 토론이 있다면 참으로 바람직한 회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토론이 일치가결한다면 원숙한 회의가 될 것입니다.
2. 은혜로운 지도자의 권면이 필요합니다.
어느 곳에나 지도자는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교회 안에서 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지도자는 은혜로운 자이어야 합니다.
여기 회의에서는 야고보의 권면이 효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였고(고전15:7), 교회의 기둥이었으며, 기도에 전념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거의 독재에 가까운 단언을 내렸습니다. 그는 사도행전 15장 13절에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권위있는 말씀입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윗사람들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하며 은혜와 권위에 복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이 시대에는 은혜로운, 권위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지도자 밑에서 단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음으로 주님께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성경의 원리를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자유스러운 토론을 전개한다고 하더라도 법규의 기본권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법을 무시해서도 안되며 어겨서도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회의를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리 권위 있는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성결의 원리를 초월하거나 그 뜻을 거스리고하는 회의라면 그 자체는 벌써 불법성을 띄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리를 거스리지 말고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민주 정치를 지향하듯이 모든 교회들도 의견의 대립, 혹은 서로 반대될 때에는 소수가 복종하여 다수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고집만을 주장한다면 그 회의는 깨어질 것이고 그 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눈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순응한다면 여기에서 원만한 일치가결이 이루어질 수 있고, 이 결의야말로 원만한 것으로 아무런 후유증도 없을 것입니다.
결론
교회의 회의에서 일치 가결을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회의에서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서 일치 가결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주님이 표준이 되어야 하며 주님을 중심으로 한 회의여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로운 회의가 되는 것이며 단결의 힘을 보이는 회의가 될 것입니다.
기도로 연합된 교회
행4:23-33
서론
우리는 개교회를 묘사할 때 그 교회를 복음적이라고 하거나 영적이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교회를 '주님의 교회'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교회의 성장에 밑바탕이 됩니다. 성도 개개인에게 있어서도 기도할 때 영성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지고 복음이 증거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생동력 있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기도로써 외적으로나 내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잘 견디며 성장해 나아갔습니다.
1. 그들은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합심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께서도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에 능력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마18:19-20). 기도는 믿는 자들이 함께 느끼는 경험의 표현입니다. 힘있고 성장하는 교회들은 모두 기도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기도가 어떻게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말하기를 "대부분의 교회들은 파기 교회의 성도들을 기도로 다스리는 줄 알지 못한다. 기도는 사탄을 정복하는 능력이며, 교회는 기도로 하늘나라의 능력을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세상에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2. 어떻게 기도하였습니까?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확신과 인도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 만족을 줍니다. 또 예수님 이 십자가에 달리셨던 밤을 기억하였고 부활로써 그들에게 축복과 승리가 왔음을 회상하였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중언부언해서는 안됩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면 그것은 진정한 기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온 마음을 모아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3. 기도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기도하자 그들은 모두 기도에 응답받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영적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하려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고,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기도함으로 교회는 영적인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성도들 모두가 유무 상통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기도로 연합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가 없으며, 한마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성도가 많은 교회는 연합된 교회가 되며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불러 모아주신 우리 모든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 연합의 원리
엡4:1-8
서론
현재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소원이 있다면 교회의 단결과 조국의 통일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교회가 분열된 것이나 조국 분단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기보다는 하나님께 다같이 회개하면서 기도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단결하여 하나님에 기도드리는 것이 교회와 조국이 사는 길이며 번영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1. 교회가 영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서적 측면에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분부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라고 분부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분열주의는 하나님의 명령에 역행하는 일인 동시에 비성서적이요, 비신앙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이요, 간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친히 세우신 지상 교회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셋째는 성령의 지시와 권면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에 "성령의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교회가 연합하고 하나되도록 성령께서 지시할 뿐만 아니라 권면하시고 사역하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지시와 권면을 받아 활동하는 교회는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연합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 모두가 공동 유익을 추구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의 적은 유익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보다는 대중의 의견을 추구하고 자신의 사리사욕보다는 대중의 유익을 추구하고, 나아가서는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우리 모두가 자기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부여받은 책임 수행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위치를 바로 지켜야 하고, 다음 나 자신의 가야할 길을 바로 가고, 다음 내가 할일을 바로 수행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의 노력과 지혜를 총동원하여 나의 책임을 완수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공동 질서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먼저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을 취해야 되고 다음은 현위치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공동적인 가치관을 수립하고, 우리의 생각도 뜻도 목적도 동일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3. 교회 연합의 기본자세는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소원인 교회 연합을 위한 우리의 자세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겸손과 온유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겸손에 대한 박윤선 박사의 정의는 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정직한 태도요, 남을 나보다 우월하게 여기는 생각과 행위요, 항상 자기 부족을 인식하고 자기를 경계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온유'에 대한 '크레이다너스'의 정의는 조급, 경솔, 속단, 흥분, 열광, 잔인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오래 참고 사랑으로 용납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참는 것은 변절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난관을 감수해 가야 가는 것이고, 사랑은 내어 주는 것이요, 남의 유익을 도모하는 것이요, 내 자신이 회생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용납은 남의 과실과 단점을 덮어주고 남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평안의 매는 줄로 결속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평안의 매는 줄'은 주님의 복음이요, 복음을 받아 믿는 믿음이요, 이 믿음의 대상이 십자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과 믿음과 십자가로 결속하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한국 교회는 이 기본 자세로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결과 힘이 있는 교회가 되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어려울 때 도움
출17:1--13
서론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조금씩 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금만 어려워도 원망과 불평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서로가 도와야 일이 잘 해결되는 것입니다.
1. 다투어서 될 일은 아닙니다.
본문1-2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광야에 물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것을 다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 했어야 마땅한 일인데 그들은 기도는 하지 않고 싸움과 원망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전혀 없는 듯이 생각하고 모세에게만 책임을 전가시키고 물을 마시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어려울 때 다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같이 기도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하였습니다.
2. 원망해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자 모세는 여호와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반석을 치라고 하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에게 마시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을 마시게 된 것입니다. 결국은 원망해서 물을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물을 얻은 것입니다. 원망은 망할 징조인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서도 문제만 발생하면 서로가 자신들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서로가 원망 및 불평으로 가득찹니다. 이래서야 어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까. 원망 대신에 서로 기도하고 회개하며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의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 것입니다.
3. 협조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본문 11-13절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 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하였습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그의 손이 내려오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세도 사람인지라 손이 내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일도 아니라 아론과 홀은 모세를 도와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이는 어려움이 있을수록 서로 협조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원망이나 불평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아니합니다. 특히 싸움은 더욱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힘을 합하고 기도하며 협조할 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툴 것이 아니라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단 점
성 경 활 용
1. 성도에게 생기기 쉬운 단점
(1) 주의 종을 섬기는 일
(빌2: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함이니라
(2) 믿음
(살전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을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함이라
(3)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
(눅18:22)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
(4) 지혜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5) 은사
(고전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2. 단점이 생기는 원인
(1) 조급하여서
(잠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2) 게을러서
(잠24:33)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3.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
(1)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시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2) 여호와를 목자로 삼으므로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시도다
(3) 인내함으로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관련원어풀이
1. rsej; 하-세-드
(1) 결여되다, 부족하다.
(창18:28, 시34:11)
(2) 결핍을 당하다.
(시23:1, 잠13:25)
(3) 모자라다, 적다.
(창8:3, 왕상17:14)
(4) 부족하다, 결핍하다.
(신15:8, 전9:8)
(5) 모자라게 하다.
(사32:6)
2. r/sj]m' 마흐소-드
부족, 필요.
(삿16:20, 잠24:34)
3. rySij' 함미-드
결핍한, 가벼운
(단5:27)
4. f['m] 메아트
(1) 작음.
(창43:2)
(2) 작게, 잠시 동안.
(룻2:7, 시37:10)
(3) 작은, 적은.
(민13:18)
(4) 짧게, 빨리, 갑자기.
(욥32:22, 시81:15)
5. &r' 라크
(1) 부드러움, 여물지 못한.
(창18:7)
(2) 연약한, 견고하지 못한.
(삼하3:39)
(3) 섬세한, 치밀한.
(신28:54)
(4) 부드러운.
(욥40:27, 잠15:1)
(5) 두려운.
(신20:8, 대하13:7)
6. uJsterevw 후스테레오-
(1) 너무 늦게 오다,미치지 못하다,제외되다.
(히4:1, 12:15)
(2) 부족하다, 모자라다.
(마19:20, 고후11:5)
(3) 결핍하다, 모라자다.
(막10:21, 요2:3)
7. uJstevrhma 후스테레-마
(1) 결핍, 핍절, 부족.
(눅21:4, 빌2:30)
(2) 결점, 흠.
(살전3:10)
8. creiva 크레이아-
(1) 필요, 필요성,
(눅10:42, 막2:17)
(2) 빈궁, 궁핍, 결핍, 곤란
(막2:25, 행2:45)
9. leivpw 레이포-
(1) 남기다,두고가다,버리다, 뒤에 남겨지다. 떨어져 있다
(약1:4)
(2) 부족하다. 결핍하다.
(약1:5)
10. hjjsjsavw 헤싸오-
보다 못한, 낮은, 약한.
(마20:28)
설교예화자료
두 남매
옛날 어떤 마을에 두 남매를 둔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남매는 무럭무럭 자라 청년과 아가씨가 되었는데, 아들은 아주 미남이었고 딸은 너무도 못생겼었습니다.
어느 날 두 남매는 우연히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나는 제법 미남인걸!"
거울을 본 아들은 자신의 얼굴에 만족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너무나 못생겨서 화가 나고 울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딸은 그날부터 바깥 출입도 잘 하지 않고 식구들과도 말을 하지 않았으며 혼자 웅크리고 앉아서 고민만 하였습니다.
"얘야, 왜 그러니? "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딸은 대꾸도 않고 방으로 들어갈 뿐이었습니다.
"얘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면 이 애미한테 말하려무나."
어머니는 다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딸은,
"어머니, 오라는 저렇게 잘 생겼는데 난 왜 이렇게 못 생긴 얼굴로 태어났지요? 전 어머니가 원망스럽단 말이어요." 하며 퉁명스레 대답했습니다.
"응, 그래서 화가 났었구나!"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불러 앉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외모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이렇게 생각하렴, 잘생긴 사람은 나쁜 행동으로 그 얼굴을 욕되게 하지 말고, 미운 사람은 아름다운 마음씨를 길러서 미운 얼굴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면 된단다. "
사자의 고민
숲속의 왕이라 불리며 모든 동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자에게도 남모르는 하나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닭을 무서워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동물들 앞에서는 으르렁거리면서 위엄을 보였지만 웬일인지 닭만 나타나면 무서워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사자는 그런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동물들이 그 사실을 알면 얼마나 비웃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정말 참을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모든 동물들을 만들었다는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서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님, 저에게 강인한 체력과 날카로운 이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보잘것 없는 닭을 무서워하도록 만드셨습니까 ? "
그 말을 들은 프로메테우스는 호통을 치며 사자를 나무랐습니다.
"허, 이 못난 녀석! 네 말대로 나는 너에게 강한 체력을 주었다. 그런데 그 하나의 결점을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단 말이냐? "
사자는 프로메테우스로부터 단단히 꾸중을 듣고 더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내가 그 작은 고민 하나 해결하지 못하다니‥‥‥
사자는 풀이 죽어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코끼리가 사자를 보고 다가왔습니다.
"사자님, 안녕하세요? "
"아, 코끼리님 이군요!"
사자도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오랫만에 만났으므로 둘은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코끼리는 아까부터 계속 귀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사자가 코끼리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코끼리님은 왜 그 무거운 귀를 잠시도 가만히 두지 않고 계속 움직이세요? "
그러자 코끼리는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내 귀 주위를 자세히 보십시오. 조그만 모기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날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녀석 때문에 계속 귀를 움직이고 있답니다. 만일 이 조그만 모기가 내 귓속으로 들어가면 난 죽고 마니까요."
이 말을 들은 사자가 코끼리의 귀 주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연 조그만 모기 한 마리가 날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몸집이 큰 코끼리도 저까짓 조그만 모기 때문에 죽을까봐 걱정을 하다니 기막힌일이군, 그것에 비한다면 내가 닭을 좀 무서워하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군!'
사자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결점을 갖는다.
(페트로니우스/ 풍자시집)
신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에는 틈이 있다.
(에머슨/ 수필집)
결점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다. 가장 적은 결점으로 둘러싸인 자가 가장 훌륭할 뿐이다.
(호라티우스/ 풍자시집)
모든 사람은 달과 같아서, 누구에게도 결코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다.
(마크 트웨인/ 바보 윌슨의 새 달력)
남의 허물을 듣거든 마치 부모의 이름을 듣는 것과 같이 하여 귀로는 들을지언정 입으로 말하지는 말라.
(명심보감)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어떤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라. 그대는 항상 누구에게서나, 그가 숨겨 두어야 할 적어도 하나의 검은 점을 발견할
것이다.
(H. 입센/ 사회의 기둥)
남의 단처(短處)는 힘써 덮어주어야 한다. 만일 폭로시켜 드날리면 이는 단(短)으로써 단을 공격함이다. 사람이 완고함이 있거든 잘 타일러 주어야 한다.
(채근담)
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그 결점을 미워한다.
(M.V, 마르티알리스/ 경牙)
나의 친구들이 외눈일 때, 나는 그들의 옆 모습을 본다.
(주베르/ 명상록)
악인은 자신의 결점을 변명하지만, 선인은 자신의 결점을 가만히 놔 둔다
(B. 존슨/ 캐틀린)
큰 결점을 가지는 것은 위인들에게만 한한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남의 잘못은 눈에 잘 띄지만, 자신의 잘못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남의 잘못은 가벼운 먼지처럼 들추어내지만, 자신의 잘못은 안으로 슬쩍 묻어 버린다.
(법구경)
너는 타인의 이를 찾아내지만 자기의 진드기는 보지 못한다.
(G. 페트로니우스/ 사티리곤)
자비로운 사람은, 친구들을 당황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에게 몇 가지의 결점을 허용해야 한다.
(B. 프랭클린/ 자서전)
사랑은 결점을 보지 못한다.
(영국 속담)
여자의 미덕에는 매우 친절하고, 여자의 결점에는 슬쩍 눈감으라.
(M. 프라이어/ 영국제 자물쇠)
냄비는 프라이팬이 너무 검다고 말한다.
(M. E. 몽테뉴/ 수상록)
모든 약점들 중에서도 가장 큰 약점은, 약하게 보이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이다.
(J.B. 보쉬에/ 성서의 정치적 평가)
개인이나 국가나 신에게서, 그들의 진정한 중요성과 가치를 알기보다는 결함을 발견하는 것이 더 쉽다.
(G.W.F. 헤겔/ 역사철학)
우리들이 조그만 결점을 인정하는 것은 큰 결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남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결점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결점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칼라일/ 영웅과 영웅 숭배)
타인의 결점은 우리들의 눈 앞에 있고, 우리들 자신의 결점은 우리의 등 뒤에 있다.
(세네카/ 분노)
남의 결점이 눈에 띄게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L. N. 톨스토이)
언청이 아니면 일색 <*결정적인 결점을 은근히 비꼬는 말>
(한국 속담)
타인의 결점 가운데서 우리들이 가장 비난하는 결점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불리해지는 그러한 결점이다.
(A. 뒤마)
대부분 사람들의 재능은 끝에 가서는 하나의 결점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노인이 되어 갈수록 이 결점은 더욱 더욱 현저하게 된다.
(C. A. 생트뵈브/ 隨想)
자기의 품행에 논의의 여지를 남겨 두는 사람들이, 자기의 이웃을 공격하는 데는 항상 앞장선다.
(몰리에르/ 타르튀프)
결함투성이로 있는 것도 하나의 악이지만, 결함투성이이면서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악이다.
(B. 파스칼/ 팡세)
똥벌레가 제 몸 더러운 줄 모른다. <* 사람은 자기 자신의 추악이나 결점을 모른다는 뜻>
(한국 속담)
거문고 인 놈이 춤을 추면 칼 쓴 놈도 춤을 춘다. < *남의 결점은 장점인 줄 알고 함부로 그것을 모방한다는 뜻>
(한국 속담)
아무런 결점을 보이지 않는 인간은 바보든지 위선자이다.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J. 주베르/ 팡세)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면 친구가 없다.
(전환서)
사람들은 타인의 결점을 곡식의 껍질처럼 키로 가려낸다.
(법구경)
여자의 결점을 알려면 그녀의 여자 친구들 앞에서 그녀를 칭찬해 보면 된다.
(B. 프랭클린/ 서간집)
밥의 티와 며느리의 흉은 작아도 이빨에 걸린다.
(일본 속담)
우리들은 즐겨 남이 완전하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의 결점을 고치려고는 하지 않는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치지 않음과 같다)
마땅히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않음은 마치 고르지 아니한 거문고나 비파를 고치지 않음과 같다.
(대각국사)
무엇이고 한 가지 나쁜 버릇을 고치면, 그에 따라서 다른 버릇도 고쳐진다. 한 가지 나쁜버릇이 열 가지 나쁜 버릇을 만들어 내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B. 파스칼)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데는 한 가지 비결이 있다. 즉, 상대를 변하게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결점을 고치려 하면 상대방의 행복까지 파괴해 버리고 말기 때문에.
(J. 샤르돈)
한 가지 결점에서 벗어나려는 자는 그 결점을 벗어나서 다른 결점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무엇보다도 조심하라
(F. 뤼케르트)
우리들은 날 때부터 미덕으로 바꿀 수 없는 결점은 갖고 있지 않으며 결점으로 변하지 않을 미덕도 갖고 있지 않다.
(J. W. 괴테)
사람에게는 그다지 많은 결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만한 태도를 고쳐라. 그러면 많은 결점이 저절로 고쳐지리라.
(F. 라 로슈푸코)
타인의 결점은 좋은 교사다.
(A. G. L. 레만)
결점을 수치로 알고 교정하는 일을 수치로 여기지 말라.
(인도 속담)
도끼가 제 자루 못 찍는다. < *자기 허물을 자기가 알아서 고치기 어렵다는 말>
(한국 속담)
몸에 밴 결점은 파리와 같다. 아무리 쫓아도 반드시 도로 날아와서는 한층 더 자신을 괴롭힌다.
(W. 셰퍼)
정신이 건전한 사람은 자기에게 어떤 결점이나 부족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능력을 발휘하여 그 부족한 점을 덮는 것을 찾는다.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전환시키는 점에 인생의 묘미가 있다. 소경은 보지 못하는 대신에 귀로 판단하는 청각이 보통 이상으로 예민하다. 왼손이 오른손에 비하여 부자유한 것은, 오른손만 쓰고 왼손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왼손도 자주 사용하면 오른손과 같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길들이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다. 스스로 못 쓴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이 나쁘다. 당신의 약점이나 결점이나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다른 능력을 개척하도록 힘쓰라.
(L. 굴드)
자기 자신의 결점을 반성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남의 결점을 보고 있을 틈이 없다.
(탈무드)
사람들은 남의 잘못을 말하며, 그것을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이 자기 자신의 그림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들이 자기들의 결점을 보며 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돌아볼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자기 결점을 고치기가 얼마나 쉬울 것인가.
(J. 라 브뤼예르)
단점과 장점은 회전무대처럼 번갈아 나타나지만 지그시 참고 있으면 단점도 장점의 색채에 동화되어 돌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동주/ 애정의 관리)
당신들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고려하여/ 만들었다. 우리들을 노예화하는 법규를
(브레히트)
장군이여 당신의 전차는 막강하다/ 숲속의 나무를 깔아뭉개고 수백의 인간을 짓이겨버린다/ 그러나 그것에도 결점이 하나 있다/ 그것에는 타는 사람이 필요하다// 장군이여 당신의 폭격기는 무섭다/ 폭풍보다 빠르게 날으고 코끼리보다 적재량이 크다/ 그러나 그것에도 결점이 하나 있다/ 그것에는 정비원이 필요하다// ·장군이여 인간은 정말이지 쓸모가 있다/ 날을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도 결점이 하나 있다/ 그는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이네/ 독일전쟁 안내)
대자 한치 오푼 키에 두치가 모자라는/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 하기를/어려워한다‥‥/ ‥‥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미는/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다/ ‥‥쓸데가 있는 것을 잘 알지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그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가한다/
대처럼 꺾어는질망정 구리모양/ 휘어지기가1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노천명/ 자화상)
구스타프 레너는 확실히/ 토겐브르그 시립극장의/ 명배우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명연기를 알고 있습니다. / 그의 노인역이/ 볼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연극계의 대비평가들도/ 그의 연기를 찬양했습니다/ 여자들은/ 그가 멋있다고 박수쳤습니다/ 오직 한 가지 유감스럽게도 구스타프 레너는 /호주머니가 빌 때까지/ 엉망진창이 될 때가지/ 술을 퍼마시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햄릿이 상연되었는데/ 레너는 햄릿 아버지의 망령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를 어찌하랴/ 그는 잔뜩 취한 채 비틀비틀/ 무덤에서 나온 것입니다/ 횡설수설 소리를 지르고/ 엎어지고 자빠졌습니다/‥‥‥ 그는 부인 왕비의/ 발을 짓밟았습니다/‥‥‥ 나쁜 왕을 객석으로 집어던졌습니다/ 배우들은/ 겁에 질려 도망 쳤습니다/ 관객들은/ 배를 잡고 대굴대굴 굴렀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대갈채는 토겐브르그 극장의 역사상/ 일찍이 없었습니다/ 관객들은 깨달았습니다. / 비로소 연극 '햄릿'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E. 케스트너/ 연극 '햄릿')
자네는 저 하늘 높은 곳에 계신/눈부시게 빛나는 하느님만 바라보다가/ 땅 위에서 초라하게/ 고난당하는 하느님은/ 어째 보지 못하나.//낯익은 예수만 따라가다가/다른 모습의 예수는 몰라보는게 아닌가/ 나는 볼 수 없는 대신에/ 그 분의 숨소리를 듣네만/ 그래도 절망은 말게/ 자네가 그 분을 찾으려고 휘둘러 보면/ 언제나 가까이/ 옆에 계실 것이니.
(서덕석/ 때로는 눈먼이가 보는 이를 위로했다)
나의 노랫가락의 고저 장단은 대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노래 곡조와는 조금도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노래가 세속 곡조에 맞지 않는 것을 조금도 애달파하지 않습니다/ 나의 노래는 세속의 노래와 다르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까닭입니다. / 곡조는 노래의 결함을 억지로 조절하려는 것입니다/곡조는 부자연한 노래를 사람의 망상으로 도막쳐 놓는 것입니다/ 참된 노래에 곡조를 붙이는 것은 노래의 자연에 치욕입니다/ 님의 얼굴에 단장을 하는 것이 도리어 흠이 되는 것과 같이 나의 노래에 곡조를 붙이면 도리어 결점이 됩니다.
(한용운/ 나의 노래)
설 교 노 트
무엇이 부족한가
마19:16-22
서론
본문에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 모범적이라고 할 만한 청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였지만 돈이 많이 있었고, 지위도 높았으며, 율법을 다 지켜 행하였고, 나름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께 나와서 영생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그는 자신 있게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가를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1. 이 청년에게는 신앙 지식이 부족하였습니다.
먼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의롭고 율법에 비추어 완전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이것은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과대 평가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자세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나는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이요,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청년은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도덕적인 선생으로만 일았던 것이지 구세주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그 청년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저 위대한 성인이나 교계의 인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청년은 영생의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선한 행위로 인하여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는 율법의 진정한 요구도 깨닫지 못하였고, 또한 바른 가치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였습니다. 그가 영생보다 재물을 택한 것은 어느 것이 더 귀한지를 모르는 가치관에 대한 지식의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2. 그는 신앙 실천면에서도 부족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세상의 것을 끊어버리는 결단력이 부족하였습니다. 그가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물질에 더 집착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재물을 팔아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그에게는 가난한 이웃을 돕는 사랑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는 재물을 많이 소유하였지만 자기만을 위해 모아 두었던 것입니다. 그 재물을 가치있게 사용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면이 없습니까? 자신만을 위해 생각하며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모아 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하십니다.
우리들은 마땅히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결국 이 청년은 예수를 따르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영생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의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에게는 신앙의 지식이 부족하였습니다. 신앙의 실천면도 부족하였습니다. 신앙의 지식이 부족하고 신앙의 실천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진정 예수님을 좇는 자는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인없는 집의 문제점
눅11:14-26
서론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친히 실행하신 표적에 대해 불신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써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를 들어서 저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이 세 가지는
(1)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와 집은 무너집니다.
(2)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그 집을 지키게 되면 그 집과 소유가 안전하지만 더 강한 자가와서 저를 쳐서 이기게 되면 그 집과 소유를 다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3) 주인이 없는 빈집에는 악한 귀신들이 들어오게 됨으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의 심리 상태나 사회 형편이 이와 같다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1. 주인없는 집은 공허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주인없는 집이 공허하다"는 말은
(1) 무의미하다.
(2) 무가치하다.
(3) 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집이라고 하는 것은 큰 집이나 적은 집이나 주인이 있을 때에 그 집의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생명이 있는 법이지 주인없는 빈집은 아무런 가치도, 생명도, 의미도 없이 쓸쓸하고적막하고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의 공허성을 경고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①도덕적인 공허성 ② 사상적인 공허성 ③ 종교적인 공허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어 들이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또 사회 속에서 주인으로 모시어 그분을 왕으로 하여 통치를 받는다면 이 공허성은 물러나게 됩니다. 그때에 참된 가치와 생명과 의지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2. 주인없는 집은 악한 마귀가 침입해 옵니다.
본문 26절에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참 주인되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과 가정과 교회에 모시지 아니하면 별의별 잡동산들이 마구 침입해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가운데 좌정하여 계시면 마귀는 결코 틈조차도 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애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재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그리스도가 되어 주시면 우리는 그분의 다스림 안에 거하게 되고 또한 그분은 우리를 모든 원수의 손에서부터 구원하여 지켜주실 것입니다.
3. 주인없는 집은 후환이 심합니다.
여기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는 주인없는 빈집의 최후 결과의 비참을 지적해 주는 말씀입니다.
'후환이 심하다'라는 말은
(1) 무질서해진다는 뜻입니다. 들어오지 않을 것이 들어와서 판을 치게 되면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2) 마찰과 충동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질서가 파괴되면 서로 좌충우돌하여 심한 소란이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3) 서로 상처를 입고 심한 고통에 빠져들어 가는 뜻입니다.
이것이 주인없는 빈집의 결과로서 점점 낡아지고 황폐해져 무너져 가는 증거입니다.
결론
우리는 주인없는 빈집의 문제들을 살펴보았는데, 이는 공허와 소란과 혼란, 그리고 황폐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게 되면 질서가 잡히고 화평이 오고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며 참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성군의 오점
삼하12:1-9
서론
속담에 "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러나 본문 삼하 11장,
12장에는 성군 다원의 범죄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정조를 유린하고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 장군을 죽게끔하는 끔찍한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범죄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연약한 그릇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 범죄의 동기
(1) 다윗의 안일한 생활 때문입니다.
'안일'이라는 낱말의 뜻은 우리나라말 사전에 밝힌 바와 같이 "몸이 평안하여 한가하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암몬 족속과 전쟁을 하고 있는 때이라 이스라엘 모든 군신들이 일선에 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때 다윗은 왕궁에서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 범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다윗 의 방종 생활 때문입니다. '방종'이란 우리나라말 사전에 "거리낌 없이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다윗은 일거동 일투족을 하나님의 뜻과 신앙 양심을 따라 살아왔으나 그만 왕이 되면서 방종 생활을 하다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방종과 자율적인 생활은 우리 신앙인에게는 위험 신호인 것입니다.
(3) 신앙생활의 해이 때문입니다.
여기 신앙생활의 해이라는 말은 신앙생활의 각성과 긴장이 다 풀어져 가지고 흐트러졌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기계의 나사가 다 풀어져 가지고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신앙인에게 안일과 방종과 해이는 위험 신호인 것을 명심하시곤 잘 대처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2. 범죄의 내용
성경 본문에는 다윗의 죄에 대해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간음죄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부하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인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다가 동침한 죄인 것입니다. 성경에 다른 죄는 몸 밖에 있어도 간음죄는 몸 안에 있다고 하면서 이 죄는 가정과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무서운 죄악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2) 은폐죄입니다.
사람이란 범죄하게 되면 양심에 가책을 받고 번민을 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간교한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고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 장군을 불러 밧세바와 동침케 하려다가 실패한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3) 살인죄입니다.
다윗은 제일차 방법이 실패하자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 죽도록 해서 합법적으로 밧세바를 취하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3. 범죄의 결과
성경 약1:14에 "오직 각 사람의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범죄한 후 성스러운 하나님의 사람이 추한 마귀의 사람이 되어지고, 최선의 사람이 최악의 사람으로 전락되고, 영화롭던 사람이 미천한 사람으로 타락이 되었습니다 "죄값은 사망이라"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공의의 법은 다윗에게 진노와 형벌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죄의 결과로 다윗은
(1) 사랑하는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2)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 왕가의 치욕을 드러냈습니다.
(3) 국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왕궁에서 추방되어 부자간에 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사람도, 범죄할 수 있고 범죄하면 흑암한 세계에 침륜이 된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찾아보았습니다.
결론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약한 부분을 갖고 있는데, 죄성은 그 약한 부분에 스며들어 우리로 범죄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경비하여 자신의 약점을 위해 기도하며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어리석음
대상21:1-8
서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윗은 국가 정책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인구조사를 실시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이스라엘의 왕직은 다른 국가들처럼 단순한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대리자인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전쟁은 국가와 국가간의 싸움이 아닌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이에 다윗도 이 사실을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고백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갑자기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은 이스라엘의 싸움이 그들 백성의 수에 의해 좌우되지 않나하는 의심에서 출발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다윗의 단점과 그 결과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사단의 격동시키는 데 피동하였습니다.
성령은 언제나 우리의 심령을 감동시켜 선을 추구하도록 하나 반대로 사단은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켜 흥분케 하고 공연히 마음이 동요되게 조정합니다. 본문 1절은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사단의 격동시킴에 있었다고 말해줍니다. 즉 사단이 다윗으로 이스라엘의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닌 인간의 전쟁이라는 속임으로 인구를 계수하도록 하였는데 다윗은 그만 그 뜻에 휘말려 들고 말았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잘못된 마음 자세에 불을 붙여 넘어지게 하고 범죄하게 하여 타락하도록 만드는 작용을 합니다. 다윗은 이때에 사단의 죄에 넘어간 것입니다.
2. 충신의 만류에도 듣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강행케 하면서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서 지령하였는데 요압은 그 부당성을 지적하여 다윗의 인구 조사 정책을 만류하였습니다. "요압은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라고까지 하면서 만류하였으나 다윗은 충신의 간고한 만류를 뿌리치고 강행할 것을 독촉하였습니다
사람은 때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을 만나곤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정직한 충고를 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다윗의 경우 그 자신이 사단의 격동케 함에 피동되어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정책을 펼치게 되어 바른 판단이 어렵게 되었다면 이때 요압의 만류를 다시 한 번 생각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정책을 충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였으니 여기에 다윗의 단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괘씸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아무리 인구 조사를 강행한다 할지라도 못하게 하실 수 있었지마는 다윗이 자기의 잘못과 단점을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하실 목적으로 다윗 의 인구 조사 정책을 강행되도록 방임하습니다.
다윗은 인구 조사를 실시했고 하나님은 이 일을 괘씸히 여기셔서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7절).
이제서야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으로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라고 죄를 고백하게 하고 또한 회개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우리의 단점과 불신앙을 단번에 고치시지 않으시고 사건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수준으로 이끌어 가시는 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결점과 불의의 행위는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의 대가를 치루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에 온액이 퍼져 7만명의 백성이 죽는(14절) 고통을 견디어 내야만 했던 것입니다.
결론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인구 조사를 사단의 격동케 함에 피동하여 강행하였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충신의 간구에도 강행하는 지도자로서의 부족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엎드리며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단점과 잘못된 결점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 엎드리어 더욱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까지 도달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의 단점을 고침
출34:29-35
서론
모세가 은혜를 받고 산에서 내려오는데 백성들은 그를 피하는 눈치가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유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세히 알고 보니 자신의 얼굴에 광채가 나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들어갈 때만 수건을 벗고 백성을 대할 때는 수건을 썼습니다. 즉 사람들이 자기를 가까이 아니하는 이유를 알게 되어 사람들이 자기에게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1.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습니다.
본문 29절에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자기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의 말씀하였음을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주의 계명을 대하였을 때에 얼굴에 빛이 비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타인이 볼 때에 광채가 나서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은 점에서나 나쁜 점에서 자신의 장단점을 알 수가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는 모두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가까이하지 아니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섭섭하다고 하기 이전에 자신에게 문제가 없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2. 사람은 자기의 단점을 모릅니다.
본문 30절에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는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점이 있는데 그 단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칠 수도 없고 고치지 못하니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약점은 자기가 자기를 모르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단점은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봐야 할 것입니다.
내 속의 단점을 보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의 단점도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자기 단점을 고쳐야 합니다.
본문 33-35절은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수건을 벗고 사람들 앞에 설 때에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운 사실을 말해줍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는 죄가 되지 아니하여도 사랑들에게 덕을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숨기는 아름다운 행위를 취했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얼굴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지 아니하고 얼굴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졌고 다른 사람과 거리감이 없게 하기 위해서 수건을 썼습니다. 바울이 고기 먹는 것이 죄가 아니되지만 약한 자들을 위해서는 먹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언제나 사람들이 자기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음을 기억하고 자기를 살펴서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는 덕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단점은 생각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엘리 가정의 문제점
삼상2:27-30
서론
엘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사사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즉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의 가정에는 문제들이 있었으며 엘리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졌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비극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엘리 가정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서 우리에게 있을 단점, 즉 문제들을 해결하여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1. 가풍이 무너진 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느 사회든지 그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 윤리라는 것이 있으며 이것이 무너지게 되면 그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느 가정이나 그 가정이 유지되는 최소한의 가풍이 있기 마련이며 이것이 그 가정의 사회적인 위치와 가치를 결정하곤 합니다. 이 가풍에는 그 나름대로의 바탕이 있는데 예를 들면, 불교 집안에서 목탁 냄새가 나고 유교적인 집안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형식적인 고루한 냄새가 나며, 미신 집안에서는 무당들의 굿 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또 기독교 집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향내가 나는 법입니다.
엘리 집안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신앙 위에 세워진 가정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사사요, 제사장인 엘리가 가장으로 그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특별히 하나님이 세우신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의 가풍은 붕괴되었습니다. 그의 신앙의 지도자적인 권위가 무너지고 더 이상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가정으로서의 면모를 잃게 된 것입니다.
엘리 가정의 가풍이 무너진 데에는 그 아들들이 아버지 엘리의 사사요, 제사장으로서 권위를 짓밟은 데 있습니다. 이는 단지 아버지 엘리의 권위를 무시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의 권위를 짓밟으려는 태도인 것입니다. 엘리의 단점은 바로 이러한 아들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징계하지 못하고 인정에 이끌리어 그들의 행동에 방관하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29절)"라고 엘리를 책망합니다. 한 가정의 가풍은 그 책임이 가장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식의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게 하지 못한 것이 엘리의 단점인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때로는 "자식이냐! 하나님이냐!"라는 신앙의 결단을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결정은 자식들을 위해 하나님을 선택해야 될 줄로 압니다.
2. 가정 교육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정의 교육은 모든 교육보다 우선적이며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 교육의 차원에서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사요, 제사장인 엘리는 자녀 교육에서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1) 엘리는 교육에 무관심하였습니다.
신6:7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그 제사장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들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치지 못하여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을 밟도록 하였으며 그중에서 좋은 것을 취하는 범죄를 저지르도록 했습니다.
(2) 또한 엘리의 교육상 과오는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귀중히 여긴 것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제물보다 자녀들의 식물을 더 중히 여긴 것과 자녀들의 영혼보다 그들의 육신을 더 중히 여긴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많습니다. 잘 믿다가도 자녀 문제에서 신앙이 걸리면 넘어지지 않습니까? 엘리 아들들의 문제는 바로 엘리의 문제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신앙 단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에게도 많은 단점들이 있으나 그것이 자녀와 연결될 때 우리는 극복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단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일주의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생각하면서 일을 처리한다면 우리의 단점들은 극복될 것입니다.
대 강 절
성 경 활 용
1. 기다리는 자는 누구인가?
(1) 성도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고전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2) 피조물
(롬8:19) 피조물의 고대한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3) 중생
(시145:15)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대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2. 기다리는 내용
(1) 하나님의 구원
(사25: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2) 성령
(행1:4)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3) 하나님의 긍휼
(시123:2)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4) 하나님의 나라
(막15: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3. 여호와를 기다리는 태도
(1) 잠잠히 기다림
(시62:1) 나의 영혼히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애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2) 오래 기다림
(시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3) 간절히 기다림
(시130:6)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틀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관련원어풀이
1. lj'y: 야-할
(1) 바라게 하도록 되어지다, 소망하게 되다.
(창8:2)
(2) 바라게 하다, 기대하다,갈망하다, 기다리다.
(욥6:11, 14:14, 29:21,23, 30:26, 미5:7)
(3) 기대케 하다, 고대하다, 기다리다.
(삼상10:8, 13:8, 왕하6:33, 욥32:11,16)
2. hk;j; 하-카
(1) 기다리다.
(창8:10, 사30:18하)
(2) 기대하다, 기다리다.
(왕하7:9, 시106:13, 30:18상, 단12:12,호6:9, 합2:3)
3. lWj 훌-
(1) 기다리다, 머물다, 늦추다.
(삿3:25)
(2) 기다리다.
(욥35:14)
(3) 기다리다.
(시37:5)
4. hw:q; 카-와
기대하다, 고대하다, 갈망하다.
(창49:18, 시40:1, 130:5, 잠20:22, 사5:4, 25:9, 26:8, 애3:25)
5. rb'c; 사-바르
기다리다, 바라다.
(룻1:13)
6. r:qv; 솨-카드
주시하다, 깨어 지키다.
(잠8:34)
7. @WK 쿤-
준비되다, 세워지다, 천고하다.
(욥12:5)
8. jWn 누-아흐
쉬다, 거하다, 머물다.
(합3:16)
9. hp;x; 차-파
기다리다.
(삼상4:13)
10. prosdevcomai 프로스데크마이
접근케 하다. 인정하거나 허락하다, 기다리다, 고대하다.
(막15:43, 눅2:25, 12:36, 23:51, 행23 21, 딛2:13, 유21)
11. prosdokavw 프로스도카오
찾다, 기대하다, 대망하다.
(마11:3, 눅1:21,3:15, 행10:24)
12. ajpekdevcomai 아파크데코마이
고대하다, 기다리거나 찾다.
(롬8:23,25, 고전1:7, 갈5:5, 빌3:20, 벧전3:20)
13. ejkdevcomai 에크데코마이
(1) 받다, 찾다, 기다리다.
(요5:3, 행17:16)
(2) 찾음, 기대, 포부.
(고전11:33, 16:11, 히10:13, 약5:7)
14. mevnw 메노
머물다, 지체하다, 기다리다.
(행20:5, 23)
15. perimevnw 페리메노-
기다리다.
(행1:4)
16. ajnamevnw 아나메노-
기다리다, 고대하다, 견고히 머물다.
(살전1:10)
어록·시·묘사
사람의 생애란 하나의 「기다림」이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어머니의 젖을 기다리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임종의 시각까지 크고 작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인류의 역사란 것은 다름아닌 인류의 기다림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가들이 내세를 기다리는 것이나, 사회 개혁가가 지상의 낙원을 이룩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나 모두가 하나의 「기다림」 속에서 싹튼 역사다.
(이어령/ 증언하는 캘린더)
마음 평안하게 기다리는 사람은 기다림에 지치는 일이 없다.
(프랑스 속담)
기다림을 배우면 모든 일이 잘 된다.
(프랑스 속담)
기대는 믿음의 어버이다.
(C.A. 바틀/ 진보의 과제)
그대의 마음속에서 기다림은 욕망이라기보다는 다만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온갖 마음의 준비여야 할 것이다.
(A. 지드/ 지상의 양식)
오래 기다리면 제 세상이 될 것이다.
(영국 속담)
아아, 나의 마음이 나날이 허전해만 가는것은 가을이 깊어가는 탓만은 아닌데‥‥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아아, 이 허전한 마음, 두려움으로 무언가 기다려지는 그리움조차 깃든 이 마음, 아아, 나는 어쩌면 좋을까.
(선우휘/ 언제까지나)
기대는 불보다도 견디기 어렵다.
(아라비아 속담)
기다릴 수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잘 된다.
(F. 라블레)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출발에서부터 그 종말의 날까지 기다리며 다하는 것이나 아닐까.
(손소회/ 우리집 꽃 이야기)
「기다린다」는 것은 아름답고도 슬픈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부조리다. 희망과 절망, 권태와 기대-·. 설레이는 희열이 있는가 하면 어둡고 답답한 환멸이 있다. 서로 모순하는 생의 기도 속에서 「기다림」의 꽃은 핀다.
(이어령/ 증언하는 캘린더)
역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기대만이 약이다.
(W. 세익스피어)
삶의 기술은 하나의 기대를 걸어 놓고 그것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A. 모루아)
가시를 심고서 장미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필페/ 무지한 의사)
주님 원하심대로/ 저희에게 이루어집니다/주님 원치 않으시면/ 이 일도 저희에게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피가/ 검게 고뇌로 삭은 후/ 마침내 아버지의 뜻을 깨칩니다// 주님 원하시면/ 동방의 큰 별을 저희 모두 봅니다/ 주님 원치 않으시면/ 구세주의 강생 감감하고/ 그러나 저희는/ 죽도록 대망(待望)을 배웁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12월의 목마름/ 시 쓰는 잉크도 붓 끝에서 마르고/천지사방 수난의 우설(雨雲)/ 요셉과 마리아는/ 아직도 노상에 계십니다.
(김남조/ 대림)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 책에서 저희는/마리아와 요셉의 여정을/ 볼 수 있습니다/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경사스런 일을/ 맞이하기 위한/그들의 여행을.//이제,다시 한 번/당신의 아들께서/ 태어난 날을/ 맞이하면서/이 시간의 성스러움을/ 감지하게 하시고/ 베들레헴에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의/ 놀라운 선물,/ 사랑을 찬미하게 하소서.
(12월의 기도)
밤의 어두움은 다가왔다/ 낮은 곡히 멀지 않느니라/ 그러니 바로 지금이야말로 빛나는 샛별을 노래해야 할 때여라/ 밤을 지새워 우는 자도 기쁘게 목소리를 맞추어 노래하라/ 새벽별은 그대의 불안과 고뇌에도 빛을 쏟고 있다// 모든 천사가 섬기는 분/ 그는 어린아이면서 종이신 분/ 하나님 자신이 그 의를 나타내 주신 것이어라/지상에서 죄짐을 지고 있는 자도/ 더 이상 머리를 가리고 숨지 말아라// 이 어린아이를 믿으면 구원받는 것이다. / 더 짙은 어두움이 인간의 고뇌와 죄를 덮을지나/ 모든 사람과 더불어 하나님의 보호의 별빛도 빛나고 있나니/그 별이 빛날 때 너희에게 더 이상 어둠은 없다/ 하나님의 구원이 너희에게 임하시느니라.
(J. 클레퍼/주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 노래)
그 아름다운 소식 끊이고서/ 일천 팔백여 년의 세월은 흘러라/ 그러나 우리 아직 옛사람들처럼 그를 기다리노니,/ 아아, 그의 오심 왜 이다지 늦은가? // 허나, 귀하신 말씀 아직 남아 있어,/ 시간도 슬픔도 모두 없애 버려주느니./어린이의 마음을 지닌 자, 그의 찾아오심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J.R. 로웰/ 크리스마스의 노래)
의심과 슬픔의 밤을 지나/ 순례자의 무리들은 기대의 노래를 부르면서 약속된 땅으로 전진한다.
(S. 버닝골드/ 의심과 슬픔의 밤을 지나)
여인의 생애는/ 기다림으로 흐르는/ 강이옵니다.
(김남조/ 久遠의 悲歌)
비가 오면/ 당신이 오시리 라고// 꽃이 피면/ 당신이 오시리라고/ 나비 가면/ 당신이 오시리라고/ 아 그러다// 한 잎 꽃잎이 지면 전쟁이/ 아니라 오신 당신의 펄럭이는/ 연분홍 치맛자락의 탓이라 알겠습니다.
(전봉건/ 치맛자락)
안 오는 임을 기다리어서/ 바위가 서 있는데 고개 하나 안 돌리는데/ 날이 날마다 강은 흐르고/ 바람이 불고 비가 뿌리고/ 바위는 말없이 서서/ 임오신 그날까진 말없이 서서.
(왕건/ 망부석)
누운들 잠이 오며 기다린들 님이 오랴/ 이제 누웠은들 어느 잠이 하마 오리/차라리 앉은곳에서 긴 밤이나 새우자.
(무명씨)
설 교 노 트
화목 제물이신 예수
롬5:6-11
서론
이제 며칠만 있으면 성탄절이 옵니다. 성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혹시 행사 준비로 너무나 분주한 나머지 성탄의 주인공이신 주님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분주한 마르다보다는 예수님의 발 앞에서 말씀을 사모한 마리아를 칭찬하신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보통 성탄절이라고 하면 동방박사나 산타크로스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상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떤 분이시라고 생각합니까? 심판의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사랑의 하나님 등 여러 부분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의 사랑은 무궁하시며 절대적이시며 영원하심을 말씀하십니다. 그의 사랑은 모든 인류를 포용하시는 큰 사랑이십니다.
그런가 하면 또 성경은 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전혀 용납하시지 아니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불의도 그냥 넘기지 아니하시며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특히 주께서 택하셔서 자녀로 삼으신 자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불의를 행할 때는 그들을 징계하서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서로 상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범하였을 때 사망이라는 저주와 형벌이 그들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사망이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과 분리되어 숨은 쉬고 있으나 실상은 죽어있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한 가장 큰 저주와 형벌은 하나님과 불화한 상태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분리인 죽음의 형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셔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길을 만드셨는데, 그것이 바로 구약의 제사 제도입니다.
제사에는 반드시 인간의 죄를 대신하는 희생 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소나 양, 비둘기 같은 짐승이 희생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도 완전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완전한 희생 제물을 마련하셨는데 그 제물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어린 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결론
주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려고 이 땅에 화목 제물로 오셨습니다.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는 과연 어떠합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오신 날을 더 생각하고 진정하나님과 화목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다가오는 성탄절을 예비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리는 성도
사25:9-12
서론
기독교의 교리 중에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초림은 이미 성취된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회들이 주의 나신 날을 명절로 삼아 기념하고 있지만 최대의 사건인 재림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강절을 맞이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기다리는 성도는 그날이 있음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들은 반드시 성취되었습니다.
주님의 초림에 대하여 1,400회 정도 언약하신 하나님은 그 언약대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고 했는데, 마리아에게서 탄생케 하시고(창3:15), 베들레헴에서 나시겠다고 했으며(미5:2), 애굽으로 피난가실 것과(호11:1),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시고(시41:9), 은 30에 팔려(습11:12), 죄인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사53:5), 속옷까지 제비뽑아 벗기신 후(시22:18), 뼈가 꺾이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으며(시34:20), 남의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다가(사53:9), 다시 부활하시고(시16:16), 승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시68:18). 이 모든 일들이 그대로 성취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림의 세배나 되는 4,500여회 예언하신 재림은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다가 그의 영접을 받으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먼저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공산권까지도 복음이 전파되어 가고 있습니다.
(2) 매도하는 일들이 있으며
(3)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고
(4) 천재지변이 극심할 뿐 아니라
(5) 도처에서 이적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였으니
오늘이야말로 바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기다리는 성도의 마음은 어떠해야 합니까?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성도는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1)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8절에 "저희와 함께 구름 속에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주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하고, 늘 사모해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2)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정신차리고,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믿으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준비하고 있으라는 뜻이며, 때를 바로 분별하라는 말이며 상받을 일을 많이 하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3)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사26:1-7에도 심지를 견고케 한 자에게는 평강을 내리시고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는 자에게는 반석이 되시며 정직한 자의 첩경은 평탄케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충성이란 이와 같이 동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심도는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영원 불변하시기 때문이며(히11:8) 주님하서 안과 밖이 같으시기 때문에 아울러 다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물리적인 영향을 받아서 변하기 쉽고, 심리적인 작용 때문에 변하기 쉽고, 상황이나 시간적인 변화에 따라서 마음이 흔들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나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기다리는 성도에게 주시는 복은 무엇입니까? 기다리던 그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며,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놀라운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준비하고 깨어 기다리다가 선한 봉사를 많이 하여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칭찬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다리고 영접하는 믿음
사30:18-19
서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얻은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하나님의 축복의 말이고 거룩한 날입니다. 그 중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주셔서 성별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회개와 고백으로 죄를 씻으며 하나님의 새로운 능력을 입게 하였습니다.
특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다 뜻있게 지키기 위하여 성탄절 전 40일을 '대강절'로 지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는 것을 미리부터 기다리고 영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합니까?
1. 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신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모습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진리의 교사로서 모든 사람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의 비난을 받았고 결국 사형을 받아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다시 부활하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인류 역사 속에 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는 참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2.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고 영접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놀라운 보증입니다. 히브리서 9장 28절에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메시아가 오셨는데 왜 이 세상이 악하여 지는가? "하는 것이문제가 되고, 또 유대교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이렇게 악하여 졌는데 왜 메시아가 오시지 않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십니다. 그리고 멀지 않아 구원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통해 세계의 통치의 왕으로서 오실 때 세계를 멸망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3. 영으로 우리 속에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영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였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20절에도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고 그와 함께하는 생활만이 참 생명 있는 삶입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영접하는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역사 속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고,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고, 영으로 우리 속에 항상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영접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름, 새로운 능력, 새로운 지혜, 새로운 생명입니다. 이것을 얻으려면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기를 기다리고 영접하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성탄을 예비하라
눅3:1-6
서론
예언자의 소리가 끊어진 지 400년이나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조와 음성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신앙적으로 혼미하고 정치적으로 놀림을 당하여 견딜 수 없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성탄절을 앞에 둔 우리는 메시아를 영접하기 위하여 그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1.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후에 인간들을 만드셨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만드신 후에 인간을 만드셔서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리아산에서 그 아들을 제물로 잡아 드리려는 아브라함에게 이삭 대신 드릴 제물로 양을 준비해 놓으신 사건이 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볼 때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뿐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살 천국까지 예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예비하라고 명하시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세례 요한을 통하여 약속된 메시아는 확실히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탄을 통하여 기억할 것은 심판하실 메시아 심판주는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재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재림에 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재림을 무시해 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내가 다시 온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가 성탄을 맞으면서 초림의 예수는 이미 오셨으니 재림의 메시아를 바라다보면서 우리는 준비해야 됩니다.
3. 어떻게 예비해야 합니까?
주님은 외형적인 것보다 마음을 더 중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1)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마지막 때에 성도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말씀이 있으니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것입니다. 참 믿는 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처음에는 믿지 못하였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예고할 때 그는 믿지 못하였지만 눅1:37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실 때 마리아의 마음속에 믿음이 들어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의 가슴속에 주님이 오십니다.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다시 오실 메시아가 찾아오셔서 말씀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잘못된 것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부끄러운 삶의 모습으로는 주님을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성탄을 앞에 두고 구유와 같이 천하고 더러운 그 속을 찾아주신 그 주님 앞에 순간마다 잘못된 것을 회개하면서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심조심 살펴서 마음으로나 말로나 또는 생활 속에서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청산하면서 주 오심을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심령속에 들어오시며 주의 재림 때 거룩한 자가 들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거룩한 자가 누구입니까?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오히려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습니다. 죄를 자랑삼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양심에 찔려 회개하게 됩니다.
결론
우리는 성탄을 앞에 놓고 예비해야 합니다.
인류를 위하여 심판을 예비하셨고,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천국을 예비하셨고, 우리 앞날의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신 그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는 마음으로 성탄을 맞읍시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크리스마스를 맞읍시다. 성탄의 뜻깊은 축복은 물론이요,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을 맞을 때도 부끄러움 없이 그 앞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광의 왕이 오심
시 24
서론
성탄절을 얼마 남겨 두고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대강절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를 맞기 위해서 닫혀져 있던 문들을 활짝 열고 영광의 왕이 오심을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영광의 왕이 오시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1. 이 땅의 주인이신 메시아
대강절은 이 땅을 창조하신 분이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땅의 질서를 회복하고, 전쟁으로 얼룩진 이 땅을 평화로 다스리기 위하여 땅의 주인이 오고 있습니다.
초기 이스라엘의 대강절의 노래가 축제의 찬가며 위대한 합창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나안 땅 팔레스타인 지역의 나라들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하신 분이 거룩한 성산에 임하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에, 이스라엘의 진중에 왕으로 임하시는 메사아를 보면서 저들은 자신을 얻고 용기를 얻습니다.
주변 국가들이 괴롭힐 때마다 이스라엘은 승리의 왕 야훼가 몹시도 대망됩니다. 그 야훼가 빨리 와 자기네들을 구원해 주고 해방해 주기를 바랍니다.
2. 오늘의 세계를 구하러 오시는 메시아 지금 이 땅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지금 이 땅은 온통 인간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제 이익에 따라 다스리다 보니 땅은 황폐하게 되어 그 후손들이 살기에 너무 거칠은 땅이 되었습니다. 지구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공기 오염, 핵방사능, 전쟁 등으로 땅은 더 이상 사람이 마음 놓고 살기에는 적당한 곳이 아닙니다.
땅은 원래 주님의 것인데 인간이 주인이 되었기에 땅은 점점 황폐해졌습니다.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화약고와 무기고가 되었습니다. 고로 이 시점에서 "땅은 주의 것이다"라는 확신이 요청됩니다.
우리는 대강절을 맞이하여 이 땅의 주인 메시아가 속히 와서 이 땅을 회복시켜 영광으로 가득 차게 해 달라고 간곡히 기다리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야훼의 성산에 오를 수 있는 자는 누구입니까?
다시 말하면 누가 오고 있는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까?
본문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로서 하나님을 찾고 그의 얼굴을 구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손은 깨끗합니까? 우리의 마음은 청결합니까? 불행하게도 그렇지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 알고, 우리 자신만 찾고 우리의 영광을 추구할 뿐입니다. 이런 깨끗하지 못한 손과 깨끗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는 오시는 영광의 왕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청결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비어 놓고,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는 영광의 왕을 맞을 준비를 다 하였습니까? 혹시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평화의 왕, 영광의 왕이 오십니다. 마음속에서 미움과 시기와 욕심과 싸움을 다 제하여 버리고 평화를 회복하여 오시는 왕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그는 이 땅의 주인이시니 이 땅의 주인에게 이 땅을 깨끗이 돌려드릴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또 이 세상을 구하시며 어지러운 질서를 회복시켜 주시려고 오시니 우리는 감사함으로 기뻐하며 주님을 맞아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요1:6-14
서론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장차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 이 땅에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서 7장 14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이 예언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예수가 탄생함으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고 마태는 확증하였습니다(마1:21:23).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1.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마9:9-13).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나를 좇으라"고 하시니 마태는 곧 일어나서 예수를 좇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 마태는 먼저 예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였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과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하며 비난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는 것같이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죄인을 찾아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자요, 하나님과 원수된 자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요, 죄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2.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어느 날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시다가 삭개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셨습니다. 이 사람은 세리로서 키가 작고 아주 부자였습니다. 이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따돌리며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뽕나무 앞에 이르러 나무를 쳐다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참으로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키가 너무 작아서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리는 남의 것을 토색해 먹는 자로서 낙인이 찍혀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즉, 삭개오는 국가와 사회와 민족에게 버림받은 자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으므로 하나님께도 버림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찾아 주시고 그의 집에 유하시므로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3. 섬기러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서 높임을 받으려고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제자들 중에는 주님이 권세의 자리에 앉으시며 자기들이 서로 높은 자리에 앉으려고 다툼까지 하였으나 그것은 주님께서 오신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가난한 자, 병든 자, 소경된 자, 그리고 멸시받는 자들을 위하여 일생을 봉사하셨고, 제자들의 발까지 씻겨 주셨으며, 자기 몸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도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주님께서 오신 목적은 죄인을 부르시고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며, 섬기러 오신 것입니다. 어떠한 권세를 얻어서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성탄을 앞두고 그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정결케 하여 마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성전을 깨끗이
마21:12-27
서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인간 구원의 대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던 날, 예수께서는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에서 들어가셨고 거기서 성전이 부패하여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함을 발견하셨습니다. 모두 인간적인 일들에 정신이 팔려서 진정한 신앙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구세주를 맞이하기에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성탄을 앞에 두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이 진정한 성탄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보다 행사에 더 주력한다면 우리도 역시 주님의 꾸중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는데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합니까?
1. 나쁜 마음을 쫓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을 성전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진정한 성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답게 거룩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어떠한 형편이었습니까? 시장과 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돈을 바꾸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사람은 도무지 시끄러워서 그 안에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먼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제물을 팔고 돈을 바꾸어 주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예배 드리고, 기도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주위에도 인간 관계의 일 때문에 하나님께 해야 할 일들 즉, 교회의 사명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이러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욕심,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은 성전 안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실 수 있도록 이기주의에 물들은 온갖 추악한 마음을 먼저 쫓아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2. 거룩한 것으로 채워야 합니다.
악한 것을 내 쫓았으면 거룩한 것으로 이제 채워야 합니다. 누가복음 11장 24-26절에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것을 좇아내고 선한 것으로 채워두지 않으면 더욱 악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채워야 합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고 찬송하였던 어린 아이들처럼 찬송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거룩한 사랑으로 죽음의 길을 오신 예수님처럼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을 준비하는 참된 마음의 성전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 상태에 있습니까? 거룩함으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그 거룩함으로 채우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결론
거룩한 성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참으로 내 마음이 예수님을 맞이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내 속의 악한 마음을 다 쫓아내고 거룩한 것으로 채우는 준비된 마음의 성전을 이룩해야 될 것입니다.
주를 영접하는 길
마3:1-12
서론
소원과 소망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념과 신앙도 같은 것이 아닙니다. 소원은 나의 욕망과 나의 필요에 근거를 둔 것이고,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념은 이론과 합리성에 근거를 두고 있고, 신앙은 사실과 진실과 실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때로는 이론에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메시아의 대망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상입니다. 혹은 메시아 대망을 '메시아이즘'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메시아 대망 사상은 메시아주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건이며, 하나님의 약속이며, 역사이며,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복음서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약속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 첩경을 평탄케 하라고 했습니다.
첩경이라는 말은 오늘에 좋은 길, 국도, 고속도로, 고가 도로, 옛날에 군사 도로입니다. "길 네 마음의 길 주 예수님을 영접할 길을 만들라 평탄케 곧게 넓게 안전하게 길을 준비하라 메시아가 오실 길을 준비하라 그 인격에 사회구조에, 문화 속에 길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비하고 그를 영접하면 믿음이요, 겸손이요, 순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친히 길을 예비하시게 되면 파괴와 전쟁과 기근과 심판이 될 것입니다. 이 길은 간단하게 예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높은 마음을 낮추시며 그 굳은 마음을 폭파시키시고 그 허영의 잡초를 다 불사르고 길을 닦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길, 주를 영접하는 길, 주님이 다스리고 임할 길을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나의 주인을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나를 섬기고, 돈을 섬기고, 세상을 섬겼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의를 완전히 포기할 때 대로가 준비되는 것입니다.
2. 회개해야 합니다.
이 회개라는 것은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정도가 아니라 방향 전환입니다. 회개를 하는데 두려움이 동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주의식에 사로잡혀서 벌을 안받으려고 하는 기회주의적인 자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바른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행동적인 것이요, 행위 자체입니다.
본문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용서입니다. 사랑입니다. 화평입니다. 그리고 희생입니다.
회개는 행동입니다. 일생을 통해서 우리는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3.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홀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형식주의나 자기 우월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내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알곡이 되어야지 가라지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다 거짓이었다고 해도 나는 죄인이라는 말은 진실한 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깨끗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기 전에 나의 자세부터 바르게 해야 합니다.
바른 회개와 바른 진실을 가지고 주의 길을 예비하여 성탄을 맞을 때 일생에 가장 뜻있는 성탄이 될 것입니다.
대 접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대접의 종류
(1) 기이한 대접
(욜2: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2) 거짓 대접
(창12:18)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하지 아니하였느냐
(3) 악한 자의 대접
(잠23:6) 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지어다
(4) 진실과 의로움의 대접
(삿9:19) 너희가 오늘날 여룹바알과 그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과 의로움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을 인하여 즐길 것이요
(5) 너그러운 대접
(삼하18: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6) 즐거워하는 대접
(눅19:6)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2. 대접받고자 하면 대접하라.
(1) 대접받고자 하면 대접함
(마7:12)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2) 범죄로 유인하는 대접을 조심해야 함
(민22:40) 발락이 우양을 잡아 발람과 그와 함께 한 귀족을 대접하였더라
(3) 대접을 하는 데에 힘써야 함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히13:1-2)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4) 나그네를 대접하라.
(딤전3:2)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3.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대접
(1) 아들과 같이 대우하심
(히12:7)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2)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심
(겔36:11)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3) 믿는 자를 후대하심
(시13: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4) 만유를 선대하심
(시145:9)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4. 성도가 대접해야 하는 대상
(1) 전도자
(행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2) 장로
(애4:16) 저희가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를 대접지 아니하였음이로라
(3) 나그네
(마25: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4) 손님
(롬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면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5) 친구
(행27: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5. 어떤 자세로 대접해야 하는가?
(1) 후한 예로 대접
(행28: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가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2) 인자와 진실로
(창24:49) 이제 당신들이 인자와 진실로 나의 주인을 대접하시려 거든 내게 고하고
(3) 인애와 성심으로
(창47:29) 네 손을 내 환도때 아래 넣어서 나를 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하여 애굽을 장사하지 않기를 맹세하고
(4) 잊지 말고 대접함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5) 딸같이
(출21:9) 만일 그를 자기 아들에게 주기로 하였으면 그를 딸같이 대접할 것이요
(6) 임의로
(겔31:11) 그가 임의로 대접 할 것을 내가 그의 악을 인하여 쫓아내었음이라
6. 왜 대접해야 하는가?
(1) 알지 못한 때에 천사를 대접하게 되므로
(히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2)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에
(눅14:14)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3) 주님을 대접한 것이므로
(마25:40)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기 때문에
(눅6:35)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7. 주님은 어디서 대접을 받으셨나?
(1) 베다니의 마르다 집에서
(요12:2) 거 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2) 바리새인 두령의 집에서
(눅14:1)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한 두령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3) 삭개오의 집에서
(눅19:6)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8. 누가 누구를 대접하였나?
(1) 바로가 아브람을 대접함
(창12:16)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2) 라반이 야곱을 대접함
(창29:13) 라반이 그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고
(3) 이드로가 모세를 대접함
(출2:20)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4)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대접함
(왕하4:8) 한 귀한 여인이 강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5) 마르다가 예수님을 대접함
(눅10:38) 예수께서 한 촌으로 들어가시 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6) 피장 시몬이 베드로를 대접함
(행10:6)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더라
(7) 뵈뵈가 바울을 대접함
(롬16: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관련원어풀이
1. @n"'j: 하-난
(1) ~에게 호의를 베풀다, ∼에게 기울다, 동정심을 가지다. 긍휼히 여기다.
(출33:19, 잠14:31)
(2) 은혜를 주다, 친절하게 행하다.
(창33:5, 욥19:17)
(3) 동정을 사다, 긍휼의 대상이 되다.
(렘22:23)
(4) 마음에 들게 하다, 호의를 보이다.
(잠26:25)
2. b/f 토-브
(1) 잘 해주다, 선을 행하다. 긍휼을 베풀다.
(겔36:11)
(2) 아름답게 만들다, 장식하다.
(호10:1)
(3) 좋다, 선하다.
(신5:30, 민11:18)
(4) 아름답다, 즐겁다.
(민24:5, 아4:10)
(5) 기분좋게 하다.
(전11:9)
3. jl'v; 솨-라흐
(1) 가게 하다, 동반하다, 마중 나가다.
(민22:40)
(2) 보내다.
(창38:17, 사6:8)
(3) 타인에게 말을 전하다, 전달자에 의해 알게 하다.
(왕상20:5, 잠26:6)
(4) 해고시키다, 가게 하다.
(왕상13:4, 시50:19)
(5) 내다, 발하다 뻗치다.
(창3:22, 욜4:13)
4. dseje 헤세드
원래의 의미는 "바람, 열망(좋은 의미로)"이다.
(1) 열심, 사랑, 친절을 뜻한다. 인자, 긍휼, 자비, 박애.
(창21:23, 삼하10:2)
(2) 경건, 경애, 신앙실
(사57:1)
(3) 은혜, 호의, 자비.
(시5:8, 36:6)
(4) (나쁜 의미로) 시기, 질투, 비난.
(레20:17, 잠14:34)
5. bd'y: 야타브
(1) 선하다, 좋다.
(나3:8)
(2) 그에게 좋아 보였다.
(에5:14,느2:5)
(3) 즐겁다, 기쁘다.
(삿5:25, 렘1:12)
(4) 선을 행하다, 좋게 하다.
(창32:10, 민10:32)
(5) 적합하다, 알맞다.
(출30:7, 왕하9:30)
6. ejpimevleia 에피멜레이아
주의, 보살핌, 돌봄, 관심.
(행27:3)
7. xenivzw 크세니조-
(1) 손님으로 받아들이다, 호의 있게 환대하다,극진히 대우하다.
(행10:23, 히13:2)
(2) 대접을 받다, 머물다.
(행10:32, 고전16:19)
(3) 놀라게 하다.
(행17:20)
(4) 놀리다, 이장히 여기다.
(벧전4:4, 12)
8. xenodocevw 크세노도케오-
환대하다, 극진히 대접하다.
(딤전5:10)
9. poievw 포이에오
(1) 행하다, 대하다, 대우하다
(마7:12)
(2) 준비시키다, 마련하다.
(막6:21, 요12:2)
(3) 만들다, 산출하다. 형성하다, 제조하다.
(마17:4, 막9:5)
(4) ∼에게 ~을 하게 하다, 시키다.
(막8:25, 요6:10)
(5) 마음의 느낌이나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냄으로 어떤 법칙을 따르다.
(마1:24, 고전7:37)
(6) 시간을 보내다, 지내다.
(행15:33, 고후11:35)
(7) 축하하다, 지키다.
(마26:18, 히11:28)
10. oJmoivw" 호모이오-스
∼같이, 같은 태도로, 비슷하게, 이와 같이.
(마22:26, 요5:19)
11. filovxeno" 필로크 제노스
(1) 나그네를 사랑함, 긍휼.
(딤전3:2, 딛1:8)
(2) 긍휼하는, 관대히 대접하는, 너그러운.
(벧전4:9)
12. uJpogevcomai 후포데코마이
손님으로 영접하다, 환대하다.
(눅19:6, 행17:7)
설교예화자료
배고픈 자에게 주라
전에 성 프랜시스가 자기의 제자들과 같이 어떠한 산간에 살 때에 어느 날 저녁 프랜시스가 잠깐 나간 사이에 그 산중에 있던 도둑 몇 사람이 들어와서 그 제자l들을 보고 먹던 떡이 있으면 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제자들이 대단히 노해서 "이 도둑놈들아, 너희들이 일해서 먹지 아니하고 도둑질해다 먹다가 마지막에는 우리 선생님의 마른 떡까지 뺏어 먹으려고 왔느냐?" 하고 단단히 책망해서 쫓아버렸습니다. 프랜시스가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이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그 보고를 다 듣더니 프랜시스는 오히려 자기 제자들을 책망하면서 "도둑이건 도둑이 아니건 배고픈 사람에게 떡을 주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인데 너희들은 왜 떡을 주지 아니했느냐?" 떡을 내어 주면서 "이제 이 떡을 가지고 산에 가서 그 도둑을 찾아서 이 떡을 떡이고 돌아오라." 그래서 이 제자들은 밤새도록 찾아 다니다가 마침내 도둑들을 만나서 그 떡을 다 먹였다고 했습니다. 그 도둑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 제자들과 같이 프랜시스에게 와서 죄를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는 프랜시스의 유명한 제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1달러
유명한 상표가 붙은 신형 자동차에 3천 달러, 한 뙈기 잔디밭에 5천 달러, 집을 짓는 데에 만 달러, 그리고 하나님께는 1달러를, 친구들과 노닥거리며 지내는 데에 몇 푼, 그러다가 세상이 제정신을 잃어갈 때면 주여,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제가 하나님께 1달러를 바치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커다란 의문점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악으로 가득 차버린 빛 바랜 이 세상에서 여지껏 교회를 지탱해 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록·시·묘사
환대하려는 본능은 전적으로 애타적(愛他的)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다 자존심과 이기심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M. 비어봄/ 지금까지도)
손님을 후대하는 자는 신을 후대한다.
(이스라엘 격언)
만족한 식사 후에는 누구든지, 심지어는 자신의 이해가 달린 사람에게도 용서하여 줄 수 있다.
(0. 와일드/ 하찮은 여자)
내 물건이 좋아야 값을 받는다. <*자기의 지킬 도리를 먼저 지켜야 남에게 대우를 받는다는 뜻>
(한국 속담)
너보다 나은 자들에게서 네가 받고 싶은 대우를 너보다 못한 자들에게 베풀어라.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아름다운 접대부는 비싼 계산서를 만든다.
(R. 코베트 주교/ 북방여행)
만찬은 일에 기름을 친다.
(W. 스코트)
문전 나그네 흔연(欣然)대접. < * 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은 잘 대접해야 한다는 뜻>
(한국 속담)
도둑의 묘에 잔 부어 놓기. <* 터무니없이 과분한 대접을 한다는 말이니, 일을 잘못 처리한다는 뜻>
(한국 속담)
관찰사 닿는 곳에 선화당(宣化堂). < * 가는 곳마다 좋은 대접을 받아 호사하는 복된 처지를 이름>
(한국 속담)
가문 덕에 대접받는다. <*자신은 변변치 못하여도 좋은 가문에 태어난 탓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는 말>
(한국 속담)
못난 놈 잡아들이라면 없는 놈 잡아간다.<*제아무리 잘났더라도 돈이 얼고 궁하면 못난 놈 대접밖에는 못 받고 못난 놈도 돈만 있으면 좋은 대접을 받는다는 말>
(한국 속담)
나이 덕이나 입자. <*나이 많은 사람을 대접하여 달라는 뜻>
(한국 속담)
밥그릇이 높으니까 생일만큼 여긴다. <*조금 대접을 높여 주니까 제법 큰 영광이나 얻은 듯이 생각하는 사람을 이름>
(한국 속담)
벌거벗은 손님이 더 어렵다. < *가난한 사람 대접하기가 더 어려우니 조심하라는 뜻>
(한국 속담)
소인을 대접함에는 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미워하지 않기가 어려우며, 군자를 대접함에는 공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예를 지키기가 어려우니라
(채근담)
냉대받는 것보다, 인간의 마음이 참기 어려운 것은 없다.
(G. 클레망소)
남에게서 혹심한 대우를 받는 것은, 우리들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내리는 혹심한 정도만큼은 쓰리지 않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제 집에 있을 때 손님 맞아들일 줄 모르면,밖에 나갔을 때 비로소 자기를 환대해 줄 주인적음을 알리라.
(명심보감)
등 시린 절 받기 싫다. < *자기가 푸대접한 사람에게서 간곡한 대접을 받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뜻>
(한국 속담)
돌로 치면 돌로 치고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친다. < *원수는 원수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는다는 뜻이니, 남이 나를 대하는 것만큼 나도 남을 그만큼 밖에는 대접하지 않는 태도를 이름>
(한국 속담)
말로 온 동리를 다 겪는다. < *음식으로 온 동리 사람을 다 대접하는 대신 말만으로 대접한다 함이니, 말만으로 때우기 잘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
(한국 속담)
닷돈 추렴에 두돈 오푼 내었나. <*하등 대우를 받게 될 때 이르는 말>
(한국 속담)
방 보아 똥 싼다. <*사람의 우열에 따라 대우를 달리함을 가리킴>
(한국 속담)
가기를 원하지 않는 손님을 재촉하는 것과, 가고 싶어하는 손님을 잡아 두는 것은 다같이 잘못된 처사다. 참석한 손님을 환영하고, 가기를 희망하는 손님을 보내야 한다.
(호메로스/ 오딧세아)
사후 술 석 잔 말고, 생전에 한 잔 술이 달다. <*죽은 후에 아무리 잘하여도 소용없는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에 적은 대접이나마 하라는 뜻>
(한국 속담)
오래 머물면 남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자주 오면 친분도 성기어진다. 단지 사흘이나 닷새 사이에도 서로 대하는 것이 처음과는 같지 않다.
(명심보감)
생선과 방문객은 사흘이 지나면 냄새를 풍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첫날은 손님이지만, 둘째 날은 짐이요, 셋째 날은 해충이다.
(라블레/ 압달라)
친구 집에서 사흘 뒤에 두통거리가 되지 않을 만큼 환영받는 손님은 없다.
(플라우트스/ 영광의 전사)
새로 익은 술을 걸러다오,/ 닭 마리로 이웃을 부르겠다. // 해가 지니 방안이 어둡지만/ 가시나무로 촛불을 대신한다// 즐거울 뻔 짧은 밤이 안타깝다/ 벌써 아침 해가 떠오른다.
(도연명/ 귀원전거)
친구가 닭고기와 기장밥을 마련하고/ 나를 시골집에 불렀다// 신록은 마을 주위를 에워싸고/ 청산은 성곽 너머에 비껴 있다// 들창을 열고 마당과 채마밭을 바라보며/ 술잔을 들고 삼밭과 뽕나무를 얘기한다.
(맹호연/ 친구의 농장에 들러)
스님은 옛벽의 불화(佛畵)가 좋다고 말하면서,/ 불을 가져와 비추는데, 그림이 희한하다/ 평상을 펴고 자리를 깔고 국과 밥을 놓는다/ 악식이지만 또한 내 시장한 배를 불려준다.
(한유/ 山石)
내가 어머니 계신 곳에 도착하자/ 기쁨에 놀라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오매 내 새끼야" 소리 지르며 두 손바닥을 마주칠 뿐이었다// "이자식아 벌써/ 13년이 되었구나 너를 못 본 지/ 그래 몹시 시장하겠지/ 말해 봐라 뭣이 먹고 싶냐// 집에는 생선과 거위와 고기와/ 맛있는 오렌지도 있다"/ "그러면 어머니, 생선과 거위와 고기와/ 맛있는 오렌지를 갖다 주세요"// 내가 왕성한 식욕을 보이자/ 어머니는 기쁨에 겨워 싱글벙글 웃으며/이것 저것 아무렇게나 물었다.
