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종합자료백과
양 심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양심
(1) 악한 양심
(고전8:12)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악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2) 착한 양심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히13:18)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3) 깨끗한 양심
(딤전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4) 화인맞은 양심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5) 더러운 양심
(딛1:15)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2. 양심의 기능
(1) 선악을 분별함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2) 천거함
(고후4:2)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 죄책감을 가지게 함
(요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4) 성령 안에서 증거함
(롬9:2)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5) 하나님을 찾게 함
(벧전3:21)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3. 양심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1) 행동할 때에
(행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벧전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2) 음식 먹을 때에
(고전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3) 말할 때에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4) 증거할 때에
(고후1:12)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5) 하나님 섬기는 데에
(딤후1: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관련원어풀이
1. suneivdhsi" 수네이데-시스
(1) 자각, 의식.
(히10:2)
(2) 현재의 생각,지속하는 개념,실제의 인상
(고전8:7, 벧전2:19)
(3) 양심.
(행23:1,롬9:1)
(4) 도덕적 판단의 내적 기능으로서의 양심,
(롬2:15, 고전8:7)
(5) 내적인, 도덕적, 영적 구조로서의 양심.
(딛1:15, 히9:4)
설교예화자료
곤경 끝에 2백만
어느 날 두 사람의 남자가 내게로 헐떡이며 달려왔습니다. 양쪽의 말을 들어보니 한쪽 남자가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대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갚을 날짜가 되자, 빌려 준 쪽이 오백만 원 빌려주었다고 하는 데도 빌린 쪽은 이백만 원밖에 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따로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두 사람을 함께 불러 세 사람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두 사람과 만나서 이튿날 아침 다시 한 번 여기에 오면, 그때까지 내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돌아간 뒤, 나는 서재에 있는 여러 가지 책을 펼쳐 보았습니다. 오백만 원 빌려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이백만 원밖에 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어떤 심리상태에 있는가를 연구했습니다. 물론 증서가 있으면 문제가 없는데, 유태인의 사회에서는 친구들끼리 빌려주고 빌리고 할 때는 증서를 만들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어떻든 나는 이백만 원밖에 빌리지 않았다는 남자는, 전혀 빌리지 않았다고 해도 정말은 똑같지 않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내게로 와서, 오백만 원 빌려주지 않았는데도 오백만 원 빌려주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탈무드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할 때에는 그는 철저하게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 거짓말일망정 자기에게 불리한 일을 조금이라도 말할 경우, 그가 말하는 것은 믿기 쉽다. 그에게는 아직 얼마간의 정직함이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두 사람 모이면 거짓말하는 정도가 가볍게 된다. "
어서 이백만 원밖에 없었을 경우, 이백만 원 밖에 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또 오백만 원을 빌려 준 쪽도 오백만 원을 주었다고 잘못 기억하여 주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백만 원을 당신에게 빌려 준 사람은 대단히 부자이므로, 별로 돈이 필요할 까닭은 없다, 만약 누군가 제3자가 이스라엘에 돌아가야 한다든가, 어떤 이유로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 빌리러 갔을 때 당신이 완전히 갚지 않았다고 하면 제3자에게 결코 돈을 빌려 주지 않을 것이다. 유태인 사이에는 돈은 항상 돌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그래도 당신은 이백만 원밖에 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겠는가 하고 말하자,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예배소에 가서 구약 성서에 손을 얹고 이백만 원밖에 빌리지 않았다고 서약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자, 그는 갑자기 죄송합니다. 자기는 확실히 오백만 원 빌렸다고 실토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양심이라 일컬어지는 하늘이 준 작은 불이 너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도록 힘써라.
(G. 워싱턴/ 도덕적 금언집 . 양심편)
양심이란 손끝의 가시입니다. 빼어 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이범선/ 오발탄)
모든 일에 양심이 없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맡기지 말라.
(L. 스턴/ 신사 트리스트램 샌디)
우리를 마야의 마술에서 때어놓는 것은 양심이다. 양심은 키에프(터키인의 절대적 안식) 의 중기 ·아편의 환각 · 정관적 무관심의 평온함을 흩뜨려 놓는다.
(H.F. 아미엘/ 일기)
타인의 죄를 말할 때마다, 너 자신의 양심을 반성하도록 하라.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양심의 본질은 동조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스"라고 말할 때 양심은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라고 하려면 양심은 그 "노"가 기초하는 바 판단의 정당성에 확 신을 가져야 한다.
(E. 프름/ 건전한 사회)
우리의 양심은, 영원한 진리의 그릇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 생활과 더불어 자라며, 새로운 사회 상황이란, 양심의 근본적인 변화를 뜻한다.
(W. 리프먼/ 정치학서설)
때때로 양심의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E. 카네티/ 말의 양심)
양심이란 안면 신경통 같은 것이며 치통보다도 아프다.
(H. 멜빌/ 백경)
양심의 가책의 시작은,새 생명의 시작이다.
(G. 엘리어트/ 펠릭스 홀트)
옷은 세탁할 수 있지만 양심은 세탁할 수가 없다.
(페르시아 속담)
양심은 현존하는 사회 질서의 개조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의 회전축이 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J. 듀이/ 인물과 사건)
비록 그가 요술 항아리(속임수)나 혹은 판사의 온당치 못한 호의로 사건을 이긴다손 치더라도 자기 양심의 법정에서 사면받을 죄인은 없다.
(유베날리스/ 풍자시)
너의 양심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본래의 너 자신이 되라.
(F.W. 니체/ 즐거운 지식)
양심은 개인이 자기 보존을 위해서 계발한 사회의 질서를 지켜보는 수호신이다.
(W.S. 몸/ 달과 6펜스)
양심이라는 것은 콧수염 모양 나이에 따라 자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양심을 얻으려면 자기 자신을 훈련해야 한다. 즉 양심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키우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그만큼 경험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험과 양심은 별개의 것이다. 경험이 사는 길은 양심을 키우는 거름이 되는 점에 있다.
(D. H. 로렌스)
마음속의 은밀한 속삭임은 자기 혼자서밖에 들을 수 없다. 고독을 느끼기 전에는 사람은양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J. 쿡)
착한 양심보다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것은 없다.
(T. 터서/ 침실을 위한 꽃다발)
양심은 선생활의 증권이며 또한 그 보수다.
(L.A. 세네카)
양심! 양심! 신성한 본능이여! 불편의 하늘의 소리여, 지성 있고 자유로운 한 존재의 확고한 안내자여, 선악에 대한 올바른 심판자여, 인간을 신과 닮게 하는 자여, 그대야말로 인간의 본성의 우수성과 인간의 행위의 도덕성을 낳게 하는 자다. 그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단지 규율 없는 오성(悟性)과 원리 없는 이성의 도움을 빌어서 잘못만을 저지르는 슬픈 특권을 느낄 뿐이며, 그때 나는 하나의 동물일 따름이다.
(J.J. 루소/ 에밀)
모든 자유보다도 양심에 따라 자유로이 알고, 말하고, 또 주장할 수 있는 자유를 나에게 다오.
(J. 밀턴/ 아레오파지티카)
양심은 진정 이성의 맥박에 불과하다.
(S.T. 코울리지/ 자폴라)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매질하며 그 자체가 우리의 형리(刑吏)가 된다.
(유베날리스/ 풍자시)
양심은 우리들의 영혼을 가책하고, 항상 예리한 재난을 떨어 버린다
(유네날리스/ 풍자시)
맑은 양심은 변명이 필요 없다.
(J. 릴리/ 유퓨즈)
죽어갈 때의 양심은 일생의 거짓을 드러낸다.
(보브나르그/ 회상록)
운명은 화강암보다 견고하지만, 인간의 양심은 운명보다도 더 견고하다.
(V.M. 위고/ 석재의 산)
바다보다도 웅대한 광경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다. 하늘보다도 웅대한 광경이 있다. 그것은 양심이다.
(V.M. 위고/ 레 미제라블)
마음속의 재판에서는 죄인 한 사람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유베날리스/ 풍자시)
자녀에게는 황금보다는 양심이라는 훌륭한 유산을 남겨야 한다.
(플라톤/ 법률)
깨끗한 양심은 끊임없는 크리스마스와 같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남의 죄악을 운운하기 전에 네 양심으로하여 속을 들여다보게 하라.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행동하는 자는 항상 양심 이 없다. 관찰하는 자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양심이 없다.
(J.W. 괴테/ 격언과 반성)
의무의 중하(重荷)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양심뿐이다.
(J. W. 괴테)
양심이야말로 스스로 돌아보아 부끄럽지 않다는 자각을 갑옷 삼아 아무것도 두렵게하지 않는 좋은 친구이다.
(A. 단테)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안전치도 않거니와 신중하지도 못하다.
(M. 루터/ 탁상대화)
명예는 밖에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안에 잠기는 명예이다.
(A. 쇼펜하워/ 부록과 추가)
양심이란, 그 사회가 자체의 유지를 위하여 발전시켜 온 규율의 개인적인 보호자이다.
(W.S. 몸/ 인간의 굴레)
선과 사랑만이 하나님의 앞에선 당신의 증인이 된다. 깨끗한 양심만이 당신의 죽음을 두려움 없는 것으로 만든다.
(C. F. 겔레르트)
양심은 다만 항상 침묵이라는 형태로 말한다.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양심의 명령은 운명의 소리이다.
(실리/ 피콜로미니)
인격을 만일 꽃에 견줄 수 있다면, 양심은 그 빛깔이라 할지, 그 향기라 할지? 또 만일 인격을 건물에 비할 수 있다면, 양심은 그 기초라 할지, 그 용마루라 할지, 어쨌든 양심을 떠난 인격을 생각한다는 것은 빛깔 없는 꽃을, 기초없는 건물을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허황한 이야기이다. 양심은 실로 인격의 바탕일 뿐 아니라 그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양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을 발견케 한 참된 지혜요, 빛이기도 하다. 인간을 동물로 더불어 구별짓게 하는 유일의 표지이기도 함은 물론이다.
(김동명/ 장관론)
양심 없는 지식은 인간의 영혼을 멸망시킨다.
(F. 리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정의는 결국에는 종말에 달해야 하는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양심은 영원하며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M. 루터/ 결혼에 관하여)
양심은 영혼의 소리이며, 정숙은 육신의 소리이다.
(루소/ 에밀)
양심은 모든 인간에게 신과 같은 것이다.
(메난드로스/ 단행시)
양심은 일천 명의 증인이다.
(R. 태버너/ 격언집)
양심은 인생의 완전한 해설자이다.
(K. 바드/ 신의 말과 인간의 말)
선한 양심은, 부드러운 베개이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생각과 행동에 통일이 있어야만 인간은 만족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텐데 소위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거추장스런 것이 가끔 머리를 들고 반항을 하는 데는 정말 질색이다. 생각은 분열되고 행동은 둔해진다. 다리를 잘린 도마뱀처럼 행복한 의욕은 팔딱거리기만 했지 전진이 없다.
(김래성/ 실낙원의 별)
양심은 우리 속에 있는 가장 신성한 것입니다.
(O.F.0.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양심을 팔지 말라. 쇠고랑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노예란 누구냐, 돈으로 살 수 있는자가 아니더냐?
(A. 기터먼/ 시인의 속담)
인간이란 자는 자기의 이웃 사람이 양심을 가질 것을 바라고 있어. 그러니까 누구나 양심 따위를 가지면 손해란 셈이야.
(M. 고리키/ 밤 주막)
양심은 우리에게 누군가가 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타일러 주는 내부의 소리이다.
(H.L. 멘컨/ 멘컨 명문집)
양심은 무서운 작은 요정과 같이 낮에는 박쥐처럼 깜박이며 밤에는 눈을 뜬다.
(J. 울커트/ 루이시아드 일가)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를 주는 국가는 그 도덕률에 있어서도 양심과 대화의 자유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제금(提琴)은 곡조가 틀릴 것이요, 몇 개의 현(絃)은 끊어질 것이다.
(N. 와드/ 아가왐의 소박한 구두 수선공)
양심은 영원한 축일.
(영국 속담)
양심은 죄의 고발자이다.
(영국 속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들의 일거 일동을 아는 자가 둘이 있다. 신이요, 즉 양심이다.
(영국 속담)
양심은 인간 속에 있는 신의 출현이다.
(스베덴보리/ 하늘의 비밀)
양심에 물어 부끄러운 데가 없으면 매일이 축제다.
(영국 속담)
미미한 양금의 소리는 청춘과 술에 취하여 고삐를 끊고 날뛰는 왕의 마음을 붙들어 맬 힘이 없다.
(이광수/ 마의태 자)
우리들은 자기들의 양심과 숨바꼭질한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한다.
(A.G. 가드너/ 우산도덕)
누구의 명령 없이 밤중에 찾아와 사람을 깨워 일으켜 제 자신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게 하는 것.
(K. 지브란/ 예언자)
양심의 지상 명령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이러하다. 너의 의지가 명하는 대로 행동하며,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이 되어야하는 규범에 의하여서만 행동하라.
(I. 칸트/ 도덕 형이상학)
양심과 명성은 두 개의 사물이다. 양심은 너희 자신에게 돌려야 할 것이고, 명성은 너희 이웃에 돌려야 할 것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고백)
양심은 간지럼과 같아서 타는 사람이 있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다.
(이탈리아 속담)
나는 항상 공정한 양심의 자유가 인간의 당연한 권리라고 이해해 왔습니다‥‥양심의 자유는 종교를 가지게 되는 첫 단계입니다.
(W. 펜/ 민중의 확인된 오래고 바른 자유)
양심은, 우리의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는 특정한 욕망에 대한 거부의 내적 지각이다.
(S. 프로이트/ 토템과 타부)
도둑놈 제발이 저린다지만 우리(양심이 깨끗한 사람)는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W. 셰익스피어/ 햄릿)
신 앞에 예물을 퇴짜 맞고/ 동생 죽여 설분한 가인// 네 동생 아벨이 어디 있느냐?/ 이 양심을 찌르는 물음에/ 나는 모릅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죄책감은 커녕 시치미를 떼고 말았더니 라.// 그 후로 보복의 악순환이/ 생명 경시를 낳고.
(김시백/ 광야의 소리 · 7)
우리의 단 하나/ 마지막 남은/ 희망은 통일이다// 통일에 맞서는 모든 건 거짓이다‥‥//한반도의 양심이여 돌아보라/ 분쟁으로 지새는 아픔은/ 누구의 설움인데/ 분단으로 덕보는 자/ 그 누구인가? // ‥‥한국의 양심이여 일어나/ 원통한 반세기 녹슬은 그 사슬/ 어영차 끊어 내라//오, 통일/ 온 겨레 고루 사는 길/ ‥‥일그러진 모든 삶 모든 희망/ 그속에 매듭지나니// 타지는 자 누구냐/ 비겁한 자 만이/ 머뭇대는 서름을/ 우리는 뚫자./ 양심은
가자.
(백기완/ 통일의 노래)
양심은 겁쟁이다. 양심이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여, 예방할 수 없는 과오는, 양심이 그것들을 비난할 만큼 충분한 정의를 갖는 경우가 드물다.
(O. 골드스미드/ 웨이크필드의 목사)
양심이란, 엄숙한 취미이다.
(芥川龍之芥 / 난쟁이의 어록)
맑은 양심은 어떠한 고통도 견딜 수 있다.
(T. 풀러/ 잠언집)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것들어 있는 양심만큼 무서운 증인은 없으며, 그것처럼 무서운 기소자도 없다.
(폴리비우스/ 역사)
양심에게 충실하면 평온함을 얻을 수 있다.
(프랑스 속담)
오늘날에 있어서 양심의 자유는 인간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자유일 뿐만 아니라 그 신념을 가능한 한 널리 선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자유로 이해되고 있다.
(J. 스위프트/ 양심의 증언에 관한 설교)
양심의 질식이 자주 되풀이가 되면 곧 양심이 마비되고 말게 되는 것이요, 양심이 마비된 후에는 어떠한 부정 불의라도 기탄없이 감행하게 된다.
(이희승/ 지조)
양심-그것은 누군가 남이 보고 있다고 속삭이는 내면의 소리다 양심,그것은 남들이 모두 즐기고 있을 때 혼자 괴로워하는 것이다. 양심, 부모는 자식이 양심을 가지도록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양심밖에 갖지 않도록 길러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아이는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양심, 생활이 넉넉한 사람의 취미.
(G. 멩켄)
양심이란 처음에는 강자를 움추리게하기 위하여 겁쟁이가 만들어내어 사용하는 낱말에 불과하다.
(W.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인간을 비추는 유일한 램프는 이성이며, 생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양심이다.
(H. 하이네/ 독일의 종교와 철학)
선의 영광은 그들의 양심에 있지,사람들의 말에는 없다.
(L.N. 톨스토이/ 독서의 수레바퀴)
그 자신의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람은 타인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받을 경우 이에 저항할 의무가 있다.
(T. 제퍼슨)
사랑이란 양심이 무엇인가를 알기엔 너무도 젊다/ 그러나 양심이란 사랑의 산물임을 모를사람이 누군가?
(J.B. 웨인/ 이중의미의 제 8형)
내가 스물 한 살이었을 때 어떤 현명한 자가 "왕권과 재화는 넘겨줄지라도 너의 양심은 버리지 말라."고 했다.
(A.E. 하우스면/ 쉬롭쉬어의 소년)
조용한 양심은 사람을 그토록 평온하게 만드는데!
(바이런/ 돈 주안)
오, 비참한 양심이여, 참으로 나를 괴롭히는구나!
(W.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처음 배워버린 뜨거운 입맞춤을/ 끝내는 잊지 못해 철마다/ 상처로 점철된 양심의 고뇌를 안고/ 은빛 찬란한 고독의 사막으로/ 날아가는 여심아
(유선곤/ 편지)
당신의 올바른 마음의 전당이 흔들리지 않게 하라.
(W. 셰익스피어/ 심벌린)
양심이라는 벌레가 아직도 그대의 영혼을 쏠고 있다.
(W.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양심이란 작자는 사람을 마음 약하게 해버리는 거야. 훔치려고 하면 꾸짖는다. 중상하려고 하면 야단한다‥‥양심이란 작자는 사람의 가슴속에서 모반을 일으키는 아주 고약한 자야.
(W.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빌라도 앞에 저울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흔들리는 로마의 토대석의 위 보신의 축에서/한쪽은 손때 묻은 은접시 그 위에는/ 위선의 율법을 읽는 바리새인의 침/ 인습의 의식을 관장하는 사두개인의 굽은 손/ 화려하고 묵직하게 장식한 로마 제독의 옷/ 다른 한쪽에는 끄을린 등잔 그 위에는/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을 위해 눈물/ 가난한 자들을 위한 만남/빵과 포도주와 물고기/ 거기에 빌라도는 벌거숭이 양심을 올려 놓는다/ 그러자 은 접시가 뛰며 로마 제독의 옷이 떨어지려 한다/ 덤비며 그는 양심을 바꾸어 놓고 옷을 입힌다/ 크게 흔들리는 저울!
(마쯔다 유키오/ 베드로의 부인)
퀴퀴한 해풍에 날리는/갑자생의 옛 기억/소금비에 저버린/ 벚꽃,/ 변절한 양심
(이승록/ 양심)
내 양심이 썩어서/ 너무 썩어서 흙도 싫어할 때/ 시가 안 된다.
(이생진/ 시가 안 된다)
이 세상이 온통 어두워져/ 모두가 그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할 때/ 홀로 양심의 등불을 켜던/ 외로운 사람을 기억합니까
(서덕석/ 갇혀서 오히려 진실을 말하는)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야/ 가장 아름다운 보석을/ 깎고 또 깎듯이// 가장 날카로운 무기는/ 가장 날카로운/ 양심을 만드는 데에만 쓰인다. // 가장 아름다운 나무의 열매로/ 우리들의 마음을 떠 보시고// 지금은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우리들의 양심을 시험하고 계시는/ 그분은 누구일까? / 역사를 깎고 만드는 그분은 곧/ 누구이실까?
(김현승/ 무기의 노래)
아름답다 큰 사랑은 죽는 법 얼어,/ 기억되어 항상 내 가슴속에 숨어 있어,/ 미처 거츠르는 내 양심을 잠 재우리,/ 내가 괴로운 이 세상 떠날 때까지.
(김소월/ 제이 · 엠 · 에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씀 앞에/ 간음턴 여인을/ 잡아온 무리들// 양심에/ 가책을 받아/ 도망치고 말았다.
(김시백/ 광야의 소리 · 5)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내 양심의 낡은 창가에서/ 더욱 초라한 모습으로 서성이는/ 이처럼 헛된 짓을 나는/ 밤마다 거울을 깨듯 놀라고 있다.
(서정윤/ 화석)
어쩌면/ 사람들은/ 그처럼 사악할까/ 옳은 양심 팽개치고/날조 은폐 일삼으니/ 오 주여/ 우리 마음 깨끗이 씻기소서/ 더러운 영 몰아내사/ 정결하게 하옵소서.
(홍안의/ 사람들아 어찌할꼬)
나는 여기 있다/ 나의 친구 무쑨다여/ 나는 여기 있다/그대와 함께/그대 기쁨의/그리고 그대 양심의 확고한 승리와 함께.
(아고스티뇨 네토/ 나의 친구 무쑨다)
진달래꽃이 떨어졌을 때하고/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왼쪽 배에 칼을 꽂고/4층 옥상에서 떨어졌을 때의 소감을 말하라 한다.
(이생진/ 소감을 말하라 한다)
어설픈 나의 양심/ 미지근한 나의 싸움/양심아 싸움아 너는/ 차라리 참아라 차라리/참는 게 낫다고 참아라
(김남주/ 진혼가)
영혼 앞에 시간의 연대기를 펼치고, 밤의 업적을 눈에 보이게 하고, 양심의 일들을 드러내 보이는 바로 그 짧은 순간, 그것은 미래의 영원한 비밀을 연다.
(K. 지브란/ 첫 눈 마주침에 대하여)
양심이야말로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매수가 안 되는 것이다.
(H. 필딩)
사악한 양심이라는 병은, 세계 모든 나라의 모든 의사로도 고칠 수 없다.
(W.E. 글래드스토운/ 연설)
오오 양심이여! 양심이여! 인간의 가장 충실한 벗이여!
(크라브/ 양심의 투쟁)
"죄인이다"라고 불리는 것만큼 사람의 허영심을 선동하는 것은 없다. 양심은 우리들을 모두 에고이스트로 만든다.
(O.F.0.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양심은, 신이 단 한 사람의 재판관으로서 들어가게 되는 신성한 신전이다.
(F. R. 라므네)
설 교 노 트
참되게 사는 비결
사57:14-21
서론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를 중심해서 참 삶의 비결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참삶이란 우리들이 사람답게 참되게 살아가고 있는 현상을 말하고, 다음은 사람으로 사람답게 행동하고 생활해 나가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고 해서 다 참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바로 사른 것이 참삶이라 고 한다면 그 비결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1.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절에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여 또한 통회하며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합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참삶의 첫째 비결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간들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소망을 제시하면서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비결은
(1)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로 마음이 상하여 아파하는 사람을 가까이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시34:18).
죄로 마음에 통회하는 사람을 권고하사 구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시66:2).
(2)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 하는 마음가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본받아 나 자신을 낮추고(빌2:4- 10),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자가 하나님을 높이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통회하고 겸손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참삶이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나와 고치심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8절에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줄 것이다 그를 인도하여 그와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덜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병들고 길잃은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서 치료를 받고 바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참삶의 둘째 비결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도 인생은 분명히 병들어 상했고, 바른 길을 잃은 양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병든 인생을 치료하여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막2:17).
육신병도 치료해 주셨고
영혼의 병인 죄문제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로서 잃은 양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요10:11)
참 목자로서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영생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고로 참삶의 길은 !
하나님 앞에 나와 치료받아야 온전해지고 인도하심에 따라 진리와 신앙의 바른길로 가는 데 있습니다.
결론
참삶의 비결은
(1) 하나님을 모심이요
(2) 하나님의 치료를 받음입니다.
마치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다는 것과 같이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생은 결단코 존재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인생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그 삶이 바르고 참된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찔림
삼상24:5
서론
사람이 무슨 일을 처리한 후에 그 느껴지는 마음의 자세를 살펴보면 심히 유쾌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평범한 때도 있겠으나, 마음에 찔릴 때가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뱀으로 인하여 마음에 찔려 곧 자백하는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왜 마음에 찔리게 되었습니까?
1. 마음이 찔리게 된 동기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어 피난다닐 때 엔게디 황무지 깊은 굴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울이 공교롭게도 굴 어구에서 발을 가리웠다고 하였습니다. 사울을 찔러 죽이기에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뒤에서 찔러 죽이기를 주장하였으나 다윗은 이를 만류하여 그의 겉옷자락을 베었습니다. 이것은 후에 증거를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단코 해치려는 마음이 없고 다만 자기 결백을 입증하고 강화하려는 증거물을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 마음이 찔리는 다윗
다윗은 일단 사울의 겉옷자락을 베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후회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왕을 해롭게 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마음에 깊이 죄책을 느꼈으니 그만큼 그는 예민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의 양심은 맑아서 작은 죄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정결에 힘썼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 죄가 머리털같이 많다고 고백하였습니다(시40:12).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라고 하던 요셉의 마음씨와 같습니다.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기 형제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린 후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 총무로 있었습니다. 요셉의 용모가 준수하여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요셉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요셉은 거기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 역시 요셉과 같이 바른 양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에 찔리게 된것입니다.
3. 찔린 마음을 토로한 다윗
사울이 겉옷자락이 찔린 것도 모르고 저만큼 물러 갔을 때 다윗은 뒤에서 "내 주 왕이여"라고 하면서 땅에 엎드려 절하였습니다. 이것은 신하로서 왕에게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자신이 왕을 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인고로 해치지 않았다는 것과 자신이 왕을 미워하여 대적하지 않았다는 실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에 감동된 사울은 소리를 높여 울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살피면서 그 마음을 보시고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과연 양심에 추호도 티끌이 없는 깨끗한 마음씨였습니다.
양심대로 살아봅시다
딤전1:18-20
서론
인간에게는 누구나 양심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일에 이 양심을 버리게 되면 이성없는 동물들이나 별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지적하여 양심부재시대라고 하면서 양심을 버리면 할 일도 없거니와 못할 일도 없다고 하면서 이제라도 이 양심을 되찾는 길이 인간의 가치와 지위를 회복하는 길이요, 지금의 국가와 사회를 질서있고 명랑하게 건설해 가는 유일의 첩경이라고 하였습니다.
1. 양심의 근원
이 양심은 누가 창조하였으며, 그 누구에로부터 받아 소유한 선물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양심의 근원은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양심의 창조자도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 양심을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생령"이라는 낱말은 히브리어 원전에 "네페시카야"라고 하였는데 이는 산 영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신학적인 차원에서 이를 인간의 양심과 이성의 원천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인간의 고귀한 영혼이나 양심은 조물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보배요,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양심을 주신 목적은 양심대로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2. 양심의 기능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 양심의 기능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이나 윤리학자들의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혹은 인격과 생활의 주인이라고도 하고, 또는 도덕과 윤리의 기초라고도 하고, 또한 사회 질서의 규범이라고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들이 양심을 저버릴 때 나의 주인을 상실하고 윤리의 기초가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가 파괴되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좀더 보편적인 입장에서 몇 가지 기능으로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양심은 인생의 등불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성경에 눈은 우리 몸의 등불이요, 양심은 우리 인격과 생활의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칸트는 "하늘에는 별들이 있고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다. "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양심대로 살아가면 밝고 명랑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양심은 인생의 올바른 안내자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양심은 우리 인생들의 바른 삶의 좌표와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여 바로 안내하여 주는 기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육자 루소는 "인간의 양심은 인생의 안내자다. "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양심대로 살아가면 인생의 바른길을 갈 수 있고, 바른 생활을 할 수 있고, 올바른 사역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3) 양심은 인생의 엄한 법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에 양심은 "사물의 선악과 행동의 정사를 판단하고 명령하는 기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양심이 항상 우리를 감시하고 경고하고, 징계해 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리겐은 "양심은 정의의 근원이라."고 했고 톨스토이는 "양심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라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양심은 내편이 되어 나를 두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 편에서 나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3. 양심의 유형
성경을 보면 양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 단쇠에 화인맞은 양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딤 전4:2).
이는 외식하고, 거짓말하고, 도적질하고, 살인하고도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2) 죄에 오염된 더러운 양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딛1:15)
이는 희미하고 흐려지고 어두워져서, 양심으로서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3) 청결한 양심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딤후1:3).
이 양심은 중생한 신자의 양심으로서, 밝고 깨끗하고 온전한 양심으로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러한 양심대로 살면
(1) 밝고 깨끗하게 살아갑니다.
(2)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갑니다.
(3) 의롭고 거룩하게 살면서, 사회와 교회의 빛이 되어져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어린이 주일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어린이에 대한 부모의 책임
(1) 기도로 살려야 함
(애2:19)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2) 적에게 포로되지 않도록 해야 함
(애1:5)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3) 굶어 죽게 하지 말아야 함
(애4:4)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가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2. 어린이의 특징
(1) 살이 깨끗함
(왕하5:14)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2) 살이 연함
(욥33:25) 그런즉 그 살이 어린 아이보다 연하여 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3) 하나님 나라를 받듬
(막10:15)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4) 모든 사고가 어림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5) 소화기능이 약함
(히5:13) 대저 적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6) 유순함
(살전2:7)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7) 교육이 필요함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3. 자녀를 교육하는 방법
(1) 여호와 앞에 서게 함
(대하20:13)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2) 주께 안수받기를 원해 데리고 감
(마19: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3)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함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4. 사생자에 대한 내용
(1) 부모가 징계하지 않는다.
(히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2) 이복 형제들이 멸시한다.
(삿11:2)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없다.
(신23:2)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관련원어풀이
1. #f' 타프-
(1) 어린이, 유아.
(창34:29, 출12:37)
(2) 그들의 가족에 따라.
(창47:12)
2. r['n" 나-아르
(1) 소년.
(출2:6, 삿13:5)
(2) 소녀.
(창24:14, 신22:15)
3. ry[ix; 챠-이르
(1) 적은, 작은.
(사60:22, 미5:1)
(2) 젊은, 나이 어린.
(창19:31, 욥30:1)
(3) 보다 적은.
(삿6:15)
4. brevfo" 브레포스
(1) 어린 아이, 아이, 태아.
(눅1:41, 44)
(2) 곧 태어난 아이, 유아.
(눅2:12, 행7:19)
(3) 얼마간 자라난 아이, 소년.
(눅18:15, 딤후3:15)
(4) 기독교 신앙을 받들고 있는 사람.
(벧전2:2)
5. paidivon 파이디온
(1) 어린 아이, 아기.
(마2:8)
(2) 소년.
(마14:21, 막7:28)
(3) 나의 사랑하는 아이야.
(요일2:18)
(4) 어린이, 젊은이.
(요21:5)
6. nhvpio" 네-피오스
(1) 애기.
(마21:16)
(2) 어린, 적은, 미성년.
(갈4:1)
(3) 나이 어린.
(마11:25)
(4) 가르침을 받지 않은, 익숙치못한.
(갈4:3)
(5) 적은 아이.
(고전13:11)
설교예화자료
흉악범의 최후
주일 학교에 와서 학급 전체를 거칠게 만들어 교사를 곤란하게 만드는 난폭한 소년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결국 교사들이 회의를 한 끝에 어느 일요일 그 소년을 교회문으로 데려갔습니다. "자, 거리로 나가서 다시는 이 교회로 오지 말아라!"
그는 돌아오지 않았으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년은 범죄자가 되어 너무도 흉악한 짓을 저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시카고의 한 극장 앞에서 그는 사살되었습니다.
시카고의 신문에 끔찍한 사진이 게재 되었습니다. 시체의 발만 나온 사진이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이것이 존 딜링거의 발이다!"라는 설명만이 있었습니다. 편집자 하나가 가슴에 닿는 논평을 했습니다. "제대로 인도했다면 이 발이 어디로 가게 되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주일 학교
어느 날 어린 스퍼전은 응접실 벽난로 위의 선반에서 사과가 들어있는 유리병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병의 입은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좁은데, 병 속에는 주먹만한 사과가 들어있어 매우 이상했습니다. 해서 선반 위의 물건에 손대서는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어기고 유리병을 내려 관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사과가 어떻게 이 좁은 유리병의 입을 통과했을까? 사과를 조각내어 넣었을까? 그것도 아닌데?" 어린 스퍼전은 궁금증을 물어볼 수도 없이 겨울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하였습니다.
햇빛이 쏟아지는 여름날 스퍼전은 우연히 사과나무의 과수원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과나무 가지에 유리병이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왜? 저 유리병이 매달려 있을까? "라고 중얼거리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 의자를 가져다 올라서서 유리병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병 속에는 작은 사과열매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사과가 작은 열매였을 때 유리병 속에 넣어 자라도록 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스퍼전은 훗날 목사가 되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작은 사과는 쉽게 아주 쉽게 유리병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유리병 속은 벌레들이 침범치 못하는 안전지대입니다. 그리고 햇빛과 자양분을 섭취하는 데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주일 학교를 통하여 어린이들을 쉽게 하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그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지장없이 줄 수가 있습니다. 병들지 않게 벌레 먹지 않게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교회가 어린 영혼들에게서 병 속과 같은 안식처를 잃게 한다면 막중한 책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소서
G. J.버넬(Byrnell)은 보어 전쟁 당시 영국지배에 속해 있던 신자였습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전도하려 노력했으나 표면상 아무 응답도 받지 못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치명상을 입고 쓰러지자 급히 그에게 가서 집에 전할 말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예, 우리 어머니께 제가 크리스찬으로 죽었다고 전해 주시고 주일 학교 선생님께 수년 전 저에게 가르치신 바는 잊지 않았다고 전해주시오."
그리고 그는 죽어 갔습니다. 그의 어머니께 보낸 편지는 오랫동안 답이 없었습니나. 아들의 죽음에 너무도 상심하여 편지를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일 학교 선생님께보낸 것은 곧 회답이 왔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해 주소서. 저는 주일학교를 그만두었답니다. 소용없는 짓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걸어가야 할 곳
큰 공업 도시의 후생 사업국의 한 여직원이 빈민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열두 살쯤 되는 한 아이를 알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소아마비로 희망없는 절름발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아이를 매우 불쌍히 여겼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동정이 갔습니다. 그녀는 그 아이가 걸을 수 있도록 무엇인가 도와주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시내의 유명한 정형 외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의지할 곳 없는 절름발이 소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호소했습니다. 의사는 감동하여 즉시 수술하여 보겠다고 승낙했습니다. 소년의 회복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이사와 후생국의 여직원은 둘 다 열심히 걷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소년은 같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중년부인이 된 후생국 직원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의사와 마주쳤습니다. 의사는 자기네 집에 가서 차라도 들자고 했습니다. 그들의 많은 대화가 오가는 동안에 그들이 애를 쓴 그 절름발이 소년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외과의사는 물었습니다.
"히리안 소년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지금 성인이 되었겠지오?"
"예, 그는 지금‥‥‥‥ 하고 중년부인은 말끝을 흐렸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동안 두 분의 소식이 끊겼습니다만 지금 그는 무얼하고 있습니까?"
"선생님은 지금 자라서 뭐가 되었다고 생각되십니까? "
"의사가 되었습니까? "
"아니오."
"그럼, 과학자? "
"아니오."
부인은 매우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감옥에 있습니다. 살인자로서 형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초우 박사님, 우리는 그에게 걷는 법만을 가르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걸어가야 할 곳을 가르치는 걸 그만 잊고 있었습니다. "
어록·시·묘사
아! 얼마나 귀여운 얼굴이냐! 그 부부에게서 일종의 황금 과실이 나온 것이다. 둔중한 옷속에서 아담하고 매력 있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나는 그 반듯한 이마와 귀엽게 쑥 내민 입술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생각하였다. 이것은 음악가의 얼굴이다. 어린 모차르트다. 이것은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이다. 동화에 나오는 어린 왕자들도 그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보호해 주고, 위해 주고, 발전시켜 주면이 애도 무엇인들 되지 못하겠는가.돌연변이(突然變異)로 정원에 새 품종의 장미가 나면 모두 정원사들이 감격을 하지 않는가. 장미를 따로 옮겨 심어서 가꿔 주고 우대해 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을 위하여는 정원사가 없다. 어린 모차르트도 다른 어린이들이나 마찬가지로 찍는 기계에 찍히고 말 것이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소년은 쉬 늙고 배움을 이루기는 어려우니 한 치의 광음도 가벼이 알아서는 안 된다. 연못가 봄 풀이 꿈을 깨기도 전에 뜰앞 오동잎은 뚝뚝 가을의 소리.
(주 자)
월요일의 어린이는 얼굴이 곱고, 화요일의 어린이는 매우 우아하고, 수요일의 어린이는 슬픔이 가득 차고,목요일의 어린이는 갈 길이 멀고, 금요일의 어린이는 사랑하여 주고, 토요일의 어린이는 살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안식일에 태어난 어린이는 아름답고 슬기롭고 착하고 명랑하네.
(미 상)
어린것은 젖살이 포동포동하게 오른 사지를 비등거리며 내 얼굴을 말끄럼히 쳐다본다. 울지도 않고 낯도 가리지 않고 반가운 인사나 하는 듯 무어라고 옹알거린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제 힘껏 감아 쥐고는 놓지를 않는다. 까만 눈동자의 별같은 영롱함이여! 조그만 코와 입모습의 예쁨이여! 나는 가슴에 옮겨드는 어린 생명의 따스한 체온에 떨어지기 어려웠다.
(심 훈/ 직녀성)
어른들도 한때는 어린애였다. 그것들을 잊어버리니 문제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이방인이 되기 쉽다.
(G.W. 커티스/ 푸루와 나)
어린이의 외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외침 속에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심령적인 힘, 무서운 힘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깊고 격한 노여움, 그리고 아픔, 그리고 파괴욕 등이 그것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자기들처럼 사물에다 실제적인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동의 왼종일하는 일이다.
(M.R. 새퍼스틴/ 일상생활의 역설)
아이들은 예술가처럼 폭력과 피와 고통, 그리고 추함을 싫어한다. 그들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폭력과 추함을 두려워한다.
(C.V. 게오르규/ 키라레사의 학살)
모든 아이는 어머니가 먹을 것과 사랑의 원천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더 많은 영양분과 더 많은 사랑을 얻는 길이 그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미소를 지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외교적인 요령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 만에 아이는 정치가가 된다. 그는 언제 미소를 짓고 언제 미소를 짓지 않아야 하는지를 안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아직도 순결하여 하나님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서 갓 나와 더럽혀지지 않은 어린애의 없이다.
(R.H. 스토더드/ 어린이의 기도)
소년 학생들은 생사에 직면해도 두려움이 없다. 그들은 재갈을 뽀드득 깨문다. 어른 생활의 질투, 시련, 슬픔들은 소년 학생들을 위협하지 못한다.
(생텍쥐페리/ 야간 비행)
어린이들은 활동하는 순간, 스스로 개성화 한다.
(J. 듀이/ 학교와 사회)
어린이는 애정의 근원이다.
(카로리나 마리아 드 지저스/ 흑암의 어린이)
어린이는 악한. 그 나이는 동정이 없다.
(라 퐁텐/ 우화집)
나는 어린이를 이렇게 칭송하리라. 하느님은 처음에 남성을 만드시고, 다음에 여성을 만드실 보다 훌륭한 방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셋째 방법이 가장 훌륭하였다. 모든 창조물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성스러운 것이 어린이이다.
(W. 캔튼/ 어린이 노래)
애들은 평화로워 보여도 전쟁을 좋아한다. "전쟁놀이"를 하는 애들, 워즈위드의 무지개보다는 포화(砲火) 쪽을 향해서 애들은 맨발로 뛰어 가고 있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인생의 최초의 악수,부모의 손가락을 잡은 갓난아기의 손, 거기서 느끼는 감동은 무엇과 비길 것 없다.
(M. 벨타이어)
갓난아기는 조화의 신인 아버지에게는 기적이며 그 성숙을 자기의 뱃속에서 견디어온 어머니에 대해서는 마술적이다.
(S. 보바르/ 제이의 성)
어린이의 장난감과 노인의 이성은 그 두시기의 열매들이다.
(W. 블레이크/ 무죄라는 점괘)
어린이는 타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미 어린이가 아니다.
(F.M. 뮐러/ 독일인의 사랑)
어린이를 수없이 가공한게 어른이다.
(오소백/ 단상)
샘물 같은/ 숨소리로/ 길어만 올리다가/ 어느새/ 잠든 아가는/ 천상에 피는/ 얼굴.
(김광림/ 순연)
너희 어린이들은 이 전에 노래되고 얘기됐던 모든 민요보다도 더 좋다. 너희가 살아 있는시이기에. 그 나머지는 다 죽어 있지 않은가.
(롱펠로우/ 어린이)
나는/ 섬소년// 바닷가에 서면/ 가진 것 없어도// 목사님은/ 우리들을/ 꿈나무라 부른다// 바닷가에 서면/ 아는 것 없어도// 아버지는/ 우리들을/ 희망이라 부른다// 아침/바닷가에 서면/ 나는 조그만 소년// 수평선 너머에서/하나님의 손이/해를 밀어 올릴 때//외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조그만 소리로/ 불러본다// 예수님/ 예수님/ 난/ 희망을 달고 선/ 꿈나무예요.
(류순화/ 선유도 아이들 · 5-아침 바닷가)
막/ 울음을 거두고 난 아기의 중머리는/ 후광처럼/ 돋아나는 한낮.// 병아리가 햇살을 좇고 있다. / 흩어진 밥알인 줄 알고.// 때로는/ 물매미처럼/ 세발 자건거를 타지만/ 뜰 밖으로 못 나가는/ 동심.// 아가는 손바닥을 턴다. // 순수에 부딪친/ 꽃씨가 떨어 진다. // 앞자락엔/ 한아람/ 풀내음이/ 안긴 채,// 어느새/ 뜰에 고인 햇살이/ 그득히/ 시력 앞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김광림/ 동심)
꽃은 어데서 나는지 모르고 핀다. / 아기도 어데서 나는지 모르고 웃는다. / 아기는 울지만 우는 것도 피는 것이다. // 걸음마를 타면/ 장난감도 논다. / 의식이 생기고 의지가 선다. / 아빠 엄마도 거역한다.
(김광섭/ 천정, 눈물, 아기와 더불어)
매일 아침 새 세상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소년은 오늘이 어제와 같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도 그는 내일은 다르겠지 하고 믿는 것이다.
(C.D. 워너/ 잔무적 연구)
식탁에 둘러앉은 어린애들이 그대로 전인생인 것이다. 우리들은 그들과 같이 인생의 가장 자상한 마음씨와 가장 빛나는 희망을 다시 발견한다
(F. 모리악/ 딸의 교육)
그들은 내 속에 그들의 자손이 일시적인 거처인 성스러운 그릇을 높이 받들고 있다. 나는 포도의 덩굴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눈으로 보면 나의 태내(胎內)에 깃들여 있는 포도의 열매만이 귀중한 것이다.
(F.모리악/ 테레즈 데케이루)
사람의 죽음 중에 영아(孀兒)의 죽음이 가장 불쌍하지 않을까.
(김영랑/ 수양)
어린이야말로 조금도 오염받지 않은 위대한 자원이며 원체험이다.
(김광섭/ 현대도시 속의 고독의 조건)
어린이가 없는 곳에 천국은 없다.
(스윈번/ 환영의 노래)
아이의 유희를 보라. 그들은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건설하거나 파괴하거나 하는 활동, 그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
(T. 립스/ 윤리학의 근본문제)
일만 하고 놀지 않는 아이는 바보가 된다.
(J. 하우얼/ 격언집)
어린이의 천성이란 정말 엄숙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의 단순한 부속물로 볼 수 없는 것이며, 그 사람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에 따라서 그 어린애를 좋아하든가. 싫어하는 따위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린이들은 우리들 성년 남녀와 똑같이 그들 자신의 뿌리를 가지고 서 있는 것입니다.
(C. 램/ 엘리아 수필집)
어느 사회복지 운동가 집회에서 윈스턴 처칠은 인권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떠한 형태의 공통사회라 할지라도 아기들에게 젖을 먹이는 일만큼 즐거운 투자는 없다.
(W. L.S. 처칠)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그들의 발전을 방해하려는 주위의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어느 정도의 적개심과 반항심을 갖게 되며 또 그들은 보다 더 강하지 못한 반대자로서 그 세계에 굴복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같은 적대적인 반발을 제거해 버리는 일이 교육과정의 본질적 목표 중의 하나이다.
(E.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년의 의지는 바람의 의지, 청년의 사색은 길고 긴 사색.
(롱펠로우/ 나의 흘러간 청춘)
어린이는 마음의 우상이요, 가정의 우상이며, 모습을 바꾼 하늘의 천사이다. 햇빛은 어린이 머리에서 아직 잠들고 그 찬란한 영광은 두 눈동자에서 아직 비치네. 가정에서, 하늘에서 온 게으름보들, 그들은 나를 씩씩하고 온유하게 만드누나. 왜 예수가 천국을 어린이와 비유하였는가. 이제 나는 알았네.
(C.M. 디킨슨/ 어린이)
어린 시절에 행복한 자가 행복하다.
(T. 풀러/ 잠언집)
바치 파도의 맹위가 해안으로 선부(船夫)를 내던지듯 자연이 모체의 뱃속에서 신고(辛苦) 끝에 어린애를 끌어내는 순간부터 어린애는 발가숭이로 언어도 모르고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결여된 채 세상에 내던져져 있다. 그리고 그는 애 절한 울음 소리로 목청껏 운다. 그 울음이 옳으리라 그에게는 인생 행로에 겪어야 할 많은 불행만이 남아 있다.
(루크레티우스)
우리 입에 묻은 세상 때가/ 사랑의 강에 씻겨/그분의 품에 있는/어린 아이 같이 되게 하소서/ 아멘.
(김지향/ 능력의 말씀으로)
늘 햇빛 찬란한 곳에 앉혀두어/ 순진 무구한 어린이로 남아/ 어린 양이 되어/ 푸른 초원에 방목해 주소서/ 죄없이 그대로 살며/ 음흉한 꿈 길에서/ 방황하지 않게 돌보아주소서//작은 키로 살아/ 당신께서 입 성하던 길가에서/자케오처럼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눈빛처럼 흰 그들의 마음에/ 당신의 사랑을 담아/ 당신께 순명하는/ 어린 아이로 살아가게 하소서
(장효문/ 우리들의 기도 · 1)
숨기고 하던 부덕을 공공연히 내놓고 하게 된 때문인지, 어린이들은 순수성을 내던지고 영리하고 죄 있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이원수/ 세대의 주인)
어린이들만이 이상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E. 케스트너/ 파비안)
어린이 나라에 세 가지 예술이 있다. 어린이들은 아무리 엄격한 현실이라도, 그것을 이야기로 본다. 그래서 평범한 일도 어린이의 세상에서는 그것이 예술화하여 찬란한 미와 흥미를 더하여 가지고 어린이 머리 속에 다시 전개된다. 그래, 항상 이 세상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본다. 어린이들은 또 실제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야기 가운데서 훌륭히 경험한다. 어머니와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그는 아주 이야기에 동화해 버려서, 이야기 세상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에 따라 왕자도 되고 고아도 되고 또 나비도 되고, 새도 된다. 그렇게 해서 어린이들은 자기의 행복을 더 늘려가고 기쁨을 더 늘려 가는 것이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본 것,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고운 마음을 가지고 아름답게 보고 느낀 그것이 아름다운 말로 흘러나을 때, 나오는 모두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여름날 무성한 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의 어머니가 아들을 보내어 나무를 흔든다 하는 것도 그대로 시요, 오색이 찬란한 무지개를 보고 하느님 따님이 오르내리는 다리라고 하는 것도 그대로시다
(방정환/ 어린이의 예찬)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리석은 갓난애다 쓸데없이 노력하고, 화내고, 아무거나 욕심을 내면서, 아무런 가치 없는 작은 하나의 무덤을 얻을 뿐이다.
(T. 칼라일/ 무엇에 쓸모 있는가)
어른들이 편견에 때묻어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않고 있는 데 반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꼬마들만이 편견을 갖지 않고 진리는 진리로서 솔직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박이문/ 가짜)
어린이의 운명은 언제나 어머니가 이끌어가기 마련이다.
(나폴레옹 1세)
어린이는 부모의 행위를 비치는 거울이다.
(H. 스펜서)
아이들이란 처음에는 부모를 사랑하고, 성장함에 따라 부모를 비판하며 때로는 부모를 용서하기도 하는 것이다.
(O.F.0.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마른 잔디에 새 풀이 나고, 나뭇가지에 새 움이 돋는다고 제일 먼저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다. 봄이 왔다고 종달새와 함께 노래하는 이도 어린이고, 꽃이 피었다고 나비와 함께 춤을 추는 이도 어린이다. 별을 보고 좋아하고, 달을 보고 노래하는 것도 어린이요, 눈 온다고 기뻐 날뛰는 이도 어린이이다. 산을 좋아하고, 바다를 사랑하고, 큰 자연의 모든 것을 골고루 좋아하고, 진정으로 친애하는 이가 어린이요, 태양과 함께 춤추며 사는 이가 어린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기쁨이요, 모든 것이 사랑이요, 또 모든 것이 친한 동무다. 자비와 평등과 박애와 환희와 행복과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만 한없이 많이 가지고 사는 이가 어린이다. 어린이의 살림, 그것 그대로가 하늘의 뜰이다. 우리에게 주는 하늘의 계시다.
(방정환/ 어린이의 예찬)
세상이 자기를 평화롭게 놓아 둘 때 어린애는 자신이 우주의 어린이임을 느낀다. 그래서 고독 속에서 자기 몽상의 주인이 될 때, 어린애는 꿈꾸는 행복을 겪는 것인데 그것은 후에 시인의 행복이 된다.
(G. 바슐라르/ 유년시절을 향한 몽상)
부드러운 햇살이 아낌없이 쏟아지는 속에/ 아이들이 그득히 나와서 논다. / 달리는 아이, 뒤쫓는 아이/ 우는 아이, 웃는 아이, 고함을 지르는 아이, 부르는 아이, 대답하는 아이/ 아이들은 모두가 움직인다. 무슨 짓을 한다.
(김윤성/ 골목 안)
아가의 머리맡에 햇빛이 앉아 놉는다. / 햇빛은 아가의 손님입니다. // 아가가 세상에 온후론/ 비단결 같은 매일이었습니다. /아직 눈도 아니 뵈는 죄그만 우리 아가// 아가는 진종일 고이 잡니다. / 잠은 아가의 요람/ 아가는 잠에 안겨 자라납니다. / 아가는 평화의 동산/ 지줄대는 기쁨의 시내입니다.
(김남조/ 아가에게)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예쁘게 자라 착한 사람되라"고/ 착한 게 뭔지 잘 몰랐지만 그냥 그 말이/ 좋았습니다. // 그러다 성적표라는 것을 받아오기 시작하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라"고/훌륭한 사람이 뭔지 잘은 몰랐지만/그냥 공부라는 게 싫었습니다. // 그래서 훌륭한 사람 말고 착한 사람/ 되겠다고 했더니/ "바보 돼서 뭐하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적은 착해지라더니‥‥‥‥/ 엄마가 바본지 내가 바본지/ 그냥 나는 사람되고 싶습니다.
(안진경/ 이상한 세상)
가장 즐거운 방랑자는, 소년의 어린 가슴이다.
(G.E. 우드베리/ 아가들)
어린이들은 필연적으로 다음 시대를 만들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김영일/ 어린이의 교화)
어린이는 나라와 겨레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이므로 그들의 몸과 마음을 귀히 여겨 옳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나도록 힘써야 한다. 어린이는 인간으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어린이는 튼튼하게 낳아 가정과 사회에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공부나 일이 몸과 마음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한다. 어린이는 위험한 때에 맨 먼저 구출하여야 한다. 어린이는 어떠한 경우에라도 악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굶주린 어린이는 먹여야 한다. 병든 어린이는 치료해 주어야 하고 신체와 정신에 결함이 있는 어린이는 도와주어야 한다. 불량아는 교화하여야 하고 고아와 부랑아는 구호하여야 한다. 어린이는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과학을 탐구하며 도의를 존중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어린이는 좋은 국민으로서 인류의 자유와 평화와 문화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어린이 헌장)
버려진 아이는 그 어머니가 사랑과 신앙의 중간에 서서 임신한 아이며/ 죽음의 공포와 분노의 사이에서 세상에 내보내진 아이이다. 그 어머니는 자기 마음에 남은 마지막 온기로 아이를 싸고 고아원 문 앞에 놓아누고는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고개를 떨구고 총총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 어머니의 슬픈 이야기는 당신과 나의 조롱으로 끝난다. "저런 몰인정한 엄마가 있다니, 세상에. "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흙담 아래로/ 황혼이 깔리는데/ 조무래기들은/ 소꼽놀이에 정신을 잃는다.
(김순권/ 향수)
눈보다 입술이 고운/ 저 애는,/ 아마도 진달래 피는 3월에 태어났을거야.// 3월이 다하면 피는 튜울립들도/ 저 애의 까아만 머리보다/ 더 귀엽지는 못할거야.// 저 애는 자라서/ 아마 어른이 된 후에도,/ 푸라타나스 눈이 틀 때/ 타고난 그 마음씨는 하냥 부드러울거야.//그렇지만 저 애도/ 3월이 가고 9월이 가까우면/ 차츰 그 가슴이 뿌듯해 올거야./ 어금니처럼 빠끔이 터지는/ 그 여린 가슴에‥‥// 겨울은 가고/ 봄은 아직 오지 않는/ 야릇한 꿈에서 서성일지도 모를거야.// 수선화 새순같은 3월생/ 저 애는 돌맞이 앞니같이 맑은 3월생.
(김현승/ 3월생)
"나는 아직 이름이 없답니다. // 태어난 지 이틀밖에 안 되는 걸요."/네 이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나는 바로 행복이지오./ 기쁨이 내 이름에 어울릴 걸요."/ 달콤한 기쁨이여, 내게 있어라!// 아름다운 기쁨이여! 달콤한 기쁨이다, 이틀박이야/ 달콤한 기쁨이라 이름 부르자./ 아가야 웃어 보아라./ 노래를 불러 줄께./ 달콤한 기쁨이여, 네게 있어라!
(블레이크/ 어린이의 기쁨)
어린이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그리기를 좋아한다. 조금도 기교가 없는 순전한 예술을 낳는다. 어른의 상투를 재미있게 보았을 때, 어린이는 몸뚱이보다 큰 상투를 그려놓는다. 순사의 칼을 이상하게 보았을 때, 어린이는 순사보다 더 큰 칼을 그려 놓는다. 얼마나 솔직한 표현이냐? 얼마나 진한 예술이냐?
(방정환/ 어린이의 예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다.
(W. 워즈워드/ 무지개)
하나님, 아무런 두려움 없이/ 당신의 십계명을 암송하면서/ 그 계명을 범하는 자 있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 사람들은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 그러면서 나를 형제로 삼지 않는자는/ 말만 거창할 뿐 쓰러지기 쉬운 자입니다. / 사람은 모두 같은 재료로 되었고/ 키워 준부모의 음식물도/목구멍을 넘어가면 지저분 한것이 됩니다. /비록 생전에 아는 사이라 하더라도/ 구더기가 먹어 치우고/ 오직 뼈만 남게 되는 것을 보고서/ 누가 귀족과 종을 구별할 수 있으랴./ 기독교나 유대인이나 또한 이교도까지도/섬기는 분은 살아계셔 만물을 키우시는 그 한 분.
(발터/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
어린이는 그 자신의 신념을 지니고 있다.
(R. 재럴/ 편지들을 태운다)
거룩하고 정의로운 예수님/우리 어린이를 위해 탄생하신 예수님/ 우리들이 희고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착한 아이가 되라고 태어나신 예수님//빛 되신 예수님 우리가 사는 어두운 땅에/ 하나님은 당신을 보내셨습니다. /당신은 하늘의 아들이시며 하늘의 빛이십니다. / 우리로 하늘처럼 훌륭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은// 거룩하고 정의로운 예수님/ 오늘은 당신이 태어나신 날입니다. / 때문에 오늘은 이 넓고 큰 세계의/ 어린이들 모두에게 즐거운 날입니다. // 예수님 나를 축복해 주십시오./나는 아직 어립니다. /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십시오./ 당신의 그 풍요로운 하늘의 샘에서 내 영혼을 맑은 물로 씻어 주십시오.//내 생애를 언제나 사랑으로 지키사/ 내가 천사처럼 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언제나 내가 예수님의 것이 될 수 있게 하십시오./거룩하신 예수님 내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아른트/ 소년의 기도)
어머니가 나를 낳은 곳은 남쪽 황야/ 때문에 몸뚱이는 검다 하지만 영혼은 회다. / 영국의 어린이는 천사와 같이 하얗지만/ 나는 빛을 빼앗긴 자처럼 검다. //어머니는 나무 그늘에 서 가르쳐 주었다. / 뜨거운 햇빛 아래 앉아서/ 무릎 위에 나를 앉히고 입을 맞추어/동쪽을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태양을 보아라, 저 기 하나님은 계시면서/ 아낌없이 빛과 열을 나누어 주시느니라./ 꽃도 나무도 짐승이나 우리들도/ 아침에는 위로를, 낮에는 기쁨을 선사받는다. // 지상에서의 우리 생명은 짧은 것,/ 그것은 사랑의 빛을 지니는 것을 배우려 존재한다. / 이 검은 몸뚱이도 이 볕에 탄 얼굴도/ 한 조각 구름이요, 그림자 많은 숲과 같단다. // 영혼이 사랑의 열을 지니는 법을 배우게 되면/ 구름은 개고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단다. / 귀여운 아기야 숲에서 나와/ 천막 주위에서 어린 양처럼 뛰어 놀아라."//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내게 입맞추어 주었다. / 그래서 나는 영국 소년에게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 내가 검은 구름에서 그리고 그가 흰 구름에서 자유롭게 될 때/우리는 어린 양처럼 하나님의 천막 주위에서 뛰논다. // 나는 그때 그를 사랑의 열로부터 지켜 주는 것이다. / 이윽고 그도 하늘 아버지 무릎에 기대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일어서서 그의 은발을 쓰다듬어 주리라./그는 나와 같이 되어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블레이크/ 검둥이의 소년)
모든 사람 중에서 어린이가 가장 상상력이 풍부하다.
(머콜리/ 수필집 ; 미트포드의 그리이스)
어린이의 웃음은 가장 거룩한 날을 한층 더 성스럽게 하리라.
(R.G. 잉거솔/ 남자, 여자, 어린이의 자유)
신발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예쁜 아기의 신발이 사고 싶어진다/그리고 그 속에 내가 들어앉아/ 시월을 닳아가는/ 빨간 볼의 아기가 되고 싶다.
(박근형/ 신발)
하나님, 부모를 위해 아직 어린 이 아이를 지켜 주십시오./ 당신이 한 줄기풀을 바람에서 지켜 주시듯이 말입니다. / 어머니는 울고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하나의 의무처 /지금 당장 이 아이를 죽지 않게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으로서의 괜찮은 일이실 것입니다. / 만일당신이 이 아이를 살게 그대로 두신다면/ 내년의 화려한 축제 때 이 아이는 장미 꽃송이를뿌리러 갈 것입니다. / 당신은 아주 친절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그러하니/ 이 장미색 양볼에창백한 죽음을 놓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당신은 어머니 곁에 있는 창가와도 같은 장소/ 자녀들이 기뻐하는 기분좋은 장소를 가지고 계시는지오? / 하지만, 왜 아이를여기에 두면 안 되는지오?/ 아아 종이 웁니다. /그러니 하나님,숨져가는 이 아이를 살에 두고 생각해 주십시오./ 당신은 언제나 당신의 어머니 곁에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잠/ 14편의 기도노래-아이가 죽지 않기 위한 기도)
네게 드리마/ 소녀여 이 노래를 네게 드리가/ 눈벌에 피어나는/ 불같은 동백꽃과/ 돌속에 수(繡)를 놓는/ 보석의 화문(花紋)// 핑그르 눈이 젖는/ 고운 사모와/ 먼 성좌 애들이 안겨오는/ 푸른 꼬리별/ 사파이어의 원광도//에게 드리마/소녀여 이 노래를 네게 드리마/풀숲에서 절로 배운/ 풀색 노래와/ 바닷가 얼로 배운/ 물색 노래와/ 달밤에 절로 배운/달빛 노래를// 소녀여/ 네 잃어버린 미소여
(김남조/ 소녀에게)
어린이 예수님, 당신도 수줍음을 타신 때가 있었고/ 나처럼 이렇게 꼬마였던 때가 있었는지오?/ 하늘에서 내려와 나만한 나이가 되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 이따금 계시던 곳을 생각해 내고는/ 천사들은 모두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는지오? // 밤이면 무릎 꿇고 잠자리의 기도를 이렇게 두 손 모두어 드렸는지오./ 어리기 때문에 모두운 손이 피곤하여 기도가/ 너무 길다고 생각하셨던 적이 있으신지오./ 그리고 우리들이 두 손 모두어/ 이렇게 당신에게 기도 드리는 것을 아주 좋아하시는지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전에는 우리들이 기도 드리지 않으면/ 기도를 드릴 사람이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 당신도 나처럼 꼬마였던 때는/ 역시 아버지처럼 그렇게 말을 잘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니 어린이로 이 세상에 오시어/ 입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어린이의 말을 듣고/ 내손을 붙잡고 함께 걸어 주고/ 갓난아이 같은 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예수님의 아버지에게 내 기도를 전하면서/ (아버지는 바라보실 거예요, 당신은 예쁘니까요.)/ "아버지, 어린이인 내가 저 어린이의 기도를 가져 왔어요."하고 말씀해 주셔요./ 그러면 아버지는 웃으실 거예요, 당신이 어릴 때부터/ 어린이의 말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고 말입니다.
(톰슨/ 어린이 예수)
해처럼 밝게 밝게/ 푸른 새싹 잘 자라게/ 물주는 어른들/ 사랑의 손길이여!/ 아침 샘물을 펴서/ 새싹밭에 고루고루/ 사랑으로 뿌립니다. / 숨지도록 뿌립시다.
(오동춘/ 해처럼 밝게밝게)
아이들은 하늘만한 마음을 닦는다/ 누구의 마음이 하늘을 더 닮을까/ 얼굴을 씻듯
(류순화/ 예배당에서)
거칠은 골짜기 아래 피리를 불며,/ 즐거운 노래를 불며 가다가/ 구름 위에서 나는 한 아이를 보았네./ 웃으면서 그는 내게 말하기를,// "양의 노래를 불어 주어요!"/ 그래서 유쾌하게 나는 피리 불었네./ "그 노래를 다시 불어 줘요, 아저씨."/ 다시 불었더니 그 애는 듣고 울었네.// "피리는, 즐거운 피리는 그만두고/ 행복의 노래를 불러 주셔요!"/ 다시금 그 노래를 불러 주었더니/ 듣고서 기쁨에 눈물을 지었네.// "아저씨, 모든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그 노래를 적어 주셔요!"/ 그리고는 내 눈에서 사라져 버렸네.// 나는 속이 빈갈대를 꺾어/ 시골티나는 펜을 하나 만들어// 해맑은 물에 적셔가지고/ 모든 아이들이 듣고 즐기도록/ 나의 즐거운 노래를 적었네.
(블레이크/ 거칠은 골짜기 아래 피리를 불며)
올리브와 종려 언덕 마을을 에워싸고/ 들에는 양떼 놀고 수선화 피었는데/ 소년은 고향찾듯 하늘을 바라본다. / -엘 샤다이, 왜 이렇게 침묵만 하시는가.// 선조들은 마흔 해를 광야에서 방황했고‥‥/ 바벨론 시냇가에 거문고를 걸었고‥‥/ 항쟁의 힘찬 횃불 들기도 했더니라./ -엘 샤다이, 왜 이렇게 침묵만 하시는가.// "·.·이 야훼가 나타나는 날,/ 내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 리니,/ ‥‥그래야 내가 와서,/ 세상을 모조리 쳐부수지 아니하리라."// 말씀이 있으신 지 어언 사백여 년/ 엘리야는 아직도 오지 않았고/ 이 땅에는 슬픔만 가득찼구나./ -엘 샤다이, 왜 이렇게 침묵한 하시는가.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아직은 깨닫지 못하심인가./ 그러나 어느 땐가 이 소년은/ 아사셀 어린 양이 되어야 하는 거다. // 그 손에 망치를 쥐셨음은/ 십자가의 죽음을 뜻하심인가/ 갈릴리의 두메 시골 나사렛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살고 있었다. // -아도나이, 어서 말씀하옵소서./ 내 임무와 사명이 무엇인지오‥‥/ 하늘 향해 물음을 던질 때마다/ 소년의 키와 지혜는 자라고 있었다. // -내가 있을 곳은 내 아버지의 집/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이미 자기가 누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던 소년이었다.
(김희보/ 어린이 예수)
그는 티없는 어린이였습니다. / 여름날 너나 또 나처럼/ 아버지가 일하고 계신 동안에/ 문 밖에서 놀기도 하였고,/ 마루에서 대팻밥을 모으기도 하던/그는 티없는 어린이였습니다.// 너나 또 나와 다름이 없이/ 때로는 풀밭 위에 뒹굴면서/ 푸른 하늘에 떠오른 까만 점같은/ 매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을 보기도 했고/문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낯선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 그는 티 없는 어린이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새들- 참새나 낟알을 먹던 새들은 /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 또한 어린이 예수를 친구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 때문에 그가 혼자 있을 적에는/ 두려움 없이 그를 에웠싸고 지저귀었을 것입니다. // 종달새 소쩍새 그리고 비둘기/ 방울새와 굴뚝새/ 새들은 예수가 지닌 사랑을 알아차리고/ 존경하는 생각에 잠겼을 것입니다. / 새들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어린 예수를 알고 그 이름을 기렸을 것입니다. // 해님은 새벽 무렵이면 그의 머리카락에/ 남 모르게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영광의 빛을 한 줄기/거기 남겨 놓고 사라졌을 것입니다. / 그것은 가시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이마 위에/ 사랑의 입맞춤을 뜻하며 드린 것이었습니다.
(폐인/ 어린이 예수)
곤사(袞師)는 우리 집 개구쟁이/ 예쁘고 똑똑하기 짝이 없구나.//배두렁이 차고 돌도 안 되었을 때,/ 여섯하고 일곱도 벌써 알았다. /네 살 땐 이름을 알았고,/ 배 · 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 친구들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 "단혈(丹穴)의 봉황이구나./ 재기와 용모를 숭상한 옛날이라면/ 유품(流品)이 그냥 제일일 거요."/ "아닐세, 신선의 자질일세."/ "아니네, 귀인의 풍골이네."// 어찌 이처럼 다투어 말할까?/ 늙고 병든 나를 위로하는 거겠지!// 새봄 화창한 계절에,/ 놀이 동무는 모두 사촌들./ 집을 돌고 또 수풀로 내달아,/솥의 물이 끓듯 왁자지껄.// 대문에 점잖은 손님이 오면,/아차할 새에 먼저 뛰어나간다. /손님이 무얼 갖고 싶으냐고 물어도,/ 생각은 간절하지만 말은 못한다. // 돌아가면 손님 얼굴 흉내낸다. / 열어 놓고 아비 홀을 집어든다. /장비(張飛)같은 수염이라고 놀린다. / 등애(鄧艾)처럼 더듬는다고 웃는다. // 날랜 매의 깃털같이 쭈뼛하게,/ 굳센 말의 숨길처럼 헌걸 차게,/ 푸른 왕대를 꺾어서/ 말 타고 마구 덤빈다. // 갑자기 또 참군(參軍)을 흉내내어/목소리를 꾸며서 부른다. / 다시 또 사등롱 곁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밤 예불을 올린다. //채찍을 들어 거미줄을 건다. / 머리를 숙여 꽃의 꿀을 빤다. / 가벼운 호랑나비와 경주한다. /재빠른 버들가지에 안 뒤진다. // 섬돌 앞에서 누나와 만나,/ 쌍륙치더니 왜나 잃은 모양/몰래 가서 화장대 만지고,/ 황금 문고리를 잡아뗀다. // 끌어안으면 몸을 뒤채고/ 성을 내어도 막무가내./ 몸을 굽혀 창의 그물을 잡아당긴다. / 침을 뱉아 거문고의 칠을 닦아본다. // 어떤 때 붓글씨 쓰는 곁에 오면,/ 꼿꼿이 서서 무릎도 안 움직인다. // 장정(裝幀)의 비단옷으로 옷을 짓자고 한다. / 두루마리의 옥도 갖고 싶다고 한다. / 아비더러 춘승(春勝)을 써달라고 조른다,/ 춘승은 봄날에 좋다고 하면서.// 파초 이파리를 종이처럼 말리었구나./ 목련 꽃봉오리는 붓처럼 내밀었구나./ 아비는 옛날에 글공부를 좋아하여/ 고생하면서/ 저술에 힘을 썼단다. // 초췌한 가운데 마흔을 바라보는데,/ 이 ·벼룩을 겁낼 살도 없단다. / 얘야, 제발 아비를 흉내내어/ 글공부로 과거 볼 생각은 말아라.// 양저(穰詳)가 전했다는 사마법(司馬法)이면,/ 장량(張良)이 배웠다는 황석술(黃石術)이면,/ 임금님의 스승도 될 수가 있단다. / 다시
자질구레한 것은 몰라도 된단다. // 더구나 지금은 서쪽과 북쪽에서/ 오랑캐나 마구 날뛰고 있지만,/ 전쟁도 평화도 이루지 못하고/고질처럼 키워가기만 한단다 //얘야, 하루 바삐 크게 자라서,/새끼를 찾아 범의 굴로 들어가라./ 마땅히 만호(萬戶)벼슬을 할 것이지,/ 하나의 경전(經典)만 지키고 있지 말아라.
(이상은/驕兒詩)
겨우내 어버이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이제는 양지로 모인다. / 그리고 저들이 닦는 구두 콧부리에서/ 3월의 윤이 빛나기 시작한다.
(김현승/ 3월의 시)
아이들은 어버이가 집에서 말하는 것을 바깥에서 말한다.
(유태 경전)
어린이의 교육에 대해서는 배우려는 욕망과 흥미를 환기시키는 것이 제일이다. 그렇지않으면 책을 짊어지고 다니는 나귀를 기르는 데서 그치고 말게 된다.
(M. E. 몽테뉴)
어린이는 천당의 열쇠이다.
(R.H. 스토더드/ 어린이의 기도)
아이들이 많은 집에는 악마가 무력하다.
(영국 속담)
아이들은 천국에의 다리.
(페르시아 속담)
아이들은 거짓이나 비밀에는 쓸모가 없다.
(아이슬란드 속담)
"아이들이란" 하고 그는 말했다. "작은 축음기와 같아서 레코드대로 지껄일 뿐이란 말야. "
(D.H. 로렌스/ 날개 돋친 뱀)
유년 시대를 가진다는 것은 하나의 삶을 살기 전에 많은 삶을 산다는 것이다.
(R.M. 릴케)
아이는 미래이며 회귀(回歸)인 것입니다. 아이는 태(胎)이며 바다인 것입니다.
(R.M. 릴케/ 시도시집)
어린이는 비평보다는 본보기를 더 필요로 한다.
(주베르/ 명상록)
물오리가 날 적부터 헤엄을 치듯이 어린이들은 나면서부터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천성을지니고 있다. 어린이들이 하는 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물오리의 헤엄을 금하는 거나 다름없다.
(G. 플로베르)
어린이는 어린이의 세계가 따로 있습니다. 어른은 이 세계의 침략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영일/ 어린이의 교화)
연못가에서/ 인제 마악 자라오르는 어리디 어린 아그배나무같이/물오른 아이들이 웃도리를 벗고 서서/ 그 가운데 어떤 놈은 물 속에 하늘만을 들여다보고 제가끔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김관식/ 연)
어린이들은 모두가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요술성을 잃지 않고 성장하느냐에 있다.
(P. R. 피카소)
세상은 무서운 곳, 추악한 곳이라 하여 바깥을 보지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천사의 방을 차려 놓고 그 안에서만 자녀를 기르는 부모나 교사 밑에서 자라는 어린이는 불쌍하다.
(이원수/ 버들 강아지)
어린이가 가만히 서 있을 때는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A.B. 칠즈/ 속담 민속학)
아이들은 어째서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일까.그것은 남의 결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유태 격언)
내 아들아, 세상에서의 첫 발걸음은 전생애가 걸린 발걸음이다.
(볼테르/ 악한)
또 하나,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어린이는 '작은 어른'으로 보기 쉽고, 그렇게 다루기 쉽다. 어린이를 어른의 입장에서 다루기 때문에 무리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강소천/ 어린이날과 어른들의 반성)
별들은 아이들처럼 푸르게/ 달님은 자기의 빛 꼭대기에서/ 황혼의 끝자락을 놓으며/ 새벽의 푸른 빛을 잡으며/ 놀고 있구나/ 참 엄청나게 놀고 있구나
(정현종/ 공중놀이)
아이들은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아니다/ 아이들은 아침마다/ 태양처럼 떠오른다.
(정현종/ 아이들과 더불어)
신성 평화여// 시간의 꽃이여// 꿈꾸는 메아리여// 막무가내의 정열이여// 우주의 신성수렴이여
(정현종/ 시를 국민학교)
머언 아랫말에 한나절 닭이 울고/ 돌배를 따는 아이들에선 풋냄새가 났다.
(노천명/ 연잣간)
아랫말과 웃동리가 넓어뵈는 촌에선/ 단오의 명절이 한껏 즐겁고‥‥/모닥불에 강냉이를튀겨먹던 아이들/ 곧잘 하늘의 별세기를 내기했다.
(노천명/ 생가)
믿음의/ 가정 안에/ 자녀를 주시오니 생명을/ 내시는 주/ 그 은혜 찬송하세/ 자라며 건강하고 지혜가 넘치프록/ 주님의 품 안에 서/ 잘 길러/ 주옵소서// 화목한/ 가정 안에/ 자녀를 보내시니/ 기쁨을 안기신 주/ 그 은혜 찬송하게/커가며 진실하고 믿음이 굳세도록/ 주님의 손길로서/ 붙들어/ 주옵소서// 성도의 가정 안에/ 자녀를 내리 시니/ 축복을/ 더하신 주/ 그 은혜 찬송하세/ 이후에 장성하여/ 큰 일을 이루도록/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아/ 주옵소서
(홍안의/ 해산의 축복)
그러자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한 여인이 말했다. / 저희에게 아이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소서./ 그는 말했다. / 그대들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들의 아이는 아닌 것./ 아이들이란 스스로 갈망하는 삶의 딸이며 아들인 것./ 그대들을 거쳐 왔을 뿐 그대들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 그러므로 비록 지금 그대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아이들이 란 그대들의 소유는 아닌 것을.//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들의 생각까지 줄 순 없다. / 왜? 아이들은 아이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으므로./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순 없다. / 왜?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들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도 가 볼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들 아이들과 같이 되려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들과 같이 만들려 애쓰진 말라./ 왜? 삶이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진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도 않는 것이므로./ 그대들은 활, 그대들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들로부터 앞으로 쏘아져 나아간다. / 그리하여 사수이신 신은 무한의 길 위에 한 표적을 겨누고 그분의 온 힘으로 그대들을 구부리는 것이다. 그분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들 사수이신 신의 손길로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왜? 그분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는 만큼, 또한 흔들리지 않는 활도 사랑하시므로.
(K. 지브란/ 예언자)
어린이는 부모지 간에 융화를 이루는 단춧 구멍이다.
(아리비아 속담)
어린애의 몸은 신의 몸과 같다.
(O.F.0.W 와일드/ 옥중기)
거리의 제자들이/ 누가 크냐 다툴 때/ 예수님은 어린이를 한 가운데 세우시고/ 아이처럼 낮추어야/ 큰 자 된다 하셨으니/ 어린이를 기뻐하신 주/ 지금 찬송합니다// 유대의 여자들이/ 만져주심 바랄 때/ 예수님은 어린이를 어서 오라 부르시고/ 아이처럼 받들어야/천국 간다 하셨으니/ 어린이를 안아주신 주/크게 찬송합니다// 성전의 서기관이/ 분을 내어 말할 때/ 예수님은 어린이를 편들어서 추키시고/ 아이처럼 찬송해야 받으신다 하셨으니/ 어린이를 축복하신 주/ 모두 찬송합니다.
(홍안의/ 어린이의 목자-어린이 날에)
내 어린날!/ 아슬한 하늘에 뜬 연같이/ 바람에 깜박이는 연실같이/ 내 어린날! 아슨풀하다// 하늘은 파-랗고 끝없고/ 평평한 연실은 조매롭고/ 오! 흰연 그 새에 높이/ 아실아실 떠놀다 내 어린날!// 바람일어 끊어 갔더면/ 엄마 아빠 날 어찌 찾어/ 희끗희끗한 실날 믿고/ 어린 아빠 피리를 불다// 오! 내 어린 날 하얀 옷 입고/ 외로이 자랐다 하얀 넋 담고/ 조마조마 길가에 붉은 발자욱/ 자욱마다 눈물이 고이었다.
(김영랑/ 연 · 1)
어린이가 진정한 감정가이다. 그들에게 귀중한 것은 가격이 없고 가치만 있다.
(B. 카우프만)
어린 아이는 생명과 건강과 교육과 운동과 교역에 있어서 자유로운 모든 권리를 가졌다.
(맹골드)
아침이 그날을 알려 주듯, 어린 시절은 성인을 알려 준다.
(밀턴/ 실낙원)
어린이들을 존중하라. 너무 부모 노릇을 하지 말라. 그가 혼자 있는 시간을 침범하지 말라.
(R. W. 에머슨)
어린이들은 우리의 가장 귀한 자연 자원이다. <*1964. 10. 21일자, 그의 사망 기사가 실린 「뉴욕 타임즈」지에서>
(H. 후버)
어렸을 적의 흉터는 청년이 되면 없어진다. -유년기의 과실은 성년이 되면 이미 과실로 여겨지지 않는다.
(바스크)
아장아장 걸음마, 아름다운 꽃 활짝 핀/ 5월의 들길보다 부드럽고 예쁘게/ 우리 아기 걸음마는 비틀거린다. / 아장아장 걸음마./ 새벽 하늘 같은 맑은 눈으로/ 엄마의 눈만 향해 마주 바라보며/ 노래하듯 즐거워.// 황금빛 봄날을 반기듯 즐거운 얼굴./ 그 첫날의 한 토막놀이런가./ 사랑과 웃음으로 귀여운 다리끌며/ 아장아장 걸음마.
(스윈번/ 걸음마)
설 교 노 트
예수님을 찾은 가정
눅2:40-52
서론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12살 나던 해에 부모님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3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아 만나는 극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나 국가에서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어린이를 위한 기념행사를 가지게 된 그 배경은 예수님에게 있다고 합니다. 어른들에게 소홀히 여겨지는 어린이들을 예수님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를 귀히 여겨 용납하여 주셨고, 어린이를 축복하시면서 칭찬을 하셨고 이 어린이의 지위를 격상시켜 주셨습니다. 즉, 어린 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리라 하시면서 천국은 어린이들의 것이 라고 선언하여 주셨습니다(마19:14).
1. 예수님을 잃어버린 원인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주경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소홀히 여기고 등한히 여긴 데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이 예수님을 등한히 여긴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모들이 어찌하여 예수님을 등한히 여겼습니까?
(1) 가사에만 몰두하다가 예수님을 등한히 여겼습니다.
(2) 세상 일에만 분망하여 예수님을 등한히 여기다가 잃어버렸습니다.
(3) 이 세상 것만을 사랑하여 등한히 여기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부모들의 심정은 마음의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잃어버리고 깊은 근심과 실망과 불행에 잠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형편이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님을 찾은 내용
사랑하는 예수님을 잃어버린 부모들은 3일간이나 근심에 싸여 예수님을 찾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을 바로 찾아 만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예수님에게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 예수님을 귀중하게 여겨야 되겠습니다.
(3)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슬픔과 실망과 불행이 오고, 예수님을 찾아 만나면 기쁨과 희망과 행복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참 신앙의 사람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이런 신앙인은 예수님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굳게 붙잡게 되고 예수님과 항상 함께 살아갑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찾아 만난 장소는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생각과 인격과 윤리가 성결해야 된다는 말이고 또한 신성하고 신령한 영역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이 성전은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전이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전이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처소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말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1) 예수님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을 가장 귀한 분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3) 예수님을 무엇보다 더 사랑해야 됩니다.
성공적인 자녀 교육
신6:4-9, 막10:13-16
서론
전 세계 인류가 최대의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전생을 걸고 투자해야 할 사업이 무엇일까?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매일같이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그리고 관심을 무슨 사업에다 투자하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는 저마다 사업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우선적인 사업은 자녀 사업-자녀 교육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저축하고 물질을 모으려고 노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자녀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사명감에서 일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자녀들의 성공과 저들에게 유산을 주려는 의욕에서 더욱 일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부모라도 자녀가 성공하고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없습니다. 평생을 투자해도 아깝지 않은 사업이 자녀를 위한 사업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철저한 신앙 교육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최대의 투자할 자본이 무엇인지 성경 말씀을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투자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공급해 주어야 할 것 중 최대의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투자해야 합니다.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의무는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의무는 자녀들을 교육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옷을 못입혀도 좋은 침대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한다해도 자녀들에게 학교에서 공부시킬 수 있는 관심은 가져야 합니다.
일생 동안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책임 중 가장 큰 책임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의무가 우리 성도에게는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자녀들을 가르치는 책임입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청지기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녀들은 부모에게 속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는 이 아이를 부모라는 이름 아래 대신 맡아 기르는 청지기 책임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종교적인 책임을 바로해야 합니다.
2. 자녀들에게 사랑을 투자해야 합니다.
투자하면 할수록 좋은 자본이 사랑의 자본입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육체를 길러 주기 위해서 의식주를 제공하고 지식을 길러 주기 위해서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원만하고 남을 사랑하고 평화로운 사람들로 자라기 위하여서는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먼저 받아야 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엇이나 주는 대로 받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지만, 받는 것 이상의 것을 줄 수 없습니다. 미움을 받으면 미움을 주고,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잘못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청소년 범죄자들, 사회에 끔찍한 범죄사건을 일으킨 주인공들은 거의가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사랑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3. 자녀들에게 소망을 투자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를 꺾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미래상을 심어 주고 칭찬하며 아름다운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옥토와 같은 어린이들 마음속에 위대한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꿈을 심는 시기는 어릴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꿈이 커야 그만큼 큰 노력과 모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꿈만큼 위대하여지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중 하나를 실족케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게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5-6)"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막10:14-16)"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투자하므로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자녀에게 축복을 물려주는 신앙
잠22:6
서론
5월이 시작되는 첫날 아침에도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존전에 나오신 여러분들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첫 주일로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자녀에게 축복을 물려주는 신앙"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부모는 누구나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합니다. 자녀가 잘 되는 것이 부모에게는 최대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녀에 대한 기대도 첫째는 건강해야 하고, 둘째는 공부를 잘하여 무엇을 하든지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어느 부모이든지 자녀가 복받기를 원하고 자녀에게 축복을 물려주고자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녀에게 축복을 물려줄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을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참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려면 신명기 6장 7절에 말씀처럼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 예배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가정 전체에 축복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신앙의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 주면 그 자녀가 어떠한 어려움과 난관에 처할지라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때로 애매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2. 부모 자신이 먼저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않고 자녀에게 축복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축복받기를 원하신다면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무릎을 꿇다"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즉, 인간 편에서 하나님께 축복받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부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께 축복받기를 원하십니까? 이삭의 발 앞에 엎드려 축복해 주시기를 구했던 야곱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했던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매일매일 성전에 나와서 무릎꿇고 아들을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던 한나처럼 눈물어린 무릎꿇음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으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3.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영의 혈통을 갖게 해 줘야 합니다.
롬1:3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영적인 출생이 필요합니다. 요3:3-7에 보면 이것은 거듭남이라고 했습니다. 요1:12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어서 13절에서 이것을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거듭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며 곧 영의 혈통에 속한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여!
영의 혈통에 속하도록 하는 것이 왜 축복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거듭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혹 하나님이 나를 징계하여도 그것은 심판자로서 또는 왕으로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히12:5-6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아버지로서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영의 혈통에 속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비록 육의 부모가 재산이나 지식을 물려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영의 혈통에 속하도록 해 주는 것이 부모님의 가장 큰 사명인 것입니다.
결론
지금까지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귀하고 위대하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어렵고 부족하여 큰 재물이나 지식을 물려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된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한다면 그것처럼 귀한 유산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한 잠22:6의 말씀처럼 어려서부터 신앙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게 한 다음에 물질을 물려주어야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한 다음에 세상 지식도 물려주어야 그 지식이나 물질을 바로 사용할 줄 믿습니다.
어린이와 천국
눅18:16-17
서론
어떤 역사 학자는 18세기를 가리켜 민중의 재발견의 시대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생겨난 때문입니다.
19세기는 여성 해방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반해 20세기는 어린이를 재발견한 시대라고 보아도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2000년 전에 여성의 위치를 높이고 백성을 중요하게 보았으며 특히 어린 아이를 귀하게 여겼다는 점에서 민중을 깨우친 선각자의 노릇을 다했다고 보겠습니다. 그 증거로 기독교 문화에 접하는 나라는 반드시 여성과 백성 그리고 어린이가 존귀함을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든간에 하나님이 아니면 마귀가 그 마음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커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자라났다면 그들은 장성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손에 맡긴다는 말에는 중대한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것이 어린이를 위한 가장 좋은 길이고 어린이날을 맞는 우리 어른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어린이와 천국"이란 제목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어린이를 예수님과 만나게 해 주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동안 몇몇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그들을 만져 주시기를 바라고 앞으로 나왔습니다. 어느 때나 그러하듯 아이들은 떠들고 장난치고 하였습니다. 조용히 말씀을 듣고 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깨어지고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어린 아이들 때문에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을 알고 곧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방해가 된다, 분위기를 흐트린다. 어른들이 모여 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등 핀잔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잠잠히 계시던 예수님이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눅18:16-17)"고 하였습니다.
구약의 한나도 사무엘의 젖을 혜자마다 그를 성전에 보내 거기에서 자라게 하였습니다. 마리아도 예수님을 낳자 곧 성전에 데리고 가서 그를 하나님께 의탁했습니다. 엘리사벳도 어린 요한을 성전에 드렸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어린 아이가 난 지 40일이 되면 성전에 데리고 가서 마치 헌아식과 같은 의식을 통해 자녀들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의탁된 생명을 마귀가 넘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어린이는 천국의 모형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어린 아이)의 것이니라(눅18:16)"
이 말씀은 분명히 어른들을 향해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천국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바로 천국의 모형이요, 천국에 들어가라는 열쇠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른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어떤 특성들이 있을까요?
(1) 어린이들은 결코 친구를 가리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어울리며 놉니다.
(2) 부지런하고 활동적입니다.
어린이들은 꾀를 부리고 요령을 부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 어린이의 특성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도 몇 배나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의 부지런함을 배워서 하나님의 칭찬받는 천국의 주인공이 되어야겠습니다.
(3) 자기 엄마만으로 만족합니다.
어린 아이가 을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먹을 것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합니다. 물도 필요하고 공기도 필요합니다. 숟가락도 필요하고 젖병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귀한 것은 어머니 자체인 것입니다.
자기 집이 어렵고 가난하다고 해서 어린아이의 젖을 떼자마자 부잣집, 잘사는 집으로 아이를 보내는 어머니는 없습니다. 이것은 어머니도 아이도 원치 않는 일입니다. 비록 못살고 초라한 집이라 하더라도 어머니만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활을 이러한 점에서 살펴봅시다.
우리의 영적인 어머니인 예수님 한 분만 있으면 모든 것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까? 비록 가난하고 어렵고 못 배웠어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모든 행복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예수님은 우리를 어 머니의 사랑보다도 더욱 큰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십니다. 때로 시험과 어려움이 여러분을 찾아와도 하나님을 버리지 말고 묵묵히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기원합니다.
(4)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아무리 예쁜 아이가 있어도 그 아이가 자라지 않으면 부모의 근심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점점 자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앙이 날로 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주일을 빠지지 않고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
결론
부모들은 예수님께서 만져 주시 기를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으나 예수님은 그들에 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을 잘 기르는 첫걸음은 그들을 주님께 소개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오면 상상도 못했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를 어떻게 키울까
마18:1-10
서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천국 복음을 전하는 데 분주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이 주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해서 찾아올 때 예수님은 빠짐없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괴롭게 귀찮게 생각하여 어린이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하는 질문에 어린이 하나를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훈하신 어린이를 존중히 여기는 사상이 세계적으로 번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겠습니까?
1. 순진한 어린이로 키웁시다.
어린이들은 백지와 같이 순진합니다. 거짓이 없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자라면서 사회를 통하여 거짓말, 부정 부패의 요소를 배우게 됩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순진하게 지으셨는데 사람들이 악하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2. 계급이 없는 평등의 사상으로 키웁시다.
귀족과 평민, 양반과 서민은 어른들의 세계입니다. 어린이들은 대통령의 아들이나 노동자의 아들이나 따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평등하게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린이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키워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예배 드리는 시간에는 계급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아이들은 동적 생활 중에 자라고 있습니다.
인생관은 정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동적입니다. 아이들은 1분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사회에 적용되도록 동적 어린이로 키워야 합니다.
4. 누구를 본받도록 할 것입니까?
성인들은 어린이들을 본받아야 하고 겸손하고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어린이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죄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어린이와 부녀자도 노예도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본받아 유용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도록 힘써 키워야 할 것입니다.
결론
성결한 생활,깨끗한 생활, 거룩하게 살도록 내 자신이 실천하여 어린이들에게 본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님과 자녀
신6:1-9
서론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자녀들이 경전하게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의 자녀에게 신앙을 교육할 부모의 책임이 큰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향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고 하였습니다.
1. 부모의 도리
신자가 자녀에게 신앙을 바로 훈련시키려면 먼저 부모의 도리를 다하여야 하는데 부모의위치가 바로 서야 합니다.
교육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명령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녀들을 그렇게 살도록 교육하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떠한 환경 처지에서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자녀들에게 교육시키는 부모의 도리라고 하셨습니다.
부모님들이 도리를 다할 때 후일에 자녀들의 행복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믿음의 부모가 되고 믿음의 자녀를 키우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1) 유일하신 하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인 여호와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유일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섭리 가운데 운영하시는 분은 한 분 여호와뿐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으로부터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였고 철저하게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철저한 신앙 가운데 창조주이시며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경배함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2)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신명기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아까운 것이 없고 전체를 다 드려야 합니다.
(3) 성경은 부지런히 가르치라(6-9)고 하였습니다.
6절에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고 하셨습니다.
신자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말씀을 경건 생활의 기초로 삼고 말씀에다가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교회 봉사도 중요하지만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서 봉사하는 마르다보다 마리아의 태도를 좋게 생각하셨습니다.
먼저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나서 일을 하여야 불만 불평이 없이 감사함으로 일을 마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정은 자녀를 교육하는 작은 학교요, 교회요, 기관입니다.
잠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은 자녀들을 말씀으로 훈련을 시키고 생활화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먼저 경건의 본을 보여주고 자격 있는 신자가 될 패, 그 생활을 보면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자연히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 제일주의로 자라게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활하도록 하고 말씀으로 무장시키는 교육이 그 자녀를 행복케 하는 가장 귀한 일이 될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의무
요삼1:1-4
서론
어린이 주일에 부모와 자녀의 의무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은 자녀는 부모가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부모의 마음을 알면 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효자가 되면 부모의 자랑이요, 면류관이요, 즐거움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의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육체의 만족을 얻고 마음의 만족을 얻어도 영혼의 만족이 없다면 참 행복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잘 되어야 행복합니다.
1. 부모는 자식이 범사에 잘 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형통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죄악에 대하여 아니라 하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예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힘을 더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셔야 잘 됩니다.
2. 부모는 자녀가 강진하기를 원합니다.
부모의 안타까움 중 하나는 자식의 병고입니다. 허약함입니다.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건강하고 영혼도 건강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항상 기뻐하여서 육신이 건강하기를 원하고, 항상 기도하여서 영혼이 건강하기를 원하고, 범사에 감사하여서 생활이 건강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은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3. 자식은 부모가 무엇을 즐거워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자식에 대하여서도 좋은 소식 듣기를 원합니다. 부모가 듣기 좋아하는 소식의 내용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진리 안에서 사는 길이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열매를 맺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진리를 사랑하니 자식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 크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4. 모든 자식된 자들은 이 말씀을 유의해서 들어야 합니다.
자식들은 진리 안에서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바른 효도의 길입니다. 진리안에서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삶의 축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주인, 곧 생활의 주인으로 삼고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말씀이 항상 마음에 간직된 사람입니다.
결론
모든 부모들은 자녀들을 기를 때에 어려서부터 진리 안에서 자라도록 힘써야 합니다. 육신의 건강이 중요하고 학문적 깊이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지혜가 자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진리 안에서 살지 않으면 자신에게도 불행이고 가정에도 불행이고 나아가서 인류에게 불행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갓난아이 때부터 잠재의식 속에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을 즐겨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주의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할 것입니다.
선한 인물로 키우자
요21:15-22
서론
주님을 진실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어린 양을 먹일 수가 있습니다. 주일 학교 교사의 직분이 얼마나 중요함을 알게 됩니다. 먹이라는 뜻은 목회를 말합니다. 치라는 뜻은 정치를 말합니다. 대인 관계를 원만히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큰 양을 먹이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목자가 앞서 가면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양을 키우기는 힘이 듭니다. 웅덩이에 빠지기 쉽고 독초를 먹기도 쉽고 가시에 찔리고 엉겅퀴에 걸려서 나오지 못하고 방향을 가누지 못하기 때문에 힘이 듭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워 나가야만 되기 때문에 사명이 중합니다.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가난한 사람, 부자의 자녀, 지위가 높은 가정의 자녀, 서민층의 가정에서 나오는 자녀, 골고루 나누워주면서 잘 키워 선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 교회입니다.
1. 선한 사람이란?
윗사람을 공경하면서 순종하고 윗사람으로부터 칭찬받고 아랫사람을 붙들어 주면서 키워주고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인격자로 키우기 위함인데 매우 힘이 드는 것입니다. 천하보다도 더 귀한 것이 인간의 생명입니다. 도적놈이라고 할지라도 복음으로 올바르게 키워 귀한 인물을 만들고 미신에 젖어 살았던 무당이 복음으로 여전도사로 만드는 역사가 교회의 사명입니다. 어린 심령을 잘 키워 가정에, 사회에, 교회에 선한 인물로 키워 나가야겠습니다.
2. 어린이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어른들에게 있어서 크게 잘못된 생각은 내 자식이므로 내 기분대로 자녀를 다루어도 된다고 하여 어린이의 인격을 무시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어른에 비하면 작은 존재이지만 인격적인 대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선한 인물로 키우기 위해서는 인격적으로 대우를 하는 데서 가능한 것입니다.
어린이 한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키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린심령들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키워 불의 앞에 겁내지 않는 정의의 사람으로 키우고,불의한 세력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키웁시다. 아첨하지도 않고 낙심도 없는 진리의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3. 어린이를 성공자로 키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성공자로 교회 앞에 덕과 유익을 끼치는 성공자로, 신자들 앞에 신앙의 모범된 자로 보이는 성공자로, 후손들에게 복을 물려줄 수 있는 성공자로 키웁시다. 그러므로 교사와 어머니는 성직자임을 명심하고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어떻게 어머니가 성직자입니까? 그것은 생명을 다루고, 무보수로 봉사하며, 무제한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여러분 가정의 자녀 교육을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선한 사람으로 키우십시오. 윗사람을 공경하면서 순종하고 윗사람으로부터 칭찬받고 또한 아랫사람을 붙들어 주는 선한 사람, 예수님을 따르는 인격자로 키우세요.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십시오. 어린이는 작아도 그의 인격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선한 인물로 자라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성공자로 키우십시오. 세상에 돈벌고 공부 잘하는 성공자도 좋으나 하나님 앞에 교회 앞에 사람들 앞에 인정받는 성공자로 키웁시다.
어린이들의 나라
마18:1-10
서론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가 이 날을 지키는 이유는 어린이들에게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의 믿음의 기초를 닦아두는 날로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지도하며 훈련시켜야 합니다. 또 부모들이 어린이는 내 자녀인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이요, 자녀임을 알고 하나님께 바치며 어린이의 마음을 위하여 힘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어린이의 세계는 어떤 세계입니까?
1. 맑은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묻지 아니하고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를 축복하십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긴긴 겨울을 박차버리고 새로 태어난 5월의 하늘과 산과 들을 바라다보십시오. 누런 빛깔의 잔디가 초록색으로 조금씩 물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어린이들의 성장과정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어린이들은 원수가 와서 자기를 해치려 해도, 해치기 전까지는 오히려 자기를 사랑하러 온 줄 알고 반겨 합니다. 그 방실방실 웃는 모습은 기성 세대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하루종일 시달리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어린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고 모든 피로를 한꺼번에 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맑고 맑은 모습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2. 믿을 수 있는 세계입니다.
어린이들은 의식적으로 남을 속이기 위해 노력하진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 말을 그대로 믿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할지라도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시고 치료하시고 살리시며 기적을 행하여 주실 것입니다.
있는 것을 있는 대로 없는 것을 없는 대로 나타내는 어린이들의 세계를 닮아가야 하겠습니다.
3. 겸손한 세계입니다.
어린이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4). 하나님 앞에 나을 때에 겸비하고 낮아져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어린이들은 의식적으로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와 같이 겸손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결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해야 하는 부모로서의 책임이 있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하나님 앞에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의 신앙 교육
눅2:52
서론
본문에 보니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표준이 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더 높은 차원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 맡기며 힘써 기도하며 키워야 합니다. 즉, 신앙으로 키워야 합니다. 예수님 자라시던 대로 자라게 하는 것이 가장 바로 키우는 일이 됩니다.
1. 키가 자라도록 키워야 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내 몸은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바로 알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의 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일생을 깨끗하고 바르게 그리고 아름답게 존귀하게 보존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하여야 합니다. 습관은 일생을 지배합니다. 바른길로 가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아니하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절제할 줄 아는 생활이 일생의 건강을 지켜 줄 것입니다.
2. 지혜가 자라도록 키워야 합니다.
인간 생활에 중요한 것은 지식입니다. 만 3세가 되면 뇌수 90%가 형성되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영아기에 바로 가르치는 것이 일생의 지적 활동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만 주신 이성을 바로 개발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 바로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꼬마 때의 지식 교육으로 언어 교육(말씨 교육)이 중요합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특히 교회학교 영아부, 유치부를 비롯하여 아동부에 이르기까지 신앙적인 동화와 이야기그리고 노래를 많이 다루어 주는 것이 중요 합니다.
3. 사랑받는 사람이 되도록 키워of 합니다.
덕을 키워 주워야 합니다. 현대 교육은 머리만의 교육에 치중하기 때문에 '지혜 있는 악마를 만드는 교육'이라고 악평을 받게 됩니다.
또 영적으로 자라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고자 할 때 성공적인생이 됩니다. 옛날 요셉은 남의 아내와 단 둘만이 있는 데서 유혹을 받았어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 죄를 얻겠는가"하며 물리쳤습니다. 요셉은 남편이나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하고 자기들은 비밀을 지키기로 생각하며 죄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윤리 차원입니다. 그러나 요셉에겐 하나님께 용납되어야 하는 면이 더욱 중요하였습니다.
결론
해마다 어린이 날이 되면 "맛있는 것을 먹이자", "공원을 만들어 주자", "어린이를 알아주자"고 힘씁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신앙 교육이어야 합니다. 신앙안에서 체육 · 지육 · 덕육 그리고 영적 교육이 되도록 힘씁시다.
어버이 주일
성 경 활 용
1.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의무
(1) 순종해야 한다.
(잠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골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 공경해야 한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3) 기쁘게 해야 한다.
(잠15:20)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4)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한다.
(잠28: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담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2.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의무
(1) 보호해야 한다.
(히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 가르쳐야 한다.
(신6:6-7)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3) 본을 보여야 한다.
(왕하15:3) 아사랴가 그 부친 아사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4) 재물을 예배해야 한다
(고후12:14)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5) 징계해야 한다.
(잠3:12)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히12: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6)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한다.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7) 효도를 배워준다.
(딤전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 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8) 버리지 않는다.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3. 부모에 대한 자녀의 죄
(1) 멸시한다
(신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라 할 것이요
(겔22:7) 그들이 네 가운데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미7: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라
(2) 욕되게 한다.
(잠28: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3) 불순종한다.
(신21:18)사람에게 관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4) 저주한다
(레20:9)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5) 조롱한다.
(잠30:17) 아비를 조공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6) 훼방한다.
(마15:4)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거늘
(7) 부모 물건을 도적질한다.
(잠28:24) 부모의 물건을 도적질하고 죄가 아니라 하는 자는 멸망케 하는 자의 동류니라
관련원어풀이
1. !aew ba;' 아-브 웨엠
부모.
(창2:24, 출20:12)
2. goneuv" 고뉴-스
낳아준 자, 부모, 양친.
(마10:21, 눅8:56)
3. goneivv" 고네이스
부모.
(막13:12, 눅2:27)
4. provgono" 프로고노스
앞서 태어난, 보다 나이 많은, 부모, 선조, 조상.
(딤전5:4, 딤후1:3)
5. patevre" 파테레스
부모.
(히11:23)
설교예화자료
가장 아름다운 손
옛날이나 오늘이나 특별히 여성들 가운데는 손을 곱게 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 여자들은 손톱을 길게 기르기도 하고 미국 여자들은 손톱을 빨갛게 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일 아름다운 손은 어떤 손인지 아십니까? 봉사하는 손입니다. 미국 어떤 가정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멀리가 살던 아들 딸들이 다 모여서 즐겁게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 누구 손이 제일 고우냐는 토론을 하였다고 합니다. 맨 처음에는 젊은 사람의 손이 곱다거니 또는 아기의 손이 곱다거니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투표해서 정하기로 하고 투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투표의 결과는 어머니의 손이 제일 아름답다고 나왔습니다. 주름살 많이 잡힌 어머니의 손입니다.
어미새의 마음
눈 오는 깊은 겨울 추위를 피해 새끼를 품고 따뜻한 나라로 향해서 날아가던 까치가 있었습니다. 한참이나 힘겹게 날아 가다가 그의 새끼에게 물었습니다.
"얘, 지금은 내가 기운이 좋아서 너를 업고 날아가지마는 내가 늙은 후 누가 나를 업고가겠니? 네가 업어 주겠니? "
새끼는 어미 품에서 곰곰히 생각하더니 "아니요,그때쯤이면 저도 제 새끼를 날라주어야 할테니까요."
슬퍼진 어미새는 그러나 더욱 힘껏 새끼를 품고 날아갔습니다.
백부의 눈물
어느 과수댁이 유복자 하나를 정성들여 키웠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커가면서 나쁜 길로 빠지고 방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집은 왜 이렇게 째지게 가난하고 나에게는 왜 다 있는 아비도 없고, 공부도 못한 처지에 열심히 일하여 무엇하느냐고 날마다 불평입니다.
그래서 이 과수댁은 멀리 살고 있는 시숙을 불렀습니다. 얼마 후에 오겠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방탕아는 이 소식을 듣고 전전긍긍했습니다. 백부는 사릿문을 들어서자마자 날벼락칠 것입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옳지 식사 후에 차근차근 해 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 다음날도 그후에도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신다는 게 아닙니까.옳지 가시기 전에 야단치시겠지, 그런데 백부는 아무 말씀도 아니하십니다.
백부는 이제 가겠다는 말을 하고 토방에 내려서서 짚신을 신고 계시는게 아닙니까. 그런데 웬일입니까? 백부의 눈물방울이 짚신에 줄줄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이 방탕아는 나의 백부께서 나를 얼마나 동정했으면 나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했으면, 비단같은 아름다운 말을 다 잊고 눈물만 흘리실까? 여기서 그 방탕아가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부모
세계를 뒤흔들었던 제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히틀러의 손에 무려 6백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히틀러의 어린 시절이 불우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장사를 했기때문에 집을 비올 때가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한 번 나가면, 그는 한달 내지 두달 동안 아버지가 없을 때 이웃에서 장사하는 유태인이 그의 집에 놀러오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히틀러의 어머니는 그 유대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를 안 히틀러는 어릴 때부터 유태인과 여자를 증오하게 되었고 늘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부정한 어머니로 인하여 히틀러는 결코 순결한 여인의 이미지를 가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대단한 여성 편력가이었지만 단 한 번도 진정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히틀러의 비정상적인 성장 환경으로 인해 인류사상 6백만이나 되는 유태인이 비명 속에 죽어가는 비참한 일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부모의 태도가 자식에게 주는 영향은 이렇게 큰 것입니다.
바보 어버이
어떤 남자가 유언을 썼습니다.
"내 아들에 게 재산을 전부 남기지만, 아들이 진짜 바보가 되지 않는 한 유산을 상속할 수 없습니다. " 이 말을 듣고 랍비가 찾아와서,
"당신은 어처구니 없는 유언을 썼군요. 당신 아이가 바보가 되지 않으면 재산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사나이는 그때 갈대를 한 개 입에 물고,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마루 위를 엎드려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암시한 것은 자기의 아들에게 아이가 생겨서 아이를 어르게 되면 자기의 재산을 상속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생기면, 인간은 바보가 된다. "는 격언이 거기에서 생겼습니다.
유태인에 있어서, 아이는 대단히 귀중해 모든 것을 아이를 위해 희생합니다. 하나님이 유태 민족에 천주의 십계를 내리셨을 때, 유태인이 반드시 그것을 지킨다는 보증을 붙이려고 했습니다.
먼저 유태인은 유태인의 맨 처음의 위대한 선조, 예를 들면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맹세했지만 하나님은 승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유태인이 손에 얻을 모든 부귀에 의해 맹세한다고 말했으나 역시 허사였습니다. 마지막에 아이에게 반드시 전할 것이니, 그 아이들에게 걸어서 맹세한다고 말하자 하나님은 비로소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록·시·묘사
뭐든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부모는 그렇지 못하다.
(인도 속담)
행운일 때에는 아버지에게, 불운일 때에는 어머니에게 의지하게 된다.
(인도 속담)
자녀를 너희들 자신의 모형대로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너희들의 모형은 반복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애들도 너희들도 다 안다. 결과적으로 너희들은 서로 미워하게 된다.
(K. 샤피로/ 부르조와 시인)
부모의 사랑은 내려갈 뿐이고 올라오는 법이 없다. 즉 사랑이란 내리사랑이므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한다.
(C.A. 엘베시우스/ 잠언과 고찰)
내 목숨 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할 것을 원하고, 내 죽은 뒤에는 자식의 씀을 지킬 것을 원한다. <*부모의 자식 위한 심정>
(父母恩重經)
아버지는 나를 강하고 곧고 날씬하게 키워주셨다. 어머니는 나를 기쁘고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낳아 주셨다. 나는 어머니 발에 입맞춘다.
(M. 월킨슨)
오늘날의 여러 가지 사정을 떠나 인간성 그 자체로 생각해 볼 때,부모가 된다는 것은 인생이 제공하는 최대의, 그리고 가장 영속적인 행복을 심리적으로 줄 수 있다.
(B.A.W. 러셀/ 행복의 철학)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의 가치가 있다는 것은, 주로 그것이 다른 어떤 애정보다도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무가 좋아해 주는 것은 장점을 보아주기 때문이다. 연인이 사랑해주는 것은 끌어당길 만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 장점이 줄면 친구는 사라지고 매력이 감퇴하면 연인은 떠나 버릴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가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불행한 때이다. 이를테면 병에 걸렸을 때같은. 만일 올바른 부모라면 죄에 빠졌을 때도 그러하다.
(B.A.W. 러셀/ 행복의 철학)
자기의 가정에 대한 사랑은 하나의 동물적인 본능이다. 고리고 그것은 본능의 한계 내에머물러 있는 한에 있어서만 선한 것이다.
(톨스토이/ 기독교의 가르침)
어린 시절의 필름을 두 번 다시 돌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부모들은 좀더 자녀들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 나운)
부모의 공로를 모르는 자녀는 살무사의 날카로운 이빨보다도 못하다.
(W. 셰익스피어/ 리어왕)
인색한 어버이는 낭비하는 자식을 낳는다.
(영국 속담)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대지라는 이름의 같은 어머니의 배에서 나왔고 미완성의 영혼이라는 같은 아버지의 자식들이니, 증오로 눈살을 찌푸린 얼어붙은 듯한 그 얼굴을 넘어서고 나가자.
(R. 운루/ 희생적 사명)
양친의 압력은 검(劒)의 일격보다도 엄하다.
(아라비아 속담)
퇴비 덕분에 꽃이 피고, 꽃 덕분에 퇴비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부모를 닮지 않은 자식을 가리켜 일컫는 말>
(터키 속담)
어머니는 우리들의 마음에 열을 주며, 아버지는 빛을 준다.
(장 파울/ 꽃 · 과실 · 가시)
자식이 열 있더라도, 자식에 대한 어버이 한 사랑의 마음은 어버이에 대한 열 자식의 마음을 훨씬 능가한다.
(장 파울/ 꽃 · 과실 · 가시)
부모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한대도 그 은혜는 다 갚을 수가 없다.
(석가모니)
어떤 자녀들은 자기 어머니에게 키스하고, 어떤 자녀들은 어머니를 욕한다. 그러나 그것은 똑같은 사랑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자녀에게 키스해 주고 욕설도 한다.
(P.S. 벅/ 사랑하는 내 딸들에게)
자기 어머니의 더할 나위 없는 귀염둥이였던 사람은 정복자의 기분을 일생동안 지니고 있으며, 성공에 대한 자신감은 자주 실제 성공을 유도한다.
(S. 프로이트)
이상적인 결혼처럼, 이상적인 어머니라는 것은 소설에나 있다.
(M.R. 새퍼스틴/ 일상 생활의 역설)
신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들을 만들었다.
(유대 격언)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의 공부방이다.
(H.W. 비처/ 인생사상록)
청춘은 사라지고 사랑은 시들며, 우정의 잎사귀는 떨어지지만 어머니의 남모르는 깊은 사랑은 그 모든 것보다 오래 산다.
(O.W. 호움즈/ 어머니의 비밀)
요람을 흔드는 손이 세계를 통치하는 손이다.
(W. R. 월리스/ 세계를 통치하는 손)
어머니란, 어린 자식의 입과 마음에서는 하나님과 같은 이름이다.
(대커리/ 허영의 시장)
어머니가 없는 아이는 손잡이가 없는 문과 같다.
(유태 격언)
어머니가 걸치고 있는 에이프런은 넓다. 자식의 결점을 덮어씌우고 있으므로.
(유태 격언)
한 사람의 양모(良母)는 백 사람의 교사에 필적(匹敵)한다.
(J. F. 헤르바르트)
어머니는 항상 아이를 위해서 죽을 각오를 갖추고 있다. 만일 위기가 닥쳐서 아이와 어머니 가운데 한 사람만 구제를 받게 되는 경우라면 아이가 살아야 한다는 각오가 어머니에게는 항상 되어 있다. 그녀는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모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니, 가장 못생긴 아이에게도 어머니는 미소를 짓는다. 아주 평범한 아이이지만 어머니는 항상 그 아이가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나 부처 같은 인간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그대에 관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된 것이 행복하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어머니의 눈물을 닦을 수 있는 것은 어머니를 울게 한 아들뿐이다.
(중국 속담)
아버지는 고관(高官)일지라도 버릴 수 있지만, 어머니는 거지일망정 버리지 못한다.
(중국 속담)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나이가 들지 않는다.
(일본 속담)
천지간 모든 동물에 있어서 개펄부터 인간의 여자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은 항상 숭고한 것이다.
(A. 뒤마)
모성애의 진실한 성취는, 어린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서가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에대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E. 프롬/ 사랑의 기술)
약속된 땅-땅은 어머니를 상징한다--은 "젖과 꿀로 가득 차 있다"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젖은 사랑의 제 1측면이며, 배려와 긍정을 상징한다. 꿀은 인생의 감미, 생에 대한 사랑, 생의 행복을 상징한다. 대다수의 어머니들은 '젖'을 줄 수 있지만 '꿀'을 줄 수 있는 어머니는 극히 적다.
(E. 프롬/ 사랑의 기술)
어머니란 알을 탕은 새가 아니라 알을 부화시킨 새를 말한다.
(A. V. 아르노/ 우화집)
말이란 것이 감정의 면을 떠났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J.E.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신과 어머니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없다.
(인도 속담)
천칭(天秤)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 놓고, 다른 한쪽 편에 나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세계의 편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
(랑구랄)
우리들 모두가 똑같이 생겨난 곳, 그곳은 바로 어머님이다. 우리들은 똑같은 바탕에서부터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서의 하나의 사도이며 하나의 돌팔매질로서 제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해 가는 것이다.
(H. 헤세/ 데미안)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치고 마음씨 고약한 사람은 없다.
(L. C. A. 뮈세)
나라는 존재가 비롯한 어두운 뱃속에서 어머니의 생명이 나를 사람으로 만드셨다. 인간으로서 탄생되기까지의 여러 달 동안,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의 하찮은 흙을 가꾸셨다. 그녀의 일부분이 죽지 않았던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숨도 쉬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이렇게 움직이지도 못했으리라.
(J. 메이스필드)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V. M. 위고)
어머니는 아들의 친구가 성공하면 질투한다. 어머니는 아들보다도 아들 속의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F.W.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여자답다는 것은 모성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사랑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며, 그곳에서 끝난다.
(E. B. 브라우닝)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사랑, 들에서는 태양의 빛.
(아프리카 속담)
어머니들은 자기의 아이들이 없는 공허감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다.
(M.A. 아스투리아스/ 대통령 각하)
너의 의모(義母)가 살아 있는 한, 평화의 온갖 희망을 포기하라.
(유베날리스/ 풍자시)
그 어머니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웃의 말을 믿어라.
(탈무드)
위대한 모성은 자비로운 어머니인 동시에 무서운 어머니며, 창조와 보존의 여신인 동시에 파괴의 여신이었다.
(A.L. 헉슬리/ 어머니)
우리 조상들에게는 어머니는 가정 생활의 행복을 만들기도 하고 망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우주의 신비도 눈에 보이게 하는 구현체였다. 어머니는 여러 계층의 생명을 표현했다. -생물학적인 면, 생리학적인 면,그리고 심리학적인 면 등으로.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어머니는 바로 바다와 같이 무의식이며, 그 무의식으로부터 개인적인 자의식이 구체화되어 나오고, 그 속에 개인적인 자의식이 목욕을 하는 곳이다. 더 분명한 것은 어머니는 육신의 근인이며 생산력의 일리이다.
(A.L. 헉슬리/ 어머니)
주택은 어머니의 신체의 대리물이다. 어머니의 몸이야말로 아마도 언제까지나 사람이 동경하는 최초의 주거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안전했으며, 위안을 받았다.
(S. 프로이트)
어머니의 사랑은 부드럽고, 아버지의 사랑은 현명하다.
(이탈리아 속담)
아버지를 잃으면 어머니의 무릎이 베개 대신을 하지만, 어머니를 잃으면 거적대기 위에서 자게 된다.
(베르베르)
여자가 20세일 때 아들은 어머니를 보기 흉하게 만들고, 30세일 때 어머니를 더 흉하게도 더 젊게도 만들지 않지만, 어머니 나이 50세일 때 그 아들은 어머니를 다시 젊게 만든다.
(L. 블룸/ 결혼)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 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 다 효자가 된다.
(W. 셰익스피어/ 리어 왕)
여성에게는 본능적으로 모성애가 있다. 어머니의 어린애에 대한 사랑에는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 있다. 그러나 본능적인 사랑만으로는 자녀를 잘 키울 수 없다. 의지의 힘이 감정과 합쳐서, 모성애를 다듬어 넓은 폭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머니 자신의 마음이 맑지 않고서는 올바르게 자녀들을 인도할 수 없다. 어머니 자신이 총명하고 어질고 굳센 의지를 지니며 용감히 활동하는 힘을 나타낸다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좋은 감화를 줄 수 있다.
(J. H. 페스탈로치)
아버지의 의의는 인간의 문명 속에 자라난 하나의 배양된 감정이지만, 어머니로서의 의의는 천성불멸(天性不滅)의 것이다.
(임어당/ 朱門)
우리들을 부자지간으로 맺어 주는 것은 혈육이 아니라 애정이다.
(실러/ 군도)
자녀들의 취미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아버지는 폭군이다.
(오소백/ 단상)
대개 집안의 자식은 부모가 미리 가르치고 억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방자하게 되고, 이어끝없이 방자하다간 혹 어미를 꾸짖는 데까지 이르나, 이것은 자식도 물론 자식의 도리를 못한 것이지만 자식을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부모도 또한 잘못입니다.
(이 황/ 퇴계집)
이 세상의 어머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조감은 미치고 있는 것이다. 누구의 어머니건 다 마찬가지지만 세상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얼마나 우수한 인물인가 하는 것을 듣고 싶어한다.
(J.D. 샐린저/ 호밀발의 파수꾼)
어머니의 축복은 자식에게 짐스러워질 수도 있다.
(J. 클라크/ 앵글로 라틴의 격언)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
(플로리앙/ 우화)
어린이의 미래를 구축하는 것은 어머니의 일이다.
(나폴레옹 1세)
어린 아이는 어머니를 그 웃는 얼굴로 분간한다.
(베르길리우스/ 목가)
어머니가 만들었으면 무명 셔츠도 따뜻하고 남이 만들었으면 양모 셔츠일지라도 춥다.
(핀란드 속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부드러움을 잃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명예를 잃는다.
(벨기에 격언)
설사 자식에게 업신여김을 받아도 부모는 자식을 미워하지 못한다.
(소포클레스/ 엘렉트라)
부모는, 정부가 하는 것보다 더 조심성 있게 그들의 자녀를 보호하고 훈련시킬 수 있다. "이 백성이 모두 제 뱃속에서 생겼습니까? (구약성서 민수기11:12)"라고 모세가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M. 루터)
양친과 자식간의 관계에 관한 양상은 19세기 이래 철저히 변화했다. 자녀들은 이제 양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동료이며, 설사 누군가가 약간의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은 자식이 아니라 시대에 뒤떨어질까 걱정하는 양친인 것이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온 땅 위의 어머니들이 꽃다발을 받는 날/ 생전의 불효를 뉘우쳐/ 어머니 무덤에 눈물로드린/ 안나 자이비드의 한 송이 카네이션이/ 오늘 천 송이만 송이 몇 송이로 피었어라/ 어머니를 가진 이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어머니 없는 이는 하이얀 카네이션을 달아/ 어머니날을 찬양하자/ 앞산의 진달래도 뒷산의 녹음도/ 눈 주어볼 겨를 없이/ 한국의 어머니는 흑노(黑奴) 모양 일을 하고/ 아무 찬양도 즐거움도 받은 적이 없어라/ 이 땅의 어머니는 불쌍한 어머니/ 한 알의 밀알이 썩어서 싹을 내거니/ 청춘도 행복도 자녀 위해 용감히 희생하는/ 이 땅의 어머니는 장하신 어머니/ 미친 비바람 속에서도 어머니는 굳세었다/ 5월의 비취및 하늘 아래/ 오늘 우리들의 꽃다발을 받으시라/ 대지와 함께 오래 사시어/ 이 강산에 우리가 피우는 꽃을 보시라.
(노천명/ 어머니날)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우리는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 부모가 대부분이라기보다는 진정으로 사랑을 베푸는 경우는 차라리 예외임을 믿어야 한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부모는 자식이 한 자만하면 두 자로 보이고 두 자만하면 석 자로 보인다. < *누구나 부모된 사람은 제 자식이 좋게만 보이고 좋게만 여겨진다는 뜻>
(한국 속담)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이 없다. <* 자식을 많이 둔 어버이는 자식을 위한 근심이 그칠 날이 없고 일이 많다는 뜻>
(한국 속담)
꽃동산에 산호탁(珊瑚卓)을 놓고/ 어머님께 상장을 드리렵니다. / 어머니께 훈장을 드리 렵니다. / 두 고리 붉은 금가락지를 드리렵니다. / 한 고리는 아버지 받들고/ 한 고리는 아들 딸, 사랑의 고리/ 어머님이 우리 낳은 공로 훈장을 드리렵니다. / 나라에 다음 가는 가정상, 가정훈장을 드리렵니다. / 시일은 '어머니의 날'로 정 한/ 새 세기의 봄의 꽃/ 그날 그시에는 어머님의 머리 위에/ 찬란한 사랑의 화환을 씌워 주세요./ 어머님의 사랑의 공덕을 감사하는 표창식은/ 하늘에서 비가 오고 개임을 가리지 않음이라./ 세상의 아버지들, 어린이들/꼭, 꼭, 꼭 와 주세요./ 사랑의 용사,/ 어머님 표훈식(表勳式)에 꼭 와 주세요.
(황석우/ 초대장)
의견을 분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결혼에 관한 한, 양친은 자식들보다 경솔하고 맹목적인 것입니다.
(J. 샤르돈/ 축혼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가명/ 신새벽이나 별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박재삼/ 추억에서)
"아빠하구 아가하군 누가 이쁜지 알어? 아가가 이뻐, 이만큼." 두 팔을 벌려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공허가 와 안길 뿐이다.
(황순원/ 풍속)
올올이/ 백발(白髮)을 엮은 주름살이/ 허전한 어룰에 향수(鄕愁)를 부르고// ‥‥당신이 입고 가실 / 하아얀 수의(壽衣)에/ 인고(忍苦)의 노래가/ 물무늬같이 얼룩지고.
(이설단/ 수의)
나의 무릎을 베고 마지막 누우시던 날/ 쓰린 괴로움을 말로 차마 못하시고/ 매었던 옷고름 풀고 가슴 내어 피이더라// 까만 젖꼭지는 옛날과 같으오이다/ 나와 나의 동기 어리던 팔구 남매/ 따뜻한 품안에 안겨 이 젖 물고 크더이다
(이병기/ 가람문선)
부모 살아신 제 수심(愁心)을 뵈지 말며/ 낙기심(樂其心) 양기체(養其體)하여 백세(百歲)를 지낸 후에/ 마침내 향화부절(香火不絶)이 긔 옳은가 하노라.
(김수장)
부혜(父兮) 생아(生我)하시고 모혜(母兮) 국아(鞠我)하시니/ 부모의 은덕은 호천망극(昊天罔極)이옵거니/ 진실로 백골이 미분(粉)인들 차생(此生)에 어이 갚사오리.
(김천택)
부모의, 더구나 어머니의 자기의 피와 살을 나눈 자녀에게 대한 사랑! 그것은 인생에게 있어서 또는 생물에게 있어서 가장 원시적인 굳센 힘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덩이가 갈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목숨이 끊어지는 최후의 순간까지 변하지 않는 것은 자애가 있을 뿐이다.
(심 훈/ 불사조)
어머니! 이렇게 부르면 지체 없이 격렬한 전류가 온다. 아픈 전기이다. 아프고 뜨겁고 견딜 수 없는 전기이다.
(김남조/ 그 먼 길의 길벗)
어머니는 어린 것의 피난처요, 호소처요, 선생이요, 동무요, 간호부요, 인력거 · 자동차 · 기차 대신이요, 모든 것이다. 밥 주고,물주고, 옷 주고, 버선 주고, 사랑 주고, 참외주고, 떡 주고, 누룽갱이 긁어 두었다 주고,놀다가 들어오면 과자 주고, 동네 잔칫집에 가서 가져온 빈대떡 주고-모든 것을 어머니가 준다.
(전영택/ 나의 어머니)
사람의 사회에 있어서도 어미처럼 강하고 따뜻하고 거룩한 것은 없다.
(유달영/ 모정의 신비)
어머니는 자식 사랑함의 괴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더욱 어머니다움을 느끼게 된다.
(이주홍/ 고갯길의 연속)
하고픈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 나는 몹시도 오랫동안 타향에서 지냈습니다. / 그래도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시는 이는/ 언제나 어머님 당신이었습니다.
(H. 헤세/ 나의 어머님에게)
어머니 목소리/ 엉킨 실타래 풀기에 목이 메고/ 하늘에 손 닿기만 바라는/ 높새 바람 속의 나.
(임명자/ 눈썹달-낮달)
흙 속에 묻힌 채 구조원을 격려하며 사흘을 견디다 구조의 순간에 숨을 앗아버린 소녀와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자식을 살려야만 했던 어미의 아픔에도// ‥‥하늘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황국명/ 침묵)
부모님 계신 제는 부모인 줄을 모르더니/ 부모님 여읜 후에 부모인 줄 아노라/ 이제사 이 마음 가지고 어디다가 베풀리오.
(이숙량/ 汾川講好歌)
부모님 자시는 방(房)을 만져 보아 덥게 짓고/ 일일(-日) 삼시(三時)를 효양(孝養)을 못할진들/ 부생(父生)코 모육(母育)한 은혜야 잊을 줄이 있으랴.
(무명씨)
뽕나무 가래나무 초목이 라도/ 모두가 공경함엔 뜻이 있다오./ 우러러보는 분은 아버지시고/ 의지할 분은 바로 어머니라오./ 어느 하나 부모 발부(髮膚)에 속하지 않을까/어느 하나 부모 혈육에 생겨 지나지 않았을까.
(시 경)
아버지는 나의 삶 나를 있게 하셨고/ 어머니는 고생하며 키워 주셨지/ 쓰다듬어 주시고 먹여 주시고/ 키우시고 감싸 주셨네// 언제나 돌보시고 보살피셨지/ 들고나며 따뜻이 보살피셨지/ 크나큰 은덕 갚으려 해도/ 저 넓은 하늘 끝이 없구나.
(시 경)
얘야/ 에미가 기다린다/ 언제까지고 기다리마/3년 뒤면 돌아온다더니/40년이 지나도 못 오는 너를/ 그래도 기다린다/ 먼 산 적시며 비오는 날은/ 우 중에라도 뛰어들 것만 같아/ 물 흐르는 신작로 길을 내다보고 섰다.
(김규동/ 어머니)
우리들의 잦은 불평에도/ 그냥 웃으시던 조용한 얼굴이/ 오래 남는 줄은 몰랐습니다. / 집에도 흰 라이락은 무성하고/ 문득 아버지가 오시려나 문을 열어둡니다. // ‥‥흙처럼 엎드려 자식들을 세우려는/ 아버지의 산은 결국 이런 것이었음을/ 그지없이 낮으나 한없이 푸근한/ 우리들에겐 오래 남는 체온이었습니다.
(김현숙/ 편지)
지난날 한국의 여성들에게 생활의 즐거움과 그 가능성이 허용된 것이 있다면 오직 그것은자녀를 키우는 일밖에 없었다. 시어머니의 학대와 남편의 횡포 밑에서도 그들이 소유하고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자녀에의 애정과 혼수로 가지고 온 자개 장롱뿐이었다.
(이어령/ 이것이 오늘의 세대다)
어머니/ 언젠가 당신 손을 내밀듯이/ 주님곁으로 나를 인도하고자/ 심장은 마지막 고동으로/ 어둠의 벽을 쓰러뜨리리라.// 영원하신 님 대전에/ 당신은 무릎 꿇어/ 곧곧한 조상(彫像)이 되시리니/당신이 아직 살아계실 때/이미 그대를 보살펴 주셨듯이//내 주여 당신곁으로 갑니다 하시며/ 숨을 거두실 때처럼/힘 빠진 떨리는 팔을/ 치켜올리시리라.// 나를 용서하실 그 때 홀로/ 당신은 나를 쳐다보시려 하시리라./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었는지 기억하시리니/ 눈에는 가쁜 호흡을 띠시리라.
(운가레띠/ 어머니)
가장 가깝고, 가장 정답게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먼 것‥‥‥
(G. 바커/ 어머님에)
호미도 날이언마는 낫같이 들리도 없으니이다. 아버님도 어버이신마는 어머님같이 괴실리 없세라.아아 어머님같이 과실리 없세라
(무명씨/ 사모곡)
한국의 어머니는 신식 바람이 불면서부터 날로 외로워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대의 격차가 심하고,또 옛날처럼 며느리 앞에 군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한 가정으로부터 소외되는 일이 많다. 재즈를 즐기고 자녀들과 함께 어울려 놀기에는, 그리고 며느리와 함께 피크닉을 다니기에는 너무나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고전적이라도 할 수 있다.‥‥어머니에게는 잔잔한 물결 같은 사랑만이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날의 한국 옛날의 그 향수가 서려 있다. 어머니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본다. 정신의 고향인 어머니를 어떻게 방랑하는 신시대의 기질에 접목시키느냐? 이것이 현대의 효도인 것이다.
(이어령/ 증언하는 캘린더)
애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시작해서 얼마 후엔 부모를 심판한다. 부모를 용서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드문 일이다.
(O. 와일드/ 중요하지 않은 여인)
로맨스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우정도 실망시키지만, 부모 자식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보다 덜 시끄러우면서도 세상에서 여전히 잊을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관계이다.
(T. 라이크/ 사랑의 육욕)
내일 어머니를 만난다 평양에서/ 이제 나에게는 아무 소원도 없다. // 쌀 한 말 짊어지고떠난 네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있었느냐./ 어머니는 뒷간 살구나무 아래서 달려나와/늙은 눈물을 그치지 않는다. / 한번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도 그치지 않고/ 휴전선도 눈물을 그치지 않는단
(정호승/ 어떤 유서)
내 가고픈 곳은/ 산너머 구름 저편이라오/방울새 우짖는 초록빛 시골/ 하얀 기와집 사립문 열리며/그리던 어머니 눈물 짓는다오//내 가고픈 곳은/ 산너머 구름 저편이라오/목동 피리소리 양떼 잠재우는 언덕/ 아버지 들깨, 기장 심어 놓고/ 아들을 기다리는 밭머리라오.
(김 파/ 내 가고픈 곳은)
어느 것은/ 아, 돌아가신 어머님 영전에 드린다. / 어머니의 사랑만큼 오래 가는 언어도/ 이 세상엔 그다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김현승/ 책)
어머니/먼 관모봉 산마루에/다시 이 해의 눈이/ 쌓여서 은으로 빛나옵니까./ 물길으시는 당신의/ 붉으신 손도 보이는 듯하옵니다.
(유정/ 관모봉 아랫마을·)
버릇없이 자란 애는 자기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
(H. 테일러 경/ 인생의 비망록)
부모양육지은(父母養育知恩)을 갚을 길이 전혀 없다/ 삼신산(三神山) 불로초를 갈력(端力)히 구득(求得)하여/ 고당(高堂)에 학발쌍친(鶴髮雙親)을 늙지 말게 하리라.
(무명씨)
내 나이 어렸을 제, 우리들이 타관에 나와 단간방 세간살이로 돌아다니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떤 날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내가 이 다음에 무엇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반말을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다소의 과대망상증을 가진 나는 자못 자신 만만하다는 듯이 어머니의 소원을 물었다. 순간 어머니의 눈은 빛나셨다. 내 신념에 움직이신 듯, 그리고 은근하신 어조로, "강릉 군수나 되어 주렴." 이것은 어머니의 향수, 고향으로 돌아가시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시리라. 그러나 비단옷이 아니고 돌아가시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결심이시기도 하다.
(김동명/ 어머니)
작은댁에 미쳐 도무지 돌아보지도 않는 남편 때문에 눈물과 한숨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어머니, 가슴이 재가 되었다고 속탄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을 어루만지며 한탄하던 어머니, 그 시골에서는 볏섬이나 한다는 가산을 외도와 잡기로 탕진해 버리고 딸자식 둘과 핏덩이 찬수를 남겨 놓고 죽어 버린 남편 없는 가정을 연약한 손으로 이룩해 나간 어머니였다. 누가 아들의 출세를 바라지 않을까마는 50여 평생을 고난의 연속으로 이어온 찬수의 어머니에게는, 아들 찬수는 마음의 기등이었고, 그의 출세를 바라는 마음은 남다른 뜻이 있었다.
(안수길/ 나루터의 탈주)
몹시 출출하고 허술함이/ 낙화일지라도/ 낙하일 수 없는/ 너와 나의 성전보다 굳은 가슴/ 어버이의 종을 울리며/ 하늘이 흐리어 어두울지라도/ 노을빛보다 귀중한/ 저 능선의 아침으로
(김남석/ 길은 하난데)
저 높은 천당에서 서로 속삭이는 천사들도/ 그들의 불타는 사랑의 말들 속에서 어머님이이라는 말만큼/ 진정어린 말은/ 찾을 수 없다고 느끼기에 저는 오랫동안/ 그 그리운 이름으로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 저에겐 어머니 이상이시고 저의 마음속에 깊은 마음을 채워주신/ 당신을, 죽음은 저의 버지니아의 영혼을/ 해방시켰을 때 저의 마음속에 당신을 앉혀 놓았습니다. /저의 어머니 일찍 돌아가신 저의 친어머니는/오직 저 자신만의 어머니었으나 당신은/ 제가 극진히 사랑한 이의 어머니이십니다. / 그래서 제가 옛날에 안 그 어머니보다도 무한히 소중합니다. / 저의 처가 저의 영혼에겐 저 자신의 목숨보다도/ 무한히 더 소중했던 것과 같이.
(포우/ 어머님에게)
날이 맞도록/ 왼 데를 헤매노라./ 나른한 몸으로도/ 어둔 부엌에,/ 밥짓는 어머니의/ 나보고 웃는 빙그레 웃음/ 내 어려서 젖먹을 때/ 무릎 위에다/ 나를 고이 안고서/ 늙음조차 모르던/ 그 웃음을 아직도/ 보는가 하니/ 외로움의 조금이/ 사라지고, 거기서/ 가는 기쁨이 비로소 온다.
(이상화/ 어머니의 웃음)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어머님하고 둘이 앉아/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인 이야기를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라?
(김소월/ 부모)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두 분 곳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가없는 은덕을 어디 대어 갚사오리.
(정 철)
무엇이나 그것의 어버이에게는 소중하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콜로네우스)
남자인 나는 어머니의 기쁨을 경험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기쁨 중에 가장 큰 기쁨이 주는 데서, 저를 잊어버리는 데서 나오는 줄을 믿는 나는 이 일을 가장 단적으로, 가장 계속적으로, 가장 철저하게 하는 어머니의 기쁨이야말로 인류가 맛보는 모든 기쁨 중에 가장 큰 기쁨인 것을 믿는다.
(이광수/ 여성 교실)
우리는 어머니에 대하여 무한한 사모와 감격을 가진다. 일생에 변함없는 사모,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더욱 간절하여지는 사모,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것밖에 더 있으랴. 부처가 일신이라 하여도 애인이 생명같이 더 중하다 하여도 고것은 변할 수 있는 것, 조건적인 것,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우리의 사모는 영구적이요, 무조건적이다.
(이광수/ 여성 교실)
자모(慈母)는 주로 사랑하는 어머니인데 대해서, 현모는 자녀를 사랑하는 동시에 옳게 가르칠 줄 아는 어머니다. 귀여운 자식에게 때로는 사랑의 채찍을 가할 줄 아는 명(明)과 용(勇)을 가진 것이 현모이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이론적인 교훈을 남긴 것이 없다. 그러나 그의 살과 피,몸과 영혼 전체가, 하나의 위대한 로고스(logos)였다. 몸으로 화하지 않는 언어 · 애국심 · 신앙, 그것은 사실 가치 없는 것이란 굳은 신념을 나에게 가지게 한 것은 어떤 훌륭한 신학자의 이념이 아니라 나의 어머니이다.
(강원용/ 나의 어머니)
달을 쳐다보던. 시선을 돌리면서/아버지는 무릎을 굽혀 두 손으로 흙먼지를 퍼담는다. /비 한 방을 보내지 않는 하늘을 향해 기도를 드리더니/ 나 더러 떠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집안에는 식탁도 있고/ 빵도 술로/ 신발도 말도 있었으니./ 바위 위에서 기도를 드리며/언젠가 아버지는 말했다. / 달을 쳐다보는 네 시선을 거두어라,/ 바다를 조심하고 여행을 조심해라!
(마흐무드 디르웨서/ 나의 아버지)
아버지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임진강 샛강가로 저를 찾지 마세요/ 찬 강바람이 아버지의 야윈 옷깃을 스치면/ 오히려 제 가슴이 출고 서럽습니다/ 가난한 아버지의 작은 볏단 같았던/ 저는 결코 눈물 흘리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이제 그만 발걸음을 돌리세요/ 삶이란 마침내 강물 같은 것이라고/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이라고/ 아버지도 저만치 강물이 되어/ 뒤돌아보지 말고 흘러가세요/이곳에도 그리움 때문에 꽃은 피고/ 기다리는 자의 새벽도 밝아옵니다/ 길 잃은 임진강의 왜가리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길 되어/ 어둠의 그림자로 햇살이 되어/ 저도 이제 어디론가 길 떠납니다/ 찬 겨울 밤하늘에 초승달 뜨고/초승달 비껴가며 흰 기러기떼 날면/그 어디쯤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도 샛강가로 저를 찾으신/ 강가에 얼어붙은 검불 같은 아버지
(정호승/ 임진강에서)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대낮에 여우가 우는 산골/ 등잔 밑에서/ 딸에게 편지 쓰는 어머니도 있었다.
(노천명/ 고향)
호롱불 켜놓고 밤새워/ 콩나물 다듬으시던 어머니/ 날 새기가 무섭게 콩나물다라 이고 나가/ 온양시장 모퉁이에서 밤이 늦도록/ 콩나물 파시다가 할머니 된 어머니/그 어머니 관도 없이 흙 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쓰러져 세상을 버리셨다/ 손끝마다 눈을 떠서 아프던 까치눈도/ 고요히 눈을 감고 잠이 드셨다/ 일평생 밭 한 뙈기 논 한 마지기 없이/남의 집 배추밭도 잘도 잘 매시더니/ 배추 가시에 손 찔리며 뜨거운 뙤약볕에/ 포기마다 짚으로 잘도 싸매시더니/ 그 배추밭 너머 마을산 공동묘지/ 눈물도 없이 어머니 산속에 묻히셨다/ 콩나물처럼 누워서 흙 속에 묻히셨다/ 막걸리에 취한 아버지와 산을 내려와/ 앞마당에 들어서니 어머니 말씀/ 얘야, 돌과 쥐똥 아니면/ 곡식이라면 뭐든지 버리지 말아라
(정호승/ 어머니)
어제를 보내고 돌아와/ 닫혀진 창을 열면/ 순백의 옷을 입고 오는/ 정결한 아침// 어머니/ 때로는 슬픔이 기다리는/ 좁은 돌층계를 기쁘게 오르다가/ 갑갑하게 돌아와 부른/나의 노래가 한숨일지라도// 진정 오랜 날 하늘을 안고/ 깊은 마음밭에 물을 뿌리 게 한/ 신앙의 또 하나의 목숨이었습니다/ 한번밖엔 주어지지 않은/ 짧은 여정을 위해 얼마나 성스럽게 짐을 꾸려야 할지/ 그 한 분의 큰 손이/ 나의 어깨를 치셨습니다// 부르시는 소리에 옷깃을 여미며/ 처음인 듯 새롭게/ 가득히 안아 보는/ 은혜로운 햇살//어머니/ 日出의 바다는 또한 日沒의 바다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님이 오실 그 바다에서/ 당신을 만나겠지오// 짙푸른 파도같은/ 노래를 태우며/ 가야 할 아침들이 기도에 젖어/ 늘 깨어 있었으면 합니다/ 어머니
(이해인/ 편지-어머니에게)
저녁 창가에 비친 저 달은/ 근심스런 어머니의 얼굴인가?/내 방을 들여다보고 있네./하늘나라에서도 못난 자식 걱정에/ 반쪽으로 상한 저 얼굴/ 눈물 없이는 쳐다볼 수 없네.//저녁 창가에 흐르는 저 은하수는/ 그리운 어머니의 옛이야기./ 도란도란 들려주시는 음성‥‥/ 하늘에서도 어리석은 자식 타이르시는// 긴긴 어머니의 사랑이야기‥‥/ 눈물 없이 쳐다볼 수 없네.
(강대석,/ 창가에서)
이 세상의 반석이 되라고/ 베드로라 하셨다지요/ 하나님께 나를 바치며/ 베드로 되기를 바라셨다지요// 오늘은 자리에 누워 계신 어머니/ 아픈 데가 많아도 아프다하지 않고/그저 좀 어지러워 누었노라고/ 이것 저것 속상해 눈물 흘리고도/ 웬 먼지가 이렇게 많누 하시니// 말씀하지 않아도 먼저 아는데/행여 가슴 아플까 염려하여/ 아픈 것은 어지럽고/눈물 나는 건 죄다 먼지 때문이라는데/어머니,/ 정말 먼지는 왜 그렇게 많은가요// 너만한 나이에 아버지 끊고/ 굳굳히 자라난 훌륭한 사람이 많단다/달구어지지 않은 쇠는 강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모르고 사는건/ 반쪽 삶이라 가르치시며/ 먼저 갈 것을 염려하여 날마다 기도하시니/ 이 아이가 스물이 될 때까지는 살아 있게 하소서// 긴 긴 밤을 않고도 약 한 첩 못쓰고/ 아는 병이니 괜찮다 하지만/ 지켜보는 제 가슴은 미어지지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합하여도/ 어머니 사랑 앞에선 빛을 잃는다는데/ 나는 그 사랑 앞에/ 한 송이 카네이션밖에 놓을 게 없으니/ 어머니,/ 자식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날마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바라만 보고있는/ 제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지켜보아 주시는 어머니가 없다면/제가 자라서 세상의 반석이 되고/기둥이 된들 누가 기뻐하고/ 누가 장하다 할까요/ 이 밤 지나면/ 기적으로 일어나 및은듯이 나아서/ 저를 지켜보아 주셔요/ 어머니의 아들이 세상의 반석이 되는 날/ 자랑으로 웃으셔야지요// 가슴에 어두운 죽음을 껴안고도/ 저를 위해 기도하시니/ 어머니/ 그 기도 속에 행복한 나날을 살아간들/ 이 가슴에 꼭 맺혀 지워지지 않을/ 애달픈 어머니의 모습을 어찌하지요/ 아, 어머니-
(박용주/ 어머니의 기도)
보리방아를 찧다가/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날 낳으셨다는 어머니/ 지금 선박은/ 나의 그러한 어머니/ 언제고 어머니는/ 빈 배처럼 고독하시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명사로 읽지 않고/ 동사로 읽는다/ 우리 어머니는 30대 이후/ 50년을 내가 좋아하는/ 선박과 바다 역할을 하셨다/ 그분은 나를 쓸쓸한 갈매기로 키우셨다
(이생진/ 선박)
올같이 노인이 흔한 해에도/우리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우리 아버지는 평생 노인 한번 못되고/ 떠나셨다/ 나는 50이 넘었는데도/ 그분은 아직 30대/오늘같이 흔한 경로잔치에/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섭섭하다/ 무덤 앞에는 봄마다/ 그분 대신에 할미꽃이 늙는다/ 그분은 아직도 30대/ 내가 그분보다 20년이 넘었는데도/ 그분 앞에서는 수염이 나지 않는다
(이생진/ 늙지 않는 아버지)
더러는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더러는 영영 생명을 버린/자식들을 못잊은 채/ 남은 자식들만이라도 무릎 가까이 모아 앉히고// 순한 우리 어머니들이/ 못다 베푼 사랑을 피어올리듯
(조태일/ 달)
지하의 아버님도 혼백이 있으시면/ 지상의 어머님께 편지 한번 써보세요/ 일제(日帝) 때야 일본말 몰라 못 샜다 하지만/ 지금이야 아자도 좋고 마자도 좋으니/ 아직도 언문 잊으시지 않았다면 써보세요/ 어머님은 일흔아홉/ 당신이 가시고 마흔세 해/ 그 삶이 어떠했나/ 위로 편지 한장 써보세요/ 당신과의 연령 차이 마흔하나/ 연상의 여인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만/ 당신이 두고 간 지상의 여인/ 당신의 유일한 조강지처에게/ 연애 편지 한번 써보세요/ 당신도 마흔세 해를 혼자 살았으면/ 여자 하나쯤 그리워하셨을텐데/ 남겨둔 자식 들 기르느라/ 얼마나 고생하였느냐고/그런 식의 위로가 아니더라도/ 지하에서 이제는 뼈란 뼈 다 혼 되었지만/ 그래도 당신이 보고 싶어 눈을 감지 않았다고 써보세요/우표는 제가 보내드릴테니/ 한 번 써보세요/죽음이란 그렇게도 꼼짝 못하는/ 절벽인가요
(이생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연애편지)
아버지는 딸을 자랑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자랑하기 쉬운 법이다.
(메난드로스/ 단편)
허리가 나오도록 치마를 끌며/ 돌아보는 돌아보는 시들 홀어머니.
(고원/ 면회)
이 세상에서 우리가 고향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면 새로 생긴 자에 대해 그에게 영양을 제공하고, 그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어머니야말로 참된 향토가 아닐까요.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성장하여 가는 아동에 있어서도 어머니는 영원히 그들이 괴로워할 때 좋은 피난소이며, 그들이 즐거워할 때의 좋은 동감자입니다.
(김진섭/ 母頌論)
부혜(父兮) 날 낳으시니 은혜 밖의 은혜로다. / 모혜(母兮) 날 기르시니 덕(德) 밖의 덕이로다. /아마도 하늘 같은 은덕을 어디 대어 갚사올고,
(김수장)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과저 길러 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몸 나서 어질소냐./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낭원군)
세상 사람들아 부모 은덕 아나산다/ 부모 곳 아니면 이 몸이 있을 소냐/ 생사장제(生死葬祭) 예(禮)로써 종시(終始) 같게 섬겨스라
(박인노/ 노계집)
옛날 옛적에 우리네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걱정이 태산 같아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아들놈이 혹시 백여 시한테 흘려가지 않았나/ 딸자식이 혹시 호랑이한테 업혀가지 않았나/ 하고// 오늘의 어머니들도 그런다/ 자식들 담 밖으로 내보내고/ 퇴근길 하학길에 조금만 늦어도/ 불길한 생각에 안절부절 못한다/ 학교로 전화를 걸어본다/ 직장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한다/ 딸자식이 치한한테 어떻게 되지 않았나/ 아들놈이 경찰한테 연행되지나 않았나/ 혹시는 차에 깔려‥‥/ 하고// 그러나 옛날의 어머니들은/ 늦도록 들어오지 않는 자식들 걱정에/ 짐승을 무서워하면서 뜬눈의 밤을 새웠으되/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의 어머니들은/ 제때에 들어오지 않는 자식들 걱정에/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되/ 짐승은 무서워하지 않는다
(김남주/ 오늘의 어머니들은)
동물은 태어났을 때부터 완성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났을 때는 원료에 지나지 않는다. 이 원료를 써서 어떠한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다.
(유태 격언)
부모에게 잘못이 있을 때 고치도록 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거역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禮苑)
천국은 어머니의 발 밑에 있다.
(이슬람 고행승의 속담)
"엄마"라는 관념은 그에게 있어서는 사랑이라거나 따뜻함을 뜻하는 것이기 전에 더욱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생명을 보호해주고 있는 것, 생존의 방법 그것이 그녀였다.
(강신재/ 상)
자기 자식을 아는 아비는 현명한 아버지다.
(W.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한 분의 아버지가 백 명 의 스승보다 더 낫다.
(G. 허버트/ 명궁)
자녀는 어려서는 어머니의 젖을 빨지만, 커서는 아버지의 젖을 빤다.
(J. 레이/ 영국 격언)
고산식물처럼/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오리오리/ 맷돌가는 소리.
(박용래/ 설야)
우스개삼아 엄마를 업었으나/ 그 너무 가벼움에 눈물겨워져/ 세 발짝도 못 걸었네.
(이시카와 타꾸보꾸/ 우스개삼아)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모든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W. 랭런드/ 농부 피어즈)
아버지들의 근본적 결함은, 자녀들이 자기들의 자랑거리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B. 러셀/ 회의적인 수필)
아버지는 아들의 덕을 딸하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의 허물을 말하지 않아야 한다.
(명심보감)
자기 부친만한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부친보다 더 능력이 있어야 한다.
(D. 디드로/ 라모의 조카)
자녀에게 회초리를 쓰지 않으면, 자녀가 아비에게 회초리를 든다.
(T. 풀러/ 성지)
한자락 꿈이었던 당신의 이승/ 기쁨도 잠시/ 시름도 아주 잠시/ 잿불로 사위어 간 먼 시선을 당신의 등 뒤에서 다시 봅니다// 도포자락 여미시고/ 앞소리 뒷소리도 양팔에 거느리시고/ 떠나는 이승의 한 모롱이/아직 다 접지 못한/ 하얀 꿈은 그대로 남아// 예순 세 해/ 골목마다 보이는 걸음걸음/ 힘겹게 절룩이며 어깨 늘이신 고난/ 얼룩진 생애가 그대로 닫혔습니다.
