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대백과 사전 < 4 권> 사랑

설교종합자료백과

 

 

 

 

 

 

 

 

 

 

 

 

 

사 랑

성 경 활 용

1. 사랑의 4가지 유형

(1) 형제의 사랑

(창43:30) 요셉이 아우를 인하여 마음이 타는 듯하므로

(2) 하나님(신적) 사랑

(눅15:20)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3) 성도간의 사랑

(롬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4) 부부의 사랑

(딛2:4)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2. 성도가 사랑할 대상

(1) 하나님

(신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2) 하나님의 계명

(시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3) 하나님의 성전

(시26:8)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시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4) 하나님의 백성

(롬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살전2:8)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3. 선한 사랑에 대한 성령의 표현

(1)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우선이다.

(마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2) 슬픈 일에는 통분히 여기신다.

(요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3) 하나님을 열심으로 사모한다.

(시69:9)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갈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 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4)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마음이 뜨거워진다.

(눅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5) 식어지지 말아야 한다.

(마24:14)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6)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향한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 악한 사랑의 특성

(1) 가식적이다.

(마26:49)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2) 자신과 돈과 쾌락을 사랑한다.

(딤후3: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3)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하지 않는다.

(겔33:31)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는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 욕을 좇음이라

(4) 이 세상을 사랑한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5. 영적인 사랑

(1) 하나님의 사랑받는 그리스도

(마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2) 주 안에 있는 동역자들

(롬16: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관련원어풀이

1. bh'a' 아-헤-브

(1) 바라다, 갈망하다, 사랑하다, 즐거워하다.

(창22:2, 24:67, 34:3, 수22:5, 삿5:

31)

(2) 사랑하다, 애지중지하다, 다정스럽게 대하다.

(삼하1:23, 시24:12)

(3) 사랑하는 자.

(렘22:20, 22, 30:14)

(4) 사랑.

(신7:8, 삼하1:26, 왕상10:9, 대하2:11, 9:8,잠10:12)

 

2. bb'j; 하-바브

사랑하다.

(신33:3, 시10:37)

 

3. $pej; 하-페-츠

호의를 가지다, 즐거워하다, 사랑하다.

(창34:19)

 

4. !['nO 나-엠-

즐거워하다, 소중히 하다, 아끼며 사랑하다.

(시9l:14)

 

5. d/D 도-드

사랑,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자.

(아1:2,4, 2:3,8,9,4:10,16,사5:1)

 

6. ajgapavw 아가파오-

(1) 잘 되기를 바라다, ~을 오히려 좋아하다, 즐거움을 가지다, 사랑하다.

(마5:43,44:46,6:24, 막10:21,눅6:27, 고전2:9, 엡2:4)

(2) 애정, 선의, 호의, 긍휼, 사랑.

(마2:15, 4:12, 요5:42, 엡3:17, 18, 히6:10)

 

7. filevw 필레오-

다정하게 친구로서 대하다, 사랑하려고 하다.

(요5:20, 12:25,20:2,고전16:22,딛3:15)

 

8. cavria 카리스

은혜, 고상함, 매력, 사랑스러움.

(딤후8:4)

 

9. filhvdono" 필로데오스

하나님을 사랑하는.

(딤후3:4)

설교예화자료

발 견

 

로제티(Rossetti)의 그림 중에 '발견이라는 뛰어나고 의미 깊은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에 얽힌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입니다. 한 시골 소년과 소녀가 깊이 사랑하고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의 사랑을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악마의 뫼임에 빠져 큰 도시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녀는 과거의 순결하고 행복했던 생활을 내던지고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마저 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했던 소년은 애인을 찾아 어디든지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는 블랙프라이어 다리에서 초췌한 차림의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의 변함없는 사랑을 얘기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애인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의 행방

 

역사학자 토인비 박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정반대의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모두 다 욕망을 의미하지만 하나는 "주고 싶다"라는 욕망이며, 다른 하나는 "레앗고 싶다"라는 욕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말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사랑이 난무하면서도 내일이면 전무해지는 이 시대에 의미심장하게 들려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이 빼앗는 사랑에는 익숙하다 못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렇게 외쳐보고 싶습니다.

"사랑아, 너는 어디 있느냐."

 

 

왼쪽 뺨도 때리세요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경북 안동군 풍천면 구담 동네 강진홍 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강 전도사님은 교회가 없는 구담동에서 날마다 전도에 힘썼습니다.

어느 날 오후, 강 전도사님은 시장에 전도하러 나갔다가 김이연이라는 막난이를 만났습니다. 김이연은 어른도 아이도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행패를 부리는 깡패였습니다. 강 전도사님은 못 본 체 김이연을 피해 재빨리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때 벌써 술이 곤드레 취한 김이연이 비틀걸음으로 다가와 앞에 우뚝 막아서더니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뺨을 철썩 때리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당신, 너무 거만해. 왜 걸음을 삐닥하게 걷는 거야!"

김이연은 강 전도사님의 몇째 아들뻘밖에 되지 않습니다. 강 전도사님은 50대이고, 김이연은 아직 새파란 청년입니다.

강 전도사님은 재빨리 김이연의 오른손을 만져 주며 말했습니다.

"얼마나 아프십니까? 이번에는 이쪽 뺨을 때리세요."

왼쪽뺨마저 돌려댑니다. 김이연은 그 자리에 꿇어앉아 빌었습니다.

술이 확 깨어옵니다

"제가 훌륭하신 분을 몰라 뵙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강 전도사님은 김이연을 일으켰습니다.

강 전도사님의 뜨거운 사랑에 깡패 김이연도 녹아진 것입니다.

 

 

사랑하기에 너무 바쁜

 

아버지와 어린 딸은 매우 좋은 친구였으며 서로간에 훌륭한 조언자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는 딸의 태도가 변화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가 산보가자고 할 때 딸은 갈 수 없다고 하며 미안해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슬퍼 하였으며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생일날, 딸은 "제가 만들었어요." 하며 이상하게 만들어진 슬리퍼를 선물했습니다.

아버지는 지난 석 달 동안 일어났던 일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나는 너의 선물에 아주 기쁘단다. 하지만 다음에는 슬리퍼는 사고, 나는 너와 함께 하루 종일 같이 지내길 바란단다. 나는 자식이 나를 위하여 만들어 준 어떤 것보다 나의 자식을 더욱 좋아한단다. "

우리 중 몇몇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엔 너무 바빠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들의 일, 노력, 인내 등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너희들의 나에 대한 사랑이다. "

 

 

사랑이 제일이다

 

한 소녀가 불행하게 뇌성마비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보고,듣고, 말하는 기능과 그리고 내장과 소화기 이외에는 전신이 마비되어 버린,그야말로 산 송장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소녀의 절망은 처절하였습니다. 아름답기만 하던 꿈이 무참하게 부서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목숨은 죽음보다도 더 질긴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애뜻한 뒷바라지를 받으면서 침대에 눕혀진 채로 죽지 못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예전엔 평범하게만 여겨졌던 신앙생활이 이제는 뼈가 부서지도록 절실하게 생각되어졌습니다. "주님, 이제 제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나이다. " 소녀의 피를 토하는 절규였습니다.

이때 문득 성구 한 구절이 섬광처럼 떠올랐습니다. "사랑이 제일이다"라는 말씀이 곧 그것입니다. '그렇다, 나는 남들처럼 다른 무엇을 할 수 없어도 사랑만은 할 수 있습니다. ' 이 생각이 소녀의 마음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비로소 소녀의 얼굴엔 생기가 피어 올랐습니다.

어느 날 소녀는 어머니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어머니, 고생되지만 아침 저녁이면 제 침대를 대문 곁으로 옮겨 주셨으면 해요" 어머니는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면서도 딸을 위로할 수 있는 기대감으로 아침 저녁이면 소녀가 누운 침대를 대문 곁으로 옮겨 주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날부터 소녀의 저 아름다운 인사가 함께 시작된 것입니다.

소녀의 집으로부터 멀지 않는 곳에 큰 방직공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공장의 많은 여자 종업원들이 아침 저녁이면 소녀의 대문 곁길로 출퇴근하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 종업원들을 향하여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는 출근하는 종업원들을 향한 아침 인사였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이는 퇴근하는 종업원들을 향한 저녁 인사였습니다. 그리고 인사를 할 때마다 상대방을 향하여 꼭꼭 밝은 미소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침대에 뉘인 채 얼굴만 조금씩 끄덕거리면서 말입니다.

중업원들을 저 불구 소녀의 인사를 처음엔 대수롭잖게 여겼지만, 그러나 날이 가면서 그인사가 정겨워갔습니다. 소녀의 아침 인사는 하루 종일의 일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었고, 저녁 인사는 하루의 피로를 상쾌하게 풀어주었습니다.

얼마 후엔 많은 종업원들이 저 소녀의 인사가 없이는 견딜 수 없으리만큼 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퇴근하는 종업원들의 눈에 뜻밖에 소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보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그 이튿날도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3일이 가고 5일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소녀는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조함을 견디지 못한 종업원 몇 사람이 퇴근길에 소녀의 대문을 밀치고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소녀의 어머니로부터 비통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소녀가 죽어서 땅에 묻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소녀의 대문곁을 오고 가던 종업원들은 서로 붙들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소녀 무덤은 자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짜기에 초라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아직 싱싱한 꽃다발이 여럿 놓여 있고, 그리고 잘 다듬어진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 있었습니다.

"여기 누워 있는 소녀의 밝은 미소는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다. - 00방직 종업원 일동-"

참으로 사랑은 제일인 것입니다.

 

 

사랑의 힘

 

홀트 아동 복지로 유명한 홀트 씨의 딸도 그 아버지 못지 않게 훌륭합니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고아들을 위해 헌신한 진실한 크리스찬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하루는 신체부자유아들과 식사를 하는데 옆에 아이가 그 자리에서 대소변을 배설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눈하나 깜짝 안하고 스푼을 내려놓더니 그 아이를 깨끗하게 다 및은 다음 다시 데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식사를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것을 본 사람이 "당신은 어떻게 그런 일을 자원해서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내 마음은 기쁘기 한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는데 내가 이웃을 위해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

자기 동포도 아닌 다른 사람, 그것도 건강하지 않은 신체부자유아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랑

 

솔로몬 왕에게는 매우 현명하고 아름다운 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꿈을 꾸고, 딸의 미래의 남편이 그녀에게 알맞지 않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예감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행위가 어떠한 것인가를 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딸을 어느 작은 섬에 데려가서 그곳에 떨어진 궁에 감금하고 둘레에는 높은 담을 둘러싸고 감시병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열쇠를 가지고 돌아와 버렸습니다.

왕이 꿈에 본 상대의 사나이는 어딘가의 황무지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는 밤에 추웠기 때문에 사자의 시체가 있는 곳에 가서 몸 속에 들어가 잠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새가 와서 사자의 털가죽 채로 사나이를 들어 올려 공주가 갇혀 있는 왕궁 위에다 그것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공주와 만나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에 승리하는 것이며, 먼 섬에 데려가서 감금하여도 허사인 것입니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야 맙니다.

 

 

애정

 

세계에는 12개의 강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돌입니다. 그러나 돌은 쇠로써 깎입니다. 쇠는불에 녹아 버립니다. 불은 물로 꺼져 버립니다. 물은 구름 속에 흡수됩니다.

그 구름은 바람으로 날려 버립니다. 그런데 바람은 인간을 날려 버리는 일은 절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인간도 공포에 의해서 비참하게 분쇄되어 버립니다. 공포는 술로 제거됩니다. 술은 잠에 의해 깨게 됩니다. 그 잠은 죽음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도 애정에는 승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형제

 

이스라엘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은 결혼하여 아내도 아이들도 있었고 동생쪽은 독신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부지런한 농부였는데, 부친이 죽자 재산을 두 사람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수확한 사과나 강냉이는 서로 공평하게 이등분하여 제각기 헛간에 간수했습니다. 밤이 되자 동생쪽은 형님은 형수와 아이들이 있어 대단히 고생이 될 터이니, 자기 물을 조금 나누어 주려고 생각하여, 형님쪽의 곳간에 많은 양을 옮겨 놓았습니다.

형님은 또 반대로 자기는 아이들이 있어서 늙으면 잘 보살펴 줄 것이고, 동생은 독신이므로 늙을 때를 위해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역시 강냉이나 사과를 동생의 곳간에 날라 놓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형제가 잠을 깨어 자기 곳간에 가 보자 어제와 같은 양의 수확물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다음날 밤도 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 사흘 밤 계속되었습니다. 그 다음 날도 형제가 서로상대방의 곳간으로 나르는 도중, 중간에서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얼마나 생각했던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들었던 농작물을 내던지고 부등켜안고 울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안고 울던 곳이, 예루살렘의 가장 고귀한 장소라고 오늘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기를 벗어난 부부

 

결혼하여 십 년이 지난 부부가 있었습니다. 매우 사이가 좋은 부부여서 표면적으로는 퍽행복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이혼 허가를 내게 요구해 왔습니다. 나는 그 부부를 전부터 잘 알고 있었으므로 설마 결혼생활이 잘되어 가지 않는다고는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으니 헤어지라고 자기 친족들로부터 강요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유태의 전통에 따르면, 결혼하여 십 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으면 이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도 아내도 헤어지기가 싫었습니다. 그들은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족쪽에서 매우 심각한 압력을 가하므로, 그는 어찌할 수 없게 되어, 내게로 의논하러 온 것입니다.

다음에 두 사람이 찾아왔을 매, 나는 이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랍비는 이혼에 대해서는 언제나 반대 입장입니다. 그것은 나쁜 아내를 한 번 얻은 사람은, 헤어져도 다시 똑같은 잘못을 다만 무의미하게 되풀이할 뿐으로, 또 나쁜 아내를 얻게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랑하고 있고 아내와 이혼함에 아내가 굴욕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가 않았으므로 될 수 있는 대로 평온하게 헤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적 발상법을 썼습니다.

아내를 위한 성대한 파티를 열고, 그 자리에서 몇 년간이나 자기와 함께 살아온 아내가 얼마나 훌륭했던가, 모든 사람 앞에서 인사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는 이 충고를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 까닭은, 싫다는 이유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든 명백히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를 그것으로 덫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헤어지는 아내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하고 싶다고 하므로 무엇을 선물하겠느냐고 묻자, 그녀가 진심으로 귀중하게 계속 가질 수 있는 것을 주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파티가 끝났을 때 그녀에게,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하나만 갖고 싶은 것을 말하면 무엇이든지 그것을 주겠습니다. "고 말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녀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파티가 끝난 뒤, 내가 충고한 대로 남편은,

"무엇인가 갖고 싶은 것을 하나 주겠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이튿날 내가 입회한 가운데 그녀는 헤어진 남편에게 무엇을 갖고 싶은가를 대답하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단 하나 남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이혼을 취소하고 그 후 아이가 둘 생겼습니다.

 

 

선행의 씨앗

 

쟈니는 직업을 잃게 되자, 죽기보다 싫었던 구걸을 나서야 했습니다. 어느 겨울날 식당문간에 서 있다가 식당으로 들아가는 한 쌍의 남녀에게 구걸했습니다.

"미안하오! 잔돈이 없소." 남자의 대답이었습니다. 이때 함께 가던 여인이 나서서 "무슨 일이예요?"라고 물었습니다. "음식값을 달래지 않아!" 남자의 대답이었습니다. 이때 여인이 "떨고 있는 사람을 밖에 두고 어떻게 우리만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겠어요, 여보?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남자의 대답이었습니다.

"내가 좀 주어도 괜찮죠?" 여인이 그렇게 말하더니 이번에는 쟈니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기 돈 천 원이 있습니다. 음식을 사 잡수세요. 용기 잃지 마십시오. 어딘가 직업이 있을 겁니다. 직업을 찾도록 기도하겠어요."

쟈니는 이때 "부인, 고맙소! 부인은 남에게 새 출발과 새 가슴을 주었소. 내 잊지 않을 거요."라고 말했습니다.

부인은 "당신은 예수의 떡을 먹는 겁니다. 이 떡을 다른 이에게도 주십시오."라고 공손히말했습니다. 돈 천 원을 받은 쟈니는 5백 원을 남기고 5백 원으로 음식을 사서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로 자기 앞에는 굶주린 늙은이가 있지 않습니까? 나머지 5백 원으로 음식을 사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늙은이는 먹던 음식을 종이에 싸고 있었습니다. "내일 먹으려고 싸갑니까?"라고 자녀는 물었습니다. "아니오,저 길가에 꼬마 신문팔이 아이가 있소, 내 그놈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오!"

둘이는 빵조각을 싸가지고 아이에게로 갔습니다 아이 가 미친 듯이 빵을 먹는 동안 길을잃은 개가 가까이 왔습니다.

그 아이는 나머지 빵을 그 개에게 주었습니다. 예수의 떡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기쁨으로 신문을 팔러 뛰어가고 늙은이는 일감을 찾으러 나섰습니다. 쟈니에게 길을 잃은 개가 가까이 왔습니다.

쟈니는 길을 잃은 개의 목에서 주소를 찾았습니다. 잃었던 개를 되찾은 주인은 너무 고마워 만 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같이 양심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십시오."

내가 뿌린 씨의 열매를 내가 거둘 수도 있습니다. 또 그 열매를 다른 사람이 즐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간에 사랑과 선행의 열매들은 우리의 인생을 보다 기쁘게 그라고 즐겁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이긴 사랑

 

오랜 전 미국 서부 지역의 한 시골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외딴 어느 산골에서 요한이란 이름의 남자와 그의 아내 베티와 그들의 어린 두 자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요한과 베티는 외딴 산골에서 큰 농장의 꿈을 키우며 그들의 땀으로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려고 애쓰는 용감한 농부였습니다.

요한은 일주일에 한 번 멀리 떨어진 마을에 나가 장을 보아야 했는데, 하룻길이나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마을에 나가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 경우 베티는 한 살도 못된 아들과 네살된 딸을 데리고 이틀을 혼자 보내야 했습니다.

베티는 개척자의 정신을 가진 아주 용기 있고 담대한 아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골에 혼자 남아 짐승들의 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낼 경우에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아내에게 키스를 하고 멀리 장을 보러떠난 뒤였습니다. 밀린 여러 가지 일 때문에 하루 이틀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을 남긴 채 남편은 떠나갔습니다.

혼자 집에 남은 베티는 그날 그녀가 해야할 일에 분주해 있었습니다. 그날 마침 베티로서는 빵을 굽는 날이었습니다. 그녀가 할 일은 먼저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한 장작을 쪼개는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부엌 안에서 놀게 한 뒤 집 뒤뜰로 나가 도끼와 통나무 하나를 집어들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일은 벌어졌습니다. 통나무더미 속에 기어들어가 있던 큰 독사뱀 한 마리가 순간적으로 베티를 덮쳐 그녀의 다리를 물어 버렸습니다. 바로 그 다음 순간, 베티는 들고 있던 도끼로 정신없이 그 독사뱀을 내려찍어 그 뱀은 여러 토막이 난 채 죽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자기가 독사에게 물린 사실을 알았고, 또 그녀의 혈관 속에 독이 스며들어 결국 오래지 않아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린 두 아이는 어떻게 될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도와줄 가까운 이웃도 없지 않는가? 아들 쟈니는 이제 태어난 지 겨우 열 달밖에 안 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처지이고, 딸 키티는 겨우 네 살이 아닌가?

베티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래 생각할 신간도 없었습니다. 아직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을 때 저 어린것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먹을 것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빵도 빨리 구워 놓아야지, 우유를 손닿는 데 놓아두고 빵만 만들어 놓으면 그들은 아빠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뜨거운 여름 햇살은 더욱 뜨겁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빵을 굽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힘이 점점 없어지고 눈도 점차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계속 기도하면서 나무를 쪼개 아궁이 앞에 쌓아놓고 어린 딸에게 불이 꺼지지 않게 계속 나무를 던져 넣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어린 딸에게 조심스럽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곧 엄마는 아주 오랜 깊은 잠에 빠지게 될 터인데 너는 네 동생 쟈니를 잘 돌봐주어야 돼, 빵도 먹이고 우유도 먹이고‥‥‥‥

베티는 여러 번 반복해서 키티에게 설명했습니다. 베티는 이마에서 그리고 그의 온몸에서 많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뜨거운 아궁이 앞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자녀를 위해 애쓰는 힘들고 바쁜 동작 때문에 그의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줄줄이 흘러내린 그 많은 땀 덕분에 그녀의 혈관에서 독이 씻겨져 나와 그녀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될 줄은 베티 자신도 알지 못했습니다. 만약 베티가 가만히 주저앉아 종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녀는 분명히 죽어 버렸을 것입니다. 물론 그녀는 기진한 채 무의식 상태에 빠져 누워 버렸지만, 여하간 생명을 구했고 결국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땀을 흘렸고 그래서 그것이 혈관의 독을 씻어내서 생명을 구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이 하나의 기적이었을까요? 아마도 그 대답은 무력한 자를 도우려고 하는 희생적인 사랑이 그녀 자신을 살렸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 때, 죽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나환자와 프란체스코

 

성 프란체스코는 1202년 중병을 앓은 후로 일생을 오직 가난한 사람과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은 평생 거지로 살면서 주님을 위해 일생을 마쳤습니다.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휘몰아치는 밤 누군가가 프란체스코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초라한 거지 한 명이 비에 온몸이 젖은 채 벌벌 떨면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쾌히 그 거지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후 프란체스코는 거지의 모습을 살펴보다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코가 문드러져 나간 나환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조금도 이에 구애받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프란체스코가 막 잠들려 할 때, 거지가 다가와서 추워 죽겠으니 프란체스코의 침대에서 같이 잘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는 그 나환자와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피고름과 진물이 마구 흘러내린 나환자 때문에 코로 숨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프란체스코는 오히려 자신의 두 팔로 거지를 안았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이 되어 프란체스코는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옆자리에 누워 잤던 거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행방이 묘연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다시 잠자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같이 잔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오히려 방안은 깨끗해 보였고 빛났으며 냄새마저 향기로웠습니다. 이때 프란체스코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기쁨에 넘쳐 눈물로 부르짖었습니다.

"오! 하나님이시여, 어찌하여 문둥병자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 흉악한 죄인이 주님과 함께 동침을 했으니 무어라 기쁨을 표현할 길이 없나이다. "

 

 

사랑이 살린 생명

 

보이스카우트 단원과 주교와 학자 세 사람을 태운 영국 여객기가 고장이 나 곧 추락할 순간이었습니다. 조종사가 "여러분 침착하십시오 불행하게도 이 비행기는 곧 추락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낙하산은 세 벌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조종사는 "하나는 내가 사용해야겠군요, 내가 살아 남아야 이 사고의 경위를 밝힐 수 있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때 학자도 덤벼들어 "나도 앞으로 인류를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해야 되니까 살아야겠소." 하며 조종사와 같이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습니다. 그러자 주교가 보이스카우트단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그동안 참 오래 살았다. 너는 앞이 창창한 사람이니 남은 낙하산은 네가 메고 뛰어내려라. 자, 그럼 행운을 빈다. " 그러자 소년은 "주교님, 아무 걱정 마십시오. 아직 두 벌이나 남아 있어요. 아까 그 학자님이 가방을 낙하산인 줄 잘못 알고 메고 뛰어내렸거든요." 라고 말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사랑은 아름다운 꿈이다.

(W. 샤프/ 슬픈 마음)

 

사랑이란 광증이요, 불꽃이며, 천국이며, 지옥이다. 그곳은 쾌락과 고통과 슬픈 후회가 사는 곳이다.

(R. 반필드/ 목동의 만족)

 

사랑은-인생의 앞쪽이요-죽음의 뒤쪽 -창조의 으뜸이며 이 땅의 선이다.

(E. 디킨슨/ 제917번)

 

사랑은 병영과 법정과 숲을 지배한다. - 사랑은 천국이요, 천국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다.

(G.G. 바이런/ 돈 주안)

 

사랑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고기도 아니요, 음료도 아니며, 선잠도 아니고 비를 막는 지붕도 아니다. 그것은 또, 물에 빠진 인간에게 떠다니는 재목도 아니다.

(E.St.V. 밀레이/ 사랑이 전부가 아니다)

 

아주 젊은 사람들이 갖는 사랑은 무정한 거래이다. 그 시절에는 목말라서 술을 마시든가 취한다. 술을 개성적으로 마시게 되는 것은 인생의 후반기에서만 있는 일이다

(I. 디너슨/ 7가지 공포소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다른 사람의 몸 속에 거처한다.

(플루타르쿠스/ 영웅전)

 

사랑은 타인의 행복이 너 자신의 행복에 필수물이 되는 상태이다.

(P.A. 하인린/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

 

사랑이 없는 인생은 여름이 없는 사계(四季)와 같다.

(스웨덴 격언)

 

사랑은 美의 중개에 의한 생식의 욕망이다.

(몽테뉴/ 수상록)

 

지상의 모든 생물-인간 ·야수 ·고기 · 가축 · 조류-모두가 사랑의 불길에 쇄도한다.사람은 모든 것의 왕이다.

(베르길리우스/ 농경시)

 

우리가 사랑이 라 부르는 것은, 타인의 몸과 마음속에, 우리 위치에서, 우리가 확신하지 않는 自我를 우쭐하게 해주는 책임을 일깨우고, 일깨운 채로 유지시키려는 욕망이다.

(P. 제랄디/ 인간과 사랑)

 

모든 참사랑은 존경에 입각한다.

(G. 빌리어/ 진실한 사랑)

 

사랑은 욕망이라는 강에 사는 악어이다.

(바르트리하리/ 離欲百頌)

 

청춘은 한때요, 아름다움은 꽃이다. 그러나 사랑은 세계를 얻는 보석이다.

(M. 오닐/ 미는 꽃이다)

 

사랑의 본질은 정신적인 불이다.

(스베덴보리/ 진정한 그리스도교)

 

사랑과 전쟁은 똑같은 것이며, 전략과 정책은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에서도 허용된다.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사랑은 마음의 폭군이다. 그것은 이성을 어둡게 하고, 분별을 혼란시키고, 충고에 귀먹게한다. 그것은 필사적인 과정으로 치닫는 저돌적인 광증을 달린다.

(J. 포드/ 연인의 우울)

 

사랑은 가장 달콤한 기쁨이요, 가장 처절한 슬픔이다.

(P. J. 베일리/ 축제)

 

사랑은 끝없는 신비이다. 그것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R. 타고르/ 개똥벌레)

 

사랑이란, 완전히 알려지고 모조리 용서받으려는 마음의 분별의 갈망에 불과하다.

(H. 밴 다이크/ 사랑)

 

사랑은 파수를 맡아 줄 친구를 가지려는 열망이다.

(헬리팩스 공작/ 딸에게의 충고)

 

남자의 사랑은 인생의 부속품, 여자의 사랑은 인생의 징검다리.

(오소백/ 단상)

 

소녀의 사랑은 시 이며, 중년 부인의 사랑은 철학이다.

(하세카와 뇨제칸/ 如是閑語)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첫째는 그것이 황홀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 황홀 너무나 찬란해서 몇 시간의 이 즐거움을 위해서는 남은 생애를 전부 회생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일도 가끔 있었다. 둘째로는 그것이 고독감을-하나의 떨리는 의식이 이 세상 너머로 차고 생명 없는 끝없는 심연을 바라보는 그 무서운 고독감을 덜어 주기 때문에 사랑을 찾아 다녔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랑의 결합 속에서 성자와 시인들이 상상한 천국의 신비로운 축도를 미리 보았기 때문에 사랑을 찾았다.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사랑은 자기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그 자체의 가치이다.

(T. 와일더)

 

사랑이란, 사람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보다 가장 다르게 보고 있는 상태이다. 환상의 힘은,달콤하게 하는 힘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사람이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그는 다른 때보다 더 잘 참으며, 만사에 순응한다.

(F.W. 니체/ 그리스도의 적)

 

열렬한 사랑의 1시간은, 지리한 생활 1년의 가치가 있다.

(A. 벤/ 배회자 제2부)

 

사랑은 동그라미로서, 똑같은 사랑의 달콤한 영원 속을 끊임없이 맴돈다.

(R. 헤리크/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홍역과 같다. 그것은 인생에서 늦게 올수록 더 나쁘다.

(D.W. 제럴드/ D. 제럴드의 지혜와 사상)

 

사랑은 여기, 즉 두 고독한 사람이 서로 보호하고 접촉하고 인사하는 데에 존재한다.

(R.M. 릴케/ 젊은 시인에게의 편지)

 

사랑은, 무한히 용서하는 행동이며, 습관이 되어 버리는 상냥하게 보아주는 것이다.

(P. 유스티노프)

 

남녀의 사랑도 그 열이 식어 버리고,남편도 그 아내를 미워할 줄 알게 되지만, 어버이의 사랑만은 평생 계속할 수 있다.

(R. 브라우닝/ 피파는 지나간다)

 

사랑은 만인의 편두통이다. 영상에는 밝은 얼룩이 있고, 理性까지 더럽힌다.

(R. 그레이브즈/ 시선집)

 

사랑은 홍역과 같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거쳐가야 한다.

(J.K. 제롬/ 게으른 친구의 게으른 생각)

 

사랑이란 아주 차분하고도 친밀한 싸움이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사랑은 인간의 보다 무거운 업무이다.

(C. 시버/ 하려다 하지 않으려는 여자)

 

인간의 사랑은, 종종 두 사람의 연약성이 만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F. 모리악/ 카인아, 네 형제는 어디 있는가?)

 

사랑은 두 사람의 자기중심주의이다.

(A.D. 살)

 

사랑과 삔 자리는 자칫 재발되기 쉽다.

(스페인 속담)

 

죽음보다 강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사랑이다.

(T. 만/ 마의 산)

 

사랑은 인생의 소금이다.

(J. 세필드/사랑의 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가 없으면 내가 하려고 해도 왕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의 짐을 수행하고 본분을 다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8세)

 

사랑은 네 마음이 나약하고 함정에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면 이해하기 간단하다. 그것은 목발이다. 그뿐이다. 그리고 목발이 필요치 않은 사람은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없다. '

(N. 메일러/ 바바리 해안)

 

참사랑이란, 평생 익는 과일이다.

(라마르틴/ 목가)

 

사랑을 미덕의 아침, 미움은 죄의 저녁.

(라트비아)

 

사랑은, 죽음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하는 것이다.

(콘그리브/ 더블딜러)

 

참으로 사랑은 그것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연소시키는 맹목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우리들의 삶을 보람찬 것으로 이룩하기 위하여 그것(사랑)이 소중할 뿐이다.

(박목월/ 사랑의 결합에 대하여)

 

사랑은 싱싱한 동안에는 좋지만, 좁이 없어져 쓴맛만 남으면 버려야 하는 야자 열매와 같다.

(B. 브레히트/ 바알)

 

사랑은 현실적 환희로 인도하고 다음에는 고통으로 이끈다. 그러나 사랑을 계속하면 모든 상처는 다시 아문다.

(C.G. 릴런드/ 향기로운 마요라나)

 

참다운 사랑은 유령의 출현과도 같다. 모두가 그 얘기를 하지만 그걸 본 사람은 거의 없다.

(F.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사랑은 불과 같다‥‥ 불의 상처는 참기 힘들지만 사랑의 상처는 더욱 참기 힘들다.

(H.H. 보이에센/ 군나르)

 

사랑은 석탄불 같아서 식혀지지 안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고 타게 놔 두어서는 사랑은 마음을 불태워 버리고 만다.

(W.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

 

사랑에 공포는 없다. 최상의 도덕이기 때문에. 사랑에 의혹은 없다. 최대의 진리이기 때문에. 사랑에 속박은 없다. 참다운 자유이기 때문에.

(우치무라 칸조오/ 소감10년)

 

사랑을 두려워함은 인생을 두려워함이요, 인생을 두려워하는 자는 3할은 죽은 것이다

(B. 러셀/ 결혼과 도덕)

 

사랑은 치료약이 없는 질병이다.

(드라이든/ 팔라은과 아카이트)

 

사랑의 고통은 모두 다른 쾌락보다 훨씬 감미로울 수 있다.

(J. 드라이든 / 폭군적 사랑)

 

사랑의 치료책은 더욱 사랑하는 것밖에는 없다.

(H.D. 도로우/ 일기)

 

고통이 없는 사랑에는 삶이 없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과 야심은, 친구를 용납하지 않는다.

(R. 브룸/ 사랑에 병든 구애)

 

진실한 사랑의 과정은 결코 평탄하지.않았다.

(W.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사랑의 기쁨은 순간밖엔 지속되지 않고, 사랑의 고통은 평생 계속된다.

(J.P 플로리앙/ 셀레스틴)

 

사랑이란, 뿌리는 땅속에 깊숙히 박았지만 가지는 하늘로 치면은 나무이어야 한다.

(B. 러셀/ 결혼과 도덕)

 

사랑은 인생이요, 죽음은 결국 인생을 영원하고 신성하게 만든다.

(A.A. 프록터/ 죽음까지의 인생)

 

영원히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에우리피데스/ 트로이의 여인)

 

삶은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은 사랑의 왕관을 가져다 준다.

(D.M. 크레이크/ 레티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신을 갖는 종교를 창조하는 것이다.

(J.L. 보르헤스/ 다른 심사 보고서)

 

性에는 변화가 필요하지만, 사랑에는 필요치 않다.

(T. 라이크/ 사랑과 육욕)

 

사람은 사랑 없이는 强해질 수 없다. 사랑은 부적절한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생의 피요, 분리된 것을 재결합시체는 힘이다.

(P. 틸리히/ 영원한 지금)

 

사랑은 열려진 가슴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 뿐 아니라, 파수가 허술하면 공고하게 방비된가슴속으로도 뛰어들 수 있다.

(F. 베이컨/ 수필집)

 

사랑을 연약한 힘이라고 얕잡아 보는 데에서부터 생활의 오류는 시작된다.

(아리시마 타케로오)

 

사랑은 사생활에서 위대한 힘이다. 그것은 진정 모든 일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다. 그러나 공적 일에서는 사랑이 작용하지 않는다.

(E.M. 포스터/ 민주주의에의 두 가지 갈채)

 

사랑은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문학을 가르친다.

(에우리피데스/ 스테네비우스)

 

사랑은 여자의 섬세함을 줄이고, 남자의 섬세함을 늘인다.

(장 파울/ 티탄)

 

어떤 밧줄이나 철사도 사랑처럼 꼬인 실로 힘차게 당기고 단단히 붙잡아매지 못한다.

(R. 버튼/ 우울의 해부)

 

완전한 사랑이란 온 힘을 다 바치는 사랑을 의미한다.

(A. 카울리/ 정신적 연애)

 

세상에는 반드시 완전무결한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요,때를 따라서 홈을 깁고 이지러진 것을 더하여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려고 애쓰는 창조의 노력이 없는 사랑은 또한 안가(安價)의 매음(賣淫) 동양(同樣)의 사랑일 것이다.

(나도향/ 내가 믿는 문구 몇 개)

 

사랑한다 하는 것은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다.

(0.F.0.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사랑의 본질은 개인을 보편화하는 것이다.

(A. 콩트/ 실증정치체계)

 

어머니의 사랑은 최선의 사랑, 신의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다.

(독일 격언)

 

사랑을 받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은 천사이다.

(A.D. 라마르틴/ 그라지엘라)

 

만약 한 사람의 인간이 최고의 사랑을 성취한다면, 그것은 수백만의 사람들의 미움을 해소시키는 데 충분할 것이다.

(M. K. 간디)

 

사랑이란 자기 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

(L. N. 톨스토이)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서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쳐다보는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최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 다음은 개의 사랑, 그 다음이 연인의 사랑이다.

(폴란드 격언)

 

여인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모든 길 중에서 연민이 가장 곧은 길이다.

(J. 플레처/ 말타 섬의 기사)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그것은 향략의 거친 꿈도 아니며 정욕의 광기도 아니다. 또한 사랑이란 선이고 명예이며 평화이고 깨끗한 삶이다.

(H. 반다이크/ 조그마한 강들)

 

연민은 사랑의 호수를 증가시킨다.

(E. 영/ 夜想)

 

사랑은 부드러운 눈길로 유인된다.

(오비디우스/ 사랑의 기술)

 

연민은 마음을 녹여 사랑하게 한다.

(드라이든/ 알렉산더의 잔치)

 

불이 빛의 시초이듯이, 사랑은 언제나 지식의 시초이다

(칼라일/ 수필집)

 

사랑은 일에 굴복한다. 만일 사랑으로부터 빠져 나오기를 원한다면, 바쁘게 되라. 그러면안전할 것이다.

(오비디우스/ 사랑의 치료)

 

사랑의 고뇌처럼 달콤한 것은 없고,사랑의 슬픔처럼 즐거움은 없으며, 사랑의 괴로움처럼 기쁨은 없고, 사랑에 죽는 것처럼 행복은 없다.

(E. M. 아른트)

 

비판 없이 사랑하면 배반당하게 될 것이다.

(D.반즈/ 夜木)

 

사랑이 일단 배반당하면, 그 달콤한 인생은 더 이상 꽃 피지 않는다.

(T. 무어/ 아나크레온 시 번역:내 영혼의 친구)

 

거절당한 사랑 같은 슬픔도 없고, 성취된 사랑 같은 기쁨도 없다.

(R. 허비/ 귀니비어의 결혼)

 

사랑은 배반 이외에는 모든 것을 이겨낸다.

(프랑스 격언)

 

사랑이 없는,즉 가장 사랑하는 자의 實在가 없는 인생은, 단순한 환등기 놀이에 불과하다.우리는 각 슬라이드마다 빨리 지루해지니까 슬라이드를 계속 끄집어 내고, 다음 것으로 서둘러 바꾸도록 단추를 누른다.

(괴테/ 친화력)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우리들이 고뇌와 인종속에서 얼마만큼 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자기에게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H. 헤세/ 향수)

 

장년에 이를 때까지 사랑을 미루어 온 사람은 비싼 이자를 지불하여야만 한다.

(메난드로스/ 단편)

 

사랑에는 두 가지 시련이 있다. 즉, 전쟁과 평화이다.

(호라티우스/ 풍자시)

 

사랑은 현기증과 같다. 그것은 불쌍한 육체가 자기 일에 반역하도록 한다.

(J. 호그/사랑은 현기증과 같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단순히 감각적 마비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즉 평범한 젊은 남자를 희랍 신으로, 혹은 평범한 젊은 여자를 여신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H.L. 멘켄/ 편견)

 

우리는 이유 없이 사랑하고, 이유 없이 미워한다.

(J. 르냐르/ 사랑의 광기)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것은 훨씬 더 슬프다.

(M.D. 우나무노/ 젊은 작가에게)

 

사랑은 나이들어 생기 없는 사람들을 젊게 만들며, 젊음을 찾는 사람들을 언제까지나 젊게 만든다.

(W. 카트라이트/ 클로우에게)

 

사랑은 큰 재산보다도 더 낫다.

(J. 리드게이트/ 테베 이야기)

 

사랑은 사람들을 재주꾼으로 만든다.

(몰리에르/ 남편 수업)

 

사랑은 그 국왕을 무기 없이 지배한다.

(G. 허버트/ 명궁)

 

20개의 자물쇠로 미인을 굳게 간직해 두어도 사랑은 끝내 그 자물쇠들을 차례로 부수고 열 것이다.

(W. 셰익스피어/ 비너스와 아도니스)

 

현명하게 사랑한다 하는 것은 확실히 가장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미련하게 사랑한다는 것도 전혀 사랑할 수 없다는 것보다는 낫다.

(W.M. 대커리/ 펜데니스)

 

사랑의 최초 탄식은 지혜의 종말이다.

(A. 브레트/ 연애교실)

 

사랑하며 현명하기란 불가능하다.

(F. 베이컨/ 수필집)

 

사랑은 남자한테는 눈으로 스며들고 여자에게는 귀로 스며든다.

(폴란드 격언)

 

사랑의 말은 달콤하며, 사랑의 생각은 더 달콤하고, 사랑이 말도 않고 생각도 않는 것은 가장 달콤하다.

(R. 가네트/ 밤색 채찍)

 

사랑은 사랑을 이해한다. 이야기가 필요치 않다.

(F.R. 해버걸/ 사랑의 충절)

 

사랑은 부드러운 말로 길러져야만 한다.

(오비디우스/ 사랑의 기술)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우리가 가장 적게 말할 수 있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사랑에서는 침묵도 웅변이 될 수 있다.

(W. 콘그리브/ 老獨身者)

 

사랑의 말은 눈에 있다.

(P. 플레처/ 어부의 목가)

 

사랑은 마음의 명령으로 시작되지만, 마음의 명령으로 물리쳐지지 않는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잠언집)

 

사람마다 마음이 다르니, 확실히 가슴마다 사랑도 다르리.

(L.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사랑하는 것은 인간적이요, 몰두하는 것도 인간적이다.

(플라우투스/ 상인)

 

연민은 사랑의 一家이다.

(T. 사우던/ 오루노코)

 

사랑을 말하려거든 낮은 소리로 말하라.

(W. 셰익스피어/ 헛 소동)

 

우리의 사랑은 正道여서, 그 뿌리는 이성에 박혀 있어, 현명하고 용감하며 자유롭다.

(쿠퍼/ 과업)

 

사랑하면서 바보가 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사랑하면서 현명해질 수 없다.

(T. 라이크/ 사랑과 육욕)

 

사랑은 군주나 제왕, 영주나 법률을 초월한다.

(R. 그린)

 

사랑의 법은 치외법이다.

(J. 가우어/ 연인의 고백)

 

누가 연인들에게 법을 줄 수 있는가? 사랑은 그 자체가 더 위대한 법이다.

(보에티우스/ 철학의 위안)

 

사랑 속에는 언제나 환상이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상이 있기 때문이다.

(H.F. 아미엘/ 일기)

 

사랑은 결점을 보지 못한다.

(T. 풀러/ 금언집)

 

사랑이 얇은 곳에서는, 결점이 두껍다

(J. 하우얼/ 격언집)

 

사랑은, 성장이 멈출 때만 죽는다.

(P.S. 벅/ 사랑하는 내 딸들에게)

 

사람들은 사랑에 의하여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사랑은 죽음의 시초이며 신(神)과 만인에 대한 사랑은 삶의 시초이다.

(L.N. 톨스토이/ 독서론)

 

모든 사랑은 다음에 오는 사랑에 의해서 정복된다.

(오비디우스/ 사랑의 치료)

 

사랑의 시작과 종말은 양편이 다 자기 자신이 고독함을 발견했을 때 당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라 브뤼에르/ 인간백태)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을 속임 으로써 시작하여, 다른 사람을 속임으로써 끝맺는다. 그것이 소위 로맨스다.

(0.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인간의 모든 결점을 참을 수 없다면, 결코 사랑을 하지 말라.

(T. 캠피언/ 결코 사랑하지 말라)

 

사랑의 신비함이 끝나면, 사랑의 쾌락도 끝난다.

(A. 벤/ 연인의 감시)

 

첫사랑은, 어리석음만 적을 뿐, 호기심은 많다.

(B. 쇼/ 존 벌氏의 다른 섬)

 

첫사랑의 마력은 그것이 언제라도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B. 디즈레일리/ 헨리에타 성당)

 

사랑은 소유함으로써 끝난다.

(T. 사우던/ 오루노코)

 

사랑은 창문으로 들어와서 대문으로 나간다.

(W. 캠든/ 유고집)

 

사랑을 위하여 죽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순교이다.

(G. 채프먼/ 명예를 위한 복수)

 

사랑은 굶주려 죽지는 않지만, 종종 소화 불량으로 죽는다.

(N.D. 랑클로/ 타자의 정신)

 

우정이 거짓말 때문에 죽듯, 사랑은 진실 때문에 죽을 수 있다.

(A. 보나르/ 우정의 기술)

 

사랑은 손아귀에 든 수은과 같다. 손을 벌려 놓고 있으면 거기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힘껏 잡으면 쏜살같이 빠져 나간다.

(D. 파커)

 

사랑은 아무것도 겁내지 않는다. 까딱하면 사신이란 천하무적의 강자한테로 달려가 그것을 자기편으로 할 용의가 있다. 사신을 자기편으로 한 사랑만큼 강한 것은 없다.

(H. 하이네/ 세익스피어의 여자들)

 

항아리 우정, 찬장 사랑. (우정은 욕심 없고, 사랑은 타산적이다.)

(라틴 격언)

 

사랑을 찬찬 얽동여 뒤설머지고/ 태산준령(泰山峻嶺)을 허위허위 넘어갈 제 그 모른 벗님네는 그만하여 버리고 가라 하건마는/ 가다가 자즐려 죽을 망정 나는 아니 버리고 갈까 하노라.

(무명씨)

 

1. 말하지 않는 말,/ 아침 해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 견딘/ 사랑 하나/ 입술 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大門 中門 다 지나는/ 맨뒷방 병풍 너메/ 숨어 사네// 옛 동양의/ 조각달과/ 금빛 수실 두르는 별들처럼/생각만이 깊고/ 말하지 않는 말,/ 사랑 하나

2. 사랑을 말한 탓에/ 천지간 불붙어 버리고/ 그 벌이 시키는 대로/ 세상 양끝에 나뉘었었네// 한평생/ 다 저물어/ 하직삼아 만났더니/ 아아 천만 번 쏟아붓고도/ 진홍인 노을//사랑은/ 말해 버린 잘못조차/아름답구나.

(김남조/ 사랑의 말)

 

오랜 잊히움과도 같은 병이었습니다 ./ 저녁 갈매기 바닷물 휘어적신 날개처럼 피로한 날들이 비늘처럼 돋아나도 북녘 창가에 내 알지 못할 이름의 아픔이던 것을/ 하루 아침 하늘떠받고 날아가는 한 쌍의 떼기러기를 보았을 때 어쩌면 그렇게도 한없는 눈물 흐르고/ 화살을 맞은 듯 갑자기 나는 나의 병 이름의 그 무엇인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김남조/ 사랑)

 

사랑은/ 冬天의 반달/ 절반의 그늘과 절반의 빛으로/ 얼어붙은 수정이네

(김남조/ 사랑초서 · 48)

 

가시와 꽃들이/ 불타는 곳에/ 내가 재 되는 줄 알면서/ 아프면서 기쁘면서/ 그대와 불타는 곳에

(김남조/ 사랑초서 · 69)

 

사랑은/ 정직한 농사/ 이 세상 가장 깊은 데 심어/ 가장 늦은 날에/ 싹을 보느니

(김남조/ 사랑초서 · 83)

 

사랑에는 본시부터 개체가 따로 없다. 영감(靈感)이 짚어 준 유일의 그 사람을 섬기며 미칠 듯이 그의 점유(占有)를 탐냄도 사실이나 이때 저들은, 이미 개체의 허울에서 벗어나 단일(單一)에의 귀납(歸納)을 해버렸다. 낱낱의 성질은 소멸하고 들에서 뽑아낸 하나의 관능(官能), 공동의 기구(祈求), 그리고 혼란 없는 공유의 질서가 있을 따름이다. 이 혼융(渾融)의 비의(秘義), 모든 걸 한 그릇에 풀어 넣고 둘이서 적의(適宜)의 분식(分食)을 취한다. 절망도 허무도 나누어 삼킨다. 시간에 있어서도 오직 동일한 값어치의 그것을 한 냇물에 동시에 격지격지 흘려 보낸다. 다만 이 사실은 의심하면 의심하는 즉시에 깨어져 흩어진다. 신앙의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

(김남조/ 이브의 天刑)

 

젊은 날/ 내 사랑은/ 장미가시의 사슬이더니/ 오늘 나의 사랑은/ 임의 발 앞에/ 임의(任意)의 신발을/ 놔드린다

(김남조/ 비파소리)

 

사랑하면 무엇이나 주고 싶어진다/ 평생 바치며 살고 싶어진다. / 당신은 이 마음을 알 수 있는가/ 나뉘는 일도 주는 거란다. / 더 섧게 더 많이 주는 거란다. 당신은 이 마음을 알 수 있는가// ‥‥사랑은/ 멀리서도 가까이 사는/ 마음이라고 믿자.

(김남조/ 고별 · 1)

 

모시를 이리 저리 삼아 두로삼아 감삼다가/가다가 한가운데 뚝 끊어지거늘 호치단순(皓齒丹脣)으로 홈빨며 감빨아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두 끝 마주 잡아 바붙여 이르리라 저 모시를 /우리 님 사랑 그쳐 갈 제 저 모시처럼 이으리라.

(무명씨)

 

사랑은 인생의 별/ 어둔 밤/ 고독한 영혼의 창문에서만 보는 거란다// 사랑은 인생의 호곡(號哭)/ 어둔 밤/ 고독한 영혼의 창변에서 우는 거란다.

(김남조/ 얼굴)

 

사랑이 어떻더니 둥글더냐 모나더냐/ 길더냐 짜르더냐 밟고 남아 자힐러냐/ 하 그리 긴 줄은 모르되 끝 간 데를 몰라라.

(무명씨)

 

나는 가옵거니와 사랑으란 두고 감세/ 두고 가거든 날 본 듯 사랑하소/ 사랑아 부대접(不待接)하거든 괴는 데로 니거라.

(무명씨)

 

꽃 보고 춤추는 나비와 나비 보고 당싯 웃는 꽃과/ 저 둘의 사랑은 節歸이 오건마는/ 어떻다 우리의 사랑은 가고 아니 오느니.

(무명씨)

 

내 사랑 남 주지 말고 남의 사랑 탐치 마소/우리 두 사랑에 잡사랑 행여 섞일세라/ 일생에 이 사랑 가지고 괴어 살려 하노라.

(무명씨)

 

북풍에 이운 남기 찬비 맞다 새 잎 나며/相思로 들은 병이 약을 먹다 좋을소냐/ 저 님아 널로 든 병이니 네 고칠까 하노라.

(무명씨)

 

두 사람도 남몰래/ 살짝/ 우산 아래 봄을 안아/ 물구슬로/ 사랑을 꿰맨답니다.

(김용호/ 물구슬로)

 

사랑이란/ 차라리 침묵

(이동주/ 소묘)

 

구만리 너른 하늘 사방을 펼작시면/ 길거나 짜르거나 一定限이 있으려니와/ 아마도 이 님의 사랑은 가없는가 하노라

(무명씨)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동정 칠백(洞庭七百) 월하초에/ 무산(巫山)같이 높은 사랑/ 목단 무변수에/ 하늘 같은 깊은 사랑/ 오산전(五山顚) 달 밝은데 추산천봉(秋山天峰) 반달 사랑/증경학무(曾經學舞) 하올 적에 하문 취소하던 사랑/ 유유낙일(悠悠落日) 월렴산(月簾山)에/ 도리화개(桃李花開) 비친 사랑/ 섬섬 초월 분백한데/ 함소합태(含笑合態) 숱한 사랑/ 월하의 삼생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 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花雨東山) 옥란화같이 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청루미녀(看樓美女)금침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시냇가의 수양같이 펑퍼지고 늘어진 사랑/남창북창(男倉北倉) 노적(露積)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은장옥장(銀藏玉藏)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영산홍록(映山紅綠) 봄바람에 넘노니니/ 황봉백접(黃蜂白蝶) 꽃을 물고 질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격으로 마주 떠/노는 사랑/년년 칠월 칠석야에 견우 직녀 만난 사랑/ 육관대사(六觀大師) 성진(性擴)이가/팔 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力拔山) 초패왕이 우미인을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왕이/ 양귀비를 만난 사랑/ 명사십리 해당화 같이/ 연연히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춘향전)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김수영/ 사랑)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 밖에 가난한 등불 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빛/ 언젠가 내 가슴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를

(정호승/ 사랑)

 

사랑의 동전 한 푼/ 위대한 나라에 바칠 수는 없어도,// 사랑의 동전 한 푼/ 기쁘게 쓰일 곳은 별로 없어도//사랑의 동전 한 푼/그대 아름다운 가슴을 꾸밀 수는 없어도,// 사랑의 동전 한 푼/ 바다에 던지는 하나의 돌이 될지라도,//사랑의 동전 한 푼/내 맑은 눈물로 눈물로 씻어/ 내 마음의 빈 그릇에 담아/당신 앞에 드리려니‥‥‥//사랑의 동전 한 푼/ 내 눈물의 곳집 안에 넣을 때,/ 이 세상의 모든 황금보다도/사랑의 동전 한 푼/ 더욱 풍성히 풍성하게 쓰이리니‥‥‥‥

(김현승/ 사랑의 동전 한 푼)

 

우리들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사랑에서/우리는 어떻게 멸망할 것인가/사랑이 없으면/우리들은 무엇으로 자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사랑에 의해서/ 우리들은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가/ 사랑에 의해서/ 우리들을 울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 우리들을 늘 결합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

(J.W. 괴테/ 슈타인 부인에게)

 

그것이 비록 병들어 죽고 썩어버릴/ 육체의 꽃일지언정// 주여, 우리가 당신을 향하여 때로는 대결의 자세를/ 지을 수도 있는 우리가 가진 최선의 작은 무기는/ 사랑이외다!

(김현승/ 사랑을 말함)

 

공중에 떠가는 달과도 같이/ 아름다움의 잔인한 종족으로 자라기는 했지만/ 그녀는 걸어 가다 얼굴 붉히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섰다. / 드디어 나는 생각하였다. 그녀의 몸은/ 살과 피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고.// 그러나 내 손 그 위에 올려 놓고/ 돌의 심장임을 안 이래로/ 나는 많은 것을 시도하였지만/하나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 달 위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손은 미치고야 만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변해서/시골뜨기가 되어 버렸다. / 여기 저기를 서성거리고/ 마음은 달이 나타났을 때/ 하늘을 돌고 있는 별들보다도/ 한층 더 공허하기만 하다.

(예이츠/ 첫사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대의 즐거운 기품을 사랑하였고/ 그대 아름다움을 거짓, 아니 진정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는지/ 다만 한 사람 만이 그대 순례자의 혼을 좋아하였고/ 그대 변하는 얼굴의 슬픔을 사랑하였오

(예이츠/ 그대 늙었을 때)

 

사랑을 한다는 그대들은, 그대의 숙녀 얼굴에서 언제나 윙윙거리는, 그러한 꼴사나운 여름의 파리들이다.

(A. 테니슨/ 산림 속에서 사는 자)

 

사랑하지 않으면/ 착한 여자가 못된다. / 소망하는 여자도 못된다. / 사랑하면/ 우물곁에 목말라 죽는/ 그녀 된다.

(김남조/ 사랑초서 · 1)

 

너와 나의 짧은 사랑/ 짬은 노래 사이로/마침내 죽음이/ 삶의 모습으로 죽을 매/ 나는 이미 너의 죽음이 되어 있었고/ 너는 이미 나의 죽음이 되어 있었다.

(정호승/ 어떤 사랑)

 

사랑을 '사랑'이라고 하면 벌써 사랑은 아닙니다. / 사랑을 이름지을 만한 말이나 글이 어데 있습니까./ 미소에 눌려서 괴로운 듯한 장미빛 입술인들 그것을 스칠 수가 있습니까./눈물의 뒤에 숨어서 슬픔의 흑암면을 반사하는 가을 물결의 눈인들 그것을 비칠 수가 있습니까./ 그림자 없는 구름을 거쳐서 메아리 없는 절벽을 거쳐서 마음이 갈 수 없는 바다를 거 쳐서 존재? 존재입니다. / 그 나라는 국경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 / 사랑의존재는 님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비밀은 다만 님의 수건에 수놓은 바늘과 님의 심으신 꽃나무와 님의 잠과 시인의 상상과 그들만이 압니다.

(한용운/ 사랑의 존재)

 

내 사랑의 탄생이 희귀함은/미지의 고귀한 대상을 위함인 듯/ 사랑은 불가능으로 하여 이루어진/ 절망에 잉태되는 것이다.

(A. 마벌/ 사랑의 정의)

 

내 사랑이 얼음과 같다면, 나는 불과 같은 것/ 어찌하여 그토록 심한 그녀의 차가움이 나의 그 뜨거운 욕망 속에 용해되지 않는가?

(E. 스펜서/ 내 사랑은 얼음과 같다)

 

나의 하사품은 바다처럼 가이없고, 내 사랑은 바다처럼 깊어, 내가 당신에게 많이 줄수록 나는 더욱 많이 갖게 되니, 둘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W.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난 당신을 낮과 밤, 모든 사람이 가장 고요히 필요로 하는 그만큼의 사랑으로 사랑한다.

(E.B. 브라우닝/ 그대를 사랑하는 방법)

 

새 상점에 가서/ 나는 새를 샀지/ 당신을 위해/ 나의 사랑// 꽃 상점에 가서/ 나는 꽃을 샀지/ 당신을 위해

(J. 프레베르/ 나의 사랑 당신을 위해)

 

사랑의 생애는 활동뿐!/ 귀찮은 세상 약속에 방해되어 있거나 해서는/ 마음대로 떨칠 수가 없다.

(G.G. 바이런/ 사랑이여 언제까지나)

 

자기를 괴롭혀서 詩를 짓는 것보다/ 나는 누군가에 사랑을 받고 싶다. / 누군가의 것이 되고 싶은 것이다.

(A. 안드레아에/ 나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다)

 

사랑은 끝이 없이/ 사랑하는 것만이 슬기로운 것이니라./그대보다 더한 덕이 이 세상에 또 있으랴./ 힘찬 환희의 그 눈이 여,/ 그대보다 더한 죄가 이 세상에 또 있으랴./ 힘없는 비루한 그 눈이여. 태양은 그대 때문에 슬퍼하고/ 천사도 탄식한다.

(R.S. 브리지스/ 단시집)

 

찾아가랴/ 찾아가리/ 어느 하늘 아래/ 눈 떠오는 오월/ 가슴에 심어 놓은/ 사랑의 속눈썹/ 피어 있는가.

(황금찬/ 한 송이 나의 모란)

 

월계수는 한철 동안 푸르고, 사랑은 하룻 동안 달콤한 것. 그러나 사랑은 배신으로 쓰라려 지고 월계수는 오월을 넘기지 못하네.

(A.C. 스윈번/ 프로서핀에게 바치는 찬가)

 

사랑이 그대들을 부르면 그를 따르라./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사랑의 날개가그대들을 싸안을 땐, 전신을 허락하라,/ 비록 사랑의 날개 속에 숨은 칼이 그대들을 상처받게 할지라도./ 사랑이 그대들에게 말할 뻔 그 말을 믿으라,/ 비록 북풍이 저 뜰을 폐허로 만들 듯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들의 꿈을 흐트러 놓을지라도./왜? 사랑이란 그대들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는 만큼 또 그대들을 괴롭히는 것이기에, 사랑이란 그대들을 성숙시키는 만큼 또 그대들을 베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심지어 그대들 속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들의 가장 부드러운 가지들을 껴안지만,/ 한편 사랑은 또 그대들 속의 뿌리로 내려가 대지에 엉켜 있는 그것들을 흔들어 대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마치 곡식 단이듯 그대들을 자기에게로 거두어 들이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두드려 벌거벗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체로 쳐 쓸데없는 모든 껍질들을 털어버리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갈아 순백으로 변하게 하는 것./ 사랑은 그대들을 유연해질 때까지 반죽하여,/ 그런 뒤 신의 거룩한 향연을 위한 거룩한 빵이 되도록 성스러운 자기의 불꽃 위에 올려 놓는 것.//사랑은 이 모든 일들을 그대들에게 행하여 그대들로 하여 마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고, 그 깨달음으로 삶의 가슴의 한 파편이 되게 하리라.// 그러나 그대들 오직 두려움 속에서 사랑의 평화, 사랑의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면,/차라리 그땐 그대들 알몸을 가리고 사랑의 타작 마당을 나가는 게 좋으리 라./ 계절도 없는 세계로, 그대들 웃는다 해도 웃을 수는 없는, 그대들 운다 해도 실컷 울 수는 없는 곳으로// 사랑은 저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저 외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 사랑은 소유하지도, 소유당할 수도 없는 것./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충분할 뿐.// 사랑할 때 그대들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리라, "신은 나의 마음속에 계시다. "라고. 그보다 "나는 신의 마음속에 있다. "라고 말해야 하리라./ 또한 결코 그대들 사랑의 길을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대들 가치 있음을 알게 된다면 사랑이 그대들의 길을 지시할 것이므로.//사랑은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것 외에 다른 욕망은 없는 것./ 그러나 그대들 사랑하면서도 또다시 숱한 욕망을 품지 않을 수 없다면, 다음의 것들이 그대들의

욕망이 되게 하라-/ 녹아서, 밤을 향하여 노래하며 달려가는 시냇물처럼 되기를.// 지나친 다정함의 고통을 알게 되기를./ 스스로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그대들 상처받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즐겁게 피 흘리게 되기를./ 날개 달린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사랑의 또 하루를 향하여 감사하게 되기를,/ 正午에는 쉬며 사랑의 황홀한 기쁨을 명상하기를,/ 황혼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게 되기를./ 그런 다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음속으로부터 기도하고 그대들의 입술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게 되기를.

(K. 지브란/ 예언자)

 

오 사람들의 마음이여, 얼어붙는 피여, 타오르는 피여!/ 어리석은 일, 시끄러움, 죄악에 물든 많은 世紀들, 언제나 다름없는 지상의 되풀이/ 그것들은 그 승리, 그 영광, 그 밖의 모든 것들과 함께/ 덧없이 땅속에 묻히나니./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오직 사랑뿐.

(R. 브라우닝/ 폐허 속의 사랑)

 

불길로 나를 태워버릴 듯한 사랑이/ 그대의 영혼 속에서/ 꽃이 필 때/ 오는 그대를 기다리는/ 기쁨의 기대./ 그대를 기다리는/ 기쁨의 기대.

(라게르크 비스트/ 마음의 노래)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서요. 그리고 부디/ "미소때문에, 미모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그리고 또 내 생각과 잘 어울리는 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런 날엔 나에게 느긋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저 여인을 사랑한다"고는 정말이지 말하지 마셔요./ 이러한 것들은 임이여! 그 자체가 변하거나/ 당신을 위해 변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그처럼 짜여진 사랑은/ 그처럼 풀려 버리기도 한답니다./ 내 뺨의 눈물을 닦아 주는 당신의/ 사랑어린 연민으로도/ 날 사랑하진 마셔요/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았던 사랑은 울음을 잊게 되고/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날 사랑해 주셔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당신이 사랑을 누리실 수 있도록, 사랑의 영원을 통해.

(E.B.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사랑은 장미와 같아 이 땅의 모든 것의 기쁨이요, 사랑은 귀여운 장미와 같아 온 세상의 기쁨일세.

(C. 로세티/ 희망)

 

사랑이란 이를테면 깊은 한숨과 함께 사는 연기, 또한 맑아져서는 연인의 눈동자에 반짝이는 불도 되고, 헝클어 져서는 연인의 눈물에 넘치는 大海로도 된다. 그뿐만 아니라,아주 분별하기 어려운 광기, 숨구멍도 막히는 고집인가 하면, 또 생명을 기르는 감로(甘露)이기도하다

(W.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오 사랑이여! 그대는 바로 惡의 神이로다. 하긴 우리들은 그대를 악마라고는 부르지 못하니까.

(바이런/ 돈 주안)

 

한 알의/ 밀이/ 땅에서 죽다」 세월이 흘러간 뒤/ 백, 천 개의 밀을/ 그 곳에서 다시 찾다. // 이 하늘의/ 이치를 알았더라면/ 내 이웃을 위해/ 사랑의 옷을/ 묻었으리라.

(황금찬/ 한 알의 밀)

 

사랑의 눈으로 보면/ 사랑스럽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아직도 남을 미워하고 있는것은/ 내 눈이 사랑의 눈으로/ 변모되지 못했다는 증거다

(황금찬/ 사랑하고 싶다)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외로운 여름과/ 거짓 꽃이 시들고도/ 기나긴 세월이 흐를 때,//사랑은 천천히 오는 것./ 얼어붙은 물속으로 파고드는/ 밤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지그시 송이송이/ 내려앉는 눈과도 같이,// 조용히 천천히/ 땅속에 뿌리박은 밀,/사랑은/熱은/ 더디고 조용한 것./ 내려왔다가 치솟는/ 눈처럼//사랑은 살며시 뿌리로 스며드는 것./ 조용히 씨앗은/ 싹을 튼다,/ 달이 커지듯 천천히

(G. 밴더빌트/ 사랑은 조용히 오는 것)

 

순아 너는 내 전(酸)에 언제 들어왔던 것이냐? / 내사 언제 네 전에 들어갔던 것이냐?// 우리들의 전당은/ 古風한 풍습이 어린 사랑의 전당/ 순아 암사슴처럼 수정눈을 나려 감어라./ 난 사자처럼 엉크린 머리를 고루련다. //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 성스런촛대에 熱 한 불이 꺼지기 전/ 순아 너는 앞 문으로 내달려라.// 어둠과 바람이 유리창에 부닥치기 전/ 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원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 // 이제 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 내게는 준엄한 산맥이 있다.

(윤동주/ 사랑의 전당)

 

사랑받는 것은 타 버리는 것, 사랑하는.것은 어둔 밤만 켠 램프의 아름다운 빛, 사랑받는 것은 꺼지는 것,그러나 사랑하는 것은 긴 긴 지속.

(R.M. 릴케/ 말테의 手記)

 

갓 결혼한 부부가 말했다/ "우리의 사랑이 지속되게 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스승이 말했다. / "다른 것들을 둘이서 함께 사랑하여라."

(앤소니 드 멜로/ 사랑)

 

나 일찍이 너를 사랑했었네. 그 사랑 어쩌면 아직도 감추어진 불씨처럼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네./ 하지만 그것이 너를 낙심하게 하지 말기를, 차라리 잊어버리길./ 나는 조그만 괴로움도 너에게 주고 싶지 않거니.// 말없이 사랑했었네. 절망적으로 사랑했었네./ 지금도 소심하게, 지금은 질투의 마음/ 나는 그렇게 깊이 사랑했었네,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했었네

(푸시킨/ 나 일찍이 너를 사랑했었네)

 

누구나 사랑 때문에/ 스스로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

(정호승/ 작은 기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헤아리려 하지 않습니다. / 자기의 사랑 자체가/ 이미 확신이기에/ 헤아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 그들은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 진정사랑 이상의 것이/ 존재하겠습니까?/ 만일 사랑 이상의 그 무엇이 있다면/ 사랑은 사랑일 수도 없고/ 사랑이 아닙니다. / 왜냐하면/ 사랑은 이 세상에 있는/ 그리고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G. 아궤예스/ 생명을 주는 사랑)

 

오오, 우리의 이 생애에는, 사랑의 최초의 意識보다-즉 그 부드러운 날개의 최초의 펄럭임보다 더 神聖한 것은 없다.

(롱펠로우/ 하이패리언)

 

오 내 사랑은 유월에 갓 핀/ 붉고붉은 장미./ 오 내 사랑은 감미로이 연주되는/ 멜로디.//그토록 너 아름다워/나 너에게 반했단다. 나의 임아./ 바다란 바다가 다 마르도록/ 나 너를사랑한단다. // 바닷물이 마르도록 나의 임아./햇볕에 바위가 녹아 버릴 때까지 처녀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목숨이 붙어 살아 있는 한.//그럼 잘 있으라, 내 하나뿐인 사랑아./ 헤어지는 잠시 동안 잘 있으라./ 비록 천리를 가더라도 난/ 다시 너에게 돌아오련 다,/ 내 사랑아.

(버언즈/ 내 사랑은)

 

사랑은 비애로 가득차는 병이요, 모든 치료약을 거부한다. 많이 꺾이며 자라는 나무는 좋게 쓰이지만 가장 열매를 맺지 못한다. 왜 그럴까? 우리가 즐길수록 더욱 죽어가는데 즐기지 않으면, 울음을 터뜨릴까? 어허, 이봐.

(S. 대니얼/ 결혼신의 승리)

 

사랑의 가는 길은 가시덤불 고개/그 누구 이 고개를 눈물 없이 넘었던고/ 영웅도 호걸도울고 넘는 이 고개// 기어이 어긋나고 짓궂게 헤어지는/ 운명이 시기하는 야속한 이 길/ 아름다운 이들의 눈물의 고개

(노천명/ 비련송)

 

사랑을 모아 내니 줌으로 하나이라/ 화류도처(花柳到處)에 저마다 줄 양이 면/ 이 후에 절대가인(絶代佳人) 만나거든 빈손 필까 하노라.

(조재호)

 

이 사랑은/ 이토록 사납고/ 이토록 연약하고/ 이토록 부드럽고/ 이토록 절망한/ 이 사랑은/ 대낮같이 아름답고/ 날씨처럼 나쁜 사랑은,/ 날씨가 나쁠 때/ 이토록 진실한 이 사랑은/ 이토록 아름다운 이 사랑은/ 이토록 행복하고/ 이토록 즐겁고/ 또 이토록 덧없어/어둠 속 어린애처럼 두려움에 떨지만/ 한밤에도 태연한 어른처럼 자신 있는 이 사랑은/다른 이들을 겁나게 하던 이 사랑/ 그들의 입을 열게 하던/ 그들을 질리게 하던 이 사랑은/ 우리가 그네들을 못지키고 있었기에/염탐당한 이 사랑은/ 우리가 그를 추격하고 해하고 짓밟고 죽이고/ 부정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좇기고 상처 받고 짓밟히고 살해되고/부정되고 잊혀진 이 사랑은 아직 이토록 생생하고/ 이토록 볕에 쬔/ 송두리째 이 사랑은/ 이것은 너의 것/ 이것은 나의 것

(J. 프레베르/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아 사랑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아 젊은 욕망은 얼마나 즐거운가!/ 처음 사랑의 불에 다가서면/ 즐거운 아픔을 느낀다!/ 사랑의 아픔은 모든 다른/ 기쁨보다 훨씬 감미롭다//애인들이 내쉬는 한숨은/ 조용히 가슴을 부풀게 한다/ 홀로 흘리는 눈물도/ 흐르는 香油처럼/ 그 아픔을 낫게 한다/ 숨결 잃은 애인들도 아무 괴로움/ 못 느끼며 피흘리며 죽는다// 사랑과 시간을 아껴 쓰라/ 떠나는 벗처럼 대하라/ 청춘에 주어지는 황금빛/ 선물을 마다하지 말아라/해마다 그 값은 더해 가고/전만큼은 단순치 않으니// 봄철의 밀물처럼 가득하고 높은 사랑은/ 젊은 핏줄마다 용솟음친다. / 그러나 조수마다 공급을 줄이고/ 드디어 그 선물은 다해 버린다/ 노년에 홍수가 일지라도/ 그것은 단지 빗물, 깨끗이 흐르지 못한다.

(드라이든/ 사랑)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박남수/ 새)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한다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

 

님의 사랑은 불보다도 뜨거워서 근심산을 태우고 恨 바다를 말리는데 님의 손길은 너무도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한용운/ 님의 손길)

 

사랑 사랑 고고이 맺힌 사랑 온 바다를 두루 덮는 그물같이 맺힌 사랑/ 왕십리 답십리라참외 넌출 수박 넌출 얽어지고 틀어져서 골골이 뻗어가는 사랑/ 아마도 이 님의 사랑은 가없는가 하노라.

(박문욱)

 

내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다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려지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정조보다도 사랑입니다. /나는 임을 기다리면서 괴로움을 먹고 살이 찝니다. 어려움을 입고 키가 큽니다.

(한용운/ 자유정조)

 

사랑은 꿈속으로 부르는 여신!// 아아 괴로움에 타는/ 두 사람 가슴에/ 꿈의 터를 만들어 놓고/ 유령과 같이 춤을 추면서/ 타오르는 사랑은/ 차디찬 유령과 같도다.

(박영희/ 유령의 나라)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 가봐요.

(한용운/ 사랑의 측량)

 

당신이 아니더면 포시 럽고 매끄럽던 얼굴에 왜 주름살이 접혀요./ 당신이 기룹지만 않더면 언제까지라도 나는 늙지 아니할 테여요./ 맨 첨에 당신에게 안기던 그때대로 있을 테여요//그러나 늙고 병들고 죽기까지라도 당신 때문이라면 나는 싫지 않어요./ 나에게 생명을 주든지 죽음을 주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셔요./ 나는 곧 당신이어요.

(한용운/ 당신이 아니더면)

 

달은 우리 둘 사이에 떠올랐다. / 서로 고개를 숙이는/ 두 그루 소나무 사이에// 사랑은 달과 함께 솟아/우리의 고독한 줄기를 먹고 살았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그림자/ 서로 기대는/ 그러나 다만 허공에 키스할 뿐인.

(크리스토퍼 오키그보/ 갈라진 사랑)

 

사랑의 善, 사랑의 가책에도/ 진실로 지쳤다/ 사랑의 神이/ 주무시는 까닭을 / 오늘 안다.

(김남조/ 사랑초서 · 66)

 

사랑도 오직 하나뿐 둘은 만들지 않았소.//‥‥/ 님 품은 사랑의 무덤 속은 대낮보다 밝으리라.

(이은상/ 사랑의 왕릉)

 

말하지 말아다오 내 사랑이/ 반지였다고는 또는 팔찌였다고는./내 사랑은 포위 공격이다/ 어둠 속을 헤치면서 죽음을 향해 출범하는/ 힘이요 열정이다. // 말하지 말아다오 내 사랑이/ 둥근 달이었다고는/ 내 사랑은 폭발하는 불꽃이다.

(애두니스/ 대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도종환/ 꽃씨를 거두며)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둘에 내어/ 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거든 구비구비 펴리라.

(황진이/ 청구영언)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있으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황진이)

 

청산은 내 뜻이요 流水는 임의 정이/ 녹수야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잊어 울어 데어 가는고.

(황진이/ 조선가곡)

 

사람이 사람을 그려 생사람이 병들단 말가/ 사람이 사람이면 설마 사람 죽게 하랴/ 사람이 사람 병들이는 사람은 사람 아닌 사람.

(안민영)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꿈에 와뵈단 말이 과 더욱 거짓말이/ 나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이리.

(김상용)

 

생각하고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봄눈처럼 허망하게 녹을 수도 있고 다이아몬드처럼 튼튼하게 광채를 낼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라 한다면 나는 양쪽이 다 흐뭇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랑은 어떤 의미로 보나 순수하고 타산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경자/ 행복의 이웃에 산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니라." 받는 이 없으면 누구를 주노? 그래서 짝사랑이 최상급이란 말인가. 불타의 사랑은 무변대비(無邊大悲)의 짝사랑이고녀. 주는 이 없으면 못 받을 사랑. 그래서 중생은 어머니 없는 고아인가.불타의 사랑은 자궁 없는 설움의 자없은 모성애로다. 줌으로써 받고 받음으로써 주는 사랑이 아니라 줌으로써 주고 줌으로써 주는 사랑, 소애소욕(小愛少慾)이 아니라 대자대비. 주고받는 사랑은 구경(究竟)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사랑이다. 이 애욕 상쟁의 어부지리 속에 애비(愛悲) 상극의 논리가 있다.

(조지훈/ 영원과 고독을 위한 단상)

 

당신으로 인해 사랑을 얻었고/ 당신으로 인해 삶을 잃었으나/ 영원한 사랑만이/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되찾게 할 것이다.

(도종환/ 우산)

 

새하얀 사랑/ 지천으로 퍼부어 대고

(박문재/ 함박눈 맞으며)

 

아낌없이 버린다는 말은/ 아낌없이 사랑한다는 말이리// ‥‥‥강물이 매일 떠나듯/그대에게 그리움으로 이른다면// 이제 사랑한다는 말은 없어도 되리./ 달 하나 가슴에 묻고 가는 시냇물처럼.

(이성선/ 달 하나 묻고 떠나는 냇물)

 

사람은 달가운 회사, 주면 줄수륵 더욱 줄거리를 만들어 내는 마법의 용량임을 놀라 바라보리라. 사랑하면, 황제라도 지극히 겸양의 간망(懇望)을 배우고, 반면에 걸식녀도 여왕의 부를 넘어설 수가 있다. 사랑은 가난한 마음의 축제, 이 가려진 잔치의 소박한 축복은 아는 이만이 안다.

(김남조/ 불볕에 목이 타는 젊은이들아)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자연의 하나처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 고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고/ 기다림으로 채워간다는 것입니다/ 비어 있어야 비로소 가득해지는 사랑/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도종환/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하늘 땅 사랑아/ 네 고향 영혼의 요람 속/네 우주의 시원과 현주소를/ 짚어 보아라.// 이씨조선의 옥양목 같은 하늘보다/ 분별한 사랑으로 정성담아/ 가꾸어온 터전 꽃보다/ 아리따워라.// ‥‥가없이 너르고 깊어/ 순순코 겸허한 영원한/ 실타래 같은 사랑을 아느냐/ 하늘 땅 사랑아// ‥‥골고다의 힘든 고빗길에도/ 마냥 마음 비우는 사랑으로/ 꽃피우는 찬연함/ 그 보람으로 행복일레라

(리정룡/ 하늘 땅 사랑아)

 

사랑은 작아도 아주 작아도/ 은은하게 설레어/ 이름 부르면 가만히/ 일제히 꽃잎 들고 일어서네.

(정희수/ 춘란)

 

강 너머의 기억/ 그 안/축축하게 젖은 혼불/ 내 사랑 바로 눕지 못하네,

(정희수/ 강 너머의 그대)

 

내 이마에 맺힌/ 외롭게 떨고 있는 별리/눈뜨는 사랑도/ 이제 맴돌던 봄결 거두어/움돋는 새 살로 채우리라/ 그대 다가오고 있음에

(정희수/ 그대 다가오고 있음에)

 

이제 아픈 내 목숨/ 달빛에 헹구고/ 내 지극한 눈빛도/ 책갈피에 곱게 간직하며/ 기맥힌사랑 하나/ 당신의 영혼에 심겠네.

(정희수/ 하루를 보내며)

 

내 사랑이/ 진정 저 하염없는/ 눈과 같은 것이라면// 결단코 결단코/ 그대 내 사랑/외면하지 않을 거야.

(허영자/ 눈과 같은 것이라면)

 

백두산 눈보라로 한 천년 울음 울다/ 달빛 태워 침묵으로 일어서는 지리산/ 그 철쭉꽃 바다 물너울 같은 사랑으로/ 또 한 천년 신명으로 살다가

(정동주/ 신무가-1 서곡)

 

앞마을의 늙은 처자/ 뒷마을의 늙은 총각/둘의 마음 다를레라/ 늙은 총각 지날 때면/잔기침을 다시 하고/ 방에 갇힌 늙은 처자/속마음이 두근두근/나이 많은 처자라고 /물 길러도 안 보내고/ 빨래 질도 안 보내니/ 만날 길이 없었더라/ 오월이라 단오날에/ 뒷마을의 늙은 총각/ 그네 뛰다 죽었다오/ 섣달이라 그믐날에/ 앞마을의 늙은 처자/ 널뛰다가 죽었다오

(예산지방 情愛謠)

 

님 그려 얻은 병을 약으로 고칠손가/ 한숨이야 눈물이야 오매 (寤寐)에 맺혔어라/ 일신이 죽지 못한 前 못 잊을까 하노라.

(이정보)

 

이 몸 헐어내어 냇물에 띄우고자/ 이 물이 울어 녜어 한강 여흘 되다 하면/ 그제야 님 그린 내 병이 헐할 법도 있느니.

(정철)

 

팔목 쥐시거든 두 손으로 받치리라/ 나갈 데 계시거든 막대 들고 좇으리라/ 향음주 다 파한 후에 모셔 가려 하노라.

(정철)

 

꿈에 왔던 임이 깨어 보니 간데없다/ 탐탐히 괴던 사랑 날 버리고 어디 간고/꿈속이 허사일망정 자주자주 뵈소서.

(박효관/ 가곡원류)

 

아직도/ 눈가루가 질펀한/ 미나리 밭에//‥‥얼음장 밑에서는/ 타락을 재촉하는/ 봄물의 뒤착임.

(장호/ 예감)

 

꿈에 다니는 길이 자취 곧 날작이면/ 임의 집 창 밖이 石路라도 닳을로라/ 꿈길이 자취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이명한/ 고금가곡)

 

임을 믿을 것가 못 믿을손 임이시라/ 미더운 시절도 못 믿을 줄 알아스라/ 믿기야 어려워마는 아니 믿고 어이리.

(이정구/ 청구영언)

 

사창에 날 저물고 뜰 위엔 꽃 지는데/ 하룻밤 相思苦야 그 뉘가 알 것가/ 눈물만 치맛자락에 아롱진가 하노라.

(삼의당 김씨/ 사창에 해지고)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 잎 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홍랑)

 

님으로 생긴 이 병 봄 탓이 아닌 것을/ 세상엔 하루같이 시름뿐 끝없고야/ 저승이 다시금 그려 못내 설워하노라.

(桂生/ 병중에)

 

님 탓에 생긴 병은 고칠 길 바이 없어라/잔 들어 못 푸나니 약 써서 될까 보냐/ 밤낮에 더운 눈물만 찬 자리를 적셔라.

(이옥봉/ 님을 여의고)

 

자신의 마음에서 열정, 갈망, 존경, 인내, 후회, 경악 등을 뽑아낼 수 있는 연금술사는 그것들을 뒤섞어 사랑이라 불리우는 것도 창조해 낼 수가 있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사랑과 허영심은 밀물, 썰물과도 같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꽃 한 송이를 심고서 들판을 황량하게 하는 사랑이란 얼마나 야만적인가! 그 사랑은 하루동안은 살아 있지만 일생 동안 우리를 괴롭힌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그러나 사랑이여!, 아무것도 매혹스러운 너를 지을 수는 없다!/ 흐릿한 안개 속에 빛나는 너, 타오르는 횃불, 계속 불타는 등불/너는 기쁨으로 또 특히 눈물로 우리를 사로 잡는다. / 젊은 때는 너를 저주하고, 나이 들면 너를 찬양한다.

(위고/ 올랭피오의 슬픔)

 

열정적인 사랑이란 억누를 수 없는 목마름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사랑의 가장 좋은 순간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 때는 아니다/ 그것은 어느 날이고 깨뜨리다 만/.침묵 바로 그 속에 있는 것// 그것은 마음의 잽싸고도 남모를/ 은근한 슬기속에 깃들인 것.

(프뤼돔/ 사랑의 가장 좋은 순간)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 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의 꽃이/ 공기의 향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괴테/ 5월의 노래 · 1)

 

오오 내 사랑은 붉고 붉은 장미니/ 유월에 막 피어난 신선한 장미여라/ 오오 내 사랑은 아름다운 곡조로/ 감미롭게 연주되는 노래 이어라.

(번즈/ 붉고 붉은 장미여)

 

이 나라에는 어린아기의 미소와 봄 아침과 바다소리가 합하여 사랑이 되었습니다.

(한용운/ 명상)

 

이대로 불타고 나서/ 한 줌 재가 된들 어떠리/ 어쩌다 잘못 태어난 사랑을 울어 봐도/이미 때는 늦었다.

(권일송/ 남지나 해상에서)

 

욕심을 놓고 돌아서면/ 사방에서 소리치고 있는 안개/ 안개 속에 떠있는/ 무중력의 사랑을 본다

(강계순/ 안개 속에서)

 

그러나 언젠가/ 어느 장하게 깊은 골짜기에/ 너의 혼과 나의 혼의 대화에서 /너와 나와의사랑은 다시금 싹틀 때/ 우리는 서로 속삭일 것이다/ "우리는 파이프의 계절과 같은 사랑은 아예 그만둡시다"라고

(김종문/ 파이프)

 

지난 여름 안개 속에/ 미아가 되었던 그대 사랑// 설악산 비선대 가는 돌밭에/ 새까만 수석으로 잠적했던 사랑// 권금성 · 케이블카에 헤롱대며/ 매달리던 철부지 사랑이 //어느 날 만삭한 몸으로/ 돌아와 누웠다.

(홍윤숙/ 사랑의 끝)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흐르지 않는 강물과/누워 있는 누워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쉽게 흐르지 말고/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 사랑법)

 

고요히 흘러내리는/ 달빛의 푸른 물결에 젖어/ 두만강변 벤치 위에는/ 한떨기 사랑시가 숨쉬누나

(김파/ 벤치 위에서 주은 사랑시)

 

목청 낮은 우리들의/ 안타까운 사랑은// 논두렁에/ 밭두렁에/ 풀꽃처럼 피어나서// 겨울에 잃은 이름을/ 수술로 몰고 있다.

(문무학/ 봄은 오는데)

 

우리들의 사랑은 저 들판/한 점 소리 없는 바람으로/ 잠자다 깨어 있는 푸른 이마

(김규화/ 솔베이지 노래를 주제로 한 시)

 

주해를 달 수 없는 사랑이건만/ 말보다 뜨거운 그 순정을/ 황혼이 받아안고 설레입니다.

(김철/ 황혼이 설레일 때)

 

사랑이 사랑다운 사랑이라면/ 희망의 돛을 달고 떠나야지요/ 비오나 바람부나 게으름 없이/ 사랑의 푸른 바다 노를 저어요.

(이상각/ 사랑)

 

나의 9월은/ 하늘 가슴 깊숙이/ 짙은 사랑을 갈무리 한다.

(서정윤/ 나의 9월은)

 

사랑은 우리 둘의 사랑은/꽃이 나비를 부르면/ 나비가 꽃을 찾아가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오/꽃에 취해 바람에 취해/ 넋이 나간 그런 사랑이 아니라오// 우리 둘의 사랑은/ 은하수 건너 무지개 끝을 달리는/ 그런 사랑도 아니라오 누구 누구 아무개 시구처럼/ 단풍나무 숲으로 난 작은 길로/ 백마 타고 청포자락 날리며 가는/ 그런 사랑도 아니고요// 사랑은 크낙한 사랑은/ 먼데서 오는 것이라오 까마득하게/ 달보다도 만리장성보다 먼데서 오는/ 그런 사랑이라오/ 그 사랑 때로는/ 강물 따라 기차의 속도로 오기도 하지만/ 굼벵이 걸음마보다 더디 오기도 하고/ 그 사랑 때로는/ 십오야 밝은 달 만월이 되어 오기도 하지만/ 그믐이 라 허기진 달 공달이 되어 오기도 한다오/ 사랑은 크낙한 우리들의 사랑은/ 깎아지른 벼랑 바위산을 넘기도 하고/ 파도로 사나운 밤바다를 건너 기도 하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오는 것이라오.

(김남주/ 우리 시대의 사랑)

 

"사랑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 "우리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가요? "/ "사랑"스승은 말했다.

(앤소니 드 멜로/ 겁내지 않음)

 

검은 머리채에 동양여인의 별이 깃들이다/ "도련님 인제 가면 언제나 오실라우 벽에 그린황계/ 짧은 목 길게 늘여 두 날개 탁탁 치고/꼬꼬 하면 오실라우 계집의 높은 절개/ 이 옥지환과 같을 것이요 천만 년이 지내간들 옥빛이야 변할납디"/ 옥가락지 위에 아름다운 전설을 걸어 놓고/춘향은 사랑을 위해 달게 형틀을 썼다/ 옥 안에서 그는 꽃보다 더 짙었다/ 무릇 여인 중/ 너는/ 사랑을 할 줄 안 오직 하나의 여인/ 눈 속의 매화 끝은 계집이여/ 칼을 쓰고도 너는 사랑을 뱉아/ 버리지 않았다/ 한양 낭군 이도령은 쑥스럽게/사또가 되어 오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노천명/ 춘향)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냄이/사랑인 것을

(정두리/ 사순절입니다, 랍비시여)

 

욕심을 놓고 돌아서면/ 사방에서 소리치고 있는 안개/ 안개 속에 떠있는/ 무중력의 사랑을 본다.

(강계순/ 안개 속에서)

 

그리하여 그 첫사랑아/ 땅 위의 길을 찾는 나의 눈길 멀리에서/ 너는 미소 지어 주는 것이다/ 천만의 밤에 막힌 이 가슴에.

(R. 강조/ 부재의 장미여 부재의 제네여)

 

세월은 가도/ 강물은 흘러서 다시 오지 않아도/ 첫사랑의 아픔은 가슴 매디 매디 도져오는 걸까.

(조효송/ 빨간 양옥집)

 

눈물처럼 아름다운 양의 청정무구한 사랑이/ 회색에 포기한 나의 사랑의 창문을 열었습니다// ‥‥P양,/ 울음이 터집니다/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이 사랑을/ 아끼는/ 울음을 곱게곱게 고칩시다.

(한하운/ 리라꽃 던지고)

 

샘물은 강물과,/ 강물은 바다와 하나가 된다. / 하늘의 바람은 영원히/ 달콤한 감정과 섞인다. / 세상에 외톨이인 것은 하나도 없으며, / 만물은 신성한 법칙에 따라/ 서로 다른 것과 어울리는데,/ 어찌 나는 당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랴?// 산은 높은 하늘에 입맞추고,/ 물결이 서로 껴안는 것을 보라./ 어떤 누이꽃도 용서받지 못하리라,/ 만일 그것이 제 오라꽃을 업신여긴다면,/ 햇빛은 대지를 껴안고,/ 달빛은 바다에 입맞춘다. / 이런 모든 입맞춤 무슨 소용 있으랴,/ 당신이 내게 입맞춰 주지 않는다면 !

(P.B. 셸리/ 사랑의 철학)

 

애정이 헛되이 되었노라 하지 말라/ 애정이란 허비되는 일이 없으니./ 그것이 누구의 마음 채워 주지 못하였다면,/그 물줄기 내리는 비처럼 샘물로 되돌아가/ 처량함을 거기에 가득 붓는다.

(H.W. 롱펠로우/ 에반젤린)

 

이윽고 해가 지고 저녁 노을 아래/ 다정한 사람이여 라고 속삭이니까/ 당신의 가슴이 열리었다.

(등원정/ 그 한마디가)

 

사랑은 흘러가는 마음 위에서 웃고 있는 가비어운 갈대꽃인가./ 때가 오면 꽃송이는 곯아지고 때가 가면 떨어졌다 썩고 마는가?

(이상화/ 이별을 하느니)

 

그의 애정은 그들이 떨어져 있는 거리의 크기만큼씩 커져 갔다.

(E. 케스트너/ 파비안)

 

사무치게 간절턴 서로의 사연은 겹겹 보배처럼 안으로 접고 창 너머 하늘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던 애정이 있었습니다.

(이영도/ 무상의 장)

 

사랑인들 님마다 하며 이별인들 다 설우랴/ 평생에 처음이요 다시 못 볼 님이로다/ 이 후에 다시 만나면 연분인가 하노라

(무명씨)

 

시문(紫門)에 말을 매고 님과 분수(分手)할 제/ 옥안주루(玉顔珠淚)가 눌로 하여 흘렀는고/ 아마도 못 잊을손 님이신가 하노라

(임리월)

 

님이 정녕 남이건만 어이 그리 유정한고/님 없으면 나 못살고 나 없으면 님 못사네 /지금에 초로인생이니 평생을 동심동락(同心同樂).

(무명씨)

 

내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밤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기인 한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 밤마다/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박목월/ 임)

 

오늘도 귀를 뜨고 마음을 뜨고, 아아 임의 말소리, 미더운 발소리, 또는 대님 푸는 소리로까지 어여뻐 기뻐 그려 낼 수 있는/ 명명(明明)한 명명한 매미가 우네

(박재삼/ 춘향이 마음 초)

 

꽃이면 다 고우랴 무향이면 꽃 아니요/ 벗이면 다 벗이랴 무정이면 벗 아니라/ 아마도 유향유정키는 님뿐인가.

(무명씨)

 

애인아, 손을 다고, 어둠 속에도 보이는 납색의 손을 내 손에 쥐어 다고, 애인아, 말해 다고, 벙어리 입이 말하는 침묵의 말을 내 눈에 일러 다고.

(이상화/ 이별을 하느니)

 

우리들의 사랑은 저 들판/ 한점 소리 없는 바람으로/ 잠자다 깨어 있는 푸른 이마

(김규화/ 솔베이지 노래를 주제로 한 시)

 

이 세상에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나의 애인이여 이 새벽이 당신에게 더없이 상쾌하여/ 당신은 내 곁에서 헤맨다.

(G. 슈아드/ 포에지)

 

사랑에 번민하는 심장은/ 건전할 때에도 죽어 간다/ 모든 심장의 건강은 사랑에 병들었으니

(E. P. 마더즈)

 

 

설 교 노 트

 

하나님의 애정

사49:14-21

 

서론

인생은 누구나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을 때에 행복해지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불행하여 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있는 이 세상은 사랑이 점점 식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24:12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사랑을 식히고 범법하게 하는 요인은 불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불법은 죄악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인간의 사랑은 식어가고 있으나 하나님의 사랑은 뜨겁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계시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문을 중심하여 이사야가 증거한 "하나님의 애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본문 14-15절에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에 모성애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기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시지 아니하고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1)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관심이 흐려지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기억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2)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열도가 식어지지 아니하신다는 뜻입니다. 세상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지마는 하나님의 사랑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3) 우리를 사랑하사 항상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실족하지 않고, 상하지않고,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절대 끊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2. 우리를 그 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7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가 본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허무한 사랑이 아니라 실재적인 사랑이라고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내가 받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사업에 열중하다보니 세상과는 가까워지는데 하나님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약하여 범죄하다가 보니 기도의 문도 막히고 신앙의 맥박도 약화되어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1) 하나님의 사랑은 마침내 우리를 붙들어 일으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나지마는 하나님은 가까이에서 우리를 붙들어 품에 안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대적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연약하여 악한 원수들과 대적들에게 포위 공격을 당할 때 그대로 절망하시지 아니하시고, 대적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이 필요한 모든 은사와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하여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날 동안 영육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사 우리의 삶을 안정시키시고, 발전시키시고, 번영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이 하나님의 사랑속에서 사는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 환난에서 근심이나 두려움이나 불안해 하지 아니하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도 사랑해야 됩니다.

 

결론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5:3).

(2)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엡6:24, 고전16:22).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요13:34-35

 

서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는 말씀은 주님이 고난받으실 일과 십자가 지시는 일을 앞두고 성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의발을 씻기신 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오늘의 성도들에게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심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말씀에 나타나는 탕자의 아버지의 마음은, 곧 인간을 사랑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 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외아들까지 십자가의 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2.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

마태복음 22장 37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남산길을 가다가 쓰러진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 주는 중에 굶어서 쓰러진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머니를 살펴보니 돈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아이에게 돈이 있는 데도 왜 굶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이것은 제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돈이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돈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려고 떼어놓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그 돈을 지닌 채 직장을 구하러 다니다가 1주일 만에 굶어서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가 후에 그 유명했던 손양원 목사님이셨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렇게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3.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법

베드로전서 4장 8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죄를 가리는 것입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힘이 있습니다. 아가 8장 6절에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람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여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법은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이 식어가는 말세에 있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십자가의 수직적인 관계가 나의 삶에서 완성되고, 하나님을 향한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할 때 십자가의 수평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십자가의 신앙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엡5:1-2

 

서론

기독교인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사랑의 역사를 베풀지 아니하셨더라면, 죄인의 낙인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본받고 그 말씀에 순종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기도하고, 격려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심방하는 것이 모든 순간이어야 합니다. 이 것이 주님의 요구요, 명령입니다. 순간적인 인간의 감정에 좌우된다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개인적인 일이나 단체적인 일이나 모든 부분을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야 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모습을 본받고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크리스찬의 본이 되시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본받을 것은 그의 사랑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라고 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기억합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그리스도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깊이 새겨두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빛을 짊어진 우리는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를위한 것이라면 모든 일에 절대 순종하여야 합니다. 충성해야 합니다. 그분의 모든 것을 담대히 널리 알려야 합니다. 순교하기까지 그의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히12:4). 사람을 위하여 죽기까지 일하면 순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죽으면 이것은 순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구속 사역을 완성하셨으니,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죽는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향기로운 재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본문 2절의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으니"에서 향기로운 제물이라는 것은 구약의 화제(火祭)를 말하며 그것은 자기 의사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역의 완성을 위해 친히 자신이 제물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가장 훌륭한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일일이 생축을 잡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내세에 대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모든 일을 사랑 가운데서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 순수할 때, 소망이 넘칠 때 진리를 깨달았다면 참으로 큰 축복인 것입니다.

 

 

성도의 사랑

엡6:21-24

 

서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서 성도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성도의 사랑으로 따뜻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1. 사랑을 받은 형제(21절)

바울은 에베소에 편지를 가지고 가는 두기고를 가르켜 사랑을 받은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어째서 두기고는 바울의 사랑과 성도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까? 그는 주 안에서 진실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일꾼은 사랑을 받는 법입니다. 바울 자신이 이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은 사랑을 받을만 하고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일꾼이 얼마나 귀합니까? 이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진실하셨음을 깨닫는 데서 옵니다.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진실하셨고, 우리를 교훈하심에 진실하셨고, 사랑하심에 진실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진실입니다.

 

2. 믿음을 겸한 사랑(23절)

에베소 교회 형제들에게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믿음은 원인이요, 사랑은 그 열매입니다. 믿음 없는 사랑은 인본주의에 흐르기 쉽습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외식하는 바리새적이 되기 쉽습니다.

계시록 2장 1-7절에 보면 에베소 교회가 바른 교리를 지키는 중에 처음 사랑을 잃었습니다.

(1)처음 사랑을 잃으면 깊은 예배를 못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대한 의무이나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한 것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입술의 붕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깨닫는 데서부터 우러나야 합니다.

(2) 순종의 전진

순종은 사랑의 열매입니다. 성경에 말씀한 사랑은 흥분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그것은 또한 자기 뜻으로 삼는 것입니다.

(3)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적 사랑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자기 희생입니다. 이방인의 사랑은 주는 것보다 얻는 것입니다. 진정 한 사랑은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부요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 변함없는 사랑(24절)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다변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주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사랑해 주셨고, 보배로운 피로 구속하심으로 사랑하셨고, 앞으로 주와 같이 영원히 있게 하심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변할 때가 있습니다. 연령에 따라 변할 수가 있습니다. 어릴 때, 젊을 때는 주님을 사랑했다가 장년이 되자 세상과 돈을 사랑하느라고 주님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환경을 따라 변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 있을 때는 믿다가 군대에 들어와서는 신앙을 버리며, 시골에 있을 때는 잘 봉사하다가 도시에 와서는 교회 생활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결혼을 전후해서도 이와 같이 변합니다. 또 소유의 변화가 있을 때도 사랑의 변화가 있습니다. 가난할 때는 주님을 의지하고 적은 수입에서도 정성된 헌금을 드리던 분도 소유가 넉넉해지면 재물에 의지하기를 하나님 의지하기보다 더합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체가 저주받은 증거입니다.

 

결론

지금이야말로 사랑받는 진실한 일꾼, 믿음을 겸한 사랑을 소유한 성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성령님의 은혜를 더욱 받을 만한 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요21:15-19

 

서론

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거듭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했을까요? 이제부터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주님을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없으면 그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갈라디아서 5장 6절 말씀과 같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겸한 믿음을가져야 합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지는 자를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1. 예수를 늘 생각하는 자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전각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격이 고상하게 되기도 하고, 축복자가 되기도 하고, 실패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장 3절에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자가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시편 17편 15절에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나이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를 다 누려본 솔로몬 대왕은 전도서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의 최대 행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기도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초대 교회 성도들은 기도를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116편 2절에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기도를 늘 하고 사는 사람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뫼임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기도를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싫증납니까? 기도하기가 괴로워졌습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하늘나라의 종소리요, 우리는 방망이입니다. 기도는 마귀를 물리 치는 핵무기가 되고, 기도는 환난날에 구원받는 신호탄이 됩니다. 진실로 우리에게도 간구의 영을 부어 주시고, 기도의 문을 열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직분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직분과 그 사명을 귀하게 여깁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에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고 너무너무 감격해서 그 사명감에 살다가 인생을 마쳤습니다.

본문에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신 사역자의 사명을 한 번 받더니 괴로우나 슬프나 즐거우나 그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로마 성에 가서 십자가를 거꾸로지고 순교하기까지 그 사명을 사랑하며 감당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사랑하는 자는 일생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게 됩니다. 자기의 직분이 고귀한 줄 알아야 사랑할 줄 알 것입니다.

 

결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묻고 계십니다. 이 질문에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무엇보다도 예수를 사랑해서 예수를 늘 생각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 주의 손에 붙들린 바 되고, 땅에서 사는 동안 큰일을 많이 하다가 주 앞에 설 때 상급받고 칭찬을 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요일4:7-8

 

서론

흔히 요한 사도를 사랑의 사도라고 합니다. 그는 사랑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십니까?

 

1. 눈동자같이 지켜 주시는 사랑입니다.

신명기 32장 1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에 있는 지체가 다 한결같이 소중합니다. 그러나 눈보다 귀한 지체'가 어디 있습니까? 눈이 어두우면 온몸이 어둡게 되는 것입니다. 눈은 그 몸에 비해 중요성이 상당히 큽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눈동자같이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2. 독수리같이 연단시키는 사랑입니다.

신명기 32장 11절에 보면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훈련하는 방법은, 보금자리에 가시를 놓아 찔리게 하여 밖으로 나오게 함으로 훈련합니다. 엄마 독수리가 새끼를 날개 위에 업고 해안 절벽으로 날아가 푸른 창공으로 집어 던집니다. 새끼가 안 죽으려고 퍼득거리며 죽을 힘을 다해 날다 바다에 빠지기 직전, 홱 채어가지고 다시 높이 올라가 던지고 하여 훈련합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으니 연단 중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3. 어머니같이 돌보아 주시는 사랑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보면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젓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전형적인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어머니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태에서 난 아이, 젖먹이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첫 아들을 낳아 목욕을 깨끗이 씻겨 품에 안고, 처음 젖을 물렸을 때,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여인은 혹시 자기 자신을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 말씀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영원 불변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눈동자같이 지켜 주시고, 독수리같이 연단시키시고, 어머니같이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가르치는 자

고전13:1-13

 

서론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은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은사는 예언, 방언, 통역, 지식, 신유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명히 은혜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장 귀한 은사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

 

1. 최상의 은사인 사랑(3절)

그리스도인과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거짓 그리스도인이요, 살아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다른 은사도 다 훌륭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1) 사랑은 황홀한 입신의 경지보다 귀한 것입니다(1절).

(2) 사랑은 지 적인 사고보다 귀한 것입니다(2절).

(3) 사랑은 종교적 능력에 의한 행위보다 귀한 것입니다(2절).

(4) 사랑은 금욕보다 귀한 것입니다(3절).

 

2. 행하는 은사인 사랑(4-7절)

사도 바울은 사랑의 고귀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사랑의 실제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행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1) 사랑은 두 가지 긍정적인 성격 오래 참음과 온유함에서 시작됩니다(4절).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사랑은 여러 가지 부정적인 성격 투기,자랑, 교만, 무례함을 포함하지 않습니다(4-6절).

(3) 사랑은 의미있는 행위로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딤을 수반합니다(7절).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네 가지 의미있는 행위입니다.

 

3. 영원한 은사인 사랑(8-13절)

사랑의 은사는 영원합니다.

(1) 사랑은 오래 계속됩니다(8절).

다른 은사들-예언 방언 등-은 일시적인 목적이 있고,부분적 지식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은사는 영적으로 유아기 단계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미래에는 분명해질 것입니다.

(2)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13절)"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귀한 은사는 사랑입니다.

 

결론

이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심어 주어서 어떠한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영생의 삶을 누리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는 사랑의 은사가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

호11:8-11

 

서론

이스라엘의 패역함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시지만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말씀이 호세아서입니다.

 

1. 하나님의 불붙는 심정(8절)

본문 1-7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종되었던 애굽에서 홍해를 가로질러 광야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그들의 옛 풍습을 버리고 가나안 땅에서 살 수 있는 훈련을 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3절).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리어 애굽을 바라보며 시내 산으로 가기는 커녕 홍해로 되돌아가고 싶어 하였습니다(5절).

이스라엘 백성이 결단코 애굽으로 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홍해로 나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너무나 괴로워하고 계십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애틋하고 간절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앞에,아니 내 앞에 펼쳐져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2.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9-11절)

하나님은 겉보기에 맹렬히 타는 불꽃 같고 진노를 끊임없이 발하시는 분 같으나 사실은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고서도 진리 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성과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마치 탕자가 떨며 집으로 돌아오듯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10절).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곳에서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던 죄악된 곳에서 겸손하게 떨며 돌아올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약하고 두려움에 가득 찬 우리를 그의 공의로 징계하시기보다는 이제 우리를 편안하고 따뜻한 집에 거하게 하십니다. 제재를 받지 않는 각자의 집에 머물게 하십니다. 이 얼마나 축복된 말씀입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완전한 안식입니다. 죄책감도 가질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전하게 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위치를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불붙는 심정으로 나를 안아 죄악의 도성에서 건져내어 이곳에 두셨으며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나를 훈련시키고 계시지만, 나는 도리어 옛날 죄악된 세상을.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긴 안목으로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처소에서 편안히 쉬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성합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 아닌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으신 사랑으로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그 처소로 나를 인도해 들이십니다.

 

 

입맞추기를 원함

아1:2

 

서론

유대인의 풍속도 그렇지만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교제 중에서 입맞춤은 최상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리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원리입니다.

 

1. 상봉의 감격을 표시하는 것입니다(창33:4).

창세기 33장에 에서와 야곱이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둘은 형제지간이었으나 사실은 원수지간처럼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고 그 축복까지도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에서의 마음을 하나님이 돌려주셔서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미움을 피하여 20년 전에 도망하였고 아직도 의혹과 공포 속에서 형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형이 아우를 열성으로 영접하여 상봉의 감격을 입맞춤으로 표시하였던 것입니다.

 

2. 사랑과 기쁨의 폭발입니다(창45:15,46:29).

애굽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팔려갔던 요셉이 총리 대신이 되어 있었고 요셉을 팔아먹었던 형들이 동생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모든 마음의 의심을 다 떨쳐 버리고 형들과 요셉이 만나서 기쁨으로 입 맞추었습니다.

또 그 부친 야곱은 죽었던 줄로 알았던 아들 요셉을 만나서 입 맞춤으로 상봉하였으니 이는 사랑의 작용이요, 기쁜 교제의 극치인 것입니다.

 

3. 참회의 서약입니다(눅7:38).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죄 많은 여자가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 곁에 섰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지은 죄를 참회하는 서약의 표로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춘 것입니다.

 

4. 용서와 사랑과 신뢰의 표시입니다(눅15:20).

부친의 말을 듣지 않고 허랑방탕하며 재산을 탕진한 탕자가 늦게라도 깨닫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품꾼의 하나로라도 감지덕지하며 아버지를 찾아왔는데, 오히려 그 부친은 그 범죄한 아들, 돌아온 탕자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자진하여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파격적인 은총입니다. 과거의 죄를 완전히 용서하시고 극진한 사랑과 전적으로 신뢰하는 표정으로 입을 맞추어 주었으니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의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결론

입을 맞추는 것은 열렬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랑을 교환하는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과의 사이에 열렬한 사랑의 표현으로 입맞춤이 전개되었습니다. 남녀간의 애정의 표현 중에도 그 입맞춤의 모습을 사랑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우리 주 예수님과 천국에서 사랑과 기쁨의 만남과 동행함을 입 맞춤으로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다

고후5:14

 

서론

"강권"이라는 말은 "붙잡는다", "감싼다", "떠민다", "이끈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신다는 말은 참으로 강력스러운 뜻의 말씀입니다.

왜 바울은 이러한 말씀을 하였습니까?

 

1.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나를 붙잡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을 위해서 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목적을 종합해서 분류해 보면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1) 자기를 위하여 살다가 죽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극단의 이기주의적 생활자입니다.

(2) 자기 가족을 위하여 살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것은 조금 고상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살다가 죽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신과 가정보다 국가와 민족을 우선한 애국자들입니다.

(4) 전인류를 위해서 살다가 죽는 성현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사상이요, 생활을 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강건함을 입어서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면 결국은 인류를 위하는 일도 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애국적인 처사가 되기도 하고, 가족을 위하여 사는 것도 되고, 결국 나를 위하는 삶도 되어서 우선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사랑에 녹아진 생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는 것은 할 수 없이 사는 일이나 부득이 하여 또는 불가피하여 하는 일이 아닙니다. 체면 유지상 외모로 하는 일도 아닙니다. 진심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강권되어 녹아져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중심에서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면 나에게는 무한한 기쁨이 넘치고 은혜에 도취되어 범사에 감사하고 충성스럽게 임무를 감당하게 됩니다.

 

결론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 함이니라"고 바울은 간증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요일4:7

 

서론

본서는 사랑의 사도가 사랑의 서신으로 기록하였으며 주제가 사랑입니다. 본서 중에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애칭이 6번이요, "사랑"이라는 명사가 18회요, 동사형으로 나타난 것이무려 29회나 됩니다.

요한은 말로만 사랑을 외친 자가 아닙니다. 그는 사랑의 실천자였습니다.

 

1.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어떤 보수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희생적으로 헌신함으로 베풀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조건적인 사랑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주더라도 꼭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과 같은 식의 사랑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고 하는 말은 한편으로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한편만 빚을 지고 안일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자"라고 하는 말과 뜻은 피차 자진하여 상대를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의 꽃이 필 것이요, 열매가 맺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이중적인 결실이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서로 사랑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사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시행하지 않으면 누가 그 일을 시행하겠습니까?

우리들은 종종 동포애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불신자에게 뒤떨어지는 경우를 당하고 부끄러워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자들을 도울 때 기독교인 이 앞장서지 못하여뒤따라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람을, 아니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속하여 있는 자녀라면 하나님께 속한 사랑을 꼭 실천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아는 사랑이 귀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거의가 다 물질적인 사랑을 합니다. 정신적인 사랑이 약간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심에서 나오는 사랑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찬의 사랑은 그 영혼을 아끼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영혼의 멸망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신령한 사랑입니다.

육체적 사랑이나 물질적인 사랑만이 아니라 거룩한 아가페적 사랑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랑이기 때문에 귀할 뿐 아니라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처음부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형제간에도 서로 사랑함으로 서로 축복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사랑해서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제일은 사랑

고전13:13

 

서론

본문의 말씀을 보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 사랑! 사랑! 아름답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향기로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어느 누구에게나 제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추구하는 것도 역시 이 사랑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사랑은 기독교의 사랑과는 다른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믿음도 좋고 소망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제일 귀하며, 재일 좋은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일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사랑은 만 가지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시니 제일입니다.

사람은 만 가지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고 그로 인하여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 허물과 죄 때문에 고난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하여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속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요3:16). 우리의 구원은 이 사랑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의 수많은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구원까지 해주신 사랑이니 재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 사랑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여 주시므로 제일입니다.

사랑이 없는 세계에는 점점 법을 범하여 죄를 짓는 일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률의 조문은 날로 늘어가고, 거기에 비례해서 범죄의 수단은 날로 새로워지고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 곧 사랑의 법은 이 문제를 해결해 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한 사랑의 범입니다. 스스로 빛 가운데 행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라고 하였습니다.

십계명은 사랑으로만 환성할 수 있고 예수님의 새 계명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고 한 것이니 이 사랑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기 때문에 제일인 것입니다.

 

3. 사랑은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되므로 제일입니다.

가장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라고 해야 을을 것입니다.

"세상 모두 사랑없이 냉냉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때 우리 교회들이 사랑의 손길을 펴야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려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교인이 많은 것보다는 사랑이 많아야 하고, 예배당이 큰 것보다는 사랑이 커야 하며, 재정의 풍부함보다는 사랑이 풍부해야 합니다.

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곧 사랑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불쌍히 보시고 사랑하시므로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께서도 사랑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이정도이니 제자인 우리도 또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음받아 사랑의 씨로 나서 사랑의 자녀가 되었으니 서로 사랑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마15:14

 

서론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주님은 교훈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1.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율법 정신입니다.

원수란 이미 내게 대하여 악을 행함으로 내게 손해를 입힌 악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악인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는 악한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것보다 그 행한 악을 미워하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원수를 미워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과 이러한 행동으로 강행하면 이 세상은 서로 물고 찢고 서로 싸우다가 피차 멸망하는 결과밖에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원수를 갚지 말고 오히려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2. 정당 방어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교훈은 자칫 잘못 생각하면 절대로 다투지도 말고 싸우지도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전쟁에는 반드시 침략전과 방위전이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침략전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방위전까지 반대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당 방어는 아직 완전히 당하지 않은 침략을 막는 행동입니다. 만일 방어를 안하고 적으로 침략하도록 버려두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리 막는 방어는 대단히 떳떳한 일입니다 따라서 도덕적으로도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아니 으레히 해야 하는 정당한 일입니다.

정당 방어를 악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3.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이 제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훈하시기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겉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동행하게 하는 자에게는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였습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가 행하기에 쉬운 것 같으나 참으로 어려운 일들인 것입니다.

자신만 아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서 예수님의 교훈은 전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위하여 살라는 사랑의 말씀이십니다.

차라리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교훈이야말로 제일 귀중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악은 악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선으로만이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고 악으로 악을 갚는다면 이방인들과 세리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교훈을 실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비취게 하십니다. 그리고 비를 의인과 악인에게 같이 내리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랑이 누구에게나 똑같으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 아니라 우리를 해하려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그 교훈을 평생토록 가슴에 새겨두고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사 명

성 경 활 용

1. 하나님이 부르시는 대상

(1) 만물

(사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2) 두려운 일

(애2:22) 주께서 내 두려운 일을 사방에서 부르시기를

(3) 벌

(사7:18)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년 지경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4) 양무리

(렘 25:30)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부르시며 그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발하시며 그 양의 우리를 향하여 크게 부르시며

(5) 죄인

(마9:1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2.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이유

(1) 회개의 촉구를 위해

(창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2) 민족을 구원시키려고

(출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3) 율법을 가르치려고

(레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 사명을 맡기기 위하여

(마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5)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기 위해

(살후2: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6) 의롭다 하게 하기 위하여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7)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고

(히9:15)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8) 거룩하게 하려고

(살전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9)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

(벧전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화평토록 하기 위하여

(고전7:15)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1)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12)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고

(살2: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함이니라

 

3.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방법

(1) 후회 없도록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2) 육체를 따라 자랑하지 못하게

(고전1:28-29)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3) 위에서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4) 크게 외쳐

(시42:13)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5) 구름 기둥 가운데 강림하사

(민12: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서 강림하사

(6) 그 뜻대로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7) 믿음 안에서

(고전7:20)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8) 이방인 중에서도

(롬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9)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갈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갈1: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10) 그리스도의 것으로

(롬1:6)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

 

4.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때

(1)밤에

(삼상3: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맡긴 바에 충성할 때

(출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 가매

(3) 태어나지도 않고 선악을 행치 않을 때

(롬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4) 영원한 때 전부터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5. 부르심을 받은 자의 생활

(1) 사랑으로 종 노릇하는 생활을 한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2) 감사하는 생활을 한다.

(골3:15)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3) 순종하는 생활을 한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4) 모든 행실에 거룩한 생활이 되도록 한다.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5)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

(엡4:1-3)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원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6)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생활을 한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 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6. 부르심을 거역한 자의 결과

(1) 판단이 흐려진다.

(사6: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를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2) 미혹으로 이끌리게 된다.

(사66:4) 나도 유혹을 고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3) 은총이 뜻하는 바를 퇴보시킨다.

(행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는 자

(4) 일시적인 판단으로 이끈다.

(사28:12)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 하였으므로

(5) 하나님으로부터 배척당하게 된다.

(렘6:30)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이라 칭하게 될 것은 나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음이니라

(6) 심판을 초래한다.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 하리라

(7) 파멸로 이끈다.

(잠29:1)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관련원어풀이

1. tr'x; 차-라흐

(1) 명백하다, 분명하다, 크고 분명한 소리로 외치다.

(습1:14)

(2) 외치다, 소리를 높이다.

(사42:13)

 

2. ar;q; 카-라-

(1) 외치다, 소리치다, 부르다.

(창45:1, 겔9:1)

(2) 어떤 사람을 부르다.

(창27:1, 삼상3:16)

(3) 함께 부르다.

(창20:8, 민1:16)

(4) 명명하다.

(삼상4:21)

(5) 암송하다, 큰 소리로 읽다.

(출24:7, 수8:34)

 

3. ga'v; 솨-악

울부짖다, 으르렁 거리다.

(삿14:5,암1:2)

 

4. qr'v; 솨-라-크

(1) 쉿소리를 내다, 휘파람을 불다.

(왕상9:8, 렘19:8)

(2) 피리를 불다.

 

5. kalevw 칼레오-

(1) 부르다, 이름을 주다, 명명하다.

(마10:25)

(2) 크게 부르다, 큰 소리로 말하다.

(마20:8, 눅19:13)

 

6. klh'si" 클레-시스

원래의 의미는 "부름, 초대"이다.

(1) 부름, 초대.

(롬11:29, 엡1:18)

(2) 초대의 호의나 특권.

(살후1:11, 벧후1:10)

(3) 지위, 직업.

(고전1:26, 7:20)

 

7. klhtov" 클레-토스

(1) 부름받은, 초청된, 영생을 얻기로 부름받은.

(마20:16, 고전1:24)

(2) 어떤 직분에도 부름받은.

(롬1:1, 고전1:1)

 

8. proskalevw 프로스칼레오-

(1) 자신에게로 부르다, 자신에게 오도록 명령하다, 부르다, 호출하다, 초청하다.

(마10:1, 행5:40)

(2) 하나님이 부르다.

(행2:39, 16:10)

 

9. prosfwnevw 프로스포-네오-

(1) 불러서 알리다, 불러내다.

(마11:16, 눅7:32)

(2) 자신에게 부르다, 호출하다.

(눅6:13)

 

10. kraugavzw 크라우가조-

소리치다. 외치다, 부르짖다.

(마12:19, 15:22)

설교예화자료

두려움을 이긴 사명

 

얼마 전에 한 선교사가 그녀의 세 자녀를 미국의 한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귀국하였습니다.

미국 여성 선교사 단체의 도움을 받아 자녀들을 위한 가정을 마련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교육을 시키기에 부족함 없이 마련되자,그녀는 아프리카로 돌아가기 위해 예약을 했습니다. 그녀가 떠나기 전날 밤, 한 유명한 기독교 단체가 그녀를 위해서 환송 파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은 다시 당신의 선교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이 틀림없이 두렵겠지요?"

그러는 순간 그 선교사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스쳐갔으나, 곧 경건하게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돌아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갈 곳은 더럽기 짝이 없지요. 거기에는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으며 그곳의 어딜가도 아무런 문화 시설이 없지요. 거기에는 깨끗한 물도 없으며, 내 자신이 직접 장작에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들어야 하고, 식사할 때는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내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지을 겁니다. 절망적이리만큼 내 아이들이 보고픈 마음에 못견딜 것이고, 혹시 그 아이들 중 어느 누구라도 아픈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해 할테지요. 제 생각으로는 그 아이들을 다시 보려 면 3년이 지나야 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주님께 이런 상태는 더 이장 참을 수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입니다. 아니, 아니예요. 나는 돌아간다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습니다. 다만, 일도 아니고 바로 주님의 사업을 행한다는 것, 바로 그것만이 두려울 뿐입니다. 거기에 돌아가서 활동하는 것보다 오히려 여기에 그냥 머물러서 아무런 주님의 일을 행할 수 없는 것이 내게는 더욱 비참하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

 

 

설교의 사명

 

영국 헨리 8세 때 감독 라치마가 열렬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왕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설교할 때에 이번의 설교를 취소하지 않으면, 생사가 달려 있다고 왕은 엄히 선언하였습니다. 라치마는 공포감마저 느꼈으나 신앙의 용기를 얻어 "내가 참 하나님의 사도요, 또 정의의 선전자일진데, 어찌 불의의 권력에 굴복하랴!" 하는 결심으로 다음날 강단에서 한층 격렬하게 불의를 공격하고 정의를 외쳐댔습니다.

많은 군중들은 감독의 운명을 근심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난 뒤에 역시 왕은 라치마를 호출하여 "왜 짐의 명령에 위반하였느냐?" 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라치마는 "이는 하나님의 사명이니 할 수 없소이다. 이제 나의 의무를 다하였으니 죽어도 좋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폭군 헨리도 이 말에 감동되어 감독의 손을 잡고 "짐의 나라에 경과 같은 충실하고 강직한 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오." 하였습니다.

 

 

미코니우스의 꿈

 

마르틴 루터가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일을 시작하였을 때, 그의 친구 미코니우스는 그에게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내가 비록 그 일에 참가는 못하지만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자네를 도우려 최선을 다하겠네. 자네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나는 이곳에 남아서 자네를 위하여 기도하겠네." 미코니우스는 매일 기도하였으나 그는 기도하면서 점점 더 불안해지는 자신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와서 발과 손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죄사함을 받은 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구세주는 그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주님은 그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 동쪽을 가리켰습니다. 그쪽을 바라보며 미코니우스는 수평선까지 펼쳐 있는 넓디넓은 평원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 평원에는 수천의 양때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 양떼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루터였습니다. 구세주는 서쪽을 가리켰습니다 미코니우스는 옥수수가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밭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추수자가 그것을 전부 추수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로운 농부는 기력이 쇠진하고 피곤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코니우스는 외로운 추수자가 바로 오랜 친구인 루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잠을 깨어 미코니우스는 말하였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못해. 양들은 살펴져야만 하고 들판은 추수를 해야만 하지. 자 내가 여기 있네. 나를 보내 주게." 그는 일어나 오랜 친구의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누구를 위한 교회인가

 

미국에서 한인 교회를 담임하여 목사 일을 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년 전 자기가 거주하고 있는 조그만 도시에서 그곳에 유학 와 있는 한국 학생들,그리고 그 지역에서 직장을 구해 일하고 있는 몇몇 한국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인 교회의 간판을 달고 한국 사람들끼리 먼 이국 땅에서 한국말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인 교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곧 교회는 일정한 수의 교인을 확보한 교회다운 교회로 성장해 가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도시 근처에 있는 군인 부대를 중심으로 살고 있던 몇몇 한국의 여인들, 한국에서 미국 병사들과 소위 국제 결혼이란 것을 통해 미국에까지 따라와 생활하고 있는 외로운 한국 여성들이 교회를 찾아와 교회 생활을 하기 시작한 데서부터 생겨났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미 교회 생활을 시작하고 있던 사람들, 교회 설립에 주역을 이루었던유학생들과 특히 의사들이 "양색시"들과 같이 예배볼 수 없고, 자기의 자녀들이 그런 사람들의 자녀와 어울리는 것을 말려 달라고 건의했습니다. 목사는 그럴 수 없다고 했고, 그래서 결국 그들은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를 떠나겠다고 하여 다른 교회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깨어졌고 담임 목사는 여러 교인들을 잃게 된 것 때문에 상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

 

교회의 맨 뒷좌석은 많이 비어 있었습니다. 예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전혀 낯선, 그리고 아주 남루한 옷을 입은 40대의 남자가 술에 만취된 채 몸을 거의 가누지도 못해서 비틀거리며 교회 안으로 급히 들어와 뒷자석 한쪽 구석에 쓰러지듯 기대 앉았습니다.

구석에 앉았는지 누웠는지 모르게 쓰러져 있는 순간 숨소리가 높았고 술냄새를 진하게 풍기고 있었습니다. 가끔 이상한 신음 소리같은 것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는 술에 만취되어 있었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술이 너무 지나쳤던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 근처의 교인들은 악취를 피해 조금씩 자리를 피했고, 또 어떤 사람은 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자꾸 뒤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예배의 분위기가 약간 동요되고 있다고나 할까? 설교하시던 목사님의 눈이 약간 찌푸러지는 것 같다고 느껴졌을 때, 뒷자리에 앉아있던 장로님과 집사님이 얼른 일어나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각각 한 팔씩을 붙잡고 강제로 그를 끌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저항했고 장로님과 집사님은 억지로 그를 교회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 일이 당연한 것처럼 그리고 그런 훈련을 받았기나 했던 것처럼. 다시 그는 내 앞을 악취를 풍기며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슬픈 표정을 하면서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불쌍히 끌려나갔습니다.

그가 끌려나가면서 몇 마디 크게 지른 소리가 있었습니다. 잔뜩 혀꼬부라진 소리였고 그래서 거의 알아듣기도 힘든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었던 나는 분명히 그 음성을 알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배에 나오고 싶었단 말입니다. 왜? 난 교회에 나오면 안 됩니까? 나오고 싶었다니까요!"

 

 

교회의 비유

 

자주 파선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어느 위험한 해안에 한때 볼품없는 작은 인명 구조대가 있었습니다. 건물이라곤 오두막 한 채 뿐이었고 보트도 작은 것이 하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몇 명의 회원들이 끊임없이 바다를 지켰고, 그들은 자신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밤낮으로 바다에 나가 실종된 자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많은 생명들이 이 훌륭한 작은 구조대에 의하여 구조되었으며 그래서 이 본부는 유명해졌습니다.

구조된 자들 중에 몇 사람과 또한 인근 지역에 사는 여러 사람들은 이 구조대와 연관을 맺고 이 사업을 뒷바침하기 위해 그들의 시간과 돈을 제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보트들을 더 구입했고 새로운 구조대원들을 더 훈련시켰습니다. 작은 구조대가 점점 더 커지게 되었습니다.

인명 구조대에 가입한 새 회원들 중 어떤 사람들은 건물이 너무 볼품없고 시설이 빈약하다고 불만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들은 바다로부터 구조된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기 위해서라도 좀더 편안한 장소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상용 간이 침대를 훌륭한 침대로 갈아치우고, 확장된 건물 안에 좀더 훌륭한 가구들을 갖다놓았습니다. 이제 그 구조대는 그 회원들을 위한 대중적인 화합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을 일종의 클럽처럼 사용했기 때문에 그곳을 아름답게 다시 치장했고 멋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이제 회원들은 인명을 구조하는 임무를 위해 바다에 나가는 일에는 점점 더 관심을 잃게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인명 구조원들을 새로 채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인명 구조의 주제는 여전히 클럽 장식들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클럽 가입식이 거행되는 방에는 여전히 예식을 위한 구조선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화합 때, 클럽 회원들 가운데서 불화가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클럽의 인명 구조 활동이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닌데다가 클럽의 정상적인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구조 활동을 그만두기를 원했습니다. 어떤 회원들은 인명 구조야말로 그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하면서 계속 인명 구조대라고 불리워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투표 결과 결국 패배했으며, 만일 그들이 그 지역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의생명을 구조하기 원한다면 아래편 해안에서 그들 나름의 인명 구조대를 새로 세울 수 있다고 통보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새로 생긴 이 인명 구조대는 옛날 구조대가 겪었던 똑같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구조대는 일종의 클럽으로 발전해 버렸고 그래서 또 다른 인명구조대가 새로 생기게 되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사명이란 통속적인 임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요, 그것이 천직을 뜻하듯이 일종의 운명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종식/ 세대론)

 

사명이란 본래 누구에게서부터 내게 주어진 것이다.

(조향록/ 진실한 삶)

 

사명을 잘못 세우면 인생의 모든 것이 퇴색된다.

(H. 발자크/ 뉘상장 씨 가문)

 

모든 사명은 의무의 서약으로 구성된다. 모든 사람들은 사명의 완수를 위해 자기의 모든 재능을 바치도록 되어 있다. 모든 행동의 규범은, 의무감의 확신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

(G. 맛치니/ 생애와 작품)

 

노동자는 주로 기업에 대해서 「공정한 임금」을 요구할 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노동자는 인간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 「경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全人間으로서 온갖 것을 기업에 요구한다. 즉 노동자의 요구는 경제적인 보수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의 직무를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사명감의 달성이라든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한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인간의 사명이 고통을 통해 순수한 즐거움에 이르는 것이라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그 최상의 것들이 다른 것들보다 더 높이 위치해야 한다.

(시몬 베유/ 노동일기)

 

각자가 그 맡은 바 사명에 따라 일하라.

(F. 라블레/ 제 1의 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너의 인생과 맡은 바 사명이 나처럼/ 결실을 맺도록 하려면/ 나를 닮도록 하여라./ 참회하여 한 알의 씨앗으로 돌아가/ 너 자신을 땅에 묻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자기를 죽이도록 하여라/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라./고통을 피하는 자는 홀로 남게 된다/ 이기적인 자보다 더 외로운 자가 없다. /그러나 내가 만인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듯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까닭에/ 목숨을 바치면/ 너는 엄청난 수확을 거둘 것이다. / 그리하여 너는 더없는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다. "/ 위협이든 죽음이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여러분의 교회)

 

지금 우리들의 행로엔/ 실천해야 할/사명과 의무와 정의/ 파도처럼 밀려오고만 있는/ 여울목에서 힘차게 일어설 뿐

(황금찬/ 영광 속에서)

 

내 순명(順命)의 언덕길엔/ 오늘도/ 무성하게 나부끼는/ 무심초

(윤희선/ 무심초)

 

오오 아버지여, 만일 내가 괴로운 내 사명을 다하였다 하면,

(비니/ 올리브 산)

 

사흘 뒤/ 그분은 죽음을 깨뜨리고 살아나셨다/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였었다. /생명의 격렬함/ 생명의 영겁/그것이 보인다/"보라 나는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으리"/ 지금 우리의 참다운 소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부터/ 어디로/ 아무것도 모른다/ 단지 세계가 갑자기 무거워지고/ 용기가 힘차게 날개치고 있다.

(모리타 스스무/ 소명 · 3)

 

그대의 소명은 이 세상에서/ 영원을 지키며 고대하고 응시하는 것/ 그대는 이미 이 세상사에 묶여 있고 또 풀려나 있으니/ 그대를 부르는 때가 오리니/ 그대, 마음을 준비하고/꺼져가는 불길 속으로/ 마지막 불꽃을 위하여/ 그 피를 던지리라

(잉게 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설 교 노 트

 

파수꾼의 사명

겔3:16-21

 

서론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에스겔을 불러서 주신 말씀이 있으니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는 분부였습니다.

옛날은 도시마다 성이 둘려 있었고 그 성위에는 망대가 세워져 있으며, 그 망대 위에 파수꾼이 서서 불철 주야 그 성을 파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대에는 여러 분야의 파수병이 있습니다. 군대에 공산당을 막는 전방 진지의 전초병, 화재를 살피는 소방대, 거리를 순찰하는 교통 경관, 도적을 지키는 야경꾼,그리고 진리를 수호하는 교회 안에 세우신 진리의 파수꾼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파수꾼의 사명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왕명을 받아 백성을 깨우치는 사명입니다.

교인 하나하나는 오늘 우리 민족과 사회의 파수꾼으로 세움받았으며, 교역자는 교회의 파수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에스겔은 그 백성을 깨우치게 할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주,인생, 죄, 구원, 천당, 지옥 등을 깨우치도록 나팔을 바로 불어야 되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6:23)", "하나님은 죄인을 부르신다(사1:1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7:13)", "심은대로 거두리라(갈6:7)",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다(벧전1:24)", "하나님은 무시무종하시거나 우주는 무시무종한 것이 아니니 창조와 심판이 있다" 하면서 파수꾼은 상통하달이 잘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아래로 깨우치도록 바로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2. 원수의 공격을 지키는 사명입니다.

군인은 공산당의 침입을 지키며 막아야 하고, 진리의 파수꾼은 영혼의 자유를 앗아가지 못하도록 원수 마귀의 유혹과 침범을 막아야 합니다. 전신 갑주를 입고 지켜야 합니다(엡6:6).

6 · 25사변 직후 어느 전방 진지에서는 파수병이 졸므로 인하여 일개 분대원이 몰살당한 예가 있었습니다.

파수꾼 한 사람이 사명을 잘 감당하면 수백 수천 명을 보호할 수 있거니와, 한 사람이 졸고 파수를 보지 못하면 적으로 인하여 아군이 전멸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3.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귀가 밝아야 합니다. 귀가 먹은 사람은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상관의 명령도 잘 알아 들어야 하고 적진이 움직이는 세미한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눈이 밝아야 합니다. 소경은 파수꾼으로 세워 놓으나마나입니다. 사위의 정세를 바로 살피고 간첩의 준동을 잘 탐색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줄 아는 파수꾼이 귀합니다.

(3) 졸지 말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 있으라 했습니다. 파수꾼이 졸면 큰일 중에 큰일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파수꾼입니다. 적인 사탄이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열심히 파수해야 합니다. 충성을 다하는 자는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가는 사람

마11:29-30, 삼상6:10-16

 

서론

주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누구나 다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을 배우면서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멍에를 멘다는 말은 주님과 공동체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주님의 거룩한 일에 동참한 동역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법궤를 실은 달구지의 멍에를 메고 면세메스로 가고 있는 두 암소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1. 멍에를 멘 사람의 바른 자세

본문 가운데 멍에를 메고 가는 두 암소가 취한 자세를 세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재앙이 내리고 있는 지역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방금 블레셋 지역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저주와 형벌이 내리고 있는 암흑한 지역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멍에를 멘 사람들은 떠나야 할 지역을 떠나 방향 설정을 바로 해야 합니다.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내리는 소통과 고모라에서 떠났던 롯과 같이, 세겜에서 떠나 벧엘로 향하였던 야곱 같이, 우리는 범죄의 영역을 떠나 신성한 영역으로, 저주가 내리는 영역을 떠나 축복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수레의 멍에를 메고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 지역으로 운반하기 위해서 멍에를 메고 수레를 끌고 떠났다는 말입니다. 이는 블레셋 민족에게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진노와 저주를 중단시키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희망과 축복을 안겨주기 위하여 메고 가는 멍에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멍에이니 우리가 반드시 메고 가야할 멍에라고 생각합니다.

(3) 송아지를 떼어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2. 멍에를 바로 메고 가는 방법

(1) 바른 길로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어그러진 길로 간 것이 아니라 정정 당당한 길로 갔다는 뜻입니다.

(2) 울면서 수레를 끌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가는 길에 괴로움이 많아 눈물도 땀도 흘리면서 가야 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최후 십자가와 길을 가면서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리면서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3)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두 암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행로이지만 갈팡질팡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바로 갔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할 만 합니다.

이는 현하 주님의 멍에를 메는 사람들은 신인전에서 공명 정대하게 살면서 사역해야 된다는 교훈이 있습니다. 물욕이나 명예욕이나 교권욕에 영향을 받아 치우치지 말고 인정도 사정도 초월하고 지방색이나 어떤 파벌의식도 추월하여 하나님의 일을 바로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론

멍에를 메고 간 결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 기 두 암소는 사명 완수의 최후목적지인 면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이르러서 제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잡히었다고 하였습니다. 죽임을 당했다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완전히 희생의 제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가는 사람들은 결론적으로

(1) 주님에게 꽉 붙잡혀져야 하고

(2) 주님과 함께 옛 사람은 죽어야 하고

(3)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제물이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 결과 이방 민족에게는 재앙을 중단시키게 되고, 이스라엘 선민에게는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성취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멍에를 바로 메고 가면 최후에 축복과 영광을 누립니다.

 

 

교회의 사명

마28:16-20

 

서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들은 존재의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바로 수행하고 못함에 따라서 존재의 의미와 운명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사명을 바로 인식하고 사명을 바로 감당한다

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와 운명을 결정지어 나가는 중요한 과제인 것입니다.

사명은 사신이 임금에게 받은 명령이요, 책임과 의무요, 일거리 혹은 사업이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1. 선교 사업입니다.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되게 하라는 말씀은

(1)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파해야 되고

(2) 복음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되는 선교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의 대상은 "모든 족속"이라고 하셨으니

① 인종을 초월해서 세계 만민을 대상하고

② 지역을 초월해서 세계 만방을 가리킵니다. 선교 사업은 인종과 지역을 초월해서 광범위하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이 선교 사업이 오늘날 지상 교회의 첫째 사명입니다.

 

2. 영혼 구원 사업입니다.

본문 19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신 말씀은 교회의 특권과 사명을 부여하신 말씀으로써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유함을 받게 하고

(2) 모든 인생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라는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는 세례의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벧전3:21에

①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하셨고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성례를 시행할 특권과 영혼 구원의 사명이 있습니다.

 

3. 말씀을 교훈하는 사업입니다.

본문 20절에 내가 너희께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은

(1)하나님의 말씀을 교훈할 사명이 있는 동시에

(2)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할 사명이 교회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지킬 사명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파수해 나아가는 것은

① 교회의 성결과 사회 정화의 의미가 있고

② 하나님 나라 건설과 확장에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결론

이와 같이 선교의 사명과, 구령의 사명과, 말씀 교훈의 사명은 주님이 친히 분부하신 지상 교회의 삼대 사명입니다. 그런고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지상 교회가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교회다운 교회 구실을 하지 못하면 이것이 곧, 빛 없는 등대요, 맛 잃은 소금이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의 거치른 존재가 되어서 마침내는 버림받아 모든 사람들에게 밟힘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현대 교회는 각성해서 교회로서의 사명 수행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모세의 소명과 교훈

출3:1-12

 

서론

성경에 수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신구약에서 각각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구약에서는 모세요,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 이유는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부름받은 소명자로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었으며, 사도 바울은 기독교를 박해하였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직접 예수를 만나고 부르시는 소명을 받은 자입니다.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인 모세의 소명과 그 교훈에 대하여 지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소명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전기를 보면 기구한 운명의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슬하에서 자라지 못하고 애굽 왕 바로의 딸, 즉 공주의 아들로 성장하여 바로 왕의 총애를 받으며 애굽의 최고 학문을 배웠습니다.

또한 무사의 훈련까지 연마해 가지고 전쟁에 나가면 백전 백승하는 대장군으로 유명했고, 거기다가 종교적으로는 생모인 요게벳이 유모처럼 들어와 젖을 먹일 때마다 만군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길렀기 때문에 그는 모태에서부터 유일신 하나님의 신앙이 못박혀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모세에게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나 애굽인에 대한 의분심과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받은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자아 발견의 훈련장으로 40년간의 생애를 미디안에서 보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광야 40년의 세월을 적막과 고독과 실패만으로 얼룩진 모세에게 희안한 광경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모세가 하루는 양떼를 이끌고 호렙산으로 갔었는데 저 앞산 마루턱에서 산불이 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 발 한 발 가보았더니 가시넝쿨에 불이 붙었는데도 가시넝쿨은 가만히 있습니다. "아니 저럴 수가." 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소리가 들립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복을 받아 소명자가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모세를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불렀습니다.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 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 있었던 모세를 지금까지 떨기나무와 같은 존재임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1) 가시 떨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의 가시 넝쿨입니다.

가시넝쿨이란 예나 오늘이나 아무데나 쓸모가 없습니다. 쓸모없는 무용지물일 뿐 아니라 도리어 남이나 콕콕 부시는 가시나무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최고 학부를 나와 자기가 대단한 존재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소명을 받고 보니 이제는 쓸모없는 남의 마음이나 상하게 하던 가시덩쿨 같은 존재란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2) 그 다음 가시떨기는 엉겅퀴입니다.

여러분, 엉겅퀴란 무슨 말입니까? 엉겅퀴란 나무처럼 위로위로 솟아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넝쿨처럼 옆으로만 뻗어가는 것도 아니라, 이리저리 엉클어져 가지고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뻗어 갔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세는 자신이 엉겅퀴처럼 복잡하게 엉클어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3) 가시떨기는 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무용지물 같은 가시떨기요, 찌르는 존재요, 엉겅퀴와 같은 문제의 인물이었지만 하나님이 한 번 불러서 장중에 붙들어 쓰시기로 작정한 바에는 가시떨기에 불이 붙었으나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모세를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붙드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렙산의 체험이 있기 전 모세는 겁쟁이요, 졸장부요, 항상 마음이 두려운 마음으로 바로 왕 앞에 떨면서 살았지만, 호렙산 가시덤불에 불이 붙었지만 타서 없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새 용기와 담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론

성경을 보면 언제든지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에는 불로 나타나셔서 역사하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비굴하고 나약한 사람일지라도 성령의 불을 받고 구습을 쫓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지기만 하면 새힘과 용기가 생겨나서 아무 데서나 전도하게 되며 예수의 향기를 날리면서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일은 성령의 불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야 일할 수가 있는 것이요, 뜨거워야 무슨 일이든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감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쇠 멍에를 만듦

렘28:13

 

서론

멍에는 나무로 만든 틀입니다. 이것은 두 마리의 소나 다른 수레를 끄는 짐승들을 연결시키기 위하여 목에 걸쳐 놓는 것입니다.

쟁기, 썰매, 마차 등은 짐승의 넓은 잔등을 이용하여 끌었습니다.

그러므로 멍에의 중심 뜻은 무거운 죄를 끌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1. 나무 멍에 대신 쇠 멍에

본장에서 이야기된 멍에에 대한 교훈은 유다를 위시한 모든 나라들이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는 강대국가인 바벨론에 복속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멍에를 메라는 뜻으로 가르쳐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무 멍에를 꺾어 버리면 평안한 것이 아니라 더 무겁고 괴로운 쇠 멍에와 같은 짐이 가중한다는 교훈입니다.

결단코 바벨론의 지배권을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멍에는 어차피 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메워 준 멍에인데 사람이 마음대로 꺾으면 다시 꺾지 못할 쇠 멍에를 메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제재나 징계를 배격하거나 회피하면 반드시 보다 더 무서운 제재나 어려운 환난을 받게 되는 법임을 뜻합니다. 하나님 깨서 주시는 환난과 고통의 멍에라면 언제나 근신하는 마음으로 달게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험한 고난을 당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즉,사람들이 율법의 멍에를 메기 싫어하면 불법의 멍에가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양심의 멍에를 메는 것은 유쾌하나 그것을 거부할 때에는 자신을 죽을 지경의 고통에 빠뜨리는 무서운 정욕의 멍에를 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말고 온전히 그 뜻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리스도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는 나무 멍에 대신 쇠 멍에를 메웁니다. 그러나 순종하고 따르면나무 멍에라도 무겁지 않고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1절 28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없이 범죄하며 사는 생활은 쇠 멍에처럼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는 가벼운 것임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어차피 우리들은 멍에를 메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멍에를 거부하고 사명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는 메야 합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멍에, 가벼운 멍에를 매야 하겠습니다.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얹고

렘27:2

 

서론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멍에를 만들어 메고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복종하여 섬기면 살고 반역하면 멸망한다고 외쳤습니다.

그 멍에는 무엇입니까?

 

1. 멍에의 뜻

"멍에"는 히브리 원어로 "모타"이고 헬라어로는 "주고스"입니다. 그 뜻은 "지배한다", "무거운 짐", "고역", "구속형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포로민들이 멍에를 멘 것은 지배를 받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쟁기를 끌거나 짐을 실은수레를 끌 때에는 무거운 짐이 될 것입니다. 또 죄수들이 멘 멍에는 고역이나 구속 형틀의 뜻이 나타나게 됩니다.

 

2. 사명의 멍에

예레미야는 멍에를 메고 선지자의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이것은 괴로운 수행입니다. 그리고 안 할 수 없는 고역 이 기 때문에 멍에가 됩니다. 그 멍에는 명예로운 일이 아닙니다.극히 모욕적인 수욕의 멍에였습니다. 짐승이 메는 것을 사람이 멘다는 그 자체가 벌써 수치스러운 일이 됩니다.

전쟁도 하기 전에 미리 항복하라고 말하는 것은 국민들의 반감을 일으켜 매맞아 죽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이므로 거절하거나 사양할 수 없는 오직 순종할 뿐인 것입니다.

 

3. 봉사의 멍에

예레미야 27장 8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지 아니하는 국민 즉 그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국민이나 그 목으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지 아니하는 백성은 내가 그의 손으로 진멸시키기까지 칼과 기근과 열병으로 벌하리라"고 하신 대로 그를 섬기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방 왕이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뜻도 아니요, 그 자신이 경건하고 의로운 자라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사용하시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모든 권위를 위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멍에는 복종하는 일이요, 고역이 따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10절에 "오직 그 목에는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서 밭을 갈며 거기 거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축복의 멍에가 되는 것입니다.

멍에를 메고 고생을 하면 축복이 임하여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멍에를 축복의 멍에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사 업

성 경 활 용

1. 사업의 태도

(1) 근면함

(잠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22:29)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2) 충성함

(왕하12:15)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느13:13) 이는 저희가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단6:4)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었음이었더라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정직함

(잠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4) 공평한 도량형

(레19:36)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잠20:10) 한결 같지 않은 저을 추와 말은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5) 부지런함

(창31: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잠31:27)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고전4:12)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6) 성실함

(삼상12:4) 그들이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왕하12:15)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관련원어풀이

1. hk;al;m] 멜라-카

(1) 봉사, 명해진 일.

(창39:11, 레23:7)

(2) 재산, 부귀, 번영.

(출22:7, 10)

(3) 가축.

(창33:14, 삼하15:9)

 

2, h`,[}m' 마아세

(1) 어떤 사람이 만들거나 행하는 것.

(창47:3, 대상23:28)

(2) 행위, 행동.

(삿2:10, 시86:8)

(3) 일, 사업, 역사.

(시8:7, 사5:19)

(4) 재산, 물건.

(출23:16, 사26:12)

 

3. e[rgon 에르곤

(1) 일, 행하거나 행해진, 어떤 일, 행위, 행동.

(히4:3, 10)

(2) 행한 일, 성취, 공적.

(마11:2, 계15:3)

(3) 일, 직업, 과업, 임무.

(요17:4, 행13:2)

(4) 물건, 공작물.

(롬14:20, 히1:10)

(5) 사물, 사건.

(행5:38, 딤전3:1)

설교예화자료

하나님을 의지한 워너메이커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가 처음으로 돈을 벌게 된 것은 그가 부친의 벽돌 공장에서 벽돌을 구운 대가로 받은 7센트 때문입니다.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워너메이커는 주급 1달러 25센트를 받고 서점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집에서부터 4마일을 걸어서 출퇴근하였으며, 점심은 사과나 빵조각을 먹고 지냈습니다. 그때 그는 상인으로 성공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생활은 철저히 절제하였습니다. 그후 그의 장모와 함께 상점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손수레로 물건을 직접 날랐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 가지 그에게 특별한 것은 매일매일의 수익금 중 일부를 지방 신문에 광고비로 사용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백화점이라는 형태를 만들었으며 정찰제라는 것을 시행하였습니다.

10년 만에 워너메이커는 필라델피아의 주도적인 상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종업원들에게 최고의 보수를 주었고 그들의 봉급은 국회의원의 봉급보다 더 많은 액수였습니다.

워너메이커는 그가 사업에 성공한 것은 자신의 신앙과 하나님을 의지한 마음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팔라치아의 가난을 구한 소년

 

아팔라치아의 우체국장으로 있는 존 A. 그로노스키(John A. Gronouski)는 한 소년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소년의 생각은 아주 간단하고 기발한 것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우표에 의도적으로 작은 실수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후 고의적으로 흠집을 낸 우표가 발행이 되었습니다. 아팔라치아의 사람들은 그 우표를 단돈 5센트에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발견한 우표 수집가들에 의해 그 우표는 천에서 만 달러에 다시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팔라치아의 가난은 해결되었습니다.

 

 

어록·시·묘사

 

나의 사업 목적은 언제나 부끄럽지 않게 돈을 버는 일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인생의 목표는 선을 행하는 일임을 기억하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P. 쿠퍼)

 

사업이란, 아시다시피, 돈은 가져올 수 있지만, 우정은 가져오기 힘들다.

(J. 오스텐/ 오만과 편견)

 

오늘날의 사업은 군중의 설득을 큰 일로 삼게 되었습니다.

(G.S. 리/ 군중)

 

자기 신뢰는, 위대한 사업의 제일의 필요조건이다.

(S. 존슨/ 작품집)

 

사업은 처음 시작할 무렵과 목적이 거의 달성되어 갈 때가 실패의 위험이 가장 크다. 배는 해변가에서 잘 난파한다.

(베르네르)

 

사업?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돈이다.

(A. 뒤마(피스)/ 금전 문제)

 

실업가는 회계실 열쇠 구멍으로 인생을 내다본다. 그에게 있어 세계는 하나의 상품시장이고, 그는 이웃 사람을 그의 가게 문 유리의 사이즈로써 판단한다.

(A. G. 가드너/ 모자철학)

 

사업이란, 원래가 투입물은 원료이며 공급물은 노동, 그리고 시작은 자본인 하나의 경제제도이다.

(G.S. 오디언)

 

사업의 목적은 명예스러운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임을 나는 항상 인식해 왔다. 또 인생의목적은 善을 행하는 것임을 기억하려고 노력해 왔다.

(P. 쿠퍼)

 

어른들의 장난감을 사업이라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확실히 아주 훌륭한, 가장 공공에 이익이 되는 사업은 결혼하지 않은, 또는 자녀 없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애정에 있어서나 재산에 있어서나 공공과 결혼하고 그것을 부양하는 것이다.

(F. 베이컨/ 결혼과 독신 생활)

 

정직한 사업을 엄밀하게 수행하기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진실한 것은 정직이 큰 재산을 얻는 것과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M.K. 간디/ 평화시와 전시에서의 非暴力)

 

무릇 사업에는 세 개의 부분이 있다. 준비, 실행, 완성이 그것이다.

(F. 베이컨)

 

현대에 있어서 사업의 성공은 대중으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상품으로 내놓는다고 믿게 하는 데 있다.

(G.S. 리/ 군중)

 

대사업은 그것이 크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그의 거대성이, 즐겨서는 안될 특권과 면제로써 이루어지는 불건전한 팽창이기 때문이다.

(W. 월슨/ 대통령 지명 수락 연설)

 

성공적인 사업 교섭에는 별다른 비결이 없다‥‥‥‥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에게전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보다 더 효과적인 아첨방법은 없는 것이다.

(T.S. 엘리엇)

 

사업에 대해서도 의식적으로 하는 이가 있고 무의식적으로 하는 이가 있는데, 문명한 나라의 사람이 하는 사업은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요, 미개한 나라 사람이 하는 사업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외다. 문명한 나라 사람은 사업에 대한 방법을 연구하고 통계적 관념 아래에서 한기 때문에 그들의 사업은 흥왕하고, 미개한 나라 사람은 이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업이 쇠퇴하여지는 법이외다.

(안창호/ 동지들께 주는 글)

 

비(卑)부터 시작하라. < *郭 가 연왕에게 현자를 초대하는 데는 자기와 같은 범인을 잘 우대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자기보다 뛰어난 현자가 모인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원대한사업을 향하는 데는 비근한 일부터 시작하라는 뜻)

(戰國策)

 

위대한 사업은 흔히 역경을 만난다고 하지마는 위대한 사업일수록 역경에서 출발하기가 쉽게 되느니, 그 출발점이 역경인지라 그 진로가 순경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들에게 순경이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성공하는 최후의 5분간으로부터일 것이다.

(한용운/ 조선 청년에게)

 

고유한 사업인 것은, 모두 조심스럽게 생활과 분리시켜야 한다. 사업은 열의와 방법을 요구한다. 생활은 보다 자유롭게 취급해야

한다.

(괴테/ 친화력)

 

나의 법칙은,사업을 시작함에 있어 그것이 과연 성취될 수 있나 없나를 잘 생각하는 일이다.

(J. 호스터)

 

사람은 인생의 소금이다.

(T. 풀러/ 잠언집)

 

위대한 도덕적 사업의 성공 여하는 수자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W.P. F.J.T 개리슨/ 개리슨 제 3권)

 

공익사업이 개인의 소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물건에 차이가 심하다. 개인의 풍요와 공공의 천박함이 깔린 장황에서는 개인의 상품들이 완전히 지배권을 갖는다.

(J.K. 갤브레이드/ 풍요한 사회)

 

사업의 첫째 의무는 무엇보다도 존속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경영경제학의 지도원리는 최대 이윤의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의 회피에 있는 것이다. 사업운영에는 항상 위험이 따르는 것이니까, 사업체는 항상 그 위험성에 대비하고, 위험을 보충하기에 충분한 프리미엄을 창출해 내야 한다. 그런데 그 원천은 하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이익이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사업의 존속과 번영의 여부는 내일을 짊어지는 경영자들의 능력 여하에 달려 있다. 하나의 결정이 내려진 다음 그것이 실현될 때까지의 기간이 차츰 더 길어져 가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장래를 정확하게 내다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오늘의 경영자에게는 그들의 뒤를 훌륭하게 이어 나갈 사람들- 내일의 경영자들을 선정하고 육성하여 그 진가를 시험해 두는 것이 지극히 중요한 일이며, 그것을 소홀히 하는 경영자는 합리적이며 책임감 있는 경영자라고 할 수 없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새 옷을 요구하는 모든 사업을 주의하라.

(H. D. 소로/ 월든)

 

이것이 사업의 정의이다. 어떤 것은 완전히 하고, 그 밖의 것은 하지 않는다. 하나만 유용하게 하고, 그 밖의 것은 잊으라.

(H. 베크/ 파리의 여인)

 

훔치지 말라. 훔친다고 사업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속여라.

(A.G. 비어스/ 악마의 사전)

 

세월의 감은 빠르고 사업의 이름은 더디도다

(이윤재/ 아아, 세월!)

 

스승이 사업가에게 말했다. / "물고기가 마른 땅 위에서는 말라 죽듯이, 당신도 세상에 얽매이게 되면 멸망할 것입니다. / 물고기는 물로 돌아가야 하고‥‥‥ 당신은 고독에로 돌아가야 합니다. "/ 사업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 "제가 사업을 그만두고 수도원에라도 들어가야 된단 말씀입니까?"/ 아니, 아닙니다. / 사업을 계속하십시오. 그리고 당신 마음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앤소니 드 멜로/ 깊이)

 

 

설 교 노 트

 

하나님의 일

요6:26-35

 

서론

우리 인간 역사 속에 두 가지 큰일들이 전개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 하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이요, 다음은 마귀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의 성격을 고찰하면 첫째, 하나님의 일은 우리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인 동시에 행복하게 하는 신성한 일이요, 가치 있는 일입니다. 둘째, 마귀의 일은 우리 사람을 죽이는 일이요, 나아가서는 불행하게 하는 불의하고 악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마귀의 일을 하고 있는사람인지를 살펴보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이 본문 28-29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보편적으로 생각하기를 교회 봉사 혹은 전도 사업, 구제 사업, 교육 사업, 문서 사업 등 여러가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를 믿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에 대한 개념을 고찰해 보면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문제와 사건 처리를 위해서 나의 정신도, 몸도, 힘도, 시간도, 물질도 다 투자하여 활동하는 일이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의 성격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는 일이며, 행복하게 하는 일이며, 영생하게 하는 일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세와 방법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야 하고, 소명을 받아야 합니다.

(1) 소명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자세

①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모든 것을 투자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사업을 힘써 수행하는 것입니다.

② 지상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설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③ 교회를 위해서 헌신 봉사하게 됩니다.

④우리의 지역 사회를 복음화하기 위해서 봉사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합니다.

(2)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방법

① 게으르지 아니하고 열심을 품고 일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② 꾀 부리지 아니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일한다고 하였습니다.

③ 중단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죽도록 충성한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결과

(1)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에 죽도록 충성해야 될 이유

① 하나님의 엄숙하신 요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요청하시고 분부하셨습니다.

② 결단코 헛되지 아니하는 가장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15:58, 계시12:1).

③ 나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축복받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일이나 육신의일은 헛되나 하나님의 일은 금생과 내세의 빛나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일에 충성을 한 사람의 결과

①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쁘시고 영화롭게 합니다.

② 하나님의 새 나라의 주인공이 되어집니다.

③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결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일하다가 가야하는 실존입니다. 이왕이면,

(1) 세상일보다는 하늘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2) 사람의 일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3) 육신의 일보다는 신령한 일의 헌신자가 됩시다.

 

 

천국의 일꾼

마20:1-16

 

서론

본문의 나타난 포도원 품꾼 비유는 마태만이 취급한 특별한 기사입니다. 여기 포도원은 천국을 비유하신 말씀으로 천국은 오늘날 교회를 가리키고,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가르키고, 나중 들어온 일꾼은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 포도원 일꾼들은 오늘날 교회에서 각기 직책을 맡아 일하는 천국의 일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천국의 일꾼은 무슨 일이든지 첫째는 내 일처럼 해야 하고, 둘째는 열심을 다해야 하고, 셋째는 정성을 다해서 일을 해야 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 역시 이러한 원리로 일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포도원은 어떤 동산입니까?

여기 포도원 비유를 통해서 보여주는 몇 가지 교훈은

(1) 교회는 일거리가 많은 동산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동산입니다. 교육사업, 선교 사업, 봉사 사업, 의료 사업, 구령 사업 등입니다. 시간적으로 어느 때라도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동산입니다. 새벽부터 아침에도 낮에도 오후에라도 좋습니다. 또 누구든지 들어와서 일할 수 있는 동산입니다. 주인되신 하나님에게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도 종습니다.

(2) 교회는 일꾼들의 차별 없는 평등한 동산입니다.

약속대로 진실하게 대우하는 동산입니다. 공평하고 공의롭게 대우하는 동산입니다. 관대하고 자비로이 대우하는 동산입니다. 신앙의 연륜을 따지지 아니하고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따지지 아니하고 주인의 주권대로 평등하게 대우하였습니다.

(3) 교회는 불평이나 원망을 용납하지 않는 동산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에만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보수나 받을 뿐입니다 일거리를 주신 주인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먼저 들어온 자는 주인과 약속대로 자기 임금이나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2. 천국 일꾼의 자세

천국의 일꾼으로 부름받아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일꾼의 자세는

(1)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사양도 불평도 원망도 없이 일해야 합니다.

(2) 보수를 바라지 말고 내 일처럼 해야 됩니다. 남의 일처럼 삯에 팔리워 온 삯꾼처럼 일하지 말고 주인격으로 내 일처럼 해야 됩니다.

(3) 열심을 다해 성실하게 일을 해야 됩니다. 우리나라 말에 외삼촌의 묘 벌초하듯 해서는아니된다는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됩니다. 고전4:2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계2:10에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어떻게 하면 주의 일을 바로 할 수 있습니까?

(1)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슥4:6에 사람의 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고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2) 질서와 규례에 따라 일해야 됩니다. 모든 질서와 규례를 지키면서 덕을 세워 일해야 됩니다.

(3) 내 몫의 십자가를 바로 지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꾼이요, 세상 일꾼이 아니라 천국의 일꾼임을 명심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합니다.

삼위일체

성 경 활 용

1. 구약의 증거

(1) 하나님 자신을 복수형으로 말씀하심

(창1:26)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2) 스랍들이 거룩하다를 세 번 창화함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3) 영은 확실한 인격으로 불리워짐

(사48:16) 그 말이 있을 때부터 내가 거기 있었노라 하셨느니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2. 신약의 증거

(1)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 나타남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2) 예수의 대명령에서 나타남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3) 사도의 축복 기도에서 나타남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4) 사도의 가르침에서 나타남

(벧전1:2)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어록·시·묘사

 

태초에/ 하늘과 땅을 지으신 주 하나님/ 온 땅의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주시니/높으신 삼위일체/ 성부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서/ 찬송을 드립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거하신 주 하나님/죄 많은 백성에게 구원과 자유주시니/ 복되신 삼위일체/ 성자의/ 하나님께/ 성품을 다하여서/ 찬송을 드립니다. // 진리의/ 보혜사로서 임하신 주 하나님/구속된 성도에게 위로와 소망주시니/ 귀하신 삼위일체/ 성령의/ 하나님께/ 온 힘을 다하여서/ 찬송을 드립니다. // 빛나는/ 하늘보좌에 앉으신 주 하나님/ 세상의 만물들을 온전히 다스리시니/ 거룩한 삼위 일체/ 영원한/ 하나님께/ 목숨을 다바쳐서/ 찬송을 드립니다.

(홍안의/ 삼위일체 하나님)

 

하늘에/ 계신 주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기르시는/ 아버지가 되시니/ 날마다 먹을 양식 풍성히 더하시고/ 땅 위의/ 만민에게 축복을/ 내리소서// 하늘에 계신 주는/ 인자하신 하나님/ 우리를 건지시는/ 구세주가 되시니/지은 죄 허물들을 깨끗이 씻기시고/그 나라 임하도록/ 긍휼을/ 베푸소서// 하늘에/ 계신 주는/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돌보시는/ 보혜사가 되시니/ 세상의 거센 유혹 이기게 힘 주시고/ 주의 뜻 이루도록/ 은혜를/더하소서// 하늘에/ 계신 주는/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를 살리시는/ 크신 왕이 되시니/그 이름 거룩되게 존귀를 얻으시고/주 홀로/세세토록 영광을/ 받으소서

(홍안의/ 하늘에 계신 주)

 

 

설 교 노 트

 

성경에 나타난 축도

민6:22-27

 

서론

여호와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 기도할 것을 명령하시고 그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인 것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보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본문은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사랑받은 구절 중 하나로 강하고 아름다운 축도문입니다. 이 축도문 속에 나타난 세 분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

성부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복되고 선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주십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때부터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불순종하고 제 위치를 떠나 타락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지만 그 인간을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다시 복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을 자기의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십니다.

고후13:13의 기도는 바울의 축도로써 신구약의 으뜸입니다. 이 축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거하며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을 잘 나타내면서 진정한 축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복을 주실 수 있으십니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삼위일체 중 성자 하나님이 먼저 언급된 것은 은혜받는 자가 우리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성자 하나님의 중보사역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사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루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주시므로 하나님과 인간 관계를 바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을 하여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은혜를 그의 왕직, 제사장직, 선지자직을 통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기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는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평안은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시사 우리를 사망과 사망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14:17).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는 늘 이 평안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3. 성령의 교통

성부 하나님은 구원을 작정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구원을 성취하시고, 성령 하나님은 구원을 적용시키십니다. 성령은 삼위의 하나님으로서 지 · 정 · 의를 소유하신 인격자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성도와 교통하기를 바라십니다. 성령은 중생의 역사를 하시고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령은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또 충만한 은혜를 주시사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십니다. 그러나 성령을 근심케 할 때 성령을 소멸할 때 성령과 교통이 두절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죄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

하나님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납니다(계1:16). 태양이 온 누리를 따사롭게 비칠 때 만물이 소생하고 약동하는 것처럼 성도는 태양과 같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 돌듯이 성도는 은혜의 태양이신 주님만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의로운 자에게, 스스로 겸비하고 구하는 자에게, 그의 얼굴을 비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성도는 사슴이 목이 말라 시냇물을 찾듯이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고 찾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마3:13-17

 

서론

성경은 하나님을 삼위라고 가르칩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인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본체는 하나요, 권능과 영광은 동등합니다.

이 교리는 특별 계시로 알게 되는 것이고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본체에 삼위가 있습니다.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만이 삼위가 계심을 말합니다. 창1:1-3에 하나님(성부) 이 말씀(성자)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신(성령)이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창1:26,11:7)"라고 복수로 표현하셨습니다. 사48:16에,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을 보내셨느니라" 는 말씀은, 한 하나님 안에서 인격자가 계신 것을 나타냅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받으실 때에 성부는 음성으로, 성자는 세례받는 자로, 성령은 비둘기같이 임하여 각각 별개의 사역을 하시며 동시에 나타나시기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보면 예수님의 최후 명령에서도 성부 · 성자 · 성령을 한 하나님의 사역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2. 삼위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삼위"라는 말은 세 인격을 의미합니다. 성부 · 성자 · 성령은 각각 지 · 정 · 의를 가지신 인격자이십니다. 그래서 삼위는 서로 협력하여 역사하지만 각각 특색이 있습니다. 성부는 선택하시고(엡1:3-6), 성자는 구속하시고(엡1:7-12), 성령은 구원의 복음을 얻도록 역사하십니다(엡1:13-14). 이 삼위는 같은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 · 성자 하나님 · 성령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삼위는 그 속성과 본질이 똑같습니다. 이 세 인격은 여러 사람의 인격들처럼 분리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적 본질이 존재하는 세 형태입니다. 삼위는 논리상 성부가 제 1위요, 성자가 제2위요, 성령이 제 3위가 된 것입니다.

 

3. 삼위의 권능과 영광은 동등합니다.

삼위는 본질이 같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그 존재와 인격과 사역이 동등합니다. 그러므로 권능과 영광과 동등합니다. 다시 말해서 한 위가 다른 어느 위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부의 창조의 권능은 성자에게도 성령에게도 동등하며 그 받으실 영광도 동등하십니다(요16:13-14, 계5:13).

 

결론

삼위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하나님을 믿어 순종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삼위 하나님께서 힘쓰고 애쓰심을 깨달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삼일절

어록·시·묘사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폭발한 한국의 민족 독립운동이었다‥‥‥‥그러므로 3·1운동을 현대에 살리는 길은 그것을 객관화하여 그 참모습을 전해 주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그 객관화된 사실이 각자의 가슴에 울려주는 메아리를 듣게 해 주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이기백/ 3 ·1운동론)

 

3 ·1운동은 일본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국권을 빼았긴 민족의 울분이 잠재의식 속에 있다가 어떤 계기를 맞아 폭발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 운동이 어떤 깊은 자각이 있어 일어났다기보다도 오히려 운동이 있음으로 해서 자각을 더욱 환기시켰다고 봅니다. <*1969년 50주년 삼일절을 맞아 3 ·1운동 반세기 대담에서>

(박종흥)

 

3 ·1만세는, 이런 풀이로 이해되는 만세가 아니라, 피눈물이 맺힌 만세요, 부르면 잡혀가고 때로는 살상을 당하는 만세였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된 만세가 아니라, 고을마다 동네마다 제각기 복받쳐 오르는 절규를 이 한 마디로 표현하여 13도 방방곡곡이 부르고 응해서 터져 나온 만세였다.

(천관우/ 신세시기 봄)

 

기미 3 ·1독립운동은, 즉 단기 4252년(서기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일제의 침략정책을 규탄하고 조선 독립을 선언함과 동시에 독립국가로서 자주민족임을 세계 만방에 고한 일대 민족운동이다.

(이갑성/ 3 ·1운동비사 서문)

 

3월 1일이니까 삼일절.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개천절‥‥ 그사이에 경중이 있을 까닭은 없겠지만, 그 중에도 삼일절이라면 무언지 모르게 좀더 「민중의 날」이라는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것은 양춘(陽春)이 가까워 오는 공음(遂音)의 탓만일까. 누가 만들어 내놓은 명절이 아니라, 민중의 핏속에 뿌리를 박고 연륜을 더해온 명절이기 때문이다.