(하이네/ 독일 겨울이야기 · 20)
유명한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쇼팽이 한 번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어떤 집에 억지로 끌려가 저녁 대접을 받았다. 음식도 변변치 않게 장만하고 쇼팽을 초청한 그 집 주인은 식사가 끝나자 음악을 한 곡 연주해 달라고 했다. 쇼팽은 그들의 무례한 태도에 분개하여 은근히 곯려 줄 생각으로 피아노를 향하여 전주곡을 치기 시작하였는데 맨 끝의 한 절만 치고 말았다. "아이고 어쩌면 그렇게 짧은 곡일까요?" 하고 주부가 묻자, "예, 미안합니다. 그 만큼밖에 대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주여 내 동생 마리아에게/나를 도우라 하소서"/ "마르다야/ 마르다야/ 마르다야/ 오늘, 네 수고가 큰 것을/ 내가 아나니‥‥ 너는 다시 더 딴 것을 탐하지 말라」 이것이 네게는 가장 족하리로다"
(임인수/ 베다니 서정-마르다와의 대화-)
한때 공자가 자공과 자로를 데리고 다니다 길을 잃어 산간 오두막 집에서 쉬게 되었다. 늙은 주인은 콧물을 들이마셔 가며 흙냄비에 좁쌀죽을 끓여 이 빠진 그릇에 담아 대접했다. 더러운 주인의 손이나 그릇을 본 제자들은 감히 먹을 엄두도 못 냈는데 식성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자선생은 맛있게 받아 먹었다. "너희들은 이 빠진 그릇이나 콧물밖에 보지 못하고 그 노인의 성의와 친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슬프구나. 대접은 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 "/ 크나큰 사랑은 나를 영접해도 나는 뒷걸음치나니/ 내 죄와 내 더러움을 부끄러워함이라/·.. "여기 앉으시기에 적합한 손님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너이니 머뭇거리지 말라"/ "나는 마음 싸느다랗고 배신하는 자, 내 주여,/ 나는 당신을 우러를 수 얼습니다. "/ "사랑은 내 손을 쥐고 미소지으며 대답했니라/ 그대의 눈을 만든 자 누구뇨, 바로 내가 아니뇨"//"그러합니다. 주여, 하지만 나는 그것을 더럽혔습니다. / 내 부끄러움에 적합한 곳으로 나를 보내 주소서."// "그러나 내가 네 죄를 대신 졌음을 알고 있느냐"/ "주여, 그럴진대 내가 섬기겠나이다, 사랑의 주여."/ "너는 앉아 내 살을 깊이 맛보아라"/ 그리하여 나는 앉아
먹었노라, 명하시는 말씀을 따라.
(G. 허버트/ 적합한 손님)
장산령 두메골에 사는 딸집 찾아왔더니/ 다락논에서 일어낸 햇발인가부지/눈이 시게 쌀함박 그득 퍼담고/ 박꽃같은 웃음 보여주는 딸의 거동에‥‥‥
(허흥식/ 약수를 마시며)
우리가 바라는 귀한 손님 이/ 짚신 신고 오실 모양입니다/ 흐린 하늘 속에는/ 쌀가루가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온 동리 사람들과/같이 떡을 해야지요.
(이성교/ 흐린 하늘)
내게 가까이 오라,/ ‥‥사양말고 마음 편하게 내 식탁으로 오라/ 나는 네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리니/ 천사가 바란다면 스스로 와서 동석하게 되리라.//그리하여 너는 변하지 않는 포도주를 마시리니/ ‥‥너의 피 속에 영원한 생명이 움트게 되리라.
(베를렌/ 예지)
나는 어떤 선원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부의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까지만해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답니다"/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자식름을 통해 네루다 라는/이름을 듣고 나는 후들후들 몸을 떨면서/ 나는 자식에게 말했지요- "우리같은 사람은/ 대접할 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러나 자식 놈이 대답해 주었답니다. / "저 분은 우리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여요/ 저 분은 우리들 가난한 이들의 삶을/ 깔본다든지 업신여기지도 않고/우리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그래서 나는 자식놈에게 말해 주었답니다/ "이 집은 그러면 이제 그분 집이나 마찬가지다"고요/그 집에서 내게 친숙한 것은 무엇 하나 없었다/ 나는 깔끔한 상보를 보았다/ 물병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처럼 흐린 데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어두운 밤 속에서/ 수정의 날개와 같은 팔을 벌려/나를 맞이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가까스로 한숨을 쉬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상 위에는 빵과 냅킨과/포도주와 물이 차려져 있었고/고운 마음이 어려있었다/좋은 향기가 피어 오르는 대지의 행복에/ 여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나의 눈에도 눈물이 번졌다.
(네루다/ 도망자 · 5)
설 교 노 트
사르밧 여인의 대접
왕상17:1-16
서론
아합 왕 당시 엘리야 선지자는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아합 왕의 손길을 피하여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숨어 있을 때는 까마귀가 떡을 물어와서 그 떡을 먹고, 그릿 시내의 물을 마시며 망명 생활을 하였지만, 그 시냇물이 마르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사르밧의 한 과부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1. 그 여인은 어떠한 여인이었습니까?
그 여인은 남편의 잃고 한 아들과 같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극심한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있었는데, 그 여인에게는 한 줌의 밀가루와 약간의 기름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제 남아 있는 가루로 떡을 만들어서 아들과 함께 먹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떡을 만들었습니다.
엘리야는 떡을 구워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는 과부를 만나서 그 떡을 내게로 먼저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해 만들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떡을 자기를 주고 다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하니 이런 말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
그러나 그 여인은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던 작은 떡 한 개를 선지자에게 드렸습니다. 그 떡은 자신과 아들의 마지막 끼니였으나 믿음으로 선지자에게 드린 것입니다.
최후의 작은 떡을 달라는 엘리야의 믿음도 크지만 마지막 떡을 선지자에게 드린 과부의 믿음은 보다 더 큰 믿음인 것입니다.
2. 순종하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선지자라고 하여도 자기 나라의 사람도 아니고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양식이 귀중하기만 하던 때였고, 마지막 양식을 달라고 하니 미친 사람 아니냐고 하며 내쫓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엘리야가 이스라엘 사람인 줄 알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 떡을 드렸습니다 그 결과 순종한 여인의 집에는 떡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매일 그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백만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이나 만나로 먹여 주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마지막 양식을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아낌없이 공궤하였으니 어찌 양식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도 우리 손에 있는 마지막 떡 한 개를 주님께 드립시다. 그러면 크신 은총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 주시며 날마다 영의 양식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3. 그 여인은 주님께 칭찬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이 여인에 대하여 칭찬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25-26절에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 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인은 이방 여자로 주님께 칭찬받았으며 이방인의 구원을 선언하셨습니다.
결론
내게 있는 마지막 것을 하나님에 대접한 자는 주님께 큰 은혜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 순종함을 보시며, 가장 아끼는 것을 아낌없이 대접하는 그 손길을 보십니다. 우리가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흉년시에 가장 귀중한 양식을 그것도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하였던 것을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접하였으므로 그 여인은 큰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언제나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백부장의 영접함
행10:33
서론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베드로를 초청하여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환영하면서 하는 말이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청한 대로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요청을 들어줄 때처럼 흐뭇하고 감격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으로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고 있었으나 직접 하나님의 사자를 모시고 구체적으로 말씀을 듣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더 잘 믿으려는 심정에서 계시를 따라 사람을 보냈던 것인데 자신이 청한 대로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하고 환영한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오기 힘든 여건이 개재해 있었으므로 베드로 자신이 거부권을 행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환상으로 계시를 받고 순종한 것은 그만큼 고넬료의 기도의 힘이 컸던 것입니다. 누구를 청할 때에는 그전에 먼저 기도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고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자가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개인의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자로 온 것입니다. 베드로 자신은 본래 고넬료의 집에 오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보내시니 안 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의 사자로 보냄을 받고 왔으며, 고넬료도 하나님의 사자로 베드로를 청한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영접한 것입니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마25:40).
하물며 하나님의 사자로 영접한 것은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잘 한 것입니다.
3. 축복을 받게 되었으니 잘 하였나이다 라는 뜻입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한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자신과 가족들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갈망의 마음에서였던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갈급해 하는 심령 위에 축복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은혜를 주시지 않으시고, 억지로 축복을 베푸는 법이 없으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신 대로 갈망하고 사모할 매에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베드로가 자기 집을 방문하여 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베드로를 영접하며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고넬료와 같이 축복을 갈망하며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고넬료는 베드로가 찾아왔을 때에 대답하기를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하여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종이 설교하는 말을 곧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긴다는 심리적 표현인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으로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하면 놀라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넬료와 같이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잘 영접하여 그의 말씀 듣기를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왕을 공궤함
삼하19:31
서론
공궤라는 것은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은 백성들과 신하들에게서 공궤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공궤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특히 압살롬의 난리 때문에 피난하였는데 그 때에 바실래에게 공궤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1. 공궤자 바실래
바실래는 길르앗 사람으로 왕을 보내어 요단을 건너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왔다고 하였습니다.
로글림은 길르앗 땅의 성읍 이름으로 길르앗 라못에게 서쪽으로 45km 지점에 소재하였으며 현재는 베르시야라고 합니다.
바실래는 거부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나이는 80세였으니 노인이었습니다. 바실래 라는 이름의 뜻은 '쇠로 만든 사람'입니다.
2. 그가 공궤한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마하나임에 피신하고 있을 때 그 형편이 대단히 곤궁하였을 것입니다. 그때 바실래가 다윗 왕과 그 일행을 공궤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하 17장 27-29절에 보면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그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고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의 필요를 알아야 합니다.
바실래는 다윗 왕의 일행이 들에 있으니 그들이 배가 고프고 피곤하며 목마를 것으로 생각하여 많은 것을 준비하였고, 그것을 가지고 가서 다윗 왕과 그 일행을 공궤하였던 것입니다.
3. 왕을 공궤한 보상을 사양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난리가 평정되자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바실래는 전송차 나와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다윗은 그에게 보답하려는 심정으로 예루살렘으로 같이 환궁하여 자신이 이제는 바실래를 공궤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남이 어려울 때 자선을 베풀어 구제하고 공궤한 선행이 이제 갚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실래는 순수한 동기에서 왕을 공궤한 자기의 중심을 토로하면서 자기는 어떠한 보상도 원하지 않는다고 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가 80세이니 이제 왕에게 가서 누를 끼치지 않겠다고 하며 조용히 고향에 가서 세상을 마치게 해 달라고 부탁하며 이별하였습니다.
바실래의 이러한 헌신적인 봉사와 충성이 다윗 왕국을 유지하게 한 것입니다.
결론
남의 곤경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돕는 일은 자발적 사랑의 발로입니다.
바실래는 자기의 재산이 많았는데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자였습니다. 선행은 이 지상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그 상이 큰 것입니다.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합니다. 특히 환난을 당하여 어려운 환경에 처한 자들을 공궤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며 그 보상은 하늘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사울의 유족을 후대함
삼하9:1-13
서론
사울은 시종 일관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다윗은 사울을 조금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왕을 섬겼으며, 심지어는 그 후손들까지도 후대하였습니다. 이것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이행한 것입니다.
1. 사울의 유족을 먼저 찾음(1-5절)
다윗의 모든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여 외침을 막고 충성된 신하들을 두어 내실을 알차게 하여 국가의 안녕 질서가 확보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방면에 은혜를 베풀었는데 특히 자신을 구해준 요나단과의 맹세를 기억하고 몰락된 사울 왕의 유족이 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사울의 옛 종 시바가 생존해 있음을 알아 그를 불러 알아보았더니 다행히도 요나단의 아들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므비보셋으로 절뚝발이였는데, 요나단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하다가 넘어져 떨어뜨림으로 절뚝발이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사울의 유족을 찾은 것은 원수를 끝까지 사랑하는 덕이요, 은인을 끝까지 잊지 않는 덕이요,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 진실한 성품입니다.
2.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품
다윗은 옛 친구 요나단이 자기를 아끼되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던 옛 정을 잊지 않고 자기도 그 유족에 게나마 요나단에게 보답하는 심정으로 후대하였습니다. "무서워 말고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소유였던 밭을 다 그에게 물려주었는데 이것은 므비보셋을 사울의 기업 누릴 자로 높인 것입니다.
그리고 므비보셋에게 왕자의 대우를 하여 항상 다윗 왕의 상에서 다른 왕자들과 같이 먹게 하였습니다.
너무나 후한 대접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던 자의 혈육인데도 다윗은 자신을 사랑하던 요나단과의 언약을 이행하였던 것입니다.
3. 왕자 대우를 받은 므비보셋
므비보셋은 다원의 과분한 대우에 너무나 감격하여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라고 하며 사례하였습니다.
개는 천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나마 죽은 개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이니 스스로를 낮추는 말입니다.
또 본문에 나타난 대로 므비보셋을 대우하되 왕의 상에서 먹고 왕자같이 대우한다는 말이 7절, 10절,11절,13절에 거듭해서 반복한 것을 볼 때 다 이 므비보셋을 진심으로 우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자기 옆에 두는 것은 그를 늘 감사하여 사울을 계승한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야비한 방법이라고 해석하는 자도 있으나 이것은 지나친 억측이며 다윗을 중상 모략하는 해석입니다.
므비보셋을 모시던 시바는 아들이 15명이요, 종이 20명이라고 하였으니 생활고가 대단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밭을 도로 다 주어 경작하게 하였으니 상전 덕분에 그들 모두가 생활의 안정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론
므비보셋은 불행하게도 절뚝발이인 불구자였으나 다윗이 자기 상에서 같이 먹을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은 과분한 처사입니다. 지난날의 은인의 아들을 잘 대접하였으니 은혜를 잊지 않은 다윗의 선처인 것입니다.
다윗의 이러한 훌륭한 점을 우리는 반드시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눅19:1-10
서론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의 유형은 기쁜 마음으로 영접하여 믿는 사람과 따라다니면서 구경하는 사람, 그리고 트집잡아 배척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중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1. 삭개오는 주어진 기회를 포착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세상 만사가 모두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서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주실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기회를 바로 포착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시간을 가치 있게 이용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어 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사의 고백한 바와 같이 70년, 강건하면 80년이라고 했습니다. 이 제한된 시간을 우리는 보다 더 가치있게 이용해야 되겠습니다. 가장 가치있게 이용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데 있습니다.
시간을 통해서 발생되는 사건을 바로 적응하는 것입니다.
역사란 시간과 공간 사이에 발생되는 사건들입니다. 이 발생되는 사건을 바로 포착하여 적응하는 일은 매우 귀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주님을 영접하는 일입니다.
시간을 통해 영위되는 나의 삶을 바르게 처리함입니다. 인생은 시간을 통해서 삶을 영위해 가고 있습니다. 이 삶을 보다 더 바르게 처리하고 정돈해 가는 것이 기회를 바로 포착함이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일입니다. 기회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2. 사모하는 열정적인 자세와 행동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사모하는 자세와 행동이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두 가지의 장애가 있었으니 외적으로는 인간의 장벽이고 내적으로는 자신의 키가 작은 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원망하거나 좌절감이 생기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 모든 난관을 헤치고 기어코 주님을 만나서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뽕나무를 이용하여서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뽕나무 위에서 주님을 보았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시면서 그의 집에 유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에서 내려와서 주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시고 기쁨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삭개오는 모든 사람에게 세리장이라고 멸시를 받고 천대를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를 멸시했던 자들은 주님을 영접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을 구경하기 위하여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주님을 뵙기 위하여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만나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뽕나무 위에 올랐던 것이고 영광의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을 영점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삭개오는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구원은 주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잘못을 회개하며 변화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모든 불의와 잘못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자신이 남의 것을 토색하였으면 4배로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심령의 참 기쁨을 맛보게 되었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모든 사람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따돌림을 받았지만 그가 주님을 영접한 후로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을 대하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며 오직 주님을 섬기고 구원을 얻게 된 일에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대접하는 여자들
눅8:3
서론
본장은 예수님의 순회 전도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는 12제자들과 또 은혜받은 여신도들이 여러 명 따르게 된 사실이 특색입니다.
누가복음을 '여자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어떤 여자들입니까?
이 여자들은 악귀를 쫓아냄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귀신이 나간 자로 막달라인 마리아인데 막달라는 갈릴리 서안의 작은 촌락이니 다른 마리아와 구별하기 위해서 막달라인이라고 지명을 붙인 것 같습니다. 이 여자는 극악한 마귀에게 사로잡혔던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으로 도덕적 죄악은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깊이 관련되었으며 모든 여신도의 대표격이 됩니다. 또 다른 여자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입니다. 헤롯 왕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라면 사회적으로 왜 높은 벼슬입니다. 이 직책을 맡은 구사의 아내 요안나는 무서운 병에서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또 수산나와 다른 여자도 다 주님께 은혜를 크게 받아서 보답하려고 나왔습니다.
2.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습니다.
귀신을 쫓아내 주고 병고침을 받은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의사에게 가서 치료비를 내야 하는 데, 이들은 고칠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다가 주님의 권능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주님은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들의 소유를 가져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는데 요긴하게 사용하였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은 물질적으로 늘 가난하였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으시다고 하실 만큼 예수님의 육신적 신세는 궁핍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시장하여 길가의 밀이삭을 잘라 먹었고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구하시고 또 이름없는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시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전도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잘 섬기려는 여 성도들의 애씀은 큰 힘이 되셨을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못박히실 때 입으셨던 겉 옷과 통으로 짠 속옷도 다 이러한 여 성도들의 정성어린 헌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의 전도단이 가는 곳마다 푸대접을 받으시고 배척을 당하셨지만 이렇게 헌신적으로 주님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은 많은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대접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잘대해 주는 이에게만 대접하고 다른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일을 위하여 이름없이 헌신하는 자들을 우리는 잘 대접해야 합니다. 많고 적음을 떠나서 진실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결론
은혜를 받은 자는 누구나 자기의 소유로 봉사하여야 합니다. 재산이나 지식이나 건강 등 그 무엇이든지 주께 소용되도록 드려서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성도들이 주님과 그 제자들을 잘 대접함과 같이 우리 주위에 어려운 자들과 궁핍한 자들에게도 주님을 패하는 심정으로 잘 대접하여 주님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덕
성 경 활 용
1. 어디서 덕을 세워야 하는가?
(1) 교회에서
(고전14: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2) 이웃에서
(롬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신자들간에
(롬14:19)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4) 선한 말을 듣는 자에게
(엡4:29)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5) 피차에
(살전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2.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1) 사랑으로
(고전8:1) 지식은 칠판하게 하련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남의 유익을 구함으로
(고전10:24)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3) 마음의 정결을 사포함으로
(잠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 라
(4) 피차 힘씀으로
(롬14: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살전5: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3. 왜 덕을 세워야 하는가?
(1)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기 위하여
(엡4:29)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2) 임금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잠22:11)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4. 덕을 세운 자의 결과는 무엇인가?
(1) 가족들에게 칭찬을 받음
(잠31:28)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2) 성문에서 칭찬을 받음
(잠31:28)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5. 덕에 대한 교훈
(1) 교회를 위하여
(고전14:12)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2) 하나님의 덕으로 부르심
(벧후1:3)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3) 하나님의 백성의 선전
(벧전2:9)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관련원어풀이
1. @je 헨-
(1) 은혜, 호의, 선의.
(창6:8, 전9:11)
(2) 우아함, 아름다운, 고상.
(창22:11, 시45:3)
(3) 간원, 기도.
(슥12:10)
2. lyIj' 하일
(1) 힘, 능력, 활기.
(시18:33, 40)
(2) 군대, 군세.
(출14:28)
(3) 능력, 부귀.
(창34:29, 욥20:15)
(4) 선, 의로움, 고상, 완전.
(창47:6, 잠12:4)
3. ajrevth 아레테-
(1) 인격의 탁월성, 뛰어난 재능, 뛰어난 기질, 덕스러운 사고방식, 감정이나 행동, 미덕.
(빌4:8, 벧후1:5)
(2) 어떤 특별한 도덕적 탁월성, 겸손, 정결.
(빌4:8)
(3) 탁월성, 완전성, 기적, 찬송.
(벧전2:9)
4. oijkodomevw 오이코도메오-
(1) 집을 세우다, 건축하다.
(눅11:48)
(2) 기초를 두다, 설립하다.
(마16:18)
(3) 기독자의 지혜나 사랑, 은혜, 덕, 거룩에서 성장되기를 촉진하다.
(행20:32, 고전8:1)
(4) 영적인 진보를 나타내라, 덕성을 북돋우다.
(행9:31, 고전14:1)
5. oijkodomhv 오이코도메
(1) 세우는 일, 건축, 건설.
(마24:1, 막13:1)
(2) 영적인 건축, 구조물.
(고전3:9, 엡2:21)
(3) 진보, 건덕, 인간, 건설.
(롬14:19, 고전14:3)
설교예화자료
덕본재말
학교의 우등생이 반드시 사회의 우등생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던 엘리트가 사회에 나와서 열등생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덕이 부족하기 때문이요, 재승박덕(才勝薄德)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의 성적은 IQ와 머리에 의해서 좌우되지만 사회의 성적은 덕과 인품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서 화기(和氣)가 감돌고 인격에서 향기가 풍깁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겸손의 옷을 입고 성실의 허리띠를 띠고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이 강하고 사랑에 대해서 신의를 지킵니다. 그는 남을 멸시하지 않으며, 여러 사람과 부드럽게 대합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고 맹자는 갈파했습니다. 그러나 덕 이 없는 사람은 얼굴에서 냉기가 돌고 몸에서 찬바람이 붑니다. 그는 고독하고 친구가 없습니다.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란 말이 있습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주위에는 친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덕은 무형(無形)의 보배요, 정신의 향기입니다.
우리는 돈이 많은 사람보다도 덕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정다운 친구가 많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덕이 많은 사람은 정다운 친구가 많습니다.
덕본재말(德本財末)
덕은 인생의 근본이요,돈은 인생의 말단인 것입니다.
돈보다도 덕을 숭상하는 사회, 재물보다도 덕을 더 존중하는 가치관,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요, 바람직한 가치관입니다.
산타클로스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은 성 니콜라오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터키 근처의 러시아 땅에 살던 그는 너그럽고 동정심 많은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명성이 높았습니다. 어느 날 어떤 귀족이 불행하게 되어 재산을 잃고 말았기 때문에 과년한 딸 세 명에 대한 결혼 지참금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정을 알아차린 성 니콜라오는 돈을 가득 담은 주머니를 밤에 남모르게 그집 문안에 집어 넣고 왔을 뿐 아니라 얼마 후 그 귀족 둘째딸의 혼인 때에는 같은 방법으로 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셋째딸의 혼인 때는 이 귀족 부부가 또 고마운 분이 몰래 돈을 주지 않으려나 생각하고 은인을 찾으려고 밤마다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돈주머니를 들여보내고 사라지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귀족 부부는 쫓아가 붙잡아 보니, 니콜라오였습니다. 그는 빨간 모자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영어로는 "세인드(성인:聖人) 니콜라스"이 기에 산타클로스로 불리워졌습니다.
어록·시·묘사
덕은 근본이요, 재(財)는 끝이다.
(대학)
악을 피하는 것이 덕의 시작이다. 그리고 지혜의 시작은 어리석음을 면하는 것이다.
(호라티우스/ 서간집)
덕이란 ①절제 ②침묵 ③규율 ④결단 ⑤검약 ⑥근면 ⑦성실 ⑧공정 ⑨중용 ⑩ 청결 ⑪ 평정 ⑫ 순결 ⑬ 겸양을 말한다.
(B. 프랭클린)
덕은 도량을 따라서 늘어가고, 도량은 식견(識見)으로 말미암아 커 간다. 그러므로 그 덕을 두터이 하려면 그 도량을 넓혀야 하고, 그 도량을 넓히고자 하면 그 식견을 크게 해야 한다.
(채근담)
유순, 겸손에서 모든 덕이 생긴다.
(M. E. 몽테뉴)
덕은 어떤 목표에의 수단이라고 생각된다. 목적에의 수단은, 그 목적이 가치있는 것인 한에 있어서만이 가치를 갖는다.
(D. 흄/ 人間悟性論)
세상 사람들은 재주있기를 다같이 원하는 바인데 옛사람이 재주없기를 원했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재주가 있고 총명하면서 덕있는 것이 낫다는 뜻에서였다.
(홍만종/ 旬五志)
남의 속임수를 알지라도 말로써 나타내지 않으며 남에게서 모욕을 받더라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으면 이 속에 무궁한 뜻이 있으며 또 무궁한 덕이 있다.
(채근담)
학문을 닦으면 날로 할 일이 늘고, 도를 닦으면 날로 할 일이 줄어든다. 줄이고 줄이면 무위(無爲)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작위(作爲)하지 않건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천하를 취하려면 무위의 덕으로써 만 가능하니, 인위적인 노력으로는 천하를 취할 수 없는 것이다.
(노자)
덕성은 세상의 지식보다 얻기가 더 어렵다. 그리고 껌은 사람이 잃게 되면 좀처럼 회복할 수 없다.
(J. 로크/ 교육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비록 덕을 지니지 않았더라도 덕이 있는 것처럼 매사에 처신하라.
(W.셰익스피어)
처음엔 어렵다고 하지만, 올라감에 따라 그 어려움을 더는 것은 산의 자연이다. <*덕의 길은 처음엔 어려우나 나아감에 따라 쉬워진다>
(A. 단테/ 신곡)
덕은 시련을 향유한다.
(영국 속담)
덕성은 노고(勞苦)에서 생긴다.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리데스)
덕으로 얻은 것만이 부동이다.
(소포클레스/ 단편)
여자를 교만케 하는 것은 그 미모이며, 찬양받게 하는 것은 그 덕성이다. 그러나 덕성과 미모를 겸비하면 신성이다.
(W. 셰익스피어)
미는 멸망해도 덕은 멸망하지 않는다.
(서양 속담)
성실과 신의를 중히 여기며, 정의를 따름이 덕을 높이는 일이다.
(공자/ 논어)
나의 밝은 덕이 이미 밝게 닦여 있으면, 마음에 거울이 있음과 같아서 모든 물건이 다 비친다.
(조 식/ 남명집)
절조(節操)있는 덕이 닦인 뒤에야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이 안정된 뒤에야 주위에 적응할 수 있다. 안정되고 적응할 수 있으면 이를 일컬어 완성된 인간이라 한다.
(순자)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사에 관해 물었다. "무도(舞道)한 죄인은 사형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겁내어 유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이 어떠하리? " 공자가 대답했다. "그대 스스로가 착하고자 하면 백성도 저절로 착하여질지니,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라, 풀은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에 쏠리어 따르게 마련이다. "
(논어)
모든 사람이 고결의 옷을 입었다면, 모든 마음이 의롭고, 솔직하고, 친절하다면, 그 외의 덕은 거의 쓸데없을 것이다. 그 외의 덕의 주목적은 우리 동료들의 불의를 우리가 참을성을 갖고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몰리에르/ 인간혐오)
누구나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친구의 협조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인격의 완전을 기하지 못한다. 친척과 화목하고 현인을 벗삼으며 옛날 친구들을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하면 사람의 덕은 두텁게 된다.
(시경)
덕망이 높은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그를 따르는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공자)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덕이 커야 따르는 사람도 많다는 뜻>
(한국 속담)
덕만 있으면 사람은 저절로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직 덕 없음이 걱정이지, 어찌 사람 없음을 걱정하랴.
(박지원/ 열하일기)
덕이 있으면 위엄이 있다.
(송익필/ 귀봉집)
인간들 중에는 자연적인 귀족이 있다. 이 근거는 미덕과 재능이다.
(T. 제퍼슨/ 문집)
덕은 가장 안전한 방어이다.
(영국 격언)
미덕은 마음의 습관이요, 천성과 절제와 이성과 함께 병존한다.
(키케로/ 수사학 강의)
미덕은 항상 이것저것 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세찬 욕망에 대한 승리로운 저항으로 생각되어 왔다.
(J.B. 캐벌/ 인생의 저쪽)
미덕은 행동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
(테니슨 경/ 타이어시아스)
미덕의 명분(名分)에서 죽는 자는 명예 속에서 산다.
(W. 셰익스피어/ 타이터스 안드로니쿠스)
고결한 자의 기념비는 그의 덕행이다.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 마이노메노스)
이 세상에서 유일한 시들지 않는 꽃은 미덕이다.
(쿠퍼/ 과업)
높은 미덕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미덕을 미사여구로 생각한다. 우리는 아직 미덕이고귀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다.
(에머슨/ 수필집)
인간의 기질상 미덕의 씨는 자연히 뿌리박게 된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희귀한 것에 깊이 감동되는 것이 보통이라면, 어째서 미덕에는 그렇게 감동을 받지 않는가?
(라 브뤼에르/ 人間百態)
사람이 덕을 실행하다 죽음이 오면, 갑작스런 죽음은 돌연한 기쁨에 지나지 않는다.
(J. 테일러/ 성스런 죽음)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나 오직 덕망에 의하여 차별지어 진다.
(라틴 격언)
미는 육체의 덕이요, 덕은 영혼의 미이다.
(에머슨/ 지성의 자연사)
고운 일하면 고운 밥 먹는다. < * 모든 일이 자기의 할 탓에 달렸다는 말>
(한국 속담)
시냇물이 바다에서 보이지 않듯, 덕성도 사리사욕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라 로시푸코/ 금언집)
숨은 덕은 귀울음과 같아서, 나만이 알고 남은 모른다.
(카이바라 에키켄)
부처님 공양 말고 배고픈 사람 밥을 먹여라. <*부처 앞에서의 공양은 아첨하여 복을 얻으려 하는 데 불과하거니와, 남에게 어진 일을 하여 덕을 쌓으면 복이 저절로 온다는 뜻>
(한국 속담)
미덕은 가끔 걷다가, 날카로운 가난의 바위 위에 떨어지기도 한다.
(E. 쉬/ 파리의 신비)
덕성 그 자체는, 스스로의 가장 아름다운 보상이다.
(실리우스 이탈리쿠스/ 푸니쿠스)
덕망은, 명예가 솟아나오는 샘이다.
(C. 말로우/ 템벌린)
영광의 소리는 묘지의 정적을 꿰뚫지 못하지만, 덕성은 생명의 폐허에서도 꽃을 피우며, 하늘을 오른다.
(H.K. 화이트/ 쿠퍼의 기념비명)
덕성의 가장 고상한 증거는 남용없이 무한한 힘을 소유하는 것이다.
(T. 배빙턴/ 애디슨 전)
덕은 세상에서 가장 기쁨을 주는 가치있는 재산이다.
(플루타르쿠스/ 영웅전)
은과 금만이 유일한 주화가 아니다. 덕성 역시 전 세계에서 통용된다.
(에우리피데스/ 오이디푸스)
위대한 덕은 반드시 그 지위를 얻고, 반드시 그 녹을 받으며, 반드시 그 명예를 얻고, 반 드시 그 수명을 얻느니라.
(자사/ 중용)
내게 있어 최대의 기쁨은 음덕(陰德)을 베푸는 일이며, 그것이 까닭없이 우연히 발견되는 일이다.
(C. 램)
행복은 덕행의 보수일 수 없다. 행복은 덕행의 이해할 수 있는 결과이어야 한다.
(W. 리프먼/ 독서론서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퍼지지 못한다. 설사 부용(芙蓉)이나 전단향(梅檀香)도 매 한 가지다. 그러나 덕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퍼지나니, 착한 이의 높은 향기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도다.
(법구경)
금강산 그늘이 관동 팔십 리. <*덕망있는 사람 밑에서 지내면 그의 덕이 미치고 도움을 받게 된다는 뜻>
(한국 속담)
음덕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양보가 있다.
(회남자)
우리의 미덕은 대개 변장한 악덕이다.
(라 로시푸코/ 회상록)
인간이 덕행에는 다르지 않지만 인간의 악덕만은 천차만별이다.
(E. 허버드/ 경구집)
덕은 사악한 야심에 질식당한다.
(W. 셰익스피어/ 헨리 6세)
기질이 온건한 것은 하나의 덕이지만, 주의가 온건한 것은 항상 악덕이다.
(T. 폐인)
자기에게 덕이 없는 자는 타인의 덕을 시기한다.
(F. 베이컨/ 수필집)
덕은 일종의 건강이며 미며 영혼의 좋은 존재 형식이다. 거기에 반해서 악덕은 병이며 추(醜)며, 영혼의 나쁜 존재 형식이다.
(플라톤/ 국가)
덕이 없는 데도 복종하는 자가 많으면 반드시 스스로 멸망하고야 만다.
(左丘明/ 국어)
덕은 재주의 주인이요, 재주는 덕의 종이다. 재주는 일어도 덕이 없으면, 집에 주인이 없고 종이 일을 처리함과 같으니, 어찌 도깨비가 놀아나지 않으랴.
(채근담)
덕은 사업의 기초이니, 기초가 견고치 않고서 그 집이 오래가는 법이 없다.
(채근담)
나는 아직 덕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함과 같이 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논어/ 자한편)
덕을 지키되 크지 못하고 도를 믿되 두텁지 못하다면, 살되 어찌 살아 있다 할 수 있으며,죽되 어찌 죽었다 할 수 있으랴.
(논어)
덕과 신망이 아직 알걸지지 않고 명예욕 없음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기 전에 사람들에게 인의를 역설하고 법도를 강경히 말하면, 오히려 사람의 미움을 받는다.
(공자)
부자들의 미덕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부를 경멸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다.
(K. 지브란/사람의 아들 예수)
그들은 잘도 먹고 그들은 잘도 마시고/ 두더지 같은 행복을 기뻐하고 있구나/ 그들의 아량은 너무 너무 커서/ 흡사 자선냄비의 구멍만 하고// ‥‥오 차라리 나에게 위대한 패륜아를 보여다오/‥‥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그놈의 덕성이라든가/도덕이라면 이젠 지긋지긋하니까?
(하이네/ 1829년)
고상한 말투나 도의(道義)랑은 저리 가다오/나는 천박한 무리들 식으로 행동하면서/쓸개빠진 게으름뱅이들이 존경해마지 않고 있는/ 모든 아름다운 정신의 섬광을 부정해 줄 터이니까.
(하이네/ 크리스찬에게 보내는 벽화풍의 소네트)
가난한 식사를 하는 사람에게 덕성은 찾아오고/ 위대성은/ 비좁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오두막 집에서/ 서슴없이 걸어 나오는 것이다.
(브레히트/ 비합법활동을 찬양한다)
시부모를 알뜰히 모시고/ 시동생을 살뜰히 보살피고/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고/ 오는 손님도 공손히 대하는 그 미덕을 내가 모를가
(이상각/ 아내)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들고/ 걸어갈 때/겸손하라고 외치는/ 땅을 바라보며/ 긍정이란/ 덕과 같은 것이라고/ 믿어 보지만/ 우산위에서는/ 연신/ 천둥소리 끊이지 않는다//머리 들면/ 찔리는 모순율 속에서// 하루 죽는다는 것은/하루 사는 것이라고/줄줄/ 외워본다.
(신재연/ 암송)
식탁 위의 고기를 약탈한 놈들이/ 안빈낙도를 가르친다/ 남을 희생시켜 벌어들인 놈들이/ 희생정신을 요구한다/ 끊임없이 먹고 있는 놈들이 주린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위대한 시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브레히트/ 독일전쟁 안내)
어수선한 세상인데도/ 실록은 무성한 옷자락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나에게 쉬었다 가라한다/ 덕이 있는 사람은/ 이렇듯 널게 사람을 포용하나 보다// ‥‥오직 돈과 욕정과 권세만 이/ 삶의 가치인 양 호도되는 세상에/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가고/ 예절도 염치도 없는 짐승들만 들끓는
세상에
(박종해/ 행복 · II)
양심은/ 오히려 떨고/ 비양심은/ 되려 걱정않는 세상
(윤종혁/ 운천)
인간의 예지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존귀성이란 무엇인가? / 윤리는 무엇이며 질서는 무엇이며/ 문화는, 정치는, 국가는 다 무엇인가?/ -참다운 고운 깃발들이다. / -그 깃발들은 누가 들며 누굴 위해 있는것인가?/ 신이나 악마한테 서가 아니다/ 인간에게서 인간이 개 돼지보다 더럽게/ 버림당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어 외로이 죽어가는 그 앞에서도/ 수수방관하는 이 냉혹하고 인색한 근성으로/ 무슨 고귀한 것을, 영원한 것을 선미(善美)한 것을/ 외치고 찾는단 말인가?
(유치환/ 네게 묻는다)
생각하고 이해함이 여성의 덕에다 진정 아름다운 빛을 더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치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나는 믿으리라/ 진실이 담긴 말과/ 속임수를 모르는 희망과 자비로운 미덕,/ 시험에 들게하는 함정을 짜놓을 줄 모르는 미덕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노라. 나는 또한 믿고자 한다/ 남의 슬픔을 진정으로 같이 울어 주는 자도 있고,/ 두 사람 아니 한 사람쯤은/ 그 겉과 속이 같은 이가 있고/ 또한 선이란 이름뿐이 아니고,/ 행복이란 꿈만이 아닌 것을
(바이런/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다)
평양서 나신 인격은 그 당신님, 제이·엠·에쓰/ 덕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재조있던 나를 사랑하셨다. < *스승이신 조만식 선생에 대한 사모의 정을 노래함>
(김소월/ 제이 · 엠 · 에쓰)
만약 압축이 문체의 첫째 맵시라면/ 네게는 그것이 있다. 겸손이 미덕이듯이, 수축성도 너의 미덕이다.
(무어/ 달팽이에게)
자비와 동정과 평화와 사랑에게/ 우리들 모두 슬플 때면 기도하고,/ 이와 같은 즐거운 덕에게 우리들 모두 감사를 돌려라.
(W. 블레이크/ 하나님의 모습)
공명(功名)에 눈뜨지 말며 부귀(富貴)에 심동(心動)마라/ 인사궁달(人事窮達)이 하늘에 매였느니/ 평생에 덕(德)을 닦으면 향복무강(享福無濯)하나니.
(김수장)
선생은 학교에서 군자를 가르치면서/ 이를테면 이렇게 가르치면서/ 수신제가하야 치국평천하라고/ 회망을 가지라고 한다.
(김남주/ 희망에 대하여 · I)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설 교 노 트
성도의 건덕 생활
롬14:1-23
서론
본문은 서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음식물이나 기타 하찮은 일로 인하여 사람을 실족케 해서는 안된다고 하며, 성도는 서로 덕을 세우는 생활에 힘쓰라고 권면한 말씀이 주요한 교훈입니다.
1.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1-12절).
우리는 내 신앙만 귀한 것으로 여겨 남의 신앙을 함부로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피차 덕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1) 남의 신앙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1-4절).
신앙이 좀 든든한 자는 자기보다 연약한 자를 용납하고 그런 사람 앞에서 의심스러운 문제에 대하여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우상의 제물 먹는 일이나 미신에 관한 문제, 안식일 문제 등은 잘못 비판하거나 판단하면 그 사람의 신앙에 대하여 딜레마에 빠지게 하거나 파선시키기 쉬우니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2) 날에 대한 시비는 말아야 합니다(5-6절).
유대인의 안식일과 기독교인의 주일 문제, 또는 월삭도 재래식 음력 월삭과 로마식 양력월삭 등의 날에 대한 시비는 신령한 뜻을 따라 주를 위하여 하고 의식에만 붙잡히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사람이 각기 자기를 위해 살다가 죽는 것보다는 주님을 위해 할지니, 이는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석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시는 까닭입니다.
(3)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10-12절).
모든 인간은 한 번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것이요,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할 수밖에 없는 때가 오리니 남의 신앙을 비판하거나 판단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 서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13-23절).
나를 함부로 비판하여 정죄하는 일이나 남이 걸어가는 앞길에 무슨 장애물을 두어 넘어지게 하는 일은 매우 나쁜 일입니다.
율법에는 식물에 대해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이 구별되어 있으나 그리스도에 의해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불결하므로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신앙과 양심에 어긋나는 까닭에 그것이 범죄케 하는 것이므로 그 사람에게는 불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은 이 복음적 자유를 이해하고 있다 하여도 이 자유로써 남을 실족케 하거나 형제의 신앙을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서도 죽으신 존귀한 영혼이니 함부로 경시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또 거치게 하거나 외롭게 하거나 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결국 남의 영혼을 해치거나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식물에 관한 의견의 차이라는 하찮은 일로 인하여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되니 아무리 진리에 충실하는 것 같으나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덕을 세우지 못합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견지하며 자책이 없도록 힘쓰면 복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결론
믿음으로 행하면 가령 선입 관념 같은 것 때문에 사상의 그릇됨이 있어도 그의 마음은 주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모순되는 일을 행하는 것은 죄입니다.
성도는 서로의 덕을 세우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높은 미덕
살전5:16-18
서론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는 신앙의 높은 미덕의 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셋은 서로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기도 없는 기쁨이 있을 수 없고,감사 없는 기도가 진정하지 못하며, 기쁨이 없는 감사가 참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 가지 미덕은 일관성, 즉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1. "항상 기뻐하라"
이 기쁨은 세상적인 쾌락을 말하지 않고 주 안에서 얻은 구원에 대한 기쁨인 것입니다. 롬14:17에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입은 성도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도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쁨으로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구원은 결코 취소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기쁨의 원이니 결코 사라질 수 없기 때문에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항상 기뻐할 수 있으며 사도 바울은 신앙의 미덕으로 항상 기뻐할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환난 중에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핍박, 환난, 시험을 우리는 결코 기도 없이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되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24시간 내내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1) 언제나 기도하는 정신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생활을 기도와 연관시켜 살라는 것입니다.
(2) 기도의 시간을 정해 놓고 빠뜨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기도 습관은 하루에 3번씩 잊지 않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3) 무언으로 혹은 묵상으로도 자꾸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신비한 기도를 쉬지 말고 하라는 의미를 잘 반영해 주는 것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결과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범사'라는 말은 '모든 일' 또는 '모든 상황'을 의미합니다. 현재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떠한 형편 가운데에서라도 신자의 미덕을 지키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여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생활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되어 감사하다면 이것은 타산적인 생각이며 신앙의 덕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서도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고 또한 보호하심을 바라며 감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환란이 닥치는 것은 오히려 감사의 제목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결론
신앙의 미덕 세 가지를 나열하면서 그 결과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할 미덕으로 신앙생활의 기본 요소들로 생각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우리에게 권면이 아닌 명령으로 주어진 것이며 우리 성도들은 이를 최선을 다해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덕
고전13:13
서론
우리 성도들에게 꼭 있어야 하고 또 항상 머물고 있어야 하는 세 가지 덕에 대하여 알아야 하며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새로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도의 세 가지 덕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믿고 바라고 계획하는 모든 일들이 그대로 실현된다는 뜻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보지 못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증거품으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공로와 하나님의 긍휼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우리 안에서 실현되는 역사가 별로 없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요11:40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셨는데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못했다면 내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간판만 가지지 말고 마음속에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의 근원이 믿음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기도 한 마디를 드려도 믿음으로 드려야 하고 말씀을 받아도 믿음으로 받아야 하며 믿음의 봉사를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이론이 아니요, 행하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해야 합니다.
2. 소망이 넘쳐야 합니다.
히6:19에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소망은 영혼의 닻이라 하였습니다. 인생은 소망을 가진 동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인생은 사람이 아니라고 까지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비록 오늘의 모습이 좀 어렵다 해도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소망은 무너지기 쉽고 쇠하기 쉬운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들이 혹 이루어졌다 해도 그 모든 것들이 또다시 무너질 때 그 소망도 함께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을 위한 소망, 하나님나라에 가서 누릴 소망인 것입니다. 산 소망을 가진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참 소망을 가지고 시험도 이기고 고난도 극복하여 복된 결실을 맺을 수있어야 합니다.
3.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본문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도 소망도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나 사랑은 하나님 앞에 가서도 영원토록 유지되는 아름다운 덕이기 때문에 가장 큰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본장 4-7절에 보면 사랑의 특성에 대하여 15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하였습니다.
결론
시133:1-3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곳에 이해가 있고 사랑하는 곳에 관용이 있고 단합이 있으며 사랑하는 곳에 화평이 있고 사랑하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세우며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세 가지 덕
롬12:10-13
서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한 신자에게는 신자로서의 살아야 할 규범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삶의 표준이 되는 바 특히 본문에서는 성도가 지녀야 할 덕으로서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이 덕목을 잘 살펴봄으로 우리의 신앙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1. 소망 중에 즐거워 할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에게는 영광스럽고 빛나는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기쁨이 있고 이 세상에서도 살 보람을 가지는 것인데 이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으로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십계명 중 제 2계명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은혜를 베풀어 천대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불러 모아 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어 하나님께서 동행하여 주신다는 축복을 약속하여 주셨으니 우리는 이 땅에서도 하나님을 소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영광스런 하늘나라에서 영생 복락의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흙이 되고 물이 되어 썩어지는 것으로만 알고 절망합니다. 그러나우리 믿는 성도들은 세상을 마치는 시간, 천사들이 나사로를 받들어 아브라함 품으로 인도한 것과 같이(눅16:22) 하늘나라로 인도할 것입니다. 거기서 무궁한 영생 복락을 누리며 주님 사업에 수고하고 충성한 공력에 따라 많은 상급과 면류관을 받게 될 터이니 우리도 그 소망을 바라보고 항상 즐거워 할 것입니다.
2. 환란 중에 참을 것을 말합니다.
본문 12절에 "환난 중에 참으며"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는 세상에서 겪는 우환과 재난 중에도 참고 견디어 나가야 되겠지만 여기서는 주님을 믿기 때문에 얻어지는 환난, 핍박, 시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마5:10-12, 16:24).
사도 바울은 행14:22과 딤후2:11 그리고 약5:7-11에서 모든 환난을 잘 참고 많은 상급과 생명의 면류관을 받도록 하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겪는 환란은 우리의 신앙을 성장시켜 줍니다. 롬5:3-4에 "우리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환난은 결국 우리에게 소망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우리는 환란 중에서 참을 수 있으며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기도에 항상 힘쓸 것을 말합니다.
눅18:1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끈질기게 강청하여 기도해야 할 것을 밤낮 간구하여 자기의 소원을 이룬 과부와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훈을 주시길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18:7)"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살전5:17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했고 사무엘은 "내가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삼상12:23)"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신자들의 영적 호흡이요, 신앙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가 꼭 지녀야 할 덕목인 것입니다.
결론
성도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으로서의 삶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삶과 구별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성도의 세 가지 삶을 덕목으로 말씀하셨는데 이는 서로 연관이 되어져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라야 환난 중에 기뻐하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소망을 가졌기에 기도하며 환난을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삶은 성도의 가장 원리적인 삶이요, 기초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덕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도 시
성 경 활 용
1. 일반적 도성
(1) 바벨론의 도성
(단4:30)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2) 에돔 왕의 도성
(창36:39) 하달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도성 이름은 바우며
(3)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
(민21:26)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
2. 상징적 묘사
(1) 거룩한 성
(사52:1)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2) 하나님의 성
(시46: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3)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히12:22)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4)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
(계21:1)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3. 무역이 성행함
(1) 애굽
(대하1:16) 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내어 왔으니 왕의 상고들이 때로 정가하여 산 것이며
(2) 길르앗
(창37:25)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3) 아라비아
(겔27:11) 아라비아와 게달의 모든 방백은 네 수하에 상고가 되어
(4) 오빌
(왕상10:11) 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5) 다시스
(왕상10:22) 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
(겔27:25) 다시스의 배는 떼를 지어 네 물화를 실었음이여
(6) 두로
(삼하5:11) 두로 왕 히흐람이 다윗에게 사자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7) 시돈
(사23:21)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고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거민들아 잠잠하라
(8) 바벨론 성
(계18: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9) 예루살렘
(느13:16)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하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유다 자손에게 예루살렘에서도 팔기로
(10) 알렉산드리아
(행27: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아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11) 다메섹
(겔27:18) 너의 제조품이 많고 각종 보화가 풍부하므로 다메섹이 너와 통상하였음이여
(12) 스바
(겔27:22) 스바와 라아마의 장사들도 너의 장사들이 됨이여
(13) 구스
(사45:14) 구스의 무역한 것과 스바의 장대한 족속들이 다 네게로 돌아와서
4. 도시의 유형
(1) 사악한 소돔
(창13:13) 소돔 사랑을 악하여 여호와 앞에서 큰 죄인이었더라
(2) 소돔과 고모라 같은 예루살렘
(사1: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3) 회개한 니느웨
(욘3: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4) 교만한 가버나옴
(마11:3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5) 우상이 가득한 아덴
(행17:16)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관련원어풀이
1. ry[i 일-
(1) 도시 마을.
(왕하17:9, 사60:14)
(2) 분노의 열기, 성냄.
(호11:9)
(3) 두려움, 경외.
(렘5:8)
2. Wkl]m' tyIB' 베이-트 말쿠
도성.
(단4:30)
3. povli" 폴리스
(1) 도시, 시, 그리이스식 도시 국가.
(마2:23, 눅2:4)
(2) 하늘에 있는 새예루살렘.
(히11:10, 13:14)
(3) 주민들
(마8:34, 막1:33)
설교예화자료
서류 부정을 방치하는 도시
미국은 2억 이상의 사람들이 이주의 자유를 누리며, 직업 또는 거주지 선택에 제한을 받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여러 주를 자유로이 왕래하며 심지어 인접 국경도 넘나듭니다. 그러므로 지방 정부나 주 정부(연방정부는 말할 것 없이)는 6개월 또는 6년 또는 60년 전에 태어난 한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미국에서는 출생기록과 사망 기록 사이에는 연결이 안됩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에서 출생 확인을 받은 사람이 뉴저지 주에는 죽은 것으로 기록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기록이 서로 맞춰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류 부정이 일어나기 쉽고 범죄를 유발하는 주된 이유가 됩니다. 미 연방 정부는 서류 부정 때문에 일년에 30억 달러 정도의 비용을 낭비합니다.
어록·시·묘사
신은 촌락을 만들었으며,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F.E.J. 코페/ 일)
마소의 새끼는 시골로,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사람은 도회지에서 자라고 배워야 견문도 넓어지고 잘 될 수 있다는 말>
(한국 속담)
오늘날 미국의 도시의 진정한 병폐, 특히 그 속에 사는 박탈당한 집단의 병폐는, 말이 없는 것이다.
(H. 콕스/ 속인의 도시)
도시는 바로 인간이 창조한 문화의 심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도시가 거 대화하고 복잡화함에 따라 인간이 소외되는 도시로 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광섭/ 현대도시 속의 고독의 조건)
수도의 고결한 정신은, 심장에 모이는 그 국가의 혈액이다.
(주니우스/ 서간집)
도시가 제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사실상 도시는 가난한 자의 그것과 부자의 그것과의 둘로 구별되어진다.
(플라톤/ 공화국)
도시는 인류의 가래침이다.
(J.J. 루소/ 에밀)
대도시는 대사막이다.
(영국 격언)
교외란 도시로 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A. 린클레터/ 誤報의 어린이 정원)
도시인은 지상으로 뿌리를 뻗는 나무로서, 잎을 펴고 꽃을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으나, 그 잎과 꽃과 열매는 언제나 모성적 땅에 향수를 느낀다.
(J. R. 히메네즈/ 選集)
도시는 얼굴을 갖고, 시골은 영혼을 갖는다.
(J.D. 라크르텔/ 모자 속의 사상)
시골 생활이 바람직하다. 거기서는 신의 작품들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인간들의 작품밖에는 거의 볼 수 없다.
(W. 펜/ 회상과 금언집)
높은 산들은 감격을 주나, 인간 도시의 소음은 고민일 따름이다.
(G. G. 바이런)
닭은 시골 것이지만 도시는 그것을 먹는다.
(G. 허버트)
도시인은 네온과 백열등의 빛 속에서 자연의 한밤을 모른다. 전등은 인조 태양광선으로 그를 에워싼다. 전등은 어둠을 밀어내고 도시인에게 빛부터 내려오는 자연적인 밤의 진실성을 못 느끼게 막는다.
(E.W. 틸/ 봄이 있는 북쪽)
먼 옛날에는 지방은 지방 도시를 낳는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하여 그것을 육성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거대한 도시가 지방과 농촌을 착취할 대로 착취하여 피 한방을 남기지 않고 끊임없이 인육(人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상)
시골은 서정적이요, 도시는 극적이다. 이것이 어울리면 가장 완전한 음악극을 이룬다.
(롱펠로우/ 카바나)
당신이나 나나 다 같은 실향민이다. 실향민의 주소는 도시, 만나도 서로 인사하지 않고 지나가는 그 도시의 가두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교외는 거대한 합숙소에 불과하다. 거기서 인간은 자기 사무실이 청소되는 동안 비교적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잔다.
(W. 먹피/ 바다의 자유 노동자)
도시는 고향도 어머니도 없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야회(夜會)에 나간 동안 그 옷깃에서 떨어진 장미꽃 냄새를 맡아 가며 고독 속에 잠든다. 마치 등불을 들고 홀로 잠든 어린 노예 처 럼 ‥‥‥
(R.M. 릴케/ 말테의 수기)
신과 인간은 이제 도시에서 영원한 외출을 떠나고 말았다.
(유현종/ 불만의 도시)
도회란 속속들이 비밀을 감추고 있는 음침한 굴속이다.
(이금석/ 계절)
도시에는 많은 집들이 있다. 많은 창과 불빛과 많은 사람과 또 셀 수 없이 많은 골목들이있다. 이러한 도시는 나를 미아로 만든다. 분명히 그랬었다. 도시는‥‥‥길이 많아서 길을잃게 하는 곳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도시는 좀더 크기만 할 뿐, 도회지와 같지 않다. 그것은 도회지와 교외와는 근본적인 면에서 많이 다르며 정의를 내리자면, 그 차이 중의 하나는 대도시에는 낯선 사람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J. 제이코브즈/ 미국 대도시의 死活)
나는 쓰러 진 벼를 줍는다/ 감옥이 된 도시의 길바닥에 누워/ 온갖 더러운 소문을 안고 짓이긴 마음들의 발자욱이 지나가서/ 피흘리며 휴지가 된 벼를 줍는다.
(배명식/ 쓰러진 벼-무등을 그리며-)
빛을 쓸어낸 하루의 끝/ 우리의 흐린 눈에도 어둠이 깊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마음 접지 못하여/ 향방 잃은 도회의 눈먼 바람으로/ 흔들리는 생각에 기대에 선다.
(김성영/ 어둠의 끝, 빛의 시작)
섭씨 삼십 몇 도의 태양 아래/도시는 튀는 팝콘.
(민재식/ 불협화음)
얼라진 소도시와 뚜렷이 대조되는 키 크고 대담한 강타자와도 같은 도시가 있다.
(C. 샌드버그/ 시카고시집)
아무 잡음도 없이 도망하는 도시의 그림자
(박인환/ 최후의 회화)
도시는 서투른 사람, 그는 가사를 틀리고/ 부주의해서 음을 비틀고 박자를 깨뜨린다.
(J. 로맹/ 도시의 노래)
불빛 흔들리는/ 풍경 속에, 저무는 빌딩과 하늘/ 잠시 적막과 만난다/ 황당무계하게 매달린 채/ 빛나는 욕망,/ 도시의 긴 내장 곁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배달순/ 꿈꾸는 도시 -포장집 예수)
오오 잘 있거라! 저주받은 도시여/ 봄베이 같이 폭삭 파묻히지도 못하고/ 지진 때 동경처럼 활활 타보지도 못하는/ 꺼풀만 남은 도시여, 나의 서울이여
(심 훈/ 잘있거라 나의 서울이여)
도시는 시끄러움으로 날이 밝고 저물며/사람들의 마음속엔 먼지가 끼어/ 아름다움과 참됨은 아무 데도 없다네.
(루핑/ 위그루족의 아씨에게)
거대한 도시 베를린의/ 작은 책상 앞에/그가 앉아 있습니다// 그가 없더라도/ 도시는 거대합니다// 그는 느낍니다/ 그가 있건 없건/상관이 없다는 것을
(케스트너/ 작별인사)
도시의 저녁 놀은 나직하게 응얼거리는 흐릿한 호박(琥珀)
(L. 맥니스/ 크리스마스 牧歌)
인정은 낙엽처럼 떨어져/ 메아리없는 거리// 밤과 낮 어디에도/ 쏟아지는 소음뿐이더라// 밀리는 인파 속/ 분기점에서 머뭇거리면// 신호등은 울리고/ 어지러움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모두가 낯설은 시투리/ 머언 하늘 아래
(임헌도/ 서울에서)
도시는 진실은 아니고, 그것을 속인다. / 낮을, 밤을, 동물과 어린이를/ 도시는 침묵으로 속이고, 소음과 종순(從順)한 사물로 사기한다.
(RM. 릴케/ 기도집)
도시는 어느 피안을 그래도 믿기에/ 한낱의 침묵의 어휘처럼 무겁다.
(박태진/ 석양의 도시)
산줄기에 올라보면/ 언제나 꽃처럼 피어 있는 나의 도시-/ ‥‥아아, 시름에 잠길 땐 이 산줄기에 올라 나의 노래를 부르고,/늙으면 돌아와 기억의 안경으로 멀리 바라볼/ 사랑하는 나의 도시-시인들이 자라던 나의 교향이여!
(김현승/ 산줄기에 올라/ K도시에 바치는 노래)
도시에서/ 15년을 살다보니/ 달팽이/ 청개구리/ 딱정벌레/ 풀여치/ 이런 조그마한 것들이/ 더 없이 그리워진다/ 조그만, 아주 조그마한 것들까지/ 사람으로 보여와서/ 날마다 나는/ 손톱을 매만져댄다/ 어느 날 문득/ 나도 모르게/ 흑은 무심하게/ 이런 조그마한 것들을/ 짓눌러 죽여버릴까 봐/ 날마다 나는/ 손톱을 깎으며/ 더욱 사람이 되자/ 더욱 더욱 사람이 되자/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오 파랑새여 파랑새여‥‥‥
(김준태/ 一五年)
광주여 무등산이여/아아 우리들의 영원한 깃발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유령 같은 도시/겨울 새벽에 긴 갈색 안개 아래를/ 런던 교(橋) 너머로 흐르는 무리,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 그렇게도 많은 이들을 죽음이 해치운 줄을 나는 미처 몰랐다. / 이따금짧은 한숨을 내쉬며/ 저마다 스스로 발 밑만을 내려다보았다.
(T.S. 엘리엇/ 황무지)
이 세상은 외 면할지라도/ 끝까지 살육의 도시, 오욕의 도시를/ 버리지 못한/ 그대의 사랑은 처절했습니다.
(서덕석/ 5월을 꿈꾸는 그대에게)
예수님이 해내실까 몰라/ 택시 운전을 하신다면/ 겹 접으로 막히는 서울거리/ 교통법규 잘 지켜서/ 승차거부 하지 않고/ 합승도 하지 않고/ 입금을 제대로 지킬른지 몰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서울 오셔서/ 시내버스 운전을 하신다면/ 앞문 뒷문 잘 살펴서/ 승객 떨구지 않고/ 배차시간 지켜서/ 종점까지 제대로 돌아올까 몰라// 공자님 공자님이 서울에서는/ 운전을 할 수 없다 울지 마세요/ 당신들은 못해내도/ 우리는 서울사람 우리는/ 멱살잡이 욕지거리/ 퍼붓는 우리 보고 눈을 감지 마세요/ 딱지를 떼어서 한 달씩 놀아도/ 우리는 서울사람 우리는
(정정남/ 서울에서는)
모처럼만에 바지 저고리/두루마기 차림으로/ 서울 나들이를 나서 볼까나/‥‥서울은 온통/ 동과 서가 뒤섞이어/ 이제는 이제는 네 것 내것 가름키란 힘드는데
(박재륜/ 모처럼만에)
한때 성낸 말처럼/달리던 구름이/ 음향의 도시에서 도시 속을 고함친다.
(아뽈리네르/ 비 내린다)
늙어 가는 태양 아래 매혹된 한 도시.
(E.V. 밀레이/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도회의 눈은 고향의 눈보다는 품질이 못하지만/ 그런대로 예쁘고 고맙다.
(허유/雪)
사람이 들끓는 도시는 칙칙한 거미줄 같은 안개에 덮여‥‥‥
(E.L. 파운드/ 시편)
모든 도시 위에 우뚝 솟은 문명의 둥근 지붕
(S.H. 스첸더/ 빈민굴 초등학교 교실)
어느 날 갑자기/ 까마득해 진 높이의 철골(鐵骨)들이/ 담자주빛 화강석이나/ 검게 빛나는 유리벽을 갑옷처럼/ 성큼 비늘을 털고 있는/ 도심을 지나다 보면/ 보도 블록도 새로 깔고/ ‥‥벌써 때 묻은 아침 바람 속/ 흔들릴 것 없는 알몸의 나무들과/ 흔들릴 것도 없는 내가 대면하고 있다/ 신호등이 다른 얼굴로 바뀔 때까지는.
(이근호/ 雨相降 지나서)
아아, 서울은 모든 불행의 시작/ 그 처음이 있었던 곳./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고/ 이곳으로 떠나왔다/‥‥// 서울, 우리에게 먹이를 주었던 고장./ 새벽에 용산역에서 내렸을때/ 까닭 모를 신열과 함께/ 이빨을 닦을 수도꼭지 하나를 빌려주었던 곳/ 기어이 녹물을 쏟아놓았고,/ 우리가 외로웠을 때 그래서/ 종로 3가에서 혜화동 입구까지/ 토큰 한 닢 없이 걸었을 때/ 을씨년스런 가을비를 뿌려주었던 곳
(윤성근/ 길 · 1)
금호강가에 저녁놀이 떨어집니다/ 철근과 나사로 조립된 도시들은 다시 병이 도지고/불 지핀 국밥집만 저자거리에 부산합니다.
(이기철/ 저녁 안부)
설 교 노 트
두로를 권고하심
사23:17
서론
두로는 항구 도시로 무역이 활발하였고, 우상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으며, 고전성을 자랑하는 이 도시를 아리안인들은 인간이 기억하는 범위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말해 왔습니다.
이 두로에 대해서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구약에 나타난 두로
에스겔서에서는 두로 바다 중심에 있는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겔27:25-26). 그들은 벌목을 잘하는 시돈인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벌목의 기술 외에도 구리나 놋쇠 다루는 기술이 특출했습니다.
솔로몬 왕 시대에는 유대인과 두로인이 무역 관계가 잘 유지되었고, 예루살렘인은 두로에서 백향목곽 금속 제품을 수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신 곡물과 기름을 수출하였습니다(왕상9:11-14). 그 곳의 백향목은 아주 훌륭한 것으로서 성전을 지을 때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에게서 두로가 책망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두로인들이 유대인들을 포로로 취급하여 매매하였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도 두로에 가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에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라고 되었는데, 예수님의 전도 여행 중에서 가장 원거리 전도라 할 수 있는 두로 전도였습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여자의 딸의 사귀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처음에 주님께서는 그 여자의 간청을 대답도 안하심으로 무시해 버리고 두번째는 거절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나는 이스라엘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 하였노라(마16:24)"고 하시며 가나안인이라고 상대도 안하셨습니다. 고리고 멸시까지 하셨으나 그 여인은 그러한 모욕과 멸시도 다 감수하면서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여자가 말하기를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하니 주님께서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시니 그 시부터 그 여인의 딸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두로는 주님이 찾아가신 놀라운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3. 바울 사도도 두로에 갔습니다.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급하게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석별하고 고스·로도를 거쳐 바닷가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데 구브로를 옆으로하여 간 곳이 두로였습니다(행21:1-5). 즉 두로에 기항하였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을 찾아가 7일간 체류하면서 교제하는 중에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행을 극구 만류하였습니다. 에베소 장로들도 만류하였고(행20:17-38), 가이사랴의 빌립의 식구들도 울면서 예루살렘 상경을 만류하였으나(행21:7-1),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사명 완수를 목표로 결사적 각오를 가지고 상경하였습니다.
결론
두로는 바다에서 왕좌를 차지하고 그 부강한 세력으로 주변 국가들을 지배하고, 많은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로는 번영과 더불어 교만함도 높아졌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이 두로는 신 ·구약 시대를 따라 하나님의 복음 사역이 펼쳐지던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한 곳일지라도 범죄하면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시며 징계하십니다. 이 두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받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두로라는 도시
겔26:7
서론
두로에 대하여 26-28장에 그 심판에 대한 것이 소개되었는데 그만큼 두로라는 도시는 중요하였습니다.
두로는 그 당시 가장 번영한 무역 항구로서 명성을 떨치고 교만을 부렸으나 결국은 패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로의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지리적 배경
두로는 이스라엘 나라와 관련시켜서 보면 북쪽 끝 아셀 지파에 접하여 있습니다. 지중해안에 접한 항구 도시인데 본래는 바위가 많은 작은 섬이었으며 시돈 항구에서 남으로 40km 지점에 있습니다.
두로는 사실 해륙에서 왕좌를 차지하였고, 그 부강한 세력은 이웃 나라들을 지배하였고, 많은 식민지를 소유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곳이 항구 도시라는 지리적 배경 때문에 더욱 강해진 것입니다.
현재는 섬이 아니고 본토와 연결된 항구입니다. 연결된 부분은 곧 방파제인데 두로의 가장 영걸인 히람 왕에 의해 건설되어 황금시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뒤쪽에는 베니게의 중요한 항구들이 있었습니다.
2. 역사적 배경
두로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닌 옛 도시들 중에 하나인데 그 건설 연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헬라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B.C.2800년경에 건설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부터 애굽을 종주국으로 삼아왔고, B.C. 16세기에 바로아 모세가 애굽에서 힉소스를 몰아내고 지중해 연안을 정복하였을 때부터 애굽과 굳게 연합하고 있었습니다. 그후 그들은 독립적 입장에서 통치하였고 무역과 해운업이 극성하였으며, 항해 기술자들과 온갖 장인들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국가와는 친교가 두터워 다윗과 솔로몬 왕 때에 성전과 왕궁을 지을 때 백향목을 이 항구에서 뗏목으로 남하시켰고 기술자들이 많이 초빙되어 건축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두로의 번영과 융성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3. 종교적 배경
그러면 두로의 종교적 배경은 어떻습니까? 아합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에 두로의 왕은 엣바알이었고, 제사장은 아쉬타르트였습니다. 엣바알의 딸 이세벨은 아합과 결혼하였습니다(왕상16:31). 그리고 유다의 요람 왕과 결혼시킨 아달랴는 베니게의 우상 종교를 부흥시키는 데 광분하였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바로 바알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이스라엘을 점령하는 것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선지와 아세라 선지 850명과 대항하여 한 분 하나님을 의지하여 참 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며 승리하였습니다(왕하18장).
지금도 폐허된 두로에 옛 비너스의 신전과 기타 신전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그 규모의 거대성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론
이방 신상의 부흥 도시요, 산업과 문화의 도시이라도 하나님을 떠난 백성이 사는 곳에는 언제나 심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대한 국가라도 죄악을 쌓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으며, 가장 부강하여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슬퍼하기보다는 물질이 없어지는 것만을 생각하여 슬퍼합니다.
정의와 진리 위에 기초하지 않은 부귀와 번영은 결국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로는 범죄함으로 망하였다고 하였으니 우리 성도들도 두로라는 도시처럼 죄를 범하지 말고 죄에 대해 슬퍼하며 회개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니느웨 성
요3:1-10
서론
본문은 선지자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고 구원받은 니느웨 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전도자들이 외치는 경고를 듣고 회개한 개인이나 민족은 구원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한 개인이나 민족은 모두 다 멸망을 받았습니다.
벧후 3:9에 "오직 너희를 대하여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1. 니느웨를 구원하기 위해 보냄받은 요나
요나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세 가지 착각을 하였습니다.
(1) 요나는 하나님의 낮을 피하려는 착각을 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없이 살아보려고 하는 무신론적인 사고방식이고 행동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명을 포기하려는 착각을 범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포기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하려는 사고방식이요, 행동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영역을 탈출하려는 착각을 범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 영역을 탈출하여 다시스로 가려고 배를 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통치와 간섭을 거부하고 자율적으로 살아보려는 사고방식이요, 행동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나는 세 가지 큰 착각을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착각을 범한 요나에게는 세 가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1)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이 풍랑은 착각을 범한 요나를 징계하는 풍랑이요, 회개시키는 풍랑이요, 신앙을 재훈련시키는 풍랑이라고 합니다.
(2) 바다에 던지 우셨습니다.
이 바다는 착각을 범한 요나의 형벌의 바다요, 절망의 바다요,죽음의 바다입니다.
(3)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는데, 인생의 착각은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고, 인생의 잔꾀는 하나님 앞에 물거품과
같고, 하나님의 예정은 반드시 성취되어진다는 교훈입니다.
2. 구원받은 니느웨 성은 어떤 곳입니까?
니느웨는 본래 앗수르의 수도요,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니느웨는 악독이 가득하여 40년 후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받을 성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성읍은 구원을 받았는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요나의 전도를 받아들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전도자를 거절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도자의 진리는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거부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전도자의 경고를 듣고 그대로 실천 실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복음과 경고는 듣기만 하고 집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 실행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선포해 주셨습니다.
요나의 경고를 듣고 회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비결이요, 용서를 받는 비결이요, 구원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하였습니다. 니느웨 성이 회개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첫째, 금식하면서 회개했다고 하였습니다. 금식은 결사적인 회개를 의미합니다. 둘째,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습니다. 베옷은 겸비와 슬픔과 아픔을 상징합니다. 셋째, 악한 길과 강포에서 떠나는 회개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범죄한 옛길에서 180도로 전환되는 길입니다. 거짓된 길에서 떠나 진실한 길로, 불의한 길에서 떠나 정의의 길로, 악한 길에서 떠나 선한 길로 돌아서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결론
니느웨가 회개한 결과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악에서 떠난 것을 감찰하사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어 긍휼과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내리시려고 했던 재앙을 중단하사 니느웨 성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위대한 축복을 초래하게 됩니다.
베뢰아 사람들
행17:10-15
서론
본장은 사도 바울이 세 지방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설립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세 지방을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와 아데네 지방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전도자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지방 사람들의 환경에 따라서 신앙생활의 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의 신앙은 감정적인 면이 농후하고, 어떤 이는 지성적인 면이, 다른 이는 의지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본문은 그중에서 베뢰아 사람의 신앙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신사적입니다.
본문 2절에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라고 하였으니 여기 "신사적"이라는 말은 매우 주목할 점입니다. 이것은 베뢰아 사람들의 인격과 생활이 신사적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고상하다', '선량하다', '예의가 바르다'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여기 베뢰아 사람들은 신앙 상태가 신사적이라는 말은 그들의 신앙생활이 고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고상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이 선량했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선량해야 되겠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의 예의가 바르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예의 바르게 해야되겠습니다.
2.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2절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가 순수하고 정당했다는 뜻입니다.
요즈음 복음을 받아들이는 신자들의 태도가 무관심적인 자가 있고, 비판적인 자가 있으며, 순수하며 진지한 자가 있습니다.
여기 베뢰아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여 충분히 준비된 상태로 받았다는 말입니다. 말씀은 준비된 정상적인 마음의 상태로 받아들이어야 합니다.
말씀의 귀중성을 인정하고 가치있게 받아 들이었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귀한 줄 알고 말씀을 가치있게 받아들이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열심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열심으로 받아들이어야 은혜가 됩니다.
이와 같이 할 때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힘이 있고 새로워집니다.
3. 성경을 날아다 상고하였습니다.
2절에 "날마다 성경을 상고함으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 연구에 열심이 있고 성경 중심의 교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즈음 현대 교회의 현상을 살펴보면 지방 중심, 인물 중심, 물질 중심의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는 자기 기분이나 명예나 이권을 중심해서 신앙생활하는 자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성경 중심이었습니다.
여기 성경 중심의 교회라는 것은
(1) 성경을 매일 읽는 교회입니다. 성경은 매일 계속해서 읽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들의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의 참 뜻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일반 소설이나 학설을 소개한 책이 아니라 인생의 구원 문제를 지시하여 주신 귀한 책입니다.
(3)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고 생활하기 위해서 상고했습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 말씀은 지킴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결론
베뢰아 교회는 신사적으로 말씀을 받아 성경을 상고함으로 많은 지성인과 존귀한 사람들이 믿어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베뢰아 교회의 신자들과 같은 신앙을 소유한 교회나 신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며,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도 적 질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도적의 종류
(1) 강도
(레6:2)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눅10:30)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2) 도적
(욥24:14) 사람을 죽이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한 자나 빈궁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적 같이 되며
(마6:20)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잠6:30)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치는 아니하려니와
(사1:23) 네 방백들은 패역하며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호7:1) 저희는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지어 노략질하며
(3) 절도
(요10:1)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4) 후린 자
(출21:16)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24:7)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 자를 죽일지니
2. 도적질의 분류
(1)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함
(말3:9)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2) 사람의 것을 도적질 함
(출22:1)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3. 도적의 특징
(1) 밤에 많이 행함
(렘49:9)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적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2) 예기치 않을 때 옴
(눅12:39)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3) 문 이외의 다른 통로를 이용함
(욜2:9) 성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위에 달리며 집에 더위잡고 오르며 도적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4) 악인과 연합함
(시50:18)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잠29:24) 도적과 짝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미워하는 자라
(5) 도적질은 사람을 더럽게 함
(마15:19-20)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4. 도적질하는 목적
(1) 목적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5. 도적질의 대상
(1) 돈과 물품
(요12:6)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출22:7)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하였는데
(2) 십일조
(말3:9)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3) 우상
(창31:19) 라헬은 그 아비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4) 신상
(창31:30)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5) 하나님께 바친 물건
(수7:11)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6) 패물
(창44:8) 우리가 어찌 당신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적질하리이까
(7) 가축
(출22:1)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8) 음식
(잠6:30)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9) 부모의 물건
(잠28:24)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
(10) 왕자
(대하22:11)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11) 민심
(삼하15:6)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12) 하나님의 말씀
(렘23:30)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13) 돈 있는 사람
(눅10:30)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6. 도적질한 자의 결과
(1) 손해 배상을 해야 함
(출22:7) 사람이 돈이나 물품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 하였는데 그 도적이 잡히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2) 붙잡히면 수치를 당함
(렘2:26)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같이
(3)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함
(고전6:10) 도적이나 탐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리라
(4) 사람을 후린 자는 죽임을 당함
(출21:16)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5) 십자가 형을 받음
(마27:44)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6) 도적질
(창31:30) 이제 네가 네 아비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는 가하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적질하였느냐
(레19:11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롬13:9)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고전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엡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7) 도적질한 결과
① 죽음
(출21:16)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② 배상
(출22:3) 도적은 반드시 배상할 것이나 배상할 것이 없으면 그 몸을 팔아 그 도적질한 것을 배상할 것이요
(출22:7) 그 이웃의 집에서 봉적하는데 그 도적이 갑절을 배상할 것이요
7. 도적에 대한 여러 표현들
(1) 거짓 선생
(요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2) 노략자
(사42:22)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3) 하나님의 집이 도적의 굴혈이 됨
(렘7: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4) 그리스도께서 도적같이 오심
(계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5)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름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6) 사람의 마음
(삼하15:6)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관련원어풀이
1. bn"G: 간나-브
도적.
(출22:1,6)
2. bn"G: 간나브 -
(1) 훔치다, 몰래 가져가버리다.
(창31:19, 삼하19:42)
(2) 속이다, 사기하다.
(창31:20, 27)
(3) 도난당하다.
(출22:11)
(4) 훔치다.
(렘23:30)
(5) 자신을 훔쳐내다.
(삼하19:4)
3. hb;neEG] 게네-바
훔친 물건.
(출22:3)
4. $yriP] 파이-츠
원래의 뜻은 "깨뜨리는(사35:9)"이다.
난폭한 사람
(시17:4, 겔7:22)
5. zz'B; 바-자즈
(1) 채어가 버리다, 잡아먹다, 약탈해 가다.
(민31:53, 삼상14:36)
(2) 미끼로 잡다, 붙잡은 것을 가져가버리다.
(창34:29, 대하28:8)
6. lz'G; 가-잘
원뜻은 "가죽을 벗기다, 잘라버리다(미13:2)"이다.
(1) 급히 채어가다, 상처를 입히다.
(신28:31 렘21:12)
(2) 가져감을 당하다.
(잠4:16)
7. [b'q; 카-바
높다, 덮다, 속이다, 미혹하다.
(잠22:23, 말3:8)
8. bastavzw 바스타조
(1) 손으로 들어올리다.
(요10:31)
(2) 옮기거나 나르기 위해 집어들다, 지니다, 짐을 가지다.
(요16:12, 갈5:10)
(3) 베다, 견디다, 지속하다.