(나영자/ 아버지 · 1)
동무들과 고샅에서 자치기를 하다가/ 토막 나무에 이마를 맞아 터지기라도 하면/ 장독에가서 얼른 가서/ 된장 한 숟갈 떠서 바르면 그만이었지// 낫으로 시누대 꺾어 빼무락질을 하다가/ 아야 하는 순간 손가락이라도 베면/낫자루로 개미둑을 뽀사/ 침 발라 사알짝 발라주면 말짱했고// 나무하러 가서 산에서/
머루랑 다래랑 따먹다가 폭각질이 나오면/ 저 아래 옹달샘에 내려가 맹감잎으로 표주박을 만들어/ 물 한 모금 떠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면 쑥 들어가고는 했지// 그러나 무엇보다도/내 어린 시절에 신통했던 것으로 치자면/어머니 손을 덮을 것이 없었지/ 아니고 배야 아이고 배야 뜬금없이 배가 아파/ 방안을 온통 떼굴떼굴 굴러다니면/ 어머니는 나를 따뜻한 아랫목에 눕혀놓고/ 그 까끌한 손바닥으로 배꼽 주위를 슬슬 문질러주었지/ 그러면 영락없이 아픈 배가 싹 낫고는 했지/ 그러면 거짓말처럼 언제 내가 배 아팠냐 했지
(김남주/ 어머니의 손)
낡고 바스라진 기왓장 틈새/ 목이 가려운 풀꽃들의 웃음이 솟고/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한켠으로 헛간 옆 장독대/내 어머님의 하얀 손길이 보인다.
(나영자/ 탱자꽃 마을)
그들 어머니들에게는/ 자기들 자식만이 제 자식이 아니었다/자기들 남편만이 제 남편이 아니었다/ 그 사랑 동해바다처럼 넓어/ 하늘의 뭇 별들을 포용할 수 있는 그들 어머니들에게는/ 압제와 싸우는 모든 사람이 자기들 자식이었고 남편이었다/ 그 희망 백두산만큼은 높아/대지의 뜻 산들을 거느릴 수 있는 그들 어머니들에게는/ 착취와 싸우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 남편이고 자식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 어머니들은/ 서울 어딘가에 비좁게 앉아 민가협 사무실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유가 위협을 받고/ 인간성이 말살당하는 곳이면/ 그곳이 어느 곳이 쓴 그들 어머니들은 그곳에 있었다/ 민족이 해방을 요구하고/ 나라가 독립을 외치고/ 조국이 통일을 염원하고/ 민중이 행복을 추구하는 곳 그런 곳이면/ 그곳이 어느 곳이건 그들 어머니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들 어머니들은/ 수천 수만의 압제의 타도를 외치는 광장에도 있었다/ 그들 어머니들은/ 춥고 기나긴 밤을 단식으로 이어가는 농성 장에도 있었다/ 그들 어머니들은 인간의 육체가 질식당하는 고문실의 칠성판에도 있고/ 감옥의 철창에도 있었다/ 그들 어머니들은/ 부정이 날개를 치는 유세장과 투표장에도 있었다/ 그들 어머니들은/ 판사의 양심을 지켜볼 수 있는 법정의 방청석에도 있었다/ 때로는 분노한 주먹과 함께 있었다. 그들 어머니들은/ 때로는 북받치는 슬픔과 함께 있었다. 그들 어머니들은// 그들 어머니들 앞에서는/ 사랑의 단단함과 증오의 화살로 무장한/ 그들 어머니들 앞에서는/ 모두가 모든 것이 속수무책이었다/ 법질서 확립, 단호대처, 엄벌처벌,/ 이 세 마디 말밖에는 다른 말을 모르는 서슬퍼런 권력도/ 흐물흐물 죽은 낙지대가리 거나 부들부들 떠는 사시나무였다/ 천하장사도 못 연다는 감옥의 문도/ 그들 어머니들 앞에서는 거짓말처럼 열렸다/ 잔재주가 잔나비 같고 말빤치가 세다는 유명짜한 인사들도/ 그들 어머니들 앞
에서는 아이고 나 살려라 삼십육계였고/ 길가에서 우는 아이들도 저기 민가협 어머니들이 몰려온다 하면/ 울음을 그쳤다, 뚝 그쳤다// 그렇다/자식의 죽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들 어머니들은/ 사랑의 철옹성이고/ 자유의 세계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돌격대였다/ 그렇다/ 남편의 갇힘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들 어머니들은/ 그 하나하나가 백병전의 육탄이었고/ 평화의 무적함대였다
(김남주/ 어머님 찬가)
어머니들이여! 그들은 보리밭 한가운데 서 있다/ 넓은 들판을 내려다보는/ 깊은 정오처럼 높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살해된 사람들을 선발하여/ 승리를 단련하는 검은 목소리처럼// 초연처럼 기가 죽은 형제들이여/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의 어머니들이여/믿어다오 당신들의 죽은 자식들을// 그들은 피로 물든 돌 밑에서 나무 뿌리가 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흩어진 서글픈 뼈는/흙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입은 아직도 마른 흙덩이를 물고/ 철의 바다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높게 치켜올린 주먹으로 죽음에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수없이 많이 쓰러진 육체로부터/불굴의 생명이 하나 태어난다/ 어머니들이여 자식들이여 깃발이여/ 생명처럼 살아있는 오직 하나의 육체가-/죽음의 눈을 가진 얼굴이 어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칼은 지상의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그러니 벗어다오/ 당신들의 검은 상복을 벗어다오/ 당신들의 모든 눈물을 하나로 뭉쳐다오/ 그 눈물이 금속의 탄환이 될 때까지/ 그때가서 우리들은 밤이고 낮이고 두들겨 패자/ 그때가서 우리들은 밤이고 낮이고 짓밟아대자/그때가서 우리들은 밤이고 낮이고 침을 뱉아주자/증오의 문짝이 넘어질 때까지//어머니들이여 당신들의 고통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나는 당신들의 자식들을 알고 있다/ 그들의 죽음이 긍지인 것처럼 그들의 삶 또한 자랑인 것이다/ 그들의 웃음소리는/어둡고 칙칙한 작업장을 활짝 피어나게 했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그들의 발자욱 소리는/나의 곁에서 매일처럼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레반의 오렌지밭에서 남부의 방직공장에서/잉크 냄새가 나는 인쇄공장에서 건축현장에서/ 나는 보았던 것이다 에네르기와 불이 되어 타오르는 그들의 마음을
(네루다/ 죽은 의용병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노래)
눈물이 많은 어머니로 말하면/ 눈물은/ 모성의 샘입니다/ 기다림에 사는 어머니로 말하면/ 시간 속에/ 모성은 섬 입니다// ‥‥세상엔 허구 많은 이름인 있건던도/그 무상(無償)인 사랑의 의미에서/ 그 소소간 미소의 의미에서/ 이에 견줄건 또 없으리// 망각에 못박으면/먼 세월 요요한 별밭에/다시 피어 오르리니/모성은 고독한 은총의/ 그 등(燈)입니다.
(김남조/ 모상)
어머니/또다시 5월입니다. / 바람 한 줄기 지나간 자리에/ 떨어지는 붉은 꽃잎마다/ 당신의 붉은 꽃잎마다/ 당신의 피눈물 서려 있는/ 이 땅의 5월입니다. // 식민지 반도의 딸로 태어나/ 빼앗긴 나라 되찾으러/ 북간도로 떠나간 님 그리움에/ 몰래 뇌이시던 한숨소리가/ 쌓이고 쌓여/ 기어코 하늘을 여시더니/ 이제는 허리잘려 나누인 땅/ 반도의 피맺힌 상채기에/자식을 내 맡기고 눈시울 붉히시니/ 그 설움이 모여/ 동강난 땅이라도 있겠습니까/ 어머니.// 보세요 어머니/ 꽃잎 하나에 서린 당신의 눈물과/ 이 땅을 뒤덮는 한숨과 서러움의 뿌리가/저 미친 바람을 잠재우기 전에는/결코 뽑혀지지 않아요.//곳곳에 배어 있는 코쟁이의 노랑내와/ 기지촌에 흘러내리는 썩은 물이/ 사라지기 전에는,/저 눈먼 바람을 몰아내기까지는/ 어머니 아직도/당신의 5월은 끝날 수 없어요.
(서덕석/ 어머니의 5월)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는 누구나 죄인이다. 자기에게 손찌검을 하는 아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C. 페기)
아버지께서는/ 산을 사랑하셨다. / 언제나 산에 가서 약초를 캐시며/ 산과 더불어 지내셨다. // 칠십 고령 이셔도/ 나무를 베어 초막을 짓고/ 풀을 뜯어 찬을 삼아/ 마음을 밝히신 다음/ 성경을 읽으시고 기도를 드리며/ 한평생을 지나셨다. // 여든 셋이 되신 가을/ 간단한 산 행장으로/ 집을 나가신 후/ 도중에서 병을 얻어/그 병으로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다음/ 내가 바라보는 산 얼굴은/ 언제나 검고 비감하다. //"세상이 괴롭거던 산으로 가라/ 친구와 사랑하던 사람이 너를 버려도/ 산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 산과 사람끼리는 못할 말이 있어도/ 산과 마주 앉으면 못할 말이 없다. /언제나 구름에다 마음을 씻고/ 성경이나 읽으며 산에서 살라."// 이제도 귀에 쟁쟁한/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오늘 검게 흐린 산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황금찬/ 아버지)
어버이님네들이 외우는 말이/ '딸과 아들을 기르기는/ 훗길을 보자는 심성이로라.'/ 그러하다. 분명히 그네들도/ 두 어버이 틈에서 생겼어라./ 그러나 그 무엇이냐, 우리 사람! 손들어 가르치던 먼 훗날에/그네들이 또다시 자라 커서/ 한결같이 외우는 말이/ '훗길을 두고 가자는 심성으로/ 아들 딸을 늙도록 기르노라.'
(김소월/ 훗길)
그럴리 없는데/ 어려서 들은 말이 맞는 것같다/ 누가 날 버리고 갔다는/ 개천 둑 미류나무 밑에/ 버리고 갔다는 말// 선친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다/ 38세의 나이가 전부였지만/ 선친은 그럴 분이 아니다// 어머니는 79세의 나이로/ 38세의 남편을 아직도 그리워한다/ 선친은 肉에서 骨로 골에서 재로 재에서 바람으로 변했는데도/ 실제 모습은 그대로 있다/ 눈도 코도 입도 귀도 그대로 있다/아무리 바람처럼 사라졌다 하더라도/ 그럴 분이 아니다 어머니는/ 더욱 그럴 분이 아니다// 내가 캄캄한 시대의 어둠에 싸여/ 어머니를 멀리한 적은 있어도/ 나를 버릴 분은 아니다/ 그런데도 누가 버리고 간 것 같다/아직도 나는 미류나무 밑에서 울고 있는 갓난 아이/ 어머니보고 물어보고 싶지만/ 어머니도 누가 자기를 버린 것 같다고/ 할까봐/ 차마 그 말을 못 하겠다
(이생진/ 나를 버리고)
미칠 듯한 정열 때문에 나는 당신 곁을 떠났습니다/ 세상 끝까지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껴안아 줄 사랑/ 그런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골목이 라는 골목은 다 찾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집집마다 문에 두 손을 벌리고/자그마한 사랑이나마 베풀어 달라고 구걸했습니다/ 그러나 받은 것은 다만 조소와 차디찬 증오뿐이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사랑을 구하여 헤매다녔습니다/ 그 사랑은 아무리 구해도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지쳐 슬픔에 겨워 집으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다리고 있다가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때 아 당신의 눈에 떠올랐던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다녔던 아름다운 사랑이었습니다.
(하기네/ 게르테른가에서 태어난 나의 어머니 S. 하이네에게)
아직도 살아계십니까, 늙으신 어머님?/ 저도 살아 있어요. 문안을/ 드립니다, 문안 을 ! / 당신의 오두막집 위에/그 말 못할 저녁 빛이 흐르옵기를.// 저는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불안을 숨기시고/ 저를 두고 몹시 애태우셨다고,/ 자주 한길로 나가곤 하신다고,/ 옛스런 헌 웃옷을 걸치시고.// ‥‥예나 다름없이 정겨운 저는/ 다만 몽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 끝없는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우리의 나지막한 집으로 돌아갈 날을.//저는 돌아가겠습니다. /봄답게 우리 흰 뜰에/어린 가지들이 뻗을 때/ 저를 이제 새벽에/8년 전처럼 깨우지만 마세요.// 사라진 몽상을 일깨우지는 마십시오./ ‥‥너무나 이른 상실과 피로를/ 저는 인생에서 겪어야 했습니다. / 그리고 저에게 기도하는 것은 가르치지 마십시오.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옛날로 되돌아갈 것이 없습니다. /당신만이 저에게 있어서는 도움이요, 기쁨입니다. / 당신만이 저에게 있어서는 말 못할 빛입니다. // 그러니 당신의 불안을 잊으십시오./ 저를 그토록 슬퍼하지 마십시오./ 자주 한길로 나가곤 하지 마십시오./ 옛스런 헌 웃옷을 걸치시고
(예세닌/ 어머니께 부치는 편지)
내 아들은 나에 게/ 훌륭한 편지를 써보내곤 한답니다. / 그 아이는 지난 부활절에도 편지를 보냈지오./ 아침 저녁으로 엄마가 생각난다고. /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내 아들의 얼굴을 본 지가/ 정확하게 십팔 개월과 삼 일이 지났어요./ 그 아이는 베를린에 살고 있지오./ 나는 가끔씩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길 옆에/ 우두커니 꼭 있곤한답니다. / 언젠가 나는 시장바구니를 든 채로/ 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탈 뻔했지오.//얼마 전에 내 아들은 약혼을 했어요./약혼한 처녀의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웬일인지 아직 보내 오지 않는군요./그녀와 결혼할 때는 내 아들이 나를/ 베를린으로 오라고 불러주겠지오?/ 나는 밤마다 그들에게 줄/ 침대 쿠션을 수 놓고 있는데‥‥/그런 것이 새 색시 마음에/ 들지 어떨지 걱정스러워요./ 그녀는 내 아들을 참말로 좋아하겠지오? / 내 아들을 내 대신으로 잘 돌봐주겠지오? // 가끔씩 나는 세상이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아들이 내게 조금만 더/ 다정스러웠으면 좋으련만‥‥ // 내가 내 아들과 함께 살던 그때는/ 모든 일이 너무나 근사했지오./ 이제 내 아들이 멀리 있고,/볼 수 없고/만질 수 없으니/밤이 되면 나는 잠이 오지 않고,/ 기차 떠나는 소리를 기다리지오./ 그 아이가 혹 /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어요./나는 아직도 그 아이가 어릴 적에 신던/ 구두 한 짝을 가지고 있지오.// 지금 내 아들은 많이많이 자라서/ 나는 이렇게 혼자서 산답니다. / 재주있는 과학자들은 모두/ 무엇들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들을 작은 아이인 채로,/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해 줄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일텐데 말이여요.
(케스트너/ 엄마의 넋두리-대도시 하숙생들에게)
하늘가 산봉우리 새파란 저곳/우리 부친이 계십니다. / 한걸음 한걸음에 고개 돌리며/ 애가 타서 허리띠가 커졌습니다
(임 제)
키가 작아/ 나는 어머니의 그늘 아래서/ 어머니의 그늘인 아버지를/ 건성으로 보아 넘겼지만// 이제야 연장을 잘 달래 가면서/ 한 번 가면 못을 그 애틋함/ 잃고서야 겨우 얻는 깨달음에/ 가슴 복판에 쾅쾅 대못질을 한다.
(김현숙/ 祭日)
심지 돋우면/ 가물가물/ 등잔불도 흔들리는 어둠이다// 댓잎에 달 오르고/ 베갯잇 서걱대는 소리에/ 동정 새로 갈아대어도/ 그 간 밤을 비었거니
(정복선/ 어머니의 前生)
어머니!/ 이리 오십시오// 그리하여 주름 좀 펴시고/ 저기 아리따운 저걸 좀 보십시오// 저렇게도 말쑥한 하늘이며/ 자유처럼 뭉게이는 횐 구름의 떼‥// 그리고 그 아래 수목이스스로의 뿌리를 힙입어/ 저리도 싱싱히 훈풍을 일으키는 잎새의 모습을‥‥// ‥‥당신의인자하신 이름으로 애기는 우유처럼 따스한/오월의 햇살을 주무리고 싶습니다. // 어머니!(무슨 일이 있더래도)/ 이리 좀 오십시오//그리하여 생활에 시달린 주름 좀 펴시고/ 우리의 싱싱한 수목의 생활도를 구상하십시다. //천지가 바루 짙어지는 향연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오월은 어머니‥‥/ 당신의 계절.
(석용원/ 오월, 수목, 어머니)
설 교 노 트
효도하면 네가 잘 되리라
출20:12
서론
우리 인간은 동물과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동물보다 자녀를 양육하는 기간이 엄청나게 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과 수고와 정성과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과 윤리의 표준은 십계명인데,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으로 그 첫째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입니다. 그리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륜을 말하는데 그 첫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상)"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인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효도의 의미와 신앙적인 교훈을 생각하면서 내가 과연 부모님께 효도하여 왔는가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효도란 부모의 은혜를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배후에는 위대한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의 대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거스틴(Augustine)은 17세에 사생아를 낳게 할 만큼 탕아였지만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어거스틴을 위하여 30년 동안 기도해 온 결과 탕아 어거스틴이 변하여 성자 어거스틴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 18명의 자녀를 둔 수잔나 여사는 눈물의 기도로 존 웨슬레와 찰스 웨슬레와 같은 훌륭한 신앙 인물을 만들어 내었던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2. 효도는 부모님께 감사하는 데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이 태어나면 부모님을 통하여 최초의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최초의 교사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은 자녀의 정신적인 지도자이자 도덕적 지도자입니다. 또한 부모님은 자녀를 양육하시며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길을 지나가던 행인이 목이 말라서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는 사람에게 물을 구하여 먹은 후 감사하다고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은 물 한 모금이 아니라 입히시고 먹이시며 늘 수고하는데 어찌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님을 기쁘게 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3. 효도는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고 하였습니다.
유태인들의 우월성은 세계가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월성을 조상 때부터 부모님께 효도를 다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의 뜻을 받들어 목수 일에 충실하셨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이 이치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순종하려는 아들의 행동은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도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할 것입니다.
4. 효도는 하나님의 뜻이므로 축복의 근원이 됩니다.
효도는 축복의 근원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귀는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도록 이간하고 섭섭함을 주나 우리는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효도는 축복의 근원이자 하나님의 뜻입니다. 부모님께 순종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자는 반드시 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를 하여야 자녀들도 우리에게 효도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인 부모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해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축복이 약속된 계명
엡6:1-3
서론
기독교는 가정 윤리를 중요시합니다. 엡5:22이하에 보면 부부 윤리에 대해서 상세히 기록하고 또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 엡6:1-4까지는 부모와 자녀에 대한 윤리를 논설하고 교훈을 줍니다. 대개 부부 윤리는 서양에서 중요시하고, 부자의 윤리는 동양에서 중요시하는 윤리라고 말합니다마는, 우리 기독교에서는 양자를 다같이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엡6:1-4까지는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해야 할 도리와 또 부모가 자녀들을 신앙의 도리에서 기를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기 때문에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해야 할 도리에 대해서 말씀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20:12, 신5:16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율법을 수행하는, 아니 완성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본문 엡6:2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공경은 순종 이상의 미덕이며 순종의 기초입니다. 공경없는 순종은 종이 상전에게 하는 것과 같은 그런 일이 되기 때문에 반드시 공경이 있는 순종이라야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순종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 공경해야 됩니다. 부모님을 높이 공경하고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효자입니다. 부모를 너무나 만만히 생각하고 너무나 업신여기는 사람은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부모의 은덕을 잊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아닙니다. 여러분들은 효도를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효도 잘 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효도를 할 것인지 효의 방법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성경에 "부모에게 효도하라 이것이 바로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라"고 신명기에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로 인하여 마음이 기쁘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가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정말 건실한 인격자가 되는 것은 부모가 늘 원하는 것이고, 그것만 보면 기뻐하십니다.
다음에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려면 순종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부모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 드릴까 하는 마음을 다 가지고 부모의 마음을 최대로 기쁘게 해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몸을 편안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몸을 편안하게 해 드린다는 것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드리는 것입니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자리로 부모님을 대접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효도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어떻게든지 부모님께서 예수 믿어 천당 가도록 해 드려야 됩니다. 자기들은 교회 나오면서 부모님은 교회 안나오는 것을 보통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고 천당 가도록 해 드리십시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효도를 함으로 약속대로 잘 되고 장수의 축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의 효
엡6:1-3
서론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 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키베드"인데,
(1) 경애하란 말입니다.
높여 사랑으로 성기라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이 얼마나 지극합니까? 그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부모에게 그 사랑으로 섬김이 마땅합니다.
(2) 겸손함으로 섬기란 뜻입니다.
레19:32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업수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부모의 위치를 존중하고 그 권위를 인정하는 자세가 겸손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 수고는 자식이 하고 그 영광을 부모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잠17:6에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고 했습니다.
(3) 순종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엡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모든 말씀은 자식이 잘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잔소리로만 생각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의 순종'이어야 합니다. 부모일지라도 하나님 뜻에 어긋남을 강요할 때는 순종할 수 없으며 이를 잘 일깨워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 속에 나타난 효는 어떤 것일까요?
1. 성공적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부모들은 자식의 삶의 축복을 빌었습니다. 그러므로 성실하게 살아서 성공적 인생을 살아야 부모가 기뻐하십니다.
2.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입니다.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요셉은 효자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입니다. 그 형제들이 그를 미워하여 애굽에 종으로 팔았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총리 대신이 되어 그 부모 형제를 다 모셔와서 화목하게 살았습니다.
3. 부모의 노후를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거처가 불편치 않게 해야 합니다. 음식에 불편이 없어야 합니다. 용돈을 드려 경제권 상실의 외로움이 없게 해 드려야 합니다. 자손과 더불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 드려야 합니다. 수치를 가리워 드려야 합니다.
4.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사업에 힘쓰시게 해야 합니다.
젊어서는 자식 키우고 집안 살림 일으키시느라 세상만 위해 살았으니 하나님 앞에 가서 상받을 것이 많도록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해 살게 해 드려야 합니다. 부모가 믿지 아니하는 분은 간절히 기도하고 정성으로 효도하여 구원받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의 으뜸입니다.
5. 돌아가신 부모의 효는 우리가 이방에서 예수를 잘 믿는 것입니다.
(1) 효도의 축복
하나님은 부모에게 효도한 자는 반드시 축복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고 반대로 불효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출20:21에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6:3에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의 효는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반드시 하나님이 큰 축복을 주십니다.
(2) 성경에 효하여 축복받은 사람
이삭은 백 배의 축복을 누렸습니다(물질의 축복). 요셉은 총리 대신이 되는 권세의 축복을,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축복을, 룻은 이방 여인으로 예수님 족보에 기독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론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그 고통 중에서 육신의 모친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는 효를 보이셨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부모를 올바로 섬기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에 불효된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고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를 잘 섬기는 성도가 되십시다. 그리하여 가정의 평화를 이루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엡6:1-3
서론
오늘은 5월 둘째 주일로서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자녀들이 부모를 어떻게 공경해야 될 것인가를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부모 공경의 이유
부모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째 계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계명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첫 번째의 명령입니다.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4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이요, 5-10계명은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십계명을 요약한다면, 하나님 공경과 부모 공경의 명령인 것입니다.
우리 신자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역시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에는 반드시 복종해야 합니다. 만약 복종치 않으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며,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키고 우리의 심령을 괴롭게 만듭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잘 공경하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2. 부모 공경의 방법
부모에 대한 자녀의 올바른 태도는 곧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자녀들의 영육간의 성장을 도와주시는 분은 모두 우리의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에 대한 은공보다 더 깊은 은공이 없고,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순종은 반드시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요구는 부모에의 순종과 주님의 말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염두에 두고 하실 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자녀의 순종이 반드시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우러나와야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한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된다는 뜻이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잘못해도 순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부모가 잘못된 지도를 할 때도 자녀는 아니오 할 수 없으며, 다만 그릇된 행동에는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공경의 결과
부모를 잘 공경하면 두 가지 큰 축복을 받는데, 하나는 잘 되는 축복(형통의 축복)이요, 또 다른 하나는 장수의 축복(건강)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한 자녀에게 주어지는 형통의 축복은, 물질의 부요함과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모두 성취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자녀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이른 비 늦은 비를 통해서(신11:14) 빈 그릇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주시는 축복입니다. 그 다음 장수의 축복은 곧 건강의 축복인데, 심령의 평안과 가정의 평강으로 오는 데서의 최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 위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부모를 주 안에서 잘 공경하는 자녀가 됩시다.
결론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분들을 공경함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여 큰 축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
잠23:15-26
서론
하나님께서 사람의 삶을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위탁한 일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경건한 생활입니다. 다음은 탐구의 생활입니다. 또 하나는 청지기의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가정의 안정과 질서와 평화 가운데서 가능합니다. 가정의 행복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버이 주일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가정의 행복의 비결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 부모를 즐겁게 해야 하는 이유
(1)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십계명에서도 명하셨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책임과 덕이 강조된 명령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즐겁게 하는 점이 짐승과 다른 점입니다. 1분만 먼저 나도 형님이요, 낳고 기르신 분은 어디까지나 부모입니다. 마땅히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3) 받은 바 사랑이 너무나 많고 크기 때문입니다.
태아에서부터 시작하여 낳는 일, 길러주신 일, 마지막 죽을 때까지 자식 생각이니 마땅히부모를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마땅합니다.
2. 부모를 어떻게 해야 즐겁게 해 드릴 수 있습니까?
(1) 자녀가 지혜로워야 합니다.
잠10:1에 보면,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여도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혜 중에 최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입니다. 자식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즐겁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2) 자식이 진실하고 의로울 때에 부모는 기뻐합니다.
야곱의 자녀가 부모를 속여서 큰 근심을 더했던 것인데 불효했습니다. 부모에게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3) 자식된 자로서 형통하게 되는 것이 곧 기쁘게 해 드리는 길입니다.
본문 17-18절을 보면,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 말고 참 형통의 길을 찾으라고 합니다. 죄인의 방식대로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대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즐겁게 해 드려야 효도가 됩니다.
3.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면 복을 받습니다.
(1)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계속 받습니다.
갓난아이 때 부모로부터 받는 사랑과 장성한 때에 받는 사랑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자녀는 부모로부터 이 뜨거운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2)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부모를 즐겁게 해 드려야 합니다.
야곱의 자녀 중 유다와 요셉이 이 사랑을 받았는데, 이는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결론
부모의 근심이 곧 자식의 근심입니다.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면 좋은 전통을 이어가는 가정이 됩니다 땅에서 장수하고 잘 된 자녀된 자들, 젊은이들은 부모 공경을 잘해야 합니다.
언 약
성 경 활 용
I. 인간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무엇인가?
1. 성경에 기록된 언약의 목적
(1) 평화를 위한 것이다.
(수9: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언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2) 우정을 위한 것이다.
(삼상18: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2. 언약에 필요한 내용
(1) 맹세
(창21:23)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창25:33)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2) 증인
(룻4:10)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3) 기록과 함께 인을 침
(느9:38)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4) 소금을 쳐야 함
(레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II.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언약은 무엇인가?
1.성경에 나타난 언약의 일반적인 면
(1)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함
(시105:8)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사61:8)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2) 쪼갠 희생물 사이로 지나가시며 언약을 세우심
(렘34:18)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
(3) 성도에게 하신 언약을 잊지 않으신다.
(신4:31)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라
(시106:45)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많은 인자하심을 따라 뜻을 돌이키사
(4) 소금 언약임
(민18:19)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5) 언약을 폐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됨
(렘11:3)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 언약의 말을 좇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
2. 하나님과 인간이 언약을 맺으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1) 축복하시려고
(창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신5: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2) 자기 백성으로 만드시려고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3) 하나님이 여호와이신 줄 알게 하시려고
(겔16:5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서 너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니
(4) 여호와를 경외케 하시려고
(말2: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께 언약하신 증거
(1) 무지개가 나타났다.
(창9: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2) 할례를 받는 것이다.
(창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3)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출31: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4) 언약의 들판을 받은 것이다.
(신9:9) 그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관련원어풀이
1. tyriB] 베리-흐
(1) 언약, 계약, 조약, 협정, 동맹.
(창14:13, 수9:6)
(2) 협정, 서약.
(왕하11:4, 욥40:28)
(3) 우정의 약속, 맹약.
(시25:14)
(4) 예언적 언약.
(사42:6, 호2:20)
(5) 전달자, 선포자, 언약의 천사.
(사42:6, 49:8)
(6) 언약을 맺다.
(창15:18, 스10:3)
(7) 언약을 지키다
(왕상11:11)
2. tr'K; 카-라흐
(1) 자르다, 베어버리다.
(출4:25, 사14:8)
(2) 죽이다, 파괴시키다.
(신20:20, 렘11:19)
(3) 언약을 맺다.
(창15:18, 렘34:8)
3. qp's; 사-파크
(1) 때리다, 손바닥을 치다.
(욥27:23)
(2) 계약을 맺다, 서약하다.
(사2:6)
4. diaqhvkh 디아데 -케-
(1) 처분, 정리, 약속, 유언.
(갈3:15, 히9:16)
(2) 계약, 언약.
(행7:8, 롬9:4)
(3) 첫 언약.
(히9:15, 18)
(4) 새 언약.
(마26:28, 히8:6)
(5) 조약, 계약.
(히9:4, 계11:19)
5. ejpaggeliva 에팡겔리아
(1) 통지, 예고.
(딤후1:1, 요일1:5)
(2) 약속, 약속함, 주어진 약속, 사람의 약속.
(행23:21)
(3) 신적인 약속.
(행7:17, 롬4:14)
(4) 약속된 성령.
(엡1:13)
(5) 약속된 일, 축복, 성약.
(눅24:49, 행1:4)
설교예화자료
천국의 비유
어떤 청년이 장차 그의 신부가 될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내가 집을 한 채 짓고 있오. 당신의 기호와 필요에 꼭 맞게 그 집을 지으리다. 집이 다 지어지면 당신에게 보여주겠오." 마침내 집이 완성되는 기쁜 날이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신부가 될 여자를 데리고 함께 구경하러 갔습니다. 예비신부는 기대와 흥분에 들뜬 마음으로 이 방 저 방을 훑어보고는
"어머나! 정말 아름다운 집이에요. 너무너무 아름답군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해요."하고 감탄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면 꼭 이와 같을 것입니다. 아마 우리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오, 예수님! 천국은 제가 늘 꿈꾸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군요. 천국이 이처럼 아름답다는 걸 절반이라도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여름이 다가오는 징조
리즈(Rees)가 북웨일즈에서 마지막으로 설교하였을 때, 언젠가 한 친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리즈 박사님, 당신은 거의 백발이 다되었군요." 그때에 그 나이 많은 노신사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설교에서 그는 그것에 관하여 말하였습니다.
"일 년 중 이 계절에는 땅을 뚫고 올라오는 한 조그마하고 흰 꽃이 있습니다. 때때로 그꽃은 눈과 서리를 뚫고서도 올라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눈꽃이 피는 것을 모두 다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그 꽃은 곧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옴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어제 저녁에 어떤 친구가 나에게 내가 거의 백발이 다되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나의 겨울이 곧 끝난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것은 내가 땅 위의 차디찬 바람과 서리를 다 견디어 내고 이제 곧 나의 여름, 나의 영원한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는 참된 증거인 것입니다. "
약속의 땅
예루살렘을 방문한 그리스도 관광객이 유대 사원의 예배 의식을 구경한 다음 유대인에게물었습니다.
"매우 엄숙해서 좋았지만, 기도 드릴 때 모세의 이름이 나을 때마다 신도들이 무엇인가를 투덜대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모세는 유대교의 예언자로 존경받고 있잖습니까?" 그러자 유대인은 불만스런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천만의 말씀. 그 모세란 사람의 인기는 최근에 땅에 떨어졌어요. 그 녀석이 안내해준 덕분에 우리들 유대인이 오렌지가 싼 땅에 도착하긴 했지만 사실은 석유가 나오는 땅이 더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
무디의 약속
미국의 부흥사였던 무디(D. L. Moody) 목사는 어릴 때부터 약속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레 언젠가 무디가 자신의 끼니를 벌기 위해 한 겨울 동안 옆집의 일을 도와주고 그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약속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디가 어머니에게 "그 집에 가기 싫다. "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이것저것 물어보니 무디는 그 집에서 주는 음식이 항상 똑같아서 더 이상 먹기가 싫어서 못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래도 할 수 없다. 그 집에서 주는 음식이 좀 나쁘다 해도 한 번 약속을 했고, 그 집에서 그 식사를 계속 주는 동안에 그 일을 그만두어서는 안된다. "라고 말했습니다. 무디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이웃집으로 가서 남은 겨울 동안 일을 하였습니다.
'약속'의 열쇠
번연의 소설 「천로 역정」에 보면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길을 떠나 더 쉽게 보이는다른 길을 따르는 사건이 나오는데 결국 그 길은 의심의 길이며 또한 커다란 절망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의심과 절망의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자살을 강요당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실패한 것처럼 생각되었을 때 그곳에서 만난 다른 기독교인이 그로 하여금 과거의 승리를 회상하게 해 주었습니다. 마침 그때는 토요일 밤이어서 그는 그때부터 새벽까지 계속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이윽고 동이 틀무렵, 그 기독인은 "자유로워야 할 내가 지하 감옥에 있다니 참으로 한심스럽구나. 그러나 나는 이 감옥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약속'이라 불리는 열쇠를 가슴속에 지니고 있다. 형제여! 당신도 가슴속에서 그것을 꺼내어 한 번 열어 보시오."라는 말을 했습니다. 얼마 후 성문은 열렸습니다. 그 '약속'은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약속과 파이의 껍질은 깨뜨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J. 스위프트)
약속과 마작의 외피는 쉽게 부서지는 것이다.
(J. 스위프트/ 교양 있는 회화)
용기 있는 사람은 모두 약속을 지키는 인간이다.
(P. 코르네유/ 거짓말쟁이)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결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폴레옹 1세)
약속을 쉽게 하지 않는 자는 그 실행에 있어서는 가장 충실하다.
(J.J. 루소)
네가 약속시간에 온다면 나는 그 전부터 행복해지고 안절부절 못할테니까. 그러나 아무때나 온다면 나는 몇 시에 마음을 곱게 치장해야 할지 영 알 수가 없잖아.
(A.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중요한 도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약속을 어겼을 때에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정도는 도덕의 표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연기/ 생활 · 제도 · 교육)
약속처럼 하기는 쉬우나 이행하기 힘든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약속을 사르트르의 말을빌어 자기구속이라고 이름한다. 일단 남과 약속한 일을 이행하지 않을 때는 그것이 혹시 법적 책임을 동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도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만큼의 짐은 남는다.
(신일철/ 무안송)
먼저 순종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언약의 고마움을 알 것이다.
(W. 버로우즈)
불신자로 하여금 평화의 언약이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음을 깨우쳐 주자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언약도 없다.
(R. 로빈슨)
하나님의 위로를 얻지 못하여 낙심한 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이고 아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C. 로울링스)
약속을 잘하는 사람은 잊어버리기도 잘한다.
(T. 풀러/잠언집)
약속은 태산처럼 해 놓고, 실천은 두더지가 파놓은 흙무더기같이 한다.
(C.H. 스펄젼/ 농부의 초상)
우리는 성자는 아니지만 약속을 지켰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자랑하겠는가?
(S.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약속과 실행과는 전혀 별개이다.
(A. 루아젤/ 관습법)
인간은 행동을 약속할 수 있어도 감정을 약속할 수 없다.
(F.W.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폭풍이 한창일 때의 언약은 바람이 잠잠하면 잊혀진다.
(T. 풀러/ 격언집)
그대 굳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에/ 나는 다른 이들과 사귀었노라/ 하나 항상 내 죽음에직면할 때나 잠의 고개 마루를 애써 오를 때나/ 또는 술로 흥겨울 때는/ 불현듯 눈앞에 떠오르는 그대의 얼굴.
(W.B. 예이츠/ 굳은 언약)
해 놓은 약속은 미지불의 부채이다.
(R. W. 서비스)
술 먹고 비걸을 적에 먹지 말자 맹세러니/잔 잡고 굽어보니 맹세함이 허사로다/두어라 취중맹세를 일러 무슴하리오.
(무명씨)
우리에게 남은/ 단 하나의 고백만은/ 영원히 아름다운/ 약속 안에 살아 있다.
(신동집/ 표정)
어느 날에야/ 사연을/ 서로/ 이야기하리라./해가 가고 달이 가고./ 기다리던/ 어느 날이/오늘인가 하는데/ 그대는/ 이미/ 어제를 따라가고./ 조각 난/ 네 사연에/ 외로운 내일이 온다.
(이경순/ 기약)
2천여 년 전의 그 옛날/예수를 묻었던 돌은 굴러 버렸습니다. /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를 경배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 있는/ 슬픔과 우울함을/산산히 부셔 버리고 말았습니다. / 그날과 그때가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졌으나/ 오직 하나의 메시지가/ 시대를 초월하여 강하게 우리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 그의 사랑은 온 세계의 희망이며 빛인 것입니다. / 그리고 부활주일의 새댁 빛이 하늘 가득 퍼질 때/ 우리들도 또한 그와 더불어/ 영으로 부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리가 비록 죽어 지하에 묻히더라도/ 부활이 라고 하는 확실한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 만일 오늘 자기 마음에 돌을 올려 놓고 있다면/ 그리스도를 우러러보십시오. 그렇게 할진대/ 그 돌은 굴러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J.V. 브레이클/ 부활의 언약)
당신은 꿈꾸셨던가, 저 빛나고 아름답던 날들을/ 그 영원한 약속 이루고자 그대 오신 그날을.
(C.P. 보들레르/ 성 베드로의 배신)
팔 위에 새긴 이름 글자가 분명 하오/ 대동강 마를 날이 있다손 치더라도/ 꿈엔들 굳은 이 언약 저버릴 길 없어라
(여화/刺字)
설 교 노 트
새 언약
눅22:14-20
서론
언약이라는 말은 서로간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 여러 곳에서 "언약"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두 언약, 시내 산에서 맺은 하나님의 두 언약,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과 모든 규례 그리고 예레미야에 의해 약속되어진 것으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실체화된 것을 특히 강조하였습니다.
1. 옛 언약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해 온 세계가 축복받을 것이라고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하셨을 방시에 모세는 백성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고 시내 산에 당도하였습니다. 거기서 18개월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살아야 할 삶의 방도를 가르친 하나님의 계명(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의 언약은 구세주가 오심으로 실체화되는 "새 언약"이 세워질 동안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옛 언약의 많은 부분은 제사 제도로 되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제사는 "대제사자의 홀로 일년 일차씩" 백성들을 위해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드리는 제사였습니다(히9:7).
2 새 언약
청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무척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목격하고 "성전 숭배"를 비난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B.C.586년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 군대에게 멸망당한 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미래에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이 "새 언약"의 근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신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3. 새 언약의 주님
(1)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앉으셨을 때 기념할 만한 만찬을 드시고 다음날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실 것을 마음에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2) 히브리서 기자는 "더 나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해 "옛 언약"의 대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지만, "새 언약"의 대제사장은 몸소 피를 흘리사 우리들을 죄에서 사하여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히9:11-12)
결론
주님의 성찬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음과 심령을 정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단번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 역시 단번에 속하여 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은 항상 확인되어야 하며, 그것도 성찬을 통해 예수님의 피가 생명을 의미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새 언약을 세우리라
히8:8
서론
"언약(言約)"이란 "말로써 약속한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으로 약속해 주시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특히 본문은 옛날 예레미야 선지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렘31:31-34)을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면 새 언약을 세우리라고 하셨는데, 낡은 언약은 무엇이며, 새 언약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낡은 언약은 무엇입니까? (출24:4-8)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언약 곧 첫 언약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구약의중심이 되는 언약입니다. "언약서를 가져 백성들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자행 자지하여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은혜와 긍휼이 풍부하신 하나님께서 어겨 그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싶었으리요마는 은혜로 주신 의지와 자유를 악용하여 밤낮 계속하여 범죄만 하는 저희를 내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언약을 세우셨으나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새 언약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의 생활에서도 새 언약을 맺기도 하고 새 법률을 세우기도 하였다고 한다면, 전에 있던 언약과 법률이 부족하고 미비된 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새 법률을 내게 되면 그것은 낡은 법보다 참신하고 우월하고 유력하여 전의 것이 자동으로 폐지될 것이요, 또한 효력이 상실되고 맙니다.
구약에서 벌써 새 언약을 말씀한 것을 보니 새 언약은 결코 첫 언약을 파괴하는 혁명적인새 것이 아니요, 첫 언약을 완성하는 이상적인 새 것입니다.
구약은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계명이요, 율법이었으나 복음 세대의 신자에게는 다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공부하는 것은 신약의 복음을 밝히기 위하여 그리할 뿐이요, 유대인에 비하여 우리와 같이 이방인된 사람은 구약의 계명과 율법과 예언을 알지 못하면 신약의 복음을 깨닫기 어려우므로 그것까지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모형과 그림자를 너무 중요하게 여기다가 그것으로 진리의 실체를 가리워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구약과 신약을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서 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여 성
성 경 활 용
1.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
(1)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심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 아담이 여자라고 이름을 지음
(창2: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3) 꾀임을 받아 죄에 빠짐
(딤전2:14)아담이 죄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죄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4) 잉태하여 자식을 낳게 됨
(창3:16) 여자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2.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묘사
(1) 아름다운 여인
(창12:11)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2) 현숙한 여인
(룻3:11)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인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3) 지혜로운 여인
(삼하20:16) 그 성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가 외쳐 가로되 들을지어다
(4) 악한 여인
(잠6:24) 이것이 너를 지켜서 악한 계집에게, 이방 계집의 혀로 호리는 말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5) 어진 여인
(잠12: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썪음 같게 하느니라
(6) 미련한 여인
(잠14:1)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7) 다투며 성내는 여인
(잠21: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3. 가정에서 여성의 하는 일은 무엇인가?
(1) 음식을 만듦
(창18:6)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2) 맷돌을 갈았음
(마24: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3) 실을 뽑았음
(출35: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4) 옷을 만듦
(삼상2:19)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 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5) 방석을 만듦
(잠31:22) 과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6) 포도원을 지켰음
(아1:6)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7) 가축을 돌봄
(출2: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8) 집안일을 보살핌
(잠31:27)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4. 그리스도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
(1)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나 동등하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 자녀에게 믿음을 계승시킨다.
(딤후1:5)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로 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5. 아내로서 남편에 대한 임무
(1) 범사에 순종해야 함
(엡5:24)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 주님께 하듯 해야 함
(엡5:23)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3) 경외해야 함
(엡5:23)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6. 온순한 여성의 모습
(1) 선한 일을 행함
(잠31: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2) 염치와 정절로 단장함
(딤전2:9)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3) 절제하며 충성된 자이다.
(딤전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4) 부지런히 일함
(잠31: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5) 집안일을 함
(딛2:5)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6) 정숙해야 함
(잠11:22)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코에 금고리 같으니라
(7) 여호와를 경외함
(잠31: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7. 온순한 여성의 결과
(1) 지아비의 면류관이 된다.
(잠12:4)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2) 남편이 믿게 된다.
(잠31: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정절치 아니하겠으며
(3) 자녀들이 사례하고, 남편은 칭찬한다
(잠31:28)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4) 집을 세운다.
(잠14:1)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되
관련원어풀이
1. hV:aI 이솨
여인, 여자.
(창12:11, 슥5:7)
2. tB' 바흐
(1) 딸, 손녀, 여자, 후손.
(창28:8, 삼하1:20)
(2) 처녀, 젊은 여자, 부인.
(창30:13, 사32:9)
(3) 여제자, 숭배자.
(말2:11)
(4) ∼태생의 여자, ∼에 사는 여자.
(창34:1, 렘4:31)
2. hr:[}n" 나아라-
(1) 소녀.
(삿19:4, 에2:9)
(2) 하녀, 종.
(룻2:8, 잠9:3)
3. !yVn: 나쉼-
여자.
(창33:5, 룻4:14)
4. hm;l][' 아르마-
결혼 연령기의 소녀, 처녀.
(창24:43, 출2:8)
5. gunhv 구네-
(1) 나이든 여자.
(마9:20, 롬7:2)
(2) 아내.
(마5:31, 행5:1)
(3) 약혼한 여자.
(마1:20, 24)
6. gunaikavrion 구나이카리온
옹졸하고 연약한 어리석은 여자.
(딤후3:6)
7. qh'lu" 델-루스
(1) 여성의 여자, 여성,
(롬1:26)
(2) 여자.
(마19:4, 막10:6)
설교예화자료
여성상위
어떤 선량한 부부가 이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곧 재혼했으나, 나쁜 여자와 재혼하여, 그는 새로 얻은 여자와 똑같이 나쁜 사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내쪽도 역시 나쁜 사나이와 재혼했습니다. 나쁜 사나이는 선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남자는 여자에게 조정됩니다.
현명한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내 딸아! 만약 네가 왕처럼 남편을 존경한다만, 그는 너를 여왕처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네가 여자 노예처럼 행동하려고 하면, 남편은 너를 노예처럼 다를 것이다. 만약 네가 너무 자존심이 세어서 그에게 봉사할 것을 싫어한다면 그는 자기의 힘을 써서 너를 하녀로 만들 것이다.
만약 남편이 그의 친구를 방문할 때는 그를 목욕탕에 들어가게 해서 옷차림을 단정하게 하여 보내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남편으로부터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항시 가정에 마음을 두고 그의 소지품을 소중하게 하라. 그는 기뻐서 너의 머리 위에 관을 바칠 것이다.
어록·시·묘사
무릎 꿇고 예배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사랑하기에는 너무나도 신성한 것.
(밀린)
여자의 눈물을 보고 이를 믿지 말라. 왜냐하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우는 것은 여자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여성은 나무 그늘 같다.
(서정주/ 나무 그늘)
총명한 여성은 나면서부터 수백만의 적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모두 바보 같은 남자들이다.
(W. 에센바흐/ 잠언집)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W. 셰익스피어)
여성은 자신의 미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에 때로는 동의하지만, 그러나 그녀가 항상 바라는 것은 자신의 결점 때문에 사랑해 주는 사람이다.
(A.F. 프레보/ 낙천가용의 소사전)
아름다운 여성은 눈을 즐겁게 하고, 선량한 여성은 마음을 즐겁게 한다. 전자는 보석이요,후자는 보고(寶庫)이다.
(나폴레옹 1세/ 잠언과 사상)
영원한 여성은 우리들의 심정을 높여 준다.
(J.W. 괴테)
여자는 결코 자기의 자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자는 자연으로부터 태어난 그대로라도 반드시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다고 느끼는 남자와 같은 자만심이 없기 때문이다.
(J.W.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여성을 굳세게 보호할 수 있는 자만이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다.
(J.W. 괴테)
여자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여자를 충분히 모르는 사람이며, 여자를 항상 나쁘게 말하는사람은 여자를 전연 모르는 사람이다
(M. 르블랑)
여자의 마음은, 누구든 그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다.
(리고보니 부인)
여성의 운명은 그 사랑받는 양의 여하에 달려 있다.
(T.S. 엘리어트)
지적인 여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비지성적인 인간들의 자연 그대로 조화되어 있는 탄력과 힘으로 구성된 아름다움과 생을 간단하게 두 손으로 직접 잡을 줄 아는 박력이다.
(L. 린저/ 생의 한가운데)
우리들 인간의 혼에 가장 순수한 소금을 이 지상에서 보존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다.
(M. 메테를링크/ 인자의 보물)
여자는 왜 그렇게 고독한 것일까! 아이 이 외에는 여자를 지탱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피리고 아이조차도 여자를 항상 지탱하기엔 부족하다.
(R. 롤랑/ 매혹된 영혼)
물과 꽃과 여성의 아름다움은 마음에 생기를 소생시키고 비애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인도 속담)
남자는 집을 만들고 여자는 가정을 만든다.
(영국 속담)
여성의 참다운 미가 갖는 힘이란, 지상의 어떤 것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N. 레나우/ 파우스트)
그리운 어머니여,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여 그대 내 기쁨의 전부, 그대 내 끊을 수 없는 은혜의 전부!
(C.P. 보들레르/ 난간)
늙은 여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나이가 얼마가 되든간에, 만약 연애를 한다면, 만약 상냥할 수만 있다면, 남자에게 무한의 순간을 준다.
(J. 미슐레/ 연애에 대하여)
위대한 연문(戀文)은 위대한 여인에게만 쓰인다.
(E. 허버드/ 경구집)
이 세상 개벽 이래 하느님이 여성에 대해 베푸신 은혜와 영예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여성의 창조 그것이 이미 어느 우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남성은 낙원 밖에서 창조된 대해 여성은 낙원 속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은 낙원이 자기들이 태어난 고향일 것을, 또 자기들은 낙원의 순결 속에 이와 통하는 생애를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특히 경고받고 있다.
(P. 아벨라르/ 엘로이즈와의 왕복서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여자의 자태처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없다.
(T. C. 울프)
변덕스러운 여자란, 벌써 사랑하고 있지 않는 여자다. 들뜬 여자란, 벌써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여 자다. 바람둥이 여자란, 과연 자기가 사랑받고 있는 것인지 혹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자기도 잘 모르는 여자다. 무관심한 여자란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여자다.
(J. 라 브뤼에르/ 사람은 가지가지)
여자란 것은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항상 완전히 새로운 존재이다.
(L. N. 톨스토이)
여자라는 것은 화롯가에서 일어나는 데도 77번 생각한다.
(L.N. 톨스토이/ 어둠의 힘)
숙녀가 기사의 갑옷 끈을 묶어 주는 것을 변덕스러운 낭만적 풍속이 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영혼의 갑옷은 여성의 손으로 매어야만 가슴에 잘 맞는다는 영혼한 진실을 그것은 상징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기사도 풍속을 상징적으로 풀이하여 여성은 남성의 영혼을 무장시켜 준다는 뜻>
(J. 러스킨/ 참깨와 백합)
아름다운 여자가 다른 여자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고 하면 칭찬받은 여자보다 칭찬한 여자 편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결론할 수 있다.
(A. 아우구스티누스)
남자를 매혹시키는 것은 미모가 아니라 기품이다.
(에우리피데스/ 안드로마케)
여자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방정한 품행이지 값비싼 장신구는 아니다.
(메난드로스/ 단편)
온 우주의 모든 현란함과 아름다움이 여자의 육체 속에 수렴되어 있다. 황량한 사막의 불모지에 나타난 아가적(雅歌的)인 영상이 여자다.
(C.V. 게오르규/ 마호메트의 생애)
여자는 대지와 흡사해서 상처받는 남자들은 모두 거기서 안식을 얻는다.
(C.V. 게오르규/ 마호메트의 생애)
여자는 모든 확증과 논리를 넘어서서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사랑하고 갈망하는 존재다.
(C.V. 게오르규/ 마호메트의 생애)
여자는 그 행위 속에 자신의 전신을 몰입시킨다. 가족을 위하여 밥상을 차리는 여인은 초록과 꽃을 풍성하게 피우는 대지와 같다.
(C.V. 게오르규/ 여간첩)
여자들은 마치 레이더처럼 시간의 장애물을 건너뛰어 장차 닥쳐올 일을 애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C.V. 게오르규/ 마호메트의 생애)
없는 아름다움을 위장하는 안간힘 이상 추한 것은 없다. 그리고 미인임을 으시대는 여자치고 지능 높은 여자를 볼 수도 없다.
(이주홍/ 말하는 보석)
아름다운 처녀의 한숨은 사자의 포효보다 멀리 들린다.
(아라비아 속담)
여자는 항상 뒤돌아보며 걸어온 길의 길이를 재고 있는 때문에 약진력이 줄어들고 만다.
(S. 보부아르/ 제 2의 성)
여자들끼리의 우정을 여자가 만들어 내고, 또는 그것을 길이 보전하고 있으면, 이것은 여자에게 있어 귀한 일이다. 여자의 우정이라는 것은, 남자들이 아는 여러 가지의 경우와는 대단히 성질이 다르다‥‥여자들은 여자의 운명이라는 일반성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그녀들이 결합되는 것은 내면 생활의 일종의 공범(共犯)된 기분에 의하여서다.
(S. 보부아르/ 제2의 성)
히스테리컬한 여자들이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는데‥‥‥
(W.B. 예이츠/ 유리)
여자는 그녀 자신의 세계가 전체적으로 남성의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세계를 만들고관리하고, 오늘날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남자들이다. 여자로서는 자기가 이 세상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여자는 열등자이며 의존자로 이해되고 있다. 그녀는 폭력의 교훈을 배우지 않았다. 그녀는 집단의 다른 멤버들 앞에 주체로서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다. 자기의 육체 속에,자기 집 속에 갇혀서,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결정하는 인간의 모습을 한 재신(諸神) 앞에서 수동적인 존재로서 자각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여자를 "영원한 어린이"로 머무르게 하는 슬로건 속에는 진리가 있다.
(S. 보부아르/제 2의 성)
훌륭한 신사분이 살고 있는 건강하고 찬란판 궁전을 위하여 하수구의 역(役)을 도맡는 것은 창부뿐 아니라 여성 전체이다.
(S. 보부아르/ 제2의 성)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암컷이 사회 속에서 취하는 형태는 생리적 · 심리적 · 경제적 숙명이 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문명 전체가 수컷과 거세체(去勢體)와의 중간물을 만들고 그것에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S. 보부아르/ 제 2의 성)
새악시의 고요한 입술을 앵도보다 붉게 물들인다/ 새악시는 달콤한 꿈을 마시는 듯/ 그 얼굴은 푸른 잎사귀같이 빛나고/ 콧마루의 수은 같은 땀은 벌써 사라졌다/ 그것은 밝은 하늘을 비취인 작은 못 가운데서/ 거울같이 피어난 연꽃의 이슬을/ 헤엄치는 백조가 삼키는 듯하다.
(이장희/ 夏日小景)
여자란 하룻밤을 위한 것/ 예쁘면 다시 하룻밤도 좋소./ 오, 그리곤 다시 혼자 되는 법/ 벙어리 존재, 이 씻겨 내리는 마음.
(G. 벤/ 급행열차)
여인은 아직도 젊었거니! 그 달뜬 넋과/ 권태에 좀먹힌 관능이/ 걷잡지 못할 정욕에 목마른 사냥개떼 위해/ 열려졌더란 말인가?
(C. P. 보들레르/ 순교의 여인)
신에게 부인받고 악마에게 부인받아/유죄일 수도 없는 그대는/ 아름다운 여자/ 부인할 수 없는 여자/ 그대는 바다와 대지처럼 아름다워/ 인간이 번식하기 전 바다와 대지처럼/그러나 그대는 여자/ 그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아름다워/ 아침처럼 저녁처럼 아름다워/ 그대는 아름답고 혼자가 아니야/ 그대는 아름답고 여자들 속에서 아름다워/ 그러나 여자들 무리 속에서 별이 아니라/ 그대는 그들 중 한 여자/ 나의 여자야/ 그러나 그대는 내것이 아니야/ 그러나 그대는 내 그대와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무인도.
(J. 프레베르/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같이 살지 않았어.그런데 벌써 그 여자는 쥐 같은 냄새를 풍겼어.
(S. 베케트/ 희극)
물 속/ 천길 만길에/ 금두레박 타고 온 이는 없다/ 찬물찬물 밑바닥에/ 추워서/ 눈먼 여자/ 찾아준 이는 없다/ 너밖에는
(김남조/ 촛불 · 1)
여인의 생애는/ 기다림으로 흐르는 강이옵니다/ 인내와 그리움으로 닦는/ 청동(靑桐)의 거울이옵니다/ ‥‥아베 마리아
(김남조/ 사랑도 쉬게)
여덟 살 때 거울을 몰래 들여다보고/ 눈썹을 길게 그렸지오./ 열 살 때 나물 캐러 다니는게 좋았어요./ 연꽃 수놓은 치마를 입고/ 열두 살 때 거문고를 배웠어요./ 은갑(銀甲)을 손에빼지 않았죠./ 열네 살 때 곧잘 부모 뒤에 숨었어요./ 남자들이 왜 그런지 부끄러워서/열다섯 살 때 봄이 까닭 없이 슬펐어요/ 그래서 그넷줄 잠은 채 얼굴돌려 울었지오.
(이상은)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면/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노천명/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여자 그것은 여자라는 사실 그것은/ 너무 자란 애기 양/ 엘레간트한 돼지/ 모자를 좋아하는 여우/ 여자 그것은 참으로 밉살스러운 신/ 참으로 귀여운 악마/ 여자 그것은/ 바보 똘똘이/여자 그것은/ 한없이 불가사의 한 것 여자
(谷川俊太郎)
그러고 내 가슴의 대 지에 오 금빛 여인이여/ 그대는 보리의 여신
(E.시트웰/ 두 음성을 위한 노래)
안녕히 주무십시오 부인네들, 안녕히 주무셔요 아씨네들/ 안덩히 안녕히들 주무십시오.
(T.S. 엘리어트)
여인은 내가 간 후에도/ 그 순수공간(純粹空間)에/ 영원처럼 그냥 남는 것이다.
(박남수/ 지속)
샘물의 눈/ 딸기의 입술/ 앵두의 뺨/ 바람에 날리는 오월 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신성한 야성 냄새에 감싸인 여자가/ 가져온 것은/ 한 마리의 뱀/ 한 명의 천사/ 여자는/ 언제나 사랑하고 깨끗하여/ 자랑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뱀의 암시에서 빠져 나을 수 없어/의혹과 뉘우침과 욕망 사이를 계속 방황하였다/ 여자는 낯과 밤을 아울러 품고/ 지성과 본능에 몸을 내맡겨/ 불가해한 매력으로 빛난다/ 흐드러질 듯 피어 있는 모순의 화원/여자/그 부드러운 것/ 강한 것/ 죄가 깊음으로 해서 매력있는 것/ 나는/ 이 아름다운 한 여자를 살게 하고 있다/ 주거(住居)
(토우 가즈코/ 하와의 후예)
그댄 등꽃 빛으로 치장을 하고/ 그 예절은 우리들의 것/그대 몸에 지닌 붉은 유리구슬/잘 균형 잡힌 둔부/사리와 저고리에 오롯한/ 가슴판 윤곽/ 그것도 우리들의 것/ 그대가 모은 잡동사니의 패물들/ 그것도 우리들의 것/ 그러나 그 이상스런 결합으로부터/ 그대가 얻은 조화와 만족/ 그것만은 당신의 것.
(A. 수베디/ 행복한 여자)
한 여자를 사랑했지요/ 세월이 지나고 그 여자는 떠났지요/ 또 한 여자를 사랑했지요/ 세월이 지나고 그 여자도 떠났지요/ 내 맘 속엔 임자없는 무덤 두엇 있지요.
(장석주/ 여자)
어스름에 나직한 여인이 내게 노래를 불러주면/ 나는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어
(D.H. 로렌스/ 피아노)
예수가 앉아 쉬던 우물가에/ 나도 사마리아의 한 여인이고 싶다.
(김경수/ 우물가에서)
새댁은 고스란히 말을 잃었다// 친정에 가서는 자랑이 꽃처럼 피다도/ 돌아오면 입 봉하고 나붓이 절만 하는 호접(湖蝶)//‥‥// 큰 기침 뜰에 오르면/ 공수(拱手)로 잘잘 치마를 끌어// 문설주 반만 그림이 되며/ 세차게 사박스런 작은아씨 앞에도/ 너그러움 늘 자모(慈母)였다// 애정은 법으로 묶고/ 이내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궁체로 얌전히 상장을 쓰는‥‥// 머리가 부를같이 단정하던 새댁
(이동주/ 새댁)
이목구비가 좀생이 별같이 옹기종기 달라붙고 머리 뒤가 할아 놓은 것처럼 힘치르르 하고 몸집이 앙바틈해서 씨암탉 걸음을 걷는 서울 여자와는 정반대다
(심 훈/ 영원의 미소)
여성은 고와야 한다는 법이 있나 봅니다.
(유치환/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짜증부리는 여자는 혼탁한 샘물 같다.
(W.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
총을 메고 사내들은/ 멀리 떠나가고/ 얼굴에서 화장을 지우고/ 여자들은 하루하루 목덜미가 야위어 갔다
(김춘수/ 처용단장 제 3부-메아리 · 14)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을 앓고 있는 여인입니다// 병을 앓고있는 여인보다도/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여인은/ 쫓겨난 여인입니다// 좇겨난 여인보다도/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인입니다//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마리 로랑상/ 잊혀진 여인)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서정주/ 선운사 동구)
영원한 진리의 별빛을 찾아 여성으로서의 모든 세속적 특권을 포기하고 사는 수녀들의 수정같이 맑게 살아 보려는 그 마음씨에서 풍기는 청초한 멋도 좋으나, 그와는 반대로 여자가 여성인 이상 최대한으로 성적인 매력을 다듬어 내고 억눌린 본능적 감정을 최대한으로 해방시키고 사는 삶에서 풍기는, 흔히 허영에 찬 여성이라고 지탄을 받는 여성들이 지닌 정직한 감정도 여성다운 매력도 좋다. 깊이 파고든 지식과 높이 쌓은 교양에 부드럽게 활짝 열려진 마음을 가진 여성을 대하면 어머니 같은 안정을 그에게서 찾을 수 있어 좋지만, 쉽게 질투하고 매혹적으로 웃을 줄 알고 작은 자극에도 눈물이 핑핑 도는 여성들의 야무진 매력도 좋다.
(강원중/ 인간과 여성을 한 몸에)
숙명의 창문을 열어 놓고 있는 슬픈 가옥(家屋)같은 사람.
(김남조/ 은은한 환희)
긍지를 돌보지 않는 굴종. 버려진 터수에도 기다리는 바보스러움. 치사하리 만큼의 집착과 모욕의 흙탕물 속, 헤아릴 수 없는 헌신의 갖가지. 이 일이 모두 이브의 유업이다. 그녀의 피가 영원히 혈관 속을 흐르는 탓이다.
(김남조/ 이브의 天刑)
여인은 현실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이성(異性)은 내 성경의 슬픈 첫 구절이었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내가 폭포를 좋아하는 것은/ 물이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에서 직접/미래로 뛰어내리기 때문이다/ 나 하나만 보고 뛰어내리는/ 아주 겁없는 여인이기에/ 반갑다가도/ 뛰어내린 그길로 돌아오지 않아
(이생진/ 폭포의 미래)
바라볼 옷자락도 없는 시대에/ 이미 안보이는 야훼의 옷자락을/ 생각하는 우리들//야훼의 옷자락에/ 손대는 여인도 없는 여인속에서/ 그때 그 여인의 손을/ 그리워하는 우리들// 그 옷자락도/ 옷자락에 손대는 여인도/ 하나 없는 오늘/ 우리는 골방에 모여 앉아/ 목청껏 목청껏 야훼를 부른다.
(김지향/ 무엇일까)
하이만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김광균/ 설야)
나는 석회를 뿌려도 재를 뿌려도 쓸데없는/마른 흙과 같은 여자입니다. / 바람 부는 사이에 모래를 뿌릴 것입니다. / 그리 하여 당신의 하늘 빗방울을 흡수하고 싶습니다. / 그러는 동안에 모름지기 당신은 방황하는 나로/ 제 정신이 들게 하는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휼스호프/ 예수님은 우셨다)
쌍나비처럼/ 부여잡은/ 한 남자의 손과/ 한 여자의 손은/ 꼬옥/ 휘도리운 여름으로/ 잎가지를 맞추고 섰는 가로수만 같다.
(김광림/ 애인)
나의 눈을 타고/ 가만히/ 내 속 깊이 들어앉은/ 귀여운 여자.
(이규호/ 내 속 깊이)
계집이 땀에 젖어 울다간 방안에/ 암내를 맡으러 파리 한 마리 울며 오다. / 네가 울리는 고독의 날것소리/ 여자란 떠나가면 그뿐이구나.// 네 시간 동안이나 몇 천의 여자가 지나갔을까./ 그 여자들을 다 잡으며 다 놓쳤다. /오직 한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 그녀집 담밑에서 자꾸 키가 작아져 가는 꽃 하나.
(강우식/ 4 행시)
마음으로 사내를 못 잊어하며 파도가 되는/ 여자들은 상전 벽해 하나쯤은 다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처음 와 닿은 사내의 물이/ 무엇인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강우식/ 파도조)
아침이면 머리에/ 바다를 이고 오는 그 여자.// 생굴이요 생굴!/ 햇빛처럼 외치는 그 여자.// 바람 한점 없어도/ 일렁이는 주름 그 여자.// 손등엔 가득/ 먹구름 울고 우는 그 여자.// 비 언제 올지 몰라‥‥/ 늘 파도치는 든든한/ 엉덩이 그 여자.// 어둠보다 빨리/ 새보다 가벼이// 해님하고 같이 걷는/ 예쁜 예쁜 그 여자.
(강은교/ 그 여자 ·· 1)
어떤 길을 걸어도 좋다는/ 내 하느님,/ 그러나 살얼음 긴 수렁을 돌아/ 넓은 잔등까지 손을 뻗으면/ 내 한 몸도 그치지 않을/ 매섭고 독한 바람의/ 칼질로 나를 바수어 대는/ 조그만 여자를 만나게 된다.
(성춘복/ 사랑법-아침의 역사)
완장(脘章)이 호들갑을 떨면 소스라치듯 경적(警笛)을 피하다가 여섯 식구의 연명(延命)을 쏟아버린 40대 여인의 설움이 비에 젖어내리고
(황국명/ 침묵)
아무리 못난 여자라도 사귀고 보면 어딘가에 포근히 안아 주는 듯이 따뜻한 촉감이 느껴지기에 부락스러운 사내들끼리보다는 역시 이성이 좋았다. 어느 여성에게서나 거의 본능적으로 얼른 아름다운 점을 발견해 내는 의미로 본다면 현은 페미스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모두가 한결같이 간 악하다는 것도 현은 알고 있다. 간사한 웃음과 요염한 교태로 항상 사내들을 속이고 매춘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났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것은 이브의 전설 이후로 여성들이 숙명적으로 몸에 지니고 있는 죄악의 근원이다.
(정비석/ 원죄의 사람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듯 보일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오규원/ 한 잎의 여자)
당신이 고대하던 그리스도심을/ 어찌 알았으리오./ 퍼마셔도 이내 목타는/ 야곱의 우물밖에 모르는 허물 많은 여인이.//오 나의 주 예수여/ 이방이 사마리아보다 못하오리까/나 어찌 우물가의 여자보다 나으리이까.
(임성숙/ 우물가의 여인)
밤에 벌판에 갔더니 서서 우는 나무 옆에 여인들이 역시 울고 있었다/ 그녀들 눈물에 잦아 든 염분은 아슴한 먼 바다에서 바람에 묻어 온 소금끼, 바다 건너 무어라는 땅 이름과 그곳 인습에 내음을 풍기었다// 미욱한 여인이 미욱한 사나이를 그리어 실성도 하는, 어둡고 허무하고 미치는 불숭어리,/ 불은 이랑이랑 불이랑은 불바다가 되며 참을 수 없는 불의 혼령으로 뭉쳐 터지면/ 천지에 가득차는 불의 무섬증이랴/회오리치는 불의 향료이랴 // 나는 인기척 없는 배가 물살에 흐르듯 천만리보다 긴 강줄기를 흘러 왔는데/ 강안(江岸)에서 서서 우는 여인을 보는 건, 모든 이방(異邦)의 한 가지 서로 닮은 풍습이었다// 다시 밤의 벌판에 갔더니 지혜를 일러주는 이는 아무도 없고 여인들이 고개를 수그리고 앉아 은(銀)의 별그림자를 줍고 있었다.
(김남조/ 여인)
수가 성의/ 한 여인이외다// 타는 듯한/ 목마름조차 풀지 못하는/ 포도주// 잘구운 빵으로도/ 채울 길 없는 허기짐
(이영옥/ 우물가의 여인)
주님,/ 아직도 제게 주실/ 허락이 남았다면/ 주님께 한 여자가 해 드렸듯이/ 눈물과 향유와/ 미끈거리는 검은 모발로써/ 저도 한 사람의 발을/ 말없이 오래오래 닦아주고 싶습니다.
(김남조/ 아침 기도)
눈물보다 어려운 웃음의 저의/ 짐짓 바다만한 슬픔을/ 한 입 엷은 미소에 담는/ 고독한 아침의 차운 분장도/ 소심한 여인의 허세인 것을/ 눈물이라니/ 그리움이라니/ 지나온 날들은 너무도 허전한/ 시절들이매
(홍윤숙/ 가을의 기도)
낚시 드러운 머리 흰 늙은 이와도,/ 깁 빠는 새로 단장한 여인과도/ 아는 사이인 양 서로바라보지만/ 은근한 눈길 주고받을 뿐 할 말이 없네.
(맹호연/ 耶溪汎丹詩)
시냇물과 강물이 서로 만나는 곳에/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서 있었다. / 아, 성숙한 여성과 어린 아이의 시내여.
(H.W. 롱펠로우/ 처녀성)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를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이성부/ 어머니가 된 여자를 알고 있나니)
술 먹기 비록 좋을지라도 한두 잔밖에 더 먹지 말며/ 색(色)하기 비록 좋을지라도 패망하게 말을 지니/ 평생에 이 두 일 삼가면 백년지구(百年之軀)를 병들음이 있으랴.
(무명씨)
산이 높다 하여도/ 하늘 아래 뫼이로다/바다가 제아무리 깊다 하여도/ 모래 위에 흘러간다// 여자가 제아무리 잘났다 하여도/남자 품안에 돌고나돈다.
(예산지방 정요)
어진 이는 나라를 일으키건만/ 똑똑한 여인 나라를 기울이네/ 똑똑하고 똑똑한 저 여인은/ 목소리도 미워라 올빼미같이/ 여인의 혀가 길이 말이 많으면/ 참으로 화의 근원 되는 것이니/ 난리는 하늘에서 내리지 않고/ 부인으로 인하여 생겨나니라./ 아무리 가르쳐도 효험없는 것/ 그건 바로 부인네와 내시이니라.
(시 경)
여인들의 몸짓은 해변에서 멱감는 공기 같은 모습/ 그네들 두 다리의 기나긴 근육은 철판같은 피부 밑에 하프의 현이다.
(셍고르/ 나는 산문 위에 앉아 있었다)
조국의 딸 나의 처녀여/ 전사의 팔에 안겨/부채살처럼 펼쳐질/ 꿈의 여인 나의 신부여.
(김남주/ 하얀 눈)
자기 운명에 대해서 불평을 하는 부인에게 스승이 말했다. / "부인의 운명을 만드는 사람은 바로 부인 자신입니다. "/ "하지만 제가 여자로 태어난 것은 분명 제 책임이 아니잖아요? "/ "여자로 태어난 것은 운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숙명입니다. 운명이란 당신이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
(앤소니 드 멜로/ 운명)
푸른 구름의 옷 입은 달의 냄새./ 붉은 구름의 옷 입은 해의 냄새./아니 땀냄새, 때 묻은 냄새./ 비에 맞아 축업은 살과 옷 냄새.// 푸른 바다‥‥어줄이는 배‥‥/ 보드라운 그리운 어떤 목숨의/ 조그만한 푸릇한 그무러진 영(靈)/ 어우러져 비끼는 살의 아우성‥‥// 다시는 장사(葬事) 지나간 숲속엣 냄새./ 유령 실은 널뛰는 뱃간엣 냄새./ 생고기의 바다의 냄새./ 늦은 봄의 하늘을 떠도는 냄새.//모래 두던 바람은 그물안개를 불고/ 먼거리의 불빛은 달저녁을 울어라./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 냄새 많은 그 몸이 좋습니다.
(김소월/ 여자의 냄새)
고요히 또 봄바람은 봄의 빈 들을 지나가며, / 이윽고 동산에서는 꽃잎들이 흩어질 때,/ 말 들어라, 애틋한 이 여자야.
(김소월/ 몹쓸 꿈)
여인은/ 가아는 손을 유방에 대고/ 그만 탄식을 배앝고 말았는데./‥‥// 여인을 설레대는 동공을 하늘에 던졌다. /‥‥// 여인은/ 진통의 날을 한숨지어 세이면서/ 진주및 눈물을 쏟고 말았다는데,/‥‥// 여인은/ 유방에서 손을 사알금 내리고/ 산소 내음새와 이별하였다.
(장수철/ 여인)
각시네들이 여러 층이오네 송골매도 같고 줄에 앉은 제비도 같고/ 백화원리(百花園裡)에두루미도 같고 녹수파란(錄木波瀾)에 비오리도 같고 땅에 퍽 앉은 소리개도 같고 썩은 등걸에 부엉이도 같데/ 그려도 다 각각 님의 사랑이니 개일색(皆一色)인가 하노라.
(김수장)
남진 죽고 우는 눈물 두 눈에 내리흘러/젖맛이 짜다 하고 자식은 보채거든/ 저놈아 어느 안으로 계집 되라 하는다.
(정 철/ 송강가사)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팜이나며/ 옥출곤강(玉出泥崗)이라 한들 뫼마다 욕이 나랴/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님마다 좇으랴.
(박팽년)
등잔불 벌써 키어지는데‥‥/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았구나/ 샤를르, 보들레르처럼 괴로운서울 여자를/ 아조 아조 인제는 잊어버려
(서정주/ 수대동 시)
창문이/ 책갈피처럼/ 방긋이 열려 있네/여인은 어디가고// 경대 앞에/ 반짝이는 커다란 머리핀/ 방구석에는/ 까만 철제의 악보대로/이끼가 낀 악궁이/어지러이 널려 있네.
(무라노 시로오/ 여인의 방)
유일하게 나에게 여자로 보이는/ 그녀는 아름다운 그녀의/ 몸을 쉬고 있으니/ 그녀가 즐겁게 거기/아름다운 나무에 기대는 모습,/ ‥‥나는 슬픈 추억으로 기억하노라.
(페트라르카/ 라우라에게 바치는 시)
오오 마리아 막달레나 죄의 여자여/ 관능의 물방울에 젖어 돌로 치려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던 그대를/ 갑자기 조각처럼 되게한 응시에/ 나는 만나고 싶다
(가타세 히로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사내의 가슴팍을 쥐어뜯듯/ 돌문을 헤집는 여인이여./ 누가 이 문에서 큰 돌을 옮길 것인가./ 갈갈이 찢기고 헝크러진 아픔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절규하나니.
(김태규/ 돌문)
보아요/ 달이 떴어요// 해가 잠든 틈에/그의 으뜸 고운 햇살/ 한 가랫대를 빼내어 빛은/ 나는 달이에요/ 미래와 과거의 캄캄한 우주/ 자궁 속에서/ 다시 빛으로 출아가는 통로를 밝히는 달//보아요 그 맑은 눈동자/사랑을 잉태 한/ 기쁨과 슬픔이 맞닿은 눈동자/착하디 착한 겁먹은 눈동자// 보아요/ 그대 하늘에 달이 떴어요.
(임성숙/ 여자 · 1)
우리 모두 실비아를 노래합시다. / 길비아는 그만큼 빼어난 여자./ 이 세상의 미욱한 모든 생명 가운데/ 실비아는 가장 빼어난 존재이니/ 꽃으로 관을 엮어 그녀에게 드립시다.
(W. 셰익스피어/ 실비아가 누군가요)
소낙비를 그리는 너는 정열의 여인,/ 나는 샘물을 길어 네 발등에 붓는다.
(김동명/ 파초)
아침 강에/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 ‥‥물 밑의 모래가/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구 상/ 강)
연시(軟姉)를 문/ 만삭 여인의 입술에/ 따가운 햇살이 붙어 있다.
(김광림/ 가을날)
밖에는 눈, 눈이 와라,/ 고요히 창 아래로는 달빛이 들어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겨라.// 나의 베개는 눈물로 함박히 길었어라./ 그만 그 여자는 가고 말았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그림자 하나가/ 창들을 엿보아라.
(김소월/ 꿈꾼 그 옛날)
담모롱일 스쳐가는 마을 여인들의/ 여민 옷맵시론 볼에도 머금은 봄빛인데/ 허리를 감고
도는 치마폭엔 아직 겨울이 짙다.
(최승범/ 춘설점경)
설 교 노 트
위대한 어머니
삼상26:3-14
서론
우리는 보통 여성하면 어머니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모든 여성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하여 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 시대에 3년 동안의 기근이 들어 생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기근의 원인이 "사울과 기브온 사람 사이의 피흘림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기브온 사람과 이스라엘이 서로 전쟁하지 않기로 맹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기브온 사람을 마구 노략질하여 그 피를 흘렸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다윗 왕은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 해결책을 논의하니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자손 중 일곱을 내어 교수형에 처하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에 다윗은 사울의 아들들과 딸 메립에게서 난 외손 중 다섯을 주어 산 위에서 목매어 죽게 하였는데 그때 두 아들을 잃은 어머니 리스바가 바위 위에 그 시체를 놓고 비가 올때까지 베옷을 입고 울며 지켰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경에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이 있으나 이 여인의 모성애야말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자식에 대한 불변적 사랑
10절에 보면 죽은 자식들의 시체를 위하여 산 꼭대기 바위 위에 올라가 굵은 베를 깔고 밤낮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자식이 살아 있을 때뿐 아니라 죽어서 시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상에 여성들의 사랑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역시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불변하는 귀한 것입니다.
2. 죽은 자식을 위하여 희생을 각오하였습니다.
10절 하반절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시체를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그 시체를 지키는 어머니에게 위험이 따랐지만 회생을 각오하고 거기에서 울면서 자식의 시체를 지킨 것입니다.
열 달 동안의 수고,해산의 고통,양육 중의 희생, 대신 죽을 수만 있다면 그 길을 택하기까지 원하는 어머니의 회생에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롬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라고 했으니 우리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 죄인들을 위해 고통당하실 것을 아시고도 넘겨주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위대한 희생적 사랑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위대한 어머니는 자식에게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12-14절에 보면 다윗 왕은 그 어머니의 애절한 사랑의 소식을 듣고 사울과 요나단은 물론 매어달린 자손들까지도 그 조상 기스의 묘에 함께 장사지 내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이 그 자손이 죽어서라도 복받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모든 부모들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식의 성공입니다.
왕상2:1-4까지의 말씀에서 다윗이 임종시에도 그 아들 솔로몬의 형통을 위해 염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식들이 축복받을 일을 위해서라면 모든 부모들은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히6:15에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으로 저주받을 수 없던 우리들의 구원뿐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기업까지 얻게 하기 위하여 친히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 위대한 어머니 리스바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불변적인 사랑, 희생을 무릅쓰신 사랑, 우리의 받을 복을 위하여 친히 희생시켜 주신 그 사랑을 부모님에게 받았고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았습니다.
루디아의 헌신
행16:ll-15
서론
루디아의 사적은 본문에서만 기록되었지만 한 여성의 헌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였는가를 배우게 됩니다.
1. 루디아의 준비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물질적인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여성 사업가였습니다. 헌신자는 물질적인 준비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건한 여자였습니다. 우상이 가득한 빌립보 성에서 안식일에 육신에 속한 일을 하지 않고 기도하는 여성이었습니다.
회당도 없는 곳에서 몇 사람의 동료들을 모아서 기도를 할 수 있을 정도라면 경건한 여성입니다. 준비가 잘된 여성입니다. 그리고 몇 사람의 여인들을 거느릴 만한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그의 인격과 경건과 사업의 기반이 그러한 지도자적인 위치를 갖게 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루디아는 당면한 문제를 놓고 기도한 여인입니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지도자를 보내주셔서 복음을 듣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준비된 사람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2. 복음을 받은 루디아
루디아는 돈도 벌었고, 기도 생활도 했고, 여성 지도자의 위치에 올랐지만 이러한 것들이 그의 마음에 행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한 결과 바울 사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복음을 잘 들었습니다. 주께서 이 여인의 마음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때가 은혜받는 기회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주시는 복음의 말씀이 꿀처럼 달았습니다. 잘 들으니 루디아의 마음속에서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까지의 자신의 상태가 너무나도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아 안 것입니다. 율법주의적인 경건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기도가 이기적인 것도 알게 되고, 그 사랑이 너무 좁았던 것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그 온 집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정 구원이 이룩된 것입니다.
3. 은혜받은 루디아는 헌신 봉사했습니다.
전도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직접 나서서 전도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이분들을 도움으로써 전도할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 전도단 일행을 자기집에 머물면서 전도할 수 있도록 숙식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자들을 주님의 사역자들로 알았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자의 참된 모습입니다. 은혜받은 사람은 자기 과시나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 봉사의 일부터 합니다. 삭개오가 그러했고 베다니의 마리아가 그러했습니다.
교회에는 루디아와 같은 헌신 봉사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까지 손수 일하여서 전도비를 마련해가면서 전도했으니 전심전력할 수 없었는데, 루디아의 헌신 봉사로 인하여 빌립보에서는 온전히 복음 전폭에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결론
루디아는 이로써 유럽의 첫 번 신자가 되었고 빌립보 교회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루디아와 같은 헌신 봉사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네 힘을 여자에게 쓰지 말라
잠31:3
서론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생을 내실 때에 남자를 먼저 지으시고 그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를 돕는 배필로 지으셨습니다(창2:18, 21-22). 그런고로 원리적 입장에서 여자는 연약한 존재임을 나타내셨는데, 어떻게 힘을 여자에게 쓰겠습니까?
1. 여자의 위치와 사명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지음받았으니 연약한 존재의 상징 입니다. 부부가 일신(一身)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적으로 한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인격적으로 볼 때에 남녀가 동등입니다. 이것은 그 영혼이 똑같이 귀중한 까닭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남자는 여자에 대하여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교훈한 모든 원리는 어디까지나 남자를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2. 여자에게 힘을 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교훈은 르무엘 왕의 어머니의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르무엘이 실제 인물이라는 것보다 그 이름 뜻이 "하나님께 바쳐진 자"라는 의미에서 이상적인 왕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어머니의 교훈이 매우 진지합니다. 그는 아들을 가리켜 "내아들, 태에서 난 아들, 서원대로 얻은 아들"이라고 거듭으로 부름은 그만큼 간곡한 권면이요, 진지한 부탁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니 듣는 자가 멸심불망(銘心不忘)해야 합니다. 그 내용인즉, 네 힘을 여자들에게 미쳐서 본연의 자세를 잃지 말라는 것이요, 특히 부도덕한 행위인 음란방탕에 빠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나쁜 여자들은 요염한 자세와 간사한 말로 남자들을 흘리기 쉬우니 이에 미혹되지 말라고 한 교훈입니다.
3. 여자에게 힘을 뺏기는 미련함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고, 남자는 여자를 선도하고 주관해야 할 것인데 그 여자에게 힘을 빼앗기는 일이 얼마나 미련합니까? 인류의 시조 아담이 하와에게 힘이 뺏기어 선악과를 먹고 범죄하였으며(창3:6), 천하장사 삼손이 여자 들릴라에게 미혹되어 천추에 씻지 못할 구치스러운 역사를 남기었고(삿16:1- 21), 성군 다윗도 일시적이나마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힘을 뺏겨서 큰 죄를 범하였고(삼하11:2-5), 아합이나 헤롯 같은 악한 왕들도 여자에게 힘을 빼앗긴고로 더욱 악정을 하여 수치의 역사를 남기었습니다.
결론
동방의 의인 욥은 불행을 당했을 때 그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비난해도 끝까지 힘을 빼앗기지 아니한 의인이었습니다. 여자된 자는 정숙함으로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역 경
성 경 활 용
1. 일반적 역경의 모습
(1) 살 소망이 끊어짐
(고후1:8)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2) 감당할 수 있다.
(고전10:13)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3) 그리스도로 인한 역경은 복이다.
(벧전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2. 역경의 원인은 무엇인가?
(1) 믿음을 연단하기 위함이다.
(말3: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2) 인내를 만들기 위하여서다.
(약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관련원어풀이
1. dokimhv 도키메-
(1) 증명, 시련.
(고후8:2)
(2) 증명, 문서, 증거.
(고후13:3)
2. dokivmivon 도키미온
(1) 증명.
(약1:3)
(2) 시련, 순수함, 인정된 성격.
(벧전1:7)
3. prirasmov" 페이라스모스
(1) 경험, 시험, 증명, 시험, 시험의 원인.
(갈4:14)
(2) 사람의 신용, 위엄, 덕, 불변성에 대한 시험.
(벧전4:12)
(3) 죄로의 유혹, 시험.
(눅8:13, 고전10:13)
(4) 대적, 괴롭힘, 고생, 시련.
(눅22:28, 약1:2)
설교예화자료
바위 교회
핀란드 헬싱키의 중심부에 "바위 교회(RockChurch)"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바위 교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코스의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원래 헬싱키 시에서는 토지 이용상 도시 한가운데 교회를 짓지 못하게 규제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있는 루터란 교회에서 도시 한가운데 교회를 세우기는 세워야 되겠는데, 시에서 허락을 안해 주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교회를 세울 것이냐'에 관해 회담을 하고 기도를 하던 중 건축가 두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의했습니다.
그것은 헬싱키 도시 한 가운데 있는 큰 바위를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이 바위는 너무 컸기 때문에 없애지도 못하고 아무런 건물도 세우지 못한 채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두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교회라고 해서 반드시 기초를 닦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야 교회가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 바위를 그대로 파서 문만 뚫어놓으면 흘륭한 바위 교회가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해 놓으면 시에서도 바위 속을 뚫어놓고 지붕만 덮어 놓았으니 그대로 바위이지 달라진 것은 없으니까 아무 말도 못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루터란 교회에서는 곧 그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시에 요청했고 시의 허락을 받아서 그 거대한 바위의 속을 파고 지붕을 덮고 문을 달아 훌륭한 바위 교회를 만들어 놓게 되었던 것입니다.
백만 장자의 공통점
미국의 유명 한 템플 대학교(Temple University)를 창설한 러셀 콘웰(Russel Conwell)박사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의백만 장자들, 적어도 백만 달러 이상을 모은 사람들 4,043명의 생애를 조사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사 결과 놀라운 것은 이 4,043명의 백만 장자들 중에 고졸 이상의 학력을 지닌 사람은 불과 69명밖에 없었습니다. 크게 성공해서 수백만 장자가 된 사람들은 그들이 백만 장자가 되기까지 돈과 교육, 정규훈련 등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부족한 생활을 했다는 결론이 추론되었습니다.
곰과 두 젊은이
서로 매우 다정한 두 젊은이가 숲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커다란 곰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앗, 곰이다. "
젊은이들은 당황하여 소리를 지르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있을 때 곰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한 젊은이가 재빨리 옆으로 도망가 큰 나무를 타고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젊은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곧 쓰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문득 곰들은 죽은 사람은 해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지금으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한번 희망을 걸어보는 수밖에 별 도리가‥‥‥‥
그 젊은이는 푹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고 죽은 시늉을 하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곰은 그 젊은이의 얼굴에 코를 대고 한참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죽었다고 느꼈는지 어슬렁어슬렁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보게, 곰이 갔으니 그만 일어나게. "
그러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던 젊은이가 창백한 얼굴로 일어나 앉았습니다.
"정말 큰일 날뻔 했네. 우리 모두 무사하니 참 다행일세. 그런데 참,아까 곰이 자네에게 뭐라고 하던가? "
나무 위에 올라갔던 젊은이가 궁금한 듯이 물었습니다.
그러자 땅에 엎드려 있던 젊은이가 대답했습니다.
"위험한 일을 당했을 때 친구를 버리고 혼자서 도망치는 그런 의리없는 친구와는 절대 가까이 사귀지 말라고 나에게 충고하더군."
돌과 고압 전선
펜실베니아의 포츠빌 시에서 고압 전선의 끝이 끊어진 채 인도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때엔지니어인 힐더브랜드가 이 사실을 모른 채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슐리처가 황급히 위험하다고 소리쳤으나 그 목소리는 주위의 소음에 묻혀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돌을 주워 던졌습니다. 돌은 힐더브랜드의 가슴에 맞았습니다. 그는 놀라 고개를 들었고 전선을 밟기 바로 직전에 얼른 그것을 보고 피했습니다. 힐더브랜드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슐리처에게 감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은 연단의 회초리를 사용하여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많이 우리를 구해내 십니까 !
페스트 재난의 축복
얼마 전, 인도의 위대한 통치자들은 곤달의 왕좌를 이을, 그들의 어린 왕자가 영국에서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큰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왕자는 모든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5년 후 마침내 그는 스코틀랜드 의학교 학위를 땄습니다.
학위를 딴 왕자는 다시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거의 버림받다시피 된 그였지만 아무도 그의 왕좌에 대한 권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자 그는 마하라자(인도 군주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마하라자는 그의 왕국을 위생적인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인도의 오랜 전통인 여자들의 베일이 비위생적이라 하며 그것을 벗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행위는 정통 힌두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페스트가 죽음의 낫처럼 몰려와서 전국을 지나갈 때 마하라자는 코브라만큼이나 국민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것은 의사 마하라자가 간호원들과 함께 여기 저기를 다니며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국민은 그의 환자였습니다. 재난 때 그는 훌륭하게 장식된 코끼리를 탄 인도의 왕자가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의사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역경은 희망에 의해서 극복된다.
(메난 드로스 / 단편)
불은 쇠를 단련시키고, 역경은 사람을 단련시킨다.
(L. A. /세네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처음으로 참다운 벗을 안다.
(M.T. 키케로)
불우한 경우에 처해 있을수록 바른길을 꺾이지 않는 것이 외로움을 막아 내는 지혜가 된다.
(이주흥/ 고갯길의 연속)
인간은 때로 번영 이외의 것을 사랑하는 일이 없을까. 인간은 역경을 사랑하는 일은 없을까. 분명히 인간에게는 역경을 일부러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몹시 사랑할 때도 있는 것이다.
(F.M.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역경이라는 것은 자기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이름이요, 순경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을 말함이니,사람들은 역경에서 울고 순경에서 웃는 것이거니와, 역경과 순경에 일정한 표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갑(甲)에게 역경인 것이 을(乙)에게는 순경이 되는 수가 있으니, 동일한 동풍이지마는 서항(西航)에는 순경이 되고 동항(東航)에는 역경이 되는 것이요, 동일한 춘우(春雨)이면서 농부에게는 순경이지마는 여행자에게는 역경이 되는 것이다.
(한용운/ 님께서 침묵하지 아니하시면)
순경(順境) 때에 원조를 주는 자는 역경 때에 원조를 받는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역경은 진실에의 첫걸음.
(G.G. 바이런/ 돈 후안)
순경은 구약성서의 축복이요, 역경은 신약 성서의 축복이다.
(F. 베이컨/ 수필집)
역경에 있어서의 친구는 고난을 가벼이 여긴다.
(T. 풀러/ 격언집)
역경보다 나은 교육은 없다.
(B. 디즈레일리)
번영은 우리의 악덕을 송두리째 드러내고 역경은 우리의 미덕을 밝혀 준다.
(영국 속담)
난파선에는 어떠한 바람도 역풍이다.
(이탈리아 속담)
불운은 칼과 같은 것이다. 칼날을 잡으면 손을 베이지만 손잡이를 잡으면 괜찮다.
(H. 멜빌/ 30년 전의 케임브리지)
역경이 사람한테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답구나. 그것은 두꺼비와 같아, 더럽고 독을 품고는 있지만 그 머리 속에는 보옥을 감추고 있다.
(W. 셰익스피어/ 당신 뜻대로)
역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기대만이 약이다.
(W. 셰익스피어)
순경에서 벗을 얻기는 쉽고, 역경에서 벗을 얻기는 어렵다.
(데모크리토스)
곤궁과 역경 속에서 또는 주위의 압박을 받으면 수인(囚人)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을
감옥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가.그것은 깊고 참된 사랑인 것이다-
(V. 고호)
역경은 과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겐 절호의 기회가 된다.
(R.W. 에머슨/ 인생의 방법)
역경은 청년에 대하여 광휘 있는 기회이다.
(R. W. 에머슨)
막다른 골목이 되면 돌아선다. <*일이 막다른 지경에 이르면 자연히 살 계교가 생긴다는 말>
(한국 속담)
재물과 권력과 역경, 이 세 가지가 인간의 역량을 나타낸다.
(아라비아 속담)
그러나 생활안정이 작품을 잘 쓸 수 있는 촉진제는 못 된다. 오히려 역경이 정신노동에는 촉진제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임옥인/ 생명미 탐구의 긴 오솔길)
곤경에 빠진 짐승은 더욱 잘 싸운다.
(좌氏傳)
말이 궁지에 빠지면 달아난다.
(孔子家語)
새가 궁지에 몰리면 쪼며, 짐승이 궁지에 몰리면 달려들고,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거짓말을 한다.
(순자)
사람은 궁하면 하늘을 부른다.
(사마천/ 사기)
못난 사람일수록 잘되면 자만심으로 부풀어오르고 역경에 처하면 자멸한다.
(에피크로스/ 단편)
역경에 처해 있다고 하여 슬퍼하지 말며 성공했다고 하여 지나치게 기뻐하지 말 것. 이 두 가지를 항상 마음에 새겨 두라.
(호라티우스)
이 세상의 험한 역경/내 희망을 짓밟아도/ 조금도 실망치 않고/ 나 주를 앙망하리/ 역경은 축복의 그림자/ 열매를 얻겠네/ 내 주는 지극히 큰 상급되네/ 그날이 오면
(홍안의/ 믿음의 갑옷)
나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야단을 맞지 않고 자란 아이는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겨울의 추위가 심할수록 오는 봄의 나뭇잎은 한층 푸르다. 사람도 역경에 단련되지 않고서는 큰 인물이 될 수 없다.
(미 상)
한여름에 홍수가 지더니,/ 탁류가 집보다도 높았다. / 흙탕물이 망쳐버린 나의 채소,/ 메뚜기가 먹어치운 나의 곡식.// ‥‥시름의 기온은 장마비 되고,/ 빈 솥, 항아리에는 죽도 없다. / 장님, 절름발이는 밭을 못간다. / 늦거나 이르거나 죽을 운명!
(매요신/ 田家語)
아무도 모른다네./ 자네가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는가를./ 주위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의 걱정거리에 매달려서/ 들어줄 여가가 없다네,/ 자네의 하소연을/상태가 어떤가를 설사/ 누가 물어 본다해도/ 자네는 아마 대답할 수 없을 걸세.// 자네는 씁쓰레 웃음지으며/ 묶어둔 괴로움 보따리를 걸머지겠지./ 너무 무거워서 등이 휘고/ 비틀린 미소조차/ 지을 수 없겠지./ 의지할 지팡이가 필요할 정도겠지. // 때때로 자넬 눈여겨보는 사람이 있으면/ 자넨 기대하겠지./그의 위안과 조력을./그는 곧 눈길을 돌리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자넬 스쳐 지나가겠지.// 그렇다고 자네가 세상을/ 한탄해서는 안 된다네./ 사람들과 마주치고 이야기할 때/ 자네는 입가에 미소를 띠어야 한다네./ 얼굴 속까지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으니까.// 아무도 모른다네./ 자네가 얼마나 궁지에 빠져 있는지를./ 다행하게도 자네 자신마저도 알지 못한다네.
(케스트너/ 얼굴 속까지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다네 · 1)
곤궁은 근면의 어머니.
(영국 속담)
인간이란 역경에 떨어지면 괴로워한다. 그러나 만사가 순조로워 지더라도 싫증을 낸다.
(N. 마키아벨리)
역경은 수많은 죄인과 무모한 사람을 만들어 낸다.
(L. C. 보브나르그)
순경(順境)의 미덕은 절도(節度)이다. 역경의 미덕은 인내이다.
(F.베이컨)
대 끝에서도 삼 년이라. < * 역경에 처하여도 참고 견딘다는 말>
(한국 속담)
역경은 부자를 만들지 않고 사람을 슬기롭게 한다
(영국 속담)
작은/ 서러움에도/ 목을 놓아 우는/ 한많은 사람들은/우리 백성들/고된 역경 이기도록/살펴 주시고/주름살 펴지도록/ 만져 주소서.
(홍안의/ 양같은 백성들)
설 교 노 트
역경을 당할 때 담대하라
요16:32-33
서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역경을 당할 때 담대하라고 힘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1.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신 주님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인간은 약하여 언제 넘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언제 변할지 모릅니다. 어제의 우정이 오늘의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자기를 버리고 달아날 제자들을 생각하시며 괴로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다 흩어져 갈지라도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믿었던 제자들에게 배신당한 것을 다 알면서도 예수님은 그들을 책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들의 연약함을 경고하므로 후일에 그들이 그것을 깨달았을 때 절망에 빠지지 않고 변함없는 주님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2. 그리스도 안의 참 평안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요14:27)"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참된 평안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세계에서만 참된 평안과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3. 환난을 이길 수 있음
우리가 아주 처절한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과연 담대할 수 있습니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신 예수님은 어떠한 환난과 고난도 이겨내신 승리의 삶을사신 분입니다 이같이 세상을 이기신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때 우리의 싸움은 이미 승리가 보장된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여 세상을 이길 만한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힘주시니 우리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인심은 날로 악해가고 인간성은 날로 잔인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윤리와 도덕은 사라지고 양심이 마비된 세상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용기를 내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결론
우리는 믿음 없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떤 환난이라도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역경을 당하여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실 것이니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당부하신 말씀으로 새 힘을 얻고 날마다 승리합시다.
나의 환난 날
시86:7
서론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응답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환난 날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록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경에 처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1. 환난 날에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환난을 당하면 꼼짝 못합니다. 그만 넘어지고 말며 희생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라고 하셨습니다.
성도가 환난당할 때에 하나님을 부르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대책을 세우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형편이니 즉각 건져 주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자진하여 부르라고 제안하셨으니 공연히 주저하거나 망서릴 필요가 없이 우리는 하나님께 고할 뿐입니다.
2. 환난 날에 부르짖습니다.
시편 77편 2절에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서 26장 16절에 "여호와의 백성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르짖는다"는 뜻은 큰소리로 호소하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중심의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함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킬 정도의 기도 모습입니다. 더구나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 부르짖음은 그 목숨을 내거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죽는다는 결의로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꼭 받아야겠다는 자세인 것입니다. 얼마나 적극적이며 또한 열렬한 기도입니까? 반드시 응답될 것입니다.
3.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그렇게 낙심 말아라 만사에 때가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한심은 모든 간구에 대한 응답의 약속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주실 것은 주시지만 특히 우리에게 기도의 정성을 드리기 위하여 간절히 부르짖으라고 하셨으며 부르짖는 기도에 더욱 확실한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고 하시며 주시되 더 좋은 것을 주시기로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온 힘을 다해 부르짖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겠다고 확실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편하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때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좋은 일이 있을때도 찬송으로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에 처하여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축복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전천후적 신앙생활
빌4:10-20
서론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전천후적 신앙생활을 간증한 사실에 우리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열두 제자들을 전도 파송하면서 마10:16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도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현하 교육의 목적도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 신자들은 이 거칠고 험악한 세상에서 바로 적응해 나아가는 전천후적 신앙생활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1. 전천후적 신앙생활은 순경에 적응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1) 순경이란 무엇이냐하면 여기 바울의 고백한 바와 같이,
존귀해지는 환경이요
풍부해지는 환경이요
배부른 환경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행복한 환경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한평생 사는 동안, 이러한 순경을 만날 때도 있고 역경을 만날 때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2) 순경에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 점에 대하여 전7:14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일을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솔로몬 왕이 교훈과 같이 순경에서는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뻐하라는 말씀의 배경에는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뜻이고,
찬송을 부르라는 뜻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약5:13에도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2. 전천후적 신앙생활은 역경에도 적응하는 삶입니다.
역경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비천해지는 환경이요, 궁정해지는 환경이요, 배고픈 환경이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에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말입니까?
(1)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역경을 만나게 한 일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서양 격언에 "사람의 역경은 하나님의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50:15에 "환난과 역경은 하나님을 찾으라는 신호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신호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신호라"고 하였습니다.
(2) 나 자신이 행한 일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역경에 대해서, 성경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내가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계받은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으로 생각하여 보고,
나의 신앙을 연단시키신 후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롬8:28 참조).
(3) 이 세상에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전3:11에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땅의 것보다 하늘의 것을 이 세상의 것보다는 천국의 것을 사모하고 생각하도록 역경을 만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결론
우리들의 전천후적 신앙생활이란?
(1) 순경에도 바로 적응하고
(2) 역경에도 바로 적응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이 할 수 있는 비결은 능력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열 심
성 경 활 용
1. 열심의 일반적인 면
(1) 대상이 분명해야 할 것.
(시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요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2. 성도는 어떤 면에서 열심이어야 하는가?
(1) 주의 일에 힘써야 한다.
(고전15:58) 견고하고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2) 착한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딛2:14)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주를 섬기는 데 열심이어야 한다.
(롬12: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4) 민족을 위한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삼하21:2)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5) 사랑에 열심이어야 한다.
(벧전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6) 좋은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갈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7) 사도를 섬김에 열심이어야 한다.
(고후7:7)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고함으로 나로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8) 가르치는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행18: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3. 열심을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여호와의 열심이 구원을 이루시므로
(사37:32) 남는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을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2) 여호와께서 열심으로 말씀하시므로
(겔5:13)내 분이 그들에게 다 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할 줄을 그들이 알리라 주께서 사랑하여 책망하고 징계하시므로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4. 열심이 주는 결과
(1) 많은 사람을 격동시킴
(고후9:2)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
(2) 그리스도와 중매시킴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3) 해할 자가 없음
(벧전3:13)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4) 회개하게 됨
(계3:19)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5.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열심의 모습
(1)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심
(사59: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2) 열심으로 말하심
(겔5:13)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3) 성도를 위하여 자신의 말씀을 열심으로 이루심
(사9:7) 다윗이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관련원어풀이
1. an:q; 카-나-
(1) 질투하다, 시기하다.
(창30:1, 민5:14)
(2) 시기심이나 분노를 일으키다.
(신32:21, 왕상14:22)
(3) 시기로 불태우다, ∼주장에 대해 시기하다.
(민25:11, 삼하21:2)
2. ha;n]qi 킨 아-
(1) 시기, 질투.
(잠6:34, 겔8:3)
(2) 시기.
(욥5:2)
(3) 열렬한 시기.
(왕하10:16, 사9:6)
(4) 열심, 분노.
(신29:19, 시79:5)
3. zevw 제오-
열심이 있다. 열렬하다.
(행18:25, 롬12:11)
4. zh'lo" 젤-로스
(1) 관대한 경쟁, 고상한 포부, 열렬한 사랑, 열심, 열정
(요2:17, 빌3:6)
(2) 질투, 시기, 악의, 분개, 진노.
(행5:17, 갈5:20)
5. zhlovw 젤-로오-
(1) 열심으로 불타다, 열심히 바라다, 진지하게 노력하다, 추구하다.
(고전14:1, 14)
(2) 열심을 나타내다.
(갈4:18)
(3) 시기나 질투로 가득차다.
(행7:9)
6. zhlwthv" 젤 -로-테-스
(1) 큰 뜻을 품은 사람, 지망자.
(고전14:12, 딛2:14)
(2) 헌신한 신자, 열광자, 열심 당원.
(행21:20, 갈1:14)
설교예화자료
모세상 발등에 있는 흠
미켈란젤로 (Michelangelo)가 예술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시대의 그 어떤 조각가보다 탁월한 조각가입니다. 그의 걸 작품으로 다비드(David), 낮과 밤(Day and Night), 부르게스의 마돈나(Mado-nna of Bruges), 황혼과 여명(Twilight and Dawn), 라 피에타(La Pieta), 메디치 마돈나와 아기(Medice Madonna and Child)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모세상 또한 그의 걸작품 중의 하나로서 이 모든 것들은 근 4백여 년간 인류의 심금을 울린 것들입니다.
그러나 미켈란젤고 자신은 그의 작품에 결코 만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의 최대의 걸작품인 모세상이 완성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미켈란젤로는 완성된 그의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화가 난 그는 끌로 모세상의 발등을 부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왜 너는 말을 하지 않느냐? " 차가운 대리석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그의 이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발등 위에 난 좁고도 긴 흠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흠이야말로 그의 꿈을 완성시키지 못한 사람을 말해 주는 상징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불가능한 것을 시도함으로써 대가가 된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 만족에 도취하여 잠들어 버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채찍을 가했던 것입니다.
소수의 탁월한 사람들만이 그들의 성취에 불만감을 가집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탁월한 이유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데,그것이 바로 그들이 위대해진 이유입니다.
좌절을 모르는 삶
꿈과 정열을 가진 사람은 결코 좌절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리차드 버드의 생애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리차드 버드는 젊어서부터 먼 지방을 탐험해 보고픈 야심에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 때 그는 부상을 당하여 발목의 뼈를 크게 다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해군 현역으로입대할 수는 있었으나 28세 때에 생긴 발목뼈의 기능 장애 때문에 신체 부적격자라는 판정을 받고 퇴역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버드에게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면, 그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종사가 되어 다시 해군 현역 복무로 되들아올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훌륭한 자격들 가진 조종사였을 뿐만 아니라 해군의 경비행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에게는 불행이 겹치게 되었습니다.
그가 비행선으로 북극 비행에 나서려고 계획했을 때,. 그의 첫 번째 시도는 비행선의 추락으로 그만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똑같은 발목 상처의 재발 때문에 또다시 해군에서 퇴역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버드는 비공식적인 탐험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모든 어려운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는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다음으로 그는 북극에 성조기를 꽃아 놓았고, 다음으로는 남극을 향해 거기에도 역시 성조기를 꽂아 놓았습니다. 결국 미국 해군은 그들이 두 번이나 퇴역시켰던 사람에게 제독의 호칭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훌륭하고 위대한 야심을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도 어떤 목표를 가질 수는 있으며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나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우리는 훌륭한 목적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에 우리 자신을 몰두시킬 수 있습니다. 일단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적인 에너지 자원을 개발시킬 수 있게 됩니다.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보십시오! 그의 손가락은 추위에 얼어서 퍼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몸은 여러 시간 동안의 추위와 수고로 인해 고통을 당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오직 성자와 예술가들만이 알고 있는 엑스터시로 가득 차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마음 전부가 그의 일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어른들에게도 귀중한 삶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두 시간의 길이
포도원을 많이 갖고 있는 임금님이 노동자들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 노동자는 대단히 능력이 있고 빼어나게 뛰어났습니다. 어느 날 왕은 포도원을 찾아 그 뛰어난 재능의 노동자와 둘이서 포도원 안을 산보했습니다.
유태의 전통에 따르자면, 품삯은 때일 동전으로 지불됩니다. 그래서 하루의 일이 끝나자 노동자는 줄을 짓고 품삯을 받으러 왔습니다 노동자는 모두 똑같은 품삯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뛰어난 노동자가 품삯을 받았을 때에 다른 노동자가 화를 내며,
"그 사나이는 두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고, 나머지 시간은 왕과 함께 빈둥거리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사람이 우리들과 똑같은 품삯을 받다니 말도 안 됩니다. "고 왕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너희들이 하루 종일 걸려서 한 일보다도 더 많은 일을 이 사나이는 두 시간 동안에 해치웠다. "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죽은 28세의 랍비도, 다른 사람이 백년 산 것보다도 더 많은 일을 성취했습니다. 문제는 몇 년을 살았다는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업적을 올렸느냐는 것에 있습니다.
종탑에서 일하는 사람
한 여행자가 암스텔담에 있는 성 니콜라스(St. Nicholas) 성당의 아름다운 종소리에 대해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종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그 교회의 종탑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커다란 건반 앞에서 나무로 만든 장갑을 낀 채 열심히 건반을 치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여행자는 건반을 치는 소리와 그의 머리위에서 뎅그렁거리는 종들의 불협화음 소리에 거의 귀가 먹을 지경이었던지라 왜 사람들이 성 니콜라스의 아름다운 종소리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는지 의아해 하면서 급히 그곳을 나왔습니다.
다음날 같은 시각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관광을 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놀랄만큼 맑고 풍부한 음량을 가진 종소리가 달콤한 음악으로 되어 하늘을 가득 채우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성 니콜라스의 종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라고 안내인의 말에 비로소 그는 왜 그 많은 여행자들이 종소리의 아름다운 소리에 대해 열성적으로 말하는가에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종탑 속에서 일하고 있던 이를 떠올리며, 그의 힘든 작업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무척 아름다운 소리가 되는지를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록·시·묘사
그대 만약 열심이라면, 나중으로 밀지 말고 지금 곧 할 일을 시작하라.
(J.W. 괴테)
열중은 매우 좋은 정신의 윤활유이다.
(B. 존슨)
그 아무리 위대한 일도 열심히 하지 않고 성공된 예는 예부터 없었다.
(R. W. 에머슨)
위대한 업적치고 열의 없이 이루어진 것은 없다.
(에머슨/ 수필집)
상상력이 없는 열중은 사람을 괴짜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B.C. 리밍/ 상상)
열중의 척도는 흥미 있는 일에서 취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하는 낚시질이 기운을 잃는 것은 고기가 물어주는 데 달렸다.
(E.W. 틸/ 계절의 순환)
사랑들의 갈채와 기꺼운 인정에서는 어떤 재능인도 열의를 가질 수 있다.
(오비디우스/ 폰토로부터의 서한집)
나무칼로 귀를 베어도 모르겠다. <*좀처럼 베어질 리 없는 나무칼로 귀를 베려면 한바탕 소동을 겪어야 할 것이나 그것을 모르겠다 함은, 한 가지 일에 몹시 골똘하여 정신이 없음을 이름>
(한국 속담)
열중이라는 말은 그리스 말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것은 하느님의 영감(靈感)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 열중하는 태도로 일하는 사람은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
(D. 카네기)
세계 역사상 위대하고 당당한 모든 시기는 어떤 열의의 승리이다.
(에머슨/ 자연, 연설 및 강의집)
열광자란 여러분들이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열중하는 사람을 말한다.
(미상)
열기는 올바른 지식의 부족에 비례한다.
(스턴/ 트리스트램 샌디)
열광적 기질은, 그런 이름으로 참으로 많은죄가 범해지긴 해도, 자유와 같이 중요하다.
(L. 코로넌버거/ 교제예의)
열중은 불과 같아서 일거리를 대주고 돌봐주어야 한다
(W.G. 베넘/ 격언집)
머리는 혈기를 억제하는 법칙을 세우지만, 뜨거운 성품은 그런 차디찬 명령을 뛰어넘어 버린다.
(W.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맹목적인 열의는 재만 끼친다.
(리히트버/ 암고양이와 집주인)
자기를 넘는 곳으로 자기를 내던지려는 시도의 세계 속에 자기를 참가시키려는 숭고한 의도 없이는 결국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
(L. 린저/ 생의 한가운데)
아무리 절망해도 직업(課題)이 있는 사람은 '고통 속의 무풍 지대'를 지니고 있고, '고정 관념처렴 광적으로 열중할 때' 행복할 수 조차도 있다.
(L. 린저)
옛날 내가 열중하던 것들을 돌려다오./ 지금은 잃어버린/ 열렬히 동경하던 것들을 돌려다오.
(W.W. 스토리/ 기롤라모)
죄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라/ 진실한 사랑을 할 것이요/ 겸손과 우애의 도를 지키고/ 열심을 품어서 주 섬기세
(홍안의/ 성도의 생활)
열심보다/ 사람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도구는 없노라.
(임춘남/ 성경)
고루 잘살 수 있다는 그쪽 주장도/ 싱거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열심이었는데/ 어느 날은 전쟁이 났다고 하겠지
(박용주/ 할아버지 이야기)
신도 없는 우리들의 슬픔은/ 정말 정말 심심하다/ 아주 열심히 열심히 심심하다.
(홍완기/ 한발)
죄는 미워하되/ 원수는 용서하라/ 그 말씀 되뇌이며/ 십자가를 생각하면// ‥‥개인의 원수라면/ 잊을 수야 있어도/ 교회의 대적자를/ 용서할 수 없음은// 주님을/ 향한 열심이/지나쳤던 탓일까.
(김시백/ 광야의 소리 · 6)
설 교 노 트
중심이 불붙는 것 같음
렘20:9
서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복음 12장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선지자들의 마음속에 불을 던지셨습니다.
마음에 불을 받은 자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1.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당하는 핍박이 괴로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의 중심이 불 붙는 것같이 뜨거웠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마음속에 하나님의 강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힘에 의한 것이지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전도할 책임을 강조하면서 말씀하기를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였다(행18:5)"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질 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열심히 증거할 때 감화력이 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오후에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안이 어두워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녁 먹을 매 축사하시는 예수님을 그때서야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 깨닫게 되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24:13-35)"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37절에 보면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베드로의 불같이 뜨거운 설교말씀을 들은 대중들은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한 것을 읽게 됩니다.
그들은 마음이 불타오르는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 같다고 하셨으며(렘23:29), 말씀이 크게 역사한 오순절 날 예루살렘 다락방에는 성령이 임하실 때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행2:3).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그 말씀을 다른 자들에게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은 것은 결국 무슨 일이든지 맡겨진 사명을 아니할 수 없는 불가피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우리는 맡은 바 책임을 열심으로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네가 미쳤도다
행26:24
서론
미쳤다는 말은 정신이 이상한 증세를 일으켰다는 뜻으로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못된다는 말입니다.
베스도는 바울을 미쳤다고 하였고 바울은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바울은 예수에게 미친 사람입니다. 미친 자의 특성은 다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풀어 보고자 합니다.
1. 한 가지 일만 생각합니다.
미친 사람은 그 미치게 된 원인, 동기, 이유 등의 한 가지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돈벌이에 실패하여 미쳤으면 자나깨나 돈, 돈, 먹으나 굶으나 돈, 돈, 돈 타령만 합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만 생각되고, 오직 목표가 돈뿐입니다.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하는 것에 열중하다 미치거나, 연애하다 미친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에게 미쳐야 합니다. 자나깨나 예수, 먹으나 굶으나 예수, 예수, 앉으나 서나 예수, 사나 죽으나 예수, 예수, 오직 예수뿐인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나 공부나 연애나 이 세상의 다른 것에 미쳐서는 안됩니다. 바울과 같이 예수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2. 수치를 모릅니다.
미친 사람은 자기의 미친 상태를 모릅니다. 남들이 비웃든 조롱하든 수치를 모르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은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빌3:19).
자기의 미친 상태를 바로 알고 부끄러움을 깨닫는다면 이는 벌써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정신이 멀쩡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에게 미친 사람은 예수님을 결코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신앙생활을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영광으로 여길 뿐입니다.
3. 큰 힘을 냅니다.
미친 사람의 세 번째 특성은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그런 큰 힘이 있다가 나타나는지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자들 중에 증세가 심한 사람들은 쇠사슬로 묶어 놓고 철창 속에 가두고 하여도 이를 부셔버리고 발광을 합니다. 보통 사람 세 사람이 미친 사람 한 사람의 힘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에게 미치면 평상시에 나타낼 수 없었던 큰 힘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기때문에 죽음도 사양하지 않고 고생도 마다하고 헌신합니다. 시험을 당해도 이길 힘을 주시는 까닭입니다.
결론
육체의 사람이 미치면 불쌍한 인간이 되나, 심령의 사람이 예수님께 미치는 것은 결코 불행이 아니요, 오히려 축복받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한 번 예수에게 미쳤다고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열심히 분발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영 광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영광의 일반적인 면
(1) 하나님의 신적 속성 중에 하나임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하나님께서 임재 할 때에 나타남
(눅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 하는지라
2. 인간에게 주어진 영팡
(1)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히2:7)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2) 순간적인 영광이다
(벧전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3) 죽음과 함께 끝난다.
(시49:17)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4) 긴 머리는 여자의 영광이다.
(고전11:15)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5)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다.
(고전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3. 세상의 영광
(1)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단2:37) 왕이여 왕은 열 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2) 시험받는 원인이 된다.
(마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3) 부성한 영광이다.
(에5:11) 자기의 부성한 영광과 자녀가 많은 것과
(4) 영광을 사람에게 얻으려고 한다.
(마6:2)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5) 원수의 영광은 저희 부끄러움에 있다.
(빌3:19)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4. 영원한 영광
(1)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시84:11)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2) 예수를 통해 주신다.
(요17: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
니이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함께 얻는다.
(딤후2:10)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4) 지혜로운 자가 받는다.
(잠3: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5) 그리스도가 영광의 소망이시다.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6) 성도들을 영원한 영광에 부르셨다.
(살후2:14)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7) 성도의 몸이 영광의 몸의 형체로 변한다.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8)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는 비교가 안 된다.
(롬8:18)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9) 환난은 성도들의 영광이다.
(엡3:13)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5.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고찰
(1) 예수께 나타남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2) 위엄 속에 있다.
(시145:5)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사를 나는 묵상하리이다
(사2:10)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3) 권능 속에 나타나 있다.
(출15: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4) 크다.
(시138:5) 저희가 여호와의 도를 노래할 것은 여호와의 영광은 크심이니이다
(5) 풍성하다.
(엡3: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랑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윰시며
(6) 하나님은 영광받기를 원하신다.
(사42:8)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7)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다.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관련원어풀이
1. hr;/a 오-라-
(1) 빛.
(시139:12)
(2) 초목.
(왕하4:39)
(3) 번영, 기쁨.
(에8:16)
(4) 이슬에 반사하는 빛
(사26:19)
2. hw:a}G" 가아와-
(1) 탁월, 우수, 위엄.
(신33:26, 시68:35)
(2) 장식, 광채.
(신33:29, 욥41:7)
(3) 자만, 독선.
(시31:24, 잠14:3)
3. @wOaG; 가-온-
(1) 고상, 위엄.
(욥37:4, 미5:3)
(2) 장식, 영광, 광채.
(기47:5, 렘49:19)
(3) 교만, 자만.
(욥35:12, 사2:3)
4. rd;h; 하-다-르
(1) 장식, 꾸밈.
(시45:4, 겔16:4)
(2) 영광, 명예.
(시149:9)
5. D/bK; 카-보-드
(1) 사람의 명예, 존귀, 영광.
(욥19:9)
(2) 위엄, 영광, 광휘.
(삼상2:8, 시42:7)
(3) 풍성, 부귀.
(시49:17, 사10:3)
(4) 마음, 영혼.
(창49:6, 시16:9)
6. db'K; 카-베-드
(1) 무겁다, 존귀하다, 영예스럽다.
(욥14:21, 사66:5)
(2) 위대하다, 열렬하다, 많다.
(창18:20, 삿20:34)
(3) 성가시다, 무겁다.
(삼하13:25, 사24:10)
(4) 존귀케 하다, 존경하다.
(삿13:17, 시86:9)
(5) 존귀케 하다, 영예롭게 하다, 명예나 영광을 얻다.
(대하25:19, 렘30:19)
(6) 무겁다, 풍성하다, 부하다.
(사23:8, 9)
7. ra'P; 파-아르
(1) 꾸미다, 장식하다.
(시149:4, 사6O:7)
(2) 영예롭게 되다.
(사6O:21, 61:3)
(3)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다.
(사44:23, 49:3)
(4) 자만하다, 뽐내다.
(삿7:2, 사10:15)
8. dovxa 돜사
(1) 의견, 판단, 평가, 좋은 평판, 영예, 영광
(눅2:14, 롬4:20)
(2) 광채, 광휘, 광명.
(행22:11, 계18:1)
(3) 가장 영광스러운 상태.
(눅24:26, 빌3:21)
9. sundoxavzw 순돜사조-
함께 시인하다, 함께 영광을 돌리다, 영광을 같이 나누다.
(롬8:17)
설교예화자료
바른길
"너는 자기가 해 온 일 이상의 일을 하지 못하였다고 마음 아파하고 있으나 괴로워 할 것은 없습니다. 형제여 ! 우리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하고 그의 종이기도 한 것입니다.우리들은 다 하나님을 섬기는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대체 당신밖에 하나님의 종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나요? 만일 당신이 한창 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몸을 바쳤다면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다 성취할 수가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인간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을 전부 성취할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
"두 배, 십 배, 백 배나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당신은 말할는지 모릅니다. 자 ! 가령 모든 사람보다 만 배나 억 배나 많은 일을 성취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 전체에서 본다면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하나님 자신과 같이 무한하시고 무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네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곁에 와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랴 한 사람의 아들이 되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무한하신 하나님과 그 행사에 동참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것도 큰 것도 없습니다. 또한 인생에게는 작은 자도 큰 자도 없습니다. 다만 바른 자와 굽은 자가 됐을 뿐입니다 인생의 바른길에 들어 서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
항상 위를 보라
어머니는 아들에게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열심히 음악 공부를 시켰습니다. 얼마 후 어머니는 자기 고장에 있는 선생에게는 아들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찾아갔습니다.
은퇴한 선생은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위대한 음악가이신 선생님을 방문했으니 저의 아들이 작곡한 곡을 선생님께 들려드리고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선생은 다시 한 번 제자를 키워보겠다는 열정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마지막 제자로 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노 교수는 힘을 다하여 그 소년을 가르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피아니스트는 카네기 홀에서 연주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관중은 한 곡이 끝날때마다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대를 향하여 모자와 손수건이 날라왔습니다. 발 밑엔 청중들이 내놓은 지폐가 수북하게 쌓였지만 청년은 이러한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층 한곳을 응시하면서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청중들은 연주자의 눈을 따라 바라보는 곳을 쳐다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 교수가 자기의 제자를 내려한보고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는 손만 건반 위에 두고 눈은 그의 선생님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노 교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 수많은 사람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네 발 밑에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도 위만 쳐다봐라. 네가 명예와 금전을 바라보는 그 순간부터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다. "
주께만 영광
스웨덴의 피로리라는 제니 린드는 17세 때 이미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유럽의 각국 나라 황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각계 각처에서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쉽게 빠질 수 있는 교만함과 방자함에 유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친구에게 이러한 편지를 써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다음 일을 기도하고 있다. 즉, 내가 여러 사람들에게 준 것이 영원토록 살아 있기를, 그리고 내가 아니라 주신 주님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
어록·시·묘사
착한 사람들의 영광은,그들의 양심 폭에 있지 입 속에 있지 않다.
(토마스 아 캠피스/ 그리스도의 모방)
성공의 영광을 동경함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영광만을 동경하여 그날을 낭비하는 일을 나무라야 한다.
(H. 푸앵카레)
영광은 가치 없는 가짜 돈이다.
(M. E. 몽테뉴/ 수상록)
인간적 영광의 헛된 추구는 열매를 맺지 아니하며, 이른 죽음만을 가져온다고 그대는 고백할 것이다.
(T. 커루/ 시집:버킹엄 대공)
꽃피는 길이 반드시 영광으로 통하지는 않는다.
(J. 라 퐁텐/ 우화)
영광된 자란, 현인의 경멸거리요, 우자의 찬사 대상이며, 식객의 우상이고, 자만의 노예이다.
(F. 베이컨/ 수필집 ; 허무한 영광에 대하여)
인간의 영광에는 순수한 기쁨만이 허락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일에는 길흉(吉凶)을 섞은 그 무슨 힘이, 그 이름이 운명인지 네메시스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이 있는 것 같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영광은 반딧불처럼, 멀리서는 밝게 빛나지만, 가까이서 보면 열도 없고 빛도 없다.
(J. 웹스터/ 말피 공작부인)
우리들의 가문과 신분의 영광은, 허깨비요, 실체가 아니다. 운명에 대항하는 갑옷은 없으며, 죽음은 제왕들에게 차가운 손을 얹는다.
(J. 셜리/ 아작스와 율리시즈의 논쟁)
갑작스런 영광은, 웃음이라 부르는 얼굴 찌푸리기를 만드는 수난이다.
(T. 호브즈/ 레비아탄)
영광은 그림자처럼 미덕을 뒤따른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영광으로의 길은 무덤으로 통한다.
(T. 그레이/ 시골 묘지의 비가)
치욕을 피하고 영광을 찾지 말라- 영광만큼 값비싼 것은 없다.
(S. 스미드, 홀런드 부인/ 회상록)
월계나무가 벼락을 맞는 일은 없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지나친 영광에는 위험이 따르고, 하늘의 벼락에 맞는 것은 높은 봉우리이다.
(아에스킬루스/ 아가멤논)
쾌락과 영광은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영광은 미덕의 그림자다.
(M.T.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대부분의 영광을 지닌 별들은 쉴 사이가 없다.
(S. 대니얼/ 남북전쟁사)
위대한 인물의 영예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W.올스턴/그의 서재 벽에 쓰여 있던 금언)
수치를 피하라. 그러나 영광을 구하지는 말라. 영광처럼 값비싼 것은 없나니.
(G. 스미스)
새벽의 찬란함도 영광의 첫 눈길만큼 마음 상쾌하지는 못하다.
(L.C. 보브나흐그/ 성찰과 잠언)
위인의 영광은, 항상 그 획득에 사용된 수단을 따져 측정해야 한다.
(라 로시푸코/ 잠언집)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덧없는 것을 버리고 영광을 선택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가축처럼 배부르게 먹고 싶어한다.
(헤라클레이토스)
누가 가장 영광스럽게 사는 사람인가? 한 번도 실패함이 없이 나가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나는 데에 인간의 참된 영광이 있다.
(E.A. 골드스미스)
영광은 죽은 자의 태양이다.
(H. 발자크/ 절대의 연구)
인간의 일생을 따라다니는 모든 애정들 중에서 영광에의 사랑이 가장 열렬한 것이다.
(R. 스틸)
인간이 주고 받는 영광은 짧고, 이 세상의 영광에는 슬픔이 따르기 마련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들이 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 이외에는 영광은 공허하다.
(파에드루스/ 우화집)
영광에의 욕망은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도 다른 어떤 욕망보다도 오래 따라다닌다.
(C. C. 타키투스/ 史書)
명성과 영광은 이런 차이점이 있다. 즉 후자는 많은 사람들의 판단에 달린 것이요, 전자는 좋은 사람들의 판단에 달린 것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이기적인 원칙에서 쌓아올린 영광은 수치요, 범죄다.
(쿠퍼/ 茶話)
명예없이 살아가는 것보다는 영광을 얻고 죽는 편이 천 배나 낫다.
(루이 16세)
영광이 사후에 온다면, 나는 급하지 않다.
(마르티알리스/ 경구집)
받을 만한 관은 장식이 되지만, 부당한 관은 압박할 뿐인 것이다.
(F. 에케르트/ 사행시)
나른하고 즐거운 입맞춤이/ 영광의 밤과 낮들을 치장한다.
(C.P. 보들레르/ 레스보스 섬)
보랏빛 바다 위의 태양의 영광/ 지는 태양 속의 도시들의 영광이‥‥/ 안절부절의 열망을우리 가슴에 불켰었노라.
(C.P. 보들레르/ 여행)
여러 천사의 말을 하는 것도 헛되거늘/아아 신이여, 헛되게도 이 세상으로 신을/ 기리는 말로 차게 할지니/ 만일 사랑이 없다면 신을 기리는 내 영광도/ 한갓 헛된 울림으로 공기를진동하는/ 꽹과리의 영광과 같을 뿐이라.
(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리며)
이제 우리는 터를 하고/ 거기에 어두웠던 과거를/ 모두 누더기처럼 벗어놓고/ 영광스러운 채색의 꽃바구니/ 어깨 위에 다시 머리 위에 짐이 아닌/ 모두 부러워할 / 밝은 내일 앞에/ 나무처럼 서 있다.
(황금찬/ 영광 속에서)
마음 가득히 심지를 돋우고/ 저려오는 환희에 떨며/귤빛 영광에 눈부셔 하며/우리는, 겸손한 모습으로 엎디어 있습니다. // ‥‥우리의 눈물이/ 우리의 아픈 신음이/ 당신의 영원한 정원에 살며/ 별처럼 반짝이게 하옵소서./ 이쁜 꽃이 되게 하옵소서.
(한분순/ 기원)
나의 왕,나의 하나님이여,/나를 가르치사/ 만유 속에서 당신을 보게 하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이/당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게 하소서.
(죠지 허버트/ 나를 가르치소서)
우리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주님,/ 영원영원토록 영광받으소서.
(랜슬롯 앤드류스/ 주님은 제 안에 계시어)
가까이 못할 두려움에 구름이 일고/ 신(神)은 영광으로 거한다.
(이승록/ 불기둥과 구름기둥)
영광의 손으로/오, 봄부인이여!/우리들의 인생을 위해/ 장미꽃을 뿌려 주소서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봄부인)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을지라./ 초원의 빛이여! 그빛이 빛날 때/ 그때 영광 찬란한 빛을 얻으소서.
(워즈워드/ 초원의 빛)
그리스도의 영광으로./로마의 장엄함으로.
(포우/ 헬렌에게)
저 그리운 고목이 지니고 있는/ 그 영광과 명성은/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잘라 쓰러뜨리려 하는가?
(모리스/ 나무꾼이여, 나무를 베지 말라)
하나님은/ 낮은 것을 높게도 해 주시고/ 영광의 옷을 입혀/ 품어도 주십니다
(홍안의/ 하나님이 하시는 일)
설 교 노 트
신앙생활의 초점
고전10:23-33
서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신앙생활의 초점 없이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의 초점을 잃어버리고 마치 풍랑을 만난 배와 같이 갈팡질팡 방황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신앙생활의 바른 방향과 초점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본문의 내용을 보면 사도 바울은 신앙생활의 초점을 크게 두 가지로 지시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본문 31절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미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다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라고 했고, 인생의 본분이라고 했고, 인생의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롬11:36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성경 요리문답 제 1답에도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고 이 점에 대하여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 "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눅15:7에 "죄인 하나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개할 것 없는 아흔 아홉 의인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삼상15:22에 "많은 제물보다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더욱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여 충성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2. 많은 사람을 구원 얻게 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구원 얻게 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1) 다른 사람에게 거치지 아니하는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남에게 거치지 아니하는 의미는 남에게 장애물이 되지 아니하는 삶이고, 남에게 손해나 상처를 주지 아니하는 삶입니다.
(2)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나의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믿는 소자 하나라도 실족에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 신자들의 의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 신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도 추구하여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3)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는 실제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라고 하였습니다. 오해는 불화와 불상사의 원인이 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양보의 미덕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호감을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사랑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상 두 가지 신앙생활의 초점에서 어긋나지 아니하도록 항상 힘써 우리의 신앙생활을 정립해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I)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2) 다음 다른 사람을 구원 얻게 하는 초점에 맞추어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움
나1:2-3
서론
니느웨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훔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는 한없이 무서운 분이시며, 의인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들 신앙의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다스려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 영광스러운 묘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밝게 나타나시고 애굽에 대해서는 어둡게 나타나심을 말해 줍니다.
1. 그는 굽히지 않는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의 존재를 부인하며, 다른 우상을 세우고, 그의 법을 어기거나 그의 말씀을 조롱하는 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그에 대한 멸시를 노여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심에 있어서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질투하시며, 그에 대항하여 나서는 그 어느 적도 참지 않으십니다. 그의 질투는 그를 예배하는 자들과 그의 나라를 위한 것이며, 그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진노는 인간들의 무절제한 진노와는 다르게 그의 의에 합당한 것입니다. 그는 화를 내시기는 하나 그 자신의 명령과 통제에 어긋남이 없으십니다. 그는 연재나 진노하게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복수자일 뿐 아니라, 실제로 복수를 하십니다. 사람들 가운데 누구든지 하나님의 적이 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분노하십니다. 비록 그의 원수들이 즉각적으로 심판받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까지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2. 그의 능력
그의 분노와 관련된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는 아무도 그 분노하심 앞에 설 수 없음을 압니다(6절). 여기서 하나님은 두렵고 능력있는 "소멸하시는 불(티13:29)"로 나타나십니다. 그는 죄에 대하여 진노하사 소돔에 쏟았던 불과 같은 그의 분노를 쏟으십니다(시11:6).
(2) 죄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견뎌낼 수 없습니다.
6절에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심 앞에 서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진노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견뎌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 섭섭해하신 결과 중 어떤 것은 사람들이 견뎌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그들 영혼에 곧바로 부어지게 되면 그 누구도 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그는 무한한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1) 이 사실은 그가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데서 나타납니다.
그는 쉽게 노하지 아니하시며, 그를 거스르는 자에게도 은혜를 베풀고자 하시며, 그들이 뉘우치면 언제라도 받아들이십니다.
(2) 그가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데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악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날 때에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위로와 안전을 보장해 주십니다(7절). 하나님은 의로운 자들에게는 의롭게 대해 주시며 "환난날에 큰 도움"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능력을 그의 백성의 보호와 만족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악한 자들에게는 공포와 파멸이 됐던, 바로 그 능력이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는 보호와 만족을 줍니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환난의 날이 다가와 그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할 때, 하나님은 믿음으로 자신을 그에게 맡기는 자들에게 보호처가 되어 주십니다.
결론
우리 각자는 이 성경 말씀에서 자기에게 주어지는 말씀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죄인들은 이 말씀을 읽고 떨 것이며 성도들은 환호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늘로부터 그의 원수들에게 내릴 것이며, 그의 은혜와 자비는 그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리니, 이 두 가지는 모두 그의 전능하신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의 진노는 두려운 것이요, 그의 은혜는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서론
소요리 문답 제 1문에 보면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냐? "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답은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천군 천사들이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목적도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1.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은 비단 먹고 마시는 일 뿐만 아니라, 그밖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은 작다면 작고 크다면 또 큰 일입니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을 육체의욕구에 응해서 행한다면 너무나 부족한 일이며, 결국 배설물을 준비하는데 그치고 만다면 너무 무가치한 목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먹고 마심으로 육체의 건강을 보존하고,그 육체는 심령을 건전케 하며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데 힘쓸 때에 가치있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 즉, 우리 모든 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모든 것을 형통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1)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단체 생활에서 너무 독특한 생각이나 주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쉬우므로 전체 조화에 힘쓰라는 뜻입니다.
어디든지 보면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너무 자기 개인의 주장을 내세워서 여러 사람과 뜻을 같이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막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모든 사람을 구원 얻게 해야 합니다.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은 온전히 그리스도의 희생적 정신이요, 우리가 모범할 바입니다.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한다는 뜻은 나의 유익보다도 남의 유익, 즉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기쁨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자는 뜻이므로 결국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나 자신도 포함이 되나니 개인보다는 대중을 위해서 살라는 뜻입니다. 이 대중은 곧 교회 성도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하여 많은 사람으로 구원을 얻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또 그가 지은 피조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의 신뢰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
고전1:29
서론
이 서신서에서 바울이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인간의 지혜가 편만한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라는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며 수세기 동안 철학과 학문이 가장 이름난 장소였습니다.
1. 성도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은 모든 선의 조성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세주를 예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기름을 부으셨고 사명을 주셔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세주를 용납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세주를 보내주셨고 그를 용납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통하여 우리 죄를 사하시며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에 우리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세주에게 성도들을 맡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맡기셔서 그와 연합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믿어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엡2:8). 그리스도가 주시는 모든 유익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는 모든 선의 매개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죄사함의 기쁨과 구원,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행복, 영생 그리고 영광이 모든 것은 중보자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 중보자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게 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선함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리스도를 의존자로서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의(義)로써 우리를 구원 하셨으며 그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렘23:6)"고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은 모든 선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구원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선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선을지니셨으며 그리스도가 값 주고 사신 모든 선의 총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업과 분깃이 되십니다.
2. 성도들이 신뢰할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
(1) 하나님을 신뢰할 때 인간은 그의 전지전능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신뢰할 때 그분을 알 수 있는 기회가더 많아집니다.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할 때 발휘됩니다.
(2) 성도들이 신뢰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십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외면과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진정한 영광과 경배를 드려야 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허망한 것들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속 사역에 목적을 두시고 일을 처리하십니다. 구속 사역을 통해 하나님 자신이 전부가 되심을 드러내시며 인간의 무가치를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선명하게 보여주시는 데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성도들의 끝없는 경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적인 것을 신뢰하게 되며 경배의 대상도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분적인 신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근본이 되시며 선의 통로가 되시므로 우리의 신뢰가 부분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뢰가 전적일 때 우리는 하나님만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며 그분과 연합될 수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신뢰와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존귀하게 여기도록 가르치십니다.진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주 안에서 기뻐 찬미하게 되며 이 세상의 죄인들과 지옥의 비참한 자들로부터 구별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될 것입니다.
영 생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영생
(1)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
(딛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 없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2) 하나님의 명령이다.
(요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3) 아들을 통해 주신 것이다.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 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4) 하나님의 은사이다.
(롬6:23) 죄의 삯은 사명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 생 이 니 라
(5)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2. 영생의 근원은 누구신가?
(1) 하나님 이시다.
(단4:34)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2)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3. 어떻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
(1) 그리스도를 통해
(롬5:21)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2)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요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성경을 상고해야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4) 생명수를 마심으로
(요4:14)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5)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딛3:7) 우리가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6) 믿음의 선한 싸움으로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7) 영혼의 양식을 위해 일함으로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8) 자기 생명을 미워해야
(요12:25)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4. 영생을 얻지 못하는 이유
(1) 예수께 순종하지 않아서
(요3:36)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2) 말씀을 버려서
(행13:46)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3) 살인하므로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4) 예수께 나오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요5:40)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5. 영생을 얻은 자의 결과
(1) 예수의 손에서 빼앗지 못함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 심판에 이르지 않음
(요5:24)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3) 영원히 멸망하지 않음
(요3:16) 참조
(요10:28) 참조
(4)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남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 것이니 마지막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5) 하나님의 후사가 됨
(딛3:7) 우리는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관련원어풀이
1. !l;/[ yy:j' 하웨-올-람
영생.
(단12:2)
2. aijwvnio" zwhv 아이오니오스 조-에-
영생.
(마19:16, 눅10:25)
3. zwhv 조-에-
(1) 생명, 생명력이나 활기를 가진 사람의 상태.
(눅12:15, 빌1:20)
(2)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윤리적이며 필수적인 초자연적인 생명.
(요5:26, 행3:15)
설교예화자료
영원한 생명
랍비가 시장에 찾아왔습니다.
"이 시장에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기에 알맞는 사람이 있다. "고 랍비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러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때 두 사람이 랍비가 있는 곳에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이 두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선인이다. 영원한 생명이 주어져도 좋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당신이 장사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우리들은 광대입니다. 쓸쓸한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다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평화를 준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순교와 면류관
초대 교회 박해 시대의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군사들이 열두 명의 신자들을 잡아왔습니다. 그들은 이 신자들을 며칠 동안 굶긴 다음 꽁꽁 얼어붙은 강에 데리고 나가서 열두 개의 구멍을 뚫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구멍에다 한 사람씩 벌거벗겨 쳐 넣었습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에 바로 그 옆에 따뜻한 장소를 마련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음식을 차린 다음
"누구든지 지금이라도 그리스도를 배신하기만 하면 나을 수 있고, 살 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따뜻히 먹을 수도 있다. "고 유혹하였습니다.
열두 명의 신자들은 끝끝내 항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너무 춥고 배고파 참을수가 없었던지
"나는 예수를 버리겠소! 나 좀 건져 주시오."하고 소리쳤습니다. 지키고 있던 군사들은 그를 즉시 건져올렸습니다. 그런데 병정 중 한 사람이 그때 하늘을 우러러보니 열두 천사가 빛나는 면류관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신자가 배반하였기에 한 천사가 슬픈 얼굴을 하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한 군사가 천사들과 면류관을 보는 순간 너무도 깨달은 바가 컸기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 신자들 역시 나와 똑같은 인간인데, 그들이라고 어찌 배고픔과 추위를 모를 수 있을까?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 저들에게 영원한 생명과 상급의 면류관이 있기에 그 지독한 고통을 참을 수 있지 않는가? " 그 병정은 얼른 군복을 벗어던지고, 그 얼음 구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때
"저 사람 대신 내가 그리스도를 믿겠소."라 외쳐댔습니다. 역시 한 군사와 함께 다른 열한명의 신자들은 장렬하게 순교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영생불멸(永生不滅)은 기독교의 영광스러운 발견이다.
(W. E. 채닝/ 영생불멸)
영생불멸은 인간 영혼의 위대한 긍정이다.
(H. 블랙/ 불멸에 관한 위대한 사상집)
불멸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룩하는 것이다. 그리고 힘차게 노력하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할 것이다.
(E.L. 마스터스/ 스푼 리버 시선집)
불멸은 영원한 과업에 힘쓰는 것이다.
(E. 르낭/ 과학의 장래)
나는 근본적으로 생명 의 불멸을 믿는다. 나 스스로를 위해서 강력하게 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부정할 경우 전인류를 절망으로 이끌어 가고 철학은 자포자기의 학문으로 타락되기 때문이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위대한 사상들」에서>
(H. E. 포스딕)
영생불멸에 관한 나의 확신은 다음과 같다. 만약 우주에 대해 영원히 가치 있고 봉사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내 속에 있다면, 우주는 그것을 보존하는 방법을 알 것이다. 내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영원히 가치 있고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보존될 수도 없고, 보존되지도 말아야 한다.
(H.J. 브리지즈, 뉴턴/ 나의 신관)
영생불멸이라는 관념은 ‥‥사랑이 죽음에 입맞추는 한, 의심과 암흑의 안개와 구름 밑에서 천만을 계속할 것이다. 그것은 무지개--즉, 슬픔의 눈물 위에서 빛나는 희망이다.
(R. G. 잉거솔/ 유령)
뜻이 있으면 영원히 살기 위하여 노력하라, 그리고 기다려라.
(J.G. 홀랜드/ 금박지)
영원히 산다는 것에 대한 나의 확신은 다음과 같다. 우주에 대해 영원한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우주는 스스로 그것을 보존할 줄 알 것이다 나에게 있는 것의 어느 것도 영원한 값어치와 도움이 되지 못하면 보존되지도 않거니와 보존되어서도 안된다.
(H.J.브리지스)
죽음을 넘어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인간의 갈망은 영혼의 가장 고귀한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위대한 사상들」에서>
(H. 반 다이크)
한 번 주신 목숨일랑/ 영영히 살게 하시는/구원의 그 빛/ 당신으로 하여
(안혜초/ 가을 엽신)
사람의 생명이 영원하지 않다면 우주란 아무 데에도 갈 곳이 없는 계단이다. <뉴턴의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에서>
(E. Y. 뮐린즈)
무릇 지(智) 깊은 행위는, 참된 인생은 불멸임을 믿는 데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최초로 마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인생에는 분명히 불멸한 그 무엇이 있다는 점을 확실히 알며 그것을 이해할 그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전력을 다하여 스스로 이 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그들은 이것을 위하여서 자기의 전생애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불멸에 대하여 의심을 품으면 서도 그 때문에 괴로움을 받으며, 또 그 괴로움을 가장 큰 불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오직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싫증내는 일 없이 끊임없이 그 진리를 탐구하며 그렇게 함을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고 있다.
(B. 파스칼)
검고 금빛인 파리한 영생이여
(발레리/ 해변의 묘지)
주님께서/ 사랑하셨기에/ 존재하였노라/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으로/ 영원히 삶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황금찬/ 기도)
"어떻게 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영원한 삶은 지금이다. 현재로 들어오너라."/ "하지만 저는 지금 현재에 있지 않습니까?"/ "아니다"/ "왜 아닙니까?"/ "너는 과거를 떨쳐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왜 과거를 떨쳐 버려야 됩니까? 제 과거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 "과거를 떨쳐버려야 하는 까닭은 나쁜 것이라서가 아니라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
(앤소니 드 멜로/ 迷妄)
이 어둠의 땅/ 당신의 입맞춤은/ 순색의 꽃으로 피어나고/ 새벽은 영생의 부활로 깨어난다.
(안혜초/ 기도 · 28)
내 넋이여, 영생을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파고들라
(핀다로스/ 승리의 축가 · 3)
아아, 설령 죽음이 온 세계를 다스려도/ 우리 사랑은 남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오리라.
(스펜서/ 그의 사랑에게)
녹색 긴 황금빛을 하고 나의 옆에서 노는/그대 봄의 곤충이여,/ 그대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대는 아마/ 아! 영생을 하지는 못하리라!
(클롭스토크/ 봄의 축제)
옛날에/ 유대땅에/ 한 청년이 달려와서/ 주 앞에 무릎꿇고/ 영생의 길 물었네/ 하늘나라 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우리 주님 하신 말씀/ 마음속에 새겨두리// 청년은 일찍부터 하나님 뜻 행했다고/ 주 앞에 고백하며/ 영생의 길 물었네/ 하늘나라 가려면 가난한 자 돌보라/ 우리 주님 주신 말씀/ 생활 속에 실천하리// 예수는/ 그 청년을/ 제자 삼기 원하셔서/ 재물을 다 버리고/ 따라오라 명했네/하늘나라 가려면 네 자신을 비워라/우리 주님 외친 말씀/ 늘 좇아서 승리하리
(홍안의/ 영생의 길)
흙은 풀린 자리에 태몽을 안고/ 영생의 푸른 잔디를 마련하며/ 멀리 산과 뫼를 부르진 전 하여/ 돌아온 육신자(肉身者)의 영혼을 잠재운다.
(김광섭/ 젊은 시인의 죽음)
하늘나라/ 여기서 지금 가깝네/ 영생복락 지체하지 말고 받아라
(홍안의/ 오직 예수)
설 교 노 트
최초의 죽음, 최초의 영생
창5:1-24
서론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을 지으시고 생과 사에 대한 계명을 주셨는데 그 계명을 지킨 자는 영생한다는 증거를 보여 주셨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계명을 지키지 아니한 사람은 죽는다는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1. 사람은 같은 사람입니다.
본문 3절에 "아담이 130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최초의 아담과 지어지는 과정이 특이하게 다르게 지어진 것이 아니고 최초의 아담과 꼭 같이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다만 성적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뿐이 고 죄를 지었느냐 안지었느냐의 차이뿐입니다. 죄를 지으면 현실에서 삶의 목표가 달라지고 사후의 생과 사가 달라지고 상급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큰 역사를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엘리야처럼 큰 역사는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차별치 아니하시고 공평하게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2. 아담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죽었습니다.
본문 5절에 "그가 930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최초로 나타나는 동시에 말씀을 멸시한 자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경고하시기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 하셨지만 그 말씀을 기억하지도 아니하고 불순종하여 결국 죽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인정되는 과정입니다. 앞으로도 누구를 막론하고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말씀대로 벌을 받게 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여 영생하였습니다.
본문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와 동행하면 영생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준 것입니다. 아담과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망한 대표적인 인물이고 에녹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영생을 얻은 대표적인 인물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 변함이 없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차별하시지 아니하시고 말씀을 따라서 순종한 사람에게는 그 약속대로 영생을 주시고 불순종한 사람에게는 약속대로 사망에 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사람을 거울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여 말씀에 약속한 대로 영생을 상급으로 받는 복된 생활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전3:11-14
서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자연 만물을 다스리고 살도록 분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만물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악용하여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 고통이 오고 죽음이 그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사 죽음에서 건질 방도를 내셨습니다. 곧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인생이 스스로 벗을 수 없는 죄짐을, 죄 없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다 짊어지시고, 공의의 하나님 앞에 회생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속주가 되시고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자는 이미 죽음의 세력을 극복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약속받았습니다. 육신은 죄로 인해 죽음을 보겠지만 영혼은 죽음을 받지 않고 계속 살아서 풍성한 삶을 더하여 갑니다. 현세에서도 죽음의 공포에 떨지 않고 죽음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육신의 죽음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모든 죽었던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육신은 살아나서 살아 있는 우리의 영혼과 합하여 썩지 않고 완전한,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2. 믿는 자의 영생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 주를 믿고 섬기던 자들이 다시 살아나서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그때까지 세상에 살아 있던 자들도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지속될 변화된 신천지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바로 보는 소망입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신자는 세상과 싸워 이깁니다. 그 소망은 세상의 모든 핍박과 고통을 이기게 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슨 고통이라도 심지어 죽음까지라도 우리 신자에게서 영생의 소망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한 소망을 가진 우리는 그 소망의 농도가 짙을수록 확신에 찬 기쁨 가운데 인생을 개척하면서 승리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3. 영화로운 생명
신자에게 약속된 영화는 참으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합니다. 사망의 세력을 정복하므로 누리는 영화입니다. 재림 나팔 소리 나매 죽은 자들이 영생의 육체로 부활하며 아직 살아 있던 성도들도 변화하여 영원히 죽지 않는 육체가 될 것입니다. 가치없는 죽음의 재에 불과했던 육체가 영화로운 신적 존재로 변할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이 반드시 정복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을 정복하는 성도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부르짖습니다. 사망이 인생에게 쏘는 화살은 죄이고 죄가 인생을 얽어매는 틀은 율법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그 화살과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망을 이긴 애수를 믿는 자는 예수님의 몸의 지체가 됨으로써 쉽게 넉넉히 이깁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모시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풍성한 생명을 영원 무궁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함
요3:16
서론
요한복음 3장 16절은 신약 전체의 대표되는 요절로서 주일 학교 학생들도 다 암송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원 진리의 복음의 요약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주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사랑입니다. 구원의 원천은 하나님에게 있고, 그가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선수적 사랑에 있습니다. 인간편의 노력이나 결심에 있지 않고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일4:19)." 또 "우리가 그를 택한 것이 아니요 그가 먼저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요15:16)." 이와 같은 하나님의 제일 행동이 복음의 기초가 됩니다. 이것이 곧 계시 종교의 모습입니다.