(천관우/ 신세시기 봄)

 

1일은 삼일절 50주 1919년 일제의 무단정치로부터의 해방과 독립을 선언하면서 궐기했던 민족의 함성은 반세기의 성상을 거치면서도 「그 함성의 정신」만은 연면할 뿐이다.

(1969년 3월 1일자 동아일보 사설)

 

정확하게 평가해서 결코 신화일 수 없으며, 우리 한민족이 적어도 근세사 이후엔 처음으로 세계 만방에 보여준,민족의 영생을 과시한 거족적 항거이었던 것이다.

(1969년 3월 1일자 조선일보 사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삼일절 노래)

 

무궁화꽃 둘레 만들어 가지고/ 언제나 누나 무덤 찾아가 뵙나요/ 유관순 누나는 장하기도하지// 일제에게 당한 가지가지 고초/ 얘기 들으면 내 살이 막 아파옵니다/ 어느 나라 독립하던 얘기 들어도/ 이처럼 매웠던 일은 또 없습니다// 모진 채찍 사정없이 몸에 박혀도/ 꺾이지 않은 뜻은 대한 독립/ 부모를 죽이고 동생들을 불에 태우고/ 일본도에 제 몸이 베어지면서도/ 숨지어 부른 것은 독립 만세/그는 거룩한 이 땅의 딸/대한의 불타는 혼이었습니다/ 이제 거룩한 누나 몸에 피를 닦아 줄/ 어디메 깨끗한 손길이 있답니까

(노천명/ 유관순 누나)

 

즐겁게 3 ·1절을 노래했던 해부터 지금 10년이 지났다/ 독립이 있었고/ 눈보라 치던 피난을 겪으며/ 곤란과 서러움의 10년이 지냈다// 변함없이 푸르른 하늘/ 그때의 사람과/그때의 깃발을/하늘은 잊지 않는다/아니 내 아버지와 내 가슴에/ 저항의 피가 흐른다//지금 우리는 소리없이 노래 부른다/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좋다/그것은 무거웁게 민족의 마음에/ 간직되어 있고/ 우리는 또한 싸움의 10년을 보냈다// 우리는 보지 못했어도/ 저 하늘은 선열의 주검을 보았고/ 그때의 태양은/지금의 태양// 3월 초하루가 온다/ 맑은 하늘과 우리의 마음에/독립과 자유를 절규하던/그리운 날이 온다.

(박인환/ 3 ·1절의 노래)

 

'파고다 함성'처럼이나/ 찢긴 심장에 검(劒)을 울리며/ 북을 울리며 산산치 말고

(김남석/ 길은 하난데)

 

오늘이 우리 단족(檀族)에 전천년 후만대에 기념할 3월 1일! 우리 민족이 자주민임과 우리나라가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하여 무궁화 삼천리가 일시에 분기열광하여 뒤끓던날!/ 오오 -3월 1일여/ 4천2백5십2년의 3월 1일여/이 어수선한 틈을 뚫고 세월은 잊지도 않고 거룩한 3월 1일은 이 근역(樣域)을 찾아오도다. 신성한 3월 1일은 찾아오도다/ 오! 우리의 조령(祖靈)이시여, 원수의 칼에 피를 흘린 수만의 동포여, 옥중에 신음하는 형제여, 천 6백 7십 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 독립각에서 울려 나던 종소리가 우리 백두산 위에는 없으리까? 아! 붓을 들매 손이 떨리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도다.

(심훈/ 심훈문학전집 제3권)

 

세월은 흘러/ 어느새 46년 지나갔다/ 그래도 3 · 1은 언제나/ 겨레의 혼의 고향/ 나그네마냥 떠돌다가도/ 이 날이 오면 마음의 등불 켜 들고/ 행렬처럼 돌아오는/ 겨레의 혼의 고향/ 어두운 역사였기에/ 거기 눈부신 온실로/ 빛나고 고귀한 수를 놓은 날/ 모두들 머리 위에 가시관을랑 쓰고/ 비오듯 흐르는 핏속에/ 불은 장미 송이송이 운고 피운 날/ 그러기에 저 하늘에/ 별보다 더 반짝이는 빛이 되어/ 산에 비치고/ 물에 비치고/ 광풍에도 꺼지지 않는 등불되어/ 겨레의 마음마다에 비치고/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그 꺼지지 않는 마음의 등불 켜 들고/겨레의 혼의 고향으로 행진하는 날/ 그러나 오늘은 우리 가는 길 위에/ 보랏빛 안개조차 날아 흐르고/ 발걸음마저 왜 이리 산만하뇨/ 겨레들아 그 날의 피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쓸개마냥 씹어/쓰디쓴 침을 꿀꺽 꿀꺽 삼켜 보라/ 그리고 문득 소스라쳐/ 눈 번쩍 뜨고 일어나 보라/ 그 날엔 칼날을 쥐고서도 싸웠더니라/ 칼자루를 쥔 오늘 왜 못 싸우나/ 왜 못 싸우나/ 깃발을 다시 들어라/산성처럼 들어라/ 눈동자처럼 들어라/ 오늘 아침 이 밝은 태양 아래/삼천만 겨례의 눈은 어둡지 않다/ 「이웃」이란 이름의 양의 껍질을 쓰고/ 또다시 그 발톱을 내어미는/ 이리 앞에 속지는 않을 것이다/ 정의는 큰 강물인 양 늠실늠실/ 그러나 언제고 불의에 부딪히면/열 길 백 길 분노의 용솟음을 치는 것/ 정의는 밝고 화사한 평화의 불빛/ 그러나 앞길을 막는 가시덤불을 만나면/ 재도 없이 태워 버리고 마는 것/ 세대야 백 번 바러어도/ 3 ·1은 언제나/ 겨레의 혼의 고향/ 그러기에 우리들의 행진에 거침 있으랴만/파도처럼 솟구치리라/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리라

(이은상/ 파도처럼 불길처럼)

 

 

설 교 노 트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백성

시146:1-10

 

서론

삼일절 기념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삼일절을 올바르게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역사 의식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삼일절 기념 예배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백성은 복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신 분이 피조물을 장악하십니다. 질서와 규범을 주신 하나님이시고 국가의 거주와 연대의 경계를 정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 때에 사랑을 입습니다. 그러한 국가와 민족이 창성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그 국가나 민족의 흥망을 좌우합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법을 익혀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은 공의로 판단하시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복이 있습니다.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소경의 눈을 여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의인을 사랑하시며,객을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을 굽게 하십니다. 사람이 사는 세계에 진정한 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의를 세워 주십니다. 과거에 우리는 자유,나라,땅, 평등, 인간적인 삶, 언어, 재산, 심지어 이름까지도 다 일본에서 빼앗겼습니다. 신앙의 자유도 빼앗겼습니다. 일본이 하나님의 의를 무시하고 자행한 악입니다.

삼일 정신은 의의 발로요, 생명의 약동입니다. 자유의 사상이요, 민족의 정의 사상이요, 민족 단결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운동도 하나님의 의가 서지 못하는 시대에서는 빛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자들이 오히려 반역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1919년 5월에 일본 총독부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삼일 운동으로 인해 완전 파괴된 예배당이 17동,부분 파괴된 예배당이 24동, 교회 재산 피해액이 약 3만불, 그해 6월 말일로 투옥된 사람의 수는 기독교인 이 2,190명, 유교, 불교 천도교인 합하여 1,556명, 교회 교역자 151명, 천도교 지도자 72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세계는 냉담했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에서 지켜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적당한 때에 신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3. 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복이 있습니다.

사람의 통치는 잠깐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맞게 다스리는 자에게 통치를 맞기십니다. 틀리게 다스리면 통치권을 거두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생활화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원리는 정의의 나라를 만들고, 질서의 나라를 만들고, 신의의 나라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민족에게 외칠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자고 하는 말입니다.

 

결론

우리는 삼일절 기념 예배를 통하여 나라에 대한 사랑을 더욱 확고히 하며, 공의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 시며 영원토록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축복받은 나라

시33:1-12

 

서론

기미년 3월 1일 우리 민족은 나라 잃은 설움을 탄식하며 온 겨례가 조국 해방을 위해 일어섰습니다. 독립을 선언하여 세계 만방에 한민족의 얼을 공포하였습니다. 이 독립운동은 일제의 압박과 사슬에 해방을 가져오게 했으며, 더 나아가 번영과 축복된 조국을 건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값진 유산을 오늘 우리에게 남겨 주기 위해 우리의 선열 7,520명이 희생되었으며 7,300명이 중경상을 입고 5,000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선열들의 희생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 독립 운동에는 지식인, 노동자, 종교인, 학생, 남녀 노소 구별이 없었습니다. 한민족이면 누구든지 주저하지 않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일본의 총검 앞에 맨주먹으로 항거했습니다. 그리고 자유와 주권의 독립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독립 운동과 희생은 무엇을 위해 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하나님 앞에 번영되고 축복된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라 없는 민족의 36년간의 비극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번영하고 강력한 나라가 존재할 때 그 나라의 국민 개개인이 축복된 인생을 영위할 수 있음을 우리는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나라가 축복받은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 ·1절에 기념 예배를 드리면서 무엇이 나라를 복되게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의는 축복받는 나라의 主석이 됩니다.

잠언서를 보면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14:34)"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기초는 공의입니다. 집의 기초가 허술하면 집이 무너지듯, 나라에서도 공의가 붕괴되면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공의는 의로운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공의를 기뻐하시며 공의로운 나라, 공의로운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면 이 의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믿음으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는 인간이 의로워질 수 없으며, 사회와 국가에도 공의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나라의 올바른 번영을 위해 사회를 정화하자고 정화 위원회를 조직하며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적인 정화로는 불가능합니다. 각 사람의 마음이 믿음으로 변화되고 새 사람이 되어 공의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의의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복지 국가가 성취됩니다.

 

2. 회개 운동은 백성을 구원하고 축복받는 나라가 되게 합니다.

죄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를 패망시키는 무서운 독소입니다. 죄가 있는 곳은 멸망과 분열과 사망과 죄는 저주뿐입니다. 성질상 전염되고 확산되며 성장하여 결국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고 증거했습니다. 노아 시대의 죄악은 홍수의 심판을 받았으며, 그 결과로 인류는 죽음의 비극을 맛보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은 불과 유황이 심판을 받았으며, 그 결과 그 성과 백성은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죄악은 죽음으로 그 값을 치루어야 했습니다(삼상3장).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그래서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이는 너희의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사59:1-3)" 더더욱 하나님은 인간의 죄때문에 인간을 이 세상에 창조하셨음을 후회하시고 한탄하셨습니다(칭6:6).

그러므로 죄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죄를 제거하는 운동, 그 운동이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죄가 용서되고, 죽은 생명이 다시 살게 됩니다.

오직 회개 운동만이 나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국가를 살리는 것입니다.

 

3. 복음을 전하는 운동은 나라를 구원하고 축복받는 나라가 되게 합니다.

복음은 구원의 비결이요, 축복의 열쇠입니다. 또한 복음만이 사람을 변화시키며 복지국가가 되게 합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아메리카에서 다시 아시아로 전했습니다. 그 복음은 야만인을 문화인으로, 전제 국가를 민주 공화국으로, 약탈자 바이킹을 사랑과 봉사를 할 줄 아는 신사로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구석구석 전파되어 죄가 없는 사회, 죄가 없는 국가가 된다면 복지 국가가 될 것입니다.

3 ·1운동을 추진시키는 주동 역할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1919년 4월 미국 기독교 동양문제 연구위원회 기록(The Korean Si-tuation)에는 3 ·1운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논하였습니다.

"예수교인만이 현 시점에서 국제 정세에 가장 정통하여 민족 자결의 정당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교인의 이와 같은 박력있는 행동과 뜻있는 존재 양식이 없었더라면 이 백의 민족이 호소하고 수호하려는 이념이 총쏘듯이 전국에 무섭게 작용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교인만이 참혹한 식민 정책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한국민이다‥‥‥‥ 이 나라가 건재하고 축복받는 나라가 되도록 4000만 동포의 가슴속에 복음을 심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3 · 1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공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는 나라, 죄를 회개하는 나라,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나라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국이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나라가 되도록 합시다.

 

 

자유자의 생활

갈5:1-7

 

서론

오늘은 3 ·1절 기념 주일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독립 선언문에도 우리는 정의와 자유를 위해서 끝까지 싸운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 자유를 찾았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은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한 번 감사하면서 자유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자유를 주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면 자유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1. 자유란 무엇인가?

이 자유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생활 제도에서의 해방을 가리키는 liberty와 정신적 자유를 가리키는 freedom이 있습니다. 이 세상엔 외형적인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우리 헌법에도 8가지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이며 양심적인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자유인인 것 같으나 정신적으로는 무엇엔가 눌려서 살고 있으며 죄와 사망과 저주와 진노와 환난과 염려와 근심과 고통과 불안에 눌려서 마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그리스도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 맡길 수 있다는 것, 어떤 짐도 어떤 고통도 어떤 문제도 맡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라는 것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질서 안에서 규율 안에서의 자유가 자유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질서를 무시 한, 자유법을 어긴 자유는 방종인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유로써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라 자유를 얻었다고 마음대로 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잘못하면 자기도 또 남에게도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2. 자유를 주신 목적

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까? 자유케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유케 하려는 것은 자유롭게 자라서 쓸모 있도록 성장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우리나라에 자유를 주셨습니까? 성장하라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방종하고 마음대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라 많은 발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들에게 왜 성도의 축복을 주셨는가, 왜 자유로운 땅에서 마음대로 찬송부르며 축복받으며 살게 해 주셨는가 이것은 나만의 구원은 아닌 것입니다. 좀더 크고 좀더 자라는 것입니다. 내 신앙이 얼마나 자랐습니까? 내 생활이 얼마나 향상되었습니까? 내 삶이 얼마나 바뀌어졌습니까? 10년, 20년 전과 꼭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도 성장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전도생활도, 모든 생활에 성장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유케 하시려고,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개인의 신앙도 자라나야 되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신 목적은 부흥케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3. 자유를 주신 것은 봉사의 기회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오직 서로 사랑으로 종 노릇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봉사의 계명인 것입니다. 자유를 주셨다고 나만을 위하여 내 육체의 소욕대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종 노릇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공을 주십니다. 이 성공을 주실 때 나만을 위하여 살면 망하고 맙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 때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3월 1일 정오는 어떤 날입니까?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생명을 버린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기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저들을 도와주면서 사회에 뭔가 남겨 주면서 봉사하며 살아야 될 줄 압니다. 사랑으로 종 노릇하라 이것은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명예를 찾고자 하는 욕심도 아닙니다. 강제로 눌러 빼앗는 것도 아닙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감사하면서 건강한 몸을 가지고 민족을 위하여 봉사하고, 물질을 가지고 영혼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베풀어 주신 환경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봉사자가 됩시다. 남을 위해서 덕을 위해서 덕을 쌓는 봉사자가 됩시다. 우리 교회는 주신 자유를 감사하고 감격하여 성장 부흥할 뿐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사랑으로 봉사하며 전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뜻깊은 3 ·1절 기념 주일을 맞이하면서 사회적인 'liberty'도 주셨고 정신적인'freedom'도 주셨고 신앙적 인 구속도 주셨고 놀라운 축복도 받고 살 뿐 아니라 여러분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까지 해방받은 우리들은 오늘에 주신 이 감사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성장 발전하면서 주시는 축복을 나를 위하여 치부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세계의 구령 사업을 위해서 많이 선교하고 많이 봉사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자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애국자

잠14:34-35

 

서론

기독교인들이 민족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진리를 알지니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철두 철미한 정신으로 민주주의 토대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1919년 3월 1일은 일제에 항거한 날입니다.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봉기한 3 ·1운동의 날입니다. 한민족으로 태어난 사람이 이날을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성경에 나타난 애국적 인물

(1) 예수 그리스도(마24:2)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돌 위에 돌 한 개가 남지 아니하고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고 또한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시면서 암닭이 새끼를 날개 아래 품음과 같이 내가 너희를 모으려고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너희는 다 떠나갔다고 하였습니다. 멸망할 것을 보면서 안타깝게 부르짖음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민족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2) 모세는 애굽 공주의 아들이라는 좋은 명분 아래서 낙을 누리는 것보다 동족과 함께 고생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던 애국자입니다.

(3) 바울이나 구약의 다니엘 등 많은 인물들을 통하여 우리는 애국심을 배우게 됩니다.

 

2. 성경에서 찾아야 되는 애국심

국가를 잊어서는 안되고 자기 민족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국가가 중요하고 민족이 중요해도 하나님보다 더 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고 그 다음에 주 안에서 애국을 해야 하겠습니다.

 

3. 진정한 애국자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1)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생활이 참된 자유를 위해서 일하는 생활입니다.

(2)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참된 자유를 위하여, 새벽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는 생활이 참된 애국자입니다.

(3)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의무를 다할 때 애국자입니다.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나라를 사랑하고 지키는 병역의 의무),납세의 의무(자진해서 정당한 세금을 내는 의무), 근로의 의무(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참된 애국자입니다.

(4) 성도들의 구별된 생활이 애국입니다.

죄를 멀리하는 생활, 공의에 입각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잠14:34에 공의는 나라를 흥하게 하고 죄는 백성의 수치가 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애국자의 생활은 죄악을 멀리하고 공의에 의한 생활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에 사명을 다하여 지도자의 긍지를 가지고 생활함으로써 애국자의 정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론

예수님은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모세는 영광을 버리고 고난에 동참하여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성경에 많은 애국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국가 민족지상주의와는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을 따르고, 기도하고, 성도의 의무를 다하며 살 때에 진정한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가 애국자인가

시137:1-9

 

서론

본문의 이 시는 유명한 포로민의 슬픈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을 때 그들의 포로 수용소가 바벨론 강변에 있었다고 합니다. 바벨론 강변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쳐다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의 시온성을 자나 깨나 그리워하며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한없이 울었던 것입니다. 저들은 이방 땅에서 고독을 느꼈고 자기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컸으며 달 밝은 밤이면 강물에 눈물을 뿌려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의 강인한 애국심을 배워야 합니다. 1절에서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들이 그토록 울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의 눈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진정한 애국자는 누구일까요?

 

1. 하나님과 조국에 대한 죄를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 앞에서 전국민이 회개함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시온을 기억하고 울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을 반역하고 패역한 백성의 죄값으로 받아야 할 이 서러움을 자복하는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은 망국의 서러움 속에서 누구를 원망하거나 저주하기 전에 하나님의 준엄한 역사의 심판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패역한 길로 갈 때마다 하나님은 강한 이방 민족을 막대기로 사용하시어 저들을 징계하였던 것입니다.

사10:24-25에 징계를 받고 있는 백성을 위로한 음성이 있습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시온에 거한 나의 백성들아 앗수르 사람이 애굽을 본받아 막대기로 너를 때리며 몽둥이를 들어 너를 칠지라도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불구에 네게는 분을 그치고 노를 옮겨 그들을 멸하리라 하시도다"

하나님에서는 패역한 자기 백성들에게 진노와 막대기를 드시나 저들이 회개하면 그 막대기로 사용된 민족을 꺾으셨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선민의 고난을 그들의 죄값으로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램10:18-1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 운동이 진정 나라를 구원하는 운동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민족 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토록.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던 악기인 수금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습니다.

민족의 고난 앞에서 저들은 이방 민족의 값싼 즐거움에 동참할 수 없는 슬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로잡은 저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부르라 청하지만 우리가 어찌하여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리요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오른손이 말라 버리리라 내가 예루살렘을 잊어버리거나 내가 만일 시온을 향하는 마음에서 떠나 더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이와 같이 단호한 민족 의지로 조국을 향한 열정적인 자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심장 속에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은 자기 민족과 함께 고난을 같이 했습니다. 이것이 민족의 양심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서러움을 당하고 있는데 안일을 누리고 있다면 이는 민족 양심이 마비된 자입니다. 국토가폐허가 되었는데 자기 혼자 사치스럽게 살고 있다면 이는 민족 반역자입니다.

 

3. 하나님을 위해서 애국하는 사람입니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하는 이 시인의 눈물은 애국주의나 민족주의에 솟아 오르는 민족 감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민족을 사랑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오늘날 민족 지상주의나 국가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자기 민족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 사람은 지구상에 많이 있습니다.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을 위할 때만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내촌 선생 비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조국을 위하여 조국은 세계를 위하여 그리고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애국은 민족적인 감정을 유발시켜 국제간의 갈등을 조장하여, 세계 평화를 교란시키기도 합니다. 히틀러, 뭇솔리니, 일본 동조 같은 독재자들은 애국이라는 민족 지상주의에 빠져 약소 민족을 침략하는 구실을 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애국은 하나님 안에서 애국이어야 합니다.

 

결론

누가 애국자입니까? 국가를 위하여 몸으로 봉사하든 두뇌로 봉사하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애국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앙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애국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없는 이 민족 역사에 애국자의 소리가 높았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애국자의 삶을 이 시편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조용히 자신을 반성하고 조국을 더욱 사랑합시다.

 

 

만민의 피난처

시46:1-11

 

서론

본문의 역사적인 배경으로는 왕하18-19장인데 앗수르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비방 조롱하고 있을 때 히스기야 임금님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함으로 난국에 처한 국운을 살려낸 것을 되새기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특별히 마르틴 루터가 어려운 종교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이 말씀으로 힘을 얻고 승리한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담력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본문 중에 세 번이나 피난처라는 말씀이 나오며 셀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곧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십니까?

 

1. 환난 중에 도와주시는 피난처이십니다.

본문 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신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 때에 종류는 같지 않지만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확실한 것은 환난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시91:15).

예수님께서 타신 배가 풍랑을 만났으나 그 풍랑이 배를 삼키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권능만 보여줄 수 있는 선한 기회를 만들어 주었던 것과 같이 오늘 우리들의 환난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2. 정신적인 번민 중에서도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본문 6절에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요할 때도 한 시내를 내어 마시게 하심으로 성소를기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살아나 가는 중에 번죄나 고통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근심과 걱정은 항상 우리를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볼 수 있는 아픔보다는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아픔이 있으며 외형적인 상처보다는 내면적인 마음의 상처가 더 많은 것입니다. 내가 하려면 태산 같은 일이라도 아버지께서는 저울추의 먼지와 같다 하였습니다. 내가 걸머지려 애쓰지 맙시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번민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매어 달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맡기고 아버지께 간구하면 해결해 주시고 모든 문제를 선히 섭리해 주실 것을 믿고 살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3. 전쟁의 위험에서도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고 하였습니다.

분문 9절에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의 위협은 오늘도 온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전쟁의 요인은 다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쟁의 공포는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나라는 전쟁 중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전쟁은 종전이 아니요, 휴전입니다. 언제라도 다시 도발하고 다시 싸움이 재개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쟁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싸움이 일어난 다는 것입니다. 계7:1에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모든 전쟁에서 이기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

불안과 공포의 검은 구름이 뒤덮고 있는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케 하시며 선하신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정신적인 모든 불안과 염려도 해결해 주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기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전쟁의 위협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에게 승리케 하실 것입니다.

 

 

기독자의 애국

롬13:1-7

 

서론

전 세계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는 나라가 있고 겨례가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한편으로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세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전도자인 것입니다.

삼일 운동은 우리 국민들이 애국 정신을 가장 크게 발휘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일절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애국인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롬13:2-7을 보면 로마 교인들에게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잘 지켜 행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1) 위에 있는 권세에게 굴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는 나라인 것을 알면서도 그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세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들 특히 기독교인들이 명심해서 들어야 할 것입니다.

(2) 선을 행하므로 악을 징벌하는 국법에 걸리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권세는 악을 징벌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악한 일을 행하므로 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3) 권면은 공세와 국세를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납세에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누구 보다도 앞서서 납세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국민에게 네 가지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1) 교육의 의무입니다.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2) 납세의 의무입니다.

누구나 국민이며 세금을 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3) 국방의 의무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군에 입대하여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4) 근로의 의무입니다.

모두가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고 근면해야 합니다.

 

2. 국민 신앙을 선도하는 것이 애국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본래 국민 신앙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매우 적습니다. 그것은 단군 신화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국민 신앙을 선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의 교리는 우리 국민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종교입니다. 로마에 들어가서 로마의 국민 신앙을 선도하는데 성공한 기독교는 그곳을 근거지로 하여 2천 년에 가까운 세계 선교에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세계 복음화에 성공하려면 먼저 우리 국민의 신앙을 잘 선도해서 국민 정신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국민 신앙 선도를 위하여 봉사하는 것은 애국적 활동입니다.

 

3. 국민의 지위를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 민족이 세계 민족 중에 강하고 지혜로운 민족으로 등장한 것은 "천하만민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어 드리려고 노력한 데 있습니다. 위하는 대상이 크면 클수록 그 민족의 지위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로마에 들어간 기독교가 로마인들을 위한 선교라는 자세 때문에 로마 나라에서 기독교가 꽃을 피웠고,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 복음화를 부르짖는 것은 세 가지 의미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 빚 값는 마음에서입니다.

우리는 선교를 받은 민족으로서 빛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위하여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를 당했고, 돈을 썼고,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에게 빚을 갚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제자된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성취시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책임입니다.

(3) 국민된 애국심에서 세계 복음화에 앞장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 복음화는 한국인의 위치를 세계적인 민족으로 등장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 복음화는 애국하는 일입니다.

 

결론

외솔 최현배 선생은 1930년도에 발간한「조선민족갱생의 도」에서 우리 민족의 약점 열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의지의 박약, 용기의 부족, 활동력의 결핍, 의뢰심 이 많음, 저축심의부족, 성질의 우울, 신념의 부족, 자존심의 부족,도덕심의 타락,정치 경제의 파멸이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말한 대로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국민 신앙을 선도하기 위하여 열심히 전도하고,국민의 지위를 높이기 위하여 세계 선교와 복음화에 성공하면 우리 민족의 문제점은 사라질 것입니다. 개조된 국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기도와 성령 충만으로 애국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나라를 사랑하자

느1:1-11

 

서론

오늘은 잃어버린 국권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하여 맨주먹으로 왜정의 총칼 앞에 항거하며독립 만세를 불렀던 1919년 3월 1일을 되새기면서 전국적으로 지키는 3 ·1절 기념 주일입니다. 우리는 이 뜻 깊은 주일에 애정 충정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면서 옛 성도들과 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까지라도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17명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었던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고 기독교는 참된 애국의 종교인 것을 재인식케 되는 날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봉독해드린 느헤미야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느헤미야는 애국의 본을 보여준 성도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애국을 배우기 위해서 "나라를 사랑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나라는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그때 아닥사스다 왕궁에서 귀한 벼슬을 맡고 있던느헤미야는 하나니라는 사람과 두어 형제가 예루살렘에서 내려왔을 때 고향의 소식을 듣고 앉아서 울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국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과 같이 생각했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나라의 일이 자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같이 여기고 오히려 자기의 안일을 위해서는 나라의 명예나 유익은 아랑곳하지 않는 좋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나라에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닙니다. 나라와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줄 아는 참된 애국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위하여 기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라를 위하는 것 중가장 큰 것은 기도입니다.

눅9:46-50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된 나라의 안전과 발전을 위하여 우리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의무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삼상12:23에 사무엘 선지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코 범치 아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통일되지 못한 나라를 위하여 평화적 인 통일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위정자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나라를 위하여 봉사하는 일꾼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백성들이 너나 없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구원을 얻어 우리나라가 복받는 나라가 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하여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움직이는 일이기에 기도하는 일이 가장 큰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힘써 기도함으로 진정한 애국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를 위하여 모험적인 희생을 해야 합니다.

당시의 규례로는 왕 앞에 근심을 보이거나 상한 모습을 보이면 극형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금식하고 초라한 모습을 가지고 왕 앞에 간청하기 위하여 나아갔습니다. 마치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나갔던 것처럼 느헤미야도 하나님 앞에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고 그 앞에 나아갔습니다. 2:1-20에 보면 "느헤미야가 왕 앞에 진언할 기회를 받았을 때 하나님 앞에 묵도하고 왕이 만일 기뻐하시고 종이 은혜를 입었사오면 나의 열조의 묘실에 보내어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5절)"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간청이었습니다. 먹고 살겠다고 해도 어려울 터인데 성을 중건하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실현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나아간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케 하심으로 기뻐 승낙하고 군대 장관으로 하여금 그를 호위케하고 많은 재료를 가지고 올라가게 한 것입니다. 여 기에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일에 결코 인색하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허락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오늘 뜻 깊은 3 ·1절 기념 주일에 다시 한 번 나라를 향한 사랑을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국운이 곧 내 운명인 줄 알고 함께 염려하고 함께 아파하며 힘껏 받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원수를 막아 주고 계속적인 성장을 주실 줄 믿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헌신합시다. 희생적인 봉사까지도 드려질 때 하나님은 지각에 뛰어난 축복으로 부어 주실 뿐 아니라 이 나라의 통일과 축복의 미래를 반드시 내려 주실 것입니다.

 

3·1정신과 기독인의 자세

눅4:18-19

 

서론

3 ·1운동은 불교, 천도교, 그리고 기독교 인사들 33인이 주동이 되어 일어난 사건인데 그중에 기독교 대표가 17명으로서 과반수를 차지했고, 3 ·1운동 때 파고다 공원에서 낭독된 독립 선언문은 육당 최남선 선생님이 쓰셨습니다.

그 내용에 독립이니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하는 말들이 기독교적 이어서 3· 1운동은 기독교를 제외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사건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3 ·1운동에 나타난 정신이 기독교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현실 기독교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3 ·1운동은 정신 운동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물질 만능의 풍토가 두드러지게 엿보이는 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하셨습니다.

3 ·1운동은 먹고 살기 위한 경제 운동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국가나 가정이나 개인은 황금 만능의 사상을 배제하고 참 자유인이면서 자율인이 되게 하는데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에서도 인권을 서로 보호하고 더 깊이는 죄에서 자유를 얻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어떤 형태든지 구속을 받고 살도록 강요당해야 질서가 유지됩니다. 그것이 외세의 힘에 의거하든지 아니면 통치자에게 제약을 받고 살든지 말입니다. 한편 차원이 다른 면에서 사람은 의의 병기로써 하나님께 드려지든지 부정과 불법의 죄의 종이든지 지배를 받고 사는 것입니다.

금년은 4000만 모든 국민의 의(義)의 병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2. 3 ·1운동은 무저항 애국 운동입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으나 기독교인에게는 엄연한 국경이 있습니다. 3 ·1운동 당시에는기독교인 하면 애국자요, 애국자 하면 기독교인들이었기에 기독교가 국교는 아니었으나 민족 종교로 크게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런 뿌리가 있기에 오늘날 한국에 경목 제도나 군목 제도, 교목, 형목(刑牧), 그리고 산목(産牧) 등 국가 기관에도 상당히 전도의 터전을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론 보면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크게 4가지 형태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1) 교회가 국가를 지배한 때 즉 로마 카톨릭 교회의 형태가 있고,

(2) 교회와 국가가 서로 대치하여 싸우는 데가 있는데, 즉 공산주의 국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교회를 국가의 지배하에 가두고 교회의 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는데 이런 나라는 미개한 나라에서 일어난 형태이며,

(4) 교회와 국가가 상호 작용으로 국력을 배양해 나가는 형태가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거의 선진 국가들입니다.

우리나라도 4번째 형태가 되도록 우리 기독인들은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가란 물리적인 국가의 병력과 경제안정이 있더라도 역사의 지속성이 있는 국가관, 더 나아가서는 확고한 삶의 철학이 없는 한 그 국가는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구라파의 전군대보다 기도하는 죤 낙스가 더 무섭다고 한 왕이 있었다고 한 것입니다.

3. 1운동은 3천리 반도 금수 강산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땅인데 일본 사람이 강제로 침략했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무저항으로 항거했던 것입니다. 암5:14에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3 ·1운동은 살기 위한 운동이요, 선한 저항 운동이었습니다. 이런 때 목숨을 걸고 투쟁한 의인이 있었기에 물리적 힘 앞에 약한 무저항이 승리를 했습니다.

잠14:34에는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3 ·1운동이야말로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의로운 운동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신 순수한 애국 운동이었습니다.

 

3. 3 ·1운동은 희생 정신이었습니다.

일제의 단말마적인 총칼 앞에 맨주먹으로 대항하면서 1,542회나 집회가 있었으며 참가자는 200만, 순국자 7,561명, 투옥된 수가 46만명, 부상자 수 15,961명, 그리고 예배당이 불탄 곳이 47곳이었으니 얼마나 큰 희생이었습니까?

3 ·1운동은 곧 희생 운동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기미년 독립 운동이 일어난 지70년이 지난 오늘 3. 1운동의 희생 정신을 본받아 전도하는 일과 교회 봉사하는 일과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희생하는 제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한국의 1,000만 성도는 뜻이 있는 기미년을 맞이하여 새 각성 운동이 발흥되어야 하겠습니다.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시50:15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1운동 때 함께해 주시고 8 ·15해방 그리고 6 ·25사변 때에는 우리의 힘은 약했으나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조국 통일의 문제도 맡기고 열심히 기도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부정과 불의와 저항하며 인권을 회복하고 유지하는데 척추병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3 ·1정신 속에 나타난 민족이 국난을 타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

성 경 활 용

1. 면류관으로 묘사됨

(1) 의의 면류관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배되었으므로

(2) 영광의 면류관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3) 생명의 면류관

(약1:12)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2. 상받을 사람의 특징

(1) 열심이 있어야 한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 규칙에 따라야 한다.

(딤후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3) 상을 위하여 좇아야 한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4) 예수의 나타남을 사모해야 한다.

(딤후4:8)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관련원어풀이

1. hl;WmG] 게물-라-

보상, 보복.

(삼하19:37, 사59:181)

 

2. hB;z]bin 네비즈바-

선물, 보수.

(단2:6, 5:17)

 

3. taec]m' 마스에-트

(1) 들어 올림.

(삿20:38, 시141:2)

(2) 표식.

(렘6:1)

(3) 짐.

(습3:18)

(4) 말해진 것.

(애2:14)

(5) 선물.

(창43:34, 삼하11:8)

(6) 공물, 세금.

(대하24:6, 9)

 

4. rk;c; 사-카-르

보수, 임금.

(창30:28, 신15:18)

 

5. rk,c, 세케르

빌림.

(잠11:18, 사19:10)

 

6. tr,Kic]m' 마스코레트

임금, 보수.

(창29:15, 31:7)

 

7. ajntapovdosi" 안타포도시스

보상, 보복, 되갚음.

(골3:24)

 

8. brabei'on 브라베이온

원래의 뜻은 "경기에서 이긴 사람에게 주는 상(고전9:24)"이다.

하늘의 상

(빌3:14)

 

9. misqov" 미스도스

(1) 일에 대해 지불해야 할 삯, 임금.

(눅10:7, 롬4:4)

(2) 보상, 보수.

(요4:36, 고전9:18)

설교예화자료

하나님의 급료

 

빌리 브레이가 많은 청중들 앞에서, 주로 광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두 광산을 예로 들었는데, 한 광산은 아주 잘되어 성공을 했지만, 다른 한곳은 일도 고된 데다 급료도 적은 곳으로 아주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는 급료 적은 광산에서 일을 하면서 월급날이면 성공적인 광산으로 급료를 받기 위해 가는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광산 주인은 그가 그 광산에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높은 급료를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일은 하지 않고 높은 급료만을 요구하다가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더 이상의 간청도 필요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빌리는 청중들을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그는 앞으로 올 하나님의 영광을 나눠 갖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를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오늘의 삶이 어렵고 고달플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살아갈 때 후에 참된 하나님의 급료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

 

독일 와르소 근처 한 작은 마을에 도르비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더구나 2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거푸들어 모아 둔 곡식마저 바닥이 났습니다. 그의 지주는 그를 쫓아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봐달라는 호소를 할 겨를도 없이 도르비와 그의 가족은 이틀 안에 떠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도르비는 가족들과 함께 이 어려움을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끝나는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창문을 열어보니 나뭇가지 위에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까마귀는 그의 할아버지가 길렀던 것이였습니다. 까마귀의 부리에는 다이아몬드와 루비로 된 금목걸이가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임금님께서 지방을 순회하다가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도르비는 보석들을 임금님께 가져다 바쳤습니다. 임금은 그렇게 마음씨 착한 사람은 처음 본다고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상금을 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받은 상금으로 도르비는 농토도 준비하고 작은 집도 장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사랑

 

이것은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지만, 그 교훈은 위대한 진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매우 값진 예술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굉장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평범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청년기를 지나자 죽고 말았습니다. 이 아버지는 무척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서 앓다가 몇 주 후에 심장마비로 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은 모든 재산을 경매로 팔라는 것이었는데, 이상한 것은 아들의 유화로 된 초상화를 첫번째 경매에 붙이라는 단서를 적어 놓은 것이었습니다. 널리 소문난 수집품을 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유언에 따라 소년의 초상화가 제일 먼저 경매에 올려 졌습니다. 죽은 소년의 초상화에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소년을 항상 사랑했던 늙은 흑인 하인이 75센트에 그 그림을 샀습니다. 다른 경매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그림은 그 흑인에게 단번에 팔렸습니다. 바로 이때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경매는 중단되고, 그림을 살 만큼 그 소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집에 있는 모든 것을 주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공표되었던 것입니다.

 

 

기도하는 두 어머니

 

빌리 선데이 (Billy Sunday)가 심방하는 목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목사가 한 집에 이르러 문을 연 어린이에게 그의 어머니를 만나야겠다고 하자 그 어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9시부터 10시까지는 기도하니까 만나실 수 없어요." 그는 그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40분을 기다려 기도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영광의 빛이 어리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집이 그렇게 명랑한 분위기였고,그녀의 두 아들이 성직에 있으며 한 딸이 선교사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데이 씨는 논평했습니다. "어떤 지옥도 기도하는 어머니에게서 그 아들 딸을 떼어갈 수 없습니다. "

17명의 자녀를 가진 수잔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며 매일 한 시간씩 자기 방에서 하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불란서가 그 끔찍한 혁명의 피로 물들여 지는 동안, 그녀의 두 아들은 하나님의 계시하에 영국에 신앙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

 

런던의 성 바오로 성당은 누구든지 벽에 귀를 갖다 대면 반대편에서 아무리 조용하게 말해도 다 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전, 그곳에서 한 가난한 구들방 청년이 자기의 사랑하는 애인에게 가죽 살 돈도 없고 장사도 안되고 결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연히 반대편에서 이 말을 들은 처녀는 훌쩍거리고만 있었습니다.

이때 한 신사가 저쪽에서 이 소리를 듣고 도와주어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구들방 청년이 기도를 마치고 성당을 떠나자 신사는 뒤를 밟아 거처를 알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많은 가죽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사업도 번창하고 장사도 잘 되었으며 장가도 들 수 있었습니다. 그후 청년은 자신을 도와준 은인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며 몇 년 후에야 그 신사임을 알아냈습니다. 그 신사는 영국의 수상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도시상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풍토인지 우리네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겠다」하는 데에서 개운치 않은 시상(施賞) 후문(後門)이 남는다.

(신석정/ 동문서답)

 

벌은 자손에게까지 미치지 않고, 상은 자손에게 연장하여야 한다.

(이이/ 동호문답)

 

상과 벌로 교시한다면 더러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마음속으로 배반하지만 인과로써 교시하면 진정코 심복하게 됨은 우리가 늘 목도하는 바대로의 세상 인심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민에게 상을 주면서 선한 일을 권고하고 벌을 주면서 악한 일을 말린다면, 악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위엄이 두려워서 하지 않는 것이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상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에 겉으로만 따르는 체할 뿐이지 진정 마음의 복종은 아닌 것이다.

(기화/ 현정론)

 

정당한 상은 낭비가 아니고, 정당한 형벌은 포악이 아니다. 신상필벌이야맡로 바로 최고의 덕치이다.

(관자)

 

옛날 주왕이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 자는 사사로운 공로에 대해서는 상을 주지 않는 법이며, 사사로운 원망에 대해서도 형벌을 주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논어)

 

대저 전쟁이란 위험한 일이다. 전진하면 사망하는 염려가 있고, 후퇴하면 생존하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정이 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좋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상을 중하게 해야만 목숨을 잊을 수가 있고, 오직 벌을 중하게 해야만 죽는 데에도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과 벌이, 모든 사람들이 공인하는 공과 죄에 따르지 않고 한 개인의 기쁨과 노여움에서 결정된다면, 상을 주어도 권장되지 못하고 벌준다 해도 징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직위와 후한 녹봉은 공이 있는 사람을 대우하는 것이고, 칼과 틀, 채찍과 종아리채는 죄지은 자에게 가해지는 것이다.

(정도전/ 삼봉집)

 

상벌(賞罰)은 나라의 큰 법규이니, 한 사람을 상주어 천만 사람을 권장하고 한 사람을 벌주어 천만 사람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어서, 지극히 공평하고 지극히 밝지 않으면 그 중도를 잃어서 온 나라의 인심을 감복시키지 못하옵니다.

(정몽주/ 포은집)

 

상은 공(功)을 권장하는 것이요, 형벌은 죄를 징계하는 것입니다. 상을 천명이라 하고 형을 천주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상형하는 권리를 임금에게 주고, 임금은 이것을 대행한다는 뜻입니다.

(정도전/ 삼봉집)

 

상을 통한 독려와 형벌에 의한 위압이 없다면, 권세를 잃고 법이 해이해져, 요 ·순이 집집마다 찾아다니 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얘기한다 할지라도 단 세 집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한비자)

 

한 선인을 폐하면 많은 선인이 쇠퇴해 버리고, 한 악인을 상주면 많은 악인이 모여든다.

(삼략)

 

무릇 상을 내리려면 바르게 함을 귀하게 여기고, 벌을 주려면 용서 없음을 귀하게 여겨라. 상을 바르게 하고 벌을 반드시 하게 함을 귀와 눈으로 직접 듣고 보는 곳에서 행하면, 듣고 보지 못하는 바의 사람도 암암리에 감화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강태공)

 

이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도 상을 타는 사람과 많은 일을 하고서도 상을 타지 못하는 사람.

(이어령)

 

흉 각각 정 각각. <*결점이 있을 때는 흉보고 좋은 점이 있을 때는 칭찬함, 곧 상벌이 분명>

(한국 속담)

 

사람의 마음을 거문고 소리로 감동시키거나 또는 음악 소리로 표현해 내면 남을 슬프게도 또는 기쁘게도 할 수 있다. 법을 내 걸거나 賞을 내려도 백성들의 기풍이나 습속을 교화 개선시키지 못하는 것을 정성으로써 남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남자)

 

유교가 사람들을 교도할 때에는 덕행으로써보다 정사로나 형벌로써 함이 효과적이라고 했다. 인민을 정사로써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린다면 반드시 덕행이 있기 마련이므로 상벌은 국가의 제일 중요한 정책이 된다고 하였다.

(기화/ 현정론)

 

법은 두 개의 관건이 있으니, 그것은 상과 벌이다. 상은 바로 직접적인 권선이기는 하지만, 벌이라 하여 결코 일종의 보복주의는 아닌 것이다. 살인자의 머리를 자른다는 것이 결코 피해자를 대신하여 원수를 갚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살인자를 처벌한다 할지라도 결코 피해자가 다시 부활하는 것이 아닌 이상 사형만으로 보상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장기물/ 중국철학사)

 

나이 사 십이 넘고서도 상을 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사람이다.

(이어령)

 

어느 제자가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그는 자기 스승과 다른 제자들이 거기 앉아서 묵상에 젖어 있는 것을 보고는 놀랐다. // "이게 천국의 보상인가?" 그는 외쳤다. "아니, 이건 바로 우리가 지상에서 하던 것과 똑같은 종류의 일이잖아!"// 그의 귀에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다. "멍청이! 이 묵상자들이 천국에 있다고 생각하느냐? 정 반대다-천국이 그 묵상자들 마음속에 있느니라."

(앤소니 드 멜로/ 묵상)

 

성도와 나그네 대접 힘쓰면/하늘의 상급이 클 것일세

(홍안의/ 성도의 생활)

 

그를 천당으로 보내야 한다/ 살아 생전/ 진실로 남의 말을 들어본 적 없는/ 두 귀에 대해 경탄하며/ 하늘 아래/ 누구도 겁내지 않는 안간힘에/ 손뼉 쳐주며 이 보다 더한 상이/ 어디 있겠나

(정두리/ 기도문)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 맞추겠습니다.

(한용운/ 꽃싸움)

 

그러면 만물이 다 멋진 변장을 하고/ 의식은 벌을 상으로 변하게 하는 요술쟁이가 되는 것이다.

(J. 웨인/ 이중 의미의 제 8형)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줍시사고 신에게 기도드리며/ 나 스스로 너무나 많이 논의하고/ 너무나 많이 풀이한 것들을 / 잊게 해 주십사고 난 기도드린다/ 나는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기에/ 나의 이 말들이 무엇이든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보상이 되게 하시고.

(엘리어트/ 성회 수요일)

 

나 받은 달란트로/ 열심을 다하여/ 거룩한 주의 나라/ 그 의를 구하면/ 주께서/ 예비하신/ 상급을 받으리

(홍안의/ 일꾼의 노래-교회에 바치는 글)

 

하늘에 있는/ 내 집은/ 주님의 상급입니다.

(홍안의/ 빛보라치는 저 하늘)

 

 

설 교 노 트

 

의의 면류관을 받으라

딤후4:7-8

 

서론

성경에 소개된 여러 면류관이 있습니다. 의의 면류관(딤후4:8)과 금면류관(계14:14) 그리고 생명의 면류관(계2:10), 썩지 않는 면류관(고전9:25), 즐거운 면류관(살전2:19), 영광의 면류관(벧전5:4)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의의 면류관을 받아 쓰려면 어떻게 힘써야 하겠습니까?

 

1.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다툼이요, 국제적으로는 전쟁의 피흘린 역사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서 승리해야 상을 받게 됩니다.

싸움은 외부적인 싸움과 내부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1) 외부로 닥치는 환난과 핍박의 시험, 마귀의 앞잡이인 불신 세력의 정권이나 심지어는 믿지 않는 가족들도 다 원수와 같은 입장에서 나를 핍박하고 여러 가지 환난으로 괴롭힙니다.

(2)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죄악의 생각,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우리 인간들은 마음속에 세상에 붙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나니 항상선한 싸움을 싸워 이겨야 하겠습니다.

 

2. 믿음의 경주를 달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모태에서부터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하여 달음박질하는 운동 경기자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히12:1-2). 그래서 믿음의 경주를 잘 달려서 일등을 하여 상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공인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심판하실 때 잘했다고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계속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를 하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의 졸병으로서의 역할밖에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믿음의 경주를 달려서 상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또한 우리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도 합니다.

 

3. 믿음의 파수를 잘 서야 합니다.

싸움에는 적극적인 공격전이 필요한 때도 있지만, 소극적인 방어전도 필요한 것입니다. 방어를 잘못하면 공격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침투하는 이단 사설과 개인 심령을 파고드는 잡된 죄악의 생각에서 내 믿음을 잘파수하여야 지옥으로 끌려들어 가지 않을 것입니다. 파수꾼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약 파수꾼이 잠들어 있으면 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어 침략을 당하고 파멸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파수꾼은 언제나 깨어 있어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경종을 울려서 알려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선한 싸움에서 승리한 전공자에게 훈장으로, 영적 경기장에서 이긴 자에게 금메달로, 믿음의 파수를 잘 본 자에게는 상급으로써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 쓰기까지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경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큰 상급받게 믿자

고전9:24-27

 

서론

하나님 아버지는 상주시는 이 이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 게상주시는 이이 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를 위하여 상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또한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큰 상급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1. 크게 믿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의 생각과 믿음에 의해서 결정지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게 믿고 크게 생각하고 살면 크게 이루어지고, 적게 믿고 적게 생각하고 살면 적게 이루어지고, 아예 믿지 아니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 세계의 공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크게 가지면 크게 되므로 생각을 크게 하는 버릇을 키우고, 믿음을 크게 소유하므로 믿는 대로 크게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크게 믿는 대로 될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2. 상을 받게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신앙생활을 스포츠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 지라도 오직 상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사도 바울은 명백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 금메달을 따려고 하는 선수와 같이 상받도록 굳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부어 주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상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운동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은 어쩌다가 요행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정말 피눈물나는 노력과 최선으로 따는 것입니다. 진실로 노력 없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성공자가 되고 승리자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도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고 복을 받으려면 최선을 다해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느냐를 먼저 묻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여 일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이요, 그런 사람에게 성공과 축복을 부어 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명기 6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 들여,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여 상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상을 받으려면 절제해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이 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너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승리하고 상급을 받으려고 하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굽힐 줄을 모르는 신념과 끈기 있는 분투와 노력을 아끼지 아니할 때만이 성공과 상급이 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그저 최선을 다하며 절제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기어이 승리하고 상급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세상의 헛된 안일과 쾌락을 위해서 이리뛰고 저리 밀려다니는 시간은 있는데 하나님 앞에 상받고 축복받기 위해서는 조금도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까? 크게 믿고, 최선을 다하며, 절제하며, 법대로 살지 못한 일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뛰어야 합니다. 상받을 푯대를 향하여 돌진해야 하겠습니다.

상 속

성 경 활 용

1. 상속권에 대한 규례

(1) 장자에게는 두 물을 준다.

(신21:17)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2) 서자는 상속권이 없다.

(창21:10)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3) 과부는 상속권이 없다.

(룻4:5)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지니라

 

2. 하나님에 의해 상속권이 바뀐 경우

(1) 에서에게서 야곱으로 바뀜

(창27: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공급하였으니

 

3. 물질적 상속 산업

(1)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상속 산업이다.

(시105:11)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포다

(2) 집과 재물은 자손들의 상속 산업이다.

(잠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눅15:12)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4. 영적 상속 산업

(1)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산업이다.

(시33: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2) 온 땅은 구세주의 상속 산업이다.

(시2: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관련원어풀이

1. vr'y: 야-라쉬

(1) 잡다, 소유하다, 점령하다.

(왕상21:16)

(2) 가지다, 소유하다.

(레25:46, 신19:14)

(3) 상속을 받다, 물려받다

(창21:10, 민27:11)

(4) 사람의 소유물을 빼앗다.

(창45:11, 잠20:13)

(5) 점령하다.

(민14:24, 삼상2:7)

 

2. lj'n: 나-할

(1) 소유하다.

(출34:9, 수16:4)

(2) 상속으로 물려받다, 가업을 잇다.

(삿11:2, 시119:11)

(3) ~을 소유케 하다, 분배하다.

(민34:17, 수19:48)

(4) 소유물로 주다, 분배하다.

(민34:29, 수19:51)

(5) ~자신의 소유로 받다, 가지다.

(민32:18, 사14:2)

 

3. hl;j}n" 나할라-

(1) 소유로 취함, 점령, 소유.

(마18:21, 수13:23)

(2) 상속, 기업.

(왕상21:3, 4)

(3) 할당된 제비, 몫.

(욥20:29, 31:2)

 

4. klhronomevw 클레로노메오-

원래의 뜻은 "제비뽑아 얻다, 물려받다, 상속에 의해 얻다"이다.

(1) 획득하다, 소유하다.

(마5:5, 19:29)

(2) 상속하다.

(갈4:30)

설교예화자료

나무토막 하나라도

 

나의 조부님께서는 회갑을 지내신 후에 천석꾼을 지내신 어른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근검 절약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길에 다니시다가 나무토막을 보시면 그냥 지나치시지 않고 꼭 주워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마루 밑에는 나무토막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쓰레기 같았던 그 물건들이 요긴하게 쓰이곤 했습니다. 조부님께서 90세가 넘으셨을 매 작은 아버지께서 좋은 한복을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조부님께서는 꼭 생신 때나 명절 때만 입으시고 다른 때는 잘 보관해 두셨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할머님께서 "아니,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무엇 때문에 아끼십니까?"라고 하시자, 그분께서는 "내가 소중하게 입어야지 후에 자손들이 물려받아 입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여전히 좋은 오래 전의 소식

 

얼마 전에 여행을 하는 전도자가 '나는 구원 받았네' 라는 노래를 혼자서 부르고 있었습니다. 동료 여행객이 이를 듣고서 그와 함께 불렀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전도자가 낯선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구원받았나요? "

"예,주님을 찬양합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구원을 받은 지는 얼마나 오래 되었어요? "

"약 1900년 전부터입니다. "

그 대답에 전도자는 놀랐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900년 전이라고요? "

"예, 선생님,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안 지가 1년도 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유감스럽군요,"

 

 

어록·시·묘사

 

우리는 모든 세대의 상속자.

(A. 테니슨)

 

땀 흘리고 얻은 것은 상속한 것보다 귀중하다.

(프랑스 속담)

 

자식의 성격이 못됐으면 상속할 자격이 없고, 선량하고 근면하면 상속할 필요가 없다.

(중국 속담)

 

1페니를 상속받는 자는, 1달러를 소비할 것이다.

(독일 격언)

 

황금을 헤아리는 상속인은 하느님이 보실 때 임금을 받고 있는 노동자보다도 풍족하지가 못하다.

(레바논 격언)

 

사후의 자선사업은, 살아 있을 때 아무것도 남에게 넘기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유언으로 넘겨질 때는, 바로 이기심의 정수(精髓) 이다.

(C.C. 콜튼/ 라콘)

 

돈 모아 줄 생각 말고 자식 글 가르쳐라.<*재산은 지식이나 덕만 못하다는 말>

(한국 속담)

 

상속재산을 함께 나눌 때까지는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안다고 말하지 말라.

(J.K. 레바터/ 인간에 대한 경구)

 

재산을 나누게 될 때는, 가장 예의바른 사람도 싸운다.

(에머슨/ 일기)

 

모든 여자 상속인은 아름답다.

(J. 드라이든/ 아더 왕)

 

아들은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침착하게 참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의 손실은 그의 실망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상속인이라는 관계가 없다면 자식과 부모 관계는 훨씬 더 친밀할 것이다.

(J. 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우리는 정말 모든 시대의 상속자들이다. 그러나 정직한 민간으로서 유산의 범위를 알고 또한 그것이 생각한 것보다 적다고 해도 울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J. 틴들/ 과학단편)

 

상속인의 눈물은, 가면을 쓴 (벗기고 보면) 웃음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현재 우리들의 내부는 선조로부터 상속받은 것 뿐 아니라 온갖 옛날에 죽은 관념이나 신념 따위들로 가득 차 있다.

(H. 입센/ 유령들)

 

유언장을 만드는 기술은, 주로 집요한 기대를 꺽는 데 있다.

(W. 해줄리트/ 다화)

 

가장 가까운 상속인은, 의심과 미움을 받는다.

(타키투스/ 사서)

 

나는 네게 남겨 줄 재산도, 명성도 없다. /내 이름만을 너는 상속할 수밖에 없다. / 인생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다른 사람이 얻은/ 명예를 획득하는 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었다.

(A.G.M. 캠벌/ 내 아들에게)

 

왕의 총애는 상속할 수 없다.

(T. 풀러/ 금언집)

 

저녁상을 물리고/ 지아비를 기다리며/ 아가와 함께 읽은/ 예수의 생애//네 눈이 보아내는/ 참모습 그대로/ 네 귀가 들을 수 있는/ 옛 음성 그대로//젖 먹는 네 입이/처음으로 부르는/ 위대한 그 이름// 아가야/ 네게 줄 나의 재산은/ 오직/ 그의 이름뿐이지.

(류안진/ 위대한 유산)

 

우리들은 님에 대하여 만날 때에 이별을 염려하고, 이별한 때에 만남을 기약합니다/그것은 맨 첨에 만난 님과 님이 다시 이별한 유전성의 흔적입니다.

(한용운/ 최초의 님)

 

아들 낳고/ 딸 낳고/ 먹과 물감을 엽전으로 상속하던 날.

(이기반/ 미술관에서)

 

이 언덕을 지나면/돛을 내리게 될 것이고/파도에 새겨진 유언들을/ 그때에야 비로서 읽을 것이다.

(황금찬/ 파도를 헤치고)

 

나는 남겨 두고 가겠다/ 아메리카의 새로운 시인들에게/내가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수집하여 애독했던/ 인쇄도 뛰어난 고서를/ 새로운 시인들은 언젠가/ 과거의 중단되고 목이 쉰 시법위에/ 내일의 의의를 짜넣어 줄 것이다. //‥‥추장들의 뼈 위를/ 배신당한 우리들의 유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제 힘으로 전진해가는 민중 속에 끼여/그들은 널리 보급해 갈 것이다/ 긴긴 고난이 마침내 쟁취한/ 새로운 법령을

(네루다/ 유언 · 2)

 

이제 나의 삶도 종막에 가까워졌으니/ 유언장이라도 써 둬야겠다/ 이래 뵈도 나는 기독교인이니/ 나의 원수에게도 유언해 두자// ‥‥나는 그들에게 유증하리라/ 집게로 옆구리를 꼬집는 산통을/ 이뇨질환과 심뽀 고약한/ 프러시아 산의 치질을// 그들은 또한 갖게 될 것이다 발작적인 나의 경련을/ 질질 흘리는 침과 관절의 마비와/피골이 상접한 나의 등뼈를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의 유산으로서// 유언장에 첨가해 두겠다/ 신은 부디 이 유언을/ 삼켜 주시요 / 잊어버리지 않도

록.

(하이네/ 유언장)

 

나는 남기고 가겠소/ 동산과 탄광과 초석 공장의 노동조합에 / 이슬라 네그라의 바닷가에 있는 나의 집을/도끼와 배신자들에 의해 마구 짓밟혀 / 신성한 피가 더럽혀지고 /용암처럼 낭비된 내 조국의 학대받는 자식들이 / 그곳에서 몸을 쉴 수 있도록

(네루다/ 유언 · 1)

 

홀연 경이의 / 큰 눈을 뜨기 위해,/ 순백의 염념상속(念念相續)을 보기 위해

(박희진/ 폭포)

 

자애로운 어머니의 딸이다가/ 이제/ 아이들의 여린 어미가 되어/ 받던 사랑/ 주시던 말씀/물려받은 이승의 사랑연습

(김성자/ 고리)

 

남자는 언제나 애무와 애정없이 살지 못한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머니는 남자에게 그것을 유산으로 준다.

(H. 비니/ 삼손의 분노)

 

 

설 교 노 트

 

내 열조의 유업

왕상21:3

 

서론

아합 왕은 대단히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달라고 할 때에 나봇은 거절하였습니다. 나봇은 아합에게 거절의 이유를 말하였는데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아합 왕의 부드러운 제안

아합 왕이 나봇에게 제안한 요구는 무리가 없고 강탈하려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우선나봇의 포도원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만일 합의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는 충분한 대가인 돈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또 황은 어디까지나 오호와의 기름부으신 자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말을 들으면 실지상으로도 자기 유익이 있다는 계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입에는 꿀이요, 배에는 칼"이라는 격언이 적중하였습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간교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있어야 부드러운 말로 제안하고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바로 죄인인 사람의 본성입니다.

 

2. 열조의 유업이란 무엇입니까?

나봇은 여기에서 두 가지를 고려하여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이고 또 하나는 그의 열조와 후손들에 대한 의무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율법에 말씀하기를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내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레25:23). 그리고 조상에 대한 의무는 민수기 36장 7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조상에게 상속받은 땅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설혹 어떤 사람의 기업이 팔렸을 경우에도 조만간 그 자신이나 그의 친족이 그 땅을 물려받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봇은 이로 인하여 앞날에 자기에게 손해가 따르고, 아니 죽음이 닥친다고 하여도 그 기업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의 상속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달콤한 말로 신앙에서 떠나게 유혹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단호하게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3. 나봇의 경건한 신앙심

나봇은 왕명을 따라 자기의 육신과 물질의 이득을 볼 것이냐? 그의 명령을 거절하고 생명을 내댈 것이냐? 그는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단지 죄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기 전에 하나님의 명령을 먼저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한 분 하나님이 계실 뿐이니 하나님의 뜻에 견줄 만한 다른 의사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나봇의 독실한 신앙심과 경건심의 발로입니다.

 

결론

결국 나봇은 조상이 남긴 유업을 지켰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다가 죽었으니 그는 자신의 절개를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최상으로 위로하시고 천국에서 가장 큰 상을 주셨을 것입니다.

 

 

장자의 권리

신21:17

 

서론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장자, 즉 첫 자식을 특별히 귀중한 존재로 인정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동물 세계에서도 첫 새끼를 귀중시하여 주로 재물로 삼았으며 식물계에서도 첫 열매를 귀중시하여 신에게 드리는 재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왜 장자는 권리가 있습니까?

 

1. 장자는 성별된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출13:2, 22:29).

이는 모든 만물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시지만 그중에서도 귀한 존재인 장자의 위치를 성별하여 하나님의 소유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뜻은 짐승의 처음 태생은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는 성별하였으니 하나님께 헌신하여 신령한 사업에 종사하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장자된 자는 스스로 정결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처신하다가는 성별된 특권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2. 장자는 기업 상속의 두 몫을 받습니다.

장자의 특권 중에 또 하나는 그 소유를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맏아들은 옛날에 재산의 거의 전부를 상속할 만큼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장자가 되는 자는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되기 때문에 이 자리가 복된 자리요, 영광스러운 지위였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탐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3. 장자의 축복은 귀중합니다.

맏아들된 자는 축복을 상속으로 받습니다.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 형제의 축복 싸움은 참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형인 에서의 발꿈치를 야곱이 잡고 나왔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태어나는 순서가 잠깐 늦음으로 인하여 장자가 못되고 차자가 된 야곱은 평생 소원과 원한이 장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축복의 위대성을 앙망하였던 까닭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배고픈 것을 참지 못하는 약점을 노려서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사기도 하였고,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서 아버지인 이삭을 속여가며 축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방법은 정말 간사하고 비열하며 진실되지 못한 것이었으나 그 축복을 받고자하는 갈망심은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간사하였던 야곱의 이름을 버리고 가장 은혜스러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도 천사와 씨름하여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밤새도록 기도하여 자기의 이루고자 하였던 축복을 쟁취한 셈입니다(창32:13-32).

 

결론

장자의 권리는 위대합니다. 이 권리는 세상 사람들의 세속적인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신령한 권리입니다.

장자는 성별된 하나님의 것입니다. 기업 상속의 두 몫을 받으니 축복의 상속 또한 귀한 것입니다.

생 명

성 경 활 용

1. 생명 탄생의 기원

(1) 하나님의 창조

(창1:25)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2) 자연적인 출생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3) 성령으로 잉태

(마1:20)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

 

2. 생명의 짧음과 무상함에 대한 묘사

(1) 꿈같이 지나감

(욥20:8) 그는 꿈 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2) 그림자 같음

(대상29:15)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

(3) 구름의 사라짐과 같음

(욥7: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4) 꽃의 쇠함과 같음

(욥14:1-2)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 그 발생함이 꽃과 같아서 쇠하여지고

(5) 사라지는 안개와 같음

(약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6) 잠간 자는 것 같음

(시90:5)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7) 일식간에 다함

(시9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3.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1) 생명을 보호하심

(시34: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2) 생육하게 하심

(창1:28)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3) 양식을 주심

(시104:27)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4) 영화롭게 하심

(골3: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4. 생명에 대한 성도의 자세

(1) 생명이 위험할 때 보살펴야 함

(행27: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2)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음

(마11: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끊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행15:2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3) 사명을 위해서 생명을 아끼지 아니함

(행20:24)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4) 주를 찬양함

(시611: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5) 생명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않음

(눅12:4)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관련원어풀이

1. vp,n< 네페쉬

(1) 숨.

(욥41:13)

(2) 영혼, 생명.

(창35:18, 왕상17:21)

(3) 정신, 마음.

(창34:3, 미7:1)

(4) 동물.

(수10:28)

(5) 나 자신, 당신 자신.

(욥9:21, 시11:1)

 

2. hJlikiva 헬-리키아

(1) 나이, 생명의 기간.

(마6:27, 눅12:25)

(2) 성년, 성숙, 분별한 연령.

(요9:21, 23)

(3) 키, 신장.

(눅19:3)

 

3. yuchv 프쉬케-

(1) 목숨, 생명력, 혼.

(눅12:20, 계6:9)

(2) 세상적인, 생명.

(마20:28, 막10:45)

(3) 영혼, 혼.

(눅12:19, 계18:14)

(4) 목숨을 가진 것, 생물.

(고전15:45, 계16:3)

설교예화자료

보도 밑의 늙은 거북

 

뉴욕에 있는 낡은 호텔들 중에 바깥쪽 보도 하나가 철거되고 있었습니다. 그 철거작업반원들이 콘크리트를 깨뜨리고 나자 아래쪽에 첫번째 층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2층을 망치로 내려치자, 움직이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그것은 움직였습니다. 바로 그것은 14파운드나 되는 거북이였던 것입니다.

뉴욕의 그 낡은 호텔의 주인 말에 의하면 그것은 그의 스내핑 터틀 중의 한 마리가 틀림없었습니다. 그 보도가 호텔의 바깥 쪽에 건설되었던 때는 자그마치 32년 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거북이는 겨우 5파운드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 다 찾아보았지만 끝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그 거북이가 어디론가 가 버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거북이는 다시 나타났습니다.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었으며, 거기에다가 9파운드가 더 늘어나 있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32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 거북이가 무엇을 먹고 살아서 그토록 살이 찌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련과 고통

 

미국의 저명한 설교가인 노만 빈센트 빌 박사가 가던 길에서 우연히 옛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의 모습은 초췌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지고 수심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빌 박사가 물었습니다.

"자네, 왜 그렇게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 차 있지? "

"여보게 빌, 요사이 나는 염려와 근심이 너무 많아서 인생을 사는 것 같지 않다네. 정말 사는 것이 괴로워."

"무슨 문제가 그렇게 많아? "

"글쎄, 뭔일인지 내게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다가 온다네. 문제가 없는 곳에서 살아 보았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몸과 마음이 편하겠나? "

이 말에 빌 박사는 싱긋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내가 소문을 들으니 문제가 하나도 없는 곳이 한군데 있다더군. 그 동네에 가면사람들이 문제가 하나도 없어서 편안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네. 그곳으로 가고 싶지 않나?"

"그런 곳이 있다면 나에게 좀 소개해 주게나."

"그래, 저 강을 건너가면 공동 묘지가 나타나는데 그 동산에 들어가게나. 거기에는 문제가 하나도 없다네."

"예끼 사람, 사람을 놀려도 분수가 있지 무슨 그런 소리를 하나."

그러자 빌 박사는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자네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직 자네가 공동 묘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증걸세."

 

 

아기냐 어머니냐

 

한 유태인의 어머니가 난산 때문에 위독한 상태에 빠지게 되자, 나는 남편으로부터 불리어 한밤중에 병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산모는 아주 출혈이 심해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부가 처음 갖는 아기였습니다. 의사가 와서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기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의사는 잘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최후에는 아기를 구하느냐, 어머니를 구하느냐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모두 이 첫아기를 매우 바라고 있었습니다. 산모는 자기가 죽더라도 아기를 살리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로 의논한 결과, 나에게 결정이 맡겨졌습니다.

나는 먼저 내가 결정하면 그것은 나 개인의 결정이 아니고 탈무드,또는 유태인의 전통이내리는 결정이므로 반드시 그에 따르겠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부는 그것이 유태의 전통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산모의 목숨을 살리고 아기를 희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산모는 그것은 살인이라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유태의 전통에 따르면, 아기는 태어나기까지는 생명이 없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태아는 모친의 일부분임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몸의 일부분, 예컨대 팔을 잘라내는 일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유태의 전통에서는 그러할 때에는 반드시 산모를 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카톨릭 신부가 있어 신부는 아기를 살리고 모친은 죽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카톨릭에서는 회태(懷胎)했을 때에 이미 새 생명이 생겼다고 생각하므로 카톨릭 사고법에 따르면, 모친은 이미 세례를 받고 구원되었으나 아기는 아직 세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태의 결정은 이상하다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나의 결정에 따라 산모는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 2의 귀여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기름이 구한 생명

 

어느 날 대왕이 감옥에 찾아가 감방의 수인 중에 가장 야윈 청년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몇 개월만에 이렇게도 얼굴이 못쓰게 되었느냐? "

삼 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죽는 날을 기다리기란 정말 너무나 괴롭기 때문이라고 청년은 대답하였습니다. 대왕은 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서, 신하를 시켜 기름을 그릇에 넘치도록 가득 담아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조금도 쏟지 않고 온 도성의 모든 시가지를 돌아 왕궁까지 오면 살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마지막 길이니 만치 기름을 받아들고 경관 감시하에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그날은 그 도성의 장날로 사람들이 우굴거려 극히 곤란함에도 조금도 흘리지 않고 잘 돌아왔습니다.

이때 왕은 청년에게

"오늘은 장날인데 어떤 것이 많더냐." 하면서 여러 가지를 잇달아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청년은 매번 모른다고만 대답하였습니다. 왕은 노발대발하여 온 시가지를 돌았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냐고 소리쳤습니다. 이때 청년은 빌면서

"저는 목숨을 살릴 길이 이 기름 그릇에 있기 때문에 전심 전력하여 이 기름만을 보면서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 했습니다.

대왕은 노기를 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냐, 네 말이 옳다. 이제는 죽지 않고 살리라. 생명은 그렇듯 귀한 것이니라."

 

 

재물보다 귀한 생명

 

미국의 어떤 노동자가 알라스카 금광 채굴에 종사하여 이십 년간 근로의 대가로 금괘를 얻어가지고 바다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고향을 향해 미끄러지듯 달리던 배가 난파당했습니다. 헤엄을 칠 줄 아는 승객들은 다투어 뛰어내렸습니다. 금괘를 허리에 찬 노동자도 뛰어내리려고 갑판 끝에 서 있는데 십여 세 남짓 된 소녀가 부모를 쓸고 울면서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날 살려주셔요." 소녀는 울면서 노동자에게 매달렸습니다. 금괘를 차고는 아이를 살릴 수 없는 입장이 된 노동자는 금괘를 버리든지 아이를 버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야만 했습니다. 그 노동자는 결심했습니다. 이십 년간의 땀의 결정인 금괘를 내어 던지고 낯모르는 소녀를 옆에 끼고 헤엄쳐 해안으로 나왔습니다. 얼마 후 깨어났을 때 그 노동자는 재생의 기쁨으로 희열이 넘쳐습니다. 이는 금괘가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원 전의 나무

 

몇 년 전, 캘리포니아에 있는 거대한 세퀘이어나무가 잘렸는데, 세밀한 조사 끝에 그 나무의 나이와 역사가 밝혀졌습니다.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세퀘이어는 B.C. 217년 생의 나무로, A.D. 245년에 그 나무는 산불로 인해 큰 손상을 입었으나 몇 백 년이 흐른 후 그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불로 인해 남은 큰 상처 자국은 계속 생장하는 조직층에 의해 자연적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또다시 발생한 두 번의 화재로 인해 그 나무는 또 손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가 잘릴 당시는 첫번째 화재로 인한 상처는 완전히 회복되어 있었고, 두번째 화재로 인한 상처가 거의 회복되어 가던 무렵이었습니다. "

 

 

어록·시·묘사

 

일체의 이론은 회색이고, 생명의 황금수 만이 푸른빛이다.

(J.W. 괴테/ 파우스트)

 

생명은 전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물결과도 같은 것이다. 이 물결은 하나의 중심에서 전파되고 그 원주의 거의 모든 부분에 멈춰 서서 곧장 진동으로 바뀌어진다.

(H.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생명의 예지보다도, 운수에 매어 있다.

(M.T. 키케로)

 

소도 하늘도,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상의 생명,생물의 사랑만이 진실한 것이다.

(A. 프랑스/ 무희 타이스)

 

이미 죽을 수도 얼고 또 버릴 수도 없으니, 마땅히 그 몸을 보전할 일이요, 무익한 죽음을취할 필요는 없다.

(김인후/ 하서집)

 

인간의 생명은 나뭇잎과도 같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사람들이 자기 생명만큼 오래 보존하고 싶어하는 것도 없지만, 이것만큼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것도 없다.

(J. 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우리의 생명은 꿈과 동일한 물질로 되어 있고, 우리의 작은 인생은 잠으로 둘러 쌓여 있다.

(W.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정신의 생명은 죽음에 직면하여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후퇴도 하지 않는다. 죽음을 견디는 것, 그리고 죽음 속에서 정신의 생명을 유지하여 가는 것이 생명이다.

(이어령/ 전후문학의 새 물결)

 

자유에의 사랑은 생명과 함께 주어진 것, 그리고 생명 그 자체는 하늘의 소박한 선물이다.

(J. 드라이든/ 바리몬과 알시트)

 

살려고 하고 그 존재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고유한 성질이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생명을 구해 주는 건 한 발을 내딛는 것일세. 그리고 또 한 걸음 언제나 같은 발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것일세.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사람들은 생명을 애들이 장난감 취급하듯 취급한다. 애들은 우선 학대하고 장난감을 버린다.

(W. 쿠퍼/ 희망)

 

수명은 성장하는 동안 늘어난다. 사상이 생명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C.G. 릴런드/ 신의 귀환)

 

무릇 사람이 저마다 자기의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중도에서 형을 받고 일찍 죽는 이유는다름이 아니라, 너무 지나치게 삶을 누리겠다고 안달하고 무리하기 때문이다. 오직 삶에 있어 무위자연할 수 있는 자만이 오래 삶을 간직할 수가 있다.

(회남자)

 

생명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생명은 되돌아오지도 않는다.

(G. 바슬라르/ 꿈꿀 권리)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느린 속도로 이렇게 대대로 넘겨 주는 것은 생명이기도 하지마는 양심이 기도 하였다. 얼마나 신비로운 승화인가! 녹아내리는 용암에서, 별의 반죽에서 싹이돋은 산세포에서 우리는 기적으로 났다. 그리고 차차 가요시를 쓰고 은하수를 달아 보는 데까지 올라온 것이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말을 철회할 수는 있지만 생명은 도로 찾아낼 수 없다.

(L.N. 톨스토이)

 

근본으로 볼 때, 삶이란 기운이 모여서 된 것이다. 오래 삶과 일찍 죽음이 그 사이 얼마나되랴, 결국은 잠간 사는 것에 지니지 않는다.

(장자)

 

장수에 급급한 자는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없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성장은 유일한 생명의 증거이다.

(J. H. 뉴먼/ 비타 수아를 위한 변호)

 

그들이 분주하게 설법하는 것은 결코 명성을 남기기 위해서도 아니며, 홍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전도를 위해서인 것이다. 그들의 정력이 쇠약해져 다시 불법을 넓힐 능력이 없을 때에는 산림 속에 파묻혀 혼자서 적막하게 죽어가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그들 생명의 가치는 마치 한 다발의 횃불과 같은 것이다. 섶나무는 변하여 재가 되고 진정한 생명력의 표현은 바로 연소할 때 발하는 열과 빛에 있는 것이다.

(장기물/ 중국철학사)

 

우리는 꼭 같이 공평한 한 개의 선물을 받아가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다. 그 생명만이 밑천이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은 바로 이 생명의 근원에 있는 것이다.

(전숙희/ 생명의 빛)

 

우리들은 항상 생명이 짧음을 한탄하면서, 마치 생명이 다할 때가 없는 것처럼 날뛴다.

(L. A. 세네카)

 

생명은 지구의 자매요,지구와 같이 태양의 딸인 태양계의 여러 유성 위에 발생한 것이다. 그리하여 생명은 지구상에 동식물의 형태로 나타난 것과 매우 유사한 조건하에 태양계의 유성 위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A. 프랑스/ 에피퀴르의 정원)

 

생명은 끊임없이 자라나기를 요구한다.

(최현배/ 고구려 고지를 찾아서)

 

생명은 시간과 공간의 코러스다.

(정인섭/ 청천 김진섭)

 

생명은 지속이다. 끊이지 않고, 끊어졌다가도 다시 잇는 것이 생명이다. 지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져도 졌다 하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놓지 않는 것이 이김이다. 놓지 않는 것이 믿음이다. 살려니 되려니 믿음이다. 없어도 믿는 것, 없으면 만들기라도 하자는 것이 믿음이요, 그 믿음이 생명이다.

(함석현/ 인생을 말한다.)

 

태초로 생명은 우애자유한 것이며 본래한 것이며 영원한 것이며 완전한 것이다.

(이청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

 

생명이란 자의에 의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장왕록/ 왜 사느냐)

 

생명이란 뒤로 물러가는 법이 없고 어제에 머무는 일이 없으니까요

(K. 지브란/ 예언자)

 

생명이란 가치를 초월하는 현상이다.

(이병주/ 오욕의 호사)

 

생명 이외에 재산은 없다.

(J. 러스킨/ 이 최후의 심판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삶은, 마치 달리는 백마가 틈 사이를 지나감처럼 빠르다.

(장자)

 

생명이란 환경에 대해서 작용하는 행동을 통하여 자기를 갱신해 나가는 과정이다.

(J. 듀이)

 

(잠이) 깨어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다.

(H.D. 도로우/ 월든 숲 속의 생활)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인가, 깬 것인가. 어느 것인지 알지 못한다.

(기화)

 

새로 태어난 생명에 우리가 쏟는 축복과 감사와 기원은 그것이 모든 낡은 것들을 헤집고 일어날 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범석/ 태양처럼 밝게 빛나라)

 

사랑하는 것은 두 가지의 기쁨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같이 하는 것이다.

(G. 디봉)

 

청년에게는 난폭이, 노년에게는 성숙이 그 생명을 빼앗아 간다.

(M.T. 키케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보람있는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수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은 적어도 칠십 세까지 살지 않고선 「自叢]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을 것 같다. 삼십까지 자라며 배운다 치면 나머지 사십 년 간쯤은 일해야 일다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병옥/ 민주주의와 나)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나 생명에는 한계가 없다.

(윤오영/ 존가의 사랑방)

 

인간의 생명은 외적으로 보면 자연의 힘과 대조할 때 극히 조그만 것에 지나지 않는다.

(J. 러셀)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에 「존재」를 기록한다.

(김남조/ 삶과 죽음 안의 정진)

 

생명은 끊임없는 혁신이다. 습성에 이끌려 무의식으로 살아감은 물질적 생명이지 진실한 생이 아니다.

(손우성/ 현재와 미래)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수명은 비록 짧은 것이지만, 잘 소비된 일생의 기억은 영원하다.

(키케로/ 필립피코 변호)

 

사람의 생명은 산을 내려오는 길과 같아서 출발할 때는 힘이 드나 차츰 길에 익숙해지면 걷기가 쉽고 편해진다.

(윤영춘/ 행복은 너의 것)

 

생명만이 신성하다. 생명에의 사랑이 가장 첫째가는 미덕이다.

(R. 롤랑)

 

인간 의식의 가장 직접적인 사실은,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주어진 살려고 하는 생명 이다. 」라는 것이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거짓말을 하고 생명을 건지는 것이 누명을 쓰고 죽는 것보다 나을 뿐만 아니라, 크게 보면 이름 없는 몇몇을 격노한 백성에게 희생으로 드리고 많은 선한 인물들을 구하는 것이 상책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모든 유기체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죽기를 바란다. 여기에서 생명체는 일종의 첩경에 의해 자신의 삶의 목표를 빨리 달성하게 해줄지도 모를 사건에 대해 가장 정력적으로 대항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긴다.

(S. 프로이트/ 쾌락의 원리를 넘어서서)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생에 대한 의지의 자기분열의 법칙에 얽매여, 인간은 계속해서 다른 생명을 회생함으로써만 자신의 생명이나 생명 일반을 유지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한 번 생에 대한 외경에 접하면 생명을 해친다든가 죽인다든가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필연성에서 하는 것이지 결코 무사고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인인 이상 생명을 돕고 생명에서 고난과 파괴를 제거할 수 있는 그지없는 축복의 자리에 나가려고 기회를 찾는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따지 않는다. 한 포기의 들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가 날개가 타서 책산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A. 슈바이처)

 

생명은 죽음의 그림자에 불과하고, 떨어져나간 영혼은 삶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이 이름 아래에 떨어진다. 태양은 신의 어두운 환영에 불과하고, 빛은 신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T. 브라운 경/ 시루스의 정원)

 

생명이 가장 강하다는 것- 진실이지만, 또한 모든 비열한 것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의 반대를 공공연히 생각하여야 한다.

(A. 카뮈/ 비망록)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무서워한다. 자기 생명에 이것을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이게 하지 말라.

(법구경)

 

개개의 육체는 죽으면 없어질는지 몰라도 인류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섶을 인간의 육체에 비한다면 그것을 태우는 불은 생명이다. 이 타 없어지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불은 이 섶에서 저 섶으로 이어져서 영원히 타오르는 것이다.

(장자/ 양생주편)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죽기 시작하며, 끝은 시작에 달려 있다.

(마닐리우스/ 천문학)

 

생명도 반드시 한 번은 죽음으로 돌아감을 안다면 생명을 유지하려고 그토록 마음을 썩이지는 않으리라.

(채근담)

 

생명은 온갖 재보의 최고로 삼는다. 그리고 최고의 악은 죽음으로 삼는다.

(H. 하이네/ 마음)

 

생명을 잃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라도 필요한 경우 생명을 버릴 만한 용기는 있다. 그러나 이 생명의 의미가 없어지며, 우리들의 생존의 이유가 소멸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인간은 이유가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A. 카뮈/ 칼리굴라)

 

죽어야 할 생명체는 생명을 서로 전수한다. 마치 경주자가 손에서 손으로 횃불을 넘겨주듯.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그리고 저승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W. 셰익스피어)

 

삶은 죽음보다 더 많는 경외가 있다.

(P. J. 베일리/ 축제 . 나무와 물)

 

사람이 나라를 위하여 큰 일을 할 때에는 목숨이 우정같이 중하지마는 의를 위하여 죽을 때에는 새털같이 가볍다.

(이광수/ 단종애사)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명인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죽음인지 누가 아는가.

(에우리피데스)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눈앞에 놓고 웃으며 춤추며 이미 죽은 사람을밟아 넘으면서 나아간다.

(노신/ 수상록)

 

생명은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발명이며, 죽음은 더 많은 생명을 얻기 위한 자연의 계교이다.

(괴테/ 자연에 관한 경구집)

 

들의 꽃을 보라신/ 임의 시는 이름 없는 풀꽃에/ 맺힌 하늘의 생명을/ 노래하심이여// 당신이 사랑하신 아름다운/ 세계, 당신이 몸 바치신/ 생명// 풀꽃은 아침에 피어/ 저녁에 속절없이 져도/ 시냇물이 바다로 이어지듯/ 영원으로 흘러가는 한가닥 물줄기,/ 예서 뭇 생명이 절로 어울러/ 한삶(大生命)을 기리어

라.

(이열/ 들의 꽃을 보라)

 

그러나 그 말씀은 아주 깨끗하고 즐거워/ 생명과 신성이 어린 한 방울로/ 전인류를 도취하게 할 수 있나니/ 양팔을 펴고 내가 '이웃 사랑'을 말할 때에.

(비니/ 올리브 산)

 

임종에 있어서 사람이 애석해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목숨이 아닌, 생명 그것이다.

(H. 레니에)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은 님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님은 수없이 비우시곤 또 항시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타고르/ 기탄잘리)

 

쓰레기통과/ 쓰레기통과 나란히 밤을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죽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있는 목숨이 꿈틀 만져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한하운/ 목숨)

 

목숨이란 필경/ 멀고 먼 서정의 담 결림같은 건가/ 이건 마치/ 망가진 노리갯감의 페품들을/ 가득히 싼 보따리처럼/ 뎅그르르 거기에 굴러 버릴 뿐이다.

(村野四郎/ 자살고)

 

목숨은 때묻었나./ 절반은 흙이 된 빛깔/황폐한 얼굴엔 표정 이 없다. / 나는 무한히 살고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 광년의 암현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신동집/ 목숨)

 

머언 미개인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진(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유치환/ 일월)

 

추강 같은 이는 병이 비록 그 몸을 괴롭히기는 할지언정 어찌 능히 그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을 조정할 수야 있겠느냐. 다만 수(壽)가 아침 저녁에 있다고 말한 것은 사주를 보는 사람의 말에 가까우니 아마도 추강이 마땅히 할 말은 아니다.

(김종직/ 점필제집)

 

오직 목숨이란 어질고 고을수록 약하고 외로운 것.

(이영도/ 뻐꾸기)

 

잔인한 계절을/ 뜨겁게 불사르는 생명의 활화산/ 골짜기마다 활활 불타오르는 꽃불이여!// 오오, 당신의 생명이/ 고향 산천에 뿌리를 내리고 계시는 한/우리는 죽지 않으리/ 백 번 죽어도 다시 일어나/ 온 누리에 생명으로 생명으로 충만하리.

(임춘남/ 부활꽃)

 

우리가 가슴에 가슴을 맞대고 숨을 모을 때마다/ 태어나지 않은 영혼이 우리에게 자꾸만 접근해 온다. / 우리들의 정욕의 물결과 함께/ 그들은 생명을 부여받고자 한다. / 장난과 입맞춤과 그리고 진정한 향락으로/ 무진장의 하룻밤은 꿈속같이‥‥/ 밝은 아침은 산뜻한 기쁨을 불러온다. / 그러나 새로운 생이 잠 깨어-

(H. 헤세/ 수태)

 

눈 뜨는 봄날이었지요/ 하늘과 땅이 새 생명 빛으로/ 당신의 사랑을 꽃피우는/ 어느 이른 봄날이었지요// ‥‥내게 주신 생명의 값으로 준비한/ 나르드, 순전한 내 눈물의 향유를/ 당신의 머리에, 발에, 고난 위에/ 최후의 한 방울까지 드리기까지

(김성영/ 미리암의 노래)

 

목숨의 거룩함이란 살아 있는 사람이나 죽은 이들이나/ 모두들 그윽히 노래하며 수런거리면/ 사랑으로 가득 찬 눈부신 그릇이러라.

(구자운/ 도가)

 

캄캄한 내 밤가슴에 던져지는/ 별로 눈뜬/돌의 빛보다/ 빛보라 속으로 녹아드는/ 한 톨의 새 생명이고자

(김정우/ 불타는 돌)

 

자연을 찬미하는/ 생명의 빛깔이/오색 풍선에 꿈을 싣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하늘에 나부낀다.

(이기반/ 초록빛 꿈으로)

 

주검의 몸무게로 떨어져/ 창자가 터져 흘러도/ 아직 몸 밖에서/ 끝나지 못할 생명으로 남아서/ 아겔다마, 거기 있게 해 주옵시오.

(최규철/ 아겔다마 송)

 

진정하고 참됨이 우리 모두의/ 생명이 되도록 주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황금찬/ 주님의 말씀대로)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날처럼 다시 한 번/마음에 불을 밝히고/ 그리하여 하늘과 땅도 밝고/ 마을마다 창마다/ 생명의 불 밝히고

(황금찬/ 불을 밝히라)

 

생각한다는 것이 생명이요/ 힘이요 또 호흡이며

(블레이크/ 작은 나비)

 

아름다운 생명이여! 너는 살아 있다. 겨울 속의 부드러운 꽃처럼. 옛날의 세계 속에 너는갇혀 홀로 피었구나

(휠더린/ 디오티마에 붙여)

 

누가 흘렸을까//막내딸을 찾아가는/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가// 역전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청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 들어/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 주었다. / 그때 사방 팔방에서/ 저녁 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준태/ 콩알 하나)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 ‥‥생명은/추운 몸으로 온다/ 열 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김남조/ 생명)

 

우리를 잡념으로 하여/ 우리가 생명력을 잠식하지 않게 하소서

(윤승천/ 기도)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김현승/ 눈물)

 

살이 입새 되고/ 뼈가 줄기 되어// 붉은 피로/꽃 한 떨기 피우는 날엔// 비린내 나는 운명도/ 향내를 풍기오리니// 목숨이여/ 목숨이여// 마음이 하늘 같은/ 겨울이 되어// 어마, 님의 얼굴/ 비최이도록// 가슴이 사랑의/ 도가니 되어// 차라리 님의/ 심장 데우오도록// 목숨이여/ 목숨이여

(구상/ 목숨이여)

 

님의 사랑은/ 우리가 노래할 수 있는 사랑과는/ 본시 다른 생명

(김성영/ 님사)

 

돌멩이처럼 어느 산야에고 굴러 그래도 죽지만 않는/ 그러한 목숨이 갖고 싶었습니다.

(김남조/ 목숨)

 

촛농처럼 녹아내려/사르라질 목숨의 터에

(김민정/ 그리움)

 

그윽한 목숨 하나로/ 피어 푸른 뜰이어라

(김민정/ 서울 · 2)

 

뜨겁게 살아나는 생명의 줄기에는/ 꽃이 열리고 너는 내 팔을/ 나는 네 가슴을 갖는다.

(정한모/ 아름다운 부끄러움은)

 

벌레가 타이릅니다. 「목숨이란 아껴야 하네!」라고. 세상에는 얼마나 복된 교훈이 많은지요. 죽는 행복까지 거절하는‥‥‥

(유치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바람 소리보다 더 의지없고 덧없는 목숨을- 더구나 그 목숨이 지극한 애정에 의지되어 있을수록 더욱더 애석한 것이다.

(유치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인생, 누가 능히 불사장생하랴. 불쌍타, 뜬 목숨이 호흡에 달렸거늘.

(보우/ 태고화상어록)

 

잎들이 진다/ 생명의 귀의 그 유순으로/뛰어내리는 가을잎들

(김남조/ 가을에 · 2)

 

모두가 잠든 밤에도/ 저 생명의 물길어 올리는/ 눈 뜨고 눈 뜨며/ 숨결 너무나 소중한 풀잎/ 잊혀가는 우리들 뜨거운 울음되어/ 방울방울 이슬 거두네

(정희수/ 그대 다가오고 있음에)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 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 란 나의 생명 이 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유치환/ 생명의 서)

 

쓰레기통과 나란히 앉아서/밤은 새운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아직도 살아 있는 목숨이 굼틀거린다// 배꼽 아래 손을 넣으면/ 삼십 칠도 체온이/ 한 마리의 썩어 가는 생선처럼 뭉클 쥐여진다// 아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나의 목숨은/ 아직도 하늘에 별처럼 또렷한 것이냐

(한용운/ 목숨)

 

영롱한 아침/ 동틀 때/ 생명강 흘러옵니다/ 언덕의 생명 과일도/ 그 향기/ 진동합니다.

(홍안의/ 빛보라치는 저 하늘)

 

택하신 백성들을/ 죄에서 건지시고/ 생명의 면류관을 머리에 씌우시니

(홍안의/ 하나님께 경배하라)

 

나의 시는 단지 시만이 아니다. 절대로/그것은 생명의 흐느끼는 소리

(구엔치 티엔/ 지옥에서 온 꽃)

 

신 포도알이/ 밤 하늘에 물들기까지/ 이 한낮을 나는 땀만 흘려야 하나/ 산모의 신음소리를 듣고/ 먼 하늘만 바라보던/ 포도밭의 정적을 깨어 내는/ 아, 생명의 화산이여

(박이도/ 포도밭에서 · 4)

 

어느 날엔가/ 죽음이 나에게 찾아올 때/ 생명은 떨어지는 잎새 아니라/ 열매일세‥‥‥ // 어느 날엔가/ 죽음이 나에게 가까울 때/ 생명은 날아가는 초개 아니라/ 이삭일세‥‥‥/ 어느 날엔가/ 죽음이 나에게 손짓할 때/ 생명은/ 꺾여지는 가지가 아니라/ 뿌리일세

(홍안의/ 한 번 오는 죽음)

 

저 멀리/ 생명 바람/ 속삭이듯 불어라

(홍안의/ 순례자의 노래)

 

꼭 하나/ 비밀은/ 나의 생명

(이동주/ 소묘)

 

바람이 보이는 것, 안보이는 것/ 수많은 솜털 달린 씨를 옮겨가듯이./ 시간의 흐름은 남몰래 사람의 정신과 의지에/ 파고드는 영신(靈神)생명의 씨를 가져온다. /이 씨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대부분은 사람이 이를 받아 심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죽어 버리거나 유실되고 만다/이런 씨는 자유와 열망의 기름진 땅이 아니면/ 썩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 명상의 씨)

 

당신의 명령이라면 생명의 옷까지도 벗겠습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의 슬픔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은 용서하여 주셔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슬픔은 곧 나의 생명인 까닭입니다.

(한용운/ 의심하지 마셔요)

 

그러나 그의 전생애를 바쳐온 그의 사랑을 위해/그는 비수 같은 가시에 찔려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그녀에게 바쳤네// 죽어서만 이를 수 있는 그의 생명, 그의 사랑이었네

(김영옥/ 가시나무새)

 

닻과 키를 잃고 거친 바다에 표류된 작은 생명의 배는 아직 발견도 아니된 황금의 나라를 꿈꾸는 한줄기 희망이 나침반이 되고 항로가 되고 순풍이 되어서 물결의 한 끝은 하늘을 치고 다른 물결의 한 끝은 땅을 치는 무서운 바다에 배질합니다/ 님이여, 님에게 바치는 이 작은 생명을 힘껏 껴안아 주셔요/ 이 작은 생명이 님의 품에서 으스러진다 하여도 환희의 영지에서 순정한 생명의 파편은 최귀(最貴)한 보석이 되어서 쪼각쪼각이 적당히 이어져서 님의 가슴에 사랑의 휘장을 걸겠습니다/ 님이여, 끝없는 사막에 한 가지의 깃들일 나무도 없는 작은 새인 나의 생명을 님의 가슴에 으스러지도록 껴안아 주셔요/ 그리고 부서진 생명의 쪼각쪼각에 입맞춰 주셔요.

(한용운/ 생명)

 

서른셋의 연륜을 덮었던 연 사흘의 어둠을 지나 겨우내 살 속으로 움추렸던 나목(裸木)의 생명을 쓰다듬으며 소리 낮추어 내리시는 4월의 임// ‥‥죽었던 생명이 석자나 언땅 뚫어 내민 얼굴을 어루만지며 겨자나무 품 속에서 꿈틀거리는 망울들과 함께 겨우내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일제히 만개합니다.

(황국명/ 봄비)

 

차가운 대지 아래/ 한 알 까만 씨앗으로/누워서도/ 쏟아지는 햇살/ 생명의 충만을 그리던 꿈

(허영자/ 꽃샘바람)

 

광명의 새 노래를 옷으로 휘감은/그가 네 생명이야, 사랑이야라며/보석 같은 눈빛을 내 피에 꼽는다/그는 신의 식물, 신의 생명

(이승록/ 신의 식물)

 

곡예사여/너의 입술에 어린/ 떨리는 생명의 포말들을 삼키며

(김규동/ 곡예사)

 

그건 여신에 의해 생명의 즙으로 채워진 잔에서 마시는 첫 모금

(K. 지브란/ 첫 키스에 대하여)

 

목줄기 탁 트이는/ 시원한 생명수를 내게도/ 허락하소서

(이영옥/ 우물가의 여인)

 

내 마음에/ 잠든 주님을/ 생명으로 불러// 갈릴리 바다/ 오늘의 물결을/ 잠들게 하리라

(황금찬/ 마음속에 잠든 예수)

 

한 장 종이에/ 생명을 얹어두고/ 두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앉아/ 알 수 없는 이름을 부르고 있다.

(황금찬/ 이방인 -이현)

 

 

설 교 노 트

 

죽은 지 오랜 자같이

시143; 3

 

서론

다윗은 자신의 비참한 실정을 솔직하게 토로하면서 "죽은 지 오랜 자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극도로 처참한 모습의 표현인 것입니다.

죽은 지 오랜 자 같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 죽으면 생명이 곧 끝납니다.

사람의 생명이 살아 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내용의 간격 차이는 순간적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곧 죽은 것이요, 아무리 쇠약하여도 숨을 쉬고 있는 동안에는 살았다고 할 수 있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죽은 자를 논하는 데 있어서는 금방 죽은 자나 죽은 지 오래 된 자나 매일반인 것입니다. 일단 숨이 멈추어 지면 죽었다고 단정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끝나는 것입니다.

일단 육체의 생명은 끝나고 다음부터는 영의 생명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 죽은 지 오랜 자는 더 비참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될 지경에서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빨리 와서 고쳐 주시기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서는 일부러 늦게 오셔서 이미 나사로는 죽은 후가 되었습니다.

그 누이 마르다가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요11:39)"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죽기 전이나, 죽은 직후만 되었어도 한가닥의 희망을 걸고 주님께 기대할 터인데 "죽은 지 이미 나흘"이라고 한 말은 죽은 지 오래되었으니 절망적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가 계시를 받을 때 "골짜기 가운데 뼈가 심히 많고 아주말랐더라"고 하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시니 생기가 나타나 그 말라진 뼈들이 다시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지 오래되어 해골이 말랐어도 하나님의 권능은 부활시킬 수 있는 특권이 계신 것입니다.

 

3. 살았으나 죽은 자들

육체의 생명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나 심령이 죽는 자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11:25-26).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 불신 상태에 있으면 곧 죽은 자입니다. 탕자가 범죄 상태에 있을 때의 상황을 죽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눅15:24).

 

결론

우리의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부자의 생명은 더 귀하고, 가난한 자의 생명은 천한 것이 아닙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죽은 지 오래되었건 금방 죽었건 간에 죽은 자는 이에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니 생명이 살아있는 동안 옳게 믿으며 살아야 합니다.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왕하20:6

 

서론

본문의 내용은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자 그는 눈물로써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낫게 하여 주실 뿐 아니라 그 생명에 십오 년을 더 연장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하나님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1. 사람의 수한은 하나님의 예정이십니다.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한은 전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입니다. 장수나 단명이 모두 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판단 밑에 예정되어 있어서 그대로 착착 진행되고 시행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행17:25-26). 그러므로 누구라도 변동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수자만이 유독 복 있는 자요, 단명한 사람은 저주스러운 생애가 아닙니다. 단명자도 축복받는 이가 있고, 장수한 자도 저주스러운 자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미리 정하신 것이므로 장수나 단명에 하나님의 축복의 기준을 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2. 생명의 장단 조정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역사의 회전을 운전하시고 인생의 생명을 조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단이 용을 시험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다른 문제의 시험은 다 허용하셨지만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욥2:6).

스데반과 사울의 역사를 한 번 대조해 봅시다. 스데반 같은 충성된 집사는 좀더 살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면 좋았을 것인데 일찍 죽는 것을 허용하셨습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마땅히 죽었어야 할 인물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후 여러번 죽을 뻔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7)"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인간 생명의 길고 짧음 또한 하나님께서 조정하시는 것입니다.

 

3. 생명의 연장도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맛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히스기야가 죽을 병이 들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 깨서는 그 생명의 수한을 십오 년이나 더 연장시켜 주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성도들이 필요할 때에 생명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면 적어도 십오 년의 생명 연장을 받을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 연장된 십오 년을 어떻게 살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의은총에 어떻게 보답하며 사는가 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결론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자기 목숨을 얻은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수한과, 길고 짧음과, 연장하는 권한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의지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생명 보존의 비결

잠4:20-27

 

서론

잠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 남이니라"이 말씀은 인생의 많은 경험과 신앙생활의 깊은 체험을 한 이스라엘의 영군 솔로몬 왕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에게 가르친 처세 철학이라고 합니다.

인생이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보존하는 비결은 공부를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어 부자되는데 있기에 앞서 마음과 양심을 바로 지키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그 고귀한 양심은 우주 만물 중에 인생들이 지니고 있는 보배 중 보배입니다. 인생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그 고귀한 지위나 가치는 이 양심을 소유한데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1. 마음의 근원

이 고귀한 인간 양심의 근원과 출처에 관해서 고찰해 보면, 이는 과학자들의 작품이나 산물도 아니고, 나아가서는 어떤 철인이나, 종교인들의 작품이나 산물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1) 양심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창2:7에 "여호와 하나님 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2) 양심은 하나님에 선물받은 보배라고 합니다.

고훈4:1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육체나 동물의 육체는 모두 질그릇의 원재료가 되는 흙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물들에게는 양심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에게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상실하고 사는 인생은 비이성적인 동물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양심을 지킬 때 인간의 고귀한 지위와 생명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의 기능

양심은 인생의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눈은 우리 몸의 등불이요, 마음은 우리 인격과 이 세상에 밝은 등불입니다.

또 양심은 인생의 지남침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양심은 우리 인생들의 삶의 좌표와 행보를 올바로 안내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심은 인생의 법관이라고 하였습니다. 국어 사전에 "양심은 사물의 선악과 행동의 정사를 판단하고 명령하는 기능과 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양심은 내 것이지마는 내 편이 되어 나를 두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나의 잘못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오리겐은 말하기를 "양심은 정의의 근원이라."고 했고, 톨스토이는 양심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3. 마음의 종류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다른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도 여러 가지라고 합니다. 성경상에 나타난 마음의 종류를 간단히 분류해 보려고 합니다.

(1) 단 쇠에 화인 맞은 양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딤전4:2).

이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양심이라, 가지나 마나 있으나마나 한 양심인데, 이런 양심의 소유자를 철면피 인생이라고 합니다.

(2) 더러운 양심도 있다고 하였습니다(디도1:15).

이 역시 기능을 상실한 양심으로서, 있으나 마나 가지나 마나한 양심인데, 이런 양심의 소유자를 더러운 인생이라고 합니다.

(3) 청결한 양심도 있다고 하였습니다(딤후1:3).

이 양심을 소유한 사람은 예수를 믿어 속죄함받고, 하나님을 찾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결론

인생의 고귀한 생명과 지위는 이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살 때만이 보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양심이 깨끗하고 의로운 인생으로 살아가게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천국으로 전진하여 영생을 얻게 합니다.

생 일

성 경 활 용

(1) 자기의 생일을 저주함

(욥1: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렘20:14) 내 생일이 저주를 받았더면, 나의 어미가 나를 생산하던 날이 복이 없었더면

(2) 바로의 생일 잔치

(창40:20) 제 삼일은 바로의 탄일이라 바로가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할 때에

(3) 헤롯의 생일 잔치

(막6:21)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쌔

관련원어풀이

1. trl't !/y 욤-훌레데트

생일.

(욥1:4, 3:1)

 

2. genevsia 게네시아

원래의 의미는 "죽은 자를 기념하여 예식을 올리는 날"이다. 생일 축하식, 생일 잔치.

(마14:6, 막6:21)

설교예화자료

생일날 생긴 일

 

알렉산더 대왕, 줄리어스 시저, 플라타와 필립 멜랑톤은 모두 그들의 생일에 죽었습니다. 순교자인 존 허스는 자기 생일날 화형을 당했습니다. 위대한 장군인 티몰레온과 마게도니아의 필립 왕도 그들의 생일날 가장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찰스 킹슬리는 자신의 생일을 해변에서 보내다가 거기서 주님께 마음을 바쳤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두번째 출생일은 그의 첫 번째 출생일과 같습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매년 그의 생일이되면 주님과 계약을 갱신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생일 파티는 헤롯 왕의 궁전에서 행해졌습니다.

 

4주 동안 만든 성을 생일 선물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시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하고 궁전 같은 몬타슐루스 건물은 아름다운 여인이 생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 선물을 한 주인공은 1612년부터 1619년까지 잘츠부르크를 통치한 위대한 호에넴즈 백작이었고, 그것을 받은 여인은 아름다운 바브라 메본이었습니다.

백작은 여인에게 생일 선물로 아름다운 궁전을 지어 주겠다고 했었는데, 그 약속을 곧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바브라의 생일이 바로 4주 앞으로 다가왔을 매, 백작은 갑자기 자신이 한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아직도 늦지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신하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곤경을 감동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도움을 청했고, 신하들은 백작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몇 천 명이나 되는 석수, 벽돌공, 그리고 목수들은 백작의 약속을 지켜 주기 위해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적당한 휴식을 취하거나 보수도 많이 받지 않으면서도 밤낮 교대로 일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성체는 바브라의 생일날에 바로 맞추어 완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성 건축 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소띠는 일이 되다. <*소해에 난 사람은 흔히 고된 일을 하반서 산다 하여 이르는 말>

(한국 속담)

 

생일날 잘 먹으려고 이레를 굶는다. < * 어찌 될 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 시킨다는 뜻>

(한국 속담)

 

가을 닭띠는 잘 산다. <* 흔히 닭띠에 난 사람은 가을에 나면 잘산다 하여 이르는 말>

(한국 속담)

 

그날은 그 제자의 생일이었다. // "너는 생일 선물로 무엇을 원하느냐? " 스승이 말했다. //"제게 뭔가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것을요."//스승이 미소지었다. /"어디, 말해 보렴! 네가 태어났을 때 너는/ 하늘에서 별처럼 이 세상으로 떨어졌느냐 아니면/ 나무에서 돋아나는 나뭇잎처럼 이 세상에서/ 솟아났느냐?"// 온종일 그녀는 스승의 그 이상한 질문을 곰곰이/생각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답을 알았고, /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앤소니 드 멜로/ 근원)

 

하나님, 이처럼 놀라운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 나무의 푸른 혼은 뛰어 오르고, 하늘의 푸름은/ 꿈을 꿉니다. 자연적인 모든 것, 무한한 모든 것/긍정하는 모든 것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 (죽었던 저는 오늘 다시 살아났습니다. /오늘은 태양의 생일, 생명과 사랑과 날개의 생일 명랑하고 위대하며 무한히 발생하는 땅의 생일입니다.)// 미각과 촉각과 청각과 그리고 시각을 지닌/ -결국은 무에서 생겨진-숨 쉬는 어느 인간이/ 감히 오묘한 당신을 의 심할 수 있겠습니까? // (이제 나의 귀는 트이고/ 이제 나의 눈은 열립니다.)

(커밍즈/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침 제 생일인데 춧불에 그만 손가락 한 군데를/ 데었었지요

(M. 루카이서/ 대화)

 

내 마음은/ 파릇한 가지에 등지 짓고 노래하는 새와 같다/ 내 마음은/ 가지가 휘듯 열매 달린 사고나무와 같다. / 내 마음은/ 잔잔한 바다에서 놀고 있는 보라빛 조개 같다/ 내 마음이/ 그 보다 더 설레임은 그 이가 오기때문이다// 날 위해 명주와 솜털의 단을 세우고/ 그 단의 모피와 자주색 옷을 걸쳐 다오./ 거기에다 비둘기와 석류/ 백 개의 눈을 가진 공작을 조각하고/ 금빛 은빛 포도 송이와/ 잎과 백합화를 수놓아 다오/ 내 생애의 생일날이 왔고/ 내 사랑하는 이가 내게 왔으니

(로제티/ 생일날)

 

처음에/ 흙덩이로/ 사람을 빚으신 주/ 은혜로/날 빚으사/ 이 땅에 보내시니//생명을 주신 날/ 복되게 살리라/ 이 세상/ 끝날까지/주 섬기며 살리라// 생명의/ 입김으로/사람을 지으신 주/ 지혜로/ 날 지으사/ 이 때에 보내시니// 생명을 주신 날/복되게 되리라/ 이세상/ 끝날까지/ 주 섬기며 살리// 하나님/형상대로/ 사람은 만드신 주/ 섭리로/ 날 만드사/ 일하라 명하시니// 생명을 주신 날/복되게 살리라/ 이 세상/ 끝날까지/ 섬기며 살리라

(홍안의/ 복된 생일-생일을 맞는 성도들을 위해)

 

1월:이 달에 태어난 여자는/ 석류석(gar-net) 이외의 어떤 보석도 몸에 지녀선 안 돼/그것들은 불변/ 진실된 우정, 충성을 보장하리.

2월:이월에 태어난 이는 / 성실과 마음의 평안을 발견하리/ 만일 그들이 진주(pearl)를지닌다면/ 걱정과 근심에서 면제되리라.

3월:이 세상에서 삼월에 처음 운 열린/사람은 현명하리/ 위험의 시간에 확고하고 용감하여/ 죽을 때까지 혈옥수(血玉髓:bloo-dstone)를 몸에 지니네,

4월:사월에 삶의 날짜를 헤기 시작한 여자들은/ 금강석(金剛石:diamond)을 지녀야 하네/ 허황한 참회 때문에 쓰라린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 이 보석은 순결의 상징임을 다 알고있네.

5월:봄의 달콤한 꽃의 오월에/ 햇빛 처음 본 사람이/ 일평생 취옥(翠玉:emerald)을 지니면/ 사랑을 받는 행복한 아내되리.

6월:여름과 함께 이 지구에 와서/유월에 탄생의 날을 신세 지고 있고/ 손가락에 마노(瑪瑙:agate)반지를 끼고 있는 여자는/ 건강부귀 누리며 오래오래 살리.

7월:번쩍이는 홍옥(紅玉:ruby)이/ 더운 칠월에 난 사람들을 장식해야 하네/ 그러면 그들은 사랑의 의심과 걱정에서/ 면제되어 자유로울지라.

8월:붉은 줄 마노(瑪瑙:sardonyx)를 끼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에게는 결혼의 큰 행복 없으리/ 팔월에 태어난 사람이 이 보석 없으면/ 사랑 없이 쓸쓸히 살아야 한다고 하네.

9월:가을잎이 구월의 미풍에 살랑거릴 때/태어난 처녀는/ 눈두덩에 청옥(靑玉:sap-phire)을 매어야 하네/ 그건 마음의 병을 낫게 하리라.

10월:시월의 아기는 슬픔을 위해 태어나며/ 삶의 변천을 알아야 하네/ 그러나 그녀의 가슴에 단백석(蛋白石:opal)을 간직하면/ 희망이 그 슬픔을 휴식으로 달래 주리.

11월:지겨운 십일월의 안개, 눈과 함께/하늘 아래 이 땅에 처음 온 사람은/ 황옥(黃玉:topaz)의 호박색을 칭찬해야 하리/ 친구들과 진실된 연인들의 상징.

12월:차가운 십이월이 그대를 태어나게 하면/ 눈, 얼음, 쾌활의 달은 그대의 손에/푸른터키옥(turquoise) 보석을 놓아 주리/ 그러면 성공은 무엇을 한들 그대를 축복하리.

(미상)

 

월요일에 태어남, 얼굴 예쁘고/ 화요일에 태어남, 신의 은총 충만히/ 수요일에 태어남, 즐겁고 쾌활하며/목요일에 태어남, 침울하고 슬퍼/ 금요일에 태어남, 신의 주는 것 타고 나고/ 토요일에 태어남 스스로의 삶을 위해 일한다」 일요일에 태어남, 부족한 게 없고/ 이래서 한 주일 끝나서 그만해 주자.

(J. 브란드/ 고대인의 유물에 대한 고찰)

 

토요일의 오후를/ 생일 없는 소녀가/외인(外人) 병사와 나란히/ 뉴욕의 별을 본다.

(이기반/ 박물관에서)

 

어떡험 내 슬픈 기도가 하늘에까지 닿으랴./당신도 용처럼 「내가 태어난 날」을 비통해 하며 엉엉 울어 본 적 있는가. 몇 날이고 잠 못이뤄 본 적 있는가. 오늘의 이 거친 들판에서/이토록 처절한 싸움을 통해 이겨내야 할/그 영원한/ 외로움/ 신도 치유할 수 없는 병인

것을.

(박훤/ 내 생일날의 고독)

 

 

설 교 노 트

 

완전 무결한 사람이 되라

눅1:57-58, 2:40, 52

 

서론

엘리사벳은 생산할 연령이 지나서 아들을 낳게 되었으니 참으로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과 친족들도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생일을 당한 자는 축하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생일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같이 완전 무결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자라야 합니까?

 

1. 균형있게 잘 장성한 사람

눅2:40에 "아기가 자라며"라고 하였고,52절에 "지혜와 그 키가 자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완전한 사람이면서 불완전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목구비가 다 있지만 귀로 듣는 것도 분간을 하여 들을 줄 모르고, 눈이 있으나 볼 줄 모르고, 입이 있어도 말을 잘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를 확실히 맡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몸과 키가 다 자라야 완전한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2. 신체 건강한 사람

눅2:40상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 지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아기 적부터 신체적으로도 잘 자라고 건강하여 갖가지 모든 방면으로 부족한 것이 없는 완전하고 건강한 신체를 가졌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3.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눅2:40하에 "지혜가 충족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하면 지혜가 충족하고 예수님과 같이 마음이 안정되고 많은 사람의 사랑과 칭송을 받는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눅2:52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에게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차라리 사람에게는 능욕과 핍박을 받더라도 하나님께는 귀히 여김과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5.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

예수님의 나사렛에서의 생장은 참으로 은혜스러웠습니다. 키가 자람에 따라 몸이 강하여지고 또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과 인간에게 총애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생일을 당한 자도 예수님의 나사렛에서의 생장과 같이 참으로 은혜스러워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총애를 받는 소유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결론

생일을 맞이하신 분들은 이와 같이 균형있게 잘 장성하고, 신체가 건강하며, 정신적으로도건강한 사람이 되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시128:1-6

 

서론

본 시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의 행복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자기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고(1절), 네 집 내실에 있는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을 것이고(2절),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은 것이요(3절), 시온의 복을 받는 가정이 될 것이요(4절), 자식의 자식을 계대하는 가정이 될 것이요(5절), 평강이 넘치는 가정(6절)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감람나무란 어떤 나무입니까?

 

1. 사시 사철 푸르른 나무로 모양이 맑고 새로워서 청신합니다.

시52:8에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생일을 당한 자도 푸른 감람나무 같이 장래가 유망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결실이 많아 의인에게 비교됩니다.

호14:5-6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생일을 맞는 자도 이 감람나무와 같이 많은 결실로 번창하기를 바랍니다.

 

3. 감람유를 짜서 성전용 등불을 키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출27:20-21에 "감람으로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고 하였습니다. 감람나무 기름이 성전을 밝히는 데 사용됨과 같이 생일을 당한 자도 장성하여 하나님의 교회에서 감람유와 같이, 등불과 같이 봉사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자 되기를 축원합니다.

 

4. 감람나무는 견고하여 성구와 미술품 제조에 귀히 쓰는 나무입니다.

왕상6:23에 "내소 안에 감람목으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라고 하였습니다. 감람나무는 견고하여 미술품 제조 및 공예품의 큰 수입원으로 팔레스틴에서 귀히 여기고 있습니다. 생일을 당한 자는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일꾼이 되고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는 큰 보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자는 가정과 국가 사회 민족의 큰 재산이 됩니다.

 

결론

감람나무는 장수하는 나무입니다. 본문의 자식의 자식이란 손자들과 그 후손들을 말하는데 솔로몬은 자식의 자식은 늙은이의 면류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생일을 당한 자에게 장수와 자손의 자손과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서 원

성 경 활 용

1. 서원할 여러 종류

(1) 일생

(민6:2)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2) 자녀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3) 소유물

(창28:22)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4) 예물

(시76:11) 너희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서원하고 갚으라 사방에 있는 모든 자도 마땅히 경외할 자에게 예물을 드릴지로다

 

2. 서원시 주의 사항

(1) 신속히 갚으라.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감기를 더디 하지 말라

(2) 그대로 실행하라.

(신23:23)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지니라

(전5: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3) 경솔하게 하지 말라.

(잠20:25)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rd'n: 나-다르

(1) 생기다, 떨어지다, 흩어지다, 맹세하다.

(창28:20, 레27:8)

(2) 맹세하다.

(삿11:39, 삼하15:8)

 

2. rd'n< 네-데르

(1) 맹세.

(창28:20, 시22:26)

(2) 맹세된 것, 서원제.

(레7:16, 신12:6)

 

3. [b'v; 솨-바

(1) 맹세하다, 언약을 맺다.

(겔21:28)

(2) 서약하다.

(창21:23, 시24:4)

(3) 맹세케 하다, 서약으로 묶다.

(창50:5, 민5:19)

(4) ∼에게 임명하다, 엄숙하게 맡기다.

(왕상22:16, 아2:7)

 

5. eujchv 유케-

(1) 하나님께 대한 소원, 기도.

(약5:15)

(2) 맹세, 서약.

(행21:23)

설교예화자료

돈 버는 일도 성직이다

 

올페우스 하디(Alpheus Hardy) 경은 자기가 번 돈으로 선교 사업과 성직자를 양성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훌륭한 일본인 요셉 하디 니지마(Joseph Hardy Neesima) 박사가 보스턴에 있을 때 올페우스 경은 물심 양면으로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니지마는 일본에서 기독교 재단을 세우는데 공헌을 많이 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 하디의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대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나는 목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주의 종이 될 수 없다. '라는 말이 나의 뇌리를 맴돌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내 방에 혼자 있을 때 고통이 너무도 심하여 나는 마룻바닥에 그대로 넘어졌습니다. 내 영혼의 소리 없는 외침은 '오 하느님, 나는 당신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사업을 통하여 봉사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돈을 버는 일이 나의 특별한 소명입니다. '

그런 생각이 너무도 분명하였기 때문에 나는 크게 외쳤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당신의 종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돈을 벌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나의 성직이겠지요. 나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나의 성직은 돈을 벌고 하나님 당신을 위해 관리하는 것이겠지요."

 

 

알렉산더 더프의 서약

 

한 스코틀랜드 소년이 잠이 들어 경이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이 눈부신 금빛으로 찬란해졌고 이 빛으로부터 불로 된 말이 끄는 전차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소년 곁에 왔을 때,그 소년은 산여울처럼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리 올라오너라. 나는 네가 할 일을 가지고 왔다. "

그 소년이 그 목소리에 이끌려 일어났을 때 그는 잠이 깨어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꿈의 인상이 그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아서 소년은 자기방에 가서 침대 옆에 무릎을 業고 기도드렸습니다.

"주여 당신은 제게 금은 보화가 없음을 아십니다. 제가 가진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저를 바칩니다. 선물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

하나님은 그 선물을 받아 주셨고 소년은 진실로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더프(Alexander Duff), 인도의 선교사였습니다.

 

 

어록·시·묘사

 

폭풍이 한창일 때의 서약은 바람이 잠잠하면 잊혀진다.

(풀러/ 격언집)

 

슬기로운 모든 여인이/ 지혜와 총명을 입은 모든 자가 지었던 성막/ 그 비밀한 사정은 신이/우리를 위해 약속한 것// 언약의 법궤는/알 수 없는 메마른/ 광야로 떠간다/ 백성은 반역한다. 죽는다.

(이숭록/ 불기둥과 구름기둥)

 

들창 밖에/ 끊이잖는/ 봄비 소리// 오늘 서로 만나자/ 언약한 그대/ 이 비 속에 어이 오리

(신석초/ 봄비 소리)

 

팔 위에 새 긴 이름 글자가 분명하오/ 대동강 마를 날이 있다손 치더라도/ 꿈엔들 굳은 이 언약 저버릴 길 없어라.

(노화/ 자우)

 

 

그대 굳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에/ 나는 다른 이들과 사귀었노라/ 하나 항상 내 죽음에직면할 때나 잠은 고갯마루를 애써 오를 때나/ 또는 술로 흥겨울 때는/ 불현듯 눈앞에 떠오르는 그대의 얼굴.

(W.B. 예이츠/ 굳은 언약)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을 가로질러/무지개빛으로 쓰인/ 언약을 가져오면서‥‥‥장례식을 위해

(렌리 피터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부지런한 손끝에/ 기약되는 내일을/ 소복히 쌓여가는/ 냇물에 조약돌

(황금찬/ 가을 들녘)

 

우리들의 맹세에 귀를 기울이라 믿으면서/나는 여자 예언자 음벤지에게 소리쳐 호소했다. / 겁쟁이들의 맹세가 아니라/용감한 자들의 맹세

(마지시 쿠네네/ 새벽의 정복)

 

술 먹고 비걸을 적에 먹지 말자 맹세러니/ 잔 잡고 굽어보니 맹세함이 허사로다/두어라 취중맹세를 일러 무슴하리오.

(무명씨)

 

어떻게, 더 먼, 더 꼭한, 더 못견딜 영원을 기약하곤, 이내 돌아서서 가시는 당신의 뒷모습을, 멀리까지 멀리까지 바라보기 알맞은,그러한 봉우리를 주옵소서, 주여.

(박두진/ 5월의 기도)

 

조약돌 같은 맹세/ 텃세 짙은 땅에 깔리면

(김민정/ 그리움)

 

그 옛날/ 무지개 되어 피어나던 언약의 알알들/ 허수아비 냉가슴에 응어리 되어/ 한줄기 물빛으로도 반짝일 줄 모릅니다.

(임춘남/ 소금 만들던 곳)

 

 

설 교 노 트

 

서원을 파괴한 야곱

창33:17:20

 

서론

야곱도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서원을 해놓고도 지키지 아니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먼저 서원하고 자신이 먼저 그것을 파괴하는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야곱의 그 일은 실수로 끝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것입니다.

 

1. 야곱이 먼저 서원하였습니다.

창세기 28장 20-22절에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해서 한 서원이 아니라 자원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2. 서원대로 이행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창세기 31장 13절에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서원한 것은 반드시 이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같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반드시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 라 (신23:21-23) "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서원한 것은 반드시 이행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삼가 조심해야 것입니다.

 

3. 야곱은 서원대로 행치 않았습니다.

본문 17:20에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 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막들)부르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서원한 대로 벧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다는 확실한 증거인 것입니다. 세겜은 야곱이 20년 전에 단을 쌓으며 서원한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괘씸하게 생각하고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하기를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감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전5:2-7)"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 이상 우리들도 실수하지 아니하도록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이행하지 못할 것은 함부로 서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로 인하여 징계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몸 대신 속전을 드리라

레27:1-8

 

서론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로 서원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몸을 드리기로 서원할 수도 있고, 물질을 드리겠다고 서원할 수도 있으며, 그 외에 무엇을 하겠다고 서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원은 했지만 이행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사32:8)"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경건한 자는 경건한 일을 도모하듯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항상 무엇인가를 특별한 일을 하고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몸을 드리기로 서원을 해 놓고 이행하지 못할 경우가 생기면 속전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1. 20-60세까지는 50세겔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본문 3-4절에 "너의 정한 값은 20세로 60세까지는 성소의 세겔대로 은 50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30세겔로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값이 싸게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서는 같이 취급을 받았습니다(갈3:28). 구약 시대에 있어서 주가가 높은 남자는 높은 것 만큼 속전도 배나 더 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권위의식만 가질 것이 아니요,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지 못하면 다른 속전을 드려야 합니다. 속전을 드리면 그것을 가지고 성전에 필요한 것을 위하여 사용이 되었습니다(왕하12:14). 즉, 몸을 드리지 못하면 물질을 드려서 성전을 위하여 쓰여지게 하였습니다.

 

2. 5∼20세까지는 20세겔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본문 5절에 "5세로 20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20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10세겔로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형편에 맞도록 속전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즉, 힘에 알맞게 드릴 수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3. 1개월에서 5세까지 5세겔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본문 6절에 "1개월로 5세까지 남자이면 그 값을 은 5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3세겔로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부모들에 의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즉, 사무엘처럼 태어나기도 전에 바쳐질 수도 있는 일이라는 그 말입니다. 이는 모두가 서원을 전제로 한 것을 말합니다.

 

결론

60세 이상은 남자이면 15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10세겔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원을 했지만 가난하여 정가를 감당치 못할 때는 제사장이 서원자의 형세에 따라서 정하라고 하였습니다(7-8절). 그러므로 함부로 해서도 안되지만 서원을 하였으면 반드시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전5:2-7, 신23:21-23). 하나님은 언제나 무례하게 요구하시는 일이 없습니다(눅21:1-4).

 

 

지킬 서약과 지키지 않아도 되는 서약

민30:1-8

 

서론

하나님은 사람과 같이 식언치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께 서원을하면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변치말고 이행하야 한다는 것입니다(시15:4 민23:19). 진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거짓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진실한 행위로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약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로는 예외가 될 때가 있음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서약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지키지 아니해도 될 것이 있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 서약한 것은 지켜야 합니다.

본문 2절에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서약을 한 것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고 신에게 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하나님께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아니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소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니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23:21-2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약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2.부모의 허락없는 서약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본문 3-5절에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비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제어하려 한 일이 있다 하자 그 아비가 그의 서원이나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듣고도 그에게 아무말이 없으면 그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직 부모 밑에서 양육을 받고 있는 처녀의 처지에서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서약했다고 할지라도 부모가 반대하면 지키지 않아도 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그 서원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권한이 부모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도 어린 아이의 서약은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모가 서약대로 해도 된다고 인정하고 말하지 아니하면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서약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어린 아이의 서약을 부모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모한 서원은 하지 말아야 하고 서원하려면 부모와 먼저 의논하고 하는 것이 이와 같은 부작용을 미리 막는 예방책이 될 것입니다.

 

3. 경솔한 서약은 지키지 않아도 될니다.

본문 6-8절에 "또 혹시 남편을 맞을 때에 서원이나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경솔히 그 입에서 발하였다 하자 그 남편이 그것들을 듣고 그 듣는 날에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그 남편이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지 아니하면 그 서원과 마음을 제어하려고 경솔히 입술에서 발한 서약이 무효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그 여자를 사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어떤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어떤 서원을 했다가 결혼 후에 그것에 대한 실행 여부를 말해서 남편이 들어주면 이행해야 하지만 남편이 허락하지 아니하면 실행하지 아니하여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경솔하게 함부로 서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시고 남자의 뜻을 따르도록 만들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11:9)"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함부로 경솔하게 서약하는 것은 삼가해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 앞에 서약했으면 실천하는 것이 좋고 어려서 몰라서 서원한 것은 부모가 반대하면 실천하지 못하여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경솔하게 서원한 것도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용서는 받지만 함부로 서원한 것은 자신의 잘못임을 알고 함부로 경솔하게 서약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전5:2-7).

 

 

서원한 것은

신23:21-23

 

서론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한 번 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들이 자기에게 하는 약속은 반드시 지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키지 못할 서원은 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도 서원할 수 있고 사람 대 사람으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갚기를 더디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감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지만 더디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말하기를 5장 4절에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같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빨리 갚을 수가 없을 형편이면 함부로 약속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2. 함부로 서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무엇을 약속하면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행할 수 없는 서원을 남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5장 5-6절에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육체를 범죄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행하지 못할 서약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육체를 범죄케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언약을 어기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전5:6). 그와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서원한 것은 자발적으로 한 것이지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 한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렇다면 약속 이행도 누구의 권유가 필요 없을 줄 압니다. 만약 약속해 놓고도 실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야곱은 하나님께 약속을 해 놓고 실천하지 아니하여 결국은 환난을 당하였습니다(창28:20-22, 33:18, 34:31). 그래서 그는 늦게나마 약속을 이행하였습니다(창35:1-8).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적라도 변치 아니하며(시15:4)"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함부로 약속하지 말고 서원하였으면 반드시 갚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자의 서원

창28:18-22

 

서론

본문은 살펴보면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야곱이 하나님께 직접 축복받는 장면이 있으며,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서원은 야곱의 신앙 고백인 동시에 하나님께 향한 신앙적인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신자의 서원은 무엇입니까?

 

1. 서원의 성격

(1) 하나님께 향한 마음의 비상한 각오와 결심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기로 하고 또는 어떠한 것을 실행하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2) 하나님께 향한 마음에 결정한 약속을 고백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리기도 하고 그 무엇이나 하겠다는 마음에 결정한 약속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3) 하나님께 향한 마음의 다짐을 맹세하는 행위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서원이란 서원하는 자의 자발적인 행위인 동시에 자원적이며 능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서원한 것은 반드시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서원한 것을 실천하지 아니할 때에는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는 동시에 하나님을 농락하는 죄가 됩니다. 그래서 앞서가신 성도들은 자기에게 손해가 되어도 서원한 것은 실행하였던 것입니다.

 

2. 서원의 시기

서원이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원을 하게 되는 환경과 시기가 있습니다. 성경에 앞서간 성도들이 서원한 시기는

(1) 새로운 환경을 맞이할 때 서원을 하였습니다.

여기 야곱도 새로운 환경을 맞아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보통 신년을 맞이하거나 생활의 환경이 새롭게 변화될 때 서원을 하게 됩니다.

(2) 특별한 은혜와 축복을 받을 때에 서원을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서원을 하였습니다. 보통 사업의 축복을 받을 때나 혹은 결혼식이나 장립식이나 위임식을 통해서 축복을 받을 때에는 하나님께 충성하기로 서약을 하게 됩니다.

(3) 비상한 시기에 직면할 때 서원을 합니다.

혹 재난을 만나거나 생명이 위험할 때에 서원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3. 서원의 내용

서원에는 반드시 내용이 있게 마련입니다. 여기 야곱은 세 가지를 서원하였습니다.

(1) 여호와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노라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겠노라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3) 십분지 일인 11조를 드리겠노라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서원하는 야곱은 하나님께 대한 계약적인 서원으로써 너무나 타산적이며 공리적이며 이권적인 서원이라고 합니다. 이 서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①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셔야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② 양식과 의복을 주서야 하나님의 성전을 일우고,

③ 평안히 돌아오게 해야 11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이는 조건적인 서원입니다. 성도들은 이미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결론

이 서원 실천에 있어서 세 가지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1) 서원을 실천하지 아니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다는 사람과,

(2) 서원대로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는 사람과,

(3) 비록 세속적인 축복은 받지 못해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실천하면서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심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고 온 우주가 변해도 서원한 것을 갚는 성도가 진실한 성도입니다.

선 교

성 경 활 용

1. 선교에 대한 성경의 명령

(1) 가서 제자를 삼으라.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2) 유하라.

(눅24:49)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3) 도우라.

(행16:9)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2. 왜 선교를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2)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므로

(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3. 선교에 필요한 것.

(1) 말씀

(롬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2) 성령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3) 기도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관련원어풀이

1. eujaggelivzw 유앙겔리조-

(1) 일반적인 소식.

(계10:7, 14:6)

(2) 좋은 소식을 ~에게 가져오다.

(마11:5, 히4:2)

(3) ~을 ∼에게 전하다.

(눅4:43, 갈1:8)

(4) ∼을 전하다.

(눅8:1, 갈1:23)

(5) ~에게 복음을 전하다.

(롬1:15, 갈1:8)

(6) 전파하다, 복음을 전하다.

(눅9:6, 행14:7)

 

2. khvrugma 케-류그마

(1) 전령이나 선구자가 외치는 선포, 통지, 발표.

(고전2:4)

(2) 하나님의 사자가 전하는 메시지, 교리, 전도.

(마12:41, 롬16:25)

설교예화자료

회교진의 최초의 선교사

 

옥스포드 대학에서 아라비아인의 교수직 성립에 공헌한 레이머드 럴은 회교도에게는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였습니다. 일흔이 넘어 여러 해 선교사 일을 한 후 피사 근처에서 배가 난파했을 때도 그의 열의는 시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예전에 나는 꽤 부자였고 처자도 있었습니다. 인생의 쾌락을 자유로이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진리에 대한 지식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하여 기꺼이 내버렸습니다. 나는 아라비아어를 공부하고서 복음을 설교하기 위하여 여러 번 아라비아인들에게 갔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감옥에도 갇혔었고 채찍질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회교도인을 개종시키는 공통의 대의를 이루기 위해 원조하도록 여러 해 동안 기독교국의 군주들을 설득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 내가 비록 늙고 가난하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음을 무릎쓰고 견디어 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

1314년 한 무리의 개종자를 모은 후에 아프리카의 부기아에서 그는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노예 신분을 택한 비닝거

 

취리히 출신의 스위스 소년 아브라함 비닝거는 그의 부모와 같이 죤 웨슬리가 타고 왔던것과 같은 배를 타고 덴마크에 왔습니다. 여행 도중 소년의 부모가 갑자기 사망하여 바다속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 없는 낯선 대륙에 홀로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른일 된 후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성 토마스 섬의 흑인들이 천대를 받으며 비참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경 말씀을 전해 주기 위하여 그 곳에 파견될 것을 자청했습니다.

그가 그 섬에 도착했을 때, 그는 노예만이 노예를 전도할 수 있고 그외 어떤 사람도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은 위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지와 맹종의 상태에서 흑인들을 다스리기 위한 식민주의자들의 정책이었습니다. 이후 얼마되지 않아 성 토마스 섬의 총독은 아브라함 비닝거가 서명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그가 남은 여생을 충실하게 그의 동료들을 전도하는 노예로서 봉사할 것을 약속하면서 신속히 노예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나.

총독은 덴마크 왕에게 그 편지를 보냈고 왕은 그 편지에 감동해서 아브라함 비닝거에게 칙령을 보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그가 원하는 대로 메시아의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했습니다.

 

 

선교 소명

 

한 처녀가 인도에 선교사로 가려다가 출발 순간 좌절되었습니다. 홀로 계신 어머님이 중환으로 몸져눕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후 어머니는 3년 동안 병고로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병간호로부터 자유를 얻은 30이 다 된 처녀는 다시 선교사로 떠나기 위한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사가 멀리 살고 있는 언니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언니마저 중병으로 눕게 되었습니다. 도착한 지 얼마 안되어 언니마저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섯 어린 조카들은 울면서 그녀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녀는 도저히 어린 조카들을 버려 둘 수 없어 언니 집에서 이들을 당분간 들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부마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몸저 눕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교사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때 형부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그때 선교사보다도 어린 조카를 기르는 것이 소명임을 깨달았습니다.

그후 1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자기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온전히 다섯 조카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녀는 초로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카는 훌륭하게 성장하였습니다. 그 중 세 명은 인도의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선교의 정신과 자세

 

어느 선교사가 아주 어려운 자기의 고향에 돌아가 선교하려고 계획을 세운 후 먼저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이제 고향에 돌아가 선교하겠습니다. "

"자네 생각은 좋으네만, 고향 사람들이 말을 들을지 모르겠네,"

"사람들이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저는 저를 조롱하고 욕하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

"그러나 조롱을 하고 욕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

"그렇다면 돌로 치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

"그러나 만일 칼로 친다면?"

"그때엔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

"그래도 만일 죽인다면?"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주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죽는 것을 만번 다행스럽게 여기며영광스럽게 죽겠습니다. "

결국 그는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중단된 장례식

 

불란서 선교사인 뻬레쟝이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때의 일입니다. 인도의 벽촌 가운데 하나인 피트라는 그의 광대한 교구의 일부였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대개 고대의 우상들을 섬기고 있었는데, 수개월 동안 선교 활동을 벌인 결과 겨우 나이가 맡은 한 사람의 개종자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썬다싱이었습니다. 그의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이 노인을 경멸하고 반대하였으나, 썬다싱은 오랫동안 계속 피트라의 유일한 기독교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뻬레쟝이 마을로부터 수백 마일 떠나가 있을 때, 장사꾼을 통해 한 장의 절지가그의 손에 전해 졌습니다. 그 편지는 썬다싱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저는 곧 세상을 떠나게 될 것 같습니다. 내 친척들과 이웃들이 내 신앙을 위협하고 방해하고 있습니다. 제발 곧 오셔서 제가 죽기 전에 그들에게 설명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뻬레쟝은 곧 말 위에 올라 피트라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가야 하는 길은 험준한 산과 깊은 계곡을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다 도중에서 폭풍을 만나 그의 말과 그의 생명이 큰 위협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썬다싱이 죽기 전에 피트라에 도착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한편, 피트라에서는 썬다싱이 그의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그의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끝내 조상들의 종교로 돌아오지 않고 기독교인으로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마을의 의사가 손을 들어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울음 소리는 더 컸습니다. 그 마을 신당의 제사장이 그의 시신에 약물을 뿌리고, 새 옷감으로 몸을 감고 썬다싱의 양턱을 벌려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동전을 하나 물려 주었습니다. 그 돈은 영혼이 다른 세계로 갈 때 필요한 여행 비용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집으로부터 장례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애곡하는 사람들은 구리종을 흔들면서 이상한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관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땀을 흘리며 달려오는 말 탄 사람과 부딪칠 뻔했습니다. 그 사람은 뻬레쟝이었습니다.

관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놀라 갑자기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너무 갑작스럽게 정지하는 바람에 그들이 관을 떨어뜨릴 뻔했고, 그래서 관 속에 누워 있던 노인의 몸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관 속에 있던 썬다싱의 입에서 기침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관을 운반하던 사람이나 주변에서 애곡하며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공포에 질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시체 안에 귀신이 들어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관을 집어던지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관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은 오직 뻬레쟝뿐이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기침소리를 들었을 때, 이미 산 사람만이 기침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썬다싱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금방 알았습니다. 그는 또 그 지방의 장례식 습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관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놀라 관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여행 비용으로 이(齒) 사이에 끼워 넣은 동전이 목으로 떨어지게 되었고,그것이 숨통을 막아 기침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뻬레쟝은 얼른 관을 열어 썬다싱의 입을 벌리고는 동전을 끄집어 내었습니다. 큰 신음소리를 내면서 썬다싱은 조용히 눈을 떠 뻬레쟝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하마터면 생매장될 뻔했던 썬다싱이 며칠 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뻬레쟝이 그의 친척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고, 그래서 썬다싱도 그의 신앙 가운데서 편안히 눈을 감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적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피트라 마을 사람들은 뻬레레쟝이 죽은 자를 이적적으로 살린 것이 라고 믿었습니다. 하여튼 그 사건 이후 뻬레쟝은 피트라에서 많은 개종자를 얻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이적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했던 사람의 사랑의 이적일 것입니다.

 

 

복음과 빨래비누

 

비신자인 비누 생산업을 하는 사람이 선교사와 길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누 생산업자는 "여보시오, 당신이 전파하는 그 복음이 아직까지 한 일이 무엇이오? 자, 세상을 보시오. 아직도 죄악이 많고 약한 자도 많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교사는 아무말 없이 그냥 걸어가다 도랑에서 더러운 흙장난을 하며 노는 흙투성이 꼬마 아이를 발견하였습니다.

이때다 싶어 그는 "여보시오,비누도 뭐 한일이 별로 없군요.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세상에 더럽게 하고 다니는 사람과, 더러운 곳이 너무 많으니 하는 말이오,"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이때 비누 생산업자는 "아이 참 그러니까 비누란 사용될 매만 효과가 있는 법이 아니겠소." 하였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바로 그것이오. 우리가 전파하는 복음도 같은 것이 아니겠소."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의로운 백성들아/ 다함께 일어나서/ 이 강산 삼천리를 성역으로 만들자// ‥‥교회의 일꾼들아/ 새롭게 일어나서// 내 민족 육천만을 신자되게 이끌라// 믿음의 성도들아/ 힘차게 일어나서/ 전 세계 온 인류를 복음으로 섬기자

(홍안의/ 동방의 이스라엘)

 

선교의 등불 아래/ 빛나는 평등사회‥‥‥//한국의/성도들아/사명에 눈을 떠서/ 진리의 멍에 메고/ 십자가/ 군병되라/ 섬기며/ 가르치고/ 힘 있게 전파하여/ 주 예수 다스리는/온 누리/ 이룩하자

(홍안의/ 한국이여 새 아침이 밝아온다)

 

백양목 지팡이/ 손에 들고서/ 오늘도 주님처럼 살아가리라// 잃은 양을 찾아서/ 잃은 양을 찾아서/ 오늘도 주님처럼 살아가리라

(안광성/ 내 가는 길)

 

해변에서 주 만난」 갈릴리/ 어부처럼/ 부름받아 헌신하는/ 제자가 되었으면/등 허리가 굽어지고/ 손과 발이 다 닳도록/ 충성스런/일꾼되면/ 나 바랄 것 더 없으리

(홍안의/ 홈 없는 제물)

 

말씀의 씨를 받은/ 형제여/ 이제는 우리 일어나서/ 뿌리러 나갈 차례다/ 땅끝까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거든 형제여/ 조금도 망설이지 말 일이다./그 분의 때가 쏜살같이 오리니// 얼어붙은 2월의 강판처럼/ 여기 이렇게 저기 저렇게/ 얼어붙어 널려 있는/ 심령들을 본다면// 활활타는/불의 혀로/ 눈부신 황금 열쇠로/어서 달려가서/저 심령의 문을 열고/ 뜨겁게 들어서거라// 아직은/ 안으로 꽃을 잉태하고만 있는/2월의 나무를 흔들어/ 해산을 재촉하는 바람처럼// 첩첩이 얼음에 싸여 자고만 있는/ 저들의 심령을 깨워/ 조만간 마른 등걸에서/ 꽃이 피듯/ 땅끝까지 활짝/ 믿음의 꽃이 피어나도록/ 이제는 형제여 일어나/ 씨를 쏟아부을 때다.

(김지향/ 형제여 일어나서)

 

그때/ 그물을 손질하던 손이/ 갑자기 굳어지고 말았다/ 우리를 뚫고 지나간 것은 번개였던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사나이의 눈 속에 바로 뛰어들었다.

(모리타 스스무/ 소명-1 ·베드로의 해변)

 

성도들의/ 믿는 향기/ 온 세상에 풍길 매/ 이웃들/ 구원얻고/ 교회들 부흥된다/ 어느 누가 그 향기/ 기뻐하지 않으리/ 생명의 그리스도/ 곳곳마다 전하자

(홍안의/ 생명의 그리스도)

 

온 천하 다니며/ 전하라/ 거룩한 주님의 복음을/ 믿고서/ 세례를 받는 자/ 다시는 정죄함 없겠네// 사방에 소리 적/ 알려라/ 전능한 주님의 이름을/ 그 능력) 지금도 불변해/ 큰 일들 이루어 지겠네

(홍안의/ 믿는 자들의 표적)

 

나가자/ 십자가 군병들아/ 손에 손잡고 발맞추어/ 세계의 끝까지 진군하자/오 구원의 횃불을 들자// 저 땅끝의 상한 영들이/ 우리를 부른다/ 할렐루야 주의 복음을/ 함께 일어나 전하자// 나가자/ 복음의 일꾼들아/ 맘과 맘 합해 힘 모두어/세대의 죄악을 쳐부수자/오 개선의 나팔을 불자// 저 땅끝의 상한 영들이/ 우리를 부른다/ 할렐루야 주의 복음을/ 함께 일어나 전하자// 나가자/ 사명의 용사들아/ 들과 산너머 바다 건너/ 의로운 백성을 일으키자/ 오 천국의 문들을 열자// 저 땅끝의/ 상한 영들이/ 우리를 부른다/ 할렐루야 주의 복음을/ 함께 일어나 전하자

(홍안의/ 전도자의 꿈)

 

 

설 교 노 트

 

선교 운동의 확장

행16:6-15

 

서론

성경 본문에는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지방으로 이동해 가는 역사적인 중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서간을 우리는 선교운동의 확장으로 봅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수반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요, 다음의 복음 전파의 확장이요, 다음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전파되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파하려고 하였으나 성령의 제재를 받아 유럽지방으로 건너가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빌립보성이 맨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이 빌립보성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통하는 관문인 동시에, 전략상 요새지로써 여러 나라 군대의 침략을 받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복음으로 점령을 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할만 합니다. 이와 같이 선교 운동의 확장은 성령이 원동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1) 복음 전파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 승천하시는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고 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행1:8).

(2) 복음 전파는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행1:8).

초대 교회 사도들과, 특히 사도 바울의 경우는 성령의 제어와 지도를 따라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증거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고전3:6). 복음 전파나 선교 운동의 확장은 성령과 함께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고전3:9).

 

2. 전도의 대상을 바로 찾아 전파하였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전도의 지역과 대상을 바로 찾아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성서에 근거한 원리는 첫째, 복음을 반드시 받아야 할 지역을 선택하고, 다음은 복음을 기다리는 심령을 찾아 전파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1)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라고 하였습니다(마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는 예수믿다가 낙심한 심령들이요, 다음은 심령의 상처를 입고 원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2) 이 길은 아무리 멀고 험해도 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해상의 위험과 춥고 배고프고 환난과 핍박이 기다려도 이 길을 갔습니다. 전도자는 비록 육신의 고난을 당해도 가야할 길은 가야합니다.

(3) 이 길은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고전9:16). 이 복음을 바로 전하면, 나와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고, 주님의 나라가 건설이 되고, 우리 가정과 사회가 정화되어 낙원이 되어집니다.

 

결론

복음 전파의 결과 빌립보에 교회가 건설되고, 마귀의 권세가 파괴되었고, 로마의 옥사장이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현대 교회의 과제

행13:1-3

 

서론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피흘려 몸된 교회를 설립하셨습니다. 교회 설립의 목적은 첫째, 하나님의 뜻과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선민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이고, 셋째는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 나라들은 때가 되면 심판을 받아 망할지라도 교회만은 영원히 보존되는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귀중한 교회가 하나님의 뜻과 요청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교회로써의 과제와 사명을 바로 수행하지 못하면 존재 가치와 목적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를 중심하여 현대 교회의 과제가 무엇인지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교회 통일입니다.

여기 안디옥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어,교회의 일치와 통일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가 본문 1절에 있습니다 교회 성격으로 보아 인종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고, 언어와 풍속이 다른 국제적인 교회일지라도, 서로 아끼고 존경하여, 합심 협력하는 통일된 교회로써 모범할 만한 교회입니다. 현대 교회의 연합과 통일은 먼저 신조와 교리와 행정 원리가 동일해야 됩니다. 성경을 중심하여 이 통일 작업을 힘써 수행해야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소원이요,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온 교우들의 소원이요, 요청이기도 합니다. 현대 교회의 일반 평신도들은 교회 분열을 통탄히 여기면서 하루 빨리 통일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현 사회의 소원이요, 요청이기도 합니다. 오늘 일반 사회에서도 분열된 교회의 연합과 통일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통일하는 비결은 마음을 같이 하고, 겸손해야 되며, 행동을 일치하여 서로 관용해야 되며, 행동을 일치하여 서로 관용해야 되며, 봉사의 책임을 바로 수행하면서 사랑하여야 합니다.

 

2. 복음 선교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성령의 지시를 따라 복음 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현대 교회의 과제는 이 복음선교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현대 교회 존재의 목적을,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둘째는 성도들에게 은혜를 공급하고, 셋째는 사회의 빛과 안내자 역할을 담당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대한 과제는 복음 선교에 있다고 하였습니다(마28:19). N.C. 하너 씨는 말하기를 선교는 주님의 사업 계승이고, 둘째는 주님 사업 확장이고, 셋째는 마귀의 요소를 멸하고, 신국 건설의 중대한 과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현대 교회가 선교해야 될 이유를 세 가지로 역설하였습니다.

(1) 주님의 지상 명령입니다(행1:8).

(2)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구원하고 축복받게 됩니다.

(3) 전파하지 아니하면 화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고전9:16).

복음을 전파하지 아니하면 남도 죽고, 나도 화를 면치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주님의 명령과 생명 구원과, 피차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을 힘써 전파해야 됩니다.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그 비결은

① 나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이 되는 길도 있고,

나 대신 선교사를 세워서 선교하는 방법도 있고,

선교 사업을 위해서 선교비를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온 교우들이 선교회원이 되어지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교하는 신자가 되고, 교회가 됩시다. 이것은 현대 교회의 중대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결론

현대 교회의 과업은

(1) 교회 연합이고,

(2) 선교 사업입니다. 이 중대한 과업을 수행하는 비결은,

주님을 바로 경외하는 신앙과,

비장한 기도 운동과,

성령의 충만함과 그 지시를 받는 길입니다.

현하 교회는 엄숙한 과제를 시급히 실천하는 길만이 교회도 살고,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유일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이방 선교

마4:12-16

 

서론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방에서 선교하신 사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말씀을 전하심은 예언의 성취이기도 한 것입니다.

 

1.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빛이 비춰질 것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갈릴리에 복음의 빛이 비춰지리라는 예언을 하였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유대의 북방에 위치하였은데 그곳에는 유대 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지방도 역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유대 지방보다는 질적으로 낮은 비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2. 이방의 빛 예수님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라고 하였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은 이방인이요, 이방인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요, 이스라엘 밖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 없는 무신론자들입니다(엡2:22). 그런 자들이 큰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죄값으로 영적인 사망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게 되었습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들에게 사망의 지배 아래서 신음하는 그들에게 예수님이 친히 찾아가서서 복음을 증거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시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회개하는 심령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캄캄한 세상에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죄의 사슬에서 스스로 벗어 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자들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도하는 빛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어둠에 처한 이방 백성들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도 참 빛되신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하시므로 구원의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결론

이사야의 이방 선교의 예언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 빛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은 다 빛의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그 빛의 자녀가 어두운 세상을 비출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오늘도 복음을 듣지 못하여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고통하여 신음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행22:21

 

서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입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교하기 위하여 세 차례나 전도 여행을 감행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는 보낸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1. 하나님의 계시적 선택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여 다메섹까지 쫓아가다가 도상에서 하늘에서 비취는 빛과 음성을 듣고 땅에 엎드러졌다가 변화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를 통하여 바울에게 가서 안수 기도하여 줄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습니다(행9:15).

본문에도 바울이 그 사실을 회상하면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고 증언하였습니다.

 

2. 이방인의 기도

사도행전의 역사를 분류하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장에서 12장까지는 예루살렘을 중심 무대로 하여서 베드로 사도가 주동 인물이 되어 주로 유대인에게 전도한 사실이 있습니다.

(2) 13장에서 28장까지는 안디옥을 중심 무대로 하여 바울이라는 회개자가 주동 인물이 되어 주로 이방에 전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라고 부르며,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셔서 이방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3. 전도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전도를 하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본래 베드로 사도는 유대인의 선민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상대하지 않았으나 욥바에서 비몽사몽간에 계시를 받고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 가서 설교하며, 자기의 형편을 피력하였습니다.

이것은 결코 유대인에게만 전도하고 이방인에게는 절대로 전도해서는 안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도 이방인의 사도로 파견받았으나 그는 어디를 가든지 동족되는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번번히 복음을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바울을 박해하게 되니 이방인들을 상대로 하게 된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에게 어떤 감정이나 특수한 이유에서 고의적으로 전도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를 받지 않았을 따름입니다.

이와 같이 선민 유대인이라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요, 이방인이라도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만민에게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도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분부대로 우리가 증인이 되어 온 세계에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행1:6-11

 

서론

그리스도께서 지상 성역을 완수하시고 승천하시기에 앞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최후 고별사로서의 세 가지를 부탁하셨습니다.

첫째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고, 둘째는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고, 셋째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여기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1) 복음의 전파자가 되고

(2) 생명의 구원자가 되고

(3) 지상 교회의 건설자가 되라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증인에 대해서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1. 증인의 개념

"증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말투스"라고 하는데, 법정에서 재판할 때에 소환되어 증언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증인 채택에 관해서는 민35:30절과 신17:7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1) 신임과 신용이 있어야 합니다.

바람 앞에 갈대와 같이 약하게 흔들리거나 가룟 유대와 같이 배신하는 자는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의리가 있고 신용이 있어서 신임도가 깊고 믿음직한 사람이라야 떳떳한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어떠한 처벌과 고난과 희생도 각오해야 합니다.

증인은 그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자기 안일이나 이권이나 영광을 초월하여 어떤 처벌이나 핍박이나 희생이 라도 감수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라야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증인은 복음과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는 죽음도 사양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행20:24).

 

2. 증인의 사명

본문 1장 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인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 세계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해야 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완성이요, 죄악과 마귀와 사망의 권세에서 인류를 해방하사 자유와 영생을 주시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고전1:18).

(2)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악에 대한 정의의 승리요, 사망에 대한 생명과 하나님의 새 역사와 새 세계의 창조라고 했습니다.

증인은 몇 가지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인물과 그 사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잘, 잘못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상선벌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 예수님의 증인들도, 예수님과 그의 교훈과 생애를 바로 알고 잘 드러내어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바른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먼저, 예수님을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다음은 예수님을 바로 소개해야 되고, 셋째는 예수님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됩니다.

 

3. 증인의 자격

그리스도의 증인의 자격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소개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만 하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갖추어야 할 자격은

(1) 진실하고 정직해야 됩니다.

인정에 치우치거나 금전에 매수되거나 권력 앞에 아부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해야 됩니다.

(3) 예수님의 재림을 증거해야 됩니다.

벧후3:10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이 재림은 인류 역사의 종지부요, 교회의 최후 승리이며 성도의 축복과 영광의 극치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이 놀라운 복음, 즉 인류의 참된 소망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권능을 받아서 전 세계에 힘써 증거해야 됩니다.

 

 

증거하여야 하리라

행23:11

 

서론

바울은 증거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공회에서 변명적인 연설을 하고난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바울은 땅끝까지 증거자의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1. 이방에서 증거한 바울

바울은 이방인을 위하여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행9:15)고 한것 대로 이방의 여러 나라에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제 1 차, 제 2 차, 제3차 전도 여행을 통해 그 노정이 무려 15,600리라는 먼 저리를 순행하면서 설립한 교회도 많았습니다.

수리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드로마,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닌도, 에베소 등의 교회들을 설립하였습니다.

우리도 우리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눈을 돌려보면 아직도 주님의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예루살렘에서 증거한 바울

바울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을 여러 사람들이 여러 차례 만류한 것은 환난과 결박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기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고 생명도 귀히 여기지 않고 상경하였고, 또 그가 각오한 바와 같이 핍박하며 떠드는 군중 앞에서와 위세가 당담한 공회 의원들 앞에서 증거하기를 담대히 하였습니다.

 

3. 로마에서도 증거한 바울

바울의 큰 꿈은 그 당시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대 로마 제국 수도 로마 성에 가서 마음껏 복음을 전파하고 싶은 불타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 꿈은 이루어졌지만 불행하게도 쇠사슬을 차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옥에 갇혀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효과적인 복음을 크게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시위대의 군인들과 가이사의 집사람, 즉 왕족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바울이 죄수의 신세로 쇠사슬을 차고 왔기 때문에 오히려 열려진 복음의 문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꿈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로 나타나서 열매가 맺혔습니다.

바울은 이 로마에서 증거한 증거 자였고 마지막에는 순교의 피까지 흘린 것입니다.

 

결론

복음은 나만이 간직하는 독점물이 아닙니다. 만민이 모두 가져야 할 공동물인 것입니다. 나누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선지자

성 경 활 용

1. 선지자의 정의

(1) 하나님의 종

(슥1:6)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2) 하나님의 사자

(대하36:15)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3) 거룩한 선지자

(눅1:70) 이 것은 주에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4)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5) 이스라엘의 파수꾼

(겔3: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2. 선지자들의 메시지

(1) 그리스도 중심

(눅10:24)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2) 증거가 일치함

(행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관련원어풀이

1. ab;n::] 나-바-

(1) 신적 능력에 의해 말하다, 예언하다.

(렘23:21, 암3:8)

(2) 예언하다.

(민11:25, 겔37:10)

 

2. aybin: 나-비-

(1) 선지자, 예언자.

(출7:1, 삿6:8)

(2) 하나님의 계시된 뜻을 연구하는 사람,

(왕상20:35, 왕하2:3)

 

3. aybin] 네비-

선지자, 예언자.

(스5:1, 6:14)

 

4. #f'n: 나-타프

(1)떨어지다, 방울로 떨어지다.

(욥29:22, 아5:5)

(2) 떨어지게 하다.

(암9:13)

(3) 말하다, 예언하다.

(겔21:2, 미2:6)

 

5. profhvth" 프로페-테-스

(1) 예언자, 점쟁이.

(마1:22, 11:9)

(2) 구약 선지자.

(마5:12, 요8:52)

(3)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 요한.

(마21:26, 눅1:76)

(4) 메시아.

(마21:11, 행3:22)

(5) 구약과 신약와 선지자.

(계11:18, 16:6)

(6) 시인.

(딛1:12)

 

6. profh'ti" 프로페 -티스

여자 예언자.

(눅2:36, 계2:20)

 

7. profhteuvw 프로페-튜-오-

(1) 예언하다, 예언자가 되다, 신적 영감에 의해 밝혀 말하다.

(마7:22)

(2) 하나님 왕국에 속한 미래의 사건을 앞서 말하다.

(마11:13, 계10:11)

(3) 신적 계시에 의해서만 알려질 수 있는 일을 미리 말하거나 선포하다.

(마26:68, 눅22:64)

(4) 가르치다, 권고하다. 위로하다.

(고전11:4, 5)

(5) 선지자로 행동하다. 예언자적인 직무를 맡다.

(계11:3)

설교예화자료

열렬한 설교자들

 

존 웨즐리(John Wesley)는 한때 한 교회에서 설교할 권한을 박탈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교회 대신 그의 아버지의 무덤을 설 교단으로 삼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복음을 열렬히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완전한 구원의 진리를 설교하였습니다.

휘트필드(Whitefield)는 들판에서 설교하기를 즐겼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날, 그는 촛불을 켜고 윗층에 올라가서 잠시 쉬려고 했습니다. 여행 때문에 무척 피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집의 정문 앞에 모여 있었고 길을 가득 메웠습니다. 마침내 계단 위에 한손에 촛불을 든 휘트필드가 나타났습니다. 거기서 그는 열띤 설교를 하였고, 그리고는 곧장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설교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최후의 설교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 버리신 것입니다.

존 녹스(John Knox)는 열렬하게 외쳤습니다. "내게 스코틀랜드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리고 선교직을 마칠 때까지 이 구호를 계속 외치고 다녔습니다. 때때로 그는 설교단상에 올라갈 때, 사람들의 부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단상 위에 올라가고 나면, 성령이 그의 영혼에 가득 차서 친구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할 정도입니다. "그는 너무도 힘차게 설교하기 때문에, 단상이 산산조각나게 부숴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영흔을

 

 

위한 여러 가지 기도

 

유명한 영국의 복음주의자 조지 휘트필드

(George Whitefield)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주여 ! 제게 영혼을 주소서, 아니면 제 영혼을 가져 가소서 ! "

전도사 헨리 마틴(Henry Martyn)은 산호 해안에서 무릎꿇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기 있는 저를 하나님을 위해 불태워 주소서."

전도사인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Brainerd)는 북미에 있는 인디언들에게 1718년에서 47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를 당신께 바치나이다. 저를 받아 주셔서 영원히 당신에게 붙잡힌 몸이 되게 하소서. 주여, 그 이상의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

그가 죽기 7일 전에 기록한 일기의 마지막 말은

"오, 주 예수여, 오소서. 빨리 오소서. 아멘."이었습니다.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Kempis)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당신이 주시려는 것을 주시려는 때에 주시려는 만큼 주소서. 당신이 예정하신 곳에 저를 놓으시는 대로 쓰소서."

드와이트 L. 무디(Dwight L. Moody)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구세주여,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를 써 주소서. 여기 있는 제 가슴은 빈 그릇입니다. 여기에 당신의 은혜를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국회에 출두하기 전날 밤 고민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온 세상의 지혜와 이성에 대적해서 제 곁에 계십니다. 오, 꼭 그렇게 해 주소서. 제 곁에서 주소서. 진실하고 영원하신 하나님 ! "

존 맥켄지(John Mckengie)는 로시 해안에서 무릎을 꿇은 젊은 전도사 지망생으로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 저를 지구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보내 주소서 ! "

인도의 전도사인 하이드(Hyde)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시여, 이들 영혼을 제게 주소서. 아니면 저는 죽습니다. "

인도의 전도사인 콤스턱 부인(Mrs. Coms-tock)은 그녀의 자녀를 집으로 돌려 보내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구주 예수님, 저는 이 일을 당신을 위해 하나이다. "

피지 섬의 전도사인 존 헌트(John Hunt)는 죽어 가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피지를 구하소서. 피지의 그 사람들을 구하소서. 오, 주여, 피지에 자비를 내리소서. 피지를 구하소서."

 

 

어록·시·묘사

 

예언자를 우리나라에서는 이인(異人)이라 하여 천하만사를 다 아는 줄로 믿었다

(이병기/ 오공즙)

 

원래가 예언자란 들어맞을 때는 상은 안주고 안 들어맞을 때는 화형을 받는다. 아니 그는 들어맞을 때도 안 들어맞을 때도 한결같이 화형을 당하게 마련이다.

(김수영/ 시작 노트)

 

예언자는 사건을 예언하기에 앞서 그 사건을 확인한다. < * 1785. 2. 9. 토머스 월폴에게보낸 편지에서>

(H. 월폴)

 

예언자는, 즉 선각자는 언제나 고국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며, 또한 동시대의 사람으로부터 박해를 받는다. 큰 인물도 마찬가지다. 그가 사람으로부터 존경이나 칭찬을 받을 때는 반드시 사망하였거나 흑은 침묵을 지키고 있든가 혹은 우리가 만날 수 없게 된 경우이다.

(노신)

 

택함을 입고 고임을 받은 사람이요, 제 시대의 새벽빛 노릇을 했던 사람. 무수한 영(靈)의 조각들을 거리거리에다 뿌렸고 알몸으로 저 언덕을 배회하는 바람의 자식들이 숱한 자.

(K. 지브란/ 예언자)

 

경고자와 예언이 적중한 예언자는 부당하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는 사물을 너무나 안이하게 생각하고 또 그가 혐오하는 공포의 사건들이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자신을 공포들에 의해 미리 압도당하도록 만든다. 그는 자신아 경고하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그가 한 예언의 정열에 비하면 그의 경고는 무가치하다. 그는 자신의 선견지명 때문에 존경을 받지만 세상에서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그의 예언이 끔적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그것이 실현될 가능성은 커 진다. 우리는 무언가 좋은 일을 예언하는 예언자를 존경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그런 좋은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E. 카네티/ 말의 양심)

 

너는 우리의 어스름 속, 대낮의 빛이었고 네 젊음온 우리에게 꿈을 주어 꿈꾸게 했네

(K. 지브란/ 예언자)

 

점쟁이가 두 사람 얼굴을 맞대면 서로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선 못 배길 것이다.

(M.T. 키케로/ 점에 관하여)

 

예언자란 거의 다 야인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엘리야, 아모스, 호세아, 세례 요한은 다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사람들이요, 예수는 순수한 들사람이었다.

(함석헌/ 야인정신)

 

우리가 우리들의 예언을 기계에 내맡긴 이래로 모든 예언은 그 가치를 상실하였습니다.

(E. 카네티/ 말의 양심)

 

구세주 아버지여, 이 사랑과 무고한 피의 반을/ 지금 미리 붓게 하실지니./ '무고한 자를죽이는 일은 허용된다'고/ 앞으로 나타나 말할 자들 위에 부으소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먼 후세에/ 네 속죄의 뜻을 왜곡하여, 세계 만국의/ 인심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에 딸려서/ 잔악한 지배자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비니/ 올리브 산)

 

선지자도 가고 없는/ 주검의 광야에서/ 푸른날의 꿈을 절규하던/ 비둘기와 어린양들의/울음 소리는/ 캄캄한 밤 하늘이 삼켜 버렸는가

(김원태/ 인종의 노래)

 

예언자는 과격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하느님은 그의 영혼에 무거운 짐을 지우셨고 그는 허리를 굽혀 인간의 지독한 탐욕을 보고 망연자실해 있다. 인간의 고뇌는 무섭기만 하고 인간의 목소리로는 그 넘치는 무서움을 표현 못한다. 예언이란 하느님이 말 못하는 고뇌를 표현하라고 빌려 준 목소리다. 빼앗겨 가난한 자들과 더러운 부자들에게 들려주시는 목소리다. 그것은 하나의 살아가는 모습이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부딪치는 점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내 마음에 무너진 단의 돌을 모아서/깨끗하고 정성된/ 제단을/ 쌓으리라/ 말씀의 선지자들/ 힘을 다해 쌓은 제단/ 나도 쌓고 호소하면 불로 응답하시리

(홍안의/ 내가 쌓는 제단)

 

보라 지금이/ 구원을 얻고/ 은혜받을 만한 때일세/ 옛날 선지자/ 입을 모아서 임마누엘/축복 말했네

(홍안의/ 오직 예수)

 

우리 주님/감람산 언덕 위에서/세상 끝날 징조를 말씀하셨네/ 너희들은 유혹을 받지 말아라/ 많은 거짓 선지자/ 일어나리라

(홍안의/ 세상 끝날에)

 

지난 겨울 눈 밤에 얼어죽은 줄 알았던 늙은 거지가/ 쓰레기통 곁에 살아 앉았네/‥‥//원망스러워도 정든 고토에 찾아드는 봄을/한번이라도 저 눈으로 보고 싶어서/ 무쇠도 얼어붙는, 그 추운 겨울에 이빨을 악물고 살아왔구나/ 죽지만 않으면 팔다리 뻗어볼 시절이 올 것을/ 점쳐 아는 늙은 거지여 그대는 이 땅의 선지자로다.

(심훈/ 거리의 봄)

 

예언이란 바로 나무에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깨달음은 삶의 총체성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예언자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우주적인 인간이었다고 하겠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관심하였고 모든 인간에게 자신을 내놓았다. 인류의 일치를 맨 먼저 생각한 자는 황제가 아니라 예언자였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어떤 뜻에서, 예언자를 부르심은 너무나도 나약하여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말해 줄 변호사와 옹호인을 부르시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실로, 예언자들이 중요하게 한 일이란 "참견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내리누르는 악한 것들에 항거하고 자신들에게는 별로 상관도 없으며 책임질 성질도 아닌 사건들을 간섭하는 것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예언자의 말은 가혹하고 쓰며 가시가 돋아 있다. 그러나 그의 엄격함 뒤에는 사랑과 인류에 대한 동정심이 숨어 있다‥‥실로 장래에 닥칠 재앙에 대한 예언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뉘우침을 권하는 말이다‥‥그는 '파멸의 메시지'로 시작하여 '희망의 메시지'로 끝맺는다‥‥그에게 맡겨진 근본적인 사명은 지금, 여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며 현재에 숨어 있는 것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기 위하여 미래를 열어 보이는 것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다른 사람들은 역사를 권력의 관점에서 본다. " 역사의 방향을 승리와 패배, 부와 성공이라는 술어로 심판한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역사를 정의의 관점에서 본다. 그리하여 역사의 방향을 정의와 부패, 동정과 폭력이라는 술어로 심판한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학생의 머리 속을 내딛고 있는 그 밝음과 어두움/ 마음속의 노래와 침묵을 기억하노니/그 반은 예언이요 또한 반은/ 터무니없는 갈망이다.