(마20:12, 갈6:2)
(4) 지탱하다, 유지하다.
(롬11:18)
(5) 가져다 버리다, 제거하다.
(마3:11, 요20:15)
(6) 훔치다, 몰래 가지다.
(요12:6)
9. iJerovsulo" 히에로술로스
성전을 약탈하는 사람, 성물을 절취하는 자.
(행10:37)
10. iJerosulevw 히에로술레오
성전 물건을 약탈하다.
(롬2:22)
11. klevmma 클렘마
도적질.
(계9:21)
12. klevpth" 클레프테스
(1) 도적.
(마16:19, 24:43)
(2) 사기꾼, 속이는 자.
(요10:8)
13. klophv 클로페-
도적질.
(마15:19, 막7:22)
14. klevptw 클레프토-
(1) 훔치다, 도둑질하다.
(마6:19, 19:18)
(2) 몰래 가져가다, 은밀히 옮기다.
(마27:64, 28:13)
설교예화자료
도둑이 되는 이유
1947년 윌라드 라이트(Willard Wright)라는 재소자가 뇌의 신경조직 절단을 포함하는 실험적인 수술에 동의했습니다. 이 실험은 훔치려는 그의 충동에 어떤 치료가 있을까를 찾아보려는 시도였습니다. 그는 출감 후 2년 반까지는 썩 훌륭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직업을 얻고 결혼까지 한 뒤 희망찬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5년 후 피츠버그에서 라이트는 장물을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수천 달러가 있었습니다. 다시 수감되어 그가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치료가 효과가 없었지오."
에드워드 E. 메이어 박사는 알리저니 지방법원의 전문가로서 그 치료가 효과가 없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전두엽 절제 수술을 하면 자기를 조절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검찰관이 라이트에게 왜 다시 죄를 범했는가를 묻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질문을 아시니 답도 아시겠지." 이 문제에 관해 타임지는 이렇게 논평하고 있습니다. "왜 치료할 수 없는 도둑이 생기는가에 관한 문제는 검찰관도 신경외과 전문의도 알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그런 도둑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가는 더욱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보석 도둑
보석 도둑들과 밀수업자들은 대부분이 곧 체포됩니다. 그러나 한 영리한 사기꾼은 지금까지도 형벌을 피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뉴욕 보석상으로 들어가서는 부인의 생일 선물로 특이한 진주 하나를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진주의 가격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텍사스의 석유 부호라고 말하며 그것을 증명하는 신분증까지 보여줬습니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진주를 하나 골라서 현금으로 5천 달러를 주고 샀습니다.
몇 주일 후에 그는 그 보석상을 다시 찾아가서 그의 부인이 그 진주에 반하여서 그와 같은 또 하나의 진주로 한 쌍의 귀걸이를 만들고 실어 한다고 말했습니다. 상점 지배인이 그것과 똑같은 진주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광고를 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 진주와 똑같은 모양의 진주를 살 수 있다면 2만 5천 달러를 내겠소." 이러한 광고가 나자 시카고에 살고 있는 한 부인이 그것과 똑같은 진주를 갖고 있으며 2만 불이면 기꺼이 팔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 상점에서는 그녀에게서 진주를 샀습니다 그러나 그 진주를 2만 5천 달러에 사겠다던 그 텍사스 백만장자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텍사스 백만장자는 보석상에서 팔았던 바로 그 진주를 구매 가격의 4배에 해당하는 값으로 그 상점에 다시 판 것입니다. 그 상점에서는 그를 찾아낸다 할지라도 그를 고소할 수 있는 죄목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의 마지막 과자를 준 사람
어니스트 쉐클톤(Ernest Shackleton) 경은 그가 북극에서 겪었던 가장 무서운 순간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것은 어느 날 밤 그와 그의 동료들이 비상오두막 안에 누워있었을 때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는 다른 대원들로부터 좀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배급받은 비스켓을 나눠 가졌습니다. 더 이상 나눌 것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다른 사람은 다 잠들었을 것이라고 제각기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옆에서 무엇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자고 있는가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는 모두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고, 옆사람의 가방에 손을 뻗쳐 가방을 훔치고 비스켓을 꺼냈습니다. 쉐클톤은 이때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그 사람의 손이 하는 일에 따라 한 사람의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서 그는 다른 사람의 마지막 식량을 훔치는 도둑이 되어 버리는 것일까?
쉐클톤은 곧 또 다른 움직임을 느꼈습니다. 그는 도둑질하려던 사람이 자기 가방을 열어비스켓을 꺼내 친구의 가방에 넣어주고, 그 친구의 비스켓도 다시 넣어서 살그머니 가방을 제자리에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쉐클톤 경은 말했습니다.
"구태여 그 사람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이 한 행동은 하나님과 그 사람사이의 비밀이니까요."
어록·시·묘사
산중의 도적을 무찌르는 것은 쉽고, 심중(心中)의 도적을 무찌르는 것은 어렵다.
(왕양명/ 전습록)
곡식이 익었을 때 거두지 않는 것, 쌓는 것을 마치지 못하는 것, 일없이 등불을 켜놓고 잠 자는 것, 게을러 밭을 갈지 않는 것, 공과 힘을 들이지 않는 것, 극히 죄있고 해로운 일만 하는 것, 계집 기르기를 많이 하는 것, 낮잠 자고 게을리 일어나는 것, 술과 음식을 탐내는 것, 심히 남을 시기하는 것이 열 가지 도둑이다.
(명심보감)
들에 있는 논밭은 아주 거칠고 여염집 광은 비어있는데, 비단 옷치레하고, 날이 선 칼을 차고, 맛난 음식을 싫증 내며 재물이 가득하면 이를 일러 세도 부리는 도둑이라 한다.
(노자)
닭 울 무렵부터 일어나서 꾸준하게 선을 추구하는 자는 순(舜)의 무리이다. 닭 울 무렵부터 일어나서 꾸준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자는 도척의 무리이다. 순과 도척의 구별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느냐 선을 추구하느냐의 구별에 달려있는 것이다
(맹자/ 叢心章句上篇)
도둑에게(훔치려는 것을) 주면, 그는 너에게서 훔쳐갈 수 없게 되며, 그러면 그는 더이상 도둑이 아니다.
(W. 사로우얀/ 인간 희극)
늙은 도둑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들은 훔쳐갈 뿐이다.
(G. 길브리드)
도둑은,모든 사람이 도둑질한다고 믿는다.
(E.W. 하우/ 시골 속담집)
남의 것을 마 베어 먹듯 한다. <*남의 것을 함부로 훔쳐낸다는 뜻>
(한국 속담)
모든 무뢰한은 도적이 아니지만, 모든 도적은 무뢰한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옛날 齋나라 사람이 金을 욕심낸 사람이 있었다. 이른 아침 의관을 걸치고 시장에 가서 금을 파는 곳을 찾아가 그곳의 금을 훔쳐 가지고 갔다. 관리가 체포한 다음 그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있었는데 1대가 남의 금을 훔쳐간 것은 어째서인가? " 그가 대답하였다. "금을 갖고 갈 적엔 사람은 뵈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
(열자)
계강자(季康者)가 도적을 관심하여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 "진실로 그대가 욕심내지 아니하면 비록 상을 주어도 도적될 자는 없으리라." <*계강자는, 자기가 첩의 아들로서 정처의 아들을 죽이고 가계의 뒤를 이은 부정한 사람이며, 전횡 주구로서 국왕보다 더 많은 부를 축적 한 사람, 즉 제 자신이 도적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논어/ 안연편)
백성이 진실로 곤궁하여 도둑질을 한다면, 나라는 그 나라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김굉필/ 경현록)
벙거지 조각에 콩가루 묻혀 먹을 놈. <*털로 만든 벙거지 조각에 아무리 콩가루를 묻혀도 먹을 것은 없으니, 그것을 먹는다 함은 못할 짓을 하여 재물을 남몰래 빼앗아 가는 자를 욕하는 뜻>
(한국 속담)
훔친 돈 가지고 부자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양 격언)
도둑놈이 몽둥이 들고 길 위에 오른다. < * 나쁜 짓을 하거나 잘못하여 마땅히 책망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자가 도리어 기승하여 남을 꾸짖고 큰소리를 친다는 뜻>
(한국 속담)
다른 사람의 밀밭에 너의 낫을 들이대지 말라.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도둑질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장물취득자도 도적이다.
(포킬리데스/ 잠언집)
도둑은 도끼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잠 잘 때도 불안하다.
(러시아 격언)
도둑놈 개 꾸짖듯. <* 남에게 들리지 않게 입 속으로 중얼거림을 말함>
(한국 속담)
도둑놈 개에게 물린 셈. <*제 잘못이 있기 때문에 남에게 봉변을 당하여도 아무 말 못함을 이르는 말>
(한국 속담)
도둑의 결점은, 금융업자의 자질이다.
(G. B. 쇼/ 바바라 소령)
훔친 고기가 가장 맛있다.
(R. 헤드와 F. 커크먼/ 영국의 악당)
남의 것을 훔치는 것보다 동냥하는 편이 안전하지만, 훔치는 편이 동냥하는 것보다 기분은 좋다
(0. F.0. W. 와일드/ 사회주의하의 인간의 혼)
사람은 작은 도둑은 사형시키고 큰 도둑은 존경한다.
(서양 격언)
서투른 도둑이 첫날 밤에 들킨다. < * 어쩌다 한 번 나쁜 짓을 하면 공교롭게도 들킨다는말>
(한국 속담)
도척의 무리 중에서 한 사람이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도 또한 도가 있습니까? ", "세상에 도가 없는 게 있겠느냐. 실중(室中)에 소장된 물건을 불의로 넘겨다 보지 않는 것은 성(聖)이고, 먼저 들어가는 것은 용(勇)이고, 맨 뒤에 나오는 것은 의(義)이며, 가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知)이고,고루 나누어 갖는 것은 인(仁)인 것이다. 이 다섯 가지가 구비되지 않고서 능히 대도 (大盜)가 될 수 있는 이치는 천하에 없을 것이다. "라고 도척은 대답했다.
(장자)
도둑 고양이가 기왓장을 살포시 딛는 시작
(노천명/ 밤중)
우리 동네 제비는 강남에 가지 않는다/ 다른 동네 제비들이 강남으로 떠나고 나면 우리 동네 제비들은/ 빈 제비집을 털어 식량이든 귀중품이든 닥치는 대로 도둑질해 재산만 불리는데/ 겨우내 굴 속에 처박혀 노략질로 살만 피둥피둥 찌는데
(김윤환/ 모를 일 · 12)
고려한다 당신들의 도적질을 감수하면/ 우리들은 언제까지고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라는 것을
(브레히트)
남녀는 서로 반해 있었다/ 여자는 독부고 사내는 도둑이었다/ 사내가 한탕하고 있는 동안/ 여자는 침대 속에서 웃고 있었다
(하이네/ 여자)
도적 이 들고난 새벽처럼 호젓한 밤/ 개 짖는 소리가 덜 좋아/ 이불 속으로 들어가 묻히는 밤이 있었다.
(노천명/ 생가)
거래란 공정하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면 도둑질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도둑 개새끼가,/ 썩어빠진 선창가 달을 보고짖고 있다// ‥‥언제나,/ 왜 나는 이 모양이냐, / 개야,/ 창백한 팔자 사나운 개야.
(하기하라 사쿠타로오/ 슬픈 달밤)
네놈이 떠나가버린 발귀퉁이에/ 홀로 남아서 시를 쓴다/ 팔안족이 뭉개고 일본의 어스름이 짓누르고/ 간밤의 도적금이 살금살금 기어가던 흙에/ 배를 깔고서/ 쌀밥보다 미끈한 시를 쓴다
(김태준/ 詩作을 그렇게 하면 되나)
인간은 너도 나도 다투어/ 지상의 재화를 거머쥐려고 한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이전 투구(泥田鬪狗)로서/ 이놈도 저놈도 하나같이 도적놈인 것이다// 그렇다 만인을 위한 유산이/ 이놈 저놈의 약탈품으로 되고 있다/그것을 인간들은 소유권이라 하고/ 사유재산이라 하고 있다!// 사유새산! 소유권!/ 아 도적질할 권리! 사기칠 권리!/ 이런 엉터리같고 한심스런 책략은/ 인간이 아니고는 고안해내지 못할 것이다. // 자연은 결코 사유재산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 왜냐하변 우리는 호주머니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우리는 누구도/ 가죽으로 호주머니를 만들지 않는다. //우리들은 누구 하나도/ 몸뚱이의 가죽에 그런 주머니를 달고/ 태어나지 않았다. / 도적질한 것을 감추기 위해// 미끈미끈한 피조물 인간들만이/ 남의 털로 그럴싸하게 옷을 해입고/그럴싸하게 호주머니까지/ 만들 줄 알고 있는 것이다. // 호주머니! 그것은 비자연적이다. / 마치 소유권과/ 사유재산과 같이-/ 인간이란 호주머니를 달고 있는 도적놈인 것이다!
(하이네/ 아타트를 · 10)
헷센 지방에 두 도둑이 살고 있었는데/ 많은 백성들이 그들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 한 녀석은 배가 홀쪽한 것이 이 리처럼 야위었고/ 한 녀석은 대주교처럼 뚱뚱하게 살이 쪄 있었다. // 두 녀석의 몸뚱이가 보여주는 이 차이는/ 주인과 종이었기 때문인데/ 주인은 우유에서 크림을 섭취하고/ 종이 먹는 것은 그 찌꺼기뿐이었다// 백성들이 도둑놈을 붙잡아/ 새끼로 두 녀석을 매달아 보았더니/ 한 녀석은 배가 홀쪽한 이리처럼 비실비실했고/ 한 녀석은 대주교처럼 뒤뚱뒤뚱했다// 백성들은 십자가를 긋고 서서/ 두 녀석을 유심히 관찰했다/ 피등피등 살진 놈이 도둑놈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는데/ 비쩍 마른 놈이 도둑이라 하기에는 아무래도‥‥‥?
(브레히트/ 도둑과 그 종)
내 별별 이상한 도적 이야길 하나쓰겄다/‥‥때는 노을이라/ ‥‥죄수는 그 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 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여겨 저희집 솟을 대문, /바로 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하매, 포도대장 이 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를 다 가져다가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 속에서 내내 잘 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김지하/ 五賊)
당신의 눈은 감쪽같이 내 마음을 훔친다. 도둑놈! 도둑놈! 도둑이여!
(J. B. P. 몰리에르)
설 교 노 트
아간의 범죄
수7:18
서론
여리고 성의 승리는 신앙의 결과이었으나 아이성 공략에는 실패를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패전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함인 줄 알고 백성을 대표하여 궤 앞에 엎드려 울며 호소하니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패전의 원인은 여호수아께 바친 물건을 훔친 자가 있기 때문에 생겨진 재앙인데 그 범인을 색출하여 처벌하므로 이스라엘 진 중을 정결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범죄자의 색출 방법은 이스라엘 각 지파 족속이 여호수아 앞에 나와서 제비를 뽑아 그 제비에 뽑힌 자가 범인이라는 것입니다.
1. 제비는 하나님이 정하심
'제비'를 뽑는 제도는 고대 로마나 애굽 그리고 헬라 같은 문명 국가에서나 또는 중동 메소보다미아 지방에서도 응용되던 풍속이었습니다.
잠언 16장 33절에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 라"고 하였습니다.
아이성 함락 실패의 원인 주범을 찾아내기 위하여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그 지파대로 가까이 불러놓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맨 처음에 유다 지파가 뽑혔고, 유다 지파 중에서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 중에서 삽디가 뽑혔고, 삽디의 가족 중 전 남자를 가까이 나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뽑혔습니다.
여호수아는 두려운 중에서도 아간에게 이실직고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2. 아간이 적발됨
제비를 뽑은 결과 아간이 적발되었습니다. 그러자 아간은 수치와 공포를 무릅쓰고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노략한 물건 중에서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260세겔, 50세겔의 금덩이 하나를 탐내어 취하여 자기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에 시날산 외투의 시날은 바벨론인데 이 외투는 왕족이나 귀인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간의 자복은 죄를 원통히 여겨하는 회개가 아니고 제비로 적발되어 막다른 골목에서 할 수 없이 한 고백이므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3. 아간의 처벌
아간의 고백을 따라 사람을 보내어 그 물건을 압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 자녀와 가축과 그 소유 전부를 끌고 아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죄에 대해서 논죄한 후에 민중들이 돌로 쳐서 죽이고 불사르고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모든 가족과 가축이 몰사당하고 망하게 된 것입니다.
아간의 처벌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인간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게 될 물건을 도적질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결론
범죄한 자가 아무리 그 범행을 완전히 감추려해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늘 비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간은 물건을 도적질하고 속인 절도나 사기죄뿐 아니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무서운 죄를 범한 것입니다.
전쟁에서의 모든 물건을 여호와께 바치는 것인데 이것을 훔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사욕으로 전체 백성의 진로를 멈추게 하였으니 실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도적질하지도 말지니라
신5:19
서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백성들의 삶의 규범으로서 모세에게 10계명을 주셨습니다. 그중에 제 8계명은 "도적 질하지도 말지니라"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지켜야 할 분명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씀이라고 쉽게 생각하여 버리는 수가 많은데 도적질에는 물질 뿐 아니라 신령한 도적질도 있는 것입니다.
1. 도적질하지 말라는 이유
(1) 가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렘7:9-11).
(2)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때문입니다(겔22:2-31).
(3) 저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호4:2-3).
(4) 마음에서 나오는 죄악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마15:19).
(5)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마15:20).
(6)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고전6:10).
2. 물질을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물건(모두 소유)을 가만히 모르게 훔치는 것을 '도적질'이라고 한다면 강제로 빼앗는 것은 '강도' 라고 합니다. 또 남을 속여서 빼앗는 것을 '사기'라고 하며 폭력으로 빼앗는 것을 '약탈'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유형의 행동은 다 도적질에 해당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도적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가운데 이러한 행위가 있다면 이것은 그 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시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세우셨는데 도적질은 그 질서에 근본적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에 한 계명을 택하여 도적질하지 말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3. 신령한 도적질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 8계명의 "도적질하지 말라"는 그 의미는 물질에서 신령한 영역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할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주의 날(주일)을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가 주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원리는 모든 날이 다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여 주님의 뜻 가운데 살 것을 대표하여 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날에는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며 거룩하게 구별해야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6일은 자기 뜻대로 막 살라는 의 미 가 아닙니다. 6일 동안도 거룩히 살아야 하는데 주일은 모든 날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여 따로 떼어 주님께 드리는 날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날도둑놈'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물질(11조)을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 역시 주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원리와 동일합니다. 모든 물질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실제로 인정하고 그 뜻대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대표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자기 뜻대로 쓰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여 쓰는 것입니다. 특히 십일조를 드리지 않거나 또는 십일조만 드리면 됐다 하고 나머지를 자기 뜻대로 쓰는 것 모두가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을 성도라면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할 삶의 규범으로서 주신 것인데, 그중에서 8계명은 인간들끼리의 대인 관계에서 도적질하지 말 것과 확대 해석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 것으로까지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도적질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적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알면서 혹은 모르고 도적질한 것이 없나 살펴보고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동정녀 수태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잉태
(1) 마리아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1:20)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 성령으로 잉태함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관련원어풀이
1. hl;WtB] 베툴-라-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
(창24:16, 출22:16, 삼하13:2)
2. parvqejuo" 파르데노스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자.
(창24:43, 아1:3, 사7:14)
어록·시·묘사 -
"은총을 가득히 받는 이여, 기뻐하여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 찾아 온 분은 천사장 가브리엘이었다. // 말씀을 듣고 당황하면서/ 처녀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 마치 파릇한 감복숭아처럼.//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네가 하나님께 은총을 얻었느니라./ 이제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을 터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에게/ 창문으로 비쳐드는/ 한 줄기 빛// "그 아기는 위대한 분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왕위를 주시리니,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 천등 같은 말에/ 처녀는/ 그저 땅에 엎드렸다. / 마치 한 송이 들꽃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는 천사장의 말에/ "이 몸은 주님의 종,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고 대답하였다. // 태양 같은 은총에/ 처녀는/ 몸둘 바를 모르는데/ 천사장은 떠나갔다.
(김희보/ 수태 고지)
오, 우리 하느님의 어머니/ 지극히 깨끗하시고 복되신 분/ 당신을 찬미하고/ 전함은 얼마나 마땅합니까!// 당신은 케루빔이 찬양하는 분/ 세라핌이 드리는 영광보다/ 고귀한 분/ 구세주의 어머니/ 당신에게서 하느님의 아들이/ 탄생하셨습니다. // 은총이 가득하신 분/ 온 우주가 당신 위해/ 용약합니다/ 당신은 인간의 맥/ 천사들의 군단/ 축성된 성전/ 영혼의 천국입니다. // 거룩하신 동정녀/ 주님은 당신
몸을 옥좌로 삼으시고/ 그 안에 당신 천국을 마련하시어/ 몸을 형성하시니/ 그분은 영원한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 천주의 어머니온 우주가 찬미합니다.
(동방의 기도/ 천주의 모친)
그날 꽃들은 부끄러운 가슴과 눈물겨운 뿌리를 쓰다듬으며 피어오르고 봄은 달아나는 애인처럼 꽃 속에 묻혀 자꾸 죽고 싶어했다. 봄은 아랫도리를 가리지 않은 아이처럼 길가에서 방뇨했고 후후, 뜨거운 입김을 뿜으며 음료수 가게로 달려갔다. 그날 사마리아 여인들과 함께 미사를 볼 때 버드나무 꽃가루가 창을 넘어 들어왔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죽을 생각은 없이 천국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늙은 양들의 기도는 간절했고 우리는 자꾸 죽고 싶었다 흰 나룻배보다 긴 꽃잎 속에 몸을 감고, 눈부시고 목메어 고개 흔들며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가고 싶었다. 아름다운 오월 버드나무 꽃가루가 눈을 덮을 때 미사는 끝났고 붉은 제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 사랑의 어머니,/ 당신의 이름을 힘겹게 부를 때마다/ 임종의 괴로움을 홀로 누리시는 어머니,// 불러 주소서/ 그 눈짓, 그 음성으로/ 죄의 한 아이를‥‥‥
(이성복/ 聖母聖月)
왕 중의 왕이신 분을/ 깨끗한 모태가 해산했나니/ 이 크나큰 기쁨이여.//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으니/ 마치 별이나 태양 같아라.// ‥‥별 떨기 빛의 화살을 쏘듯/ 동정녀는 성자를 낳으셨나니/ 흡사 빛이 비치는 것 같아라.
(미상/ 크리스마스의 노래)
예수는 어머니의 태 안의 과일/ Fructus ye- ntris tui(태 안의 아들)이며 이 아기는/ 지푸라기와 등겨와 쌀겨 속에서/ 배 아래 무릎을 구부리고 자고 있었다.
(페기/ 구유의 예수)
설 교 노 트
요셉에게 메시아 탄생을 예고함
마1:18-25
서론
마태복음 1장에는 메시아의 족보를 제시 한 후에 그의 탄생담이 계속 소개되었습니다.
마태는 요셉 계통의 역사를 주로 기록하였는데 본문은 요셉에게 하신 메시아 탄생의 예고를 여기에 기록하였습니다.
1. 의로운 요셉과 성결한 마리아
요셉은 의로운 자였습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사렛에 거주하였는데 그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그는 남의 죄과를 폭로하지 않고 죄악을 즉시 끊으려고 할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었으며, 주의 명령을 잘 순종하였고, 절제 생활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성결한 여인으로 역시 다윗의 자손이었으며 나사렛에 거주하였습니다. 그녀의 부친은 헬리요, 모친은 안나이며, 요셉과 약혼 중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경외하였기에 복종하였습니다. 신앙과 사랑의 헌신적 인물입니다.
2. 주의 사자가 현몽함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정혼은 오늘날의 약혼과 같은데 이것은 창세기 때에도 있었던 풍속이며(창29:21), 약혼의 법적 효능은 결혼과 같았습니다. 약혼 기간동안에 남자가 죽으면 과부가 되었습니다. 이혼하려면 정식으로 파혼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조를 잃으면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습니다(신22:20-21).
그런데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설을 듣고 이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하였습니다.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은 인내하는 마음이요, 가만히 끊고자 하는 것은 용서하려는 마음이요, 이 일을 생각함은 신중한 처사였던 것입니다.
주의 사자는 하나님의 천사로서 특수한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었습니다. 또 꿈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 계시하는 한 방법으로 응용하셨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요셉에게 알려준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고 하면서 저에게 잉태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언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3. 요셉의 순종적 시행
요셉은 잠이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천사의 현몽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믿었는데 이는 신앙의 인물인 까닭입니다.
그는 아내 마리아를 데려왔으나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약혼녀가 잉태하였다는 것을 알고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데려왔으며, 젊은 나이에 정력이 왕성할 때인데도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여 정절을 지켰으니 성결한 신앙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는 천사의 지시대로 '예수' 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뜻으로 즉 구주입니다.
결론
요셉은 과연 의로운 사람으로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아버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그는 동정녀 탄생의 확실한 증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 중에서 요셉의 가정에서 그리스도가 나시게 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들을 낳으리라
마1:18-25
서론
주님의 탄생은 온 인류가 맞아야 할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만 요란한 것은 주님의 탄생을 진정으로 맞이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진정한 주님의 영접은 마리아와 요셉의 경우처럼 우리에게 많은 자기 헌신과 고통을 요구합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아니한 요셉과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으리니"라는 말처럼 충격적이고 힘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참으로 많은 인생들의 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1.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죄에 빠져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자라면 우리에게는 죄에서 해방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죄악 속에 빠져 있다면 주님에서는 다시 우리에게 찾아오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나셨으나 육신의 부모에게서 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으로 처녀의 몸으로 탄생하셨습니다. 그것은 죄없는 몸으로 죄많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자기 백성이 죄에서 구원되는 모습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독생자를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우리의 이웃, 우리의 사회가 죄 중에 빠져있다면 구세주를 영접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이란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그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에게 찾아 오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출생해야 하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인간의 혈통으로 나셔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두 가지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동정녀에게 수태되어 출생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의 중심 가운데 계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으로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동정녀 탄생의 사건은 우리 삶을 주장하시는 출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 주님의 정신이 신자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3. 희생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요셉과 마리아처럼 조용히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순종의 삶을 통해서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와 정혼한 마리아가 잉태하였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관계를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법에도 처녀가 잉태하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돌로 쳐죽이라고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고 하였던 것이나 천사가 현몽하여 범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에 의한 것임을 알고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가슴속에, 우리의 인격 속에 우리의 생활 속에 메시아가 살아계셔야 할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우리들이 희생하고 헌신할 때에만 성탄이 뜻있는 성탄이 될 것입니다.
성탄의 신비
마1:18-25
서론
세상의 맡은 사람들의 출생은 장소가 다르며 그 환경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다 부모를 통하여 이 땅 위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다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람들이 약속과 예언으로 인하여 태어났지만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 탄생하신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뿐이십니다.
예수의 나심은 어떠한 신비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초자연적인 이적의 신비가 있습니다.
18절에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라고 하였고, 20절에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나심은 제3위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로 잉태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잉태케 하심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 이 시간을 초월하셔서 창조의 권능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같은 사람의 형상을 지니고 세상에 오시기는 하였으나 보통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보통 인간의 생육법으로 원죄하의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인간의 탈을 빌어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소요리문답 22문에 말한 대로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탄생되셨으나 죄는 없으시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의 구주가 되시는 자격을 부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권능을 보여주신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는 것을 믿으시고 그 주님을 다시 한 번 기쁨으로 영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구원의 신비가 있습니다.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라"는 이 말씀 가운데는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믿는 대로 제한속죄의 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그 기쁘심을 따라 예정되었으며(엡1:9),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엡1:11).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우리의 공로가 있음이 아니며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기쁘신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데(엡2:3) 우리를 그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마우심을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임재의 신비가 있습니다.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함께 계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주님과 나는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친교하게 되었으며,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 관계는 롬8:38-39에 있는 대로 그 아무도 끊을 수 없는 관계인데 이것을 위하여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선지자들에게 예언하셨고 또 그대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 나시기 700여년 전 이사야 선지자에게 사7:14에 예언케 하신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며 결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확실히 단언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우리들은 놀라운 기적과 이적의 역사가 날마다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자기 백성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도 그 십자가 앞에 감사하면서 충성을 다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를 떠나게 하는 우리가 되지 맙시다.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그 주님, 예수님처럼 착하게, 값있게, 복되게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동정녀가 잉태함
마1:18-25
서론
동정녀란 순결한 처녀를 말하는 것인데 순결한 처녀란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처녀가 임신을 하였다면 모두 손가락질하는 시대이지만 여기 본문의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한 순결한 여인입니다. 이 사건은 수천년 전부터 여러 선지자들로 하여금 여러 모양으로 거듭하여 예언되어 왔습니다. 기독교는 언약의 종교이기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은 꼭 이루어져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겠다고 하셨고,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누가복음 1장 32-33절에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만민의 복을 얻을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또 다윗의 자손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올 것을 예언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도 동정녀가 잉태한다는 것을 명백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순결한 처녀에게서 나신 주님은 인간의 죄를 가지고 태어나시는 것이 아님을 밝히므로 주닙의 무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2. 동정녀 탄생의 가능성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사실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성경 중에서도 마태와 누가복음에만 있으므로 믿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성령의 감동으로 믿는 것뿐입니다. 성경은 주로 예수님의 공생애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이 없으며, 진실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어떤 신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하나의 신화로 보고, 사람을 신격화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신화란 거기에 관계된 인물이 죽고 난 후에야 생기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이 죽으신 지 오래 되지 아니하고 사도들이 살아 있을 때에 기록한 책입니다. 그리고 마태와 누가복음은 1세기 전에 기록된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보아도 신화가 발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사건을 증거한 종교입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관념적인 종교가 아니고 사건에 근거한 종교입니다. 사도들이 보고 듣고 만진 바 확신에 의한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복음은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역사적 사실을 제거한다면 기독교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건 위에 선 종교인 것입니다.
신화주의는 결국 우상주의요, 자율주의입니다. 타락한 인생이 자기 머리로(이성) 만든 것이 신화이므로 그것은 타락한 우상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복음성의 진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여 주시므로 되어집니다. 빛이 올 때에는 어둠이 머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복음의 빛 앞에 신화나 우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왔는데 어두움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증거하는 성구는(막6:3, 롬5:14, 고전15:44, 47, 히7:3, 사7:14) 신화가 아닌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결론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면 성경의 기초가 무너지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기초가 흔들리게 됩니다. 기독교는 역사적 사건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마1:23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증거하고 있으며, 성령이 우리에게 믿게 함으로, 우리는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탄생은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의 예언 성취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마1:18-25
서론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다 믿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신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요셉과 마리아의 부정적인 관계에서 태어났다고 보거나, 아니면 신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말씀대로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1.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에 처녀는 '알마' 와 '베틀라'를 사용하는데 그중 베틀라를 더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아 언어학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마리아 본인도 누가복음 1장 34절에서 "분명히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동정녀 탄생은 명백합니다.
또 요셉의 번민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이미 가정에서 부부 생활을 하였다면 번민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나 부부 생활도 없이 마리아가 잉태되었으므로 번민을 하였던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하면 공중 앞에서 돌로 쳐서 죽이는 것이 법이었으므로 요셉은 법대로 할 것이냐 가만히 끊느냐 하는 두 가지 길에서 번민했습니다.
신신학자들은 자연 법칙을 벗어나서 처녀가 잉태할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천지만물을 무에서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천지 창조를 믿는 자가 어찌 잉태를 믿지 못하겠습니까?
2. 동정녀 탄생과 우리 구원과의 관계
신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났는지 십자가의 보혈만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면 예수님이 죄인이 되는고로 죄인이 어치 죄인을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가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쇠고리와 같습니다. 하나가 빠지면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 보면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 성령 그리고 재림이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인생은 다 아담과 하와의 혈통으로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동정녀 몸에서 탄생되어야 구주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은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목적
'예수'라는 것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사'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세상의 혈통으로 나면 죄를 가지고 나시는 것이기 때문에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것입니다.
인생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낙원을 잃었습니다. 인간의 가치도 잃었고, 만물의 지배권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가 오시므로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다시 찾고난 후에야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눅1:47절에 보면 성령으로 기쁨이 충만하여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외부로부터 오는 공포를 막아주셨습니다. 또한 요셉의 오해도 풀어주고 아기가 만민의 구주가 됨을 인식시켰습니다. 모든 이념은 합리성의 이론을 근거하지만 신앙은 사실과 진실과 실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이론에 맞지 않는 역설적인 것이 많으나 이론을 초월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 모든것은 성령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마 귀
성 경 활 용
I. 마귀에 대한 고찰
1. 마귀의 이름들
(1) 사단
(슥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 시험하는 자
(살전3:5)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3) 무저갱의 사자
(계9:11)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을 아바돈이요, 헬라음으로 이름이 아볼루온이더라
(4) 참소하는 자
(계12:10)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5) 바알세볼
(마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6) 대적하는 자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7) 벨리알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함께하며
(8) 거짓말쟁이
(요8:44) 진리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말하나니 이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9) 큰 용 또는 옛 뱀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10) 원수
(마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11) 공중권세 잡은 자
(엡2:2)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11) 리워야단
(사27:1) 그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래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2. 마귀의 기원
(1) 천사의 타락
(유1:6)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은 큰 날의 심 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2) 범죄한 천사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3. 마귀가 하는 일
(1) 간계로 미혹케 함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2) 헐뜯음
(욥1:9)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3) 사자같이 사나움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4) 광명의 천사로 가장함
(고후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5) 공중의 권세를 잡음
(엡2:2)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6) 대적하는 자에게는 피함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7) 교만함
(딤전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8) 악함
(요일2:13)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9) 꾀임
(딤후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죄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10) 궤계를 부림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1) 처음부터 범죄함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4. 마귀의 본질적 특징
(1) 성경에 능한 자
(마4:6)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2) 부자 관계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3) 의의 원수
(행13:10)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4) 사망의 권세 잡은 자
(히2:14)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5) 처음부터 범죄자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6) 대적
(대상21:1)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7) 미혹케 하는 영
(딤전 4:1)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8)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함
(요8:47) 너희가 듣지 아니 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9) 이 세상의 신
(고후4:4)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10) 이 세상 임금
(요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11) 예수를 배반케 함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12) 전도를 막음
(살전2:18)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3) 올무를 놓고 빠지기를 기다림
(딤전3:7)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14) 이적 행함
(계16: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임금들에게 가서
5. 마귀의 권세가 있는 곳
(1) 위가 있음
(계2: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데라
(2) 회가 있음
(계3: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3) 종교를 방해하는 권세가 있음
(고후4:4)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4) 악한 생각을 갖게 함
(행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5) 속게 함
(고후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6. 마귀의 힘이 미치는 범위
(1) 하나님의 허락 내에서
(삿9: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며
(2) 여호와께서 부리심
(삼상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르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3) 공중
(눅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느니라
(4) 천하
(계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5) 사람의 마음
(요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 마귀가 시험하는 방법
(1) 먹는 것으로
(마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2) 보는 것으로
(마9: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3) 우상 섬기게 함으로
(계9:20)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8.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
(1) 말씀으로
(마4:1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이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노니라
(2) 주의 이름으로
(행16:18)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3) 대적함으로
(약4:7)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4) 성령을 힘입어서
(마12:2)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5)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6) 틈을 안 주어야
(엡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7) 전신 갑주를 입으라
(엡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II. 사단에 대한 고찰
1. 사단이 하는 일
(1) 하나님의 말씀 들은 것을 빼앗음
(막4:15)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2) 하나님 대신 사람에게 경배받으려 함
(살후2:4)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3) 하나님을 욕하도록 꾀함
(욥2: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2. 미혹케 하는 사단의 방법
(1) 광명한 천사로 가장
(고후14: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2) 말씀을 의심케 함
(창3:1)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3) 궤계를 사용함
(고후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4) 질병을 나게 함
(욥2:7)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용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5) 어두움을 지배
(엡6:12)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6) 그리스도를 시험함
(마4:1)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3. 사단의 종말
(1) 결박당함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2) 쫓겨남
(요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3) 심판 받음
(요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4) 성도의 발 아래서 상함을 당함
(롬16: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니라
(5) 영원한 불에 들어감
(마25:41) 저주를 받은 잔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계20:10)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관련원어풀이
1. dve 쉐-드
마귀, 악마, 우상.
(신32:17, 시106:37)
2. @f;c; 사-탄
(1) 대적, 원수, 적군
(민22:22, 왕상5:18)
(2) 사탄, 마귀.
(대상21:1, 삼하24:1)
3. daivmwn 다이몬-
(1) 신, 초월적인 능력.
(2) 사악한 귀신, 악한 천사.
(마8:31, 계16:14)
4. daimoniwvdh" 다이모니오-데 -
귀신적인, 악령의, 마귀에 속한.
(약3:15)
5. daimovnion 다이모니온
(1) 신적 능력, 신성.
(행17:18)
(2) 영.
(눅4:33)
(3) 악경, 귀신 마귀의 부하.
(마11:18, 눅7:33)
(4) 귀신을 쫓아냄, 병을 고치는 것.
(마7:22, 눅11:14)
6. diabavllw 디아발로-
원래의 의미는 "∼통해 던지거나 나르다, 찔러 넣다 "이다.
훼방하다, 밀고하다.
(눅16:1)
7. diavbolo" 디아볼로스
(1) 중상하는, 비방하는, 거짓 고소하는
(딤전3:11, 딛2:3)
(2) 중상자, 비방자, 밀고자.
(마4:1,눅4:2)
(3) 마귀에 속해 있다.
(요8:44)
(4) 마귀의 자녀.
(요일3:10)
8. savton 사탄아스
(1) 악령의 왕이며,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숙적.
(마4:10, 행5:3)
(2) 사탄과 같은 사람.
(마16:23, 막8:33)
설교예화자료
마귀의 최고 도구
전설에 의하면, 마귀가 자신의 도구들을 경매에 붙인다는 광고를 냈었습니다. 구매자들이 모여들었는데 거기에 '비매품'이라고 표시된 이상하게 생긴 도구가 있었습니다. 왜 이것은 비매품이냐는 질문에 대해 마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다른 도구는 나누어 줄 수 있지만, 이것만은 안돼, 이것은 바로 내가 갖고 있는 것 중에 제일 유용한 연장이지. 이것은 '낙담'이라고 불리는데 다른 것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마음속이라도 이것만 가지면 뚫고 들어 갈 수 있어. 이것만 사람의 마음속에 집어넣으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거기에 심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단 말이야."
출전의 용기
출전을 준비하던 스파르타의 한 청년이 그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내 칼이 짧으니 적군을 치기에 부족합니다. "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칼이 짧거든 일보 전진하라, 그리하면 내 칼은 얼마든지 적을 칠 수 있느니라. 그리고 네가 가진 방패는 꼭 가지고 돌아오너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 방패 위에 네 시체가 담겨져 돌아오도록 하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마귀와 싸울 때에 짧은 것을 탄식할 것이 아니라 일보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방패 위에 시체가 실려 돌아오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돌진하고 또 그러한 정신을 키워야 합니다.
마귀 숭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사탄 교회의 예식은 주문과 마술, 그리고 방종이 열광적으로 진행됩니다. 묘비석이 식탁으로 쓰이고 정원수가 두개골 위로 자라며, 마치 사탄 숭배가 영적인 면보다 단순히 맹목적인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곳의 의식은 예배당에서 진행되고 사탄의 머리 모양을 한 지도자는 팔 벌린 나체 소녀가 있는 제단 주변에 모이도록 합니다. 의식의 주관자가 이 미사를 진행하며 신도는 모로츠(Moloch),아폴리은(Apollyon) , 아스모데우스(Asmo-deus)라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사탄을 부른다고 합니다.
마귀와의 약속
인간은 현세의 즐거운 일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기의 불사신을 넘겨준다는 사탄 협정에 대한 생각이 비쟌티움(Byzantium)에서 구체화되어 점차 유럽의 민속학으로 침투되었습니다. 그러한 마귀와의 약속은 자기와 같은 계통인 무당에 의하여 맺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협정(규정) 내용은 신의 부인, 예수교의 부정, 세례의 거부, 새로운 사탄의 새 세례에 순응하고 사탄에게 복종하는 맹세를 선서하며 몸의 한부분, 특히 생식기 부분에 특별한 표식을 하기도 합니다.
믿을 수 없는 모기 같은 마귀
외국에 모기를 모으는 취미를 가진 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산 모기를 통에 넣어 잘 길렀더니 7년 만에 무려 12만 3천 4백 52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밤에는 부드러운 솜이불로 침대를 만들어 주고 식사 때는 설탕물과 우유로 대접하였습니다. 여름에는 에어콘으로 시원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따뜻한 스팀을 넣어주었습니다. 어느 날 의사는 세계 각국의 왕들과 대통령, 귀족과 장군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신기한 일을 보여주겠다고 초청장을 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장하신 그리고 높고 귀하신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까지 7년 동안 저는 모기를 잘 길러 왔습니다. 아주 잘 대접했기 때문에 모기는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고, 우리 눈 앞에서 춤을 추면서 재롱을 피울 것입니다. 이것을 보시도록 귀하신 여러분을 초대한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기다리시던 모기통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 모기통이 열어 졌습니다. 모기들이 하나씩 둘씩 나와 사람들의 머리와 손등에 앉았습니다. 처음에는 모기들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냄새를 맡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좋아라 하였습니다. 모기에게 잘해주니까 정말 모기도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5분이 채 지나기 전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생전 피 맛을 보지 못한 모기들이 사람들의 냄새를 확인한 후 사정없이 물어뜯기 시작한 것입니다. 파티에 참석했던 왕들과 귀족들이 부리나케 도망쳐 버렸습니다. "절대로 모기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교훈은 마귀에게도 해당합니다.
사탄의 전략
선한 늙은 수도승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주위에 모여있는 성도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성도들이여, 나는 어제 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지옥에서 열린 악마의 회의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땅에서의 하나님의 일을 무산시킬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사탄의 종 가운데 하나가 말했습니다. '주인님이시여, 나는 외국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의 짐이 옮겨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켰습니다. ', '너는 하나님의 일을 멈추게 하지 못했어.'
그 다음, 사탄의 다른 종이 앞으로 나와 섰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주인님이시여, 나는 많은 책들이 하나님을 거스르도록 쓰여지게 했습니다. 또한 선하고 거룩하고 순전한 모든 것을 거스르도록 쓰여지게 했습니다. ' '글쎄' 사탄이 말했습니다. '그것은 네 형 제가 한 것보다는 조금 낫구나. 그러나 그들은 너를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난 6천 년 동안 하나님도,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그들에게 설득해 왔고, 많은 사람들이 의심없이 나의 말을 믿었다. ', '너는 무엇을 했느냐? ' 사탄이 다른 종에게 물었습니다. 특히 악마같은 얼굴을 한, 사탄의 종들 중의 하나가 말했습니다. '오, 나의 주인이여, 나에게 말하게 해주십시오. 내가 한 일을 당신에게 말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어떤 도시에서 선교 집회가 열렸습니다. 나는 그 선교의 모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회중에게 말했습니다. 이 낯선 사람이 말하는 이 모든 말은 영원한 진리이다. 하나님은 당신들을 사랑하고, 예수는 당신들을 위하여 죽었고, 성령은 당신들을 변론해 준다. 당신들은 영혼 가운데 완전한 평화를 가질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 회중이 나갈 때 나는 그들의 귀에 속삭이곤 했습니다. 내일까지 그것을 연기해라. 어떤 것도 결심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로 미루라고요.'
'하! 하! 너는 사탄의 축복을 받아라 ' 하고 사탄이 말했습니다. '너는 인간을 구원하려는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쳐부수기 위하여 모든 나머지 것들보다 더 잘했구나.'"
사탄의 간계
개미 귀신이라는 곤충은 모래에 조그마한 구멍을 파고 한가운데 들어가 완전히 몸을 감추고 숨어서 바늘 모양의 촉수만 모래에 내놓습니다.
어느 날 조그마한 불개미 한 마리가 세상 모르고 바삐 서둘러 먹이를 찾다가 컵 모양으로 움푹 괘인 곳을 발견하고서 가장자리에 올랐습니다. 잠시 후 모래가 불개미의 발 아랫부분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개미 귀신은 촉수를 벌려서 싹뚝 소리를 내며 굴러 떨어지는 불개미의 다리 하나를 잘라버렸습니다. 불개미는 다시 올라가려고 발버둥쳐 봤지만 다리 하나를 잃은 터라 불가능하였습니다. 개미 귀신은 그때까지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불개미는 다리 하나를 마저 잃었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때야 비로소 개미 귀신은 자태를 들어내보여 이, 삼분 내로 나머지 부분을 먹어 치웠습니다.
개미 귀신은 동일한 방법으로 파리나 다른 곤충을 먹어치웁니다. 개미 귀신은 마치 마귀와 같습니다.
마귀의 승리
마귀들의 큰 모임에서 대장이 나타나 각자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한 결과를 보고하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한 부하는 "나는 광야에 있는 사막의 맹수들을 풀어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달려들게 하였는데 지금 그 자들의 백골은 모래 위에 버려져 있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두목은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 그들의 영혼은 이미 구원을 얻었을 것이다. " 또 다른 부하가 말했습니다. "나는 동풍을 몰아다가 기독교인들이 탄 배에 충돌시켰더니 그들이 빠져 죽었소." 하였습니다. 그때도 역시 두목은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다. 영혼은 이미 다 구원을 얻었느니라." 다음에는 세번째 부하가 말했습니다. "나는 기독교 신자 한 사람을 치켜들고 잠들게(냉담)하기에 십년 동안 노력하여 성공하였소." 이때 두목은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마귀는 존재한다
어느 목사님에게 고등 교육을 받은 한 청년이 찾아와서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다른 말씀은 다하셔도 마귀가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그 말을 듣자 목사님은 곧장 그 청년을 자기 서재로 데리고 가 독약이라고 써 놓은 조그마한 병을 꺼내어, 그 병의 상표를 지워버리고 사탕이라고 기록한 후, 그 청년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목사님을 바라보며 "목사님, 분명히 독약이라고 기록한 것을 지워버리고 사탕이라고 기록하면 어떻게 됩니까? 위험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잔잔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보게 청년,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는 마귀가 있다고 말했고,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으므로 강단에 선 주의 종들을 분명하게 마귀를 마귀라고 말해야 되지 않겠는가? 자네의 불만을 없애 주기 위해 마귀가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이는 마치 독약을 사탕이라고 해서 먹게 하는 죄를 범하는 것과 같은 것이네."
어록·시·묘사
밥 한 알이 귀신 열을 좇는다. <*귀신이 붙은 듯이 몸이 쇠약해져도 밥을 먹고 건강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뜻>
(한국 속담)
계로(季路)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가 대답을 하였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
(논어)
귀신의 이치는 듣고 보아서 알거나 헤아려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황/ 퇴계집)
귀신이란 아마 평화와 명랑의 천사가 오기만 하면 쫓아낼 수 있는, 우리의 생명 속에 있는 가라앉지 못한 찬성인지도 모릅니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귀신은 경문에 막히고 사람은 인정에 막힌다.
(한국 속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이치에 닿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하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빈정거리는 말>
(한국 속담)
귀신을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 <*한가지 재화를 피하려다 도리어 더 큰 액을 당하였다는 말>
(한국 속담)
도깨비는 방망이로 떼고 귀신은 경으로 뗀다. <*귀찮은 존재를 메는 데는 특수한 방법이 있다는 말>
(한국 속담)
고마니 귀신이 붙었다. <*무슨 일이든 잘되려고 하다가는 무슨 액운에 걸려 또 그만 정도에 그치고 말게 됨을 이름>
(한국 속담)
귀신의 이치는 듣고 보아서 알거나 헤아려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황/ 퇴계집)
사람이 생겨날 때에는 기운도 있고 넋도 있는 것이니 이 기운이란 것은 사람의 정신이 왕성하다는 징조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며 죽으면 몸뚱이는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인데 이것을 귀(鬼)라고 하며, 혼과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신(神)이라고 부른다. 신을 합해서 제사 지내는 것은 효도의 지극함이며 자식을 가르치는 방법이 여기에서 비로소 생기게 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뼈와 살은 들판 위에 떨어져서 흙으로 변해 버리게 되고 혼과 기운은 위로 치솟아서 이것이 귀신이 나타나는 상징이 된다. 그러므로 성인께서는 물건의 정기(精氣)에 인해서 지극한 법을 만들고 이것을 귀신이라 이름 지어 백성에게 법이 되도록 한 것이다.
(孔子家語)
대체 이렇게 숱해 많은 귀신들이 한 부대는 넉넉한가 본데 겨우 그 앞에 차려 놓은 것만 가지고 나누어 먹자면 대가리가 터지게 싸움이 날텐데 본시 귀신이란 형체가보이지 않는 것이라 그런지 저희끼리 오쟁이를 뜯는 꼴 볼 수 없다.
(채만식/ 탁류)
귀신같이 먹고 장승같이 간다. <*걸음 잘 걷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
(한국 속담)
세계는 회전하며 있는/ 사악한 것입니다/신의 모습은/ 악마에게 좀먹히고 있습니다.
(A.B. 리들러/ 잠들기 전에)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이 빵이 되도록 명하여 보아라'/ 목소리는 유혹의 굴레가 되어/ 목에 죄어진다.
(시마자키 미쯔마사/ 광야의 유혹)
'사단아 물러가라'하는 명령으로 벽의 마술을 깨뜨리는 자만이/ 광야를 건너 진실된 거리에 들어 갈 수 있으리라.
(다카하시 무쯔오/ 광야의 시험)
새벽녘 저쪽 신기루의 그림은/ 지상에 번영하는 모든 나라들/ 뾰죽탑에 둥근 지붕, 궁전을 중심한 서울의 넓은 길/ 풍성한 시장과 우직한 국민 게다가 옥좌/ 권력이 진리를 설교하면 호랑이에 날개 달린 격/ 영혼과 육신을 구하니 양손에 꽃이라 단지 조건이 하나 있나니 악마에게 경배하는 것// "하나님만 섬기라니 딱딱하도다/ 그렇듯 귀중한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귀중한 아들이면/ 이 예루살렘성전 지붕 꼭대기에서/ 백 척 아래 돌마당을 향해 뛰어내려 라/ (천사가 너를 붙들리라)는 것은 거짓이냐 참이냐/ 보는 사람은 믿을 것이며 자신도 생기리라/ 초능력은 취미와 실질적인 이익, 차원이 다르다"// "악마도 성서를 인용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기록된 말씀을 모르는가, 사단아 물러가라/ 내가 섬기는 분은 내 하나님뿐이시다"/ 예수의 목소리는 늠름하게 울리고 악마는 화염의 깃발을 내린다/천사의 무리 하늘에서 날아오고/ 붉은 태양이 고요히 지평에 솟아 올랐다
(가와다 야스코/ 황야의 시험)
성제(聖帝)의 혼이 아들을 낳았구나. 여기는 비형랑(鼻刑郎)의 집이 다. 날고 뛰는 잡귀들아 이 곳에는 머물지 말아라.
(삼국유사/ 향속)
여자는/ 언제나 사랑하고 깨끗하여/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뱀의 암시에서 빠져나올 수 없어/ 의혹과 뉘우침과 욕망 사이를 계속 방황하였다.
(토우 가즈코/ 하와의 후예)
마귀야 따에 끌리는 네 검은 옷자락으로 나를 다려가거라/ 늙어지는 밤이 더욱 닥어 들어/ 철책 안 김승이 운다.
(오장환/ 헌사)
주린 범의 코 앞에 서서/ 먹이감을 대신 찾아준다는 호귀(虎鬼)처럼/ 그는 자기를 버린다.
(이동순/ 이방협 -밀정 열전 · 18)
모두들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그가 죽던 날/ 하늘과 땅의 온갖 귀신들이 모여들었다/‥‥ 파리 떼처럼 꾀어든 귀신들은/전리품을 두고 아귀다툼하듯/ 그의 살을 바르고 뼈를 추리고/ 떠나려는 그의 영혼마저 차압하였다.
(윤형근/ 열명길)
오오, 나는 진정 애가 탄다/ 악마가 유황 (硫黃)을 방귀 뀔 때/그때 네가 어떻게 그와 입 맞추는가 보러/ 악마의 야연(夜宴)에 가지 못함을/ 오오, 나는 진정 애가 탄다.
(C.P. 보들레르/ 요괴)
털이 숭숭한 악마의 손톱이/ 나의 목덜미를 잡아 젖혀/ 등을 휘어잡는 것을 느낀다.
(K. 크롤로프/ 럼주의 병을 가진 자화상)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귀신들이 온다. 바람에 불려 말을 타고 구름을 차면서/땅에서는 풍악이 일고 우는 듯 흐느끼는 듯 비파소리 늴리리 피리 소리./무당은 사르르 치마를 땅에 끌어 춤을 춘다. 가을을 밟고./ 계수나무 잎사귀 바람에 떨며 계수나무 열매는 떨어지고/ 삵괭이는 피를 토하며 울고 여우는 겁에 질려 죽는다. / 벽에 그린 용을 타고 금빛 꼬리를 뒤트는 귀룡 휘몰고/ 비의 신은 못 속으로 들어가고 백 살 먹은 올빼미는 도깨비가 된다. 고목에 살기 고목 도깨비/ 웃음소리 푸른 불빛 둥우리에 사위롭다.
(이하/ 신현곡)
설 교 노 트
표를 받음
계13:16
서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마귀도 자기 권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표를 받게 하여 구별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귀의 표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 표를 받으면 죽을 때까지 마귀의 권세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1. "표"란 무엇입니까?
이 "표"는 증명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국가가 그들의 주의와 사상 밑에 국민을 통제할 목적으로 발행하여 그 나라 사람들은 사업을 하든지, 여행을 하든지, 이 통제의 허가 증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통제법에 부합하는 인격이 아닌 자는 그의 생존권과 인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국가의 정치 체계가 그와 유사합니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가려면 통행증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수십 가지의 증명서가 있어야만 살 수가 있는 곳입니다.
2. 어디에 표를 받습니까?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른손은 일하는 손으로 봉사와 활동의 손이며, 또 사람과의 교제시에도 가장 적절히 사용하는 지체인 것입니다. 물론 왼손도 사용을 하지만 그래도 왼손보다는 오른손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왼손은 불구가 되거나 없어도 그렇게 불편하지 않으나 오른손은 조금만 다쳐도 모든 일을 하는데 있어서 무척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또 이마는 사람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마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마와 오른손에 마귀의 표를 받았으니 꼼짝없이 적 그리스도의 수중에 장악된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3. 표 받은 자의 신분
(1) "작은 자나 큰 자나"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작고 크다는 것은 그 육체의 대소로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인격이나 사회적 지위나계급들을 분간하여 작은 자 또는 큰 자로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부자나 빈궁한 자나"라고 하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부요한 자나 가난한 자는 어디 서나 차이가 생깁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빈부의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언제나 누구든지 침투하여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3) "자유한 자나 종들도"라고 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 사람의 신분이 자유 시민이든지 노예이든지 마귀는 점령하려고 덤벼듭니다.
자유 시민을 영적 노예로 삼고, 노예 역시 영적 노예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결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이름으로 발행된 표를 받지 않은 자는 축복받은 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귀를 대적하는 생활을 하여 마귀의 표를 받지 말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김
마4:1-11
서론
우리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할 때 마귀의 시험을 받게 됩니다. 시험을 이기지 못한 자는 쓰러지게 되고, 조절하게 되며, 하나님에게 멀리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알지 못할 정도로 교활하게 시험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살펴서 마귀의 시험임을 감지하여야 하겠습니다.
1. 마귀의 시험은 어떠합니까?
마귀는 '시험하는 자'로 나타납니다. 여기의 '시험'이라는 용어는 '유혹 또는 미혹'이란 의미입니다.
욥의 경우에서 몇 가지의 시험의 종류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으나 물질로 시험받아 일시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욥에게는 열 자녀가 있었으나 대풍이 쳐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으로 시험합니다. 욥의 육신을 마귀가 쳐서 악창이 나게 하였습니다. 또 제일 가까운 아내로 시험합니다.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고 한 것은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로 시험합니다. 마귀는 욥의 세 친구들을 동원하여 욥을 괴롭혔습니다.
욥은 물질로, 자녀로, 건강으로, 아내로, 친구로 시험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무수한 시험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때로는 고통스럽게, 때로는 달콤하게 접근하여 시험합니다.
2. 마귀의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세 가지 시험에서 이기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시험을 이기는 근본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양식으로 시험하였으니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가장 잘 넘어가는 시험은 바로 양식 문제로 오는 시험입니다. 양식을 벌기 위해서 주일날 직장에 나가야 하고, 좀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을 믿음으로써 이길 수 있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야고보서 1장 14절의 말씀대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라고 한 것은 그 주된 원인의 하나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도록 시험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대속의 십자가사역을 감당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와 의혹을 갖도록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려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마귀의 유혹에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시며 사탄을 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3) 마귀는 거짓 영광으로 시험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마귀는 예수에게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속 마귀를 대적하여 시험을 이기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를 의심할 때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유혹과 미혹의 공격에 빠진다고 하여도 우리가 그의 말씀을 지키면 시험을 이기게 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여 마귀를 쳐서 물리치고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라합을 돕는 자들
욥9:13
서론
본문에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아래 굴복하겠거든"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라합은 여호수아서에 기록된 기생 라합이 아닙니다.
"라합"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 우선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라합이라는 이름의 뜻
라합이라는 말은 '용'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계12:3-12). 창세기에는 사탄을 뱀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창3:1).
라합은 바벨론 신화에 등장하는 리워야단(Leviathan), 혹은 더아마트(Tiamat)로 불리는 바다 괴물을 가리킵니다.
일설에 의하면 근동(近東)에 고대로부터 '라합'이라는 크고 무서운 해중 괴물이 있어서 하나님과 싸운다는 신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욥기 26장 12절에는 라합을 바다 전체로 말하였습니다. "그는 권능으로 바다를 흉용케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쳐서 파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신화에 의하면 이 큰 괴물은 부하들과 함께 천국을 공격하였으나 하나님의 크신 능력으로 이를 물리치셨습니다.
이 상상적 괴물을 히브리인들 '라합' 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을 가리켜서 '라합'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2. '라합'이라는 말의 뜻
이 말의 뜻은 '교만'입니다.
욥은 이 무서운 괴물과 그 부하들의 구축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같이 무력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감히 진노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느냐고 차단하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욥이 이 말을 할 때에 참으로 그 괴물의 신화를 의중에 두었다고는 생각해도 욥이 그신화의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고 이런 말을 하였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려는 교만에서 하나님을 대항하다가 패배하고 하늘에서 쫓겨나서 공중에 자리잡고 사는 사탄이 된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사탄을 말하지만, 사실 그 공중은 사탄의 유배지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라합을 힘있는 괴물로 보고 그를 돕는 자들이란 그의 무리로 본다면 욥의 말은결국 "역사의 무리라도 하나님 앞에 무력하거든 하물며 미약한 나리요"'하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말을 '교만한 자를 돕는 자'라고만 번역한다면 단순히 신을 저항하는 일에 동참하여 힘을 주는 악한 자들을 뜻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라합을, 즉 사단을 돕는 자들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시지 아니하시면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아래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마귀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여도 그를 돕는 자들의 권세가 아무리 강하여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항하는 무리는 누구든지 사탄이든 사람이든 결국에는 다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은 믿음으로만 살아야 하겠습니다. 악한 사단이 아무리 우리를 넘어뜨려서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 놓으려 해도 굳건한 신앙으로 담대히 대적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의 역사
살후2:9-12
서론
사탄은 언제나 성도들을 유혹하며 시험에 빠지게 하는 역사를 합니다. 더욱이 마지막 때를 맞이하여 제때가 얼마 남지 아니함을 알고 크게 분내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해서 사탄의 역사에 대비해야 합니다.
1. 사탄은 어떻게 역사합니까?
사탄의 역사는 본문에 "그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음으로 멸망하는 자에게 일한다"고 하신 대로 속임으로 미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온갖 이단 사설로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하니 우리는 항상 주의하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밤낮으로 성도들을 참소하여 무슨 죄를 지었다고 고소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마귀는 틈만 있으면 성도의 마음에 들어가려고 기회를 살피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마귀가 틈타지 않도록 조심하여서 혈기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마귀는 성도들간에 간사하게 이간을 붙여 분쟁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약하고 영적으로 무장이 되지 않은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음을 강하게 하고 영적으로 튼튼하게 무장해야 되겠습니다.
2. 왜 사탄의 미혹을 받습니까?
모든 범죄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기 때문에 범하게 됩니다. 또한 이단 사설에 유혹되어 멸망의 길을 달리는 자들은 모두가 참된 성경의 말씀인 진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대로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을 따라 무슨 이상한 표적과 체험, 불건전한 신비적인 방언, 환상, 진동, 입신 등 이러한 것을 말씀보다 더 좋아하여 미혹을 받아 신앙의 정조와 재산까지 다 빼앗기고 패가 망신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말씀에 순종하여 사탄의 미혹을 받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 사탄을 좇은 결과는 어떠합니까?
본문에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을 얻지 못함이니라"고 한대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고 거절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구원의 시작과 기초가 진리의 말입니다.
진리의 사랑은 거절하면 심판과 멸망을 받게 됩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반대하는 것입니다. 노아가 선포하던 진리의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홍수의 심판을 받았고, 소돔 ·고모라 사람들에게 이 성이 멸망할 것이니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다가 멸망한 것과 같이, 진리의 말씀이 사랑을 거절하고 받지 않은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때 그 심판과 정죄를 받아 지옥의 멸망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
본문에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 리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사탄의 권세로도 온갖 이적과 권능을 행하고 천하를 미혹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여 사탄을 대적하여 구원을 얻고 영광을 누리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마귀란 무엇인가
엡6:10-20
서론
마귀는 보이지 않는 악신입니다. 마귀는 흑암에 속한 자로서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잘 감춥니다. 사람들에게 그 정체를 감춤으로써 자기의 활동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 마귀는 태초부터 마지막 때까지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대적케 하는 사람들의 최대의 적입니다.
마귀는 진실한 신자들의 증거를 파괴하며 도덕과 예절, 영성의 흔적마저 없애려고 격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알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1. 마귀의 정체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천사 가운데서 하나님에 범죄하고 자기 처소를 떠나 타락한 천사입니다. 유다서 1장 6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타락한 천사 중에서 우두머리가 마귀이고 나머지는 마귀를 돕는 악령들입니다.
그의 사악한 속성을 그의 호칭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혹하는 자, 속이는 자, 살인자, 거짓말쟁이, 참소자, 시험하는 자, 악한 자" 등으로 성경은 마귀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마귀의 사역
마귀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마귀가 힘써 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일을 위해서,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궤계를 쓰고, 올무를 놓고, 간교한 계략을 꾸미며, 미혹하고, 대적하고, 꼬이고, 막고, 핍박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을 지배하며 이 세상의 임금(요12:34)이 되어 많은 신자들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하여 모든 인류를 죄 가운데로 빠지게 한것도 바로 이 마귀의 간교한 유혹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 마귀는 특히 신자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려고 온갖 사악한 일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이 마귀를 담대히 대적하여 마귀의 술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만 하며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3. 마귀는 믿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완전히 무장하여야 합니다. 진리를 믿고, 진리대로 사는 자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또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의롭게 사는 자로서 의의 흉배를 붙이고, 복음을 믿는 자로서 복음의 신을 신고,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자로서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을 확신한 자로서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무장한 자로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은혜로 강해진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곧 기도하기를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며 늘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이런 것 외에 사람의 힘이나 다른 무엇으로도 마귀를 이길 힘은 없습니다.
결론
마귀는 타락한 천사로서 능력자이며 간교한 파괴자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공격적이며 모든 수단을 다 쓰는 자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에게 나타날 때에는 광명한 천사처럼 나타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예술과 생활 등을 지배하지만 결국은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무장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강해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만 우리는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큰 용(사단)이 내어 쫓김
계12:7-9
서론
하늘에 있던 용(사단)이 미가엘과의 싸움에서 패전하여 내어 쫓기어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용에 대한 근본적인 사실들과 내어 쫓기는 경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큰 용의 여러 이름들
큰 용이라고 부른 마귀의 명칭이 성경에는 약 40여종이나 되지만 본문과 계시록에 나타난 명칭들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용, 큰 용(계12:7, 9)
(2) 옛 뱀(계12:9)
(3) 마귀(계12:9)
(4) 사단(계12:9)
(5) 온 천하에 꾀는 자(계12:9)
(6) 땅의 임금(계19:19)
(7) 귀신(계16:14)
(8) 환난을 받게 하는 자(계2:10)
(9) 무저갱의 사자(계9:11)
(10)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운 자(계20:10)
2. 큰 용(사단)의 경로
(1) 하늘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타락하기 전에는 천사로서 영광스러운 직분을 소유하고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 책임을 감당하다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남(유1:6)으로 결국 사단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지금은 공중에서 권세 잡은 자입니다(엡2:2).
엡2:2에서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이 세상 권세를 주관하는 자라는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권세를 잡았다. '는 것은 '공중이 사단의 유배처'라는 해석이 더욱 타당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권세를 가지고 사단과 하나님의 전쟁을 한다는 식의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단은 이미 패전하여 공중으로 유배된 것입니다. 그에게는 세상을 다스릴 권세가 없습니다. 다만 미혹시킬 뿐입니다.
(3) 땅으로 쫓겨납니다(계12:9).
주님께서 공중에서 재림하실 그때에 이 공중에 유배된 사단은 땅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공증에 유배된 사단이 세상을 미혹하는 행위를 그냥 방임해 두어서는 안될 것이니 땅으로 들으실 것입니다.
(4) 무저갱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계20:1 -3).
재림하신 주님께서 성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지상 천년 왕국 시대) 왕노릇 할 터이니 사단을 지상에 방임해 둘 수 없으며 큰 사슬로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5) 유황불 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계20:10).
백보좌의 대심판이 끝난 후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상의 내용을 보면 사단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특별 창조로 지음 받은 거룩한 천사가 반역함으로 나타나는 무거운 죄악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사단의 경로를 하여 잘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죄의 심각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껴 죄와 싸워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포도원을 허는 여우
아2:10-17
서론
본문 아가서는 히브리어 원문을 참고해보면 '노래 중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노래인가 하면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자와의 열렬한 사랑을 소재로 하여 영적 차원에서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사랑의 교제를 묘사하고 있는 신성한 노래 중 노래라는 말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일반 시인들까지도 논평하기를 "아가서는 이 세상 많은 시가 중에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시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아니합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우리를 위하여 포도원을 허는 작을 여우를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지니고 있는 깊은 사상과 교훈을 영적 차원에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포도원의 의미
성경에 포도원에 대한 비유와 교훈이 많이 사용되어 있습니다. 사5:7에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는 나무는 유대 사람이라"고 하였고, 요15:1에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포도원의 의미는
(1)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포도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구속하사 성별하신 생명의 집단으로써 공회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2) 유대 사람이 하나님의 포도원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이 거룩한 하나님을 모신 성도들의 가정이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것입니다.
(3) 우리 개인의 심령이 하나님의 포도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포도나무 원체 이신 주님에게 접촉되어 있는 가지로서 하나님이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포도원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의 심령은 하나님의 포도원으로서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말입니다.
2. 여우의 의미
성경에 여우에 관해 많은 교훈과 비유가 있습니다. 겔13:4에 "이스라엘아 너희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고 하였고 눅13:32에 헤롯왕을 지적하여 여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여우의 의미는
(1) 여우는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악령 마귀는 언제나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나 가정이나 우리 심령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2) 여우는 적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역사적으로 애굽의 바로 왕이요, 로마의 네로 황제를 상징한다면 언제나 이 세상 무력으로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를 파괴하게 됩니다.
(3) 여우는 거짓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간사하고 간교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를 혼란케 하고 무너뜨리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하는지 여우의 특징을 살펴보면
① 교활성을 지닌 동물입니다. 교활한 방법으로 활동합니다.
② 회의성을 지닌 동물이라고 합니다. 의심을 발생케 하여 타락시킵니다.
③ 후견성 있는 동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보게 합리다.
④ 부패성을 지닌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세상 썩어질 것을 추구하게 하여 마침내는 진리와 신앙과 생명의 노선에서 이탈하게 합니다.
3. 여우를 잡아야 할 이유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포도원인 교회를 허는 여우는 잡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1) 하나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려는 여우는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교회의 보존을 위해서 잡아야 합니다.
여우는 하나님의 교회를 침해하며 파괴하기 때문에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3)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의 교제를 방해하기 때문에 잡아야 합니다.
여우는 언제나 주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며 주님과 멀리 떠나게 합니다. 이와 같이 잔악한 여우는 잡아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교회와 그 자녀들을 미혹하는 여우(마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과 대결에서 완전히 참패하였으므로 이 마귀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힘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말씀으로 무장하여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겠습니다.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요8:44
서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으레 하나님의 자녀인 것으로 생각하며 자랑하는 그들을 엄히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였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임을 이미 여러 번 밝혔으나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즉 그들은 마귀에게서 났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과연 마귀에게서 난 자와 하나님의 자녀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 되겠느냐?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고 그들의 자손들은 온 천지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는 다 아담의 후손이니 결국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류가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패된 심령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자녀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뻐하고 그 뜻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자이어야 할 것입니다.
2. 마귀의 말을 듣는 하나님의 자녀는 없다.
마귀의 말을 듣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라고는 더구나 말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따귀의 속삭임을 따르는 자는 분명 마귀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라 그 속에 진리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이렇게 둘로 구분되어 집니다. 그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특성은 살인자이니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를 꾀어 사망으로 인도하였고(롬7:8, 11) 거짓말을 하였던 것(창3:4, 5,요8:44)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참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마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살인 대신 사랑이, 거짓말 대신 참이 그 마음과 생각을 다스릴 것입니다.
3. 누구의 자녀인가 분별하도록 하라.
과연 나는 누구의 자녀인가를 분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여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돌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손은 조상의 유전이 아닌 오직 믿음에 의해서 결정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들도, 예수님 당시의 모든 사람들도, 또한 현시대의 모든 인류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의 자녀 인가'의 질문에 자기 자신은 알 수 있는 것입니 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타납니다.
결론
모든 인간은 마귀의 자녀이거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둘은 동시에 취할 수도 없으며,그 중간 지대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이름 아래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이면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빛으로 소금으로 세상에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마 음
성 경 활 용
1. 성경에 표현된 마음의 종류들
(1) 상한 마음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 정한 마음
(시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3) 근심하는 마음
(창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4) 자원하는 마음
(출25:2)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5) 정직한 마음
(시64:10) 의인은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6) 교만한 마음
(잠18:12)사랑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7) 사악한 마음
(신15:9)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잠16:14)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적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8) 떠는 마음
(신28:65)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9) 온전한 마음
(대하25:2) 아마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를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10) 두 가지 마음
(약4:8) 죄 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11) 청결한 마음
(시24: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마5: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12) 패려한 마음
(잠11:20)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13) 지혜로운 마음
(잠10:8)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14) 즐거운 마음
(잠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15) 슬픈 마음
(잠14:13) 운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겔27:21) 그들이 다 너를 위하여 머리털을 밀고 굵은 베로 띠를 띠고 마음이 아프게 슬피 통곡하리로다
(16) 굳은 마음
(겔11:19)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17) 새로운 마음
(겔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18) 한마음
(렘32:3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도를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19)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마음
(겔25:15) 블레셋 사람이 옛날부터 미워하여 멸시하는 마음으로 원수를 갚아 진열코자 하였도다
2. 마음에 관한 여러 표현들
(1)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다
(아5:2)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2)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김
(삼하7:27)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3) 영원히 살게 됨
(시22:26)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4) 마음에 달다
(잠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5)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하다
(잠28: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6) 하나님 앞에서 급한 마음으로 말하지 말 것
(전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7) 마음과 손을 하나님께 들자
(애3:41)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8) 마음이 피곤함
(애5:17) 우리 마음이 피곤하고 이러므로 우리 눈이 어두우며
(9) 지혜자와 우매자의 마음
(전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10)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힘
(마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1)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
(엡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12) 마음이 주께 말함
(시27:8)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13) 의지함
(시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3. 거듭난 자의 마음
(1) 상한 마음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2) 새롭게 된 마음
(사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엡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3) 성실한 마음
(엡6: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4) 순전한 마음
(행2:46)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5) 넓은 마음
(시118: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오면 내가 주의 계명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고후6: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6)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고전2: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7) 단련된 마음
(시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 하거니와 여호와의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8) 지혜로운 마음
(출35:35)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9) 완전한 마음
(시101:2)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
4. 마음에 관련된 성경 교훈들
(1)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2)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할 것
(삼상2:1) 한나가 기도하며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3) 마음으로 믿음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4) 마음을 다하여 의뢰하고
(잠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5) 말씀만 경외할 것
(시119:161) 방백들이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6) 정직할 것
(시97:11)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
(7) 깨끗할 것
(시73:1) 하나님의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딤전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8) 참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것
(히10:22) 참 마음과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9) 형제를 사랑할 것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10) 마음을 같이 할 것
(벧전3:8) 너희가 다 망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빌2:2)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11) 겸손할 것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12) 인색하지 말 것
(신15:10)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5.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
(1) 마음을 감찰하심
(렘12:3)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롬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2) 강팍케 하심
(출4:21)내가 그의 마음을 강팍케 한즉 그가 백성을 놓지 아니하리니
(애3:65) 그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고 저주를 더하시며
(3) 굳은 마음을 제하심
(겔11:19) 그 속에 새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4) 새마음을 주심
(삼상10:9) 그가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킬 때에 하나님이 새마음을 주셨고
(5) 열어주심
(눅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6) 가리우심
(욥17:4)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워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7) 연단하심
(잠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8) 시험하심
(시17:3) 주에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곤고하시며
(9) 소원을 주심
(시21:2)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10) 성령을 주심
(고후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11) 둔하게 하심
(사6:10)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12) 예수가 계심
(엡3:17)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13) 모든 마음의 비밀을 아심
(시44:21)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 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14) 마음을 지으심
(시33:15)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15) 인간의 마음을 짐승의 마음으로 바꾸심
(단4:16)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16) 마음을 저울질하심
(잠24: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17) 마음을 소성케 하심
(사57:15)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18) 마음을 굳게 하심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19) 위로하심
(살후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과 굳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6. 마음에 관한 하나님의 경고
(1) 악한 일에 기울어지는 것
(시141: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2) 여호와를 떠나는 일
(렘17:5)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3) 마음을 지켜야 함
(잠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4) 가증한 것을 좇는 일
(겔11:21) 미운 짓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좇는 자는 내가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갚으리라
(5)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는 일
(잠5:12) 내가 어찌하여 훈계를 싫어하며 내 마음이 꾸지람을 가벼이 여기고
(6) 음녀의 길로 치우치는 일
(잠7: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7) 두 마음을 품는 일
(호10:2) 저희가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죄를 받을 것이라
(8) 여호와를 원망하는 일
(잠19:3)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bb;le 레-바브
(1) 마음, 심장.
(삼하18:14, 시45:6)
(2) 영혼, 생명.
(시73:21, 렘4:18)
(3) 감각이나 감정의 좌소.
(신4:29, 시104:15)
(4) 행동이나 사고방식.
(왕상3:6, 시51:12)
(5) 의도나 목적의 좌소.
(삼상14:7)
2. ble 레-브
마음, 정신.
(단7:28)
3. h'B;l' 립 바-
마 음 , 정 신 (시7:10, 잠15:11)
4. bl;j; 헬-레브
(1)살전, 살짐, 비만.
(레3:3, 4:8)
(2) 가장 최상의 것, 탁월함.
(신32:14)
(3) 살진 마음, 강팍,완고.
(시17:10)
5. vp,n< 네페쉬
(1) 숨.