2. 저를 믿는 자마다의 믿음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인간의 태도는 오직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대상은 오직독생자, 즉 예수 그리스도가 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요한이나 베드로나 바울은 신앙의 선생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대상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처럼 율법을 준수함이 나 선행에 힘씀이나, 고행주의 수양에도 없습니다. 또한 어떤 교파나 교회까지라도 믿음이란 구원의 길을 밝히고, 기르고 보호하는 데서만이 그 의의가 있습니다. 16세기에 유명한 개혁가들은 높이 부르짖기를 "오직 믿음(Sola fide)의 길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믿음을 집중시키고 살아야 합니다. 그밖의 다른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며, 영생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믿음의 대상자이심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3.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계시와 성도의 신앙이 회합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데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단지 수양이나 현세의 더 좋은 행복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조건은 다 신앙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원 목적은 영원한 형벌을 피해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 영생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세상의 금전이나 보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인 독생자를 믿는 데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 복음의 범위는 누구든지, 즉 모든 자에게 미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녀 노소, 빈부 귀천, 인종 등등 모든 인간의 장애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에게 신앙의 주가 되시고 믿음을 통하여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도다
눅18:22
서론
어느 날 어떤 젊은 관원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질문하기를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영생을 얻기를 구하였으니 매우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에게 대답하시기를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관원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는지 본문을 통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부족한 것이 없는 관원
본서에 나타난 "관원"이란 중앙에 있는 산헤드린의 회원이거나 지방 회당의 관원이었을 것입니다. 또 그의 나이는 30세가 지났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출세하여 지도자급에 속하는 나이는 30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22-23절에는 "그는 부자요 청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좋은 조건을 다 구비하였습니다. 나이도 30세 청년이요, 경제적으로도 부요한 재산가요, 사회적으로도 출세하여 관원이었습니다. 그는 과연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2. 영생을 구하여 나온 종교
그는 자신이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계명은 다 지켰다고 단언하였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등의 인륜에 관한 중요한 계명들인데 자칭 다 지키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사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적질을 하지 아니한 얌전한 도덕가입니다. 그러나 그는 영생문제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영생이란 아무래도 자기의 힘이나 재간으로 얻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수님께 찾아와서 영생의 도리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이 6세 때부터 율법공부를 하는 유대인의 정상적 과정을 충실히 지킨 것으로보입니다. 그러나 그의 율법준수는 문자적이요, 피상적이었지 산상보훈에서 보인 바 중심적인 것(마5:17-18)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영생을 구하였으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3.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부자 관원에게 남은 한 가지는 율법이 아니라 그의 재물이었습니다. 재물은 그에게 우상이었고, 영생을 얻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의 회의와 불안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명하시기를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고 하시며 예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큰 부자였으므로 그만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은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하시나니 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사랑하면 가능한 것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딤후6:11-12
서론
구약 시대에는 주로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린 사람들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모세(신33:1)
(2) 사무엘(삼상9:6)
(3) 엘리야(왕상17:18)
(4) 엘리사(왕하4:16)
이제 디모데는 하나님의 말씀 전파를 위임 맡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명칭으로 불리우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하나님께 속하였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에게 분부한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이것들을 파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이란 본문 전절인 9-10절에 언급한 모든 탐심 및 타락의 불행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피할 것이 있으니 곧 돈을 사랑하여 탐하는 죄를 범하기 쉬운 일입니다. 부를 추구하는 자에게 따르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열거한 것입니다.
명예욕, 허영심, 정욕 등과 거기에 따르는 정신적 유혹과 고민, 그리고 결과적으로 침륜에 빠지고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의 사람은 물질 생활에 있어서 착실하게 살고,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합니다. 또 부하게 되었을 경우에도 그 부를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탐심과 타락의 원인들까지도 다 피해야 하겠습니다.
2.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디모데에 대한 최후적인 당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최후로 얻어지는 선물은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이 귀한 승리를 얻으려면 "의와 강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1) 의와 경건은 하나님의 율법과 실제적 경건의 일반적 일치를 가리키는 가장 광범위한 관계를 말합니다.
의없는 경건이 있다면 그것은 미신일 것입니다. 그리고 경건없는 의가 있다면 그것은 형식입니다.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니 그것은 의의 근원입니다.
(2) 믿음과 사랑은 기독교의 기초적 원리들입니다.
믿음은 뿌리와 같고 사랑은 열매와 같으니 믿음의 뿌리가 없이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사랑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됩니다.
(3) 인내와 온유는 그리스도인이 핍박자들과 원수들을 상대할 원칙인 것입니다
온유의 덕은 인내없이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내를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곧 온유한 성품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입은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기 위하여서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선한 증거를 많이 증거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영 원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영원의 일반적인 면
(1) 하나님은 영원부터 계심
(시93:2) 주의 보자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2)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심
(시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음
(시25: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을 기억하옵소서
(4)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
(전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5) 하나님을 영원토록 찬송함
(대상16:36)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2. 하나님께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1) 영광이다.
(시104: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
(2) 언약이다.
(창9:16) 나 하나님과 무릇 땅의 혈기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삼하23:5) 하나님이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
(겔16:60)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3) 의이다.
(시119: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4) 하나님의 나라이다.
(시145:13)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5) 인자하심이다.
(시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로 미치리로다
(6) 경륜이다.
(엡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7) 능력이다.
(롬1:20)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8) 복음이다.
(계14:6)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9) 자비이다.
(사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3. 성도에게 영원한 것은 무엇인가?
(1) 구원이다.
(사45:15)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구원을 입어 영원한 구원을 얻으리니
(2) 기쁨이다.
(사51:11)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3) 영광이다.
(벧전5:10)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4) 찬양이다.
(시41: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5) 기업이다.
(창48:4)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6) 속죄이다.
(히9:12)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7) 위로이다.
(살후2:16)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관련원어풀이
1. jx'n< 네차흐
(1) 광채, 영광.
(대상29:11, 삼상15:29)
(2) 성실, 진지, 진리.
(잠21:28, 합1:4)
(3) 믿음, 신임, 확신.
(애3:18)
(4) 영원성, 영구성.
(욥34:36, 시49:20)
(5) 완전, 완성, 전혀, 온전히.
(욥23:7, 시74:3)
2. d[' 아드
(1) 시간의 영원성, 영구성.
(창49:26, 사45:17)
(2) 약탈품, 노략물.
(창49:27, 사33:22)
(3) ∼동안, 하는 한, ~까지.
(왕상18:45, 욥20:5)
3. !l;/[ 올-람
(1) 지나간 오랜 시간.
(신32:7, 암9:11)
(2) 미래 시간.
(출21:6, 시73:12)
(3) 영원성.
(창49:26, 시164:5)
4. !l'[; 알-람
먼 시간, 영원성.
(단3:33, 스4:15)
5. dymiT; 타-미-드
(1) 영구성, 영원성, 지속성,
(겔39:14)
(2) 계속적인 번제.
(민28:6, 10)
(3) 계속적으로.
(시l6:8, 34:2)
6. aijwvn 아이온
(1) 시대, 일생, 생면,영원,과거,오래 전, 영원.
(눅1:70, 행15:18)
(2) 영원, 영원성.
(요12:34, 히1:8)
(3) 시대.
(마12:32)
7. aijwvnio" 아이오니오스
(1) 시작과 끝이 없는, 항상 존재하는.
(롬16:26, 히9:14)
(2) 시작이 없는.
(롬16:25, 딛1:2)
(3) 끝이 없는, 그치지 않는, 영원한.
(눅16:9, 히5:9)
8. aji?dio" 아이디오스
영월한, 언제나 존재하는.
(롬1:20, 유1:6)
9. mevnw 메노-
(1) 남다, 머물다, 살다.
(마10:11, 눅1:56)
(2) 망하지 않다, 영존하다, 살아 남다.
(마11:23, 요12:34)
(3) 상태나 조건에 있는 그대로 남아 있다, 변하지 않다.
(요12:24, 히7:3)
(4) 기다리다.
(행20:5)
설교예화자료
장미꽃과 맨드라미
어느 집 꽃밭에 장미와 맨드라미가 나란히 피었습니다.
장미의 아름다움에 반한 맨드라미는 날만 새면 장미의 향기에 취해 멍하니 장미만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맨드라미가 장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너무나도 아름답군요. 당신의 그 붉은 꽃잎은 비록 연약하긴해도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요. 또한 당신의 숨결은 말할 수 없이 향기로워서 난 매일 그 향기에 취해 산답니다. "
그러나 장미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조용히 웃고만 있었습니다.
맨드라미는 그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당신에 비하면 나는 너무도 보잘것없지요. 당신을 볼 때마다 한없이 초라해지는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답니다. "
하고 맨드라미가 슬픈 얼굴을 하자 조용히 듣고만 있던 장미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장미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맨드라미 씨, 내가 당신보다 조금 예쁠지는 모르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어요. 난 며칠밖에살지 못하는 걸요. 하지만 당신은 한 번 꽃을 피우면 오래오래 그 모습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금방 시들고 마는 나는, 오히려 당신이 부럽기만 하답니다. "
가장 오래가는 향기
어느 아름다운 날, 한 천사가 하늘에서 산책 나와서 이 오래된 세상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연과 예술의 다양한 광경들을 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 되어서, 그는 금빛 날개를 가다듬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빛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 왔던 기념으로 무엇을 좀 가져갈까?"
"저 꽃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운가! 저것들을 꺾어서 골라 꽃다발을 만들어야겠다. " 시골집을 지나가며, 열린 문을 통해 어린이용 장미빛 작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가의 미소를 보고는 그는 말했습니다.
"저 아기의 미소는 이 꽃보다 아름답다. 저것도 가져 가야겠다. " 바로 그때, 소중한 아기에게 잘 자라고 키스하며, 그녀의 사랑을 영원한 샘물처럼 쏟아 붓는 한 헌신적인 어머니를, 그는 요람 저쪽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아! 저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내가 모든 세상에서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저것도 가져가야겠다!"
이 세 가지 보물과 함께 그는 진주빛 문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그의 기념품들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름다운 꽃들은(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이미 시들어 버렸고, 아기의 미소도 찡그림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단지 어머니의 사랑만이 그 본래의 아름다운 향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들은 장미와 사라진 미소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을 통과하는데, 그가 무엇을 가져왔는가 보기 위해서 모여든 하늘의 천사들이 그를 환영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지상에서 내가 발견한 것 중 하늘까지 오는데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보존한, 유일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
올바른 인생관
서울에서 공부하던 소년이 방학이 되어 집에 와보니, 아버지께서 땀을 흘리면서 밭을 갈고 계셨습니다. 소년은 아버지를 돕기 위해 소를 한 마리 끌고 밭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참 밭을 갈다보니 아버지께서 간 고랑은 똑바르나, 자기가 간 고랑은 꾸불꾸불했습니다. 아버지는 이것을 보시고
"처음 보습질을 할 때는 앞에 목표를 세워나가야 똑바로 갈 수 있는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소년은 즉시 둑에서 풀을 뜯고 있는 황소에게 목표를 세워 갈았습니다. 그러나 황소가 움직이기 때문에 역시 고랑이 꾸불거렸습니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다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목표를 세우라"고 타이르셨습니다. 소년은 앞의 포플라나무에 목표를 세웠을 때 비로소 고랑이 똑 바르게 갈아짐을 알았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의 인생관이 있습니다. 첫째는 목표없는 인생이고, 둘째는 목표를 두었으니 사라질 것에 둔 것이며, 셋째는 영원히 불변하시는 하나님께 목표를 두고 희망을 가지는 인생입니다. 이것만이 우리의 발자취를 똑바로 할 수 있는 옳은 인생관입니다.
어록·시·묘사
영원이란 죽은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진행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C.P. 길먼/ 선구자)
영원이라는 막은 결코 무시 간이거나 보편화한 시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어느 날 몇 시 몇 분인 그 시간에 수직선적인 관계를 맺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강원룡/ 바늘 없는 시계)
하나의‥‥ 하나의 꽃은 유한한 존재지만 꽃 전체로 보면 그것은 무한하다. 영원을 얻는 전일적(全一的)인 데로 나가는 것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루는 영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영원으로부터 새날은 밝아오고/ 영원을 향하여 밤은 돌아간다.
(T. 칼라일/ 오늘)
"여기 그리고 지금은 영원이다. " 즉 무시간이다. 그러나 영원은 흔히 오해되고 있는 것처럼 무한정으로 계속되는 시간은 아니다.
(E. 프름/ 소유냐 삶이냐)
영원이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이전 이후를 꿰뚫는 무한한 선이다.
(J.J. 머피/ 영원)
지금이 영원이다. 나는 그 한 복판에 있다. 그것은 햇빛이 비치는 내 주위에 있으며, 나는,빛이 가득한 공중의 나비처럼, 그 안에 있다. 올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것은 지금이다. 지금은 영원이며, 지금은 불사의 생명이다.
(R. 제프리즈/ 내 가슴의 이야기)
하루는 영원의 축소판이다.
(에머슨/ 일기)
영원성이 인간의 이성을 지배해서는 안 되고, 영구성은 가치가 되어서도 안 되며, 그렇지못하다면 인간은 절대로 존재를 향해서 나아갈 수가 없으리라.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지나는 불과 몇 해의 세월이 란 영원으로 뻗어 나아가는 신곡(神曲)의 첫 장면에 불과합니다. <「애덤 윌리스 와 그널의 장례식」에서>
(E. 마크함)
영원은 한 순간 속에 있다. 우주가 하나의 존재 속에 있는 것같이.
(R. 롤랑)
영원은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은 시간이나 신의 시간, 범할 수 없는 권능의 층계입니다.
(김남조/ 시간 속에)
시간에는 현재가 없다. 영원에는 미래가 없다. 영원에는 과거가 없다.
(테니슨/ "어떻게" 그리고 "왜")
지금부터 영원 가운데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또한 영원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이제부터이다. 그 지속의 각 순간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리라.
(A. 지드/ 일기)
나의 영원한 내일은 영원한 현재이다‥‥ 나는 언제까지라도 살아 있는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는 있는 것은 전적으로 죽음도 아니고 허무도 아닌 참생명인 것이다.
(모즈네/ 현대 휴머니스트의 고백)
변화의 영구한 상태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조건이다.
(J.R. 히메네스/ 작품선집)
당신은 미래입니다/ '영원'의 광야 위에 비치는 위대한 새벽빛입니다.
(릴케/ 당신은 미래입니다)
손과 손을 엮어 들고 얼굴 대하면/ 우리들의 팔 밑으로/ 흐르는 영원이여/ 오, 피곤한 눈길이여
(아쁠리네르/ 미라보 다리)
살아 있는 내가 썩지 않는 이 대리석들 틈에서 무슨 볼일이 있는가? 죽어 갈 나, 분해될 육체를 가진 내가 여 기 영원 속에 무슨 볼일이 있단 말인가?
(A. 생텍쥐줴리/ 인간의 대지)
영원에서부터 보면 모든 것이 다 비슷비슷하며, 한 바퀴 돌아서는 다시 온다.
(A.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나는 죽어 가는 사람이 알고 있듯이/ 영원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D. 뢰스케/ 죽어 가는 사람)
영원한 것을 얻으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것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것에 속한 일이다. 영원한 것은 인간 속에 있는 것이며 쉴 새 없이 사람을 둘러싸고 있다. 인간은 다만, 참된 삶과는 결코 조화될 수 없는 쓸데없고 허무한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에 영원한 것은 정복(淨福)의 모든 것을 갖고 사람에게 다가온다고 말할 수 있다.
(J.G. 피히테/ 淨福한 生에의 敎示)
인간은 비참한 예정을 짊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바라기만 한다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언제든지 평화와 안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하를, 이 정복은 외적인 힘이나 외적인 힘의 불가사의한 활동을 통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기의 손으로 스스로 이 정복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겪는 비참의 모든 원인은 다양한 것, 변천해 가는 것 가운데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에 있다. 행복한 생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조건은 내적인 사랑과 기쁨으로서 오직 하나인 영원한 것을 잡는다는 것이다.
(J. G. 피히테/ 淨福한 生에의 敎示)
인간은 시간 속에 생활해도 더욱 나아가 영원 속에 들어가 육체적인 수준을 버리고 정신적인 수준에 살도록 애쓰지 않으면 안된다.
(A.L. 헉슬리/ 구원의 철학)
가사 설악산만한 화강암석에 천년 만에 한 번씩 와서 사뿐 앉았다가 날아가는 작은 새의발자국으로 하여서 그 암석이 평지가 되기까지의 세월이 몸서리쳐질 만큼 길다 하자 그렇다 할지라도 그 길이가 역시 영원이 될 수 없음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김홍섭/ 무상을 넘어서)
영원이란, 변화를 다르게 부르는 발이다.
(G. 굴드/ 일부일처제)
너희의 오늘이 영원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B. 파스칼/ 팡세)
영원을 싣고 가는/ 초라한 배가 모습을 보일 때/ 모든 것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번복/ 여름날의 하늘조차도// 이 세상엔/죽음 빼놓고 딴 것은 없다.
(J.S. 오디베르티/ 샹송)
그는 내 게서 가장 처음으로/ 가장 저를 잊고 태어난,/ 내 영원의 까마득한 새 순(筍)일게다.
(김현승/ 어리석은 갈대)
아아, 단 한번의 오늘 속에/ 불을 쟁여/ 쏘는 너의 하루/ 영원의 내일일 아아, 너의 하루
(김현승/ 질주)
한 사람 있어 이상한 일을 하신다/ 걸어가시며 만지어 지는 것은 생기가 돌고/ 들풀과 하늘의 새는/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이른다/ 흔해빠진 소금과 낡아버린 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에 말해진 비유.
(버게스/ 한 사람 있어)
그렇게 늘 새로운 해안을 향해 밀려 가는/ 되돌아오지 못하고 영원한 밤 속으로 밀려가 는 우리는/ 단 하루라도 세월의 바다에/ 닻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라마르띠이느/ 호수)
작은 '때'의 움직임/ 비록 그것은 하찮아도/ 마침내 영원이라고 하는/ 크나큰 시대가 된다.
(카니/ 작은 것)
빛의 음성‥‥// 너는 울리어 나아간다/ 오늘 안엔 내일이 일고 내일은 또 미래를 향하여퍼지듯‥‥/ 네가 아뢰는 이 시간도 그리하여 영원에 닿을 것이다.
(김현승/ 종소리)
님은 나를 영원케 하셨으니 그것은 님의 기쁨입니다. 이 연약한 그릇을 님은 수없이 비우시곤 또 항시 신선한 생명으로 채우십니다.
(타고르/ 기탄잘리)
내 영혼은/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의 길이로라// 가다 가단/ 후미진 굴헝이 있어./소학교 때 내 여선생님의/ 키만큼 한 굴헝이 있어/ ‥‥내려가선 혼자 호것이 앉아/ 이마에 솟은 땀도 들이는// 물빛 라일락의/ 빛과 향의 길이로라/ 내 영원은.
(서정주/ 내 영원은)
색은 장미 가지 끝에/ 기척도 없이/ 앉아 있던 잠자리가/ 저 혼자 후르르 날아 오른다// 영원한 한숨의 포근한 햇살.
(김윤성/ 애가)
제 속마다 해와 달을 드리우고/ 멀리 뻗쳐 놓은 제 바다, 먼 통로인데도/ 나 없는 유전(遺傳) 가득히 흐른다/영원이 있은들 찰나에 맺침 없는 영원 속에/ 젊음도 늙음도 한 달음 쇠약/ 그것을 느낄 방심(放心)조차 없었다.
(김종문/ 먼 통로에 기대고)
영원-너에의/ 손짓은/ 하얀꽃 갈대꽃
(박두진/ 갈대)
서로 보며 불튀는 눈과 눈의 영원/포옹이 그 육신으로 영으로/ 푸득거릴,// 어떻게 너에게 닿을까/ 사랑이여.
(박두진/ 너의 융기)
영원을 무료히 내려 쬐는 한낮의 땡볕//한자락 바람도 숲에는 일지 않고
(박두진/ 야생대)
전능하신 주여, 내 소박하고/ 평범한 삶 중의 하루는/ 당신의 영원의 모래밭 가운데/ 조그만 티끌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테리 턱커 프랜시스/가치있는 삶을 위하여)
인생의 순간순간을 당신과 함께 거할/ 영원에의 기대로 채울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리차드 암스트롱/ 현재를 위한 기도)
영원한 메아리처럼 맑은 여운(餘韻)/ 어느 피안 끝에선가/ 종이 울고 있다.
(이해인/ 바다여 당신은)
우연이나 자연의 변화로 고움은 상하고/아름다운 모든 것도 가시고 말지만/ 그대 지닌 영원한 여름은 바래지 않고/ 그대 지닌 아름다움은 가시지 않는다.
(W. 셰익스피어/ 소네트 · 18)
너의 침묵의 모습 '영원'이 시키는 것처럼/ 우리를 '사고'의 저쪽으로 몰아낸다. 차가운 목가!
(키츠/ 그리스 옛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하나의 바다를 건전놓았다/ 그것은 하루종일 되돌아가고 싶어한다/ 아니면 누군가의 눈으로 돌아가/ 다시 눈물로 쏟아지고 싶은 하루/ 10년 20년 아니 100년/ 화면에 붙어서 꼼짝 못하는 영원은/ 오히려 슬픈 구속이다.
(이생진/ 영원한 물방울-김창열 전에서)
한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며// 끝없이 끝없는/ 생명의 말씀이고 싶다.
(김경수/ 우물가에서)
손 끝에 와 닿는/ 영원의 그리움인 양/ 깍 깍 깍/ 겨울 까치가/ 운다.
(박화목/ 까치소리)
하지만 아직은 땅을 딛고 서서/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쳐다봐야 한다던/ 그는 정말 한마리 하얀 학이 되었나보다. // 어느 날, 느닷없이 아무 예고 없이/ 영원 속으로 훨훨 날아가 버렸으니‥‥‥
(박화목/ 학이 된 그)
어느 날의 찬란한 빛발 속에서/ 다시 깨어나/ 영원을 호흡하는 기도이게 해 주십시오.
(최규철/ 아겔다마 頌)
나뭇잎에 달린/은빛 물방을 속으로/흐르는 시냇물 소리// 물결 따라/ 풀잎 위엔/ 무지개 뜬다// 그 우으로 흘러오는/ 영원이란 음악
(이해인/ 어느 수채화)
종소리 안으로/ 밝아오는 새벽이면/ 영원을 보는 마음// 해를 기다립니다.
(이해인/ 겨울나무)
해를 안은/ 마리아와/ 영원을 산다.
(이해인/ 마리아)
우리가 시방 헤어지는 것은/ 어느 날 훌훌히 병든 육체를 벗고/ 가없는 세월을 살 영원을 보듬고/ 지구를 떠나는 연습입니까.
(배명식/ 우리가 시방 헤어지는 것은)
가나안 혼인집의/ 빈 여섯 독,/ 술 떨어진 내 항아리에조차/ 당신은 찾아오신 다. / 일곱남편을 두었던/ 내 우물에조차/ 당신은 열원을 터트리신다.
(김남웅/ 은혜)
아아 영원과 영원이 맞서는 자리에/ 문 열리는 소리.// ‥‥새로운 몸짓으로 되살아 온/영원의 한 변두리에서/ 문들은 황홀히 꽃 피어올/ 내일을 기다리며/ 한번은 부르고 싶은/저마다의 위치에서/ 마지막 영가를 생각한다.
(김경수/ 문들의 영가)
영원한 세계는/ 광명이 있고/ 지옥엔 빛이 없느니/ 이제 영원한 광명을 가지면/ 지옥도 없느니라.
(황금찬/ 빛의 사람들)
꿈이 영원이 아니라는 것은 가슴 아파라.
(R. 에버하트/ 보프르의 성 앤)
아,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꽃들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 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 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 물에 젖은 라일락의 향기-/ 저 파도의 꽃떨기를 7월의 한때/ 누가 피게 하나.
(김현승/ 파도)
그러나 모르리라./ 흙 속에 별처럼 묻혀있기 너무도 아득하여/ 영원의 머리는 꼬리를 붙잡고/ 영원의 꼬리는 또 그 머리를 붙잡으며/ 돌면서돌면서 다시금 태어난다면
(김현승/ 고독의 순금)
나는 이 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네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 이 체온으로 나는 내게서 끝나는/ 나의 영원을 외로이 내 가슴에 품어 준다. // ‥‥나는 내게서 끝나는/ 아름다운 영원을/ 내 주름잡힌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도 없는 나의 손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나의 시와 함께.
(김현승/ 절대 고독)
무덤의 모양이 영원한 명상으로 돌아간 죽은 자들로 하여금 취하게 하는/ 그 모습으로 우리 둘이 잠에 빠질 때에도.
(위고/ 올랭피오의 슬픔)
보면 눈물이 흐를 것을 알면서 나는 여기 왔노니,/ 영원히 성스러운 장소여, 괴로움을 각오했는데도/ 오오, 더할 나위 없이 그립고 또한 은밀하게/ 회상을 자아내는 그리운 곳이여 !
(뮈세/ 회상)
몇 개의 틀어박힌 별들이/ 신비로운 빛으로/영원을 팔방으로 곧장 달리며/ 여기저기에 말뚝을 박는다.
(성찬경/ 궁)
영원이란 정녕/ 내 눈과 어긋나는 순간의 자취.
(고원/ 지각)
우리는 모두 영원을 연습하기 위해서/ 이 시간의 기간(期問)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R.P. 워렌/ 수염 달린 떡갈나무)
즐거움은 모두 영원을 바란다. / 깊고 깊은 영원을.
(F, W.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카인의 겨레여, 너의 형벌이/ 결단코 끝나는 날이 있으랴?
(C.P. 보들레르/ 아벨과 카인)
내게 날개편 어두움을/ 밝히소서, 낮은 것을 높이고 또 받들어 주소서./ 이는 내 시의 대주제의 높이에까지/ 영원한 섭리를 밝히고자 함이요, 또한/ 웃사람에게 하느님의 도리를 옳게 전하고자 함이라.
(밀턴/ 실락원-서시)
이 텅빈 머리통과 이 영원한 웃음을/ 누가 알지 못하고 누가 거부하지 않으랴!
(발레리/ 해변의 묘지)
네가 비록 형상화된 먼지요/ 5월의 산물이라고 하고/ 또다시 날아가는 먼지가 될지라도/영원한 이가 원하는 대로 되라!
(클롭스토크/ 봄의 축제)
나의 주이며, 그대의 주인/ 만능의 시간과/영원한 운명이/ 나를 사나이로 단련하지 않았던가?
(괴테/ 프로메테우스)
영원히 젊고도 영원히 푸른/ 그곳의 아름다운 언덕을 본다/ 죽지나 깃을 가졌다면/ 그 언덕에 갈 수 있으련만!// ‥‥그곳, 영원한 햇빛속은/ 살기에 얼마나 좋은 것인가.
(쉴러/ 동경)
울려 보내라, 이 세상에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 사람을 생각하여 가슴에 번지는 이 슬픔을.
(테니슨/ 인 메머리엄)
넘칠 듯한 강물가를 거닐었을 때/ 한 애인이 철로 아치 아래서/ 노래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사랑은 영원하여라.
(오든/ 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
그대의 눈동자/사랑과 사랑 사이에 움튼/나뭇가지에 하늘이 비치고/ 사랑의 넋의 영원한 신비를 속삭여 주고 있네.
(노마 히로시/ 그대의 눈물)
바람아 불어라/ 바다야 울려 퍼져라/ 그 눈동자/ 나의 가슴에/ 영원토록/ 불어 주어라.
(후지시마 우다이/ 석양의 소녀)
창생들아 모두 다 들어 보아라./ 세상에 사는 사람 모두 귀 기울여 듣거라./ 삶이란 수표로는 살 수 없는 것/ 삶의 값은 너무나도 비싼 것이거니/죽음은 보지 않고 영원히 살기 위해/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 영원한 삶을 돈으로 살 수 있는 자/ 아무도 없거늘/ 저들은 생각하길 자기들 목숨 끝없고/ 권세도 영원하리라 하느니/ 온갖 토지의 임자임을 주장하고/ 모든 재산 다 훔쳐/도시마다 저들의 이름 붙여놓고/ 광장마다 저들의 동상, 버티고 있었건만/ 지금 누가 있어 저들을 기억이나 하는가./ 저들의 동상 곤두박질쳐 쓰러진 지 오래고/ 저들의 공덕비 허물어 내려진 지 고래고/ 커다란 무덤이 저들의 궁전이거니/누군가 돈을 벌어 억만금을 자랑하고/ 가문의 이름 드높이며/막강한 권세 휘두른다 해도/애태울 것 없으리니/ 죽음을 다스릴 정부,/ 죽음을 다스릴 정당, 이 세상엔 없음이라./ 그가 살았을 때 신문들은 입을 모아/ "훌륭한 삶을 이루었으니 그 이름 세세에 빛나리라"./ 선언했지만/ 그도 역시 먼저 가신 조상과 만나/ 다시는 세상 빛을 못보게 되리로다. / 영예를 누리는 자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느니/ 권세를 누리는 자/ 주렁주렁 훈장 찬 배불뚝이 독재자/ 자기는 죽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미소지으니/ 잔치 때 쓰기 위해 한껏 살찌운 짐승의 신세/ 바로 자기의 신세인 줄 그는 깨닫지 못하노라.
(에르네스토 까르데날/ 침묵 속에 떠오는 소리)
우리 모두 숙명을 지녔기에/ 가슴에 내리는 눈발이/ 희디 흰 영원이기에
(박태진/ 희디 흰 조가)
하늘에서 지상으로/ 쏟아지는 한 줄기 영원을 보라.// 그대의 눈으로 영원이 들어와서/ 그대 또한 영원의 물기둥이 되려거든.
(박희진/ 폭포)
아침 저력/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영원한 무상과의 유희 속에 당신은 완전히 빠져 계셨고/ 파도와 별이 오자 파문은 헤어졌으며
(카슈니츠/ 해변에서)
아마존/ 물의 시라블들의 수도,/ 아버지인 족장, 너는/ 번식 속에 깃드는/ 저 영원
(네루다/ 아마존)
눈이 덮어 버린 모든 것!/ ‥‥생명은 비록 멈추지 않았으나/ 영원한 소음 속에 묻혀 버렸다. / 그것은 이상한, 형언키 어려운 침묵이었다.
(사이페르트/ 눈 속의 프라하)
아시아의 밤은 영원의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수태자(受胎者)이다.
(오상순/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그 영원의 역로에서 닥드려 만날 때에,/마치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될 때에,/ 지금 내가 너를 삽붓 밟고 있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삽붓 밟아 주려므나
(남궁 벽/ 풀)
신이 안나면 보는 척도 안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김광섭/ 시인)
바라보면 억만 년 푸른 산 둘레/ 영원한 침묵 속에 졸고/ 하늘은 천 년 고도를 조용히 덮고 있다.
(신석정/ 전주 풍물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유치환/ 깃발)
초원장제(草原長堤) 위의 긴 영원을 울던 뻐꾸기 소리들은/ 그렇다, 할 수 없이 그 고요의/ 바닷바닥에 가라앉는다.
(서정주/ 밤에 핀 난초꽃)
지나간 옛날은/ 영원히 사라진 가락이요/이제는 영원히 자취 감춘 희망이며/ 너무 감미로워 길이 계속될 수 없었던 사랑이라.
(셸리/ 지나간 옛날)
꽃마다 열매가 되려고 하고/ 아침은 저녁이 되려고 하니/ 변화하고 사라지는 것 말고는 달리/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헤세/ 낙엽)
영원 속에서 살아 남아/ 돌아온 허깨비의 우리들./ 훠어이훠어이 춤이나 추어보세.
(김규화/ 솔베이지 노래를 주제로 한 시)
설 교 노 트
영원을 사모하라
요일2:12-17
서론
인생을 잠간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약4:14)라고 하였습니다. 옛사람들도 인생을 가리켜 초로인생이요, 유수같은 인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세상은 다 지나가 버리고 영원히 남을 어떤 존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1. 영원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있는 많은 말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은 사랑이며 가장 흉한 말은 미움이라 할 수 있다면 가장 장은 말은 순간이요, 가장 긴 말은 영원입니다. 사람들은 다 영원을 바라고 영원을 추구합니다. 그러면 영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십니다.
요1:1에 창세 전부터 계셨다고 했으며 영원하신 말씀이라고도 했고 히13:8에,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 곧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사람들은 다 왔다 가게 되어 있습니다. 만물은 다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영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그는 곧 아니 계신 곳이 없다고 다윗은 시편 139편에서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날아갈지라도 거기 계시고 저 음부에 내가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도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는 내 모든 것을 아실 뿐 아니라 나를 기르시는 이요, 나의 소유주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갑니다. 허무하게 가버리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건강하다고 뽐낼 것도 아닙니다.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 믿을 것 못됩니다. 사람 믿다가 나도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은 영원합니다.
2. 하나님의 나라, 아버지의 집은 영원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압니다. 천하를 움직이던 바벨론 제국과 로마 제국 등 인간이 세운 훌륭한 나라들이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는 영원한 것 같고 좋은 것 같던 나라들도 다 지나가지만 하나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이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낙심하지 않으며 답답하지 않습니다.
3.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의 생활은?
(1) 소극적으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했습니다(15절).
여기에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치 말라 했는데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이것은 다 아버지께로부터 좇아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쫓아온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가치관, 그릇된 가치관에 끌려 자기를 팔아 버리고 있습니다. 기준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즐겁게 내가 만족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세상 것들은 사랑하지 말라 했습니다. 딤후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 데마는 데살로니가 사람으로 바울을 만난 복음을 전파했고 바울과 같이 성경을 기록하는 데 협력한 사람인데 나중에 이 사람이 세상에 빠져서 데살로니가로 돌아갔다고 바울이 탄식을 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에 살면서 빠지기가 쉽습니다.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 이것들이 우리 시대의 범죄 요소인데 이런 것들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2) 적극적으로 너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해라 했습니다(17절).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우리를 세상에 사람으로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으며 저와 여러분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이 뜻을 행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입니다. 세상에 빠지지 않는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말씀입니다. 요6:38에 "내가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들의 한 포기의 풀도 한 포기에 모든 뜻이 있거늘 천하보다 귀한 생명으로 우리를 보낸 이의 뜻이 없겠습니까? 우리는 그 뜻을 헤아려서 찾아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뜻을 행하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도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로부터 신령한 지식이 넘쳐서 아버지가 내게 요구하는 뜻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세상도 갑니다. 정욕도 갑니다. 인생도 갑니다. 나라도 갑니다. 그러나 영원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하여 준비해 놓은 영원한 나라, 저 좋은 낙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나라를 쳐다보면서 살아 나갑시다.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 혼
성 경 활 용
1. 영혼의 특징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다.
(렘38:16)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내가 너를 죽이지도 아니하겠고
(2)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겔18:4)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3) 죽지 않는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4) 육체가 죽으면 떠난다.
(창35:18)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2. 성경에 기록된 영혼의 종류
(1) 범죄한 영혼이다.
(겔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2) 탐하는 영혼이다.
(계18: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3) 음부에 가는 영혼이다.
(행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4) 굳세지 못한 영혼이다.
(벧후2:14)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5) 죽임을 당한 영혼이다.
(계6:9)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3. 영혼의 모습
(1) 괴로움을 당함
(욥7:1)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
(2) 떨림을 당함
(시6:3)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3) 경영함
(시13: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4) 낙망함
(시42:5)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5) 피곤을 느낌
(시107:5)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6) 주림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7) 범죄함
(합2:10)네가 여러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너로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8) 여호와의 등불임
(잠20:27)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9) 소생함
(시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영혼이 해야 할 일
(1) 주를 우러러보아야 한다.
(시25: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시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요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2) 여호와를 자랑해야 한다.
(시34:2)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주를 갈망해야 한다.
(시63:1)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4)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눅1:46)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5. 영혼을 구원하려면?
(1) 여호와의 율법으로 한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2) 금식함으로 한다.
(시69:10)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도리어 그것이 나의 욕이 되었으며
(3) 하나님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잠8:36)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4) 악을 떠나야 한다.
(잠16:17)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5) 의를 행해야 한다.
(겔18:27)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6) 인내로 해야 한다.
(눅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6. 하나님과 성도의 영혼과의 관계
(1) 하나님께서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심
(시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2) 하나님께서 영혼을 취하심
(욥27:8) 사곡한 자가 이익을 얻었으나 하나님이 그 영혼을 취하실 때에는 무슨 소망이 있으랴
(3)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피난시키심
(시57:1)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4) 하나님께서 기쁘게 하심
(시86:4)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5)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심
(시97:10)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6) 하나님께서 강하게 하심
(시138:3)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셨나이다
(7) 모든 영혼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겔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관련원어풀이
1. D/bK; 카-보-드
(1) 사람의 명예, 존귀, 영광,
(욥19:9, 사5:13)
(2) 존귀스럽게, 영예스럽게.
(시73:24)
(3) 위엄, 영광, 광휘.
(삼상2:8, 시42:7)
2. vp,n< 네페쉬
(1) 숨.
(욥41:13)
(2) 영혼, 생명.
(창35:18, 왕상17:21)
(3) 정신, 마음.
(창34:3, 미7:1)
(4) 의지나 의도.
(창23:8, 대상28:9)
(5) 이해와 사고의 기능.
(시139:14, 잠19:2)
3. hm;v;n] 네솨-마-
(1) 숨, 영.
(욥32:8, 33:4)
(2) 마음, 정신.
(잠20:27)
(3) 헐떡거림
(시18:16, 사30:33)
4. j"Wr 루-아흐
(1) 영, 숨, 호흡.
(욥7:7, 시33:6)
(2) 살아 있는 영, 생령.
(칭6:17, 욥17:1)
(3) 숨, 호흡.
(욥4 .9, 시18:16)
(4) 숨, 호흡, 생명의 원리.
(창45:27, 삿15:9)
(5) 영혼, 이성적인 마음.
(창41:8, 시34:19)
(6) 하나님의 영.
(출31:3,욜3:1)
5. hy:j; 하-야-
(1) 숨쉬다, 살다.
(창5:3, 11:11)
(2) 안전을 지속하다, 생존하다.
(창12:13)
(3) 다시 살다, 부활하다.
(왕상17:22, 겔37:5)
(4) 건강을 회복하다, 고침을 받다, 생기가 있다.
(창20:7, 삿15:19)
(5) 살게 하다, 생생하게 하다, 생명을 주다.
(창19:32, 욥33:4)
(6)소생하다, 생명을 회복하다.
(삼상2:6)
6. pneu'ma 프뉴마
(1) 공기의 움직임, 한줄기 바람.
(요3:8, 히1:7)
(2) 영, 생명의 본원.
(마27:50, 행7:59)
(3) 어떤 사람의 영혼을 다스리는 성질 또는 영향력, 어떤 능력이나 애정, 감정, 욕구 등의 유효한 근원.
(눅1:17, 엡4:4)
7. yuchv 프쉬케-
(1) 목숨, 생명력, 혼.
(눅12:20, 계6:9)
(2) 세상적인 생명 그 자체.
(마20:28, 행15:26)
(3) 영혼, 혼.
(눅12:19, 계18:14)
(4) 영혼, 혼.
(마16:26, 약1:21)
설교예화자료
씻지 않는다면
얼마 전에 집 앞에 차를 세워 두었는데, 그 차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마음씨 검은 어떤 신사분께서 잠시 빌려 타고 싶었던지,며칠 뒤 사람이 번잡한 시장길에 버려놓은 것을 다시 찾기는 찾았습니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보니까, 별로 망가진 것은 없었지만, 며칠을 방치해 놓아서 엉망으로 더러워져 을씨년스러운 것이 꼭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빈집과 같았습니다. 사람이 만약 이렇게 자기를 씻지 않고 방치해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언젠가 거리를 방황하는 걸인을 보고 씻는 다는게 정말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자랄대로 자라서 휘휘감겨 떡이 된 머리채, 연탄 속에 묻혀 있다가 나온 듯한 찌들은 땟자욱, 낮과 밤의 온도차를 적응하기 위해 한 벌이지만 더럽고 두터운 누더기옷, 불결한 손톱, 누런 치아, 짓물거리는 눈빛, 힘 없는 움직임 등등.
지금도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걸인들이 많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의 문제는 어떨까요? 일부러 그렇게 변장을 하려 해서가 아니라, 매일매일 씻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고야 만다는 것은 숙명적인 사실입니다. 매일매일 그리스도 피로써 씻지 않고도 능히 늘 깨끗한 모습을 지닐 수 있을까요?
죄의 길은 황홀하고 빛나 보입니다. 그렇다고 죄의 길을 가고 있는 영혼의 모습도 그렇게 빛나 보일까요? 죄에 사로잡힌 영혼이라면 분명 진창길을 걷는 앞의 걸인의 모습과 같을 것입니다. 사망권세 그늘 아래 검은 어둠이 보여주듯이, 그 길은 절망일 뿐, 소망을 향하여 나가는 빛의 길일 수 없습니다.
사랑의 사이클
철저한 유물론적인 과학자 한 사람이 일본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전국 모임에서 그가 연구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집을 나선 남편을 전송하고 나니 부인은 마음에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손수 운전하며 멀어져 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그후 부인은 집에 들어와 깜박하는 사이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에서는 불행히도 남편의 차가 앞차와 충돌하여 낭떠러지로 마구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부인은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장거리 긴급 전화였습니다. 역시나 꿈과 비슷한 사고였습니다. 남편이 중상이니 빨리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허겁지겁 달려갔습니다.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던 남편의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남편은 생명만은 겨우 건지게 되었습니다.
퇴원 얼마 후 아내는 당일의 불길한 예감과 꿈에 대한 모든 것을 남편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때 유명한 과학자인 남편도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학적인 두뇌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신비한 일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과학자는 인간에게 있어서 영혼을 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생각으로만은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사색에 잠겨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은 음악을 들으려고 라디오 앞에 앉아서 다이얼을 돌리며 사이클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에게 번득 깨달음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그는 무릎을 탁 치며 그의 아내를 불러 댔습니다.
"여보, 당신은 진정 나를 사랑하고 있구려, 이제야 나는 깨달았소."하며 차근차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사랑 사이클(Cycle)이라는 거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원하는 방송국 주파수에 다이얼을 맞추면어떤 방송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아내의 마음의 라디오는 항상 사이클 다이얼을 남편인 자기에게만 맞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내의 마음은 항상 남편의 주변을 맴돌고 있어서 잠시도 떠지나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신변에 일어나는 모든 것까지도 아내의 사랑의 사이클에 고스란히 잡힌 것입니다.
남편은 이 깨달음이 있은 후에 영혼을 인정하게 되었고, 영의 세계 속에서 교류하는 영매(靈媒)라는 것도 깨닫게 되어 신앙에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성령의 다이얼을 맞추고 살게 되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아아 나의 가슴속에는 두 개의 혼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서로 갈라지려고 하고 하나는 억센 애욕에 사로잡혀서 현세에 집착한다. 또 하나는 이 현세를 떠나 높이 영(靈)의 세계를 지향한다.
(J.W. 괴테/ 파우스트)
인간의 영혼은 항상 경작되는 밭과 같은 것이다. 이웃 나라에서 가져오고 보고, 그것을 고르고, 씨 뿌리는 데 시 기를 택하는 주의 깊은 원예가여야 함은 굴욕적인 것일까. 씨를 구하고 택하는 일이 그렇게 빨리 되는 것일까.
(J.W. 괴테/ 쿠네벨에게)
영혼은 인간들의 생명의 우두머리요, 지배자이다.
(살루스티우스/ 유구르타와의 전쟁)
지혜와 영혼의 관계는 건강과 육체의 관계 같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나는 세계에서 두 개의 보화를 갖고 있다. 나의 벗과 나의 영혼이다.
(R. 롤랑)
영혼이란 말하자면 감성적인 차내와 같아서, 더 나은 생애를 위하여 기도하기도 하고 흐느끼기도 한다.
(R. 르 갤리엔/ 영혼의 데카당)
아름다운 육체를 위해서는 쾌락이 있지만, 아름다운 영혼을 위해서는 고통이 있다.
(O.F.0.W. 와일드/ 옥중기)
영혼은 모든 길을 다 걷고, 영혼은 무한 잎새의 연꽃이 피듯이 제 자신을 피워 내는 것입니다.
(K. 지브란/ 예언자)
하느님 중의 하느님이 영혼을, 아름다움을 본떠 지으셨다.
(K. 지브란/ 영혼)
천사에게 체중이 없듯이 영혼에는 무게가 없는 것이다.
(C.V 게오르규/ 25시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영혼이 진정한 삶의 세계로 들어갈 때 인간의 육신은 고요히 곁으로 눕혀진다는 것이 하느님과 자연의 섭리이다. 인간은 죽지 않으면 완전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B. 프랭클린)
인간의 영혼은 하늘보다 넘고, 대양보다 깊으며, 혹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어두움이다.
(H. 코울리지/ 셰익스피어에게)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시키는 것은 삶이지 죽음은 아니다.
(P. 발레리/ 아포리즘)
영혼-그것은 지상의 온갖 것으로부터 인간을 떨어져 있게 하는 영원한 불꽃의 반짝임이다.
(J.F. 쿠퍼/ 바다에서, 물가에서)
영혼은 하느님의 성가대의 소리 없는 하프이다. 창조의 조화와 소리 맞추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입김에 직기만 하면 된다.
(H.D. 소로/ 일기)
바로 이것이 우리들 영혼의 참다운 모습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우리들 자신이 이런 것이다. 물고기처럼 깊은 바다에 살고 커다란 해초의 줄기 사이를 뚫고 몽롱한 속을 헤매며 빛을 지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서 어둡고 싸늘한 깊은 신비 속으로 들어간다. 이윽고 별안간 표면에 떠올라 와서 바람에 주름지는 물결을 타고 논다. 말하자면 영혼은 남의 소문을 이야기하는 동안에 손질을 하고 닦고 활기를 띠고자 하는 적극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V. 울프/ 델러웨이 부인)
초가 저절로 불붙는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베푸심이 없으면 영혼은 은총을 입지 못한다.
(J. 버니언)
영혼은 영혼을 모방하면 상실된다.
(에머슨/ 미정리 강연록)
자연적인 영혼은 항상 멜랑콜리로 둘러싸이고 괴로워하도록 되어 있다.
(G.W.F 헤겔)
어린 아이나 젊은이 또는 늙은이가 죽었을 때 상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한시라도 어느 사람이 태어나지 않거나 또는 죽지 않는 순간이란 없다. 우리는 출생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영혼을 믿는 사람- 힌두교도이건 회교도이건 또는 파르시도인이건 영혼을 믿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영혼이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은 모두가 동일체다.
(M. K. 간디)
날이 저물어가듯/ 나의 사랑도 저물어간다/사람의 영혼은/ 첫날부터 혼자이던 것/사랑도 혼자인 것
(김남조/ 저무는 날에)
육체보다 영혼을 고치는 편이 훨씬 필요하다. 왜냐하면 죽음은 나쁜 인생보다 좋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
영혼은 사멸함이 아니다. 항상 그들의 첫 주소를 버리고 새 주소를 찾아서 자기의 주거로 삼는다.
(P.N. 오비디우스)
영혼만이 우리들을 고상하게 한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인생 경쟁에 있어서 육체가 아직 입장을 지키고 있는데 영혼이 기절하는 것은 영혼의 치욕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영혼들은 불의 정력을 가지며 그들의 근원은 하늘에 있다.
(베르길리우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영혼을 팔아 그 수익금으로 마음 편히 산다.
(L.P. 스미드/ 추상)
아직 덜 익는 혼의 한 개 한 개가/ 심한 출혈로 하여 붉게 물들고/ 한 개는 존재를 흔드는 바람 때문에 떨어지고/ 한 개는 나를 사랑하는 처녀 때문에/ 또 한 개는 분명히 죽음 때문에 떨어진다.
(도강신/ 청춘)
재물의 부족은 채울 수 있지만, 영혼의 빈곤은 회복할 수 없다.
(몽테뉴/ 수상록)
위대한 진리는 인간의 영혼의 일부이고, 위대한 영혼은 영원의 일부이다.
(J.R. 로우얼/ 소네트집)
나는 육체에서 잘라 낸 영혼을 믿지 않는다. 나는 육체와 영혼과는 동일한 것이며, 육체의 생활이 이미 없어졌을 때에 양자는 함께 끝난다고 생각한다.
(A. 지드/ 비고)
영혼, 그것은 인간을 지상의 다른 모든 것과 구별한 영구불멸(永久不滅)의 불꽃이다.
(J.F. 쿠퍼/ 선상과 해변)
우리에게는 우리의 몸보다도 맘보다도 더욱 우리에게 각자의 그림자같이 가깝고 각자에게 있는 그림자같이 반듯한 각자의 영혼이 있습니다. 가장 높이 느낄 수도 있고 가장 높이 깨달을 수도 있는 힘, 또는 가장 강하게 진동이 맑게 울리어 오는, 반향(反響)과 공명(共鳴)을항상 잊어버리지 않는 악기, 이는 곧 모든 물건이 가장 가까이 비치어 들어옴을 받는 거울, 그것들이 모두 다 우리 각자의 영혼의 표상이라면 표상일 것입니다.
(김소월/ 시혼)
영혼이 뿌린 씨는 어떤 것이나 멸망하지 않는다.
(J.A. 시몬즈/ 소네트 ; 믿음)
나만 홀로입니다. / 인간 홍수 속에서 외로움에 떠는/ 영혼이옵니다.
(고진숙/ 엘리야여, 엘리야여)
기적이란 영혼을 스친 현상을 이름/ 보다 깊은 스스로의 품안에 와락 안길 때/ 육신은 덧없이 여리기만 한 것.
(성찬경/ 화형둔주곡)
영혼들은 무더기로 구원되지는 않는다.
(에머슨/ 처세론)
그리곤 가을의 영감으로 그런 여름은 온통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녹색 가지들이/두 눈 뒤 가없이 퍼져 있는 곳에 솟고/ 영혼은 따스한 생각의 호수에서 물감는다.
(R. 윌버/ 애가의 계절에)
책을 읽는 날 밤엔/ 눈이라도 나릴 듯 영혼의 하늘은 포근하고,/ 형광등의 불빛은 한결 눈에 부드럽다.
(김현승/ 책)
‥‥어둡다/ 내 영혼이 등불을 졌을까
(김남조/ 虛)
오늘 내 영혼을 당신에게 연다/ 마지막인 허락은/ 이래야만 함인 줄 알았기에
(김남조/ 오늘)
혼(魂)은 아주 황홀하게 육체로 화한 것에 취해 있다. /‥‥/우리들을 비춰 주는 육체 속에갇혀서 혼은 환희하고 있다.
(H.E. 홀투젠/ 시간과 죽음에 관한 여덟 개의 바리아숑)
미풍이 내 몸을 부드럽게 흔들어/ 가슴은 깨어나 작은 파도처럼 두근거리지만/ 내 영혼은 머나먼 꿈길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합니다.
(배경란/ 기쁜 소식)
달도 뜨지 않은 밤/ 별빛도 잠든 밤/ 내 죄악의 칠흑같이 어둡고/ 끈끈하고 비릿하고 더운 밤/ 내가 배설한/ 무서운 영혼의 오물을/ 추악한 육신의 찌끼를 말없이 한 몸에 이고 지고/ 어디론가 외로이 떠나가는 그대
(김성영/ 아사셀의 염소)
내 조직에 차 있는/ 짙은 어둠/ 내 혼의 통로를 막고 있다. // 내 혼의 아크로 폴리스 안으로/ 울려 퍼지는 뇌성.
(노영란/ 선한 재판관)
영혼, 그 경역(境域)의 이렇듯 충만함은 넘쳐/ 정신의 그릇 속으로 흘러 떨어져 들면/ 인간은 귀먹고 말 못하고 눈멀어/ 이지는 '존재'와 '당위', '인식자'와 '그 대상'을 /이제는 더 분간하지 않게 되어/ 말하자면 승천하는 것./ 용서받을 수 있음은 오직 사자(死者)일 뿐.
(W.B. 예이츠/ 육체와 영혼과의 대화)
주여, 가난한 시인의 주여!/ 나의 시를 무르익게 하소서./ 내 영혼과 고뇌를 다하여/ 날마다 밤마다 쓰는 나의 시를‥‥‥
(석용원/ 가난한 시인의 기도)
생명은 꽃처럼 지고/ 다시 피어/ 나날이 세월이 흐르는데
(김용호/ 진혼의 노래 내 영원히 잠잘 때)
오, 즐겁던 조그만 영혼이/ 내 육체의 벗이요 손님인 영혼이/ 살포시 떠나가는구나,/어디를 향해 어디로 가는 것이냐./ 메마르고, 끔찍하고, 사랑이 없는 땅/ 네가 가는 곳, 놀이도 장난도 없는 땅. <*이 로마의 황제는 영혼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전망했었다>
(하드리아누스)
아아, 나의 영혼이여, 불사의 삶을 구하지 말라. 그보다도 가능의 영역을 깊이 연구하라.
(핀다로스)
나는 내 영혼을 외로운 들 밖에 세워 두었습니다. 오만과 불신과 간특함이 여, 내 종일 길어 올리는 부끄럼이여, 주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향아/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사실은 영혼의 본성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 영혼은 육체와 함께 나오는가, 출생 때에 도입되는가?/ 죽음의 파괴 속에 우리들과 함께 소멸되는가? / 오루크스의 암흑과 그 처참한 심연을 찾아가는가?/ 또는 제신(諸神)들의 명령으로 다른 생명들의 신체에 잠입하는 것인가?
(루크레티우스)
신이 이 세상에서 창조한 가장 좋은 영혼이여,/ 너희 행복한 영혼이여, 빛나는 황금의 그 두 개의 말은/ 너희가 남겨야 할 모든 것이다.
(W. 워즈워드/ 맛슈)
땅끝까지 순지(純紙)를 펴는/ 이 눈벌에서/시린 무릎으로 아무리 기다린들/ 영혼의 장지문을 닫아 두면/ 동녘 하늘 큰 별은/ 아니 보일 것을.
(김남조/ 신이 사람으로 오시는)
영혼이 주름을 필/ 아득한 내 영토다.
(정기환/ 기도)
내 영혼은/ 지치고 시달린 시가지에서/ 빛나는 아침 해를 안아 보고 싶었네.
(박봉우/ 악의 봄)
주검은 태어나듯이 바야흐로/ 식은땀이 차거운 영혼을 받쳐 입었네.
(고은/ 신성노동절)
주께서 내 쇠사슬을 풀 때까지/ 나는 아무 일도 행할 수 없으며/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릴뿐입니다. / 영혼하신 사랑으로 나를 사로잡으소서./ 그러면 내 영혼은 세상을 인도하리다.
(마데슨/ 나를 사로잡으소서)
나루터에서/ 호롱을 켠 조각배를 타고/ 외론 영혼이 저어 나간다
(구상/ 강)
나는 성당 입구에서 내 영혼을 부으리니,/ 주여 나는 당신의 이름에만 희망을 두나이다.
(라마르틴/ 사울의 노래)
당신의 영혼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내 영혼을 지녀야 합니까? 어떻게/ 당신을 넘어 다른 것에로 그것을 돌릴 수 있겠습니까?/ 그 어느 암흑의 잃음 곁에서/ 당신의 마음이 떨고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낯설고 고요한 장소에/ 나의 영혼을 내려뜨리고 싶습니다. / 하나 그대와 내가 건드리는 온갖 것은/ 두 줄을 현(絃)에다 한 음을 자아내는/ 바이올린의 활처럼 우리를 한데 사로잡습니다. / 어느 악기 위에 우리는 매여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어느 연주가가 우리를 손에 쥐고 있는 것입니까?/ 감미로운 노래여.
(R. M. 릴케)
주여 내게 당신의 길을 열어 주소서/ 이 피곤에 지친 영혼을 당신의 길 위에 비추어주십시오/ 나의 기쁨조차도 얼음으로 뒤덮인/ 풀잎과 같이 슬프기만 합니다.
(마테를링크/ 기도)
전등을 끄고 내 육신의 시각이 어둠에 싸여 있어도/ 내 영혼은 평강의 잔물결 속에 노니는/ 아름다운 금붕어!/ 탁상 시계 소리는 내 영의 고요한 율동에/ 박수를 보내는 아름다운 음률
(노영란/ 평강의 물결 속에)
칼집은 닳아 없어져도/ 칼은 빛나며// 육체는 썩어 없어져도/ 영혼은 길이 살아 남나니
(G. G. 바이런)
영혼은 검은 눈의 영혼은 암흑 바로 그곳에 닿고 무한하게 되어 아무것도 만나지 않는다.
(P. 발레리/ 나르시스 단장)
그러나 가장 추악한 것은 나의 시, 내 영혼이 검고, 유실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W.H. 데이비스/ 나는 시인 데이비스)
하늘에 계신 뮤즈여 노래하라/ 그대 호렙 산 또는 시내 산 은밀한 정상에서/ 저 목자의 영혼을 일깨워/ 처음으로 택한 백성에게 태초에 하늘과 땅이/ 혼돈으로부터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나이까.
(밀턴/ 실락원-서시)
밤을 멸하려 밤에 태어난/ 이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을 믿게 되리/ 영혼이 빛의 둘레에서 잠자는 때에.// 하나님은 나타나신다. 밤을 사는/ 가난한 영혼에는 빛으로/낯을 사는 영혼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블레이크/ 무구의 노래)
내 영혼의 가지 위에 날아와 우짖는/ 한마리 까마귀
(깅종해/ 겨울 근황)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가을의 기도)
그대는 지금도/ 물빛이다/ 물빛으로 어디에/ 어리어 있고/ 내가 그 물 밑을 들여다보면/헌 영혼 하나가/ 가고 있다/ 그대의 무릎이 물에 잠긴/ 옆으로, 구겨진 수면 위에 나뭇잎 같이.
(김영태/ 호수 근처)
시름에/ 쫓기다가/ 도망쳐 온 숲속에/ 오솔길 다시 찾는/ 허기들린 영혼이여/ 가슴엔 시린 소원 구비치듯 엉기는데/ 언제나 천언만어/ 메아리쳐 울리나
(홍안의/ 산 중에서 드리는 기도)
주여, 존귀하신 당신의 마음속에/ 항상 우리를 기억하여 주소서/ 영혼을 지켜 주시는 우리 주여/ 우리 곁에 임재하여 주옵소서.
(작자 미상/ 밤의 노래)
이 마음 물결에 고요치 못할 때/ 믿부신 그의 음성 내 곁으로 날아와/ 내 영혼의 귓가를 흔들어 줍니다/ '너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느냐'고// 내가 자리에 피곤히 기대었을 때/ 소리없이 그의 손은 내 가슴에 찾아와/ 고달픈 내 혼에 속삭입니다/ '너는 왜 잠이 들지 못하느냐'고
(모윤숙/ 조선의 딸)
이즈러지는 우리 사람의 가을이 와)우리의 슬픈 영혼 지치고 피곤하네/ 헤어지세, 정열의 계절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숙여진 이마 위에 키스와 눈물을 남기고.
(예이츠/ 낙엽)
사랑하라, 네가 어둠에서 나오라. 사랑하라, 이것이 내 영원한 불변의 생각이니 의지할 데없는 가련한 영혼이여/‥‥// ‥‥내게 손을 내미소서, 이 웅크린 육체와/ 이 병든 영혼을 끌어 올려 주소서/ 하지만 어느 날엔가 거룩한 포옹을 받는 것은
(베를렌/ 예지)
내 영혼은/ 쫓기는/ 골짜기의 들 사슴/ 사냥꾼의 쏘는 화살/ 피할 길도 없는데/ 숨 돌릴/안전한 곳// 나 어디서 찾을까/ 목마른/ 나의 심장/ 터질 것만 같다네// 나 이제/ 두렵지 않고/ 나 또한 고단치 않아/주 나를 붙드시니/새 힘이/ 솟구친다// 내 영혼은/ 떠도는/ 하늘가의 비둘기/ 몰려오는 폭풍 구름/ 막아낼길 없는데/ 깃들일 고요한 숲/ 나 어디서 만날까/ 외로운/ 나의 노래/ 산울림만 더하네
(홍안의/ 내 영혼의 순례)
봄철되어/ 물오른 가지처럼 연하게/ 싱그러운 영혼의 봄/ 맞이하게 하소서// 여름되어/잎푸른 나무처럼 성하게/ 활기에 찬 영혼의 힘/ 다시 찾게 하소서// 가을되어 눈부신 열매처럼 알차게/ 향기로운 영혼의 꿈/ 이뤄지게 하소서// 겨울되어/굳건한 뿌리처럼 강하게/변함없는 영혼의 길/ 내어 딛게 하소서
(홍안의/ 영혼의 길)
영혼과 육체가 있는 한 아픔과 슬픔이 다할 리가 없다/ 영혼은 하늘로 육체는 흙으로 가게 하라/ 무슨 영혼 무슨 육체가 내게 필요하단 말인가.//오오 영혼이여 조심하여라 저 달은슬그머니 검을 뽑았단다/ 너를 죽이고 나를 비탄에 잠기게 하려고 저 사람은 결심했단다.// 오오 영혼은 하늘로 오르더라도 나의 육체는 사랑의 길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페즐리/ 벗이여 나에게 슬픔은 없다)
축하한다/ 눈보다 회고/ 많고 작게 살다간/ 너의 영혼을
(정호승/ 마지막 편지)
지은 죄 많아 영혼 없어도/ 이제는 죽음도 아프지 않아
(정호승/ 김종삼)
그건 사랑의 여인 이슈타가 던진 씨, 사랑하는 이의 눈이 사랑의 들에 뿌린 씨, 애정으로 키워지고 영혼이 거두어들인다.
(K. 지브란/ 첫 눈 마주침에 대하여)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혈의 전쟁에서/무너져내린 가슴을 안고/ 신발에는 자부심 가득한 채‥‥/ 영혼의 진정한 대 학살에서/ "사랑받고 또 홀로 버림받는 것은/ 어떤 회생이 따르는가? "/ 우리가 물었을 때.// ‥‥무더운 해변으로/ 우리는 돌아왔다/ 번쩍이는 번갯불/ 천둥치는 빗줄기 속에/ 흑사병, 가뭄/ 멍청한 영혼이/ 고문당한 살점의/ 찌꺼기를 부등켜안고/모랫길 위에 서성대는 곳으로,/ 아무런 은혜도 바라지 않고/ 오직 고귀함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그 영혼.
(렌리 피터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비처럼 추근추근한/막 죽은 자들의 영혼은 그들의 비애를 폭발시킨다. / 사이렌, 주먹, 구듯발 위에-/ 나의 소리는 다시 시작한다.
(데니스 브루터스/ 소리는 다시 시작한다)
밤에 비치는 그 활자들은/ 나의 꿈을 밝게 비칩니다/ 육욕을 죽이고 영혼을/ 그의 맑은 뼈 속에 넣어 줍니다. // ‥‥땅 위에는/ 하늘의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사라집니다/ 욕망의문을 통해/ 영혼에 도달됩니다
(에우헤니오 플로릿/ 밤)
밤에 우는 새들은/ 첫 별들을 쪼아먹는다. /그대를 사랑할 때 나의 영혼처럼 반짝이는/첫 별들을 쪼아먹는다.
(파블로 네루다/ 오후의 품에 몸을 기댄 채)
당신의 영혼 속에서 잠들던/새들이 날아갈 때면 나는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파블로 네루다/ 나의 마음을 위해서라면)
오늘밤 홀로 나는 길을 가고 있다. / 영혼은 네 죽음이 몰고 온/ 무한히 애끓는 슬픔을 몸에 뿌리며‥‥// ‥‥나의 그림자와 같이 어울려 간다. / 오, 한데 엉킨 그림자들이여!/오,
영혼의 그림자와 한데 엉킨 육체의 그림자들이여!/ 오, 슬픔과 눈물이 흐느끼는 밤에/ 서로애닯게 찾는 그림자들이여!
(호세 아소시온 실바/ 야상곡 제3장)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회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빛 꽃잎이 되어/우리네 가슴속에 또 하나의/목련을 피우는 것을
(박용주/ 목련이 진들)
함부로 던저져 허무는 육신과/ 무너져 내리는 어둠의 영혼으로
(김성영/ 미리암의 노래)
그날, 당신의 성막 위에 임하신/ 전능 여호와 엄위시여/ 지금 오셔 다시금 내게 거하시매/ 영혼은 깊은 잠 미몽에서 깨나이다.
(김성영/ 구름 기둥)
불꽃으로 타오르는 뜨거운 가슴을 눌러두고/ 천지간을 휑하니 맴돌다/ 이 밤 내게 와 머무는 저 바람은/ 누구의 슬픈 혼입니까
(박용주/ 바람)
혼신을 다하여도/ 스러질 듯 희미한 빛이라면/ 내 눈물로 네 얼굴을 닦아주랴/ 내 아픔으로 네 영혼에 불을 놓으랴
(박용주/ 동생에게)
그래도 그 빛나는 균열은/ 비밀의 얼개를 지닌/ 내가 지닌 영혼을 생각케 한다.
(발레리/ 석유)
노고에 억눌려 영혼이 잠으로 기울 때면/ 잠기는 두 눈을 쳐들어 당신을 바라보며/ 기도하렵니다.
(스토우/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영혼 속에 머무르면서/ 가사없는 노래를 부르면서/ 결코멈추는 일이란 없다.
(디킨슨/ 희망은 날개를 가지고 있는 것)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구르몽/ 낙엽)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이면/ 당신의 영혼은/또 어디서 비를 맞고 있는가
(도종환/ 쑥국새)
춥고 어두운 땅 밑에 누워/ 하얗게 사위어가는 당신이/ 지금은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당신이// 살아있는 이들보다/ 더 깊고 맑은/ 영혼의 말을 건네 주십니다.
(이해인/ 가신 이에게)
내 영혼 깊은 상처로 박혀 있는/ 당신을 기억하며 살다/ 나 또한 그 상처와 함께 세상을 뜨고 나면/ 이 세상엔 우리들의 사랑도 흔적없이 지워져/ 다시 눈 내리고 바람만이 불겠지
(도종환/ 봄이 오는데)
아프도록 순수한 영혼 속의 대화를 침묵속에 빛나는 기도의 영원함을/ 날마다 조심스레 일깨우는 당신이여
(이해인/ 나의 별이신 당신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영혼 안에서 찾고/ 그 티없는 마음으로/ 당신 앞에 서리라.
(황금찬/ 당신의 형상)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그대를 향하여 치솟으며/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그대 옷자락을 만지기 위해/ 제 영혼이 부서져야 합니까.
(유선곤/ 분수)
철 따라 사랑을 익혀/ 목아지 가득/ 사랑이 차 오르면/ 영혼의 고향으로/ 철썩거리며 떠나가는 방랑자// ‥‥철어썩 철썩 날개 짓하며/영혼의 고향을 사모하는 그대는/ 철따라 가는 철새니라.
(유선곤/ 편지)
듣고 싶다/ 시들고 메달라 버린 영의/ 갈증을 축여주는 단비 내리는 소리를!
(정일홍/ 간구)
빛이 없어서/ 세상이 어두운 것이 아니고/눈을 뜨지 않고 있기에/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인다/ 내 영혼이 눈을 감고 있는 동안// 나는 어두움의 소유가 되었다.
(황금찬/ 빛을 본다)
영혼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나니/ 그 영혼을 위하여 인색함이 없으리라.//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하여/ 얼마의 밤을 길게 보냈으며/몇 날의 변화를 손꼽았느냐./ 오직 눈떠가는 영혼의 성장과/ 불멸하는 양식을 위하여/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렸느니라.// 세상의 파도는 주검을 몰아/ 지금 우리들의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연약한 영혼은 잠이 들고/ 악한 파도는 뱃전을 넘어든다. // 나의 구세주는 잠든 영혼들을 눈물어려/ 차마 못보시고/ 바다와 바람을 꾸짖어/ 잠잠하라.// 눈을 뜨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구세주를 보아야 한다. / 영혼의 눈을 뜨고/사랑하며 미워하지 않고/ ‥‥주여! 이 해에는이웃을 사랑하게 하시고/ 형제를 사랑하게 하시고/ 돌 한 개와 풀 한 포기를 위하여/영혼이 눈을 뜨게 하시고/ 그 영혼을 위하여살게 하소서.
(황금찬/ 영혼은 잠들지 않고)
낡은 장막은/ 찢어진 지연처럼 날려보내고/ 이제 구원의 꽃무늬 아로새긴/ 새장막을 펴/영혼의 집을 지으리.
(황금찬/ 새 하늘을 바라보며)
그 노래는 내 마음/ 천 길 밑에 잠들고/ 이제 순이 자라 꽃이 피면/ 내 영혼 꽃잎 위에/ 이슬이 되리라.// ‥‥당신이 부르는 노래는/ 내 영혼의 샘이 되어/ 영원히 흐르고/ 그 샘물에 눈 같은 나비가 날고 있으리.
(황금찬/ 슬픈 노래-마리안 앤더슨)
당신의 일은 모두가 옳습니다만/ 우선 눈에 보이는/ 인간적인 쓸쓸함으로 외로워하는/ 아직 어린 영혼을 위해/ 나는 쓰여지고 싶어요. / 어쩌면, 나는 우표처럼 살고 싶어요.
(서정윤/ 기도의 편지)
뜬구름이라고 할까/ 아침 안개라고 할까/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도'/ 영혼은 그대로 남을까.
(황금찬/ 미지)
잠든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고/ 사랑의 잎새로 항상 우리를 푸르게 하는/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
(권용태/ 우리가 당신 안에서 있듯이)
내 영혼의 그릇은 바위며/가득 담기는 은혜로 차고 넘쳤다.
(인태성/ 잊히지 않는 일들)
우리 영혼의 양식을 위하여/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심게 하소서
(허영자/ 가을의 묵도)
미친 불에 타오르는 불쌍한 영은 절망의 북극에서 신세계를 탐험합니다.
(한용운/?)
사랑하는 주님, 새 생명들이/ 제 주위를 감싸고 있습니다. / 어린 짐승들, 부드러운 꽃봉오리들,/ 여린 새 잎들의 바스락거리는 노랫소리,/ 달콤한 공기의 부드러운 숨소리,/저는 당신께 부푸는 제 영혼으로 엮은/ 꽃다발을 바치고 싶습니다. / 제가 그래도 좋을까요?/ 오, 과연 제가 그래도 좋을까요!
(작자 미상/ 5월의 기도)
내 육신과 영혼의 가장 가볍디 가벼운/그런 것들/가령 유년의 꿈이나 거짓없는 황홀 등/어느 날/ 그것대로 어울리는 날개를 얻어/ 저 무한 공간으로 비상해 가는/ 불멸의 새가 되게 하소서.
(윤강원/ 하나의 기도)
캄캄한 어느 날의 여정에/ 당신의 말씀 무늬 놓아/ 작은 산새처럼 고단한 영혼/ 가볍게 하소서./ 영원의 물빛으로 반짝이게 하소서.
(김필곤/ 가을의 기원)
종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울어 보게.// 지금 눈 떠오는/영혼 앞에/종이 되어/종이 되어.
(황금찬/ 종소리)
어젯밤/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정녕 내 영혼을 깨끗하게 씻으셨고/ 그의 사랑으로 나를 감으셨습니다. // 오늘 근심거리가 생겼으나/ 그것은/ 내 영혼 속으로/ 파고들 수 없었습니다. / 그 사랑의 방패를 뜰지 못했기에.
(알리스 벤함/ 사랑의 방패)
지는 해처럼 내 생명이 시들어질 때/ 내 영혼이 부끄러움 없이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톰 화이트 클라우드/ 힘을 바라는 기도)
나의 손가락 열 개/ 그 손가락 끝에 어린 영혼과/ 이 마음속에 담긴 핏방울/ 온몸의 것을 한데 모두어/ 아, 당신의 사랑 속에/ 하나가 되고자/ 이 아침해와 마주섰네.
(최원규/ 기도)
영혼의 깊은 안자락을 흔들며, 소리나게 흔들며/ 달려오는 당신의 웃음, 그 뜨거운 화음의 우리 안에/우리는/늘 젊어 있습니다.
(한분순/ 기원)
하늘은 펼쳐지고/ 지상은 고요하다. / 나의 영혼 속은/ 고요, 고요하다. / 나를 태우는 불만이 뜨겁다.
(라게르크 비스트/ 마음의 노래)
영혼으로/ 움직이는 손/ 말보다 완전하게/그는 듣는다.
(신달자/ 기도)
초 저녁 긴 그림자가 내 옷깃 붙들고/ 밀려오는 어둠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해도/ 내 영혼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성신의 밝은 빛이 있다.
(정일홍/ 여기 이 자리에 머물고 싶다)
잠들기에는 너무도 밝아 그때 그 영혼의 정화
(허영자/ 부활절 새벽)
오너라/ 또 오너라/ 날 뛰는 파도/ 부딪혀 깨어져/ 살갗 많아져도/ 물빛 같은/ 노래 같은/형혼 남으리.
(허영자/ 고통에게)
언젠가는 모두가 쓸쓸히 부서져 갈/ 한 잎 의로운 혼임을/ 바다여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이해인/ 바다여 당신은)
영혼의 책갈피에/소중히 끼운 잎새/ 하나 하나 연륜 헤며/ 슬픔의 눈부심을 긍정하는 오후
(이해인/ 십일 월에)
내 작은 몸이/ 무거워/ 울고 싶을 때// 그 넓은 꽃밭에 앉아/ 영혼의 호흡소리/ 음악을 듣네
(이해인/ 별을 보면)
세월이 가도/ 젊음만 떠올리는/ 영혼의 샘 가에서// 순결한 눈짓 마주하여/ 피리 불다가// 우리는 조용히/ 하나가 된다.
(이해인/ 벗에게)
내 영혼의 눈을 크게 떠서 모든 일에 선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필립스 브룩스/ 새 날을 위한 기도)
겨울이 영혼을 내면에서부터/ 잔혹하게 지배하는 이때/주님, 우리에게 믿음을 알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작자 미상/ 2월의 기도)
칼을 쓰면/ 칼집이 헤어지고/ 영혼이 괴로우면/ 가슴이 허하니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위로는 천당의 천사들도/ 밑으로는 바다 밑의 악마들도/ 내 영혼을 때어 놓을 수 없었습니다. / 아름다운 애너벨리의 영혼으로부터 -
(포우/ 애너벨리)
달콤한 부루스여/흑인의 영혼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오, 부루스여
(휴즈/ 피곤의 부루스)
때때로 높은 하늘을 쳐다보며/ 귀한 영혼의 간 데를 찾습니다/ 진세(臺世)의 흙탕물에 물들지 않은 영혼의‥‥‥
(단테/ 우십시오 애인이여)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신동엽/ 산에 언덕에)
아침해 단잠을 깨우듯/ 눈부셔 못 견딘/ 사랑 하나/ 입술없는 영혼 안에/ 집을 지어/ 대문 중문 다 지나는/ 맨됫방 병풍 너메/ 숨어 사네.
(김남조/ 사랑의 말)
그저/ 온마음 더워 오고/ 내 영혼 눈물 지우느니/ 이슬에 씻기우는/ 온누리
(김남조/ 송)
날이 저물어가듯/ 나의 사랑도 저물어간다/사람의 영혼은/ 첫날부터 혼자이던 것/사랑도혼자인 것
(김남조/ 저무는 날에)
어쩔라나/ 어쩔라나// 오늘은 영혼 안의 그 바다에도/ 하늘 복숭아/ 가지만 휘어지고
(김남조/ 바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성한 날 병든 날에/꿈에도 생시에도/ 영혼의 철사줄 윙윙 울리는/그대 생각
(김남조/ 상사)
사람과/ 꽃이/ 영혼의 길을 트고 살았을 적엔/ 미소와 도취만의/ 큰 배 같던걸
(김남조/ 물망초)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김남조/ 겨울바다)
소나기같이 은/ 현기증에/ 이마를 짚고 서면/ 새야/ 새야/ 내 영혼 그 안에서/ 사막을 가는구나.
(김남조/ 하일)
아아 내 눈이 본/ 가장 놀라운 빛으로/ 몸이 빛나고/ 영혼이 빛나는 너를/ 죽도록의 내가보고 싶은 마음도/ 출세상에 심어/ 뿌리깊은 연분의 나무 될/ 기도에 바치고 나면
(김남조/ 아가 1)
어이없이 울게 될/내 영혼 씻어내는 음악/ 들려주려나.
(김남조/ 겨울나무)
다만 고요하여라/ 천둥소리도 하나없이/ 마음이 문을 열고/ 영혼과 영혼 사이 왕래의 길을 트느니
(김남조/ 화답)
마음에 대답하는 마음/영혼에 산울림하는 영혼/ 이를 생각만 해도 나는 운다
(김남조/ 사랑초서 · 11)
난로에 기름을 더 준다. / 소리 지르며 불타는/ 순수/ 마치도 충실을 아는 두 영혼이 만나/ 서로 한없이 껴안는 광경이다.
(김남조/ 머리를 빗으며)
불이 보고 싶어라/네 영혼이/눈물이 보고 싶어라/ 네 영혼이
(김남조/ 서설)
화평한 영혼은/ 신이 켜 주시는 성총의 등불/ 그 불빛 당신께 있으라/ 빌어 주마
(김남조/ 고별 · 1)
사랑한 이야기야/내 영혼 피 흐를까 못내 말하고/ 죽을 때나 눈매 곱게/ 그려 볼 모습임을
(김남조/ 사랑한 이야기)
길섶에 핀 민들레/ 떠돌다 떠돌다/ 꽃씨의 영혼, 물새의 날개에 싣는다. // ‥‥이제 아픈 내 목숨/ 달빛에 헹구고/ 내 지극한 눈빛도/ 책갈피에 곱게 간직하며/ 기맥힌 사랑 하나/ 당신의 영혼에 심겠네.
(정희수/ 하루를 보내며)
보이지 않는 고운 영혼이/ 네게도 있고 내게도 있었느니라/ 보이지 않게 곱고 괴로운 영혼/ 곱고 괴롭고 그리워하는 영혼이/ 네게 있고/ 내게도 있었느니라// 그것은 인기척 없는 외딴 산마루에/ 풀잎을 비비적거리며 드러누운/ 나무의 그림자 모양/ 쓸쓸한 영혼/쓸쓸하고 서로 닮은/ 영혼이었느니라// ‥‥영혼이 살고 있는 영혼들의 마을에선/ 살결이 부딪는 알뜰한 인인/ 우리는 눈물겹게 함께 있어 왔느니라// 짐짓 보이지 않는 영혼의/곱고 괴롭고 그리워하는 손짓으로/ 철따라 부르는 소리였느니라/ 철따라 대답하는/ 마음이었느니라.
(김남조/ 隣人)
당신은/ 내 영혼에 열린/ 최초의 창문 내 눈이 바라보는/ 최초의 새벽
(김남조/ 사랑합니다)
앙제뤼스의 기도 시간,/ 흰 돌층계에 성촉의 화심(火心)이 번져나고/ 아아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이 세찬 빛발 속에 명멸하며 있다지요.
(김남조/ 만종)
큰 바다의 한 방을 물만도 못한/내 영혼의 지극히 작음을 깨닫고/ 모래 언덕에서 하염없이/ 갈매기처럼 오래오래 울어 보았소
(노천명/ 구름같이)
오늘도 스틱을 휘청이며 걷는 종점 부근‥‥/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스치는 나의 영혼--식물성 나의 영혼일세.
(김현승/ 영혼과 중년)
네 무거운 영혼을 생명의 알맹이로 때려/ 얼얼한 슬픔을 더 깊이 울리게 할 것이다.
(김현승/ 가을이 오는 달)
목마른 것들을 머금어 주는 은혜로운 오후가 오면/ 너는 네가 사랑하는 어느 물가에 어른거린다/ 그러면 나는 물 속에 잠겨 어렴풋한 네 모습을/ 잠시나마 고요히 너의 영혼이라고 불러 본다. // 나무, 어찌하여 신께서 너에게 영혼을 주시지 않았는지/ 나는 미루어 알 수도 없지만,/ 언제나 빈 곳을 향해 두르는 희망의 척도-너의 머리는/ 내 영혼이 못박힌 발부리보다 아름답구나!
(김현승/ 나무와 먼길)
슬픈 눈에는/ 그 영혼이 비추인다/ 고요한 밤에는/ 먼 나라의 말소리도 들리듯이
(김현승/ 슬픔)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푸라타나스/ 나는 너와 함께신이 아니다!
(김현승/ 푸라타나스)
나의 마음-마음마다 로맨스 그레이로 두른 먼 들일 때./ 당신의 영혼을 호올로 북방으로달고 가는/ 시의 검은 기적(淸笛)/ 이맘 때가 되면/ 내가 당신에게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멀리멀리 당신을 떠나는 것입니다. / 떠나서 생각하고/ 그 눈을 나의 영혼 안에 간직하여 두는 것입니다.
(김현승/ 가을은 눈의 계절)
가장 아름답던 꿈들의/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우리는 깨어진 보석들의 남은 광채를 쓸고 있는/ 너의 검은 그림자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모든 편력에서 돌아오는 날 우리에게 남은 진리는/ 저녁 일곱시의 저무는 육체와/ 원죄를 끌고 가는 영혼의 우마차/ 인간은 고독하다!
(김현승/ 인간은 고독하다)
어느 것은 영혼의 의미마저 온전히 때어 버린/ 깨끗한 입술.
(김현승/ 보석)
영혼의 새// ‥‥저무는 하늘이라도 하늘이라도/ 멀뚱거리다가,/ 벽에 부딪쳐/ 아, 네 영혼의 흙벽이라도 덤북 물고 있는 소리도,/ 까아옥-/ 깍~
(김현승/ 겨울 까마귀)
한 해의 육체를/ 우리는 8월까지 다 써버리고/ 이제는 영혼의 절반만이/우리에게 남아 있다.
(김현승/ 가을이 아직 오지 않지만)
영혼의 예술은/ 그렇게 방정 맞아서는 못씁니다.
(김대규/ 요즘 음악은 너무 빠르다)
온갖 만물들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 이 세상에/ 넝마같이 헌, 영혼 때문에 웁니다/꿰맬 수, 기울 수 없는/ 영혼 때문에 웁니다.
(신규호/ 수인의 독백 · 2-춘향이 사랑처럼)
그릇 속에서 바람소리 들립니다. / 끝없이 뒤척이는 물결 타고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볕살 아래서 웃고 있는/ 그대 영혼의 피리구멍에서 부는 바람.
(정동주/ 신무가-2 ·고요했던 날들)
내 영혼이 돌아가/ 편히 쉴 그런 자유의 나라로/ 물새가 날듯/ 그냥 날고 싶어요
(박이도/ 내 영혼이 풀밭에 누워)
맑은 날이면 가슴 위에 꿈이 훤하게 내비치는 아이들의 깨끗한 영혼은 널지 말 것.
(조현석/ 일기에 따른 빨래줄의 경고)
나는 내 영혼인 줄 알고 그만 납을/ 삼켜버렸나부다
(김현승/ 연)
네 영혼을/칼 위에 세우고/머뭇거리는 네 영혼을 몰아/칼날 위에 세우고,// ‥‥네 소리 를/네 소리의 피를/나는 듣는다,/내 영혼의 비록 아둔한 귀일지라도.
(김현승/ 치아의 시)
역사의 애인인 그대여/ 그대 영혼에게/ 까마귀와 더불어 울게 하라!
(김쳔승/ 만추의 시)
두터운 외투 속에서/ 아직도 잠자는 영혼들을/ 흔들어 깨우시고
(서덕석/ 모두가 깨어나고 꽃 피우고 사랑할 때)
그저 스폰지와 같은 영혼들이 있다/ 당신은 그들이 당신에게서 빨아들인 것외엔 아무것도그들로부터 짜낼 수가 없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어떤 사람들의 영혼은 칠판과도 같다. 시간이 써놓았지만 젖은 스폰지로 곧 지워지고 말 부호, 규칙들이 가득한.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검은 산처럼 보이는 순간엔/ 아예 영혼은 풀어져/ 번져나가/ 산 봉우리 위로 올라/ 구름되어 하늘에 뜬다.
(윤종혁/ 갖은 게 많아도 별로 없어도)
사는 일 햇빛 아래 까닭없이 부대끼는 날/ 시들지 않은 영혼 퍼덕거리는 바다로 간다
(김석규/ 바닷가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내 가슴을 축이는/ 달콤한 청량수 한 방울로/ 무기력한 영혼이/ 새로이눈 뜨는 시간.
(김종운/ 아침 이슬)
평생을 걸어오는 오르막길에서/ 한 세대를 머리 위에 이고 가는 하얀 여인/ 검은 머리 파파 희도록 살자고 다짐한/ 오, 나의 결백한 영혼의 동상이여.
(김성휘/ 아내)
아아, 기나긴 겨울 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 없는 하늘 밑에 들어줄 사람 없구나!
(심 훈/ 밤)
송도는 세월을 푸주로 굴려내어/ 내 영혼의 나래 끝에 밤섬으로 부려놓고
(박상륜/ 다시 영일만에서)
바라보면 말을 못해도/ 영혼까지 스미는 민중의 추위를/ 시인아 대신 울어주어야지
(박명자/ 대신 울어주기)
내가 가진 두 장의 은빛 날개/ 두 눈을 감고서도 고향가는 길을 나는 안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의 날기/ 그리움의 날기
(김종해/ 회항-부산에서)
천지는 뜻이 달라도 사랑 익혀 서로 안아/비밀스런 봉머리에 올라 앉은 영혼인데
(금종/ 나주호에서)
아침 이슬에 젖은/ 풀잎 사람이고 싶다. //영혼의 맑은 불꽃 타며/ 세상을 비치고 흔들리는// 그렇게 순수하게/ 깨어 살고 싶다.
(이성선/ 풀잎 사람)
몇거풀 웃을 절치고도/ 나는 늘 아린 가슴과/ 누더기 영혼을 거듭 가리려 하지만
(조미나/ 장작불을 지피면서)
내 안에 살아도/ 끝내 내 것이 아닌 삶/ 오늘이렇게 나이테는 쌓여/영혼의 기슭/ 이 마음울렁이며/ 다시 돌려야 하는 수레바퀴인가.
(정희수/ 그대 다가오고 있음에)
떠도는 바람들/ 내 외로운 영혼 혼들어/ 타들어 간 담뱃재 털다가/ 하얕게 달라 붙는 그리움의 때/ 사금파리로 살갖 그어대듯 춥기만하다.
(정희수/ 안개 긴 아침은)
문지방 키 재던/ 고향, 아 그 고향/ 비틀거리는 나무들뿐/ 내 영혼 돌아갈 곳 없구나
(정희수/ 황혼에 서서)
당신은 나의 모든 의혹을 풀어 주시리라// 오, 당신은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나를 인도하리라, 그때면/ 나는 그 황금빛 곤충이 영혼을 가졌는지 알리라.
(클롭스토크/ 봄의 축제)
미친 듯 그 사이에 굽이치는/ 강물의 노도가 나를 막는다. / 강물의 파도는 넘실거린다. /나의 영혼은 겁을 낸다.
(쉴러/ 동경)
삶에서 거룩한 권리가 부여되지 못한 영혼은/ 저 하계의 명부에서도 쉬지 못합니다.
(휠더린/ 운명의 여신에게)
너를 가깝게 멀리 바랄 때마다/ 퉁퉁부어오르는 영혼의 눈시울
(구 상/ 백련)
빛의 푸른 대양에서 헤엄치는/ 쉴 줄 모르는 성좌들의/ 거대한 세계는 빛을/ 가장 내면의영혼으로 호흡하며
(노발리스/ 밤의 찬가)
그대의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때 혼을 지니고 있지 않는 현(弦)에다/스스로의 혼을 주었다.
(셸리/ 제인에게)
그에 나는 정열의 눈물을 억제하고/ 네 영혼을 사모하는 내어린 영혼을 일깨워/ 나와는 관계 없는 무덤에/ 서둘러 가려는 열망을 호되게 물리쳤다. // 때문에 지금 내 영혼을 시들게 하려 하지 않고/ 추억의 달콤한 아픔에 잠기려 하지 않는다.
(브론테/ 추억)
아폴로 신이 신성한 회생자로/ 시인을 불러내기 전에는/ ‥‥그의 성스러운 거문고는 올리지 않고/ 영혼은 얼어붙은 꿈을 먹는다‥‥// 그러나 신의 음성이/ 예민한 청각에 와닿기만 하면/ 시인의 영혼은 잠을 깬 독수리처럼 약동한다.
(푸쉬킨/ 시인)
아아, 기나긴 겨울 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없는 하늘 밑에 들어줄 사람 없구나!
(심 훈/ 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즐겁고 우아한 순간을 사랑했으며/ 그대 아름다움을 참으로 흑은 거짓으로 사랑했던가./다만 한사람 그대의 편력하는 영혼을 사랑했고/ 그대 변해가는 얼굴의 슬픔을 사랑했었음을.
(예이츠/ 그대 늙었을 때)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김수영/ 눈)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 낙화)
내 생애를 짜서/내 그리움을 짜서/ 영혼의 기름 한방울로/ 빗물되어 빗물되어/ 흐르는 네 가슴에/ 볼에, 어깨에/ 떨어지기까지.
(김선영/ 물)
내 영혼은 먼데 바람으로/ 밤새워 불고
(이근배/ 부침)
소녀는 노래했다 속세에서의 눈물의 계곡을/ 금세 사라지고 마는 기쁨을/ 영혼이 영광을 받고/ 영원히 환희에 도취하는 피안의 세계를
(하이네/ 독일 겨울 이야기 · 1)
육욕적인 이 쥐떼들은/ 그저 먹어대고 마셔댈 뿐이네/ 먹고 마시고 할 뿐/ 불멸의 영혼 따위는 생각지도 않네.
(하이네/ 유랑의 쥐)
내가 조국을 떠난 이후/ 참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사랑했던 사람들-그 수를 헤아리면/ 내 영혼에서는 피가 흐를 것이다.
(하이네/ 밤에 나는 생각한다)
죽음같이 어두운 이 가슴! 덫에 걸린 내 영혼! 몸부림 칠수록 더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구나
(W. 셰익스피어/ 햄릿)
또다시 그리고 언제나 음악을!/ 당신의 시가 다른 하늘과 다른 사랑을 향해 가는/ 영혼으 로부터 달아나고 있다고 우리가 느끼는,/ 솟아오르는 것으로 하라.
(베를레느/ 시법)
늙은 나귀에게 찾아가서/ 말해주렴, 내 영혼이// 아침이면 나귀처럼/ 큰 신작로를 걷는다고.
(잠/ 나는 나귀가 좋아)
아, 또 갑자기 쳐든 눈초리에/그의 영혼이 내 영혼과 합하여/ 마디마디 하소연이/ 그의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할제.
(로제티/ 사랑의 편지)
오, 그 별을 가린 어둠!/ 오, 나를 무력하게 만든 잔인한 손-/오, 근원없는 나의 영혼!/오, 내 넋을 딛고 에워싸는 무정한 구름장!
(휘트먼/ 라일락꽃 일찍 앞 뜰에 피었을 때)
희망은 깃 달린 것/ 내 영혼에 들어 앉아/말 없는 가락으로/ 끊임없이 노래하네.
(디킨슨/ 희망은 깃 달린 것)
마침내 강을 난 알게 되었네./ 태초에 먼 강줄기를/ 인간의 핏줄에 핏물 흐르기/ 그 전부터, 강은 흐르고 있었고/ 그 강의 먼 줄기를 알게 되었네./ 내 영혼 자라 강심(江心)처럼 깊어졌네.
(휴우즈/ 흑인은 많은 강을 노래한다)
내 생이 끝나거든 바닷 속에 나의 무덤을 만들어 주오./ ‥‥돌고래들이 헤엄치는 곳에 나의 재를 널리 뿌려주오./ 나의 영혼은 먼 바닷가로 떠나오.
(H.D. 콜리스/ 삶의 끝에서 원천으로)
어느 날 당신의 영혼이/ 눈을 뜨고/ 아 당신은 다시 왔습니다/ 순간적인 영상마냥/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푸시킨/ 안나 케른에게)
영혼은 바다에/ 고독을 끌어들이는 나그네/육체는 영혼과 결별하여/ 홀로 바닷가에서/어둡고 싸늘하게 누워 있다/ 죽음처럼!
(히메네스/ 병의 회복기)
파도의 침묵 불의 노래/ 영혼과 육신은 어떻게 만나/ 꽃과 함께 합창하던가
(김남주/ 잿더미)
영혼이여,불 위에 뜬 내 영혼이여,/인제는 헤어지자.
(강인한/ 불꽃 · 8)
모든 공손 영혼들의 가장 고귀한 행위는/ 목표들로 충만한 사랑이 있는 인생의 집을 넘치도록 채우는 것이리.
(아마노 데이비드슨/ 가장 고귀한 것)
그대는 영감을 받고/ 몸에서, 마음에서, 영혼에서,/ 그대의 것 자체를 추구하고 발견하고,보아라.
(마커스 델/ 봄꽃이 그대를 유혹하게 하라)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구 상/ 말씀의 실상)
시련의 고통들이 우리를 묶어둘 때/ 슬픔의 파도가 밀려올 때,/ 고통받는 영혼의 베개가 되신/ 예수께 내 머리를 두오리다.
(에드워드 데니/ 예수께서 우시다)
사랑이 형식을 갖추기 전에/ 속삭이던 영혼의 언어들/젊은 태양이 계절을 갈아 입고/쇼윈도우의 마네킹을 부르기 전에/ 봄의 비밀은 가슴속으로 속으로 스며든다.
(전상열/ 봄은 바람을 타고)
한 밤 중/ 나 혼자/ 바람소리를 듣고 있으면‥‥// 스스로의 육신을 불태우고/ 텅비인 가슴속 깊은 어둠 속에서/ 영혼이 일렁이는 속울음 같은
(정 열/ 바람소리)
강으로, 바다로/ 나래 펴는/ 꿈새여.// 바람을 타고 빛살을 물어다가/ 영혼의 둥지를 짓고/ 말간 고요의 숲으로만/ 날아라, 날아라, 날아라.
(김연식/ 기원)
이제 무릎 꿇어/ 당신 오실 이 험한 길목에/기름 준비한 등불 밝히고/ 당신 주신 만큼의 시간을/ 내 영혼 등피 닦고 닦으며/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박원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당신을 찬미하는 곡조에 우리의 마음들을 맞추어 주소서/ 각각의 진실한 영혼이/ 우리의목표에서 물러나 움츠러든 것을/ 그 마음 속에서 정죄하게 될 때까지.
(R. K. 웰즈/ 주를 찬양하라)
허기진 내 영혼을 먹이시는 그가 살아계시네/ 곤궁한 때에 도우시는 그가 살아계시네
(사무엘 메들리/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이 빈궁한 내 영혼 위로/ 주님은 천상의 빛줄기를 뿌려 주시나이다.
(조셉 그리고/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다니)
내 영혼/ 아직 겨울잠 깊은데/ 당신의 하늘과 땅/ 봄 기지개를 켭니다// ‥‥겨우내 탱탱하니/당기다 못해 끊어져 버린/내 영혼의 현을 이어서/ 당신의 고운 사랑 음성으로/ 오시는 봄을/ 반음 낮추어 노래하나니
(김성영/ 나의 노래 아지랭이 되어)
때때로 나는 말로 기도하지 않는다네/ 그의 발 앞에 내 영혼이 고개를 숙이고/ 그리고 그의 손을 내 머리에 얹게 하여/ 우리는 조용하며 달콤한 사귐을 나눈다네.
(마르다 스넬 니콜슨/ 말 없는 기도)
나는 하나님의 성산에 서 있네/ 내 영혼의 햇빛과 함께/ 나는 저 계곡 밑의 바람소리를 듣고 있네/ 천등의 울부짖음에 귀기울이네
(호레이셔스 보나르/ 하나님을 발견하라)
나의 슬픈 영혼 속으로/놀라운 후렴 같은 노랫가락을/ 속삭여 주신 분은 그리스도 그분이었네/ 주님! 당신께서는 현재와 과거를/ 다시 시작하는 땅으로 바꾸셨습니다.
(W.B. 매카페티/ 다시 시작하는 땅)
내 영혼이 날개치며/ 당신을 찾아 솟아오르며/ 나는 영혼의 비단옷을 입고/ 생명의 노래를 불렀네.
(루이스 A. 보일/ 백합과 참새)
그분 부르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오, 번민하는 영혼이여!/ 당신의 슬픈 외침이/ 당신을 그의 가슴으로 이끈답니다.
(안나 쉽튼/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한 날의 수고로 짊어진/ 내 짐을 가볍게 하시고 덜어 주소서./ "오 내 상하고 빼앗긴 심령"/ 내 영혼의 침묵 속에서/ 주의 음성 부드럽게 듣게 하소서.
(마르다 스넬 니콜슨/ 그의 돌보심 안에서 쉬어라)
아버지, 십자가가 무겁습니다. / 내가 오랫동안 그것을 감당해 왔고/ 아직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 내 시들고 희미해진 영혼을 높이사/ 면류관이 주어지는 복된 나라로 이끄소서.
(헨리 N. 콥/ 아버지여, 내 손을 잡아주소서)
설 교 노 트
영혼이 잘됨 같이
요삼1-4
서론
오늘 말씀은 성격이 진실하고 신앙이 좋은 가이오 성도에게 믿음의 선배인 사도 요한이 신앙적으로 격려한 말씀인데 진리 안에서 살 때에 잘됨의 축복,3대 축복을 한 말씀입니다.
잘됨이란 번영하고 성공하는 것을 말합니다.
1. 영혼이 잘되는 축복
제일 먼저 축복한 것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했습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적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성도로서 먼저 무엇보다도 영혼이 잘되는 영적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는 일은 만사 중에 기본적 문제이며 만 가지 축복을 받는데 생활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이는 주일을 잘 지키는 일로 시작해서 새벽 기도, 성경 읽기, 복음 전도, 사랑의 봉사, 진리를 준행하는 모든 신령한 일에 열중하며 잘되는 축복을 받으면 자연히 다른 모든 일도 저절로 잘되는 것입니다.
2. 네가 범사에 잘되고
범사라고 하면 모든 생활에 관계된 일이며, 성도가 경영하는 기업체를 위시하여 크고 작은 사업들과 교인이 다니는 직장 생활까지, 심지어 부인들이 주로 맡아 수고하는 가정살림까지라도 잘되며 또는 자녀들의 학업도 잘되며 모범생들이 되리라는 축복입니다. 또한 가족간의 화목과 이웃간의 융화 등등 모든 일이 다 잘되어 나가는 축복을 말합니다. 믿는 자는 형통의 은사를 받아 누리고 범사에 잘 되리라고 했습니다.
3.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강건은 육체의 질병없이 건강을 말씀하신 뜻입니다마는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강건하기를 간구했습니다. 육신이 강건하지 못하면 신앙생활도 활발하게 할 수 없고 맡은 사명도 하기에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강건해 놓고 볼 것입니다.
심령의 건강은 곧 육체의 건강과 신앙생활에까지 미치는데 영육간에 만족할 생활을 함으로 축복된 일들을 누구에게든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을 입증하고 나타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누구든지 받아야 할 3대 축복이요, 이상의 축복은 최고로 귀한 축복입니다.
그럼 누가 이 복들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 드리므로 우리 하나님 마음에 들 것입니다.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만 하면 3대 축복을 받을 것인즉 우리 성도들은 누구보다도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성도들이 되어서 이상의 3대 축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해결자 예수
마8:23-34
서론
사람은 세 번의 위기와 세 번의 성공의 기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다 고민이 있습니다. 인생이 일생을 살아가는 어간에 앞이 캄캄하고 진퇴양난의 궁지에서 홀로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처지에서 얽히고 얽힌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데 풍랑을 만나 물결에 배가 덮이어 죽게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무엇을 해결해 주셨습니까?
1. 자연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본문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데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잔잔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이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뿐인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제자들은 할 수 없었는데 어찌해서 주님은 하실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1)주님은 자연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은 자연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3)주님은 자연의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대자연의 손잡이를 잡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하늘에서 불고 땅 위에서 일어났으니 천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었습니다.
2.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본문 25절에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며 가로되 "우리가 죽겠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긴박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이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습니다.
'해결자 예수'께서는
(1) 인간의 두려움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마8:25). 각양 각색의 불안과 초조와 공포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2) 인간의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요5 . 1-9)와, 문둥병자(마8:2-4, 막1:40-45, 요5:12-16)와, 중풍병자(마9:2-8, 막2:3-12, 눅5:18-26)와, 소경(마9:27-31)과 벙어리(마9:32-33)를 고쳐 주셨습니다.
(3) 민생고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굶주린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난제들을 해결하여 주신 분이십니다.
3. 영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인간이 과학과 황금과 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1)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악귀에게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마8:28-34, 막1:23-28. 눅4:31-36).
(2)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마9:2).
다섯 남편을 가진 불결의 여인도 용서하여 살 길을 주셨습니다(요8:1-11). 십자가밖에 질 수 없었던 강도에게도 낙원에 이르도록 허락하여 주셨습니다(눅23:43). 죄악의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안식을 주시며 영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마11:28).
(3) 영혼의 마지막 안식처인 처소를 예비하시며(요14:1-3), 우리의 심령에 평안을 끼쳐주셨습니다(요14:27).
결론
옛 시인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라고 시를 읊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눈을 들어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생 노병사의 괴로움과 자연과 영혼의 난제들을 해결하여 주실 이가 어디 있는가 하고 사방을 살펴보아도 오직 우리 주님 예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연계와 인간계와 영계를 해결하여 주시는 해결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이 캄캄할 때 우리의 해결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
요삼1:2
서론
몇몇 사람들은 만약 그들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액수의 돈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영혼이 잘되는지를 알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문제는 영혼이 잘되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증거들을 제시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기도는 영혼이 잘된다는 증거입니다.
(1) 기도의 필요성
주님께서는 "내가 은혜와 간구하는 영을 부어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 심령 가운데 은혜의 영이 거하신다면, 우리가 간구하는 영을 충만하게 받은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2) 기도의 본질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없이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하나님께 나아가되 형식적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요, 지옥가거나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 나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릴 자유에 이르게 된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자유롭게 나아갑니다.
기도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따릅니다.
마치 자애로운 어머니가 그녀의 아이가 내는 아주 조그마한 소리라도 다 듣고 있듯이, 하나님도 당신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항상 그녀의 자녀와 함께 하듯이, 사랑의 하나님도 항상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한, 하나님과 우리의 연합은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3) 기도의 결과
만약 우리의 영혼이 잘 되고 있다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은혜를 받고자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는 워낙 은혜를 많이 받아서 더 이상 은혜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은혜받을 수 있는 방법은 실로 다양한 것입니다.
2. 영혼이 잘되면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됩니다.
(1) 자신의 상태에 대해 더욱 자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맨 먼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첫째로 자기의 겉사람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잘되면 잘될수록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더욱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에 있어서 진보를 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의 생각을 더 잘 통찰할 수 있게 되어 날이 가면 갈수록 자신의 생각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우리를 죽을 육신에서 구원하시는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또 은혜를 받기 위해 그 외의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면서도, 자기 자신의 의보다 더 나은 의지할 곳을 필요로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은해 안에서 성장한다면,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를 자아로부터 빠져나와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수하신 영광스럽고 온전한 의를 의지하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면 잘될수록,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의 너그러움과 뛰어남을 더 잘 알게 되어, 모든 것이 다 은혜로 말미암았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 신자들은 종종 "우리가 메시아를 찾았다. "라고 말하지만, 나중에 가면 메시아가 그들을 찾았음을 알게 됩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은 엄청나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주님을 위해 열심을 내야 할 것입니다.
예 배
성 경 활 용
1. 예배의 정의
(1) 주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일
(시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2) 여호와를 찾고 구하는 일
(습1:6)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를 멸절하리라
2. 예배를 받으실 분
(1) 하나님이시다.
(시66: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미6: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2) 예수님이시다.
(마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3, 예배 드리는 자세
(1) 하나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시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2)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시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3)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경배해야 한다.
(시96:9)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4) 예물을 가지고 경배해야 한다
(사19:21) 그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5) 성전을 향하여 경배해야한다.
(시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6)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한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7) 찬양함으로 예배해야 한다.
(시66: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지어다
4. 어디서 예배드려야 하는가?
(1) 성전에서
(렘26:2)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눅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2) 집에서
(행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3) 하나님이 명령하신 곳에서
(창22:5)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4) 발등상 앞에서
(시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5) 성산에서
(시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6) 자기 처소에서
(습2:11)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5.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1) 우리의 주가 되시므로
(시45:11) 저는 너의 주시니 너는 저를 경배할지어다
(2)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므로
(시95:6)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3) 모든 신의 신이 되시므로
(시97:7)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4) 거룩하시므로
(시99:5)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관련원어풀이
1. latreiva 라트레이아
섬김, 예배.
(요16:2, 히9:1)
2. proskunevw 프로스루네오-
(1) 경배하다.
(마2:2, 눅4:7)
(2) 엄숙한 경의를 나타내다, 예배하다, 숭상하다.
(마4:10, 히1:6)
(3) 존경의 표시로써 부복하다, 머리를 숙이다.
(히11:21)
설교예화자료
설교
어느 젊은 설교가가 자신의 박식함을 교인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보다는 철학 이론을 도입하여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준비가 끝나고 읽어보니 매우 유식한 설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젊은 목사는 스스로 굉장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부푼 가슴을 안고 강단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준비한 원고에 의해 해박하고 유창하게 이론을 정연히 전개해 나아갔습니다.
한참 후 청중을 살펴보았습니다. 젊은 설교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혀 반응이 없을 뿐 아니라 졸고 있는 이도 있고, 딴청을 부리는 이도 있지 않습니까! 낙심 천만이었지만 가까스로 설교를 마쳤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씁쓸한 심정으로 반성해 보았습니다. 그때 한 신자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는 유명 대학 철학 교수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때 설교가는 자신의 박식함을 칭찬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철학 교수는
"목사님의 설교는 한마디로 넌센스입니다. 서투른 철학 설교는 어느 견습 철학도의 논문 발표에도 미치지 못하는 듯 합니다. "라고 평하면서
"오늘날은 지식의 분업화 시대입니다. 저는 평생을 철학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제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목사님의 서투른 철학 설교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목사님의 전문 분야인 하나님 말씀에 입각한 생명의 소리를 듣기 위함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젊기에 실례인 줄 알면서 감히 정중하게 충고의 말씀을 드릴 뿐입니다. "라고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예배는 건강에 유익하다
존스 홉킨즈 대학의 의학 연구원은 장로교회 목사들의 생명보험 기금이 2백 년 이상이나 계속 존속되어 왔던 사실을 최근에 밝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건강에 유익함을 나타내 주는 실례이기도 합니다.
유행병학부의 조지 W. 컴스톡 박사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에 비해, 전혀 참석하지 않는 사람이 치명적인 심장병에 걸릴 위험률이 거의 두 배나 높은 반면, 규칙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신앙인의 거짓없는 삶은 다른 주요 질병의 낮은 발병률과 관계가 있음이 통계상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밝혔습니다. 덧붙여서 교회에 다니는 것은 건강에 상당히 유익한 투자라는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의 편지
월요일 아침에 한 고등 학생 소녀가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어제 너희 교회에 갔었어. 비록 네가 나를 단 한번 초대하였지만 너는 내가 교회에나오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네 옆에 앉으려고 너를 찾았지만 너는 얼었어.
그래서 나는 맨 뒷줄에 앉으려 했지만 그 줄은 꽉 차 앉을 수가 없었단다. 그때 안내하시는 분이 오셔서 나를 맨 앞으로 인도해주셨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나는 마치 행진하고 있는 것 같았어. 곧 예배는 시작되었고 성도들은 내가 모르는 찬송가를 불렀어. 나는 따라서 흉내내려고 노력했고 노래하는 척 했지만 결국은 그 찬송을 하지 못했지 뭐야. 그런데 나는 성도들 중에 몇몇 사람들이 찬송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어. 한숨과 하품을 하면서 그들은 단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내가 학교에서 좋다고 여기던 3명의 아이들은 서로 속삭이고 있었으며, 또 자매는 킥킥대며 웃고 있었어. 나는 너희 교회가 그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목사님의 설교는 재미있었지만 성가대원 몇 명은 그런 것 같지가 않았어. 피곤해 보였고지겨운 표정이었으며,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듣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계속 미소짓고 있었어. 목사님은 신앙의 확신에 대해 설교하셨는데, 그 말씀이 내게 와 닿았기에 예배가 끝나면 이것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 하지만 축도가 끝남과 동시에 이 모든 생각은 사라졌어.
나는 옆에 있던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으나 그들은 진심으로 답례하는 것 같지 않았어. 나는 그 말씀에 대해서 토론할 친구를 찾았지만 그들은 새로운 화제를 이야기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한 소녀와 잠시 이야기를 했으나 곧 인파에 휩쓸려 우리들의 대화는 중단되었어.
우리 부모님은 교회에 다니시지 않지만 나는 사랑이 있는 모임에 가입하려고 어제 혼자 교회에 갔던 것이야.그러나 그곳을 떠날 때 교회 입구에 있는 게시판을 보니 '사랑이 넘치는 교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라고 쓰여 있었어. 그러나 나는 다시 교회에 가지 않을거야. 미안해."
신앙의 빛
어떤 기독교 신자 한 사람이 독일을 여행하다, 하루는 한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기도도 할겸 독일의 시골 성당도 구경하려고 교회 문을 열어보니 너무도 초라하고 어두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안내인은 그의 실망한 모습을 보고 "낮에는 이렇지만 저녁에 다시 한 번 와 보십시오."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가 안내인이 준 작은 등불을 하나 들고 교회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숲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모두 등불을 하나씩 들고 모여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틈에 끼어 안내인과 함께 교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 안은 아름다운 등불로 가득했고 제대 뒤에 걸려있는 십자가상은 그 등불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아름다운 감동적인 광경을 보고 놀라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의자에는 '안나'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습니다.
안내인은 "이 자리는 안나 할머니의 자리인데 병으로 못나오셨습니다. 자리 하나가 비게 되면 등불도 하나가 비게 되지요, 그러면 그리스도의 모습도 그만큼 어두워지는 것이겠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말을 듣고 그날의 감동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록·시·묘사
세상의 일이 바쁘나/ 주님의 날을 지켜서/마음과 뜻을 다하여/ 거룩히 예배 드리세
(홍안의/ 주님을 섬기며)
'주님'하고 부르며 가까이 가면/ 한 발자국 앞 그만한 거리에서/ 주님은 대답하시느니/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우리 주님엔 손들이 이르지 못할/ 그만한 거리로 멀어진다. // 한낮이 기우는 시각에/ 예수님은 못견디게 시장기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으나/ 복받지 못할 나무여/어찌하여 과실이 없고//바람에 펄렁거리는 나뭇잎 만였던가./ 하늘을 향하여 향연이 피듯/ 당신 앞에서/ 향기론 연기로/ 타오르게 하고/ 연연한 것 하나도 없이/ 드리는 마음과 바치는 정성으로/ 우리들의 이 운을 사랑하고/ 주의 제단 앞에 하나의/ 촛불로 타오르게 하시라.// 이것이 당신 앞에/예배드리는 옳은 자세일지니/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가/ 여기 이르게 축복주시고/ 바칠 수 있는 전부를/드리게 하여 주시며/우리가 같은 시간에 드릴 수 있는/예배는 이것이 한 번뿐이라고 스스로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주여!/ 우리들이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황금찬/ 예배를 위하여)
그 목표는 각자의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여/우리의 노래에 즐겁게 연합되게 하는 것이니/ 예배시간 안에서만이 아니라/ 하루 종일 그렇게 연합되게 하는 것이라네.
(R.K. 웰즈/ 주를 찬양하라)
저녁 때에도, 각자의 집'에서/ 가정 예배를 드리며 기도하자./ 하루를 마감하는 그때가/천국에서 하나님의 집을 발견할 때와 같으리니.
(아모스 R. 웰스/ 어느 때나 기도하라)
몸으로 산제사/ 주께 드려라/ 영적인 예배가 될 것이요/ 마음에 새로운 변화를 받아/ 주 온전하신 뜻 분별하리
(홍안의/ 성도의 생활)
목을 감싼 신부의 검은 미사복/ 빌로드를 많으며 얼굴없는 밤의 입김이/ 귀밑머리를 간지린다/ 나는 웃었다/그리고 미사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그림 속으로 들어섰다.
(김후란/ 미사에 늦지 않으려면)
우리 조상은 저 거룩한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였나이다. / 하지만 주께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 하나님을 영이시니 어디서나 경배하라.
(코론나/ 우물가의 여인)
기독교 예배 중 우리가 경외 심으로 머리를 숙일 때/ 또는 우리가 찬미하기로 한 신의 가통(家統)이나,/ 열정의 무한한 방법들로의 길을 비쳐주는 것은 바로 신의 은총이고, 전재(全在)하는 그분의 영광이리,
(아아노 데이비드슨/ 가장 고귀한 것)
땡 땡 땡/노란 종소리가/수직 하강한다. //종소리를 따라/ 모여든 마른 혼들이/ 송별예배를 본다.
(남석희/ 은행 잎)
매일 밀려오는 바쁜 세상 일로/ 당신의 생활에서 그리스도를 밀어내지 않았는가?/조여오는 긴장과 압박으로/ 왕중의 왕께 바칠 시간이 없어라.// ·.·"비키시오! 비켜!"/ 그대는 주님께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구나./ 향락과 세상 일에는 언제나 시간이 있으면서./ 그대는 오늘도 그리스도를 밀쳐 놓고 있는가?
(C.H. 모리스/ 주님을 밀쳐 놓고)
성스러운 골고다의 주시여/ 여기 당신께 드릴 간청 하나 있으니
(오스왈드 스미스/ 오, 주의 사랑)
설 교 노 트
예배의식에 관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경고
겔23:37
서론
예배의식이란 일반적으로 공인된 예배의 절차나 방법을 말합니다.
이 의식에서는 주로 공중기도와 찬양 말씀 전파가 행하여집니다.
1. 예배의식은 신성한 것입니다.
(1) 예배의식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성한 예배의식에 참여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존전에 서게 됩니다(렘7:10, 시100:2).
예배의식을 통해서 성도들이 기도와 찬양을 하거나 설교 말씀을 통해 영적 양식을 얻을 때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설교 말씀을 통해서 신앙적인 교리나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며, 기도와 찬양을 하며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믿음과 사랑 그리고 순종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2) 예배의식은 경건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 경배와 감사, 참된 기쁨과 영적인 갈망, 그리고 신앙적 결단과 소망을 가지고 거룩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이 의식의 목적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위에서 나열한 그런 경건하고 영적인 훈련으로 이루어집니다.
(3) 예배의식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인정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 그 의식을 공인하셨고 그리스도께 말씀하신 약속에 의하여 제정되었습니다. 또한 성부 및 성자 하나님과 더불어 성령에 의해서 충분히 증거되며 확신케 되었습니다.
예배의식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셨음으로 경건하게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이 의식을 거룩히 실시하도록 제정하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배의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골3:7). 특히 예배의식에 참여할 때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예배의식에서 설교 말씀은 공인된 성직자에 의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세례식이나 성찬식을 행할 때에 성직자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를 이끌어 갈 때에도 그리스도를 위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성도들 또한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릴 때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2. 예배의식이 성스럽지 못하게 되는 이유
(1) 성도들의 경외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예배의식에 참여하나 죄에 거하는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의 신성한 음식을 멸시하고 불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권위를 모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기 때문에 예배의식에 나타나야 할 믿음과 사랑, 겸손과 순종, 그리고 찬미의 모습이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예배의식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같지만 실제 삶에서는 거역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그 원인은 깊은 신앙심이 없고,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며 구별된 삶을 위해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애배의식에 불순한 태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예배의식의 재정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와 존귀,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고 성도들에게는 신령한 은해와 영적 양식을 하나님께서 주시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예배의식이 되지 못하는 것은 성도들이 예배에는 참여하나 세상적 만족을 구하기 위해서 또한 삶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행위는 육신적인 소욕과 불의를 범하는 외식적 모습일 뿐입니다.
결론
진정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실 죄인은 없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의식을 더럽히면서도 하나님 앞에 버젓이 서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기독교의 예배관
요4:21-24
서론
우리 인생들의 가장 엄숙하고, 신성한 행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신성한 예배는 이성과 영혼을 지닌 우리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은이요, 특권인 동시에 우리 사람들에게만 부여된 본분이요,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 광대한 우주안에 있는 많은 생물이나 동물들과의 엄격한 차이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행위라고 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인생이라고 하면 누구나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여기에서 인생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하고 엄숙하게 실행되어야 할 예배가 요사이에는 점점 해이되고 등한시되어지는 경향이 농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열납하실 수 있는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를 드리어야 할 우리 기독 신자들이 마지 못해서 하나님의 의식을 따라 자기 욕구와 편리주의를 채택하여 억지로 보아 치우는 듯한 인상이 더욱 농후해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존중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 예배의 원리
본문 20-22절의 내용을 보면, 수가성의 한 여인에게 진정한 생수도 필요하고, 타락된 윤리 회복도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원리를 바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 예배의 의의를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섬긴다는 뜻이라고도 했고, 절제한다. 엎드린다라는 뜻도 있습니다.이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배하고, 헌신한다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예배행위는 범죄한 죄 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찾아 만나 공경하고 경배하고 헌신하는 엄숙한 행위인 것입니다.
(2)우리 기독 신자들의 예배는 허공을 향하여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분명히 대상이 있습니다. 그 대상은 성부, 성자, 성령님입니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3) 예배의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의 예배의 목적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우리들이 은혜를 받는 데 있습니다. 이 세상에 복음 전파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은 교제를 가지면서 우리 심령과 인격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2. 예배의 방법
여기 본문 23-24절에는 예수님께서 예배의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배의 방법을 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1) 예배의 명칭이 있습니다.
이는 예배의 유형이라고 합니다마는 가정에서 드리는 가정 예배도 있고, 들에서 드리는 야외 예배도 있고, 산에서 드리는 산상 예배도 있습니다. 이외 생일 축하 예배도 있고, 결혼축하 예배도 있고, 고별 예배도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떤 예배이든지 하나님이 열납하실 수 있는 애배를 드려야 합니다.
(2) 예배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는 본문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벵겔'은 언급하기를 여기 신령은 보혜사 성령을 가리키고, 진정은 진리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중보로 하고 성령의 감화 감동을 따라 예배를 드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3) 예배는 경건하고 엄숙하게 드려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장로교 신조, 예배모범 2장 2절에 "예배시간에 모든 사람이 엄숙한 태도와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고 목사가 낭독하거나 인증하는 성경 외에는 다른 것을 보지 말아야"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와 같이 예배를 존중 사하여 경건하게 드려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엄숙한 요청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 인생들의 귀중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3) 인생들이 축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
요4:21-24
서론
믿는 성도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생활의 정점은 어디에서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습니다. 사실 예배는 구속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의식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에 대해 더 잘 알게 될수록 하나님께 더욱 더 자신의 사랑과 경배를 드리게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 마음의 표시가 바로 예배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므로 그를 향한 경배는 마음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것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나 현재나 언제든지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타락했을 때 그것은 예배의 타락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얼마나 바르게 예배드리고 있습니까?
1.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예배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20: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의 시험을 받으실 때,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하고 말씀하시며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사실 인류 역사는 예배 대상에 대한 타락의 연속이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것을 알면서도 다른 우상에게 경배하는 죄를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경배를 다른 우상에게 옮기지 않도록 말입니다.
2.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린다 함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깊은 경의와 존경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 본성이 중심이 된 우리의 가장 고귀한 면을 자원하여 드리는 것으로, 성령께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다원은 범죄로 인해 예배가 끊겼을 때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형식에 얽매이거나 중심이 없는 억지나 부주의한 태도는 참된 예배가 아닙니다. 신령한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께 통할 수가 없습니다.
3.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진정으로 예배드린다 함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참된 예배가 드려진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그 기초 위에서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은 예배는 잘못된 것으로 결코 예배라 할 수 없습니다. 혹시 마음을 다해 신령으로 예배하였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라도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믿음으로 하지 않으면 진리로 한 것이 아닙니다.
결론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데 여전히 부주의, 무관심, 무지 등으로 함부로 예배하는 일이 많습니다. 함께 모여 드리는 공적인 예배이든 개인 예배이든 어떤 장소 어떤 조건에서도 우리는 참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장막에서 사는 사람
계17:13-17
서론
성경에는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의 장막에서 생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장막이 성도들의 영원한 보금자리라고 하면서 이 하나님의 장막에서 사는 사람이 최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요, 영원히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 시인은 고백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요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시84:1-2).
그러면 이제 "하나님의 장막에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이 세상 환난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하나님의 장막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 시험과 환난을 승리한 성도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마10:16-22에 증거하셨고, 사도 바울도 행14:22에 증거하셨고, 사도 베드로도 벧전 1:6-7에 증거하였습니다. 이 시험과 환난은
(1) 우리 성도들의 신앙 연단의 방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환난을 통하여 약한 신앙이 강해지고, 유치한 신앙이 장부의 신앙이 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2)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정화시키는 방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속하되 죄에 오염되어 지저분한 우리 신앙 인격과 생활을 정화시킨다고 하였습니다.
(3)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큰 상급을 얻게 하는 방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6:33에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시험과 환난을 승리한 성도가 하나님의 장막에 살게 됩니다.
2. 성전에서 주야로 하나님을 섬긴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5절에, 하나님의 장막에서 사는 두 번째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주야로 섬긴 사람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씀은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는 일은 롬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 터하시는 거룩한 사제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배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1) 예배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2) 예배드리는 태도가 정당해야 됩니다.
(3) 예배순서를 따라 헌신 헌물을 바로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부탁하신 대로, 세상의 빛으로서,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수 있는 헌신과 봉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의 장막에서 영원히 살 자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장막에서 누리는
축복은 16절에
(1) 삶의 여유와 풍족을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안식과 평강을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3) 영원한 위로와 영생의 축복을 누린다고 하였습니다.
모범적인 예배
행8:26-40
서론
예배는 경배하는 신자들이 피경배자이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영적 의식을 거행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 전체를 통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이요, 시간입니다.
본문의 주인공 되는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27절)" 한 것을 보아 그는 예루살렘 여행의 목적이 예배하러 왔던 것입니다.
1. 성심 성의의 예배 정신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후손이 살던 아프리카 동부 지방에 있는 국가로서 애굽에서 동남으로 소재하고 3,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며 그 당시 간다게 여왕이 다스렸는데 이곳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무려 수천 리나 됩니다. 교통도 불편하던 그 당시 병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은 보통 성의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왕의 국고를 총찰하는 내시의 직분으로서 대단히 분주다사한 몸이나 예배에 성심 성의를 기울였으니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라면 분주한 것도 문제가 없고 먼 거리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참된 예배 정신은 먼저 빠지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의없는 예배는 의식에 불과하니 드리나마나 하고 자칫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사기가 쉽습니다.
2. 겸손한 예배 태도
에디오피아 내시는 일국의 재상이요, 큰 권세를 가진 높은 사람입니다. 지위가 높을 뿐 아니라 국왕의 총애를 받으니 교만하려면 얼마든지 교만할 수 있는 처지의 인물이지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병거를 타고 가면서도 성경을 열심히 읽었으며 전도자 빌립이 성경의 뜻을 알고 읽느냐고 물었을 때에 무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였을 것이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알리요?"라고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밑에 사람이 윗사람을 보고 모른다고 가르쳐 달라는 일은 있을 수 있으나 하물며 일국의재상이 지나가는 전도자 빌립에게 모른다고 고백할 뿐더러 병거에 같이 타게 하고 성경의 진리를 배우는 일은 신앙적 겸손심이 아니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자는 겸손한 태도로 드려야 합니다.
3. 사모하는 갈망심
에디오피아 내시는 여행 도중에서도 좌우편에 전개되는 산천경개를 구경하지 아니하고, 피곤하다고 병거에서 잠자지 아니하고 열심으로 성경(이사야서)을 읽었으니, 진리탐구에 열정이 대단하며 지나가는 전도자 빌립을 선생으로 모시고 한 마디라도 더 배우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니 은혜를 사모하는 갈망심이 역력합니다.
또한 빌립의 친절한 교수로 성경에서부터 예수님을 가르쳐 복음을 전하여 듣고는 물있는 곳에 가서 세례받기를 갈급하여 지원하였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갈망심이 없는 심령은 결국 영적으로 아사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갈망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신자라면 누구나 예배하는 자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의 모범적인 예배 모습을 본받고 배워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성심 성의의 예배 정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요, 겸손한 예배태도는 사람 보기에는 훌륭한 것이요, 사모하는 갈망심은 마침내 목적한 바를 얻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본받아 참된 신앙생활에 더욱 충실합시다.
참된 예배를 드린 아벨
창4:1-8
서론
세상에서 첫 번째로 뽑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선진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히브리서 기자는 첫번째 사람으로 인류의 조상 아담을 제쳐놓고 그의 아들 아벨부터 기록하였는데 이는 아벨의 믿음이 훌륭한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벨은 어떤 신앙을 가졌습니까?
1. 아벨은 더 나은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4:3-4에 보면 가인이 먼저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가인 다음에 제사를 드린 것으로 되었고 히브리서 11장 4절에는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아벨은 가인이 농사해서 얻은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을 보았는데 형님의 제사드리는 모습은 기계적으로 굳은 표정이었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기쁨과 감격이 없는 극히 의무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를 본 아벨은 양적으로 크고 질적으로 우수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즉,형이 드린 제물, 농산물보다 우수한 양의 첫 새끼를 드렸고, 그가 드린 예배의 행위도 가인의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것에 반해, 아벨은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가인보다 우수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행위는 최상의 것이어야 합니다.
2.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한다"고 했고, 로마서 14장 23절에는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을 죄"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믿음으로 하지 않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신 것은 예수님의 피를 바라보며 양을 믿음으로 드렸기 때문이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은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많은 재산을 바치고도 저주를 받은 것은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입니까?
(1) 자원하는 마음으로 제사드리는 것이고
(2) 하나님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제사드리는 것이고
(3)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생각하며 제사드리는 것입니다.
3. 아벨은 순교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를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경배한 일 때문에 형에게 맞아 죽었습니다. 증인이란 순교자라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대한 증인들이니 순교의 각오로 이 사실을 증거해야 합니다. 순교의 각오 없이는 애수를 따를 수 없고 그리스도의 피를 전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죽는(고전15:31) 순교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겠습니다.
결론
아벨은 참된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날마다 믿음으로 참된 예배를 드리므로 의롭다는 축복을 받고 사는 역사가 있어지길 바랍니다. 아-멘!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
삼상2:17
서론
세상에서 멸시할 일이 따로 있지 어디 감히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런 일이 생겨났으니 우리는 이일을 더 주목하여 보아야 합니다.
멸시라는 것은 "업신여겨 봄" 또는 "낮추어 본다"는 뜻입니다.
1. 여호와의 제사는 신성한 일입니다.
인간이 그 섬기는 신에게 제사한다는 일처럼 신성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드리는 일에 대하여 그 내용을 검토하여 보면 상당히 엄격하고, 까다롭고, 세밀하고,복잡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 드리는 원리, 제물, 제사 절차, 제사장의 자격, 그 복장, 언행 등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은 대상자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거룩하게 제사드리지 않으면 그 제사는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 거룩하게 드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헛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리가 만무합니다.
2. 제사장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그 당시 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그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정신도 흐리고 영력도 쇠미한상태였습니다.
한나가 기도한 때에도 너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술에 취한 줄로착각하였으니(1:12-16) 그 실례와 오판은 너무나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2장 12절에 "엘리의 아들은 불량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얼마나 부끄러운 말입니까? 제사장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이어서 제사장직을 계승해야 할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불량자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강이 문란하고 성직의 책임성이 희미해지면 여호와의 제사가 멸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책임이 얼마나 중차대함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책임이 막중함을 새삼 절감해야 합니다.
3. 제사를 멸시하던 자들은 벌 받았습니다.
엘리 제사장 자신도, 그 아들들도 결국은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어찌 제사를 멸시하는 자가 무사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들들은 더욱 더 불량스러워져서 심지어는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자들과 동침하는 죄를 지어 성소를 더럽혔습니다(2: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보라 내가 네 팔과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2:30-31)"라고 저주하셨습니다.
결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고 엘리 자신도 부끄러운 죽음을 당하였으니 이것은 필연적 결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 우리의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 정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애정
(1) 하나님의 뜻이다.
(롬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 예비하셨다.
(롬9:23)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하고자 하셨을지라도
(3) 미리 알고 계셨다.
(행2:23)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갈3:8)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4) 작정된 것이다.
(행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2. 미리 정해진 사실들
(1) 나라의 운명이다.
(사10:23)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2) 사람의 운명이다.
(눅22:22) 인자는 이미 작정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3) 영생이다.
(행13:48)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 거주의 경계이다.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3. 어떻게 예정하셨는가?
(1)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심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2) 미리 정하심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3) 만세 전에 정하심
(고전2:7)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4. 성도들에 대한 예정
(1)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
(엡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2) 의롭다고 하였다.
(롬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3) 영광에 이르게 하셨다.
(살전2:12)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관련원어풀이
1. rs;Wm 무사르
(1) 징벌.
(잠22:15,호5:2)
(2) 전능자의 징벌.
(욥5:17)
(3) 권고, 단련, 모범.
(시50:17, 잠1:8)
(4) 가르침, 지식, 교리.
(잠1:2, 4:3)
2. proorivzw 프로오리조-
미리 제한하거나 지적하다, 미리 명확하게 예정하다, 미리 결정하다.
(행4:28, 엡1:5)
3. proyivqemai 프로티데미
(1) 앞에 두다, 드러내 보이다, 공개적으로 나타내다.
(롬3:25)
(2) 계획하다, 결정하다, 미리 의도하다.
(롬1:13, 엡1:9)
4. proceirivzomai 프로크세이리조마이
손에다 넣다, 사용하거나 행동하려고 준비하다, 선택하다, 지명하다.
(행22:14, 26:16)
설교예화자료
지난 일과 앞 일
어떤 사람의 눈이 점점 악화되어 멀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수술할 것을 권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시력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억력에 영향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수술한 결과 기억력은 되살아나고 시력이 나빠졌습니다. 당황한 의사는 마침내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것을 택하시겠소? 시력이요? 아니면 기억력이요?" 한참 동안 생각하고난 끝에 환자는 대답했습니다.
"시력을 되찾겠습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고 있느니 보다는 앞으로 일을 눈으로 보는게 낫겠죠."
중국 선교비를 조달하셨다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 들어가 선교를 할 때 여러 가지 어려운 점히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선교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잘 되지 않는 애로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테일러는 돈이 부족할 때 어디가서 기부를 간청하거나 대출을 받는 것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실 것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어느 날 정오, 가족이 기도하기 위해 모였을 때 최근의 헌금 액수가 격감된다는 소식을 듣고 테일러는 실망하는 기색도 없이
"그렇다면 자금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알아보고 부족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부탁을 드려야겠군요." 하면서 얼마 부족한가 물어보니 235파운드가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그의 식구들과 다른 사람들도 같이 모여앉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어져 왔는데 그곳에는 정확히 235파운드 7실링 9펜스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같이 들어 있는 편지에는 보낸 사람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덩어리를 판 돈이라며 유용하게 써 줄 것을 부탁하는 글이 씌여 있었습니다. 테일러와 그 가족들은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죠지 뮬러의 여행
죠지 뮬러가 한 번은 아내와 함께 독일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어찌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가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게 되고,또한 여행 기간 고아원을 관리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은 물론 여행에 드는 비용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어떤 방문객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가 고아원 관리하는데 적절하여 그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문제는 해결되었는데, 아직 그에게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금새 해결이 되었습니다. 어떤 자매가 찾아와 그의 집에서 한동안 묵으면서 도와주겠다고 했고, 개인적으로 사용하라는 서신과 함께 어떤 사람이 보내온 돈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뮬러는 독일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정해 두셨습니다.
불길한 예언
17세기 말엽, 런던 '파트리지'라는 엉터리 출판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점성학에 의한 색다른 역서를 출판하여 미신에 젖은 대중들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습니다. 파트리지가 톡톡히 재미를 본 것은 물론입니다. 그럴 즈음, 잡지 '다트라'에는 애디슨과 스티일 두 분과「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스위프트가 저명한 투고자였습니다.
잡지 「다트라」는 파트리지가 발행한 역서가 미신을 더욱 조장한다고 공박하고 엉터리 출판을 집어치우라고 공격했지만, 파트리지는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런효과도 없음을 발견한 풍자 작가 스위프트는 버커스타프라는 익명으로 팸플릿을 내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한 예언이었습니다.
"파트리지는 내년 즉 1708년 3월 29일 밤 11시, 페스트에 걸려 사망할 것이다. " 파트리지는 놀라고 당황하였습니다 그는 황급히 그 해의 역서를 발행하고 광고를 냈습니다.
"버커스타프라는 거짓말쟁이는 얼토당토 않는 헛소리를 발표하였습니다. 나는 이처럼 건강하게 살아 있으니 강호의 제씨여 안심하시라."
그러나 3월 29일이 다가오자 버티스타프는 또 "드디어 파트리지의 죽음이 1분 1초 틀림없이 다가오고 있다. "
장의사와 비석장이까지 파트리지 집에 주문을 받으러 왔고, 역서는 발매 금지가 되었습니다.
한편 스위프트의 친구들은 스위프트에 가세하여 여러 가지 평론을 써서 여론은 굉장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습니다. 파트리지는 "이처럼 건재하나이다. "라는 광고를 내고, 야단법석이었으나, 오히려 세상은 그의 광고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스위프트는,
"파트리지씨의 죽음을 애도함"이라는 표제의 유명한 만가를 인쇄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마음이 상한 파트리지는 마침내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횟수로 8년의 차이는있었지만(그후 8년이 지난 뒤) 파트리지는 스위프트의 예언대로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록·시·묘사
하나님의 손이 당신을 이끄시리라는 것을 아는 것은/ 성도들이 발고 지나간 길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리니.
(월터 E. 아이젠하워/ 승리하는 삶)
굽이치는 길과 구름 덮힌 잿빛 하늘/ 산 언저리의 가파름의 길의 험난함‥‥/모든 것을 그가 아시노라.// 섬뜩한 두려움과 엄습해 오는 의혹/ 근심과 혼란 그리고 긴장과 고통‥‥/모든 것을 그가 아시노라.// 모든 문제의 염려와/ 모든 걱정의 초조함과/ 모든 짐과 모든 슬픔과/ 그대가 짊어지는 십자가를/ 모두 그가 아시노라.//그대 비판의 고통/ 그대 눈물 젖은 눈/ 파고드는 고뇌와 잔잔한 아픔과/ 터져 나오는 슬픔을/ 모두 그가 아시노라// 모두 그분께서 아시노라/ 그가 너를 택하시고/ 그리고 그의 택하심을 그대가 받았노라!/ 그가 모두 아시노라!/ 그가 그렇게 계획하셨노라!/ 그러므로 그를 믿으며/ 그리고 기뻐하라!
(E. 마가레트 클락슨/ 그가 아시네)
설 교 노 트
하나님의 예정
엡1:3-14
서론
예정(predestination)이란 미리와 결정이 결합된 말입니다. 그 뜻은 글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미래의 일을 미리 "작정하신다" 혹은 "결정하신다"하는 의미를 가진 낱말입니다. 이 예정 교리를 학문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예정론이며, 이 교리를 믿는 자를 예정론자라고 말합니다.
예정론은 바울이 중요하게 취급한 교리였습니다. 그는 로마서 8장 29절 9장 6-29절과 본문인 에베소서 1장 3-14절에서 예정 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도들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주의 죽으심(행2:23)과 이스라엘의 불신(벧전2:8) 등을 하나님의 예정으로 돌렸습니다. 요한은 열두 제자의 택정이나(요6:7) 가룟유다의 반역(요6:64)이 처음부터 정해진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마저도 인간의 노력 저편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 곧 예정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정은 선택과 포기하는 두 부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자로 선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멸망받을 자로 포기하셨다는 것입니다.
1. 타락 전 선택설
이 학설은 예정의 시기를 타락 이전으로 보아, 하나님은 창세 전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를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3-6절은 이 학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봅니다. 유명한 돌트회의의 결정은 이 학파의정신을 구현한 것으로서
(1) 무조건 선택
(2) 제한된 속죄
(3) 완전 타락
(4) 불가항력적인 은혜
(5) 보존의 확실성 등 5개조를 주장합니다.
2. 타락 후 선택설
이 학설은 예정의 시기를 타락 이후로 보는데, 즉 하나님은 타락을 허용하셨으나 거기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며 타락한후 어떤 자를 구원으로 예정하시고 그 외는 타락으로 이미 정죄된 상태에 그래도 방치해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 학설의 기본 근거는 로마서 8장29-30절로 첫째, 선택하시고 둘째, 부르시고 셋째, 의롭다 하시고 넷째, 영화롭다 하십니다. 고래로 신학적 논쟁에서 예정론은 격렬한 찬반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예정론이 항상 지지를 받아왔는데, 이것은 예정론이 뚜렷이 성경에 근거하여 있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시라면 그의 예정은 인간편에서 좌우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시간 이전에 시작되고 시간 이후에 계속됩니다. 여기에 신자의 구원의 절대 안정성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예정론은 몇 가지 약점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1) 논리를 너무 비약시키다 보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부인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2) 인간의 자유와의 조화 문제인데 이미 예정되었다면 인간의 책임은 어떻게 되느냐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자로서 자신의 전적 무능을 안다면 절대 주권자 앞에서 예정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예정은 기독교가 이론의 종교가 아니라 체험의 종교임을 시사합니다. 왜냐하면 이론으로서는 이 위대한 진리를 알 수 없고 오직 신앙 체험만으로 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 경 활 용
1. 오순절의 다른 명칭
(1) 칠칠절
(출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2) 맥추절
(출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2. 신약의 오순절
(1) 성령이 강림함
(행2:1-2)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관련원어풀이
1. t;[;bv n<h 하그 솨-부오트
hv penthkosthv hJmevra 헤 펜테-코스테 헤메라
오순절.
(행2:1, 고전16:8)
어록·시·묘사
'아멘 코너' 주위에서는 항상 성령의/ 불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순절 때처럼 불의 혀가 갈라지는 모습이었지요./ 그때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고 영혼들이 더 높이 들리우곤 하였지요./ 호너의 진실한 목소리도 컸지만/ '아멘 코너'를 뒤흔들었던 아멘의 기쁨/함성은 더욱 컸었지요.
(루이스 이센바이스/ '아멘 코너')
우리들 중에 어떤 이들은/ 아직도 오순절 다락방에 머물며/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늘나라/ 은혜로 주신 승리도 알지 못한 채/ 아직도 다락방 근처에 머물러 있다네.
(애니 J. 플린트/ 앞으로 나아갑시다)
주 하나님, 거룩한 영이여/ 지금 이 허락된 시간에/ 오순절 그날처럼/ 당신의 모든 권능 가운데 내려 오소서.
(J. 몽고메리/ 성령이여 오소서)
오순절 성령께서 오사/ 제자들로 충만케 하며/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게 하며/ 죄 사함받아 구원 얻기까지 권능을 베푸셨으니/ 우리도 성령으로 충만케 하소서.
(존. R. 라이스/ 오소서 성령이여)
오순절의 권능이 우리에게 다가오네./ 오라, 잃어버린 자들을 회심시키고 구원하리라/ 죄인들의 굳어 버린 마음을 녹이리라/ 오라, 하나님의 능력,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죽어 버린 교회들, 패배한 설교자들!/마음은 차가웁고, 열정은 식어 버렸구나!/ 하나님의 성령 이 우리에게 다가오네!/ 오순절의 하나님, 되돌아 오소서!// 자연의 선물과 은총은 헛되도다 ! / 우리의 노력도 헛되고, 우리의 말도 헛되도다. /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고/구원의 능력은 오직 주님의 것이라네.//사탄은 때로 인간의 눈을 멀게 하네./ 어둠에서 태어나고, 죄에서 태어났네./ 우리는 속박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야 한다네.// 세속적 모습과 장식에 지치고/ 무익한 노력에 지쳐버렸네. 잃어버렸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성령을 이제 넘치도록 부어 주신다네!//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기다리리라/ 우리는 한마음으로 기도할 것이다/ 넘치는 사랑의 당신이 우리를 도우소서./ 당신을 증거할 수 있도록 우리를 담대하게 하소서.// 성령이여,오, 영이신 하나님이시여,/ 쓸모없는 생명에 입김을 불어넣으소서./ 약하고 쓸모없는 이 인간에게 채우소서./ 오, 내 모든 증언에 능력을 채우소서/ 성령이여, 난에게 입김을 불어 넣으소서.
(작자 미상/ 오순절의 권능)
설 교 노 트
오순절의 권능
행2:37-47
서론
성령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해 믿음 생활을 잘할 수 없고 스스로 속아 사는 사람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성령님의 3가지 역사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 첫째는 강화하시는 성령으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고전12:3). 둘째는 성령의 내주 운동이요, 다음이 성령 충만으로 강화와 내주를 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역사입니다. 베드로와 그밖의 사도들도 성령을 받았기에 예수를 메시아라 고백하고 죽을 지경의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육신의 때를 벗지 못하고 늘 실수투성이요, 비겁하던 사람들에게 오순절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은 성령이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의 권능을 다시 힘입지 않으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릇이 되기에는 어렵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크신 은혜 있으시기 바랍니다.
1. 오순절 권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과 사도행전 1,2장은 연결된 성경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21장에서 제자들을 파송하시고 사도행전 1장에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과의 약속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땅 위에 계실 때의 약속을 믿고 돌아간 120문도는 10일 동안을 전혀 기도에 힘써 오순절 아침에 바람같고 불같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주님의 권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극히 물질주의자들이요, 세속주의자들이었으나 오순절 후에는 신령주의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주의가 변하여 주님 중심주의가 됐고, 피동주의가 변하여 능동주의가 되었으며, 비겁하고 나약하던 사람이 강하고, 담대한 능력의 사람이 되었고, 형식주의는 깨어지고 실력을 갖춘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고후5-17에 "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인격이 변하고 삶의 목적이 변하고 그의 모든 행동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겔36:27-28에도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영향도 달라졌습니다. 작은 계집종 앞에서도도 주님을 부인하던 베드로가 수많은 사람 앞에 설교할 때 그들의 마음이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항복하게 된 것입니다. 초라하던 옛날 어부의 인격은 간 곳 없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권위가 있을 뿐 아니라 그 말씀이 불같이 강하게 역사함으로 견딜 수가 없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성령의 권능을 받아 자신이 변화를 받을 뿐 아니라 새로워져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능력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오순절의 권능은 사랑의 운동을 전개시켜 주었습니다.
"서로 교제하며‥‥‥‥ 하였는데 이것은 짐을 나누어 졌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지독한 욕심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던 사람들이참된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권능인 것입니다. 갈5:22의 성령의 열매 중 가장 먼저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성령의 권능으로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면서 살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3. 오순절의 권능은 날마다 더하게 하십니다.
잘되고 부흥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적게는 개인의 심령 그리고 가장 크게는 교회와 사회와 국가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은 성령님의 권능이 있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순절의 역사 중에 특수하게 달라진 것은 모든 것이 넘치는 것입니다. 믿음이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교회가 넘쳤습니다.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씩 세례를 받고 뜨겁게 봉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슥4:6에도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순절의 권능은 성령의 권능입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모든
교회의 부흥이 바로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도의 믿음이 그러했고, 예루살렘 교회가, 에베소, 빌립보 교회가 다 그러했습니다.
행19:1-20에 보면 성령이 있는 것을 알지도 못했던 에베소 교회는 불과 12명 정도 모였으나 성령의 역사가 있는 후에는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오늘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변하고 더하게 하는 부흥 운동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신앙을 바로 세우기를 원합니까?
좀더 변하여 새 사람이 되고 힘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복음화되고 사랑의 불꽃이 튀기며 더 잘되는 축복받기를 원합니까?
이는 오순절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이 권능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교회는 오순절을 계승해 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순절을 통하여 힘있는 성도들이 되어 온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살고 사회를 살리는 꼭 있어야 하는 교회였다는 역사에 남을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순절의 체험
행2:1-4
서론
오늘 주일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성경은 이 날을 칠칠절이라, 맥추절이라,오순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오순절은 교회의 생일입니다. 왜냐하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오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부터 50일 만에 저 예루살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120문도에게 성령이 강림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보이시므로 주님이 살아계신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고 다시 흩어져 있던 제자들을 감람 산으로 모으시고 그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부탁하시고 베다니 에서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구름을 타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1. 성령이 오순절 어디에 강림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 1절에 보면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마가의 다락방에 다 같이 모였을 때 강림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언제든지 모일 때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성령받기 원한다면 모이는 데 힘써야 되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모였더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미스바의 신앙 운동도 수문 앞 광장에 모였을 때 일어났고, 초대 교회가 부흥된 비결도 날마다 성전에 모였다는 그 모임에 부흥의 비결이 있었습니다.
2. 오순절의 성령은 어떻게 강림하셨을까요?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1) 성령은 바람같이 임했습니다.
이 바람은 하나님의 기운과 성령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람은 자유로이 왔다갔다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바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임의로 부는 것입니다.
바람은 신비합니다. 바람은 그 출처도 거처도 사람이 모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는 신비해서 사람이 감히 '측량 못할 역사를 일으킵니다.
바람은 저항할 수 없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람이란 것은 얼른 보기에는 매우 미미하게생각할 수가 있지마는 이 바람이 조금만 크게 불러오면 굉장합니다. 그러다가 더 급하게 불어오면 세상 없는 장사라 할지라도 감당치를 못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이 불과 같이 오순절에 임하였습니다.
3절에 보면 "불의 혀 같이 갈라진 것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여 있더니"라고 했습니다.이것도 초자연적인 역사였습니다.
불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인데, 옛날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릴 때에 불로 열납하시었고 모세도 부르실 때 호렙 산 불 가운데서 부르셨는가 하면 솔로몬도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보헌식을 할 때에 하나님의 불이 나와서 제물을 다 살랐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실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는 여러 가지 헤쳐가기가 어려운 풍랑을 만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풍랑을 만날 때도 있고, 종교적인 풍랑을 만나는가 하면, 생활의 풍랑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오순절의 불이 맹렬하게 그리고 활활 이글이글 타고 있을 때에 모든 환난, 핍박, 역경, 질병의 파도는 깨어져 버릴 것이요, 이단 사조나 마귀의 흉용도 능히 물리쳐 버리고 우리의 목적지까지 가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
행2:1-4
서론
3년 동안 예수님의 공생활에 제자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므로 인하여 제자들은 실망과 두려움과 음폐된 생활을 하여왔습니다.
마가의 다락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던 중에 성령님의 강림으로 인하여 크게 은혜를 받게 되며 능력과 용기와 새 힘을 얻어 나가 외칠 때에 3000명이나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날을 계기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비둘기 같은 성령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임한 비둘기 같은 모양의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때는 불이 아니고 바람도 아닙니다. 고요히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임한 것입니다.
비둘기의 속성은 온유, 겸손, 순결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처음으로 비둘기같은 형체로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주님의 마음이십니다. 성령을 받았다 하면 뜨거워지는 체험이 있어야 성령받은 것으로 잘못된 인식에 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령은 제일 먼저 온유한 생활과 겸손한 생활을 나타나 보이게 됩니다.
불 같은 성령을 주기 전에 또 바람 같은 성령이 이르기 전에 그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고요하고 온유 겸손한 성품으로 차게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큰 능력 뜨거움을 얻는 것만 생각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온유하고 겸손한 것을 생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과 오만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시기, 질투, 투기, 싸움만 일어나는 가운데 분열과 괴로움만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마음으로 온유와 겸손으로 터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2.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
이것은 사도행전에서 찾을 수 있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강한 바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뒤집어 업는 것입니다. 바람같은 성령이 임할 때는 완악하던 사람이 변화를 받아 정상적인 인격자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그 마음에 완악하던 성품을 뿌리채 뽑아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바람 같은 성령이 임한 결과 많은 사람들에게 새 힘을 주었고 가는 곳마다 생명의 아름다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들이 가는 곳곳마다 생명의 아름다운 역사와 화평의 조화를 이루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 나갔습니다.
3. 불의 혀와 같든 성령의 역사
혀의 특징은 온유와 겸손의 뜻이 있습니다. 육체의 지체 가운데 제일 만문한 곳이 혀입니다. 그리고 무서운 이빨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고 삽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가시 돋음이 없이 화평의 조화를 이루고 사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온유하고 겸손하게 보이지만 권위가 있는 것이고 맛을 알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참된 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불은 뜨거운 것이 특징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아 역사할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사람의 머리가 뜨거워지면 안됩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야 합니다. 머리가 뜨거워지면 혈기와 흥분과 판단을 못하고 모가 나는 거치른 인간이 됩니다. 머리는 냉철해야 합니다. 마음이 뜨거워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여 돌아봐 주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이렇게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어머니 교회의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결론
초대 교회를 탄생시킨 오순절 성령 강림은 매우 중요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한 보혜사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찾을 수 있는 성령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입니다. 완악한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새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또한 오순절의 성령은 불의 혀와 같은 성령입니다. 이런 성령은 혀의 특징을 나타내게 됩니다.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우리도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리기를 바랍니다.
오순절의 바람과 불
행2:1-4
서론
성령 강림은 오순절에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로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이는 절기입니다. 첫 곡식을 드리는 절기요, 모세가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날에 강림하신 것입니다.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풍성한 영적 수확이 있음을 알리고 구약의 율법보다 더 좋은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날로 인하여 제자와 사도의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일꾼이 된 것입니다.
1.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우선 바람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최초에 아담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과 같이 오순절의 성령의 바람이 곧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죽은 자가 살려면 성령이 바람으로 사람의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을 받은 사람이 새로 산 사람입니다. 에스겔이 본 마른 뼈도 하나님의 바람으로 소생하였습니다.
2. 오순절의 바람은 소리를 동반했습니다.
(1) 급히 강림하신 증거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소리없는 역사도 있지만 종종 인간 구원의 역사에 큰소리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오순절이 이르렀을 때에 집안에 있던모든 사람은 이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 바람은 하늘로부터 옵니다. 일반적으로 바람은 옆에서 불어옵니다. 하늘에서 내리부는 바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 바람이 특이합니다. 하나님의 바람입니다.
(2) 땅 위의 바람은 벽이 있으면 차단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방 안에 있으면 바람의 영향을 직접 받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의 바람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었습니다. 지붕이나 천정이 막지를 못하고 이 특별한 바람이 방 안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바람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이란 그 방향을 사람이 임의로 바꿀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태풍의 예보는 잘하지마는 어느 누가 태풍의 방향을 바꾼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태풍의 힘을 악화시키는 일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바람도 그 방향을 사람이 조정할 수 없고 그 강도를 사람이 조정할 수가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합니다. 성령은 사람의 조작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운동을 일으킨다는 것은 조심할 말입니다.