(롱펠로우/ 잃어버린 청춘)

 

예언이라는 현상은 인간에게 하늘의 안내가 필요하며 또 인간은 하늘의 안내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가정 위에 뿌리박고 있다. 하느님께는,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백성에게 예언자를 시켜 전하는 것이 하나의 정의에서 우러날 행동 또는 정의를 찾는 행동이다. 예언의 목적은 계약을 유지하는 것,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를 세우는 것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무엇보다도 예언자들은 우리에게 백성의 도덕 상태가 어떠한가를 일깨워준다. 범죄자는 소수이나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고.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의식을 관장하는 것은 예언자 요한/ 거친 털옷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며/ 황야에서 자고 깨고/ 구세주 예수가 오심에 대비하여/ 회개하라고 설교하는 사람/ 이들 두 사람의 만남은 먼 옛날/어머니의 태(胎)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와다 야스코/ 요단강변)

 

노래가 들린다. 하나님이 그 참혹함에 놀라시어/ 예언자의 마음을 슬프게 하던 날에/현명한 이사야는/ 주의 탄식의 말씀을 전하였다. // 누구를 가리켜 말하는 것인가/ 오오 유대의 예언자여/ 생명의 샘에서 멀리 떨어진/창백한 흙에서 나온 싹과 같은 모습으로/ 영원한 주 앞에 서는 자는 누구일까

(만조니/ 수난)

 

예언자가 도회지로 주님을 회개시키러 왔는데, 처음에는 설교를 들으러 너도나도 몰려왔다가, 하나씩 둘씩 멀어져 가더니, 끝내는 한 사람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어졌다.

나그네가 예언자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사명을 성취할 가망이라곤 털끝 만치도 없는 걸 뻔히 아실 텐데, 원하러 설교는 계속하고 계시오? "

"처음엔 내가 사람들을 바꿔놓기를 바랐었고, 지금도 줄곧 외치고 있는 건 다만 사람들이 날 바꿔놓지 못하게 하려는 거지요."

(앤소니 드 멜로/ 안심하려고 외친다)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셸리/ 서풍의 노래 · 5)

 

꿈꾸는 이스라엘/ 희망을 잃지 않고/ 예언자 가르침을/ 잘도 배워 익혔네

(홍안의/ 눈물의 추수)

 

아아! 예언자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나라가/ 만일 저기 있다 할진대 사람 없는 황야이리라.

(뮈세/ 신을 향한 희망)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그 백 성을 사랑하여 끓는 피, 마음의 피로 온 땅과 백성들 앞에 홀로 쇠기둥이, 구리담이 된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한 개인이었다. //황폐한 고도에 깊이 고독에 잠긴 예레미야는 재앙과 환난 속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종족을 사랑하여 그는 모든 것을 '단념'하였다. //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그 백성을 사랑하여 오로지 끓는 피, 마음의 피로 마침내 이스라엘의 주석이 된 예레미야는 의를 의로써 끝끝내 홀로 선 그는 이스라엘의 한 '국민'이었다.

(이상노/ 예레미야)

 

보라 지금이/ 구원을 얻고/ 은혜받을 만한 때일세/ 옛날 선지가/ 입을 모아서 임마누엘/ 축복말했네

(홍안의/ 오직 예수)

 

탱자는 지금 터질 듯한 순금의 피부/ 포기는 긴 방랑에서/ 흙 속에서 썩는 뼈와 더불어 썩고 썩어/ 이젠 더 썩을 수가 없어/ 영겁을 타고 있다. / 허나 실은 이천년 전/ 토기가 가마솥에서 태어날 때/ 이렇게 만난다는 예언이 있었다. / 하늘과 해와 바람과 지령(地靈)이/ 이 예언을 했다.

(성찬경/ 신라토기에 담긴 탱자)

 

1. 어느 예언자도 "성별된 나를 보내소서" 한 일은 없다. / 어느 누구나 화인(火印)을 찍힌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붙잡히는 것은/ 두려운 일인 것이다. // 어느 예언자도 "준비된 나를 보내소서" 한 일은 없다. / 어느 누구나 하나님의 진노에 도전받은 것이다. / 하지만 하나님은 그 어느 사람의 영혼을 향해서나/ 친한 친구와 말하듯이 서 계셔 주시는 것이다.

 

2. 어느 예언자도 "하나님 나는 불타오릅니다. " 한 일을 없다. / 어느 누구나 하나님에 의해서 불

된 것이다. / 어느 예언자나 "내가 압니다. "고 한 일은 없다. / 누구나 하나님 편에서 알아주신 것 뿐이다.

(클레퍼/ 예언자)

 

 

설 교 노 트

 

엘리야의 신관

왕상18:36-40

 

서론

본문에는 선지가 엘리야의 기도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첫째, 위력 있는 신앙의 기도요 둘째,목숨을 건 결사적인 기도요 셋째,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 애족의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문을 통해서 엘리야의 신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신관을 취급함에 있어서 선행되어야 할 문제는 먼저 신이 있느냐? 없느냐?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 하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다음은 우리가 긍정하고 믿는 신은 어떠한 신이냐 하는 올바른 신관이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관을 신학적인 측면에서 정리하여 보면,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보며, 어떠한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어떠한 하나님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엘리야의 신관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믿는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를 정리해 보면, 믿는 자를 도와주신 다는 뜻이 있고, 믿는 자를 붙들어 주신다는 뜻이 있으며, 믿는 자를 강하게 하사 승리하게 하신다는 뜻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내용은 시간적으로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고, 공간적으로 어디서든지 함께하시고, 사건적으로 무슨 일이나 함께하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믿는 자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믿었습니다.

그 내용이 본문 3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엘리야의 기도는 힘이 있었고, 결사적이었고, 애국 애족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기도에 대해서 신학적인 측면에서 그 개념을 알아보면, 기도의 종교적인 행위로서 첫째,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 나아가는 방편이며 둘째,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 하나님과의 대화이고 셋째, 연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원조를 요청하는 간구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믿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마7:7-8).

(1)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원리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들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요14:13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기로 애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사 불도 내려주셨고, 비도 내려주셨습니다.

(2)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고 했고, 거짓이 없으신 진실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했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고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3. 믿는 자의 마음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믿었습니다.

그 내용이 3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백성으로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1) 마음을 돌이키신다는 의미는 신학적으로 회개를 의미합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논증한다면, 마음을 변화시키신다는 뜻이요, 마음을 고치신다는 뜻이요,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는 뜻이 라고 합니다. 옛날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울을 바울로 돌이켜 놓으셨던 것입니다.

(2) 마음을 돌이키시는 내용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바알 우상을 버리고 참신 하나님에게로 돌이키시고, 불의한 죄악의 길에서 진리와의 길로 돌이키시고, 환난과 죽음의 길에서 은총과 생명의 길로 돌이키시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믿었습니다. 마음을 돌이키는 이길만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긍휼과 축복을 받아 번영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들도 바른 신관을 가지고 마음을 돌이켜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무신론적 입장에서 유신론적인 입장으로

(2) 잘못된 신관에서 바른 신관으로 돌이킵시다.

(3) 불의하고 악한 길에서 선하고 의로운 길로 돌이키는 길만이 축복을 받아 번영하는 길입니다.

 

 

선지자 아히야가 있다

왕상14:2

 

서론

아히야라는 이름의 인물이 구약에서만도 9번이나 있으며 그들이 다 국가와 제사에 관한 요직들에 있었습니다.

본문의 아히야는 실로에 거주한 선지자이며 일찍이 여로보암을 책망하였습니다.

선지자 아히야가 있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 참 선지자는 변장을 해도 압니다.

여로보암이 그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을 때에 그 아내를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낼 때 신분을 모르게 하려고 변장을 시켜서 보냈습니다. 이것은 너무 미련한 처사였습니다.

선지자가 변장을 하였기 때문에 속아서 예언을 한다면 그 예언이 무슨 가치성이 있겠습니까? 겉모양의 꾸밈도 바로 판단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속에 숨겨져 있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참 선지자는 겉모양의 거짓 꾸밈도 간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사실도 영안을 통하여 보고 아는 것입니다.

 

2. 참 선지자는 눈이 어두워도 봅니다.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눈은 비록 나이 많아서 혼미하여 졌어도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에 있어서 영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은 폭로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삭은 나이 많아서 눈이 어두워 속았기 때문에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였거니와 아히야는 눈이 어두워도 영안이 밝아 있었기 때문에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 앞에 나타나면서 어찌 감히 속여 보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한 것도 아히야의 노혼 상태로 눈이 어두운 것을 미리 알고 하였으므로 더욱 가증한 일입니다.

 

3. 여호와께서 알려 주십니다.

모든 선지자들의 활동은 하나님과의 영교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대로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 범위를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서도 안 됩니다.

모든 성경도 하나님의 계시로 기록됩니다. 여로보암의 아내가 아히야에게 올 즈음에 여호와께서 아히야에게 이르시되 5절에 "여로보암의 아내가 그 아들이 병들을 인하여 네게 물으러 오나니 너는 이리 이리 대답하라 저가 들어올 때에 다른 사람인 체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재를 나누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알려 추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기 위하여 언제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알려 주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또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도용하여 예언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거짓은 거짓으로 폭로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은 참이든 거짓이든 그대로 나타나고 맙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오직 진실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왕하13:14

 

서론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왜 그렇게 부르짖었습니까?

 

1. 죽을 병이 든 엘리사

앨리사는 위대한 하나넘의 사람이요, 권능의 역사를 너무 많이 행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수넴 여자의 아들이 죽었을 때 다시 살렸고(왕하4:18-37), 심지어는 엘리사가 죽은 후에 그 시체에 사람들이 어떤 시체를 던지니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 곧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런 능력의 소유자인 엘리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고, 결국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왜 병이 들어서 죽느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의 죽음은 만인의 공도입니다(왕상2:1).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이 곧 죽음의 길인 것입니다.

선지자도 권능자도 자기 죽음을 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요아스에게 아버지가 되는 엘리사

요아스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여호아하스의 아들이요(왕하13:10), 여로보암 2세의 부친입니다. 저는 엘리사의 임종에 방문하였는데, "내 어버지여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 것은 과연 엘리사 선지는 요아스 왕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존칭 칭호 중에 웃어른들, 특히 지도급에 있는 존장을 일반적으로 아버지라고불렀습니다. 엘리사는 신령한 지도자 중에 최고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지로는 국왕의 권세나 존경보다도 선지자의 위치가 더욱 높았던 것 같습니다.

 

3. 병거와 마병이 되는 엘리사

병거와 마병은 전투력의 중심입니다. 당시 전쟁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부분이 곧 병거와 마병이었습니다. 병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은 과연 위대한 모습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아람과의 전쟁의 위협을 당하고 있던 때인 만큼 막강한 전투력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혼자서도 도단 성을 포위한 아람 군대의 눈을 멀게 한 후 사마리아 성으로 유도하고 피흘리지 않고 후퇴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곧 이스라엘 국민들에게는 병거와 마병과 다름 아닌 존재인 것을 말합니다.

 

결론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를 따르면서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을 구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같이 하여 주심으로 많은 능력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는 죽을 때에도 요아스에게 활을 잡고 동편 창을 열고 쏘게 하면서 "이는 여호와의 구원이 살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시대의 참 선지자

미1:1

 

서론

미가 선지의 묵시는 그 시대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미가의 메시지는 유다 열왕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만 적합하였던 것인 아닙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적절한 것이며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가의 묵시론 깊이 묵상함으로 여호와의 참 선지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참 선지자

미가의 예언이 "여호와의 말씀"이며,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합니다.

참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합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인자라는 숭고한 사상이 있었습니다.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에 영향을 입어 말씀을 선포합니다.

미가의 말은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지 않는 사람은 선지자가 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을 존중하는 참 선지자

미가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존중하였음이 미가의 묵시 전편에 잘 나타나 있고, 미가서에 흐르는 주요 사상입니다.

(1)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존중합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위엄있으신 본성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 "야훼"라고 불렀습니다.

(2)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존중합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폭군은 아니시지 만 항상 참으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경외심을 갖게 됩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택함받은 참 선지자

미가의 묵시는 그의 개인적인 삶- 그의 이름, 고향, 그 시대상 등-에 관하여 분명한 사실들을 밝혀 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당시 선지자 중 이사야는 유대의 유력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외교문제 정치가로 활약하다가 부르심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예언했으며, 호세아는 가정의 비극으로부터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예언했고, 아모스는 남방 유다의 목자였는데 북방 이스라엘을 향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부르셔서 적재 적소에 사용하십니다.

(2) 선지자는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가는 다른 선지자의 삶이나 예언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이 자라온 배경과 개성을 받아들였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4. 시대의 참 예언자

미가는 그 시대(미1:1)가 필요로 하는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1) 참 선지자는 시대와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미가 당시에는 열국 사이에 위기가 조성되던 시기였습니다(B.C. 722.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 남유다도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음). 이런 위기에 미가는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어야 했습니다.

(2) 참 선지자는 백성들의 삶의 양식을 권면하고 책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미가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와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의 모든 악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시대의 참 선지자"로서 오늘도 말합니다.

 

결론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또하나님께 택함을 받아야 참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시대가 필요로 하는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데, 미가는 이러한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참 선지자였습니다.

선 택

성 경 활 용

1. 선택에 대한 성경적 표현

(1) 가림

(빌1:22)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는 나는 알지 못하노라

(2) 빼냄

(계17:14)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3)뽑음

(느11:1) 백성의 두목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하고

(4) 택함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2.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

(1) 아내

(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2) 땅

(창13:11)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3) 군인

(출17:9)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삼하10:9) 요압이 앞 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뺀 자 중에서 또 빼서 아람 사람을 대하여 진 치고

(4) 지도자

(삼상8:18)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5) 무덤

(창23:6)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6) 전도자

(행15:22)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7) 동역자

(행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8) 상좌

(눅14: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9) 지식

(잠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3. 하나님의 선택하심

(1) 지도자

(민16:28)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2) 제사장

(삼상2: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3) 왕

(삼상10:24)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4) 예루살렘

(대하6:6) 예루살렘을 택하여 내 이름을 거기 두고

(5) 조상

(행13:17)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6) 선지자

(램1:5)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7) 사도

(행1:24)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8) 유혹

(사66: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9) 유다 지파와 시온산

(시78:68)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10) 레위 지파

(신21: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올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11) 기업

(시47: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12) 가난한 자

(약2:5)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13) 교인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하신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4. 어떻게 선택 받는가?

(1)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롬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2)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로 받는다.

(롬9:11)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3)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는다.

(엡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관련원어풀이

1. rj"B; 바-하르

(1) 연단하다, 시험하다, 조사하다.

(욥34:4, 사48:10)

(2) 입증하다, 선택하다, 고르다.

(창13:11, 삼상10:24)

(3) 사랑하다, 좋아하다, 바라다.

(창6:2,슥3:2)

(4) 선택하다, 오히려 낫다.

(렘8:3)

(5) 선택함을 받다, 기쁘게 하다.

(잠21:3)

 

2. ld"B] 바-달

(1) 나뉘다, 자신을 나누다.

(스6:21, 9:1)

(2) 고립되다.

(스10:16)

(3) 분리시키다, 갈라 놓다.

(창1:6, 레1:17)

(4) 나누다, 구별하다.

(레10:9, 10)

(5) 구별하다, 골라내다.

(레20:24, 민8:14)

(6) 분리시키다, 내몰다.

(신29:20, 사55:3)

 

3. hr;B; 바-라-

(1) 자르다, 여러 조각으로 나누다, 먹다.

(삼하12:17, 13:6)

(2) 선택하다, 고르다.

(삼상17:8)

(3) 먹는 것.

(애4:10)

(4) 음식을 주다.

(삼하3:35, 13:5)

 

4. aiJrevvw 아히레오-

선택하다, ~을 더 좋아하다.

(빌1:22, 히11:25)

 

5. aiJretivzw 아히레티조-

선택하다, 기쁨과 사랑함으로 택하다,

(마12:18)

 

6. ejklevgvw 에클레고-

선택하다, 뽑아내다

(눅6:13, 행15:22)

 

7. ejpilevgw 에필티고

(1) 부르다, 이름을 붙이다.

(요5:2)

(2) 선택하다, 뽑다.

(행15:40)

 

8. ceirotonevw 케이로토네오-

손을 내밀다, 투표로 정하다, 선택하다. 지정하다.

(행14:23, 고후8:19)

설교예화자료

아무도 그를 원치 않았다

 

'운명 예정설'과 '자유 의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던 신학자들의 모임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모임은 논쟁이 가열되어 마침내 심한 편견을 갖는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결정치 못하던 한 신학자가 잠시 결정하기 위하여 서 있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운명 예정설의 그룹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그쪽으로 향하자, 그들이 물었습니다.

"누가 당신을 이곳에 보냈습니까?" "아무도 보내지 않았어요." "저는 저의 자유 의지에 따라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그룹에 속해야 합니다. "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돌아서서 자유 의지의 모임으로 갔습니다. "언제 저회 속에 오시기로 결심했습니까?" 누군가 물었습니다. "저는 결정한 것이 아니에요. 이곳에 보내진 것입니다. " 그가 대답하자, 그들은 "이곳에 보내졌다고요? " 하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선택치 않은 이상 우리들과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 그는 결국 어느 모임에도 가입할 수 없었습니다.

 

 

분계선에 선 선택

 

1839년 인도 선교사요,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의 창간자이기도한 와일더(R.G. Wilder)는 미들베리 대학을 졸업하면서 동급반 학생인 풋과 함께 공동으로 1등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같은 날 태어났습니다.

풋은 변호사가 되어 급격하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재산을 많이 모아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창 이름이 알려지는 판에 그의 부인과 딸이 죽자 고통에 못이겨그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와일더가 국내에서 좋은 조건을 뿌리치고 인도에 가서 일생을 바치기로 하자 공동 우등생이었던 그의 친구는,

"와일더,생각해 봐.왜 하필이면 저 미개한 지역에 자신을 썩이려고 하는 거지." 하고 말하였습니다.

와일더가 인도에서 30년 이상을 일하며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한 도시와 마을이 3,000곳이 넘었으며, 전도지를 뿌린 것이 3만 장이 넘고 3,300(그 중 300이 여자)의 아동들을 학교로 끌여들였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공동 우등생인 풋에게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와일더의 선택이 더 나은 게 아니었는가? 이 두 유능한 사람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는 위대한 분수계였습니다.

 

 

정복자 피자로의 선택

 

역사가 윌리엄 H. 프레스코트는 스페인의 페루 침략자 프란시스코 피자로 장군의 생애에 있었던 한 사건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피자로는 위기의 지경에 처했을 때, 칼을 들어 동에서 서로 펼쳐진 모래 사장을 따라서 경계선을 긋고는 남쪽을 향하여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친구들이여, 그 쪽은 수고와 배고픔과 헐벗음, 억수 같은 폭우, 황폐와 죽음이 있지만, 이쪽은 안락과 기쁨이 있다. 페루는 부를 가지고 있으나, 여기 파나마는 가난을 가졌습니다. 각자가 용감한 카스틸리안이 되는 최선을 택하라. 나는 남쪽으로 간다. "

 

 

위대한 결단

 

어느 해 감사절날 어떤 축구장에서 똑똑하기로 이름간 스텔라가 처음으로 랄프를 만났습니다.

그는 죤 홉킨스 대학의 학생이었고 남쪽지방 출신으로 아주 지적인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연애소설의 내용처럼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져들어갔고 또 그들은 서로 너무나 행복을 느끼게 되었기에, 오히려 그런 벅찬 감격과 행복을 두려워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랄프는 의학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의사였습니다. 그가 퍽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인데도 스텔라에게 있어서의 그는 몹시 다정했고 친절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나이가 좀 들은 랄프가 오히려 더 믿음직하게만 보였습니다.

당시 랄프는 거의 30세의 가까웠고 스텔라는 갓스물이었습니다. 스텔라는 자기의 약혼자가 왜 이렇게 늦도록 의학공부를 끝맺지 못했는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너무나도 미래의 계획에 벅차 있었기에 그같은 사소한 과거지사에 대해선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약혼했고, 그들은 랄프가 의사 시험에 합격하는 그 다음 날을 결혼일자로 잡았습니다. 이미 랄프는 그 시험을 보고난 뒤였습니다.

그들이 합격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즈음의 어느 날, 스텔라에게 한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부인이었습니다. 그 부인의 얼굴에는 수심이 담겨져 있는 듯했고 그 눈에는 눈물이 고인 것같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부인은 랄프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난 네가 내 아들을 사랑하고 있는 것을 잘 안다. 또 좋은 아내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너의 결혼이 성공할 것도 확신한다. 그러나 한 가지, 네가 랄프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내 아들은 그것을 네게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아들더러 직접 네게 말하라고 권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네가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이렇게 아들의 뜻을 거역하고 찾아왔다. 비록 사랑에 끝장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너를 만나 이 점만은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내 아들은 과거에 3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물론 의사들은 그가 지금 완전히 치료되었고 다시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증했다. 그러나 만일 네가 그의 아내가 되어 백년해로 하기를 결심했다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결혼해야 할 것이다. "

스텔라가 받은 쇼크가 얼마나 컸겠는가? 그녀는 며칠 밤낮을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습니다. 결혼 후를 내다보면서 자녀들을 가졌을 때를 생각할 때, 그녀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가득 찼다. 그가 다시 정신병자가 되는 일은 없어도 혹시 자녀들 가운데서 정신병자가 생겨나지는 않을는지?

결국 약혼은 파기됐고 둘의 관계도 끝나버렸습니다.

랄프는 마음의 상처를 씻기 위해 볼티모어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떠나가 버렸고, 스텔라도 여러 해 동안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다가 결국 20년이 지난 후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뉴저지 주의 트렌톤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불과 2, 3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밤 그녀는 잠결에 침대 한쪽이 비어있는 것을 느끼며 잠을 깼습니다.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잠옷바람으로 집안의 구석구석을 돌면서 남편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을 듣고 그리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남편이 큰 도끼를 들고 그 집의 주춧돌을 내려찍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삼손이다. 이 집을 부숴 버리겠다. "

미쳐도 너무 심하게 미쳐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불치병자로 정신병원에 살아야 한다는 의사들의 선언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로 얻은 더 큰 충격을 잊기 위해 그녀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동부에서 서부 끝까지 긴 여행의 길에 올랐습니다.

어느 날 밤 캘리포니아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그녀는 정말 우연히 랄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0년 만에 대면이었습니다. 랄프는 그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외과 의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아내와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건강, 건전했고 모두가 다 행복에 넘쳐 있었습니다.

 

 

힘든 결단

 

우리 모두가 원칙을 무시한 채 타협에만 몰두하는 이 시대에 진 로카르트가 보여준 행위는 정말로 찬양을 받을 만하였습니다.

그는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유명해진 누구나가 다 아는 스타였습니다.

오래 전에, 그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의 집에 머물면서 쉬고 있을 때, 브로드웨이에서 히트하고 있는 연극에서 갑자기 한 배우가 병을 앓게 되어 그의 대역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앓아눕게 된 배우를 대신할 수 있는 유능한 스타가 필요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진은 그 연극의 대본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그 대본이 보내졌고 속히 결정해 달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그 연극은 미국 생활을 그린 감동적인 드라마로 비극적으로 끝나고 있었습니다. 진은 대본을 읽으면서 장면 장면을 깊이 연구해보았습니다. 상당히 훌륭한 드라마임엔 틀림없었습니다. 군데군데 너무나 저속하고 불경건하고 신앙을 조롱하는, 그래서 신을 모독하는 언사들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진으로서는 도저히 이런 대사를 자기 입으로 옮길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훌륭한 연극의 배우가 됨으로써 다시금 명성을 떨치게 될 기회가 온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물론 진도 그런 기회가 오기를 오래전부터 기다렸었습니다. 그러나 진은 40여 년 동안 단순히 직업적인 배우 생활만을 해온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배우 이상의 생활을 해왔는데,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살면서 생활을 통해 자기가 믿는 신앙을 증거하려고 했던 진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로서는 도저히 그 연극의 대사를 그대로 입에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대역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거절할 것인가, 아니면 타협할 것인가? 잠깐 자기의 신앙을 자기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채 무대에 올라 자기 신앙에 거슬리는 대사를 그대로 읊어댈 것인가?

그날 밤 진 로카르트는 뉴욕으로 급히 전보를 보냈습니다. 내용은 대역을 맡겠다는 회신이었습니다. 그는 그 역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는 뉴욕으로 가는 차 안에서 대본을 주의깊게 읽으며 구절구절을 모두 암기했습니다. 그가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리허설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진은 그 연극에 몰두되어 훌륭하게 자기 몫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어두운 극장 좌석에는 프로듀서, 감독 그리고 각본을 쓴 작가 등 몇몇 사람만이 앉아서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 로카르트가 보여준 박력 있고 진지한 감동적인 연기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의 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비판도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경스런 언사, 저속한 말투, 신앙에 거슬리는 모독적인 대사들은 모두 빠져버렸습니다. 대역을 맡았던 진 로카르트는 경건치 못한 말들을 모두 없애버린 것입니다.

그의 그런 행동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작가는 자기가 써놓은 대로 말해야 된다고 우겨댈 수도 있었습니다. 대사를 마음대로 바꾸어 버렸다고 진을 비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반대도 공격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찬사를 보내기에 바빴고, 몰려드는 관객에 신경을 쓰기에 바빴습니다. 그 연극은 대 성공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진 로카르트가 용감히 자기 자신에 진실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불행한 사람의 특징은 그것이 불행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 쪽으로 가는 점에 있다. 우리앞에는 불행과 행복의 두 가닥 갈림길이 언제나 있다. 우리 자신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A. 링컨)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지 생각해 보면 무서운 것이다. 의무가 길을 인도하여 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이다.

(A. 지드/ 지상의 양식)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정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물리치는 것으로 나에게는 생각되었다.

(A. 지드/ 지상의 양식)

 

선택한다는 것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었으며, 그 '다른 것들'이 어떠한 하나의 것보다 좋아보였다.

(A. 지드/ 지상의 양식)

 

우리는 삶과 죽음간의 선택을 하기 위하여 여기에 모였습니다.

(B. M. 바루크)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존재이다. 그가 어느 길을 가거나 자유이다. 그러나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J. P. 사르트르)

 

보다 많이 갖는 것보다 보다 적게 바라는 쪽을 택하라.

(T. 아퀴나스/ 그리스도의 가름침)

 

새벽 호랑이가 중이나 개를 헤아리지 않는다. < *갈급할 때에는 무엇이건 가질 수 있는 것만을 다행으로 찬다는 뜻>

(한국 속담)

 

사랑한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다.

(G. 루오)

 

가장 훌륭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한다. 영원한 명예를 취하고 사별해 버릴 것은 미리부터 버린다.

(헤라클레이토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를 고른 것이 된다.

(유태인)

 

자기를 선택한다는 의식은 동시에 자기가 자기 및 인류를 선택하는 입법자다 하는 의식이다. 나는 나를 선택함으로써 전인류를 선택한다.

(J. P. 사르트르)

 

눈앞에 중대한 문제를 놓고 그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강한 사람의 독특한 우수성이다. 약자는 항상 스스로 선택치 않은 양자택일의 결정에 강제당한다.

(D. 본호에퍼/ 감옥에서 쓴 서한과 논문집)

 

모시 고르다 베 고른다.<(*처음에 뜻하던 바와는 전연 다른 결과에 이르렀을 때 이름>

(한국 속담)

 

한편 우리가 날마다 산다는 것은 선택과 결단의 되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상/ 청춘의 가능성)

 

양자택일, 특별히 바람직한 양자택일은 상상의 나무 위에서만 자란다.

(S. 벨로우/ 붙어다니는 남자)

 

너무 고르다가 눈먼 사위 얻는다. < *무엇을 너무 고르면 결국은 나쁜 것을 가지게 된다는 뜻>

(한국 속담)

 

선택의 자유는 사람이 '갖거나' 또는 '갖지 않은'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어떤 사람의 성격 구조의 기능이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지적 자유-인간은 선택이 가능한 경우에 비로소 자유롭다. 인간을 비교하는 것을 충분히 아는 경우에 비로소 선택할 수 있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신이 아담에게 이성을 주었을 때, 그는 선택의 자유를 준 것이다. 그래서 이성도 또한 선택에 다름 아니다.

(J. 밀턴/ 아레오파지티카)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악한 입을 벌려 삼키려하네/ 키질하듯/ 고된 시험 많으나/ 택함받은 성도 굳게 서리라.

(홍안의/ 마귀와의 싸움)

 

구름타고 오시는 인자 보겠네/ 천사 나팔 소리가 크게 울릴 때/ 사방에서 택한 자/ 불러모으리

(홍안의/ 세상 끝날에)

 

믿음은/ 택한 자 위해/ 예비하신 것일세

(홍안의/ 금보다 귀한 믿음)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서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더라고.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설 교 노 트

 

선민이 선택할 길

신30:15-20

 

서론

사람은 누구에게나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에게만 부여해 주신 특권인 동시에 축복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또한 이성없는 동물도 아닙니다. 또는 노예로 태어나지도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창조하시고 선택의 자유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생명과를 택하여 영생의 길을 택할 수 있었고 선악과를 택하여 사망의 길을 택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담은 애석하게도 생명의 길을 포기하고 사망의 길을 선택한 것이 전 인류에게 비극을 초래케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이스라엘 민중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의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선민들이 선택할 길은 사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이며 저주의 길이 아니라 축복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가지 길에 대해서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1. 선택의 의미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선택에는 세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1) 많은 사람 가운데서 골라서 뽑아내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2) 많은 사람 가운데서 성별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소유가 되게 하신 의미가 있습니다.

(3) 우리의 현실적인 실제 생활과 결부시켜 보면 그 선택이 우리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택에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따르는데 본인의 자유 의지가 수반되고,본인의 책임이 수반되고, 본인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나의 생명과 축복을 위해서 선택을 바로 해야 됩니다.

 

2. 선민이 선택할 길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는 본문 15절에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라고 전제하고, 19절에 "생명과 복의 길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1) 생명의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선택하려고 하면 신앙 사상이 올바러야 하고, 상황 판단을 바로 해야 하고, 인생관을 바로 정립해야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남에게 주는 것이요, 남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요, 남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은,

① 하나님에게 내 모든 것을 드리는 행위요,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는 행위요,

③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 길이 영원히 사는 생명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2)축복의 길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역설하신 핵심과 골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들어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앞서 가신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축복의 길을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은 이 세상에서 순결한 길을 가게 합니다. 정직한 길을 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를 지시하고 요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세 가지 축복을 약속하시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물질적인 번영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만사에 형통하고 승리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현세에서 평강과 장수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결론

우리는 주어진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과 축복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도된 바울

갈1:1

 

서론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들에게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사도된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1.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파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부인하고 반대하였습니다. 바울은 진짜 사도가 아니므로 바울의 말을 듣거나 그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동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에 대한 과소 평가는 바울이 최초의 열두 사도의 일원이 아니었다는 사실과 그가 교회에 대해 가장 난폭하게 박해하였던 사람이라는 것이 그 당시 바울이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 그대로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사도가 되었습니까?

 

2. 하나님 아버지로 말이암아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1) 하나님께서 미리 택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다메섹에게 부르시기 전에 그 모태로부터 택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지하시고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직접 부르셨습니다.

바울은 본래 사울로서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다메섹 회당에 갈 공문을 대제사장에게서 받아 가지고 예수의 도를 좇은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잡아 오려다가 홀연히 하늘에서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하시며 직접 부르시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9:1-5)"고 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은 열두 사도로 베드로나 요한을 부르신 이상으로 특수한 부르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사도로 택정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직접 부르심으로 사도가 된 것이지 그의 환경이나 학문이나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결론

하나님의 진실한 종은 어떤 제도상의 법규와 절차에서 보다 진실한 신앙 고백과 충성스러운 봉사심으로 인하여 맡겨진 직무에 헌신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참 좋은 사람들로부터가 아니 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요15:16

 

서론

우리는 종종 내가 그리스도를 택하여 믿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 보니가 "내가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였다"고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부르셨습니다. 어떠한 조건도 우리에게 붙이지 않고 무조건 택하여 부리신 것입니다.

 

1. 우리를 부르신 이유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던 예수님이 안드레, 요한, 야고보를 차례로 만나시 면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고 부르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부르셨고, 의사누가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예수님은 먼저 손을 내밀어 부르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예수님이 나를 먼저 아시고 사랑을 베풀어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들을 부르실 때 그들의 환경, 신분, 지식, 고향이 어떠한지 살펴서 부르셨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 같은 사람은 어부였습니다.

또 마태복음을 쓴 마태는 당시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멸시받던 세리였습니다. 또 누가는 의사로서 굉장한 지식과 명성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성도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예수님의 부르심은 어떤 조건도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알아야만 부르심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부르신 이유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마1:17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 안드레, 요한 등 제자들을 부르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증거케 하여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려 함입니다. 또 바울을 부르신 것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3. 부름받은 성도가 할 일

예수님은 먼저 부름을 받은 성도가 아직 부름받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보여준 사건들을 보더라도 이것이 분명히 나타나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었을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진 베드로의 경우를 보더라도 하루에 3천 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꾼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모든 사람에게 전파케 하시려고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잘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우리들의 재능을 다 바쳐 하나님의 참된 일꾼이 되도록 힘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선택

엡1:3-4

 

서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미리 선택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1.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행에서 출발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밝혀진 하나님의 구원의 내용들을 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이 먼저 행동하셨기 때문에 구원이 가능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이하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으냐"고 물으신 젓은, 하나님의 구원행위의 선재를 알게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선행적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 편에서 말할 때에 "은혜를 입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동시에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귀결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들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인이 된 입장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깨달을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선행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주장은, 구원의 계획과 완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고 신앙 고백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2.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존 칼빈 선생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간 구원의 섭리로서 예정 사상을 주장하였습니다. 성경의 내용 가운데 인류는 같은 운명을 가지도록 창조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영생이,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파멸이 각각 예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중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이 둘 중에 하나를 목표로 하여 창조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결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만 근거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 이하에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고백한 바울 사도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데서 논의되는 것입니다. 결코 예정론은 숙명론이나 결정론은 아닙니다. 본래 예정론은 그리스도 안에서 "나 같은 죄인을 불러주셨다"는 이 구체적인 사랑에 대한 응답에서 이루어진 교리입니다. 애정론의 궁극적인 의미는, 구원을 받은 자가 자기의 구원에 대한 확증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만 영광과 감사를 돌리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구원의 범위를 벗어나서 예정론을 취급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3. 그러면 선택받은 확증이 무엇일까?

잘못 이해하면, 구원받게 될 자가 미리 예정되어 있다면 전도도 필요없다는 무용론을 주장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정론에 대한 오해입니다. 다만 구원받은 자에게 신앙의 견고성과 인내를 뒷받침하는 현실적인 고백의 입장에서 예정론이 이해되어야 하므로 오히려 예정하신 모든 사람을 깨우치고 자극되어야 합니다. 존 칼빈은 "하나님의 은총을 찬송하게 함이며, 또한 우리가 거룩하고 흠 없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확증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매우 궁금합니다. 구원에로 "부름받은 자는 누구나 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그와 계속적인 교제를 가진다" 이 사실이 확인되면 선택받은 자가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표면화되는 경지에 이르는 자는 이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결론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예정론을 전제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받는 현실적인 신앙 고백에서 "자기됨의 감사"의 논리적인 표현이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나를 택정하셨다"는 이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의 예정 교리를 이해해야 하겠습니다.

 

 

매 지파에 한 족장씩 택하라

민34:18

 

서론

앞으로 모세는 얼마 안 되어서 별세하고 가나안 본토에서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니 기업을 분배할 인사 조직이 필요하였습니다.

이제 아론을 후계한 대제사장 엘르아살과 모세를 후계할 군사령관 여호수아를 수반으로 하고 매 지파에 한 족장씩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1. 매 지파에서 택하라.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입니다. 이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기반으로 하여 구별된 지파입니다. 그런데 기업을 나누는데 있어서 레위 지파는 신령한 직분을 맡아 봉사하게 되었으니 토지 분배의 기업을 받지 않았고 각 지파에서 내는 십일조로 생활을 하였으므로 여기에서 빠집니다.

그 대신에 이스라엘 민족 재흥의 공로자라고 할 수 있는 요셉을 우대하여 그의 두 아들인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각기 한 지파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열두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요단강 동쪽에 르우벤과 갓 지파가 떨어졌으므로 열 지파에서 선택되었습니다.

 

2. 한 족장씩 택하라.

한 지파에서 한 족장씩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대표자를 한 사람씩 뽑아서 분할 운영위원회를 조직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러 지파에서 고루 나왔으므로 그 처리 결과에 있어서 어느 지파에서든지 불평이나 반항이 없도록 하려는 공평한 처리 방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일방적으로 편협하게 처리하면 반드시 불평과 반대와 반발이 생기는 법이므로 극히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운 지도자인데도 그들은 가금 불평을 말하고 반역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3. 택하라.

택하는 원리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매 지파마다 각 가계를 따라서 대표될 만한 위원을 몇 사람씩 뽑아서 그들이 모여서 후보자를 추대하여 가장 적임자를 뽑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그 당시에 흔히 사용하는 방법으로 제비를 뽑아서 하나님의 뜻을 가려내고 뽑아내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그들이 합의하여서 하였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따랐습니다.

 

결론

어떤 특수한 지파나 인구가 많은 지파를 특권시 하지 않고 매 지파에서 한 족장씩 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매우 공정하고 은혜스러운 방법입니다.

권력 다툼으로 인한 불미한 일이 없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순리적이고 그 결과에 순복하는 것은 성도의 덕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성민이라

신7:6-11

 

서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성민 삼으심은 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강하다거나 잘나서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무조건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아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행위면에서도 깨끗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저희의 패역을 고치고 즐거이 저희를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저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14:4)"하였습니다. 그럼 왜 선택하여 성민으로 삼으셨습니까?

 

1. 무조건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조건부의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잘 믿을 것 같아서도 아니고, 그들이 헌금을 많이 해서도 아니고 인물이 좋아서도 아니며 지식이 많아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이 아니고 무조건 먼저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약한 이스라엘을 택하여 성민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 영생 복락을 주셔서 영원 무궁토록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살게 하시고 선택하여 주심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2. 기업을 주시려했자 때문입니다.

본문 6절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하였습니다. 기업이란 말은 구별된 백성이란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만민 중에서 특별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쳐진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하늘의 기업,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 곳에 있는 아름답고 좋은 모든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서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영원한 복을 위하여 선택된 사람에게 한해서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영적 이스라엘로 선택받은 모든 이스라엘에 한해서 하는 말입니다.

 

3. 약속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에 "또는 너희 열조에서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을 하시면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오래 참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파약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장래의 소망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히6:13-1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조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서 약속하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선택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한번 약속을 하시면 반드시 지키십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조건 사랑하시고 무조건 선택하선서 하나님의 자녀삼으시고 하늘의 아름다운 것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좋은 점이 있어서가아니고 창세 전에 선택하신 일을 이루시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 속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민된 과정을 생각하고 더욱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르바와 룻

룻1:4

 

서론

오르바와 룻은 둘 다 모압 여인입니다. 그들은 유대인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기근이 들자 모압으로 피난와서 살았는데 엘리멜렉의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르바와 룻의 선택은 참으로 대조적이었습니다.

 

1. 불행한 두 여인

오르바나 룻의 출신 가정에 대해서는 별로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들어온 가난한 엘리멜렉의 집으로 출가한 여인들입니다. 그런데 시부는 세상을 떠나서 홀시어머니 나오미가 데리고 사는 말론과 기룐에게 각각 출가해 와서 남편을 의지하고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르바의 남편인 말론이 죽고 룻의 남편인 기룐도 뒤따라서 죽었으니 시어머니를 포함한 두 자부들은 불행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기류해 사는 가정이요, 경제력이 없어서 유랑하는 신세들이요, 남편들마저 죽었으니 기구한 운명의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2. 친정으로 돌아가는 오르바

나오미의 큰 며느리인 오르바는 "젊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청상과부가 되기는 하였으나 불쌍한 시어머니를 홀로 버리고 친정으로 갈 수가 없어서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로 가려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시모인 나오미가 집으로 돌아가서 개가하라는 간곡한 권면에 귀가 솔깃하여 친정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뜻하듯이 젊은 과부로 늙는 것이 한스럽던 차에 사모의 권면을 순종한다는 핑게로 소리를 높여 울고 그 시모 나오미에게 입맞추고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그모스"라고 불려지는 신이었습니다(민21:29).

오르바의 선택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따라간 것입니다.

 

3. 끝까지 시모를 따라간 룻

본서 1장 14절 하반절에 보면 "룻은 그 시모를 붙좇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다가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룻은 자기 동서 오르바처럼 시모를 떠나서 멀리 떨어져 가는 상태가 아니라 한 발걸음 더 시모에게로 다가섰다는 뜻입니다.

마음이 떠날 수 없으니 몸도 다가섰다고 봅니다. 룻은 이같이 시모 나오미를 끝까지 따라가되 고락을 같이 하고, 신앙을 같이 하고 죽음 외에는 헤어질 수 없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시모 나오미의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간곡한 권면도 마다하고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귀향하였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신앙적으로 가정 통일을 이룬 것은 전도가 양양한 것입니다.

 

결론

오르바와 룻의 선택은 아주 대조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결과 또한 엄청난 것이 되었습니다.

오르바는 자기 조상이 섬기던 우상을 택하여 돌아갔지만, 룻은 시모를 따라 신앙을 가지게 되어서 결국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선 행

성 경 활 용

1. 선행의 좋은 면

(1) 일한 대로 상을 받는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

(2)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

(엡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3)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었다.

(딤후2:21)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이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4)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었다.

(딤후3:17)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2. 선행의 부정적 측면

(1) 의의 법에 이르지 못한다.

(롬9: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2) 은혜가 은혜되지 못한다.

(롬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m'G; 가-말

(1) 주다, 하다, 보이다.

(창50:15, 시137:8)

(2) 좋게 하다, 선을 행하다.

(잠11:17, 시13:6)

(3) 보답하다, 갚다, 보상하다

(신32:6, 시103:10)

(4) 절을 떼다.

(왕상11:20, 사28:9)

(5) 열매가 익다.

(민17:23, 사18:5)

(6) 떼어지다.

(창21:8, 삼상1:22)

 

2. ajgaqopoievw 아가도포이에오-

(1) 선을 행하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다.

(막3:4)

(2) 좋게 해주다.

(눅6:33, 35)

 

3. ajgaqopoiov" 아가도포이오스

선을 행하는, 올바르게 행동하는, 선행자.

(벧전2:14)

 

4. ajgaqov" 아가도스

(1) 선한, 좋은, 알맞는, 유능한, 쓸모있는.

(행11:24)

(2) 완전한,좋은, 친절한.

(마22:10, 행9:36)

(3) 좋은 것, 유익, 최상, 소유, 보화, 선행.

(요5:29)

 

5. ajgaqwsuvnh 아가도-수네

(1) 마음과 생활의 바름.

(살후1:11, 갈5:22)

(2) 선행, 유익.

(앱5:9)

설교예화자료

낯선 사람

 

필라델피아에 있는 여관에서의 한 노부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 노부부에게는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웬만한 여관이나 호텔은 다 사람들이 꽉 차 있군요.우리가 들 방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안내인은 마침 이 도시에 세 개의 총회가 모이는 관계로 빈 방이라곤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또 말하기를,

"객실은 모두 다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밤 한 시에 이렇게 비 쏟아지는 거리로 당신들같이 멋있는 부부를 쫓아내고 싶지는 않군요. 누추한 제 방에서라도 쉬었다 가시면 어떨까요? ‥‥아, 그것이 좋겠습니다. 제 걱정은 안하셔도 좋습니다. "

다음날 아침 노신사는 방값을 지불하면서 그 안내인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호텔 주인이 될만한 사람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그런 호텔 하나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

안내인은 웃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뉴욕행 왕복 기차표와 비바람치던 날 만났던 그때 그 손님을 찾아와 달라는 초청장이 동봉된 편지를 받아들었 때도 그는 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거대한 도시 뉴욕에서 그 젊은 안내인을 데리고 5번가 34거리로 가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새로운 빌딩을 가리켰습니다. 노인은 그에게 말하기를,

"저것이 바로 내가 자네에게 운영해 보라고 지어 주는 호텔일세."

벼락에 맞은 듯이 그 젊은 안내인은 땅에 꼿꼿이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은 바로 윌리암 왈도르 후아스톨이었고 그 호텔은 그 당시 가장 유명하던 왈도르후아스톨리아 호텔이었습니다.

 

 

포도원

 

어느 때 한 마리의 여우가 포도원 옆에 서서, 어떻게든지 그 속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울타리가 있어서 기어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사흘 동안 단식하여 몸을 가늘게 만들어서, 간신히 울타리 틈을 빠져 들어가는데 성공했습니다. 포도원에 들어가서 여우는 포도를 실컷 먹고 나서는 이제 포도원을 빠져 나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배가 불러 울타리의 틈을 빠져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3일간 단식하여 몸을 가늘게 만들어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여우가 말하기를,

"결국 뱃속은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똑같구나 ! "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발가숭이로 태어나고, 죽을 때에도 역시 발가숭이로 가지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죽어서 가족과 부귀와 선행의 세 가지를 이 세상에 남깁니다.

그러나 선행 이외에는 과히 대단치 않은 것입니다.

 

 

나무 열매

 

어떤 노인이 뜰에서 묘목을 심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던 한 사람의 나그네가, "당신은 그 나무에서 열매가 수확되는 것이 언제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노인은,

"70년 정도 지나면 열매가 맺을 것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나그네는,

"당신은 그렇게 오래 살게 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아니오 !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풍부하게 열매가 맺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께서 나를 위해서 묘목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벌거숭이 임금님

 

매우 상냥하고 친절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인이었던 노예를 기쁘게 해 주려고 배에 많은 물건을 실어 배와 함께 통채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든지 좋은 데로 가서 이 물건을 팔아서,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라고 말하며 해방시켰습니다. 배는 바다 한가운데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폭풍우가 불어닥쳐, 좌초해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짐은 모두 없어지고, 노예는 알몸 하나로 간신히 가까운 섬에 헤엄쳐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고독했으므로 슬픔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섬 안을 좀 걷고 있자니, 그 섬 안에 큰 도시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옷조차 걸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시에 들어가자,도시 사람들이 반가히 그를 맞아들이고 "임금님 만세 ! "라고 외치며 그를 임금으로 받들었습니다. 그는 호화스런 궁전에 살게 되어, 자기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믿을 수 없어서 그는 어떤 사람에게,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들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닙니다. 영혼입니다. 일 년에 한 번 살아 있는 인간이 이 섬에 찾아와서,우리들의 왕이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일년이 지났을 때는 당신은 여기서 쫓겨나 생물도 먹을 것도 아무것도 없는 섬에 혼자 보내질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이 된 노예는,

"정말 고맙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일 년 후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두기로 하자."라고 말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사막과 같은 섬에 가서 꽃을 심고, 과일을 심고, 일 년 후를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이 지나자, 그는 그 즐거운 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왕이었으면서도 왔을 때와 똑같이 발가숭이로 죽음의 섬에 보내졌습니다. 황폐한 섬에 도착해 보니, 과일이 열리고 야채가 자라서, 아주 살기 좋은 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또 먼저 그곳에 쫓겨났던 사람들도 따뜻이 그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먼저 처음의 친절한 부자는 고마우신 하나님, 노예는 사람의 영혼, 그가 갔던 처음의 섬은 지상 세계,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은 인류, 일 년 후에 갔던 황폐한 섬은 내세, 그곳에 있었던 야채나 과일은 선행인 것입니다.

 

 

병문안

 

병자를 병 문안하면, 그 병자는 60분의 1만큼 병상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60명이 한꺼번에 간다고 해서 병자는 완쾌되지 않습니다.

죽은 이의 무덤을 찾는 것은 가장 고상한 행동입니다. 병자의 병문안은 병자가 나으면 그 사람의 감사를 받게 되지만, 죽은 이는 별로 아무것도 답례를 하지 않습니다. 감사를 바라지 않는 행동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세 명의 친구

 

어느 날 임금님이 어떤 사나이에게 사자를 보내어, 곧 오도록 명했습니다. 그 사나이에게는 세 사람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처음의 친구는 대단히 귀중하게 대하여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의 친구도 역시 사랑하고 있었지만, 첫 번째의 친구만큼 귀중하게 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도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임금에게서 사자가 왔을 때, 그는 자기가 무언가 나쁜 일을 하여 그것을 문책받을까 걱정하여 어쩐지 무서웠기 때문에 혼자서 임금에게로 갈 용기는 없고, 세 사람의 친구들에게 함께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먼저 제일 친하고 귀중하게 대하고 있는 친구한테로 가서 "함께 가 주겠지 ! "하고 말하자, 친구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나는 싫네 ! "하고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의 친구에게 부탁하자, "왕궁의 성문까지는 가 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따라가지 않겠네."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의 친구는, "좋고 말고 ! 자네는 아무것도 나쁜 일을 한 일이 없으니 무서워할 것 없네. 내가 함께 가서, 임금님에게 그렇게 말해 주겠네 ! "라고 말했습니다.

왜 세 사람은 제각기 다르게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해 봅시다.

첫 번째 친구는 '재산'입니다. 확실히 아무리 사랑하고 있어도, 죽을 때에는 남겨 두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 번째 친구는 '친척'입니다. 화장터까지는 따라가지만 그 다음에는 그를 거기에 두고 가 버립니다. 세 번째 친구는 '선행'입니다. 평소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지만 죽은 뒤에도 그와 함께 계속 있는 것입니다.

 

 

황금의 궁전

 

러시아의 전설에 의하면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궁전의 열쇠가 주어져 들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궁전이 있다고 합니다.

한 소녀는 궁전에 꼭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머리를 예쁘게 빗고 아름답고 깨끗한 옷으로 단장했습니다. 그러나 열쇠를 가져다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일을 궁전 문지기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되고 매일 아침 다른 사람을 도와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새 비법을 발견한 소녀는 길거리로 나가 도와줄 사람을 열심히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늙은 거지를 만났습니다. 자기 주머니에 있던 돈을 전부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궁전 문지기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열쇠를 주지 않았습니다. 거절당한 소녀는 실망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짐을 잔뜩 짊어진 할머니가 언덕을 오르느라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녀는 할머니로부터 짐을 빼앗아 날라다 주고 할머니를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리고는 문지기에게 다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다시 거절당했습니다.

소녀는 크게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용기조차 잃어버렸습니다. 그 소녀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로 하고 숲을 지날 때였습니다. 소녀는 가냘픈 신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앞으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사냥꾼이 쳐놓은 덫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그 불쌍한 강아지 생각에 자기 자신을 다 잊어버린 채, 그 강한 스프링을 발과 손으로 죽을 힘을 다해 벌려서 강아지를 살려 냈습니다. 소녀의 손과 발은 찢어 졌고 피가 흘렀습니다. 치마를 찢어 강아지의 상처를 싸매 주고 집으로 데리고와서 먹이를 주었습니다.

이때 궁전 문지기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궁전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그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소녀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나는 열쇠를 얻으려고 강아지를 살려 준 것은 아닌데요."

문지기는 차분한 소리로 소녀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 열쇠는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남을 돕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

 

 

작은 선행이 살린 큰 생명

 

어떤 남자가 작은 보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여름이 되면 가족을 데리고 호수로 나아가 물고기를 낚으면서 놀았습니다.

여름이 끝나서, 그는 배를 간수하려고 육지에 올렸을 때, 배 바닥에 작은 구멍이 나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은 구멍이었기 때문에, 그는 겨울 동안은 육지에 올려 두고 내년 여름에 보트를 사용할 때 고치리라 생각하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리고 겨울 동안에 그 보트의 색칠을 다시 하였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자 그의 두 아이들은 즉시 보트로 호수에 나가려 했습니다. 그는 배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아주 잊어버려서 아이들이 배를 호수에 띄우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두 시간 가량 지난 다음, 그는 배에 구멍이 뚫린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아이들은 별로 헤엄을 잘 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당황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뛰어나갔을 때, 두 아이들이 배를 끌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배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배의 구멍을 무엇으로 메꾸어 놓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칠장이가 고쳐 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선물을 갖고 칠장이에 보답하러 갔습니다.

그러자 칠장이는,

"내가 배를 칠한 것은 지불을 받았는데 어째서 이런 선물을 주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배에 작은 구멍이 난 것을 당신이 고쳐주지 않았습니까? 나도 올해 이 배를 사용하기 전에 고칠 생각을 갖고 있었지요. 그것을 깜박 잊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구멍을 메워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말끔히 고쳐주었습니다 당신이 몇 분 동안 고쳐 준 것이 아이들의 생명을 구해 준 것입니다. "라고 하며 감사했습니다.

아무리 작은 선행이라고,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얼마나 크게 작용할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좀체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문지기의 손님

 

오래 전에 미조리주의 한 마을의 교회에서 회중들은 20마일을 걸어와 설교하는 젊은이의설교를 들었습니다. 피곤하기 때문에 이 젊은이는 말을 더듬고 허둥대다가 실패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불쾌해졌습니다. 그들은 그가 얼마나 먼길을 걸어왔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배가 끝났을 때 아무도 그에게 음식이나 편히 쉴 곳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상심하여 길고 긴 길을 다시 출발하려할 때, 흑인 문지기가 그에게 가까이에 있는 그의 오두막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 젊은 설교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아빈(Marvin) 주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난 뒤, 그는 큰마을 교회의 헌당식을 위해 그 자리에 다시 한 번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에게는 평생 있을까 말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호화스러운 대접을 하겠노라고 밀어닥쳤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그들 모두를 밀어 제치고. 나이든 흑인 문지기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오래 전에 내가 여기에 왔을 때 나는 당신에게만 필요했었소. 그리고 오늘도 나는 당신에게만 필요하오."

 

 

어록·시·묘사

 

착한 것이면 작다 해서 아니하지 말고, 악한 것이면 작더라도 하지 말라.

(명심보감)

 

착한 것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 본 듯이 하고,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같이 하라. 그리고 착한 일에는 모름지기 탐을 내고, 악한 일에는 모름지기 즐겨하지 말라.

(명심보감)

 

선행을 위해서 선을 행하는 자는 칭찬을 구하지 않고 보수를 구하지 않더라도, 최후에는 그 두 가지를 다 얻는다.

(W. 펜)

 

선행은 진공(興空)에서 성취되지 않으며, 타인과의 교제에서 사랑이 따라야 한다.

(S. 벨로우/ 붙어다니는 남자)

 

착한 일을 하여 그 이 익을 보지 않음은 마치 풀속에 난 동아(冬瓜)와 같으니 모르는 중에 절로 자라고 몹쓸 일을 하고도 그 손해를 보지 않음은 뜰앞의 봄눈과 같아서 반드시 모르는 가운데 녹게 된다.

(채근담)

 

착한 일을 행하려는 사람은 선을 행한다고 하여 사람들이 그가 가는 길에서 돌을 치워줄 것이라고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자기가 가는 길에다 돌을 굴려놓으리라고 예상하고 그것을 숙명적인 것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청렴이란 목자의 븐무요, 온갖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정약용/ 목민심서)

 

성인이 선행을 함은 영예나 이름을 얻고자 함이 아니나, 자연히 이름이나 영예가 따른다.또 명예는 반드시 이득을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득도 자연히 따른다.

(회남자)

 

남에게 선을 베푼 자는 자기 자신에게 대 해서도 선을 베푼 자이다. 이 말은 남에게 베푼착한 일의 보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착한 일을 한 그 행위 속에 그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착한 일을 했다는 의식은 인간에게 대해서 최고의 보수이기 때문이다.

(L.A. 세네카)

 

착한 일을 보면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같이 하고, 악한 일을 보면 끓는 물 만지는 것같이하라.

(공자)

 

구차하게 탐하고 시기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필경 십년의 편안함도 없을 것이요, 선을 쌓고 인을 보존해 가면 반드시 영화로운 자손이 있게 된다.

(명심보감)

 

선행은 결코 연기가 되어 사라지지 않습니다. 선행이야말로 영원 불멸의 가장 빛나는 미덕인 것입니다.

(I.S. 투르게네프/ 햄릿과 돈 키호테)

 

악행이 없음은, 자기 덕행의 총계에 거의 보탬이 되지 않는다.

(A. 마차도/ 마이레나의 후앙)

 

사람은 누구나 착한 일을 행하여 자기 자신을 높게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은 우리에게 충분한 선을 준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우리가 올바르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증하였을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의 힘으로 자기를 더욱 좋게 이끌어 가기에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I. 칸트)

 

선행을 할 능력이 있는 악인은 없었다.

(F. 버크/ 웨렌 해즈팅즈의 탄핵)

 

 

인간은, 죄책 없이 악행을 하기 위해 가끔 선행을 한다.

(라 로시푸코/ 금언집)

 

이름 모를 착한 사람이 해 놓은 일은, 땅속에 숨어 흐르며 남몰래 땅을 푸르게 해 주는 수맥(水脈)과도 같다.

(칼라일/ 수필집)

 

저지른 악행은 죽고 난 뒤에도 살지만, 선행은 혼히 뼈와 함께 매장된다.

(W.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하나의 선한 행위는 다른 선행을 부른다.

(J. 헤이우드/ 격언집)

 

오늘 하루 이 시간은 당신의 것이다. 하루를 착한 행위로써 장식하라.

(F. D. 루스벨트)

 

남에게 선을 행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B. 프랭클린)

 

적선(積善)의 집에는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다. <*선행을 쌓은 집 자손에게는 행복이 온다>

(역경)

 

저렇게 작은 촛불이 어쩌면 이렇게 멀리까지 비쳐 올까! 험악한 세상에선 착한 행동도 꼭 저렇게 빛날거야.

(W.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선행을 기억해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선행으로 선행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베이컨/ 걱언집)

 

선행의 실천이 아무리 작더라도, 가장 큰 불가능한 약속보다는 낫다.

(머콜리/ 수필집)

 

한평생 착한 일을 하여도 그 착함은 오히려 모자라고, 하루 악한 일을 할지라도 그 악함은 스스로 많다.

(명심보감)

 

선을 행하면서 이름을 위하여 하지 않아도 이름은 자연히 따라오고, 이름은 이익을 기약하지 않아도 이익이 자연히 돌아오며, 이익은 다툼을 기약하지 않아도 다툼이 자연히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조심하여 선을 행한다.

(열자)

 

선행이란 타인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오는 행위다.

(마호메트)

 

선행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선행을 옳은 방법으로 해야 한다.

(J. 블랙번의 몰리 자작/ 루소론)

 

선행은 모래 위에 쓰여지고 악행은 바위에 새겨진다.

(폴란드 격언)

 

죽은 뒤에 살기를 원하면, 살아 있는 동안에 착한 일을 하라.

(미상)

 

할 수 있는 모든 선을 행하라.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할수 있는 모든 시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한을 다하여.

(J. 웨슬리/ 행동의 규칙)

 

악행은 덕행보다 언제나 더 쉽다. 그것은 모든 것에 지름길로 가기 때문이다.

(S. 존슨, 보즈웰/ 헤브리데스섬 여행기)

 

은인은 선행을 감추고, 은혜를 입은 사람이 그것을 드러내야 한다.

(E. 케스트너/ 파비안)

 

사람은 세 가지 것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그 사람의 자식들, 그의 부(富) 그리고 그의 선행이다.

(유태인)

 

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행동은 아무리 숨기어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옥이 산에 있으면 초목이 윤택해지고,못에 진주가 나면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선을 행하고 사악함을 쌓지 않는다면 어찌 명성이 드날리지 않겠는가

(순자)

 

나는 선행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W.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선행을 하는 데 지치지 말라.

(플루타르쿠스/ 게렌다 제 6공화국)

 

타인에게 선을 베풀려는 자는 세밀하게 행해야 한다. 일반적인 선은 악한 핑계요, 위선이며 아첨이다. 예술과 과학은 상세하게 조직된 세밀한 것들 속에서밖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W. 블레이크)

 

선행은 그 부채를 보답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이 한계를 넘으면 증오가 따른다

(C. 타키투스)

 

내가 생각하는 바 선한 인생이란, 행복한 인생이다. 당신이 선하다면 행복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당신이 행복하다면 선할 것이라는 뜻이 다.

(B. 러셀/ 변하는 세계의 새 희망)

 

세(勢) 좋아 인심 얻어라. <*세력 있을 때 뽐내지 말고 그 세력으로 남에게 좋은 일을 해 두어야 홋날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

(한국 속담)

 

하루 착한 일을 행하면 복은 비록 곧 나타나지 아니하나 화는 스스로 멀어질 것이요, 하루 악한 일을 행하면 화는 비록 곧 나타나지 아니하나 복이 스스로 멀어 지리 라. 착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봄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나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마다 더하는 바가 있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칼을 가는 숫돌과 같아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이 갈수록 닳아 없어지는 것과 같다.

(명심보감)

 

희망의 실천이 자비요, 미의 실천이 선행이다.

(M.D. 우나무노/ 인생의 비극적 의미)

 

모든 사람은 자기의 능력의 범위 내에서 모든 선행을 할 책임이 있으며, 그 책임으로 족하다. 그리고 누구의 활동 범위가 가장 큰 것인가를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G. 해밀턴/ 살아 있는 나라와 생각하는 나라)

 

좋은 행동의 보수는 좋은 일을 완수했다는 사실이다. <*루키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L.A. 세네카)

 

선행을 시작했다가 멈추는 것보다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비드/ 영국 국민의 교회사)

 

인간의 참된 부는 이 세상에서 행해지는 선행이다.

(마호메트)

 

착한 것을 말하고, 착한 것을 행하며, 착한 것을 생각하라. 이와 같이 하고서 군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소학)

 

아침에 한 일 착히 하면 이 마음이 흐뭇하고/ 저녁에 한 일을 착히 하면 흐뭇던 마음이 즐거우니 일일이 착하고 또 착하면 날마다 흐뭇하고 또한 아니 즐거운가/ 예부터 동평왕창(東平王蒼)의 딸이 위선이 최락(最樂)다 하니라.

(신헌조)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 사람이 태어나서 옳지 곳 못하면/마소를 갓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정 철/ 훈민가)

 

한 가게 주인이 스승에게 와서는, 맞은편에 큰 연쇄점이 생겨서 자기는 망하게 생겼다고했다. 자기 가정이 100년 동안 지녀온 이 가게를 잃어버린다면 자기는 다른 기술도 없으니 파멸할 것이라고.// "그 연쇄점 주인을 두려워한다면, 그를 증오하게 될 것이고, 그 증오가 파멸의 원인이 될 걸세."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매일 아침 가게 앞에 나가서 자네 가게를 축복하고, 돌아서서 연쇄점도 축복하게." "아니. 경쟁자요 파괴자를 축복하라고요?" "자네가 그에게 축복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네에게 좋게 되돌아올 걸세, 자네가 그에게 바라는 악은 무엇이든 자네를 멸망시킬 걸세."// 여섯 달 후에 그 식료품 가게 주인이 다시와서 말하기를, 우려했던 대로 가게를 달아야 했지만 지금은 그 연쇄점을 맡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도 경기가 좋다고 했다.

(앤소니 드 멜로/ 선행)

 

그것은 사람들의 선량한 법칙이다. / 둘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을 형제로 바꿔 만든다.

(P. 엘뤼아르/ 선한 정의)

 

빈천을 슬퍼 말고 부귀를 부러 마라/ 인작(人爵) 곳 닦으면 천작(天爵)이 오느니라/ 만사를 하늘만 믿고 어진 일만 하여라.

(김상용)

 

옳은 일 하자 하니 이제 뉘 옳다 하며/그른 일 하자 하니 후에 뉘 옳다 하리/취(醉)하여 시비를 모르면 긔 옳은가 하노라.

(무명씨)

 

비난을 받기 전에는 결코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 사람을 멀리 하라. 그리고 겉으로는 선행을 하면서도 악한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 또 남의 흠을 잡아 자신을 높이려 하는 사람을 멀리하라.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선한 씨앗 뿌리며/ 저희가 행한 대로/ 거두어들임을 알게 하옵소서.

(이구재/ 기도)

 

오, 하나님,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기가 부끄러워 우리는/ 외로이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우리가 그들에게 줌으로써/ 기쁨이 되는 것들을 갈망하면서도/ 달라는 말을 못하고/외로이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 사랑하는 하나님,/ 서로 필요로 하며/ 서로 도울 수 있고/서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함께 하게 하소서

(마조리 흠즈/ 우리 서로 함께 하게 하소서)

 

미두를 내어 주고/ 내미는 손마다 듬북듬북 집어 주어/ 이제는 벌거벗은 몸

(서덕석/ 십자가를 매달린 채 잊혀진 예수 아래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 하늘의 의인되고

(중안의/ 복 있는 사람)

 

뉘우치는 일은/ 선한 행위요/ 후회는 약한 사람들의 신음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어긋남의 윤리를/ 탓하지 말라/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인 것을.

(황금찬/ 종이 우는데)

 

 

설 교 노 트

 

항상 선을 좇으라

살전5:12-22

 

서론

기독교의 도덕은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21:23-25)" 하는 일반적 도덕 수준을 넘어 고차원적입니다.

기독교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 선을 행하도록 강조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고 하였습니다.

악을 갚지 않는 것은 소극적 경계이나 선을 좇는 것은 적극적 권장입니다. 적극적 선에서소극적 악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선을 좇으라는 것은 기독교 생활 철학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1. 선을 택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타락 후에 이 세상에는 악이 들어왔습니다.

욥기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욥1:6)"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 땅 위에는 악도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선과 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사람의 선택 여하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 생명과 사망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고 하였습니다.

선택은 여호와 앞에서 항상 강요되어 왔습니다. 착한 것을 보거든 목마를 때 물본 듯이 하고 악한 것을 듣거든 귀머거리같이 하여야 합니다.

 

2.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일은 사단의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은 사람의 일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검을 쓰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1-52)."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예수님의 뜻이었습니다.

 

3. 선을 베풀라는 뜻이 있습니다.

착한 마음씨는 이 세상의 모든 두뇌보다 낫습니다. 선의는 우주에게 가장 강력한 실제적인 힘입니다.

노자는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 혜택을 주지만 남과 다투는 일이 없어서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즐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할 수 있습니다. 사는 데는 땅이 좋고,마음은 깊은 것이 좋고, 사귀는 데는 인이 좋고, 말은 신의 있는 것이 좋고, 정치는 다스려져야 좋고, 일의 처리는 능숙한 것이 좋고, 행동은 시기에 맞는 것이 좋지만, 물처럼 겸허해서 다투지 않을 때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또 눈을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로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추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8-42)"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9-10)"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6-30

 

서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란 그리스도 신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하시는 은혜를 더하신 것입니다. 이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곧 그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먼저이며,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나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고 그를 사랑하게 된 자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모든 것"은 만사만물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선한 것만이 아닙니다. 악한 것도 물론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신자를 위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친구도, 원수도, 성공도, 실패도, 행운도, 재앙도 모두 나를 돕는 것입니다. 험악한 원수의 습격을 만났을 때에는 누구나 기분이 나쁜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이르러 보면 그도 역시 나를 도운 자, 하나님께서 나를 돕게 하기 위하여 보내신 자,그가 있음으로서 만이 도리어 나는 도움을 받았다고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실패와 곤궁과 고난에 부딪혀서는 우수와 번민이 걷잡을 수 없고 한결같이 고독 무원한 신세를 원망하나 후에 이르러서 본다면 걷잡을 수 없고 이르러서 본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방문이며, 이것이 있음으로만 이 나의 천국으로 가는 발걸음은 다행하게도 계속하여 온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러면 어떻게 선을 이루십니까?

 

1. 전화 위복이 되게 하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에게는 전화 위복의 축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아들 요셉입니다. 그의 형들은 그를해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총리로 세우신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20절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화가 복이 되게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도와주신 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그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부르신 자들의 모든 것을 다 아시므로 선하신 간섭으로 도와주십니다.

 

3. 하나님의 목적 달성이 이루어진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누구의 선을 가르키는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신자의 선을 위한다고 하는 의미를포함하고 있음에도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뿐만일까요? 만일 신자의 선을 위하여서만이라고 하여서는 신자를 부당한 자랑에 이끌 염려가 있습니다. 신자는 우주의 집권자가 아닙니다. 또 우주의 중심이 아닙니다. 또 신자의 구인이 하나님과 전우주의 목적은 아닙니다. 만물은 그리스도일의 것이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고전3:22, 24). 그러므로 인간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러면 선을 이룬다고 하는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 달성, 이것이 곧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결론

성경은 우리에게 담대히 말씀하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관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다

창20:16

 

서론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이사하여 그랄에 기거할 때에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 지방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자기 아내로 인하여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 앗을까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애굽에 갔을 때에도 그같은 실수를 한 일이 있었으므로 이번 사건은 두 번째인 것입니다

 

1. 아비멜렉의 온전한 마음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취하려고 한 이유는 그 용포가 아름다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라에게서 자식을 얻으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아내와 여종들이 출산하지 못하였던 것 때문입니다(17-18절). 결단코 육신의 정욕적인 허영에서 사라를 취하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셨을 때 하나님께 한 말을 보면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니이까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라고 호소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비멜렉은 어디까지나 양심적인 인물이었고 의리와 도덕을 아는 군자였다고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그에게 현몽하시며 하신 말씀은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음으로 너를 막아 범죄하지 않게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온전한 마음을 가진 자를 도와주십니다. 아비멜렉이 그 마음이 온전하지 않았다면 범죄하도록 내버려두었다가 그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온전하였기 때문에 범죄하기 전에 미리 막아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같이 마음이 온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가있는 것입니다.

 

2. 아비멜렉의 선한 수습책

아비멜렉은 일시적으로나마 실수 아닌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지 않게 하셨으므로 곧 수습하기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연유를 물은 후에 서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노비를 많이 주고 사라도 돌려보내었습니다. 또한 좋은 땅에서 자유롭게 살수 있도록 거주를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은 천 개를 주어 여러 사람 앞에서 사라의 수치를 풀게하였음으로 일이 다 선하게 해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그 아내 사라도 아비멜렉도 다 잘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는 찬송가사와 같이 선한 목적으로 산 그들에게는 일시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었으나 결국은 선하게 해결된 것입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면 어려움도 쉽게 해결되는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비멜렉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셔서 생산케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되는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였습니다.

섭 리

성 경 활 용

1. 섭리의 보편적인 고찰

(1)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존

(느9:6) 땅과 땅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2) 역사를 주관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3) 자연 질서를 유지

(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4)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다.

(욥12:23%) 만국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열국으로 광대하게도 하시고 다시 사로잡히게도 하시며

 

2. 섭리의 특징

(1) 분명한 뜻이 있다.

(창45:8)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2) 측량할 수 없다.

(욥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3:11)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3) 만유를 통치하신다.

(시103: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4) 의와 은혜로 다스리신다.

(시145: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고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다

 

3.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는 것들

(1) 만유

(시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2) 동물들

(욥38:41)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3) 영의 세계

(시104:4)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 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4) 피조 세계

(단2:21)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패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주시는도다

 

4. 택자에 대한 섭리

(1) 대적의 손에서 구속하심

(시1O7:2)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2) 각 지방에서 모으심

(시107:3)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3) 고통에서 건지심과.

(시107:6)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5. 불택자에 대한 섭리

(1)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게 됨

(시107:10)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2)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심

(시107:12)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6. 섭리에 대한 성도의 취할 태도

(1)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해야 함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2) 하나님의 섭리를 기억해야 함

(사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3) 보고 기뻐해야 함

(시107:42)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은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4)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달아야 함

(시107:43)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7. 보호하시는 섭리

(1) 같이 계신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2) 덮어 주신다.

(출33:22)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3) 피난처가 되신다.

(시57:1)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사25:4)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푹풍 중에 피난처시며

(4) 지켜주신다.

(시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 붙드신다.

(시145: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도다

(6) 손 그늘로 덮어 주신다.

(사51: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관련원어풀이

1. qq'j; 하-카크

원래 의미는 "제장되거나 제합된 것"이다.

(1) 할당된 몫, 과업.

(출5:14)

(2) 한정된 경계, 한계.

(욥26:10, 잠8:29)

(3) 지정된 법, 법률, 칙령,권리,관리.(창47:26)

 

2. $r'j; 하-라츠

원래의 의미는 "자르다, 찌르다"이다.

(1) 예리하게 하다, 뾰족하게 깎다.

(출11:7,수10:21)

(2) 결정하다, 결심하다.

(욥14:5, 사10:22)

(3) 예리하다, 활발하다, 열심하다.

(삼하5:24)

 

3. oijkonomiva 오이코노미아

원래의 의미는 "집을 관리하거나 사무를 처리함"이다.

청지기직, 사명, 직임, 정면한 계획, 설계, 훈련 , 사명의 당연한 수행.

(엡1:9, 3:2, 9, 골1:25, 딤전1:4)

설교예화자료

한니발의 패배

 

로마 천하를 공포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던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은 군대를 이끌고 로마 땅을 짓밟은 후 한 번도 전쟁에 져본 일이 없었고,특히 칸네의 대 격정에서는 적의 반수도 못되는 군사를 가지고, 배 이상이나 되는 로마의 대군 8만6천 명을 거의 전멸시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멀리 고국을 떠났던 한니발의 원정군 수는 점점 줄어들고 원병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직 한가닥의 희망은 스페인에 있는 그의 동생 하스도발의 6만 원병이 도착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동생은 형의 진지를 향하여 오던 중 전사하고 말았으며, 그의 머리만이 장군 앞에 당도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이때 천하의 용장 한니발도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습니다.

"슬프다 ! 천운이여, 나의 일은 이미 끝났구나 ! 이것은 내가 전략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다. "

이는 천하를 호령하던 기개도, 백전 백승하던 전략도 기울어지는 운명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 역사의 배후에는 인간의 힘 외에 반드시 하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입니다.

 

 

기도로 메뚜기들의 습격을 멈추게 한 날

 

1877년의 이른 봄, 미네소타 주의 농부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잘 자란 농작물을 습격해오는 메뚜기들의 첫 번째 이동군을 두려워하면서 그들의 농경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이 진정 염려하는 것은 메뚜기 떼들이 미네소타의 풍부한 밀 곡창 지대를 습격하며 파괴시킨 후에 그 결과가 수천의 가족들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4월 26일, 주지사 존 S. 필스버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기를 촉구하면서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공포하였습니다. 그후 이상한 침묵이 미네소타주 사람들이 엄숙하게 기도하기 위해 모인 것처럼 농토에 깃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태양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기온은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솟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상한 듯이 하늘을 쳐다보며 두려움에 떨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와 같은 이상기온으로 지표가 더워지자 곤충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응답입니까 ! 사흘간의 때 아닌 열기가 북서 지역 일대를 휘말아 들일 듯 위협하던 거대한 메뚜기 떼를 멀리 내쫓아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예전과 다름없이 태양은 차가운 하늘을 남기고 저물어 갔으며 밤서리가 땅에 내렸습니다.

여름이 되었을 때는 순조롭게 잘 자란 밀이 바람이 불 때마다 녹색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사건 이후로부터 4월 26일은 기도에 응답을 받은 날로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의 뜻

 

삼국지에 천하의 모사(謀士)로 알려진 제갈량이 적장 사마의의 대군을 상방곡 좁은 곳에 유인하여 전후 좌우로 포위하고 좁은 협곡에 불을 지르자, 사마의와 그의 두 아들은 연기와 불 속에서 도저히 살아나갈 길이 없음을 알고 서로 붙잡고 통곡하였습니다. 산 위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 본 제갈량은 자기의 계획이 적중된 것을 만족히 여기고 이번에야말로 사마의의 두 아들을 잡았다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난데없이 검은 구름이 밀려들면서 소낙비가 쏟아지더니, 충천하던 불길은 삽시간에 꺼지고 말았습니다. 이때 사마의의 삼부자는 그 틈을 이용하여 포위망에서 탈출하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제갈량은 깊이 탄식하면서, "일을 계획하는 건 사람에게 있으나 이루는 것은 하늘이구나 ! "라고 말하였다합니다.

 

 

존 번연의 깨달음

 

청교도로서 천로 역정을 저술한 존 번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박력있고 활동적이었으나 사각형의 창살 감옥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초조했습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창살을 붙잡고 자유를 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창살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으로 기도하고 있을 때 "번연아 내 은혜가 네 게 족하다. "라는 음성이 세 번 들려왔습니다. 그후 그는 비록 감옥에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게 족한 은혜를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원망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좁은 감옥에서나마 기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묵상과 기도 속에서 영감을 받아 신자들이 천국을 가는 과정을 그린 「천로 역정(天路歷程)」을 저술하였습니다.

 

 

수위가 될 뻔한 사업가

 

집안이 너무나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해 겨우 자기 이름만 쓸 줄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은행에서 수위 모집 이 있음을 알고 응시를 했지만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그는 그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낙심 천만한 그는 교회에 가서 엎드려 "하나님, 나는 어쩌다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공부를 못하여 수위 시험에도 떨어져야 합니까."하고 통곡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내 계획은 다르다. 너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는 곧 봇짐을 싸서 그리스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뉴욕에 도착한 그는, 자기 후손들에게는 자신처럼 글도 배우지 못하는 슬픔을 안겨주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많은 돈을 모은 그는 사업을 시작하였고,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그가 중년이 넘었을 때는 금융가인 월가(Wall street)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60회 생일 파티에는 저명한 재계 인사들이 참석하였습니다. 그 생일 파티에 참석하였던 기자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자서전을 내십시오. 선생님이야말로 자서전을 낼 만한 분이십니다. " 그러자 그가 싱긋 웃으면서

"나는 내 이름밖에 쓸 줄을 모른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기자가 애석하다는 듯

"만일 선생님이 글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더 훌륭한 일을 하였을까요? " 하자,

"그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글을 알았더라면 나는 기껏 그리이스에 있는 한 은행의 수위장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글을 몰라서 수위 채용 시험에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오."

 

 

두 자녀의 낙방

 

"꽃가지에 나리는 가는 빗소리‥‥‥‥ 이 어린이 찬송의 작사자인 이태선 목사의 아들과 딸이 동시에 대학과 고등하교 진학에 실패를 했습니다.

이 목사는 마음속으로 "하나라도 합격시켜주실 일이지 원."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마침 입시 철이라 심방을 가는 가정마다 자녀의 입시 낙방을 호소하는 곳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목사는 "우리 집에서는 둘이 한꺼번에 떨어졌습니다. "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매도 같이 맞으면 덜 아픈 것이 인간의 상징이라 교인들은 "아, 그래요 목사님 댁에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군요" 이렇게 위로를 받는 눈치였습니다. 이 목사는 그때서야 "아들과 딸을 동시에 낙방시킨 것은 이 일을 통해 교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섭리였구나." 이렇게 깨닫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기대하지 못했던 응답

 

1942년 11월 28일 토요일은 퍽 불길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미국의 보스턴 시는 온통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수천 수만의 스포츠 애호가들이 보스턴 대학의 축구 경기를 구경하기 위해서 운동장으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보스턴 대학 응원자들은 그날의 승부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전적을 계산해 보더라도 1942년도에 보스턴 대학은 개교 이래 처음으로 모든 시합을 다 승리로 끝냈습니다. 져본 일도 없고 동점을 기록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금년도 마지막 시합인 오늘의 경기는 전적이 가장 나쁜 팀과의 대전이었습니다.

상대팀은 홀리 크로스 팀으로서 10전 4승 6패의 기록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합은 해보나마나였습니다. 응원자들도 모두 시합보다는 오히려 시합 후에 갖게 될 술잔치에 더 관심을갖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보스턴 대학 선수들은 자신만만해하거나 시합에 대해 너무 낙관하거나 과신(過信)하지는 않았습니다. 코치는 코치대로 계속 선수들이 자부심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그들의 상대가 아주 강팀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시합에 임하였습니다.

더구나 선수들은 모두 각기 하나님께 이 마지막 시합까지 승리로 끝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응당 모든 기독교인들이 그래야 하듯이 그들도 모두 만약 자기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자기들의 기도는 부인되어도 좋다고 기도하였습니다.

확실히 보스턴 대학 관계자들은 그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편으로 시합 후에 갖게 될 대대적인 술잔치를 위해 모든 준비를 해 놓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작을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리고 나서부터 사태가 달라졌습니다. 홀리 크로스팀은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잠깐 사이에 먼저 득점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응원자들도 곧 자기들의 팀이 득점을 하여 타이를 이룬 후 계속 게임을 승리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확신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도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상하게도 뒤떨어진 점수는결코 만회되지 않은 채 시합은 보스턴 대학의 참패로 끝나 버렸습니다.

어처구니없이 시합에 져버린 보스턴 대학은 이미 준비된 술잔치에 참석할 기분이 나지않았습니다. 선수들은 말없이 서둘러 헤어졌고 실망한 응원자들도 운동장을 나와선 그대로 집으로 흩어져 버렸습니다.

팀 선수들의 실망은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왔고 이런 창피를 당하게 되었단 말입니까? 왜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단 말입니까? 각자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들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고 무엇인가 석연치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축구 선수들은 신문 제 1면 꼭대기 첫 줄에 굵고 검은 글씨로 크게 보도된내용을 보고는 모두 입을 벌린 채 놀라고 말았습니다. 보스턴 시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나이트 클럽의 화재와 공포------ 잿더미 속에서 시체 491구 발굴"

이것이 바로 코코아및 글로브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코코아넛 글로브는 만약 보스턴 대학 축구 선수들이 그날 시합에 이겼다면 그곳에서 술잔치를 벌이려고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았었던 바로 그 나이트 클럽이었습니다.

 

 

칼빈을 향한 하나님의 뜻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존 칼빈의 전기를 읽어 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이가 청년 신학자로서 스물일곱 살에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저술한 후에 그 이름이온 유럽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무슨 볼 일이 있어서 이탈리아에 잠간 갔었습니다. 갔다가 곧 돌아오려 했는데 그곳에 전쟁이 일어나서 돌아올 수가 없어서 부득이 지금 스위스 지방으로 돌아 자기 고향으로 오려고 제네바에 들려서 하룻밤 자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제네바에서 종교 개혁을 하던 윌리암 화벨이라고 하는 유명한 종교 개혁 지도자가 젊은 청년 칼빈을 여관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 지방도 종교 개혁을 시작했는데 일꾼이 없으니 당신 같은 젊은이가 좀 도와주어야겠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그 말을 듣고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정(孤貞)한 사람이었습니다. 계획적이며 조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칼빈은 모든 일에 계획을 다 세우고 사는 사람이므로 다른 할일이 있는 데도 여기에 있으라고 하니 허락할 이치가 만무하였습니다.

"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야만 합니다. "

그랬으나 그 윌리암 화벨은 계속 권면했습니다. 칼빈은 또 거절합니다. 마지막에는 이 화벨이 화가 났습니다.

"나 보기에는 당신이 여기에 잠깐 들린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장차 이것은 당신이 여기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데 당신이 만약 그냥 간다고 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생각해서 그 다음에는 거절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시면 제가 여기 좀 머무르면서 선생님을 돕겠습니다. " 그렇게 되어 그가 제네바에 머물렀습니다.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로 말미암아 그가 일생토록 제네바에 머물러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열매를 그곳에서 맺었습니까?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많은 열매를 맺을는지 미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떤 때에는 하니님께서 내 뜻에 맞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도 공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의 응답

 

기도에 관한 귀중한 진리를 자기 손자로부터 배웠던 할아버지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그의 손자 마샬이 여섯 살 되었을 때, 그는 자기의 생일 선물로 강아지 한 마리 갖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친구녀석 빌리가

"네 엄마 아빠는 너의 아파트에서 개를 기를 수가 없다고 말했으니까 안 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샬은,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 ! 나는 내 생일이 될 때까지 계속 기도를 할테니 두고 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일날 강아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마샬에게는 아름답고 조그만 자전거가 선물로 생겼습니다. 그는 곧 그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그것을 타고 즐겁게 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 자전거를 처음 타고 길거리를 누빌 때, 친구인 빌리를 만났습니다. 빌리는 말하기를,

"그것 봐, 강아지가 생기지 않았잖아. 결국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은 거야." 빌리는 자기가 이긴 것처럼 기세 당당하게 마샬을 놀려댔습니다.

그런데 마샬은 자전거를 타고 빌리 옆을 지나 달리면서,

"아니야.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어. 다만 그는 예스라고 대답하지 않고 '노우'라고 대답하셨을 뿐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들은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예스'뿐일 것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대해 '예스'로만이 아니라 '노우'로도 응답하십니다. '예스' 만이 아니라 '노우'도 하나님의 대답이란 것을 배워야 합니다.

 

 

또다른 의미로의 응답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참회록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로마로 가겠다고 그가 자신의 계획을 밝히자, 그의 어머니는 충고를 했고, 그가 떠나지 못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젊은이가 거대한 도시의 만연된 유혹과 죄악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하여 두렵다는 것이 그의 어머니가 말리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로마로 갔고, 거기에 머무는 동안 성 암브로스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기독교로 개종을 하였습니다. 거기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비록 표면적인 형태로서는 아니었지만, 내면적인 마음으로 드린 그녀의 기도는 응답을 받은 셈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진정으로 기도한 것은 아들이 모든 죄악에 물들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잃어버린 다리

 

미국에서 창시된 몰몬교의 예언자인 영 ·브리감은 몰몬교도의 수도 솔트레이크 시의 창설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어떠한 기적이라도 행할 수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전에 어느 날, 한쪽 다리가 잘린 환자가 찾아와 없어진 다리를 돋아나게 하여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언자는 즉석에서 응락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진 다음에 올 결과에 대해 또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내가 기적을 행하면 당신은 죽는 날까지 두 발로 지낼 수 있지요. 그것은 확실히 이 세상에서의 생활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나 최후의 심판날 당신은 그 두 다리로 부활할 것은 물론 잃어버린 다리까지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세 다리로 살아야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영원히 세 다리로 사는 불편을 당하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다리 그대로 이 짧은 세상을 지내시는 것을 권하고 싶군요." 이 말은 연약한 환자의 마음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겨울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 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김남조/ 생명)

 

오늘 열리는 이 아침의 광명은/ 어제의 하늘이 아니고/ 새 하늘/ 하늘을 바라보는 눈은/주의 섭리 안에서 영광이다.

(황금간/ 새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이 쪼개지는 에밀레 여운으로/ 섭리를 수 놓은 스스로의 다짐이다.

(유태환/ 산에서)

 

병풍 같은/ 산들을 바라보아라/ 그 솜씨 신기해라/ 섭리가 있네

(홍안의/ 신비한 자연)

 

하늘의 이치를/ 내 깨닫지 못한다면 차라리 돌이 되리라.

(황금찬/ 말씀을 따라)

 

세계의 하늘은 창조의 마음/ 흙, 물, 빛도/ 어느 땅의 나뭇잎도 풀잎 같은데,/ 왜 인종의 색깔은 같지 않을까/ 우연일까, 하늘의 의도일까.

(황금찬/ 깊은 강-혹인 영가)

 

살고 싶은 것만치/ 생각하게 하시고/ 섭리의 음성에/ 귀가 있게/ 예수님, 나의 예수님.

(황금찬/ 있는 것 모두 바치게)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있고/ 그 빛 속에 생명을 있게 하고/ 다시 하늘과 바다와 땅을 있게 한/ 크고 위대한 섭리를/ 오늘 우리는 보고 있어라.

(황금찬/ 영광 속에서)

 

진작엔 몰랐던/님의 섭리/물결 일어 흘러있음을/ 단물 마시듯/ 먹고 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쁨/ 환한 마음자리/ 누가 알아 나누어 갔으면 싶다.

(류성윤/ 수용가)

 

득실은 하늘이 모두 정해 놓은 것/ 궁하고 통한 것은 운명이라 인력으로 어쩌리

(임제)

 

내게 날개편 어두움을/ 밝히소서, 낮은 것을 높이고 또 받들어 주소서./ 이는 내 시의 대주제의 높이에까지/ 영원한 섭리를 밝히고자 함이요, 또한/ 뭇사람에게 하느님의 도리를 옳게 전하고자 함이라.

(밀턴/ 실락원-서시)

 

파도여 비린내 뜨는 꿈자리 덮으며/ 그대를 평안으로 결박하고자 오는/ 섭리의 끈을 보아라.

(배명식/ 경포대에서)

 

당신이 살라시면 삽니다/ 내 모든 삶은/당신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고/ 끝나는 것

(이연자/ 피투성이라도)

 

룻은 꿈꾸고 있고, 보아스는 잠자고 있다/ 풀은 검푸르고, 양들의 방울소리가 아려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 크나큰 섭리가 하늘에서 내려올 낌새다/ 사자도 물을 마시러 가는 고요한 때

(빅토르 마리 위고/ 잠자는 보아스)

 

 

설 교 노 트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요셉

창45:1-14

 

서론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뻔 하였으나 유다의 권유로 죽음만은 겨우 면하여 애굽으로 팔려가서 많은 고생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실권을 잡고 일할 때에 흉년으로 인하여 부모 형제를 상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원수를 갚는다거나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너그럽게 대해주고 그곳에서 잘 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 형제를 위로하였습니다.

본문 4-6절에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으로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자가 당연히 취할 태도인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과거를 생각하고 원수를 갚으려고 할 잣입니다만 요셉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8절에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결코 해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50장에서 형들에게 하는 말이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1)"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형들을 위로하였습니다.

 

3. 구원의 소식을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9-12절에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형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팔려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슬픔과 원망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반대로 축복하고 감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과를 보고 기뻐하고 그 기쁨을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지금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있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가 계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시는 것입니다.

 

 

섭리의 강

창50:15-21

 

서론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인 하나님의 작정들의 실현입니다. 찰스 하지는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들은 그의 모든 피조물들과 그것들의 모든 행동들 위에 그의 가장 거룩하며 지혜로우며 능력 있는 보전과 정치이다. 그러므로 섭리는 보전과 정치를 포함한다. "고 하였습니다. 이 정의는 섭리에 두 요소가 있음을 지시하는데, 즉 보전과 정치 혹은 관리입니다.

요셉의 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강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섭리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지하 깊숙이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가리켜 지하수 혹은 지하수맥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주와 역사의 깊은 곳에 하나님의 섭리의 강은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은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 시장에 팔리게 되고 또 시위 대장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내려갔다가 다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의 섭리의 강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강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들려고 하였으며 그 요셉의 지혜를 이용하여 천하의 생명을 흉년의 굶주림에서 건지시려는 의도였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의 강은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손잡이를 잡고 돌리시는데(섭리하심) 그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셉을 당대 대 제국 애굽의 총리로 만들고 또 요셉의 지혜를 이용해서 천하의 생명을 굶주림에서 구출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원하든 만하든 하나님의 섭리는 진행되어집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19절)" 요셉의 이 말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온전히 겸손하게 머리숙여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불변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지극히 당연한 원리입니다 이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 곧 믿음입니다. 또 섭리에 순응함으로 복을 받습니다. 만약 이 섭리에 순응하지 아니할 때는 내게 손해만 있을 뿐 유익은 되지 않습니다. 백해 무익할 뿐입니다.

 

결론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전화 위복이 되게하였습니다.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20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전화 위복의 은총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건 속에 나타나는 섭리

삼상17:41-49

 

서론

루이스 벌콥은 "섭리란 창조주가 자기의 모든 피조물을 유지하시며 세계에 생성하는 만사를 공작하시며 만물을 그 정명된 목적에 향하여 지도하시는 신적 정력의 계속적 활동이다."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면 사건 속에 나타나는 섭리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꼭 쓰십니다.

고된 훈련을 받은 군인들은 국가를 위해 일할 때를 대비하여 그 훈련을 참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실력을 연마하는 것은 사회의 일원으로 쓰이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쓰시기 위해서 연단시키고 준비시키셔서 때가 이를 때에 쓰심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민족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원을 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을 어떻게 쓰셨습니까?

다윗을 이 전쟁에서 쓰기 위해 양을 치면서 자신과 싸우게 하시고, 사자와 싸우며 담력을키우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다윗은 적장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전에도 같이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싸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때가 이를 때에 쓰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귀하게 쓰인다는 확신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일하실 수가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심과 역사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적장 골리앗 앞에 모두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일의 되어짐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믿었습니다.

다윗이 확신하듯이 우리도 전쟁을 포함한 세계 모든 역사의 흐름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확신을 갖고, 날로 저 불신(사탄) 세력을 등에 업고 악을 자행하며 기회를 노리는 북쪽을 경계하며, 더욱 하나님 편에 굳게 서야하겠습니다.

 

3.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승리가 전제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과 자신만을 의지하는 사탄의 사람과 싸움입니다. 바로 이 싸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를 통하여 영광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안에서, 내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이 귀한 확신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 때 그 삶이 곧 능력의 생활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산다면 이 민족이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안정되고 성장하며, 나아가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민족을 통해서 전 세계에 확장되어질 것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사람으로서 생활속에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힘씁시다.

 

 

하나님에서 하시는 일

사45:5-10

 

서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창조의 섭리에서 뿐만 아니라 속죄의 과정에서도 역시 명확한 계획을 세워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그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주장하선서 모든 것을 자기의 계획대로 행하십니다. 만유는 다 하나님의 착하시고 지혜롭고 거룩하신 목적을성취하도록 역사하십니다.

 

1. 창조와 섭리의 대상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자연계뿐만 아니라 빛과 어두움, 평안과 환난 같은 것도 창조하시고(사45:7), 또한 눈으로 볼 수 없는 무형의 영적 존재, 곧 천사들도 창조하셨습니다.

자연계에 대해서는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각종 식물과 동물들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천사는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물로서(히1:14), 지 · 정 ·의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그룹 스랍 가브리엘과 미가엘 등 선한 천사들과 그리고 악한 천사들로 나타냅니다.

 

2. 창조와 섭리의 방법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권능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있으라", "나뉘게 하라" 등등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짓고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 만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말씀이 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죄가 없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후에 들어왔습니다.

 

3. 창조와 섭리의 목적

하나님은 본래 선한 분으로 그의 지으신 만물도 선하였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상호협력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유익을 증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하셔서 아무도 하나님의 지혜를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지혜로우신 판단으로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자연 법칙을 통하여 섭리하시고 때로는 초자연적인 특별섭리 곧 이적으로 섭리하십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거룩하신 목적에 위배되면 징계하시면서 강권으로 역사하십니다.

 

결론

우리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이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

성 경 활 용

1. 성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것

(1) 성적 구분이 엄격하였다.

(신22:5)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고전11:14)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2) 서로 도와야 한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3) 정욕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여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4) 부부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한다.

(고전7: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신성한 것이다.

(히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2. 성에 대한 주의사항

(1) 하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함

(사3:17) 주에서 시온의 딸들의 정수리에 딱지가 생기게 하시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체로 드러나게 하시리라

(2) 동성연애를 금지함

(레18:22)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3) 근친상간하지 말아야 함

(신27:20)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4) 통간하지 말아야 함

(신22:22)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5) 창기와 통간하지 말아야 함

(잠31:3)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지어다

(6) 짐승과 행음하지 말아야 함

(출22:19)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지니라

(레18:23)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관련원어풀이

1. !d;a; 아-담

(1) 남자, 사람, 인류.

(창1:26, 27, 욥20:29)

(2) 어떤 사람.

(레1:2)

 

2. vyai 이-쉬

(1) 남자(여자와 구별).

(창4:1, 삼상1:11)

(2) 남편(아내의 반대)

(창3:6)

(3) 인간, 사람.

(창32:29)

 

3. hV:aI 이싸-

(1) 여자.

(아1:8, 5:9)

(2) 성(sex)의 이름.

(창7:2)

 

4. bh'a' 아-헤-브

(1) 바라다, 갈망하다, 사랑하다.

(창22:2, 룻4:15, 시45:7))

(2) 사랑하는 자, 애인, 남녀간의 사랑.

(아2:4, 5:8,호3:1)

 

5. $pej; 하-페-츠

호의를 가지다, 즐거워하다, 사랑하다.

(아7:6)

 

6. qv'j; 하-솨크

함께 결합하다, 사랑으로 밀착되다.

(시18:1)

 

7. d/D 또-드

사랑,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자.

(아2:3)

 

8. ajnhvr 아네-르

(1) 남자, 수컷.

(행8:12, 딤전2:12)

(2) 남편.

(민1:16, 막10:2, 롬7:2)

(3) 사람.

(마14:35, 행4:4)

 

9. gunhv 구네-

(1) 여자(처녀, 부인, 과부)

(마9:20, 눅1:42, 행5:14, 롬7:2)

(2) 아내.

(마5:31, 눅1:5, 고전7:2)

 

10. ajgapavw 아가파오-

(1) 잘 되기를 바라다, 간절히 사모하다, 사랑하다.

(마5:43, 요17:23)

(2) 애정, 선의, 호의, 사랑.

(마2:15, 요13:35, 행5:5, 고후2:4,

갈5:6)

 

11. filevw 필레오-

다정하게 친구로 대하다, 사랑하려고 하다, 키스하다, 사랑을 원하다.

(요5:20, 15:19, 고전16:22)

설교예화자료

담

 

유태인은 수도원이나 대처(帶妻)하지 않는 승려의 존재는 믿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입니다. 탈무드 중에는 '일 미터의 담이 백 미터의 담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일미터의 담은 틀림없이 서 있지만, 백 미터의 담은 간단히 쓰러져 버립니다. 인간이 평생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어서, 백 미터의 담과 같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갖지 않는 유태인은 기쁨이 없고, 하느님으로부터의 축복이 없고, 선행도 쌓지 않습니다. 남자는 18세가 되면 결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신체적으로 가능한 것으로서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없다.

(R.S. 세리던/ 비평가)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육욕에 이르게 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육교(肉交) 없는 사랑은 사실이 아니라 공상이다.

(쿠니키다 돗보)

 

성욕의 발동이 순수한 것은, 참으로 천하의 아름다운 극치이며, 인생의 즐거움의 극치이다.

(타카야마 쵸규우)

 

섹스가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임은 명백하다. 섹스는 인생의 행복을 좌우한다.

(J. D. 와트슨)

 

성교육은 미적분학(微積分學)이나 그리스문학처럼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M. E. 몽테뉴)

 

성은 거짓된 수치를 태워 버리고, 우리 몸의 가장 무거운 광물을 순수하게 제련하기 위하 여 필요하다. 영원히 필요하다.

(D.H. 로런스/ 채털리 부인의 사랑)

 

성과 미는, 생명과 의식처럼 한 개의 것이다. 성을 미워하는 것은 미를 미워하는 것이다.살아 있는 미를 사랑하는 자는 성을 존중하다.

(D.H. 로렌스/ 서간집)

 

사랑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섹스가 일으키는 트러불이고 일종의 하찮은 시정(詩情)이었다.모든 시가 그러하듯이 그것은 과장을 일삼고 우상을 만들기에 옆눈도 안 판다. '완전한 인생'을 꿈꾸는 것이다.

(강신재/ 황량한 날의 동화)

 

성본능은 우리가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행하고, 존재하고,꿈꾸는 모든 것의 서너 가지 원동력 중의 하나이다.

(P. 윌리/ 독사들은 세대)

 

성욕은 대중의 서정시이다.

(C. 보들레르/ 사생활 일기)

 

정신적인 사랑이 지배적인 교정(交情)에 있어서는 육욕적인 것이 결코 있을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정신적인 사랑이 가장 숭고한 결합의 표현으로 육욕을 찾을지도 모를 것이오.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오늘날 섹스는 사랑의 종점이 아니라 개찰구이다. 정신의 결합에서 육체의 결합을 이루던 사랑의 순서는 19세기에 끝나고, 이제는 그것이 뒤집혀서 육체의 결합 끝에 정신이 교통된다.

(이어령/ 이것이 오늘의 세대다)

 

사랑은 현실의 이성(異性)을 환상으로 만들지만 섹스는 환상의 대상을 현실로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지배하던 세기에는 낭만주의가 꽃을 피우고 섹스가 범람하는 세기에서는 건조한 리얼리즘의 자갈밭이 있다. 20세기를 성서시대(聖書時代)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큼 환상보다는 현실감이 우세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속에서 흙과 자연을 상실해 가고 있는 현대인은 섹스를 통해 원시의 육체, 자연의 밀어(密語)를 듣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어령/ 너와 나의 거리)

 

인간의 불행의 하나는 그들이 이미 성적 매력을 잃고 나서 훨씬 이후까지, 성욕만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W.S. 몸/ 작가의 수첩)

 

성관계는 본래 모든 행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중심점이고 이것을 감추는 여러 가지 베일이 있는데도 도처에서 얼굴을 내민다. 성관계는 전쟁의 원인도 되고, 평화의 목적도 되며, 자살의 기초도 되고, 또는 타락의 목표도 되며, 해학(諧謔)의 무진장한 원천도 되고, 모든 풍자의 열쇠도 되고, 모든 비밀의 눈짓의 의미도 된다.

(A. 쇼펜하워)

 

성욕은 아이를 낳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힘을 완전히 하나로 만드는 힘은갖고 있지 않다.

(무샤노코오지 사네아쓰)

 

성애는 별개 성으로 시작하며 동일성으로 끝나고, 모성애는 동일성으로 시작하여 별개성으로 인도된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부인의 성생활이 성가시게 되면, 하느님은 그 다음에 어떤 신이 와야 하는지 안다.

(O. 내시/1929년 이후 시집)

 

성은, 청소년기의 대표적인 미각으로서 모든 음식의 통로마다 뿌리는 매운 고추 양념이다.

(M.D. 윈/ 아담의 갈빗대)

 

성은 증오처럼 표현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증오처럼 어지러운 내면의 불안을 가져올 것이다.

(G. J. 네이던/ 지나가는 생각)

 

성욕의 가치가 무엇이냐에 대한 나의 견해로는 성욕은 아름다우며, 너무나 많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만족하다면 자제하는 것이고, 만족은 긴장을 풀어 주고 주의력과 배우려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는 것이다.

(P. 굿먼/ 잘못된 의무교육)

 

욕정에 관한 일은 비록 쉽사리 얻을 수 있더라도 그 편리함을 즐겨서 조금이나마 손 끝에 물들이지 말라. 한 번 손끝에 적시면 이내 만길 벼랑에 떨어지리라. 도리(道理)에 대한 일은 그 어려움을 꺼리어 조금일지라도 물러서지 말라 한 번 물러서면 문득 멀리 천산을 격(隔)하리라.

(채근담)

 

성이란 화폐처럼 중성적일지 모른다. 거리에 색채를 부여하는 것은 인습 같다.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육신의 집에 증오와 육욕의 열기가 강하면, 내가 오래 살 흙집을 생각하게 하라.

(A.E. 하우스먼/ 뿔 없는 어린 양)

 

오 육체적인 것만의 사랑은 온갖 불실(不實)을 용납한다. 애인은 밖에서는 그러한 쾌락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알고 믿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괴로운 중에도 그것을 향락한다. 그러나 정신적인 사랑은‥‥ 여타의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A.V. 비니/ 시인의 일기)

 

성은 위대한 아마추어 예술이다. 직업적이라면 남성 혹은 여성은 눈살을 찌푸리고, 남자 혹은 여자는 전체 요점을 파악치 못하여 쇼를 마칠 것이다.

(D. 코트/ 사회적 경탄)

 

색정은 인류의 옆구리에 입을 벌리고 있는 신비한 상처다. 사람에게만 있는 색정과 양성(兩性)을 접근시키는 욕망과를 혼동하는 것은, 종기 자체와 종기가 나서 모양이 흥하게 되어 무서울이만큼 종기의 모양을 닳게 되는 수가 있는 기관과를 혼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는 부끄러운 상처를 감추기 위하여 예술의 갖은 매력의 도움을 빌어 굉장히 애를 쓴다. 그러나 죄에 대해서 얼마간의 경험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색정이 그 기생적 생장작용(生長作用)과 그 추악한 번식으로 끊임없이 생식력과 지력을 아울러 질식시키려 든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만들어 낼 힘이 없는 색정은 인류의 가냘픈 약속을 눈(芽)이 뜰 때부터 더럽히는 일밖에는 못한다. 색정은 아아 우리 인류의 모든 결함의 근원이요, 원리일 것이다.

(G. 베르나노스/ 시골 사제의 일기)

 

결혼을 위한 사랑은 인간을 만들고, 우정어린 사랑은 인간을 완성하며, 음탕한 사랑은 인간을 더럽고 천하게 한다.

(F. 베이컨/ 수필집)

 

기독교는 성애에서 독을 마시게 했다. 성애는 그 독으로 죽지 않고 악으로 타락했다.

(니체/ 선악의 초월)

 

미래의 여인, 그것은 어떤 시대가 되어도 섹스에 기댄 그런 여성이 아니다. 이성으로 승화되고 미로써 장식되는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노동으로 단련된 자세, 철학을 지닌 사고, 사랑으로 폭넓혀진 인생을 지님으로써 아름다울 것이다. 섹스는 미를 창조하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전부일 수는 없다.

(정충랑/ 은은한 환희)

 

아, 여 기 누가/ 성(性)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

(김현승/ 파도)

 

맑은 성(性) 아름다운 꿈은 잠들다. / 그리운 세계의 단편은 아즐타

(김광섭/ 고독)

 

쓰르람/ 쓰르라민/ 가을의 SEX

(안장현/ 칠석에)

 

어어 밤은 깊어/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바다 속에서/ 어족(魚族)인 양 노니는데

(오상순/ 첫날밤)

 

그건 두 개 향기로운 꽃의 결합:그리고 제삼의 영혼의 탄생을 향한 그들 향기의 섞음, 첫눈 마주침이 인간 마음의 들에 여신이 뿌린 씨와 같다면, 첫 키스는 생명의 나뭇가지 끝에 핀 첫 꽃망울.

(K. 지브란/ 첫 키스에 대하여)

 

나 테이레시아스는 비록 장님이 지만/ 남녀 양성 사이에 살고 있는/ 쪼그라든 여자의 유방이 달린 노인이다.

(엘리어트/ 황무지-불의 설교)

 

 

설 교 노 트

 

가정 음란 방지법

레18:1-30

 

서론

본문에는 읽기에도 거북스럽고 누추한 죄를 노골적으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얼마나 불결하고 부패하며 또 방종한 대로 맡겨두면 얼마나 음란하고 방자할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가나안 후에 그 본토민들의 좋지 못한 습관들을 본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노골적으로, 또는 세밀하게 경계하셨습니다.

 

1. 이방의 악한 습관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의 풍속을 좇지 말며, 너희가 들어갈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애굽이나 미래의 가나안의 이 교민들의 악한 풍속을 절대로 본받지 말고 오직 전심으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풍속은 첫째 우상 숭배요, 둘째 음란입니다. 전자는 영적 간음이요, 후자는 육적 간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당한 부부생활과 건전한 성생활을 허락하셨습니다. 음란한 일이나 간음은 절대 금지된 일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가 망하는 원인이 주로 이 음란 문제 때문입니다.

 

2. 모든 간음을 금하셨습니다.

(1) 가족과의 간음

"너희는 골육지친을 가까이 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체를 범한다는 것은 곧 간음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간음하는 일이 이방인들에게는 보통 예사로 삼기 때문에 이방 풍속을 절대로 좇지 말라고 엄히 금하셨습니다.

가족과의 간음 종류는 어미, 계모, 자매, 손녀, 외손녀, 이복매 등을 상대로 한 것으로 가족의 간음이 최고의 악습입니다.

(2) 친척간의 간음

친척 간음의 종류는 고모, 이모, 백, 숙모, 자비, 형, 제수, 타인의 어미와 딸을 아울러‥‥또 그 여인의 손녀나 외손녀를 아울러‥‥ 아내 생존시 그 형제를 범하는 일 등입니다.

이상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로서는 너무 보통 있었던 일인데 여기 감염되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고 교훈하십니다.

(3) 타인과의 간음

여인이 경도로 불결할 때에 그 하체를 범치 말며, 타인의 아내와 통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 7 계명이니 "간음하지 말라(출20:14)"고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지도 말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마5:28).

(4) 몰렉에게 자녀를 주는 것

몰렉 우상은 이방신으로 사람의 몸과 소의 머리인데 구리를 만들어 놓고 뜨겁게 달군 후어린이를 던져서 헌제하는 풍습입니다.

이것은 영적 간음이므로 여기에 결부시켜서 경고하였습니다.

사람이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자신에는 배신이요, 하나님께는 간음이 됩니다. 그리고 동성 간음과 수음을 경계하였으니 이것은 사형죄입니다(출22:19, 레20:15).

 

결론

"너희는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고 하여 자신이 지켜서 성별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시는 이유가 음란죄 때문이니 너희도 더럽히면 토할까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방종의 생활을 엿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성 결

성 경 활 용

1. 성결하신 분

(1) 성부 하나님

(욥4: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슥14:20) 그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2) 성자 예수님

(행3: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2. 성결의 대상

(1) 여호와

(출28:36)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2) 주

(눅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3. 인간이 성결해야 할 것

(1) 마음

(약4:8)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2) 몸

(대상23:13) 아론은 그 자손들과 함께 구별되어 몸을 성결케 하여 영원토록 지극히 거룩한 자가 되어

(3) 성전

(대하29:5)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하여

(4) 신자들

(대상15:12)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케 하고 내가 예비한 곳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5) 자녀들

(욥1:5) 그 잔칫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삼16:5)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케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 아들들을 성결케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제사장

(출19:22)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7) 백성

(수7:13)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여 내일을 기다리라

 

4. 성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소금을 쳐야 한다.

(출30:35)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2) 피를 뿌려야 한다.

(레16:19)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

(3) 성소에 서야 한다.

(대하35:5) 너희 형제 모든 백성의 족속의 차서대로 또는 레위 족속의 차서대로 성소에 서서 스스로 성결케 하고

(4)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요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 위로부터 잔 지혜를 받아야 한다.

(약3: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6) 성실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대하29:34)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7) 모든 기구를 정돈해야 한다.

(대하29:19) 아하스왕이 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기구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케 하여

관련원어풀이

1. vd'q; 카-다쉬

(1) 순수하다, 깨끗하다, 거룩하다, 성결하다, 성스럽다.

(출29:37, 사65:5)

(2) 거룩한 것으로 여겨지다, 자신을 거룩하게 나타내 보이다.

(레10:3, 겔20:41)

(3) ~을 거룩하게 여기다.

(신32:51, 레21:8)

(4) 헌신되다, 봉헌되다.

(사13:3, 겔48:11)

(5) 거룩하게 여 기다.

(민20:12, 사8:13)

(6) 거룩함을 선포하다.

(왕상9:3,:31:5)

(7) 정결케 하다, 자신을 깨끗케 하다.

(삼하11:4)

(8) 자신을 거룩하게 나타내다.

(겔38:23)

 

2. vd,qo 코-데쉬

(1) 거룩, 신성, 성결.

(출28:2, 암4:2)

(2) 거룩한 것.

(레12:4, 렘2:3)

(3) 성소.

(출28:43, 시20:3)

(4) 가장 거룩한 물건.

(출29:37, 레21:22)

(5) 성전의 가장 안쪽에 있는 부분, 지정소.

(출26:33, 대하3:8)

 

3. rhef; 타-헤-드

(1) 비취다, 밝다, 깨끗하다, 정결케 되다.

(왕하5:12, 레11:32)

(2) 정결케 하다, 깨끗케 하다.

(대하29:15, 16)

(3) 정결함을 선포하다.

(레13:6, 시51:4)

(4) 자신을 정결케 하다.

(창35:2, 민8:7)

 

4. aJgnov" 하그노스

(1) 거룩한, 성스러운, 순수한, 순결한, 욕정에서 순결한, 정숙한, 얌전한.

(고후11:2, 딛2:5)

(2) 모든 잘못으로 깨끗한, 흠 없는.

(빌4:8, 벧전3:2)

 

5. aJgnivzw 하그니조-

(1) 의식에 의해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다.

(요11:55)

(2) 자신을 정결케 함.

(행24:18)

 

6. aJgiwsuvnh 하기오수네-

(1) 하나님의 비교할 수 없는 존엄.

(롬1:4)

(2) 도덕적인 정결.

(살후3:13, 고후7:1)

 

7. oJsiovth"" 호시오테-스

하나님께 향한 경건, 거룩, 신성.

(눅1:75, 엡4:2)

설교예화자료

그의 존재의 향기

 

찰스 웨일(Charles Weigle) 박사는 널리 애창되어지는 「주 예수보다 더 날 사랑하는 이 없도다」라는 찬송가를 작곡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파사데나를 방문했는데, 진한 꽃 향기가 온통 사방에 꽉차 있던 아침 일찍, 그 지방의 유명한 장미화원을 우연히 거닐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에 그는 성서 협의회가 열리고 있는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돌아서서 말하기를,

"웨일 박사, 나는 당신이 이제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그 아름다운 화원을 거닐었지요? 당신의 옷에서 향긋한 향기가 나는군요."

"제 기도는 항상 그리스도의 은총의 향기가 제게 충만하도록 그렇게 가까이 그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말과 행동과 찬양으로써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

 

 

웨즐리의 기도실

 

무디 교회의 목사인 워렌 W. 위어브 씨가 말하기를 "내 생애에 있어 가장 감동적인 경험중의 하나는 런던에 있는 요한 웨즐리의 집 침실에 인접해 있는 자그마한 기도실로 들어섰을 때 찾아왔습니다. 그 집의 바깥쪽은 혼잡한 거리의 소음으로 가득했으나 웨즐리의 기도실 안엔 하나님의 성스러운 평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곤 헬라어 신약 성경과 촛대가 있는 호두나무 테이블과 작은 변기,그리고 의자 한 개가 전부였습니다. 웨즐리는 런던에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 위해 매일 이른 아침에 이 기도실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

웨즐리의 집을 안내해 주었던 안내자가 내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이 작은 방은 감리교의 발전소였습니다. "

 

 

양도둑의 참회

 

남의 양을 훔친 죄로 이마에 '양도둑(Sheep Thief) ' 이 라는 두 글자의 약자 S.T를 낙인으로 받은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형제중 형은 모욕을 참을 수 없어, 외국 땅에 가서 자신을 감추어 가며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마다 이마의 두 글자가 무슨 뜻이냐고 캐물었습니다. 마침내 그는'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다가 더 이상 비통함을 참을 길이 없어, 먼 타향에 가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내가 양을 훔친 사실은 내가 딴 곳으로 달아난다 해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 남아서 내 이웃과 나 자신에게 다시 정직과 신용을 되찾도록 노력해야겠다. ' 하고 결심하였습니다. 해가 바위는 동안 그는 정직하다는 평판을 굳혀갔습니다. 물론 많은 수모를 참아가며 노력을 하였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이곳을 지나치던 낯선 사람이 이 노인의 이마에 있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이 동네 본토박이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 하고 동네 사람은 대답을 이었습니다. "나는 그 일이 무슨 일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 글씨는 세인트(聖人, Saint)의 약자일 것입니다. "라고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눈

 

대학을 졸업할 즈음 같은 학과 친구와 함께 신부님 댁을 찾아보기로 마음먹고 나섰었습니다.

그분은 혜화동 기숙사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신부님만이 사시는 기숙사에 들어가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요, 마지막이었습니다. 정적과 고요가 깃든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서재에서 잠깐 만나뵙고 곧 나왔지만, 그때의 방문이 나에게는 두고두고 기억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분과 나누었던 대화는 한 가지도 기억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기억되는 것은 오직 그분의 방에 붙어 있던 라틴어로 씌여진 짧은 문구였습니다. "Me ViditDeus", 즉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다. "는표어였습니다.

한참 신앙적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있던 터이라 그 표어는 유별나게 마음에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나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 눈을 의식하며 경건하게 '하나님 앞에 산다. '고 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있어서 얼마나 진지한 삶의 자세이겠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을 씁니다. 이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아줄까?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까? 이래서 세상 사람들은 흔히 눈치 생활에 익숙해지게 되고 체면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사람의 눈'에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이런 삶의 자세에 비교한다면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은 얼마나 귀합니까?

 

 

지금 누가 보고 있다

 

오래 전 어느 날 오후 중국인 농부 한 사람이 수도원을 찾아와, 신부에게 성 밖의 작은 농촌에서 한 노파가 죽어가고 있는데 오셔서 장례 예식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노파는 기독교 개종자였으며, 그래서 기독교 식으로 장례 예식을 갖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젊은 신부는 그 농부와 함께 그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가 성을 빠져 나가자마자 그는 숲속에서 뛰쳐나온 일단의 도적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신부에게 가진 돈이 없는것을 알자 두목은 더 많은 돈을 받아내 기 위해 신부를 인질로 잡아 두기로 했습니다.

"네게는 로마에 큰 두목이 있으니 그가 돈을 많이 내면 너를 살려 보내겠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신부가 여러 가지로 설명하면서 로마의 교황에게서는 몸값으로 돈이 나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두목은 믿지 않았습니다. 신부의 생명은 이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과 같이 되었습니다.

거의 한 달 동안, 도적들은 그들의 포로를 이곳저곳으로 끌고 다니며 고문도 하고 노동을 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신부에게 수갑을 채워 놓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음식과 물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정도로만 제공하였습니다.

그런데 도적들 가운데 두목의 아내가 특히 신부를 미워하여 그를 죽여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신부가 눈에 보이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두목에게 신부를 죽여 없애자고 간청했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직접 죽여 버리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밤 도적들이 그를 다시 밧줄로 꽁꽁 나무에 묶어 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신부도피곤하여 곧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느끼면서 잠을 깼습니다. 그는 달빛 사이로 도적의 두목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쉿 ! 아무 말도 말아요." 두목이 낮은 소리로 귓전에 속삭였습니다. 그리고는 번쩍이는 칼을 때어 신부를 묶은 밧줄을 끊어 주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자유요. 빨리 집으로 가보시오."

"왜 이러는 겁니까?" 하고 신부가 물었습니다.

"까닭을 알고 싶다는 말입니까? ‥‥ 난 여러 번 당신을 때리고 차고 채찍질했는데, 당신은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만일 단 한번이라고 당신이 나를 향해 욕설을 했다면, 난 당신이 거짓말을 한다고 알았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다름이 없었습니다‥‥그래서 풀어 주는 것입니다. 자! 가보시오."

신부는 조용히 손목과 발목을 움직여 본 후에 일어섰습니다. 두목이 그를 데리고 나가면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늙은 어머니가 집에서 병을 앓고 있소. 당신이 예수에게 내 어머니를 위해 기도해주시요. 잘 가시오 ! "

 

 

랍비 히레르

 

그는 2천 년 이상이나 전에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20세가 되었을 무렵에 그는 이스라엘로 찾아와서, 두 사람의 아주 훌륭한 랍비 밑에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천재이며, 퍽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히레르는 랍비의 대승정 (大僧正)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비유태인이 한 사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히레르에게,

"내가 한 다리로 서 있을 만큼의 시간 동안에 유태의 학문을 모두 가르쳐라 ! "고 말했습니다. 이때 히레르는,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 ! "고 대답했습니다.

또 어느 날 히레르를 화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내기를 했습니다. 안식일을준비하기 위해 금요일 낮에 히레르가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씻고 있을 때, 한 사나이가 문을 노크했습니다. 히레르는 젖은 몸을 닦고 옷을 걸치고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사나이는,

"인간의 머리는 왜 둥굴까요?"라는 쓸데없는 질문을 잇따라 퍼부었습니다. 히레르가 대답하고 나서 겨우 목욕탕에 돌아오자, 사나이가 다시 돌아와서 문을 노크하며,

"흑인은 어째서 검은가요? "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되풀이했습니다. 어째서 검은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나서 다시 목욕탕에 들어오자 이때 노크 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이런 일이 다섯 번 되풀이되었습니다. 마지막에 그 사나이가 히레르에게 향해서,

"당신 같은 사람은 없었더라면 좋았을 걸 ! 나는 당신 때문에 내기에 큰 손해를 보았소."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자 히레르가,

"내가 인내력을 잃기보다 당신이 돈을 잃는 쪽이 낫소."라고 말했습니다.

 

 

붕(법)대

 

법률이라는 것은 약과 같습니다. 어떤 나라의 왕이 상처를 입은 자기 아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면서,

"아들아, 이 붕대를 감고 있을 동안만은 먹거나 달리거나 물에 들어간데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붕대를 풀어 버리면 상처는 심해진단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간도 똑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나쁜 것을 바라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률을 마음속에서 버리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인간의 성질이 나쁘게 되지 않습니다.

 

 

어록·시·묘사

 

성(聖)이란 만인 공유의 일종의 백치미인 것입니다.

(장용학/ 원형의 전설)

 

가장 위대하다는 성인도 알고 보면 아직 밑바닥까지 타락하지 않은 죄인인지도 모른다.

(0. W. 홈스)

 

성자란 자신의 사랑으로 바람 소리를 변화시켜 즐거운 노래가 되게 하는 사람이다.

(K. 지브란/ 예언자)

 

성인이란 죽은 자로서, 개정(改訂)과 개편(改編)을 거친 사람이다. /

(비어스/ 악마의 사전)

 

오직 성인이란 자는 천지의 모습을 닮았으며,음양의 덕을 함께 갖춰서 한번 거동하고 한 번 정지함이 온전히 태극의 체와 용에 부합되니, 성인은 곧 천지의 마음이다.

(기대승/ 고봉집)

 

무릇 성인의 도는 귀로 받아들여 마음에 두는 것이다.

(김시습/ 매월당집)

 

성인과 죄인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모든 성인은 과거를 가지고 있고, 모든 죄인은 미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와일드/ 중요하지 않은 여인)

 

고개 하나/ 까닭 않고/ 빙그레 웃는 산/ 커단 가슴 가득한/바위/풀향기// 덤덤한 얼굴빛/침묵의 성자(聖者)

(이해인/ 산에서 큰다)

 

거의 모든 원시 종교나 문화에서는 구체적인 존재물, 사물, 장소 또는 행위가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 민족 전체가 거룩하다는 생각, 거룩한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생각은 인류 역사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가 없다‥‥다만 전체 이스라엘의 삶 속에서 생겨난 특수하고도 초자연적 인 사건들만이 '거룩한 백성'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를 살리시는/ 크신 왕이 되시니/ 그 이름 거룩되게 존귀를 얻으시고

(홍안의/ 하늘에 계신 주)

 

날마다 생각나는 고향 바닷가/ 소금가마 끊이는 보랏빛 연기/ 향불되어 아스라이 날으던 제단/ 거룩한 곳이라 아니 말 못하겠습니다. // ‥‥당신은 여전히 내 곁에 오셔서/ 거룩한 음료되어 흘러내리 건만/ 당신의 높으신 뜻 감당할 길 없어/ 오호라, 몸부림치는 밤만 쌓여 갑니다.

(임춘남/ 소금만들던 곳)

 

몸을 신성하게 훈련하는 것은 육체의 힘을기르는 것과 함께 중요한 일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스승은 무엇이건 선동적인 듯한 것에는 항상 눈쌀을 찌푸렸다. 거룩함은 평범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기괴함에 가까운 고행양식을 시도하고 있는/ 한 제자에게 스승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거룩함이란 신비스러운 것이다. " 크면 클수록 더 적게 눈에 띈다.

(앤소니 드 멜로/ 겉모양)

 

 

설 교 노 트

 

마음이 청결함

마5:8

 

서론

마음, 즉 심정이 순수하고 사념이 없는 자는 이 세상의 더러운 것에 견디기가 힘듭니다. 또한 아첨과 간음과 기만과 교계와 불의, 부정 등의 사악한 일을 행할 수가 없으며 이를 목격하는 일조차도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이 세상의 더러운 것에 눈을 팔지 않고 하나님께 그 눈을 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점의 불결도 없으신 하나님은 그러한 마음에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내십니다.

 

1. 마음의 뜻과 그 중요성

이 마음은 심령과는 다릅니다. 심령은 영혼을 의미하고, 마음은 인격의 전부를 의미합니다.

마음은 구약 성경에 851회 기록되었습니다. 그중 3분의 1은 인격 전체를 표시했고, 3분의 2는 지 · 정 · 의를 표시했습니다.

마음 바탕이 밝으면 어두운 방 안에도 푸른 하늘이 있다, 잘난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선한마음은 신용장이다, 당신의 가슴속에 당신의 운명의 별이 있다는 말들은 마음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명언들입니다.

 

2. 청결은 무슨 뜻입니까?

"청결하다"라는 헬라말(신약 원어)은 "카다로스(katharos)"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본래 이 말은 단순히 "청결함"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더러운 옷을 깨끗이 세탁했을 때 사용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2) 보통 이 말은 키질하고 채로 쳐서 모든 겨를 깨끗이 제거해 버린 곡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또 같은 뜻으로 불평하고 비겁하며 기꺼이 따르지 않고 무능력한 군인들을 빼버린 정예의 군대에도 사용되었습니다.

(3) 물을 타지 아니한 순전한 우유에 사용되고, 합금되지 아니한 금속에 사용되었습니다.

(4) 그래서 카다로스(katharos)의 근본적인 의미는 비혼합, 비화합, 비합금의 의미 입니다.

(5) 그러므로 '마음의 청결'은 외식과 두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동기가 언제나 완전하게 순수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스데반집사는 임종시에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행5:55:56)"라고 하였습니다.

외식하는 것과 두 마음 그리고 사념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향하는 단순한 마음을 건지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은

(1)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2)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된다.

(3) 하나님과 친교가 이루어진다.

(4) 하나님과 동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결론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시24:3-6)"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복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께 성결

출28:36-39

 

서론

대제사장 아론의 이마에 붙이는 금패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 쓰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대제사장은 온갖 오염에서 떠나서 하나님과 또 그를 예배하는 일과 영광 돌리는 일을 위해 성별되어야 하며, 그가 하는 일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집에 참예하는 모든 자들도 자기들의 이마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 넣어야 합니다.

저들은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이 세상 속에서의 모든 교제속에서도 그 신앙에 대해 책임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이마에 여호와께 성 결이라고 쓰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1.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2장 18절에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성도)은 전지 전능하시고 나의 모든 것을 밝히 보시는 살아계신 여호와의 눈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는 실로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 하는 마음으로 땅을 밟아도 성전의 바닥을 밟는 것같이, 하늘을 쳐다보아도 성전의 천정을 보는 것같이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2. 제사장은 세상과 구별된 사람입니다.

성결의 히브리말 "코데스"는 "분리한다" 또는 "자른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르고 분리해서 성스럽게 구별한다는 말입니다. 세상과 죄에 대해서는 죽어 버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살아서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입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모여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들을 생각하며 인류의 죄를 회개하는 예배를 드렸는데, 기록에 의하면 제단에 관이 놓이고 개회 찬송을 부르며 모든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나와서 관 속을 들여다보았는데 관 속에는 시체 대신 거울 한 장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관 속에 있는 자신의 얼굴만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를 죽여야만 그리스도가 살아난다는 것을 상징한 예배였습니다.

 

3. 제사장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입니다.

제사장(성도)마다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자기를 소개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롬1:1, 빌1:1) 또는 하나님 종(딛1:1)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당시 종은 공민권을 가진 인격체가 아니고 주인의 재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장에 내어다 매매를 하였습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기독교 사상가 내촌감삼(內村鑑三) 선생의 묘배에는 '나 조국을 위하여, 조국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라는 갈이 쓰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사장(성도)은 '나도', '세계'도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바쳐진 사람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루터나 칼빈의 말대로 하나님 앞에 바로 나아가는 사제들입니다(萬民司祭說). 모든 사제들(성도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쳐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늘에는 영광이고 땅에서는 은총이 충만 또 충만할 것입니다.

 

 

성소에 들어오려면

레16:1-10

 

서론

하나님께서는 사랑은 많으시나 죄나 부정을 용납하시지는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를 잘못 드리다가 죽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론도 성소에 한 번 들어가려면 여간 두렵고 떨리는 것이 아닙니다. 삼가 조심하여 하나님의 법도대로 하려고 무척 애를 씁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1. 몸을 씻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는데 더러운 몸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로 깨끗이 씻고 깨끗한 돔과 마음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세제와 물로 씻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의 보혈로 씻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의 피로 씻음받은 자 만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성전에 출입하려면 몸을 깨끗이 씻고 출입하는 것이 경건한 면에서 좋은 것입니다.

 

2. 깨끗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려면 화려한 제사장 성복을 벗어버리고 초라한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겸손한 종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더 깊은 의미는 인간이 만든 의복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회개함으로 깨끗한 의의 옷을 입어야 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계7:13-14).

 

3. 예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본문 5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을 위하여 숫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숫양 하나를 취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자기 행위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내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어 주시는 분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지시고 죽어 주셨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하겠습니까(시116:12). 늘 울어도 눈물로써 같을 수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고 물질도 아낌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영원한 이방인으로서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도 바라볼 수 없고 그의 몸된 교회도 출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고 내세의 소망 속에서 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교회도 마음대로 출입하게 되었으니 교회 출입할 때마다 정결하게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정성껏 물질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다 진 밖으로 내보내라

민5:2

 

서론

여호와의 성소를 모신 진 가운데 여호와께서 거하시기 때문에 신성 불가침의 곳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한 자들은 무론 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부정한 자들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1 . 문둥병 환자를 내보내라고 하였습니다.

문둥병 환자를 진 밖으로 내어 보낸 것은 위생적인 이유도 포함되었겠지만 종교적인 이유가 더욱 중대하였습니다.

문둥병을 특별히 불결시한 것은 그것의 발생 과정에서 범죄가 원인으로 된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누누히 문둥병 환자는 신의 진노의 소치라고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2장 4-16절에 보면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걸리게 되었고, 열왕기하 5장 20-27절에 보면 게하시가 그 주인 엘리사를 속이고 나아만의 예물을 몰래 받아서 감추었다가 벌받아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역대하 26장 16-23절에 보면 웃시야 왕이 제사장의 만류를 물리치고 성전에서 분향하다가 저주받아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별궁에 갇혀서 죽을 때까지 살게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둥병 환자는 부정한 자 중에서도 첫째로 꼽혀 축출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2. 유출병이 있는 자를 내보내라고 했습니다.

유출병은 임질이나 화류병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병은 레위기 15장에 보면 그 내용이상세하게 되어 있는데 곧 성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자의 부정과 여자의 경도에 대한 부정입니다. 그중에서 세 가지의 자연상태와(레15:16, 18, 19, 24) 두 가지의 변태상태(레15:1-15, 25-30)를 말하였습니다.

이런 불결하고 부정한 자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진 안에 머무를 수 없으니 곧 진 밖으로내어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내보내라고 하였습니다.

본서 9장 6-8절, 19장 11-29절, 31장 19절, 그리고 레위기 21장 2절 등에 나타난 대로 죽음으로 인하여 부정해진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어떤 범죄를 인한 자들을 부정시하기 때문에 거룩한 진중에 용납될 수 없는 자이므로 축출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거룩하시므로 정결케 하기 위하여 이들을 내보내되 무론 남녀하고 다 내보내었습니다.

 

결론

하나님이 계신 곳은 성결해야 합니다.

거룩한 성소에는 거룩하신 분이 계시므로 깨끗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할 수가 없습니다.

병으로 뿐만 아니라 일체 그 마음의 더러운 생각까지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언제나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 경

성 경 활 용

1. 성경의 다른 이름들

(1) 책

(시40: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출17: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2) 하나님의 말씀

(히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잠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3) 성경

(마22:29)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언약

(히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한 일이 없었으려니와

(5) 율법

(시1: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6) 진리의 글

(단10:21)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네게 보이리라

(7) 여호와의 증거

(시19:7)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2. 성경이 기록된 이유

(1)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

(눅1: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2) 죄를 범치 않게 하려고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3)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요일2: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4)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요일5:13)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하려 함이라

(5) 생명을 위해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려

고

(요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7)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게 하려고

(요일2:14)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8) 교훈을 위하여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9) 자유케 하려고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0) 하나님의 비밀을 보이시려고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11)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게 하려고

(미3: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3. 성경 자체의 표현

(1)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킨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2) 확실하여 지혜롭게 한다.

(시19:7)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3) 정직하여 기쁘게 한다.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4)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

(시19:8)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5) 순전하다.

(잠30:5)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6) 진리이다.

(시119: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가 영원하리이다

(7) 영영히 선다.

(사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8)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케 되었다.

(마5:17) 내가 율법 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적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9)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한다.

(요5:39)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10)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한다.

(살전2:13)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11)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12) 빠진 것이 없다. 다 짝이 있다.

(사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13) 권세가 있다.

(눅4: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14) 영적인 말씀이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15)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14:24)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4. 성경이 신자에게 주는 유익들

(1)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딤후3:15)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 깨끗하게 한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 이다

(3) 범죄치 아니하게 한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4) 길을 인도한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5) 성도를 거룩하게 한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6) 생명을 얻게 한다.

(요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7) 복을 누리게 한다.

(눅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8) 자유케 한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9) 구원하는 힘이 있다.

(롬1:16)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0) 살리는 능력이 있다.

(행19: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5. 왜 성경을 묵상해야 하는가?

(1) 성령을 받기 위해서

(눅24:32)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2) 영생을 알기 위해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걷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3) 믿음이 생기기 위해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으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4) 안위를 얻기 위해

(롬15:4)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좋은 인도자가 되기 위해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6) 복음을 전하기 위해

(행8: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7) 기쁨이 충만케 되기 위해

(렘15:16)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8) 악을 이기기 위해

(요일2:14)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6. 성경을 묵상할 때의 바른 자세

(1) 주야로 묵상한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2) 온유함으로 받는다.

(약1:21)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3) 말씀을 따라 삼가한다.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4) 자녀들에게 가르친다

(신11:19)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매에든지 일어날 매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5) 말씀을 마음에 둔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6) 종일 묵상한다.

(시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7) 항상 곁에 두고 읽는다.

(신17:19)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8)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한다.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9) 말씀을 사랑한다.

(시119:97)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10) 말씀을 음미하며 상고한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11) 율법을 즐거워한다.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관련원어풀이

1. grafavi a{giai 그라파이 하기아이

(1) 성경.

(롬1:2)

 

2. grafhv 그라페-

(1) 기록된 것, 기록물, 성경 구절.

(막12:10, 롬11:2)

(2) 전체 성경.

(마21:42, 요5:39)

(3) 선지자의 글.

(마26:56)

 

3. iJerva gravmmatva 히에라 그람마타

성경.

(딤후3:15)

설교예화자료

무신론자를 변화시킨 책

 

전에 허다벌스 잉그설이라고 하는 무신론자가 역시 무신론자의 친구 류 월리스라는 대장에게 기독교를 반대하는 책을 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그 권면을 듣고 그런 책을 쓰기 위해서 우선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려고 성경부터 읽어보았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어 가는 가운데 생각이 점점 변했습니다. 나중에는 회개하고 오히려 성경에 감회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그분이 예수의 생활을 그 유명한 「벤허」라는 책으로 썼던 것입니다.

 

 

감옥 속에 가져갈 3권의 책

 

런던의 저명한 신문 편집자는 사회 각 계층의 주요 인물들인 국회 의원, 대학 교수, 작가, 사업가 등 백 명에게 설문 편지를 보냈습니다. 설문의 내용은 "당신이 만약 3년간 감옥에 가게 된다면 그때 당신이 그 감옥에 가져갈 수 있는 책이 3권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당신은 무슨 책을 가져가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책을 가져가는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답자들 중의 98%가 첫번째의 책으로 성경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소수만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거의 대부분이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무신론자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도 어려울 때나 고난을 당할 때 성경 이외에는 어떤 책들도 그들을 편안하게 하고 즐겁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강도를 변화시키는 성경

 

이탈리아에 시실리라고 하는 큰 섬이 있습니다. 어떤 권서가 밤길에 산골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돈을 다 뺏기고, 등에 지고 가던 성경책까지 뺏아서 모닥불 속에다 다 넣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권총을 대고 넣으라고 하니, 집어넣으려다 권서가 얼른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책을 불 속에 넣겠는데 당신은 여기에 무슨 말이 있는지 모를 것이 아니오? 그러니 내가 여기서 한두 마디만 읽고 불에 넣겠습니다. " 그러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권서가 성경을 척 펼쳤더니, 시편 23편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읽었습니다.

강도가 다 듣더니

"아하 ! 그것 이상한 말이 다 있구먼. 그 책은 여기 놓으시오." 합니다. 그래서 다른 책을 들면서 "여기서도 한 마디 읽고 넣읍시다. "하고 성경을 펼치니 산상 보훈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는 사람이 복받는다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강도는

"아하! 그것도 이상하니 그것도 넣지 마시오." 이렇게 해서 나중에는 책을 다 넣지 말라고 하더니 자기가 다 싸가지고 가 버렸습니다. 그 권서는 돈도 잃고 책도 다 잃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여러 해 후에 어떤 점잖은 사람 한 분이 그 권서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손님이

"당신은 언젠가 산에서 강도를 만났던 일을 기억합니까? "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오."하고 대답하니까

"그 강도를 기억합니까? 제가 바로 그 강도올시다. 제가 당신의 성경책을 빼앗아가지고 가서 좀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성경책을 읽는 가운데 저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를 회 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뿐 아니고 저는 멀리 가서 신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볼테르와 성경

 

18세기 불란서 자유 사상가 볼테르 같은 사람은 그때부터 40년 후에는 이런 책을 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혹평을 하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50년 후에는 그가 앉아서 그 이야기를 했던 그 집이 바로 성서 공회가 되어서 마루에서 천정까지 성경으로 가득 쌓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토론보다 독서를

 

전에 프린스턴에 잭 윌슨 박사라고 하는 유명한 구약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때에 프린스턴 대학 학생 몇 명이 와서 그 윌슨 박사에게 "우리는 구약의 이것도 믿을 수 없고 저것도 믿을 수 없는데 토론 좀 하려고 왔습니다. "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늙은 박사가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토론하는 것도 좋은데 성경을 토론하겠다니 성경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는가고 물어 보았습니다. 학생들은 성경을 한 번도 못 읽어보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박사는 나는 적어도 40년을 밤잠 안 자면서 몇 백 번을 읽고 연구했어도 믿지 못할 것이 있는데 우선 몇 번 읽고 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보통 성경을 읽지 않고 반대합니다. 우선 몇 번 읽어 보세요. 그러면 문제는 성경 자체가 여러분에게 대답해 드릴 것입니다.

 

 

잘못 읽혀진 성경

 

결혼 피로연이 막 시작되자 사회자가 결혼을 축하하는 편지와 축전을 낭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축전 중에 하나는 신부의 친구로부터 보내온 것인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성경의 장과 절만 적어 보냈습니다. 그 구절은 요한 1서 4장 18절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 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전신국 타자수가 그만 요한 1서의 '1'자를 빠뜨렸습니다. 그래서 사회자가 요한복음 4장 18절 "네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여라"라고 읽었습니다. 이때 모든 축하객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 해석 문제점

 

두 기독교 신자가 같은 좌석에 앉아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자 그중 한 사람이 도시락을 꺼내어 두 개의 샌드위치 중에 하나를 들고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점심을 준비치 못한 다른 사람은 그의 동료가 샌드위치 한 개를 재빨리 해치우고, 커다란 병에 든 우유를 마시는 모습을 배고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는 동료는 모른 척하며 두 번째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배고픈 사람 앞에서 너무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동료가 감정을 억누르며 그를 향해 점잖게 다음과 같이 타일렀습니다.

"나는 최근에 주님의 계명에 사로잡힌 적이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사랑하라'는 말씀을 아십니까?"

"거참 좋은 말씀입니다. " 하며 그 동료는 남은 샌드위치 조각을 마지막 입속에 집어넣으며 응수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또 다른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

 

 

외경(外經)

 

로마 카톨릭 교회는 1546년 트렌트 회의에서 에스드라 제 I , II서와 므낫세의 기도를 제외 한 문서를 정경 (正經)으로 공인하였습니다. 그것은 에스드라, 토비트, 유디트, 그리고 에스더서의 추기, 솔로몬의 지혜, 벤시라의 지혜서, 바룩, 예레미야의 서한, 아사리아의 기도문과 세 아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마카비 I, II, 므낫세의 기도문 등입니다.

그러나 루터 시대를 지나면서 신교도들은 이것들을 정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흠정역(欽定譯)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성서는 제임스 왕의 흠정역(欽定譯)인데, 매콜리는 영어가 다 없어 지도라도 오직 이 책만 있으면 영어의 아름다움과 힘의 전모(全貌)를 전하기에 족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황금사(黃金寺)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책은, 북부 인도의 시크교도의 성서입니다. 이 책은 마치 살아 있는 동양의 황후 같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시중꾼들은 황금의 자루가 달린 공작 날개로 된 부채로 하루 종일 시원히 해 주고, 심심할까 봐 오케스트라가 즐거운 음악을 연주합니다. 시크교도의 예배의 중심지 암리스터의 유명한 황금사(黃金寺)는 이 책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 도금한 무거운 동판으로 대리석을 쌓아서 지었는데 그 비용은 약 4백만 달러였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

 

미국 오하이 주 호일러 재판관은 법정의 책상위에 성경 한 권을 놓고 벌써 수천 명의 증인들이 그 위에 손을 얹고 "결코 진실 이외의 진술은 하지 않겠습니다. "고 서약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 변호사가 무심히 성경을 펼쳐보았더니 그것은 「아라비안나이트」였습니다.

 

 

사악성서

 

1531년 런던에서 발간된 바이블은 사악성서(邪惡聖書)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이 바히블에는 모세의 십계명의 하나인 "그대는 간음하지 말지어다"가 "그대는 간음할지어다"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록·시·묘사

 

문체가 청순하고 정확한 최대의 문학은 성경이다.

(H. 블레어)

 

성서는 사람이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을 말한다.

(안병무/ 우주시대와 신앙)

 

성서는 문학이지 교리가 아니다.

(G. 산타야나/ 스피노자 윤리학)

 

사람들 마음속엔 호랑이가 있고, 돼지가 있고, 당나귀가 있는가 하면 나이팅게일이 있다. 성경이 다양한 것은 그들의 활동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A.G. 비어스/ 악마의 사전)

 

성경의 첫구절은 자유의 언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금제(禁制)와 구속의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생의 출발도 마찬가지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성서는 신앙의 책이며, 교의(敎義)의 책이며, 도덕의 책이며, 종교의 책이며, 신으로부터의 특별한 묵시의 책이기도 하지만, 인간 자신의 개인적 책임, 인간의 존귀함, 동포와의 평등을 가르치는 책이기도 하다.

(N. 웹스터)

 

성서는 교회보다 더 오랜 것이다.

(스웨덴 격언)

 

성서는 결코 싫증을 일으키지 않는 유일한 책이다. <*성서는 기도의 생활이며,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영적인 책으로서 인간의 사상이나 교양 서적과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C. 힐티/ 독서와 연설에 대하여)

 

신약 성서에는, 확대하면 구약 성서까지도, 인간의 영혼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비평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를 비평한다.

(J. J. 채프먼/ 서간)

 

어느 성서의 구절을,바하의 음악으로 들어본 일이 있는 사람은 이미 다른 어떤 리듬에 의해서도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 '마태 수난곡'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강약과 장단의 리듬에 있어 바하의 낭송법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는 성찬설정의 언어를 기억해 내기는 전연 불가능하다.

(A. 슈바이처/ 음악가 · 시인, 요한 세바스찬 바하)

 

성서의 보급에 대하여 유익 또는 유해하다는 논의가 떠들썩했었다. 앞으로 시끄러울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명확하다 그것이 종래와 같이 도그마로서 환상적으로 취급되면 해로우며 신의 가르침으로서 풍성한 정담을 갖고 받아들이면 유익하다.

(J. W. 괴테/ 잠언과 성찰)

 

성경의 구절은, 남자와 여자라는 구절 속에 간직해 둔 계륵의 미약한 상징에 불과하다.

(H. 엘리스/ 인상과 비평)

 

성서는 빛을 던지고 돈은 온기를 던진다.

(유태 속담)

 

여성이 성서를 그녀의 권리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한, 여성은 남성의 노예다. 성서는 여성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 아니니까.

(R.G. 잉거솔/ 남녀 아이의 자유)

 

구약 성서를 머리가 없는 몸뚱이로 비유한다. 신약 성서는 머리이고, 사도(使徒)의 편지는 머리에다 씌운 왕관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지아비의 한 개 피 묻은 늑골에서/ 백년해로의 지어미를 빚으셨다는/ 성서의 신의 이야기는 실상/ 너와 나의 옛 사연이나 아니었을까

(김남조/ 너에게)

 

그분의 법전은 광야의 바람 내음이 풍기는 몇 말씀의 복음, 우리네 어린이의 숙제장과 꼭 같은 지질(紙質)에 적혀 밤이면 밤마다 잠없는 이의 머리 맡엔 이 말씀이 펼쳐진다. 세계의 어느 여숙(流宿)에도 등잔 옆에 귀중한 사신(私信) 같은 한 권의 성서가 놓인다.

(김남조/ 성탄송)

 

때로/ 전도서의 바람이/ 마음의 뜨락을 스치면서/ 시간의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푼푼이 모은/ 욕심의 촛불마저 꺼버린다.

(김상길/ 바람시초)

 

사도행전을 읽다가 상처투성이의 사도/ 바울을 만나봅니다. 피흘림의 사랑의 실천/ 그러한 놀라운 능력과 새로운 변화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양명문/ 뚝섬 독백)

 

펼쳐든 성경/ 한 줄 한 줄 평안을 안겨주고/나는 폭풍우에 아랑곳 않는다/ 떨던 집들도 고요 속에 잠들다.

(이영옥/ 홀로된 밤)

 

진리의 수수께끼 담아/ 진리의 수수께끼 담아/ 사람을 만들어 주는 책/ 소경이 아니고서야/ 어찌 멀리하랴.

(임출남/ 성경)

 

일용할 양식으로도/ 작은 괴로움이 있거든// 조용히 꿇어앉아/ 주기도를 읽어 보자//이슬과 빛으로/ 몸을 다스리는/ 오월의 꽃나무가 되리라

(박근영/ 오월에의 편지)

 

황촛불을 둘러싸고 앉아/ 어머니에게서 듣던/ 성탄절의 이야기/ 성경을 읽으시며/ 더듬더듬 말씀하시던/ 예수님 오시던 이야기

(황금찬/ 성탄절의 시)

 

성서는 하느님의 책이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열어 보임으로써 성서는 우리의 눈을 열어 인류에게 의미 있고 하느님께 바쳐진 것의 통일성을 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한 나라를 거룩하게 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성서는 삶을 어떻게 성화(化)시킬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는 구태여 성화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로써 우리는 성서가 없으면 안되는 책(冊)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성화될 필요성을 느낄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신비가가 광야에서 돌아오자 사람들이 열심히 물었다. "말씀해 주십시오. 하느님은 어떤 분이 십니까? " 그러나 고 사람인들 마음속 깊은 데서 겪은 것을 어찌 이루 말할 수가 있으랴. 대체 진리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랴. 결국 그는 사랑들에게 신앙의 양식문을 하나 지어 들려주었다--- 아무래도 부정확하고 그야말로 부적절한 표현이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행여나 양식문을 통해 사람들도 그가 체험했던 바를 스스로 체험해 보겠다는 마음이라고 생기겠거니 하며. 사람들은 양식문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것을 바탕으로 성문서를 작성했고,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신성한 신조로서 믿도록 의무화했으며, 해외로 나아가 큰 수고들을 하며 그것을 전파했다. 더러는 그것을 위하여 목숨마저 바쳤다. 신비가는 슬펐다- 그런 말일랑 아예 입 밖에 내지도 않은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을.

(앤소니 드 멜로/ 종교박람회)

 

요한복음, 로마서에서, 베드로의 편지,/ 사도행전에서 예수를 만났다. / 그때의 예수는 구원이었다. / 예수는 구원의 강가에서/ 나를 손으로 부르고 있었다.

(황금찬/ 나의 예수)

 

이윽고 우렁찬 합창의 선두에 선/ 그의 모습이 "주의 영광은 동쪽에서"라는 '구약'의 말씀인 양 성 정의/ 동편 정문- '황금의 문' 에 떠올랐다.

(스즈끼 도로우/ 성전청결)

 

뜰 안에 남은/마지막 잎새처럼/달려 있는/ 나의 신앙,/ 그러나 구약을 읽으면/ 그나마 바람에 위태로이/ 흔들린다/ 흔들린다

(김현승/ 겨우살이)

 

예수님은 고향 마을을 생각하고 우셨다. / 아아 나를 생각하시면서 울기도 했으리라/ 내가 슬픔으로 여위어 이렇게 불안해지는 것을/ 그 무렵 예수님이 모르셨을 리가 없었으리니/ 성서에 기록된 말씀 중 어느 구절을 읽어도/ 이렇듯 마음이 벅찬 감동을 느낀다. // ‥‥정녕 당신의 성서 속을 찾아본다면/더욱더 당신의 사랑의 증거를 찾게 될 것입니다. / 당신의 열띤 말씀과 저주의 말씀을 여기서 듣는 것보다/ 나는 풀잎처럼 누우며 당신의 멸시 어린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 뿌리째 흔들려 구원 얻기 힘들게 됨으로 해서 나는 마른 잎처럼 쓰러질 것입니다.

(휼스호프/ 예수님은 우셨다)

 

노동으로 갈라진 우리들의 좁은 뜨락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 당신의 땅에 축복처럼 우리가 복음을 쌓아 놓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 말씀의 씨앗을 배워/ 툭툭 불거지는 이삭들이/ 스스로 경건히 머리 숙였습니다. / 자욱히 축북의 햇살이 내리고/ 먼 지평으로부터 바람 일어서/ 감사로 출렁이는 이 들판에서/ 돌아오는 황토길은 가난하지 만/ 복음으로 돌담 쌓고/ 기도하는 머리 위로 저문 하늘에 종이 울립니다. / 순명(順命)으로 살아감이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라서/누비처럼 기워 입고 고개 숙였습니다.

(한광구/ 가을기도)

 

한 장 한 장마다 물결치는 바다/ 바다는 살아 있는 말씀.// 말씀 위에 은혜의 물결이 굽이치고/ 주님의 목소리 들려온다. // 정의의 예언자처럼/ 성난 바다의 높은 파도도 일고//메마른 내 가슴의 모래 기슭을 적시는 은혜의 물결이 흡족하다. // 아침마다 조용히 성경을 들치며/ 물결치는 하나님의 산 바다를 본다.

(강대식 / 성경)

 

이 책은/ 생명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니/ 그리 알고 죽는 날까지/ 손에서 떼지 말고 읽어라.// 이 말씀은/ 어머님이 유언으로/ 남기신 말씀/ 나는 그 성경을/ 읽고 있다. // 창세기와 출애굽기,/ 여호수아, 사무엘/ 예레미야와 애가/ 욥기와 시편을/ 그리고 아가와 전도서.//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요한의 복음서//하느님이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베드로의 편지/ 일 장 이십사 절/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 / 어머님은 가시고/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 있고/성경은 어머님의 말씀대로/생명의 책이 되어/ 바로 내 눈앞에 있고/ 나는 그 책을 읽으며/ 어머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그리며/ 오늘을 살아가고있다.

(황금찬/ 생명의 책)

 

무릎꿇고 그는 기도하고 있었다. / 거칠게 맑은 수정 사이로부터 갈릴리 물고기 한 마리가 고요히 헤엄치고 있었다/ 군중과 예언의 좁혀진 골짜기를 흘러/ 신약의 잔은 위기를 안은 늪에 떠있었다. / 그 위로 가느다란 한 숨이 지나갔다/세계의 구석에서 덜컥 무엇이 무너졌다/ 섬세한 십자가 날았다.

(다니가와 간/ 겟세마네의 밤)

 

구약의 불기등이 치솟는 땅을/ 굽어 보면서/ 윈도우 사이드엔 얼음이 언다.

(권일송/ 남지나해상에서)

 

하늘의/ 밝은 빛이/ 이 땅을 비추시니/ 복음이 씨앗되어/ 백 배로/ 여물었다.

(홍안의/ 한국이여 새 아침이 밝아온다)

 

성서는 인간에게 그의 본성이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 그가 모든 조건들보다 한층 위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단순한 행위속에 내포되어 있는 엄청난 의미를 파악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만큼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가는 우리가 인간 행위의 성스런 품성을 얼마나 민감하게 알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인생이 품고 있는 신성한 뜻을 꿰뚫어 보는 것이 성서의 뚜렷한 메시지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우리 온 세상 헤매며 진리를 찾는다. / 조각된 돌에서 두루마리 글에서/ 옛날의 모든 마음의 꽃밭에서/ 선량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따온다. / 그리고 최고의 것을 찾다 지쳐 버린 탐구자는/ 등에 진 짐에 눌려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성인들이 얘기한 모든 것들이/ 어머니가 읽으시던 성경 속에 있었음을 발견하다.

(J. G. 휘티어)

 

아내가 평생 안고 다니던/손때 묻은 성경/개역본 신구약 합본/ 지금은 내 머리맡에/조용히 놓여 있다. //나는 그 성경을 넘겨본다./ 넘겨 진 글줄에는/ 붉은 줄로 그어놓은 데가/참으로 많이 눈에 보인다. //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은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 오십육 장 십사절) ./ 몇 번이나 읽었기에/ 그렇게도 정성들여 줄을 그었을까/ 넘기는 책장마다 때로 변한/지문들/ 아직도 체온이 식지 않고 그 속에 남아 있다. // ‥‥새벽 기도에 갈 때/ 기도원에 금식 기도로 갈 때에도 놓지 않고 들고 다니던/ 하나님의 말씀.// 어떻게 놓고 갔을까/신앙이 없는 내게/ 믿음의 불을 주려고 놓고 갔을까/ 성경을 뒤적이며/살아 있는 아내의 신앙을 생각한다.

(황금찬/ 아내의 성경)

 

성서는 "말의 거룩함"이다‥‥ 성서가 다루는 것은 신성이 아니라 인성이다‥‥ 유다교는 예언자들의 종교가 아니라 민중의 종교다‥‥ 성서의 계시는 예언자들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모든 인간을 위해 거기에 있는 것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눈물젖은 성경에 퇴색한 필적이 밤낮으로 눈앞을 어른거릴 때, 주 나를 끔찍이 사랑하시는 주여, 나의 노래는 아직 시들지 않았습니다.

(고진숙/ 영원히 노래하게 하소서)

 

 

설 교 노 트

 

성경을 상고하라

요5:39

 

서론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와서 어떤 여자가 이 세상에서 일곱 명의 남편을 두었는데 내세에서도 그럴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인자하신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과분의 변함없는 규칙과 지침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1. 성경을 상고할 이유

(1) 모든 인류가 어떻게 아담 안에서 죽었는지에 대해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해 교회법을 설명해 모든 내용과 소위 성경이라고 불리는 책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속 무죄한 상태에 있을 수 있다면, 그에게는더 이상 하나님의 법의 계시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비참함과 타락, 다시 말해서 아담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말해 줍니다.

(2) 모든 인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방법을 계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담 안에서의 우리의 타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신생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상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우리의 구원에 대한 강령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약의 계시, 즉 우리를 화평의 길로 이끄는 빛을 담고 있으므로, 우리 모두는 성경을 읽고 상고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똑같이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한 존재들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는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분과 연합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을 상고하는 방법들

(1) 성경의 중요한 목적을 상기해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되어진 중요한 목적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방법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겠습니다.

(2) 겸손하게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경 속에 드러난 지식을 결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란 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알며, 그들이 자라나도록 해 주는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소원하는 자들입니다.

(3) 성령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말씀들은 영적으로라야만 분별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자연인은 그말씀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지시를 받아야만 확실하게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는 중생의 교리에 완전히 무지하였습니다.

(4) 성경을 상고하기 전에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당신은 성경을 읽기 전에 항상 기도합니다. 또한 당신이 성경을 읽고 있는 중에도 짧게 부르짖는 기도를 중간중간에 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구구절절 기도하도록 하고 당신이 성경의 어떤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당신이 읽은 그 말씀들이 당신의 마음속에 새겨져 선한 삶을 영위해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성경은 당신의 영혼을 교화시키고 일깨우며 또한 불붙게 합니다.

(5) 끊임없이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성경을 상고하라." 이 말은 숨은 보화가 그곳에 감춰 있는 것처럼 성경을 깊이 파고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광산에서 광물을 채굴하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지혜롭게 성장하고자 한다면 계속해서 그분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매일같이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보고 맛들이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결코 배고파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 자신 속에서 기쁨을 찾는 거짓된 맛을 버리고 더 이상 죄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면, 당신은 그러한어설픈 즐거움을 경멸하고 당신이 한때 즐겼던 일들에 대해 얼굴을 붉히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은 벌꿀과 벌집보다는 더 달콤한 것이 될 것이며, 금과 은보다도 더욱 소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영혼은 활력과 비옥함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

빌4:13

 

서론

교회는 인간 수단 방법에 의하여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하는 교회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중심한 교회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말씀의 능력은 어떠한 것입니까?

 

1. 말씀은 믿음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롬10:17).

구원은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의지하지 아니하고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힘이 있는데 곧 믿음은 말씀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의지하지 아니하고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승리 생활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2. 말씀은 성도 생활의 척도가 됩니다.

주의 말씀을 존중히 여겨야 할 조건은 우리 생활의 척도가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계시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복음을 받게되고 말씀을 떠나면 화를 받게 되므로 생활에서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 살아야 생명의 양식이 되어 영혼이 새롭게 살찌움을 받게되고 영혼이 잘될 때에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따르게 됩니다.

오늘날은 방향 감각을 잃은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 때에 인간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가치를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고운 노래보다는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달게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잠3:1에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3. 성경은 참 지혜를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혜란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폭교가 들어가 말씀이 뿌려지는 곳마다 환경이 달라지고 인간미가 달라지며 깨달음이 눈부시게 달라집니다.

그리고 역사의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성경의 영향이 컸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영원한 세계가 가리워져 있으나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면 영원한 세계를 발견하게 되고 지혜롭게 이 세대를 대치해 나가며 영원한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걸어가게 됩니다.

 

결론

바울도 웅변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곧 능력이 되어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성경 안에는 지혜도 풍족하고 문화, 예술도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서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육신으로 오신 이의 이름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별호가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로고스(말씀)는 그 실존을 말한 것으로 임마누엘이란 의미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1:1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육신을 입고 아들의 명분으로 오시어 임마누엘이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된 것입니다.

말씀이 인간이 된 목적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거하시고, 우리 가정에 거하시고,우리 교회에 거하시고,우리 심령 속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1. 말씀은 대화를 요구하십니다.

예수님은 대화를 위하여 즉, 상담자로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9장에 "모사"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혜자로서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으로 이 제상에 보내시고 인간 속에 계시면서 인간과 함께 대화를 나누시는 상담자가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과 대화가 끊어진 상태는 멀어진 상태요, 나 자신이 타락과 죄를 범한 증거인 것입니다.

가정 안에, 교회 안에, 우리 심령 속에 예수님을 모시고 대화로 시작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2. 말씀은 대인 관계의 이해를 촉진시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것은 인간의 모든 사정, 갈등, 상처를 예수님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서 종의 모양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 자리가 아니면 인간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대하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바른태도입니다. 말씀에 순응하는 자는 모든 문제를 이해하고 크게 느끼며 그 속에서 오히려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말씀은 화해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제는 다 이루었다 하시면서 세상을 떠나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허시는 역사이십니다.

예수님을 화평의 왕, 평강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화평의 공작을 생각하고 내가 그 말씀에 맞추어 나가는 동안에는 언제나 화평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것은 대화와 이해와 화평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현실적으로 적용하여 피차 갈등이 없고 막힘이 없도록 대화해야 합니다. 왜곡된 감정이 이해될 때에 개인적인 신앙과 가정과 교회가 부흥과 발전을 가져옵니다. 말씀 중심에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말씀이 육신되셔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친절한 상담자이십니다. 모사이십니다. 우리의 대화 상담자이십니다. 이로써 하늘과 땅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대화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너무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천사가 못하는 일을 해 줍니다.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 문제를 해결받아야 합니다.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화해자가 되십니다. 위대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크게 3가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분리하고, 교량으로 이어 주고, 화평하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화평의 왕이 되었으니 하늘과 땅,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하고, 인간과 인간도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시119:9-16

 

서론

성경은 예로부터 거룩하고 경건한 성자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우주를 경륜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도리를 기록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심령의 글이면서 또한 문학적으로도 위대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학자나 무식한 자나 남녀 노소를 막론하고 위대한 영감을 주고 활력을 주는 책이니 진실로 성경은 생명 책입니다.

인생의 시와 경건, 문학을 겸한 시편이나 고통 문학으로 세계에 독특한 지위를 가진 욥기 같은 글은 성경의 가치를 높이는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1.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성경으로 거울을 삼으면 어지러워지기 쉬운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극히 약하고 변하기 쉬운 인간성을 그대로 묘사하였습니다. 어떤 기사는 차마 그대로 읽기 거북스러운 추악한 면까지도 그대로 기록하여, 인간이 자기 모습을 그대로 돌아보고, 공의로운 하나님을 우러러보고 고민하고 참회하게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따라서 잘한 일, 잘못한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여 인생의 거울이 되게 하였습니다(고전10:6).

 

2. 성경은 인생의 갈 길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 발의 등불이요, 우리 길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지혜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많으나,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이며 사상이기 때문에 구원의 길과 해결의 방법을 알려 줍니다.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밀들은 성경을 애독하여 감화를 많이 받았고, 미국의 건국 시조 워싱턴과 흑인 노예의 해방자 링컨도 어려서부터 성경을 애독하여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마틴 루터는 성경을 사랑하고 연구하여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했고,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즐리도 말년에 성경 한 권만 연구하면서 '한 책의 사람(The man ofone Books)'이라고 한 것은 모두 성경으로 어두운 갈 길에 빛을 삼았기 때문입니다.

 

3. 성경은 영혼의 병을 고쳐 주는 약입니다.

신약과 구약은 사람이 마음에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살려 주는 약입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요, 정신적 양식을 먹고 심령이 건강해야 하는데,사람들은 흔히 영의 양식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정신이 쇠약해지고 세상의 거친 풍파에 시달리고 흔들리다가 넘어지고 쓰러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사람에게 영생의 희망을 줍니다. 사람의 가장 큰 불안은 죽는 일과 죽은 다음의 일이요, 가장 큰 희망은 내세의 영원한 생활인데, 이런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해답을 주는 것은 성경뿐입니다.

영국의 어떤 여자가 허영심이 많아 타락한 생활을 하다가, 구세군의 뿌스 대장을 만나 전도를 듣고 그의 원하는 대로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6장 28절의 말씀과 나사로의 비유말씀(눅16:19)을 읽고 회개하고 좋은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여자의 허영심의 병을 치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만병 통치약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결론

성경은 사람의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이며, 인생의 갈 길을 비춰 주는 빛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병을 고쳐 주는 약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을 잘 읽어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감사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즐겨 읽자

딤후3:15-17

 

서론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고, 그의 자본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사랑하면 그 믿음이 깊어집니다. 귀한 보화들을 얻게 됩니다. 강인한 민족애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수한 두뇌를 개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1. 성경을 즐겨 읽으면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지혜가 있습니다. 사람을 잘 사귀는 지혜, 잘 가르치는 지혜, 사건을 잘 해결하는 지혜, 전투를 잘하는 지혜,짐승을 잘 다루는 지혜 등 실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지혜는 다 이 세상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편리하게 사느냐에 관심을 둔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를 가지고 사람의 영혼이 구원을 받지는 못합니다.

다른 여러 가지 지혜를 파 가졌다고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갖지 못했다면 참된 지혜자는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지혜는 별로 갖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졌다면 그는 참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성경을 읽는 동기가 고전이므로, 큰 종교의 경전이므로, 고대의 법이므로, 역사이므로, 문학이므로, 철학이므로, 도덕이므로 해서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원간에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을 즐겨 읽으면 새 생명을 받은 자들이 바로 자라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데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감동 없는 교육은 역효과를 가져 옵니다. 감동 있는 교육이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오늘날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데 이는 학교 교육 내용에 윤리 도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동 있게 배우지 못해서 입니다. 누가 감동을 줄 수 있으며 무슨 책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책입니까?

성경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이는 기록이 될 때에 이미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감동을 받으니 얼음같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굳은 마음이 양털같이 되고, 더러운 마음이 감동을 받아 새마음이 되고,어둔 마음이 감동을 받아 대낮처럼 밝아집니다.

책망은 좋은 것이지만 감동이 없는 책망은 감정만 일으킵니다. 성경은 감동을 주며 책망을 합니다.

 

3. 성경을 읽으면 주의 사람으로 온전케 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성숙한 사람이 됩니다. 처음 믿을 때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성경을 계속 읽어서 바로 자라고 더 계속 읽어서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음식을 먹을 때에 잘 자라듯이 영혼도 성경 말씀을 잘 읽음으로써 잘 자라납니다. 그래서 인류 문화에 기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결론

성경을 즐겨 읽어야 합니다. 즐겨 읽는다는 것은 재미를 붙여 읽는 것을 말합니다. 날마다읽는 것이 좋습니다. 일생을 바로 살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될 것입 니다. 우리 모두 성경을 즐겨 읽읍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히4:12-13

 

서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은 정확하고 오류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에 대하여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정경으로서의 성경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가리켜 '정전' 이라고도 합니다. 정전(正典)이란 원래 "자 막대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측정할 때 자막대기로써 기준을 삼듯, 성경은 기독교의 기준으로 근본적인 진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도덕적, 종교적 생활의 올바른 표준은 성경에 근거합니다.

정경을 결정할 때, 어떤 개인의 의견이나, 단시일에 결정한 것이 아니라 두 가지의 기준에 의해서 결정된 것입니다. 첫째는 그 책의 내용이 권위의 책, 즉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며, 둘째는 그 책이 백성들에게 의하여 공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기준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지면 정경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2. 계약의 글로서의 성경

성경에서 구약 ·신약이란 말은, '구약'은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허락하시는 언약이고, '신약'은 보내시기로 언약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성취된 언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 신약이란 옛 계약과 새 계약의 뜻이 있습니다. 그 계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계약의 서'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인류 구원의 계약을 맺으셨으나(창15:1-5),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 민족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시어 새 계약을 맺는 장면을 최후의 만찬에서 나타냈습니다(막14:23-24). 여기에서 "신약"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는 새 계약의 완성자요(히8-10장), 우리는 그 백성들입니다(고후3:6).

 

3. 하나님의 말씀의 세 가지 형태

(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는 영원하신 말씀으로서 계속해서 가운데에 계십니다(요1:14).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곧 하나님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9)"고 말씀하시며,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라고 하셨습니다.

(2)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신약과 구약을 합하여 한 책으로 되었으나, 이것은 단순히 외형만 한 책으로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일관되어 있습니다 쓴 사람의 수가 모두 44인이요, 처음 쓰기 시작하여 나중까지 대략 2천 년의 시일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중심 문제가 항상 그리스도에 집중되어 씌어졌음은 마치 한 사람의 기자가 고정된 한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단숨에 쓴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순한 서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3) 설교도 또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초하여 전하는 말을 설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신학자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요, 설교는 인간의 언어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언어인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요, 인간의 언어를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잘 깨달을 수 있는 영안이 열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잘 받아서 그 말씀대로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이란 무엇인가

딤후3:13-17

 

서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의뢰한다고 할 때는 그 근거와 표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의해서 신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바른 것을 취해서 바른 신앙을 지향하고 나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표준을 잘못 알고 잘못 추구하고 나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감동하여 그 종들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셨던 성경을 떠나서는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1. 성경은 신 ·구약뿐입니다.