(욥41:13)
(2) 영흔, 생명.
(창35:18, 왕상17:21)
(3) 정신, 마음.
(창34:3, 시6:4)
(4) 의지나 의도.
(창23:8, 대상28:9)
(5) 이해와 사고의 기능.
(시139:14, 잠19:2)
(6) 동물.
(수10:28)
6. h[,me 메-에
(1) 창자.
(창15:4, 삼하7:12)
(2) 배, 위, 자궁.
(창25:23, 시71:6)
(3) 가슴, 심장, 내적 영혼.
(욥30:27, 사16:11)
7. Tev][' 아쉬-트
(1) 제조된 것, 솜씨, 기술.
(아5:14)
(2) 생각, 의견.
(욥12:5)
(3) 열한 번, 열한 번째.
(신1:3, 겔26:1)
8. tv][' 아솨트
생각.
(시146:4)
9. j"Wr 루-아흐
(1) 영, 숨, 입의 숨, 호흡.
(욥7:7, 시33:6)
(2) 살아 있는 영, 생명.
(창6:17, 욥17:1)
(3) 숨, 호흡.
(욥4:9, 시18:6)
(4) 성냄, 분노.
(삿8:3, 슥6:8)
(5) 공기의 호흡, 대기, 미풍.
(욥41:8, 렘2:24)
(6) 숨, 호흡, 생명 · 생명의 원리. 원천.
(창45:27, 삿13:9)
(7) 이상적인 마음, 또는 영혼.
(창41:8, 잠25:28)
(8) 하나님의 영.
(출31:3, 욜3:1)
10. !yj'r' 라하밈-
(1) 속부분들.
(잠12:10)
(2) 매우 부드러운 애정, 인정, 사랑
(창43:30, 왕상3:26)
(3) 동정, 자비, 은혜.
(시25:6, 사47:6)
11. @/xr: 라-촌
(1) 즐거움, 만족.
(출28:38, 잠14:35)
(2) 기쁨, 즐겁게 하는 것.
(잠11:1, 말2:13)
(3) 의지, 유쾌, 사악한, 기쁨이나 음탕.
(창49:6)
(4) 호의, 친절.
(시5:13)
12. #['r]c' 솨르아핌-
생각, 사상.
(시94:9, 139:23)
13. fq'v; 솨-카트
(1) 쉬다, 평온을 가지다.
(삿31:11, 사62:1)
(2) 마음이 평안하다.
(겔16:42)
(3) 자신을 평온케 하다.
(사7:4, 57:20)
14. qevlw 델로-
(1) 원하다, 의도하다, 결심하다, 작정하다, 시도하다.
(롬9:16, 약4:15)
(2) 원하다. 바라다.
(마20:21, 요5:6)
(3) 사랑하다, ∼하기를 좋아하다.
(막12:38)
(4)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마9:12, 히10:15)
15. qevlhma 델레-마
(1) 뜻, 의지, 원하는 것, 시도하는 뜻.
(눅22:42)
(2) 의지, 원하거나 바라는 행위.
(눅23:25, 벧후1:21)
16. e[nnoia 엔노이아
개념, 생각, 신상, 취지, 통찰력, 의도.
(히4:12, 벧전4:1)
17. diavnoia 디아노이아
원래의 의미는 "생각, 의향"이다.
(1) 마음, 정신지식, 이해.
(마22:37, 막12:30)
(2) 이해력, 생각, 상상,
(눅1:51)
(3) 통찰, 이해.
(요일5:20)
(4) 사고방식, 감정의 형태, 애착.
(엡2:3, 골1:21)
18. dialogismov" 디아로기스모스
(1) 추론, 추리, 생각, 숙고, 의도.
(마15:19, 눅2:35)
(2) 대화 논쟁, 말, 다툼.
(눅9:46, 빌21:14)
(3) 의심, 망설임, 주저.
(눅24:38)
19. kardiva 카르디아
원래의 의미는 "심장"이다.
(1) 육적, 생명의 좌소나 중심을 의미함,육적 생명의 활력, 또는 감각,
(눅21:34, 행14:17)
(2) 생각, 열정, 소원, 사랑, 의도 등의 근원이나 좌소.
(마5:8, 행5:3)
(3) 감정, 소원.
(눅24:32)
(4) 선행과 악행을 의식하는 영혼.
(요일3:20)
(5) 어떤 사물의 중간이나 중심, 내적 부분.
(마12:40)
20. novhma 노에-마
(1) 정신적인 인식, 생각, 마음의 생각, 목적, 계획.
(고후2:11, 10:5)
(2) 마음, 이해, 지식.
(고후3:14, 4:4)
21. fronevw 프로네오
(1) 생각하다, 의견을 가지다, 판단하다.
(행28:22, 롬11:20)
(2) ~에 마음을 두다, 열중하다, 골몰하다.
(롬12:16, 빌3:16)
(3) 생각이나 태도를 가지다, 마음을 지니다.
(빌2:5)
22. nou'" 누스
(1) 마음, 깨닫고 이해하거나 느낌, 판단, 결정 등의 기능, 지적인 기능, 이해력.
(눅24:45, 빌4:7)
(2) 이성.
(엡4:23)
(3) 진지하고 조용하게, 공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살후2:2)
23. pneu'ma 프뉴마
(1) 공기의 움직임, 한 줄기 바람.
(요3:8, 히1:7)
(2) 영, 생명의 본원.
(마27:50)
(3) 이성적인 영,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고, 의지 결단하는 능력, 영혼.
(고전2:11)
(4) 영,몸을 남겨 둔 인간의 영:육체는 떠난 영혼.
(히12:23, 벧전3:19)
(5) 마귀, 악령.
(마8:16, 눅9:39)
24. proqumiva 프로두미아
열심, 열의, 즐거움으로 하는 마음, 경향, 호의, 성의, 기꺼이 하는 것.
(행17:11, 고후8:11)
25. splavgcnon 스플랑크논
원래의 의미는 "내장, 심장, 간장(행1:18)"이다.
(1) 마음, 마음의 심정.
(고후7:15, 빌2:1)
(2) 사랑, 애정.
(빌1:8, 욘12)
26. yuchv 푸케-
(1) 삶, 생명, 목숨, 생명력, 혼.
(눅12:20, 행2:27)
(2) 세상적인 생명.
(마20:28, 막10:45)
(3) 영혼, 혼.
(눅12:19, 계18:14)
설교예화자료
냇물과 인생
마인츠의 대주교 알베르트는 늘 인간의 마음은 맷돌과 같다고 했습니다. 만일 맷돌 위에 곡식을 쏟으면 맷돌이 회전하면서 곡식을 부수고 가루가 되게 하지만, 곡식을 넣지 않으면맷돌은 그 자신을 부수어 더 얇아지고 작아집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마음은 무엇인가를 행하기를 원하는데 만일 할 일이 없다면 악마가 와서 유혹과 우울과 슬픔을 그 가운데에 쏟아냅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슬픔으로 쇠진해지고, 마음이 약해지면 괴로움으로 죽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마음
리차드 스프루스는 재미있는 문제를 제기한 말래카의 선원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그선원은 말했습니다. "도대체 인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동물이 정한 때가 되면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어떻게 소생시키는가? 새들은 털갈이를 하고, 뱀은 허물을 벗는다. 심지어는 진딧물도 낡은 허물을 벗는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들이 젊었을 때처럼 화려하고 아름답게 된다. 그러나 갈색 눈동자와 쭈글쭈글한 손을 벗어버려야 될 우리는 매년 더 추해지고 퇴색되어 간다. 그리고 이러한 피부를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 "
그러나 이런 짐승들의 이로운 면은 외면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인간이 늘 새로운 피부를 지니기를 원한다면 그는 늘 새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더욱 가치가 있는 이 새로운 마음은 낡은 마음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덧붙이면 그것은 영 원한 젊음을 지닙니다. 그 새로운 마음은 영원히 죽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의 비판 정신
언젠가 한 목동이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모세가 들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 제가 당신의 종이 될 수 있도록 당신이 계신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신을 닦고, 당신의 머리를 빗기고, 당신의 옷을 짓고, 당신께 음식을 바치겠습니다. "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모세는 이렇게 그를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은 영혼이시므로 그런 봉사는 필요없습니다. " 그러자 목동은 당황하여 제 옷을 찢으며 사막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모세를 나무라시며 말씀하시길 "네가 내 종을 쫓아 냈도다‥‥ 나는 그가 한 말보다 그것을 바친 마음을 중히 여기느니라."
마음이 통하는 보석
한번은 어떤 신사가 친구가 경영하는 보석상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친구는 그에게 아주 멋있는 다이아몬드와 다른 훌륭한 보석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보석들 중에 빛이 나지 않는 이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신사는 친구에게 그 보석을 가리키면서 "저 보석은 전혀 아름답지 않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그 보석을 집어서 그의 손바닥에 올려 놓고는 손을 오므리고 있다가 잠시 후에 다시 펴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 신사가 손을 펴자 그 완전한 보석은 무지개 색깔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되었지? "라고 그 놀란 신사가 물었습니다.그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팔이라는 보석이야. 우리는 이것을 마음이 통하는 보석이라고 부르지. 이 보석은 그 훌륭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꼭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거든."
유태인의 탈무드
인간의 육체는 마음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마음은 보고,듣고, 서고, 걷고, 기뻐하고, 굳어지고, 부드러워지고,슬퍼하고, 무서워하고, 오만해지고, 남에게 설득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원망하고, 찾고, 반성합니다. 가장 강한 인간은 그 마음을 조정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어록·시·묘사
마음은 나를 장소로 한다.
(J. 밀턴/ 실락원)
마음이야말로 정신의 인덱스인 것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사람의 마음이란 실뭉치와 같은 것, 얽히려 들면 아무리 애를 써도 얽히기만 하는 것이고,풀리려 들면 술술 저절로 풀리게 마련인 것이다.
(미상)
마음은 아주 미묘한 증거이다. 그 증거를 본 사람은 아직 하나도 없다.
(R. 허버트)
마음은 영혼의 대기이다.
(주베르/ 명상록)
마음은 머리에 유용한 교훈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책이 없이도 자랄 수 있다.
(W. 쿠퍼)
흐르는 것은 액체다. 마음은 끊임없이 흐른다. 그러므로 마음은 액체다.
(조지훈/ 영원과 고독을 위한 단상)
마음은 모든 것의 위대한 지렛대이다.
(D. 웹스터)
마음은 항상 비지 않으면 안되나니, 마음이 공허하면 정의와 진리가 거기 와서 살 것이요, 마음은 항상 꽉 차 있지 않으면 안되나니, 마음이 충실하면 물욕이 거기에 들어오지 못 할 것이다.
(채근담)
마음의 옷이야말로 몸의 옷에 앞서 인정받아야 한다.
(R. 스틸)
바다보다 더 장대한 것은 하늘, 하늘보다 더 장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V. M. 위고)
마음은 정신 이상의 것이다. 마음은 정신이 꽃 향기처럼 사라져도 계속 뿌리로 남기 때문이다.
(F. 뤼케르트/ 바라몬의 지혜)
마음은 다이아몬드와 같아 순수할수록 무게가 더 나간다.
(C.V. 게오르규/ 대학살자)
마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학문보다도 명상이 더 필요하다.
(R. 데카르트)
신과 악마가 싸우고 있다. 그 전장이야말로 인간의 마음이다.
(F. M.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마음은 일종의 극장이다. 거기서는 온갖 지각이 차례차례로 나타난다. 사라져 서는 되돌아와 춤추고 어느새 꺼지고, 뒤섞여져서는 끝없이 여러 가지 정세나 상황을 만들어 낸다.
(D. 흄/ 인성론)
마음은 여러 곡을 연주하는 기계 같지만,그러나 하나씩 차례로 연주한다. 한 생각이 딴 생각을 부르지만 동시에 나머지 생각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만다.
(W. 해즐릿/ 여행길)
마음 바탕이 조촐하여 야 책을 읽어 옛날을 배울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한 가지 선행을 보아도 이를 훔쳐서 사욕을 펴는 데 악용할 것이요, 한마디의 선행을 들어도 이를 빌어서 저의 단처(短處)를 감추는 데 쓸 것이다. 이 어찌 원수에게 병장개를 도와주고 도적에게 양식을 대어 주는 것이 아니리요.
(채근담)
사람들의 마음은 염색이 되어 있다. 어떤 마음은 진하게, 그리고 또 다른 마음은 덜 진하게‥‥‥‥
(이기영/ 미움도 사랑도 아닌)
우리는 마음속에 무엇이고 들여보내지 않을 수 없다. 실망, 걱정, 원한, 이런 감정이 자리잡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일단 마음속에서 나갔다가도, 곧잘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과히 좋지 못한 이런 손님들에게 마음의 좌석을 점령당하지 않도록 평화, 선의, 관용, 이런 부드러운 손님들이 먼저 마음속에 자리잡도록 하여야 한다.
(N.V. 필)
사람의 마음은 일정한 음정을 가진 악기와 비견할 수 있을 게다. 아래위로 그 음정을 넘어서면 영원한 침묵이 있는 악기이다.
(J. 틴들)
저울에 달아 본 다음에야 물건의 輕重을 알 수 있고, 자로 재 본 다음에야 물건의 길이를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마음은 더욱 그러하다.
(맹자)
마음의 본체는 넓고, 크고, 비었고, 밝아 만가지 이치를 다 갖추고 있으므로, 이를 잘 길러 해침이 없다면, 천지와 같이 크고 일월과 같이 밝으며, 크기는 만물을 능히 담을 수 있다.
(이언적/ 회제집)
마음 바탕이 밝으면 어두운 방안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 머리가 어두우면 백일 아래라도 도깨비가 나타난다.
(채근담)
이성은 바깥쪽으로 움직이고 타인에게로 열린다. 마음은 안쪽으로 열리고 자신에게로 열린다.
(D.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성(性)이라는 것은 천리(千里)이니 만물이 품(棄)하여 받아서 한 이치도 갖추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다. 심(心)이라는 것은 한 몸의 주재요, 의(意)라는 것은 마음의 발하는 것이요, 정(情)이라는 것은 마음의 동(動)하는 것이요, 지(志)라는 것은 마음의 가는 것이요, 기(氣)라는 것은 나의 혈로써 몸에 찬 것이다
(주자)
일 없을 때는 마음이 어둡기 쉬우니 마땅히 고요한 가운데 밝음으로써 비추라. 일 있을 때는 마음이 흩어지기 쉬우니 마당히 밝은 가운데 고요함으로써 임자 삼으라.
(채근담)
마음, 즉 진명(眞明)의 마음은 신체의 주인이요, 형(形)은 마음의 심부름꾼이다. 선악 등 여러 가지 일을 임금격인 마음이 명하면 신하격인 형(形)이 행동을 짓는다. 이것이 응보에 있어서는 생명이 있을 때엔 마음과 형이 다 같이 받고, 죽어저는 형을 물러가고 마음 만이 홀로 받은가
(기화/ 현정론)
사람의 얼굴은 추한 것을 곱게 바꿀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세게 바꿀 수 없으며, 키는 짧은 것을 길게 바꿀 수 없으니, 이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이므로 고칠 수 없으나 오직 심지는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게,어두운 것을 어질게 바꿀 수 있으니, 이 것은 마음이란 것이 매우 신령스러워서 타고난 것에는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이/ 율곡집)
마음의 평온함을 얻은 자는 자기 자신에게 나 타인에게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에피크로스/ 단편)
마음은 머무를 줄을 알게 된 후에야 정해지고, 정해진 후에야 조용해질 수 있고, 조용해진 후에야 편안하여 질 수 있고, 편안하여진 후에야 사고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게 된 후에야 터득할 수 있게 된다.
(대학)
자재하기 어렵고 가벼워서 제멋대로 해내는 마음을 억제하는 일은 훌륭하다. 억제된 마음은 행복의 보금자리다.
(반약경)
마음이 있는 곳이 내 집이다.
(플리니)
잘난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선한 마음은 신용장이다.
(벌워 리튼/ 그것으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이 거절하는 것에 손이 닿지 못한다.
(T. 풀러/ 격언집)
내가 좋아하는 사원은 겸손한 마음이다.
(P.J. 베일리/ 축제)
마음은 팔고 사지 못하지만, 줄 수는 있는 재산이다.
(G. 플로베르)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그 입 속에 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의 입은 그 마음속에 있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하나의 착한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머리보다 낫다.
(벌워 리튼/ 父子義를 끊은 사람)
마음처럼 부드럽고도 엄한 것은 없다.
(G.C. 리히텐베르크/ 잠언)
마음이 깨끗치 못하면 비록 산중에 머물러 있어도 도를 이루기 어렵다.
(김만중/ 구운몽)
왜소한 마음은 비상한 것에, 위대한 마음은 평범한 것에 흥미를 느낀다.
(E. 허버드/ 경구)
마음은 자유롭고 구속이 없는 것, -즉 대양의 파도요, 날아가는 새이다.
(J. 파도우/ 포로가 된 그리이스 소녀)
몸이 움직여 지나가면 사람이 그 자취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 지나가면 귀신이 그 자취를 본다.
(지눌)
행복해지려고 하는 마음의 소유자는, 틀림없이 위대하다.
(영/ 夜想)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이리하여 몸을 닦는 것은 마음을 바로 잡는 데 있다고 이르는 것이다.
(대학)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집을 마련하지만, 나중에는 그 집이 마음을 가둬 버린다.
(에머슨/ 처세론 운명)
현명한 자는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고, 미련한 자는 그 노예가 될 것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사람은 한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이 온화하고 기상이 화평한 사람은 百福이 절로 모이게 된다.
(채근담)
심정이 이지보다 더 현명하다.
(J.G. 홀런드/ 캐드리나)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氣로 들으라. 들리는 것은 귀에 그치고, 마음은 아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기는 공허한 상태에서 사물을 받아들인다.
(공자)
피로한 눈으로 허공을 보면 허공의 별꽃이 어지럽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꿈에 들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어지러운 별꽃을 어리지 말고, 눈을 먼저 바르게 하라. 꿈자리가 뒤숭숭함을 괴이타 말고, 마음을 먼저 깨끗이 하라.
(지눌)
마음이 편안하면 초가집도 안온하고, 性情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
(명심보감)
마음보다 더 잔인한 무기는 없다.
(장자)
선악, 행, 불행, 빈부는 마음(생각)의 所爲이다.
(스펜서/ 요정 여왕)
누구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불행하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피 묻은 손보다 더 나쁜 것은 비정한 마음이다.
(셀리/ 첸치 일가)
사람의 마음이란 正에서 나오는 것은 극히 적고, 私에서 나오는 것은 심히 위태하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한 번 놓아 견제하지 않는다면, 처음에는 터럭과 같은 차이가 드디어는 천리나 어긋나게 된다.
(박팽년/ 사육신집)
쇠녹은 쇠에서 생긴 것이지만 차차 쇠를 먹어 버린다. 이와 한가지로 그 마음이 옳지 못하면 무엇보다도 그 옳지 못한 마음은 그 사람 자신을 먹어 버리게 된다.
(법화경)
마음은, 나이 먹을수록 더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빠지고 굳어져 버릴까 두렵다. 젊은 거짓말쟁이는 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며, 젊은 악당은 늙어 갈수록 더 큰 악당이 될 뿐이다.
(체스터필드 경/ 서간집)
적다는 것은 없는 것의 출발점이다. 적어지고 또 적어져서 더 적어 질 것이 없는 상태에 이르면 마음이 비고 신령스러워진다.
(이지함)
힘으로 타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폭군이고, 타인에게 마음을 예속시키는 사람은 노예 이다.
(R. G. 잉거솔)
마음에는 방이 둘 있어, 기쁨과 괴로움이 따로 들어 산다.
(H. 노이만/ 마음)
인생은 정지되어 있지 않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사람은 정신 병원의 환자들이며, 바꾸지못하는 사람은 무덤에 갇힌 자들이다.
(A. M. 닥센)
耳目이 듣고 봄은 바깥 도둑이며, 정욕의 의식은 안 도둑이다. 다만 주인되는 본심이 맑게 깨어 흐리지 않아 뚜렷이 中堂에 앉아 있으면, 도둑이 문득 화하여 집사람이 된다.
(채근담)
어떤 사람들은 피라미드와 같다. 땅에 닿고 있는 부분은 지극히 넓지만 하늘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H.W. 비처/ 일생을 두고 하는 생각)
한쪽 끝에서 돋아나 끝없이 퍼지고 팔방에 두루 번지지만, 다시 이를 거두어 묶으면 한통같이 오므라드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회남자)
마음이 어둡고 산란할 때엔 가다듬을 줄 알아야 하고, 마음이 긴장하고 딱딱할 때는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두운 마음을
고철지라도 흔들리는 마음에 다시 병들기 쉽다.
(채근담)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를과/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마음의 상처는 치료하기 어렵다.
(괴테/ 토르콰토 타소)
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저어 오오./나는 그대의 흰 그림자를 안고, 옥같이/ 그대의 뱃전에 부서지리다. // 내 마음은 촛불이오./ 그대 저 문을 닫아 주오./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다. //‥‥/ 내 마음은 낙엽이오./ 잠간 그대의 뜰에 머무르게 하오./ 이제 바람이 일면 나는 또 나그네같이 외로이 그대를 떠나리라.
(김동명/ 내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나리고/숲은 말없이 잠드나니.
(김광섭/ 마음)
꽃의 마음을 아시윰니까// 해마다 예쁘게 피는 마음을/ 늙을 줄 모르는 젊은 마음을/ 기물수록 기뻐지는 마음을/ 슬플수록 슬퍼지는 마음을/ 기뻐도 슬퍼도 웃는 마음을/ 젊은이도 늙은이도 달래는 마음을/ 남에서도 북에서도 고운 마음을/ 천번 펴도 만번 펴도 같은 마음을/ 일편단심 변함이 없는 마음을// 꽃의 마음을 아시옵니까/ 나의 시의 마음입니다.
(김성휘/ 꽃의 마음을 아시율니까)
중서당(中書堂) 백옥배(白玉杯)를 십년 만에 고쳐보니/ 맑고 흰 빛은 어제론 듯하다마는/ 어떻다 사람의 마음은 조석변(朝夕變)을 하는고.
(정 철/ 송강가사)
바람 자취 없이 불어오고/ 바람 자취 없이 불어가는 / 마음은/ 물결도 달인 양 화안한 거울//낮이면 빨간 능금 가슴에 더웁고/ 밤이면 파아란 별들 우주를 수놓는/ 마음은 / 물결도 달인 양 화안한 거울//백조 깃 적시고 오시는 날에도/ 백조 깃 치고 가시는 날에도/ 마음은/ 물결도 달인 양 화안한 거울.
(김해강/ 마음)
찔레꽃 향기에/ 고요가 스며/ 청대닢 그늘에/ 바람이 일어/그래서 이 밤이/외로운가요/까닭도 영문도 천만 없는데/ 바람에 불리고/물 위에 떠가는 / 마음이 어쩌면 잠자나요/서늘한 모습이/ 달빛에 어려/ 또렷한 슬기가/별빛에 숨어/ 그래서 이 밤이/ 서러운가요/영문도 까닭도/ 천만 없는데/ 별 보면 그립고/ 달 보면 외로운/ 마음이 어쩌면 잊히나요.
(조지훈/ 마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는/ 이제금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뉘우침 없는 일몰이 고요히/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것이란다.
(김남조/ 情念의 旗)
가을은/ 뜨거운 마음을 숨기고/ 헤어지는 계절/‥‥ 사랑은/ 멀리서도 가까이 사는/ 마음이라고 믿자
(김남조/ 고별 · 1)
한평생 예서 끝난 듯이/ 훤하게 빈 마음하나/ 내 몫으로 남아‥‥‥‥
(김남조/ 白菊)
내 마음 베어 내어 저 달을 맹글고자/ 구 만리 장천(長天)에 번듯이 걸려 있어/ 고운 님 계신 곳에 가 비추어나 보리라.
(정 철)
이맘때가 되면/ 당신의 눈은 나의 마음/ 아니, 생각하는 나의 마음보다/ 더 깊은 당신의 눈입니다.
(김현승/ 가을은 눈의 계절)
산첩첩 천봉(千峰)이로되 높고 낮은 짐작 있고/ 창해망망(蒼海茫茫) 만리(萬里)로되 옅고 깊음 알겠고야/사람에 일편심 시각변(時刻變)은 알 수 없어.
(무명씨)
마음아 너는 어이 늙을 줄을 모르는다/ 네 늙지 아니커든 이 얼굴을 젊게 하렴/ 아마도 못 젊는 인생이 아니 놀고 어쩌리.
(김상득)
마음아 너는 어이 매양에 젊었는다/ 내 告을 적이면 낸들 아니 늙을소냐/ 아마도 너 좇겨 다니다가 남 우일까 하노라.
(서경덕)
변하기 쉽고 입만 간 경솔한 마음이여./ 육체의 주인이면서 한패여./ 너는 지금 질리고, 괴롭고, 황폐해진 변두리로 옮겨 간다. / 너는 평생의 쾌활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P. A. 하드리아누스)
부드럽고 관대한 마음으로써 너희의 분노를 이기고 겸양으로써 만심(慢心)을 누르라./ 한 길 진실로써 비틀리는 기만을 말리라./ 마음 후련한 만족으로써 탐욕을 없애라.
(다사니 바야랴스트라)
지쳐버린 마음이여, 지쳐버린 시간에/ 오라, 옳고 그름의 그물 벗어버리고/ 마음이여, 다시 웃으라, 회색 황혼 속에서,/ 마음이여, 다시 탄식하라, 아침 이슬 속에서.//‥‥ 오라, 마음 이여, 언덕에 언덕이 겹친 곳/ 그곳은 해와 달과 계곡과 숲과 그리고/ 강과 시냇물이 신비로운 형제되어,/ 각각 자기들의 뜻을 이루는 곳.
(예이츠/ 황혼과 새벽빛 속으로)
내 가슴은/무덤 속 공허한 벌판/내 마음은/ 까마귀 모여드는 이상스런 둥지./ 그대 가슴은/ 아름다운 개나리론 동산/ 그대 맘은/ 흰 비둘기 같은 순백색.
(장 모레아스/내 가슴은 무덤 속 공허한 벌판)
두어도 다 색는 간장(肝謄) 드는 칼로 베어 내어/ 산호상(山瑚床) 백옥함(白玉函)에 점점이 담았다가/아무나 가는 이 있거든 님 계신 데 보내리라.
(무명씨)
내 마음 저버아 남의 마음 생각하니/ 나 싫으면 남 싫고 남 좋으면 나 좋으니/ 모로미 기소불념(己所不念)을 물시어 인(勿施於人)하리다.
(안서우)
내 오늘도 그대를 위해/ 창 밖에 등불 하나 내어 걸었습니다/ 내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다못해/ 마음 하나 창 밖에 걸어두었습니다/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 드디어 눈이 내릴 때까지/ 내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가난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눈 내린 들길을 홀로 걷다가/ 문득 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호승/ 가난한 사람에게)
천지도 광대하다 내 마음같이 광대/ 일월도 광명하다 내 마음같이 광명/ 진실로 마음 천지일월 같게 하면 요순동귀(亮壽同歸)하오리라.
(황윤석)
내 마음은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며, 공상에 잠겨 온전히 과거 속에 뛰어든다.
(T. 페트로니우스)
가멸가멸 올라가는 / 연실은 어떨까요/ 말하는 마음보다 더욱 먼 마음일까요/ 하늘 너머 하늘 가는/ 그 마음일까요.
(김남조/ 연)
보고 싶은/ 너/ 가을 햇볕에 이 마음 익어서/ 음악이 되네// 말은 없이/ 그리움 영글어서/ 가지도 휘이는/ 열매,/ 참다 못,해/ 가슴 찢고 나오는/ 비둘기떼들,// 들꽃이 되고/ 바람 속에 몸을 푸는/ 갈숲도 되네//가을 햇볕에/눈물도 말려야지/ 가을 햇볕에/ 더욱 나는 사랑하고 있건만/ 말은 없이 기다림만 쌓여서/ 낙엽이 되네// 아아/ 저녁 해를 안고 누운/ 긴 강물이나 되고지고// 보고 싶은/ 너/ 이 마음이 저물어/ 밤하늘 되네
(김남조/ 가을 햇볕에)
지순한 정에 넘치고/ 애오라지 잘 되기를 비는 / 연한 새순같은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주겠는가
(김남조/ 마지막 장미)
이 나랏 사람은/마음이 그의 옷보다 희고,/‥‥ 이 나랏 사람은/ 마음이 그의 집보다 가난하고, 평화와 자유를/ 그의 형제와 같이 사랑합니다.
(양주동/ 나는 이 나랏 사람의 자손이외다)
늙었다 물러가자 마음과 의논하니/ 이 님 버리고 어드러로 가잔 말고/ 마음아 너랑 있거라 몸만 먼저 가리라.
(무명씨)
철창 밖에 눈이 날린다// 내 좋은 눈이여 기까지 찾아주었다//마음은 발돋움을 하고 내다본다// 눈 오는 들판을 내 마음 눈과 함께 달린다.
(노천명/ 눈이 찾아주는 날)
맑은 눈은 우리들/내 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
(김현승/ 창)
내 가슴 속에는/오층탑 넘어 석종을 스쳐간 하늘이 있다/별들을 간직한 하늘의 착한 마음이 있다.
(신석정/ 내 가슴 속에는)
쥐가 천장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 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한다.
(심훈/ 밤)
마음아, 너는 상복을 입고/ 쓸쓸히, 진정 쓸쓸히 누워 있을/ 그 어느 바닷가의 무덤이나 찾아가렴.
(장만영/ 비의 Image)
당신의 마음은 티 없는 숫옥이어요. 그러나 곱기도 밝기도 굳기도 보석 같은 마음이 없는것이 아닙니다. 만일 아름다운 마음만을 사랑한다면 왜 나의 반지를 보석으로 아니하고 옥으로 만들어요.
(한용운/ '사랑'을 하여요)
먹을 갈다가/문득 수몰된 무덤을 생각했다/물위에 꽃을 뿌리는 이의 마음을 생각한다. // 꽃은 물에 떠서 흐르고/마음은 춧돌을 달고 물 밑으로 가라앉는다.
(김상옥/ 먹을 갈다가)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와 서러운 사랑 아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 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박재삼/ 울음에 타는 가을 강)
하늘은/ 늘 열리어 있습니다만/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각박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하늘은 보이는 것입니다. // 늘/ 하늘 아래 살면서도/ 참 오랜만에야 하늘을 보는 것은/ 이따금씩만/ 마음의 하늘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복숙/ 하늘이 보이는 때)
찬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김남주/ 옛 마을을 지나며)
동해바다/ 무한한 공간의 저 영원한 침묵/그대로 둬라/ 섭섭하거든 화가여/ 꼭 하나 무엇 그려넣고 싶거든/ 화가여, 저 높은 곳에/ 천둥이나 하나 큼직하게 달아놓아라/ 너무 빨리도 말고 너무 늦게도 말고/ 그것이 시인의 마음이나니
(김남주/ 화가에게)
슬픔의 날엔 마음 가다듬고/ 자신을 믿으라, / 이제 곧 기쁨의 날이 오리라// 마음은 내일에 사는 것/ 오늘 비록 비참할지라도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마침내 찾아들 석양 노을이며/ 쓸쓸한 내 마음으로 얼룩진 저녁./ 또 조그만 내 손과/그리고 당신 마음 가까이에/ 놓아둬야 할/나의 마음을.
(아뽈리네르/ 선물)
첫눈 위를 서성이면,/ 마음은 타오르는 불길의 은방울꽃./‥‥ 오오 하얀 수면의 아름다움./ 엷은 추위가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에세닌/ 첫눈 위를‥‥‥)
그대에게 묻노니 어이해 산에 사노./ 웃고 대답 않으니 마음은 한가롭다.
(이백/ 산중문답)
사랑하지 않음은 괴로운 노릇/ 사랑하는 것 또한 괴로운 노릇/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사랑에 냉정한 사람의 마음.
(아나크레온/ 사랑하지 않음은)
마음이 우울한 감옥 속으로 감금되어 질 때
(G.R. 크리슈나/ 진실이 속으로 숨겨질 때는‥‥‥)
그러나 당신을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는/ 당신에게 "마음"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 당신으로 영원한 기쁨 속에 잠기게 하고/크나큰 환희 속에 살게 하여 주십니다. / 당신에게 설레는 "마음"을, 빛나는 얼굴을/ 은혜에 넘치는 입술을/ 큰 강과 바다의 기쁨을 주실 수가 있습니다.
(로제티/ 그리스도는 "마음"을 주신다)
그 다음 또 한철은/ 기도에서 오고/ 그대 만날 손 씻는 마음
(김남조/ 임)
거문고 줄 같은 나의 마음은/ 무엇엔가 닿아져 노래했으니/ 온갖 화려한 기쁨에 떨면서/곤도라의 노래 한 절을 나직이 불렀다.
(니체/ 베니스)
우산은 비가 내리는 때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젖어 있는 마음은 언제나 우산을 받는다. 그러나 찢어진 지우산 같은 마음은 아무래도 젖어만 있다. 더구나 웃음이나 울음의 표정으로 인간이 누전되어 몸 속으로 배어 올 때는 손 댈 곳, 발디딜 곳 없이 지리저리 마음이 저려온다. 눈으로 내다보는 앙상한 우산살 사이의 하늘은 비가 오나 안 오나 간에 언제나 회색진 배경인데 그런 기상이 벗겨지지 않는 것은 떨어진 마음을 마음이 우산받고 있는 것이라 내 손도 누구의 손도 어쩔 도리가 없다.
(신동문/ 우산)
심(心)은 심이니라/ 심만 심이 아니라 비심(非心)도 심이니, 심 외에는 하물(何物)도 무(無)하니라/ 생(生)도 심이요, 사(死)도 심이니라/무궁화도 심이요, 장미화도 심이니라/‥‥물질계도 심이요, 무형계도 심 이니라/ 공간도 심이요, 시간도 심이니라./ 심이 생(生)하면 만유가 기(起)하고, 심이 식(息)하면 일공(一 空)도 무하니라./ 심은 무의 실재요, 유의 진공이니라.
(한용운/ 心)
족쇄가 채워진 상처는/ 아직 피 마르지 않았고/ 마음의 철조망은/ 걷혀지지 않은 채/세계는 아직/ 참화의 밑바닥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스바스 무코파다이/ 붉은 장미를 위해서)
가랑잎이란/ 썰렁한 목청/ 마음 귀를 찌른다.
(강호연/ 가을 뜰에서)
내 마음 깊은 데/ 크고 깊은 웅덩이 있어 물 넘치고/ 바람도 그 위를 떠돌며/ 풀과 꽃들 내 뒤를 따랐다.
(김명지/ 햇살 아래서)
다 억울함 탓일테지만/ 새벽 운예 걸릴 무렵/ 돌 틈 다 뒤져/ 고루 빛깔 얻어내려는/ 방울꽃 같은 아이들의 마음
(김명지/ 보물찾기)
마음에 접어둔 이 행여 오시나/ 부끄럼만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김명지/ 까치소리)
맵씨나 사는 일이 반드로워 지고/ 나날이 매끈함을 담아 건네는/ 말투 또한 그렇다.
(김현숙/ 옹기전에 들러)
나의 글이/ 당신의 가슴을 뚫는/ 화살이 되온다면/ 남은 한세상/ 못다한 말들 솔잎 같은 말들/ 당신의 가슴에 쓰고 또 쓰리라.
(홍윤숙/ 가을의 기도)
나의 말은 서툴러/나는 네 언어 속에 무의 맺어/ 남지도 않고,/ 나는 내 꿈 속에 비치지도않는다.
(김현승/ 부재)
소녀의 마음은 봄잔디 풀!/ 그는 밟으면 으크러지고/ 그는 불대면 터진다// 소녀의 마음은 유리풍경/그는 바람 부딪치면 울리고/ 그는 내던지면 깨진다.
(황석우/ 소녀의 마음)
내 눈물은/ 뜨거운 마음 감추며/ 그림자 뱉는다.
(정희수/ 안개 낀 아침은)
눈을 감으면 아스라히/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바람/ 바로 당신/물끄러미 지켜보는 그 눈.
(푸 티안 홍/ 눈)
그리움은 언제나/마음의 둑에 찰랑대기만 하네
(정희수/ 강너머의 그대)
내 마음도 목 쉬게 달리면서/ 삶의 찬 기운/ 그리움으로 달랜다.
(정희수/ 겨울그리 기)
우리 살아가는 일과/ 한 이태나 십년쯤 뒤 죽어가는 그날/ 속 무거워진 마음이/ 이곳에서 백기(白旗)를 흔들 듯/ 하얀 가슴 내보이면
(류재봉/ 木船에서)
누구의 손길인지/ 바람이 분다/ 함께 갈 아무도 없이/ 눈이라도 올 듯한 마음이다.
(서정윤/ 새 · 3)
휘적휘적 어둠 가르는 그대 생각에/잠그지 못하는 마음 하나, 松琴 그윽한 깊이의 자맥질
(이근호/ 야행)
눈으로 익힌 얼굴은/ 아른대는 형상이나/마음으로 익힌 얼굴은/닦으면 닦을수록/더 선명해지는 법
(박이도/ 얼굴)
맘 속 붉은 장미를 우지직끈 꺾어/ 보내 놓고-/ 그날부터 내 안에선 번뇌가 자라다. // 늬 수정 같은 맘에/ 나 한 점 티 되어 무겁게 자리하면/ 어찌하랴.
(노천명/ 장미)
섭섭해도 못할 말은/ 바지랑대 받쳐두리/철새를 / 먼 길 떠나며/안부로나 외고 가네.
(강호연/ 가을 뜰에서)
떠나실 오솔길/ 은행잎 많으시면// 마른잎 부서지고/ 고운마음 아리오니// 무서리 내린 날 아침/ 떠나셔도 되실 것을.
(강규인/ 은행잎을 밟으며 -표충사에서)
하늘하늘/ 떠서 도는 하늘바람은// 그대 잃은 이 내 맘의 넋들이외다.
(김 억/ 봄 바람)
바람 센 오늘은 더욱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유치환/ 그리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윤동주/ 서시)
피었다 몰래 지는/ 고운 마음을// 흰 무리 쓴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한용운/ 수의 비밀)
내 마음은 샘물가/ 어린 가지에 집 짓고 노래하는 새./ 내 마음은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지 휘늘어진 능금나무.//내 마음은 고요한 바다에서 노는/ 아름다운 무지개빛 조개.
(크리스티나 로제티/ 생일)
님 두시고 가는 길의 매끈한 마음이어
(김영랑/ 님 두시고 가는 길의)
장미빛 그리움이/ 달빛에 바래어/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이/ 노오란 빛이 되었다// ‥‥팅빈 가슴에 론 그림자가/ 차곡차곡 쌓여 그리움이 되고/ 내 마음은 달맞이꽃, 네 향기를 안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임 향/ 달맞이꽃)
찬 서리에/ 까맣게 마른 앙상한 가지마다/ 방긋방긋 웃음 피우는 하이얀 송이송이,/부푼 마음 애태우다가/ 터뜨려/ 저리 곱게 피었나보다. // 시방/ 차가울수록/ 하얀 마음 들어내어/ 누구를 기다리는가.// 은자(隱者)를 찾는 듯/ 수정(水晶)의 마음을 그린 듯/ 빙긋이 웃음 던지고/또/ 오솔길을 걸어가오.
(최진성/ 목화송)
촛불이/ 홀로 아노니
(조지훈/ 낙화)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유치환/ 깃발)
그대 떠난 빈 자리에/ 슬프고도 아름다운 곷 한 송이 피리라/ 천둥과 비오는 소리 다 지나고도/ 이렇게 젖어 있는 마음 위로
(도종환/ 그대 떠난 빈 자리에)
소리로 요란하지 않고/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깨우쳐 주소서/ 당신이 비를 내리는 일처럼/ 꽃밭에 물을 주는 마음을 일러주시고
(김시천/ 아이들을 위한 기도)
임을 안 첫 계절은/ 노래에서 오고/ 그래 만날 시만 쓰더니/ 그 다음 또 한철은/ 기도에서 오고/ 그래 만날 손 씻는 마음
(김남조/ 임)
먼길 떠나는 날 이 아침에/ 오늘도 내 마음이 무덤입니다.
(서덕석/ 갈대)
새벽잠 깨면/ 벌써 출렁여 있는 마음
(김남조/ 기쁨)
설 교 노 트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행13:20-23, 삼상16:6-13
서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던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왕을 원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민족의 왕으로 세워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왕이 된 후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혹은 어떤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나타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자기의 맡은 일에 충성된 사람입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치는 보잘것없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평 불만 없이 양을 지키는 데 충실했습니다. 무서운 사자와 이리떼가 양을 해칠려고 할 때 자기의 생명에 위험을 받으면서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사나운 짐승들과 싸워 양을 보호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때 5달란트와 2달란트 받은 자들이 그 맡은 일에 충성하여 배의 이익을 남김으로써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고 했지만 1달란트 받은 자는 자기의 맡은 일에 불만을 품고 불충실하므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며 어두운 데 내여쫓았고. 바울 사도는 맡은 자들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고전4:2)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맡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2. 믿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과 블레셋 나라와 싸움을 할 때 블레셋 대장 골리앗을 두려워 감히 나가 싸우지 못하고 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내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라(삼상17:37)고 외쳤습니다. 위대한 믿음을 갖은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3. 영적인 권위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써 일하는 주의 종들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을 여러 번 죽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기름 부음을 받은 종들을 내 손으로 죽일 수 있겠느냐고 사울 왕을 해하지 아니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종을 존중히 여길 줄 아는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4. 회개에 예민한 사람입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를 통하여 자기의 죄를 지적 받았을 때 지체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회개하되 침상이 썩기까지 철저한 회개를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생활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생활인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상한 심령을 찾으시고 통회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길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생활만이 구원의 길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택하여 세우시고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합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만사형통의 축복을 주시며 모든 시험에서 보호하시고 건져 주시며 같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람 마음의 많은 계획
잠19:21
서론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하였는데 이말은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의 차이점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관계는 주종의 관계이며 사람이 아무리 자기의 죄를 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온 세상의 일들이 움직인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1. 사람 마음의 생각들
사람의 생각은 변하기 쉽고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고착되어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1) 여러 갈래로 갈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가벼워서 동요되기 쉽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분열증이 일어납니다. 이는 심령에 불안적 요소가 있을 때 더욱 심하여 안정을 잃기 때문입니다.
(2) 나약해서 관철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나약해서 무슨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극심한 반대나 혹평에 부딪치면 그만 위축되어 그 뜻을 관철시키지 못합니다.
(3) 거짓됨으로 믿어 주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진실된 것 같으나 본래부터 죄성을 지닌 인간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게 모르게 거짓을 하고 고의로 거짓을 꾸미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결국 폭로되어지고 또 자신이 그런 줄 알기에 남도 그러한 줄 알고 신임하지 않고 늘 불신합니다.
2. 하나님 마음의 생각들
시33:11에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만족입니다. 그 이유는
(1) 의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불변하시는 원리들에 의해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다" 그는 언제나 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십니다. 그의 성품이 변할 수 없으니 그의 길도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위대한 선행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타락한 세상을 구속하시고 그것을 자기와 화목케 하시며 악과 곤고함의 뿌리를 근절하시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이러한 참된 선행을 이루실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 마음의 생각들은 변하지 않고 또한 틀림없이 이루실 줄을 아는 것입니다.
(3) 무한한 시간과 능력을 소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계략에 의지하기 위해 그의 작정을 바꾸실 필요가 없으며 무슨 사건도 뒤집을 수 없는 영광스러운 완성을 성취시키는 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시간과 능력은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높기 때문입니다.
(4) 지혜가 완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의 계획을 보완하거나 도중에 수정할 필요가 전혀 없으시기에 그 뜻이 영원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세우신 계획과 뜻은 그때부터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은 조금도 틀림이 없고 완전하십니다.
결론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의 차이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간격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틀릴 수 있고 변경될 수도 있으며 도중에서 포기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부족하고 부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완전하여 처음의 계획을 끝까지, 도중에 포기하거나 변경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결국은 하나님의 생각에 끌려가고 말 것이며 그 뜻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발견하여 순종하는 길이 참으로 지혜로운 길인 것입니다.
의인의 생각과 악인의 도모
잠12:5
서론
잠언은 대개 선과 악의 대립적인 연구와 의와 불의의 대결이지만 그 승패는 이미 기정된 사실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인간 삶에 있어서 두고두고 음미하여 적용해야 될 말씀인 것입니다.
1. 생각하는 데서부터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우리의 생긴 모양이 서로 같지 않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모양이 혹 같다 할지라도 생각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출발부터 같은 길을 걷지 않은 것입니다.
(1) 의인의 생각에는 공직(의리)을 찾습니다.
의인의 생각에는 의를 찾습니다. 물론 의인도 본의 아니게 악심이 생길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항상 그 생각을 고결하게 가지고 마음을 의에 두기를 원하기 때문에 잠시 생긴 악심은 곧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평안한 마음과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악인의 도모는 그 생각부터 거짓을 꾸밉니다. 궤휼을 도모하는 자야말로 죄악 편에 서서 의와 대항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런 자는 악행을 함에 있어서 마음의 거리낌을 느끼지 못하는 자입니다. 오히려 악행을 행함으로 만족을 느끼는 자들인 것입니다. 결국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이게 되고 멸망의 종국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말하는 데서부터
생각이 발전하게 되면 그 뜻은 말로써 나타납니다. 말은 곧 사상이라고 합니다. 즉, 생각하는 것이 말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1) 의인의 말은 항상 덕망이 있으므로 남을 도와주고 구제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곧 남을 돕고 사랑하는 가운데서 나오는 말이니 하는 사람에게는 그 복을 가져오는 것이요, 듣는 이는 마음이 흐뭇하고 감격스러워 한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2) 악인은 악담과 훼방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남을 죽이는 미움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쏘는 전갈과 같고 물어뜯는 이리의 이빨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주의 말은 그 상대에게 해당되지 않을 경우 언제나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말하는 악인은 결국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는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은 마음 생각의 표현입니다. 마음의 외형이 곧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의에 고정시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3. 마침내 그 결과는
사랑의 행한 일과 말의 종말은 결국 선악간에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심판장 앞에 설 때에는 모두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이르는 것입니다. 악인은 마침내 그 악한 생각과 그 악담과 저주의 말로 멸망을 당하게 되고 반대로 의인들은 그 선행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큰 상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의 원리는 믿음으로 받으나 선행의 보상도 뒤따르니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는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선악간에 섞여 사나 마침내 그 끝은 엄청나게 다르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마15:19)"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바탕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바탕을 의에 두어 하나님의 상급을 얻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마음을 지키자
잠4:23
서론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도 지켜야 하고 지위도 지켜야 하고 정신도 지켜야 하고 신앙도 지켜야 합니다.
그중에 더욱 더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했습니다.
1. 마음속을 지켜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의 유전을 지키지 않음을 비난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과연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거짓과 교만과 음란과 분쟁과 살인 등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지 못하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인간의 중심입니다. 모든 계획과 생각이 여기에 시작되는 것인데 마음속을 잘 지키지 못하면 그 인생은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마음 밖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오관을 통하여 마음을 빼앗으려고 유혹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재물이 우리를 유혹하고, 명예가 우리를 유혹하고, 지위가 우리를 유혹하고, 모든 영화가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밖으로부터 빼앗기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많은 영웅과 위인과 열사들이 헛된 데 마음을 빼앗겨 자신을 망친 자가 허다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 밖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자기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잘 지키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3.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자기의 마음일지라도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단체든지 잘 다스리려면 좋은 지도자를 모셔야 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분을 마음속의 지도자로 하면 우리의 마음은 잘 다스려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의 주인이 되시며 왕이 되시며 의와 공평으로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만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됨 것입니다.
4. 마음을 단장해야 합니다.
얼굴을 단장하였다고 마음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단장했다고 사람이 변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이란 마음의 정돈이요, 마음의 치장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마음의 숨은 사람을 단장하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썩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마음의 단장을 선행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순복함으로 단장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과 교훈에 순복해서 자신을 단장해야 합니다.
결론
참된 단장은 마음의 단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단장은 하면 할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빛나는 것입니다. 귀하고 보배로워지는 것입니다.
다른 것을 지키는 이상으로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잘 다스리고 단장해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서 나는 것입니다.
네 종류의 마음
마13:1-9
서론
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첫번째 비유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반응을 교훈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말씀을 하지 않으실 만큼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고, 복음서는 예수님의 비유의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상태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하고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더러는 좋은땅에 떨어진다"고 교훈해 주셨습니다.
1. 길가와 같은 마음
길가와 같은 마음은 단단히 굳어진 마음입니다. 이것은 마음이 완악하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의 문이 닫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용납도 못합니다. 이 길가와 같은 마음은 대개 불신자들에게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데, 이것은 천국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는 마귀가 와서 빼앗아 가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아무리 세상 지식과 인간의 지혜가 뛰어나다 해도 마음이 굳어져 길가와 같은 사람은 무지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어두워 캄캄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2. 돌밭과 같은 사람
돌밭이란 큰 암반이 속에 깔려 있어 흙이 얇은 밭이라 씨를 뿌리면 곧 싹이 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는 밭입니다. 이 돌밭은 심정이 깊지 못한 마음입니다. 깊은 심경 속에서만 위대한 사상이 나을 수 있습니다. 사랑과 겸손, 자비와 온유 같은 마음은 깊은 마음속에만 간직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밭과 같은 마음은 깊지 못하고 얕아서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좋아서 받아들이지만,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넘어지고 쓰러지고 낙심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그 사람의 인격 자체입니다.
기독교는 마음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산상 보훈의 말씀은 이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깊지 못한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말씀의 뿌리를 못 내립니다. 말씀에 확신도 서지 않습니다.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 믿음을 저버린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3.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
이 밭은 이미 가시떨기가 다 차지하고 말았습니다. 땅은 부드럽고 좋아 씨가 떨어지면 싹은 나서 자라지만 결국은 무서운 가시에 이리저리 찔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입니다. 이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이란 "세상의 염려와 재리와 유혹"이라고 하셨습니다. "염려"란 '분열'이라는 뜻과 '불신앙'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염려한다'는 것은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인데 마음에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께 의뢰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정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친 염려는 육신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영혼에 상처를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리는가 했더니, 세상 걱정 근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상처만을 받아 결실할 수 없습니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은 유혹에 쉽사리 빠져 버리는 마음입니다 유혹은 사탄의 무기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유혹을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듣는다고 해도 걱정과 근심이 태산 같고 유혹에 눈이 어두워지면 하나님의 말씀은 곧 없어져 버립니다.
4. 좋은 땅과 같은 마음
옥토만이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옥토란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마음입니다. 옥토는 깊게 갈아 일구어야 하듯이 성도들의 마음이 옥토가 되려면 피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노력이 지불되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심령만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은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고 다른 이들을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결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므로 씨를 뿌리신 주님께 많은 열매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교회에 나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들으러 나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언제나 말씀의 샘물 곁에 그 생수가 흐르는 시냇가에서 살아야 합니다. 교회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성령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신앙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
롬12:1-2
서론
우리 사람들이 꼭 해야 할 일은 본문 2절에 있는 대로 "마음을 새롭게"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행복과 불행이 있고, 우리의 마음은 신과 악마가 싸우는 전쟁터가 되어 있으므로 무엇보다 타락한 우리의 마음부터 새로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1. 마음이 귀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흔히 마음보다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나 실상 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은 사람의 존엄성에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이 천하면 사람 자체도 천하고 고상하면 그 사람도 고상합니다. 사람에게 마음이 없으면 육체는 허수아비요, 빈집이요, 껍질입니다.
마음이 바르고 강하면 그 사람이 옳고 강하지만, 마음이 비뚤어져 있으면 그 사람도 비뚤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은 행위의 근본이 되므로 소중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마음의 작용 없이는 하지 않습니다. 적고 큰 모든 일이 마음에서 시작되어 진행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관임으로 소중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넓고 높고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계를 통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낡고 병든 마음, 죄로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가까이 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교통할 수도 없으므로 마음을 새롭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새롭게 하는 비결
하나님께서 단독으로 해주시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을 힘입고 힘씀으로 되는 두 가지 비결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해주시는 기본적인 역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시는 일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임하여 그를 새롭게 하는 일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새사람이 되는 것은 교육이나 수양이나 반성이나 결심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재창조함을 받음으로 사죄함을 받고 새생명을 얻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시민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이 주님을 힘입고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힘씀으로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라고 하였는데 "날로 새롭게" 되려면 구습을 벗어야 합니다. 중생 한사람에게 옛 사람의 구습이 남아 일을 수 있으니 그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나 말씀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대소를 막론하고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붙어 있으면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참된 일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이 악한 일을 하게 되면 그 심령이마귀와 같아지지만 선한 일을 많이 하면 성장하고 새로워져서 그리스도의 형상에 닮아지는 것입니다.
은혜와 말씀을 받고 기도를 힘씀으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하는 이유는 온전한 재물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새로워지지 아니한 심령을 제물로 받지 아니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천국은 새사람만 들어갈 수 있으므로 새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새나라로 가는 새길은 새사람만 갈 수 있는 것이니 날로 날로 새로워져서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신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
왕상3:6
서론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기브온 산상에서 여호와께 제사드릴 때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신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에 감격하여 솔로몬이 기도하면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푸셨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1.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성실"이란 말은 '진실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공의"나 "정직"도 거의 같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 용어들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살펴보면 그는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도 매사에 성실하고 공의에 입각하여처리하였으며, 양심을 속이는 일이 없이 정직하게 행하였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다음에도 자기를 대적하던 자들에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사울 왕의 유족들을 찾아서 우대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참으로 기특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다윗은 그 마음이 성실하였고 공의로웠으며 정직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큰 범죄로 인하여 그의 성실과 공의와 정직이 여지없이 땅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여 동침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전쟁터에 나가서 죽게 하였던 것입니다.
2. 회개하는 다윗
다윗이 그 마음이 일시적으로 연약하여져서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었으나 그후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책망을 받았고 즉시로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를 하되 그냥 보통으로 하는 회개가 아니라 근본적인 회개를 하였습니다.
시편 51편은 그의 회개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데 그 내용을 보면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공의롭고 정직한 회개를 하였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의 않은 자비로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되 우슬초로 정결케하여 눈보다 희게"하여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죄악을 도말하시고 정한 마음으로 주시며 주의 앞에서 추방하지 마시고 주의 성신을 거두지 마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니 다윗은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드려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윗의 회개는 보통 회개가 아니고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허락하신 성실과 공의와 정직의 회개입니다.
우리도 회개를 찰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근본을 다 내어놓고 통회 자복해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 앞에서 옳게 살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성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공의를 행하고, 정직하게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산 다윗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기쁘게 여김을 당하는 자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청결한 마음
마5:8
서론
마음, 즉 심정이 순수하고 사념이 없는 자는 이 세상의 더러운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첨, 간음, 기만, 불의, 부정 등의 사악한 일을 행할 수가 없으며 이를 목격하는 일조차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의 더러운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하나님께 그 눈을 향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에 대한 개념에 관해서 일반 심리 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의 학설을 정리해 보면, 마음이란 사람의 존재와 이상적 인격의 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람의 생명과 몸의 중심체라는 말입니다.
마음이란 사람의 지·정·의의 원천이요, 총체라고 합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이상적인 실존으로서 사고력과 언어와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모든 정신의 총체를 마음이라고 합니다.
또 마음이란 우리 사람의 종교, 문화, 과학문명을 산출해내는 생명 근원이라고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이 깨끗할 때 깨끗한 것을 창조해 내고, 마음이 불결할 때 불결한 것을 산출해 낸다고 하였습니다(마15:16-20).
2. 청결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청결하다"라는 헬라말은 '카다로스(Ka-tharos)'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결한 마음은 외식과 두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마음을 크게 분류하면 청결한 마음과 불결한 마음 두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본래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로 창조를 받았으나 범죄하고 타락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이 불결해 졌다고 하였습니다. 구더기와 같이 더러워졌다고 하였고(욥25:4-6),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하였으며(렘17:9-10), 회칠한 무덤 같다(마23:26-27)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해야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청결한 마음은 하나님의 창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서 선하고 의롭고 건실하고 거룩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
"청결하다는 것"은 더러워진 의복을 세탁하여 깨끗하게 하는 뜻이며, 곡식을 정미소에서 찧어 정미가 되게 하는 뜻이요, 용광로에서 많은 금을 정금해내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과학이나 철학이나 교육이나 수양 등으로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 성경은 몇 가지 방법론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히브리서 9장 14절에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홈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에베소서 5장 26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여 진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는 성령의 불로 깨끗하여 진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영적으로 하나님을 보고 알고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알고 믿는 것입니다. 최후 심판 날에 직접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시편 24편 3-6절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새마음 · 새사람
겔36:26-28, 엡4:22-24
서론
엡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 직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하고 오직 새마음으로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12:2을 보면,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 너무 많이 속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속지 맙시다. 여전히 그 사람하고 살 것입니다. 이제 바꿀 것은 나 자신이 바꾸어져야 하고, 달라져야 합니다. 여기에서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변화가 있게 됩니다. 내가 달라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달라져야 하고,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1. 옛사람을 생각합시다.
옛사람이란 타락한 인간을 말합니다. 옛사람의 마음 상태를 창세기 6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에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지으셨음을 한탄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그 마음이 항상 악합니다.
사도 바울은 "변화를 받아야 할 옛사람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사는 자요,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유혹의 욕심은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악한 인간성입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 세상 풍속대로 사는 자들이요, 구습을 좇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 기준과 표준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2. 새사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새사람이란 마음에 주의 영이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이란 겔36:26에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주의 영이 거하는 자들이요, 주의 마음을 품은 자들입니다. 새사람이란 그리스도의 마음을 붐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말합니다.
새마음을 가진 새사람이란 무엇일까요?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이란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옛사람은 마음에 유혹의 욕심을 따라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면 중대한 변화를 스스로 체험하게 됩니다.
3. 새마음을 가진 자들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모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따라 삽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위하여 사는 대상이 달라져야 새사람이요, 새마음입니다.
자신을 위해 살고 사신을 위해 생각하던 마음이 바꾸어 졌습니다. 자기 자신이 목적이던 자가 이제는 그리스도가 목적이 된 자로 완전히 소속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목적과, 주인과 중심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판단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목적이 바뀌어지면 가치관도 자연히 변하기 마련입니다. 전에는 육체대로 보이는 것, 세상적인 것에 기준하여 판단하였으나 이후로는 보이지 않는 것, 신령한 것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인 것에 기준하여 판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속에 있는 가치관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여전히 세상 정욕적인 일에 매력을 느끼며 세속적인 권세를 부러워하고 있다면,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불의한 제물을 저주스럽게 알고, 죄된 부귀와 권세를 치욕적인 점으로 느끼며, 동시에 진실한 가난의 길을 부러워하고, 의인의 고난을 영광된 것으로 알며,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수난의 길을 가장 큰 행복의 길로 아는 그러한 가치 판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새마음, 새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변화입니다. 세상적인 것, 정욕적인 것은 낡은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것만이 진정한 새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하셨는데 새계명이란 사랑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속한 것은 새것이요, 미움에 속한 것은 낡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새사람, 새로운 세계가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알고, 사랑에 들어간 사람을 가리켜 새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사랑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
신15:9
서론
사람은 그 마음가짐에 따라서 선한 사람도 되고 악한 사람도 됩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신비에 속한 것이며 마음의 귀중성을 한 번 더 재인식하게 됩니다.
본문에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고 교훈하셨습니다.
악념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1. 강적한 마음을 품지 말라는 뜻입니다.
신명기 15장 7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음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팍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강팍"이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심령이 굳어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곧 가난한 자들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이 그 심령이 굳어진 상태로 다른 사람을 대하면 하나님께 대해서도 강팍하게 됩니다.
가난한 자가 와서 꾸어 달라고 할 때 그 꾼 것을 갚을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를 계산하고 불가능할 것 같으면 거절하는 마음이 곧 강팍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가난한 형제를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도와주고자 하는 생각을 항상 하며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2. 악한 마음을 품지 말라는 뜻입니다.
"악한 생각"이란 그 당시의 상태로 말하면 멀지 않아 안식년이 가까웠으므로 그것을 탐감시켜 주기 싫어서 꾸이지 아니하는 약삭빠른 죄로 하는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년 제도를 기뻐하지 않는 불신앙이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채권자가 빚을 받지 못하고 마침내 안식년이 되면 할 수 없이 억지로라도 탕감해 주어야 하는 법적 작용이 발동하니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곧 악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 못된 것이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기 때문에 손해를 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눈 앞의 이익만 생각하여 가난한 자에게 꾸어 준 것을 받을 수 없게 되니 가난한 자가 오더라도 꾸어 주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3.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10절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 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1장 24절에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결단코 아낀다고 하여서 자기 소유의 부가 만년 동안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흩어 구제한다고 해서 자신의 소유가 빈곤해지지 않습니다. 빈부가 섞여 살고, 그들 모두를 홀로 지으신 이는 바로 여호와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운데 행하는 일이라면 어찌 우리가 강팍한 마음을 품을 수 있으며,악한 생각을 품을 수 있으며, 아끼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결론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는 알지 못하는 가운데 천사를 대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여호와
삼상16:7
서론
여호와께서는 무소부지하셔서 모든 일을 살펴 아시고 계십니다. 사람의 겉모양도 물론 살피지만 그 중심을 보고 선악을 판단하는 신이시니 누가 감히 그의 앞에 자신을 숨길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과 하나님의 보는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1.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베들레헴 이새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장차 왕이 될 자를 미리 택하여 기름을 부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이를 시행하려고 온 것입니다.
이새의 아들들이 사무엘 앞에 나오는데 장자 엘리압이나 둘째 아비나답이나 셋째 삼마, 그리고 그 아들 일곱이 다 사물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도 처음에는 외모만 본고로 장자 엘리압을 외모의 풍채도 좋고, 장자의 특권을 생각하여 여호와의 기름부을 자로 여겼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민족은 장자의 전통을 세우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문벌, 이력서, 학력, 용모, 재능, 언변, 기타 겉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을 보고 가볍게 판단하기 쉬우나 이는 잘못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외모를 보는 것은 그만큼 그 중심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하여 볼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바르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여호와는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조물주요, 창조자로서 인간의 육체를 흙으로 만드시고 또 그 속 심령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세상의 어떤 물품이라도 그것을 만든 사람은 그 내용을 잘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중심을 살피십니다.
특히 이새의 아들 중에서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택하시려고 하셨으니 외모를 나타내는 다른 아들들이 여호와의 눈에 들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를 목자로 믿는 믿음이 있어서 일찍이 목장에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엘리압에게는 장자의 특권은 있었으나 믿음이 없었고, 아비나답에게는 외모의 풍채는 좋았으나 신앙을 못찾았으며, 삼마에게는 총명과 이지는 있어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도 인격과 풍채와 건장한 육체는 있었으나 믿음이 없어 버리셨으나, 믿음의 사람 다윗은 그 중심을 보시고 택하셨습니다.
중심이 바른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중심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하나님 깨서 그 중심을 보고 사용하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세상 만사를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며 진행하시되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언제나 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판단으로 선택하시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의 선택은 언제나 틀림 이 없으십니다.
우리 성도들도 다른 사람의 재산이나 지위, 학벌이나 권세 등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속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진실되고 신앙이 있는 사람인지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인심
삼하15:13
서론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 "는 격언을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은 믿을 것이 못되고 경박하여 바람따라 흔들리고 힘이 없는 들풀과 같다는 말이 됩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여 자신의 인기를 쌓으려고 했습니다.
1.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질 함
대중을 움직이는 일은 매우 크고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서 그 마음을 좌우하는 일도 어려운데 어떻게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압살롬은 민심을 얻으려고 왕에게 재판받으러 오는 차들을 성문에서 자기가 먼저 만나고 친절을 베풀어 그 마음을 사기에 급급하였습니다. 이 것은 정당한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한다고 한 것입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패망의 길로 이끄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압살롬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의 인심이 압살롬에게로 돌아감
자기 아버지인 다윗을 반역하려고 마음을 먹은 압살롬은 서원을 이행하려고 헤브론에 가겠다고 핑계를 댄 후 200명을 인솔하여 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압살롬의 속셈을 알지 못하고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반역하려는 일이 노골화되기 시작하자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날로 많아졌습니다.
사자들은 다윗에게 와서 고하기를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라고 하였으니 인심의 추세를 다윗도 이미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부왕인 다윗이 인심을 잃을 만한 잘못도 없었고 압살롬이 인심을 얻을 만한 공로도 별로 없는데 자연히 인심이 이렇게 변동되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 또한 어떤 섭리가 아닌지요.
3. 다윗을 따르는 민심
압살롬이 인심을 도적질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그에게로 기울어졌다고 해서 다윗은 고립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아들인 압살롬과의 유혈 충돌을 피 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고스란히 내어놓고 피난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압살롬에게로 기울어졌으니 아무리 다윗의 신복일지라도 압살롬에게로 돌아서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신복들과 그렛 사람, 불렛 사람, 가드 사람들과 용사 잇대 등은 쫓겨서 피난 가는 다윗을 끝까지 따르기로 하고 같이 가게 되었으니 그들의 마음의 충직함을 보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도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결국 다윗과 압살롬과의 싸움은 부자지간의 싸움으로 아버지인 다윗이 조용히 피난길에 올랐지만 다윗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다윗을 끝까지 따르는 충성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결국 사람의 마음은 유동적입니다. 이렇게 움직이기도 하고, 저렇게 움직이기도 하니 인심을 따라 중대한 일을 행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믿는 것같이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살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옳게 분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마음을 품으라
빌2:1-8
서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마음은 지 · 정 ·의의 움직이는 근원이요, 이와 같은 이지와 정서와 의지의 움직임은 한사람의 인격의 모습인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떠한 마음을 품고 살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품어야 할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란 어떠한 마음이겠습니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전에서 사는 마음입니다.
눅2:49에 보면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어린 예수님을 찾으셨을 때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일생이 성전에서 사시는 마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중에는 몸은 교회에 와 있어도 딴 곳에 마음을 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성전에서 사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성전에서 사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유익을 위한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일평생을 통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만 사셨습니다. 공생애에 나서기 전에도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마 4장). 마지막 운명하실 때에도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한다"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셨습니다(눅23:46). 뿐만 아니라 마음이 민망하여 죽게 될만큼 괴로우실 때에도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들어가셨습니다(마26:36-46).
예수님의 생애는 목자 없는 양무리에 대한 긍휼하신 마음으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성도들의 병은 기도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성경의 많은 지식은 풍부하나 기도가 없기 때문에 능력이 없습니다. 기도가 뒷받침 되지 않기 때문에 믿는 믿음이 그 삶에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을 품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고 또한 이웃에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3.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원수를 용서하는 데에서 사랑하는 자리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이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몸소 본을 보여 주셨기에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고 힘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애매히 고소하여 십자가에서 죽게끔 한자까지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마음은 바로 사랑과 용서와 격논의 마음입니다. 이는 서로 분리된 마음이 아닌 진정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마음은 성도가 늘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을 하나님께 두셨기에 하나님과 동행하실 수 있었으며 기도하는 마음이었기에 그 뜻에 순종하실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었기에 원수까지도 사랑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음을 품은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
행13:20-23
서론
본문 말씀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족장 시대를 지나 사사시대에 와서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되는데 주변의 이방 족속을 보았더니 모든 부족들이 다 왕권 정치를 하고 있는걸 보고 히브리 민족도 왕을 구했습니다. 그리하여 초대 임금으로 사울을 기름부어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처음에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나라가 부강해 지고 국권이 늘어나게 되자 사울은 점점 교만해지고 주의 법도를 멀리하며 불순중하는 군왕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며 "그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40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사울의 왕위를 폐하여 버리시고 다윗을 이스라엘 제 2대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시기를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의 아들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마음을 합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의 어떤 점을 보시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1 . 다윗은 믿음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이 있는 그가 마음에 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외모가 훌륭하고 멋있게 잘생겼을지라도 그런 외형적인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있는 자를 기뻐하시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고 믿음으로 잘 되고 축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적장 골리앗을 쓰러트렸습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얕보고 여호와를 모독하는 언사를 쓰면서 소리치는 데도 아무도 나서지 않았으나 어린 다윗은 여호와께서 같이하다 주시면 능히 골리앗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골리앗과 싸워서 돌맹이로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다윗은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아버지를 죽이려는 경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아들을 사랑하였고 그가 죽었을 때도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또 다윗은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이지마는 요나단이란 친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요나단이 죽은 후에도 그 우정을 잊지 못하여 요나단의 혈육이 없느냐고 찾아보았더니 병신이 되어서 불쌍하게 살아가고 있는 므비보셋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를 왕궁으로 끌어들여 마치 자기의 자식처럼 양육해 주었던 것입니다.
또 다윗은 원수까지 사랑한 사람입니다.
사람이 남을 미워하기는 쉬워도 용서하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사울 왕은 악신마저 들려 가지고 다윗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요, 진실하고 용맹있는 사람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의 칼날을 피해 다니면서 한번도 사울 왕을 저주했다거나 미워했다는 사실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쓴 시편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다윗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었으나 그도 역시 범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범죄함을 눈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러한 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곧 다원은 믿음의 사람이요, 사랑의 사람이었으며, 회개를 잘하는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말
성 경 활 용
I. 말의 일반적 고찰
1. 말에 관한 사실적 사항
(1) 마음에 있는 것을 함
(마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2) 귀가 말을 분변함
(욥12:11)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변하지 아니하느냐
(3) 하나님께서 혀의 말을 모두 아심
(시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4) 말의 응답이 하나님에게서 남
(잠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을 여호와께로서 가느니라
2. 말이 갖는 능력
(1) 분노를 쉬게 하고 노를 격동케 함
(잠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2) 붙들어 주고 강함게 함
(욥4:4)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3) 악인을 구원함
(겔3: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아니하면
(4)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음
(잠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3. 말의 여러 가지 형태들
(1) 아름다운 말
(전12:10)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2) 말할 수 없는 말
(고후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3) 권면의 말
(히3:2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4) 알아듣기 쉬운 말
(고전14:9)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5) 무지한 말
(욥38: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6) 허망한 말
(욥16:3) 허망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7) 오묘한 말
(시49:4)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물리로다
(8) 때에 맞는 말
(잠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9) 간절한 말
(잠18:23) 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10) 확증하는 말
(행2:40)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11) 정신 없는 말
(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12) 적은 말
(행26: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13) 세상에 속한 말
(요일4:5)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14) 사사로운 말
(사58:13)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15) 독한 말
(시64:3) 저희가 칼같이 자기 혀를 연마하며 화살같이 독한 말로 겨누고
(16) 당연히 할 말
(엡6:20)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미쁜 말
(딤전4: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 들이 받을 만하도다
(딛3:8)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18) 무익한 말
(마12:36)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19) 담대한 말
(고후7:4)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II . 선한 말
1. 선한 말의 여러 형태
(1) 충성된 말
(에7:9) 왕을 위하여 충성 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2) 옳은 말
(욥6:25) 을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 그렇지만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뇨
(3) 지혜로운 말
(마12:42)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4)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
(단2:14)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5) 아름다운 말
(잠23:8) 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또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전12:10) 전도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6) 선한 말
(시45:1) 내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엡4:29)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7) 참된 말
(갈4:16)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8) 바른 말
(딤후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2. 선한 말의 성격
(1) 힘이 있음
(잠21:38) 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한 중인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2) 정결함
(잠15:26) 악한 죄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3) 양약이 됨
(잠16:24)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4) 마음을 즐겁게 함
(잠12:25)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3. 의인의 말
(1) 주의 의
(시35:28)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2) 지혜
(시37:30) 의 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루며
(고전2:6)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3) 하나님의 말씀
(시119:172)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
(4) 진리
(잠8: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5) 그리스도의 비밀
(골4:3)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6) 주의 증거
(시119:46) 또 열왕 앞에 주의 증거를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겠사오며
(7) 진실
(시15:2) 정직하게 행하여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8)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롬15:18)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9) 공의
(시37:30) 의인의 입은 자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10) 선한 것
(잠8:6)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말하리라
(11) 하나님의 자비
(사63: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III. 악한 말
1. 악한 말의 여러 형태
(1) 거짓말
(사32:7) 악한 계획을 베풀어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덜하며
(2) 교만한 말
(시31: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
(3) 포학한 말
(왕상12: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쌔 노인의 교도를 버리고
(4)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
(욥34:37)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5) 궤사한 말
(시34: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6) 미워하는 말
(시109:3)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무고히 나를 공격하였나이다
(7) 속이는 말
(잠21: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8) 패역한 말
(사32:6)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여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9) 망령된 말
(딤후2: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10) 헛된 말
(호10:4) 저희가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를 발하여 언약을 세우리니
(엡5: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11) 아첨하는 말
(롬16:18)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2) 더러운 말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13) 어리석은 말
(엡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14) 탐심의 말
(벧후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2. 악인의 말
(1) 거짓을 말함
(시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잠6: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2) 저주
(왕상2:8)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3) 망령된 평론
(요삼10)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평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4) 허탄한 자랑의 말
(벧후2:18)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5) 잔해를 말함
(잠24:2)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IV. 선한 자의 말
1. 지혜 있는 자의 말
(1) 양약 같다.
(잠12:18)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2) 깊은 물과 같다.
(잠18:4) 명철한 사람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3) 채소 위에 단비로다.
(신32:2)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4) 은혜롭다.
(전10:12)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5) 보석보다 귀하다.
(잠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6) 신중하다.
(잠17:27)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안존한 자는 명철하니라
(7) 진실하다.
(슥8:16)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2. 그리스도의 말
(1)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해야 한다.
(골3:7)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2) 신중하게 해야 한다.
(전5:2) 너는 하나님 앞에 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3) 덕을 세워야 한다.
(엡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4) 혀를 제어해야 한다.
(벧전3:10)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5) 본이 되어야 한다.
(딤전4:12)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6)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
(약1:19)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7)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딛2: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8) 진실해야 한다.
(엡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관련원어풀이
1. rm'a: 아-마르
(1) 말하다.
(창4:8, 출6:10)
(2) 명령하다.
(에4:13, 욥9:7)
(3) 생각하다, 추측하다.
(창44:28, 출2:14)
2. rm,ae 에-메르
(1) 말씀, 설교, 연설.
(수24:27)
(2) 하나님의 말씀들
(민24:4, 16)
(3) 명령, 선언, 임명,
(욥20:29)
3. rb'D; 다-바르
원래의 의미는 "배열하다, 순서대로 높다" 이다.
(1) 말하다, 이야기하다.
(출4:14, 욥33:2)
(2) 명령하다, 지시하다, 권고하다
(창12:4, 삼상25:17)
(3) ∼을 대항해 음모하다, 파괴하다.
(대하22:10, 시127:5)
(4) 함께 말하다.
(겔33:30, 말3:16)
4. rb'D; 다-바르
(1) 말, 말씀, 연설, 담화.
(창44:18, 출4:28)
(2) 약속.
(왕상2:4)
(3) 교훈, 칙령.
(수1:13, 삼상17:29)
(4) 격언, 경귀.
(민23:5, 대상22:8)
(5) 결심, 의도.
(삼하17:6)
(6) 소식, 소문.
(신15:2)
(7) 이유, 원인.
(창43:18)
5. @yBi 빈-
원래의 의미는 "구별하다, 분간하다, 숙고하다, 이해하다"이다.
(1) 분별하다, 인식하다. 보다.
(욥9:11, 잠7:7)
(2) 마음을 돌리다, 주의를 기울이다.
(신32:29, 욥14:21)
(3) 이해하다, 깨닫다.
(삼상3:8, 사6:9)
(4) 안 것으로 여기다, 알다.
(욥38:20)
(5) 지혜롭다, 현명하다.