3. 성령 강림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활성화시켰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탁한 공기를 몰아내고 상쾌한 분위기를 만들듯이 성령의 바람이 침체된 제자들에 게 생 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얼룩지고 오염된 모든 것을 말끔히 몰아내고 신선하게하여 일하도록 하였습니다. 체면이나 자아도 몰아내고 신선하게 하여 일하도록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바람의 역사를 항거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부는 바람입니다.
4. 성령 강림의 불로써 나타났습니다.
불은 더러움을 태우는 표시입니다. 혀 같은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있었습니다. 혀를 주장하여서 복음만 전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른 방언으로 말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둠을 밝힌 것이고 열심을 활활 타오르게 하였습니다. 열정적으로 일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특성은 가만두지를 못하는 데 있습니다.
결론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은 바람과 불로써 임하였습니다.
이 오순절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새 힘을 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온 유
성 경 활 용
1. 온유의 일반적 성격
(1) 사랑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2)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3) 주의 종에게 필요한 마음이다.
(고전4:21)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4)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하다.
(딛3:2)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5) 명철하다.
(잠14:1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2. 온유를 나타내야 하는 곳
(1) 마음에서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2) 마음에 심긴 도에서
(약1:21)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3) 모든 사람을 대함에서
(딤후2: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4) 소망을 묻는 자에게
(벧전3:15)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은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5) 권면할 때에
(고후10:1)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6) 징계할 때에
(딤후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7) 모든 일에서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도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온유한 자의 결과
(1)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시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마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2)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시76:9)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3) 도를 가르치신다.
(시25:9)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4) 안식하게 된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4. 온유해 지는 방법
(1) 은유한 심령으로 형제를 바로 잡는다.
(갈6:1)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2) 온유로 옷 입어야 한다.
(골3:12)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3) 온유를 좇아야 한다.
(딤전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4)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야 한다.
(딛3:2)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5)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함을 보여야 한다.
(약3:13)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관련원어풀이
1. hw:n:[} 아나-와-
(1) 낮은 마음, 단정, 아담
(잠15:33, 습2:3)
(2) 고상함, 관대.
(잠18:36)
2. wn:[; 아-나-우
(1) 고통받는, 비참한.
(시9:13, 10:12)
(2) 온화한, 고상한.
(민12:3)
3. fa' 아트
(1) 부드러운 소리, 중얼거림, 한숨, 마술사들.
(사19:3)
(2) 점잖게 감, 천천히 흐름, 고상한 태도.
(왕상21:27, 사8:6)
4. hvpio" 에피오스
유순한, 고상한, 친절한.
(살전2:7, 딤후2:24)
5. prau?" 프라우스
(1) 온전한, 부드러운, 친절한, 용서하는.
(마5:5)
(2) 온화한, 얌전한, 자비심 있는
(마21:5, 벧전3:4)
6. prauh?" 프라우테스
온화, 온유, 관용.
(벧전3:15)
7. pravnpaqia 프라우파디아
성경의 온유함, 얌전.
(딤전6:11)
설교예화자료
참나무와 버드나무
참나무와 버드나무가 나란히 심어져 있었습니다.
참나무는 굵고 튼튼한 몸을 하고 있었지만 아직 어린 버드나무는 가늘고 연약한 몸집이었습니다.
참나무는 항상 거만하게 잘난 체를 하며 다른 나무들을 무시했지만, 버드나무는 상냥하고 친절하여 스치고 지나는 바랑에게 인사를 하며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걸 못마땅하게 여긴 참나무는,
"버드나무야, 너는 왜 그렇게 점잖치 못하게 아무나 보면 수다를 떠느냐? 그리고 그까짓바람에게조차 인사를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니?" 하며 나무랐습니다.
버드나무는 아무 대꾸도 없이 참나무의 호통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눈보라가 들판을 휩쓸었습니다. 참나무는 똑바로 서서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나 버드나무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금방 쓰러질 듯하였습니다.
폭풍이 사정없이 몰아쳐 이곳 저곳에서 많은 나무들이 쓰러지고 야단이었습니다. 꿋꿋이 서서 버티던 참나무도 마침내 기가 꺾여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고 이리저리 춤을 추며 잘 견디어 낸 버드나무는 폭풍이 걷히고 다음날 아침이 되자 상처 하나 입지 않은 모습으로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바우티즈의 인내심
퍼민 아바우티즈(Firkin Abautiz)는 84년세까지 장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도 침착한 사람이어서 그의 긴 생애 동안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몇 사람들이 그의 이러한 온화한 성격이 과연 가능한 지를 시험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30년동안 아바우티즈의 가정부로 일해온 여인에게 만일 그를 화내도록 만든다면, 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녀는 아바우티즈가 그의 침대를 편안하게 꾸며두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 일을 해두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바우티즈는 그의 가정부가 침대를 꾸며두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부는 깜빡 잊어버렸다고만 대답하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그 다음날 밤에도 그 침대는 꾸며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것에 대해 언급하자 그녀는 시큰둥하게 몇 마디 변명할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3일째가 되던 밤, 그녀의 주인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내 침대를 꾸며두지 않았소. 분명히 당신이 그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이겠지요. 내 생각으로는 당신이 그 일을 귀찮게 여기는 것 같소. 그러나 상관없어요. 나는 이미 꾸며지지 않은 침대에서도 잘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 버렸으니까요."
그러한 친절과 상냥한 마음에 감동한 가정부는 이제까지의 실험을 집어치우고 그녀의 주인에게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 가정부를 또다시 용서해주었습니다.
중용
어떤 길을 행진하고 있던 군대가 있었습니다. 길 오른편에는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왼편은 불 바다였습니다. 이 군대가 만약 오른쪽으로 가면 얼고 왼쪽으로 가면 불타버립니다. 가운데는 따뜻함과 차거움이 적당히 얻어지는 길이었습니다.
아라비아인의 수수께끼
어떤 늙은 아버지가 이제는 자기의 유산을 세 아들에게 물려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라고는 낙타 열여덟 마리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열여덟 마리 중에서 자기가 언제나 제일 사랑하고 있던 한 마리는 그냥 끝까지 자기가 갖고 있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머지 유산은 열일곱 마리뿐인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나라의 관례에 따라 그의 큰 아들에 게는 유산의 2분의 1을 분배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에게는 3분의 1을 주어야 했고, 막내 아들에게는 9분의1을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아버지가 열일곱 마리의 낙타를 어떻게 그런 비율로 분배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아버지는 자기가 제일 사랑해서 끝까지 자기가 갖고 있으려고 한 그 한마리의 낙타를 열 일곱 마리의 수에 합하여 전체를 열여덟 마리로 계산하고 분배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큰 아들에게 아홉 마리의 낙타가 분배되고, 둘째 아들에게는 여섯 마리가 주어질 것이며, 막내 아들에게는 두 마리가 분배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그 나라의 관례대로 다 분배하게 되면 자연히 한 마리가 남게 되는데, 그렇게 항으로써 아버지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먼저 자기가 갖고 나서 나머지를 가지고 분배하려고 할 때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유산 분배를 결국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것을 우선 내어놓음으로써 분배를 잘 끝냈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한 마리 남은 것, 곧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낙타를 그냥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아라비아의 수수께끼 이야기를 해 주시던 아버지는 언제나 그 해답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야기를 끝내시곤 하셨습니다.
"네가, 만약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주어버리면, 그것이 결국 다시 네게로 돌아오게 된단다. "
인생의 많은 문제들은 아무런 양보없이 자기 것을 고집할 때 얽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양보와 희생의 정신에서 산다면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얼마나 쉽게 풀려 나가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까?
어록·시·묘사
헤롯궁에서는 칼을 갈아도/ 아기 예수는 무서울 것 없었다네//그 부드럽고 온유하신 아기 예수의 살결이/ 수많은 창검을 녹이고 부수고//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지 않는가/그 평화의 왕국을!
(오병수/ 절규하는 크리스마스)
내게 창을 겨누던 사람들/ 다시 보았을 때/ 온유한 얼굴로/ 아이들처럼 합창하고 있었다.
(김상길/ 다시 보았을 때)
강이 숨을 죽이고 있다. / 기름을 부어 놓은/ 유순(柔順)이 흐른다.
(구상/ 강)
겨울이면 나는 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 유순하게 날개를 접는다.
(김후란/ 눈의 나라)
주여 이 봄은/ 가만히 눈 감고/ 내 마음의 작은 뜨락으로 다가오시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하소서.// ‥‥언 땅, 굳어진 마음 갈피마다/ 당신의 온유함으로 채우시어/ 사랑의 씨앗을 싹 띄우게 하소서.
(서덕석/ 모두가 깨어나고 꽃 피우고 사랑할 때)
눈물 고여오는/ 세월일지라도/ 너처럼 유순히/ 기도하며 살고 싶다.
(이해인/ 도라지 꽃)
주여,/ 주님의 자비롭고/ 온유한 돌보심으로/ 절박하고 진지한/ 이 기도를 들어주소서‥‥‥
(베티 W. 스토펠/ 외로운 이들을 위한 기도)
주님, 나로 온유하게 하옵소서/ 당신은 낮아지셨습니다.
(G.M. 홉킨스/ 12월의 기도)
나야 이대로/ 못 잊는 연보라의 물망초지만/혹시나 잊으려 원하시며는/유순히 편안스레/잊어라도 주어요.
(김남조/ 물망초)
한 여름과 한 가을을/ 저의 성숙한 모래를 위해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감미로운 유희에 포만하여,/ 저의 마음이 온유해져서 죽게 하소서!
(휠더린/ 운명의 여신에게)
설 교 노 트
온유한 사람의 복
마5:5
서론
예수님은 온유한 사람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이나 정치가들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의 원리를 따라 약육강식, 적자생존, 자연도태의 이론을 채택하여 강한 힘을 배양하여 세계를 정복하려고 하는 스파르타식의 교육이념이나 방법을 버리지 아니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철학은 온유한 자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강한 자가 세계를정복할 수 있는 줄 알고 힘을 배양하라고 합니다. 강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는 정복자가 되라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마지막 센테헤레나에서 남겨 놓은 유언과 애화 중에 나는 강력한 무력으로 세계를 석권하였으나 마침내 실패하고 말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온유로 온 인류와 세계를 정복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온유한 사람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교훈은 절대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면 온유한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1. 자기 자신을 자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고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비평가들은 주관도 없고 주체성도 없는 나약자나 비굴한 사람의 사고방식이라고 하나 실은 아닙니다. 잠언 기자는 이르기를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16:32)"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성품과 인격과 생활을 내 힘으로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 자제해 나아가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2. 주 안에서 시험과 환난을 인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기가 죄를 범하고 시험과 환난을 당하는 것은 마땅하거니와 잘못이나 죄가 없이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시험과 환난을 감수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느니라(벧전2:21)"고 하셨습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정의를 위해서 시험과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면 은유한 사람은 내적으로 의에 강한 힘을 소유하고 불의와 싸워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앙 선열들의 삶이었습니다.
3. 겸손하여 양보와 포용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에 대해서 내촌감삼 선생은 세 가지로 풀이를 하였습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숨기고 낮추는 사람이고, 자기 욕심을 따라 살지 아니하고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고, 무력으로 대항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항주의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전론자로 법의 규탄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온유라는 헬라어는 원문에는 푸라에이스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마음이 조급하지 아니하고 너그러운 상태요, 마음이 경솔하지 아니하고 침착한 상태요, 마음이 단기적이 아니라 여유만만한 상태라고 풀이가 됩니다. 진정 온유한 사람은 그의 성품상 또는 처세상에 외형적으로 부드럽고 내면적으로 여유있고 실력있는 사람의 철학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앞에서 복을 누리게 됩니다.
결론
온유한 사람의 복은 어떠한 것입니까?
(1) 첫째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강한 이빨은 쉬부러져도 부드러운 혀는 죽을 때까지 소유합니다.
(2) 많은 지역을 장악해 나아갑니다. 온유한 사람이 많은 땅을 소유합니다(시37:11).
(3) 장차 하나님의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온유한 성도가 되어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유한 자의 복
마5:5
서론
세상에서는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세에서는 '소위 성공한 자가 되려면 온유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이는 타인을 배척, 압박, 비방할 만한 용기와 담대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 이와 같이 하여 성공한 사람을 현세의 행복자라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온유한 자입니다. 사람에게는 배척을 당하고 압박과 비방을 당하며 모욕을 당하고 버림까지 받은 비애의 사람이며 질고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어 마침내 그리스도와 같이 천하를 지배하는 영광의 자리에 앉을 사람입니다.
1. 온유의 뜻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온유"를 의미하는 희랍어 "프라우스"는 들짐승을 잘 길들여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칼빈은 온유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설명하였습니다.
(1) 부드러운 태도로 살며,
(2) 오해에 쉽사리 노하지 않으며,
(3) 보복코자 아니하며,
(4) 자기에 대한 악의에 길이 참습니다.
유대인은 선민과 전통을 자랑하고, 로마인은 권력을 자랑하고, 헬라인은 지식을 자랑하나, 은유한 자는 하나님의 그늘 밑에 거함을 자랑합니다. 온유는 가혹, 독단, 탐욕과 완력에 호소하지 않는 겸비한 힘입니다. 그는 권리보다 의무를 앞세우며, 자기 선전보다 경건한 힘입니다. 그는 권리보다 의무를 앞세우며, 자기 선전보다 경건히 행하며,원수같은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은유는 희랍 윤리 사상의 대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미덕은 양극단의 중간에 있는 중용이다. 일면에는 지나친 극단이 있다. 그 중간에 중용이라는 덕이 있다. 이 중용이, 즉 온유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2. 온유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분노할 만한 때에 분노하고, 해서 안될 때에 분노치 않는 것이 온유입니다.
나 자신에게 욕된 것이나 피해가 온다면 화를 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이기적인 분노는 언제나 죄가 됩니다. 그와 반대로 약자나 무죄한 자와 같이 타인에게 어떤 피해가 미칠 때면 거룩한 분노는 복이 되는 것입니다. 즉, 비이기적인 분노는 이 세상의 위대한 도덕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2) 자기의 모든 본능과 충동과 격정을 억제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완전히 자제된 자는 복이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잘 길들여진 동물, 그리고 통제할 수 있도록 된 동물에서 그 뜻을 찾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하였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다스린 후에야 비로소 남을 다스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배하지못하는 자는 남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3) 자신의 무지와 연약함과 궁핍을 바로 아는 것이 온유입니다.
겸손이 없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바로 자기의 무가치 의식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겸손이 없이는 참된 종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참된 종교는 우리 자신이 연약하고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3. 온유한 자가 받을 복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받을 것이라는 동사는 미완료 시상입니다. 즉, 받고또 받고 하여 자손 만대에 이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후손은 이 땅에서 강성하여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을 것이며(시112:1-3),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기업이 될 것이며(출3:8), 그들이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수1:3).
결론
하나님 이 통치하시는 세상에서는 강한 자가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고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주 안에서 주님의 은총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시37:11
서론
본문 9절에 온유한 자는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와 같으니 그 뜻은 하나님의 도우심만이 진정한 축복인 줄 알고 대망하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한다고 축복하였는데 이 땅은 어떤 땅입니까?
1. 인심을 얻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 소개된 네 가지 땅, 즉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등은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즉, 인심을 말합니다.
강포한 자나 교만한 자는 사람의 마음을 잃어버림으로 결국 외로워지나, 온유한 자는 인심을 얻어 누구에게든지 미움을 사지 않고 너그럽게 대하므로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많은 사람의 인망을 얻어 추대를 받습니다. 또한 남에게 존경을 받고 섬김을 받는 데까지 이르나니 과연 인심을 얻은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온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2. 토지와 재산을 얻습니다.
이는 일찍이 강포한 가난한 족속을 쳐서 물리치시고 온유한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에 입주시킨 일을 배경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이삭의 전기를 보면 이삭은 매우 온유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창세기 26장 12절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때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할 정도까지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3. 새 땅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계시록 21장 1절에 "내가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최후로 가서 영생하도록 살게 될 새 땅의 허락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온유한 백성들이 천국 시민으로 선발되어 새 땅의 주인공 노릇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곳에는 포악한 자나 교만한 자는 얼씬도 못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잠시 사는 것이 아니고 영원 무궁토록 살게 되매 더욱 감격하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1장 29 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항상 온유하도록 하여 인심을 얻고, 토지와 재산을 얻으며 새 땅을얻어야 하겠습니다.
완 성
성 경 활 용
1. 완성에 대한 고찰
(1) 건축 역사
(대하7:11)그 심중에 여호와의 전과 자기의 궁궐에 어떻게 만들고자 한 것을 다 형통하게 이루니라
(2) 하나님의 말씀
(롬9: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였느니라
(3) 율법의 요구
(롬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성도가 완성해야 하는 것
(1) 인내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2) 구원
(빌2:12) 지금 나 얼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3) 선한 말
(렘33:14)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이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4) 그리스도의 법
(갈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5) 시작한 일
(눅14:29-30)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6) 성전 역사
(느6: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7) 모든 도모
(시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3.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
(1) 허락하신 것
(창28:15)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2) 말씀
(삼상3: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3) 작정하신 것
(욥23: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4) 성도의 소원
(시145:19)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로다
(5) 경영하신 것
(사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6) 그의 약속
(행13:33)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관련원어풀이
1. rm'G; 가-마르
(1) 완성하다, 끝내다.
(시57:3, 138:8)
(2) 그만두다, 실수하다.
(시17:10, 12:2)
2. hy:h; 하-야-
(1) 일어나다, ∼이 되다, 있다, 존재하다.
(창1:2, 2:5)
(2) 끝내다, 지나가다.
(단:2:1)
3. hl;K; 칼-라-
(1) 완료되다, 끝마치다.
(출9:32, 잠22:8)
(2) 성취되다, 완성되다.
(스1:1, 단12:7)
(3) 완성하다, 끝마치다.
(창2:2, 6:16)
(4) 결국에 이르다, 끝나다.
(창43:2, 레16:20)
(5) 소멸하다, 파괴하다, 황폐시키다.
(왕하13:17, 시78:33)
4. alem; 말-레-
(1) 채우다, 가득 차게 하다.
(창1:22, 렘51:11)
(2) 차다, 채워지다.
(창6:1,출1:7)
(3) 완성하다, 끝내다.
(창29:27, 욥39:2)
(4) 채우다, 만족시키다.
(욥38:39, 잠6:30)
(5) 성취하다, 이루다.
(왕상8:15, 시20:6)
(6) ∼일을 완전히 하다, 철저히 하다.
(렘4:5)
(7) 채워진.
(아5:14)
(8) 서로 채우다, 협조하다, 연합된 힘으로 공격하다.
(욥16:10)
5. hc;[; 아-사
(1) 만들다, 일해서 생산하다, 제조하다,조립하다.
(창8:6,신4:16)
(2) ∼을 만들다, 산출하다.
(욥15:27, 사7:22)
(3) 임명하다, 지적하다.
(왕상12:31, 렘37:15)
(4) 만들어지다, 창조하다.
(시139:15)
6. jl'x; 찰-레-아흐
(1) 건너가다, 통과하다.
(삼하19:18)
(2) 공격하다, 마주치다.
(삼상16:13, 암5:6)
(3) 잘되다, 번창하다, 성공하다.
(사53:10, 시45:5)
(4) 번성하다.
(겔17:9, 10)
(5) 번영스럽게 성취하다, 잘 마치다.
(대하7:11, 단8:25)
(6) 성공적이다.
(신28:29, 삿18:5)
7. givnomai 기노마이
(1) ∼이 되다, 존재하게 되다, 일어나다, 발생하다.
(요1:15, 8:58)
(2) 일어나다, 나타나다.
(마8:26, 계12:10)
(3) 일어나다, 행해지다, 완성되다.
(막6:2,눅9:7)
8. televw 텔레오-
(1) 종말에 이르다, 마치다, 끝나다.
(마11:1,딤후4:7)
(2) 성취하다, 수행하다, 완성하다.
(롬2:27, 갈5:16)
(3) 명령된 것처럼 하다, 완성하다.
(눅2:39, 계11:7)
9. teleiovw 텔레이오-
(1) 성취하다, 완성하다, 결말을 내다.
(눅2:43, 행20:24)
(2) 완성하다, 어떤 것을 채우기에 아직도 부족한 것을 더하다.
(고후12:9, 요일2:5)
10. suntelevw 순텔레오-
(1) 완전히 끝내다, 끝장이 나다.
(마7:28, 눅4:13)
(2) 성취하다, 완성하다, 일어나다.
(롬9:28, 13:4)
(3) 이루다, 달성하다, 언약을 비준하다.
(히8:8)
11. ejrgavzomai 에르가조마이
(1) 일하다, 활동하다, 수고하다.
(마21:28, 눅13:14)
(2) 장사하다, 매매하다, 사업을 하다.
(마25:16, 계18:17)
(3) 획득하다, 수고하여 얻다.
(요6:27)
12. katergavzomai 카테르가조마이
(1) 가져오다, 산출하다, 창조하다.
(롬4:15, 약1:3)
(2) 일하다, 행하다, 성취하다, 실현하다.
(롬1:27, 2:9)
(3) 준비하다, 예비하다.
(고후5:5)
(4) 정복하다, 압도하다.
(엡6:13)
13. piJmplhvJmi 핌플레미
(1) 채우다, 완성하다.
(마27:48, 행19:29)
(2) 완성되다, 성취되다.
(눅1:20, 21:22)
설교예화자료
톨스토이의 바뀌어진 희망
뛰어난 러시아 작가인 레오 톨스토이 백작은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가 이야기했습니다.
"5년 전에 믿음이 나에게 들어왔습니다. 나는 예수의 말씀을 믿었고, 그로부터 나의 전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내가 바라던 것은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내가 결코 전에는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나의 눈에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으며,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습니다. "
십자가의 완성
우리 주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의 형태에 대해서는 이제껏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몇몇 고대 기독교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유대인들이 속죄양의 머리 위에 손을 엇갈려 포개 놓고 또한 야곱이 그의 손자들의 머리 위에 손을 엇갈려 올려 놓고 그들을 축복했던 것과 같은 자세를 취하게끔 고안된 십자가, 곧 오늘날 우리들이 '안드레 십자가(X)'라고 일컫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이런 교부들은 에스겔의 환상 중에 의로운 자들의 이마에 새겨진 신비의 문자 타우(r)를 그리스도께서 달리셨던 십자가의 형태의 예시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우리가 '안토니우스십자가(T) ' 라고 부르는 T자 형으로 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타당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현재 잘 알고 있는 소위 '라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이 십자가의 형태는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유월절의 어린 양을 번제물로 드릴 때 그 고기를 꿰었던 쇠꼬챙이 모양에서 예시된 형태로서, 지구의 사방을 가리키는 그 네 돌출부는 전우주적인 그리스도 교회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라틴식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리라는 추측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그의 '죄패'가 달려 있었다는 기사에 의해서 강력한 논거를 지니게 되는데, 만약에 그리스도께서 달리셨던 십자가가 위에 언급된 '안드레 십자가'나 '안토니우스 십자가'였더라면 그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축도의 완성
한 번은 플라벨 목사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가지고 설교하였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주에서 다시 오십니다. " 그 설교는 유별나게 엄숙했고, 특별히 저주와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는 말에 대한 설명을 할 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저주를 가지고 저주를 했고, 더 쓰고 슬픈 저주로 하나님의 저주를 내렸습니다. " 그는 축도를 하려고 일어서서는 잠깐 쉬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이 전체 회중을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 있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는 저주가 있을 것입니다. 주께서 임하실 때 말입니다. "
이런 엄숙한 설교는 청중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고 높은 지위의 한 신사는 그의 감정을억제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마루에 쓰러졌습니다. 그 후로부터 이 설교는 53년 동안 기억되었다가 마침내 루크 쇼트라는 남자가 100세가 되어서야 회심하는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욕망은 삶이요, 성취는 죽음이다.
(R. 데멜)
완성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때문이지만 실상 있다고 치더라도 나는 그 완성에 대해 선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거기엔 꿈이 없기 때문이다.
(천경자/ 행복의 이웃에 산다)
사람은 이미 자연이 완성한 것을 재창조하려고 하는 따위의 욕심을 버려야 한다.
(G. 브라크)
바보와 현명한 자는 다 같이 해가 없다. 반만 바보인 자와 반만 현명한 자만이 가장 위험하다.
(J.W. 괴테/ 친화력)
우리들은 여러 가지 물건을 미완성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미완성이란 인간 생활법칙으로서 노력이 필요하며 그리고 인간의 정의의 법칙으로서 자애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에 의하여 정해진 것이다. 다만 신에게만 완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는 완성이 되면 될수록 더욱 신과 인간과의 사이에 한없는 차이가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J. 러스킨)
사람은 착한 일에 대하여 자신을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이대로의 우리는 미완성이며 너무도 많은 부족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까지 가도, 만족할 수 있는 완성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완성이란 불가능한 일이며, 그것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 아무튼 먼 곳에 희미하게 보이는 그 이상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 인생이다. 죽음은 인생의 종말인 동시에 완성의 순간이다. 인생의 벌이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탄생이다.
(I. 칸트)
시작해 놓고 완성을 시키지 않으면 고생은 수포로 돌아간다.
(프랑스 속담)
한 가지 일에 착수하면,중도에서 중단하는 일 없이 열심히 그것의 완벽을 기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완성토록 하라.
(소크라테스)
많은 것을 이해했으나,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M. 크라듀스)
사를, 이 페이지 맨 끝에 「끝」이란 글자를 대문자로 써넣어라. <*이 작가는 미완성의 작품을 못 잊어 하더니 임종에서 아들을 불러 놓고 이와 같이 말했다>
(B. D. 라세페드)
쓸개 탄 포도주로 입술 적셔도/ 끝없이 타는 무한의 목마름./ 잎 피는 소리 귀 기울이면/다 이루었도다'/ 그날의 음성 물살져 온다.
(엄창섭/ 부활송 · 1)
마지막 과실에게 결실을 명하십시오./ 열매 위에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마지막 단 맛이/ 짙은 포도송이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릴케/ 가을 날)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하여 팔을 벌리는 곳.
(타고르/ 동방의 등불)
완성 예정과 완성과의 관계는 시간과 영원과의 관계와 같다.
(C. 드 부프레/ 성찰과 단편)
눈물의 구슬이여, 한숨의 봄바람이여,사랑의 성전을 장엄하는 무등등(無等等)의 보물이여./ 아아, 언제나 공간과 시간을 눈물로 채워서 사랑의 세계를 완성할까요.
(한용운/ 눈물)
우리는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울어도 아직 부족한 데가 있어도/주님의 우심은 세 번만으로 완성하셨습니다. / 네 번 우셔서는 아니 됩니다.
(강대석/ 주님의 우심)
인간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풍성하니/ 곧 물과 식량과 다스릴 동식물과 날짐승/ 그리고 혼자 있음이 좋지 못하니/ 이웃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감으로/ 완성된 인간의 모습
(최호림/ 창세기 별장)
나의 하나님은 나의 순간의 완성이시다. /선택을 위해 나를 항상 멈추게 하신다.
(루우린 토우어/ 나의 하나님)
그러나 어느 땐가 나의 마음속에 있는/ 거룩한 것, 시가 완성되면,// 환영하리라, 오, 음영의 세계의 적막이여!
(휠더린/ 운명의 여신에게)
설 교 노 트
완성하신 예수님
요19:28-30
서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6시간을 계시는 중 남기신 일곱 마디 말씀은 가상칠언이라 하여 우리들의 가슴에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 여섯 번째로 하신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선언이며 완성하신 개선의 선포라고도 할 수 있는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완성해 주셨나를 생각하면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1. 율법의 완성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은 하나님의 경륜과 구약의 예언을 따라 그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고 하셨습니다.
이 율법의 시작은 창3:15에 범죄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입니다.
그림자같던 성전과 안식일이 실재화됐고 상징적이었던 제사장의 제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중의 죽음으로 실현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중심은 제사이며 제사의 중심은 제물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돌아가신 제사장이 되셨으며 단번에 드린 희생 제물이 되셨다는 말씀입니다(히7:26-27).
2. 구원의 완성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절망이나 고통이 아니라 그 관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과 영원히 흐르는 은혜의 강과 다함이 없는 생수의 샘이 터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 얻을 모든 성도들에게 잠겨있던 대문을 열어주시는 데 역사했던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 가운데는 예수님을 찾아나왔던 율법사와도 같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 줄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도덕적인 종교로, 범신론적인 종교로 전락시키는 잘못된 구원관인 것입니다.
구원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 놓으신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고 확실히 선언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었으니 감사하며 천국 시민답게 살아나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비록 죄악 많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천국시민으로서 그 나라의 법을 준수하면서 살아야 될 것입니다(빌3:20).
이제 우리들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주신 구원을 감사하면서 그 나라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사랑의 법을 철저히 지켜 하나님 아버지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속죄 완성의 선언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이 말씀은 요16:33에 "내가 이기었노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승리의 환호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의 죄값을 다 지불해 놓으신 환호의 선언입니다.
죄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죄값을 지불해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는 해결의 보장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죄라는 것을 가지고 있던 찌른 가시는 십자가로 인하여 무력해져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는 해결의 보장이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보기에는 다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피로 말미암아 의롭게 여겨 주시는 의인들이 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7)"
지금도 우리들이 거짓없이 회개하는 모든 죄들은 십자가 위에서 선언하신 대로 다 유서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다 이루었다"
이 위대하신 선언은 율법 하에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 대신 율법을 다 이루었다는 선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로운 계명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되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형제를 사랑하면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완성해 놓으셨습니다. 구원 얻으려고 믿는 것이 아니요, 믿어서 구원을 주셨으니 감사함으로 천국 시민의 자부심을 가지고 용기있게 힘있게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해 놓으시므로 속죄를 완성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깊은 회개가 남아 있습니다.
회개하면 그때 쏟으신 공효가 선언되므로 심판을 면제받고 영생과 기업을 누릴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완 전
성 경 활 용
1. 무엇이 완전해야 하는가?
(1) 길이
(시101:2)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 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겔28: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2) 행위가
(창17: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완전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3) 믿음이
(행3:16)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4) 마음이
(왕상8:61)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하여
(5) 율법을 지키는 것에
(시119:80)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
(6) 지혜가
(잠2:7) 그는 정 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완전한 자에게
2. 완전의 범위
(1)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한다.
(창17: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신18: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삼하22:24) 내가 또 그 앞에 완전하여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하였더니
(2) 끝까지 완전해야 한다.
(겔28: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이 완전하더니
3. 그리스도가 완전케 하신 것.
(1) 율법이나 선지자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하려 함이라
(2) 병 나음
(눅13:32)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4. 왜 완전해야 하는가?
(1) 주의 완전함을 보고자
(삼하22:26)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2) 법도를 지키려고
(왕상8:61)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 하여 오늘날과 같이 그 법도를 행하며
(3) 하나님의 도가 환전하므로
(삼하22:31)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4) 하나님이 길을 완전케 하시므로
(시18: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5) 주를 수종하기 위해서
(시101:6)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에 거하게 하리니 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5. 완전해 지는 방법
(1)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하셔야
(시18: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벧전5:10)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2) 그리스도를 통해서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히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3)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요일4:12)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4)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행하므로
(신5: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5) 마음을 하나님과 화합시킴으로
(왕상8:61) 그런즉 너희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와 화합하여 완전케하여
(6) 가난한 자를 구제함으로
(마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7)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고후7:1)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8)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약2: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은 온전케 되었느니라
(9) 말씀에 순종함으로
(요일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꿈을 아노라
6. 하나님의 완전하심
(1) 공덕
(신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2) 도
(시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3) 행하심
(전3: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4) 의
(시48: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끝까지 미쳤으며 주의 오른 손에는 정의가 충만하였나이다
(시119: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
(1) 은혜와 진리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해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 무죄함
(요8: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 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히1:9)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3) 맹세의 말씀
(히7:28)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케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4) 의
(사11: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8. 완전한 자의 결과는 무엇인가?
(1) 구속과 긍휼함을 받게 됨
(시26:1)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2) 하나님과 동행함
(창6:9)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3) 주의 앞에 서게 됨
(시41:12) 주께서 나를 나의 완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영히 주의 앞에 세우시나이다
(4) 완전한 마음으로 행함
(시101:2)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안에서 행하리이다
(5) 결국은 평안함
(시37:37)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6) 기업이 영원함
(시37:18) 여호와께서 완전한 자의 날을 아시니 저희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7) 복이 있음
(시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8) 길이 곧게 됨
(잠11:5) 완전한 자는 고 의로 인하여 그 길이 곧게 되려니와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관련원어풀이
1. !m'T; 타-맘
(1) 완성하다, 끝마치다.
(시64:7)
(2) 끝나다.
(창47:18, 겔47:12)
(3) 소비되다, 소모되다.
(창47:18)
(4) 끝장에 이르다.
(민32:13, 수5:6)
(5) 완성되다.
(민17:28)
(6) 완성시키다, 완료시키다.
(삼하20:18, 겔24:10)
(7) 끝내다, 그만두다.
(사33:1, 겔2:15)
(8) 완전케 하다, 완성시키다.
(단8:23, 9:23)
2. !ymiT; 타-밈-
(1) 완성된, 완료된.
(욥36:4, 시19:8)
(2) 완전한, 온전한.
(레3:9, 수10:13)
(3) 온건한, 건전한.
(출12:5, 레1:3)
(4) 온전한, 올바른, 책망할 데가 없는.
(신18:13, 시15:2)
3. !T; 탐-
(1) 온전한, 올바른.
(창25:27, 욥1:1)
(2) 고결, 고상,
(시37:7, 아6:9)
4. hl;K; 칼- 라-
(1) 완료되다, 끝마치다.
(출39:32, 잠22:8)
(2) 성취되다, 완성되다.
(스1:1, 단12:7)
(3) 지나다, 가버리다.
(창41:53, 사24:13)
(4) 소모되다, 보내다.
(창21:15, 왕상17:16)
(5) 완성하다, 끝마치다.
(창2:2, 6:16)
4. tylik]T' 타크리-호
(1) 극단, 궁극, 결론.
(욥11:7, 느3:21)
(2) 경계, 한계.
(욥28:3)
(3) 완성, 완전.
(욥11:7, 시139:22)
5. rm'G; 가-마르
(1) 완성하다, 끝내다.
(시57:3, 138:8)
(2) 그만두다, 실수하다.
(시7:20, 12:2)
6. !lev; 솰-렘-
(1) 전부의, 완전한.
(신25:15, 암1:6)
(2) 건전한, 안전한.
(창33:18, 신27:6)
(3) 완성된.
(대하8:16)
7. oJloklhriva 흘로클레-리아
완전함, 건전, 완전한 건강이나 치유.
(행3:16)
8. plhrovw 플레 -로오-
(1) 가득 차게 하다, 채우다, 넘치게 하다.
(마13:48, 요12:3)
(2) 완성하다, 가득하게 하다.
(마23:32, 눅3:5)
(3) 완성하다, 극점에 달하게 하다.
(막1:15, 요7:8)
(4) 성취하다, 수행하다.
(행12:25, 골4:17)
(5) 실현하다, 실행하다, 완성하다, 완수하다.
(마3:15, 눅9:31)
9. tevleio" 텔레이오스
(1) 완성한, 완료한.
(히9:11, 약1:4)
(2) 완전한 것.
(롬12:2, 고전13:10)
(3) 장성한, 성숙한.
(고전14:20, 엡4:13)
(4) 도덕적 의미에서 완전한, 원만한.
(마5:48)
10. teleiovth" 텔레이오테스
(1) 완전, 완성, 완숙.
(히6:1)
(2) 도덕적인, 영적인 완전.
(골3:14)
11. teleiovw 텔레이오-
(1) 완전케 하다, 성취하다, 완성하다, 결말을 내다.
(눅2:43, 행20:24)
(2) 환성하다, 어떤 것을 채우기에 부족한 것을 더하다.
(고후12:9, 요일2:5)
(3) 작정된 목표에 도달하다, 완수하다.
(허7:19)
(4) 예언이나 약속을 성취하다, 끝을 맺다, 완전하다.
(요19:28)
설교예화자료
노크하시는 그리스도
사람들이 무엇으로 완전하여 질 수 있을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마음에 모셔들여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런던의 성 바오로 대성당에 홀몬헌트라는 화가의 유명한 그림 한폭이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은 우리도 혼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세상의 빛"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그림입니다. 왕복을 입으시고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쓰신 채 왼손에는 등불을 들고 못박힌 자국이남아 있는 오른손으로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리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떤 이는 그 그림에서 문에 손잡이가 없는 것은 이 문이 밖에서는 열 수 없고 안에서만열게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고, 그 얼굴의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구원과소명의 빛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보더라도 인간에게 등불을 비춰주시는 분, 광채가 나는 예수님의 얼굴, 손잡이 없는 문을 두드리시면서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나를 조용히 귀 기울이며 서서 기다리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우리 영혼을 찾으시며 굳게 닫힌 인간의 마음을 여시기 위해 문을 두드리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안으로 잠겨진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되며 완전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완전에 이르는 길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그리스도와 같이」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격한 교만의 감정과 헛된 영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은혜를 구하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보입니다. 자기 자신을 복종시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진실로 동참하여 사는 사람만이 더욱 자라나 이 겸손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첫째로는 확고한 목적을 갖고자기 자신을 복종시킨 이후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과 이웃의 유익만을 구하며 사는 것이며,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또한 자신도 죄에 대하여 죽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을 말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우리 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
사랑에 충실한 처녀
남자 친구들을 많이 가진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어느 시기에 그녀에게 매우 적합한 남자 친구가 생기게 되었는데 처녀는 정성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마음을 맡깁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직업적 이유로 잠시 동안 다른 곳으로 떠나가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처녀의 마음이 자기에게 와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떠나 있는 동안 다른 청년들이 처녀에게 접근하여 그녀가 지난 사랑의 일부를 그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바라게 됩니다. 그때 처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은 모두 그의 것입니다. "라고 말하여 거절합니다.
처녀는 청년에 대한 마음에 흔들림이 없이 그가 일을 끝내고 들아올 때까지 정결한 생활을 유지하게 됩니다.
어록·시·묘사
완전이란 것은 아무것도 덧붙일 것이 없을 적이 아니라 아무것도 때어 낼 것이 없을 적에달성되는 것 같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현실에서는 완전한 남자도 여자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뿐이다.
(O. 바이닝거/ 성과 성격)
완전한 도(道)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완전한 논평은 말을 아니 쓴다. 완전한 인자(仁慈)는 인자의 개별적 행위에 기울어지지 않는다. 완전한 강직(剛直)은 남을 비평하지 않는다. 완전한 용맹은 앞으로 밀고 나가지 않는다.
(장 자)
우리는 모든 사람이 불완전하므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하늘이 정한 일이며, 그러므로 인간 생활의 공통된 원칙은 각기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완전이라는 것은 오로지 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며, 사람들은 그에 가까이 갈 수 있을 뿐이다.
(J. 러스킨)
잡초가 없는 정원은 없다. <*세상에 완전 무결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
(영국 속담)
완전무결은 신의 본성이다. 완전무결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J. W. 괴테)
완전하려는 욕망은 인간의 마음을 괴롭히는 어떤 질병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다.
(퐁탄/ 프랑스 상원을 대표하여 나폴레옹에게 행한 연설)
나무도 크게 자라야 소를 맬 수 있다. < * 완전해야만 쓸모가 있다는 뜻>
(한국 속담)
완전에 이른다는 것은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S. G. 콜레트)
세상에 '완전'이란 있을 수 없다.
(A. 아인슈타인)
완전은 한 가지 중요한 결점을 갖고 있다. 즉 그것은 어리석어지기 쉽다.
(W.S. 몸/ 요약)
완전무결한 사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란, 그 신체의 건강은 절식 ·금주 ·정결로 말미암아 쇠해지지 않고, 마음은 경험과 고금(古今) 인사가 말한 가장 귀중한 사상에서 배운 지혜의 풍부한 곳간이며, 그 상상력은 정결하고 아름다운 모든 사물을 그린 것으로 만든 미술관이며, 그 양심은 자기와 화하고 신과 화하고 세계와 화하고,그 영혼은 신령이 자리잡기에 적당한 사원이라고 인정하는 그런 사람이다.
(J. 팔리)
완전무결을 하나의 꿈처럼 얘기하는 자들의 대다수는 그것(완전무결)이 실현되면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J.S. 밀/ 완전무결에 대한 강연)
신의 절대적 가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인간 자신은 본질적으로 유한하고 불완전한 것이다. 인간은 원죄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며, 때때로 완전성을 띤 행위를 성취할 수도 있지만 그 자신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D. 흄)
한층 더 높은 곳의 세계는 별도로 하고 이 하계에서는 산다는 것이 변화한다는 것이며 완전하다는 것은 몇 번이나 변화해 왔었다는 것을 뜻한다.
(J.H. 뉴먼/ 그리스도교 교의의 발전)
재산이나 안식이 아니라, 성장과 생성이 문화를 생각하는 완전무결의 특성이다.
(M. 아놀드/ 문화와 무질서)
송곳니를 가진 호랑이는 뿔이 없다. <*하나가 무엇이나 다 갖출 수는 없다는 뜻>
(한국 속담)
완전은 시간의 아들이다.
(J. 홀 주교/ 작품집)
봉산(鳳山) 참배는 물이나 있지. < *조금도 결점이 없다는 말>
(한국 속담)
극상이란 드물고, 완전한 것보다 더 찾기 힘든 것은 없다.
(키케로/ 우정)
나귀를 구하매 샌님이 없고 샌님을 구하매 나귀가 없다. < *무엇이나 모든 것을 완전히 구비하기는 힘들다는 말>
(한국 속담)
우리는 참다운 아름다움을 보고/ 짧은 기간 안에서도 인생은 완전해질 수 있다.
(존슨/ 고상한 인품)
나의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시요/ 나는 참으로 그를 경외한다.
(루우린 토우어/ 나의 하나님)
모든 완전함이 오직 한 번 나타나는 걸/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 당신이 밟고 가시는 바로 그 먼지가/ 여기에 아름다움을 만듭니다.
(조지 허버트/ 시들하고 무딤)
여자는 가장 여자다울 적에 가장 완전하다.
(W. E. 글래드스턴)
설 교 노 트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하였더라
대하25:2
서론
본장은 아마샤 왕의 역사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를 한 마디로 평하기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아니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옳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일에도 결점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즉, 잘한 듯 하면서도 잘못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복수한 일에 대하여
그가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여서 복수한 일은 당연한 일이요, 부모에 대한 효도심이요,공의에 입각한 정의의 징계인 듯하여 잘 한것 같으나 자신이 집권자이기 때문에 관용을 베풀고 잘 포섭하여 자기 측근으로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그 자녀들을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신24:6) 살려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노중에라도 자비를 베푼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 군대를 고용한 일에 대하여
그가 군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천부장 백부장을 세우고 20세 이상 전투에 가담할 용사 30만 명을 모집하여 외침에 대비한 것은 참으로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 숭배를 중심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돈을 주고 10만 명이나 고용하였던 일은 잘못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시지 않는 군대 따위는 10만 명이 아니라 일백만 명이라도 아무 힘이 못되고 오히려 방해거리가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3. 포로 학살에 대하여
그가 담대히 힘을 얻어서 적대 국가인 에돔과 세일을 친 것은 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외적을 바로 쳐서 제압하지 못하면 안정된 정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잘한 일이었으나,그때에 그가 전쟁 포로 일만 명을 끌고 와서 높은 바위 꼭대기에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몸을 부숴지게 한 것은 너무나 잔인한 일이기 때문에 온전하지 못한 처사입니다.
아무리 포로라고 하여도 그들은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포로를학살하였으니 어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4. 세일의 우상을 가져온 일에 대하여
에돔과 세일을 상대로 하여 일단 싸웠으니 그 결과 승리를 거둔 것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돌아오면서 세일의 우상을 가져다가 섬긴 것은 큰 죄악이었습니다.
이방 우상의 수입은 멸망의 화근이 되는 것입니다. 아합이 이세벨을 취하여 두로의 우상을 수입한 것은 참으로 잘못한 일입니다. 세일의 우상은 자기 군대를 도와서 승리하도록 하지도 못한 전혀 무가치한 우상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상을 수입한 것입니다.
결론
한편으로 보기에는 잘하는 것 같아도 잘못하는 일이 많으며, 겉보기에는 잘하는 것 같으나 속으로 보면 잘못된 일이 많은 법이니 인간이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해지도록 노력하면서 오직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시26:1
서론
본문에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라고 한 말은 다윗의 시의 한 구절입니다. 그는 완전을 바랍니다. 완전성은 성도들의 성격입니다. 어떻든 간에 성도들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1.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자세
예수님께서는 산상 보훈에서 마태복음 5장48절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괌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완전은 신앙의 밑바닥에 있으며, 신앙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므로 하나님과 사귀려면 하나님의 완전함을 배우고 간직해야 될 일입니다.
동질이 아니면 서로 사귈 수가 없으니 하나님과 사귀일 때 그의 완전성을 배우고 닮아서 같은 위치에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하나님의 완전성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으로서의 완전을 기해야 할 일이요, 또 목표를 거기 두고 노력해야 합니다.
2.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태도
인간적인 올바른 의도에는 구원의 가치가 없습니다. 사람은 본래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완전의 목표점에 도달하려면 믿음의 문에 들어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니 우리는 그 진리를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할 것 뿐이요, 우리의 마음과 삶에다 허용하는 것만큼 '완전'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향하는 데서 바르게 지어지고, 생활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아름답고 거룩하게 형성되어집니다.
이로써 우리의 믿음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도의 올바른 태세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즈러지거나 동요됨이 없이 하나님만 믿고 바르게 나아감을 이르는 것입니다. 일정하고 변하지 않는 태도로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억울함을 당할 때에도 신앙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지혜있는 자는 억울한 일을 당한 때에도 고요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판단을 구합니다.
시편 109편 4절에는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고하였습니다.
결론
사람이 자기 완전을 자랑하여 교만할 수는 없으나, 완전하기를 목표로 하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때 여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욕 심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욕심
(1) 재리
(막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2) 정욕
(롬1:24)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약4:3) 너희가 얻지 못함을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3) 사욕
(롬6:12)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4) 식욕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2. 욕심이 왜 생기는가?
(1)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아서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버리고
(2) 부하려고 하여서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3) 유혹에 이끌려서
(딤후3:6)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3. 욕심을 낸 결과
(1) 결실치 못하게 된다.
(막4: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2) 성령을 거스린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3) 시험과 올무에 빠진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4) 죄와 사망을 낳는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5) 썩어지게 된다.
(엡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4. 욕심을 내지 않는 방법
(1)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하게 산다.
(딛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2)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
(딛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5. 욕심을 없애는 방법
(1)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2)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3) 여호와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해야 한다.
(민15:39)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5) 피해야 한다.
(딤후2:22)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관련원어풀이
1. vp,n< 네폐쉬
(1) 숨.
(욥41:13)
(2) 냄새, 향기.
(잠27:9)
(3) 영혼, 생명.
(창35:18, 왕상17:21)
(4) 정신, 마음.
(창34:3, 미7:1)
(5) 의지나 의도
(창23:8, 대상28:9)
(6) 이해와 사고의 기능.
(시139:14, 잠19:2)
(7) 욕망.
(사5:14)
2. hw;a; 아-와-
(1) 바라다, 원하다.
(신12:20, 시132:13)
(2) 바라다, 원하다.
(민11:4, 잠23:3)
3. hy:a}T' 타아와-
(1) 소원, 바람.
(시10:17)
(2) 욕망, 정욕.
(민11:4, 시78:29)
(3) 즐거움, 욕망의 대상.
(창3:6, 욥33:20)
(4) 명예, 장식물.
(창49:26, 잠19:22)
4. ejpiqmevw 에피두메오-
(1) 마음을 두다, 바라다, 동경하다, 열망하다.
(마13:17, 눅15:16)
(2) 절실히 바라다, 갈망하다.
(마5:28)
(3) 몹시 바라다.
(롬13:9)
5. ejpiqumiva 에피두미아
(1) 간절한 욕망, 열망.
(눅22:15)
(2) 비정상적이고 난폭한 욕망, 탐욕.
(막4:19)
(3) 비순수한 욕망, 정욕.
(롬1:24)
(4) 동경, 바램.
(빌1:23, 살전2:17)
(5) 욕망의 대상,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요일2:16, 17)
설교예화자료
삼 년 고개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삼 년 고개를 아주 조심스럽게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개는 그곳에서 넘어진 사람은 삼 년밖에 살 수 없다고 하여 삼 년 고개라 불리워졌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신경을 곤두세워 천천히 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그만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할아버지는 식음을 전폐하고 삼 년 이상 살 수 없는 한탄 속에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한 청년이 걱정도 팔자라면서 열 번 넘어지면 삼십 년 더 살 것이 아니냐고, 그럴듯하게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노인장은 갑자기 힘이 용솟음치는 것같았습니다. 그는 스무 번 넘어지면 육십 년, 서른 번 넘어지면 구십 년을 더 살 수 있게 되리라는 욕심에서 수십 번 구르고 또 굴러넘어졌습니다. 그러다가 그 노인은 너무 많이 굴러 떨어져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자와 곰과 여우
사자와 곰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기 사슴 한 마리가 장총장총 숲속을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팠는데, 이녀석은 내가 차지해야 되겠군."
사자가 기뻐하며 입맛을 다셨습니다.
"안돼, 이건 내꺼야."
곰도 질새라 달려들었습니다.
"버릇없이 굴면 가만히 두지 않겠어."
화가 난 사자가 호통을 치자 잔뜩 배가 고팠던 곰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마침내 곰과 사자는 아기 사슴을 놓고 싸움을 했습니다.
서로가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싸웠으므로 나중에는 둘 다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여우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지!"
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쓰러져 있는 곰과 사자를 보았습니다. 그 옆에는 아기 사슴이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이내 상황을 눈치채고 깔깔 웃으며,
"하하, 그럼 이 아기 사슴은 내가 해치워야겠군!"
하고는 아기 사슴을 덥썩 물고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힘 이 빠진 사자와 곰은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여우의 뒷모습을 보며 사자가 중얼거렸습니다.
"우리는 마치 여우를 위해 싸운 꼴이 되었구나."
그러자 곰도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래,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했지 뭐냐!"
욕심꾸러기 사자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몹시 굶주린 사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자는 풀섶에 잠들어 있는 토끼를 발견하고는,
"이제야 먹이를 하나 잡았군!"
하면서 침을 꿀꺽 삼키고 토끼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갔습니다.
그때 마침 조금 떨어진 숲속에 사슴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토끼보다야 사슴이 좋겠지. 암 그렇고 말고!"
사자는 다시 몸을 돌려 사슴을 쫓아갔고 그바람에 잠이 깬 토끼는 깜짝 놀라서 도망쳤습니다.
사자를 본 사슴은 잡히지 않으려고 긴 다리를 힘차게 뻗어 도망을 쳤습니다. 사자는 멀리까지 쫓아갔으나 끝내 사슴을 붙잡지 못하고 힘없이 돌아섰습니다.
"에이! 그냥 토끼나 잡자."
사자는 아까 토끼가 잠자고있던 곳으로 돌아왔으나 토끼는 이미 도망을 치고 없었습니다.
사자는 그제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한탄하였습니다.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다 잡은거나 마찬 가지인 먹이를 놓치다니‥‥‥‥
목숨을 앗아간 황금
어느 여름 날 오후, 증기선이 승객을 빽빼히 실은 채 미시시피 강 위를 미끄러져 달리고있었습니다.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이 캘리포니아로부터 오는 광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암초에 부딪쳐 파손되고 말았습니다. 순식간에 갑판은 수라장이 되었고, 구명정은 있었으나 겨우 승객의 4분의 1 정도만 맬 수 있는 수여서 나머지 사람들은 옷을 벗어 던지고 겨우겨우 헤엄쳐 육지에 닿았습니다. 그때 마지막 한 사람이 배에서 떠나고 나자 또 한 사람이 갑판 위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돛대를 잡고서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물 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후에 그의 시체를 건져 본 결과 그는 다른 승객들이 다 육지로 혼비백산 헤엄쳐가는 틈에 그들의 소지품을 뒤져 금덩어리 주머니를 자기의 허리춤에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황금의 무게만큼 빨리 빠져들어가 목숨을 잃어버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다시 네 영혼을 찾으리니‥‥‥‥를 생각하게합니다.
다리 위의 개
잔칫집에서 큰 고깃덩어리를 얻은 개가 있었습니다.
"빨리 가서 아이들과 나누어 먹어야지."
자식들을 생각하며 서둘러 집을 향해 달리던 개가 개천의 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다리의 중간쯤 왔을 때 우연히 다리 밑을 보니 개천 속에도 어떤 개 하나가 입에 큰 고깃덩어리를 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개가 물고 있는 고기가 자신의 것보다 더 커보였습니다.
"건방진 녀석, 저것도 빼앗아야지!"
욕심이 생긴 개는 물 속의 개를 향해 사납게 짖었습니다.
"컹! 컹!"
"첨벙 !"
입을 벌리고 컹컹 짖는 순간 물고 있던 고기가 물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개천 속에 있는 개의 입에서도 고기가 없어지고 멍하니 서 있는 개가 나타났습니다.
그제서야 그 개가 물 속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였다는 것을 깨달은 개는 힘없이 그곳을 떠났습니다.
욕심의 열매
땅을 좋아하는 욕심쟁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땅을 샀습니다.
임금님이 소문을 듣고 하루는 찾아와
"하루 종일 말을 달려라. 네가 돌아 온 땅은 그저 다 주마."고 하였습니다.
욕심쟁이는 새벽에 떠나 쉬지 않고 말을 달렸습니다. 저녁 때가 되자 딸도 피곤하고 사람도 피곤하여 모두 정신을 반쯤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쟁이는 끝까지 쉬지 않고 말을 달렸습니다. 동네에 들어와 사람들을 보았을 때 욕심쟁이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힘이 풀려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욕심쟁이의 무덤에는 이런 말이 씌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땅은 이 나라의 절반이나 될 뻔하였으나 지금 그의 땅은 한 평의 무덤밖에 없습니다. "
다리 위의 염소
어느 시냇가에 좁다란 통나무 다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통나무 다리 한쪽에서 염소 한 마리가 다리를 건너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맞은편에서도 염소 한 마리가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두 마리의 염소는 통나무 다리의 가운데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봐, 길을 비켜. 내가 먼저 건널테니까!"
한 염소가 외쳤습니다. 두 마리가 건너가기에는 통나무 다리는 너무 비좁았으므로 염소들은 서로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며 뿔을 맞대고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염소들은 둘 다 계곡의 시냇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두 욕심쟁이의 소원
전설에 의하면, 한 늙은 성자가 여행을 하는 도중에 두 사람의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탐욕스럽고 욕심많은 심술쟁이었고, 다른 사람은 시기심이 많고 질투심이 맡았습니다. 그 성자는 그들과 헤어지면서 그들에게 선물을 주기로 약속했는데 먼저 원한 사람의 소원이 성취되면 다른 사람은 그것의 두 배를 얻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탐욕스런 사람은 그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두 배의 몫을 차지하고 신었기 때문에 그의 친구가 자기의 두 배를 얻는다는 생각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시기심이 많은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둘은 모두 다 서로 다른 사람이 먼저 소원을 말하기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 시기심 많은 사람은 먼저 말하지않으면 죽이겠다는 동료의 협박에 의해 먼저 말하게 되었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먼저 소원을 말하지. 나의 소원은 한쪽 눈이 실명되는 것이야."
즉시 그는 한 눈이 멀었고 그의 동료는 양쪽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원숭이의 욕심
아프리카의 토인들은 원숭이를 잡아 유럽에 판매하는데, 그들은 원숭이를 잡을 때 원숭이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즉, 큰 푸데자루에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를 넣어두고, 그 먹이를 꺼내기 위한 구멍을 원숭이손이 간신히 들어갈만 하게 내둡니다. 그러면 원숭이는 그 먹이를 알아차리고 와서 그 구멍으로 어렵게 주먹을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욕심껏 한웅큼 쥡니다. 그러나 움켜쥔 주먹은 자루 주둥이보다 크기 때문에 얼른 빼낼 수가 없습니다. 원숭이는 먹이를 쥔 채로 손을 빼내려하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숭이들은 음식을 손에 넣으면 결코 놓지 않는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욕심 때문에 어리석게 자기 자신이 잡혀 죽고 맙니다.
어록·시·묘사
사람의 마음에 욕(欲)이 있으므로 그 마음의 본체의 영묘(靈妙)한 것이 잠겨져서 사사로운 정(情)에 구속되었음을 능히 유통하지 못하여서 천리(千里)가 어두워지고, 기운도 또한 막히어서 인륜(人倫)이 패하여지고, 천지만물이 생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광조/ 정암집)
욕심을 같이 하는 자는 서로 미워하고, 사랑을 같이 하는 자는 서로 친하다.
(전국책)
탐욕스러운 자는 기대어 오는 사람에게 등을 돌린다.
(메난드로스/ 단편)
충분한 데도 적다고 하는 사람은 무엇에든 만족할 줄을 모른다.
(에피쿠로스/ 단편)
올바르게 행하는 자는 욕심에서 벗어난다. <*행위를 올바르게 하려는 인간은 사람의 정에 역행하게 된다는 말>
(한비자)
농()나라를 얻으면 촉(蜀)나라도 바란다. <*욕심은 한정이 없다>
(후한서)
사욕은 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일이 있지마는 그보다도 훨씬 용이하게 신을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부서진다.
(A. 아우구스티누스)
고비(高飛)의 새는 미식(美食)으로 죽는다. <*인간은 이욕(利慾) 때문에 몸을 망친다>
(오월춘추)
아무도 자기보다 더 많이 가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함으로 써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더 가질 경우 그가 느낄 부러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어느 방앗간 주인도 자기 물방아로 물을 끌어간다.
(J. 플로리오/ 최초의 과실)
욕심쟁이는 황금의 알을 낳는 닭을 죽인다.
(이솝 우화)
욕심쟁이가 황금을 갖는 것이 아니라 황금이 욕심쟁이를 갖고 있는 것이다.
(비온)
진정한 의미에 있어 부자가 되고자 하면 가진 것이 많기를 힘쓸 것이 아니라 욕심을 줄이기에 힘쓰라. 사람이란 욕심을 억제하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부족과 불만을 면할 수 없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자기가 가진 것을 충분히 자기에게 어울리는 부(富)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는 세계의 주인이 되어도 불행하다.
(에피쿠로스/ 단편)
욕심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비근한 것으로는 식욕 색욕이 있고 그보다 크다고 할는지 심한 것이라 할는지, 물욕이 있다. 금전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 말이다. 이보다 고도한 것이 명예욕이요, 또 그보다 더욱 큰 것이 권욕(權慾)이다. 욕심 중에 이 권력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가장 왕성하고 가장 추잡하고,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이희승/ 지조)
멧돌 잡으러 갔다가 집돌 잃었다. < * 먼 데 것을 탐내다가 이미 가졌던 것을 잃었다는 뜻>
(한국 속담)
세상에는 부정 ·불의를 몰라서 행하는 사람보다도 알면서 행한 사람이, 또 행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 분명하다. 알면서도 왜 이런 짓을 하느냐 하면, 그것은 과도한 욕심으로 인하여 일시 양심과 양식이 질식되고 말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희승/ 지조)
인색한 사람의 재물은 일몰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즐겁게 할 줄 모른다.
(데모필로스/ 격언집)
욕심은 많은 고통을 부르는 나팔이다.
(팔만대장경)
이상적 만족의 생활은 금전의 많음에 있지 않고 욕심의 적음에 있다.
(에픽테토스)
낙타는 뿔을 갖고 싶어했기 때문에 귀를 잘리었다.
(아히칼)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 탓이로구나. 풀잎 끝에 잠시 맺혔다 사라지는 그 같은 영화를 탐하는 욕심 탓이었구나. < * 세조가 승하하실 때 그 비참한 죽음을 보고 신숙주가 느낀 것>
(장덕조/ 광풍)
하늘이 칠보(七寶)를 비처럼 내리어도 욕심은 오히려 배부를 줄 모르나니, 즐거움은 잠깐이요, 괴로움이 많음을 어진 이는 이것을 깨달아 안다.
(법구경)
먹고도 굶어 죽는다. < *욕심이 많은 사람을 보고 하는 말>
(한국 속담)
욕심은 만족을 모르는 불가사의이다.
(팔만대장경)
마음을 기르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이지함/ 토정집)
허술한 지붕에는 비가 오면 새듯이, 닦이지 않은 마음에는 탐욕이 스며든다
(법구경)
탐욕스러운 사람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더욱 탐욕스러워 질 것이다. 탐욕은 노경과 모순되지 않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감정들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감에 따라 더욱 탐욕스러워질 것이다.
(A. 트롤러프/ 상속자 랠프)
탐욕이 많은 사람은 금을 나눠 줘도 옥(玉)얻지 못함을 한하고, 공(公)에 봉하여도 제후(諸候) 못됨을 불평한다.
(채근담)
활 하나에 줄 두 개를 다는 자는 강하게 쓰긴 해도 똑같이 쏘진 못함을 당신이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엘리자베드 여왕/ 제임즈 6세에게의 서한)
명예를 탐내고 이익을 욕심내어 허덕이던 자, 그 마음 채우지 못하고 헛되이 백발일세.
(普濟導者語錄)
살찐 황소는 마구를 바라고, 말은 밭갈기를 원한다.
(호라티우스/ 서간집)
사람은 욕심이 많으면 의를 결하고, 걱정이 많으면 슬기를 다치고, 두려움이 많으면 용기를 축낸다.
(회남자)
욕망이 적을수록, 평화는 많아진다.
(T. 윌슨/ 경건의 금언집)
성인들은 크게 자란 아이에 불과하다. 우리 욕망은 아이들의 것처럼 변덕스럽고 간청이 많고 헛짓이 많다.
(J. 드라이든/ 사랑을 위한 모든 것)
우리는 성취에서보다는 오히려 욕망에서 살고 있다.
(G. 무어/ 작별)
천리의 길은 아주 넓고 커서, 조금이라도 마음을 여기에 두면 가슴속이 문득 커지고 밝아진다. 인욕의 길은 매우 좁아서, 조금이라도 발을 거기에 디디면 눈앞에 모두 가시 덤불과 진흙탕이 된다.
(채근담)
달성된 욕망은 욕망이 아니라, 불에 타고 남은 재와도 같을 뿐이다.
(W. 롤리 경/ 사랑의 시는 사랑이 아니다)
마음은 작은 것이지만 욕망은 큰 물건이다. 한마리 솔개도 저녁식사에는 충분치 않고, 게다가 세상 전체도 그것에는 흡족치 못하다.
(F. 퀼즈/ 상징)
탐욕은 항상 만족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까지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무한한 노력 속에서 개인을 탕진시키는 바닥 없는 항아리이다.
(E.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탐욕은 눈이 먼 힘이어서 세상의 어떤 논증을 동원해도 그가 욕심 있다고 납득시킬 수가 없다.
(T. 윌슨/ 경건의 잠언집)
가장 적은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신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소크라테스)
돈이 불어남에 따라, 더 큰 부자에 대한 걱정과 욕심이 따라온다.
(호라티우스/ 송시집)
욕심이 지나쳐서 망하는 자는 있어도 욕심이 없어서 위급에 몰리는 사람은 없다.
(회남자)
재산의 수준을 높이기보다 욕망의 수준을 낮추도록 애쓰는 편이 오히려 낫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능력이 제한되고, 욕망이 무한한 인간은 천국을 기억하고 있는 타락한 신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A.D. 라마르틴/ 시적 명상)
욕심꾸러기는 죽을 때까지 아무 일도 잘 해놓지 못한다.
(T. 풀러/ 금언집)
큰 집 천간이 있다 해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자 뿐이요, 좋은 논밭이 만경(萬頃)이나 되어도 하루 먹는 것은 두 되뿐이다.
(명심보감)
말 등을 부러지게 하는 것은 마지막 깃털이다.
(T. 풀러/ 잠언집)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함은 그래도 물고기를 얻지 못할 뿐 후한은 없지마는, 만일 당신이 하려는 방법으로 당신의 욕구를 간구한다면 죽도록 애쓴 뒤에 반드시 화가 따를 것이다.
(맹 자)
욕심난다 하고 몹쓸 일 하지 마라/ 나는 잊었어도 남이 양자 보느니라/ 한 번을 악명을 얻으면 어느 물로 씻으리.
(김상용)
진정한 도리를 지키면 마음이 만족하고, 물욕을 쫓으면 마음도 변한다.
(주흥사/ 천자문)
너의 운명은 필사(必死)요, 너의 욕망은 필멸(必滅)이 아니다.
(오비디우스/ 변형담)
지나친 권력욕은 천사를 타락시켰고, 지나친 지식욕은 인간을 타락시켰다.
(F. 베이컨/ 수필집)
명예에의 열망, 그것은 모든 위대한 인물의 본능적인 열망이다.
(E. 버크/ 미국의 세제에 관한 연설)
시서(詩書)를 묻고 들어 의리를 잃지 말며/ 생산 작업하여 증상(蒸賞)을 끊지마라/ 이 밖 에 범람(泥濫)한 뜻이란 부디 먹지 말아라.
(김수장)
공명을 즐겨 마라 영욕(榮辱)이 반이로다/ 부귀를 탐치 마라 위기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이 한가커니 두려운 일 없세라.
(김삼현/ 청구영언:여항육인)
태양이 불길한 밤의 반려인 어두움을/ 갈라놓듯이 그대는/ 단 하나의 눈짓으로 인간에게/ 뿌리 박힌 욕심을 물리치나니/ 거만함의 자식인 여러 악덕들/ 그 두려운 무리 또한 물리치도다.
(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리며)
욕심의 긴 나팔대/ 돼지같이 휘두르며/소리소리 질러봐야/ 위선뿐인 짐승소리/ 사람값/ 팽개친 무리/ 곧 갈 곳은 부엌 아궁‥‥‥
(오동춘/ 우리 등불을 들자)
지구보다/ 무거운 그림자에서/ 구제되려면/ 욕심을 줄여야 할텐데.
(김구용/ 송 · 74)
나는 명경같이 살고 싶어 그럽니다/ 나는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럽니다/ 내가 욕심 낸 남의 물건이 나를 조금도 부유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향아/ 다만 악에서 구하윰소서)
점차 분별력이 흐려진 이브의 눈/ 볼수록 먹음직하고 탐스라운 욕망의 열매들/ 그분 몰래 뚝 따먹다/ ‥‥선악과를 먹은 그때부터/ 선악의 눈이 열린 인간에게 따르기 시작한 고통/ 자꾸만 높아지고 많이 가지려는 욕심/자꾸만 이웃을 탐하고 빼앗다 보니/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최호림/ 창세기 · 별장)
추운 겨울 모진 북풍 바람 맞으며/ 얼어터진 손으로 갯펄을 파면서도/ 슬프지만 않았던 것은/ 너 만큼은 이 지긋지긋한 갯가를/ 떠나살게 할 욕심이 있어서였지.
(박용주/ 딸에게)
올 때마다 가슴에 쌓이는 건 설움이요/ 돌아서는 발걸음은 납덩이 인데/ 키워주신 세월보다/ 부대끼며 살아온 세월이 더 많은데/ 날더러 여기와 늘 울으라는 건/ 아버지의 욕심이지요.
(박용주/ 하직 인사)
그러나 그 주위에서는/ 머리를 탐욕으로 질근 동여맨 자들이/ 자꾸만 만나기 싫어서 자꾸만/ 생선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사모하여/ 금물을 부어 송아지를 만든다.
(이승록/ 불기둥과 구름기둥)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육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도종환/ 접시꽃 당신)
보석도 능히/ 폐지같이 버릴 수 있고/ 황금의 아방궁/ 무덤을 떠나듯이/ 그렇게 욕심없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라.
(황금찬/ 말씀대로)
누군가의 마음 위에 붙지만/ 도착하면 쓸모 다하고 버려지는 우표처럼/ 나도 누군가의 영혼을/ 당신께로 보내는 작은 표시가/ 되고 싶음은/ 아직도 욕심이 많음인가요.
(서정윤/ 기도의 편지)
그만 수다스러운 제 입을 다물게 하소서/ 한 없는 욕심으로 구하고 또 구하던 것을/ 알고 보니 이미 받은 것이더이다.
(서덕석/ 다시 드리는 기도)
오히려/ 냄새나는 몇 덩이 항이 아니다/ 뱃속에서 덧없이 삭아 없어질/ 배부름의 모두가 아니다/ 욕망이 아니다/ 편리가 아니다/ 두둑한 월급봉투나/ 혼자서 은밀히 즐기는 소유도 아니다.
(서덕석/ 아니다)
호주머니를 뒤집어/ 한 움쿰의 욕심을 바다에 뿌렸다/ 목선 뱃머리에서
(류재봉/ 목선에서)
욕심을 놓고 돌아서면/ 사방에서 소리치는 안개
(강계순/ 안개 속에서)
한창 때엔/먼 것도 그저 가까울 뿐/끌어 앉히는 욕심이더니/ 못 끊을 인연조차 멀찍이 밀어놓고/ 섭섭찮게 바라보느니
(김현숙/ 사랑법)
내가 지난날 얼마나 당신을 방해했으며/ 또 얼마나 당신을 의심했던가요? / 그리고 나는자아의 욕심을 버리지 않았으니/ 당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는 주님의 눈에 눈물만 심어 드렸습니다.
(마르다 스넬 니콜슨/ 심판의 자리)
#설교 노 트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렘3:5
서론
"이루었다"라는 말의 뜻은 일이 성취되었다, 또는 성공하였다는 뜻입니다.
좋은 일에 대한 성취는 당연히 성공을 얻은 것으로 좋은 것이나, "욕심이 이루었다"는 말은 좋지 못한 일이 잘 되었다는 뜻이니 결국 정상적 입장에서 살필 때에는 실패하였다는 뜻입니다.
욕심은 사람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욕심을 이루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성공한 듯한 실패자들
욕심을 이루는 일은 결국 실패자입니다.
성경 역사상 이런 류의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들은 다 성공한 듯한 실패자들입니다. 선지자 발람은 발락의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저하고 두려워서 여호와께 물었더니 만류하셨는 데도 자기 욕심을 이루려고 고집하여 결국 이룬 것 같으나 실패하고 패망한 선지자의 추한 이름을 남겼습니다.
르호보암 왕이 즉위 후에 정책을 세울 때에 노인 고문들의 충언을 듣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젊은 보좌관의 말만 들었습니다. 결국 자기 욕심을 채우는 성공자가 된 듯하나 북쪽 10지파가 이탈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별도로 세웠으니 그는 막대한 실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과 싸울 때 좋은 짐승은 자기를 위하여 살려두었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도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2. 욕심을 이루려는 자의 내용
이는 경건한 모양만 가지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도리어 경건한 모양을 가지지 아니한 악인보다 죄가 더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면 결국 패망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바르지 못한 까닭입니다.
(1) 사람 앞에선 속인 기만입니다.
사람을 속이는 일은 잠깐 동안은 성공하지만 오래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잠시 동안에 한두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전체를 다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는 기만은 결국 폭로되므로 큰 손실을 보게 됩니다.
(2) 하나님 앞에 속임수는 진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진실이라야 통합니다.
사람의 마음속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신데 어찌 감히 속일 수가 있겠습니까? 미련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체가 보이시지 않으니 하나님은 없다고 생각하거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일을 모르실 것으로 알고 진실하지 못해도 통과될 줄 알고 있으니 이것은 이중적인 미련인 것입니다.
결단코 속일 수 없으며 속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속이려는 미련이 있다면 이는 인간의 욕심이니 이런 욕심이 이루어져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거짓된 생각이나 쓸데없는 욕심은 결국 이루어져도 범죄요, 실패인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도자가 두지 말 것
신17:16-17
서론
하나님께서는 왕된 자에게 검소하고 절제있는 생활을 원하셨습니다. 왕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명령하시기를 너무 큰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약1:15). 지도자나 평민이나 욕심은 금물입니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청렴결백해야 합니다.
1.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l6절).
여기서 말하는 말은 군마를 말하는 것입니다. 군마는 그 나라의 군사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만 의지하는 불신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군사력의 증강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자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원하십니다. 소돔성은 군사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니고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군마를 구입하려면 애굽에 가서 구해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교역도 철저하게 금하셨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군사력을 의지하게 되면 신앙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세의 상징인 군마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여자를 많이 두면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여자에게 미혹되면 하나님보다 그 여자를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정욕에 눈이 어두우면 타락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단체의 지도자가 정욕의 포로가 되어 매일 같이 주색 잡기나 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지 못한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많은 여자들을 아내로 맞이하여 결국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정욕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깨끗한 면을 보여주여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 흠이 생기면 지도력을 상실하게 되고 설득력을 잃게 되어 결국 버림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삼손은 타락하여 지도력을 상실하고 끝내는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지도자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딤전6:9-10). 재물에 탐욕이 생기면 부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에 왕이 재물을 탐한다면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 때문에 하나님을 떠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경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물질에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타락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물질때문에 사랑하는 선생님을 은 삼십에 팔았으며 구약의 유다는 은 이십에 사랑하는 동생을 팔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돈에 욕심 많은 사람치고 타락하지 아니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에게는 적당히 필요한 재물이 있어야 합니다.
결론
지도자는 사무엘 선지자처럼 물질에 청렴결백해야 하고 요셉처럼 이성에 깨끗해야 하며 세례 요한처럼 명예에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가 권세욕이 강하고 색욕이 강하며 물욕이 강하면 반드시 도중 하차해야 합니다.
탐욕을 품으매
민11:1-23
서론
사람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큰 화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 하는 처지에서 해방시켜서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로 인도해가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하는 것보다 원망과 불평을 계속하여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습니다. 심지어 광야에서 고기와 마늘 및 파를 먹지 못한다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1. 악한 말로 원망합니다.
본문 1절에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심지어는 여호와를 멸시하면서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탐욕은 부모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에 끌려서 현재의 생활에 감사할 줄 모르고 악한 말로 원망하는 것입니다. 욕심은 불평만 먹기 때문에 그 결과 원망을 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하였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평생 고생만 해야 할 그들을 해방시켜서 자유롭게 살게 했으면 감사하고 주께 영광을 돌려야 당연한 것인데 도리어 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원망하고 있으니 배은 망덕도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는 자들의 심령에 성령의 불을 꺼버리십니다.
2. 먹을 것을 위하여 애통합니다.
본문 4절에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이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민족들도 같이 먹을 것을 위하여 울면서 원망 및 불평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고 하였습니다. 먹을 것을 위하여 울면서 원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울면서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고 하였습니다(13절).
그리하여 모세 자신도 신앙이 약해진 처지에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13-15).
3. 결과는 화를 받게 합니다.
본문 18-20절에 "또는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매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음으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이십일 만 먹을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 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물질을 옳지 않게 구하여도 주시는데 그것이 마침내는 복이 되지 못하고 화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음으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서 장사함이었더라(33-34)"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고기를 요구한 그들에게 메추라기를 풍족하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모르는 그들에게 진노하였습니다.
즉, 그들을 탐욕의 무덤에다 파묻어 버린 바가 되었습니다. 탐욕의 결과는 항상 화를 초래할 뿐입니다.
결론
사람은 항상 현재 먹고 마실 것이 있으매 족한 줄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지 원망하고 불평하면 물질은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결코 복이 되지 못한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딤전6:9-10). 그러므로 감사하면서 선한 사업을 하여 참된 생명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용 기
성 경 활 용
1. 용기의 성격
(1) 하나님께서 담대할 것을 명령하셨다.
(신31:6)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은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대하32: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 좇는 온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2) 의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3: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사12:2)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2. 어떻게 용기를 얻는가?
(1) 여호와를 힘 입고
(삼상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2) 하나님께 사례하고
(행28:15)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3) 믿음으로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관련원어풀이
1. qz"j; 하-자크
(1) 굳게 조이다, 묶다, 매다.
(사28:22)
(2) 달라 붙다, 굳게 붙들다, 지속하다, 근면하다.
(신12:23, 수23:6)
(3) 견고케 하다, 강하게 하다.
(겔30:21)
(4) 이기다.
(삼상17:50)
(5) ∼보다 우세하다.
(대하8:3)
(6) 강하다, 담대하다.
(신31:23, 삼하16:21)
(7) 강건케 하다.
(대하11:11, 왕하12:8)
(8)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 보이다.
(삼하10:12)
설교예화자료
맥아더의 용기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cArthur)가 웨스트 포인트에 돌아가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험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니께서 말하였습니다.
"덕(Doug), 용기를 가져라,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합격할 수 있어. 자신을 믿어야 해, 아니면 아무도 너를 믿어 줄 사람은 없어. 자신감을 갖고 네 자신을 믿거라. 네가 합격 못하더라도 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게 될거다. 자, 그렇게 하는거다!"
시험 점수가 발표되었을 때, 더글라스 맥아더는 수석을 차지했습니다.
창피당한 공작
숲속에서 학을 만난 공작이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공작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춤을 추었습니다.
"아, 당신의 날개는 정말 아름답군요." 더욱 우쭐해진 공작은,
"그래요, 모두들 저의 날개를 보면 감탄하여 입을 다물지 못한답니다. 어떤 이는 또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 날개는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을 합쳐 놓은 것과 같다구요." 하며 자기자랑을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학은 조용히 공작의 자랑을 듣고만 있었습니다.
반응이 없자 기분이 상한 공작은
"당신의 날개는 너무 초라하군요. 고운 색깔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 말을 들은 학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 그렇지만 나는 이 날개로 하늘 높이 날지요 아름다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하늘에 있는 친구들에게 땅에서의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려준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날개로 무얼 하지요? "
공작은 아름다운 빛깔 이외에는 아무런 재주도 가지지 못한 자기 날개가 부끄러워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점쟁이
어느 마을에 자기가 가장 용하다고 떠벌이는 점쟁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시장에 나가,
"점을 치세요, 내가 당신의 미래를 밝은 곳으로 인도하니 화를 피하고 복을 잡으십시오.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점을 치십시오."
매일매일 점쟁이를 찾는 손님들이 늘어 마침내는 이웃 마을에까지 점쟁이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난 모르는 것이 없다오. 난 세상에서 제일가는 점쟁이니까."
점쟁이는 갈수록 기세가 등등하게 자신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점쟁이를 찾아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청년 하나가 사람들을 밀치고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아저씨, 아저씨네 집에 도둑이 들어서 재산을 몽땅 훔쳐 도망갔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뭐라구, 우,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구? "
깜짝 놀란 점쟁이는 사람들은 밀치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점을 치러 온 사람들은,
"뭐, 지가 세상에서 가장 용하다구?",
"기가 막혀서‥‥‥‥ 하면서 모두들 떠나버렸습니다.
곰의 자랑거리
숲속의 시원한 나무 그늘에 동물들이 모여 한가롭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동물이 자랑을 시작하자 다른 동물들도 뒤질세라 각기 자랑을 털어놓았습니다.
곰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곰은 제법 어깨를 들썩이며 자랑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들 곰은 예의를 아는 점잖은 동물로서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절대로 죽은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네."
그 말을 들은 동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곰의 칭찬을 하였습니다.
"과연 그렇군!"
"참으로 신사다운 일이야!"
그러자 곰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암, 죽은 사람에게까지 해를 끼치는 건 정말 야비한 방법이야." 하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여우가 나서며 물었습니다.
"당신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럴 듯하군요. 그렇다면 내게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당신들은 죽은 사람에게는 그토록 예의를 지키면서 산 사람은 왜 잡아먹는지 그걸 모르겠군요."
"뭐, 그 그거야‥‥‥‥
곰은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 더듬었습니다.
"예의는 죽은 사람에게보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게 아닐까요? "
여우가 바른 말을 하자 곰은 몸둘 바를 몰라 어느샌가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트로이 성 함락
서양에는 트로이 성의 함락에 대해 옛날부터 내려오는 시가 있습니다.
옛날에 트로이 성은 아주 튼튼하고,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원수든지 그 성을 훼파(毁破)해서 점령한 원수가 없었습니다. 이 성은 바닷가에 건축돼 있는데 한 번은 아침에 나가보니 바닷가 모래 위에 이상한 말이 척 서 있었습니다. 가서 보니 아주 아름답게 보이는 말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말이 바다 속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였는지 경사라고 그 말을 여럿이 메어다가 트로이 성 어디에다 두었습니다.
그날 밤에 어떻게 됐는지 압니까? 그 말은 사람이 만들어 칠을 잘한 말인데, 그 말의 뱃속에 간첩들이 몇 놈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간첩들은 밤에, 남들이 다 잘 때 뱃속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나와서 성의 문을 활짝열어놓았고 그 기회에 원수가 밀물처럼 들어가서 트로이 성을 점령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첫째로 필요한 것은 용기, 둘째로 필요한 것도 용기, 셋째로 필요한 것도 용기이다.
(M.T. 키케로)
용기의 최고의 단계는 위험한 경우에 처했을 때의 대담함이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신은 용기있고 그리고 억센 자를 도와주기 마련이다.
(A.A. 반데그리프트)
무사(無事)와 안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현저한 특질 중의 하나는 대담성이다.
(A.G. 비어스/ 악마의 사전)
미덕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고매하며 훌륭한 것은 용기이다.
(M. E. 몽테뉴/ 수상록)
때로 용기의 시련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사는 것이다.
(A. 피에르/ 오레스트)
용감한 사나이는 자기 자신의 일은 최후에 생각하는 법이다.
(J.C.F. 실러/ 빌헬름 텔)
신은 용기 있는 자를 찾아온다.
(J.C.F. 실러/ 빌헬름 텔)
용기가 있는 곳에 희망이 있다.
(C. 타키투스/ 연대기)
불행의 공포만으로 많은 자들은 가장 큰 위험 속에 투신하였다. 실로 용감한 자는 자기가 위험에 맞부딪칠 때에 언제든지 당해 낼 각오이며 가능하면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자이다.
(M.A. 루카누스)
나는, 늘씬한 다리로 멋있게 걸으며 코밑을 깨끗이 다듬고 머리털의 컬을 자랑하는 그런위인은 질색이다. 자그마하고 다리는 구부러졌더라도 두 발로 꿋꿋이 걸어가는 용기 있는 사내가 좋다.
(아르킬로코스/ 시)
여보게, 자네 용기란 것은 살아 있는 물건이야. 한 개의 조직체거든. 그렇기 때문에 총포를 솔질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로 용기도 손질을 해 주어야 하네.
(A. 말로)
운명은 우리에게 부귀를 빼앗을 수 있어도 용기는 빼앗을 수 없다.
(L.A. 세네카)
금은 불에 의해서 시험되고, 용기 있는 자는 역경에 의해서 시험된다.
(L.A. 세네카)
참된 용기는 제 삼자인 목격자가 없는 경우에 나타난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행운을 지키려면 액운에 대한 대처보다도 커다란 용기가 더 필요하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무서움을 알고, 그런데도 그것을 무서워 않는 자만이 참다운 대용자(大勇者)이다.
(A.W. 웰링턴)
겁쟁이는 위험을 피하지만 위험은 용감한 사람을 피한다.
(A. 두드토/ 프랑스 군인의 전형)
하나님, 우리의 인생이 생령(生靈)에 지나지 않더라도,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더라도, 믿음이 약하고 헤맬지라도, 저희에게 싸울 수 있는-그리고 잃을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L. 언터미어/ 기도)
저와 함께 계셔 주십시오. 하나님, 밤은 어둡고 밤은 냉정합니다. 내 조그만 용기의 불꽃도 사라졌습니다. 밤은 기나기니, 하나님 저와 함께 계시어 저를 강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미 상)
우리가 희망하고 존중하는 용기는 보기 흉하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용기가 아니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용기이다.
(T. 칼라일)
인생이 죽음보다 무서운 곳에서는 적어도 산다는 것이 참되고, 제일 큰 용기이다.
(R. 브라운/ 레리지오 메디시)
용기란 공포에 대한 저항이고 공포의 정복이지, 공포의 결여는 아니다.
(마크 트웨인)
마지막으로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용기입니다---그것은 도덕적인 용기, 확신을 갖는 용기, 꿰뚫어 보는 용기입니다. 세상은 항상 용기있는 자를 모함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중의 고함에 맞서는 양심의 목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만큼 오랜 싸움입니다.
(D. 맥아더)
오오 주여, 내게 힘과 용기를 주소서,/ 내 살과 내 마음을 혐오의 생각 없이 보기 위하여
(C.P. 보들레르/ 악의 꽃)
설 교 노 트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잠24:16
서론
악인이 넘어진다는 일은 원칙이요, 긍정이 가지만, 의인이 넘어질 수 있습니까? 더구나 일곱 번 넘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거나 가상적으로 말하는 것이니 귀중한 교훈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의인도 넘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한 번도 범죄하지 않을 만큼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장담하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에게 닥치는 수많은 죄에 빠지지 않는 기독교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악인만 죄를 범하기 때문에 넘어지기 쉽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무리 의인이라도 넘어짐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의인은 일어나기가 쉽습니다.
의인은 의롭게 살려고 힘써 온 사람입니다. 그의 넘어짐이란, 일순간의 사건이기 때문에 곧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죄가 덜 하다는 것은 아닙니다.그는 그의 습성적인 의인 구실하에 그의 죄를 가볍게 하거나 떨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선을행한 경험이 오래다고 해서 그것이 한 번의 실수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이제 죄 밑에는 의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그 실수를 혐오하도록 만듭시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한 번 보실 때 그는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습니다(마26:75). 한 시간의 실수 가운데 있었던 신자는 그후 큰 고통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그가 사죄를 받고 회복될 때까지는 어떤 평안도 갖지 못합니다. 그에겐 보다 선해지려는 경향이나 경험을 갖지 못한자를 위하여 우리가 마련할 수 없는 소망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가 따릅니다.
절망엔 위험이 있습니다. 죄인은 애통하는 슬픔이 죄에 영원한 어두움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서 사함 받지 못할 죄를 범할까 보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자비로우시며,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일곱 번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있으니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애를 감찰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테두리를 벗어날 재간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다가 일순간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도우시고 회복시키십니다.
결론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바라고 그 도우심을 의로하여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인의 용기
요16:25-33
서론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역 말기에 최후에 하신 교훈으로서 첫째는 주님을 따라가는 기독 신자에게는 환난이 있으니 이를 각오해야 되고, 둘째는 이 환난에 대한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하고, 셋째는 신앙의 용기로 환난을 이겨야 된다는 교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우리 기독 신자에게는 때로 처참한 비극이 있는 동시에 영원불사의 환희가 있고 일시 패배가 있는 동시에 영원한 승리가 있고 이 세상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동시에 천국의 영원한 교제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런고로 신앙인은 용기를 내어 이 세상 환난을 극복해 나아가야 됩니다.
1. 신앙인은 환난을 각오해야 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 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일년초에도 풍파가 있다면 인간 일생에 어찌 환난이 없겠습니까?
(1) 환난의 의의를 정리해 보면,
정신적인 차원에서 번민과 불안을 가지게 하고 육신적인 차원에서 고통과 비극을 가지게 하고 실제 생활면에서 생명과 재산의 파멸로 말미암아 생활의 위험을 가지게 하는 것이 환난이라고 하였습니다.
(2) 환난의 성격을 고찰해 보면,
먼저 자연계에서 발생되는 환난이 있는가 하면, 다음 사회적으로 발생되는 환난도 있고, 셋째는 특수한 환난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천재 지변을 비롯하여 전쟁, 기근, 온역 등이라고 하였습니다.
(3) 환난을 당하는 상태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가난과 기근이며, 신체적인 차원에서 건강을 위협하는 질환과 질병이고, 사회적인 차원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당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환난을 신앙의 용기로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2. 신앙인에게 환난이란 불가피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은 우리 기독신자들은 환난이 란 불가피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 이 세상은 사탄의 영향과 지배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엡2:2에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가 이 세상에 활동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 신자들이 이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마치 양이 이리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10:16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환난이란 불가피한 것입니다.
(2) 이 세상에서 택함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15:18-19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함은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는 줄 알아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는 것은 세상이 미워하는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된 증거요, 다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천국 백성이 된 증거요, 셋째는 세상에 속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입니다.
(3) 세상을 포기하고 천국을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행14:22에 "재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신앙은 환난을 이겨야 됩니다.
"세상에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인은 주님을 본받아 환난을 이겨야 합니다. 신앙인은 환난을 이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 신앙인의 용기는 바른 신앙의 지식을 가지는 데 있습니다.
고전10:13에 하나님은 감당치 못할 시험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할 뿐 아니라 그 시험과 환난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2) 신앙인의 용기는 의심을 버리고 확신을 가지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허수아비가 아니라 전능하신 우리의아버지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3) 죄를 버리고 의의 길을 가는 데 있습니다.
범죄하면 약해지고 비 겁해집니다. 죄를 미워하고 끊어버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강하고 담대해집니다.
결론
주님은 환난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환난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의 상급을 받기 위하여 환난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음같이 찢었다
삿14:6
서론
사사기 중에서 많은 영웅들이 출현되었으나 힘센 장사, 초연의 역사는 삼손뿐입니다. 그러나 힘이 아무리 세어도 용기가 없다면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힘을 가지고 사자를 때려 죽였는데, 염소새끼를 찢음같이 찢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자는 어떤 동물이며, 어디에 비유되고 있습니까?
1. 사자는 사납고 강한 동물입니다.
본문에 보면 삼손이 딤나 포도원에서 어린 사자를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어린 사자"라고 하는 것은 새끼 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젊은 사자 곧 힘이 강한 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자는 매우 강하고 무서운 야수입니다. 잠언 17장 12절에 보면 "왕의 노함"을 "사자의 부르짖음 같다"고도 하였습니다. 사자는 다만 무서운 존재일 뿐 아니라, 위엄있는 상징으로도 되어 있습니다(겔1:10, 10:14, 계14:7).
또 의로운 사람을 "사자같이 담대하다(잠28:1)"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하 1장 23절에는 "사자보다도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또 적국의 습격도 종종 사자의 강포함에 비유되고 그 소리에 경악되었습니다. 예레미야 25장 38절에 "그가 사자같이 그 소혈에서 나오셨도다 그 진멸하는 자의 진노가 그 극렬한 분으로 인하여 그들의 땅이 황량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스가랴 11장 3절에는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락이 황무하였음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2. 마귀의 상징인 사자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이 우는 사자같이 무서운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히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천국은 신령한 전쟁이 없이 순조롭게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끊임 없는 영적 전쟁을통하여 승리하여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하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힘써 싸우라"고 하였고, 디모데후서 2장 4절에는 우리 성도들을 "군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1절에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감주를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서 12장 21절에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궤계를 무기로 공격해 오지만 우리 성도는 진실로써 반격해야 합니다. 이 진실은무엇입니까?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결론
사자같이 무서운 마귀라 하더라도 피하지 말고 염소새끼 같이 여겨서 용기있게 대적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힘만을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힘있는 장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마귀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용 서
성 경 활 용
1. 무엇으로 용서하는가?
(1)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시78: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2) 하나님의 사람으로
(눅7: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3) 피 흘리심으로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4)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출34: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신자가 용서해야 하는 것
(1) 허물과 죄
(창50: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2) 사람의 과실
(마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3) 혐의
(막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4) 공평치 못한 것
(고후12:13)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질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5) 무슨 일이든지
(고후2: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3. 왜 용서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으므로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2)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셨으므로
(눅23:34)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3)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자
(눅6:37)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4. 용서에 대한 명령
(1)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마1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눅17:4)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2)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3) 주께서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
(골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5. 왜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한가?
(1) 인간이 연약하기 때문에
(시78:38)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암7:2) 내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청컨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2) 인간이 무지하기 때문에
(행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 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 공의를 행하여 진리를 구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렘5:1)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4)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시25: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
6. 어떻게 원수를 용서할 것인가?
(1) 축복해야 한다.
(롬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2) 행한대로 갚지 말아야 한다.
(잠24:29) 너는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말지니라
(롬12:19)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3) 기도해야 한다.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 식물을 먹이고 먹을 것을 줄 것
(잠25:21) 네 원수가 배 고파하거든 식물 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관련원어풀이
1. lm'j; 하-말
(1) 온유하다, 유순하다. 동정심을 가지다, 긍휼히 여기다.
(출2:6, 삼상23:21)
(2) 나눠주다, 용서하다.
(삼상15:3, 사9:18)
(3) 절약하다, 아껴쓰다.
(삼하12:4, 겔36:21)
2. rp'K; 카-파르
(1) 털이 있다, 죄를 덮다, 용서하다.
(신21:8, 시65:4)
(2) 속죄하다.
(출32:30, 레4:26)
(3) 속죄함을 받다.
(사6:7, 22:14)
(4) 속죄함을 받다.
(신21:8)
3. &v'm; 마-솨크
(1) 당기다, 끌다.
(왕상22:34, 사66:19)
(2) 오래 끌게 하다, 늘이다, 계속하다.
(느9:30, 시85:6)
(3) 견고하게 하다, 강하게 하다.
(전2:3)
(4) 늘리다, 뿔뿔이 당기다, 자신을 펼치다.
(삿20:37)
4. ac;n: 나-사-
(1) 집어올리다, 들어올리다.
(창7:17, 나1:5)
(2) 가지다, 옮기다.
(삼상2:28, 사46:4)
(3) 속죄하다.
(레1O:17)
(4) 용서하다.
(욥7:21, 시32:5)
(5) 취하다, 받다, 붙잡다.
(창27:3, 45:19)
5. jl's; 쌀-라흐
(1) 용서하다, 사면하다.
(출34:9, 왕상8:34)
(2) 용서함을 받다.
(레4:20, 5:10)
6. rb'[; 아-바르
(1) 건너가다
(창31:21, 수3:11)
(2) 곁으로 지나가다, 스쳐가다.
(창37, 28, 룻4:1)
(3) 건너가게 하다. 전달되다, 이끌다.
(삼하19:16, 시78:13)
(4) 지나가게 하다.
(삼상16:9, 10)
(5) 죄를 지나게 하다, 용서하다, 사면하다.
(삼하12:13, 욥7:21)
(6) 가져오다, 제물로 드리다 , 헌납하다.
(출13:12, 겔23:37)
7. ajpoluvw 아폴루오-
(1) 놓아주다, 해방시키다.
(눅13:12)
(2) 가게 하다, 해산시키다.
(마15:23, 눅2:29)
(3) 떠나기를 명하다, 보내버리다.
(마14:15, 행13:3)
(4) 죄로 고소된 사람을 방면하여 자유를 주다
(요19:12, 행3:13)
(5) 죄수를 놓아주다.
(행4:21, 17:9)
(6) 떠나다.
(행28:25)
8. ajfivhmi 아피에-미
(1) 보내다, 보내버리다, 떠나기를 명하다.
(마13:36, 고전7:11)
(2) 내다, 방출하다, 포기하다, 용서하다, 탕감하다.
(마6:12, 롬4:7)
(3) 포기하다, 더 이상 지키지 않다.
(계2:4)
(4) 떠나다, 버려두다.
(마22:22, 요4:3)
9. paraitevomai 파라이테오마이
(1) 간구에 의해 들리다, 비키다, 돌이키기를 빌다, 면제하기를 바라다.
(히12:19)
(2) 거절하다, 거부하다.
(행25:11, 히12:25)
(3) 피하다, 멀리하다.
(딤전4:7, 딛3:20)
(4) 용서를 빌다, 변명하다.
(눅14:18)
10. carivzomai 카리조마이
(1) 자신의 친절을 보여주다, 긍휼을 베풀다.
(갈3:18)
(2) 용서하다, 사죄하다.
(고후2:7, 골2:13)
(3) 은혜를 주다, 거저주다, 수여하다.
(눅7:21, 고전2:12)
설교예화자료
스승의 용서
개성의 어떤 여학교의 선생님 한 분은 늘 감독없이 시험을 치도록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었습니다.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면, 감독없이 답안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을 빼놓고는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 하는 것이 그 선생님의 소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시험보는 시간에 직원실을 다녀와 무심코 교실을 들여다보니, 어떤 학생이 쪽지를 보고 시험답안을 쓰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일부러 학생 뒤에 가서 오랫동안 그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베껴쓰기에 열중한 학생은 얼마 뒤에야 이를 알고 어쩔 줄 몰라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못본 체하고 점수도 그대로 주었습니다. 퇴학 아니면 낙제를 면치 못할 줄로만 알았던 그 학생은 조금도 변함없는 선생님의 태도에 감격하여 운동도 그만두고 열심히 공부하여 얌전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는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충성을 낳은 용서
로마의 어거스트 대제 때 매우 포악한 해적 두목이 있었는데, 어찌나 교활하고 잔인한지그를 잡을래야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제는 현상금을 걸어 놓고 전국에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두려움 때문에 감히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제가 지방순시를 하는 중에 건장하고 기운깨나 있어 보이는 장정이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어거스트 대제시여, 제가 황제께서 체포하라고 명하신 해적의 두목 머리를 잘라왔습니다. 이제 저에게 어떤 상금과 벼슬을 주시겠습니까? " 황제는 깜짝 놀라
"그래, 정말로 그 흉악한 도둑의 머리를 잘라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서 그 놈의 목을 보여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장정은 자기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이 목입니다. 폐하!"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제는 불같이 노하여 소리쳤습니다.
"뭐라고? 네 놈이 감히 나를 우롱하는 거냐? 여봐라! 저놈을 당장 체포하여라."하였습니다. 이때 두목은 눈물을 흘리며 대제에게
"폐하! 이놈은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폐하의 영토에 살며 그 은덕을 누리면서도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폐하! 이 죄인을 한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이제 새사람이 되어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라고 간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간절한 호소는 드디어 대제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대제는 죽여야 마땅하지만 회개하는 갸륵한 마음을 보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해군 장교로 임명했습니다. 두목은 약속대로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여 후에 제독이 되었습니다.
용서와 치료
병이 깊게 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으나 효과도 없었고, 기도를 받아보아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께서
"혹시 당신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았다면 회개하십시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서
"하나님, 제가 용서해 주어야 될 사람을 보여주십시오"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성령님이 한 주간 동안 용서해 주어야 될 사람의 얼굴을 떠오르게 해주셨는데 그 수가 무려 5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미워한 사람이 그처럼 많았던 그가 그 사람들을 다 용서하자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깨끗하게 치료받았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몇번이나 용서할까요? 일곱 번 용서할까요?"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의 열매
싱가폴에서 닥터 어거스틴 텐이란 분을 만났습니다. 그는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싱가폴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상의 총애를 받고 있는 국회의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부인과 결혼한 지 3년 만에 이혼을 하고 10년이 넘게 독신으로 살면서 아들을 키웠습니다.
싱가폴 수상이 어거스틴 텐을 아끼는 마음으로, 훌륭한 규수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규수와 약혼을 하고 결혼 날짜까지 잡아놓고 있던 중, 교회에 나가 성령의 능력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자, 그는 자연히 "하나님, 나와 자식을 버리고 나간 내 아내를 여태 미워했는데 이제 아내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도를 하자마자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아내 사이에 낳은 아들이 있지 않느냐. 네 행복만 추구하지 말고 여인과 결혼하지 말고 전처와 다시 재혼하라."고.성령님의 말씀을 듣고 난 어거스틴 텐은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그가 고민하며 기도할수록 성령님께서는 "네가 이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 주었으면, 진실로 다시 받아들여 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다른 여자와 재혼하면 안 된다. 네 전처와 다시 결혼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끝내 십 년 동안 이혼해서 만나 보지 못했던 전처에게 "당신도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미움을 버리시오. 그리고 우리 다시 생활합시다. "라고 연락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에게로,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에게로 왔다갔다하면서 두 사람의 사이를 밀접하게 했고, 결국 그의 전처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어, 새로운 여인과 결혼하겠다던 그 날짜에 14살 된 아들을 앞세우고 전처와 다시 재혼하였고 전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 텐은 수상의 분노를 사게 되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가정을 꾸밀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수와 국회의원 일을 더욱 충실히 이끌어 나가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어거스틴 텐이 얼마나 신앙에 깊이 들어갔던지 한 번은 자기 대학 경제학 교수들과 학생들이 있는 앞에서 노이로제 걸린 환자에게 안수하며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기도해서 학교 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형벌보다 강한 용서
웰링턴 장군이 상습적인 탈영병에게 사형선고를 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장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 참혹한 형을 내리게 됨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온갖 훈계와 벌로써 다스려 보았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습니다. "라고 말을 끝냈습니다. 이때 탈영병 친구가 일어나서 말할 기회를 요청하였습니다. 친구는
"각하, 각하께선 한 가지 이 친구에게 시도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를 용서하는 일이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명장인 웰링턴은 이 말을 듣고 그를 용서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한 번도 그 병사는 탈영하지 않았고, 장군에게는 늘 감사의 정을 표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남은 될 수 있는 대로 용서하고, 자기 자신은 결코 용서하지 말라.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너에게 해를 끼친 자는 너보다 강하거나 약했다. 그가 너보다 약했으면 그를 용서하고, 그가 너보다 강했으면 너 자신을 용서하라.
(세네카/ 분노론)
용서란, 깨어진 것이 다시 온전히 만들어지고 더러워진 것이 다시 깨끗해지는, 어린이의 기적의 꿈에 대한 회답이다.
(D. 함마슐드/ 목표설정)
남을 용서하기에 인색하지 말라. 무슨 일에든 남을 용서할 마음의 여유를 간직해야 한다. 남을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의 생활은 늘 미움에 차 있고 평화를 누리기 어렵다.
(중국 격언)
용서는 가장 고한 승리이다. < *상대방이 자기에게 잘못을 범하였다가 이를 후회하고 용서를 빌 때 이를 용서하는 것이 그를 압도하는 것이란 뜻>
(영국 속담)
많이 용서하는 자는 많이 용서받는다.
(P.J. 베일리/ 축제)
과오는 인간의 것,용서는 하느님의 것이다.
(A. 포프/ 평론에 관한 수상)
숱한 화해의 기회가 깨져 버리는 것은 쌍방 모두가 용서해 줄 채비를 갖추고 나와도 용서받을 까닭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W.C. 월리엄스/ 죄를 용서받는 일)
용감한 사람만이 용서할 줄 안다‥‥겁쟁이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용서는 어리석은 사람의 본성에는 없다.
(L. 스턴/ 설교집)
우리는 원수를 사랑할 만한 성자는 아닌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원수를 용서하고 잊어버리기로 하자. 그것이 바로 현명이라는 것이다.
(A. 카네기)
사람은 흔히 타인을 용서하는 데에는 편협(偏狹)하고, 자기를 용서하는 데에는 관대하거니와, 우리는 아무리 관대한 선의로 자기의 모든 것을 용서한다 할지라도 무슨 일을 하든지 시종이 여일치 못한다는 것은 수긍치 아니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한용운/ 님께서 침묵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며, 모든 것을 다 용서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M. 우나무노/ 수필과 독백)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 것과 꼭같이 잔인하다.
(세네카/ 서간집)
남의 허물은 마땅히 용서할 것이로되 자기의 허물은 용서치 못할 것이요, 나의 곤욕은 마땅히 참을 것이로되 남의 곤욕은 참지 못할지니라.
(채근담)
귀신도 빌면 듣는다. < * 귀신도 빌면 소원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어찌 남이 자기에게 비는데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뜻>
(한국 속담)
상호 각기 잘못의 용서, 그런 것이 천당의 문이다.
(W. 블레이크/ 천당의 문)
용서는 보복보다 낫다. 용서는 온화한 성격의 증거지만, 보복은 야만적인 성격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에픽테투스/ 유고집)
우리는 나의 적도 사랑하라고 명령을 받고 있지만 친구도 용서하라는 명령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코시모 데 메디치)
여자란 자신의 미모 때문에 범해진 행위라면 나쁜 행위라도 용서한다.
(사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상대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줄곧 거기에 시달린다.
(앨란 파톤)
용서하는 것은 아름답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비록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책망하기엔 밝고, 비록 지혜를 지닌 이도 자기 용서엔어두워지는구나. 너희는 모름지기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그렇게 한다면 성현의 경지에 이르지 못함을 걱정할 것 없으리라.
(명심보감)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용서한다.
(라 로시푸코/ 금언집)
용서하는 것은 좋다. / 잊어버리는 것은 가장 좋다. 살면서 애태우고 죽어서 산다.
(R. 브라우닝/ 헌시)
쉽사리 용서해 주면 잘못을 반복한다.
(프랑스 속담)
사람은 사랑하고 있는 한 용서한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잊는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것이다.
(F.S. 피츠제럴드/ 붕괴)
"용서는 하여도 잊을 수는 없다. "고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는 것이다.
(H.W. 비처/ 인생사냥)
그럼에도 너는 지금 네거리의/ 어느 가게 문 앞에 버려져 있는/ 그 무슨 몹쓸 허접 쓰레기/ 구걸하며 간다//29수짜리 값싼 보석을/ 곁눈질하며 지나가나니/ 오오 용서하라! 나는 이것마저/ 네게 선사할 도리 없구나.
(C.P. 보들레르/ 빨강 머리의 걸녀에게)
용서하라. 나무들의 언 손에 마지막 남은/한 잎의 자유를 용서하라.
(김덕환/ 우리들의 겨울)
사랑은/ 꽃을 빛내 주는 침묵의 잎새/ 부르면 다가와 경배하는 바람/ 으깨져서야 빛나는 방향과/ 고요할수록 환한 물가의 풍경/용서와 고통의 조율을 거쳐/ 명징한 기쁨을 연주하는 악기.
(김상길/ 사랑은)
촛불은 흔들리고/ 눈은 내리는데/ 조용히 흐르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그이는 죄가 많았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 그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오는 새벽에 내리는 눈처럼/ 그의 영혼 위에 은혜를 내리십시오.
(황금찬/ 종이 우는 아침에)
십자가의 억울한 고통을 이기신 주님,/ 아무것도 모르는 저들을 불쌍히 여 기소서./ 그가설사 저 무저갱에서 벌떼같이 날아오는 독벌레라 하더라도/ 한때는 잊을 수 없는 저의 은인이었나이다. / 축복의 뜻을 저버리는 저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윤경남/ 열린 문)
우리가 한 점 별에 갇혀서/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가슴치는 참회일 뿐,/ 내가 남에게줄 수 있는 건/ 너그러운 용서일 뿐.
(신규호/ 수인의 독백 · 1-춘향이 마음처럼)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용서가/ 사함받은 분의 이름과 복음을 말씀하셨다. / 기도와 마음 아파하심이 드러났다. //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빛이/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 라 용서하기 위해서만 오셨다. / 살이 되고 교훈이 되어 사랑하기 위해서만 오셨다.
(다카노 기쿠오/ 설교로 가르치신 예수)
숨으셨던 주의 배려로/ 자비로운 용서를 얻었다고 할진대/ 주의 자비는 한없이 크셔라.
(만조니/ 성탄)
우주 가득히 발을 벌리고 그 저쪽에 우뚝 솟은 저주의 나무를 바라보며 가늘고 매맑은 한 목소리, 부드러운 용서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마루 아키라/ 밤의 노래)
깊은 한숨을 쉬면서 내 죄를 뉘우쳐/ 주님을 향해 우리 마음과 눈을 우러러/ 죄 사해 주시기를 당신에게 구하며/ 우리 마음의 슬픔을 제거해 달라 기도합니다.
(카멜라리우스/ 괴로움으로 번민할 때)
십자가 형틀을 그들은 짓밟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매매에 그들은 구실을 만들 것이다/전쟁이 끝난 뒤 자기에게 책임이 없다 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을 용서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의 아들,사람의 약함을 알기 때문이다/ 배드로를 용서함으로 해서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기 때문이다.
(마쯔다 유키오/ 베드로의 부인)
거룩한 이시여, 당신의 황금빛 하나님다운 고요를 내 어지럽힘이 자잤으리요. 나로 하여금 인생의 속 깊은 시름을 당신이 알게 됨도 많았습니다. // 오오, 잊어주소서, 용서하소서. 내가 지나쳐 사라지나니, 평화한 달 앞을 흐르는 구름에 닮을지라. 그러면 조용히 머물러, 당신은 다시금 비치이노니 그 아름다움 가운데, 그대 감미로운 빛이여!
(휠더린/ 사죄)
우리를 지켜 주시는 전능하신 주여/ 시험하는 자들을 억제하여/ 십자가 피로써 사해주시고/ 주님의 양들을 인도해 주소서.
(작자 미상/ 밤의 노래)
우리가 처형을 당한 뒤에도/ 성모의 아들에게 죄사함을 빌어/ 지옥의 불길에서 우리를 건져내고/그 은총이 우리 위에 임하도록 하라/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자유로우니/ 우리 죄사함만 하나님께 빌어 달라.
(비용/ 비용 묘비명-처형자의 노래)
사죄의 은사를 내려 주소서/이 죄인 한숨을 쉬며/ 허물로 인해 얼굴을 붉혀/ 탄원하는 것을 용서하소서, 주여.// 막달라 마리아의 죄를 사하시고/ 강도의 말조차 되어 주신 주여/ 내가 비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첼라노/ 심판의 날)
여인에게 돌 던짐을 사양턴 그날을 기억하여/ 나는 이제 사함을 비노라
(윤혜승/ 갈보리 형틀)
신과 같이 용서하고 싶다/ 사람이 던지는 증오를 가슴에 품어 따뜻케 하여/ 꽃처럼 된다면 신 앞에 바치고 싶다.
(야기 쥬우키치/ 용서)
그리고 용서하소서./ 신도보다 잘 사는 목회자를 용서하시고/ 사회보다 잘 사는 교회를 용서하시고/ 제자보다 잘 사는 학자를 용서하시고/ 독자보다 배부른 시 인을 용서하시고/백성보다 살쪄 있는 지배자를 용서하소서.
(고정회/ 야훼님 전상서)
내 마음속에 죄로 보이는 것을 용서하시옵소서./ 내가 난 뒤에 값지게 보이는 것도 용서하소서./ 대개 중적이 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할 뿐이며/ 사람과 당신 사이에는 주여,존재할 수 없습니다. // 떠나간 한 사람을 위한 나의 슬픔을 용서하소서./ 그는 당신이 지으신이, 그렇게도 훌륭했던 분./ 나는 그가 당신 안에 살고 있음과 또한 그곳에서/ 그가 좀더 사랑받고 있음을 아나이다. // 이 거칠게 헤매는 부르짖음을 용서하소서,/ 헛되이 보낸 젊은이의 시끄러운 소리들을./ 이것들이 진리에 어긋나거든 용서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지혜로써 나를 슬기롭게 하소서.
(테니슨/ 인 메모리엄)
헤어지는 것은 고통이라는데/ 헤어짐은 슬픔이라는데/ 굳이 헤어지기로 작정한 남자의 눈빛은/ 한점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슬퍼하지 않는 남자의 모습이/용서할 줄 모르는 단호한 모습이/ 까닭없이 미웠습니다.
(박용주/ 막차를 기다리며)
오오 주여, 기쁨의 신, 용서의 신/ 나의 불의와 배은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오 주여, 기쁨의 신, 용서의 신!
(베를렌/ 예지)
"제가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 "네가 단죄하는 일이 없다면/ 용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앤소니 드 멜로/ 판단)
너는 죽어서도 죽을 수 없다/ 너는 죽어서도 우리가 용서할 수 없다.
(정호승/ 히로히토에게)
개처럼 끌려간 시위대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바다/ 거리엔 바람이 피를 홀리고/용서할 수 없는 밤은/ 또다시 깊어/ 죽어서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정호승/ 삶)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나
(정호승/ 별들은 따뜻하다)
이 잔인한 취미를 용서하라 하며/ 좁은 그릇에 담긴 생명을 생명 이 게 하라 하며/ 하늘을 보는 얼굴.
(이생진/ 자생지)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눈이라 가르친다/ 술이 취한 채 성당엘 나가신 아버지를생각한다/ 용서한다 용서하라고 진눈깨비가 내린다/ 이 땅에 내려 아주 짧은 동안 빛깔을 간직한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들을 바라본다. 창밖으로 구을며 용서하라 용서하라고 바람도 밤을 새운다.
(도종환/ 겨울 일요일)
나는 지금 용서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도종관/ 아홉 가지 기도)
이 아이가 원망해 온 것들과 유혹때 빠져온/ 나날들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셨을 당신께/또다시 죄의 보속을 비옵는 까닭은/ 그들을 빼앗김과 짓눌림 한스러움에서/ 더욱 벗어나 지 못하도록 옥죄어 오는 끈끈한 거미줄이/ 이 땅의 어느 구석에서 움솟는 것인지/ ‥‥결연히 그 어떤 것을 금그어 가야 하는 지를/ 아직 다 깨우쳐 주지 못한 까닭입니다. / ‥‥아흔아홉 번 용서하시고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시는 당신 앞에/ 돌아온 아이와 함께 무릎 꿇고 올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도종환/ 돌아온 아이와 함께)
그런데도 예수님은 큰 소리로 외치셨다.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 겨울날의 비는 싸느다랗게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고/ 그의 몸뚱이는 뼈가 쑤실 만큼 차게 젖어 있었다. /무리는 집으로 돌아가 버려 거리에는 누구 하나 없었다. / 그리하여 예수는 벽을 향해서 웅크리며/ 다시금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
(G.A. 케네디/ 무관심)
나도 그대를 정죄하지 않겠다시며/무서운 용서의 눈물로 시작된/ 당신과 나의 사랑의 역사가 시작된 그날이.//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것/ 참 용서 아니며,/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 참 사랑 아님을/ 가르쳐 주신 아름다운 당신
(김성영/ 미리암의 노래)
나의 머리가 당신 팔 위에 도리질을 한 지가 칠석을 열 번이나 지나고 또 몇번을 지내었 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요, 무슨 복수적 저주를 아니하였 습니다.
(한용운/ 칠석)
죄스럽게 비좁은 나의 가슴을/ 커다란 웃음으로 용서하는 바다여/ 저 안개 덮인 산에서/ 어둠을 걷고/ 오늘도 나에게 노래를 다오.
(이해인/ 바다여 당신은)
헤어지는 연습 없이/ 사랑했는데// 너와 내가/ 목메어/ 돌아서는 길목// ‥‥쓸쓸히 손 흔들며/ 나목처럼/ 시린 가슴// 용서하는 마음/사랑하는 정/ 가득 풀어 헤치고// 서러운 눈빛으로/ 마주치 다가// 순명의 나무 되어/ 손을 모은다.
(이해인/ 이별 소곡)
내 사랑 용서하시오면/ 임의 사랑 용서 바치오리/ 일월성신/ 즈믄 날에/ 황송하고 고맙고/ 죄지은 마음.
(김남조/ 사랑초서 · 86)
견디고 견딘/ 그 나머지의 눈물/ 오늘은 눈물을 용서하시고/ 번뇌를 용서하옵소서.
(김남조/ 사랑도 쉬게)
당신이 직접 저지른 죄가 아니고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죄라고 해서 당신을 용서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직접 죄를 저지르고도 자기 스스로를 용서한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부드러운 용서/ 내 안에서 꿈꾸듯 젖는다.
(예종숙/ 遁走의 그날)
당신을 알고 난 뒤 낮이 설던 우주는 안온한 나의 집이 되고, 당신을 사랑한 뒤 낮이 설던 이웃은 나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주님, 당신 모습 수시로 알아 보지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어딜가나 버림받고 가시밭에 딩구는 고뇌의 당신,초췌한 얼굴로 찬비를 맞으며, 병들고 배고픈 거리의 이웃들과 함께 시시로 죽어가는 당신 모습 알아보지 못했음을-/억울하게 매맞고 웃음거리 되어 질퍽한 시장길로 당신이 쫓기실 때, 할 바를 모른 채 멍청하니 서 있던 나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집 문밖에서 기웃거리던 당신을 빚쟁이로 몰아세운 나의 불손함을, 상처투성이의 그 얼굴 외면해 버리고도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로만 익혀온 나의 헛 맹세를 진정 용서해 주십시오./ 나의 무관심으로 불행히 죽어가는 이웃의 착한 얼굴들이 되살아 오는 이 순간, 조금만 눈을 뜨면 수많은 당신 모습 발견할 수 있고, 당신을 힘입으면 당신만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음을 항시 기억치 못한 우매한 나를-주님 용서해 주십시오.
(이해인/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 5)
생각이 비뚫린 사람이 있어/ 소를 타고 말은 짐을 싣고 가네/ 재주에 알맞게 다루지 못하 면서도/ 매질은 조금도 용서 없으니
(임 제)
나의 별에는/ 피가 묻어 있다// 죄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하늘의 몫이므로
(정호승/ 새벽편지)
나는 찬미하러 나갔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다니? 용서하라, 용서하라./ 이 눈물도 유일한 자를 위한 것이리./ 오, 당신은 당신은 존재하리라!
(클롭스토크/ 봄의 축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시는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나도모든 걸 다 용서해주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저질렀다면/ 그는 벌을 받아야 옳지 않을까요?/그렇지 않다면야/ 무엇 때문에 바로 살려고 애써야 하나요? // 나는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법이/ 엄연히 있는데, 만일 사람이 그 법을 어기고/ 하나님께선 자꾸 용서를 해 주신다면/법을 지켜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도대체 법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어긴 사람일지라도 나는 그에게/ 모든 용서와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고든과 글래디스 데프리/ 하나님의 법)
내가 기도하기를 잊었을 때/ 날 도와주시고,/ 내가 나의 일에 소홀했을 때/ 날 사랑해 주시고/ 남을 용서해 주시고/ 날 가르쳐 갈 길을 인도하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샤롯 카펜터/ 너그러움)
귀엽게 생각하실 줄을, 용서하여 주실 줄도 이미 다/ 알고 있었지요만, 오 주여 제 이 모든 빛과 어둠들이
(박남철/ 감사기도)
용서하였으나/ 다 용납하진 못하였습니다/용서를 얻었으나/ 다 허용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 마음의 앙금도 풀어놓느니/ 천지 뒤덮을 눈발/ 내 겨울을 허락하소서.
(정복선/ 겨울 고해)
원죄가 있다 했지요 어떤 이는/그 죄 접시위에 담아서 오면/용서의 불로 사뤄주마 했지요.
(정동주/ 신무가-2 ·고요했던 날들)
내 방은/ 폭풍우 물아치는 바다/ 바람은 불고, 비는 내리고/ 시계를 볼 수 없어/ 늘 항해가 금지되어 있나이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리와 함께/ 이 바다 속으로 투신하고 있사오니/ 주여, 내 방 속에 있는/ 이 망망대해를 용서하소서.
(이명자/ 두 개의 방을 위한 기도)
젊은 날의 그리운 사람아, 혹시 세파에 시달려/ 너를 잊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브론테/ 추억)
당신의 임종 시의 속삭임은 바로 가해자에 대한 용서였습니다.
(네끄라소프/ 고향)
기도에 의해서 도움을 받지 않으면/ 이 몸의 마지막은 절망이다/ 기도는 하느님의 보좌에 도 상달하고/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켜 준다/ 당신들도 용서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情)으로 이 몸을 놓아주시오.
(W. 세익스피어/ 태풍)
주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우리의 증오와 거짓됨과 잘못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실런지요!/ 자비로우신 하느님! 우리를 함께 인도하소서.
(A. L. 앤드류스/ 신이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자기 죄 알고/ 용서비는 윤택한/ 여자의 무지를 모릅니까.
(왕수영/ 이 여자를)
사랑하는 예수님/ 예수님은 저와 모든 사랑하는 형제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제가 항상 올바른 일을 행하도록 가르쳐 주십시오.
(작자 미상/ 어느 소녀의 기도)
당신의 손바닥에 굵은 대못 박히어/그 부드러운 손 찢어지고 또 찢어질 때/ 내가 손으로 지은 죄가 용서 받았나이다.
(이재철/ 쿠미오리-일어나 빛을 발하라· 6)
주여, 용서하소서/ 모든 죄와 허물 위에/그리스도의 이름을 고귀하게 들어올리는 찬송/ 그 찬송의 영광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용서하소서.
(R.K. 웰즈/주를 찬양하라)
오, 나의 죄를 사함받은 이 기쁨/ 이제 나는 믿을 수 있고 또 믿는다네.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나 자신과 나의 앞날을 귀하신 주께 드린다네.
(알버트 미를레언/ 용서)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당신을 따르듯/ 당신이 주신 아픈 용서의 상처로/ 돌아선 이웃의 손을 잡으렵니다.
(김성영/ 체휼을 살게 하소서)
설 교 노 트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8
서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열심으로 사랑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생활 중에 하나님께 대한 태도가 기도인 것처럼 사람에게 대한 태도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구약의 최대 계명이요(막12:31), 주님의 새 계명입니다(요13:34). 이 사랑이 많은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
1. 허다한 죄를 지닌 인생들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2:1)"라고 한 것처럼 인생들은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고 그로 인하여 당하는 고생도 이루 형용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의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라는 선언을 받고 마침내 비극의 연속이 되었습니다.
인생들은 살고자 하여 먹었지만 먹고도 살지 못하였습니다.
많은 인생들이 이 무서운 죄와 허물 때문에 참 인식과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 안식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까?
2.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죄와 허물은 항상 분리작용을 일으키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즉 부부간에, 친구간에, 교인간에 서로 알력과 분리를 시킵니다.
이 허물로 인하여 분리된 상처는 서로 사랑으로 덮어주고 감싸는 것밖에 다른 아무 방법이 없습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사랑으로 상대자의 허물과 죄를 감싸주고 덮어 주심으로 불행이 변하여 행복이 되고, 비극이 변하여 희극이 됩니다. 사실 서로 사랑함이 없다면 이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죄를 덮어 버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죄를 서로 고하고 서로 사랑하면 사람과의 관계는 정상화가 됩니다. 이는 불신자들의 사회에서도 있을 수 있는 도덕적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지은 죄를 하나님께 사함받는 문제가 보다 더 근본적입니다. 믿음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보혈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들의 죄를 덮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신 주님만이 우리들의 죄를 덮어 주실 수 있는 권한과 자격을 구비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자비로우신 사랑의 날개로 우리 성도들을 덮어 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결론
죄는 크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더 크고 능력이 있습니다. 허다한 죄가 사랑으로 덮어지기 때문에 사랑은 죄를 덮어주고 감해주고 죄를 없이 하여 주십니다. 이것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므로 우리는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중한 죄인도 용서하시는 하나님
시25:11
서론
본문을 통해 우리는 다윗이 이 글을 쓸 때 어떠한 어려움과 위험한 상황에 처하였는가를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자백함으로 하나님의자비를 구하고 있습니다.
1. 사람은 고난에 직면할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1)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 전에 먼저 고난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임한 고난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이 고난 중에 베푸신 선한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우리가 고난을 알지 못하고 축복을 구하거나, 역경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긍휼을 구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모순된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을 힘 입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에야 하나님의 도움의 필요성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위험한 것이며 그진노를 견딜 수 없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또한 죄악으로 인해 순간적인 쾌락을 즐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그런 삶은 비참과 절망에서 끝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자비가 없는 고난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1) 고난의 의미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마땅히 고통을 받아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가 죄 가운데 처해 있을 때는 늘 하나님과 원수된 자로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우리를 견책하셨듯이 지금도 권고하고 계심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2) 우리 모두 무가치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취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3. 그리스도를 통한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1) 자비의 근본되시는 그리스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그를 통해 하나님께 자비를 구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는 어떠한 분이고,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떤 고난을 받으셨는지를 깊이 알 때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가 있습니다.
그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어떠한 죄도 용서받으며, 그 앞에 나오는 자는 모두 소망을 얻고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면 어떤 중한 죄도 지체없이 용서를 받습니다.
(2) 흉악한 죄인에 게 소망과 자비를 베푸시는 이유
하나님의 자비는 무한하기 때문에 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용서하십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자비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자는 그 죄가 어떠하든, 하나님께서 속죄의 은총을 마련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의 용서받음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하심으로 죄인히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한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영광스럽게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광된 은총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들을 구원하신 점에서 밝히 나타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사하심은 은혜가 더욱 더 넘칩니다(롬5:20). 사도는 그의 죄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주의 풍성한 은총으로 용서함을 받았노라고 말합니다(딤전1:13).
어떤 종류의 죄인들이든지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 긍휼을 구하면 용서를 베푸신다고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이사야 55장1절, 마태복음 11장 28절, 요한계시록 22장7절에서 사죄의 은혜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또한 요한복음 6장 37절에서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후 사도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막16:15-16).
결론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아무리 무거운 짐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여도 우리 스스로 그것을 감당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 맡기고 그 안에서 안식을 취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나의 죄악이 중대하지 않으니 나의 죄악을 용서하소서"라고 말하지 않고 "나의 죄악이 중대하니 나를 용서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속죄의 원리
히9:11-22
서론
본문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들보다 높으십니다. 그런데 세상에 강림하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모든 인생을 자기의 형제로 여기시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가 되시며 길이 되시어서 자기 몸으로 속죄제를 하나님께 드려 구주가 되셨습니다.
속죄의 기본적인 뜻은 '값을 지불함으로 악으로부터 구출함'을 의미합니다.
1 . 속상금(贖賞金)에 의한 석방을 의미합니다.
속죄의 가장 보편적인 뜻은 속상금에 의해 해방 또는 석방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쟁의 포로가 속상금에 의하여 해방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뜻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속상금(대속물)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고 하였습니다. 그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들은 사망과 죄악의 포로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 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은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사랑할 데가 어디는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3-28)"
3.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의해 속죄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1:4, 사53:10, 요10:15,11:51-42, 롬4:25, 갈2:20, 딤전2:6, 벧전1:18-19)"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속죄의 절정이며 완성이었습니다. 그의 보혈의 공로로 모든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애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는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계1:5)"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 구속의 은총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레6:1-7
서론
사람이 짓는 죄도 그 수를 다 셀 수가 없지만 하나님의 용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입니다. 즉,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짓게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용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요일5:18, 사1:18). 그래서 무슨 죄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역사가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무슨 허물이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 지은 죄 사함 받습니다.
본문 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수없이 많지만 크게는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지은 죄, 그 다음은 사람에게 지은 죄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는 신앙적인 문제이고 사람에게 지은 죄는 도덕적인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라 하면 믿지 아니할 불신앙적인 것이 가장 크고 그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택한 백성은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불신앙적인 죄에서 회개시키시고 불순종한 것을 징계하셔서 회개시키시니 회개도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행11:18). 그러므로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사람에게 지은 죄 사함 받습니다.
본문 3-5절에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는 셀 수 없이 많은 것입니다. 해롭게 한 일 신앙적으로 해를 끼치고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입히고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많은 죄가 있어도 주님의 사랑의 용서는 반드시 있을 줄 압니다. 피와 같이 붉은 죄가 있어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3. 회개하기 때문에 사함 받습니다.
본문 6-7절에 "그는 또 속건제를 여호와께 가져올지니 곧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 재물을 위하여 제사장에게로 끌어 올 것이요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아 오신 목적이 "내가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2)"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회개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복을 주시는데 물질과 성령의 은사와 기쁨을 주십니다(욥42:6-10, 행2:38,3:19). 그래서 무슨 죄라도 사함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죄도 많이 짓지만 그 이상의 용서도 받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를 지은 것보다 벌을 적게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허물이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빚진 죄 값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
마6:12
서론
주기도문에 나오는 이 간구에서 죄는 하나님께 진 빚이며, 죄의 용서는 그 빚을 탕감해주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1. 죄는 하나님께 진 빚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려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바를 침해하여 손상을 입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빚진 가해자입니다.
우리는 엄숙한 약속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고 그에게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 맺은 계약을 깨뜨렸습니
다.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스스로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 율법은 우리를 송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죽은 후에 그들로부터 그들이 진 빚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두 죄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여러 가지로 관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에 동참한 사람으로서 함께 빚진 자들인 것입니다.
죄라는 빚의 본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죄는 오래된 빚입니다.
이 빚의 근원은 아담의 죄까지 이어지고 그 결과로 우리도 죄 가운데서 태어납니다.
(2) 죄는 마땅히 갚아야 할 빚입니다.
우리가 진 빚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이 우리의 사악함보다 더하지는 않습니다.
(3) 죄는 큰 빚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는 우리의 빚이 계속 늘어날 뿐입니다. 그리하여우리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진노의 날에 당할 진노를 쌓게 합니다.
빚진 자의 본성은 부주의와 무관심, 낭비,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 두려움, 이중성과 기만성입니다.
2. 빚의 탕감
(1) 빚으로서의 죄를 사함받는 데 포함되는 것들
하나님은 율법의 요구대로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언도가 내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에 따른 형벌 집행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의 사슬을 제거하십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사용하시며 더이상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③ 하나님은 죄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십니다. 이는 신자에게 성령이 부어져서 성령께서 그에게 평화와 위로를 주시고, 그에게 의롭다하심과 그 증거를 주심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와 다시 교제하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그와 계약을 맺어 하나 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2) 죄 사함 받기 위해 해야 할 일
죄를 고백하라.
우리는 죄를 고백하되 구체적으로, 그리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처분에 맡기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려야 하며, 우리의 사는 목적도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전적으로 부인해야 하며, 온전하시고 모든 것이 충만하신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드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기회 있을 적마다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증거해야 합니다.
⑤ 장래를 예비하라.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그의 것을 돌려드려 다시 빚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당신 닮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비롭고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사 우리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을 위해 살아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용서하라
창50:15-21
서론
신 · 구약 성경은 용서의 교훈으로 충만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의 근본 정신을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다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 용서하여야 합니다.
용서에 관한 권면은 성경에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글에서도 오늘은 용서의 대표적 인물로 야곱의 아들 '요셉'의 용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첫아들(창30:22-24)입니다. 아버지는 요셉을 사랑해서 늘 채색옷을 입혔습니다(창37:3).
요셉은 17세 때에 양 치러간 형들이 잘 지내는지를 알아보려고 세 검으로 갔다가(창37:2) 거기서 발견치 못하고 다시 도단으로 갔다가(창37:17) 형들에게 붙들려 은 20개로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려(창37:28) 애굽의 노예 시장에서 다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리게 되었습니다(창37:36). 이때부터 13년간의 기구한 요셉의 인생고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역사적 피해자에게 한 번은 차례가 온다는 순리가 마침내 요셉을 약관 30세(창41:46)에 애굽에 제 2 인자인 총리 대신(창41:38-43)으로 만들었습니다. 천하의 권세를 오른손에 잡은 요셉은 전날의 원수들을 다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1. 자기의 생명을 해하였던 원수(형들)들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창37:18-20)",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곳에 물이 없었더라(24절)",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28절)"고 하였습니다.
이상의 구절에서 형들의 악랄한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강대국 애굽의 총리 대신의 권좌에 있으면서도 양식을 구걸하러 온 옛날 원수(형들)들에게 "두려워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이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0)"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요셉은 용서의 사람이었습니다.
2. 모함하는 여인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았습니다(창39:7-12). 요셉의 당한 유혹은
(1) 청년의 색욕이었습니다.
(2) 고독한 때였습니다.
(3) 이해가 수반되는 유혹이었습니다.
(4) 윗사람에게서 받은 유혹이었습니다.
(5) 은밀한 유혹이었습니다.
(6) 중복되는 유혹이었습니다. 참으로 물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도망하여 갔습니다(창39:12). 적반하장지격으로 도리어 "그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 내게로 들어오기로 내가 크게 소리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 옷을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코자 내게로 들어왔기로 내가 소리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나이다(창39:13-18)"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그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넣으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창39:19-20)"
요셉이 17세에 애굽에 내려가서(창37:2) 30세에 바로 앞에 설 매까지(창41:46) 약 13년 동안 이 일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으나 요셉은 그 모든 것을 다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3. 자기에게 배은한 사람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요셉이 옥중에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함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고(창40:9 -13) 은혜 베풀어 옥에서 건져내도록 부탁하였으나(창40:14-15)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의 말대로 석방되어 다시 옛 지위에 나아갔으나 요셉의 은혜를 기억지 않고 잊었습니다(창40:23). 그러나 요셉은 그를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요셉은 자기가 권좌에 있을 때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또 용서했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9:11)"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이 잠언은 만고 불변의 진리 중의 진리입니다.
결론
'모든 역사적 피해자에게 한 번에 차례가 옵니다. ' 그때 용서하시기 비랍니다. 항상 모든 일에 용서를 하되 특히 내가 권좌에 있을 때 그리고 내가 원수를 갚을 만한 환경에 있을 때 더욱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 용서야말로 더 위대한 용서가 될 것입니다.
우상숭배
성 경 활 용
1. 우상의 일반적인 면
(1) 구원하지 못한다.
(대하32:13) 나와 내 열조가 이방 모든 백성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열방의 신들이 능히 그 땅을 나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렘2:28)네가 만든 모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2) 파괴되고 버려져야 한다.
(출23:24) 너는 그들의 신을 숭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소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훼파하며 주상을 타파하고
(민33:52)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사2:20)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날에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지고
(3) 종노릇하는 것이다.
(갈4:8-9) 너희가 그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4) 무익하다.
(사44:9-10)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뇨
(5) 화나 복을 주지 못한다.
(렘10:5)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니라
(6) 무법한 것이다.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쫓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7) 말하지 못하고, 못본다.
(신115:5)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고전12:2)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8) 듣지 못하며, 맡지 못한다.
(시115:6)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시135:17)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2. 무엇을 우상으로 숭배하였는가?
(1) 드라빔
(창31:19)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삿18:14) 이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호3: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2) 애굽의 모든 신
(출12:12)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3) 송아지 형상
(출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4) 놋뱀
(왕하18:4)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일월 성신
(왕하17:16)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왕하21: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6) 천사
(골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7) 벽에 그린 우상들
(겔8:10) 내가 들어가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8) 이방신상
(창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9) 금수와 버러지 형상
(롬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0) 우상의 형상
(신4:16)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3. 우상 숭배시의 의식
(1) 자녀를 번제물로 바침
(레18:21)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케 말아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신12:31)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떠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2) 죽은 자를 위하여 자해하였다.
(신14:1)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3) 화목제를 드리고 나서 먹고 마시며 뛰어 놀았다.
(출32: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4) 남색하였다.
(왕상14:24)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에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왕상15: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4. 어디서 우상을 숭배하였는가?
(1) 산 위에서
(사57:7)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서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2)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사57:5)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 틈에서 자녀를 죽이는도다
5.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1)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
(출34:17) 너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지니라
(레19:4)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2) 우상의 제물을 멀리하라.
(행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3) 이방 신상을 버리라.
(창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4) 땅에서 머무르지 못하게 하라.
(출23: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네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5)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라.
(출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신5:7)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
(시81:9) 너희 중에 다른 신을 두지 말며 이방신에게 절하지 말지어다
6. 왜 우상을 실기면 안되는가?
(1)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므로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2) 죄가 삼사대까지 이르게 되므로
(출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3)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므로
(고전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한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4) 저주를 받게 되므로
(신27: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7. 우상 섬긴 자의 절과는 무엇인가?
(1)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
(대하24:18)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겔36:18)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2) 화가 임하게 된다.
(합2:19) 나무더러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더러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3) 하나님 앞에 범죄한다.
(왕하21: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전에 세웠더라
(4) 스스로 더럽힌다.
(겔22:3) 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 가운데 피를 흘려 벌 받을 때로 이르게 하며 우상을 만들어 스스로 더럽히는 성아
(5) 올무에 걸린다.
(시106:36) 그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이 저희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삿2:3)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6) 아침 구름 같다.
(호13:3) 저희는 아침 구름 같으며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우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7) 이방에 흩으신다.
(행7: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8) 칼과 기근과 온역으로 망한다.
(겔6:11)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모든 가증한 악을 행하므로 필경 칼과 기근과 온역에 망하되
(9) 욕을 받아 수욕 중에 들어간다.
(사45: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관련원어풀이
1. @w<a: 아-웬
(1) 텅빔, 공허, 헛되고 공허한 것.
(삼상15:23, 사41:29)
(2) 우상들의 집.
(호4:15, 10:5)
(3) 우상의 골짜기.
(암1:5)
(4) 거짓, 사기, 사악, 불법.
(민23:21, 욥36:21)
(5) 불법을 행하는 자들.
(욥31:3)
2. @yhla> 엘로-힘
(1) 거짓이든 참이든 보편적인 신들, 신성한 것들.
(창35:2, 출12:12)
(2) 새로운 신들.
(신32:17)
(3) 어떤 신, 신성.
(신32:39, 겔28:2)
(4) 우상, 이방신.
(출32:1, 왕하1:2)
(5) 어떤 개인이 숭배하는 신, 가정신.
(창17:7, 욘1:5)
(6) 신적 존재, 신의 형상.
(삼상28:13)
3. lm,s, 세-멜
(1) 형상, 자태, 초상.
(신4:16, 겔8:3)
(2) 조각된 우상,
(대하33:7)
4. ei[dwlon 에이돌-론
(1) 환상, 형상, 이방인의 형상.
(행7:41, 계9:20)
(2) 거짓신, 이방신.
(행15:20, 롬2:22)
설교예화자료
우상의 집합소 힌두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들을 섬기는 자들은 힌두교도라고 합니다.
그들은 3억 3천만의 신과 여신을 갖고 있어 힌두교도 매 가정마다 여덟 가지 정도의 신이있다고 합니다.
힌두교리에서는 동물 생활의 신성함을 가르치며 그들은 항상 가난하게 생활하면서도 그들의 동물들은 그냥 놀도록 내버려 둡니다.
인도의 4억 5천 힌두교도는 대략 7천5백만의 소들을 모시며 더군다나 원숭이, 쥐 그리고 다른 해로운 동물까지도 그들의 수확물을 먹거나 해쳐도 그냥 놔둡니다.
어록·시·묘사
미신은 신들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에서 이루어지고, 종교는 신들에 대한 경건한 숭배에서 이루어진다.
(M.T. 키케로)
무엇보다도 나쁜 것은 신이 아닌 것을 신이라 믿는 일이다.
(테렌티우스)
늙은 농사꾼 마나님은 그림 형상이나 순박한 메달이나 묵주를 통해서야 자기의 신과 만나는 것이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신앙과 우상 숭배는 다르다. 신앙심이 견고한 나머지 우상 숭배를 믿게까지 된다면 그것은 신앙을 파괴하는 결과가 된다.
(B. 파스칼)
신앙은 문을 닫지 않으면 미신이 되어 창으로 들어온다. 신들을 내쫓으면 유령이 들어온다.
(F.E. 가이벨/ 시)
우상 숭배는 능력적인 거대한 전진적 성격의 유산이지만, 불신앙은 약자의, 비겁자의,퇴하고 속박된 무리들의 소유물이다.
(J.W. 괴테/ 색채학)
그 대개가 출생과 사망에 관한 속신적인 것들이었다. 산모가 난산으로 고통을 느낄 때 남편이 지붕에 올라가 멍에를 메고 끄는 시늉을 하면 순산을 한다든가, 임신을 못하거나 유산이 계속될 때는 쇠똥을 불에 태워 아랫 배에 댄다든가, 소 발톱 간 것을 만병 통치 약처럼 물에 타먹는다든가 하는 것들이었고, 사망 관계에 있어서도 임종시에는 소 갈비뼈를 베게 함으로써 시체가 썩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든가, 죽은 뒤 머리맡에다 소 오줌을 뿌리면 시체가 가벼워져서 극락에 올라가기가 수월해진다는 것 등이었다.
(황순원/ 일월)
금빛 난조(鷺烏) 춤추는 상사나무 비판 안고 눈썹 찡그리며 외는 주문 타는 한 곡조 별들도 오라, 귀신도 오라, 술과 떡 지천인데 산도깨비 흠향할 젠 소름이 오싹!‥‥‥‥ 신은 언제나 있는 것 이승과 저승 사이 그 기색 살피어 웃고 울며 사는 무당 일만 군졸 옹위 받고,신은 서서히 사라진다.
(이하/ 신통)
옛적의 제사는 예에 맞게 드렸으므로 무당도 또한 신의 말로써 대답하여 드디어 그 덕을닦아 제사하는 일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였었는데, 지금의 제사는 신을 기만하고 귀(鬼)를 모독하기를 안하는 짓이 없이 다하고, 무당된 자도 또한 요사한 말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망령스럽게 화복을 일컬어 금전과 곡식을 소비하며, 산 귀신 ·요괴한 물건들도 바라보고서 도와 집안 재산을 파산 탕진하고서야 그만두는데, 이것이 어찌 참다운 신명의 도리이겠는가.
(김시습/ 매월당집)
설 교 노 트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롬5:10
서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어떤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과 본래 원수되었던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알지도 못합니다.
1.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태도
(1)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와 평가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저급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는 모양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가식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할 만한 가치도 없는 존재로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므로 하나님도 그들의 뜻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십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뜻에 비추어 하나님을 대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일들을 자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육에 속한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패역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3) 인간의 행실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레26:11에 "너희가 나를 거스려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적개심은 잠잠해지지 않고 갈수록 더해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거슬러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정도
(1)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완전히 결핍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천성을 지니고, 고등 교육을 받고, 온전히 정신을 지녔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2)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원수된 마음은 너무나 강퍅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연약한 피조물의 능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마음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적개심을 이겨낼 수 없으며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3) 하나님의 피조물 중 인간이 가장 간악합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보다 더 하나님의 원수로 지내왔습니다. 죄의 길에 깊이 빠져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인간만이 자행한 일입니다.
3. 하나님을 대적하게 된 원인
(1) 일반적인 원인
타락 전의 인간의 모습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경배의 대상이 되셨고 참 하나님으로서 대우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고 그 사랑으로 자연의 모든 것들을 지배하였습니다.
타락 후 인간의 모습
인간이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화목도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게 되었고 다른 신들을 숭배하는 죄악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인간들의 우상숭배
하나님은 인간의 경배를 원하시나 그들이 거짓 신을 따르는 것들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우상 숭배에 증오심을 품으십니다.
(2) 특별한 원인
하나님은 인간의 우상 숭배를 혐오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우상 숭배를 원하지 않으시며 대단한 증오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와 더불어 거짓 신을 섬기는 것을 한없이 증오하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우상 숭배를 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 외에 어떠한 경쟁 상대자도 두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인간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고 명하십니다. 따라서 인간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시며 하루 속히 우상과 결별된 생활을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③ 하나님은 우상 숭배자에 대하여 영원히 파멸시킬 것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을 좇는 자들을 취하여 영원한 진노가 임하는 지옥으로 던져버릴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적 탐욕과 쾌락, 명예를 탐하는 자들 그리고 자신을 과시하는 자들에 대하여도 엄중한 경고를 하십니다.
결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위하여 온갖 고통을 참으며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실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므로 자기 생명을 내어 주어 우리들에게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요일4:10).
조상의 유전
벧전1:18-20
서론
온갖 종류의 유전 중에서도 그러하겠지마는 특별히 종교에 있어서 사람들은 조상들의 유전을 지키기를 지나치게 좋아합니다. 유대인들은 더욱 그러하고 우리 한국인들도 더더욱 그러합니다.
조상들로부터 받은 유전은 "망령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망령된 것"은 "공허한 것"을 의미하며 "무지한 이치"를 말합니다. "공허하고 무지한 것"이 무엇일까? 더욱이 우리네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것 가운데 망령된 것, 즉 무지하고 공허한 것이 무엇일까요?
온갖 것들이 많지만 그중의 하나가 조상숭배의 우상입니다.
조상의 명령을 기념하고 그를 섬기기 위해 신주로 모시거나 지방을 써서 붙이고, 그 앞에음식을 차리고 절을 하는 이 행위는 망령된 것이며 그것이 바로 우상 숭배입니다.
조상의 유전인 그 우상은 무엇입니까?
1.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이사야 3장 8절에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13장 2절에 "이제도 저희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장색이 만든 것이어늘 저희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만들었으니 그것은 사람보다 못합니다. 그것을 섬기니 망령되다는 것입니다. 즉, 공허하고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2. 우상은 피조물의 모방입니다.
신명기 4장 16-18절에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피조물은 모방이나 섬김이나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모방하고 그를 섬겨야 됩니다.
3. 우상은 죽은 것들의 형상입니다.
시편 115편 4절-8절에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44장 9절-11절에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의 기뻐하는 우상은 무익한 것이어늘 그것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요 보라 그 동류가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그 장색들은 사람이라 그들이 다모여서 두려워하며 함께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 4장 12절에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은 것들의 형상을 섬기는 자도 죽은 자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것을 섬김은 망령된 행동입니다.
4. 죽은 조상 숭배는 우상입니다.
우리들은 신주를 모시는 유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한국 재래 종교인 샤만(무당)과 유교와 불교의 종합을 이룬 우상입니다. 로마 카톨릭교에는 온갖 우상으로 가득 찼습니다. 동상, 그림, 성자, 마리아 숭배 등을 위시하여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위하여 기원을 하고 제사를 지냅니다. 그래서 카톨릭을 서양의 불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것들을 명령된 일이라고 규정하고 크게 경계합니다.
성경은 죽은 자를 위하여 이교도같이 슬퍼함을 금했습니다. 레위기 19장 28절에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의를 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4장1절에는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조상이 유전한 망령된 행실은 우상입니다. 여러 가지 우상 중에 조상 숭배하는 제사도 우상 숭배입니다. 이 우상을 섬기는 행위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배신하여 배은 망덕하는 행위입니다. 이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출20:5-6). 하나님을 미워하는 죄를 갚되 자손 삼사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는 무당들입니다. 출애굽기 22장 18절에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는 사람은 우상 경배자들입니다. 출애굽기 22장 20절에 "나 외에 다른 신에게 희생을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바보
왕상11:1-13
서론
설교가 맥카트니는 솔로몬 왕을 가리켜 "지혜로운 바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통일 이스라엘의 제 3대 왕이었습니다(962∼922B.C.). 다윗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불렀으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여디디야(여호와께 사랑을 입음)라고 하였습니다(삼하12:24-25). 솔로몬이란 이름은 아마 샬롬에서 인출된 것으로 그 뜻은 평화 또는 번영입니다. 솔로몬은 구약에 약 삼백 번, 신약에 열두 번이나 나타납니다.
솔로몬은 지혜로 잠언 3천을 말하였고,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초목과 금수와 어족을 논하였습니다(왕상4:32-34). 그는 성전을 7년 동안에 지었고(왕상6:38), 자기의 궁을 13년 동안에 준공하였습니다(왕상7:1). 젊어서는 이토록 총명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솔로몬이 늙어서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주리라(왕상11:11)"
솔로몬은 성공하고도 실패한 사람이며,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은 바보였습니다. 왜 그러한 말을 듣게 되었습니까?
1. 하나님보다 이방 여인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1-4절).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과는 통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2절). 그러나 솔로몬에게는 이방에서 데려온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 켰습니다. 솔로몬은 여기에 빠져들어 그의 맑은 영과 정신이 흐려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보다 여인들을 더 사랑했습니다.
2. 하나님보다 이방신들을 더 숭배했기 때문입니다(5-8절).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뿐인데, 이방 신전은 모압의 그모스와 암몬의 몰록을 위시하여 수많은 전각을 지었습니a5-8절). 두 번에 걸친 하나님의 경고에도 솔로몬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9-10절). 한 번 삐뚤어진 솔로몬의 시작은 마침내하나님의 진노(9절)를 자초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보다 이방신에 더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는데 그것은 다 잊어버리고 어리석게도 우상 숭배하는 일에 열심이었으니 그는 참으로 지혜로운 바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9-11절).
두 번에 걸친 권고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음은(9-10절) 그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지혜도 그에게 자제력을 주지 못했으며 그 파괴된 가정에서는 미련이 차고 이해가 없는 자식 하나를 남긴 것뿐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그 나라는 남북으로 양분되고 말았습니다.
결론
솔로몬의 몰락은 많은 아내와 이방의 아내들 때문이었습니다(왕상 11장, 느13:26). 그는 그들의 우상 숭배를 허락했을 뿐 아니라 자기도 동참했습니다. 감람산 남쪽 봉우리를 '범죄의 산'이라고 하는데 거기 솔로몬이 그 아내들을 위해 지은 이방신들의 '높은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성서사전, 한국기독교문화원, p. 495).그의 방일한 생활과 부요에 대한 교만이 그를 타락시킨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고 말았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
원 수
성 경 활 용
1. 성도는 원수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
(1) 사랑해야 한다.
(눅6:27)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로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2) 축복해야 한다.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3) 복을 빌어 주어야 한다.
(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도와주어야 한다.
(출23: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5) 먹이고 마시우게 해야 한다.
(롬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 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6) 용서해야 한다.
(마6: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7) 기도해야 한다.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8) 원수가 잃어버린 것을 보면 돌려주어야 한다.
(출23:1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9)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마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2. 원수를 사랑한 성도의 결과
(1)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2) 용서를 받게 된다.
(마6: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3) 상이 크다.
(눅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3. 성경에 원수로 기록된 것
(1) 마귀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마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2) 사망
(고전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3) 개인적 원한이 있는 자
(눅18: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4) 자기 집단 사람
(미7:6)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5) 그리스도가 왕됨을 원치 않는 자
(눅19:27)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6) 세상
(마22: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7) 이방인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8) 세상과 벗된 자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9) 육신의 생각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10) 배반한 친구
(애1:2)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관련원어풀이
1. byEao 아-야브
(1) 대적하다, 적으로 박해하다, 미워하다.
(출23:22)
(2) 대적, 원수.
(창22:17, 49:8)
2. !q'n: 나-캄
(1) 갚다, 복수하다, 보복하다.
(레19:18)
(2) 언약을 갚는 칼.
(레26:25)
(3) 자신을 갚다.
(삿15:7, 겔25:15)
(4) 보복을 당하다.
(창4:15, 출21:21)
(5) 자신을 갚다.
(렘5:9,9:8)
(6) 복수를 바라는.
(시8:3, 44:17)
3. rr'x; 트사-라르
(1) 누르다, 억압하다, 묶다, 함께 매다.
(출12:34, 사8:16)
(2) 붙잡다.
(호4:19)
(3) 닫다.
(삼하20:3)
(4) 억압하다, 박해하다, 적대시하다.
(민33:55, 사11:13)
(5) 억압을 당하다, 괴롭힘을 받다, 고생하다.