성경이라는 말은 '거룩한 책'입니다 성경은 구악 39권과 신약 27권으로 제한합니다. 그 외의 외경이나 위경은 오도된 성경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성경은 인간 구원을 위한 책으로, 구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실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옛 계약'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리스도가 오셨음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성경의 저자는 성령이시고 그것을 기록한 기자는 약 40명으로 학자, 왕, 선지자, 농부, 의사, 제자들입니다. 성경의 기록 기간은 주전 1500년 경에서부터 주후 96년 경으로 추산됩니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창1:1부터 계22:21까지의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계시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바로 보고 바로 기록하게 하신 책입니다(딤후3:16:17, 벧후1:20:-21).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은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으로 믿고 그 책에서 참생명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 그것 자체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3. 성경의 법칙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정경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바른 법" 혹은 "잣대"라는 뜻입니다. 법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고, 잣대는 길고 짧은 것과 곧고 굽은 것을 분간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을 믿고 자녀로서 마땅히 행할 본분을 바르게 규정짓는 데 사용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신앙과 본분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또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방향을 조금도 틀림없이 지시하여 줌으로 성경은 정확 무호한 법칙이라고 합니다. 이 법칙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세상에서 조금도 틀림없이 바로 지도하여 주는 책은 타락한 영혼의 기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천지와 그 모든 질서를 창조해 내신 하나님이 쓰신 성경입니다.

 

결론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죄로 인해 필경 죽을 수밖에 없는사람들에게 죽음에서 건져 주겠다는 말씀은 더 말할 나위 없는 큰 선물이 됩니다. 과연 성경은 구원의 책으로서 오늘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연구하여 그것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여 참 생명을 얻고 영생 복락을 누리며 아직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전하여 같은 복을 받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성 령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다른 이름들

(1) 하나님의 신

(창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2) 주 여호와의 신

(사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3) 아버지의 성령

(마10: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4) 진리의 영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5) 생명의 성령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6) 성결의 영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으니

(7) 그리스도의 영

(롬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 양자의 영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9) 아들의 영

(갈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10) 보혜사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11) 약속의 성령

(엡1:13)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2) 주의 영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3) 주의 성신

(시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2. 성령의 신적 요소

(1) 삼위일체 위격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 영원성

(히9:14)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3) 전능하심

(눅1:35) 성경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4) 전지하심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5) 만물을 창조

(욥33:4)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6) 생명을 주심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7) 인간을 구원하심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8) 예언하심

(삼하23: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3. 성령의 인성적 요소

(1) 말씀하심

(행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2) 생각나게 하심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3) 위로하심

(행9:31)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4)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심

(롬8: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5) 근심하심

(사63:10)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6) 욕을 당하심

(히10:29)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7) 사람의 행위를 인도하심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4. 신자들 사이에 역사하는 성령의 사역

(1) 거듭나게 함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2) 성도 안에 거함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3) 진리 가운데로 인도

(요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4) 권능을 채우심

(미3: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우심을 입고

(5) 하나님의 자녀로 증거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6) 기쁨을 주심

(살전1:6)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성도를 하나되게 하심

(고전12:1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8)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함

(엡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9) 자유케 하심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0)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부어 주실

(롬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11) 교제케 하심

(빌2:1)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12) 유익되게 하심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리스도인 지도자 선택을 인도하신다.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5. 언제, 어떻게 성령이 임하는가?

(1) 하나님이 주서야

(사44:3)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2) 여호와와 대화할 때

(겔2:2) 말씀하실 때에 그 신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 구하는 자에게

(눅11:13)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4)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보내시어

(갈4:6)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5) 안수 받을 때

(신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6) 세례를 받을 때

(행2:3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7) 모여서 기도함으로

(행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8) 기도 할 때

(겔11:19) 내가 그들에 게 일치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9) 의롭고 경건해야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의 의롭게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니라

(10) 순종해야

(행5:32)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11) 믿음이 충만해야

(행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6. 성령받은 자의 삶

(1) 증인이 된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2) 몸의 행실을 죽인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3) 의와 평강과 희락의 생활을 한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4) 자유한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5) 의의 소망을 기다린다.

(갈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영생을 거둔다.

(갈6:8)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7. 성령받은 증거

(1) 총명해 진다.

(사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2)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

(겔36:2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된다.

(고전12:3)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아버지께 나아가게 된다.

(엡2:18)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5) 주 안에 있음을 알게 된다.

(요일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6) 여호와의 규례를 행한다.

(겔36:27)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8. 성경에서 성령을 묘사하는 것들

(1) 불

(시104:4) 바람으로 자기 사자를 삼으시며 화염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행2: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2) 비둘기

(눅3: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링하시더니

(3) 바람

(행2: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4) 기름

(히1:9)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5) 인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관심 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6) 보증

(고후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7) 비

(호6:3) 피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땀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관련원어풀이

1. vd,qo j"Wr 루-아흐 카-드슈

거룩한 영, 성신.

(사63:10-11)

 

2. @yhla> j"Wr 루-아흐 엘로힘-

하나님의 신.

(창1:2,겔11:14)

 

3. pneu'ma(tjou) qeou 프뉴-마 데우

하나님의 성령.

(마12:28, 고전6:11)

 

4. pneu'ma ku+vrion 프뉴-마-큐리온

주의 성령.

(눅4:18)

 

5. to pnveuvma !Ihsou' 토 프뉴-마 예수

예수의 영.

(행16:7)

설교예화자료

꺼지지 않는 불

 

존 번연이 지은 「천로 역정」이란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러한 얘기가 있습니다. 한 기독도가 어떤 방에 들어가 보니 방 옆에서 불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불을 끄려고 물을 퍼붓고 있으나 불은 꺼지지 않고 그냥 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저 불이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가 이상해서 가 보니 어떤 점잖은 분이 병에다 기름을 가득 담아가지고 그 뒤에서 계속해서 그것을 부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이 안 꺼집니다. 이 악하고 음란하고 죄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믿는 사람들의 강한 신앙의 불길과 우리 교회의 성령의 불길이 꺼지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속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성령께서 계셔서 은혜를 충만히 부어 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평안을 지키시는 분

 

신앙심이 깊은 어느 성도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부형님이 버스를 타고 시골길을 가는데 차가 비탈길을 내려가는 순간 버스 운전사가 갑자기 "핸들의 팔이 빠져서 버스를 조정할 수가 없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와 동시에 버스는 곤두박질쳐서 내리박길로 마구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사람살려" 하고 아우성을 치며 온통 수라장이 되었지만 그 부형님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한없는 평화가 넘쳐나 버스가 전복되었어도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고,아무 상처도 없이 차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그 부형님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한없는 평화로 채워 주셨고 그의 지각을 뛰어나게 하셔서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계시

 

미국에 있는 카네이숀 밀크 회사는 전 세계 각처에 방계(傍系) 회사가 뻗쳐 있는 큰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부사장은 나하고도 아주 가까운 사이로 믿음이 돈독하고 성령 충만한 분입니다. 이 부사장이 어느 날 밤, 자다가 일어나서 기도를 하는데 성령님께서 "곧 회사에 있는 돈을 전부 모아 독일로 가져가서 독일의 화폐로 바꾸라."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사장은 날이 밝자 회사에 출근하여 아무 말 없이 회사에 있는 달러를 전부 거두어 독일에 가서 마르크로 바꾸었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회사는 발칵 뒤집히다시피 하였고 심지어 '돌았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달러 평가 절하가 있었습니다. 달러를 가진 회사에서는 많은 손해를 보았지 만, 마르크를 가진 회사는 달러 평가 절하로 오히려 돈 가치가 더 있게 되어 가만히 앉은 채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부사장이 정신 이상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달러를 마르크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에, 이 회사가 막대한 이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부사장에게 몰려와 물었습니다. "당신의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놀랐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오? ", "내게 지혜가 있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나는 성령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행한 것 뿐이오."라고 그는 대답했다고 합니다.

 

 

성전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에 선생님이 자그마한 상자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여러분, 이 작은 상자 안에는 금이 가득 들어 있어요. 그러면 이 상자는 무슨 상자라고 하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한 어린 소년 학생이

"선생님, 그것은 금상자입니다. "라고 하자 맞았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시며 또 책상 아래에서 다른 상자 하나를 꺼냈습니다.

"여러분, 이 상자에는 썩은 뱀이 들어 있어요."라고 말을 꺼내자 한 학생이

"물론 썩은 뱀상자지요 "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그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같은 상자지만 금이라는 귀한 물건이 들어있으니 금상자라고 하며 소중히 취급되고, 썩은 뱀상자는 괄시를 당하지요." 그리고 이어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지만 지혜와 지식, 사랑 등의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면 존경받고 높임을 받지만, 욕심이나 거짓이나 추하고 나쁜 것들이 가득하면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지요."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금 같은 믿음으로 가득 차면 성령의 거처가 되고 성전이 될 수 있고, 성령의 은총과 기쁨과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찬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성령이 거하시는 성령의 거처, 즉 성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록·시·묘사

 

성령이여/ 오소서/ 봄바람 되어 오소서/거치른 나의 맘에/ 생명 입김 보아소서/ 움이 돋고 꽃이 피어 새 가지를 이루도록/ 소생의 생기 바람/ 어서 내게/ 오소서/ 성령이여/오소서/ 강바람 되어 오소서/ 병들은 나의 맘에/ 은혜 손길 흔드소서/ 물로 씻고 정결하여 새 사람을 옷입도록/ 치유의 맑은 바람/어서 내게/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산바람되어 오소서/ 힘 없는 나의 맘에/능력 불꽃 태우소서/ 메마른 뼈 일어나서 새 역사를 펼치도록/ 권능의 세찬 바람/ 어서 내게/ 오소서// 성령이여/ 오소서/ 들바람 되어 오소서/ 설익은 나의 맘에/축복 기름 떨구소서/ 일백 배로 열매 맺어 새 세계를 이루도록/ 결실의 향기 바람/ 어서 내게/ 오소서/

(홍안의/ 성령이여 오소서)

 

아/ 구해 보시오/ 성령을/ 아 받아 보시오/은사를/ 우리 주님 약속하신/ 성령충만 받을지라// 신령한 것/ 나타남은/ 유익하게 하심이라/ 한 성령이 행하셔서/ 그 뜻대로 주시도다// 어떤 이는/ 지혜 말씀/ 성령따라 지식말씀/ 다른 이에 큰 믿음을 주시리니/ 증거하라// 어떤 이는/ 병고침을/ 성령으로 능력 행함/ 다른 이에 예언함을 주시리니/ 봉사하라// 어떤이는 영의 분별/ 성령 임해 방언 말함/ 다른 이에 통역함을 주시리니/ 찬송하라// 얼마든지/ 부르시는/ 먼 데 사람 모든 육체/ 아낌없이 부어주어 주의 일꾼 되게 한다// 아/ 구해 보시오/ 성령을/ 아 받아 보시오/ 은사를/ 우리 주님 약속하신/ 성령충만 받을지라/

(홍안의/ 성령의 은사)

 

그대 아 성령이여,/ ‥‥처음부터 당신은 임석하시어 거창한 날개를 펴고/ 비둘기와 같이넓은 심연을 덮고 앉으사/ 이를 품어 태어나게 하셨나이다.

(밀턴/ 실락원-서시)

 

오늘 내 모습을 얼마나 성령충만한 모습인가? 죄로 인해 찬양을 잃어버린 그야말로 맛잃은 소금이 되어있진 않는지?

(이동녘/ 시편 구십칠 편 칠십팔 절 묵상)

 

밀려오는 어둠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해도/내 영혼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성신의 밝은 빛이 있다.

(정일홍/ 여기 이 자리에 머물고 싶다)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하느님은 멀리만 계신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그리스도는 과거에만 머무신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복음은 죽은 문자에 불과하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교회란 한낱 조직에 불과하다. /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권위란 한낱 지배하는 것일 뿐./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선교란 한낱 선전광고에 불과하고/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전례란 한낱 과거의/ 회상일 뿐./ 성령이 아니 계시다면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노예들의 윤리에 불과하다. // 그러나 성령 안에 우주는 온통 잠을 깨고 공동체를/ 낳는 산고(産苦)로 신음하고 있다. // 성령이 계시면 부활하신 그리스도 여기 계시고/ 복음은 찬란한 생명력을 내뿜고/ 교회는 성삼위(聖三位)공동체와의 통교를/ 의미하고/ 권위는 해방자의 섬김이 되며/ 선교는 성령강림의 축제가,/ 전례는 기념이자 공동체에 미리 참여함이 되고/사람들의 행위는 하느님으로 가득 차리라".

(수에 넨스/ 성령은 나의 희망)

 

앞산에 떠오른 해도/ 유난히 큰 웃음을 발하여/금빛을 마구 뿌리고/ 성령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성교/ 영혼의 하얀 눈)

 

아, 아침은 갈색 동녘에서 솟아 오른다/ 성령이 굽은 세계를 그 포근한 품으로/ 품안으시니, 아, 찬란한 두 날개로

(홉킨즈/ 하나님의 장엄)

 

회개의 세례를 받기 위해 모여든/무리들로 떠들썩한/ 요단강 기슭에서/ 탄생의 밤에 들리던 천사의 노래소리가/ 어슴푸레한 기억의 벽에/ 먼 파도소리 같은 메아리를 울리고 있다. / 예수 위 에/ 들꿀 냄새 풍기는 수염난 노인이/ 몸을 굽혔을 때/ 짙게 드리운 구름이 갈라지며/ 새어나온 빛의 궤도를 따라/ 한 마리 비둘기가 날아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하는 소리를/ 사람들은 먼 천둥소리처럼 들었다. //그리고 나서/ 예수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비둘기가 함께 있어/ 홀로 고요히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밀려드는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때에도/하늘과 땅 사이/ 예수와 사람들 사이를/ 비둘기는 계속하여 왕복하면서/ 사자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가가아 히로코/ 성령이 비둘기처럼)

 

 

설 교 노 트

 

보혜사

요14:16-20

 

서론

보혜사는 우리 기독 신자들의 보호자요, 안내자로서 없어서는 아니될 가장 존귀한 분이 십니다. 그러나 이 보혜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무관심 상태에서 지나가는 신자가 비일 비재입니다. 그 이유는 성 중에 오직 요한복음에만 네 번 언급이 되어 있을 뿐 다른 성경에는 별로 취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한1서에 단 한 번 취급하였으나 헬라어 원문상 동일하지만 우리나라 성경에는 "대언자"로번역을 했습니다(요일2:1).

이 보혜사는 예수님이 밝힌 바와 같이 주님 이 세상을 떠나가서야 하나님 이 보내 주시는진리의 영이요, 또는 성령으로서 우리 기독교 신자들과 영원히 같이 계시면서 위로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1. 보혜사의 의의

성서에 오직 다섯 번 기록되어 있는 이 보혜사는 어떠한 분이신지 그 의의에 대해서 밝히려고 합니다.

(1) 어의에 관해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하였는데 그 뜻을 직역하면 "도와주시기 위해서 불리움을 받아 온 자"라는 뜻입니다.

즉, 주님이 피를 흘려 구속하신 성도들을 도와주시 기 위하여 하나님에게 불리움을 받아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는 분명히 이 세상 성도들을 위하여 주님과 교체하여 주님의 요청에 의해서 성부 하나님이 보내어 주신 성령이라고 하였습니다.

(2) 명칭상 의미에 대해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성서에는 성령의 명칭에 대하여 여러 가지 말로 사용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혹은 아들의 영 등 여러 가지 명칭이 있으나 여기에는 보혜사라는 말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위안자" 혹은 "보호자" 혹은 "대언자"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 기독교 신자들의 영원한 위로자요, 보호자요, 대언자이기도 합니다.

 

2. 보혜사의 사역

(1) 보혜사의 사역 내용을 알아보면, 이 보혜사의 사역은 바로 성령의 사역 이요, 이 성령의 사역은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혜사의 사역은 신령하고 신비한 사역으로서 요3:8에 "바람이 불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성령의 사역도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의 이성과 능력과 방법을 초월하여 사역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인간의 이성이나 기능이나 방법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도 이 보혜사 성령은 무엇이나 다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2) 보혜사의 사역하시는 영역을 알아보면 특별히 불신자의 영역에서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고 오직 우리 신자들의 영역에서 사역하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요14:17에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 보혜사가 우리들의 속에서 사역하시는 실제 활동상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보혜사는 전지 전능하신 분으로

우리 기독 신자들을 위로하시고 보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요14:18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보혜사는 우리 기독 신자들로 하여금 거짓말 못하게 하고 죄 못짓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요16:7-8에 "보혜사가 오면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보혜사는 우리 기독 신자들로 하여금 거짓말을 못하게 하고 죄 못짓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요14:26-27에 이 세상 관심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면서 천국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 보혜사는 어떤 신자들과 항상 같이 계신다고 하였냐면

(1) 겸손한 신자들과 항상 같이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2) 순종하는 신자들과 항상 같이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3) 회개하고 기도하는 신자들과 항상 같이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4)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신자들과 항상 같이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라

갈5:16-26

 

서론

오순절은 기념으로만 지낼 것이 아니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문도에게 내리셨던 성령의 충만하신 은사가 내게로 임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날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하셨으니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생애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1.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말씀의 뜻

원어의 뜻으로 보면 "성령을 좇아 걸어가라", "성령을 좇아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이끄시는 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롬8:8).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3가지 양상으로 역사하시는데 기본적이요, 하나님께서 일방적 역사적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중생의 역사가 있고,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의 내 주가 있으며 또한 성령이 충만하여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7:18에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전에 믿음 밖에 살 때에 마귀가 이끄는 대로 살아 육체의 욕심을 따랐지만 이제는 성령으로 거듭났기에 성령님이 이끄심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만을 기쁘게 하면서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케 하심을 받아야 합니다(엡5:18).

 

2.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할 이유

(1) 육체의 욕심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마음이 있다고 성경(롬7:21)은 말합니다. 즉, 선에 속한 마음과 악에 속한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도 그들의 관념에 오른편 손에는 천사가 있고 왼편 손에는 악마가 있어 천사가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은 천사의 열매를 맺고 악마가 이끄는 대로 사는 사람은 악마의 결실을 맺는다고 말합니다. 인간 오욕 즉 재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욕은 누구에게나 있으니 우리가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아니할 때는 이러한 욕심들 때문에 죄악에 빠질 수밖에 없으나 성령에 이끌릴 때면 이런 것들을 능히 이기게 할 것입니다.

(2) 율법에서 해방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알게 해 주며 심판을 통보하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절대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롬3:20) 그러나 주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얽매임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역사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3) 참된 영광을 얻기 위해서 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헛된 인간의 꿈을 구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의 결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22-23절).

(1)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에 있어서 복된 열매를 맺는다(사랑, 희락, 평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시는 그 사랑을 본받아 나도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게 되니 항상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영광을 생각하니 항상 기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대로(롬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화평, 하나님과의 화평이없으면 그 사람은 축복받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욥22:21).

"너는 하나님과 화평 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임하리라"

(2) 하나님과 다른 관계를 가진 성도는 대인관계도 원만해야 합니다(인내, 자비, 양선).

인내, 자비, 양선의 덕을 세운다는 말씀입니다. 약1:12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핍박 중에서도 참고 이웃과의 관계에서 범사에 참아야 합니다. 분노 중에도, 불리한 조건 중에도, 환난 중에도, 핍박 중에도 참을 수 있는 놀라운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양선은 원어 뜻으로 "번영, 친절"의 뜻이 있습니다.

(3)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있어야 할 자신의 덕이 있어야 합니다(충성, 온유, 절제).

충성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신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온유는 예수님의 품성을 본받는 것으로 성도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덕입니다. 마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나를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절제라는 말은 자제력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성령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절대로 유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제는 적극적으로는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 것이요, 소극적으로는 하기 싫어도 주님의 뜻이면 실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 론

우리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을 좇아야 하는 이유는 육체의 욕심을 이기기 위한 것이며 율법에서 해방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된 영광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복된 열매를 맺으며, 대인 관계도 원만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덕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 받는 방법

엡5:18

 

서론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못 간다는 성경 말씀이 있기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은혜의 계약은 성령을 받아야 은혜를 알고 신앙이 변질되지 않으며 체험적인 확신을 가지고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전도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성령을 충만하게 받습니까?

 

1. 겸손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겸손과 많은 백성들 앞에서 겸손하게 기도하시는 겸손을 보이실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 비둘기 같은 형체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겸손은 너희도 나와 같이 겸손하라는 표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겸손하실 때 하늘 문을 여시고 성령을 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을 보이면서 기도할 때 나에게도 성령님이 임재하실줄 믿습니다.

 

2. 회개할 때 성령 충만을 주십니다.

행2:38에 "각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 라"고 하였습니다. 맞습니다. 회개가 없이 진리의 성령님이 내게 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창15:9-10에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3년된 암소와 숫양과 염소와 산비둘기 새끼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각을 뜨고 더러운 것을 제거하고 제사를 지내라는 말씀은 바로 회개의 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큰 짐승을 각을 뜨고 작은 새는 각을 뜨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큰 죄는 회개했으나 작은 죄는 회개를 하지 않아다는 의미도 되겠습니다 제단에는 불이 임재하여 제물을 살려야 하는데 마귀를 상징하는 솔개가 내려오므로 아브라함이 쫓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회개가 있는 곳에는 성령님이 임재하지만 죄의 각을 뜨는 회개가 없이 탐욕으로 구하는 자에게는 악령밖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귀중히 여기고 좋은 곳에 보관하듯이 성령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더러운 그릇에 선물을 담을 수 없듯이 선물로 오시는 성령님은 죄의 그릇에 오실 수 없으며 모실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그릇에 선물로 임재하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3. 성령을 소멸하는 자에게는 성령을 충만히 주지 않습니다.

살전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막고 메시지를 받아드리지 않고, 성령받는 방법을 무시하고, 기도할 때, 말씀 들을 때, 안수받을 때, 금식할 때도 성령은 역사한다고 했지만 무시하고, 거절하고, 훼방하고, 부정적인 신앙으로 성령을 소멸하는 성도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소멸했던 죄를 회개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겠습니다.

 

결론

이와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방법은 겸손한 신앙의 사람이 되는 것이며,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지켜서 우리 성도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

갈5:16-26

 

서론

사탄의 모략 중에서 첫째가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있는데 성령에 관한 거짓 가르침입니다. 사탄은 스스로 영적으로 성숙되었다고 믿는 자들에게 이런 시험을 합니다.

이런 술수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거룩하다고 생각하게 되어 거만해지고, 다른 사람의 영적 상태를 함부로 판단하게 되고, 자신의 선행을 다른 사람들의 것과 비교하며 기억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자신의 선행에 합당한 상급을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과는 자신에게 해가 될 판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새로 믿는 자들을 교회로부터 쫓아내게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

그리스도인의 성품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증거 한 성령의 열매 입니다. 이 9가지성품이 오늘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끝날까지 살아나가면서 지녀야 할 성품입니다.

이런 성품을 갖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런 때 사탄이 침입하여 오히려 자만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부로부터의 강한 생명력에 의해 맺어지고 성장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섬김인 성령의 열매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믿는 자들 안에서 믿은 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직접적인 열매이며 결과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38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 요한은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킴이라고 설명했습니다(요7:39).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섬김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과 섭리 안에서 쓰여집니다.

바울 선생도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할 각자의 독특한 섬김을 벌써 마련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이기 때문입니다(롬12:1).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각자의 독특한 섬김이 영역 안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맡은 바 직분과 봉사를 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인을 가르치시는 성령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기 위해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12-13). 이 성령은 영적인 일들에 관해 그리스도인들을 가르치십니다.

(2) 이 성령의 사역은 성도가 영적으로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수행됩니다. 성령에게 자신을 맡기고,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이 역사하도록 순종할 때 영적인 것들에 대한 바른 이해와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4.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

(1) 성령을 올바로 인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사역 중 하나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확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구원을 의심치 않습니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자녀요, 기쁨으로 성령께 순종해야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결론

우리는 성령의 열매인 그리스도인이 성품을 지니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성령께 순종하며 담대히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5-21

 

서론

오늘은 성령 강림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성령 강림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신 날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 120명의 주의 제자들은 마가 다락방에 모여 10일 동안을 성령을 기다리며 전혀 기도에 힘썼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10일째 되던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날이 이르를 때에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행2:1-4).

이 성령을 충만히 받은 제자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떠나 보낸 뒤 그들에게 있었던 모든 불안과 근심은 사라지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며, 그 복음은 능력이 있어서 듣는 자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행2:37-38).

오늘을 사는 우리 성도들은 이 절기를 맞이하여 주님의 제자들이 성령을 사모하고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충만히 받기를 사모하며 받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령 안에 계속적으로 충만함을 지속하라는 명령체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꼭 받아야 하는 필요이며 강조이기에 성령을 받으라는 말이 모두 명령체로 되어 있습니다.

 

1. 왜 하나님의 말씀이 이토록 성령의 충만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성령을 받아야만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내 구주임을 확실히 믿지 못하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로 모든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고 충성된 일꾼으로 살기를 원하면서 늘 연약하여 쓰러지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1) 주님이 자신의 구주되심을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심령의 큰 기쁨과 평안을 얻고 구원의 감격 속에 사는 축복을 얻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게 죽으시고, 부활하시고,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만왕의 왕 되시며 우리의 영적 신앙되신 구주임을 확실히 알고 믿게 하는 일입니다.

(2) 권능의 사람이 되어 승리적 인생을 살게됩니다.

우리 성도의 힘은 오직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죄악을 이기며 마귀의 권세를 깨뜨립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더 이상 죄악과 짝하지 아니하며 원수 마귀를 이기고 시험과 환난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를 은사자로 만들어 교회를 부흥시킵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로 하나님의 교회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일꾼, 즉 은사자로 만듭니다.고전 12장에는 성령이 주시는 9가지 은사가 기록되어 있고 성경에는 그외에도 하나님의 성령은 여러 은사를 그 백성에게 주서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교회를 유익되게 일하는 좋은 일꾼이 됩니다.

(4)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워야 합니다.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인다워지는 길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그 생활에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열려야 합니다(갈5:22). 행11:26에는 "안디옥 교인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성령의 충만한 생활을 영위하는 축복을 받도록 항상 기도에 힘쓰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위한 열망을 갖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의 감격과 삶의 평안,승리하는 인생, 교회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닮는 삶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루어짐을 깨닫기 바랍니다.

 

 

성령 강림과 우리의 신앙

행2:1-4

 

서론

성령 강림절을 맞이하여 행2:1-4의 말씀을 가지고 성령 강림과 우리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최대의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사건과 똑같이 놀라운 일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직후의 오순절날에 일어났습니다. 오순절날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의 제자 120명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함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더니, 거기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좇아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1. 성령 강림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인치심이라는 큰 의의가 있습니다.

유대땅에 복을 증거하신 예수님의 사역은 인간적으로 볼 때, 아주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라는 조그마한 한정된 땅에서 33년이란 짧은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것도 공생애는 불과 3년 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3년 반 동안 열심히 가르치신 제자들조차 본래 무식하고 천대받던 어부나 세리들로서, 예수님께서 고난받으실 때에는 모두 다 도망간 비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숨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겁 많은 제자들에게 성령께 임하셔서 각 사람을 성령으로 충만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담대하게 주님께서 구주되심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진실로 하나님의 예비하신 사건이요, 인류 구원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확증하신 것입니다.

 

2. 성령 강림으로 나타난 성령의 역사

성령께서는 불신앙과 불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회개시키는 역사를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죄악의 길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길로 돌이키도록 역사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는 각 사람의 영혼 속에 내주(內住)하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셔 들이게 되면, 성령님께서는 그때부터 믿는 사람들의 영혼속에 거하셔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성령께서는 성령 세례로,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십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기도의 권능과 믿음의 권능, 말씀 증거의 권능, 전도의 권능 등이 주어지게 되고, 각 가지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성령은 권능과 은사로 보다 깊이 있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뿐 아니라, 보다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3. 이제부터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안 믿는 사람에 비해 마땅히 무엇인가 다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의 열매 없이 겉으로만 열심을 같고 있는 신앙인은 종국적으로 예수님께 꾸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참된 신앙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썩어져 가는 것을 방지하는 데 주로 필요하고, 빛은 어두운 곳을 비추는데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힘을 합해 민족 복음화에 힘쓸 뿐 아니라, 윤리와 도덕적으로도 어두워지고 썩어져 가는 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 열매 맺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께서 인쳐 주신 인류 구원의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후로부터 성령의 역사는 온 세계에 파도처럼 넘쳐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위대한 성령님의 역사로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열매 맺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늘 성령의 충만함으로 무장하여, 이 나라와 전 세계에 그리스도인다운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는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확신케 하시는 사역

요16:8

 

서론

이 말씀은 주 예수께서 슬픔에 빠진 제자들에게 해 주신 은혜로운 약속의 일부분입니다. 성경 본문의 말씀 속에 언급된 사람은분명히 성령님이십니다. 이 약속은 먼저 주님의 사도들을 향한 것이었는데 오순절에 그래도 성취되었습니다.

성령의 확신케 하시는 사역은 무엇입니까?

 

1. 세상으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1) 삶 속에서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일반적으로 어떤 엄청난 죄, 곧 회개한 사람이 늘 느끼는 죄의식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핍박자 사울을 이렇게 다루셨습니다. 그는 먼저 핍박이 얼마나 두려운 죄인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런 후 어느 때인가 그의 다른 모든 죄에 대하여도 그의 마음속에 이런 감정이 되살아나 그는 즉시 자신의 잘못된 모든 신념들을 버렸습니다.

(2) 본성에 깃들인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죄인에게 다가가 그의 죄에 대하여 깨닫게 해 주실 매 원죄를 부인하는 모든육적 변명은 즉시 거꾸러집니다. 그리고 그는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 주리요?"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실제적 죄를 슬퍼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완악함을 슬퍼하게 됩니다. 이제 그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에 직접적인 적대 행위임을 깨닫습니다.

(3) 율법적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본질상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즉, 우리는 율법이 행위로써 의롭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느 정도 각성된 상태에 있을 때에 우리는 즉시 행위로써 자기 의를 세우고 이로써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혜사에서는 영혼에게 이 잘못된 생각에 대해 깨닫게 하시고 죄인이 자신의 모든 의를 더러운 누더기로 볼 수 있게 해 주십니다.

 

2. 세상으로 하여금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1) 의의 의미

"의"는 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실행해야할 일반적인 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 본문에서는 주님께 대한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인 순종을 가리킵니다.그것은 완전하고 개인적이며, 모든 것이 충분한 의 곧 그가 세상을 위해 이루어 주신 의, 그리고 성령께서 그것에 대하여 세상에서 확신시켜 주셔야 할 것입니다.

(2)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는 일의 중요성

자기 자신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의를 위한 율법의 마지막이시라는 것과 자신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한 다른 계획들을 아무리 제시할지라도, 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세울 토대는 오직 '내 영혼에 전가된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의'라는 반석에서 아무것도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3) 성령께서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해 주시는 이유

구원이란 오직 영혼에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의가 전가됨에 의존한다는 이성적 확신을 지닌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성적 확신을 신뢰한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즉, 구원에 이르는 진리에 대한 영적이고 체험적인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면 그가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것의 실제성과 완전성 그리고 불쌍한 죄인을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에 대하여 깨닫게 해 주십니다.

 

3. 세상으로 하여금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1) 심판에 대한 깨달음의 중요성

살아 있는 믿음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의를 붙잡을 수 있게 된 영혼은 성령께서 그에게 이루어 주신 확신, 곧 이 세상의 권세잡은 자가 심판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영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립니다. 무장한 강한 자는 이제 내쫓깁니다. 그리고 나의 영혼은 참 평화를 맛봅시다. 이세상의 권세잡은 자가 와서 나를 고소하더라도 이제 그는 내게 관여할 수 없습니다.

(2)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해 주시리라는 확신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의를 나의 영혼에 적용할 수 있게 하시는 복되신 성령께서 나에게 이 점을 강력히 확신케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나의 영에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해 주시는데, 내가 왜 두려워하고 그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나를 의롭게 하시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나를 정죄하는 이 누구뇨?"라고 승리의 외침을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결론

성령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어두움에 빛이 있으라고 태초에 말씀하셨던 분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처럼 큰 은총을 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우리 안에서 찾으신 어떤 선한 것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자신의 이름을 위해 이루어 주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값 없이 주신 은혜를 찬송하십시오. 빛의 자녀가 되어 걸으십시오. 성령께서 오시어 그리스도가 없는 자에게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내주

요7:37

 

서론

우리 주님께서는 성전에서의 일반적인 예배와 유대의 특별한 명절들에 참여하셨습니다. 이 명절 마지막 날에는 흔히 많은 경건한 이들이 어떤 곳에서 물을 길어와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라(사12:3)"라는 찬송을 부르면서 자신의 머리에 물을 뿌리던 일이 관습처럼 행하여졌습니다. 이것을 지키고 계신 주님께서 본문을 외치신 것입니다.

 

1. 성령의 인격

그는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영원히 복되신 삼위 일체 세 번째 인격이십니다. 즉, 그는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동체이시며 영원하십니다. 그 둘로부터 나오시나 그 둘과 동등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온 족속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시면서,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만이 아니라 성령의 이름으로도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행5:3에서 아나니아에게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였느냐?"고 말하였고, 4절에서는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들을 볼 때 성령은 진실로 그리고 당연히 하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2. 성령을 소유함

(1)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의 눈과 귀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이라면, 성경 분문을 통해 성령께서 모든 신자들의 공통적인 특권이 되시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믿는 자의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주님께서는 한 시대나 또는 두 시대 동안만의 신자들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의 신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성령을 소유하는 일의 중요성

우리 주님께서는 극심한 고난을 당하시기 바로 전에 진실로 그를 따르는 모든 일들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모두 그와 연합되기를, 즉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였던 것처럼 실제적이고도 생명력이 넘치는 신비한 연합을 이루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직무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하는 자들이 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연합해야 합니다.

 

3. 성령께서는 내재하신다는 교리의 합리성

(1) 인간의 자연적 조건

성령께서 내재하신다는 이 교리는 자연인에게는 아무리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생명의 선한 말씀을 이미 맛보고 내세의 능력을 이미 느낀 사람들에게는 매우 고귀한 근거 위에 세워져 있으며,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들에게는 증명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리는 우리가 타락한 피조물이라는 자명한 진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그와의 교제를 즐기기 위해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

타락 이후 인간은 본질상 짐승과 마귀가 혼합되어 있는 존재와 같기 때문에, 모두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즐기려면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들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화라는 큰일은 성령께 속한 것으로 특별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사람이‥‥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믿는다고 아무리 자주 하나님께 고하였을지라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로 연합되기 위해 그를 믿어 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주 예수보다도 오히려 벨리알과 사이가 좋은 자들입니다.

 

결론

우리의 본성이 짐승이나 마귀의 그것과 같을지라도 만일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우리는 성경 본문에 약속되어 있는 살리심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스러운 자유를 회복할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 9)"고 하였습니다.

성 례

성 경 활 용

I. 성찬

1. 성찬의 일반적 고찰

(1)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다.

(마26:26-27)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메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 주님의 재림시까지 지켜야 한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3) 초대 교회에서 행해졌다.

(행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메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 성찬의 완성은 하나님 나라에서 이루어졌다.

(마26:29) 내가 포도나무에게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2. 성찬에 대한 묘사

(1) 그리스도의 몸과 피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2) 주의 떡과 잔

(고전11:27)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3) 주의 만찬

(고전11: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3. 성찬의 의미

(1) 예수와의 관계를 영속시킨다.

(눅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2) 그리스도의 죽음이 축복의 원천임을 깨닫게 한다.

(고전11:24)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3)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한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II. 세례

1. 세례의 의미

(1) 그리스도와 성도가 하나된다.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2) 영적인 씻음의 외적 표현이다.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3) 사죄의 상징이다.

(행22: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4)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된다.

(골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2. 물세례의 의의

(1) 회개케 하려고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2) 죄를 씻는다는 표시로

(행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3) 정결케 한다는 뜻으로

(겔36:25)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4)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게 하려고

(벧전3:21)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3.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

(1) 예수님도 받으셨으니

(마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2) 예수님의 유언이시므로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3) 부활이 있으니

(고전15:29)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뇨

 

4. 세례받을 자의 자격

(1) 자기의 죄를 자복하는 자

(마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2) 제자된 자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3) 믿는 자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4)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

(행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5)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행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5. 세례받은 자의 결과

(1) 새 영을 주신다.

(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갤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2) 회개함을 얻는다.

(막1: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세례를 전파하니

(3)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baptivzw 밥티조-

(1) 물로 씻어 깨끗케 하다, 잠겨 정결케 하다, 자신을 정화하다, 목욕하다.

(막7:4, 눅11:38)

(2) 세례식을 베풀다, 침례를 주다.

(막1:4 고전1:17)

(3) 세례를 받다.

(마3:13, 눅3:21)

 

2. bavptisma 밥티스마

(1) 적심, 담금.

(마20:22, 눅12:50)

(2) 환난이나 순교를 가리킴.

(마20:22, 눅12:50)

(3) 요한의 세례.

(마3:7, 행13:24)

(4) 기독교의 세례.

(롬6:4, 골2:12)

 

3. baptismov" 밥티스모스

(1) 세례, 침례.

(히6:2)

(2) 씻음, 목욕.

(막7:4, 히9:10)

설교예화자료

소중한 성만찬

 

박해를 받을 때에 인간은 목숨을 걸고 성만찬을 하려 합니다. 백년 전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프랑스 의회에 의해 종교는 폐기되었고 주일은 사라져 버렸으며 목사는 짐승의 밥처럼 숲속으로 내쫓겼고, 그리하여 아무도 죽음의 형벌을 초래할 예배를 행하거나, 혹은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은총의 수단이 없이 지냈겠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심부름꾼이 비밀암호를 가지고 집집마다 뛰어다녔습니다. 그는 "검은 습지요."라고 말하고는 인사나 작별도 고하지 않고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었습니다. 자정 직후에 남자와 여자들은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동네 아래에 있는 검은 습지 옆에 조용히 모였습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조심스럽게 빛을 가진 등불을 비추고 추방당한 목사 중 한 분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신실한 이웃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경보가 울리기 전에 어느 때든지 군인들이 자기들을 덮치고 일제 사격을 가하여 자기들이 들판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갈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 인간은 그들의 육체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르나 예수님의 마지막 날에 그들을 일으키시리라고 분명하게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성찬의 의미

 

맡은 사람들이 성찬식을 오해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성찬식은 더 이상 신비로운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주님께서는 만찬 때마다 자신을 제단에 바쳤고 어린 양으로 묘사하시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에게 주는 내 몸이다" 이는 십자가의 사건을 상징하신 것이었습니다. 잔을 드실 때는 우리의 죄를 위해 흘리시는 피를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항과 포도주는 우리로 하여금 속죄와 실체를 깨닫게 하여 줍니다. 우리는 한손에항을 들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한손에 컵을 들고는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용해되어선 우리의 피가 사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존 던칸은 에딘 버러의 뉴 칼리지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스코틀랜드의 한 교회에서 성찬식을 베풀고 있는데 조그만 16세짜리 소녀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옆에 앉은 나이 많은 분에게 자기의 잔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마실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존 던칸은 그의 긴 팔을 뻗어 그 소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얘야, 어서 마셔라. 이것은 죄인들을 위한 것이란다. "

 

 

어록·시·묘사

 

아. 이게 웬일이옵니까. 주님/ 이 두렵도록 눈부신/ 빛의 쏟아짐이.//불꽃이 온 몸을 감싸는 듯/ 그러나 사지가 훈훌할 뿐 저의 몸이 타지 않습니다. // 머리속 골짜기에 별이 우수수 쏟아지는 듯/ 그러나 머리가 뻐개지지 않습니다. // 아, 이게 웬일이옵니까. 주님/ 지금껏 꿈도 짐작 못한 이 온갖 빛의 잔치가.// 그러나 마땅하고 마땅한 일이옵니다/그렇게 거룩하신 당신의 몸이/지금 저의 몸에 들어 오고 계십니다. // 주님을 맞이하는 기쁨에 털며/ 저의 몸 세포 알알이 불켜진 등불입니다.// 이제 저의 몸은 주님의 몸과 피가 드시는/ 거룩한 궁궐이 되었습니다. // 이 한낱/티끌인/ 저의 몸이./ 아! 주님./ 영혼의 엷은 막에 스미는/ 당신의 빛은/ 어느덧/ 이처럼 황홀한/ 초록빛이옵니까.// 영생의 물로/ 저의 이마를 씻어주신 지 얼마 안되어/ 저의 몸이 아직 깨끗한 까닭이옵니까.// 저의 몸뿐만 아니라/ 저의 영혼도/ 갓난아이처럼 청정하게 느껴집니다. // 아 ! 주님/ 지금 하늘을 째는 번개처럼/ 주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주님께선/ 저의 겨울의 방랑이 이제/끝났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주님의 사랑에 묶여버린 저는/ 주님의 품안으로 만 달려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빛 속을 흐르는/ 빛이신/ 주님의 말씀./그 말씀의/긴 긴 여운이/제게는 그대로 영원이옵니다.

(성찬경/ 황홀한 초록빛-첫영성체)

 

겨자씨와 가지 뻗은 포도나무/ 그것은 거룩한 것의 비유/ 누룩을 넣어 빵을 부풀게 하는데 의미를 부여하고/빵을 떼는데 성례의 의무를 부여한 사람/ 여기 계시다.

(버게스/ 한 사람 있어)

 

중요한 것은 특별한 기회에 의식을 진행하는 데 있지 않고 어떻게 그 의식들이 삶의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있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강가에는 사람들이 떼지어 있었다. / 자기 몸을 물에 잠가/ 죄의 몸을 멸하고/ 새 생명으로 거듭 나는 의식을 받으려고/ 모여든 사람들 중에/ 예수도 함께 서 있었다. // ‥‥ 두 사람은 이날 요단강변에서 만난다. /골짜기 깊이 패이고 조금 좁은 곳/ 물줄기가 사해에 흘러드는 곳의 서쪽 기슭/ 요한은 사양하며/ 물로써 세례를 베푸는 것 뿐이라고/ 겸손한 가운데/매맑은 이른 봄의 물속으로/ 예수를 인도하고/ 기도하며 물에서 올라오니/ 유일 같은 하늘은 곧 열리며/ 보라 빛나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의 머리에/ 날개치며 내린다 // 성령이 충만한 예수는/사명과 힘이 넘쳤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기뻐한다"/ 맑은 하늘에는 빛이 넘쳐서/ 누구 하나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가와다 야수코/ 요단강변)

 

스스로의 이상으로 4천 해 동안 품어 온 그리움마저 째어 버리고 이미 딱딱하여진 의식의 빵 위에 또다시 수많은 계절 동안 먼지 같은 손자국을 남겼던 이들의 아망을 달래고 <*아망:아이들이 부리는 오기>

(황국명/ 봄비)

 

몸을 신성하게 훈련하는 것은 육체의 힘을 기르는 것과 함께 중요한 일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유다교는 예식들 위에 서 있는 종교가 아니다‥‥ 유단의 경건은, 예식과 상징의 언어로가 아니라 '미츠봇(mitzvoth)'의 언어로 표현된, 하느님께 드리는 대답이다. 예식보다는 '미츠붓'(종교적인 행동)이야말로 우리의 기본적인 규범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와/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그리고/물에서 올라오시자 곧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처럼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 낙타 털옷을 몸에 걸치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들꿀을 식물로 했다. / 세례자 요한이/나는 물로써 세례를 주거니와/ 이분은 성령으로써/ 세례를 줄 것이다. /라고 말한 바 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시작되었다. / 하나님이 기록한 광대한 각본의 한 페이지/ 이 일이 없었다면 세상은 그 얼마나 어두웠을까/ 막은 열린 것이다/사람들은 율법에서 사랑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용서로 자리바꿈하여/ 여기에서 멸망하는 일 없는/ 영원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걷기 시작한다.

(토오 가주코/ 예수의 세례)

 

그는 그들을 마지막 식탁에 부르신 것이다. / 그리고 지금(한 방의 총이 새들을 낟알에서쫓아 버리듯이)/ 그는 그 한마디로 그들의 손을 빵에서 쫓는다. / 그들은 그에게 덤벼들어/ 식탁 둘레를 불안스러이 오락가락하면서/ 나갈 곳이 어딘지 찾고 있다. / 그러나 마치 황혼인 양 가는 곳마다 그는 계신다.

(릴케/ 성만찬)

 

'관습과 예식'은 학술 단체들이 아끼고 대학 졸업식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형식적인 일이며 미학적인 즐거움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미학이 종교의 영역에서 가장 높은 권위가 되었는가? 관습과 예식은 멋지고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그러나 과연 유다교가 놀이의 종교인가? ‥‥성경을 문학으로, 유다적 복종을 착한 행실로, '탈무드'를 예의 범절로 그 격을 낮추지 않도록 조심하자.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저주받은 땅이 내는 것을/ 먹고 마셔야하는 처절함에서/ 우리를 건져 주소서/ 먹음직한 음식은 죄다 오염된 채/ 곳곳에 널려 있고/ 마실만 한 것들은/ 입에 갖다 대는 족족/썩은 것으로 변해져 버립니다. // 먹어도 도무지 먹은 것 같지 않고/ 마셔도 마셔도 목이타는/ 오늘은 차라리 형극입니다. // 건져 주소서/ 님의 식탁으로 모인 우리는/ 배고픈 백성들입니다. / 버석버석 메마른 소리보다/출렁거리는 물소리에 진저리치는/ 이상하게 목마른 사람들입니다. / 배고픈 자 배부르게 하시고/ 목마른 자/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님이여,/ 하늘의 양식을 먹여 주소서/우리를 위하여/살아 있는 떡이 되어 주소서/뚝뚝 흘리는 뜨거운 피로/ 혓바닥을 축여 주소서.// 그리 하오면, 그렇게 해 주시오면/ 죽어가던 우리가 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펄펄 되살아 나오리다. / 얼씨구/ 힘내서 한세상 살아가오리다.

(서덕석/ 성찬기도)

 

낡은 마룻장이 삐꺽이는 소리밖에는 모두가 숨죽인 다락방,/ 비스듬히 바람벽에 기대어/눈 감은 요한 옆으로/ 가룟인 유다의 시선이/ 예수의 가날픈 입술을 노려보고/ 애궂은 구레나룻을 잡아당기는/시몬의 맞은편에서/고개숙인 빌립이/ 말 없이 술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 팔레스티나 모랫바람에 절어/ 냄새나는 발들이/식탁 밑에서 부끄러운 듯 주춤거리고/ 오래 묵은 포도주 향내만큼이나/진한 사랑을 확인하는/ 침묵의 시간.//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너희에게 남겨 줄 것이라고는/ 빈 몸뚱아리밖에 없으니/가까이 오라,/눈물겹도록 따라와 준 친구들이여,/ 검고 딱딱한 빵을 씹으며/대지의 젖 같은 붉은 포도주를 마셔라/ 이것이 내 찢겨진 살이며/,콸콸 흘러 샘솟는 내 피다. // 이것을 먹고 마심으로/ 나를 너희 속에서 머물러 있게 하고/ 너희도 내 속에서 새 살로 움트고/ 뜨겁디 뜨거운 피가 돌아/ 한 몸이 되거라.

(서덕석/ 성만찬 풍경)

 

물에서 올라왔을 때/ 예수의 머리 근처가 환해지며/ 비둘기와 같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는 하나님의 아들/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했다.

(야기 쥬우기치/ 세례)

 

내가 '관습'이나 '예식'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경계심을 갖는 데는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정신적인 이유가 있다. 과월절 저녁의 축제가, 만일 그것이 순전한 예식뿐이라면, 무슨 값어치가 있는가? 별스런 낡은 풍속을 해마다 다시 제정하는 것인가? 예식은 권태로 끝나며 권태는 정신의 가장 무서운 적이다. 종교 행위란 인간의 영혼이 참여하는 행위이다. 그로부터 내적 인 헌신, '카바나(Kabanah)' 가 솟아나와야 한다. 그러나 다만 예식일 뿐인 '수카(sukkah)'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카바나를 마음에 풀 수 있겠는가?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수염투성이 사나이 뒤를 따라서/ 들어선 이 돌집 방이/ 어쩌면 사나이가 말하듯이/ 예수의/ 마지막 만찬 장소가 되리라 해서/ 어두 컴컴한 먼지 낀 이 방안 그 어느 구석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일행은/ 이 세상의 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 그때/ 가리옷의 시몬의 아들은/ 쓴 나물을 씹고 있었던가/ 겁겁(劫劫)/ 이천 년/ 게 힌놈의 저녁 어두움은/ 다가 오고 있었다. // 예수는 자신의 때가 이르렀음을 깨닫고/ 일어서 대야 물을 길어다가/ 제자들의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꿇어앉아/조용히/ 그들의 발을 씻어 닦아 주고 있었다/어리석으면서도 엄숙한/ 매와 영원을/ 꽤뚫는 공간에 감싸여 베드로는/ 휘청거리면서/ 바라보려 하고 있었다/가리옷의 시몬의 아들은/예수의 손이 그의 발에 닿았을 때 눈을 외면하였다/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자기 속의 예수를 죽을 정도로 사랑하고 있었다/ 바로 그 예수의 타계로부터 들리는 듯한/목소리가 들리며/피빛 포도주에 적셔진 빵을 건네 주었을 때/그는/그의 절망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러나/ 일어서서/자신의 절망을 시험 삼기 위하여/ 그 문이 없는 출구로부터/ 게 힌놈의 어두움 속에 휩쓸려 들어갔다.

(오카야스 츠네다케/ 세족(洗足))

 

 

설 교 노 트

 

베드로의 세례관

벧전3:21-22

 

서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신앙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지상 교회들은 성스러운 사명으로서의 성례를 거행하고 있습니다. 이 성례를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세례와 성찬으로 분류됩니다. 이 것은 교회가 성별하여 세우신 성직자만이 집행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는 자신의 구주로서 믿은 신앙을 고백한 성도에게만 실시할 수 있는 성스러운 예식인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베드로의 세례관을 잠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 세례를 실시하는 이유

오늘날의 지상 교회들이 세례를 실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범으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례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성별되고 공인되고 모범적으로 받으시고, 공적 성역에 헌신하시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이 세례를 실시하도록 하신고로, 오늘의 지상 교회는 이 세례를 실시하여야 되고, 또한 세례를 받아야 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실시하도록 분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역 말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여 승천하시기에 앞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세례를 실시하도록 분부하셨습니다. 마28:19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지상 교회의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의 지상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신앙의 반석 위에 설립된 지상 교회들은 성스러운 사명 수행을 위하여 반드시 세례를 베풀어야 됩니다. 현하 교회로서의 특성은 성례 집행과 말씀 선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지상 교회로서의 가장 중대하고 성스러운 사명이 있다고 하면 이 세례식을 가지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이 세례식을 시행하지 아니 한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무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사명을 거부 또는 포기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교회는 세례를 실시해야 되고 신자들은 이 세례를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2. 세례의 의미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세례의 뜻을 세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1) 구원의 표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진노와 저주와 형벌의 원인인 죄와 사망과 지옥의 영역에서 구원을 받은 확증으로서의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혼이 물과 피로 거듭나 새 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2) 죄를 씻는 표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 중에는 침례와 세례를 실행하는 양식이 문제가 아니라 세례 자체가 지니고 있는 신비한 의미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의미가 아니고 죄를 씻어 청결케 하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별되어지는 표적이기도 합니다.

(3)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표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났던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이제는 하나님을 찾아 성별되고 헌신되어지는 표로서 세례를 실시한다는 말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구원의 확증을 받았습니다.

죄사함받아 성별의 확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참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

요6:52-59

 

서론

본문 55절에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살과 피는 인생의 참된 양식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양식을 먹어야 생명이 보존되고, 건강을 유지하고 자신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우리들의 참된 양식이라고 증거한 그리스도의교훈에는 깊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그리스도의 살

예수님의 살이 우리들에게 참된 양식이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성역 말기에 원수들에게 잡혀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날 땀에 최후 만찬 석상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는 내 몸이니 받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 몸이 십자가에 달려서 찢기어져서 우리들의 속죄의 제물이 찢어질 것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 사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하신 대로 예수님의 살은 우리들이 참된 양식으로 제공되어,

(1) 영적 생명이 되어 주셨고

(2) 영적 건강을 유지하게 하셨고

(3) 영적 기능을 바로 활동하게 하는 요소가 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이 예수님의 몸과 살을 상징하는 생명을 받아 먹지 아니하고서는 우리들의 영적 생명과 건강과 기능을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본문에 강조하신 바와 같이 이 양식을 받아 먹어야,

① 예수님의 생명을 공급받고

② 예수님과 일체가 되고

③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여 영생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 신자들은 인생의 참된 양식인 예수님의 살을 받아 먹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2. 그리스도의 피

여기 예수님의 피가 우리 인생들의 참된 음료가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석상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떡을 메어주신 다음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면서 이를 받아 먹으라 이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홀린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을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 맺은 언약으로서 이 언약을 성취시키시고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려주실 속죄의 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1) 우리를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피요

(2) 불의에서 의롭게 하는 피요

(3) 사망에서 영생을 얻게 하는 피라고 하였습니다. 이 피가 죄와 사망과 사단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하사 자유케 하셨고 하나님과 화목하여 영원한 나라의 기업을 누리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① 죄악에서 사유해 주셨고

② 사망에서 구원을 얻게 해 주셨고

③ 천국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신 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영적으로 이피를 마시지 아니하고서는 죄사함을 받을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도 없고 천국의 기업을누릴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결론

이제는 이 참된 양식인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아 먹을 수 있는 자격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세례를 받은 사람

(2) 권징하에 있지 않는 정당한 신자

(3) 양심의 큰 죄로 가책이 없는 신자입니다.

이 살과 피를 받은 실제 결과는,

① 영육간에 약한 자들이 힘을 얻어 강해지고

② 영육간에 병든 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③ 영육간에 죽음의 잠든 자가 깨어 일어나 생명력을 발휘한다고 하였습니다.

 

 

성찬의 유익

요6:53-59

 

서론

성례식은 세례와 성찬을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성찬식을 모일 때마다 시행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찬의 유익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닫고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1. 세례와 성찬은 속죄 구원의 약속을 보이신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신 것처럼 참 만나이신, 참 생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이 땅에 보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마26:26-28에 "떡과 잔을 저희에게 주시며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언약의 증표요 이 잔은 너희 죄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성찬식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찬을 꼭들어야만 구원을 얻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나 성찬 자체가 영생을주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알고 믿음으로 받을 때 영생이 보장된다는 말입니다. 요3:16-18에 보면 "독생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받고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하셨으며 요5:24에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성찬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얻게 하시는 구원의 복을 약속해 주시는 표로서 우리들에게 반드시 시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이 친히 설정하셨고 반드시 이를 행하여 먹을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이 떡과 잔을 피하는 것은 신앙상 잘못된 것입니다. 들되 이 떡과 잔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를 분명히 깨닫고 들 때에 속죄 구원의 약속이 우리들에게 보장되는 것입니다.

 

2. 부활의 약속이 있습니다.

본문 54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인간의 생각으로 가부를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무서운 죄악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첫 열매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부활의 약속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기독교의 산 소망의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같이 그의 강림하실 매에 그에게 붙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부활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고전15:22-24).

 

3. 연합의 복이 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며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56-57)"

나는 주 안에 또 주님은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하나되는 연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감히 나 같은 죄인의 가슴속에 예수님을 모시기에 부족하지만 함께 계시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게 해 주시겠다는 보장까지 약속하신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안전하게 결실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거하나니"는 영주한다는 뜻으로 요한복음에만 40회 가량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살아계신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권능의 주님이 나와 함께 해주시고 일체가 되어 주신다는 놀라운 일입니다. 외형적인 나는 약해도 내 안에 계신 주님은 강합니다.

외형적인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아무도 우리도 대적할 자가 없다는 것을 믿고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성찬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성도들이나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들기는 못하지만 마음으로, 영으로,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찬을 통한 속죄 구원과 부활 소망, 연합 임재의 유익이 임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성례

고전11:23-29

 

서론

우리 기독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례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세례식이고, 둘째는 성찬식이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예식을 성례라고 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이 창설하거나 제정한 예식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친히 창설하시고 제정하사 우리들에게 분부하시고 명령하신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이 예식에 대하여 신성시하고 존중시하고 있습니다.

 

1. 세례식

(1) 세례의 기원

이것은 구약의 할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할례식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주신 아들 이삭에게 난지 8일 만에 양피를 베어 하나님께 성별하여 드리는 예식을 실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종교적 의미는 성별, 헌신, 순종의 뜻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시대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례를 시행하도록 하신 것은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 세례의 종류

첫째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이 세례는 하나님의 직접 베푸시는 세례로서 우리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중생의 세례, 즉 거듭나게 하는 세례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물세례입니다. 이 세례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물을 가지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로서 죄사함과 죄를 씻음 받는 세례라고도 합니다.

(3) 세례의 의미

범죄한 옛 사람이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살아나는 의미가 있으며, 우리의 범한죄가 다 씻겨지고 예수 안에서 깨끗하여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의미가 있으며, 이제부터 우리의 맑은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 나아가는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주 안에서 다시 살아 죄에서 해방받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나가 영생하게 됩니다.

 

2. 성찬식

(1) 성찬식의 기원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찬식의 기원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실시하였던 유월절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밤에 양을 잡아 가족들과 함께 먹고 그 피는 문설주에 발랐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애굽에 내리고 있는 죽음의 재앙에서 해방을 받아 구원을 받은 표적이 되었습니다. 이 유월절 양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유월절 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2)성찬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찬식에 사용하는 재료와 내용은 떡과 포도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성만찬식을 거행하면서 몸소 떡을 떼어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몸이니 받아 먹으라고 하셨고, 다음 잔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이는 나의 언약의 피니 받아 마시라고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성찬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찢기워 주신 그 살과 그 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3) 성찬식의 의의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성찬식은 신학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인 동시에 영생의 은혜를 공급하시는 방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측면에서 예수님이 밝히신 의미는

① 주님과 연합하는 의미로

② 예수님의 생명을 공급받는 의미로

③ 예수님 안에서 영생하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요6:52-59).

 

결론

이 성례식에 참석하는 사람의 자세는 자기를 살피고 참석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기를 반성하고 회개하고 성별하라는 뜻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

벧전1:17-18

 

서론

기독교의 중심이 십자가요, 십자가의 중심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입니다. 피는 육체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구원의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피는 전인류의 생명을 구속하기 위하여 흘리는 피입니다.

갈보리 산상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에 어떠한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1. 죄악을 속량하시고 영생을 주시는 피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아담의 후예는 누구를 막론하고 죄를 범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죽음의 자리에서 헤매야 하는 처지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죄 없는 사람이 필요하나 인간중에는 없으므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아들의 명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마26:28에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속성에 따라 영생하도록 창조함을 받았으나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죄의 삯인 사망 곧 멸망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회생하여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대가를 지불하여 영생할 수있는 자리로 회복이 된 것입니다.

 

2. 화평을 이루는 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가로막힌 담이 무너져서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한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피흘림이 없이는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에게 화평이 주어진 것입니다.

 

3. 성결함과 언약의 피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매우 중요시 하셔서 시행하십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날 밤에 성만찬 석상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새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하여 자신이 피를 흘려 속량하시는 새 언약인 것입니다.

이 언약은 믿는 자에게는 미쁘신 주님께서 이루시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런 관계를갖지 못합니다.

그리고 요일1:7-9에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갈보리 산상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흘리시는 피의 공로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더러운 죄악을 깨끗하게 씻어 정결하고 성결된 인간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하게 하십니다.

오늘 성찬에 참예하시는 여러분! 주님을 생각하십니까?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깊이 생각하면서 그 뜻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참예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류를 위하여 자신이 희생이 되어 십자가를 지셨고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 피는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시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로 화평하게 되었고 우리들은 성결케 되여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결론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는 죄를 속량하는 피요, 화평을 이루는 피요, 성결케 하는 언약의 피입니다. 죄인에게서 죄를 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바로 죄를 사하는 피가 십자가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귀하고 값있는 생명의 피입니다. 이 피로 죄사함받았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사함이 없이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화평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사함받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피는 언약의 피입니다. 언약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십자가의 피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약은 지키면 생명이요, 지키지 못하고 파괴하면 사망과 저주가 따릅니다. 예수님의 피는 지키지 못한 형벌과 저주를 대신한 것입니다. 또한 믿는 자에게는 생명을 약속하는 언약의 피인 것입니다.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출12:21-28

 

서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애굽 백성에게 최후의 심판을 가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유월절의 유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유월절의 의미를 상실하고 이 예식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정확한 대답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은 성찬 예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참예하는지, 안다면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1. 예수 희생의 표시라

븐문 27절에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애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애굽의 마지막 재앙을 내리는데 짐승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첫 태생은 모조리 죽이는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의 피가 보이는 집에는 하나도 피해를 보지 아니한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심도 하나님이고 어떻게 지키라고 방법을 알려 주심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은혜를 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성찬 예식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피의 혼적 때문에 멸망을 받지 않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유월절 양은 신약의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2. 선택된 자의 표시라

본문 22-23절에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물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피의 효력은 애굽인들에게까지 미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한해서 그 피의 효능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선택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신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혜택을 본 사람들은 모조리 창세기 전에 선택된 자들입니다. 구약의 양의 피가 장자들 죽는 죽음에서 구원받았다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은 선택된 죄인들을 살리신 것입니다(엡1:4-4,2:1). 그래서 선택하여 주신 하나님께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3. 은혜를 보답하는 표시라

본문 27-28절에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입으면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생명을 구원받은 은혜는 더욱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월절을 만들어서 자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보답하라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찬예식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고 하였습니다.

 

결론

유월절과 성찬 예식은 같은 원리에서 생각하면 됩니다. 유월절 행사나 성찬식 행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례에 참여하는 자의 심정

마26:26-30

 

서론

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마가의 다락방을 택하였고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모인 12제자에게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이 떡은 내 살을 기념하는 것이요 이 잔은 내 피를 기념하는 것이다"라고 제자에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은 죄악에 포로가 되어 있는 만민을 구속하기 위해서 자신이 피 흘리고 살이 찢겨야 하는 성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준비기도를 하기 위해서 성만찬 석상에서 일어나시어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여 나갔던 것입니다. 준비 기도가 끝나니 악의 무리가 가룟유다를 선동해서 예수님을 잡아가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우고 때렸습니다. 다섯 곳에나 다니며 심문을 받게 한 것입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 내어 주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인생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밝은 빛을 찾게 되었고 영원한 천당 길을 걸어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몸이 찢기고 흘려준 피의 공로로 인하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가게 된 것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이 성찬에 참예할 때에 어떠한 마음으로 참예해야 합니까?

 

1. 감사함으로 참예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요, 외인들이어서 멸망에 처한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피흘려 주심으로 모퉁이의 돌이 되어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벽을 연결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주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을 기념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한 마음으로 참예하여야 하겠습니다.

 

2. 반성하는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예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얼마나 충성하였으며 얼마나 순종하였고 얼마나 헌신의 열매를 맺었으며, 죄를 멀리하고 믿음을 참으로 지켰는가?십자가는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나는 권리행사만 하지 않았는가? 주님의 영광을 가리운 일이 없는가 반성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예하는 것이 참 신도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3. 결심하는 마음으로 참예해야 하겠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을 바로 살고 작년보다 올해는 더욱 나아지는 사람으로 경건하게 살 것을 결심하는 마음으로 참예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생애는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교회에 덕과 유익을 위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기를 결심하는 마음으로 참예해야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날 위해 피흘렸으니 나도 피흘리기까지 충성된 사람으로 일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주님의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일해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정치적인 예식으로 성례가 아니라 진정한 결심과 변화하는 은혜를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여 성례식을 통해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성만찬

히9:27-28

 

서론

성찬에 참예할 때에는 자기를 살피고 반성하면서 진실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찬에 참예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내 살이요 피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에 바른 자세로 참예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함을 얻은 성도들은 주의 성찬에 참예할 자격을 부여받았습니다.

 

1. 예수님의 전생애를 기념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봉사와 희생으로 사랑을 실천하신 주님을 기념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전교훈을 기억할 것입니다.

3년간 하신 교훈은 영원 불변의 진리입니다 요14,15,16장에 긴 설교가 나옵니다. "너희는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나를 믿으라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와서 내게로 영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않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원 줄기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기억합시다.

 

3. 특히 속죄하시는 살과 피를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못난 나를 위하여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을 생각하며 기념할 것입니다. 언제까지 기념할 것인가. 고전11:26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참예하는 자의 복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과 영원히 교통하게 되는 복입니다.

(2) 죄악의 종이 아니라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복입니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점점 자라 성령의 열매를 맺는 복입니다.

(4) 죽음을 이기는 승리자의 복입니다.

(5) 주님 앞에서 상급을 받는 복입니다.

 

결론

주님의 성찬을 기념하며 참여하는 자는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지금 누리는 복과 장차누릴 복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찬에 참여합시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의 전생애를 기념합시다. 예수님의 전교훈을 기억합시다. 특히 속죄하는 살과 피를 기념합시다.

 

 

성례란 무엇인가

고전11:23-27

 

서론

기독교에서는 성례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성례는 두 가지 예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성찬식과 세례식이 있습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이 되겠지만 성찬식은 예수님을 기념하는데 큰 의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떡으로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상하신 몸을 기념함이며, 잔은 주님이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것으로, 우리들이 받아 먹는 것입니다.

세례에는 두 가지, 즉 성령세례와 물세례가 있는 것입니다.

 

1. 세례의 의미

예수님께서 친히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마28:19-20).

교회의 일원이 되는 입교식으로 세례식이 있는 것입니다.

세례는 죄 가운데 출생하여 살아온 옛 사람이 죽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죄 씻음받고, 예수님과 연합되는 표적과 인침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새 생활을 하겠다고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표와 확증함을의미하는 것입니다.

세례받은 자는 예수님을 구주로 또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받은 자는 완전한 교인이 되었으므로 더욱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교회를 위하는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의무는 무엇이 있습니까?

(1) 전도할 의무

(2) 기도할 의무

(3) 봉사할 의무

(4) 헌신할 의무가 있습니다.

 

2. 성찬식 의미

"예수님에서 떡을 가지사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또 잔을 가지시고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6-28)"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표입니다.

(2) 그리스도의 죽으심 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을 얻게 하는 유익을 얻은표입니다.

(3) 구원받은 성도들의 교통의 표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한 형제 자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례식은 은혜를 받는 방편입니다. 성례식은 주님이 실시하였고 또 명하신 명령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성도들이 서로 연합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협력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위에서 설명한 성찬식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 참여합시다. 또한 세례는 죄 가운데 사는 옛 사람이 죽고 죄사함받은 새 사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교인으로 의무도 기쁘게 감당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와 합하여 세례받은 자

롬6:1-4

 

서론

교회의 거룩한 예식은 세례와 성찬입니다. 주 예수께서 세워주신 예식들입니다.

지금은 세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왜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1. 사람의 현실이 세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근본적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죄의 처리입니다. 죄 용서를 받는 데는 선행 조건이 세례를 받는 데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첫 번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하였습니다(행2:38). 그 권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그날에 3천 명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죄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일이요, 믿었다면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일입니다.

그러면 죄 용서를 받게 됩니다.

 

2.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들이 행할 일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라 하셨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 하셨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고, 주님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셨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고, 그리고 전도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자신이 친히 모범을 보이사 세례를 받았고 모든 주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3. 교회의 전승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 세워주신 교회의 예식이므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례를 통해서 사람을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아야만이 성찬에 참예하고 교회의 회원이 됩니다. 세례에는 교회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고 세례로 교회의 권위가 확립이 됩니다.

 

4. 세례란 죄를 씻는 표시입니다.

물이 더러운 것을 씻듯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나의 더러운 죄가 씻음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 씻음받은 외적증거입니다. 그리고 세례란 물속에서 나의 자아가 죽는 예식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통과할 때에 애굽의 잔재가 다 죽은 것과 같이 사람이 세례를 받음으로 죄의 잔재가 다죽는 것입니다. 결국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에 연합되는 예식입니다.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하나되는 의식이 세례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생명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새 사람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깨끗함을 유지 보존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이 교회의 정회원이라는 자각을 해야 합니다. 주인의식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과연 나를 위하여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것을 기억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마귀를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를 기념하라

눅22:19-21

 

서론

성찬 예식은 주님이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에게 세워주신 교회의 예식입니다. 이 날은 유월절 양을 먹는 날입니다. 유월절 양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죽지 않게 된 것을 기념하여 먹는 양입니다. 양이·대신 죽으므로 사람이 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 대신하여 죽어서 믿은 사람이 살게 되었으니 이 예식을 유월절 양 먹는 날에 제정하심이 마땅합니다.

 

1. 성만찬은 기도로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떡과 포도주를 주실 때에 먼저 기도하고 주신 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준비가 먼저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 성만찬은 신비입니다. 사람만의 지식이나 이해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성령의 깨우쳐 주심을 바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과 피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2. 성만찬은 주님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사람은 큰 은혜라도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서 천하보다 귀중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가 받았는데 그 크신 은혜를 망각하고 산 때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중요한 일을 망각하지 말고 기억하고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기억할 때에 우리의 삶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건이 흔들리는 것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또한 주님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한 덩어리가 됩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은 죄의 용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용서할 줄을 몰라서 서로 나누이고 찢기고 싸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기억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됩니다.

 

3. 성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예식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죽으신 이유를 후세에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전할 것입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은 이 예식을 행함으로써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완성이 되었지만 그 사실이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역은 일회로 끝이 났지만 그 표식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남아 있고 주님이 나눠주시고 이를 향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떡과 포도주가 낡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딛은 주님의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이 예식을 전래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죄가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완전히 용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인하므로 우리 영이 위로를 받고 믿음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결론

이 예식은 주님의 만찬이므로 성만찬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성도의 교제의 식탁입니다.이는 세례받은 성도가 다 함께 같은 음식을 먹기 때문입니다. 이 예식을 헬라어로 "감사"라고 부릅니다. 이는 성만찬이 진정 한 감사에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예식을 '기대'라고 부릅니다. 이는 장차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이 식탁을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풍성한 식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 실

성 경 활 용

1. 성실의 기준

(1) 여호와의 판단에 따라

(시7:8)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2) 주의 명하신 증거

(시119:138) 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

 

2. 성실해야 할 부분들

(1) 하나님을 섬기는 일

(수24:14)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2) 주의 앞에서 행할 일

(왕상3:6)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3) 백성을 보살피는 일

(시78:72)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4)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일

(렘23:28)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5) 구제하는 일

(롬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6)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는 일

(엡6: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

 

3. 하나님의 성실하심

(1) 아브라함에게

(창24:27)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2) 구원에 있어서

(시40:10) 내가 주의 의를 내 심중에 숨기지 아니하고 주의 성실과 구원을 선포하였으며

(3) 공중에 사무치도록

(시36: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4) 찬양 받을 만함

(시71:2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5) 멸망 중에 선포할 수 없다.

(시88:11)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

(6) 하늘에서 견고히 하신다.

(시89:2)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7) 대대에 미친다.

(시119:90)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8) 크시다.

(애3:23) 이 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관련원어풀이

1. hn:Wma? 에무-나-

참으로, 진실로.

(욥9:2, 사37:18)

 

2. tm,a, 에메트

영속성, 일생의 사업, 진리

(창24:27, 시54:5)

 

3. @m'a; 아-만

(1) 손으로 양육하다, 아이를 나르다.

(민11:12, 애4:5)

(2) 일어나 있다, 견고하다, 굳건하다, 기대다,

신실한 사람들.

(시12:2, 31:24)

(3) 기초하다, 견고하다, 안정되다.

(삼상2:35, 사7:9)

(4)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 확실하다, 기대다.

(민12:7,사8:2)

(5) 확실하다, 틀림없다.

(호5:9, 시19:8)

(6) 믿다, 신앙하다.

(사7:9, 잠14:15)

(7) 견고히 서다

(욥39:24)

 

4. dg'B; 바-가드

(1) 은밀히 행하다,불성실하게 행동하다, 가장하다.

(출21:8, 잠2:22)

(2) 압박하다, 괴롭히다, 못쓰게 만들다.

(사24:16, 합2:5)

 

5. bb;le 레-바-브

(1) 마음, 심장.

(삼하18:4, 시45:6)

(2) 행동이나 사고방식.

(왕상3:6, 시51:12)

3) 진지한 마음으로.

(대상12:38)

(4) 의도나 목적의 좌소.

(삼상14:7)

(5) 지식이나 지혜.

(왕상10:2, 삿16:17)

(6) 중간 부분, 내부, 속부분.

(출15:8, 신4:11)

 

6. !To 톰-

(1) 고결, 온전, 가득 참.

(사47:9)

(2) 안전, 번영.

(욥21:23, 시41:13)

(3) 고결, 순결, 청백.

(창20:5, 시126:1)

 

7. !ymiT; 타-밈

(1) 완성된, 완료된.

(욥36:4, 시19:8)

(2) 완전한, 온전한.

(레3:9, 수10:13)

(3) 온전한, 건전한.

(출12:5, 레1:3)

(4) 안전한.

(잠1:12)

(5) 온전한,올바른, 책망할 데가 없는.

(신18:13, 시15:2)

 

8. aJplovth" 하플로테-스

(1) 단순, 소박, 진지, 성실, 올바른, 솔직.

(고후11:3, 골3:22)

(2) 너그러움, 관용, 관대.

(롬12:8, 고후8:2)

설교예화자료

산양과 목동

 

넓은 들판에서 양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목동은 주위를 살피며 양떼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벌판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산양이 나타났습니다.

산양들은 목동의 양과 함께 풀을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저물자 목동은 양들을 모아 집으로 데리고 갔는데 양들 뒤에는 하루 종일 섞여 함께 풀을 먹은 산양들까지 따르고 있었습니다.

졸지에 많은 산양을 얻게 되자 목동은 기분이 좋아서 아내에게 자랑을 하였습니다.

"많은 산양이 생겼으니 이 얼마나 행운이요."

이튿날은 비가 왔습니다.

양들은 들판으로 데리고 나갈 수 없게 되자 목동은 우리안에 마른 풀을 넣어 주었습니다.

목동은 자기가 기르던 양들에게는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조금씩만 주고 산양들에게는 충분히 먹고 남을 만큼 많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잘 대해 주었으니 저 산양들도 틀림없이 나를 좋아하게 되겠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야."

목동은 기분이 좋아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다음 날은 날씨가 화창했습니다.

목동은 양들을 몰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그러자 산양들은 재빨리 숲속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아니, 어디로 도망가는 거냐? 은혜를 모르는 나쁜 녀석들!"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그러자 산양들 중의 하나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은 오랫동안 정든 당신의 양들보다 우리들에게 더 친절했어요. 언젠가 우리 뒤에 새 양이 온다면 우리도 그땐 지금 당신의 양들과 같은 대접을 받게 되겠죠? 우리는 당신을 믿을 수 없답니다.

 

 

헛된 꿈을 꾼 아가씨

 

장날이었습니다.

우유 짜는 아가씨가 우유가 가득 담긴 통을 머리에 이고 장이 열리는 곳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아가씨는 장을 향해 가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 우유를 판 돈으로 무엇을 살까? 그래 달걀을 사야지. 달걀로 병아리를 까서 키우면 닭이 될테니 그럼 그때는 그 닭을 팔아서 염소를 사야지. 염소가 크면 또 뭘 살까?"

아가씨는 끊임없이 많은 계획을 세우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염소가 크면 새끼 돼지를 사서 통통하게 살이 찌면 팔아야지. 그럼 그 다음에 그 돈으로무엇 하지? 좋아, 고운 레이스가 많이 달린 아주 멋있고 예쁜 드레스를 사야겠다. 잔칫날 그 옷을 입고 나가면 모두들 깜짝 놀랄거야. 내 모습에 반한 동네 청년들은 아마 서로 나와 춤을 추기 위해 야단이겠지. 그럼 같이 춤을 출까, 어떻게 할까? 처음부터 순순히 허락하면 날 우습게 알겠지? 그러니까 처음엔 싫다고 거절해야지. 그래, 절대 안돼! 어림없어 안돼!"

즐거운 생각에 깊이 빠진 아가씨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우유가 가득 담긴 통은 아가씨의 머리 위에서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가씨의 화려한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워싱턴의 성곽 속임수

 

조지 워싱턴은 동기라는 예술의 거장이었습니다. 1777년, 뉴저지 주 모리스타운에서 가까운 산에서의 일입니다. 병사들이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꼼짝도 하지 않으며 불평만하고 있자, 워싱턴은 엄격한 얼굴로 공병 장교에게 빨리 서둘러서 요새를 지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요새의 축조는 두 배로 빨리 서둘러졌고 보초의 숫자도 늘어났습니다. 게으르게 생활하던 병사들은 번적 정신이 들었고, 적이 곧 공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봄이 되어 눈이 녹기 시작했을 때 요새가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군은 이동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아직 요새가 완성되지 않았는데요? "라고 부하들이 질문을 하자, 워싱턴은 눈을 번득이며

"그 요새는 이미 제 할 일을 다 했다네. 그 요새의 축조 공사는 병사들의 게으른 생활을일깨우고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케하기 위해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이 일은 성곽 속임수라고 알려졌고, 지휘자가 부하들의 사기를 유지하는 좋은 방법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탈무드에는 연달아 4개월, 6개월, 아니 7년이란 긴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문을 제기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결론이 나지 않는 것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에의 맨 마지막 끝맺음에, "알 수 없다>고 씌여져 있습니다.

이 교훈은 "알 수 없을 때에는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좋다. "는 것입니다.

탈무드 가운데는 여러 가지 결론이 내려진 이야기도 있는데 그것에는 반드시 소수의 이견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소수의 의견은 적어 넣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청년의 준비성

 

한 농부가 일꾼을 구하기 위해 읍내를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일꾼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시장 한 귀퉁이에서 든든하게 생긴 한 청년을 만났습니다. 주인은 반신반의하며

"우리 농장에서 일해 줄 수 있나?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지요"하고 청년은 주저함도 없이 기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아무래도 바보 같은 그의 태도가 미심적어 다시 물었습니다.

"이름이 뭔가? 그리고 농사일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

"제 이름은 굴렁쇠예요, 농사일은 시키는 데로 하지요, 그리고 제 특기는 바람 부는 날 어떻게 하면 잠잘 수 있는 가를 알고 있는 거예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말 뜻을 못알아 들었지만 농사꾼은 마땅한 일꾼도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우선 한번 굴렁쇠를 써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느 날 심한 폭풍우가 천지를 뒤흔들었습니다. 잠들었던 주인은 깜짝 놀라 일어나서 굴렁쇠가 자는 방에 가 보았습니다. 굴렁쇠는 쿨쿨 자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자 화가 난 주인은 "내일 해고다. "하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인은 혼자 나갔습니다. 그러나 양과 소는 외 양간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고, 곡식도 전부 창고에 넣어져 있었으며, 열쇠도 다 채워져 있었고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굴렁쇠는 폭풍우가 올 것에 대비하여 모든 일을 끝내놓고 편안히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서야 주인은 전에 굴렁쇠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람 부는 날 어떻게 하면 잠을 잘 잘 수 있는가를 이야기했던 말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소위 지성의 덕이란 움직이지 않아도 공경하고, 말하지 않아도 믿게 되는 것이니, 속이 성실하면 겉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언적)

 

성실은 어디에서나 통용하는 유일한 화폐다.

(중국 속담)

 

성실함이란 인간이 갖는 가장 고상한 것이다

(G. 루즈벨트)

 

성실한 사람은 좀처럼 없다. 보통 세간에 볼 수 있는 성실이란 타인에게 신용을 얻으려는 교묘한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F.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아랫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의 신임을 받지 못하면 백성을 다스리지 못한다. 윗사람의 신임을 받는 데는 길이 있다. 친구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윗사람의 신임을 받지 못한다. 친구의 신임을 얻는 데 길이 있다. 부모를 섬겨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하면 친구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데 길이 있다. 스스로 반성하여 성실하지 않으면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다. 자신을 성실하게 하는 데 길이 있다. 무엇이 선인가를 밝힐 줄 모르면 성실해 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성실이란 하늘의 도이고, 성실해지려고 노력함은 사람의도이니라.

(맹자)

 

진리에 대한 의지와 마찬가지고 성실성에 대한 의지도 강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실성에 대한 용기를 보여줄 수 있는 시대만이 그 속에서 정신력으로 작용하는 진리를 소유할 수 있다. 성실성이란 정신 생활의 기본이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만일 우리가 오늘을 돌보면 신은 내일을 돌보실 것이다.

(M.K. 간디/ 영 인디아)

 

성실한 사람이란 종종 습관적으로 진지한 면이 없는 사물의 진지한 면을 보는 사람이다.

(V.W. 브루크스/ 한 작가의 비망록에서)

 

지식이 없는 성실성은 연약하고 쓸모가 없으며, 성실성이 없는 지식은 위험하고 두렵다.

(S. 존슨/ 라셀라스)

 

사람의 성실성은 그가 자신의 주의 주장을 위해 헌신할 때에만 증명이 된다.

(J.R. 로얼/ 나의 장서 중에서)

 

성실성의 상실은 생명력의 상실이다.

(C. N. 보베/ 사고에 관한 개요)

 

 

사랑은 성실을 구하고 성실은 불변을 구한다.

(이탈리아 속담)

 

성실할 것! 모든 일에, 그리고 어느 경우에 있어서도 언제나 성실할 것, 이 생각이 나를 꼭붙들고 놓아 주지를 않는다.

(R. 마르탱 뒤 가르/ 티보가의 사람들)

 

사람은 성실할수록 자신을 얻게 된다. 성실해질수록 태도가 안정되어진다. 성실하면 성실할수록 정신을 자각하게 된다. 하늘 땅앞에 자기가 엄연히 존재해 있다는 관념은 성실할 때 바로소 얻어지는 자각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충심의 성실성은, 인물뿐 아니라 재능의 유일한 바탕이다.

(에머슨/ 수필집)

 

정당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하느님에게 인도되는 황금의 통로를 걷는 것이다.

(J.G. 홀런드/ 솔직한 대화)

 

대저 착실이란 것은 무슨 일에든지 실질적인 과율에 근거하여 명확한 타산하에 정당한 계획과 조직으로써 무엇을 어떻게 하여 어떠한 결과를 지어내겠다 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뜻을 옮기지 않고 순서에 의지하여 각근한 노력을 다함을 이름이외다.

(안창호/ 동포에게 고하는 글)

 

개개인의 성실이 공공의 안녕이다.

(C.A. 바톨/ 근본적인 문제)

 

성실하게 사랑하며 조용히 침묵을 지키라. 성실한 사람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F. 제나인)

 

자기에게 성의가 있으면 상대방에 허위가 있을 리 없고, 자기에게 허위가 있으면 상대방에 성의가 있을 리 없다.

(T. 만)

 

세 가지 성실한 친구가 있다. 즉, 늙은 아내, 늙은 개, 현금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사람들은 성실성을 찬양하지만, 성실은 굶어 죽는다.

(유베날리스/ 풍자시집)

 

그대의 마음속에 식지 않는 열과 성의를 가져라! 당신은 드디어 일생이 빛을 얻으리라! 정직과 성실을 그대의 벗으로 삼으라! 아무리 친한 벗이라 하더라도 그대 자신으로부터 나온 정직과 성실만큼 그대를 돕지는 못하리라. 남의 믿음을 잃었을 때 사람은 가장 비참한 것이다. 백 권의 책보다 단 한 가지의 성실한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는 데에 있어서 보다 큰 힘이 될 것이다.

(B. 프랭클린)

 

성실이야말로 가장 우수한 정책.

(영국 속담)

 

성실이란 마음이라는 조개 안에 생기는 진주다.

(영국 속담)

 

성실이 능력을 보충한다.

(프랑스 속담)

 

성 ·불성(性不性)一一 그것은 방관자나 공리주의자나 세속주의자가 헤아릴 문제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여 백 프로의 성실을 다할 수 있다면 결과를 기다릴 것 없이 우리들의 인생은 성공 속에 사는 일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현실적인 여건을 생각하지 않는 미련한 소리같이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성실한 생활이나 삶 속에는 맹목적이거나 비타산적인 일면이 있는 법이다.

(박목월/ 무조건의 성실성)

 

부허(浮虛)는 패망의 근본이요, 착실은 성공의 기초이다.

(주요한/ 안도산전집)

 

결국에 가서 성실한 마음보다 더 성스러운 것은 없다.

(R.W. 에머슨/ 수필집)

 

성실이란 덕은 한 포기의 꽃이 아니요, 봄날에 불어오는 동풍과 같아 훈훈한 기분과 따뜻한 빛이 백화의 개발을 재촉하는 분위기와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실은 모든 덕의 근본이요, 인간 행동의 표준 중의 표준이다. 통풍이 불지 않으면 화초가 피지 못하고, 사람에게 성실이 없으면 인격의 향기를 가져보지도 못하고 더욱이 풍기지는 못할 것이다.

(백낙준)

 

만일 성의가 따르지 않고 한갖 말로만 바르게 꾸짖는다면, 그 사이가 벌어지지 않는 이가 거의 드물 것이다.

(이항/ 퇴계집)

 

솔직 명료한 성실에는, 잔꾀가 필요없다.

(W.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지혜를 짜내려고 애 쓰기보다는 먼저 성실하라!사람이 지혜가 부족해서 일에 실패하는 일은 적다. 사람에게 늘 부족한 것은 성실이다. 성실하면 지혜도 생기지만 성실치 못하면 있는 지혜도 흐려지는 법이다.

(B. 디즈레일리)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성과 관계없는 위대함이란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자기가 자신에게 조차 연극을 보여준다는 것은 구역질 나는 일이다.

(F.W. 니체/ 서광)

 

명심하면 명심 덕이 있다. <*무슨 일이나 마음을 가다듬어 하면 그만한 이익이 있다는 뜻>

(한국 속담)

 

우리가 만약 어떤 목표 없이 인생을 허송세월한다면 그 일생은 물론 단 하루라도 인생의 존귀한 것은 모르고 말 것이다. 인생이 무엇인가? 그것은 설명보다도, 성실한 태도로 사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감득되는 바가 있다. 먼저 아침 식사 때에 조용히 감사하며 자기의 성실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성실로써 내용을 이루어가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저 보내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를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 채워 가는 것이라야 한다.

(J. 러스킨)

 

성실은 도덕의 핵심이다.

(T.H. 헉슬리/ 현실적 이상적 대학)

 

백설 위에 떨기떨기/ 돋친 망울은/ 성실한 나의 고백

(김철/ 진달래)

 

그러나 그대는 탑처럼 의연하게 서 있어 주었소./ 그대의 머리는 내게 있어서 이를테면 폭풍 속의 등대였소/ 그대의 성실한 마음은 내게 있어서 좋은 등대였소

(하이네/ 크리스찬 5에게 보내는 벽화품의 소네트 · 8)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으면/ 사나이는 슬픔을 지니게 마련이다. // 사나이는 그때 알게 마련이니/ 친구들에게 성실함은 없고/ 약간의 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말은 헛되다는 사실을

(조이스/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 보라)

 

 

설 교 노 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미6:6-8

 

서론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가 아니라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서 성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 공의로 행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공의란 바르고 옳은 것입니다. 공평되고 의로운 것입니다.

거짓과 불의가 성행하는 이때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속이는 것은 결코 공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멸망당한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역시 두려운 시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공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인자를 사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인자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질고 자비로운 삶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상이 악하고 죄악이 관영하므로 인자한 행동이 더욱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자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며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의 교훈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완악하고 강팍하여져서 마음이 자비롭지 못하고 형제를 미워하며, 같은 성도간에 불화가 생기고 분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인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닌 것입니다.

끊임없이 다른 자들을 위하여 봉사하고, 가난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주님을 모르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3. 겸손히 행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 죄악의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강한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한 데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직 겸손한 데에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보면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을 당한 사람은모두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교만한 마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겸손한 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겸손한 옷을 입어야 큰 일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인간은 거짓말하는 동물이요, 속이는 존재요,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거짓이 없으십니다. 항상 성실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에서 원하시는 것은 공의로 행하는 것과 인자를 사랑하는 것과 겸손히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모두 지켜서 성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실히 일하는 교회

살후3:6-15

 

서론

우리가 성실하게 일하면 흥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쇠하게 됩니다. 성실하면 성공하게 되지만 불성실하면 실패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은 교인은 다 성실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명령이며,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할 책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일해서 양식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노동은 타락 이전에 에덴동산에서부터 사람에게 주신 복입니다.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라는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다만 타락 후에는 일이 힘들게 되었다는 것이 타락 전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주시고 일할 힘을 주시고 손과 발을 주시고 일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도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므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도 모든 교인들이 자기의 본분을 다 할 때에 아름다운 교회가 됩니다. 부흥하는 교회가 됩니다. 자기 일에 충성할 때에 잘됩니다.

 

2. 개혁 교회는 처음부터 열심히 일하는 교회였습니다.

종교 개혁 시대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일을 노예들이 했습니다. 따라서 육체 노동을 천히여기고 죄인이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맡은 일을 감당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청소하는 사람은 그 일을, 장사하는 사람은 지성을 다하고,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그 일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니 개혁 교회가 점점 왕성하게 된 것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유교의 잘못된 전통으로 육체 노동을 천시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정신이 사회에 그대로 반영이 된 것입니다.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부지런히 일함으로 생활이 부해집니다.

물론 연구하면서 부지런해야 합니다. "좀더 졸자 좀더 눕자 하면 궁핍이 도적같이 오며 군사같이 온다"라고 잠언 24장에 말씀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므로 몸도 튼튼해지고 생각도 건실해집니다. 규칙적으로 일하면 더욱 좋습니다. 밥맛도 좋고 잠도 잘 옵니다. 부지런히 일하므로 죄의 유혹을 받을 기회가 없어집니다.

한가하면 유혹받기 쉽습니다. 다윗은 대낮에 자다가 범죄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은 점점 흥하게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 많은 것으로 맡기는 것이 주님의 방법인데 세상 사람도 그러합니다. 성경의 달란트 비유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 교회도 각자 맡은 바 일에 성실하고 충성해야 하겠습니다. 영적인 일에도 열심을 다합시다. 특히 전도와 양육과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성실하셨듯이 우리도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실하게 살려면

막1:35-39

 

서론

우리에게는 하루하루의 생활을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성실하게 살면 기쁨이 따르지만 불성실하게 살면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의 일과를 본받아서 하루하루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성실한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1.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시기 전에 새벽 일찍이 외딴 곳에 가셔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큰 일을 하실 때에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도 역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실하게 살기 위해서는 모든 일을 기도로써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영적 호흡입니다. 우리가 숨을 멈추면 모든 삶이 끝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기도를 멈추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역시 끝이 나게 됩니다.그렇기 때문에 기도 생활을 성실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찍 일어나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늦게 일어나서 보약을 먹는 것보다 훨씬 유익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성실하게 살려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제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거리에서나 회당에서나 산에서나 들에서나 복음 전파에 온 정력을 다 바치던 것입니다.

이렇듯 복음 전파에 온 힘을 다하는 예수의 교훈은 바리새인의 가르침보다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생활이 성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주님을 본받아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의무인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도 역시 우리가 성실하게 살려는 것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3. 성실하게 살려면 봉사해야 합니다.

봉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행동에 의하여 많은 사람이 병고침을 받았고 귀신에게서 풀려났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 기도하였습니다.

주님의 성실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았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병든 자를 치료해 주고, 가난한 자를 돌봐주고 내 것을 나누어 주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가 성실하게 살려면 기도해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실하게 사시므로 인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 장

성 경 활 용

1. 물질적인 성장의 유형

(1) 곡식

(출9:32)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왕하19: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2) 풀

(시90: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사34:13)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취와 새풀이 자라서

(3) 나무

(출10:5) ‥‥너희로 위하여 자라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4) 사람

(창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메고

(출2: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눅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5) 머리털

(삿16:22) 그의 머리털이 밀리운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6) 수염

(삼하10:5)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2. 영적 성장의 유형

(1) 하나님 나라

(막4:26-27)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2) 복음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맺어 자라나는도다

(3) 지혜

(눅2:40)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4) 악한 세력

(마13:7) 더러운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3. 성장의 목표

(1) 그리스도에게까지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2) 천하에서

(골1:6) 2- (2) 참조

(3) 구원에 이르도록

(벧전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4)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럽게

(눅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가시더라

(5) 장성한 사람

(고전13:11)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이름은 버렸노라

 

4. 성장한 자의 결과

(1)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

(엡4:16)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2) 젖을 뗀다.

(창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메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3) 열매를 맺는다.

(골1:6) 2-(2) 참조

(4) 어릴 때의 일을 버린다.

(고전18:11) 3- (5) 참조

(5) 단단한 음식을 먹는다.

(히5: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5. 성장하는 비결

(1) 하나님이 자라게 하셔야

(골2:9)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고전3:6) 나는 심없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2) 각 지체의 분량되는

(엡4:16) 4- (1)를 보라.

(3) 가시가 없어야

(마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며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4) 좋은 땅에 떨어져야

(마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5) 성령으로

(골1:10) 주게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6) 죄를 버려야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7) 말씀을 사모해야

(벧전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함이라

 

6. 영적으로 자랑을 방해하는 것들

(1) 영적인 지식의 부족으로

(행18:24-28) 참조

(2)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마13:7)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막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3) 육신적 이므로

(고전3:1-3) 참조

(4) 불안정으로

(엡4:14-15) 참조

(5) 영적인 무딤으로

(히5:11-14) 참조

관련원어풀이

1. jm'x; 차-마흐

(1) 솟아 나오다, 시작되다, 산출되다.

(창2:5, 레13:37)

(2) 솟아나다, 산출되다.

(삿16:22, 겔16:7)

 

2. jm'x, 체마흐

싹이 남, 소산물, 열매.

(창19:25, 겔16:7)

 

3. $Wx 추-츠

(1) 빛나다, 번영하다, 번창하다.

(겔7:10)

(2) 빛나다, 밝다, 잠깐 보다.

(시132:18, 아2:9)

(3) 번성하다, 번창하다.

(민17:23, 시72:16)

 

4. ld'G: 가-달

(1) 자라다.

(창21:8, 출2:10)

(2) 존귀해지다, 찬양을 받다.

(삼상26:24, 시35:27)

(3) 자라게 하다. 위대하게 만들다.

(민6:5, 시1:2)

 

5. trevfw 트레포-

(1) 양육하다, 부양하다.

(마6:26, 눅12:24)

(2) 후원하다, 보조하다.

(행12:20)

 

6. ajnatrevfw 아나트레포-

(1) 젖을 먹이다, 기르다, 간호하다.

(행7:20)

(2) 양육하다, 교육하다.

(행7:21)

(3) 육적, 정신적 양육.

(눅4:16)

 

7. mhkuvnw 메-쿠노-

길게 하다, 길어지다, 자라나다.

(막4:27)

설교예화자료

아들의 건전한 성장을 위하여

 

남편 없이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며 아드님을 키우시는 자매님께 우선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아들을 훌륭하게 키우시려는 자매님의 걱정을 이해합니다. 아드님을 어리다고만 생각지 마시고 경제 문제든 집안 문제든 함께 의논하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키우는 것은 내 책임이니 어디까지나 내가 해결해야지 하고 생각 마시고 아드님을 의논의 대상으로 간주할 때 모자간의 정도 두터워지고 아드님도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는 남자로 성장해갈 것입니다.

자매님은 여자로 자라서 남자 아이의 자라는 과정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자기 독방을 준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리고 자주 들여다보지 마시고 할 말은 엄마방으로 불러내어 하도록 하십시오.

아드님은 제2성장기, 즉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자아를 발견하게 되므로 전과 같이 무조건 어머니께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청소년은 부모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3년 전에 어른이 되고,부모는 아이들이 자신은 어른이라고 생각한 지 3년 후에 어른이 되었음을 인식합니다.

서울 강남의 어느 초등학교 6학년 반에서는 여학생 100%가 졸업에 멘스를 경험했다고 하니, 아드님이 성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해도 정상적인 것입니다. "성욕은 본능이나 성은 본능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성행위는 '학습'이라는 말입니다.

 

 

차례차례 기도하였다

 

토레이 박사가 '명확한 기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수년 전 메인 주의 어느 조그만 마을은 모든 것이 죽어 있었습니다. 교회가 하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교회들에는 몇몇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들은 교육받지 못한 평신도들이지만 우리 마을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그리고는 기도하는 모임을 조직해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거칠은 술 주정꾼을 뽑았고 그를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한 주일 후, 그는 새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마을에서 두 번째로 거친 사람을 위해 기도를 했으며 그는 곧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했고 일 년이 지나자 2, 3백여 명이 그리스도에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 불은 곧 인근의 마을로 확산되어졌습니다.

죄의 소굴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필요한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성장은 생명의 유일한 증거이다.

(J.H. 뉴먼/ 비타 수아를 위한 변호)

 

성장의 가장 강력한 원리는, 인간의 선택에 있다.

(G. 엘리어트/ 다니엘 데론다)

 

영혼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지혜가 없이는 진실한 인격의 성숙은 있을 수 없다. 어른은 육체에 어린애 같은 마음을 머물러 있게 함은 위험한 일이다. 문명의 역사는 인류의 각성의 역사이지만, 지금껏 인류의 양심의 각성은 지극히 완만했다. 인간은 다른 면에서는 우선 성숙을 이룩했다. 물질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나, 인류는 처음에는 꿈꿀 수도 없었던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인간은 아직 유아다.

(D. 카네기)

 

자기 일밖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회사 입장에서 봐도 결코 우수한 인간이 되지 못 한다. 자기 업무 이외의 어떠한 생활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성장이란 있을 수 없다.

(P.F. 드러커/ 내일을 위한 사상)

 

성장은 그 자체가 행복의 배종(胚種)을 함유한다.

(P.S. 벅/ 사랑하는 내 딸들에게)

 

지식노동자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발전 목표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P.F. 드러커/ 경영자의 조건)

 

인간의 '발전'은 다른 자원들과는 달라서 밖으로부터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발전'이란 항상 '성장'이고 '성장'은 언제나 안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업무는 개인의 성장을 촉진시키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출생이 자궁의 감싸 주는 보호에서 떠남을 의미하듯 성장은 어머니의 보호권에서 떠남을뜻한다.

(E. 프름/ 건전한 사회)

 

성장이란, 성장하는 개인 또는 문명이 차츰차츰 스스로의 환경 스스로의 도전자, 스스로의 행동 영역이 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기 결정의 능력이 증대한다는 그것이다.

(A.J. 토인비/ 역사의 연구)

 

모든 성장은 어둠 속의 도약이요, 경험의 혜택이 없는 자연적이고 미리 계획되지 않는 행위이다.

(H. 밀러/ 마음의 지혜)

 

휴식 없는 꾸준한 성장이 가장 큰 성장을 가져온다.

(신일철/ 식물의 교훈)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그것을 제 힘으로 성취시키면 그것이 인생의 성장인 것이다.

(신일철/ 낚시 만세)

 

언젠가 날기를 배우려는 자는, 우선 서고, 걷고, 달리고, 오르고, 춤추는 것을 배워야 한다.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어른을 보는 데 있어서 너무 가까이 가면 일부분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 멀리 있어서는 자세한 점을 관찰하지 못한다. 올바르게 볼 수 있는 것은 자기가 어른이 되었을 때다. 사물의 관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성장이다.

(J.W 괴테)

 

성장되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것은 무엇이나 서서히 그의 성숙에 도달한다.

(S. 존슨)

 

인간의 성장은 자기 친구의 성공적인 합창 속에 보여진다.

(에머슨/ 수필집)

 

성장이란 언제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본인의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보와 발전에 관해서 기업이 책임을 느끼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P.F. 드러커/ 현대의 경영)

 

성숙하는 데 가장 오래 걸리며, 미숙한 동안에 가장 무력한 것이 가장 고등한 생물이다.

(G.B. 쇼/ 메두셀라로의 귀환)

 

숲속의 호박은 잘 자란다. < *늘 보는 것은 자라는 줄 모르나, 한창 자랄 때의 사람이나 생물은 오랜만에 한 번씩 보게 되면 몰라볼이 만큼 쑥쑥 큰다는 뜻>

(한국 속담)

 

생장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J. H. 뉴먼)

 

늙어서 성장하는 것은 손톱과 탐욕뿐이다.

(미국 속담)

 

세계는 지금 거칠게 자라도/ 책은 그들의 머리를 양페와 같이 먼 내일의/ 언덕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김현승/ 책)

 

그러면 우리를 고독케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비록 그것들에 새로운 시간의 수액을 흐르게 하여,/ 현재와 미래의 꿈 많은 여정을 주어/ 시를 산문으로 종합을 분석으로,결핍을 생산으로/ 성장케 한들 그것은 또한 무엇인가?

(김현승/ 인간은 고독하다)

 

"세상이 문제인 것은 인간들이 성장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사실이다. " 스승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언제야 사람이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한 제자가 물었다. / "아무것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진 날에."

(앤소니 드 멜로/ 위대함)

 

내가 숭상하는 나무는 나의 영혼/ 늘 성장하는

(박목월/ 秘義)

 

나는 어린 풀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나에게는 오직 생장이 있을 뿐이다/ 태양과 모든 성진이 운명하기까지/ 나에게도 생명의 감로가 나릴 뿐이다/ 온누리의 모든 생물들로 더불어,/ 나는 영원히 생장의 축배를 올리련다

(김형배/ 벌거숭이의 노래)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김윤성/ 나무)

 

그들은 한 나무의 꼭대기를 잘랐다/ 그리고 말했다/ 자라라고// 그들은 한 나무의 뿌리를잘랐다. / 그리고 말했다/ 자라라고/ 그들은 나무로부터 모든 양분을 빼앗았다/ 그리고 말했다. / 자라라고// 그리고 보라고 했다/ 자랐다.

(에스더 그레스/ 그리고 보라!)

 

날마다 달라지는 / 우리 아기처럼/ 볼 때 마다 달라지는/ 담쟁이 잎의 크기

(박경용/ 초여름 II)

 

할 수 있는 일을 위하여/ 얼마의 밤을 길게 보냈으며/ 몇 날의 변화를 손꼽았느냐/오직 눈떠가는 영혼의 성장과 불멸하는 양식을 위하여/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렸느니라.

(황금찬/ 영혼은 잠들지 않고)

 

스승은 항상 각자가 제나름의 보조에 맞추어/ 자라도록 내버려 두었다. / 그는 결코 '강박'할 줄을 몰랐다. / 그는 이것을 다음의 비유로 설명했다. // 어떤 사람이 한 번은 나비가 고치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고서, 자기 마음에는 너무 느려 보이기에 거기다 대고 부드럽게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입김의 온기가 성장 과정을 촉진시켰다. / 그러나 밖으로 나온 것은 나비가 아니라 망가진 날개를 가진 벌레였다. //스승은 결론지었다. / "성장하는 데 있어서 과정을 서두를 수는 없다. / 그랬다가는 유산시킬 뿐이다. "

(앤소니 드 멜로/ 강박)

 

스승은 고명한 경제학자가 발전에 대한 그의 청사진을 설명하는 것을 넋을 잃고 들었다./ "경제 이론에서는 성장이 유일한 관심사인가요?"/ 그는 물었다. / "그렇습니다. 모든 성장은 그 나름대로 좋은 것입니다. "/ "그거야 말로 암 세포의 생각이 아닌가요?"/스승이 말했다.

(앤소니 드 멜로/ 확산)

 

하지만 나는 당신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마치 대지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듯이/ 내가 성숙함에 따라/ 당신의 나라도/ 성숙합니다.

(릴케/ 당신을 구하는 자는 모두)

 

소녀의 가슴에 슬픔을 줘서는 안 된다. 피곤한 몸 옆에 피가 태양과 오랜 인내의 표시 인과실나무를 자라나게 하고, 권태로운 사색앞에 한 마리의 사슴을 선서하라.

(김구용/ 초적)

 

"재난은 성장과 깨우침을 초래할 수 있다" 스승은 말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매 일 어느 새가 황량한 광야 복판에 서 있는 시들은 나뭇가지에 살았다. 어느 날 회오리바람이 그 나무를 뿌리째 뽑아 버려 그 가엾은 새는 할 수 없이 보금자리를 찾아서 백 리도 넘게 날아가야 했다-마침내 과일이 달린 나무숲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는 말했다:"만일 그 시든 나무가 살아 있었다면, 아무것도 그 새가 자신의 안전을 포기하고 날아가게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

(앤소니 드 멜로/ 시련)

 

나서 자란 그 품이 귀중한 줄을/ 고향에선 미처 몰랐습니다.

(박화/ 영원한 요람)

 

 

설 교 노 트

 

신앙 성장의 비결

벧전2:1-10

 

서론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3장 13절에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 도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 베드로의 신앙 성장에 대한 권면은 단순히 이론적으로만 권면한 말씀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실제 체험에 근거한 신앙생활상 여러 가지 파란곡절을 겪는 중에서 그 신앙이 성장하여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기독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어린 아이가 점점 성장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점점 성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 성장해야 되는고 하니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까지라고 하였습니다(엡4:13-15).

이와 같이 성장해야 한 우리 신앙이 성장하지 못한다면 여기에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1. 신앙이 성장해야 하는 이유

우리의 신앙의 왜 성장해야 합니까?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중생한 우리 신자들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2)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성장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3)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 위하여 성장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상 세 가지 이유로 신앙이 성장해야 합니다.

 

2. 신앙이 성장하는 비결

우리의 신앙이 어떻게 해야 바로 성장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성장합니다.

본문 2절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 어린애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는 것과 같이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말씀인 성경 말씀을 통해서 신앙이 성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요, 영양제요, 생명 보존과-발육상 유일무이의 요소가 됩니다(롬10:17, 살전2:13).

(2) 영적 운동을 전개해야 성장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24에 우리 신앙생활은 마치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선수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영적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과 봉사입니다. 이는 교회를 중심한 우리의 책임과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기도 생활을 위시하여 복음을 힘 있게 전도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3) 우리 심령이 건강하도록 영적 질병을 제거해야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영적 운동을 전개해도 우리 영혼이 병들면 바르게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 사도 베드로는 본문 2:1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이 성장되어야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 자신의 구원도 성취하고, 제사장의 사명도 바로 수행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1) 말씀을 사무하고

(2) 교회 붕사에 힘쓰면서

(3) 나 자신의 영적 건강을 유지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교회 성장의 비결

행9:31

 

서론

교회의 성장은 바로 우리 개인의 신앙 성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백성들의 생명 집단으로써 말씀과 신앙의 결합체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를 통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영혼들을 구원하여 인류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기관으로써 가장 아끼시고 존귀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장하여 지상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 성장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섭리적 은총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사 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교회가 설립되고, 발전해 나갈 지역적 서열이 벌써 예고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예루살렘이고, 다음은 유대이고, 다음은 사마리아이고, 다음은 땅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따라 사마리아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했던 것은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방에 이미 복음의 씨를 뿌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했고 복음을 받은 이 여인은 사마리아 성음에 들어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이는 교회 성장의 기초 작업을 완성해 놓았다는 의미입니다.

(2) 사도들이 빌립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행8:4).

여기에는 예루살렘 교회가 큰 환난과 핍박을 받은데 있습니다. 타오르는 신앙과 복음의 불꽃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마리아에도 부흥의 불을 일으켜 놓고야 말았습니다.

(3) 예루살렘 신자들의 집결과 합세에 있었습니다(행8:1).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 외에도 모두 각 지방으로 내려와 본토 교인들과 합세함으로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교회를 위해 모든 것 다 바치고 유무상통한 신자들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초개같이 여긴 신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버리거나신앙을 포기하고서는 못살 줄 아는 신자들입니다.

 

2. 교회 성장의 3대 은총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교회는 먼저 주님의 복음을 바로 받아들이었고, 다음은 전도자들이 힘 있게 사역을 했고, 셋째는 열열한 신자들의 합심협력하는 섭리적 은총에서 출발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교회에 하나님은 세 가지 큰 은혜를 베풀어 더욱 성장시켰으니

(1) 평안하여 튼튼히 서 가는 은혜입니다.

교회가 평안하여 튼튼히 서 갔다는 말씀은 불상사가 없이 화평한 가운데 건전하게 발전해 나아갔다는 뜻입니다. 이 진정한 평안은 사랑과 양보와 겸손의 미덕이라고 합니다.

(2) 주를 경외하는 은혜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은혜는 매우 귀중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감찰하시고, 나의 생사와 화복을 주장하신다는 신념을 가지고,

경성하여 경건하게 생활하며

② 게으르지 아니하고, 힘써 노력하고

불순종이나 죄를 범할 수가 없게 됩니다. 주를 경외하는 성도는 성결하며 충성하기 마련입니다.

(3)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는 은혜입니다.

이 성령의 은총은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와 실망 자에게 소망과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 나아가서 성공할 때 감사와 평안할 때 찬송과 기뻐할 때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이 성령의 은혜가 모든 신자의 생활을 주장하고 인도해 갈 때 교회는 힘 있게 성장하게 됩니다.

 

결론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교회 성장을 위해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복음을 주시었고 전도자를 파송했고 신앙의 선물을 주시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성립된 교회는 첫째, 평안해야 하고 둘째, 순결해야 하고 셋째,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성장하게 됩니다.

이리하여 믿는 자의 수가 더 많아졌다고 하였으니 이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크게 부흥한 증거입니다.

 

 

교회 성장의 원리

행16:6-15

 

서론

우리는 격동이 심한 역사 속에서 그 어느 시대든지, 또한 어느 지역에서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힘 있게 전파되어 지상에 교회가 창설되고 성장해 나가는 사실에 대해서 모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본문의 내용은 사도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 당시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창설하였고,이 빌립보 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게 되었던 그 원리와 내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이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이 아시아 지역에서 유럽 지역으로 전파되어진 의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리적인 측면에서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이재는 로마까지 전파되었다는 점에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로마는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이라 역사가들의 말과 같이 모든 길은 로마를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를 복음화하는 것은 세계 복음화의 첩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2) 인종적인 측면에서 복음이 황인종의 세

계에서 백인종의 세계로 전파되었다는 점에도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신학자들이나 역사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백인들은 황인들보다 그의 사고 방법이나 행동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기 때문에 이 복음받아 활발하고 힘 있게 전파할 수 있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 세계에 빨리 또는 힘 있게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고 있습니다.

(3) 문화적인 측면에서 복음이 동양 문화권에서 서양 문화권으로 이동이 되어 서양 문화권을 복음화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되어진 그 원리는 창9:27절에 하나님의 말씀하신 예정과 예언의 성취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이 복음 전파나 교회 창설이나 교회 성장은 먼저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과 활동에 있다는 말입니다.

 

2. 전도자의 희생적인 사역이라고 합니다.

본문 16:11-15에, 전도자 바울과 실라는, 자기의 주관도 감정도 의지도 추월하여 성령의 지시에 따라, 비록 멀고 험한 길일지라도 사양치 아니하고 희생적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빌립보는 본래 아시아에서 유럽을 통하는 관문으로써 정치, 경제, 문화의 요새지라고 합니다.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창설하고 성장시킨 전도자들은 희생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할만 합니다.

(1) 성령에 붙들린 전도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성령의 제지와 지시를 따라 복음을 가지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전도자는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 성령의 지시를 따라 살아야 하고 사역해야 됩니다.

(2) 복음을 갈망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전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본문 9절에 보면, 복음을 갈망하는 불쌍한 영혼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길이 멀고 험하여, 힘이 들고 괴로워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희생적인 전도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3) 기도하고 복음 전한 전도자들입니다.

기도는 복음 전도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복음 전파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요, 이 세상 일이 아니고 마귀와 싸우는 일이며, 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파해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신자들의 열정적인 봉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4-16에, 전도자를 만나 복음을 받은 루디아라고 하는 여 신자는 열정적으로 전도자들을 봉사하고, 교회를 봉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이 전파되어 한 교회가 창설이 되고, 성장하는 원리는 삼합일치가 되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 루디아의 열정적인 신앙과 봉사는

(1) 전도자들을 중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봉사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의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 자신의 신앙생활과 교회 생활을 성실하게 한 신자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사모하여 받은 말씀대로 주일 성수도 착실히 했고 십일조도 착실하게 바쳤고, 교회 봉사도 착실하게 하였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3) 열심으로 복음을 전파한 신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복음은 지도자나, 전도자만이 전파해야 되는 것은 아니고, 일반 신자들이 다같이 열심으로 전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먼저 자기 가족에게 다음 친구나 이웃에게 열심으로 이 복음을 전하는 신자들의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성장한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복음 전파의 결과, 교회가 창설되고 크게 성장함에 따라

(1) 마귀에게서 해방받아 자유인이 되었고,

(2) 불의한 세상 권세에서 해방받아 신앙인이 되었고,

(3)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탄(-절)

성 경 활 용

1.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전의 사실

(1)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남

(눅1: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주리니

 

(2)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나탐

(눅1:26-27)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원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3)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

(눅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 마리아의 송가

(눅1:46-55) 참조

(5)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남

(마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1)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사야가 예언하였다.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2)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마1:18, 20)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3) 헤롯 왕 시대에 탄생

(마2: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4) 탄생하신 곳은 유대 땅 베들레헴이다.

(눅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리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목자들이 그리스도께 예배하였다.

(눅2:16-20)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이에 대하여

(6)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셨다.

(눅2:21)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니라

(7) 동방 박사들에게 정배를 받으셨다.

(마2:1-12) 참조

 

3.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예언과 성취

!I. 여자의 후손

(1) 예언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2) 성취

(마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눅2:6-7)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나게 하신 것은

 

!II. 동정녀 탄생

(1) 예언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2) 성취

(눅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III. 탄생의 시기

(1) 예언

(창49:10)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말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2) 성취

(눅2:1) 이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눅2:11)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IV. 탄생 장소

(1) 예언

(미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에게서 내게로 나을 것이라

(2) 성취

(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4.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탄생

(1) 하나님의 아들로

(시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히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매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2) 여인의 후손으로

(창3:15)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3) 처녀 잉태

(사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4) 이새의 아들 다윗의 씨로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5) 아기로 탄생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은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설교예화자료

베들레헴으로 좁혀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이들 세 개의 대륙 중 아시아가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 가운데 하나인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이 지목되었습니다. 다시 이 땅의 세 개의 지명인 유대, 갈리리, 사마리아 중 유대 지방이 최종적으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많은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메시아가 탄생한 작은 마을 베들레헴은 바로 이런 큰 은혜를 입은 마을이었던 것입니다.

 

 

서기력의 출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후 5세기 동안 세계는 고대 로마 달력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A.D.532년에 로마의 디오니시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일을 산정하였습니다(최근에 학자들은 그의 출생일이 약 5년쯤 부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디오니시우스는 예수가 로마력 754년에 태어났다고 산정하고는 이 해를 기준으로 '크리스찬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이전의 해들은 뒤로 거슬러 산정되었으며(B.C.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을 의미), 예수 이후의 해는 앞쪽을 향하여 계산되었습니다(A.D.는 라틴어로 '아노도미니'를 말하는 것으로, 주님의 시대가 지난 것을 의미).

 

 

저 작은 반점과 같은 빛

 

한 화가가 추운 겨울철의 황혼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나무들은 눈으로 덮혀 무겁게 휘청거리고 있으며, 어둠침침하고 퇴락한 집 한 채가 광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황량하게 서 있습니다. 그것은 슬프고도 충충한 광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화가는 노랑색 크레용으로 점점이 찍어 창문에 불빛을 만들었습니다. 그 효과는 이상스런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전체의 풍경이 안락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분명히 이 어두운 세계에 비춰진 이러한 한 줄기 빛이었던 것입니다.

 

 

인자-빛

 

A.D.274년, 고대 로마 황제는 '미정복 태양의 출생일'로써 12월 25일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는 태양이 겨울의 중간의 날에 남쪽 하늘의 가장 낮은 점에 도달하고 서서히 다시 북쪽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해마다의 자연의 재출생은 로마의 신년 및 식목 계절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매년 이맘 때 푸른 나무와 양초로 집을 장식하고, 어린 아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얼마 후 크리스찬들은 이 날을 그들의 성스런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A. D.336년에 이르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12월 25일을 의(義)의 인자, 주 예수의 출생일로 경축하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초기의 성탄 의식

 

1700년대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식민지인 버지니아의 수도 윌리암스버그의 정착민들은 영국에서의 관습에 따라 크리스마스 행사를 거행하였습니다. 산타클로스(네덜란드의 전통), 크리스마스 트리(독일 전통), 고아원 방문(이탈리아 전통), 그리고 굴뚝의 양말(미국 전통) 등의 행사는 그 때 당시는 없었습니다. 영국 식민지 윌리암스버그애서의 크리스마스 행사는 근본적으로 거룩한 날이었으나 분위기는 엄숙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가정은 사철나무로 장식을 하였고, 성탄 캐롤을 부르는 자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창문에 촛불을 밝혔습니다.

또한 공식적인 의식도 있었습니다. 음악가들은 특별 음악회를 개최하였고,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불꽃놀이와 함께 대포를 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축제를 위해서는 통닭, 산토끼, 푸딩, 햄,굴, 소시지, 조개, 큰 접시 위의 수퇘지 구이 등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런 후, 크리스마스 의식의 일부로 선물 교환이 있었는데, 지금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어록·시·묘사

 

크리스마스 카드라니 말인데,대개는 '메리크리스마스'에다가 '해피 뉴 이어'인 모양이나,가다가는 그저 '홀리데이 시즌즈 그리팅'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네야 '근하신년'이거나 '메리 크리스마스'이거나 큰 상관이야 없겠고, 우리가 언제부터 예수교국이 되었느냐고 따져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근하신년'으로도 무난할 듯도 하다. 그러나 서양 사람 가운데에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굳이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가 보다. 유태교도들이 그렇다 한다.

(천관우/ 신세시기 겨울)

 

디킨스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성탄일을 과식과 만취로만 축하했었다. 종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선물을 받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크리스마스는 우리 자본주의 경제의 하나의 주된 도매상이다. 단순히 즐거운 한 계절이 꾸준한 선전 때문에 장기적인 예배 축제로 변해져서,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들과 선물을 강제적으로 교환하게 되고, 그 결과는 상인들이나 제조업자들만이 큰 치부를 하게 되었다.

(A. L. 헉슬리/ 어머니)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누구나 아름다운 플랜을 설계한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아름다운 선물을, 하이틴은 아름다운 사랑의 해후를‥‥‥‥ 그리고 번잡한 생활에 쫓기는 모든 시민들은 꿈의 기대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막상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나면 대개의 경우 실망하게 마련이다. 꿈과 현실에는 언제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어령/ 차 한 잔의 사상)

 

돈 있는 사람은 한숨이고 가난한 사람은 안달이지만, 그래도 우린 크리스마스 없인 안 되겠어!

(E.S. 마틴/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를 생각해 보라- '사탄'은 악의에 찬 마음으로 부정과 사기에 인기를 얻기 위한 전술까지 혼합하여 이 날을 만들었다. 이 날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무 쓸모 없는 선물을 사기 위해 수백 만 달러를 주고 받는다. 수천 개의 상점 판매원들은 물건 팔기에 지쳐 죽을 것 같고, 서부의 모든 아이들은 과식으로 고생한다. 이런 일들이 겸손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U. B. 싱클레어)

 

하느님이 새벽별 되는 예수를 주신 날이다. 하늘의 빛을 주심으로 세상은 밝아지고, 하늘은 어두워졌다. 또한 한 송이 장미꽃으로 하늘의 향기를 우리에게 주신 날이라고도 할 수 있다.

(M. 자코브)

 

박사들은 생각하기를 "우리 둘레를 비취는/새벽빛보다 더 찬란한 이 영광은 무엇일까? "/ 매말고 그윽한 소리 있어 말하되,/ "오늘 평화의 왕이 나셨느니라."// 목자들은 말하기를 "바위로 겹진 골짜기를 비취는/ 저기 저별은 무엇일까? "/ 천사들 하늘에서 노래하기를/ "땅에는 평화, 주의 기쁨 만민에게 있으라."// 그 아름다운 소식 끊이고서/ 일천 팔백여 년의 세월은 흘러라./그러나 우리 아직 옛 사람들처럼 그를 기다리노니,/ 아아, 그의 오심 왜 이다지 늦은가?// 허나, 귀하신 그 말씀 아직 남아 있어/ 시간도 슬픔도 모두 없애 버려 주느니./ 어린이의 마음을 지닌 자, 그의 찾아오심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 그가 명하신 생명의 길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에,/ 박사들이 우러르던 그런 영광이/ 우리네 발 밑을 비춰 주리라.// 그때에 우리 네 마음은 열려,/ 목자들의 순수한 믿음을 알게 되리/우리 서로 손 잡고 노래하리니,/ "땅에 평화, 주의 기뻐하시는 만민에게 있어라"// 어린이와 같은 마음에 스스로가 돌아가/ 새벽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사/ 다시금 천사들의 노래 소리를 들으리니,/ "오늘 평화의 왕이 나셨느니라."

(로웰/ 크리스마스의 노래)

 

떡을 떼어 살을 먹고/ 술을 딸아 피를 마신다. / 너는 아직도 시를 쓰고 있다. / 밖에는 눈이 내려 성탄절을 꾸민다.

(김현승/ 4행시)

 

별떨기 그 빛을 숨기지 않고/ 새려 발리는 닭 소리 아직 울기 전인 겨울날 새벽/ 예수 그리스도는 나셨느니라./ 그 곳은 마굿간/ 구유는 요람./ 자기가 만드신 세상이건만/ 평범한 사람으로 그는 나셨느니라.// 제사장과 이 세상의 임금님들은/ 서울 예루살렘에 깊이 잠들고,/ 사람 웅성거리던 베들레헴 마을도/ 늙은이건 젊은이건 모두 잠들었느니라./ 성도와 천사, 황소와 당나귀,/ 서로 서로 만나는/ 겨울철 크리스마스 새벽녘에/ 눈을 떴니라.// 엄마 품에 잠든 아기 예수의 모습,/ 마굿간은 무척도 추웠더니라./ 하나님의 어린 양은 바로 그이려니/ 에워싼 양때의 목자시어라./ 처녀 마리아와, 허리를 굽힌/ 머리칼에 서리 어린 요셉의 모습,/ 성도와 천사, 황소와 나귀 함께/ 우리도 영광의 주를 기리리.

(로제티/ 별떨기 그 빛을 숨기지 않고)

 

하늘은 흐릿하고 대지는 희다. / -종이여, 즐거운 가락을 울려라- 예수 태어나셨고- - 마리아는 지금/ 아기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다. // 찬 바람으로부터 아기를 지켜줄/ 꽃을 수놓은 휘장도 없고,/ 오직 지붕 들보로부터 늘어져 있는/ 거미줄만 있을 뿐이다. // 차가운 짚단 위에서 떨고 있는/ 이 어린 아기 예수/ 그 누운 구유를 따뜻하게 하려/ 나귀와 소가 입김을 뿜고 있다. // 눈은 초가 지붕에 송이 송이 내리지만/ 지붕 위로는 하늘이 열려/ 하얗게 빛나는 천사의 합창/ 목자들에게 "노엘 "에 알려 준다.

(고티에/ 크리스마스)

 

당신으로 인해/ 슬픔도 이처럼 현란하고/ 당신으로 인해/ 쓸쓸함도 느꺼워 간절하거니/당신으로 인해/ 부디 나의 이름이 쓸모 있게 하십시오.

(김남조/ 사랑합니다)

 

이 땅에 참 평화는/ 평화롭게는 오지 못하는 것인가.// 헤롯궁에서는 칼을 갈아도/ 아기 예수는 무서울 것 없었다네.// 그 부드럽고 온유하신 아기 예수의 살결이/ 수많은 창검을 녹이고 부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지 않는가./ 그 평화의 왕국을!// 베들레헴의 갓난 아기 울음은/ 골고다로 이어지는 처절한 절규// 구유에 누인 벌거숭이 모습은/ 십자가로 이어지는 숭엄한 왕좌// 회개하고‥‥/ 경배하라‥‥// 헤롯궁에선 칼을 갈아도/ 그 아기의 소유만이 땅끝까지 이르고// 열왕들이 원자탄을 빚어도/ 그 아기의 치적만은 영원하리니//선지자들의 부르짖음은 온통 몸에 담고/그 아기가 나신 이 밤// 절규하는 오늘의 크리스마스/ 그를 만나자, 그 대열에 서자‥‥‥

(오병수/ 절규하는 크리스마스)

 

비파 소리는 귀에 멀고/ 아기는 잠이 들었습니다. / 그 눈 이마에 별 나비가 날고/ 잎 코 언저리엔 달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 등불로 잠이 든 작은 마을에/ 하늘의 횃불이 쏟아지고/ 산과 들에는 모닥불이 타고/ 목동들은 화려한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 조용한 아기의 호흡,/ 강물도 바다도 잠이 들고/ 하늘만이 살아서 눈 위에 오는데/ 입가에 서리는 미소, 그것은/사랑이요, 사랑이며, 사랑이라.//아기!/ 당신이 온 날은 천으로/ 몇 개를 손꼽는 육십이 년./ 오늘도 저 종각에 촛불을 켜고/어느 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리랍니까? / 나와 또 내 마음속에 다시 와야 할/ 아기!/ 예수여‥‥‥

(황금찬/ 아기 예수)

 

어디 한적한 섬에라도 가자/ 게서 겨웁도록/네 슬픔을 품어 주마

(김남조/ 무제)

 

모두 즐겁게/ 춤추며 기뻐하라, 주를 믿는 성도여/ 할렐루야// 왕 중의 왕이신 분을/깨끗한 모태가 해산했나니/ 이 크나큰 기쁨이여.//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동정녀의 몸에서 나셨으니/ 마치 별이나 태양 같아라.// 사라질 줄 모르는 태양과/ 항상 반짝이는 별은/ 언제나 빛나게 마련이며// 별떨기 빛의 화살을 쏘듯/ 동정녀는 성자를 낳으셨나니/흡사 빛이 비치는 것 같아라.//또한 별떨기가 빛의 화살로 해서/ 손상을 받지 않음 같이 성모도/ 성자로 해서 장애를 받지 않으셨나니// 레바논의 향기로운 삼나무와/ 히솝으로써 이 골짜기를/ 메우는 것과 같이// 말씀이신 드높은 분의 마음이/ 사람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그 몸에 육신을 입으셨네// 이사야는 노래하기를/ 이 백성이 보기는 보아도/ 눈이 어두워 깨닫지 못하니/ 어찌할 것인가// 내 비록 예언자가 아닐지라도/ 이방 나라 시빌라의 노래가 되더라도/ 이 예언의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불행에 처해 있는 자들아/ 이 예언의 말씀을 믿으라/어찌해 죄 속에 빠지려 하는가/ 불쌍한 민족이여.// 옛 선지가 기록한 바/ 앞으로 태어나시겠다 한 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이 세상에 태어나셨네.

(작자 미상/ 크리스마스의 노래)

 

거룩한 그 아기의/ 이제금 새로운 영혼의 여광(餘光)이다. / 메리 크리스마스// ‥‥지금은 / 천주이신 아기께서 잠드신 시간/ 정결하고 광휘로운 이 시공 속에/우리의 마음을 새겨/ 종이나 빚었으면// 속에서 넘쳐나는/ 정밀한 강물 모양/ 외로움이 일 적에도 울어 주는 종/ 보고짐이 일 적에 울어 주는 종/보고짐이 일 적에도/ 울어 주는 종// ‥‥메리 크리스마스/ 놀라운 밤이다.

(김남조/ 메리 크리스마스)

 

매섭게 추운 어느 한겨울/ 얼어 붙을 듯한 바람은 불고,/ 대지는 굳기가 강철과 같고/ 물은 얼어 마치 돌과 같다. / 눈은 내려 쌓인다.눈 위에 눈/ 눈 위에 또 눈이 쌓이나니/ 그것은 아주 오랜 옛날/ 매섭게 추운 어느 한겨울이었다. // 하늘은 우리 하나님을 감당하지 못했고/ 대지도 또한 그를 감당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이 오시어 세상을 다스리는 때/ 하늘과땅은 도망치고 말리라. 하지만/ 매섭게 추운 어느 한겨울/ 말구유만은/ 전능하고 주님 이 신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 케루빔이 밤낮없이 경배하는/ 예수 그리스도로서는/ 어머니의 가슴에 찬 젖과/마굿간의 꼴만으로 충분하였다. /천사들이 그 앞에 경배하는/ 예수 그리스도로서는/ 그를 우러르는/ 암소와 나귀와 낙타만 있으면 충분하였다. // 천사와 천사장들은/ 거기에 모여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케루빔과 세라핌들이/ 밤하늘에 무리를 짓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만은/ 어머니로서의 기쁨을 맛보며/ 입 맞춤으로/ 사랑하는 아이에게 경배했을 것이다. // 이렇듯 가난한 나로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내가 만일 목자라면/ 어린 양을 가져왔을 터‥‥/ 내가 만일 박사라면/ 내 몫을 바쳤을 터이다. 하지만/나는 내가 가능한 것을 바치리니/ 내 마음을 주님께 바치리라.

(로제티/ 매섭게 추운 어느 한겨울)

 

바람은 겨울 숲에서 목자들처럼/ 뭉게구름 조각을 좇아 다니고 있습니다/ 수많은 전나무는 이윽고 경건하게/밝고 신성하게 될 것을 예감하여/ 바깥의 기색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이만 길 위에 가지를 뻗쳐서,/그 날에 대비하여 바람을 막으면서/ 영광의 하룻밤을 향해 자라나고 있습니다.

(릴케/ 시 8 편 -크리스마스)

 

크리스만스 이브에 내리는/ 함박눈처럼/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안광성/ 안타까움)

 

오늘이 예수님 오신/ 날이란다. / 어린 아기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저 유태나라/ 가난한 집/ 마구간에서/ 울음 우시고/ 지금은 종이 울리고// 황초는 녹아가고/ 어머님의 이야기도/ 더듬더듬 녹아가고/ 밤은 새벽을 향하여 깊어가고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교회 종이 울린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종은 같은 소리로 울리고// 예수님 오신 소식은/ 언덕을 넘어/ 마을을 지나/ 저 새벽 하늘로 흘러/ 땅끝까지 전해 가고/ 돌아오시는 어버지 장짐 위에/ 성탄의 소식처럼/ 눈이 내리고 있었다.

(황금찬/ 성탄절의 시)

 

아기는 왜/ 태어났는가? // 험악하기만 한,부질없는 변론을 일삼는/ 서로 권력을 다투고서로 시기하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 아기는// 멀고 고된 여로의 종착에서/불안한 안식이나마 하루 밤/ 검은 시간속에 찾으려는// 그 욕된,/ 어찌 보면 슬프기도 하고/ 또 저주스럽기도 한/ 인간의 태낭을 뚫고/ 왜 태어났을까?/ 아기는.//‥‥‥// 밤 하늘 별들이/ 유달리 반짝이는 밤// 아기는 영양 실조의/ 유방 속에 묻혀/ 자장가 없이/ 고이 잠들었고‥‥‥/ 왜 태어났는가?/ 아기는,// 광막한 황무지에 정녕/ 봄의 기운을 일으키려고/ 태어났을까?// 고목으로 하여금 다시 새 잎사귀가 돋혀,/가지를 뻗고,/회색의 곡간에 즐비하게 딩굴던 해골들로 하여금/ 그 어느 때 환상의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기 위해// 아기는 태어났는가?/ 눈물이 마른 이 밤에‥‥‥

(박화목/ 아기의 탄생)

 

바람 따라 모래로/ 전달된/ 구세주를 기다 리는 구약 민중의 기도가/ 밀어 올린/ 베들레헴 언덕 밤 깊은 지평선을/ 찢으며 울리는/빛의 해산 소리/ 그것을 들은 것은/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과 옆에 매여 있던 말들뿐이었다. // 그러나 이 말구유에 잠든 아기를 기림으로/ 빛나는 별의 컴퍼스가 그리는 큰 동그라미의 길을/ 따라/ 동쪽으로부터 는/ 낙타를 탄 세 박사가/ 또한 서쪽으로부터는/ 양떼를 모는 목자들이/ 달려 왔다. / 이 기쁜 소식을/ 그 눈으로 분명히 보기 위하여// 왕이라는 사실과/ 속죄의 어린 양이라는 사실이/ 메비우스의 테처럼 맺어져 있는/ 그 생애의 첫째 페이지가/ 하나님의 힘찬 펜으로 기록되었다/ 이천년 전의 거룩한 밤

(가가와 히로코/ 거룩한 밤)

 

여기 하늘이 부끄러운/ 사나이가 있습니다. 우러러 한 톨의 부끄럼없이 살려다/ 되레 죄 진 사나이가 있습니다// 창 밖 눈이 소보옥이 내리는 당신의 밤에/ 한 자루 촛불을 책상머 리에 켜고/ 십자가의 뜻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외어봅니다.

(김용호/ 기원)

 

동방의 예지자여/ 목양자들이여// 이 밤 외롭지 아니/ 하늘과 땅 사이 연하는/ 축제로다//온갖 예지의 눈과 귀가/ 여기에 듣는/속량의 영창// 할렐루야/ 할렐루야‥‥‥

(임인수/ 성야초(聖夜抄))

 

오늘은 그분의 생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날이매/ 나는 온 몸과 뜻을 다하여 준비하리라./ 가장 능숙한 눈으로 깃털 달린 이지(理知)에/ 보상을 줄 작은 모이를 줍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편안히 음식을 장만하기도 하고/ 또는 사냥을 하며 주께서 오신 날이라 생각한다. / 하지만 나는 게으름에 찔려 다함이 없는 황홀로/ 이 계절의 어려운 사정을 따져 본다. // 커다란 머리가 달린 둔한 피조물인 인간은/ 원을 그리는 하늘에서 무엇을 본단 말인가? / 때문에 썰매에서 떨어진 소년 소녀들이 그려져 있는/ 하얗고 빨간 크리스마스의 종이/ 내게 자양분을 주는 정적을 울려 내는 동안/ 나는 돌아가신 그분에게 무릎을 끓어야 한다.

(테이트/ 크리스마스의 노래)

 

크리스마스가 지나갔다. / 당신의 야심을 다시 발휘하라/ 싸움으로 돌아가라./ 경쟁이여 다시 오라./ 모든 감정을 죽여라./ 용의주도 해야 한다.

(P. 애덤스)

 

구름과 태양에 의해 그늘진 그림자가/ 여름 풀밭 위를 가벼이 지나가듯/ 전능하신 주여, 당신의 눈앞을/ 땅에 사는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지나갑니다. // 그리고 끊임 없이 뒤따르는 군사들처럼/ 세월이 밀려왔다 곧 사라질 때,/ 땅 위의 자랑이었던 위대한 이름은/ 순간적인 빛을 발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 그러나 저 베들레헴의 별은/ 매맑고 찬란한 빛을 비취며, / 지금도 또한 옛날이나 다름없이/ 메시아가 계신 곳으로 우리들을 인도합니다. // 오오 아 버지 하나님, 저 거룩한 별로 하여 해마다/ 그 빛을 더욱더 더하게 하십시오./온 세계가 그 빛에 가득 찰 때까지/영광에 찬 빛을 보내주십시오.

(브라이 언트/ 크리스마스)

 

주는 오늘 베들레헴/ 예언자의 피난소에서 탄생하셨다. / 하늘의 빛을 받아 동정녀 마리아는 언덕을 올라 갔고/ 이스라엘의 영광은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마리아만큼이나 장중하였다. /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언자가/ 약속하신 분이 태어났고/ 베들레헴에서 기다리고 있던 분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 자애로운 성모는/ 아들을 얇은 천으로 부드럽게 싸서/고요히 허름한 요람에 눕게 하고/ 성자를 기리고 경배하였다. 복되어라 성모여./ 하나님 앞에 엎드린 성모는/ 그 순수한 가슴을 열었다.// 천사는 이 중대한 소식을/ 인간 가운데 권세 있는 자/ 문지기가 지키는 저택의 문에는 전하지 않았다. / 무감각한 권력자가 알지 못하는 이들/ 열심히 믿는 목자들 사이에 이소식은/ 즉시 빛이 되어 나타났다. // 성자의 둘레에/ 수천 천사가 넓은 밤 하늘이 좁은 듯/불을 뿜으면서 내려왔다. / 하늘 위에서 노래하는 그대로/ 우아한 정 열에 불타는 모습으로/주의 영광을 노래하였다. // 하늘로 돌아가는 천사는/ 계속해서 환희의 찬가를 부르며/ 여러 겹의 구름을 지나/ 멀어져 갔다. / 충실한 목자들은/ 거룩한 노래 소리 가 천상으로 고요히 올라가는 것을/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진 듣고 있었다. // 천사에게 선택된 사람들은/ 즉시 가난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 천사가 가르쳐 준 대로/강보에 싸여 있었고, 요람속의 성자/하늘의 왕이 우는 것을 보았다. // 자거라, 오오 성자여/ 울음을 그치라./ 자거라, 오오 하늘의 아들이여/ 당신의 머리 위에서 폭풍이/ 휙휙 소리지르지 않게 하시라/ 하나님을 배반한 지상에서 /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게 하라, 당신 앞을/ 미친 말과 같이/폭풍이 달려가지 않게하시라.// 자거라, 오오 하늘의 아들이여/ 백성들은 누가 탄생 했는지 알지 못한다. / 그러나 아들이 이 세상을 존귀하게 지배할 날이/ 곧 이르게 되리라./ 저 허름한 요람 안에/ 저 티끌과 먼지 속에/ 지배하는 최고의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만조니/ 성탄)

 

이 달이 행복스러운 아침/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은/ 혼인한 동정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 나/ 하늘의 크나큰 속죄를 가져왔나니/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사하시고/ 성보와 더불어 영원한 평화를 이루시리라고 옛 성도들 노래 했니라.

 

빛나는 거룩한 모습과 눈부신 빛/ 하늘 높은 보좌// 삼위 일체 하나님의 자리 한가운데 않아 계시나니/ 멀리 비치는 빛나는 위엄의 빛 버리고/성자는 우리와 함께 지상에 살기 위해/ 영원한 햇빛 비치는 자리를 떠나/ 어둡고 천한 초막을 선택했니라.

 

하늘의 시신이여 네 신성한 가락으로/아기 하니님에게 축가를 바치게나/ 햇빛 아직 비 치지 않는 넓은 하늘은/ 다가오는 빛의 자취도 붙들지 않고/ 휘황한 성좌가 빛의 대열 이루고 지켜보는 사이/ 새로운 주거에 성자를 맞이하기 위해/ 엄숙한 노래를 연주하게나,

 

보라 동쪽 길 저 멀리서/ 별의 인도 따라 박사들은 향로를 들고 급히 온다. / 달려가네 겸손한 노래로 멈추게 하여/ 그를 성자의 발 아래 바칠지니/ 재빠르게 성자를 맞이할 영예를 얻어/ 거룩한 불 타오르는 주의 제단으로부터/ 네 소리 천사의 합창에 맞추어 노래하라.

(밀턴/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에)

 

추운 겨울 밤에 나는 눈 속에 떨면서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가슴에 뜨겁게 타는 것이있어 놀랐다. / 의혹의 눈을 들어 어떤 불이 타는가 보았더니/ 발갛게 타오르는 불에 감싸여/ 귀여운 한 아기가/ 밤하늘에 떠있는 것이 보였다. / 견디기 어려운 열에 불타서 눈에서는/ 눈물이 가득히 홍수처럼 넘쳐 흐르고 있었나니/ 마치 그 눈물로 불을 끄려고 하는 듯했다. // 그 아기는 말했다. "아아,/ 타오르는 불길 속에 다시 태어나/ 나는 괴로워하노라.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을 따뜻하게 하거나/ 내 불을 함께 느끼려고 다가오지 않는구나.// 나의 얼지 않는 가슴은 화로요/ 나를 상하게 한 가시는 절감이며/사랑은 거기서 불타는 불길이요/ 한숨은 거기서 나오는 연기며/ 치욕과 경멸은 거기에 남는 재로다. // 정의는 땔감을 더하고 자비는 불길을 솟게 하여라./ 이 화로로 연단되는 금속은/ 인간의 더럽혀진 영혼을 가리키도다.// 나는 지금 불이 되어/ 그 영혼을 선한 것으로 바꾸려 함과 같이/ 이번에는 피의 샘이 되어/ 그들을 깨끗하게 하려 하노라."// 이렇게 말하고 아기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때사 나는 생각해 낼 수 있었나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복된 날이로다. "

(사우드웰/ 불타는 아기)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 밤중에 종이 운다‥‥‥/신념 없는 종이 위에/나는 헛되이 붓을 놓았다. / 추억이 여, 노래해 달라!/ 교만한 마음, 이제 모두 내 몸을 떠나/ 슬픔으로 살며시 나를 가리더니/ 다시 내 몸을 확 잡는다/오, 밤중에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하고노래하는 저 목소리들/ 새빨갛게 반짝이는 저기 사원 안에서/ 어머니의 다정하고 그리운/꾸지람 소리가 들려 온다.

(J. 라포르그/ 크리스마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달은 숨어 한없이 고요한 오늘 밤/안개 속에서 하나가 울면 하나가 화답하여/ 언덕에서 언덕으로 크리스마스 종이 운다// 주위 네 개 마을의 네 개의 종이/ 멀리 또 가까이 목장을 건너 들을 가로질러서/ 크게 울고 작게 우나니/닫은 문을 가운데 두고 듣는 것 같다// 모든 세상 사람에게 평화 있어라. 은혜 있을지어다/ 네 개로 들리는 종소리는/ 바람에 따라 높게 울고 또 낮게 운다// 자나깨나 고뇌가 사라지지 않던 이 한 해/ 이제는 더 눈을 뜨고 싶지 않다 생각했었고/ 이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내 생명의 줄도 끊어졌으면 했으나,//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종소리는/ 그 종소리는 내 괴로움이 사라지게 하고/ 나의 슬픔에 기쁨의 빛을 물들게 한다/크리스마스의 기쁘고 기쁜 종소리

(테니슨/ 인 메모리엄)

 

올 겨울은 뭅시 춥습니다. / 주님/ 지금 제 마음은 황량한 들녘/ 승냥이떼 울부짖는 야밤중/ 홀로 버려진 새끼 양 같습니다. // 외마디 울음 섞어/ 간절히 부릅니다. / 아기씨, 예수님/ 불빛 같은 이름이여// 살의와 거짓과 비웃음 만이 기다리는 세상에/ 여리디여린 목숨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여/ 인생의 눈으로 볼 때에는/ 어찌 그리도 험악한 운명을 타고 나셨지요,/ 그래서 더더욱 친근한 신의 이름// 이 천 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 마을/ 이름 없는 여관집 뒤꼍채 마굿간에서/ 그리스도로 오신 아기 예수님/ 비오니, 이 겨울 저의 가슴을/ 그 말구유로 꾸며 주옵소서.// 굳어 병든 무릎을 접고/주름진 이마를 마른 풀에 비비며/ 사무치는 목청으로 부르는 크리스마스 캐럴/ 새로이 태어나는/ 거듭나는 외침이게 하옵소서

(류안진/ 내 가슴을 말구유로)

 

태어나/ 사랑하시고/ 사랑하므로/ 죽으실 일 하나로/ 성자/ 이 밤에 오시느니// 훗날 십자가를 세울/ 나무 한 그루 심어 두고/ 우렁찬 이 찬미를/ 어리신 주여/ 용서하소서//땅끝까지 순지(純紙)를 펴는/ 이 눈벌에서/시린 무릎으로 아무리 기다린들/ 영혼의 장지문을 달아 두면/ 동녘 하늘 큰 별은/ 아니 보일 것을// 사랑의 말은/ 오직 하나/ 그건 기도라 하옵느니/ 인류의 심장에서/ 어느 세월 기도의 불씨야 사위리까/ 하여 마침내는/사랑 때문에/ 신이 사람으로 오시는/ 신비를 깨닫게 하소서// 바라오니/그 날이 이 밤이게 하소서/ 열망하며 몸을 푸는/ 백랍의 눈물,/ 보혈빛 붉디붉은/ 촛불이게 하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김남조/ 신이 사람으로 오시는)

 

크리스마스는 삶의 영광을 선언한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오는 것이다. / 철(鐵)의,무감각할이 만큼 냉각한 시절에, 영광을/ 언 혈관에 밀어 넣으려고 오는 것이다.

(A.B. 리들러/크리스마스와 누구나의 탄생)

 

오라,/ 그대 손을 맞잡고/ 별빛 반짝이는 하늘 아래 우리와 함께 서자/ 바람이 그들의 마술적인 하프로/ 성스러운 자장가를 부르는 동안/오라, / 그대들의 귀를 빌려 주어 우리와 함께/ 천사들의 노래를 듣자/ 지상에는 평화,/인류에게 친절/ 구유 속 왕에게 들려 주는/ 천사들의 노래를/오라,/그대들의 눈을 들어 우리와 함께/ 저 건너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보자/ 저 아득히 먼 동방으로부터 베들레헴으로 박사들을 인도한 그 별을 / 오라,/ 그대들의 무릎을 굽히고/우리와 함에/ 거룩하신 분 앞에 꿇어 엎디자/ 숭배하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독생자께 애배드리자

(메젤 와일즈 토마스/ 크리스마스의 초청)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께서 우리에게/ 오셨을 때/ 어둠의 세상은/ 빛을 받았습니다/ 크리스마스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 우리가 어떻게/ 감사한 마음을 다하리이까?

(작자 미상/ 12월의 기도)

 

유대 땅 베들레헴에/ 한 아기가 나시니/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그는 이 땅의 병든 사람들과/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 그리고 죄인들의 구세주로 오셨다// 주 오시던 날/ 별들은 빛나는 눈을 모으고/들판의 양의 무리도 잠을 깨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일시에 일어나고/ 목자들의 노래소리는 하늘의 악기/ 동방의 박사들은/ 꼬리별을 따라오고/ 나무의 새들, 방울을 흔들며/ 평화의 노래를 불렀느니. // ‥‥마음의 창에 불을 밝히라/ 그리하여 우리들의 예수를 영접하라./자유이며, 사랑이고, 평화의 빛,/ 영원한 구세주를 맞으라.

(황금찬/ 마음에 불을 밝혀)

 

묻지 말아요./ 저 무리 중에 아기 예수가 계시냐고/ 저 휘황한 크리스마스트리, 야단스런 캐럴, 분주로운 선물꾸러미들,/ 그리고 파티, 그 수많은 파티의 군중, 군중 가운데 아기 예수가 계시냐고// 귀를 좀 빌려요/ 아기 예수는 외양간 말구유에 계셔요/ 빈들이나 바닷갈 거닐으셔요/ 산 언덕을 오르시고/ 때로는 골방에/ 들어가셔요‥‥/ 그 분을 만날 수 있어요/ 고요와 어둠을 타고 요셔요// 창기와 대화하는 그이를 뵐 수 있어요/ 세리와 죄인의 식탁에도 오셔요/ 어린이의 노래 속에 계시고/ 강도와 함께 낙원에도 계시지요/ 가난과 질병과 압박과 눈물의 호소를 들으셔요//그런데 그분은 늘 새롭게 오셔요/ 번번이 함정에 빠져 훌쩍이며 돌아서는/ 나에게 그분은/ 늘 새로이 오셔요‥‥‥‥

(작가 미상/ 그분 이야기)

 

-가라!/ 별이 반짝이는 듯 가느다란 소리였으나/또한 감히 어길 수 없는 힘찬 목소리였다.// 선물이야 황금 유향 몰약이 아니면 어깨라/그보다는 머나먼 길을 찾는 정성이 더 귀하지 않으랴/ 아니, "가라"고 내게 명하신 그 섭리가 더 고마워‥‥// 날이 샌 끝없는 사막에 새로운 발자욱을 수놓으면서/ 어서 가야지, 베들레헴 마을로//-가자!/ 어서 서둘러 이 사막을 건너서/ 새 역사의 현장을 경배해야지 않겠는가.

(김희보/ 동방 박사)

 

나는 이천 년 전 베들레헴의 더러운/ 말구윳간에서 태어났으나/ 지금도 그대의 비참한 슬픔을 위하여/ 가난한 시골 집에서도 태어납니다. // 나는 사랑을 위해 그대 생애 속으로 들어왔으나/ 좀더 큰 사랑을 위하여/ 그대 생애의 순간 속에서/ 태어나고 괴롬받고 또 부활합니다. // 나는 사랑을 위하여 역사를 택했으나/ 다시 사랑을 위하여/ 당신의 생애를 택합니다. / 이것은 그대 절망의 찰나가 그지없이 길다는 뜻도 되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완성하기 위해서/ 당신 온 생애의 수없는 부활이 필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대의 역사는 지금 내 눈 앞에서/ 반 바퀴도 채 못 돌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불변은 아닙니다. // 변치않는 것은 모든 것을 변한다는 사실뿐/내가 불변이라고 해도 그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그대는 그대의 변함으로/ 나의 변치 않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 나는 지금도 어느 여관방에서 애비 없는 자식으로/ 태어나고/지금도 그대 오만의 죄 속에서/ 그대와 함께 죽어 갑니다. // 나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는 아니나/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의 역사를 위해서/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또 구제 받아야 되는/어떤 찰나의 참상인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혁명을 위해서/ 그건 당신의 인간됨을 위해서/ 배반을 위해서, 부활을 위해서/ 마침내 그대와 내가 동시에 필요한 사랑의 완성을 위해서

(김정환/ 탄생의 서)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종이 우는데/ 어머니는 촛불 앞에 앉아서/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 있었습니다. //촛불은 흔들리고/ 눈은 내리는데/ 조용히 흐르는/ 어머니의 기도 소리.// -그이는 죄가 많았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늘 새벽에 내리는 눈처럼/ 그의 영혼 위에 은혜를 내리십시오./ 제 주변에 이 순간에도/ 베들레헴의 그 날 밤처럼 분주하고/ 빈 마음 자리들이/ 새벽 눈에 젖습니다. //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어머니는 눈물에 젖은 기도를 드리고/ 귀가 먼 사람들은 잠을 자고/ 그 잠길 위에 눈이 내리고/ 눈 위엔 아직도 발자국이 없습니다.

(황금찬/ 종이 우는 아침에)

 

내일이 와도 얘들아/ 너희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없구나/ 아무리 크리스마스라 해도/ 선물은 가진 자들만 받는 것이란다/ 엄마는 너희에게 생명을 주었지/ 생각을 그렇게 하면 그걸로 충분하지// 너희는 슬퍼하지 말아라/ 부자라고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거위 불고기는 질기기만 하고/ 화려한 인형도 내일이면 유행에 뒤지고/ 부자란 짜증스럽고 귀찮은 것이기도 하단다/ 내 일이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오시겠구나/ 하지만 그는 부자로 사는 옆집에만 오신다// 내일이 와도 얘들아/ 너희에게 아무것도 줄 수가 없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아이는/ 너희 인생을 위한 인내심을 얻으리라/ 그대, 사랑스런 크리스마스의 이브여 !

(케스트너/ 화학으로 정류한 크리스마스 노래)

 

머언 옛날/ 베들레헴 고을/ 마굿간에서/아기 예수 태어나신/ 기쁜 크리스마스// 눈이 내리는/ 고요한 밤/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밝은 별의 눈짓 따라/베들레헴 성을 찾아간/동방 박사 세 사람/ 다소곳이 절하였네.//온 백성이/ 자유와 행복을 잃고/ 슬픔에 잠길 때/빛으로 오신 주님!// 들녘에서 양치던/ 목자들에게 들려주신/천군 천사의 노래 소리가/이 민족의 귀에도/ 들리게 하소서.// ‥‥오, 생명의 물로 처음 오신 이여!/ 오, 생명의 불로 나중 오신 이여!/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생명수/ 한 번 불타면 영원히 꺼지지 아니할 성령의 불//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선서/ 오늘 또 아기 예수를/ 이 땅에 구원으로 보내셨으니/ 우리, 주렁주렁/사랑과 평화의 보석을 달고/ 한 그루 나무, 사랑의 열매를 맺는/ 크리스마스트리이게 하소서./기쁨의 크리스마스이게 하소서.

(정용채/ 크리스마스)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그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어린 양의 무리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조용히 조용히 뒤척이고 있는/그 소리뿐이였다// 그때 홀연히/ 하늘 저쪽 끝에서/ 별이 하나 눈부시게 빛을 흘리며/이쪽으로 이쪽으로 떠오고 있었다// 누구도 그 빛나는 별을 못보았고/ 오직 들판에서 양을 지키던/ 늙은 양치기가 홀로 그 이상한 별을/ 보고 있었다// 별은 늙은 양치기 머리 위에 와서/ 멈추고 가지 않는다/ 그 환한 빛은 들판을 밝히고/ 점점 그 찬란한 빛의 파문이/누리를 덮어가고 있었다// 늙은 양치기는 놀라 소리쳤다/ 무슨 하늘의 뜻입니까/ 밝혀주시오/ 광명 속에서 천사의 얼굴이 나타나서/베들레헴으로 가라/ 오늘 그 곳에 인간 구원의 예수님이 오시었느니라.// 하늘의 뭇별들이 눈을 뜨고/ 땅의 생명들이 영광을 얻어/ 저 바다 넘어 그곳/ 땅의 끝까지 구원의 은혜내리다// 예수여!/ 이 고요한 밤에 이름지어진 땅에/ 그리고 사람의 마음마음에/ 몇 번이나 오셨습니까// 언제나 당신은 아기의 모습/ 그 하늘의 미소 바다 같은 사랑으로/우리의 마음 안에 진정 몇 번이나/오셨습니까.// 이 거룩한 밤에/ 죄에 사무친 도시 위에/ 어두운 마음 안에 오늘 다시 오십시오/ 광명의 등불 켜고 당신 맞으리라// 오늘밤 詰은 목자의 눈이 되어/ 예수 오시는 빛을 보리라/ 구원받은 눈이 되어지라/ 이 거룩한 밤에 어린 예수 오시는/ 그 하늘을 보리라.// 예수의 이름 모르는/ 황무지의 들판 등불도 없고/ 소망마저 사라진 이 도시/ 사람 마음마음에/ 다시 한 번 예수여,/ 구원의 주로 오시옵소서/ 이 거룩한 밤에/ 지키며 기다리겠습니다.

(황금찬/ 거룩한 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세상에 자기의 목숨을/ 선물로 바친/ 당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크리스마스는 시작되었나이다. / 오 하나님이여, 나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소서/크리스마스는 파티도 아니고/ 선물도 아니며,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베푸는 일이라는 것을./ 크리스마스는 나 자신의 것을 줄 때/ 진정한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작자 미상/ 12월의 기도)

 

주님, 나로 순결하게 하옵소서/ 당신은 거룩하시니이다/주님, 나로 온유하게 하옵소서/당신은 낮아지셨습니다/ 그리하여 임하셨고/ 항상 임해 계시니이다/ 이 성탄에도/ 임해 주옵소서.

(제랄프 맨리 홉킨스/ 12월의 기도)

 

파리가 천하고 악해졌기 때문에/ 주여, 당신이 태어난 날 당신은 파리를 찾으셨습니다. / 썩지않은 추위, 새하얀 죽음으로/ 당신은 파리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오는 아침 공장을 굴뚝까지도 일제히/ 새하얀 깃발을 달고 노래합니다/ "모든 착한 사람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주여, 갈기갈기 찢긴 세계, 갈라진 스페인, 갈라진 유럽에/ 당신은 평화의 눈을 내리셨습니다/그리고 반역자들은 당신의 평화의 산에/ 1천 4백 발의 대포를 쏘아댔습니다/주여, 소금보다 더 지독히 불타는 당신의 새하얀 추위를 나는 받아들였습니다. / 그리고 나는 잊습니다/총알을 쏘아댄 하얀 손, 왕국을 무너뜨린 하얀 손/노예들을 매질한 손, 당신을 매질한 손을/ 당신 할을 후려친 먼지투성이 손, 내 뺨을 후려친 분바른 하얀 손/ 나를 고독과 증오 속으로 몰아넣은 확신에 찬 손을/아프리카의 심장에서 꿋꿋하고 단호하게 버티는 사라, 당신의 갈색 손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간처럼 아름다운 사라를 쓰러뜨린 하얀 손을/그들은 철도 침목을 만들기 위해 처녀림을 유린했습니다/ 인력이 모자라는 그들의 문명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숲을 유린했습니다/ 주여, 긴 이빨을 드러내고 내일 검은 육체와 흥정할 외교관들에 대한 증오,/ 이 마지막 증오를 나는 아직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내 가슴은 오 주여, 당신의 인자한 햇볕을 받고/ 파리의 지붕 위에 쌓인 눈처럼 녹았습니다/그 햇볕은 눈이 오지 않는 곳의 하얀 손을 가진 나의 형제들, 나의 적들에게도 다정합니다/ 밤에 불타는 나의 뺨에 흘러내리는 이슬의 손으로 말미암아.

(래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눈 내리는 파리)

 

가슴에 눈물이 말랐듯이/ 눈도 오지 않는 하늘// 저무는 거리에 발걸음 멈추고/ 동녘 하늘에 그 별을 찾아 본다.// 베들레헴은 먼 고장/ 이미 숲한 이 날이 거듭했건만// 이제 나직이 귓가에 들리는 것은/ 지친 낙타의 울음 소린가? // 황금과 유황과 몰약이/ 빈 손가방 속에 들었을 리 없어도// 어디메 또 다시 그런 탄생이 있어/추운 먼 길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 나의 마리아는/ 때묻은 무명옷을 걸치고 있어도 좋다. // 호롱불 켠 판잣집이나 대합실 같은 데라도/ 짚을 깐 외양간보다는 문명되지 않는가?// 허나 이런 생각은 부질 없는 것/ 오늘 하룻밤만의 감상을 위해서라도// 차라리 잠 오듯 흰 눈이라도 내리렴/ 함박꽃처럼 선의의 흰 눈이라도 내리렴!

(김종길/ 성탄제)

 

성탄절엔 눈이 내리고/ 아기가 잠이 드는 지붕 위에/ 함박눈이 아우성으로/ 쏟아져 내리고 / 먼 들녘까지 울려가는/ 성탄의 종소리// 수염이 하이얀 망태 할아버지가/ 축복의 선물을 지고/ 외등이 꺼진 골목을 돌아오고/ 그 발자국 위에 눈이 내리고/ 꽃집 유리창에 피어 있는/ 불은 장미꽃 위에도/ 눈이 내리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새벽 찬미 소리에 섞여 내리는 눈// 성탄절에 내리는 눈은/ 더 희고 더 순박하고 고즈녁하다. / 가난한 집들에/ 노인들이 모여사는 지붕 위에/ 환희의 대화를 남기며/ 선녀처럼 사뿐히 내려앉아라// 아이들은 지금 이 밤에/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촛불이 끓어오르는 가늘은 물소리/ 새로운 생명이 호흡하는 소리/ 도시를 지나 들녘까지 마구마구 울리어가는/ 환희의 종소리// 무지갯빛 등불을 켜고/고스란히 눈을 맞는 성탄 수/천 년의 아기는 오늘 이 밤에/다시 오시는가 오시는가/종각 위의 등불을 헤어가며/기다리는 마음은/천 년 같고/ 눈이 내리는가/ 기다리는 마음들이 잠들지 않는 밤에/ 먼 여로에 지치지 않는 발걸음으로 아기 예수가 오고 있는가/문을 열자 우리들의 문을/눈들의 환호 속에 들려오는/아기 예수의 발소리를 들어라.

(황금찬/ 성탄절의

 

 

설 교 노 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1:21-23

 

서론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예수라는 이름으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 이름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1. 예수라는 이름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탄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이 바로 "예수"입니다. 이것은 천사가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르쳐준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으로 여호와와 같은 말입니다. 구약에 보면 여호수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최초로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이스라엘의 대장이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수1:1)와 바벨론 포로 후 두번째 귀환시에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슥6:11) 인데, 그 둘은 다 그리스도를 상징한 인물입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하면서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예수는 자기의 생명까지 내놓으면서 자기의 피를 흘려 많은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을죄에서 건져내시고 구원 하셨으니 참으로 예수는 귀하고 복되며 거룩하신 이름입니다.

 

2. 임마누엘이라는 이름

이사야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00년 전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하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과연 예수는 하나님으로서 우리와 함께 계셨던 분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바야흐로 역사의 사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몸으로 그 백성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상 생애 후에도 임재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하시면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는 임마누엘로 시작하여 영주하시는 임마누엘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은 우리에게는 다시 없는 영광이고 행복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모든 인류에게 큰 기쁨과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요셉은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마리아를 영접하였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여 신성을 보존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인류의 구주가 되심을 우리 인간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구주 탄생하심을 진심으로 기뻐하시며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기뻐하는 날

습3:14-20

 

서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종려 주일이 고통의 날이라고 한다면 부활 주일은 소망의 날이요, 성탄일은 기쁨과 화평의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탄일을 맞이하여 옛날 스바냐 선지자(641-610 B.C)를 통하여 주신 "기뻐하라"는 말씀을 중심하여 "기뻐하는 날"이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릴 때 우리를 위하여 이 땅 위에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주신 하나님 아버지부터 크신 은혜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본문 14절에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 다 예루살렘 딸아 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뻐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해 주십니다.

 

1. 모든 고난과 직사함의 날이므로

"여호와께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원수를 쫓아 내었으며(3:15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된 세상에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과 재난의 제거뿐 아니라 죄사함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장 46-55절에서 마리아가 그의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갔을 때 부른 찬송과 같이 "비천한 자를 높이고 주린 자에게 좋은 것으로 채우시며 그 종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는 메시아"가 오셔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받을 형벌을 제하시고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는 쫓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임재의 날이므로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셨고, 인간을찾아주신 하나님께 찾아오셨고, 인간을 찾아주신 하나님께 안기도록 만들어 주는 종교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한 인간 아담에게 하나님이 찾아주셨고 요한복음 21장에서도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을 우리 주님이 먼저 찾아주셨을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5장에서는 도망간 탕자의 마음속에 아버지 집을 그리도록 성령으로 찾아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셨고(요1:11)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14절) 하였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시기 위해 우리 속에 계시는가? "그는 구원을 베풀 전능자시라(본문17절 중)"고 했으니 전능하신 권능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6:37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6:56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10:28-29에도 "내가 영 생을 주는 자는 영원히 멸망치도 않을 것이며 내 손에서 빼앗을 자도 없다"고 거듭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도 불안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기쁨과 즐거움만이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므로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본문 17하)"고 하였습니다. 죄인이 돌아오고 성도들이 확신을 가지고 살 매에 천사들이 기뻐하며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 아버지가 기뻐하며 잔치를 베푼 것과 같습니다. 땅에서 한 영혼이 돌아올 때 회개할 것 없는 의인 90보다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눅15:7,10,32).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처럼 모여 그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할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마음으로 기뻐하고 예물드려 축하하고 불쌍한 이웃들을 살펴보고 구제할 때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매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너무 기쁘셔서 견디지 못한다고 하셨으니 이 축복이 우리 중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성탄, 즉 'Christmas'는 원래 "그리스도의 축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탄은 축제(carnival)만이 무성할뿐 그리스도가 없는 성탄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이 성탄이 우리에게 있어서 기쁘고 즐거운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죄 용서를 받고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끝까지 도우시며 구원해 주심을 확신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하여 약속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기 예수께 경배한 사람들

마2:1-12

 

서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심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진정 축하한 사람들이 어떠하였는지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의 나심을 알면서도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자기 교회에 몰두하고, 그리스도의 탄생을 외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진정으로 축하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동방 페르샤 지방의 천문학 박사들인 데 이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수만리 먼 길을 걸어 왔고, 보배합을 열어 값진 황금, 유향, 몰약을 아기 예수께 드렸습니다.

 

1. 이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기 위하여 정성을 드렸습니다.

페르샤에서 베들레헴까지는 평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사막을 횡단하여야만 했습니다. 별을 따라 가야 했으니 낮에는 방향을 알 수 없었고 밤길을 걸어야 했을 것입니다. 비바람치며 사막의 모래가 안을 가로막을 때 죽을 고비 몇 번이며, 고달픔은 이떠했을까요? 하루 이틀에 갈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수없는 세월들이 흘렀으니 귀한 시간들을 바친 정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물질적인 경비도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광야에서 만나야 잘 생명의 위험도 무릅써야만 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성탄을 축하하려는 정성을 배워야 합니다. 이들이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은 그 정성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도 우리의 정성을 보십니다.

 

2.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을 겸손히 경배하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여기에 박사들의 아름다운 성탄 축하 정신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서 최고의 영광을 받으셔야 할 분이지 인간들에게 흥미와 사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해야 합니다. 박사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와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였던 것입니다.

 

3. 동방의 박사들은 보배함을 열어 믿음의 표시로 예물을 드려 경배한 것입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린 제일 귀한 애물이요, 유향은 제사장들이 제사 때 사용하는 것이요, 몰약은 시체에 바른 약으로써 사망을 폐하시는 구세주이심을 상징하는 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기에 동방의 박사들이 드린 예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드린 신앙 고백의 예물이 된 것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자기의 최고의 보배를 그에게 드려 그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그에게 합당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종교는 하나의 도락이나, 유흥이나,오락의 대용이 아니요,인간욕구의 충족도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전 존재를 드려야 할 경배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다스릴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속죄시킨 대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시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주님이십니다.

본래 하나님은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신 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러기에 크리스마스는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했을 때 그를 알아보고 경배한 사람은 동방 박사 외에 목자들과, 시므온과, 안나 등 몇 사람에 불과합니다. 베들레헴 여관방 주인은 예수를 수용은 했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요8:56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주님에게 무릎을 끓고 자기를 다스리는 왕으로, 죄사함 베푸시는 구속 주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모실 때 진정한 성탄이 이루어지는 줄 믿습니다.