(창41:33)
(6) 알게 하다, 가르치다.
(욥6:24)
(7) 이해하다, 자신의 현명함을 보이다.
(시129:100)
6. hg;h; 하-가-
(1) 중얼거리다, 속삭이다, 투덜대다.
(사31:4)
(2) 시적으로 말하다, 이야기하다.
(시115:7, 사59:3)
(3) 노래하다, 축하하다.
(시7l:24)
(4) 묵상하다.
(수1:8, 잠15:28)
7. @/vl; 라-손-
(1) 사람이나 동물의 혀.
(욥5:21, 렘18:. 18)
(2) 혀의 사람, 즉 중상자.
(욥15:5, 잠16:1)(3)
(3) 국가, 반성.
(사66:18)
(4) 국가, 백성.
(사66:18)
8. r]mi:x]mi 메-마르
법령, 명령,
(스1:15)
9. hL;mi 밀라-
(1) 말, 언어.
(시19:5, 잠23:9)
(2) 사물.
(욥32:11)
10. ll'm; 말-라
말하다
(잠6:13, 창21:7)
11. !aun] 나-암
중얼거리다, 속삭이다, 엄숙한 선언을 내리다.
(렘23:31, 암6:8)
12. rk'z: 자-카르
(1) 기억하다, 회상하다, 생각해 내다.
(창8:1,렘3:16)
(2) 기억하다, 마음에 두다.
(출13:3, 대하24:22)
(3) 기억되다, 회상되다, 언급되다.
(욥24:20, 슥13:2)
(4) 언급케하다, 칭찬케 하다, 기억나게 한다.
(출20:24, 암6:10)
13. hP, 페
(1) 입.
(출4:16, 전8:2)
(2) 입, 가방의 열림.
(창42:27, 잠8:3)(3)
(3) 날, 끝.
(삼상13:21)
14. l/q 콜-
(1) 음성, 소리.
(창27:22, 욥4:10)
(2) 큰 소리로.
(창39:14)
(3) 소리를 발하다.
(창45:27)
(4) 소리로 말하다.
(렘12:8)
(5) 소문, 풍문.
(창45:16, 렘3:9)
15. j'yci 시-아흐
(1) 가시 덤불.
(창2:5)
(2) 대화, 연설.
(왕하9:11)
(3) 말다툼.
(욥7:13, 시142:3)
(4) 묵상, 숙고.
(왕상18:27)
16. hp;c; 사-파
(1) 입술.
(삼상1 . 13, 시22:8)
(2) 입술을 열다, 말하기 시작하다.
(욥11:5)
(3) 말, 언어.
(시120:2, 잠10:18)
(4) 언어 방언.
(창11:1, 사19:18)
(5) 입술, 끝, 경계.
(창22:17, 삿7:22)
17. [b'n: 나-바
(1) 흐르다, 솟아나다.
(잠18:4)
(2) 말하다, 발표하다.
(시l9:3, 73:2)
(3) 소동을 일으키다.
(전10:1)
18. r'n"'n 나-가드
고하다, 보이다, 선언하다, 발표하다.
19. rp's; 사-파르
(1) 쓰다, 수를 세다, 계수하다.
(창15:5)
(2) 자세히 말하다.
(창24:66, 시2:7)
(3) 축하하다.
(시19:2, 40:6)
(4) 말하다, 언급하다.
(시73:15, 사43:26)
20. ht;P; 파-타
원래의 의미는 "벌리다, 내밀다, 열다(잠20:19)"이다.
(1) 열리다, 설복되다.
(신11:16, 욥31:27)
(2) 설복을 당하다, 유혹하다.
(욥31:9, 렘20:7)
(3) 유혹하다, 꾀다.
(출22:15, 잠1:10)
(4) 속이다, 미혹하다, 조롱하다.
(시78:36)
21. ajnaggevllw 아낭겔로
(1) 보고하다.
(고후7:7, 행14:27)
(2) 드러내 놓다, 알리다, 선포하다, 가르치다.
(요5:15, 행19:18)
22. ajpofqevggomai 아포프뎅고마이
담대하게 말하다, 경건하고 침착하게 말하다, 동정심 있게 이야기하다.
(행2:54, 26:25)
23. ejkdihgevomai 엘디에게오마이
자세히 말하다, 상세하게 이야기하다.
(행13:14, 15:3)
24. ejxhgevomai 엨세-게오마이
원래의 의미는 "인도해 내다, 지도자가 되다, 앞서가다"이다.
(1) 자세히 말하다, 열거하다.
(눅24:25, 행21:19)
(2) 알게 하다, 계시하다.
(요1:18)
25. ejreuvgomai 에류고마이
발언하다, 선포하다, 공개적으로 말하다, 큰소리를 치다.
(마13:35)
26. laliav 랄리아
(1) 말, 대화, 담화, 이야기.
(요4:42)
(2) 방언, 발음, 어법.
(마26:73, 요8:43)
27. lovgo" 로고스
원래의 의미는 "모음, 수집"이다.
(1) 단어, 말, 언어.
(마8:16, 고전14:19)
(2) 말하기, 말한 것.
(마26:44, 말5:36)
(3) 담화, 연설.
(마5:37, 행14:12)
(4) 교리.
(마13:20, 요14:24)
(5) 말로 기록된 연설, 보고, 이야기, 소식,소문.
(눅5:15, 행11:22)
(6) 이성.
(히4:12)
(7) 이유, 근거.
(마5:32, 행10:29)
(8) 하나님의 말씀, 말씀.
(요1:1, 계19:3)
28. levgw 레고-
(1) 놓다, 두다, 눕게 하다, 말하다, 이야기하다,
(마9:34, 눅5:39)
(2) 맹세코 단언하다, 확연하다.
(마3:9, 계2:9)
(3) 권고하다, 조언하다, 명령하다, 지시하다.
(마23:3, 고전10:15)
(4) 언급하다, ∼에 관하여 말하다, 암시하다.
(막14:71, 요6:71)
(5) 보고하다, ∼관해 진술하다.
(막7:36, 엡5:12)
29. lalevw 랄레오-
원래의 의미는 "소리를 내다, 말하다"이다.
(1) 소리내어 말하다.
(히12:24, 계4:1)
(2) 말하다, 혀나 말의 기능을 사용하다.
(마9:33, 약2:12)
(3) 이야기하다.
(막16:17)
(4) 말하다, 밝히다, 드러내다.
(고후12:4)
(5) 생생한 목소리로 말하다, 언급하다.
(롬7:1,히2:5)
30. mneiva 므메미아
(1) 기억, 회상
(살전3:6, 딤후1:3)
(2) 언급.
(살전1:2, 3:6)
31. parabolhv 파라볼레
(1) 비교, 대조, 비슷, 유사.
(마24:32)
(2) 간결하고 교훈적인 격언, 비유.
(마15:15)
32. paroimiva 파로이미아
원래의 의미는 "동상적인 말이나 일상 용어에서 벗어난 이야기"이다.
(1) 잠언, 격언.
(벧후2:22)
(2) 불명확한 이야기, 수수께끼.
(요16:25)
33. prolevgw 프로레고-
미리 말하다, 예고하다.
(마24:25, 갈5:21)
34. fwnhv 포-네
(1) 소리, 음.
(계8:13, 행2:6)
(2) 음성, 어조.
(마27:46)
(3) 부르짖음, 외침.
(막17:37, 계10:3)
설교예화자료
매의 화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입을 조심한다면 여러 가지 다툼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어떤 부인이 신부를 찾아와서 남편이 자기를 때렸다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그 여자의 얄미운 말버릇이 그의 남편을 화나게 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부인에 게 물병을 내어주면서 "이 병 속에 든 물은 기적을 일으키니 모든 일을 올바르게 해결해 줄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부인은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이 물병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남편에게 물을 뿌리라는 것이지요? "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니오, 이 물을 입 속에 넣고 있으면 되지요. 그렇게 하면 당신의 남편은 부인을 때리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신부의 이 말이 떨어지자 후인은 반사적으로 재잘거리는 자기의 입이 모든 일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식물에게 말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집에서 기르는 식물에게 말을 하는 것은 근거가 있는 일이라고 퍼듀 대학(Purdue Unive-rsity)의 원예학 교수는 말했습니다.
워트(John A. Wott)는 최근 35명의 아마추어 원예가 모임에서 그 중 반수가 식물과 대화한다고 말했습니다.
"식물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관찰력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식물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채는 것입니다. 식물이 물이 필요하다든가 벌레가 생겼다든가 하는 것 등입니다. 그러면 곧, 필요한 조처를 취하게 되고 식물은 잘 자라나게 됩니다. "
깃털을 뿌림
한 농부의 아내가 그 동네 목사님을 헐뜯는 말을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곧 온 마을에 그소문이 퍼졌습니다. 얼마 후 그 여인은 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목사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늙은 목사님은 "당신이 저의 한 가지 바람을 따라준다면 기꺼이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꺼이 하겠습니다. " 하고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집에 가서 검은 암탉 한 마리를 잡아 그 깃털을 뽑고 그것을 바구니에 담아 가져오십시오." 30분 후 그녀가 돌아왔습니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이제, 마을로 가서 각 거리 모퉁이마다 이 깃털을 뿌리고 돌아오십시오." 그녀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마을로 가서 다시 그 깃털을 모아 오십시오. 그리고 한 개도 잃어버린 것이 없나 봅시다. " 그 여인은 놀라서 목사님을 쳐다보며 "그것은 불가능해요! 바람이 그것들을 들판 저 너머 사방으로 날려 보냈을 테니까요","그렇다면" 하고 그는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을 용서는 하겠지만 당신이 말한 그 거짓된 말들이 일으킨 피해는 취소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 두십시오."
어록·시·묘사
언어는 정신의 호흡이다.
(피타고라스)
말은 마음의 그림
(영국 격언)
말은 사상의 옷이다.
(S. 존슨/ 시인의 생활)
말은 마음의 심부름꾼
(일본 격언)
말이 살아 있는 한 그 국민은 죽지 않는다.
(체코슬로바키아 격언)
말은 마음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지사(志士)의 말이 귀하다. 매운 뜻, 지극한 생각, 눈물겨운 회포가 그대로 말로 화하고 그 말이 그대로 뜻이요 생각이요 회포요 티끌만큼이라도 꾸민 데가 없으면 여기서 대중의 감격이 생긴다.
(정인보/ 「鐵驥論說集」 序)
연단(演壇)에서 하는 말은 사상을 변형시킨다
(R. 롤랑/ 장 크리스토프)
음성은 제2의 얼굴이다.
(G. 보에르/ 미발표 수첩)
말하는 자는 씨뿌리고, 침묵을 지키는 자는 거둬들인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집시는 그 소리로써 그 장소에 있나 없나를 알고, 사람은 말로써 그 지식(知識)이 있나 없나를 판단할 수 있다.
(데모스테네스)
옷감은 염색에서, 술은 냄새에서, 꽃은 향기에서, 사람은 말투에서 그 됨됨이를 알 수 있다.
(독일 속담)
말은 행동보다 더 긴 생명을 갖는다.
(핀다로스/ 네메의 송시)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솔론)
혀가 길면 손은 짧다. <*말이 많으면 실행력이 적다는 뜻>)
(영국 속담)
말은 실행의 그림자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저명철학자의 생애와 교설에서)
(데모크리토스)
말은 화석이 된 시다.
(R.W. 에머슨/ 시인)
우리의 박학한 문화에 있어서는, 말들이란 자주 정의되고 재정의 되어, 사전 속에 아주 정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에, 정말 사고의 도구가 되었다.
(G. 바슬라르/ 몽상에 대한 몽상)
어떤 사람에게 말을 할 때는 그의 눈을 보고, 그가 말을 할 때는 그의 입을 보라.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어른과 더불어 말할 때엔 처음에 그 낯빛을 살피고, 다음에 그 가슴을 살피며, 나중에 다시 낯빛을 살피되, 공경하는 마음을 고치지 말아야 한다.
(小學)
인간이 귀 두 개와 혀 하나를 가진 것은 남의 말을 좀더 잘 듣고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함이다
(제논)
글로 쓰여졌건, 말로 했건 모든 언어는 즐겨 들으려는 사람이 생길 때까지는 죽은 언어에 불과하다.
(R.L. 스티븐슨/ 속인의 도덕론)
속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이 가려지도록, 언어는 그렇게 주어진 것이다.
(R. 사우디)
말을 돈으로 알고 사용하라.
(G. C. 리히 텐베르크)
사람의 마음에 대한 통찰력과 인생에 대한 총명한 인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영국 사람의 말이고, 경묘한 농담을 번득이어서 안개처럼 골치 아픈 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프랑스 사람의 허무한 말이며,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자적인 지적인 까다로운 말을 능란하게 고안해 놓은 것은 독일 사람인 것이다.
(N.V. 고골리/ 죽은 혼)
말은 한 사람의 입으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미상)
누구도 자기가 하는 말이 다 뜻이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뜻하는 바를 모두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말은 매끄럽고 생각은 끈적끈적 하기 때문이다.
(H.B. 애덤즈/ 헨리 애덤즈의 교육)
바른말한다고 혀가 상하지는 않는다.
(J. 헤이우드/ 격언집)
혀는 몸을 배라고 하면 키와 같다.
(T. 풀러/ 금언집)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 <*말은 입 밖에 내기를 조심하라는 뜻>
(한국 속담)
말은 인간적이요, 침묵은 신성이다. 또한 야수적이고 죽은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양쪽 기술을 다 배워야 한다.
(T. 칼라일/ 일기)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언어생활도 퇴영(退孀)에서는 비약하고 첨단에서는 한 치만 낮추는 것이 고전미를 살리는 것이다.
(이동주/ 비너스상의 향수도 오리엔트)
말을 삼가할 줄 모르는 사람은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T. 풀러/ 잠언집)
당신의 입 안에 들어 있는 한, 말은 당신의 노예이지만 입 밖에 나오게 되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유태인 격언)
오늘 생각해서 내일 말하라
(H.G. 보운/ 격언수첩)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 진다
(한국 속담)
말이 생각보다 앞서지 않도록 하라.
(킬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킬론)
말은 보태고 떡은 멘다. < * 말은 전해갈수록 더 보태어지고, 떡은 이 손 저 손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
(한국 격언)
그런데 사람이 말을 참는다는 일은 밥을 굶는 것 이상으로 고역스런 일이다.
(천이두/ 응원의 심리학)
말은 날개를 가지지만, 생각하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는다.
(G. 엘리엇/ 스페인의 집시)
시간은 행한 모든 일을 지워 버리고 말은 해야 할 모든 일을 지워 버린다.
(독일 격언)
말은 짧으면서도 의미 심장하게 쓰도록 훈련시키기 위해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요소를 찌르는 말을 해야 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이런 낯익은 속담이 있다. "말은 부드럽게 하고 지팡이는 큰 것을 휴대하라. 그러면 멀리 갈 수 있으리."
(T. 루즈벨트)
물통의 물보다도 친절한 말을 하는 쪽이 불을 잘 끈다.
(M. 세르반테스/ 산초판사의 손자)
현명한 자는 긴 귀와 짧은 혀를 가지고 있다.
(영국 격언)
서글서글한 말이 평탄한 길을 만든다.
(W.G. 베넘/ 격언집)
말이라는 것은 수놓은 비단과 같아서 펼치면 모든 무늬가 나타나지만 접으면 무늬가 감추어지는 동시에 또한 소용없게 되는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말은 착하고 부드럽게 하라. 악기(樂器)를 치면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듯이 그렇게 하면 몸에 시비(是非)가 붙지 않고, 세상을 편안히 살다 가리라.
(법구경)
사람이 깊은 지혜를 갖고 있으면 있을수록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는 그의 말은 더욱더 단순하게 되는 것이다. 말은 사상의 표현이다.
(L. N. 톨스토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알랭/ 나의 명상의 역사)
세련되었을 때, 담화는 뛰어난 기술이며, 예술에 가까운 것이다. 독일 속담에 말하기를 "입을 열면 침묵보다 뛰어난 것을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고 했다.
(라복고)
훌륭한 말은, 훌륭한 무기이다.
(T. 풀러/ 잠언집)
다정스러운 말은 시원한 물보다도 목마름을 축여준다.
(G. 허버트/ 지혜의 투망)
훌륭한 말을 쓰기 전에, 그 말을 쓸 장소를 발견하라.
(주베르/ 명상록)
진실한 한 마디는, 웅변과 같은 가치가 있다.
(C. 디킨즈/ 황량한 집)
새가 장차 죽으려 함에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함에 그 말이 착하다.
(논어)
듣기 좋은 말은 아직도 무료이다.
(H. 하이네/ 룸펜 근성)
온정이 깃든 말은 삼동(三冬) 추위도 녹인다.
(중국 속담)
좋은 말 한 마디가 나쁜 책 한 권보다 낫다.
(영국 속담)
말 자체의 성실성만 가지고 본다면 그가 정말 군자인지 군자인 체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공자/ 논어:선진편)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말이라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이스라엘 격언)
말은 짧아야 좋고, 오래된 말이 짧은 때는 그 중에서도 가장 좋다.
(W.S. 처칠 경/ 어록)
좋아하는 남자의 멋대로 하는 말이라 해도, 싫어하는 남자의 분명한 사랑의 말보다 더 마음을 어지럽힌다.
(라파엘 부인/ 크레브의 안쪽)
신의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엔 신의가 없다. 착한 사람은 말에 능하지 않고, 말에 능한 사람은 착하지 않다.
(노자)
말은 돈에 비유될 수 있다‥‥과장된 말은 인플레와 같고, 약속을 실천하지 못하는 말은 흡사 부도수표와 같고, 의식적인 거짓말은 위조지폐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이 인플레, 부도수표, 위조지폐의 말이 다반사인 인간사회는 결코 건전성을 유지할 수 없으며 마침내는 붕괴를 면치 못할 것이다. 때문에 말은 신용이 있어야 하고 그 중에도 군인과 정치가의 말은 보증수표와 같이 정확하여야 한다.
(강원룡/ 五分間의 思索)
그의 말은 사이프러스 나무와 같아서 키도 크고 아름다우나 열매를 맺진 못한다.
(포키온, 플루타르쿠스/ 영웅전 '포키온 편)
인을 갖춘 사람은 말이 거침없이 나오지 않는다. 인은 실천하기 어려우니 어찌 말이 거침없이 나을 수 있으랴.
(공자)
다변(多辯)도 무언(無言)도 슬기로운 아내는 피한다.
(유주현/ 현대의 良妻)
말을 많이 한다는 것과, 잘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콜로네우스)
말(馬)토 너무 부려 먹으면 숨이 끊어지듯, 이 말이라는 것도 너무 써 먹으면 값이 없어지니까 이만해 둔다.
(S.T. 콜리지/ 햄릿론)
말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
(한국 속담)
올바르게 실행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은 얘기를 사뭇 그럴 듯하게 잘한다.
(프랑스 속담)
사람이 말을 잘 할 수 있는 재치도 없고 또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판단력도 없을 적엔 슬픈 일이다.
(라 브뤼에르/ 인간백태)
말만 영리하게 하는 자는 인자한 마음이 없는 법이다.
(논어)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얘기엔 성의가 들어 있지 않다.
(프랑스 속담)
말은 현명한 사람들의 모조화폐요, 현명한 자들은 그렇게 여길 뿐이지만 바보들에게는 현금이다.
(T. 호브즈/ 레비아탄)
생각을 표현할 때 말수가 너무 많으면 그 생각은 질식해 버린다.
(F.A. 클라크)
개는 잘 짖는다고 좋은 개가 아니요, 사람은 말을 잘한다고 남인(覽人)이 아니다.
(장자)
공자가 능변을 싫어하는 것은 선별된 말들의 무게 때문이다. 그는 가변고 매끄러운 언어사용으로 인해 말들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망설임과 신중, 말을 하기 전의 시간과 말하고 난 후의 시간도 함께 중요시된다. 간격을 두고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리듬에는 말의 가치를 높여 주는 중요한 면이 있다. 궤변가들의 재빠른 구변이나 열심히 주고받는 말의 유희를 그는 싫어한다. 재빠른 대답이 아니라 책임을 구하는 말의 침잠이 중시된다.
(E. 카네티/ 말은 양심)
편파적인 말에서는 마음을 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고,늘어놓는 말에서는 함정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간사한 말에서는 이간시키려 함을 알 수 있고 변명하는 말에서는 궁지에 몰려 있음을 알 수 있느니라.
(맹자)
음침하게 말없는 선비를 만나면, 마음속을 떨어 놓고 말하지 말라. 발끈하여 성 잘 내는 사람이 스스로 좋아함을 보거든 모름지기 입을 막으라.
(채근담)
현자의 입은 마음속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입 안에 있다.
(와이드빌/ 철학자들의 속담과 격언)
제멋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은 싫은 소리를 듣게 된다.
(알카이오스/ 단편)
사람은 잘못된 것을 말할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오로지 진실한 것은 침묵해선 안 된다.
(M. T. 키케로)
말이란 모든 무거운 자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가벼운 자에게 있어서는 말이란 모두 거짓이 아니겠는가. 노래불러라, 이제 그만 이야기하라고.
(F.W. 니체/ 일곱 개의 날인)
말의 노예가 되지 말라.
(T. 칼라일)
말은 꿀벌과 같아서 꿀과 침을 가졌다.
(스위스)
말이란 것이 감정의 면을 떠났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J.E.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예리한 혀는 끊임없이 사용해도 더욱 날카로워지는 유일할 날이 선 연장이다.
(W. 어빙/ 수필집)
사람은 언제나 행동할 때보다는 입으로 말 할 때 더 대담해진다.
(J.C.F. 실러/ 피콜로미니)
말은 거짓스럽고 간계로 가득할 수 있으나, 한숨은 마음의 자연스런 언어이다.
(T. 새드월/ 프쉬케)
사람은 비수를 손에 들지 않고도 가시 돋친 말 속에 그것을 숨겨 둘 수 있다.
(W. 셰익스피어/ 햄릿)
말의 악행을 버리고 말의 선행을 거두어라.
(법구경)
허망한 말은 곧 죄과니라.
(涅槃經)
한 발을 한 번 헛딛음은 금방 일어설 수 있으나, 한 번 헛나온 말은 아마도 결코 되찾을수 없을 것이다.
(T. 풀러/ 금언집)
사람은 누구나 그가 하는 말에 의해서 그 자신을 비판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한 마디가 남 앞에 자기의 초상을 그려 놓는 셈이다.
(R. W. 에머슨)
착한 사람일지라도 급히 친할 수 없으면 마땅히 미리 찬양치 말라. 간사한 사람의 이간이 올까 두렵다. 몹쓸 사람일지라도 쉽게 내칠 수 없으면 미리 발설(發說)치 말라. 뜻하지 않은 재앙을 부를까 두렵다.
(채근담)
말은, 그것이 내 뱉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선전이며 정신적인 사슬이 된다.
(하다모우스키/ 프로파간다와 국가권력정치)
검에는 두 개의 날이, 사람의 입에는 백 개의 날이 달려있다
(베트남 속담)
말을 실수하는 것보다는 발을 헛딛는 게 낫다.
(G. 허버트/ 명궁)
질이 좋지 않은 혀는 질이 좋지 않은 손보다도 나쁘다.
(유태인 속담)
서투른 의사소통은, 훌륭한 예절을 망쳐버린다.
(메난드로스/ 타이스)
고기는 낚시바늘로 잡고, 사람은 말로써 잡는다.
(독일 속담)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노자)
말하는 남생이. <*말을 하되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한다는 뜻>
(한국 속담)
악한 말은 어리석은 자의 귓속에서 잠잔다.
(W. 셰익스피어/ 햄릿)
사람의 말씨는 그 사람의 마음의 목소리이다. 무뚝뚝한 마음은 무뚝뚝한 소리를 낸다.
(에머슨/ 일기)
날카로운 말은, 외과의사도 치료하기 힘든 상처를 낸다.
(T. 처치야드/ 인간의 거울)
사람은 허영심에서 말을 하지 않으면 거의 말하지 않는다.
(라 로시푸코/ 잠언집)
끝없이 수다를 떠는 어떤 사람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당신의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 사람은 위로를 받고 나아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그 수다쟁이는 수다를 고치고, 의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우리들 대부분은 침묵의 저항과 말많은 굴종 사이에 어중간하게 서서 망설이고 있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젊은 날에 마음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성숙하면 마음은 생각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말이 많아졌을 때, 그때는 이미 마음이 늙어버린 것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현단한 말로써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는 자는 화장으로 추한 얼굴을 감추려는 여인과도 같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수사학이란 귀를 간지럽히는 말의 기교지만, 웅변은 마음과 정신이 함께 만나는 것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그만 수다스러운 제 입을 다물게 하소서/한없는 욕심으로 구하고 또 구하던 것을/ 알고 보니 이미 받은 것이더이다. / 제가 놓여져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당신의 모습을 새로이 보았더니/오히려 할 말이 없어지더이다.//하오니 주여,/ 이제 당신의 세미한 음성을/들을 수 있도록 귀를 뚫어 주소서./ 닫혀 있는 마음을 열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오니/우뢰같은 소리로 꾸짖어 주시고/ 나뭇잎 서걱임 같은 말씀으로 가르쳐 주소서.// 마지막으로 주여,/ 세치 혓바닥의 말이나/ 텅빈 마음만으로써가 아니라/ 손과 팔과 다리와 온 몸뚱이로 기도하게 하소서/입술의 고백이 곧 행동이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이 나의 삶이되게 하소서.
(서덕석/ 다시 드리는 기도)
말하면 잡류(雜流)라 하고 말 아니면 어리석다 하네/ 빈한(貧寒)을 남이 웃고 부귀(富貴)를 샘하는데/ 아마도 이 하늘 아래 사는 일이 어려워라.
(朱義植/ 청구영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웬지 두렵습니다. /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와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푸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 주시어/좀더 겸허하고/좀더 인내롭고/좀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듬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린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과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희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이해인/ 말을 위한 기도)
그러나 저 납작한 벌판의 찬 흙 속에/ 한마디 말을 묻게 해 주세요/뜬구름도 흐르게 하는 푸른 하늘다운/ 희망 한 가락은/ 얼어붙지 않게 해 주세요./ 겨울은 추울수록 화려하고/ 길은 멀어서 갈 만하니까요/ 당신도 아시지요만, 하느님.
(정현종/ 냉정하신 하느님께)
아무리 아름답게 지저귀어도/ 아무리 구슬프게 울어 예어도/ 아침에서 저녁까지/ 모든 소리는 소리로만 끝나는데,// 겨울 까마귀 찬 하늘에/ 너만은 말하고 울고 간다!// 목에서 맺다/ 살에서 터지다/ 뼈에서 우려낸 말,/ 중에서도 재가 남은 말소리로/ 울고 간다. // 저녁 하늘이 다 타 버려도/ 내 사랑 하나 남김없이/ 너에게 고하지 못한/내 뼈 속의 언어로 너는 울고 간다.
(김현승/ 산까마귀 울음소리)
백규(白圭)에 있는 흠을 갈아 내면 없으려니 사람의 말 허물은 갈아서 없을손가/ 남용(南容)이 이러하므로 삼복백규(三復白圭)하도다.
(이정보)
말하지 말자/ 말하지 말자/ 제몸 사루는 불빛도/ 침묵뿐인 걸
(김남조/ 頌)
말은 가지 끝의 잎새/ 생각만이 병(病)으로 깊어져/ 묵언의 밀밭되고
(김남조/ 虛)
말을 삳가하여 노(怒)하온 제 더 참아라/ 한 번을 실언하면 일생에 뉘우쁘뇨/ 이 중에 조심할 것이 말씀인가 하노라.
(김삼용)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음이 좋아라.
(작자 미상/ 古今歌曲)
나를 불러 주시어요./ 가지 마라고 일러 주시어요/ 일년 내내 수도물같이 쓰는/ 세상 사람들의 그 말/ 사랑이라고도 부디 말씀해주시어요
(김남조/ 새봄감상 · 2)
나는 싸움을 거는 투로/ 괴상한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입을 동그랗게 하여 토합니다/ 예수의 그 부드런 충고를
(라포르그/ 피에로의 말)
듣는 말 보는 일을 사리에 비겨 보아/ 옳으면 할지라도 그르면 말을 것이/ 평생에 말씀을 가려내면 무슨 시비 있으리.
(무명씨)
님이여, 나를 책망하려거든 차라리 큰 소리로 말씀하여 주셔요, 침묵으로 책망하지 말고. 침묵으로 책망하는 것은 아픈 마음을 얼음 바늘로 찌르는 것입니다.
(한용운/ 차라리)
모든 침묵은 만들어지는 말의/ 깊이를 말해준다/ 즉, 모든 인간은 말로서 버려진 오두막집을 표현한다/ 침묵은 후회할 말을 하는 것을 막아준다.
(바트나가르/ 말하는 침묵)
진일(眞逸)선생이 일찍이 서후산(徐後山)과 더불어 한림원에 들어갔었다. 서후산은 왕비의 조카뻘이 되는 사람으로 문명(文名)이 있었으며, 세조가 장차 높이 발탁, 등용하려 하여 은총이 비할 데 없었는데, 선생이 퇴조(退湖)하여 문득 백씨(伯氏)에게 말하기를, "서후산은 자기 명(命)에 죽지 못할 것입니다. " 하였다. 백씨는 놀라면서 그 까닭을 물으니 선생은 말하기를, "사람됨이 너무 강하고 사나워서 할 말을 다 하기를 좋아하니, 그가 어찌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요." 했는데, 얼마 안 가서 피살되자 모두 그의 선견지명에 탄복하였다.
(성현/ 용제총화)
샛맑안 들이랑 하늘이랑‥‥‥바다랑/ 그런 냄새가 하는 입김을 주십시요/ 불타는 사과인양 즐거운 말을 주십시요.
(전봉건/願)
네 미끄러운 혀보다도/ 네 부드러운 입술보다도/ 네 이빨로 말하는/ 너의 시가 나를 깨문다. // 질긴 고기를 가래어 찢는/ 네 모진 이빨로 말하는/ 너의 시가 나를 깨문다. // 네 영혼을/ 칼 위에 세우고,/ 머뭇거리는 네 영혼을 몰아 칼날 위에 세우고,/ 너를 동여 감은 사슬을 성한 밧줄을/ 온종일 물어 뜯으며/물어 뜯으며/ 네 아픈 이빨로 말하는/ 너의 시가 나를 깨문다. // 문법도 질서도 음악도/으깨져 사라져 버린,/ 네 마지막 숨소리와도 같이/ 토막토막 끊어지는,// 네 소리를/ 네 소리의 피를/ 나는 듣는다,/ 내 영혼의 비록 아둔한 귀일지라도.
(김현승/ 齒牙의 詩)
이리 목놓아 내가 불러도/ 청산아! 너는 컹컹 산울림뿐/ 묵묵히 말이 없고
(신석초/ 청산아 말하여라)
참말로 한 개의 핀이라도 기억의 피를 흘리게 하고/ 한 마디 말이라도 마음을 찢게 한다.
(샤피로/ 망향)
하늘의 별과 바람과/ 땅의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고/ 말할 때와 침묵할 때와/ 그 침묵의 눈물을 생각하면서/우리의 작은 빈 손 위에/ 푸른 햇살이 내려와 앉게 하소서
(정호승/ 작은 기도)
내가 마음에 있는 것은 더도 덜도 말고 그대로 말한다는 것/ 그것은 아시죠./ 나는 겉과 속이 다른 말을 하지 못합니다.
(H. W. 롱펠로)
태양은 우리들에게 빛으로 말을 하고/ 향기와 빛깔로 꽃은 얘기한다. /구름과 비와 눈은 대기의 언어./ 지금 자연은 온갖 몸짓으로 가을을 얘기하고 있다. /벌레들이 좀먹는/ 옛 탁자 앞에서/ 사람들은 가짜 사랑을 말하고 있었다.
(J. 폴랭/ 말)
제자는 장터에서 들은 소문을 스승에게 말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다. // "잠간만 기다리게." 스승이 말했다. / "자네가 우리한테 말하려는 그 이야기가 사실인가?"// "아닐겁니다. "// "쓸모가 있나? "/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 "재미있나?"// "아닙니다. "//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앤소니 드 멜로/ 말)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박재삼/ 밤바다에서)
오 들판마다/ 그 사람 뿌려놓은 말/ 모두 다 열매되어/ 황금같이 익네.
(이성교/ 그 사람 · 2)
바람의 목젖에 외마디 말이 걸려 있는데/몰려오는 바람결은 라이 보리밭에 물결을 일게 한다.
(윌버/ 변명)
나로 하여금 작고 약해서/ 말 못하는 이들을 위한 소리가/ 되게 하시고/ 나로 하여금 말할 능력이 없는 모든 무력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하게 하소서/ 이 모든 겁내고, 집없고, 굶주린/ 미소(微小)한 자들을 위하여/ 내 심정을 하늘에 올렸나이다. 나는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외치나이다/ 누구든 내가 도울 수 있고/ 필수적 부르짖음에 응답이 있으면,/ 그들 모두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도 기도에 답해 주신 줄로/ 알겠나이다.
(헬렌 인두드/ 무력한 이들을 위한 기도)
문지방 저쪽엔/ 무엇이 있는가.// 보이지 않는 분홍빛 휘장 뒤/초대적에 피었던 구름 뒤에는/ 누가 있는가.// 뜻 모를 한 마디 말이 있어/ 오라, 오라, 오라 하신다. // 이제 어떤 모양으로/ 문은 열려지겠기에/ 저토록 목마르게/ 오라, 오라, 오라고 하시는가.// 아, 어리고 선 마음으로 가도/ 열려 있는 문은 누구탓인가.// 주무시 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며/오라, 오라, 오라, 오라/ 한사코 기다리시는 이가/ 있다고 한다.
(정벽봉/ 목소리)
나는 그곳에서 순례자의 벗이 되고 싶습니다/그들의 목소리와 모습 속에서/어떤 유혹이 있을지라도 다시는 떨어짐이 없이
(릴케/ 나로 당신의 광야 파수꾼이)
설 교 노 트
언어 장벽
창11:1-9
서론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다가 결국 언어의 혼잡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원하는 바벨탑도 쌓지 못하고 실패하고 자손 만대로 언어의 장벽 가운데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서술해 주는데 언어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본래의 언어는 단일어였습니다.
본문 1절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언어가 하나였다는 것은 사상과 감정을 통일시키는 지름길인데 이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통일된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깝게 해 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언어를 하나만 허락하신 이유는 인류들이 더욱 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 드리는 데에 불편함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노아의 후손들은 통일된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이 서로 힘을 합쳐 하나님께 대항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통일된 언어가 공사하기에 더욱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서로 혼잡케 하시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못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2. 언어 혼잡의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본문 6-7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벨탑 건축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 만한 죄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탑 건축의 목적이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케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바벨탑 건축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여 인간의 나라를 세우려는 인간의 무지와 부패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또한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한 것은 노아 홍수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인간의 기술 문명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들의 언어 혼잡으로 흩어짐을 면케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으나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흩어진 것입니다.
3. 주님의 재림이 있어야 언어 장벽이 해소됩니다.
고전13:8-10에 보면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생긴 언어의 혼잡은 주님의 재림 전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때에 가서야 해소될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때에 언어가 하나되어 말하고 알아듣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아니면 우리의 언어는 서로 장벽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언어가 하나였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혼잡된 것은 저주입니다.
오늘날에도 자국어로 된 성경이 없는 민족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바벨탑 사건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언어가 혼잡하여 언어 소통에 지장을 초래하였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어지는 주님의 재림과 완전한 천국이 임한 때에 언어 장벽은 완전히 해소될 것입니다.
말을 삼가라
약3:1-12
서론
말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말에 질서가 없으면 혼란을 가져옵니다. 본문 6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삼가 조심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입을 지켜야 생명을 보전하기 때문입니다(잠13:3).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옵니다.
시141:3에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입에 파수꾼을 세워 신실하지 못한 말(시5:9)과, 저주하는 말(시10:7)과, 교만히 말하는 것(시17:10)과, 거짓말함(시63:11)과, 남을 비판하는 말(마7:1)을 막아야 합니다.
자기의 입을 잘 지켜서 자기의 생명을 지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중히 생각해서 하는 말은 다른 자들을 넘어뜨리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서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게 합니다.
자기의 입을 항상 조심하여 하나님의 징계하심을 피해야 하겠습니다.
2. 말에 대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6-3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내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한 마디의 말이 생명을 죽이게 하고 살리게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마음의 생각이 악하면 악한 말을 하게 되는 것이고, 마음의 생각이 선하면 선한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하므로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악한 생각을 가지고 악한 말을 하는 자는 결국 심판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말에 대한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항상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3. 말을 삼가해야 좋은 날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혀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말을 삼가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해야 똑똑하고 잘난 줄 아는 사람이 많으나 그것은 오히려 자신을 실패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됩니다. 진정 좋은 날을 보기를 원한다면 자신이 하는 말을 삼가해서 해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때로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여 악한 생각이 불 일 듯하여서 말도 악한 말을 내뱉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은 곧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날은 악을 행하고 말을 삼가하지 못한 자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행위와 선한 말을 한 자에게는 좋은 날이 될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날을 예비하여 말을 삼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141:3
서론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한 본문은 말조심에 대한 교훈입니다. 문을 지키는 보초와 파수꾼의 존재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문을 지키는 자가 없으면 그 집이 어떻게 되겠으며, 망대를 지키는 파수꾼이 없으면 그 나라가 어찌되겠습니까?
1. 입술로 범하는 죄의 원인
(1) 자제력의 결여 때문입니다.
아무리 주의력이 깊고 매사에 침착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분노하게 되면 자제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흥분을 감당하지 못하여 마음에 내키는 대로 떠들게 되니 입술로 범죄하는 것입니다. 문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까닭입니다.
(2) 허영심과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자신을 자랑하며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교만한 자나, 없는 것을 있는 체하여 허영심에 미혹될 때, 있고 없는 말을 하므로 효과를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입의 문을 지키지 못하여 필요 없는 말이 많아지게 되면 결국 손해를 당하게 되고 범죄에 이르게 됩니다.
2. 지키지 못한 결과의 손해
(1) 자신에게 큰 손해가 임하게 됩니다.
잠언 10장 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책임 없는 말, 필요 없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에 죄악을 가져오고, 양심에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인격과 의지를 약하게 하고 명예가 상실되며 심지어는 죽는 데까지 이르게 됩니다.
(2) 타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줍니다.
내 입의 문을 지키지 못하여 한 말이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면 일단 거둘 수 없으며, 또한 상하여진 마음은 다시 회복하기 힘들게 됩니다. 자신은 자신의 잘못 말한 것 때문에 그 책임을 지고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나 잘못이 없는 타인이 내 말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경우는 그것을 보상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항상 조심하여 자신과 타인에게 손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입술의 문을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1)입술의 문은 말씀으로 지킴으로써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파수꾼을 세우면 그 말씀이 곧 마땅히 해야 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분간하여 조정하여야 말의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즉, 성 경의 말씀으로 검사를 받아서 입술의 문을 잘 지켜야 할 것입니다.
(2) 기도함으로써 그 문을 지켜야 합니다.
사람의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입술로 범죄하는 법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여서 입술의 문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쓸데없이 말을 하여 범죄하는 자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봄으로써 자기 입술의 문을 잘 지키는 자를 더 기뻐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입술의 문을 잘 지키면 보화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여 필요한 때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입술의 문을 말씀으로 잘 지킵시다.
경우에 합당한 말
잠25:11
서론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사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름답지만 그러한 말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경우에 합당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경우에 합당한 말의 성격
한마디로 말하면 간단 명료한 말입니다. 말이 많으면 분쟁을 일으키고, 싸움을 불러오다, 예리한 대립을 일으키며, 의미를 모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말의 아름다움을 감소시키고 마땅한 위로를 훼손시킵니다. 말이 많다고 해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받은 분량에 따라서 평가될 것도 아닙니다. 많은 말은 무익할 수 있으나 한 마디의 무게 있는 말, 즉 경우에 합당한 말은 천금과 같은 것입니다. 특히, 그 말이 경우에 합당할 때에 더욱 그렇습니다. 말은 표현된 사상이고, 말의 핵심은 그 뜻에 있는 것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어떤 것입니까?
(1) 진실 무방해야 합니다.
(2) 말하는 자의 본심이어야 합니다.
(3) 청중과 부합되는 말이어야 합니다.
(4) 시기에 적절해야 할 것입니다.
(5) 요점과 특색이 있어야 합니다.
(6) 갖추어진 말이어야 합니다.
(7) 지혜롭게 하는 말이어야 합니다.
2. 경우에 합당한 말의 우수성
은쟁반에 금사과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닙니다. 일반 서민층 가정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경우에 맞는 말은 그리 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듣는 많은 말들 중에는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고 돌처럼 흔한 말들이 거의 모두입니다. 금과 은이 그 값이 비싼 것처럼, 귀중한 말 한 마디는 참으로 귀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는 말이 있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름다운 말입니다. 은쟁반에 놓은 금사과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 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말은 누가 듣던지 기분이 상쾌한 것이 마치 아름다운 풍경이나 물건을 보는 젓 같은 인상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아름다운 은혜를 베풀기 때문에 지혜롭고 사랑스러운 말을 귀중시 하게 됩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므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을 함에 있어서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세상에는 값이 나가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은쟁반에 금사과라고 하면 그것은 매우 고가의 귀중품인 것입니다.
그만큼 경우에 합당한 말이 매우 귀중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진리와 선한 말은 주님이 주신 말씀이니 이런 말을 하도록 우리는 모두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쓰지 않고 돌과 같은 굳은 말을 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절대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언어에 조급한 사람
잠29:20
서론
본문에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조급"이라는 딸의 뜻은 마음에 참을성이 없어서 성급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지 성급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신중히 생각하여 본 후에 말을 해야 그 말에 대해 책임을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말은 쏟아 놓는 물과 같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언어에 대하여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심사숙고하면서 말을 해야 합니다. 한 번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대하여서는 다시 취소하거나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릇에 담겨져 있던 물을 땅바닥에 쏟아 놓았다면 그것을 다시 그릇에 담을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릇에 물이 담겨져 있을 때 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한 번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상대방의 귀 속에 박히면 아무리 센 힘으로도 다시 빼어 버릴 수 없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말을 해 버리고 말면 영원히 거둘 수 없음을 알고 신중히 발언해야 합니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보아서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해야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그저 내뱉는 말은 자신을 오히려 함정에 빠트리게 됨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2. 조급한 말은 자기 손해를 초래합니다.
언어의 대화란 상대방과의 중요한 교제입니다. 상대적 입장에서 교제하는 과정에서 나의 발언이 잘못되어 상대방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주거나 그의 감정에 자극을 주면 결국은 자기 자신이 손해를 받게 됩니다. 현대 사교술에 있어서 언어의 매력과 효과는 큰 것으로 언어에 조심성 없이 함부로 조급하게 말하다가 스스로 손해를 보게 될 터이니 언제나 대화를 할 때는 심사숙고해서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천천히 말하는 사람이 실수하거나 손해를 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언제나 조급한 언어가 실패를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손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조급한 말을 피해야 합니다. 지혜있는 자가 되어서 모든 언어에 있어서 책임있는 말을 하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온전한 사람의 표준
실천적 신앙을 권면한 야고보서에 보면 말의 실수가 없도록 혀를 재갈먹이라는 교훈과(약1:26),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나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격의 표준을 말에 두었습니다. 또 혀는 지체 중에서도 작은 지체지만 큰 것을 자랑할 수 있다고 하여 선용하고 악용하는 경우에 따라서 그 효과가 정반대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0-11절에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인격의 표준을 말에서 찾을 수 있다면, 말조심이 얼마나 귀중한 덕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결론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고 짠 물이 단 물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합니다. 위선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치의 혀로 세계를 움직인다는 말도 있듯이 말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이렇듯 가장 쉬운 행위인 말이 가장 큰 결과를 초래하여 좌우하는 것임을 명심하고 조급한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말 세
성 경 활 용
1. 말세를 나타내는 성경의 표현
(1) 정한 때의 끝
(단8:17)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 니라
(2) 마지막 때
(단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히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유1: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3) 말일
(호3:5)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4) 말세
(행2:17) 하나님 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약5:3)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5) 세상 끝
(마24:3)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6) 끝
(마24: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2. 말세에 됨임
(1) 예비된 구원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나기로 예비하신 구언을 얻기 위하여
(2)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에 나타나심
(히9:26)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3)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 영을 부어주심
(행2:17) 하나님 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4) 구원의 날이 끝남
(마24: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 라
(5) 주께서 불법한 자를 죽이심
(살후2:8)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6) 의인과 악인을 구분함
(마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며
(7) 세상의 멸망
(벧후3:10)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 말세 징조
(1) 스스로 부패하며 악을 행하여 재앙 당함
(신31:29)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2) 거룩치 못함
(딤후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3)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함
(딤후3:4) 배반하여 팔며 조금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4) 주의 재림이 없다고 회롱함
(벧후3:4)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주의 이름으로 와서 미혹하는 자가 생김
(막13: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기독교 박해가 일어남
(마24:9)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7)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8) 적 그리스도가 생김
(요일2:18)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 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9) 불법이 성함
(마24: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4. 말세에 있을 자연적 징조
(1) 전쟁이 일어남
(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2) 기근과 지진
(마24:7)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3) 왕래가 빠름
(단12:4)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5. 말세에 임할 성도의 자세
(1) 주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얻을 것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 거짓과 타협하지 말 것
(딤후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3) 뒤돌아보지 말 것
(마24:18)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로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4) 환난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게 기도할 것
(마24: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5) 깨어 있을 것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6) 예비하고 있을 것
(마24:44) 너희가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는 때에 인자가 오리라
관련원어풀이
1. !ym'yI tyrIj}}a' 아하리-트 야밈-
말세.
(신31:19)
2. tyrIj}}a' 아하리-트
(1) 마지막 부분, 극단.
(시139:9)
(2) 끝, 종말.
(신11:12)
(3) 결과, 마지막 사건
(잠언5:4)
(4) 최근 시간, 미래 시간.
(창49:1, 단10:4)
(5) 자손 후대.
(시109:13)
3. hl;K; 칼라-
(1) 완료되다, 끝마치다.
(출39:32)
(2) 지나다, 가버리다.
(창41:53)
(3) 소모되다, 보내다.
(창21:15)
(4) 완성되다. 끝마치다.
(창2:2)
(5) 소멸되다, 파괴하다.
(왕하13:17)
4. $qe 케-츠
(1) 끝, 극단.
(사37:24, 렘50:26)
(2) 끝, 백성의 파멸.
(창6:13, 겔21:30)
(3) 예언의 사진, 일.
(합2:3)
(4) 종말, 말세.
(단8:17, 19)
5. e[kbasi" 엘바시스
(1) 나감, 유출.
(고전10:13)
(2) 결국, 종말.
(히13:7)
6. loipov" 로이포스
(1) 남겨진, 나머지의.
(계8:13)
(2) 남은 자.
(계9:20, 11:13)
(3) 다른.
(마25:11, 고전9:5)
(4) 이후에.
(갈6:17, 엡6:10)
(5) 마지막으로, 더구나.
(고전1:16, 빌3:1)
7. tevlo" 텔로스
(1) 끝, 결말, 어떤 일이 미치는 한계
(눅1:33, 고후3:13)
(2) 결국, 마침내.
(마10:22, 눅18:5)
(3) 끝까지.
(고전1:8, 히6:11)
(4) 마침, 결과, 운명, 숙명.
(마26:58, 히6:8)
설교예화자료
하늘에 나타난 표적들
인도의 봄베이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밤, 선교부에서 나온 100명의 소녀들이 노상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돌연 밤 하늘에 거대한 반원형의 형태로 '예수께서 곧 오신다. '라는 불로 쓰여진 글자를 보았습니다.
스웨덴에서는, 300명의 사람들이 철야 기도를 끝내고 돌아오다가 갑자기 하늘에 어떤 커다란 손이 '보아라, 내가 곧 오겠노라.'라고 하늘에 쓰여진 글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고, 펜실베니아 주의 요크에 사는 H.E.클라인 의사가 새벽 2시에 한 환자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다가 밤하늘에서 유난히 환하게 빛나는 한 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별에서 얼마 떨어진 곳에서 한쪽은 은빛의 광택이 나고, 다른 한쪽은 진홍색의 선명한 색조를 띠고 있는 십자가를 보게 되었는데 십자가 꼭대기에는 별로 진 왕관이 있었습니다. 클라인 의사는 가족을 불러내었고 그들은 그 놀라운 광경을 그것이 사라진 새벽 4시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집에 오신다면
만일 예수께서 하루나 이틀을 거하시려고 당신 집을 방문하신다면, 만일 그 분이 예고도없이 오신다면, 나는 당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나는 당신이 그와 같은 영광스런 손님에게 최고로 멋지게 꾸며진 방을 내어드릴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분께 대접하게 될 모든 음식은 최고급 일류 요리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당신의 주님을 모시게 되어 기쁘다고 계속 그 분께 말씀드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 분께서 오시는 것을 보았을 때, 문까지 뛰어나가 그 분을 맞이하실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팔을 확 펼치고 하늘에서 오신 우리의 방문객을 환영하겠습니까?
아니면 그분께서 들어오시도록 하기 전에 당신은 옷을 갈아입을 지도 모르며, 또한 어떤 잡지들을 숨기고 대신 그 자리에 성경책을 놓을 지도 모르겠지요!
당신은 라디오를 끄고는 그가 듣지 않았기를 바라고, 그리고 당신은 바로 전에 큰 소리로 성급하게 말하지 않았었기를 바라겠지요?
당신은 당신이 세속적인 음악을 숨겨 버리고 찬송가집을 꺼내 놓겠습니까?
당신은 예수님께서 곧바로 들어오시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허둥대겠습니까? 나는 궁금합니다·. 만일 구세주께서 당신과 하루나 이틀을 함께 지내신다면, 당신은 늘상 하던 일을 계속해서 하겠습니까? 당신이 항상 하던 말을 계속해서 사용하겠습니까? 날마다 했던 생활 방식대로 그 생활을 계속 하겠습니까?
당신 가족들의 대화는 평상시 하던 대로 지켜질 것입니까?
그리고 매 끼니마다 식사 기도를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할 것입니까?
당신은 항상 부르는 노래를 부르고, 읽던 책을 읽겠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정신과 영혼이 섭취한 것들을 그 분께 알리겠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가고자 했던 모든 것으로 예수님과 함께 가겠습니까?
당신은 아마도 하루나 며칠 정도는 당신의 계획을 바꿀지도 모르겠지요?
당신은 기꺼이 그 분께서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들과 만나보시도록 하겠습니까? 아니면, 친구들이 그 분의 방문 마지막 날까지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당신은 기꺼이 그 분께서 계속해서 영원히 머무르시도록 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분이 드디어 가셨을 때 크게 안심하여 한시름 놓을 것입니까?
만일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얼마 동안을 당신과 함께 지내신다면 당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되겠지요.
어록·시·묘사
비록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리라.
(B. 스피노자)
우리가 아무리 엉성하게 일을 하더라도 하느님이 끝맺음을 해주신다.
(W. 셰익스피어)
오늘날, 이 지구상의 모든 주민은 이 지구가 이미 살 수 없이 될지도 모를 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J. F. 케네디)
매사엔 종말이 있다.
(초서/ 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
사람은 일을 계획하지만 신이 결말을 짓는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종말이란 비극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미상)
종말을 봄으로써 우리는 갑자기 시작의 전모를 눈 앞에 보게 된다.
(E. 카네티/ 말의 양심)
이 세상의 만물은 각기 스스로의 종말을 누리게 마련이고, 나는 지금 나의 것에 직면하고 있다.
(J. 레이놀즈)
어리석은 자는 자기 일을 시초만 주의하고, 현명한 자는 그 결과에 유의한다.
(미상/ 참조물의 대화)
강한 것도 약한 것도 모두가 썩어,하나 같은 먼지가 된다.
(W. 셰익스피어/ 심벨린)
벼락과 같은 신의 무기 앞에서 거만한 궁전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나무들은 쓰러져 멸망하고 만다.
(헤로도토스)
전체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갖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이제, 영웅이나 순교자가 이 이상 기억에 머물지 않고, 모든 생명과 모든 남녀의 영혼이 이 지구상의 그 어느 곳에서도 쫓겨난다면, 그 때에야 비로소 자유와 자유의 관념은 소유되리라. 유럽의 남녀 반항자들이여, 그러기에 용기를 가져라! 모든 것이 종말을 고할 때까지 너희들은 결코 종말을 고할 수 없으리니.
(W. 휘트먼/유럽의 영광된 혁명가에게)
끝이 좋으면 모두 좋을 것이다.
(작자 미상/ 로마의 위업)
예로부터 지금까지 어찌 멸망하지 않은 나라와 파괴되지 않은 무덤이 있겠느냐.
(미상)
막을 내려라, 희극은 끝났다.
(F. 라블레)
마지막 날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그리고 바라지도 말라.
(M. V. 마르티알리스)
스승이 세상의 파멸에 대해 강연을 하리라는 것이 오래 전부터 광고가 되었고, 그래서 수도원 마당에는 많은 군중이 모였다. / 강연은 일분도 채 안 걸렸다. 이것이 그가 말한 전부였다. / "이러한 것들이/ 인류를 파괴시킬 것입니다:/ 원칙없는 정책,/ 연민없는 발전,/노동없는 富,/ 침묵없는 배움,/ 대담성없는 종교,/ 그리고 깨침없는 예배."
(앤소니 드 멜로/ 인류)
인류의 종언의 날에/ 너의 술을 다 마시고 난 날에/ 미 대륙에서 석유가 고갈되는 날에/그렇게 먼 날까지 가기 전에 너의 가슴에/ 새겨둘 말을 너는 도시의 피로에서/ 배울거다/ 이 단단한 고요함을 배울거다.
(김수영/ 사랑의 변주곡)
우리의 발걸음 앞에/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예수 이름이 있게 하시고/뱀을 집어도 해를 입지 않을/ 능력의 말씀에 있게 하소서
(김지향/ 능력의 말씀으로)
달고 오묘한 말씀이/ 가슴에 부딪칠 때마다/또다시 밖에서는/ 까치소리가 들린다.
(이성교/ 소리)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아직 27개월분의 주택적금 불입금이 남아 있고/ 열흘쯤 지나면 아내는 몸을 풉니다/ 또 하나 새로운 권리를 위하여 아직 열리지 않은 도시 두드리며 기다리며
(이윤택/ 저녁 기도)
세계는 불로 끝난다는 사람도 있고/ 얼음으로 끝난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맛본 욕망을 두고 말한다면/ 불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나는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세계가 두 번 망한다면/ 파괴를 위해서는 얼음도 또한 위대하며/ 족하리라고 말할 만큼/증오에 대해서도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R.L. 프로스트/ 불과 얼음)
아 남겨진 시간을 마음껏 이용하라./ 우리 죽어서 티끌 속에 묻히기 전에/ 먼지는 먼지대로 혹은 그만도 못한 것./ 술도 없고, 노래도 없고, 시인도 없다. 그렇다고- 종말도 없나니.
(오머아)
떠돌아 다니는/ 말씀을 보이지 않는/그물로 건져 올리는/ 그 손이 보이지 않는다// 겹겹이 옷을 입고/ 말씀이 앓는다/ 고백을 잃고/ / 표적을 잃고/ 피흘리지 않고/ 말씀이 앓는다// 말씀이 떠나간다/ 버리고 또 버리고/ 깍고 또 깍은/ 마지막 말/ 땅 속에서도 고개 쳐들며/하늘 깊이 화살같이/ 박히어/ 말씀을 바칠/ 주인에게로// 살갗에 묻은 독(毒) 비수 곁을 지나가는/ 서슬푸른 적의를 낮추고 말씀이/ 천상에 꽂힌다// 돌아서 오는 허공/ 만나지 못한 말씀/ 말씀아 적고 또 썩어/ 백골이 될 때까지/ 숨어서 다만/ 숨어서 목숨만은 건져라.
(김윤희/ 말씀)
내게 가장 사랑스러운 신앙은/ 희망이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신다. / 희망은 만사를 함께 이끌어들이는 미소한 것/ 신앙은 존재하는 것만을 보고 있으나/ 희망은 존재할 것을 보고 있네/ 사랑은 존재하는 것만을 사랑하지만/희망은 존재할 것을 사랑하네/ 신앙은 영원과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을/ 사랑하지만/ 희망은 시간 속에서 영원을 위해 존재할 것을 보고 있네./ 이를테면 영원의 미래를 위해‥‥//희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것을 보고 있네/ 희망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할 것을 사랑하네./ 시간과 영원의 미래 속에서
(뻬기/ 종말은 희망)
들녘엔 개쪽이 돋고/ 하루하루가 최후의 날처럼 지나가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을 때는/ 또 일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호승/ 갈대)
있으라 하신 자리에 있사옵니다. /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 잠시라고 하시면서 있으라시기에/ 다시 만나올 그 머언 시간을 위해/흔들리는 바람결 속에서도 있사옵니다. // 있으라 하신 자리에 있사옵니다. / 티끌보다 연약한 삶 하나/ 떠나시온 그 순간부터/ 이어진 끈으로 지탱하고 서서/ 애오라지 견고한 만남을 위하여/ 젖어드는 비바람 속에서도 있사옵니다. // 있으라 하신 자리에 있사옵니다. /깨어 일어나 기도하는 새벽부터/ 감사 찬송으로 끝맺는 밤중까지/ 때로는 고달프고 때로는 서러우나/ 오실 날짜 그 순간 기다리면서/ 휘날리는 흙먼지 속에서도 있사옵니다. //있으라 하신 자리에 있사옵니다. /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 잠시라고 하시면서 있으라시기에/ 다시 만나올 그 머언 시간을 위해/흔들리는 바람결 속에서도 있사옵니다.
(허형만/ 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너희는 모두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홀로 커 가는 올리브나무 아래서 들렸습니다. / 올리브나무들은 더욱 깨어나/사월의 끝에 서서/ 사월의 희망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새벽까지 기도를 하고/ 절망의 그림자를 지을 때까지/ 새벽별의 눈물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잠 못 이룬 새벽길의 혁명을 위해/ 기도하는 나무로 불을 밝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절망에서 희망까지/ 깨어 있는 나무들로 서 있습니다.
(김수복/ 기도하는 나무)
나는 정적이 깃든 강가에 서서/ 당신의 현존을 느낍니다. / 이 세상 것이 아닌 당신의 한 말씀을/ 이 고요 속에서 기다립니다. / 자신 안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서 벗어나/맑고도 상쾌한 바람으로 당신을 호흡합니다.
그대의 말씀을 덮고 자게 하소서 떨어지는 별빛에서 홀로 가는 달빛까지 그대의 따뜻한 사랑에 깊게 잠들게 하소서 괴로운 상처, 슬픔의 눈물, 당신의 사랑의 힘 속에 모아엮은 등불 속에 눈을 감고 편안히 잠이 들게 하소서 그대의 더운 입김에 꿈을 꾸게 하시고 겨울이 꽃으로 새벽이 바람으로 그대의 빛깔로 피어나게 하소서 모두다 그대의 넓이를 알게 되게 하시고 당신의 하얀 꿈이 사랑인 줄 깨닫게, 어둠도 멀리 있는 사랑인 줄 깨닫게 모두들 그대의 깊이를 알게 되게 하소서 모두들 그대의 말씀을 덮고 자게 하소서
(원희석/ 눈과 같은 기도)
빛으로 오십시오/ 연초록 물이 나뭇가지에 오르는/3월입니다/ 목소리로 오십시오./ 묵은 땅을 기경하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 봄비가 온 들판을 두들기는/ 3월입니다.
(류순화/ 3월)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말씀이/들과 산을 걸었다/ 가난한 호반의 거리와 마을들/회당과 집들, 문과 문을 다니셨다.
(다카노 기쿠오/ 설교를 가르치신 예수)
임의 말씀 전반은/ 맑으신 웃음/ 그 웃음의 절반은/ 하느님과 같으셨다.
(김남조/ 임)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타고르/ 동방의 등불)
오호라, 한 군데/ 당신 말씀 생각나/ 내 골방 서재에서 오래 잠자던/당신 말씀 펴들고/ 이 봄에 조용히 눈감아 보네/ "내가 너희에게 필요한 비를/ 그 시후(時候)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그 열매를 맺을지라."
(김성영/ 土霧)
캄캄한 어느 날의 내 여정에/ 당신의 말씀 무늬 놓아/ 작은 산새처럼 고단한 영혼/ 가볍게 하소서/ 영원의 물빛으로 반짝이게 하소서.
(김필곤/ 가을의 기원)
알고 싶구나./ 말씀의 사다리 타고 올라 다다른 천국/ 깨달음의 빛을 쪼아 얻은 고요도 아닌
(정동주/ 신무가 서곡)
세상의 끝날은 먼 옛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전부는 두번째의 탄생을 받은 아들로서./ 마치 심판의 날이 지나고/ 지상에 남겨진 불가사의한 사람들처럼
(체스터턴/ 자연관의 발라드)
상실된 말이 상실되고, 써버린 말이 써버려지고,/ 들리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말이/ 말해지지 않고 들려지지 않는다 해도,/ 말해지지 않은 말, 들리지 않는 '말씀'은 여전히 있다. / 말이 없는 '말씀' , 이 세상 안에 있으며/ 이 세상을 위해 있는 그 '말씀'/ 빛은 어둠 속에 비쳤으나/ 소란한 세상은 '말씀'을 거역하면서도 여전히/ 고요한 '말씀'을 중심으로 소용돌이 쳤다.
(T.S. 엘리어트/ 성회 수요일 · V)
말씀이 내리는 날/ 우린/ 자유로워야 한다// 무거운 정/ 애틋한 시간이지만/ 가슴 풀어헤치고/ 말씀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의심했던 도마/ 부인했던 베드로/ 눈물고개 지나는데/ 외식하는 서기관/ 너도 이젠 옷 벗어야지// 왜, 무엇이었던가/ 두런거리는 얘기일랑/ 말씀 밖으로 던져내고/ 얼른 징검다리 건너자꾸나// 날/ 저문다/ 네모진 방/ 긴 거리로 깃발이 흔들리고/ 일어서는 말씀/ 하늘 본다.
(김윤택/ 부흥사경회)
임이시여/ 뿌리째 상하여/ 흔들릴 때에도/ 당신의 말씀 하나로/ 소생을 맛보게 하옵소서
(이구재/ 기도)
당신의 말씀은 오늘도 능력의 잔,/ 인류를 위하여 넘치옵니다.
(거트루드 핸슨/ 키다리 촛불)
오,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날/ 지금은/ 우뚝 솟은 먼지기둥/ 세계의 파멸을/ 원주 속에 빨아들일 때.
(스테펜 스펜터)
설 교 노 트
역사의 경종
마24:29-31
서론
기독교의 역사관은 롬11:36에서처럼 조물주 하나님에 의해서 인류의 역사가 창조되고 섭리되고, 심판을 받아 종지부가 찍혀지는 유한의 역사로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가 말세요, 역사의 마지막사건인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라고 언급하는데 나팔 소리는 세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는 신앙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라는 소리이고, 둘째는 맡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준비하고 모이라는 소리이며, 셋째는 적과 싸우기 위해서 전진하고 공격하라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의 재림하는 소리입니다.
성경 본문에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1) 이 세상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서 몇 가지 의의를 신학적인 차원에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① 하나님 사랑의 실현이라고 하였습니다(요3:16).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제이차 재림하게 하십니다.
② 하나님 언약의 성취라고 하였습니다(창3:15). 하나님은 이 세상에 여인의 후손으로 예수님을 보내어 주시기로 이미 언약을 맺었습니다. 이 언약의 성취로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게 됩니다.
③ 하나님 구원 사역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히9:28).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구원 사역의 완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재림으로 인해서 부활 승천하게 됩니다.
(2) 이 세상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확실성에 대해서 몇 가지 증거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① 성경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예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겠다는 예언이 518번이나 나타나 있습니다.
② 이 세상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도록 예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사건이기 때문에 반드시 재림하시게 된다는 말입니다.
③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요14:1-3). 예수님은 진실하시고, 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대로 반드시 이 세상에 재림하실 줄로 확실히 믿습니다.
2. 인류 역사의 종말을 고하는 소리입니다.
(1) 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민족이 모두 파멸된다고 하였습니다. 단2:45에 보면 과거 현재에 이 지구상에 형성되었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붕괴되고 파멸되리라고 하였습니다(마24:30).
(2) 이 세상에 태에났던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인류의 종말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최후 종말을 내린다고 하였습니다(마25:31-34).
3. 성도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소리입니다.
역사의 경종인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마침내 기다리는 성도들의 구원이 완성되어지는 소리입니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1)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사방에서 불러 모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1절에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 성도들을 변화시키시고 부활시키신다고 하였습니다. 고전15:52에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하셨고, 살전4:16-17에도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3) 우리 성도들을 하늘나라로 초대하는 나팔소리라고 하였습니다(요14: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신 대로 우리를 하늘나라로 초대하신다는 말입니다.
결론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우리 신도들에게는
(1) 최대 희열의 나팔 소리요,
(2) 최대 희망의 나팔 소리요,
(3) 최대 영광의 나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말세의 징조 - 기근과 지진
눅21:10-19
서론
예수님께서 말세에 대한 징조를 말씀하실 때에 기근과 지진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근과 지진이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기근과 지진이 빈번히 발생하고 심각해지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근래 지진과 기근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이는 성경의 예언 대로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1. 기근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기근이란 전 세계 인구가 식량난으로 인하여 아사의 위협을 받는 것을 말하는데 세계 인구 중 1/10이 기근과 아사 직전에 직면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위협을 받고 있는 지역은 방글라데사와 인도 등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방입니다.
이 기근의 원인을 살펴보면 세 가지입니다.
(1) 인구 폭발의 원인을 들고 있습니다.
지금도 1분 동안에 이 지구상에는 235명이 태어나고, 1시간이면 8,100명, 1일에는 194,400명, 1년에는 70,956,000명이 태어난다고 하니 이 많은 인구들이 제한된 농지에서 생산되는 식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2) 공해의 원인을 들고 있습니다.
현재 항공기나 자동차에서 내뿜고 있는 가스가 대기권을 오염시키는가 하면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는 농지를 오염시키고 여기에 따라 인공적인 농약으로 인하여 식량 생산이 감소되는 피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전쟁의 원인을 들고 있습니다.
쉬지 않고 각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먼저 평야와 농지를 폐허케 하고 농작물을 유린하는가 하면 이미 생산해 놓은 식량까지 폭파하여 마침내 식량난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의 원인은 현실적인 증거이지마는, 이러한 역사의 이변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이 세상 마지막이 되었다는 징조인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징조이기도 합니다.
2. 지진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지진 문제는 근래에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세계 도처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여 많은 생명과 재산에 큰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1) 지구 표면이 용해 상태에서 식어간다고 합니다. 본래의 지구는 불덩어리이었는데, 바람과 눈비에 식어져서 지각이 생겨져 이 지각이 점점 굳어가기 때문에 지진이 발생된다고 합니다.
(2) 이 지구가 고화되면서 팽창해진다고 합니다. 지질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지표밑 280마일에 매평방 1인치당 약 1,000톤의 용암이 지표의 얇은 표면을 뚫고 폭발된다고 합니다.
(3) 이 지구상에는 양대 지진대가 있다고 합니다. 지구상에 지진맥이 생겼는데 이는 지구가 깨어져 금이 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지진이 빈번히 발생된다고 합니다. 그 지역의 하나는 뉴질랜드에서 필리핀, 일본, 한국을 거쳐 알라스카와 북남미 서해안 일대라고 하고 다음은 모르코에서 그리스, 터키, 이란, 중공, 인도를 거쳐서 쟈바 남쪽이라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지대에서 지진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지진이 세계 도처에서 아니 우리나라 홍성 지방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사실은 이 세상 마지막과 예수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징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
이러한 비상한 시대에 살아가고있는 우리들은 경성하여
(1) 우리 신앙생활을 재정비하고
(2)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
(3) 재림의 소망과 신앙으로 대비해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남
막13:3-8
서론
말세의 징조에 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에 전쟁 문제에 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본문 7-8절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의 징조 가운데 전쟁 문제에 대해 고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전쟁 문제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
이 전쟁 문제에 관한 전문 보고서인 미국의 뉴스 월드 보고서와 영국의 런던 전략 협의회보고서에 의하면 20C에 들어오면서 크고 작은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1) 먼저 제1차 대전이 20C초반인 1914년에 발행하여 1918년에 종전되었는데 참전 국가는 16개국이나 되었습니다.
(2) 다음 제2차 대전이 20C 중반인 1939년에 발생하여 1945년에 종전이 되었는데 참전국가는 모두 36개국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1 · 2차 대전을 치룬 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3) 이제 제3차 대 전이 남아 있으며 이는 계16:16에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예언되어진 전쟁이기도 합니다.
2. 전쟁 문제에 대한 성경적 고찰
성경을 고찰해 보면 말세에 대한 예언이나 전쟁에 대한 계시가 구약에는 다니엘서에 나타나 있고 신약에는 복음서에 예수님의 예언과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전쟁은 말세에 일어나는 환난이요, 재앙의 현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인류의 역사는 종지부가 찍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전쟁에 관해서 성경은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하였습니다.
(1) 아마겟돈 전쟁의 의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의적인 면에서 고찰해 보면 '아마겟돈'이란 두 낱말을 합친 하나의 지방 명칭인데 '아마'라는 말은 산악이라는 뜻이고 '겟돈'이라는 말은 살육 또는 파멸이라는 뜻입니다. 이 지역에 관해서 구약 시대에는 '므깃도' 지방이라고 하였고 성경에는 '아마겟돈' 이라고 하였으나 지금은 '에스드라엡논' 일명 고란 고원 지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제3차 대전은 팔레스타인에 있는 아마겟돈 에서 결전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2) 아마겟돈 전쟁의 성격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전쟁은 현재 서 전적으로 이스라엘과 아랍이 싸우고 있습니다.
① 영토 탈환전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은 두 민족의 생존권을 위한 전쟁이라고 합니다. 즉 팔레스타인이 어느 민족의 영토이냐라는 문제를 가지고 싸우고 있습니다.
② 경제적인 전쟁이라고 합니다. 사해 바다속에 매장되어 있는 '산화칼륨'이라는 광물질은 현대 무기와 식량 생산에도 막대한 재산이 된다고 합니다. 이를 먼저 개발하는 국가가 세계에 부강국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③ 종교적인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과 알라신을 믿는 아랍 민족의 종교적인 전쟁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을 제 3차 대전의 도화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론
세계 제3차 대전의 결과는
(1) 인류의 역사를 종지부 찍는 전쟁이요
(2) 예수 재림을 실현시키는 전쟁으로써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말세가 되었다는 징조인 것입니다.
말세의 징조
마24:1-14
서론
예수님은 그의 사역 말기에 이 세상 끝날에 일어날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기서 말세의 징조라는 것은 재림의 징조라
해도 좋은데 그 이유는 말세는 예수 재림으로 되어지는 역사적인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1. 말세 징조의 의의
예수님은 이 세상 끝에 징조가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징조라는 말은 '신호', '예고' , 혹은 '표적' 이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상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교훈하신말세의 징조는 오늘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 예수 재림이 임박했다는 신호인 동시에 예고요, 표적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말세의 징조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시는 의도는 경성하여 기도하며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재림의 주님을 대망하라는 데 있는 것입니다.
2. 말세 징조의 성격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세의 징조의 성경은 한마디로 인간 역사 속에 전에 없던 비상한 사건들과 사태가 전개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가리켜서 예수님은 환난이 일어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환난이란 먼저, 우리 인간들의 정신과 육신을 번민과 고통으로 이끌어.가고 다음은, 우리들의 생활의 질서와 안녕을 여지없이 파괴하여 불안과 비극으로 이끌어 가고 셋째는, 우리들의 생명을 비참과 사망으로 이끌어 가는 모든 사건들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대환난이 일어나는 시대가 있으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대환난의 시대적인 성격을 분석해 보면
(1) 사탄의 최후 발악하는 시대입니다.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되는 줄을 아는 사탄이 최후 발악하도록 하나님이 허용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최후로 징계하는 시대입니다.
범죄한 인생들을 하나님이 진노하사 저주하는 최후 징계가 실시되는 시대인 것입니다.
(3) 범죄한 인생들이 최후 형벌을 받는 시대입니다.
그동안 유예하여 온 모든 죄에 대하여 형벌을 받는 시대가 대환난 시대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3. 말세 징조의 내용
한 마디로 인류 역사의 비상 사태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1) 세계적인 대전쟁 세계 3차 대전이라고 하였고 성경적으로는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합니다.
(2) 세계적인 기근이 인구 폭발과 공해로 친하여 발생, 말세의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3) 세계적인 지진 학자들은 지구가 고화 팽창되어 양대 지진대에서 발생되는 자연적인 사태로 보고 있으나 역시 말세의 징조입니다.
이 재앙과 환난에 대해서는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예언이 되어 있는 대로 반드시 말세에는 대환난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① 시기적으로는 약 7년간이 될 것이라고 하였고,
② 지역적으로는 전지구가 될 것이라고 하였고,
③ 그 대상은 생존한 전인류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음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1) 환난 도피설이 있습니다.
성도는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의지한다는 견해입니다.
(2) 환난 통과설이 있습니다.
이는 환난을 당한 후에 주님을 맞이한다는 견해입니다.
(3) 환난 중간설이 있습니다.
이는 반은 당하고 반은 당하지 아니한다는 견해입니다.
결론
주님이 말세의 징조를 가르쳐 주시는 의도는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경성하여 기도하면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주님을 바로 영접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종말을 대비하라
벧후3:1-13
서론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그릇된 종말론을 경고하면서 올바른 종말론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본문 10절에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여기에 대해서 두 가지 세계관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고 이 낡은 세계가 영원하다는 그릇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재림하사 이 낡은 세계를 심판하시고 새 세계를 형성하리라는 바른 세계관입니다. 여기에 따라 인생관, 윤리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1. 종말이 임박한 징조
여기 "징조"라는 말의 뜻은 신호라는 뜻과 예고하는 뜻이 있습니다. 이 종말에 대한 징조를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조용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마24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크게 구분하면 세 가지입니다.
(1) 환난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환난의 내용은 첫째, 세계적인 전쟁이고 둘째, 세계적인 기근이고 셋째, 세계적인 천변지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2) 반종교 운동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반종교 운동의 양상은 첫째, 적기독의 본격적인 등장과 활동인데 이는 공산주의 정권을 의미하고 둘째,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여 타락시키는 운동이고 셋째, 윤리적인 면에서 사치와 방탕과 음란한 상태로 전락시키리라고 하였습니다.
(3) 정치적인 급변과 격동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스로킨'은 19세기는 평화의 세기라고 하면 20세기는 전쟁과 혁명과 격동의 세기라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성경에 예언을 고찰해 보면, 첫째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고 하였습니다(마24:32-33). 이로 인하여 아랍과의 전쟁은 세계 제 3차 대전의 도화선이 되어졌고 둘째, 세계가 두 주의 사상으로 분리되어 대결하리라고 하였습니다(단2:43-44). 셋째, 이것이 바로 남북의 대결, 동서의 대결이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세계적 상황이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2. 종말에 직면한 우리의 자세
계22:10-11에는 말세에는 두 가지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극도로 불의하고 더러워지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지극히 의로워지고 거룩해지는 사람입니다. 전자는 하나님도 부정하고 심판도 부정하고 내세도 부정한 마귀의 사람이라고 하면, 후자는 하나님을 긍정하고, 심판을 인정하고 내세에 소망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때에 본문에는 우리 성도들의 취할 자세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거룩이란 종교적인 용어로써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고 다음은 성령의은사를 받아 순결한 사람이 되라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사1:18에 회개하기만 하면 눈보다 더 희게 또는 양털보다 더 희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2) 경건한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경건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딤후3:5, 외모적인 경건과 진정한 경건이 있다고 하면서 진정한 경건은 약1:26-27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소망의 사람의 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타락한 세상만 바라보다가는 낙심하고 실망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와 같이 타락하고 암흑한 시대에 먼저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고 다음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을 튼튼히 붙잡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결론
우리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개인의 종말도 찾아오거니와 전인류의 종말도 임박해졌습니다. 이러한 시대 우리는 더욱 거룩하고 더욱 경건하고 더욱 인내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이는
(1)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이고
(2) 하나님의 엄숙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종말이란 무엇인가
마24:32-35
서론
요즈음 시대를 흔히 말세라고 합니다. 말세란 문자 그대로 세상 끝이란 뜻입니다. 원래의 의미는 장소를 말할 때에는 낮은 곳을 의미하고 시간을 말할 때는 제일 끝시간을 의미하는데 이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희망과 기쁨의 때가 되나 악인들에게는 공포와 절망의 때가 되는 것입니다.