(사49:20)
4. la'G: 가-알
(1) 도로 사다, 속전을 주고 구제하다.
(레25:25, 룻4:4)
(2) 도로 지불하다, 피를 요구하다, 보복하다.
(신19:6, 민35:19)
(3) 가까운 친족, 동족으로 행하다.
(룻3:12)
(4) 더럽히다, 모독하다.
(말1:7)
(5) 타락된, 불순한, 부정한.
(말1:7, 12)
(6) 더럽히다, 타락시키다.
(사63:3)
5. anEc] 사-네-
(1) 미워하다, 증오하다.
(신22:13, 시11:5)
(2) 미워하는 자, 적군
(시35:19, 38:20)
(3) 미워하는 자, 원수, 적군.
(시l8:41, 55:13)
6. ajntivdi\ko" 안티디코스
(1) 소송에서 대항하는, 반대하는.
(마5:25, 눅18:3)
(2) 대적, 원수.
(벧전5:8)
7. ejkdikevw 에크디케오-
(1) 형벌하다, ~에 대해 복수하다.
(고후10:6, 계6:10)
(2) 의를 행하다, 원수를 갚다.
(눅18:5)
(3) 변호하다.
(눅18:3)
8. ejkdivkhsi" 에크디케-시스
민족, 복수, 형벌, 보복하는 공의.
(눅21:22, 행7:24)
설교예화자료
와신상담
한 가지 일을 긴히 생각하고 노심초사하여 기어코 성사하려 할 때 이를 와신상담(臥新嘗膽)이라고 합니다. 옛날 중국 춘추전국 시대 오왕 합려가 월나라를 치다가 부상당하여 죽었습니다. 그후 오왕의 아들 부자가 왕이 된 후 부친의 원수를 갚고자 골똘히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이 혹시나 무디어질까 두려워해서 자신을 스스로 독려하고 편달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수심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방안에 자리를 펴지 않고 설 위에 기거를 하면서, 곰 쓸개를 머리맡에 달아 놓고 그 쓴 쓸개를 누울 때 한 번 맛보고 일어날 때 한 번 맛보고 복수심을 환기시켰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외치기를 "부차야! 너는 월국 놈들이 네 아비 죽인 것을 잊어버렸느냐?"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항복을 한 지 몇 해 만에 월국을 쳐서 대승을 하여 원수를 갚았습니다.
반대하는 기도
밀라노의 어떤 공작은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를 증오하며 그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기를 밤낮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늙은 부인이 매일 해질 무렵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공작이 항상 건강하고 장수하기를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이를 본 한 마을 사람이 이 사실을 공작에게 전했습니다. 이것을 들은 공작은 자신이 그러한 기도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선하지 못함을 알기 때문에 그 부인에게 왜 그녀가 매 일 그를 위해서 기도하는지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소녀였을 때 밀라노에 매우 잔인한 성주가 있었는데 그가 죽기를 바란 적이 있었죠,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그보다 결코 좋지 않은 아니 오히려 더 나뿐 성주가 통치를 하게되었죠."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우리의 세 번째 성주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전의 두 사람의 성주보다 훨씬 사악하고 잔인하군요. 따라서 저는 당신이 죽은 후에 당신보다 더 사악한 사람이 성주가 될까봐 두려워요.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당신이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폭군은 그렇게 대답한 여자를 죽음에 처하게 하기에는 자기 자신이 너무 부끄러운 행위를 많이 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원수 사랑
옛날 영국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의 재산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하였으나, 록 한 가지만은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에드워드 3세께서 주신 작은 금상자였습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났을 때 제일 착한 아들에게 금상자를 주기로 다시 마음먹었습니다. 이때 세 아들이 아버지께로 왔습니다. 맏아들은
"아버님, 저는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었는데 갚기가 싫어 밤에 도망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돌려 게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빚을 갚음으로써 훌륭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 하였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아버님, 저는 어떤 사람에게도 세상에 둘도 없는 훌륭한 말(馬)을 맡아 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말을 다른 말과 바꾸어 주면 백만 원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절하였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셋째가
"저는 별로 한 일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한 사람의 원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그리하여 아버지는 세 아들 중 막내에게 그 금상자를 주기로 했습니다.
어록·시·묘사
만일 내게 친구가 없다 할지라도, 나의 결점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내게 원수를 보낸다.
(B. 휘치커트/ 설교집)
개는 원수를 보고 짖는다. 그런데 사람이 원수를 가장 사랑할 때는 그가 죽었을 때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원수는 순(順)으로 풀라. < *원수를 원수로서 갚으면 다시 원한을 사게 되어 끝이 없으니화평스러운 가운데 풀어야 후환이 없다는 말>
(한국 속담)
그대의 원수를 비난하는 일은 순간적인 일에 불과하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적은 우연하게 좋은 충고를 줄 수 있다.
(T.풀러/ 잠언집)
너의 적을 존경으로 대하는 것은, 그가 받을 자격이 없는 이(利)를 그에게 주는 것이다.
(보즈웰/ 존슨 傳)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나에게 한 사람의 원수라도 있었다면 나는 그 원수를 하늘에서 반가이 맞아들여 그 원을 풀게 하리라.
(D. G. 로세티)
10명의 친구가 이익을 주는 것보다 1명의 적이 더 많이 해칠 수 있다.
(J. 스위프트/ 서한)
십리가 모래 바닥이라도 눈 찌를 가시나무가 있다. <*친한 벗 가운데도 원수가 있을 수 있다는 말>
(한국 속담)
친구에게 좋게 대하라, 그를 잃지 않기 위해서이다. 적에게 잘 하라, 그를 얻기 위해서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너의 적을 사랑하라, 그들이 너의 결점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義敵은 예로써 극복하고, 强敵은 겸양으로써 극복하고, 剛敵은 외교로써 극복하고, 暴敵은 속임수로써 극복하고, 逆敵은 권모로써 극복해야 한다.
(오 자)
지루한 맹약이 두 연인을 갈라놓았을 때 세상은 넓지만 너의 적이 반대편에 흩어져 있을 때 세상은 좁다.
(J.B. 오라일리/ 거리)
친구가 없고 주머니조차 텅텅 빌 정도라면, 성품이 악한 적이라도 있는 편이 났다.
(니치프레돈)
원수를 가진 자는 도처에서 그를 만난다.
(알리이븐 아브팔 리브)
적을 알고 아군을 알면 승리는 위태롭지 않고, 그 위에 지리와 천시(天時)까지 안다면 싸움은 전승할 것이다.
(손자/ 손자병법)
적은 문 안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싸워야하는 우리 자신의 사치와 어리석음과 범죄이다.
(키케로/ 카틸리누스 탄핵)
적끼리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는다.
(A. 세니에)
적이 불행할 때에는 나에게는 적이 아니다.
(V. M. 위고)
가치있는 적이 될 수 있는 자는 화해하면 더 가치로운 친구가 된다.
(O. 펠덤/ 결심)
강한 적은 약한 친구보다 낫다.
(E. 댈버그/ 프리아푸스의 슬픔)
내 편이 아닌 사람은 나의 적이다. 적이라는 것은 내 마음의 한 귀퉁이를 점령하고 있는존재로 그것을 내가 저항하고 다스려야 할 부분,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건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의 존재는 내가 다스려야 할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을 말하는 것이 된다. 나의 편도 아니고 나의 적도 아닌 무관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 나에게 해로운 것이다. 적은 차라리 높은 의미에서 나의 가장 좋은 벗이라 할 것이다. 적은 차라리 좋은 자극제이다.
(C. 힐티)
사람에 따라서는 정다운 듯한 친구보다 얄미운 적에게 더 많은 신세를 지기 일쑤다. 적은곧잘 진실을 말해 주지마는 친구는 절대로 바른 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M.P. 카토)
미래의 적은 언제나 바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다.
(R. 라이/ 키티 포일)
죽은 적군의 시체는 언제나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
(A. 비텔리우스)
우리와 씨름하는 자가 우리의 신경을 강하게 해 주고,우리의 재능을 날카롭게 해 준다. 우리의 적대자는 우리의 조력자이다.
(E. 버크/ 프랑스 혁명의 회고)
친구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라.
(영국 속담)
정성어린 봉사는 벗을 만들고, 진실을 말하면 적을 만든다.
(프랑스 속담)
적을 탐색하기를 마치 도망친 자식을 찾듯하며, 적을 격퇴하기를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건져내듯 성의를 다하라.
(위료자)
만일 우리가 적의 공개되지 않은 인생의 이력서를 읽을 수가 있다면 그 속에는 적잖이 슬픔과 고통이 담겨져 있어 우리로 하여금 적개심을 잊게 할 것이다.
(H. W. 롱펠로우/ 유목)
서로가 익숙해져 버린 적만큼 해로운 것은 없다.
(G. 초서/ 상인의 이야기)
적이 보내 온 선물은 불길한 선물이다.
(소포클레스/ 아이아스)
한사람의 적을 용서하면 몇 사람의 친구를 얻게 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자신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적이 가장 가공할 만하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잠언집)
적에게 이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적을 멸망시키는 것은 지나침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함께 일할 때는 마음에 상처를 주는 적과 친구가 필요하다. 전자는 너를 중상하고 후자는 너에 관한 뉴스를 제공한다.
(마크 트웨인/ 적도를 따라)
너의 적을 사랑하라, 그들은 너의 결점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적의란 복수할 기회를 노리는 분노이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나라의 적을 제외하고 나의 적이라곤 없었다.
(A. J. 리슐리외)
악한 친구는 버리고 착한 적을 받아들여라.
(일본 속담)
적을 격파하는 최선의 수단은 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앙리 4세)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그 적을만난다.
(논 어)
말없이 감추어진 적의(敵意)는, 공표된 적의 이상으로 무서워해야 한다.
(M. T. 키케로)
너의 가장 큰 적은 너의 자신 이외의 아무도 없다.
(롱펠로우/ 미켈란젤로)
산속의 적은 무찌르기 쉬워도, 마음속의 적을 무찌르기는 어렵다.
(왕양명)
싸우기도 전에 적을 얕보는 것은 어리석고, 이긴 뒤에 쫓아가 치는 것은 비열하다.
(J.W. 괴테/ 잠언과 성찰)
진짜의 적으로부터는 한없이 많은 용기가 너에게로 흘러 들어온다.
(F. 카프카/ 죄 ·고뇌 ·희망·진실의 길에 대한 고찰)
나는 존경할 만한 원수에 대하여 듣기를 좋아한다.
(W. 스코트/ 호수의 숙녀)
졸음겹게 사회자가 선창하고/ 졸음겹게 교인들도 재창한다. / 설교단 위에서 고요히/ 목사는 적을 위해 기도한다.
(릴리엔크론/ 여름날의 마을 교회)
적을 만들고 싶거든 돈을 꾸어 주라. 그리고 갚아 달라고 조르라.
(영국 속담)
적개심의 억압이 란 오직 적개심을 의식하는것을 제거해 버리는 것뿐이지 적개심 그 자체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잠재적 적개심, 즉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적개심은 퍼스널리티 전체에 걸쳐서, 그리고 다른 사람과 자기 자신에 대한 관계에까지 침투해 들어갈 정도로-그러나 합리화되고 위장된 형태로-증가하고 있다.
(E.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마침내 이 원수가 우리 등에 발을 디딜 때/ 우리는 희망 품고 외칠 수 있으리니, 앞으로!
(C.P 보들레르/ 여행)
그러나 그가 나를 원수처럼 증오한다는 사실은 "죽어라 죽어."하며 그 고무장갑 같은 손으로 나를 구타하는 것으로 보아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손창섭/ 미해결의 장)
우리 잠을 설레게 할 번민도 없고/ 원수가 우리를 습격하는 일도 없으며/ 원수와 도모하여 육신의 힘이/ 우리도 죄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작자 미상/ 밤의 노래)
죄인 찾아 오신 구주/ 원수 위해 비심이여/ 사울이 바울되던/ 사랑의 손길인데
(김시백/ 광야의 소리 · 6)
그들은 왜 우리들의 적의/ 모국어를 즐겨쓰는 것일까.
(N. 그리그/ 국왕)
'당신은 누구를 죽일 양으로 이를 갈으시오? 칼을 갈으시오? ", "우리 동지 중에 아무 놈을 죽이려고요,", "동지를 왜 죽이려오?" '그놈이 내 뜻에 안 맞으니까요.", "당신 뜻에 안 맞더라도 큰 주의로 동지가 아닌가요? ", '그놈이 아니꼬와서‥‥‥‥‥동지를 위해 이를가는 대신에 원수를 위하여 갈으시지요" "원수보다도 그놈이 더 밉구려.", "당신은 원수를 한 번 때려나 보았소? 또는 욕이나 하여 보았소?","아직 그런 일은 없소."
(이광수/ 우상)
주여, 오늘 우리는 당신 앞에 나아와/ 우리의 슬픔을 당신에게 호소하나이다. / 주여,우리는 피곤하고 번민하며/ 위험과 원수에게 에워싸여 당신에게 호소하나이다.
(카멜라리우스/ 괴로움으로 번민할 때)
일체의 것은 모두 정적을 이루고 있었으나 저쪽의 어둠 속에는 적들이 쉬고 있었다.
(P.L. 쿨/ 라일락과 장미)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납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그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운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김매영/ 하‥‥‥그림자가 없다)
이윽고 가인은 새의 가슴에 활을 쏜다/이윽고 그는 투쟁과 전쟁과 죽음을/모든 집과 마을에 가져올 것이다. / 적을 만들고 쳐 죽일 것이다. / 적과 자기 자신을 자포 자기로 미워하고/ 적과 자기 자신을 오솔길 끝까지 추격하여/ 다음 세계의 밤까지 고뇌하게 한다. / 마침내 가인은 자살하고 말았다.
(헤세/ 아벨의 죽음)
그러나 그들은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어선에서, 교실에서,/ 적을 향해 갈 길을 발견하였다. / 자기 자신의 명령 이외에/ 아무런 명령도 받지 않은 것이었다.
(N. 그리그/ 국왕)
비겁과 이기심을 만들어 내고/ 용서 못할 적을 벗으로 삼게 하고/ 주의 상처가 말하는 쓰라린 진실을 숨기게 하는/ 전통과 점잖은 베일을 찢어 발겨 망각에 묻어 두자./ 이제 더 위대한 치욕을 위장할 수는 없는 것,/ 주는 세계의 종말까지 격한 고통을 겪는다.
(개스코인/ 이 사람을 보라)
운명과 원수와 그리고/ 아시아의 지긋지긋한 오랜 재난을 향해/ 쓸쓸하게, 징그럽게,쓰디쓴 웃음을 던진다.
(중 뜅민/ 웃음)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데/ 당신의 원수에게 팔려 가게 되었나이다. / 나를 메어 놓아 그 매듭을 풀고 찢어 주소서.
(던/ 내 마음을 치소서)
원수까지도 사랑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영혼의 눈을/ 갖고 싶다/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황금찬/ 사랑하고 싶다)
왼 뺨을 치면/ 오른 뺨도 돌려대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까지 가 주고/ 겉옷을 구하면/ 속옷까지 주는/ 그런 사랑으로 살고 싶다// 거기에 무슨 원한이 있으며/ 누가 원수가 되랴/ 그저 사랑하고 존경하며/ 서로를 위하여 사는/ 평화의 삶이어라.
(황금찬/ 말씀대로)
만일 내 마음 굴복하여/ 더럽힘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노라,/ 또 한 세상도 나를-/ 우리 서로 선한 적으로서/ 깨끗이 헤어지자./ 세상은 나를 배신했어도/ 나는 믿으리라.
(바이런/ 나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았다)
삼수갑산 어디메라/ 삼수갑산 내 못가네/ 아하 새더라면 날아날아 가련만도.// 삼수갑산 가고지고/ 삼수갑산 보고지고/ 아하 원수로다. 외론 꿈만 오락가자
(김억/ 삼수갑산)
날이 어두워지면서 경계선은 선명해졌다/ 밤은 항상 보리나무 끝으로 오곤했다/ 긴장된 나무숲을 헤치며 카멜레온 같은 적은 나타났다.
(이용범/ 비)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 정말 회한한 일이다/ 나는 이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을/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
(김수영/ 현대식 교량)
저 간악한 압제자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라/ 용서하지 마라 네가 죽는 최후의 그날까지/ 선서하라 선서하라.
(하이네/ 아타트롤 · 10)
행진의 대열이 짜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열의 선두에 선 자가 적이라는 사실을/ 지휘하는 소리는/ 적의 소리/ 적이 적이라고 고함치는 놈/ 그놈이 바로 적이다.
(하이네/ 독일전쟁 안내)
나는 그대가 죽은 뒤에도 고독하지 않다/ 그대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대의 원수를 갚아 줄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네루다/ 스페인 형장에서 살해된 미켈 에르난데스)
원수가/ 노릴 때나/ 악마가 괴롭힐 때/ 주님은 방패되고/ 주님은 병기되네
(홍안의/ 나는 염려 없네)
원수는/ 끝내 인간사// 아침에 원수가 버리고 간 강풍을 뜻 아니 고요히 즐기는다.
(유치환/ 小懇)
봄빛이 스며드는 썩은 원수의 살더미속에/ 전흔을 헤치고 신생하는 금속의 거리와 광장들에/ 부활을 의미하는 참혹한 마지막 시간에/ 일으켜야 할 제목은 신성과 자유이다.
(김현승/ 신성과 자유를)
내 아들아, 많은 사람들이 네게 있지만/네 곁에 항상 내가 함께 있다/ 네 원수로부터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네 손을 잡아 안전히 인도하리라.
(헨리. N. 콥/ 은혜로운 응답)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많은 것은 아니다. 원수는 막상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을 때가 많다.
(알랭)
예(禮)에는 원수 갚는 것을 중히 여겼고, 춘추(春秋)에는 역적을 토벌하는 것을 중히 여겼다. 그러므로 임금과 부모의 원수와는 한 하늘 밑에 살지 못하는 것이요, 임금을 시(弑)한 적(賊)은 누구나 토벌할 수 있는 것이다.
(권 근/ 입학도설)
원수를 가진 자는 도처에서 그를 만난다.
(알리이븐 아브팔 리브)
평생을 거적자리에서 잠자고 방패로 베개를 삼아 원수 갚을 마음을 한시라도 게을리하지말아야 할 것이다. 또 원수와 같은 조정에서 벼슬할 수도 없는 것이며 이 세상에 함께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그 사람을 시장 가운데서 만나게 되면 되돌아서지 말고 병기를 가지고 싸워야 할 것이다.
(孔子家語)
개는 원수를 보고 짖는다. 그런데 사람이 원수를 가장 사랑할 때는 그가 죽었을 때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원수가 죽었을 때는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마침내 이 원수가 우리 등에 발을 디딜 때/우리는 희망 품고 외칠 수 있으리니, 앞으로!
(C.P. 보들레르/ 여행)
그러나 그가 나를 원수처럼 증오한다는 사실은 "죽어라,죽어." 하며 그 고무장갑 같은 손으로 나를 구타하는 것으로 보아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손창섭/ 미해결의 장)
그대를 사랑하는 자는 축제에 초대하되 그대의 원수는 혼자 내떠려두라.
(헤시오도스/ 일과 나날)
그대의 원수를 비난하는 일은 순간적인 일에 불과하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나에게 한 사람의 원수라도 있었다면 나는 그 원수를 하늘에서 반가이 맞아들여 그 원(怨)을 풀게 하리라.
(D. G. 로세티)
깊은 산 찾아 들어/ 접동새 되량이면/ 가슴에 맺힌 한을/ 울어 풀어 보련마는/ 티끌에 사람 몸 되어/ 어이할 리 없어라// 매몰타 정이 없다/ 사람아 말을 마소/ 속된 무길 속에 마음 붙일 곳이 없어/ 평생을 울고 갔다고/ 뒤 적어 주시오
(김오남/ 원망)
설 교 노 트
내 원수를 크게 갚으리라
겔25:17
서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백성인 유대인들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 그들을 먼저 책망하시고 시 벌하시며, 따라서 그들의 원수되는 이방 족속들의 죄도 지목하사 심판하셨습니다.
1.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말씀하시기를 "정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율법의 정신은 출애굽기 21장 24절에 "눈에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갚아야 하는 것이 공의로운 율법 정신입니다. 원수를 사랑함에도 효과있게 해야 하며 굴욕적인 입장에서 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처지에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원수를 갚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힘이 들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모두 맡겨버리면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실 것입니다.
2. 원수를 갚으신 역사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장기간 괴롭힌 애굽에 대하여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그들을 치시고 출애굽 백성을 뒤쫓아오던 애굽 기마병들을 모조리 홍해 바다 깊이 수장하셨습니다(출14장).
사사 시대에도 이스라엘인들이 범죄할 때마다 미디안, 블레셋 등 이웃 나라를 들어서 먼저 치셨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치셔서 원수를 갚아주신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시 왕국시대에 나타난 역사도 그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들을 이방 민족을 써서 하나님께서 크게 원수를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백성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원수의 손에서 구출하여 내십니다.
3. 원수를 갚으시는 진리
하나님의 백성과 그 신성을 조롱하는 무리들은 결국 멸망받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것이 개인인 경우나 단체이건간에 남김없이 멸망시키십니다. 그들이 그렇게 크게 벌을 받을 때에야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신 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 살아계신 증거를 예언하신 대로 심판 행위를 통하여 나타내십니다.
본문에 언급한 대로 "내가 블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자를 진멸하되 분노의 책벌로 내 원수를 그들에게 크게 갚으리라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같은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은 좋은 말로 교훈하고 권면할 때에는 제대로 듣지 아니하다가 크게 화를 당하고야 깨닫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만사에 아멘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월수를 갚으시는 것이나 저주하고 진멸시키는 일에도 선을 위한 목적이 있으신 것입니다.
도리어 복을 빌라
벧전3:8-12
서론
이제 봉독한 본문을 보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요,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먼저 들어간 서구인들의 언어에는 남에게 복을 비는 축복의 언어가 많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수천 년 동안 우상 종교의 지배를 받아온 동양인들의 언어에는 축복의 언어가 적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곧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축복하는 말에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축복받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남에게 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야곱입니다. 축복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영원히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생 복락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축복해 주라고 하셨고 예수님 자신이 친히 십자가 위에서 실천 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4절에서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하셨고, 사도 베드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도리어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남을 진정으로 축복할 때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므로 축복하는 말에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2. 우리가 축복을 빌 때 그 축복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유업이란 곧 "상속"을 말함인데 우리가 남에게 축복을 빌어주면 그 축복을 내가 상속으로 받게 되지만 저주를 빌게 되면 그 저주가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축복을 상속받을 사람인즉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축복받은 나라를 축복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비결은 축복받은 개인을 향해 축복하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 가지 좋지 않는 습성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이 잘되면 어떻게 하든지 잘못되게 하려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주위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잘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위해서축복해 보세요. 그러면 그 축복이 여러분에게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축복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더 깊은 계시를 받지 못한 까닭은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축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보면 다 은 항상 하나님을 축복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시편 103편 1절-5절을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송축한다"는 말은 "여호와를 축복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호와를 축복한다는 말이 쑥스럽게 생각되거든 축복이란 말의 높히는 말인 송축이란 말을 쓰셔도 좋겠습니다.
결론
나 혼자만 복받고 잘 살겠다는 사람은 도리어 복받지 못할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은 이기주의적 사랑의 "에로스"가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의 "아가페"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더욱 더 복을 비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욱 큰 복을 주십니다. 특히 자기를 미워하고 때리며 죽이라고 덤벼드는 원수까지도 저주하기커녕 "도리어 복을 빌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각으로 상상도 못할 최고의 복으로 보상해 주십니다.
위 기
성 경 활 용
1. 위기를 이기는 방법
(1)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시107:19-20)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함으로
(시119: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3)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관련원어풀이
1. tyjiv] 쉐히트
우물, 웅덩이.
(시107:20, 애4:20)
설교예화자료
도끼와 주인
두 젊은이가 함께 오솔길을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 도끼야?"
앞에 가던 젊은이가 길에 떨어진 도끼를 집으며 말했습니다. 뒤에 가던 젊은이가 기뻐하며,
"허허, 오늘 우리가 대단한 횡재를 했군!" 하고 말하자 도끼를 주운 젊은이는 금방 표정이 굳으며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도끼는 내가 주웠네, 그러니 횡재는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한 것이라네. 자네는 뭐 그리 좋아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뒤에 가던 젊은이는 겸연쩍은 표정이 되어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얼마쯤 더 가고 있을 매였습니다.
뒤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저녀석이 내 도끼를 훔쳐갔다. "
두 사람은 당황하여 도망쳤습니다.
비록 도끼를 훔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사람들에게 잡히면 꼼짝없이 호된 매를 맞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참을 뛰다 보니 두 사람 앞에는 큰 강이 가로 놓여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도망갈 수 없는 곤란한 처지가 되자 도끼를 주운 젊은이가 말하였습니다.
"아,우리 이제 끝장이야.꼼짝없이 도둑으로 몰려 망신을 당하겠지 ! "
그러자 다른 젊은이가 말하였습니다.
"말 똑바로 하게! 끝장이 난 건 우리가 아니고 자네일세. 도끼를 주운 건 우리가 아니고 바로 자네니까 말일세."
그때서야 도끼를 주운 젊은이는 좀전에 친구를 따돌린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여우와 멧돼지
아지랭이가 피어오르는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봄볕에 취해 많은 숲속의 동물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데 멧돼지만은 큰 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멧돼지님, 도대체 지금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계세요? "
여우가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으응, 송곳니를 갈고 있는 중이네."
멧돼지는 쉬지도 않고 이를 갈면서 짧게 대답만 하였습니다.
"이해를 못하겠군요. 이렇게 좋은 날 풀밭에 누워 단잠이나 주무시지 않고, 갑자기 무슨 송곳니를 간다고 야단이세요?"
여우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으나 멧돼지는 아무 대꾸도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멧돼지님, 지금 당장 어디서 사냥꾼이라도 나타난답니까? "
멧돼지가 아무 대꾸도 않자 기분이 상한 여우가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러자 멧돼지는 점잖게 대답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제법 영리한 줄 알았는데 왜 그리 답답한 말을 하는가? 지금 당장 사냥꾼이 나타난다면 내가 송곳니를 갈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나. 위험이 닥치기 전에 미리 송곳니를 갈아서 날카롭게 하려는 것이라네."
그 말을 들은 여우는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되었습니다.
당나귀의 꾀
햇볕이 따뜻한 오후,당나귀 한 마리가 풀밭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저만치서 사나운 늑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나귀는 깜짝 놀랐지만 도망치기엔 이미 늑대가 너무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
"어쩌면 좋아. 꼼짝없이 늑대에게 붙잡히게 되었으니!"
당나귀는 울상이 되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도와줄 만한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꾀가 당나귀의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당나귀는 갑자기 다리를 절룩거리며 늑대에게 다가가 인사했습니다.
"늑대님, 마침 잘 오셨어요"
"오, 그래. 그런데 왜 다리를 절고 있니?"
가까이 다가온 늑대가 묻자 당나귀는 아픈 시늉을 하며 대답했습니다.
"조금 전에 가시 울타리를 뛰어 넘다가 그만 큰 가시에 발을 찔렸어요 그러니 제 뒷발에박힌 가시를 좀 빼주세요."
늑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흐음, 내가 이 녀석을 그냥 먹었다가는 내 목에 가시가 걸릴지도 모르겠군.그러니 나를 위해서도 이 녀석의 발에 박힌 가시를 빼어주는 게 좋겠군!'
늑대는 친절을 베푸는 적하며 당나귀를 뒷발을 들고 가시를 찾느라고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허허, 조심해서 다녀야지. 어쩌다‥‥‥‥
늑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나귀는 있는 힘을 다하여 뒷발로 늑대의 가슴을 걷어찼습니다.
"아이쿠!"
늑대는 저만치 나가 떨어져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당나귀는 잽싸게 도망치며,
"어디, 한번 덤벼보시지!" 하고 약을 올렸습니다.
한참 후에 겨우 일어난 늑대는 입맛을 쩝쩝 다시면서 말했습니다.
"공연히 친절한 척하다가 아까운 먹이만 !"
어록·시·묘사
큰 위기에 큰 용기를 알게 된다.
(J. 르라느/ 포활수유자)
위기에 맞서 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용기를 장담할 수 없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만약 위기가 지금 존재한다면, 그것은 현존하는 평화가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현존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사회가 압박당하고 있기 때문이며, 엄숙한 협정이 냉혹히 위협되고 있기 때문이다.
(J. F. 케네디)
학문과 직업과 생활/ 또는 애정과 죽음/ 그 모든 세상의 위기를 한 몸에 지니고/ 그 속에서 오히려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좁은 길을 찾는‥‥/ 피에 젖은 정신의 쇠잔한 흐느낌이여// 죽는다는 것-/ 그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기꺼이 웃음 머금고 행할 수 있는/가장 어리석은 "휴머니티"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얼마나/ 건강한 체격을 요하는 사상일것인가.
(김규동/ 위기를 담은 전차)
위험을 당하지 않고 위기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위급한 일을 당하여 관세음보살을 을는다.
(松南雜識)
내 발등의 불을 꺼야 아들 발등의 불을 끈다. < *사람이 급한 경우를 당하면 아무리 자식이 귀하나 제 일부터 먼저 처리한다는 말>
(한국 속담)
풀 끝에 앉은 새 몸이라. < *안정된 처지가 아님을 말함>
(한국 속담)
눈썹에 불붙는다. <*당한 일이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는 말>
(한국 속담)
당신은 내가 궁지에 몰렸을 떼/ 생각납니다// 당신은 내가 무력해졌을 때/ 나타나십니다.
(임성숙/ 고통 속에서라도)
모든 메시지와/ 정신의 위기를 알리는 말들은/ 경각된 이기심처럼/우리의 탄탄한 대로를 밝혀주리라.
(김규동/ 어떤 낙화)
대양을 건널 때면 사람은 누구든지 신을 믿게 된다.
(R. 캄포아모르 이 캄포오소리오)
인간은 하루 종일 위협하는 위험에는 그리 주의하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사람은 두 방면에서부터 위기에 빠진다. 하나는 희망이요, 다른 하나는 절망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위험은 무시하면 일적이 찾아온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예측은 되는데 보이지는 않는 위험이 가장 사람의 마음을 짓누른다.
(G.J. 시저/ 갈리아 전기)
위험에 빠지지 않고 견디는 방법은 자기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T. 풀러/ 격언집)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위험이 는다.
(T. 풀러/ 격언집)
가장 큰 위험은 승리의 순간에 있다.
(나폴레옹 1세)
인생은 시작하자마자 거기 위험이 있다.
(T.A. 에디슨)
위기에 맞서 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용기를 장담할 수 없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큰 위기에 큰 용기를 알게 된다.
(J. 르나르/ 포괄수유자)
만약 위기가 지금 존재한다면, 그것은 현존하는 평화가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며, 현존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사회가 압박당하고 있기 때문이며, 엄숙한 협정이 냉혹히 위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J. F. 케네디)
우리는 전 세계 및 위험 지역에 관계되는 군축 문제에 긴급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험이 한 걸음 멀어진 지금 우리는 협력하여 그 중대한 영역에서 진정한 진보를 측량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 또는 대기권 외의 핵병기의 증대와 핵실험 금지의 커다란 노력에 관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J. F. 케네디)
학문과 직업과 생활/ 또는 애정과 죽음/ 그 모든 세상의 위기를 한 몸에 지니고/ 그 속에서 오히려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좁은 길을 찾는‥‥/ 피에 젖은 정신의 쇠잔한 흐느낌이여// 죽는다는 것/ 그것은 언제 어디서라도/ 기꺼운 웃음 머금고 행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휴머니티"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얼마나/ 건강한 체격을 요하는 사상일 것인가,
(김규동/ 위기를 담은 전차)
설 교 노 트
신자의 위험신호
벧전5:5-11
서론
오늘 전 세계 인류는 몇 가지 위험 신호에 접하여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 3차 대전이고, 자원 고갈이며, 지구의 폭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마지막 때에는 이상과 같은 사실들이 발생하리라고 예언하시면서 우리 신자들에게는 보다 더 위험한 신호를 예고하여 주셨습니다. 이 위험한 신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최후 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1. 겸손하여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지는 진정한 겸손은 무엇입니까?
(1) 자기를 낮추는 것이요
(2)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타락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신자에게 교만과 불순종은 금물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에게 순종하여 그 손에 붙들려 지는 진정한 겸손을, 성서적으로 정리해 보면,
① 나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여 자인하는 길입니다.
② 나 자신의 연약을 발견하여 자인하는 길입니다.
③ 나 자신의 무능을 발견하여 자인하는 길입니다.
④ 나 자신의 불신을 발견하여 자인하는 길입니다.
⑤ 나 자신의 불의함을 발견하여 자인하는 길입니다.
⑥ 나 자신의 불법함을 발견하여 자인하는 길입니다.
⑦ 나 자신의 불신앙을 발견하여 자인하는 길입니다.
이와 같이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서 마귀가 손대지도 못하거니와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온전해지고, 강해지고, 능해지고, 선해지고, 의로워지고, 순종하게 되고, 신앙의 사람으로 전환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2. 모든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마귀는 염려하고 불평하는 신자를 삼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1) 염려란 무엇입니까?
이는 마음에서 발생되는 근심이요, 번민이요, 불안과 고통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의 소산일지언정 신자의 소산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2) 왜 염려하게 됩니까?
이는 인간의 포부와 욕망을 자력으로 해결해 나아가려는 데서 역부족으로 발생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업의 욕망, 재물의 욕망, 권력이나 명예의 욕망을 자력으로 해결하려는 데서 발생이 됩니다.
(3) 이 염려가 마침내 마귀의 함정에 빠져들어가는 요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돈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돈으로,명예를 탐하는 사람에게는 명예로, 권력을 탐하는 사람에게는 권력으로 유혹해 옵니다. 과거 아담도, 아간도, 가룟유다도 모두 마귀의 유혹에 빠져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이 염려를 주께 맡기면 권고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권고는 돌아보아 주시고 도와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3. 근신하며 경성하여 믿음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1) 근신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생활을 조심하고 주의하고 신중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우리 신앙생활이 해이되거나 방종되거나 방탕하다가는 마귀에게 삼키우기 때문입니다.
(2) 경성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생활을 자성 자각하여 재정리하라는 뜻입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과 같이 정신 차려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3) 믿음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깊이있고 알차게 실력있게 하라는 말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빈 등만 가지고다니는 신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결론
제아무리 성이 나고 굶주리고 발악하는 마귀라도
(1) 겸손하며,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고,
(2) 염려를 주께 맡겨 권고를 받고,
(3) 근신하고 깨여서 믿음 굳게한 성도는 승리하리라고 믿습니다.
위 로
성 경 활 용
1. 하나님의 위로
(1) 약속된 것이다.
(사51:3)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같게 하였나니
(호2:14)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2) 풍성하다.
(사66:11)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풍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요15:11)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3) 영원한 것이다.
(살후2: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4) 신실한 것이다.
(신7:9)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의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왕상8:56)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2. 위로의 근본은 누구신가?
(1) 하나님 이시다.
(욥15:11)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
(사66:13)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고후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2)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마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느니라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3) 성령이시다.
(요15:26)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롬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 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3. 위로를 주는 대상
(1) 성도의 만남으로
(고후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음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2) 천사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나를 사자들이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3) 사랑
(빌2:1)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나 있거든
(4) 아내
(창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5) 성경
(롬15:4) 무엇이든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6) 자식
(행20: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렘31:1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도다
(7) 예언하는 자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고전14:3)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8) 부요한 자
(눅6:24)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9) 형제
(대상7:22) 그 아비 에브라임이 위하여 여러 날 슬퍼하므로 그 형제가 와서 위로하였더라
(10) 자기 스스로
(욥9:27)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시119:52) 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를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11) 편지
(행15:30-31)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12) 다른 성도들의 믿음
(살전3:7)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정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4. 성도가 위로해야 할 대상
(1) 생각이 많은 사람
(시94:19)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 탄식하는 사랑
(애1:21)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3) 곤란한 사람
(시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4) 자식이 없는 사람
(마2: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5) 상 당한 사람
(요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고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6) 환난 중에 있는 사람
(고후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어떻게 위로 할 수 있는가?
(1) 예언함으로
(고전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2) 주의 말씀으로
(사119:50) 이 말씀은 나의 곤난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라
(3) 형제의 사랑으로
(몬1: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6. 위로받는 방법
(1) 애통해야 한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2) 기다려야 한다.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3) 말씀을 읽으므로
(행15: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4)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관련원어풀이
1. !j'n: 나-함
(1) 슬퍼하다, 애도하다, 긍휼히 여기다, 회개하다.
(창6:6, 출32:12)
(2) 자신을 위로하다.
(창38:12, 삼하13:39)
(3) 복수하다, 원한을 풀다.
(사1:24)
(4) 위로하다.
(창5:29, 시23:4)
(5) 자신을 위로하다, 위로를 받다.
(창37:35, 시119:52)
2. bb;le 레-바-브
(1) 마음, 심장.
(삼하18:14, 시45:6)
(2) 영혼, 생명.
(시73:21, 렘4:18)
(3) 행동이나 사고방식.
(왕상3:6, 시51:12)
(4) 의도나 목적의 좌소.
(삼상14:7)
3. dyni 니드
입술을 움직임, 위로, 위안.
(욥16:5)
4. parakalevw 파라칼레오-
(1) 곁으로 부르다, 소환하다, 호출하다.
(행28:20)
(2) 말을 걸다, 이야기하다, 경고하다, 권고하다.
(눅3:18, 롬12:8)
(3) 빌다, 간청하다, 간구하다.
(마8:5, 행8:31)
(4) 위로하다, 격려하다, 강건케하다, 위안을 주다.
(고후2:7, 살전4:18)
(5) 위안을 받다.
(마2:18, 고후1:4)
(6) 권고하다, 위로하다, 격려하다.
(롬12:8, 살전3:2)
5. paravklhsi" 파라클레시스
(1) 탄원, 간구, 간청,
(고후8:4)
(2) 권고, 훈계, 격려,
(행15:31, 히12:5)
(3) 위로, 위안, 안위.
(눅2:25, 히6:18)
(4) 권면하는, 권고하는 말.
(행4:36, 롬12:8)
설교예화자료
초월한 삶
최근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30대의 자매님 세 분이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분들은 내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게 누구 죄 때문입니까? 돌아가신 분은 이제 주님을 열심히 믿고 섬기려고 했으며 교회에도 꼭 참석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자매님의 죄 때문도 아니고 그분의 죄 때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마음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그분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면 차출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자리에서 희한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자매 님들은 나와 함께 울면서 기도를 했는데 통곡을 하면서도
"목사님, 그러나 그분이 천당에 갔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저희들과 함께 계시니 할렐루야입니다. "하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매님은 계속해서
"목사님, 제게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온전치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은혜와 소망을 주시기 때문에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울고 웃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천국인이 가진 양면성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슬퍼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기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죽음을 초월한 삶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조차도 우리를 정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사람의 어부
바닷가에서 두 사람의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젊은 어부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아저씨, 그물이 굉장히 무거운 걸 보니 고기가 많이 걸렸나봐요." 하고 바다 속에 던진 그물을 끌어당겼습니다. 잠시 후 젊은 어부는 기쁨에 찬 음성으로, 다시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너무 무거워서 그물을 들어 올리기가 힘들 정도예요. 틀림없이 굉장한 고기가 걸린 거예요." 늙은 어부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다면 조심해서 올리게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도록!"
젊은 어부는 영차영차하며 있는 힘을 다해 그물을 끌어올렸는데 막상 그 속에서 나온 것은 물고기가 아닌 커다란 쇠뭉치였습니다.
무거운 그물을 올리며 많은 고기가 잡힌 줄 알고 가슴 부풀었던 어부는 붉게 녹슨 쓸모없는 쇠뭉치를 보자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화가 나서,
"에잇, 세상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하며 투덜댔습니다.
부푼 기대가 깨지자 실망하여 투덜거리고 있는 젊은 어부를 보며 늙은 어부가 말했습니다.
"여보게, 그래도 아까는 그 쇠뭉치가 자네에게 큰 기쁨을 주지 않았었나. 그러니 화내지 말고 좀 참게나."
"아저씨, 그렇지만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습니까. 힘들여 끌어올린 게 겨우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는 쇠뭉치인데요."
젊은 어부는 계속 투덜거렸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자네의 그물이 쇠뭉치에 걸려 찢어졌다면 어떻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좀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가?"
늙은 어부의 말을 들은 젊은 어부는 씨익 웃으며,
"하긴 그물이 찢어지지 않은 것만도 정말 다행이어요."
하고는 다시 밝은 얼굴을 하고 강물로 그물을 던졌습니다.
한 소녀의 동정심
남편보다는 더 구세군 활동에 열심이었던 부스 여사가 어렸을 때의 일입니다. 그녀는 길거리에서 굴렁쇠 놀이를 하다가 순경에게 잡혀 유치장에 질질 끌려가는 죄수를 보았습니다. 한 떼의 군중들이 그 불쌍한 범죄자에게 야유를 퍼붓고 있었고, 그 범죄자는 세상에서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그녀는 그에게로 달려가 그와 함께 거리를 따라 걸어갔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가 잘못한 것 때문에 고통을 받건, 혹은 남이 잘못한 것 때문에 고통을 받건 그를 동정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루빈스타인의 위로
빨간 머리에 재능있는 이 폴란드 젊은이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음악학교 선생님들은 그를 격려해 주기는커녕 피아노를 치기에는 손가락이 너무 짧고 굵다는 이야기만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코오넷을 구입했으나 여전히 그는 선생님들로부터 다른 악기를 선택해 보라는 언질과 함께 비슷한 말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 악기들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피아노 앞에 다시 앉게 되었습니다.
그가 심한 좌절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우연참게도 유명한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안톤 루빈스타인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해 피아노를 연주했고, 끝난 후, 긴장된 채로 앉아 있는 그에게 루빈스타인은 칭찬과 함께 잘 할수 있는 격려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청년은 하루에 7시간씩 맹연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러한 한마디의 칭찬의 말이 장 파데레프스키의 온 인생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웹스터의 위로
다니엘 웹스터는 법률을 공부하러 고향을 떠나 보스톤으로 갔습니다. 당시 매사추세츠 법조계의 수뇌 인 크리스토퍼 고어의 사무실에 권유장도 없이 입학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방인으로 여겨져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루퍼스 킹이 한 외롭고 고독한 학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따뜻하게 웹스터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를 잘 안단다. 열심히 공부해라. 그러면 너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이야. 그리고 언제든지 나의 조언이 필요하면 나에게 오너라."
세월이 흘러 그가 위대한 일을 해낸 후에 웹스터는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 당시의 루퍼스 킹의 따뜻한 손의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도전이 된 그의 격려의 말도 귀에 쟁쟁합니다. "
어록·시·묘사
부모는 차례 걸음이라.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에게 나이 많은 부모는 으레 먼저 돌아가시는 것이라고 하며 위로하는 뜻>
(한국 속담)
위안은 그것이 진부하더라도 거절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B.L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무식한 욕은 도리어 굶어 죽는 혼에서 떡이 될 수 있지만, 발라맞추는 간사한 위로는 칼보다도 더 아프게 생명을 갉아 냅니다.
(함석헌/ 아이레노포이오이)
우리들이 재난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무분별로 우리들에게 귀찮게 다가오는 위안은, 우리들의 괴로움을 배가하고, 우리들의 슬픔을 한층 격렬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될 뿐이다.
(J. J. 루소)
자기의 고뇌를 상세히 보는 것만이 자기의 마음을 위로하는 수단이다.
(스탕달/ 일기)
슬픔은 위로에 의해서 갚아진다.
(W. 셰익스피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우리들의 위안의 대부분은 고난이 어미닭처럼 품는다.
(E. 영/ 밤의 명상)
신은 불행한 자를 위안하기 위해서 때를지배했다.
(J. 주베르/ 팡세)
인생의 많은 낭비라고 말해지는 위안의 대부분은 인류의 향상에 대한 불가피한 장해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장해이다.
(H.D. 소로/ 월든)
사소한 일이 우리들을 위로하여 준다. 마치 사소한 일이 우리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B. 파스칼/ 팡세)
피로 다음에 오는 휴식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 공복 후의 식사보다 맛있는 것은 없다. 병을 앓고 난 다음의 건강보다 유쾌한 것은 없다. 만약 인생에 아무런 위안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피로나 공복이나 병이나 고난을 모르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생활을 폐하고 전력을 기울이어 살아가라. 반드시 위안이 있을 것이다.
(W. 스콧)
용기를 끌지 않는 용감한 인간이 되어라. 위로는 적절한 때에 너희를 찾아갈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적이나 하면 계집이니 위로도 하여 주련만 요건 불만 폭폭 질러 놀려나. 예이 빌어먹을 거 이판사판이다.
(김유정/ 금 따는 콩밭)
위로하며 살아갈 힘, 우리에게 주는 건, 아아! 죽음./ 이는 인생의 목적, 또 유일한 희망/보약마냥 우리를 부추기고 취하게 하여/ 저녁때까지 걸어 갈 기운을 준다.
(C.P. 보들레르/ 가난뱅이들의 죽음)
죽음과 죄가/ 끝나고/ 슬픔도 사라집니다/ 주님의 얼굴 뵈올 때/ 위로가 가득합니다.
(홍안의/ 빛보라치는 하늘)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을 준 이는 아내였다. / 즐거움이 환호성을 외칠 때/ 폭포처럼 웃음을 쏟았으며/슬픔의 도가니에 빠졌을 때/ 억수처럼 눈물을 뿌렸다.
(배용길/ 나의 아내)
고민이 있어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에게 스승이 말했다. / "정말 낫고 싶으냐? "// "아 니라면 성가시게 하려고 선생님께 왔겠습니까?"/ "그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지."/ "뭣하러요? "/ "치유를 받으러 오는 게 아니야. 치유란 괴로운 일이거든. 위안을 받으러오는 것이지."// 자기 제자들에게 스승은 말했다. / "고통 없이 나을 수 있다면서 낫기를 바라는 사람은 변화 없이 발전할 수 있다면서 발전하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같다. "
(앤소니 드 멜로/ 치유)
아들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한 부인이 스승에게 위로를 받으러 왔다. // 그는 그녀가 슬픈이야기를 쏟아 놓는 동안 참을성 있게 들었다. // 그런 다음 부드럽게 말했다. / "내가 당신의 눈물을 닦아 줄 수는 없습니다. 나는 다만 당신이 그 눈물을 어떻게 거룩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을 뿐입니다. "
(앤소니 드 멜로/ 긍정)
너의 부지런한 날개로/ 속임을 당한 해질녘은 위로받는다.
(L. 시니스갈리/ 파리에게 부치는 시)
위안자의 머리는 결코 아픈 일이 없다.
(허버트/ 이국인의 격언)
난 오래 잊었던/ 위안과 같은 한 야슬한 불안에 잠겨
(박희진/ 예감)
고통의 원인이 크면 클수록 이에 대한 위로의 대책도 이와 대등하도록 크지 않고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당신 손에서 위로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당신이 슬픔을 주고 알게 해준 분이기 때문에, 나에게 슬픔을 주신 당신이라면 위로해 줄 분도 당신뿐인 것 같습니다.
(이봉구/ 산타마리아)
나 때문에 울지 말아 다오./ 그리고 나의 회복을 위하여 쓸데없는 기도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 다오./ 그것보다도 나의 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빌어 달라.
(이사벨라 여왕)
왜 태어났을까? 아기는.// ‥‥외로운 자와 더불어/ 서로 외로움을 위자(慰藉)하려고/ 정박과 박해를 받는 자와 더불어/ 슬픔과 형벌을 함께 나누려고
(박화목/ 아기의 탄생)
-봄이 오네, 요한!/ 그 약대털 옷을 입은 자네의 웅변으로/ 나의 비애를 위로해 주게나.// ·.·-봄이 가네. 요한!/ 그 메뚜기와 석청을 먹은 자네의 웅변으로/ 나의 비애를 위로해주게나.
(석용원/ 광야에서)
비바람치는 언덕에 목 꺾인 억새처럼/ 허우적거릴 때// 겨울 벌판에 허수아비처럼/손들고 나를 포기하는/ 낭떠러지에 와 닿을 때/ 나타나십니다// 그러면/ 당신과 나와의 만남은 무엇입니까// 고통입니까/ 위로입니까/ 연단입니까// ‥‥당신이 안계시는 어설픈 기쁨보다는/ 고통 속에서라도/ 당신과 함께 하는 위로를
(임성숙/ 고통 속에서라도)
우리들의 모임이 비롯할 즈음/ 찬이 앓고 누웠단다. / 하늘 날으는 말이 앓는단다. / 날 개는 구름 속에 두어라 우리는 사과랑 복숭아랑/ 시원한 음료통을 안고 문병한다. / 찬이 심심치 않으라고/ 은아 스님을 모시고 찾아간다. // 이렇게 와서 한자리에 모인다. / 어울려서 도란거리며 웃는다. / 찬은 맑은 청자항아리 우리는 싱그러운 난초 이파리/ 아늑한 불빛이 번진다. /찬이 우리에게 담배를 권한다. /무엇인지 책상 모서리에서 떨어진다. /은아 스님이 어느 새 손으로 받들었다. // 착한 뜻으로 날랜 손이여 ! 다정스런 말들이 오고 간다/ 나는 펄럭이는 구멍 뚫린 기폭을 본다. / 그를 꽉 잡은 든든한 우리들의/ 손을 본다. // 사과 한 알이 무게를 떠나/ 달린다. 모여드는/ 숱한 길을 모두 버린다. // 다시금 염통을 뚫어라/ 울렁거리는 나는 하늘을 주마/ 찬은 시름을 주마/ 찬은 시름을 앓는다. / 알지 못할 부러움이 우리를 달랜다.
(구자운/ 위문)
예수를 보고 싶다,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며 많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죄인에게는 평화를 말하고 갇힌 자를 놓아 주고/ 괴로움 겪는 이에게 위로를 주던 가르침을 듣고 싶다.
(서코우/ 예수를 보고 싶다)
선하고 선하신 위로의 손/ 영혼의 어지신 주인/ 즐거운 휴식의 장소/ 번민할 때의 안식처/ 괴로워할 때의 화평/ 비탄할 때의 위로시라.
(랭턴/ 황금 성가)
가을이 이렇게 큰몸인 줄/ 내 몰랐어라./ 온누리 복되고 위안인 줄/ 내 몰랐어라.
(김남조/ 겨울잠)
반가운 손님인 당신을 대접하자면/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나는 당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기나긴 안식의 자리로 인도하고‥‥/ 당신을 꽃다발 속에 묻히게 하여/ 아름답게 장식해 드리고 싶습니다. / 떨쳐 버리시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촐스호프/ 종려주일에)
어디에다 도움을 구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오직 홀로 고민할 때/ 낮이나 밤이나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혀/ 도움도 권고도 받지 못하는 // 우리의 위안은 단지 하나뿐./ 오직 주님의보좌 앞에 엎드려/ 참되신 하나님, 당신을 부르며/ 슬픔에서 우리를 구해 달라 기도합니다.
(카멜라리우스/ 괴로움으로 번민할 때)
당신의 시선은 그 옛날 내가 드렸던 위안을 찾다가 지쳐 버릴 것입니다/ 그러다가 석양빛이 낯선 돌의 찬/ 무릎에서 시름같이 누우리다.
(릴케/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나님이여, 내가 죽으면)
태양을 보아라, 저기 하나님은 계시면서/ 아낌없이 빛과 열을 나누어 주시느니라./ 꽃도 나무도 짐승이나 우리들도/ 아침에는 위로를, 낮에는 기쁨을 선사받는다.
(블레이크/ 검둥이 소년)
세상은 춥지마는/ 서로 위로하는/ 형제가 있고/ 서로 돕는/ 이웃이 있어 따뜻합니다.
(허영자/ 세상은 춥지만은)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
손마디가 굵은 아내의 손은/ 얼음처럼 차다/ 한평생 살면서 위로를 모르는 내가/ 오늘 따라 면경을 본다.
(황금찬/ 바느질하는 손)
해가 무너지기 전 애써/ 걸어놓았던 칡넝쿨 한 가닥처럼/ 인생의 위한과 기대까지도/ 수만리 먼 곳서 출발한/ 바람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유경환/ 山 목소리)
까닭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냐/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 오느니// 사랑하는 할 이 한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리다 못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밝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조지훈/ 민들레 꽃)
내 뺨의 눈물을 닦아 주는 당신의 사랑어린 연민으로/ 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았던 사람은 울기를 잊어 버려/ 당신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니까요!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천사들에 가벼운 나래를 주신 그 은혜로/ 내게는 자욱이 퍼지는 언어의 무게를 주시어,/ 때때로 나의 슬픔을 위로하여 주시는/ 오오, 지상의 신이여, 지상의 시여!
(김현승/ 지상의 시)
수만 번 설원 위에/ 깔아 놓은 바램들이// 길들인 자위(自慰) 있어/ 꼭지 틀어 꺾이울 땐// 문풍지 울음소리로/ 혼 깨워 나아가다.
(윤삼현/ 겨울나기)
아아, 님이여! 위안에 목마른 나의 님이여!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한용운/ 가지 마셔요)
꽃 핀 아침, 달 밝은 저녁, 비 오는 밤, 그때가 가장 님 기루운 때라고 남들은 말합니다. /나도 같은 고요한 때로는 그때에 많이 울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말하고 노는 때에 더 울게 됩니다/ 님 있는 여러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여 좋은 말을 합니다마는, 나는 그들의 위로하는 말을 조소로 듣습니다.
(한용운/ 우는 때)
담 밖의 일은 모르고 사는 아내와 딸이/돌아가자고 늘 노래한 고향 떠나/ 회한의 먼지 쓰고 육년이 지난 하루/ 남쪽으로 가는 새떼들을 보며/ 무거운 육신 벗고 자유하고/ 고향으로 나 위로했는데
(배명식/ 쓰러진 벼-무등을 그리며)
그 시험지와 문제들이 실로/ 어렵게만 보일지라도/ 나는 걱정하지 않으리니/ 주에서 나와 함께 하시며 주의 평화와 고요함이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픽톤부인/ 한 학생의 시험에 대한 명상)
오 주여,/ 우리 모두가 안식을 얻도록/ 동행하여 주시고,/ 만인 잠 못 이루는 일이 있다면/ 그들이 지켜보는 어두운 시간을/ 어루만져 주시고/ 낮이 돌아오면/ 우리 의 태양이며 위로자이신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소서.
(R.R. 스티븐슨/ 10월의 기도)
견디고 견딘/ 그 나머지의 고독/ 오늘은 고독을 허락하시고/ 위로를 허락하옵소서.
(김남조/ 사랑도 쉬게)
수만마디 말/ 겨울나무처럼 벗고/ 어둠 끌어안던/ 자위(自慰)의 손/ 그는 알고 / 나는 운다.
(신달자/ 기도)
내 마음의 깊은 상처를/ 고운 꽃이 알기만 한다면/ 내 아픔을 달래기 위해/ 나와 함께 눈물을 흘려 주련만.// 내 간절한 슬픔을/ 꾀꼬리가 안다면/ 즐겁게 지저귀어 내 외로움을/ 어쩌면 풀어 줄 수도 있으련만.// 나의 이 탄식을 저 별이/황금빛 별이 알기만 한다면/ 그 높은 곳에서 내려와/ 틀림없이 위로해 주겠건만.
(하이네/ 이 깊은 상처를)
아, 나는 후회 속에 나를 보낼 것이며,/ 위로의 희망도 없이/ 지난날의 추억 속에서만/삶을 지탱해 나갈 것이다.
(레오파르디/ 고독한 새)
지금은 둘이 같은 괴로움을 맛보고 있다!/ 예전에는 -가을이 오면-/ 이런 덧없는 위로가 있었다. /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외베르랑/ 그리니에게 보내는 편지)
않으리, 나는 않으리, 썩은 육체의 위로여, 절망이여,/다시는 너에게 축배를 들지 않으리
(홉킨즈/ 부패한 위로)
예수께서 우시다. 여전히 영광 가운데서/ 그는 모든 애통하는 자의 눈물을 담당하실 수 있도다/여기서 위로하신 그 마음의 이야기를 회상함이 사라지지 않으니/ 주여, 내가 죽어 부르심을 받을 때/ 나로 베다니를 생각케 하소서.
(에드워드 데니/ 예수께서 우시다)
멀리서는 부드럽게 보이지만/ 무릎과 가슴은 덮어도/ 위로를 주지 않는다.
(라아킨/ 떠남)
주여/ 내가 어둔데서/ 지금 헤매입니다. /앞에 길이 막히고/ 답답할 것뿐일 때/누가/나를 도와서/ 위로 받게 하리까/ 약한 나를/주 손길로/ 인도하여 주소서.
(홍안의/ 상한 갈대의 기도)
내 가는 길 고단하고/ 동행자도 없습니다/주님/ 나와 함께 하사/ 위로하여 주옵소서/힘을 잃고/ 비척이며/ 산모퉁이 돌아설 때/주여 나를 돌아보시고 새힘 얻게 하옵소서
(홍안의/ 순례자의 기도)
슬픈 일을/ 겪을 때나/ 어려운 일 만났을 때/ 주여/ 나를 위로하사/ 감당하게 하옵소서/세상에서 입은 상처 싸매줄 자 없으니/ 내 마음의 간절한 소원/ 살펴주시옵소서
(홍안의/ 불붙는 소원)
나는 위로의 성령을, 가르치시며 인도하시는 성령을 받았네./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한 아버지를 모셨나니,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하신다네.
(존 R. 라이스/ 산속의 노래)
그는 가시밭 길과/ 육체의 고통을 아시네./그는 이 육신의 집이 무너짐을 아시네./그리고그는 축복하기 위해/ 언제나 내 곁에 머무르시네./ 우리는 위로를 받네./ 그의 밝은 미소가있기에./ 주님은 우리를 아시네.// ‥‥그는 숨겨진 슬픔을 아시네./ 우리의 고독을 그는 느끼시네./ 그는 우리에게 달콤한 위안을 주셨네.
(작자 미상/ 예수님은 아신다네)
깜깜한 밤에 / 속이파리 피어나는 나무들의 기쁨/ 당신 그늘에/ 등불 없이 서 있어도/ 달밤같은 위로.
(김남조/ 물망초)
한 순간의 미소, 진정 한 순간의 미소를!/ 그것은 슬픔 짐을 진 여인이/ 당신으로부터 기대한 것이었지요./ 그토록 아픈 그녀의 가슴에/ 그것은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진 H. 와트슨/ 멀리 있습니다)
잃음 대신 얻음이 아니며/ 고통 대신 편함이 아니며/ 다만 고통 속에서의 위안이며/ 잃음 으로써 얻어지는 생명이어라.
(노안 F. 도우티/ 이 모든 것 속에서)
아니라오! 바울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려/희망의 사자 디도는/ 위안의 향유를 지니고/ 이미 오고 있는 중이었네.//도중에 상심하는 바울 같은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 주위에 있을지 모르네./ 우리 모두 오늘, 디도처럼/ 그에게 가서 위안을 주세./ 하나님을 가장 잘 아는 자./ 믿음과 능력의 사람은/ 언제나 사랑의 손길을 뻗쳐야 하리라.
(폴 허친스/ 사랑의 손길)
나는 안다. /사랑의 슬픔 그것은 쉽게 낫지 않는다는 것을./사람들의 위로의 노래, 부르는요람의 노래는/ 내 마음의 이 슬픔을 고쳐주지는 못한다.
(휠더린/ 고향)
그는 이 세상의 위안 속에서 괴로워하고/ 사람들의 소문을 멀리한다. / 민중에게 숭배 받는 것의 발치에/ 자랑스런 머리를 숙이지는 않는다.
(푸쉬킨/ 시인)
내 가슴이 슬픔으로 부서지고/내 눈이 눈물로 흐려질 때/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 만큼/위안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윌리엄 G. 피셔/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
위로의 가락으로 노래 부르며/ 햇빛에 반짝이는 자갈 위로 흐르는/ 작은 시냇물은 감미로워라.
(T. 후드/ 마을과 시골)
우리에게 당신의 평화를 주시옵소서./나는 이 도성에서 여러 해 살면서/믿음을 지키면서금식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그들과 서로 경의와 위안을 나누었습니다. / 지금껏 내 집 문간에서 누구든 물리친 일은 없습니다. / 슬픔의 때가 이를 때 내 집을 누가 기억하오며/나의 자손들은 어디서 살게 되오리까?/ 이방인들의 얼굴과 칼을 피해서/ 그들은 염소의 길로 도망하고 여우 굴에 숨겠지요.// 밧줄과 채찍으로 괴롭히는 슬픔의 때가 오기 전에/당신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옵소서/ 황폐한 산의 십자가 수난이 있기 전에/ 어머니의 슬픔의 시간이 이르기 전에/그리고 죽음이기를 쓰는 이 계절에/ 영원히 말없는 "말씀"인 이 아기가/ 내일을 향한 희망이 없는 이 팔순 노인에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내리게 하소서
(엘리어트/ 시므온의 노래)
나 때문에 울지 말아 다오. 그리고 나의 회복을 위하여 쓸데없는 기도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 다오. 그것보다도 나의 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빌어 달라.
(이사벨라 여왕)
용기를 잃지 않는 용감한 인간이 되어라. 위로는 적절한 때에 너희를 찾아갈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슬퍼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 주시니/ 고통의 때에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는 보좌 위에서 우리를 굽어보시며/사랑으로 감싸시며 위로해 주시도다.
(휴 밀러/ 주께서 돌보시니)
마음은/ 천 갈래로/ 찢기듯 아팠으나/ 어두운/ 내 영혼은/ 위로를 못찾았네
(홍안의/ 광야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천국을 차지하고/ 슬픔에/ 우는 자마다/ 위로가 넘치리라.
(홍안의/ 복 있는 사람)
거기에는 교만과 겸손, 위로의 말들과 또는/ 침묵요법에서의 사랑이 있을 수 있으리.
(아아노 데이비드슨/ 가장 고귀한 것)
여름은 아직도 장미 곁에/ 한참을 머물며 위안을 찾다가/ 그 크고 지친 눈을/ 조용히 감는다.
(헤세/ 9월)
죽음을 엄마의 젖가슴으로 삼는,/ 끔찍스레도 월계관을 쓴 위안자여!
(발레리/ 해변의 묘지)
내 가슴은 새로운 적의와 증오로 가득찬다/ 아니다! 내 반역의 거친 청춘 속에는/ 넋에 위로가 되는 추억 따위는 없다.
(네끄라소프/ 고향)
우리들이 재난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무분별로 우리들에게 귀찮게 다가오는 위안은, 우리들의 괴로움을 배가하고, 우리들의 슬픔을 한층 격렬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될 뿐이다.
(J. J. 루소)
위안자의 머리는 결코 아픈 일이 없다.
(허버트/ 이국인의 격언)
우리들의 위안의 대부분은 고난이 어미닭처럼 품는다.
(E. 영/ 밤의 명상)
피로 다음에 오는 휴식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 공복 후의 식사보다 맛있는 것이 없다. 병을 앓고 난 다음의 건강보다 유쾌한 것은 없다. 만약 인생에 아무런 위안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피로나 공복이나 병이나 곤란을 모르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생활을 폐하고 전력을 기울이어 살아가라. 반드시 위안이 있을 것이다.
(W. 스콧)
인생의 많은 낭비라고 말해지는 위안의 대부분은 인류의 향상에 대한 불가피한 장해일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장해이다.
(H. D. 소로/ 월든)
위안은 그것이 진부하더라도 거절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무식한 욕은 도리어 굶어 죽는 혼에게 떡이 될 수 있지만, 발라맞추는 간사한 위로는 칼보다도 더 아프게 생명을 갉아 냅니다.
(함석헌/ 아이레노포이오이)
위로하며 살아갈 힘, 우리에게 주는 건, 아아! 죽음』 이는 인생의 목적, 또 유일한 희망/ 보약마냥 우리를 부추기고 취하게 하여/ 저녁때까지 걸어갈 기운을 준다.
(C.P. 보들레르/ 가난뱅이들의 죽음)
설 교 노 트
위로의 말씀
시23:1-2
서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하나님 되신 주님 안에서 스스로를 고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선하심에 대한 기대로부터 그러한 고무를 얻을 수 있습니다.
1. 섭리 가운데서의 위로
이스라엘의 목자되신 하나님은 또한 모든 신자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을 그의 초원으로 인도하여 보살펴 주시고, 양떼 지키는 일을 업으로 삼는 목자보다도 더욱 큰 관심을 가지고 언제나 신자들을 돌아보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나의 목자며 나를 기르시는 분이라면,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하고 유익한그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자기의 목자로 삼고 있으면서도 굶주릴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겉에 표현된 것보다 더 큰 진리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구절은 단순히 "내가 부족함이 없다"라는 차원을 넘어서 "나는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는다. 만약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갖지 못했다면 그들은 내게 적합하지 않거나, 지금은 주어지지 않더라도 이후 적절한 시기에 주어질 것이다.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2.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하심에서 오는 위로하나님은 그의 성도들을 눕게 하시며 그들
이 어떤 처지에 놓이든지 그들 마음 가운데 평온과 만족을 얻게 하시므로, 성도들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편안히 거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모든 초원이 푸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방황할 때 우리를 찾으시며, 우리가 병들어 쓰러져 갈 때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죽어 가는 영혼을 살려"내십니다.
3.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에서 얻는 위로(5-6절)
(1) 하나님의 은혜
① 넉넉하게 채우심:"내게 상을 베푸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생명과 거룩함에 관련된 모든 것이 예배되어 있으니, 이는 영혼과 육신, 현세와 내세에 모두 적용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에게 모든 것이 풍족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② 넘치도록 채우심:"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 현세와 내세, 이 모든 것을 위하여 풍족한 양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위해 그토록 풍부하게 예비해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그 신령한 축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2)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
개인적인 보장:"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하나님의 은혜는 용서해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삶을 지속시켜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은혜를 주시는 방법:"나를 따르리니", 마치 반석에서 솟아 나온 물이 광야를 헤매이던 이스라엘 진 가운데서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 역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기꺼이 은혜를 베풀고자 하십니다.
③은혜의 지속성 . "나의 평생에",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라도 계속됩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날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만나가 내렸듯이 그의 은혜 역시 아침마다 새로운 것입니다(애3:22, 23).
④ 은혜의 확실성:"정녕",이 약속을 주신 진리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실 수 있는 분이기에 그의 은혜의 약속은 확실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이를 압니다.
⑤ 온전한 즐거움을 바라봄:"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장차 다가올 온전한 축복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5절을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내 생명이 끝나는 날 나는 더 좋은 세계로 가서 하나님 아버지께 계신 주님의 집에 거하리라. 그곳엔 거할 곳이 많다. "
결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날이 다가올수록 더욱 더 밝게 비추는 아침 햇살과같은 만큼 그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곧 사라져버릴 아침 구름이나 이슬처럼 되어선 안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그에 합당한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심
시147:3
서론
사람은 이중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또 자기 형상대로 영을 만드셨습니다. 이 둘이 합하여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상하기 쉽습니다. 몸도, 마음도 잘 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치료하시는 여호와라고(출15:26) 하셨으니 마음과 몸의 모든 상황을 고쳐 주십니다.
그러면 본문의 순서를 바꾸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상처를 싸매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육신의 상처를 싸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육체는 대단히 약체인 까닭에 조그마한 부주의에도 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아니하는 세미한 병균에도 감염되어 쓰러지기 쉽습니다. 그냥 버려두면 생을 평안히 유지할 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약한 육체가 상처를 입었을 때 싸매어 주십니다.
불뱀에게 물려 죽어가는 무리에게 치료법을 교시하시고(민21:9),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울며 기도하므로 그 생명을 15년간 연장시켜 주시고(사38:1-8), 만고 의인인 욥의 온몸에 악창이 생겼을 때 그것을 원상 회복시키셨습니다(욥2:7, 42:10).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어떤 병자든지 다 고쳐 주셔서 만병의 의사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병이 있습니까? 물론 세상의 의사들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고치지 못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고 위로를 받읍시다.
2.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몸의 상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고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병으로 인한 고통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으나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참기 힘든 것입니다.
욥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그가 악창이 나서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자기 몸을 긁을 지경의 고통이었지만 참고 견디어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자신을 배신하고 저주하며 친구들까지 의심하면서 공격하는 데는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누가 상처를 고쳐 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신자에게 피해를 입고 마음이 아파서 불신자에게 위로할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사람들의 위로로서는 참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위로자이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 마음에 수심이 가득 찰 때 우리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주 예수님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상한 심령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느8:9
서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인고로 기쁠 때에 즐거워하며 슬플 때에 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요,인지상정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람은 울어야 할 때도 있고, 울지 않아야 될 때도 있다고 봅니다. 울어야 할 때에 울지 않음은 강퍅한 마음씨요, 울지 않아야 할 때 함부로 우는 것도 미련한 일입니다. 본문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라의 율법 강의를 듣고 죄를 자복하며 울었는데 그 진심을 보고 "울지 말라" 고 위로하시는 축복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울지 말라"의 교훈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포로 귀환을 위하여 올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16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라헬이 그 자손의 포로로 끌려감을 지하에서도 슬퍼했는데 그 백성이 회복되어 귀환하게 되었으니 "울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그러나 이 라마의 곡성은 예수님 탄생시에 그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베들레헴의 두 살부터 그 아래의 사내 아이들의 죽음으로 적중되었습니다(마2:16-18).
2.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눅7:13에 나인이란 성의 과부가 그 외아들의 죽음을 인하여 슬피 울 때에, 그리고 또 눅8:52에는 야이로의 딸이 죽어서 울며 통곡하는 자들에게, 또 나사로가 죽었을 때 그 누이들과친구들이 울 때에도 "울지 말라"고 하신 것은 두 가지 뜻이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미 죽은 자를 위하여 아무리 슬피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울지 말고 단념하라는 교훈이 있고,
(2) 이미 죽었어도 다시 살려주실 주님의 권능과 자비를 믿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자인고로 믿고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3. 계시받는 자에게 울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계시록 5장 5절에 보면 요한이 밧모섬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를 받는 중에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인봉할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어서 울었으나 장로 중 하나가 "울지 말라"고 하면서 다윗의 뿌리이신 그리스도가 이기었으니 인봉을 메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계시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결론
우리에게는 슬퍼서 울만한 일이 많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울지 말라"고 위로하시니 가장 행복된 자들이 곧 우리입니다.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사61:3
서론
본절에서는 세 가지 낱말이 멋있게 교차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각성케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라고 전개해 나갔습니다.
1. 화관(花冠)을 주어 재를 대신하며
옛날 풍속을 보면, 범죄자가 회개할 때에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재 가운데서 통회 자복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욥42:6에 보면, 그 친구들의 공박을 받으며 자기 의를 주장하다가도 드디어 끝에 가서는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죄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슬프게 죄를 자복하고 그 마음에 무거운 죄책을 짊어지며, 그 입술에서 죄를 자복하는 대신 새 생명을 주시나니 재를 뒤집어 썼던 그의 머리에 꽃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2.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개인이 슬픈 사연이나 슬픈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희락을 주는 기름으로 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형적인 일입니다. 사람은 마음의 희락을 억지로 가질 수도 없고, 이를 가장할 수도 없기 때문에 본성이란, 모든 위장된 것을 대적하기 마련입니다.
희락의 기쁨으로 슬픔을 대신하였으니 말할 수 없이 감격할 일입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니라(요15:10-11)"고 하셨으니 근본적인 슬픔이 제거되고 희락의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
3.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며
외적 생활이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옷으로 입히셨다고 말씀하시나 동양 사람들은 빛의 옷을 사람 자신의 표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본절은 자신의 애통을 증거하기 위하여 입은 슬픈 자의 의복을 말해 줍니다. 마음의 부담이 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마음은 감사심도 아니고,소망스러운 마음도 아니요, 영감받은 마음도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의 옷차림은 성전에서 들리는 성가대의 찬양과 같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있으랴 그 두려움이 반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결론
메시아 되시는 그리스도는 모든 슬픈 자에게 최대의 소망과 기쁨을 주십니다. 그 슬픔은자신의 죄에 대한 슬픔일 때 더욱 그러합니다.
유 혹
성 경 활 용
1. 성도를 유혹하는 것
(1) 재리
(마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 죄
(히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3) 거짓 예언자
(겔13:10) 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혹 이 담을 쌓을 때에 그들이 회칠을 하는도다
(4) 잡류
(신13:13)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5) 여인
(욥31:9) 언제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기다렸던가
(신17:17)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6) 지혜와 지식
(사47: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7) 거짓 경고
(애2: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8) 우상을 섬기므로
(대하21:11) 여호람이 또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 예루살렘 거민으로 음란하듯 우상을 섬기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케 하였으므로
(9) 포도주와 독주로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10) 음녀의 길
(잠7: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지어다
(11) 거짓 영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12) 거짓 그리스도
(눅21:8)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매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쫓지 말라
(13) 거짓 선지자
(마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밀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막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14) 적그리스도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입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15) 미혹의 영
(딤전4: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16) 마귀
(계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7) 무법한 자
(벧후3:17)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용처럼 말하는 짐승
(계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9) 일월성신
(신4:19)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 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20) 거짓과 헛된 자만
(렘23: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2. 유혹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1) 더욱 악하여 져서 속인다.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 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2) 악인은 자기를 미혹된다.
(잠12: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하게 하느니 라
(3) 허탄한 묵시를 본다.
(계2:20) 내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4) 거짓 메시지를 전한다.
(겔13:9)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3. 유혹자들이 유혹하는 방법
(1) 간교한 뱀같이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2) 궤술과 간사함으로
(엡4:14)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3) 거짓 권능으로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4) 이적으로
(계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5) 육체의 정욕으로
(벧후2:18)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서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6) 미혹의 영으로
(요일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 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7) 음행과 마술로
(나3:4) 마술의 주인된 아리따운 기생이 음행을 많이 함을 인함이라 그가 그 음행으로 열국을 미혹하고 그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8)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롬16:17-18)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9) 복술로
(계18:23) 등불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4. 유혹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살후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2)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않아서
(신30:17)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 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3) 연약하여서
(히5:2)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4) 지혜가 없어서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5) 소행이 악하여서
(잠12:26) 의인은 그 이웃의 인도자가 되나 악인의 소행은 자기를 미혹하게 하느니라
(6) 음란으로 인해서
(호4:12)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고 그 막대기는 저희에게 고하나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그 하나님의 수하를 음란하듯 떠났음이니라
(7) 자기 욕심에 끌려서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8) 바른 길을 떠나서
(벧후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9) 아내를 많이 두어서
(신17:17)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10)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사44:20) 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11) 지혜와 지식이 많아서
(시47: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해서
(살후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3) 믿음에서 떠남으로
(딤전4: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14) 돈을 사랑하므로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15) 명예 때문에
(민23:28)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이르니
(16) 미련해서
(사44:20)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17) 재물이 많아서
(마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근심하며 가니라
(18) 눈에 음심이 가득하여서
(벧후2: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9) 외식에
(갈2:13) 그가 할례 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5. 유혹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 어린아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
(엡4:14)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2)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
(신7: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의 멸하실 것임이니라
(3) 스스로 삼가해야 한다.
(신11:6)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4) 선지자의 말을 분별해야 한다.
(겔14:9)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5) 인도자를 잘 택해야 한다.
(사3:12)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하느니라
6. 유혹 받은 자의 결과는 무엇인가?
(1) 결실하지 못한다.
(마13: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 다른 신을 섬기다가 멸하게 된다.
(신7: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3) 멸망당한다.
(사9:16)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4) 여호와를 떠나게 된다.
(겔14:11)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5) 믿음에서 떠난다.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도다
(6) 여호와의 길을 알지 못한다.
(히3:10)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7) 거짓말한다.
(딤전4:1-2)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8) 마음이 부패한다.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9) 시험을 받는다.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관련원어풀이
1. h[;T; 타-아-
(1) 잘못하다, 방황하다, 빗나가다.
(출23:4, 사16:8)
(2) 멸망하다.
(잠14:22)
(3) 방황하다.
(사19:14)
(4) 속임을 당하다, 잘못되다.
(욥15:31)
(5) 방황케 하다.
(왕하21:9, 사3:12)
(6) 잘못하다, 그릇되다.
(잠10:17, 렘42:20)
2. jd'n: 나-다흐
(1) 앞으로 밀다, 내쫓다.
(삼하14:14)
(2) 유혹을 받다.
(신4:19, 30:17)
(3) 밀어내다, 추방하다, 내몰다.
(신30:1, 대하13:9)
(4) 유혹하다.
(신13:14, 잠7:21)
(5) 끌어내 리다, 데려오다.
(삼하15:14)
(6) 밀어 올리거나 내린.
(사13:14)
3. lk'n: 나-칼
(1) 부정하게 행하다, 사기하다.
(말1:14)
(2) 유혹하다.
(민25:18)
(3) 자신의 교활함을 나타내 보이다.
(창37:18, 시105:25)
4. rWs 수-르
(1) 빗나가다, 가버리다, 떠나다
(출32:8, 왕상22:43)
(2) 하나님에게서 떠나다, 빗나가다.
(삼상12:20)
(3) 율법에서 떠나다.
(신17:20, 수23:6)
(4) 재난에서 물러나다, 도망하다.
(욥15:30)
(5) 가까이가다.
(창19:3, 삿4:18)
(6) 떠나게 하다, 옮기다, 치우다.
(삼상28:3, 욥27:2)
(7) 빗나가게 하다, 제쳐두다.
(삼하6:10)
5. ht;P; 파-타-
(1) 열리다, 설복되다.
(신11:16, 욥31:27)
(2) 설복을 당하다, 유혹되다.
(욥31:9, 렘20:7)
(3) 유혹하다, 꾀다.
(출22:15, 잠1:10)
(4) 속이다, 미혹하다, 조롱하다.
(시78:36, 잠24:28)
(5) 설복되다, 속임을 당하다.
(잠25:15, 겔14:9)
6. ajpavth 아파테-
(1) 속임, 사기, 허위.
(마13:22, 골2:8)
(2) 향락, 쾌락, 정욕.
(막4:19, 벧후2:13)
7. plavnh 플라네-
(1) 사기, 미혹, 협잡, 기만.
(마27:64, 살전2:3)
(2) 유혹, 매혹, 속임수
(엡4:14, 요일4:6)
(3) 잘못, 거짓 의견.
(벧후3:17)
8. sunapavgw 수나파고-
함께 가거나 인도하다, 이끌어 나가다, 이끌림을 받다.
(갈2:13, 벧후3:17)
설교예화자료
거꾸로 매달린 고양이
어느 집 헛간에 여러 마리와 쥐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고양이가 그 헛간으로 들어와 닥치는 대로 쥐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쥐들은 자기 친구들이 잡히는 것을 보고 겁이나 모두 도망쳐서 구멍 속으로 숨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배가 고파진 고양이는,
"쥐들이 모두 숨어서 나오질 않으니 어쩌면 좋지,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며 머리를 짜내어 궁리했습니다.
"옳아, 그렇게 하자."
고양이는 천장으로 기어올라가 천장을 가로지르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체하였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녀석들이 나오겠지."
고양이는 힘 이 들었지만 쥐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얼마 후 드디어 쥐 한 마리가 구멍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쥐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고양이를 보고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흥, 고양이로군! 비록 저것이 고양이 껍질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가까이 가서는 안돼 !"
유혹 중에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는 언제나 음란한 생각에 오랫동안 사로잡혀,그녀가 거처하고 기도드리는 조그마한 방안이 마귀로 가득 찬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어느 유명한 성당으로 도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여전히 음란한 생각에 뒤덮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나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택하여, 그것이 주님을 즐겁게 할 때까지 이 괴로움을 즐거이 받아들이겠다. "라고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녀를 괴롭히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그녀의 마음은 고요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환상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드시고 나타나 변함없는 성실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주예수 발현으로 마음에 커다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주 예수의 도움과 발현을 필요로 할 때는 왜 그녀의 앞에 계시지 않을까 생각하며, "주여 나의 가슴속에 음란한 생각과 원욕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 귀여운 딸아, 나는 언제나 네 마음 한가운데 있었단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혹의 창을 없애라
플라톤의 제자 가운데에 플로풀러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뱃놀이를 좋아하였습니다. 한 번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큰 풍파를 만나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다시는 뱃놀이를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향한 자기집의 창문마저 아예 없애 버렸습니다.
그의 친구가 와서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 창문을 통하여 자꾸 바다가 보이는데, 따뜻한 봄날 잔잔한 바다를 보면 나가고 싶어견딜 수 없소. 그래서 이 유혹의 창을 막아버린 것이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유혹의 창이 있습니다. 먼저 나에게 최강의 유혹의 창이 무엇인가 먼저 알아 아예 막아 버려야 합니다.
사탄의 유혹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탄은 사람을 유혹할 때 대개 네 종류의 말로써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누구나 다하는 일이니까.
둘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까.
셋째는, 나는 아직 젊으니까.
넷째는, 이번 한번뿐이니까.
이상의 네 가지는 사람이 가진 상투적인 습관입니다. 이것들 중 어느 한 가지만 걸려들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뜻밖의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꿈
어떤 사나이가 이웃집 부인과 한 번 바람 피워보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드디어 성적인 관계에 성공한 꿈을 꾸었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그것은 길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꿈은 하나의 소망의 나타남이며, 진짜로 관계했다면 꿈을 꿀리는 없습니다. 그만큼 자기를 억제하고 있는 증거로서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인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애쓰는 것보다 쉽다.
(마크 트웨인/ 얼간이 윌슨의 캘린더)
사람들이 뫼는 것은 이미 유혹에 지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타일 달콘빌 부인/ 도덕적 성찰)
모든 유혹 중에서 가장 강한 유혹은, 요컨대 본래의 자기와는 아주 딴판인 것이 되고 싶다고 바라고, 또한 자기의 도달할 수 없는, 또 도달해서는 안 되는 모범이나 이상을 좇는 일입니다.
(H. 헤세/ 편지)
유혹에 대한 적당한 방어법은 몇 가지 있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심해져 있는 일이다.
(마크 트웨인)
유혹이란 구별 없이 달라붙는 벌레다.
(팔만대장경)
문이 열려 있으면 성인도 유혹을 받는다.
(카스틸랴)
유혹을 면하는 유일한 길은 유혹에 굴복하는 일이다.
(O.F.0.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유혹은 논증보다는 빈틈 없이 쇄도하므로 이성이 아무리 경계의 눈을 부릅떠도 자애의 강한 점에는 못 미친다.
(A. 포프/ 인간론)
유혹을 물리쳤던 기억만큼 흐뭇한 것은 없다.
(J.B. 캐벌)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유혹이 있다. 거친 육체의 욕망, 제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교만, 졸렬하고 불손한 이 욕심이 즉 그것이다. 이로 인하여 모든 불행이 과거에서 미래에까지 영원히 인류의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상에서 이 세 가지 육욕과 교만과 욕심이 없었던들 완전한 질서가 지배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서운 병, 누구나가 다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그 싹에 대하여 취해야 할 수단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각기 자기 자신에게 가해야 하는 수양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때로는 가장 완성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또 때로는 가장 부패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좋은 상태에 있을 때에 조심하라.그 상태를 지탱하며, 그리하여 악한 것을 몰아내라.
(F. 베이컨)
전문적으로 효율적인 것보다 재미있으려고 하는 유혹은 위험한 유혹이니까.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유혹을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유혹이 된다.
(J. 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불은 쇠를 시험하고, 유혹은 바른 사람을 시험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공포가 막연할 때, 그것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과 똑같이 미끼의 내용이 불분명할 때 유혹의 힘도 가장 큰 것이다.
(R. 타고르)
최고 입찰자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G. 워싱턴)
거리에 가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를 유혹하여/ 함정에 빠지게 할 것이리라./ 남자는 강하게 태어날수록 도리어 쉽게 함락되는 법.
(비니/ 삼손의 비니)
단 한 가닥의 머리털이라도 유혹의 바퀴에 끼이면 온몸이 말려든다.
(H. 아미엘/ 일기)
유혹을 당해 보지 않은 여자는, 자기의 정조를 뽐낼 수 없다.
(몽테뉴/ 수상록)
보다 강한 유혹, 보다 약한 원망이, 사람을 괴물로도 만들고, 사람을 성자로도 만든다.
(W. 러니드/ 마농 레스코 내표지에 쓰인 말)
나는 남편에게 학대받는 아내를 보고 젊은 여인을 유혹하는 사내를 본다.
(휘트먼/ 나 여기 앉아 바라보노라)
불은 강철을 시험하고, 유혹은 바른 인간을 시험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 예수님을 본받아)
술이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요, 미색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미혹에 빠지는 것이다.
(명심보감)
지배하려는 의지를 가지면, 아무도 유혹되지 않고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R. 헤리크/ 유혹)
모든 진실로 위대한 연인들은 생각을 분명하게 입 밖에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구두(口頭)의 유혹은 행동의 유혹의 가장 확실한 길이다.
(M. 매너즈/ 더해가는 분노)
너의 오른손이 유인하는 것을 너의 왼손으로 물리쳐라.
(유대교 율법서)
용암처럼 솟아나는/유혹의 벌거숭이 붉은 가슴 보았다는/ 환영(幻影) 가득 찬 바위를 지나 걸어간다.
(C.P. 보들레르/ 저주받은 여인들)
세상의 모든 유혹은 그 약속한 것을 결코 준 일이 없지만/주제서 나를 발견하셨을 때, 오, 내가 받은 약속이여!
(존 R. 라이스/ 기쁨의 종을 울리자)
유혹을 이긴 사람보다 유혹에 초연한 사람이 더 훌륭하다.
(오르피크)
내가 죄악의 꾐에 빠질 때에도/ 무감각하게 휩쓸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도/ 나는 주님을 부끄럽게 여겨 묵살해 버렸습니다.
(에블린 타일러/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그토록 거대한 수도원의 정숙함 속에/ 그리고 은둔 속에서/ 수호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 유혹에서 멀리/ 그리고 죄악의 오염에서 멀리/ 우리가 죽었다고 하는 소녀는 살고 있습니다.
(H.W. 롱펠로우/ 인종)
그곳에는 어둠이 없어라!/ 성도들은 주님을 기쁨으로 정도다!/‥‥// 그곳에는 짐이 없도다!/ 침략하는 사악한 왕들도 없도다!/ 부질없는 전쟁은 지났고 영원히 멈추었어라./ 그 문안에서는 아무런 유혹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아니하도다.
(J. 댄슨 스미스/ 어둠이 없는 곳)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이 빵이 되도록/ 명하여 보아라'/ 목소리는 유혹의 굴레가 되어/ 목에 죄어진다.
(시마자키 미쯔마사/ 광야의 유혹)
내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덫이 되고, 모든 것이 이름을 바꾼다. / 사랑은 지나갔다 행복은 죄악이며,/ 신의 이레 동안의 작품은 유혹에 불과하고/ 내게 인간적인 성질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내게는 미덕도 뉘우침도 존재하지 않는다.
(뮈세/ 신을 향한 희망)
나로 당신의 광야 파수꾼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그곳에서 순례자의 벗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 속에서/ 어떤 유혹이 있을지라도 다시는 떨어짐이 없이/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길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늙은 장님 뒤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릴케/ 나로 당신의 광야 파수꾼이)
말을 마치자 간계에 찬 그의 말이/ 너무도쉽게 그녀의 마음속을 파고 들었다/ 뚫어지라고 열매를 노려보니 보기만 하여도/ 넉넉히 유혹이 되는 터에 더욱이 귀에서는/ 그의 설복의 말소리가 아직도 쟁쟁히 울려
(밀턴/ 실락원)
계절이 안겨다 준 선물/ 먼 산등선 너머에서 오신 손님/ 봄버들 피리소리에 귀가 트이고/ 빠알간 춘백 입맞춤에 눈뜬다. // 나직히 드리운 유방/ 가까이 내려와/ 좀더 가까이 내려와/ 무엇인가 날 유혹한다.
(최진성/ 봄하늘)
나는 그대의 피/ 그대 살의 그리움 하나로/ 배 부르다/ 눈 한 번 떴다 감아도 쳐들어 오는/ 유혹의 조수를 따라/ 반구(孝球)의 끝을 달려봐도/ 넘나들지 못하는 물살에 젖어
(이병창/ 갈보리의 노래)
이제 나의 속의 수평선에/푸른 유혹이 품기는 넋의 시원(始源) 찾아/ 나의 꿈의 날개 가뜬히 움직인다.
(김종문/ 바다)
그녀들은/ 유리제품이 아닙니다/ 유혹해 손을 대면/ 피부가 따뜻하고/ 화가 나 후려 갈기면/ 아파서 웁니다.
(케스트너/ 새침한 숙녀들)
너에의 달디달은/유혹은 꿈의 늪/ 체념은 느린 죽음/ 육신은 마른 흙/ 바다보다 더 설레는 안의 바람 속/ 춤추는 이 회오리 마음 어지러움이어.
(박두진/ 너의 옹기)
하늘에/ 계신 주는/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를 돌보시는/ 보혜사가 되시니/ 세상의 거센 유혹 이기게 힘주시고/ 주의 뜻 이루도록/은혜를/ 더하소서
(홍안의/ 하늘에 계신 주)
오 주님,/ 굳은 심성을 내게 주사/ 헛된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내리막길로 끌려가지 않게 하시고/ 불굴의 정신을 허락하사/ 어떤 시련도 능히/ 이겨내게 하시고/ 바른 마음을 주사/ 헛된 목적을 인하여/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토마스 아퀴나스/ 3월의 기도)
꽃대님 같다/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서정주/ 화사)
사람들은 너를 가리켜 악의 도시라 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짙은 화장을 한 너의 여인들이 가스등 밑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샌드버그/ 시카고)
석류꽃은 곱기만 했다. / 빨간 꽃술을 달고/‥‥// ‥‥툭 불거진 가슴 제끼고/ 알알이 익은 사랑/ 입 안 가득 군침이 도는 날/ 유난히 흰 이로 우리를 유혹한다.
(김재흔/ 석류 · 2)
술을 퍼마시던/ 담배를 무섭게 피우던/ 그 손가락의 동작이/ 간지럽게 유혹을 한다. // 그 유혹을 물리치기라도 하듯이/ 입춘이 지난지도 오랜데/ 아직 남아 있는/ 잔설을 마구 밟아본다.
(장수철/ 종점 · 5)
돌이킬 수 없는/ 젊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피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신동문/ 내 노동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던 여름까지도/ 가을이 오자 조락을 느끼려 하매/ 나뭇잎이여, 바람이 너를 유혹하거든/ 끈기있게 가만히 달려 있거라.
(헤세/ 낙엽)
그 아가씨는/아직도 아름다운/ 엄마와 같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내게 눈을 흘겼습니다/아마도 제비족이라 생각했겠지요/ 아가씨를 강아지처럼 잡아끌고/ 바쁘게 내 곁을 지나갔지요// 엄마의 몸이/ 꿈틀거리고/ 매혹적으로 엉덩이가/ 씰룩거립니다/ 자기가 유혹이라도 받은 듯이.
(케스트너/ 유혹)
나는 아직도/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만다/ 새 주둥이 같은 입술이/ 빨간 열매를 좇으려던 유혹에/ 너도 여인이므로
(김수돈/ 소연가)
사랑의 종이 울리면/ 네 안식처로 돌아가라/ 거리는 피로한 곳/ 유혹의 그물을 벗어나라/ 돌아가 내일을 위해/ 새 설계를 그려라.
(이은상/ 사랑의 종)
가장 위험한 유혹, 그것은 무엇과 닳지 않겠다는 유혹이다.
(A. 카뮈)
죄는 나를 그렇게 교묘히 유혹하고,또 그렇게 많은 약속을 하였다네./그러나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은 얼마나 거짓된가!/ 죄는 결코 축복하지도 않고/ 보상해 주지도 않는 다네./ 그 길의 결국에는 비통만이 기다리고 있다네.
(존 R. 라이스/ 집으로 돌아온 탕자)
순간순간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그가 주시는 많은 축복이 함께 하기를/ 이기심과 유혹과 죄악을 이길 수 있는/ 그런 승리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마블 E. 팔머/ 행복한 새해를)
때때로 내버려두려고 하였지만/ 부드럽고 사랑스런 돌봄이/ 아이들은 하루 내내 탈 없이지나도록/ 모든 유혹에서 안전하도록 주의하였네.
(작자 미상/ 저녁 때의 기도)
당신의 계단을 내려가면/ 유혹은 안 보이는 손이 되어/ 어두운 혼의 지하도로 인도해 줄까요.
(등원정/ 보이지 않는 하늘)
부요하고 넉넉한 관대함이, 그에게서 아낌없이 나을 때/ 나의 모든 필요가 내 삶이 의존하는/ 그분에게서 이뤄질 때,/ 그때는 내가 그의 사랑을 잊고/ 그에게 찬양을 드리는 것도 잊고,/ 나의 눈을 들어 위로 향하는 것도 잊도록/ 유혹받을 모든 때이니/ "범사에 감사하라"
(폴 허친스/ 범사에 감사하라)
설 교 노 트
사탄의 유흑
고후11:1-15
서론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우들을 향하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그 옛날 에덴동산에서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케 하고, 타락시킨 사탄이 지금도 우리 기독 신자들을 유혹하여 타락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기로에서 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사탄을 따라가는 사탄의 백성이 아니되면, 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된 우리 신자들까지 미혹한다고 했으니 우리는 주님을 따라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진리와 신앙정조를 파수해야 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사탄의 정체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1. 사탄의 기원
이 세상에 사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미국에서 논쟁이 벌어져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미국 목사들은 사탄이 있다고 주장하고, 심리학 교수들은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사탄이 있다고 하였으니, 우리는 분명히 사탄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늘의 영적 실존 중에 하나인 계명성, 루시퍼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하는 그의 교만과, 지위 이탈과, 주권침해 죄를 범하여 하늘에서 추방되어,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마귀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에 대항하고 인간을 유혹하여 타락시킨다고 하였습니다.
2. 사탄의 본질
한마디로, 모든 죄악의 원인입니다. 이 사탄의 본질적인 요소는 우상 숭배를 비롯하여 미움과, 시기와, 거짓과, 분쟁과, 탐심과, 음란과, 살인의 원인자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발생되는 불의하고 악한 죄악의 씨앗은 모두 이 사탄의 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밭에 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사탄의 씨앗이 뿌려지면 사랑의 사람이 증오의 사람으로, 진실한 사람이 거짓된 사람으로, 착하고 의롭던 사람이 불의하고 악한 사람으로 전락되어 사탄의 노예와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3. 사탄에게 유혹받는 과정과 결과
이 사탄에게 유혹받는 과정은, 우리 인체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미혹해 온다고 하였습니다. 보아서 아니 될 것을 보게 하고 들어서 안 될 말을 듣게 하고, 가서 안 될 길을 가게하고, 행해서는 아니 될 행동을 하게 합니다. 마침내 선악과를 따서 먹게 합니다. 이와 같이 미혹을 받게 되면 의심이 생기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추악한 자리에 떨어지고, 잔인 포악해지고, 심한 고통과 죽음과 지옥에 빠져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이 사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결론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비결은 인간의 과학이나 현대 무기로도 불가능하고 인간의 철학이나 비상한 전략으로도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고 하였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와 깊은 교제를 통해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으로 무장해야 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여기에 확신이 생기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진정한 승리와 기쁨이 있게 됩니다.
사탄의 유혹을 이기자
고전10:1-13
서론
사람에게는 언제나 사탄의 유혹이 뒤따릅니다. 이 사탄의 유혹은 우리들이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들이 말해서는 안 될 말을 말하게 하며,우리들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이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지는데 따라 자기의 생사화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인간들의 헛점과 약점을 이용하여 유혹합니다.
여기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역사를 거울로 삼아서 우리 신앙생활에 승리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 승리의 비결을 잠시 살펴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성경의 역사를 거울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저희가 당한 이러한 일이 거울이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서 현재 나의 모습과 정체를 발견하여 올바로 파악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크게 세 가지 유혹에 실패를 당했다고 하였습니다.
(1) 금송아지 우상에게 유혹받아 실패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사이 황금만능 사상이 판을 치는 시대에 이 황금 우상에게 유혹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 이방 여인들의 유혹을 받아 실패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영웅들도 여성의 유혹을 받아 실패한 역사가 비일 비재합니다.
(3) 안일과 영화의 유혹을 받아 실패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 칼이 시험하지 말자"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지나친 안일과 영화를 추구하다가 시험과 환난을 당하게 되면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실패하기 쉽다고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2. 예수 안에 깊이 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 질까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물리치기 어려우니 겸손하여 예수 안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거한다는 말씀은 예수님과 연합하여 일체가 되어진다는 말씀인데 이제는 예수님의 정신이 내 정신이요, 예수님의 생활이 내 생활이요,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어진다는 말씀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이 세상 모든 것 없이 살아도 예수 없이는 못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안에 깊이 거하는 사람의 생활의 양상은
(1)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갑니다.
내 생각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힘써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기도로 출발하여 기도로 진행하고 기도로 막을 내리심 같이 힘써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능력을 받아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3) 자기 관리를 바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마16:24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이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의 돈과 명예와 영화의 욕심을 제거하고 나를 바로 관리하는 것이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비결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들은
(1) 성경의 역사를 거울로 삼고
(2) 예수에 깊이 거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힘써 기도하면서 나 자신의 관리를 철저히 하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받은 유혹과 구원
창39:12
서론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실례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요셉의 행동에 뒤따른 고난과 그후에 사태가 나아져 마침내 영광에 이르는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죄를 거절하였고 유혹의 길에 서지도 아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죄에 대한 자각과 증오를 가지고 죄악에 빠지게 하는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1) 죄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 필요
우리가 죄악의 위험한 속성에 감각적으로 무디어 있다면 우리는 죄에 많은 위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죄를 멀리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그런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위해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2) 죄의 본질과 추세
죄는 본질적으로 끝없는 증오의 대상이며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또한 영혼을 영원히 파멸시키는 것이 모든 경향이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두려움을 갖고 일을 처리하듯 모든 죄를 다루어야 합니다.
2. 성도는 이웃을 대할 때 죄에 대한 안이한 생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죄악에 빠지게 됩니다.
(1) 성도가 이웃을 대하는 태도
우리는 이웃에게 모든 경우에 있어 손실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그들의 평안이나 권리를 빼앗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있어 이웃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태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실한 사랑과 거짓 없는 경외심으로 섬겨야 하며 하나님의 존귀와 영광과 역행되는 모든 경우를 늘 경계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3. 모든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를 원함으로써 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성도의 바람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자신의 행복이 이뤄지도록 기원해야 하며 죄의 공포에서 벗어나 주변에 어떤 죄악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성도의 책임
성도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재앙과 환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죄악된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모든 것을 피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4. 우리는 모두 연약하기 때문에 죄악에 빠지게 하는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1) 인간의 연약함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죄의 무서운 함정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 엄청난 죄의 요소를 파악하고, 자신을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존재임을 익히 아는 우리로서는 죄의 유혹을 경계해야만 됩니다.
(2) 성경에 나타난 인간의 연약함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강건하며 신실했던 솔로몬과 다윗도 실족했음을 주목해야 하며 진정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결론
사단은 분명 우리가 죄에 대한 호기심을 갖기를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잠자는 틈을 노려 매순간 침범하기를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 사단의 침입을 강력히 저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유혹
마4:1
서론
우리는 우리 구주께서 언제, 어디에서 사단과 싸우고 어떻게 승리를 거두셨는가에 대해 신중하고 사려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4장 1-11절은 중요한 싸움의 시작과 그 과정 및 그에 관련된 준비단계에 대해서 특별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유혹의 상황
(1) 시기
① 그리스도의 세례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여수님께서 세례를 받자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심으로 그의 중보적 직책을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 그리스도의 공적인 사역이 시작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을 보여주려 하셨습니다.
③ 그리스도가 성령이 충만하셨던 때였습니다. 그가 성령이 충만하셨을 때에(눅4:1) 그는 능히 이길 수 있었던 적과 싸우기 위해 광야로 들어간 승리자로서 거룩하고 자유로우며 맹렬한 힘에 의해 인도되었습니다.
(2) 장소
이 승리자께서 인도된 곳은 과연 어디였겠습니까? 그는 외딴 곳에 떨어지고 광막한 황량한 광야로 인도되었습니다. 매튜 헬리의 견해에 따르면 그는 아마도 시나이의 넘은 광야로 인도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장소는 외딴 곳에 떨어진 광야였을 뿐만 아니라 굶주린 맹수들이 살아가는 곳이었습니다(마1:13). 이곳이 바로 우리 주께서 금식하며 기도하기 위해, 그리고 그의 적과 대적하기 위해 인도되었던 곳입니다.
2. 유혹의 투쟁
(1) 유혹의 본질
아마도 빛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사단이 주님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하려고 유혹하였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절망하게 하거나 의심하도록 유혹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그에게 가정하도록 하여 그리스도를 이겨보려고 애씁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곳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합니다.
③ 그리스도에게 천하와 그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에게 경배하라고 유혹하였습니다.
(2) 유혹에 대항하는 방법
예수님은 오직 성경의 말씀들로 유혹자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유혹을 하자주님은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십니다.
(3) 유혹을 이겨냄
① 그리스도는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싸움은 끝났습니다. 가장 중요한 싸움이 끝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② 사단은 패배하였습니다.
사단은 패배하여 더 이상 싸울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황금의 미끼까지도 거절하고 눈의 쾌락과 인생의 권세마저 거부하는 것을 보았을 때, 또한 마지막으로 육신의 쾌락까지도 거절하였을 때, 마귀는 최소한의 성공도 거두지 못하고 절망한 채 "이에"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다.
3. 유혹에 대한 교훈
(1) 홀로 있는 것은 해로울 수가 있습니다.
① 적절한 고독은 유익합니다.
우리의 주는 광야에서 격렬하게 유혹에 시달렸습니까? 그렇다면 고독이 적절한 시기에 사용될 때에도 유익하다 하더라도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역시 해로울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② 극도로 심한 고독은 유혹의 부추김을 받게 됩니다.
비탄은 언제나 혼자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몫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타락할 때 혹은 유혹을 받을 때 충고해 주고 격려해 줄 만한 다른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 우리 자신이 이러한 유혹에 인도되지 않도록 도우시고 구원하십니다.
(2) 유혹에 대항하는 효율적인 무기
①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모두 우리 주님께서 성령의 마귀와 싸우신 것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성령의 칼은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에서 다윗이 골리앗의 검에 대항하여 행하였던 것처럼 "이것보다 좋은 무기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의 힘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재난의 불이 꺼지게 되고 얼마나 많은 계시들이 발견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승리를 미리 막을 수 있겠습니까?
결론
우리들을 위해 광야에서 승리하신 분은 그분의 전능하고 영원하며 결코 없어지지 않는 사랑으로, 유혹과 죽음과 지옥을 이겨낸 것보다 더 큰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유혹받는 자들의 지주이신 그리스도
마6:13
서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중요한 큰 의무는 모든 종류의 악에 대하여 주의하고 마음속에서 악이 생겨나는 최초의 순간을 조심하여 죄가 되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는 일은 무엇이든 피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악마가 끊임없이 우리들을 유혹하고,우리 자신의 악한 마음이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짓게 되면 결국 우리는 악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유혹에 잘 넘어가는지를 아시고 그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1. 유혹하는 자
(1) 유혹하는 자는 사단입니다.
그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이며 이제는 불순종한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합니다(엡2:2). 그는 하나님과 선행의 적입니다. 그는 모든 진리를 증오하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는 낙원에서 하나님을 비방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는 하와에게 "너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창3:4)"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2) 유혹하는 자의 특징
유혹하는 자는 악의와 질투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그가 천진하고 죄없는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도록 유혹하겠습니까? 당신을 유혹하는 자는 자신의 교활함을 숨기는 데는 지극히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그러한 능력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배반하고 변장하여 우리들을 잡아들일 기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첫 조상들을 유혹하기 위해 뱀을 이용하였습니다. 속이기 위해 기다리고 거짓말하는 것이 그의 특성입니다. 비록 이러한 특성은 악마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재점검한다면 우리는 곧 우리에게 친근한 유혹자의 특성 중 많은 부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유혹자가 유혹하는 이유들
(1) 그는 시기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가 당신을 유혹하는 이유는 당신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시기심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에게서 사람들을 떼어놓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그가 당신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는 당신을 안전하게 제 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더욱 더 많은 유혹에빠지게 될 것입니다.
3. 유혹을 이겨내는 비밀
(1) 고백
우리가 유혹에 빠지는 수난을 당하지 않고 또한 유혹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우리가 어떻게 악마에게 유혹되었으며 악마가 우리의 영혼을 기다리며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에 대해 고백해야만 합니다.
(2) 기도
주 예수의 도움을 간청하면, 주께서는 우리가 악마의 지독한 유혹을 이겨내고 저항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혹받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며 그는 우리에게 사단을 물리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권세 안에 그들을 장악하고 계시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용하는 것 이상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3) 위임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이 바라는 모든 악한 일들을 우리에게 행할 수 있다면, 우리들 중 아무도 자신의 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하나님 덕택에 우리는 스스로 그분의 보호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보호자이셨으며 아직도 우리의 보호자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도록 합시다.
결론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도와주시는 것과 당신을 인생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지탱하게 해 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만물을 지배하는 분이시며 지극히 사랑스런 분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당신과 내가 예수님을 알아왔는가와 그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은 계속 증가하는 사랑이며 놀라운 사랑일 뿐만 아니라 용서하는 사랑이며 죽음을 감수하는 사랑입니다. 또한 중재하는 사랑이요, 영광된 사랑입니다.
육 체
성 경 활 용
1. 육체란 무엇인가?
(1) 모든 피조물이다.
(창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7:15) 무릇 기식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2) 사람을 말한다.
(시65:2) 기도를 들으시고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행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3) 몸이다.
(욥10:4) 주의 눈이 육신의 눈이니이까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행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히12:9)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2. 육체의 부정적인 면
(1)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음
(롬7:18)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2) 죄의 법을 섬김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3) 육체의 생각은 사망이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4)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다.
(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6)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롬9: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7)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 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
(8)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9)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서로 대 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0) 정욕을 위한다.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갈5:24) 그리스도 애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3. 육체에 대한 교훈
(1) 육체대로 살지 말아야 한다.
(롬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2)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3) 육체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롬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4) 육체를 좇지 말아야 한다.
(롬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6)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워야 한다.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4. 그리스도와 육체와의 관계
(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함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2) 이제는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
(고후5:16)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3) 예수께서 육체로 죽으심으로 화목케 하셨다.
(골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4)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을 가졌다.
(요일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관련원어풀이
1. rc;B; 빠-사-르
(1) 육체,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의 살, 육체 가죽.
(창41:2, 욥33:21)
(2) 가축의 먹는 고기.
(출16:12, 민11:4)
(3) 모든 육체.
(욥14:21, 사10:18)
(4)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들.
(창6:12, 7:15)
2. raev] 쇠에-르
(1) 육체.
(시73:26, 렘51:35)
(2) 피에 의한 관계, 혈연.
(레18:6, 25:49)
3. savrx 살크스
(1) 인체,동물체의 육의 부분,가죽이나 뼈에 대한 고기.
(눅24:39, 계17:16)
(2) 육체, 인체를 구성하는 요소.
(행2:26, 갈4:14)
(3) 인간, 인류.
(행2:17, 갈2:16)
4. aw'ma 소-마
(1) 사람이나 동물의 몸, 죽은 몸이나 시체.
(눅17:37)
(2) 실로 이루어진 몸, 육적인 몸.
(골1:22)
(3) 사회적인, 윤리적인, 또는 신비적인 몸.
(롬12:5,골1:16)
설교예화자료
사슴과 뿔
어느 날 목이 마른 사슴이 물을 마시러 시냇가로 나왔습니다.
허겁지겁 물을 마신 사슴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뿔을 보고 스스로 감탄하였습니다.
"내 뿔이지만 정말 멋있어. 아마도 이 숲속엔 나보다 더 멋진 뿔을 가진 동물은 없을 거야."
사슴은 한참 동안 물속에 얼굴을 비추고 이리저리 자신의 뿔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슴은 마치 왕관이라도 쓴 듯한 기분으로 우쭐해져서 콧노래까지 불렀습니다.
그러다 문득 가늘고 길쭉한 볼품없는 다리를 본 사슴은,
"하나님도 참 짓궂으시지. 뿔은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주시면서 어쩌자고 다리는 이렇게 못생기게 만들어 주셨을까?" 하며 불평하였습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돌아보니 저만치서 사자가 사슴을 노리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앗, 빨리 도망쳐야지!"
사자를 본 사슴은 가늘고 긴 다리로 잽싸게 도망을 쳤습니다.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숲속의 왕인 사자조차도 헐떡거리며 쫓아갈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사슴의 뿔이 나뭇가지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슴은 발버둥을 쳤지만 단단히 걸린 뿔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뒤쫓아 오던 사자가 가까이 다가서더니 사슴을 덥썩 물었습니다.
사슴은 슬픈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내가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던 뿔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다니‥‥‥‥
망신당한 표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기 가죽을 자랑하는 표범이 있었습니다.
그 표범은 만나는 동물들에게마다 자기의 가죽을 자랑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표범은 여우를 만났습니다.
"여우야, 내 털을 좀 봐라, 정말 아름답지 않니? 이 멋진 무늬며 색깔은 너의 그 누런 털가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하며 표범은 또 자기 가죽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우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표범님의 가죽이야말로 자랑할만하지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따위 가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소중하고 기발한 지혜가 있답니다. "
털가죽을 자랑하던 표범은 그만 부끄러워 슬금슬금 자리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릇
매우 총명하나, 얼굴이 추한 한 사람의 랍비가 로마 황제의 왕녀와 만났습니다. 왕녀는,
"뛰어난 총명이 이런 못생긴 그릇에 들어있군!" 하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왕궁 안에 술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왕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무슨 그릇에 들어 있습니까?" 라고 거듭 물었습니다. 왕녀가
"보통의 항아리라든가, 술병과 같은 그릇에 들어 있죠." 라고 대답하자 랍비는 놀란 체하며,
"로마의 왕녀님 같이 훌륭하신 분이 금이나 은그릇도 많이 있을텐데 어째서 그런 보잘것없는 항아리를 쓰고 계십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왕녀는 지금까지 금이나 은그릇에 들어 있던 술을 보잘것없는 항아리에 옮기고 싸구려 항아리에 들어 있던 술을 금이나 은그릇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술맛은 변해서 맛이 없게 되었습니다. 왕이 화를 내며,
"누가 이런 그릇에 술을 넣었느냐?" 라고 하자 왕비는,
"그렇게 하는 쪽이 알맞다고 생각해서 제가 했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랍비가 있는 곳으로 가서 왕녀는,
"랍비여! 당신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을 권했습니까? " 라고 말하며 화를 냈습니다. 랍비는,
"단지 나는 당신에게 대단히 귀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싸구려 항아리에 넣어 두는 쪽이 좋을 경우가 있다고 가르치고 싶었을 뿐입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혀
어느 랍비가 하인에게 시장에 가서 무언가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시켰습니다.
하인은 혀를 사왔습니다. 이틀쯤 지나서 랍비는 같은 하인에게 오늘은 싼 음식을 사오라고 명했습니다. 그러자 또 혀를 사왔습니다. 그래서 랍비는,
"내가 너에게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하자 혀를 사왔고, 오늘은 비싼 것이 아니라도 좋으니 음식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또 혀를 사왔으니 어찌된 일인가? "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혀가 아주 좋으니, 그보다 좋은 것은 없고, 또 나쁘면 그보다 나쁜 것은 없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콤플렉스
역사의 비평가 하즈릿드는 "나폴레옹이 18cm만 더 키가 컸더라면 황제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나 '키작은 병정'이라고 불리웠기 때문에 그 경멸스런 칭호가 그로 하여금 분발케 하였고 마침내는 영웅이자 제왕이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역사를 장식한 인물 중에는 육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키를 말하면 알렉산더 대왕은 단소한 체구를 가졌었고, 아리스토텔레스, 에피큐로스, 플라톤 등도 그랬고 아르키메데스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몽테뉴, 모짜르트, 베토한, 하이네, 토마스 모어, 발작, 입센, 엘리옷 등의 사상가, 음악가, 문학가 등도 키가 작은 사람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육체적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분야에서 대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내심을 보사 당신의 일을 맡겼습니다. " 하신 성서 말씀을 다시 한 번 음미하게 합니다.
어록·시·묘사
사람의 육체는 발명품의 창고이다. 온갖 힌트의 모델이 보관되어 있는 특허국이다. 이 땅의 모든 기구와 발동기는 그 사지(四肢)와 감각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R. W. 에머슨)
우리들의 몸은 많은 창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밖을 향해 몸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들을 사랑하러 와 주셔요."라고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R.L.B. 스티븐슨/ 소년 소녀를 위하여)
건강한 신체는 영혼의 객실이요, 병약한 신체는 그의 감방이다.
(F. 베이컨/ 학문의 진보)
육체의 활동은 정신적 고뇌를 해방시킨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F.라 로슈푸코)
육체에서의 우아함은 정신에서의 양식과 같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영혼은 많은 몸짓을 갖지만, 육체는 한 가지를 갖는다.
(T. 뢰트케/ 운동)
육신은 영혼의 고통거리이다. 그것은 지옥이요, 운명이요, 짐이요, 필연성이요, 강한 사슬이요, 고통스런 죄이다.
(팔라다스/ 그리이스 사화집)
인간의 몸은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최상의 상(像)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여문 몸은 영원히 더럽히는 일이 없는 큰 바다.
(K. 지브란/ 예언자)
인간의 육체는 시계, 즉 숙련과 연구력으로 제조된 거대한 시계이다.
(라 메트리/ 인간 기계론)
우리가 행복하든 않든 간에 우리의 육체는 우리로 하여금 불멸을 향해 노력하도록 강요한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육체는 성신의 성당이요, 외로운 영혼의 우주와 관계를 이룩할 수 있는 수단이다.
(H. 로버츠)
육체는 영혼의 집이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인간의 육체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피할 것인가를 인간에게 말하는 반면, 인간의 양심은 어떤 욕구를 키우고 충족시켜야 하며 어떤 욕구를 억압해서 없애 버려야 하는가를 지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건전한 육체가 불건전한 정신을 복원시킬 수는 없으나, 건전한 영혼은 그 힘으로 육체를최선의 상태로 도리켜 놓을 수 있다.
(에머슨/ 대표적 인물)
마음이 비록 이 몸의 주인이긴 하나 몸으로 마음의 스승이 되게 할 것이니 너희들이 도를생각하지 않는 것이 걱정이요, 도는 어찌 너희를 멀리 하리오. 가령 농부라도 세상의 얽매임을 헤쳐 벗어날 수 있나니라. 도사나 교부(敎父)가 어찌 종자가 있겠는가.
(최치원/ 四山碑文)
신체의 아름다움은 만일 지성이 그 바탕에 없다면 동물적인 것에 불과하다.
(데모크리토스/ 단편)
인간에게 육체가 있다는 사실만큼 철학자들이 생각하기를 회피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망령이나 천사에게 육체가 없다는 것은 그 얼마나 무서운 천벌일까 하고 나는 때로 생각할 때가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인간의 육체는 인간의 영혼의 일생 속에서 예술을 생산하는 하나의 도구이다.
(A.N. 화이트헤드/ 사상의 모험)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많고,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적다.
(G. 허버트/ 명궁)
인간의 육체는, 인간의 정신의 가장 좋은 사진이다.
(L. 비트겐시타인/ 철학연구)
아름다움이란 성격과 표현이다. 그런데 자연계 중에서 인간의 육체만큼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따로 없다. 인체는 그 힘이나 우아함에 있어서 보다 더 변화하기 잘하는 도표와 같이 나타난다. 어떤 때는 꽃과 흡사하여, 동체(胴體)의 굴곡은 가지가 되기도 하며, 유방의 미소나 얼굴과 머리의 윤기는 열린 화관이 된다. 인체야말로 영혼의 거울이다. 때문에 또한 최대의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F.A. R. 로댕)
그대의 육체는 하나의 국토이며, 거기에는 선과 악이 가득 차 있다. 그대는 그 국토의 군주이며, 그대의 이지(理智)는 국무 총리이다.
(S. 물크)
육체보다는 영혼을 치료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불행한 인생보다는 죽음이 더 낫기 때문이다.
(에픽테투스/ 편람)
성스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의 육체가 성스럽다.
(W. 휘트먼/ 육체 전기의 시가)
천만 사람이 각기 서로 내(我)가 있으니 나의 몸은 나의 형상이요, 나의 목숨이라. 어미같은 지친(至親)이라도 그 먹는 밥이 아들의 주림을 구원치 못하고, 형 같은 지정(至情)이라도 그 입는 옷이 아우의 추위를 막지 못한즉, 나의 몸은 내가 호위하며 내가 기르느니라.
(유길준/ 내 몸)
마음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육체는 푸줏간의 은혜를 입고 있다.
(유태 속담)
육체와 영혼은, 불평 많은 남편과 아내 같이, 결합된 항아리이면서도, 갈라지기 싫어한다.
(영/ 야상)
건강한 육체는 대접 잘 해주는 주인이고 병약한 육체는 감옥의 간수이다.
(F. 베이컨/ 학문의 진보)
모든 하늘의 성가대와 지상의 비품-즉, 한 마디로 세상의 강대한 뼈대를 구성하는 이 육체들은-영혼 없이는 어떤 물질도 갖지 못한다.
(G. 버클리 주교/ 인간 지식의 원리)
작은 육체가 위대한 영혼을 가진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육체는 물질세계의 모든 구원과 미덕을 빼내는 파이프와 같은 것이므로 모든 빼어난 행동과 태도의 근원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R. W 에머슨)
육체의 노쇠는 지혜/ 젊었을 때 우리 서로 사랑했으나/ 어리석었어라.
(W.B. 예이츠/ 오랜 침묵 속에)
육체의 욕망은 천시하고 정신만을 높이 쳐들어 대는 학자들의 가르침 때문에 사람들은 도덕적인 생활을 매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육체를 천하게 보고 정신의 희생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모든 금욕주의는 고리타분한 것이다. 육체의 욕망을 무시하라는 것은 도대체가 부자연스런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 자연스런 생활 속에 누구나 도덕적인 규율을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보통사람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 가장 자연스런 생활 속에 높은 도덕적인 규범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누릴 권리가 있다. 다만 몸의 건강과 정신의 안정을 헤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그쳐야 한다. 건강을 해하고 정신을 헤뜨리게 한다는 것은 이미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M. E. 몽테뉴)
육체,그것은 이대째의 몬타시기가 오백 년 전에 벼른 것/그 거죽엔 무슨 수의 것인지는 알 수 없건만/ 화심(花心)이 보랏빛인 꽃들이 놓여 있거니와/ 나는 이 모든 것을 낮의 상징으로서/ 밤을 상징하는 탑루에 맞세우며/ 무인의 권리로써 하듯/ 그 죄악을 한 번 더 범할 특권을 요구하노라.
(W.S. 예이츠/ 육체와 영혼과의 대화)
겨자씨만한 육신을/ 6척으로 키운 이십 년을/ 겨자씨만한 소견을/ 우주의 크기로 불린 오십 년을/ 되돌아보면, 지팡이로/ 겨우 스스로를 부지하는 칠십 년을/ 이 거짓의 크기에 눌리어/ 꺼져 버린 풍선처럼/ 저 긴장이 빠진 공허를, 무덤에/ 덮으면 종말은 원초(原初)로 돌아가는/ 겨자씨만한 육신을
(박남수/ 겨자씨만한 육신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보자는 소원이 우상을 만들었다면, 보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하고 싶은 고독이 인간의 육체를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육체란 허무의 공간에 투영된 고독의 그림자일거다.
(최인훈/ 광장)
그 부드럽고 불그레한 살빛, 팔과 다리와 몸의 선, 볼록한 젖가슴,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자신의 몸에 어리듯이 사르르 눈을 내려감았다.
(이광수/ 그 여자의 일생)
머리가 검어서 그리던 하늘이/ 머리가 희도록 막막만 하구나/마음만 만날 때는 육신이 서럽고/서로가 못 만나는 육신, 비수로 저미는 아픔이여 ‥‥‥‥
(박두진/ 십사행시 12월)
그 팔이며 다리, 허벅지며 허리들이/ 향유마냥 반드럽고 백조마냥 굽이쳐/ 내 맑아 슬기로운 눈앞을 지나가나니/ 그 배와 가슴, 내 포도밭의 포도송이들은
(C.P. 보들레르/ 보석)
그대는 찾아보리, 두 개의/ 커다란 청동메달/ 두 묵직한 젖가슴 끝/ 비로드모양 부드럽고,중의 살결 모양 칙칙한/ 반드러운 배 아래// 이 거창한 머리털의 진정한 자매인/하나의 두툼한 터럭송이/ 곱슬곱슬 부드러워, 짙음을 너와 비길/ 별 없는 밤. 어두운 밤이.
(C.P. 보들레르/ 어느 얼굴이 주는 기대)
"헬렌"은 육체로서 육체를/ 버릴 수 없었다. 허전하게 비어 버린/ 몸이 둘러싸여 죽음의 그늘이 번지는 것을.
(T.W. 건/ 헬렌의 겁탈)
자기를 내려다보며 이 두 손에 생각이 미치면/ 발을 알고 허리를 알고, 그리고 모양없는 성기를 똑똑히 안다면/ 이것이 육체인 것이다. / 잠을 욕심 내고 언젠가는 죽지 않으면 안 될 육체.
(H.E. 홀투젠/ 시간과 죽음에 관한 여덟 개의 바리아숑)
내 마음은 육체가 된다. / 육체의 마음은 다시금 끊어져/ 헛갈리어/ 도막도막 위를 보고/ 올라서 간다/ 내 몸은 육체가 되어 버린다.// 육체에도 마음에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 /인생과의 관계는 깊다.
(S. 판트/ 그늘의 화포)
육체의 과실(果實)이 어느 생생한 물통에서 멱감는다. /그러나 물 밖에선/투구와 같은 힘센 실다발을 풀며/ 떨어지는 물에 목이 잘리는 황금의 머리가 빛난다.
(P. 발레리/ 목욕하는 여인)
오 내 육체/내 사랑하는 육체, 신성(神性)으로부터 나를 메어 놓은/ 전당(殿堂)이여, 나는 진정 시키리라./ 너의 입을.
(P. 발레리/ 나르시스 단장)
가난한 계급은 이 몸뚱아리 하나가 유일 최후의 자산이니라,
(이 상)
가슴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다리로 팽팽하게이어진 능선‥‥ 그것은 풍속을 짓밟고 오만하게 누워 있는 타락신의 질투이면서 하나의 계몽사상이었습니다. 영(靈)을 단념하고 육(肉)을 통하여 이데아(故鄕)로 돌아가는 계시라고나 할까.
(미 상)
그는 가시밭 길과/ 육체의 고통을 아시네/ 그는 이 육신의 집이 무너짐을 아시네/그리고 그는 축복하기 위해/ 언제나, 내 곁에 머무르시네.
(작자 미상/ 예수님은 아신다네)
그래서 당신은,/ 나의 영혼만 고치지 않으시고/ 헤어나지 못하는 이 육신의 정욕까지도/마저 고치려 하셨습니까, 아아.// ‥‥오늘도 기다리는 식솔들을 위해/ 한 덩이의 식빵을 걱정하며/ 돌아서는 이 육질덩이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김성영/ 죄인이로소이다)
오 주여,/ 버리게 하소서./ 버리게 하소서.//‥‥죄의 물든/ 육신의 정욕을/ 버리게 하소서
(김성영/ 버리게 하소서)
말씀이신 드높은 분의 마음이/ 사람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그 몸에 육신을 입으셨네.
(작자 미상/ 크리스마스의 노래)
황량한 사막, 인간의 음탕에 절여진 모래다. 살륙의 용암이 뿜는 거품이다. / 이 시각 '무'로 화한 정원 돌층계의 균열은 무슨 신탁이었을까./ 이제는 구원조차 없는 빨간 장미의 육체 속에서/그 속에서/그 사나이의 시들어버린 심지를 찾으라 하는가.
(이찌마루 아키라/ 밤의 노래)
서 있는 십자가/ 서 있는 곳은 가슴위/ 온종일/ 육신의 벌레를 찔러라.
(야마무라 보쵸오/ 마음을 쪼으며)
안돼. 못해/ 대추 알맹이 하나 품고/ 죽여도 죽지 않는 육신/ 불인두에 뱃가죽이 타고
(임문혁/ 토르소)
너는 끝나지 않았다!/ 네 금속의 육체보다도 더 강한/ 너의 여운은 또한 나의 영혼
(김현승/ 종소리)
지금 막/씻어 헹군 영혼일 뻔/촛불 육신/ 가득한 방에/ 옷 벗고/ 혼자 든다.
(김남조/ 촛불 · 1)
부자는 부를 믿지 않고/ 금은 건강을 사주지 못하네/ 육체는 이울어야 하고/ 모든 게 끝나게 되어 있네,
(토마스 내쉬/ 역병이 창궐하는 때에, 1593)
그러나 나는 육체 속에서 길을 잃고, 그 들끓는 거짓은/ 여전히 나를 조롱하고, 그리고 더 대담해집니다.
(조지 허버트/ 시들고 무딤)
까닭없이 부대끼는 날은 바다로 간다. / 지친 육신의 마른 어깨는 수평선에 걸려 넘어지고/푸른 얼굴도 일제히 눈뜨는 모래밭에/ 파도를 따라 길게 부서지는 해안의 꿈
(김석규/ 바닷가에서)
온 육신의 무게를 중심에 받친/ 생존의 한치 칼날이/겨울의 마지막 통증을/잘라내고 있다.
(이광석/ 환절기)
젊어서 사랑하였고/ 풋풋하던 내 몸 여위어/ 기쁨은 슬픔에 채어 달아났어 라/ 그 넉넉한 그리움도 탕진했어라.
(김현숙/ 마른 풀의 노래)
지금 한 이파리 지는/ 꽃잎으로, 갈증 핥으며/ 내 알몸뚱이 하나/ 그대 생각으로 잠재우리
(정희수/ 강 너머의 그대)
육신이 지배하는 땅엔 멸망이 오지만/ 그리움이 빛은 나라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동주/ 신문가-7 흙이 전하는 말)
만물이여 내 몸이여/ 허공이여 내 몸이여
(정현종/ 몸뚱아리 하나)
한 해의 육체를/우리는 8월까지 다 써 버리고./ 이제는 영혼의 절반만이/우리에게 남아 있다
(김현승/ 가을이 아직 오지 않지만)
너는 아는가‥‥/ ·.:감겨진 내 눈 위의 눈부신 비밀들이여,/ 어떤 육신이 저 게으른 종말로 나를 끌고 가는가를,/ 어떤 이마가 그 육신을 이 피투성이 땅으로 끌어당기는가를.
(발레리/ 해변의 묘지)
하늘이 도우셔서/ 만일 내가 이 사랑으로 인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주여 불쌍한 나의 육체를/ 이곳에 묻히게 하시고/ 육체의 옷을 벗은 내 혼은/그의 갈 곳, 하늘로 데려가 주소서./ ‥‥나의 가련한 육체가/ 휴식할 수 있고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이곳 이외의 곳에 갇히게 된다면,/내 지친 혼도 그 육체를/떠나 버리기 어려울 것이니
(페트라르카/ 라우라에게 바치는 시)
그리하여 모든 편력에서 돌아오는 날 우리에게 남은 진리는/ 저녁 일곱 시의 저무는 육체와 원죄를 끌고 가는 영혼의 우마차/ 인간은 고독하다!// ‥‥추상으로도 육체로도/ 융해되지 않는/오오, 너의 이름은 모든 애정과 신앙을 떠나/ 내 마음의 왕국에서 자유와 독립을 열렬히 호소하는구나!
(김현승/ 인간은 고독하다)
축축한 마당귀 잡풀 사이로/ 닳아깎인 손끝이 정지되고/ 휘도록 굽은 등짐을 부려놓는/ 가랑잎 같은 육신
(나영자/ 강을 건너)
인카네이션, 그들은/ 육화라고 하지만/ 하느님이 없는 나에게는/ 몸뚱어리도 없다는 것일까.
(김춘수/ 처용단장-메아리 · 12)
원시의 몸짓 그대로라니/ 벌거벗은 몸으로/ 온천탕에 들어가니/ 기분이 뜬 세상이구나.// 감당할 수 없었던/ 천근만근의 육신/ 구름을 탄 듯 가볍다.
(박이도/ 온천에 숨어)
주안 묘지 산비탈에도 밤벌레가 우느냐,/ 너는 죽어서 그곳에 육신이 슬고 / 나는 살아서 달을 쳐다보고 있다.
(김광균/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구나)
그리하여 저의 육체가 무덤과 같이 당신을 맞아드립니다. / 당신이 알아주셨기에/ 나는 처음으로 저란 것을 알았습니다. / 당신이 아시기까지는 저의 육체가/ 밀고 크기만한 물과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이방 골/ 마래 아가씨 마니야나가 부른 노래)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풀잎 하나 주옵소서.
(구상/ 초토의 시 8)
바람 앞에 스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 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크신 임이시여/ 그리 살게 하소서
(김옥진/ 기도)
비워내게 하소서/ ‥‥낡고 물들고 더러워진 육신의/ 옷들을 말끔히 말끔히 벗게 하시고/세상 것에 연연하는 색안경일랑/ 말끔히 내던져 버리게 하시고
(안혜초/늘 이렇게 신록의 아침이게 하소서)
나는 바닷가를 거닐며/ 나의 속에 살랑이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먼 수평선에서 넋이 일어 오며/ 나의 괴이한 육신에 것들고/ 도시의 사슬에 묶여 온 신음/‥‥//나는 바닷가를 거닐며/ 나의 속에 출렁이는 물결 소리를 듣는다/ 먼 수평선에서 넋이 일어 오며/ 나의 비천한 육신에 것들고/도시의 혼륜에 눌려 온 저항,/이제 나의 속의 수평선에/맑은 유현이 지니는 넋의 시원(始源) 찾아/ 나의 의장(意匠)의 날개 은근히 일으킨다// 나는 바닷가를 거닐며/ 나의 속에 울리는 갈매기 소리를 듣는다/ 먼 수평선에서 넋이 일어 오며/ 나의 고독한 육신에 것들고/도시의 임종에 맺히는 회한/ 이제 나의 속의 수평선에/밝은 음광이 이끄는 넋의 시원 찾아/ 나의 회귀의 날개 활짝 펼친다.
(김종문/ 바다)
서로 보며 불튀는 눈과 눈의 영원/ 포옹이 그 육신으로 영으로/ 푸득거릴,// 어떻게 너에게 닿을까/ 사랑이어.
(박두진/ 너의 융기)
버리고 싶은 육신의 여행/ 날지도 못할 우리 가난한 영혼들이/ 마차 바퀴자국같이/ 서로 엇갈려 지나가고
(서정윤/ 퇴적암 지층 · 2)
육체는 슬프다. 아! 나는 모든 책을 읽어 버렸다/ 도망치자! 저 머얼리 도망치자!
(말라르메/ 바다의 소슬바람)
너는 빈 컵이요 단조로운 눈썹이다/ 나는 존재하는 것의/ 이름을 부를 수 없는 벙어리다/ 어둠이 우리의 언약과 배신을 씻어내릴 때까지/ 버려진 네 육신의 폐허에 기대어/원색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족하다.
(김규동/ 어떤 낙화)
뿌리는 깊고/ 깊은 곳이 더욱 고되다는/ 참말이지 우리가 얼마나 어렵다는 걸/ 육신을 지펴보면 알리라.
(성춘복/ 관계)
나의 약한 육체를 도우소서/ 내가 당신의 전부를 노래할 때까지는/ 이 열망을 채워 주소서/ 불타게 하소서, 불이 타게/ 불이 타서 쓰러지게 하소서
(석용원/ 가난한 시인의 기도)
내 육신과 영혼의/ 가장 가볍디 가벼운/ 그런 것들/ ‥‥어느 날/ ‥‥불멸의 새가 되게 하소서
(윤강원/ 하나의 기도)
오늘도 돋아나는 내 영혼의/ 순(旬) 저리 갉아도/ 육신 가리운 의상 벗어들고/ 금비늘 떨어내는 가증한 일상.
(엄창섭/ 기도 · 23)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주여,/ 나의 육체는 이미 저물었나이다!/ 사라지는 먼뎃 종소리를 듣게 하소서,/ 마지막 남은 빛을 공중에 흩으시고/ 어둠 속에 나의 귀를 눈뜨게 하소서.
(김현승/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우리는/ 신의 육체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하리라.
(서정윤/나의 어둠의 시-5 · 신의 병실에서)
영혼이라는 불꽃의 재는 육체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하느님은 우리에게 영혼을 위한 성전으로 육체를 주셨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그대의 육체가 사막 위에 떠있는/ 거대한 밤이 되고 모래가 되고/ 모래의 살에 부는 바람이 될 때까지/ 자기의 거짓을 사랑하는 법을 연습해야지/ 자기의 거짓이 안보일 때까지
(정현종/ 그대는 별인가-시인을 위하여)
일찍이 이 산 위에/ 오른 사람들은 다 죽었다/그들의 이름은 허공에/ 새겨지고, 그들의 육신은/ 얼음 속에 갇히고 말았다.
(민영/ 山碑)
죽은 것은 잠자는 것./ 그 뿐이다, 만일 잠으로써 우리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수천 가지 피치 못할 충격을/ 끝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열렬히 원할 극치.
(셰익스피어/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사람마다/ 한눈 팔며/ 육신의 길 걸으니/ 심은 대로 거둘 때에/ 썩어진 것 거두네
(홍안의/ 하나님의 사람)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네/ 육신을 얽어매는 사슬 때문에
(홍안의/ 내 속을 채우소서)
믿음 있는 사람은/ 귀하고도 놀라워/ 모든 사람/ 육신의 종살이를 할 때에/ 그는 홀로/ 주님의 뜻을 따라 일하네.
(홍안의/ 믿음 있는 사람)
그리하여 9월은 가을의 첫 입술을/ 서늘한 이마에 받는 달./ 그리고 생각하는 혼이 처음으로/ 네 육체 안에 들었을 때와 같이/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너의 눈은 지금 맑게 빛난다.
(김현승/ 가을이 오는 달)
육체는 낡아지나 마음으로 새로웁고/ 시간은 흘러가도 목적으로 새로워지나이다!/ 목숨의 바다---당신의 넓은 품에 닿아 안기우기까지/ 오는 해도 줄기줄기 흐르게 하소서.
(김현승/ 신년기원)
엘리야여, 엘리야여./ 한 칼에 사백 오십의 바알 선지자들을 목 벤/ 충천하는 기개가 볼만하였거늘/ 또다시 홀로 쫓기며 궁지에 몰려/ 짓밟히는 인격과 육신의 수욕됨이/ 이젠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고진숙/ 엘리야여 엘리야여)
우리가 시방 헤어지는 것은/ 어느 날 훌훌히 병든 육체를 벗고/ 가없는 세월을 살 영원을 보듬고/ 지구를 떠나는 연습입니까
(배명식/ 우리가 시방 헤어지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나의/ 유일의 확실성이라고 나는/ ‥‥무릎을 꿇었다
(김남주/ 진혼가)
영혼과 육신이 서로 묶여 있는 것처럼 육신은 또 그 주위의 환경과 연결되어 있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과로에 익숙한 육신/ 살아 있는 날들의 확인이/ 적당한 무게로 얹혀오는/ 지병.
(권천학/ 살앓이 · 4-미열)
베드로가 죽음을 거부하지 않음도/그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 베드로와 같이 육체와 육체의 영광을 보고 싶다.
(황금찬/ 말씀을 따라)
회오리도 없이 고인 불/ 잠 속에 고인/ 불속에 깊이 고인 불 속에 내린/육신의 육신의 뿌리에 내린/ 쳐라 신명을 타내리네/ 황불이 일어/ 내리는 빗발이/ 솟구치는 육신의 휘모리에 타내리네/ 신명을 타내리네
(김지하/ 황불)
아아 시커먼 숯덩이로 타는 불덩이로/타는 육신을 아예 사뤄 버리는 불꽃의/ 마지막 관이오는 때까지 활활활 타오르는
(김지하/ 먹칠)
하루를 조롱하는 끈질긴 밤의 얼굴에/ 인사나 하자./ 거퍼거퍼 끓인 커피 잔마다 어둠을/ 침잠시키며/ 헝클어진 날줄과 씨줄의/밤의 비단 끈을 찾아 헤매는/육신의 혼령은/어느덧 불면의 객기에 현혹당하고 있다.
(신재연/ 불면)
땅은/ 육체가 가는 길/ 바다는/ 영혼이 가는 길
(히메네스/ 야상곡)
영혼은 바다에/ 고독을 끌어들이는 나그네./ 육체는 영혼과 결별하여/ 홀로 바닷가에서/어둡고 싸늘하게 누워있다. / 죽음처럼!
(히메네스/ 병의 회복기)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의 마음이 아니고/육신이었지.// 약지 끝에 묻은 하늘/ 육신에 젖어 있는/ 백목련 그늘.
(마종기/ 연가)
그러는 동안에 우리들의 항구/ 달콤하고 새콤한 지옥에서는/ 안개에 싸인 아침 무렵이면/ 인디안들이 쓰러져 간다/ 인간의 육체가 한 개 떼굴떼굴 굴러간다/그것은 이미 이름도 없는 잡동사니다/ 땅에 떨어진 하나의 번호다/ 쓰레기장에 내던져 버린/ 썩은 과일 한 송이 일뿐이다.
(네루다/ 연합 청과물 회사)
가슴엔 나직이 타는 통곡/ 닳아 빠진 작업복 속에 구겨진 육신 속에 나직이 타는/ 이 오래고 오랜 통곡
(김지하/ 결별)
그것이 비록 병들어 죽고 썩어버릴/ 육체의 꽃일지언정// 주여‥‥/지을 수도 있는 우리가 가진 최선의 작은 무기는/ 사랑이외다!
(김현승/ 사랑을 말함)
유다이즘은 육신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유다이즘은 우리에게 육신을 내팽개치라고 권하는 대신 잘 다스리고 협력하라고 한다. 육체의 자연스런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정신이 부자연스런 불만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권한다‥‥ 유다이즘은 우리에게 어떻게 동물적인 욕구의 충족이 성결하게 하는 행위일 수 있나를 가르쳐준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우리의 육체는 악이 아니라 정신을 적용시키는 물질이다. 육체는 뛰어넘을 무엇이지 뿌리뽑을 무엇은 아니다. 하늘라 땅이 모두 그분의 창조물이다. 그분이 창조하신 것은 하나도 남용되거나 없애버릴 것이 없다. 적은 육체 안에 있지 않다. 적은 마음 속에, 에고 속에 있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주여, 긴 이빨을 드러내고 내일 검은 육체와 흥정할 외교관들에 대한 증오,/ 이 마지막 증오를 나는 아직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절대로.
(솅고르/ 눈내리는 파리)
우리는 영혼의 방화광(放火狂)이 되라는 명령을 받지는 않았다. 반면에, 다른 누구를 해롭게 하지 않으면서 인생을 위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육체의 요구는 창조주가 만든 것이고, 그의 창조물을 파손하는 행위, 무심코 저지르는 파괴, 함부로 몸을 굴리는 부정한 행위는 야만이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유다교에 충실하다는 것은 정당한 몸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독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재물은 큰 야망을 품고 모아볼 만한 것이요, 착하게 사는 대가로 받는 약속된 보상이다. 비록 동물적인 본능을 채우기 위한 축제는 없지만, 동물적인 본능의 정당한 역할을 외면한 적은 결코 없다. 유다교는 육체의 욕구, 한계, 행복을 진지하게 보살피고 있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인간은 태어나면서 죄인이라는 생각은 낯설다. "육신"이라는 말에도 죄악의 고약한 냄새가 배어 있지 않다. 육신의 요구도 악에 뿌리내린 것으로 보지 않는다. 성경 어디에도, 영혼이 타락한 육체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 이 세상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영혼을 잃는 것이요, 하느님과의 계약을 어기는 것이라는 생각, 하느님 편에 서려면 세상 물건들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생각의 그림자도 없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착하게 살려면 물론 욕정을 자제하고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만족을 아예 포기할 것까지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극복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승리가 어떻게 이용되느냐 이다.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은 육체의 요구에 대한 무자비한 억압이 아니라 조심스런 개조이다. 욕정은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이다. 우리의 목적은 고통스런 변태가 됨으로써가 아니라 차라리 몸의 한 부분을 잘라버림으로써 이를 수 있다.
(헤셸/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이 손이 행한 일이/ 범죄한 내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네./ 세상에 난 육신이 수고한다하여/ 나의 영혼을 온전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네.
(호레이셔스 보나르/ 구원)
주님은 우리처럼 육신의 옷을 입으시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셔서/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상처 입은 심령을 치료하러 오셨네.
(루시 R. 메이어/ 너를 부르신다)
설 교 노 트
모든 뼈를 보호하심
시34:20
서론
본문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면서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세밀하심을 다시금 감탄하게 됩니다.
여기 "뼈"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1. "내 뼈 중의 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조성된 육체는 골격과 근육과 피부의 삼경으로 구성되었고 그 위에 신경, 혈맥, 오장 육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든 사람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고 하였습니다. 이는 매우 귀중한 존재임을 역설하였으니 뼈는 곧 사랑을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듯 인간의 육체를 세심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육체를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방치할 것이 아니라 조심하고 귀중하게 다루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하겠습니다.
2. "뼈도 꺾지 말라"고 했습니다.
출애굽 당시 유월절을 지키면서 제물로 삼은 어린 양의 고기를 먹되 아침까지 남겨 두지말고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뼈는 비록 짐승이라도 그 짐승의 중심 골격이 됩니다. 아무리 제물로 희생된다고 할지라도 그 뼈를 상하지 않도록 보존케 하심도 하나의 자비와 긍휼이며,그 짐승의 가장 중견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도 노래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 하나도 꺽이지 아니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3. 예수님의 뼈가 꺾이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옛날 유월절 양을 잡을 때 뼈를 꺾지 말라고 당부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적으로 응답되어서 예수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그 뼈를 하나도 꺾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못박힌 두 강도는 다리를 꺾었는데(요19:32), 예수님은 이미 운명하신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다리 뼈를 꺾지 아니하였으니 곧 예언의 응답인 것입니다(요19:36).
결론
옛날 십자가나 기타 형틀에서 고문을 당하는 죄수들은 뼈가 쉽게 꺾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뼈는 상하지 않도록 하라신 예언이 그대로 응답되었으니 또한 오묘하신 하나님의 뜻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모든 육체의 하나님
렘32:27
서론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 이라"고 하시므로 능치 못할 것이 없으니 전능자임을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 없으십니다.
그러면 본문에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그 뜻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육체를 만드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맨 마지막으로 우리 인생을 만드셨습니다. 그 창조 순서를 보면 먼저 육체를 만드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육체) 생기를(영혼) 그 코에 부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다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몸(육체)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마10:2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항상 두려움과 떨림으로 순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그저 순종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육체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2. 모든 육체의 하나님
하나님의 만드신 육체도 각기 여럿이 있으니, 고전15:39에 보면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의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식물이 아닌 동물들은 각기 그 육체가 있어서 지상동물과 조류들과 어류들을 총괄하여 말하나니 그 지상의 모든 생물들을 포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라(창1:20)"고 하셨으니 "첫 복"을 생물들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3. 모든 육체의 깊은 뜻
"모든 육체라"는 말을 내용적으로 말한다면 "모든 생물들"이 라고 하겠고, 또 다른 면에서모든 육체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각인 각자를 총칭하는 말이 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과 종족별 국가별로 볼 때에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국한하지 않고 천하 만민들을 총칭하는 뜻도 됩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보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셨다"고 소개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인구 폭발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양식이 달라도 다 한 혈통인 것입니다.
결론
모든 육체의 하나님은 또 모든 영혼의 하나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은 또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그리고 모든 만물의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 즉 육체,영혼, 모든 우주의 만물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율 법
성 경 활 용
1. 율법의 정의
(1)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다.
(신29:21) 여호와께서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구별하시고 이 율법책에 기록된 언약의 모든 저주대로 그에게 화를 더하시리라
(2) 양심이 증거가 된다.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3) 이것을 세우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사33:22)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
(4) 범법함을 인하여 더하여졌다.
(갈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5) 죄의 권능이다.
(고전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6) 신령한 것이다
(롬7:14) 우리가 율법을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7) 의로우며 선하다.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2. 율법의 내용
(1) 의롭다.
(시119:172)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
(2) 진리다.
(시119: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3)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것이다.
(신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4) 완전하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5) 거룩한 것이다.
(롬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6) 선한 것이다.
(딤전1:8)사람이 율법을 법 있게 쓰면 율법은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3. 율법의 기록된 목적
(1) 죄를 깨닫게 하려고
(롬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2)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롬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3)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려고
(갈3:24)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4)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다.
(히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5) 예수를 알리기 위하여
(요1:45)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행28:23)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4. 율법의 특징은 무엇인가?
(1) 유대인이 맡았다.
(롬3:1-2)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2) 연약한 것이다.
(롬8:3) 율법 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3) 피로써 세워진 것이다.
(히9: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4) 요한 때까지였다.
(눅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5) 변역할 것이다.
(히7:1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5. 그리스도와 율법과의 관계
(1) 율법 아래 나심
(갈4:4)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2) 율법을 완전케 하려고 오심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3) 죄인들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속량하심
(갈3:13) 그리스도께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 의 자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4) 율법의 마침이 되심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느니라
(5) 율법을 성취하심
(엡2:15)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도 폐 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6. 성도와 율법과의 관계
(1)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
(갈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함이니라
(3) 율법에서 벗어났다.
(롬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7. 율법이 주는 교훈
(1)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잠29:18)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2) 영혼을 소성케 한다.
(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3)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다.
(잠28:7) 율법을 지키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요 탐식자를 사귀는 자는 아비를 욕되게 하는 자니라
(4) 율법을 듣지 않는 기도는 가중한 것이다.
(잠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5) 율법을 행하는 자는 의롭다.
(롬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6)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
(롬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7) 율법은 사람의 살 동안만 주관한다.
(롬7:1)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8)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해야 한다.
(딛3:9)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8. 율법을 지킨 자의 결과는 무엇인가?
(1)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된다.
(수1:7)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2) 멸망하지 않는다.
(시119: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3) 열조가 준 땅에서 옮기지 아니한다.
(대하33:8) 모세로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 열조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4) 악인을 대적한다.
(잠28:4) 율법을 버린 자는 악인을 칭찬하나 율법을 지키는 자는 악인을 대적하느니라
9. 율법에 대한 성도의 자세
(1)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켜야 한다.
(왕상2:3)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2)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시1: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항상 영영히 지켜야 한다.
(시119: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영영히 끝없이 지키리이다
(4) 입에 있게 해야 한다.
(출13: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내 입에 있게 하라
(5)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어야 한다.
(신17:19)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6) 열심이 있어서 한다.
(행21:20)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관련원어풀이
1. tD; 다-트
(1) 법.
(단6:9, 13)
(2) 하나님의 법.
(스7:12)
(3) 종교.
(단6:6)
(4) 칙령, 법령
(단2:13, 15)
(5) 계획, 목표.
(단2:9)
2. tWd[e 에-두-트
(1) 하나님의 교훈, 격언.
(느9:34, 시119:14)
(2) 법률, 율법.
(출25:21, 왕하11:12)
(3) 거룩한 예식.
(시122:4)
(4) 계시, 계시된 시편.
(시6O:1, 80:1)
3. hr;/T 토-라
(1) 교훈, 교리.
(욥22:22)
(2) 선지자를 통한 신적인 것.
(사1:10, 8:16)
(3) 신적인 것, 제사법.
(레6:7, 7:7)
(4) 법들.
(출18:20, 레26:46)
4. qq'j; 하-카-크
(1) 새기다, 조각하다.
(사22:16, 겔4:1)
(2) 윤곽을 그리다, 묘사하다, 칠하다.
(사49:16, 겔4:1)
(3) 작정하다, 임명하다, 지적하다, 묘사하다.
(잠8:27)
(4) 법률.
(잠31:5)
(5) 율법 수여자.
(신33:21)
(6) 왕권, 주권.
(창49:10, 시60:9)
5. novmo" 노모스
(1) 설정된 것, 관습, 계명, 율법.
(롬7:1, 2)
(2) 규칙, 원리, 법규, 규범.
(히7:16)
(3) 모세 율법.
(마22:36, 요7:23)
(4) 율법, 모세 오경.
(마12:5, 눅2:23)
(5) 믿음을 구하는 율법.
(롬3:27)
6. nomoqesiva 노모데시아
율법 제정, 입법, 모세 율법.
(롬9:4)
7. a[nomo" 아노모스
(1) 모세의 율법이 없는.
(고전9:21)
(2) 율법에서 떠난,율법을 범하는 자,무법한, 사악한.
(막15:28, 행2:23)
설교예화자료
율법과 죄의 관계
낮에 돈을 벌면서 밤에는 공부하는 남자 고학생 둘이서 자취를 했습니다. 그들은 새벽 일찍이 나가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집안 청소할 시간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부엌에 전구가 고장났지만 고칠 여유도 없었고, 설겆이도 거의 안하는 상태였습니다. 반찬도 시골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간장이 전부였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간장이 제일 맛이 있어서 항상 그 맛있는 간장에 밥을 비벼먹고는 "그 간장 참 맛있다. "고 감탄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둘이 함께 쉴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되어 부엌을 청소한 후 고장났던 부엌 전기불도 고쳤습니다. 한참 동안이나 열심히 집안을 치운 그들은, 오랫동안 쌓아둔 일을 하고 나니 기분도 좋고해서 둘이 외식을 하고 밤늦게 돌아와 그냥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저녁, 부엌에 들어간 친구가 값자기 웩웩거리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곧 병원에 옮겨져 의사의 진찰을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일의 사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저녁식사 준비를 위해 부엌에 들어간 친구가 쌀을 씻어불에 앉혀놓고 유일한 반찬인 간장을 뜨기 위해 간장독을 들여다보는데, 간장 속에 무엇이 등등 떠 있길래 전날 고쳤던 전등 아래로 간장독을 옮겨놓고 살펴보니, 쥐 한 마리가 빠져서 살은 거의 다 녹아버린 채 뼈와 머리 부분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쥐가 빠져 있는 간장을 먹어왔던 것입니다.