 

4. 경배 후 왕(헤롯)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순종한 박사들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 왕의 부탁을 받고 있었습니다. 마2:7-8에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도록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2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박사들에게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목숨 걸고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왕명을 거역하면 생명의 위험이 있는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헤롯보다 높은 전 인류를 지배하시는 하나님께서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는 헤롯의 명령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에게서 위대한 신앙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의 지시를 꿈으로 받든, 사람을 통해서 받든, 책을 읽다가 받든, 그것이 하나님의 지시라고 깨달았을 때 거기에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는 순종함으로만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 론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물질과 마음의 정성을 드려 축하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시고 고백하며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축하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에게서 돌아서서 주님을 모시고 바른 길을 걷고 살아갈 매 온전한 축하가 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

눅2:8-14

 

서론

해마다 12월 25일 성탄절이 옵니다. 그러나 점점 성탄절의 의미는 퇴색되어가고 세상의 술집, 상점에는 큰 잔치하는 날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성탄절은 흥청망청, 마음이 들떠서 보내는 날인가요?

성탄절이 불신자에게까지 축제화된 것은 좋으나 깊은 의미가 상실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성탄절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봅시다.

 

1. 성탄절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도성인신하신 것입니다(요1:1-18).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아주 작은 땅 이스라엘일 오셨으며, 그 중에서도 아주 가난한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왜? 이것은 성경 말씀의 예언의 성취 말씀입니다.

베들레헴은 '떡방앗간'으로 가난한 동네입니다. 그러나 그 동네는 다윗 왕의 동네였으며주님께서 예언의 성취로 태어나신 곳입니다. 그곳은 좋은 곳도 아닌 아주 비천한 마굿간입니다(사53:1-9). 예수님은 실로 우리 질고와 우리의 짐을 지고 가셨습니다. 그는 가난했으나 우리를 부유하게 만드셨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진실로 우리의 죄, 괴로움, 슬픔 모든 어려움을 짊어지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오신 엄청난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의 날입니다

 

2. 하나님께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바로 잡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완전히 회복하는 날입니다. 그날에 불렀던 천군 천사의 오케스트라는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리는 날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노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입니다.

오늘날 모든 성도들의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어야 됩니다. 하이든의 "천지창조" 헨델의 "메시아(할렐루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었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찬송을 드립시다.

 

3. 사람에게는 평화입니다.

성탄절의 찬송 제 1악장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 천군 천사들의 노래였습니다. 제 2악장은 땅 위의 인간사회의 평화입니다.

시의고금, 양의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인생이 한결같이 갈망하고 원하는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인류사회에 찾아오셨다고 확신합니다.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 화해, 사람과 화해하는 것이며,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과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서 화목의 자리로, 불순중하는 아담의 자리에서 순종하는 예수님의 자리로,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새상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은 예수님이 평화의 소식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믿는 것이 본래의 성탄절의 의미입니다.

 

결론

이 천군 천사의 합창과 목자들의 합창은 베들레헴의 어두움이 물러가고, 거룩한 새벽을 깨웠습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고 인간에는 아름다운 소식이었습니다(사35:6). 계21, 22장의 신천신지 새 하늘과 새 땅은 아름다운 새 노래를 부르는 곳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좋은 소식입니다. 슬픈 세상에 기쁨의 소식이요, 괴로운 세상에 즐거운 소식입니다. 온 세상 전체에 기쁘고 아름다운 좋은 소식을 퍼져 나가게 하는 기쁨의 성탄절이 되도록 합시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신 날입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며 바로 저와 여러분께 평화의 날이 되며 이 소식이 우리 국가와 세계에 어두움이 물러가고 기쁨과 즐거운 좋은 빛이 빛나고 아름답게 승리하시는 성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

마1:18-23

 

서론

인간의 역사는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입니다. 그 사건의 내용은 어떤 것은 좋기도 하며, 어떤 것은 나쁘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것은 슬프기도 하여 어떤 것은 기쁘기도 합니다.

우주창생 이래, 아니 지나간 2000여 년 동안 날마다 새롭게 기억되고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습니다. 세대가 이어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감동시키고 기쁘게 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건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건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지지 않고 계속 기억되고 있습니까?

어떠한 이유 때문에 성탄의 사건이 가장 위대한 사건이 되었습니까?

 

1.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를 통하여 인간 속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족보를 가지시고 오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가 이 땅 위에 탄생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신을 찾으며, 만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사, 하나님 스스로 이 세상에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인류 역사 이래 이러한 일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되었음을 뜻합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들 사이에서도 화해되고 서로 용서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 속에는 화해와 화평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 부자와 가난한 자가 만나게 되었고,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만나게 되었고, 기뻐하는 자와 슬퍼하는 자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화목제물이 된 것입니다. 화해할 수 없는 것이 화해되었고 하나될 수 없는 것이 하나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 인간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를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속죄 사업을 위해 일평생을 사셨으며, 그것을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대신 창에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셨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그는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증언처럼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진 아니하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어 사람을 위해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의 탄생은 우리의 죄악을 해결했다는데 더욱 귀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함에 따라 죄의 결과인 사망의 문제도 해결된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그의 일생을 살펴볼 때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죄를 속죄하지 않으셨다면 예수의 탄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죄의 노예가 되어 영원한 저주와 죽음 아래 있었으나 이제는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며 기쁜 일입니까?

 

3. 예수의 삶의 목적이 너무나 위대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땅에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었으며,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섬기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신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의 사명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 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차별 없이 섬기며 구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의 모습은 그를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이 본받고 계승했습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강림하신 위대한 날은 하나님이 화육한 날이요, 하나님과 인간이 화해한 날입니다. 또 이 성탄은 성령의 역사의 방향이 전환된 날이요, 인간과 신이 만난 날이요, 새 문화, 새 역사, 새 문명이 만들어진 날입니다. 또 인간이 모든 죄악과 사망에서 구원받고 해방된 날입니다. 그리고 이 성탄은 섬기고 봉사하는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역사상 위대한 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마1:18-25

 

서론

우리가 성탄을 가장 의의있게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아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성경에 충만했고 또 성경의 중심 제목이요, 성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이 예수님께 대한 예언이라면 신약 성경은 그 예언의 성취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 성 경에서 메시아, 즉 예수를 약속하고, 묘사하고, 상징하고, 암시하고, 예언하고 있다면 신약 성경에선 예수님을 보여주고 나타내 주며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성경의 중심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화평이요,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요, 예수를 닮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예수와 함께 사는 곳‥‥거기가 곧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 예수(마1:21)

예수라고 하는 말은 구주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사명을 표시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신 것은 그로 말미암아 만 백성을죄에서 구원코자 하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고시인하고 고백하는 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는 일찍이 인류의 죄를 십자가 상에서 속량해 주실 어린 양 예수님의 수난에대하여 이렇게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 하였음이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하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사53:5-8)"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믿느냐? 하는 것은 실로 우리의 구원과 관계되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1:12)"고 하였으니 여러분 가운데 행여나 아직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분이 있거든 이 시간 곧 마음 문을 열고 그를 나의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세를 누릴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리스도(마1:16)

"그리스도"란 예수님의 직책을 가리키는 이름인데 "기름부음을 받을 자"라고 하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기름부음을 받는 사람이 세 부류가 있는데, 곧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그리스도"란 이름이 예수님에게 완전히 통용되었으니 그는 한 몸으로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책을 다 수행하셨던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그를 경배하기 위하여 멀리 동방에서부터 찾아왔던 세 박사들이 헤롯을 찾아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는(마2:2)"하고 물은 것은 정당한 질문이었습니다.

마27:11에 보면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니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하여 "네 말이 옳도다"라고 시인하셨습니다. 그러나 요18:36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을 보니 예수님은 세속적 왕이 아니라, 영적인 왕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제사장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시인 시110'4에 보면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재의 역할을 하는 중보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위하여 속량해 주시고 중보해 주셨습니다.

제사장의 임무는 속죄와 중보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몸소 제물이 되시어 속죄의 사명을 다 하셨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 자기 공로를 제시하여 아버지되신 하나님께 자비를 간청하심으로 중보의 사명을 다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신 것과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메시지를선포하셨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의 선지자적인 직무를 묵상 같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민중들에게 회개를 외치며 구원을 선포하는 선지자적인 메시지였습니다.

 

3. 임마누엘(마1:23)

예수님의 다른 또 하나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성품에 관한 이름으로서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입니다. 도성이신, 즉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요, 또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구주는 사람도 되고 하나님도 되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는 일은 결단코 사람만으로 불가능하며 또 하나님으로도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는 인류의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완전한 하나님이 되시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의 사명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일 영으로만 오셨다거나 어느 천사나 천사장이라면 그는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역사 속에 오셨다고 하는 것, 즉 임마누엘 되신 사실로 해서 그가 구주의 자격을 획득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인간이 되시어 오셨기에 그가 능히 우리를 체휼하실 수 있는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 탄생의 "오묘"가 있고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마16:15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예수님 자신이 친히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물으셨거니와 우리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믿어야 하겠습니까? 그 세 가지 이름이 표시하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시요, 왕과 제사장, 선지자가 되신 그리스도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친히 사람되신 임마누엘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해야만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를 분명히 믿고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칭함을 받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반석위에 믿음의 집을 짓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

요1:9-14

 

서론

뜻있는 사람은 훌륭한 분을 맞이할 때에 그의 덕을 높이 찬양하며 그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도 올바로 살아보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오늘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1.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천상 천하에 가장 높으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 해당된다. 천군 천사가 출동하여 찬양하였습니다. 목자들이 찾아가 경배하고 외치기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또 동방의 박사들이 보배함을 열어 아기께 드리며 경배하였습니다.

(2) 가장 고마우신 분입니다.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질병의 짐을 담당하시고 죄악의 짐도 짊어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땀을 흘려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눈물을 쏟아 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피를 쏟아 주셨습니다. 이제는 다 이루었다 하시고 하늘의 영광의 자리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죽음에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우리의 부활로 첫 열매가 되었고 승천하신 후 성령의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너무나 많습니다.

(3) 예수님은 공의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 주님 앞에 서는 날 내 일생은 활동 사진과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공의로우신 주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고마우신 분인 동시에 무서우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의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지옥에 가야 마땅한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키어 하늘나라 시민이 되게 하시고, 우리가 마귀의 자녀였으나 변화시키여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자가 누구냐? 새 사람입니다. 약하던 마음이 담력을 얻습니다. 더러운 마음이 거룩해집니다. 욕심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게 됩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면 영육간에 천국을 이루고 삽니다.

영혼은 성령이 충만하므로 천국이 이루워지고 육신의 하나님의 창고를 여시고 필요한 것들을 주십니다. 근심과 걱정이 다 물러가고 나에게 기쁨이 충만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영광이 되고 자손 만대에 복을 물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치 아니하고 박대하면 예수님을 박대한 개인, 예수님을 박대한 지방, 예수님을 박대한 민족은 비참하게 된 것을 역사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3. 그러면 예수님을 어떻게 영접할 수가 있겠습니까?

(1) 예수님만 믿고 사는 것입니다.

돈이나 지식 이나 권세는 있든지 없든지간에 예수님을 올바로 영접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상도 믿을 것이 못되고 사람도 믿을 수 없으나 예수님만은 믿을 수 있는 분입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는 생활입니다.

감사 생활입니다. 나같은 죄 인이 구원을 받았으니 감사합니다. 날마다 입으로 생활로행동으로 감사하는 생활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생활입니다.

②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생활입니다.

남은 생애를 주님 말씀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천하에 가장 높은 분이요, 가장 고마운 분이요, 또한 공의로운 분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새 사람이 되고 영육간에 천국을 이루며 살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를 통한 성탄 예고

사9:1-7

 

서론

이사야서 9장에는 오실 메시아에 관해서 자세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1) 이 나라는 그리스도에서 건설한 나라 또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2)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그의 섭리 가운데 다스리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주의 왕이십니다.

다음에 가르쳐 주시는 말씀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신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하나가 그리스도의 신분과 그 인격과 그 성품과 그 역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 기묘자라는 뜻

인성을 초월하신 기이하신 분임을 말해 줍니다. 즉, 신성을 가르쳐 줍니다 "신비하다"는 뜻이고 "오묘하다"는 뜻이고 "놀랄 만하다"는 뜻으로 "그리스도께서는 너무나 초월하시여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다 설명할 수도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그런 분입니다. 우리 적은 지혜와 지식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었습니다. 비천한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2. 모사라는 뜻

"선비", "고문" 혹은 "상담가"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의논해서 옳게 지도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지혜가 풍성하신 분이므로 우리를 옳게 최선의 길로 지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상담자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3.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

전능하신 하나님, 힘 있고 능력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5병 2어의 역사를 일으키고 병자를고치시고 물질에 자본주의가 되셔서 불가능에서 가능케 하시는 분으로 우리가 그 능력을 의지할 때, 절망에서 소망으로 옮겨집니다.

 

4. 영존하신 아버지라는 뜻

그의 백성,즉 하나님의 자녀에 대하여 그의 사랑스런 보호가 영원할 것을 뜻합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히 계시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보호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5. 평강의 왕이란 뜻

예수님 탄생하셨을 때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군 천사의 노래가 무엇이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화평을 이루게 하기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결론

이 땅에 사는 어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을 영접할 때에 그 가정과 마음에 천국이 이루워지는 것입니다. 주님 오시기 전 700여년에 예언한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이분을 바로 모시는 신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즐거운 성탄

눅2:1-11

 

서론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라고 하신 이 말씀은 양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한 밤에 천군 천사의 합창과 함께 들러주신 음성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본래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롬3:23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지 못하더니"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즉 우리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멸망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1. 만민이 즐거워하는 이유

(1)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할 날이기에 하나님이 인간의 되어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찬송으로 기뻐하십니다. 성탄절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날입니다.

(2) 이 날은 해방의 날입니다.

죄악의 사슬에 얽매여 사망과 눌림받은 자리에 포로가 되어서 죽게 된 우리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해방하여 주셨으니 즐거워할 일입니다.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굶주린 자에게 생명의 떡을, 고달픈 자에게 안식을, 불안한 자에게 평화를, 병든 자에게 고침을, 절망이 있는 자에게 소망을,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의 부활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3) 이 날은 평화의 왕이 오신 날입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이제는 다 이루웠다 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축복의 문이 열려져 있고, 축복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으니 기뻐할 날입니다.

 

2. 이 날을 어떻게 지킬 것입니까?

불신자들의 행동은 낭비하고 음란하고 죄로 시간을 보내니 진노를 쌓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 오신 목적을 망각하면 안됩니다. 천사의 찬송처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영광이 못되면 의미도 없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의 찬송으로 기쁨을 돌려야 합니다.

(2) 주님의 사랑을 온 백성에게 전파하여야 합니다.

목자들이 나가 구주가 나셨다고 외친 것처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평화의 왕이 오셨으니 우리도 평화의 청부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막힌 담을 헐고 평화를 조성하며 평화를 사랑합니다. 이것이 참되게 주님의 성탄을 뜻있게 지키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신 날, 해방의 날, 평화의 왕이 오신 날입니다. 우리는 불신자와 같이 하지 말고 성탄의 의미를 새기며 지내야 합니다. 우리도 평화를 이루고 이 소식을 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기쁜 소식

눅2:1-14

 

서론

성탄은 가장 큰 명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 중에 최대의 이적이요, 최고의 신비이며, 성도들에게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또한 이 기쁜 소식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에와서는 이 기쁜 성탄절을 이방 사람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오셨던 그 시대 배경을 생각해 봅니다. 로마의 말 발굽에 무참하게 짓밟혀 로마의 식민지가 된 유대 나라 백성들은 도탄에 헤매고 윤리와 도덕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종교는 세속화하여 정신적 지도자의 위치를 잃고, 사회는 질서가 파괴되고, 민심은 어지럽고, 앞길은 암담한 가운데 비애 속에서 살 때입니다. 들에서 양치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나탔습니다. "내가 만민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니 오늘날 다윗성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1. 만민에게 미칠 좋은 소식

(1) 복음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인간들에게는 꼭 같습니다. 모두가 죄인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으니 평등하고 아름다운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복음은 우주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쁜 소식은 어떤 하나의 국가를 상대로 하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성경에 "너희는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마28:19)"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전해주는 소식은 일면에 주어지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만민이 기뻐할 좋은 소식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다주는 구원에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2. 크게 기뻐할 귀한 소식

(1) 하나님의 아들이 나심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했는가 하면 인간이 모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수억 인간을 한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전인류보다도 더욱 귀중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만민을 대신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여기에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짐으로 기쁜 소식이 됩니다.

(2) 행복과 광명을 주심

흑암한 세상에 빛을 주시려고 오셨으니 주님은 빛으로 오셨습니다(요1:4). 어두운 심령을 밝게 하고, 어두운 사회를 문명하게 하며, 흑암의 세상에서 광명의 세계로,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천당으로 가는 길을 밝혀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예술이 있고 문화가 있으며, 문명과 선진이 있으며 참된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결론

행복과 광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아니라 온 세상 나라와 모든족속에게 기쁜 소식이 있으니 그것이 예수님의 오심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이 친히 기쁨으로 소식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이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찾아오시니 영접하기 바랍니다.

 

 

평화의 왕

사9:1-7

 

서론

사람들은 누구나 평화를 원하고 있지만 인류 역사는 피로 물들인 전쟁사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우리 인간 사회에 자유와 건설과 발전과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이 평화유지의 비결은 상호간의 이해와 협력과 봉사와 사랑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대하여 성경은 악령 사탄의 활동과 발악으로 인해서 인생들은 가정의 평화, 사회의 평화도 상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하여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1. 고통의 흑암이 사라지고 평화의 새 아침이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 흑암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경학자들은 여기 "흑암"은 사탄의 권세로서 우리 인간들에게 근심과 고통과 사망을 가져다 주는 요소라고 하면 여기 "빛"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우리 인간들에게 광명과 평화와 생명을 가져다 주는 요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그 통치하에 있는 신도들에게는 사탄의 흑암한 권세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의 평화를 누리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2. 멸시와 천대가 사라지고 영화를 누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경학자들은 여기 멸시와 천대는 전쟁으로 말미암은 패배의 산물이고 패배의 원인은 힘이 없어 연약한데 원인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에 패배를 당하면 멸시를 당하게 됩니다.

여기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은 승리자들이 누리는 영광으로서 이는 힘이 있는 강한 사람이 누리는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3. 쇠잔과 곤고가 사라지고 창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쇠잔과 곤고는 사탄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범죄한 결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의 통치하에 있는 사람은 쇠잔의 권고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창성과 환희는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써 이는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고 순종함으로 사탄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누리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이 푸르고 무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4. 무거운 멍에가 벗겨지고 안식과 평안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꺽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무거운 멍에는 주경학자들이 인생의 근심과 걱정이며, 불안과 고통이며, 죄악과 사망의 무거운 멍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거운 멍에는 인생 그 누구에게나 다 있는 멍에인데, 이는 사탄의 유혹으로 범죄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무거운 멍에를 메고 신음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이러한 무거운 멍에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안식과 자유와 평안을 회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가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독생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의 고통과 멸시와 쇠잔과 무거운 멍에에서 해방을 얻어 축복을 얻기 때문입니다.

 

 

인류를 위한 최대의 사건

요3:16-21

 

서론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타나 있는 깊은 사상은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선물을 주시되 최상급의 선물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주만물 중에 우리 인생들을 최고로 대우하여 주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에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위대한 사건이 우리 인생들에게 전개된 내용은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지구촌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1.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이 실천된 사건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본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되 말과 .입으로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친히 실천하셨습니다.

주경학적으로 사랑은 나의 것을 주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취해 봉사하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되 이와 같이 천지 만물도 우리 인생들에게 주셨고, 심지어는 독생자까지 우리 인생들에게 주셨다는 말입니다.

여기 독생자를 주신 의미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사 구원하시고, 사망에서 해방하사 구원하시고, 지옥에서 해방하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영원히 하나님께 진노와 저주와 형벌을 받은 범죄한 인생들에게 독생자를 주셔서 영생하게 하신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인 동시에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신 사건이요, 최고로 대우하여 주신 사건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진 사건입니다.

신학자들은, 구약의 요절은 창3:15이고 신약의 요절을 마1:21이라고 합니다. 이 언약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를 마귀와 사망과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하사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목적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약 성취의 결과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 역사계에 임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여진 위대한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실천한 사건입니다.

요3:17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을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적 측면에서 구원의 개념은 세 가지에서 해방인데

(1) 죄악에서의 해방이요

(2) 사망에서의 해방이요

(3) 지옥에서의 해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이 지구촌에 예수님이 탄생하신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실현으로써 우리 인생들을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해방하사 영생을 얻게 하신 사건입니다. 이 구원의 길은 지옥에서 해방하사 영생을 얻게 하신 사건입니다. 이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길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요14:6, 행4:12에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 신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탄생사건은 참으로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실현된 사건이요.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진 사건이요, 하나님의 구원을 실천하신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들에게는 무한하신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건입니다.

그 축복의 내용을 요약하면

(1) 범죄한 죄인들이 최고의 대우를 받은 축복이요,

(2) 벌받을 죄인들이 최고의 선악을 받은 축복이요,

(3) 멸망을 받을 죄인들이 최고의 사랑을 받아 영생을 누리게 된 축복입니다.

세 상

성 경 활 용

1. 세상의 문자적 뜻

(1) 세계(천하)

(시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행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2) 불신자들

(요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3) 이 세대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4) 만세와 만대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2. 세상이 의미하는 보편적 이해

(1) 악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마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2) 일하는 사람이 없다.

(요7: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3)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함

(요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4) 미혹하는 자가 많음

(요이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5) 거짓 선지자들이 많음

(요일4:1)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6)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옴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

(마18: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8) 어두움

(요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9) 세상은 지나감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10) 악한 자 안에 처함

(요일5:19)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11) 신앙을 변질하게 함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12) 환란이 있다.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13) 염려가 많다.

(마13:22)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14) 소망이 없다.

(엡2:12)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5) 믿음이 없고 패역하다.

(마17:17)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행2:40)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며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16) 표적을 구한다.

(막8:12)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3. 하나님과 세상과의 관계

(1)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의 것이다.

(시24:1)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 와 그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2) 의로 세상을 판단하신다.

(시96:13)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관단하시리로다

(3) 여호와께서 세계를 세우셨다.

(렘10:12)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4)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창세부터 세상에 보이셨다.

(론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5) 세상을 사랑하신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독생자를 주셨으니

 

4. 예수님과 세상과의 관계

(1) 세상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됨

(요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2)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지셨다.

(요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 세상에 생명을 주심

(요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4) 세상의 빛이심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5) 세상을 구원하러 오심

(요12:47)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6)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심

(행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7)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차심

(고후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5. 성도와 세상과의 관계

(1) 세상의 소금이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2) 세상의 빛이다.

(마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3)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요15: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4) 그리스도께서 성도를 세상에 보내셨다.

(요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5)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6) 세상 정욕을 버려야 한다.

(딛2: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7)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한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8) 세상을 이겼다.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9) 성도가 세상을 판단한다.

(고전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관련원어풀이

1. hm;d;a} 아다-마-

(1) 땅.

(출20:21, 삼상4:12)

(2) 마당, 들판, 육지.

(창4:2, 시105:35)

(3) 나라, 지방, 토지.

(창28:15, 시49:12)

(4) 땅, 지구.

(창4:11, 6:1)

 

2. $r,a, 에레츠

(1) 땅.

(창1:1, 9:19)

(2) 육지, 뭍.

(창1:25)

(3) 땅, 나라.

(창21:32, 룻1:1)

(4) 땅, 땅 조각

(창3:15, 출23:10)

(5) 땅, 마당

(창33:3, 욥12:8)

(6) 땅의 요소, 땅 부분

(시l2:7)

(7) 나라, 땅들.

(창26:3, 겔11:17)

 

3. dl,,j, 헬레드

(1) 기간, 생명의 때, 생명.

(욥11:17, 시39:6)

(2) 세상.

(49:2)

 

4. lbeTe 테-벨-

(1) 비옥하고 살 만한 땅, 거주하는 곳.

(욥37:12, 사14:17)

(2) 지구, 온 세상

(삼상2:8, 시9:9)

 

5. aijwvn 아이온-

(1) 일생, 생명, 영원, 매우 오랜 시간, 영원, 과거.

(눅1:70, 고전2:7)

(2) 시대.

(마12:32)

(3) 세상.

(딤전1:17)

 

6. gh' 게-

(1) 땅, 경작지, 흙.

(마13:5, 계9:4)

(2) 땅, 지면.

(마10:29, 행9:4)

(3) 육지.

(막13:31, 계12:12)

(4) 지구, 세상, 땅, 육지.

(마5:18, 요12:32)

(5) 거주지, 거처.

(마5:5, 행1:8)

(6) 나라, 지방, 지역.

(마10:15, 롬9:28)

 

7. kovsmo" 코스모스

(1) 정연한 질서, 조화있는 구조, 정규적인 배열, 꾸밈, 장식

(벧전3:3)

(2) 세상, 세계, 우주.

(마24:21, 롬1:20)

(3) 지구권, 지구.

(마4:8, 계11:15)

(4) 세상, 세상의 거민, 인류.

(마18:7, 롬3:6)

(5) 불신적인 집단, 죄로 파멸된, 하나님과 적대된 세상.

(요7:7, 갈4:3)

(6) 세상적인 일, 세상에 속한 지위, 쾌락, 부귀.

(마16:26, 갈6:14)

(7) 전체, 총합

(약3:6)

 

8. kosmikov" 코스미코스

세상적인.

(딛2:12)

 

9. oijkoumevnh 오이쿠메네-

(1) 거주하는 땅, 헬라인이 거주하던 지방, 로마 제국

(눅2:1)

(2) 모든 세상, 세계

(눅4:5, 롬10:18)

(3) 땅의 주민, 사람들.

(행17:6, 31)

(4) 세상, 우주.

(히2:5)

 

10. biwtikov" 비오-티코스

이 세상 삶에 얽매인, 세속적인, 세상에 속한.

(눅21:34, 고전6:3)

 

11. ejpivgeio" 에피게이오스

(1) 세상적인.

(고전15:40, 약3:15)

(2) 세상적인 일들.

(요3:21, 빌3:19)

(3) 세상적인 사람들

(빌2:10)

설교예화자료

위대함은 곧 오해를 받는 일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제자로 무교회주의의 도입자인 김교신 선생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많은 오해가 따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깊은 심정의 사람은 오해를 받는 것이니 천협한 인생에게 일일히 이해될 만한 삶을 살진댄 차라리 살지 않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오해는 오해대로 버려두십시오."

김교신 선생의 애제자였던 유달영 교수는 이에 대하여

"그것은 오만 때문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로 하는 믿음때문이었습니다"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준 외에 다른 표준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플라스틱 신들과 로보트 인간들

 

테네시, 차타누가의 어느 교회 모임이 진흙구덩이 주위에서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창세기 35장의 구절을 읽었습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경건케 하고 의복을 바꾸어라"

그 모임은 구덩이에 여러 가지를 던져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신들' 중에는 그 구덩이로 쩔렁쩔렁 울리며 들어가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장래의 설교 시간 동안에 회중 시계와 함께 교회가 끝났다는 상징이었습니다. 낡은 텔레비전 세트가 던져졌습니다. 또한 "오오바 오오바 오오바"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록큰 롤 레코드가 던져진 후에 현대 통속 작가들의 유명한 여러 소설들이 들어갔습니다. 여자들의 짧은 운동 바지들과 투우복 모양의 여자용 바지들이, 담배갑들이 쌓인 더미 꼭대기에 놓여졌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은 신문 기자들에게, 이 사람들이 뱀을 조종하는 사람들이나 섬뜩한 광신자들이 아님을 확신시켰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을 던져 버리고자 했으며 복음의 행로를 위해 깨끗이 해 두자고 하는 평범한 남부 침례교도들에 불과했습니다.

 

 

중간 암실

 

한 화가가 최근에 완성된 그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그의 친구 한 사람을 화실에 초청하였습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였고 암실로 안내되어졌습니다. 그곳에서 15분을 기다리자 마침내 화가가 나타나 진심으로 환영한 후 그를 그의 작품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친구가 떠나기 전,화가는 웃으며 이야기하였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암실에서 있었으니 몹시 당황했으리라 생각하네." 계속해서 화가가 말하였습니다.

"나는 자네가 거리의 눈부신 빛에 익숙한 채 내 화실을 들어올 경우 내 작품의 아름다운색깔을 충분히 감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그 빛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암실에 있도록 한 것이네."

오늘날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에게 나오는 빛에 의해 눈멀어 있습니다. "네가 알진데"하는 말은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치 못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그가 주신 돈으로 셀 수 없는 값진 선물을 보지 못하면서 한편 하나님께 속한 많은 것들을 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아주 값비싼 선물을 원하고 있습니까? 우물가의 여인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그녀의 눈에 가득 차있던 세상의 빛을 모두 제거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미국의 육군사 가운데 위대한 신앙인이자 장군이었던 맥아더 원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공산군에 밀려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했을 때에도,그는 비관적인 말을 하지 않고 승리를 확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평생의 군대 생활 중에 오늘만큼 승리에 대한 자신을 가져본 적이 없다. "

그는 새로운 척도의 눈, 곧 신앙의 눈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적인 눈으로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다가오면 탄식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신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눈을 가지고 그 믿음을 시인하는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때,우리는 성공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세상은 구경거리 쇼이며, 해답을 내야 하는 문제거리는 아니다.

(J. 고티에/ 만인이 꾸미는 이야깃거리)

 

온 세상은, 신과 인간이 다 같이 구성원으로 있는 하나의 국가이다.

(키케로/ 독서론)

 

세상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희극이며, 느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비극이다.

(H.S. 월폴/ 편지)

 

세상은 그 자체가 영원한 풍자화이며, 매순간마다 그것은 그것이 자처하는 바에 대한 냉소와 모순이 된다.

(G. 산타야나/ 영국에서의 독백)

 

세상은 다만 몇 가지 모양으로 잘라낸 허식에 불과하다.

(핼리팩스/ 작품집)

 

세상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는 대무도회이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세상이란 바로 양들의 무리지움이다.

(J. 라 퐁텐)

 

이 하늘과 대지에는 철학의 꿈이야기에 나오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

(W. 셰익스피어/ 햄릿)

 

잔은 험된 세상도, 좋고 아름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충분히 길다.

(M. T. 키케로)

 

우리의 영혼은 조화에 좌우되고, 세상은 조화로 이루어졌다.

(G. 그랜빌/ 영국인 마법사)

 

딱정벌레가 박물학을 모르는 것과 같이 인간도 이 세계를 알지 못한다.

(S.R.N. 샹포로/ 성찰·잠언 ·일화)

 

세상에는 우리의 침울한 두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이상의 행복이 있는 법이다.

(F.W. 니체)

 

세상은 훌륭한 책이지만 읽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에 닿지 않는다.

(C. 골도니)

 

세상은, 영원한 시이소에 지나지 않는다.

(몽테뉴/ 수상록)

 

세상은 적의가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호롭지도 않다. 무관심할 뿐이다.

(J.H. 호움즈/ 감상적인 사람의 종교관)

 

세상이란 제일 나쁜 사람이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극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세상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

(정도전/ 삼봉집)

 

천국에서는 만사가 즐겁고, 지옥에서는 만사가 고통스러우며, 우리 세상은 그 어느 쪽과도 경계를 접하고 있다.

(B. 그라시안 이 모랄레스)

 

두 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자와 줄로 잴 수 있는 세계요, 다른 하나는 마음과 상상으로느끼는 세계이다.

(L. 헌트/ 남자와 여자와 책)

 

세상의 지각에 조심하여 발을 디디라. -그것은 얇다.

(E.V. 밀레이/ 사냥꾼, 무슨 싸움?)

 

창조된 세계는, 영원 속의 조그만 삽화에 불과하다.

(T. 브라운/ 기독교 도덕론)

 

세상은 연극과 같아서 자기가 맡은 역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가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팔라다스/ 풍자시집)

 

온 세상은 희극을 연기한다.

(페트로우스)

 

이 세상은 천상의 것을 본떠 만든 복제품에 불과하다.

(C.V. 게오르규/ 25시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나는 이 세상을, 다만 이 세상을 보고 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한 역할씩 하지 않으면 안 될 무대라고 생각하고 있다.

(W. 셰익스피어)

 

세상은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겐 별 소용이 없다.

(C. 골도니/ 파멜라)

 

이 세상이란, 그것 이 이 세상 아닌 어떤 다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에 맞게 창조된 세상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A. L. 헉슬리/ 어머니)

 

이 세상은, 우리의 상상을 위한 캐버스에 불과하다

(H.D. 도로우/ 콘코드와 메리어크 강에서의 일주일)

 

너와 세상과의 싸움에서는 세상의 편을 들어라.

(F. 카프카/ 죄. 고뇌 · 희망 · 진실의 길에 대한 고찰)

 

세상은 나쁘다. 그러나 무망하지 않다. 세상은 절대규준에 의해서 평가될 때만 무망하게 된다.

(F. 뒤렌마트/ 미시시피 군의 결혼)

 

세상은 불붙는 집이다. 뱀은 밖에서 노리고 구더기는 안에서 끓는다.

(이광수/ 인토)

 

바람이 손님처럼 왔다갔다. / 퍽 고맙기는 하네마는 또 다른 천지가 나서/ 내사 꿈에라도흥겨운 세상.// 이 세상은 모두 다 흐린 강물/그 위에 우리는 달처럼 있네.

(이성교)

 

그렇지만 너는 무서워하고 있어, 너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유리가 깨어질까 봐‥‥‥ 너는 이 세상을 진열장으로 알고 있어

(E. 케스트너/ 파비안)

 

오 누란의 위기가 최루탄처럼 피어오르는 여기/ 아예 부처님도 양심을 팔 만큼/ 멍든 세상이라든가

(박훤/ 방황하는 노새)

 

근원이 되는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노인은/덧없는 이 세상을 하직하고 영생의 나라로 간다.

(위고/ 잠자는 보아스)

 

너는 십자가를 보고/ 너는 또한 못을 보며/검은 피와 해면을 본다. 그것들은 네 게 가르쳐/ 육신의 영토인 이 세상에서 오직 내 '살'과/ 내 '피' 와 내 교훈과 내 말만 사랑하라 한다.

(베를렌/ 예지 4)

 

세상은 아름답고 하늘은 푸르고/ 산들바람 고요히 불어오며/ 들판의 꽃들은 손을 흔들고/ 아침 이슬에 반짝이누나/ 어느 곳을 보아도 웃는 사람의 얼굴/그러나 나는 무덤에 누워/ 가 버린 연인을 안고지고

(H. 하이네/ 세상은 아름다워)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든지 어쨌든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박재삼/ 한)

 

어머니가 나를 이 세상에 낳아 놓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서서/ 자꾸만 깊숙이 이 세상을 파들어 가는 것이다.

(R.M. 릴케/ 마지막 남은 사람)

 

나는 기억한다. 모든 세상을/ 떠나가 버린사람들의 세상까지도.

(P. 르베르디/ 밤 늦게)

 

역시 세상은 꽃다발이/ 가득한 것일까?

(구자운/ 지하도)

 

물 위에 나아가거라/ 가서는, 세상마다 떠 댕겨다오.

(고은/ 심청부)

 

신을 사랑한/ 사람 세상의/ 여자 마음아 여자 마음아

(김남조/ 막달라 마리아)

 

이 세상/ 담길 곳 없는 이는/ 전쟁이 바람이었던 게야/ 바람이 의관쓰고/ 나들이 온 게지

(김남조/ 바람)

 

짧은 목숨의 한 세상,/ 그 헐벗은 불꽃 속에/언제나 단단하고 깨끗하게 타기를 좋아하던,/‥‥어리석은 한 사람의 남은 재를 생각한다.

(김현승/ 참나무가 탈 때)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냄새가 잊힐까

(김지하/ 서울길)

 

가슴이 더움은 무엇인가/ 뜬 세상을 지나기가 서툴렀었네

(김지하/ 알 수 없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도곤 어려워라/ 이 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장만/ 청구영언)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한 일 다 주워 잊었노라/ 내 몸을 내 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김황욱/ 청구영언)

 

하나님/ 당신이 아무렇게나 빚어 놓으신/이농의 세상

(서덕석/ 단식)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흘려// 살아 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내 손에 풀려나는 이 색실 한 타래며/ 무한정 쏟아지는 저 바깥 색실 사태(沙泳)/ 세상은 몸을 풀어라,/ 아 그로하여 광명이네,

(박경용/ 광명)

 

이 시대의 목소리로 너희가 살아 있는 것도/네가 갇혀 있는 그 안쪽을 위해서가 아니라/바깥 세상을 위해서임을 알기 때문에/ 바깥 세상의 평화와 따뜻함 위해서 임을 알기 때문에/ 서리내리는 초겨울 아침 네가 조금 더 견뎌야겠구나

(도종환/ 서리아침)

 

어두운 세상이라 한다면/ 이 한 몸 촛불로 사루어지련만/ 복 되고 밝은 희망찬 세상이라는데/ 그 또한 부질없는 노릇이지요

(박용주/ 의롭다 하는 것은)

 

수국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만경 창파에 슬카장 즐겨 보자/ 인간 세상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윤선도/ 고산유고)

 

세상에는 대패로 밀 수 없는 것이/ 여러가지라 그 하나가/ 내 이마의 주름살이란다.

(박용주/ 늙은 목수의 소원)

 

지켜본 세월만큼 햇볕에 바래고/ 더러움타고 먼지타서 낡아진 세상을/ 음습산 습기고 눅눅해진 세상을/ 빠삭거리는 새 종이로 바르고 싶었다// ‥‥좌절하고 고통하는 우울한 벽에는/ 연록으로 반짝이는 싱그러움을 입혀서/ 밝고 고운 세상으로 풀칠하고 싶었다//간혹은 은은한 상아 빛깔로 호사도 하고/ 등꽃같은 보라빛 고고함도 함께 칠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세상을 보고 싶었다. // 낡고 바랜 것이 벽지만은 아닌데/ 이 한 칸 벽만을 새로 바른다 해서/세상의 더러움이 함께 가려지는 것도 아닌데

(박용주/ 벽지를 바르며)

 

우리는 언제 잘살아 볼거나/ 언제 잘살아서 존 세상 볼거나/뼈 빠지게 일해도 돈은 도시로만 가고/ 사람도 도시로만 가고/ 징한 세상이지야/ 그예 가방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어머니의 눈물

(박용주/ 길 떠나는 아침)

 

세상을 멀리 두고/ 홀로선 노송이 무거이/ 하늘 받들어 조으는/ 봄이라 눈뜨는 세상을/서성이는 들불연기

(채수영/ 문경새재를 넘으며)

 

착하고도 어리석은/ 그리 바쁜 세상살이

(서재수/ 그 심성)

 

어차피 혼자인 세상/ 미리미리 헤어지는 연습 좀 하기로/그게 대수일까마는/ 대명천지 밝은 새상 천지간 휘둘러 봐도 의지할 곳 없는데/ 오늘 어찌 헤어져야 하는가

(박용주/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알다가 모를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야

(원용문/ 조간신문)

 

어릴적/ 어쩌다가// 심심해서/ 가랑이 사이로 머리 처박고/ 보았던 풍경// 세상이 이다지도/ 아름답고 어지러운가를/ 그 때부터/알았지// ‥‥하지만/ 모두다 허상이더라/ 거꾸로 선 세상이더라.

(최시병/ 가랑이 사이로)

 

모로 돌다 가로 돌다/ 거꾸로도 도는 세상

(정위진/ 서호-수원에서)

 

하늘 향한/ 저 고요한 움직임의 세상

(신승철/ 미류나무를 위하여)

 

주름살이 없는 세상/ 스스로 가꾸려고/ 서로가 서로를 묶어/ 어둠을 쓸어가는 빗자루 되고

(박순길/ 억새풀)

 

사랑이여/ 무력한 전능이여/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완벽한 허무여

(서인숙/ 그리움이 남긴 자리)

 

이 겨울 마른 오동잎새/ 너 없이/ 나도 없어라// 나 떠돌아 오면/ 네가 바람 자락 끝에서움직인다/ 아무런 힘 없이/ 바로 여기까지가 이 세상이다.

(고은/ 마른 오동잎새)

 

눈시울 붉게 젖는/ 저 꽃길 지나가면/ 애착도 증오도 눈물도 없이/ 편안한 누이의 아득한 세상/ 산허리 어디쯤/ 있을 것만 같다.

(나영자/ 강을 건너)

 

아픔이 라든가 서글픔 따위/ 세상살이의 허섭스레기

(김명지/ 밤이 깊어갈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 정상이 비정상이요/ 비정상이 정상이다.

(김재흔/ 세상을 보면)

 

쾌적하게 내가 피를 흘리고 죽을 수 있도록/고귀하고 광활한 싸움터를 다오!/ 오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마오/ 숨막히게 답답한 이 잡동사니 세상에서!

(하이네/ 1829년)

 

 

설 교 노 트

 

 

기독 신자의 처세 원리

마10:16-23

 

서론

본문은 우리 기독 신자들의 처세 원리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열두 제자를 불러 세우시고 험한 세상으로 내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그리고 사람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기독 신자들의 입장과, 처세 방법에 대해서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1. 이 세상에서의 기독 신자의 입장

우리 기독 신자들의 처지나 입장이 마치 양이 이리 가운데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몇 가지 깊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이 세상은 두 가지 세계로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양순하고 부드러운 양의 세계가 있는가 하면, 둘째는 잔인하고 포악한 이리의 세계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리의 세계는 위선적이며, 잔인하며, 노략질하는 음흉한 세계라고 하였습니다(마7:15).

(2) 이 세상은 이질적인 두 가지 실존이 공존, 공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한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있듯이 이리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리떼 속에 양이 같이 살아가고, 양들 속에 이리가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3) 이 세상에서 우리 기독 신자들은 위험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음흉하고 잔인하고 포악한 이리 속에서 살아가는 온유하고 양순하고 연약한 양들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슬기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양과 같이 연약한 우리 기독 신자들은 이리와 같이 잔인하고 포악한 마귀의 밥이 되지 아니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절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2. 세상에서의 기독 신자의 처세 비결

예수님께서는 우리 기독 신자들의 처세 비결을 세 가지로 교훈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험한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신자들의 처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 뱀같이 지혜롭게 처세하라고 하였습니다.

뱀은 소리내지 않고 기어가는 지혜가 있으며 몸을 낮추어 기어가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유사시에 몸을 바위 속으로 피신하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 조용하게 또는 겸손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처세하는 지혜를 배우라는 말입니다.

(2)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처세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순결하라"는 헬라어 원문은 "아케라이오스"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속임이 없는 순수성과, 흐트러지지 아니한 단정성과 악의가 없는 착한 성품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 신자들은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처세하라는 교훈입니다. 또는 단정하게 처세하라는 말입니다.

(3) 사람은 삼가 처세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밝힌 대로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사람을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우리 기독 신자들을 체포하여 투옥한다고 하였습니다.

박해한다고 하였습니다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자기 가족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사람은 변절하기도 하고, 배신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영원토록 변하지도 아니하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님만 의지하고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이 교훈하여 주신 세 가지 처세 원리를 명심하여 우리의 처지를 바로 인식하며, 처세의 방법을 따라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사람을 삼가 주님만 의지하고 말씀으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이 길만이 안전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기독신자들의 바른 처세라고 생각합니다.

 

 

청지기의 처세 방법

눅16:1-13

 

서론

인생에게는 누구에게나 처세 원리와 비결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처세술이 훌륭하여 일평생 행복하게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처세술이 졸렬하여 일평생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비일 비재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훈하신 "청지기의 처세 비유"를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청지기의 비유는 예수님의 교훈하신 많은 비유 중에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운 비유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인의 소유를 탕진하고 파면 선고를 받게 되자 부채 문서까지 위조하고 사리 사욕을 취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불의한 청지기에 대하여 그의 행동 자체는 옳지 아니하지마는 그 지혜있게 처세했다는 점에 관해서는 그 주인도 칭찬을 했고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도 그 처세에 대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 주인도 칭찬을 하고, 예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이 비유를 통하여 교훈하시고자 하는 그 핵심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여기 나타나는 청지기의 생존을 위한 처세 철학이라고 하였습니다.

 

1. 자신의 처지를 올바로 인식하고 처세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 고백은 자신의 입장과 처지와 장차 임할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처세한 내용입니다.

그는 자기가 범한 죄를 깨달아 알았고, 범죄 결과 주인에게 파면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처세상 무능하고 속수 무책이라는 비참한 처지를 깨닫고 처세를 하였습니다. 인생은 너와 나를 물론하고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되고 부패하여 무능한 존재가 되어졌고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 자신의 처지를 바로 인식하여 생존의 원리와 비결을 바로 추구해 나가는 슬기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선용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장래의 삶을 위하여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포착하여 선용하려고 하였습니다. 모든 인생들에게는 죽음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과 심판이 나를 찾아오기 전에 주어진 남의 생존의 시간과 기회를 바로 선용하는 처세의 비결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전3:1에 "천하 만사가 모두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날 때도 있고 죽을 때도 있고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봄 지나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게 마련입니다. 인생에게는 청년기가 지나면 장년기가 오고 장년기가 지나면 노년기가 오게 마련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남의 생존 기간과 기회를 남용하거나 허송하지 말고 보람있고 의의있는 삶의 기회로 선용하는 처세의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3. 자신의 미래의 삶을 위하여 선심을 썼습니다.

본문 5절에 기름 백 말 진자에게 오십 말로 탕감해 주고,밀 백 석 진자에게는 팔십 석으로 탕감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인의 공문서를 위조하고 주인의 것을 허비한 행동에 대해서 순리 적으로는 잘못되었으나 다만 그가 장래의 삶을 위해서 선심을 썼다는 점에 대해서는 주인도 칭찬했고 주님도 인정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들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건강도, 지식도, 제물도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허비하거나 오용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웃들을 위해서 또는 교회를 위해서 바로 선용하시기 바랍니다. 갈6:7-9에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의 교훈하신 처세의 비결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처세해야 되겠습니다.

(2)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선용해야 되겠습니다.

(3) 미래의 삶을 위해서 바른 신앙으로 선심을 써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이김

딤전6:7-12

 

서론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이란 단순히 이 지구를 가리키는 용어는 아닙니다. 사탄의 역사가 종말까지 허용되는 곳입니다. 따라서 세상이란 개념은 "마귀의 유혹이 오는 길"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 데마는 바울 사도의 선교의 동역자였고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2차로 투옥될 때 그 처참함과 고생함을 보고 외면하여 "세상을 사랑하여" 돌아갔습니다. 즉, 세상의 쾌락과 재미에 유혹되어 배신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오는 평안 쾌락, 재리를 끊어버리지 않으면 데마와 같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세상과 싸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1. 세상의 것들이 헛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7절).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없으며,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인이 세상의 가치를 절대적로 알 때에 실수하고 범죄하게 됩니다. 욥은 세상의 것들, 그 많은 재물을 다 잃었지만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욥1:21).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있는 물질에 탐익되어 살 수 없는 하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벗"이 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벗이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약4:4).

 

2. 세상이 주는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9-10절).

세상은 우리에게 "부하려 하는 자"로 만듭니다.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도취되게 합니다. "돈을 사랑"하도록 만듭니다. 이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세상 근심에 빠져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마귀의 수단입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인지라 지나간 후에는 엄청난 고뇌와 고통과 심판이 따라옵니다.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얻기위하여 세상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요14:27). 세상을 옛 사람의 때와 같은 안목으로 바라보면 "시험"과 "올무"와 "정욕"에 떨어지고 맙니다(9절). 그렇게 되면 믿음의 생활은 파괴당하고 맙니다. 우리는 세상의 부하려는 일체의 유혹을 모세와 같은 신앙으로 물리치고 나아갑시다.

 

3. 믿음의 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12절).

우리의 선한 싸움이란 곧 육신의 정욕과의 싸움이요, 안목의 정욕과의 싸움이요, 이생의 자랑과의 싸움입니다(요일2:15-17).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에 지면 세상의 쾌락의 벗이됩니다. 이런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갑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을 말씀으로 믿음으로 물리쳐야 합니다(시 119:9).

우리는 안목의 정욕과 싸워야 합니다. 세상에는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오는 시험이 많습니다. 세상적이요, 정욕적 이요, 마귀적인 시험이 세상에 너무도 많이 보입니다. 식욕 ·성욕 ·물욕 · 명예욕 · 권세욕을 일으키는 것들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불신자들의 난장판이 된 연극 · 영화 · 텔레비전도 삼가서 보아야 합니다. 이것도 전쟁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과 다투면서라도 못 볼 것을 보도록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이생의 자랑과도 싸워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로 자랑을 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거리는 오직 날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뿐입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쾌락을 추구하고, 물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정욕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11절)"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결론

다윗의 심정과 같이 왕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는 심정을 갖도록 합시다. 오직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둔 것(딤전6:17)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함'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소 망

성 경 활 용

1. 일반적인 고찰

(1) 항상 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2) 하늘에 쌓아 둔다.

(골1: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3) 좋다.

(히7:19)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4) 복스럽다.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5) 담대하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행3:6)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2. 소망의 여러 유형

(1) 영적인 소망

(롬15:4)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2) 구원의 여망

(행27: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3) 영생의 소망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4) 영광의 소망

(골1:27)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5) 견고한 소망

(고후1: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6) 의의 소망

(갈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3. 소망의 대상

(1) 하나님

(시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벧전1:21)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 그리스도

(살전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딤전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2) 영생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4. 소망의 결과

(1) 깨끗하다.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2) 즐거워한다.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3) 구원을 받는다.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4) 복이 있다.

(시146:5)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5) 여호와께서 살피신다.

(시33:18)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6) 행위를 완전케 한다.

(욥4:6)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5. 소망이 있는 자

(1) 잠잠히 하나님만 바란다.

(시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나는도다

(2) 주를 더욱 찬송한다.

(시71:14)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 이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시78: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4) 소망을 부끄럽게 아니한다.

(롬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5) 즐거워한다.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6)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한다.

(딤전5: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7)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8) 낙망치 않는다.

(시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관련원어풀이

1. @/jF;Bi 비타-혼-

(1) 확신.

(사36:4)

(2)소망.

(전9:4)

 

2. ls,K, 케셀

(1) 허리, 옆구리.

(레3:4, 욥15:27)

(2) 내부, 내장.

(시38:8)

(3) 확신, 소망, 기대.

(시78:7, 잠3:26)

(4) 어리석음.

(출7:25)

 

3. hw:q; 카-와-

(1) 강하다, 억세다, 기대하다, 기다리다.

(시25:3, 37:9)

(2) 고대하다, 매복하다.

(욥30:26, 시119:95)

 

4. hw<q]mi 미크웨

(1) 기대, 소망, 신임.

(대상29:15, 렘14:8)

(2) 회집, 모임.

(창1:10, 출7:19)

 

5. lj'y: 야-할

(1) 바라게 하다.

(시119:49, 겔13:6)

(2) 기대하다, 소원하다, 기다리다.

(시130:7, 사51:5)

(3) 기대하다, 기다리다.

(삼상10:8, 시42:6)

 

6. va'y; 야-아쉬

(1) 희망이 없다, 절망하다, 단념하다.

(삼상27:1)

(2) 희망이 없는, 절망하는

(욥2:26)

(3) 희망이 없다, 허무하다.

(사57:10, 렘2:25)

(4) 절망케 하다, 버리다.

(전2:20)

 

7. ejlpivzw 엘피조-

(1) 희망하다, 기대하다.

(눅23:8, 24:21)

(2) 믿다, 확신하다.

(마12:21)

(3) 내다보다.

(롬8:24, 고전13:7)

(4) 신뢰하다.

(요5:45)

설교예화자료

믿은 자의 소망

 

몇 년 전 불광동 개척 교회를 시작했을 때의 일입니다. 충청도에서 올라온 가난한 목수 부부가 전도를 받아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데 남편이 그만 위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소식을 듣고 뛰어가 보니까 단간 셋방에 아이들은 가득하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살림인데, 생계를 이어오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니 기가 막힐 일이었습니다.

부인은 그 남편의 시체를 붙잡고, "나혼자 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라고‥‥‥‥하면서 통곡을 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울어 방안이 울음 소리로 수라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남편이 눈을 뜨더니 한 손으로 부인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붙잡으면서 "여보, 왜 그렇게 울고 있소? 우리가 어디 영원히 이별해요? 나 먼저 가서 예수님께 당신과 애들을 잘 돌봐 주시라고 기도하며 기다릴테니, 애들 교육 잘 시키고 살다가 뒤따라 와요." 하더니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마치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라도 가는 듯 흡족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조금 울다 말고 그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아이들과 힘써서 살아가는데, 남편이 있을 때보다도 더 잘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희망

 

랍비인 아키바가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나귀와 개와 작은 램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밤의 장막이 내려서, 아키바는 한 칸의 헛간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잠자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잠자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는 램프에 불을 켜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불어와서 램프의 불이 꺼져 버려 그는 할 수 없어 자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여우가 와서 개를 죽여 버렸고, 사자가 와서 당나귀를 죽여 버렸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는 램프를 갖고 혼자서 쓸쓸히 출발했습니다. 어떤 마을에 가까이 오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지난 밤 도적이 들이닥쳐 마을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몰살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램프가 바람으로 꺼지지 않았더라면 도적에게 발견되었을 것입니다. 개가 살아 있었더라면, 개가 짖어 대어서 도적에서 발견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당나귀도 역시 틀림없어 소란을 피웠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덕택으로 그는 도적에게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랍비는 "최악의 상태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나쁜 일이 좋은 일에 연결되는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라고 깨달았습니다

 

 

트리샤의 소망

 

재정 러시아가 혁명군에 의해 무너진 후 소련군이 마을 곳곳에 주둔하기 시작할 때의 일입니다. 일곱 살짜리 어린 소녀 트리사는 첫 영성체를 하는 날 그동안 준비해 ,왔던 소원을 예수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그 부탁은 일생 동안 매일 예수님을 모실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리샤는 첫 영성체를 한 후 매일 미사 참례를 하고 예수님을 받아 모셨습니다. 얼마 후 트리샤의 마을에 소련군이 들이닥쳐 신부님께서 미사를 드리고 계시던 성당으로 몰려와, 성합을 들러엎고는 축성된 성체를 바닥에 팽개친 채 신부님을 붙들어갔습니다. 성당이 군인들에 의해 점령되던 날 트리사는 아무도 모르게 성당으로 갔습니다. 돌같이 굳게 서 있는 군인들을 힐끗보고는 조용히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군인들은 여전히 꼼짝도 않고 있었습니다. 트리샤는 제대 쪽으로 가서는 무릎을 꿇고 두손으로 바닥을 짚고는 성체를 혀로 모셨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트리샤는 성당 바닥에 흩어져 있던 성체를 하나씩 하나씩 모셨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마지막 성체를 정성껏 모신 후 깊은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군인한 사람이 들어와 트리샤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평생 동안 예수님을 받아 모실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트리샤의 소원을 예수님께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더 이상 트리샤에게 성체를 주실 수 없게 되자 트리사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평생 동안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다는 소망은, 곧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영광 그 모든 것과 함께 있고 싶다는 소망입니다.

 

 

어록·시·묘사

 

우리의 소망은, 곧장 날아 오르는 매처럼, 아득히 높은 것을 겨눈다.

(M. 프라이어/ 찰즈 몬태그에게)

 

손꼽아 기다리는 것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흔히 거의 기대하지 않은 일은 잘 생긴다

(B. 디즈레일리/ 콘타리니 플레밍)

 

소원은 그림자처럼, 해가 기울면 길어진다.

(영/ 야상)

 

절실한 소망은 돈지갑을 뚫는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바라지 않는 일들이 바라는 일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

(T. M. 플라우트스/ 유령)

 

먼 데 것을 너무 널게 연모하지 말고, 환상을 최대 한도까지 불러들이지도 말라.

(W. 드라메어/ 상상의 긍지)

 

누구나 두려워하고 있는 일과 바라고 있는 일은 쉽게 믿어 버린다.

(J. 라 퐁텐)

 

소망이라는 것은 매우 힘이 든다. 그렇다는 것이 분명하게 깨달아지는 경우란, 예를 들자면 연습장을 되도록 빨리 메워 글 쓰기를 끝내 버리려고 할 경우이다. 그렇게 한다고 어떠한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지는 것은 자신의 생산력을 증명하기 위한다거나 그런 것 때문은 아니다. 이미 익숙해져 있는 일에서 빨리 졸업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 해서이다. 그렇지만 졸업하자마자 새로운 일에 착수하게 되더라도 또 얼마 안 가서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대패밥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너무 높이 보지 말라.

(T. 다이크즈/ 도덕적 회상록)

 

가시나무를 심는 자는 장미를 얻을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필페이/ 우화집)

 

오랜 병은 고통을, 오랜 희망은 즐거움을 사라지게 한다.

(폴란드의 스타니슬라우스/ 어록)

 

몽둥이만큼 바라고 바늘만큼 이루다.

(일본 속담)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기가 바라는 것을 믿는다.

(J. 카에사르/ 갈리아 전기)

 

여기는 슬기의 이방/ 당신마저 외면하고// 목마른 소망들이/ 지향(志向) 잃은 벌판인데

(이영도/ 추정을 간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약속한 천국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있다 할진대/ 아무리 무서운 지옥이 날 위협해도/ 그 소망의 감정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작자 미상/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세우게 될 것은/ 강한 믿음을 토대로 하여 거룩한 소망이/ 그것을서게 한다/ 하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두터운 사랑/ 영원히 그것을 지키는 것

(라선/ 하나님의 사랑을 기리며)

 

나의 가슴에 언제나 빛나는 희망은/ 너의 불꽃을 태워 만든 단단한 보석/ 그것은 그러나 한 빛깔 아래 응결되거나/ 상자 안에서 눈부실 것은 아니다.

(김현승/ 빛)

 

오랜만에/ 부드러운 정과 웃음과 흥분 속에 다시/ 사람들은 안에서 희망이 포기포기 무성하고

(노천명/ 새날)

 

날이 밝으면 날이 날마다 걸어 보는 소망

(노천명/ 누가 알아 주는 투사냐)

 

나는 성당 입구에서 내 영혼을 부으리니/주여, 나는 당신의 이름에만 희망을 두나이다.

(라마르틴/ 사울의 노래)

 

메리 크리스마스/ 하늘에선 흰 눈을 내려주십시오/ 펄펄펄 흩날리는 눈보라 속에/ 눈인 양 새맑은/ 소망의 기를 올리게 하십시오.

(김남조/ 메리 크리스마스)

 

어찌하란 말이요, 문에는 감시병이 서 있는데/ 어찌하란 말이요, 우리는 갇혀 있는데/어찌하란 말이요, 길은 차단되어 있는데/ 어찌하란 말이요, 도시는 점령되어 있는데/ 어찌하란 말이요,/ 여인은 지금 굶주리고 있는데/ 어찌하란 말이요, 우리는 무기를 빼앗겼는데/ 어찌하란 말이요, 우리는 서로 사랑했는데.

(P. 엘뤼아르/ 현대 휴머니스트의 고백)

 

소망은 장차 가느다란 실오라기

(이승록/ 목포)

 

너는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나/ 네 속에/영광스런 소망이 있는가/ 주 너를 살피시니/어서 주께 나오라/ 너 찬송하라/ 하늘 문 여시는 주께

(홍안의/ 참이스라엘 사람)

 

해는 지고, 노을처럼/ 소망이 흐려지면/마음속 그대 떠나 보이지 않고/ 가슴도 비어 가눌 길 없는데,/ 어쩌자고 들꽃은 피어 자꾸만/ 웃음짓고 있는가

(신규호/ 탄신-가을 바람 속에서)

 

되못감는 줄을 풀며/ 소망의 연날리기

(강호인/ 석장생)

 

내 비록 내일 영영 잠든다 해도/ 오늘 인자를 그리워하며/ 가슴을 분홍으로 물들이다가/ 소망으로 꽃밭 같은 수를 놓다가

(신규호/ 수인의 독백 · 1-춘향이 마음처럼)

 

사랑은 회색으로 황혼보다 친절하지 못하고/ 희망이 아침 이슬보다 정답지 못한 곳

(예이츠/ 황혼과 새벽빛 속으로)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있을 엘뤼아르/ 커브)

 

우리들의 소망은 별밭의 꽃/ 사랑도 저 문 밖에 지나간다.

(김광회/ 피리를 불자)

 

세상에 나는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작은 소망도 까닭도 없습니다/ 그저 당신 곁에 잠시 있으러 왔습니다.

(조병화/ 나 돌아간 흔적)

 

그 사람이 왕 중의 왕임을 알았기에/ 타오르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쑤셔 넣었고/ 병자들을 고치기도 하였다.

(모리타 스스무/ 소명 · 3)

 

물길따라 배가 가는 길/ 내가 가는 길엔/ 희망의 언덕이 있다네/ 사랑의 꽃이 있다네

(이상각/ 물도 가네 나도 가네)

 

우리 소망 막막함에/ 어두워/ 더욱 빛나는 밤.

(박영남/ 석류)

 

내 사랑이/저 빛나는/눈과 같은 것이라면 외로운 밤/ 홀로 쌓아올리는/ 소망의 탑

(허영자/ 눈과 같은 것이라면)

 

소망을 앞 세우고/ 오늘도 나아가나/ 내 곁에 절망의 함정/ 여전히 남아 있네/ 오 진리의 주 예수여/ 긍휼히 여기소서/ 나에게/저 밝은 소망/ 언제나 넘치려나

(홍안의/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길은 좁은데 초목만 크게 자라/ 저녁 이슬에 내 옷이 젖는다. / 옷이 젖는 거야 아깝지 않지,/다만 소망만 어그러지지 말아라

(도연명/ 귀전원거 · 3)

 

지나간 옛날은/ 영원히 사라진 가락이요/이제는 영원히 자취 감춘 희망이며/ 너무 감미로워 길이 계속될 수 없었던 사랑이라

(셸리/ 지나간 옛날)

 

지금 인류의 소망으로 / 오시는 예수는/땅에 오심이 아니다/ 우리들의 마음마음에/ 광명처럼 오시는 것이다.

(황금찬/ 마음에 불을 밝혀)

 

비겁한 무리를 미워하는 우리들 사랑에/희망의 누룩으로 당신은 색을 수 있고/ 의롭지 않은 것들과 싸우는 우리 마음속/횃불 타는 기름으로 당신도 고일 수 있습니다.

(도종환/ 눈을 쓸면서)

 

졸업식 날 선생님께서 주신 만든 꽃 세 송이를 한 해가 멀게 옳기는 이삿짐마다 꾸려넣은 것은 저도 아름다운 화가가 되리라는 소망이어서 먼지 덮이는 삶을 늦도록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도종환/ 화랑에서)

 

오늘이 힘들어도 참아낼 수 있는 것은/ 희망과 꿈으로 오는/ 내일을 기다려서입니다.

(박용주/ 내일)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물면서/ 언어 없는 가락을 노래하며/ 결코 중지하는 일이 없다.

(디킨슨/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나는 믿고 있다. 남은 네 한 손의 뜻이/꼭 필요하게 쓰이는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들이 아직도 믿음과 소망을 꺾어 버리지 않으므로/ 우리들이 고통과 아픔 속에 비켜서 있지 않으므로/우리의 생명을 기쁨과 고마움으로 누리는/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 만다/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도종환/ 답장을 쓰며)

 

우리는 단지 오월의 풀꽃처럼/ 향기로운 사랑도 하고 싶고/ 햇살이 눈부신 싱그러운 아침에는/ 가슴 가득히 사랑의 설레임을/가슴 가득히/ 소망의 기쁨을 담고 싶었을 뿐/ 결코 미움은 아니외다.

(박용주/ 바다로 와서)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서/ 하늘로 오르는 소망의 무지개

(박용주/ 무지개)

 

날고 싶은 건 새들만이 아니다/우리들 가슴에 깊숙히 매어 둔/흰빛 소망의 새도/ 저 높은 하늘을 향하여/ 저 푸른 하늘을 향하여/ 힘찬 비상을 꿈꾼다.

(박용주/ 비상)

 

풀잎은 그냥 풀빛으로만 살아서 우리들 가슴에 초록빛 싱그런 희망이 되어라

(박용주/ 풀잎은)

 

 

설 교 노 트

 

소망의 닻

히6:13-20

 

서론

히브리 기자는 소망은 영혼의 닻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이 세상은 바다요, 인생은 배라고 하였습니다. 배에는 세 가지 필요한 도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배를 저어 가게 하는 노요, 다음은 배의 방향과 노선을 조정하는 키요, 다음은 배를 머물게 하고 안정시키는 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마는 우리 영혼이라고 하는 배에 닻 하나씩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닻이 바로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1. 소망의 중요성

현대와 같이 국내외적으로 변화가 심하고 문자 그대로 격동하는 시대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데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참된 소망만이 우리들의 삶의 힘이 되고 길잡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대화 속에 소망이 없다는 말처럼 무서운 말은 없는 것입니다.

이 교훈들은 인생의 성공과 승리의 비결은 소망을 지니는 데 있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분투 노력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다고 하였습니다. 실패의 낭떠러지에서라도 낙심치 아니하고 성공의 봉우리로 올라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신자들은 천국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분투 노력하게 되고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도 이겨내고, 절망의 골짜기에서라도 새 힘을 얻어 천성을 향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2. 소망의 종류

우리 인생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소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소망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분류하면 오직 두 가지뿐인데 그 하나는 불신자들의 소망이요, 다음은 우리 기독 신자들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잠시 성서적인 측면에서 이 두 가지 소망을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불신자들의 소망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불신자들의 소망은 이 세상에다 두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 이요, 유한하며, 허무한 소망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소망은 어떤 소망입니까? 영원한 소망이며, 참된 소망이며, 견고한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 신자들의 소망은 영원하고 참되고 견고하여 이 세상 어떠한 풍파라도 흔들어 부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소망이 영원하고 참되고 견고하고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3. 소망의 성격

기독 신자들이 지니고 있는 소망의 성격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기 히브리 기자는 소망을 닻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닻의 성격과 기능을 통해서 우리기독 신자들의 소망의 성격을 잠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닻이 배와 육지를 연결지어주는 것과 같이, 우리 기독 신자들의 소망은 저 하늘나라와 연결을 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닻은 배를 풍랑 속에서라도 안정을 시켜 주는 것같이 우리 기독 신자들의 소망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안정시켜 주는 것입니다. 닻은 배를 풍랑 중에서라도 보호하고 보존하여 주는 것과 칼이 우리 기독 신자들의 소망은 이 세상 풍파 중에서라도 우리의 영혼과 신앙 생명을 보존해 나아가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성경 본문에 밝힌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소망을 가지게 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다가 소망의 닻을 내리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축복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될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시 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와 같이 우리 기독 신자들은 소망을 가지고

(1) 세상 풍파에 요동하지 아니하고

(2) 저 높은 천성을 향하여 힘 있게 전진하시면서

(3)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보다 힘차게 영위해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독인의 소망

살전4:13-18

 

서론

사회 질서가 혼란해지고 삶의 바른 좌표와 방향이 흐려지는 위험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른 소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참된 소망이란 환난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들에게 삶의 의욕과 인내로 극복해 나가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데살로니가 교회 신자들이 많은 시험과 환난 중에서라도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하여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많은 신자들의 모범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참된 소망을 소유한 데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소망은 무엇이었습니까?

 

1. 부활의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14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사망과 부활 문제는 우리 기독교의 개인 종말로서 취급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1) 불신자들의 견해를 참고해 보면,

인간의 죽음은 항거 못하고 도피 못하고 연기 못하는 가장 무서운 강적으로 보고, 죽음은 슬픈 것이요, 두려운 것이요, 허무한 종막으로 알고 있으나 우리 기독 신자들의 견해는 비관적이 아니라 낙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2) 기독 신자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인간의 죽음을 긴 수면 상태로 보고 죽음이란 인간의 죄값으로 잠시 육신과 영혼의 분리 상태요, 나아가서는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이 중대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해결하고 다시 부활한다는 참된 소망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악과 죽음과 지옥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의롭게 하시고 영생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예수 안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2. 천국의 소망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그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휴거 문제는 우리 기독교의 종말론 중에서도 가장 중대한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1) 먼저 주님의 재림을 고찰해 보겠습니다.

재림의 의의는 하나님의 사랑의 실현인 동시에 언약의 성취요, 구원 계획의 완성이라고 하였고, 재림의 필연성은 하나님의 예정적 사건의 실현인 동시에 성경 예언의 성취로써 주님의 약속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재림의 목적은 마귀와 세상과 죄인들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의 구원 완성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 신자의 소망의 초점이라고 하였습니다.

(2) 다음 성도의 휴거를 고찰해 보겠습니다.

휴거의 시기는 예수님이 공중으로 재림하사 마귀를 추방하시고 이 세상에는 대환난이 일어나는 시기라고 밝히고, 상태는 구름 속으로 이끌어 간다고 하였는데 여기 "이끌어 간다"는 말은 헬라어 원문에 "힘차게 쏘아대다"인데 주님이 우리를 이 환난과 고통의 영역에서 안식과 평화의 세계로 강제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휴거의 목적은 주님의 영접을 받는 것인데 이 사건은 우리 성도들의 최고의 소망이요, 환희요, 영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최고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고 승천하는 이 참된 소망이 흐려지지 아니해야 되겠습니다. 이 소망이 죽음과 이 세상을 승리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접을 받기 위해서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소원 성취의 비결

마15:21-28

 

서론

우리에게는 개인적인 소원도 있고 민족적인 소원도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든지 그 소원에 따라서 그 삶의 좌표나 방향도 설정이 되고 나아가서는 인생관과 가치관이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런고로 사람이란 이 소원 성취를 위해서 그가 지니고 있는 슬기와 기능과 방법까지라도 총동원하여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그 인생의 삶의 전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가나안 여인의 입장에서 성경을 근거하여 소원 성취의 비결을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여인의 소원

그 여인의 소원은 사랑하는 딸이 흉악한 귀신에게서부터 풀려나서 온전해 지기를 소원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귀한 생명의 진정한 해방을 의미하고, 존엄한 인권의 회복을 의미하고, 진정한 인간의 자유를 되찾아 누림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는 마귀에게 유린당하고 약탈당했던 진정한 인간의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다시 찾아 간직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소원은 반드시 성취되어아 할 중대한 소원인 것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 중대한 문제 해결과 소원 성취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보았을 것이지만 속수 무책으로 실망 속에 탄식하고 있었습니다.

 

2. 여인의 소원 성취의 비결

인생이 흉악한 귀신에게서 해방되는 것은 인간의 그 어떠한 방법도 불가능합니다. 성경에는 소원 성취인 세 가지 비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길입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나와서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흉악한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신음하는 인생들을 해방하셔서 그 생명을 구원하시고, 유린당한 인권을 회복하시고 억압당하는 자에게 자유를 누리게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 호소하고 간구하는 길입니다.

그 여인의 호소와 간구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22절)"라고 하였는데, 이는 자신의운명과 처지의 비참함을 인식하고 예수의 사랑에 호소한 간구입니다. 그리고 "나를 도와주소서(25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연약과 무능함을 인식하고 예수님의 전능성에 호소하고 간구한 내용입니다. "주여 부스러기라도 족합니다(27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스러기 은혜라도 족하오니 주님의 것만으로 만족하다는 호소요, 간구입니다. 예수님은 마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시고 간구하는 자들의 소원과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받을 만큼 믿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불러도 응답이 없었으나 실망하지 아니하고 믿었습니다. 상관이 없다고 냉대받았으나 주님만 긍정하고 믿었습니다. 개라고 멸시와 천대를 받았으나 겸손하여 부스러기라도 갈망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신앙을 큰 믿음이라고 칭찬하시면서 소원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마15:28).

 

결론

이 가나안 여인은 그의 큰 믿음이 소원을 성취시켰습니다 이 큰 믿음은 마6:30에 염려하지 않는 믿음이요, 마8:26에 무서워하지 않는 믿음이요, 마14:31에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1) 사랑하는 딸을 흉악한 귀신에게서 해방을 얻게 하였습니다. 이는 생명과 인권과 자유의회복을 의미합니다.

(2) 자신과 가정이 슬픔과 고통과 불행에서 해방되며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그에게 간구하고 그를 믿는 큰 믿음으로 모든 소원이 성취되시기를 바랍니다.

 

 

소망의 하나님

롬15:7-13

 

서론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해 절망에 빠지고 세상이나 교회에 대해 실망하며, 지금이나 미래의 삶에 조그만 소망도 없이 그저 되는 대로 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가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살도록 유도하며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그러한 생활과는 정반대의 생활 태도로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현재와 미래에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일에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충만히 채워주시니, 성령의 능력으로 넘치는 소망 안에서 살아 가라고 하십니다.

 

1. 소망의 하나님

신구약 성경은 우리 하나님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커다란 소망을 끊임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소망은 우리에게 즐거움과 기대를 가져다 줍니다(롬5:2, 12:12-13).

소망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언제나 우리 곁에 있으며,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성품 중의 하나입니다.

(2) 소망은 오래 참음과 꺾이지 않는 믿음을 낳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소망이 없다면 꺾이지 않는 믿음을 키워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3) 소망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올바로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하나님의 약속의 산물이며 능력의 산물입니다.

 

2.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께서 "모든 기쁨"으로 믿음안에서 우리를 충만케 하신다는, 오늘의 성경 본문은 매우 의미가 깊은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란 고통과 고통 사이에 오는 휴식과 같은 상태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구원에 대한 감사, 바로 그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 께서 용서의 기쁨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가족이 되는 기쁨으로 우리를 충만케 하시길 원하십니다.

 

3.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

(1) 사람들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늘 인간적인 욕망과 갈망으로 분열되어 갈등하고 있습니다.

(2) 소망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마음의 무질서 속에 질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험한 세상에선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평안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롬8:28).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부터 우리와 함께 거하는 성령은 하나님의 뜻과 함께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결론

우리에게 크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은 아울러 기쁨과 평강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는 소망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겨야 하겠습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

벧전1:3-4

 

서론

이 소망은 그 소망의 내용을 성취시켜 가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았다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산 소망이란, 곧 하늘에 간직한 것이기 때문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썩지 않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입니다. 그러나 이 음식물은 시간적으로 조금만 오래되면 곧 썩어버리고 맙니다. 더운 여름철에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도 썩고 맙니다.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것, 즉이 세상에 속하여 있는 것은 언젠가는 썩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산 소망은 시간적으로 오래되어도 결단코 썩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신자의 소망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썩지 않는 산 소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더럽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생활하면서 취급하는 모든 물건들은 시간이 흐르면 낡아지고 더러워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이나 그릇, 가구 등은 차츰차츰 더러워져서 아무리 빨고, 닦아도 결국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에는 그 물건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산 소망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새로워지고, 튼튼해지기 때문에 깨끗해집니다. 맑아집니다.

진실로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이 세상의 그 어느 보물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3. 쇠하여 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이나 커다란 빌딩은 아무리 견고하고 좋다고 하여도 얼마 못가서 쇠하여지고 맙니다. 그래서 보충하여 수리를 하고 개선하지만 결국은 쇠퇴하여 무너지거나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번 지은 건물은 영원히 견고한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 소망은 날로 새로워지고 견고하게 되어 결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물질적인 기업과는 전혀 다릅니다.

 

결론

인간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의식주에 비교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음식은 썩어지고, 의복은 더러워지며, 주택은 쇠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 소망은 결코 썩지도 않고, 더러워지지도 않고, 쇠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러한 산 소망을 반드시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소 송

성 경 활 용

1. 소송의 일반적 원리

(1) 억울케 하지 않아야 한다.

(신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2)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아야 한다.

(출23: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3) 공정하고 공평하게 판결해야 한다.

(출23: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4)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변호해야 한다.

(잠31:8) 너는 벙어리와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2. 소송에 대한 성도의 태도

(1) 형제와 더불어 송사하지 말라.

(고전6:6)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2) 송사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마5:40)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3) 속히 화해하라.

(마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과하라

관련원어풀이

1. ar;q; 카-라-

(1) 외치다, 소리치다, 부르다.

(창45:1, 겔9:1)

(2) 재판장 앞에 소환하다, 호출하다.

(욥5:1, 사59:4)

(3) 부르다, ~라고 이름을 부르다, 명명하다.

(창1:5, 삼상4:21)

 

2. byrI 리-브

(1) 다툼, 투쟁.

(창13:7, 신25:1)

(2) 법적인 소송.

(출23:2)

(3) 법적인 소송을 가진 자.

(삿12:2)

(4) 다투다, 싸우다.

(신33:7, 삿8:1)

(5) 법적으로 다투다, 소송을 제기하다.

(삼상24:16, 사1:17)

(6) 반대하는, 다투는.

(삼상2:10, 호4:4)

 

 

어록·시·묘사

 

소송을 제기할 적에는 누구나 용감해진다.

(영국 격언)

 

불리한 화해일지라도 유리한 소송보다 낫다.

(프랑스 격언)

 

소송인에게는 주머니가 세 개 있다. 서류 주머니, 돈 주머니, 그리고 인내 주머니다.

(프랑스 격언)

 

물어줘야 할 사람이 오히려 손해 배상을 청구한다.

(러시아 격언)

 

자신의 소송사건에서는 성실한 사람도 자존심 때문에 오히려 부정을 범할 우려가 있다.

(B. 파스칼/ 팡세)

 

좀 다퉜다고 해서 재판소에 가지 말락. 조금 목이 마르다고 해서 술집에 가지 말라.

(영국 격언)

 

금 소송 전의 1듀카 금화는 소송 후의 3듀카 화보다 낫다.

(폴란드 격언)

 

자기에게 유리하면 화해에 응하고, 상대편에게 이치가 있을 때에는 소송하는 것이 이득이다.

(볼테르/ 철학사전)

 

인정이 서로 어그러지면 반드시 나쁜 말로써 상대방을 공격하게 마련이다. 구실에 의해서 다투는 것을 매리(罵)라고 하고, 관부에 의해서 다투는 것을 소송이라 한다. 매리나 소송은 비록 모두가 지극히 야박한 행동이지만 득실을 따져 볼 만한 것이 없지는 않다.

(정도전/ 삼봉집)

 

사람은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일, 아마도 그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때로는 자기의 권익을 조금 손해보는 쪽이 더 편할 뿐 아니라 어느 때는 그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M. T. 키케로)

 

자기 포도밭을 포기하는 쪽이 소송으로 싸우는 것보다 피해가 적다.

(M. E. 몽테뉴/ 수상록)

 

빌라도의 뜰/그 엉터리 재판정에서/그들이 나를 묶어 사형을 선고하고/ 옷벗기고 침뱉고 욕하며 목조르고 때릴 때/ 너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서덕석/ 나는 너를 모른다)

 

법정에는 장로와 성서 학자들이 나란히 앉아/ 힐끔힐끔 죄수에게 시선을 던지면서/ 잡담하고 있었다. // 입에서는 생강과 육계 냄새가 풍겼다. / 대사제 가야바는 그 중앙에 앉아/파리한 피고인 사나이를 보았다. // "왜 너는 성전을 파괴하라고 선동했는가/ 더구나 사흘 안에 다시 세운다고 했다니/ 너는 열심당 당원인가/ 아니면 정신 이상이라도 생겼는가"/ 죄수는 말이 없이 있었다. // "왜 위대한 로마의 파멸을 예언했는가/ 너는 그렇게 믿는가/ 아니면 장님인가? "/ 죄수는 말없이 있었다. // 가야바는 초조한 듯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그 가난한 모습의 사나이에게 외쳤다. / "너는 메시아인가/ 우리들의 왕인가"/ 비로소 죄수의 입술이/ 채찍처럼 침묵을 찢었다. // "잠에서 깨어라 너희들의 그 어느 호흡도/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다. // 이제 곧 종말이/ 마지막 심판이 시작된다. / 그때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사람의 아들- 나-를/ 너희는 눈으로 보게 된다"// 법정에는 깊은 정적이 퍼져 나갔다. /가야바는 선고하였다. /"유죄"라고/ 그리고 기쁜 듯이 동료들의 얼굴을 둘러 보았다. / "여러분!/ 이 신분 천한 목수의 아들이 조상 유대 교단을 부인하고/위대한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을 보였다. //여러분!/ 이 사나이를 돌로 칠 것인가/ 십자가형으로 할 것인가‥‥‥‥// 법정에서는 다시금/ 생강과 육계 냄새가 입에서 풍겨 나오고 있었다. / 법정은 그 죄수를 각본대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에다 넘겼다. / 죄수가 연행되어 가 버린 뒤/ 가야바는 행복스러운 웃음을 웃고 있었다. // 이 노련한 정치가는/ 점을 두개 따게 된 것이다. / 하나는 로마 황제에 대한 공손한 충성의 증거요./ 다른 하나는 대사제 족벌의/ 권력의 태평/ 그 하찮은 지상의 시간을

(사와무라 미츠히로 재판)

 

인간의 존엄을 모독한 대역죄인!/ 너의 예심조서는/ 이제 끝났다/ 내일 너는 포승을 받으리라

(하이네/ 아타트를 · 10)

 

 

설 교 노 트

 

재판의 원리

신19:15-21

 

서론

이 세상에서 죄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사람도 하나도 없습니다(롬3:10). 그렇다면 죄값을 받아야 되는 데 그냥 받는 것이 아니고 재판을 통해서 죄 질에 따라서 벌을 받게 됩니다. 재판 여하에 따라서 형량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판권의 사명이 큰 것입니다. 불의로 재판하면 악인이 의인이 될 수 있고, 의인이 악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공정한 재판을 원하십니다.

 

1. 확실한 증인 채택이 필요합니다.

본문 15절에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증인 없이도 얼마든지 공정한 재판을 할 수가 있지만 사람은 그렇게 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판결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 증인을 두 사람 내지 세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고발자가 증인을 매수하여 사건을 조작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2. 위증자는 엄히 벌해야 합니다.

본문 16-20에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그 논쟁하는 양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당시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의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뫼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위증은 무엇보다도 나쁜 것입니다. 그 위증으로 인하여 한 사람의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이 나봇을 죽일 때 위증자가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봇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왕상21:11-15). 위증은 하나님을 속이는 행위요,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없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위증한 사람에게는 엄한 벌로 다스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3. 행한 대로 벌을 주어야 합니다.

본문 21절에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개개인의 복수를 허락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렇지 아니합니다. 이는 적합한 형벌부과를 강조한 말씀입니다. 즉, 사회적인 차원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공의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죄 지은 사람이 자기 죄의 값만큼 벌을 받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재판관은 뇌물을 받고 자기 마음대로 죄 지은 자에게 죄가 없다고 하여 풀어 주고, 죄 없는 자에게 누명을 씌워서 벌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결코 공의가 아닙니다. 이러한 재판관을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결론

교회 안에서 사소한 문제로 인하여 다투고, 세상의 일을 재판하는 자에게 가서 판결을 청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도록 해결하고 소송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리고 재판을 하여도 공정한 재판의 원리를 사용해야 합니다.

 

 

소송 문제

고전6:1-20

 

서론

고린도 교회의 도덕적 문제 다음은 성도들 상호간에 소송하는 문제였습니다.

바울은 본래가 그 소송 자체를 마땅하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7절)"고 하여 근본적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사회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까지 생겼습니다.

 

1. 서로 소송하지 말라(1-8절).

고린도 교회 교인 중에 서로 사소한 문제들로 말미암아 다투게 되어 교회의 판결을 기다리지 않고 불신자인 세상 재판관 앞에 판결을 청한 일이 있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사소한 일을 교회에서 판단하지 않고 불신자의 판결을 구하였다고 비난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가지고 통렬히 책망하였습니다. 성도는 세상과 천사까지라도 심판할 특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의 사소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불의한 자 앞에서 형제간 피차에 송사하니 신앙상으로나 도덕상으로나 용납할 수 없을 뿐더러 부끄러운 노릇인 것입니다. 불신 세상이 교회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도리어 반대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은 세상보다 뒤떨어진 증거라고 할 수 있으므로 교회의 권위가 여지없이 몰락된 것입니다. 차라리 자신이 불의를 당하고 속히 손해보고 말라는 심정의 교훈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후계자(9-11절)

하나님 나라의 후계자된 신자들은 성결해야 할 것을 교훈하였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 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승인하는 기독교의 철칙입니다. 그러므로 음란하는 자, 우상 숭배자, 간음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 술 취하는 자, 후욕하는 자, 토색하는 자들은 다 불의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다 불의한 자들이었으나 예수를 믿은 다음에는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죄 씻음을 받으며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어 새사람이 됨을 나타냅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12-20절).

성도는 마땅히 심령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순결해야 하나니 바울의 사상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온 것이므로 가하지만 그것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식욕이나 성욕은 하나님에서 주신 본능이니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다만 그것에 지배되어서는 안 됩니다. 배는 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해 존재하거나, 몸이 성욕을 만족케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지체는 그리스도의 쓰시는 지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체를 악한 마귀의 지체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음행을 성경에서 큰 죄로 여기는 것은 자신에게 범죄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죄는 다 몸 밖에 있는 죄지만 음행자는 자기 몸에서 죄를 범하므로 더욱 무거운 죄로 여깁니다. 신자는 자기 몸을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알기 때문에 마땅히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결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자기 몸을 하나님께 희생으로 바치고 피로 우리를 사서 자기의 소유로 삼으신 까닭입니다. 그런 몸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광을 돌리는데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속 박

성 경 활 용

1. 육적 속박

(1)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

(출6:6)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2) 이스라엘에서의 기브온 거민

(수9:23) 너희가 영영히 종이 되어서 다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며

(3) 바사에서의 이스라엘 백성

(스9: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복역하는 중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2. 영적으로 속박하는 것들

(1) 죄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2) 마귀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

(딤후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3) 율법

(갈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베지 말라

(4) 세상 초등 학문

(갈4:3) 우리로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5) 타락

(벧후2: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3. 속박에서 구원하는 것

(1) 하나님의 언약

(사42:7)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2) 복음

(사61:1)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3) 진리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관련원어풀이

1. j'yzIm; 메-짜흐

(1) 띠.

(시109:19, 사23:10)

(2) 교만.

(욥12:21)

 

2. rs'a: 아-사르

(1) 묶다, 조이다.

(창49:11, 겔3:25)

(2) 속박하다, 얽어매다.

(렘40:1, 시146:7)

(3) 포로로 만들다, 감옥에 집어넣다.

(왕하17:4)

(4) 멍에를 지우다, 매다.

(삼상6:7)

(5) 전투에 참가하다,싸움을 시작하다, 굴레를 씌우다, 금지하다, 서약하다.

(민30:3)

(6) 속박되다, 포로가 되다.

(사22:3)

 

3. hf;[; 아-타-

(1) 가리다, 덮다.

(레13:45, 미3:7)

(2) 가리다, 자신을 옷입다.

(삼상28:14)

(3) 싸다, 말다, 감다.

(사22:17, 렘43:12)

설교예화자료

사소한 시비

 

남편은 작곡을 하고 아내는 노래를 불러 무대에서 인기를 끈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그 인기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극장까지도 갖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극장에 깔 융단을 한 장 사들였는데 남편이 계산서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남편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비싼 융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융단 값 하나 때문에 그후 일생을 통하여 말도 않고 외면을 하고 지냈습니다.이것은 융단 한 개에 대해서 너무도 많은 희생을 지불하고 만 셈이었습니다. 그들이 즐거울 수 있는 긴 시간의 영화를 융단 한 개의 계산서와 바꿨던 것입니다.

 

 

고든과 구속된 새들

 

수년 전에 A. J. 고든이 보스턴에 있는 교회의 목사로 있던 어느 날, 그는 교회 앞의 마당에서 작은 소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년은 손에 녹슨 새장을 들고 있었는데, 새장 안엔 몇 마리의 작은 새가 마치 죽은 운명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이 새장의 바닥을 파닥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든이 말했습니다.

"얘야, 그 새들은 어디에서 생긴 것이니?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들에서 잡았어요."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니?"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저는 이것들을 집에 가져가서 같이 놀고 재미있게 지내려고 해요."

"너는 그 새들과 무엇을 하며 놀려고 하니?" 고든이 물었습니다.

"저의 집 주변에 돌아다니는 늙은 고양이에게 먹이로 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자 고든은 소년에게 그 새들을 사려면 얼마나 주어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이 새들을 원하시지는 않으시잖아요. 이것들은 단지 작고 늙은 들새들인걸요. 노래도 잘할 수가 없어요." 고든이 말했습니다.

"내가 그 새장과 새들을 위해 2달러를 주겠다. "

"좋아요." 소년이 말했습니다.

"이것이 거래이긴 하지만 목사님이 손해를 보신 것이예요."

교환이 이루어졌고, 소년은 주머니에 2달러가 든 것을 행복해 하며 휘파람을 불며 갔습니다. 고든은 그 새장을 교회 뒷마당으로 가져가서 새장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새들은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면서 푸른 창공으로 날아갔습니다. 주일이 되자, 고든은 설교에 인용하기 위해서 그 빈 새장을 설교단에 가지고 올라와서는 말했습니다.

"그 작은 소년은 그 새들이 노래를 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새장에서 풀어 주었을 때, 그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푸른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구원되었네, 구원되었네, 구원되었네.'하고 노래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

 

 

어록·시·모사

 

지혜가 악인을 짓누르는 것을 제외한 모든 압박은 죄악이다

(W. 쿠퍼/ 과업)

 

사람은 배고픈 것을 싫어 하지마는 그보다 못지않게 남에게 얽매이는 것을 싫어한다. 거지로 배를 곯더라도 감옥에서 배부르기를 원하는 자는 없다. 심히 배가 고픈 순간에는 제 자유를 팔아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려 하지마는 한 끼 밥을 먹고 나면 자유를 원하는 것이다. 평등도 그러하다. 사람은 남의 밑에 서기를 괴로워한다. 지금은 낮은 데 있더라도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산다. 그래서 모든 폭동이나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얻으려는 데서 온다.

(이광수/ 인생과 자연)

 

인간은 자유스런 존재로 태어났지만, 곳곳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남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인간도 실은 그 이상의 노예다.

(J. J. 루소/ 사회계약론)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딴생각 하지 말고 머리 속에 깨끗이 가져야 한다. 오늘 할 일들을잘하려면 어제 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야 한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고 난 방을 청소하듯이 머리 속도 청소할 필요가 있다.

(고오다)

 

인생의 무의미와 속박은 왕왕 사람들이 아주 절망하지 않고서는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인 것이고 또 헤어나갈 길 없는 것으로서 사람들을 붙든다.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절망적인 상태를 초월케 하는 유일의 것은 이 방법을 인식하는 것과 그 상태 속에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G. 지멜/ 단상)

 

나이팅게일은 임금의 창가에 있을 때보다 어두운 밤에 혼자 있을 때 더 잘 노래부른다.

(P. 로란)

 

아무리 황금으로 된 족쇄라 할지라도 그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J. 헤어우두/ 격언집)

 

국민을 유익한 일에서까지도 다루기 좋은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 난쟁이로 만든 국가는, 작은 사람들을 가지고는 큰 일을 성취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J.S. 밀/ 자유론)

 

자유라고만 생각하고, 자기를 묶고 있는 줄이 눈에 안 띄는 사람도 적지 않다.

(F. 뤼케르트)

 

쇠사슬을 조롱하는 자가 모두 자유라고는 할 수 없다.

(G.E. 레싱/ 현자 나탄)

 

쇠사슬이든 비단사슬이든 사슬임에는 다를 바 없다.

(J.C.F. 실러/ 피에스코의 반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자는 노동의 속박에 있고,재산을 가진 자는 마음을 많이 쓰는 속박에 있다.

(W.G. 섬너/ 수필집)

 

쇠사슬에 묶여 바르게 걷는 것보다는 자유스럽게 잘못 걷는 편이 더 낫다.

(A.L. 힉슬리/ 생애와 서간)

 

폭풍은, 참나무가 뿌리를 더욱 깊게 박도록 한다.

(G. 허버트/ 명궁)

 

압박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압박하기 좋아하는 자가 많다.

(나폴레옹/ 어록)

 

나, 경찰관의 곤봉으로 더 나아지지 않는다.

(W.J. 게이너/ 서간과 연설집)

 

억제는 혁명의 씨앗이다.

(D. 웹스터/ 연설)

 

금사슬은 쇠사슬보다 질기다.

(영국 속담)

 

억압은 무책임한 권력에 대한 별명(別名)에 지나지 않는다.

(W. 핑크니/ 연설)

 

금사망(金絲網)을 썼다. <*얽매임을 당하여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

(한국 속담)

 

내 가슴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네 숨결로 헤어날 수가 없고/ 그 압박으로/ 가벼이 휘날기만 한다.

(최은하/ 내 풍월이다)

 

나는 새 시장으로 갔다/ 거기서 새를 샀다. / 내 사랑/ 너를 위해// ‥‥나는 고철 시장으로 갔다/ 거기서 사슬을 샀다/ 육중한 사슬을/ 내 사랑/ 너를 위해// 그리고는 노예 시장으로 갔다/ 거기서 너를 찾았다/ 그러나 너는 없었다/ 내 사랑

(자크 프레베르/ 내 사랑 너를 위해)

 

겁에 질린 종교인 방문객에게 스승이 말했다/ "왜 그렇게 걱정을 하시오? "/ "구원받지못하게 될까봐 그럽니다. "/ "그런데 구원이 무엇인가?"/ "해탈 · 해방 · 자유."// 스승은커다랗게 웃으며 말했다. / "그래 당신은 자유로워지도록 강요당하고 있군요. 해방되도록 속박당하고 있단 말이지요? "// 바로 그 순간 방문객은 마음이 놓였고 겁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앤소니 드 멜로/ 속박)

 

일체의 문학/ 다듬고 다듬어진 그것으로부터도/ 철저하게 연구되어 파헤쳐내야 한다/ 압제의 시대에도 봉기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브레히트/ 문학은 철저하게 연구될 것이다)

 

나무 형틀에/ 주여./ 당신은 내 가쁜 숨결/압박받는 빈궁의 영광이요/ 오늘의 절망입니다/ 다한 법열의 핵입니다.

(최은하/ 통로에의 기원)

 

자유를 맘껏 뽐내는 사람의 자유는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숨막히는 꽃내에 꽃내에 미쳐/ 갈피모를 막바지의 어둠 속에 흐르는/ 피여 살라라/ 어둠 속에 우뚝 선 침묵의 영원한/ 압제를 불살라라/ 사월의 피여/ 어둠에도 화안히 흐드러지는 꽃내의/ 영롱한 영롱한 생명에 미쳐

(김지하/ 사월의 피)

 

저 간악한 압제자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라/ 용서하지 말라 네가 죽는 최후의 그날까지/ 선서하라 선서하라 여기서 나의 아들아!

(하이네/ 아타트를 · 10)

 

"압제자의 법률을 파기하고/ 폭군에게 죽음을"외치면서/우리나라에 새로운 씨를 뿌렸던 이는/ 마뉴엘 베르트란이었다.

(네루다/ 소꼬로의 봉기자들)

 

나만이 네 두려움을 갖게 한다/나의 회의, 나의 회의, 나의 속박은/ 너의 크나큰 보석의 결함이다.

(발레리/ 해변의 묘지)

 

속박할 수 없는 마음의 영원한 정신이여!/가장 찬란한 감옥에서, 자유여! 너는 빛난다/거기에선 너의 집이 심장이기에-/너에 대한 사랑만이 속박할 수 있는 심장

(바이런/ 시용성)

 

나도 모르게 제압하는 힘 그것이 당신의 혼입니까/ 모든 것에 두루두루 스며들고/ 환한 하늘로 반짝반짝 떠올는 것이 당신의 숭고한 혼입니까

(하이네/게르테른가에서 태어난 나의 어머니 S. 하이네에게)

 

압제자를 짓밟아 버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곤란하지만 유용한 일 그것은 매일매일의 조그마한 활동이다.

(브레히트/ 비합법 활동을 찬양한다)

 

당신을 구하는 자는 모두 당신을 시험해 봅니다/ 그리고 당신을 발견하는 자는 당신을/ 형상과 모습에다 결박합니다.

(릴케/ 당신을 구하는 자는 모두)

 

올해도 마지막 가는 밤이어니/ 가는 나이 붙들고 울어 볼까나/ 붙들고 매달려도 가겠거늘/ 가고야 말 것을‥‥‥/ 이 해 숨 넘어가는 밤이기에/ 한 손에 촛불 들고 또 한 손에/ 지난 해 '삶'의 기록 말아쥐고/꿈의 제단 앞에 불 사르러 나왔소// 의지로 날 넣고 정으로 씨넣어/ 이해의 '삶'을랑 곱게곱게 짜렸던 것이/ 빛나게도 짜렸던 것이/ 이리도 거칠고 윤도 없구료

(노천명/ 제석)

 

내사 아무렇지도 않다/ 징그러운 이 해가 가는 것만 좋다. / 어서 새해가 밝아라/ 떡국이 없음 어떠냐, 그저 새해가 밝아라.

(노천명/ 그믐달)

 

해가 바뀌는 밤 늙은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눈물짖는다/ 젊은이가 떠난뒤 이런 밤이 세 번째-

(노천명/ 박쥐)

 

몸 되어 사는 동안/시간을 거스를 아무도 우리에겐 없아오니/ 새로운 날의 흐름 속에도/우리에게 주신 사랑과 희망-당신의 은총을/ 깊이깊이 간직하게 하소서// 육체는 맞아지나 마음으로 새로움고/ 시간은 흘러가도목적으로 새로워지나이다!/ 목숨의 바다---당신의 넓은 품에 닿아 안기우기까지/ 오는 해도 줄기줄기 흐르게 하소서.// 이 흐름의 노래 속에/ 빛나는 제목의 큰 북소리 산천에 울려퍼지게 하소서!// 한쪽의 빵을 얻기 위하여/ 한 세기의 희망이 굶주리던 지난 일 년/한 이파리 꽃술에 입맞추기 위하여/ 한 세대의 젊음이 시들어 버린//지난 일 년의 얼굴 없는 물웅덩이 속에/ 1972년의 쉬임없는 시간들이 고이어 고이어/ 끝모를 심연을 우리의 눈망울에 잠기게 마옵소서!// 검은 땅에 입맞추는/저 임자년 첫 입술- 새벽의 붉은 태양을/희망과 사랑의 눈빛으로 다만 바라보게 하소서!// 우리를 오히려 도로혀 더욱/ 슬프고 배고프고 목마르게 만들던,/ 단추로 눌러버린 이 기쁨들/ 빛의 이 영화들/ 엉겅퀴 우거진 아 욕망의 벌을 지나,/낡은 경험 위에 새로운 슬기를 띄우며/ 새 아침의 도소주(屠蘇酒)를마음의 새 푸대에 부으며,/ 아침 태양이 반짝이는 강물처럼/ 굽이쳐 굽이쳐 우리의 새로운 시간들을/ 당신의 품- 당신의 영원한 바다로/ 흘러가게 하소서 하소서.

(김현승/ 신년 소원)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 자체가 살얼음을 딛는 것/ 같아서 모두들 마음에 빗장을 거는/ 신년 벽두, 마음이 슬픈 사람들을/위하여 누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유한킴벌리 눈물 티슈를/ 산처럼 쌓아 두고 사라졌습니다.

(고정희/ 눈물 티슈)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생 흙에 살다// 논이랑 밭이랑 내다보이는 푸른 들녘은/ 어느 보화보다 좋고// 흙은 그대로 아름다운 것/ 향기 누우러니 흰 옷에 배이다// 초가집 도란도란 이웃해 앉아/ 이 아침 저들은/농가의 새해를 마른다.

(노천명/ 농가의 새해)

 

닭이 웁니다/ 그토록 칙칙한 어둠을/ 깃으로 털어 떨치고/ 이 해의 새벽 닭이 해맑게 웁 니다// 밝아오는 오늘은 어제가 아닙니다. / 어제가 오늘일 수도 없습니다. 주여,/ 우리는 당신의 이름을 두고/ 이 시간의 자리/ 가지런히 출발점에 섰습니다//이 거룩한 아침에/ 저희, 손과 발을 씻고/ 어제까지의 잣대를 버리게 하시고 헤아림의 눈금을 읽지 않게 하소서/ 어제까지의 언어를 버리게 하시고/ 고르고 고른 말씀으로만 살게 하소서/ 어제까지의 욕심을 버리게 하시고/ 가난한 복으로만 귀하게 하소서/ 어제까지의 취한 만남들을 끊게 하시고/ 조용한 소망으로만 넘치게 하소서/ 어제까지의 어지러운 버릇과 소행을 버리게 하시고/ 양지를 찾아 분명히 어둠 삭이며/ 자라는 한 마리 양이게만 하소서// 지난 해에도 저횐 어리석음에 들떠/ 하늘이 너무 높고/ 너무 낮게만 보였습니다/ 이웃보다는 항상 나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주님보다도 내가 먼저였습니다/무성한 기도의 풀숲에서도/ 태만과 고단으로 지쳤고/ 그것을 다행인줄 알았습니다// 이제, 어제를 돌아보지 말게 하소서/ 주님과 오늘과 내일만 있게 하소서/ 뜨거운 눈물로 비는 가슴과/ 정한 손길이게 하소서/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닭이 홰를 치며 울어 잦춥니다. / 새로운 날과 달과 해가 밝는다고/ 주여,/ 저희를 당신 안에서 새롭게 하소서/ 새롭게만 하소서.

(최은하/ 새해 아침의 기도)

 

말씀하시옵소서/ 새날 새해여 열리라고/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주여!// 하늘엔 찬란한 태양을 띄우시고/ 우리로 걷는 걸음에 보람의 꽃들이/ 피어나게 하옵소서// 비록 가시밭 길 험산준령이 펼쳐진다 해도/ 물러서지 않은 믿음 가슴가슴에/ 안겨 주소서// 새해를/ 새날을 선물로 주시었습니다 주여!// 무릎꿇고 이 선물 받게 하시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영롱한 그림을 그리게 하시옵소서// 이웃과는 마음을 열어/ 손잡게 하시고/ 후회없는 삶을 나날에 엮게 하옵소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주여/ 새해 새날들이 태양처럼/ 밝게 하시옵소서

(윤두혁/ 새해 새날의 기도)

 

오늘은 내가/ 누구하고 만날 것 같습니다/ 새해/ 첫날 오늘은 내가/ 만날 것 같은 그 누구하고/ 꼭 만나고 싶습니다// 한쪽 눈엔 슬픔 땅만큼 담고/ 한쪽 눈엔 사랑 하늘만큼 땅만큼 담았기에/ 그지없이 따뜻한 그 누구의 큰 손 안에/ 내 작은 손을/ 묻고 싶습니다// 내 작은 손도 죄그만 불씨 하나 싸잡은 듯이 따뜻해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나처럼 오늘 만날 것 같은 그 누구하고/ 꼭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이/ 그러나 끝내 만나지를 못하고 천지사방 친 눈밭을 헤매일 때/ 나는 그에게로 가서/ 그의 언 손을 잡아주겠습니 다// ‥‥다시 이 세상에/ 삼백예순다섯 날이 시작되는/오늘은 꼭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전봉건/ 그 누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해가 바뀔 때나 한 가지 일이 끝날 때나/ 생일 날에 좋은 사람에게 좋은 운을 기원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순진한 인간은 행운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브레히트/ 그런데 당신의 나라에서는?)

 

울려 보내라 세차게 우는 종소리여, 거치른 하늘에/ 달려가는 구름을, 싸늘한 빛을 올려 보내라/한 해는 오늘·밤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 울려 보내라 세차게 우는 종소리여, 한 해를 보내라// 울려 보내라 옛 것을, 울려 맞이하라 새 것을, 종이여 기쁜 종소리여, 눈 덮인 들판을 넘고 넘어라/ 한 해는 이미 저물었다. 이 한 해를 가게 하라

(테니슨/ 인 메모리엄)

 

종이 우는제/ 또 한 해가 말없이 기우는/ 이 절정에/ 소리 없는 비파를 치며/ 눈이 내리는가 12월 그 의미는/ 종말이 아니거니/ 지연을 날려라, 푸른 하늘에/ 그리고 종을 울려라.

(황금찬/ 종이 우는데)

 

마지막 달에 앉아서/ 지나온 나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희망으로 부풀어 올라서던/한 해의 소망은/ 한 일도 없이 산머리에/ 기대서 있는데-// 종이 울리고 있습니다/마지막 가는 한 해를 생각하라고/ 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12월은 크고 빛나는 달입니다/ 한 해를 청산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들의 구세주가/ 오신 달이기 때문입니다. 그 해의 12월이 없었다면/ 우리의 예수님은/ 또 어느 달이 축복받아/ 그 달에 오셨을까/ 예수님이 오신 달/ 축복의 12월이여!// 기울어지는 달/ 12월에 앉아서/다시 이 달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82년의 예수님은/ 전과 같이 오시겠지만/ 우리는 분명히/ 전과 같이 맞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마음과 뜻을 다해/ 우리의 예수님을/ 맞아야 하겠습니다/ 생명을 다해 예수님을/ 맞아야 하겠습니다.

(황금찬/ 저물어 가는 달에)

 

풀 한 포기와/ 꽃 한송이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찌 이웃과 형제를 사랑할까.// 주여! 이 해에는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고/ 형제를 사랑하게 하시고/ 돌 한 개와 풀 한 포기를 위하여/영혼이 눈을 뜨게 하시고/그 영혼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주는 나의 생명/ 하늘을 바라보는 눈을 주시고/ 눈에 지혜를 주십시오.// 그것이 이 해의 소망이고저/ 원하고 있을 뿐 이루어지게 하시고/ 이루게 하소서/주여!

(황금찬/ 영혼은 잠들지 않고)

 

세파(世波)란 그러한 것/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수도/ 눈이 먼 것이/ 나만이 아닌/ 차라리 눈이 멀어 인간다운/ 한 해를 자부할까// 오늘 나의 가슴 깊이는/ 다시 365일 잊혀지는 부피/생각하면 휴지처럼 가벼울 수도/ 세모의 거리를/ 부는 바람이 나의 조가(弔歌)라면/ 그러기에 마음이 후련할 수도/그러기에 마음이 기대일 수도// 우리 모두 숙명을 지녔기에/가슴에 내리는 눈발이/ 희디흰 영원이기에

(박태진/ 희디흰 조가(弔歌))

 

밤새 흰 눈이 몰래 내려/ 높낮이와 색깔이 서로 다른/ 지붕들 죄다 은빛으로 빛나듯이/이른 아침, 산수화 속의/ 빈 나뭇가지들로 환하게 밝히듯이/새해의 새 빛이여,/내려라, 내려라, 내려라/ 너와 나 사이를 갈라 놓은/밭두렁 논두렁을 덮고,/ 자주자주 딸꾹질하는 한반도의/ 서러운 허리춤을 하얗게 묻듯이/새해의 새 빛이여,/ 내려라, 내려라, 내려라,/ 망아지처럼 풋풋하게 달리며/ 권태와 무기력과 어둠과/ 모든 그림자를 지우며‥‥‥/ 사전 속의 말들이 아니라/ 이미 빛바랜/ 어제의 그말들이 아니라,/ 막 태어나 퍼득이는 말들을/가슴 가득 채우며/ 내려라, 내려라, 내려라./거리와 공장의 기계 소리와/ 마을과 들판,바다와 산과/ 강물에, 사무실과 시장판에,/ 꿈에 날개를 단 내 이웃들의/ 가난한 가슴과 이미에도/ 내려라, 내려라, 내려라.

(이태수/ 새해의 기도)

 

 

설 교 노 트

 

옥중에서도 사명을

엡3:1-21

 

서론

바울은 지금 옥에 갇혀 있습니다(1-2절). 갇힌 이유는 죄 때문에가 아니라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럽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옥중에서 한 일 세 가지를 보면 그의 심경을 볼 수 있습니다.

 

1 . 바울은 옥중에서도 글을 썼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3절)."

바울은 옥중에서 글을 썼습니다. 무슨 글을 썼습니까? 계시로 알게 된 것을 기록했습니다. 옥중에 있는 바울에게도 하나님의 계시는 있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 계시의 내용은 1장 9절, 2장 13절, 2장10-22절을 가리킵니다. 기록이 없으면 계시의 내용을 정확히 보존할 수 없고,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옥중에서 이 글을 씀으로 4절 말씀대로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2. 옥중에서도 감격하는 바울(7-13절)

바울은 옥중에서 불평하거나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지 않고 도리어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 감격의 내용인즉 그가 복음을 위한 일꾼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에 대한 감격입니다.

자기는 이런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 중의 죄수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은자기를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훼방하며 핍박하던 자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자기를 사로잡아 복음의 일꾼이 되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 감격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로 자기는 성도 중에 큰 성도가 아니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축복을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명의 내용인즉 그 성질, 한도, 실용이 무궁 무진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교회를 통해서 전파하므로 그때까지 몰랐던 천사들에게까지 알려지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에베소 교인들은 옥에 있는 바울 때문에 낙심치 말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진실로 얼마나 놀라운 감격입니까? 사실 바울은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 빌레몬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전에는 무익하던 사람을 이제는 복음을 위하여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시키기도 했습니다(빌1:8-12).

 

3. 옥중에서도 기도하는 바울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할 수 있고 항상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세를 보십시오.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무릎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동산은 작은 돌들이 깔린 곳인데도 주님은 무릎들고 기도하셨습니다. 다니엘도 하루 세 번씩 기도할 때에 무릎꿇고 기도하였습니다(단6:10).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사람은 사람 앞에 무릎꿇지 않게 됩니다.

그는 무엇을 위해 기도했습니까? 성도들의 강건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육신의 강건보다거듭난 새 사람의 강건, 곧 죄를 이 기고 세상을 이기는 강건은 성령으로 말이암아 오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케"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끝마칠 때 아멘으로 끝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부요를 생각할 때에 이런 아멘이 나왔습니다.

 

결론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감사하며, 감격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보다 더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쇠사슬에 매인 사신

엡6:20

 

서론

바울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신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려고 나선 일꾼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신이라면 그 자세가 당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쇠사슬에 매인 사신인 마을은 어떠하였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본서가 옥중 서신이라는 증거

바울의 서신 중에 옥중 서신은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4권입니다. 디모데 후서도 옥중에서 썼으나 그 내용을 중심으로 분류할 때 목회 서신의 하나로 간주됩니다.

본서가 옥중 서신이 라는 증거로써 에베소서 3장 1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이라고 한 구절과 본서 4장 1절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한 성구와 본문인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것은‥‥‥‥이라고 한 세 요절이 본서가 옥중 서신임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옥중에 갇혔다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갇히게 되었습니까?

 

2. 바울이 쇠사슬에 매인 이유

바울은 본래 사울이라고 하는 청년으로 예수님을 핍박하고 기독교를 적극 반대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주의 부름을 받고 회개한 후 하나님의 사신이 되었으나 공교롭게도 쇠사슬에 매여서 선교하는 사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평생토록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쇠사슬에 매인 사실을 지극히 당연하게 여기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가장 기뻐하며 선교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반대하고 교인들을 박해하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할 때 오히려 자원해서라도 쇠사슬에 매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유자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옥중에 갇혀서 복음을 전한 바울과같은 심정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때에 더욱 열심히 주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쇠사슬에 매인 사신의 기쁨

세상에 어느 누가 쇠사슬에 매여서 기뻐하고 만족해 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옥중에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안겨있는 심정으로 글을 졌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매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매인 기분으로 일한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신이라는 변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인들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신앙을 격려하며 은혜받기를 촉구하였습니다. 즉, 사신으로서의 사명 완수에 노력하였습니다.

 

결론

죄를 짓고 옥에 갇혔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쇠사슬에 매였으니 오히려 영광이며 감사뿐입니다.

육체의 고통과 괴로움은 잠시 잠간입니다. 그러나 영혼의 형벌은 영원한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송구영신

성 경 활 용

1. 새 이름

(사62:2)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2. 새 신

(신32: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했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삿5: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겔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을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3. 새 교훈

(막1: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4. 새 방언

(막16:17) 믿은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5. 새 언약

(렘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서 언약을 세우리라

(눅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고후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히9:15)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증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히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6. 새 계명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요일2:7-8)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7. 새 영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8. 새 하늘과 새 땅

(사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벨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9. 새 일

(민16:30)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신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10. 새 노래

(시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시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은 내 입에 두셨으니

(계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은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11. 새 술

(행2:13)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12. 새 부대

(마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 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존되느니라

 

13. 새 마음

(겔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14. 새롭게 은 만물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15. 새 생명

(롬6:4)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16. 새로운 피조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7. 새 사람

(엡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골3:10) 새 사람은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관련원어풀이

1. ha;yrIB] 베리-아

새 일, 창작한 것.

(민16:30)

 

2. v/ryTi 티-로-쉬

새 포도주.

(창27:28, 신33:28)

 

3. rjeea' 아헤-르

다음으로, 둘째, 다른, 후에, 이상한, 낯선.

(삼상10:6, 9)

 

4. vd;j; 하-다-쉬

새로운, 최근의, 신성한, 듣지 못한.

(신24:5, 사43:19)

 

5. yrif 타-리-

신선한, 축축한.

(삿15:15, 사1:6)

 

6. kai>navn 카이노스

(1) 새로운, 최근에 만들어진.

(마9:17)

(2) 진기한, 이상한.

(막1:27)

(3) 새로운, 생소한.

(막16:17)

(4) 새롭게 하는, 쇄신하는, 탁월한.

(고후5:17, 계5:9)

 

7. kainovth" 카이노테-스

새로움.

(롬6:4,7:6)

 

8. anakaivnwsi" 아나카이노-시스

혁신, 회복, 개혁.

(롬12:2, 딛3:5)

 

9. gleu'ko" 글류-코스

원래 의미는 "발효되지 않는 포도액"이다.

달콤한 새 포도주.

(행2:13)

 

10. paliggenesiva 팔링게네시아

원래의 의미는 "개인의 신생, 갱생, 재생, 재창조" 이다.

(1) 도덕적인 혁신.

(딛3:5)

(2) 모든 사물의 현저하고도 영광스러운 변화.

(마19:28)

 

11. provsfato" 프로스프토스

원래의 의미는 "최근에 죽인, 신선하게 죽인"이다.

새로운, 최근에 만들어진.

(히10:20)

 

12. prosfavtw" 프로스파토-스

새로운, 최근의, 요즘의.

(행18:2)

설교예화자료

소각 의식

 

'당신의 걱정거리들이 연기로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 매년 12월 마지막 주일에 조지아 주 애트란타시에서는 바로 이 일을 하려고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데 모입니다. 각자 종이 쪽지에다 자기의 걱정, 공포, 잘못, 결점들을 적어 넣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쪽지에 불을 붙여 날아가버리는 것을 지켜봅니다. 정신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볼 때 거기에는 많은 뜻이 있습니다.

사실 이 소각 의식은 애트란타 은혜 감리교회에서 연말 저녁 특별 예배로써 매년 거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생각을 태울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상징으로써 이 태운다는 생각은 건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은혜 감리 교회에 고무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과거의 나쁜 것을 태워버리는 행동을 교회의 한 의식으로 행함으로써 가장 잘 성화된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연말에 하는 가정 행사로, 또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식으로 우리 모두가 채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기 전 어느 때에든 당신의 걱정, 과오, 실패를 종이에 적어서 그것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리고 태워버리라. 그리고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 하도록 권한다. "내가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3:13)"

 

 

설 교 노 트

 

성공의 비결

시16:1-11

 

서론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성공을 할려고 숨이 차도록 노력한 결과가 어떠한지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우리들은 성공의 고개를 넘기 위하여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성공의 비결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어떠한 인물입니까?

베들레헴이라는 동네에 목장을 경영하는 이새라고 하는 영감님이 8형제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다윗은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다윗은,

(1) 원망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2)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은 사람입니다.

(3) 책임에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4) 조용한 시간이 되면 시를 짓고 노래를부르는 정서적인 삶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다윗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주로 모셨습니디.

하나님 모신 곳에 지옥 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돈을 모아야 복된 생활이 되겠다, 권세를 붙잡아야 복이 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하나님 한 분만 잘 섬기면 하나님이 복주시는 것이 진짜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성공하는 비결이었습니다. 돈 때문에 하나님 팔아먹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버림당하면 사람 앞에서도 버림당하게 되고 좀 있다가 보면 통곡하는 날이 오게 됩니다. 우리들은 다윗처럼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라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물질의 자본주 되시는 하나님은 다윗을 부자로 만드시고, 지혜와 권능의 하나님은 다윗을 지혜롭게 권능 있게 쓰시어 복 있는 자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2. 친구를 바로 사귀었습니다.

그는 신용을 지키는 사람, 하나님 앞에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존귀한 사람으로 대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충고할 때에는 의인처럼 받아들였고, 자기에게 책망을 할 때는 자기의 가는 길에 등불로 삼았습니다.

 

3. 그는 자기 반성, 자기 검토를 하여 정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주야로 묵상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책망을 받고도 거절하고,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책망해서 고치 지 못하면, 매를 맞게 되고 매 맞고 고치지 못하면 큰 사고를 내고 형무소에 가게 되어 일생의 실패자가 되고 맙니다. 그 습관화 되고 나쁜 기술을 배워 가지고 나오니, 지옥 자식이됩니다.

다윗은 사람이라 실수를 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책망을 했습니다. 그는 침상에서 혀가 썩도록 통곡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사람이 다윗입니다. 조용한 시간에 자기의 잘못을 찾을 줄 알고 찾은 다음에는 끊을 줄 알고, 끊고는 의롭게 산 사람이 다윗입니다.

 

4. 그는 내세관이 확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면 나는 요동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다원은 영원한 천국가는 길과 몸의 부활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런고로 죽음이 다가오는 시간에 떨지 않았습니다. 비굴하지도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하루가 짧으면 천국에서 하루가 더 길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실패하여 천대받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성공의 깃발을 높이 날리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결론

나의 복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세상의 무엇 때문에 하나님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한 해가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 마귀의 종으로 살게 됩니다.

사람을 바로 사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부터 신용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시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복으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도 믿음의 사람을 사귀였습니다. 다윗은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재물관을 가졌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돌아보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였습니다. 확실히 내 세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성공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43:14-21

 

서론

소망의 한 해가 지나갑니다. 참으로 지나간 해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신앙의 경주자로 첫날 첫시간을 하나님께 바치고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성령으로, 은혜로, 말씀으로 충만할 때 어두움이 빛으로, 절망이 소망으로, 실패한 것들이 성공으로, 죽음이 영생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과거를 묻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전 일은 기억하지 말며,옛적 일은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 지향적인 인간은 진취적이지 못하고 항상 과거에 집착해 퇴보하고 맙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한 가지 이루지 못한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가능성 있는 다른 일을 외면하기 쉽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외에는 과거의 어떠한 일에도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일을 기억하지 않고 모세를 따랐을 때 포로에게 해방되었으며 홍해가 갈라졌고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배불리 먹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해서 과거 신앙의 깊음이나 연륜 등은 기억하지 말고 현재의 신앙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2. 새 일을 행하려면 나타내야 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내실 때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고 젊은이는 환상을 볼 것이며 늙은이는 꿈을 꿀 것이며 남종과 여종에게 물붓듯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얻어 푸른 창공에 힘찬 나래를 펴야 할 것이며 사자처럼 굳세게 방해물도 극복하고 돌진해야 할 것이며, 새로운 기쁨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새 일을 주님과 함께 이루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서산에 넘어가는 해를 보고 어둡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더 깊고 넓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삶의 올바른 방향을 따라 목표를 세우고 초점을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도와 말씀과 성령충만으로 나타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같이 일하는 자에게 크고도 비밀한 일을 보여주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렘33:2-3)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고 새 일을 이루기 위해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새 일을 행할 때 광야에는 길을, 사막에는 강을 주십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먼지만 자욱하고 망망한 모래뿐 이정표 하나 없는 광야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했을 때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사35:8의 말씀에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은 거룩한 길이라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 길에서도 사업의 길이 열리고 직장의 길, 가정의 길, 교회의 길, 자녀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막에 강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사41: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길 때 은혜의 물이 넘쳐 흐르고 성령의 물과 축복의 물, 기적과 치료의 강물이 넘쳐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나의 택한자,내 백성에게 마시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기쁨으로 새 일을 행하는 자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겨울 전에 속히 오라

딤후4:20-22

 

서론

로마 옥중에 투옥된 사도 바울은 젊은 사역자 디모데의 방문을 서둘러 재촉하며, 겨울 전에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1. 겨울은 항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되면 계절적으로도 풍랑이 심해지고. 빙산도 떠다니기 때문에 배가 파선할 우려가많아서 항해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7장에서도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어 갈 때 겨울 항해는 위험하므로 겨울을 지내고 가자고 주장한 일이 있으며, 그것을 무시하고행성하여 가다가 사경 중에서 방황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해야 할 항해, 가야할 곳이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서 인생 항해를 해야 될 것입니다.

12월을 결산의 달로 정하고 이해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는 인생의 가결산을 해보고 항해가 불가능한 노년기의 겨울이 오기 전에 눈이 밝을 때 설경 보고 다리가 떨리기 전에 교회 출석 잘하고 일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손과 발과 온몸을 바쳐 일해야 합니다.

 

2. 디모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떠나서 제 갈길로 가 버리고 말았으며(딤후4:9), 알렉산더는 바울을 많이 괴롭히고 해를 많이 끼치고 대적하고 등지고 말았으며(4:14),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두기고는 에베소로, 에라스도는 고린도로 파송(4:10, 12, 20)되었고, 드로비로는 병들어 요양차 밀레도로 떠났으니(4:20) 사실상 일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꼭 필요했으므로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말입니다.

사실상 배교자, 대적자, 병든자, 타처로 나간 자를 빼놓고 보니 디모데가 절대로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겨울 전에 속히 주께로 돌아가 주님 위하여 쓰여지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년에는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충성할 준비를 갖추십시다.

 

3.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한 부탁 속에는 바울편에서는 관용의 숭고한 모습을 볼 수가 있으며, 라가편에서는 신뢰감을 회복할 만큼 생환이 변화가 된 것이며, 디모데편에서는 바울을 도울 조력자를 데리고 갈 사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필요한 사람이었으니 디모데가 바울에게로 데리고 가야 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가 마가를 데리고 가듯, 빌립이나 다니엘을 인하여 가듯(요1:46) 우리도 내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하여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는 지나간 해를 돌아보면 반성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 이루지 못한 일이있으면 서둘러서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디모데에게 재촉한 것처럼 우리도 하지 못한 전도나 신앙생활을 잘 결산해야 하겠습니다.

 

 

송구영신

딤후4:1-8

 

서론

우리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중대한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묵은해와 함께 묵은 나를 벗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우리들 마음의 결심은 과거보다 더욱 새롭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6절 7절 8절 세 곳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임종시가 가까워온 자신을 돌아보면서 믿음의 아들 디보데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1. 시속감을 느낍니다.

6절에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 왔다고 하였습니다 떠난다는 것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장막의 받침대를 거둡니다.

(2) 배의 닻줄을 거둡니다.

(3) 붓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하는 데에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시속감을 생각하고 각기 맡은 직분에 책임을 다하고 기회를 만들어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①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왔기 때문입니다.

② 인생 80은 잠간이기 때문입니다.

악의 세력이 기하급수로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제공하지 않고 실력을 키우지 않고 기적이나 바라고 기회만 있으면 하는 기회주의자들이 많습니다. 또한 허영주의자들이 많습니다. 한 해를 보내 면서 주님 앞에 내어 놓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2. 회고감을 느낍니다.

7절에 "내가 달려갈 길을 다가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활을 회고해 보면서 감격에 넘쳤습니다.

사울을 바울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많은 것을 동원하였습니다

(1) 하늘에서 주님의 음성(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이 있었습니다.

(2) 스데반 집사님의 무언의 총탄 같은 기도(스데반 집사의 용서를 바라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3) 하늘의 전광

(4) 하나님의 종 아나니야의 출동

사울이 바울이 된 후에 전도에 종사하고, 이제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마치려는 그의 생애를 회고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려고 하면서 묵은 해에 버릴 것이 무엇입니까?

바리새인과 같은 외식적인 면은 없었는가?

겉과 속이 다르고 약속과 이행이 다르고 겉으로는 굉장하게 보이나 속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아닌가, 회칠한 무덤이 아닌가 반성해야 합니다.

사두개인과 같은 세속적인 면은 없었는가?

부활에 관심이 없고 내세에 관심이 없고 도덕만을 내세우는 진리가 없는 표준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 속화하고 타락하여 잘못된 신앙을 소유하고 살지를 않았는가도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극단의 신비주의로 치우치지 않았는가?

기독교는 신비로운 종교입니다. 그러나 극단의 신비주의는 불법을 행하게 됩니다. 주님의뜻에 합의한 생활을 하였는가 검토해야 하겠습니다.

 

3. 전망감을 느낍니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선한 싸움한 결과로 얻은 것이 의의 면류관입니다.

시종여일하게 선한 싸움에 앞장 섰던 바울이 전망을 바라보면서 남기는 교훈은?

(1) 뒤를 돌아보지 말고 주를 위하여 열심을 품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2)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행로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라는 것입니다.

(3) 기회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결론

이 해를 보내면서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결심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36:21-26

 

서론

구약의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의 역사가 재조명된 이 땅에서, 그들이 순전한 맘으로 감사하지 못하여 빼앗긴 축복을 우리가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해를 보내면서 어떠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1. 창조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땅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은 선하시고 인자하셨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있기까지 인간은 낙원에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있을 특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신 땅에서 선택받은 백성으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수많은 축복과 심판 속에서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인류에게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확대되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는 먼저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섭리된 삶을 살음으로 감사드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오직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엡5:9).

 

2.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애굽 땅 종 되었던 430년, 요셉으로 인해 정착한 고센 땅에서 이제는 떠나야 하였습니다.비록 고통스러웁긴 해도 먹을 것이 나일 강변을 떠나 황량하고 적막한 땅으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출애굽의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이 있기까지 백성들이 부르짖음은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고통이 임박해지자, 그들은 탈출을 주저하였습니다.

오늘 수많은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막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자유를 찾게 해 준다면 그들은 잠시의 고통 때문에 영원한 자유를 포기합니다. 우리는 오늘 그 고통을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시118:7). 그것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3. 생활 속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고통과 안정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속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겼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도 하나님은 함께하셧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이스라엘과 함께 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앞장서신 싸움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든지 평안하든지, 하나님은 함께 계셔서 약속의 자녀들을 위하여 영원토록 싸워주십니다. 다윗은 원수들이 벌떼처럼 그를 에워쌌으나(시118:12), 하나님이 자기를 지키시는 것을 알고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시118:14)"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실된 감사는, 삶 속에서 여호와를 의뢰하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모든쓸 것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실 것입니다.

 

4. 소망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거기 계시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요14:1-2). 오늘 우리에게 질병과 절망이 있다 하더라도,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눈물과 슬픔이 없는 곳, 사망과 고통이 없는 곳,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영원한 삶을 소망하며 승리해야 합니다.

 

결론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는 창조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고,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며, 생활 속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소망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눅13:6-9

 

서론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문득 한 해의 끝 부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그리고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의 빠름을 아쉬워하면서 지나간 일 년을 돌아보게 됩니다.

본문에는 바로 일 년의 끝 부분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이 한 해가 다가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1.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해를 살아 왔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기에 무사히 지나온 오늘까지의 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성경은 열매 맺는 무화과나무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데나 버려진 잡초가 아니라, 땅만 허비하는 필요없는 나무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포도원 한 곳에 심겨진 가치 있는 나무라고 말합니다 열매를 기다리는 주인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심겨진 무화과나무인 것입니다.

한 해를 지나온 나, 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면서까지 천국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의 큰 기대를 한 몸에 지닌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2. 나에게 열매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포도원에 귀하게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주인의 관심과 기대를 받았기에 열매가 요구되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대한 주인의 기대가 얼마나 컸던지, 그 주인은 3년을 계속해서 무화과나무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열매가 없었습니 다. 3년을 찾아왔지만 열매를얻지 못하자 주인은,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경고하였습니다. 사랑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심판도 컸던 것입니다.

나에게는 열매가 있는가? 하나님의 큰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한 해를 지내온 나, 나에게는 열매가 있는 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나에 대한 경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인은 무화과나무를 너무도 사랑했고 기대했기에 그의 경고도 엄하였습니다. "찍어 버리라" 그런데 과수원지기가 그 주인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일 년만 더 기회를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일 년을 잘 가꾸어도 열매가 없으면 그때 찍어버리자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너무나 사랑하고 기대했기에 "찍어버리라"는 경고, 그래도 아쉬워서 "일 년만 더 기다리시겠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여아 합니다.

 

결론

우리는 이토록 귀하게 하신 하나님의 기대에 남은 날이라도 최선을 다하여 열매 맺기는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에 맞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수 명

성 경 활 용

1. 장수하는 비결

(1) 하나님의 법도와 명령을 지킨다.

(왕상3:1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내 날을 길게 하리라

(2) 지혜를 소유한다.

(잠9:11)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3) 부모를 총경한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4) 여호와를 경외한다.

(잠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5) 동물에게 자비를 베푼다.

(신22:7) 어미는 반드시 놓아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2. 단명하는 이유

(1) 하나님의 심판

(욥22:16) 그들은 때가 이르기 전에 끊어버리었고

(2) 자살

(마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 지라

관련원어풀이

1. !y;m'y: 야-밈

(1) 날, 낮.

(창7:4, 8:22)

(2) 잔칫날, 생일.

(욥3:1)

(3) 시간, 날, 이날에, 오늘날.

(창4:14)

(4) 모든 날에, 매일.

(신42:4, 56:2)

(5) 기간, 시기, 때.

(창47:8, 왕상10:21)

(6) 생명의 때에, 일생.

(수13:1, 욥38:12)

 

2. makrocrovnio" 마크로크로니오스

오래 사는.

(엡6:3)

설교예화자료

장수의 비결과 말

 

소련의 장수 학자가 옛 속담을 바꾸어 놓을 만한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즉, 속담 "그의 수다가 나를 죽인다. "를 "그는 수다를 떨어서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 "로 바꿀 만한 통계인 것입니다.

그리아닌(Gurianin) 교수는 말을 적게 할수록 오래 산다고 말합니다. 계속 말을 하면 몸과 정신이 모두 피로하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귀머거리, 은둔자, 목동과, 수도자 등- 대개 과묵하다-은 장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쁘게 일하는 105살의 부흥사

 

남침례교 부흥사인 제임스 펠 에이커는 105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대전도 집회를 위해 일본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에게 부흥회를 부탁하려면 3년 전에 미리 예약을 해 두어야 한다. "고 최근 방송에서 한 뉴스 보도자가 에이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에이커는 한 달에 세 번 부흥회를 인도하고 나면 1주일간의 휴식을 갖습니다.

1871년에 출생한 에이커는 지금부터 88년 전 당시 나이 17세 때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에모셔 들인 후, 1976년 4월12일 생을 마칠 때까지 장장 85년간을 복음 사역자로서 보냈습니다.

예이커는 자신이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의 4가지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나의 부모를 공경하였으며, 둘째로, 항상 건강에 유념하려고 노력했고, 셋째로, 밤에는 반드시 휴식을 취했고, 끝으로는 나의 생활에서 주님을 첫째로 생각했습니다. "

 

 

어록·시·묘사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은 수명은 비록 짧은 것이지만, 잘 소비된 일생의 기억은 영원하다.

(키케로/ 필립피코 변호)

 

먹을 때나 잠잘 때나 운동할 때에 마음을 풀고 쾌활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은 장수훈 (長壽訓) 가운데 하나다.

(F. 베이컨)

 

짧구나, 인간의 생명이여, 백 살이 못 되어 죽는다. 가령 그보다 오래 사는 인간도 또 늙기 때문에 죽는다.

(H. 헤세/ 싯다르타)

 

장수에 급급한 자는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없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명이 길면 수치로움이 많다.

(장 자)

 

인생, 누가 능히 불사장생하랴, 불쌍타,/ 뜬 목숨이 호흡에 달렸거늘

(보우/ 태고화상어록)

 

사는 것이 죽기보다 낫다고 생각되는 때까지 사는 것이 가장 오래 사는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보람있는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수(壽)가 필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人垈七十古來稀 '라는 말이 있지만, 인간은 적어도 70세까지 살지 않고선 '自我'를 충분히 발휘할 수 없을 것 같다. 30까지는 자라며 배운다 치면 나머지 40년간쯤을 일해야 일다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조병옥/ 민주주의와 나)

 

나는 불사(不死)를 믿고 싶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다.

(J. 키츠)

 

마음도 환희와 쾌활로써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백해를 방지하고, 수명을 늘린다.

(W. 셰익스피어)

 

머리는 혼란하고 기력이 다 없어졌으니 미지의 사나이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돌연 최후의 순간이 임박한 듯한 느낌입니다. 이제야말로 호흡도 끊어져 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재능을 즐기기 전에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도 인생은 실로 아름다웠으며, 일생은 그렇게도 행복한 전조(前兆)로써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수명을 애석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신의 섭리대로 체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지막입니다. 이것은 나의 장송곡이며, 미완성인 그대로 남기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모짜르트)

 

무릇 사람이 저마다 자기의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중도에서 형을 받고 일찍 죽는 이유는다름이 아니라, 너무 지나치게 삶을 누리겠다고 안달하고 무리하기 때문이다. 오직 삶에 있어 무위자연할 수 있는 자만이 오래 삶을 간직할 수가 있다.

(회남자)

 

한 살을 더 살고 싶다고 원하지 않을 만큼 늙은 사람은 없고, 오늘 죽을 것이라고 생각할만큼 젊은 사람은 없다.

(영국 속담)

 

그 나라는 국경 이 없습니다. 수명은 시간이 아닙니다/ 사랑의 존재는 남의 눈과 님의 마음도 알지 못합니다.

(한용운/ 사랑의 존재)

 

수명은 성장하는 동안 늘어난다/ 사상이 생명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C.G. 릴런드/ 신의 귀환)

 

전설에 의하면, 하느님께서 스승에게 천사를 보내어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고 한다. /"백만 년을 살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해 주겠다. 아니 수백만 년이라도 너는 얼마나 오래 살고 싶으냐?"// "80년요." 스승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제자들은 당황해 했다/ "하지만 선생님, 만일 선생님께서 백만 년을 사신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세기에 걸쳐 선생님의 지혜로 도움을 받게 될지 생각해 보십시오."// "내 가 백 만 년을 산다면,사람들은 지혜를 기르는 일보다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더 여념이 없을 것이다.

(앤소니 드 멜로/ 우선 순위)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매일 변하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 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을 갖고도 자랑않는 겸허한 산

(김광식/ 거산호)

 

 

설 교 노 트

 

복을 누리며 장수하는 비결

신22:1-7

 

서론

하나님께서는 구속받은 성도들이 영혼이 잘 된 것 같이 육신도 잘되어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복에 복을 더 원하는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이십니다(대상4:10). 그래서 하나님 섬기고 복에 복을 많이 받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 방법은 다양합니다. 하나님을 섬겨서(출23:25-26), 순종해서(신28:1-14), 부모님들을 공경해서(엡6:1-3), 그 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복을 받는 비결의 말씀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1. 습득물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네 형제의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끌어다가 네 형제에게 돌릴 것이요 네 형제가 네게서 멀거나 네가 혹 그를 알지 못하거든 그 짐승을 네 집으로 끌고 와서 네 형제가 찾기까지 네게 두었다가 그에게 돌릴지니 나귀라도 그리하고 의복이라도 그리하고 무릇 형제의 잃은 아무것이든지 네가 얻거든 그리하고 못 본 체하지 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가리켜서 형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축을 방목하였기 때문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짐승들이 많아, 즉 임자 잃은 짐승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광경을 목격하거든 짐승의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짐승뿐만 아니고 누가 잃은 무엇이라도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의 재산을 내 재산처럼 아끼고 보호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을 받아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2. 형제를 도와야 합니다.

본문 4절에 "네 형제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진 것을 보지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형제를 도와서 그것을 일으킬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동정심에서만 도우는 것이 아니고 주의 사랑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원수까지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려 짐을 보지든 삼가 버려 두지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출23:4-5)"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대강령인 것입니다(마22:37-40).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사람을 미워하면 이는 옳은 신자의 도리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고 장수하는 비 결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원수를 돕는 데 있는 것입니다.

 

3. 자비스러워야 합니다.

본문 6-7절에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어미는 반드시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짐승의 새끼까지도 아끼는 자비스러운 마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자연을 다스리라는 특권을 주셨다고 할지라도 잔인하게 살상을 한다든지 인간 이하의 잔인함을 보인다면 복을 받는데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마5:5).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인자하고 자비스러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을 누리고 장수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복을 누리고 장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안 되는 것이며 그렇게 안 되는 이유가 하나님 보시기 합당치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을 받고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비결은 남의 물건을 주웠으면 돌려주고 형제의 것을 귀하게 여기며 자비스러운 마음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복을 누리고 살게 하시고 장수하게 하십니다.

969세를 향수함

서론

인류의 역사 초창기에는 인간의 수명이 대개 장수하여 900여 세나 사신 분이 매우 많습니다. 과중에서도 제일 오래 사신 분은 노아의 조부가 되는 무두셀라로서 969세를 장수하였습니다. 과연 인류 역사상 오래 사신 분이십니다.

 

1. 장수는 과연 축복입니까?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5복 중에 첫째를 장수라고 하고, 세 가지 축복 중에 첫째도 장수라고 하여 과연 모든 복 중에 복은 장수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오래 살려고 애쓰고 온갖 수단 방법을 강구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인사 중에서 건강하고 장수하라고 축원을 드리고 장수자를 축하하고 치하하는 환갑이니 진갑이니 하는 풍속이 있어 경사 중 경사로 여겨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만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병들고 쇠약한 불으로 장수하는 것도 불행이요, 가난하고 구차한 생활로 오래 사는 것도저주스럽고, 젊은 자녀나 손자들이 먼저 죽는데 홀로 오래 사는 것도 한탄스럽습니다.

더구나 죄 지으면 오래 사는 것처럼 당사자나 타인에게 불행한 꼴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일을 생각할 때 장수가 결코 제일의 복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무두셀라는 과연 구원 받았습니까?

무두셀라가 언제 죽었느냐를 연대적으로 계산해 보면 놀라운 결과가 나타납니다. 무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782년을 살다가 969세를 장수하였습니다. 그런데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고 595년을 살다가 778세를 장수하고 죽었습니다. 결국 무두셀라는 아들 라멕보다도 더 장수하여 865세 시에 아들 라멕이 죽었고 그 후 103년을 더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홍수가 난 해는 노아의 나이가 이제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었습니다(창7:11) 그러면 무두셀라는 187세에 아들 라멕을 낳았고, 라멕은 182세에도 그 아들 노아를 낳았는데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났으므로 이것을 계산해 보면 969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결국 무두셀라는 노아의 홍수가 나던 해에 죽었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그러나 홍수 전에 죽었는지, 그때에 죽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에 홍수 때에 죽었다면 구원받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것은 오래 산다고 해서 꼭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수명이 길다고 하여 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짧게 살아도 하나님을 중심하여 산다면 그것 또한 축복받는 생애가 될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도 보람 되고 가치 있게 오래 살아야 귀한 삶이 될 것입니다.

 

 

장수함으로‥‥만족케 하며

시91:16

 

서론

본편 마지막 절인 본문에 보면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의뢰하는 자에게 장수의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 가장 귀중한 축복입니다.

모든 축복이 다 기쁘고 감사할 일이지만 장수의 축복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잠언 16장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하였으니 의인이 장수한다는 진리가 계시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2절에도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귀한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인들이 단명한 자도 있습니다. 특히 순교자들이 육신적으로 장수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의인이면 누구든지 또는 반드시 장수의 축복을 받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악인 가운데에서도 장수하는 자가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보통으로 말하는 오복 중에 첫째를 장수라고 하고, 또 세 가지 축복 중에 첫째도 장수라고 하여서 만인이 장수를 축복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장수를 하여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바른 자세로 산다면 참으로 귀한 축복이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장수를 하여도 자랑스러운 것이 되지 못합니다.

 

2. 영생하여야 만족합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주시는 상급은 이런 육신의 생명의 장수에 국한한 것은 아닙니다. 육신이 장수하면서 죄를 더욱 많이 지었거나, 병자로 장수하며 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주는 일이나, 가난하고 못 살면서 오래 살아 있어서 남에게 폐를 끼치며 사는 것은 일반적으로 축복된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병이 없어서 건강하고 장수해야 하며, 경제적으로도 남한테 신세를 지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런고로 악인의 장수는 축복이 아닙니다. 악인들도 얼마든지 장수는 할 수 있으나 결단코 복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의 생애는 이 세상뿐만이 아니고 영원한 세상까지 연결됩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신다(시11:6:15)"고 하였으며 "몸은 죽어도 영혼이 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이 없다(마10:28)"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1장25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고 하였으니 우리 육신이 잠시 죽음 아래에 있으나 장차 부활하실 것을 믿으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결론

육신적으로도 건강하므로 장수하여 축복받고, 영혼이 하늘에 가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장수이니 참 만족이 나타날 것입니다.

순 결

성 경 활 용

1. 순결의 문자적 뜻

(1) 맑다.

(겔32:14) 그 때가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으로 기름같이 흐르게 하리다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이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2) 깨끗하다.

(딤전5:2)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를 개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3) 정결하다.

(시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2. 성경에 나타난 순결의 일반적 이해

(1) 연단을 통해 순결케 된다.

(단12: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2)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순결해진다.

(사1:25)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3) 순결한 자의 길은 곧다.

(잠21: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4) 경계의 목적은 순결하기 위함인다.

(딤전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5) 복을 받는다.

(마5: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3. 무엇이 순결한가?

(1) 하나님의 말씀

(시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2) 여호와의 계명

(시19:8)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3) 선한 말

(잠15:26) 악한 죄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4) 위로부터 난 지혜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4. 성도가 지켜야 될 순결의 종류들

(1) 마음

(딤후2:22)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 영혼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3) 양심

(딤전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4) 자신

(고후7: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딤전5:22)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5) 언어

(습3:9)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6) 몸

(히10:22)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관련원어풀이

1. rB" 바르

(1) 선택된, 사랑하는

(아6:9)

(2) 깨끗한, 순결한.

(아6:10)

(3) 마음이 정결한 자.

(시27:4, 73:1)

 

2. &z" 자-크

순수한, 정직한.

(출27:20, 잠16:2)

 

3. ajkevraio" 아케라이오스

혼합되지 않은, 불순이 섞이지 않은, 진지한.

(마10:16, 빌2:15)

설교예화자료

고행의 정절

 

양나라에 고행이라는 정숙한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미인이었으나 불행히도 남편이 죽어 일찍 과부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귀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때 양나라의 왕은 고행의 미모에 대한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불러들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고행은 사신에게 "왕이 나를 희롱하기 위해 부르는 모양이나, 열녀는 불경이부(不更二夫)한다는 말처럼 왕의 명령이지만 이 일만은 좇을 수 없는 것이오."라고 한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칼을 들어 자기의 코를 베어버렸습니다. 이때 피묻은 칼을 들고 하는 말이 "왕명에 좇을 수 없는 나를 이렇게 스스로 형벌을 가합니다. 죽자 하니 귀한 아들 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 또한 왕명을 좇을 수도 없으니 이렇게 형벌합니다. 왕이 나의 미모를 구하나, 내 이미 죄를 지은 돔이 되었다고 말하여 주시오." 하였습니다.

사자가 이 일을 왕에게 알리니 왕은 부끄럽게 생각하였을 뿐 아니라,그 여자의 정절에 감동되어 덕이 높고 의로움이 크다 하여 표창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마누라의 율법-여자의 입술, 처녀의 가슴, 어린아이의 기도, 제단의 연기 이러한 것은 언제나 모두 순결하다.

(A. 카뮈/ 비망록)

 

순결은 가장 더러운 곳에서도 영혼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게 한다.

(주베르/ 명상록)

 

순결하고 덕망있는 여인과 같이 값진 보물은 이 세상에 없다.

(세르반세스/ 돈키호테)

 

마음과 행동의 순결은 여자의 으뜸가는 영광이다.

(스탈 부인/ 독일인)

 

여자의 정절은 양파처럼 집결이 입은 옷속에 존재한다.

(N. 호돈/ 일기)

 

순결은 여성이요, 진실은 남성이먼, 다 명예롭다.

(J.C. 해어와 A.W. 헤어/ 진리의 추론)

 

순결은 아침 이슬과 같다

(영/ 야상)

 

처녀성은 천사의 생명이요, 영혼의 에나멜이다.

(J. 테일러/ 성스런 삶)

 

빛날 따름인 순결한 달은 세상의 격동하는 파도를 모조리 움직인다.

(F. 톰프슨/ 신기루)

 

순결을 지켜서 항상 남편 곁을 떠나지 않는 여자는 하루 밤만이 아니라 매일 밤 그의 새색시이다. 여전히 사랑과 두려움으로 잠자리에 살며시 들어가, 하나뿐이 아니라 많은 처녀성을 바친다.

(R. 헤리크/ 줄리아의 순산 감사기도)

 

순결은 금욕이거나 절제이다. 금욕은 처녀와 미망인의 것이요, 절제는 기혼자의 것이다.

(J. 테일러/ 성스런 삶)

 

열렬하라, 그러나 순결하라. 요염스러우라, 그러나 정숙하라.

(바이런/ 영국의 시인들과 스코틀랜드 비평가들)

 

혼인의 기쁨은 남녀 쌍방의 동정으로 말미암아 결정된다. 첫사랑 아닌 사랑은 암만해도 넝마라 맛이 없다. 혼인의 참기쁨을 맛보려는 이는 모름지기 동정을 지킬 것이다. 진정한 동정남녀의 사랑이야말로 하늘나라의 기쁨이라 할 것이다. 이 기쁨을 맛보는 사람은 대복지인이다.

(이광수/ 돌베개)

 

청춘의 순결함을 잃어 버린 중년에게 여자란 더운 날 얼움에 채운 맥주나 보들한 옷 모양으로, 또는 커피나 홍차 모양으로 한 기호품에 불과하다.

(이광수/ 그 여자의 일생)

 

어머니께서 낳아 주신 대로 그대로 꽁꽁 싸가지고 온 내 몸, 하늘의 불로 닦인 마음, 땅의 맑은 물로 씻긴 몸,봄날 아침 볕에 방긋 열리는 꽃봉오리와 같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몸과 마음

(이광수/ 그 여자의 일생)

 

사막의 꽃이여, 그믐밤의 만월이여, 님의 얼굴이여!/ 피려는 장미화는 아니라도 갈지 않은 백옥인 순결한 나의 입술은 미소에 목욕감는 그 입술에 채 닿지 못하였습니다.

(한용운/?)

 

순결과 미, 이것들은 서로 무서운 적인데도 여자의 머리 속에서는 다정한 벗처럼 산다.

(S. 대니얼/ 델리아에게)

 

거룩한 천사의 세례를 받은 순결한 청춘을 똑 따서 그 속에 자기의 생명을 넣어 그것을 사랑의 제단에 제물로 드리는 어여쁜 처녀가 어디 있어요

(한용운/ 가지 마셔요)

 

입맞춰 주게 나의 순결은 너의 순결하고만 결합할 수 있다. / 어서 입맞쳐 주게/‥‥/ 우리들의 온갖 색깔을 한 순결에게/그리하여 매어다오 나를 매어 다오.

(A. 세제르/ 귀향수첩)

 

수녀원처럼/순결하고 평화로운 그대 가슴과 마음을 버리고/ 싸움터로 간다고/ 나를 무정타 말아다오

(라 브레이르/ 싸움터로 가며 루캐스터에게)

 

높은 하늘의/ 하얀 구름처럼/ 엘리자베트 당신은/ 순결하고 곱고 멀리 있습니다.

(헤세/ 엘리자테트 III)

 

눈부시도록 희어서/ 슬픈 빛/ 흰 빛은 순결해서 아름답고/ 아름다운 건 조금은 슬픈 거라지)/ 모든 순결한 이들의 가슴에 살아서/아린 슬픔 갖게 하고/ 그 슬픔 속에 맺혀/눈물로 다시 사는 빛

(박용주/ 흰 빛)

 

네게 이 노래, 부드러운 꿈이 운고 우는/네 큰 눈의 마음 달래는 우아함으로 해서/순결하고 선량한 영혼으로 해서/ 내 격렬한 비탄에서 우러나온 이 시를 바친다.

(베를렌느/ 어느 여인에게)

 

이제사 맑고 순결하게/ 점점이 피어나는/ 마음의 꽃을 봅니다.

(고진숙/ 광야의 기도)

 

순결하고 생기있어라, 더욱 아름다운 오늘이여

(말라르메/ 백조)

 

붉은 입술도 전사한 영국군이/ 입맞춘 피묻은 돌만큼은 붉지 못하다/ 사랑하는 사이의 알뜰함도/ 그 순결한 사랑 앞에는 부끄럽구나.

(오웬/ 고귀한 사랑)

 

기적의 순간/ 순간적이 영상처럼/ 그대는 내 앞에/ 나타났습니다/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어느 날 당신의 영혼이/ 눈을 뜨고/ 아 당신은 다시 왔습니다. 순간적인 영상마냥/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푸시킨/ 안나 케른에게)

 

나의 연두색 하느님/ ‥‥맨발로/ 꽃피는 언덕을 밟게 하여 주시고,/ 속살을 다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조건없는 물의 순결을/ 나에게 주십시오.

(김동원/ 연두색 하느님)

 

하늘이여/ 말을 하라/ 말이 있으리라// 이다지 조각조각/ 찢어져 오는/ 하얀 눈송이의 맘이어니// ‥‥바다가 아득하게/ 눈물지우는/상처입은 순결/ 말로 하라

(설창수/ 눈)

 

백목련 필 무렵이면/ 사무치는 그리움이// 어머니 그어 지실/ 보는 듯 방가워라//불연듯/눈물 어리고/ 선하게 떠오르네.// 담백하고 해맑음은/ 순결한 우리의 얼

(서재순/ 백목련이 피었네)

 

두견이도 한 목청/울고 지친 밤// 나 혼자만 잠들기/ 못내 설어라.

(조지훈/ 낙화)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픈 함성으로/ 한닢한닢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순결한 꽃인 것을

(박용주/ 목련이 진들)

 

 

설 교 노 트

 

위대한 요셉

마1:18-25

 

서론

요셉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통이고 신앙적으로는 당시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는 많은 유대 청년 중에서 누구보다 더 먼저 메시아를 영 접하여 양육하셨고, 육신적으로는친히 보호하신 양부로서 선택받은 위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혼전에 잉태하였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자 하였습니까?

 

1. 다른 사람의 죄를 가리워 주려고 한 사랑의 사람입니다.

본문 9절에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을 보아서 요셉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같이,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죄를 드러내는 외식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가리워 주려고 한 사랑의 인격자였습니다. 만일에 요셉이 내가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나와 상관없이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게 되면, 모세 율법에 의지하여 돌에 맞아 죽고, 이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리워주면 마리아와 예수님의 생명은 살아납니다. 벧전4:8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사람을 살리는 도화선이라고 하면, 증오는 사람을 죽이는 도화선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사람은 미움의 사람이라고 하면 남의 허물을 가리워주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살아나고 참된 평화의 세계가 형성된다면 미움이 있는 곳에 평화가 파괴되고 살상의 세계가 버려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했다"는 것으로 보아서 요셉은 인내의 사람이요, 침묵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요셉의 신앙 인격은 사랑의 사람이요, 인내의 사람이요, 침묵의 사람이었습니다.

 

2. 순결의 사람입니다.

본문 19절에 "가만히 끊고자 하여"라는 말씀을 보아서 남의 허물과 죄를 드러내지 아니하려고 하면서 죄를 용납하거나, 죄와 타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죄에서 자신의 신앙 정조와 순결을 수호하기 위해서 가만히 끊어버리려고 한 순결한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요셉이 "저를 끊어버리려고" 한 것은 죄와 타협하거나 동화할 수 없다는 사상이요, 죄를 미워하며 죄를 대적하는 사상이요, 죄에서 구별되어 자신의 신앙 지조와 순결을 파수하려는 사상입니다.

히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거룩해야 됩니다.

 

3.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나 감수한 사람입니다.

본문 20절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 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참으로 받아 들이 기 어려운 사건이었으나, 마1:24-25를 보면,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를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이점이 요셉의 신앙에 있어서 위대하였던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요셉이 만일에 이 일을 길이 생각하지 아니하고 경솔하게 처리했더라면, 마리아와 예수님의 생명은 외상 없이 돌에 맞아 죽어 버리게 될 것인데, 이와 같이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였던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기다려 그대로 실 천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이로 보아서 요셉은

(1) 기도의 사람이요

(2) 하나님과 친교의 사람이요

(3) 하나님의 뜻과 지시를 감수하여 그대로 실천 실행하였던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생활을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결론

요셉은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1) 사랑의 사람이요

(2) 순결의 사람이요

(3) 하나님의 뜻을 감수한 사람입니다. 이러 한 신앙을 본받아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재료로 직조한 옷

레19:19

 

서론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교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종류를 다른 것과 혼잡시키지 말라는 뜻입니다.

 

1. 창조하신 본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동물이나 식물을 창조하실 때 여러 종류를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신 뜻은 각기 그 나름대로의 본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함부로 혼합하는 일은 그 뜻을 거스리는 것입니다.

섞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면 왜 애당초 그 섞어진 것과 같은 류의 것을 창조하시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창조의 신비성을 바로 알아서 순응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2. 혼합된 변질을 막으라는 뜻입니다.

물론 인간편에서 볼 때 단독인 것보다 혼합해야 좋아지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본래의 것은 자연히 변질되고 만다는 이치입니다.

동물계도 그렇고 식물계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정신적인 면의 것의 혼합은 더욱 안되는 일입니다.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 왔다 갔다 하지 말아야 하며, 가하든 부하든 태도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 마음대로 혼합하여서 변질하게 하면 거룩성이 오히려 오염되어 자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합되어 변질되기 전에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3. 참 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물질계에서도 그렇지만 더구나 종교계에 있어서 혼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참 종교의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영적 타락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에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하리요"라고 한 것같이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엄연합니다.

하나님과 이 세상의 재물을 경하여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민족들이 일상생활 중에서 순수하지 못하면 종교면에 있어서도 이교와 타협하기 쉬우니 예방조치를 하기 위하여 온갖 혼합을 금지하신 것입니다. 현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각파가 그 신조와 교리를 순수하게 지키지 못하고 연합과 친선의 미명 밑에서 혼합주의로 나가는 폐단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순 교

성 경 활 용

1. 순교를 하게 되는 이유

(1) 적 그리스도의 핍박을 받아서

(계13:15)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2) 성도들의 신앙을 지킴으로

(계6:9)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3)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함으로

(마24:9)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2. 순교에 대한 성도의 자세

(1) 그리스도의 경고임을 기억

(마10:22)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 두려워하지 않음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3) 각오함

(행21:13)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3. 순교자가 얻을 상

(1) 구원

(막13:13)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 주께서 신원해 주심

(계6:10)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3)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함

(계20:4)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설교예화자료

콜로세움의 마지막 순교자

 

콜로세움이 세워진 지 300년이 지난 후 기독교가 널리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검투사들의 결투는 로마 시민간에 가장 애호받는 오락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이를 금지했으나 시민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시민들의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호노리오스 황제도 이를 금지시켰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검투사의 싸움이 막 시작하려는 찰나, 텔레마쿠스라는 수도승이 경기장에 뛰어내려서 검 투사들을 때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간섭에 화가 난 군중들은 인간의 피를 갈망하는 많은 악마들로 가득 찬 원형 경기장의 객석으로부터 대리석 의자들을 뜯어서는 그에게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텔레마쿠스-인정많은 수도사-는 승리를 얻었습니다. 분노는 존경으로 변했으며, 검투사간의 싸움은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그는 콜로세움의 마지막 순교자가 됐던 것입니다.

 

 

성 포카스의 순교

 

성 포카스는 흑해 부근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원사로 열심히 일했으며 특히 모든 방문자에게 매우 친절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긴 여행으로 피로에 지친 세 명의 병사가 찾아 들었습니다. 그는 극진한 저녁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친 병사들은 자기들은 포카스라는 카톨릭 신자를 찾으러 왔으며, 그를 찾으면 곧 목을 배라는 명을 받은 자들이라는 비밀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때 한 병사가 물었습니다.

"그는 이 근처에 사는데 당신은 그가 어디 사는지 알고 있지요? "

"그럼요,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우리집에서 푹주무시지요. 내일 당신들에게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라고 포카스가 대답하였습니다. 병사들은 그의 친절한 대접에 감사하며 쉬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즉시 포카스는 삽을 쥐고 정원에 구멍을 파기 시작하였습니다. 밤새도록 그는 기도하며 일하였습니다. 병사들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주인은 새로 판 무덤옆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포카스를 가르쳐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바로 포카스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병사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에게 대단한 친절을 베푼 그를 죽인다는 생각에 기가 막혔습니다. 이때 "염려 마십시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여기에 내 무덤도 있고 하니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명령을 수행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다만 돌아갈 것을 염려하면 됩니다. "라고 포카스가 또 말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감히 명령을 불이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때 셋 가운데 한 병사가 칼을 뽑아 앞으로 나왔습니다.

포카스는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순간 그의 머리는 떨어지고 그의 영혼은 천국의 정원에서 주님과 더불어 있게 되었습니다.

 

 

성녀 마리아의 순교

 

성녀 마리아는 어떤 이교도 승려의 딸이었는데 그녀가 가톨릭 신자가 되자 그녀의 아버지는 천륜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안티오키아의 총독이 구혼하였을 때 마리아는 단호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그녀를 자신이 주관하는 법정에 고발하였습니다. 화가 난 총독은 사람을 신처럼 섬기고 더구나 십자가에 못박혀 수치스런 끝을 맺은 사람을 공경함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냐고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왜 당신은 언제나 주 예수의 십자가상의 수난을 말하면서 주 예수의 부활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하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설명 했습니다.

"물론 그의 죽음은 그가 인간이었음을 표시하지만 부활은 그가 참다운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

총독은 마리아를 화형에 처하도록 선고하였습니다. 총독의 명령대로 화형에 처하였으나 불길은 그녀를 태우지 않고 피하여 타올랐습니다. 그러자 더욱 화가 난 총독은 부하들을 시켜 그녀의 목을 잘라 죽여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폴리갑 주교의 순교

 

2세기경 "무신론(당시 로마의 신을 숭배치 않는 자)자를 죽여라."고 외치는 군중들의 폭동을 진압한 시장은, 폴리갑 주교에게 목숨을 건지려면 황제를 위한 제단에 나아가 제사를 드리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나는 86년간 그리스도를 섬겼으나 한 번도 그리스도는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어찌 나를 구원한 그리스도를 욕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화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마지막 기도를 올렸습니다.

"저희들은 꺼지는 불로 나를 태워 죽이려고 하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을 무서워하지 않고 있나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부족한 종을 순교자의 반열에 넣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나를 받아주시고, 이 어려운 잔을 능히 마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당신의 이름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어록·시·묘사

 

예언자와 순교자는 더러운 왕좌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의 눈은 영원에 못박혀 있을 뿐이다.

(B. N. 카르도조)

 

순교자를 만드는 것은 고통이 아니라 대의(大義)이다.

(영국 속담)

 

참된 순교자란 신의 뜻대로 되어 버린 사람이므로 그는 신의 의지 속에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맙니다. 아니, 버린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찾는 거지요, 왜냐하면 신에 복종함으로써 자유를 찾기 때문입니다.

(T.S. 엘리엇/ 대성당의 살인)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데르툴리아누스)

 

순교자의 재는 악마를 쫓는다.

(크리소스톰)

 

모든 순교라는 것도 방관자의 눈에는 저열하게 보인다고들 한다.

(0.F.0.W. 와일드/ 옥중기)

 

신앙이 순교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신앙을 만드는 것이 순교자다.

(M. 우나무노/ 수필과 혼잣말)

 

순교에는 세 가지의 형태가 있다. 첫째는 의지와 실제로 한 순교로서 가장 고귀한 것이고, 둘째는 의지로 순교했으나 실제 순교한 것은 아닌 것이고, 셋째는 실제로 순교했으나 의지로 순교치 않은 사람들이다. 교회는 이들 순교자를 꼭같이 기리고 있다.

(C. 휘틀리/ 영국인 회중의 교회)

 

순교자의 제자들은 순교자들보다 더한층 많은 양의 고통을 받는다.

(F.W.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토록 불합리한 종교도 없다. 그러나 그 순교자를 자랑할 수는 있어도 종교는 또한 없다.

(J. 글랜빌/ 교의화에의 허영)

 

종교적인 진리가 확립되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순교정신이다.

(S. 존슨)

 

순교정신은 열렬한 믿음의 강렬함을 드러내는 것이지 결코 그 믿음이 옳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슈니츨러)

 

순교자와 죄인들이 탄식하고 슬퍼하는 소리는/ 의심할 나위 없이 그 마음을 취하게 하는 교향악./ 왜냐하면 이 즐거움이 희생의 피를 요구한다 하여도/ 하늘은 아직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들레르/ 베드로의 부인)

 

내게는 순교도 없고 사색과 기도의 기쁨도 없습니다. / 또한 내게 궁극적인 환상도 없습니다. // 내 게 당신의 평화를 내리소서/ (하오면 당신의 검은 그 심장을 꿰뚫을 것입니다)./나는 나의 삶과 내 후손들의 삶에 지쳤고/나는 지금 나와 내 자손들의 죽음을 생각합니다.// 주여 당신의 종을 떠나게 하실지니/내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엘리어트/ 시몬의 노래)

 

번영의 도시 뉴욕의 주식클럽 언저리에서/당신들은 매일 한 사람의 흑인과 한 사람의 백인을 십자가에 매달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들은 순교와 희생을 팔짱끼고 관망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네루다/ 율리우스 후치크와의 대화 · 3)

 

벗도 없이 피곤에 지척, 순교 말기의 걸음도 더디게/ 육체는 피곤해도 영혼은 자유에 살며/구경온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으면서/스승 예수는 갈보리로 괴롭게 올라갔다.

(로빈슨/ 갈보리)

 

그 사람의 타는 듯한 눈동자 속에서 밤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에서 대추나무를/ 또 별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 바람처럼 나는/ 그 사람의 머리 가를 맴돌다가- -/갈대처럼 나는 부러졌다.

(애두니스/ 순교자)

 

진리를 위하여 죽어간/ 순교자의 하얀 십자가 곁에/ 한껏 피어오르는 당신의 거룩한 이름

(임춘남/ 부활꽃)

 

돌이 날아온다/ 스데반의 수염 위에/ 얼굴과 뼈와 희디흰 살점 위에/ 서슬 퍼렇게 돌이 날아온다// 이천 년 전에 날아온 돌은/ 이천 년 후에도 날아와 돌무더기를 만든다/ 십자가 없어도 여기저기 돌무더기를 쌓는다// 돌 밑에는/ 따뜻한 눈물이 깔리고/ 눈물 위에는 유대의 먼지가 쌓인다/ 시간도 역사도 돌 밑으로 퇴적하고/ 스데반도 스데반의 아들도 아들의 아들도/ 발버둥치는/ 모기 소기도 숨을 거둔다/ 바라보면 돌무더기의 광야/ 풀 한 포기 못 자라는 적막강산// 그러나 자유를 기다리는 자는/ 돌 밑에 누워야 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누워야 한다/ 이천 년 후에도 차가운 돌 아래서/ 눕기를 기다려야 한다// 돌이 날아온다/ 용서받은 자들이 날리는/ 서슬퍼런 돌 밑에/ 눈물보다 더 가느다란/ 기도 소리가 들린다/ 또 하나 스데반의 돌무더기 밑에서

(김창범/ 스데반의 돌무더기)

 

백인이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 나의 아버지는 자부심이 강했다/백인이 나의 어머니를 겁탈했다/ 나의 어머니는 아름다웠다/ 백인이 시퍼런 대낮에 나의 형을 불태워 죽였다/나의 형은 억셌다. / 검은 피로 붉게 물든 두 손/이 번에는 나에게로 돌아섰다/ 경멸의 침을 내 얼굴에 뱉으며/ 나으리의 목소리로 호령 했다. /"어이, 꼬마, 냅킨하고 마실 것 한 잔 가져와!"

(다비드 디옵/ 순교의 시대)

 

스승은 보통 사람들을 사랑했고, 덕이 두드러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미심적어했다//어떤 제자가 결혼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자/그는 말했다/ "성인하고는 결혼하지 않도록 하게."// "왜 그러면 안 되지요? "/ "그거야말로 스스로를 순교자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지,"/ 이것이 스승의 쾌활한 대답이었다.

(앤소니 드 멜로/ 독선)

 

한 사람의 순교자로서 기꺼이 죽겠노라. 나의 영혼은 이 연기들과 더불어 낙원에 이를 것이다. <*도미니크 교단의 승려였던 그가 지동설을 주장하고 과학을 떠받들었다는 이유로 종교 재판을 받고 이단자로 낙인 찍혀 화형을 받았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이와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G. 브루노)

 

보이지 않아도/ 나날이 미더웁고/ 나날이 친숙해 온/ 피 묻은 님들이여// 목숨을 걸고 사랑한 죄로/ 칼을 받아야 했던/ 피 묻은 얼굴들이/ 태양이 되어// 아직도/ 그 빛 안에 우리가/ 살고 있음이여// 어둠과 비애의 폭풍이 잦아/ 갈수록 슬퍼진 땅에/ 살기 위해 죽어서/우리도 묻혀야 할/ 이 그리운 땅에//지금은 얼굴을 묻고/ 귀 먹고 눈도 멀어/ 열리지 않는 가슴을/ 통곡하다 지쳐버린 후예일지라도// 남겨 주신 그 신앙/ 생명의 피로 아픔을 씻고/ 또 다시 희망 속에/ 웃고 싶음이여// 피 묻은 님들이 있어/ 더욱 확연히 트인/ 하나의 길로/ 영원히 살고 싶음이여

(이해인/ 피 묻은 님들이여-순교복자들에게)

 

 

설 교 노 트

 

순교적 믿음으로 살자

히11:33-40

 

서론

기독교 역사는 우리 주님께서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을 비롯하여 제단에서 흘린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의 역사이고, 핍박과 고난 중에서도 장하게 살아가는 승리자의 피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많은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고, 믿음을 사수한 발자취가 쭉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순교자들은 어떤 환경에서나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의 선진들과 순교자들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믿음으로만 살다가 갔습니다. 평안할 때도 믿음으로 살았고, 병들고 시련이 와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 믿음, 믿음만이 저들의 전부로 살았습니다.