1. 종말의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종말의 시기가 언제 도래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완전히 숨기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시기가 언제인지 인간적인 계산 방법으로 점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행1:7에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때는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요, 우리가 그 시기를 알고자 할 권한도 없고 알고자 한다 해도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자신도 모른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시기가 언제오든 그 시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25:1-13에서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이를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2. 종말을 앞둔 신자의 생활
지금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초림(성탄)과 재림 사이에 살고 있기에 긴장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언제 재림이 있을지 모르나 반드시 재림의 시기는 올 것이므로 성도들은 거룩한 성도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성도의 이 세상 삶은 나그네요, 의인의 삶입니다.
언제 종말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삶을 헛되이 쾌락만을 추구하며 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말의 그 순간까지 성도의 성결한 삶은 계속하여 추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매일의 생활이 거룩한 생활이어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이웃 사랑의 삶과 "하나님이 온전하시니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처럼 거룩한 살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삶은 매일매일 그 삶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당장 종말을 맞이하는 자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평화의 역군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화목 제물로 오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을 허시는 일이며 중보하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은 화목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사용하시며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듯이 성도들은 계속하여 불신자들이 복음 안으로 들어오도록 평화의 역군으로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주님의 복음 전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많은 이단의 출현이 있는데 이들은 모든 예수님의 재림 시기가 ○○이다. 심지어 월 일 시간까지 정해 놓는 것이 한 특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하나님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조차도 모르신다고 하였으니 이 시기를 알고자 하여 이상한 계산법으로 알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종말을 준비하는 일이요, 그때까지 거룩한 삶은 계속하여 유지하여야 할 것입니다. 언제 종말할지 모르니 오히려 성도의 삶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를 위한 소리
유1:17-23
서론
유다서가 쓰여진 목적은 교회에 가만히 몰래 들어온 거짓 스승들을 경계하고 정통 신앙을 유지하도록 성도들을 권면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진리 체계가 혼란하고 신학사상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단에 빠지거나 잘못된 자유주의 신앙에 흠뻑 물들어 성경을 변조하거나 퇴색시켜 믿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인물들은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동하는 사람과 당을 지어 참된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훼파하는 사람이며 또한 부패한 인간 본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행하는 성령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마지막 때를 당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딛고 서야 할 기초는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믿음입니다. 이런 순수하고 변질되지 아니한 믿음 위에 튼튼히 서지 못하면 마지막 때를 견디어 낼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 위에 자신의 신앙을 건축하지 못하고 명예나 지위나 재물이나 지식이나 건강을 신앙의 기초로 삼고, 참된 믿음은 그런 것들 위에 덧붙여져서 있는 하나의 장식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위나 명예, 재물, 지식, 건강 등은 다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믿음의 기초가 결단코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는 믿음 위에서라야 명예도, 지위도, 재물도 지식도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신앙은 굳건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하여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2.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성령의 감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감화가 없이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와 교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주장대로 기도하는 것은 내 편에서만 떠드는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할 때 신령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할 때 인간의 지식이나 생각만 가지고 기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령에 힘입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내 속에 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신앙과 교만과 비진리가 들어오지 못하게 나를 지켜야 합니다.
특히 젊을 때는 혈기가 왕성하여 세상의 정욕과 쾌락에 물들기 쉽습니다. 이러한 곳으로 이끄는 마귀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켜 보호해야 합니다.
4. 영생에 이르도록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힘쓰고 애쓴다고 하여도 인간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도 안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긍휼을 기다리면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구원을 얻으며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이 마지막 때를 당하여 우리는 참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기초로 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에 이르도록 긍휼을 기다립시다.
말세의 징조
막13:1-13
서론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의 건물은 장엄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성전 입구에는 40개나 되는 대리석 기둥들이 있고, 지붕은 금색이요, 문들은 황금으로 햇빛에 비치는 그 화려한 모습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힘께 이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나가실 때에 제자들이 그 성전의 미려함에 감탄하니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예언은 그후 70년에 성취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종말에 대한 예언은 모두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또한 이 예언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고 말세인 줄 알 수 있습니까?주님께서 예언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가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가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이런 일은 예루살렘 함락 이전에 여러 번 있었습니다. 또 그 후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역사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전도관, 말일 성도 그리스도교 등 많은 이단들이 성도들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게 하여 방황하게 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성도들은 이러한 적그리스도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지막 때를 당하여 우리 성도들은 경성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 난리와 난리 소문
마지막 때에는 전쟁이 곳곳에서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20세기 동안만 해도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한국전, 월남전, 중동전 등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습니다.
또 민족과 민족이 투쟁하고 싸우며, 반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에서는 많은 예산을 들여 핵무기를 보유하느라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아직 민족간에 나뉘어져 있고 전쟁의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말세의 징조입니다.
3. 곳곳에 지진과 기근과 핍박이 일어납니다.
지진과 기근은 전쟁의 산물입니다.
주 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도 수십만 명이 기근과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서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주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인구의 약 25%가 기근에 처해 있으며, 그 기근으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정적으로 핍박을 받는 자들이 많습니다. 자기들의 정신과 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때리고 합니다. 심지어는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고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핍박은 도리어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가 됩니다. 기독교는 교회사를 통해 수없이 핍박을 받았지만 그 핍박을 통해서 전 세계에 퍼져 나갔습니다.
결론
말세의 징조가 무엇인가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곳곳에서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고 전쟁의 소문이 꼬리를 물며,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지금은 말세인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한 일들이 지금 다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세에 처하여 살지만 조금도 흩어지지 않는 경건한 믿음의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함
단12:4
서론
본문에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면 말세의 징조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세의 징조들
말세의 징조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구의 증가로 많은 사람이 살며(단12:4) 교통이 발달하여 빨리 왕래합니다(단12:4). 그리고 지식의 증가(단12:4)와, 복음이 모든 곳에 전파된다고 하였습니다(마24:14). 또 아이가 어른을 학대한다고 하였고(사3:5-12), 부모 형제의 살상(마10:21)과 천인이 귀인을 압제한다고 했습니다(사3:5). 그리고 위험의 시대가 되며(딤후3:1), 사술이 유행하고(딤전4:1), 재물을 축적하며(약5:3) 교회가 졸고 잠을 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붉은 용이 나타난다고 하였으며(계12:2 -9), 성령이 충만해지며(욜2:28-29), 무화과나무가 연해진다고 하였고(마24:), 인류 6000년의 역사가 끝난다고 하였습니다(벧후3:8).
이렇게 많은 징조들 가운데 지금 보이는 징조들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인구의 증가와 교통의 발달은 누구나 다 피부로 느끼는 일입니다.
2. 인구의 증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축복하시기를 창세기 1장 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축복하신 그대로 지금까지 인류는 번성하였습니다. 때로는 전쟁이나 천재 지변으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일부 지역에서 인구가 감하여진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개한 종속들이 점차 멸종 상태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인구는 계속하여 증식하였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이렇듯 폭발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서 가족계획을 권장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혜택을 주기도 하여서 인구 억제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45억이나 되는 인구가 지구에 가득 차 있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구를 억제하니 이 예언처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게 된 것입니다.
3. 교통의 발달
지금 현대인에게 있어서 교통의 발달은 획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교통의 편리함은 우리나라에서도 전국을 하루 생활권 내에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의 발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빨리 왕래하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공술의 발달로 제트여객기로 지구를 하루 동안에 돌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요즈음은 우주 여행이 성행하니 그 속도의 빠름은 측량하기조차 힘듭니다. 지구와 우주의 왕래까지도 신속하게 이루어진 때가 바로 현대이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다니엘서는 말세의 연구에 기본이 되는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세가 가까워진다고 하여서 우리 성도들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되었으니 더욱 주님을 사모하며 신앙을 잘 지키셔서 주님께 칭찬받는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말4:1-5
서론
말라기 4장에는 날에 대한 말이 3번 언급되는데 1절에는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있고, 3절에 "나의 정한 날"이 있고, 5절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있으니 이는 모두 말세에 관련된 말입니다. 이제 각각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1절)
이 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심판을 생각케 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주의 날은 마치 멀리 보이는 두 산이 하나로 겹쳐 보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주의 날을 볼 때에는 초림과 재림을 하나의 사건처럼 보는 것이기에 이 말은 신약 시대에도 해당되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될 때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생명을 얻는 축복이 되지만 거절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는 자에게는 영생이나, 안 받는 자에게는 영원한 사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멸망자들에게는 크고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곧 주의 날이요, 말세에 당할 불신자들이 당할 결과인 것입니다.
2. 나의 정한 날(3절)
그런데 이 날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전역사의 주인이시며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시간의 영역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되어질 모든 일들을 그분의 작정 가운데 계획해 두셨기에 예수님의 초림이나 재림이나 그분의 정한 바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3절에 "나의 정한 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날을 미리 정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미리 모든 일을 다 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예지(豫知) · 예정(豫定)하신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일은 한 번도 착오가 나거나 이루지 못한 일이 없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또한 정하신 때에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또한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즉 말세는 틀림없이 그 정하신 때에 이루어질 것이며 이미 그 징조들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신실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틀림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3.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5절)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날을 예고해 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곧 임박하여 오리라, 그 날은 과거에 없었으니 미래인 앞으로 반드시 올 터이니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실 주님은 천하를 호령하려고 하나님의 나팔 소리를 울리며 재림할 것이니 즉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로써(살전4:16) 하나님을 거역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심판받을 죄인은 나오라"는 소리입니다. 참으로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또한 축복의 날이니 신자들이 고대하고 소망하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되기 때문에 참으로 신자에게는 위로가 되는 날입니다(살전4:17-18).
결론
본문에서 언급하는 날은 모두 말세에 당하게 된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초림으로 성취되었고 또한 앞으로 있을 재림으로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이 날은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로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또한 이 날은 이미 정해진 날입니다. 그러나 이는 신자들에게는 소망의 날이요, 위로가 되는 날입니다. 참으로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보았던 날입니다.
큰 바벨론이라
계17:5
서론
본문에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의 안내로 물위에 앉은 큰 음녀를 보았는데 곧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2절에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라고 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의 신비성을 나타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와 대조하여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비밀된 이름"이라고 하여 사악한 면에서 신비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마에 이름이 있음은 마귀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에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옳길 때까지 하리라"고 한 불법의 비밀입니다. 곧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훼방하지 못하고 비밀리에 순진한 인간을 이 세상의 주의와 사상으로 뫼이는 것입니다.
큰 바벨론이란 타락한 종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에서도 타락한 종교를 음녀로 비유한 말씀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큰 바벨론이란 어디까지나 큰 도시(성)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구속받은 성도들이 가서 살 곳이라면 그 새 세계가 임하기 전의 세계를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3. 땅 위의 음녀들과 가중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습니다.
땅의 음녀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세속화를 목표로 하여 죄이는 사상이며, 인본주의 종교 중심입니다. 기독교는 신본주의 즉, 유일하신 하나님을 모시는 종교인데 하나님보다 사람 본위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인간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과학의 발달로, 의학의 발달로 모든 것이 과학과 의학 중심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즉 성도에게서 그 사람을 빼앗아 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땅의 음녀란 약탈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서까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비밀스럽게 빼앗아 가고, 교회는 냉냉하여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말세에는 더욱 심해지는 것입니다.
가증한 것이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모든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는 영적음해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 숭배와 부도덕 등의 전부가 거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범죄와 타락의 발원지이기에 그들의 어미라고 한 것입니다.
결론
바벨론은 결국에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계시록 18장 2절에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하였으니 그 음성이 멀지 않아 들려오게 될 것입니다.
은혜받은 성도들은 성령을 통하여 살기 때문에 비밀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당한 이때에 더욱 경건한 생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말 씀
성 경 활 용
I.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서론적 고찰
1. 하나님 말씀의 여러 명칭들
(1) 책
(계22: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2) 여호와의 책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3) 율법 책
(느8:3) 무릇 알아 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갈3:10)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4) 성경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딤후3:15)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5) 여호와의 말씀
(시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같도다
(6) 여호와의 율법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7) 하나님의 도
(시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8) 하나님의 말씀
(눅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9) 진리의 글
(단10:21)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
(10) 성령의 검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1) 화목하게 하는 말씀
(고후5:19)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12) 하나님의 선한 말씀
(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13) 생명의 말씀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14) 진리의 말씀
(잠22:21) 너로 진리의 확신할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화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엡1: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15) 의의 말씀
(히5:13) 젖은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6) 천국 말씀
(마13:19) 아무나 천국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2. 하나님 말씀의 특징
(1) 순결함
(시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며 흙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같도다
(잠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2) 완전함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3) 확실함
(시93:5) 여호와여 주의 증거하심이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여 영구하리이다
(4) 정직함
(시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5) 정결함
(시19: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6) 진리이다
(요17: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7) 기이하다
(시119:129)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8) 정미하다
(삼하22: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9) 매이지 아니 한다
(딤후2: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10) 영속적이다
(사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11) 능력이 많다
(눅1:37)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12) 찬송할 만하다
(시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13) 소망이 있다
(골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14) 영감에 의해 기록됨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3. 하나님 말씀의 능력
(1) 치료한다.
(시107: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 자유케 한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 마음을 즐겁게 한다.
(시119:111)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4) 살린다.
(고후3:6) 오직 명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5) 믿음을 낳는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6) 청년의 행실을 깨끗케 한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7) 단련시킨다.
(시105:19)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도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8) 평안을 준다.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9) 소생시킨다.
(시119: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0) 거룩하게 한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다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11) 교훈을 준다.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12) 세상을 창조한다.
(시33:6)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기운으로 이루었도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13) 죄인을 심판한다.
(롬2:16) 하나님 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II. 그리스도의 말씀
1. 말씀과 그리스도와의 관계
(1) 말씀은 그리스도의 칭호이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계19:13)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2) 말씀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함이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은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행10: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은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3) 그리스도에 의하여 말씀이 성취된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2.그리스도의 말씀의 본질
(1) 은혜롭다.
(눅4:22) 저희가 다 그를 증거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기이히 여겨
(2) 영이요, 생명이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이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
(3) 영생의 말씀이다.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4) 영원한 말씀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5) 권세가 있는 말씀이다.
(마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6)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을 진리니이다
(7) 심판하는 말씀이다.
(사11: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8) 절대 무오하다.
(요일3:5) 하나님 의 말씀은 다 순전하여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9) 생명의 근원이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이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0) 빛이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1) 영혼의 양식.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12) 없어지지 아니하는 말씀이다.
(막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13) 생명의 말씀이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14)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III. 일반적인 말씀
1.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 묘사된 것들
(1) 구약의 율법
(마15:6)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2) 복음
(행4:31)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3) 등불
(잠6:23)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벧후1:19)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4) 불
(렘5:14)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5) 씨
(시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사32:20)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6) 음식이나 양식
(욥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고전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7) 능력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8) 비
(신32: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2. 말씀을 순종하는 자의 복
(1) 모든 일이 형통됨
(신29:9)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2) 열매를 많이 맺다.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3) 상을 받다.
(시19:11)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4) 복이 있다.
(눅11:28)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5)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다.
(신28:1)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6) 좋은 것을 얻는다.
(잠16:20)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7) 성령을 받는다.
(행10:44)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랑에게 내려오시니
(8) 영생을 얻는다.
(요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3. 말씀을 멸시하는 자의 결과
(1) 온전히 끊쳐진다.
(민15:31)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
(2) 저주를 받는다.
(시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3) 재앙을 당한다.
(계22:18)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4) 버림받는다.
(삼상15:26)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5)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
(왕하22:13)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발하신 진노가 크도다
(6) 패망을 이룬다.
(잠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7) 실족한다.
(벧전2:8)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8) 벌을 받는다.
(신18:19)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9) 멸망을 받는다.
(행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받으리라
관련원어풀이
1. rm'a: 아-마르
(1) 말하다.
(창4:8, 출6:10)
(2) 명령하다.
(에4:13, 단3:13)
(3) 생각하다, 추측하다.
(창44:28, 출2:14)
(4) 불리워지다, 어떤 사람에게 말해지다.
(사4:3)
2. rm,ae 에-메르
(1) 말씀, 설교, 연설.
(수24:27)
(2) 하나님의 말씀들.
(민24:4, 16)
(3) 명령, 선언, 임명
(욥20:29)
3. rm,ao 오-메르
(1) 말씀.
(시19:4)
(2) 시, 찬송.
(시68:12)
(3) 하나님의 약속.
(시77:9)
(4) 일, 어떤 일.
(욥22:28)
4. hr:m]aI 이므라
말, 선언, 설교.
(시18:31, 119:38)
5. rb'D; 다-바르
(1) 말하다, 이야기하다.
(출4:14, 욥33:2)
(2) 명령하다, 지시하다, 권고하다.
(창12:4, 삼상25:17)
(3) 약속하다, 위협하다.
(출32:14, 신6:3)
(4) 자신과 말하다.
(창25:45, 시15:2)
(5) 좋은 일을 말하다.
(왕상22:23, 렘18:20)
6. rb;D; 다-바-르
(1) 말, 말씀, 연설, 담화.
(창44:18, 출4:28)
(2) 약속, 약속된 것.
(왕상2:4, 시33:4)
(3) 교훈, 칙령.
(수1:13, 삼상17:29)
(4) 격언, 경귀.
(민23:5, 대상22:8)
(5) 소문, 소식,
(신15:2)
(6) 일, 사건, 사물.
(창20:10)
7. hg;h; 하-가
(1) 중얼거리다, 속삭이다, 투덜대다.
(사31:4)
(2) 말하다, 이야기하다.
(시115:7)
(3) 노래하다, 축하하다.
(시71:24)
(4) 묵상하다.
(수1:8, 시1:2)
8. !aun] 나-암
중얼거리다, 속삭이다.
(램23:31, 암6:8)
9. hin:in: 나-가드
고하다, 보이다, 선언하다, 발표하다.
10. hL;mi 밀라-
말, 언어.
(시l9:5, 잠23:9)
11. l/q 콜-
(1) 음성, 소리.
(창27:22, 욥4:10)
(2) 큰 소리로.
(창39:14)
(3) 소리를 발하다.
(창45:2)
(4) 소문, 풍문.
(창45:16, 렘3:9)
(5) 소리, 소음.
(삼하15:10)
12. hp;c; 사-파
(1) 입술.
(삼상1:13, 시22:8)
(2) 입술을 열다. 말하기를 시작하다.
(욥11:5, 32:20)
(3) 말하게 하다
(시51:17)
(4) 입술을 금하다.
(잠10:19)
(5) 무익한 말, 어리석은 말.
(왕하18:20)
(6) 말, 언어.
(시120:2)
(7) 언어, 방언.
(창11:1)
13. ajggellw 앙겔로-
보고하다, 전하다, 선포하다.
(요20:18)
14. dialevgomai 디아레고마이
(1) 토론하다, 논의하다, 토의하다.
(행17:2, 24:12)
(2) 연설하다, 말하다.
(히12:5)
(3) 다투다, 쟁론하다.
(막9:34, 유9)
15. eiv[povn 에이폰
(1) 말하다, 이야기하다.
(마12:32, 히7:9)
(2) ∼에 대해 말하다. ∼에게 관련된 일을 말하다.
(막12:12)
(3) 말하다. 언어를 사용하다.
(눅8:4)
(4) 혼자말을 하다.
(막9:3)
16. khvrugma 케-루그마
(1) 선포, 통치, 발표.
(고전2:4)
(2)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는 메세지 교리, 전도
(마12:41)
17. levgw 레고
(1) 놓다, 두다, 눕게 하다, 말하다, 이야기하다. 말하다.
(마9:34, 눅5:39)
(2) 정신적으로 말하다, 자신에 말하다.
(마3:9, 눅3:8)
(3) 일을 말하다.
(눅8:8)
(4) 맹세코 단언하다, 확언하다.
(마3:9, 롬15:8)
(5) 가르치다.
(요16:12)
(6) 권고하다, 조언하다, 명령하다, 지시하다.
(마23:3, 눅7:14)
(7) 보고하다, ∼관해 진술하다.
(막7:36, 엡5:12)
18. lovgion 로기온
식탁, 거룩한 전달, 계시.
(행7:38, 롬3:2)
19. lovgo" 로고스
원래의 의미는 "모음, 수집"이다.
(1) 단어, 말, 언어.
(마8:16, 눅12:10)
(2) 말하기, 말한 것.
(마26:44)
(3) 예언적인 약속.
(벧후1:19)
(4) 하나님의 말씀, 칙령, 지령, 명령.
(롬9:28)
(5) 하나님의 말씀.
(계1:2, 9)
(6) 선포된 것, 선포.
(마19:11)
(7) 담화, 연설, 말함.
(마5:37, 행14:12)
(8) 설교.
(눅9:26, 행4:4)
(9) 교훈, 가르침.
(요8:31)
(10) 교리.
(마13:20)
(11) 이성.
(히4:12)
(12) 이유, 근거.
(마5:32, 행10:29)
(13) 하나님의 말씀, 육신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
(요1:1, 계19:3)
20. rJh'ma 레 -마
(1) 말, 언어.
(눅7:1)
(2) 말, 말씀.
(요8:20)
(3) 사람이 말하거나 가르친 것
(눅24:8)
(4) 문장으로 서로 결합된 말의 연속, 선포.
(마26:75, 막9:32)
(5) 메세지, 연설.
(눅2:17, 롬10:8)
(6) 교리, 가르침.
(롬10:17)
21. grafhv 그라페-
(1) 기록된 것, 기록물, 성경 구절
(막12:10, 요19:24)
(2) 전체 성경.
(마21:42, 롬15:4)
(3) 선지자의 글.
(마26:56)
설교예화자료
인도에서 있었던 작은 종이 조각
사두 순닥 싱(Sadhu Sundac Singh)은 인도의 중심부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버스 안에서 비교도를 만났는데, 그에게 요한복음서를 건네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것을 받고는 화가 나서 찢어버리고 창문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 그것으로 일은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신의 섭리로, 우연히도 바로 그 날 철로길을 따라 걷던, 진리를 몹시 갈구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걷던 중 그것을 보고는 집어들어 읽어보았는데, 거기 쓰인 말은 그의 나라 말로 '생명의 양식' 이란 뜻이었습니다. 그는 그 뜻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친구들에게 그 뜻을 묻자, 한 친구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도들의 책이네. 불경함을 범하지 않으려거든 그 책을 읽지 말게."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해 보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처럼 아름다운 문구가 있는 그 책을 읽어보고 싶네." 그리고 그는 신약 성서를 한 권 샀습니다. 그는 그 문구가 있는 문장에 도달했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 "나는 생명의 양식이라." 그리고 그가 이러한 복음을 배우자, 그의 마음에 광명이 흘러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고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성령을 통해 그에게 전달된 그 종이조각은 그의 깊은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으며, 그에게 있어서는 정말로 '생명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밖에 있는 누군가가 들었다.
다음의 이야기는 퀘이커 교도인 한 부인이 한 말입니다.
한 퀘이커 신자가 시골 마을의 교회를 지나갈 때. 갑자기 설교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비록 청중은 없었지만 그는 충동에 못이겨 교회로 들어가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짧게 설교를 한 후 교회를 떠났습니다.
몇 년이 지난후, 그가 런던에 있을 때, 그는 "선생님, 당신이 저의 생명을 구하셨습니다. "라고 말하는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러한 이야기에 놀란 그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글쎄, 제가 어느 날 어떤 교회를 지나갈 때 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다음과 같이 첨부하였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갓 나와 절망하고 있었을 때였지만 당신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
행동하는 설교자
설교는 총기 휴대자를 감복시킵니다.
그레 이하운드 버스가 지난달에 플로리다의 데이토나 해안에 다달았을 때 한 승객이 권총을 꺼내 운전수에게 들이대며 "나를 템프타까지 데려다 주지 않으면 쏘겠다. "라고 협박하였습니다. 또 다른 승객인 에나 커프는 마이에미에 있는 침례 교회의 교인으로서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녀는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분 후에 총을 든 협박자는 총을 놓고 감옥으로 이끌려 갔습니다. 버스는 갈 길을 계속 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손을 무기력하게 만들었어요."라고 커프 부인은 말하였습니다.
생명의 뿌리
어느 내과 의사에게 폭주로 간에 심한 이상이 생긴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의사는 술을 끊기를 권했으나 환자는 그런 처방보다 술을 퍼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고민과 불안,공허와 같은 병을 고쳐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환자의 고민처럼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영혼의 갈증은 술을 퍼 마심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뿌리를 향락에 박으면 허탈감과 후회만 더욱 더 남게 마련입니다. 인생의 뿌리를 지식에 박아도 끝없는 회의 속에 잠기고 맙니다.
인생의 뿌리를 철학에 박아도 사색의 미로에서 방황만이 계속될 뿐입니다. 인생의 뿌리를 돈에다 박으면 언제나 불만족 속에 잠기고 기갈과 갈증뿐입니다 인생의 뿌리를 사람에게 내리면 결국 언젠가는 실망과 원망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 뿌리를 박으면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근원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먹는 물은 목마르거니와 내가 네게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배에서 생수가 강과 같이 흘러넘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4:14).
어록·시·묘사
당신의 말씀은 단순하십니다. 오오 주여, 그러하오나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단순하지 못합니다. // 저는 알 만하옵니다- 당신의 별들의 소리를, 그리고 당신의 수목들의 그 침묵을.// 저는 느끼옵니다. 제 마음이 꽃같이 피어나려 하옴을, 그리고 저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샘물을 마시고 충만해 있사옴을.//당신의 노래는, 눈에 쌓여 적막한 나라로부터 날아온 새처럼 저의 마음에 둥지를 틀고, 그 속에서 제 마음의 '4월'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있사옵니다 그래 제 마음은 흡족하여, 행복된 계절을 기다리게 되옵니다.
(타고르/ 당신의 말씀은)
주여,/ 태초에 주셨던 말씀/ 그것 하나만 지니고/ 당신을 만나러 갑니다. / 밝은 두 눈으로/ 가나안에 뜨는 무지개를 봅니다. / 보옥같은 말씀으로/ 사무치는 목숨들을 노래합니다.
(이향아/ 묵도)
더 잘 살고 싶은 자는 이리로 오라/사기꾼, 오입쟁이/ 죄 많은 자도 오고/ 투기로 한 몫 잡은 벼락부자도 오라./ 기차게 잘 사는 비결이 여기 있고/ 지난 일들은 모조리 덮어주며/ 도처에 축복이 널려 있느니/ 1회용 인스탄트 말씀으로/ 배불리 먹여준다.
(서덕석/ 어떤 부흥회)
아!/ 저게 뭐더라? / 지키기 어려운 순결한 말씀/ 내 어깨에 머리에 쏟아 부으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저게 뭐 뭐 뭐더라?
(문창갑/ 별)
설 교 노 트
말씀을 기록하라
신27:1-10
서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큰 돌에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돌에다가 기록하라고 하였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합니다.
1.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3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과 더불어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 지니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이미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니"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68절에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하고 베드로 사도는 말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돌에 기록하여 오랫동안 보존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변질시켜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구전으로만 전하면 잘못 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전하기 위해서라도 기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틀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저 흘러가는 말로만 내려오면 그 말씀은 완전히 변질될 것이므로 돌에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그 말씀을 전하여 생명을 구원코자 하는 것입니다.
2. 말씀으로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본문7-8절에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명백히 기록할지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말씀과 더불어 즐거워하는 성도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성도들의 즐거움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말하기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16)"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와 같이 성도들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에 기록하여 그 큰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려고 돌에다 기록하라고 한 것입니다.
3. 말씀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9-10절에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온 이스라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처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는살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돌에 기록하여 두고 자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그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손 만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즉 대대로 지킬 규례인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생명력이 있고 영생의 말씀이고 하늘나라 가는데 노정기가 되며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에다 기록하고 대대로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였고(고전4:6), 솔로몬은 말씀을 멸시하지 말라(잠13:13)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은총
마13:18-23
서론
기독교를 은총의 종교라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을 통하여 모든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전파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바로 받아들이고, 깨닫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2절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은총이란 무엇입니까?
1. 말씀을 듣는 은총입니다.
이것을 청도(聽道)의 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들음으로 어떠한 은총을 받게 됩니까?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믿음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세상을 이기게 하며, 구원을 얻게 합니다.
그리고 성결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엡5:26). 이 성결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천국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며, 하늘나라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2. 말씀을 깨닫는 은총입니다.
이것을 오도(悟道)의 은총이라고 합니다. 먼저는 말씀을 들어야 하고, 다음은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은총은 누구나 다 받으나, 깨닫는 은총은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깨닫는 마음의 자세는 옥토와 같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옥토가 되려면 자갈을 집어내고,가시덤불을 제거하고, 굳은 땅을 갈아야 하는 것과 같이 깨달으려면 굳은 고집과 교만을 제거하고 거치른 죄악의 요소와, 재리의 욕심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깨닫는 은총을 받은 심령의 자세는
(1) 신앙 생환의 바른 결심을 합니다
(2) 신앙의 바른 좌표와 방향을 결정하게 합니다.
(3) 인격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이 말씀을 깨달아 아는 대로 은총과 신앙의 차원이 높아집니다.
3. 말씀대로 실천하는 결실의 은총입니다.
이것을 행도의 은총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은 대로 순종하는 생활의 은총을 의미합니다.
말씀대로 실천하는 자는 영 적으로 지혜로운 건축자가 됩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고 모든 죄악을 떠나 승리하게 합니다. 그리고 든든히 서서 하나님의 기업을 누립니다. 환난에서도 동요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의 모든 기업을 누리게 되는 영원한 은총과 축복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듣고 깨달았으면 실천, 실행하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듣고도 행치아니하는 자는 마치 집을 모래 위에 세운 어리석은 건축자가 되어 집니다(마7:26-27).
결론
우리는 신앙생활의 차원을 높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말씀을 틀어야 하고, 말씀을 들은 대로 깨달아야 하고, 깨달은 대로 그 말씀을 실행해야 합니다.
계1:3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
마24:35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으니, 이 말씀을 중심해서 장차 심판하사 상선 벌악을 공의로 시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자
시19:7-10
서론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그 말씀은 우리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역사합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이 서있는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의 권세를 쳐서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생명의 양식', '영성의 말씀', '은혜의 말씀', '거울', '씨', '불' 등으로도 불리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읽으며 듣고 지켜야 합니다.
1. 영혼이 소생합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인하여 그 영혼이 이미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는데 그것을 가리켜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초자연적 능력에 의해서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영혼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이 땅 위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산다고 하여도 영혼의 거듭남이 없으면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에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이 죽은 것은 살리고, 없는 것은 있게 하고, 병든 것은 고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읽고 들음으로써 영혼이 소생하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2. 지혜로워 집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를 지혜있는 자가 되게 깨우쳐 주십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긍정하고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지혜가 있다고 하는 자는 많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지혜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믿음을 가진 사람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참된 지혜가 있습니다. 참된 구원을 이를 수 있어야 참된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으니 우리는 더욱 말씀을 사모하여 더욱 깊고 높은 지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3. 기쁨을 얻습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이 정직하여 죄인된 인간의 마음을 찔러 쪼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회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각각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때 기쁨이 임하게 됩니다.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해방된 이런 기쁨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는 것입니다.
4. 눈이 밝아집니다.
정욕과 죄악이 관영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밝은 영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과 내세의 그 축복을 똑똑히 볼 수 있는 그 신령한 눈이 떠져야 순결하게 살고 소망 중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는 늘 위의 것을 찾는 생활을 힘써야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 열심히 성경을 읽고 마음을 열고 들으며 깊이 묵상하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소생케 되고, 지혜가 생기며, 마음의 기쁨을 얻고, 영안이 밝아지는 축복과 영광의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의 말씀
시12:1-8
서론
시편 12편은 이스라엘의 둘째 왕인 다윗이 환난 중에 영감을 받아 을은 것입니다. 다윗은 성도로서 여호와의 말씀을 의지하고 살아감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 타락한 사회상
(1) 경건한 자를 끊어버리는 시대였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과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는 자가 있을 메는 복이 내렸지만 없어지면 화를 받곤 하였습니다. 타락한 시대는 보배 같은 존재를 몰라보고 죽였거나 추방을 하고, 도리어 없어도 될 사람, 있으나마나한 존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아는 성도는 "여호와여 도우소서"라고 주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얕은 물은 소리가 나도 깊은 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는 말이 있듯이, 진정한 성도는 비정상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내용 깊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인류를 위해 탄식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2) 거짓말하는 시대였습니다.
타락한 시대의 특징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조 아담이 마귀의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에 그의 후손인 인류도 만물보다 거짓된 인간이 되고만 것입니다.
(3) 아첨하는 시대였습니다.
아첨하는 입술은 달콤하고 미끈미끈한 말, 감언 이설을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의 유익을 도모한 친절이 아니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악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도 있습니다.
(4)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여기 '우리의 혀', '우리의 입술' '우리의 것'이라고 반복하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을 몰라보는 교만한 말이고,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라는 말은 누가 우리의 행동을 막으며 간섭할 자 있겠는가라고 심판주를 무시하는 망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의로운 재판장을 믿지 아니하며 이 세계를 지배하시는 자를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5) 성도를 핍박하는 시대였습니다.
성도들이 땅 위에서 박해를 받으니 가난할 수 밖에 없고, 의인이 매장을 당하고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니 탄식이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진실한 성도들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성도는 악한 시대의 조류를 따라 사는 자가 아니고, 악한 세상과는 반대로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환난 중에 있던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을 굳게 믿고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의 말씀의 특징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7절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을 끊겠다고 하였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1절의 말씀과 같이 경건한 자를 끊었고 충실한 자를 없앴기 때문에 별로 영육간에 하나님께서 끊어 지옥에 보내겠다는 말씀입니다.
5절 하반절의 말씀은 때가 되면 눌린 자에게 자유를, 탄식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을 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더 안전한 곳에서의 영생도 약속하셨습니다.
결론
다윗은 계시로 받은 여호와의 말씀의 완전성을 강조하면서 이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자기는 그 말씀 위에 서서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한 것이 호리(毫釐)도 섞여 있지 않는 완전 무결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욥에게 말씀하심
욥38:1
서론
본문에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써 욥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최대의 행운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개인을 상대로 하여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1. 욥에게 말씀하신 때
엘리후가 주장한 논설의 결론적으로 한 말 에서 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적당한 때에 나타나십니다. 그가 심판을 선포하시고 시행하시는 일이나 모든 자비를 베풀어 긍휼하실 때, 그리고 그의 백성을 찾으실 때 가장 적당한 때에 나타나십니다.
욥은 끝까지 자기의 의를 주장하며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였습니다. 그는 세 친구와 세 차례에 걸쳐 대전식 토론을 전개하다가 끝에 가서 엘리후의 중개적 논설이 있은 다음에 여호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2. 여호와께서 나타나 말씀하심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로써 나타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그때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셨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옛날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나타남과 같이 하셨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말씀하신 것과(창3:9-16),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말씀하신 것과(마3:17),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과(창22:11), 다메섹에서 사울에게 말씀하신 것과(행9:4),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과(출19:19),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과(왕상19:12), 밧모섬에서 요한에게 말씀하신 것과(계1:10) 같은 그러한 소리로 욥에게도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 놓는 자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3. 말쏨하신 목적
하나님께서 욥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위하여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욥이 재난을 당한 것은 그가 애당초 범죄하였기에 벌하기 위해서 내려진 재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욥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은 가장 합당한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욥에 대한 교훈을 완수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중심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욥은 이를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욥의 교만을 겸허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를 주장하는 일은 용납못할 교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잠잠케 하여 순복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신 목적은 결국 욥의 지위를 회복시키고 그의 축복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에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범죄하여서 당하는 재난이 아니라 뜻밖에 의로운 일을 하다가 당하는 재난을 조금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걱정과 근심과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그 의로움을 아시고 계시며, 원래대로 회복시켜 주시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기갈
암8:11
서론
본문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흉년과 학정과 부조리로 먹을 것이 없다고 하여도 양식이나 물이 없어서 기갈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1. 기갈을 당하고 있는 인생
인생이 기갈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이 세상의 것으로는 도저히 만족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향락을 전부 다 누려본 솔로몬 왕도 말하기를 전도서 2장 10-11절에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이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질수록 더욱 만족이 없는 법이며 오히려 더욱 갈증이 심해집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하러 나서기 전 40일 동안 금식하여 주리실 때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기를 "하나님 아들이거든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단연코 이를 물리치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떡을 먹고 살지만,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체의 양식인 물질의 떡만 추구하고 있으니 언제나 흡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의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으로 윤택하게 합니다.
사람은 결국 무엇이든지 풍족하신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만족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발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을 소유케 하여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기갈을 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는 일이 곧 새 생명 얻는 길이니, 새 생명을 얻기 전에는 그 영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결론
현대는 부유한 시대입니다.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발달된 윤택한 시대입니다. 교계마저 도 부유하여 교회는 점점 비대해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나에게 부유하고 윤택한가를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생활을 하려면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엡6:10-20
서론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마귀의 궤계와 어두움의 세상 주 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기 위하여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해야 합니까?
1. 악한 것을 소멸시키는 성령의 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종말의 때를 가리켜서 말하기를 우는 사자와 같이 최후로 발악하는 때이며, 어둠의 때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의 말씀에 보면 "네가 이것을 알아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종말의 시기에 이 모든 악한 영들과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하는 유일한 무기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한 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검과 같이 사용하시며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괴시킬 뿐 아니라 인간들의 심혼 골수를 쪼개어 수술하게 하고 새롭게 하는 능력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 주십니다.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나 성인이라도, 이 세상의 지혜와 진리를 담은 책이라도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생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길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 있어서 우리가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린다는 기쁨을 가지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3. 성령 충만하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4절에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사람에게 내려오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을 때에 성령께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심으로 이방인들에게까지 성령으로 충만케 된 역사가 일어났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도 메마르고 삭막하여 갈급해진 심령들 위에 말씀을 듣게 하여 주시며, 성령의 은혜로 충만케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가 성도들에게 충만하여야 하겠습니다.
결론
이 시대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도 듣는 귀가 없는 어두운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악의 영들과 악한 자의 화전을 소멸시키는 성령의 검입니다. 그리고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생명의 말씀이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여 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
창21:1
서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음으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이르러 늙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1. 말씀대로 권고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에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라고 하였습니다. "권고"라는 말의 뜻은 믿어지지 않는 신비롭고 놀라운 사실을 잘 믿도록 권면하고 돌아보신 다는 뜻입니다.
사라는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웃었습니다. 사라는 "내 주인도 늙었고 나도 노쇠하였는데 어찌 아들을 낳으리요"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미 너무 늙어서 도저히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어떻게 아들을 낳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 책망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2.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음으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일단 선포하시고 뒷일을 돌보시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잘 돌아보셔서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생각이나 뜻을 세우심만이 아니요, 그 일이 결실하도록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무척 노쇠하였지만 그들이 동침하여 사라가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 잉태된 아이는 태중에서 잘 자라나서 때가 되어 사들을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자식이 하나도 없었으니 무척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며, 하나님의 고마우신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합니다. 과연 그대로 행하실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이 하신 말씀대로 행하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3. 말씀대로 성취케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언은 성취됨으로 예언이 예언 구실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예언은 성취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직접 그 당사자에게 하신 예언이 성취되지 않겠습니까?
사라는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 기사와 이적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자연의 이치를 파괴하거나 우주의 순리를 거스리는 일이 없게 일하십니다. 이것은 우주의 자연의 원리를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틀림이 없는 오직 무결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지는 것임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저 흐지부지 없어진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씀은 다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행하시며, 말씀대로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대하18:18
서론
참 선지자 미가야는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이 한결같이 승리의 예언을 하였지만, 홀로 아합 왕이 패전하고 전사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진실하게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참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1. 왕도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최고 책임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력이 막강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마음대로 지배하는 권세를 갖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왕보다 높은 이가 이 세상에는 없기 때문에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상 왕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왕은 바른 말하는 신하들의 충고나 백성들의 올바른 진정을 심사숙고하여 정책으로 채택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강팍하고 교만한 왕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듣지않다가 패망한 왕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은총임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왕된 자는 일반 백성들보다 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2. 말씀 순종의 여부의 차이
대표적인 두 왕을 생각해 보면 사울과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는 사울 왕이 자기의 왕권을 이용하여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감행하는 범죄를 하였을 때 사울을 책망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3장 13-14절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다윗의 경우를 봅시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생명을 걸고 하였습니다.
다윗도 역시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으니 자신의 신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는 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종 나단이 다윗의 범죄함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여 책망하였습니다. 다윗은 그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다시 복종하였기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도리어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두 왕, 즉 사울과 다윗은 똑같이 범죄하였으나 그 잘못을 하나님께서 지적할 때 그 말씀의 순종 여부에 따라 그 결과는 아주 다르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
인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원리 아래 살고있습니다.
특히, 모든 인간의 어른이요, 대표적인 왕은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말씀
출20:1
서론
모든 말씀이란 십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말씀으로 그 백성들에게 일러주셨는데 그 거룩하신 뜻은 말씀을 통하여 언제나 그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1. 지금까지 하신 모든 말씀들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그 당시) 언제나 말씀을 통하여 그 백성을 훈계하시고 선도하시며 이끌어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도탄에 빠져 울고 신음하는 애 굽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권념하시고 모세와 아론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여 듣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였으며 불순종하는 때도 종종 있었으나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진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사랑으로 권념하거나 훈계로 책망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말씀을 듣지 않을 때에는 무서운 심판으로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2. 지금 하시는 모든 말씀들
지금까지 하신 말씀과 지금 하시는 말씀이 있으니 지금 하시는 말씀은 곧 십계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라고 서언을 말씀하시고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마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께 관한 네 가지 계명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는 사람에게 관한 여섯 가지 계명 등 모두 열 가지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도 가장 훌륭하고 요긴하고 거창하신 말씀은 십계명입니다. 이 이상 더 큰 말씀이 어디 있으며, 보배스러운 말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십계명을 잘 듣고 지켜야 하겠습니다.
3. 이 모든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조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하셨으니 말씀이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삼위 중 제 2위가 되시는 성자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의 예표로 나타났고 신약은 그 말씀이 현실화되어 이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고 배우고 믿게 됩니다.
결론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이 변화가 없으십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그 권위와 위엄이 영원하시며 우리를 생명길로 인도하시는 등불이십니다.
잠잠히 들으라
신27:9-10
서론
본문 9절에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온 이스라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간곡하게 명령하는 것이니 극히 열성적으로 이 율법을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에게 주의를 기울여 들으라는 말이니 가장 고도의 조심과 주의를 요하며 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 것입니다.
1. 심사숙고하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심사숙고하라는 뜻인데 '잠잠히 들으라'는 말은 이것입니다.
왜 그 말을 하였습니까? 왜 잠잠히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며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영 외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잠잠히 들으며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11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랑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절대 청종하라는 뜻입니다.
'잠잠히 들으라'는 말은 심사숙고한 결과 절대 청종하라는 강조의 말입니다. 다른 이견이나 잡념을 갖지 말고 두려운 마음으로 들으라는 말입니다.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온 이스라엘에게 고하는 말은 곧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의 백성으로서는 듣거나 말거나 자유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들어야만 하는 절대적이요, 궁극적인 책임감을 지니는 말입니다.
백성이란 마땅히 저들의 하나님께 지배를 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백성이란 특권은 권리행사보다도 의무감이 앞서기 때문에 절대 청종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청종해야 합니다.
3. 말씀대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본문 10절에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대로 시행하는 결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잠잠히 듣기는 잘 하지만 그래도 행하는 실천의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4-26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 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구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으리니"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모세가 자기의 의지대로 한 일이 하나도 없으며, 자의대로 말한 적도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심사숙고하며 절대 청종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희귀함
삼상3:1
서론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회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온 땅에 충만하더라"고 해야 할 터인데 반대로 희귀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 당시 시대는 어두운 시대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말씀은 온 우주에 충만합니다.
창세기 첫머리에서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출발하여 그의 말씀이 선포됨에 따라 만물이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창조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선포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에는 말씀의 근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친히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고 또 제자들을 통하여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 땅과 우주에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만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들려지는 것이요, 알려지는 것입니다.
2. 엘리 제사장은 말씀을 못들었습니다.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책임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못들어도 제사장은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역사가 기록된 사무엘상을 보면 그가 사람과 대화한 기사는 있으나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직접 기도했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는 기사가 없습니다.
사무엘상 2장 27절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 하였느냐"라고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씀을 받은 사실이 한 번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하였으니 그 직무를 제대로 감당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3. 어린 사무엘이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아니하는 때에 어린 사무엘은 여호와의 전 안 하나님의 궤 있는 곳에 누웠다가 하나님께서 친히 사무엘을 부르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네 번까지 부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그리고 바울을 부르실 때에도 이렇게 친히 부르셨던 것입니다.
말씀은 사모하는 자에게만 임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엘리처럼 심령이 어두워서 잠만 자고 있는 자에게는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억지로 주시지 않으시며 축복을 강제로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자에게 은혜와 축복을 내리십니다.
결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듯이 갓난아기가 젖을 사모하듯이, 배고픈 사람이 떡을 사모하듯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며, 우리의 심령이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말씀이 희귀한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항상 기도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이루심
왕하10:10
서론
하나님의 말씀 중 일단 선포된 것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보훈 중에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5장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냥 흐지부지하게 없어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만약에 여호와의 말씀이 어떤 세력에 억압당하여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면 그 말씀은 권위도 없고 효과도 없어서 믿을 만한 것이 못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은 완전하시므로 일단 한 번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십니다.
본문에서도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아합의 집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신 것입니다.
2.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그 거룩하신 뜻을 인간들에게 선포하시고 가르치려고 하실 때에 반드시 그종인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국민들에게 선포하였고, 특히 아합 왕 같이 악한 자에게도 주저하지 않고 가감함이 없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17:1)",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으리라(왕상21:19)",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왕하9:37)"고 선포하였습니다 그 선포는 그대로 다 이루어졌으니 이것은 엘리야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3. 때가 되면 이루시는 말씀입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그 주권적 뜻대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때를 따라 적당하게 미리 말씀하시되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하셨습니다.
일단 선포된 말씀은 사람들에게 들려지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대비할 자는 대비하고 회개할 자는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일단 선포된 말씀은 중간에 유실되지 않고 때가 되면 이루시는 것이 말씀의 권위있는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이룩되지 않은 말세와 재림에 대한 예언도 반드시 이룩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구약 시대에부터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유대 백성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였고, 예수님은 그 말씀대로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루어지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소망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그 말씀이 꼭 성취될 것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경건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라
암3:1
서론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선포하신 것과(계2:7, 11, 17, 29) 같은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들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1. 이스라엘 자손에게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하 만민을 대상으로 선포하십니다. 모든 자연계와 기상계까지 지배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미 율법이 주어졌고, 그들은 말씀 중심으로 생활한다고 하여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필요에 따라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시며 "들을지어다"라고 간절하고 위엄있게 선포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듣는 자는 멸망에서 건짐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멸망의 길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하신 완전한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바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하나님의 사람들, 즉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된 사람들은 그 책임이 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전달자가 말씀을 감하여 하면 축복에서 감하고, 주신 말씀 외에 자유로 더하면 모든 재앙으로 더 하신다는 경고를 생각해야 합니다.
계시록 22장 18-19절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에게 유익한 대로 말씀을 바꾸어 범죄를 더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창2:17)"고 하셨으나,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창3:3)"고 보태어서 말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하셨는데, 하와는 "정녕"이란 말은 자기 마음대로 빼고 "죽으리라"는 단정을 "죽을까 하노라(창3:3)"로 변질시켜 그 의미를 약화시켰습니다.
3. 경고의 말씀입니다.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보통 예사로이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특별히 강조하여 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므 로 채찍질한다고 하셨습니다. 징계를 받는 일이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히12:8).
불신자인 이방인들은 그 죄값으로 멸망당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택함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쳐서 하시는 경고의 말씀을 바로 듣고 회개하여 정상적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본서 중에는 "이 말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이 거듭 반복되어 강조되고 있습니다(3:1,4:1,5:1). 이 말씀은 경고의 말이요, 간절한 사랑의 권면입니다.
오늘도 우리 성도에게 이르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여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고칠 것은 고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렘23:29
서론
본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는 말이 23장 중에서도 10차례나 거듭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 같고 방망이와 같다고 하여 그 권위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백성들에게 권위를 나타내십니다.
1. 말씀의 권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하신 말씀은 여호와의 일방적인 선포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권위를 고조하는 선포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너희를 주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과 대등시킨 말입니다. 말씀의 권위는 곧 주님의 권위입니다.
사람의 말은 그것을 받는 사람과 그 말의 시간적 또는 장소적 거리에 따라서 효력의 다소가 좌우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고 언제나 어디서나 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인 것입니다.
2. 말씀의 효능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기록하기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계시록의 말씀 일부를 더하거나 제거하는 일이 성경 전부를 폐지함과 같이 구원받지 못하는 큰 죄인 것입니다. 이는 곧 성경의 일부를 경멸히 여기는 죄는 결국 하나님의 권위를 멸시하는 죄이니 성경의 다른 말씀도 그렇게 취급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두려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의 사역
하나님의 말씀은 전도하는 데서나 설교하는 데 있어서 똑바로 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든지 또는 "여호와의 말씀이‥‥‥‥로 뜻을 바로 인식시켜야 합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다"고 하거나 "내 경험에 의하면 이렇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전도자나 설교자나 하나님을 직접 모신 자리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이 라고 하여 하나님의 대언자로서의 직분을 제대로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말씀 사역 자들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생각이나 소견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으며, 그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여서 해석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할 때 더욱 하나님의 사역 자로서의 사명을 다 감당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불과 같아서 우리의 마음속에 뜨겁게 작용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예수께서 성경을 풀어 가르치시니 그들은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여 깨닫고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결 론
말씀에 충만하여 진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치 미친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었으나 바울은 예수에게 미쳤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상이나 주의를 하나님의 말씀에 혼합시키는 일이 없도록 조심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망 은
성 경 활 용
1. 망은의 특징
(1) 옛날을 기억지 않음
(신32:6-7) 우매무지한 백성이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겠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2) 분별력이 없음
(렘2:5-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3) 하나님께 감사치 아니함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4) 도리를 생각지 아니함
(렘2:5-7) 나 여호와가 이 같이 말하노라 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관대 ‥‥내 기업을 가증히 만들었으며
(5) 은혜를 잊어버림
(사1:2-3)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을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2. 망은의 이유들
(1) 번영
(신6:10-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2) 자만
(신8:12-18)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었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3) 망각
(눅17:12-18) 참조
(4) 탐욕
(삼상23:5-12) 참조
(5) 교만
(단5:18-20)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팍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 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3. 망은의 결과
(1) 대적을 섬기게 된다.
(신28:47-28)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2)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왕상16:3) 내가 너 바아사와 네 집을 쓸어버려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같이 되게 하리니
(3) 진노가 임한다.
(대하32: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로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4) 죽임을 당한다.
(시78:31) 하나님이 저희를 대하여 노를 발하사 저희 중 살진 자를 죽이시며 이스라엘의 청년을 쳐 엎드러 뜨리셨도다
(5) 영광을 빼앗긴다.
(단5:20)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팍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바 되며 그 영광을 뻬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관련원어풀이
1. hr;s; 사-라-
원래의 의미는 "떠남, 물러남"이다.
(1) 율법을 범함, 범죄.
(신19:16)
(2) 중지, 휴지.
(사14:6)
(3) 여호와에게서 떠남.
(신13:6, 렘28:16)
2. dg'B; 바-가드
(1) 은밀히 행하다, 불성실하게 행동하다.
(출21:8,잠2:22)
(2) 압박하다, 못쓰게 만들다.
(사24:16, 합2:5)
3. &r'B; 바-라크
(1) 무릎을 꿇다.
(대하6:13)
(2) 하나님께 빌다, 축복을 받다, 축복하다.
(창28:6, 대상1:10)
(3) 저주하다, 저주를 빌다.
(왕상21:10, 욥1:5)
4. vj'K; 카-하쉬
원래의 의미는 "거짓말하다"이다.
(1) 실패하다, 부족하다, 모자라다, 낭비하다.
(시109:24)
(2) 부정하다, 거절하다.
(레5:21)
(3) 거짓말하다.
(레19:11)
(4) 속이다, 실패하다.
(호9:2, 합3:17)
5. [v'P, 폐솨
(1) 변절, 반역.
(잠28:2)
(2) 잘못, 범죄.
(창31:36)
(3) 죄.
(욥33:9, 시32:1)
6. ajfivsthmi 아피스테-미
(1) 해고시키다, 반역하도록 선동하다.
(행5:37)
(2) 떠나다, 가버리다.
(눅13:27)
(3) 버리다, 물러가다.
(행15:38)
7. ajpostrevfw 아포스트레포-
(1) 돌이키다.
(딤후4:4)
(2) 옮기다, 제거하다.
(롬11:26)
(3) 이간하다.
(눅23:14)
(4) 돌아서다.
(행3:26)
8. ajrnevomai 아르네오마이
(1) 부인하다.
(마26:70)
(2) 부정하다, 반대하다, 거절하다.
(마10:33, 딤후2:12)
(3) 포기하다.
(요일2:22)
9. katastrhniavw 카타스트레-니아오-
완고하다, 제멋대로 하다.
(딤전5:11)
10. prodovth" 프로도테스
배반자, 변 역자.
(눅6:16, 딤후3:4)
11. hv;n: 나-솨-
(1) 잊어버 리다.
(애3:17)
(2) 버리다, 경시하다.
(렘23:39)
(3) 잊게 하다.
(창41:51)
12. hk'v; 솨-카흐
(1) 잊어버리다, 무시하다, 유의치 않다.
(창27:45, 사49:14)
(2) 잊게 되다.
(창41:30, 신31:21)
(3) 잊게 하다.
(애2:6, 렘23:27)
13. ejpilhsmonhv" 에필레스모네-스
소홀, 망각, 건망증.
(약1:25)
14. ejklanqavnw 에클란다노-
완전히 잊어버리게 하다, 전부 잊어버리다.
(히12:5)
설교예화자료
늑대와 두루미
배가 고파 헤매던 늑대가 바닷가 근처에서 생선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오랫동안 굶주렸던 늑대는 허겁지겁 생선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잘못하여 큰 가시가 목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늑대는 가시를 넘기려고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하였고 바닷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했지만 좀처럼 가시는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늑대는 점점 목이 붓고 따가와서 나중에는 침조차 삼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늑대는 펄쩍펄쩍 뛰면서 목에 걸린 가시를 빼 줄 친구가 나타나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때 마침 저쪽 논가를 왔다갔다 하는 두루미가 보였습니다. 목이 몹시 아픈 늑대는 두루미에게 달려가서 애원했습니다. "두루미님, 제 목 좀 들여다 보세요. 큰 생선 가시가 걸려서 침을 삼킬 수조차 없답니다. 두루미님은 긴 부리를 가졌으니 그것으로 제 목의 가시를 빼 주십시오." 두루미가 늑대의 부은 목을 보며,
"그것 참 아프시겠군요." 하고 말하자 늑대는 더욱 힘없는 목소리로 사정하였습니다.
"두루미님, 제발 제 목의 가시 좀 빼 주십시오. 그럼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
늑대는 아예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두루미는 긴 부리를 늑대의 목에 넣더니 깊이 박힌 가시를 빼 냈습니다.
"어유, 이제 살았습니다!"
가시가 빠지자 늑대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인사도 없이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괘씸하게 생각된 두루미는 돌아서는 늑대를 향해 외쳤습니다.
"아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소, 은혜를 갚겠다더니 은혜는 커녕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없이 그냥 가다니!"
그러자 늑대는 입을 비쭉거리며
"이봐, 자네는 겨우 내 목의 가시를 빼주었을 뿐이지만 나는 내 입에 들어온 자네를 그냥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하고는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문제가 된 상처
프랑스 메츠에 사는 마리 파울 시엘레라는 3살난 소녀는 '용기있는 행동과 위험 한 희생'으로 청동 메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가 구해 준 소년은 그녀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마리의 친구인 2살난 데니스가 호수에 빠지자, 소녀는 데니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어른들이 구조하려 올 때까지 물 밖에서 당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는 말했습니다. "데니스는 지금 절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제가 데니스의 머리카락을 당길 때 상처를 입했거든요."
은혜를 모른 호랑이
호랑이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깊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나오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호랑이는 슬픈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이때 사람을 본 호랑이는 "오! 사람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애걸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구해 주면 나를 잡아먹지는 않겠지? " 하고 말하였습니다. "원, 천만의 말씀을‥‥ 생명의 은인을 어떻게 잡아먹을 리가 있습니까? 제발 살려만 주십시오."라고 호랑이가 말하였습니다. 사람은 호랑이가 하도 딱해서 함정에서 꺼내 주었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살려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들며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겠는데 먹이를 두고 굶어 죽는단 말이냐?"고 외쳤습니다. "그럼 우리 저고목 나무님께 재판을 해달라자!"라고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고목나무는 "호랑이님이 옳소! 저 따위 인간은 얼마든지 잡아 잡수시오. 인간들은 우리 나무의 은혜도 모르고 막 베어다 때는 걸요!" 하였습니다. "그럼, 우리 황소님께 가서 재판해 달라자!" 그러나 역시 황소도 "암! 잡아 먹어야지요. 도대체 인간들은 우리를 실컷 부려먹고 나중에는 잡아먹거든요!" 하였습니다. 사람은 몸이 달아 "어디 저 토끼님께 여쭈어 봅시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문제없다는듯 "그래!" 하고 동의했습니다. 토끼는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글쎄‥‥ 원래 사람은 간사하니 그의 말만을 들어서는 어떻게 된건지 모르겠으니 처음대로 한번 해보세요." 하였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얼른 함정으로 뛰어들어가 "이렇게 되었었지요!" 하였습니다. "그럼 됐군요! 호랑이 님은 거기 그대로 있고 사람님은 집으로 가시면 되지 않아요? "라고 토끼가 말했습니다.
배은망덕한 난쟁이
「걸리버 여행기」에서 조나단 스위프트는 난쟁이들의 법률을 통해, 친구와 은인에 대한 배은망덕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 사회에는 배은망덕이 제일 가는 범죄로 취급됩니다. 그들에 따르면, 자기의 은인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은인은 물론 그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공동의 적으로서 간주될 필요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살 가치가 없습니다. "
심한 것 같지만 수긍이 가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면,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겐 오죽하겠습니까?
어록·시·묘사
배은망덕은 오만불손의 딸이다.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배은망덕은, 어떤 풍토에서도 자라는 잡초로서, 처음에는 너무나도 빨리 자라지만, 조만간에 시들어 버린다.
(S. 가드/ 고돌핀 백작의 편지)
내 밥 먹은 개가 발뒤축을 문다. < *자기의 은혜를 입은 자가 도리어 자기를 상해하고 손해를 끼친다는 뜻>
(한국 속담)
대개의 삶은 어떤 일이건 잊어버리지만 배은망덕한 행동만큼은 잊지 못한다.
(코란)
개도 닷새가 되면 주인을 안다.
(한국 속담)
기르던 개에게 다리를 물렸다. < * 제가 도와주고 은혜를 베푼 사람으로부터 큰 화를 입 었다는 뜻>
(한국 속담)
자기가 진 신세를 부인하는 자는 배은망덕하고, 그 신세를 감추는 자도 배은망덕하며, 그 신세를 갚지 않는 자도 배은망덕하고, 그 신세를 잊어버리는 자는 가장 배은망덕하다.
(세네카/ 은혜시여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아무 염려없다고 믿고 있던 일에 실패하거나, 믿고 있던 사람으로부터 도리어 해를 입었을 때 이르는 말>
(한국 속담)
거지에게 침대를 주면, 거지는 보답으로 이를 줄 것이다.
(J. 레이/ 격언집)
은혜를 원수로 갚는 따위 근성은 자비로운 비를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면서도 아무것도 낳지 않는 불모의 사막과 같다.
(페르시아 속담)
은혜를 받을 줄만 알고 그것을 보답할 줄 모르는 자는 가치없는 사람이다.
(플라우투스/ 페르샤인)
땅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 더 나쁜 것은 생산하지 않는다.
(아우소니우스/ 경구집)
믿었던 돌에 발부리 챘다. <*굳게 믿고 있던 일이 틀어지거나, 틀림없을 사람에게 배반당했을 때 이르는 말>
(한국 속담)
활 쏘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끝내는 내가 그 과녁이 되었다.
(사디/ 장미원)
강도를 교수대에서 구해 주면, 그는 네 목을 자를 것이다.
(W. 캠든/ 유고집)
오렌지는 즙을 짜면 껍질은 버려진다 <*도우니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기를 이용할 대로 이용하고 버린 프레더릭 2세의 배은망덕을 빗대어 한 말>
(볼테르)
까마귀를 길러라. 그러면 그는 너의 양 눈을 쪼아낼 것이다.
(W. G. 베넘/ 격언집)
은혜를 모르는 사람 하나가, 곤경에 빠져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자기가 마신 샘에 돌을 던진다.
(탈무드)
은혜를 갚는 데 너무 성급한 것은 배은망덕의 일종이다.
(라 로시푸코/ 반성록)
피해(被害)는 모래에 써 넣되, 은혜는 대리석에 써 넣어라.
(프랑스 격언)
부모의 낳은 은혜 찰기를 죽음으로써 다하고, 남에게서 한은 은혜 감기를 힘껏 다 함이 사람의 도리이다.
(소학)
닭 울기 전/ 거듭 세 번 몰랐담을 뉘우쳐 통곡하던,/ 당신의 늙은 제자,/ 베드로는 그래도,」 가야바의 뜰에까지 따라라도 갔지만,// 오오,/ 중얼거리며 나는/ 잡히시는 그 자릴 피해 달아 숨은 채,/ 감람산,/ 어느 나무 뒷 그늘에 혼자서 쭈그리고,/ 당신과 또 스스로의 배반을,/ 몇 줄기의 눈물론들 뉘우쳐나 봤을지요.
(박두진/ 감람산 밤에)
베드로는 부인했으나 예수님은 꾸짖지 않았습니다. / 예수님은 마음 쓰린 고독을 알고 계셨습니다. / 짖궂게도 놀리면서 잔인스럽게 비웃는 사람들-/ 베드로는 한 번 주를 모른다 했고 예수는 그 말을 들없습니다. // 베드로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악담이나 거짓말에 대하여 항의하지 않으셨습니다. / 외로움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습니다. / 베드로는 두번째 주님을 모른다 했고 예수는 그 사실을 아셨습니다. / 베드로는 세번째 주를 모른다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용기가 넘치는 눈매로 베드로의 악몽을 깨어나게 했습니다. / 그때 사랑이 빛나는 얼굴 입가에 떠올랐고/ 베드로는 자기를 에워싼 공포의 어두움으로부터 헤어날 수 있었습니다.
(포티트/ 입가에 어린 사랑의 미소)
달빛을 받으며/ 어둡게 걷는다// 번잡했던 하루/ 미움 속에서/ 미움의 정체(正體)가 되었었지/ 배신 틈에서/ 배신을 배웠었지.
(윤강로/ 달밤)
이 밤은/ 예루살렘 불빛 아래서/ 음모와 술수와/ 배신과 모반이 손잡고/ 번뜩이는/적의의 칼날과/ 긴장된 숨소리들로/ 가득 찼는데/ 여전히/ 스승과 제자들의 말없음//‥‥‥제자들 지쳐 잠들고/ 하늘의 말없음 속에/홀로/ 외로운 예순
(서덕석/ 겟세마네의 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배반당하고/ 다시 한 번 못박혀/ 높다란 첨탑 위에서/ 붉은 피 흘리는 불쌍한 사람아,/ ‥‥전자 계산기를 두드리는/ 오늘의 유다는 몸값에다 덤으로 이름 값을 챙겨/ 두둑해진 주머니를 쓰다듬으며/회심의 미소를 흘리는데
(서덕석/ 십자가에 매달린 채 잊혀진 예수 아래서)
불어라 불어 겨울 바람아,/ 인간의 배은만큼은/ 차지 않으리
(W. 셰익스피어/ 좋으실 대로)
오오 주여, 기쁨의 신, 용서의 신/ 나의 불의와 배은이 얼마나 많은지요
(베를렌/ 예지)
그것이 없다면 인간 세상은 배신으로 끝나게 되는 빵을 나누고
(베를렌/ 예지)
기쁜 마음으로 찬미하는 사람들과 더불어/나도 또한 노래 부르며 종려가지를 깔았으리라./ 대제사장이 주의 이름을 더럽혔을 때에는/ 부끄러움도 소문도 없이 줄행랑을 쳤으리라./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으소서"하고/지금은 죽은 내 동족들이 외칠 때,/ 나는 두려움에 질려 떨리는 푸른 입술을 움직여/"우리를 위해 그를 용서하라"고 간구했으리라.// 마리아가 빌고 있는 십자가 옆에서/ 무척이나 떨어진 거리에 서 있었으리라./ 그 임종의 때에도 나는 입을 다문 채,/운명하는 주를 위해 말 한 마디 못하고,/오직 겁에 질린 가슴을 두드리며,/ 내 자신의 비겁함을 비웃으면서 주를 위해 로마 병정에게 달려들어 저항하지 못한 나를 가련하게 만 생각하고 있었으리라.
(클렉혼/ 오오 주여, 나를 심판하십시오)
설 교 노 트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신32:1-20
서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언제나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대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그것에 대한 항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1. 교훈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본문 1-4절에 "하늘이여 귀를 귀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이 말을 들을지어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의 말씀은 성도들이 흡족히 맛볼 수 있는 영의 양식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나님은 은혜를 받고도 배은 망덕하게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를 지어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할 수 있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2. 호위하시고 보호하셨습니다.
본문 9-12절에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와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려운 악조건에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자기들을 보호하시며 지켜주신 자를 배반하였으니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3.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5-16절에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한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 발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이 윤택하여 지니 다른 신들을 섬기며 가중한 것들을 더 좋아하며 따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열한 배신이요, 은혜를 악으로 갚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그럴 수 있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오는 결과는 여호와께서 얼굴을 돌이키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0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이키신다고 하면 이는 끝장이 난 것입니다. 인간이 우상을 숭배할 때에 얼굴을 돌이키시고, 하나님을 멸시할 때에 얼굴을 돌이키시며, 경건하지 아니할 때에 얼굴을 돌이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니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의 베푸신 큰 복
느9:35
서론
주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인간에게 많이 골고루 베푸시지만 특별히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이스라엘 즉 택한 백성들에게는 큰 복을 베푸십니다. 큰 복이라고 하였으니 그 내용도 거창하지만 그것을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한량없습니다.
1. 큰 복이란 무엇입니까?
본문에 보면 "너희가 그 나라와 주의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 기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은 뜻이지만 본장25절에서도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며 배불리 먹고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라고 하였느니 실로 놀라울 만큼 풍성한 큰 복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서 택한 백성들만이 받았기 때문에 큰 복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에게도, 악한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너그러우신 지혜가 넘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다 더 큰 복을 택한 백성에게 내리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들로 인하여 언제나 감사하며 기쁨으로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2. 큰 복은 크게 보답해야 합니다.
큰 복을 크게 보답한다면, 작은 복은 작게 보답하여도 될 것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작은 복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복이라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다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큰 복이라고 지목하여 주신 복에 대하여 우리 인간들이 크게 보답함은 지당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본장 26절에 보면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 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라고 하였으니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또 35절에서도 "저희가 그 나라와 주의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한고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해 크게 보답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크게 거역하여 은혜를 저버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일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한낱 미물인 짐승도 자신을 길러서 먹이를 주는 주인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셔서 만물의 영장으로 삼았고, 거기에다가 큰 복까지 주셨는데 그렇게 큰 복을 받은 자가 크게 보답하지는 못할망정 크게 거역하였다면 그 결과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을 예상하여야 합니다.
즉 사랑이 컸고, 기대도 컸고, 기대도 컸기 때문에 노여움도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람에게 입은 은혜는 잊어버리지 않고 그 은혜를 갚는데 최선을 다 하면서도,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여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는 경우가 더 많음을 느낍니다.
하나님에서 우리에게 주신 복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그 은혜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에게 내려진 큰 복을 보답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이방인들에게 포로가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은 하지 못하는 거 역자들은 형벌을 당하게 될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거역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막14:8
서론
예수님은 수난을 앞두시고 구약의 최대의 절기인 유월절을 준비하시고 유월절 식사를 통하여 신약의 가장 중요한 성만찬의 예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성찬은 신교의 그대 성례 즉 세례와 성찬중의 하나입니다. 이 엄숙한 성례식에서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1. 가장 복된 자리에서 가장 섭섭하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인간들이 사는 이 세상은 천륜은 물론 인륜까지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을 죽이려는 역적이 있으며, 부모를 배반하는 불효자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스승을 팔아버리는 제자가 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간이나 데리고 다니시며 천국의 복음으로 훈련시키신 사랑하는 열 두제자만을 데리시고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이렇게 가장 복된 자리에 계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생애의 최대로 섭섭하신 말씀을 선포하셨으니 그 말씀은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무척 사랑하셨으며, 그들의 발까지 씻기며 서로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크신 은혜를 받은 제자 가운데 하나가 주님을 판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은혜를 모르는 자인 것입니다.
2.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무서운 말씀
스승과 제자가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라면 그 분위기는 참으로 부드러우며 따뜻한 분위기이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사제지간에 최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이므로 가장 엄숙하면서도 부드럽고 화기애애해야 할 분위기인데 예수님께서 가장 무서운 말씀을 하셨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시편 41편 9절에 "나의 신뢰하는 바 내 떡을 먹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는 예언의 반영입니다. 예수님과 열 두 제자만이 같이 한 친밀한 유월절 식탁에서 그 가운데 반역자가 있는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유월절 양으로 죽음을 당하실 비장한 결의와 사랑하는 제자가 반역하는 마음 아픈 심정이 교차함을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팔아넘길 제자가 있음을 아셨지만 끝까지 그를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는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의 행위에 대해 용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제자는 끝내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3. 직설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서 근심하며 하나씩 묻기를 "내니이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다"고 암시적이면서도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때에는 다른 제자들이 그가 누구인지를 다 몰랐으므로 암시적이었으나 해당자인 가룟 유다는 너무나 당황하고 겁이 났을 것입니다. 유다에게는 직설적인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결론
오늘을 사는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며 또다시 주님을 팔고 있지는 않습니까? 은혜를 잊어버리는 자는 정말 짐승만도 못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 죄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에 이르도록 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을 박해한 왕
출1:8
서론
야곱과 함께 각기 권속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민족은 요셉의 혈족까지 합하여 모두 70인 이었습니다. 그들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며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일이며, 명령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점차 애굽에서 박해를 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이 애굽에 가서 살게 된 경위와 그들이 박해를 받게 된 원인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요셉 때의 애굽 왕
요셉은 애굽이 큰 흉년에서 잘 견딜 수 있도록 힘을 다하여 노력을 하였습니다. 요셉은 그 흉년이 있을 것을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도 기근이 들어서 애굽에 식량을 사러온 형제들을 만나게 되어서 요셉의 부친과 그 가족이 다 애굽으로 이주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총리 대신으로 있을 때는 이스라엘이 생활의 안정을 얻어 한참 번성하기 시작한 가장 행복한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의 애굽 왕은 16대 왕조로서 바로 왕이 통치하였는데, 그는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나서 애굽까지 쳐들어가 마침내 왕위에 오른 것입니다. 그는 셈 족속의 후예이었으므로 같은 셈족 출신인 요셉을 발탁해 총리대신으로 추대하였던 것입니다.
2. 요셉을 모르는 새 왕
세월이 흘러 그 왕도 죽고 요셉도 죽었습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기록되었는데 그는 제 18대 왕조의 왕들 중에 한 왕으로 보고 있습니다.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제 18왕조를 건설한 왕은 "앙모세"인데 그는 힉소스의 마지막 왕조 시대에 한 지방의 장관이었으나 자기 실력을 키워서 타지방의 장관들과 결탁하여 구정권을 타도하고 새 왕국을 수립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함 족속의 후손이었으므로 셈 족속의 후손인 요셉과 이스라엘 민족을 학대하게 되었습니다.
3. 새 왕의 이스라엘 박해 정책
새 왕은 자기 국민들과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하고 박해 정책을 썼습니다.
이 박해 정책은 강제 노동 정책과 산파 이용정책, 남자 아이들은 강에 던지라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박해 정책을 썼어도 이스라엘 백성은 더 건강하고 그 수가 많아졌으며 산파를 이용하였지만 산파들의 양심적인 행동으로 그것도 실패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를 모두 강에 던지라고 하였으나 오히려 모세는 그 강에서 구출을 받고 그 정책을 쓴 바로의 궁에서 왕자로 자라게 되고 결국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쓰임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7년간 흉년의 위기를 요셉의 지혜와 노력으로 무사히 넘긴 애굽은 아무리 요셉이 죽었다고 하여도 그 공로를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왕으로부터 모든 백성들을 살려낸 자가 요셉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니 그 공로를 기억하기는 커녕 오히려 박해 정책을 썼으니 은혜를 잊어버린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터진 웅덩이
렘2:13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꾸었도다 하였습니다. 본장 11절에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이상하고 기막힌 노릇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참 신을 버리고 신 아닌 우상을 섬긴다는 일은 참으로 하늘도 놀랄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두 가지 악을 행하였습니다.
본문에 "내 백성 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이스라엘의 생수가 되도록 제공하였는데 그들 편에서 버렸으니 그것은 고귀한 사랑을 저버린 배은 망덕의 큰 죄란 뜻입니다. 또한 미련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니 이것은 진리를 배반한 것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큰 죄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은 자기 마음대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니 이것 역시 또한 하나의 무서운 죄인 것입니다.
2.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죄
인간이 자기의 손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우상을 만들거나 선정하는 것은 미련하고도 교만한 죄악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숭배의 대상자를 스스로 조작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무지하며 무능한 것들인데 어찌 인간들이 숭배한 가치가 있겠으며 그것들에 숭배한다고 하여도, 그것들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수는 없는 것이며 축복해 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웅덩이를 파는 일은 가증한 일이며 미련한 일인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 자는 그곳에 자기 자신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저버리고 아무 능력도 없는 것들을 숭배하면서 축복을 받기 바란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3. 터진 웅덩이의 진리
'웅덩이'는 물을 저장하기 위하여 땅이나 바위에 구덩이를 파거나 큰 구멍을 뚫는 것을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강우량이 적으며 물 근원이 대단히 귀한 지역이므로 웅덩이의 필요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터진 웅덩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물을 저축할 수가 없으므로 헛된 수고를 반복하여 할 따름입니다. 아무리 좋은 물을 계속하여 많이 넣어도 웅덩이가 터져 있으므로 다 빠져나가게 되니 공연한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인간들은 아무리 애써도 결국은 터진 웅덩이에 물을 붓는 격이므로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결론
이 문제의 해결은 무엇입니까? 그저 터진 웅덩이를 막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머물러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으며 더욱 갈증을 느낄 뿐입니다. 우리에게 생수를 주시는 그 근원을 찾아서 마음껏 그 물을 마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간들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은혜를 저버리지 맙시다. 귀한 말씀으로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맥 추 절
성 경 활 용
(1) 수확의 감사제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2) 칠칠절로도 불림
(출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관련원어풀이
1. ryxiq; gj' 하그핰카-치-르
맥추절.