전등을 달기 전에도 쥐는 간장독에 빠져 있었지만 쥐가 빠져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들이 전등을 달았기 때문입니다. 전등은 간장독에 쥐를 빠뜨린 것이 아니라 간장독에 빠져 있던 쥐를 알게 해준 것 뿐입니다.이와 마찬가지로, 율법이 우리에게 죄를 가져다 주었거나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이 있기 전부터 인간은 죄악 속에서 그 죄악을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율법이 옴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죄악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죄가 아니며, 죄를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며칠 동안 쥐 국물을 먹고도 아무렇지 않던 자취생들이 쥐를 보고는 배가 뒤틀리고 구역질이 나오듯이,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되면 그 심령이 뒤틀리고 영혼이 괴로워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법률
유태의 법률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지킬 수 없는 것 같은 법률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아버지여,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소서/ 우리는 아버지를 떠나/ 우리 맘대로 방황해 왔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계명을 어겼으며/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콘라드 힐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의 원대한 이상주의는/ 손때 묻은 율법에 고집하는/ 보수적인 의회 무리의/ 이해의 범위를 훨씬 초월하고 있었다.
(스즈키 도오루/ 성전 청결)
우리는 고향 땅 이 왕국으로 돌아왔으나/낯선 백성이 우상을 섬기고 있는/ 여기의 낡은 율법 속에서는 마음이 편치 못하다.
(엘리어트/ 동방 박사들의 여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시작되었다/ ‥‥막은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율법에서 사랑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용서로 자리바꿈하여/ 여기에서/ 멸망하는 일없는/ 영원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토우 가즈코/ 예수의 세례)
피에 절은 땀내가/ 소리치면서// 뜨거운 파도가/ 모래를 날린다// 성난 시내산// 헉헉/안으로만 숨은 몰아쉬다가, 그만// 가슴이 터져/ 불을 쏟는다// 모래불 위에 떨어지는/불꽃//불꽃처럼 딩구는/ 살점 살점//모래알을 입술로 바수던 40년/ 불이 탄다// 채찍소리/ 불길을 끊으면서// 모세의 등어리에/ 열줄 핏자국이 패인다.
(문익환/ 십계명)
거대한 스핑크스는 슬픔에 싸여 사막 위에 웅크리고 있고/ 사방에서 동떨어진 이스라엘은 비탄에 젖어/ 빛 바랜 녹슨 율법책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탐욕스런 베들레헴을 포기했다.
(부닌/ 샛별)
이 나라 율법에는/ 옷 입으면 큰일난다// 빈 손에 빈 몸뚱이에 싸울 일이 없는 세상.
(원용문/ 목욕탕에서)
그의 생애에는 흠이 없으셨다. / 그는 율법의 일점일획일지라도/ 어김없이 계속 지키며 사시었다.
(린제이/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
설 교 노 트
형통하는 삶
시1:1-6
서론
여기 시인은 인간의 두 가지 유형의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행복한 삶이요, 다음은 불행한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행복한 삶이란 의인의 형통하는 삶이요, 불행한 삶이란 악인의 불통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형통하는 삶이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는 삶이요, 불통의 삶이란 바람에 날아다니는 겨와 같은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열매가 생명이 있고 무게가 있고 내용이 있다면, 겨는 생명도 알맹이도 내용도 없는 가벼운 껍데기요, 부스러기입니다. 그러면 형통하는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이는 한마디로 여호와를 긍정하고 그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1. 여호와의 율법을 긍정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지침은 내 감정도 내 의지도 내 양심도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이 우리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의 규법이라고 했습니다. 형통하는 삶이란 언제나 이 율법을 생활의 지침으로 삼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수1:7).
(1) 이 율법이 우리 생의 방향을 지시하여 줍니다.
(2) 이 율법이 우리의 행로를 인도하여 줍니다.
(3) 이 율법이 우리 생활의 척도가 되어 정돈해 줍니다.
이 율법의 범주와 궤도에서 이탈되지 아니함이 율법을 긍정하는 형통의 삶입니다.
2. 여화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율법을 즐거워 한다"는 말은 히브리 원문에 "헤패초"라고 하였는데 이는 기뻐한다는 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래서 이 동사는
(1)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2) 사모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3) 관심을 갖는다는 뜻으로도 사용이 됩니다.
그런고로 형통하는 삶이란 여호와의 율법을 좋아하며 사모하며 관심을 갖는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이 율법은 우주의 모든 원리와 하나님의 섭리와 인생의 행로를 바로 지시하여 이 율법을 즐거워 하는 자에게 형통을 가하시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3.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 쉬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습관적으로 묵상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1) 율법을 늘 명상하는 삶을 의미하고
(2) 율법을 항상 숙고하는 삶을 의미하고
(3) 율법을 항상 기억하여 잊어버리거나 멀리하거나 이탈하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고 그 뜻대로 살게 되고 그 뜻을 성취해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삶이 바로 형통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율법을 긍정하고 즐거워하고 기억하여 수행할 때 형통합니다. 이와 같이 축복을 받은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합니다.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 중심에서 믿음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늘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갑니다.
영원한 법
마5:17-20
서론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 성경 전체를 가리키며, 신약 성경이 나오기까지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준비 적이요, 예언적이기 때문에 불완전하고 부분적이었으나 그리스도는 그것을 성취시킴으로써 그 결점을 보충하고 여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율법을 완전히 실현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율법과 예언을 본래의 의의대로 완전히 이루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자이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하려 함이로라(17절)"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율법 파괴주의자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 파괴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게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1) 율법과 선지자는 준비적이요, 예언적이나 그리스도는 그것들의 본체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
(2) 율법은 구원의 필요성을 깨우쳐 주고 그리스도는 구원을 성취시켜 줍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3:24)"
(3) 율법이란 형식 안에 그리스도는 내용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2. 율법의 영원성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18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서 천지가 없어지고 (계21:1) 인간들이 심판받기까지(마25:31-33) 구약의 예언은 계속 성취되어 갈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완성은 문자적으로나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내용적이며 본질적이며 영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3. 율법의 귀중성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게 일컬음을 받으리라(19절)"고 하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율법은 형식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율법의 중심 사상을 이해하고 파악하여 이를 실천하고 남에게 가르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율법의 준수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나, 율법은 천국에 들어갈 자의 크고 작음, 즉 상급을 결정하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4. 형식과 외식을 초월한 의의 강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절)"고 하였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율법의 의입니다. 그들은 율법 준수에 치중하였으나 사실은 그 율법도 완전히 준수하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함이요,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롬3:20). 신자의 의는 믿음으로 얻습니다(롬3:28). 그들은 믿음으로 율법의 중심 사상을 실현하며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결론
이제 우리들은 문자적인 것에서 내용적으로, 형식적인 것에서 본질적 내지 영적으로, 율법을 이행하여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을 이루어 감으로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율법
마22:34-40
서론
율법이란 하나님의 법도와 규칙으로서, 좁은 의미로는 모세 오경을 말하고 넓은 의미로는 구약 전체를 말합니다. 모세 오경에는 365개조의 금지 사항과 248개 조항의 권장 계율 등 총 613조항이 도덕법(십계명), 의식법, 시민법(재판법)으로 성문화되어 있습니다.
1. 율법을 주신 목적
율법은 죄가 죄된 것을 깨닫게 합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는 죄가 있었지만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최초의 율법을 주신 것은 행위 언약으로, 선악과의 금령을 내려 인간이 고것을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이 언약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창조 때의 본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신 법을 온전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타락 이전에는 그런 능력이 있었지만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율법을 내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신자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여 회개와 신앙의 의무를 가르쳐 거룩함에 이르는 생활을 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제 심판이 두려워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입었으니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법을 자원하여 지키게 된 것입니다.
2. 율법의 근본 정신
율법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중심이며 만인에게 필수적인 것입니다. 율법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되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는 사랑으로라야 참으로 이 계명을 이해하고 준행할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3. 율법의 완성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에게 의해서 완성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행위로 지켜오던 의식법과 그 백성의 질서를 위해서 주신 시민법은 폐하였으나 도덕법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유효합니다 도덕법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것이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롬13:8-10). 그리스도는 율법의 대강령이 도덕률의 신천과 완성의 정신이라고 율법을 완성자로서 천명하셨습니다(마22:37-40).
결론
율법은 완전하게 준행하므로 죄인이 의인이 된 사람은 하나도 얼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죄인에게는 필연적으로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는 율법을 성취하므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하게 하셨고 신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서 믿음으로 구원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랑을 사랑할 뿐입니다.
은 혜
성 경 활 용
1. 하나님의 은혜
(1)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신다.
(시84:11)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2) 지혜를 주신다.
(고전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3) 헛되이 여겨서는 안된다.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4) 겸손한 자들에게 주신다.
(벧전5:5)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2. 성경에 기록된 은혜의 특징
(1) 족한 것이다.
(고후12:9)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하신지라
(2) 크다.
(행4: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 많다.
(고후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4) 풍성하다.
(고후8:7)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5) 각양이다.
(벧전4:10)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6) 충만하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어떻게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1)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
(시84:11)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2) 겸손해야 한다.
(잠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 여호와를 사랑하고 계명 지켜야 한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4) 주를 두려워해야 한다.
(시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그리 큰지요
(5) 정직해야 한다.
(잠14: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6) 기도해야
(욥33: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4. 은혜로 되어진 일
(1) 의롭다 하심을 얻음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2) 죄사함을 받음
(느9:17)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3) 구원받음
(행15: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4) 위로와 소망
(살후2:16)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우리 하나님께서
(5) 영적 선물
(엡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5. 은혜받은 성도의 생활
(1)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함
(시145:7) 저희가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2) 여호와의 은혜를 보답함
(시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3)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함
(롬5:2) 우리가 믿음으로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4) 감사함
(고후4:15)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대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5)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함
(고후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6) 영광을 찬미함
(엡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6. 은혜에 대한 성도의 태도
(1)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된다.
(고후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은혜에서 떨어지면 안 된다.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3)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면 안 된다.
(히10:29)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4)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면 안 된다.
(유1:4)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관련원어풀이
1. @je 헨-
(1) 은혜, 호의, 선의.
(창6:8, 전9:11)
(2) 우아함, 얌전, 고상.
(잠22:11, 전10:12)
(3) 간원, 기도.
(슥12:10)
2. bWf 투-브
(1) 선함, 좋음, 긍휼.
(시25:7, 렘31:14)
(2) 선한 것, 최상의 것.
(창45:23, 사1:29)
(3) 아름다움.
(출33:19, 호10:11)
(4) 부귀, 재산.
(창24:10, 신6:11)
3. lWmG] 께물-
(1) 행동, 일.
(삿9:16, 사3:11)
(2) 이익.
(시103:2)
(3) 보상, 응보.
(사35:4)
4. dseje 헤세드.
(1) 열심, 사랑, 친절, 긍휼, 자비, 박애.
(창21:23, 욥6:14)
(2) 은혜, 호의, 자비.
(시5:8, 36:6)
(3) 시기, 질투, 비난.
(레20:17, 잠14:34)
5. @/xr: 라-트손-
(1) 즐거움, 만족.
(출28:38, 잠14:35)
(2) 기쁨, 즐겁게 하는 것.
(잠11:1, 말2:13)
(3) 의지, 유쾌.
(시4O:9, 103:21)
(4) 호의, 친절.
(시5:13, 잠16:15)
(5) 유익, 은혜.
(신33:23, 시145:16)
6. cavria 카리스
(1) 우아, 매력, 사랑스러움, 친절히 대함.
(눅4:22, 골4:6)
(2) 호의, 애고, 친절, 은혜.
(눅2:52, 행7:10)
(3) 은혜의 선물, 인자.
(고전16:3, 고후8:6)
(4) 신적 은혜의 선물.
(벧전1:10)
(5) 은혜나 봉사에 대한 감사.
(롬6:17, 고후9:15)
7. eujprovsdekto" 유프로스데크토스
(1) 받을 만한, 고맙게 여기는, 기뻐하는.
(롬15:16, 벧전2:5)
(2) 은혜스러운.
(고후6:2)
설교예화자료
은혜를 갚은 개미
목이 몹시 말랐던 개미가 시냇가로 물을 마시러 왔습니다.
정신없이 물을 들이킨 개미는 크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아, 시원하다. "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개미는 발이 미끄러져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앗, 어떻게 해!"
개미는 헤엄을 치려고 버둥거렸지만 몸은 점점 물살에 밀려 아래쪽으로 떠내려갔습니다.
"살려주세요."
개미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며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때 마침 나무 위에서 쉬고 있던 비둘기 한 마리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비둘기는 재빨리 나뭇잎 한 장을 입에 물고 날아가 개미 앞에 띄웠습니다.
"자, 그 나뭇잎 위로 올라오렴."
개미는 비둘기가 띄워준 나뭇잎 위로 올라가 목숨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개미는 너무고마워서,
"비둘기님, 고마웠어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 하고 인사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개미는 우연히 나무위에 앉아 있는 비둘기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사냥꾼을 보게 되었습니다.
'앗, 비둘기님이 위험하다. '
개미는 재빨리 사냥꾼의 발을 물었습니다.
"앗, 따가워."
사냥꾼이 깜짝 놀라 움직이는 통에 비둘기에게 겨냥했던 총알이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비둘기는 멀리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멀리 날아가는 비둘기를 보며 개미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격추되었던 조종사
1943년, 미군 조종사였던 프레드 하겐사이머가 전투 중 뉴기니아 상공에서 추락하였을 때, 그곳의 원주민들은 일본군이 발견하기 전에 프레드를 구출하여 상처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프레드는 은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학교에 재정적인 도움을 주고자, 개인적으로 모금 운동을 벌여 뉴기니아로 송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에 프레드와 그의 아내는 미네소타 세인트 폴에 있는 그들의 집을 떠나 뉴기니아로 향하였습니다. 프레드 부부는 그곳의 학교에서 카카오 경작의 개발을 위해 14개월간 봉사하기로 작정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사자와 생쥐
어느 날 숲속의 왕 사자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새앙쥐가 잠든 사자를 보고 그만 장난을 치고 싶어졌습니다.
새앙쥐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사자의 꼬리를 만졌습니다. 그러나 깊은 잠에 빠진 사자가 꿈쩍도 않자.
"어라! 꿈쩍도 않네. 이번엔 발톱을‥‥‥‥
새앙쥐는 그토록 무서워하던 사자의 발톱을 건드렸습니다.
그래도 사자가 꿈적않고 잠만 자자 새앙쥐는 사자의 몸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사자의 얼굴을 가까이 에서 들여다보던 새앙쥐는 고래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습니다.
"이번에는 사자의 콧수염을 한 번 잡아당겨볼까? "
새앙쥐는 잠시 망설이다 마침내 사자의 콧수염을 잡아당기고 말았습니다.
잠이 깬 사자는 큰소리로 호통을 치며,
"이놈, 조그만 녀석이 겁도 없이 감히 달콤한 잠을 깨우다니, 이 버릇 없는 녀석!" 하며 으르렁거렸습니다.
"사, 사자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아니, 도대체 너같이 조그만 녀석이 무슨 배짱으로 내 콧수염을 건드렸느냐? "
"사자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
사자는 새앙쥐가 은혜를 갚겠다는 말이 가소롭기도 하였지만 문득 귀여운 생각이 들어,
"좋아, 내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다.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한다. " 라고 말하며 새앙쥐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숲속을 어슬렁거리며 걷던 사자는 잘못하여 사람들이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힘이 센 사자라 하더라도 그토록 질기고 튼튼한 밧줄로 얽은 덫을 빠져나올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니고 원통해라. 난 이제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
사자의 큰 울음소리는 온 숲에 퍼져 마침 먼 곳에 있던 새앙쥐까지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새앙쥐는 재빨리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튼튼한 덫에 걸려 죽게 된 사자를 보고 어쩔줄 모르며 당황하던 새앙쥐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얼마 후에 수많은 친구 새앙쥐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얘들아, 이빨로 이 밧줄을 갈아서 사자님을 구하자."
새앙쥐들은 모두 덫에 달려들어 갉아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덫에서 풀려난 사자는,
"고맙다. 새앙쥐야,내가 너의 도움을 받게 될 줄은 몰랐구나." 하며 새앙쥐에게 고마워 했습니다.
은혜갚은 다람쥐
옛날 어느 곳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식도 없이 가난하였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짚신을 만들어 팔고, 할머니는 이웃집 절구품을 팔아서 근근히 끼니를 이었습니다.
어느 날 족제비에게 물려가는 다람쥐를 발견하고 가엾은 다람쥐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람쥐를 친자식처럼 보살폈습니다. 일 년쯤 되었을 때부터 다람쥐는 많은 새끼를 낳기 시작하여 몇 년 안 되어 수백 마리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두 노인은 너무 늙어 기력이 없어지고 눈이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람쥐들을 불러놓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늙은이가 자식이 없어 품팔이를 하는 것은 너희들도 잘 알겠지! 이제 우리는 기력이 없단다. 그러니 너희들이라도 산으로 돌아가 살도록 하여라."
다람쥐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습니다. 두 노인도 어디론지 떠나는 가엾은 다람쥐를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 저녁 때가 되자 사라졌던 다람쥐들이 한두 마리씩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는 곡식들이 물려있었습니다. 그 곡식들은 길에 떨어지거나 흘린 곡식이었습니다. 두 노인은 기쁨과 놀라움에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너희들이 이 늙은이들에게 은혜를 갚는구나." 노인들은 여러 해 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병치 들어 자리에 누었습니다. 그래서 다람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죽거든 뒷동산에 묻어다오."
노인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다람쥐들은 소리내어 울면서 뒷동산에 무덤을 팠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감동하여 노인들을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독수리와 여우
사냥꾼이 독수리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독수리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깃털을 짧게 잘라 닭장에 넣었습니다.
어느 날 사냥꾼의 친구가 놀러 왔다가 닭장속에 갇힌 독수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저 독수리는 왜 닭장 속에 가뒀나?"
"응, 내가 잡은 것인데 도망가지 못하도록 깃털을 잘라 버렸다네."
깃털을 잘린 독수리는 먹이도 입에 대지않고 슬픈 모습으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사냥꾼의 친구는 몹시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여보게, 저 독수리를 나에게 팔지 않겠나?"
"그렇게 하지. 어차피 내겐 별 필요가 없으니까."
이렇게 하여 사냥꾼의 친구는 독수리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잘린 깃털을 뽑아 내고 상처에 약을 발라 정성스럽게 치료해 주었습니다.
얼마가 지나자 독수리의 날개에는 다시 깃털이 나서 독수리는 전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는 하늘 높이 날아가거라."
주인은 독수리를 날려 보내 주었습니다.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른 독수리는 어느 날 숲속에서 산토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독수리는 그 토끼를 자기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숲으로 날려보내 준 사냥꾼의 친구에게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나서며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독수리야. 선물을 보내려거든 처음 너를 잡은 사람한테 보내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두 번째 주인은 마음이 착하니까 선물을 안 보내도 상관없지만 사냥꾼은 너를 보면 아마 다시 잡으려고 할테니까!"
그러나 독수리는 여우의 말을 듣지 않고 두 번째 주인에게 토끼를 선물하였습니다.
아기 사슴과 포도 덩굴
아기 사슴이 사냥꾼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힘을 다해 도망쳤지만 아직 너무 어린 아기사슴은 더 이상 사냥꾼을 피할 힘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혼자 멀리 가지 말라는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사슴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마침 그곳에 무성하게 우거진 포도 덩굴이 있었습니다. 제법 가지도 넓고 잎이 무성하게많이 달려 있었으므로 그 속에 숨으면 사냥꾼의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사슴이 그 포도 덩굴에 몸을 숨기자 잠시 후 사냥꾼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습니다.
사냥꾼이 지나가자 숨어 있던 사슴은 크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휴우, 살았다. "
사슴은 이제 안심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포도 덩굴이 참 무성하구나!"
사슴은 썩 웃더니 자기를 숨겨 주었던 포도덩굴의 잎사귀를 마구 따먹기 시작했습니다.
포도나무 잎사귀들은 아파서 괴로워했지만 사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잎사귀들을 배불리 따먹었습니다.
그때 방금 전에 지나갔던 사냥꾼이 되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참 이상하군. 분명히 이쪽으로 갔는데‥‥‥‥
주위를 살피던 사냥꾼은 바람도 불지 않는데 포도덩굴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각사각'하고 잎사귀 먹는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옳지, 그 사슴이 저기에 숨어 있구나."
사냥꾼을 살그머니 다가와 사슴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때서야 사슴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생명의 은인을 외면해서 하나님이 나를 벌주시는구나!"
어록·시·묘사
무력으로 얻은 재산은 지속되지 않지만, 은혜에 대한 감사는 영원하다.
(O.C. 루프스/알렉산데르 마그누스에의 송시)
남에게 은혜를 베풀 때에는 처음에 가볍게 하라! 만약 처음에 무겁고 나중에 가볍게 한
다면 그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푸대접한다는 원망을 듣기가 쉽다.
(채근담)
은혜는 정의의 지주다.
(러시아 속담)
은혜는 선인에게 빌려 준 것이고 악인에게는 베풀어 준 것이다.
(베르베르)
아아 나의 아들이여, 그대 만약 부모의 은혜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대의 친우가 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의 은혜를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는, 친절을 베풀어도 무의함을 알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인간이란 위험을 끼칠 것으로 믿고 있던 사람에게서 은혜를 받으면 보통 때의 갑절의 은혜를 느낀다.
(N. 마키아벨리/ 군주론)
우리는 남들의 은혜로 동류(同類) 이상이 되지만 몰락하면 동류 이하가 된다.
(J. 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입은 은혜는 비록 같을지라도 갚지 않고, 원망은 얕을지라도 이를 갚으려 한다. 남의 나쁜 평판을 들으면 비록 명백하지 않아도 믿으려 들고, 좋은 평판은 사실이 뚜렷한데도 믿으려 하지 않고 또한 의심하나니, 이는 각박하고 경박함이 가장 심함이라, 마땅히 간절히 경계할 일이다.
(채근담)
고양이 덕(德)과 며느리 덕은 알지 못한다. <*비록 현저한 공은 없어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자연히 그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한국 속담)
내가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면 나는 그들보다도 분에 넘칠 만큼 더 큰 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마치 남들이 갖지 않은 면허장과 보증서를 신의 손으로부터 받아 각별한 지도와 보호를 받고라도 있는 듯하다. 나는 자만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아첨이 있을 수 있다면 신들이 나에게 아첨을 한다. 나는 적적 하다든가 또는 하다 못해 고독감에 억압받는다든가 하는 일이 없었다
(H. D. 소로/ 월든)
은혜를 감사로써 받는 사람은, 그 빛의 처음 일회분을 갚는 셈이다.
(세네카/ 은혜론)
은혜는 말을 하면 매력이 사라진다.
(P. 코르네유/ 데오도르)
대부분의 은혜는 피기 시작할 때만 향기를 내는 꽃과 닮았다.
(A.G.C. 메레/ 잠언과 격언)
인간의 성정은 소극적인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른다.
(G.B. 쇼/ 90년도의 나의 극장)
자기가 은혜를 베푼 사람을 만나면, 곧 그일을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을 만나서는 그것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 일일까?
(J.W. 괴테)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기란 독사에 물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W. 셰익스피어)
은혜를 베풀거든 그 보답을 구하지 말고, 남에게 주었거든 뒤에 뉘우치지 말라.
(명심보감)
머리털을 베어 신발을 한다. <*무슨 짓을 해서든지 잊지 않고 보답하겠다는 뜻으로 하는 말>
(한국 속담)
빚진 돈은 죽은 뒤에 후손에게 갚을 길도 있지만 명예를 존중하는 사람은 은인의 생전에 은혜를 갚지 못하면 상심하는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은혜를 베푸는 자는 그것을 감추라. 은혜를 받는 자는 그것을 남이 알게 하라.
(L.A. 세네카/ 은혜에 대하여)
거지 베 두루마기 해 입힌 셈만 친다. <* 보답이나 사례를 기대하지 않고 은혜를 베푼다는 뜻>
(한국 속담)
굴 껍질 한 조각만 먹어도 동정호(洞庭湖)를 잊지 않는다. <*은혜를 잊지 않음>
(한국 속담)
은혜를 받는 것은 자유를 파는 것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은혜 갚음은 출세의 상(相), 은혜 모름은 구걸의 상.
(일본 속담)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베푼 자는 반드시 신으로부터 그 보답을 받는다.
(영국 속담)
그 음식을 먹은 자는 그 그릇을 깨지 않고 그 나무 그늘에 있는 자는 그 가지를 분지르지않는다. < *은혜는 원수로 갚지 않는다>
(한 영)
당신은 그 은혜의 풍토도/ 원천도 높은 발 콩도 그리고/ 최초의 아침에 비추는 최초의 태양도 이미 모르고 계십니다.
(P. 발레리/ 이브)
창창한 우주, 허막(虛漠)의 바다에/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실상으로 깨닫습니다.
(구상/ 말씀의 실상)
주여, 이런 시간 속에서도/ 당신은 함께 계시고/ 그 자애로우심과 미소 지으심으로/우리를 충만케 해 주시는/ 그/ 은총을 깨닫게하여 주십시오.
(박목월/ 평온한 날의 기도)
그가 채우신 모든 잔이 넘쳐흐르며/ 그의 거대한 강들이 모두 광대해지듯이/ 우리가 은혜의 주를 믿을 때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넘쳐 흐릅니다.
(마가레트 E. 바버/ 내 잔이 넘치나이다)
길가에 쓰러질 듯 서 있는/ 주막집을 찾아가 물었었네./ 주인은 한 마디 말도 없이/그러나은혜의 산과 희망의 계곡 길을 가리켜 주었네.
(W.B. 매카페티/ 다시 시작하는 땅)
오오,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어언 백여 성상에/ 오늘이 있기까지 베푸신 님의 은혜/ 온 누리에 충만하여라.
(김성영/ 이 아침에 거듭나게 하소서)
주님,/ 세상에는 작고 작은 목숨에 이르기까지/모두 당신의 손길이 닿고/아아,은혜가 넘치는 소리 소리들./7월의 하늘을 향해/모든 소리들이 하나로 모이 게 하소서./ 하늘에 계신 우리의 주님.
(김용해/ 7월의 기도)
죄는 나를 주에게서 멀어지게 하였으나 사랑은 나를 그에게/ 붙들어 맨다네./ 사탄은 나를 단단히 결박하나 은혜는 나의 죄사슬을 깨뜨렸다네,
(존 R. 라이스/ 기쁨의 종을 울리자)
제비야! 어서 날아오르렴/ 님의 저 아름다운 빛살을 타고/ 이 은혜의 아침을 날아오르렴‥‥/ 부디 이 무딘 나의 영혼도/ 너의 나래에 실려 님께 날아갈 수 있도록.
(김성영/ 제비로 오신 당신)
이제 나는 죄를 용서받케 하시는 은혜를 증거한다네./ 이제 나는 영생을 주신 그리스도를 신뢰한다네.
(존 R. 라이스/ 와서 마셔라)
오 주님 당신의 사랑 속에/ 우리 지금 외치노니/ 당신을 섬김에 고통은 즐거움이요,/당신의 은총 속에 패배는 승리가 됩니다.
(콘래드/ 구원의 노래)
더러는/우리 일생이/ 눈물나는 은혜의 어둔 밤.// 서둘러/ 잠시 햇빛 아래/ 기인 밤을 채비하는.
(박영남/ 은혜의 긴 밤)
한 소념(素念)/ 밀 ·썰물로 풀어/ 은혜바다 노젓는가.
(박상륜/ 다시 영일만에서)
내게 시간이 있으니/ 주님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벗으로 하여금/ 당신의 감미로운 은혜를 깨닫고/ 한없이 감사하도록 도우려네.
(미리암 브라운/ 지금의 시간)
그러나 이제 나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니/ 아침처럼 새로운 새 생명을 주시네./ 주님의 즐거움이 나의 것임을 알았고/ 그의 은총이 내 찬란한 산성인 줄 알았노라.
(마일드레드 A. 제퍼리/ 지혜)
제비가 떠난 후,/ 오랫동안 울고 있던 나는/비로소 그녀가 남긴 똥을 발견했습니다. / 그것은 내 씻지 않은 머리 위에/ 다소곳한 은혜로 앉아 있었습니다. / 그렇잖아도 머리를 씻을 양이었으므로/ 제비 똥 덕분에 뜨겁게/ 세상 때 먼지 묻은 머리를 씻어 냈습니다.
(김성영/ 제비 떠난 후)
그의 신실하심은 한결 같으사,/ 한 걸음 한걸음 인도하시며/ 매일 새로운 날을 주신다. /새롭게 다가오는 시험을 위해 새로운 은총을./‥‥오! 하나님의 은총 속에 날마다/ 새롭게 시작되는 아침이 있다.
(애니 J.플린트/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아침)
처음으로/ 나에게/ 너를 주시던 날// 그날 하루의/ 은혜를/ 나무로/ 심어 숲을 이루었니라/ 물로 키워 샘을 이루었니라// 처음으로/나에게/ 너를 그리움이 게 하신/ 그 뜻을 소중히/ 모든 걸 소중히/외롬마저 두 손으로 받았니라// 가는 날 오는 날에/ 눈길 비추는/달과 달무리처럼 있는 이여// 마지막으로/나에게/너를 남겨 주실 어느 훗날/숨 거두는 자리// 감사함으로/ 두 영혼을 건지면/ 다시 은혜이리.
(김남조/ 은혜)
이토록 사랑하시는 주를 찬양하고/ 그 수많은 계획에 감사를 드린다/수고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시니/ 주를 사랑하는 우리에게 우연히 생기는 것은 없도다.
(에스더 필드/ 우연히 생기는 것은 없다)
맑은 기드론 시 냇물 위로/ 은혜로운 올리버 나무 그늘지고/ 늘어진 올리버 잎새들은/ 태양의 강렬한 빛을 쫓아 버린다.
(존 B. 더글러스/ 겟세마네)
우리가 정한 장소에/ 한 마음으로 만나/ 우리 주의 약속인/ 은혜의 성령을 기다리나이다.
(J. 몽고메리/ 성령이여 오소서)
오오 빛나는 태양은 나려쪼이며/ 새 무리들도 즐거운 노래, 노래 불러라/ 오오 은혜여,살아 있는 몸에는 넘치는 은혜여
(김소월/ 밭고랑 위에서)
주님 말씀 들을 때 이기심과 수치심에서 벗어나고/ 내 마음 모든 것은 덮어지고 구원되었습니다/ 진리의 뜨거운 열정으로 구원의 은혜에 포로되고/ 비길 데 없는 사랑 속에 살겠습니다/ 내가 자유를 찾았음을 압니다.
(베이르드/ 주여! 이것을 주소서)
망각에 못 박으면/ 먼 세월 요요한 별밭에/ 다시 피어 오르리니/모성은 고독한 은총의/그등(燈)입니다.
(김남조/ 모상)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금빛 아름다움.//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꽃 위에 넘친다.
(괴테/ 5월의 노래 · 1)
이른 아침 숲 우거진/ 뒷동산 올라가다가/바위에 앉는다//약수보다 시원한 아침 공기/공짜로 마시는 그 은혜여-
(최일환/ 아침 산길)
당신 곁에서/즈믄 날의 세월을 지켜온 내력/ 그 한결같은 은총
(홍문표/ 당신 곁에서)
하 그리 고운 언어들/ 많이도 잊었지만/ 은총의 빛 얻어/슬프지 않은// 가을날/ 희게 손을 씻고 뛰어가는/ 당신의 언덕길
(이해인/ 가을 산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 살아갈 날/ 넘치는 은혜의 바다.
(이해인/ 자을 나무)
예수를 보고 싶다/ 드높은 위엄과 자애로운 은혜가 어려있는/아름다움 속에 빛나는/그 엄숙하신 모습 안에서 빛을 우러르고 싶다.
(서코우/ 예수를 보고 싶다)
아아 예수님 의 고마운 눈물을/ 잔에다 받고 손수건에 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피로 얼룩진 자신의 얼굴 모습을/저 베로니카에게 남기기를 희망하신 것처럼-/ 베로니카는 주님 의 깊은 은혜를 받은 여 인이었다. / 그러나 또한 어느 거지라도 주의 은혜를 받았으리니
(휼스호프/ 예수님은 우셨다)
주여, 당신 앞에서 한때를 보낼 때, 크나 큰 변화가 내게 생기나이다!/ 나의 가슴에서 묵직한 괴로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마른 내 마음이 당신의 은혜의 비로 촉촉히 젖게 되나이다!
(트렌치/ 기도하라 끊임없이 기도하라)
그가 단번에 고치시 거나/ 우리의 고통을 멈추게 하는/ 치료의 능력이 부족한 것 아니라네/ 우리에게 평화의 복된 은해/ 부어 주시기 전에/ 우리가 그 뜻을 알기까지/ 살피고 기다리신다네.
(그레이스 N. 크로웬/ 신뢰하라)
새롭게 새롭게 채워주소서/ 이 비길 데 없이 정결하고도/ 눈부신 은총의 햇살
(안혜초/ 늘 이렇게 신록의 아침이게 하소서)
구김살을 펴줄 날을 멀리 내다보는 이 눈은/ 로뎀나무 그늘에서 죽기를 갈구하고 다시 일 어선/ 주님의 무한한 은총의 휴식을 봅니다.
(고진숙/ 엘리야여 엘리야여)
꽃은/ 깊은 밤 홀로/ 깨어나 별을 본다/ 잎은 두 손같이 펴/ 은혜의 빛을 받는다.
(이탄/ 꽃은, 깊은 밤 홀로)
보소서, 들떠 있는 나그네와 같은 나의 발이 여기 있나이다/ 은혜의 외침 소리를 듣고 달려가야 할 발
(베를렌/ 예지)
하늘의 뭇별들이 눈을 뜨고/땅의 생명들이 영광을 얻어/ 저 바다 넘어 그곳/ 땅의 끝까지 구원의 은혜내리다.
(황금찬/ 거룩한 밤)
주여/메마른 내 영혼도/깊숙히 적시소서/ 은혜의 단비 내려/ 흥건히 적셔 주소서.
(홍안의/ 은혜의 단비)
내 영혼의 그릇은 바뀌며/ 가득 담기는 은혜로 차고 넘쳤다.
(인태성/ 잊히지 않는 일들)
붓 한 자루/ 나와 일생을 같이 하랸다// 무거운 은혜/ 인생에게 받은 갖가지 은혜/ 언젠가 같으리/무엇해서 감으리? 망연해도
(이광수/ 붓 한 자루)
이 붕괴와 회진의 마을을/내 오늘 초연히 지나가노니// 하늘이 은혜하여 와전(瓦全)을 이룬 자는/오직 낡은 장독이 있을 뿐
(조지훈/ 도이원에서)
주님/ 세상에는 작고 작은 목숨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신의 손길이 탈고/ 아아, 은혜가 넘치는 소리 소리들.
(김용해/ 7월의 기도)
이리하여, 누군가 나를 위하여/ 한밤중 눈물적시며 기도하고 있음은/정령 한량없는 크신 은혜임을‥‥‥
(박화목/ 누군가의 기도)
마음을 잘 쓸어 놓고 기다리오리니/ 해가 저무는 들녘을 바라보며/ 은혜로워 하리니/흰눈을 밟고 가옵는 소리같이/ 맑은 날 투명하게 꺾이는 물빛같이/ 당신의 이름으로 넘쳐나게 하옵소서.
(한분순/ 기원)
하나님. 강산이 떠나갈 듯 울려퍼진/ 그날의 찬송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뚝섬 나무들도 팔벌려 기도드리고/풍성한 은혜 흘러내리듯 강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이 아침.
(양명문/ 뚝섬 독백)
앉았다가 일어서는/ 그 자리, 자리마다/밀려 오는 종소리 풍요로운 은혜로/ 가득히 채워진다.
(이기반/ 초록빛 꿈으로)
한 여름 불볕 쏟아내던/ 창천(蒼天) 높은 곳에서/ 강물의 격한 흐름으로/ 풀꽃 적시는 달의 눈물로/ 나리는 은혜의 로고스여.
(엄창섭/ 기도 · 24)
주 달린 십자가/ 철철 쏟아 주신 은혜의 꽃비
(엄창섭/ 기도 · 28)
하지만/ 때때로 엄습하는 막막함/ 당신이 영 안 보이는 허전함은/ 또 무엇입니까/ 아직도 못다한 은혜의 시련입니까/ 아직도 남은 내 교만의 뿌리입니까/ 혼돈의 안개입니까
(임성숙/ 고통 속에서라도)
처절히 죽어 주신 이여/ 예수 그리스도// 무슨 까닭인가 왜 그럴 수 있을까/ 엄청난 희생의 낭비만 같애/ 그래서 쉽게 믿어지지 않네/ 참 알 수 없는 자비이네, 은혜이네/그처럼 우리를 사랑하신 하늘에서 오신 이여/예수 그리스도
(임성숙/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지금이 어딘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축복/ 정말 불공평하지 않은 은총에/ 우리는 누구나 그의 제자가 된다.
(서정윤/ 나의 어둠의 시-4 · 자랑스런 신)
조그만 자선은/ 젊은이리 손으로 뿌려지고/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 준다/ 머나먼 이교도의 나라에서
(카니/ 작은 것)
조국의 은혜로운 의술인 모국어의 멜로디가 없다면/ 우리의 상처입은 머리는 영원히 치료되지 않는다.
(사마 알카셈/ 모국)
그러나 오늘밤/ 바람불고 추운 이 밤에/그대 떠난 이 자리에/ 허물처럼 벗어 놓고간 통치마 바라보며/ 은혜의 물 마시고 있다/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동및/ 그믐밤 노래)
친척, 친구, 맏형/ 이것들이 그의 영원한 이름이로다/ 누가 당신처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베다니의 은혜로우신 구주시여.
(에드워드 데니/ 예수께서 우시다)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인하여 감사하라.
(훌트만/ 감사하라)
주여, 내가 기쁨에 찬 나라에 이를 때까지/ 내 마음속에 품은 영혼을/ 기도로 당신께 붓는 것처럼/ 그토록 사랑할 은혜가 없나이다.
(샬로테 엘리오트/ 기도의 시간)
나는 속죄할 수 없으니 행위로도 아니라네./ 범죄하여 돌과 같이 된 심령을 위하여/ 오직 그만이 홀로, 그의 은혜로써/ 나는 구속의 인침을 받았다네.
(데일 하클리프/ 나의 증거)
하늘의 은총으로 나를 인내하게 하시고/ 당신의 염려 속에 지켜 주시옵소서./ 언제나 당신의 곁에서/ 하늘의 길을 갈 수 있게 도우소서.
(존 폴/ 새로운 날의 지도자)
주님이 주신 달과 태양/ 그 은혜의 빛에 감사드립니다. / 주님 이 보내는 사랑과 진리의 빛/ 가장 성스럽고 거룩한 것입니다.
(알버트 머레이/ 감사)
그가 오시나니/ 상한 심령을 싸매시고/ 피투성이 영혼을 치료하시려 오시는도다. / 그의 은혜의 보배들로/ 겸손하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려 오시는도다.
(필립 도드리지/ 평강의 왕)
주여!/ 오히려 저 눈부신 생명의 푸르름/ 이따금씩 삶의 즐거움을 더해 주는/ 은혜의 소낙비와 소슬바람/ 오곡백과가 부지런히 열매로 익어 가는/ 이 뜨거운 생명의 계절은/한 옥티브 소리 높여 찬미합니다.
(김성영/ 여름의 노래)
무덥던 여름날의 비도 그치고/ 하늘은 더없이 높푸르며/ 소슬바람 불어와 가슴에 안기는/ 오 주여,/ 진실로 은혜 넘치는 가을입니다.
(김성영/ 가을의 노래)
주여, 참으로 겨울은 은혜의 계절입니다/ 생활은 춥고 적막하여도/ 나의 영혼은 이 계절에 더욱 안온합니다/ 주께서 나 위해 이맘때 오셨기 때문입니다.
(김성령/ 겨울의 노래)
설 교 노 트
은혜받는 비결
왕하5:1-14
서론
이 시간에는 열왕기하 5장에 나타난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은혜받은 사실에 대하여 상고하면서 "은혜받는 비결"을 찾아 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나아만이 어떻게 은혜를 받았습니까?
1.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땅에서 데려온 계집 아이가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 들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고 말한 복음을 나아만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혜받은 첫째 비결은 복음을 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복음(Gospel)"이란 복된 소식이요, 기쁜 소식이란 뜻인데 병든 나아만에게 치료할 수 있다는 소식처럼 기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2. 은혜를 받으려면 은혜를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5절에 "나아만이 곧 떠날쌔"라고 하였습니다. 갈망하여 행동화하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들었으면 나아만처럼 곧 떠나 은혜를 갈망해야 하겠습니다.
나아만은 기쁜 소식을 듣고 나더니, 아람 나라에서 이스라엘 나라 사마리아까지 먼 거리였지마는 그는 은혜를 받고 문제 해결을 받기 위하여 허락을 받아 친서를 가지고 수레를 타고 올 뿐 아니라 성경을 보면,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길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은혜를 받는 것을 뒤로 미루지 말고 곧 떠나야만 합니다.
3. 은혜를 받으려면 절대 겸손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란 말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대로"란 말이 있습니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란 말은 곧 나아만의 겸손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자기의 모든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1) 그래서 그는 요단 강에 들어가기 위해서 그 호화롭게 단장하고 온 높은 병거에서 내려왔고,
(2) 또 그 찬란한 훈장과 계급장이 붙은 군복을 벗어 버리고 요단 강물에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군대장관이 그 찬란한 계급장이 붙은 군복을 벗어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자기의 희생과 겸손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4. 은혜를 받으려면 은혜받을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24절을 보면 나아만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라고 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만 아니라 일곱 번을 잠겼던 것은 은혜를 받을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칠 줄 믿고 문제 해결될 것을 믿고서 하는 행위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이번에 은혜받을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약의 사복음서를 볼 때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사와 이적이 있는데 그 많은 기사와 이적이 있는 배후에는 반드시 인간편에서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은 믿는 자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고 창조적인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믿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의 인류는 모두가 겉으로 보기는 존귀하고 행복한 것 같으나 영혼은 죄로 인하여 문둥이와 같이 모두 더러워지고 곪아터져서 번민하고 고통하고 있습니다. 이 영혼의 문둥병을 치료하는 길은 다만 요단 강물 같은 하나님의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몸이 썩어 들어가고, 냄새가 나고, 절망적이고, 고독한 운명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린 아이의 살같이 새사람 되어지는 구원의 복음, 중생의 복음을 전하므로 말미암아 내가 살고, 그 지역이 복음화되고, 이 민족이 사는 역사가 이 시간에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총
요2:1-11
서론
예수님은 성역 초기에 제자들과 같이 갈릴리 가나안에 있는 혼인집에 찾아가서 포도주를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깜짝 놀랄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처음 행하신 이적으로써 그 이적을 통해서 보여주신 은총은 무엇입니까?
1. 인생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가장 기쁘고 즐거운 잔치에서 해결할 수 없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 잔칫집에만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인생 누구에게나 있는 문제입니다. 인생은 문제 속에 출생하여 그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다가 결국 문제 속에서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여기 혼인집의 문제는 포도주가 모자랐다는 것인데 그 의미는 인생의 가난과 곤고한 문제입니다. 인생의 연약과 불가능의 문제입니다. 인생의 낙심과 실망이라는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와 같이 문제에 부딪쳐서 기쁨도, 의욕도, 소망도, 상실하고 근심에 싸여 당황해 하는 인생들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1) 가난과 곤고를 해결하고 여유와 부요함을 주셨습니다.
(2) 무력과 불가능을 해결하고 가능에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3) 근심과 실망을 제거하고 소망과 환희를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2. 인생의 가치를 회복하여 주신 은총입니다.
무가치한 맹물을 가치있는 포도주가 되게 하셨다는 그 의미는
(1) 예수님은 쓸모없는 물체를 쓸모있게
(2) 좋지 않는 것을 좋은 것으로 만드시는 창조적 사역입니다.
(3)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근본 목적을 과시하신 의미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① 본질적인 변화에서 가치가 회복되었습니다.
② 색소와 형태의 변화에서 가치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③ 용도의 변화에서 가치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인간들의 본질과 형태와 용도의 변화를 일으켜 무가치한 인생들을 가치있게 회복하여 주신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3. 인생들에게 신앙의 은총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은 인생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시고 무가치에서 가치 회복의 은총을 베풀어주신 의미도 있거니와 근본 목적은 신앙을 소유케 하는 데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은 아무나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1)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엡2:8).
(2)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히11:6).
(3) 신앙은 훗날 구원받아 의의 면류관을 취하는 방편이라고 하였습니다(딤후4:8).
결론
우리 기독교는 문제 해결의 종교요, 가치 회복의 종교요, 신앙으로 구원받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가나안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초자연적인 은총은 우리 기독교의 위대성을 선포함과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과 성격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은총은 인생들의 난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무가치한 인생을 가치있는 인생으로 변화를 시킵니다. 이 놀라운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
왕하4:1--7
서론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서 그 딱한 사정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많은 부채가 있는데, 채주가 빚을 갚지않으면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종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정을 들은 엘리사는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은혜받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1. 빈 그릇을 총동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선지자의 아내가 빈 그릇을 총동원했다는 것은 몇 가지 깊은 의미와 교훈이 있습니다.
(1) 빈 그릇을 동원하라는 의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기 엘리사가 선지자의 아내에게 현금을 마련해 주지 아니하고 빈 그릇을 총동원하라고 하신 의도가 무엇입니까? 순종의 여부를 알아보고, 기름을 채워주기 위해서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여주기 위해서입니다.
(2) 선지자의 아내가 엘리사의 분부대로 빈 그릇을 동원한 사실은 믿음으로 순종한 행위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갈망한 행위이고, 주어진 은사를 그대로 활용한 슬기로운 행동이라고 합니다.
(3) 여기의 빈 그릇과 기름은 주경학적인 측면에서 빈 그릇은 가난한 심령들을 가리키고, 기름은 성령의 은혜를 가리키고, 기름을 빈 그릇에 채운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은혜의 충만함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도 믿음으로 순종하여 겸허한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2. 골방에 들어가 빈 그릇에 기름을 부었다고 하였습니다.
(1) 빈방 준비가 중요합니다.
여기 빈방이나 빈 그릇은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에 오염된우리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고 우리 마음을 비워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2)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은 이 복잡하고 세속적인 환경에서 구별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인간의 세속적인 것이 결코 혼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3) 빈 그릇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이미 주신 은사의 활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딤후1:6에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빈 마음을 준비하고, 세속적인 것에서 구별되어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3. 기름을 팔아 빚을 갚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선지자의 아내가 빈 그릇에 가득히 채운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생활을 했다는 것은 너무나 흐뭇한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1) 자아의 부족한 것을 보충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람은 너와 나를 물론하고 모두 부족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우리의 부족한 것이 완전해진다고 하였습니다.
(2) 가난에서 해방되어 부요해진 사건이라고 합니다.
가난으로 인해서 빛을 지고 근심하여 고통하던 삶의 환경이 변하여 안식과 환희를 회복한 흐뭇한 사건이 라는 말입니다.
(3) 아주 딱한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우리의 당면한 중대한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결론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은 비결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빈 그릇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1) 영육간에 부요해지고
(2) 문제를 해결하고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
눅12:13-21
서론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 하나를 예수님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연 은총을 많이 받아 밭의 소출이 풍성하였으나 신령한 은총을 받지 못하여 영적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인생으로 낙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 그는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요, 주인이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연장도 시키고 즐겁게도 하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며 생사 화복의 섭리주이심을 몰랐습니다. 그의 소출이 풍성해짐이 자기가 잘해서인 줄 알고 스스로의 행복을 누려 보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은 경고하시기를 20절에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뒤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바로 모르고 사는 인생은 교만해지고, 감사할 줄 모르고, 개인주의가 되어집니다. 이러한 인생이 은혜를 받아야 할 인생입니다.
2. 마땅히 해야 될 일을 모르는 인생입니다.
인생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는 인생의 할 일이 많이 있다고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두 가지 일이 있을 뿐입니다. 그 하나는 하나님의 일과 천국 사업이요, 다음은 인간의 일과 이 세상의 일입니다. 이 어리석은 인생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소출이 풍성해 짐을 인하여
(1) 하나님의 일은 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해서 일을 했고
(2) 천국 사업은 하지 아니하고 땅에다가 창고 증축을 했습니다.
오늘도 인생들이 살림이 불어가면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자기 안일을위해서 또는 천국 사업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가옥과 창고만 증축하는 자는 어리석은 인생이요, 은혜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3. 마땅히 귀중히 여길 것을 귀한 줄 모르는 인생입니다.
무엇이 귀합니까? 인생에게 귀중한 것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자기 몸도 귀하고 자녀도 귀하고 돈도 귀합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고 하면 무엇입니까? 여기 어리석은 인생은
(1) 돈과 물질보다 인간의 생명이 더 귀한 줄을 몰랐고
(2) 인간의 육신보다 영혼이 더 귀중한 것을 몰랐고
(3) 나 자신을 위함보다 하나님을 더 귀중히 여길 줄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이 어리석은 인생은
① 가치있는 것을 포기하고 무가치한 것을 채택하였고
②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유한한 생명을 채택하였고
③ 세상의 것을 귀중히 여기면서 천국의 귀중한 것을 포기한 인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내 영혼을 잃어버리고 아무리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해도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인생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1) 인생관이 변하여 새로워집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하나님을 바로 아는 신앙의 이름이 됩니다.
(2) 사명관이 변하여 새로워집니다. 인생의 본분과 의무를 바로 알고 하나님과 천국 사업에 힘쓰게 됩니다.
(3) 가치관이 변하여 새로워집니다. 하나님과 천국과 내 영혼이 귀중함을 알아야 하나님과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삶
시l16:1-19
서론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두 가지 삶의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기독 신자의 삶이고, 다음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는 불신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어떤 삶입니까?
1.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사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자녀는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하는 자녀이고, 스승에게 감사할 줄 아는 학생은 스승의 은혜를 기억하는 학생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시116:8에 세 가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였습니다.
(1)자기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2) 자기를 이 세상 슬픈 눈물에서 건져주심을 감사하였습니다.
(3) 자기를 이 세상의 험악한 행로에서 넘어짐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이 감사는 다윗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받은 은혜로써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자족할 줄 아는 삶입니다.
다윗은 시116:13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나 크고 만족하여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면서
(1)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면서
(2)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자기의 서원한 것을 하나님께 갚고
(3)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귀중하게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는삶입니다.
사람이란 간사하고 욕심이 많아서 은혜를 적게 받으면 불만해 하고 많이 받으면 오히려 교만해지고 배신자가 되기 쉽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다윗은 시116:16-17에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를 어찌하든지 보답해보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1) 감사의 찬송을 부르면서
(2)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3) 서원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갚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다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을 바칩니다"라고 찬송을 부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결론
감사하는 삶의 양상과 결과에 대하여 정리하려고 합니다. 여기 감사하는 삶의 양상은 먼저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몸으로 헌신하게 되고, 물질로 봉사하게 됩니다. 이 세 가지가 수반되지 아니하면 이는 입으로만 감사하는 형식적이고 외식하는 감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감사를 드릴 때 더 큰 은혜를 체험합니다.
바른 은혜 생활
고후6:1-10
서론
일반 학자들이 우리 기독교의 특성에 관하여 계시의 종교라고도 하고, 혹은 사랑의 종교,혹은 십자가의 종교라고 하지마는 일면 은혜의 종교라고 강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계시나 사랑이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의 방편들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생존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함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여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을 찾아 나갑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 1절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는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신 것을 보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는 받으나 이 은혜를 남용하여 은혜롭지 못한 생활을 할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은혜를 받았으면 바른 은혜 생활을 하라"고 권면하셨습니다.
1. 바른 은혜 생활의 성격
(1) 전도자들이 전파하는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은혜 생활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답게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2) 전도자들이 전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는데, 하나는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전적으로 거부하고 자율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3) 전도자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신앙의 열매를 맺는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의 열매란 먼저 회개요, 성화요 헌신과 봉사라고 합니다.
2. 바른 은혜 생활의 내용
바른 은혜 생활은, 때를 따라 사해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은혜는 언제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기회를 포착하여 은혜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생활의 내용은 어떠하다고 하였습니까?
(1)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사람에게 덕을 세운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은혜 생활을 고백함에 있어서 자기가 받은 바 직책 즉,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훼방을 받지 아니하도록 했고 사람에게 거리끼는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인내하였다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롬6:13에 "너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으니, 은혜를 받으면 우리 몸의 지체는 이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등용이 되어집니다.
(3) 하나님의 은혜로 여유 만만해진다고 하였습니다.
8절 이하에 바울은 고백하기를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비결은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와 같이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말씀대로 살면서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이 은혜 생활의 내용이라면,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의의 병기가 되고, 하나님 안에서 여유 만만하게 살아갑니다.
신비로운 은총
막9:1-8
서론
예수님의 사랑하는 세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을 따라 높은 산상으로 올라가서 변화된 예수님의 영화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모세와 엘리야와 주님이 대화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향상되어 높은 차원에 이르게 되면 신비로운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본문 2절에 "엿새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을라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비로운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첫 단계라고 합니다.
세 제자만 데리고 올라가신 의도는 특별히 사랑하는 제자이기 때문이고, 특별한 사명이 있는 제자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신비로운 은총을 체험시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특별한 신앙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너무 황홀한 나머지 착각하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에다가 장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을,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계시하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착각인 이유는 박윤선 박사의 주석에 밝히는 대로, 첫째는 천국 영광을 혼자만 독차지하려고 하는 착각이고, 둘째는 천국의 영광을 이 땅에다가 정착시키려는 착각이고, 셋째는 천국의 영광을 육신의 안일을 위해서 누리려고 한 것이 착각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이 산상을 찾아 올라가 기도하면서 신비로운 은총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성경의 배경을 통해서 건전하고도 바른 생활임을 입증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산상으로 기도하려고 올라가는 것은 현실도피나 염세사상에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아 변하여 새로워지기 위해서이고, 실력 있는 신자가 되기 위해서이고, 기독신자의 사명을 바로 감당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2. 세 제자들이 받은 은총의 내용
(1) 신비로운 변화의 은총을 체험하였습니다.
본문에 밝힌 대로 예수님의 용모도 변화되었고, 동산의 환경도 변화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합니다.
(2) 하늘 영광의 은총을 체험하였습니다.
동산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모세와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와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사건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다는 증거요, 천국은 분명히 있다는 증거이고, 참신앙의 사람은 죽지 아니하고 영생할 수 있다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기독 신자들로 하여금 현실적인 육신의 영화보다는 영계의 영화가 더 귀중하고 이 세상 영화보다는 하늘의 영화가 더 귀중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힘차게 추구해 나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받은 세 번째 은총입니다. 본문 7절에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각성하게 하고,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각성하게 하고,
③ 현재와 미래에 있어서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할 바를 올바르게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결론
우리들도 이 신비로운 특별한 은총을 받기 위해서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1)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2) 희미하던 우리의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3) 이 시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성스러운 사명을 잘 감당하여 유산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음 행
성 경 활 용
1. 일반적 음행의 모습
(1) 땅을 더럽게 한다.
(렘3:2)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2) 비루하고 가증하다.
(렘13: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투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3) 마음을 빼앗는다.
(호4: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4) 마음에서 나온다.
(마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5) 자기 몸에서 죄를 범한다.
(고전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피하는 죄마다 몸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서 죄를 범하느니라
(6) 육체의 일이다.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7) 더러운 것이다.
(계17: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8) 진노의 포도주이다.
(계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2. 음행의 결과는 무엇인가?
(1) 화를 당하게 된다.
(렘13:27)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중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2)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
(엡5:5)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3)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한다.
(계21:8) 행 음자들과 술객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관련원어풀이
1. hM;zI 짐마-
(1) 묵상, 계획.
(시l7:3)
(2) 음행.
(삿20:6, 겔22:11)
2. hn:z: 자-나-
(1) 간음하다.
(창38:24, 호4:12)
(2) 이상한 신과 간음하다.
(신31:16, 레17:7)
(3) 간음을 행하다.
(겔16:34)
(4) 유혹하다, 간음을 행케하다.
(출34:16, 레19:29)
(5) 간음을 범하다.
(호4:10, 5:3)
3. @Wnz] 제눈-
(1) 간음, 매춘, 음란.
(창28:24, 호1:2)
(2) 우상에 대해.
(왕상9:22)
(3) 이방국가의 교제에 대해.
(나3:4)
4. porneuvw 포르네우-
매춘부와 관계하다, 간음을 범하다, 우상을 예배하다.
(계17:2, 18:3)
5. porneiva 프로네이아
(1) 간음, 남자가 매춘부와 관계함.
(마15:19, 막7:21)
(2) 축첩.
(요8:41)
(3) 간음, 근친 성교.
(마5:32, 고전5:1)
(4) 음탕, 부도덕한 행동, 부정.
(롬1:29)
6. povrno" 포르노스
매춘부와 관계하는 남자, 비합법적인 성관계를 맺는 남자, 남녀 관계가 문란한 사람.
(엡5:5, 히12:16)
설교예화자료
법과 사랑
로구리얀스의 국왕 자로각은 국민의 풍기가 심히 문란해져서 날마다 음란에 젖어 있는 것을 보고 탄식하며
"누구든지 음행하는 자는 두 눈알을 뽑아내리라"는 엄명을 공포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하여 음풍이 주춤하였으나 얼마 안 있어서 최초의 범법자가 생겼습니다.
잡고 보니 그것은 왕이 가장 사랑하는 왕자였습니다. 이윽고 왕이 친히 재판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과연 왕자의 눈알을 뽑을 수 있을까? 만일 뽑지 못한다면 법의 권위는 어떻게 될까? 국민들은 왕의 선고 여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왕자가 끌려나왔습니다. 설마 내 눈알을 뽑으라고야 하랴 하고 왕자는 태연자약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입에서는 추상 같은 판결이 떨어졌습니다.
"법대로 죄인의 두 눈알을 뽑도록 하라."
왕자도 사람들도 아연 실색하였습니다. 집행관은 왕자 앞에 접근하여 작은 칼로 왕명을 따라 왕자의 눈알 하나를 뽑아냈습니다. 왕자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쌌습니다. 이어서 또 한 눈을 뽑으려고 할 때,
"잠깐 기다리라. 이미 형벌은 그것으로 충만하다. 또 한 눈은 이것으로 대신한다. "
왕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기의 눈알 하나를 뽑아 손바닥 위에 올려 놓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도 국민도 법의 존엄성에 놀랐고 또한 왕의 사랑에 감격하였습니다. 그후 온 나라 안에는 법을 존중히 여기는 기풍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콩을 따르는 돼지
아일랜드 사람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돼지 한 마리가 따라왔습니다. 돼지는 아일랜드인의 뒤를 좇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왜 돼지가 당신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일랜드인은,
"내 주머니에 콩이 있기 때문이오." 하였습니다.
돼지가 콩을 좋아하기 때문에 몇 발자국마다 콩을 하나씩 떨어뜨리며 갔습니다. 그런데 돼지는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돼지가 따라가고 있는 길은 도살장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귀는 마치 이런 방법으로 유혹함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자기의 올무로 유도합니다.
어록·시·묘사
동성 연애자는 미소짓는 눈을 가지고 있으나, 누구를 위해 미소짓는지 아무도 모른다.
(T. 무어/ 노래 . 동성연애자가 가진 것)
남자의 두뇌는 여자의 아름다움보다 더욱 많은 간통의 죄를 범하게 된다.
(위리)
간통은 하나의 파산이다. 다만 보통의 파산과 틀리는 점은, 파산의 피해를 받은 사람이 불명예의 피해를 입는 것이다.
(S.R.N. 샹포르/ 잠언과 수상)
간통하지 말라. 간통으로는 좀처럼 이로움이 돌아오지 않는다.
(A.H. 플러프/ 최신 십계명)
불성실한 남자는 남의 밭은 일궈도 자기 밭은 황폐한 채로 있다.
(T.M. 플라우투스/ 당나귀)
그분의 사랑을 떠난 인간의 모습/ '음행과 추행, 방탕과 우상 숭배와 마술‥‥ 무절제와 온갖 탐욕들'/ 유혹이 많아 죄짓기 쉬운 세상
(최호림/ 창세기 · 별장)
밤마다 나는 별 하나를 데리고 와서 간음을 했습니다. 별은 언제나 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도록 별을 데리고 놀아난 밤일수록 별에 부대낀 내 가슴만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상호/ 두려운 밤)
나는 간통한 두 남녀/ 같은 에미 뱃속에서 나온 양/ 거기 누워있음을 보았노라.
(고트프리드 벤/ 진혼곡)
잘못을 뉘우치는 자도 없고/ 한다는 소릴 들어 보시지/ '정부와 놀아나야 사내대장부'/ 다 버린 몸 말리지 마세요/나는 외간 남자가 더 좋아요/ 숨도 못 쉬는 허수아비/ 돌과 나 무를 섬겨 음란한 짓을 마구 피운다.
(최호림/ 창세기 · 별장 · 4)
천주십계 중 여섯 번째인/ "간음하지 말라"는 그 계율만은/ 영 지킬 수가 없습니다. 아니/영 지키기가 싫습니다.
(김여정/ 고백성사)
날 대신 쫓겨나는 그대여/ 님을 버려 두고 음녀와 짝하여/ 죽여야 하는 날 대신/ 돌아올수 없는 길을 가는 그대
(김성영/ 아사절의 염소)
사람들은 꽃처럼 살고 싶어하는데/그렇게 되지 않는다/ 꽃은 아름다움 때문에 강간을 필수로 하는 식물/ 아무리 간통에 물려도 죽지 않는다/ 이상한 것은 사람끼리의 간통/ 한참 신바람이 난 사람도/ 강간에 물리면 힘 못쓰는 동물/ 굵직한 인기가 그렇게 물려서/쓰러진 것을 보인다.
(이생진/ 꽃보다 못한 것)
바로 지금도 아이기스토스는 계율을 벗어나,/ 아트레우스의 아들의 엄연한 아내인/크류타이메스토레와 간통하다가,/ 남편이 귀국하자 파멸이 올 것을 두려워하여/ 살해해 버리고 알았다.
(호메로스/ 오딧세이)
설 교 노 트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
호1:2
서론
하나님의 예언 성취의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십니다. 특히 호세아를 통하여 하신 구원역사의 예언은 이색적인 것으로 "음행"을 주제로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행을 싫어하십니다.
그런데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고 하셨으니 거기에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1. 음행을 권하심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음행을 권장하신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세우신 선지자더러 실생활에 이런 불결한 결혼 생활을 명령하신 것은 아니고, 다만 그 명령의 내용과 같은 가상 생활을 예언으로 나타내는 것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이 명령과 및 호세아가 그대로 실천하였다는 이야기를 하나의 비유로 간주하였습니다. 그의 이론을 보면 그렇습니다. 곧 하나님의 사자의 가정이 깨끗하지 못하면 백성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통하여 전파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음행을 권하신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크신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2. 마음 아프신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이러한 교훈을 하신 것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신 일입니까?
이스라엘이 영적인 남편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 우상을 위시한 온갖 우상 숭배에 젖어있는 모습은, 마치 사랑하는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좇아 다니며 음욕에 미쳐 날뛰는 아내의 꼴을 보는 것과 같이 괴로운 마음을 비할 데가 없는 것입니다.
오죽해야 자식을 낳고서도 자기 자식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이겠습니까? 그러나 이 이상 더 없는 고통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극심한 괴로움인 것입니다.
3. 간음하는 여자 같은 자
야고보서 4장 4절에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성도들이 하나님만을 사랑하여야 할터인데 하나님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고, 세상에 붙은 육체인 정욕대로 살려고 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일이요, 영적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에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하는 일을 가장 미워하시고 저주하심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쏟아야 할 온갖 사랑을 쓸데없이 우상에게 숭배하여 거기에 빼앗기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결론
호세아를 통한 실물 교수는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풍자하기도 하고 비유하기도 하신 오묘한 교훈이십니다.
음란한 마음
호5:4
서론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3절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죄상을 진술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행위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의 행동을 취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 사람의 기본 마음 자세
사람은 하나님이 지어주신 피조물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태초에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육안으로 보이는 육체의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기본 마음 자세는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정결한 마음씨입니다. 하나님의 최고 걸작인 인간 창조가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
사람의 기본 마음 자세는 이토록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것이었습니다.
2. 범죄한 사람의 마음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한 이후에 사람의 마음은 더러워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이 피조자로서의 기본 사상인데, 그만 불순종하고 거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완악한 마음이요, 세상의 온갖 추태가 계속되는 더러운 마음씨요, 사람이 보기에도 미움이 생기는 가증한 마음 자세로 변했습니다.
이것이 범죄한 인간들의 마음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할 것이요, 그것이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고 순결함보다 쾌락을 더 찾아서 음행을 좇고 있습니다.
3. 음란한 마음으로 화한 인간
예수님께서 산상 보훈에서 하신 말씀은 "율법은 간음하지 말라(출20)"고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마5:27-28). 이 말씀 중심의 뜻은 음란한 마음을 품은 자는 벌써 간음한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교훈이십니다. 마음의 생각에서부터 출발하여 행동으로 옮겨지는 까닭에 음란한 욕심이 차게 되면 음란한 행동으로 표면화되는 것인즉, 그 원인이 되는 마음이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음란한 마음은 모든 잘못된 마음 자세 중에서도 가장 추하고 더러운 마음 자세니, 자신만 범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도 범죄케하는 자리에 이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결론
음란한 마음의 소유자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성결하신 하나님께는 성결한 마음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의
성 경 활 용
I. 하나님의 의
1. 하나님의 의의 특징
(1)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다.
(대하12:6)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가로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
(2) 높으시다.
(시71:19) 하나님이여 주의 의가 또한 지극히 높으시니이다
(3) 의의 근원이시다.
(시72:1)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4)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울 수 없다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2. 하나님의 의가 하시는 일
(1) 구원하심
(시71: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사45:21)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2) 인도하심
(시5: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적에 곧게 하소서
(3) 응답하심
(시143: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3. 어디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가?
(1) 복음에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2) 불의에
(롬3:5)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3) 율법과 선지자에게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II. 예수 그리스도의 의
(1) 공의로 심판하심
(사11: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시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2) 공의로 허리띠를 삼으심
(사11: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3) 우리의 의가 되심
(고전1:30)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4) 모든 의를 이루심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우리를 살게 하셨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III. 성도의 의
1. 성도의 의의 특징
(1) 빼앗기기도 한다.
(욥27:2)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2) 회복된다.
(욥33:26)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3) 세상을 책망한다.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4)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자는 복이 있다.
(벧전3:14)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말며 소동치 말고
2. 의의 본은 누구신가?
(1) 하나님이시다.
(시89:14)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롬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이 마침이 되시니라
(3) 복음이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3. 의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서 주셔야 한다.
(롬3:2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 하나님이 의의 문을 여셔야 한다.
(시118:19)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3)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의로워진다.
(롬5:9)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4)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로워진다.
(고후5:21)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로워진다.
(갈5: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4. 의를 가진 자의 결과는 무엇인가?
(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
(롬5:1)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2) 주의 형상으로 만족한다.
(시17:15)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려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3) 의를 위하여 산다.
(롬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위하여 산 것이니라
(4) 긍휼을 거둔다.
(호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5) 모든 것을 더한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 복이 있다.
(시106:3)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7) 평강을 얻는다.
(시72:3) 의로 인하여 산들이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 작은 산들도 그러하리로다
(8) 구원을 얻는다.
(잠11: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9)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잠21:3)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10)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는다.
(잠21:21)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11) 영생에 이르게 된다.
(롬5:21)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관련원어풀이
1. @yDI 딘
(1) 최고 법정, 심판.
(단7:10)
(2) 옮음, 정의.
(단4:34, 7:22)
(3) 형벌.
(스7:26)
2. fP;v]mi 미슈파-트
(1) 심판.
(레19:15, 신1:17)
(2) 잘못, 범죄.
(렘51:9, 겔7:23)
(3) 옮음, 공의, 공평한 것, 합법적인 것.
(신16:19, 잠16:11)
(4) 법률, 법칙.
(출21:1, 레18:4)
3. qd'x; 차-다크
(1) 바르다, 의롭다.
(시l9:10, 51:6)
(2) 바른 이유를 가지다
(창38:26, 욥9:15)
(3) 의롭다, 올바르다.
(욥15:14, 시143:2)
(4) 의롭게 하다, 무죄하게 여기다.
(겔16:15, 렘3:11)
(5) 용서하다, 면제하다.
(출23:7, 신25:1)
4. qd<x, 체데크
(1) 곧음, 바름.
(시23:3)
(2) 정직, 올바름, 곧은 것.
(레19:35, 욥8:3)
(3) 의롭고 공평한 것.
(시89:15)
(4) 공의, 공평.
(레19:15, 사11:4)
(5) 의로움, 성실, 정직.
(시17:15, 사1:21)
5. rv;y: 야-솨-르
(1) 똑바른.
(신12:25, 겔1:7)
(2) 올바른, 의로운.
(욥1:1, 시7:11)
(3) 의로움, 고결.
(시37:37)
(4) 올바른, 참된.
(신32:4, 시33:4)
6. !ymiT; 타-밈
(1) 완성된, 완료된.
(욥36:4, 시19:8)
(2) 완전한, 온전한.
(레3:9, 수10:13)
(3) 온건한, 건전한.
(출12:5, 레1:3)
(4) 올바른, 책망할 데가 없는.
(신15:2, 18:3)
7. divkaio" 디카이오스
(1) 올바른, 의로운, 덕스러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마1:9, 행24:15)
(2) 무죄한, 흠없는, 결백한.
(마27:19, 롬7:12)
(3) 하나님이 시인하는,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롬1:17, 히10:38)
8. dikaiosuvnh 디카이오수네-
(1) 고상, 정결, 덕스러움, 의로움, 바른 생각, 감정, 행동.
(마3:15, 롬8:10)
(2) 정의, 정식, 공평.
(행17:31, 계19:11)
9. krivsi" 크리시스
(1) 구분, 가름, 쪼갬, 선택.
(요8:16, 딤전5:24)
(2) 마지막 심판, 악인의 정죄.
(요5:29)
(3) 재판소, 법전
(마5:21, 22)
(4) 옳음, 공의, 의로움.
(마12:18, 행8:33)
설교예화자료
선과 악
지구를 휩쓸은 대홍수 때, 모든 동물이 노아의 방주를 찾아왔습니다. 선(善)도 서둘러 달려 왔습니다. 그러자 노아가 선을 태우기를 거절했습니다. "나는 짝만 태우기로 하고 있다. "라고 노아는 말했습니다. 그래서 선은 숲으로 돌아가, 자기의 짝이 될 상대를 찾았습니다. 그리하여 악(惡)을 데리고 배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래로 선이 있는 곳에는 악이 있게 되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정의는 지상 인간의 가장 큰 이권이다.
(D. 웹스터/ 정의씨의 이야기)
정의의 대가는 영원한 주지(널리 알려진)이다.
(E.A. 베네트/ 내게 흥미있는 일들)
정의는 언제나 거의 늦는 기차와 같다.
(Y. 예프투센코/ 조숙한 자전)
정의는 미덕의 으뜸이다. 정의의 뒷받침이 없는 용기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인이 의롭다면 용기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플루타르쿠스/ 영웅전)
정복의 정의는, 최강자의 정의에 바탕을 두었음에 지나지 않는다.
(루소/ 사회계약론)
정의는 이웃 시민 사이에서와 다름없이,이웃 나라 사이에서도 엄수되어야 한다. 노상강도는, 혼자 범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작당하여 약탈할 때도 도둑인 것처럼, 불의의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는 대규모의 갱일 따름이다.
(B. 프랭클린/ 서간)
정의가 힘을 만든다는 신념을 가집시다. 그리고 그 신념으로 끝까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은 우리의 의무를 결행합시다.
(A. 링컨)
항상 정의를 행하라.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 밖의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마크 트웨인)
정의란 자기 방어이다.
(B. 브레히트/ 둥근 머리와 뾰족한 머리)
인간은 부당해도, 신든 공정하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
(롱펠로우/ 에반젤린)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 복종은 자유이다.
(J. 몽고메리/ 초원)
누구에게든 악의를 품지 말라. 모두에게 사랑을 베풀라. 신이 우리에게 옳은 것을 보게 했으므로 확신을 가지고 정의에 뛰어들라.
(A. 링컨)
사람이 서로 해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의 역할이다.
(키케로/ 의무론)
가장 약한 팔도 정의의 검으로써 치면 강하다.
(J. 웹스터/ 말피 공작부인)
정의를 아끼면 불법이 자란다.
(W. 셰익스피어/ 루크리스의 능욕)
오, 하느님, 정의가 힘을 지배하게 하소서.
(W. 셰익스피어/ 헨리 4세, 제 2부)
장부라 능히 말할 수 있음은 무엇이뇨/ 그 첫째가 의로움이라/ 의롭게 살되 의를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는 결연한 용기가/ 그 둘째이니/장차 의롭게 살되/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라// 말씀은 명심하온대/ 지금 세상에 의란 대체 무엇이며/누구를 위해 행하리까// 세상의 모든 이치와 법이/ 가진 사람이 더 갖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여/ 가진 자만이 인격도 소유하고/ 가진 자만이 도덕도 행하는데/ 저더러 의로우라 하시면/ 차라리 돈키호테가 되어 천하를 떠돌아야지요
(박용주/ 의롭다 하는 것은)
의 두곤 목숨이/ 가볍다 하련만은‥‥‥‥
(고두동/ 의암)
어느 곳의 불의든 모든 곳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
(M.L. 킹 2세)
의를 행하는 한 시간은, 기도하는 1백 시간의 가치가 있다.
(마호메트)
의란 인간의 의를 하나님의 의로 삼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인간의 의로 삼은 것이어야 한다.
(강원룡/ 무관심의 세대)
내게 좋다 하고 남 싫은 일하지 말며/남이 한다 하고 의(義) 아니면 좇지 말라/ 우리는 천성을 지키며 삼긴 대로 하리라.
(변계량)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사람이 되어나서 옳치곳 못하면/ 마소를 갓고깔 씌워 밥먹이나 다르랴.
(정 철/ 송강가사)
희망의 빛으로 뜨고/ 기쁨의 빛으로 뜨고/이 모든 빛 다하여/ 의로운 빛이어라.
(박용주/ 무지개)
감미로운 도취 속에서 그대는/ 정의의 무거운 날개를 펴고/ 우리들에게 어둡고 형언할 수 없으며,/ 그대 자신과도 같이 정다운/ 기쁨을 선사하라.
(노발리스/ 밤의 찬가)
우리는 우리의 고국을 판단할 수 없다/ 정의의 칼은 우리의 개인의/ 치욕 속에 확 꽂힐 것이다.
(브로드스키/ 애노 도미니)
정의가 넘치는 그 손으로/ 만국에 부와 평화를 부으신다/ 하나가 되라 시온아! 가데스의향기로운 종려처럼/ 네 행복의 그림자 아래/평화와 공의가 화려하게 꽃 핀다/ 정의가 넘치는 그 손으로/ 만국에 부와 평화를 부으신다.
(라마르틴/ 사울의 노래)
이슬을 머금고 사시는/ 당신의 고고함 마냥/의를 위하여 살다가/ 불꽃으로 타오르는 당신의 빛깔마냥/ 진리를 위하여 죽어간/순교자의 하얀 십자가 곁에 한껏 피어오르는 당신의 거룩한 이름
(임춘남/ 부활꽃)
놈들이 갖고 있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권력뿐이라는 것을/‥‥// 그들과 그대는 굶주림에 반대하다가 혐의를 받고/ 착취자에 반대하여 봉기하다가 검거되고/ 압제자에 반대하여 투쟁하다가 고발되고/ 정의의 행동을 취했다 해서/ 유죄가 되었소.
(브레히트/ 라이프찌히의 파시스트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디미트로프 동지에게)
누구나 예로부터 의를 위하여/ 싸우다 못 이기면 몸을 숨겨서/ 한때의 못난이가 되는 법이라// ‥‥부러진 대쪽으로 활을 메우고/ 녹슬은 호미쇠로 칼을 버려서/ 다독(茶毒)된 삼천리에 북을 울리며/ 정의의 기를 들던 그 사람이어.
(김소월/ 물마름)
시인/ 오늘 너는 무엇을 하느냐/ 권력에 아첨하는 날/ 네 관은 진땅에 떨어지나니// 네 성스러운 붓대를 들어라/ 네 두려움 없는 붓을 들어라/ 정의 위해/ 횃불 갖고 시를 산지 않으려느냐.
(노천명/ 시인에게)
정의는 행위 속의 진실이다.
(B. 디즈레일리)
힘을 갖지 못한, 정의는 무력하며, 정의가 없는 힘은 폭군적이다‥‥ 우리는 정당한 것을강하게 만들 수가 없어서, 강한 것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B. 파스칼/ 명상록)
네 구하는 것이 모략과 재주냐? 창생을 건질 길이 모략과 재주에 있는 줄 아느냐? 빨리 나는 재주는 새만한 이 없고, 빨리 뛰는 재주는 이리와 범만한 이 없고, 눈이 아니 보이고 자취 있기는 바람 만한 이 없고, 변화난측하기는 구름만한 이 없고, 천 길 물속으로 만 리의 바다를 가기는 고기만한 이 없거늘, 사람이 무슨 재주를 배우려고, 재주로 창생이 건지어지고, 모략으로 나라가 편안할진대, 무슨 근심이 있으랴. 나라와 창생을 건지는 것은 모략과 재주도 아니요, 네 마음이니라‥‥ 의와 어짐이니라.
(이광수/ 마의 태자)
싸움에 패복할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으로 우리가 정당하다고 믿은 대의(大義)의 지지(支持)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A. 링컨)
나라의 모든 시민 중에서 가장 미천한 시민이라도 정당한 명분으로 무장하면, 불의의 대군보다 강하다.
(W. J. 브라이언)
정의는 모든 것의 위에 있다. 성공은 좋은 것, 부도 역시 좋은 것, 명예는 더욱 좋은 것이지만, 정의는 그들 모두를 능가한다.
(D.D. 필드/ 연설문집)
정의는 평화보다 더 귀중하다.
(W. 윌슨)
정의는 결백이 기뻐하는 미덕이다.
(B. 존슨/ 탐구)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가 당연히 지불해야 할 것을 하려는 부단하고 영속적인 소망이다.
(유스티아누스 대제/ 법학제요)
정의는 말이 없고, 보이지도 않지만, 그대가 잠자고, 걸어가며, 누워 있는 모습을 지켜본다. 정의는 그대의 진로를 가로지르기도, 때를 늦추기도 하며, 끊임없이 그대를 따라 다닌다.
(아에스킬루스/ 단편집)
살인자는 잠간은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늦게 온 정의가 범죄를 뒤따라 잡을 것이다.
(J. 드라이든/ 수탉과 여우)
정의는, 편의와는 아무 상관 없다. 정의는 어떠한 일시적 표준과도 아무 상관 없다. 그것은 인간성의 근본적인 본능에 뿌리박고, 바탕을 두고 있다.
(W. 윌슨)
정의는, 완전 무결할 때에만 옳다.
(V. 위고/ 레 미제라블)
지연된 정의는 부인된 민주주의이다.
(R.F. 케네디/ 정의의 추구)
정의는 신의 왕국과 같다. -즉, 그것은 사실로서 우리 외부에는 없고, 우리 내부에 위대한 동경으로서 존재한다.
(G. 엘리어트/ 로몰라)
님이여 당신은 의가 무거웁고 황금이 가벼운 것을 잘 아십니다.
(한용운/ 찬송)
붉은 바위의 광야에서 내가 의를 외칠 때/그들은 내 소리가 하늘을 찢는 천둥 같다 한다/ 마을에서 동떨어진 오두막에서 내가 병든 자를 돌볼 때/그들은 내 눈물이 봄날의 샘물 같다 한다/ 호수 가운데서 내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그들은 내 모습이 바다에 핀 들의 백합 같다 한다.
(마쯔다 유키오/ 기적에 관하여)
설 교 노 트
의를 갈망하는 사람의 복
마5:6
서론
예수님께서 네 번째로 교훈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은 보통 철학자들이나 도덕가들의 교훈과 달리 매우 의미 심장한 교훈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성경 주석학자인 읠리암 바클레이는 "배가 주려서 사경에 이른 사람이 식물을 구하고 목이 말라 사경에 이른 사람이 물을 사모하듯이 이 불의하고 사악한 세상에서 완전한 의를 구하고 사모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의를 갈망하되 소극적인 자세로 의를 추구하거나 사모하는 자세가 아니고 적극적인 자세로 의를 추구하거나 사모하는 자세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부귀 영화 모두 소유하면서도 의없이 만족이 없고, 모든 지식과 학술을 모두 통달해서도, 의없이는 살 맛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의라는 결론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통하는 참된 의란 무엇입니까?
1. 의의 개념
의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은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요,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옳은행위요, 골육이 아닌 사람들과 더불어 골육과 같은 관계를 맺고 지내는 것이 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의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취급해야 합니다. 여기 의에대한 헬라어 원문은 "디카이오 슈네"라고 하였는데 이 낱말은 인간 자체에 의를 소유하고 의로운 행위를 가진다는 말이 아니고 객관적인 의를 사모하며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2. 의를 갈망하는 내용
(1) 하나님을 찾아 바른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신학적으로 창의론을 다루어 나아가는 신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참된 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시42:1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이 세상 불의와 죄악에서 해방과 탈출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불행과 비극은 불의와 죄악에서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죄에서 해방받고 탈출하여 죄를 미워하며 공격하려고 합니다. 죄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법을 거스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불신앙하고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죄에서 해방받고 탈출해 나오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하였습니다.
(3) 참된 의가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예수께서 없으면 배가 고프고 목이 말라 못사는 신앙의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의를 갈망하는 사람이 배부르다는 뜻은 영적인 차원에서
(1) 영육간에 만족하고 여유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2) 진정한 안정과 평안함을 의미합니다.
(3) 영원한 양식으로 영생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가 의를 갈망하여 의롭게 사는 신자들이 누리는 축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의가 되시는 주
렘23:5
서론
그리스도의 의는 사람들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가르친 가장 중요한 교훈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첫 조상에게 입힌 가죽옷은 바로 믿는 자들의 마음에 우리 주의 의의 공로를 적용시켜준 상징입니다.
1. 주님의 정체
(1)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의 특징으로 이 글에 언급되는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레미야서의 "여호와 우리의 의"라는 말은 "의로운 가지"라는 5절의 말을 의미하며 모든사람은 그 의로운 가지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습니다.
(2)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라는 단어가 바로 그리스도께 속한 말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어느 곳에서나 주라는 말은 본래 하나님 그분의 명칭인 여호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바로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사도는 분명하게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롬9:5)"고 말했습니다.
2. 우리의 의이신 주에 대한 설명
(1) 사람의 필요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우리의 첫 조상들이 어떻게 죄를 범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되기를 바라며 그들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며 자신들의 의보다 더 좋은 의가 필요한 상태에 놓이게 된 데 대한 완벽하면서도 가슴 아픈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였지만 살아났으며 수난을 당하였지만 죄인들을 대신하였고 죄인들을 위하여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요소가 우리를 위한 완전한 의를 구성합니다. 우리들의 첫 조상의 불순종이 우리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3. "주는 우리의 의이시다"라는 교리를 거부함으로써 생겨나는 여러 악한 결과들
(1)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바꿉니다.
이 교리가 진리가 아니라면 성경의 수많은 구절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요, 수많은 성경 구절들이 잘못되었다고 열거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전가된 의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성스러운 계시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단언하여도 충분할 것입니다.
(2) 성경적이지 못한 가르침을 널리 퍼뜨립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론 한번 가정해 봅시다.누구에게 당신은 성도들을 중재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가정합시다. 흑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것에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때 당신은 나에게 이상한 교리를 널리 전파하려는 자리고 즉시 반박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그리스도의 순종에다 우리의 순종을 결부시키는 것은 수동적이건 적극적이건 간에 지극히 합리적이지 못하고 신성모독적인 행위가 아닙니까?
(3) 그들은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전가된 의의 교리와 같은 교리를 주장하고 거룩함의 열매를 맺으려는 자들은 지극히 안전할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일들이 존재한다면(분명히 존재하겠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정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 따라 당신의 위치는 불구덩이와 유황이 들끓는 곳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자신의 일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며, 당신의 일로 말미암아 심판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주는 우리의 의이시다"라는 교리보다 더 논리적인 교리가 있다면 당신 자신의 논거에 따라 제시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그들의 의가 아니라면 죄인들은 심판날에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오직 그리스도 그분만이 당신이 입어야 할 결혼 예복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의
단9:24
서론
이 성경 구절은 깊이 생각해야 할 말씀으로,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한 가지 계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장의 첫 부분(2절,4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선한 사람이 하나님께서그에게 이 계시를 베풀어 주실 때에 어떻게 선택되었는가를 곧 알게 될 것입니다.
1, 의에 관한 설명
(1) 도덕적인 정직을 나타내는 의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의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의에 관하여 펠릭스를 납득시키려고 애썼습니다(행24:25). 그는 .공의를 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그에게 설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자신이 정의롭지 못한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앞에 다가오는 심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는 그 심판에서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했습니다.
(2) 거룩함을 나타내는 의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에 의해 우리안에 이루어진 내적인 거룩함을 나타냅니다.
(3) 전가된 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의라는 낱말이 전가된 의를 나타내거나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미한다고 믿습니다. 즉 가련한 죄인들이 주이시자 구세주로서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들에게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가 행한 모든 일과 그리스도가 수난당한 모든 일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나는 이것 저것을 종합하여 생각해 보고 그리스도가 행하신 모든 일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구성하는 것임을 잘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에 대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의가 영원한 의로 불리워지는 이유
(1)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효과는 아담의 타락을 직접적으로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는 영원한 의로 불리며 그 이유는 구원되었거나 구원될 모든 성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구원되기 때문입니다. 아벨이 구원되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가능했으며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이 받아들여진 것도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과 복음 아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의는 영원한 의로 불리는 것입니다.
(2) 그 효과는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좌는 영원한 의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생기는 효력은 역사가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의 피의 효과와 주 예수의 죽음과 그 보상의 효과는 오늘날의 가련한 죄인들의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가 죽음을 당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대하고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제 그의 권세를 보게 될 것이며, 그의 은혜에 대해 알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제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3) 그 유익이 영원토록 지속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영원한 의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그 유익은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악한 마귀나 자신의 타락한 마음이라도 당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 대한 사랑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자신의 마음을 정해두고 계시며 그분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며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 그들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제대로 인식하는 자들은 그에 의하여 영원히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에 의한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자신의 의에만 의존하고 있습니까? 여러분들 중 어떤 사람이든 사람이 자신이 행한 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의가 당신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죄인들을 위하여 이루신 영원한 의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모든 죄로부터 죄인들을 감싸주실 것이며 그의 피는 모든 죄의 죄책에서 당신을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죄인들은 나오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없이 어떻게 당신이 그리스도의 진노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
시11:7
서론
사탄은 추하고 악독하고 잔인한 것을 좋아하나 여호와는 의로우시므로 의로운 일을 좋아하심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불의를 용납하시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의롭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에게도 역시 의로운 일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1. 의로우신 하나님
의는 하나님의 본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든 만사는 다 정당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합니다.
만일 빛이 눈에 즐거운 것으로 비쳐준다면,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면, 고량진미가 입을 흔쾌하게 만들어 준다면, 그것은 의례 당연히 유지되는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 자신의 육체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형상을 가진 자를 사랑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성격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2. 의를 좋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 "의"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목표이며, 이것은 모든 선한 통치의 목적입니다. 이것은 예언자들의 교훈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목적 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5-26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이때에 자기를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이 의이시요, 예수 믿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를 행해야만 합니다. 의를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서 당신의 자녀라고 인정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3. 의는 결국 복되게 합니다.
죄는 이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의 모든 재앙으로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의는 죄를 없이 하고 인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배를 재확립합니다. 이로써 행복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롬14:17).
또 새 하늘과 새 땅은 약속하신 대로 의의 거하는 처소라고 하셨습니다(벧후3:13). 즉, 의로우신 하나님의 보좌가 시설된 곳이요, 의되신 예수님이 준비된 처소이니 의로운 자만이 가서 사는 곳입니다.
결론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갖고 원하고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를 좋아하시는 분이시니 좋으신 의를 찾으셔서 얻으실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
롬4:5
서론
우리는 어떤 선행이나 미덕으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1. 의로움에 대한 증거
(1) 하나님은 개인의 공로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죄인은 영원한 죄의 지배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인정받게 되면 한없이 악하고 가증스런 죄라도 벗어나게 됩니다.
② 율법으로도 의롭다함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에 매여 있는 사람은 그 율법을 범하게 될 때 죄인이란 비난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가 구속주를 믿음으로써 그 비난에서 자유함을 얻을 때까지는 사실상 죄의 상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2)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고 분명히 가르칩니다.
(3) 인간적인 미덕이나 순종으로 의롭게 된다면 이는 중보자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미덕이나 순종은 자기 자신을 구원자로 여기게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미덕이나 순종은 복음의 진리에 모순됩니다.
2. 의로움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때 얻어짐
(1) 의로움과 믿음의 관계
의로움은 믿음의 행위에서 나옵니다.
죄인이 믿음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실제적으로나 궁극적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②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궁극적인 구원을 얻습니다.
죄인이 변화되어 믿음을 갖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믿음 생활의 모양을 보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궁극적인 구원을 허락하십니다.
(2) 의로움에 있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의미
① 복음에 대해 순종할 때 우리의 의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과 의롭게 되는 것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 순종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변치 않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의롭게 되었다는 능동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② 복음에 대한 순종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이 복음적 이고 심령에 부어진 성령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증거입니다.
3. 의로움의 중요성
(1) 의로움은 성경의 중요한 교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율법적인 행위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음을 강조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의와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완전한 도움을 힘입어 의에 대한 자신의 강론과 변호에 열과 성의를 다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키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저해시키는 그릇된 교리를 논박하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2) 타락한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인간적 의의 불완전성
인간을 구원하려면 자연적 계시 이상의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로는 범죄한 인간에게 인간적 즐거움밖에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계시의 축복 복음이란 하나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계시하는 기쁜 소식이며 죄인들이 거듭나고 영생하게 되는 능력을 제시하는 축복입니다.
결론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밝히 보이는데도 그것을 거역하고 다른 길을 찾는다면 우리는 어처구니 없는 과실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갈1:6-9).
의 인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의인의 일반적인 면
(1)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
(잠2:8)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2)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잠3:32)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3) 칭찬받는다.
(잠10:7)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4) 여호와의 눈이 그들을 향하신다.
(시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5) 영생에 들어간다.
(마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6) 모든 환난에서 건짐 받는다.
(시34:17)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7)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
(딤후4:8)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8)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시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9) 복을 주신다.
(시5:12)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2. 의인이 되는 방법
(1) 공의를 행해야 한다.
(잠21:15) 공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
(2) 의를 심어야 한다.
(호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3)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 의인에게 내리시는 축복
(1)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신다.
(잠1: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2)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수1:5)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3) 죽을 때까지 인도를 받는다.
(시48:14)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4) 힘을 얻는다.
(욥17:19)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5) 하나님께 인정받는다.
(시1:6) 의인의 길을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6) 버림받지 않는다.
(시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7) 환난에서 구원해 주신다.
(잠11: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8) 영생을 얻는다.
(잠12:28)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
(9) 소원을 이룬다.
(잠10:28) 의 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
4. 말씀에 대한 의인의 자세
(1) 즐거워 함
(시119:111)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2) 주야로 묵상함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바람
(시119: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오히려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4) 행함
(시119:1)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5) 말씀에 의해 영적으로 자람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rv;y: 야-솨-르
(1) 똑바른.
(신12:25, 겔1:7)
(2) 올바른, 의로운,
(욥1:1, 시7:11)
(3) 의로움, 고결.
(시37:37)
(4) 올바른, 참된.
(신32:4, 시33:4)
2. qyDIx' 차띠크.
(1) 공평한, 의로운.
(신32:4, 시112:6)
(2) 올바른 이유를 가진 사람.
(출9:27, 잠18:17)
(3) 바르게, 참되게.
(사41:26)
3. divkaio" 디카이오스
(1) 올바른, 의로운, 똑바른.
(마1:9)
(2) 올바른 것, 의로움.
(행4:9,빌1:7)
(3) 무죄한, 결백한.
(마27:19)
(4) 흠없는
(롬7:12)
(5) 거룩한.
(롬3:26)
설교예화자료
착한 사람
세상에는 네 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금, 은, 철, 동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 대용품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이란 바로 "착한 사람"입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커다란 야자나무처럼 무성하고, 큰 레바논 삼나무처럼 늠름하게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야자나무는 한 번 잘라 버리면 다음에 날 때까지 4년이 걸리며, 레바논 삼나무는 아주 멀리 가서 보아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큽니다.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제자 중에 경건한 한 수도사는 기도 중에 꿈을 꾸어 천국을 보게 되었습니다.
천국에는 수많은 보좌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빛나고 좋은 보좌 하나가 비어있음을 보았습니다. 수도사는 혼자서 생각하였습니다.
"저렇게 좋은 보좌를 세상의 어떤 사람이 차지할 것인가? " 그러자 잠자기 옆에 있던 한 천사가
"저 보좌는 원래 가장 지위가 높은 천사가 있던 보좌입니다. 그런데 그 천사는 교만하여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소. 그래서 보좌가 비어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종 프란치스코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사는 너무나 신기하여 프란치스코를 시험해 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과연 프란치스코가 얼마나 겸손하기에 하나님께서 그 겸손의 상으로 그렇게 훌륭하고 좋은 보좌를 주시겠다고 하시는가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하루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 수도사가 선생님이신 프란치스코를 모시고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를 향하여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 선생님! 선생님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자, 프란치스코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형제여!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 라고 생각하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사는
"선생님의 말씀은 진실하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데, 어째서 선생님이 그런 자들과 비교가 되며, 가장 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수도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오. 그러나 만약 저들에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 만큼의 은혜를 주셨다고 한다면, 저들은 아마도 나보다 몇만 배나 더 주를 사랑하고주님과 이웃에게 봉사했을 것이오. 그런데 내 어찌 그들에게 비교할 수 있단 말이오?"
이 말을 들은 수도사는
"과연 겸손한 분이시군."하며 감탄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어록·시·묘사
백성의 마음은 의 있는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사람은 곧 천하를 얻은 사람이다. 백성의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하고 백성을 위하여 백 몸이 당할 수 없이 큰 것이라 하더라도 뛰어나가 맡으라. 그것이 의인지라 하늘과 백성이 네 편이 되어 반드시 그 괴로움을 이기게 하리라. 다행히 이긴 때에 백성의 마음이 네게 돌아올 것이요, 불행하여 네 몸이 죽을 때에 너는 만세 백성이 사모하는 의인이 되리라.
(이광수/ 마의 태자)
나는 정의를 사랑했고 불법을 미워했다. 그러므로 나는 유배지에서 죽는다.
(보우든/ 그레고리 7세전)
사람이 너그럽지 않는데 공정하기란 불가능하다.
(J. 루/ 교구 목사의 명상)
엄격한 정의만을 고집하는 자는 가혹한 자가 되기 쉽다.
(볼테르/ 프러시아 왕에게의 서한)
의로운 사람만이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
(에피쿠루스/ 지상의 금언집)
정의로운 자의 찬란한 행위는, 육신의 고향인 흙 속에 묻히지 않고 살아 남는다.
(핀다로스/ 올림피아 송시)
설 교 노 트
노아, 다니엘, 욥
겔14:14
서론
어느 나라가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 다라고 한 전제는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아무 대책이 없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1. 세 사람의 의로운 행동
노아와 다니엘과 욥은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의로운 행동을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노아의 경우
그 당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창6:5).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고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창6:8-9). 그는 진멸받을 홍수 심판 중에서 가족 7인과 합께 구원받았습니다. 즉, 노아의 의로운 행위는 자기 가족까지는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다니엘의 경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때애 유대에서 포로로 끌려간 소년 중의 하나입니다 왕의 진미인 술과 고기는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이기 때문에 그 음식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채소와 물만 먹고서도 다른 소년들보다 윤택하였고, 우상에게 절함을 거절하고 사자굴에 던짐을 받았어도 잡혀 먹히지 않고 살아나서 하나님의 사람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참으로 의롭고 담대한 신앙입니다.
(3) 욥의 경우
우스 땅에 사는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로 여호와께서 친히 그와 같은 의인이 세상에 다시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재난을 당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한 날에 다 몰사하였고, 그 많던 재산들이 다 하루 아침에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건강하던 몸에 병이 생겨서 많은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어야 할 아내가 저주하고, 친구들이 공격하고, 하찮은 계집종의 조롱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시련을 끝까지 참고 마침내 승리하여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신앙의 용사였습니다.
2. 의인의 의도 자기 구원뿐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믿음으로 인정됩니다. 의인은 한 사람도 없으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상 세 사람 외에도 아벨, 에녹, 아브라함, 롯, 요셉, 사가라, 엘리사벳, 고넬료 등을 의인이라고 하였으니 이들은 비교적 의인이요, 절대적 의인은 아닙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그래도 의인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으로 칭찬을 받은 사람들도 자기 구원에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이요, 그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자기 선행에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론
비록 의인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이나 가족까지는 구할지언정 다른 백성들의 죄를 속하거나 사할 수는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팜
암2:6
서론
본장 중 이스라엘인의 죄를 책망하며 경고하는 내용 중에서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판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은을 받고 의인을 판다는 뜻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은은 화제의 단위입니다.
은은 땅에서 채광되는 광산풀의 하나이며(욥28:1), 불무불에 연단하였습니다(겔22:22). 은은 흰 색깔로서 성질이 부드럽기 때문에 잡아늘이거나 두들겨 펼 수가 있어서 얇게 만드는 데 적당한 금속입니다. 그리고 금속 중에서 가장 광택이 빛나고 산화되지 않습니다. 은은 일찍부터 화폐로 사용한 역사가 깊습니다(창20:16). 그래서 상거래를 할 때에 은을 주고 받은 일이 많았습니다.
여호수아서 7장 21절에 보면, 아이성 공략의 실패 원인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간이몰래 은 200세겔을 감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군 전체가 전쟁에서 패배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마술사 시몬이 은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사려고 하다가 베드로의 엄한 책망을받은 일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20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은이 옛날 화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은을 탐내었던 자가 있었고, 은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를 사려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서 사용되고 있는 돈과 같은 것인데 너무나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지금도 돈을 탐내어 부정을 저지르다가 망하는 자들이 있고, 자격증을 돈으로 취득하려고도 합니다. 심지어는 목회자가 되려고 졸업장을 돈으로 사기도 합니다.
2. 의인을 팔고 삽니다.
사람들은 탐내거나, 은사를 사려고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은으로 사람을 팔고 사고 하는데, 그 사람은 의인이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은 1,100개를 받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삿16:5, 18). 믿어서는 안되는 이방 여인을 믿었던 삼손이 이렇게 배신을 당하고 팔린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삼손의 정욕의 유혹과 들릴라의 금전적 유혹이 두 사람 모두가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 때에 대제사장과 거래된 값이 은 30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노예한 사람의 가장 낮은 시세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싸구려 노예 한 사람의 간으로 거래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천대하고 멸시하고 모욕하려는 악랄한 흉계 밑에서 그 값이 정해진 것으로 봅니다.
의인은 아무리 귀한 돈이라고 하더라도 교환될 수 없으며, 비교될 수 없습니다. 의인은 세상의 것과 비교될 수 없는 하늘에서 빛나는 면류관이 있는 것입니다.
아모스 당시 은을 받고 의인을 파는 일이란, 주로 뇌물을 받고 재판관들이 굽은 판단을 하며, 지인들이 오히려 놓여지고 의인들이 정죄함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책망을 받았는데, 결국 이 사실은 그리스도에게서 응답되고 말았습니다.
결론
은은 선용하면 좋으나, 악용되면 은 자체가 벌써 나빠 보이며, 추해 보입니다. 그런고로 아름다운 은으로 은되게 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렘5:1
서론
"한 사람"은 제일 적은 사람의 수입니다. 한 사람은 아무 보잘것없는 것 같으나, 사실인즉 '하나'라고 하는 것이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아니 어떤 때에는 열이나 백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이란 무슨 말입니까? 그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의인 한 사람도 없는 예루살렘 거리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 넓고 큰 예루살렘 거리에, 아니 이스라엘 전국에 참으로 공의를 행하고 진리를 구하는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종교 지도자와 성직자들이 있었으리니 제사장, 선지자들을 위시하여 기타 수많은 종교계의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인물들이 못 되었으며, 공의를 행하거나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우리 자신 또한 돌아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를 각성케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셔서 의인을 찾을 때 의인은 한 사람도 없고 악인만 있다면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책임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2. 의인 열 사람이 없었던 소돔
창세기 18장 22-2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호소하기를 소돔 성 멸망을 취소해주실 것을 탄원하면서 "의 인과 악인을 동시에 멸하시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각에 그곳에 의인이 다만 얼마라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의인 오십 인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아브라함은 스스로 의인 50인에서 45인, 40인, 30인, 20인, 결국 10인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열 사람의 의인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과 그 아내와 두 딸만이 구출되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절대로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뒤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딸만 데리고 심판의 불을 피하였는데, 그 두 딸과 불륜적인 관계는 부끄러운 역사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을 의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곧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롬3:11).
결론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이 얼마나 애절한 뜻이 내포된 말씀입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관용하시거나 무조건 용서는 할 수 없으십니다. 그래서 공의를 행하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사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의 공로는 의로운 것이 전혀 없으니 의로우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 그 믿음만 나타내어 진리를 행하여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 단
성 경 활 용
1. 일반적 사실
(1) 성도를 미혹케 한다.
(마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2) 주를 부인한다.
(벧후2:1)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3)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
(요일2:19)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 이단자의 다른 명칭
(1) 거짓 선지자이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2) 거짓 형제이다.
(갈2: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3) 자칭 사도라고 한다.
(계2:2)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4) 자칭 유대인이라고
(계2:9)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3. 이단의 특징은 무엇인가?
(1)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벧후2:1)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일으킨다.
(딛3:9)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3) 외식함으로 거짓말한다.
(딤전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4) 탐심으로 지은 말로 이익을 삼는다.
(벧후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을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5) 성전을 더럽힌다.
(행24: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6)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한다.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4. 이단에 대한 성도의 태도
(1)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해야 함
(딛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2) 집에 들이지 말고 인사도 말아야 함
(요이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3) 살피고 떠나야 함
(롬16:17)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관련원어풀이
1. ai{resi" 하이레시스
(1) 잡음, 포획, 선택, 골라냄, 채택된 의견.
(벧후2:1)
(2) 부조리, 불화, 논쟁.
(갈5:20)
2. aiJretikov" 하이레티코스
고르거나 취할수 있는, 분열을 일으키는, 당파심을 조장하는.
(딛3:10)
설교예화자료
이교들간의 추세
최근의 갤럽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의 약 12%가 비전통적 종교 운동에 참여하고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성인 조사 대상자 1,533명 중 4%가, 그리고 미국 국민 중 6백만 명이 초월적 명상에 참여함으로써 가장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음이 입증되었고, 요가가 3%, 카리스마적 운동과 신비주의가 각각 2%씩(전체 인구 중 각 3백만 명 정도씩으로 추정된다)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양의 종교는 1%의 호응을 얻고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갤럽 보고서에 따르면, 초월적 명상이나 요가의 신봉자들은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종교들은 자신의 내면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있으며, 정신적, 심리적 성취감과 영혼의 평온 상태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서 위세를 떨치는 강신술
브라질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강신술을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기독교 인류 학자들은 도시문명의 발달에 따라 강신술과 같은 원시적인 풍속은 소멸될 것으로 전망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은 오늘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국가인 브라질에서 강신술이 실로 엄청난 위세를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넓은 의미의 강신술이란 사람이 영과 직접 접촉하여 그 힘을 빌어 당면한 현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영적존재를 소환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고 믿어지는 심령술사들은 브라질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존스타운의 대학살
일행은, 가이아나에 있는 인민사원(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이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강제로 억류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고 그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가, 매복하고 있던 테러자들의 습격을 받고 모두 살해되었습니다.
며칠 후 가이아난의 존스타운에 진입한 군인들은 수백 구의 시체가 즐비하게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이교 집단의 인원들은 총으로 사살되었거나 시안화산이 첨가된 쿨 에이드를 마심으로 자살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47살의 교주인 존스 목사는 머리에 총알이 박힌 상태로 제단 옆에 누워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모두 78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한 참사의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보고가 있습니다.
"존스 목사가 죽음의 아름다움과 모든 사람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선교를 하자, 그에 매료된 수백 명의 신도들이 연단 주위로 몰려들었습니다 무장한 경비원들이 그들을 둘러싸자, 시안화물이 첨가된 커다란 쿨 에이드 한 통이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신도들이 기꺼이 그것을 마셨고 다른 사람들도 억지로 마셔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어린이들부터 먼저 마시게 했습니다. 80명 가량의 유아들과 어린이들이 치사량의 독약을 마시고 난 후, 어른들이 그것을 마셨습니다. 몇 분 동안 주의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시안산 복용으로 인한 경련이 시작되자 갑자기 그곳은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은 비명을 질러대서 쓰러져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
악마 학교의 성경 연구
어떤 사람이 악마의 학교를 구경 갔습니다. 학과란 학과는 모두 악한 것뿐이었습니다. 인간을 괴롭히고, 슬프게 하고, 성나게 하고, 죄짓게 하고, 다투게 하고, 또한 강도, 살인같은 악행을 하게 하는 방법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은 이 학교에 성경 연구과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성경 연구를 하면 악한 일을 버리고 크리스찬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교장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이때 교장은 허허 웃으면서
"아, 그것은 예수믿는 놈들을 죄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방문자는 더욱 이해 할 수 없어
"그게 무슨 뜻인지‥‥‥‥하며 다시 물었습니다. 교장은 더욱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예수쟁이들은 거짓말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고 싸움을 시켜도 싫다고 꽁무니를 뺍니다.더욱이 도적질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일이면 마음놓고 하거든요? 왜 잘 아시지요, 예수가 광야에서 단식하고 있을 때 우리 동지 중 한 명이 시험을 하자 예수는 세 번 모두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우리를 속여넘겨 버렸지요. 만약 당시에 우리편에서도 성경을 좀 알았더라면 무참하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래서 성경 연구과를 둔 것이오."
인슐린 거부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신앙으로 고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아들에게 놓아야 하는 인슐린 주사를 거부하는 캘리포니아의 로렌스와 앨리스 파커 부부에게 과실치사와 아동학대죄가 적용되었습니다.
이 일이 사회적인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은,환자의 혈액 질병을 중화시기키 위해매일 주사하고 있던 인슐린을 그의 부모가 거부함으로, 중단된 지 3일 만인 1973년 8월22일에 11살 난 웨슬리 파커가 사망함으로써 발단되었습니다.
9월 3일, 법원은 그의 부모에게 고살죄로서는 최고형인 15년과, 중죄인 아동학대죄로서 1년에서 10년의 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 부모들의 변호사는, 피고들은 그들의 강한 신앙적인 신념에 기반한 선의의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최대의 이단은 교의상(敎義上)의 이단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이단이다 산상 수훈에 나타난 기독교 도덕, 그것은 신의 사랑의 선포다. 기적을 믿는다든가 안 믿는다든가, 삼위 일체의 신이냐 일위의 신이냐, 이런 것이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신은 곧 사랑이다.
(A. 슈바이처)
오늘은 숙명의 날/ 금요일, 열 사흗날, 우리들은/ 번연히 죄인 줄 알면서도/ 이단자의 생활을 보내었구나.
(C.P. 보들레르/ 자정의 심문)
아무리 불러도 듣는 귀 없고 잠시 돌아와도 이내/ 떠나는, 떠나기 위해 잠시 돌아오는 천형의/유랑자 이단자 나의 적 나의 병 나의 주인이다/ 깨어 있는 날의 숙명의 놀이다.
(조주환/ 놀이 · 7-가출)
뿐만 아니라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유해한 이단설을 주입하여/ 이 지상계의 문화와/인도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하이네/ 아타트롤 · 6)
세계의 역사에서, 앞서 나가는 자는 항상 이단자로 불려 왔다.
(R.G. 잉거솔/ 남녀 및 어린이의 자유)
이단은 소수인이 믿는 것이며, 약자의 교리에다 강자가 붙인 명칭이다.
(R.G. 잉거솔/ 이교와 이교도)
은총을 못 받은 이교도의 덕은, 화려한 악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그리스도의 육체)
설 교 노 트
너희를 시험하심이라
신13:1-11
서론
예나 지금이나 이단들은 있습니다. 이단은 선량하고 건전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이단의 특색은 성경을 들고 나오는 점이고, 믿음을 들고 나오며, 이적을 들고 나옵니다. 그래서 보통 성도들이 많이 유혹을 당합니다.
성경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기독교 이단이지 성경 아닌 불경을 가지고 하면 아무리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정통 보수주의는 성경이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를 찾아 그 말씀에 순종하고, 이단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 자기 생각에 성경을 맞추는 것입니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 해도 이와 같은 점에서 틀리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와 같은 일들을 허락하셨는가 이는 우리의 믿음 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1. 이적을 꿈꾸는 자의 말을 듣지 말라 하십니다.
본문 1-3절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적을 통하여 성도들의 참신앙 여부를 알려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적을 행하고 능력을 행한다고 그들이 신령한 종이라고 미쳐서 따라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자가 이적을 행하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면 따르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만 들으라고 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말씀을 악용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대로 순종할 수 없게 합니다. 아담 부부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결국은 망하게 된 것입니다. 구원의 방편이 되는 믿음은 이적에서 나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나는 것입니다(롬10:17). 그래서베드로는 말하기를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까(요6:68)"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적을 중요시하지 말고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하고 말씀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3. 친척의 말도 듣지 말라 하십니다.
본문 6-9절에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죄어 이르기를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새로운 것) 다른 신들(하나님외)‥‥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은 가까운 친척을 통해서 침투합니다. 아담도 아내로 인하여 시험을 받았고 욥도 아내로 통하여 시험을 받았으며 예수님도친구인 가를 유다를 통하여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을 배격하는 데는 인정을 초월해야 합니다. 마귀는 친밀한 자로 인해 은밀하게 새로워 보이는 것을 가지고 시험을 하는것이 특징합니다. 그러므로 이단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거짓 선지자는 신비로운 것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기존 것과는 전혀 새로운 것 같이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교묘하게 해석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미혹합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미혹받지 아니하도록 조심합시다.
이 사
성 경 활 용
1. 왜 이사하는가?
(1) 하나님께서 지시하심으로
(창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20: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2) 기근으로
(창12:10)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3) 종들의 다툼으로
(창13:11)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관련원어풀이
1. hl;G: 깔-라-
(1) 드러내 놓다, 밝히다, 개방하다.
(삼상20:2, 잠20:19)
(2) 포로가 되다, 이주하다.
(삼하15:19)
(3) 이주하다, 사로잡히다.
(사38:12)
(4) 포로로 하다, 추방하다.
(왕하15:29, 18:11)
(5) 자신을 벌거벗기다.
(창9:21)
2. [s'n: 나-사
(1) 끌어 당기다, 뽑아 내다.
(삿16:3, 사33:20)
(2) 야영지를 옮기다, 제거하다, 깨트리다
(창35:16, 민10:18)
(3) 옮기다, 떠나다.
(출14:19, 민10:33)
(4) 이주하다, 여행하다.
(창12:9, 33:17)
어록·시·묘사
풍향계처럼/ 돌며, 날개 뒤집어 흔들어/ 북상하는 새들과/ 함께// 석유와 마른 식빵 사이에서// 이별처럼 다시 만날/ 땅을/ 찾아서.
(전동균/ 이사)
19평짜리 입주허가증으로 우리 8식구가 살아가기엔/ 너무 좁다고 느껴졌다/ 더 이상 올라설 수도 없다/ 올 데까지 왔다고 생각하면서/ 이삿짐을 풀었다/ 그해 겨울을 풀었다/ 몇 권의 시집에 짜디 짠 조선간장이 스며들었다/ 책가방이 가벼워 초등학생인 막내의 나침반은 줄곧/ 떠나온 집을/ 어리광을 받아 주던 땅을 가리키고/ ‥‥몇몇의 친구들이 던져놓고 간 성냥알이/ 얼마만한 불꽃으로 타오를까/ 가까운 친척들이 밀어넣어 준 하이타이가/ 우리들의 촌티와 굳어버린 꿈들을/ 얼마만큼 닦아내고 부풀릴 수 있을까/ 우리는 미련과 희망을/ 서둘러 팥죽 속에 넣고/ 한 그릇씩 허기진 배를 채웠다.
(이용범/ 503호 · 1)
신의 말씀/ 헤아리는 돌무덤 곁에 사는/이름 모를 들꽃이고픈 목숨이/ 아파트 촌으로 이사를 한/ 그날 이후.// ‥‥산새 소리와 친했었는데/ 어느 사이 산 밑 솔밭마저 밀어내고/들어선 차량들이 붐비는 아스팔트 대로에서/밀려나는 실향민/ 비정한 컴퓨터 인간의 영지에서/ 난 산빛 그리움에 젖어든/ 별들의 고향을 찾아/ 떠도는 바람, 그속에 피어나는/꽃불이려네.
(김연식/ 창가에서)
머나먼 고향의 보이지 않는 봄풍경도/ 느낌으로 건너와/새 풀잎처럼 싱그럽게 내리는 우유빛 햇볕 속에서/ 벌써 이민자의 가슴에는/그리운 이들로 가득합니다.
(김문희/ 오월의 햇볕)
내 집 앞을 지나면/ 찾아 주게/ 술이야 없겠나/ 불러주게// 농사철엔/ 서로 바빠도/ 한가한 때가 되면/ 서로 그립네// 그리우면/찾아오게/ 웃음을 나누세/ 얘기를 나누세
(도잠/ 이사)
어쩌다 내려 간 애 굽에서는/ 금갈대 꽃잎 하나 흔들지 못할 바람이/ 기운차게 불어대서비틀거리기도 했지만/ 언제고 이사할 채비하고 산다.
(권숙월/ 해바라기)
설 교 노 트
이사한 아브라함의 복
창12:1-9
서론
아브라함은 노아의 12대손으로 주전 1996년에 갈대아 우르에서 출생하였고 얼마 후 메소보다미아와 하란에서 이거하던 중 하란에서 그 부친이 죽었고 그후에 하나님은 저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명을 따라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출발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역사를 살펴보면 갈대아 우르에서 출생하고 메소보다미아에서 하란에 가고 또 하란에서 가나안에 가고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가고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이사 다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사 다니면서 축복받은 비결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자기 고향을 떠났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상정입니다. 여우는 죽을 때에 머리를 자기가 살던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라는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을 때에 나이가 75세 였는데 이때는 자기가 사는 곳에 대한 애착심이 더욱 강해질 때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용감하게 일어서서 떠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최고의 존재로 알고 절대 복종의 순종을 한 것입니다.
2. 그는 모험적 신앙으로 하나님이 지시하시
는 땅에 나아갔습니다.
유목민 생활에서 이동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란을 떠나라는 명령은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에 대단히 무모하고 모순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신앙과 용기를 가지고 떠나는 모험적 신앙의 위인이었습니다. 신앙은 본래 모험입니다. 안전 제일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땅을 짚고 헤엄치는 사람과 지팡이로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는 사람은 신자될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한 땅은 어떠한 땅이요, 아브라함이 순종으로 얻은 땅은 어떠했습니까?
(1) 안식 세계가 있는 땅이요(신6:1-11)
(2) 그 곳에는 풍부한 부요가 있고(신8:8-9)
(3) 그 곳에는 시내와 분천과 샘 이 있는 땅이요(신8:7)
(4) 아브라함이 얻은 그 땅에는 승리가 있었습니다(신11:25).
3. 그는 이사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 즉 명령을 듣고 이사간 데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12:7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라고 하였고 8절에 "거리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라고 했습니다.
13:3-4을 보면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며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13:18에 보면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주시할 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다는 말씀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를 위하여 예배당을 짓고 자기를 위하여 예수 따라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열국의 아버지의 축복을 해주신 것입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잘 신앙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주의 모범적 생활한 이삭
창12:25, 26:1-4
서론
본문은 가나안의 흉년과 이삭의 그랄 이주생활에 대한 기사입니다. 이삭은 가나안 땅에서 흉년을 만나서 애굽땅으로 내려 가고자할 때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고 26:2에 말씀하심으로 애 굽까지는 가지 않고 블레셋 땅 그랄에 가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제 이삭의 이주의 모범적 생활 몇 가지를 생각코자 합니다.
1. 이삭은 이주할 때에 하나님 봉사의 지장되는 곳에는 이주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민의 신앙과 성별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우상 도시요, 속화 도시요, 죄악의 애굽땅에서 이삭에게 내려가지 말라고 권면하셨고 이삭이 블레셋 땅 그랄에서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실패한 것을 재연하는 거짓말로 이삭이 자기 처를 누이라고 함으로 리브가의 정조가 위태하게 될 때 하나님의 성민의 성결을 보존키 위하여 리브가를 보호하시고 이삭에게는 물질까지 축복하셨는데 이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주하여 생활한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2. 이삭은 양보와 무저항의 생활 모범자였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100세요(주전1890년)사라 90세 때 출생하였고(창17:17), 이삭의 사람됨은 성품이 온유 겸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보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양보와 무저항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때 팠던 옛 우물들을 블레셋인들이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메웠으므로 이삭의 종들이 다시 파서 그 물을 먹을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고 하자 이삭은 다투지 않고 양보하였고, 다른 우물도 역시 양보하였습니다.
우물을 양보하는 일은 목장까지 버리는 일이므로 이것은 유목민으로서는 일대 희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결코 다투지 않고 양보만 한 모범적인 성도였습니다.
3. 이삭은 이주해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는데 모범을 남겼습니다.
본문 26:25에 "이삭이 그 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무저항주의로 나가는 이삭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서 선조전래(先祖傳來)의 축복을 하셨습니다. 26:24에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입을 때에 이와 같은 하나님의 위로는 실로 땅에서 솟는 생수보다 더 시원하였을 것입니다.
결론
이삭은 장점 많은 모범자였습니다.
(1) 양보와 무저항의 모범자였고
(2) 효도의 모범이니 아버지를 순종하여 모리아산 제단에 희생의 제물되는 일까지도 거역지 아니하고 결혼에도 이스마엘같이 자유하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시키는 대로 순종하였고
(3) 신앙의 모범이니 여러 번 이주에도 부모전래의 신앙 종교를 근실히 지켰고
(4) 이삭의 근업이 모범이니 일생의 다섯 우물이나 파면서 선조전래의 유업을 근실히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겔12:3
서론
사람이 평생 살아가려면 몇 번은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합니다. 물론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는 집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거의가 다 이사를 다닌 경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만물과 만사를 응용하여 교훈하십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사로 교훈하셨는데, 그 뜻이 매우 귀중합니다.
1. 이사 다니는 인생
인류의 시조인 아담 부부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여 드디어 낙원인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이리저리 피하여 다니며 유리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창4:12).
또 바벨탑 공사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결국 이사 다니며 사는 신세가 되었고(창11:8),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기가 살던 곳에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인 그랄에 우거하였으며(창20:1) 그는 먼 우르에서 하란으로, 또 다시 가나안으로, 애굽으로 이사다니며 살았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이사 다니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2. 예수님 가정의 이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본래 하늘 위에 계셨는데, 이 지구상으로 강림하여 이사 오셨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으나 어린 몸으로 애굽에 피난하셨다가 돌아와서 나사렛 동네에 가서 30년 동안 성장하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사업을 시작하시며 그 가족들과 더불어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파 납달리 지경 하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셔서 사셨으니 그것은 선지자의 예언대로 된 일입니다.
일단 가족들은 가버나움에 이사시켜 놓으시고, 예수님은 신령한 사업인 천국 복음 전파에 전념하셨습니다. 그후에 자족적인 생활을 하시지 않으셨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3. 이사를 통한 교훈
이사를 하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사는 것보다 더 좋은 조건을 기대하면서 저곳으로 이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이곳에 사는 것이 좋으나 살 수 없게 되어 쫓기는 입장에서 가기 싫은 곳이지만 저곳으로 이사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패역한 족속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행구를 준비하고 낫에 그들의 목전에서 이사하라 네가 네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옳기는 것을 그들이 보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혹 생각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행동 예언이라고 하여 실물 교수를 하신 것입니다.
결론
이사 다니는 인생들을 향하여 제일 알기 쉬운 이치의 교훈을 하셨으니 깨닫지 못하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성
성 경 활 용
1. 이성의 기능은 무엇인가?
(1) 총명
(단4:36)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2) 판단
(고전10: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2. 이성의 한도
(1) 자신을 인도할 수 없음
(신12:8)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
(잠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3. 이성 없는 자의 특징
(1) 무리하다.
(시35:19)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살후3:2)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2) 정욕을 행하는 자들은 이성 없는 짐승에 비유되었다.
(벧후2:12)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유1:10)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hm;D; 다-마-
(1) 상상하다, 생각하다.
(에4:13,사10:7)
(2) 의도하다, 계획하다.
(민33:56, 사14:24)
2. @yBi 빈-
(1) 마음을 들리다, 주의를 기울이다.
(신32:29, 시73:17)
(2) 이해하다. 깨닫다.
(삼상3:8, 사6:9)
(3) 알게 하다, 가르치다.
(욥6:24,느8:8)
(4) 이해하다, 자신의 현명함을 보이다.
(시119:100)
3. dialogivzomai 디알로기조마이
(1) 생각을 굳히다, 논의하다, 생각하다, 숙고하다, 간주하다.
(마16:7)
(2) 논쟁하다, 다투다.
(막8:16, 눅20:14)
4. diavnoia 디아노이아
(1) 정신, 마음, 지식, 이해.
(마22:37, 눅10:17)
(2) 이해력, 생각, 상상.
(눅1:51)
(3) 통찰, 이해.
(요일5:20)
(4) 사고방식, 감정의 형태.
(엡2:3, 골1:21)
5. noevw 노에오-
(1) 마음으로 인식하다, 깨닫다, 이해하다.
(마16:9, 요12:40)
(2) 숙고하다, 주의하다, 사려하다.
(마24:15, 딤후2:7)
(3) 상상하다.
(엡3:20)
설교예화자료
대통령의 판단 기준
몇 년전, 타임지에서 슈사이든이라는 사람이 카터 대통령에 대한 평을 해 놓은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 아주 재미있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해외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오직 혼자서 결정합니다. 해외 정책을 세우는 동기는 그의 영에서 나오고 그의 이성은 놀라우리만큼 종교적인 감정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해외 정책을 세울 때 그는 오직 혼자서 기도하면서 합니다. "
슈사이든은 카터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평하면서 대통령이 이성보다는 종교적인 감정에 의지하여 마음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외교 정책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어느 곳은 놀라울 만큼 명백하고 보석 세공처럼 소상하게 나타나는가 하면, 또 어느 곳은 마치 공간도 시간도 무시한 것처럼 마구 뛰어넘는다.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이성이 아니라 희망이며, 두뇌가 아니라 심정인 것같다.
(F.M. 도스토예프스키/ 우스운 인간의 꿈)
꿈꾸는 힘이 없는 자는 사는 힘도 없다.
(E. 틀러)
나는 절실한 한 가지 소원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이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다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살고 싶다는 것이다.
(A. 링컨)
사람에겐 네 가지 원이 있으니, 안으로는 신령스럽고 강하기를 원하고, 밖으로는 부(富) 하고 귀(貴)하기를 원한다. 귀하기는 벼슬하지 않은 것보다 더 귀함이 없고, 부하가는 욕심내지 않은 것보다 더 부함이 없으며, 강하기는 다투지 않는 것보다 더 강한 것이 없으며, 신령스럽기는 알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신령스러운 것이 없다.
(이지함/ 토정집)
다만 새로운 이상이 눈뜬다. / 여신의 영원의 빛이 마시고 싶음에,/ 밤을 배경으로 낮을 전면으로, 하늘을 이고, 물결에 엎드려
(J.W. 괴테/ 파우스트)
이상과 꿈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에게도 뜻밖인 형태로. 동화같이, 분홍 솜사탕 맛같이 느껴지는 유년기 인식에 모든 것을 바쳤던 십대와 이십대. 타인(사회)과 첫 대면한 이래의 가지가지의 괴로움 · 아픔 · 상처에 뒤덮인 이십대 후반기‥‥ 나는 요즘 회복기의 환자가햇볕 속에 앉아 느끼는 꿈꾸는 듯이 나른한 행복과 권태에 산다.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설 교 노 트
영력 없는 지도자
출2:10-15
서론
모세는 애굽에 가서 최고의 지식을 터득하고 힘도 있고 권세도 있으며 모든 조건이 좋은 상태에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부르시기 전에 자기가 자청해서 히브리 민족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생각한 대로 일도 하지 못하고 결국 애굽 사람만 한 사람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영력이 없이는 주의 일을 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력 없는 지도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1. 감정에 치우칩니다.
본문 11절에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 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고 하였습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모세의 감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동포를 위한다는 구실로 정의를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감정에 치우친 사람은 언제나 혈기를 잘내고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이성으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의 일은 영력이 충만해야 합니다.
2. 사람의 눈만 피하려고 합니다.
본문 12절에 "좌로 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이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영력이 없는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영력이 충만한 사람은 사람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요셉은 신전 의식 생활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보지 아니하는 곳에서 죄를 범치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서 순종하기를 그리스도에게 하듯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6:5-7)"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영력이 없는 까닭이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인정받지 못합니다.
본문 13-15절에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 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영력 없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의 지도자는 될 수 있어도 하나님의 일꾼 즉 교계 지도자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지 않지만 성도들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력이 없으면 인격적으로 사람을 감화시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득력과 감화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교계 지도자로서는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미디안에서 40년을 지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함께 하심을 체험한 후에 회개하고 백성들 앞에 나타났을 때에 인정을 받았습니다(출4:30-31).
결론
어느 지도자든지 영력이 충만하고, 이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위대성
마11:1-12
서론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눅1:26) 제사장 가문의 늙은 부모인 사가랴(눅1:5)와 예수의 모친 마리아의 친족인 엘리사벳(눅1:36)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자적 소명을 받아(눅3:2) 공생애를 시작하게 되기까지의 어린 시절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어린 양 되신 분으로 널리 공포(요1:24-36)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으나 그는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고 이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하였습니다(마11:11).
세례 요한의 위대성은 무엇입니까?
1. 바로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4장 4절에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헤롯은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았기 때문에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한 것입니다.
형제가 생존해 있을 때에 그 아내를 취하는 것은 율법으로나(레18:16, 20:21) 인륜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헤롯의 그런 죄악된 행동을 보고 즉시 책망했습니다. 왕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나 불의를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인 것입니다.
헤롯은 세례 요한을 두려워 했으나(막6:20) 결국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2. 바로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7-18절에 "전에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한낱 야인으로서 일국의 군주에게 죽음을 각오하고 바른 말을 했습니다. 군주국가 시대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빌립은 헤롯 왕의 아들이며, 헤롯 안디바의 이복 동생이었고, 헤로디아는 헤롯 대왕의 손녀이며, 헤롯 아그립바(행12:1)의 누이였습니다. 이 귀절로 아 헤로디아는 삼촌인 빌립과 결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후 헤로디아는 또 다른 삼촌인 헤롯 안디바와 결혼하였습니다. 당시 헤롯 일가의 족보는 이처럼 복잡하며 문란하였습니다.
3. 바로 살았습니다.
마3:4에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약대 털옷과 가죽띠는 소박하고 질기므로 광야 생활에 어울리는 것입니다. 메뚜기는 레위기 11장 22절에 의하면 먹어도 되는 식량이었습니다. 이것은 빈민들의 음식으로서 삶거나 구워서 먹습니다.
석청은 야생의 꿀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세례 요한의 생활이 검소했으므로 그는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거리낌없이 외칠 수 있었고 따라서 그의 말은 호소력(마3:5-6)이 있었습니다.
4. 바로 죽었습니다.
"사람을 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마14:10-11)"
그는 죽음 앞에서 비겁하지 아니 했습니다. 정정당당히 싸우다가 떳떳하게 죽었습니다. 그는 부끄럽지 않게 살다가 부끄럽지 않게 죽었습니다.
결론
세례 요한의 일생은 참으로 모든 성도의 표본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자들이 감정에 치우쳐서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기 위주의 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성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한다면 신앙생활도 바르게 할 수 있고, 모든 것에 대해서도 바른 자세로 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생각하는 사람
대상11:15-19
서론
파스칼이 인생을 정의하며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것처럼 사람이란 본래 생각하는 실존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고로 사람이란 생각이 없으면 비이성적인 짐승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란 이성을 가진 창조적인 실존으로서 인류 역사상 철학을 창조하였고 문화를 창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의 인격은 깊이가 있고 그의 생활의 폭은 넓어지고 처세상에 무게가 있는 사람이 되어집니다.
1. 지도자를 생각하는 세 용사
여기에 목이 갈한 지도자 다윗을 생각하여 목숨을 걸고 적진을 뚫고 가서 물을 길어다가대접한 세 용사가 있습니다 이는 지도자에 대한 아첨도 아니요, 만용도 아니요, 무모한 명령 복종만이 아니라, 지도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충성심의 발로입니다. 저들은 지도자 다윗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한 사람들입니까?
(1) 지도자가 사모하고 있는 심정을 생각하여 준 사람들입니다.
여기 다윗의 유서깊은 자기 고향 베들레헴 성 우물물을 사모하여 마시기를 원했습니다(11:17). 이 사실을 깊이 이해한 세 용사가 적진을 무릅쓰고 가서 물을 떠다가 대접한 것은 지도자의 사모하는 심정을 위로하며 만족하도록 한 엄숙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2) 지도자의 목마른 고통을 생각하여 준 사람들입니다.
지도자도 사람인 까닭에 목마른 때도 있고, 배고픈 때도 있고, 춥고 곤고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목마르고 곤고한 사정을 생각하여 적진을 무릅쓰고 가서 물을 떠다 대접한 세 용사의 의리를 배워야 되겠습니다.
(3) 지도자의 지위와 권위를 생각하여 준 사람들입니다.
여기 다윗은 어떠한 의도에서 물을 길어오라고 하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부하들의 복종 여부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만일에 물을 길어오는 용사들이 없었다면 다윗의 지위나 권위는 땅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의 새 용사는 지도자의 위치나 권위를 존중히 여기는 엄숙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세 용사가 다윗을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지도자인 줄 알고 신앙으로 수행한 것입니다.
2. 부하를 생각한 다윗
자신의 부하 세 사람이 자신이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하자 그것을 깊이 생각하고 적진에 가서 물을 길어다 주자 다윗은 깊이 감동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자기들의 목숨까지 내걸고 물 한 그릇을 뜨러 간 용사들을 생각하니 다윗은 눈물이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생명의 값인 물을 마실 수가 없었기에 여호와 앞에 부어드렸습니다. 다윗은 진심으로 그 부하들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결론
지도자는 부하를 생각하고, 부하는 지도자를 생각하였습니다. 서로 생각해 주는 가운데 깊은 사랑과 이해심과 존경심이 싹트는 것입니다.
이 적
성 경 활 용
1. 이적에 대한 다른 표현
(1) 기이한 일
(시78: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 목전에서 행하셨으되
(2) 징조와 기사
(렘32:21) 주께서 징조와 기사와 강한 손과 드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3) 표적과 기사
(행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2. 이적이 일어난 곳은 어디인가?
(1) 자연계에
(수10:12)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2) 동물에게
(민22: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3) 죽음에서
(요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3. 이적의 능력의 근원
(1) 하나님
(행15:12)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2) 그리스도
(마10:1)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무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3) 성령
(마12:28)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냐
4. 이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1) 다른 사람들에게 전함
(요11:47)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행하겠느냐
(행4:16)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2) 예수를 믿음
(요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관련원어풀이
1. t/a 오-트
(1) 표적, 표시,
(창1:14, 출12:13)
(2) 군기.
(민2:2)
(3) 징조, 표적.
(사8:18)
(4) 자체가 보여질 수 없는 어떤 일의 표시, 표적.
(창1:14, 출31:13)
(5) 표, 증명, 논거.
(신4:34, 욥21:29)
2. al;P; 팔-라-
(1) 구별되다, 위대하다, 뛰어나다.
(삼하1:26, 단11:36)
(2) 힘들다, 어렵다
(신30:11, 잠30:18)
(3) 놀랍다, 기이하다.
(시118:23, 139:14)
(4) 분리하다, 헌신하다, 봉헌하다.
(레22:21, 민15:3)
(5) 봉헌하다.
(레27:2, 민6:2)
(6) 구별되게 하다, 뛰어나게 하다.
(신28:59, 시31:22)
(7) 놀랍게 하다
(삿13:19, 사29:14)
(8) 자신을 구별되게 보이다, 자신의 힘을 발휘하다.
(욥10:16)
3. shmei'on 세-메이온
(1) 기호, 표, 상징, 표시, 증거, 신호, 표적, 상징
(마26:48, 눅11:29)
(2) 이적, 기사, 신적 기원의 기적.
(마12:38, 요2:11)
설교예화자료
수용소에서 살아온 여인
독일 나치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종전과 동시에 풀려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독교 신자로 수용소에 잡혀갈 때 감시인의 눈을 피하여 종합 비타민 한 병을 몰래 몸에 숨겨서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소용소에 3년 동안 갇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수용소에서 풀려 나을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비타민을 먹을 수 있도록 비타민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수용소에서는 영양실조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지 만, 각종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 비타민을 매일 복용할 수 있었던 여인은 살아서 그 수용소를 나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적은 구약 시대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던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각이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간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주님의 심박자 구원으로 늘 차 있으면 생각에 넘치도록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철기를 닫아 주셨다
몇 년 전 어떤 매우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을 찾았을 때 놀랄 만한 일이 났습니다. 12량의여객 열차가 미주리 주 동쪽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열차 안에는 한 주일 학교의 소풍으로 행복한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소풍이 시작되었을 때 하늘엔 구름 한 점없이 맑았지만, 오래지 않아 무시무시한 뇌우가 몰아쳤습니다. 맹렬한 폭우에 불안한 기관사는 속도를 시속 35마일로 줄였습니다. 열차가 커브를 돌려고 할 때, 그는 바로 앞에 있는 전철기가 왼쪽으로 젖혀져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곧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꼭 붙잡고 있어!" 그는 화부에게 소리쳤습니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타고 있어."
"그렇게 하겠어!"하고 응답이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독교도인 화부는 외쳤습니다.
"오, 하나님, 도와주소서!"
그의 말은 번개가 기관차의 바로 앞에 내려치자 그 천둥소리에 묻혀 버렸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그들은 자기네가 그 위험한 전철기를 안전하게 지나쳤음을 발견했습니다.열차가 멈춘 뒤에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가하여 급히 뒤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번개가 레일 뒤에 떨어져서 전철기를 닫았음을 발견했습니다. 번개로 인하여 분명히 탈선을 일으키게 했을 돌출부가 있는 선로로부터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은 담력
3 ·1 독립만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유관순은 청주로 내려가 그곳에 있는 동지들에게 연락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유관순은 이른 새벽에 당도하질 못하고 드무실 고개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드무실 고개는 호랑이가 나오기 때문에 대낮에도 장정들이 떼를 지어 소리를 지르며 넘는 고개인데, 그날 밤 안으로 소식을 전해야했기 때문에 유관순은 날이 새기를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동리 사람들이 한사코 말렸지만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신앙이 있었던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밤이 지나기 전에 고개를넘어야 하오니 저를 지켜주시옵소서."
그리고 유관순은 혼자서 고갯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면서 고갯마루를 막 넘어서는 순간 "으르렁"하는 소리와 함께 황소만한 호랑이가 고갯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유관순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호랑이를 노려보다가 입을 열어 호랑이를 꾸짖었습니다
"이 무례한 놈아!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조국과 민족의 해방을 쥐해서 동지들을 만나러 가는 길인데 네가 내 길을 막다니 무엄하다. 어서 길을 비켜라."
유관순이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담대하게 걸어나가자 호랑이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고 합니다.
아들을 위한 기도
월남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 우리 교회 청년들도 월남전에 많이 참전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들을 월남에 보낸 한 자매님이 나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들이 혹시 다치지 않을까 저녁마다 걱정하고 잠을 못 이루는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자매님, 성령님은 우리의 빌 바를 아시므로 자매님의 기도를 성령님께 맡기십시오.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주시기를 기로하십시오."
그후부터 자매님은 성령님께서 대신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월남 전선에서 목숨을 내걸고 싸우던 자매님의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아들이 소속된 부대가 베트콩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전방에서 날아오는 포탄을 피해 3미터 앞으로 뛰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무서운 힘으로 어깨를 눌러서 그 자리에 엎드렸는데, 바로 그 순간 "꽝"소리와 함께 분명히 자기가 뛰어가려던 지점에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그 청년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자기의 어깨를 누르면서 엎드리게 한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훗날 무사히 귀국한 이 청년이 나를 찾아와 "만일 제가 3미터 전방으로 뛰어가서 엎드렸다면 가루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기도로 성령님이 저를 못 가게 막으셔서 목숨을 구하고 돌아왔습니다. "라며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여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 드려주십니다.
어록·시·묘사
기적이란 갓 태어난 연약한 교회들을 위한 강보이다.
(T. 풀러/ 교회사)
인생은 중단되는 일이 없는 기적이다. 성장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 동시에, 우리들은 자연의 비밀 속에 제일 비밀스런 것을 아는 것이 된다.
(T. 맬로리)
사랑은 기적이며, 사랑은 은총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슬과 같이‥‥‥
(F.E. 가이벨/ 청춘시집)
삶의 기적은 우리가 공유하는 우리 공동의 것이요, 그 신비 또한 그러하다.
(A.G. 가드너/ 동승객)
진정한 기적은 신이 인간에게 준 용기와 지능을 인간이 사용할 때 인간에 의해 생긴다.
(J. 아누이/ 종달새)
기적도 진실도 필요하다. 인간의 심신(心身)전체를 확신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스칼/ 명상록)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동시에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동물이다. 이 두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인간만을 성원으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의견의 충돌이 생기며, 인간의 회심의 기적을 경험하지 않는 끝 그 충돌은 인간의 자멸이란 극단의 경우에까지 이르고야 말 것이다.
(A.J. 토인비/ 역사의 연구)
나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더 큰 기적을 본 적이 없다.
(M.E. 몽테뉴)
그처럼 많은 불운과 적의 가운데서도 인간을 살아 남도록 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는 것만큼 큰 기적이다.
(J. 테일러/ 성스런 죽음)
나에게는 모든 시간의 명암은 하나의 기적이며 1입방 인치의 공간도 기적이다.
(W. 휘트먼/ 풀잎)
기적이란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영국 격언)
기적이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자연적인 사실이다.
(G. 산타야나/ 스피노자 논리학입문)
기적이 없다면 나는 기독교도가 되지 않을 것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파스칼의 명상록)
불가사의한 것이 반드시 기적은 아니다.
(괴테/ 산문금언집)
우리는 앉아서 기적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일어서서 일하라,그러면 하느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와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J. 엘리엇)
기적이란,그것을 본 적이 없는 자들의 말을 들은 자들이 묘사한 사건이다.
(E. 허버드/ 경구집)
인류 앞에 놓여진 문제는 하느님이 이 세상을 당신의 법칙에 의해서 통치하실 것인가, 아니면 성직자와 왕들이 가공의 기적에 의해서 지배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T. 제퍼슨)
인간이란 기적 없이는 살 수 없소. 그래서 그들은 멋대로 기적을 만들어 내고 마침내는기도사(祈道師)의 기적이나 무당의 요술까지도 믿게 되는 거요.
(F. M. 도스토예프스키/카라마조프가의 형제)
기적이 없었더라면, 예수를 믿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았으련만.
(파스칼/ 명상록)
기도하는 사람은 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구한다. 그는 "위대하신 하느님, 둘에 둘은 넷이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
(I.S. 투르게네프/ 기도자)
기적은 신앙의 자식이다.
(J.W. 괴테/ 파우스트)
기적에 의해서 사람을 개종케 하려는 것은 영혼에 대한 모독이다.
(R. W. 에머슨)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부활의 시범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구상/ 말씀의 실상)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들려진 당신의 지팡이 통해/ 민족을 구원한 수많은 기적을 베푸시어/ 강퍅한 바로의 마음도 꺾으시고 권위도 치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을 깨뜨려 생수를 내시며/ 당신의 영광 온전히 나타내셨도다.
(김성영/ 하나님의 지팡이)
한 사람 있어 이상한 일을 하신다/ 걸어가시며 만지어지는 것은 생기가 돌고/ 들풀과 하늘의 새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이른다.
(버게스/ 한 사람 있어)
나를 위해 기적은 베풀지 마십시오/ 세대에서 세대에 걸쳐/ 점점 분명해지는/ 당신의 법칙을 바르게 따를 수 있도록 하십시오.
(릴케/ 당신을 구하는 자는 모두)
당신이 살아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 해마다 기적의/ 증거되고 싶습니다.
(유안진/ 부활송)
나는/ 그리스도의 기적을 모두 시로 노래하고 싶다.
(야기 쥬우기치/ 소원)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자를 도우사/ 새 일을/ 행하시고/ 그 이적 보이시니/ 성도들/증거하고/ 다함께 찬송하세
(홍안의/ 믿는 자의 하나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어도/ 여기 있다 제 있다 믿지 말아라/ 천등 번개 동 서편 번쩍임 같이/ 하늘 인자 나타남/ 그러하리라.
(홍안의/ 세상 끝날에)
에바다 하시니/ 벙어리도 말을 하고/ 귀머거리도 말을 듣는다// 하늘도 열리고 땅도 열리니/ 셀 수 있나 보라/ 하늘의 별과 땅의 모래알./ 그때 갈리리 호수에 얼비치던/ 신천신지에는/ 지금도 바람소리 들릴까/ 새 소리 들릴까// 언어와 언어도 없이/ 어떤 거리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말하는/ 듣는 귀도 귀하고/ 노래한 입도 귀하고‥‥//아---/ 에바다 하시니/ 소리로 보는 천국의 빛이여.
(최규철/ 에바다)
내가 당신의 자녀 가 되는 것은/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기적입니다/ 남루한 육질의 장막을 벗고/ 방금 돋아나는 투명한 발아/ 초록의 강가에 빛나는/ 정녕 눈물겨운 기적입니다.
(홍문표/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모두를 내어 주고/ 내 미는 손마다 듬북 듬북 집어 주어/ 이제는 벌거벗은 몸/ 기적도 사라지고 능력도 떠나/ 속절없이 부는 바람에/ 머리칼만 휘날리니/ 남은 자 하나 없구나
(서덕석/ 십자가에 매달린 채 잊혀진 예수 아래서)
아, 주님이 은밀히 주시는/사랑과 평화에/ 눈물젖은 내 가슴이 고요히 입맞추는 순간이라고!/ 그것은 놀라운 기적이라고// 나는 그대에게/ 진실로 진실로 증거하노니
(배경란/ 입맞춤)
으스름을 타고/바다에 서 있는 사람//뽀글뽀글 물방을 이는 곳에/ 성령이 내리고 있네. //또 무슨 기적을/ 나타낼 것인가.// 물에 젖은 몸으로/ 허리를 굽히네.// 말씀 한 마디로/ 천지가 뒤바꿔지고/ 바람이 잔잔하이.// 때로는 어둔 세상이 되고/ 때로는 밝은 세상이 되고‥‥‥
(이성교/ 그 사람 3)
갈릴리 출신의 초라한 사나이를/ 누가 메시아라고 환호하며 뒤따라 다녔는가/ 목숨마저 그에게 맡기겠다고 큰 소리치며/ 누가 벼르고 별러 왔는가/믿기지 않는 기적을 보며/감격에 겨워 몸을 떨던 자가 누구던가.
(서덕석/ 소리가 이긴지라)
여자는 얼마나 번민했을까/ 괴로워 했을까/ 번민한 끝의 끝/ 괴로워한 끝의 끝/ 찾아낸 한 광명에 가슴 설레며/ 일사불란하게 무리속에 끼어 들어/ 예수를 찾았다/ 그리고/ 뒤에서 그의 옷을 만졌다/ 옷에 손대기만 해도 고쳐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예수는 곧 자기에게 힘이 빠진 것을 느끼고/ 무리들을 돌아보며/ "내 옷을 만진 것이 누구냐"고 하였다/ 여자는 피가 멎고 병이 나은 것을 느꼈기 때문에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두려워 떨며 앞으로 나와/그 앞에 엎드려 모는 것을 사실대로 아뢰었다/ 예수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였다. //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 안심하고 가라.// 아주 나아 건강하여라"/ 여자는 그 순간 고뇌의 어두움에서/ 기쁨의 빛 속에 놓이게 되었다/ 손장난이 아니었다/ 모두가 강한 힘으로 이루어진 사실로서/ 공기조차 팽팽하게 퍼져 있었다.
(토우 가즈코/ 혈루증의 여인)
술
예수가/ 살짝 손을 대니까/ 물이 변하여 술이 되었다/ 그리고 잔치 자리가 흥겨워졌다.
눈
소경의 눈에 손을 대면서/ 그리스도가/ 열리라고 하니까/ 즉시 눈을 뜨게 되었다
손
손이 말라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로 하여금 만지게 하고/ 자 나았느니라고 말씀하게 하시자/ 즉시 손이 잘 움직이게 되었다
기적
문둥병 들린 사나이가/ 그리스도에게 와 경배하고 있다/ 선생님/ 당신이 고쳐 주겠다고 생각만 하시면/ 내 병은 즉시 낫게 됩니다/선생님 고쳐 주십시오/ 경배하오니 선생님 고쳐 주십시오/ 그리스도는 슬픈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그 사나이의 몸뚱이를 만지며/ 자 깨끗해 져라/ 하고 말씀하시자/ 어느 새 문둥병은 나았다
변모
어느 날/ 산 위에서 그리스도는/ 그 옷이 빛나서 눈과 같이 되고/ 얼굴은 찬란하여 바라볼수 없이 되었다/그 일을 생각하며 내 가슴은 설렌다
(야기 쥬우기치/ 시 5편)
깨끗지 못한 자/ 더럽혀진 자로 치고 있는/ 한 문둥병자가 예수에게 와서 무릎 꿇고 말 했습니다/ "원하시면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는 불쌍히 여겨 손을 뻗쳐 그를 만지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문둥병은 즉시 사라지고 그는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는 그를 엄하게 경계하여 거기를 떠나게 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오직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 게 보이고, 모세가 명한 제물을 네 정결함을 위해 바쳐 사람들에게 증명하라" / 그러나 그는 가서 자기에게 생긴 일을 말했나니
(토우 가즈코/ 문둥병자를 고치심)
누구를 기다리나 눈먼 거지 바디매오/ 어둠이 드리운 여리고 성문 가에/ 무리들이 몰려 온다, 그 떠드는 소리-/ "나사렛의 예수다!"/ 폐부를 찌르는 듯 크나큰 외침 소리,/"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 그 수를 더하고/ 제각기 꾸짖는다. "조용해, 바디매오."/ 그러나 그 소리에 아랑곳없이,/ 거지의 외침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 이윽고 사람들, "안심하고 일어서게,/ 예수께서 그대를 부르신다" 전한다. // 무리들 고요히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스도는/ "그대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소경은 대답한다, "보는 것입니다. /주여, 감긴 내 눈을 뜨게 해주오."/ 예수는 대답한다. "안심하고 가라,/ 그대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니 라."// 눈이 있으면서도 어둠과 비참 속에 앉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자여,/ 이 힘찬 세 마디 말씀을 기억하여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안심하라, 일어나라./ 안심하고 가라, 그대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니라."