믿음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11장1절에 믿음을 정의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온 전히 맡기고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순교자들이 신앙을 사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네가 믿느냐? 믿음대로 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믿음으로 구하면 믿는 만큼 됩니다.

적게 믿으면 적게 됩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됩니다. 아무것도 안 믿으면 안 됩니다. 믿음과 축복은 정비례합니다.

오늘날 세상을 이기고 순교하면서까지 승리한 사람은 지식이 많아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그들이 믿음을 강하게 하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승리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것도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가능하다고 보고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는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주님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만 주님 안에서는 못할 것이 없다는 믿음으로 순교자들이 순교를 한 것입니다.

 

2. 순교적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게 됩니다.

역대 신앙인과 순교자들의 생활은 눈을 감아도 하늘의 영광을 생각하고, 눈을 떠도 하늘의 영광, 일을 해도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이 종말에 처 한 영광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세상 것을 설사 잃어버려도 예수님은 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는 돈도, 명예도, 건강도, 축복도 그리고 성경에 기록한 많은 약속의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 우리는 예수님만 찾으며, 예수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십시다.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믿음을 가지십시다. 여러분들도 하늘의 영광 바라보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걱정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고통과 실망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늘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결론

여러분이여! 우리는 내일 일이 어찌 될지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믿음의 조상들처럼 온전히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적극적인 신앙으로 예수를 잘 믿다가 어떤 순간이 온다 할지라도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순교적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순교자의 자격

행3:33-42

 

서론

본문 41절에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은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그 복음을 위하여 순교할 각오까지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영광을 받는 일이라면 몰라도 고난을 받고 순교하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하겠습니까?

 

1. 그들은 고난받기로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기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복음을 위해서 고난받기로 애당초에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행9:15-16에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전하기를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택함을 받았다"는 말씀의 뜻은

(1) 세상 많은 사람 중에 주님의 사람으로 성별되었다는 뜻입니다.

(2) 이 세상 많은 일 중에서 주님의 사역을 위해서 등용되었다는 뜻입니다.

(3) 이제부터는 주님과 더불어 공동 운명체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기백하시면 나도 기뻐하고, 주님이 괴로워하시면 나도 괴로워하고, 주님이 멸시를 받으면 나도 멸시를 받고,주님이 영광을 받으면 나도 그 영광에 참예한다는 뜻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사람으로 성별되어야 하고, 주님의 사역을 위해 등용되어야 하고,주님과 더불어 공동 운명체가 될 수 있도록 선택을 받아야 됩니다.

 

2. 주님을 위해서 죽을 신앙의 각오가 서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못해서 고난을 당하거나, 도피할 길 없어서 고난을 당하거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의 명분상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길만 있으면 언제라도 빠져 나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기로 각오한 사람들은 어떠한 고난이라도 감수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음을 각오한 사도 바울은(행20:23) 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였습니다(행21:13). 이와 같이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을 수 있는 사람은(롬14:8)

(1) 나 자신이 주님의 것임을 바로 인식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고전6:19-20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2)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는 것을 가장 복된 삶으로 인식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의를 가치 있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3)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으면 주 안에서 다시 부활할 줄로 확신한 사람입니다. 앞서간 순교자들이 모두 이러한 신앙으로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3. 주님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 하기 원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예수님 없이는 못 사는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1) 주님이 자신의 생애에 제일 귀한 분으로 모시고 사는 분입니다.

(2)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할 때 모든 것을 다 소유한 것으로 믿는 신앙의 사람입니다.

(3)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확신하는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부인하고,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면 주님도 우리를 시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마10:33).

 

결론

내가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은 주님께 속해 있는 증거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핍박받는 것은 주 안에서 경건하게 사는 증거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 박해받은 것은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증거입니다.

순 례

성 경 활 용

1. 순례자에 관한 성경적 특징

(1) 험악한 세월을 보낸다.

(창47:9)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2) 유리 방황한다.

(시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3) 주의 율례를 기억한다.

(시119:54)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4) 믿음으로 여행한다.

(히11:9) 받음으로 서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통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셨으니

(5) 얼굴을 시온으로 향한다.

(렘50:5)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6) 하나님의 약속으로 힘을 얻는다.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면 약속을 받지 들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2. 성경에 나타난 순례자에 대한 묘사들

(1) 나그네와 행인

(히11:13)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 세상의 빛

(빌2:15)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홈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3) 하나님의 백성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3. 순례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

(1)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2) 사람들 앞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라.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3)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에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벧전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4) 자유가 있으나 하나님의 종같이 하라.

(벧전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5) 뭇 사람을 공경하라.

(벧전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관련원어풀이

1. &r,D, 데레크

(1) 결어가는 행동, 여행.

(창30:36, 삿17:8)

(2) 길, 도로.

(출13:7, 신1:19)

(3) 길, 방법, 진로.

(삼상18:14, 사8:11)

(4)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 종교.

(시139:24, 레18:15)

 

2. oJdov" 호도스

(1) 길, 통로, 도로.

(마2:12, 요1:23)

(2) 길, 여행, 행로.

(마5:25, 행26:13)

(3) 방법, 방식.

(마7:13, 행2:28)

설교예화자료

경계선 호텔

 

나폴레옹 통치 기간 동안,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이 계속 변하고 있었을 때, 한 영리한 스위스인이 마지막 경계선을 예측하고 호텔을 지었는데, 지금 그것은 프랑코-쉬스 호텔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호텔은 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의 국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분할선은 호텔의 중앙을 가로질러 통과하고 있으며,수 개의 침실을 통하기도 합니다 종종 어떤 손님은 한쪽 발은 프랑스에 다른 한쪽은 스위스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방으로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그는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계단의 중간에서 그는 다시 스위스에 있게 됩니다. 그 호텔은 이중전화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는 스위스에 의해 공급되고, 하나는 프랑스에 의하여 공급됩니다. 전화의 사용 요금은 어느 쪽 전화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손님이 요금을 내지않고 떠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기게 될까? 물론 경찰을 불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가 정문으로 떠났는가 아니면 원문으로 나갔는가에 따라 부를 경찰이 달라집니다.

 

 

극의 정상을 가로질러 걷기

 

1969년 극지의 얼음 정상을 걸어서 횡단한 첫 네 사람이 영국 포츠머드의 집에 돌아왔습니다.

영국 탐험 대 팀은 1968년 2월 알래스카에서 출발하였고 얼어 붙은 사막을 넘어 3,620마일을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1969년 5월 30일 조그만 블랙보드 섬에 상륙하여 위험한 얼음 벌판에서 477일을 걸은 후에 헬리콥터에 의해 구조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갖가지 위험이닥쳐왔습니다. 때로는 북극곰을 만나는가 하면 온도 화씨 영하 45도까지 내려가고 그 팀의성질 나쁜 거친 개로 곤경을 치루는 등 믿어지지 않는 여행을 그들은 한 것이었습니다.

 

 

제니 린드가 부른 '고향'

 

제니 린드의 병성이 결정일 때, 하루는 오페라 가수로 뉴욕의 캐슬 가든에서 2만 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날의청중들은 다른 때의 청중들보다 그녀의 노래에 대한 재능에 그리 깊은 감동은 받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대부분 고전 음악을 불렀고 간혹 최신 유행 음악도 불렀습니다. 반응은 산발적인 박수가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향, 나의 고향"이란 접속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명의 청중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파도와 같은 감동이 모든 청중들의 가슴을 타고 번져나갔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로 건물은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고향의 마력이 통하지 않는 목석 같은 청중은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길

 

수년 전에 제임스 힐튼이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제목적 책을 썼습니다. 이 책속에서 힐튼은 아시아의 어느 산간 지방에서 비행기에서 추락했던 어떤 영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영국인은 상그릴라라는 이름의 부락으로 데려가 집니다. 상그릴라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고 건강했습니다. 그들은 필요한 로든 것을 갖추고 있었고 절대로 늙는 법도 없었습니다. 이 영국인은 일 년 동안 상그릴라에서 머물다가 영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행복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시금 상그릴라의 풍요롭고 행복한 생활을 찾아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그러던 행복을 상그릴라에서 다시 찾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좋은 것들을 바로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 자리에서 찾는 것이 보통입니다.

 

 

고개를 드는 인생

 

어떤 사람은 눈을 떨어뜨리고 발 밀을 보며 군중 속을 헤치고 걸어가고 있었으며, 또 더러는 고개를 높이 치켜들고 활달하게 걷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밝은 표정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행로를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압박과 여러 가지 문제에 싸여 고개를 떨구고 걸어간니다. 그들에게는 길바닥의 더러운 먼지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틀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기회를 노리고자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초개를 들 때 인생은 또 다른 모습을 나타내게 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었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나는 고작 이 세상에서 하나의 나그네, 한 가닥 편로에 지나지 못한다. 그대 들인들 이 밖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J.W.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나타니엘이여, 그대는 모든 것을 지나치는 길에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곳에도 멈추지 말라

(A. 지드/ 지상의 양식)

 

여행의 유용성은 현실에 의하여 상상을 조절하는 것이며, 사물의 모습을 추측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의 사들을 보는 것이다.

(S. 존슨 피옷치 부인/ S. 존슨의 일화집)

 

우리는 모두 영원히 나그네이며 고독할 수 밖에 없는가

(T.C. 울프/ 천사여, 고향을 보라)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한다.

(T. 풀러/ 잠언집)

 

방랑자에게 돈이 있을 때, 관광객이라고 불리운다.

(P. 리처드/ 그리스도의 수난)

 

이 방랑자는 여러 가지 성격의 소유자이다. 보기에는 방랑자이지만, 그는 점잖은 사람이고, 시민이고, 고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늘 로맨틱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는 과학자라든가, 음악가든가, 귀족이든가, 프로선수로 행세하고 싶지만,본인은 담배 꽁초를 줍든가 어린아이들이 빠는 캔디를 열심히 빠는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그가 할 수만 있다면 숙녀의 궁둥이를 차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그것은 이 친구가 배알이 들어졌을 때이지만.

(C.S. 채플린/ 자서전)

 

기나긴 나그네길을 통해서/ 방랑과 슬픔과 기쁨을/ 한껏 맛본 자가 아니고는/ 저 구름의마음을 알지 못한다// 나는 태양과 바다와 바람같이/ 하얀 것, 정처없는 것을 좋아하나니/ 그것들은 고향 떠난 나그네의 자매이며 천사이기 때문이다.

(헤세/ 흰 구름)

 

가을이 와도/ 아리따운 빛깔들은/ 잘리어 나가는데/ 목적지도 없이 길어야 하는 나를/알 수가 없구나.

(정의홍/ 가을을 아픔이라 불러본다)

 

어린 시절에는 여행이 교육의 일부이며, 좀더 나이가 들어서는 경험의 일부이다.

(태일/ 기러기 신세)

 

슬퍼하지 말아라, 머지 않아 밤이 온다/ 그때 우리는 창백 한 들판을 넘어/ 싸늘한 달의 미소를 보게 될 것이고/ 손과 손을 마주 잡고 쉬게 되리라.// 슬퍼하지 말아라, 머지 않아 때가 온다. / 그때 우리는 안식하며 우리 십자가는 해맑은 길섶에 나란히 서게 하고,/ 그 위에 비오고 눈이 내리리다. / 그리고 바람이 불어오고 또 가리라.

(헤세/ 방랑-크눌프에 대한 기념-)

 

한밤 자정에 시계소리 산골을 울리고./달은 헐벗고 하늘은 헤매고 있다. // 길가에 그리고 눈과 달빛 속에/ 나는 홀로 내 그림자와 걸어간다// 얼마나 많은 푸른 봄길을 나는 걸었으며/ 또 타오르는 여름날의 해를 나는 보았던가 ! // 내 발길은 지쳤고 내 머리는 회색이 되었나니/아무도 예전의 내 모습을 알지 못한다// 지쳐서 가냘픈 내 그림자 이제 걸음을 멈추나니/ 언젠가는 나그네길도 끝이 나리라.

(헤세/ 눈 속의 나그네)

 

혁련성에 해가 저문다. / 어디선지 들려오는 피리 소리를/ 나그네는 강가에서 눈 감초 듣는다. /아득히 돌아가는 천리 길/ 가을 바람이 차다/ 이런 때면 머리에 백발이 는다.

(진우/ 나그네)

 

이 겨울 마른 오통잎새/ 너 없이/ 나도 없어라// 나 떠돌다 오면/ 네 가 바람 자락 끝에서 움직인다/ 아뚜런 힘 없이// 바로 여기까지가 이 세상이다.

(고은/ 마른 오동잎새)

 

긴 밤 몸소 베틀에 앉아/ 멀리멀리 생각한다. 먼 곳에 가 있는 사람을/붉은 거문고 줄 보드라운 손가락으로 희롱하며/ 한 가락 타고 푸른 눈썹 찌푸리고/ 자리에 가득 찬 하늘가에서 모인 나그네/ 두서 없이 나그네 시름 새로와진다/ 젊은 남녀의 말엔 당치 않으나/ 어찌하리오 출정 견디지 못하겠는결.

(호적/ 여우육국연방면화)

 

가을은 나그네가 앞서 듣는다/ 이 아침, 뜰에 가지 흔드는 바람/하늘에 흐르는 기러기 울음/ 뒤보다도 먼저 나그네가 듣는다.

(유우석/ 추풍인)

 

난폭하게 버스가 소음을 지른다/ 고향 찾아온 손을 내려놓고/ 떠나 버린다/ 낯설게만 보이는 이방인/ 그는 잠시 움직일 줄 모른다.

(박이도/ 겨울)

 

나그네는 마음 내키는 대로 자기의 모험을 아름답게 꾸며서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R.E. 라스페/ 문하우젠 남작의 여행)

 

여행 성신은 자유, 즉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완전한 자유이다.

(W. 해즐리트/ 茶話)

 

나로 말하면 어딘가 가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가기 위해서 한다. 나는 여행을 위해서 여행을 한다. 중요한 일은 움직이는 것이다.

(R. L. 스티븐슨/ 당나귀와의 여행)

 

국토를 보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과 국민들을 보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루소/ 에밀)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 구름 흘러가는 /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꽃은 지리라./다정하고 한많음도/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 완화빈)

 

한 여자를 만나고부 터/ 나는 눈물 많이 간직한/ 구름이 되어/ 이상한 하늘을/ 떠돌아 다녔다.

(이상호/ 아버지가 없다)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는 빈 들판을 떠돌다 밤이면 눕는/ 바람이었는지도 몰라.

(안도현/ 그대를 만나기 전에)

 

나그네 홀로 자는 꿈속에서/ 소리도 없이 울고 싶어지듯이‥‥ 금빛으로 불든 구금 사이 에/ 그 고향이 떠오르듯이‥‥// 이 불꽃을 나누며 나누며/ 산을 넘고 골짝을 건너/ 네가 가는 모양이 보인다/ 나를 다시 부르러 가는 것 같은// 나도 모르는 꿈꾸는 마음에/ 이상스런 물결을 그득히 남고 영원한 노래의 샘이 흩어지며/ 나의 가슴으로 흘러간다.

(J. 아이헨도르프/ 참마음)

 

여관 차가운 등불, 홀로 잠을 잊었다. / 객심은 웬일로 쓸쓸해만 가는가./ 오늘 밤에 내 고향이 천 리 밖에 있는 술 알았다. / 센 머리, 내일 아침이면 한 살을 더 하는구나.

(F. 베이컨/ 수필집)

 

인간에게 있어서 정처없이 떠도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호메로스/ 오딧세이)

 

내가 큰 도시에 나그네로 갈 때엔 나는 매번 다른 방에서 자고, 다른 곳에서 먹고, 모르는 거리를 걸으며 지나치는 낯선 사람들을 바라보고 싶다

(K. 지브란/ 나는 네 행복을 기린다)

 

나그네길은 역시 생각할 일,즐거운 일들이 많은 것인가 보다.

(이원수/ 나그네 수첩)

 

길을 갈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나 나보다 월등한 사람과 가는 것이 좋다. 어리석은 사 람과 같이라면 혼자 가는 편이 훨씬 좋다.

(석가모니)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개선하려고 나라를 떠나는 자는 철학자지만, 호기심이란 맹목적인 충동에 따라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가는 자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

(G. 스미스/ 세계시민)

 

인생은 나그네, 마침내 집에 돌아온다. 인생은 나그네, 마침내 대지에 돌아온다. <*인간의 삶은 나그네처럼 헤매다 결국 자기 집으로 돌아오며 죽어서도 땅에 묻히게 된다는 뜻>

(에티오피아 속담)

 

나그네 귀는 간짓대 귀. < * 나그네는 주인에 대하여 신경을 쓰므로 소곤소곤하는 말도 다 듣는다 하여 이르는 말>

(한국 속담)

 

희망에 부풀어서 여행을 떠나는 깃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더 신나는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R.L. 스티븐슨/ 소년 소녀를 위해서)

 

그대는 월나라의 유랑인을 보지 못했느냐. 고향을 떠난 지 수일에 아는 사람만 보아도 기뻐했고, 또 달포 만에는 고향에서 보기만 했던 사람을 보아도 반가워 했으며, 일 년이 되어서는 비슷한 사람만 보아도 반가워했던 것을 그리고 또 이별한 지가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그리는 마음은 더욱 깊은 것을. 대체로 허공으로만 도피한 자는 풀덤불이 다람쥐의 길을 덮어 공중으로 뛰는 다람쥐와 같은 것이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뻐한다. 하물며 형제와 친척이 기쁜 낯으로 곁에 있는 자에 있어서야 그 기쁨 어떠하겠느냐.

(장자)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 가를 두고두고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G. 플로베로/ 서간집)

 

갖은게 많아도/ 별도 없어도/ 시인의 마음은/ 허전한 빈 접시/ 못내 채우려고/ 애써 방황하는 이름 없는 나그네

(윤종혁/ 갖은게 많아도 별로 없어도)

 

금수산의 아름다운 경치로 소년의 두 눈망울/ 꿈을 머금다 자라다 훌훌 떠나간 나그네 되었지.

(박화목/ 乙密)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나그네)

 

월백설백(月白雲白) 천지백(天地抑) 하니/ 산심 야심(山深夜深) 객수심(客愁深)이라‥‥‥

(동해지방 산염불)

 

회음역에서 입춘을 맞이하니/ 나그네 밥상에 생채 올라라./ 고향에선 지금 누가 술 마련했나,/ 잔들며 먼 길 떠난 나를 말하리.

(정도전/ 삼봉집)

 

별이란 별은 모두 땅 위에 퍼지고/ 나그네 한 사랑이 대리석 법가로 다가가서/손바닥을 그릇삼아 솟는 물을 뜨고 있다// 그 사람은 곧 떠난다. 다시 물줄기 소리 들리나니/아아 기뻐하여라, 여기에 너는 혼자 있지 않으니./먼 별빛 속에 수많은 나그네가 길을 가고/그리고 또 다시 네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카롯사/ 옛 샘)

 

어둠 속의 달같은/ 여행자/ 그는 대기속에 황금을 쏠아 붓는다.

(구에니 제이머프/ 시 I)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피소서./ 하늘의 별로서 슬픔을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간절히 슬퍼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슬픔처럼 가난한 것 없을지라도/ 가장 먼저 미래의 귀를 세우고/ 벽을 보며 밤새도록 떠돌며 가요서/ 떠돌면서 슬픔을 노래하며 가소서/ 별 속에서 별을 보는 나그네 되어/ 꿈속에서 꿈을 보는 나그네 되어/ 오늘밤 어느 집 담벼락에 홀로 기대 보소서.

(정호승/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같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다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꺽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어디가 피곤한 나그네의/ 마지막 거처가 될까/남국의 야자나무 그늘일까/라인 강변의 보리수 나무일까// 나는 낯설은 사람의 손으로/ 묻히는 것은 아닐까 사막 같은 데에/ 아니면 해변의 모래 속에서 잠드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좋다. / 그곳이 어디건/ 하늘이 나를 에워싸고 밤에는 별이 등불을 켜고 내 위를 비출 것이다.

(하이네/ 어디가)

 

나/ 저 높은 첨탑 위에/오르지 못함같이/ 내 발걸음 지성소에/ 감히 들지 못하네/ 그 울 안의 아름다움/헤아릴 수 없으니/지나는 길손처럼 아쉬움에 잠긴다. // 나/ 일생을 걸어가도/ 부끄럼 여전하여/ 내 눈으로 주의 얼굴/감히 뵙지 못하네/그 나라의 신비로움/ 다 말할 수 없으니/ 성 밖의 나무처럼/낙엽지며 서 있다. //나/ 헐벗고 굶주리는/ 괴로움 있더라도/ 천사들이 날개 펴는/ 저 땅에서 살려네/ 그 목소리 두려움을 다 전할 자 없는데/ 저 멀리/ 생명바람/ 속삭이듯 불어라.

(홍안의/ 순례자의 노래)

 

초록빛 산들바람 부드러이 흘러오니/봄이 다 정녕 봄이다. / 숲에는 뿔피리 소리가 흐르고 있고/ 힘찬 눈동자는 밝게 빛나며/여러 가지 모양의 소용돌이는/ 이상스러운 물줄기를 이룬다. / 그 흐르는 물의 눈짓이 고대를/ 아름 다운 아래 쪽 세계로 가자 청하니/ 나는 아

무것에도 거역하지 않으련다. / 바람은 너희에게서 나를 멀리 나른다. / 기분 좋게 햇빛에취하면/물줄기를 타고 나는 여행하리라./ 수 천의 목소리가 울러 내 마음을 부추기고/ 하늘 높이 오로라가 불타며 흘러가누나./여행길에 나서련다. 나는 그 여행길이/ 어디서 끝나느냐고 묻지 않으련다.

(아이헨도르프/ 상쾌한 여행)

 

인생의 봄에 벌써/ 나는 방랑의 길에 올랐다. / 청춘의 아름다운 춤들일랑/ 아버지의 집에 남겨둔 채로// 유산과 소유의 모든 것을/즐겁게 믿으며 버려 버렸다. /가벼운 순례자의 지팡이를 들고/ 어린이의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 // 길은 열려 있다. 방랑하라/ 언제나 상승을 추구하라는,/ 거대한 희망이 나를 휘몰고,/ 어두운 믿음의 말이 들린 때문에.//황금빛 대문에 이를 때까지,/ 그 문 속으로 들어가라고,/ 그곳에서는 현세적인 것이/ 거룩하고도 무상하지 않으리라.// 저녁이 되고 또 아침이 와도,/ 나는 한 번도 멈춘 일이 없다./그러나 내가 찾고 원하던 것은/나타난 일이 도무지 없다. // 산들이 행로를 가로 막았고/강들이 발걸음을 얽매었으나,/ 협곡 위에는 작은 길을 내고/ 거친 물살 위엔 다리를 놓았다. // 그리하여 동쪽으로 흘러가는/ 어떤 강기슭으로 나는 왔다. / 강의 길을 즐거이 믿으면서/ 나는 강의 품속에 몸을 맡겼다. //그 강의 유희하는 물결은/ 나를 큰 바다로 이끌어 갔다. / 내 앞에 드넓은 허공만 있고,/목적지에 가까이 가지 못했다. // 어떤 긱도 그곳으론 가지를 않고,/ 나의 머리 위의 저 하늘도/ 땅과는 한 번도 닿지 않는다. / 그리고 그곳은 결코 이곳일 수 없다.

(F. 쉴러/ 순례자)

 

세계는/ 나의 학교/ 여행이라는 과정에서/나는 수없는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 유쾌한 소학생이다.

(김기림/ 태양의 풍속)

 

새벽 첫 시간에/ 창가의 자리에 앉은 나그네는/ 눈을 비벼 잠에서 깨어/ 큼직하고 짤막한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 넘기고 하품을 하고

(J. 홀로웨이/ 밤 여행)

 

내 가는 길 외로움고/ 안내자도 없습니다. /주님/ 나와 함께하사/ 인도하여 주옵소서/수고로운/ 짐을 지고/ 오솔길을 걸어갈 때/ 주여 나를 도우시고 구원하여 주옵소서// 내 가는 길 고단하고/ 동행자도 없습니다. / 주님/ 나와 함께하사/ 위로하여 주옵소서/ 힘을 잃고/비척이며/산모퉁이 돌아설 때/주여 나를 돌보시고 새 힘 얻게 하옵소서// 내 가는 길 위태롭고/ 보호자도 없습니다. / 주님/ 나와 함께하사/ 안전하게 하옵소서/ 넘어지고/ 쓰러지며/ 험한 벼랑 올라갈 때/ 주여 나를 붙드시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내 가는 길 멀고 험해/ 인도자도 없습니다. / 주님/ 나와 함께 하사/ 축복하여 주옵소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물구비에 다시 설 때/ 주여 나를 이끄시고 형통하게 하옵소서/

(홍안의/ 순례자의 기도)

 

늘 한 집에 사는 두 나과네/ 그러나 행동은 영딴판이다. // 한 양반은 언제나 취해 있고/한 사람은.일년 내내 술을 안 마신다// 취했느니, 안 마시느니 서로 비웃지만,/ 얘기는 각각 통하지 아니한다// 꼬장꼬장 참 우둔하구나/ 건들건들 참 총명한 듯// 거나한 나그네에게 이르고 싶다/ 해가 떨어지면 촛불을 밝혀야지.

(도연명/ 음주 · 5)

 

금풍(金風)이 부는 밤에 나뭇잎 다 지거다/ 한천명월야(寒天明月夜)에 기러기 울어 제/천 리에 집 떠난 객이야 잠 못 이뤄 하노라.

(송종원)

 

보소서, 들떠 있는 나그네와 같은 나의 발이 여기 있나이다/ 은혜의 외침 소리를 듣고 가야할 발.

(베를렌/ 예지)

 

가인(歌人)인 나는 헤매다녔다/ 유럽의 포도밭 속을/ 나는 바람 속을 헤매다녔다/ 아시아의 바람 속을// 생활 속에서 가장 좋은 것을/ 생활 그 자체를/이 지상의 즐거움이나/ 아름다운 평화를 헤매다니 면서 나는 땄다/ 그렇다 따면서 걸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에서/ 나는 노래 속에서 노래했다/ 바람과 같은 자유스러움과 포도밭 속의 평화스러움을

(네루다/ 歌人인 나는 헤매다녔다)

 

바닷새가 울며 지새는/항구에서 月平錄 저 멀리/ 혼자서 가는 길/ 길손의 바다는 외로운길.

(이종석/ 혼자서 가는 길)

 

 

설 교 노 트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함

히11:13-16

 

서론

지상의 고향은 지금 갈 수 없고 육신적인 혈육들은 아직 대면할 길이 막연한 것 같으나 우리들에게는 더 나은 고향이 예비되어 있다는 축복으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그 밖의 여러 믿음의 조상들이 사모한 더 나은 본향에 대하여 말씀을 드릴 때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신 위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모든 인생은 순례자라는 말입니다.

13절에서 "외국인"이란 말은 "낯선 사람"이란 뜻이며 "나그네"란 "잠간 동안 거류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머무를 곳이 아니라 세상의 고향보다 더 좋은고향을 두고 보내심을 받은 순례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원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모든 믿음의 조상들뿐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도 거치신 생애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땅의 풍습을 좇을 수도 없고 이 땅에 애착을 둘 수도 없습니다.

앞서 간 성도들 그들이 겪은 모든 고난이 있었지만 그러나 이들은 더 나은 본향이 있기에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순례자이지만 거룩한 순례자들입니다. 이 순례자의 참 행진을 복 되게 걸어 나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저들에게 더 나은 본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시137편에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 그발 강변에 모여 빼앗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면서 울었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도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부르짖어 기도했다 했으니 그 얼마나 그리웠으면 목숨을 걸고 모험적인 기도를 했겠습니까? 본문의 여러 신앙의 위인들도 땅 위의 본향을 가려고 했으면 갈 수 있었을지라도 그보다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나온 바 본향 갈대아 우르가 있었지만 그곳보다 더 나은 하늘의 본향을 바라다보면서 살았다는 말씀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성이나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세계요, 갈대아 우르는 죄악의 도시이지만 더 나은 하늘의 본향은 영광과 찬송이 가득차 있고 땅 위 의 고향은 언젠가 무너질 유한한 곳이지만 하늘의 본향은 영원한 곳이니 그곳 만을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왜 더 나은 본향입니까? 지상의 고향에는 고난과 죄악이 가득하고 전쟁과 재난이 있을 수 있으나 그 본향에는 평화와 축복이 가득 차 있고 지상의 본향에는 도덕도 있을 수 있으나 그 본향에는 뻬앗기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으며 없어지지도 않는 기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 더욱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한다 했습니다.

이 사모한다는 말의 원어를 찾아보니까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계속적인 행위"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워하는 마음에 도취되어 있는 계속적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그네된 우리들은 하늘에 있는 시민권을 귀한 것으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빌3:20).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나라의 영원한 기업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들은 불러 주셨습니다. 본향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말하는 것인데, 이 말은 어원적으로 아버지라는 뜻으로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곳이라는 뜻입니다. 일시적으로 고난의 동산인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그 본향에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집을 떠난 나그네의 마음에는 항상 그곳의 모든 일들이 생각되고 그곳에 가서 살것만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객지에 나간 사람은 금의 환향하기를 원하여 절제하고 저축하여 기쁨으로 자랑스럽게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그 나라에의 금의 환향을 위하여 동록이 슬지 않으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 못하는 곳에 많이 저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곧 참된 감사 생활이며 선한 봉사에 이바지하는 것습니다. 그곳을 늘 사모하면서그날을 늘 기다리면서 정성 다하여 살아 나가기를 바랍니다.

 

결론

순례자인 우리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그곳에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마음을 두지맙시다. 우리에게 약속된 본향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곳보다 더 좋은 곳이며 영원한 기업이 기다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계속적으로 그곳만을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금의 환향할 수 있도록 감사하면서 선한 생활에 최선을 다하시다가 기쁨으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순례자

벧전2:11

 

서론

베드로전서는 당시 로마의 네로 황제의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에게 베드로 사도가 격려와 계속해서 그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본문 1장에서 베드로는 성도가 갖는 현재의 시련과 미래의 기쁨을 설명하면서 성도의 성화를 통한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와서는 성도가 원래의 위치가 어디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 지내는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우리는 믿는 그 즉시로 우리의 신분은 변화가 있게 됩니다. 육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라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는 제한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바울 사도께서도 빌3:20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거하나 땅에 속해 있지 않고 하늘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시민권은 그 사람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더 이상 사탄의 자녀가 아니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택한 자녀로서 이 세상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은 하늘나라를 그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됨을 늘 잊지 않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이 있어야 어려운 핍박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 사자의 밥이 될런지 모를 당시의 그리스도인에게 보내준 베드로의 편지는 참으로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에게도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2. 이 세상에서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을 지침할 때 "나그네와 행인"으로 말했습니다. 나그네가 어느 한 곳에 머무른다 해도 그 사람은 곧 그곳을 떠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을 향해 가는 나그네의 발길이 오늘날 세상을 가는 그리스도인의 발걸음입니다. 이 세상에 현재 살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구약 아브라함의 순례길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뒤 광야에서 40년을 보낼 때 그들의 광야의 순례길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 순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길만이 순례자의 순례길입니다.

 

3.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순례하는 삶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자들이 천국 백성입니다. 천국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란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로 이 땅에서 우리의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원하십니다(마5:16). 우리가 세상을 순례하는 순례자라면,즉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면 우리는 세상으로 좇아 온 것들을 배격하고 하나님께로서 온 것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으로 좇아온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요, 정욕을 따라 생긴 욕심입니다. 요한 사도도 요일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유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 인생은 순례자의 길이며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이 순례길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히 있는데 이는 천국이요, 순례하는 그 당시에도 소속은 하늘나라입니다. 순례자가 세상을 사는 태도는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께로 온 것들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순 종

성 경 활 용

1. 순종의 대상

(1) 하나님

(신13: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고

(2) 여호와의 말씀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3) 지도자

(신34:9)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4) 그리스도

(요3:36) 아들을 믿은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5) 부모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 육체의 상전

(골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7) 정사와 권세 잡은 자

(딛3: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8) 진리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케 하여

(9) 주의 명령과 경계의 말씀

(느9:34) 주의 명령과 주의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10) 복음

(롬10:16)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11) 부르심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2. 순종의 자세

(1) 두려워하고 떪으로

(고후7:15) 저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및으로 자기를 영 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2)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신30:2)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3) 온 가족이 평생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렘35:8) 우리에게 명할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4) 예비하여

(딛3: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5) 마음으로

(롬6:17)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6) 모든 일에

(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7) 범사에

(고후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3. 순종의 상

(1) 의에 이름

(롬6:16)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2) 온전하게 됨

(히5: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3) 영혼이 깨끗하여 진실히 사랑하게 된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4) 성령을 받음

(행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5) 살게 된다.

(신4:1)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6) 자손까지 복을 받는다.

(신5:29)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7) 형통하게 된다.

(수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8) 그리스도 사랑 안에 거한다.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9)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요14:23)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10) 복을 받는다.

(약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4. 불순종의 종말

(1) 까마귀와 독수리의 밥이 됨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2) 번성치 못함

(신28:62)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남는 자가 얼마되지 못할 것이라

(3) 천국에 들어가지 못함

(히4:6)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4) 영생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음

(요3:36)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5) 넘어짐

(벧전2:8)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6) 죽임을 당함

(왕상20:36)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7) 안식에 들어가지 못함

(히3:18)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8) 저주가 임함

(신28:15)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5. 순종치 않는 자의 특징

(1) 주를 거역하며 선지자들을 죽인다.

(느9:26)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 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2)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한다.

(행14:2)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3)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었다.

(롬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4) 거스려 말한다.

(롬10: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5) 완악하고 패역하다.

(신21:20)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관련원어풀이

1. hh;Q;yI 익크하-

순종, 복종, 예속.

(창49:10, 잠30:17)

 

2. !Wq 쿰-

(1) 일어나다.

(창19:1, 레19:32)

(2) 견고하다, 확증되다.

(창23:17, 사8:10)

(3) 들어 올리다, 세우다.

(사44:26, 58:12)

(4) 세워지다, 설치되다.

(출40:17)

(5) 확립되다.

(렘35:14)

(6) 일어서다.

(욥20:27, 시17:7)

 

3. bv'q; 카-솨브

(1) 잘 듣다, 경청하다.

(사32:3)

(2) 주의하다, 잘 듣다.

(느9:34, 시10:17)

 

4. [m'v; 솨-마

(1) 듣다, 경청하다, 유의하다.

(창23:8, 왕상12:15)

(2) 순종하다, 주의하다.

(출24:7, 삿2:20)

(3) 듣게 되다, 유의되다.

(삼상1:13, 전9:16)

(4) 순종하다.

(시l8:45)

 

5. peivqw 페이도-

(1) 설득하다, 말로 믿게 하다, 확신케 하다.

(행18:23, 19:26)

(2) 친구로 삼다, 호의를 얻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다, 화해시키다, 안정시키다.

(마28:14, 갈1:10)

(3) 청종하다, 순종하다, 따라가다.

(행5:36, 히13:17)

(4) 신임하다, 확신을 가지다, 믿다.

(롬2:19, 히2:13)

 

6. peiqarcevw 페이다르케오-

사람의 권위를 따르다, 순종하다.

(행5:29, 딛3:1)

 

7. uJpeivkw 후페이코-

복종하다, 굴복하다, 예속되다.

(히13:17)

 

8. uJpakouvw 후파쿠오-

(1) 말을 듣다, 청종하다, 순종하다, 따르다, 복종하다.

(롬6:16, 골3:22)

(2) 듣다, 청종하다, 열다, 대답하다.

(행12:13)

 

9. uJpakohv 후파코에-

(1) 청종, 순종.

(롬5:19, 벧전1:14)

(2) 공손, 온순, 유화.

(롬16:19, 고후7:15)

(3) 복종, 항복.

(롬1:5, 히5:8)

(4) 응락, 추종.

(몬1:21)

 

10. uJpotavssw 휘포타쏘-

(1) 복종시키다, 종속시키다.

(롬8:20, 히2:8)

(2) 예속되다, 종속되다.

(롬8:20, 고전15:28)

(3) 자신을 복종하다, 예속당하다.

(눅2:51, 골3:18)

설교예화자료

법적이 아니고 절대적인

 

나는 어느 신앙 모임에서 케스윅 지방에 와서 큰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한 한 사람을 기억합니다. 그는 어떤 축복을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글쎄요, 저는 케스윅 지방에 오기 전부터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나의 왕이라고 생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리스도가 입헌군주이시고 저는 수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주님이시며 나의 생애를 완전히 바꾸셨고 큰 축복을 주신 분이십니다. " 라고 대답했습니다.

 

 

장교 아드리안의 결심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 맥시미안의 친위대 가운데 아드리안이란 젊은 군인이 있었는데 그는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광적인 탄압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고문당할 때 그들이 보여주는 침착성과 담대함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드리안도 자신이 용감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들의 용기에는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정박받는 기독교인들에게서 전쟁에서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더 영웅적 행위를 보았습니다.

아드리안은 28세 되던 A.D.280년에 그의 재기와 용맹으로 해서 친위대의 두 번째 서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는 고문받던 한 기독교인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당신에게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도 그러한 힘과 기쁨을 주느냐?" 그러자 그 순교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아드리안은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는 이방인 재판관들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가서는 선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이름을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받은 저들의 이름 가운데에 기록하시오. 나도 기독교인이 되겠소."

그는 개종한 후 23년 동안 수많은 고통을 받았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굽히지 않다가 A.D.303년에 니코미디어에서 사형당했습니다. 그후 17세 기 동안 그는 군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진정한 기독교인의 용기로 "내 이름을 기록하시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갈대와 올리브나무

 

갈대와 올리브나무가 각자의 힘과 인내력에 대해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올리브가 갈대는 너무 약해서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고 하자, 갈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후 곧 강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갈대는 자신을 광풍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내맡기며 어려움 없이 그 모진 바람을 견디어 냈습니다. 그러나 올리브나무는 그 강풍을 견디려하다가 명렬한 기세에 눌려 그만 적이고 말았습니다.

 

 

맡기는 생활

 

"나는 내 아들뿐 아니라 가장 친한 친구도 잃었습니다. "고 프레드 프린즈의 어머니인 메리 프루엣젤이 로버트 슬러 박사에게 말했습니다.

"왜, 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취하였습니까? 나는 이처럼 계속 외쳐대었으나 주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의 대답을 구하고자 하는 자세로 질문을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비로소 대답을 해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 프레디가 지금 좀더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

메리는 새로운 영혼을 얻었습니다. "이제 나는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내일의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더불어 이야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각자의 마음속에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심어 주셨습니다. 조용한 장소를 물색하셔서 하나님께 묻고자 하는 말씀을 질문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대답할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참된 해결책이 여러분 앞에 분명히 제시될 것입니다.

 

 

견습 수도사

 

앗시지 후란시스가 경영하는 수도원에 어느날, 두 사람이 새로 입원 수속을 했습니다.

성 후란시스는 곧 그들을 데리고 수도원 농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배추를 심으라고 하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뿌리는 흙 위로 드러나게 하고, 줄거리는 땅속에 파묻어라."

그 중의 한 사람은 시키는 대로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말했습니다.

"교부님, 배추는 그렇게 심는 것이 아닙니다. "

성 후란시스는 이에 대답했습니다.

"아, 이 사람, 임자는 우리 수도원에는 적합하지는 않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를 퇴원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록·시·묘사

 

지배하기 전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라.

(솔론)

 

일반적으로 말하면, 사랑을 받는 자에 대해서 보다도 무서워하는 자에 대해서 사람들은 한층 더 잘 순종한다.

(N. 마키아벨리)

 

순종하라.너의 운명에 염려 말고 순종하라, 너는 너를 위하여 존재할 수는 없게 되었다. 다만 남을 위해서만 살 따름이다.

(L. 베토벤 / 수기)

 

상대를 이쪽에서 순종시키는 것보다도 이쪽에서 눈치보아 잘하는 편이 때로 지름길이며 유익하다.

(J.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왜 순종하는가. 그 이유는 거의 문제되지 않았다. 우리는 양친과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곧이들어 왔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의 부모이자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들 권리의 원천은 그들 자신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들의 지위에 있는 것같이 보인다.

(H. 베르그송/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순종과 규율 없이는 결코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다.

(A. 지드/ 가공회견기)

 

순종하기를 증오하는 자는 지배할 수 없다.

(J. 플로리오/ 플로리오 최초의 성과)

 

귀인에 대해서 나는 머리를 숙인다. 그러나 나의 정신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B. L. B. 퐁트넬)

 

순종은 반항보다도 도리어 강하다. 순종은 덤벼드는 폭력을 부끄럽게 만든다.

(R. M. 릴케)

 

나는 사랑에의 눈먼 순종이 때로는 폭군의 채찍에 강요된 순종보다 더욱 해로울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폭군의 노예에 게는 희망이 있지만 사랑의 노예에게는 희망이 없는 법이다. 사랑은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며, 사랑이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부터 순종을 끌어낼 때, 그것은 폭력으로 변하게 된다.

(M.K. 간디/ 영 인디아)

 

순종의 미덕은 옛날에는 무리 없이 강요되고 있었지만, 지금은 낡은 인습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옳은 것이다.

(B.A.W. 러셀/ 행복의 철학)

 

나는 사랑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방법 입니다/ 그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 그것은?/ 순종입니다. / 그러면 맹목적인 사랑이지요. 그래요./ 바로 고대(古代)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나는 눈을 뜨게 하고 싶습니다.

(R. 롤랑)

 

순종만이 고독과 불안을 회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또 다른 방법, 즉 생산적이며 그리고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을'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발적인 관계"이다. 이것은 개성을 배제해 버림이 없이 개인을 외부 세계와 결부시키는 방법이다.

(E.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억센 시간엔/ 순종과 힘을 연결하는 너/ 선과 악의 그 너머/ 야광에 비치는 가슴을 가져오렴.

(A. E. M. 노아유/ 사랑)

 

아마 나는 순종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점쟁이 말에/ 아마도 내 마음의 근심에/ 그 피를 꿈꾸면서, 그 술을 엎지르면서

(P. 발레리/ 잃어버린 술)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한용운/ 복종)

 

 

설 교 노 트

 

모든 명령을 지키라

신11:8-15

 

서론

하나님께서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지키는 여부에 따라서 화와 복이 좌우됩니다.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시는 명령은 무조건 순종하면 복이 되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화가되는 것입니다. 복과 저주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명령에 순종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1. 강성하여 집니다.

본문 8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죄악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무척 강해지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말하기를 28장 1절에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거니와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힘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죄를 멀리하면 강하여지는 것입니다.

 

2. 좋은 날이 오래 계속되어 집니다.

본문 9절에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리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기름진 땅을 말하는데 그와 같이 좋은 땅에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땅에서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 복락을 누리고 영원무궁토록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은 그 곳에 가서 영원히 영생 복락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사람이라고 보아도 잘못은 아닌 줄 압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요1서 4:6).

 

3. 세초부터 세말까지 형통하여 집니다.

본문 1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란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은 한 해의 첫날부터 끝날까지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지켜주신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눈이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지극한 애정과 관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유익한 점은 많지만 해로운 점은 없다는 것입니다. 한 해를 끝까지 지켜주신다면 이에 더 좋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결코 우리들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고 복받는 비결임을 알고 기쁨으로 그의 명령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응함

창22:1-18

 

서론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임할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기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고전10:13).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게 될 때 어떻게 됩니까?

 

1. 시험에 합격할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시험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백 세 때 얻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앙적으로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제물로 받지 아니 하시는데 사람을 제물로 드리라는데 더욱 큰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시험에 무난히 합격하였습니다.

 

2. 예비된 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 11-14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순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비된 복을 받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3. 상상하지도 못한 복을 받게 됩니다.

본문 15-18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 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요구대로 응한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그의 말씀에 응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응하기만 하면 틀림없이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대로 응하셔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하여 큰 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다

출24:1-11

 

서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를 요구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말씀대로 준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을 원하시고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에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들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2. 피로 세운 언약대로 하였습니다.

본문 4-8절에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 이 지파대로 열 두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약식에서나 제사에 있어서 피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피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 후에 뿌려졌고 그의 말씀이 계시된 후에 뿌려졌으며 제단을 쌓은 후에 뿌려졌습니다. 피는 대속을 암시하고 피는 구원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상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였습니다.

 

3. 말씀을 준행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9-11절에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와 존귀한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준행한 자들이 받은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행하고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된 자들에게 오직 그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많은 복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명을 좇아

민9:15-23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할 때에 광야의 길은 험난하기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한 발자욱도 나아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름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구름의 지시를 따라서 행동하여 하나님의 명을 좇은 것입니다.

 

1. 구름이 떠오르면 앞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구름을 중심으로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즉, 구름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였습니다. 구름이 지시하지 아니하면 자기들의 자의로 행동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구름의 지시가 곧 하나님의 지시나 같기때문에 구름의 지시에 절대 복종한 것입니다.

 

2. 구름이 머무르는 곳에 진행을 멈추었습니다.

본문 19-22절에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진행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행진을 멈추고)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구름의 지시를 받아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움직이는 시기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고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통하여 지시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지시가 있으면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는 것입니다.

 

3.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좇아 진행하고 또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모세를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달된 명령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급하게 서둘거나 게으리지 않게 적절한 명령에 입각하여 신속 정확하게 움직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 가는 곳에 그들도 가고 말씀이 머무는 곳에 그들도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결론

아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었고 악조건 속에서도 서두르지 아니하고 참고 기다리며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아니하여도 순종하였습니다. 즉, 여호와의 명을 좇아 행동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은 점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4:1-14

 

서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까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성기라고 하시는가를 먼저 알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롬12:2).

 

1. 먼저 배워서 지켜야 합니다.

본문 1절에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무조건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배워서 알고난 후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교육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2. 가감 없이 지켜야 합니다.

본문 2절에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과정에서 어떤 면에서는 더하고 어떤 면에서는 빼고 해서 지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지켜야 합니다.

 

3.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 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로서 지켜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수직관계입니다.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나서 수평으로 사람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메22:37-40)"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0-21)"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모든 계명을 모두 지키는 것이 됩니다(롬13:8-10).

 

결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큰 복을 약속하였습니다(신28:1-14).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으며 자녀도 짐승도 채소도 곡식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서 큰 복을 받아야하겠습니다.

슬 픔

성 경 활 용

1. 슬픔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 성격

(1) 하나님께서 아심

(출3: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2) 기도에 응답하신다.

(시116:2-3)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음부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3) 주님이 담당하심

(사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4) 춤이 되게 함

(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5) 희락으로 슬픔을 대신케 한다.

(사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여

(6) 안식의 살을 주신다.

(사14: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7) 천국에는 슬픔이 없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2. 슬픈일이 생기는 이유

(1) 하나님의 징계로

(레10:6)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의 치신 불로 인하여 슬퍼할 것이니라

(욥42:11)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히12:11)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2) 자신의 죄악으로

(시38:18)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3) 아내의 죽음으로

(창23: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 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4)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으로

(시119:158)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를 보고 내가 슬퍼하였나이다

(5) 나이 듦으로

(시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 하면 팔십 이 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전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신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6) 범죄로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3. 성경에 나타나는 슬퍼하는 모습의 예들

(1) 생명을 보냄

(시31:10)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2)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

(램14:17)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애3:49) 내 눈의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3) 눈이 눈물에 상함

(애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4) 독자를 잃음같이

(렘6:26) 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굴며 독생자를 잃음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4. 슬플 때 해야 할 일

(1) 여호와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기도한다.

(시31:9)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2) 피곤한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운다.

(히12: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5. 하나님께서 슬퍼하시는 때

(1)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반항할 패

(시78:40)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고

(2) 그 백성이 명령을 듣지 않을 때

(사48:18)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3) 하나님의 대적에게 보응할 때

(사1:24)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6. 그리스도인이 슬퍼할 때

(1) 원수로 압제당할 때

(시43:2)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2)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를 볼 때

(시119:158)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를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3) 애매하게 고난을 받을 때

(벧전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등 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7. 슬퍼하는 자의 결과

(1) 눈과 몸과 혼이 쇠한다.

(시31:9)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관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2) 위로를 받는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 마음이 더 좋게 된다.

(전7: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신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4) 연단된다.

(히12:1.1)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5) 마음을 소성케 하신다

(사57:15)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6) 구원해 주신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관련원어풀이

1. lb"a: 아-발

(1) 슬퍼하다, 애도하다.

(호10:5, 암8:8)

(2) 슬퍼하게 하다, 애도케 하다.

(겔31:15, 애2:8)

(3) 애통자처럼 행동하다, 슬퍼하다.

(창37:34, 삼상15:35)

 

2. lbea::; 아-벨-

슬퍼하는, 애도하는.

(창37:35, 애1:4)

 

3. @w<a: 아-웬

(1) 텅빔, 공허, 헛되고 공허한 것

(삼상15:23, 사41:29)

(2) 거짓, 사기, 사악, 불법.

(민23:21, 욥36:21)

(3) 불행, 역경, 재난.

(시55:4, 잠22:8)

(4) 슬픔.

(호9:4)

 

4. lb,ae 에-벨

슬픔.

(시60:20, 렘16:7)

 

5. hm;h; 하-마-

(1) 포효하다, 으르렁 대다, 신음하다.

(시55:18, 겔7:16)

(2) 웅성거리다, 소란하다.

(왕상18:41, 사51:15)

(3) 움직이다, 지적 감동이 동요하다.

(시42:6, 렘4:19)

(4) 방황하다, 돌아다니다.

(잠7:11, 9:13)

 

6. y/h 호-이

(1) 위협이나 두려움에 대하여 화로다.

(사5:8, 11)

(2) 아! 슬프도다.

(사17:12)

(3) 아, 슬프도다! 내 형제여!.

(왕상13:20)

(4) 권고에 대해 호!, 어이.

(사18:1, 슥2:10)

 

7. hl;j; 할-라-

(1) 문지르다, 갈아지다, 매끄럽다, 힘이 마멸되다, 허약하다.

(삿16 . 7, 사57:10)

(2) 병들다.

(창48:1, 왕하1:2)

(3) 고통당하다.

(잠23:35)

(4) 힘이 소멸되다. 지치다.

(렘12:13)

(5) 아프다. 병들다.

(단8:27)

(6) 주의하다, 염려하다.

(암6:6)

(7) 병들게 하다, 괴롭히다.

(신29:21)

(8) 슬프게 하다.

(잠13:12)

(9) 상하다.

(왕상22:34)

 

8. ba'K; 카-에 -브

(1) 고통하다, 괴로워하다.

(창34:25, 욥14:22)

(2) 고통케 하다.

(욥5:18, 겔13:22)

(3) 괴롭게 하다, 파괴하다, 진멸하다.

(왕하3:19)

 

9. s['K' 카아스

(1) 화나게 함, 슬픔.

(잠17:25, 전1:18)

(2) 분노.

(신32:19, 스20:28)

(3) 분노들.

(왕하23:26)

 

10. bx'[; 아-차브

(1) 일하다, 형성하다, 형태를 만들다, 고통으로 수고하다, 고생하다. 괴로워하다, 괴롭히다.

(왕상1:6, 대상4:10)

(2) 고통하다.

(전10:9)

(3) 괴롬을 당하다, 슬퍼하다

(창45:5, 삼상20:3)

(4) 형성하다.

(욥10:8)

(5) 슬프게 하다, 괴롭히다.

(시56:6, 사63:10)

(6) 수고하다, 일하다, 봉사하다, 예배하다.

(렘44:19)

(7) 슬프게 하다.

(시78:40)

 

11. rd'q;e 카-다르

(1) 더럽다, 어지럽히다.

(욥6:16)

(2) 더럽다, 검은 색깔이 되다.

(욥30:28)

(3) 슬퍼하게 하다, 애통케 하다.

(겔31:15)

(4) 어둡게 하다.

(겔32:7, 8)

 

12. [['r: 라-아

(1) 큰 소리를 내다, 깨트리다, 박살나다.

(욥34:24, 렘11:16)

(2) 악하다, 해롭다, 질투하다, 슬프다.

(신15:9, 전7:3)

(3) 악하게 만들다, 악을 행하다,악하게 살다.

(창44:5, 사1:16)

 

13. luvph 루페

(1) 아픔, 고통.

(요16:21, 히12:11)

(2) 슬픔, 걱정.

(눅22:45, 고후9:7)

(3) 슬픔의 원인, 고민, 고통.

(벧전2:19)

 

14. skuqrwpov" 스쿠트로-포스

슬픈 기색을 한, 우울한 모습을 가진.

(마6:16, 눅24:17)

설교예화자료

슬픔으로 인하여 죽은 소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정 신과 과장이면서 "억제된 슬픔"의 연구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온 에릭 린더만 박사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오랫동안 괴로움을 감내해야만 했던 한 어린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매우 헌신적이었으며, 병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 앞에서는 슬픔의 눈물조차 보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아버지가 죽자. 그녀의 절친한 친구 한 사람은 그녀에게, 심장이 약한 어머니 앞에서는 절대 슬픈 내색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얼마 후, 정신적으로 억눌린 그녀에게 궤양이 생겼습니다. 억압된 신경계로 인하여 그녀는 서서히 안으로 썩어들어 갔습니다. 그녀 자신이 스스로 허락치 않았던 수많은 눈물과 그것의 억압된 슬픔으로 인하여 결국 그녀는 죽고 말았습니다.

 

 

스펄전이 낙담한 순간

 

스펄전은 과가 얼마나 영적, 정신적으로 낙담하고 건강을 해쳤던가를 이야기했습니다. 휴양을 떠나기 앞서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여 왜 저를 버리십니까? "라는 설교를 했습니다.그 경험은 너무도 슬픈 것이어서 다시는 격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후 한 사람이 그를 보러 왔습니다. 스펄전은 그를 가리켜 "정신병원에서 막 도망친 사람 같았다. "고 했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손은 떨리며 정신이 나간 듯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스펄전에게, 그의 설교를 들은 뒤 그만이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스펄전은 자신의 슬픈 경험에서 깨달은 것으로 그를 위로했습니다.

5년 동안 스펄전은 그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어제밤(그는 대학에서 앞서 말한 것을 강의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았소. 그는 꼭 낮과 밤처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소." 스펄전은 그런 괴로운 경험을 몇 번이고 기꺼이 다시 겪겠다고 결심했습니다.이제 그는 비슷한 고통에 처한 이들을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런 경험을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록·시·묘사

 

슬픔은 마음이 죽는 것보다 크지는 않고, 몸이 죽는 것은 그것에 버금간다

(장자)

 

슬픔이란 자기 부정에서 오는 표현이다.

(장자)

 

사사로울 슬픔을 밖으로 내미는 것은 고상치 못한 감정일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도 하다. 따라서 극도의 슬픔은 밖으로 내밀려고 하여도 내밀어 지지도 않는다. 깊은 물이 소리나지 않는 것처럼

(변영노/ 오비튜어리)

 

슬픔은 피로의 한 형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A. 지드/ 일기)

 

슬픔은 가장 위대한 이상주자이다.

(J.R. 로우얼 / 책 중에서:스펜서)

 

참으로 비탄은 고통의 버팀목이다

(아에스킬루스/ 유고집)

 

가벼운 슬픔은 수다스럽지만, 큰 슬픔은 벙어리가 된다.

(세네카/ 도덕론)

 

이유 없는 슬픔이란 게 있다 그것은 탄생이전 먼 태초에 있었던 인간의 슬픔을 회억(回憶)하는 것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슬픔은 그 자체가 약이다.

(W. 쿠퍼/ 사랑)

 

슬픔은 불청객이다.

(C.H. 스퍼전 / 농부 존)

 

슬픔은 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그것은 빛나는 기쁨과 같은 정도로 강력한 생활의 일부이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들은 지극히 무훈련한 것이 될 것이다.

(F.A.R. 호댕/ 예술과 자연)

 

슬픔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서 가운데 최고의 것이고, 통시에 모든 예술의 전형이요, 시금석임을 이제야 나는 알았다.

(0.F.0.W 와일드/ 옥중기)

 

억눌린 슬픔은 질식한다.

(오비디우스/ 애가집)

 

슬픔은 일순의 고통이다. / 슬픔에 잠김은 인생의 큰 실수이다.

(B. 디즈레일리/ 비비안 그레이)

 

큰 슬픔은 불행한 자를 변모시키는 신성한 무서운 광휘(光輝)이다.

(V. 위고/ 레 미제라블)

 

슬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하나는 덜 수 있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덜 수 없은 슬픔이다.

(P.S. 벅/ 통행교)

 

가장 큰 슬픔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야기되는 것이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남 몰래 슬퍼하는 자가 진심으로 슬퍼한다.

(마르티알리스/ 경구집)

 

슬픔만큼 신속히 불쾌감을 주는 것은 없다. 초기의 슬픔은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지만 슬픔이 만성이 되면 조소를 받는데, 당연한 일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혹자는 슬픔을 딛고 서고, 혹자는 슬픔 밑에 깔린다.

(에머슨/ 지성의 자연사:비극)

 

행복은 육체에 이롭지만, 정신의 힘을 길러주는 것은 슬픔이다.

(M. 프루스트/ 지나간 일의 회고)

 

마냥 슬픔에 잠긴다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용기를 앗아갈 뿐더러, 회복하려는 의욕마저 잃게 하기 때문이다

(아미엘/ 일기)

 

슬픔은 오해된 즐거움인지도 또른다.

(R. 브라우닝)

 

실제 슬픔은 희망과 양립하지 않는다. 슬픔이 제 아무리 크튼 상관없이, 희망은 100척 이상 더 높이 솟는다.

(로트레아몽/ 시집)

 

슬픔은 자신의 고독을 잡아먹고 산다‥‥ 분주한 사람들에게는 눈물 흘릴 여유가 없다.

(바이런/ 포스카리가의 두 사람)

 

사람은 출생할 때 슬퍼 해야지, 죽을 때 슬퍼해서는 안 된다.

(몽테스키외 남작/ 페르시아인의 편지)

 

슬픔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면, 슬퍼한 다른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기쁨의 선발자인 슬픔은, 슬픔을 뒤따르는 기쁨보다 더 바람직하다.

(사디/ 굴리스탄)

 

하늘이 치료할 수 없는 슬픔은 땅에 없다.

(T. 무어/오라,슬픔에 잠겨 있는 자들이여!)

 

슬픔 마음이여, 침착하고 탄식을 멈추라. 구름 뒤엔 아직도 햇빛이 빛나고 있다.

(롱펠로우/ 비오는 날)

 

불행이 좋아하는 애처로운 구제는 슬픔의 우의 (友誼)이다.

(몬거머리/ 서인도제도)

 

슬픈 자에게는 애달픈 가락이 가장 달콤한 음악이다.

(P. 시드니 경/ 아케이디아)

 

아무리 예리한 슬픔도 좋은 수입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것은 없다.

(L.L.P. 스미스/ 뒷생각)

 

분주한 벌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

(W.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

 

자기 슬픔을 털어놓는 자는 슬픔을 치료하는 약도 곧잘 찾아낸다.

(스펜서/ 요정 여왕)

 

가엾게도 인간은 본래 그 바탕이 몹시 번민하여, 무척 괴로워하고 슬퍼 하도록 마련되어 있기에, 기쁨을 받아들일 소질은 빈약하다.

(G. 뒤 모리에/ 페트르 이베송)

 

인류가 갖는 온갖 슬픔 중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워 보이는 것은 자기만이 겪는 슬픔이다.

(T. 후드/ 킬맨세그 양:그녀의 슬픔)

 

슬픔의 새가 머리 위를 나는 것을 막지는 못하지만 내 머리털 속에 등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중국 속담)

 

좀은 옷을 좀먹고 비탄은 마음을 좀먹는다.

(러시아 속담)

 

방 안에 기쁨이 있을 때, 슬픔은 대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덴마크 속담)

 

내가 느끼는 슬픔을 말로 나타내는 것은, 반쯤 죄가 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말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속의 넋을 반쯤 드러내고 반쯤 감추기 때문이다.

(테니슨/ 회상록)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은, 우리 인간에게서 떼어버릴 수 없는 유일한 슬픔이다.

(W. 어빙/ 수필집)

 

가장 오래 가는 슬픔이라도 마침내는 탈출구를 찾는다.

(W. 로울리/ 새로운 경이)

 

시간이 덜어 주지 않는 슬픔은 없다.

(세르비우스 수플리키우스/ 키케로 서간집)

 

슬픔은 우리 인간의 불행한 특권이다. 우리에게 흘리기 쉬운 눈물을 준 신들은 눈물을 흘리는 더 많은 원인을 주었다.

(W. 화이트헤드/ 크루사)

 

지나간 슬픔에 새 눈물을 낭비하지 말라.

(에우리피데스/ 알렉산데르)

 

슬픔이 잠자고 있을 적에는 깨우지 말라.

(T. 플러/ 잠언집)

 

기쁨은 구두쇠일는지도 모르나, 슬픔의 지갑은 아끼지 않는다.

(R.H. 스토더드/ 페르시아 노래)

 

기쁨은 친구가 있지만, 슬픔은 고독만이 있다

(B. 네이던/ 삼나무 상자)

 

큰 기쁨은 울고, 큰 슬픔은 웃는다.

(J. 루/ 교구 목사의 명상)

 

슬픔은 도를 넘지 말고,/ 불행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유베날리스/ 풍자시집)

 

슬픔은 가장 튼튼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마음의 동요를 가르쳐 준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두고두고 오래 슬퍼하기보다는 조금 잃고 따는 편이 낫다.

(랭런드/ 농부)

 

쌍가마 속에도 설움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걱정과 설움이 있다는 뜻>

(한국 속담)

 

우리들은 어찌하여 슬픔을 미리 걱정해야 하는가? 그것은 마치 죽음이 두려워서 죽는 자와 같다.

(J. 데넘 경/ 소피 일가)

 

손톱은 슬플 때마다 돋고, 발톱은 기쁠 때마다 돋는다. < *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많다는 뜻>

(한국 속담)

 

적당한 애도는 고인의 권리(고인에 대한 의무)이지만, 지나친 비탄은 산사람에게는 적이 된다.

(W. 셰익스피어/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슬픔이 부러진 뼈를 이어 준 적이란 없다.

(디킨즈/ 보즈의 스케치:술집)

 

슬픔의 유일한 치료법은 행동이다.

(G.H. 류이스/ 스페인 연극)

 

힘 없는 촛불 아래에 사리뜨리고 외로이 누워 있는 오오 님이여!/ 눈물의 바다에 꽃배를 띄웠습니다/ 꽃배는 님을 싣고 소리도 없이 가라앉았습니다/ 나는 슬픔의 삼매에 아공(我空)이 되었습니다.

(한용운/ 슬픔의 삼매)

 

시간보다 많은/ 눈물/ 눈물이 눈물을 쌓지 않도록/ 꽃은 깊은 밤/ 홀로 깨어나/ 삶의 의미를 피운다.

(이탄/ 꽃은, 깊은 밤 홀로)

 

아아, 주여/ 당신과 하나가 되는 것은/ 이 온 세계의 슬픔을 짐지는 일입니다/ 세계는 슬픔으로 맥박치고 있는/ 커다란 나무입니다.

(가타세 히로코/ 향유의 나무)

 

지난 날에 잠시 동안 차지하였던/ 승리의 그 날이 화가 되었나니/ 그때 느꼈던 그 기쁨의 날이/ 얼마나 헛되고 짧았던가/ 그 날은 재빠르게 지나가 버리고/ 뒤이어 죽음의 사자가 이르렀구나/ 기쁨의 웃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 크나큰 슬픔이 밀어 닥쳤나니,/그대가 간 죽음의 나라를 찾아/ 죽음을 이끌고 나 또한 가랴?/ 우선 슬픔을 그대에게 아뢰나니/ 슬픔의 반려가 되기 위함이라

(아바엘라르두스/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하는 다윗의 노래)

 

처음 눈물이 녹을 때/ 마음의 슬픔이 와락 흘러 내린다/ 오오 하나님! 처음 눈물을 주십시오// 내 눈물은 얼음이요/ 슬픔은 얼음의 장미꽃/ 내 눈물은 얼음이라/ 마음은 얼어있다.

(옵스트펠더/ 성가)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종소리는/그 종소리는 내 괴로움이 사라지게 하고/ 나의슬픔에 기쁨의 빛을 물들게 한다/ 크리스마스의 기쁘고 기쁜 종소리

(테니슨/ 인 메모리엄)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한용운/ 님의 침묵)

 

나에게 죄가 있다면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의 슬픔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에게 당신의 의심의 허물과 나의 슬픔의 죄를 맞비기고 말겠습니다.

(한용운/ 의심하지 마셔요)

 

그 모습 내 눈에 비치지 않던 그 날부터/ 이 가슴 죽음에 어울릴 슬픔으로/ 나를 괴롭혔네.

(G. 아폴리네르/ 요정 로렐라이)

 

불순한 일기-/떠나지 못하는 나와 이웃을 두고/ 무엇보다 귀한 목숨들이 왕래하는// 풍경도 없이/ 당신만 아픈 슬픔으로 넘쳐나는/ 지금은 방가(放街)

(최은하/ 통로에의 기원)

 

슬프다는게 자랑은 못 되지만 그래도 슬프다는 것은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귀중한 감정이다.

(이봉구/ 산타 마리아)

 

차차 진동이 커 가면서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스며 나오고 있다. 역사처럼 긴 슬픔이 가야금 줄을 타고 먼 대서 전해 오는 그런 단장의 슬픔이다.

(이무영/ 농민)

 

들려오는 먼 곳의 종소리들도/ 이제는 더 질문하지 않는다/ 이제는 고개숙여 대답할 때다/ 네 무거운 영혼을 생명의 알맹이로 때려/얼얼한 슬픔은 더 깊이 울리게 할 것이다.

(김현승/ 가을이 오는 날)

 

열매에 뻗치어 이브는 따먹고 말았다/ 땅이 상처를 느끼고 자연이 그 자리로부터/ 그 온갖 기능을 통해 탄식하여 만사는 끝났다고/ 슬픔의 표적을 보인다.

(밀턴/ 실락원)

 

한 세상 만나던 괴롬과 슬픔과/ 그 끝에선 하나로 그리움이 되고

(김현승/ 지평선)

 

새벽잠 깨면/ 벌써 출렁여 있는 마음/ 한 쌍의 은행(銀杏)같이/ 연한 슬픔과 또 하난 기쁨이래요

(김남조/ 기쁨 · 2)

 

돌기둥이라도 됐더면/ 하늘에나 뻗쳐둘걸/ 치미느니 통곡이라/ 눈물 기둥이사 어디다 세우나/ 새야 새야 파랑새야/ 슬픔의 새도/가고사 아니 오네

(김남조/ 여인애가)

 

견디고 견딘/ 그 나머지의 눈물/ 오늘은 눈물을 용서하시고/ 번뇌를 용서하옵소서//‥‥이 슬픔 익으면/ 그를 먹이는/ 술이라도 되게 하옵소서/ 옥빛 우물이라도/ 되게 하옵소서

(김남조/ 사랑도 쉬게)

 

그리고 아침과 저녁에/ 공동으로 듣는 기적 소리는/ 멀고 먼 곳을 나의 꿈과 타고난 슬픔을 끌고 가는‥‥‥

(김현승/ 산줄기에 놀라- K도시에 바치는 노래)

 

밤이면 우는 네 울음을 듣는다/ 내 마음을 받을 수 없는/ 네 슬픈 성격을 나도 운다.

(노천명/ 반려)

 

가을은 깨끗한 새악시처럼/ 맑은 표정을 하는가 하면/ 또 외로운 여인네같이 슬픈 몸짓을 지녔습니다.

(노천명/ 가을의 구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 사슴)

 

달이 밝으며 더 깊이 숨겨 둡니다/ 오늘도 저 섬돌 뒤/ 내 슬픈 밤을 지켜야 합니다.

(노천명/ 귀뚜라미)

 

힘 없이 내 손이 어루만지면/ 슬픈 소리를 내오/ 울고난 뒤‥‥/ 마음이 외로울 때‥‥/ 내가 이 손풍금을 장난하오

(노천명/ 손풍금)

 

벙어리처럼 말이 없음은/ 상가집 곡성보다 더 처량했다/ 오! 슬픈 장난이여‥‥‥

(노천명/ 상장)

 

잠 한숨 못 이루게/ 남산과 북악이 밤새껏 흐느껴 울었음은/ 천지가 바뀌는 큰 슬픔이었구나

(노천명/ 회상)

 

그대도 어쩔 수 없다, 사랑의 힘은 그대를 다시 태어나게 하고/ 우리가 그대의 사랑을 확인할 때/ (그것은 항상 너무 늦었을 때)/그대가 확인하는 것은 우리의 돌아선 뒷 모습, // 그것은 그대의 위대한 슬픔/ 그대는 슬픔의 시공을 초월하여 있으나/ 처절한 비참 속에 더욱 처절하게 있어

(김정환/ 서시)

 

봄비 속에/ 너를 보낸다// 쑥순도 파아란히/ 비에 젖고//목매기 송아지가/울며 오는데// 멀리 돌아간 산 굽잇길/못 올 길처럼 슬픔이 일고.

(황금찬/ 보내 놓고)

 

마음에 깊이 간직한/ 아름다운 보석들을 온종일 태우며/내 영혼이 호올로 남아 사는/ 슬픔을 다 부르지 않을/ 나의 집이여

(김현승/ 겨울 실내악)

 

낙엽들이 지는 날 가장 슬픔 것은/ 우리들 심령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

(김현승/ 가을은 눈의 계절)

 

이제는 겨울, 겨울에 묻어 오는/ 어둡고 검질긴 내 슬픔이여.

(F. 카르코/ 아 내 사랑하는 것아)

 

오, 그대 사랑하는 이/ 슬픔 불러내 온 정(淨)한 모습이여

(S. 게오르게/ 무아의 시간)

 

여름내 품고 다닌 그 슬픔

(H. 벤더/ 젊은 병사)

 

창자가 끊어지도록 소리 죽여 느껴 우시는 이 슬픔!

(박종화/ 금삼의 피)

 

기막힌 감정이 상감 연산의 온 몸을 불사를 듯 휩싸 안으니 가슴엔 야속한 설움이 출렁거리고 뼈 마디마다 핏줄은 저리게 된다. 터지려는 슬픔이 용포자락을 벌렁거렸다. 숙이신 머리엔 익선관이 흔들렸다. 자칫하면 용루(龍淚)도 떨어질 듯하다

(박종화/ 금삼의 피)

 

정든 그 임은/ 싸움터 나가시고/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 하시네/ 그리워 무너진/ 슬픔 가슴엔/ 나만 홀로 외로이/ 살고 있어요.

(고오띠에/ 소곡)

 

가을 날/ 비올롱의/ 긴 흐느낌/ 단조로운 우수에/ 내 마음/ 아파오네.// 저녁 종소리/울려 오면/ 애타는 가슴/ 지난날의 추억에/눈물 짓는다.

(베를레에느/ 가을의 노래)

 

때로는 또 저기/ 푸르게 흐르는 시냇가에/ 슬픔의 여신 찾아와/ 고개 숙이며/ 갖가지 꿈으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고

(바이런/ 아아 꽃처럼 저버린 사람)

 

울어 가던 길에 노래부르며 오는 사람/슬플 이 즐길 이 한같지도 않을시고/ 하늘이 이렇게 삼기시니 그를 슬퍼하노라

(무명씨)

 

천하 사람 꿈꿀 제 나만 일어나/ 하늘을 우러러 슬픈 노래부르네.

(이광수/ 무정)

 

녹아드는 빙과의 맛처럼/ 슬픔은 그런 대로 짜릿한 미각이기도 하였으니‥‥‥

(정한모/ 별리)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석양처럼 번져나는 설움.

(김남조/ 남은 말)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김춘수/ 부재)

 

다만 한 사람만이 그대 순례자의 혼을 좋아하였고/ 그대 변하는 얼굴의 슬픔을 사랑하였오.

(예이츠/ 그대 늙었을 때)

 

그녀는 슬픔 때문에 화석이 되었다.

(P.N. 오비디우스/ 메타모르포세스)

 

사랑이 시드는 계절 우리에게 닥쳐와/지금 우리의 슬픈 영혼 지치고 피곤하다.

(예이츠/ 낙엽)

 

아, 아름다워라 여름 날이여!/ 너는 하루종일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가져 가려느냐? /죽음과 삶, 사랑과 미움, 행복과 슬픔/ 슬픈 가슴과 즐거운 마음

(롱펠로우/ 석양)

 

투명한 과거의 정거장에서/ 유실물계(遺失物系)앞에 섰었더니/ 나는 도리어 더 슬퍼지고말았다.

(곡천준태랑/ 슬픔)

 

갈수록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슬픔은 물결처럼 출렁거리네/ 내 마음을 아시는 사람이라면/ 시름이 그득하다 하시겠지만/ 내 마음속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엇 점에 그러느냐 하시리이라/ 아득하게 뻗은 푸른 하늘이시여/이는 누구의 탓이나이까?

(시경)

 

슬픔이 메아리 되어/통곡하는 애절한 절규를!/ 어둠을 벗어나와 하늘의 문을/ 열어 젖히는 부르짖는 소리를!

(정일홍/ 간구)

 

눈물이 덧없는 눈물이, 까닭도 모를 눈물이,/ 그 어느 성스런 절망의 심연에서/ 가슴에 치밀고 솟아올라 눈에 괸다.

(테니슨/ 눈물이, 덧없는 눈물이)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버린다.

(정희성/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그대 기다리거라/ 기다리는 그대 슬픔의 복이 되어/ 흔들리거라

(이병창/ 갈보리의 노래)

 

눈물보다/ 사람을/ 더 잘 자라게 하는/ 단비는 없노라

(임춘남/ 성경)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 새긴 육날 메투리

(서정주/ 귀촉도)

 

나는 나의 힘과 삶을/ 그리고 친구와 기쁨을 잃었다/ 나의 천재를 믿게 하던/ 자존심마저 잃었다// ‥‥신은 말하기를-인간은 신에게 대답해야 한다고./ 이 세상에 나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뮈세/ 슬픔)

 

울적한 이 마음에/ 까닭도 없이 눈물 내린다/ 무한일까, 한(恨)도 없는데/ 이 슬픔은 무엇일까?// 진정 까닭 모르는/ 가장 괴로운 고통/ 사랑도 증오도 없는데/ 내 마음 한없이 비가 내린다!

(뽀올 베를렌/ 거리에 비가 내리듯)

 

권태로운 여인보다도/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싸인 여인입니다// 슬픔에 싸인 여인보다도/ 더 불쌍한 여인은/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입니다.

(마리 로랑생/ 잊혀진 여인)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한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한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여러 해 동안 헤어지기 위해/ 말 없이 눈물지며/ 가슴 메어지는 듯/ 우리 둘이 작별했을 때/ 당신의 장은 창백하게 싸늘했었고/ 당신의 키스는 더욱 찼었다. / 정말로 그 시간은 오늘의 슬픔의 예고였다/ 아침 이슬이/ 내 이마에 싸늘하게 내려/ 그것이 오늘의 슬픔의/ 경고인 듯 느껴졌었다 당신의 맹세는 모두 깨어지고/ 당신의 명성은 날아가 버렸다

(바이런/ 우리 둘이 작별했을 때)

 

나는 서정시인이 되기에는 너무도 소질이 없나 봐요./ '즐거움'이니 '슬픔'이니 '사랑'이니 그런 것은 쓰기 싫어요./ 공신의 얼굴과 소리와 걸음걸이와를 그대로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집과 침대와 꽃밭에 있는 작은 돌도 쓰겠습니다.

(한용운/ 예술가)

 

말하는 것은 슬프다. / 달밤의 대지는 예술가였다. / 오 예술가였다.

(고은/ 가을 노래 기일)

 

너무 선하여 슬픈 모습이여// 당신이 흑인영가/ 깊은 강을 부를 때/ 흐느끼는 것은 하늘이요/ 땅이 었으니/ 나는 비로소 사람의/음성의 슬픔을/ 가늠할 수 있었노라// 공포에 흔들리는 음성에서/ 애원하는 듯 부르는 노래/눈에선 이미 고갈된 눈물이/ 음성은 오히려 눈물에 젖고/ 예레미야의 애가처럼/ 슬픔은 검은 가슴에만 고이는 물결.

(황금찬/ 슬픈 노래-마리안 앤더슨)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닭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밑으로 홀로 결어 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곳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 참회록)

 

꽃 속에는 슬픔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꽃 속에도 눈물이 있었구나/ 별은 나비가 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야 슬픔이 없을까/ 어디를 가야 눈물이 없을까/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졌습니다.

(황금찬/ 별의 꿈)

 

꽃을 보라/ 목련꽃을 보라/ 슬픈 사람아// 봄이 오고/ 창 앞에 목련이 피고 있다/ 슬픈 사람아

(황금찬/ 목련)

 

이제는 주체 못할 눈물이/ 오늘도 왼종일 해를 가리고‥‥‥// 바람같이 일어나는 전진(戰塵)속에서/ 가락없는 합창처럼 통곡을 한다// 이 소리를 듣습니까/ 당신을 부르는 이 통곡의 호소를/ 듣습니까?/ 주여!

(황금찬 / 통곡)

 

하늘의 모습을 보았다/ 흑노의 비애에서/가난하고 저주받은 사람들을 위해/ 울고 있는 영원한 사랑의 예수

(황금찬/ 나의 예수)

 

이 강의 깊이를 누가 알까/ 하느님은 알고 있겠지// 이 마음의 슬픔을 누가 알까/ 하느님이 알고 있겠지

(황금찬/ 깊은 강-흑인영가)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슬픈 기억을 간직한 수선화/ 싸늘한 애수 떠도는 적막한 침실

(함윤수/ 수선화)

 

하강하는 항공기처럼/ 가벼운 날개를 밤이 내리면/ 서울은 -창 밖의 북국/ 슬픈 고도는/부부의 화해처럼 깊어만 간다.

(조병화/ 스카이 라운지)

 

임께서 나를 찾아오시는 날은/네 치마자락 안에 얼굴을 묻고/ 슬픈 노래 부르듯 타신 뱃전에/ 고요히 고요히 바서지리라.

(이원섭/ 바다)

 

하나의 슬픔이 태어나기 위해선/ 적어도 1억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의 슬픔이 삭기 위해선/ 적어도 노래가 되기 위해선/적어도 1억 년의 시간이 또한 필요하다.

(신동집/ 하나의 슬픔)

 

서로가 아름다움으로 하여/ 슬픔이 있는 것이오/ 눈시울에 충만되어 가는/ 당신의 모습은/ 잃어버림으로써 새겨지는 것이오

(박양균/ 거리)

 

눈부신 하늘 있어/ 찬 이슬 위에 핀 들국화마냥/ 내 마음 나날이 여위어 향그럽나니/ 아, 뉘우침 없는 슬픔이여‥‥‥

(이인석/ 사랑)

 

흩어져 굴러야 하는 것이었다// 어제의 기억으로 공허에 들러싸여 오히려/슬픔이 배여 있는 것이었다. / 슬픔 안에 정지/ 거두어간 매큼한 내음/ 벌써은 떨어진 낙엽은 미련을 잃었다.

(박치원/ 낙엽의 사념)

 

물은 맑은지도 모르고/ 물은 흐린지도 모르고/ 슬픈 나의 장미를 살리려/ 물가로 달리노라 아무도 모르게

(모윤숙/ 하수로 간다)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박두진/ 도봉)

 

우리들 뒤로는 훌훌히 버리고 뜬 푸른 산이 있었고, 가난한 이들의 집과 황량해진 논밭이 조을고 있었다. // -거기 지나쳐 간 갖가지 슬픈 실화(實話)가 있었다.

(구석봉/ 백 년 후에 부르고 싶은 노래)

 

슬픔은 사프랑이 되어 피고/ 낮에 뜬 반달 속에 추상된 인고//세월의 저편에 남기고 온 세월은/ 토혈처럼 숨가쁘기만 했는데

(조봉제/ 아내의 초상)

 

온 생애를 불태워 버리듯/ 붉게 붉게 타는 나뭇잎들// 당신의 청춘도 사랑도/ 이와 같이 슬프고 찬란하리라.

(김정숙/ 조락)

 

세월은 흘러도/ 가시지 않는 억만 슬픔,/ 꽃은 피어도/ 관서는 대대로 상놈/ 어느 날 굴욕에 항거했다

(박송/ 정주)

 

첫 자국 만들어진 길을 딸는 슬픔이여!/시름도 행복도 오고 가는 길이로구나

(장응두/ 청산도)

 

날새면 묻에서 멀리 떨어진/ 아아 나는 외로운 섬// 철썩거리는 이 슬픔/ 시간의 난파

(이근배/ 부침(浮沈))

 

어두워지는 저녁/ 추녀 밑에 서 있는 아이는/ 그냥 그대로 슬픈 그림이었습니다.

(박용주/ 비 오는 날)

 

꽃삼지를 남몰래 지어주며/ 얼굴을 붉히던 시절에/ 당신은 생각 못했지요/ 기쁨의 높이를슬픔의 깊이를

(김성휘/ 아내)

 

그날 그 거리에는/ 슬픈 음악이 있었네/슬픈 함성이 있었네/ 아들 잃은 어머니의 눈물도 있었네

(박용주/ 거리에서)

 

그 날 밤 우리는 엄마 가슴에 흐르는/ 슬픈 강을 보았지// 소리 내지 않고 눈물로만 흐르는 강물은/ 서늘하도록 푸른 빛이었네//달빛도 슬픈 밤/ 엄마의 흰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우리의 가슴도 바람따라 나부꼈네

(박용주/ 엄마의 강)

 

흐느끼듯 흘러내리는/ 소리 없는 눈물로/ 말갛게 씻겨낸 노오란 은행잎을/ 시름없이 거리에 흩뿌려 놓고/ 목 놓아 돌아서 우는 슬픈 가슴// ‥‥이별처럼 슬픈 가을 비

(박용주/ 가을 비)

 

그리 움은/ 아픈 세월 숨죽여 견디며/ 우리들 가슴에 소리 없이 피어나는/ 한떨기 슬픈 꽃이지요

(박용주/그리움)

 

모두들 바다에 슬픔을 떨쳐두고 가서/ 언제나 쓸쓸한 모습이라는데/ 오늘 그예 내 눈물도 두고 가니/ 내일은 더 슬픈 바다가 되겠네요

(박용주/ 바다)

 

그대의 슬픔이/나의 노래가 된다/ 사랑의 노래/ 아픈 가슴에 스며든다.

(예종숙/ 나의 노래)

 

낙엽은/ 다음 봄을 약속할 수 있지만/ 가버린 사람은 봄이 와도/ 슬픈 혼으로 떠돌뿐입니다.

(박용주/ 가을)

 

내가 흔들리면/ 바다도 흔들리고/ 그 때마다 먼 길이/ 아득한 슬픔으로 열리고/ 시름겨운 노래가 또 흔들리고/ 가을은 시퍼런 칼날을 들고/ 한 조각 하늘을/ 잘라놓는다.

(채수영/ 내 가슴에 뜨는 달빛으로)

 

추락하는 것은/ 찬란한 슬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중량은 바위 눌림이다.

(정춘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바다는/ 심약한 자의 기억 속에 묻어 둔/ 슬픈 미래

(김갑수/ 바다는)

 

내 마음 당신의 슬픔에 갇혀/ 동경마저도/ 손바닥 안에서 잃어버린 채/ 비단 스카프 끌 어당겨/ 잠자코 불태워 진다.

(도하메드/ 잃어버린 동경)

 

그대가 내민 손에/ 나의 슬픔이 잠자고/ 네가 내민 손에/ 그대의 꿈이 피어라

(서인숙/ 약속 없는 악수)

 

 

끊길 듯 끊길 듯/ 아슬한/ 줄기를 뻗어/씨익/ 슬픈 웃음을 베어물던/ 나팔꽃

(손광세/ 족보)

 

절망의 슬픔에 떨면서/ 끊임없은 걱정으로시달릴 때/ 그대의 부드러운 음성이/ 내게 전해져 오고/ 나는 그대의 황홀한 모습을 꿈꾸었습니다.

(푸시킨/ 안나 케른에게)

 

비장한 슬픔 짙을수록 망향은 간절한 것

(정동주/ 신무가-5 · 다시 불을 다스리며)

 

슬픔은 슬픔에게/ 주어라/ 헤아리지 말고/ 해를 바라보며 탄식하지/ 말고/ 봄이면 꽃나무/여름이면 장마/ 겨울에는 바람 속에 눈꽃 속에/ 온몸을 띄워라./ 사시사철 우는 새는/ 바보, 바보, 바보/ 구름은 눈물, 눈물/ 콧물/ 터지는 아픔은 두고두고 아껴쓰지 말고 아픔에게 던져주어라

(박서원/ 슬픔은 슬픔에게)

 

달빛이 슬피 나리더라/ ‥‥가슴 깊이 저미던 나의 몽상도/ 얌전히 취하더라, 슬픔의 향기에

(말라르메/ 시현)

 

큰 강은 슬픔에 막혔거늘/ 만리 밖에서 돌아갈 생각/ 더구나 놀은 바람 이는 저녁이니/간과 산에 누런 잎이 날리네

(왕발/ 산중)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혀 마음이 아파도,/ 볼을 여윈 슬픔에 견준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상은/ 곡강)

 

날 부르는 맑은 한 소리여!/ 내가 바다로 향하는 날/ 모래톱에 슬픈 한숨일랑 없거라//‥‥황홀과 저녁 종/ 그 다음에 오는 어둠이여!/ 내 배를 타고 떠날 때/ 이별의 슬픔일랑 없거라/

(테니슨/ 모래톱을 건너며)

 

봄은/아아 봄은 가는 곳 어디서나/목숨의 움터짐을 보리니/ 봄은 슬픈 것

(마구야마 카오루/ 움)

 

이 거리는/ 슬픔은 먼지가 되어 흩어지고/먼지는 슬픔인 채로 가라앉는다/ 그리고 치밀어 오른다/ 회오리 바람

(구사노 심뻬이/ 북한산)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를 흑인으로 창조하신 것을/ 나를 모든 슬픔의 총체로/ 만드신 것은

(베르나르 다디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후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대양(大洋)이 잠긴 그대 눈동자에/나의 슬픈 어망을 던진다. (파블로 네루다/ 오후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무덤의 슬픔 돌무더기에/ 봄 부인/ 레이스를 놓네/ 푸르름을 잡아 당기네

(가던리엘라 미스트랄/ 봄 부인)

 

보름의 흰 빛이/ 저 끝없이 깊고 먼 푸르스름한 하늘을 통해/ 사방으로 뿌려지면/ 흐트러질 것 같은 너의 연연한 그림자/ 나의 그림자/ 샛길의 슬픈 모래 위에서 하나가 된다/투영된 달빛으로 두 그림자 하나가 된다/ ‥‥오늘 밤 홀로 나는 길을 가고 있다/ 영혼은 네 죽음이 몰고 온/ 무한히 애끓는 슬픔을 몸에 뿌리며/ 시간과/ 무덤과/ 거리와/ 우리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흑색의 무한대가/ 너와 나를 떼어 놓았다.

(호세 아소시온 실바/ 야상곡 제3장)

 

오얏나무는/ 슬픈 모양으로 서서 있네요/ 자주빛 눈물을 머금고

(골/ 골짜기)

 

시용이여! 너의 감옥은 성스러운 곳/ 네 슬픈 바닥은 제단(祭壇)이다.

(바이런/ 시용성)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서정주/ 화사)

 

그대의 눈물이 있는/ 그 언저리에/ 바람을 날리워라/사라져간 봄 날의 풍경 속에./슬픈 빛깔을 씻어주는/ 바람을 날리워라.

(노마 히로시/ 그대의 눈물)

 

이 슬픔의 집에서는/ 별다른 사건은 많지 않다/ ‥‥우리는 모래 위에 있고,그것은 재로 돌아간다.

(외베르랑/ 그러니에게 보내는 편지)

 

아주 천천히 슬픔과 우울의 하늘로/ 어느날 저녁 풍차가 돌고 있다.

(베르아렝/ 풍차)

 

해와 하늘 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서정주/ 문둥이)

 

가을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누물방울처럼/ 찬란한 색상으로 세상에 피었다가/만고의 눈물로 꺼져버리는/저 슬픔 꿈의 상을 보아라

(정승하/ 꿈의 상)

 

서양에서 들여온 키 작은 꽃들/ 가혹한 슬픔을 향하여/ 벌거벗은 울음빛으로 피었습니다.

(강인한/ 1980년 5월 광주)

 

하나씩 하나씩 슬픈 생각을/ 은발 사이로 풀씨처럼 흩날리는 일이란다.

(박명자/ 풀씨)

 

옛 꿈은 이미 과원에 지고/ 사과나무에는/ 마치 무슨 슬픔처럼/ 능금이 그렇게 달려 있었네

(기노을/ 과원에서)

 

고해를 버리고도 마음 안에/ 찬찬 감기는 미련에 울고/ 새벽맞이에 취하여 두드리는/목탁은 오래도록 같은 서글픔

(김영삼/ 여승)

 

슬프다/ 모든 것이 슬프다/ 슬픔은 아름답고 진실하다/ 아름답고 진실한 슬픔은 죽어서 살아 난다// 웃음보다 깊은 것으로 살아나는 슬픔은 처음의 것을 만든다/‥‥// 우리들의 자유와 희생과 비밀의 경험으로/ 지금 소용돌이치는 슬픔이/ 팽창한 오정의 계곡으로 직선과 곡선으로 진동하고 있다. / 매미는 울고 있다.

(이일승/ 매미)

 

네 개의 문이 있는 심장은/ 사방의 바람에 쏘인다. / 그것에 시멘트를 채워 다오/ 지독한 슬픔을 채워 다오./

(Y. 골/ 토지 없는 장의 묘)

 

노을진/ 서녘/ 언덕배기를 넘어가는/ 슬픈 군상들의 행렬

(곽문환/ 노을)

 

그대의 눈물이 있는/ 그 언저리에/ 바람을 날리워라/ 사라져간 봄날의 풍경 속에/ 슬픈 빛깔을 싯어 주는/ 바람을 날리워라

(노마 히로시/ 그대의 눈물)

 

하지만 제 어머니의 슬픈 운명을/이 세상에서 되풀이하고 난 뒤/너는 무덤 속에 누웠다.

(네끄라소프/ 고향)

 

 

설 교 노 트

 

여호와의 날

사13:6

 

서론

역사의 수레바퀴를 회전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가 흐르는 그 하루하루가 다 여호와의 날이십니다.

아침이 돌아올 때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날(시118:24)"이 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어떠한 날입니까?

 

1. 애곡하여야 할 날입니다.

본문과 같은 뜻의 예언이 요엘 1장 15절에 있는데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전제하여 13절부터 설명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임박하였으므로 곧 멸망받을 대상자들이 애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도 말하기를 5장 1절에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낱은 슬픔의 날이 되어서 전부 애곡해야 할 날인 것입니다.

 

2. 맹렬히 노하는 날입니다.

본문에 이른 바 "여호와의 날은" 그가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곧 메대와 바사의 군대가 동원되는 날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잔혹하게 분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잔혹하게 분낸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잔혹하다는 것은 그의 덕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뜻은 파괴적인 것을 형용하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잔인한 자에게는 파괴적인 심판으로 갚으시나니 그것은 도리어 그의 공의의 온전하심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받을 것이 맹렬한 노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만 말하여도 두려워할 것이며, 따라서 파괴적으로 분내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반면에, 진실한 성도들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확실한 소망 중에 하늘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3. 세상이 끝나는 날입니다.

역사를 통하여 모든 날들이 다 여호와의 날이요, 특별히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이 날은 일부분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국한되어 시행하시는 일도 있지만, 결국은 말세에, 세상 끝날에 최후 심판하실 날을 말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매우 무서운 날이요, 큰 날인 것입니다.

 

결론

역사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날들이 다 여호와의 날입니다. 그날은 애곡하는 슬픔의 날이요, 맹렬히 노하는 날이요, 세상 끝나는 날입니다.

그러나 나 같은 죄인이 구속함을 받아 여호와 앞에서는 그날은 영광스러운 날이 될 것입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애1:1

 

서론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3절)"라고 한 구절만 보아도 이 글이 얼마나 슬픈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애가라고 이름지은 것을 당연한 일입니다.

이 성이 어떤 성이길래 슬프다고 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 성은 어떤 성입니까?

이 성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예루살렘 성입니다. 유다 국민의 오랫동안 수도로 지켜온 성이요, 그들의 신앙의 근거가 되는 성전이 자리잡은 성소이니 곧 거룩한 성입니다.

이 성은 본래 견고하게 축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연적으로 요새와 같이 견고무쌍한 성으로 자인하고 지내던 성입니다.

그러나 너무 환난과 재난을 많이 겪으면서 많은 상처를 입고 수난의 걸음을 걸어온 역사를 지닌 성입니다. 유대 민족으로서는 잠시라도 잊혀질 수 없는 유서 깊은 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기쁨이 넘치는 시온성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오랫동안 유대국의 수도로 있었습니다. 일찍 사울이 정치적 수도로 정하고 통치하였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어서 헤브론에서 얼마를 지냈으나 곧 예루살렘으로 천도하여 온 후로는 솔로몬 왕과 기타 유대국 왕들이 계속 이곳에서 통치하였고 사실상 지금까지 유대 민족의 마음의 고향인 것입니다. 민족적으로 감격스럽고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많이 있었으니 그 때마다 예루살렘 거리에는 기쁨이 넘쳐 흘렀고 환호성이 성 안에 가득하였습니다. 거리에는 젊은 남녀들의 노래하는 창화성이 그치지 않았던 성입니다. 어린이들의 호산나 소리가 들려온 기쁨의 거리요, 즐거움의 성이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기쁨이 넘치는 시온성이 슬프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3. 슬픔의 도성

본서 중에서 매 장마다 첫머리에 "슬프다"라는 말로 시작된 것이 1장과 2장과 4장에서 발견됩니다.

그 때는 어떤 때였습니까? 유대 민족의 범죄가 극도에 달하여 저주와 재앙이 쏟아지는 때요,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채찍이 무섭게 내리치는 시절이었습니다.

참된 예레미야는 민족의 수난을 묻지 않을 수 없고 예루살렘 성의 훼파됨을 슬퍼하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슬프다 이 성이여"라고 서두를 꺼내어 애가를 불렀습니다.

 

결론

우리가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언제나 어디서나 슬픔이요, 회개로 인한 사유 사실은 언제나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번죄함으로 슬픔 가운데서 생활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승 리

성 경 활 용

1. 승리에 대한 성경적 고찰

(1) 승리는 주께 속함.

(대상29:11)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잠21: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2)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다.

(잠24:6)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이 있느니라

(3) 유력자라고 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전9:1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4) 여호와를 힘으로 이길 사람은 없다.

(삼상2: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5) 악인이 승리를 자랑함도 잠시뿐이다.

(욥20:5)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간이니라

(6) 바울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다.

(롬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7)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고전9:25) 이 기 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8) 긍휼은 심판을 이긴다.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9)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

(후2: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2. 승리해야 될 대상들

(1) 세상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일5:4-5)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2) 마귀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3) 죄

(롬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4) 사망

(롬6:6-9) 참조

(고전15:55-57) 참조

(5) 모든 일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6) 대적

(시55:18)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7) 육체

(갈5:16-21) 참조

(8) 근심

(요16:22-24)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3. 승리의 비결

(1)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2)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시25: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3) 하나님이 함께하여 구원하심으로

(렘1:19)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4) 기도

(요16:22-24) 참조

(5) 교훈에 순종함으로

(요6:17-18)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6) 성령으로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7) 그리스도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8) 은혜로

(롬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음이니라

(9) 믿음으로

(요일5:4-5)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을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4. 승리의 긍극적 목적

(1)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낸다.

(엡3:7-10) 참조

(2) 하나님은 영광스럽게 한다.

(롬8:16-18) 자녀이면 또할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5. 누가 승리하는 자인가?

(1)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자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죄로 죽었던 자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

(3) 하나님께로서 난 자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은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4) 예수를 믿는 자

(요일5:5) 예수지서 하나님의 아들이 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6. 승리자가 얻는 것들

(1) 평안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리라

(2) 영생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3) 사망을 지배

(벧후2:. 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와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4) 진 자를 지배

(벧후2:19) 저휘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5) 자랑함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6)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음

(고전9:25)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관련원어풀이

1. h[;WvT] 테슈-아-

(1) 구조, 도움, 부귀.

(시37:39, 40:11)

(2) 승리, 이김.

(삼하19:3, 왕하5:1)

 

2. h[;Wvy] 예슈-아

(1) 안전한, 구출된.

(사26:1)

(2) 구출, 도움.

(출14:13)

(3) 부귀, 부요.

(욥30:15)

(4) 승리.

(삼상14:45, 대하20:17)

 

3. zz"[; 아-자즈.

(1) 강하게 하다, 안전케 하다.

(전7:19)

(2) 강하게 되다, 강하게 되어지다.

(삿3:10)

(3) 강하다, 굳세다, 능력이 있다.

(시68:29)

 

4. jl'x; 찰-라흐

(1) 건너가다, 통과하다.

(삼하19:18)

(2) 공격하다, 마주치다.

(삼상16:13, 암5:6)

(3) 잘되다, 번창하다, 성공하다.

(사53:10)

(4) 성공시키다, 번창케 하다.

(창24:21, 56)

 

5. $yrIi[; 아-리-츠

(1) 두렵게 하는, 매우 능력 있는.

(사25:3)

(2) 맹렬한, 난폭한.

(시37:35, 사13:13)

 

6. ['Wr 루-아

(1) 큰 소리를 내다.

(잠11:15)

(2) 기뻐 외치다, 환성을 올리다.

(삿15:14)

(3) 나팔 소리를 내다.

(민10:9)

 

7. qriambeuvw 드리암부오-

원래의 의미는 "개선을 축하하다"이다

(1) 개선을 축하하다, 축하하다, 정복하다.

(골2:15)

(2) 승리케 하다.

(고후2:14)

설교예화자료

팝콘 선거

 

테네시 주 네쉬빌의 팁 브레빈스는 팝콘 판매에 있어서 1위를 했습니다. 1948년 후반, 모든 사람들이 톰 듀이와 해리 트루먼의 선거에 대한 이야기로 한창일 때 그는 어떻게 하면 최고의 팝콘 판매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싸매고 그 경영 전략을 세우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브레빈스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만약 듀이든지트루먼을 위해 선거를 한다면 팝콘으로도 선거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 선거가있기 전 주에, 그는 당나귀가 그려진 부대 안에 새 팝콘을 넣어 백만여 개를 보냈다. -공화당은 코끼리였습니다. 이권 소유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모양대로 팝콘을 사가기 시작하였고, 브레빈스는 그것을 세었습니다.

판매가 급상승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에서 팝콘 선거를 통해 나타난 결과는 여론의 추측과는 정반대의 양상을 나타냈습니다.

해리 트루먼이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여론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팝콘 선거의 결과대로 트루먼이 이겼을 때, 브레빈스는 세계를 향해 천명했습니다. "팝콘 소비자의 소리는 곧 미국의 소리입니다. "

 

 

십 년간의 기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병참 장교가 부상을 당해 프랑스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를 간호한 수녀는 역시 독일인이었으며, 수녀는 그가 천주교 신자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신부를 모셔오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장교는 한사코 만류했습니다. 수녀는 그렇다면 하나님이 당신 마음속에 계시도록 기도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교는 대답했습니다.

"그렇지만 곧 수녀님은 피로를 느끼게 될 것이고 싫증이 나서 기도를 그만두게 될 걸요?"

"아니예요,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위해 십 년 동안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십 년간을‥‥‥‥ 아마 수녀님이 좋아하는 사람이겠지요. 아버지라든가 오빠라든가."

"아닙니다. 결코 제가 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독일의 어느 백작 부인의 시녀였는데, 그때부터 백작 부인은 방랑생활을 하고 있던 자기 아들을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어머니께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그후 저는 지금까지 어머니 대신 십 년간 매일 부인의 아들을 위해 기도해 왔으며 지난달 백작부인의 편지에 의하면 그 사람은 지금 군인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

열심히 수녀의 말을 듣고 있던 군인이 놀라 황급히 물었습니다.

"그러면 수녀님의 어머니 이름이 베아따입니까? "

"예, 어머니 이름은 베아따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바로 내가 십 년 동안 기도드렸던 찰스 백작이시군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장교는 모든 것을 알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수녀의 간호를 받도록 해주신 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뜻이며 계획하신 바임을 가슴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교는 성사를 받고 얼마 후 편안히 죽어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 백작 부인은 크게 위안을 받았음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영혼의 속삭임

 

포올 갈란드는 신체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의 온몸은 대리석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변호사의 일도 볼 수가 없게 되었고 따라서 은행에 저축한 돈이 다 떨어져 버리자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지경에 포올 갈란드는, 자기를 들것에 담아 멀리 떨어져 있는 루르드 사원에 데려다 달라고 가족에게 요청했습니다.

그 사원에 있는 유명한 석굴 앞에서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했듯이 "내 뜻대로 마옵소서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 "하는 게쎄마네의 기도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포올 갈란드는 전과 아무런 차이 없이 그냥 들것에 들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웃 친구 한 사람이 그의 침대 곁으로 문병와서 "결국 네 기도는 허사로 끝나고 말았구나."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포올 갈란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 자신도 무한한 기도의 능력을 잠간이나마 잊어버렸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가 한 번도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정말이지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내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어. 그런데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고 응답해 주셨어!"

그의 눈에는 신앙의 확신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여기 무력하게 누워 있고 내 아내가 늘 내 곁에 머물면서 밤낮으로 내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가질 수가 없어, 그녀는 매시간마다 내 몸을 한편 쪽에서 다른 쪽으로 돌아눕게 해주어야만 돼. 나의 장모님은 너무 연세가 않아서 일하실 수가 없고 내 아들은 너무 어리고 거기다가 집에 애까지 있어 정말로 문제이기는 해! 그런데 루르드에서 돌아와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날 밤에 내 영혼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어. 아마 영혼의 속삭임이라고 그렇게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거야. 무엇 인가가, 아니, 누군가가 내 영혼 속에서 나를 향해 '책을 써보지 그래'하고 속삭여준 거야. 내가 책을 써본 경험이나 거기에 대해 아는 것이 있었단 말인가? 아니지, 전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고 경험도 없었지. 그러나 나는 해보기로 작정한 거야.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내 혓바닥밖엔 없으니까. 나는 곁에 있는 내 아내에게 불러주고 그녀가 받아쓸 수밖에 없었지. 우리에겐 타이프라이터도 없었어 내 아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손수 손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어. 물론 출판사에 아는 친구도 없어서 아내가 전화번호부를 뒤져 찾아낸 어느 출판사로 직접 찾아간 거야. 그런데 다행히도 출판사에서 내 책을 마음에 들어했어. 유명한 프랑소아 모리악이 서문을 써서 책을 널리 소개했고, 책은 즉시 출판에 넘겨져서 드디어 우리는 돈을 받아 쥐게 되었어! 내 요구에 대한 응답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어. 그것은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지. 이미 나는 또 다른 책을 출판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어 그러는 동안 나는 매주 토요일 아침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정신박약아들을 위한 조그만 학교를 만들었지. 그것도 내 영혼의 속삭임 덕분이었어. 처음엔 동리 부모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는 내가 무서운 병에 걸려 있는 사람인 줄 알고 자녀 보내기를 거절했어. 그런데 마침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몇몇 의사들이 자기들의 아이들은 모두 정상인데도 다만 동리 사람들에게 내가 아무런 위험이나 염려가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내 학교에 학생으로 입학시켰고, 그 때문에 나의 학교는 이제 큰 학교로 커지게 되었어. 그 밖에 나는 솔본느 대학 강의를 속기해 놓은 기록을 정리해 주는 일을 통해서도 돈을 벌 수가 있었어.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했던 기적이 아닐까? "

뻣뻣한 몸으로 침대 위에 누워서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친구는 누워 있는 그에게 "포올 갈란드! 내가 너를 위해 도와줄 일이 없을까? "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난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성취했어!"

이 사람이야말로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살아있는 조각이 아닐까? 기도를 통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기가 원한 모든 것을 쟁취한 위대한 인간이 아닌가!

 

 

라인홀드 니이버의 기도문

 

하나님이여,

나에게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미국의 현대 신학자로 이름을 남겼던 라인홀드 니이버의 이 기도문은 우리의 일상 생활 가운데서 매일 매일 상기해 볼 만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 가운데서 우리가 변화시킬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는 일에 대해 공연히 불평하고 그것으로 인해 쓸데없이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린 채 속상해 하고 괴로워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것만이라면 결코 충분하지도 않고 완전하지로 않습니다. 라인홀드 니어버의 기도문이 첫번째 기도문으로만 되어 있다면 그 기도문은 별다른 가치도 없는 기도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은 두 번째의 기도문을 갖고 있습니다.

"내 힘으로 고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까지도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은 결코 용기가 아니다. 자기 힘으로 능히 해낼 수 있고 또 고칠 수 있는 일인데도 스스로 그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려 버리고 의욕을 잃은 채 주저앉아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결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실 도피주의자들일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며, 성경에도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스스로 쟁취하는 자가 차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세 번째 기도문입니다.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이고 우리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구별하고, 우리가 마음의 평정을 갖고 순응해야 할 현실과 우리가 용기를 갖고 고쳐야 할 현실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도문과 함께 꼭 마지막 기도문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옵소서." 그리고 일단 그 두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어떤 결정 이 내려 진 다음에는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평안한 마음으로 그것에 순응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용기를 갖고 임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내의 승리

 

링컨에 대해서 가장 악평을 가한 사람은 스랜톤이었습니다. 그는 링컨을 "너절한 시골떼기"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고릴라를 잡으려고 아프리카까지 갈 것이 없이 스프링필드(링컨의 고향)에 가면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고까지 악평하였습니다. 그거나 링컨은 전혀 상대도 안하다가 전쟁중에 스랜톤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 직책에는 스랜톤이 적임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링컨은 모든 면에서 스랜톤을 각별한 예의로 대접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비극의 밤이 왔습니다. 1865년 4월 링컨 대통령은 극장에서 연극배우 브즈의총탄에 쓰러졌습니다. 대통령의 시체는 작은 방에 고요히 뉘어 졌습니다. 그날 밤 그 곁에서서 말 없는 링컨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스랜톤은 눈물을 머금고 가장 엄숙한 표정으로

"여기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인류의 최대의 지도자가 누워 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참는 사람이 최종의 승리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워싱톤은

 

 

성공한다. "

 

죠지 워싱톤(George Washington)이 훠지 계곡을 통과하려고 할 때 기도로 안도와 위안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워싱톤은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그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캠프로 다가오던 한 농부가 열렬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무릎을 꿇고 있는 워싱톤을 보았는데,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그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서 그의 아내에게 "죠지 워싱톤은 성공한다. 죠지 워싱톤은 성공한다! 우리는 반드시 독립을 얻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물었습니다. 농부가 답하기를 "나는 기도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어, 주님은 분명히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거야. 주님은 그렇게 해주실 거야. 당신은 주님이 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안심해도 돼." 라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를 알아야

 

미모의 여배우가 극작가에게 "당신의 뛰어난 두뇌와 나의 아름다운 육체가 결합을 하면 얼마나 이상적인 자녀가 태어날까요? " 이렇게 구애를 하였습니다. 극작가는 "당신의 빈약한 두뇌와 나의 볼 품 없는 육체가 결합하면 얼마나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까요? " 이렇게 반격했습니다.

한 가지를 철저하게 알려면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마귀의 존재를, 빛을 알려면 어두움을,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으면 악력의 방해가 심함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의 경전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홍수 전, 노아가 방주의 문을 열고 모든 동물들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선(善)이 찾아왔습니다. 노아는 선의 입장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쌍을 이루어야만 들어올 수 있으니 짝을 이루어 오라고 했습니다. 선은 가서 악(惡)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후 선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악이 있게 되었습니다. 악은 선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 위하여 먼저 가져야 할 것은 악을 극복하는 지혜입니다.

 

 

어록·시·묘사

 

괴로움을 거치지 않고 정복한 승리는 영광이 아니다.

(나폴레옹 1세)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전쟁이지 승리는 아니다. 사람은 동물이 싸우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만, 이 긴 편이 진 편을 몹시 혼내주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외에사람은 무엇을 바랄까? 그리고 승리를 하자마자 그에 만족해 버린다.

(B. 파스칼/ 팡세)

 

도덕적 이상의 승리는 다른 어떠한 승리와 같이 '비도덕적' 수단에 의해서, 즉 폭력 ·허언 · 비방 · 부정에 의해서 얻어진다.

(F.W. 니체/ 권력에의 의지)

 

승리는 아름답다. 그러나 승리를 보람있게 하는 것은 더욱 아름답다.

(포류비오스/ 역사)

 

옳은 것을 위한 전쟁이 있고/ 어떤 관점에서도 그릇된 전쟁이 있듯이. 승리에도 옳은 종류와 그릇된 종류가 있다‥‥‥ 맥아더가 생각하고 있었던 종류의 승리-즉, 중국의 도시들은 폭격함으로써 얻으려는 승리, 전투를 중국 전토에 확장시킴으로써 얻으려는 승리-는 그릇된 종류의 승리였을 것이다.

(H.S. 트루먼/ 회고록)

 

참다운 승리는 피흘리지 않고 얻는 승리다.

(피타고라스)

 

최대의 위기는 승리의 순간에 있다.

(나폴레옹 1세/ 잠언과 사상)

 

당신이 승리를 얻었으면,그것을 너무 멀리 떼밀지 말라. 너의 동료와 적이 그것은 네 힘 안에 있으며, 너는 너무 관대해서 그것을 잘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도록 하는 것이 효 과적이다.

(E. 버젤)

 

이기면 원수가 생기고 지면 참혹해진다. 이기고 지는 마음을 함께 버리면,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산다.

(법구경)

 

한니발은 어떻게 이기는가라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승리를 이용하는가에 대해선 모른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힘으로써 이기는 것은 승리의 반에 지나지 않는다.

(J. 밀턴/ 실락원)

 

승리는 의지의 산물이다.

(F. 포시 장군/ 그가 좋아한 금언)

 

국가간의 싸움에서는 한 나라는 망치요, 한 나라는 모루이다. 한쪽은 승리자요, 다른 한쪽은 피정복자이다.

(B.뷜 로프/ 독일 제국)

 

"승리야말로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이죠" "패배를 제외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이지요."

(A. 웰즐리)

 

자기들의 승리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보다, 이기는 방법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폴리비우스/ 사서)

 

승리는 사랑에 의해서만 얻어진다.

(요한 바오로 2세/ 안젤라스에서)

 

승리는 같은 인간 위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호메로스/ 일리아드)

 

전쟁에는 어느 편이 스스로 승리자라고 부르든,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이다.

(N. 챔벌린)

 

승리는 항상 만장일치가 있는 곳에 있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잠언집)

 

전쟁은 무기로써 싸워질지 모르나, 인간에 의하여 승리된다. 승리를 엎는 것은 지휘하는 자와 따르는 자들의 정신이다.

(G.S. 패튼)

 

전승이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며, 대병은 상하지 않는다.

(강태공)

 

승리는 목적이 아니고, 목적에 달하는 하나의 단계이며, 방해물을 제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목표를 잃으면 승리도 공허한 것이다.

(P.J. 네루/ 독립의 정신)

 

우리가 싸워 이길 수 있는 승리의 첫째 조건은 전투를 피하는 것이다. 둘째는 전투를 피할 수 없는 경우에 승리를 얻은 것이다.

(W. L.S. 처칠)

 

나는 피와 노고와 눈물, 그리고 땅 이외에는 아무것도 여러분께 바칠 게 없습니다. 그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 그 어떠한 공포를 무릅쓰고 라도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승리, 그 도정(道程)이 아무리 멀고 힘든 것이라 할지 라도,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아무도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W. L.S. 처칠)

 

싸울 수 있는 경우와 싸워서는 안될 경우를 아는 자는 승리한다. 많은 병력과 적은 병력의 사용 방법을 아는 자는 승리한다. 웃사람과 아랫사람의 마음이 같으면 승리한다. 조심스 레 경계함으로써 경계하지 않는 적을 기다리는 자는 승리한다. 장수가 유능하고 군주가 견제하지 아니하는 자는 승리한다. 이 다섯 가지는 승리를 미리 아는 길이다.

(손자/ 손자병법)

 

의심스러울 때는 계략으로 승리하라.

(E. 호일/ 호일의 놀이)

 

승리는 밝은 색깔의 아름다운 꽃이 다. 수송(輸送)은, 그것 없이는 결코 그 꽃이 필 수 없었을 줄기이다.

(W.S. 처칠 경/ 하천전)

 

우리들은 단만 고통을 받음으로써 정복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승리의 첩경이다.

(T.S. 엘리엇/ 대성당의 살인)

 

전쟁은 전략으로써 승리를 거두고, 전투는 용엄해야 승리를 거두며, 포진은 교묘해야 승리를 거둔다.

(사마법)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 B. C. 47년 소아시아 젤라에서 승전한 뒤 한 말>

(G. J. 시저)

 

관대(寬大)와 고매(高速)함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힘을 지탱할 수 있는 일이야말로 승리를 얻는 새로운 방식이다.

(G. J. 시저)

 

승리 하려는 마음만 앞세우면 적을 경시하게 되고, 경계하는 마음만 앞세우면 적이 두려워진다. 그러므로 이 두 마음을 한데 섞어 용기와 경계심이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

(사마법)

 

백만의 적군을 이기기보다, 자기 하나를 이기는 것이 승리 중의 승리이다.

(법구경)

 

승리를 잘 유지하는 사람은 강하면서도 약한 것같이 행동한다.

(열자)

 

승리보다 더 승리로운 패배가 있다.

(몽테뉴/ 수상록)

 

전쟁에는 승리의 대용물이 없다.

(D. 맥아더)

 

전쟁에는 준우승 자를 위한 2등상이 없다.

(0. N. 브래들리)

 

전쟁, 그것의 해결 방법은 없다. 정복자도 결코 없다. 승리자도 증오를 초래하여 궁극에 가서는 패망한다.

(M. 시몽)

 

다섯 번 승리하는 자는 화를 당하고, 네 번 승리하는 자는 나라가 피폐하며, 세 번 승리 하는 자는 패자가 되고, 두 번 승리하는 자는 왕자가 되며, 한 번 크게 승리하는 자는 제왕이 된다. 그러므로 자주 승리하고서 천하를 얻은 자는 드물고 망한 자는 많다.

(오자)

 

죽음의 승리가 너를 빛나게 할 매/또 다시 빛은 구름 속에서 나오고

(고은/ 만가)

 

남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가냘프고도 순수한 승리감에 싸여 집으 로 돌아왔다.

(D. H. 로렌스/ 날개 돋친 뱀)

 

종소리/ 크게 울려라/ 산너머까지/ 사방으로 열린 문/ 나아가지 않겠나/ 주되신 그리스도/이제 함께하시니/우리 앞길/가로막는/ 장벽은 없으리/ 드높이/ 부르짖어 라/ 저 하늘까지/ 원수들이 닫은 문/깨어지지 않겠나/ 왕되신 그리스도/ 이제 함께하시니/ 주의 사업/ 무너뜨릴/ 대적은 없으리// 축제의/ 불을 밝혀라/ 환한 얼굴로/ 내려주신 보석문/ 기뻐하지 않겠나/ 복되신 그리스도/ 이제 함께 하시니/ 우리 승리/ 이 땅 위에 영원히 빛나리/

(홍안의/ 승리의 종소리)

 

지는 것도 권태어늘 이기는 것이 어찌 권태 아닐 수 있으랴? 열 번 두어서 열 번 내리 이기는 장난이란 열 번 지는 이상으로 싱거운 장난이다.

(이상)

 

싸우라/싸우라/ 싸우라고/ 이기라/ 이기라/이기라고//‥‥/ 승리하는 다비데여

(신동문/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나는 대체 누구인가/ 태연하게 미소짓고 자랑스럽게/ 승리에는 항시 익숙한 것처럼/불행의 나날을 내가 견디고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본회퍼/ 나는 누구인가)

 

승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태고 이래의 황제, 죽음을/ 신앙으로 극복했을 때에/방 안에는 승리가 있다//오래 대결한 진리가/조용히 자기의 절대자를 향하여,/ 자기의 신, 그 일인자를 향하여 나아갈 때에/ 아름다운 정신의 승리가 있다. // ‥‥저 환히 드러난 법정,/ 여호와의 면전에서/ 무죄방면되는 자가 경험하는/ 한층 통렬한 승리

(디킨슨/ 여러 가지 종류의 승리)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그 성공에 뛰며 기뻐하지 않나니/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다.

(우찌무라 칸조오/ 예수를 생각하고)

 

고운 당신 앞에/ 내 영혼의 등불을 밝혀//당신 가시는 걸음걸음/ 빛으로 덮으리// 어둠에 침식당하지 않고/권력 앞에서도 말없는 승리

(이연자/ 내 영혼이 등불이 되어)

 

역사는 승리자의 편에 서서/ 발을 굴리고 칭얼거린다. / 그러나 어느 것은 아직도/ 연약한 눈물의 꿈을 속삭이어 주고

(김현승/ 책)

 

얻어터지지만 말고 일어나라!/ 갈팡질팡 망설이지 말고 싸워라!/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 어떤 방해물이 있겠는가?/ 생각하라 오늘의 패자는 내일의 승자

(브레히트)

 

이리하여 거룩한 피에 의해 온갖 승리가 생겼고/ 이마에 가시관을 쓰는 사람들에 의해/영예로운 천국의 문은 열리고,

(미젤라/ 골고다)

 

성자가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을 본/ 당신 성모여, 슬픔의 여왕이여/ 우리 위해 기도해주소서./ 그것이 성자 자신이 지상에 대한/ 승리자로 표시되는 길이옵니다.

(만조니/ 수난)

 

아직은 똑똑히 보고 있어야 한다. / 쓰러져 죽음을 토해내는 사람들의 아픈 얼굴,/ 승리에 굶주린 그 고운 얼굴을/ 아직은 남아서 똑똑히 보아야 한다.

(이성부/ 밤)

 

고요한 동산에/ 회오리 바람 부네.// 정신을 못 차리게/깨우쳐 괴롭혀도//승리의 믿음을 안고/ 한 소망을 심는다.

(김상순/ 승리)

 

주검은 무덤 속에 장사해 두고/ 생명만 되살아나는 승리의 시위/ 깎지 않으면 잔디는/워낙 밀어닫는 파도인 것을.

(배용길/ 잔디)

 

 

설 교 노 트

 

신앙인의 승리

창32:22-32

 

서론

우리 인생은 나면서부터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 속에서 일평생을 싸우다가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싸움을 잘 싸운 사람 하나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야곱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최종적으로 영적 전쟁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겼다고 하였습니다.

 

1. 승리의 비결

한마디로 말해서 기도로 승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야곱의 기도는 마침내 위대한 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1) 홀로 남아서 기도하였습니다. 이 기도의 성격은 고독한 기도요, 일대일의 기도요 비장한 기도였습니다.

(2) 환도뼈가 부러지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기도의 성격은 자신이 부서지는 기도요, 결사적인 기도요, 영이 육을 이기는 기도입니다.

(3) 목적 성취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기도의 성격은 목숨을 걸고 한 기도요,끝까지 분투한 기도요, 응답을 받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고독한 자의 무기요, 자신을 정복하는 비결이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2. 승리의 내용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무엇에 대해서 승리를 하였습니까?

(1) 자기 자신에 대한 승리를 하였습니다. 자기에 대한 승리는

① 야곱의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이는 자기의 잔꾀로 복을 받아 성공하려든 것입니다.

② 야곱의 잘못된 생활태도입니다. 이는 형과 아버지를 속인 죄입니다.

③ 야곱의 정욕에 대해서 완전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2) 자기 형 에서에 대해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이 승리는

형의 진노와 증오를 해소할 수 있었고

② 형으로 야곱을 반가히 영접할 수 있도록 하였고

형과 맺어졌던 감정을 풀고 기쁨으로 대화하며 화목할 수 있었습니다.

(3) 하나님에게 대해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이 승리는

야곱의 끈질긴 간구에 하나님이 응답하여 주신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 야곱의 간절한 요구에 일부러 져 주신 것입니다.

야곱은 그 간절한 요구와 끈질긴 대결로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우리 기독 신자에게는 이 기도를 통해서 나 자신을 이기고 다른 사람을 이기고 하나님을 이기는 여기에 축복이 임합니다.

 

3. 승리의 결과

(1)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개명이 되었습니다.

이름의 개명의 야곱의 인격과 생활과 신앙관의 변화 및 혁신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2) 하나님을 만나보고 "브니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대면은 마음의 위로와 기쁨과 평안을 소유함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에게 최후 축복을 약속받았습니다.

이 결과는 신앙의 용기와 담력을 소유하고 만사형통하는 참된 승리를 얻게 된 것입니다.

 

결론

신앙인의 진정한 승리는 내 자신을 온전히 쳐서 정복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놓지 않는 절대 신앙에 있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대하17: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감찰하사 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능력주시는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빌4:13).

 

 

승리의 비결

출17:8-16

 

서론

역사적인 측면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진군하는 도상에서 세 가지 난관에 직면하였습니다. 첫째는 홍해에 직면했고, 둘째는 기갈에 직면했고, 셋째는 아말렉의 공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은 육신주의와 신령주의 싸움이요, 물질주의와 신앙주의 싸움이요, 마귀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싸움이라고 봅니다. 이점에 대하여 아말렉이 어찌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왔을까 하는 이유는 첫째, 자기 조상에 대한 보복전이라고 하고 둘째, 이스라엘을 체포하여 노예로 삼기 위해서라고 하고 셋째, 이스라엘 백성이 소유하고 있는 많은 물질을 약탈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오늘도, 우리 기독신자들을 마귀들이 공격해 오는 신령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비결을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정병 선택을 바로 하였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먼저 정병을 바로 선택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전쟁이 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 이스라엘 군대의 정병 선발의 기준은 네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우리들의 갖추어야 할 신앙 인격이기도 합니다.

(1) 재덕이 겸비한 사람입니다.

재능도 있어야 되지만 신앙의 미덕도 겸비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이 세상을 두려워하는 나약하고 비겁한 자가 되어서는 안되고 여호수아처럼, 갈렙처럼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3) 진실한 사람입니다.

간사하고 거짓된 외식자나 위선자는 정병이 될 수 없습니다.

(4)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불의나 불법을 배격하고 정의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2. 모세의 결사적인 기도에 있습니다.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서 손을 들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배하였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그 총지휘관에게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여기 이스라엘의 승리는 모세의 기도의 위력이었다고 봅니다. 여기 모세가 손을 쳐들었다는 것은 딤전2:8-기도를 의미합니다.

여기 모세가 손을 쳐든 사건은 세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1) 그 손에는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가 들려있었습니다.

이는 애굽을 정복하고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한 지팡이입니다.

(2) 모세의 손을 아론과 홀이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는 훌륭한 보필자들의 합심 협력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3) 모세가 하루 종일 손을 쳐들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세의 결사적인 기도의 위력이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3. 이스라엘 정병들의 선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정 병들은 여호수아의 명령하에 잘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정병들은

(1) 여호수아 명령에 절대 복종하였습니다.

(2) 자기의 위치와 지위를 바로 지키었습니다.

(3) 자기들의 책임과 사명을 결사적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기독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나 자신의 책임을 바로 수행해야 됩니다.

 

결론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이 깃발은 하나님의 깃발을 높이 휘날리게 되었습니다.

(1) 승리를 상징하고

(2) 정복을 상징하고

(3) 그 기업을 점령하고 소유하게 되었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승리의 기념비

삼상7:12-17

 

서론

본문 12절에 "사무엘아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사무엘이 세운 "에벤에셀"이라고 하는 기념비는 보통 전승 기념비가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도와주심으로 승리하게 되었다는 기념비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와 영광을 회복하는 우리나라와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계속 승리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 이 시대적인 사명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1. 승리의 비결

삼상7:3에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 거든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승리하게 하는 내용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이스라엘 민족이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데 있습니다.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인 전환과 신앙의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하16:9에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가지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전심향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승리합니다.

(2) 이방 우상을 철폐한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은 도적질이나 간음이나 살인죄보다도 우상 숭배 죄를 더욱 미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대상은 모두 우상입니다. 이를 철폐해 버리고 하나님만 믿고 섬기는 이에게 승리하게 하십니다.

(3) 하나님의 제단을 쌓은데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무너졌던 하나님의 제단이 다시 수축이 되고, 거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온 이스라엘의 기도 운동과 신앙 운동이 일어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수립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2. 승리의 결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도우심받아 숙적 블레셋 군대를 정복하고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승리의 결과는 세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증거로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1) 블레셋 군대가 항복하는 승리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삼상7:13에 "이에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산성과 방패가 되어 주신데 있습니다.

(2) 잃었던 영토를 다시 회복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삼상7:14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두 번째의 결과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영원한 기업이 되심을 밝혀줍니다.

(3)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삼상7:14에 "그 사방 지경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한 이스라엘 민족은 사무엘의 인도하에 블레셋 군대를 정복하고 끊었던 영토를 회복하고,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중대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면서 후손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사무엘은 돌을 취하여 "에벤에셀"이라고 기록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들의 시대가 이가를 시대가 되지 말고 애벤에셀 시대가 되기 위해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우상을 철폐하고 제단을 수축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한 후 환희와 영광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발전과 번영을 누리시를 바랍니다. 진정한 평화 자유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야의 승리

왕상18:30-40

 

서론

아합 왕 시대에는 바알신을 섬겨서 바알 제단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바알신의 선지자 850명과 종교적인 신령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멀리 떠났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고, 해이되어 머뭇거리던 신앙이 확신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여 위기에서 구출을 받아 크게 발전하고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1. 승리의 내용

이 갈멜산의 싸움은 인간들의 혈육적인 싸움이나 무력적인 전쟁이 아니고 종교적인 신령한 전쟁이었습니다.

(1) 바알신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성경을 깊이 연구해 보면 마귀는 인류 역사 속에 우상 종교를 만들어 가지고, 이 우상종교를 방편으로 해서

①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숭배를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대항합니다.

② 자기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합니다.

③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를 섬기고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고 박해 운동을 전개합니다. 아합 시대의 바알신으로 변모하여 권력 기관을 통해서 최후 발악하다가 갈멜산에서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갈멜산의 하나님의 승리는 거짓 종교에 대한 참 종교의 승리입니다.

(2) 거짓 선지자에 대한 참 선지자의 승리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운동을 역사적인 면에서 고찰해 보면, 마귀의 앞잡이요, 적기독의 졸개로서 권력과 경제력과 신비한 수단을 배경으로 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그 공격의 초점은 세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변질시키고 말살시키려고 합니다.

②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파괴하려고 합니다.

참 크리스찬들의 신앙을 미혹하여 타락시키려고 합니다.

아합 왕 시대 바알의 선지자들은 노골적으로 이와 같은 운동을 전개하다가 갈멜산에서 선지자 엘리야에게 패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2. 승리의 비결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바쳐 충성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게 살다가 갔습니다.

(1) 엘리야의 승리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으로 승리했습니다.

주님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신앙은

① 전능하신 하나님의 위력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② 진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③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믿는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2) 엘리야의 승리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로 승리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영적 무기는 이 신앙에 기도한 기도뿐이었습니다. 이 기도는 세상과 마귀를 승리하는 신앙인의 유일한 무기입니다.

①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비결입니다.

②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공급받는 방편입니다.

③ 기도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받는 유일한 첩경입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어 하늘에서 불로 응답을 받아 승리했고, 3년 6개월 가물던 땅에 비가 내리도록 하여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부흥하게 하였습니다.

 

결론

갈멜산상에 바알의 제단을 헐어 버리고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기손 시내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진멸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제단에도 하나님의 성화가 점화되어

(1) 참 하나님의 제단이 수축이 되고

(2) 거짓된 요소가 소멸이 되고

(3) 축복의 단비가 임하여 소생되고 번영되기 바랍니다.

 

 

위대한 승리

단3:24-27

 

서론

본문에서는 패전국의 포로들이라는 서러운 운명 속에서 멋진 싸움의 승리의 쾌보가 실려있습니다. 이 싸움은 세속적인 시시한 싸움이 아니라 고 상하고도 거룩한 영적 싸움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소나무는 엄동설한에야 그 가치를 발휘하고 등불은 캄캄한 밤이라야 그 밝은 빛을 발휘하듯이 여기 세 신앙 청년의 백절불굴한 믿음은 현하 우리 신앙인들의 좌표와 방향을 바로 설정해 주고 나아가서는 무한한 격려와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1. 우상 종교에 대한 유일신 종교의 승리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천하를 정복하고 바벨론 평지에 거대한 금신상을 만들어 세워 놓고 모든 백성에게 거기에 절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우상의 제막식이 진행되는 때 모든 사람이 다 허리를 굽혀 금신상에 절하는 순간 여기에 절하지 않는 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포로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였습니다. 그들이 절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 외에 다를 신을 섬길 수 없다는 유일신 신앙에서이고, 하나님의 계명을 바로 준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결코 우상 앞에 절하지 않았으니 그것은 유일신 종교의 승리인 것입니다.

 

2. 권력인에 대한 신앙인에 승리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자였으므로 이들의 목숨을 마음대로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세 청년에게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극렬한 풀무가운데 던져 넣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세 청년은 16절에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저들의 입장과 태도를 분명히 밝힌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배치되는 불의한 일에는 순응할 수 없고 타협할 수도 없고 일고할 가치조차 없다는 말입니다(행4:19 참조).

여기 세 청년의 신앙은

(1) 하나님의 권세는 왕의 권세보다 우월함을더 강하게 믿는 신앙에서이고

(2) 하나님의 명령은 왕의 명령보다 존중하게 복종하는 신앙에서이고

(3) 모든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는 하나님 이 주장하심을 믿는 신앙으로 승리를 하였습니다. 권력 앞에 아부하는 현하 우리 신앙인들은 세 청년의 신앙을 본받아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박해에 대한 순교자의 승리입니다.

세 청년은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 죄와 대왕의 명령을 거부한 죄로 칠 배나 더 뜨거운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털 하나 타지 아니하고 살아 나와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세 청년은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하면 죽을지라도 다시 살고, 아무 것도 해하거나 상치 않도록 보호받고, 결코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한다는 신앙으로 버티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18절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고백은 더욱 위대한 신앙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지 아니하더라도,불 속에서 타 죽더라도, 아마 멸망할지라도 금신상에서 절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조건적이 거나 타산적인 신앙이 아니라 무조건적이며 이타적인 신앙으로 하나님만 위해서 살다가 죽겠다는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도 이 세 청년과 같이 우상에 대해, 권력에 대해 그리고 박해에 대해 담대히 승리하는 신앙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승리하는 열쇠

요일5:4-7

 

서론

많은 사람들이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마음속에 참평화가 있을 때에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것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길은 바로 믿음의 길입니다. 믿음은 곧 승리의 열쇠입니다.

 

1.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을 공급 받을 때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이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죄악과 불의한 세력을 이긴다는 말이요, 또한 인간을 타락시키는 모든 부정적인 세력을 이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믿은 믿음을 주님께로부터 공급받을 때에 생겨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한팀이 되어서 싸울 때에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생의 역사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이 싸움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일어날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싸움은 그치지 아니합니다. 그것은 선과 악의 싸움이요, 영과 육의 싸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되게 살려는 의지에 반해서 육체적인 탐욕과 정욕은 우리를 부도덕한 생활로 끌어내리고, 타락한 길로 유혹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땅에는 싸움이 없어야 하겠고, 우리는 항상 정의의 편에 서서 승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2. 믿음을 잘 활용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체도 움직이지 않고 있으면 쇠약해지고 말기 때문에 항상 운동을 하고 단련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영적인 생활도 항상 움직여야 하고 활용을 해야만이 힘이 생기고 전진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생을 이끌어가는 살아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믿음을 삶의 현장 속에서 행하고 활용해야만 기적이 생기고 축복이 오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승리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간직만 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믿음을 활용하고 실천할 때 믿음은 승리의 활력소가 되는 것이니만큼, 여러분은 믿음을 활용하고 실천함으로써 복받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는 무슨 일에나 열심을 다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 능력 주셔서 이기는 사람은 모두가 열심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있으면서 "내가 여호와를 향한 열심이 특심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인류 역사를 움직였던 인물들은 한결같이 회의주의자나 무책임한 사람들을 들어 쓰시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결코 논리적인 생각이나 생활의 여가를 즐기는 악세사리는 아닙니다. 열심을 가지고 행하여 갈 때 기적의 승리가 오는 동력인 것입니다.

 

결론

이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예수의 능력을 공급받으면서 무엇이나 열심으로 하면서 그리스도와 "한팀"이 되어 매사에 승리하고 축복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승 천

 

 

성 경 활 용

 

1, 승천의 문자적 의미

(1) 하나님이 데려감

(창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 죽음을 안보고 옮겨감

(히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3) 하늘에 올라감

(잠30:4)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행 1: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벧전3:22)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4) 하늘에 이끌려감

(고후12:1-3)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간 자라

(5) 올리우심

(막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 그리스도의 승천에 관한 성경적 이해

(1) 구약에 예언

(시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2) 그리스도 자신이 예언

(눅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요7: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3) 해 받으신 후 사십일 후에 승천

(행1: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눅24:28-50) 참조

(4)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올라가심

(히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5)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심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6) 성도들의 중재자이시다.

(롬8:34)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7) 그는 백성들의 처소를 예비하신다.

(요14:2)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8) 지극히 높임을 받으신다.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9) 왕 노릇 하신다.

(히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관련원어풀이

1. hl;[; 알-라-

(1) 위로 올라가다.

(창13:1, 시24:3)

(2) 증가하다, 강해지다, 이기다.

(신28:43)

(3) 걸치다, 입다, 집어들다.

(레19:19)

(4) 높여지다, 승귀되다.

(시47:10)

(5) 인도되다, 드려지다.

(삿6:28)

 

2. ajnalambavnw 아날람바노

(1) 들어올리다.

(막16:19, 행1:11)

(2) 집어올리다.

(행7:43, 엡6:13)

(3) 데려가다, 함께 가다.

(행20:13)

 

3. ajnavlhyi" 아날렘피스

들어올림, 취함, 하늘로 올라감.

(눅9:51)

 

4. oujravnio" 후라니오스

(1) 하늘에 속한, 천적(天的)인, 하늘에 거하는.

(마6:14)

(2)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행26:19)

설교예화자료

다 같이 산에 오릅시다!

 

영국 요크 대학의 담임 목사인 제임스는 올해 그가 인도하기로 되어 있는 알프스 등정을 위한 이상적인 훈련 장소를 발견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그는 친교의 시간을 갖기 전에 대학 교회의 첨탑 꼭대기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는데, 그것은 어떤 분위기를 느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해."하며 그는 공언하였습니다. "바람이 높을 때 이 조건은 내가 알프스 등정시에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조건과 매우 흡사하단 말이야."

 

 

보다더 크게 앞을 보자

 

미술반 학생들이 야외 수채화 연습을 위하여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미술교사가 정한 곳으로 아래에 아름다운 목장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마음에 드는 장소를 물색하여 화틀을 세우고 자기가 느낀 영상을 화판에 옮겨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오후 내내 목장 아래 풀밭에 있는 낡은 헛간과 전원의 경치를 조심스럽게 그려나갔습니다. 학생들이 스케치를 마치고 여러가지 색을 혼합하여 각자의 그림에 옷을 입히고 있을 때 선생님은 한 학생이 낡은 헛간의 지붕 기와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판에 다른 그림은 없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세하게 그려진 헛간 하나뿐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하루 종일 헛간의 지붕만 그리고 있었습니다. 현명한 미술선생님은 그에게 이렇게 조언해 주었습니다. "자네, 그렇게 지붕판자에만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으면 저녁놀의 화려한 장관을 볼 수 없겠군, 자잘한 작은 조각에만 정신이 팔려서 진짜 크고 위대한 장관을 보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19:1)"

 

 

개선의 행렬

 

나폴레옹 3세가 포로가 되고 왕위에서 퇴위하게 되었던 보불 전쟁(1870-1871)이 끝났을 때 승리한 프러시아 군대는 1871년 6월 16일에 베를린으로 개선의 입성을 했는데, 그 날짜의 신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도의 양측에는 금박을 입힌 좌대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좌대와 좌대 사이에는 월계수와 전나무로 만들어진 꽃줄장식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군기의 뒤를 이어 친위대가 따라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온통 월계수와 전나무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대포들까지도 전나무의 잎과 가지들로 온통 뒤덮여 있었습니다. "

승리를 한 군대는 이와 같이 영광의 개선행렬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귀를 이기도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을 때 수많은 천사들의 합창 속에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게 될 것이다.

 

 

어록·시·묘사

 

승천(昇天)한/ 촛불들은/ 별이 되었나요/ 별이 되어/ 밤새도록/ 빛의 비를/ 내리나요

(김남조/ 촛불 · 1)

 

매맑은 하늘에 달은 미끌어지고/ 교회의 종이 장미 빛이면서 또한 검은 하늘에 울려퍼질 때// 나의 영광 속에 행해지는 승천을기다리며/ 나의 불변의 사랑 속에 행해지는 끝없는 눈뜸을 영원한 나의 찬미의 음악을

(베를렌/ 예지)

 

돌아가리라/ 이른 아침/ 승천하는 맨살의 안개/ 다친 몸 거두어/ 비단 수건으로 닦아내고/ 이제/ 무연의 들판에 돌아가리라.

(강계순/ 안개 속에서)

 

어머니께서 하늘을 오르신 길은 어디오니까/ 하늘 명명(明明)한 데서/ 몇 번이고 거듭 저희께 오시는 그 길은 더욱 어디오니까//눈물 안에/ 작은 소망과 먼 기다림이/ 이른 봄 실바람으로 켜가는 곳에,/ 나직한 말씀조차 아니고/ 보다 오묘히 그 위로를 숨기시는/ 달고 어진 침묵 안에,/ 무시로 밤에도 오시며/ 임종의 침상에마다/ 일일이 특별한 애련으로 지켜 보시는// 어머니/ 하늘의 빛보래를 갈라/ 흰 강물, 은하의 후광으로 흐르게 하시고/ 한도 없는 도정(道程)을 무량한 시간을/ 억척만 번이나 저희께 오시다니/ 아아 승천만으로도/너무나 눈부심을/ 하늘에서 길 떠나 땅으로 오시는/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 놀라운 사랑이 웬일입니까.

(김남조/ 성모승천)

 

하루에 한번씩은 베드로를 노래하던/ 산새들도 날아와 베드로의 승천을 슬퍼하는 이 과수원에서/ 그의 부재에 언어가 빈 이 과수원에서/ 구름도 멈춰서서 명복을 비는/ 베드로의 과수원에서/ 베드로의 추억을 하느님에게 돌려주면서/ 나는 나를 부축하여/ 비탈을 내려온다.

(이활/ 살아 있을 때 고했던 것처럼)

 

 

설 교 노 트

 

승천한 자의 생애

창5:21-24

 

서론

본문 34절을 보면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에녹은 절망적인 인생을 희망적인 인생으로, 허무한 인생을 가치있는 인생으로, 죽어가는 인생을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생의 역사창조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한 생애의 의미

성서학자들은 여기 에녹이 하나님의 동행한 생활에 대하여 몇 가지 의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사모하고 항상 접근하여 살았다고도 하고,

(2) 하나님을 믿음으로 임마누엘의 생활이라고도 하고,

(3) 하나님과 일치단합된 생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의미는 하나님과 동재, 동거, 동행한 생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는 성령이 신자들에게 입내하여, 성령과 일치 단합한 거룩한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은 낳고 죽는 허무한 인생의 역사 속에서 약한 자라도 강해지고, 무능한 자라도 가능한 자가 되어지고, 무가치한 자라도 가치있는 자가 되어 마침내 죄악을 승리하고 깨끗한 자가 되어지고, 죽음을 승리하고 영 생하는 자가 되어지고, 지옥의 권세를 파하고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자가 되어졌습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한 생활의 양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의 생애는 독신 생활이 아니라 가정을 가진 생활이고, 금욕 생활이 아니라 자녀를 낳은 생활이었고, 염세 생활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온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신도 아니고,천사도 아니고, 동물도 아닙니다. 사람이기에 사람답게 살아야 됩니다. 다시 말해서 천사처럼 살아도 아니되고, 동물처럼 살아도 아니되고, 사람답게 살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에녹처럼 가정을 이루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자녀를 생산하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사업하여 돈벌어 부자되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져버리고 사는 것이 죄악입니다.

(1) 하나님 앞에서 성스럽게 생활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죄를 범할 수도 없고,속되게 살 수도 없고, 망령되이 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순결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갑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생활하였습니다(히11:5 참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섭섭하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눅5:10에 회개를 기뻐하십니다. 롬12:1에 몸으로 산 제사 드림을 기뻐하십니다. 삼상15:23의 말씀을 순종함을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의 미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비전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유다1:14-15을 참조).

미래의 비전을 가지고 살 때 힘과 용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며, 인생의 안내자 구실을 하고, 빛나고 고상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결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죄를 이기고 순결하게 살아갔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영생의 길을 갔습니다. 지옥의 문을 닫고 천국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는 인생의 멸망의 실존의 아니고 영생의 실존이며, 이 세상이 영원한 거주지가 아니고하늘나라가 영원한 본향인 것을 가르쳐 주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요, 진리입니다.

 

 

승천 주의 사역

눅24:44-53

 

서론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여기 승천 주의 사역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를 아니합니다. 승천 주의 사역은 특별히 우리 성도들을 위한 사역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사건은 교리적으로나 실제 신앙생활에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사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하시고 계시는가에 대해서 성경을 중심으로 몇 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니다.

롬8:34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히7:25 참조)" 몸바쳐 피흘려 구속하여 주신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여 주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1) 우리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2) 우리 신앙의 승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3) 우리의 신앙의 확립과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는 은혜로 신앙을 유지하고 성장하고 승리해 나아가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2. 성도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어 주십니다.

요16:7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보혜사"는 헬라어 원문에 "파라크레토스"라고 하는데 이는 도와주시는 자 협조자 보호자라는 뜻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이 설명하여 주신 내용은 요14:17에 진리의 영이라고 밝히셨고 요14:26에는 성령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승천 주께서 보혜사를 보내어 주시는 의도와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독한 자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하였으니 성도들은 결단코 외롭지 않습니다.

(2) 무지한 자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였으니 주님의 말씀과 교훈을 바로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3)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요15:26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으니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복음을 증거하게 됩니다(행1:8). 이와 같이 우리들을 위로하고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보혜사를 보내여 주십니다.

 

3. 성도들의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여 주십니다.

요14:1-2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승천 주의 세 번째 사역으로 우리들의 처소를 하늘나라에 예비하신다는 말씀은 세가지 큰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1) 우리 성도들의 항구적인 거주지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나라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고후5:1 참조).

(2) 우리 성도들의 영존할 수 있는 처소도 이 세상이 아니고 천국이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있습니다(히11:17 참조).

(3) 우리 성도들의 영원한 안식처도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계21:4 참조).

요14:3에 승천하신 주님께서 우리들의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우리들에게로 와서 우리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시겠다고 하였습니다(살전4:17 참조).

 

결론

승천하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들을 위해서 사역하고 계십니다.

기도하여 주시고, 보혜사를 보내어 주시고 있을 곳을 예비하고 계시다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막16:19-20

 

서론

성경에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 승천하신 사건은 아무도 부인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공동 신조요, 신앙 고백서인 사도신경에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다섯 가지 신조를 믿습니다.

(1) 동정녀 탄생을 믿습니다.

(2)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믿습니다.

(3) 사흘 만에 다시 사신 예수를 믿습니다.

(4) 하나님 우편에 승천하신 예수를 믿습니다.

(5)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하실 예수를 믿습니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가 인간의 생리적인 방법을 초월하여 탄생하셨으며, 그 누구가 인류를 대신하여 속죄의 죽음을 죽었으며, 그 누구가 죽은 자 중에서 다시 살아났으며, 그 누구가 하늘로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셨습니까?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고의 승천이 바로 우리 전 기독 신자들의 부활이요, 승천이요, 영광이라고 믿습니다.

 

1. 그리스도 승천의 의의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우리에게 세 가지 큰 의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보이시는 의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품에 계시던 독생자로써 인간의 구속 사업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가 다시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라가셨습니다.

(2) 하늘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시는 의의가 있습니다.

이 세상 외에 성도들이 거처할 수 있는 천국이 있다는 확증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장차 하나님의 백성은 천국으로 가고 마귀의 백성은 지옥으로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3) 성경 예언의 성취로써 인생은 영원할 수 있는 영원불멸의 실존을 나타내 보이시는 의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탄생하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 하셨으며, 재림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시고 인생을 영생케 하시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하신 목적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몇 가지 목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 우편에서 사역하시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현재의 위치와 처소를 밝히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롬8:34에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강구하시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끝날따지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위해 변호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요2:1).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있을 처소를 준비하신다고 하였습니다(요14:2-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고 하셨습니다.

(2)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시기 위해서 승천하셨습니다(요16:7).

"내가 가면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시리라(행1: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권능을 주시고, 증인이 되게 하사 지상에 교회 건설하게 하시려고 승천하사 성신을 보내주셨습니다.

(3)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시고 만유를 통일하기 위해서 승천하셨습니다(요14:3).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내게로 인도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엡1:22)"고 하였습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시기 위해서 승천하셨습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성도의 최고의 희망입니다. 최후의 영광입니다. 최후의 승리요, 영생입니다.

시 간

성 경 활 용

1. 구약 시대의 시간 구분

(1) 야간

초경(오후6시 -10시)

(애2: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이경(오후10시 -오전2시)

(삿7:19)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새벽 (오전2시 -6시)

(출14: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2) 주간

아침(오전6시 -10시)

(창24:54)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가로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시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오정 즈음(오전10시-오후3시)

(창18:1)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 나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낙이 서늘할 때(오후3시-6시)

(창3:8)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저녁(오후6시 -)

(출18:13) 이튿날에 모세가 백성을 재판 하느라고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의 곁에 섰는지라

 

2. 신약 시대의 시간 구분

(1) 야간

저물 때(오후6시-9시)

(막13:35)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오후9시 -12시)

(행27:27)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 저리 쫓겨 가더니

(2) 주간

제 육시(오전6시경)

(요19: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제 칠시(오후1시)

(요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제 십시(오후4시경)

(요1:39)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관련원어풀이

1. @D:[i 이단-

(1) 시간, 때.

(단2:8, 3:5)

(2) 해, 년.

(단4:13, 7:25)

 

2. crovno" 크로노스

시간, 기간, 시기, 시대

(막9:21, 행7:17)

 

3. w{ra 호-라

(1) 어떤 정해진 시간이나 계절, 낮시간, 날.

(마14:15, 막6:35)

(2) 낮시간의 12분지 일, 한 시간

(마24:36, 요4:52)

(3) 어떤 정해진 시간, 시각.

(마26:45, 눅1:10)

 

4. eujkairevw 유카이레오-

(1) 편리한 시간이나 기회를 가지다, 여가를 가지다.

(막6:31, 고전16:12)

(2) 틈을 가지다, 포기하다.

(행17:21)

설교예화자료

단 5분의 중대성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이며 나폴레옹을 이긴 웰링턴 장군은 시간에 있어서는 매우 철저한사람이었습니다.

어느날 관리와 런던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웰링턴 장군은 정시에 약속 상소에 나가 5분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웰링턴 장군이 5분이나 지각을 한 관리를 꾸짖자, 그는 "각하, 겨우 5분밖에 늦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웰링턴 장군은 "겨우 5분이라고? 그러나 그 사이에 나의 군대는 패전할지도 모르는 일이요, 5분의 시간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요."라고 타일렀습니다.

다음에 그와 또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 관리는 이번에는 5분 일찍 나와서 기다리다가

"각하, 어떻습니까? 제가 5분 더 일찍 나왔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웰링턴 장군은 역시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시간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요. 5분이나 일찍 왔으니 아까운 시간 5분을 낭비한 것이요."

 

 

차에 탄 채로 조의 표하기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선 이런 일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아틀란타의 한 장의사는 바쁜 조객들을 위해 차를 타고 볼 수 있도록 장례식장에 5개의 창문을 설치했습니다. 창문은 길이가 6피트였으며 관 속에 든 시체가 각각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장의사는 "많은 사람들이 친척이나 친구들의 시신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없어요.하지만 이렇게 하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볼 수가 있거든요."

 

 

문명인의 척도

 

제가 아르헨티나에서 목사들과 앉아서 모임시간에 관한 얘기를 하니까 그곳의 어떤 목사 한 분이 "여보 그거 우리나라보다 좀 낫수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한 시간후에야 모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아르헨티나도 후진국임에 틀림 없습니다. 후진국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문명한 사람의 표입니다. 교양의 척도입니다. 근면의 척도가 되기도 합니다. 선한 시간의 청지기가 되려고 할 것이면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어스킨의 시간적 교훈

 

존 어스킨(John Erslkine)이 15살 되었을 때, 그의 음악 선생은 그에게 하루에 얼마나 연습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네 시간 또는 다섯 시간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단번에 네 시간 흑은 다섯 시간이라고? "선생이 물었습니다. 학생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그의 선생님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한 번에 다섯 시간씩이나 연습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큰 교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리 짧은 시간의 흐름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그 속에 기회가 있으므로 결코 많은 시간만이 많은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던져 줄 진주가 몇 개 더 있다

 

셰익스피어 연구가인 하버드 대학의 조지리만 키트리지 교수는, 한번은 벨이 울리자 마자 교실 떠날 준비를 요란스럽게 하고 있는 학생들 때문에 순간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잠깐만, 여러분! 나는 여러분께 던져 줄 진주를 몇 개 더 가지고 있단 말이오."라고 말해 버렸습니다.

 

 

어록·시·묘사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테오프라스토스)

 

시간은 우리 종말을 계획하는 큰 회합이다. 청년기는 다만 한 다리를 앞으로 내딪는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D. 반즈/ 밤의 숲)

 

시간에 속지 말라. 시간을 정복할 수가 없다.

(W. H. 오든/ 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

 

시간은 변화하는 재산이다. 그러나 시간의 모방 속에 있는 시계는 단순히 변화만 시킬 뿐 재산을 만들지 않는다.

(R. 타고르/ 길 잃은 새)

 

우리가 생각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똑같이 시간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개념이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지요.

(E. 클라이더/ 지붕 밑의 무리들)

 

시간을 버는 가장 우수한 방법은 일주 6일, 일정한 주간(晝間) 시간에 규칙있게 일하는 것이다.

(C. 힐티/ 행복론)

 

시간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준다.

(중국 속담)

 

시간은 미래영겁(未來永劫)의 환영이다.

(플라톤)

 

모든 시간은 한결같지 않다.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시간은 돈이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이익을 계산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거액의 돈이다.

(C.J.H. 디킨스/ 니콜라스 니클비)

 

시간은 가장 위대한 개혁자이다.

(F. 베이컨/ 수필집)

 

지나가 버리는 순간은, 전지전능한 신도 다시 세울 수 없는 건물이다.

(에머슨/ 전기)

 

원래 과거, 현재, 미래의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하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과거의 것의 현재,현재의 것은 현재, 미래의 것의 현재라는 세 가지 시간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정신에는 이 세 가지가 존재하며, 다른 어떤 곳에서도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과거의 것의 현재는 기억이며, 현재의 것의 현재는 직관이며, 미래의 것의 현재는 예기인 것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고백)

 

예전에 없던 이 비망(備忘)의 수첩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현대에 이르러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번다하고 따라서 바빠진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혜구/ 시간의 세분화)

 

시간은 무한하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무한한 것이 아니다. 나의 시간은 내가 태어난 그 시간부터 내가 죽는 그 날까지를 말한다. 나는 시간이 제한된 유한한 존재다.

(강원용/ 때의 방정식)

 

영원을 사랑하거든, 시간을 이용하라.

(F.퀼즈/ 편람)

 

왼쪽 포켓의 은화는 소매치기해도 오른쪽은 손대지 말게, 거기에는 황금의 시간이 들어있어!

(0.W. 흄스/ 운을 맞춘 교훈)

 

우리가 매일 뜻대로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신축성이 있다. 우리가 느끼는 열정들은 그것을 확장시키고, 우리가 고취하는 것들은 그것을 축소시킨다. 그리고 나머지는 관습이 채운다.

(M.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간은 우리 위를 날아간다. 그러나 그림자를 뒤에 남긴다.

(N. 호손/ 대리석의 파우누스)

 

시간은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테오프라스투스)

 

시간의 절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J. C. F. 실러)

 

평범한 사람들은 단지 어떻게 시간을 소비할까 생각하지만, 지성인은 그 시 간을 어떻게사용할까 노력한다.

(쇼펜하우어/ 인생의 지혜에 관한 경구집)

 

내가 깨어 있을 때는, 수없이 많은 시간의 대열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비웃으며 흘러가고 있었고, 내가 잠들어 있을 때는 긴긴 악몽이 거꾸러져 있는 나에게 혹독한 채찍질을 하였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우리들은 서둘러 이 짧은 시간을 즐기자. 사람에게는 항구가 없고, 시간에게는 연안(浴岸)이 없고,그리하여 시간은 지나고 우리들은 떠난다.

(A. M. L.P. 라마르틴/ 호수)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는 것이 인간일뿐 더러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의 낭비가이기도하다.

(P.F.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시간이란 무엇인가? 해시계의 그림자, 벽시계의 종소리, 모래시계의 모래의 흐름, 밤낮이 없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몇 달 몇 해 몇 세기이고 그들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것들은 임의적이며 겉보이는 신호이고 시간의 척도이지 시간 그 자체는 아니다. 시간이란 영혼의 생명이다.

(H.W. 롱펠로우/ 히페리온)

 

'너 자신을 알라'는 그 현명한 인생 교훈을 실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너의 시간을 알라'는 말은 그럴 의사만 있으면 누구나 이해가 가능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자신의 공헌도와 효과를 향상시키는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P.F. 드러커/ 경영자의 조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유일한 충고자는 시간이다.

(F. 베이컨/ 학문의 진보)

 

현재 시간을 잃어버리면 모든 시간을 잃는다.

(W.G. 베넘/ 격언집)

 

우리는 시분을 달러와 센트로 간주한다.

(T.C. 핼리버튼/ 시계공)

 

시간을 가장 서투르게 쓰는 자가, 그것이 짧다고 불평한다.

(J. 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시간을 갖는 사람이 인생을 갖는다.

(J. 플로리오/ 첫 열매)

 

시간에는 그 경과를 표시하는 구분이 없다. 새달이나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아무런 뇌우도 나팔 소리도 없다. 심지어는 신세기가 시작할 때도 그것을 알리는 것은 우리들 사멸의 존재다. 즉, 우리들 이 종을 치고 예포를 울리는 것이다.

(T. 만)

 

시간은 영혼의 생명이다.

(H.W. 롱펠로우/ 히페리온)

 

시간의 아까움! 사람이 늙어 가면 점점 노탐이 늘어 간다더니, 해가 갈수록 내게 시간의아까움이 더해감은 이 노탐의 일종인지도 모른다.

(유치환/ 나는 고독하지 않다)

 

"모든 것은 시간이 해결한다"는 말은 누구나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러나 시간은 그것이 운명적인 것과 관계되지 않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조연현/ 오해의 사상)

 

시간적 관념에는 두 개의 개념이 있다. 하나는 자연적 시간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적 시간이다. 전자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허무의 흐름이며, 후자는 과거와 미래를 가진 유한한 창조적 과정이다.

(조연현/ 시간의 사상)

 

시간은, 그 속에서 우리들이 배우는 학교이며, 시간은, 그 속에서 우리들이 타버리는 불이다.

(D. 시워츠/ 로다를 위하여)

 

시간은 지나간다. 시간은 위로하는 자요, 시간은 진통제이다.

(대커리/ 런던에서의 스케치)

 

돈이 상품의 척도이듯, 시간은 산업의 척도이다.

(F. 베이컨/ 수필집)

 

현대인은 시간을 아껴 쓰려고 노력하지만, 반면에 자기가 저축한 시간을 보내느라고 고심한다. 그는 '나는 나'라는 경험만이 줄 수있는 영성을 가지고 새로운 날을 맞으려 하기보다는 실패나 굴욕없이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데 더 기뻐해 하는 것이다.

(E. 브롬/ 건전한 사회)

 

지나가는 시간이란 잃어버린 시간이며, 게으름과 무기력의 시간이며, 몇 번이고 맹세를 해도 지키지 못하는 시간이며, 때때로 이사를 하고 끊임없이 돈을 구하는 데 분주하는 시간이다.

(J. P. 사르트르/ 보들레르론)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의 가치에 대한 의식이 점점 예민해진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없을 성싶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는 구두쇠가 되는 것이다.

(W. 해즐릿)

 

신이 우리들 각자에 할당시키는 시간은, 우리들이 어떻게 짜는가를 잘 알고 있는 값비싼 직물 같은 것이다.

(A. 프랑스/ 실베스트르 보나르의 죄)

 

시간은 모든 것을 숙성시킨다. 시간의 덕으로 모든 것이 밝혀진다.

(프랑스 속담)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뜻은 세월과 더불어 사라져 간다. 드디어 말라 떨어진 뒤에 궁한 집 속에서 슬피 탄식한들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소학)

 

시간은 소리 없는 무리이다.

(G. 허버트/ 명궁)

 

세월은 작가 중의 작가이다.

(베이컨/ 학문의 진보)

 

시간은 젊음을 부수는 기수이다.

(G. 허버트/ 명궁)

 

시간은 영원의 표상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플라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나, 겪어야 할 미래의 역사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시간이란 자연 사적 시간이 아니라 사회사적 시간인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신석정/ 지록위마)

 

그러나 삶을 가장 풍부하게 산다는 것은 매일매일의 시간의 내용이 꽉 차 있어 그것에 매달려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저항감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나 쉽사리 흘러가는 시간은 우리의 의식 속에 거의 자국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구상/ 삶의 보람이라는 것)

 

시인이나 왕들은 시간의 서기(書記)에 지나지 않는다.

(E.A. 로빈슨/ 빈약한 관계)

 

시간은 스승이 없는 자의 스승이 될 것이다.

(아라비아 속담)

 

자기의 시간을 가장 잘못 이용하는 사람이 대개 시간의 짧음을 불평한다.

(라 브뤼에르/ 인간백태)

 

시간이라는 것은 가장 큰 위력을 가진 지우개나 마찬가지다.

(김우종/ 세월과 망각의 슬픔)

 

시간은 사물에 있어서 변화를 의미하고, 인간을 포함한 생물에 있어서 죽음을 뜻한다.

(박이문/ 고향의 전나무처럼)

 

시간이란 물리적 존재라기보다 더욱 주관적 존재다. 즉, 고도로 주체적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시간을 물리적으로만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인생에 있어 시간이란 사람에 따라, 또 젊은이와 노인에 따라 양과 질과 다양성이 다르다.

(송건호/ 시간의 철학)

 

한 사람의 한 시간은 다른 사람의 한 시간에 상당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한 시간의 한 사람은 한 시간의 타인에 상당한다고 말해야 한다.

(미상)

 

시간을 나무라는 것은 자신을 변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T. 풀러/ 금언집)

 

시간이 우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따르는 것이다.

(러시아 속담)

 

조반 전의 한 시간은 그 날의 나머지 시간 전부의 두 배의 가치가 있다.

(W. 호운/ 매일의 책)

 

"사후에는 시간이 없는 상태가 시작될 것이다" 라느니 "죽음과 함께 시간이 없는 상태가 시작된다"고 하는 철학자가 있다. 그러나 그 철학자는 자기가 '후'라든가 '함께' 또는 '시작한다'는 시간적인 내용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는 시간이라는 것이 자기 자신의 문법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L. 비트겐슈라인/ 반철학적 단장)

 

시간은 제일 좋은 상담 상대이다.

(영국 속담)

 

시간은 선택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

(F. 베이컨/ 수필집)

 

훌륭하게 보낸 하루는 잘못을 저지르는 영원보다 낫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시간의 골짜기에서는, 매로 시간의 언덕이 영원의 산을 가로막는다.

(A. 테니슨)

 

시간을 한 번 잃는다는 것은 영구히 잃는 것이다.

(영국 속담)

 

시간을 많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활동시간을 견딜 수 없이 길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안일(安逸).

(J.W. 괴테/ 서동시집)

 

형제여, 기다리는 시간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다.

(S. 듀드니/ 인생의 찬가)

 

시간은 즉시 과거를 낳고 그 과거의 퇴적을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간이란 한 번가 버리면 없다. 그러므로 공동묘지란 단절된 시간의 광장이다. 자기 자신을 써 버리면 생은 정지되는 것이다. 조물주로부터 배정된 시간이 다하면 그만이지 아무도 보태거나 꿔 주지는 못한다. 이토록 시간은 살인 광선과도 같은 무서운 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시간은 지금 이 시각에도 일초 일초 주어진 시간들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김자림/ 은은한 환희)

 

시간은 도덕 영역에서까지도 위대한 적범성 공인자이다.

(H.L. 멘컨/ 서설서)

 

시간은 아껴도 수치스럽지 않은 유일한 부다.

(A. 드 보세느/ 성찰과 고찰)

 

모든 낭비 중에서도 가장 책망을 받아야 할 것은 시간 낭비이다.

(M. 레슈친스카)

 

시간은 틀린 것을 마멸시키고 진실을 빛나게 한다.

(G. 레뷔스/ 잠언과 교훈)

 

시간만큼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는 설교사는 없다

(J. 스위프트/ 제문제에 대한 고찰)

 

시간은 모든 권세를 침식, 정복한다. 시간은 신중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포착하는 자의벗이며, 때가 아닌데 조급히 서두는 자에게는 최대의 적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시간은 옛 것을 낡게 하고, 모든 것을 먼지로 화하게 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T. 브라운 경/ 호장론)

 

시간의 바다는 썰물로 줄지도 않고 머물러 있지도 않는다.

(J. 키블/ 그리스도의 해)

 

너는 지연시킬 수 있으나, 시간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

 

시간은 모든 것을 폭로한다.

(에라스무스/ 금언집)

 

시간이나 조수를 붙들어 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R. 번즈/ 오두막집의 탬)

 

시간은 일종의 지나가는 사람들의 강물이며, 그 물살은 세다. 그리하여 어떤 사물이 나타났는가 하면 연방 스쳐가 버리고, 다른 것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새로 등장한 것도 또한 곧 스쳐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인간의 재치가 얼마나 무상하며 하찮은 것인가 눈여겨 보라. 어제까지만 해도 태아이던 것이 내일이면 뻣뻣한 시체나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리니, 네 몫으로 할당된 시간이란 그토록 짧은 것이니, 이치에 맞게 살다가 즐겁게 죽어라. 마치 올리브 열매가 자기를 낳은 계절과 자리를 키워 준 나무로부터 떨어지듯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비트족, 그들은 운명보다 빠르게, 고뇌보다 가볍게, 그리고 우울을 향해서, 뺨을 갈기듯, 그렇게 시간 속을 달려야만 한다.

(편자/ 너와 나의 거리)

 

사람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일종의 자살이다.

(G. 새빌(핼리팩스 경)/ 정치, 도덕 잡상집)

 

새벽녘 어머니의 천식 기미를 되받아/ 가쁜 숨소리만큼 매연을 토하면/ 남태령을 지켜선 나무들은/ 가아맣게 오늘을 앓으면서/ 내일을 피우고 있었다.

(추영수/ 남태령 고개)

 

시간은 만유를 만든다. 만유를 돌아서 행진한다/ 때는 아버지로 있으면서 만유의 아들이 되었다. 그보다 위력이 앞서는 자 없다/때는 저 하늘을 낳았고, 또 여기 땅도 낳았다/과거도 미래도 한 가지로 그 때부터 나와서 그 곳을 얻는다/ 때는 국토를 만들어 내었다. 때에 의하여 해는 빛나고/ 만물은 때에 의존하고, 눈은 때에 의하여 본다.

(베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저만치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그것뿐이다‥‥‥‥/ 그것은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박거영/ 그것은 영원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란, 맑은 샘물이 항상 흥건히 고이고 또 고이듯이 이 우주의 숨소리와 더불어 끝없이 지속되는 것이다.

(김자림/ 은은한 환희)

 

마리아여/ 당신이 우심을- 저는 압니다/‥‥당신의 두 손은 뜨겁습니다. /그 손에 나의 손이 닿았더라면/ 당신의 노래 하나 남았을 것을// 그러나 시간은 죽어갑니다. 유언도 없이 ‥‥‥

(릴케/ 마리아께 드리는 소녀들의 기도)

 

그대는 오지 않고 행진하는 시간은 다가와, 나를 마비시켰소./ 다 같이 발을 멈추면/ 더욱 어수선한/ 교통 차단의 질서 밖에서/ -가만히 어깨를 치는 가랑잎 하나/ 습기어린 정지(淳止)를 넘어/ 시민의 말없는 의식이 질주하고,/ 서로들 민망한 눈으로/ 또 시간을 묻는다.

(고원/ 어느 시간의 대위법)

 

시간은 허공을 뚫고 자아로 날아다니는 날개

(K. 지브란/ 예언집)

 

보라및 시간/ 눈 등어리도 책상에서 위로 향하고,/ 인간 엔진은 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는 택시처럼/ 두근두근 고동칠 때에

(엘리어트/ 황무지)

 

존재할 때/ 이미 마련되어 있는/ 시간의 국한을 모르고 있어/ 운명이다.

(황금찬/ 촛불)

 

젊음의 도적, 시간이 날개를 달고와 나의 스물세 해를 훔쳐 갔구나.

(J. 밀턴/ 소네트)

 

우리들이 교환하는 시선처럼 맹목적으로/ 시간이 입술 위에 키스를 한다.

(P. 첼란/ 밤에)

 

마치 어느 진정제처럼/ 시간은 의욕의 나무가 자라나는 것을 가라앉힌다.