(출23:16)
어록·시·묘사
호박색 물결치는 보리밭/ 허리 굽힌 여인의 손엔 힘 있게 낫이 번쩍이오/사악사악 베어지는가 하면 묶어지는 보릿단/ 맥추절의 기쁨이 흰 낮 골짜구니에 피었소//가마를 타고 친정 동리를 나오던 날/ 고운 옷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었소/ 연한간에선 보리 밀만 닦건만/휘파람 불며 가는 저 연인들보다 그가 행복하다오.
(노천명/ 보리)
설 교 노 트
맥추절을 지키라
출23:14-26
서론
맥추절은 이스라엘의 삼대 절기 중 두 번째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이라고도 하는데그 이유는 유월절로부터 칠 주간이 지난 즉, 유월절 이후 50일 만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는 오순잘(행2:1)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절기는 밀의 첫 열매를 바치는 절기라고 하여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비록 구약 성경에는 그 의미에 대하여 증거가 나타나있지 않지만, 후대에 발전한 유대 사상에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보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께서는 이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절기에는 빈 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말고 하나님께서 복주신 대로 자원하며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6절11절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에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맥추절은 하나님의 명령이니 우리가 다 지켜야 합니다.
2. 구약 맥추절
구약에서의 맥추절은 근본적으로 농업과 관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추수를 하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들에서 수고한 노동자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중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 날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찬양을 드렸습니다. 동시에 자기의 결심과 소원을 드렸습니다. 즉 이 곡식을 받아먹는 동안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화목을 이루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3. 신약의 오순절
구약의 맥추절은 신약 시대에 와서는 오순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구약의 맥추절은 추수에 대한 감사였다면, 신약의 오순절은 영적인 추수에 대한 감사입니다.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신자가 형성되고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 이스라엘이 구체적 교회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는 오순절을 평화와 안식으로 지냈으며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구제와 선행에 힘쓰며 서로 용서하고 화목하는 절기로 지켰습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열매 맺는 성도가 되고 복음전파에 힘쓸 것을 결심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그 은혜가 너무 커서 이루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맥추절을 지키면서 우리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주님의 지체들이 모인 교회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서로 용서하고 돌아보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온전히 세우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며 가난한 자와 약자와 나그네를 돌보며 같이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출34:21-24
서론
이 맥추절에는 세 개의 이름이 있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40년 생활 동안 심지도 못하고 거두지도 못했지만 가나안 땅에서는 안정된 정착기를 주어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얻은 처음 열매를 거두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던 것을 맥추절이라고 합니다. 다음은 칠칠절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무교절을 지나 칠일씩 일곱 번을 지나면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오순절로 신약 시대에 성령이 강림하여 신약 교회가 창설되었습니다.
1.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출20:1이하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10가지 계명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에 사는 동안 지켜야 할 규례를 주셨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세상 사람의 명령은 철회할 수도, 변경할 수도 타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거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비록 내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도 지켜야 합니다.
(2) 베풀어 주신 축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켜야 합니다.
맥추절은 축복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서 드리는 절기입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면 짐승과도 같다고 성경은 말했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은혜를 받고 감사하는 사람, 은혜를 알기만 하는 사람, 베풀어 준 은혜를 감사하지도, 알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2.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신6:10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감사하면서 중심에서 나오는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원어 성경에 보면 따져보면서 계수하여 드리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위하여 주신 축복, 육신을 위하여 주신 축복, 범사에 주신 축복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것입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 중에 거하는 레위 사람과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드리라 했습니다. 이것은 빈부 귀천을 가리지 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절기를 지키는데 빈부귀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이 다 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많이 드린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독생자를 받았고, 하늘의 기업을 받았고, 영광스러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니 이제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지키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3) 넘치는 은혜를 받습니다. 선한 일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넘치는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고후9:8에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왜 축복하십니까? 선한 일을 하려 하기 위하여 입니다. 잠언 3장 9-10절에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했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하여 지켜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모두 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기뻐 하십니다. 사랑해 주십니다. 약속대로 원수를 쫓아버리고 지경을 넓혀서 성공과 승리를 거듭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맥추절과 감사
신16:9-12
서론
우리 성도들의 신분은 하늘나라 시민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요, 하늘나라의 일꾼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1년에 3차 내 앞에 보이라고 하였습니다.
1. 절기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 절기란 유월절과 맥추절과 추수 감사절을 자키라고 하였습니다. 절기마다 지키는 이유는 감사함으로 지키는 것이고, 지키되 공수로 나오지 말고 자기의 힘대로 물건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물건을 드리고 나서는 4가지 행사를 하였습니다.
(1) 하나님 앞에 감사의 찬양을 드렸고
(2) 하나님 앞에 동시에 결심과 소원을 드렸습니다.
(3)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화목을 이루는 절기로 삼으셨습니다.
(4) 하나님 앞에 감사하면서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 깨끗이 정리하지 못한 것을 정리하고 다시 정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2. 맥추절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광야 생활을 하는 중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불러 십계명을 주었는데, 이 날이 오순절입니다.
십계명은 하늘나라 시민이 지켜야 할 법입니다. 이것은 곧 나라가 있는 증거도 되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헌법이 제정된 날입니다.
신약에 와서 맥추절은 오순절인데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되고, 모일 때마다 은혜를 받아야 되고, 십자군의 정병으로 훈련을 받아 나가 승리 생활을 해야 되고, 타인에게 덕과 유익을 주는 빛의 사명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초대 교회에서는 어떻게 지켰습니까?
초대 교회에서는 먹을 것을 주시니 감사함으로 지키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명령으로 지키므로 결심하는 가운데 지켰습니다. 그리고 구제와 용서와 화목함으로 지켰으며, 주님을 생각하였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자신들도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기 위해 지켰으며,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결심으로 지켰습니다.
결론
우리들의 영혼을 위하여 교회를 세워 주셨습니다. 1년 풍년을 허락하여 밀, 보리를 주셨습니다. 각 곡식을 먹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맥추절을 바로 지키면 하나님이 자유와 평화를 유지해 주시고 산업에 복을 내려 주시며,마음에 기쁨과 성공의 지혜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자식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이 주십니다. 진실로 맥추절에 감사하는 백성이 되어 감사 위에 감사가 넘치는 맥추절을 맞이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맥추절과 교회
레23:15-21
서론
성경은 감사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시편 69편 30-31절에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게 함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맥추 감사절이라고 하면 밀과 보리 농사를 짓는 농촌에서나 지키는 절기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것보다 더욱 귀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1. 뜻으로 보는 맥추절
칠칠절과 오순절은 유월절 양을 잡은 다음 날부터 일곱 번 안식일을 지난, 즉 50일째 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명 기 16장 12절에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행하여 지킬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명하여 불러냈고 또한 종살이 하던 자리에서 구속의 은총으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생각할 때에 맥추절을 지키는 것은 우리들을 구속하여 주신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생각하여 감사하는 절기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한 해의 처음 열매 인 밀과 보리를 거두므로 감사함은 물론이고 더욱 큰 의미는 구원의 은총에 근거한 감사가 더욱 큰 것입니다.
2. 열매를 받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죄의 노예가 되었던 자리에서 해방된 구속함을 입은 것만 아니라, 좋은 곡식을 주심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육신이 풍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적인 여건을 허락하여 주신 데 대하여 감사하여 물질을 주 앞에 드리는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처음 얻은 열매를 드린다는 뜻에서 초실절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정성과 감사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육신 생활에서 윤택하게 살아가는 비결이고 축복의 비결입니다.
3. 교회가 세워진 일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성령 강림절 즉 오순절입니다. 또한 모세가 시내 산에서 계명을 받은 날입니다. 이렇게 성령과 말씀을 받은 축복의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신약에 맥추절이라고 나타나지 않고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 맥추절이 중간시대에 오순절로 명칭이 바뀌여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바울, 누가는 맥추절 대신 오순절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여 오는 세대의 교회 초석이 놓여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맥추절이 추수에 대한 감사였다면, 신약의 오순절은 영적인 추수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여 그 열매로 신자가 형성되고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물론 세대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최초의 교회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구약 영적 이스라엘이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영적 이스라엘이 구체적 교회로 탄생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오순절을 평화와 안식으로 지냈으며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맥추절은 신약 교회의 탄생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시50:23).
(2) 성도들이 모일 때마다 은혜를 받는 데 있고,
(3) 십자군의 정병으로 훈련을 받아 승리 생활을 해야 되고,
(4) 타인에게 덕과 유익된 생활이 되어야 하고,
(5) 교회의 궁극적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습니다.
결론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고, 은혜 생활을 계속하며, 승리 생활로 자신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 주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 땅의 자유를 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로 지켜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
고후9:8-15
서론
맥추 감사절을 맞이하여 진정한 감사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진정한 감사를 알기 위해서는 신약 성서의 삼분의 이를 기록하고 기독교 신앙을 정립한 사람인 사도 바울의 감사 생활을 알아보는 것이 타당한 것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삶의 상황 속에서도 범사에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했습니다. 옥중 서신의 하나인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란 말이 세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번 나옵니다. 옥중에 매인 몸인 바울이 도리어 옥 밖에 있는 자유인들을 향해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환경이 좋을 때, 무슨 일이 잘 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인간적으로 볼 때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또한 옥중에서까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감사는 어떠한 감사입니까?
1. 구속의 은혜를 항상 생각하는 감사입니다.
자기와 같은 못된 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 죄사함받고 도리어 사도가 된데 대해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감사, 감격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고 할 만큼 다른 것 다 없어도 이 구속의 은총 하나만 생각하면 진정한 감사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구속의 은혜를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의 죄와 부족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십자가 보혈로 죄사함받고 구원받았다는 구속의 은혜를 생각하는 성도는 언제나 겸손하게 자기의 약함과 비천함을 절실히 깨달으므로 항상 주님의 능력과 은혜가 넘쳐서 진정한 감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폭넓은 감사입니다.
감사를 세 가지로 나눈다면 무슨 일이 잘 될 때에만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무슨 일이 잘 되고 복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무슨 일이 잘 안되고 역경에 처해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이 감사는 폭넓은 감사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에게 붙잡혀 점치는 사람을 고쳐주었는데 그 사람의 주인되는 사람이 점 칠 수 없게 되어 돈을 못벌게 되자 관가에 고소해서 억울하게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 갇혀서 매를 많이 맞고 피투성이가 되고, 손과 발에 쇠고랑을 차고 캄캄한 감옥에 갇혔는데도 감사와 기쁨에 넘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원만하면 원망, 불평, 불만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기 쉬운 환경에서 감사에 넘쳐 찬송을 했더니 옥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려나가니 간수는 그것을 보고 죄수가 도망할 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는 소동까지 벌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간수를 전도하게 되었고 풀려 나왔습니다. 역경 중에도 감사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고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역경 속에도 감사하는 신앙은 폭넓은 신앙입니다. 폭넓은 감사는 다른 사람이 받는 은혜와 복까지도 감사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이 받는 복에 대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폭넓은 감사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 선생의 감사 생활을 본받아 폭넓은 감사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 힘에 겨울 정도로 넘치는 감사입니다.
마음의 감사는 마음에서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안 보이는 마음의 감사는 보이는 물질의 감사로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인색한 마음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힘에 겨울 정도로 넘치게 바쳐야 합니다. 마지 못하여 조금 떼어버리는 식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행위는 하나님 앞에 죄송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셨는데(롬8:32)" 얼마의 물질을 바치기가 싫어서 망설이는 것은 은혜에 보답하려는 자의 마음가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색하여 억지로 하는 예물은 기뻐 받으시지 않으시고 감사한 마음에서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고 넘치는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힘에 겨울 정도로 바치는 시간, 재능, 물질, 능력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대로 던져 바치시면 하나님께서 넉넉한 것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자
시50:23
서론
본문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및고 살고자 하는 신앙인들에게는 감사란 절대적인 것입니다.
1.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1)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중심에서 조금도 가식이나 부담없이 자원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어떤 종류의 감사든지 자의에서 가식없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2) 입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를 시인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롬10:10에도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겼으니, 히13:15에는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넘치는 감사를 우리는 입으로 표현하여(엡5:19, 골3:16), 하나님께 향한 감사의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며, 이로 인해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는 생활이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3) 물질로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하셨는데, 제사에는 반드시 희생의 제물이 있어야 참된 제사가 되는 것이며, 마6:21에는 "네 보물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마음으로만 하거나 입으로만 해서는 부족한 것임을 깨닫고 물질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2. 누구에게 감사해야 합니까?
(1)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사 우리에게 주셨고, 그 위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대속의 제물로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셨습니다(롬4:25, 5:8-11, 8:32, 요3:16).
(2) 국가에 감사해야 합니다.
국민은 의당히 그 국가의 혜택을 받으며, 법의 보호 아래 안정된 삶을 누리고, 각자 나름대로의 비전(vision)을 가지고 앞날을 설계하여 자유로운 행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도 국가의 보호 아래 얼마든지 신앙의 자유을 누리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디서든지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3) 부모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과 은혜가 아니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며, 부모님의 희생과 보살핌과 정성스러운 손길과 뜨거운 사랑의 수고의 결정체가 바로 지금의 나인 것입니다.
3. 감사의 결과
(1) 마음속에 있는 모든 짜증이 없어집니다.
짜증 속에는 기쁨도 평안도 없으며, 그 어떤 충성도 있을 수 없으며, 화기 애애한 분위 기를 조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짜증은 타인에게까지 불편을 끼치며, 그로 인하여 손해를 주는 사람이 되며,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됨을 자각하고 매사에 감사한 마음가짐을 가져야합니다.
(2) 원망이 물러갑니다.
하나님과 국가와 교회가 부모와 이웃에 대해 원망과 시비가 생기면, 피차에 두터운 담이생기고, 오해의 연속으로 불행을 초래하게 됩니다. 원망하는 마음속에서 감사란 찾아 볼 수 없으며, 미움만 커질 뿐입니다.
(3) 불평과 불만이 없어집니다.
불평과 불만의 씨는 평화롭고 안정된 가정과 국가, 사회를 파괴시키는 악의 요소인 줄 알고 우리 마음속에 감사로 가득 채워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는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마음속에 감사의 샘이 터져서 24시간 내내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많이 감사해야 더 많은 감사가 넘칩니다(고후9:6).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으로, 입으로, 물질로 감사하되 하나님과 국가와 교회와 부모님과 내 사랑하는 이웃에게 끊이지 않고 풍성하게 감사함으로 더욱 감사가 마음과 생활 속에 차고 넘쳐서 짜증이나 원망, 불평과 불만이 물러가고 그들과 절대 담이 막히지 않으며 사랑의 교제가 끊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와 찬송과 예배와 봉사에도 정성과 진실이 깃든 감사가 충만하여 범사가 잘 되며, 기쁨이 샘솟고, 하늘의 상급과 위로가 넘치는 축복된 사람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맥추절의 의의
출23:16-19
서론
맥추절은 신앙생활의 시금석이며 신앙생활의 성숙이며 자급자족의 감사며 우리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받아만 먹다가 요단강을 건너서 농사하고 산에서 들에서 수확한 곡식을 드린 감사의 제사가 맥추절인 것입니다. 이 맥추절은 나그네 생활의 청산이요, 하나님 백성의 확신을 주는 것이며, 하나님 백성의 새 출발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맥추절은 몇 가지의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신앙생활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광야 생활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만을 받아먹고 모세를 의지하고 메추라기와 만나를 받아먹었습니다. 농사짓지 않고 수확하지 않는 생활입니다. 드리지도 아니하고 수고도 하지 않는 미숙한 생활입니다.
세례를 받고 드릴 줄 모르고 봉사할 줄 모르는 어린 신앙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맥추절의 신앙은 성장되고 성숙한 신앙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니 만나가 끊어졌고 메추라기가 내리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농사하고 야생 과일을 거두고 수고하고 땀 흘리고 드릴 줄 아는 신앙으로 성숙하게 된 것입니다. 미숙한 것은 맛이 없습니다. 과일이나 음식이 덜익고 성숙지 못한 것은 날냄새가 납니다.
그러므로 익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덜익고 성숙지 못한 것은 떫고 시고 맵고 쓰고 맛이 없습니다. 쭉정이나 덜 익은 것은 하나님께서 토하여 내치 십니다. 잘 익어야 하나님께 진상이 되고 값이 나갑니다.
2. 맥추절은 자급자족을 의미합니다.
'우리 것'이 어디 있습니까? 내게 있는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께 받지 아니한 것이 어디 있으며, 내가 드리는 가운데 '내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만나'같이 주시는 것 하고 내가 수고하여 얻은 것 하고는 다릅니다. 맥추절은 수고하여 땀흘리는 하나님 말씀의 실천이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창3:17-19). 의뢰심심 버리고 스스로 일어서서 기도하는 것이며 봉사하는 것이며 섬기는 것이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 생활을 청산합시다. 하나님께 달라고 조르는 생활에서 드리는 생활로, 남의 대접을 받고자 하는 데서 대접하는 생활로 전환합시다(마7:12). 말씀을 읽고 전합시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드립시다. 모든 사람에게 줍시다. 신앙생활은 빌려서 쓸 수가 없습니다. 자급 자족해야 합니다.
3. 말씀을 지키는지 시험하는 시금석입니다.
광야에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듣기만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행하라고 주신 것입니다(롬2:13). 그러므로 맥추절을 지키라 하신 말씀은 율법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순종하는지 불순종하는지 하느님이 시험하시는 시금석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창22:1). "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니하는지 시험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면 하나님께서 시험하십니다. 어린 신앙의 사람에게는 시험이 없지만 신앙이 크면 클수록 시험이 따르고 시련과 초달과 모험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이기면 더 큰 믿음이 오며 인격이 성장합니다.
4. 맥추절은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위한 권고입니다.
하나님은 드리는 자의 하나님이며 드리는 자에게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기 전에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잠8:17-18)"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는 하나님이 경멸히 여기시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는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신다(삼상2:30)고 하신 말씀과 야곱의 별미를 받고 축복한 사실을 볼 수가 있습니다(창27:27). 제물이 있는 곳에 응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드렸더니 그 곳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 갚으심을 받겠느뇨(롬11:35)" 받기만 하던 민족에게 드리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어서 드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요(학2:8), 여름도 겨울도 이루시고 낮도 주의 것이며 밤도 주의 것입니다(시74:16). 무수한 재물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사1:11)? 그러므로 드리라 하심은 축복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결론
맥추절은 신앙생활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며, 자급자족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하는 시금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위한 권고임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출23:16, 살전5:18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연중 3대 절기를 지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과 장막절, 그리고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무엇입니까? 칠칠절, 혹은 초실절이라고도 부르는 절기로써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둘 때 곧 모맥을 거두는 시기에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께 새 소재를 올리며 노동도 하지 아니하는 거룩한 성일로 정하게 하셨으며 수송아지와 숫양이 제물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리는 절기(민28:26-31)입니다.
단순한 행사나 형식으로 맥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참 감사하는 신령한 감사의 예배를 드림으로써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으로(살전5:18)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도록 힘쓰는 것이 오늘의 맥추 감사절을 지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의 밭에 떨어지면 '믿음'이라고 하는 나무가 자라게 되며, 믿음이 라고 하는 나무에서는 평안, 기쁨, 소망, 인내, 사랑, 절제, 충성과 같은 많은 열매들이 열리게 되는데 감사라고 하는 열매도 곧 믿음의 나무에 열리는 열매인 것입니다.
인간이 소유욕을 채우는 충족으로 만족하려 한다면 우물가의 여인처럼 목마른 갈증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참 감사는 어떠한 것을 얻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생활에서 오는 열매입니다.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인간을 향하여 선을 도모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며 이러한 사람은 항상 자신이 하나님의 선에 참여하는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드리는 감사는 자기 일이 잘 되어감을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고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감을 보고드리는 감사입니다.
2. 감사하는 마음은 축복을 아는 축복받은 마음입니다.
축복받지 않고는 감사를 알지 못하고 감사를 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은 은혜 중에 은혜를 소유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신앙인의 감사는 모든 상황에 만족해하는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해관계의 판단을 바로 내릴 수 없어서 자신의 판단에는 이롭게 잘되는 일 같아도 나중에 해롭게 되는 일이 있으며, 당장에는 감사할 수 없는 어려운 일 같으나 다음날 자신을 유익하게 해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8:28)"고 하셨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를 믿으면 항상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역경과 불행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의 손이 닿기만 하면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선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모든 상황은 역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감사는 상황에 의한 타산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신앙을 통한 감사입니다.
감사와 불만은 현재의 상황을 판단하여 조급하게 할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결과를 보고 말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것 속에서 기뻐하고(항상 기뻐하라), 모든 것을 위하여 기도하며(쉬지말고 기도하라), 모든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범사에 감사하라). 이와 같이 삶이야말로 기독교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비결입니다.
3. 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신 은사의 가치를 알고 활용하며 선용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은사를 풍성하게 허락하십니다. 역으로,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땅에 묻어 두는 사람은 빼앗아 가지고 충성을 더 잘하는 청지기에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29).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크신 은사를 주셨으니 우리들이 맡은 바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생활을 중단할 수 없으며 외면해서도 안되고 부인하거나 포기하고 생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감사의 길은 계속 달려야 할 길이며 졸업할 수도 없는 과목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며 찬송하는 생활은 더 좋은 것이며, 생활로 표현하고 고백하는 봉헌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감사야말로 마음과 입과 생활로 일치하게 연합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을 받게 하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결론
범사에 감사하라 하심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단순한 바울의 권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1) 믿음의 열매입니다.
(2) 축복을 아는 마음입니다.
(3)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절기의 약속
출23:14-26
서론
맥추절은 출애굽기 23장 16-17절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년 지켜야 할 세 가지 절기를 말씀하신 것에서 시작됩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첫 열매를 거둔 것에 대해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맥추절은 매년 7월 15일부터 한 주간 지켜지는 절기입니다.
1. 왜 감사해야 합니까?
감사는 진실한 성도의 맥박과 같은 것입니다. 감사는 인생의 본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또 보호하시며, 양같이 약한 무리에게 목자 되시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밭에 씨뿌리는 농부로서 그 본분은 밭에 씨뿌리는 일이요, 그것은 추수하고 그에 대해 감사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을 지키고 감사하는 일은 성도의 본문입니다.
칼빈은 "모든 선한 것, 아름다운 것에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된 성도의 현저한 특징은 감사입니다.
시편은 "모든 육체에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36:25)"라고 하였습니다.
2.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1)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라(신16:1617)"고 했습니다.
16절 하반절에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의 실정에 따라 소와 양, 염소, 비둘기, 밀가루 등을 드렸습니다.
(2) "처음 열매를 드리라(신16:19)"고 했습니다.
히11:4에서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먹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드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을 우리가 쓰기이전에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믿음의 감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미국의 청교도들이 구라파에서 건너와 처음 농사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그 다음 해에는 농사로 교육을 위한 학교를, 그 이듬해에 비로소 자기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축복의 민족이 되게 된 원인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열매, 처음 지식, 처음 것을 원하심은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전에 드릴지니(신16:19)"라고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게 복 주신 대로 자원한 예물을 드려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너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이는 사람을 위해서 드릴 것이 아니라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감사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세계 적인 부흥사 스펄전은 감사의 신앙으로 기적을 만든 대표적인 위인입니다. 그는 깜깜한 밤하늘에 별빛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면 달빛을 주실 것이요, 달빛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면 햇빛을 주실 것이요, 햇빛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면 햇빛이 필요없는 천국을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실로 불평으로 불평을 낳고 짜증은 짜증을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는 축복을 채우는 그릇이고 또 기다리는 자에게 감사는 기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결 론
감사하는 자가 받을 축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다음과 같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2절에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서 대적이 될지라"고 하였고, 25절에서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려고 정해진 이 절기를 우리는 잘 준비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 마음에 흡족하게 잘 지켜서 하나님께서 약속한 모든 축복을 다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출23:14-17
서론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 등 삼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맥추절은 첫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로써 하나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수확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어떻게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일년에 3차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절기를 지키게 됩니다.
첫째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약 4백여 년 종살이 하다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를 통해 바로 왕에게 해방받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을 찾아가기 위해 출애굽할 때 누룩없는 떡을 만들어 먹고 양을 잡아먹되 피는 문설주에 발라두어 애굽에 장자 죽이는 재앙을 내릴 때 천사들이 양의 피가 발린 이스라엘 백성이 우거하는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장자 죽이는 재앙을 내리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조상들이 애굽에서 해방받은 날을 기억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첫번째 절기입니다.
둘째는 맥추절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다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믿음으로 건너고 여리고성 아이성을 함락하여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들이 토지를 분배받아 씨를 뿌려 첫 곡식(보리)을 거두게 되어 그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첫 곡식을 하나님 전에 드리며
감사하였는데 이 절기를 맥추절이라 합니다.
세번째는 수장절을 지키게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년 농사의 모든 곡식을 추수하여 창고에 저장하고 하나님 의 은총을 감사하면서 하나님 전에 예물을 드리고 감사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장절입니다.
우리가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2. 감사절을 지키는 방법
(1) 빈 손으로 와서는 안됩니다.
각자가 예물을 가지고 하나님 전에 나와 예물을 드리면서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연보를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많이 심고, 각각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원도, 은혜도, 감사도, 각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정한 대로 드려야 합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인색하게 드리면 하나님의 축복도 인색하게 내립니다. 세상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힘에 넘치도록 하나님 제일주의로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후하고 넘칠 것입니다(눅6:38, 약1:5).
(2)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체면에 혹 강요를 당해서 연보나 감사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세인의 연보보다 과부의 엽전 두 푼을 칠 찬하셨습니다.
(3)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지못해 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할 때 우리 하나님은 기뻐 그 예물을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셨습니다(마6:19). 그 몸을 헌신적으로 바쳐 하나님의 영광과 주의 사업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 안에 보면 천사도 흠모할 주의 직분을 받아 불충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만 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몸과 마음과 물질 모두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를 기뻐하십니다(고전6:19-20).
결론
은도 금도 하나님의 것입니다(학2:8). 우리는 청지기임을 알고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충성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경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살전5:18)" 긍정적 신앙으로 생활할 때는 소망 중에 감사하게 됩니다. 부정적 신앙생활에서는 모든 것이 원망이요, 불평이요, 짜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는 고사하고 원망들을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고전 10:10).
우리는 원망과 불평대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 우리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이번 맥추 감사절에 크신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 열매
출23:14-17
서론
맥추절은 옛 선민들의 삼대 절기(봄-유월절, 여름-맥추절, 가을-초막절) 중의 하나입니다. 맥추절의 중심 사상은 첫 수확을 감사하는 절기로써 물질의 은혜를 특별히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소유의 농사를 짓지 못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노예로서 애굽인을 위하여 노동을 하였고(출1:6-14), 광야 40년 동안은 여행 중이였기 때문에, 또 사막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습니다(출16:35).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제1년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습니다(수5:11-12).
그러므로 맥추절의 율례는 광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지만 실제로 지키시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였습니다. 그들이 꿈에도 그리던 땅,하나님께서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자기들의 손으로 지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게 된 것입니다.
첫 열매란 무슨 뜻입니까?
1. 추수곡 전체를 봉헌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첫 수확이 시작되는 때인 오순절에는 처음 익은 열매 중 첫 것을 하나님께 가져와야 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그 추수곡 전체를 봉헌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추수곡 전체를 다 하나님께 봉헌하면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크신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추수곡 전체를 성화시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새 곡식이 하나님께 바쳐지기 전에 그들이 먼저 곡식을 먹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 잔치를 벌였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먼저 음식을 드리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 회중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이 한 다발의 곡식은 그들의 수확물을 거룩하게 만들고 그 나머지의 모든 곡물들의 사용을 아름답게 해줍니다.
우리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 제일주의로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동행하는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실상은 그렇지 못하고 하나님은 뒷전에 계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 생활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고 성화시키야 하겠습니다.
3. 우리 주 예수의 한 모형입니다.
첫 소산의 곡식단은 우리 주 예수의 한 모형입니다.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입니다(고전15:20-23). 그래서 여호와의 싹(사4:2)이 하나님께 바쳐졌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 자신의 희생 덕분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 주께서 첫 열매를 드리는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곧, 그것은 그 자신이 이 그림자(제자)의 본체이심을 보여주신 셈입니다.
결론
선민들은 그들이 거두어들인 수확의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의 수확을 하나님께 의지했습니다. 기도와 찬미로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선민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두 손이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감사하는 이들에게 진정 축복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절기
신16:9-17
서론
감사 위에 감사,은혜 위에 은혜,충만 위에 충만한 생활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입니다. 이 모든 축복은 감사하는 자에게 돌아오는 축복입니다. 맥추절에 감사하는 가정이 추수도 감사로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너희는 맥추절을 지키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지키라고 하였습니까?
1. 하나님 앞에 나와 지키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6장 16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8편 26절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를 사도행전에서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모이는 곳에 은혜가 있고, 모이는 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신앙이 자라나며, 모이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의 전에 모여 절기를 지키라는 것은 큰 의의를 가집니다. 모이면 힘이 있습니다. 공동의식이 강해지고 한 형제로써 긍지와 자부심과 일치감을 갖게 됩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마음과 뜻과 정성으로 하나님 전에 나와서 절기에 참예함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를 매우 중요시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전통을 이어받고, 여기에서 신앙 사상이 굳어지며, 여기에서 신앙의 교육과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절기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축복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16: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와 함께 택하신 곳에서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2. 즐거움으로 지키라고 했습니다.
신16:11 하반절에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억지로 하지 말고 중심에 감사하는 마음과 즐거운 마음으로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감사의 시 가운데 시100:1은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니 라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갈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우리가 즐거워하며 감사할 것입니까?
(1)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감사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구원의 반열에 세워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2) 밀과 보리를 추수하여 감사할 것입니다.
신12:7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현재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감사를 찾아 감사함이 귀합니다. 자유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일하는 터전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3. 예물을 드리면서 지켜야 합니다.
신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1) 공수로 나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 억지로 하지 말고 축복을 받았으니, 힘대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3)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의 뜻으로 드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한 바 조심할 점은 부득이나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 말며 명예심이나 체면으로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헌금을 할 때에,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중심에 기쁨을 가지고 드릴 것이며 순종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바가 되어야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결론
맥추절을 지킬 수 있는 자유의 세계를 주심을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들에게는 한없는 축복을 받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즐거움과 기쁨으로 지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하겠습니다.
역경 중의 감사
행16:19-34
서론
맥추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은 감사할 일과 고난받은 일들입니다. 불황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는 형통할 매는 물론 감사해야 하겠지만 역경 중에서도 더욱 감사해야 하는 고차원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고 복음 전하는 일만을 위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빌립보 성에서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 준 죄목으로 옥중에 갇혀 많은 매를 맞고 죽음에 직면한 상태에서 기도와 찬송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1. 의로운 성도들에게도 불황은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다 어두운 밤을 거쳤습니다. 그러기에 아침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났고 말할 수 없는 어려운 밤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아들을 잡아 죽이라는 밤까지 거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여호와 이레의 아침을 주었습니다. 이삭, 야곱, 모세, 이사야, 엘리야, 그 밖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특히 욥은 동방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하였지만 그에게도 밤은 있었습니다. 시91:5-6에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이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밤은 위태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며, 근심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병들고 괴로운 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불황과 답답함의 밤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부조화와 위협, 정치적으로 혼란과 불안, 정신적인 말못할 고민이 있습니다. 또 뜻하지 아니한 시험의 밤도 있습니다.
선한 의지와 선한 목표가 세워졌을 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이 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2. 역경 중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역경 중에 제 1단계는 기도라는 말씀입니다. 기도 중에도 합심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 옥중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성도는 두 사람이었는데 이 두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18:19에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두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도할 때에 환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시험을 면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감사할 수 있는 여건들을 주십니다. 어두움에도 빛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움직이시고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시게 하는 것입니다.
3. 역경 중에서도 찬송했습니다.
역경 중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성도의 특성입니다. 본문 "하나님을 찬미하매"라는 말씀이 다른 성경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하여 찬송을 불렀다는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생각하니 하나님 앞에 감사가 나왔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고, 하늘문이 열림을 보았으며, 하늘에 영광을 보았으며,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과거에 죄인 중에 괴수가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예수를 핍박하던 자가 예수님 고난에 동참하게 되고 짧은 고난이 영원한 영광의 상급이 된다고 하는 것을 깨닫고 보니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롬8:18). 우리 모두 역경 중에도 감사합시다. 그리고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 은혜가 얼마만 한가를 생각해 봅시다. 대상22:14에 보면 "내가 환란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많은 것을 예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서 환란 중에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렇게 역경 중에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에 이적이 나타났습니다.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고 옥사장의 가정이 구원을 얻었습니다. 어려운 중에서도 감사하고 불황 중에서도, 시험 중에서도 감사해서 천지가 진동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며,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리는 형통의 복이 임하며, 매었던 일들이 풀어지므로 선교의 열매가 많이 맺힐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멸 망
성 경 활 용
1. 멸망에 대한 일반적 성격
(1) 졸지에 임함
(시35:8) 멸망으로 졸지에 저에게 임하게 하시며
(2) 속히 임함
(잠24:22)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
(3) 멸망이 임박해 있다.
(벧후3:1)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 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 들이라
(4) 끝까지 멸망함
(단7:26)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5) 영원히 멸망함
(살후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6) 거품같이 멸망함
(호10:7)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7) 멸망은 심판이다.
(사34:5)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멸망으로 정한 백성 위에 내려서 그를 심판할 것이라
2. 멸망의 대상은 무엇인가?
(1)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이다.
(고전1:19)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2) 인간의 육체이다.
(신32:24) 그들의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3) 영혼이다.
(마10:28)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4) 성들과 그곳에 거하는 모든 백성이다.
(창19: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5) 소돔과 고모라
(렘49:18) 소돔과 고모라는 그 이웃 성읍들의 멸망된 것같이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으며
(6) 아말렉과 모압
(민24:20)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렘48: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스려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7) 범죄하는 자이다.
(대하30:7)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한고로 여호와께서 멸망에 붙이신 것을 너희가 목도하는 바니라
(8) 악인이다.
(욥21:30)악인은 남기워서 멸망의 날을 기다리움이 되고
(시37:20)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
(9) 정박하는 자
(시71:13) 내 영혼은 대적하는 자로 수치와 멸망을 당케 하시며
(1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11) 여호와를 버린 자
(사1:28)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12)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다.
(계11:18)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로소이다 하더라
(13) 미련한 자의 입
(잠18:7) 미련한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14) 악인의 소욕
(시112: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하리니 악인의 소욕은 멸망하리로다
(15) 마음이 교만한 자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16) 헛된 신
(렘10:15)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단11:31) 때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을 세울 것이며
(17) 피조물
(히1: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18) 사망
(고전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19) 거짓 선지자들
(렘27:15)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을 멸망시키기에 이르리라
(20) 멸망의 자식
(요17:12)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21)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
(행3:23)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22) 원망하는 자
(고전10: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하였나니
(23) 믿지 않는 자
(유1:5)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24)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다는 자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25) 깨닫지 못하는 자
(마24: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26) 가지는 자
(마26:5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27) 물질을 최고로 생각하는 자
(행8:20)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8) 주를 시험하는 자
(고전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하였나니
(29)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0) 성경을 억지로 푸는 자
(벧후3:16)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3. 어떻게 멸망시키는가?
(1)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하시지 않는다.
(창6:3)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2) 칼과 놀램으로 멸망한다.
(신32:25) 밖으로는 칼에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3) 분노의 불로
(신32:22) 네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4) 뱀에게 멸망한다.
(고전10:9)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4. 멸망에서 건짐을 받으려면?
(1) 여호와께 은혜를 입어야 한다.
(창6: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2)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3) 회개해야 한다.
(눅13:3)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여호와께서 구원하셔야 한다.
(시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주 안에 있으므로
(요17: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6) 하나님이 진노를 그쳐야 한다.
(욘3:9)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5. 하나님께서 멸망을 참으시는 이유
(1) 원수가 오해하여 자기들 수단으로 승리한 줄 알까봐
(신32:27) 원수가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다
(2) 하나라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므로
(벧후3:9)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이므로
(마18:14)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4) 영생을 주셨기에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6. 멸망의 비유적 사용
(1) 멸망하는 짐승같은 자
(시49:12) 사람들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요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2) 멸망의 종
(벧후2: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3) 멸망의 가증한 것
(막13: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4) 멸망의 아들
(살후2:3)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5) 멸망산(감람산)
(왕하23:13) 예루살렘 앞 멸망산 우편에 세운 산당을 더럽게 하였으니
(6) 멸망의 비
(사14:23) 내가 또 그것으로 고슴도치의 굴혈과 물웅덩이가 되게 하고 또 멸망의 비로 소제하리라
(7) 멸망의 웅덩이
(욥26:6) 하나님 안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7. 멸망에 대한 교훈
(1) 멸망한 자들의 자취에서 떠나라.
(신12:30)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2)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지 말라.
(욥31:29) 내가 언제 나의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였으며
(3) 미련한 자의 안일은 멸망을 가져온다.
(잠1: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4) 악인의 멸망에 두려워하지 말라.
(잠3:25) 너는 창졸간의 두려움이나 악인의 멸망이 임할 때나 두려워하지 말라
(5)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이 된다.
(잠언18:7)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6) 여호와의 도가 행악자에게는 멸망이다.
(잠10:29) 여호와의 도가 정 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7)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다.
(잠18: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8) 멸망의 문은 크고 넓다.
(마7:13)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9) 도적은 멸망시키려고 온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10) 뇌물을 억지로 내게 하면 나라가 멸망된다.
(잠29:4) 뇌물을 억지로 내 게 하는 자 나라를 멸망시키느니라
(11) 가난한 자의 궁정은 패망이다.
(잠10:1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
관련원어풀이
1. db'a; 아-바드
(1) 망하다, 파괴되다.
(신4:26, 시37:20)
(2) 곤고하다, 불행하다.
(욥29:13, 잠31:6)
(3) 죽이다, 학살하다.
(왕하11:1)
2. [l'B; 바-라
(1) 삼켜버리다, 탐식하다.
(창41:7, 출7:12)
(2) 파괴하다, 파멸을 포기하다.
(욥2:3, 사49:19)
(3) 삼켜버림을 당하다, 멸망하다.
(삼하17:16, 사9:15)
3. ak;D: 다-카
(1) 박살내다, 무숴버리다, 산산조각내다.
(욥6:9, 시89:11)
(2) 짓밟다.
(시94:5, 잠22:22)
(3) 부숴지다, 박살나다.
(욥5:4)
4. hm;D; 다-마
(1) 끝장을 내다, 파괴시키다, 황폐시키다.
(렘6:2,호4:5)
(2) 멸망하다, 잘리우다.
(사15:1, 습1:11)
5. sr'h; 하다스
(1) 넘어뜨리다. 파괴하다.
(왕상18:30, 겔13:14)
(2) 전복시키다, 멸망하다.
(출15:7)
(3) 파괴당하다.
(시11:3)
6. !m'T; 하-맘
완전히 파괴하다, 전멸시키다.
(신2:15, 에9:24)
7. !r'j; 하-람
원래의 뜻은 "닫아버리다"이다.
(1) 바치다, 헌신하다.
(레27:28)
(2) 근절시키다, 완전히 파괴하다.
(신2:34, 수8:26)
8. lb'j; 하-발
(1) 파괴하다, 고통을 받다.
(잠13:13)
(2) 깨어지다, 손해를 입다.
(욥17:1, 사10:27)
9. hl;K; 카-라
(1) 황폐되다, 파괴되다, 망하다.
(렘16:4, 시39:11)
(2) 사라지다, 소멸되다.
(욥7:9, 시37:20)
10. tr'K; 카-라트
(1) 자르다.
(출4:25)
(2) 죽이다, 파괴시키다.
(신20:20, 램11:19)
(3) 잘라지다, 베임을 당하다.
(욥14:7)
(4) 망하다, 떨어지다.
(창41:36, 왕상8:25)
11. dyKi 키-드
파멸, 파괴, 재난.
(욥27:20)
12. hj;m; 마-하
(1) 파괴하다.
(창6:7, 출17:14)
(2) 지워지다, 제거되다.
(신25:6, 잠6:33)
13. tWm 무-트
(1) 죽다.
(출21:12)
(2) 망하다, 파괴되다.
(호13:1, 암2:2)
14. rb'v; 솨-바르
(1) 깨뜨리다, 박살내다
(창19:9)
(2) 깨뜨리다, 파괴시키다.
(단11:26)
(3) 멸망되다, 파괴를 당하다.
(대하14:12, 사8:15)
15. rb,v, 쉐-베르
(1) 깨뜨림, 파괴, 터진 곳.
(레22:19, 사30:13)
(2) 파괴, 파멸.
(잠16:18)
(3) 두려움, 공포.
(욥41:17)
16. dd'v; 솨-다드
(1) 파괴된, 학살된.
(삿5:27)
(2) 황폐시키다.
(잠19:26)
(3) 파멸되다.
(사33:1, 호10:14)
17. dm'v; 솨-마드
(1) 파괴시키다.
(레26:30)
(2) 파괴.
(사14:23)
18. dyae 에-드
원래의 뜻은 "짐"이다.
(1) 극심한 재난.
(욥21:30, 시18:19)
(2) 파고, 파멸.
(욥18:12, 30:12)
19. tm/x; 차-마트
(1) 잘라 없애다, 파괴하다.
("애3:53)
(2) 파괴하다, 박멸하다.
(시54:7)
20. ajnalivskw 아날리스코
소비하다, 소멸하다, 파괴하다.
(눅9:54, 갈5:15)
21. ajpovllumi 아폴루미
(1) 파멸시키다, 파괴하다.
(막1:24)
(2) 잃다, 상실하다.
(마10:39)
(3) 파괴하다, 멸망하다, 죽다.
(마8:25, 요11:50)
22. ajpwvleia 아포레이아
(1) 소비, 멸망, 낭비, 사치.
(마26:8, 막14:4)
(2) 멸망, 파괴된 상태.
(행25:16)
(3) 파멸, 비참, 영원한 멸망.
(마7:13,행8:20)
23. fqeivrw 포데이로-
(1) 못쓰게 하다, 파멸하다.
(고전3:17, 고후7:2)
(2) 타락하다, 썰다.
(고전15:33)
24. o[leqro" 올레드로스
파괴적, 멸망적, 치명적.
(살후1:9)
25. ejxoloqreuvw 엑쏘레드류오-
온전히 파괴하다, 멸망시키다.
(행3:23)
26. ejrhvmwsi" 에레모시스
파멸, 유린, 황폐.
(마24:15, 막13:14)
27. katastrofhv 카타스트로페-
전복, 파괴, 파멸.
(벧후2:6)
28. fqorav 프도라
(1) 타락, 파멸.
(롬8:21)
(2) 죽임, 학살.
(벧후2:12)
(3) 영적인 파멸.
(갈6:8, 골2:22)
29. luvw 루오-
깨뜨리다, 파괴하다, 짓부스다.
(요2:19)
30. sbevnnumi 스벤누미
꺼지다, 없어지다.
(마25:8)
설교예화자료
진정한 살인자
우리는 이미 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델로」를 통해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또 다른 미국판 오델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밤, 빌 도어스는 그의 옛 친구인 딕크 콜덴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습니다. 1924년 3월 6일 오후 5시경, 빌 도어스는 자기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딕크 콜덴의 사무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친구는 사무실에 들어서는 빌 도어스의 옆구리에 권총을 들이대며 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또 다른 낯선 남자 한 사람은 얼른 빌 도어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빌, 나는 오늘 너를 위해서 이렇게 살인 청부업자를 불러 왔네." 딕크가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강제로 빌을 차에 태운 뒤 불빛이 켜진 도로를 달려 약 15분 후 어느 외딴 집으로 왔습니다. 빌을 차에서 다시 끌어낸 뒤, 콜덴이 앞서고 낯선 살인 청부업자가 뒤에 서서 빌을 끌고 그 집 2층 어느 구석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콜덴이 조용히 불을 켰고, 빌 도어스는 영문을 모른 채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룻바닥에는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고 네 귀퉁이에는 개를 끌고 다닐 때 쓰는 쇠사슬과 자물쇠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자, 여기 누워! 팔과 다리를 벌려!"
빌 도어스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매트리스에 등을 대고 누웠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빌의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은 후 자물쇠를 채웠습니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콜덴과 낯선 사람이 방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빌은 아래층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낯선이는 다른 마을로부터 고용해 온 사설 탐정이었고, 콜덴은 그에게 돈을 지불한 후 그를 보냈습니다. 온 몸이 묶인 채, 빌은 방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책상 위에는 타올과 거즈, 고무 장갑, 수술복, 마취약병, 외과 수술용으로 쓰이는 예리한 긴 칼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수술에 필요한 일체의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는 셈이었습니다. 딕크 콜덴이 다시 2층으로 올라왔습니다.
"빌, 너는 내 아내의 사랑을 훔쳐갔어. 그래서 나는 지금 너의 심장을 도려내려고 하는 걸세!"
콜덴의 부인과 빌 도어스 사이에는 단순한 우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해와 의심이 결국은 남편을 질투로 미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반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딕크 골덴은 매트리스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깔대기를 들었고 다른 손에는 병마개가 열려진 마취약병이 들려 있었습니다. 딕크 콜덴은 마취약을 솜에 적신 후, 누워 있는 빌 도어스의 코에 갖다 댔습니다.
빌 도어스는 심호흡을 한 채로 그냥 숨을 들여마신 채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잠에 빠진 것처럼 꾸며보는 거다!" 속으로 생각하면서 숨이 막혀 죽을 지경까지 숨을 멈춘 채 자기와 싸우며 있었습니다. 그는 가만히 누워 있었고, 외양상으로는 그는 마취되어 무의식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콜덴은 자물쇠를 열었습니다. 빌이 마취되어 있는 줄로만 알고, 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옷을 오른편으로 끌어내릴 즈음, 빌은 안주머니에 무엇인가가 들어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빌은 그것이 자기가 가끔 큰 돈을 운반할 때 갖고 다니던 소형 권총임을 생각해냈습니다. 순간적으로 빌은 그 소형 권총을 끄집어내서 딕크 콜덴의 가슴을 겨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빌은 미쳐 버린 친구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딕크! 손을 머리 위로 들어!"
그러나 딕크는 손을 드는 대신 자기의 권총을 움켜 쥐었습니다. 그 순간 두 방의 총소리가 동시에 공간을 울렸습니다. 딕크의 총알이 빌의 귀를 스쳤습니다. 미치광이 딕크는 가슴에 총알을 맞고 마룻바닥에 나딩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진정한 살인자입니까? 딕크입니까? 빌입니까? 아닙니다. 진정한 살인자는 질투입니다. 이 살인자는 오늘날에도 우리 가운데서 사란 우정, 결혼 그리고 생명까지도 죽이고 있습니다. 흔히는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고리고 흔히는 오해와 무지 그리고 의심 때문에‥‥‥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
1787년에 완성된 「로마 제국의 몰락」에서 저자인 에드워드 기본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1) 이혼의 급속한 증가, 즉 인간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의 신성과 존엄에 대한 침식.
(2) 점점 높아가는 세금과 대중을 위한 공짜 빵과 서커스를 위해 공금을 사용한 것.
(3) 쾌락을 지나치 게 추구한 것. 스포츠는 매년 더욱 흥분적 이고 야만적으로 되어 갔음.
(4) 거창한 군비 확장을 했으나 실제로 적은 내부에 있는 즉 국민들의 퇴폐.
(5) 종교의 쇠퇴로 신앙은 단순한 형식으로 희미해졌고 따라서 종교는 실생활과 멀어지게 되고 국민들을 이끌지 못할 정도로 무력해짐.
로마 멸망에 대한 이러한 다섯 가지 원인들이 현재 우리의 상황에 대해서 무언가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집이 보이는 곳에서 길을 잃다
몇달 전 심한 눈보라가 콜로라도에 몰아쳤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그의 집 근처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당황하여 그의 오두막 집 근처를 헤매이다 그의 젊은 아내가 남편이 집에 무사히 올 수 있도록 '창가에 매단 등불'까지 가까이 와서 죽어간 것입니다.
밤새도록 그의 아내는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남편의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며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새벽 동이 트기 전까지도 그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은 차가운 눈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더욱 슬픈 것은 그가 거의 집에 다 이르러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 복음의 빛으로 가득 찬 집이 보이는 곳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록·시·묘사
파멸로의 길은 항상 잘 수선되어 있다. 여행자들이 그 수선 비용을 치른다.
(W. G. 베넘/ 격언집)
병이 강한 즉 멸하고, 나무가 강한 즉 부러진다.
(노자)
졸졸 흐를 때 막지 않으면 장차 강하를 이루고, 반짝반짝할 때 구하지 않으면 활활 타오를 때 어찌하랴. 떡잎 때 따내지 않으면 장차는 도끼를 써야 한다.
(강태공)
영원한 전쟁에서 인간은 위대하게 되었고, 영원한 평화에서 인간은 멸망하게 되었다.
(A. 히틀러)
몰락으로의 진행은 조용한 작업이다.
(W. G. 베넘/ 격언집)
국가의 멸망은 많은 경우, 도덕의 퇴폐와 종교의 경모(輕海)로부터 이루어진다.
(J. 수위프트)
가지가 굽어지면, 그 나무는 휜다.
(A.포우프/ 도덕론)
애로부터 지금까지 어찌 멸망하지 않은 나라와 파괴되지 않은 무덤이 있겠느냐.
(미상)
오늘날, 이 지구상의 모든 주민은 이 지구가 이미 살 수 없이 될지도 모를 날의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J. F. 케네디)
벼락과 같은 신의 무기 앞에서 거만한 궁전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나무들은 쓰러져 멸망하고 만다.
(헤로도토스)
일은 성취시키기는 어려워도 망치기는 쉽고, 명성은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쉽다. 천리 길이의 둑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지고, 백길 뻗은 큰 집도 굴뚝 틈바구니에서 새어나온 연기로 불타게 된다.
(회남자)
대홍수도 하찮은 샘에서 일어난다.
(W. 셰익스피어/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작은 불똥에서 큰 불이 날 수 있다.
(단테/ 신곡)
적은 모래의 변위도 때가 되면 깊은 강줄기를 바꿀 수 있다.
(M. 곤잘레스 프라다/ 영원의 시간)
사악한 것이 이 땅을 지배하면/풀잎 하나 하나에까지 멸망이 미친다
(N. 폰파이분/ 크라삼 빙)
세계는 불로 끝난다는 사람도 있고/ 얼음으로 끝난다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맛본 욕망을 두고 말한다면/ 불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나는 같은 생각이다. / 그러나 세계가 두 번 망한다면/ 파괴를 위해서는 얼음도 또한 위대하며/족하리 라고 말할 말큼/ 증오에 대해서도 나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R. L. 프로스트/ 불과 얼음)
사악이 대지를 지배하면/ 멸망은 풀잎 하나하나에까지 미친다/ 서로 견디고 도운 자들이/ 지금은 증오로 반목한다// 파렴치하고 횡포하게 고압적으로/ 지배를 모르고 으시대는/ 이 사악한 힘이 지금/ 모든 것을 쓰러뜨리고 짓밟는다.
(나오와라드 폼파이붐/ 크라삼 빙)
설 교 노 트
소돔성을 돌아본 자의 어리석음
눅17:32
서론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진노에 처하게 된 것은 소돔성의 당시 상황과 유사했습니다. 천사가 롯에게 나타나 소돔성을 피하여 나오도록 명할 때에 전했듯이(창19:32), 그리스도께서도 예루살렘을 뒤돌아보지 말고 서둘러서 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는 롯의 아내를 예로 들면서 강권하시고 있습니다. 즉, 예루살렘을 벗어나는 것은 마치 죄의 도성을 피하여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1. 소돔성의 현실
소돔 사람들은 모두가 저주스러운 정욕의 권세 아래 있는 타락한 무리들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노하게 하는 수치스러운 죄악으로 물들어져 있고 소돔성에 거한 사람들은 추한 정욕의 죄악들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소돔은 더럽혀진 영혼들과 악령들로 득실거리는 도시로서 그런 자들의 회합 장소였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서로 부끄러운 정욕을 즐기며 죄에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바벨론이 악마의 소굴이 되어 모든 악령에 붙들린 저주스런 장소가 된 것처럼 소돔성도 그러했습니다 .
2. 소돔성의 멸망
(1) 왜 멸망이 필연적이었나?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속성은 소돔의 만연된 더러운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소돔성을 멸망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소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범죄한 사람들을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변경되거나 취소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들을 멸하실 것이라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행을 전제로 선포되기 때문에 소돔성이 멸망된 것입니다(창19:12-14).
(2) 멸망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① 대단히 무섭습니다.
소돔은 불과 유황이 폭풍처럼 퍼부어지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선포된 멸망은 대단히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소돔을 피하여 나올 때 뒤를 돌아봐서는 안됩니다.
② 전체가 겪는 심판입니다.
소돔에 선포된 멸망은 전체적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멸망을 피하여 숨은 행운을 누릴수가 없습니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함께 파멸된 것입니다.
③ 영원한 멸망입니다.
소돔에 선포된 멸망은 영원합니다. 성경은 소돔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유1:7).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불은 상직적으로 영원한 불이라고 불려집니다. 그 불은 죄인들이 받을 영원한 형벌의 상징인 것입니다.
소돔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확실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멸망은 속히 임할 것입니다(벧전2:3). 하나님의 형벌은 매순간마다 다가와 순간적으로 무섭게 몰아칠 것입니다.
3. 멸망 후 소돔성의 허망성
소돔의 안락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멸망된 소돔성은 뒤돌아봐도 폐허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멸망 전에 누렸던 안락은 심판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소돔이 아무리 향락과 즐거움으로 충만한들 그 성이 불길에 휩싸이면 그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들이 죄의 향락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멸하시기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해 미련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4. 소돔을 통해서 주시는 계시
(1) 계시의 경고
하나님의 사자는 우리에게 소돔성을 서둘러 피하라고 하시고 피할 때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사자를 통하여 경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9:16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롯과 그의 아내의 생명을 구원할 큰 뜻에서천사들을 보내어 경고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교회의 천사로서 교역자를 세우시고우리를 가르치십니다.
(3) 계시의 중요성
우리가 소돔성의 경고에 상당한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도 죄된 생활에 머물러 있고 미련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용서 받을 수 없는 불쌍한 죄인들이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 모두는 소돔성에서 벗어나도록 되어있습니다. 소돔성은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땅에서 구원을 받는 길은 그리스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멸망의 순간을 위해 예비된 악인들
겔15:2
서론
본문을 살펴보면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종종 포도나무에 비유됩니다. 그 이유는 포도나무의 연약함과 의존성을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가련하고 약한 피조물이며 쉽게 죄에 빠지는 존재임을 잘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1. 인간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경우는 두 가지 뿐입니다.
그 두 가지 경우는 영향을 끼치든가 아니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적극적이거나 아니면 소극적이 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한 인간은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입니다.
2. 인간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길
(1)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쓰임을 받습니다. 그 외의 다른 목적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2)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중요성
인간은 적극적 자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일 외에 다른목적에 쓰여져서는 안되며 애써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기울이지 않는 한 인간의 삶은 허무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행치 못하고 단지 인간의 부차적인 목적만을 위하여 노력한다면 우리는 아무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부차적인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과 연계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허망하고 후회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3.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는 멸망의 때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열매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계속 살게 하지 않으시며 더 이상 은총을 베푸시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은 땅의 소산을 먹도록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2)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천국은 악인의 무리에게는 적합한 장소가 아닙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화롭게 하는 곳이며 그곳에서 맡겨진 직분들은 거룩하고 영적인 것들이므로 악인들은 천국 백성으로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국을 의로운 상급을 받은 자들이 거할 처소로 계획하셨지 악인들을 위하여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4. 열매가 없는 사람들은 멸망의 때에만 쓰여지게 됩니다
(1) 악인이 멸망당할 때 하나님의 의는 더 빛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통하여 그의 자비의 속성과 의의 속성이 영화롭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된 속성은 그의 사랑 가운데 나타나며, 악인을 징계하시는 의로움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속성은 열매 없는 자들의 파멸에서 더욱 빛이 납니다.
(2) 악인의 멸망은 하나님의 권세를 더욱 잘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무서운 형벌에서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멸망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세를 더 영광되게 하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엄위하신 분이며 그를 대적하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3) 악인의 멸망을 통해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총과 자신들의 행복에 대해 한없는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 가를 깨달을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가치를 더욱 귀히 여기게 됩니다. 악인들과 달리 성도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 아니라 은총의 대상이며, 진노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지 멸망에 처하도록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함으로 하나님 자신을 영화롭게 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겔33: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패망케 하는 아합의 집
대하22:4
서론
3-4절에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 모친이 피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그 부친이 죽은 후에 저가 패망케 하는 아합의 집 교도를 좇아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의 집이란 패망케 하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아합의 집은 어디를 말합니까?
"아합"은 '아버지의 형제'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며 북국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의 아들로서 제7대 왕입니다.
오므리 왕조는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등으로 끝맺었습니다.
여기에 "아합의 집"이란 아합의 왕가를 말하는 것인데, 아합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 여자의 교활한 유혹에 빠져 천추에 부끄러움을 남겨놓은 악한 왕의 본이 되었습니다.
2. 아합의 집은 패망하였습니다.
아합은 여러 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의 아내 이세벨의 권고를 따라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설치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그것들에게 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칼로 죽였습니다. 또한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자기에게 달라고 하였으나 거기에 응하지 않자 선지자 나봇을 죽이고 강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그 집이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1장 21-2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까닭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합은 아람 왕 벤하닷과 세 번씩이나 싸우다가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 패망한다는 것을 예언한 참 선지자 미가야의 말을 듣지 않고 승리하리라고 거짓 예언한 시드기야의 말을 듣고 출전하였다가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아합의 집은 패망의 길을 걸었고 패망하리라는 선지자들의 예언이 그대로 응하였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아합의 영향을 입은 자들도 패망하였습니다.
유다 왕 여호람은 부왕 여호사밧의 선정을 본받지 못한 것이 패망한 가족 출신인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 그의 영향을 입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또한 우상 숭배와 아울러 포악한 정치에 인심이 이탈되었으며 패망의 길을 걷게 되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도 왕이 되어 그 모친이 피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고 못박아 지목하고 있습니다. 선한 자는 자신만 복받는데 멈추지 않고 그 선행으로 남에게도 혜택을 주며, 악한 자는 자신만 화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남까지도 꾀어서 죄악에 빠뜨립니다.
아합의 집은 패망의 길을 걸었으며 그와 사돈이 되어 교류하게 된 유다 왕가에도 아합의 집의 영향을 입어 같이 패망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
패망케된 아합의 집이란 얼마나 비참하고 저주스러운 이름입니까?
악한 것은 그 모양도 흉내내지 말고 그 가까이에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일을 계속하면 그 결과는 자신과 자신의 집과 그를 아는 모든 자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게 되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악한 것을 추방해야 하겠습니다.
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애4:21-22
서론
"우스 땅에 거하는 처녀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려무나 잔이 내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숨은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스 땅은 어떤 곳입니까?
우스 땅은 원래 유대나 암몬, 에돔처럼 한 사람의 이름과 같은 것인데, 그 종족이 살던 지역의 이름으로 되었습니다. 창세기 22장 21절에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무엘과"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한 자손이요, 또다시 호리의 아들 디산의 한 자손으로서 그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 위치는 에돔이나 그 가까운 곳이었고 팔레스틴 남쪽이라고 합니다. 또는 중앙 아라비아에 우스와 부스 두 지명이 나타나는데 여러 시기, 여러 장소로 나타나는 반면에 이곳을 구체화하며 갈대아와 아라비아 접경 지대에 있는 유브라데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해석하는 말이 가장 유력합니다.
2. 우스 망에 살던 욥
욥은 우리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성품상으로 본 그 인격은 순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의 보범자입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마귀가 그를 시기하였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가족 형편은 아내와 그 자녀로 아들이 일곱이요, 딸이 셋으로 아주 다복한 가정으로일곱과 셋, 그리고 열이라는 숫자는 신령한 숫자로 이상적인 완전의 표시입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 그 소유는 양이 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마리, 암나귀가오백 마리였습니다. 그리고 종들도 많았으니 동방에서 대갑부였습니다.
이러한 욥이 우스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3. 우스 땅에 사는 처녀 에돔
에돔은 유대 민족의 원수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의 원수들은 멸망을 당하고,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될 사실에 대하여 선지자의 말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오랫동안 불신 세상에서 괴롭힘을 당하나 결국에는 그 원수가 망하고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선지자가 에돔더러 즐거워하며 기뻐하라고 한 것은 하나의 풍자적인 말입니다. 사실상 그 뜻은 에돔이 기뻐할 일이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잔이 제게로 이를지니‥‥‥‥라고 한 것은 에돔도 멸망을 분깃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
본문 22절에 "처녀 시문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않게 하시리로다. 처녀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때까지 형벌을 받았으나 이제 그 도수가 차서 은혜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니 회복의 축복 선언입니다.
그러나 이제 에돔이 그 죄악을 인하여 하나님께 벌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그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시고 반드시 그 죄값을 내리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죄에서부터 멀리 있는 자들이 되어서 주님께서 진노하셔서 멸망받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욥40:9
서론
본문에 보면 "네가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를 내겠느냐"고 하였습니다. 여기 "팔"과 "소리"는 둘 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멸망을 받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끝에 결론적으로 일대 걸작을 하셨는데, 이것은 곧 인간 창조이십니다. 더구나 그 만드신 방법이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했습니다. 이는 곧 영성을 허락하사 인간의 가장 큰 의무인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는 요소를 부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선이 그어졌는데 하나님은 조물주이시고 사람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 같을 수 없는 인간
용을 위시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팔이 있느냐 하나님처럼 소리를 내겠느냐"고 한 것은 어떻게 감히 사람이 하나님과 같을 수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연약한 존재를 하루살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람의 미소한 모습을 창해일속과 같다고 하였으며, 어떤 사람은 인간의 가치를 변소에서 꿈틀거리는 구더기와 같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잘것없는 인간이 어찌 감히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는 일이요,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되겠느냐고 풍자한 것입니다.
3.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자는 멸망합니다.
지음을 받은 영계의 천사들 중에서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천사가 범죄하고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습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나 거짓 그리스도들은 모두 하나님처럼 그리스도처럼 되어 보겠다는 사상이요, 태도입니다.
세상에서 정치적으로도 역사상 나타났던 많은 영웅이나 소위 지배자적 위치에 선 자들 중에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획책하거나 바라고 원한 자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로는 다 멸망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긍휼하심을 바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도전한 자와 하나님처럼 되어 보려고 꿈꾸던 자,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 노릇을 하던 자는 다 멸망하였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보게 됩니다.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자신이 하나님처럼 독재를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들중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자도 있고, 아직도 독재의 위치에 서 있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최후는 불을 보듯이 뻔한 것 입니다. 오직 멸망만이 있을 뿐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 인간이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면 그 결과는 인간의 멸망인 것입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처럼 되겠습니까? 누가 함부로 하나님과 견주어 볼 수 있습니까?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만을 높이고 우리 자신은 한없이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멸망당하는 인생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소돔성의 멸망
창18:23-25
서론
아브라함과 그 조카 롯은 살림이 많아져 그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은 생활 지역을 분할하자고 합의하고 아브라함이 롯에게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롯은 비옥한 땅이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였는데, 그 곳은 악이 성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곳을 멸망시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소돔성의 멸망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지 아니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멸하시려는 뜻을 알고는 항의하듯이 호소하였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시하심도 불가하니 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할 것이 아니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키는 분이 아니십니다. 의인은 항상 건져내셔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멸망이 임하는 날이 온다고 할지라도 의인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2. 소돔성에는 의인이 얼마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의인 50명이 있어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50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냐고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각에 최소한 의인 수를 50명으로 생각하고 호소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소돔성 가운데서 의인 50명을 찾으면 그들을 인하여 용서하시고 멸하시지 않겠다고 쾌히 승락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솔직히 의인 50명이 있을지 자신이 없어 45명,40명,30명,20명,10명까지 줄여서 의인이 10명만 있으면 멸하시지 않겠느냐고 간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필사적으로 자기 조카 롯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리며 호소하고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소돔성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니 그중에 의인 10명이 없겠는가 하는 생각을 아브라함은 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듯 간절하게 매달리며 호소하는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에 의인 10명 만 있으면 그 성을 멸하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소돔성에는 의인이 열 명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3. 멸망한 소돔성
아브라함이 간절하게 하나님께 호소하여 열명이라는 의인의 수를 좁혀 놓았지만 그 소돔 성에는 의인이 열 명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소돔을 방문하였고, 롯의 집에 유하게 되었을 때, 천사들은 소돔 사람의 죄악의 면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소돔성은 하나님께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리셨으므로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 보지 말고 가라는 천사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소돔성을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소돔성을 멸망시키셨으나 롯과 그 두 딸은 살리셨습니다. 롯은 결단하는 마음과 절대적인 순종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소돔의 안락한 생활과 자신의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떠나는 것을 지체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강제로 떠나도록 하였기에 그는 그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멸망에서 구원받고자 한다면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죄악을 과감히 내어버리고 이 세상의 소유에 연연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제로라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한다면 그는 구원받게 될 것이며, 멸망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비멜렉의 멸망
삿9:1-57
서론
본장에서 주는 교훈은 사람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행한 대로 같으신다는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아비멜렉은 그 아버지가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에게는 아내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 몸에서 낳은 아들만도 칠십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비멜렉의 모친은 세겜에 있는 기드온의 첩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비멜렉이 어떻게 왕이 되었으며 어떻게 멸망을 당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포악으로 왕이 된 아비멜렉(1-6절)
아비멜렉은 그 성격이 아주 포악한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왕권을 잡을 때도 매우 악랄한방법을 썼는데, 그는 세겜에 사는 친척들을 선동하여 말하기를 본문 2절에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인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의 골육지친임을 생각하라"고 하여 자신을 후원할 것을 선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방탕하고 경박한 류(불량배)를 돈으로 매수하여 그들을 앞세워 오브라에 있는 그 아비의 집으로 가서 자기 형제 70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습니다. 너무나 잔인한 학살입니다. 그 형제들 가운데서 왕권을 노린 자도 없고 그럴 위험성도 없는데 70인 형제를 무참히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룹바알의 말째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기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육신의 욕망을 채우고 세상의 권세를 장악하기 위하여 자신의 형제 70명을 한꺼번에 학살한 것은 그자 인간의 마음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며 악인 중에 악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2. 요담의 비유적 책망(7-21절)
70인의 형제 학살 때 유일하게 살아난 요담이 그리심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세겜 사람을 책망하였습니다.
그 비유 중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기드온의 아들들이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가시나무는 아비멜렉을 비유합니다. 세 나무는 자기 본연의 사명이 있으니 이를 함부로 버리고, 왕이 될 수 없다는 것인데, 가시나무는 전혀 무가치한 것으로 오히려 "내 그늘에 와서 피하라"고 교만하게 말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겜인들이 기드온을 잊고 형제 70인을 학살한 첩의 자식 아비멜렉을 자기네 동족이라고 왕을 삼았으므로 불이 세겜인과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라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3. 가알의 반역과 세정인의 진열당함(22-49절)
하나님께서 아비멜렉과 세겜인 사이에 악한 신을 보내시므로 세겜인이 아비멜렉을 배반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에벳의 아들 가알이 세겜에 이르니 세겜인들이 가알을 맞이하여 연회를 베풀고 아비멜렉을 저주하였습니다. 이 때 아비멜렉은 세겜에 없었는데, 대리자 스불이 가알의 반역을 아비멜렉에 게 보고하자 아비멜렉은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세겜을 치게 하였는데 큰 싸움이 벌여져서 많은 사상자가 났고, 결국 세겜이 함락되고 세겜 망대는 예언대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불의한 반역자 아비멜렉을 도와서 왕되게 하였던 세정인들은 도리어 아비멜렉에게 진멸되었습니다.
결론
언제나 의롭고 선한 사람을 도우면 이에 따른 축복이 임하고, 악하고 불의한 자를 도우면 이에 따른 화벌이 임하여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은 세겜 인들을 진멸시키고 데베스로 갔는데 그가 이른 것을 보고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들어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던지니 그 두개골이 깨어져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에게 죽었다는 불명예를 씻기 위하여 소년에게 자기를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의 악을 이같이 감으신 것입니다. 악을 행하면 그 결과는 멸망뿐임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유다국의 멸망
왕하25:1-30
서론
유다국 최후의 왕 시드기야의 정책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이요, 바벨론국이 볼 때에 배신적 위치에 있으며 결국 하나님께 맞고, 정치에 맞아 멸망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바벨론군의 내침(1-7절)
시드기야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사면으로 토성을 쌓고 3년간 포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기근이 올 것이라고 일찍 모세 때부터 예언하였고(레26:29), 당면하여서는 예레미야나 에스겔도 예언하였습니다(렘14:12, 27:8,겔4:16-17). 하나님의 예언은 오랜 후에라도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3년간이나 성이 포위되니 기근이 심하여 식량이 떨어지고 성벽에 구멍을 뚫고 밤중에 도망을 하여 아라바 길로 가다가 결국 갈대아 군대에게 붙잡혔습니다.
왕의 아들들이 그 목전에 죽임을 당하였고 왕은 그 두 눈을 째고 사슬로 결박당하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보지 못하리라고(겔12:13) 하더니 과연 소경이 되어 바벨론에 갔으므로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 예루살렘 약탈(8-11절)
이것은 예레미야가 여러 차례 예언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렘21:10, 32:28, 29, 34:2, 37:8, 10, 38:18, 23).
갈대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불사르고 성전의 시설과 기병 등을 바벨론으로 약탈해 간 것도 다 예언이 응해진 것입니다.
약탈해간 성물들은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 받침들, 전의 놋바다, 또 가마들, 부삽들, 불집게들, 숟가락들을 섬길 매 쓰는 모든 놋그릇들, 불 옮기는 그릇들, 주발들,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들이라고 하며,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한 기둥은 고가 18규빗이나 되는 거대한 것이나 그 중수는 과연 헤아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3. 그달리야가 방백이 됨(18-26절)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쳐 죽었더라"고 하였는데 유다의 정치 요인들이 갈대아 군대에게 사로잡혀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은 그들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지 않았고, 또 시드기야 왕을 여호와의 말씀대로 돕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벨론 왕이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남은 백성 위에 그달리야를 그 백성의 방백으로 세워 관할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서 시드리야의 왕족 중에 이스마엘이 일어나 그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많고 적은 백성들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 이것은 애굽의 세력을 빌어 국권을 회복해 보려는 뜻에서 애굽으로 도피하였습니다.
결론
바벨론의 폭군 느부갓네살이 죽고 새로운 왕 에월므로닥이 즉위하여 유대인의 포로들을 대우하는 일이 개선되었습니다. 여호야긴 왕이 그간 포로로 끌려 와서 옥에 갇히어 산지가 37년이나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외국에 끌려가 특사를 받아 출옥되어 그 평생토록 국빈 대우를 받았으니 늦게나마 육신의 평안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여호야긴이 포로될 것과 그의 자손이 다시는 왕위에 오르지 못할 것을 일찍이 예레미야선지는 예언하였었는데 이 일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렘22:24-30).
영원한 무더기를 만듦
수8:28
서론
여기 "무더기"라고 쓴 것은 돌이나 흙을 한 곳에 모아서 쌓아 놓은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어떤 부정한 사건을 처리한 뒷모습으로 나타난 곳이 많습니다. 본문에 영원한 무더기를 만든 것은 바로 아이성입니다. 무더기가 된 아이성과 역사적으로 멸망당하여 무더기가 된 곳들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무더기가 된 아이성
"아이"라는 이름의 뜻은 '황폐한 소산'입니다. 벧엘의 동남에 소재하여 믹마스 북에 있던 에브라임의 성읍인데 구약에서는 벧엘과 연결되어 기록된 곳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 기류의 전후 2회 아이와 벧엘 사이에 장막을 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창12:8,13:3).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처음은 여리고를 공격하였고, 두번째 공격 목표 성읍이 아이성이었습니다. 처음 아이성을 소수인으로 공격하였는데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간이 하나님의 물건,즉 아이성 사람의 물건을 도적질하였기 때문이였습니다. 두번째로 아간을 처벌한 후 아이성을 공략하고 완전히 점령하여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불살라서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에서 명령하신 일입니다. 여호수아가 독단으로 아이성을 멸망시킨 것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흥망 성쇠는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또 아이 왕을 잡아서 죽인 후 나무에 매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황폐하여 있으므로 옛날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성은 그 성뿐 아니라 그 성의 왕과 모든 백성들이 멸망을 당하여 무더기가 되었습니다.
2. 멸망당한 무더기들
이사야 25장 2절에 "주께서 성읍으로 무더기를 이루시며 견고한 성읍으로 황무케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음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영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51장 37절에도 "바벨론이 황폐한 무더기가 되어서 시랑의 거처와 놀람과 조소거리가 되고 거민이 없으리 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9장 11절에는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6장 18절에 "시온은 밭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같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은 이방 나라인고로 무더기가 되려니와 예루살렘이 무더기가 된다는 젓은 무서운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모셨던 성지라도 범죄하면 결국 황폐하고 무더기가 된다는 것을 우리 성도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그전에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해서 범죄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과거에 잘하였다고 현재 잘못된 신앙이 덮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처럼 무더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결론
아이성은 무너져서 영원한 무더기가 되어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증거로 남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이나 혹은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라도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면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멸 시
성 경 활 용
1. 하나님께서 멸시하는 대상
(1) 이교적 풍속
(레20:23)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느니라
(2) 피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사람
(시5:6)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3) 탐리하는 자
(시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탐리하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
(삼상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5) 악인의 형상
(시73:20)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6)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
(시119:118)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 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7) 패역한 왕과 제사장
(애2:6) 여호와께서 시온 가운데서 절기와 안식을 잊어버리게 하시며 진노하사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도다
(8) 패역한 백성이 지키는 절기
(암5:21)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 하나님께서 멸시하지 않으시는 대상
(1) 모든 사람
(욥36:5) 하나님은 전능하시나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의 무궁하사
(2) 곤고한 자의 곤고
(시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과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3)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
(시51:17)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4) 하나님을 위하여 수금된 자
(시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5) 빈궁한 자의 기도
(시102:17) 여호와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며 저희 기도를 멸시치 아니하셨도다
3. 악인들이 멸시하는 것
(1) 하나님의 제사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2) 기름 부음 받은 자
(삼상10:27) 어떤 비류는 가로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니라
(3) 선지자의 말씀
(대하36:16)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4) 하나님
(시10:13)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5) 낙토
(시106:24) 저희가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6) 지혜와 훈계
(잠1.:7)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7) 이웃
(잠11:12) 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8) 하나님의 말씀
(잠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9) 가난한 자
(잠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10) 하나님의 율법
(레26:15)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11) 주의 이름
(말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12)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
(롬2:4)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13) 권위
(유1:8)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4. 멸시하는 이유
(1) 교만해서
(시123:4)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2) 악해서
(잠18:3) 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3) 미련해서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의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4) 지혜가 없어서
(잠11:12) 지혜 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5) 짐짓 죄를 지어서
(민15:31)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
(6) 자기가 의로운 줄 알고
(눅18:9)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5. 멸시를 받는 이유
(1) 마음이 패려해서
(잠12:8)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패려한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2) 여호와께서 받게 하여서
(렘49:15)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방 중에 작게 하였고 사람들 중에 멸시를 받게 하였느니라
(3) 여호와께서 열방 중에서 미약하게 하시므로
(욥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4) 여호와를 경외치 아니해서
(사23:8) 대적이 조약을 파하고 성읍들을 멸시하며
6. 멸시해야 할 일
(1) 재앙
(욥12:5)평안한 자의 믿음은 재앙을 멸시하나 재앙이 실족하는 자를 기다리는구나
(2) 악인
(시73: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3) 망령된 자
(시15:4) 그 눈은 망령 된 자를 멸시하여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4) 거짓
(시119:163)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5) 악
(롬12:9)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7. 멸시하는 자의 결과
(1) 패망함
(잠13:1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2) 온전히 끊쳐짐
(민15:31)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
(3)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함
(민14: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4) 성도의 발 아래 굴복함
(사60:14)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5)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지 못하게 됨
(대하36:16)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6) 행한 대로 심판 받음
(겔16:59) 네가 맹세를 멸시하여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네 행한 대로 네게 행하리라
(7) 사람에게 멸시를 당함
(말2:9)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8) 곤고와 쇠 사슬에 매임
(시107:10-11) 곤고와 쇠 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관련원어풀이
1. zWB 부-즈
(1) 정죄하다, 멸시하다.