(롱펠로우/ 소경 바디매오)
내가 보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진실이다/ 예를 들어/ 나는 본다 다섯 개의 빵, 그 속에서 다섯 명의 착한 사람을/다섯 명의 착한 사람 속에서 5천 명 몫의 빵의 누룩을/ 내가 축복을내릴 때/ 5천 명 몫의 누룩은 그들의 내부를 채울 것이다/ 그리고 두 마리 물고기 속의 알도/ 또한 나는 안다 중풍병자 혈루증 여인 눈먼 사람/ 그들은 가야 할 곳을 잃은 것이 아니다/ 위로받고 인도되기 위하여 잃어지게 된 것이라고/ 내가 바라는 저 별빛 가득 찬 하늘 꼭대기/ 거기에 그들의 통하지 않는 감각을 통하여 인도하는 것이 내 작업이다/ 학대받는 사람들을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혀의 불과 눈의 빛으로 그들은 하늘 꼭대기를 보았다 한다// 나는 사실에 대해 흥미가 없다 진실을 말할 뿐이다. /사람의 아들 내가 진리를 전하려 하는 몸 버리는 행위를 가리켜/ 그들은 기적이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증거라 한다/ 그때 그들에게 있어서 나는 비유이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으리라/ 이 세상의 약한 자들을 위해 그럴지니라
(마쯔다 유키오/ 기적에 관하여)
그는 베다니아 마을에서 예루살렘 서울로/걸어가셨다. 그 마음속에는/ 이상한 예감과 슬픔이 감추어져 있었다. / 가시 돋힌 엉겅퀴 숲이 햇볕을 받아 시들하다. / 초가집과 가까운주막에서는 연기 한 줄기 보이지 않고,/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산들바람도 불지 않는다. /물결도 출렁이지 않고, 거울 같이 고요한 사해 바닷가 -그곳의 공기는 뜨거웠다. // 따르는 제자들과 다시금 만나시 기 위하여,/ 몇 덩어리 조각진 구름 덮인 하늘 아래의 길을,/ 그는 먼지에 쌓이며 터벅터벅 걸어가셨다. / 괴로움의 바닷가를 걸으시는 그의 마음속에는 괴롭고 괴로운 아픔이 있었다. / 깊은 생각에 젖은 마음에 외로움은 한층 깊었고,/ 사막에는 향쑥의 슬픔이 어리고 있었다. //사방 일대에는 고요가 깃들이고 있었다. / 그는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섰다. / 땅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생기를 잃고 있다. 더위, 사막, 말라 버린 샘,/ 그 위에 도마뱀, 이런 것들이/ 그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는 길가에 한 고루의 무화과나무가/ 서 있음을 보았다. 가지와 잎은 있지만, 열매는 없었다. 그는 나무를 향해 말했다. / "너는 무엇을 위해 서 있는가?/ 열매 없는 생명에 무슨 기쁨이 있을 것인가?/ 나는 굶주렸고 목이 마르다. / 그런데 네게는 열매 하나 없구나./ 네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에 언짢구나./ 내 눈에는 네가 지닌 생명이,/ 얼마나 공허하게, 또 얼마나 무의미하게 비치는지./ 세상 끝날까지 너는 영원히 열매를 맺지 말라."// 저주의 말씀에 나무는 몸을 떨었다. / 흡사 피뢰침이 벼락을 맞았을 때처럼./ 무화과나무는 그 자리에서 말라 재가 되었다. // 그러나 만일 뿌리와 밑둥과, 가지와 잎사귀가,/ 선택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때에,/ 자연의 법칙이 그를 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기적은 하나님의 표지요, 그의 행위이시다. / 지금 이 혼란한 시대에,/ 예지할 수 없는 그 목소리의 방문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리들은/ 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파스테르타크/ 기적)
설 교 노 트
너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을 보라
출14:10-31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 도중 많은 원망과 불평을 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홍해 앞에서의 불평인데 모세에게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애굽에서 죽어 거기서 장사되게 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광야에서 죽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보라는 말로 그들을 달래 놓았습니다.
1. 싸우시는 일을 보라.
본문 14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한 말입니까. 애굽의 군사와 아니 바로와 싸울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애굽인들은 군사와 무기가 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런 무기도 없고 훈련된 병사도 없어서 전투불능 상태입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싸워주시겠다는 희소식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와 같이 싸우시는 모습을 보리라고 말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내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118:6-7)"고 하였습니다.
2. 홍해 가르시는 일을 보라.
본문 21전에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능히 해내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홍해에 빠져 죽느냐 아니면 애굽 군사들에게 잡혀죽느냐 진퇴양난인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이적을 행하셔서 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본 것입니다. 그 어찌 놀랍지 아니하며 감사하지 아니하겠습니까?
3. 애굽인들이 죽는 것을 보라.
본문 26-28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덮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좇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세 등등하여 천하를 호령할 것같이 안하무인격으로 기고만장하던 바로의 군사들은 보기 좋게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광경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결론
본문 30-31절에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로 신이 되게 하였다
출7:1-18
서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더욱 강한 용기를 주시면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바로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로 부각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주의 종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사람들로부터 신과 같이 인정을 받을 때가 있게 하십니다.
1. 권위 있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로 대담하게 말하여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2. 이적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본문 9-12절에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명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가져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된지라 바로도 박사와 박수를 부르매 이 그 애굽 술객들도 그 술법으로 그와 같이 행하되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적을 주시되 마귀의 능력보다는 더 강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신과 같은 존재로 나타나게 하시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놓고 이적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자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6-18절에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왕에게 보내어 이르시되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나를 섬길 것이라 하였으나 이제까지 네게 듣지 아니 하도다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인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하수를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하수의 고기가 죽고 그 물에서는 악취가 나니라 애굽 사람들이 그 물 마시기를 싫어하리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자로서 담대하게 바로에게 고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 내라는 것입니다. 바로에게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말입니다. 그래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모세를 신과 같이 대우를 받게 하신 것은 자기의 욕구 불만을 충족시키라고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예에서 해방시켜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에게 이와 같이 은혜를 베푸셨다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이신 줄 알게 하시려고
신29:5-6
서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사십 년간 생활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이적으로 먹이시고 보호하심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려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1. 훈련을 받게 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애굽이 죄악 세상이라고 한다면 죄악 세상에서 구원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천국을 향하여 가는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삶의 터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며 또한 천국가는 성도들의 훈련장이기도 합니다. 광야의 훈련 여하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갈렙처럼 가나안에 들어가고 불평이나 하고 원망이나 하면서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낙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광야의 훈련장을 두신 것입니다.
2. 보호하셨습니다.
본문 5절에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심지어는 발이 부를지 아니 하였다(느9:21)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고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굶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이요, 애굽의 군대에게 당하지 아니한 것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때문입니다.
3.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본문 5-6절에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적은 하나님께서만 행하실 수 있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심을 나타내려고 하신 이적인 것입니다. 홍해를 육지같이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너게 하시고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이 솟게 하시며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심도 모두가 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적은 인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적을 보여주셔서 충분히 전능하신 여호와임을 입증시켰으나 이들은 믿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시험하는 일들을 계속하였습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살아계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는 자를 통해 일어나는 이적
눅7:11-17
서론
여기 본문의 사건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독특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는 없으니 믿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기자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모두 기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에만 있는 내용이 다른 복음서에 없어도 믿을 수 있는 사건입니다.
1. 절대자이신 예수님의 권능
비평가들은 여기의 청년이 기절했었다가 깨어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비와 절대자이신 예수님의 권능을 믿지 않는 데서 하는 말이니 문제삼을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여기의 사건은 허구적인 문장이 한 곳에도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역사적 실재 인물이었으며, 나인이란 성도 위치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빈손이라는 학자가 가버나움에서 하룻길쯤 되는 헐몬산 기슭에서 나인이란 작은 동리를 발견했는데, 지리적이며 고고학적인 증거가 두편한 것이었습니다. 11절 하반절에 보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는" 중에 된 것이니 만큼 많은 증거들을 가진 진실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17절엔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2. 죽은 자를 살리신 세 번의 이적
참고로 예수께서 죽은 자를 일으키신 기사는 세 번 있었습니다. 회당장인 야이로의 딸을살리신 일과, 여기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과, 나사로를 살리신 일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죽은 뒤 즉시 살렸으며, 두 번째는 장례식 도중에 살렸으며, 세 번째는 죽은 지사흘 만에 살리셨습니다. 또 첫 번째는 죽은 자의 아버지의 요청으로, 두 번째는 어머니를 위해, 세 번째는 그 자매들을 위해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를 살리신 동기는 죽음에 처한 인생의 슬픈 문제에서 느낀 동정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이적을 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일이 없었지만 과부의 지극한 슬픔과 쓰라림에서 우러나오는 말없는 애원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었습니다. 외아들을 잃어버린 외로운 어머니의 창자를 끊는 듯한 통곡의 눈물에 감격하시고 깊은 동정심이 생겨 "울지 말라"하시고,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일어나라"하시어 살려 주신 것이었습니다.
3. 믿음에 관계치 않은 이적
이 사건에서 믿음 있는 자에게만 이적을 행하심이 아니라 신앙의 유무는 불문에 부치고 무조건 불쌍히 여기심으로 하시는 이적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의 과부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살아난 다음에는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적이 나타나기 전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답답한 일이 있거든 크게 울부짖어야 합니다.
믿음 없이 울부짖어도 불쌍히 보사 이적을 베풀어 주시겠거늘, 하물며 믿음으로 울부짖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죽은 청년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결론
이처럼 오늘의 청소년들도 인력으로 영적 소생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물을 보시고 주가 긍휼히 여겨 권능을 나타내셨듯이, 교회는 어른들이 눈물이 있어야 주가 불쌍히 여겨 부흥케 하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인 내
성 경 활 용
I. 하나님의 인내
1. 하나님의 인내의 특징
(1) 노하기를 더디하심
(출34: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2) 뜻을 돌이키심
(욘4:2)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2. 왜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가?
(1)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벧후3:15)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2) 회개케 하시려고
(롬2:4)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3)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시려고
(롬3:25)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II . 사람의 인내
1. 근원되시는 이는 누구신가?
(1) 하나님이시다.
(롬15:5)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2) 그리스도이시다.
(살후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 어디에 인내가 있는가?
(1) 좋은 마음에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2) 소망에
(롬8:25)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3) 환난에
(계13:10)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4) 믿음의 시련에
(약1:3)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3. 언제 인내가 필요한가?
(1) 환난의 때에
(롬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살후1:4)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
이라
(2) 선을 행할 때에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3)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할 때에
(히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4)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킬 때에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4. 무엇에 인내해야 하는가?
(1) 말씀 듣는 일에
(계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 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2) 환난에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3)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에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 그리스도의 인내에
(살후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인내한 결과는 무엇인가?
(1) 결실하게 된다.
(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2) 영혼을 얻는다.
(눅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3) 연단을 이룬다.
(롬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4) 소망을 가진다.
(롬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약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관련원어풀이
1. uJpomonhv 후포모네
(1) 견고, 불변, 견인.
(롬5:3, 히10:36)
(2) 인내, 대망.
(살후3:5, 계1:9)
(3) 고통을 견딤, 인고.
(고후1:6)
2. uJpomevnw 후포메노-
(1) 남다, 뒤에 처지다.
(눅2:43, 행17:14)
(2) 머물다, 서있다, 견디어 내다.
(마10:22, 롬12:12)
(3) 인내하다, 지속하다.
(고전13:7, 히10:32)
설교예화자료
성소(聖召)
겨울, 추운 날 새벽 세 시경에 선교사 선발을 위한 면접시험이 있었습니다. 시험에 응하기위해 선교사 지망생들이 모여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험을 보기 위해 오전 여덟시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야 감독이 나타나
"자, 시험을 시작합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빵집이란 뜻의 단어를 말해보시오."하였습니다. 젊은 청년은
"Baken"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좋습니다. "하며
"2의 2배는 얼마이지요."라고 물었습니다.
"4입니다. "라고 지원자가 말하자
"좋습니다. 합격입니다. " 하였습니다.
감독관은 그렇게 쉬운 문제를 낸 그 이유를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로 극기를 시험하였습니다. 추위에
새벽 세 시에서 여덟 시까지 한마디 불평없이 기다렸습니다. 둘째로 시간을 엄수하는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셋째는 인내심을 시험하였습니다. 다섯 시간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넷째는 나는 그의 성질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는 아무런 화법의 표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의 게으름조차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섯째 나는 그의 인간성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린 아이도 대답할 수 있는 유치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거부 반응이나, 이상한 생각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필요한 사람이며 우리가 필요한 훌륭한 선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기다려 주신 주님
눈도, 귀도, 입도 없는 나// 절룩거리는 나 꿈틀거리는 나 이제는 눈물밖에 없는 나// 지렁이가 되기 위해 이십팔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야곱을 이기기 위해 야곱의 환난뼈를 꺾으서야 했던 주님, 그 주님은 오늘의 나를 위하여 지난 내 삶의 마디마디를 꺾어 놓으셨습니다. 야곱처럼 승산이 없는 주님과의 싸움을, 그 힘 겨루는 씨름을 어느덧 이십여 년 동안이나 나는 해 왔던 것입니다. 나는 단지 오기였지만 주님은 그 이상의 인내로 늘 나를 기다려 주셨던 것입니다. 나를 위한 주님의 그 기다림과 오래 참으심을 생각하면 오히려 내 눈은 하염없는 눈물 단지가 되고 맙니다.
인내의 기도
약 50년 전에 주님의 충실한 종으로 널리 알려진 조지 뮐러는 자신과 매우 친한 친구 5명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5년 후에 한 명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10년 후에 나머지 중 두 명이 주님 안에서 마음에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는 25년을 기도하였으며 25년 후에 네 번째 친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죽기 바로 직전까지 그는 마지막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그가 죽는 지 몇달 후에 이 마지막 친구는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친구를 위해 뮐러 씨는 거의 52년 간을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뮐러 씨의 끈질긴 기도의 정열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던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그대 마음속 깊이 인내를 심어라.그 뿌리는 써도 그 열매는 달다.
(H. 오스틴)
어떤 기술자든 추위 더위, 배고픔, 목마름에 못이기고 불쾌한 일에 참고 견디는 힘이 없는 사람은 결코 뛰어난 명성을 올릴 수는 없다.
(M. K. 간디)
인내란 천재의 필요 요소다.
(B. 디즈레일리)
신에게 지팡이로 맞아도 그걸 견디어 내는 사람에게 명예가 돌아간다.
(J. B. P. 몰리에르)
인내와 신앙은 산이라도 움직인다.
(W. W. 벤)
인내는 희망을 갖기 위한 기술이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어떠한 일이든지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단행할 수 있다.
(L. C. 보브나르그)
인내는 인간의 제 2의 용기이다.
(안토니오 드 소리스/ 멕시코 정복사)
신은 인내심 강한 자와 함께 계시다.
(코란)
인내는 만족의 열쇠이다.
(마호메트)
정신이 늘 육체의 요구를 이겨 나가야 한다. 많이 참을수록 그대에게 덕이 있을 것이다. 천재라는 것은 보통 이상의 참을성을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G. L. L. 뷔퐁)
만약 우리들이 오직 참고 견디려고 노력만 한다면, 신은 많은 힘을 우리에게 내려 주는 짓이다.
(H. C. 안데르센)
토지를 경작하는 사란 산에 오르는 사람, 새 기계를 발명하는 사란 시인, 과학자, 기술자, 정치가 등 이런 사람들이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내와 지구력으로 연구를 쌓아 힘을 합쳐 성대한 문화를 펼친 것이다.
(S. 스마일스)
인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악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B.A.W.러셀)
슬픔과 침묵은 강건하고, 꾹 참는 인내는 하느님과 같다.
(H.W. 롱펠로우/ 에반젤린)
좀더 기다려 주게/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기다려 주게/ 시간은 아직 타박걸음인 걸 어쩌나/ 애꾸눈인 걸 어쩌나
(이규호/ 시간)
인내는 으뜸가는 성품이고, 인내력은 위대한 모든 사람의 정열이었다.
(J.R. 로얼/ 콜럼버스)
인내력은 고통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한용운/ 님께서 침묵하지 아니하시면)
땀 절은 얼굴들을 붉은 횃불이 지나간 다음/산정(山庭)에 서리 같은 고요가 깃들인 다음/돌 밭에 괴로움을 겪고 난 다음/외치는 소리 아우성 소리/ 옥(獄)과 궁궐과 먼 산을 넘어서/울려오는 봄 천둥 소리/ 살았던 그분은 이미 죽었고/ 살았던 우리들은 이제 죽어 간다/가까스로 참아 가면서
(T.S. 엘리엇/ 雷語)
보라,우리는 모든 것에서 살아 남는다-굶주림과 목마름과/ 사별과 쓰라림과 ;모든 비통과 참혹한 일과,/ 모든 비애와 슬픔과 ; 인생은 최악의 타격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입힌다 -그러나 우린 죽을 수는 없다/ 병에 시달리고 고달프고 기진하고 지쳤을지라도-/ 보라, 우리는 모든 것을 견디어 냈지 않은가!
(알랭/ 인내)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부디 긋지 말고 촌음(寸陰)을 아껴 쓰라/ 가다가 중지 곳 하면 아니 간만 못하리라.
(김천택)
남이 해(害)할지라도 나는 아니 겨루리라/참으면 덕(德)이요 겨루면 같으리니/ 굽음이 제게 있거니 겨룰 줄이 있으랴.
(이정진)
설 교 노 트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출14:14
서론
출애굽은 단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중 안에 나타난 홍해 그리고 뒤에는 애굽의추격병이 있었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아우성치는 무리에게 모세는 외치기를 "너희는 두려워 말과 가만히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1. 과거를 반성하라는 뜻입니다.
열 가지 재앙을 하나님께서 내리셨을 때 이스라엘인에게는 그 재난이 없고 오직 애굽 사람에게만 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유독 이스라엘 인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하나님께서 이제 새삼스럽게 홍해를 바닷가에서 전멸하도록 방치하시겠습니까? 과거에 이미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른다면 지금의 난국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과거를 생각하고 반성하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해서는 조금도 감사하지 않고, 또 과거 자기죄악에 대해서 전혀 반성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현실에서 일어난 일만을 가지고 불평하고 불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거의 우리 행위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인 것입니다.
2. 현재의 난관에 낙심치 말라는 뜻입니다.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곳까지 끌고 나와 죽이려는가? "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자신들을 해방시킨 모세에게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신들은 낙심하였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 것은 아직은 최후는 아니니까 구출의 여유가 있음을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서 스스로 낙심하는 것은 힘을 더 쓰지 못하는 결과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다고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만사에 다 때가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붙잡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가 되시면 일하십니다.
3. 장래를 전적으로 의탁하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난 때라도 두려워말고 믿음을 굳게 잡아 질서를 유지하며 전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하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죽으나 사나 만사를 하나님께 위탁한다는 것은 곧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난국에 처하였을 때 우리의 힘을 의지한다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시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을 때 안심할 수 있습니다.
결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인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갈랐고, 홍해는 육지같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던 애굽의 마병들은 홍해가 다시 합해지는 바람에 몰사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조급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더 참으실 수 없으므로
렘44:22
서론
본문에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중한 소위를 더 참으실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거민이 없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랑하시는 자들에 대해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참으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참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성품은 어디까지나 관용성이 풍부하셔서 매사에 즉각적으로 처리하시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십니다. 가한 인내로서 참으시고 계십니다. 민14:27에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무리를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하고 하셨으며, 신10:10에 보면 "내가 처음과 같이 사십 주야를 산에 유하였고 그때에도 여호와께서 내 말을 들으사 너를 참아 멸하지 아니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니느웨성의 멸망을 선포하시고서도 요나를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시고 또 회개할 때 아끼사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2. 참으실 수 없으실 때에 이릅니다.
계획대로 시행하십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의 죄가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창6:5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 라고 하여 드디어 홍수의 심판을 단행하시게 되었습니다. "관영"이란 말은 "가득하게 차다"는 뜻이니 만도가 되어 더할 나위가 없음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으니 끝장을 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소돔 ·고모라의 죄악이 꽉 차서 결국 유황불로 멸망시키었으니 참으실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결단을 내리십니다.
3. 참지 못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유다의 악행과 가증한 소위는 하나님을 버리고 미련하게도 이방 우상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이 잘못된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일찍부터 율법을 선포하시고 때를 따라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적으로 재앙을 내려서 어서 속히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도록 예고적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끝내 배신하고, 계속하여 들지 아니하므로 최후에는 무서운 심판이 내려지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결론
우리는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더 이상 진노케 하실 수 없습니다.
빨리 그 뜻을 헤아려 순복하고 살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인간의 조급함
창16:1-6
서론
인간은 언제나 조공해서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인내할 줄 알면 실수하는 일이 훨씬 적을 것입니다.
사라와 아브람도 조급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초조한 나머지 신앙과 관계없이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1. 십 년 기다리고 초조해 졌습니다.
본문 3절에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 년 후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12:7)"고 하신 지도 벌써십 년이 지났는데도 자손이 없으니 인간적인 생각에서는 초조할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변치 않는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십년을 잘 참고 기다려왔던 그들이 좀더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어리석음에 빠져서 실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2. 쉽게 속단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말미 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람의 아내가 신앙으로 살아오다가 불신앙으로 떨어져 시험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의 여종으로 더불어 후사를 보게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합니다. 이는 인간의 조급한 성격 때문이지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닌 것입니다.
3. 아브람은 동조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기도도 해 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도 아니하고 하갈과 동참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였다(4절)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은 두 번째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아내를 누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아내의 말을 듣고 첩을 얻은 것입니다. 이는 불신앙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일부일처 제도를 파괴하는 죄도 범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아니하면 한시라도 제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아내로 말미암아 시험을 당하고 인위적인 간교한 방법에 불신앙적인 태도로 시험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결론
인간은 항상 연약해서 쓰러질 때가 많은 것입니다. 특히 조급함으로 참지 못하고 짓는 죄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복받는 지름길임을 명시해야 할 것입니다.
인 생
성 경 활 용
1. 인생이 담당할 책임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일을 찬송하는 일이다.
(욥36:24) 너는 하나님이 하신 일 찬송하기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 일을 노래하였느니라
(2) 의로 인생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다
(욥35:8)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3) 주의 위엄의 영광을 알리는 일이다.
(시145:12) 주의 능하신 일과 주의 나라의 위엄의 영광을 인생에게 알게 하리이다
(4) 경건하고 충실하게 행하는 일이다.
(시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5)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는 일이다.
(시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2. 하나님께서 인생과 다른 점
(1) 식언치 않으심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2) 날과 해
(욥10:5)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3) 인생의 마음을 아심
(왕상8:39) 그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4)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심
(시90: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5) 복을 주심
(사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이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6)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심
(시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7) 땅을 주심
(시115:16)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3. 세상적인 환경은 어떠한가?
(1) 전쟁이 있다.
(욥7:1)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2) 고난을 위해 났다.
(욥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으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3) 구더기 같다.
(욥25: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4) 허무하다.
(시89:47)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5) 티끌로 돌아간다.
(시90: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6) 애쓰게 하신다.
(전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4. 인생의 연약함
(1) 풀 같다.
(시103:15)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2) 호흡이 코에 있다.
(사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3)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다.
(렘10:23)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4) 재앙의 날에 걸린다.
(전9:12)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vyai 이쉬
(1) 남자, 사람.
(창4:1, 삼상1:11)
(2) 인간, 사람.
(창32:29, 사7:13)
(3) 친구, 추종자, 군인.
(삼상23:3, 24:5)
(4) 어떤 사람.
(창13:16, 아8:7)
(5) 사람, 남자.
(삼상9:9)
(6) 사람의 아들들.
(시4:3)
2. rb,G,< 게베르
(1) 남자.
(시52:9, 94:12)
(2) 남편.
(잠6:34)
(3) 남자의 힘.
(욥38:3, 사22:17)
(4) 남자, 사람.
(욥4:17, 14:10)
(5) 각자, 매사람.
(애3:29, 욜2:8)
3. yj' 하이
(1) 살아 있는.
(창3:20, 43:7)
(2) 생생한, 활기 있는.
(삼하23:20)
(3) 소생하는.
(창18:10, 왕하4:16)
(4) 생생한, 신선한.
(시58:10)
(5) 삶, 생계, 생명.
(잠27:27)
(6) 원기, 환기.
(잠3:22, 4:22)
4. ![' 암-
(1) 백성.
(신7:6, 시33:10)
(2) 단순한 종족, 족속.
(창49:10, 사3:13)
(3) 시민, 평민, 서민.
(왕상12:16)
(4) 모든 인류.
(욥12:2, 사40:7)
(5) 무리, 떼,
(시74:14, 잠30:25)
설교예화자료
인생의 비유
옛날 동양의 우화에, 풀밭에서 성이 나서 날뛰는 맹수에게 습격을 받은 길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맹수에게 쫓기던 길손은 물이 말라버린 우물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우물속에는 그를 한 입에 집어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는 한 마리의 용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 불행한 길손은 성을 내어 날뛰는 맹수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싶지 않으므로, 밖으로 나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밑으로 내려가 용에게 잡혀 먹힐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우물 속 중간쯤의 틈바구니에 난 나뭇가지를 붙들고 거기에 몸을 간신히 지탱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힘이 빠져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물의 아래 위에서 자기를 노리고 있는 멸망에 몸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나뭇가지를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검고 흰 쥐 두 마리가 살금살금 기어나와 그가 매달린 나뭇가지의 주위를 잘근잘근 쏠기 시작했습니다. 머지 않아 나뭇가지는 지끈하고 부러져 그는 용의 입으로 떨어져 버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길손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멸망이 피하기 어려운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 매달려 있는 사이에 자기 주위를 돌아보고 나뭇잎에 꿀이 묻어 있는 것을 보자, 곧 그것을 혀끝으로 슬슬 핥는 것이었습니다.
인간 상실의 세대
"현대인은 인간을 섬기게 하기 위하여 기술을 발달시켰으나 그 기술의 아들인 기계에 노예가 되었다. "고 마틴 부버는 현대의 인간상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물적풍요를 제 1의 적으로 삼아왔으나 이젠 그 부의 불균형에서 익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 소외를 느끼며 군중 속에서 고독하고, 부유 속에서 썩고, 온갖 인간사에 권태와 무의미를 느끼고, 생애의 절망과 허무를 영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사실된 인간을 찾아 회복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하늘의영광이 가시덤불에서 타게"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땅으로,신이 인간으로,성령이 육신이 되고, 신성한 것이 세속적 역사로 와서, 거룩한 분이 죄인의 친구와 대속자가 되시려고 이 땅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스스로 몸을 제물로 바치신 것입니다.
관점의 차이
어떤 곳에 아들 둘을 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우산 장사이고 작은 아들은 짚신 장사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두 아들의 장사 때문에 매일매일을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날이 개어 햇볕이 쬐는 날이면 큰 아들의 장사가 안될 것을 걱정해야 했고, 그렇다고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라면 작은 아들의 장사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해가 떠도 걱정, 날이 흐려도 걱정이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던 한 동네 청년이 할머니를 위로하며 근심과 걱정에서 헤어날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할머니, 그렇게 나쁜 것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좀더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여, 만일 해가 뜨면 작은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기뻐하시고 비가 오면 큰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기뻐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비가 와도 걱정이 없고 해가 떠도 걱정이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똑같은 현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전화위복
언뜻 보기에 잘못 되는 일 같던 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이 되는 수도 있고, 또 잘되는 줄로알던 것이 갑자기 재앙으로 변하는 수도 있습니다. 한자에서는 이런 것을 가리켜 새옹득마(塞翁得馬)라고 말합니다. 원래 이 문구는 중국 한(漢)시대에 회남자(推南子)의 '인간훈'이란 옛글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엔 특히 북방 흉노의 난이 심하였는데 어느 날 변경 가까이에 사는 한 노인이 말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호지(胡地)로 넘어가 버린것입니다.
그 당시엔 두 나라간의 관계와 교통이 두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나 짐승이 일단 국경을 넘게 되면 다시 찾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이웃 사람들이 노인을 찾아와 말을 잃은 불행에 대해 위문의 뜻을 표했습니다. 이때 노인은 "어찌 복이 아닌지 알겠소?"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나갔던 말이 돌아오면서 호지에서 좋은 준마 새끼를 하나 더 끌고 왔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
"영감님 말씀대로 정말 복이 되었습니다. "라고 축하하자 노인은,
"어찌 화가 아닌지 알겠소?"하고 대답했습니다.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 새끼를 타기 좋아해서 날마다 타고 다니다가 하루는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찾아와,
"안됐습니다. 아드님의 다리가 부러져서‥‥‥‥하고 위로하니까, 이번엔 노인이,
"어찌 복이 아닌지 알겠소?"
하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에 흉노가 침범하여 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지방의 청년들이 모두 전쟁에 끌려가 대부분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의 아들만은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진 덕분에 전쟁에 끌려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행이 다행으로 변한 경우이며, 이런 것을 가리켜 전화위복이라고 말합니다.
혀
장사꾼이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비결을 살 사람 없습니까? "라고 큰 소리를 외치고 다녔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인생의 비결을 사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모두 모여들어 서로, "내게 팔아 달라!"고 재촉하자 장사꾼은,
"인생을 참답게 산다는 비결이란 자기 혀를 주의해서 쓰는 것이오."라고 말했습니다.
랍비가 우는 이유
어떤 매우 뛰어난 랍비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숭배받고, 행동도 고결하고, 친절하며, 자애가 깊었습니다. 심성이 자상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대단히 깊이 공경하고 있었습니다.
개미 한 마리 밟지 않도록 걸었고, 하나님이 만든 물건을 깨뜨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자들로부터도 물론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팔십 세가 지난 어느날, 그의 육체가 별안간 쇠퇴해져 가는 것이 보이고 갑자기 나이를 먹어 버렸습니다. 물론 그도 그것을 깨닫고, 자기에게 죽을 때가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높은 제자가 머리맡에 모였을 때, 그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왜 우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공부할 것을 한시도 잊은 날이 있었습니까? 무심히 가르친 적이 하루라도 있었습니까? 자선을 베풀지 않았던 날이 하루라도 있었습니까? 선생은 이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깊이 공경하고 있었던 것도 당신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정치와 같은 더러운 세계에는 한번이라도 발을 담근 일도 없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이 울 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랍비는,
"그러기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죽는 순간에 자신에게, 너는 공부했는가? 너는 하나님에게 기도했는가? 너는 자선을 베풀었는가? 너는 올바른 행들을 해왔는가? 라고 물으면, 전부 '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인간 생활에 어울려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밖에는 대답 못한다. 그래서 나는 울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일곱 가지의 변화
탈무드에 의하면, 남자의 생애는 7개의 단계로 나누어집니다.
1. 한 살은 임금님:모두가 모여서 왕을 받들듯이 달래거나 어르거나 해 준다.
2. 두 살은 돼지:흙탕 속에 뛰어다닌다.
3. 열 살은 양:웃거나, 떠들거나, 뛰어다닌다.
4. 열여덟 살은 말:크게 자라서 자기의 힘을 보이고 싶어한다.
5. 결혼하면 당나귀: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6. 중년은 개: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람들의 호의를 구걸하지 않으면 안 된다.
7. 노년은 원숭이:어린이처럼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다.
어록·시·묘사
인생은 죽음에 항거하는 모든 기능의 총화이다.
(W. 워즈워드/ 인생과 죽음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
인생은 사망이요, 인생은 고독이다. 죽음은 우리를 큰 다수에 합쳐준다.
(E. 영/ 복수)
인생은 본국으로 귀항하는 항해이다.
(H. 멜빌, 쿠르노스/ 현대 플루타르크)
인생은 걸어가는 것이지 나는 것도 아니고 굴러 가는 것도 아니다.
(김성식/ 그 말이 맘에 들었다)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무대 위에서 임종의 시간을 우쭐거리다 애태우는 가련한 연기자, 그리고 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W. 셰익스피어/ 맥베드)
인간의 생활은, 하나의 거대하고 모호한, 미완성인 걸작에 붙이는 각주의 연속에 지나지 않다.
(V. 나보코프/ 어스레한 불빛)
한 조각의 빵에 잠자는 한 구석, 웃음 1분에 울음 1시간, 기쁨 1줌에 고통 1짐 그리고 웃음은 없고 한탄만 곱으로 오는 것이 인생이다.
(P.L. 던버/ 인생)
어떤 사람이든, 가난과 사랑과 전쟁을 알기까지에는 인생의 충분한 맛을 맛보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격언이 있다.
(O. 헨리/ 도시의 소리)
인생이란 생활과 체험이지, 결코 가벼운 추상이나 기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김향석/ 일생은 속아 사는 것일까)
인생이란 만나는 것이며, 그 초대는 두 번 다시 되풀이되는 일이 없다.
(H. 카로사)
인생 그 자체는 악이 아니요, 나쁘게 사는 것이 악이다
(디오게네스)
인생은, 상대자인 자연이 인간의 카드를 다 알고 있는, 자연과 자연과의 휘스트 놀이이다.
(C. 몰리/ 불리한 조건)
인생을 대하는 가장 졸렬한 태도는 인생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T. 루스벨트)
인생의 샘(泉)은 영원을 향한 끊임없는 갈망이며, 신을 향한 동경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천성이 가지는 가장 고귀한 것이다.
(A. W. 슬레겔)
죽기가 두려워서 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H. 반 다이크)
인생이란 단지 기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며, 그 두 가지를 지양하고 종합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커다란 기쁨도 커다란 슬픔을 불러 올 것이며,또 깊은 슬픔은 깊은 기쁨으로 통하고 있다. 자기의 할 일을 발견하고 자기의 하는 일에 신념을 가진 자는 행복하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진리를 척도로 하지만,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진리보다도 그 진리를 찾기 위해서 맛본 고난에 의하여 개량되어야 한다.
(T. 칼라일)
남을 위해서 사는 인생만이 값어치 있는 인생이다.
(A. 아인슈타인)
인생은 불충분한 전제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S. 버틀러/ 비망록)
생명이란 그 실존재의 어느 두 연속된 순간들도 같은 입자들로 구성되지 않은 파동이다.
(J. 틴들/ 과학의 편린)
인생이 살 가치가 있다는 것은 전제 중에서 가장 필요한 전제이며, 만향 그것이 전제되지않는다면, 결론들 중에서 가장 불가능한 결론이다.
(G. 산타야나/ 이성의 생활)
인생은 현인에게 있어서는 꿈이며 어리석은 자에게 있어서는 게임이다. 부자에게 있어서는 희극이고 가난한 자에게 있어서는 비극이다.
(유태 격언)
인생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검역기간이다.
(아리비아 속담)
인생에 있어서도, 체스처럼 총명하게 예견한 자가 승리를 차지한다.
(J. 팩스톤)
인생이란 작문에는 페이지마다 거의 검은 테의 상사(喪事)표가 붙어 있다.
(코스만)
인생은 낯설은 땅에서의 전투이다. 그리고 뒤따르는 명성은 망각되기 쉬운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인생은 향락에서 향락으로가 아니라, 부족에서 부족으로의 과정이다.
(S. 존슨)
인생은 뒤를 향해야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앞을 향해서 살아져야 한다.
(S. 키르케고르/ 전기)
인생이란 정신의 생식작용이다.
(L.A. 포이에르바흐)
인생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P. 코르네유)
인생은 본시 선도 악도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선의 무대가 되기도 하고 악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M. E. 몽테뉴/ 수상록)
인생의 효용은 그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고그것을 사용하기에 달려 있다. 짧게 살고도 오래 산 자가 있다.
(M. E. 몽테뉴/ 수상록)
인생이란 짧은 기간의 망명이다.
(플라톤/ 아크시오고스)
인생은 윷놀이와 같은 것으로서, 열망하던 말이 안 나오더라도 우연히 나온 말을 기술로써 수정한다면 좋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인생은 근본적으로는 신앙과 인내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가지를 가진 자는 놀라운 목표에 도달한다.
(타 펠)
인생은 있음직한 것(개연성)의 학교이다.
(W. 배저트/ 문학연구)
인생을 말하는 말치고, 어울리지 않는 소리는 없다.
(S.T. 코울리지/ 내 감방 라임나무 침실)
무익한 인생은 미리 찾아가는 죽음과 다를 바 없다.
(J.W. 괴테/ 이피게니에)
인생은 한 편의 시(詩)다. 생물학자 입장에서 볼 때 유년 시대, 성년 시대, 노년 시대 삼자를 갖추고 있는 이 인생이 아름다운 배치가 아니라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에 아침, 낮, 일몰이 있고 일 년에 4계절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좋은 것인가.
(임어당/ 생활의 발견)
헤밍웨이는 인생을 투우(鬪牛)에다 비유했다. "팜플로나"의 넓은 광장-돌진하는 황우 앞에서 투우사는 붉은 "물레타"를 휘두르고 있다. 스스로 위험과 죽음을 불러일으켜 황우의 뿔을 향해 접근해 가는 투우사의 자세-그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명예도 돈도 사랑도 생명까지도, 허무를 향해 도전하는 투우사에겐 관중의 박수도 필요 없다. 오직 "죽음과 대결"하는 음악 같은 순수한 영혼이 있을 뿐이다.
(이어령/ 증언하는 캘린더)
인생은 모험, 두 번 다시 고쳐서 다시 할 수 없는 내기이며, 그것은 축복을 받는 것인지 저주를 받는 것인지의 어느 한쪽이다.
(요한 바오로 2세)
인생의 거미줄은 선과 악이 엉킨 실로 된다.
(W. 셰익스피어/ 끝이 좋으면 모두 좋다)
사람의 한평생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선사품이며 뜻 있는 도전이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어떤 무엇으로도 측정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식의 질문은 무의 미하다. 아마 손익계산서를 가지고 인생을 셈하다 보면 인생이란 결국 살 만한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네가 생명을 부지하는 동안에는 힘껏 그 삶을 살라-그리하여 그 좋은 세월에 추악함이나 죽음이 너 자신은 물론 네 삶이 가 닿는 것에 찾아 들지 않도록 하라‥‥네가 생명을 부지하는 동안에는 힘껏 그 삶을 살라-그리하여 그 멋진 세월에 네가 이 세상의 비참함과 슬픔을 더하게 하지 딸고 그 무한한 기쁨과 신비와 함께 웃을 수 있도록 하라.
(W. 사로만/ 네가 생명을 부지하는 동안)
우리들이 죽지 않는 몸이라고 하면 천천히 한가한 틈을 기다렸다가 서로 복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짧다. 우리는 좀더 의의 있는 일을 뜻해야 한다.
(H. M. 몽테를랑)
인생은 설탕발림을 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삼킬 수 없는 알약이다.
(피웃치/ 존슨 전)
인생은 환상을 짜내는 베틀이다.
(V. 린지/ 중국의 나이팅게일)
인생은 어떠한 값으로도 구입될 수 없다.
(세네카/ 루킬루우스에의 서한집)
인생은 왕복 차표를 발행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 번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R. 롤랑/ 매혹되는 영혼)
인생은 짧으니, 우리와 함께 어두운 여행을 하고 있는 자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줄 시간이 별로 없다. 오오, 지체 없이 사랑하고, 서둘러 친절하라!
(아마엘/ 일기)
인생이란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가장 훌륭한 준비는 마치 미래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E. 하버드/ 페리시테 사람)
묻지 말고, 저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살고 노고하라. 모든 돌봐주어야 할 이웃을 돕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인생은 대부분이 거품이요, 시시한 것. 타인의 수고에의 감사, 자신의 용기, 이 둘만이 돌처럼 버틴다.
(A.L. 고든/ 너는 피곤한 여행자)
자기 자신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종류의. 인생이 가장행복하다.
(S. 존슨/ 작품집)
인생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고것이 살 가치가 있는가에 관련된 유일한 문제는, 그대가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O.W. 호움즈 2세/ 법조협회에서의 연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근사하게 보이는 인생을 더 이상 믿지 말며, 지나간 세월을 보충하라. 그리고 하루하루를마치 그대의 최후의 날인 것처럼 살아가라.
(W. 드러먼드/ 죽음의 최후 유언)
너의 인생의 남은 부분을, 공공 복지에 기여하지도 못할, 다른 사람에 대한 상상으로 낭비하지 말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인생이란 불충분한 전제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S. 버틀러)
인생이란 이 흥미진진한 희곡은 한없이 현명하고 선량한 작가가 쓴 것이다. 이 희곡의 주인공은 물론 우리 자신이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그 파란곡절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P. 클로델/ 지정과 명제)
영구불멸의 법이 명한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우리에게 인생의 입구는 하나뿐이지만 많은출구를 허용해 주었다는 점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오래 산다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의 소원이지만, 훌륭히 산다는 것은 소수인의 야망이다.
(J:휴즈/ 평수도사)
인생의 포기는 열등 의식 속에 가라앉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J.C. 컬훈/ 美上院에서의 연설)
인생이란, 열정으로 불태워진 하나의 거대한 뒤죽박죽의 덩어리다.
(U. 벳티/ 도망자)
믿으라, 인생은 현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두운 꿈은 아니다. 약간의 아침 비는 때때로 유쾌한 하루를 예고해 준다.
(C. 브론티/ 인생)
모든 사람의 일생은 신의 손가락으로 쓰여진 동화다.
(H.C. 안데르센/ 작품집, 서문)
인생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O.W. 호움즈 1세/ 연설집)
인생이란, 아무리 고치고 고쳐도 결코 알맞아 보이지 않는 옷이다.
(D. 머코드/ 프랜클린 씨에 反하여)
인생은 몇 번인가의 죽음과 몇 번인가의 부활과의 한 가지 계속이다.
(R. 골랑/ 장 크리스토프)
인생은 짧은 이야기와 같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이가 아니라 값어치이다.
(L.A. 세네카)
어떻게 사는가를 배우는 데는 전생애를 요한다.
(L.A. 세네카)
인생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의 희극이다.
(A. 모라비아/ 동조자)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해야 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인생은 창조이다.
(C. 베르나르)
사랑은 햇빛이요, 증오는 그늘이다. 인생은 그늘과 햇빛으로 바둑판 무늬처럼 되어 있다.
(롱펠로우/ 히아와다의 구애)
우리들은 감탄과 희망과 사랑으로 산다.
(워즈워드/ 소요편)
인간의 목적은 행동이지, 사상이 아무리 고상하다 하더라도 사상은 아니다.
(T. 칼라일/ 의복철학)
인생은 예술 이상의 예술이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인생을 조각하는 생의 예술가다. 우리 앞에는 생의 대리석이 놓여 있다. 그것은 하나의 풍성한 가능성의 세계다. 이 가능성은 성실한 빛의 생애로 아로새겨질 수도 있고 치욕의 어두운 생애로 형성되는 수도 있다. 이 가능성에다가 어떠한 내용의 현실성을 부여하느냐, 그것은 각자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다.
(안병욱/ 인생을 말한다)
청년은 무리를 이루고, 성년은 남녀의 짝을 짓고, 노년은 고독이다.
(스웨덴 속담)
인생의 아침에는 일을 하고, 낮에는 충고하며, 저녁에는 기도하라.
(헤시오도스/ 신통기)
인생은 악기와 같다. 인생을 쾌적하게 만들려면 죄었다 늦췄다 해야 한다.
(데모필르스/ 격언집)
사람은 누구나 태어났을 때는 솔직하지만 죽을 때는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다.
(L. 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음미되지 놀은 인생은 살 보람이 없다.
(소크라테스)
인생은 한 폭의 동양화와 같다. 동양화에서 우리의 상상력은 학폭 밖으로 연장되어 나간다.
(O. W. 홈스)
친구여, 모든 이론은 퇴색해도, 실제 인생의 황금 나무는 언제나 푸르름이 솟는다.
(괴테/ 파우스트)
인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인생은 가치가 "있다"고 믿으라. 그러한 그대의 믿음은 그 사실을 창조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W. 제임즈/ 믿으려는 의지: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가)
우리들이,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기 이전에, 인생은 반이 허비된다.
(G. 허버트/ 명궁)
사랑이 없는 청춘, 지혜가 없는 노령- 이것은 인생의 실패다.
(스웨덴 속담)
어디에서가 아니고, 왜와 어디로가 중대한 문제다.
(A.W. 그릴리/ 회상록)
가장 훌륭한 기술, 즉 가장 배우기 어려운 기술은 살아가는 기술이다.
(J. 메이시/ 여자들 주변)
사랑하는 사람과 순수한 양심을 가진 사람에게 인생은 달콤하고도 유쾌한 것이다.
(L. 톨스토이/ 두 기병)
인간의 일생은, 그것이 용감하게 수행된다면, 다른 어떠한 소설보다도 그 상상을 고상한 즐거움으로 만들어 줄 진정한 로맨스(소설)이다.
(에머슨/ 수필집 제 1집)
부귀(富貴)라 구(求)하지 말고 빈천(貧賤)이라 염(厭)하지 말라/ 인생(人生) 백 년이 한가(閑暇)할사 사니 이내 것이/백구(白鷗)야 날지 마라 너와 망기(忘機) 하오리라.
(권구/ 屛谷先祖內政篇)
넓으나 넓은 들에. 흐르니 물이로다/ 인생이 저렇도다 어드러로 가는 게오/ 아마도 돌아올 길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무명씨)
인생을 헤어하니 한바탕 꿈이로다/ 좋은 일 궂은 일 꿈이거니/ 두어라 꿈 같은 인생이 아니 놀고 어이리.
(주의식)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
내가 당신의/ 한 그루 나무로서/ 잎만 무성하지 않게 하시고/내 인생의 추수기에/따 담으실 열매가 풍성하게 하소서//주여, 아직은/ 내 인생에 겨울이 멀었다고/ 황충 먹은 나날을 노래하지 말게 하시고/ 당신의 묵시로 가득 찬 이 세상에/ 감격하며 살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최진연/ 이 가을에도)
당신의 신의 터전에/ 바람이 휘몰아치면/ 삶은 꽃처럼 흔들립니다.
(문정희/ 겨울나무)
함부로 던져진 육신과/ 무너져 내리는 어둠의 혼으로/ 거리의 바람돌맹이처럼/ 인생의 발바닥을 헤일 적에/ 당신이 날 찾아주신 그날은.
(김성영/ 미리암의 노래)
내, 나이, 아, 벌써, 지천명의,50,/ 쉼표 다섯 개 찍고/ 앞 · 뒤 ·를 · 둘· 러 ·본 · 다.
(김대규/ 인생 쉼표)
우주의 창조이시요/ 역사의 주관자시니/당신은 연출가/ 나는 주인공 되어/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인생극/ 갈채받게 하소서.
(정순량/ 사랑으로 답하소서)
임 그려 나는 눈물 촛(燭)불이 돋워주네/이 인생 이별 없이 한 백년 살아란들/그 뉘가 신선과 부귀 탐내일까 하노라.
(竹西/ 이별이 없어란들)
찬 자리 팔베개에 어느 잠 하마 오리/ 무심히 거울 드니 얼굴만 야웠고야/백 년을 못사는 인생 이별 더욱 설워라.
(竹西/ 이별은 왜 하고서)
갈 제는 청산이러니 올 제 보니 황산이로다/산천도 변하거든 낸들 아니 늙을소냐/ 두어라저리 될 인생이니 아니 놀고 어이리.
(무명씨)
저 산추에 풀잎은/죽었다도 살아나고/우리 부모 한 번 가면/다시 못 오는다/우리 인생 초로 인생/ 한 번 가면 못 오는다/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바늘같이 약한 마음/ 칼날 같은 남편을 만나/ 백 년 동거하였더니/ 단 백 일도 못 살리라/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제주지방 어부요)
나는 바란다. 운명이 이끄는 쪽으로,/ 마음 조용히 곧바로 인생행로를 가고 싶다고/ 투쟁도 뉘우침도 부러움도 없이,
(P. 베를렌/ 상냥한 노래)
누군가 기도하므로/ 길고 피곤한 인생길에 힘이 되고/ 누군가 기도하므로/ 무거운 짐으로못 견딜 때/ 신앙이 더욱 강하게 자라난다네
(전래시/ 누가 기도하였는가?)
그 숱한 죽음의 고비와/ 실패의 바다, 좌절의 사막을 건널 때,/ 주님께서 내 인생의 홍해를 가르시고/ 거친 행로 위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때마다 날마다 내리시며/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내 앞길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음을/ 지금 내가 확실하게 믿나이다.
(이재철/ 쿠미오리-일어나 빛을 발하라· 4)
나의 영원한 대제사장은 그 보좌에서 나의 몫을 취하시 리니/ 결코 혼자가 아닌 까닭에/ 나의 나그네 인생길에 노래를 부른다네
(존 R. 라이스/ 산속의 노래)
인생을 무엇에 비기리/ 산 오름에 비기리라/ 오르면 새 경개요/ 넘으면 새 경개라/ 험한턱 추어 오르면 더욱 큰 경개로다/ 마루턱 다 올라설 때/ 오른 고생 혜오랴.
(이광수/ 인생의 기쁨)
파리한 빛 아래/ 뻔뻔스럽고 시끄러운 인생이/ 멋모르고 달리며 춤추며 몸부림친다.
(C.P. 보들레르/ 하루의 마지막)
여러 사물 위에 펼쳐진,/ 성장하는 수레바퀴 속에서 나는 자기의 생을 살고 있다. /아마도 나는 최후의 수레바퀴를 완성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나는 그것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R.M. 릴케/ 승원생활)
사는 일에/ 한 켜씩 눈을 뜨고/ 그럭 철이 드노라면/ 세월은 그만큼 축이 나 있습니다// 언제나 절정에 사는 듯/그렇게 인생을 착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오늘 나의 모습은/ 저만치 산허리를 맴도는/ 한점 구름일 뿐입니다.
(김성영/ 당신의 종이 연)
이재 내 영혼이/ 평화가 광명으로 충만하니/ 보이지 아니하시나/ 사랑이신 당신과 함께 걷겠습니다/나의 하나님, 당신께 기대어/ 인생길은 가니 평화만이 가득합니다.
(호레이셔스 보나르/ 고백과 평화)
즐거운 날일랑 치하하고/ 여기선 싫증 내지 말기를/ 보라, 아무나 죄다 버리고 가게 마련이요/ 참으로 거기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니.
(C. 브린턴/ 세계문화사)
금빛 찬란한 불꽃으로 너는 인생을/ 둘둘 말았느니라. 마음으로 웃으면서.
(S. 판트/ 매혹하는 이)
님은 내가 죽어야 할 기회를 빼앗던 것이라고,/ 그렇게 궤변을 늘어놓을 정도로/ 자조적인 인생인 내가/ 죄를 더 이상 먹고 마시며/함부로 던져진 채 살 자격을 빼앗으시고 바로 살다가 바로 죽을 자격을 주신/ 님의 참사랑 깨달은 것은 진정 먼 후일이었습니다.
(김성영/ 바바라의 고백)
인생을 달관하는 고행자인 양/ 세상 찾아 두루 헤맨 이 몸이/ 돌아와 깨달은 건 님의 음성이/ 먼 데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
(김성영/ 이 세상 어디에도)
상기된 얼굴에 방긋 피여나는/ 아, 빨간 웃음꽃!/ 마음에 안고 가렵니다/ 인생의 먼-먼 길을.
(박장길/ 빨간 웃음꽃)
험난을 앞에 놓고,」 훌쩍 건너뛰는/ 어린 동심의 세계에서/ 인생의 길 건너뛰고 있음을.
(김창석/ 징검돌)
하나님 약속은 인생의 경주에서 겪는/ 시험들을 제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분의 충만하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 시험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라.
(노만 F. 도우티/ 이 모든 것 속에서)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로/ 내 인생의 거친 길 평탄해지고/ 점지고 힘들어 쓰러질 때도/ 도움의 손길을 얻게 됩니다.
(월리엄 G. 피셔/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
누군가 그의 마음을 정할 때,/ 그가 찾아야 할 인생의 최고 가치를/ 크리스찬의 사랑과 평화와 안식 속에서/ 이웃을 도움으로써 찾으리라 마음먹을 때,/ 그는 찾으리라 달콤한 기쁨의 극치를,
(윌터 E. 아이젠하워/ 누군가 마음을 정할 때)
님은 내 인생의 그림자 같은 것,/ 아니 내 인생의 실체 같은 것,/ 님이·내 안에 거하시기까지/ 내가 님 안에 거하시기까지/ 세상을 향하여 눈물짓던 내가/ 님을 향하여 눈물지으니/ 이 눈물 다하는 그날간지/ 나, 님이 가르쳐 주신/ 그 사랑 노래 부르겠어요.
(김성영/ 미리암의 노래 · 2)
한 사람의 인생의 평가되는 건/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보다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로./ 그가 무엇을 얻었는가보다는/ 그가 무엇을 주었는가로./ 그의 출생이 문제되지 않으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평가되는 건/ 그의 신분으로써 가 아니라/ 그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로./그리고 하나님의 맡긴 사명을/ 어떻게 완수하였는가로./ 언제나 따뜻한 위로의 말로/ 타인의 눈물을 씻어 주고/ 웃음을 선사한 자/ 인간의 아름다움은 이런 것이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평가되는 건/ 그의 교회가 무엇이기보다는/그가 주님을 진정 사랑하였는가로./ 어떤 교리를 가졌는가보다는/참으로 이웃의 진실한 벗이 되어주었는가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에 쓰인 평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도했는지 인생의 평가는 이런 것이니라.
(작자 미상/ 사람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인생의 많지 않은 시간들은/ 천천히 흘러가고/ 슬픔의 우울한 색조로 그늘을 드리웁니다/ 오! 주님의 영접이 약속되어 있나니/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J. 댄슨 스미스/ 예수님이 그의 자녀를 맞이할 때)
오늘 내 삶을 적어야 할/ 그 다음 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그 책을 던져놓은 채.// 나는 생각했습니다/오욕으로 얼룩진 나의 삶과/ 의심과 두려움으로 들끓는/그 고난의 음산한 날들을.//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고치기린 너무 늦었습니다/ 내 삶의 이야기는 불완전하고/ 근심을 두기조차 공허합니다. // ‥‥그래서 지금 내 앞에는/ 새로운 인생의 날들이 있습니다/ 내 삶의 오점이 바로잡아지도록/이 날들을 채우기 원합니다. // 주여 당신의 계획이 나타나실/그 마지라 날들을 믿습니다/그리고 이 많은 날들을 모아/ 진실한 삶을 엮겠습니다.
(프란시스 험플레이/ 내 인생의 책)
나는 바다와 무슨 이야길 할까/ 이제 갈매기에 사연을 띠 우기에는/사장(沙場)에 낭만의모래성을 쌓기에는/ 내 인생, 역시 리듬이 절실한 나이
(박태진/ 파도 소리를 들으려)
모든 사람은 한계가 있다/무가치가 이 땅에서 이상적이다/ 통곡의 소리를 삼가하라/ 인생은 슬픔을 가져오고 웃음도 가져온다.
(죤 투로저/ 부족함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라)
그리운 고향땅의 정기를 안아/내 고향 사람들의 덕성을 닮아/ 아, 고향은 인생의 첫 교실/ 내 마음의 영혼한 요람입니다.
(박 화/ 영원한 요람)
이쁜 얼굴이 그 미소가/ 하늘과 땅 사이에 띠를 늘이고/ 인생을 파랗게 물들이면서/ 거칠은 꿈결에도 흘러들었다// 밧줄처럼 조아온 너의 한 생이/ 물새우는 강천에서 종지부를 찍을 제/ 칼날처럼 네 성미에 모를 죽이며/지금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김 철/ 생을 마칠 때)
고달픈 인생의/ 험난한 길에서도/ 꿈에서 보고, 걸어도 보던/ 아, 나의 작은 발자욱/ 수 없이 찍혀 있는 산굽이길
(임효원/ 산굽이길)
죽은 자들이 나를 에워쌌었다; / 실제도 삶이 있는건가?/ 삶은 고통스러운건지?/ 또한 삶도 의의가 있는건지? // 그 죽은 자들 중 누군가가 물었다 ; / "우리가 살아보았음이 틀림 없다면/ 그렇다면 그대는 우리의 죽음이/ 헛되다고 생각하는가? "
(에리히 프리트/ 삶의 문제)
산다는 것은/ 먼지가 쌓이는 일이다/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다. // 산다는 것은/ 진구렁을 헤매는 일이다/ 진구렁을 벗어나는 일이다. // 산다는 것은/ 물이 되어 스며드는 일이다/ 물이 되어 씻어내며 흘러가는 일이다.
(차옥혜/ 산다는 것은)
오오 쫓겨가는 무리여/ 쓰러져버린 한낱 우상 앞에 무릎을 끓지 말라!/ 덧없는 인생 죽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어니!/ 한 사람의 들어오지 못함을 굳이 설어 하지 말라.
(심 훈/ 통곡 속에서)
아버지의 인생과 막바뀐/ 돗수 높은 안경으로 쓴/ 이력서 한 장이 발견될 매/ 내가 디뎌온 계단이 부실함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용범/ 50호 · 1)
물소리로 달겨든 수심깊은 가슴 하나/ 그 여백에 세상사람 실낱같은 상사(相思)여/ 굽돌아 벼랑을 넘어 여울목을 뜨는 달.//그믐밤 아픈 허기에 북방가는 길이 멀고/ 외진 들녘 쓸고 나와 궁륭어린 바람소리/ 어느 새 인생은 저물어 장지문을 적시네.
(김 종/ 인생)
산다는 것/ 고추 가루처럼 매워서/ 마음하나/ 기댈 곳 없구나
(정희수/ 황혼에 서서)
1. 서로를 볼 수 없는/ 표류하는 어둠 속에/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필름이 돌아갔다/갑자기 켜진 순간/ 흰 스크린만 남은 고요
2. 문 밖으로 나와 보니/ 별천지 같은 거리/우리는 헤어져서/ 각기 다른 버스는 탔다/신호등 붉은 불빛이/ 가는 길을 막아 섰다.
(지성찬/ 인생)
그러나 길은 다하고 날이 저무는가/ 애처러운 인생이어/ 종소리는 배바삐 흔들리고/애꿎은 조가(弔歌)는 비껴 올 때/ 머리 수그리며 그대 탄식하리
(김소월/ 신앙)
그러나 운명의 변화는/ 왕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싣달타는 슬픔이란 어떤 것 임을 생각해/ 꿈이나 늙고 병들어 죽는데 골똘했다/ 드디어는 참됨이 무엇인가를 터득했느니/ "이는 모든 사람에게 생긴다"/불행도 인생의 한부분이라고.
(G. 수사이/ 아시아의 빛)
새삼 산을 또 배웠다네/ 이제 겨우 인생의 깊이도 한 가지씩 알 것 같다네/ 산을 어찌 그리 쉬이 배울까보냐/ 숨을 헉헉 몰아쉬며 산을 오르며 또 한 가지 배우고/ 우리는 인생의 등성이 쪽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홍윤기/ 입춘산행 -김승환에게)
삶과 죽음 이 세상 모든 것이/ 길이 못 풀 수수께끼어니/ 내 생의 비밀인들 어이하오// 바닷가에서 눈물짓고‥‥/ 이슬언덕에서 노래 불렀소/ 그러나 뜻 모를 이 생/ 구름같이 왔다 가나 보오.
(노천명/ 구름같이)
아 -나는 그대 이름만 사랑하며 우노라/ 이리도 이 인생이 죄악으로 확 찼음을 나는 우노라,
(빅톨 위고/ 다시 또 그대에게)
날은 춥고, 어둡고, 쓸쓸하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하네./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네‥‥// ‥‥어느 누구의 생에도 얼마 만큼의 비는 내리는 것/ 어둡고 춥고 쓸쓸한 것도 피할 수 없는 것!
(롱펠로우/ 비오는 날)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박인환/ 목마와 숙녀)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흉용한 육지를 항해한다/‥‥//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단위는/ "인생"이란 중량.
(지센/ 배)
인생은 하나의 회사(喜拾)/ 사금과 같은 미소가 나를 건드린다/ 오오 노래여/ 사랑은 보다 더 전심(全心)의 희사// 돌 위에 돌을 뉘이자/돌 위에 돌처럼 굳어진 나를 뉘이자//이대로/ 시간이 못을 박아 주면/ 이 마음 영이처럼 있겠지/ 인생은 하나의 참회
(김남조/ 낙엽은 쌓여라)
인생 여기저기 떠도는 것 무엇과 같은가?/응당 기러기가 눈이나 진흙을 밟는 것과 같겠지
(소식/ 자유의 시에 화답하며)
고춧가루 바람에/ 얼음 호수 이룬/ 마음 전부/ 흰사발 가득 담긴/ 쓰디 쓴 한약 같은/인생살이// 지쳐누운/ 기찻길엔/ 쇳 자갈만 뒹굽니다// 마지막/ 밤차 뒤꽁무니에/ 매달린 나// 이젠/ '당신'이라는/ 종착역에/ 영원히 내리고 싶습니다.
(이영옥/ 인생)
눈에 보이는 것들에 떠밀려 온/ 안개 인생을/ 하늘에서 웃으시다가/ 그래도/ 불꽃같은 눈동자와 함께/ 새벽 닭울음으로 오신/ 당신은 사랑
(황국명/ 아침기도)
버려진 겨울 인생들을/으스러지듯 안아주고 싶다/ 마음에도 없었던 그 많은 시간과/웃음 아닌 쓴 미소와 가증된 정성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정일홍/ 여기 이 자리에 머물고 싶다)
당신이 살라시면 삽니다/ 내 모든 삶은/ 당신에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고/ 끝나는 것
(이연자/ 피투성이라도)
온 낮의 허공을 가르고/ 온 밤의 허공을 가르는 빛처럼/ 세상을 둥굴게 살아가는/ 위에 계신 자가 보기 좋은 인생이고 싶다.
(정일홍/ 진실하게 살고 싶다)
원고지로 접은 고운 종이배는 시/ 용감한 종이배의 사공은 시인/ 밤낮 생각이 같은 인생은 밀착된 운명
(강대식/ 종이배)
한 해, 두 해 세월은 유수라/ 물설고 낯설은 서울 생활은 자꾸 지나가는데/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인생이/무슨 뾰족한 수 있겠나. // 막노동에 배달꾼 점원 안 해본 거 빼놓고 다해도/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부지런을 떨어도/ 야박하고 매몰찬 객지살이/ 빈털털이는 매일반이라/ 추운 날은 더 춥고 더운 날은 더 더운/ 밑바닥 인생뿐이라.
(박용주/ 늙은 목수의 소원)
풍화된 흙더미에 혼자 남아 있어/ 그만 혼미해져서/ 주저 않았다 눈을 떠보면/ 생은 앞에서 줄을 끄은다/남루한 무의를 남겨둔 채.
(모윤숙/ 창을 도로 닫으면서)
어머니, 어머니,/ 비로소 인생의 설움을 안/ 울음이 눈물과 더불어 자꾸만 복받쳐 오른다.
(김윤성/ 추억에서)
생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갖 괴로울 뿐
(박두진/ 도봉)
설경이 흰 저녁/ 영 못다 만든/ 영 못다 녹을 눈 사람의/ 혼잣이야기/ 눈처럼 고여, 소복하게/ 실은 피고 질 인생의 이야기
(박태진/ 설경)
인생은 어쩌면 착각의 연속일는지 는 모른다/ 오늘 이 순간처럼/ 조금만 높은 산언덕에 올라서 보아도/ 세상은 조금은 달리 보이게 마련이다.
(박성룡/ 산 언덕에 올라)
해가 무너지기 전 애써/ 걸어놓았던 칙넝쿨 한 가닥처럼/ 인생의 위안과 기대까지도/ 수만리 먼곳서 출발한/ 바람처럼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유경환/ 山 목소리)
최초에 울리는 종소리, "말구유 속의 그리스도와도 같은 옥같은 사내가 태어났다·.."/종은 다시 한 차례 드높이 울려 퍼진다. "나는 행복합니다. 내 남편이여!"/ 뒤이어 이번에는 슬픈 장례식의 종소리.
(폴 포르/ 사람의 일생)
원양 어선에서/ 잡아온/ 삼치 덩어리처럼/ 멀쩡히 누워서/ 인생도 시간도/ 얼어붙은 것은/ 언제부터지
(최규창/ 언제부터지)
만상이 잠든 밤을/ 선잠 설친 채로/ 두 가닥 레일에다/ 생사를 걸어 두고/ 또 하루/ 무사를 빌며/ 타야 하는 열차 인생
(김시백/ 야간 열차)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이것이 나의 투쟁입니다. / 그리움에 몸을 바치며/ 매일을 행진합니다. / 그리고서 강하고 널찍하게,/ 천 개의 가느다란 뿌리로/ 깊이 인생을 얽어맵니다.
(릴케/ 시 8편)
모두들 스승의 최신식 은유를 듣고서 놀라워했다 ; / "인생은 자동차와도 같다. "/그들은 잠시 후에 설명이 따를 것을 알기에 조용히 기다렸다/ "아 그래." 그는 드디어 말했다/ "자동차는 높은 데를 올라갈 때 사용할 수 있지"/ 또 다시 침묵./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앞에 누워서 자기들 위로 지나가게 하고서는 자동차가 사고를 냈다고 나무라거든."
(앤소니 드 멜로/ 인과관계)
나의 여인이여/ 그날의 주홍 입술이,/ 떨어지는 잎새처럼/ 거무스레 말라 타도/ 너의 어린애의 방안에/ 피는 웃음이/ 인생의 가을을 품어 자란다.
(이석/ 만추)
인생이 아무리/ 사랑 더욱 아무리/ 헛것이라고해도/아직은/ 아깝고 안타까운 이름들/ 어쩌면 내/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유안진/ 저녁 기도)
차마 님의 사랑/ 내 인생의 사전으로 노래할 순 없어/ 님사라 이름하여 보지만/ 그도 애꿎은 말의 유희인 것을‥‥‥
(김성영/ 님사)
냉정이 얼음장처럼 찰수록/ 온정은 끓는 물처럼 뜨거우리라/ 바라고 기대하면서/ 믿고 속으며 살아왔으나/ 나는 인생을 사랑하리라.
(배용길/ 오늘은 어제보다)
뜬 구름이라고 할까/ 아침 안개라고 할까/'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도' / 영혼은 그대로 남을까// 인생의 생사는 참으로 하늘에 있을 뿐/ 나는 모를 일이다.
(황금찬/ 미지)
초침이 늦어/ 고속버스를 놓치고/ 완행버스에/ 도매금으로 넘겨진/ 한 무더기 승객들//서로를 잃지 않으려고/ 외롭게/ 팔려가지 않으려고/ 붙어서면 그대여/ 땀냄새조차 정겨운/ 우리들 인생은/ 완행이다.
(서덕석/ 3등 국도)
기억하라, 함께 지낸 행복했던 나날은/ 그때 태양은 훨씬 더 뜨거웠고/ 인생은 보다 더 아름답기만 했었지.
(프레베르/ 고엽)
단 한 자루의 단도로 스스로 생을 청산할 수 있는 데도/ 누가 지루한 인생을 신음하고 땀흘리며 짐지려 하겠는가?/ 죽은 뒤에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면.
(W. 셰익스피어/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우리도 지체할 시간은 그대처럼 짧고/ 인생의 봄도 짧단다. / 순식간에 생장하고 이내 시들고 마는구나.
(헤리크/ 수선화에게)
슬프지 않아야 하리라/ 꽃이 지려 꽃잎이 떨어지고/ 울먹이는 하늘로 맨손을 흔들면/ 우리들의 가슴엔/ 어느 새/ 얼룩진 인생이 걸려 있다. // ‥‥생존을 위해 시간은 흘러가고/ 생존을 위해 인간이 되자/ 인생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서정윤/ 여분의 죄)
만유가 생명빛으로 당신의 사랑 꽃피우는/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함부로 던져진 육신과/ 무너져 내리는 어둠의 혼으로/ 거리의 바람 돌맹이처럼/ 인생의 발바닥을 헤일 적에/ 당신이 날 찾아주신 그날은.
(김성영/ 미리암의 노래)
오, 하나님,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기가 부끄러워 우리는/ 외로이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줌으로써/ 기쁨이 되는 것들을 갈망하면서도/ 달라는 말을 못하고/ 외로이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마조리 홈즈/ 우리 서로 함께하게 하소서)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을 구했습니다. /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그러나 내게는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작자 미상/ 기도)
눈오는 날에/ 아이들이 지나간 운동장에 서면/ 나뭇가지에 업히지도 못한 눈들이/ 더러는 다시 하늘로 가고/ 더러는 내 발에 밟히고 있다. / 날으는 눈에 기대를 걸어보아도, 결국/ 어디에선가 한방을 눈물로서/ 누군가의 가슴에/ 인생의 허전함을 심어주겠지만/ 우리들이 우리들의 외로움을/ 불편해 할 쯤이면/ 멀리서 반가운 친구라도 왔으면 좋겠다.
(서정윤/ 눈 오는 날엔)
하늘은/ 가난한 자들의 꿈으로/ 잔뜩 흐린 우리들의 하늘은/ 나무가 비에 젖는 줄도 모르고/ 해서 쓸쓸한 인생을/ 한 줄의 언어로 남기기에는 우울하다
(서정윤/ 비의 명상)
슬픔은 홀로 슬퍼하고/ 외로움은 속으로/속으로 삭이는 것이지만/ 인생은 살아주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다/ 살려거든 살아라.
(서정윤/ 미시시 피의 황혼)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서정윤/ 홀로서기 · 7)
어차피 사는 게 인생이라면/ 해산하는 아픔으로 아침을 맞자/그림자에 오래 남을 수는 없다.
(서정윤/ 나의 어둠의 시-4 ·자랑스런 신)
시를 위해/ 하나쯤의 인생은 바치고 싶다// 어둠 속에서는/ 어둠의 의미를 음미하지만/ 언젠가 살아 남을/ 빛을 향하여/ 우리의 꿈은 일어서야만 한다/ 인생은 약속이지만/ 살아 남기 위하여/ 인간이 되자
(서정윤/나의 어둠의 시-8 · 생존을 위하여)
나는 이렇듯 기도하며 겨루지 않았으리./오, 나를 파도나 잎과 구름처럼 일으켜라./나는 인생의 가시에 쓰러져 피 흘린다.
(셸리/ 서풍의 노래 · 4)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달랠 수 있다면/ 내 삶은 정녕코 헛되지 않으리./ 내가 만일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거나/ 또는 한 괴로움을 달래거나/ 또는 할딱거리는 로빈새 한 마리를 도와서/ 보금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면/ 내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E. 디킨슨/ 만일 애타는 한 가슴을)
무게 없이 내리누르는/우리의 생은, 항상/얕은 구름
(서정윤/ 노을 소리)
한 세대면 세상이 바뀐다고,/ 이 말은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 인생이란 환상과 같은 것,/끝내 공허로 돌아가고 만다.
(도연명/ 귀전원지 · 4)
인생의 봄에 벌써/ 나는 방랑의 길에 올랐다/ 청춘의 아름다운 춤들일랑/ 아버지의 집에 남겨둔 채로
(쉴러/ 순례자)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생이란 고독한 존재./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 / 모두가 혼자다.
(헤세/ 안개 속)
사랑은 물결처럼 흘러 내리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 내린다/인생은 왜 이리 지루하고/ 희망이란 왜 이리 격렬한가.
(아뽈리네르/ 미라보 다리)
티 없이 맑고 잔잔한 레만 호수여!/ 그대를 우리들의 거친 인생살이와 견줄 때/ 그대의 고요함은 깨우쳐 주네./ 괴로운 세상의 풍파를 버리고/ 맑은 샘물이 되라고.
(바이런/ 맑고 잔잔한 레만 호수여)
인생이란 그 자체가/ 아무것도 아니니/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해마다 이 동산에/ 4월은, 바보처럼 중얼거리며/ 꽃을 뿌리고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밀레이/ 봄)
그녀는 갈색머리 혹은 금발인지 흑발인지 나는 모른다/ 그녀 이름도 다만 나는 기억한다/ 그녀가 얼마나 부드럽고 낭랑한지를./ 인생의 별처럼 고운 애인들의 이름처럼.
(베를렌/ 자주 꾸는 꿈)
인생의 순간순간을 당신과 함께 거할/ 영원에의 기대로 채울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리차드 암스트롱/ 현재를 위한 기도)
세월이여!// 소금보다는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벗긴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김용호/ 주막에서)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이은상/ 가고파)
인생의 나그네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던 내가/ 눈을 떴을 때에는 캄캄한 숲속에 있었다.
(단테/ 신곡)
「개같은 내 인생」// 이것은 영화 제목이다/길을 가다 말고 내가 훔쳐 본// 개처럼 끌려다니고/ 개처럼 두들겨 맞고/ 사슬에 묶여 개처럼/ 감금당하고/ 이 것이 지나간 내 십년의 인생이었다.
(김남주/ 개같은 내 인생)
다시 한 번/ 인생을 되풀이 할 수 있다면/열여섯 살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후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
(케스터너/ 인생을 되풀이 할 수 있다면)
빛바랜 인생의 문풍지가/ 적막한 겨울 바람을 몰고와/ 제때 칩거하지 못한/ 외로운 벌처럼 잉잉거릴 양이면/ 회색빛 자조 속으로 끝없이 움츠러드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김성영/ 죄인이로소이다)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아라./ 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어니/ 만물은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 인생은 진실이다! 인생은 진지하다!/ 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 할 곳, 또한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 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남도록/ 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요 길이다. //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 / 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 싸 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 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느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노영 안에서/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아무리 즐거워도 "미래"를 믿지 말라!/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매장하라!/ 활동하라, 살아있는 "현재"에 활동하라!/ 안에는 마음이, 위 에는 하느님이 있다. //위인들의 생애는 우리를 깨우치느니,/ 우리도 장엄한 삶을 이를 수 있고,/ 우리가 떠나간 시간의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남길 수가 있느니라.// 그 발자취는 뒷날에 다른 사람이,/ 장엄한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다가/ 파선되어 버려진 형제가 보고/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될지니.// 우리 모두 일어나 일하지 않으려나,/ 어떤 운명인들 이겨낼 용기를 지니고,」 끊임없이 성취하고 계속 추구하면서/ 일하며 기다림을 배우지 않으려나.
(롱펠로우/ 인생찬가)
이제저제 하면서/ 버둥거리며 지탱하는/ 곤고한 삶의/ 가불인생
(조영희/ 가불타령)
산다는 것은/이 무(無)를 얻기 위해/가진 것을 버리는/ 생의 연습이다.
(하오주/ 無)
괴로운 인생여정 지날 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들의 기도가 필요하다네/ 예수를 위한 날마다의 삶이/ 진실하며, 믿음직스럽게 되도록
(제임스 D. 보건/ 나를 위해 기도할 친구 원하네)
산다는 것이/ 때로는 밝기도 하다가/ 산다는 것이/ 때로는 어둡기도 하는 것.
(김성영/ 당신의 손의 무게)
꽃없이 가지 끝에/ 성급한 열매 먼저 맺어서/ 무화과라 명에쓰고 일생을 살아가지만/꽃이 핀들 무엇하랴
(박용주/ 무화과)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 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정호승/ 강변역에서)
축하한다/ 이가 시리도록/ 차고 맑게 살다간/ 너의 일생을
(정호승/ 마지막 편지)
설 교 노 트
인생의 현주소
창3:1-10
서론
창세기 3장에는 인생이 최초로 범죄하고 타락한 비참한 역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혹은 문학의 소재로 또는 예술이나 철학의 소재로 취급한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가령, 세계적인 유명한 문호 밀들의 실낙원이라든가 또는 세계적 인 예술가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그림이라든가, 세계적인 철학자요, 신학자인 어거스틴의 철학이나 요한 칼빈의 신학은 모두 이 창세기 3장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 3장은 우리 인생들이 중대한 관심사인 동시에 중대한 문제들이 취급되어 있는 유명한 장절들입니다. 저는 기도하는 중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상에 관하여 세 가지를 찾아 소개하려고 합니다.
1. 꾸미지 아니한 순수한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신 말씀은 범죄하기 이전 꾸밀 줄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순수한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아담이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게 된 원인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죄책감에서 오는 부끄러운 수치감과 불안감과 공포감을 해결하기 위해라고 주경학자들른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범죄하게 되면, 체포되어 자유를 박탈당하고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수치감과 불안감과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이점에 대하여 요1:47-48에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찾으시고 인정하시는 사람은 간사함이나 외식이나 거짓을 버리고, 참되고 의롭고 착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상은 첫째 인위적인 것으로 가장을 하지 아니한 순수한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2. 자기 행위에 책임성이 강한 인간입니다.
범죄하기 전 아담은 자기 행위에 대해서 책임성이 강한 사람으로 그 누구에게 핑계하거나 전가하지 않았던 믿음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후에는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가 있다면, 먼저 철모르는 어린 아이거나 정신병자이거나, 죽은 사람뿐이라고 합니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나 자기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 책임의 범주는, 자기에게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이 책임의 내용은 하나님께 순종할 책임이고, 선을 행할 책임이고, 이웃을 사랑해야 할 책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책임을 이행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책임의 중대성을 망각하고 자신의 안일을 도모하여 게으르고 방탕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인간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세 번째 인간상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준수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할 인간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하게 됩니까? 그 원인은 교제해서 아니될 마귀와 교제를 한 데 있습니다. 인간의 자율적인 생각과 행동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대적하고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준수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의 규범으로서, 세상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지마는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 시간 우리들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이 물으신 인간의 현주소를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나의 현주소를 점검하여 꾸밈없는 순수한 인간이 되어 나의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는 사람이 되십시다.
인생의 참 주인
눅12:13-21
서론
여기 예수님의 교훈 가운데 진정한 주인을 바로 알지 못한 어리석은 인생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다는 것은 생각하는 바가 미숙하다는 뜻이요, 상황판단에 있어서 어둡다는 뜻이요, 사물을 취사선택하거나 처리하고 결정하는 일에 불완전한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어리석은 인생이 그러했습니다. 인생은 누구를 물론하고 이 세상에 나의 생명도 하나님의 것으로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인 것입니다.
1.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은 너와 나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것을 잠시 동안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들입니다. 그런고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이나 자녀나 생명까지라도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참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재물의 주인도 자기요, 자녀들의 주인도 자기요, 몸과 영혼의 주인도 자기로 알고 행세하는 사람은 분명히 주인관이 잘못된 어리석은 인생인 것입니다.
(1) 먼저, 재물이 점점 많아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많이 맡겨 주신 줄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바로 처리해야 하고 재물이 점점 줄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돌려주신 줄 알고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2) 자녀를 얻은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과 상급인 줄 알고 감사하고, 자녀들을 잃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려가신 줄로 알고 훗날 천국에서 만나보기로 하고 위로를 받으셔야 합니다.
(3) 남달리 몸의 건강의 축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여 주신 줄 믿고 힘써 주의 일에 충성하셔야 하고, 몸의 건강을 상실한 사람은 주님께 더 가까워지라는 신호인 줄 알고 신령한 세계에서 주님의 위로를 기다려야 합니다.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우리에게 주기도 하고 취하여 가기도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2. 모든 것은 주인 되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여기 어리석은 인생은 주인관이 착각되어 모든 것을 자기만 위해서 사용한 것이 잘못이 라고 하였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해도 아니되고, 이 세상을 위해 속되게 사용해도 아니되고, 마귀를 위해 사용해서는 더욱 아니된다고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사용해서 아니될 때 사용해도 아니되거니와,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때 인색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국민이 낸 세금은 국가 민족의 발전과 복지를 위해서 사용해야지 사리 사욕으로 사용하는 것은 죄라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은 용도 가치에 대하여 밝히기를
(1) 나의 재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할 때 가치가 부여되고
(2)나의 자녀들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서 등용이 될 때 자녀들이 귀중해지고
(3) 나의 몸과 생명도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등용이 되어 하나님께 충성할 때 가치있는 인생이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된다는 의미는
①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사용됨을 가르칩니다.
②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됨을 가르칩니다.
③ 하나님의 나라와 사업을 위해 사용됨을 가르칩니다.
결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이유는
(1)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2) 주님이 분부하신 명령이며
(3) 우리들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인생관
빌1:20-21
서론
여기 바울의 인생관은 사도 바울 개인의 인생관이라기보다는 우리 전체 기독 신자들의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진실한 기독 신자라고 하면 누구나 다 사도 바울과 같은 인생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관이란 매우 중요하면서도 복잡한 문제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하고 지나가야 할 중대 문제는 인생이란 한 번 태어났다가 한 번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한 베넬같은 이는 말하기를 "인생은 어떻게 해야 가치있게 살다가 가느냐 하는 것이 우리들이 배워야 할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게 살다가 가느냐 하는 그 해답을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인생관에서 찾아 보려고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히 여기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20에 "나는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바울은 자기 자신이 존귀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존귀히 여기는 인생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주경학적 견지에서 두 가지 뜻을 찾아보면
(1) 자기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재일 귀하게 모시고 살아가는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귀하게 여기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도 귀하고, 자녀도 귀하고, 돈도, 지식도, 부귀 영화도 귀중합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는 황금도 예수보다 귀하지 아니하고, 많은 학문과 지식도 예수보다는 귀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 부귀 영화도 예수보다는 귀하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영광을 돌린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있듯이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고 영광을 받기를 훤하지만, 여기 사도 바울의 인생관은 자기는 낮아지고 예수만 높이고 자기는 천대받아도 예수만 자랑하고 자기는 능욕을 당해도 예수님에만 영광을 돌리면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일생 동안 그 무엇을 위해서 일하는 실존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우리 자신들이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고전6:20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어찌하여 주님의 소유가 되었습니까? 먼저 창조 원리에서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사43:1). 다음은 구속의 원리에서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소유가 되었은즉 주님의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 주님의 일은 헛되지 아니하다고 하였습니다(고전15:5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너희 수고라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은 사람의 일이아니고 하나님의 일이요, 세상 일이 아니고 하늘나라의 일이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게을리하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렘48:10에 밝히고, 이 일에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리라고 계2:10에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실 때 부끄럽지 않게 대답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그러면 어떠한 신자가 주님을 존귀히 여기고 주님의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까?
(1) 주님의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는 성도이고
(2)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는 성도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풍파
막4:35-41
서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은 고해요, 인생은 일엽편주라고 불러왔습니다. 인생이 살아가면서도 풍파를 겪게 되는데, 인생은 이와 같이 풍파를 겪으면서 세상이 무엇이며,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인생의 슬기와 기능도 배우게 되고 나아가서는 인생의 가치와 목적도 바로 찾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항해하다가 풍파를 만나게 된 역사적인 사건은 우리 인생들에게 무엇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까?
1. 인생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한 풍파입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풍랑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찾게 하였습니다. 풍랑이 일기 전에 저희들이 예수님을 뱃머리에 모시고 자기들의 생각에는
(1) 예수님이 자기들을 태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예수님을 태우고 가는 것으로 인식을 했고
(2) 바다나 배의 아무런 경험이 없는 예수님은 바다를 항해하는 데 필요없는 줄로 인식을 하였고
(3) 더구나 피곤하여 뱃머리에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들은 갈릴리 바다의 출신들이라 여기에서 잔뼈가 굵은 것이고 바다나 배에 대한 지식과 항해의 많은 기술과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들이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저버리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차라리 이 세상에서 돈과 지식과 권력을 구할지언정 즉 예수를 찾지 아니하고, 저버리고 살 때가 많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언제나 순풍만 있는 것이 아니고,여기 갈릴리 바다에 일어난 풍랑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가정적인 풍파, 사회적인 풍파, 국가적인 풍파가 쉬지 아니하고 일어납니다. 이러한 풍파는 인생의 지식도 기능도 경험도 무력하게 합니다. 그런고로 이 풍파는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하는 풍파라고 하였습니다.
2. 인생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된 풍파입니다.
여기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풍파는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재인식케 하였습니다. 그 동안에 제자들의 예수관은 분명히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다만 종교적인 지도자로 알고 따랐지 참 메시아인 줄을 몰랐고, 도덕적인 스승으로 알고 따랐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몰랐고, 하나님의 선지자인줄로만 알고 따랐지 전능하신 구세주이심을 모르고 따랐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잘 모르던 제자들은 이 풍랑을 통하여 재인식하게 되었으니 자연계를지배하며 정복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심을 알았고, 악마와 사망 권세를 정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주님으로 알게 되었고, 나라와 민족들이 흥망 성쇠와 인생들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생명의 구주로 재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인생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게 한 풍파입니다.
여기 갈릴리 바다에서 일어난 풍랑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게 하였습니다. 이 풍랑이 일기 전에 주님은 필요치 않은 분으로 오산을 하고 자기들의 실책과 기능을믿고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자,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1) 자신들이 배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이 배의 주인이시고
(2) 자기들이 주님을 태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자기들을 태우고 가고
(3) 자기들의 기능과 기술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능으로 만 풍파를 헤치고 안전한 항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가정이라는 배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고 교회의 주인도 예수님이시고 우리나라의 주인도 예수님이십니다. 이때 주인님만이 우리들을 풍파 속에서 구원하여 안전한 항해를 가능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풍랑 앞에 손을 들고 저들의 지식도, 기능도, 경험도, 속수무책인 것을 깨닫고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음으로 구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풍파는 우리들의 잘못된 모든 죄악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진심으로 믿게 하는 방법입니다.
결론
인생의 모든 풍파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찾아 붙들고 바로 인식하여 전적으로 신뢰할 때에
(1) 풍랑을 잔잔케 하여 안전한 항해를 가능하게 하고
(2) 어떤 풍파라도 침몰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3) 목적지까지 편히 이르게 하십니다.
인생의 슬픔의 풍랑에서라도 위로의 항구로, 고통의 풍랑에서라도 평화의 항구로, 사망의 풍랑에서라도 영생의 포구로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마라와 같은 인생의 길
출15:22-27
서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항상 평탄하고 즐거운 일만 계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어려운 문제들이 있어서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시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바로의 학정을 벗어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나가게 될 때 평탄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친히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1. 사흘길 후에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셔서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왔고, 목적지 가나안을 향하여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며 행군을 계속하는데 수르 광야를 통과하는 중에 사흘길을 가도록 물을 얻지 못하여 기갈 중에 있었습니다. 사흘길 후에 마라에 이르러 물샘 하나를 만났습니다. 모처럼 물을 얻게 된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물을 마셔봤는데 물이 너무도 써서 마실 수 없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부패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체험하고 목격한 백성들이 단 3일 동안에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니까 하나님의 구속하신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를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함과 다름이 없습니다.
2. 모세의 기도와 응답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들은 모세는 안타까운 사정을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보시면서도 탓하지 아니하시고 모세에게 응답해 주셨는데 곧 한 나무를 지시하시면서 그 나무를 마라의 물 속에 던지도록 명령하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그 물이 달라져서 백성들은 또다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목격하게 되고 잘한 목을 해갈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범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이 순종할 때에모든 일에 함께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결론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신령한 뜻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마라의물과 같이 쓰디쓴 세상이요, 기갈 중에도 해갈시킬 수 없고 마시게 되면 뱃병을 일으키는 독한 물과 같은 세상인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나무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나를 구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마라와 같은 세상이 변화되고 심령이 변화되어 영혼의 만족을 얻고 새 힘을 얻어 신령한 가나안까지 이르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오늘 주님의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세상 끝날까지 주와 동행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너 인생아
벧전2:11-12
서론
성경은 인생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있는 가운데 베드로전서 2장 11절을 보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실로 나그네와 행인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인간이 세상에 와서 한 세상 살다가 가는 것이 마치 나그네와 길가던 행인이 하룻밤을 여관방에서 유숙하고 떠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저 인생은 철저한 역려 과객이기 때문에 한 번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나이 많으신 노인들은 말할 때 70객이니 80객이라고 말하는 것은 70년 혹은 80년을 손님과 나그네로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1. 인생은 어디에서 온 나그네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인생은 반드시 본적지 본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과학으로나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가 없으나 믿음으로 사는 자는 본향집이 환하게 보이는 줄 믿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셨고, 로마서에는 "대저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께로 돌아가노니 영광은 세세에 주께 있나이다"고 하셨으며,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지으심으로 하늘나라에서 왔기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것을 확실히 믿기를 바랍니다.
2. 인생은 무엇하러 왔습니까?
다시 말해서 인생이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는 황금만능, 자본주의, 배금사상이 세계적으로 팽창하고 있는데 이것은 돈을 인생의 목적으로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생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마24:44)"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대의 소망이 되시며 구원자가 되시는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우리를 영원한 하늘의 처소로 데려가실 것이니 너희는 예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을 목적없이 그저 살지 말고 우리의 믿음과 순종으로 준비하였다가 주님께서 오라할 때 영광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생은 어디로 갑니까?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죽음이 인생의 종착역인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본향이 없이 이러저리 방황하는 인생들을 향하여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나그네로서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 믿음의 정절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일도 없는 사람처럼 육신의 정욕대로만 행한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심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결론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행악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진정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여로에서 좀더 옳고 선하게 바르게 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돼지 앞에 진주
출5:1-14
서론
바로 왕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이므로 그 앞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도저히 통할 수가 없는 말이며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욥은 불신자들의 태도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를 알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욥21:14-15)"라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에게‥‥‥
본문 1-2절에 "모세는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 성을 보내 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나오는 인생과 입씨름하는 것은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자기 유익밖에 모르는 인생에게‥‥‥‥
본문 4-9절에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도 모르고 다른 사람의 고통도 모르며 오직 자기 유익밖에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은 자기와 관계없는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제 욕심만 채우면 된다는 것뿐입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지만 본인에게도 돼지 앞에 진주와 같은 것입니다.
3. 하나님 백성을 괴롭히는 인생에게‥‥‥‥
본문 6-14절에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역자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이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들은 후부터 바로 왕의 마음이 더욱 강퍅하여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욱 심하게 괴롭히는 수단으로 재료도 주지 아니하고 벽돌을 굽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실을 보다 못한 모세는 "여호와께 돌아와서 고하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함으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치 아니 하시나이다(출5:22-23)"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대항하는 이와 같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돼지 앞에 진주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귀가 복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였습니다.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의 귀가 밝아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영의 눈이 열려서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자 연
성 경 활 용
1. 자연의 특징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심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시8:1)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3) 아름답다.
(눅12: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4) 신비하다.
(막4:27)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5) 하나님을 증거한다.
(행14:17)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써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 셨느니라
2. 자연의 불변
(1) 식물이 변할 수 없다.
(창1:11)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2) 동물도 변하지 않는다.
(렘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3) 계절의 순환
(창9: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관련원어풀이
1. $r,aw::, !yIm'v; 솨-마임 웨아레츠
천지.
(창1:1,슥5:9)
2. oujranov" kaigh' 우라노스 카이게-
천지.
(마5:18, 행4:24)
설교예화자료
나폴레옹과 부하 군인들의 대화
나폴레옹 같은 사람은 군인이지마는 이런 직감의 은혜가 있었던 사람 같았습니다. 그가 한 번은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애굽을 정복하러 가기 위해서 지중해를 건너갑니다 마침 바다는 잔잔하고 달은 밝은 밤인데 많은 군인들이 갑판 위에 올라와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폴레옹이 조용히 뒤로 다니면서 이 군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살펴봅니다. 한편 구석에 가 보니까 어떤 군인 둘이 앉아서 열심히 변론을 합니다. 가만히 들어보니까 한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는 무신론자요, 하나는 유신론자입니다. 나폴레옹이 뒤에서 가만히 듣다가 그만 성미가 급해서 불쑥 한 마디를 했습니다.
"여보! 변론만 하지 말고, 눈을 들어 하늘을 좀 바라보시오."
두 사람이 깜짝 놀라서 하늘을 쳐다보니 명랑한 달빛이 아름답게 비치고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면서 그들을 내려다봅니다. 그때에 나폴레옹이 두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저걸 보고도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모르겠소? "
직감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길이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우리는 자연의 정복에 대해 말하고, 그 말은 매우 거창하게 들린다. 그러나 사실인즉, 우리는 우선 우리 자신을 자연의 길에 적응시키는 것이다.
(C. 데이/ 유인원의 세계)
자연이여, 그대는 나의 여신이니, 그대의 법칙에 따라 나는 봉사하리라.
(W. 셰익스피어/ 리어 왕)
자연은 결과에 대한 이름에 불과하다. 그 원인은 신이다.
(W. 쿠퍼/ 과업)
자연은 수동적이고 인간이 부르는 대로 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의 활동에 대하여 친해질 수만 있다면, 일체가 될 수만 있다면 자연, 즉 산하, 초목, 석토, 일월성신 등은 인간에게 협력함은 물론 비밀도 보여줄 것이다
(서경보/ 자연의 파괴와 생명의 위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대자연은 생명의 샘이다.
(R. 타고르)
자연은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긴 생명을 살아왔습니다.
(이기영/ 5월에 생겨나는 것들)
자연과 미덕은 사회나 재산의 산물인 학문과 예술에 의해서 침해된다
(J.J. 루소/ 과학 예술론)
신이 창조한 것들은 모두가 선 그대로였다. 그러나 인간의 손길이 닿자모든 것은 악으로변하였다.
(J.J. 루소/ 에밀)
무형은 만물의 원조이고, 무음은 모든 음성의 대종이다.
(회남자)
신과 자연을 떠난 행동은 곤란하며 위험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자연을 통해서만 신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J.W. 괴테/ 스트라스부르 시대의 감상)
조물주는 하나의 목적에서 행동하지만, 여러 가지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A. 포우프/ 인간에 관한 수필)
자연의 걸음걸이에 맞추어라. 자연의 비밀은 인내이다.
(B. 디즈레 일리)
우리들은 모두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많지만 이와 함께 사는 일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O.F 0.W, 와일드/ 옥중기)
자연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H. 스펜서/ 사회학 원리)
자연은 중립적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이 세계를 사막으로 만들거나, 혹은 사막을 꽃피게 하는 능력을 캐냈다. 원자 속에는 악이 없으며,다만 인간들의 정신 속에만 악이 있을 뿐이다
(A. 스티븐슨)
자연은 진정한 법이다.
(J. 플로리오/ 첫 결실)
우리는 인간과 자연과 조화라는 예언자들의 비전을 포기하고 자연을 정복하고 그것을 우리 목적에 맞게 변형시킴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자연의 정복은 점점 더 자연의파괴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정복과 적대감에 눈먼 우리들은 천연자원이 유한하다는 사실, 따라서 종국적으로 그것은 고갈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산실, 자연이 인간의 탐욕에 대해 반격을 가해 오리라는 사실을 인식하리 못했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세상은 장기판이다. 장기알이 우주의 현상이고 경기 규칙은 우리가 말하는 자연법칙이다. 저편에서 두는 사람은 우리에게 숨겨져 있다. 우리는 그의 놀이가 항상 공평하고 정당하고 끈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 우리는 우리의 쓰라린 경험으로 아는 일이지만 그는 실수를 봐주거나 무지를 참작해 주는 일이 없다.
(T.H. 헉슬리/ 속인의 설교집)
자연은 인생을, 빛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상환 날짜를 지정함이 없이, 쓸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자연의 세계는 역동적이다. 넓은 우주에서부터 갖난아기 머리 위의 머리칼까지, 이제부터 다음 순간까지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H. 후버/ 오랫동안 그늘진 숲)
자연의 자연은 자연이다. 자연주의자의 자연은 부자연이다.
(우치무라 칸조오)
자연은 우리를 방랑자로 만들고, 세상은 우리들을 훌륭하게 만든다.
(A. 스미드/ 꿈꾸는 마을)
자연은 모두 신의 영원한 장식이어라,
(J.W. 괴테/ 파우스트)
흔히 우리는 옥외를 너무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가장 두드러지고 눈에 띠는 것밖에는 더 보지 못한다. 자연을 관찰하는 데 가장 좋은 속도는 달팽이의 보조이다.
(E.W. 틸/ 계절의 순환)
자연은 신의 묵시이며 예술은 인간의 묵시다.
(H. W. 롱펠로우)
자연은 그 자체 속에 본질적으로 예술적 율동과 운명을 포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상순/ 가을)
자연의 반복은 단순한 재현이 아닌 것 같다. "앙코르"가 아니겠는가.
(G. K. 체스터턴)
자연은 한 가지 만유공통의 웃음을 지닌다.
(H. 필딩/ 톰 텀 대왕)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불명예스럽지 않다.
(에우리피데스/ 유고집)
관습이 자연을 정복할 수는 없다. 자연은 언제나 정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자연의 경치가 자기 위안이나 향락의 수단이나 도구 내지는 풍요한 생활의 불가결한 보충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생각도 또 없다고 생각한다. 자연 그 자체는 곧 우리 인간의 생명의 존재 여부를 결정 짓는 절실한 젖줄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은우/ 자연과 사람)
자연에는 진정한 의미의 조락이란 있을 수 없다.
(김소운/ 屋上菜園)
자연은 규칙에 맞추어 생산해 갈 수 있는 기술자 같은 불이다.
(제 논)
자연은, 설교하는 것보다는 가르쳐 주는 것이 더 많다. 돌 속에는 설교가 없다. 하나의 교훈보다는 돌 하나를 깨뜨려 불꽃을 얻은 것이 더 쉽다.
(J. 버로우즈/ 시간과 변화)
자연의 연구는 최고의 정신과의 영교(靈交)다. 자연을 결코 소홀히 하여서는 안 된다.
(J.L.R. 아가시/ 페니케세에서의 아가시)
자연은 그 모든 진리를 각각 그 자신 속에 간직하고 있다. 우리들의 기교는, 그들의 한 쪽을 다른 한쪽으로 가두어 두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적이 아니다.
(B. 파스칼/ 팡세)
모든 예술, 모든 교육은 단순히 자연의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 세계는 듣는 바와 같이 먹는다는 동사의 피동형과 능동형으로의 변화이다(먹고 먹히는 세계).
(W.R. 잉/ 솔직한 수필)
서양인이 자연과 사람을 별개의 존재로 보았음에 반해, 동양인은 사람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이 둘은 다 같이 하늘의 동일한 원리에 의하여 운영되는 것으로 믿었다.
(오천석/ 효의 새로운 이해)
우마(牛馬)에게 네 개의 발이 있음을 자연이라 하면, 말의 목에 고삐를 매고 소의 코에 코뚜레를 꿰는 것을 인위(人爲)라 한다. 그러므로 인위로써 자연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장 자)
물질적 상태에 있는 인간은 자연의 힘을 감수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은 미적 상태에 있어서는 자연의 힘에서 빠져나가나 도덕적 상태에서는 그 자연의 힘을 지배한다.
(J.C.F. 실러/ 인간의 미적 교육에 대하여)
자연은 신의 예술이다.
(단테/ 군주제도)
자연의 말과 지혜의 말은 결코 다르지 않다.
(유베날리스/ 풍자시집)
사람을 모범으로 삼지 말고 자연을 너를 인도하는 별로 삼아라.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자연은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풍경, 사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묵시록적인 풍경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자연은, 자연을 사랑하는 자를 결코 배반하지 않았다.
(워즈워드)
대지는, 신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얼어붙은 메아리일 뿐이다.
(S.M.해이즈먼/ 침묵)
자연의 법칙을 표현하는 모든 공식은, 신에 대한 찬가이다.
(M. 미첼)
대지는 너의 맨발을 좋아하고, 바람은 너의 머리칼을 흩날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K. 지브란/ 예언자)
모든 사물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을 때는 선하지만,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타락한다.
(J.J. 루소/ 에밀)
모든 자연의 사실은, 어떤 영적 사실의 상징이다.
(R.W. 에머슨/ 자연론)
자연을 읽으라. 자연은 진리의 친구이며, 자연은 기독교적이며, 인류에게 설교하며, 죽은 물질로 하여금, 우리의 교리 속에서 우리를 돕도록 명한다.
(영/ 야상)
자연은 인간이 베푸는 교육 이상의 영향력을 그 속에 품고 있다.
(볼테르/ 몰리에르의 생애)
인간은 자연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자연에 대한 지배의 단계로 이행하는 것같이 보인다. 동시에 자연은 차츰 그 신성을 잃고 점점 인간적 형태를 띠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해방은 허울적인 외관상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러한 고도의 단계에 있어서도 인간의 행동은 전체적으로 여전히 직접적인 필요의 횡포에 대한 단순한 복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이제 자연에 의해서 들볶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들볶고 있는 것이다
(시몬베유/ 노동일기)
자연의 필름은 지식의 책이다.
(O. 골드스미스/ 세계시민)
자연에 강제성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그것에 순종해야 할 일이다.
(에피쿠로스/ 단편)
만들어진 세계는 본래의 세계가 아니다.
(E.E. 커밍즈/ 한 시대에는 하나)
자연에서 이탈하는 것은 행복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S. 존슨/ 라셀라스)
자연은, 상징과 암호로 말한다.
(J.G. 휘티어/ 찰즈 서머에게)
자연은 신이 쓴 책이다.
(M. 하비/ 과학과 종교)
자연에 의해 완성된 것들은, 예술에 의해 만들어진 것보다 낫다.
(키케로/ 신의 본성)
자연에는 상도 벌도 없다. 거기엔 결과만 있다.
(R.G. 잉거솔/ 강의와 수필집)
자연은, 하나님을 비쳐 주는 거울이다.
(E. 영/ 야상)
사물은 도덕률로 젖어 있다‥‥삼라만상은 변장한 선교사에 불과하다.
(에머슨/ 강의 집)
한 줌의 모래는, 우주의 작품집이다.
(D. 머코드/ 요번만)
꽃이 화분 속에 있으면 생기가 없고 새가 조롱 속에 들면 천연의 묘취(妙趣)가 없다. 산속의 꽃과 새는 여러 가지로 어울려 아름다운 문채 (文彩)를 짜 내고 마음대로 날아다니나니 한없는 묘미를 깨닫는다.
(채근담)
대자연의 질서는 우주의 건축가의 존재를 입증한다.
(I. 칸트)
어린아이가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유화의 극치에 있는 까닭이요, 종일 주먹을 쥐어도 단단하지 않는 것은 덕이 자연에 이른 까닭이요, 종일 보아도 눈을 껌벅이지 않는 것은 외물에 마음이 쏠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도 가는 곳을 모르고 앉았어도 하는 바를 모르며, 만물에 순응해 움직이는 자연의 물결에 따라 밀려가나니, 이것이 양생법(養生法)이다.
(장 자)
자연의 도는 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자연의 덕은 인위적인 노력으로 이를 수 없다
(장 자)
자연은 논리, 즉 인간의 논리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연은 자신의 논리가 있으며, 그 논리의 바퀴 밑에 깔리기 이전에는 우리는 그 논리를 인식하거나 알아채지 못한다.
(I. 투르게네프/ 연기)
자연의 시는 결코 죽지 않고, 자연의 시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J. 키츠/ 메뚜기와 귀뚜라미에 대하여)
그들은 쉽사리 땅에서 도토리를 따려 하지 않는다/ 날카로운 팔은 높은 가지에 내던져/ 자연의 열매를 그들의 기쁨으로 맞기 위해 서두른다.
(R. 에버하트/ 도토리나무)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변치 않는 것.
(두보/ 春望)
신은 오히려 콘덕터요/ 천지가 협화(協和)하는 교향악 속에/ 하나의 보람처럼 빛나는 열매!
(김관식/ 紫桃素描)
물방울이 나뭇잎에 매달렸다. / 또르르 떨어져 그 아래 나뭇잎에 매달렸다. /분명 바람은보이지 않는데/ 물방울은 매달려 흔들린다. /물방울의 이동을 본 순간/ 바람은 스쳐 지나갔다는/ 스스로의 흔적으로 물들어 버렸다. /아무도 그것에 대해 개의하지 않았다. / 그러나/ 자연의 한 이법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조병식/ 이법-사랑 이야기 · 13)
내 수중의 보배를 팔아서/ 세상의 이름을 사지 말 것이며/ 산 중의 조용한 취미를/ 인간에 전파하지 마오./ 송백은 상설 속에서 지조를 지키고/ 천석은 시속의 냄새가 없는 것/ 이제 늙고 마른 몸이/ 이 별마저 하게 되니/ 두려운 생각이 든다.
(맹 교)
자연은 신이 쓴 위대한 책이다. 한 포기의 조그만 꽃 속에서 신비가 깃들이고 한 마리의이름도 없는 벌레 속에 경이가 배어 있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백구야 말 물어보자 놀라지 말아스라/ 명구승지(明區勝地)를 어디 어디 버렸더니/날더러 자세히 일러라 너와 게가 놀리라.
(김천택/ 청구영언)
바위로 집을 삼고 폭포로 술을 빚어/ 송풍(松風)이 거문고 되며 조성(,島聲)이 노래로다/아이야 술 부어라 여산동취(與山同醉)라,
(장현광)
보리밥 문준치에 배부르니 흥(興)이로다/ 농필포도(弄筆讀菊) 노래하니 신선(神仙)인들 부럴소냐/ 아마도 우로은택(雨露恩澤)이 깊고 큰가 하노라.
(김수장)
초막을 짓고 인가 근방에 살아도,/ 거마(車馬)의 시끄러움을 모르겠더라./ 그대에게 묻노라. 어째서 그러함인가/ 마음 속세를 멀어지면, 사는 거기가 곧 외진 곳이거니,/ 동쪽 울타리 밑에 핀 국화를 따노라./ 연유히 남산이 눈에 비쳐 오다. /산기(山氣)는 아침 저녁으로 아름다워/ 새는 물물이 날아든다. / 이 사이 자연의 도리가 있으니/ 말하고자 하여도 말을 잊었노라.
(도연명/ 음주)
말 없는 청산(靑山)이요 태(態) 없는 유수로다/왕교(王喬) 적송외(赤松外)에 날 알 이 없건마는/ 어디서 망령엣 것은 오라 말라 하느니
(성 혼)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그중에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절로 하리라.
(김린후/ 자연가)
엊그제 겨울 지나 새봄이 돌아오니/ 도리 행화(桃李杏花)는 석양리(夕陽裏)에 피여 있고/ 녹양방초(緣場芳草)는 세우(細雨) 중에 푸르도다/ 칼로 말아 낸가 붓으로 그려 낸가/조화신공(造花神功)이 물물(物物)마다 헌사롭다/ 수풀에 우는 새는 춘기(春氣)를 못내 겨워 소리마다 교태로다/ 물아일체(物我一體)어니 흥인들 다를소냐.
(정극인/ 賞春曲)
자연의 아름다움은 낮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밤이면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나, 캄캄한 산속에 선옥이와 손을 마주잡고 서서 고요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아무리 고요한 밤이라도 사방에서 자연의 주악소리가 무수히 들려 오는 것이었다 멀리서 활활활 하고 끊임없이 들려 오는 소란한 소리는 냇물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요, 이따금씩 쏴아아 하고 서글프게 들려 오는 소리는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요, 어쩌다가 한번식 꾹꾹꾹 하고 답답하게 들려 오는 소리는 산짐승이 꿈을 꾸는 잠꼬대이요, 간간이 바삭바스락 하고 애절하게 들려 오는 소리는 풀벌레가 가랑잎 사이를 기어가는 소리일 것이다.
(정비석/ 애정무한)
아름다운 자연은 아름다운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그림의 재료가 되고, 시의 제목이 되고, 기타 온갖 예술과 로맨스의 어머니가 되나니, 금수강산으로 조선 안에 이름높은 평양성은 꽃 핀 아침, 달 밝은 밤, 사람에게 사랑으로 헤매이는 청춘 남녀 사이에 짜아 내는 붉은 눈물과 푸른 노래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염화(艶話)와 정사가 생겨났겠느냐, 아름다운 자연을 무대의 배경으로 삼아 끊임없이 일어나는 로맨스는‥‥‥‥
(문일평/ 호암전집)
하느님이 지으신 자연 가운데/ 우리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것은/ 나무이다. // 그 모양이우리를 꼭 닮았다/ 참나무는 튼튼한 어른들과 같고/ 앵두나무의 키와 그 빨간 뺨은/ 소년들과 같다. // 우리가 저물녘에 들에 나아가 종소리를/ 들으며 긴 그림자를 늘이면/ 나무들도 우리 옆에 서서 그 긴 그림자를 늘인다.
(김현승/ 나무)
세상이 시작된 이래/ 태양은 그 빛을 한 번도 멈추어 본 적이 없다. / 자주 우리는 태양의 모습을 못 보고는/ 그의 변덕을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로 구름이 비난받아야지, 태양은 아니다. / 구름 뒤에서 태양은 늘 비치고 있었으니.
(J. 옥스넘/ 신의 햇빛)
무엇이 대해(大해)를 지배하는가, 무엇이 계절을 지배하는가/ 성군은 그들 자체로 운행하는지, 또는 명령을 받은 것인지/무엇이 달을 암흑으로 싸고, 또는 그 원반(圓盤)을 드러내는지/ 이런 사물들의 불화 속의 조화는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행함인지
(루크레티우스)
찾아갈 곳은 오직 저기-저기는 우리의 전설이 얽힌 삼림(森林), 저기는 우리의 노랫가락이 흘러내리는 강물, 그리고 저기는 우리의 피와 땅이 방울방울 배고 밴 야원(野原)과 촌락(村落)-그렇다. 저기 내 국토 대자연으로밖에 내 갈 곳이 어디라. 내가 이런 생각으로 자기 딴엔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도록 열의와 성력(誠力)을 가지고 전에도 남선북마(南船北馬)로 대자연 순례를 수행하여, 게을리한 적이 없었거니와, 장차로는 오히려 이것이 내 생활의 전부가 될 날이 와 주기를 바라도록, 나는 대자연에 귀의(歸依)하는 것이다. 조국의 대자연 앞에 나는 한 신도(信徒) 되기를 바라는 것이니, 나의 초이론적정례심(超理論的頂禮心)은 나 자신도 어찌할 수가 없을 뿐더러, 또한 나 같은 못 생긴 범부(凡夫)도 그 앞에 가서 많은 법열(法悅)을 느끼고 감격을 얻는 만금, 그의 거룩함을 찬미하는 수밖에 없다. 대자연은 진실로 엄숙하다. 그 속에 비탄의 꿀젖이 속속들이 괴었고, 또한 섬묘(纖妙)한 무늬가 아른아른 반짝이는 것이다. 한 번 높이 솟고, 한 번 굽이쳐 흐름이 예사로이 지나가는 이에겐 아무것도
아닌 법하되, 모를레라. 저처럼 살뜰하고 저처럼 다정한 것이 어디에 있으랴.
(이은상/ 南無國土大自然)
자연이여, 더러는 그 열정 가지고 그대를 밝히고/ 더러는 그대 안에 슬픔을 베푼다. / 그한쪽더러 "무덤"이라 이르는 이가/ 다른 쪽 더러는 "생명과 광휘(光輝)"라 말한다.
(C.P. 보들레르/ 괴로움의 연금술)
"자연"은 그 아름다운 창조물에/ 내 마음에 흐르는 인간의 영혼을 결부시켰나니.
(W. 워즈워드/ 이른 봄의 노래)
우리들이 이 지상에 있어 사는 한/ 기쁨에서 기쁨으로 인도하는 것은 자연의 은혜다.
(W. 워즈워드)
값 없는 청풍명월은 절로 내 것 되었으니/남과 다른 부귀는 이 한 몸에 가졌구나/ 이 부귀가 지고 저 부귀 부럴소냐.
(박인노/ 노계집)
다정한 추억이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여줄 때/ 내 마음은 얼마나 달콤했는지!/ 과수원, 풀밭 깊이 뒤엉킨 자연림/ 내가 유년시절부터 알고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볼 때도/넓게 퍼져 있는 연못과 그 곁 물레방아와/폭포가 떨어지는 곳의 다리와 바위를 볼 때도,/내 아버지의 오두막집과 그 곁 낙동실,/그리고 우물 속에 달려 있는 미가공의 두레박을 볼 때도,/ 낡은 두레박, 쇠를 댄 그 두레박/ 이끼가 낀 그 두레박이 우물에 달려 있는 것을 볼 때도.
(사무엘 우드워스/ 낡은 떡갈나무 두레박)
나사로로 그의 인기 없는 무덤에 올라가게 합시다. /죽은 자의 큰 비밀을 모조리 말하게 합시다. / 그가 본 바 일을 생각나게 합시다.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해야 합니다. -/ 무엇이 영속하고 무엇이 멸망할 것인지를,/ 자연의 마음에 주께서 무엇을 넣으셨는지를,/ 온갖 피조물 중에 자연에게 무엇을 취하며, 그것에 무엇을 주는지를,/ 하나님과 자연 사이의 소리 없는 대화, 자연의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 / 그 순결한 관계가 무엇인가를,/ 왜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파괴되고 소생하는가를,/ 왜 그속에 숨는 것이 있고 나타나는 것이 있는지,/ 하늘의 별들은 차례로 시험되어 지구와 마찬가지로 죄 많고 구원받아야 하는 것인지.
(비니/ 올리브 산)
하늘은 너를 사랑하여 비를 뿌리고/ 날개 펴 너를 감싸매/ 무력하면서도 강한 너를 섬긴다/ 자연은 그 넓은 목덜미를 굽혀서/ 너를 보려고 노력하도다.
(톰슨/ 팔랑이는 잎사귀)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핀다. /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는다. / 불에 탄 혼에서도 새싹은 난다. / 우리는 늘 사랑과 빛에 가득 찬 이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자.
(G. G. 바이런)
비 내리는 이 저녁, 바람은 휴식이 없습니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만물의 위대성을 깊이 생각해 봅니다.
(R. 타고르)
자연은 한껏 감미로운 계절이어서/ 어느 언덕 위에나 백합화로 단장하였다
(빅토르 마리 위고/ 잠자는 보아스)
만일 그대의 연약한 피조물이/ 그대에게 다가갈 값어치가 없다면/ 자연으로 하여금 그대를 감싸게 하여/숨어 계시는 편이 좋을 뻔했다.
(위세/ 신을 향한 희망)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名)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창 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의 시범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구 상/ 말씀의 실상)
풀잎들이 머리를 풀고/ 하염없이/ 몸부림치는 저 처절함에/내 마음 슬퍼하다 터질 듯합니다// 오, 님이시여/ 나는 어찌하여 풀들의 무도를/ 자연의 아름다운 예찬으로 보지 못합니까/ 당신을 향한 빛나는 코러스로 알지 못합니까.//아아, 진실로 이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예찬이기에/ 더할 수 없이 빛나는/ 당신에의 찬미이기에/ 내 마음 이다지도 서러운지요.
(김성영/ 영혼의 푸른 초장)
오, 기쁨 ! 우리의 잔불 더미 속에 있는 기쁨,/ 그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로다/그러나 자연은 보여주고 있네./ 그토록 덧없음이 무엇인지 !
(W. 워즈워드/ 영원의 암시)
해마다/ 참으로 멋진 날이 되는 때쯤이면/ 빙빙돌며/ 어슬렁거리면 단풍들은/ 수풀과 나무들과 포도 넝굴에도 얇게 퍼지고/ 친구는 넘치는 기쁨으로/ 상쾌함을 느낀다네./ 그가 소년이었을 때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맘껏 들이키면서.
(오스티 쉴크/ 그가 소년이었을 때처럼)
해야, 고운 해야. 의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박두진/ 해)
푸른 여름 저녁에 오솔길 가리니/보리 향기에 취하여 풀을 밟으면/ 마음은 꿈꾸듯 발걸음은 가볍고/ 맨머리는 부는 바람에 시원하리라//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가슴에는 한없는 사랑만 가득 안고/ 멀리멀리 방랑객처럼 나는 가리니/ 연인과 함께 가득 자연 속을 가리다.
(랭보/ 감각)
오, 호주, 말 없는 바위, 동굴, 검은 숲이여!/ 때에 따라 변치 않고 다시 젊어지는 그대들 이여/ 이 밤을 간직하라, 아름다운 자연이여,/ 이 추억만이라도 간직해 다오!
(라마르틴/ 호수)
모든 것을 바꾸기에는 실로 짧은 세월로 족하다!/신선한 표정의 자연, 어찌 너를 빨리 잊고 마는가!/ 그 탈바꿈 사이사이에 왜 무참히 자르는가/ 우리의 마음이 맺어져 있는 신비의 실을!// ‥‥대답하라 해맑은 골짜기여, 대답하라 쓸쓸한 땅이여,// 아아 마을에서 떨어진 이 아름다운 장소에 깃든 자연이여.
(위고/ 올랭피오의 슬픔)
해는 출렁거리는 빛으로/ 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웃는다. 비유의 아버지답게/ 초록의 샘답게/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신전이다// 해여, 푸른 하늘이여,/ 그 빛에 그 공기에/ 취해 찰랑대는 자기의 즙에 겨운,/ 공중에 뜬 물인/ 나뭇가지들의 초록 기쁨이여// 흙은 그리고 깊은 데서/ 큰 향기로운 눈동자를 굴리며/ 넌즈시 주고 받으며/ 싱글거린다// 오, 이 향기/ 싱글거리는 흙의 향기/ 내 코에 댄 깔대기와도 같은/ 하늘의 향기,/ 나무들의 향기!
(정현종/ 초록 기쁨-봄 숲에서)
코에 스미는 향기/ 자연의 생명을/ 바람처럼 느끼고 싶어요/ 흐르는 물소리같이/ 숨쉬고싶어요// 먼 바다를 건너오는/ 풍금소리 같은/이 크나큰 속삭임/ 귓볼을 간지럽히는/ 음악이에요.
(박이도/ 내 영혼이 풀밭에 누워)
자연은 신의 궁전, 그 살아 있는 기둥들에서/ 어쩌다 어렴풋한 말들이 새어 나오고/사람은 상징의 숲속을 지나 거길 거쳐가고/숲은 정다운 눈초리로 사람을 지켜본다. // 멀리서 은은히 울리는 메아리처럼/ 밤처럼 광명처럼 끝없이 넓은/ 어둡고 깊은 조화의 품속에서/ 향기와 색채와 음향은 화합한다. //어린애의 살처럼 신선하고/ 오보에처럼 부드러우며 목장처럼 푸른 향기 어리고/한편으로 썩고 풍요로운 승리의 향기가 있다. //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것으로 번져가서/ 정신과 감각의 환희를 노래한다
(보들레르/ 교감)
구름의 위선에도 눈물을 짜는 시인의 얼굴에/ 자연은 미울 때가 있다/ 자연의 폭행이 심할 때는 언제고 그렇다.
(이생진/ 게으를 때 하는 소리)
자연 속에 자연은 아슬아슬하게도 지고/이별은 슬픈 깃발을 올려 나붓낀다.
(김용호/ 끝내 한 잎의 낙엽인 것을)
가물가물 촌락은 먼데,/ 하늘하늘 마을의 연기./ 개는 골목길 안에서 짖고, 닭은 뽕나무 위에서 운다. // 집안에 번거러움이 없으니,/ 빈방에 한가로움이 넘친나./ 오랫동안 새장 속에 있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왔구나 !
(도연명/ 긔전원거)
자연의 힘이여/ 내가 여기 쉼을 나무램 말아 달라./ 꺼진 등불과 함께/내 영혼이 홀로 있는 이 즐거움을 갖게 하라, 그림자처럼.
(노아이유 부인/ 어느 오월 밤의 매력)
어이 없이 울게 될/내 영혼 씻어내는 음악/ 들려 주려나/ 그 여운 담아둘/ 쓸쓸한 자연/ 더 주려나/ 아흡 하늘 쩌렁쩌렁/ 산울림도 울리려나/ 울리려나// 나의 겨울나무
(김남조/ 겨울나무)
설 교 노 트
천재(天災)의 교훈
전5:13-17
서론
우리나라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태풍으로, 폭우로 재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천재의 사례가 있습니다.
첫째는 수해입니다.
수해의 대표적인 사례는 노아 때 홍수입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 시작해서(창7:11) 40주야(창7:12)동안 비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땅이 완전히 마르기는 그 이듬해인 601년 2월 27일이었습니다(창8:14). 성경은 홍수의 원인을 "죄악의 관영(창6:5-7)"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한해의 대표적 사례는 아합 왕 때 3년 6개월이었습니다(왕상17:1, 18:1, 약5:17).
성경은 한해의 원인을 아합 왕의 악정(惡政,주로 바알을 섬겨 숭배함)에 있다고 말씀(왕상16:30-33)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충재와 풍재입니다.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눗이 먹고 눗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눗과 황충과 잡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욜1:4, 2:25, 암4:9)"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재해 원인을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 한 연고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암2:4-8). 이상은 그 대표적인 몇 가지 사례였습니다.
재해가 가지와 잎이라면 죄악은 뿌리였습니다. 즉, 죄악의 뿌리에서 재해의 열매가 맺혔던 것입니다. 우리는 재해를 당할 때마다 고요히 머리숙여 하나님의 엄숙한 충고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재해는 인생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이 두려운 줄 알아야 합니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리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초개같이 사르니이다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흉용한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출15:7-8, 10)"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에 대하여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산하는 체질이 풀어지며 녹아 없어지게 됩니다.
2. 이 세상은 사람의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때만 인간의 계획은 성취됩니다. 바벨탑을 파괴하신 하나님(창11:1-9)께서는 인간의 교만을 묵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3. 대자연 앞에 인간은 연약하고 무력합니다.
인간의 실상을 성경은 여러 가지로 가르쳐 줍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 앞에 자기의 실상을 바로 깨닫고 겸허하게 옷깃을 여미고 정상(正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무릇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신자들마다 돌 하나, 나뭇잎 하나, 바람소리 하나를 무심코 흘려 보내지 마시고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의미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함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들의 짐승도 내 것이다
시50:11
서론
이 세상, 즉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만물이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본문에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성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에 대해서 하나님만이 그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 모든 동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0-21절에 보면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24절에 기록되기를 "육축의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공중의 새, 땅의 짐승과 곤충, 물고기 등 모든 생물을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셨습니다.
이렇듯 모든 동물뿐 아니라 모든 식물, 그리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모든 짐승의 소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는 육축과 산야에 서식하는 온갖 짐승과 공중의 새들이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은 모든 것의 실 소유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약간의 육축을 사람들에게 맡기어 관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부자인 체하면서 많은 짐승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지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은 일시적으로 그 일부분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따름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연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짐승들을 잘 관리하고, 자기 소유로 생각하여 나쁘게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소유임을 생각하여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 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3. 참새의 생명까지 주관하십니다.
창조하시고 또 자기의 소유권을 주장하시며 관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짐승의 생명을 지배하시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작은 참새의 생명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심지어는 아주 작은 곤충과 미생물까지도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서 지배하십니다.
결론
이 모든 자연 만물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리하게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생명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자 유
성 경 활 용
1. 자유의 특징
(1) 죄에서 해방된 것이다.
(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2)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요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3) 원수의 손에서 건짐을 받았다.
(눅1: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4) 율법에서 속량함을 받았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5) 두려움에서 놓여나 평안함을 얻는다.
(잠1:33)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이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2. 누가 자유를 주는가?
(1) 진리가 준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 그리스도가 주신다.
(요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3)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주신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4) 주의 영이 주신다.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3. 자유의 한계
(1) 허락이 되는 범위에서
(고전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2) 약한 자들에게 거치지 않게
(고전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3) 다른 이에게 판단 받지 않는 범위에서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4) 주 안에서
(고전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는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5) 하나님의 종과 같이
(벧전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6)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함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4. 성경에 기록된 자유의 종류
(1) 정치적인 자유가 있다.
(출14:30-31)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2) 신분의 자유가 있다.
(출21: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가 육년 동안 섬길 것이요 제 칠년에는 값 없이 나가 자유할 것이요
(3) 영적인 자유가 있다.
(시119:45)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
(4) 신앙의 자유가 있다.
(행28:3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5) 영광의 자유가 있다.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적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6) 양심의 자유가 있다.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5. 성도의 자유
(1) 주께서 죄에서 자유를 주심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고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2) 주께서 율법에 자유를 주심
(갈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3) 사망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얻음
(히2:14-15)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4) 주의 영이 계심으로 자유를 얻음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6. 자유에 대하여 성도가 취할 태도
(1)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아야 한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2)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아야 한다.
(벧전2:16)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3) 타인의 자유를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고전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4) 자유함이 약한 자에게 거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전8: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관련원어풀이
1. r/rD] 데로-르
(1) 재비, 야생 비둘기.
(시84:4, 잠26:2)
(2) 몰약.
(출30:23)
(3) 자유.
(사6l:1, 렘34:8)
(4) 희년.
(레25:10, 겔46:17)
2. jt'P; 파-타흐
(1) 열다.
(느8:5)
(2) ~사람의 입을 열다.
(민22:28)
(3) 손을 열다.
(신15:8, 11)
(4) 곡식을 열다, 팔다.
(암8:5)
(5) 시작하다, 끌고 들어가다.
(시49:5)
(6) 풀리다, 석방되다.
(욥12:14, 사5:27)
(7) 열다, 열리다.
(욥41:6, 사48:8)
(8) 풀다, 끌르다.
(욥30:11, 사20:2)
(9) 푸는 사람.
(렘40:4)
3. a[nesi" 아네시스
(1) 이완, 풀림.
(행24:23)
(2) 편함, 휴식, 평화, 평온.
(고후2:12, 살후1:7)
4. ejleuvqero" 엘류데로스
(1) 자유의 몸으로 태어난, 노예가 아닌.
(요8:33, 갈3:28)
(2) 자유로운.
(고전7:21)
(3) 제한되지 않은, 속죄에 얽매이지 않은, 족쇄가 풀린.
(마17:26, 고전9:1)
(4) 죄의 통치에서 자유로운, 멍에가 풀린.
(요8:36, 롬6:20)
5. ejxousiva 엘수시아
(1) 사람이 좋아하는 대로 행하는 자유, 허락, 허가.
(요10:18, 살후3:9)
(2) 견딜 수 있는 능력이나 힘.
(마9:8, 요1:12)
(3) 규율이나 통치의 능력.
(마28:18, 계2:26)
설교예화자료
그것은 악몽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엘리사 카롤리나 카사레토 보르게스(Elism Carolina Casaretto Bor-ghese) 공주는 이태리 제노아에 있는 그녀의 훌륭한 집에서 실제로 옥살이를 했습니다.백만 달러의 상속인인 77세의 늙은 공주는 한 이태리 여인과 함께 공주의 아파트로 이사온 어느 남작 왈더마본 회닌겐프-휴엔(Waldemar Von Hoyningenp-Huene)의 최면에 걸렸습니다. 공주는 그 아파트에 가까운 작고 더러운, 심지어 전기불도 없는 하인방에서 천하게 살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공주의 낡은 옷과 터진 양말을 보고, 그녀가 돈이 한 푼도 없어 구걸을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자, 이상하게 여겨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무서운 이야기가 밝혀졌던 것입니다.
공주의 이야기로는,
"처음 그들은 친구로서 내 집에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내 집의 주인이 되었고 나는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 지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 그녀는 점점 가난해지고 그 남작이 말하는 대로 해야만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다라든가 어떤 것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작고 계속적인 느낌을 내게 주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 여인은 한숨지었습니다.
지금 그 늙은 공주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나는 이제 그들이 악마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어떻게 조종했는가를 의심해 볼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악몽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유롭습니다. "
은자의 자유
중국의 황제가 북녘 산중에 사는 은자의 슬기를 전해 듣고,그에게 조정에 와서 천하를 다스리는 승상직을 맡아 달라고 사자를 보냈습니다. 여러 날 먼 길을 돌아 사자들이 암자에 이르러 보니 은자는 반벌거숭이로 바위에 걸터앉아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설마 이러한 사람이 황제 폐하께서 그처럼 높이 여기시는 그 사람이랴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가까운 마을에 내려가 이리저리 캐물어 보니 과연 그 사람이 황제가 명한 사람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냇가에까지 가서 공손하게 좀 뵙자고 말을 건냈습니다. 은자는 이 말을 듣고 첨벙첨벙 물을 가로질러 사자들이 있는 곳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자들이 가져온 푸짐한 선물을 받았으며 사자들이 뜻밖에 전하는 소청을 들었습니다.
황제가 자기를 나라의 승상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은자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껄껄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은자는 당황해 하는 사자들을 향하여 말했습니다.
"저기 저 진흙탕 속에 꼬리를 흔들고 있는 거북이를 보시오."
"예 존경하올 선생님." 하고 사자들이 대답하자 은자는 계속하였습니다.
"그럼, 어디 좀 물어 봅시다. 듣자하니 황제의 대궐에서는 날마다 만조백관이 모여 중앙제단에 모신 박제 거북을 경배한다는데, 또 그 신성한 거북의 껍질에는 금강석이니 홍옥이니 그밖의 갖가지 보석이 치장되어 있다던 데 그게 사실이오? "
"과연 그러하옵니다. 선생님."라고 사자가 답하자 은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물어봅시다. 여기 이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는 이 꼬마 거북이 녀석이 그 신성한 거북하고 자리를 바꾸라고 하면 그러고 싶다고 할 것 같소?"
"아니옵니다, 존경하올 선생님."라고 사자들이 대답하자
"그럼, 가서 황제께 아뢰시오. 나도 싫다더라고 말이오. 궁중에서 죽은 자가 되기보다는 이 산속에서 산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좋소. 싫은 궁궐에 살면서 산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라고 말하며 은자는 끝내 벼슬을 사양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타인의 자유를 때일 값싸게 팔아 버리는 자가 그 자신의 자유 또한 잘 건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이다.
(J. 오티스)
자유란‥‥ 신이 인간에게 베푼 최대의 축복 중의 하나이다.
(H.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이름 그대로의 유일한 자유는,남의 자유를 뺏으려고 기도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자유를 얻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J.S. 자유론)
자유는 책임을 뜻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유이다.
(G.B. 쇼/ 인간과 초인간)
자유의 나무는, 항상 애국자와 독재자의 피로 싱싱해져야 한다. 그것은 자유 나무의 자연적인 비료이다.
(T. 제퍼슨/ 서간집)
우리의 자유는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정부와 사적 기업의 이들 공동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함으로써 이들의 자유는 가장 잘 확보되리라고 확신한다.
(F. D. 루즈벨트)
정부하에서의 인간의 자유란, 정부에 부여된 입법권에 의하여, 그 사회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되게 제정되고 또 그에 의해 생활하는 지속적인 규칙을 가지는 것이다. 규칙에 의해서 금지되지 않는 경우 모든 일에 있어서 스스로의 의지에 따르고, 타인의 변덕스럽고 불확실하며 알 수 없는 자의적인 의지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자유이다.
(J. 로크/ 정부이론)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이다.
(강원용/ 삶과 죽음)
자유의 본질은 자아의 자기결정이며 자율이다.
(신일철/ 자아상실 삼제)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운다. 그것은 우리의 독자적 신념이요,우리의 유일한 타인에 대한 공약이다.
(J. F. 케네디)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떠한 환경에도, 어떠한 속박에도, 어떠한 기회에도,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동등한 자격으로 억지로라도 운명의 신의 장부에 오르는 것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자유의 희구 속에서 인간은 창조적일 수가 있게 됩니다.
(김관석/ 하느님의 권세와 인간의 자유)
자유는 받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
(김성식/ 전통과 보수)
자유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국민들이 쟁취하는 것이며, 그들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J. 볼드윈/ 아무도 내 이름은 모른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이 시간 저 시간을 선택하는 자유가 아니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엇을 향해서 쓰느냐 하는 자유이다.
(강원용/ 생의 시간이 다하기 전에)
자유는 획득하는 전보다, 간직하는 것이 더 어렵다.
(J. C. 컬훈)
저 자유의 불꽃‥‥‥그것은 무지와 전제의 모든 힘으로써도 결코 완전히 끌 수 없으리라.
(J. A. 가필드)
오늘날 우리의 자유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자유스런 선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J.P. 사르트르/ 카뮈에게 화답한다)
사람은 자연에 예속해 있지만, 그것을 알기 때문에 자유롭다.
(C. P 에오이켄)
국민이 그 어느 것을 자유 이상으로 평가한다면, 그들은 자유를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자유보다 높이 평가한 것이 안락이나 금전이라면 그들이 그것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W.S. 몸/ 엄밀히 私的인 것)
자유는 발전이 숨쉬는 호흡이다.
(R.G. 잉거솔/ 인간을 어떻게 감화시킬 것인가)
언제나 자유의 위대한 선물은 한 민족에게 결코 자선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복자라는 이유로 인도를 통치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욱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오게 될 것입니다.
(M.K. 간디)
자유의 사랑은 타인의 사랑이요, 권력의 사랑은 자기 자신의 사랑이다.
(W. 해즐리트/ 정치론)
자유란 무엇인가? 옳게 이해하면, 선하게되라는 세계적인 면허장이다.
(D.H. 코울리지/ 자유)
자유는,뿌리를 박기 시작하면 빨리 자라는 식물과도 같다.
(G. 워싱턴)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 있어서 자기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 이것이 자유의 법칙이다.
(I. 칸트)
신은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했다. 인간은 그 자신의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병법을 배우기 위해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
(I. 칸트/ 영구평화론)
너의 자유를 수호하라. 친구여, 너의 자유를 수호하라. 너희들은 자유가 얼마나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며, 그것을 되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자유를 상실한 후의 타락이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W.R. 잉/ 자유와 자유권)
어떤 것으로부터의 자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것은 어떤 것을 위한 자유이어야 한다. 자유는 안전이 아니라 기회이다. 자유는 자유 사회에서 신문이 의사소통의 고유한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Z. 채피 2세/ 압력받는 신문)
자유는 남에게 주면 줄수록 더 많이 얻게 된다.
(R. G. 잉거솔)
자유, 이것은 상상력의 가장 귀중한 속성의 하나이다.
(A.G. 비어스/ 악마의 사전)
자유는,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진 정치권력이다.
(메인/ 대중정치)
내가 아는 유일한 자유는 정신 및 행동의 자유다.
(A. 카뮈/ 시지푸스의 신화)
유일의 가능한 자유란 죽음에 대한 자유다.
(A. 카뮈/ 시지푸스의 신화)
현대에 와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초기의 자유주의자들이 자유란 독재자를 전복시키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유래됩니다. 자유란 권위와 규율과 그 자체에 어울리는 정부를 필요로 하는 생활양식입니다.
(W. 리프먼)
인민의 힘이 최고 지상인 국가에 있어서만이 자유는 서식(棲息)할 수 있다.
(M.T. 키케로/ 공화국)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려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어떤 일개인 또는 계급에서 온다.
(김 구/ 백범일지)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 조건은 영원한 경계이며, 만약 이 조건을 인간이 어기면, 당장 자기 죄의 결과로 노예가 될 것이며, 자기 죄에 대한 벌이 있을 것이다.
(J. P. 커런)
자유인에겐, 협박은 무기력하다.
(J.S. 코우넌트/ 우리의 신앙투쟁)
모든 인간이 자유에 대해 평등한 자격을 가졌다는 것은 아주 크게 위험한 오류이다. 자유란 노력해서 얻은 보상이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무료로 주어지는 축복이 아니며‥‥‥‥ 자유를 감사히 여기거나 즐길 만한 능력도 없는 무지하고 타락되고 사악한 인민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아니다.
(J.C. 컬훈/ 정부에 관한 논고)
자유는 외적인 사실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속에 있는 것으로, 자유이고자 바라는 자가 자유인 것이다.
(P. 에른스트/ 가공대화)
자유라는 것은 우선 첫째로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이다.
(D.H. 로렌스/ 호색문학과 외설)
참된 자유는 지성적이다. 진짜 자유는 훈련된 사유(思惟) 능력 안에 머문다.
(J. 듀이/ 사고의 방법)
내면적인 자유란 인간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이로 말미암아 심화되고 내면화되며 정화되어 조용히 평화스럽게 살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자유는 성장하는 것이며, 제도는 바로 그 묘상(苗床)이다. 자유란 주피터의 머리에서 태어난 미네르바처럼 완전히 갑옷을 입고 이 세상에 뛰어나온 국민적 은혜가 아니다. 자유는 원래가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모든 고귀한 것이 그러하듯이 상당한 시간과 어려움을 이겨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F. 리버/ 시민적 자유와 자활)
자유는 단순히 인권을 선언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권선언을 확고한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T. W. 윌슨)
자유의 역사는 저항의 역사이다. 자유의 역사는 정부 권한의 축소의 역사이며, 그 증가의 역사는 아니다.
(T. W. 윌슨)
영국인은 자유를 법률상의 처와 같이 사랑한다. 그는 그의 처를 눈에 띄게 애지중지하지는 않으나 필요한 경우에 남편으로서 그 처를 옹호할 각오가 되어 있다. 프랑스인은 자유를 그의 신부처럼 사랑한다. 그는 그녀를 위해 몸을 태우고, 불꽃이 되며, 걷잡을 수 없는 감격을 가지고 그녀의 발 아래에 몸을 던진다. 그는 그녀를 위해 죽기로써 싸우며, 그녀를 위해서라면 한량없이 어리석은 짓이라도 감행한다. 독일인은 자유를 그의 늙은 할머니처럼 사랑한다.
(H. 하이네)
자유는 새로운 종교이며, 그것이 전 세계에 퍼질 것은 틀림없다.
(H. 하이네/ 영국단편)
우리의 선조들은 엄청난 값으로 이 자유를 획득했지만,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자유는 항상 그 대가가 되어온 영원한 경계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
(E. 데이비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났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지구 위에서도, 혹은 어떤 별나라에서도 결코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E. 허버드/ 1001 경구집)
하나님은 자유를 사랑하고, 항상 그것을 보호하고 방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자유를 허락한다.
(D. 웹스터/ 연설문)
자유가 서식(棲息)하는 곳, 이곳이 바로 나의 고향이다.
(B. 프랭클린)
일시적인 안전을 사기 위하여 불가결의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자유도 안전도 가질 자격이 없다.
(B. 프랭클린)
나에게 자유를 다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다오!
(P. 헨리)
깃털 침대에 편히 누워,독재에서 자유제로 전환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T. 제퍼슨/ 문집)
신은 우리에게 생명을 줌과 동시에 자유를 주었다. 그것은 폭력의 손에 의해 파괴될지는 물라도 분열되지는 않는다.
(T. 제퍼슨/ 영령 아메리카의 관리에 대한 개관)
자유이고자 소망하는 자는 남의 힘 속에 있는 것을 원망하거나 겁내지는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는, 물려받을 수 없으며, 성취되어야 한다.
(F. D. 루즈벨트)
하나님은 자유를 사랑하고 항상 자유를 수호하고 지킬 줄 아는 사람에게만 자유를 주신다.
(D. 웹스터)
신을 대신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세 개의 힘인 돈과 명예와 향락과의 관계를 끊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기를 자유로써 느낀다.
(C. 힐티/ 잠 몫 이루는 밤을 위하여)
자유를 위해 싸우려고 하는 자, 그들은 인류의 지상의 대의를 위하는 것이다.
(W. 쿠퍼/ 식탁담화)
자유란 법률이 허용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권리이다.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자유에의 길은, 명령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보다 복종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더 심하게 가로막혀 있다.
(잉/ 기지와 슬기)
자유는 사람이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하는 위대한 기회였다-자유는 각성과 노력을 바탕으로 현실적인 가능성을 선택하는 기회였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사람이 자유롭지 않다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므로 사람은 자유롭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우리가 뽐내는 것은 노예가 되기 위한 자유인가, 아니면 자유롭기 위한 자유인가.
(E. 프롬/ 건전한 사회)
자유는 쪼갤 수 없는 단어이다. 만약 우리가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고 또 그것을 위하여 싸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부자이거나 가난한 자이거나, 우리에게 동의하는 자이거나 않는 자이거나, 그들의 종족이나 피부색깔에 상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그것을 확장시킬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W.L. 윌키/ 하나의 세계)
누구나 자유를 갖지 않으면 평화로울 수 없으므로, 자유와 평화를 분리시킬 수는 없다.
(맬컴 엑스/ 맬컴 엑스가 말한다)
세계의 역사는 자유 의식의 진보의 역사 바로 그것이다‥‥자유가 언급될 때에는 우리는 항상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실제에 있어서 사적인 이익의 주장인가 아닌가를 신중히 관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C.W.F. 헤겔/ 역사철학)
개인의 자유가 그의 이웃의 재앙이 될 때, 그 자유는 끝나며, 또 끝나야 한다.
(F.W. 패러/ 제민족의 이상)
자유의 주장은 신의 주장이다.
(W.L. 보울즈/ 에드먼드 버크)
진정한 개인의 자유는 경제적 보장과 독립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굶주리고 직업이 없는 국민은 독재가 행해질 재료이다.
(F. D. 루즈벨트)
자유는 사랑받는 규율이다.
(G.C. 호먼즈/ 인간집단)
우리 자신의 자유와 독립을 지켜 주는 보루는 무엇으로 구성되 었는가? 그것은 우리의 험준한 흉떡도 아니요, 깎아 세운 듯한 우리의 해안도 아니며, 우리의 육군이나 해군도 아니다‥‥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심어 준 자유에 대한 사랑이다.
(A. 링컨)
이성에 대한 존경이 있는 곳에 자유에 대한 존경이 있다. 자유에 대한 존경이 있음으로써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H. J. 래스키)
영원한 경계가, 자유의 대가이다.
(W. 필립스/ 여론)
그리고 자유에는 본능의 전문적인 조종으로부터 벗어나는 소극적 자유와 창조적인 자기 규정에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자유가 분간됩니다.
(최재희/ 철학적 인간학의 한 방향)
자유란 어디 있는 것일까/ 찾아내어 죽여버려라.
(N. 그리그/ 국왕)
아무도 모두가 자유롭기 이 전에는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아무도 모두가 도의적이기 이전에는 완전히 도의적일 수 없다. 아무도 모두가 행복하기 이전에는 완전하게 행복할 수 없다.
(H. 스펜서/ 사회학원리)
자유는 자유 속에서 성장하였다. / 뿌리로부터 개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의 자신의 것이다. /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권리를 갖는다. / 그것은 고향의 흙덩이처럼 귀중한 것이다
(N. 그리그/ 국왕)
인생 생활의 목적은 진정한 자유의 존재이니, 자유가 없는 생활이 어찌 취미가 있으며 어찌 쾌락이 있으랴, 자유를 얻기 위하여도 어떠한 대가도 아끼지 않나니 곧 생명을 걸어도 사양치 아니할지라.
(한용운/ 조선독립선언 이유서)
그러므로 생명은 존귀하고/ 애정은 더욱 값어치가 크다. / 만일 자유를 위해서라면/ 이 둘을 던져도 괜찮다!
(S.C.F. 샨도르프/ 시집)
참으로 중대한 자유는 단지 하나다. 그것은 경제적인 자유이다.
(W.S. 몸)
자유가 귀중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너무 귀중하므로 그것은 배급되어야 한다.
(N. 레닌)
자유는 불멸의 이념으로, 그것은 시대 정신과 함께 진부해지거나 사멸하지는 않는다.
(T. 만/ 자유와 평등)
자유는 무거움이었다. 설레임이었다. 그것은 다른 섬에의 길이요, 또 다른 포로 수용소에의 문에 지나지 않았다.
(장용학/ 요한 시집)
그들 나에게 자유를 고하네. 나 그대 이름으로/ 인류를 위해 변호하지 않으리./ 어떤 이는 속박과 모욕을/ 어떤 이는 고뇌와 치욕을/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지상의 권력과 찬연한 명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나는 내 전심령으로 그 교의를 일축하고,/ 평등한 우애로 모든 인민을 포용함으로/ 그들 모두의 자유를 주장하리,
(M. 개리슨/ 만인을 위한 자유)
흘러가는 인생에 꽃을 주고/ 빛과 향기를 주는 것은 자유뿐/ 그것 없이는 우리는 잡초일 뿐이다.
(W. 쿠퍼/ 노동)
눈은 눈을 더불어 웃음을 바꾸고/ 손은 가벼이 손길을 서로 이끌어/ 한 둘레 빛나는 화환인 양 어울려/ 저 파란 하늘 아래 살 수 있는 날.// 아무런 굴레도 채찍도 속임도/ 없느니라/ 사람은 사람으로 제대로 서고 스스로 모이고/ 스스로 맺고 스스로 흩어지고/ 산은 산, 물은 물 제각기 완연하여//‥‥// 주리고 떠는 창백한 한숨도 눈물도 없으리라/ 햇볕은 욕됨이 없어 별은 스스로 복되고/ 수많은 비둘기 하얗게 빛나는 날음질 위에/ 아아 번듯이 휘날리는 최고의 선(善), 오롯한 자유의 날// 내 그날을 위하여/ 그날을 위하여 살아가리니.
(김달진/ 그날을 위하여)
자유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하여// 나의 별에는/ 피가 묻어 있다.
(정호승/ 새벽편지)
인간은 영혼의 뿌리 깊이/ 눌리면 타오르는 자유의 불꽃을 간직한다. //‥‥// 자유는 피와 생명에 뿌리하여/ 영혼의 밑바닥 꺼지지 않는 근원에서 죽지 않고 탄다. //‥‥// 자유여! 학살되어 바다 속에 버림받은 자유여!/ 피안개에 그므는 아름다운 항구여!//‥‥/ 살아서 누리려는 자유에의 비원이/ 죽음-생명을 짓누르는 공포보다 강하고나// 피는 꽃보다 값지고/ 자유에의 불꽃은 죽음보다 강하고나.
(박두진/ 꽃과 항구)
이미 자유로운 사람들밖에는 자유롭게 해 줄 수 없다. /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 자유로운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J. 오펀하임/ 노예)
무서운 억압에 따르는 굴복과 발광할 듯한 기아 속에 자유가 자라날 수 있다는 논리는 인간을 배신한 자들의 무서운 음모였어‥‥‥자유란 따뜻한 인간이 사는 마을에 있지‥‥‥그 자유가 그리워‥‥
(정한숙/ 峻嶺)
창망한 물과 하늘과 -/ 아아, 자유란 얼마나 고독하고도 영광스런 것인가? / 그 안에서만/ 온갖은 제대로의 몸매를 가진다. / 제대로의 꿈을 가진다. / 제대로의 길을 가진다.
(유치환/ 나는 고독하지 않다)
그토록 거룩한 종교마냥 열렬하게 신앙하던 민주여,/ 자유여, 겨울의 한복판에 올림픽도로가 뚫려도/ 우리의 살 길은 없는 것인가// 우리들은 시방 절망할 것인가. 기다릴 것인가. //용서하라. 나무들의 언 손에 마지막 남은/ 한 잎의 자유를 용서하라.
(김덕환/ 우리들의 겨울)
산의 정상에 선 것은/ 하나님의 사람, 예언자 모세/ ‥‥하나님, 나는 주님의 영원 속에 몸을 잠그면서/ 내 백성이 자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봅니다.
(본회퍼/ 약속의 성취)
자유는 관념의 세계에의 도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속에만 있다. /오직 하나님의 훈계와 그대의 신앙만을 몸에 지니고 살리니/ 의심과 의혹을 버리고 인생의 폭풍우 속에 걸어 나을지니라./ 그리하면 자유는 그대의 혼을 환호하며 맞이하리라.// ‥‥잠시 동안 자유에 닿아 축복을 얻어, 그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면/ 자유의 성취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느니라.
(본회퍼/ 놀라운 변화)
그가 돌아왔을 때 영원히 끝날 줄 알았던 자유의 휘파람 소리가 들판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정희/ 야훼님 전상서)
울려 맞이하라 용감하고 자유로운 사람을,/좀더 거대한 마음의 소유자를, 좀더 친절한 자를.
(테니슨/ 인 메모리엄)
그대의 젊음을 되찾으렴 ; 스스로 먼지에서 일어나 잔치 옷을 차려 입으렴 ; / 이사야의아들, 그 베들레헴 사람이 우리에게 자유를 가져 오리니/ 오라, 친구여‥‥‥
(하이네/ 오라 친구여, 신부를 맞으러)
돛 폭을 하늘 높이 올리자./ 바람에 약한 종이배 질풍처럼 날아가는/ 갈매기인가 흰구름인가 신나는 자유
(강대식/ 종이배)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서 있고 길은 내 앞에 열려 있사오나/ 유예되지 않는 낙망의 순간속에서 너무나 오래도록 지쳤사오며/ 유예되지 않는 인고의 안타까움 속에서 심히도 무디어졌나이다/ 그러하오니 당신의 아들에게/이 광활한 세상 속에서 낙망으르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주옵시고/ 거짓 선지자가 창궐하며 의로운 길을 찾기 힘들 때에도/ 낙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주옵소서.
(키르케고르/ 낙망치 말게 하소서)
주님 목소리 듣고서 자유롭다 외쳤습니다/ 성스럽고 고요한 그 음성 "방황 속에 지친 영혼들아 너의 의지를 나에게 맡겨라!"/ ‥‥날 부르시는 주님 목소리 들을 때까지./ 내 죄악의 사슬 알지 못했습니다. / 푸대접 받고 냉대받는 어느 누구의 종도 아닌/ 자유롭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 주님이 나를 세상 무덤에서 건지시고,/ 말씀으로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 주님 말씀 들을 때 이기심과 수치심에서 벗어나고/ 내 마음 모든 것은 덮어지고 구원되었습니다. / ‥‥내가 자유를 찾았음을 압니다
(베이르드/ 자유)
애통해 하시고 피흘리심으로/ 갈보리 언덕위에 못박히신/ 나에게 자유를 주신 주님의 마음/ 애통한 주님의 마음입니다.
(에바 그레이/ 애통해 하는 것)
해와 달이 곤두박질치고/ 이 시대의 모든 산맥들이/ 엉터리로 우뚝 솟아 있을 때/ 그러나 그 누구도 찢을 수 없고/ 빼앗을 수 없는/아아, 자유의 깃발이여/ 인간의 깃발이여/ 살과 뼈로 응어리진 깃발이여.
(김준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
카타콤도 아닌 지하실 방에서/ 카타콤이 없어도 되는 시대에/ 야훼를 부르는 야훼만 부르는/ 우리는 무엇일까/ 보다 자유로움 속에서/ 보다 자유케 하는 자를/ 기다림은 애타게 기다림은/ 참말참말 무엇일까.
(김지향/ 무엇일까)
기도하시오! 기도하는 것은 염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오./ 기도하시오! 예수는 당신의 기도를 이어주는 분이라오.
(아모스 R. 웰스/ 기도하시오)
나는 당신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자유롭지 못합니다/ 당신이 사로잡지 아니하면/ 정숙하지 못합니다.
(존던/ 내 가슴을 때리소서)
아, 이게 자유라는 것일게다. / 우리들로부터 굴레를 벗어 버리게 하는 오직/ 하나의 값진자유라는 것일게다. / 그래서 나는 그렇게, 그리고 그곳에서 숨을/내쉬며 들이마시고 있는 것이다.
(솔제니친/ 호흡)
하지만 내일 우리는 자유의 찬가를 부를 것입니다. / 이 예속에서 해방되는 날을/축하할 때/ 우리는 빛을/ 당신의 아들들을 찾아나설 것입니다. /어머니여/ 아들을 사별한 검은 어머니들이여/ 떠나십시오 삶의 희망을 찾아.
(아고스티뇨 네토/ 이별의 순간에 작별인사)
급한 듯 재촉하여 그 짧은 날을 사노라고/조국의 통일을/ 참다운 자유를/ 소리 높여 외쳤던가/ 새롭게 열려 올 날을 빛으로 열려을 날을/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렸던가
(박용주/ 거리에서)
온 방안 사람이 거지를 부럽단다/ 나도 거지가 부러워졌다/ 빌어먹으면 어떠냐/ 자유! 자유만 있다면// 저 햇볕 아래 깡통을 들고도/ 저들은 자유로울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첫째로 자유/ 둘째로 자유/ 셋째도 자유라 하겠다.