(R. 에버하트/ 1934년)

 

그리고 고요히 시간을 손놓아,/ 영혼을 몽상에 바친다.

(릴케/ 시 8 편)

 

타인의 시간을 경작하는 자가 스스로의 시간의 경작법에 대하여/ 생각하려고 하는 시각이다.

(길야홍/ 황혼)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 부디 긏지 말고 촌음(寸陰)을 아껴쓰라/ 가다가 중지 곳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김천택)

 

시간이 처음 났을 땐/ 아기처럼 가다가도 달아난다. / 세우고 무느뜨리고/ 못된 것은 아주 쓸어 버린다/ 새롭게도 하고 건설도 한다/ 다만 젊게만은 못 한다/ 늙게 하여 욕심을 버리게 하며/ 기력이 모자라 살 생각이 없을 때/ 신의 부르심에 눈을 록 감겨서/ 삶의 고통을 덜어주는 어진 친구가 된다.

(김광섭/ 시간)

 

시계는 열한시 오십구분/ 일분이 지나면 날이 바귄다. // 날이 바뀌어 본들 별일은 없지만/ 바뀌는 날에 기대를 걸어 본다. // 기대를 걸어 본들 별일은 없지만/ 언제나 속으며 믿어본다. // 믿어 본들 별일은 없지만/ 시계는 열 한시 오십구분/ 일분이 지나면 새 날이 된다.

(박남수/ 시계는 열한시 오십구분)

 

위인들의 모든 생애는 말해 주고 있거니,/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를 수 있고,/ 떠날 때는시간의 모래 위에서/우리들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

(롱펠로우/ 인생 찬가)

 

시간에는 오늘이 없고/ 영겁에는 미래가 없고/ 영원에는 과거가 없다.

(A. 테니슨/ 어떻게 해서 어찌해서)

 

만약 시간만 없어진다면/ 모두 알 수 있거나 볼 수 있으련만‥‥‥

(W. B. 예이츠)

 

누가 시간들을 살해하였는가./ 그 화려한 자색 시간들을, 믿음의 한 시간 한 시간을.

(H. 트리스/ 시)

 

과거도 없어지고 미래도 없어지는 것 같은 시간이었지./ 다만 예리한 불빛이 비치는 현재의 시간만이 남는 것 같고/ 그 순간에다 우린 불을 켜대고 싶은 생각이 든단 말이야

(T.S. 엘리엇/ 가족의 재회)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김현승/ 창)

 

"나 그만/ 알리지 않고 다녀갑니다"/ 가랑 잎이 지는 밤이래서일까/ 오랫만에 슬픈 환상이 있어/ 사치스런 시간이다. // 조그마한 숨소리로/ 마른 잎과 잎들이 모이는/ 음향속에/ 은은한 메아리로 울려오는 소리

(김남조/ 가을의 노래)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김현승/ 가을의 기도)

 

만일 잠 못 이루는 일이 있다면/ 그들이 지켜보는 어두운 시간을/ 어루만져 주시고

(R.R. 스티븐슨/ 10월의 기도)

 

나의 생애에 흐르는 시간들/ 가느다란 1년의 안젤루스

(박인환/ 나의 생애에 흐르는 시간들)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김지하/ 새벽 두시)

 

지나가 버린 모든 시간,/ 잊히지 않는 모든 기억,/나는 그것들을 머언 지평선에 세워 두고바라본다. / 노을이 물든 그 모습들을

(김현승/ 지평선)

 

이슬에 반짝이는/ 보랏빛 시간들을/ 처음여는 새각씨의 가슴으로/ 조심스레/ 맞이하겠습니다.

(황국명/ 아침 기도)

 

아무런 단맛도 나를 원숙하게 못한다/ 송진의 거칠은 입김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시간은/ 고뇌의 표류였다오.

(과시모도/ 유칼립 터스나무)

 

그러나 거리의 시계들은 모두가/ 윙 하고 돌면서 울리기 시작한다/ 아, 시간에 속지말지니라/ 너희는 시간을 정복할 수 없다.

(오든/ 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

 

무리지는 빛살 무너져/ 또 하루/ 산다는 것 생각케 하는 시간

(정희수/ 그대 다가오고 있음에)

 

시간의 축에 매달려 빨리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김현숙/ 알리스카의 가로수)

 

여섯시엔/ 산마루의 정말 체조(丁抹 體操)/ 30분엔 분홍빛 공길 찢어라/ 태양이 보석처럼 쏟아지게‥‥/오전의 해협을 건너오는/너희들의 여름 옷이 이다지도 흰 것은/ 저 봉우리와 젊은 섬들이/ 이렇게도 푸른 탓// ‥‥고가선 너머/도시의 가장자리가 연기에 물드는/보랏빛 시간이 오면/ 먼 들 끝에 호올로 나아가/ 제주마를 몰고 가는 목동이 되든지

(김현승/ 하운(更雲) 소묘)

 

세월을 낙엽처럼 밟으며/ 내 한 일이란/ 지금은 멀리 가버린 시간의/ 해묵은 흥분/ 실망이며 즐거움이며/ 기억에 남은 이름, 몇 마디의 대화

(박태진/ 하 세월)

 

하나의 슬픔이 태어나기 위해선/ 적어도 1 억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의 슬픔이 삭기 위해선/ 적어도 노래가 되기 위해선/ 적어도 1억 년의 시간이 또한 필요하다.

(신동집/ 하나의 슬픔)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 아리를 틀고 있다.

(신동집/ 오렌지)

 

시간에 매어달려 사색에 지친 몸이/정적을 타고 내려 대지에 앉아 보니/ 공간을 바꾼 탓인가 방랑길이 멀구나

(이희승/ 낙엽)

 

삭을대로 삭아 물이 된 강물이// 스르로 무릎꿇고 내려선/ 하늘이// 한낱 검불로/ 떠도는 희멀건 시간 앞에/ 긴 물길 지나온 생각들을 지우고 있었다.

(박현서/ 낙동강 · 39)

 

네 머리에 손을 얹으면/ 시간의 잘못을 더듬어가는 무딘 손끝/차라리 싸늘한 한기로/밀리듯 물러앉는 삶을/ 어디에 얹혀야 할지

(김현숙/ 놋그릇과 더불어)

 

저문 계절 빈 벌에 한 오리 갈처럼 서서/흐르는 시간 속으로 아린 마음을/풀어 놓는 일이 란다.

(박명자/ 풀씨)

 

서녘으로 초승달이 걸려 있고/ 나는 등 구부리어/ 언덕길을 오른다/ 이미 하루를 마감하고 또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의 귀가

(이충이/ 밤길)

 

어느 날 저 정직한 시간의 뜨락 위에/ 가라앉아 오롯이/ 한 개 검은 바위가 되게 하소서

(윤강원/ 하나의 기도)

 

그래도 어느 만큼 시간은/ 역력히 되살아나고만 있다// 환각으로 너울거리는/ 우리의 시간, 그 단절마다/ 장대 끝 절정이다// ‥‥시간은 자지러지는가 싶다가/ 다시 일어나/ 비롯되는 맞춤이다.

(최은하/ 우리의 간격)

 

내 자란 키만큼/ 손등에 주름진 나이만큼/그냥 울어보고 싶은 시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뜨락

(박이도/ 무섭게 뻗어오르던 덩굴 속의 빈 의자에는)

 

쌓인 책을 책장에 넣는다/ 흩어진 볼펜은 필통에/ 여기저기, 백지는 서랍에 넣는다//헝클어지는 시간을/ 꼭꼭 눌러 접는다.

(김문희/ 저녁 등불)

 

화선지에 풀린 먹물/ 진하게 밀려 오는 그리움/ 흔적뿐인 시간은/ 타버린 재만 날리면서/ 문득 역사의 한쪽을 들춘다.

(정희수/ 백마강에서)

 

거리마다 하나 둘 불은 꺼지고/ 지친 행인들의 마음 또한 어두워지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희생양 같은 재물이 되어/ 스스로 가야 할 목적지는 잃었어도/ 어디론가 흐르고 있음에 감사하는가// ‥‥끈질기게 타오르던 고콜불마저 사위어/ 아아, 무자비한 용사인 시간의 무대 위에는/ 우리의 그림자조차 텅 비어 버렸다.

(김성영/ 어둠의 끝, 빛의 시작)

 

창등으로 스며드는/ 햇살과 바람으로/ 벽속의 어둠을 밀어내고/ 창 밖으로 보이는 잔디밭에/ 가득한 클로버꽃 향기와 장미꽃밭에 뒹구는 꼬마 친구들/ 틈바구니에 끼어 흐르는/무료한 시간

(김연식/ 창가에서)

 

끝간 데 모를 시간은 씨줄이 되고/ 가없는 공간 날줄 삼아/ 그대 영혼 베틀로 짜낸 피륙들은/ 오랜 겨레의 내력 이어내고 있습니다// ‥‥하여, 시간의 뿌리를 찾아 방랑하며/공간의 중심에 닿으려 그릇을 빛지요

(정동주/ 신무가 · 2 고요했던 날들)

 

시간의 톱날로는 끊을 수 없는/ 마르지 않는조선 피의 진실이/ 뜨거운 불을 먹고 찬연히일어서는구나

(정동주/ 신무가 · 7 흙이 전하는 말)

 

타는 모랫벌./묻히는 시간이사/내 걸음의 강물 소리인 것을

(정복선/ 강물 소리)

 

짧게 짧게 이어지는 소리/ 흰 눈송이에 힘입어/ 비로소 빛나는 햇살/ 마음의 귀로만 듣게 되는/ 정지된 시간

(박이도/ 겨울)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꿈을/ 훨훨 날아서 가는 갈매기

(박이도/ 바다 갈매기 · 5)

 

시간의 손은 없앨 수도 없나니/ 달과 별뒤에 숨길 수도 없나니

(푸 티안 홍/ 눈)

 

이별은 떠날 때의 시간이 아니라/ 떠난 뒤의 길어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합니다.

(도종환/ 이별)

 

오랫만에/ 바닷가를 걸었다/ 머리칼을 자유롭게 날리며/ 시간을 버려둔 채.

(박명용/ 넓고 넓은 바닷가에)

 

시간은 신발되네/ 바람 와와 신고 가네//시간은 신바람 잡네/ 돛폭에다 안겨 놓네//시간은 꽃숭어리로 오르네/ 바람 입에 입 맞추네/ 시간은 안개 끌어 덮네/ 단잠이 베개되어 주네/ 바람 얼른 따라 눕네/ 함께 베고 드르렁거리네// 바람도 시간 같은 나그네/자야 기운 난다네

(서벌/ 對句)

 

잇속이 이팝나무 꽃결처럼 가지런한/ 그, 그, 끝숙이는 여전히 열일곱 나이/ 서른 해넘었는 데도 안 간 시간 있구나.

(서벌/ 생각 · 1)

 

땀 많이/ 흘린 그적/ 물이었어, 나의 시간

(서벌/ 먼데서 부를 노래)

 

이미 나도 모를 이상한 힘에 이끌려/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의/ 새벽 별을 스스로 머리에 이고/ 홀로 아무도 모르게 표연히 길을 떠났다.

(홍완기/ 절)

 

꿈틀꿈틀/ 붙어있던/ 누렇게 바랜 시간들

(윤재철/ 사진첩을 열면)

 

아직도/ 강가 언덕에 쌓여있는/ 바람 없는 시간들은/ 한줄기 소낙비를 기다린다.

(유병우/ 초저녁)

 

어제/ 그 시간을/ 비에 젖은 뽀오얀 창 밖에 넣어 두자// 어제 그 시간 옆에/ 머리 검은 나무를 심어 두자/ 오랜 우리의 그늘을 지키는‥‥//어제 그 시간을/ 진한 눈물로 닦아 두자/ 내게는 이제 다른 보석은/ 빛나지 않으려니

(김현승/ 어제)

 

노인의 검고 높은 그림자는/ 이 깊숙한 들밭을 차지하고 있다/ 그가 얼마나 시간의 소중함을 믿고 있는가/ 그것을 나는 알 것 같다.

(V. 위고/ 황혼)

 

그러니 우리 서로 사랑을 나누자/ 덧없는 시간을 서둘러 즐기자, 인간은 닻을 내릴 항구가 없고,/ 시간은 가 닿을 기슭이 없는 것을/ 시간은 흐르고, 우리들도 지나간다// 오, 질투에 가득 찬 시간이여/ 사랑이 우리에게 행복을 흠뻑 부어 주는 이 도취의 순간들이/ 불행한 날들처럼 순식간에/ 우리에게서 멀리 날아가 버릴 수 있는가?// 단지 시간의 흔적만이라도 붙들어 맬 수는 없는 것인가?/ 아 영원히, 사라졌구나, 모든 것을 잃었구나!/그 도취의 순간을 주었던 시간

(라마르띠이느/ 호수)

 

지쳐버린 마음이여, 지쳐버린 시간에/ 오라, 옳고 그름의 그물 벗어버리고

(예이츠/ 황혼과 새벽 빛 속으로)

 

막 파헤쳐진 흙처럼 울퉁불퉁한 시간-/그것은 발걸음에 상처를 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자궁 속에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스바스 무코파다이/붉은 장미를 위해서)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김남조/ 겨울 바다)

 

내가 나눠져서/ 몇 개의 분신으로/ 만나는 시간

(김남조/ 달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김현승/ 4월)

 

아내는 헌옷을 꺼내어 다듬고/ 고드름 녹아내리는 처마 끝에서 나는 포도넝쿨을 자르는/이 시간이 내게는 양지와 같이 다습다.

(김현승/ 겨울방학)

 

푸른 잎새들이 떨어져 버리면,/내 마음에/다스운 보금자리를 남게 하는/ 시간의 마른가지 들‥‥‥

(김현승/ 고전주의자)

 

그리하여 시간으로 하여금/ 새 벽을 향하여/ 이 풍성한 밤의 껍질을/ 서서히 탈피케 할 줄을 안다.

(김현승/ 밤은 영양이 풍부하다)

 

음향도 없고/ 시간도 멈춘/ 오직 태초의 고요 속에/ 주를 뵈옵도소이다.

(김남조/ 나아드의 향유)

 

뜨거운 햇빛 오랜 시간의 회유에도/ 다 휘지않는/ 마를 대로 마른 목관악기의 가을/ 그 높은 언덕에 떨어지는,/ 굳은 열매

(김현승/ 견고한 고독)

 

시계의 장침은 내가 어디를 가든 또는 무엇을 하든지 간에/ 생애의 순환을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가리킨다/ 내가 그 길을 잃을 때조차도/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것은 영원히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나의 피는 동맥을 통하여 고통친다‥‥/ ‥‥각각의 똑딱소리, 고동소리 그리고 각각의 절차는 태내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 즉 시간은 움직이는 베틀

(찰스 클라인/ 시간의 베틀)

 

등 뒤에서 무거웁던/ 시간을 잊고

(이해인/ 저녁 강가에서)

 

동트는 새벽을 향해 강둑에 올라섭니다/힘의 말씀이 빛으로 솟는/ 새 시간을 체험합니다.

(박이도/ 자연송)

 

화초를 기르는 것은, 도리어// 세월을 기르는 것이라서/ 쏟아 온 시간들이 화분에 자라/ 길고 긴 기다림이 세월에 흔들리며/ 화안한 역사를 키운다.

(심일섭/ 화분)

 

결국 머무는 곳은/ 바람이 멎고/ 시간도 정지되는/ 안개의 언덕

(황금찬/ 무덤)

 

결벽한 여로/ 잠의 시간이여/ 맨발이 상하지 않는 땅/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윤강로/ 잠 속에서)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잠시라고 하시면서 있으라시기에/ 다시 만나올 그 머언 시간을 위해

(허형만/ 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입이여 어서 당신과 마주앉아/ 목숨바칠 노래를 부르렵니다/ 신비스러운 침묵 속에 가득 싸인/ 이 한가로운 시간 속에서

(타고르/ 당신 곁에)

 

"오 시간이여 운행을 멈추고/ 너 행복한 시절이여 흐름을 멈추라!/ 우리네 일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로/ 덧없는 기쁨이나마 맛보게 하라.//수많은 불행한 일들이 너를 기다리느니/ 시간이여 그들을 위해 빨리 가거라/ 그들의 불행도 시간과 함께 앗아가고/ 행복한 사람일랑 잊어버려 다오."// 이 잠시의 유예나마 바람은 쓸데없는 일/ 시간은 나를 비껴 자꾸만 달아나고/ 나는 밤을 향해 "천천히 밝아라" 말했으나/ 새벽은 서둘러 와 밤을 쫓는다. //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 덧없는 시간이니/ 이 짧은 시간을 어서 즐겨야지./사람에겐 항구가 없고, 시간에겐 기슭이 없느니/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사라지네!"// 시샘 많은 시간이여, 사랑겨운 이 순간/우리에게 행복을 안겨 주는 도취의 순간도/ 저 불행의 날처럼 우리로부터 빠르게/ 멀리 날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뭐! 도취의 흔적조차 남겨둘 수 없다고?/ 뭐, 영원히 갔어? 뭐라고! 사라졌다고?/ 도취를 주었던 이 시간, 또 지우는 이 시간이/ 다시는 돌려지지 않을 것인가

(라마르틴/ 호수)

 

수많은 시간이/ 이 순간으로 교류되어/ 멀리 멀리 스러지는데

(한경구/ 말매미)

 

바라보기만 해도 내 가슴을 축이는/ 달콤한 청량수 한 방울로/ 무기력한 영혼이/ 새로이눈 뜨는 시간

(김종운/ 아침 이슬)

 

한 목숨 그윽한/ 미지의 시간 속에서

(김경호/ 일고 지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 저는 지나간 일을 다시 생각하거나/ 내일 일을 기대하는 것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 정말로 저의 유일한 시간인/ 현재를 놓쳐 버립니다. // 과거는 그 성공과 실패와 더불어/ 지나갔음을 저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거나 실망케 했다면/ 그것을 고칠 수 있나이다. // 그러나 이미 한 일은 어찌 할 도리가 없나이다. /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열망하고 염려한다 해도/ 그것을 재촉하거나 연기하지 못하나이다. // 주여, 저에게 오늘을 주시되/ 한 번에 조금씩 주시음소서/ 그것이 저의 모든 것이며/ 제가 할 모든 것이옵니다. / 순간순간이 저에게 귀중한 시간임을/ 아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과거의 죄와 미래의 시련을 잊을 수 있도록/ 당신을 신뢰하는 소망을 저에게 주시옵소서/ 인생의 순간순간을 당신과 함께 거할/ 영원에의 기대로 채울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아멘

(리차드 암스트롱/ 현재를 위한 기도)

 

단 하나의 한숨으로 줄어드는, 시간의 신전이여/ 이 순수한 지점에 나는 올라가 익숙해진다.

(발레리/ 해변의 묘지)

 

나의 주이며,그대의 주인/만능의 시간과/영원한 운명이/ 나를 사나이로 단련하지 않았던가?

(괴테/ 프로메테우스)

 

시간의 중압이 사슬로 묶고 굴복시켰다. /멋대로며, 빠르고, 거만하여 너 같은 나를

(셸리/ 서풍의 노래 · 4)

 

저 먼 곳 쓸쓸한 무덤 속에 차갑게 묻힌 그대/ 하나뿐인 사람아, 모든 것을 삼키는 시간의 물결로/ 메어져 나는 사랑을 잊고 만 것일까?

(브론테/ 추억)

 

기도하듯이 바라보는 소년의 손에/고요한 시간이/ 고귀하게 물들어 흘러 넘치네

(사사로와 요시아끼/ 국화)

 

이제는 도무지 어쩔 수가 없고/ 기다릴 것도 없는 시간 속에 남아/연금의 창 밖을 바라다보면

(이수익/ 폭설)

 

파괴작업을 하고 있다/ 억 년 내려쌓여 꽝꽝하게 굳은 시간/ 또 억 년 결정 끝에 흙이 된/ 정지를/ 판다 실어낸다.

(함혜련/ 아침)

 

머물지 않는 시간의/ 끈을 잡고/ 풀리지 않는 바람의/ 매듭, 매듭을 풀어가라

(이한호/ 비가 · 5)

 

군데 군데 뚫린 구멍 사이로/ 햇볕이 내려가/ 베드로가 가꾸었던 시간들을/ 저만치 서서쓸쓸히 바라보고 있다.

(이활/ 살아 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천 년, 한 오백 년/ 지나간 세월/ 누가 심었을까/ 어디로 갔을까/묵묵부답, 이 시간

(조병화/ 나무)

 

사람은 제마다의 현실/ 사랑은 채워지지 않은 가락/ 너의 대문은 시간을 여닫고/ 마음의 문간방은 어느 골짜구니/ 망각의 시간은/흡사 솔밭에 잔다.

(박태진/ 설경)

 

그러자 이어 천문학자가 말했다 스승이여, 시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하여 그는 대답했다/그대들은 잴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시간을 재고자 한다/ 그대들의 행위를 시간과 계절에 맞추고자 하며, 심지어는 그대들 영혼의 길마저 인도하고자 한다/시간을 강물로 만들어 그 뚝 위에 그대들은 앉아 그 흘러감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들 속의 영원은 시간의 영원을 깨닫고 있다/ 그리하여 어제란 다만 오늘의 추억이며, 내일이란 오늘의 꿈임을 안다/ 그리하여 그대들 속에서 노래하고 명상하는 것은 아직도 허공에 별이 뿌려지던 최초의 순간, 그 속에 살고 있음을/그대들 가운데 누가 무한한 그 사랑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가? / 또 누가 아직 그 사랑을, 비록 무한함에도 존재의 핵심에 둘러싸여 사랑의 생각에서 생각으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한 사랑의 행위로부터 다른 사랑의 행위로 움직이지도 않는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가./ 사랑이 그렇듯 시간도 무한하며, 결코 나누어지지 않는 것// 허나 그대들의 생각으로 계절에 맞추어 시간을 재어야겠다면, 각 계절로 하여금 모든 다른 계절들을 둘러싸게 하라/ 그리하여 오늘로 하여금 추억으로써 과거를, 동경으로써 미래를 껴안게하라.

(K. 지브란/ 예언자)

 

밤커피가 두려운 날은/ 시가 배밀이 하는 시간

(이상범/ 시가 지상에 남아)

 

아마 한 어린이가 자란 뒤엔/ 덧없이 경이롭고/ 행복했던 시간들은/ 기억하겠지

(밀로 D. 파섹/ 고독한 굴뚝)

 

이성은 조롱 속의 새/ 시간은 그 가날픈 울음/ 순간은 잃어버린 여의주

(성지월/ 조롱)

 

얼마나 오랜 시간을/ 손은 소유하고/ 또 놓쳐 왔을까

(박남수/ 손)

 

오동꽃이 피고/ 음력 4월/ 양력 5월/ 꽃빛깔 바래는 오정 복판/ 뿌옇게 손 흔들며/ 부서지는 시간/ 피가 조여드는 아까운 시간.

(이향아/ 오동꽃)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 이 집산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의(威儀)있는 송덕비 위로/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김용호/ 주막에서)

 

우리는 만나기 위하여 있는 것이오/필경은 시간의 피임이기에/ 다리가 있는 지점 같은 데서/ 손을 저으며 살아 있는 것이요

(박양균/ 거리)

 

밤을 기다린다/ 시간이 허리를 꺾는다.

(김후란/ 미사에 늦지 않으려고)

 

시간보다/ 많은 허무에서/ 벗어나려면/ 님이 되어야 하는데

(김구용/ 송 · 74)

 

수다스러운 건 시간의 수레바퀴,/ 바다는 푸르죽죽 멍이 든 채로 실눈을 뜨고 있다/영원이란 자고로 그래왔다는 듯이

(박희진/ 섣달 그믐날 살을 에이는)

 

어느 별의 화답이 이리 더딘가/한밤중이면 깨어나 앉아/ 지난 시간의 그림자들을 개어먹을 가느니

(박제천/ 사기등잔과 함께)

 

해를 등에 지고/은빛의 신/동녘에서 떠나 서녘 땅으로/ 짐지고 가는 길/ 한 발을 헛디뎌/ 푸른 눈물이 담긴 시간을 차버렸다.

(김요섭/ 은빛의 신)

 

 

설 교 노 트

 

나의 남은 생애

고전7:29-31

 

서론

사도 바울 선생은 본문 29절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이 세상에서 생존의 시간이 막을 내리는 그날에는 나도 가고 이 세상의 것도 허무해 진다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남은 생애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인간의 두 가지 삶의 형태가 있다고 하면, 그 첫째는 나 자신만을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다음은 오직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살아가는 형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자는 하나님을 부정하며 살아가는 불신앙인의 생활 철학이라고 하면, 후자는 하나님을 긍정하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생활 철학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요,목적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10:31, 전12:13-).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사는 삶의 양상을 잠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회개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눅15:10-).

하나님은 인생들이 자기의 죄를 깊이 뉘우치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삶에 대하여 매우 기뻐하시면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가 의로워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깊이 회개함으로 긍휼과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2) 순종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삼상15:22).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셨고, 순종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화롭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을 왕위에서 폐하시고 내어버리신 원인은 그가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3) 헌신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롬12:1).

하나님은 우리들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 충성함을 매우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하나님께 인색함 없이 드리는 삶을 기뻐하십니다.

 

2. 나 자신을 정복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인생이 빛나게 사는 비결은 나를 정복하는데 있고 빛나는 유산을 생산할 수 있는 비결도 나를 정복하는데 있고 빛나는 퇴장식도 나를 정복하는 삶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 암시하는 사상이나 교훈도 나를 정복하는 삶에 관하여 역설하였지마는 자신의 고백을 들어보면, 고전9:27이나, 고전15:31에는 자기를 날마다 쳐서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날마다 쳐서 죽이면 죽일수록 주님과 거리가 가까워지고 능력을 공급받고 은혜를 받아 빛나게 살면서 일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나를 쳐서 정복하는 삶의 양상은

(1) 내 마음 내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주님 말씀과 뜻대로 사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나 예수를 알기 전 육체의 정욕대로 살던 모든 것 십자가에 못박고, 구속하여 주신 주님 뜻대로 살아갑니다.

(2) 이세상 중심에서 살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중심에서 사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전에사상의 것 좋아했으나 이제는 하늘나라의 것 더 좋아하여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3) 간사한 나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진실하신 주님만 위해서 사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롬

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제 우리 남은 삶을 바로 살면서 바로 일하다가 가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밀가루와 기름을 바로 씁시다.

(1) 나의 남은 시간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되겠습니다.

(2) 나의 남은 건강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고

(3) 나의 남은 재물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다가 천당에 가십시다.

시 기

성 경 활 용

1. 시기에 대한 고찰

(1) 이스라엘 백성은 정한 시기에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

(민28:2) 나의 예물, 나의 식물 되는 화제,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

(2) 요단 강물은 모맥 거두는 시기에 항상 언덕에 넘쳤다.

(수3: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3) 하나님께서 시기를 정해 놓으셨다.

(욥24:1)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

(4)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를 분변한다.

(전8:6) 무슨 일에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5)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

(전9:12)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6) 애굽왕 바로가 시기를 잃었다.

(램46:17) 거기서 부르짖기를 애굽왕 바로가 망하였도다 그가 시기를 잃었도다

(7) 지금은 자다가 깰 시기이다.

(롬13:11)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관련원어풀이

1. @m;z] 제만-

(1) 시간, 정한 시간.

(단3:7, 7:25)

(2) 시간들, 세 번.

(단6:11)

 

2. d[e/m 모-에-드

(1) 사시, 기간, 회중, 절기제, 정기, 회당, 기약, 성회, 시기.

(렘8:7,호2:9)

 

3. t[e 에-트.

(1) 시간, 때, 적합한 때, 알맞은 시기, 기회.

(욥22:16, 잠15:23)

(2) 어떤 때, 시기.

(전3:1, 17)

(3) 오랜 시간.

(호13:13)

(4) 행복한 시간, 행복.

(시81:16)

(5) 시간들, 때들.

(에1:13)

 

4. kairov" 카이로스

(1) 적합한 정도, 시간의 척도.

(눅4:13, 롬13:1)

(2) 알맞거나 적당한 시간.

(갈6:10, 골4:5)

(3) 제한된 때의 기간.

(막1:15, 눅18:30)

(4) 시간이 가져오는 것, 때의 상태, 때의 일들과 사전들.

(눅12:56)

설교예화자료

다빈치의 자기 파멸

 

플로렌스의 고문단이 그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반치에게플로렌스에 있는 대강당을 장식할 스케치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또한, 고문단 중 한 사람은 훌륭한 작품을 많이 탄생시켰으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가인 미켈란젤로에 대해 듣고는 그에게도 똑같은 요구를 하였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스케치는 그의 천재성에 어울리게 뛰어난 것이었지만, 고문단이 미켈란젤로의 스케치를 보았을 때 그 그림에는 경이와 종교적 열의가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곧 레오나르도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는 또 어떤 고문이 "레오나르도는 이제 늙었어."라고 말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에 의해 손상된 그의 명성을 다시는 회복할 수 없었으며, 그 후부터는 우울하고 슬픔에 가득찬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플루트에 대한 질투

 

어떤 기자가 신문에서 "나는 나의 아내의 빚을 책임지지 않겠습니다. "라고 쓰인 광고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광고에는 또 "그녀는 나의 플루트를 가지고 나의 침대와 식탁을 떠났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즉 그의 아내가 가족과 관련이 있는 플루트를 가지고 도망간 것입니다.

이 광고를 낸 사람은 음악가인 존 오레스키였는데, 그는 규모가 큰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 단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과는 달리 가정에는 불협화음만이 가득했습니다.

부인은 옷들로 쌓여 있는 옷장에서 옷 한 벌도 가지지 않고, 단지 플루트 하나만 가지고가출해 버린 것입니다. 남편은 설명하기를, "이것은 바로 그녀의 질투, 플루트에 대한 질투 때문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편은 분명히 그의 아내보다도 그것에 더 관심을 두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어록·시·묘사

 

천한 사람이 귀한 사람을 방해하며, 젊은이가 어른을 업신여기며, 먼 사람이 가까운 사람을 이간하며, 새 사람이 옛 사람을 이간하며, 적은 사람이 많은 이에게 보태며, 음탕한 사람이 음은 사람을 헐뜯음을 소위 육역(六逆)이라 한다.

(소학)

 

시기심은 살아 있는 자에게서 자라다가 죽을 때 멈춘다.

(오비디우스/ 연애시집)

 

시기심을 키우는 가장 큰 힘은 조금밖에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기심을 교정하려면 많이 알고자 노력하고 시기심을 마음속에 가두어 두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상)

 

남의 행복을 강력히 배척하고 남의 행복 위에 자기의 행복을 세우려는 사람은 결국은 그 자신도 행복해지지 못할 것이다.

(D. H. 로렌스)

 

명성에 정비례하여 시기심도 자라니, 호평을 받는 자에게는 적이 생긴다.

(E. 영/ 포우프 씨에게)

 

매서운 시기의 격노를 달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호라티우스/ 서간집)

 

가장 천하고 보잘것 없다고 믿어지는 사람들이, 대개는 가장 야심적이고 시기심이 강하다.

(스피노자/ 윤리학)

 

남의 복은 끌로도 못 판다. <*남이 잘되는 것을 공연히 시기하는 사람이 많으나 아무리 시기를 하여도 그 복을 없애버리지는 못하는 것이니 그와 같은 생각은 말라는 뜻>

(한국 속담)

 

남이 누리는 행복을 배 아파하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을 심하게 비뚤어지게 한다. 그것은 남의 행복을 뒤집어서 우리들의 불행으로 삼는 것이다.

(P. 샤롱/ 지혜론)

 

시기는 증오보다 더욱 비타협적이다.

(라 로시푸코/ 금언집)

 

나의 행동을 욕하는 자는 나와 사귀고자 하는 사람이요, 나의 물건을 헐뜯는 자는 그것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다.

(회남자)

 

샘내는 자는 항상 가난하다.

(클라우디아누스/ 붉힘에 대하여)

 

사람이란 남이 겪고 있는 불행이나 괴로움에 대하여 적지 않은 기쁨을 느낀다.

(E. 버크)

 

거지는 거지를 시기하고, 시인은 시인을 시기한다.

(헤시오도스/ 일과 날)

 

동정은 살아 있는 자를 위한 것이요, 시기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다.

(마크 트웨인/ 적도를 따라)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 앞을 달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A. 단체/ 신곡)

 

시기심을 나타냄은 가기 자신에 대한 모욕이다.

(Y. 예프투센코/ Y. 예프투센코의 시)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는 가운데, 시기는 무지라는 신념에 도달하는 때가 있다.

(에머슨/ 수필집)

 

모든 격정 중에서 가장 추악하고 반사회적인 것- 그것은 시기다.

(J.S. 밀/ 자유론)

 

시기는 자신의 화살로 자신을 죽인다.

(미상/ 그리이스 사화집)

 

시기는 위대한 호우머의 천재마저 멸시한다.

(오비디우스/ 사랑의 치료)

 

시기하는 자는 사팔뜨기(악의 있는) 바보다.

(T. 풀러/ 금언집)

 

나는 내 실망을 견딜 수 있어도 남의 희망은 참을 수 없다.

(W. 윌시/ 시 ; 모든 고통)

 

시기는 산 개미 꽁무니라. <*사람의 하는 일이 매우 아니꼬와서 눈에 거슬린다는 뜻>

(한국 속담)

 

이웃집 밭에는 곡식이 더 잘 자란다.

(폴란드 속담)

 

이웃집 암탉은 나날이 큰 알을 낳는다.

(불가리아 속담)

 

인간의 마음에 시기처럼 강하게 뿌리를 박는 열정은 없다.

(R.B. 셰리던/ 비평가)

 

시기와 공포는 쾌락이 따르지 않는 유일한 정열이다.

(J.C. 콜린즈/ 금언집)

 

주여, 당신 자신 시샘이 많은 것처럼/ 나 또한 질투로 마음이 불탑니다/ 나의 영혼이 당신에 의하여/ 세상의 속된 것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게끔/ 해방을 얻을 때까지는/ 당신은 나를 사랑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아낌없이 자유를 주는 이는 또한/ 아낌없이 그것을 도로 빼앗습니다.

(단/ 그리스도 찬가)

 

춘삼월 꽃샘 투기가/ 매서웁기 독기같다.

(정원만/ 춘매)

 

삼켰다 토해낸/ 배설물이/ 수면 가득히 모이는 밤이면/ 모함/ 질투/ 아집덩이/ 뒤엉켜 갯바위로 선다.

(김갑수/ 바다는)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라/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김소월/ 접동새)

 

슬픔에 놓일 땐 그댈 찾고/ 난 당신을 노래하게 된다/ 질투하게 된다든가 격한 감정에 사로잡혀/ 마치 어린애처럼/ 어머니의 내음에 그슬리곤 하지만

(M.L. 모하메드/ 잃어버린 동경)

 

오오 당신은 모든 성자의 마음이시여,/ 또한 당신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질투였으며

(베를렌/ 예지)

 

지각 저쪽 끝/ 지하수가 잠드는 소리/ 들린다/ 목마름에/ 영원히 잠들지 못할 내 질투

(서덕석/ 우물파기)

 

죽은 자에 대해 갖는 슬픔이란 일종의 질투일 수 있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내 가슴 그 안쪽에 자라난/ 질투 그것은 검노란 것/ 간탐 그것은 검붉은 것/ 아첨 그것은 샛노란 것/ 악담 그것은 검푸른 것/ 탐욕 그것은 시뻘건 것/ 이 몸살나는 어두운 빛깔이여

(최원규/ 기도)

 

다시 밤은 오고/ 별은 빛으로 시샘해도/ 조금씩 조금씩/꿈꾸는 내 영혼 말린다.

(정희수/ 하루를 보내며)

 

질투로 해서 내 피가 들끓었던 것이니/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단테/ 신곡)

 

뺨이 능금 같을 뿐 아니라/ 다리가 씨름꾼 같아// 내가 슬그머니/ 질투를 느낌은/ 그 청춘이 내게 도전하는 까닭이다.

(노천명/ 소녀)

 

기어이 어긋나고 짖궂게 헤어지는/ 운명이 시기하는 야속한 이 길/ 아름다운 이들의 눈물의 고개

(노천명/ 비련송)

 

영혼의 눈을 뜨고/사랑하며 미워하지 않고/질투,시기,모멸과 멸시 그것은/영혼의 눈을 뜬 사람 앞엔/ 영원히 있지 않는 것이어라.

(황금찬/ 영혼은 잠들지 않고)

 

주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내 이웃과/ 또 먼 곳의 백성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고/미워하는 일 시기하는 마음을/ 죄악으로 알고/ 버리도록하여 주십시오.

(황금찬/ 기도)

 

아아, 나를 계속 사로잡는 불길한 악몽은/끊임없이 분노하고 발광하고 질투한다.

(베를렌/ 어느 여인에게)

 

이윽고 망각의 강으로 가라앉는 듯하다. /네 행운을 시샘해서가 아니라/ 네 행복에 접하고 나는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키츠/ 나이팅게일에게 부쳐서)

 

주여!/ 곷이 피는 봄이 오듯이 이 땅에도/ 은혜를 내리어 주십시오/ 가난과 불안과 불목과 시기와 불신과// 이렇듯이 탁류의 흐름속에서/ 우리들을 건져 주십시오.

(황금찬/ 소녀의 기도)

 

그러나 나의 대지여,/ 그대가 짓지 않은,/ 나의 집이며,/ 불길 때문에 그대가/ 나를 질투하는/ 나의 화덕을/ 그대는 나에게 남겨둬야 한다.

(괴테/ 프로메테우스)

 

우리는 사랑 중 사랑으로 사랑했으나/ 나와 나의 에너벨리는/ 날개 돋친 하늘의 천사조차도/ 샘낼 만큼 그렇게 사랑하였다.

(포우/ 에너벨 리)

 

그는 죽었다--- 그리고 묘지로 옮겨졌다/ 마치 알려지진 않아도 사랑스럽고 막연한 시샘의 포로인/‥‥// 왜 그는 평화스런 안락과 소박한 우정을 버리고/ 자유분망한 마음, 불타는 정열을 위해/ 시기심 많고 지겨운 이 세상에 투신했는가

(레르몬토프/ 시인의 죽음)

 

날개가 있다면/ 온 몸을 자유롭게 흔들며/ 하늘로 올라가고 싶다// 올라갈수록 내가 살아왔던 모든 것에서/ 멀어져 가고// 미움도 시기도/ 투쟁도 없이/ 내가 하는 말과/ 그들이 내게 하는 말/ 들리지 않는 곳까지/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날개를 움직일 수 있을까?

(김정하/ 공상)

 

두꺼운 소매 떨구고/ 이곳저곳/ 봄바람에 눈 뜬 여린 모습/ 어느새 시샘으로 흩어지는 눈물

(류재봉/ 목련꽃)

 

나는 질투와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말미암은 고민과 그 일들이 남몰래 이루어짐을 주목한다. -나는 그 모든 일들을 땅 위에서 본다.

(휘트먼/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재난은 나를 위협하고/ 시샘하는 사회는 내게 상을 찌푸리고/ 어떤 사람들은 나를 감언이설로 속이고

(마틸다 핀토/ 그런데 왜?)

 

 

설 교 노 트

 

때가 마친 후에 될 일

단8:19

 

서론

"가로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이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보는 대로 진노하시는 때와 정한 때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때를 정하십니다.

역사와 시대의 흐름을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하는 중에 나타내신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고 하셨습니다(행17:26). 하나님은 지리의 신이요, 역사의 신이십니다. 국가의 흥망 성쇠가 하나님 장 중에 달려 있으매 그 시대시대의 연대를 정하시고, 그 뜻대로 배정하시고 운명하십니다. 3장 1절에는 "천하는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라고 하여서 날 때와 죽을 때가 각기 있다고 하였습니다.

 

2. 때가 마쳐질 때가 있습니다.

본문에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라고 하였으니, 곧 유다 민족이 그 죄 값으로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여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그 기간이 끝난 뒤에 될 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헬라 시대에 유대인들을 박해할 적그리스도 곧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의 할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 하반절에 "정한 때 끝에 관한 일"이라는 문구로 다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때 일만 아니라, 만사에 정해 놓았던 일이 그대로 성취되고, 이미 그때는 끝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또 다른 때가 시작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때에 순응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나간 매를 경 힘하였음으로 그때의 실패와 성공의 원인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지내 보지 못한 앞 길은 어떻게 걸아가야 할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셨은즉, 그 길로만 가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허락하신 때에 우리가 그 뜻을 받들어 해야 할 일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파악하여 순응하여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결 론

"기도의 응답 없다고 그렇게 낙심말아라 만사에 때가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마쳐지기 전에 할 일과, 마친 뒤 새 때에 할 일에 순응해야 합니다.

 

 

폭풍 전야의 시기

계8:1-5

 

서론

본문 1절에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에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라고 하신 말씀은 폭풍 전야의 시기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고요한 반시"는 일곱 인 재앙과 일곱 나팔 재앙이 교차되는 시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나팔 재앙을 내리시기 위하여 잠시 준비하시는 시기이니 이 시기야말로 폭풍 전야의 시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이 심판하실 직전 시기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제 2차 재앙을 내리시기 위하여 일곱 천사에서 일곱 나팔을주시는 시기라고 하였으니 이 시기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이 실시되기 직전이라 폭풍 전야의 시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나팔 재앙은 우주의 생물 3분의 1을 소멸하는 무서운 재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 말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범죄한 인생들과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을 그대로 두시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징벌하시고 심판하신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노아시대 홍수로, 롯의 시대 불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말세에도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을 끝까지 반역하다가 결국 망하는 사람

(2) 하나님께 대하여 반신반의하다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

(3) 하나님을 전적으로 경외하여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사람.

우리들은 첫째 사람이나 둘째 사람이 되지 말고 셌째 사람이 되어 심판날에 구원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도들은 경성하여 믿음 준비할 시기입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성도들의 기도가 천사의 손에 있는 향로에 담겨 향연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경성하여 기도하면서 신앙을 준비하였다가 주님을 맞이하려는 슬기로운 자세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기도는 우리 공간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는 허무한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 보좌에 상달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1) 기도는 우리 신앙 인격을 정화시켜 새롭게 하는 정화제입니다.

(2) 기도는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방편입니다.

(3) 기도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능력과 모든 것을 공급받는 유일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도가 바리새인의 기도가 되어서는 아니되고, 세리의 기도와 같이 먼저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되고, 다음 믿음으로 기도해야 되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해야 됩니다.

지금은 자다가 마땅히 깰 때가 되었습니다(롬13:11).

 

3. 범죄한 인생들은 재앙을 받을 시기입니다.

본문 5절에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며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하였습니다.

벧후3:8에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같이 범죄한 인생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다가 종래 회개하지 아니하는 인생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심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내리시는 재앙의 성격은 세계 대전장과 기근과 온역과 지진과 천재지변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를

(1)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을 징계하는 시대요,

(2) 마귀는 최후로 발악하는 시기요,

(3) 범죄한 인생들은 최후의 징벌을 받은 시기라고 합니다.

 

결론

역사적인 비상한 시기에 직면한 우리 성도들은

(1) 경성하여 우리 신앙생활을 재정리해야 되겠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무장해야 되겠습니다.

(3) 하나님께 받은 직책에 충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어 영생하기 위해서입니다.

 

 

범사가 기한이 있다

전3:1

 

서론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다"고 하면서 이구식(二句式)대립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이는 세상 만사가 다시 기가 있는데, 그것도 그 나름대로 뜻이 있음을 교훈합니다.

 

1. 때를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 원전부터 살아 계셔서 영원 후까지 만사를 섭리하시고, 지배하시며, 운영하시는 만능의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우주의 운행과 자연계의 생멸과정과 인간 만사의 필요한 시기와 때를 하나님께서 그 주권적 입장에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미리 정해 놓을 수 있고, 정해 놓으신 계획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차질없이 실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완전하고 확정 적 인 것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바꿀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때를 변경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일단 정해 놓으시고 선포하신 일이 그 시행 과정에서 변경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니느웨성의 40일 후 멸망을 일단 선포하셨는데, 또 일면으로는 요나를 보내어 그 성의 멸망을 경고시키면서 그 백성의 죄를 책망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므로 결국은 40일 후의 멸망 계획을 취소하시고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여 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니느웨 성민이 회개할 것을 모르셨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아셨으며, 나중에 취소하실 것까지 그 마음에 계획하셨으나 이것을 인간들에게는 발표하시지 않으신 것 뿐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앞의 일을 모르셨다면 전지하신 하나님이 못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십니다.

 

3.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열한번째 나타나 보이면서 승천하시려고 할 때에 제자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해야 할 일만 하라고 하시는 분부이신데, 그때에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는 일이 제자들의 할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전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라고 떠드는 사람들은 다 이단인 것입니다.

 

결론

하루하루의 세월과 역사가 흐르는 모든 때와 시기가 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시행되어 나감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신 년

성 경 활 용

(1) 나팔절이라고도 한다.

(레23:24)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2) 일을 쉬고 성회로 모인다.

(민29:1) 칠월에 이르러는 그 달 초일 일에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

(3) 장막이 이날에 완성된다.

(출40:17) 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일 일에 성막을 세우니라

관련원어풀이

1. hn<v;h ;varo 로-쉬 하솨-나-

신년, 새해, 신년제, 신년절, 새해의 머리.

(출12:2)

설교예화자료

새롭게 마음을 먹는 것은

 

어느 맑은 아침, 로버트 슐러 박사는 오래된 차를 몰고 사무실로 가고 있었습니다. 주행거리 표시판을 지켜보고 있노라니까 거리 표시가 점차 바꿔 어가고 있었습니다. 99,999,8‥‥‥ 99,999,9‥‥‥ 그러더니 갑자기 표시판에 00,000,0이 나타났습니다. 한순간에 새 차가 되었습니다. 1킬로미터도 가지 않는 최신형 새 차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하여 차를 다시 보니 타이어도 다 낡아 새로 교환해야 되었고 차 칠은 벗겨진 곳도 있었습니다. 사실 차 자체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옛 고물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의 모습을 새로이 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여러분의 삶에 동참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속마음은 나날이 새로워집니다. 이제 여러분은 전과 같지 않습니다. 비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고후4:16 참조).

 

 

오늘과 내일

 

J. 월버 채프먼(Wilbur Chapman) 목사가 어느 날 오하이오에 있는 한 교도소를 찾아가서 수 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37년 동안이나 수감되어 있던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목사가 그에게 자유를 얻고 싶지 않으냐고 물었을 때 그 죄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무얼 기대하고 석방되길 바라겠습니까? 친구라곤 하나도 없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제가 누굴 위해 살겠습니까? "

이 죄수야말로 소망이 없는 사람의 한 표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그를 신뢰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그를 신뢰할 때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광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 교 노 트

 

꿈을 현실화시키라

창37:5-7

 

서론

사람이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무슨 영상을 그리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새해 아침, 여러분의 마음속에 교회와 가정과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 신앙인은 모습 속에서 꿈을 읽을 수 있어야 하며 그 모습 속에서 미래를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새해에는 신앙인의 자본을 무엇으로 삼아야 하는가? 원대한 꿈, 하나님께 향한, 하나님으로부터 임한 꿈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꿈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이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는데 그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11:1)"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내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이룬 것처럼 마음에 영상을 그리는 것이요, 눈에는 안 보이지만 보는 것처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러한 현실이 나타나게 되는 때가 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복된 영상을 그릴 수 있는가?

 

1.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정적인 영상을 마음에 그리면 부정적인 것이 현실로 나타나므로 나쁜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쫓아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어야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복된 생각만을 의식속에다 일부러 쏟아 넣고 행복한 경험만을 자꾸 마음속에 그려보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불안, 공포, 의심의 생각은 복된 영상을 흐리게 합니다.

 

2. 꿈이 이루어진 것을 믿고 더 큰 꿈을 그려야 합니다.

원하는 것을 계속 바라보면 그것이 내 앞에 이루어지는 때가 옵니다. 마음속으로 쳐다보는 것은 힘의 근원이 됩니다.

복된 삶을 살려면 축복을 먼저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생각, 마음으로 끊임없이 바라보는 것은 현실로 나타나는 때가 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3.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리 큰 영상을 그려도 허망한 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모세와 엘리야에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가장 귀중한 방법입니다. 때를 가리지 말고 기도하라. 길가면서도 집에서도 주방에서도, 잠자기 전에도 차를 타고 가면서도 기도하라. 기도하는 자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본문에 나오는 요셉 자신은 삶의 행로에 대하여 나름대로 야심에 가득 찬 삶을 구상도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보이신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한 길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영롱한 꿈이라해도 그곳에 인간이 자신의 야심어린 불만과 거역에 개입된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4. 생활이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인생은 도박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모험 입니다. 아무리 큰 꿈이 있고 기도한다 하더라도생활에서 덕이 안 되면 하나님은 이루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벧전3:10-11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습관적인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또 생활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기도는 청산유수로 했는데 사는 것은 엉망이면 그 기도가 성취되지 않습니다. 늘 자기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명받으며 말과 행위가 일치되게 살아야 합니다.

 

결론

오늘이라는 시간은 다시 우리에게 영원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이 흐르는 시간을 잡아야 합니다. 그 시간 속에 원대한 꿈을 펼쳐봅시다.

복된 영상에 강력한 소원을 가지고 마음의 눈으로 계속 바라봅시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합시하. 기도한 대로 살려고 노력합시다. 그러면 그때가 여러분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정월 초하루에

창8:13-19

 

서론

성경에 기록된 위대한 신앙인들은 정월 초하루날에 무엇을 하였는가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들 생활에서 정월 초하루는 새해를 맞이하는 첫날로서 매우 의미가 깊은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독 신자들이 정월 초하루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1.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8:13에 "육백 일 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라고 했고, 창8:20에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정월 초하루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노아는

(1)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살아온 신앙의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한 말씀 순종의 사람입니다.

(3)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의롭게 살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방주를 만들러 자기 가족과 동물을 홍수 심판에서 구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노아에 대하여 세 가지로 증거합니다.

① 인류 역사의 계승자라고 합니다.

② 인류 역사에 제 2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③ 새 역사 창조의 주인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온 인류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습니다. 우리들도 노아를 본받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었습니다. 우리들도 노아를 본받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면서 영광을 돌리는 정월 초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성결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대하29:17에 "정월 초하루에 성결케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정월 십육일에 이르러 마치니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유대 나라의 14대 임금으로서

(1) 하나님의 성전을 신성시하여 성결하게 한 위대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2) 자기 몸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자기의 생명을 15년간이나연장을 받은 위대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성전을 깨끗하게 하였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사모하며 사랑한 증거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생활이 새로워진 증거요, 이스라엘 국가와 민족이 발전하고 부흥하는 증거입니다.

 

3.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스라 7장 9절에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에 도우심을 입어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전공한위대한 서기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친 위대한 말씀의 사람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사람이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마귀의 영역에서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돌아왔다는 뜻이요, 상실하였던 선민의 주권을 다시 회복하였다는 뜻이요, 하나님의 새 나라 건설에 주인공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들도 에스라를 본받아 마귀에게 지배를 받던 영역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힘차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4.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파하였습니다.

에스겔 29장 17절에 "제 이십 칠년 정월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파수꾼이요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파수꾼은 높은 망대에 올라가서 무장을 하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파했다는 말씀은

(1) 우매한 민족들의 각성을 촉구한 의미요

(2) 절망에서 신음하는 민족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의미요

(3)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하여 주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에스겔을 본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우리 민족들에게 힘 있게 전파하여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들도 신앙인들을 본받아 정월 초하룻날 경건한 생활로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십시다.

(2) 내 마음 성전을 깨끗이 하십시다.

(3) 죄악의 영역에서 탈출하십니다.

(4)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십시다.

 

 

밝은 아침을 향하여

눅13:6-9

 

서론

무한한 가능을 잉태시키는 힘과 미래를 안고 오는 아침입니다. 이루어진 꿈보다 더 높은 꿈을 꾸는 것이 인생입니다. 더 높은 곳, 즉 예수 안에서 간직된 영원한 모든 신령한 복을 사모하는 소망의 생기가 우리에게 있으므로 우리에게는 참 평안과 만족이 옵니다. 이러한 소망 성취의 아침은 생명의 빛을 영접하는 순간에 옵니다. 예수님은 가난과 절망과 낙심과 실패의 밤을 떠나 부요의 아침이 되시며 소망과 성공의 아침이 되십니다.

본문 말씀 중에서 주님은 여러 가지 질문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십니다.

 

1. 너희 값을 했느냐고 물으십니다.

온갖 불법과 불신앙과 불의와 무지로 가득히 덮혀 버린 이 세상, 소돔과 고모라의 밤을 연상케 하는 곳에서 "찍어버리라 어찌하여 땅만 버리느냐(눅13:7)"고 하시는 사형 선고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실패자들이었습니다. 눅13:6-9의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너희의 값을 했느냐"고 물으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습니다.

 

2. 땅의 값을 했느냐고 물으십니다.

눅13:7에 "어찌 땅만 버리느냐"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땅"은 포도원 가운데 특별히 심어 놓은 무화과나무의 좋은 위치입니다. 무화과나무가 자리 잡은 땅은 전혀 다른 나무를 위하여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 땅 값, 곧 자리 값을 못했습니다. 사람도 자리 간을 할 때 사람 구실을 하게 됩니다. 부모는 부모라는 자리, 선배는 선배라는 자리, 성도는 성도라는 자리가 있듯이 각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그 값을 해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땅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몸과 재능과 온갖 축복들입니다.

 

3. 이름 값을 했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술가, 학자, 성직자 등 개개인에 주어진 이름에 간을 해야 합니다. '유명무실'이란 말이 있듯이 이름은 있는데 열매가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열매는 그 나무의 신분이요, 자격이요, 가치입니다(마7:20).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과 직분이 무엇인지 그 이름 값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열매를 원하시는 주님의 손에 아무것도 안겨드리질 못했습니다. 영으로 육으로 완전히 실패한 우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 당신이 창조하신 이 땅 곧 내 몸을 버리지 마소서 주의 쟁기로 깊이 파 주시고 은총의 거름을 더하소서 일년만 그대로 두셔서 이 마지막 기회에 무화과나무 이름을 열매로 나타내 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심으로 우리는 내일을 향한 한 해를 집행 유예로 받은 것입니다.

 

4. 어서 가자 밝은 아침을 향하여 주님은 권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우리를 받으셨습니다. 이 한 해야말로 주님 안에서 만사 형통과 소원성취의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창세기 1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른 아침 날이 새어 갈 때 갈릴리 바닷가에오셨습니다.

실패한 제자들에게 조용히 홀로 친히 안개 낀 갈릴리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삼 년 동안당신이 친히 활동하시던 정든 복음이 고장에 다시 오셨습니다. 깊이 잠들었던 갈릴리 바닷가에 밝은 아침 햇살이 비춰오고 있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빛이 비춰오고 있는 것입니다. 요21:5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제자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아침에 축복해 주시는 주님을 봅니다. 요21:6에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소원 성취의 명령입니다. 확실한 성공을 약속해 주시는 아침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얻으리라" 그 결과는 틀림없이 성공의 노다지의 축복입니다. 많은 물질의 축복이며 토하지 않는 축복이며 선용하는 축복이며 복귀의 축복입니다.

 

결론

우리는 지금 밝아오는 아침에 생명의 구주를 만나고 있습니다. 산 자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지금 이 바닷가에 오셨습니다. 산산히 부서진 실패의 사람일지라도 주님께서 또 찾아주시는 동안, 우리는 망할 수 없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우리의 주님은 변함없이 실패한 인생 현장에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바로 지금이 빛의 아침이요,은혜의 아침이요, 감사와 축복의 아침입니다.

 

 

신앙생활의 목표

골3:1-11

 

서론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에게 위에 것에다가 신앙생활의 초점을 맞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그 무엇을 찾는 실존이라고 하였습니다.

위에 것이란 저 하늘의 것, 즉 영원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해를 맞이한 우리 성도들은 저 하늘에다가 초점을 맞추어 신앙생활이 향상되어야 하겠습니다.

 

1. 하늘의 것을 찾는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1) 먼저 찾는다는 의미를 알아보면, 사모한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생각의 초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구한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욕망의 초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취하려고 한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소유하려는 초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찾는 대상이 고상한 것이면 고상한 사람이 될 것이지마는 찾는 대상이 저속한 것이라면 저속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2) 우리 신앙이 찾는 대상은 아랫 것이 아니고 위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위에 것은 1절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신앙인이 찾는 위에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초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첫째 이 세상은 변할지라도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고 이 세상은 불의할지라도 예수님은 정의로우시고, 이 세상은 추잡할지라도 예수님은 영원히 깨끗하시고 거룩하시다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와 사망과 지옥의 문제를 십자가를 통하여 해결하여 주시고 삼일 만에 죽은 자 중에서 부활하사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에게 신앙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사는 신앙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진실한 사람이 되어 정직하게 살아가고, 정의의 사람이 되어 의롭게 살아가고, 죄악과 구별되어 정결하게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2. 하늘의 것을 찾는 비결과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위에 것을 찾는 비결은 본문 2절에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신앙인들은 땅에 것은 우리 염두에서 취소해 버리고 하늘 것에다가 초점을 맞추어 우리의 마음과 생활의 방향을 그곳으로 돌려 놓아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2) 땅에 속한 육신의 생각과 하늘에 속한 영의 생각을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설명하기를 롬8:5-8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네 가지 차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나 영의 생각은 영생이요,

②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 영의 생각은 하나님과 화목이요,

③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나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이요,

④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진노케 하나 영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3) 위에 것을 찾은 결과는

① 고상하고 신령한 삶을 힘 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②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발전하고 번영하게 됩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나라에서 주인공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새해에는 우리 신앙생활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고,

(1) 땅 위에 것보다는 하늘 것을 추구하고,

(2) 육의 것보다는 영의 것을 추구하고

(3) 유한하고 무가치한 것에 초점을 두지 말고 영원하고 가치 있는 하늘나라를 늘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 자

성 경 활 용

1. 신자의 성경적 표현

(1) 믿는 자

(행5:14)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2)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은 자

(롬1:7)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3) 사랑하는 형제들

(고전15:5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4) 하나님의 자녀

(요11:52)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5) 아브라함의 아들

(갈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6) 약속의 자녀

(롬9:8)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7) 빛의 자녀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8) 택한 나의 그릇

(행9:15)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9) 그리스도인

(행11:26)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0) 그리스도의 제자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1) 존귀한 자

(시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12)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

(골1: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13) 하나님의 이름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딤후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14) 하나님의 백성

(히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벧전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2. 신자의 성경적 정의

(1) 모든 즐거움이 있음

(시16:3)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2) 하나님과 제사로 언약한 자

(시50:5)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하시도다

(3)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롬1:7)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4) 부르심을 입은 자

(고전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5) 믿음의 도를 받은 자

(유1: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6) 성령의 전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7) 새로운 피조물

(고후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3. 신자의 특권

(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다.

(마13:1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2) 영생을 소유한다.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3)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는다.

(롬5:2)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4) 하나님의 자녀다.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5) 승리한다.

(롬8:37)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6)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

(벧후1:4)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적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7)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된다.

(롬5:10)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4. 신자가 받은 명령

(1)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

(갈5:13)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3)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4)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라.

(갈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5) 타인의 짐을 지라.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6) 자기 일을 살피라.

(갈6: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고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7) 가르치는 자를 지원하라.

(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8) 선을 행하며 낙심치 말라.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5. 성자의 생활 자세

(1)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

(고전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2)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고전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찾는다.

(엡5:10)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라

(4) 지혜롭게 행동한다.

(엡5:15)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5)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6)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한다.

(엡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에 감사하며

(7) 항상 기도한다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8) 위엣 것을 찾는다.

(골3:1)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것을 찾으라

(9)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인다.

(골3:5)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10) 영생의 소망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다.

(히3:6)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11) 작은 일에 충성한다.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관련원어풀이

1. vd,qo 코-데쉬

(1) 거룩, 신성, 성결.

(출28:2, 암4:2)

(2) 거룩한 것.

(레12:4, 렘2:3)

(3) 하나님께 바친 물건.

(레12:4, 렘2:3)

(4) 성소.

(출28:43, 시20:30)

(5) 가장 거룩한 물건.

(출29:37, 레21:22)

(6) 성전의 가장 안쪽에 있는 부분, 지정소.

(출26:33, 대하3:8)

 

2. v/dq; 카-도-쉬

(1) 순수한, 깨끗한, 거룩한.

(레11:45, 19:2)

(2) 가장 거룩한.

(수24:19, 호12:1)

(3) 거룩한 자들, 천사들.

(욥5:1, 단8:13)

(4) 하나님의 경건한 예배자들, 성도들.

(신33:3, 시16:3)

 

3. vydq; 카디-쉬

거룩한.

(단4:5, 7:18)

 

4. dysij; 하-시-드

(1) 친절한, 탁월한.

(시12:2, 18:26)

(2) 자비스러운, 은혜스러운.

(시145:17, 렘3:12)

(3) 경건한.

(시4:4)

(4) 여호와의 경건한 예배자들.

(시3O:5, 31:24)

 

5. a{gio" 하기오스

(1) 존경하는, 존경할 가치가 있는.

(눅1:49, 계4:8)

(2) 거룩한, 하나님께 바친.

(계11:2)

(3) 순수한, 완전한.

(롬12:1)

(4) 하나님을 위해 제쳐 두다.

(막1:24)

(5) 준비한, 순수한, 정결한.

(엡1:4)

 

6. Cristiaanov" 크리스티아노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기독자

(행11:26, 벧전4:16)

설교예화자료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

 

크리쏘스톰은 로마 황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하며 맞섰습니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기 않자, 로마 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신하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크리쏘스톰을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 감방에 집어 넣어라"

그러자 그 신하가 울상을 하며 대답했습니다.

"황제님, 크리쏘스톰은 크리스찬입니다. "

"크리스찬이면 별 사람이냐? 빨리 집어 넣어라."

"황제님은 모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은 거기다 가두어 놓으면 혼자 있지를 않습니다. 하루 종일 싱글싱글거리며 중얼중얼합니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예수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한답니다. 그러니까 혼자 두면 그에게 좋은 일을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면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있는 감옥에 집어 넣어라."

신하가 다시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황제님, 그건 안됩니다. 그 사람은 오히려 전도할 기회가 생겼다고 매우 좋아할 것이며 얼마 있지 않아 그 안의 사람들은 모조리 크리스찬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 극악무도한 죄인도 변화시켜 오히려 상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면 그 놈을 내어다 목을 쳐라." 신하가 다시 말했습니다.

"황제님,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그의 제일 큰 상급은 순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믿은 사람 중에는 처형당할 때 우는 사람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얼굴에 광채가 나고 기뻐한답니다. " 그러자 황제는 "그러면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이름 값

 

전에 어떤 경관이 거지통에 가서 거지들을 전부 조사하는데 제일 먼저 있는 거지를 만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어 보니까 얼른 대답하는 말이

"내 이름은 김백억이올시다. " 순경이 그 말을 듣고

"김백억이야, 금백억이 거지통에서 사나? " 아마 아버지는 그 아들을 낳은 다음에 너무기뻐서 이 다음에 돈 많이 모으고 잘살라며 이름을 백억으로 지은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이 백억이라고 하는 녀석이 마지막에는

"거지통에서 삽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아름다운, 보배로운, 거룩한, 이름을 주셨으면 이 이름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속도(俗徒)의 생활을 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어록·시·묘사

 

비판 정신은 그대를 철인으로 만들 수 있으나, 사도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신앙 뿐이다. 신앙은 애정과 같은 것이어서 강제로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법률로써 그것을 채용하든가 구속하려고 함은 잘못된 시도이다.

(A. 쇼펜하워)

 

믿는 자는 이미 되살아났다. 신앙이야말로 우리들 삶의 핵심이다.

(A. W. 슬레겔)

 

하나다! * One! < *그 세기(50-135)의 율법의 법학자들을 모두 가르쳐 냈고, 또 랍비 유태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한 아키바는 로마에 거역하는 바르코흐바의 반란을 동정하고 유태주의의 포교를 금하는 하드리아누스의 칙령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순교했습니다. 그는 온갖 고통에도 굽히지 않고 끝내 유일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키바 벤 요셉)

 

신자가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중에서, 유일한 신이 존재해 계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제일 먼저 믿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T. 아퀴나스/ 사도신교에 대하여)

 

참된 신앙이 가슴속에 자리한 사람은 남의 영육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 자신의 생명을 죽이기보다 훨씬 어렵고 죄스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유주현/ 잔혹한 자야)

 

신앙을 갖는 인간은 집단에 있어서의 권력자보다도 이해로 모이는 오합(烏合)의 아흔 아홉 사람보다도 강하다.

(J. 밀)

 

행복한 사람은 안심하지 않기 위하여,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의지하기 위하여, 불행한 사람은 굴복하지 않기 위하여, 각각 신앙을 필요로 한다.

(A. 훔볼트)

 

나는 아직도 종교적인 신앙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신앙에 대하여는 늘 경건한 마음으로 그것을 존중하며 접근하기를 원한다. 결국 신앙인인지도 모르겠다.

(유주현/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우리들은 신과 영원을 믿는 것에 의하여 악 중에서 선을, 어둠 속에서 빛을 토할 수가 있으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D. 에라스무스)

 

신을 두려워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죽음보다 죄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야말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다.

(J. 야콥스)

 

신앙이란 가멸하고 무력한 인간에 있어서 얼마나 좋고 또한 마침내 없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그지없이 덧없는 체념에서 우러나온 보다 한량없이 크고 높은 영원한 절대자에의 의탁이요 궤배(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미칠 길 없는 영원히 애달픈 앙모이요 소망일 따름일 것입니다.

(유치환/ 나는 고독하지 않다)

 

꿈에 뵈는 님이 신의 없다 하건마는/탐탐이 그리울 제 꿈 아니면 어이 보리/ 저 님아 꿈이라 말고 자로자로 뵈시소.

(명옥)

 

 

설 교 노 트

 

예수님께 칭찬받은 신자

마8:5-13

 

서론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신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칭찬을 한 신앙이고 다음은 하나님께서 책망을 하시고 부정한 신앙입니다.

여기 백부장의 신앙은 예수님께서 인정하시고 극구 칭찬을 하셨으나 바리새교인이나 일반 유대인들의 신앙은 책망과 저주를 하셨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칭찬을 한 신앙은 철저히 회개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예수님만 의지하고 신뢰한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1. 예수님께서 칭찬받은 백부장의 신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그의 신분은 이방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방인은 유대인이 아닌 다른 나라 민족은 모두 이방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밝힌 이방인의 신분은 엡2:11-12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무할례당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밝힌 할례의 개념은 하나님의 선택과 성별과 현실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무할례당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버린 더러운 자들이요, 마귀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2) 이스라엘 나라 밖에 있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떠한 밖에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언약과 은총과 구원의 영역 밖에 있다는 말입니다.

(3)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소망이 없다는 말은 마귀의 자녀로서의 절망적인 비참한 존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에 대해서 아주 형편없이 취급하여 멸시를 해 왔습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천대와 멸시의 대상이 되어 온 이방인이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고 하나님 나라와 상속자가 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만한 사건입니다.

 

2. 예수님께 칭찬받은 백부장의 신앙은 어떠한 신앙입니까?

(1) 자기 하인을 사랑한 믿음입니다.

백부장이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 나와 간구한 대화 속에서 그의신앙 내용이 소개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백부장은 자기 하인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고 그의 괴로움이 자기의 괴로움처럼 여기고 중심으로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나와 고쳐주시기를 간구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상관은 부하를 깔보기 쉽고, 기업주는 고용자들을 혹사하기 쉽고, 지도자들을 피지도자들을 소홀히 여기기 쉬운데 여기 백부장은 자기 하인을 극진히 사랑한 그 믿음이 칭찬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2) 예수님의 주권과 존귀성을 긍정한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8절에 "주여 내 집에 들어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먼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한 신앙입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권능을 인정한 신앙입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존귀성을 긍정한 믿음이 칭찬을 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긍정한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말씀 중심의 신앙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말씀이요, 예수님의 능력이 곧 말씀이요, 예수님의 생명이 곧 말씀으로 믿은 신앙이 칭찬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진실성과 생명성을 그대로 받아 믿음으로 이 말씀과 운명을 같이 했다는 말입니다.

 

결론

이렇게 믿은 백부장은 결과적으로

(1) 예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2) 천국의 입국 허락을 받았습니다.

(3) 당면한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자기의 하인을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하고 진정한 건강과 평안을 누리게 한 위대한 신앙입니다.

 

 

실력 있는 신자상

마15:38-48

 

서론

영적인 신앙의 힘을 많이 소유한 신자나 교회가 실력 있는 진자요, 교회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실력을 갖출 신자는 이 현실에 대해서 이해하고 양보하고 회생할 수 있는 아량을 가지고 치세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실력 있는 신자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자기를 지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자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자기를 초월할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초월할 수 있는가 하면 자기의 감정, 자기의 혈기,자기의 욕심, 자기의 향략 등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초월하여 자기 중심생활에서 하나님 중심 생활로 힘 있게 이끌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실력이 없는 사람은 자기 중심에서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눅12:17-19에 나타나는 어리석은 부자는 "내가"라는 말을 여섯 번이나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자기 중심의 "나" 라고 하였으나, 고전 15:10에 나타나는 바울은 역시 "나"라고 하는 말을 여섯 번 사용하였으나 이는 모든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나를 초월한 나를 지배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신자는

(1) 나를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고

(2) 나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3) 나의 유익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 나를 제어하고 극복하고정복하면서 살아갑니다.

 

2.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도 물질을 초월하여 산다는 말씀인데 이는 물질과 상관없이 물질 세계에서 떠나서 산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을 지배한다는 말은,물질의 노예가 되지 아니하고 신앙의 실력으로 물질을 마음대로 주장하고 지배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점에 대하여 우리는 돈의 개념을 바로 가지고 살아가야 됩니다.

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며, 사랑이나 미움의 대상도 아닙니다. 돈은 우리 인간 생활의 수단이요, 방편입니다. 이와 같이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은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돈보단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돈보다 하나님을 더 믿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3.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도 세상을 초월하여 초연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점에 대하여 야고보는 이 세상과 벗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고,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이 세상 것을 초개같이, 나아가서는 배설물같이 여기고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한한 것인 동시에 다 지나가 버리는 허무한 것이고 우리의 신앙을 유혹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이란 허무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신앙의 소유자는

(1) 이 세상 향략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하고

(2) 이 세상 부귀영화보다 하나님 나라를 더 좋아하고

(3) 이 세상 행복과 영광보다는 하나님을 더 좋아하고 귀중히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실력 있는 신자들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 무엇을 위해서 살았는가?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실력을 갖추고 나와 물질과 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살아가는 위대한 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 시대의 일꾼

수1:1-9

 

서론

요즘 우리 주변에서 "새 시대"라는 말과 "새 역사"라는 말을 많이 들어볼 수 있습니다. 새 시대란 변동의 시대, 또는 혁신의 시대입니다. 인간의 과학 기술과 산업 혁명에 따라 인간의 가치관과 인간의 문화관이 달라지게 되고 여기에 수반하여 인간의 생활 구조와 양식들이 변천되어 새로워져 가는 시대라고 규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급격히 변천되는 시대론 맞이한 한국 교회 아니 우리 교회의 봉사자들은 어떠한 일꾼이어야 되겠습니까? 라는 점에서 본문 주인공인 여호수아의 신앙 자세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통찰력에 지닌 공적적인 신앙의 사람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민수기 14:6-9을 보면 모세가 파송한 열두 정탐군 중에 열 사람은 아주 실망적이며, 비관적인 부정적 보고를 하여 이스라엘 민중을 낙심하게 하였으나, 여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은 소망적이며 낙관적인 긍정적인 보고를 하여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희망과 의욕을 불어 넣어 주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동일한 사물과 사건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군들의 보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될 것이나 여기 통찰력을 지닌 긍정적인 신앙의 사람은 현재 상황을 바로 관찰하여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행동의 계획을 바로 수립하고 비상한 방법을 채택하여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현 역사 속에서 긍정적으로 적응해 나아가면서 처리합니다.

그러면 긍정적인 신앙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주권을 긍정한 신앙입니다.

주권이란 하나님의 독자적인 행사로서 하나님이 결정해 놓은 사건은 반드시 성취시키는 것을 믿습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을 긍정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사 그 무엇이나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실현시키는 것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을 긍정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민족이나 성도들에게 내려주시는 축복은 아무도 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2. 확고 부동한 신앙을 지닌 강하고 담대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는 나약한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도전과 공격에도 한 치도 물러설 줄 모르는 강하고 담대한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진실성과 도우심을 믿었습니다.

(1) 그는 하나님이 성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답게살면서 사역을 수행했습니다.

(2) 그는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고 행동하였습니다.

(3) 그는 하나님은 내가 무엇을 하든지 붙들어주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으로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으로 확실히 믿은 신앙입니다. 그런고로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요단강 건너가 난공 불락의 여리고성을 함락하였던 것입니다.

 

3. 민중을 위하여 몸을 바쳐 희생한 사람입니다.

본문 1장 2절에,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민중을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 던지고 그들과 함께 고락과 운명을 같이 한 희생적인일꾼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근거하여 민중을 위하여 희생을 감수하게 되었습니까?

(1)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양심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청결한 양심, 더러운 양심,단쇠의 화인맞은 양심이 있다고했습니다. 우리는 청결한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2) 역사의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이 역사의 소리는 전인류의 소리인 동시에 오늘 국민의 소리, 학생들의 소리, 교우들의 소리입니다. .

(3)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바로 들어야 합니다. 이 소리를 따라 일을 해야 합니다.

 

결론

이와 같은 일꾼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아니하고 일을 합니다. 자기를 들어내지 아니하고 일을 합니다. 사람에게 인기나 인정을 얻기를 바라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 중심에서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의리 있는 신자

삼하19:31-39

 

서론

신앙생활은 인간이 하나님을 상대로 하는 생활이라고 하면 도의 생활은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하는 생활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기독 신자들은 하나님과 관계되는 신앙생활도 바로 해야 되겠지마는 인간들과 관계되는 도의 생활도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우리들은 가정에서 부모 형제들에게 대한 의리도 바로 지켜야 되지마는 사회에서 스승들과 친구들에게 대한 의리도 바로 지키는 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성경의 주인공인, 다윗과 바실래의 관계를 잠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의리를 지킨 다윗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바실래는 신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1) 본문 33절에 "왕이 바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나를 공궤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의 비참한 환난에 빠졌을 때에 자기를 위로하고 도와주었던 바실래의 신세에 보답하려는 의리 있는 행동입니다.

(2)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환난 중에 자기를 도와준 바실

래를 일평생 자기 가까이에 모시고 운명을 같이 하려는 의리 깊은 생각이요, 행동인 것입니다.

다윗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기 왕자들과 같이 대우하였으며 자기의 상에서 먹도록 배려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는 은혜를 잘 갚은 의리의 사람인 것입니다.

 

2. 의리를 지킨 바실래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 32절에 "바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 89세라 저는 거부인고로 왕이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1) 다윗이 비참한 환난중에 빠졌을 때 공궤하였던 의리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정승의 개가 죽으면 조객이 많아도 정승 자신이 죽으면 조객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 바실래는 이와는 반대로, 다윗이 자기의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을 당하여 왕국에서 추방을 당하여 피신길에 시므이가 나타나 비방하며 저주하는가 하면, 세바가 나타나 더욱 심한 욕설과 악담을 하는 비극적인 역경에 직면하였을 때 따뜻이 영접하여 공궤하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리있는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는 국민으로서의 왕을 왕답게 하는 공한 처사요, 피지도자로서의 지도자에 대한 올바른 존경과 봉사의 자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이 세대에 본받을 만한 일입니다.

(2) 자신의 위험과 희생을 각오하고 공궤하였던 의리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바실래는 압살롬이 반역하고 왕위에 올라 나라를 다스린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다윗을 물심 양면으로 공궤하였다는 사실은 자신의 신변에 위험과, 생명의 희생을 각오한 공궤요, 봉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람은 보통 자기의 이익과 행복과 영광을 위해서 투자하고 희생을 무릅쓰려는 모험을 하기 쉬우나, 의리를 지키기 위하여 위험과 희생을 감수하려고 하지 아니 한다고 합니다. 여기 바실래는 다윗이 역경에 직면하였을 때, 자기의 위험과 희생을 각오하고 공궤하였던 의리 있는 신자였습니다.

 

결론

(1) 다윗같이 신세를 기억하고 보답하려는 의리도 지키시고

(2) 바실래같이 생명이 위태로워도 감수하면서 공궤하였던 의리를 지키는 신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다나엘의 신앙

요1:45-51

 

서론

예수님은 성역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나와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는 때에, 친구 빌립의 안내로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거하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곳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시면서 칭찬을 하셨습니다. 여기 나다나엘의 신앙 인격은 예수님이 보실 때에 참으로 마음에 들었고 인정받을 만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합니다. 우리의 신앙 인격은 어떤 사람에게보다 예수님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세 가지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1) 예수님의 예리하진 투시력과 감찰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외모보다 마음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2) 나다나엘의 신앙 인격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들었고 인정을 하셨고 칭찬할 만큼, 순수하고 진실한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3) 참 이스라엘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가짜 이스라엘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의 신앙은 어떤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나다나엘은 참 신자였습니다.

본문 47절에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가짜 신자가 아니라 참 신자라는 말입니다.

참 이스라엘 사람이 되는 것은 누구나 다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전적 섭리에 의하여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야 참 이스라엘 사람, 즉 진짜 기독 신자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하나님께서 무조건 택해 주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선택을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약속받은 사람이 되어졌다는 의미와 하나님의 구원과 영생을 보장받은 사람이 되어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점에 대해서 엡1:3-6에 선택의 시기는 창세 전이고, 선택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이고, 선택의 결과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모든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2.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찾아 만났습니다.

본문 47절에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참 신자는 반드시 예수님을 찾아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찾아 나오는 의도와 목적은 신학적인 차원에서

(1) 죄를 회개하고 속죄함을 받기 위해서 나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참 신자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 나오게 됩니다.

(2) 다음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기 위하여 나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참 신자는 자신이 부족하고 무능함을 깨닫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으려고 찾아 나오게 됩니다.

(3)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아 참 신자가 되려고 나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을 참 신자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은 세 가지 방편을 통해서 우리들을 참 신자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성령이요 둘째, 말씀이요 셋째,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3. 나다나엘은 간사함이 없는 신자였습니다.

본문 47절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마3:7-9에 의식하는 바리새교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돌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롬2:28에 표면적 유대인은 참 유대인이 아니고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하셨고 사도 요한은 시2:9에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지마는 실상은 사탄회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여기 "간사하다"라는 말씀은 속생각을 숨기고 그릇된 표현을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이 간사하다는 말은 교활성과 사기성과 모랸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 대표자가 가룟 유다라고 하면 여기 나다나엘은 이러한 교활성이나 사기성이나 모략성이 없는

(1) 순수한 사람입니다.

(2) 진실할 사람입니다.

(3)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런고로 참 신자는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아서 진실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나다나엘이 이러한 위대한 신자 되어졌던 그 비결은

(1) 성경 중심의 신앙이요

(2) 기도 중심의 신앙이요

(3) 메시아 대망신앙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

시84:1-8

 

서론

본시에 나타난 신앙사상은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하는 불타는 심정을 그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심정을 이해하기 어렵지 아니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과 교회사를 살펴보면, 경건한 성도들은 언제나 성전을 사모하고 사랑하면서 성전을 중심한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시므온과 안나도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기도 생활하다가 예수님을 친히 만나 본 일이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나를 찾으시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자기 부모님들에게 고백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성도들은 주의 전을 사모하여 성전 중심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 주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의 마음

(1)하나님의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성전에 대하여 애착심을 가지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고 신성하게 보존해 나가려고 합니다.

(3) 하나님의 성전을 늘 사모하여 항상 머물고 싶어합니다.

그 이유는 성전을 중심하여 주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삶이 너무나 재미있고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적 생명이 살아서 약동하는 성도의 생활입니다.

 

2. 성도가 사모하는 주의 전의 내용

옛날이나 오늘이나 성도들이 사모하는 주의 전은 어떠한 전이며, 성도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1) 성전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전당으로써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박국 2장 20절에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사야 56장 7절에 "내가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며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제받게 되리니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성전에서는 하나님께 성스럽게 예배와 기도를 드리면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집으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2) 성전은 성도들의 영적 안식처와 보금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환난과 풍파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위로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시46:1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고 하였습니다.

(3) 성전은 성도들에게 은혜를 공급하는 시은소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에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동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전을 중심해서 모든 은혜와 축복을 공급받아 살아갑시다.

 

3. 주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의 결과

(1) 눈물 골짜기라도 샘이 솟는 곳이 되게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샘은 곤고한 심령을 소생시키고 새롭게 하고 힘 있게 합니다.

(2) 은혜의 단비로 부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이른 비"는 은혜의 단비로써 우리 심령을 시원케 하고 깨끗케 하고 결실하게 하는 비라고 하였습니다.

(3) 새 힘을 얻어 하나님에로 가까이 나아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저희가 힘을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아와같이 주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는 눈물 골짜기가 변하여 샘솟는 곳이 되게 하고 메마른 골짜기가 은혜의 단비로 윤택하여지고 연약한 심령이 힘이 강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

고후2:12-17

 

서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우리 기독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로써 위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영향력이란 무엇인고 하니, 우리나라말 큰사전에 설명하기를 "난 사물이 다른 사물에 미치는 결과"라고 하였으니 한 물체가 다른 물체를 변화시키고, 한 사건이 다른 사건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영향력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기독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위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향기도 소리 없이 말도 없이 조용하고 고요하게 널리 퍼져 나아가면서 위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향기니"라고 하였으니 이 향기에 대하여 잠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향기의 성격

향기는 매우 중요한 성격을 자기고 있습니다.

향기는 사람들에게 상쾌감을 줍니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 시달려서 답답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상쾌감을 가지게 합니다.

사람들에게 환희감을 가지게 합니다. 이 불의한 세상에서 상처입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가지게 합니다.

실망과 허탈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삶의 의욕을 가지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입니다. 그러므로 기독 신자들은 이 복음의 향기를 널리 퍼지게 해서, 번민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가지게 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새 희망을 가지도록 아름다운 향기를 발휘해야 합니다.

 

2. 향기의 기능

이 향기는 인력을 발휘합니다. 향기 속에도 위대한 인력이 있어서 나비와 벌들을 이끄는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는 이 세상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천국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 있습니다.

감화력을 발휘합니다. 아름다운 꽃 속에 그윽한 향기는 모든 봉 접 떼로 하여금 그만 도취시켜 버리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는 많은 사람들을 감화 감동하여 저들의 인격과 생활을 나아가서는 인생관과 사생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버린다는 말입니다.

정화력을 발휘합니다. 꽃 속에서 방사되는 그윽한 향기는 더러운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향기가 발휘되는 곳에 지저분한 모기나 쉬파리가 물러가고 추한 냄새도 가시게 됩니다. 우리나라 말에 "도깨비는 향내를 싫어한다"는 말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풍기는 그곳에는 언제나 정화되어 밝고 깨끗해진다는 말입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향기가 발휘되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모여와서 감화와 감동을 받아 인격과 윤리가 변하여 새로워진다는 말입니다. 거짓된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증오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으로, 불의한 사람이 의로운 신앙의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결론

우리는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고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신자가 되려고 하면 세 가지를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는

(1) 신본주의 신앙의 사람이 되어

(2) 우리 신앙이 성숙해야 하고

(3) 생생한 생기 있는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신자상

막15:42-47

 

서론

우리 중생한 영혼은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우리 신앙이 성장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있고, 지상 사명을 바로 수행할 수도 있고, 구원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위대한 신자상을 그대로 발휘한 사람이 있으니, 이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부자요, 착한 사람이요,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혜드린 공의회 의원이요, 주님의 제자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신앙의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믿음은 작은 믿음이 아니라 큰 믿음이요, 약한 믿음이 아니라 강한 믿음이요, 유치한 믿음이 아니라 장부의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1. 그는 환난시에 예수의 제자임을 담대하게 고백한 사람입니다.

본래부터 그가 예수의 제자임을 밝힌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9장 38절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 은휘하더니"라고 하였으니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고백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요셉이 이제 주님을 박해하고 죽이는 시대에 더구나 제자들도 다 배반하고 물러간 시대에 예수님의 제자라고 고백한 것은 주님과 함께 환난을 감수하려는 믿음이요, 주님과 함께 죽음을 각오한 순교적인 믿음이요, 자기 목숨을 주님 위해서 희생하려는 신자상을 그대로 발휘한 믿음입니다.

 

2. 예수님의 시체를 인수하려는 믿음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에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의 시체는 단순한 시체가 아닙니다. 사형수의 시체요, 십자가에 달린 시체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시체입니다. 이 시체는 제자들도, 가족들도 모두 꺼려하는 시체입니다. 이러한 시체를 요셉이 인수하려는 것은 보통 믿음가지고는 어려운 것입니다.

이는 요셉의 위대한 신자상의 발휘로써, 예수님을 사랑하여 접근하고 소유하려는 신앙발휘요, 상황을 바로 판단하여 자기의 책임과 사명을 다하려는 신앙의 발휘요,다른 사람이 내어 버리고 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봉사를 실천하는 성장된 신앙의 발휘라고 봅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자의 늠름한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3. 예수님께 자기 무덤을 제공한 믿음입니다.

마26:58-59에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매우 중대한 사건 중의 하나로 봅니다. 유대인들은 그 무덤을 매우 중요시 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53:9에 "부자의 무덤에 장사되리라"고 예언이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자기 새 무덤에 안장한 것은, 하나님의 예언과 사역을 성취하여 드리는 성장된 신앙의 발휘요, 주님을 위한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는 성장된 신앙의 발휘요, 천국을 확신하고 기다리는 위대한 신앙의 발휘입니다.

 

결론

우리의 신앙도 성장되어야 합니다. 그 비결은 말씀으로, 성령의 은혜로, 교회 봉사로 장성해 갑니다. 이 성장된 신앙이 자기의 사명도 바로 감당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의 구원을 완성하기도 합니다.

여기 아리마대 요셉의 신앙은 한마디로 말하여 환난날에 순교를 각오하고, 예수를 믿고 봉사한 가장 위대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처럼 장성하기를 바랍니다.

신학대학주일

어록·시·묘사

 

당신이 겨누던/ 기숙사 문풍지가 으르렁이며/ 광나루의 찬 밤을 밀고 갑니다/ 로마 병정들의 발굽 사이에서/ 당신의 숱한 짓밟힘은/님이 걸은 갈보리의 길이었습니다.

(김순천/ 신학졸업의 후배)

 

청교도 후예들/ 복음의 역군 위해/이 땅에 연/ 선지 동산// 열린 문/ 찾아 든/ 두 선각자/거기서 비롯된 탐구의 행렬//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현실 앞에/ 미래를 위해/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자// 전통의 계승자로/ 새시대의 사명자로/ 빛을 발하라/ 주님의 향기를 날리자// 근역(槿域)에/아시아로/ 땅끝까지)

(김시백/ 열린 문)

 

스승의 신비체험을 확신하는 명문대학교 총장이 그를 신학부 학과장으로 삼고자 했다//그는 이 제안을 가지고 스승의 수석제자를 만났다/ 그 제자는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깨달음 속에 있기를 강조하시지 깨달음을 가르치기를 강조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신학부 학과장이 되실 수가 없을까요? "// "코끼리가 동물학부 학과장이 될 수 없는 것만큼이나요."

(앤소니 드 멜로/ 체험)

 

스승은 거룩한 일들에 대한 지식과 배움에 대해서 못미더워했지만, 그러나 예술과 과학과 모든 다른 형태의 지식을 격려할 기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따라서 그가 대학 집회에서 연설해 달라는 청을 쾌히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자기 학생 시절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교육기재들을 보며 경탄했다. // 그답게 그의 강연은 채 일 분도 안 걸렸다// "연구실과 도서실들,/ 강당들과 현관과 아치/ 그리고 박학한 강의들/ 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만일 지혜로운 가슴과 보는 눈이 없다면."

(앤소니 드 멜로/ 교육)

 

 

설 교 노 트

 

도끼날을 찾으라

왕하6:1-7

 

서론

선지자 엘리사에케 배움을 받던 선지 후보생들은 그들을 수용하고 있던 시설이 너무 좁아서 새로운 교사를 신축하기로 합의하고 엘리사의 허락을 받아 요단 강변으로 나무를 찍으러 갔는데, 도중에 한 사람의 도끼날이 물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이 생도가 엘리사를 찾아와 애원하므로 잃어버린 도끼날을 다시 찾으므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 내용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도끼날이 없는 도끼자루만 가지고 나무를 찍을 때 소리 만 요란하고, 힘은 더들고, 능률은전혀 없는 헛수고가 되는 것입니다.

인격 없는 교육, 그것은 죽은 교육입니다. 철학 없는 소득은 무의미한 것이며, 신의 없는 정치는 국민는 허울 좋은 껍데기일 뿐입니다. 수고는 있어도 건설은 없으며, 건설이 있다고 해도 생명 없는 건설이 될 뿐입니다.

 

1. 도끼날은 어디 빠졌습니까?

에베소 교회를 향한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인데, 어디서 떨어졌는지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게 임하여 촛대를 옮기리라고 하십니다(계2:4-5).

아담처럼 마귀의 유혹이냐? 가인처럼 시기의 강물이냐? 베드로처럼 나약한 비겁의 강물인가? 우리들 피차간 각자의 도끼날이 빠진 곳은 어디인지? 빠졌으면 빠진 줄을 알고 다시 찾도록 해야 합니다.

빠진 것은 불행입니다. 그러나 다시 건질 수 있는 소망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도끼날을 다시 건지게 하시는 은총과 능력의 주님이 계신 사랑의 전당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건지기만 하면 불행은 행복으로 다시 바뀌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빠진 도끼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죄악의 탁류 속에서 진흙탕에 빠진 침윤된 우리 영혼을 떠오르게 하사,다시금 거룩한 작업을 계속하게 하십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연의 법칙에 구애됨이 없이 도끼날을 떠오르게 하여 건지게 하실 수 있으니, 빈 도끼자루만 남았다고 내어 던지고 주저앉지 말고, 용기 있게 일어서서 주님 앞에 나와 부르짖으며 기다릴 때, 새 역사의 축복은 시작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5)"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제자가 스승에게 어려운 일을 의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스승이 제자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서 참 사랑이 나타나게 됩니다.

신학을 하시는 많은 젊은 선지 후보생들과 그들을 가르치시는 많은 스승들은 서로 신뢰하여 도우며 사랑해야 합니다.

이제 믿음의 도끼날을 다시 박으십시오. 소망의 도끼날을, 그리고 성령의 도끼날을 다시 박으십시오. 그러면 축복의 열매를 얻게될 것입니다.

 

 

참 스승과 제자

요13:12-20

 

서론

우리 인간은 비이성적인 생물이나 동물과 달리 이성을 가진 교육적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칸트는 사람을 교육적인 존재로써 이 교육에 의해서만 바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시대의 고금이나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교육이란 스승과 제자의 유기적인 관계로부터 그 기틀이 마련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따라서 이 세상에는 스승도 많고 제자도 많은가 하면 가짜 제자도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은 참 스승과 지도자는 오직 하나뿐이니 이는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마23:8-10).

 

1. 참 스승의 자세

(1) 먼저 스승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하고 위대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중에 제일 많은 지식을 가진 지도자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직한 분으로 알고 존경합니다. 그런고로 스승에 대해서는 자고로 인생의 보호자로서 제자를 아끼고 보호해 주시는 분으로 인정을 하고, 인생의 안내자로서 제자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선한 목자로 인정하고, 인생의 모범자로서 제자를 바로 가르치는 스승을 본받아 따라가게 합니다.

요사이 스승에 대한 관념은 어떻습니까? 아동을 위탁받은 아동 관리인이라고 하고, 지식 전달의 도구라고 하며, 학문 매매의 장사꾼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리하여 스승에 대한 권위 의식이나 존경 의식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2) 스승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다.

성경이 보여주신 참 스승상은 어떠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겸허한 사랑의 실천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교훈은,

제자들의 더러운 것을 이해하고 용납해주시는 아량을 보였고,

제자들의 누추함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하여 주는 봉사를 보였고,

제자를 깨끗하게 하여 바른 관계를 갖게하는 정의와 희생정신을 보였습니다. 스승의 권위와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3) 바른 지식과 행동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식 전달의 도구나 매매자가 아니라 창조적인 참 지식을 가르치고 바를 행동의 모범자가 되셨던 것입니다. 여기 모범이란 인생의 표준을 의미합니다. 인생의 목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세 가지 큰 본을 보여주시면서 그대로 배우고 실천하라고 하셨습니다.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마11:29빌2:5-6).

봉사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마7:12벧전2:21-24),

희생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요12:24-25).

이 결과 많은 인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깨끗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2. 참 제자의 자세에 대해서

참 제자의 자세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스승을 아끼고 존경해야 합니다.

(2) 스승의 바른 교훈과 생활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3) 스승의 교훈대로 따라가고 실천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 신자는 참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따라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범적인 참 제자상은 언제 어디서나 스승을 사모하며 겸손한 자세로 무엇이나 순종하면서 스승을 위해서는 무엇이나 드릴 수 있고, 무슨 일이나 할 수 일고, 무엇이나 희생할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리 기독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스승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우리들은 이 예수님을 위해서는 헌신하는 일에 절대 인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 패

성 경 활 용

(1) 유대인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다.

(롬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관련원어풀이

1. h[tthma 헬 -테-마

하위, 열세, 부족, 실패, 결점.

(롬11:2, 고전6:7)

설교예화자료

위선적인 기도자

 

하루 일이 끝났을 때, 나는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모든 사람을 축복하시고 모든 슬픈 마음으로부터 고통을 덜어주시고 병든 자를 다시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깨어났고 내가 한 기도와는 달리 나의 길을 갔으며 하루 종일 아무도 돌봐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려움에 처한 어떤 형제의 짐도 함께 나누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로 내 옆 방에 있는 환자를 문병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모든 사람을 축복하소서." 그러나 내가 기도하는 동안 내 귀에는 속삭이는 목소리가 분명히 들려 왔습니다.

"멈춰라, 위선자여. 기도하기 전에 너는 오늘 누구를 축복하여 주었느냐? 하나님의 축복은 네가 살고 있는 곳에서 너의 손을 통하여 항상 베풀어지니라." 그때 나는 나의 얼굴을 가리고 울었습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제게 또 다른 날을 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기도한 대로 살겠습니다. "

혹시 이러한 삶이 우리의 삶이 아니였습니다.

 

 

참을성 없는 원숭이

 

원숭이가 친구로부터 두 손에 가득히 콩을 얻어가지고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떼구르르 하고 콩 한 알이 땅에 떨어져 굴렀습니다.

원숭이는 얼떨결에 주우려고 생각해 보니 양손에 콩을 가득 가지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습니다. 원숭이는 꾀를 냈습니다. 두 손에 콩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가만히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콩을 입으로 물으려고 조심조심 머리를 땅으로 숙였습니다.

그러나 아차 하는 순간에 우르르 콩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원숭이는 더욱 당황했습니다. 원숭이가 주우려고 허둥댈수록 나머지도 점점 쏟아져 내렸습니다. 드디어 손에는 몇 알밖에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좋은 수가 없을까, 원숭이는 화가 났지만 궁리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생각할수록 묘책도 없고 화만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남은 거라도 가지고 가서 먹으려고 바닥의 콩과 양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콩이 더 많았습니다. 원숭이는 더욱 화가 나서 "에잇, 필요없어·." 하며 남은 콩을 모조리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모두 짓밟아 버렸습니다.

 

 

승자 대 패자

 

1. 한 승리자가 말했습니다. "이유를 알아내자." 패자가 말했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 "

2. 승자가 실수를 하면 "내가 잘못이었다. "고 말합니다. 패자가 실수를 하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3. 승자는 고난을 겪어냅니다. 패자는 고난을 돌아가려 하고 결국 이겨내지 못합니다.

4. 승자는 실행하고 패자는 약속만을 합니다. .

5. 승자는 말합니다. "내가 잘했다고는 하나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습니다. " 패자는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못나지는 않았어."

6. 승자는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에게서 뭔가 배우려 노력합니다. 패자는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깍아내리려 합니다.

7. 승자는 말합니다. "더 나은 길이 있을 터인데." 패자는 말합니다. "이렇게 밖에는 할 수가 없어."

 

 

나귀와 주인

 

장날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귀를 팔기 위해 장으로 떠났습니다.

논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 나귀를 끌고가는 아버지와 아들을 보고 혀를 끌끌 찼습니다.

"아니, 팔러가는 나귀라면 타고 갈 것이지 뭐하러 고생스럽게 걸어간담."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그것도 그럴 듯하여 아들을 얼른 나귀 등에 태웠습니다.

얼마 쯤 가다가 느티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 노인들을 만났습니다.

"아니, 아무리 세상에 변했다지만 어떻게 늙은 아비는 걸어가고 젊은 아들이 편히 당나귀를 타고 갈 수가 있나‥‥‥ 원 세상에!"

노인들은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들을 나무랐습니다.

"얘야, 안되겠다. 내가 타고 가야겠구나."

아버지는 아들을 내리게 하고 이번에는 자기가 당나귀 등에 올랐습니다.

얼마 쯤 가다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마을 아낙네들을 만났습니다.

"참, 인정머리없는 아버지로군. 어린 자식은 걸리고 자기만 타고 가다니!"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얘야, 그럼 너도 함께 타고 가자꾸나." 하고 아들도 당나귀 등에 태웠습니다.

그러자 무거워진 당나귀는 힘이 들어서 비틀비틀 걸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것을 보자 손가락질을 하였습니다.

"정말 고약한 인간들이군, 어쩜 저 불쌍한 당나귀 등에 두 사람씩이나 탈 수가 있지요? 나귀를 짊어지고 가지는 못할 망정‥‥‥‥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내리게 하고 자기도 내린 후 말했습니다.

"얘야, 차라리 이 당나귀를 짊어지고 가자."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를 장대에 묶고 앞뒤에서 서로 이고 갔습니다.

무거운 나귀를 등에 젊어지고 시냇물 위의 다리를 건널 때였습니다.

"야, 저기 좀 봐! 사람이 당나귀를 짊어지고 간다!"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깔깔 웃었습니다.

그러자 그 소리에 놀란 당나귀가 몸부림을 쳤습니다.

"어 어 ‥‥‥어 !"

당나귀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아버지와 아들은 좁은 다리 위에서 비틀거리다가 그만 당나귀와 함께 냇물 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뚜렷한 주관없이 남의 말만 듣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실패만이 따를 뿐입니다.

 

 

바다로 떠난 목동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한 목동이 양들을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고개를 돌려 바다를 보니 웬지 마음이 부풀고 설레었습니다.

"저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를 건너 어딘가로 떠나 보고 싶어. 아,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목동은 자유롭게 바다를 오가며 장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 넓고 푸른 바다를 마음대로 떠다니며 장사를 하면 멀지않아 곧 부자가 되겠지? "

잔뜩 꿈에 부푼 목동은 마침내 기르던 양들을 모두 팔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과일을 사서 배에 싣고 떠났습니다

배가 잔잔한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가자 목동은 기분이 좋아,

"이렇게 떠나길 잘했지. 암, 참 잘했고 말고."라고 중얼거리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습니다.

그런데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더니 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세차게 부는지 배가 곧 뒤집힐 것만 같았습니다.

"배에 실은 짐을 모두 바다로 던지시오. 그렇지 않으면 배가 가라앉을 것이오."

선원들은 배 위에 있는 짐을 모두 바다로 던졌습니다.

"안돼요. 이 과일만은 절대로 버릴 수 없어요."

목동은 사정을 하였습니다.

"무슨 소리요. 이까짓 과일 때문에 배 안의 사람들이 모두 죽어도 좋다는 말이오?"

선원들은 화를 내며 목동의 과일을 빼앗아 모조리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배도 훨씬 가벼워졌고 얼마 후엔 거센 풍랑도 조금 기세가 꺽여 배는 무사히 육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털털이가 되어 겨우 목숨만 건진 목동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양치는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나그네가 언덕 위에 와서. 아름다운 바다를 보더니,

"저 푸르고 잔잔한 바다를 보면 언제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단 말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동은,

"바다란 언제 또 변덕을 부릴지 모른다오. 당신도 공연히 헛된 꿈 꾸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하고 충고하였습니다.

 

 

실패의 의미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인가" 아니면 "끝장" 인가를 결정지어 주는 것은, 내가 실패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로버트 슐러 목사가 말해주는 실패의 적극적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패란 무엇인가?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습니다.

"실패는 당신이 실패자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당신의 위신이 손상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용감히 시도했음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당신이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무엇인가를 새로 배웠음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당신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당신이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님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당신이 인생을 낭비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다시 출발해야 할 좋은 이유를 갖고 있음을 의미할 뿐입니다. "

"실패는 당신이 포기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당신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당신이 결코 해낼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뿐임을 의미할 뿐이다. "

"실패는 하나님께서 당신을 버리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패는 다만 하나님께선 더 좋은 계획을 갖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

만일 우리가 실패를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출발의 기회로 삼는다면, 실패는 우리에게 더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는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공의 길로 달려나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역사는 실패에 좌절하고 비관하고 주저앉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실패에 임했던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결국 많이 실패한 사람일수록 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직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사람만이 실패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실패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는 여러 번 실패해 본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또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위대한 일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싶다. "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귀중한 기회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실패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실패에 즈음하여 좌절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경험삼아 또 다른 시도를 감행할 것인가?

토마스 크랑크 박사의 말과 같이 "성공과 실패의 가장 기본적인 측정기는 자기 자신입니다. "

실패하는 것은 인간적입니다. 그러나 실패에 주저앉는 것은 악마적입니다.

 

 

어록·시·묘사

 

실패란 성공의 여명이 트이기에 앞선 그 어둡고 침침한 이른 아침 시간일 경우가 많다.

(레이 미첼 훗지스/ 성공)

 

성공할 수 있는 공식을 줄 수 없지만 실패에 이르는 공식은 줄 수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라."이다. <*워프를 주빈으로 베푼 만찬회>

(H. B. 스위프)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올바른 목표에 대한 지지가 저지되어서는 안 된다.

(A. 링컨)

 

인생에서 실패의 반은 자기를 끌어주는 말이 펄쩍 뛰는 데서 비롯된다. <*희망을 비약시키는 데서 생긴다>

(J.C. 해어와 A.W. 헤어/ 진리의 추론)

 

바보는 때때로 어려운 것을 쉽게 생각해서 실패하고, 현명한 자는 때때로 쉬운 것을 어렵게 생각해서 실패한다.

(C. 콜린즈/ 경구집)

 

실패를 하지 않는 인간은 대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간이다.

(E. J. 펠프스)

 

자기의 어제 실패에 대해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라! 한 가지 실패로 자꾸 괴로워하는 것은 다음 일도 실패로 이끄는 원인이 된다. 한 가지의 실패는 그것으로 막을 내릴 것이 중요하다. 모든 자기 학대의 감정은 체념이 부족한 까닭이다. 자기 학대의 감정은 자기만을 다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남을 다치게도 한다.

(B.A.W. 러셀)

 

실패는 사람을 지독하고 잔인하게 만든다. 성공은 그 사람의 성격을 개선한다.

(W.S. 몸/ 요약)

 

틀림없는 성공에는 명예가 있을 수 없지만, 틀림없는 실패에서는 많은 명예가 발굴될 수 있다.

(T. E. 로런스/ 황야의 반역)

 

인생의 실패가 주는 잇점은-그것은 가장 중요한 잇점이 되겠지만-변화에 대한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우리의 가장 일반화된 제도인 사랑에서의 패배, 사업에서의 패배, 특히 스포츠에서의 패배, 이러한 것들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체험과 새로운 제품, 새로운 경영진, 새로운 감독, 새로운 코치로 개편되어 간다. 그러나 정치에서-적어도 국회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패배는 패배자로 하여 방어를 굳히게 하고 보신을 허락한다.

(J. 레스턴)

 

끝을 조절하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하는 일이 전혀 없다

(노자)

 

그들은 실패한다. 그들만이 실패한다, 노력하지 않은 자만이

(T.B. 올드리치/ 경쾌한 라임에 매혹된 건축가)

 

오늘 쓰러지는 자는 내일 다시 일어설 수도 있다.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우리들은 성공에서보다는 실패에서 더 많은 지혜를 배운다.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발견함으로써, 해야 할 것을 가끔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발견을 못할 것이다.

(S. 스마일즈/ 자조)

 

이런 속담이 그의 머리에 번쩍 스친다. "많은 사람이 실패하고 한 사람이 성공한다. "

(A. 테니슨 경/ 백일몽)

 

미래를 겁내고 실패를 무섭게 여기는 사람은 그 활동을 제한당하여 손발을 내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실패라는 것은 별로 겁낼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오히려 이전에 했을 때보다도, 더욱 풍부한 지식으로 다시 일을 시작할 좋은 기회인 것이다.

(H. 포드)

 

실패란 하나의 교훈에 다름 아니고, 호전하는 제일보(第一步)다.

(W. 필립스)

 

나는 항상 젊은 사람들의 실패를 흥미로써 바라본다. 젊은 시절의 실패는 곧 성공의 토대가 된다. 실패를 하고 물러섰던가? 다시 일어섰던가? 젊은 사람 앞에는 이 두 가지의 길이 있는데, 이 순간에 성공은 결정되는 것이다.

(V. 몰트케)

 

아무것도 이루어 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성취를 평가하기가 어렵고 따라서 자기 도취의 영광 속에서 자신을 더욱 고립시키지 않을 수 없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고귀한 실패는 저속한 성공의 경계를 얼마나 멀리 뛰어넘고 있는 것일까.

(C. W. 모리스)

 

운명의 여신이 현명한 인간을 위해 마련해준 청춘의 사전에는 실패라는 말은 없다.

(벌워 리튼/ 리셀리 외)

 

성공은 단 한 가지의 길에서만 가능하지만‥‥‥ 실패는 여러 가지 길에서 가능하다(이 러한 이유 때문에, 전자는 어렵지만 후자는 쉽다. -즉, 과녁을 맞추기는 어려우나 과녘을 빗나가기는 쉽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논리학)

 

대개 희망은 있으면서 실지로는 사업이나 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왜 실패를 두려워하는가 하면, 그 일을 달성하기까지의 고난이나 난관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실패병에 걸린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왜 가능한 적극적인 면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어려운 점만 생각하는 것이요"

(N.V. 필)

 

속여서 성공하느니 당당하게 실패하는 편이 낫다.

(소포클레스/ 필록테테스)

 

운명이 장년을 위해 간직해 둔 청년의 사전에는 실패라는 말이 없다.

(E. G. E. L. B. 리턴)

 

실패하는 것은 인간이고, 그것을 관용하는 것은 신이다.

(A. 포프/ 비판론)

 

실패에는 달인(達人)이란 것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 앞에는 범인이다.

(A.S. 푸스킨/ 대위의 딸)

 

작은 일이라 하여 허수히 하지 않으며, 남이 안 보는 곳이라 하여 속이고 숨기지 않는다면, 비로소 하나의 진정한 대장부이다.

(채근담)

 

실패는 자본의 결원보다는 에너지의 결핍에서 때때로 일어난다.

(D. 웹스터)

 

틀리는 것과 실패하는 것은 우리들이 전진하기 위한 훈련이다.

(W.E. 채닝/ 현대에 대한 강연)

 

인생의 초기에 약간의 실패를 하는 데에 가장 큰 실리가 있다.

(T.H. 헉슬리/ 의학교육론)

 

자유로운 개인은 자기의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다. 이것을 감수한다.

(S. 보부아르/ 제 2의 성)

 

무슨 일을 시작하여 실패를 했을 때, 이것은 내가 마음을 닦지 못했고, 덕이 부족한 탓이라고 돌려야 한다. 만약 일이 잘 되었으면, 그것은 운수가 좋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남의 도움의 덕택이라고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진실하며, 또한 그릇이 큰 것이다. 그릇이 작은 사람일수록 성공하면 제 자랑으로 삼고, 실패하면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다.

(미상)

 

살아 있는 실패작이 죽은 걸작보다 낫다.

(B. 쇼/ 신을 찾는 흑인 소녀의 모험)

 

한 가지 행위의 실패가 있으면 백 가지 행위가 함께 기울어진다.

(명심보감)

 

어찌 되었든 간에 실패 하였다는 것은 완패한 거나 마찬가지다.

(J.R. 로얼/ 나의 장서 중에서)

 

산에는 비틀거리지 않고 개구멍에 비틀거린다. <*적은 일에는 마음을 놓고 실패하기 쉽다>

(한비자)

 

단 1분의 성공은 수년 동안 실패를 보상한다.

(R. 브라우닝/ 아폴로와 운명의 3여신)

 

하나의 고상한 실패가 수많은 저속한 성공보다 훨씬 낫다.

(L. 모리스/ 황천의 서사시)

 

실패란 사람의 마음 나름이야, 그건 마치 개미귀신이 판 모래 함정과도 같은 거지. 한 번 빠지면 그냥 미끄러져 들어 가기만 하니깐.

(J.E. 스타인백/ 불만의 겨울)

 

내 마음을 항상 정결케 하도록 도와주시고 정직하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살아 이 세상의실패가 나를 낙심케 하거나 성실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필립스 브룩스/ 새 날을 위한 기도)

 

아아! 사랑에 병들어 자기의 사랑에게 자살을 권고하는 사람의 실패자여!

(한용운/ 슬픔의 삼매)

 

정의를 위하여 싸우고/ 성공과 실패 따위는 따지지 않고 쉬는 일 없이/ 천국이 이 지상에 이루어지기 위하여/ 비록 지옥이라 하더라도 뛰어 들자

(다리온 불가능한 꿈)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는 강변에 자는 것은/ 실패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정호승/ 갈대)

 

한강 철교를 당당히 건너서 서울로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하고 밀려나서 서울로 가는 슬픈 사람들에게도

(박용주/ 서울)

 

특별히 맞춘 운명이/ 스스로의 속도와 주기로/ 인간을 찾아옵니다/ 호된 따귀 한 대가/이번에도 찾아왔습니다// 자, 괜찮습니다/ 산다는 일이 원래 그런 것/얼추 올 때가 되었던 따귀였고/ 살짝 피하는 데 실패했을 뿐입니다//운명은 거의 표적을 맞춥니다/으스대던 얼굴이 한 방 먹으니/ 팡, 하고 큰 소리가 난것 뿐/ 치명적이라고 할 정도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편리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으니/자, 추스르고 일어나세요//

(케스트너/ 따귀맞기- 무엇인가에 실패했을 때)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험한 운명은 내게 미소짓고/불운이 나를 포옹하며/ 실패는 나에게 키스하며

(마틸다 핀토/ 그런데 왜?)

 

 

설 교 노 트

 

승리한 패배자

삼상15:10-16

 

서론

우리들은 이 성경 본문에서 "승리한 패배자" 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의 제 1대 임금 사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세속적인 아말렉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으나 신령한 영적 전쟁에서는 완전한 패배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현하 생존경쟁과 사업경쟁이 치열해진 시대 우리 기독 신자들의 세속적인 경쟁에서는 승리하지마는 영적신앙생활에서 실패하는 이들이 비일비재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 중에 한 사람이 우리 자신이 아닐지 모릅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승리한 다음이 제일 위험하다고 합니다. 모처럼 쟁취한 승리가 실패와 비극으로 막을 내려지는 수도 없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울 왕의 실패를 깊이 고찰하여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면서 재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실패의 원인

사울 왕이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는 승리하였으나 하나님께 향한 신앙생활에서 실패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명령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오를 범하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승리 후에 오는 위험과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1) 승리자는 자고하고 교만해지 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2) 승리자는 방심하며 방종하기가 쉽다고 합니다.

방심과 방종은 마귀가 틈을 타는 유일의 방편인 것입니다. 마귀에게 유린당하는 길은 바로 패망의 길인 것입니다.

(3) 승리자는 안일과 쾌락을 도모하기 쉽다고 합니다

이 안일과 쾌락은 영적 생명을 상실케 하는 위험한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 사울 왕도 아말렉과 싸워서 승리하니 교만하게 되어 방종하였고, 인간의 안일과 쾌락을 도모하다가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실패의 내용

사울 왕이 영적으로 실패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그는 아말렉의 가축들을 다 진멸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축들 중에 좋은 것은 다 자기를 위하여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2) 진열해야 될 것을 살려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분부대로 모두 죽여야 할 아말렉 가축들을 그대로 살려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기들의 안일과 쾌락을 도모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는 영적 차원에서 사울은 자기 자신을 쳐서 정복하지 못한 데 있다고 봅니다.

우리 기독 신자들은 나 자신을 먼저 죽이라고 하였습니다(롬6:5, 갈5:24 참조). 우리들의 교만, 혈기, 욕심, 정욕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께 바칠 제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울을 사무엘에게 전승보고와 함께 그 가축을 남겨 둔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서라고 변명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벌써 바쳤어야 할 것인데 아직도 바치지 아니한 사실이 잘못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바칠 십일조와 감사의 제물을 바치지 아니하는 것이 실패라고 말입니다.

 

결론

사울의 실패의 결과는 세 가지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

(1) 하나님에게 아주 버림당하는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삼상15:23).

(2) 성령이 떠나고 마귀에게 사로잡혔습니다(삼상16:14).

(3) 길보아 산상에서 자기 칼로 자살하게 되었습니다(삼상31:4-6).

우리는 이를 전감으로 삼아 영적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 쌓기를 그침

창11:8

 

서론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후손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에서 거주하며 높은 성을 쌓게 되었으니 곧 바벨탑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성 쌓는 일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어찌해서 원대한 계획으로 출발되었던 이 공사가 중간에서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까?

 

1. 대신하는 공사였기 때문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을 쌓는 재료를 정규품으로 사용하지 않고 대용품을 사용하였으므로 실패하였습니다.

벽돌로 돌을 대신하였고, 역청으로 전음을 대신하였으니 재료가 부실할 뿐더러 그러한 재료를 쓰는 것 자체가 이미 실패할 것을 예고하는 깃이나 다름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원대한 포부를 품고 계획한 공사라면 될수록 좋은 재료, 즉 견고하고 훌륭한 최상품을 써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고런데 대용품을 사용하다가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성경을 바로 읽고 깨닫고, 기도하며 주일에 예배 드리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인데도 녹음된 테이프로 설교 듣고, 성경 듣고 하다가는 그 대용품으로 인하여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2. 명예심으로 쌓다가 실패하였습니다.

그들은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네 이름을 내려는 명예심인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앞으로 또 다시그 무서운 홍수가 날까 두려워서 높은 탑을 쌓았다가 일단 유사시에 탑 꼭대기로 피신하여서 죽음을 면해 보려고 하였으며 이렇게 될 때 탑을 건조한 자기네들의 명성이 떨쳐질 것이라고 하는 허영의 명예심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허락지 않으시고 언어를 혼잡시켜 천하에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흩어져서 삶으로 오히려 번성하게 되기때문입니다.

쓸데없는 명예심은 교만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그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하게 되면 실패하게 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이름을 드려내려고 하면 거기에는 실패가 따를 뿐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면 거기에는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임을 우리 성도들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흩어지지 않으려다가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고 축복하실 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창1:28)"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번성하여 정복할 비약적 욕망을 가지지 못하고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려고 하며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는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뜻에는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땅을 차지하고 그 뜻을 나타내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흩어지지 않으려는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결론

지금까지는 온 땅의 구음이 하나였고, 언어가 하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함으로 도저히 동거할 수 없어서 서로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흩어지게 되어 오늘날 언어가 각각 다른 민족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실패하게라도 하시면서 자신의 뜻을 기어이 실행하십니다.

심 판

성 경 활 용

1. 심판하는 자

(1) 하나님

(신32:41)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삼상2:10)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대상16:33) 그리 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려 오실 것임이로라

(롬3: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살후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2) 예수 그리스도

(요3: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고후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3) 성도들

(마19:28)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고전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2. 왜 심판을 하는가?

(1)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게 하기 위해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롬2:16)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2) 회개시키기 위해서

(욥5:17)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없신여기지 말지니라

(3) 형벌의 기준을 밝히기 위해

(고후5:10)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계8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3.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증거

(1) 권능이 크시니

(욥37:23) 그의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2) 보좌를 예비하셨으니

(시9:7) 여호와께서 영영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예비하셨도다

(3) 과거를 보아서

(벧후2:3)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 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4. 언제 심판하시나?

(1) 현세 때에

(요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장차에

(행24: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3) 믿지 아니할 때

(요3:18)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4) 날을 작정하시고

(행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으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5) 일시간에

(계18:10)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6) 부활시에

(요5:29)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7) 내세에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5. 어떻게 심판하나

(1) 생명책으로

(계20:12) 곧 생명 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의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 오래 생각하지 않으시고

(욥34:23)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시기에 오래 생각하실 것이 없으시니

(3) 높게

(시10:5) 저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저의 안력이 미치지 못하오며

(4) 행위대로

(겔7:8)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계20:13)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5)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6) 빛같이

(호6:5)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

(7) 이방인이 알게

(마12:18) 내가 내 성령을 줄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8) 의롭게

(요5:30)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을 의로우니라

(9) 죄를 밝히 드러내어

(딤전5: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10) 참되게

(계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6. 누구를 심판하나?

(1) 악인

(욥36:17)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네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공의가 너를 잡았나니

(시1:5)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2) 우상 숭배자

(렘1: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3) 거만한 자

(잠19:29) 심판을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4) 형제 판단자

(롬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5) 거스리는 자

(롬13:2)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 라

(6) 요동케 하는 자

(갈5:10)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7) 믿음을 버리는 자

(딤전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8) 살인자

(마5:21)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9) 노하는 자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10) 불경건자

(벧후3:7)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11) 불의한 자

(살후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12) 간음하는 자

(해13:4)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13) 산 자와 죽은 자

(딤후4: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7. 심판을 피하는 비결

(1) 기도로

(시143:1-2)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2) 주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어야

(요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3) 긍휼로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4) 사랑으로

(요일4:17)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5) 원망하지 말아야

(약5:9) 형제들아 씨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관련원어풀이

1. @yDiI 딘-

(1) 다스리다, 통제하다

(삼상2:10, 슥3:7)

(2) 판단하다, 심판하다.

(창49:16, 사3:13)

(3) 정죄하다, 형벌하다.

(창15:14, 시110:6)

(4) 변호하다, 진술하다, 항변하다

(잠31:. 9, 렴30:13)

(5) 다투다.

(전6:10)

(6) 명상, 판단, 재판.

(시76:9, 잠20:8)

(7) 재판받을 이유.

(신17:8, 시140:13)

(8) 소송, 다툼.

(잠22:10)

 

2. fP;v]mi 미쉬파-트

(1) 심판.

(레19:15, 신1:17)

(2) 잘못, 범죄.

(렘51:9, 겔7:23)

(3) 옳음, 공의, 공평한 것, 정당한 것, 합법적인 것.

(신16:19, 잠16:11)

(4) 태도, 습관.

(왕하11:14, 17:33)

(5) 모양, 종류, 계획.

(삿13:12)

 

3. !y]mp,v, 쉐파-팀

심판, 형벌.

(출12:12, 민33:4)

 

4. bh'ma 베-마

(1) 걸음, 일보의 간격.

(행7:5)

(2) 결어 올라가는 곳에 있는 장소, 법정.

(마27:19, 행18:12)

(3) 그리스도의 심판석.

(롬14:10, 고후5:10)

(4) 연단, 발언대.

(행12:21, 23)

 

5. krivnw 크리노-

(1) 승인하다, 인정하다, ∼보다 낫다

(롬14:5)

(2) ∼라고 생각하다, 판단하다, ∼로 여기다

(눅7:43, 행15:19)

(3) 결정하다, 작정하다, 결심하다

(행16:4, 딛3:12)

(4) 판단하다, 재판하다.

(요7:51, 행3:13)

(5) 다스리다, 통치하다, 주어진 재판권으로 관활하다.

(마19:28, 눅22:30)

(6) 함께 다투다, 논쟁하다, 고소하다, 소송을 제기하다.

(마5:40, 고전6:1)

 

6. krivma 크리마

(1) 심판, 선고, 판결, 판정서

(마7:2, 롬2:2)

(2) 행정상의 섭리, 작정.

(롬11:33)

(3) 정죄, 벌.

(마23:13)

(4) 심판의 관리.

(요9:39, 행24:25)

(5) 공의의 집행 처형.

(벧전4:17)

(6) 소송.

(고전6:7)

 

7. krivsi" 크리시스

(1) 구분, 가름, 쪼개, 시합, 시험, 선택, 심판.

(요8:16, 벧후2:11)

(2) 재판소, 법정.

(마5:21, 22)

(3) 옳음, 공의, 의로움.

(마12:18, 행8:33)

설교예화자료

처형

 

어느 곳에 닭이 한마리 있었습니다. 그 닭이 아이를 죽였다고 해서 재판에 회부되었습니다. 조그마한 요람에 넣은 갓 태어난 아기의 머리를 닭이 쪼아서 아이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증인이 불려 나가 여러 가지 증언을 했습니다.

불쌍하게도 닭은 유죄판결이 내려 처형되었었습니다. 이 교훈은 예컨데 닭이라 할지라도 살인자로서 확실히 유죄라는 것이 확정되지 않는 한 간단히 처형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은 생각보다 가깝다

 

한 사악한 스코틀랜드인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말을 빌렸는데 사고였는지 거칠게 다루었는지 모르지만 그 말이 죽고 말았습니다. 자연히 주인은 자기가 입게 된 손해보상과 함께 말 값을 지불하라고 주장했습니다. 변호사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면서, 손해배상은 기꺼이 지불했겠지만, 당장 현금이 없으니 현금 대신 약속어음을 받겠냐고 말 주인에게 묻자, 그 말 주인은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지불할 기한이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은 마음대로 하시죠."라고 채권자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악한 그는 심판의 날에 지불하도록 어음을 발행했습니다. 결국 채권자는 그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갔고, 거기에서 변호사는 자신의 변호에서 판사에게 어음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판사는 어음을 보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약속어음은 완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심판의 날이므로 내일 지불할 것을 판결합니다. "

 

 

마지막 심판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극장에 관객이 초만원을 이뤄 쇼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는데 극장 뒷편에서 불이 났습니다. 극장 지배인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유명한 배우 한 사람을 무대로 내보내 화재상황을 알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나갈 것을 알렸지만 관객은 배우의 연기로 생각하고 박수만 보냈습니다. 배우는 다시 한 번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관객들은 다시 박수만 보냈습니다. 아무도 화재 소식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극장의 건물이 무너지며 관객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

하나님의 음성은 다가올 심판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정말 이때에 우리는 박수만 보내고 있을 것인가?

 

 

어록·시·묘사

 

심판이란, 이것을 하는 쪽은 통쾌하기도 한 신나는 일이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선 불쾌하고 괴롭고 두렵기까지 한 일이다.

(전봉건/ 정직에 대하여)

 

바르게 심판하면 사람의 소망에 배반하고 잘못 심판하면 하느님의 뜻에 거역한다.

(기욤 부세/ 스레의 사람들)

 

모든 선고가 죽음의 선고인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심판은 생활의 심판인 것이다.

(0.F 0.W. 와일드/ 옥중기)

 

심판이란 이성의 정체된 상태를 의미한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남의 심판을 받기 싫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라.

(A. 링컨)

 

하느님조차 사람 심판하기를 죽은 뒤로 미루신다.

(S. 존슨)

 

인간의 판단은 오류에 빠지기 쉽다.

(오비디우스/ 축제)

 

만일 심판의 지팡이가 휘어진다 해도 선물의 무게 때문이 아니라 자비의 무게로 휘어주었으면 한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심판은 경기자, 또는 어느 편의 응원자들에게도 치우치는 일 없이 공정무사(公正無私)하게 경기자의 반칙도 가려내고, 그야말로 의연한 자세로 심판에 임해야 명심판이요 공정한 심판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승부관념에 집착하게 되면 심판원이 넘겨줄 수 있는 반칙까지도 정확하고 예리하게 지적해 내면 그 심판원을 얄밉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빠지기 쉬운 약점이기도 하다.

(방순원/ 법관과 불신풍조)

 

심판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행하게 될 정도로 심한 버릇이 된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나 싸울 대로 용감히 싸웠구나. 할 일을 마쳤으며 믿음을 지켜 내었으니, 여기 신의 정당하신 심판으로, 그 날은 나에게 정의의 관을 씌워 주시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었느니라. 자, 써두어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어늘. < * 이 신교 신학자는 만년에 신병으로 오래 누워 있어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 있었다. 기억력이 거의 없어 폐물이 되다시피 된 그였지만 성(聖) 바울의 말 한 마디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L. 비처)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에 의하여 우리 자신을 판단하며,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이미 한 것에 의하여 우리를 판단한다.

(롱펠로우/ 카바나)

 

언제나 일만 하는 자는 진정한 판단력을 가질 수 없다.

(E. 버크/ 한 국회의원에게의 서한)

 

 

조급히 판단하는 자는, 후회를 재촉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가능한 최대한의 지식이 없이 판단하는 자는 오판을 면할 수 없다.

(J. 로크/ 인간 오성론)

 

자기 멋대로의 저울눈금으로 자신을 저울질하지 말고, 분별있는 판단이 자기 시비의 표준이 되도록 하라.

(T. 브라운 경/ 기독교인의 도덕)

 

도매식 판결은 모두가 산만하고 불완전하다.

(몽테뉴/ 수상록)

 

판결할 때의 조급은 죄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을 평판이나 재산으로만 판별한다.

(라 로시푸고/ 금언집)

 

나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그들의 손 안에 놓여 있는 이익을 무시하고, 마침내는 그것을 잃는다.

(소포를레스/ 아작스)

 

한 사람의 냉정한 판단이, 1천 번의 조급한 협의회의 가치가 있다.

(W. 월슨/ 피츠버그에서의 연설)

 

명심하라. 판단이 약할 때에는 편견이 강하다.

(K. 오해어러/ 미다스)

 

내 아들아, 너는 젊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현재 너의 의견은 크게 변할 것이며,심지어는정반대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너 자신을 고귀한 일의 재판관으로 내세움을 잠시 삼가라.

(플라톤/ 대화편 ; 법)

 

날마다 그 사랑하는 천사들을 향해 올라가는/ 이 저주의 물결을 신은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 고기와 술을 포식한 마치 폭군과도 같이/ 신은 우리의 저주를 요람의 노래처럼 들으며 잔다.

(보들레르/ 베드로의 부인)

 

그대 앉은 자리에서/ 나를 심판하려는가,/그대를 떠받치는 높다란 의자/ 마지막 꺼져가는 제국의 위엄/ 하루에도 너댓 번씩은/ 목을 쓰다듬으며 안도하는/ 그 가시방석에 앉아서/ 진정 나를 심판하려는가

(서덕석/ 나 여기 섰으니)

 

마지막 심판의 날 오기 전에 한 번만 더 저희를 자유케 하소서

(하일/ 기도)

 

목숨 하나 내놓는 심판대/ 땅은 분수처럼 솟구쳐/ 수많은 햇살 부르고/ 노래 없는 적막으로/ 세상의 문이 열려 있다.

(서인숙/ 그리움이 남긴 자리)

 

꿈 대신 무서운 심판이 얼른거리는데/좋은 말 해 줄 친구도 안 보이고!

(노천명/ 나에게 레몬을)

 

가장 정의로우신 분이요 왕 중의 왕인/ 주님의 날은 다가왔나니/그 날은 진노의 날이요 보복의 날이며/ 암흑의 날이요 또한 구름 낀 날이매/ 세찬 천둥소리 울리는/ 불가사의한 날이라.// 그것은 또한 가슴 미어지는 날이요/초조한 생각과 슬픔에 겨운 날이며/ 그 날에는 이 세상의 보람이었던/사랑도 희망도 종말을 고할지니/ 인간 반사와 그 모든 경륜과/ 이 세상에 대한 욕망도 끝나리라.

(성 콜롬바누스/ 하나님의 심판의 날)

 

마지막 심판의 날,그 날이 오면/이 세상을 티끌같이 부수리니/ 다윗과 시발라가 그 증인이라.// 심판주 오시어 이 세상 모든 것을/준엄하게 심판을 내리실 때/ 온 세상 만물이 무서워 떨리라.// 기이 한 나팔 소리 들려올 때/ 세계 만국의 무덤에 잠자던/ 사람들 모두 보좌 앞에 엎드리라.// 창조된 모든 것 심판주 앞에/심판받기 위해 다시 살아날 때/ 죽음이나 대자연까지 숙연해지리라.// 생명책이 운반되어 나오리니/ 거 기에는 온갖 일 기록되어 있으며/그 기록에 의해 이 세상 심판되리라./ 심판주가 모든 일을 조사할 때에/ 숨긴 일 모두 드러나게 되리니/ 심판을 면할 자 없으리라.// 죄많은 나는 그때 무슨 말하랴/ 다른 사람 뒤에숨으려고 하리니/ 의로운 사람조차 불안에 떨리라./ 위풍도 당당한 왕이시여/ 죄 많은 자들을 은총으로써/ 구하는 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기억하소서, 자비하신 예수여/ 주께서는 나의 길이 되시오니/ 그 날에 나를 건져 주소서./ 나를 찾아 주께서는 피곤에 지치셨고/ 십자가에 달리어 대속하셨나니/ 그 크신 공로로 나를 구하소서.// 정의의 심판주여/ 그 헤아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사죄의 은사를 내려 주소서./ 이 죄인 한숨을 쉬며/허물로 인해 얼굴을 붉혀/ 탄원하는 것을 용서하소서, 주여.// 막달라 마리아의 죄를 사하시고/강도의 말조차 들어 주신 주여/내가 비는 기도에 귀기울이소서./ 나는 비록 기도할 자격이 없어도/ 자비하신 주여 귀 기울이시사/ 영원한 불길에서 나를 건지소서.// 양들 사이에 내가 있을 곳을 주어/ 염소로부터 멀리 있게 하소서/ 당신의 우편에 내 자리를 정하소서.// 저주받은 자들을 모두 징 벌하여/ 거센 지옥불에 던지신 뒤에/축복으로써 나를 불러주소서/ 오로지 당신 앞에 꿇어 엎드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오니/ 마음은 불탄 재처럼 텅 비었으매/나는 종말을 지켜 주소서.//눈물로 지새던 그 날과 이 날에/ 티끌로부터 부활하는 것은/ 심판받은 죄인이오나/

이 무리를 용서하소서, 하나님 / 자비로우신 주 예수여 / 그들에게 안식을 내려 주소서.

(첼라노/ 심판의 날)

 

지금은 모두 일어나 이삭을 챙겨야 하는 때/ 당신의 심판을 기려워하며 고즈너기 묵상해야 하는 때

(한분순/ 기원)

 

나는 웃어 주리라 고상한 정신계의 심판자인 양/ 거만을 떨고 있는 해박한 지식의 원숭이들을

(하이네/ 크리스찬 S에게 보내는 벽화풍의 소네트 · 3)

 

너희들, 왕좌 옆에 탐욕스런 무리를 이루고 서 있는/ 자유와 천재와 영광을 사형에 처하는 망나니들이여!/ 너희들은 법의 그늘 밑에 숨어 있어/ 너희들 앞에서는 심판도 정의도 모두 침묵을 지키는구나!/ 그러나 타락의 아첨자들이여, 신의 심판이 있도다!/추상같은 심판, 그것이 기다리고 있도다/그것은 황금의 빛도 다가오게 하지 않는다.

(레르몬토프/ 시인의 죽음)

 

눈은 떠도 길 몰라/ 마구 나는 불나비떼/ 바람 따라 거짓 속에/ 해도 삼켜 검게 살며/ 이 누리/ 어지럽힌 죄/ 불심판을 보고 있다

(오동춘/ 우리 등불을 들자)

 

 

설 교 노 트

 

심판의 경고

단5:17-28

 

서론

구약의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예언인 동시에 고대 역사서로써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 개인이나 민족이나 전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심판에 관한 중요한 경고가 계시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바벨론의 벨사살 왕은 술을 마시면서 우상을 찬양하던 날에 갑자기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글이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글이 아니고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입니다.

그 뜻을 풀이하면 하나님이 세어 보고 달아보니 부족해서 진멸한다는 뜻입니다.

 

1. "메네 메네"에 대한 경고의 뜻

하나님께서 이 글의 뜻을 다니엘을 통해서 풀어 주시지 아니하셨다면 아직도 그 의미를 몰랐을 것입니다.

"메네 메네"는 그 시대를 세어 본다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그 시대를 세어 본다는 것은

(1) 그 시대 상황을 깊이 살펴 보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인생들이 얼마나 신실하고 깨끗한가를 살펴봅니다. 또한, 그 시대를 형성하고 있는 나라와 민족들이 얼마나 착하고 의로운가를 살펴 보신다는 말입니다.

(2) 그 시대를 끝내신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 시대를 살펴보신 하나님께서 그 무가치하고, 불필요하여 백해 무익한 개인이나 나라들은 아주 심판하사 이 역사 속에서 아주 소멸하여 종막을 내리신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인생은 하나님의 역사를 역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순응하면서 많은 점수를 확보하여 영원히 보존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데겔"에 대한 경고의 뜻(단5:27).

(1) 그 시대를 저울에 달아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공평한 저울을 인생의 외모나 그가 지니고 있는 간판을 달아보는 것이 아니고그 사람의 중심과 생활 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 진실성 또는 정의성 또는 희생성 등을 달아보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저울에 무게가 있는 것은 왕이나 박사나 부자라는 외부적인 간판이나 지위가 아니라 그 중심의 바른 신앙이라는 말입니다.

(2) 그 시대의 부족함을 드러내시는 뜻입니다.

심판이란 본래 인간의 잘잘못을 드러내고 다음 선악을 분별 분리하고 상선벌악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서 경중을 가려내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무결하게 나타나 무게 있는 신앙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 "우바르신"에 대한 경고의 뜻(단5:28).

(1) 나라가 나뉘인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28절에 "베레스"라고 한 것은 "바르신"의 단수 명사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뉘인다는 말씀은 분신이 되여 산산조각 파괴된다는 뜻입니다. 이 심판의 경고대로 벨사살 왕과 바벨론 나라는 아주 망하고 말았습니다.

(2) 다음은 다른 사람에게 붙여 준다는 뜻입니다.

이는 왕의 주권과 지위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말인데, 이는 포로가 되거나 노예가 되여 주권과 자유와 평화를 상실하리라는 말입니다. 이를 역사가들은 역사의 교체를 의미하고 진화론자들은 적자생존이요, 자연도태라고 하나 결론적으로 이는 하나님의 죄악을 심판하시고 새 역사를 창조해 가심을 의미합니다.

 

결론

어찌하여 벨사살 왕이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당했습니까?

(1) 교만한 죄 때문이요

(2) 신성 모독죄 때문이요

(3) 우상 숭배죄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겸손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최초의 세상 심판 원인

창6:1-13

 

서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후 최초로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을 물로 심판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그 의문은 풀리게 됩니다.

 

1. 성 도덕이 타락한 결과입니다.

본문 1-2절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적인 타락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은 종족을 보존하는 수단이며, 부부간에 행복을 자중시키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데 향락의 도구로 사용하여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결국에는 인류의 멸망을 초래해서 하나님의 홍수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성적 타락은 개인과 가정 및 국가를 망하게하는 무서운 질병과 같은 것입니다.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성적으로 타락하면 그 사회는 구제의 여지가 없이 망한다는 것을 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온갖 죄악이 관영한 결과입니다.

본문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을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지으니 하나님께서는 탄식을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짓고 망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라고 하였습니다. 현실의 죄악상은 어떠한지 눈을 돌려서 주위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정말 걱정하지 아니할 수 없는 상태라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아 두려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3. 강포한 결과입니다.

본문 13절에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강포한 자들은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즉, 깨달아 회개할 줄 모르고 끝까지 죄를 더욱 많이 짓는 그들이 어찌 망하지 아니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회개만 하면 반드시 용서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18)"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니 그 어찌 망하지 아니하겠는가. 120년간이나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회개치 아니하는 강포함을 보였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세상을 최초로 심판하심은 성도덕이 타락하고 온갖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이었으며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강퍅한 것은 심판받은 증거

출9:5-21

 

서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시려고 재앙이라는 도구와 수단으로 계속 바로의 숨통을 조이고 있지만 바로는 점점 더 강퍅하여서 약속을 몇 번이나 번복하여 자기 죽을 함정을 계속 파고 있는 것입니다. 어지간하면 하나님의 재앙이 무서운 줄 알고 항복했을텐데 계속 고집을 부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징조인 것입니다(출7:3-4, 13). "강퍅"이란 말은 성미가 까다롭고 고집이 세다는 말입니다. 고집이 센 자체가 심판이라 그 말입니다.

 

1. 시한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본문 5-6절에 "여호와께서 시한을 정하여 가라사대 여호와가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시더니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측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을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고 하였습니다. 기한을 정하는 것은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인데 바로는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고 악용하였습니다. 특히 내일이라고 하심은 하루밖에 시간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기회를 주셨을 때 회개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받는 증거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행11:18)"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선용하십니까. 베드로는 말하기를 "주께서 오늘까지 재림을 미루심은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니 흙도 없고 점도 없이 깨끗한 가운데서 주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된다(벧후3:8-15)"고 하였습니다.

 

2.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본문 20-21절에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자는 그 종들과 생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의 계획된 재앙은 재물의 손해를 주기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둔 자는 재물에 손해를 입지 아니하였지만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자들은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들은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 특징인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하기를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은 패망을 이룬다(잠13:13)"고 하였습니다. 심판받는 자들은 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습관이 있는 것입니다.

 

3. 더욱 강퍅합니다.

본문 12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음으로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경고를 받고 재앙을 받아 큰 손해를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사1:5-6)"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바로를 강퍅하게 하셨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체가 완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두셔서 더욱 강퍅해졌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유기된 상태 그대로 버려두시니 더욱 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기된 상태에서 심판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선택된 백성들처럼 실수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벌벌 떨면서 주신 기회를 회개하는데 사용하고 회개하라는 주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고, 지은 죄 사하시고 오는 죄 막으소서 하면서 탕자처럼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선택된 사람 회개시키러 오신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눅5:32).

 

 

마지막 심판

계20:11-15

 

서론

심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심판대 앞에서 받는 심판입니다. 이심판은 주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심판입니다. 여기서는 행한 공력대로 받을 상급을 결정합니다. 다른 하나는 흰 보좌 앞에서 받는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불신자들이 받는 심판으로서 그들의 죄의 경중에 따라 지옥 형벌의 등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1. 심판주

11절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흰 보좌에 앉으신 이"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5:22)"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도들이 심판받는 그리스도 심판대의 심판주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처럼, 역시 흰 보좌 심판의 심판주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심판석에 앉으신 예수님은 옛날 골고다 언덕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받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무력한 예수님은 결코 아닙니다. 죄지은 자를 용서하시고 그 죄를 친히 짊어지신 자비로운 예수님도 결코 아닙니다.

심판석에 앉으신 예수님을 영광 중에 거하시며 불꽃 같은 눈으로 온갖 죄악을 추호도 용서하시지 않으시는 무서운 분이십니다. 어느 누가 감히 그 분의 진노의 눈길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2. 심판의 방법

주님 앞에는 두 권의 책이 펴져 있습니다. 한 권은 생명 책이요, 다른 한 권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의 평생에 지은 모든 죄악이 숨김없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심판책입니다.

(1) 자기의 행한 대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본문에는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받는다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12-13절). 바울도 똑같은 말씀을 로마서 2:6-8에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기준은 명백합니다. 인과응보이고, 사필귀정이며,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이러할진대 어찌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2) 공의에 따라 심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심판 때에 하나님은 사랑보다는 공의를 더욱 앞세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아들인 자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무리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흰 보좌 앞에서 심판받는 자들입니다. 이제 이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밖에 없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대변하여 예수님은 공의로운 심판을 하십니다.

공의로우신 예수님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세상에서 보는 그런 불의한 판결, 굽은 판결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요5:30). 여기에는 정상참작이라든지 예외라는 것도 없습니다. 온정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외모도, 명예도, 부도, 권세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오직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정의로운 판결만이 있을 뿐입니다(전12:14).

 

결론

심판의 결과는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하였습니다. 불못이라고 하면 흔히 용광로를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수천 도가 되는 용광로의 쇳물은 계속 끓이면 증발하여 없어져 버리고 연료를 태우지 않으면 식어버립니다. 그렇지만 지옥의 불길은 결코 식는 법이 없고 또한 다 타서 없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영원히 괴로워해야 하는 곳, 그곳이 지옥입니다.

 

 

기독교의 심판관

계20:11-15

 

서론

인간은 누구에게나 세 가지 필연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사실이며, 다음은 누구나 다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은 누구에게나 영원한 귀착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심판의 광경을 직접 보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 심판주는 그리스도이시고, 심판의 대상은 전인류이며, 심판의 내용은 행위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서 혹은 천국으로, 혹은 유황불 못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1. 심판은 전인류의 비밀 폭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는 전인류들의 쌍이고 쌓이었던 비밀, 즉 잘하고 잘못한 행위가 다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히4:13에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리라"고 하였습니다.

(1) 드러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이는 사람이 남몰래 행동한 불의한 죄도 드러나고 의롭고 착한 행위도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2) 무엇에 근거하여 드러납니까?

이는 행위책에 기독된 대로 심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시139:1-4에 이 모든 행위를 행위책에 기록하여 두었다가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는 부끄러운 죄도 드러나고 착한 행위도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당하게 살아야 하고, 의롭게 살아야 하고,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유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심판은 선악을 분별 분리하는 것입니다.

(1) 어떻게 분별 분리합니까?

이는 흑백인종인 피부색깔로 분별 분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폭로된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분별 분리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또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백성으로 분별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2) 누가 분별 분리합니까?

이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사회나 교회는 혼란합니다. 이유는 진짜와 가짜가 섞이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밭에 곡식도 가라지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혹 가라지를 뽑아내다가 곡식을 상케 할 우려가 있으니 그대로 두었다가 심판 때에 갈라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고로 우리 자신이 주님의 오른 편에 설 수 있는 알곡신자 혹은 참 양과 같은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심판은 상선벌악을 공의로 시행합니다.

(1) 상선벌악이란 무엇입니까?

착한 사람이 되어 선한 일을 많이 행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악하여 악한 일을 많이 행한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 상선벌악입니다. 이는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하고 공의롭고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이 심판은 내가 죽느냐? 사느냐? 행복이냐? 불행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양자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2) 참선과 악은 무엇입니까?

참선은 지금까지 철학이나 인간학에서, 다른 사람과 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 선이고 여기에 손해를 주는 것이 악이라고 정의해왔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가르치기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순종하고 신앙하는 것이 참선이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 순종하고 불신앙함이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안 믿으면 멸망한다고 하였습니다(요3:16-18).

 

결론

기독교의 심판관이란 인생의 비밀을 드러내고 분별 분리하고 상선벌악을 공의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너 나를 물론하고 다 죄인입니다. 그런고로 이제라도 바로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직사함을 받고 영생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십 일 조

성 경 활 용

1.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이해

(1) 십분 일은 하나님의 것이다.

(레27:30)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2) 농사와 가축의 소산을 십일조로 드렸다.

(신14:22)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대하31:6)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 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3)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다.

(느13: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 일조를 가져다 곳간에 들이므로

 

2. 십일조를 바쳐야 할 이유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창14:20)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 게 주었더라

(2) 여호와의 것이니

(레27:30)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3) 도적이 되니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3. 십일조를 드리는 방법

(1) 풍성히

(대하31:5)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2) 성심으로

(대하31:12)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 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3) 좋은 것으로

(히7:4)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을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

 

4. 십일조를 드린 자의 결과

(1)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주신다.

(신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2)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주신다.

(말3:10) 너희의 온전한 십 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방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설교예화자료

헌금은 바치는 대로 주신다

 

어느 날 신부와 목사, 그리고 유대교의 랍비 세 사람이 모여 하느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 얼마 만큼 바칠 것인가 하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고 천주교 신부가 제안했습니다.

"저는 먼저 땅에 줄을 긋고 제가 가진 돈 전부를 공중으로 던집니다. 그래서 줄 오른편에 떨어진 돈은 하나님께 바치고 왼편에 떨어지면 내 주머니에 넣습니다. "

"그렇게 객 좋은 방법이 못되는데요."하고 프로테스탄트 목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땅에 원을 그려 놓고선 내 돈을 공중에 던지죠, 그래서 원안으로 떨어진 돈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원 바깥에 떨어진 것은 내 것으로 간주합니다. "

그러자 유대교의 랍비가 돌아서서 숨을 한 번 크게 내쉬고는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께 바칩니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 그만 웃기시오. 뭐? 모든 것을 다 바친다고?" 다른 두 사람이 비웃으며 소리쳤습니다.

"그렇소!" 랍비는 강경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돈 전부를 던집니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땅에 떨어진 모든 것은 제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에 머무는 돈은 당신의 것이 옵니다. "

 

 

심은 대로 거두리라

 

미국에 있을 때 한 실업가가 축복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하여 기도를 한 다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당신은 십일조를 드립니까?"

그러자 그는 고개를 떨구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워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식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예, 밥이야 먹지요."

"자녀들 교육은 시킵니까?"

"얘들 교육비로 한 달에 3, 4천불씩 지불하고 있습니다. "

그 대답을 듣고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 것을 훔친 사람입니다. 일상생활을 하고 막대한 교육비는 지불하면서도, 생활이 어렵다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당신이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사업이 여의치 않는 것입니다. "

십일조는 종자 씨앗입니다. 종자 씨앗을 먹은 농부는 다음해 봄에 농사 지을 생각을 못합니다. 이 종자 씨앗을 심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고 가을에 수확하려는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사람은 꼭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록·시·묘사

 

우리의 재물 귀하나/ 주님의 법을 지켜서/그 나라/ 먼저 구하고/ 십일조 드려 섬기세

(홍안의/ 주님을 섬기며)

 

온 땅에 있는 만물과/ 은금의 보화들/ 그것은/모두 주의 것/내 것이 아닐세//주님이 미리 아시고/ 늘 채워 주시니/ 가진 것 없이 왔으나/ 부족함 없어라// 세상에 속한 사람들/타락한 맘으로/ 재물의/ 우상 섬기니/ 그 영혼 어둡네// 날마다 더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해/십일조 드린 성도들/ 창고가 넘치리

(홍안의/ 십일조를 드리며)

 

 

설 교 노 트

 

복의 언약

말3:7-12

 

서론

본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신학자들은 이구 동성으로 이 축복의 언약이야말로 너무나 적극적이요, 도전적인 언약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 무결하시고, 영원 불변하신 언약이라고도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십일조를 드리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 십일조를 드리는 생활은

(1) 하나님에게 헌신하는 행위요,

(2) 우리의 본분을 다하는 행위요,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요,

(4) 우리 자신들이 큰 축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하였습니다.

 

1. 십일조의 참 뜻

십일조에 대해서, 세 가지 신자가 있는데 바로 알고 바치는 신자, 알지 못해서 못 바치는 신자, 알면서도 인색해서 못 바치는 신자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십일조의 참 뜻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십일조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성경을 보면, 맨 먼저 아브라함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헌납했다고 하였습니다(창14:20).야곱이 하나님에게 서약하고 바쳤습니다(창28:22). 다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요청과 명령에 의지해서 의무적으로 바쳤습니다(레27:30).

(2) 십일조의 내용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모든 것의 1/10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레27:30을 보면, 땅의 1/10도 드리라고 했고, 곡물도 1/10을 드리라고 했고, 헌금도 1/10을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10만원을 벌었으면, 1/10인 1만원을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3) 십일조의 근본의 의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십일조는 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내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정성모아 성스럽게 드리는 종교적인 행위요, 신앙생활의 방편이라고 하였습니다.

 

2. 십일조 헌납의 목적

우리들이 십일조를 드리는 근본 이유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 제일주의로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에게 물질과 가정과 세상 부귀영화를 주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너와 나를 물론하고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욥1:21). 그런고로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가정, 물질,돈, 기타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이요,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입니다.

(3) 하나님의 백성답게 구별되어 살면서 축복을 받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말3:10).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과 정성과 물질을 경하여 바치는 성스러운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들의 물질주의 사상과 세속주의 사상을 초월해서 하나님과 직접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성스러운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3. 십일조 헌납 방법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나 헌물에 대해서 먼저, 자원하는 마음으로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기쁜 마음으로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정성을 다 기울여서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바치거나, 불쾌한 마음으로 바치거나, 정성없이 되는 대로 바쳐서는 아니된다고 하였습니다.

(1) 나의 소유 중에서 1/10은 하나님의 소유로 인식하고 중심으로 바쳐야 합니다.

(2)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온전히 바쳐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사업에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바쳐야 합니다.

 

결론

십일조를 바친 결과, 하나님에게 세 가지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1) 물질의 축복을 받아 부유해진다고 하였습니다.

(2) 가정과 자녀들이 축복받아 번영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3) 영적 신앙생활에 윤택함과 승리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라

신14:22-29

 

서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고 매년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표시입니다. 그리고 그 십일조로 이웃 사람의 도리를 실천하는 규례임을 알고 십일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단순하게 복이나 받겠다는 방편으로서 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 십일조는 당연히 드릴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드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려야 되느냐 마느냐하고 옥신각신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당연히 드려야 할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며, 이것은 성도의 의무인 것입니다. 아니 의무이기 이전에 감사의 제물이 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교회에다 드려야 합니다.

본문 23-26절에 "내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 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십일조를 하나님의 집에 드려야 하는데 가지고 가기가 어려우면 돈을 가지고 성전 근처에 가서 사 가지고 하나님의 집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드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십일조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구제 및 아무렇게나 쓰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것으로 사용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자기가 출석하는 곳에 드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용이 될 때는 교회 결정에 따르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7-29절에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성전에서 음식을 먹을 때 레위 사람들과 함께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삼년 끝에 농산물의 십일조를 도시 가운데 저장하고 레위 사람들과 불쌍한 고아 및 과부들을 도와주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은 성도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십일조사용은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야 하겠고 사람들에게도 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일조 헌금은 하나님의 뜻대로 내라고 해 놓고 사용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대로 함부로 사용이 되어서는 안될 줄 압니다.

 

결론

십일조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할 것입니다. 하되 하나님의 성전에다 하는데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에다 하는 것이 덕이 되며 사용할 때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십 자 가

성 경 활 용

1. 십자가의 일반적인 의미

(1) 저주받음

(신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 복종하는 것

(빌2: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촌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3) 원수를 소멸하는 것

(엡2:16)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4) 둘을 하나되게 화목시키는 것

(엡2:16)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2.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

(1)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눅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2)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 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4)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5) 내가 목마르다.

(요19:28)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6) 다 이루었다.

(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

(7)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 하신 후 운명하시다

 

3. 신자가 십자가에 못박혀야 할 것들

(1) 옛 사람

(롬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기에 못박힌 것은

(2) 육체의 정과 욕심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3) 자아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재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4. 십자가를 진 자의 결과

(1) 예수께 합당한 자가 된다.

(마10:38)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2) 주를 따라가게 된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 하나님의 능력을 본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5. 십자가에 대한 권면

(1) 억지로 지지 말자.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2)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자.

(고전1:17) 말의 지혜로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자.

(빌3:18)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4) 육체의 모양을 내지 말자.

(갈6:12)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 뿐이라

(5) 예수를 십자가에 다시 못박지 말자.

(히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설교예화자료

십자가

 

옛날에 몇 사람인 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십자가가 너무도 크고 무겁기에 꾀를 내어 중간쯤 가다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톱으로 십자가를 잘라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끝까지 지고 갔습니다.

어느덧 마지막 종점에 다달아 예수님에게 상급을 받을 지점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도랑이 있었습니다. 그 도랑을 마지막으로 넘어야 저편의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금관을 들고 서 계신 예수님께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자신이 지고 온 십자가를 도랑 위에 걸치고 건너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다가 톱으로 십자가를 자른 사람들은 짧아서 건너지 못하고 구렁텅이로 빠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시련과 고통을 잘 견디어 내지 못하면 결코 예수님의 상급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배당의 어린 양

 

제가 들으니 독일의 어떤 예배당 정문 위에는 조그마한 어린 양을 돌에다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배후에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예배당 지붕이 좀 상해서 고치기 위해서 일꾼이 올라가서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일을 하다가 일꾼 가운데 하나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그 높은 지붕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예배당 옆에는 풀밭이 있었는데 거기 마침 양떼가 있어서 풀을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떨어진다는 것이 어린 양의위에 떨어져서 그 양은 눌려 죽었습니다. 그 대신 그 일꾼은 살았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과 같이 우리 대신 죽음으로 우리 인간의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헬레나의 십자가

 

콘스탄틴 황제의 모친 헬레나는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현장을 찾아가 보려고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옛날 이교도들이 십자가 처형의 흔적을 없애 버리려고 갖은 애를 다 쓴 사실을 보고 놀랐습니다.

갈바리아 산은 돌과 흙무덤으로 덮어 놓았고, 한쪽 모퉁이에는 미의 여신 비너스를 숭배하는 신당을 세워놓았습니다. 헬레나는 수행원들에게 삽과 곡괭이로 파헤쳐 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때 십자가 셋을 발견하였습니다. 십자가는 모두 똑같았고 한쪽 'INRI'라는 죄패가 십자가에서 좀 떨어져 따로 묻혀 있었습니다. 해서 셋 중에 하나가 예수의 십자가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확실히 예수의 십자가인지 몰라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때 함께 동석했던 예루살렘의 주교는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하나 하나에 손을 대보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첫 번째 십자가는 손을 대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환자들이 두 번째 십자가에 손을 대자 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하며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십자가에 몸을 대자 순간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몸을 댔을 때 아무렇지도 알던 첫 번째의 십자가는 회개한 강도 디스마의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예수를 저주한 강도의 것이었으며, 세 번째야말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였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때 황후 헬레나는 감격에 넘쳐 십자가를 부여안고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리며 찬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불타는 지점

 

사람들이 초원에 불이 번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빨리 달리는 말이라도 불길을 피할 수 없기에 먼저 성냥을 꺼내서 그들 주위의 풀을 미리 태워 버리면 아무리 불길이 그들 주변에서 이글거리며 타올라도 그들은 안전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 있는 곳 의로 불길이 이미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위험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쓸어 버리신 곳은 땅의 한 지점입니다. 2000년 전에 폭풍이 갈보리에 불어 닥쳤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그것을 그의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열린 십자가에 의해 우리의 자리를 지킨다면 우리는 이 세상과 내세에서 안전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전설

 

아담이 임종시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아들 셋을 옛 에덴동산에 보냈습니다. 그 동산은, 천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들들은 천사들에게 애걸하였습니다. 그러자 문지기 천사가 "용서해 줄 때가 아직 아니니라. 낙원을 되찾기까지는 수천 년이 흘러야 하느니라 그때서야 구원을 얻을 나무가 너의 아버지 무덤에서 자라나리라"라고 말하고는 생명나무의 씨 세 개를 각각 하나씩 주었습니다.

이들이 씨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담은 벌써 죽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씨를 아버지의 입에 넣고 골고다에 장사지냈습니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골고다에는 세 나무가 싹이 텄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들은 몸통이 하나로 꼬여서 이상한 나무가 되어 자랐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것들로 궁궐을 지으려고 베었으나, 적당치가 않아서 '베짜타 연못(요한5:2)'에 버렸습니다. 그후부터 그 연못의 수면 위로 이 나무가 솟아 올랐습니다.

이것을 본 로마 병정들이 건져다가 그리스도를 못박기 위한 십자가 형틀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아담의 무덤에서 자라난 생명나무가 십자가가 되었고, 그 십자가에서 흘러 내린 그리스도의 성혈이 잃었던 실락원, 에덴동산을 되찾게 한 것입니다. 이는 6세기 베난씨우스 훠르뚜나뚜스에 의해 찬송시로 변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오오! 인생이여, 그대는 우리의 십자가다. 우리가 희생되고 우리가 죽을 골고다를 향해서 끌고 가는 십자가다.

(랑페르)

 

옛날부터 친밀한 나무 끝이 윙윙 울리고/모든 십자가에 초록잎이 마구 엉킨다

(R. 슈나이더/ 어느 친구에게)

 

십자가는 우리 법률에 중죄수를 죽이던 형틀이다. 그 형틀 위에서 예수라 하는 성자가 죽었다는 단순한 이유로 2천 년간이나 그 형틀은 세계 인류의 신앙을 지배하였다. 지금도 일부 사회의 신앙을 지배하는 중이다 인류가 그만큼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서 사람을 죽인 형틀은 그만큼 위대하여 진 것이다. 예수교인이 새로 만들어 놓은 십자가의 의의는 여기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도향/ 유행)

 

십자가는 무겁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그것은 너희를 짊어지지만, 너희는 그것을 짊어진 일이 거의 없다.

(C.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내 지극히 바랐고 오래 구했던,오, 십자가, 그대에게 매달려 죽은 주의 제자로서 기쁘게, 달갑게, 즐거운 마음으로 그대를 맞노라. 나 항상 그대 사랑하는 자였고, 그대를 안고자 탐내어 왔거늘. <*십자가에 못박혀 신음하다가 순교한 그리스도의 제자 안드레가 못박힌 채 한 말임>

(안드레)

 

십자가의 그늘에 악마가 숨는다.

(영국 속담)

 

유혹하고 취하게 하고 마비시키고 타락시키는 힘에 있어서 '신성한 십자가'라는 저 상징보다 더 강하고, '십자가에 못박힌'이라는 저 몸서리 나는 패러독스보다 더 힘차고, 신이 인간을 건지기 위해서 했다는 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을이 만큼 극단적으로 잔인한 행위, 스스로 십자가에 올랐다는 저 비적(秘 蹟)보다 더 강력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F.W. 니체/ 도덕계보학)

 

십자가는 천국에 가는 사닥다리다.

(영국 속담)

 

오오, 십자가! 비둘기가 찢기에 매달린 해골이여.

(P. 에마뉘엘/ 성금요일의 랩소디)

 

다시 십자가를 뚜렷이 가지 위에 손 닿지 않고 있는 것이니까?

(P. 에마뉘엘/ 성금요일의 랩소디)

 

규격을 겨우 갖춘 조각, 값싸고 유사한 석판, 기계로 찍어 낸 십자가를 보라.

(K. 샤피로/ 무덤의 거리)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그 날 나는 죽음의 언덕에 갔다. / 그 곳은 "해골곳"이라 불리는 곳/ 나는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으시다 쓰러 지심을 보았다. /주님의 어깨에 십자가를 지우다니/ 그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 생각했다. / 완력과 기술은 시골뜨기인 나의 몫이기에/ 나는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다.

(하크니스/ 구레네 시몬)

 

늘 인간들을 위해 짊어진 짐과 비교하면 십자가는 조금도 무거운 것이 아니야.

(L.C. 비스트/ 형사)

 

지금 주(主)는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고/우리는 죄에 묻혀 우러러 본다.

(D. 개스코인/ 이 사람을 보라)

 

숙여진 내 머리를 쳐들게 하는 '십자가'여 어이 당신에게서 도망할 수 있겠나이까.// 이 세상의 영예는 티끌과도 같습니다. / 그리고 대지로부터 영원히 다함이 없는 '생명'이 꽃피는 것입니다.

(마데슨/ 태초에 하나님이 사랑하셨다)

 

피흘리는 뜨거운 사랑으로만/ 확인되어지는/ 시대의 부스럼마다/ 그대의 십자가는 서 있노니/ 서 있노니.

(이병창/ 십자가 아래서)

 

정말 일이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저 거기를 지나가던 길이었다/ 십자가의 가로나무를 지고 있는 사람에게/내 어깨를 빌려주게 되었다.

(안자이 히도시/ 늙은 구레네 사람)

 

우리는 기묘한 나무를 알고 있다. / 그 나무는 우리 고뇌의 바위에 뿌리를 펴고/ 불안한 하늘에 한 밑둥과 두 가지를 벌리고 있다. /그 나무는 단 한 개 열매밖에 맺지 않는다. / 열매 이름은 '기름 부음을 받는 자'라 하고/ 달리 '흠 없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일컫는다. // 우리는 가서 그 열매를 예배하지만/ 열매를 맺게 한 것이 자기의 죄라는 사실은/절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우리들의 죄의 불승인으로 말미암아/ 그 나무 밑둥과 가지는 항상 견고하고/ 열매는 언제나 싱싱하며 무겁다. / 열매의 색깔은 새로의 피빛으로 빨갛고/ 피는 다섯 군데 상처에서 넘쳐 흐르며/ 병든 대지를 깨끗하게 하고 있다.

(다카하시 무쯔오/ 십자가)

 

백향목이 엇갈린 틀에/ 말씀은 사로잡혀 못박혔어도/ 청랑하게 흘러 내리는 수맥이 있다// 이마 위에 가시 덩굴/ 벌써 이보다 더한 자랑도 없다.

(윤혜승/ 갈보리 형틀)

 

다시 머리채를 흩으는/ 항구의 바람/ 시퍼런 시체로 엮어진 십자가가/ 용머리 바다 위로선다.

(이승록/ 목포)

 

예수가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무엇일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한 마디 말씀(십자가)을 모두에게 하신다/ 십자가가 없으면 그 무엇이든지/최후의 도착점에 이른 희망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니 용감하게 십자가를 쳐들고/ 그것을 떠받치기 위하여 온몸의 힘을 쏟아야 한다/ 십자가는 우리 힘이 감당 못하게 무겁지는 않다/ 만일 그것이 우치로 무릎을 찧도록 내리눌러도/ 용기를 내게 해 준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로제티/ 예수가 말씀하신 것은 무엇일까)

 

거룩하신 어머니, 바라음기는/ 십자가 형틀의 그 상처 자리를/ 나의 마음에도 뚜렷하게 찍히게 하여/ 나 위하여 황송하게 고통받고/ 상처를 입으신 아들의 아픔을/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옵소서.

(토디/ 비탄의 성모)

 

옥성(玉聲) 풀어내던 목이/ 잦바듬히 꺽이고/ 향유로, 여인의 삼단머리로 것은/ 길 ·진리 · 생명이라던 그의 발끝이/ 파르르 마지막 경련할 때/ 피 바른 십자나무가 신음하고, 그리하여 땅껍질이 뒤틀리며/ 먹구름 떼가 허공에서 미친 춤을 추면

(이승록/ 신의 식물)

 

오직 당신에 대한 설음에만 내 마음을 매어두고/ 내가 지고 가야 할 나의 십자가는 외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도종환/ 이제는 잊으리라 합니다)

 

내 무덤 앞으로 난/ 길도 없는 길을 걷다가/뜻밖에 저녁 노을이 질 때/누가 잠시 발길을돌려/ 작은 나무 십자가 하나를 세워다오.

(정호승/ 박정만)

 

서울의 밤은/ 빨간 십자가/ 여럿// 소도시엔/ 하얀 십자가/ 하나 둘// 산골엔 나무 십자가/ 혼자// 서울 깍쟁이/ 여린 소용없다// 산이 높아/그분과 더 가까운// 혼자인/네가 좋다/ 나무 십자가

(이영옥/ 나무 십자가)

 

예수여!/ 십자가 위에서/ 나무와 못으로/ 인간의 온전한 구원을 이루신/ 나사렛 목수여!

(할 핑크/ 당신 이름을 영광되게)

 

이장집에서 구제품을 받아 왔다/ 나는 알사탕이 제일 좋았다/ 그리고 몇 장의 그림엽서가 있었는데/ 처음보는 총천연색이었다/ 십자가에 못질된 한 남자의 슬픈 눈빛과/ 처음으로 마주쳤다/ 가시관 사이로 피가 진짜처럼 흘러내렸다/아버지는 그 알몸의 남자가 서양귀신이라고/ 벽장 깊숙이 감추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서양귀신이 애처로워/ 못을 빼주고 싶었다

(김종철/ 금지된 시 4)

 

그러나 그것은/ 어두움을 몰아내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빛줄기/ 만민을 위한 속죄의 피흘림/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할 수는 없다. // 그 처절한 상처로/ 오히려 우리가 낫고/ 홀로 죽어서/ 수억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은총에 몸을 부르르 떤다. // 십자가는 더 많은 십자가를 낳고/ 예수는/ 무수히 더 작은 예수를 낳아/오늘도/이 땅의 시끄러운 일터나/ 어두운 감방.// 혹은 질식할 듯한 거리에서/ 외롭게 죽어간다. // 온 몸을 내맡겨/ 스스로 타올라/ 마침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하여,/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웃으며 웃으며/ 승리하기 위하여

(서덕석/ 광주 · 십자가 2)

 

산고(産苦), 나는 침묵하는 모습의 외침을 표현할 수가 없다/ 두 뺨에 피로 얼룩진 채 나는 소리 치면서 간다-/ 나는 그리스도/ 내게 십자가 ' + '를 달라고/ 그러나 나는 숨어 있는 손과 발과 서리가 두렵다. / 목매달리는 일, 그것은 반동이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나는 내 어깨에/ 내 역할인 십자가를 걸머메었다/ 그리고 그것을 걸머멘 채/ 밥통 속으로부터의 탈출을 꾀한다/ 그러나 미래가 두려워져/ 십자가에 당혹해서 나는 운다/ 나는 운다. 왜냐하면 십자가만이/ 내가 내 손으로 내 목을 달아매지 않으면 안 될/ 내 몫이기 때문에-

(프라브하트 사르시지/나의 나라,나의 역할)

 

우리를 지켜 주시는 전능하신 주여/ 시험하려는 자들을 억제하여/ 십자가 피로써 사해주시고/ 주님의 양들을 인도해 주소서/

(작자 미상/ 밤의 노래)

 

당신의 십자가 아래서/ 나는 기쁨을 되찾았습니다

(클로델/ 당신의 목소리에)

 

서울의 별과 바람이 잠이 들고 평양의 새벽별까지 잠이 들었을 때 성공회 성당 십자가 위에 걸린 청년 예수가 살며시 내려와 천 원짜리 한 장을 모금함 속에 집어넣고 다시 십자가 위에 걸리는 것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정호승/ 어느 봄날)

 

그 며칠 후,/ 죄 없이 저주받았다는/ 당신 나무 형틀의 기별이/ 전해진 때에야 여기서도 온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지축이 흔들렸더이다.