(잠 1:7, 전 8;1)
(2) 멸 시.
(욥31:34)
2. hz:B; 바-자
원래의 뜻은 "발로 짓밟다, 멸시하다, 하찮게 취급하다(민15:31, 에3:6)."이다.
멸시하는.
(시54:4, 사53:3)
3. #r"j: 하-라프
(1) 모으다, 찢머내다, 가을을 보내다.
(사18:6)
(2) 몹시 꾸짖다, 비웃다, 비난하다.
(욥27:6, 잠27:11)
(2) 비난하다, 조롱하다.
(삼상17:26, 대하32:17)
(3) 생명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다.
(삿5:?8)
4. hP;r]j, 헤르파-
(1) 비난, 조소, 멸시.
(욥16:10)
(2) 멸시받는 사람 또는 물건.
(느2:17, 욜2:17)
5. sa'm; 마-아스
(1) 거절하다.
(욥34:33, 사7:15)
(2) 백성이나 개인을 거절하는 하나님.
(삼상15:23, 렘6:30)
(3) 하나님과 그의 명령을 거스리는 사람.
(삼상15:23, 왕하17:15)
(4) 멸시하다, 가볍게 여기다.
(욥9:21, 잠15:32)
6. $a'n: 나-아츠
(1) 조롱하다, 멸시와 비웃음으로 거절하다.
(신32:19, 렘33:24)
(2) 거절하다, 경시하다.
(시10:3, 사6:14)
7. lben: 나-벨-
(1) 말라지다, 시들어 지다.
(시1:3, 사1:30)
(2) 떨어지다, 쇠약해지다, 힘을 잃다.
(출18:18, 시18:46)
(3) 경시하다, 하찮게 여기다.
(신32:15, 미7:6)
(4) 망신시키다, 가볍게 여기다.
(렘14:21, 나3:6)
8. hl;s; 살-라-
들어 올리다, 무게를 달다, 경시하다. 멸시하다.
(시119:118)
9. j'WP 푸-아흐
(1) 숨을 쉬다, 불다.
(아2:17)
(2) 부풀이다, 거짓을 말하다.
(잠6:19, 14:5)
(3) 불평하다. 비난하다.
(시10:5, 12:6)
10. hl;q; 칼-라
(1) 경시되다, 멸시를 받다.
(신25:3, 사16:14)
(2) 경시된, 부시된.
(삼상18:23, 사3:5)
(3) 멸시받다, 경시하다.
(신27:16)
11. [r'P; 파-라
(1) 풀다, 해방하다, 용서하다.
(겔24:14)
(2) 간과하다, 거절하다.
(잠1:25, 4:15)
(3) 벌거벗기다.
(민5:18, 레10:6)
12. sl'q; 칼-라스
조롱하다, 비웃다.
(겔16:31)
13. fav; 슈-트
멸시하다, 경시하다.
(겔16:67, 28:24)
14. qj'c; 사-하크
(1) 웃다.
(전3:4)
(2) ∼에 미소를 짓다.
(욥29:24)
(3) 조롱하다, 비웃다.
(욥30:1, 시52:8)
(4) 멸시하다, 조소하다.
(욥5:22, 잠31:25)
(5) 놀다, 운동하다.
(시104:26, 슥8:5)
15. ll'q; 칼-랄
(1) 가볍다, 줄어들다, 작아지다.
(창8:8, 11)
(2) 경시되다. 저주받다.
(욥40:4, 나1:14)
(3) 경시하다, 무시하다.
(삼상18:23)
16. ajqetevw 아데테오-
(1) 무효로 선언하다, 없애버리다, 제쳐두다.
(막7:9, 눅7:130)
(2) 깨뜨리다.
(딤전5:12)
(3) 실패시키다, 혼잡케하다.
(고전1:19)
(4) 거부하다, 인정치 않다.
(막6:26, 요12:48)
17. ejxoudenovw 에쿠데노오
멸시하다.
(막9:12)
18. katafronevw 카 타 프 로 네 오-
(1) 업신여기다, 얕보다, 정죄하다, 조롱하다, 경멸하다.
(마18:10, 롬2:4)
(2) 경시하다, 멸시하다.
(마6:24, 눅16:13)
(3) 무시하다, 개의치 않다.
(히12:2)
19. perifronevw 페리프로네오-
조심스럽게, 철저하게 모든 부분을 조사하다, 정죄하다, 멸시하다.
(딛2:15)
20. katafronthv" 카타프로네-테-스
정리하는 자, 멸시하는 자, 비웃는 자.
(행13:41)
21. ejxouqenevw 에쿠-데네오
(1) 경멸하다, 업신여기다.
(눅18:9, 고후10:10)
(2) 멸시하여 거절하다.
(행4:11, 갈4:14)
(3) 소홀히 하다, 무시해 버리다.
(막9:12, 눅23:11)
설교예화자료
사자와 당나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사자가 우연히 당나귀를 만났습니다.
"사자님, 안녕하세요? "
"응, 자네도 잘 있었나?"
"네, 그런데 지금 어딜 가는 길이십니까? "
"그저, 배도 좀 고프고 해서 사냥을 나왔다네, 자네도 지금 바쁘지 않으면 나와 함께 사냥이나 하자구."
"네, 좋습니다. "
"자네의 그 잽싼 솜씨와 나의 날카로운 이빨로 힘을 합쳐 사냥을 하면 아마 굉장한 수확을 올릴 수 있겠지."
그렇게 해서 사자와 당나귀는 그날 하루 종일 함께 사냥을 했습니다.
"이렇게 큰 수확은 처음입니다. 사자님."
"허허허, 정말 신나는군. 자네도 정말 수고했네."
저녁 때가 되어 사자와 당나귀는 하루 동안 사냥한 먹이를 합하여 각각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사자는 큰 발로 먹이를 혜더니 세 몫으로 나누었습니다.
"사자님, 왜 세 몫으로 나누지요?"
"자네는 참 바보로군. 왜 내가 이렇게 나누는지 그것도 모르겠나?"
"네, 정말 모르겠는데요."
"이 중의 하나는 내 몫이야. 오늘 하루 종일 사냥을 했으니까."
"네. 그렇지요."
당나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사자는 다시 두 무더기 중 하나를 가리키며,
"그리고 이 것도 당연히 내 몫이야. 왜냐하면 나는 숲속의 왕이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사자는 마지막 한 무더기를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습니다.
"자, 이 나머지는 내가 자네를 잡아먹지 않고 살려 보내는 대가로 받는 것인데, 자 어떻겠나? 이걸 놓고 나와 싸우겠나, 아니면순순히 물러서겠나? "
그리하여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사냥을 한 나귀는 소득도 없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보인 덴마크 소년
유명한 전도 정치가였고 남아메리카에서 선구자적인 전도사였으며, 거의 20여 년간 복음 전도 협회의 책임자로 근무하면서 독실한 생활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던 토마스 요한 네스바하(Thomas Joha-nnes Bach)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거리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자주 떠올려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그에게 복음서를 전해주려던 한 덴마크 소년의 무모함에 화가 났습니다. "이 작은 책을 가져가세요. 당신에게 전하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
"전할 말이 있다고? 왜 너는 너의 종교로 다른 사람을 귀찮게 만들지? 나 자신은 내가 충분히 돌볼 수 있어."
이 불같은 성격의 빨간 머리 공학도가 화를 내도, 이 어린 소년은 그 작은 종이 묶음을 계속 그에 게 주고자 했습니다. 요하네스는 그 복음서를 잡아채서 구긴 채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습니다. 바하는 화가 안 풀렸지만 그 소년이 아무 말도 안한 것이 이상해서, 그가 무슨 일을 하려나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소년은 근처에 있는 집으로 들어가서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요하네스는 그 소년의 뺨에 눈물이 흐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로부터 59년이 지난 후 코펜하겐에서는 76세의 전도사이며, 작가이며 선생인 그가, 바로 자기가 복음서를 전해 받았던 그 자리에 서서, 그의 영혼을 걱정해주던 덴마크 소년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
투구벌레의 복수
하늘 높이 날던 독수리가 들에서 풀을 뜯고 있는 토끼를 발견했습니다.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 됐다!" 독수리는 너무 기뻐서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토끼는 뒤도 보지 않고 도망쳤지만 언덕을 몇 개 넘자 숨이 차서 더 이상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지?"
토끼는 가슴이 콩알만해졌습니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하고 주위를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토끼의 발 아래 투구벌레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토끼는 투구벌레에게 하소연하였습니다.
"어쩌면 좋니. 투구벌레야, 독수리가 나를 잡으려고 해!"
투구벌레는 토끼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때 독수리가 내려앉으며 토끼를 물려고 했습니다.
투구벌레는 앞으로 나서며,
"독수리님, 이 토끼는 아직 어려 불쌍하니 그냥 살려주세요." 하고 말하였습니다.
"물라. 난 지금 배가 고플 뿐이야."
독수리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러자 투구벌레는 화를 내며,
"만약 토끼를 잡아간 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요." 하고 강경하게 말했지만 독수리는 투구벌레를 무시하고 사나운 이빨로 토끼를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투구벌레는 언젠가 꼭 독수리를 복수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수리가 나무 위에서 알을 낳았습니다.
그것을 안 투구벌레는 독수리가 없는 틈을 타 몰래 가서 알을 모두 아래로 굴려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똥을 쌌습니다.
한참 후에 돌아온 독수리는 사정을 알고 분하여 날개를 파닥거렸습니다. 하지만 투구벌레는 너무 작아 쉽게 발견할 수도 없었을 뿐더러 다시 또 나타나 알을 깨뜨릴까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제우스 신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사정 얘기를 들은 제우스 신은,
"그럼 내 무릎에다 알을 낳거라, 이 곳은 안전할 테니." 하여 독수리는 다음부터 제우스 신의 무릎에다 알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안 투구벌레는 제우스 신의 무릎에다 똥을 쌌습니다.
"이크, 이게 뭐냐!"
깜짝 놀란 제우스 신은 벌떡 일어났고 그 바람에 제우스신의 무릎 위에 있던 독수리의 알들이 모두 굴러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이때부터 독수리는 투구벌레가 나타나는 계절에는 알을 낳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기와 거미줄
골짜기의 썩은 웅덩이에 살던 모기들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짐승도 우리에겐 못 당할거야."
모기들은 자신만만하게 윙윙거리며 숲속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때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사자를 보았습니다.
"얘들아, 우리 동무의 왕인 사자와 한번 싸워 볼까? "
"그래, 우리가 이기면 우린 이제 왕이 되는 거야."
모기들은 신이 나서 사자 곁으로 가까이 갔습니다.
"사자님, 당신은 숲속의 왕이라는데, 어때요. 우리와 함께 한판 승부를 겨루어 보실 생각은 없나요? "
모기들의 말을 들은 사자는 가소롭다는 듯이 껄껄 웃었습니다.
"하하하, 너희들 지금 제정신이냐?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해!"
"그래요. 우린 멀쩡하답니다. "
"그렇다면 어디 모두 덤벼 봐라. 내가 꼼짝이라도 할 것같으냐? "
"그래. 좋아요!"
모기들은 때지어 달려들었습니다.
털이 나지 않은 콧등이며 눈 주위, 손, 등짝 등 닥치는 대로 물어 몸 속의 독을 뿜어냈습니다.
아무리 힘이 새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사자라 해도 모기를 무찌르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사자는 모기들에게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야, 우리가 사자를 이겼다. 우린 이제 숲속의 왕이다. "
모기들은 기뻐 날되며 춤을 추다가 그만 거미줄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전나무와 딸기
숲속에 커다란 전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그 전나무 아래에는 딸기가 초라하게 줄기를 뻗고 있었습니다.
"얘, 딸기야, 너를 보니 매우 한심스런 마음일 생기는구나. 어쩌다 그렇게 처량한 모습을 하고 태어났니?"
전나무가 딸기를 보며 비웃었습니다.
"흥, 내가 어때서 그래. 몸뚱이만 크면 제일이니? 난 비록 작지만 마음은 편하단 말야."
딸기도 지지 않고 말했습니다.
"하하하, 마음이 편하다구?"
"그래, 난 한번도 너를 부러워 한 적은 없어."
"흥, 그래도 큰 소리는 나를 보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웅장하고 큰 키와 싱싱한 줄기를 보란말야. 하지만 넌 뭐냐?"
전나무는 계속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때 멀리서 '쿵쿵'하고 나무 찍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나무꾼이 온 모양이군, 어때 전나무야, 너 저 소리만 들으면 꼼짝 못하겠지?"
딸기가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겁에 질린 전나무는 잠자코 떨고만 있었습니다.
딸기는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나무꾼이 도끼와 톱으로 네 몸을 토막낼 걸 생각하면 넌 아마 내가 부러울걸?"
버려진 돌덩이에서 '다비드 상'으로
이태리 플로렌스 지방의 조각가인 아고스티노 디 안토니오는 커다란 대리석을 이용하여 조각을 하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좀처럼 잘되질 않았습니다. 이에 절망한 그는 "이 대리석으로는 아무것도 조각할 수 없어."라고 하며 포기했습니다. 다른 조각가들도 안토니오가 포기한 대리석을 가지고 작업을 해보았지만 그들 역시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대리석은 그때부터 40여년 동안을 쓰레기 더미 위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미켈란젤로가 그 돌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는 그 돌에서 어떤 잠재적 가능성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즉시 그 돌을 조각실로 옮긴 그는 그 위에다 그 동안 그가 그려왔던 조각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많은 조각가들이 쓸모없는 돌이라고 버렸던 돌이 거장인 미켈란젤로에게 발견됨으로써 세계적인 걸작으로 손꼽히는 '다비드 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경멸은 가장 엄한 질책이다.
(H. 본/ 격언의 핸드북)
경멸(조롱)은 감염한다.
(영국 속담)
침묵은 경멸의 가장 완전한 표현이다.
(G. B. 쇼)
말하는 것을 개 방귀로 안다. <*남의 말을 조금도 들은 체도 아니함을 이름>
(한국 속담)
사람들은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경멸한다.
(A.C. 도일/ 네 개의 죄)
분노보다도 경멸을 감추는 것이 보다 더 필요하다. 전자는 결코 잊혀지지 않지만 후자는 때로 잊혀진다. 악의는 때로 잊혀지지만 경멸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P.D.S. 체스터 필드)
나는 큰 악의를 품지 않은 많은 멸시를 견디어 왔으며, 전혀 멸시가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 없는 많은 친절을 받아왔습니다. <*J.H. 하켓에게 보낸 편지>
(A. 링컨)
깊은 물 속에서 꼼짝 못하게 된 용은 새우의 먹이가 된다.
(중국 속담)
경멸이란 것은 지나치게 점잖은 말 속에 항상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
(스탕달/ 적과 흑)
경멸은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 있어서의 에고이즘이다.
(S.T. 콜리지/ 옴니아나)
경멸 속에는, 자기의 명예를 덜 위태롭게하기 위해서, 못 느끼는 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멸이 있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만만한 데 말뚝 박는다. <*세력이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호되게 구박한다는 뜻>
(한국 속담)
나귀는 샌님만 업신여긴다. < * 제게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별 까닭도 없이 함부로 한다는 뜻>
(한국 속담)
배추 밭에 개똥처럼 내던진다. < * 마구 집어 내던져 버린다는 뜻>
(한국 속담)
많은 사람들은 역경을 견디어 내지만, 경멸을 견디어 내는 자는 드물다.
(T. 풀러/ 격언집)
남을 경시하는 일이 라면, 즐겨 듣는 인간이 많다.
(C. 타키투스)
경멸당하지 않을까 하고 겁내고 있는 무리는 경멸당해 마땅한 무리들뿐이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거북의 등 껍데기 같은 인간들, 그들과 더 불어서는 멸시 따윈 복수 축에도 끼지 않는다.
(C. P. 보들레르/ 봉화)
사람은 계획을 크게 성공시킬 수가 없다고 느꼈을 때에는 그 계획을 경멸한다.
(L. C. 보브나르그)
고난을 멸시하는 사람은 환희를 심어서는 안 된다.
(P. 클로델/포도나무의 송가)
산토끼가 죽은 사자의 수염을 뽑는다.
(독일 속담)
어떤 사람을 경멸한다고 공언하는 것은 아직 환전히 경멸하지 않은 것이다. 침묵이야 말로 유일한 지상의 경멸이다.
(C.A. 생트뵈브/ 나의 독)
가장 작은 것을 경멸하고 가장 큰 것을 믿지 않는 인간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B. 파스칼/ 팡세)
서울놈의 글 꼭질 모른다고 말 꼭지야 모르랴. < *글을 모른다고 너무 무시하지 말라는 뜻>
(한국 속담)
가만 바람이 대목(大木)을 꺾고 모기 다리 쇠쇠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도 큰 일을 할 때가 있으니 업신여기지 말라는 뜻>
(한국 속담)
스스로를 오욕하는 것보다 더 큰 오욕은 없다.
(홀랜드 부인)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냉소하지 않기 위하여 많은 것을 냉소한다.
(L. 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인간의 진실하고 유일한 위엄은, 스스로를 경멸하는 그 능력이다.
(G. 산타야나/ 스피노자 윤리학)
우리 동포들이 당하는 비극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나의 얼굴은 노예상들이 우쭐대며 경멸하는/싸구려 계약거리가 되는 이것은/ 무엇인가.
(사마 알카셈/ 모국)
부자들은 누구나 혈통 좋은 가문과 혈연이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사람들은 부자들과 혼인관계를 맺으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를 경멸한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짚시 세 사람이 그 언제인가/ 버드나무 그늘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세 사람 모두 다 몸에 걸친 옷이란/ 구멍 투성이었고 때가 끼어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세 사람 모두 다 지상의 운명을/ 대담하게도 자유로이 비웃고 있었다. // 세 사람은 세 가지를 내게 가르쳤으니/ 이 인생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담배로써 잠으로써 바이올린으로써/ 인생을 경멸하는 방법이 있으렷다.
(N. 레나우/ 세 사람의 짚시)
그는 두려워하였다/ ‥‥목숨의 끝에 가서 만날/ 최후의 공허한 얼굴에 대하여/ 그는 괴로워하였다/ 저 경멸의 눈에 대하여도/ 오만의 입에 대하여도.
(이성선/ 단독자)
우리가 이 육체의 굴레를/ 벗어났을 때, 어떤 꿈들이 찾아올 것인가/ 이것이 우리를 주저케 한다/ 이 때문에 불행을 한평생 끌고간다/ 그렇지 않다면 누가 참으려 하겠는가, 세상의 회초리와 조소,/ 압제자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 업신당한 사람의 고통, 법 집행의 지연/ 관리의 오만불손, 참을성 있는 유력자가 천한 자로부터 받는 발길질을 / 단 한 자루의 단도로 스스로 생을 청산할 수 있는데도/ 누가 지루한 인생을 신음하고 땀흘리며 짐지려 하겠는가?
(W.셰익스피어/ 햄릿-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설 교 노 트
영혼을 경히 여기는 자
잠15:32
서론
본문은 "훈계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솔로몬은 너무나도 어리석어 도무지 유익한 그 무엇을 해 줄 수 없어 보이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훈계받기를 거절함으로써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고 있습니다.
1. 자기 영혼을 경히 여기는 현상들
어떤 사람들은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영혼의 소중함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뿐이라고 믿으며, 비물질적인 세계를 배척합니다. 그리고 구원 문제를 무시한다고 정죄받거나 정죄와 비난을 받는 일을 면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영혼이란 구원받거나 정죄받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려 듭니다. 그들은 그리함으로써 그들의 온갖 비이성적인 행동들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 듭니다 또한 그들은 영혼을 경히 여긴 나머지 그 불멸성까지 부인합니다. 그리하여 마치 짐승처럼 살다가 짐승처럼 죽는 것을 합리화시키려 듭니다. 말하자면 "먹고 마시자 내일이면 죽으리라"는 식의 태도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마귀를 섬기는 데 바쳐질 때, 죄에 오염되어 더럽혀질 때, 거짓과 기만에 속임당할 때, 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일에 대해 불필요한 염려로 괴로워할 때, 그리고 이 세상에 빠져 즐거움을 누릴 때 악용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은 사악한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노출될 때, 우리가 우리 삶을 반석 위에 세우지 않고 모래 위에 세울 때, 세속적인 이득을 위하여 그 가치를 무시하게 될 때, 바로 그런 때에 위험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죄가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며, 영혼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않고, 영혼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실패하며, 영혼이 누려야 할 영원한 축복을 무시합니다.
2.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영혼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땅 위에 지어놓으신 피조물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걸작품인 것입니다. 또 영혼은 본질적으로 자기를 인식하는 존재입니다. 즉 영혼은 자기를 반성하며 자기와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은 우리의 소유입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영혼을 책임지도록 위 임하셔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다가 장차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은이나 금은 영혼의 욕구를 채울 수 없으며, 죄의 문제에 대해 만족스러운 해답을 제시할수 없습니다. 우리는 "썩어질 것으로 구속함을 얻은 게 아닙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보혈을 흘리시며 자신을 내어주사 우리 영혼을 위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 자신의 영혼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의 그 어느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과 파멸로부터 구원하여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해 줄 수 얼습니다.
성령은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악령은 계속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고자 합니다. 사람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할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는 그의 아들을 보내어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구원하게 하셨고, 그의 성령을 보내어 우리 영혼에 역사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사역 자들을 보내사 "우리의 영혼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촛불이라 결코 꺼지지도 다 타버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영혼은 육신과 분리되어 있을 때만 살아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 가든지 영원히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내세에서는 영혼의 영원한 축복이나 혹은 저주가 예비되어 있으며, 이는 그 영혼의 성격에 따라서 그리고 죽었을 때의 상태에 따라서 결정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자신을 살펴서 영혼에 대한 우리들의 식견의 천박함을 애통해 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영혼에 대한 온당한 가치 판단을 해야합니다. 다른 모든 것들의 가치도 영혼과 연관지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의 영혼을 무시하지 말고 사랑의 마음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들
행4:11
서론
본문의 바로 앞장은 사도들에게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것과 수많은 군중들이 변화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그 일로 인해 크게 놀란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외 다른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두면서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는가 하고 책망했을 때 베드로가 본문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1. 죄인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의 완전함을 부인합니다.
(1) 그리스도의 탁월한 모습
그리스도는 한없은 존귀한 분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천사들의 극진한 경배를 받기에 합당합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무한하신 사랑과 미덕을 지니신 신성을 지니셨기 때문에 모든 피조물로부터 영원히 존귀를 받으십니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흠이 없으시기 때문에 죄인들과는 구별되십니다. 그는 우리처럼 가난과 상처를 받으셨으나 참으셨고 욕을 받으시되 욕하지 않으십니다(벧전2:23).
(2) 그리스도의 성품에 대한 불신자들의 태도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점을 불신자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분이 하나님과 동등하며 영광된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경외심조차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불신자들은 그분의 무한하신 권세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에게 경배하지도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신 동안 그의 인성에 나타난 온전한 성품에 대해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리스도의 탁월함과 영광스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의식없이 들을 뿐입니다. 그분의 거룩한 은총과 온유, 겸손에 관해 듣고 어느 정도 시인하는지는 몰라도 여전히 그분을 멸시하고 있습니다.
2. 죄인들은 그리스도 사역의 완전성을 부인합니다.
(1) 그리스도의 사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완전한 중보자이며 죄인들을 구원하시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시다는 것을 들어왔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얼마나 지혜롭고 놀라운 일인가에 대해서도 들어왔습니다.
또한 우리는 죄인들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고 있습니다. 천사들보다 뛰어나고 영광된 분이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여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경외하지 못하는 죄인들
육에 속한 사람들은 아무리 기도나 대화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찬미하여 예배 의식에 참여한다고 할지라도 그분의 영화로운 성품이나 구세주로서의 놀라운 일을 진실로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완전성에 대해 아무 가치를 두지 않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3) 그리스도에 대한 죄인들의 멸시
죄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나 탁월성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의 마음에서는 그리스도가 가장 저급한 존재며 맨 나중 순위에 자리잡고 있을 뿐입니다.
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상이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전혀 사모할 줄 모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욕망하는 것, 특히 노력 없이 얻을 수 있으며 배부를 수 있는 것만을 소중히 여길 뿐 아무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기쁨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구제되기를 바라면서 도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며 얻는 행복이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대해 대적하여 왔기 때문에 그 거룩성을 추구하지 않으며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기질과 성격은 그리스도를 심히 거역하며 더 나아가기는커녕 더욱 악해질 뿐입니다(딤후3:13).
결론
그리스도를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그분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그분을 멸시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분의 품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주권적 은총에 우리 자신을 맡겨버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진노의 채찍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조롱받으신 예수님
마27:26-31
서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예수님은 참으로 많은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빌라도 법정에서 조롱을 받으셨는데 어떠한 조롱을 받으셨습니까?
1. 빌라도에게 채찍을 맞음으로 받으셨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채찍으로 때리지를 않습니다. 이 채찍은 외국인이나 노예에게만 때리는 채찍입니다.
먼저 옷을 벗긴 후 기둥에 묶어 놓은 다음 가죽 채찍으로 때립니다. 가죽 채찍은 군데군데 쇠붙이가 있어서 살조각이 떨어져 나갑니다. 한 번 맞으면 땀과 피와 진액이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말을 길들일 때에 사용되는 채찍과 똑같은 것입니다. 말에 자갈을 물려서 나무에 달아놓고 뒷발에는 가시채를 놓습니다. 채찍으로 말을 때리면 말은 뒷발질을 하여 가시채에 찔리고 진땀을 흘리며 근육은 경련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러한 채찍으로 예수님을 때린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조롱을 받으신 것은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에서였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을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2. 군병들에게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왕을 상징하는 홍포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면류관은 영광을 표시하지만 가시관은 악독한 욕인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홀처럼 갈대를 쥐게 했으며 예수께 빈정대며 평안하시냐고 했습니다. 그리고 침을 뱉었습니다. 이것은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멸시인 것입니다. 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때렸으며, 갈대를 빼앗고 때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참기 힘든 멸시를 다 받으셨습니다.
땅 위의 왕은 그저 세계 한 모퉁이에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영구적으로 보존이 되는 왕위가 아니고 언젠가는 내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왕이시요, 우주를 섭리 가운데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참 왕을 모르고 세상에서 뽐내는 자는 불쌍합니다. 그 앞잡이는 짐승보다도 못한 존재입니다.
주님에서는 희롱과 멸시를 다 당한 후에 홍포를 벗기고 다시 그의 옷을 입고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으심은 주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게 멸시를 당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한 것쯤은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예수님으로 인한 멸시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받은 멸시는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 앞에 바로 살고 경건하게 사는 삶으로 주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계집 종의 멸시를 받음
욥19:15
서론
"내 집에 우거하는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욥의 고용인들이 주인인 욥을 외국 사람처럼 취급하고 그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멸시한다는 말입니다.
1. 욥이 받은 시련
욥이 당한 시험과 환난은 사람이 상상하기에도 지나칠 정도였습니다.
경제적인 몰락으로 집안의 모든 재산과 가축을 다 잃었고, 10남매나 되는 자녀들이 일시에 몰사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욥의 몸에 악창이 나서 건강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남편을 잘 돌보고 위로해 주어야 할 아내는 욥에게 자살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라고 하였고, 친구들조차도 하나님께 범죄할 것이 없느냐고 하며 공격하였습니다.
차라리 아내나 친구는 대등한 관계로써 말하는 것이지만, 본문에 기록된 대로 집에 우거하는 자나 계집종이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욥을 멸시하고 조롱하였으니 그 가운데 처하여 있는 욥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였을 것입니다.
2. 계집 종은 비천한 존재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가정에서 계집종이라고 하면 가장 비천한 존재인 것입니다. 주인 앞에서 감히 고개를 제대로 들 수도 없으며,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위치입니다. 종의 신분은 주인의 재산으로써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으며, 주인이 팔아도 항의할 수 없고, 죽여도 거기에 맞설 수가 없는 그런 신분인 것입니다.
오직 주인의 긍휼을 힘입어 생명을 부지해 가며, 죽도록 노역함으로 간신히 그 입에 풀칠을 하여 연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집종의 처지이며 신세인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계집종이 자기의 주인되는 욥을 외인시하였다고 했으니 민심의 변천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이 몰락하게 되고, 몸에는 병까지 생기고, 아내나 친구들이 욥을 욕하며 죽으라고 하니 계집 종들도 이제 다시는 욥이 그전처럼 소생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주인인 욥을 멸시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욥이 종들에게 애원을 하다시피 하여서 무엇을 요구해야 겨우 받게 되는 형편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내의 배신이나 친구들의 공박까지도 참고 견디어 낸 음이지만 계집종들의 멸시와 조롱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욥은 그러한 것까지도 다 감수하며 홀로 탄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
아무리 세월이 바뀌고 사정이 달라졌다고 하여도 어찌 감히 계집종들이 그 주인을 멸시하고 조롱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것은 엄연히 주인에 대한 배신 행위이며, 주인이 여지껏 자신들을 긍흘로 대해 준 것에 대한 은혜를 저버린 행위인 것입니다. 욥은 이러한 때에도 그 멸시와 조롱의 시험을 감수하며 하나님의 신원을 기다렸으니 참으로 위대한 신앙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서 오히려 주님을 멸시하는 일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항상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
욥30:1
서론
욥은 자기를 조롱하며 멸시하는 자들에게 반박하여 한 말이 바로 본문의 말입니다.
욥을 조롱하던 사람들은 지역 사회에서 외면당하던 무리들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이제 욥을 조롱하고 멸시하자 욥은 그들을 욕하여 "나의 양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만도 못한 자라는 뜻입니다.
1. 성경상에 나타난 개의 비유
마태복음 15장 26절에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리라"고 하여 이방인을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사56:11)라고 하였고, 미련하다고 하였습니다(잠26:11). 또 세상의 더러움에 빠져 복음을 배반한 자들을 가리켜 개라고 하였습니다(벧후2:22). 그리고 박해자라고 하였고(시22:16), 완악한 죄인이라고 하였으며(마7:6, 계22:15), 거짓 스승이라고 하였고(빌3:2), 천한 사랑(삼상24:14)을 가리켜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은 멸시 중에서도 가장 심한 멸시이고 욕인 것입니다.
2. 가장 심하고 더러운 욕설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히 속되게 사용하는 욕설은 무엇입니까?
'개 같은' , '개 만도 못한' 이 라는 말을 흔히 듣고, 또 하기도 하며, 엉뚱하게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개의 나쁜 면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지독한 욕을 하는 것입니까?
(1) 더러운 짐승입니다(벧후2:22).
자기가 먹었던 것을 도로 토하고, 그 토해놓은 것을 도로 먹습니다. 즉 잘못을 계속하여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탐욕의 동물입니다(사56:11).
개는 밥을 탐하여 족한 줄을 모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탐심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3) 싸우는 동물입니다(마7:6).
개는 주는 것을 발로 밟고 찢고 상하게 하여 피차에 멸망에 이릅니다.
(4) 피를 즐기는 동물입니다(왕상21:19,22:38).
더러우면서도 잔인하여 사람이나 타동물을 잡아먹지 못하면 피를 핥아먹습니다.
이와 같이 아주 심하고 더러운 욕설이 개만도 못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이런 심한 욕설을 듣지 않도록 모든 일에 조심하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3.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
비천한 사람이나 악독한 사람을 가리켜 흔히 사람 중에도 들지 못할 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더러운 동물 중의 하나인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라면 그 자가 얼마나 형편없고 천박한 자인 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욥을 비난하고 멸시하는 무리들을 가리켜 욥이 이같이 반박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경제적으로 빈궁하며 못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요, 지식적으로 무식한 자이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도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하고 범죄하여 극도로 비천한 자, 곧 사람 구실은커녕 개 가운데도 둘 수 없는 그러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결론
우리 인간 중에는 욥이 말한 것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을 버리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믿음까지도 훼방하는 자는 개 만도 못한 존재임을 말아야 합니다. 자신은 모르지만 그 신세보다 더 비참하고 처량한 신세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러한 멸시를 당하지 않도록 모든 일에 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명 예
성 경 활 용
(1)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자들을 명예로 뛰어나게 하심
(신26: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 다윗이 업적을 세우고 명예를 얻음
(삼하8:13) 다원이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 팔천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예를 얻으니라
(3)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예를 시험함
(왕상10:1)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예를 들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코자 하여
(4) 하나님께서 그의 행사로 명예를 얻으심
(느9:10) 이는 저희가 우리의 열조에게 교만히 행함을 아셨음이라 오늘날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5) 재물보다 명예를 택해야 함
(잠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6) 여호와의 명예
(사55:13) 이것이 여호와의 명예가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관련원어풀이
1. !ve 셈
(1) 이름.
(출33:12, 스10:16)
(2) 유명한 이름, 명성.
(창11:4, 욥30:8)
(3) 영광.
(창9:27)
(4) 선한 이름, 좋은 평탄.
(신22:14, 잡22:1)
(5) 죽은 후의 명성, 기억.
(신9:14)
(6) 기념비, 비석.
(삼하8:13, 사55:13)
(7) 하나님의 고명한 이름, 하나님의 영광.
(왕상8:41)
(8) 사람에 의해 불려지고 높여지는 여호와.
(시5:12, 9:11)
(9) 신성.
(출23:21, 왕상8:29)
설교예화자료
말과 돼지
병사들을 태운 말과 화살이 비 오듯 하는 적진을 향해 병사들은 용감히 나아갔습니다.
"다다닥 다다닥."
적군은 더욱 화살을 쏘아댔습니다.
창과 칼이 부딪히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마침내 위기에 몰린 적군은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말은 다시 마굿간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날을 보냈습니다.
그 집에는 언제나 먹고 자는 일밖에 모르는 돼지가 있었습니다.
"말아, 너 또 전쟁터에 갔었니?"
돼지가 물었습니다.
"그래, 참 무서운 싸움이었어. 나는 꼭 죽는 줄만 알았다니까."
말이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치열한 싸움이었는데? "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칼과 불꽃은 튀겨 수없이 많은 사람과 말들이 쓰러져 죽었단다. "
'굉장하구나. 다음부터 그런 싸움터에서는 너무 앞에서 달리진 말아라. 그렇게 죽는 일은 너무 어리석단 말야." 하며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돼지야,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맙다. 하지만 내 눈에는 날마다 놀고먹다가 살이 찌면 잡아먹히는 네가 더 어리석게 보이는구나."
말은 오히려 돼지를 불쌍히 바라보았습니다.
청소부의 자리
아주 오랜 옛날 그리스의 일부 정치가들은 그들 동료 중의 한 사람에게 장난을 했는데, 그것은 그를 민중의 청소부로 임명하는 것입니다.
임명된 그는 당황하는 대신에 사람이 그와같은 비천한 자리에서도 하겠다는 마음만 갖는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청소부가 된 후 그리스에서는 전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비위생적인 환경이 제거되었고, 시민들도 청결한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그후 몇년 동안 그 청소부의 자리는 명예와 책임과 위대한 노력을 갖춘 사람만이 임명될 수 있는 지위로 우러러 보았습니다.
어록·시·묘사
명예란 엄청난 선행을 추구하는 젊은 혈기의 갈망에 불과하다.
(R. 하워드 경/ 인도의 여왕)
명예는 미덕의 보상이다.
(키케로/ 펄립피크 탄핵)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이 쾌락욕에 근원을 두고 있듯이, 인류의 가장 큰 노력은 항상 명예욕에 근원을 두고 있다.
(J. 러스진/ 참애와 백합)
명예있는 죽음은 불명예의 삶보다 낫다.
(소크라테스)
법이 허락해도 명예가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B. J. 소랑)
모든 훌륭한 명예의 실례는 고난과 불행에서 성장된다.
(S. 대니얼/ 사우댐튼 백작에 대하여)
자기가 얻은 명예 속에 안주하는 것은 눈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만큼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잠든 채 죽게 되기 때문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명성은 영웅적 행동의 향기이다
(소크라테스)
명예는 정직한 수고에 있다.
(G. 클리블런드)
명예를 숭배하는 자에게는, 치욕만이 죄악이다.
(J.C. 해어와 A.W. 해어/ 진리 추론)
명예가 덕을 따름은 마치 그림자가 물체를 따름과 같다.
(M.T. 키케로)
인간 최대의 우열함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또한 진정으로 인간의 우수함을 보이는 최고의 표적이다.
(B. 파스칼/ 팡세)
명성은 덕행의 어머니이다.
(비온/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비온」)
명성은 死者의 태양이다.
(발자크/ 절대성 탐구)
명예와 안일은 좀처럼 동료가 될 수 없다.
(T. 풀러/ 격언집)
부끄러운 재산보다 명예가 낫다.
(E. 데샹/ 발라드 후렴)
명예는 제 2의 유산과도 같은 것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국가의 명예는 가장 숭고한 가치가 있는 국가의 재산이다.
(J. 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명예란 공훈의 참다운 시금석이 못되며 그런 것의 개연성에 불과하다. 명예는 우발적인 일이요, 인간의 재산이
아니다.
(칼라일/ 수필집:괴테)
가장 명예로운 것은 또한, 가장 안전하다
(리비우스/ 사서)
명예를 황금보다 귀중히 여기는 자는 거의 없다.
(살루스티우스/ 유구르타)
명예란 양심이며, 그 중에서도 열렬한 양심이다.
(A.V. 비니/ 군대의 굴종과 위대)
명예란 유령이니, 이를 추구하면 도망치지만, 이를 거절하편 뒤따른다.
(R. 백스터/ 감사하는 사랑)
그대들은 명예가 무엇인지 통 모르고 살아 왔어, 그 이유는 그대들이 불명예가 무언지 모르기 때문이야.
(H. 뵐/ 아홉 시 반의 당구)
명예는 자기 스스로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이 씌워주는 월계관인 것이다.
(한혹구/ 싸라기 말)
자화자찬하는 사람의 명예는 보잘것없다.
(독일)
진실로 명예는 강과 같은 것으로서, 가볍고 속이 빈 것은 받들어 띄우지만, 무겁고 충실한 것은 밑으로 가라앉히고 만다.
(F. 베이건/ 수필집)
나 자신이 내 명예의 수호자다.
(N. 로우/ 아름다운 후회)
가장 훌륭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중에서 다만 하나를 선택한다. 영원한 명예를 취하고 사멸해 버릴 것은 미리부터 버린다.
(헤라클레이토스)
명예는, 울통불퉁하며 모래사장이 없는 섬과도 같아, 일단 그 곳을 떠나 버리면, 우리는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브왈로/ 풍자시집)
명예가 상실될 때는,죽는 것이 구제다. 죽음은 불명예로부터의 안전한 철수에 불과하다.
(S. 거드 경/ 약국)
명예를 잃는 자는 그 밖에 아무것도 잃을 수 없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명성은 우선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명예는 잃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므로 명성을 잃는 것은 이름을 잊는 소극적인 것이지만, 명예를 잃는 것은 치욕이며 적극적인 것이다.
(A. 쇼펜하워/ 행복을 위한 금언)
행복과 명예는 여성적이다. 그네들은 그네들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어느 정도 냉담하게 취급하는 사람을 찾는다.
(C. 힐티)
너에게 명예가 오면 기꺼이 받으라. 그러나 가까이 있기 전에는 붙잡으려고 손을 내밀지말라.
(J.S. 오라일리/ 도로 규칙)
명성은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며, 명예는 잃어서는 안되는 유일한 것이다.
(쇼펜하우어/ 인생의 지혜에 관한 금언집)
옷은 새것일 때부터, 명예는 젊을 때부터 소중히 하라.
(A.S. 푸시킨)
신용을 잃고 명예를 잃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J.G. 휘티어/ 이카바드)
정부가 명예심이 회박하면 전국민의 도덕심이 손상을 입는다.
(H.C. 후버/ 어록)
명성은 일종의 확대경이다.
(T. 풀러/ 잠언집)
명예란 허무한 군더더기예요. 공로가 없어도 때로는 수중에 들어오지만 죄를 안 져도 수중에서 없어질 때가 있거든요. 명예란 생각하기에 달린 거지 그렇게 송두리째 없어지는 법은 없습니다.
(W. 셰익스피어/ 오셀로)
이름을 기뻐하는 자, 원망이 많다.
(한 영/ 한시의전)
명예를 맛보지 못찬 사람은 행복하다. 명예를 가진다는 것은 연옥이고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지옥이다.
(E.G. E. L. B. 리턴)
명예는 갓난아기의 딸랑딸랑하는 장난감이다.
(T. 랜돌프/ 시신의 거울)
상대편이 명예욕에 마음이 쏠려 있을 때, 재물의 이익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속물이라고 깔보이며 경원당한다. 상대편이 재물의 이익을 바라고 있을 때, 명예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몰상식하고 세상 일에 어둡다고 하여 소용없는 자로 인정받기가 첩경이다. 상대편이 내심으로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 명예를 바라는 때, 이런 자리에 명예를 이야기하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체하여도 내심으로는 은밀히 성글어진다. 만약 이런 자에게 이익을 가지고 얘기하면 내심으로는 은근히 그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것을 경원한다. 그러한 기미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한비자)
명예욕과 금욕은 모든 악의 원천이다.
(독일)
명예의 금빛 칠한 유혹에 속지 말라.
(W. 대브넌트 경/ 곤디베르)
이미 얻은 명예는 지금부터 얻지 않으면 안 될 명예의 담보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질 반성)
부귀와 명예는 그것을 어떻게 얻었느냐가 문제이다. 도덕에 근거를 두고 얻은 부귀와 명예라면 산골에 피는 꽃과 같다. 즉, 충분한 햇볕과 바름을 받고 필 수 있다. 행복을 사치한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마치 태양을 그림에 그려 놓고 빛이 비추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폴레옹 1세)
금전, 쾌락 또는 명예를 사랑하는 자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
(에픽테토스)
「명예를 가볍게 여기라」고 책에 쓰는 사람도, 자기 이름을 그 책에 쓴다.
(M.T. 키케로)
기사적(騎士的) 명예는, 고만과 광포의 아들이다.
(A. 쇼펜하워/ 행복을 위한 금언)
명예와 영광, 그리고 세인의 허영심을 가장 소리높이 비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명예와 영광을 가장 동경한다.
(스피노자/ 논리학)
나는 명예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명예는 장례식의 상장(喪章)에 지나지 않는다.
(W. 셰익스피어/ 헨리 4세)
명예심에 마음이 들뜬 사람은 평온에 대해서는 마음의 문을 닫는다.
(중국 속담)
명예와 거울은 입김만으로도 흐려진다.
(스페인 속담)
모든 명예의 상처는 자기가 낸 것이다.
(A. 카네기, 헤리크/ 카네기전)
자기를 위하여 완전무결한 명예를 얻으려 하는 사람은, 도리어 그 명예를 손상시키는 법이다.
(S. 존슨)
우리들이 명예를 사랑하는 것은 명예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익 때문인 것이다.
(C.A. 엘베시우스/ 정신론)
욥이 잿더미에 앉아서/ 온 피부를 헌 부스럼을 기와조각으로 긁는 뜻은 (욥2:8)// ‥‥원망도 않고/절망도 않고/깨어진 기와조각 힘주어 쥐고/헌데를 긁는 욥/ 거기에 인간의 명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병수/ 古瓦 III)
글줄이나 했다하여/ 이름 하나 얻었을까/ 늙고 병들 때라/ 벼슬도 던지겠다.
(두보/ 나그네의 밤)
길이 없어진 지 천년 가까우니,/ 사람마다 제 속을 아니 보인다. // 술이 있어도 마시려 아니하고,/ 다만 세속적인 명성만 돌보는구나.// 내 몸을 귀중히 하는 까닭은/ 한평생을 생각해서가 아닐까?// 그렇지만 한평생은 얼마나 되는가? / 번갯불에 놀라듯 빠른 것을!
(도연명/ 음주)
벼슬 얻어 한나라 섬기니 우림랑,/ 처음으로 표기장군 따라 어양에서 싸운다. / 누가 알겠나, 국경으로 향하는 괴로움을!/ 죽는다 해도 협객의 아름다운 이름은 들으리!
(왕유/ 소년행 · 2)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백사장에 했으나/ 파도가 몰려와 씻어 버리고 말았네./나는 또다시 그 이름을 모래 위에 썼으나/다시금 내 수고를 삼켜 버리고 말았다네./그녀는 말하기를 우쭐대는 분, 헛된 짓을 말아요./ 언젠가 죽을 운명인데 불멸의 것으로 하지 말아요./ 나 자신도 언젠가는 파멸되어 이 모래처럼 되고/내 이름 또한 그처럼 씻겨 지워지겠지요./ 나는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소. 천한 것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지 라도/ 당신은 명성에 의해 계속 살게 되오리다. / 내 노래는 비할 바 없는 당신의 미덕을 길이 전하고/ 당신의 빛나는 이름을 하늘에 새길 것이오.
(스펜서/ 그의 사랑에게)
그대 진실로 나를 사랑하려거든/ 높고 고상한 이름뿐인 나를 사랑하지 말 것,/ 다만 낮고 낮은 곳에서 머리 풀고/속으로 흐느끼는 나의 슬픔을 껴안을 것
(서덕석/ 사랑법)
명예란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며, 그들이 어떻게 그 짐을 나르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평가를 받게 된다/ 만일 쉬임없이 그 짐을 잘 나른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영웅의 대열에 끼워줄 것이고 발을 헛딛거나 미끄러진다면 사기꾼이라는 평판을 듣게 될 것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나는 민중을 위하여 쓰는 것이다 가령/ 그들이 나의 시를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나의 생활을 일신시켜 주는 대기여/ 언젠가 내 시의 한 줄이/ 그들의 귀에 다다를 때가 올 것이다. / 그때 소박한 눈동자는 눈을 들 것이다. /광부는 바위를 깨면서 웃음을 머금고/ 삽을 손에 쥔 노동자는 이마를 닦고/ 어부는 손 안에서 뛰노는 고기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것이며/ 산뜻하게 갓 닦은 몸에/ 비누 향기를 뿌린 기관사는/나의 시를 찬찬히 들여다 볼 것이다. / 그리고 그들은 틀림없이 말할 것이다. // "이것은 동지의 시다"라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꽃다발이다 명예다.
(네루다/ 커다란 기쁨)
유명해진다는 것은 추한 노릇이다/ 그것은 인간을 고귀하게 하지 않는다/ 문서로 작성해 둘 필요는 없고/ 초고인 채 아쉬워함이 좋다. // 창조의 목적은 헌신에 있나니/명성도 아니요 성공도 아니다/ 모르는 새 쉽사리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그렇다 거짓된 명성에 살아서는 안된다. / 단순하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 / 우주의 사랑을 자기에게 끌어당기고/ 미래의 외침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 다른 사람들은 살아온 발자취를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그대의 길을 올 것이다. / 하지만 패배와 승리를/ 네 자신이 구별해서는 안 된다.
(파스테르나크/ 무엇이 소중한가)
명예의 노예 시인이 죽었다!/ 소문의 비방을 받아 쓰러졌다. / 복수의 적개심으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자랑스러운 얼굴을 숙이면서!/ 시인의 영혼은/ 사소한 모욕의 불명예를 참지 못하고/ 전처럼 홀로 세상의 소문에 대항해/ 분명히 일어섰다, 그리고 죽었다!/ 죽은 것이다‥‥‥
(레르몬토프/ 시인의 죽음)
이 세상 명성이란 한바탕 부는 바람만 같으니/ 여기서 오는가 하면 또 저기서 쫓아오고/ 그리하여 방향을 바꾸는 족족 이름도 바꾸는도다.
(단테/ 신곡)
친구보다/좀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댓자/명예가 남보다 뛰어나 본댓자/ 또 미운 놈을 혼내주어 본다는 일/ 그 까짓 것이 다 무엇입니까// 술 한 잔만도 못한/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발은 땅을 딛고도 우리/ 별을 쳐다보며 걸어 잡시다.
(노천명/ 별을 쳐다보며)
"굶어 죽었다"는 말은/ 그의 무덤에 적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타락시키고 초라하게 만드는 정부의/불명예./그것은 그의 무덤에 적히지 않을 것이다/ "굶어 죽었다"는 것은.
(베르나르 다미에/ 추도사)
수녀원처럼/ 순결하고 평화로운 그대 가슴과 마음을 버리고/ 싸움터로 간다고/ 나를 무정타 말아다오.// 나는 지금 새 연인을 쫓고 있으니/ 싸움터에서 맨처음 만나는 원수라는 연인./ 그리고 전보다 더 두터운 진심으로/ 칼과 고삐와 방패를 잡는다. // 그러나 이 변덕은/ 그래도 존경할 변덕./ 내 만일 명예를 더 사랑치 않는다면/그처럼 그대 사랑도 하지 못할 것이니.
(라 브레이르/ 싸움터로 가며 루캐스터에게)
설 교 노 트
나를 욕되게 말라
대상10:4
서론
블레셋군의 내침으로 인하여 길보아 산에서 접전하던 사울을 왕과 그 아들들이 전사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을 따라오니 사울이 자신의 부하에게 칼을 빼어 자기를 찌르라고 부탁하면서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시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할례 없는 자를 멸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자긍하는 이유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할례를 행하는 일을 들 수 있습니다.
할례의 기원은 창세기 1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은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선민에서 끊어지는 까닭에 할례가 없는 이방인은 멸시의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은 셈입니다.
2. 욕되게 죽지 않으려는 선민 의식
사울이 비록 전세가 불리하여 적에게 죽는 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할례도 받지 못한 이방인 오랑캐의 손에 죽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욕되게 여기기 때문에 이것은 선민 의식을 강조한 처사인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 범죄하여 왕위를 빼앗기는 경우에 당면하였어도 비록 하나님께는 벌받아서 맞으나 이방인에게는 결단코 맞지 않겠다는 강한 선민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옛부터 참된 무사들은 적의 화살이나 칼이나 창을 앞에서 맞는 것은 떳떳하게 여겼으나 뒤에서 맞으면 최대의 수치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등을 맞는 것은 도망치다가 맞아서 죽게 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무사는 무사답게 죽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긍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최고의 명예임을 자각하며 욕되게 살지 않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3. 깨끗이 자결한 사울 왕
사울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고, 살아 날 수도 없음을 감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굳은 마음으로 오랑캐의 손에 죽을 수는 없으므로 부하에게 칼을 빼어 자기를 찌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부하는 부하대로 자기의 손으로 임금을 찌를 수 없어서 심히 두려워하고 있자 사울이 스스로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려서 자결하였습니다. 그러자 병기를 가진 부하도 사울 왕을 따라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은 그중에 단 한 사람도 살아남이 없이 온 집안 사람들이 다 함께 죽은 것입니다. 사울의 아들들은 블레셋군에 의하여 죽었고 사울은 깨끗이 자결하였습니다.
결론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그 자체는 살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의 경우는 또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욕되게 말라"고 마지막 죽는 순간이라도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려는 사울에게 우리는 인간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세상의 명예
단3:11
서론
세상의 명예의 표상이란,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원에다 세워놓고(단3:1),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한 거대한 금상과 같은 것입니다. 이 금상의 높이는 성경에 따르면 60규빗이나 될 정도로 거대하였기 때문에 세상의 명예를 상징하는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높은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세상의 명예를 상징하는 것에 대해 고소한 세 가지 중대한 죄를 말하겠습니다.
첫째, 아첨을 하게 하고 덕성을 부패시킨 죄에 대해 고소합니다. 둘째, 악덕을 숨기고, 거짓 고백을 신뢰하도록 한 것에 대해 고소합니다. 끝으로, 하나님께만 속하는 것을 인간들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신성한 위엄을 탈취하여 그것을 가지고 자신들을 치장할 정도로 무례의 극치에 달한 것을 고소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세상의 명예의 표상이 덕과 순결을 부패시킨 것에 대해 고소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칭찬과 허영을 사랑하는 덕은 죄와 수치의 생활에 자신을 내어 맡긴 여자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순결과 겸손은 품위와 예의에 배치되는 말과 행위는 일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허영의 과시와 터무니없는 칭찬과 찬양에서도 자신을 피합니다. 훌륭하게 질서가 잡힌 가정에서 그리고 순결과 품위가 있는 풍토에서 양육된 사람들은 모두 그와 같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이 주신 본능뿐만 아니라 이성 그 자체가, 몸이 지니고 있는 순결이 건방짐에 의해 타락하는 것처럼 영혼이 지니고 있는 순결도 칭찬에 의해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영은 인간의 순결을 망치려고 덫을 놓고, 도둑처럼 고요한 집안에 숨어 들어가서 순결하고 완전한 가르침의 우물에 독약을 넣습니다. 그리고 유혹하여 정숙한 은둔 생활에서 떠나게 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도록 노력하라고 설득합니다.
세상의 명예는 먼저 덕을 부패시킨 다음 그것을 형편없는 값으로 즉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팔아 버립니다. 바로 이것을 고소하는 것입니다.
2. 사람들의 눈에 악덕을 그것의 진상과는 완전히 달리 보이게 함으로써 그 악덕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소를 정당화하기 위해 먼저 세상의 명예에 의해 지배를 받는 자들은 한결같이 또한 필연적으로 악하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그들처럼 명예를 그들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덕보다 악덕을 더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많은 선물들 가운데 하나이며, 더욱이 그것은 그들이 한정된 능력 안에서 그들이 줄 수 있는 선물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리석게도 스스로의 교만과 무지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려고 귀중한 것들을 보관해 둔 창고에서 꺼낸 덕보다, 오히려 거의 경멸해도 좋을 만한 인간이 주는 선물을 더 좋아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참된 덕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가를 고려해 볼 때 참된 덕과는 거의 닮은 점이 없는 것에 대해서도 세상 사람들이 현혹되며, 세상의 명예가 쉽게 악덕을 신뢰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3. 하나님께만 속한 것을 인간들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신성한 위엄을 탈취하여 그것을 자신들을 치장할 정도로 그것이 무례의 극치에 달한 것을 고소합니다.
모든 선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인간 자신은 무익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리들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배를 침해하지 않고는 인간에게 어떤 선도 돌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러한 맹세만으로도 세상의 명예가 저지르는 모든 범죄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것을 빼앗아 그것을 그의 피조물들에게 돌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나는 신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참된 신분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물론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랄지라도 우리의 의식과 우리의 유한한 본성이 그것을 금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나는 신이다"라고 말합니까?
세상의 명예에 의해 신격화된 교만하고 자기 도취적인 사람들이여 ! 영원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자신을 낮추었는지를 보십시오. 인간은 교만을 통해서 그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는 반면에 하나님은 겸손을 통해 스스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속한 것을 그 자신에게 돌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스스로를 낮추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인간에게 속한 것을 취하십니다. 이것은 무례함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만이 세상의 명예를 얻은 자를 당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세상의 명예는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수치의 십자가에서 그 자신의 거룩한 인성으로 악랄하고 부패하며, 경견치 못한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그같이 하신 이유는 소위 세상의 명예라고 하는 믿을 수 없고, 변덕스로우며, 치욕스로운 것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영원히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명예
창26:12-31
서론
사람은 누구든지 명예와 지위를 좋아하고 그것을 얻기 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분주합니다. 그뿐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지상의 그 어떠한 것도 진정한 명예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 어떤 명예보다도 최고의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누구보다도 잘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i6절에 보면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삭이 부유함을 보고 한 말입니다. 이것은 이삭을 시기하여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이삭은 이러한 시기를 받았겠습니까?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복을 주심으로 농사를 져도 백 배나 받고 더욱 창대하였습니다. 그래서 거부가 되어 다른 사람보다 큰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시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심으로 다른 사람보다 훨씬 잘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최고의 명예인 것으로 알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28절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을 듣는 것은 최고의 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함께 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데 하물며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최고의 명예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최고의 명예를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보면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이삭을 보고 한 말입니다. 이삭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라고 하는 말을 들은 것은 참으로 명예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고 인정받는 것은 보통 기쁜 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역시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최고의 명예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이 세상 사람 중에서 명예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명예는 엄밀히 말하자면 진정한 명예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명예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명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잘 된다고 인정받는 것이고, 하나님에서 함께 하심으로 잘 된다고 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가장 멋있는 사람
잠1:1-6
서론
사람은 그 누구나 다 자기 나름대로의 멋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멋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라는 성경적인 인간상도 역시 멋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멋이 있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마도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고 잘 지켜 나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1. '멋'의 의미
음식에는 '맛'이 있고, 사람에게는 '멋'이 있습니다.
이 '멋'이라는 낱말은 사물을 가리킬 때는 진미가 들어있다는 뜻이고, 사람을 가리킬 때는 풍채가 들어있다는 뜻이고, 그림을 가리킬 때는 실물과 거의 같이 그려진 그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의적인 면에서 '멋'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풍채를 멋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호감을 줄 수 있는 미덕을 멋이라고 하고, 인생의 원형이선 하나님을 닮은 데가 많은 사람을 가리켜서 멋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람이란 인물이 잘 생기거나 아름답다고 해서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공부를 많이 하여 많은 지식이 있다고 해서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남보다 머리가 좋아서 높은 명예와 지위를 차지했다고 해서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진미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미덕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닮은 데가 많은 사람이 진정 멋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2. 성경적인 인간상
이것은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동시에 옛날 히브리인들의 바람직한 인간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 지혜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지혜있는 사람은 잠1'7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잠8:13에 "악을 미워하고 선과 의와 거룩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2)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현명한 사람은 겸손하게 남에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잘난 줄 알고 남을 얕보고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의 미숙성과 부족감을 인식하고 그 누구에 게든지 겸손히 배 우려고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배워서(마11:29) 자기 자신의 헛점을 채우고 자기를 성장시키면서 자아를 완성해 나아간다고 하였습니다.
(3) 자아를 제어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제압하거나 정복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을 먼저 제압하고 정복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6:32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은 요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4)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자족할 줄을 모르고 자기의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키려다가. 정로에서 탈선되는 경우가 비일 비재입니다. 그러나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자기 분수를 넘지 아니하고, 어떤 환경에나 적응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빌4:11-12에 사도 바울 선생은 자족하기를 배워서 모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5) 신, 망, 애의 사랑이라고 하였고 먼저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신뢰하고 기쁘게 사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소망의 사람은 어떤 환난 풍파라도 인내하고, 낙심치 아니하고 끝까지 견디어 마침내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이라고 하였고, 사랑의 사람은 남을 높이고 칭찬하고 도와주면서 어떤 수고라도 감수하면서 자기 희생을 사양치 아니하여 아름다운 유산을 창조해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와 같은 사람은 명예를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외부적인 면에서만 멋을 부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내부적인 면에서 멋을 지니고, 주 안에서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명예들보다 하나님을 아는 명예를 최고의 것으로 알고 그것이 우리 신자들의 멋이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모 험
성 경 활 용
1. 여행을 하는 목적
(1) 기근를 피하기 위해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여
(룻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2) 재난을 피하기 위해
(창28:1-29:1) 참조
(3)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창31:23) 라반이 그 형제를 거느리고 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
(4)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기 위해
(출8: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하나이다
(5) 복음 전도를 위해
(눅13:22) 예수께서 각성 각촌으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 위험이 따르는 여행
(1) 형 에서를 만나러 가는 야곱
(창32:3-11) 참조
(2) 바로의 추격을 받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출14:2-12) 참조
(3) 바울이 승선한 로마행의 호송선이 파선
(행27장) 참조
(4) 바울의 전도 여행
(고후11:26)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3. 정탐꾼의 임무
(1) 정복할 땅을 탐지한다.
(민1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2) 정복 시기를 알린다.
(수2:1-21) 참조
(3) 새 땅을 탐지한다.
(삿18:2-10) 참조
4. 위험을 당할 때 성도가 의지해야 할 분
(1) 하나님
(고후1:9-10)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2) 예수님
(눅8:22-24) 참조
5. 위험할 때 도움이 되는 것
(1) 하나님의 위로
(행27:22, 25) 참조
(2) 형제의 사랑
(잠17: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3) 기도
(창32:11)내가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옵소서
(4) 예물
(창32:13) 야곱이 거기서 경야하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5) 죽은 자의 부활과 소망
(고전15:29-32) 참조
관련원어풀이
1. qz"j; 하-자크
(1) 굳게 조이다, 묶다, 매다.
(사28:22)
(2) 달라붙다, 굳게 붙들다, 지속하다, 근면하다.
(신12:23)
(3) 강하다, 담대하다.
(신31:23)
(4) 견고하다, 세우다, 자신을 강건케 하다.
(창48:2)
(5)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 보이다.
(삼하10:12)
2. &r,D, 데레크
원래의 의미는 "걸어가는 행동, 여행(창30:36, 삿17:8)"이다.
(1) 길, 도로.
(출13:7, 신1:19)
(2) 길, 방법, 진로, 삶 혹은 행동의 방식.
(삼상18:14, 사8:11)
3. kivnduno" 킨두노스
위험.
(롬8:35, 고후11:26)
4. kindunevuw 킨두뉴-오-
위험이 있다, 위험을 무릅쓰다.
(눅8:23, 고전 15:30)
5. tolmavw 톨마오-
(1) 감히 ∼하다,두려워 하다, 겁에 질리지 않다, 담대한 용기를 가지다.
(마22:46, 행5:13)
(2) 견디다, 참다, 할 마음이 들다.
(롬5:7, 고전6:1)
(3) 담대하다, 용기가 있다.
(고후11:21)
6. oJdeuvw 호듀-오
길을 가다, 여행을 하다.
(눅10:33)
7. poreiva 포레이아
(1) 여행.
(눅13:22)
(2) 인생의 도상, 여행, 방식, 행동.
(약1:11)
설교예화자료
그리스도의 군병의 정신
가리발디 장군은 출전할 때, 그의 병사들에게 그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병사들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장군님, 이 전쟁의 대가로 장군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장군은 대답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엇을 얻을지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희는 아마도 굶주림과, 추위와 부상과 어리면 죽음까지도 얻게 될 것이다. " 병사들은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무기를 번쩍 쳐들면서 "우리는 당신의 병사입니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군병들에게 요구하시는 바로 그 정신입니다.
출구를 찾아라
어느 때 알프스에서 한 사냥꾼이 발을 헛디며 깊은 빙하의 틈새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별로 다친 데는 없었으나 올라가려 하여도 양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도저히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밑에는 녹은 빙수가 분류를 이루어 흐르고 있었고 사냥꾼은 할 수 없으므로 흐름을 따라 한발 또 한발 디딜 곳을 찾아 내려갔습니다. 몇 번이나 더 나갈 수 없을 듯한 난소(難所)를 만났는지 모릅니다. 그의 여러 해 동안의 경험으로는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반드시 동리에 나아갈 수가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악전 고투의 수시간 후 문득 앞길을 보니 지금까지 제법 넓었던 양측 빙벽이 갑자기 좁아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급류는 빙산 밑을 뚫고 터널을 이루어 빨려들어가고 있지 아니합니까!
"앗! 큰일났다! 모두 글렀다!"
그는 터널의 입구까지 더듬어 갔으나 올라가려고 해도 오를 수 없고 되돌아가려고 해도 되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악전고투도 마침내 여기에서 끝장인가 싶었습니다. 이제는 다만 죽음을 기다릴 뿐.
"오오 하나님이시여, 모쪼록 이 가련한 인간을 살려 주옵소서!" 그는 소리를 높여 기도드렸습니다. 급류는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그는 이윽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만있자, 상류인 입구에서 이 정도의 공간이 생기고 있으니까 하류치 따뜻한 곳에서는 더 큰 공간이 생기고 있을 것이다. 좋다! 어차피 죽을 바에는 뛰어들어 가보자!" 결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즉시 "풍덩"하고 급류에 몸을 날렸습니다. 밝던 세계가 일시에 캄캄해졌습니다. 빙수가 온 몸에 배어서 찌르는 것처럼 아픕니다. 수분 후에는 얼어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급류는 자꾸자꾸 그의 몸을 실어 갑니다.
"아아 이제 영구히 빛을 볼 수 없는 것일까? " 그의 마음은 공포와 불안과 전율에 가득찼습니다. 그 찰나 그의 몸은 쾅! 하고 빙벽에 부딪혀졌습니다. 그 순간 그의 몸은 물 속에서 두세 번 위에 내밀자 멀리 앞쪽에 반달형의 빛이 빛나 보입니다. "야! 살았다! 출구로구나!" 꺼져들려 하던 그의 몸에서도 이상한 "새생명"의 활력이 넘쳐 나왔습니다.
급류는 마침내 그를 출구에 밀어냈습니다. 보라! 거 기에는 넓은 옥야가 자애로운 햇살을 받으며 따스하게 누워있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그는 감격의 구원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실패는 유한이지만 모험은 무한이다.
(E.S. 디킨슨/ 시집)
의아심은 배반자이다. 모험은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가 손에 넣을지도 모르는 무한한 부를 잃게 하는 것이다.
(W. 셰익스피어)
정신만 바짝 차리고 좋은 충고를 해주는 사람만 있으면 반드시 잃어버리란 법도 없지. 모험은 손실이 아니야. 우리 국민은 언제나 계산이 뒷받침하는 모험을 해 왔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았던 거네.
(J.E. 스타인백/ 불만의 겨울)
한 온스의 모험심은 한 파운드의 특권보다 낫다.
(P.R. 마빈/ 책과의 사귐)
모험이 없으면 이득이 없다.
(프랑스 속담)
물질의 모험은 있어도 정신의 모험은 있을 수 없다.
(이어령/ 이것이 오늘의 세대다)
모험없이 신앙은 없다.
(S.A. 키에르 케고르)
모험자가 우리 내부에 깃들이고 있다. 그는 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인간을 만들기 위해 투쟁한다.
(W. 볼라이도/ 신에 반대하는 12가지 이유)
모험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 죽음은 하나의 아름다운 모험인 것을!
(F. C. 프로먼)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G. 초서)
나는 곧 내 운명을 향해서 나서련다. 모험! 그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내게 다가오려는 것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모든 희한한 것들‥‥‥
(A. 지드)
이 새상 모험 중에 가장 엄청난 모험은 어떤 선택된 한 사람에게 생명을 걸고 땅재주를 넘어 보겠다는 어리석은 시험이다. 이 세상 기이(奇異)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이는 국가도 못 믿고 천지도 못 믿겠다는 사람이 시시각각으로 기분에 휘날리는 어떤 개인-특히 어떤 여인-의 마음을 안 믿겠다는 안타까운 신앙이다. 그것이 못 믿을 것이라는 일반 통칙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의 예의를 찾아 헤매는 미련 가운데, 등잔불에 스스로 몸을 불사르는 날벌레의 비극이 맺혀 있다.
(김태길/ 웃는 갈대)
모험은 씩씩하고 썩지 않고 신선한 탄력이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것을 뒤집어 보면 나약과 권태와 금제의 어두운 그늘이 있다. 허무를 아는 자만이 진정한 모험을 한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덜미에 사자(使者)밥을 짊어졌다. <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한다는 뜻>
(한국 속담)
칼 놓고 뜀뛰기, 칼 물고 뜀뛰기, 칼 짚고 뜀뛰기. < * 위태로운 일을 모험적으로 행함을 일컫는 말>
(한국 속담)
어느 천둥벌거숭이가 너의 모험을 겁없이 바라보랴.
(성찬경/ 추사의 글씨에게)
스승의 이야기 주제는 생명이었다. / 어느날 그는, 제 2차 대전 매에 정글에 길을 만들/노무자들을 태우고 중국에서 버마까지 비행한/ 비행사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그 비행은 길고/ 지루해서 노무자들은 도박을 하기 시작했다. / 도박을 할 돈이 없었기에, 그들은 자기들 생명을 걸고 도박을 했다. - 진 사람은 낙하산 없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기였다. // "아유 끔찍해라!" 제자들은 몸서리를 쳤다. // "정말이다. " 스승은 말했다. / "하지만 그게 게임을신나게 만들었다. "//그날 늦게 그는 말했다. / "생명을 걸고 도박을 할 때처럼 충만히 살 때란 없다. "
(앤소니 드 멜로/ 모험)
모험은 그의 화관.
(H.H. 닙스/ 여행)
그대를 기억하면/ 우리는 용감하고 강해지며/모든 위험한 날을 만세 부르며 환영하고/노래를 부르면서/큰 모험에 직면할 수 있다.
(M. 베버링/ 줄리안 그렌펠)
설 교 노 트
처음보다 나은 끝
전7:8, 행20:22-24
서론
흔히 속담 중에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작이 귀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마치는 것은 시작보다 좀더 중요합니다.
전도서 7장 8절에 보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잘 마쳐야 하는 것은 좀더 중요한 일입니다.
1. 좋은 끝을 가지려면 먼저 목표가 뚜렷해야 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그것이 곧 바울이 바라보는 목표였습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매년 교문을 나서지만 인생의 목적에 관한 무관심한 청년들이 많기 때문에 성공하는 예가 적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다도 먼저 인생의 생명의 의의를 깨닫는 생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알고 그 뜻에 복종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그 지으신 뜻을 이루어 나갈 때에 처음은 보잘것없는 인생이지만 점점 무르익어 아름답게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기본 원형이 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말구유에서 나시고 온갖 고난을 겪으셨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 영광의 자리에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생은 시작보다 끝이 더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의 회개한 강도는 비참한 악인이었으나, 지금 그는 죄의 흔적도 없는 하나님 형상대로의 무한한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2. 힘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필사의 노력을 다 하였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신앙생활을 경주로 비유하였습니다. 꾸준히 달려야 마지막 골인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바로 마라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집을 짓는 것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집은 되는 대로 막 지으면 허물어지게 됩니다. 터를 닦고 기초를 세우고 재료를 하나씩 잘 쌓아 올려야 견고하고 튼튼한 집이 되어서 사람들이 살기에 좋은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계속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바른 신앙 안에서 뜻있는 일을 발견한 다음에 그것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여 계속하여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신앙적 모험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모험입니다. 세상에 모험하지도 않고 성공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더욱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목숨을 던지는 모험이 필요합니다.
특히 우리 성도들에게는 신앙적 모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것을 생각하면 당장에 주님 믿는 것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것을 모험으로 여기고 나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것은 그 끝이 실패가 될 것이나 주님을 믿는 신앙적 모험을 하는 자는 지금은 고달프고 어려울지라도 끝은 반드시 주 안에서 거하는 성공이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체가 대모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성장을 하기 위해 힘써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생의 목표가 정해졌는지, 그리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는지 살펴보고 우리에게 있어서 좀더 큰 신앙적 모험이 필요하지 않은지 다시 한 번 재검토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4:16
서론
아하수에로 왕 당시에 에스더는 왕비가 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만의 흉계로 인하여 공포된 유다인 총학살령이 내린 후 모르드개의 간곡한 권면을 받은 왕후 에스더는 아주 비상한 각오를 하였습니다. 본문에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3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깊고도 무거운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으니 이것은 아주 큰 목숨을 건 모험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1. 죽음은 불가피적입니다.
죽음이 찾아오는 때에는 사람이 그것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하였고, 죽음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왕상2:2). 이 길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부모의 매질을 피하여 달아나는 아들이 있는가 하면, 경찰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치는 죄인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체포령이 내렸어도 국경을 탈출하여 망명의 길을 오를 수도 있고 또 이런 방법이 죽음에서 사는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죽음의 때는 사람이 피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더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민족이 전부 학살을 당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자신도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왕후의 자리에 있다고 하여도 왕이 부르지 않으면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는 것이 그 당시의 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앞에 나가는 것은 바로 목숨을 내건 모험인 것입니다. 만약 왕의 눈에 밉게 보이면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참된 의는 죽음에 승리합니다.
불의를 행하면 살고, 의를 행하면 죽을 경우가 되면 참 신앙인들은 의를 취하고 불의를 배격하여 죽음을 선택합니다. 만일 불의에 굴복하면 그 당시 잠시는 사는 것 같으나 결국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개죽음입니다. 사람이 개같이 죽는다는 것 이상의 수치와 모욕은 다시없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결심은 죽음 때문에 의를 버리지 않겠다는 굳은 심산입니다.
죄 없이 억울하게 죽게 되는 자신의 동족들을 모르는 척하고 내버려 둘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자신의 왕후 위치가 흔들리어 폐위가 되고 추방이 되는 한이 있어도 동족을 구출하기 위하여 보다 더 하나님 앞에 신앙적으로 양심의 가책이 없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왕 앞에 나섰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목숨을 구구히 유지하려면 오히려 죽고, 목숨을 예수님을 위하여 잃는 자는 도리어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0:39). 의는, 참된 의는 죽음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참된 의를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사람의 생명보다 이 세상에서 귀한 것은 없습니다. 천하를 다 얻고도 생명을 잃는다면 천하를 얻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대모험가였습니다.
그 귀중한 생명을 내걸고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여 결사적으로 나서면 해결 못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신앙적 모험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모험은 결단을 요합니다. 자신의 생명이라도 내어 놓겠다는 결단이 있어 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주님을 위하여 내 생명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모험과 결단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잃게 되면 잃으리라
창43:14
서론
요셉이 애굽 총리로 있을 때 큰 흉년이 7년 동안 있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심하여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하여서 곡식을 사다가 먹었는데, 그 양식이 다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다시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양식을 구하여 오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으니 요셉의 친동생이며,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 아들 베냐민을 동행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 유다의 책임있는 강청
야곱이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오라고 하였을 때 넷째 아들인 유다가 간청하기를 창세기43장 3-5절에 "그 사람이 엄히 우리에게 경계하여 가로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사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않으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장자 르우벤은 이미 진언하여 거절을 당하였고, 차자 시므온은 애굽에 인질로 남아있고, 제 3자 레위는 세겜인 학살사건으로 인하여 아비 앞에 나설 용기가 없었으니 유다가 나설 수밖에 없는 차례입니다.
유다는 베냐민의 안정에 대하여 그 책임을 완수한다는 것을 극력히 역설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도 역시 모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2. 후한 예물을 가지고 가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결사적인 간청을 물리칠 수 없게 된 야곱은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고 하며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후한 예물을 들고 가서 총리대신의 마음을 사서 사정하여 화가 미치지 않도록 해 보자는 유화 정책이었던 것입니다.
그 예물의 내 역은 유향, 몰약, 향품, 꿀, 비자, 파단행이니 이것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의 특산품이요, 특히 애굽에서는 별로 나지 않으므로 매우 귀하게 여기는 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양식이 없으면 그러한 예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들을 잃게 된다면 다른 천만금을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3.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라는 결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드디어 아들들에게 "너희 손에 돈을 배나 가지고 너희 자루 아구에 도로 넣어 온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차착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창43:12-14).
이것은 참으로 큰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형편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아들 시므온은 애굽에 인질로 잡혀있고, 식량이 없으니 굶어 죽게 될 형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론
매사에 결사적인 각오는 비상한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자식의 생명을 내건 모험은 대모험이요, 신앙의 결단인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