(오병학/ 무화과나무의 사연)

 

다만 그것은/ 가로질러 묶은 나무토막일 뿐/ 강도나 폭도를 처형하기 위한/ 끔찍한 형틀./ 모두가 고개를 내 저으며/ 얼굴을 외면하는 저주받은 나무,/ 피땀과 가래침으로 더러워져/ 이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 한 사내가 못박혀/ 숨을 헐떡이며/ 신음 속에서 죽어가도/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다. / 욕설과 조롱과/ 비운음의 고함소리가/ 고통을 더해 줄지언정/ 위로와 연민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남은 것은/ 무관심과 허탈함과/ 비참한 패배의 죽음일 뿐

(서덕석/ 광주 · 십자가 1)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차라리 매일마다 죽는 기쁨입니다/ 캄캄한 겨울 밤 골고다 언덕에 / 외로운 십자가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 차라리 매일마다 죽는 기쁨입니다.

(홍문표/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위대한 제국의 법이나/ 날으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총독의 권한으로도 정죄하지 못한 사나이를/ 십자가 형틀로 휘몰아 간 것은 무엇인가

(서덕석/ 소리가 이긴지라)

 

마지막 십자가 위에서/ 희미해진 나의 시선이/ 혹시나 싶어 아래를 휘둘러 보았을 때 에도/ 너는 거 기에 없었다// 그런즉/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서덕석/ 나는 너를 모른다)

 

아들아 알겠느냐, 사랑은 아픔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잘 들어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위하여/ 내 몸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다.

(쿠오스트/ 사랑은 아픔이다)

 

이미 봄의 십자가가 꽃이 피었노라/ 사랑이여, 사랑이여,/ 십자가가 이미 꽃이 피었노라!

(히메네스/ 십자가의 아침)

 

푸른 십자가가/ 동산 가득히에 불을 혀고/빛나는 형상/ 여호와의 말씀이 곳곳에서/ 꽃사태를 이룬다

(김남웅/ 은혜)

 

아, 그러나 하느님!/ 십자가의 억울한 고통을 이기신 주님/ 아무것도 모르는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윤경남/ 열린 문)

 

 

설 교 노 트

 

십자가에 죽음의 참뜻

마26:26-29

 

서론

우리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되겠고, 예수님의 마음과 또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초점이 무엇이었는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위해서 나시고, 십자가를 위해서 사셨습니다. 그의 교훈 전체가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아는 길은 십자가를 아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십자가를 이해하고 믿고 따르는 자입니다. 본문에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하여 몇 가지 지면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대속물로 죽으신다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것인지 모릅니다.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피를 가지고 들어가 드리는 제사가 있습니다. 온 백성이 1년간 지은 죄를 사하는 제사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역사의 단 한번에 이루워진 온전한 제사입니다. 히9:22에 "피흘림이 없는즉 사함이 없느니라" 즉, 죽어야 사해지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피가 흘려져야 합니다.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에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갈보리 언덕은 하나의 제단이요, 예수님은 제물이 핍니다. 예수님 자신은 제사장이요, 제물이 됩니다.

 

2. 사랑의 뜻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대속물로 그를 내어준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대신 죽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하겠는데 대신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것을 사해주기 위해서 양을 잡아 바치라 했습니다. 이 자체가 사랑입니다. 형벌을 본인에게 내리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이 담당하도록 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대한 사랑이요, 구체적인 의로서, 좀더 나아가서는 진노적 사랑에 확실한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감상적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희생해서 이 사랑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3. 이제는 믿음과 순종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셨다는 사실만은 꼭 믿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라. 잔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이것을 다 마시라 명령하였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받아 먹고 믿음으로 받아 마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받는 순종함이 중요합니다.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여러분이여 이 믿음과 순종이 있을 때에만 그에게 약속이 됩니다.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이 약속은 무효입니다. 이것을 믿고 받아 먹는 자에게만 효력이 있는 것입니다. 대속의 십자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십자가로 인하여 사함을 받았으니 얼마나 귀중한 몸이 되었습니까?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 안에서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 값을 치른 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되겠고 감사의 생활로 주님을 사랑하십시다. 특히 이 시간에 믿음과 순종으로 주님을 기념하는 성도가 됩시다.

 

결론

십자가의 죽음을 바로 이해합시다. 죄인으로가 아니라 의인으로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와 형벌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믿으면 내 죄가 사함받고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에서 사랑을 발견해야 합니다. 십자가 속에는 우리를 위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언약의 죽음이고, 십자가의 피는 언약의 피입니다. 언약을 지키지 못해서 받은 벌과 형벌을 대신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과 피의 효력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요, 생명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일상 생활

눅9:22-27

 

서론

예수님은 죄를 범하지 않으시고 그 입에 궤휼도 없으시며, 악함과 더러움이 없으신 하늘보다 높으신 분이십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세상과 우리 인생들을 친히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피조물들이 조물주를 십자가에 못박았으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십자가에 담긴 의미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1.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보여줍니다.

그리스도를 못박은 것은 제사장들의 음모, 가룟 유다의 반역, 로마 총독 빌라도의 무성의 유대 민중의 어리석음 때문이었다고 그들을 비난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게 한 것은 내 죄와 여러분의 죄, 그리고 전인류의 죄로 인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사53:5).

시기 · 미움 욕심 정욕 · 거짓 · 교만 ·비진리 그리고 골고다 언덕의 썩은 인간의 냄새보다 더 심한 죄악의 냄새가 우리 가슴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받으신 수치와 고통과 피흘림 그리고 죽음은 내가 받아야 할 내 죄의 대가입니다. 내가 행한 죄는 그렇게 큰 것이고 내가 받아야 할 죄는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2.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줍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도, 부부의 사랑도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비할 수가 업습니다. 참사랑은 주님의 십자가에서만 알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50세까지 종교에 무관심하였습니다. 그는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온갖 죄악을 범하여 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십계명전부를 범하였습니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였고, 간음도, 거짓말도, 도박도, 불효도 행하였으며, 하나님의 이름도 모욕하면서 자기 우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50세가 되어서 심령이 눈을 뜨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가 땅위에 돌도 없는 가장 악한 놈인 것을 발견하고 권총으로 여러 번 자살하려고 하였지만 용기가 부족하여 자살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을 통하여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이제나마 참사랑을 실천해 보고자 결심하고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우주애의 표현입니다. 사랑이 아니었던들 우리는 영원한 죄인으로 멸망할 뻔하였습니다.

 

3. 십자가는 구원의 길을 가르쳐 줍니다.

자선도, 선행도, 사회 개혁도 우리를 죄에서 건질 수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속죄가 없습니다. "피흘림이 엄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9:22)"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양이나 소의 피가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의 무죄한 속죄의 피가 있는 것입니다. 속죄의 재료가 부족하여 멸망받을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얼마든지 사유를 받고도 남을 피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다만 회개하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땅히 받아야 할 잔으로 알고 지셨습니다. 우리도 의를 위하여 고통의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주께서 십자가 지고 나가실 때, 여인들이 따라가며 울자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너희 자녀의 멸망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지실 때 슬퍼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슬픔을 이기는 길이요, 사명의 길인 것입니다.

 

결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죽이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두 가지 죽음입니다. 육의 죽음과 자아의 죽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자아는 맹목적이며 악만을 뫼하여 욕심이 가득하게 만듭니다. 주께서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매일 자아를 죽여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구원 사역을 이루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 앞에는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도 남을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속죄를 받지 못한다면 이는 만병통치의 약을 놓고 병사하는 격입니다. 이제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죄에서 구원받아야 하겠습니다.

 

 

십자가- 유일한 희망

마15:33-41

 

서론

구라파의 오래된 교회 전면에는, "십자가-유일한 희망"이라고 써붙인 곳이 많습니다. 실로 이상의 글귀는 모순됩니다. 삶의 성공, 사랑의 행복 등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죽음과 불행을 말합니다. 살아 있는 것이 희망이면 죽는 것은 불행이요, 좌절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십자가가 희망일 수 있습니까?

 

1. 기독교 신앙은 십자가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합니다.

희망이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십자가가 희망이 될 수 있습니까? 기독교 핵심에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죽음과 부활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한가운데에 수난사가 있습니다. 기독교 밖에는 수욕을 가볍게, 그리고 부정적으로 취급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픔 없는 삶은 공허합니다. 고통 없는 삶은 빈약하며 희망이 탄생할 수 없음을 기독교 신앙은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연결된 두 곳을 생각해 볼 때 그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하나는 겟세마네 동산인고, 다른 하나는 골고다 언덕입니다. 물론 그의 수난은 갈릴리 첫 선교 초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심도는 권력과 금력 중심 예루살렘으로 보면서 더하여 갔습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죄인들을 구원하고 해방시키려는 그의 열정은 예수를 더욱 극렬한 미움과 죽음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의 인간 사랑은 수욕의 십자가로 연결됩니다. 실로 십자가는 죄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2. 십자가 없이는 구원과 해방의 역사가 불가능합니다.

희망은 구체적으로 민중들의 해방과 구원이었습니다. 억압자의 손에 빠져서 고통하는 자의 유일한 희망은 그 억 업자로부터 해방시켜주시는 일입니다. 주의 고통에 눌려 사는 자의 유일한 희망은 그 죄를 제거시켜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 일을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와 고통을 제거시키시기 위하여 전면에 나서서 싸우셨습니다. 그 길은 처음부터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갈릴리 선교 때부터 부딪히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예루살렘 성으로 가까이 갈수록 그 심도는 더 했습니다. 과연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에 해방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민중들의 희망으로 환호하며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 수는 날로 더해갔습니다.

결국 억압자와 기득권자 그리고 저들을 비호하여 죄를 짓게 하는 사탄의 세력은 자기의 세력과 판도가 점점 예수에 의해 침식당하자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하고 추진했습니다. 결국 예수는 골고다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

예수의 십 자가는 민중들과 죄인들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의 고통,희생을 통하여 저들은다시 사는 은총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십자가의 교회로 서 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구원과 해방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이 땅에,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희망이 전달됩니다.

악 인

성 경 활 용

1. 악인의 여러 가지 이름들

(1)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

(삼상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재어질 것이라

(2) 마귀의 자식

(행13:10)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3) 미련하고 비천한 자의 지식

(욥30:8)그들은 본래 미련한 자의 자식이요 비천한 자의 자식으로서 고토에서 쫓겨난 자니

(4) 행위가 부패한 자식

(사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5) 하나님의 원수

(시37:20)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

(6) 행악자

(시37: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7) 악인

(잠4:14) 사특한 자의 첩경에 들어가지 말며 악인의 길로 다니지 말지어다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8) 악한 세대 사람들

(신1: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9) 독사의 자식들

(마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10)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시68:1) 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11) 뱀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12) 죄의 종

(롬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13) 죄인

(시26:9)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2. 악인의 특징

(1) 교만하다.

(시10: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하오니

(2) 가증하다.

(딛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3) 영적으로 무지하다

(엡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4) 육신을 자랑한다

(시10:3) 악인은 그 마음의 소욕을 자랑하며

(5) 악을 좋아한다.

(미3: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6) 목이 곧다.

(행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7) 당을 짓는다.

(롬2: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8) 신실함이 없다.

(시5:9) 저희 입에 신실함이 없고 저희 심중이 심히 악하며

(9) 속인다.

(롬3: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10) 공의를 싫어한다.

(잠21: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

(11) 마음이 부패한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12) 남의 재앙을 원한다.

(잠21: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13) 불의하다.

(잠11:7)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14) 무자비하다.

(롬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5) 사악하다.

(신32: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16) 기도하지 않는다.

(욥21:15)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도다

(17) 행위가 흉악하다.

(잠13:5)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데 이르느니라

(18) 선을 악으로 갚는다.

(시109:5) 저희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으며 미워함으로 나의 사랑을 갚았사오니

(19) 항상 악을 뫼하여 다툼을 일으킨다.

(잠6:14)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20) 여호와를 원망한다

(잠19:3)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21) 더욱 악해진다.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3. 악인의 종말

(1) 악인의 빛은 꺼질 것이다.

(욥18:5)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2) 그의 장막은 어두워질 것이다.

(욥18:6)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 지고

(3) 스스로 그물에 들어간다.

(욥18:8) 이는 그 발이 스스로 그물에 들어가고 얽는 줄을 방음이여

(4) 그 힘은 굶주림으로 쇠한다.

(욥18:12) 그 힘은 기근을 인하여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5) 지체가 먹힌다.

(욥18:13) 그의 지체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4. 악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1)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

(출23:7)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먹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2) 환난에 던지신다.

(잠21: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3) 마음에 미워하신다.

(시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잠15:26)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4) 감찰하신다.

(잠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5) 악인의 소욕을 물리치신다.

(잠10:3)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6) 멀리하신다.

(잠15:29) 여호와는 악인을 멀리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

(7)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주신다.

(마5:45) 하나님 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우신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8) 악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신다.

(사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5.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

(1)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

(삼하3:39)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

(사3: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2) 엄중히 보응하신다.

(시31:23) 여호와께서 성 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3) 자손 삼사대까지 보응하신다.

(출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 자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6. 악인이 받을 벌

(1) 생명이 짧다.

(잠10:27)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2) 멸망된다.

(삼상12: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시 145:20)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잠12:7)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

(3) 악한 행위에 엎드러진다.

(잠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4) 죽임을 당한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잠19:16)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5) 악인의 등불이 꺼진다.

(잠24:20)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6) 잠시 후에 없어진다.

(시37: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어지리로다

(7) 이론이 영영 도말된다.

(출32:33)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시9:5) 열방을 책하시고 악인을 멸하시며 저희 이름을 영영히 도말하셨나이다

(8) 하나님이 불을 내리신다.

(시11:6)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관련원어풀이

1. @w<a: 아-웬

(1) 텅빔, 공허, 헛되고 공허한 것.

(삼상15:23, 사41:29)

(2) 거짓, 사기, 사악, 불법.

(민23:21, 욥36:21)

(3) 불행, 역경, 재난.

(시55:4, 합3:7)

 

2. hM;zI 짐마-

(1) 악행, 음행, 악.

(레18:17, 잠21:27)

(2) 경영, 중죄, 악독, 악의, 악한, 계획

 

3. lb'j; 하-발

(1) 못쓰게 하다, 타락시키다, 타락한 행동을 하다, 악하게 행동하다.

(느1:7)

(2) 파괴하다, 고통을 받다.

(잠13:13)

(3) 손상하다, 파괴하다, 황폐시키다.

(사32:7, 미2:10)

(4) 깨어지다, 손해를 입다.

(욥17:1, 사10:27)

 

4. ['ro 로-아

(1) 악한 상태.

(렘24:2, 8)

(2) 악함, 사악.

(렘4:4, 12:12)

(3) 기형, 불구.

(창41:19)

(4) 슬픔, 비애.

(느2:2)

 

5. [r' 라

(1) 악한, 나쁜.

(창6:5, 삼상25:3)

(2) 유독한, 해하는.

(창37:33, 왕하4:41)

(3) 사기적인, 악의적인.

(잠23:6, 28:22)

(4) 모습이 악한, 볼품 없는.

(창41:3)

(5) 불행한, 불운한.

(사3:11, 렘7:6)

(6) 슬픔, 애처로운

(창40:7, 잠25:20)

(7) 사악, 나쁨.

(창2:9,잠28:5)

(8) 악의, 악함.

(창6:5)

 

6. [v;r: 라-솨-

(1) 사악한, 불의한.

(창18:23, 시1:1)

(2) 불의한 소송을 가지는.

(출23:7, 신25:1)

(3) 범죄한.

(창18:23, 민35:31)

 

7. tj'v; 솨-하트

(1) 파괴시키다, 파멸시키다

(창6:17, 암1:11)

(2) 사악하게 행동하다.

(출32:7, 신9:12)

(3) 파괴시키다.

(왕하18:25, 렘36:29)

(4) 사악하게 행동하다.

(신4:16, 잠28:24)

(5) 타락되다, 부패되다.

(잠25:26, 말1:14)

 

8. kakov" 카코스

(1) 나쁜, 악한.

(마24:48, 계2:2)

(2) 무가치한, 해로운, 유독한, 위험한.

(눅16:25, 계16:2)

 

9. kakopoievw 카코포이에오

(1) 해를 주다, 상해하다.

(막3. 4, 눅6:9)

(2) 악을 행하다, 범죄하다.

(벧전3:17)

 

10. kakopoiov" 카코포이오스

(1) 악을 행하는, 범죄적인

(요18:30)

(2) 악행자.

(벧전2:12)

 

11. ponhrov" 포네-로스

(1) 노고가 많은, 괴로운, 성가시게 구는

(엡5:16, 계16:2)

(2) 나쁜, 못쓰게 된, 무가치한.

(마7:17, 18)

(3) 사악하거나 악의를 품은 사람, 악행자.

(마5:39, 고전5:13)

(4) 악한 자, 사탄, 악마.

(마13:19, 요17:15)

(5) 악한 생각들, 악행.

(마9:4, 막7:23)

 

12. fau'lo" 파울로스

쉬운, 가벼운, 평범한, 가치없는, 천박한.

(요3:10, 고후5:10)

설교예화자료

악랄한 장사꾼

 

옛날에 아주 잔인하고 지독한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당나귀가 한 마리 있었는데 어찌나 무거운 짐을 실고 다니며 혹사를 시켰는지 모두 그를 욕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당나귀는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장사꾼은 당나귀의 가죽을 벗겨서 그것으로 북을 만들어 두드리고 다니면서 봇짐 장사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오랫만에 만난 장사꾼 하나가 이를 이상히 여겨,

"오랫만이군요. 그런데 당나귀가 안 보이는군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장사꾼은 껄껄 웃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네, 얼마 전에 죽었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북으로 만들어 일을 시키고 있답니다. " 하면서 당나귀의 가죽으로 만든 북을 세게 두드렸습니다.

 

 

꿩 사냥꾼

 

사냥꾼이 숲속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꿩새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사냥꾼은 이 꿩을 정성스럽게 기른 후 다른 꿩들을 불러모으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몇 달 뒤 다 자란 꿩은 사냥꾼이 가르친 대로 다른 정들을 많이 불러모았습니다.

미리 그물을 치고 기다리는 사냥꾼은 꿩이 날아오면 잽싸게 잡곤 하였습니다.

훈련시킨 꿩 덕분에 편안하게 사냥을 하게된 사냥꾼은 점점 게을러져 나중에는 아예 사냥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그 산의 꿩도 줄고 남아 있는 정들도 이제 눈치를 채었기 때문에 집에서 그물로 잡는 것도 허탕을 치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꾼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사냥꾼은 손님에게 대접할 게 없었습니다.

그러자 사냥꾼은 집에서 기르던 꿩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주인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동안 주인님께 얼마나 큰 이익을 주었는데 이제 와서 저를 죽이려 하다니 너무합니다" 꿩은 주인에게 마구 대들었습니다.

"하하하, 이 나쁜 꿩아! 너는 네 목숨 하나를 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네 친구와 친척들의 목숨을 해쳤는지 모른단 말이냐? "

사냥꾼은 꿩을 잡아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은혜를 모른 고슴도치

 

"우르릉, 왕!"

천둥과 번개가 치면서 무서운 소낙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는 흙과 돌멩이마저 파헤치면서 골짜기를 온통 뒤집어 놓아 버렸습니다.

"큰일이다. 집까지 떠내려 가겠는걸."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사는 고슴도치가 걱정했습니다.

"어서 피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

고슴도치는 급히 골짜기를 벗어나서 주위를 돌아보며 몸을 피할 만한 곳을 찾았습니다.

"옳지, 저기 굴이 있구나."

고슴도치는 구렁이가 살고 있는 굴을 찾아갔습니다.

"구렁이님, 집이 떠내려갔으니 잠시 쉬게 해 주세요."

"그래, 들어와."

마음씨 착한 구렁이는 고슴도치를 친절히 맞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비가 멈추고 태양이 밝게 비추어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구렁이는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좀처럼 움을 편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고슴도치야, 미안하지만 이제 비도 그쳤으니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구나, 나는 네 가시때문에 함께 있을 수가 없구나."

조심스럽게 구렁이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고슴도치는 눈을 흘기며,

"뭐, 내 가시가 무섭다구요? 그럼 당신이 나가면 될 게 아니요!"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심술꾸러기 까마귀

 

심술꾸러기 까마귀가 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심술이 심했던지 다른 까마귀들은 그 까마귀를 보면 그저 슬금슬금 피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까마귀가 병에 걸렸습니다.

그동안 그 까마귀로부터 많은 괴롭힘을 당한 다른 까마귀들은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 녀석의 심술 걱정은 안해도 되겠군!"

"그래! 잘됐지 뭐!"

그러나 심술꾸러기 까마귀의 어미는 아들이 병이 든 것이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병든 까마귀는 힘 없는 목소리로 어미 까마귀에게 애원했습니다.

"엄마, 그렇게 울지만 말고 제 병이 낫도록 하나님께 기도나 하세요."

그러자 어미 까마귀는 더욱 슬픈 얼굴로 말했습니다.

"얘야, 네가 그동안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도 너를 용서해 주실 것 같지가 않구나."

 

 

악한 라스푸틴

 

우리는 모두 러시아 왕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레고리 라스푸틴이라는 '러시아의 미친 수도승'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마구 휘둘러댄 권력의 지휘봉으로 인해 부패한 러시아 왕가가 공산주의의 정권 장악에 기여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고 믿습니다. 그는 왕실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궁정 안에서 결정되는 많은 일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황제와 황후에게는 선천적으로 치명적인 혈액병을 지니고 있는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 병으로 어린 왕자는 심한 고통을 겪었고, 때때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의사들도 손을 댈래야 댈 수 없는 상황에서 절망에 처해 있을 때 라스푸틴은 '기적'을 일으켜 왕자를 치유하라는 명령을 받고 황제 앞에 불려갔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가 들어 갈 때마다 눈에 띄게 치료의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그 '미친 수도승'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이 기회를 이용하였습니다. 그는 황제에게 자신의 충고에 귀를 기울인 다면 왕자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 악한은 러시아 정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그릇된 목적을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한 한 사람으로 인해 전 세계는 간접적으로 고통을 받아온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선인은 우둔할 수도 있으나, 여전히 선할 것이다. 그러나 악인은 두뇌를- 절대적으로 가져야 한다.

(M. 고리키/ 빈민굴)

 

인간이 참으로 악해지면 남에게 상처를 주고 기뻐하는 일 이외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J.W.괴테/ 격언과 반성)

 

악인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은 칭찬 받아도 좋은 일이다.

(폴란드 속담)

 

가장 지독한 악인이란 왕이나 국가에 대해 해가 되는 무기를 들지 않는 법이어서, 의사가환자의 피를 뽑아 냄으로써 병을 고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왕이나 국가를 위해서 칼을 뽑아 드는 법이다.

(S. 버틀러)

 

악인이 받는 주된 벌은, 그들 악인이 착한 사람으로 되돌아간 순간에 잘해 보려고 원해도 이미 선의 길에 돌아올 수가 없다는 점에 있다.

(C. 힐티/ 행복론)

 

악당의 다리는 건너지 말라. 차라리 급류에 휩쓸리는 편이 낫다.

(터키 속담)

 

악인은 항상 악하지만, 성자를 가장할 때 가장 악하다.

(F.베어컨/ 이성의 裝身)

 

인간은 악을 행하는 자유는 있어도 악을 행하지 않는, 악에서 벗어나는 자유는 없다.

(A. 아우구스티누스)

 

악당은 목탄상(木炭商)의 부대(負袋)와도 같다. 겉도 꺼멓지만 속은 더 꺼멓다.

(스페인 격언)

 

사악한 자의 미끈한 말은 불실로 꽉 차 있다.

(파에드루스/ 우화집)

 

악한은 법정에서 피면(避免)될 수는 있지만 악인은 항상 머리 속에 가책이 휩쓸려 온다. 모든 악인은 자신이 자신의 사형 집행인이 되는 것이다.

(L.A. 세네카)

 

악인과 접촉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는 그를 존경할 만한 신사로 간주하고 그렇게 대접할 일이다. 그 밖에 그와 대항할 방도는 없다. 신사 대우를 받으면 그는 신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의 신뢰를 받는다는 점에 비상한 자랑을 느끼게 된다.

(D. 카네기)

 

악한은 간접적인 바보다.

(S.T. 코울리지/ 茶話)

 

악인은 음식을 먹기 위하여 생활한다. 그러나 의인은 생활하기 위하여 음식을 먹는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악한 자들은 마치 무장한 군대에 의하듯 쉽게 스스로의 악덕에 치해서 파멸당할 것이다.

(타키투스/ 게르마니아)

 

검둥개 목욕 감기들. <*악인이 제 잘못을 마침내 뉘우치지 못함을 말함. 또는 검어 아무리 해도 깨끗하게 희어질 수 없음을 뜻함>

(한국 속담)

 

악독한 고승록(高承祿)이다. <*마음이 악독한 사람을 가리킴>

(한국 속담)

 

선행을 할 능력이 있는 악인은 없었다.

(E. 버크/ 워렌 해즈팅즈의 탄핵)

 

악인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만난다. 그러나 그 악의 열매가 익을 때에는 악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법구경)

 

악인은 악인인 한 증오를 받고 인간인 한 사랑받아야 한다. 우리들이 악인에 있어서도 정당히 사랑해야 하는 것, 즉 인간의 본성 그것을 죄악으로부터 씻고 해방시키기 위하여 우리들이 마땅히 증오해야 할 것, 즉 죄악을 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에게 있어서의 나쁜 요소, 즉 불의에 대하여 증오하고, 선한 요스, 즉 사회적, 이성적 존재로서의 그의 본성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들이 지지하는 주의인 것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백색이 흑색을 중화시킬 수 없고, 인간의 선이 악을 보상하지도 용서하지도 못한다. 인간이 할 일은 무서운 선택뿐이다.

(R. 브라우닝/ 반지와 책)

 

바보는 지혜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악인은 도덕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가장 즐긴다.

(P. 에른스트/ 가공의 대화)

 

선을 안다는 것은 악에 반항하는 것이다. 무관심한 것은 상실의 표적이다.

(M. 매너즈/ 분노의 가중)

 

모든 사람에게는 어느 때건 두 개의 동시성의 가정이 있다. 하나는 신에게로 향하는 것이요, 다른 것은 마귀에게 향하는 것이다.

(C. 보들레르/ 나의 적나라한 마음)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이것들은 다 인간의지의 변덕일 뿐이다.

(R. 버튼 경/ 카시디)

 

하루라도 착한 것을 생각지 않으면 모든 악한 것이 다 저절로 일어나는 법이다.

(명심보감)

 

악의 회피는 선의 시작이다.

(호라티우스/ 서한집)

 

악마에게 선을 베풀어 봐라. 지옥의 고통을 되돌려 준다.

(체코 격언)

 

악인의 행복은 시냇물처럼 흘러 사라진다.

(라신/ 아탈리)

 

우리는 선악을 다 알지 않고는 스스로를 위한 바른길을 자유롭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없다.

(H. 켈러/ 나의 종교)

 

악은 즐거움 속에서도 고통을 주지만, 덕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위로해 준다.

(C.C. 콜튼/ 라콘)

 

악인을 아끼는 자는 선인을 해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악함이 지극한 사람이라면 친하다고 하여 사정을 두어서도 안 되고, 전에 공이 있다고해서 용서해서도 안 된다.

(기대승/ 고봉집)

 

악덕은 미덕을 빛나게 한다.

(T. 풀러/ 금언집)

 

악의 심장 급소를 향하여/ 아! 신화같이/ 전진하는 다비데군(群)들

(신동문/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악의의 날개를 펴고 죽음의 해시계를 재며/ 너는 비행기 속에 있었다.

(S. 콰지모도/ 현대인)

 

악한 자들은 자랑스럽게 그 유례없는 거짓을 자랑한다. 그러나 내가 사랑함은 영원한 진리의 말씀뿐.

(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리며)

 

하나님은/ 소외된 자와 천한 자/ 그들을 돌보시고/ 악인의 길 굽게 하고/ 의인을 사랑하시는 주시로다

(홍안의/ 약한 자의 하나님)

 

왜 정의로운 자는 십자가의 짐을 짊어지고/가련하게도 피투성이의 다리를 끌고 가는데/악한 녀석은 승리를 뽐내며/ 당당하게도 말위에서 째려보고 있는가

(하이네/ 신성한 우화를)

 

신의 높은 곳도/님의 장중에 있나니,/이제 나로 하여/ 악인의 장막에 거하지 말게 하시어/ 응어리진 금세(今世)의 한/ 기억됨 없는/그 성의 문지기되는/ 축복을 허락하소서.

(엄창섭/ 기도 · 26)

 

 

설 교 노 트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함

대하36:12

 

서론

열왕기서와 역대기를 통하여서 북국 이스라엘과 남국 유다에 여러 왕들의 역사가 소개되는 중에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라는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악인들이 많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시드기야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왕입니다. 그러면 그의 악행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말씀 앞에 겸비치 아니하였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을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니 악행입니다. 참 선지자는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데 말씀이 전달될 때에는 언제나 경건한 마음과 엄숙한 심정으로 "종이 여기 있사오니 말씀하옵소서 듣겠나이다. "하며 겸손히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겸비치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거부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참으로 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말에는 귀 기울이며 겸비할 필요가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겸손히 자기를 낮추고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강퍅케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다면 당연히 들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배반한 것입니다. 배반하는 것은 목이 곧은 까닭이요, 목이 곧은 것은 마음이 강퍅한 까닭입니다. 다시말하면 마음에서부터 출발된 생각이 행동화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우상에게 사로잡혀 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성전까지 더럽혔으니 얼마나 마음이 강퍅하여 졌으면 그렇게까지 악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참된 축복인 것입니다. 결코 악을 행하는 악인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3. 말씀을 멸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왕과 백성들에게 파송하여 말씀을 전달하였는데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비웃었습니다. 비웃음은 곧 조롱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말씀을 멸시함이니 이것은 그 선지자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의 근거가 말씀에 있는데 그 말씀 자체를 멸시하고 말씀의 근본되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씀을 전달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조롱한다면 그 심령이 어떻게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악행자의 표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르는 것이 없으십니다. 아시되 바르게 아시므로 선행으로 가장하여도 그 중심의 악한 것을 다 아십니다. 하물며 표면상으로까지 악행을 감행하는 자가 어찌 구제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로는 비극 중에 비극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그들을 쫓아내심

신9:1-8

 

서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족속과 싸워서 승리하게 하시고 그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이 땅을 너희가 갖게 된 것을 자신들의 의로운 행위나 정직한 생활의 대가인 양 착각하고 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승리하고 나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척이나 의롭게 살아서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고 타인을 무시하는 교만에 빠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만함을 뿌리조차 뽑으시고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가질 만한 의로움이 있었던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시고 약속한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기 때문에 받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의로워서 남달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며, 교만하여도 안 됩니다. 오직 주께 영광과 찬송을 돌려보내야 마땅할 것입니다.

 

2. 정직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자연인으로서 아무리 정직하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보면 인간의 정직함이라고 하는 것이 모순투성이 뿐입니다. 인간들이 정직하다고 내세우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도 정직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 하나님보다 의롭지 못하고 창조주보다 성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는 깨끗한 것 같아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깨끗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완전한 정직함을 보시고 가나안을 주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3. 가나안 족들이 악해 서입니다.

본문 5절에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몰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롭고 정직해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과 언약한 것이 있기 때문에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가나안 족속들이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이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설픈 정직 따위는 내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다행히도 가나안이 약했기 때문에 피흘리지 아니하고 그 나라를 정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본다면 아무것도 자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고 하나님께 은혜 갚을 길을 찾아야 할 뿐입니다(시l16:12).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겸손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고들의 부족한 점을 들어내신 것입니다. 의로운 행위도 없고 정직하지도 못하고 완전하지도 못한 그들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앞에서 좇아내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효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하였습니다.

안 식

성 경 활 용

1. 안식에 관한 서술적 묘사

(1) 하나님이 안식하심

(출31:17)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2) 육체적으로도 쉬는 날

(창18: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3) 대적에서의 자유

(수23: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지 오랜 후에

(4) 가정을 이루는 것

(룻3:1)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않겠느냐

(5) 성도들이 들어갈 안식은 창조 때 이루어진 것

(히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6) 칼에서의 해방

(램31:2)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2. 안식을 지켜야 할 이유

(1) 하나님의 율법에 규정되어 있다.

(출20:11)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2) 사람은 안식하고 싶어 한다.

(시55:6)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라

(3) 하나님께서 주셨다.

(신3: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같이 너희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사14:3)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고 안식을 주시는 날에

(4) 하나님께서 명하셨다.

(출34:21)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레16:31)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3. 안식의 근원

(1) 하나님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 며 쉴 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2) 그리스도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 하나님의 공의

(살후1:7)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4) 믿음

(히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4. 영적 안식을 얻는 비결

(1) 주 안에 있음으로써

(계14:13)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2) 믿음을 통해서

(히4:11)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함이라

(3) 하나님께 주셔야

(출33: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5. 안식을 방해하는 것

(1) 반역

(사28:12)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2) 죄악

(사57:20)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라

(3) 불안

(고후2: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4) 불순종

(시95:11)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에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히3:18)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6. 안식처의 두 종류

(1) 세상의 안식처

(창49:15)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2) 하늘의 안식처

(사66:1)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라

(살후1:7)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관련원어풀이

1. jWn 누-아흐

(1) 쉬다, 내려앉다.

(출10:14, 사11:2)

(2) 쉬다, 휴식을 취하다.

(출20:11, 신5:14)

(3) 배치하다.

(겔37:1)

(4) 두, 놓여지다.

(슥5:11)

 

2. hj;Wnm] 메누-하-

(1) 휴식, 평온, 쉼의 상태.

(룻1:9, 시95:11)

(2) 쉬는 곳, 거처,

(민10:33, 사11:10)

 

3. [g'r; 라-가

(1) 두렵게 하다, 위협으로 억제시키다.

(시51:15, 렘31:35)

(2) 두렵다, 무섭다, 잠잠하다.

(욥7:5)

(3) 잠잠케 하다, 조용하게 하다.

(렘31:2)

(4) 쉬다, 평온히 거하다

(신28:65)

 

4. tb'v; 솨-바트

(1) 쉬다, 휴식의 날로 지키다.

(창2:2, 출23:12)

(2) 그치다, 그만두다, 끝내다.

(욥32:1, 사24:8)

(3) 안식일을 축하하다, 지키다.

(레23:32)

(4) 그치게 하다.

(수22:25, 겔34:10)

 

5. katapauvw 카타파우오-

(1) 조용하게 하다, 쉬게 하다, 휴식을 주다, 조용한 곳으로 인도하다.

(히4:8)

(2) 잠잠하다, 제지하다, 그만두게 하다.

(행14:18)

(3) 쉬다, 휴식을 취하다.

(히4:4, 10)

 

6. katavpausi" 카타파우시스

(1) 쉼을 줌, 휴식, 정착, 안식.

(히3:11)

(2) 쉬는 곳, 안식처, 휴식소.

(행7:49)

 

7. sabbatismov" 사빠티스모스

안식일을 지킴, 모든 고통과 수고로부터의 축복된 휴식, 안식일 상태.

(히4:9)

 

8. savbbatoni 사빠톤

(1) 안식일.

(막6:2,요5:9)

(2) 주의 첫날.

(마28:1, 눅24:1)

설교예화자료

향료

 

어느 안식일의 오후, 로마 황제가 친한 랍비를 방문했습니다.

황제는 아주 갑작스럽게 예고없이 랍비의 집에 나타났는데 그는 여기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식사는 매우 맛이 있었고, 식탁 둘레에서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는 대단히 기뻐하며 다음 수요일에 다시 방문하고 싶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수요일에 그가 오자 사람들은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었으므로 제일 좋은 식기가 놓여지고 지난번은 안식일이라 쉬었던 하인들도 줄을 서서 접대했습니다. 요리사가 없어 차가운 음식밖에 내놓지 않았던 지난번과는 달리 뜨거운 요리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림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식사는 역시 지난 토요일 쪽이 맛이 더 있었습니다. 토요일에 쓴 향료는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랍비가 "로마 황제로서는 그 향료를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자 황제는 "아니오, 로마황제는 어떤 향료라도 손에 넣을 수가 있소!"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랍비는,

"유태의 안식이라는 향료, 이것만은 로마 황제인 당신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손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사람은 누구나 친구의 팔 가운데 휴식처를 구하고 있다. 그 곳에서라면 우리들의 가슴은 슬픔을 마음껏 터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J.W. 괴테)

 

이 세상은 당신이 안식할 곳은 아닌데도 거기서 어쩌자고 돌아다니고 입는가. 천상에야말로 당신의 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상의 모든 것은 스쳐 가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의사가 그대의 병을 고치지 못하면, 유쾌한 마음, 휴식, 적절한 음식 세 가지를 그대의 의사로 삼으라.

(미상/ 살레르니타누스 건축 관리법)

 

 

이 지구상의 모든 다른 곳에서 추방된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문제에 대한 사적 판단의 권리는 이제 그들의 진로를 그 최후의 피난처인 이 행복한 땅으로 향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고귀한 손님을 소중히 맞이하여 보편적 관용의 날개 밑에 그 안식처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1776년 필라델피아에서의 연설>

(S. 애덤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자가 작아지고 작은 자가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을 받는 곳이다.

(웨브)

 

온갖 곤란을 넘어서 안식이 있다.

(J.W. 괴테)

 

여로의 준비가 이미 정돈되었으면,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지 말자. 신의 상냥함과 은혜속에, 기쁨으로서 저승으로 나가자.

(C. 힐티/ 행복론)

 

복된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이 아니라 열락이다. 죽음이란 사람에게 운명의 학대가 미치지 않는 안전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집에 데려다 다오. 집에 돌아가야만 한다니까! <*미국 교계의 개척자로 이 믿음 깊은 크리스찬은 죽는 마당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P. 브룩스)

 

시냇물 골짜기에 안식처를 마련하고/숨어사는 어진 선비 혼자서 즐거웁네.

(시경 고반)

 

창으로 펼쳐지는 희끄무례한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동안 주름진 마음의 두렁을 정하니 둘러보면서 잠깐 안식의 숨길을 모아본다.

(추은희/ 미흡의 장)

 

부패의 숲을 이웃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안식, 나의 즐거움이다.

(성찬경/ 권태)

 

오라, 즐거운 안식, 영원한 잠이 온다. 언젠가는 모든 인간의 눈을 봉하듯 나의 것을 봉하라. 내 영혼의 나그네길 고요하고 태연하다. 괴로워할 죄 없고, 아파할 가슴 없도다. 안녕! 밝은 모든 것들이여! 안녕! 선하고 현명한 모든 것들이여!

(E. 에이럼)

 

슬플 때의 위로였고/ 번민할 때의 안식이었던/ 내 손의 거문고는 이제 내게/ 더욱 더 깊은 슬픔과 탄식으로 말미암아서/ 몸에 스며 가슴 찢고 있다.

(아바엘라르두스/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하는 다윗의 노래)

 

눈을 감고 잠잠히 생각하라/ 무거운 짐에 우는 목숨에는/ 받아 가질 안식을 더하려고/반드시 힘있는 도움의 손이/ 그대들을 위하여 내밀어지리.

(김소월/ 신앙)

 

세월은 급히 흐르는 물/ 잠간도 붙들어 두기 어렵구나/ 인정은 스스로 시달리다/ 여기 이르러 비로소 쉬나니/ 다행히 번잡한 공무에 틈 타거든/ 맑은 경치를 찾아다녀라.

(김극기)

 

나를 버리는 일이 없는 "사랑"이여/ 내 지친 영혼을 당신의 품에 쉬게 하소서./ 당신께서주신 나의 생을 당신께 도로 바치나이다. / 바다같은 그 깊음 속에서·내 생이 보다 풍요로워지기 위해서입니다.

(마데슨/ 태초에 하나님이 사랑하셨다)

 

견디고 견딘/ 그 나머지의 피곤/ 오늘은 안식을 불러 주시고/ 편안한 긴 잠에/ 사랑도 쉬게 하옵소서/ 아베 마리아

(김남조/ 사랑도 쉬게)

 

그밖에 무엇으로써 인간을 노래하리까?/ 파편 위에 터를 닦는 저들 부귀와 영화이오리까?/ 순간에 안식하는 영웅들의 성이오리까?

(김현승/ 사랑을 말함)

 

영광의 주 안에서 나의 입명(立命)이 나의 안락이/ 이 세상 것과는 비길 수 없구나.

(노영란/ 평강의 물결 속에)

 

오오, 나의 밝은 꿈!/ 오오, 내 달 그림자 속에 보이는 너의 눈빛!/오오, 서리 속에 있으며 빛과 물로 이루어진 침상/ 이 모든 티 없음이여, 이 모든 안식의 제단이여!// ‥‥가능할는지요? 언젠가 그 포옹을 볼 수 있게 될는지요?/ 일찍이 사도가 머리를 기대고 쉬었던 당신의 가슴에/ 휴식을 찾을 수가 있게 될는지요?

(베를렌/ 예지)

 

성도들 쉬는 그 곳에/ 나 안식 얻으리/ 천사의 날개보다도/ 그 땅이 정 결합니다.

(홍안의/ 빛보라치는 저하늘)

 

오, 하나님이여, 불안한 생활 속에서/ 우린 영혼의 안식을 잃었나이다. /우리의 분별없는 혼란을/ 진정시켜 주옵시며,/ 우리 민중들의 함성을 그치게 하옵소서./ 염려하는 마음을 평온케 하옵시며,/ 저녁 시간의 잔잔한 연못처럼/ 당신께서 천국을 비춰주실 때까지/우리 영혼이 고요로 가득 차게 하옵소서.

(H.A. 포스딕/4월의 기도)

 

하나님, 이 나귀들과 함께 당신의 나라에 갈 수 있도록 하십시오./그리고 천국의 안식속에서, 천사들이 숲속을 흐르고 있는/ 시내쪽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하십시오. 거기에는/소녀들의 미소짓는 살결처럼 부드러운 버찌가 떨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휴식소의 당신의 거룩한 흐름에/ 몸을 굽힌 내가 나귀들을 닮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잠/ 14편의 기도 노래 · 8)

 

오 주여,/ 우리 모두가 안식을 얻도록/ 동행하여 주시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10월의 기도)

 

칼은 녹슬어 칼집은 삭고/ 영혼은 가슴을 피곤케 한다/ 마음에 편안한 안식을 주어/ 사랑으로 쉴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바이런/ 이제 더 이상 거닐지 말자)

 

어찌해 그대 나를 청하느뇨/ 아무 말 없이 잠들어/ 시원스런 안식 속에 나를-/‥‥//자연의 힘이여/ 내가 여기 쉼을 나무램 말아 달라/꺼진 등불과 함께/내 영혼이 홀로 있는 이 즐거움을 갖게 하라

(노아이유 부인/ 어느 오월 밤의 매력)

 

칼을 쓰면/ 칼집이 해어지고/ 영혼이 괴로우면/ 가슴이 허나니/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느니라.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우리 두 사람은/키높이 가득 자란 보리밭, 밭고랑 위에 앉았어라/ 일을 필하고 쉬는 동안의 기쁨이어./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에는 꽃이 필 때.

(김소월/ 밭고랑 위에서)

 

이 영광스러운 목적을 위하여/ 끝까지 성실로서 일관하고 나서/영원한 안식에 이르게 될 때/ 내 마음은 그 얼마나 평안할 것이랴.

(다리온/ 불가능한 꿈)

 

빵빵 참다못한 차들이 몸을 부딪치는 소리/ 곳곳에서 들려오고/ 명동성당에서 내려오다보면/ 모처럼 얻은 안식마저 산산조각이 나고만다.

(박몽구/ 비둘기 가족)

 

밝은 아침을 주시고/ 쉼의 밤을 주시는/ 생명의 하나님

(황금찬/ 기도)

 

나는 지금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모든 영혼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도종환/ 아홉 가지 기도)

 

몇몇 사람들이 밤의 안식처를 얻어/ 그 밤 동안만은 바람을 피하고/ 그들 위에 쌓였을 눈이 거리에 떨어지기는 한다/그러나 세계는 그것으로 바러지지 않는다.

(브레히트/ 밤의 안식처)

 

할아버지여! 할머니여!/ 오직 무덤 속의 안식 밖에 희망의 끊진 노인네여! 조팝에 주름잡힌 얼굴은 누르렀고 세고(世苦)에 등은 굽었거늘.

(심훈/ 통곡 속에서)

 

향기로운 꽃밭에 누워 꿈을 꾸었습니다. / 꽃밭의 하얀 울타리에 예쁜 팻말이 금빛 햇빛에 반짝입니다. // '평화와 영원한 안식의 요람 아름다운 영혼을 초대합니다. '

(배경란/ 기쁜 소식)

 

오락은 분, 실무는 뿌리다.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면, 우선 튼튼한 뿌리를 가져야 한다.

(R.W. 애머슨)

 

오락이나 스포츠·취미 등 전혀 자유로운 정신의 활동은 존재의 충족애로 상승시킴으로써 인간의 전체적인 개화를 보게 해 준다. 이렇게 보면 여가는 생의 의미가 직결된다. 이것이 사회학적 개념보다 한층 더 약동적인 의미로 "문화"라고 불리어지는 발전이다.

(김태관/ 여가)

 

인간은 아무리 슬픔에 차 있어도 어떤 심심풀이에 마음이 끌리면 그 동안만은 행복하다. 또 인간은 아무리 행복스럽다 하더라도 권태가 마음속에 자라는 것을 막기 위한 어떤 정욕이나 오락에 의해 심심풀이를 하든가, 그 외의 일을 잊어버리곤 하지 않는다면 얼마 안가서 우울해지고 불행하게 될 것이다.

(B. 파스칼/ 팡세)

 

노동 없이 인간은 휴식에 도달하는 일이 없고, 전투 없이 승리에 달하는 일도 없다.

(토마스 아 켐퍼스)

 

휴식이 길면 곰팡이가 생긴다.

(W. 스콧/ 약혼자)

 

지나치게 않은 휴식은 지나치게 적은 휴식과 같이 피로하게 한다.

(C. 힐티/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안식일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휴식이나 휴양때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기가 하는일을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그러나 인간은 일만 한다고 반드시 건설적인 것을 성취하는 것도 아니다. 레크리에이션의 본래의 뜻이 "재창조"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휴식은 새로운 창조에의 의욕과 화복을 낳게 해 주는 데 불가결한 것이다.

(김태관/ 여가)

 

전쟁은 평화를 위하여, 일은 여가를 즐기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숭고한 것을 위하여 있어야 한다. 국민은 일과 전쟁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보다 한층 더 평화의 휴식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약자인 인간은 어떤 합리적인 휴식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한 번 죽음의 차디찬 휴식을 맛본 자는 다시는 잠을 깨지 못한다.

(루크레티우스)

 

내가 구하는 것은 휴식이 아니고 정숙이다.

(로테/ 잠언)

 

 

설 교 노 트

 

안식의 약속

히3:1-4:13

 

서론

안식이라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로 믿음으로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평안이라는 의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의미하는 약속의 땅이라는 의미, 하나님께서는 제7일에 쉬었던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안식은 평안한 곳입니다. 풍성한 땅이며 영원한 휴식처입니다. 그러면 이 안식의 약속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안식에 들어가는 방법

우리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려면 끝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가운데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고,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을 불신하는 무서운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 죄의 유혹을 받아 마음이 굳어져 교만하고 완고해져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게 되어 안식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을 때 가졌던 확실한 믿음을, 주님오신 때까지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 신앙을 굳게 잡아 지키는 자만이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함과 구속에 참예할 수 있으며, 예수님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안식의 약속과 증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약속을 굳게 믿은 소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음을 굳게 지키면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신 것을 보면 우리에게도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의 약속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죄의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사탄의 역사를 부정하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전진해야 합니다.

 

3.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약속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살립니다. 마음을 움직여 깨우칩니다. 죄인을 찾아 구원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 자는 그 영이 살아 움직이는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분명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 능력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갑시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안식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이 약속을 결코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대다수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대한 적대적인 신앙과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으로, 약속하신 안식에 참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십시다.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30

 

서론

인류의 시조 아담의 타락은 후손들에게 두 가지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먼저,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습니다(롬5:12). 그 다음으로 인간의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있어서 인간의 온갖 고통은 죄로 말미암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고통이 없는 낙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회개를 통하여 상실되었던 신의 형상을 회복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초청하십니다.

여기 예수님의 초청의 내용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쉬게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하여 주십니다.

"쉬게 하리라"고 하는 희랍어 원문은 "아나파우소"입니다. 아나파우소는 노동으로부터 휴식을 주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지로 말미암아 아니 져도 될 짐을 지고 필요 이상의 고생을 합니다. 이러한 것을 깨우쳐 알게 하여 주십니다. 그때 인간들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지금까지의 죄와고통으로부터 휴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짐을 과감히 벗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 우리의 짐을 다 맡겨 버리면 우리의 짐은 한결 가볍게 될 것입니다.

 

2.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십니다.

인간은 누구나 필연적인 죄짐을 지고 있습니다(롬3:10, 5:12). 그리하여 불안과 절망 가운데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 스스로는 어떻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아나파우소"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짐을 대신 져 주서서 우리의 불안과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휴식을 주십니다. 이때 인간들은 해방감에서 무한히 생의 환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대신 져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온전히 우리의 짐을 주님께 다 맡기고 주님만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3. 회복하는 새 힘을 주십니다.

인간의 짐 가운데는 무지로 인한 짐이 있고, 죄로 인한 필연적인 짐이 있고, 어찌할 수 없이 자신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짐이 있습니다. 무지로 인한 짐은 주님의 깨우침으로 해결되고, 필연적인 죄짐은 주님이 대신 져 주심으로 해결이 되나, 자기 몫에 태인 유한성과 책임과 의무는 깨달아도 안 되고 맡겨 버릴 수 없습니다. 인간 각자가 지고가야 합니다.

이때 "아나파우소"는 그 짐을 가볍게 지고 갈 수 있도록 내적인 새 힘을 충만케 하여줍니다. 그때부터 그는 기쁨과 감사로 자기의 몫에 태인 짐을 가볍게 지고 기도와 찬미로 전진 또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직 감사한 것 뿐입니다.

 

결론

무지와 죄로 인한 무거운 짐을 지고 거친 세파에서 이리저리 헤매이는 인생들에게 깨우침과 은총으로 휴식(아나파우소)을 주시며 새로운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심

시127:2

 

서론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부요함,지혜와 명철, 세상 권세, 건강, 가족 등이 많으나 특히 여기에 잠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1. 육체적 수면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육체는 항상 노동을 하기 때문에 얼마 정도 일하면서 힘을 쓰면 피곤하여 집니다. 그러므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인간 생리의 원칙인 것입니다. 그러나 밤에도 잘 수 없이 철야 작업을 해야 하는 신세에 처한 사람은 어떤 면에서 불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평안히 수면할 수 있도록 하셨으니 이것은 참으로 큰 축복인 것입니다.

피곤하여 쓰러질 지경의 노동자들에게 잠잘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2. 심령의 안식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육신이 지칠 때는 쉬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도 피곤한 때가 있으므로 안식의 축복을 바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면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사람이 잠잘 때에는 모든 근심을 잊어버리고 심신의 피로를 편히 쉬면서 새롭게 치료되어 보강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하는 심령은 그 시간에 우선 평안을 누립니다. 평안히 잠자는 시간처럼 귀하고 복된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어 편히 쉬는 모습은 행복한 모습이요, 안식의 시간입니다.

육체의 노동은 쉬어도 정신적으로 심령적으로 고민과 걱정이 있는 자는 평안히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안식도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를 듬뿍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심령이 안식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맡기고 부탁하고 육체와 심령이 모든 사물을 접촉하지 않고 평안히 잠자는 시간이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 아니하시고 활동하시는 시간입니다(시121:4).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경영하는 일이 되어 나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수고를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짐을 짊어지신 격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마땅히 일해야 할 그 자녀들을 편안히 쉬도록 잠재워 놓으시고, 계속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수고를 기억하는 자녀가 되도록 우리는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안 전

성 경 활 용

1. 거짓 안전

(1) 악인이 잘되는 것

(욥21:17)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

(2) 거짓 안전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2. 참된 안전을 얻는 비결

(1) 하나님께서 주시므로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2)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잠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3) 하나님의 보호로

(신33:12)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날이 맞도록 보호하시고

(4) 여호와의 인도하심으로

(렘32:37) 보라 내가 노와 분과 큰 분노로 그들을 쫓아 보내었던 모든 지방에서 그들을 모아내어 이곳으로 다시 인도하여 안전히 거하게 할 것이라

관련원어풀이

1. jf'B, 베타흐

(1) 확신, 신임, 대담하게, 확신있게.

(창34:25)

(2) 안전.

(사32:17)

(3) 두려움 없이, 안전하긴

(삼상12:11)

 

2. [v'y< 웨솨

(1) 구출, 도움, 구원.

(시12:6, 합3:13)

(2) 안전, 부귀.

(욥5:4, 사61:10)

 

3. jf;b]mi 미브타-흐

(1) 확신, 신임.

(겔29:16, 사32:18)

(2) 확신하는 행위.

(잠21:22)

(3) 확신의 대상.

(욥18:14)

(4) 확신의 상태, 안전.

(잠14:26, 사32:18)

 

4. !/lv; 솰-롬-

(1) 전부의, 온전한, 건강한, 건전한.

(삼상25:5)

(2) 온전, 안전.

(신29:18)

(3) 평화

(레26:6, 삿4:17)

(4) 우정, 교재 일치.

(시28:3)

 

5. bg'c; 사-갑

(1) 자신을 들어올리다.

(욥5:11)

(2) 높다.

(신2:36)

(3) 가장 높은 곳에 두다, 안전하게 보호되다.

(잠18:10)

(4) 자신을 높이다, 고상하게 행동하다, 보호하다.

(욥36:22)

 

6. bd'y: 야-탑

(1) 선하다, 좋다.

(나3:8)

(2) 즐겁다, 나쁘다.

(삿19:16, 룻3:7)

 

7. ajsfalhv" 아스팔레-스

(1) 견고한, 신임할 만한, 확실한, 참된.

(행21:34)

(2) 안전한.

(빌3:1)

 

8. ajsfavleia 아스달레이아

원래의 의미는 "넘어 짐으로부터 안전함을 받 사람의 상태, 견고함"이다.

(1) 안전, 확고 부동.

(살전5:3)

(2) 확실성, 참됨.

(눅1:4)

(3) 근면, 조심, 경계.

(행5:23)

 

9. eijrhvnh 에이레-네

(1) 평화, 화평.

(행9:31)

(2) 개인들 사이의 평화 조약, 일치.

(마10:34, 눅12:51)

(3) 안전, 번영.

(막5:34)

(4) 메시아의 평화.

(눅1:79)

(5) 그리스도를 통해 그 구원이 보증된 영혼의 평온한 상태, 항상 만족한 상태.

(롬1:7)

설교예화자료

담보물을 지키는 방법

 

한 남자가 은행에 와서 5달러의 대부를 요구했습니다. 은행에서는 그에게 은행은 그렇게적은 돈을 대부해 주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계속 말하기를 "그러나 돈을 대부하여 주는 것이 은행의 일이 아닌가요?" 라고 하였습니다. 은행원은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그래서 나는 훌륭한 담보물을 가지고 왔지요. 그것으로 5달러를 빌리길 원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은행원은 그에게 대부를 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수표가 대부되고 30센트의 이자가 지불되자 그는 주머니에서 만 달러 상당의 정부 증서를 꺼내서 그들에게 담보물로 건네주었습니다. 은행원이 놀라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자, 이것은 그 증서와 같은 것입니다. 다른 은행에서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안전한 금고에 넣는 것만도 나에게 10달러를 요구합니다. "

정말로 우습고도 기발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록·시·묘사

 

참된 안전은 격리된 개인적 노력보다는 아무래도 사회적 단결 속에서 발견된다.

(F.M.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일시적인 약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본질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나 안전을 누릴 자격이 없다.

(B. 프랭클린/ 펜실베니아의 역사적 고찰)

 

안전은 중용의 길이다.

(P. N. 오비디우스)

 

인생에는 절대 안전한 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명과 평화에 이르게 하는 고전을 회피하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미상)

 

자동차 메이커여, 안전에 대하여 비용을 들여라.

(R. 케네디)

 

안전할 적에도 경계하는 자는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안전의 보장 없는 자유란 있을 수 없으며, 법의 지상권이나 정당한 정부의 권위가 없는 안전 보장 또한 있을 수 없다.

(W. G.하딩)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안전을 원하지 자유를 원하진 않는다.

(H.L. 멘컨/ 소수자의 보고)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은 안전을 기할 줄 안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애매함이 종종 안전을 가져 온다.

(이솝/ 나무와 갈대)

 

확신하는 자는 안전하지는 않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위태함을 알고 험함을 알면 내내 덫은 없을 것이요, 착한 이를 천거하고 어진 사람을 추천하면 저절로 안신(安身)의 길이 있으리라.

(명심보감)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그러기위해서 배가 건조된 것은 아니다.

(J.A. 세드/ 나의 다락방에서 나온 경구)

 

얇은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 탈 때는 속도에 안전이 있다.

(R. W. 에머슨)

 

위험은 안전의 이웃이다.

(T. 풀러/ 잠언집)

 

용감한 사람에게는 항상 안전이 따른다.

(R. W. 에머슨)

 

우리들은 사교를 그만두고 은퇴의 길을 결의한다. 왜냐하면 안전은 고독 속에 살기 때문이다.

(사디/ 장미원)

 

안일 태평한 사람은 안전하지가 못하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네 자신 가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네 자랑이어라/ 작으면서도 더함 없이 안전하다 할지라/ 모든 하늘을 움직이는 신비가/ 네게 있나니, 하나님의 형상이라.

(톰슨/ 팔랑이는 잎사귀)

 

 

설 교 노 트

 

그리스도에게로 가면

요10:9

 

서론

교회는 몸이요, 그리스도는 머리가 되시니, 이 성전은 인간이 세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스스로 세우신 것입니다(엡4:16).

본문 말씀에 주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이니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양의 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가며 나오며 얻을 수 있는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안전이 보장됩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면 안전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잘못하여 살인한 자에게 도피성을 허락하여 그곳으로 피하여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민35:1-15).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말세에 멸망을 피하게 해 주시는 참 안전한 영원한 도피성이 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도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식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은 험하고, 살아가야 할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에게로 들어가야만 안전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안전의 확신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기근이나 핍박이나 위험이나 적신이나 칼이랴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리라"고 했습니다(롬8:35-37).

양은 약해도 맹수를 이길 목자의 품 안에 있으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거닐어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목자의 실력이 곧 양의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몸된 교회 안에 들어오는 자는 안전이 보장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으며 "죄를 지은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요8:31-34). 오늘 현대인은 자유가 없습니다. 자기를 자기의 마음대로 이끌어 가지 못하고 있으며, 자율적인 삶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자유하고 괴롭고 답답합니다.

옛날 수도사 비이미라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서 비로소 쇠사슬이 철얼렁하고 내려지는 것을 감식했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도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참 평안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질병, 죽음, 불안, 슬픔, 가난, 정욕, 체면 등에서 자유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을 얽매어 놓고있는 세상적인 모든 줄이 은혜 안에서 끊어져 버리기를 축원합니다.

 

3. 많은 공급이 뒤따라 옵니다.

추리들의 삶은 기갈증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모스 선지자의 외침대로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없는 기갈이 아니라 영적인 기갈인 것입니다(암8:11). 먹어도 먹어도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의 기갈인 것입니다(요4장)."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부자라 하지만 사실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수치가 있다"는 것입니다(묵3:17-18).

 

결론

그리스도에게로 올 때 들어가며 나오며 좋은 꼴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택한 삶이 될 것입니다. 실로 그리스도는 축복의 문이시며, 자유의 문이며, 안전의 문이십니다. 영광, 승리, 형통, 구원, 소망, 진리의 문이 되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다

잠14:8

 

서론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과 가족이 안전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공통된 생각일 것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안전하기를 원한다면 각기 자기의 갈 길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1. 바른 길을 바로 알아 택해야 합니다.

사람은 명철할 수도 있고, 슬기로울 수도 있고, 유식하고 빈틈없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의 가고 있는 길을 잘못 알아서 생명을 잃어버리고 파멸될 수도 있습니다.

명철이나 능력을 진실로 가치있게 만들며, 미덕을 이루는 명철한 자의 지혜는 생의 실제적 인 지식이며, 사람으로 바른 길을 택하게 하고 그것을 따르게 하는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공의 길을 택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2. 건전하고 지혜로운 길을 알아야 합니다.

건전하고 지혜로운 길은 어떤 길입니까?

(1) 재정적으로 건전한 길을 알아야 합니다.

탐욕적인 인색이나, 쓸데없는 낭비를 막으며, 저축과 선행에 힘쓰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는 것이 가장 건전한 길입니다.

(2) 교육적으로 지혜로운 길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위축시키고 편협케하며 타락시키는 대신, 소생시키시고 그 기능을 발달시키는 습관을 형성하여 자녀나 후배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길입니다.

(3) 개인적인 소질과 부합하는 길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모든 성향들을 무시하는 길에 시간과 능력을 소비하지 않고, 오직 우리의 특수한 적성에 부합하여 조물주가 부여하신 특수한 기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전하고 지혜로운 길의 발견입니다.

 

3. 가장 안전한 길

어떤 곳에 가야하며,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곳에는 가지말아야 하는지는 명철한 자의 지혜가 할 일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안전한 길이 저 사람에게는 멸망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로마서 14장 22절에 보면 "자기의 옳다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에 그리스도적인 미덕을 수립하고 생활에 그리스도적 은혜를 빛나게 하는 행동들을 분별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들은 지혜롭고 복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거룩한 봉사의 길은 지혜의 길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결론

우리의 생애가 안전하기를 원한다면 바른 길, 참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안전한 참 길이십니다.

애국(-심)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애국자들의 예

(1) 모세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

(삿5: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3) 요압

(삼하10:12) 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4) 느헤미야

(느2:3)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5) 이사야

(사62:1)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6) 예레미야

(렘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 되면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설교예화자료

왕에 대한 충성의 표

 

19C 초 프러시아는 경제가 심각할 정도로 피폐해졌습니다. 그 당시는 프레데릭 윌리암3세가 왕이었는데 그는 왕국을 지키고 견고히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프러시아의 모든 여자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는 부인들은 돈이 될 수 있는 금과 보석을 가져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소유의 보석들을 들고왔습니다. 나라에서는 보석을 가져온 자들에게 청동이나 철을 주조한 것에 "철과 바꾸어 금을 드렸습니다. "라는 문구를 새겨서 주었습니다. 그 나라에는 곧 왕에 한 충성을 타내는 표로써 이런 투박한 장신구를 다는 것이 유행이 되었고 금과 보석의 사치가 봉사와 충성의 철과 교환되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철십자 훈장이 여기에서부터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의 군사는 기꺼이 자기를 희생합니다.

 

 

봉화지기의 책임 있는 역할

 

우리나라에는 신라 시대 때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사이에 신호기 역할을 했던 '봉화'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매일 초저녁 그 지역이 안전하다는 표시로 불을 한 번 올렸고, 적이 국경에 근접하여 나타나면 두 번, 국경에 접근하고 있으면 세 번, 국경 넘어 침투하면 네 번 아군과 접전 중이면 다섯 번을 연속하여 올렸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국경 변방에서 시작된 봉화가 이어지고 이어져서 도성에까지 올라오는 체제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봉화를 지키는 사람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했던 것입니다. 고들의 온전한 책임감이 있어서 봉화가 제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 봉화지기들은 국가나 지역이 변란이 있을 때는 급히 산봉우리 봉수대로 달려가 봉수(봉화)신호를 함으로써, 국가나 인근지역의 피해를 줄이고, 여러 가지의 공이 많았을 것이고, 이때 또한 다른 가족들은 변란을 피하고자 급히 피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봉화지기들은 묵묵히 일에 만 몰두하면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가족들이 더 많이 피해를 당하고, 심지어는 적의 기습으로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한 나라의 아홉 가지 건강 진단

 

1천8백 년 전 중국 후한 말기의 학자 순열(筍悅)은 그의 명제 「신감」에서 한 나라에 근심 걱정을 불러들이는 사환(四患)과 한나라의 건강을 진단하는 아홉 가지 구풍(九風)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여기서 사환이란 첫째, 거짓말하는 것이요 둘째, 자기 이속(私利)만 차리는 것 셋째, 무법천지 넷째, 사치스러움입니다. 또한 구풍이란 치국지풍(治國之風):나라의 기풍이 아래 위가 화목하고 예의가 바름입니다. 겸양으로 싸우지 않고 근면으로 불평이 없고 화평으로 저마다 자기 할 일만 합니다. 쇠국지풍(衰國之風):사회적 지위와 직분에 권위가 없고 관리는 백성을 우습게 알고 업신여깁니다. 약국지풍(弱國之風):사람들이 신앙이 없고 모두 놀기를 좋아합니다. 아랫사람들은 일을 찾아서 하지 않고 맡기면 도망갑니다. 괴국지풍(乖國之風):아래 위가 功과 利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고 책임을 서로 미룹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긍정보다 부정과 반대가 더 많습니다. 난국지풍(亂國之風):윗사람은 욕심이 많고 아랫사람은 문제가 많습니다. 정사가 통일된 주의 추장이 없이 중구난방입니다. 황국지풍(荒國之風):세상엔 사치가 풍미하고 관리는 오만 불손하고 법따위는 있으나 마나입니다. 반국지풍(叛國之風):公을 빙자해 사악을 뫼하고, 아랫사람의 목자르는 것을 웃사람의 자랑으로 알고 위에 아부하는 것을 능력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위국지풍(危國之風):아래 위의 의사소통이 꽉 막히고, 아랫사람들은 아부 경쟁, 웃사람은 권세 경쟁에 여념이 없습니다. 망국지풍(亡國之風) . 웃사람은 아랫사람의 책임을 묻지 않고 아랫사람은 웃사람에게 정직한 말을 하지 않고, 모두가 자기 살 궁리, 자기 잇속만 채우려 듭니다.

 

 

어록·시·묘사

 

그의 조국을 위하여 피를 흘릴 만큼 훌륭한 사람은 후에 제곱의 양을 받아야 한다. 아무도 그 이상 대우를 받아서도 안 되며 아무도 그 이하의 대우도 받지 않을 것이다.

(T. 루즈벨트/ 스프링 필드에서의 연설)

 

애국심은 단순한 민족적인 자기 주장, 즉 아무런 건설적인 의무도 뒤따르지 않는, 깃발이나 날리는 감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H.G. 웰즈/ 미국의 장래)

 

사람들이 덕망스럽길 바라는가? 그들이 조국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데서 시작하자.

(루소/ 경제론)

 

다른 나라를 보면 볼수록 나는 모국을 사랑하게 된다.

(스탈 부인/ 코린)

 

나는 감옥에서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하나님께 빌었다. "우리나라가 독립하여 정부가 생기거든 그 집의 뜰을 쓸고 유리창을 닦는 일을 해 보고 죽게 하소서."하고. (김구/ 백범일지 ; 민족에 내놓은 몸)

 

눈짓으로 서로 입술을 깨물어 답할 수 있는/ 수많은 기폭들이/ 한데 뭉쳐 펄럭이며 다가오는/ 저 육중한 소리는// 조국의 하늘은 푸르러/ 새들은 저렇게 서로 훨훨 오고 가는데//너와 나와 그리고,/ 나는 너를, 너는 또한 나를/서로 이렇게 길게 미워해야 한다는 이 부자유를/ 언제까지나 견디어 가야 하는가.// 조국의 산악은 연연(連連)/ 북으로 남으로 저렇게 서로 정다이 오고 가는데//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너 와는/ 착한 조국에 금 긋고,/호식에 잠들은 그러한 자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찬양의 손짓을/ 언제까지나 높이 추켜주어야 하는가.// 조국의 강하(江河)는 출렁출렁,/고기 떼들은 저렇게 서로 싱싱하게 오고가는데// ‥‥조국의 연해는 조용히 파도쳐/난류와 한류는 저렇게 서로/ 무거이 흘러 오고 가는데//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너와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서로/ 반(孝)체온만을 지켜가야 하는가.// 조국에 눈이 훨훨 내리는 날이면/ 북녘 붉은 군복 견장 위에도,/ 하이얀 눈은 수북수북 쌓여/ 서로 기꺼운 한 핏줄 백의의 너와 나로/ 다시 돌아가고야 마는데

(한무학/ 조국은 너의 것이 아니다)

 

한 국가가 슬픔을 당하기보다는 한 개인이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낫다.

(J. 드라이든/ 앱설롬과 아키토펠)

 

애국심이란 감정으로서는 나쁘고 해로운 감정이요, 주의로서는 미련한 주의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각 국민과 각 국가가 그 자체를 가장 훌륭한 국민이요, 국가라고 생각한다면, 이들 모두가 터무니 없는 해로운 미망속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L.N. 톨스토이/ 애국심과 정부)

 

그러므로 현대 국가에 있어서의 애국은 제도로서의 규범을 지킴을 의미하는 것이며,충성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자연인으로서의 통치자에게 대한 충성이 아니라 제도로서의 국가 규범을 지키는 데 가진 힘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연기/ 생활 · 제도 · 교육)

 

나는 인도의 한 시민으로서, 더욱이 가장 야심을 존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를 위하여 정의를 펴려고 하는 것이다. 이 신념으로 말미암아 처벌당한다면 나는 달게 중죄인다운 명예를 질 것이다. 그리고 그 정의의 철저를 기하고자 한다.

(M. K. 간디)

 

고금을 막론하고 애국심이 강한 민족은 애향심이 강하다.

(정문기/ 새것과 오랜 것)

 

애국심이야말로 순박한 기조(基調) 애정이어서 무력자나 무식자라도 배우지 않고 이미 이를 안다.

(김남조/ 애국심과 지도적 문학)

 

이 사람들은 여느 때는 저마다 자기 집에 들어 앓아서 애국하고는 전혀 관계 없는 일에 종사하여 남의 돈으로 자기네의 운명을 개척하고 부지런히 돈을 벌고 있으나 한 번 자기나라를 모욕한다고 생각되는 사건이 무엇인지 생겨서, 뼈아픈 진상을 폭로한 책이라도 나타나기만 하면--그야말로 좋은 때가 왔다는 듯이 마치 그물에 걸린 파리를 본 거미처럼 여기저기서 뛰어나와서 고래고래 소리치게 마련인 것이다.

(N.V. 고골리/ 죽은 혼)

 

오늘도 성은(聖恩)이요 내일도 성은이라/ 백년 삼만육천 일이 날마다 성은이라/아마도 향국일편단심은 흰 날이 천중(天中)에 달렸는가 하노라

(양주익/ 무극집)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 말동하여라.

(김상헌)

 

가을날 풀밭에 누워서/ 우러러보는 조선의 하늘은/ 어쩌면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높을까요?/ 닦아 논 거울인들 저보다 더 깨끗하오리까.// 바라면 바라볼수록/ 천리 만리 생각이 아득하여/ 구름장을 타고 같이 떠도는 내 마음은,/ 애달픈 심란스럽기 비길 데 없소이다/ 오늘도 만주 벌에서는 몇 천 명이나 우리 동포가/놈들에게 쫓겨나 모진 악형까지 당하고/ 몇십 명이나 묶여서 총을 맞고 거꾸러졌다는 소식!// 거짓말이외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거짓말 같사외다/ 고국의 하늘은 저다지도 맑고 푸르고 무심하거늘/ 같은 하늘밑에서 그런 비측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소이다.

(심훈/ 풀밭에 누워서)

 

불길 속에서 일본 흙은 마침내/ 절규하던 수백 년 조선의 몸이 되고//불길속에서 일본 물은/ 온몸으로 울음 울던 조선의 피가 되어,// 불길 속에서 일본 장작은/ 전할 길 없어 목메이던 조선의 넋으로,// 한점 부끄럼 없이 승화되어 이윽고/ 일본, 일본 사람들의 조국이 되었도다// ‥‥참으로 거룩하도다, 형제여/ 육신이 지배하는 땅엔 멸망이 오지만/그리움이 빛은 나라는 사라지지 않도다/ 꿈으로 하여 이룩된 땅에서/ 그대 다스려 내는 불길 웃으며 이긴/ 그릇마다 조선이 옛 같은 오늘이로다.

(정동주/ 신무가 · 7 흙이 전하는 말)

 

벽상에 걸란 칼이 보의가 났다 말가/ 공(功)없이 늙어 가니 속절없이 만지노라/ 어즈버 병자국치(丙子國恥)를 씻어 볼까 하노라.

(김진태)

 

눈보라 비바람에 알몸이 드러나고/ 서릿발 동부새에 뼈마디가 갈리어도/ 조국의 이 한복판을 이 겨레와 지키리.

(조종현/ 파고다의 열원)

 

숨겨주는 인정보다 신고하는 애국심으로/ 함께 어울려 기뻐해도 용공이적이 아닌지/ 검판사님께 묻고/ 아, 정작 통일이 되면/ 원수도 한 민족이 될 수 있는지는/ 나랏님께 물어야 할까.

(박용주/ 그날이 오면)

 

전나무 빽빽한 안데스의 이마를 스쳐가는/저녁 햇살이 곱고/ 어린 양치기들의 휘파람소리 들려오거든/ 아르헨티나를 온몸으로 사랑하였던/ 불길 뜨거운 당신의 아들 딸들을/ 기억해 주셔요/ 부르면 목이 메는 조국의 이름과 함께/ 기억해 주셔요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오 어머니.

(강인한/ 데사파레시도스)

 

국민의 애국이 서로 비교되고 비판됨으로써 진정한, 그리고 긴급한 애국의 길이 발견되는 것이다.

(김성식/ 애국의 길은 여러 갈래)

 

의무의 요구와 조국의 부름은 우리 모두에게 양심이 되리.

(J.L. 렌타올/ 오스트레일리아 군가)

 

나는 급료도 막사도 보급도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기아와 갈증과 강행군, 전투 그리고 죽음을 제공한다. 입술에서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자기의 조국을 사랑하는 자만이 나의 뒤를 따른다.

(G. 가리발디)

 

애국주의는 무뢰한의 최후의 피난소다.<*보즈웰의 「새뮤얼 존슨의 생애」에서>

(S. 존슨)

 

진정한 애국심에는 당파가 없다.

(스몰레트/ 론셀로트 그리브즈 경의 모험)

 

애국심은 본능과 애정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조국의 사랑은 자식으로서의 사랑의 연장이다.

(D.D. 필드/ 강연집)

 

인간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니라 조국을 위하여 태어났다.

(플라톤/ 서간집)

 

지식이 결여하고 애국심이 박약한 이 국민으로 하여금 나라가 곧 제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전에는 아무것으로도 나라를 건질 수 없다.

(김 구/ 백범일지 ; 민족에 내놓은 몸)

 

믿음이 종교 속에 있듯 애국심은 정치 생활 속에 있다.

(액튼 경)

 

인류로부터 애국심을 두들겨 내쫓기 전에는 조용한 세상이 결코 없을 것이다.

(B. 쇼/ 오플러티 부의장)

 

애국심은 집단적 책임의 생생한 감각이며, 민족주의는 그 자신의 분료통 위에서 우는 미련스런 수탉이다.

(R. 올딩턴/ 대령의 딸)

 

불멸의 희망이 없이는 아무도 조국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애국심이라는 주먹으로 정신의 자유를 때리는 것은 낡고 추한 술책이다.

(A. 스티븐슨/ 뉴욕에서의 연설)

 

나는 나의 조국의 좋은 점을, 나의 생명보다도 더 깊이, 더 신성하게, 더 심원하게 사랑한다.

(W. 셰익스피어/ 코리올리누스)

 

애국심은 박애와 같아, 집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H. 제임즈/ 숙녀의 초상)

 

애국심은 일종의 종교이다. 그것은 전쟁을 부화시키는 달걀이다.

(G.D.모파상/ 나의 아저씨 소스테네)

 

애국심은 인류애와 동일하다. 나는 인간이며, 인간적이기 때문에 애국자다.

(M. K. 간디)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인이 되라. 백성의 질고(疾苦)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 의사까지는 못되더라도 그대의 병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안창호)

 

우리는 언제나 세계에서 적은 소수파로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작은 나라가 그의 제한된 수단으로써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그 나라가 이룩하는 것은, 과부의 헌금처럼 대단하고 특수한 가치가 있게 된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신중하고 식별력이 있는 애국심이며, 국가라는 딱지가 붙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무분별한 애국심은 아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이 남의 나라에 대한 비정(非情)을 수반하여서는 안 된다.

(T. G. 마사리크)

 

공자가 제나라를 떠나실 때에는 일어 놓았던 밥쌀을 건져 가지고 갔는데 노나라를 떠나실 적에는 "내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고 말하였다. 부로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였다.

(맹자)

 

어서 색안경을 다 벗읍시다. 진정한 애국심만 가지고 나란 것을 다 잊어버리고 나라만 위해 일합시다.

(안창호/ 독립 운동방침)

 

마음이 바르고 크면 여기에 애국심이 생길 것이다.

(볼케)

 

애국자--정치가에게 꼼짝없이 속은 사람, 좋은 인간, 정복자의 앞짐을 지는 인간.

(A.C. 비어스/ 악마의 사전)

 

애국자는 우글우글한데 나라가 점점 더 어지러워진다면 절도가 없는 애국이거나 방법이 서투른 애국이거나 기교가 형편없는 애국이거나 했을 것이다.

(최석채/ 사대사상)

 

애국심이란, 그대가 이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고귀하고 우월하다는 그대의 신앙이다.

(G. B. 쇼)

 

애국심은 상호적 수난에 임해서도, 또 상호적 성공에 임해서도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다.

(B. 디즈레일리)

 

애국심은 국가적 영존(永存)의 명맥적 조건이다.

(G. W. 커티스)

 

나는 중국의 위대한 애국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다. 그들의 신은 나의 신이 아니며 그들의 애국심이 나의 애국심은 아닌 까닭이다. 아마 나는 내 조국을 너무 사랑하는가 보다. 그러나 나는 그 애국자들 앞에서 나의 애국심을 감추려고 한다. 왜냐하면 넝마에다 애국의 외투를 입혀서 도시의 거리에서 죽을 때까지 퍼레이드를 시키는 사람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임어당/ 나의 조국과 나의 민족)

 

끌려간 수만수천 조선 도공들은/ 이국 하늘아래서 그냥은 죽을 수 없어/ 서러운 보호와 야멸찬 감시 밑에서도/ 조국 하늘빛으로 고향 산천 전설로/ 꺼억꺼억 울음 울며 그릇을 빚었지요.

(정동주/ 신무가 · 4 이국의 하늘 아래서)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등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 들어도/ 피 맺힌 열 두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정완영/ 조국)

 

아마, 한반도여, 한반도여!/ 언제쯤 그대 잘린 허리를 다시 붙이고/ 증오와 적의를 거두어 들여/ 동족의 가슴을 겨눈 총을 던져버리고/ 그 녹슨 철조망을 걷어낸 후/ 이 어린 것들이 서로 얼싸안고 춤추게 하리.// ‥‥진달래 피고 살구꽃 피는 방방곡곡에/ 기쁨의 얼굴로 얼룩지게 하리/ 그래서 사람이 사람다웁고/ 나라가 나라다웁고/ 겨레가 겨레다 웁게 되리.

(서덕석/ 한반도여 한반도여)

 

모국을 사랑하는 자는 인류를 미워할 수 없다.

(C. 처칠/ 고별)

 

규모가 큰 장기간의 전쟁은 이 '애국심'이라는 원칙만을 가지고 지탱해 나란 수가 없습니다. 이익에 대한 전망이라든가 보상의 수여가 있어야 도움이 될 것입니다. <* 1778. 4.12. 존 배니스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G. 워싱턴)

 

나는, 나 자신의 생명보다도 보다 큰 존경과 이지와 엄숙함을 가지고 국가의 이익을 사랑 한다.

(W. 셰익스피어)

 

거기는/ 나의 원적지(原籍地)// 임이 계셔/나를 부르시는/ 거기 달려서 가자.// 흐르는 산 시내인 양/ 졸졸이 순서가 흐르면서/ 신록의 숲속인 양/ 싱그러운 자유가 출렁이는 곳,// 소질이 꽃피고/ 취미가 춤추고/ 만인의 능력이 사해(四海)로 나래를 펴는 // 거기 임이 계셔, 날 부르시는/ 목청이 터지기 전에/ 그리로 가야만 한다. // 하늘과 땅이 맞붙어/ 어느 한쪽도 서럽지 않고/사람이 서로끼리/ 키로써 자랑을 삼지 않는// 우리들의 마을,/ 밤에 잠이 들면/ 꿈길이라도 헤쳐서 그리로 가야만 한다. // 이 김도 짐도 없이/ 모두의 가슴속에 / 개선 (凱旋)의 환희가 주야로 샘 솟는 곳,// 임이 기다리시는/ 그곳, 그곳, 그곳,// 나의 원적지/ 평생을 바쳐서라도/ 그리로 가야만 한다.

(유광열/ 조)

 

오 성스런 민족의 가슴이여, 오 아버지의 땅이여/ 한결같이 침묵하는 어머니는 늘 찾아왔고/ 이미 너의 깊은 곳으로부터 이방인들은/ 그대 최고의 민족을 가져, 모두를 알고 있구나!

(휠더린/ 독일인의 노래)

 

만주는 옛날 우리 땅인데/ 대마도는/ 옛날 우리 관할인데/ 우리 힘 가다듬어/ 우리 땅 다시 삼고/ 오늘날/ 우리 지도를/ 새로 그려봤으면!// 빛나는 한글세대/ 짚신 땅 샛별들이여!/우리 지도 새로 그릴/ 이 엄청난 꿈을/ 순간도,/ 잊지를 말고/ 삼천리 땅 너 넓혀라// 어지간히 짓밟힌 역사/ 시련에 다져 온 힘으로 / 그 무슨 오랑캐도/ 그 어떤 강도라도/ 샛별힘/ 콱콱 물리쳐/ 대한조국 빛내리// 이천 년대 새 임자로/ 샛별 낳을 샛별힘은/ 십자가 바라보며/ 짊어진 우리 조국/ 이 세계/ 으뜸 나라로/ 이루고야 말겠지.

(오동춘/ 샛별의 힘은)

 

가슴에/ 꽃을 안고/ 그 이름을 지켜 왔다. //어둠의/ 아픔을 털고/ 다시 본 얼굴들아.// 한마음/ 태양을 우러러/ 어인 길이 다를까

(이한용/ 조국)

 

조국의 상실 이상 가는 슬픔은 없다

(에우리피데스/ 메데아)

 

눈 속에 핀 흰 두견화를 만날 때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속삭이며/ 우리들은 저마다 하나씩 백두산이 되어갔다.

(정호승/ 백두산을 오르며)

 

아아, 깨물어도/ 비린내가 나지 않을 만큼/ 환장하게 어여쁜 한반도 사람들이여/ 먼 바다의 물결이 모두 우리 사랑일 때/ 먼 하늘의 새들이 모두 우리 그리움일 때/ 먼 강기슭의 풀잎들이 모두 우리 몸부림 일 때/ 아아, 우리여 우리들 목숨의 흰 옷자락이여/ 이제 우리는 생사람의 나라로 나라로 가자/ 이제 우리는 생삶의 나라로 가자.

(김준태/ 오라, 참목숨, 참살림, 참역사여!)

 

행동으로써 조국에 봉사하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이요, 말로만 봉사하더라도 멸시를 받을 일이 아니다.

(살루스티우스/ 카틸리네)

 

내 붉은 만리포의 해당화 되어/ 내 그리운 금강산의 갈대꽃 되어/조국의 무덤 속에서도 결코 잊지 않았다는/ 이 눈물밖에 오직 드릴것이 없사오나/ 지금은 아득히 피의 강은 흘러/ 휴전선포 피에 젖어 흐느끼나니/ 압록강을 건너는 철새가 되어/ 백두산을 날으는 기러기떼 되어/ 내 새벽 별빛으로 너를 불러 보리라/ 내 새벽 바람으로 너를 안아 보리라.

(정호승/ 또 하나의 조국)

 

 

설 교 노 트

 

국가와 민족이 사는 길

렘5:1-6

 

서론

역사적으로 한 나라나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이면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옛날 소동과 고모라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유황불 세례를 받아 멸망했거니와, 여기 예루살렘 성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을 받으리라는 경고를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정치적인 차원에서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나라와 민족의 흥망 성쇠의 원인을 규명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나 민족이 흥하고 망하는 원인은 정치를 잘하고 잘못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가 부흥하고 쇠퇴하는 데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을 세 가지로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사모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할 때 하나님을 찾아 만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9편 2절에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하나님을 찾아 만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사명을 바로 수행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길이 하나님을 바로 찾아 만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사명을 바로 감당하는 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길이 사는 길입니다.

 

2. 하나님에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발견한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인생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길은

(1) 먼저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아는 길입니다.

나 자신이 착하거나 의로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들은 착각이 론 사람들입니다. 이는 참으로 가증한 위선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겸손하고 정직한 사람들입니다.

(2)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거짓말한 죄, 내가 도적질한 죄, 내가 음행한 죄, 내가 살인한 죄 등을 깨달아 하나님께 고백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만 죄가 아니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죄들을 자백해야 죄 사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3) 공의와 진리를 추구하여 실천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길이 바로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워지고, 진실해지고,정직해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은 이와 같이 공의와 진리를 추구하여 실천하는 한 사람 때문이라고 하신 말씀에 주목해야 되겠습니다. 이는 정치적인 차원이나 경제적인 차원에서가 아니고 종교적인 차원에서 찾아보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공의와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길이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결론

우리는 이 시간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에 대해서 두 가지를 알아보았습니다.

(1)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길이고

(2) 하나님에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임은 다른 사람보다 나 한 사람의 책임이라는 진리를 명심하십시다.

 

 

기독교와 애국

롬9:1-5

 

서론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와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것보다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복음 전도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는데 그것은 애국심이 불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기독교와 애국의 성서적 근거

(1) 예수께서 애국하셨습니다.

주님은 온 인류를 구원코자 오셨지만 멸망당할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울으셨습니다(눅19:41).

(2) 선지자들이 애국하였습니다.

모세를 비롯한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애국 애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국자와 함께하십니다.

(3) 사도들이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이 애국에 불탔고, 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사도들이 자기 백성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키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2. 기독교의 애국 방법

구약의 선지자들은 국가와 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했는데 대한민국이 일제의 압박 속에 신음할 적에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민족적 슬픔을 호소하였습니다.

예레미야를 비롯한 많은 선지자들이 기울어져 가는 국가와 민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의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애국자들이 있었는데 그중 기독교인들은 나라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3. 애국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정의의 편이십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애국한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며 그들을 돌보시고 결국은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불의한 자를 심판하셔서 그들이 패배하도록 만드십니다. 애국의 결과는 결국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심으로 모든 것을 온전히 해결하여 주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노아와 롯의 때처럼 물질과 정욕에 눈이 어두운 불의한 백성들이 니느웨 시민들처럼 회개하고 주께로 나와야 합니다.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나라의 민족의 문제를 방심하지 마시고 오직 기도의 파수꾼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선배님들이 얼마나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는가를 살펴보고 이 위대한 유산을 거울 삼아 더욱 애국 애족하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마6:31-34

 

서론

오늘의 설교 제목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명제를 그대로 채택하여 몇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문 33절은 주님의 지상 명령인 동시에 무한한 축복을 약속하신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그 나라의 필요성과 귀중성을 강조하신 의미

예수님이 인생에게 가장 필요한 의 · 식 ·주에 대한 것을 구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신 것을 보면 그의 나라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 것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라는 그 본질상 그 백성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 백성들의 삶의 보금자리이기도 합니다. 그 백성들의 영원한 기업이요, 낙원이기도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그 백성들에게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먹고 사는 식량을 생산 공급해 주고,입고 사는 의복감을 생산 공급해 주고, 영원히 자손 만대 거주할 수 있는 거주지와 보금자리를 마련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질상 그 백성에게 책임지고 보호하며, 교육하고 발전케 하며,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지상의 나라와 하늘나라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두 나라를 아끼고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2. 그의 나라의 의미와 성격

예수께서 구하라고 하신 그의 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역사적인 견지에서 국가의 의미와 성격을 분석해 보면, 나라는 영토가 있어야 성립이 되고, 백성과 법질서와 통치기구가 있어야 성립이 됩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상에도 있고 하늘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모신 나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법질서와 통치가 바로 실행 실시하는 나라를 구하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나라가 진정한 나라요, 완전한 나라요, 영원한 나라로 존재하리라고 믿습니다.

 

3.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의 자세

여기 말씀하신 그의 의는 하나님이 바르다고 인정하시고 적당하다고 인정하시는 사상과 윤리의 기준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요, 복음을 받아 믿는 믿음 자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신앙인의 생활 철학은 불신자와 반대로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 생활입니다. 현실 위주가 아니라 내세 천국 중심 생활입니다. 육신 위주가 아니라 영혼 위주의 생활입니다. 물질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 중심 생활입니다.

 

결론

이러한 사람의 생활의 결과는,

(1) 염려가 없는 삶입니다.

(2) 두려움이 없는 삶입니다.

(3) 평안하고 담대한 삶입니다.

모든 것을 얻어 풍부한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와 애국의 길

눅19:41-44

 

서론

우리가 성경을 통해 역사를 볼 때 성경은 그 민족과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었고, 또 그 삶의 여하에 따라 복도 주시고 심판도 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위대한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애국 애족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는 권력 앞에 아부하지 않고 항거했으며, 불의의 세력에 대해 도전하였습니다 또한 때로는 지도자들의 부도덕하고 불의한 사생활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도전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볼 때 우리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인류의 구주이시지만 예수님이 나시고, 자라신 육신의 조국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조국 예루살렘이 불의와 죄로 말미암아 얼마 있다가는 망할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시며 벳바게 언덕에서 소리내어 우시는 애국의 울음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애국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1. 진실하게 사는 길입니다.

오늘의 시대는 어떻게 보면 양심의 부재시대입니다. 그래서 양심을 운운하는 사람을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고지식한 사람 정도로 여기는 시대요, 자신의 번영을 위해서는 자기 양심쯤은‥‥ 하면서 당신을 속이고 진실치 못하게 사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또한 진실한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의 길인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라를 위해서 큰 일을 못해도 나라에 손해되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그저 맡겨진 일에 진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너무나 소극적이고 평범한 이야기같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진실하게 사는 것, 전국민이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므로 범죄하지 아니하면 틀림없이 그 백성은 잘사는 백성이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4장 34절에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진실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된 기독교인들은 진실해야 하는 것이 성별된 성도의 증거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자신의 주어진 자리에서 진실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애국의 길은 하루 속히 우리 민족을 복음화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의 간절한 민족을 향하는 소원 한 가지는 자기의 골육 친척들이예수를 믿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바울과 같이 내 민족이 어서 속히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하는 것이 애국의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생각하면 우리 민족은 155마일 휴전선 북방이 무신론 유물주의자들의 공산 집단이 기회만 있으면 한반도를 공산화시키려고 도사리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정말 어서 속히 전민족이 복음화되어 예수로 말미암아 정신무장을 해야만 하겠다고 하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정신력이야말로 역사의 주권자가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민족 전체가 복음화되어 예수 믿는 신앙으로 무장만 되어진다면 밀려오는 공산당 세력은 문제가 없는 줄로 믿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변하였거니와 네 눈에 숨기웠도다" 이러한 주님의 심정을 가지고 이 민족과 죽어가는 심령들을 보며 울어질 수 있기를 바라고, 울다가 은혜를 받아 눈도 밝아지고 입도 열려져서 내 민족 하나라도 건져내어 어서 속히 복음화하는 참된 애국하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먼저 진실하게 사십시다. 나라를 위해서 큰일하겠다는 생각보다 내게 맡겨진 일들을 성실하게 사람이 보거나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 앞에서도 부끄럼이 없이 진실하게 사는 것이 애국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민족 복음화가 나라를 구하고 애국하는 길입니다. 다시 한 번 벳바게 언덕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며 우셨던 예수님의 애국의 충정을 가지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겠다는 복음화 대열에 너도 나도 뛰어들어 내 나라가 만세 반석 위에 세워지고, 여러분은 자손 만대 한국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자의 애국심

히11:24-32

 

서론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신앙의 용장들은 위대한 애국지사이기도 하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서, 기드온은 미디안에게서, 드보라와 바락은 가나인에게서, 삼손은 블레셋에게서, 입다는 암몬에게서 민족을 구출하였습니다. 사무엘, 다윗도 여기 신망의 용사인 동시에 애국자이었습니다.

이들의 애국심이 어떻게 발휘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민족과 나라를 위해 기도함

모세는 민족을 위해서 항상 기도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 앞에 홍해가 가로놓였을 때에도, 물이 없어서 백성이 불평할 때에도, 또는 아말렉과 싸울 때에도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도 민족과 조국의 부흥을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파사에서 예루살렘 성의 황폐와 큰 환난 중에 있는 조국의 백성들을 위하여 울며 기도하기를 쉬지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 민족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신앙 중심의 애국심은 우선 기도로 나타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2. 우상 타파와 하나님 공경을 주장함

그들은 백성들에게 참으로 복을 받으려면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섬기하고 항상 부르짖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엘리사는 갈멜산상에서 하나님과 우상을 경하여 섬기는 백성들을 책망하고 그날에 바알과 아세라 등 우상 숭배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별하였습니다. 그밖에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등 모든 선지자들이 다같이 모든 우상과 잡신을 섬기는 미신을 온전히 타파하라고 항상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날도 우상은 많습니다. 나무, 돌, 금속으로 만든 우상도 많고 그밖의 물질의 우상, 탐심의 우상, 섹스의 우상, 온갖 허영의 우상 들등이 있습니다. 우상을 타파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것이 민족이 잘되는 지름길입니다.

 

3. 회개와 공의를 부르짖음

성경의 애국자들은 죄를 책방하며 회개하라고 항상 외쳤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라고 하면서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고 했습니다(겔18:30).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스스로 씻으며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악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고 외쳤습니다. 또한 공의를 행하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합니다(신16:20). 공의를 행하는 백성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애국자들은 민족을 위하여 눈물로 호소하고 그들의 피와 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저항하고 투쟁했습니다. 또 평화시에는 교육, 봉사,사회 절화 개혁 운동 온갖 건설 사업에 힘썼습니다.

 

결론

우리 신자들은 어떠한 자세를 취할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깨어서 파수꾼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항상 자유, 안보, 평화, 통일에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단결하여 경제 문화 각 방면으로 발전하여 국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하며 국민총화를 저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데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민족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도록 적극 노력하고 민족과 조국을 눈물과 땀과 피로 지킵시다.

 

 

기독교의 구국관

왕상18:30-40

 

서론

성경을 읽어보면 나라와 민족이 난국에 처하였을 매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 그 나라와 민족을 구출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하였던 역사적인 사전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 원인을 알아보면 첫째, 하나님의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지상 명령이고 둘째, 하나님의 사랑들의 본분과 의무이고 셋째, 이길이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의 길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난 사건을 알아보면 모세는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 냈고 다음 에스더는 앗수르에서 하만의 음모에 의해서 멸망 직전에 놓였던 유대 민족을 구출해 내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정신은 이와 같이 애국· 애족사상과 구국 구민의 사상인 것입니다. 현재 국내외 정세가 불안과 위기 의식이 고조되어 가는 난국에 직면한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한국 교회는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며 나아가서는 무엇을 해야 되며 또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본문을 통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난국에 직면한 이스라엘의 형편

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이스라엘의 역사적 배경은 어떠하였습니까?

(1) 종교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국가와 민족이 하나님을 저버리고 가나안 민족의 토착신인 바알신을 수입하여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민족과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였습니다.

(2) 정치적인 측면에서 아합 왕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다 잡아서죽이려는 종교 탄압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바른 종교와 바른 신앙인들을 탄압하고 박해하는 나라는 위태로워지는 것입니다.

(3) 경제적 측면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 죄악과 참 종교와 바른 신앙을 탄압하는 이스라엘 국가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3년6개월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는 한재로 말미암아 가난은 물론 기아와 기갈 상태엔 깊이 빠져 다 죽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사경에 직면한 이스라엘 민족은 회개하지 않고 계속 완악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나타나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2. 바알신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1절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민족들의 심리 상태는 하나님을 좇으려고 하니 아합 왕이 박해가 두렵고 바알을 좇으려고 하니 신앙 양심이 괴로운 입장이라 기로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정신적인 지주가 무너지고 윤리적인 규범마저 상실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풍랑을 만난 배와 같이 좌표도 방향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나라와 민족을 구출하는 구국관은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신학적인 측면에서 종교 개혁운동이며, 신앙 혁신 운동이며, 죄와 사망에서 해방 운동입니다. 이는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반드시 있어야 할 운동입니다. 이유는 이 운동만이 나라와 민족이 난국에서 구원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3. 바알의 제단을 헐어버리고 하나님 섬기는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본문 30절에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상 숭배는 정신적인 면이나 윤리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서 허례 허식이요, 낭비 중 낭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같이 우상 숭배나 우상 섬기는 제단들이 없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섬기는 성전들이 많이 건설되어야 합니다. 여기 엘리야가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였다는 것은 신학적인 측면에서

(1)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을 받는 첩경입니다.

(2) 민족의 낡고 부패한 요인을 모두 제거해 버리고 새롭게 하는 혁신의 길입니다.

(3) 비참한 기근과 기아에서 구출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나라와 민족이 부흥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운동을 실천하기 위하여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850명 대 하나로서 갈멜산상에다가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기도하여 불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결론

최후의 무기는 기도였습니다. 여기 기도 응답으로 불이 제단에 임한 사건은

(1)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증거입니다.

(2) 하나님만이 참신이시라는 증거입니다.

(3) 하나님은 최후 승리를 보장해 주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약 속

성 경 활 용

1.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방법들

(1) 무지개를 증거로

(창9: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 라

(2) 언약을 세워

(창17:4)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3) 예수를 통하여서

(행13:23)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2. 하나님의 약속의 특징

(1) 다 이루어진다.

(왕상 8:56)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2)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한다.

(롬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3)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4) 영원한 생명에 이른다.

(요일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 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5) 거짓이 없다.

(딛1:2)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

데

(6) 미쁘시다.

(히10:23)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3. 하나님의 약속하신 내용

(1) 성령

(행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2) 복음

(롬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약속하신 것이라

(3) 성도

(갈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4) 계명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5) 영원한 생명

(요일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6) 새 하늘과 새 땅

(벧후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7) 유업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8) 생명의 면류관

(약1:12) 이것에 옮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9) 후사

(엡3:6)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에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4. 약속을 받은 자의 자세

(1) 예수로 인하여 심문받는다.

(행26: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라

(2) 의심치 않는다.

(롬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호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3) 성취를 확신한다.

(롬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4) 믿는다.

(갈3:22)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5) 경건에 이르도록 연습한다.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6)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깨끗케 한다.

(고후7:1)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관련원어풀이

1. ejpaggevllw 에팡겔로-

(1) 예고하다, 선포하다, 약속하다.

(갈3:19)

(2) 하려는 것에 대해 예고하다, 약속하다.

(막14:11, 벧후2:19)

(3) 고백하다, 주장하다.

(딤전2:10)

 

2. proepaggevllw 프로에팡겔로

앞서 알리다, 앞에 약속하다.

(롬1:2)

 

3. ejpaggeliva 에팡겔리아

(1) 통지, 예고.

(딤후1:1, 요일1:5)

(2) 약속함, 주어진 약속.

(행23:21)

(3) 약속된 일, 축복, 성약,

(눅24:49, 행1:4)

 

4. ejpavggelma 에팡겔마

악속, 선고, 약속 그 차체.

(벧후3:13)

 

5. sumfwnevw 숨포-네오-

(1) ∼와 어울리다, 합치되다.

(눅5:36)

(2) 조화를 이루다, 동의하다, 합의하다.

(마18:19)

설교예화자료

파괴될 뻔한 가정

 

심한 알콜 중독에 걸린 남편이 돈만 생기면 몽땅 술을 마셔버리기 때문에 집세는커녕 가족들의 생활도 말이 아닌 어느 가정이 있었습니다.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남편이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마다 찾아가 보았으나 알콜 중독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가정을 지켜오던 부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여 남편에게 아이를 데리고 나가겠다며 이혼 선언을 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된 남편은 부인에게 사정했습니다

"여보, 내 힘으로 안 되지 않소. 한 번만 봐주구려."

그래도 부인은 이제 지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면서 헤어지기를 고집했습니다. 하는 수 없어서 남편은 교회에 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술중독에서 놓여나게 해달라고 기도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오니 부인은 짐을 꾸려서 마구에 내놓고는 남편이 집에 들어가도 본체만체 했습니다. 부인과 자식을 한거번에 잃게 된 남편은 다급하여 자기 침실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앉아 침대를 부여잡고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외면했던 저는 죽일 놈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전 알콜 중독에 걸렸는데, 이 알콜 중독이 가족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나의 인생은 파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을 리가 만무합니다. 저를 알콜 중독에서 놓여나게 해 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하고 고함을 치며 기도하는데 어느 새 그의 기도는 자기 나라의 말이 아닌 이상한 말로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자 뱃속의 창자가 꼬이는 듯 하더니 커다란 덩어리가 속으로부터 올라오면서 한참 동안 입에서 군침과 더러운 물을 토해 내었습니다. 그리고나니 속이 시원하면서 하늘을 날으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는 알콜 중독에서 놓여났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응접실로 나가자 부인이

"흥, 이젠 완전히 미쳤버렸군. 방 안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를 다 하고." 라며 비양거렸습니다.

"여보, 그게 아니오. 나 이제 새 사람이 되었어. 알콜 중독에서 벗어났단 말이오. 이제부터 술은 입에 대지도 않을께."

"당신 술 안 먹는다는 맹세를 몇 번이나 했어요? 너무 많이 속아서 이젠 금주란 말을 들어도 신물이 나요."

"여보, 이번엔 진짜란 말이오. 진짠지 가짠지 며칠 지내보면 알 것 아니오?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요."

그의 애원이 하도 간절하므로 부인은 며칠을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사흘이 지나도 정말 남편이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이젠 완전히 알콜 중독에서 놓여났습니다. 남편이 변화되어서 새 사람이 되자 그 가정은 다시 웃음꽃이 피게 되었다고 합니다.

 

 

약속은 약속이다

 

어느 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켄터키에서 온 육군 대령과 함께 마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 육군 대령은 주머니에서 위스키 한병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링컨에게 한 모금 마시라고 권하였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만, 사양하겠소. 대령, 나는 위스키를 마시지 않는다오."

잠시 후에 대령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그중 한 대를 링컨에게 권했습니다.

"아니오. 고맙소. 대령."

그리고는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얘기 하나를 해 주고 싶소."

"어느 날, 내가 9살 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나를 침대 곁으로 부르셨다오. 몸이 매우 아프셨소. 어머니는 말씀 하시길 '에이브야, 의사 선생님께서 내가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단다. 나는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내가 죽기 전에, 평생 동안 위스키나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해다오.' 나근 그때 어머니께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드렸소. 그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약속을 지켜 왔다오! 당신은 내가 그 약속을 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시오? "

그 대령은 링컨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저는 각하께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깨뜨리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각하께서 여태까지 하신 약속 중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만일 제가 어머니께 그와 같은 약속을 하고, 당신처럼 그것을 지급까지 지켜왔다면 지금쯤은 천 달러 정도를 절약했을 겁니다. 그리고 현재의 저보다는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거짓 기도

 

오랫동안 앓고 지내면서도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도 약을 사먹을 수도 없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하지 않으면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하였으므로 그는 고민 끝에 신령님께 기도를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신령님, 제가 이렇게 앓아 누워 있으면 저희 가족들은 어찌합니까! 신령님, 제발 저의 병이 낫게 도와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소 백 마리를 신령님께 바치겠습니다. "

농부의 지극한 기도에 감탄한 신령님은 곧 그의 병을 낫게 했습니다.

그러나 농부에게는 신령님과의 약속을 지킬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농부는 걱정이 되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고민만 하였습니다.

"좋아, 그렇게라도 하자."

마침내 좋은 죄가 떠오른 농부는 무릎을 치며 크게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밀가루를 빚어 소 백 마리를 만든 후,

"신령님, 약속대로 당신께 소 백 마리를 바치옵니다. " 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농부의 거짓 약속에 단단히 화가 난 신령님은 농부를 골탕먹이기 위해 농부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속을 지키다니 갸륵하구나, 내 너의 정성에 감복하여 은 백냥을 줄 터이니 내일 아침일찍 바닷가로 가거라."

농부는 너무 기뻐 잠도 못 자고 깨어 있다가 아침 일찍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농부는 바닷가에 숨어 있던 해적들의 손에 의해 먼 나라에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그때 해적들이 받은 농부의 몸값이 은 백방이었던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입법가든 혁명가든, 평등과 자유의 두 가지를 약속하는 자는 공상가가 아니면 사기꾼이다.

(J.W. 괴테)

 

지켜지지 않았다고 하는 약속의 절반은 애당초부터 약속도 아니 되었던 것이다.

(J. 헤이/ 짐 블루드소)

 

인간은 행동을 약속할 수는 있어도 감정은 약속할 수 없다. 자기를 속이는 일 없이 영원의 사랑을 맹세하는 인간은 애정의 표시를 영원히 약속하는 것이다.

(F.W.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무책임한 약속이 좋은 방침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팔고 다닌다든가 거짓말하는 것이 편리할지도 로그고, 경솔하거나 순진한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약속 역시 화풀이 할 줄을 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일리노이 주 지사 출마시의 선거 연설)

(A. E. 스티븐슨)

 

갖바치 내일 모레. <*약속한 날짜를 자꾸 미룬다는 말>

(한국 속담)

 

자기가 입에 올린 말이면, 그 발에 충실하고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열성과 진실로서 약속한 일을 행동에 옮기어야 한다.

(장사숙)

 

사람들은, 약속을 어기지 않는 것이 양자에게 다같이 유리할 때, 약속을 지킨다.

(솔론/ 아나카르시스에게 한 말)

 

약속을 잘하는 사람은 잊어버리기도 잘한다.

(T. 풀러/ 잠언집)

 

용기 있는 사람은 모두 약속을 지키는 인간이다.

(P. 코르네유/ 거짓말쟁이)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결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 * 약속이란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는 뜻-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내일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는 뜻도 된다)

(나폴레옹 1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출이나 중요한 도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약속을 어겼을 때에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정도는 도덕의 표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연기/ 생활 · 제도 · 교육)

 

당신은 꿈꾸셨던가, 저 빛나고 아름답던 날들을/ 그 영원한 약속 이루고자 그대 오길 그날을

(C.P 보들레르/ 성 베드로의 배신)

 

약속처럼 하기는 쉬우나 이행하기 힘든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약속을 사르트르의 말을 빌어 자기 구속이라고 이름한다. 일단 남과 약속한 일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그것이 혹시 법적 책임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도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만큼의 짐은 남는다.

(신일철/ 무안송)

 

우리는 기대감에서 약속을 하고 공포심에서 약속을 지킨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위약(違約)은 미련의 상(相)이다. <*약속 위반은 우유부단한 탓이라는 말>

(일본 속담)

 

함부로 약속을 하는 사람은 그 실행을 무시한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약속이 정의에 가까우면 그 말은 실행할 수가 있다.

(논어)

 

약속이란 어리석은 자가 뒤집어 쓰는 올가미다.

(B. 그라시안 이 모랄레스)

 

약속과 파이의 껍질은 깨뜨러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J. 스위프트)

 

약속과 마작의 외피는 쉽게 부서지는 것이다.

(J. 스위프트/ 교양 있는 회화)

 

찢긴 당신의 몸뚱이, 그 어마어마한 무게가/ 당신의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당신의 피와 땀이/ 창백해져 가른 이마를 따라 흘렸을 때,/ 당신이 만일 앞에 표적처럼 드러나게 되었을 때// 그때 당신은 꿈꾸고 있었는가, 빛나는 먼 날을,/ 영원한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이 태어난 날/ 순한 당나귀를 타고 꽃들과 나를 가지를/ 뿌리고 깐 길과 길을 밟고 가던 날

(보들레르/ 베드로의 부인)

 

슬프고 잔학한 세기는/ 성자를 슬퍼하는 성자 속에 낀 선한 사람들로/ 쓸쓸한 순례의 길을 가게 하고 있다. / 이 사람들에게 주의 거룩한 약속으로/ 영원한 기쁨이 있게 하소서.

(만조니/ 수난)

 

닭울음 소리 그쳐/ 베드로, 예루살렘을 걷는다/ 약속된 빚일진대/ 약속된 목숨일진대/하늘보며/ 묵묵히 손에 쥔 십자가/ 서러운 사연 첩첩한 골목을 돌면/ 꿈 속의 그 나라

(김윤택/ 닭울음 소리)

 

목마른 4월/ 저리도록 애타는 가슴에/ 어김없이 찾아와/ 약속의 땅을 꽃 피우는/ 믿음의 꽃이여!

(임춘남/ 부활꽃)

 

그때 당신은 꿈꾸고 있었는가, 빛나는 먼 날을,/ 영원한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이 태어난 날/ 순한 당나귀를 타고 꽃들과 나뭇가지를/ 뿌리고 깐 길과 길을 밟고 가던 날

(보들레르/ 베드로의 부인)

 

아픔을 통해 나를 찾으시는 "기쁨"이여/ 당신을 향해 나는 마음을 낱을 수가 없나이다. /비 온 뒤 무지개를 보며 주신 약속을 되새기고/ 부활의 아침에는 눈물이 없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마데슨/ 태초에 하나님이 사랑하셨다)

 

약속은 태산처럼 해 놓고, 실천은 두더지 둔덕만큼 한다.

(C.H. 스퍼전/ 농부의 초상)

 

약속은 최소의 사람이 할 때 가장 지켜질 가망이 있다

(G. 채프먼/ 헤로와 리안데르)

 

그리고 이제 운무는 엷어지고 별안간 '약속하신 땅' 전부가 새 처녀처럼 찬란한 빛으로 그의 눈에 나타납니다/ 목욕에서 갓 나온 여자처럼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푸르게!

(클로델/ 송가)

 

그렇다면 무엇에 의뢰하면 좋은가? / 사제의 약속을 믿을 수는 없으니/ 나는 관계 없는 사람에게 의견을 구해야 하는가?

(나폴레옹/ 어록)

 

네가 약속 시간에 온다면 나는 그 전부터 행복해지고 안절부절 못할테니까. 그러나 아무 때나 온다면 나는 몇 시에 마음을 곱게 치장해야 할지 영 알 수가 없잖아.

(A.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적에게 대해서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그대의 눈빛은 이승은 손가락 끝/ 불을 밝힌다/ 그래 불이어야지/ 두번 다시는 눈물 뿌리지 않을/ 구름 같은 약속/ 그 허무한 뿌리의 끝까지 태워버린/ 불이어야지

(이병창/ 갈보리의 노래)

 

우리에게 남은/ 단 하나의 고백만은/ 영원히 아름다운/ 약속 안에 살아 있다.

(신동집/ 표정)

 

배신과 반역의 무리/ 죽음의 회색바람을 일으켜도/ 꼭 오셔야 했던/ 큰 발걸음/ 그 약속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정연덕/ 지금도 오고 계시는 당신)

 

오랜 약속보다 당장의 거절이 낫다.

(덴마아크 격언)

 

추운 바람 속에서 별들은 흐느끼고/ 꽃은 꺾여 찬 거리에 흩어졌으나/ 나는 너의 운명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정호승/ 새벽눈)

 

어디서고 건강하고 손잡고 더러는 먼곳에 눈도 주며 하루에 하루씩 그만 한 사이로 무너지지 않는 약속이게 하여지이다.

(석성일/ 님께 아뢰는 글)

 

우리들은/ 정답게/ 바다 저쪽에/ 가자고 했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여기를 빠져 나가자고/ 약속하였네/ 당신은 언제나/ 빠리. // 나는 상아해안이 좋아/ 희망봉이 좋아/ 남미가 좋다고/ 말했네.// 아아/ 그 약속을!/ 약속만을 해 놓고서/ 악마는 우리들을 갈라 놓았네.// 이제 당신은/ 돌아오지 않네/ 돌처럼 차갑게 가고 누워서/ 이젠 나의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네

(에마 아끼꼬/ 서글픈 약속)

 

며칠째 분뇨 수거차를 기다렸다. 드디어 왔다/ "왜 이리 늦게 오셨어요? 약속을 어기시다니."/ "똥 퍼먹고 사는 놈이 약속은 무슨 약속이야,/ 책상 앞에 앉은 곰이 약속을 해도 했겠지,/ 똥퍼는 놈 똥간 퍼면 되지, 약 속은 왜 해? "/ 분뇨 수거차가 뒤뚱거리며 멀어져 갔다. / 참 시원하다/하긴 약속하고 똥누러 가 본 적도 없고, 변소가/약속된 날짜에 그득해지는 것도 아니다.

(강남옥/ 약속)

 

이제는 떨어지는 꽃잎보다/ 고요히 묻히는 씨를/ 내 오랜 손바닥으로 받는다// 될 수만 있으면/ 씨 속에 묻힌 까마득한 약속까지도·

(김현승/ 전환)

 

약속은, 약속을 하는 사람 수에 반비례하여 속박한다.

(T. 드 퀸시/ 어느 영국 아편상습자의 고백)

 

해 놓은 약속은, 미지불의 부채이다.

(R.W 서비스/ 샘 먹기의 화장)

 

약속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뮈세/ 신을 향한 희망)

 

주여, 당신은 크신 사랑으로 약속하셨나니/ 드높으신 이름을 지닌 오직 한 분/ 우리의 구주 중보자의 이름에 의하여/ 당신을 향해 외치는 자에게 귀 기울이겠다 하셨습니다.

(릴케/ 내 눈을 감겨 주십시오)

 

신의 정상에 선 것은/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 모세./ 그 눈동자는/ 거룩한 약속의 땅을 보며 움직이지 않는다./ "주여, 이제 당신의 약속을 이루소서,/ 당신은 약속의 말씀을 깨뜨렸던 일이 없습니다. "

(본회퍼/ 약속의 성취)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고 당신이 말하신/ 평화의 약속에 합당한 살을 살게 하소서.

(콘라느 힐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땅값도 오르지 않는 보도 블럭 사이/ 약속의 다른 말도 없이/ 쬐그만 풀꽃 하나 피었구나/ 샛노란 자은 입술 가만히 역고/ 외등처럼 피었구나.

(정희수/ 풀꽃을 위하여)

 

장사꾼같이 약속하고 군함같이 갚는다.

(T. 풀러/ 잠언집)

 

비통 속에 있는 사람과의 약속은 가볍게 깨진다.

(J. 메이스필드/ 야생 백조)

 

많은 약속은 신용을 해친다.

(호라티우스/ 서간집)

 

여긴 우리의 소생할 약속과 치솟을 사랑의 보금자리‥‥‥

(석용원/ 오월, 수목, 어머니)

 

강물 저 편에/ 무지개가 떴습니다/ 다시는 벌하지 알겠다는/ 약속이지요.

(이성교/ 임의 환상)

 

바람 따라 나섰다가/ 다시 약속 보채는 물레되어/ 제 자리에 멈춘 바로 그날/ 나는 더욱우울해 지고

(김명지/ 그 우울한 날)

 

그제 내 고독은 더욱 굳은 순금이 되어/누군가의 손에서 천년이고 만년이고/ 은밀한 약속을 지켜주든지

(김현승/ 고독의 순금)

 

 

설 교 노 트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약속

창15:1-7

 

서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특히 전쟁에 승리하고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축복을 밖은 후에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시면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 후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본문 4-5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어 그 후사로 통하여 많은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같게 하리니(창13:16)"라고 하셨는데 그 약속의 이행인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은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본문 6절에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자신을 믿는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귀한 것입니다. 구약시대 성도들도 메시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만 의로워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는 것입니다(롬10:17).

 

3.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7절에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누구이신가를 알려 주시는데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이끌어내신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영생도 약속하셨고 상급도 약속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고 오래 참았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려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3∼18) 고 하였습니다.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창29:15-30

 

서론

사람은 평생토록 남을 속이고 또 타인에게 속고 사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를 속였으나 외삼촌에게 보기좋게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자기를 속였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속인다는 것은 약속을 해 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 라헬을 아내상기로 약속받았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자기 집에서 칠 년 간 일을 하면 야곱이 좋아하는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주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계약은 지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체결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과 약속한 것을 교묘하게 어겼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악순환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인 것은 현실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2. 약속은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 20-23절에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 가겠나이다 라반이 그곳 사람을 다 보아 잔치하고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대로 안 되었다는데 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칠 년 동안을 기쁨으로 일하였습니다. 사람은 속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속는 사람이 잘못이 아니고 속이는 사람이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믿고 일해야 합니다. 물론 바울 사도는 속지 말라고 부닥을 합니다(고전15:33). 아담 내외가 뱀에게 속아서 죄를 짓고 비참하게 된 것을 알기 때문에 속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도 속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찌하여 나를 속였습니까 하면 그 억울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하여 주실 줄 압니다.

 

3. 라반은 고의적으로 속였습니다.

본문 25-26절에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 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 라반이 가로되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전적 라반의 잘못입니다. 계약 파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이는 사람을 좋아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야곱이 속은 것은 일차 책임이 라반에게 있고 그 다음에는 야곱에게 책임이 있는 겁니다. 사람은 행한 대로 받는 만고 불변의 진리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야곱 자신도 아버지를 계획적으로 속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반의 계획적인 속임에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진실하게 살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야곱은 라반에게 나를 속이심이 어찜이냐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야곱에게만 있는일이 아니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남을 속이지 아니하려고 애를 써야 하겠으며 속지 아니하려고 노력도 해야 할 것입니다. 억을하게 속는 일도 있지만 내가 남을 속이고 또한 속임을 받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하게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

창46:1-7

 

서론

야곱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과 함께 그가 애굽의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가족들을 데리고 오라는 기백 소식을 접하고 보니 기쁨을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애굽으로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애굽에 가는 길을 인도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인도하셔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1. 가는 길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 3-4절에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 가겠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과거에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본 적이 있어서 지금 하시는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2. 애굽에 가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시는 말씀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도 도와주시겠지만 그곳에 가면 큰 민족을 이루어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포로들에게도 희망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저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렘29:4-7)"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포로도 아닌 자유민으로 애굽으로 이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큰 민족이 되게 하신다고 하신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믿을 만한 약속인 것입니다.

 

3.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하나님의 백성을 끝까지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약속하시면 결코 변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그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시면 결단코 변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는 큰 안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히6:13-18). 그러므로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믿고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믿는 자의 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선민들이 가는 길

수3:1-6

 

서론

보통 우리 인생을 정의하여 말하기를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인생은 이 세상에 출생하여 죽을 때까지 길을 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인생이 가는 길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야 할 미지의 새 길이 평탄한 길인지 험산준령인지 모릅니다. 또는 성공의 길인지 실패의 길인지도 모릅니다. 또는 행복스러운 길인지 불행스러운 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다만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와 신앙과 생명의 길로 전진해야 됩니다.

 

1. 선민이 가는 길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애굽에서 나와 험한 광야 길을 거쳐이제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 복지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 선민들이 가는 길도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복된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말은 유명한 주경학자인 "빠빙" 박사의 말과 같이, 네 가지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실성을 확신케 하고, 성경의 진실성을 확신케 하고, 역사적 사실을 확신케 하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미래의 축복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함께하사 보호하여 주시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수1:5에 하나님의 보호하는 길은 안전한 길이요, 평안한 길이요, 환희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이 함께하사 승리하게 하시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수1:5에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는 길은, 적을 정복하고 영토를 쟁취하여 영광을 누리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복지를 획득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수11:3에 "발바닥으로 밟은 곳을 다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발붙일 한치의 땅도 없이 유리하던 유목민이었으나 이제는 요단강 건너가 가나안 복지를 저들의 영원한 영토로 차지하고, 자손대대로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선민들이 가고 있는 이 미지의 새 행로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하나님이 보호하사 승리하게 하시고 마침내 영원한 기업을 누리는 길입니다.

 

2. 선민이 가는 길은 새역사를 창조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복지를 점령한 후 민족의 새역사를 창조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뽑아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팔레스타인에 심어 놓으신 역사적인 섭리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상을 숭배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제일 미워하십니다. 역사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가 민족은 거의 망하였습니다.

(2) 윤리와 도덕이 타락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도덕이 타락한 민족이 망하지 아니한 경우도 거의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노아시 대는 홍수로, 롯시대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심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성도덕도 위험 수위를 넘는 듯 싶어 걱정이 됩니다.

(3) 인간적으로 존재 가치를 상실한 민족이라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면서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되면 이 세상에 살아야 할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여기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서 새역사 창조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말씀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새세계를 창조해 나아가는 주역을 담당했고 낡고 부패한 윤리를 타파하고, 새로운 윤리관을 정립해 나아가는 주역을 담당했고

상실한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 주역을 담당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뽑아 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복지로 이민시키신 역사적인 섭리임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결론

선민들이 이러한 역사적인 길을 갈 때 어떠한 자세로 행진을 했습니까?

(1) 제사장은 법궤를 메고 앞장 섰습니다.

(2) 일반 대중은 성결하게 하고 진행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모시고 거룩한 길을 갔다는 말입니다.

(3) 선민들은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고 믿음으로 행진하였습니다. 이 믿음으로 가는 길이 승리의 길입니다.

 

 

붉은 줄을 달아 놓음

수2:21

 

서론

여리고 성을 정탐하러 들어간 두 사람을 그 성에 사는 기생 라합이 숨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탈출시킬 때 서로 약속한 내용이 있는데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달아 놓으면 이스라엘이 여리고에 진입할 때 그 집안에 있는 라합의 가족들을 구출하겠다는 것입니다.

붉은 줄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 약속은 지켜졌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붉은 줄의 비밀한 뜻

붉은 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속죄의 피를 예표합니다. 여호와께서 생명, 구속, 정결케함에 관하여 이스라엘을 가르침에 있어서 사용하신 빛은 언제나 붉은 빛이었습니다. 이것은 핏빛을 뜻합니다.

일찍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게 될 때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그 집 장자가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출12:1-13).

이때에 중요한 양의 피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피를 예 표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5:7). 이와 같이 중요한 구속의 핏빛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흐려지지 않고 전승되어 왔습니다.

라합은 정탐들의 지시대로 즉시 실행하였으니(21절) 이것도 그의 순종하는 믿음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2. 창문에 매단 붉은 줄

라합은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달았습니다. 이 창문은 두 정탐꾼이 탈출한 창문이었습니다. 라합의 집이 마침 성벽 위에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창에서 줄을 매어 달아 내리우는데 그 창문이 성벽 밖 쪽으로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성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문을 통과할 필요가 없이 바로 성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산으로 가서 3일 간 숨어 있었기에 탐색하는 관리들이 허탕을 치고 돌아갔습니다. 그후에 그들은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3. 라합의 신앙

우리는 여기서 라합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그녀는 이스라엘 민족이 침입해 올 때 이미 그들이 요단강 건너편에서 행한 일들을 잘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참신인 것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모험을 하면서까지 정탐꾼들을 숨겼다가 탈출시킨 것입니다. 만일 에 잘못되어 그 일이 적발되었다면 자신의 목숨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인데도 자기 목숨을 걸고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은 확신에 찬 믿음입니다. 만약 그런 확신이 없었다면 결코 그런 생명을 내건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합은 또 정탐꾼들과의 약속대로 즉시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침입할 때에 온 가족이 집안에 모여 있어서 죽음을 면하고 살아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라합이 약속을 이행함으로 가족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만약 창문에 붉은 줄을 달지 않았다면 그녀와 가족은 역시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사람을 향하여 하신 약속은 결코 변함이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사41:8-16

 

서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축복의 약속을 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우주의 창조자요 지배자이시며 섭리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앞날이 어둡고 캄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약속이심과 동시에 어려움이 꽉 차 있는 초조한 세상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놀라우신 약속이하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무엇입니까?

 

1. 보호의 약속입니다.

우리의 주위를 살펴보면 늘 위험이 따름을 알게 됩니다. 경제상태는 계속 어려움이 거듭되고 정신없는 사람들은 소동을 일으키고 요란하게 하려고 덤빕니다. 생활의 위협도 없지 많은 데다 심각하게 여기는 공해는 우리들의 목숨까지도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고는 빈번하고 살인기계는 거리를 질주합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병마들은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어서 우리들을 두렵게 하여 식당의 식사도, 이웃과의 악수마저도 주저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이 모든 것들이 네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시91:7에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창15:1에 "두려워 딸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공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를 굳게 믿고 살아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평생을 힘있게 산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도, 애굽에 있을 때에도, 모리아산의 훈련도 감사함으로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신실한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관계의 불변성을 약속하셨습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변하기 쉽습니다. 어제의 동업자가 내일의 원수가 되기 쉽고 오늘 가까웁게 지내던 친구가 내일 떠나가버리는 쓸쓸한 삶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는 불변한 것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불변의 속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변한다는 것은 몰랐다가 알기 때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도 우리의 추함도 다 아시고 택하셨습니다.

비록 지금 실수할지라도 그 약속을 인하여 보호하여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실 것이요(요13:1), 원수들이 침해하면 막으시고 쫓아주실 것이요, 검은 구름이 밀려오면 흩어 물리쳐 주실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3. 승리케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로 삼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이 새로운 타작기계로 삼으신 즉 태산도 무너지고 작은 산은 가루처럼 만들 수 있는 것을 확실히 믿읍시다. 열왕기 7장에 보면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여 크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성문 어귀에 쫓겨나 살던 네 사람의 문둥이가적진으로 항복하러 들어갈 때 놀라운 이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아람 사람들에게는 큰 병거와 군대와 말소리로 들리게 하였으므로 다 도망갔던 것입니다. 쫓겨난 문둥이, 쓸모없는 문둥이들에게도 하나님의 역사가 임할 때 놀라운 승리를 가져온 것 같이 오늘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능력주실 때엔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히 믿게 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도우시고 인도해 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우신 관계를 절대로 지키시면서 붙들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사 힘있게 승리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을 화실히 믿고 전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최초의 약속

창3:15

 

서론

"보라 내가 큰 기쁨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는 이것은 아담의 타락한 후손들에게 구세주를 보내주겠다는 첫 번째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에 나타난 약속으로부터 시작하였고 이것은 아브라함 때까지 모든 경건한 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1. 약속의 필요성

(1) 타락의 실제성

유혹:여기서 하나님든 불만스런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될 것을(하나님과 동등하게 될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 아담과 하와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는 것, 즉 그들이 비록 월등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과 같게 된다는 것은 큰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죄:"하와가 그 과일을 취하여 먹고 또한 그의 남편에게도 주니라"에 나타난 한 범죄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복잡하고도 미묘한 범죄의 특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창조주에 대한 감사도 없으며 그들의 자손들이 타락하든 말든 관심도 없습니다. 그렇게도 복잡한 죄의 본성이 그때까지 다른 누구에 의해서도 이 땅에 전해진 적이 없었습니다. 오직 마귀의 배신과 반역만이 그것을 만듭니다.

(2) 타락의 발생

인간의 타락은 그 성격이 분명하여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는 자는 그들의 부인하는 행위자체가 곧 타락을 입증하는 것이 됩니다. 이교도들은 타락을 고백하고 그것을 한탄스러워 합니다. 그들은 부패가 전인류에게 만연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근원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계시해 주기 전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알 수 없습니다.

 

2. 그 약속의 의미

(1) 뱀의 후손

뱀의 후손이란 마귀와 그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여자의 후손인 주 예수께서는 그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였습니다. 죽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정사와 권세를 가진 자인 마귀를 정복하셨습니다.

(2) 여자의 후손

여자의 후손은 주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령으로 육체를 입으시고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그의 순종과 죽으심은 인간의 허물을 구속하셨고 영원한 의를 가져다 주었으며 인간들의 마음에 새로운 본성으로 역사하시고 그것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것입니다. 즉, 인간들을 지배하는 뱀의 권세와 주권을 멸하신 것입니다.

 

3. 약속의 성취

(1) 그 약속의 의미

이 약속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안에서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즉, 여자의 후손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단을 이기셨을 때, 그리고 뱀의 후손인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갈보리에서 패배시켰을 때 그 약속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2) 적용

이 약속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전체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약속에 의하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는 영원한 적대갈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으로 난 자들은 영으로 난 자들을 계속해서 박해하게 됩니다. 이 적대감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기 이전의 모든 세대에 줄곧 계속 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적대감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계속 불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초대 교회의 역사에 이 사실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적대감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종말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개인적으로 성취됩니다.

모든 신자들 안에는 두 후손이 자리잡고있습니다. 즉,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속에 생명을 얻게 되었을 때 마치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임신했을 때 그들이 뱃속에서 싸우는 것을 느낀 것처럼 그러한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의 마음의 태 속에서 은혜와 육체의 본성이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은혜가 승리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타남 그 약속은 성도의 견인과 승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믿는 자를 알며 그에게 의탁한 것을 그가 끝까지 지킬 줄을 압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그의 약속의 성취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와 개인 생활에서, 그리고 우리가 장자의 교회에 이를 때까지, 의로운 자의 영이 완전해지기까지, 우리의 하늘 아버지 곧 크신 하나님 앞에 이를 때까지 이 승리의 체험을 날마다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

고후 7:1

 

서론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기독교인, 약속의 내용, 축복받은 악속의 열매, 약속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하는 책임이나 의무라는 주제 아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의 소유

(1) 약속을 가지는 특별한 은혜

하나님의 귀중한 약속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말로 다할 수 없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2) 약속의 소유에 대한 설명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증표, 즉 그리스도의 희생의 열매,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의 선포, 우리의 믿음과 소망의 터전,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소망에 대한 지시와 격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위로하시는 데 쓰는 도구, 장래의 축복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라고 생각합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

(1) 영의 축복에 대한 약속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43:25).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요14:1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두려움에서 건지실 것입니다(사41:1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능히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실 것입니다(고전10:13).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빌1:6).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히13:5).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사단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롬16:20).

(2) 육의 축복에 대한 약속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지켜 주시며(시121:7, 8), 우리에게 좋은 음식을 먹여주시며(시37:3), 우리를 다시 살려 영생을 얻게 하신다고(요6:40) 악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의 열매

(1) 힘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죄에 밖서 의무를 이행하는 데 충분한 힘을 줍니다.

(2) 승리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의 영적 원수인 세상과 육과 마귀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힘으로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3) 성실성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잘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한 약속을 거짓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4) 보상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순종에 대한 충

분한 보상을 보장해 줍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결론

하나님의 약속들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고, 그 약속에 따라 살며, 그 약속을 영원히 유산으로 삼으십시오. 젊은이도 노인도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그 가르침을 자신에게 적용해 보고, 그것에 부끄럽지 않게 살며, 모든 행동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나 인간을 향해서나 언제나 책망받을 것이 없는 양심을 가지십시오.

약 자

성 경 활 용

1. 약해지는 것에 대한 고찰

(1) 마음

(겔16:30)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그리 약한지

(살전5:14)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2) 육신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3) 율법

(히7:18) 전엣 계명이 연약하여 무익하므로 폐하고

(4) 양심

(고전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5) 믿음

(롬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약해지는 이유

(1) 의심으로

(롬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 금식으로

(시109:24)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3. 약한 자에 대하여 성도가 취할 자세

(1)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

(롬15:1)우리 강한 자는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2) 약한 자들 도와야 한다.

(행20:35)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은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3)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전8:9)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4) 약한 자를 위해 애타해야 한다.

(고후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5) 약한 자를 안위해야 한다.

(살전5:14)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관련원어풀이

1. hl;j; 할-라-

원래의 의미는 "문지르다"이다.

(1) 갈아지다,매끄럽다,힘이 마멸되다, 허약하다.

(삿16:7, 사57:10)

(2) 고통당하다.

(잠23:35)

(3) 병들게 하다, 괴롭히다.

(신29:21)

(4) 병들게 하다.

(미6:13)

(5) 슬프게 하다.

(잠13:12)

 

2. vL;j' 할라-쉬

약한 사람.

(욜3:10)

 

3. lv'j; 하-솰

쇠약하거나 지친 사람들.

(신25:18)

 

4. [r'K; 카-라

(1) 굽다, 구부리다, 무릎을 꿇다.

(사45:23)

(2) 자신의 무릎을 꿇다.

(에3:2)

(3) 숙이다, 굴복시키다.

(시17:13)

(4) 누르다, 억압하다, 고통을 주다

(삿11:35)

 

5. #f'[; 아-타프

(1) 덮다, 가리다, 씌우다.

(시73:6)

(2) 약해지다, 쇠태해지다.

(시61:3)

(3) 소모되다, 지치다.

(애2:11)

(4) 약하다, 쇠잔하다.

(창30:42)

 

6. hp,r: 라-페

(1) 느린, 나태한, 무기력한.

(삼하17:2, 사53:3)

(2) 연약한.

(민13:18)

 

7. &r' 라크

(1) 부드러운, 여물지 못한.

(창18:7)

(2) 연약한, 견고하지 못한.

(삼하3:39)

(3) 섬세한, 치밀한.

(신28:54, 56)

 

8. ry[ix; 차-일-

(1) 적은, 작은.

(사6O:22)

(2) 젊은, 나이 어린.

(창19:31)

(3) 경시된.

(시119:141)

 

9. lD" 달

원래의 의미는 "매달린 것"이다.

(1) 입술의 물,

(시141:3)

(2) 약한, 힘 없는, 무기력한.

(삼하3:1)

 

10. ajsqenevw 아스데네오-

(1) 약하다, 무능하다, 견고하지 않다, 병들다.

(마25:39)

(2) 신앙이 약하다.

(롬4:19)

(3) 종교적, 도덕적인 연약.

(롬14:2)

(4) 가난하다, 모자라다.

(행20:35)

 

11. malakiva 말라키아

원래의 의미는 "부드러움"이다.

연약, 허약, 병.

(마4:23, 9:35)

설교예화자료

쥐와 뱀과 족제비

 

캄캄한 밤중이었습니다.

곡식을 찾아 창고 안을 드나들던 쥐들이 깜짝 놀라 도망을 쳤습니다.

"뱀이다, 뱀. 빨리 도망치자!"

몇 번이나 뱀에게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는 쥐들은 잽싸게 몸을 피해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어휴, 깜짝이야 하마터면 잡힐 뻔 했잖아!"

쥐들은 한숨을 푹 쉬며 이마의 식은 땀을 닦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나 새앙쥐 한 마리를 덥석 물고 사라졌습니다.

"이번에는 또 족제비냐"

"아, 우린 정말 살 수가 없어. 이래저래 당하기만 하니‥‥‥‥

쥐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배고픈 쥐들이 먹을 것을 찾아 부엌으로 뚫린 구멍을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소리일까? " 하며 살금살금 소리나는 곳으로 가 보니 뒤뜰에서 뱀과 족제비가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뱀과 족제비가 싸움을 하는 구나."

우르르 몰려온 쥐들은 평소 자기들을 괴롭히던 뱀과 족제비의 싸움을 통쾌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못된 놈들, 싸우다 둘 다 죽어버려라."

쥐들은 신이 나서 재잘거렸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물고 뜯으며 싸우던 뱀과 족제비가 물러서서 구경하고 있는 쥐들을 보고는 싸움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쥐들을 덥쳐 마구 잡아먹었습니다.

 

 

강자

 

세상에는 약하지만 강자(强者)를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모기는 사자를 두려워하게 하고, 거머리는 코끼리를 두려워하게 하고, 파리는 전갈을 두려워하게 하고, 파리잡이 거미는 매를 두려워하게 합니다.

아무리 크고 힘이 센 자라도 반드시 절대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주 약한 것이라도 어떤 조건이 맞으면 강자에게 이길 수가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약자의 송곳니는 그 성실성이다.

(마다가스카르 속담)

 

작은 나뭇가지 부드럽고 유연한 한‥‥‥작은 힘과 강도(强度)로도 그것은 굽어질 수 있다.

(T. 인절런드/ 말 안 듣는 아이)

 

유함은 삶의 줄기이며, 강견함은 죽음의 길이니라.

(회남자)

 

부드러운 빗방울이, 딱딱한 대리 석을 뚫는다.

(J. 릴리/ 유퓨즈)

 

거만은 약자의 위로의 수단이다.

(L. 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첫째, 부지런하라! 그리고 힘차게 인생을 살아나가라! 약자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비참한 일이다.

(J. 밀턴)

 

이제 늙은 사자가 죽었으니까, 당나귀마다 사자를 걷어찰 수 있다고 생각한다

(S. 파, 보즈웰/ 존슨 전)

 

운동 선수는 대체로 그의 후원자보다 힘이 세다. 그러나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센 사람한테 전력을 다해 싸우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성 제롬/ 서간집)

 

우수한 자는 열등한 자의 천우(天佑)이다. 그는 눈먼 자의 눈이며, 약한 자의 힘이며, 무방비한 자의 방패이다. 그는 넘어진 자에게 굽힘으로써 똑바로 서고, 다른 사람들을 들어올림으로써 일어난다.

(R.G. 잉거솔/ 자유론)

 

약자 중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신의 허약함을 잊지 않는 자다.

(스웨덴 속담)

 

손가락에 긴 반지는 닳아서 가늘어지고, 떨어지는 물방울은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

 

인간을 사회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은 인간의 약점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의 공통적인 연민의 정이다. 애착은 모두 무엇인가 부족한 것의 증거이다.‥‥이렇게 하여, 우리의 연약함에서 우리의 덧없는 행복이 생긴다. 참으로 행복한 존재는고독한 존재이다. 신만이 절대적인 행복을 향유한다.

(J.J. 루소/ 에밀)

 

약한 자들은 두려울 수 있다. 그들은 강하게 보이려고, 사납게 애쓰기 때문이다.

(R. 타고르/ 개똥벌레)

 

병든 자는 건강한 자의 가장 큰 위험이다. 강한 자에 게 해를 끼치는 것은 가장 강한 자가 아니라 가장 약한 자이다.

(니체/ 도덕 계보학)

 

자연은 약자를 강자에게 복종시킨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약자의 양보는 공포의 그것이다.

(E. 버크)

 

우리는 자기가 갖고 있는 것과 정반대의 결점을 갖고 싶어 한다. 약자이면서 강한 체 자만하는 따위이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약자는 솔직할 수 없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약한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부러지는 것이고, 하나는 구부러지는 것이다.

(J. R. 로우얼)

 

약자를 친구로 삼기보다는, 적으로 삼는 것이 더 좋다.

(J. 빌링즈/ 경구집)

 

천박한 자는 행운을 믿고‥‥ 강한 자는 인과관계를 믿는다.

(에머슨/ 처세론)

 

버들가지는, 약하나 다른 목재를 묶는다.

(G. 허버트/ 명궁)

 

약자는 보호받기를 바라고 종속한다. 인간을 겁내는 사람들이 법률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L. 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약자의 미움은 약자의 우정만큼 위험스럽지는 않다.

(L. 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빛보다 어둠 짙은 세상에 안겨/ 바보처럼 숨어서 울지도 못하는/ 약자의 설움을 가없이 여겨 주십시오.

(이해인/ 당신이 왕이라면)

 

예수여, 내 영혼의 고백을 들으소서./ 약한 자는 나요, 강하신 분은 당신이오니/ 당신의 팔로 굳게 하시고 도우셔서/ 내 영혼으로 잠잠히 눕게 하소서!

(알버트 미들레인/ 용서)

 

세상에서 물보다 유약한 것은 없으나,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나은 것이 없는 것은, 물의 유약함을 대신할 것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없거니와 실행하는 사람이 없다.

(노자)

 

약자는 언제나 늘 하늘만 사모하다 죽는 법이다.

(손창섭/ 인간동물원)

 

끊임없이 오관을 진달래빛 피가 돌고 도는 인간‥‥ 감동이 격할수록 눈물이 방울거리는인간은 조화(造化)의 신이 지배하는 어느 동물이나 물체보다도 너무나도 아름다운 약자임에 틀림없다.

(천경자/ 流星이 가는 곳)

 

독 틈에 탕관(湯罐). <*약자가 강자 틈에 끼어 곤란을 당함을 비유하는 말>

(한국 속담)

 

약질이 살인 낸다. <*약한 자가 뜻밖에 엄청난 일을 한다는 말>

(한국 속담)

 

만족은 우자(愚者)나 성자(聖者)의 주관적 소유가 아니면 약자의 기대뿐이다.

(한용운/ 만족)

 

님이여, 당신은 봄과 광명과 평화를 좋아하십니다. / 약자의 가슴에 눈물을 뿌리는 자비의 보살이 되옵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얼음바다의 봄바람이여!

(한용운/ 찬송)

 

짐승 같은 자의 비위 맞추고자/우리가 사랑하는 자는 모욕하고 우리를 구박하는 자에게 알랑거렸다. // 비굴한 사형집행인처럼/ 억울하게 멸시받는 약자를 슬프게 했다.

(C.P. 보들레르/ 자정의 심문)

 

자식들! 자식들이 저 욕심만 채우는 거지간에 가 붙고 쓸개에 가 붙고 한다고 그들은 우리만 욕하지만 당장 주먹 약한 놈이 그럼 어쩌란 말여‥‥‥

(이무영/ 농민)

 

슬픔으로 서 있는다 해도 희망으로 걷는다 해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내 마음에 알려주 십시오./ 은혜는 강한 사람에게만 내려지는 것이 아닐진대/ 병들고 약한 사람에게 내려져도 좋을 것입니다. /특히 당신은 약한 자의 창조자이시오매/ 약한 자를 부축해 주시겠지요 내 예수 그리스도여!

(휼스호프/ 예수님은 우셨다)

 

약한 자를 돕는 것만이/ 올바른 나의 본분이다.

(원결/ 춘릉행)

 

너무들 인색치 말고/ 있는 사람은 병약자한테 시량(紫糧)도 더러 노느고

(서정주/ 선덕여왕의 말씀)

 

한 마디의 말,진정한 마디의 말을!/성령이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하라"고 속삭였어요./그러나 그대가 일어나 용기를 주고/ 봉사와 사랑을 바쳐야 했던 노약자는/ 축복 받지 못하여 힘 없이 앞으로 지나갔습니다. / 말씀이 그대에게 왔을 때/ 그대는 주님에게서 멀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 H. 와트슨/ 멀리 있습니다)

 

미련하고 연약하여/ 자꾸 넘어지옵니다/ 반석 위에/ 세우시고/ 늘 붙들어 주옵소서

(홍안의/ 티끌 인생)

 

주여/ 내가 어둔데서/ 지금 헤매입니다/ 앞에 길이 막히고/ 답답할 것 뿐일 때/ 누가 나를 도와서/ 위로 받게 하리까/ 약한 나를/ 주 손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홍안의/ 상한 갈대의 기도)

 

 

설 교 노 트

 

영적 고아

요14:15-24

 

서론

오늘날 예수를 믿는 성도 가운데 "영적 고아"적인 성도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머나먼 거리에 있어서 마치 버림받은 것처럼 살고 있으며,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고아와 같이 허약하기 짝이 없고 생활의 용기와 결단력조차 박탈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미래도, 소망도 없이 자학과 열등의식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삼위일체되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그와 교제하며 그의 말씀 안에서 살 수 있다면 우리는 결코 영적 고아가 아닙니다.

 

1.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는 항상 동행합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서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때부터 보혜사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앞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날마다 실망하고 절망할 적마다 다시금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지도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험준한 세상을 나 혼자 고아처럼 산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성령께서 보혜사가 되심으로 그가 보호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므로 사는 것이니 만큼,내 속에 주의 성령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을 의심없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했습니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이요, 우리 성도는 가지라 했는데, 가지가 원둥치를 떠나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은 살아 있는 것같이 온통 세상을 휘젓고 다니지만 그런 심령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아와 같이 불쌍한 신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서 예수 안에서 사는 것이 축복임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3.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보혜사 성령과 같이 하는 사람은 성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참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찾았기 때문에 고독하지 않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사랑의 대상이 없어서 고독해 울다가 자살해 버리는 사람이 많은 이사회 속에서 진정으로 사랑할 대상을 찾았으니 복받은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성도는 마음에 참평안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결코 하나님 밖에 있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아니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께서는 항상 함께 계셔서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악마를 이기게 하시고,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승리와 용기를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절망과 불가능과 어두움은 이제는 안개와 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광명한 영광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우리 가정 위에, 우리 교회 위에 영원토록 함께 계심을 믿고, 우리는 영적 고아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딸 된 것을 자나 깨나 깨닫고 용기 백배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약할 때 강함이라

고후12:7-10

 

서론

본문 8절에 보면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했고,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은 약하고 힘없는 자에게 더 강하게 역사하시고 그러한 연약함을 통해서 더 큰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우리 인간들은 육적으로 강한 것을 자랑하나 영적으로는 아주 약합니다.

강한 자 같으나 실상은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물질의 번영과 권력만을 바라보고 너무나 자기의 강한 것을 자랑하고 있지마는 그러나 내적으로는 허약한 가운데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강하다고 느낄 때에 그 앞에는 무서운 실패의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나의 건강이나 재산이나 권력이나 지위를 자랑하기 전에 먼저 인간은 아주 허약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적인 것을 자랑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약한 것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에 그 약함 속에서 믿음을 얻어야 되겠고, 약한 중에서 굳고 강한 능력을 받도록 "약한 때 강함이라"는 역리적인 진리를 발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우리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찔리는 가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나 이는 나를 쳐서 너무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고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결코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서신에 보면 그의 부모나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의 아내나 자식에 대한 이야기 역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찔리는 가시 때문에 그는 세 번이나 기도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이었고, 너무 자고하여 교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 찔리는 가시를 주셨다는 응답을 받고 그는 이것을 도리어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시를 피하려고만 합니다 가시를 물리쳐 달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가시를 통하여 놀라운 축복과 번영을 주시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찔리는 가시가 있습니까? 그것을 여러분의 축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참으로 강한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구합니다.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을 찾게 됩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지 못하지마는 약하고 비천한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 가운데서 참으로 강한 힘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약한 존재이지마는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강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우리의 생을 지배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능력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에게 어떤 가시가 있어 나를 찌른다 할지라도 그 가시가 도리어 하나님의 축복의 계기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들은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당하는 가시에 절망하지 맙시다. "하나님이여!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입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겸손해질 때 곧 "약할 때 강함이라"는 능력으로 채워 주시고, 축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그리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부활의 생명이 여러분의 생을 지배할 때에 참으로 강자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고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는 약자의 승리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의 벗

마25:31-46

 

서론

세상에는 약자 동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약자를 무시하고, 약자를 이용하여 자기 유익을 추구하는 실리주의 경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세계는 약자를 동정하기는 커녕, 약자를 무시하고 유린하는 강퍅한 세상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의 벗이되는 것은 주님의 소원이며, 주님을 위하는 일이며 성도들의 본분이며, 장차 상받을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1.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입니까?

(1)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주린 사람들이요, 목마른 사랑들이요, 옷을 벗은 사람들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2) 사회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들이요, 부모잃은 고아들이요, 남편잃은 과부들이요, 자녀없는 무의탁한 노인들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3) 육체적으로 병든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선천적으로 몸의 불구자들이요, 후천적으로 신병으로 병신이 되었던가 현재 건강을 상실하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4) 참 자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감옥에 구속을 당한 자들이요, 압제를 당한 자들이요, 서글픈 노예의 신세가 된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돌아보아 주는 일은 주님을 위한 일이며, 상급을 받을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른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다시 말씀하시기를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지극히 작은 자의 벗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 세상은 큰 사람들과 벗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작은 자의 벗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1) 지극히 작은 자를 도와주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도와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으로 동정해야 되고, 둘째는 말로도 위로 격려하고, 셋째는 물질로도 도와주고, 우리 몸과, 시간과, 노력으로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2) 지극히 작은 자를 도와주는 그 기준은

주님께 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에게 하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빚진 자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작은 자가 원조를 요청하였을 때 주님이 찾아오시고, 내 자신이 그런 입장에 있는 줄 알고, 빚갚는 심정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지극히 작은 자를 도와주는 바른 자세는 무의식적인 봉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봉사를 하고도 생각조차 잊고 있었습니다. 주님을 도와준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조건적인 봉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은, 어떤 이유나 조건부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보상을 바라고 봉사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은밀한 봉사였습니다. 왼손이 모르게 한 봉사입니다. 저들의 봉사는 아무도 모르는 봉사입니다. 심지어는 자기도 모르는 봉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지극히 작은 자의 진정한 봉사자가 되는 것은,

(1) 주님을 위한 봉사요

(2) 천국의 상속을 받을 봉사요

(3) 나 자신의 영생을 위한 봉사라고 하였습니다.

이 귀중한 봉사를 위해서 우리는 동도 애양원에 관심을 가지고 지극히 작은 자의 진정한 벗이 되고 진정한 봉사자가 됩시다.

양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양의 특성

(1) 순하다.

(렘11:19)나는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2) 약하다.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 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3) 돌보는 목자가 필요하다.

(민27:17)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마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2. 양이 필요로 하는 것

(1) 보호

(욥30:1) 그들의 아비들은 나의 보기에 나의 양떼 지키는 개 중에도 둘만하지 못한 자니라

(2) 목자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3) 양 우리

(요10:1)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4) 초장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는도다

(5) 털 깎기

(삼상25:2)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일천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 양털을 깎고 있었으니

 

3. 양들에 주어지는 축복

(1) 여호와는 양들의 목자이시다.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

(시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영혼이 소생한다.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관련원어풀이

1. cb,K, 케베쉬

양.

(창21:27, 민7:15)

 

2. bc,K, 케셉

양.

(창30:32, 레3:7)

 

3. z[e 에-즈

(1) 암염소.

(창27:9)

(2) 염소의 털.

(출26:7, 삼상19:13)

 

4. @;aOx 촌-

떼들, 작은 가축, 양이나 염소.

(창4:2, 출21:37)

 

5. anExo 초-나-

양.

(민32:24)

 

6. ljer; 라-헬

(1) 암양.

(창31:38)

(2) 양.

(사53:7)

 

7. hc, 세

양이나 염소.

(창22:7)

 

8. mhvlon 멜-론

양

 

9. poivmnh 포이멘

(1) 양의 떼.

(눅2:8, 고전9:7)

(2) 제자들의 무리.

(마26:31)

 

10. provbation 프로바티온

양의, 양에 속한.

(요21:16, 17)

 

11. provbaton 프로바톤

(1) 양, 길들여진 유순한 동물.

(마7:15)

(2) 어떤 주인의 추종자.

(마26:31)

 

 

어록·시·묘사

 

죽으러 가는 양의 걸음. <*가지 않으려고 아무리 하여도 억지로 끌려감을 이르는 말>

(한국 속담)

 

양은 살아서 인류에서 젖과 털을 바치고 죽어서는 고기와 뼈와 가죽까지도 송두리째 바친다‥‥양은 줄곧 이리 떼의 침공을 받아왔지만 결코 그것들을 모방하려 들지는 않았다.

(이청담/ 양식과 사명감)

 

양 새끼는 호랑이 가죽을 입어도 늑대를 무서워 한다.

(M.E. 몽테뉴/ 수상록)

 

양치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점은 바로 그들이 고독하게 살며 순수함 속에서 명상의 생활을 하는 데 있는 것이다

(C.V. 게오르규/ 한국찬가)

 

이리 앞의 양.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맨다는 말>

(한국 속담)

 

늑대에게 양을 지키게 한다.

(영국 속담)

 

좋은 양치기의 임무는 양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양털을 깎는 데에 있다.

(수에토니우스/ 황제전)

 

서글픈 생각을 부등켜안고 돌아오노라면 풀밭에 매인 산양이 애잔하게 우는 것이다. 제법 뿔을 세우고 새침하게 흰 수염을 드리우고 독판 점잖은 체는 하나 마음은 슬픈 것이다.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난 영원한 이방의 나그네같이 일상 서먹서먹하고 마음 어리게 운다.

(이효석/ 청포도의 사상)

 

누가 행여 자네보고 양도 없다 할까/ 우글우글 저렇게 삼백 마리나 되네/ 누가 행여 자네보고 소도 없다 할까/ 누렁소만 해도 아흔 마린걸/자네집 양 떼가 저기들 오네 고 숲한 예쁜 뿔을 까딱거리며/ 자네 집 누렁소도 저기들 오네.

(시경)

 

아아 슬픈 가을로부터 담장을 초록색이 되게 하는 봄의 축제 때까지/ 계속해서 집 앞을 지나가는 저 양떼와 같이 내 마음을 경건하게 해 주십시오.

(잠/ 14편의 기도 노래 · 13)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상처/ 뒤틀린 목숨들이 헛된 꿈을 찾아/ 번제의 어린 양은/ 쓸쓸한 울음을 울고 있나니

(이병창/ 십자가 아래서)

 

나는 한 마리의 암산양에게 말을 건다. /암산양은 혼자서 목장에 매어 있었다. / 풀을 먹는 것도 지쳐 가지고, 비에/ 젖어 울고 있었다.

(U. 사바/ 암산양)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한용운/ 군말)

 

우리는 목장에서 놀고 있는 양의 무리와 흡사하다-도살자는 그중의 이것저것을 뽑아 가르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행복한 나날에 있어서도 어떠한 화가 우리의 문명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가 - 병 · 박해 · 전락 · 상처 · 질병 · 발광 ·죽음 등등-을 알고 있는 것일까

(A. 쇼펜하워)

 

우리는 길 잃은 불쌍한 어린 양이다. 매애! 매애! 매애!

(J.R. 키플링/ 패잔병들)

 

산양은 더 예쁘지만 계곡의 양은 더 살쪘다. /그래서 우리는 계곡의 양을 훔치는 것이 더낫다고 생각했다.

(T.L. 피콕/ 엘핀의 불행)

 

하나님 나는 생각에 장기고 싶습니다. 나는 풀밭을 걷고 있는/ 눈처럼 어린 양떼의 떠들썩한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잠/ 14편의 기도 노래 · 10)

 

목동의 미소 지닌 내가 외로이,/ 신비의 양들을, 나의 고요한 무덤들의 흰 양떼를/ 오래오래 먹이고 있을 때는,/ 멀리하라 조심스러운 비둘기들을,/ 헛된 꿈들을, 호기심 많은 천사들을.

(발레리/ 해변의 묘지)

 

'와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은/ 게바에게 이르셨지

(엄창섭/ 기도 · 27)

 

영양(羚羊)을 그대에게 잡아다 주었을 적에는 아직도 눈도 뜨지 않았었다. 그놈들은 사막 안에서의 자유나 수놈의 냄새는 조금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는 그놈들보다 훨씬 더 영리하다. 그대는 그놈들이 무엇을 찾는지를 안다. 그놈들을 완성시키는 것은 널은 들판이다. 그놈들은 영양이 되어 그들의 춤을 추고 싶은 것이다. 시속 13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일직선으로 달아나다가, 마치 이따금씩 모래에서 불꽃이 솟아오르기나 하는 듯이 별안간 껑충 뛰어오르는 것을 맛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만이 그놈들에게 힘에 겨운 일을 해치우게 하고 가장 높이 뛰어오르게 만드는 공포를 맛보는 것이 영양들의 진리라면 '샤칼'이 무슨 아랑곳이 있겠는가! 폭양(暴陽) 밑에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배를 찢어 발기는 것이 영양들의 진리라면 사자가 무슨 아랑곳이란 말인가! 그대는 그놈들을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한다, 그놈들이 향수(鄕愁)에 걸렸다고. 향수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A. 생떽쥐페리/ 인간의 대지)

 

모두 잠이 들어 있었다. / 그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어린 양의 무리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조용히 조용히 뒤척이고 있는/그 소리뿐이었다.

(황금찬/거룩한 밤)

 

제단으로 끌려 간/ 흠 없는/ 숫양처럼/ 단불 위에 살라지는/ 제물이 되었으면/ 뜨거운 피쏟아지고/ 살과 기름 태워져서/ 향내나는/제사되면/ 나 바랄 것 더 없으리

(홍안의/ 흠 없는 제물)

 

양지를 찾아 분명히 어둠 삭이며/ 자라는 한 마리 양이게만 하소서.

(최은하/ 새해 아침의 기도)

 

어린 양아, 누가 너를 만들었는가?/ 너는 아는가,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 네게 생명을주고, 너를 키우고,/ 시냇가로 또한 목장으로 이끌며,/ 너를 부드럽고 폭신하고 빛나는/ 기쁨으로 마음으로 감싸고」 골짜기마다 기쁨을 넘치게 하는/ 그 그윽한 소리를 네게 주었는지?/ 어린 양아,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너는 아는가, 누가 너를 만들었는지? // 어린 양아, 이제 나는 네게 말하리./ 어린 양아, 이제 나는 네게 이르리,/ 그분은 네 이름으로 불리우며,/ 그분은 스스로를 어린 양이라 부른다./ 그분은 순하고 겸손하시다. / 그분은 어린이가 되셨느니라./우리는 어린이, 너는 어린 양,/우리 모두 그분의 이름으로 불리우느니./ 어린 양아,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여라./ 어린 양아,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여라!

(블레이크/ 어린 양)

 

작은/ 두려움에도/ 하늘 쳐다보는/ 양같은 사람들은/ 우리 백성들/ 험한 인생 잘 가도록/새 힘 주시고/ 천국에 이르도록/ 함께 하소서

(홍안의/ 양 같은 백성들)

 

가시에/ 찔린 발 절룩이며/ 잃은 양 한마리 찾아가네/ 심령이 상해도/ 늘 충성하면서/ 주의 일 다하기 소원일세

(홍안의/ 주의 부르심)

 

내 영혼은/ 길 끊은/ 한 마리의 어린 양/ 엉겅퀴의 험한 벼랑/ 벗어날 길 없는데/ 기름진/ 동산의 꼴/ 나 어디서 얻을까/ 애잔한/ 나의 울음/ 빈들에만 퍼지네

(홍안의/ 내 영혼의 순례)

 

어리석은 자는/ 언제나 길 잃은 어린 양

(윤강로/ 달밤)

 

이스라엘 잃은 양/ 어디메서/ 헤메나/ 가시덤불 치솟고/ 엉겅퀴가 나는 곳/ 발에/ 가시찔리고/ 몸에/ 상처 심할 때/ 어느 누가 나가서/ 그를 돌아보겠나// 목자 찾는 어린 양/어디메서/ 헤매나/ 이리들이 날뛰고/ 전갈들이 쏘는 곳/ 몸에/ 살이 찢기고/ 생명 위태로울 때/ 어느 누가 찾아가/ 그를/ 인도하겠나// 길 잃어서 상한 양/ 어디메서/ 헤매나/ 도적들이 빼앗고/ 악마들이 꾀는 곳/몸에/숨이 막히고/ 죽음 가까웠을 때/ 어느 누가 달려가/ 그를/구원하겠나

(홍안의/ 길 잃은 양)

 

길 잃은 어린 양 위해 비탈오르다/가시에 물린 살결마다에/ 솟아나는 고운 피/ 그건 한 송이 눈부신 장미꽃이어요./ 님이 까마귀인 나를 보고/ 하이만 비둘기 되라시면/ 선혈 쏟올지라도/까만 깃 모다 뽑아 버릴거예요.

(엄창섭/ 기도 · 4)

 

내 얼굴은 바람에 쓰리고/ 내 속눈썹은 바람속에 따갑고/ 그리고 잿빛 바위와 같은 양들이/ 내 인간의 허식을 꺾어 주게 하렴.

(L. 맥니스/ 크리스마스 목가)

 

그러나 꽃잎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구상/ 초토의 시)

 

한 마리/ 어린 양/ 그 속죄 양의/ 아름다운/뒤를 따르게 하소서

(박제천/ 새벽 기도)

 

물안개가 번져오는 밤바다에 섰다/ ‥‥눈을 덮어오는 파도는/ 길 잃은 양떼들이/목자없이 싸우는 피울음 소리

(배명식/ 경포대에서)

 

 

설 교 노 트

 

하나님의 양

시100:1-5

 

서론

성경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여 교훈하신 곳이 많이 있습니다.

양은 목자를 떠나게 된 때 길을 잃고 유리하게 되고 외로워지고 사나운 짐승들에게 위협을 당하게 됩니다. 양에게 있어서 선한 목자는 위로자요, 보호자요, 길을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양의 본성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양의 성품은 어떠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온유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온유하다는 말은 성품상 조급하거나 경솔하지 아니한 침착성과 이해와 아량을 지닌 관용성과 무저항적인 내력을 지닌 자비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약자의 윤리가 아니라 최강자의 윤리인 것입니다.

(2) 화평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양의 성품은 둘째로 화평성을 들고 있는데 화평하다는 말은 악의가 없는 착함을 의미하고 질투심이 없는 양보와 욕심을 배제한 동정심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성품이 염소와 반대되는 성품이라고 합니다. 염소는 성품상 거칠고 도전적이고 질투심과 욕심을 지닌 동물이라고 합니다.

(3) 순결하다고 합니다.

여기 양의 셋째 성품은 순결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새 중에는 비둘기가 순결하고 걸어다니는 짐승 중에는 양이 순결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동물은 모두 제물로 등용되었던 것입니다. 여기 순결하다는 말은

① 순수하다는 뜻이요,

② 정직하다는 뜻이요,

③ 진실하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우리 기독 신자들의 갖추어야 할 성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간사하고 거짓되고 위선적인 것은 기독교의 금물입니다.

 

2. 하나님의 양의 자세

목자에 대한 양들이 취할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여 들어야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과 삯꾼의 음성을 가려서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는가, 또는 신앙적인 말씀을 전하는가, 또는 구원에 관한 바른 메시지를 전하는가 분별해야 합니다. 이 목자의 바른 음성은 양의 노정기가 되고 생활의 규범이 되고 신앙생활의 지침과 원칙이 됩니다.

(2) 목자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양은 그가 목자인가 삯꾼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창 목자와 거짓 목자를 분별해서 참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여기 참 목자를 바로 아는 기준은 히13:7에 증거한 바와같이

말이 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가

② 저희 행실이 참 목자다운가

저희 믿음이 본받을 만한가

이 세 가지를 기준해서 참 목자를 알아내라고 했습니다.

(3) 목자를 잘 따라야 합니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여기 따라간다는 말은 목자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운명을 같이 할 각오로 순종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 가지가 양의 입장에서 취할 바른 자세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양의 본분과 임무는 주인의 기대와 요구에 따라서

(1) 좋은 털을 제공해야 됩니다.

(2) 젖을 많이 제공해야 됩니다.

(3) 나중에는 가죽도 제공해야 됩니다.

털을 깎아 바쳐야 새 털이 나고 젖을 계속 짜 바쳐야 새 젖이 납니다. 이를 위해서 양은목장에서 목자를 통하여 좋은 꼴과 생수를 공급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양의 성품과 자세와 임무는 우리 기독신자들이 지니고 지켜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기독 신자들은 하나님의 참 양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요10:16

 

서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23: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양의 목자이십니다. 여기에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고 하셨습니다.

 

1. "우리"는 무엇을 뜻합니까?

우리는 보통 넓은 초장 한 모퉁이에 나무로 말뚝을 만들어 둘러막아 양들이 근거지로 거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든 것이 곧 우리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들이 밤에 편히 쉴 수 있는 건물로 된 양사(羊舍)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이는 교회를 말하는데 양은 우리안에 들어와야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고 우리밖에서는 생명의 보장을 받지 못합니다.

 

2.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양들

이미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은 물론 이미 선택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네들만 구원의 대상자요, 자격자로 자처하는 데서 늘 실수와 범죄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미 선택된 자라면 그 특별한 은혜와 감격하여 특별 감사의 생활을 함으로 선택되지 못한 자들과는 무엇으로 보나 낫게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나은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여서 다른 자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써 일하며,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

이것은 구원받을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본래 이방인들은 손할례당이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의 외인이요, 소망과 하나님도 없던 자들입니다.

전에는 멀리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하였습니다(엡2:11 -13).

 

4.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어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권속이요, 성도들과 같은 하늘의 시민이라고 하였습니다(엡2:18-19). 그런고로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게 되었습니다. 이 한 무리, 한 목자는 역사적, 지역적 모든 공회를 총망라한 교회이며, 양의 대 목자되신 예수님(히13:20)을 머리로 삼는 보이지 않는 교회입니다. 사도신경에서 제창되는 거룩한 공회도 바로 이것을 말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 선한 목자 밑에 같이 자라는 양들은 먼저 온 자나 나중에 온 자의 차별이없이 한 무리니 한 목자를 주인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목자의 말씀에 순종하며, 항상 목자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순한 어린 양

렘11:19

 

서론

"나는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순한 어린 양은 어떤 뜻이 있으며 누구를 가리켜 하는 말입니까?

 

1. 순한 어린 양의 뜻

"순한 어린 양"이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게베스 알루프"라고 합니다. 이것은 길들어 사랑받는 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라비아인들의 풍속인 어리고 순한 양을 어린 아이처럼 귀하게 키우는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식처럼 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렇게 가정에서 고임을 받은 양은 그 가족들이 죽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자습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여 아들딸처럼 귀히 여기고 그 생명을 절대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합니다.

 

2. 예레미야도 순한 어린 양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아나돗 사람들은 자기 고향 출신인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예언하는 선지자가 되어서 활동한다고 하면 자기 고장의 영광이요, 자기네들의 자랑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반대로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다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순한 어린 양과 같이 온유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말이 생겼습니다.

 

3.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양 그대로이십니다. 그러나 여기에 연약하고 힘이 얼어 무고히 끌려가서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순한 어린 양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의 죄를 지고 가신 속죄주 되시는 어린 양이십니다.

속죄의 역사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생각이 있다손 치더라도 똑같은 죄인된 입장이기 때문에 남의 죄는 고사하고 자신의 죄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으로 오셔서 만민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속죄주 어린 양이십니다. 예수님도 고향이신 나사렛 사람들의 배척을 받으시고(눅4:24) 조국 유대인들에게 팔려 로마 총독으로 사형당하셨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순한 어린 양이셨지만 결코 힘이 없음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더 큰 힘을 소유하신 주님이심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순한 어린 양 같은 예레미야는 예수님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