(노천명/ 거지가 부러워)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
(한용운/ 군말)
그가 살던 행복한 숲속에서/ 뿌리박고 살게하면/그보다 편하게 해 주는 일도 없을텐데/뽑아서 뿌리 자르고 가지 자르고/ 비 올 때 화분을 내놓고/ 비록 깨끗한 햇빛은 못 줘도/자유롭게 비나 맞아보라고/ 자유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느냐며/말은 바르게 하는 데도 악마 같은 손이/ 화분을 안고 밖으로 나간다.
(이생진/ 자생지)
사슬 벗은 마음의 영원한 정신, 자유여, 너는 지하 감방 속에서도 환하여 라/ 그곳에서 네가 살 곳은 그 열정이니/ 네게 대한 사랑만이 속박할 수 있는 그 열정이니라// 자유여, 네 자손들이 족쇄에 채워지고/ 족쇄에 묶여 축축한 지하 감방 햇빛 없는 어둠 속에 갇힐 때/ 그들의 조국은 그들의 순국으로 승리를 얻고/ 자유의 명석은 사해에 떨쳐진다// 시용이여, 너의 감옥은 거룩한 곳이요/ 너의 슬픔어린 돌바닥은 하나의 제단이라./ 보니바르의 발자국은 너의 싸느다란 돌바닥을/ 마치 잔디밭인 양 걸어 자국을 남겼구나//아무도 이 발자국을 지우지 말지어다!/ 그것은 폭군에 항거하여 신에게 호소하도다.
(바이런/ 시용 城)
내 꽃으로 태어나서/자유의 꽃이 되었네// 사랑과 노동 사이에서/ 노동과 자유 사이에서// 두 번 다시 진달래는/ 붉게 피지 않아도// 백두산 천지의 봄날이 되어/ 꽃잎처럼 흩어져간 너를 위하여// 내 꽃으로 태어나서/ 해방의 꽃이 되었네
(정호승/ 꽃)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타고르/ 동방의 등불)
푸른 하늘을 압제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우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김수영/ 푸른 하늘을)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이다/땀 홀려 힘껏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이다/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밖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김남주/ 자유)
어둠에 눕거나 칼바람애 베이거나/기다림에 눈 먼 너와 나도/ 빛이 터지는 자유의 하늘,신새벽이 오면/오랜 열망의 날들이 오면/이 땅의 어디나 피는 봄꽃처럼 상기되어/우리가 추리가 강강수월래
(나해철/ 강강수월래)
서울도/ 해 솟는 곳/ 동쪽에서부터/ 이어서서 남 북/ 거리 거리 길마다/ 손아귀에/ 돌벽돌알 부릅쥔 채/ 떼지어 나온 젊은 대열/ 아! 신화같이/ 나타난 다비데군(群)들/ ‥‥살인전제(殺人專制) 바리케이드/ 그 간악한 조직의 교두보/ 무차별 총구 앞에/ 빈 몸에 맨주먹/ 돌알로써 대결하는/ 아! 신화같이/ 기이한 다비데군들//‥‥// 멍든 가슴을 풀라/ 피맺힌 마음을 풀라/ 막혔던 숨통을 풀라/ 짓눌린 몸뚱일 풀라/ 포박된 정신을 풀라고/싸우라
(신동문/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껌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세상이 어지러우니/물보라도 안개를 이루면서/ 선명한 자유를 줄달음쳐/ 낭떠러지를 급하게 소리치며 내릴 때/ 갑자기 세상이 으시시해지기도 한다.
(김재흔/ 사람 속에서)
마침내 자유에도 싫증이 난 / 동물공화국에서는/ 오직 한 사람의 절대 지배자가/ 자기들을 다스려 주기를 갈망했다.
(하이네/ 당나귀 선거)
우리의 조국은 돌이며 하나이다. / 자유와 그에의 애수!// 우리는 일어섰다. 참혹한 4월이 지나간 맑은 새 아침,/ 모든 시내 모든 강물위에 흘러가는 그 소리와/ 모든 골짜기 모든 산비탈에 울려가는 그 노래와/ 동서로 가는 남북으로 뻗은 모든 길 위에 통하는/ 이 우리들의 제목을 위하여
(김현승/ 우리는 일어섰다)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양심과 나의/미지근한 싸움은 참기로 했다/ 양심이 피를 닮고/ 싸움이 불을 닮고/ 피와 불이 자유를 닮고/ 자유가 시멘트바닥에 응집된/ 피 같은 불 같은 꽃을 닮고/ 있다는 것을 배울 때까지는/ 응집된 꽃이 죽음을 닮고/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만질 수 있을 때까지는/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김남주/ 진혼가)
까다로운 마음/ 저마다 자유롭게/ 방목하는 날(日)/ 좁히거나 넓히거나/ 자기 삶의 자유입니다.
(한병윤/ 시간)
나는 알고 있었다 이 깃발의 색이 보이는/전조를/ 이 것은 독일의 자유에/ 최악의 인고를초래할 것이다.
(하이네/ 3월 이후의 미헬)
독일의 시인이여 노래하고 찬양하라,/ 독일의 자유를. 그대의 노래야말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고무시키고/ 우리들을 행동으로 나아가게 한다/ 마르세이유 찬가처럼
(하이네/ 경향)
구름으로 떠/ 하늘 흠모하던/ 자유의 하루
(박영남/ 날아간 새)
정묘년 늦봄에도 금남로는 눈물로라/ 잃은 것 찾으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오월의 그 문수대 돌과 탄(彈)의 교차점.// 한솥밥 먹은 뒤에 두 편으로 나뉜 형제/ 언 땅에 맞선 눈빛 밀고 밀치는 한(恨)이여,/ 오월의 텅 빈 가슴에 또 오월이 떠오르고.//돌(石)하,자유의 적을 향해 멀리곰 날으시라/ 탄(彈) 하, 북녘 괴수 살진 가슴 맞춰보라/ 뜨거운 겨례엘 북돋아 사랑과 믿음 찾자구나// 이제, 귓전에만 맴도는 구호이거나/ 웃지도 울지도 못할 거짓 시늉일랑은/ 강물에 띄워 보내고 거듭남의 새 삶이러라.
(정 철/ 금남로 주변 · 1)
잠들고 들어서 느는 건 개 같은 꿈과 허기뿐/ 잠깨고 깨어서 남는 건 값없는 삶과 아픔/어찌하나 더러운 시간 흙탕물처럼 흐르고/ 누구 하나 피신해 떠나려 하지 않으니/ 밤 깊으면 들고 해 뜨면 깨는 평생의 덜미// 잠들지 못하고 아침 맞는 한 몸의 시름이나/이불 쓰고 빈방 차지한 잠의 고단함/ 어찌하나 세월의 때와 화장터의 연기/ 높이 솟은 산허리 옛 마을 어둠에 감겨드니/ 우리 잠과 깸의 굴레 고스란히 파를어나 버렸으면.
(이유경/ 잠과 깸)
남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나의 권리와 자유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남의 권리와 자유를/ 나의 그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서로 이웃인 우리들의 자유와 권리를 찾기 위해/ 시인은 시를 쓰는 것 아닌가/ ‥‥어쨌든 시인은/ 어차피 한두 번 굶었나?/쥐꼬리 만한 퇴직금으로/ 자유와 권리가 글자마다 절규하는/ 시집 한 권 반쯤은/ 내놓고 보는 거야
(임수생/ 시집 한 권 반쯤 내는 거야)
이 골목 저 골목/ 살아 있음을 알리는/ 아침의 자유, 이슬 젖은 풀잎으로/ 그리움 깨우고있네.
(정희수/ 춘란)
한 촉의 새 순/ 마른 땅 헤치고 나와/쑤욱쑥 솟아난다// 섬돌 밑 갈라진 틈서리/ 닳아진 보도블럭 사이/ 남문시장 쓰레기통 옆에서도/부드럽게 손 뻗고 나온다// 한 방울 한 방울/가슴도 적시며/ 이슬 내리는 봄으로 일어선다// 다하지 못한 생명 위해/ 코 끝에/ 맵게맵게 매달리던 나날/슬픔 잊고 성에 지운다//아침, 맨 처음 어둠 밀어내는 햇빛/ 세상의 절은 먼지와 때 씻어/ 귀밑머리 송글송글 맺히는 사연들/ 온몸으로 부수고 있다// 삶의 물길 가운데/ 지금 꽃잎 몰아가는 바람/ 최루탄, 그 돌팔매 아래서도/ 일제히 일어선다 자유는.
(정희수/ 지금 자유는)
산자락 타고 천 리/ 강줄기에 흘러 흘러/터잡은 고향/ 그 세월을 질러/ 너, 자리한 그대로의 한 마음/ 하늘 끝에 두른 지평을 울타리로/ 날 것들의 자유가 너르다.
(박이도/ 풍경)
새에겐 날개가 있어서/ 바람의 사연이랑/날으는 일 따위/ 모두 알고들 있지// 날개가 있기에 바람과 날으는 자유를 알고 있지// 모두 다 알고 있기에/ 날개는 노래를 하리// 날개가 바람을 타고 있을 때/ 얼마나 노래는 자유로운가를/ 알고 있지요.
(살랭가/ 새들)
보석처럼 빛나는 물결/ 그 깊은 세계에는/ 그림 같은 자유가 있었습니다.
(임춘남/ 소금 만들던 곳)
내 육신과 영혼의/ 가장 출렁이며 떨리는/ 그런 것들/ 비록 눈먼 사랑이나 슬픈 미움도/어느 날/ 그것대로 살아 있는 빛깔과 리듬을 받아/ 하늘과 땅 사이 제 것인/ 바람의 광장에서/ 펄럭이는, 오 자유로운 깃발이 게 하소서.
(윤강원/ 하나의 기도)
어차피 날지 못하는 닭들은/ 그들의 자유를 알로 밀어내고
(허소라/ 11월의 노래)
학생 때의 나의 공책에/ 나의 책상 위에 그리고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의 이름을.//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그리고 공백으로 된 모든 책장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까지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금빛 칠한 조상(彫像)위에/ 병사들의 무기 위에/ 그리고 왕들의 관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밀림에도 사막에도 새들 등지마다 그리고 금잔화나무마다/ 내 어린 계절의 메아리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신비스런 밤에도/ 일용의 양식인 흰 빵 위에도/ 그리고 약속했던 계절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푸른 빛의 내 모든 누더기 옷에도/ 햇빛에 이끼 이룬 연못 위에도/ 생생히 달빛 비친 호수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들판 위에도 지평선에게도/ 새들의 날갯죽지에게도/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 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먼동이 트는 새벽녘의 입김에도/바다 위에도 선박 위에도/미친 듯이 분화하는 산 위에도/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에도/ 솟아나는 땀과 같은 소낙비에도/ 김빠진 굵다란 빗방울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빛나는 모든 것 위에도/ 가지각색의 종들마다/ 그리고 물리적인 진리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살면서 눈을 들듯 꼬부라진 오솔길 위에도/ 훤히 뻗어나간 큰 길 위에도/ 넘쳐 흐르는 광장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불이 켜지는 호야 램프에게도/불이 꺼지는 호야 램프에게도/ 일당에 모여 앉은 내집 식구들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두 쪽으로 쪼개진 과실 위에도/ 빈 조개껍질 같은 내 침상 위에도/내 방과 체경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아직 나이어려 지범대는 내 집 강아지에게도/ 빳빳하게선 그의 양쪽 귀 위에도/ 아직 익숙치 않은 그의 정강이에게도/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우리 대문간에 놓여진 발판 위에도/ 정든 가지가지의 물건 위에도/ 축복받은 듯 파도처럼 이는 불길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조화되어진 모든 육체에게도/내 벗들의 이마 위에도/ 악수를 청하여 내밀어 지는 모든 손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놀란 듯한 창문 위에도/ 기다리는 입술 위에도/ 그리고 침묵을 아득히 넘어서/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파괴되어진 내 피난살이 집 위에/ 무너진 내 등대들 위에/ 내게 권태를 알려주는 이 벽돌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욕정없는 이 곧은 마음씨에 게도/ 이 벌거숭이 같은 고독에게도/ 이 죽음의 행진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건강한 몸에 게/ 이미 사라져 버린 위태함에도/과거 없는 새로운 희망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나는 어휘의 힘으로써/ 나의 일생을 다시 마련한다. / 나는 지금 태어났다. 그대를 알기 위하여/ 그리고 그대를 이름짓기 위하여/ 오, 자유여!
(엘뤼아르/ 자유)
그러자 이별에는 한 웅변가가 말하기를 저희에게 자유에 대해 말씀해 주소서./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 성문 곁에서, 또 그대들의 집 난로가에서 나는 그대들이 엎드려 저만의 자유를 비는 것을 보았다. / 마치 압제자 앞에 스스로 머리 조아려 설사 자기를 죽일지라도 찬양해 마지않는 노예들처럼./ 그렇다. 사원의 숲에서, 성채 그늘 아래서 나는 그대들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자가 자유를 마치 멍에와 수갑처럼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 / 그때 내 마음은 내 속에 피 흘렸다. 왜냐하면 그대들 자유에의 욕망이 그대들에게 재갈을 물릴 때 만이, 또 자유가 최후의 목적이며 기쁨이라고 떠들기를 그칠 때만이 그대들 실로 자유로울 것이므로.// 그대들은 실로 자유로우리라. 욕망과 슬픔도 없는 밤이 아니라, 근심으로 가득찬 낮에, 또한 오히려 이 모두가 그대들의 삶을 묶고,그리하여 그럼에도 그대들 벗어 버리고 해방되어 이들 위로 일어설 때만이.// 그리하여 그대들 깨달음의 새벽에 지난 한낮의 시간을 묶었던 사슬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대들 낮과 밤 저편으로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실로 그대들 자유라 부르는 것은 이 사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슬인 것을, 그 고리가 비록 햇빛이 반짝거리고 눈을 어지럽게 할지라도.// 그리하여 그대들 자유로워지고자 내버리려 하는 것, 그것은 자아의 파편 외에 무엇인가./ 그대들 내버리려는 법이 부정한 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대들의 이마에 그대들의 손으로 씌어진 것./마를 씻고 바닷물을 퍼붓는다 해도 그것을 지을 수는 없으리라./ 그리하여 그대들 만일 쫓아내고자 하는 자가 폭군이라 한다면, 우선 보라, 그대들 내부에 서 있는 옥좌가 무너져있는가를./ 왜냐하면 아무리 폭군이라 해도 자유 속에 일푼의 포학함도 깃들여 있지 않고 긍지 속에 일문의 부끄러움도 들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자유인과 긍지인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그리하여 그대들 벗어 던지려하는 것이 근심이라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강요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대들이 선택한 것이다. / 그리하여 그대들이 없애려 하는 것이 공포라면, 공포의 자리란 두려운 자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 가슴속에 있는 것./ 일체는 실로 그대들 존재 내부에서 반쯤 뒤엉킨 채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열망하는 것과 두려운 것,불쾌한 것과 그리운 것, 추구하는 것과 달아나고 싶은 것들이./ 이들은 그대들 안에서 마치 한 쌍의 빛과 그림자처럼 달라 붙은 채 움직인다. /그리하여 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면, 남은 빛은 서성거리며 또 다른 빛의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 이렇듯 그대들의 자유도 자기의 족쇄를 잃어버릴 때 비로소 보다 큰 자유의 족쇄가 되는 것임을.
(K. 지브란/ 예언자)
봄빛이 스며드는 색은 원수의 살더미 속에/탄흔을 헤치고 신생하는 금속의 거리와 광장들에/ 부활을 의미하는 참혹한 마지막 시간에/일으켜야 할 제목은/ 신성과 자유이다. // 불꺼진 높은 곳의 추억에 등대들에/ 영광의 도시-허물어진 첨탑과 향상의 계단들에/ 일으켜야 할 별들은/ 신성과 자유이다. // 무덤같이 음산한 십대의 가슴들에/ 희망을 잃은 노병들의 두 눈에/ 일으켜야 할 노래는/ 신성과 자유이다. // 내일이면 꽃이 피고,/ 후일에 자라선 애인들이 될,/ 더 자라면 지도자와 엄격한 부모들이 될,/ 오늘의 눈물-방황하는 세대들에/ 일으켜야 할 신앙은/ 신앙과 자유이다. // 구원을 호소하던 부다페스트- 마지막 떨리던 음파(音波)들에/ 항거하는 평범한 영웅들에/ 굴복을 모르는 아세아와 구라파의 용감한 지역들에/ 일으켜야 할 동맥의 손길은/ 신성과 자유의 힘이다. // 침략자들의 말굽소리보다/ 모든 독재자들의 쇠사슬 소리보다 더욱 큰 분노로/ 일으켜야 한 제목은/신성과 자유이다. // 골짜기에/ 벼랑에/ 무기보다 빵보다/ 앞서 가야 할 우리들의 긴밀한 보급로는/ 신성과 자유의 마음들이다. // 보라, 피로 물든 강기슭에,/ 이그러진 황토 산비탈에/ 눈물로 세우는 모든 십자가의 경건한 제목도,/ 그리고 들으라,/ 우리들의 온갖 사랑과 정열과/ 모든 절망과 몸부림과 싸움의 동기를 역설하여 주는 폭탄 같은 외침도/ 신성과 자유이다. // 오오,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수확이여,/ 너를 위하여 흘린 추리들의 피는/ 아직도 동서남북에 넉넉히 출렁이고 있다. // 의욕은 출발의 북소리처럼 팽창하고,/새 아침이 열리는 곳-굽이도는 해안선과 산맥들/ 그리고 아득한 지평선마다/ 그윽이 울리는 생명 있는 것들의 합창소리도 그러하다!
(김현승/ 신성과 자유를)
설 교 노 트
자유의 복음
사61:1-3
서론
기독교를 가리켜 구원의 종교라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우리 기독교는 특별히 자유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자유인으로 만드셨으며, 평등하게 만드셨습니다.
특별한 자유 가운데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누리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개인적 자유를 윤리적 자유라고 한다면 사회적 자유는 도덕적 자유요, 양심의 자유는 가정적 자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런 자유들이 다 박탈되었고 거기에 따르는 생활의 자유까지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심령의 자유를 잃어버린 결과로 말미암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자유까지도 잃어버리고 번민과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도록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종"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의 종, 정치의 종, 욕심의 종, 마귀의 종, 죄악의 종이 되어서 그것들에게 묶여 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시고 성전에 이르면서 회당에 들어가 첫 성경 사61:1-2을 펴서 읽으시면서 그것이 예수님이 하실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보면
"주의 성령이 내게 임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시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엄청나고 놀라운 축복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이르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성령받은 사람은 모든 사슬에서 놓임을 받고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자유를 주셨으니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 굳세게 서야 합니다.
복음으로 얻은 자유의 위치에서 이탈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유 안에서 자기를 지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자유라는 말이 헬라어, 영어, 독어, 불어를 망라하여 "구속, 장애, 강제,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굳게 서야 합니다.
굳게 선다는 말은 부동, 불청, 불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밖의 어떠한 유혹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거기에 고마움을 간직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2)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 죄에 빠지지 말라는 말입니다.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였습니다(13절).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이 소극적이라면 서로 사랑의 종이 되는 것은 적극적입니다.
자유가 좋지만 남용하면 방종이 되고 그 자유를 선용하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영적 자유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면서 다시는 그 어떤 것의 종노릇도 하지 않기 위하여 진리 위에 굳게 섭시다. 다시는 흔들리지 맙시다.
이제부터는 더욱 서로 사랑하면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여 크게 유익을 누리며, 끼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의 자유
갈5:13-15
서론
사도 바울은 이르기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얻었으니 그러나 그 자유고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하였습니다. 현하 우리 사회가 요사이처럼 자유를 부르짖고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극심히 싸우는 때도 일찍이 보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의 역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오로지 영적 신앙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가면서 싸우며 발전해 온 종교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모세에 치한 출애굽 역사가 그러했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역사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여기 바울이 저술한 본서의 저작 동기나 목적도 바로 영적 신앙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기록된 전 세계 자유의 대헌장이기도 합니다.
1. 자유의 원천
우리 인간의 고귀한 자유의 원천은 무엇이며 그 어디에다 근원을 두고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몇 가지 특권을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아서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셨고, 만물을 통치할 수 있는 통치권을 부여하여 주셨고,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부여하여 주셨고, 취사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생존권과 자유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고귀하고 값진 보배 중의 보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다시 죄의 종, 마귀의 종, 사망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 이 영적 신앙의 자유를 위하여 싸워 나왔던 것입니다.
2. 자유의 의미
자유란 무엇입니까? 국어 사전에는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음 철학 사전을 고찰해 보면 정치상의 자유는 민주주의요, 심리학상의 자유는 취사선택을 자유롭게 함이요, 형이상학상 자유는 초시간적 초공간적 초인과적으로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자체라고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인간에게는 양심의 자유, 도덕상 자유, 법률상 자유, 정치적인 자유 등 여러 가지 논증을 들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밀들은 "다른 일체의 자유보다도 나에게는 아는 자유, 생각하는 자유, 양심을 쫓아서 마음대로 발언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믿는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사도 바울은 육체적인 자유와 영적인 자유를 논하면서 우리 신앙인에게 주어진 이 영적 자유가 육체의 기회대로 사용되어서는 아니된다고 징계하고 있습니다.
3. 신앙의 참 자유
우리 신앙인들은 정치적인 자유, 경제적인 자유, 사회적인 자유도 향유해야 되지마는 보다 더 고귀하고 높은 차원의 자유는 신앙자유라고 봅니다. 경우에는 세속적인 자유를 포기하고서라도 신앙 자유만은 기어코 향유해야 되겠습니다. 신앙의 자유에 관해서 성서적 입장에서 고찰해 보면,
(1) 하나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신앙생활의 자유요,
(2) 신앙 양심과 말씀 따라 사는 자유요,
(3) 교회 집회와 예배와 설교와 복음 전파, 즉 선교 활동의 자유를 향유해야 되겠습니다.
결론
우리 인간에게는 자유가 절대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인에게는 영적 자유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가 유리되고 탄압될 때 신앙인은 십자가를 지고 자유를 위해서 순교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
삿21:25
서론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본서 중에서 17:6, 18:1,19:1에도 각기 언급된 내용입니다.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1.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뜻
사람들의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고 하는 말은 사실상 사회가 무정부 상태로 무질서의 혼란상을 연출한다는 뜻입니다.
인간들은 무지한 것이 특색이기 때문에 나쁜 것을 옳은 것으로 잘못 판단하고 그 소견대로 행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물론 그 소견에 진정으로 을은 것을 옳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대다수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혹시 바른 판단이 되어도 다른 사람의 소견에는 그 일이 옳지 않을 수 있으니 여기서 피차 대립이 생기고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다는 것은 되는대로‥‥ 제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다 자기 소견대로 행한다면 악을 옳게 여기는 자는 악을 행할 것이므로 이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자기 좋은 대로 행하여 탈선합니다.
창세기 6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좋은 대로 아내를 얻어서 결혼을 하였으므로 자유연애의 전성시대입니다.
에서도 자유로이 결혼하였으므로 그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관심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창26:34-35). 결혼은 인생의 일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인데,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생살이의 큰 일들을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인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인간들이 제각기 자기 좋은 대로 산다면 사회는 혼란해지고 참된 자유를 도리어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의 참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과 진리에 의하여 바로 다스려져야 합니다. 거기에 참된자유가 보장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을 구속하려고 세운 것이 아니요, 참 이유를 주시려 함이니 하나님께서 옳다고 허락하시는 대로 살아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결론
교통 법규를 어기는 사람은 교통 사고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질서의 법을 무시하면 결국 그 사람 자신들이 손해를 당하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잠
성 경 활 용
1. 잠드는 이유
(1)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시므로
(창2: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 게으르기 때문에
(잠19:15) 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해태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3) 곤비하여
(삿4: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4) 정신적 연약함으로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2, 불면의 이유
(1) 나라의 일로
(에6:1)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 병으로
(욥30:17)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몸에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3) 배부름으로
(전5: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4) 슬픔 때문에
(단6: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5) 마음의 번민으로
(단2:1)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 지 이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6) 많은 일로
(창31: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전8:16) 세상에서 하는 노고를 보고자 하는 동시에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자도 있도다
(7) 서원으로
(시132:4)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8) 악을 행하지 못하여서
(잠4:16)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9) 근심함으로
(단6:14)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3. 자는 것을 좋아하는 자의 결과
(1) 해어진 옷을 입게 됨
(잠23:21)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 빈궁하게 됨
(잠20:13)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3) 소경이 됨
(사29:10)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4) 힘을 빼앗김
(삿16:14) 들릴라가 바디로 그 머리털을 단단히 짜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어 직조틀의 바디와 위선을 다 빼어내니라
(5) 시험에 들게 됨
(눅22: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6) 떨어져 죽는다.
(행20: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관련원어풀이
1. hm;Wn 누-마-
수면, 가벼운 잠.
(잠23:21)
2. @vey: 야-쉔-
(1) 잠에 떨어지다.
(창2:21, 시4:9)
(2) 잠자다, 졸다.
(사5:27)
(3) 마르다, 늘어지다, 늙어지다.
(레26:1)
(4) 늙다. 만성이 되다.
(레13:11)
(5) 잠들게 하다.
(삿16:19)
3. !d'r; 라-담
(1) 깊이 잠자다.
(잠10:5, 욘1:5)
(2) 아연실색하다, 놀라 자빠지다.
(시76:7, 단8:18)
4. u{pno" 후프노스
잠.
(마1:24, 롬13:11)
5. kaqeuvdw 카듀도-
(1) 잠자다.
(마8:24, 눅22:46)
(2) 게으르다, 경솔하다, 안전하다.
(엡5:14, 행12:6)
(3) 잠들다, 죽다
(요11:11, 행7:60)
(4) 자는 자들.
(살전4:13)
6. koimavw 코이마오-
(1) 잠에 떨어지다, 잠들다.
(마28:13, 행12:6)
(2) 잠들다, 죽다.
(요11:11, 행7:60)
(3) 자는 자들,
(살전4:13)
설교예화자료
왜 잠을 자지 못하는가
왜 잠을 잘 수 없는가를 알아내기 위해서 연구에 전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잠자기를 포기한 85명의 남녀가 하루 밤에 14달러에서 두 달에 500달러까지의급료를 받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동안의 뇌파와 신체 운동을 측정받고 있습니다.
월리엄 C.디멘트(William C. Dement) 박사는 스탠포드 대학병원의 수면질환 진료과정으로서 대규모의 불면증 연구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불면증은 고대부터 내려온 병입니다. " 박사는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연구하는 동안자거나 자려고 애쓰는 사람은 약 100명에 불과합니다. " 그는 이 연구가 대단히 넓고 복잡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잠을 자지 못하는 데는 최소한 100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장담합니다. " 그는 계속합니다. "불면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는 것은 두통의 원인을 묻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지오."
지옥의 불
요한 웨즐리가 어느 날 설교를 하고 있는데 교인 중에 조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웨즐리는 갑자기 큰소리로 고함을 쳤습니다.
"불이야! 불."
이 소리에 졸던 사람은 모두 놀라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고, 다른 사람들도 일어서면서 당황해 하였습니다.
"어디 불이 났습니까? "
그러자 웨즐리는 엄숙히 말했습니다.
"지옥에 불이 났습니다. 설교 중에 조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지옥에 불이 났습니다. "
어록·시·묘사
좋은 잠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해주는 살뜰하고 그리운 간호부다.
(W. 셰익스피어/ 헨리 4세)
수면은 죽음으로부터 빌어 온 행위다. 수면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죽음으로부터 비는 것이다.
(A. 쇼펜하워/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
산다는 것은 앓는 것이다. 잠이 열여섯 시간마다 그 고통을 경감시켜 준다. 잠은 일시적인 완화제이며 죽음은 특효약이다.
(S.R.N. 샹포르/ 격언과 반성)
잠은 눈까풀을 덮어 선한 것, 악한 것,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것.
(호메로스/ 오딧세이)
우리는 꿈의 재료이며,우리의 짧은 인생은 잠으로 둘러싸여 있다.
(W. 셰익스피어/ 태풍)
늦잠에 아침 술은 가난의 근본,
(중국 속담)
잠을 못 잔 사람에게는 풀의 향기도, 새소리도, 하늘도, 신선도 시들해지는 것이다. 잠을 희생하는 대가는 너무나 크다. 끼니를 한두 끼 굶고는 웃는 낯을 할 수 있으나, 잠을 하루 못 잤다면 찌푸릴 수밖에 없다.
(피천득/ 잠)
종달새와 함께 일어나고, 새끼 양과 함께 잠자리에 들라.
(N. 브레턴/ 법정과 주민)
정각 6시에는 꼭 일어나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면증이 오지 않는다. 불면증은 때를 가리지 않고 잘 수 있는 사람들만을 괴롭힌다.
(E. 허버드/ 속물)
신은 현세에 있어서 여러 가지 근심의 보상으로서 우리들에게 희망과 수면을 주었다.
(볼테르/ 인간론)
거적 쓴 놈 내려온다. <*졸려서 눈꺼풀이 내려 감긴다는 말>
(한국 속담)
한밤중 되기 전의 1시간의 수면은, 그후 3시간의 수면의 가치가 있다.
(G. 허버트/ 명궁)
늦게 일어나는 자는 온종일 종종걸음을 걸어야 한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사람을 건강하고 부하고 현명하게 만든다.
(B. 프랭클린/ 가나한 리처드의 책력)
잠은 우리들 인생의 절반을 훔쳐가는 도둑이다.
(스웨덴 속담)
지는 꽃의 잠이여/ 나의 가무린 영토를 위하여/ 신들을 만들 만큼이나/ 순수하고 어리석느뇨.
(고 은/ 이별)
잠을 훌륭하게 준비할 수도 있다. 상쾌하게 잠을 깰 수도 있다. 그러나 훌륭한 잠은 없는것이다. 그러기에 꿈도 현실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면 나로서는 흥미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잠일지라도 깨어나는 순간에 비기면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A. 지드/ 지상의 양식)
잠꾸러기는 모포를 두르고 사회를 살아나가고 있는 것과 같다.
(유태 속담)
저 고독한 자의 우회(迂回)/ 계절이 퇴장한/ 로터리를 천천히 돌아/ 방금 쇠망치 소리/ 햇살 흔드는/ 신축의 돌층계 다음/ 어려운 골목길을 꿰뚫고/ 조으는 처마밑/ 거기/죽은 듯이 오수(午睡)하는/ 살갗에 흘러드는/나의 건강이여.
(김윤희/ 부활)
당신과 잠을 나눌 수 없을 때엔/ 반은 당신의 것인, 이 존재 속에 들어간답니다.
(A.B. 리들러/ 잠들기 전에)
잎새 무성한 유월,/ 온밤 내내, 잠자는 숲에 고요한 가락으로 노래하는/ 숨은 시냇물 소리처럼,
(S.T, 콜리지/ 古代水夫)
어머니/ 젖은 베갯머리는 감도는/ 완강한 모순의 잠이 자빠지고 있나
(예종숙/ 무너지는 꿈)
죽지 않았습니다/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상(飛翔)을 위해/ 긴 침묵을 계속합니다/ 꿈을/ 찾아/ 잠을 자고 있습니다.
(전상열/ 동면)
나는 잠을 두려워합니다. 잠이란 쫓기다가 드디어 붙잡히는 최후의 상태 그것이죠.
(T.S. 엘리엇/ 가족의 재회)
아가는 진종일 고이 잡니다/ 잠은 아가의 요람/ 아가는 잠에 안겨 자라납니다.
(김남조/ 아가에게)
겹겹이 얼어붙은 이 절망의 겨울 속에서/오히려 별들처럼 잠자는 목숨들// 아직은 당신의 입김이 채 식지 않는 체온에 안겨/ 우리는 얼마나 햇빛을 바라며/ 오늘을 살아가는가/ 저 눈보라치는 언덕에는/지금 꽃씨와 더불어 잠자는 무수한 곤충이 있는데// 우리는 이제/ 서로 녹힐 남은 인정도 없이// 아, 당신의 입김은 그리도 멀리 물러섰는가
(최재형/ 동면)
잠아 잠아 오지 마라/요 내 눈에 오는 잠은/말도 많고 흉도 많다/ 잠 오는 눈을 쑥 잡아빼여/ 탱자나무에다 걸어 놓고/ 들며 보고 날며 보니/ 탱자나무도 꼬박꼬박
(한국 민요)
잠든 얼굴의 신묘함은 때로 죽음을 생각케/하누나. 진정 사람들은 때로 얼마나 잠들 듯이/죽기를 원하였더뇨. 그 본연의 흙덩이로/ 돌아가도록 점지받았기에 참고 살아가는/ 어진 목숨에게 잠이란 즐거운 죽음의 연습이리.
(박희진/ 잠을 기리는 노래)
잠은 화석의 샘/ 아득한 자기 손 위에 누워/잠자는 이는/ 물들은 돌/ 잠자는 이는 카드의사자(使者)/ 잠자는 이는 높지도 낮지도 않다/잠자는 이는 팔을 휘두르며 꼼짝도 않고/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다/ 꿈은 잠이 누는 똥
(J. 콕토/ 잠자는 이의 모델)
꿈에나 님을 보려 잠 이를까 누웠더니/ 새벽달 지새도록 자규성(子規聲)을 어이하리/두어라 단장춘심(斷腸春心)은 너나 내나 다르리.
(호석균)
님 그려 겨우 든 잠에 꿈자리도 두리숭숭/ 그리던 님 잠간 만나 얼풋 보고 어드러로 간 거이고 잡을 것을/ 잠깨어 곁에 없으니 아주 간다 하노라.
(무명씨)
왼쪽을 밑으로 하고 잡자든, 오른쪽을 밑으로 하고 잠자든 매 한가지다/ 정적에 안겨서 잠자기엔
(K. 크롤로브/ 사랑의 시)
등에 업힌 어린 건 나비같이 잠들어
(김관식/ 효자전)
하루의 노동이 끝나자/ 다시 고요가 찾아든다/지친 사람들의 수족을/풀어 주는 곤한 잠 속에서.// 고뇌는 마음을 흔들고,/ 비통한 정신을 죄인다. / 그리하여 망각의 잔을/ 마시고, 구원을 얻는다. // 고요한 레타 강물은/ 지금도 혈관을 몰래 흐르니/ 사람들은 더 이상 고통의/ 의미를 기억하지 않는다. // 부디 피곤한 육체는/깊은 잠에 젖게 하소서./마음은 아직 그 잠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기 억하리라.
(프루덴티우스/ 잠들기 전에)
보아스는 잠자고 있었다 피곤에 지쳐 있었다. / 그는 보리 타작마당에서 온종일 일한 것이다. / 그리고 보리 궤짝 옆에다 자리를 깐 것이다. / 보아스는 여러 보릿단 옆에서 잠자고 있었다. // ‥‥야곱이 잠자듯이, 유디스가 잠자듯이/ 보아스도 눈을 감고 잎사귀 옆에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그대 하늘 문이 활짝 열리면서/ 그의 머리 위에 한 꿈이 내려왔다. // ‥‥오, 하나님, 나는 무덤을 향해 혼을 굽히고 있습니다/ 목마른 소가 물을 향해 머리를 기울이듯이.// 보아스는 꿈과 황홀한 상태에서 잠에 겨운 눈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그렇게 말했다. / 떡갈나무는 그 밑등에 장미가 피어있는 것을 알지 못하며/ 보아스도 발 밑에 있는 한 여자를 느끼지 못했다.
(빅토르 마리 위고/ 잠자는 보아스)
이제 사람들은 잠들고 있나니/ 그래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은/나와 함께 이렇게 기도를 시작함이 좋으리라/ 낮에나 밤에나 찬미와 영광이/ 천상의 파수꾼에 의해 돌려지고 있는/그 위 대 하신 이름을 부를지니라/ 오오 예수여, 아멘/ 망상이여 사라지거라!/ 나의 주 하나님이 여기 계시느니라/ 나를 지키는 당신께서는 졸지 않으시나니/ 나 또한 당신을 향해 깨어 있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테르슈테겐/ 잠들지 못하는 때의 기도)
우리 눈은 졸음으로 감긴다 해도/ 마음은 언제나 주님 향해 깨오리다/주님을 사모하는 우리 무리를/ 권능의 손으로 지켜 주소서.
(작자 미상/ 밤의 노래)
우리들의 변덕스런 자아는 밤과 함께 퍼져서/ 마음의 숭배와 육체의 잠 속에 상실되고.
(레인/ 사랑의 시)
여자는 머리 아래 놓여 있는 힘찬 팔의 그네 질을 받으면서/ 미소를 머금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하지만 노래는 여자의 가벼운 머리에 잠을 붓는다.
(비니/ 삼손의 분노)
주무시지도 않고 졸지도 않으시며/ 오라, 오라, 오라, 오라/ 한사코 기다리시는 이가/ 있다고 한다.
(정벽봉/ 목소리)
잠은 잠이 아닌 삶으로/ 부활 연습 발맞추어
(오동춘/ 부활 연습)
내 귀를 열어 주십시오/ 나를 깊은 잠에서 깨울 수 있는 것은/ 아침 이슬이 방울로 떨어지듯 하는 당신의 음성입니다.
(황금찬/ 여인에게)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축복해 주세요/ 내가 잠자려고 눕기 전에/ 나는 내 영혼을 그리스도께 맡깁니다/내 침대 네 모서리에/ 네 천사 지키고,/ 둘은 발치에, 둘은 머리맡에,/ 그리고 내가 죽으면 네 천사가 옮길 거예요/ ‥‥그분은 가지나는 꽃,/ 내게 행복한 시간 보내 달라고 기도해요,/ 그리고 잠깨기 전에 내가 죽으면/ 그리스도께서 내 영혼을 가져 가시라고 기도해요.
(작자 미상/ 자기 전에)
님의 눈물 적시는 곳마다/ 잠자는 영혼들이 꽃으로 눈뜨고/ 음치임을 숨길 수 없는/ 가여운 나의 노래는/ 당신의 입술을 기다리는/ 아지랑이가 됩니다.
(김성영/ 나의 노래 아지랑이 되어)
우리의 눈이 감기는 한밤중에도/ "나는 잠 들지만 주여 내 심령은 깨어 있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조심하며 기도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오,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모스 R. 웰스/ 어느 때나 기도하라)
아아, 오늘은 당신께서/ 병들어 지친 할아버지로/ 이 종 앞에 오셨더이까? / 프란시스의낡은 외투 깃 속에서/ 피곤한 몸을 맡기시고 잠들었던 당신
(김성영/ 걸인으로 찾아오셨던 님)
당신이 사랑스레 지켜보시기만 해도 나는 잠이 듭니다/ 어머니! 나를 가만히 흔들어 잠들게 해 주십시오.
(E.A. 알린/ 어머니 나를 도닥거려 잠들게 해 주세요)
"엄마, 잘자. 나도 엄마 사랑해."/ 아기의 눈도 감기면/ 피곤하고 지친 손과 발은/ 달콤한 휴식을 즐긴다네.
(작자 미상/ 저녁 때의 기도)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이장희/ 봄은 고양이로다)
오오 와 다오, 포근한 잠아!/ 하염없는 희망을 덮고/ 끊임 없이 근심스러운 마음 우에/ 한번 다시 그 잠이 와 주려무나. '자장자장 잘두잔다/ 얼뚱아기 잘두 잔다/ 자장골에 들어가니/ 그 골에는 잠두 많어/ 센둥이두 자드란다/검둥이두 자드란다'/ 엄마도 이 노래를 부르시다가 꼬박꼬박 졸음이 와서/ 내 이마에다 이마뚝도 하셨었지.// 노근한 봄날/ 낮잠 주무시는 할아버지의/ 은실 같은 수염을 뽑아가지고/ 개나리 회초리에 파리를 매어/ '잠자리 종조옹/ 파아리 종조옹/ 이리 오면 사느니라/ 저리 가면 죽느니라‥‥‥‥
(심 훈/ 돌아가지이다)
시민의 고단한 잠 속에/ 그 비는 내린다.
(강 민/ 비가 내린다)
그는 동면한다/야릇한 매혹에 흘려/ 석 달 열흘을 잠든 채
(J. 콕토/ 잠의 넋두리)
자주 공단옷을 입은 고양이는 졸고 있는데/ 유리창으로 스며드는 프리즘의 채신은/ 면사 (面紗)인 양 덮어 줍니다.
(장서언/ 이발사의 봄)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수면의 강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의 들판을/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으다가/ 갈깜한 절망/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부딪치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정한모/ 나비의 여행-아가의 방 · 5)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 없은 몸이/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이은상/ 가고파)
이길 수가 없다 이길 수가 없다. / 오로지 졸음에는 이 길 수가 없다. / 종일을 수양이 되어 강은 좋이 빛나네.
(박재삼/ 수양산조)
우리 잠자자, 어떤 구실로든지,/ 예컨대, 꿈속에 날아가라 ; /‥‥// 잠이야말로 당신의 시를 만들어 준다/단 하나의 길고 게으른 팔을 가진 아가씨/ 이미 꿈이 당신을 사로잡아,/ 이젠 딴 아무것도 당신을 흥미 있게 못하는구나.
(J.콕토/ 잠든 아가씨)
이리도 길고 음산한/ 절망의 잠에서 깨어나는/ 낯익은 바람소리는/ 우리의 이성과 욕망 사이에서/ 무슨 말을 떠올려야 할까
(김규동/ 어떤 낙화)
어느 시인의 입술에서 나는 잠을 잤다/그의 숨결소리 들으며/ 사랑의 명수처럼 꿈꾸며
(셸리/ 시인의 꿈)
기다리는 사람을 내게 데려오게 어서 불어라,/ 내 귀여운 아기가 잠든 사이 에.// 자거라자거라 편히 자거라./ 네 옆에 아버지가 돌아오시리니/ 자거라 자거라 편히 자거라./ 네 옆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리니/ 내 아기야 자거라 사랑의 품에.
(테니슨/ 산들바람의 노래)
이윽고 긴 당번시간이 끝난 후의 고요한 잠과 달콤한 꿈.
(메이스필드/ 바다에 돔이 달아)
산들바람 한 오리 가/ 멎은 그곳에/ 꽃잎들은 꽃잎들은/ 단잠 듭니다.
(김남조/무심)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고 오고/ 그리움의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김소월/ 옛 낯)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랫가락에/ 내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한 잠자리에 홀로 누워도/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김소월/ 님의 노래)
아스파라거스처럼 늘 산뜻한 걸 즐기는 새악시/ 오만나무 아래서 차라리 낮잠을 잤다.
(노천명/ 슬픈 그림)
잠의 나라에서 몸부림치던 사랑의 눈물은 어느덧 베개를 적셨습니다/ 용서하셔요, 님이여,아무리 잠이 지은 허물이라도 님이 벌을 주신다면 그 벌은 잠을 주기는 싫습니다.
(한용운/ 잠꼬대)
오늘 오후 다섯 시 오십 분/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졸립다/ 게으른 사람은 목을 졸라도/ 졸음이 온다더라.
(이생진/ 게으를 때하는 소리)
벼랑 밑의/ 잠, 소름돋는 꿈속에서도 산산히 부서지는/ 뼈 마디마디에 와 박혀 숨 고르던 별빛들/ 폭포처럼 소리내어 흐르면) 어둠은 등굴게 혼의 광채 부풀리더니.
(전동균/ 과녁)
새 한 마리/ 물가로 부지런케 나와/ 뚫어지게 바라본다. // 잠속의 어스름 눈으로/ 아직은 덜 깬 하늘/ 내 앞의 아득한 길을 찾다.
(정복선/ 笠岩에서의 2박-이튿날)
주님!/ 일어나십시오./ 그리하여/ 모진 바람을 꾸짖고/ 성난 물결을 잠재워 주십시오./바다에는/ 초속 25미터의/ 광풍이 불고 파도는 산맥과/ 계곡을 이루고 있다// 내가 탄 배는/한 조각의 나뭇잎/ 방향도 모르고 있다/ 모든 것이 풀잎같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예수님은/ 옛날처럼 배 안에서/ 잠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잠들어 계시다// 내 마음에/ 잠든 주님을/ 생명으로 불러// 갈릴리 바다/오늘의 물결을/ 잠들게 하리라.
(황금찬/ 마음속에 잠든 예수)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아이는/ 잠이 들었다.
(조지훈/ 고사 · 1)
집에 돌아와서 나는 잠을 잤다 마치/ 천사에 흔들려 잠이 들듯이/ 독일의 침대에서는 정 말이지 아늑하게 쉴 수 있다/ 그것은 새털로 되어 있는 요이기에// 아 나는 얼마나 자주 그리워했던가/독일의 침대에서 자보는 쾌적한 기분을/잠 못 이루는 망명지의 밤에/딱딱한 요 위에서 자면서!// 새털 담요에서는/잠도 잘 오고 꿈도 좋은 꿈이 꾸어진다/ 이 침대에서는 독일의 혼도 자유를 느낀다/ 지상의 모든 사슬에서 해방되어
(하이네/ 독일 겨울 이야기 · 7)
너의 고단한 잠은/ 몇 시인가/ 눈이 빨간 밤새가 울어/ 적막하다/‥‥// ‥‥속상하게 잠든/ 눈까풀이 떨리고 있다/ 무수히 내리는 이슬에/ 흐느끼는 잠꼬대// 결벽한 여로/ 잠의 시간이여/맨발이 상하지 않는 땅/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윤강로/ 잠속에서)
구름을 안고/ 산사(山寺)는 조은다/‥‥// 잠든 국화 송이가/ 기러기 소리에/ 가끔 깨어나는데/ 엇저녁 산 꿈이/ 다시 오는 밤
(장이두/ 산 꿈)
'아침 여섯 시에 깨워줘/ 안 일어나거든 두들겨도 좋으니까'/ 기말 시험 공부를 머리맡에 밀쳐 둔 채/ 하얀 종이에 또박또박 부탁의 말 얹어 놓고/ 박꽃보다 평화로이 자고 있는 딸 아이// 곤한 잠 차마 못 깨워/ 멀리 숨소릴 가라앉혀/ 살얼음 밟듯이/ 나직히 불러본다. // 아침 햇살에/ 딸 아이의 단잠은 봉골봉골 목화꽃 마냥 따뜻하고/ 부탁의 말은 아지랑이로 하늘대는데‥‥/ 깨울 수도 찬 깨울 수도 없는 어미 마음/ 소중한 단잠 가에 기다리고 앉았다.
(이복숙/ 단잠 가에서)
아지랑이 어르다가/ 할미꽃이 졸고 있네// 햇살 바른 절 뜨락에/ 돌부처가 졸고 있네// 목소리 흘려 들으며/ 산도 따라 졸고 있네
(허 일/ 봄)
짜아한 매미소리/ 돌등으로 스며들고/ 구름도 산도 숲도/ 바람마저 조는 오후
(허 일/ 고요 · 1)
고단했던 하루를/ 다림 질한다// 보채는 순례객을 잠 재우는/ 꿈의 다리 저편엔// 나를 기다리는/ 너의/ 깊은 그림자가 누워 있다.
(이해인/ 다리)
잠들어 있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정작 깊은 잠에 빠져/ 허우적이고 있는 것은 저입니다/ 당신은 깨어 계심을 압니다/ 한 순간도 졸지 않고/ 깨어 계심을./ 영혼의 촛불을 밝혀/세상의 빛으로/ 타고 계심을 압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새벽의 곤잠에/ 빠져 있습니다/ 당신이 목숨을 태워/불 밝혀 주심에도/ 길을 끌고/ 캄캄해 하는/ 이 우둔한 자를/ 용서하소서/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고/ 헤매 이는 저를 구하소서.
(김소엽/ 잠에 빠진 나를 구하소서)
별이 만발한 이 새벽/ 당신의 음성에 잠을 치우고/ 비로소 눈을 떠/ 비워서 얻는 것과/채워서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김상길/ 그릇)
그날, 당신의 성막 위에 임하신/ 전능 여호와 엄위시여/ 지금 오셔 다시금 내게 거하시매/ 영혼은 깊은 잠 미몽에서 깨나이다. // 아하 진정 누에의 첫 잠 같은/ 나의 올되지 못한 깨침이여.
(김성영/ 구름 기둥)
잠이 오지 않았다/ 석달 열흘을 아무리 애 써보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병원과 약방을찾았으나/ 나를 잠들게 하지 못하는 약들/‥‥//‥산에 도착하던 날부터 쿨쿨 잠을 잤다.
(한성기/ 처방)
눈은 내리어서 천지를 가리고/한밤의 멀고 먼 겨울 우리가 선잠을 깨우는데/ 이 밤에 눈길을 걸어서 당신에게 가오/ ‥‥서로서로 부등켜안고 잠드는 우리의 이 겨울을/말없이 꿈꾸는 우리의 이 겨울을/녹이기 위하여/ 이 밤에 흉중에 피는 매화 한 송이 꺾어/ 당신에게 가오.
(김후란/ 매화 한 송이)
지금도 이 길이 마지막 길/ 멀리 관악산이 울다가 잠이 들고
(정호승/ 백범 묘소 앞에서)
노고에 억눌려 영혼이 잠으로 기울 때면/ 감기는 두 눈을 쳐들어 당신을 바라보며/ 기도하렵니다/어둠 위에 드리우는 당신의 날개 밑에서/ 쉬는 것도 즐겁지만/ 잠을 깨어 당신을 거기서 만나게 되면 더욱 기쁩니다.
(스토우/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잠든 아가의 손을 쥐어 본다/ 흰 이마 귀여운 귀뿌리에 달빛이 머문다/ 달은 둥근 얼굴의 고요한 마음씨/ 눈썹으로 해서 나의 살결에도 스미느니// 달빛이 댕기면 피부가 정결해지고/ 정결한 피부가 속으로 순화(醇化)의 깊이를 포개면/ 이로써 고운 꽃물이/ 적셔질지도 모르는데// 아가 머리맡엔 흰 석고의 성모상/ 성모의 발이 출렁이는 물속에처럼/달빛이 잠겨 있다// 잠자는 것들은/ 좋은 술에서처럼 잠에 취하는 시간/잠자지 않는 건/눈썹을 깜박이며 모여들 온다// 내가 나눠져서/ 몇 개의 분신으로/ 만나는 시간//숨겼던 사랑을 차고 나오는 나와/ 미진한 염원에 가슴이 더운 나와/ 가책의 질고를 앓고 있는 나와/ 이렇게 여럿이서/ 원탁(圓卓)을 둘러앉는다// 달은 둥근 얼굴의 상냥한 마음씨/ 닫힌 유리창을 넘어 와서/나의 눈앞에 유백(乳白)의 등(燈)을 건다
(김남조/ 달밤)
아가 손 쥐고/ 아가 함께 엄마도 단잠 자는/ 눈어린 대낮// 아가 얼굴이사/ 물에 뜬 미끈한 달덩이지/ 눈이야 감건 말건/ 훤히 비치는 걸// 조랑조랑 꽃이 많은 꽃묶음이나/ 잘 익은 과일들의 과일바구니 모양/ 연방 흘리는 단내나는 살 냄새/ 아가의 향기// 꿈결에도 오가느니/ 아가 마음과 엄마 마음/ 금수레에 올라탄 메아리라 부르랴/ 사락사락 입맞추는/ 봄바람이라 부르랴// 아가 한 번 눈떠 보면/ 엄마도 잠이 깨고/ 아가 방긋 웃어 주면/ 엄마 가슴은 해돋이// 창호지 한 장 넘 엔/ 누가 오고 누가 가건/우리 아가 옆자리는/엄마의 낙원
(김남조/ 아가와 엄마의 낮잠)
네 이름에 이어진 건/ 여기 잠들어라/ 가을의 가슴 안에 쉬어라/죽을 뻔 죽을 뻔 그쯤이나 하다가/ 얼마 헐거워진/ 너를 풀어 뒤이련다/ 자거라 자거라,/ 잠의 노래 부르리라// 가을이 이렇게 큰몸인 줄/내 몰랐어라/ 온누리 복되고 위안인 줄/ 내 몰랐어라// 네 마음에 이어진 건/ 모두 잠들어라/ 어머니의 품이니 쉬어라// 아흔아홉 가파른 고개/ 너를 등에 지고 온/ 여윈 빈 지게 비스듬히 세워 두고/나도 잠들어 쉬련다/쉬련다//사랑이여
(김남조/ 가을 잠)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어여삐 잠든 소녀/ 아가야, 너 의 모습은/ 진정 죄를 모르는 천사로다. // 새근새근 잠을 자다가/ 막 깨어난 너의 눈망울엔/ 소망으로 맑은 하늘이 있고/헝크려진 내 마음의 실타래를 태우는/순수의 불꽃이 있구나.// 한 송이 꽃이 벙그듯/ 이 때묻은 공기를 하품하는/ 너의 입술 언저리엔/사랑하는 그분의 은총이 보인다.
(김성영/ 전동차 안에서 만난 천사)
잘 자라, 내 작은 아기야./ 나의 작은 사랑아, 편히 쉬거라./ 한때 예수님께서도/ 너와 같은 아기였으니‥‥/ 그리고 어머니 품에 잠드셨단다. // 파랗고 작은 졸리운 눈을 감으려므나/밤과 어둠이 가까우니‥‥/ 그러나 어둠은 사라지고/ 예수님께서 내려보시니/ 아가야! 두
려울 것이 없단다. // 잘 자라, 내 작은 아가야./네 하이만 베개 위에 조용히 자거라./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어/ 사랑스러운 너를 굽어보시니/ 오늘 밤은 아무것도 너를 해치 못하리./ 오! 나의 작은 사랑/ 행복이 무엇인지 네가 알리/ 다만 내가 그것을 확신함으로/ 자나깨나 평안하단다.
(작자 미상/ 잘 자라)
설 교 노 트
깊이 졸더니
행20:7-12
서론
본문 사도행전 20장 9절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고 했습니다. "깊이 졸더니"를 그대로 제목 삼아 증거함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가 둘째번 전도 여행 중에 드로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찬의 떡을 메기 위하여 성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시간은 언제쯤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모여서 계속해서 바울 사도의 강론 설교를 들었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또한 듣는 성도들도 역시 한 마디인들 놓칠세라 조용히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듣기만 할 뿐 아니라, 그 말씀으로 믿음이 싱싱하게 살아나게 되었고, 하늘의 신령한 기쁨과 즐거움에 심신이 저려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의 양식에 배부름을 얻으며, 기름진 생명의 꼴을 먹으며, 성령의 생수를 마시므로 은혜 충만, 말씀 충만한 자리에 옥에도 티가 있다고 그러한 은혜의 분위기 가운데 한 사람이 창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성경에 유두고라는 청년이라 했습니다. 그가 얼마 동안 창에 걸터앉았다가 그만 졸기를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설교가 깊게 들어가듯이 그의 잠도 깊이 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졸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1. 예배를 중요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졸음을 자초하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예배 시간을 등한히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두고의 경우에는 예배 시간을 중요시하지 않았음이 분명 합니다.
원래 예배란 거룩한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 정성을 다하여 겸손히 머리 숙여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가장 경건한 의식으로 갖추어진 최고의 신앙적인 표현이 예배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 보면 마음이 예배에서 떠나고 중요시하지 않게 되면 우리의 심령은 별수없이 본문에 나타난 유두고와 같이 영혼의 졸음이 엄습해 올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땀을 흘려가면서 전하고 또 전하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피곤도 잊어버리고 주의 말씀을 전하는데, 유두고는 창문에 걸터앉았다고 하는 것을 보아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을 소홀히 했다고 하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는 곧 영혼에 병든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것은 패망의 원인"이라고 잠언 13장 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두고처림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면 영혼의 졸음이 오게 되어 있고, 삼층 누에서 떨어지는 타락과 실패가 오게 되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3. 주의 종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해 주는 바울 사도, 주의 종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유두고에게 있었다면 감히 창문에 걸터앉지도 않았을 것이요, 졸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종의 목전에서의 경솔한 행동은 주의 종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된 데서 오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유두고에게 졸음이 안 올래야 안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종은 자기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기가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불가불 하나님이 종의 길을 걷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권고하심이 같이 하시므로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주의 채찍이 있으니까 그것이 무서워서도 걷는 것이요, 적극적으로는 불붙는 사명감 때문에 하나님의 종으로서 직무를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유두고가 깊이 졸은 사건을 통해서 내가 바로 유두고와 같은 상태가 아닌가 살펴보고 예배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솔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의 종에 대한 존경심의 결여가 아니라, 많은 사람 가운데 택하여 세운 하나님의 사자라고 하는 존경심을 가지고 쳐다보면서 말씀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얼치기가 아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믿음에 굳게 서서 졸지 않고 깨어 있는 신앙으로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심
시77:4
서론
"주께로 나로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곧 잠 못 이루는 밤을 말합니다. 밤에 잠을 못자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습니다.
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육체의 연약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의 정상적인 움직임이란 낮에 활동하고 밤에 평안히 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건강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육체가 너무 허약하거나 중한 병에 걸려서 출입을 못할 지경에 이른 자들은 평안하게 밤에 안식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27편 2절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밤에 평안하게 자는 것은 축복 중에서 가장 큰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연약함으로 잠을이루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2. 근심과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사람에게 정신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근심과 걱정, 염려스러운 일들이 우리 환경에는 허다합니다. 이런 부조리한 요소들은 우리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므로 안식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밤에는 사람들의 생각이 한 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사상들이 떠올라서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지 못함으로 자연히 잠을 이를 수 없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가져야 몸도 편히 쉴 수 있습니다.
3. 범죄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라고 함은 범죄로 인한 심령의 괴로움입니다. 밤에 손을들고 거두지 않음으로 내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심령의 안식은 사죄로 인하여 이루어지나니 범죄자가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범죄로 인해서 심령이 괴로우면 평안히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심령이 편안하고 안식을 누리려면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잠을 잘 잘 수 있는 비결입니다.
결론
그러면 잠을 이루지 못할 때의 대책을 알아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적절하고 또 희망적인 해결 방법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문제는 선하게 풀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밤새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식이 병에 걸렸을 때 밤새워 금식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 자식은 다윗이 범죄하여 난 자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잠을 못 이루게 될 때 우리의 연약함과 근심 ·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 죄를 회개하고 생활을 하여 참 안식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장례(-식)
성 경 활 용
1. 장례식의 특징
(1) 사람이 죽으면 곧 눈을 감게 한다.
(창46:4)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2) 시체를 씻었다.
(행9:37) 그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 향유를 부었다.
(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4) 시체를 썩지 않게 보존하였다.
(창50:26) 요셉이 일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대하16:14, 막16:1) 참조
(5) 베로 쌌다.
(요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6) 상여로 옮겼다.
(삼하3:31) 너희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띠고 아브넬 앞에서 애통하라 하니라 다윗 왕이 상여를 따라 가서
2. 장례에 대한 율법의 규례
(1) 시체를 만지면 칠일 동안 부정한다
(민19:16, 18)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이운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
(2) 나무에 달린 시체는 당일에 장사해야 한다.
(신21: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3) 사람의 뼈를 보면 장사해야 한다.
(겔39:15) 순행하는 자가 그 땅으로 통행하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관련원어풀이
1. lb,ae 에-벨
슬픔, 장사.
(삼하11:27)
2. rb'q; 카-바르
(1) 파묻다, 매장하다.
(창23:4, 길39:12)
(2) 묻히다, 매장당하다.
(룻1:17, 삿8:32)
(3) 파묻다.
(민33:4, 왕상11:15)
3. ejntafiavzw 엔타피아조
(1) 장례를 위해 준비하다.
(마26:12)
(2) 장례를 위해 의식을 준비하다.
(요19:40)
4. qavptw 다프토-
파묻다, 매장시키다.
(마8:21, 행2:29)
5. kei'mai 케이마이
(1) 사람이 눕다, 기대다.
(마28:6, 눅2:12)
(2) 물건이 있다, 놓여져 있다, 서 있다, 저장되어 있다.
(마5:14, 요2:6)
(3)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요일5:19)
설교예화자료
장례식에 노래를
장자의 아내가 죽었을 때 혜자(惠子)는 상문을 갔습니다.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분(盆:장구와 한가지)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혜자가 묻기를,
"그대는 마누라와 함께 살면서 자식을 길렀고 이미 몸이 늙었네 마누라가 죽어서 울지 않은 것은 혹 모르지마는, 분을 치면서 노래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는가? " 장자 답하기를,
"그렇지 않네. 그가 처음에 죽을 때에야, 낸들 혼자 어찌 슬퍼하고 놀라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 나기 이전을 곰곰이 생각해 본즉 원래 생이 없었던 것이요, 한갓 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 형상이 없었던 것이요, 한갓 형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원래 기운이 없었던 것일세. 어떤 무엇이 흐릿하고 황홀한 가운데 섞이어 있다가 그것이 변해서 기운(음양의 두 기운)이 생겼고, 기운이 변해서 형상이 생겼고, 형상이 변해서 생이 생겼고, 그 생이 이제 또 변해서 죽음으로 간 것이네. 이것은 저 춘하추동 네 철이 되풀이해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네. 아내는 지금 큰방(天地 사이) 안에 편안히 누어 있는데 내가 시끄러이 소리를 내어 그를 붙들고 운다면, 내 스스로 천명을 모르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나는 울기를 그만둔 것이네." 하였습니다.
낙천적인 죽음
장자가 곧 죽게 되었을 때에 제자들은 그를 성대하게 장사지내려 했습니다. 이에 장자는말했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으로써 널을 삼고, 해와 달로써 한 쌍의 구슬을 삼으며, 별로써 많은 치레구슬을 삼고 만물로써 제물을 삼는다. 나를 장사지낼 기구가 어느 것이 모자라는가? 여기에 무엇을 더 보탤 것인가? " 제자 대답하되,
"저희들은 까마귀나 소리개가 선생을 먹을까 두려워합니다. "하니 장자 가로되,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이되고, 땅 밑에 있으면 땅벌레나 개미의 밥이 될 것입니다. 저것에게서 빼앗아 이것에게 준다니, 어찌 그리 편벽되느냐?"고 하였습니다.
구두쇠
로버트 술러 박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이 오십팔 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의 질녀가 전화로 로버트 술러 박사에게 장례식을 집행하여 달라고 말했으며 그녀는 모든 필요한 준비를 갖추어 놓았습니다. 로버트 술러 박사는 장례식 전에 그녀와 같이 한 곳을 방문하려고 의논했으나 그녀는 너무 바빠서 안되겠다고 하였습니다. 로버트 술러 박사가 상가(funeral house)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없었으므로 장의사와 펄버트 술러 박사는 십분 정도 기다렸다가 식을 시작하였으나 한 사람도 보이지 많았습니다. 이것은 로버트 술러 박사의 생애에서 가장 섬뜩한 경험의 하나였습니다. 장의사가 죽은 사람에겐 아들 둘이 있는데 모두 이 근처에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을 준비한 사람은 질녀였으며 이 여자는 그곳에서 사 년 동안이나 살았던 것입니다.
"저 사람 아들들은 어디있지요? 또 질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질녀는 혼자서 장례식을 올 생각은 없다고 하더군요. 또 질녀가 말하기를 아들들은 안 올 것이라 합니다. 자기 아저씨는 자기 아들을 찾아보지도 않았고 지역 사회와도 접촉이 없었으며 이웃 사람들이 성가시게 구는 것을 아주 싫어했답니다. 그 사람은 종교나 정치적인 일에 휩쓸리는 것도 아주 싫어했으며 대단히 이기적이었습니다. 그는 또 아주 머리가 뛰어났고 항상 돈을 모으는 일만 하였으니 참 구두쇠였지요."
그는 결코 다른 사람들과 정을 나누지 못했으며 올바르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의 본보기였습니다.
영원한 상복
영국의 변호사들은 오늘에 이르도록 1649년에 죽은 메리 황후2세를 위한 상복을 입고 있습니다. 이해 국왕 윌리엄 3세는 메리 황후의 죽음을 슬퍼하여 영국의 모든 변호사는 상복을 비단으로 만든 로프와 검은 법정 드레스를 입도록 명하였는데, 그 명령이 취소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영국의 법조계에서는 흔히 우스갯소리로 "법조계는 황후의 상을 입었는데 언제나 벗을 수 없다. "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장례식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은 천국이 아니다.
(크레올)
사람이 죽을 때 장례와 제례를 갖추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산 사람의 애다.
(윤오영/ 臥病隨感)
이런 것을 살펴볼 것 같으면 화장(火葬)의 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러움을 버려서 깨끗함에 나아가게 하고, 신(神)을 맑게 해 승천하게 해서 극락 왕생의 길로 천도함은 인간 세상사에서 가장 큰 규범이 된다.
(기 화/ 현정론)
슬픔이 깃들인 결혼식이 없는 것도 아니요, 울음이 없는 장례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 속담)
장례식의 장려(壯麗)함은 살아 있는 사랑의 허영 때문이지, 죽은 사람의 영예 때문은 아니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장례식이 끝나면 미망인은 사치를 시작한다.
(프랑스 속담)
죽은 후의 것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화장(火葬)도 좋고,수장(水葬)도 좋고, 땅속에 묻혀도 좋고, 땅 위에 버려져도 좋고, 새끼로 묶여 시궁창 속에 매달려도 좋고, 비단옷에 휘감겨 돌관 속에 놓여져도 좋다.
(양 주)
옛날의 하후씨는 동쪽 뜰에 빈소를 마련하고 은 나라 사람은 두 기둥 사이에 빈소를 마련했으며, 또 주 나라 사람은 서쪽 뜰에 빈소를 마련했었다. 이 빈소라는 것은 죽은 사람을 손님과 같이 대접한다는 의미에서다.
(공자가어)
송장 빼놓고 장사지낸다. <*가장 긴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일을 치룬다는 말>
(한국 속담)
잔치엔 먹으러 가고, 장사엔 보러 간다.(*이치를 따<자면 혼인 잔치에는 구경도 하고 축하를 해야 하나 실상은 모두들 먹는데만 기를 쓰고, 장사지내는 데는 위문하고 일을 도와주어야 하는 것을 울고 법석이는 구경만 하는 것이 사실이란 뜻>
(한국 속담)
장례식 때 조상객들에 의하여 영구(靈柩)의 위에 흘려지는 성수(聖水)는 누구든 뿌릴 수있는 "눈물의 선물"이다.
(S. 말라르메)
화장은 너무 참혹하고 토장은 슬픔이 너무 빤하게 나타나 보여서 싫어요. 차라리 물에 띄어서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다가 육신이 산산히 흩어져 버리는 게 아무 형적도 남기지 않고 좋아요.
(정비석/ 애정무한)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땅을 치고 발을 구르는 것은 정의 변화의 것이요, 초빈을 하고는 죽을 먹고, 우제(祭)를 지내고는 소사(蔬食)와 채갱(菜羹)을 먹으며 상제(祥祭)를 지내고는 채과(菜葉)를 먹는 것은 음식의 변화인 것이요, 단괄(袒括)을 하고 재최(齋衰)를 입는 것은 의복의 변화인 것이요, 흙덩이를 베고 거적을 깔고 자며 외실에 거처하고 내실에 들지 않는 것은 거처의 변화인 것이다.
(정도전/ 삼봉집)
남자가 일생에 여자로부터 기쁨을 얻을 때가 두 번 있다. 하루는 그녀와 결혼하는 날, 다른 한 날은 그녀의 장례식에서는 날.
(히포낙스)
공경으로 하는 것이 제일이요, 슬픔으로 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울다가 지쳐서 파리하고 병이 나는 것이 제일 못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도대체 얼굴빛은 자기의 정에 맞게 가져야 하며, 슬퍼하는 것은 자기가 입는 복(服)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어)
불효한 자식은 어질지 못한 데서 생기게 마련이고, 어질지 못하다는 것은 원래 초상치르고 제사지내는 데에서 뚜렷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공자가어)
묻히어 가는 고을로/ 가물가물하게 울리는 종소리는/ 흐느낌하며 먼 장렬을 따르는거다.
(윤혜승/ 갈보리 형틀 · 6)
저 밤새는 슬프게 운다/ 상여 뒤에 애처롭게 매달려/ 그 소년도 슬프게 운다.
(신경림/ 밤새)
아무리 있는 것이 많더라도 예(禮)에 지나치게 하지는 말아야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라면 수족과 형체나 거두어 가지고 형편대로 장사지낼 뿐이다. 비록 관(棺)만 가지고 봉분을 짓는다 할지라도 남들이 어찌 이것을 그르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런 까닭에 대체로 초상에 대해서는 그 슬픈 마음은 부족하면서 예에만 지나치기보다는 차라리 예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 슬퍼하는 마음이 지나친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공자가어)
장례의 절차와 묘지의 선택과 장렬의 의식은 고인에게 무슨 부조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안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나의 장례식은 평범하게 치르되 결코 허식은 삼가라. 허식에 돈을 쓰는 대신 내가 지금200달러를 줄테니 이 돈을 보태서 내 자식이 선정한 이 고을의 불쌍한 과부나 고아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하여라.
(J. 제이)
아무리 작은 싹이라도 그것은 진정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표시해 주고 있는 것일지니,/ 만일 죽임이 있다면 그것은 삶을 추진하는 것이지 종점에서 기다렸다가 삶을 붙잡는 것은 아니다. / 만물은 전진하고 밖으로 전진할 뿐 죽는 것은 없고, 죽음은 사람들의 상상과 달리 행복한 것이다.
(휘트먼/ 풀잎)
남자는 비통한 장례식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소리는 짧은 히브리어와 더불어 목청 속에 잦는다.
(비니/ 삼손의 분노)
장례식은 자못 인상적이며 엄숙한 기분이 감도는 거야-특히 음악이 따르면 무서운 슬픔 속에 잠겨 있어도 하늘로 저 멀리 올라가게 하는 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지.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모든 아이들이 그 미사에 참석할 것이다. 검은 옷을 입고 슬픈 얼굴을 하고 원장은 검은금실을 늘인 법의를 입고 나을 것이며, 제단과 내 관 주위에는 길고 노란 초들을 켜 놓을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예배실에서 나와 보리수들이 선 큰길 저편에 있는 수도원의 공동묘지에 매장할 것이다.
(J.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향유가 부어진 나무여/ 향기로운 가지여/ 내게 장례식 준비를 고하는 죽음의 나무여
(가타세 히로코/ 향유의 나무)
그때 모든 것은 생기가 넘치고 있었고/ 구세주는 새세계의 방 위에서 놀고 있는 갓난 아기였다// ‥‥등근 머리가 뒤척거리고 있었다(이윽고 가난한 관 속에 눕게 될 그 머리가)/ 깊은 밤 속에서 모든 것이 묵직해지고 있었다/ 같은 밤이 이윽고 드높은 장례 대열 위에 뒤덮이게 되는 것이다.
(페기/ 구유의 예수)
우리들을 괴롭히는 것은 주검이 아니라 장례식이다.
(박인환/ 밤의 미매장)
주의 못박힌 손 아래 벌판에는/ 죄에 젖은 오점처럼 씻을 수 없는 어두움이 배어 나오고/ 장례식처럼 음산한 공기가 떠돌아/ 유사(流沙)에 묻혀/ 땅 사태에 찢기어
(개스코인/ 이 사람을 보라)
장례식처럼 음산한 공기가 떠돌아.
(D. 개스코인/ 이 사람을 보라)
다시 살아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다시 살아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행여 살아날수 없는 시체를/ 행여 또 한 번 태운다는 것이다// 영혼이 있으면 영혼도 죽어라/ 삶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이더냐/ 망각의 연기가 북망(北望)을 가리웠네/ 허허한 시공(時空) 위에 무엇이 남는고-// 살아나기를 오히려 두려워하는 사람들/ 몇몇이 나란히 의좋게 누웠다.
(이운주/ 화장장에서)
최초에 울리는 종소리‥‥‥옥 같은 사내가 태어났다·.·"/종은 다시 한차례 드높이 울려퍼진다 "·.·내 남편이여!"/ 뒤이어 이번에는 슬픈 장례식의 종소리.
(포르/ 사람의 일생)
어느 노인이나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바를,/ 늙은이여 장사지내지거라,/힘찬 소년들에게자리를 내주어라/ 몸을 던져 죽음을 두려워 말아라!
(헤세/ 봄의 말)
내 죽음에도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누운 관은 마을 사람들과 흰 옷 입은 초등학생들에 의해/ 경건하게 운반될 것입니다/ 내 이름만이 새겨진 평범한 돌이, 오오 하나님/아이들에게 기도할 장소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잠/ 14편의 기도 노래-14 · 마지막 소원을 위한 기도)
잿빛 이슬비 내리는 속을/ 나마(羅馬)의 거맹 낀 거리를 따라/ 꽃 없는/ 조그만 관짝 위에/ 꽃다발처럼/ 삼색기를 세운 영구차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그 뒤를 따라/ 비스듬이 총을 멘 병정들이/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간다/ 그 뒤에는 푸른 바탕에/ 적십자를 붙인/출정복의 소녀도 따라간다/ 물기슭 하구도/ 죽음과 같은/ 침묵에 싸인 물 위를./ 움직이며 가는 배와도 같은/ 슬픈 장례의 그림자를/ 비에 젖은 아스팔트 길거리의/ 투명하게 얼어붙은 납빛 위에/ 거꾸로 비취고 있다/ 어둠침침한 집집의 추녀끝/ 밝다란 인도에서는/창백한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내들은/ 공손히 모자를 벗고,/ 아낙네들은 한숨과 두려움으로/ 가슴에 십자기를 그리고‥‥/ 누구일까? / 그것은 거의 소년과도 같은/ 이름 없는 한 어린 병정이다/ 이렇게 커다란 깃발 아래/ 이렇게 조그만 관이 아닌가!
(아다 네그리/ 이름 없는 어린 병정)
해질 무렵 햇빛에 눈물 흘려 눈이 푸석한/구름 한 자락 홀로 앞뜰 그늘에 내렸다// 바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윽고/ 접을 수 없는 그 날개를 떠받쳐 올리곤/ 달아나듯이 뒷문쪽으로 나가 버렸다// 솔가지 드리운 언덕 너머 서녘 하늘 멀리/ 그 모습은 얼마동안 차가웁게 가물거렸다// 비는 아직도 2, 3일 올 것 같지 않았다.
(마루야마 카오루/ 학의 장례식)
나를 무덤에 옮겨/ 향유 바르고/ 베를 감아 뉘인 다음/돌문을 닫았을 때/빛 한 줄기가/ 가락지처럼 감싸는/ 가시관이 있었노라.
(김남조/ 가시관과 보혈)
그런 삶 없기에, 그런 죽음 없기에/ 영구차는 녹슨 관습을 싣고 달린다/ 그 곡성(哭聲) 속에 고고성(呱呱聲)을/ 묻고 달린다.
(김종문/ 먼 통로에 기대고)
그리곤 북도 음악도 없이, 긴 영구차가/천천히 내 넋 속을 줄지어 간다/희망은 져서 울고, 포학한 고뇌가/ 내 숙여진 머리 위에 검은 기를 세운다.
(보들레르/ 악의 꽃)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늘을 가로질러/무지개빛으로 쓰인/ 언약을 가져오면서‥‥장례식을 위해./ 하지만 어제의 죄악을/ 위해 꽃다발을 놓을/ 시간은 아니다/ 밤은 위협한다/ 시간은 녹는다/ 그리고 내일을 아는 사람은 없다. / 목이 메인 북들은/ 별을 흉내 낸다/숲은 울부짖는다‥‥‥
(렌리 피터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꼭 화장을 하라// 사리(舍利)는 나오더라도 버려라/ 그까짓 것/ 구멍이 없어 구슬로 철수도 없고 인조사리가 판을 치는/ 판에 그것 몇 개 내과장자다/ 버려라.
(이생진/ 속 · 밤의 일기)
오른쪽으로 돌아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이씨 상가 아직도 문에는 그 사람 문패/어제까지마주앉아/ 내일 이야기 나누던 사람/ 그 사람은 병풍 뒤에 눕고/ 나는 들어서자 두 번 반 절을 하면 그분/향로 옆에 흰 꽃 몇 송이/그것도 장의 차에서 내려서/ 유월의 햇볕에 시들고나면 이씨는 그뿐/ ‥‥골목길 전신주마다 붙은 검은 화살표/ 오른쪽으로 돌아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이씨 상가/ 이제 이씨는 그 집에 없다.
(이생진/ 이씨 상가)
영혼이여,불 위에 뜬 내 영혼이여,/ 인제는 헤어지자/ 타오르는 장송의 배에 실려/ 내 육신은 떠내려 간다.
(강인한/ 불꽃 · 8)
옳도다/나의 마을에서 심히 가까운 자여/ 저가 한 일은 곧 나의 장사(葬事)를/ 미리 준비 함이로다/ 그리스도만이 그 마음을 헤아리시고/ 그 기름 향기롭고/ 향기롭더라 전합니다.
(김남조/ 나아드의 향유)
하관을 하고 마지막 절을 올릴 때/ 나는 일곱 살, 동생은 두 살이었지오// 묘역 곳곳에 빨갛게 피어난 사루비아와/ 자꾸만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었지오// 흘러내린 누런 상복을 추스려 올리며/ 돌아서 생긋 웃던 동생의 모습이/ 왜 그렇게 눈물나게 하였는지오// 네 가 울면 동생도 따라우니/ 그제 그만 울어라// 남아 일생 큰 울음은 한 번으로 족하니/ 그 한 번이 나라 잃어 슬플 때라 하신 말씀에/ 소리죽여 울었던/ 청명한 구월 그날의 하늘은/ 별나게 푸르러 눈부셨지요.// 나는 아버지를 망원동 묘역에 묻고.
(박용주/ 하직 인사)
이 새빨간 진흙에 묻히러 여길 왔던가./길길이 누운 황토, 풀 하나 꽃 하나 없이/ 눈을 가리는 오리나무 하나 산 하나 없이/ 비에 젖은 장포(葬布) 바람에 울고/ 비인 들에 퍼지는 한줄기 요령(搖鈴) 소리./ 서른 여덟의 서러운 나이 두 손에 쥔 채/ 여윈 어깨에 힘겨운 짐 이제 벗어 놨는가/아하/몸부림 하나 없이 우리 여기서 헤어지는가./두꺼운 널쪽에 못박는 소리/ 관을 내리는 쇠사슬 소리/ 내 이마 한복판을 뚫고 가고/ 다물은 입술 우에/ 죄그만 묘표 우에/ 비 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김광균/ 녹동묘지에서)
어머니를 관도 없이/ 산속에 붇고/ 동네 사람들은 뿔뿔이/ 사막이 되어 흩어졌다// 나는 아직도/초상집처럼 울고 있는데/ 새벽 하늘엔/ 별들의 새싹도 돋지 않는데.
(정호승/ 나의 낙타에게)
그는 가고 없다 마지막 날에/ 눈길을 내고 그는 가고 없다// 앉은뱅이꽃 하나 눈길 밖으로/ 마른 대궁을 쳐들고 울고 있고/ 또 누구의 꽃 상여 하나 울며 지나간다// 이 강산 천지의 눈길을 따라/ 누가 내 가슴의 무덤을 안고 가나// 꽃 상여가 지나간 눈길 위 에/ 오늘따라 바람의 냄새는 차다.
(정호승/ 눈길)
소용돌이치는 별들 속에서 당신은 나로부터 나간다/ 시간의 끝을 향해 장례 행렬이 이어지고/ 무수한 불길의 꽃잎이 어둡고 긴 당신의 생성의 줄기옷을 벗긴다.
(치뜨레/ 봄베이 송가)
덧없는 장례 행렬을 보고는/ 사람 사는 일을 깨우치게 되었다.
(G. 수사이/ 아시아의 빛)
설 교 노 트
무덤으로 향하는 인간의 행진
욥30:23
서론
본문 말씀은 모든 인간들에게 적용됩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죽음에 굴복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의 운명을 죽을 존재로 결정하셨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무덤을 향해 행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강건한 체구, 강한 골격, 그리고 아무리 긴 싸움도 종말이 있습니다. 마침내 설교자는 그의 마지막 설교를 하였으며, 선생은 그의 마지막 강의를 하였으며, 정치가는 그의 마지막 외교적 과업을 수행하였으며, 장군은 그의 직책을 사임하였고, 장사는 그의 마지막 흥정을 하였습니다. 불멸이란 지상에 있는 불완전한 인간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1. 무덤은 모든 생명체에게 지정된 집입니다.
우리가 무덤으로 가는 것은 절대로 우연한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의 위대한 중재자께서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정하셨습니다. 이 집이 모든 인생들의 목적지라는 사상은 얼마나 엄숙한 결론입니까? "그것은 보좌에 앉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음악판과 유흥장에 오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화려한 쌍두마차를 타고 다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방탕한 유흥가, 분주한 시장 골목, 그리고 하나님의 성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고 젊은 모든 사람들, 나이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집입니다. " 우리를 무덤으로 인도하여 좁디좁은 바닥에 누이는 것도 하나님의 손길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2. 이러한 인간의 운명은 거의 대부분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지상에서 영원히 살고 거주하는 것처럼 이 지상에 도취해 살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떤 동료의 죽음으로 약간 비상한 상황이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지만 이내 그러한 슬픈 정경은 우리의 바쁜 생업으로 인하여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애매한 문장은 인생의 격변으로 인해 너무도 쉽사리 잊혀지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3. 이 운명은 모든 인생들로 하여금 인생이 심각한 것임을 깨닫도록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영원처럼 생각하거나 영원을 시간처럼 생각하는 대부분의 친구들의 오류를 범치 않도록 유의해야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사상은 인생의 귀중한 시간과 날들을 대수롭지 않게 허비하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것은 "잠자는 자여 깰지어다 죽음에서 일어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살게 하고 우리가 부름받은 날 동안 일을 하게 합니다.
결론
우리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사상을 축복된 영생을 사모하도록 우리 분기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영원한 평화와 안식의 항구에 이르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매일의 삶을 거룩하게 영위하도록 용기를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고후5:1-5
서론
본문은 바울 사도의 육체 관인데, 바울은 육체를 지상의 이동식 장막 다시 말하면 그것이 무너지면 우리의 영혼의 영원한 거처로 옮겨갈 때까지의 침시 거처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상에 이동식 장막같은 우리의 육체가 무너지면 천상의 영원한 집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음을 명시한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인간의 육체는 이동식 장막과 같고 잠시 후에 붕괴될 불완전의 육체요, 사멸할 유한체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육체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집, 즉 천국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1. 그 집은 하나님과 예수임이 예비한 집입니다.
"내 아버지의 거할 곳이 많도다(2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에는 성도를 위하여 많은 영원한 집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고후5:1). 3절에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죽으신 목적이 우리의 있을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목적을 명시하셨습니다. 하늘에 우리의 있을 영원하신 집을 예비하심에 따라서 영원한 집에 우리를 영접하여 같이 산다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2.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믿음으로 가는 집입니다.
히11:13-14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본문에 "이 사람들"이란 말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가리킴인데, 그들은 신앙을 사수하다가 신앙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외에 사람들은 나그네와 행인이라고 말한 것은 하늘의 고향을 사모하고 찾는 것을 나타냄 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을 기뻐하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호칭하여 친절을 표시하셨습니다. 그들이 찾는 고향은 이 땅 위에 고향이 아니라(가나안 복지) 그보다 훨씬 나은 한없는 영광의 하늘나라 믿음으로 가는영원한 집을 항상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3. 영원한 집은 예수를 통하여야 가는 집입니다.
히7:25에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가는 자들을 온건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통하여야 하나님의 집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요14:6). 사람을 힘입어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실패할 수 있지마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결론
우리가 죽음을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늘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곳을 소망하며 바라보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약4:14
서론
현금의 생명은 변화 무방한 암영 속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극한적인 이기심으로 구성된 사회 속에서 갖은 압력과 역경으로 인해 인생은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인생이 여러 가지 면에서 선한 결심,너그러운 마음, 고상한 소망을 수행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다운 용기를 잃은 데 기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압력 속에 주저앉아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흑암 속에 깔려 있습니다. "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간에 연민의 정을 잃어버렸습니다(창47:9). 이러한 와중에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들이 생명의 최고 주관자인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야고보 선생은 내일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때가 온다고 하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의 주관자가 되시며 그것들의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야고보의 의문은 다음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현존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 중에서도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것을 뛰어넘은 진정한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창조 목적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것은 사회의 각기 다른 상이한 구조 속에서 인간이 하나님과 재결합됨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순수하고 비이기적이고 부패하지 않고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른자를 인식하고,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들이 동경해야 할 대상이며 인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인생은 결단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2. 그러한 생애에는 고난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관계되는 복잡하고 많은 문제들로 인해 고난이 많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나이와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모든 생애 가운데 가장 주된 목적은 그 광휘를 한층 돋보이게 합니다. 세상의 어두움과 시련과 압력 가운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애도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상을 받을' 희망을 갖고 생을 영위합니다(히5:8-9, 12:2, 11:26 참조). 인내하는 자들은 일몰에 엄숙한 장관을 이루는 것과 같이 마침내 그들은 목적지에 이르고야 마는 것입니다(시116:15, 계14:13).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킴으로 이러한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주된 야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억고 마시고 입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올바른 삶을 영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따라야 할 모본, 즉 그의 아들을 모델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를 따랐고 승리를 했습니다(딤후14:6-8,빌3:8-15 참조). 그러한 삶은 우리에게 다른 어떤 길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며, 종래에는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결론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세상적이고 그리스도가 안 계시고 약속이 없고 희망이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거룩하고 믿음 충만하고 승리의 약속으로 가득 찬 것입니까? 나의 이방인 친구는 여러분들로 하여금 기만과 번지르함과 슬픔이 많은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그의 이름을 고백하고 그의 권세를 힘입어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영생의 소망을 위하여 여러분 자신 안에 그의 생애를 본받으시길 바랍니다(막16:15-16, 행2:38, 롬10:9, 골3:1-2 참조). 그리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러한 생애를 사시게 될 것이고 미구에 닥칠 생애를 바라보고서 기쁨에 겨워할 것입니다.
잠들었다 깨어날 인생의 생명
요11:25-26
서론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본문 11절에 보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려 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잠들었다는 말은 천국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나사로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의 죽음은 영적 세계에 있어서는 단순한 잠들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떠한 죽음도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는 결코 영원한 죽음일 수 없음을 뜻합니다.
계14:13에 보면 그런 의미에서 요한은 말하기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에서 난 음성과 또 성령이 화답하신 것을 보아 하나님에게서 난 음성이 분명합니다. 국가에서 국가를 위하여 순국의 피를 흘린 자를 칭송하고 또 상급을 주는 것과 같이 천국에서도 하나님께로 주를 위하여 살다가 순교하고 또 주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 영원한 상급을 주는 것을 분명한 일입니다. 이제 본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죽어도 사는 생명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최후 심판은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의 생명을 말하는데 지옥 불 속에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중에서 절규하는 그 생명은 영원하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2. 죽어도 사는 생명은 예수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를 믿는 자"라는 말과 "살아서 나를 믿는 자"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신앙하는 신앙인의 생명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진 생명, 예수에게 접촉된 생명, 그 생명은 영원 복락을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요, 죽어도 사는 생명입니다. 나사로란 청년의 생명은 예수를 믿는 생명이었습니다. 예수를 믿었던 나사로의 생명은 죽어도 사는 생명임과 같이 성도의 생명은 죽어도 사는 생명이었습니다.
3. 죽어도 사는 생명은 부활을 믿는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영원히 묻어 버리기 위하여 무덤에 장사되었고 또 예수는 우리를 다시 살리기 위하여 그 무덤을 헤치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증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모든 인생은 죽음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누구도 피하여 간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모든 인류의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요11:25-2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라고개선가를 성공적으로 부르며 하늘나라 영광 중에 들어가신 선진들을 본받아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 성도의 이별에 슬픔과 눈물을 다 씻고, 가족들과 우리 모두는 고인의 유복한 생활과 복된 죽으심을 앙모하며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위로를 받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생명으로 만족을 누림
시91:16
서론
많은 주석 가들은 본문의 이 부분을 십계명에 포함되어 있는 약속에 따라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기간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그 인생의 생명 기간을 연장시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생명의 만족을 포함해서 생명의 길이에 대해 약속을 해 주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의로운 자를 향한 것입니다.
1. 의로운 자는 파괴적인 사악함을 멀리합니다.
(1) 악을 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매년 무절제와 기타 여러 가지 치명적인 습관들로 인해 죽음을 당합니다. 생명보험 회사들은 인간의 도덕성에 관하여 질문을 제기합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경험하는 가운데 절제 있고 덕 있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장수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2) 경건한 자들은 이 세대의 악한 관습을 가장 잘 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거룩한 생활은 마음과 영혼의 평정을 유지시켜 줍니다. 분노와 공포 그리고 증오심은 생명을 소각시키는 한편 평화, 확신 그리고 사랑은 건강과 장수를 촉진시킵니다.
2. 의로운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기간으로 만족을 누립니다
(1) 많은 악한 자들은 영원히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가능한한 필연적인 사실들을 회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날수가 얼마이든 간에 그것으로 만족을 누리며 지상에 사는 동안 주님을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2)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인생의 재난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 결국은 비참한 종말을 보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고난 중에 만날 도움"이시라는 주님의 약속을 믿으며 확신 가운데 거합니다. 그는 지상의 시련에 대해 충분히 보상해 주실 것을 믿으며 그의 하나님이 그를 영원히 구원해 주실 때까지 인내함으로 만족을 누립니다.
3. 의로운 자는 참으로 그에게 만족의 비밀이 되는 주님의 구원을 목도하게 됩니다.
(1) 하나님은 그에게 죄에서의 구원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삶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 동안 그렇게 살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이따금씩 긴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보여주십니다.
(2)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의 진리를 보여주십니다.
십자가의 병사들은 성경 말씀의 약속을 익히 시험해 보았으며 거룩한 능력의 역사를 목도했으며 거룩한 삶의 축복을 깨달았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그에 게 인간을 구원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십니다. 연로한 성도는 여러 세대들이 태어나는 것을 목도했을 것입니다. 그는 경건한 자와 거룩한 자의 삶의 과정들을지켜 볼 시간과 기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는 덕 있는 자와 죄짓는 자의 그에 상응하는 결과들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성품이 변화된 것을 목도했을 것입니다. 그는 지상의 민족들에게 미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을 눈여겨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종교가 '모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종교임을 깨닫고 거룩한 시므온과 같이 다음과 같이 말할 준비를 갖춘 자일 것입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2:29-32)"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한 심판
행17:30-31
서론
영원한 심판에 대한 대중적인 견해는 확실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주로 두 가지 이론이 유포되고 있습니다. 첫째 이론은 24시간으로 된 어떤 날 혹은 섭리적인 어느 기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지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직접 오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론은 이 심판이 지금 개인적으로 진행 중에 있으며 한 인간이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두 이론은 근거없는 낭설입니다 이 두 이론이 옳은 것은 심판이 있으리라는 단 한 가지 사실밖에 없습니다.
1. 어떤 사람들은 심판의 두려움이 없이 살고 죽습니다.
그런 자들은 심판이 구원을 위한 심판인지 혹은 정죄를 위한 심판인지 구분을 하지 않는자들입니다(시49:6-20, 말4:3).
2. 인간의 책임은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으로부터 생겨납니다.
식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에 따라 행하는 데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진리가 무엇 입니 까(요15:22, 16:24)?
3. 영원한 심판의 교리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가장주요한 원리입니다(히6:2). 그러므로 그것은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비추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록된 말씀으로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그 밖에 모든 것들은 가정에 불과합니다.
4. 구속의 계획에는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빛의 농도가 상이하며 계속 변화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물론 오는 상판에 관한 본질적인 태도는 견지하고 있으면서). 이것은 시각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눈감으셨던 때가 있었습니다(행17:30).이것은 빛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의 방법대로 살아갔었습니다(행14:16). 그들의 죽음은 그들의 심판이었습니다(롬1:32). 사람들의 상태와 재능들은 미구에 도래할 심판과 모두 관련되어 있습니다(롬4:15).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41)", "존귀한 위치에 있으면서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할 짐승과 같으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고 하였습니다.
5. 빛이 없을 때에는 순종의 근거가 다릅니다.
우상 세계에 있던 아브라함은 언약 세계에 있던 아브라함과 그 책임 면에서 다릅니다. 요구 사항은 후자의 상황에서 더욱 큽니다. "많이 맡긴 자에게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은 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은 많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아담부터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기회와 특권과 관계는 각자 상이합니다.
6. 갈보리 시대 때부터 심판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완연한 빛이 비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밝게 비추는 빛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죄성과 죄책은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는 심판의 주축이요, 수단이십니다(요5:22). 하나님의 말씀은 규칙입니다(요12:48).
7. 심판을 두려워해야 할 자는 누구입니까?
이것은 중요하지만 쉽게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자기 이름을 위한 백성들"을 뽑으시기 위해 초청장을 땅끝까지 보내셨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물은 선한 자와 악한 자를 한꺼번에 모아 올립니다. 거기에는 신실한 종들과 신실치 못한 종들이 있습니다. 생겨난 열매는 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색하게 뿌렸고 어떤 사람은 풍성하게 뿌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30배, 어떤 사람은60배, 또 어떤 사람은 100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것을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결론
그때가 오면 모든 불의가 드러나리라는 것을 생각함으로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때 진정한 가치와 공로가 인정받을 것입니다. 그때 모든 수치가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한 날, 정한 심판의 법정에 서기 전에 회개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형제와 자매 여러분, 회개하지 않은 죄인된 자가 있으면 회개하시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선악간에 육체 가운데 행한 모든 것들을 받을 때가 이르기 전에 말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
욥14:14
서론
본문에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라고 했는데 이러한 질문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갖가지 형태의 종교 신봉자들과 여러 종류의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들에 의해 모든 시대에 논의되어 왔던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인간은 지상의 생명체들 중 가장 고귀한 질서에 속하지만 보다 저급한 동물들만큼 오래 살지 못합니
새들은 백 년을 산다고 하며 코끼리는 오백 년을 산다고 합니다. 아마도 창조주께서는 인간에게 짧은 생애를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짧고 불확실한 것 뿐입니다.
2. 인간은 죽음에 관한 지식과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짐승은 죽음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그저 고통이나 포획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는 모든 상실한 자들을 위해 구제책을 마련해 놓고 계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보다 우월한 지식을 주셨으며 또한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3.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승에게는 그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합당한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준비를 해 놓고 계십니다. 이를테면 양식, 음료수, 지식 그리고 행복과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에서 추론해 보건대 그는 죽은 이후의 생명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도 그들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준비를 해 놓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4. 인간은 현 생애 가운데 충분히 득달할 수 없는 것을 완전히 이루려고 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 그들이 염원하는 육체적인 완전에 득달하는 자는 거의 없으며, 아마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지적인 성취로 충분히 만족을 누리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보다 위대한 영적 성취욕에 못내 아쉬워하고 있음을 토론하곤 합니다. 그러나 오직 내세에서만이 인간 완성의 실현을 제공할 뿐입니다.
5. 인간은 거의 대부분이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존재에 대한 신앙이 문명인이든 야만인이든 모든 인류들 가운데 실제적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은 그러한 신앙이 인류 초창기부터 보편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고 암시합니다. 확실히 내세에 대한 개념은 본래적인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실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그러한 신앙을 그렇게 보편적으로 심어놓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와 내세와 영생을 구하기 위해 인내로써 선을 행한 자들에게 각기 그 행위에 따라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입겠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라고 하였습니다.
장로위임식
성 경 활 용
1. 장로의 다른 칭호
(1) 노인
(민11: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칠십인을 모아 데리고
(2) 감독자
(행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3) 다스리는 자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2. 장로를 선택하는 방법
(1) 성령이 세운 자이어야 한다.
(행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 각 교회에서 택한다.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3. 장로의 자격
(1) 말씀에 든든히 서야 한다.
(행20:32)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2)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딤전3:2)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 행실이 바른 자이어야 한다.
(딤전3: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 로 모든 단
(딤전3:4)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5)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어야 한다.
(딤전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6) 외인에게서 선한 증거를 얻은 자이어야 한다.
(딤전3:7)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4. 장로의 할 일
(1) 구제에 대한 일을 실행한다.
(행11:29-30)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2) 병자를 돌본다.
(약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3) 잘 다스려야 한다.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4) 감독자가 되어 교회를 다스린다.
(행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5) 부족한 일을 바로 잡아야 한다.
(딛1:5)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 안수하였다.
(딤전4: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을 조심없이 말며
(7) 복음을 바로 전한다.
(행15:4)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장로에 대한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1) 그들을 위하여 기도함
(행14:23)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2) 존경해야 함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3) 순복해야 함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4)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 없이는 받지 말아야 함
(딤전5:19)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관련원어풀이
1. byci 십-
(1) 백발이 되다.
(삼상12:2)
(2) 백발의, 늙은.
(욥15:10)
2. @qez: 자-켄-
(1) 노인, 늙은이.
(창18:11, 욥32:4)
(2) 이스라엘의 통치자, 우두머리, 통치자.
(출3:16, 신19:12)
3. presbuvtero" 프레스부테로스
(1) 연상의, 나이 많은, 나이 더 먹은.
(눅15:25)
(2) 나이가 많은 사람, 장로, 노년의, 노인.
(행2:17, 딤전5:1)
(3) 선조, 옛 종교 지도자.
(마15:2, 막7:3)
(4) 장로, 나이가 많은, 70인 의회의 의원.
(마21:23, 행4:8)
(5) 천상의 보좌의 주위에 둘러 있는 24인의 장로, 하늘의 회중의 장로.
(계4:4, 10:5)
설교예화자료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신 이유 7가지
(1) 그는 절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2)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3) 그는 깊이 있고 실례적인 성경 연구가였습니다.
(4)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5) 그는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6) 그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는 데 불붙는 정열의 사람이었습니다.
(7) 그는 명확히 위로부터 능력의 충만을 받았던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약관 스물 넷에 집사가 됐었노라고/ 누렇게 색바랜 임명장을 꺼내/ 보여 주셨을 매/ 전도사가 뭔지도 모르고/ 팔푼이 전도사노릇하느라고/ 덤벙거렸던 내가 부끄럽더이다. // 하루벌이 노가다한 일을 하면서도/ 주일이면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 눈망울을 못잊어/꼬박꼬박 성경 말씀 가르쳐 주시고/ 살아가는게 하 기막혀도/ 한숨 아래 땅 꺼지지 않게/든든하게 버티고 사시는 김 집사님// 노총각신세를 면하고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시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꼬불쳐 놓은 것과 여기 저기서 끌어댄 쇠문으로/ 성호시장 바닥에다 생선 좌판을 벌여/ 부부가 팔 걷고 나서서 달라붙었지만/ 원체 집어 주는 것하고/ 받아 넣는 것을 따져보는/ 야무진 장삿꾼 체질이 되어야지요// ‥‥속으로 허허헛 웃고/가장 맘 편하고 손에 익은 일이라고/ 올 봄에 다시 노가다판을 쫓아다니 시며/ 조적공 일을 하시는 김 집사님/ 벽돌 쌓아 올리듯 땀 흘리는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오기를 믿어보시이다.
(서덕석/ 김 집사님)
설 교 노 트
하나님이 요구하는 인물
신10:12-13
서론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는 기둥이 있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를 보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말하기 위하여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을 초대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습니다(갈2:9). 과연 각 시대의 교회는 그 시대의 교회를 받들고 있는 기둥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각각 자기 교회를 받드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받드는 기둥이 건전하면 교회가 건전하고 기둥이 약하면 그 교회가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기둥이 그 집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교회도 기둥 역할을 하는 장로들이 교회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의 지주가 되는 인물은 가장 좋은 기둥과 같은 인물이어야 합니다. 만약 그 반대가 될 때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집에서 요구되는 인물은 어떠합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옛 글에 가빈(家貧)에 사현처(思賢妻)요, 국난(國難)에 사양상(思良相)이란 말과 같이 말세지말이 되어서 더욱 어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본래 우리나라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중에서도 충성스럽고 어진 인물은 더욱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인물난이 교회라고 결코 예외는 아닌 것입니다. 우리 교계에도 신앙과 어진 인물의 가난이 심합니다. 따라서 처처에 교회서는 독실한 신앙과 어질고 착한 좋은 일꾼을 구합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람은 대장부인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어지럽고 분란하여 편지할 때에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전16:14)"고 말씀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를 택하실 때에도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수1:7)"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대장부란 어떤 사람입니까? 부귀불능음(富貴不能淫)하고 위구불능굴(危懼不能屈)이라고 아무 일에도 요동하지 아니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된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에 누구든지 든든한 사람이라야 합니다.
2. 바른 마음과 바른 생활의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남에게는 바른 마음과 생활을 구하면서도 자기는 바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과오를 관용하는 것 등은 바르지 못한 생활입니다.
이 사회에 대한 복음의 강령은 마태복음 5장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함과,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주신다"는 내용을 말씀했고,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서로 사랑하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상의 강령은 크리스찬들의 사회적 처세 행동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생활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버리시고 마음이 바른 인물을 귀하게 쓰십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인물입니다.
세계의 역사와 국가와 교회는 하나님이 주장하시고 역사하시되 신앙의 위안들을 통하여 역사하심을 성경이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각기 교회에서 동양지재(棟 之材)로 사용한 인물들을 한 번 자세히 살펴봅시다. 그들은 다 하나같이 반석과 같은 믿음과 주의 종으로서 순종과 강철 같은 지조와 송죽 같은 절개를 소유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교회 시대에 사용한 인물들을 보십시오. 노아, 아브라함, 이하 사대족장들과 모세, 여호수아, 다윗과 사대선지자 등등은 다 신앙의 인물들이요 또 신약에 인물들도 일반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스데반, 바울 같은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결론
그런데 오늘 교회 인물들은 어떠합니까? 말 한마디로 신앙이 왔다갔다, 올랐다내렸다 변화 무방하니 정말 생각만해도 슬픈 일입니다. 썩기도 잘하고 좀도 잘 먹는 약한 나무기둥처럼 그 성품이 변하기 쉽고 변질되기 쉬운 불건전한 인물은 하나님의 집인 하나님 교회에 아무 쓸모 없는 인간입니다.
교회의 장로는 장로(長奴)라
벧전4:1-4
서론
어느 때보다도 오늘 한국 교회는 충성하는 장로, 집사, 목사들만이 요구됩니다.
한 나라의 외교성쇠는 그 나라 사신에게 달렸고, 교회의 성쇠와 발전과 퇴보는 목사와 장로, 직원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집사나 장로를 잘 택해야 되고 또 장로나 직원들은 자기의 책임에 충성해야 합니다.
1. 장로의 지위
(1) 비천함
장로는 하나님의 종이요, 교인의 봉사자요, 교회의 무임금의 사찰이요, 목사의 보필자요, 병자와 슬픔당한 교인과 환난당한 교인의 위문자입니다. 그러므로 장로의 지위가 비천한 것입니다.
(2) 존귀함
장로는 천국왕명을 배승한 전권대사입니다.
천국의 열쇠를 맡았습니다.
마16:19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사정권이 있습니다.
요20:22-23에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파괴와 건설권이 있습니다.
렘1:10에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고 하여 전권대사(全權大使)의 집권을 말했습니다.
(3) 중요함
① 교회의 안녕과 성쇠가 장로에게 달렸습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하인으로 사명을 맡은 자입니다. 마24:45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고 하였으며히13:17에도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장로의 자격
장로된 자는 정결 무흠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2-4절에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니라"고 장로의 자격을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로는 충성된 자이어야 하고,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3. 장로의 책임
장로는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한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하여 장로의 책임은
(1)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케 할 것과
(2) 신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고 친근하게 하는 일과
(3) 신자들이 신자끼리 화목케 하는 일과
(4) 장로가 같은 장로들과, 장로와 목사, 장로와 집사 직원간에 화목함으로 신자들의 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양의 대 목자되신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에 영광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음으로 현세에서 주장된 자세로서 자기에게 영광을 돌릴 필요가 없고 겸손함으로 장래에 높임을 받는 것이 타당한 태도인 것입니다. 충성된 장로들에게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이 상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계2:10에 생명의 면류관, 딤후4:8에 면류관이 있으며, "성도들이 감독자들의 면류관이라(빌4:1)"고 말씀했습니다.
재 림
성 경 활 용
1.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예언
(1) 선지자들이 예언함
(단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2) 예수님 자신이 예언하심
(마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3) 사도들이 예언함
(행3: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딤전6: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4) 천사들이 예언함
(행 1:10-11)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2.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의 표현
(1) 하나님의 날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2) 주의 날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
(고전1:8) 주에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4)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
(벧전1:1)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5)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
(딛2:13)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6) 유쾌하게 되는 날
(행3:19)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7) 만유를 회복하실 때
(행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8) 그날
(살후1:10)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9) 마지막 날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10) 말세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어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3. 그리스도께서 왜 재림하시는가?
(1) 성도의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히9:28) 그리스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2) 성도에게서 영광을 얻으시려고
(살후1:10)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3)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시려고
(고전4:5)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4)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딤후4:1) 하나님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유1:15) 이는 웃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는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5) 성도에게 상 주시려고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6) 택하신 자를 모으시려고
(마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4.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성도가 취할 태도
(1) 확신한다.
(욥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 사모한다.
(딤후4:8)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주께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3) 기다린다.
(고전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살전1:10) 또 죽는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이름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4) 기도한다.
(계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5) 예비한다.
(마24:44)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6) 주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7) 인내해야 한다.
(약5:7)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살후3:5)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그리스도 재림때 성도의 상태
(1)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는다.
(벧전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2) 주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된다.
(요일2:28)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담대함을 가지게 된다.
(요일4:17)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4) 책망할 것이 없는 흠 없는 자가 된다.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살전3:13)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주의 몸과 같이 된다.
(빌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6) 주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난다.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7)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난다.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8) 의의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다.
(딤후4:8)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벧전5:4)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9) 주와 함께 왕노릇한다.
(단7: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관련원어풀이
1. e[leusi" 엘뉴시스
오심, 내림, 강림.
(행7:52)
2. parousiva 파루시아
(1) 도래, 현전, 왕이나 고관이 토지를 방문함, 입회.
(고후10:10)
(2) 강림, 오심, 출현.
(고후7:6, 빌1:26)
(3) 종말론적으로 영광의 메시아의 내림, 재림, 도래.
(마24:3, 약5:7)
3. h{kw 헤-코-
(1) 이르렀다, 와 있다, 나타나다, 임하다.
(마8:11, 롬11:26)
(2) 신성의 오심.
(요3:42)
설교예화자료
예수님보다 고래를
어느 주일 예배에 포경선의 선장이 나왔습니다. 후에 목사님은 선장과 이야기하고 나서 그 선장이 자기의 설교에 아무런 감동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선장이 대답했습니다.
"사실은 목사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목사님께서 설교하신 동안 줄곧 저는 고래를 잡을 만한 곳이 어디인가를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속에는 고래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온갖 다른 일들이 가득 차서 예수님이 들어오실 만한 여지가 없지 않습니까?
구체적인 재림 준비
캘리포니아의 북부 할리우드에 있는 2,000명의 교인을 가진 제일 하나님의 성회 목사인 D. 레로이 샌더스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은 급박한 상황에 대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샌더스 목사와 그의 신도들은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 자신들은 갑자기 이 세상으로부터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엔 어떻게 될 것인가? 150만 달러에 이르는 교회에 재산은 어떻게 될 것이며,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교회를 운영해 나갈 것인가?
샌더스 목사는 이 문제를 변호사와 교단 관리들에게 제기했습니다. 그 결과, 만일 그 사건이 일어난다면 임시 의장과 교회의 새 제직의 선출이 있어야 할 것이므로 이를 포함하는 새로운 교회의 내규를 마련할 것을 만장 일치로 동의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의 재정적 지원을 위해 신도들은 그들의 유산과 보험증권의 수령인이 교회가 되도록 유언장을 다시 작성할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또한 혼란을 극소화시킬 수 있도록 사채 회사는 예견되는 위기 상황에 대하여 대비하도록 경고받아 왔고, 주요 보험 회사들간에는 보험 당사자가 실종됐을 때 7년동안 보험금을 지급 유예 시켜온 관례를 없애고 어떻게 하면 곧바로 보험금이 지급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비기독교인의 재림 예감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견하는 것은 기독교인들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좌절한 젊은 세대 역시 심판의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걱정을 잘 반영해 줍니다. '운영의 날(Dooms Day)'이라는 노래가 유행하고 있고, 크게 히트한 곡 중의 하나인 '불길한 달이 떠오른다(BadMoon Rising)'라는 노래 속에서 클레던스 클리어워터는 인류 종말의 날이 가까이 왔고 그날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자고 하는 내용의 노래도 있습니다. 히피족 공동 부락-외따로 떨어진 곳에서 원시적인 생활 방식으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집단-의 몇몇 젊은이들이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위해 종교에 귀의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그러나 야훼님!/ 그가 돌아온 마을과 지붕은 아직 어둡습니다. / 그가 돌아온 교회당과 십자가는 더더욱 고독합니다. / 그가 돌아온 들판과 전답은 이 무지막지한 어둠과 추위 속에누워 있습니다. /우리가 저 대지의 주인일 수 있을 때까지 '재림하지 마소서.'
(고정희/ 야훼님 전상서)
주여,/ 이 사랑을 위 해 무릎꿇고 싶습니다/이 행복을 위해 통곡하고 싶습니다/ 강림하소서.// 강림하소서/ 혹은 번개와도 같이/ 혹은 순행하는 바람과도 같이.
(이향아/ 묵도)
울려 보내라, 지상의 어두움을./울려 맞이하라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테니슨/ 인 메모리엄)
"너는 메시아인가/ 우리들의 왕인가"/ 비로소 죄수의 입술이 채찍처럼 침묵을 찢었다. /"잠에서 깨어라 너희들의 그 어느 호흡도/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다. / 이제 곧 종말이/ 마지막 심판이 시작된다. /그때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사람의 아들-나-를 너희는 눈으로 보게 된다. "
(사와무라 미츠히로/ 재판)
모든 성인들과 선지자들과 함께 내가 고통을 받으렵니다/ 고통에 미소지으며 갈보리의 길을 걷겠습니다/ 마침내, 그분이 재림하는 날,/ 오, 영광의 날! 얼마나 멋진 날입니까!/ 끝까지 참으시사 이기신 그분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존 R. 라이스/ 너의 십자가를 지라)
오소서, 사랑하는 주 예수여, 우리가 뵌 지 오래이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늘 본향집에 회향병(懷鄕病)이/ 들었나이다. / 이제 오소서, 주 예수여, 어서 오사 우리를 데려가시오소서./ 혼인 잔치는 신랑이 오실 때를 기다리고 있나이다. // 한밤중이 가까워 오매 지혜로운 처녀들은 준비 합니다. / 우리도 등에 기름을 담아 우리의 악행들을 정돈합시다. / '보라 신랑이로다. 그를 만나러 나가자'/ 오! 우리가 곧 듣기를 바라는 기쁘고 복된 소리로다. // 우리가 잠든 밤에,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기우리라./ 낮에도 남아서 일하는 사람이있고 가버린 사람들도 있으리로다. / 오늘날 증거자들은 사람들을 예수께서 이끄나니/ 우리가 누리는 성공의 때는 곧 지나감이라.// 기쁜 부활, 오 행복한 연합/ 우리는 순간에 변화받게 될 것이라네./ 우리의 사랑하는 모든 자들과 만나며, 온 세대의 구속받은 자들과도/만날 것이니/ 오! 우리가 어떻게 서로 기쁜 인사를 나눌지요.// 예수는 오고 계십니다. 오고 계십니다. 오고 계십니다. / 그날이 내일일지, 오늘일지/ 나팔소리가 있을지, 천사의 음성 있을지 모르나/ 주는 그때/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존 R. 라이스/ 예수께서 오고 계시다)
나는 구주를 갈망함이 있음을/ 나는 감출 수 없습니다. / 그를 보고 싶은 열망이 있음은/그날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하늘로서 나와 내려오실/ 그를 고대할 그때에/그는 그의 모든 위대함 가운데 오실 것입니다. /나를 높은 곳에 있는 집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 그때야, 내 갈망과 열망은 끝나고/ 그가 있는 곳에서 영원토록 그와 함께 거할 것입니다.
(에바 그레이/ 그의 복된 재림을 기다리며)
주 예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또 고대하노니/ 영광의 화환 엮어/ 그의 발 앞에 기쁨으로 놓으리라.// 하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피며/ 기다리고 또 지켜보나니/ 세상의 참된 태양이 떠오를/ 새벽녘을 기다리노라.//뜻을 세우고 밭을 갈아/ 말씀의 씨를 심으며/ 우리 주님에게 이야기할 때까지/ 그의 포도원에서 일하리라.// 꿈꾸며 또 일을 하며/ 위험과 두려움을 우리는 경멸한다네./ 그의 다시 오심을 생각할 때에는/ 불붙는 마음이 우리 안에서 타오른다네,
(W.A. 핍슨/ 주의 재림과 우리의 자세)
들으라, 구주가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주께서 오래 전에 약속하신 소식을./ 모든 심령으로 보좌를 준비케 하며/ 모든 음성으로 노래를 준비케 하자.// 그가 오시나니/ 사탄의 종으로 매인 자들을 풀어주시리로다. / 그 앞에서는 놋쇠문이 파괴되며/ 철장이 휘어지리로다. // 그가 오시나니/ 두꺼운 죄악의 층에서 마음을 깨끗케 하는 빛으로 오시는도다. / 소경의 눈동자에도 천상의 날들이 흐르게 하시는도다. // 그가 오시나니/ 상한 심령을 싸매시고/ 피투성이 영혼을 치료하시려 오시는도다. / 그의 은혜의 보배들로/ 겸손하고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려 오시는도다. //우리의 기쁜 찬미 거리,/ 평강의 왕,/ 당신을 환영할 일이 선포될 것이요./ 천국의 영원한 문이/ 당신의 사랑을 받은 자의 이름으로 불리리로다.
(필립 도드리지/ 평강의 왕)
설 교 노 트
예수 재림의 신호
마24:3-14
서론
예수님은 성역 말기에 감람산 위에서 말세의 징조와 재림의 신호를 질문해 오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신호를 예고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재림은 기독교의 교리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 재림의 의의
예수 재림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세 가지 큰 의의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예정의 실현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예정의 실현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독자적인 행사입니다.
(2) 성경 예언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예정한 사건을 선지자들에게 예고하여 성령에 기록된 사실대로 여수를 재림하십니다. 그 예언이 1,518번 나옵니다.
(3) 예수님의 약속의 완성입니다.
요14:1-3에 보면 예수님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진실하고 전능하신 주님의 약속대로 재림할 것은 명약 관화합니다.
2. 재림의 신호
예수님의 재림을 중심하여 세상 끝날에 나타날 징조의 신호는
(1) 첫 신호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출현하리라고 했습니다(3-4절). 거짓그리스도는 종교성을 타고 나타나 자기를 재림주라고 합니다. 그 실례로 우리나라 통일교회 문선명, 장막성전 유새열, 근자의 구인회라는 이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2) 둘째 신호
환난이 시작되리라고 했습니다(6-8절). 이 환난은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① 전쟁:해방 후 73회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② 기근:인구 폭발, 공해 문제, 전쟁들의 원인에서 옵니다.
지진:지질 학자들은 지표밑의 용암이 곧 폭발하리라고 했습니다.
(3) 셋째 신호
이스라엘의 독립이라고 했습니다(32-33절). 2천 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 유리하던 이스라엘이 독립됐습니다.
이 모든 신호는 다 예수 재림이 임박한 사실을 증명해 주신 신호들입니다.
결론
예수 재림은 필연적인 사건이며 이 세상은 종지부가 찍히고 성도들의 구원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1)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2) 신앙의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3) 주의 일에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재림의 필연성
요14:1-3
서론
예수 그리스도에서 제2차 걸쳐서 이 세상 인간의 역사 속에 친히 임하시는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성경 학자들은 세 가지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의 실현인 동시에 극치라고 합니다(요3:16).
(2)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에게 약속하신 구원 계약의 성취라고 합니다(창3:15, 마1:21).
(3)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생들을 구원하시려는 의도와 목적 완성을 위해서라고 합니다(히9:28).
이 엄숙하고 실성한 과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이 세상에 재림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① 제 1차의 초림은 고난의 메시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셨고
② 제2차의 재림은 영광의 메시아로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이 세상에 반드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수14:9).
하나님의 예정에 대하여 칼빈주의의 권위자인 '미터' 박사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어떤 피조물들이 간섭이나 지배나 영향을 받지 아니하시고 독자적으로 실행하시는 사건"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하신 대로 예수님은 재림하시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예수 재림은 반드시 역사 속에 실현될 사건으로 아무도 변개할 수 없는 놀라운 사건이며, 아무도 거부하거나 항거할 수도 없는 엄숙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해 놓으신 예수 재림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반드시 실현되고야 말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진실하시고 공으로우시기 때문입니다.
2. 성경에 예언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마24:31).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사 멸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제 1차, 제2차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에 대해서 성경에 1,518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제 1차 초림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고(마7:14), 미5:2에 유대 베들레헴에 탄생하셨고, 호11:1에 헤롯 왕의 박해로 애굽으로 피난가신 사건들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시리라는 예언도 반드시 성취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24:34에 이와 같이 성경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볼 때 빠빙 박사의 말과 같이 우리들은 하나님이 참되시고 성경이 참되고 모든 예언된 사건과 축복이 참됨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3.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요14:3).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초림하셨고, 초림하신 주님의 구속 사업을 완성하시고 이 세상을 떠나가시면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다시 오셔서 우리들을 주님 계신 곳으로 데려가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우리 성도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또는 용기를 가지게 합니다. 또는 신앙의 새 힘을 가지게 합니다. 약속이란 상대성을 지니고 피차의 실천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약속은 때를 따라 실천하는 경우도 있지마는 혹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사람이란, 무능하고, 거짓되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 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처럼 무능하거나 거짓되거나 변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전능하시고 진실하시고 불변하시고 이타적이시기 때문에 반드시 약속을 실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결론
이상 세 가지에 근거해서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리라고 믿습니다. 만일에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아니하신다면 하나님도 성경도 예수님도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어 집니다. 그런고로 전능하시고 참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성경과 예수님의 약속대로 반드시 재림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재림 신앙의 중요성
살전5:1-11
서론
재림 사상과 신조는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 중에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중요한 재림 교리에 대해서 신학자들과 교파들 사이에는 그 견해와 주장의 차이가 있습니다.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인데, 무재림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재림을 부인하는 학설이고, 기재림설은 예수님의 영적 임재를 재림으로 보고 주장하는 잘못된 학설이며, 정재림설은 우리 정통파 교회에서 믿고 주장하는 학설입니다.
왜 재림 신앙이 중요합니까?
1. 성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재림 기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매 25절마다 한 번의 비율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묘사되어 있고, 처음 강림에 관한 교훈에 비하여 8배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주제이며, 예수님 자신도 재림을 끊임없이 증거하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초림도 증거했고,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증거했습니다. 실로 재림이야말로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 중의 한 가지입니다.
2. 신자가 대망하는 큰 소망이 재림이기 때문입니다.
땅 위에 사는 진정한 성도의 생활은 선한 싸움을 싸우는 투쟁의 삶이요, 때로는 환난과 핍박을 견디어야 하는 고달픈 삶입니다. 더 나아가 어떤 경우는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나의 고통과 아픔으로 알고 나의 것을 나누어주고 희생, 봉사해야 하는 사람의 삶이기도 합니다. 실로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전혀 없고 이에 대한 위로가 없다면 지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또한 그 동안의 고생과 땀과 눈물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 신앙과 처음 사랑을 끝까지 견지하고 나아가기 힘이 들 것입니다. 사랑하는 님을 만난다는 소망 때문에 온갖 고통과 아픔을 견디고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느 여인처럼 우리 크리스찬은 신랑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은 현존하는 크리스찬의 삶의 원동력이요,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복스러운 소망입니다(딛2:13).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당시 어려움에 처하여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 말씀하고 있습니다(살전4:17-18).
3. 신자가 견실한 생활을 해야 하는 최대의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에게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하고 기다리는 마음을 줍니다. 영광의 주님, 생명의 주님, 거룩한 주님을 만나는데 아무렇게나 만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신부가 신랑을 만나기 위해 마음과 몸단장을 하는 그 이상으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을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서 교훈하여 주셨습니다. 열 처녀 비유를 통해서는 등을 준비하고 항상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셨고(마25:1-13)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과 같이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으며(마25:14-30), 종의 비유를 통해서는 맡긴 일을 잘 감당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4:44-51).
결론
여러분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까 (살전6-8절)? 예수님 이당신을 보고 과연 칭찬할 수 있습니까?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습니까?
시대가 아무리 불확실성의 시대라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만큼은 절대 확실합니다. 성경이 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이 세상에 진정한 기독교인이 있는 한, 재림은 기독교인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요, 가장 위대한 소망이 될 것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
계19:7-8
서론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란 예수님의 재림 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내세의 즐거움으로 갚아 주실 시기는 어느 한 때 고정하였을 것이니 때가 이르면 반드시 성취됩니다.
본문을 통하여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만사에 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도서 3장 1-9절을 보면 "천하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를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라고 한 것 등 28종의 때를 열거하였습니다. 따라서 전도서 3장 11절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창세 이후의 모든 시대들을 무의미하게 나타낸 것이 아니고 모든 때와 시대가 다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혼인 기약의 시일은 알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니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날짜나 연대를 안다고 하는 자들은 성경을 위반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재림 징조들은 확실히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마24:32)"라고 하였으니 유대인의 회복과 이방인의 때가 차면 오리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워졌으나 그날을 우리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그 아내는 예비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을은 행실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재림은 하나님께 맡기고 아내로 택정된 성도들은 옳은 행실의 세마포를 입고 준비하면 될 것입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칭의입니다. '의'는 천국에서 우리의 수치를 가리울 뿐만 아니라 그것의 광채와 정결은 그곳에서도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로 인하여 자랑하는(고전1:30-31) 것만이 영원한 즐거움입니다.
결론
성도의 최대 소망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음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환영하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너는 빨리 달리라
아8:14
서론
본서 2장 17절에도 같은 뜻의 말이 있으니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라고 하여 단절된 사랑의 교제 회복을 위하여 말하였고 본문에서는 영적으로 해석하여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입장에서 사랑하는 주님의 조속한 재림을 갈망하였습니다.
"빨리 달리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1. "향기로운 산들에서 달리라"고 하였습니다.
향기로운 산들은 높은 곳으로서 성결한 하늘나라를 비유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0절에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재림하실 예수님은 높은 하늘나라에서부터 오시는데 빨리 달려오시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속히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고(계22:7, 12,20)또 약속대로 속히 임할 것을 믿는 성도들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결론지었습니다.
2. 노루와도 같이 빨리 달리라고 하였습니다.
노루는 야생 동물이지만 성품이 유순하고 정한 동물로 간주되어(신12:15) 사람의 식용이 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표현됩니다. 특히 노루는 발이 빠른 것이 그 특성입니다(삼하2:18). 그런 까닭에 빨리 달리는 동물을 내세울 때에는 노루같이 빠르다고 합니다. 어린 사슴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갈망하는 성도들이 일각이 여삼추같이 조급하게 생각하여도 오실주님은 꼭 오시고야 맙니다. 거침없이 노루같이 달리고 어린 사슴같이 뛰어오는 것처럼 빨리 오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3. 빨리 달리라는 뜻
세월이 험악하고 내가 연약한 존재이니 앞으로 더 무서운 환난이나 곤고 때문에 내가 넘어지고 쓰러지기 전에 빨리 달려서 사랑의 대상자를 만나 안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빨리 달리기를 바라면서 내가 만날만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였다면 이것은 안타까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즉, 나 스스로 만날 준비를 완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빨리 만나기를 원하는 것은 지극한 사랑의 발로입니다. 소망의 촉진입니다.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7절에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고, 시편 17편15절에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음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성도의 약속과 응답입니다.
재 물
성 경 활 용
1. 재물의 종류
(1) 속이는 말로 모은 재물
(잠21: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2) 하나님이 주신 재물
(전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3) 죄인의 재물
(잠13:22) 선인은 그 산업을 자자 손손에게 끼쳐도 죄인의 재물은 의인을 위하여 방이느니라
(4) 허무한 재물
(잠23:5)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5) 숨은 재물
(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6) 망령되이 얻은 재물
(잠13: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7) 지혜로운 자의 재물
(잠14: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그 미련한 것이니라
(8) 장구한 재물
(잠8: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9) 불의의 재물
(잠10:2)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10) 썩은 재물
(약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11) 세상 재물
(요일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12) 정함없는 재물
(딤전6:17)내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13) 교만케 하는 재물
(겔28:5)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2. 재물 취득의 한계
(1) 정함이 없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2) 결국이 있다.
(렘51:13)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남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
(3) 날아간다.
(잠23:5)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4)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다.
(잠27:24) 재물은 영영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3. 재물의 위력
(1)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한다.
(잠19:4)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
(막10:23)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3) 썩는다.
(약5: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4) 견고한 성이 된다.
(잠10:1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
(5) 생명을 속할 수 있다.
(잠13:8)사람의 재물이 그 생명을 속할 수는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6)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한 것이 된다.
(잠11: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
4. 어디에 재물을 사용해야 하는가?
(1) 친구를 사귀는데
(눅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2) 궁핍한 형제를 돕는 데
(요일3: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3) 여호와를 공경하는 데
(잠3:9)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4) 자녀를 위해
(고후12:14)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5) 성도가 교제하는 데
(행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5. 재물에 대해 주의할 사항
(1) 치심치 말아야 한다.
(시62:10)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2) 의뢰하면 안된다.
(렘49:4)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오리요 하느냐
(3)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겔28:5)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4)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시49:6)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5) 재물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아야 한다.
(욥20:15) 그가 재물을 삼켰을지라도 다시 토할 것은 하나님이 그 배에서 도로 나오게 하심이니
(6)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한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7) 재난으로 패하지 말아야 한다.
(전5:14) 그 재물이 재난을 인하여 패하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8) 해가 되도록 지키지 말아야 한다.
(전5:13)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9) 영생을 재물과 바꾸지 말아야 한다.
(마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10)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지 말아야 한다.
(눅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관련원어풀이
1. @/ai 온-
(1) 기능, 능력, 강력, 힘.
(욥18:7, 호12:9)
(2) 물질, 부귀.
(욥20:10, 호12:9)
2. @/h 흔-
(1) 부함, 많음, 넉넉함.
(잠6:31, 겔27:33)
(2) 충분하게.
(잠30:15, 16)
3. @s,jo 호-센
(1) 부귀, 풍부, 보화.
(잠15:6, 겔22:25)
(2) 구원의 풍성.
(사33:6)
4. bivo" 비오스
(1) 생활.
(눅8:14, 딤후2:4)
(2) 생활 수단, 살림, 생존, 부.
(막12:44, 눅8:43)
5. kth'ma 크테-마
(1) 소유, 재산.
(마19:22, 행10:22)
(2) 토지, 참된 소유, 재산.
(행5:1)
6. plou'to" 플루토스
(1) 부, 부귀, 풍부.
(마13:22, 눅8:14)
(2) 부함, 풍부.
(롬2:4, 고후8:2)
7. qhsaurivzw 데-사우리조
(1) 저장하다, 모으다, 쌓아두다
(마6:19, 약5:3)
(2) 보존하다, 남겨두다.
(벧후3:7)
설교예화자료
행복과 재물
"행복은 부에서는 찾을 수 없다. "라고 록펠러는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나는 수백만 불을 벌었지만 이것들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습니다. 차라리 이 모든 것을 주고 저 클리브랜드의 조그마한 사무실의 화장실에 앉아 호주머니에 있는 주급 3달러를 만지작거리며, 스스로 부자라고 여겼던 그 시 절을 되찾을 수 있다면‥‥‥‥라고 회고하였습니다.
록펠러는 건강이 좋지 않아 경호원을 고용하였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일(事)만이 유일한 낙이다. 나를 살리며 나를 값지게 하는 것은 일뿐이다. 나는 정비사로 일할 때가 훨씬 행복했다. "라고 했으며 카네기는 마지막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백만 장자들은 웃는일이 없다. "
팩스턴의 진짜 재산
지난 세기 말쯤 한 젊은이가 급속한 부를 축적해 갔습니다. 그는 가난밖에는 모르던 스티픈 팩스턴(Stephen Paxton)에게 말했습니다.
"나와 같이 일하세, 그러면 큰 재산을 만들 수가 있네."
그러나 팩스턴은 이 유리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인구가 적은 변두리 지역에 주일 학교를 설립해야겠다는 결심이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리한 제안을 거절하다니 자낸 바보야."라고 그 젊은 사업가는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를 광신자라고 비웃었습니다.
여러 해 후 사업가를 다시 만나게 되자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자네 내게 오라니까 거절했지. 나는 이젠 5만 불이나 가진 부자일세. 고런데 자네 가족은 아직도 포장 마차에 살고 있네 그려." 그러나 팩스턴은 말했습니다.
"자네는 내 진짜 재산을 모르고 있네, 5만 명이 넘는 남녀 소년 소녀들이 내가 조직한 주일 학교에 등록되어 있단 말일세!"
재물을 위한 기도
어떤 사람이 기도하기를 하나님께서 삼천 불을 허락해 주시면 천'불은 병든 자를 위해, 천 불은 가난한 자를 위해 쓰고, 오백 불은 헌금하고 나머지는 자기가 쓰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했던지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습니다.
갑자기 삼촌이 세상을 떠나면서 삼천 불 정도가 상속이 되었습니다. 돈을 손에 쥔 그는 하나님께 약속한 대로 천 불을 메어 병자를 위해 주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환자들은 의사가 맡아서 잘 치료해 줄테고 사실 자기 자신이 환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가나한 자를 돕겠다고 약속한 천 불은 생각해 보니 세상의 누구도 다 자기보다 잘사는 것 같고 자신이 제일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 이천 불 모두가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습니다.
나머지 오백 불도 다음에 더 많은 돈이 생기면 한꺼번에 모아 많이 하겠다는 핑계로 삼천 불 모두를 자기의 주머니에 넣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돈을 멀리해 놓고 보면, 돈도 보이고 다른 것도 보이지만 돈을 눈앞에 바짝 갖다대면, 그 돈 때문에 세상의 다른 중요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재판
안식일에 세 사람의 유태인이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그때에는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가지고 있던 돈을 함께 땅에다 묻었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은밀히그 장소에 돌아가서 돈을 모두 가져가 버렸습니다.
이튿날 새 사람은 현인으로서 알려진 솔로몬 왕을 찾아가 세 사람 중의 누가 훔쳤는가를판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은,
"당신들 세 사람은 대단히 현명한 사람들이므로 내가 지금 재판하기에 곤란을 당하고 있는 문제를 먼저 도와달라. 그러면 당신들 세 사람의 문제는 내가 재판해 주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젊은 아가씨가 어떤 사람에게 결혼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아가씨는 다른 사랑을 하게 되어 제일 처음의 약혼자에게 헤어지자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때문에 위자료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 남자는 위자료는 필요없다고 말하며 그녀와의 약혼을 취소했습니다.
그녀는 많은 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 노인에게 유괴되었습니다. 그녀는,
"나는 결혼하려고 약속했던 남성에게 약혼의 취소를 요구하고 위자료도 받지 않고 해방시 켜 주었습니다. 당신도 똑같은 일을 내게 해야 합니다. "라고 요구했습니다. 노인은 돈을 뺏지 않고 그녀를 자유롭게 하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 가운데서 누가 제일 칭찬받아야 할 행위를 한 사람일까요?"하고 솔로몬 왕은 물었습니다. 첫째 사나이는,
"제일 처음의 그녀와 약혼을 했지만 취소당하고 위자료도 받지 않았던 사나이가 칭찬받아야 합니다. 그녀의 의사를 무시해서까지 결혼하려고는 하지 않았으며 돈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사나이는,
"아닙니다. 그 아가씨야말로 칭찬받아야 합니다. 그녀는 용기를 갖고 제일 처음의 남자에게 약혼 취소를 청하고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칭찬받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사나이는,
"이 이야기는 뒤죽박죽이 어서 나는 알 수가 없습니다. 유괴한 사람은 돈 때문에 유괴했는데도 돈을 빼앗지 않고 자유를 주다니, 이야기 줄거리가 전혀 맞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솔로몬 왕은 한마디로 "네가 돈을 훔친 범인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두 사람의 애정이나 아가씨와 약혼자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인간 관계, 그 사이에있던 긴장된 기분 같은 것을 곧 알았는데도 너는 돈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네가 틀림없이 범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황금 우상
어떤 사람이 자기만 알도록 금은보화를 많이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는 혹시 누가 손댔을까 의심스러워 매일같이 내려가 확인하고는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보물을 감추어둔 비밀 지하실에 들어가 있는데 그만 바람이 불어 문이 닫쳐 버렸습니다. 이 문은 밖에서만이 열 수 있는 문이었습니다. 부자는 밖으로 나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집이 무너졌을 때한 인부는 금덩이와 해골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 부자는 금은보화를 신처럼 섬겼지만 그 신은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돈
아인슈타인 박사는 돈에 대해서 아주 무관심했습니다. 어느 날 고는 미국의 석유 왕 록펠러 재벌에게서 일천오백 불짜리 수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금으로 바꾸지도 않고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다가 책을 보면서 책갈피에 넣어 두었습니다. 얼마 후 돈이 든 책이 없어졌습니다. 누가 집어간 게 분명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책까지 돈을 보고 따라갔으니!"
돈에 욕심이 없었던 박사는 한번은 은행에서 부쳐온 송금수표의 용도를 몰라 불쏘시개를 한 일도 있었습니다.
돈이 하는 말
어린 시절부터 돈이 말한다고 우리는 들어왔습니다. 이 돈이 말하는 것을 들어 봅시다.
"당신은 나를 손에 쥐고는 나를 당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의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얼마나 쉽게 당신을 지배하는가 보시겠습니까? 나를 얻기 위해서 당신은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하려고 합니다. 나는 비처럼 무한히 값지며 물처럼 본질적입니다. 내가 없다면 사람도 기관들도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위한 생명력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당신들의 욕망이라는 낙인 없이는 무익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보내지 않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습니다. 나는 이상한 친구들과 사귑니다. 나 때문에 사람들은 인격을 무시하기도, 사랑하기도 그리고 경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성자들이 예배에, 자라나는 마음을 위 한 교육에도, 가난한 사람들의 굶어가는 육신을 위한 음식 마련에도 사용됩니다. 나의 힘은 지대합니다. 내가 당신의 노예라기보다는 당신이 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나를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다루십시오."
어록·시·묘사
재산을 가지고도 그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황금을 나르고 엉거퀴를 먹는 당나귀와 같다.
(T. 풀러/ 잠언집)
당신이 소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재앙이다. 우리가 실제로 소유할 수 있는 힘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인간성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 중의 하나이다.
(J. W.크러치/ 내가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대저 재물을 쌓는 부자는 남에게 인색하다는 욕쯤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 법이니, 그들은 이로써 남이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생각조차 못내게 하자는 속셈이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연암별집)
물질로 인하여 자기를 상실하고, 세욕으로 말미암아 본성을 잃는 사람은, 본말을 전도한 사람이라 말한다.
(장 자)
대개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지말(末)입니다. 그러나 근본과 지말은 어느 한쪽이 폐지되어서도 아니됩니다. 근본으로써 지말을 견제(制)하고 지말로써 근본을 견제한 뒤에야 사람의 도(人道)가 궁하지 아니합니다. 재물을 생하는 방법에도 역시 본(本)과 말(末)이 있습니다. 농사가 본이고 염철(鹽鐵)은 말입니다. 본으로써 말을 견제하고 말로써 본을 보충한 뒤에야 온갖 재용(百用)이 결핍되지 아니합니다.
(이지함/ 토정집)
재산은, 그 자체의 권리뿐 아니라 의무도 있다.
(B. 디즈레일리/ 시빌)
가난이 자존심을 타락시킬 수 없고, 재물이 비열한 마음가짐을 높여 주지는 못한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재보(財寶)는 불과 같은 것이다. 아주 유익한 머슴인가 하면, 제일 무서운 주인이기도 하다.
(T. 칼라일/ 과거와 현재)
덕은 근본이고 재(財)는 가장자리이다.
(대 학)
나눠 갖지 않는 재산은 재산이 아니다.
(F.D. 로하스/ 셀레스티나)
인간을 자유롭고 고상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소유에 대한 몰두이다.
(B. 러셀/ 사회 재건의 원리)
알맞으면 복이 되고 너무 많으면 해가 되나니, 세상에 그렇지 않은 것이 없거니와, 재물에 있어서는 더욱 그것이 심하다.
(장 자)
재물이란 그 성질이나 본질로 보아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해, 말하자면 아주 조그마한 원인으로 해서 적어지고 줄어들고 없어져 가는 것이다.
(S. Y.아그논/ 추방자)
남이 부러워하기에는 너무 적고, 남이 멸시하기에는 너무 많은 정도의 재산만을 나에게 달라.
(A. 카울리/ 내 자신에 대하여)
다만 식구를 헤아려 식량을 대며, 몸을 재어서 베를 마련해 준다면 일생에 이렇듯 만족하리니 어찌 재물로써 마음을 괴롭히겠는가.
(박지원/ 열하일기)
불의로 취한 재물은 끊는 물에 뿌려지는 눈(雲)과 같고, 뜻밖에 얻어진 전지(田地)는 물살에 밀리는 모래와 같다. 교활한 꾀로 생활하는 방법을 삼는다면, 그것은 흡사 아침에 피는 구름, 저녁에 지는 꽃과 같은 것이다.
(명심보감)
재물이라는 것은 우리의 커다란 욕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의 욕망은 재물보다 더 큰 것이 있다. 그런 까닭에 재물을 버리고 취하지 않는 것이다.
(정약용/ 목민심서)
우리들은 방종 없는 미의 연인이요, 비겁 없는 지혜의 연인이다. 우리들에게, 재산은 단순히 헛된 영광의 물질이 아니라 목적 달성을 위한 기회이다. 가난을 인정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을 정말 타락이라고 생각한다.
(투키디데스/ 펠로포네시아 전쟁사)
사람이 자기 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것은, 그의 재산이 그를 소유하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비온)
현명하고 재산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하며, 어리석고 재산이 많으면 그 잘못을 더한다. 또 대저 큰 부자는 사람들의 원망을 받는다.
(소 학)
큰 재산과 만족은, 좀처럼 동거하지 않는다.
(T. 풀러/ 격언집)
지식은 사람을 웃게 하나, 재산은 사람을 우둔하게 만든다.
(G. 허버트/ 명궁)
진실로 재물을 옳게 사용한다는 것은 무기를 옳게 사용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재물을 전혀 바라지도 않는 것은 그것을 잘 사용하는 것보다도 더 귀하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재산이 흔들리면 그와 함께 친구들도 동요하기 시작한다. 재산이 친구를 얻어 주니까.
(플라우투스/ 스티쿠스)
재산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즐기는 자의 것이다.
(J. 하우얼 영국 격언집)
재물은 몸 밖에 뜬 티끌이요, 목숨은 이 한 때의 물거품이다.
(기 화)
부정으로 얻은 재물은 끝이 좋지 않다.
(T. M. 플라우트스/ 포에둘루스)
가난한 사람은 재물로써 예를 표하지 않는 것이다.
(곡 례)
재물이 모이면 곧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곧 백성이 모인다.
(대 학)
잉여재산이 란 그것의 소유자가 그의 생전에 사회의 복지를 위하여 관리하기로 되어 있는신성한 위탁물이다.
(A. 카네기/ 富論)
부정으로 얻는 것은 헛되게 소비되고 그 소유자 역시 타락한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독점 재산은 자연에 대한 도둑질이다.
(J. P. 브리소)
재물의 사용은, 재물의 소유보다 낫다.
(F.D. 로하스/ 셀레스티나)
재물의 과잉은, 탐욕의 원인이다.
(C. 말로우/ 말타의 유대인)
재물이 극히 소수의 사람 손에서 축적되면, 그것은 빼앗긴다.
(J.E.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재물은 소유주를 섬기거나 지배하거나의 어느 한쪽이다.
(호라티우스/ 서간집)
전쟁이 다른 사람의 피로 수행되는 것처럼, 재산은 다른 사람의 돈으로 만들어진다.
(A. 소레/ 여기 인간이 있다)
빌어 오는 재물은 바닥 없는 바다다.
(M.T. 키케로)
거룩한 저 한 분의 말씀이/ 지폐처럼 시달리다가
(최규창/ 언제부터지)
그저 세균이 활개치는 지폐 앞에 기(氣)를 끌고/ 나날이 배부르는 박제인간의 더미
(김종문/ 먼 통로에 기대고)
예수가 맨 먼저 찾아간 곳은/ 성당 남쪽의 "이방인의 뜰"/ 거기는 갈릴리 사람 예수와 같이/ 먼 곳에서 온 순례자들의 집회소이며 더구나/ 여기서는 제사장들과 공모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장사꾼과 환전상의 장도 선다/ 장에서는 비둘기 ·양 ·소를 위시하여/ 포도주· 소금 · 기름 · 향료 등/ 제사에 필요한 온갖 것이 매매되고 또한/ 이방인의 화폐가 유대 돈과 바꾸어진다
(스즈키 도오루/ 성전 청결)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나는 이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을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김수영/ 그 방을 생각하며)
특히 황금에/귀한 말이 밀려서/구겨진 몇 장 지폐면/ 무엇이나 해결하는 것으로/ 제멋대로 지껄여대니/ 입이 열이 있어도 다물 수밖에 없구나.
(김재흔/ 입이 열이 있어도)
술 한 잔 소금 한 입에도 맘껏 취해 본단다 그깐 놈 돈이 무어냐 돈이란 게 무어야
(박의상/ 노동 · 2 만선가)
주 말씀하실 때에/ 나 듣지 아니했네/ 나대로 사는 것이/ 좋은 줄만 알았더니/ 주 떠 나신 심령에는/ 즐거움도 사라졌네/ 나는 알았네/ 재물보다 믿음이 귀한 것을.
(홍안의/ 늦은 깨달음)
내게 있는 귀한 재물/그 무엇이 아까우랴/먹든지 마시든지/ 주님만을 섬기리라
(홍안의/ 먹든지 마시든지)
오오, 곳간의 재물과는 비할 바 없는/ 신령하고 무한량한 소유!/ 정녕, 하늘에 계신 아버지 것이/ 모두 다 내 것이로구나.
(구 상/ 신령한 소유)
설 교 노 트
세상에 재물을 쌓는 자
눅12:13-21
서론
지혜롭지 못한 근검 절약에 대한 금언이 있습니다. "푼돈아 알뜰하고 목돈에 헤프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도 이와 같은 상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성경 말씀도 이에 들어맞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1. 세상에 재물을 쌓는 자
물질을 추구하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모두 그 물질에 따라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여 재물이 쌓이게 되면 그는 결국 그 재물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세상 물질의 노예가 되면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될 수 없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기 창고를 넓히며 자기 재물 쌓을 것에 대하여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2. 뒤바뀐 가치판단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세상 물질에 더 가치를 둔 그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은사나 건강 등을 무시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그에게 있어서 제일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가치판단이 뒤바뀌게 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탐욕입니다. 이런 탐욕스런 마음의 노예가 되어 값비싼 희생을 치루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생각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값비싼 희생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이 어리석은 부자의 운명은 하나님의 한마디 말씀으로 끝장이 났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그는 다가올 재난을 위해 재물를 쌓았을지라도 그에게 닥칠 가장 큰 재난에는 그 재물이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세상에 재물만 쌓으며 하나님의 소유를 허비한 어리석은 그 부자는 재물이 그를 보호해주리라 생각했지만, 그 재물 때문에 그는 너무나 값비싼 희생을 치루고 말았습니다.
결론
아무도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모두 노예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길은 선한 청지기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맛본 모든 성도들은 선한 청지기가 되어 하나님 안에서 풍성케 되는 길을 걸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정함없는 재물
딤전6:17-19
서론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을 향락과 황금만능주의 시대라고 말을 합니다. 사실 돈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물질을 생명으로 여기고 물질을 위해서 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 모든 재산을 박탈당했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므로 참된 생명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1.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17절).
참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재물을 탐내지 않습니다. 재물은 우리를 보장하지 않습니다(시39:6).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과 관계없는 재물은 심판 때에 전혀 무익한것입니다(잠11:4). 돈이 해결사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를 바꾸지 못합니다. 성도의 삶은 재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부터는 그의 인생관이 달라졌습니다. 세상의 것은 참된 생명에 비교할 때 물거품과 같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므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여기라(딤전6:8)"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잠30:7-8에서 아굴은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1) 허탈과 거짓을 멀게 하고
(2)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시고 필요한 양식으로 먹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도는 오늘의 삶에 만족해야 됩니다. 성도의 소원은 돈이 아닙니다(잠23:5).우리의 소망이 재물에 있다면 무가치하고 불쌍한 인생이 됩니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됩니다(17절).
사람은 악착같이 자기 소유를 가지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에게 모든 소유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가귀도되고, 직장이 편안하고, 건강하고, 가정 문제, 사회 문제 등이 주님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둘 때, 우리의 삶은 풍성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둘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우리 속에서 모든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내 삶의 우선 순위에 두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따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3. 선한 일에 부요하게 됩니다(18절).
선한 일에 부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열심과 끊임없이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내 소유권만 주장하면 주님의 소유권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물자뿐 아니라 사랑과 믿음, 시간까지 나누어 주어야 성도의 교제이며, 동정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없는 것은 곧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고 위축당하고 있습니다. 참된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할까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누어 주었습니다(행3:6). 그 결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 더욱 힘써야 됩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마10:42). 참된 생명을 가진 사람은 내 소유로 주님을 위하여 내어 주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결론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맙시다. 그것은 정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둡시다. 영원한 보상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일에 부요하여 축복받는 귀한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골육과 재물
창13:1-8
서론
사람은 누구나 재물에 눈이 어두우면 부모형제도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짐승과 같이되어 재물 때문에 부모와 형제를 살해하고 친척은 더욱 말할 것도 없이 해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재물보다는 골욕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 재물보다는 인간 관계가 더 귀중함을 알았습니다.
본문 1-8절에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고 하였습니다. 이는 돈만 아는 현실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도 사람인데 왜 돈을 좋아하지 아니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돈이 필요한 줄은 알았지만 인간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도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기만 알아서 가난한 부모형제를 돌보지 않고 오직 재물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재물보다 골육의 중요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재물보다 평화가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본문 9-10절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롯에게 양보한 땅이 얼마나 탐스러운 곳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아브라함은 그보다도 평화를 더욱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3. 골육을 사랑한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본문 14-17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손도 번성하게 하시고 종으로 횡으로 보이는 것마다 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결국은 소등성은 망하고 아브라함이 있는 곳이 오늘까지 복된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물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많은 복으로 채워 주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18절).
수고함으로 즐거워함
전5:19
서론
본문의 앞절인 18절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였고 또 본문 중에서도"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재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물이 없는 자는 있는 자를시기하며 재물에 대해서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물이 있는 자는 더 많이 모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빕니다. 그러나 재물은 선한 곳에 사용하면 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선물인 재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특히 성령(행2:38)이나 은혜(행 11:17), 믿음(엡4:8), 그리고 직분(엡4:7-12) 등을 다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재물도 좋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만물을 주관하게 하셨으며 모든 물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위시하여 이삭이나 야곱, 요셉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다 물질의 축복을 특히 많이 받아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남들이 부러워서 시기할 지경이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솔로몬도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도록 복 주셨습니다.
우선 부자를 복 있다고 하셨으니 이 세상에서 귀한 재물을 하나님의 선물로 바로 알아서 감사해야 합니다.
2. 재물을 선용해야 복이 됩니다.
우선 재물을 얻을 때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부모의 유산을 받는 경우는 사실 자신의 노력없이 받는 것이므로 그렇게 보람된 것이 못되며 이것을 불로소득이라고 합니다.
또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벌어지는 재물은 실상 축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돈만 모으면 성공이요, 축복처럼 여기나 우리 성도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시조 아담이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산다고 하였으니 본문에도 "수고하는 모든 수고중(18절)"이라고 하였고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이라"고 하였는데(19절), 사실 자신이 수고를 하였어도 그 얻은 재물을 여호와의 선물로 인정하는 일이 귀한 일입니다. 귀한 선물인 물질로 인하여 범죄하면 그 재물을 도로 빼앗을 것이요, 또 믿음으로 도로 빼앗을 것이요, 또 믿음으로 살지 않는 자는 재물이 오히려 그 소유자에게 화를 가져다 줍니다. 부자들이 강도나 절도를 당하는 일이나 그 돈 때문에 목숨을 아끼는 예가 허다합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하였더라면 범죄를 하거나 피해를 입지 않았을 터인데,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람은 항상 수고하여 얻은 재물로 참된 즐거움을 누리며,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 늘 감사하며 선용해야 합니다.
적그리스도
성 경 활 용
1. 적그리스도의 다른 칭호
(1)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살후2:3)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2) 불법 한 자
(살후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3) 거짓말하는 자
(요일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4)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숭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5) 왕
(단11:36) 이 왕이 자기 뜻대로 행하며 스스로 높여 모든 신보다 크다 하며 비상한 말로 신들의 신을 대적하며
(6) 적그리스도
(요일2:18) 적 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2. 적 그리스도가 행하는 일
(1) 주를 대적한다.
(살후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2) 거짓 기적을 행한다.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3) 세상을 미혹한다.
(요이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 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4)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
(계13:7)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3. 적 그리스도의 나타남
(1) 예언된 것이다.
(살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2)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고 막고 있다.
(살후2: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3) 예수께서 오시기 전까지 행동하였다.
(살후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4) 사단의 역사로 나타났다.
(살후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도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관련원어풀이
1. ajntivcristo" 안티크리스토스
적그리스도.
(요일2:18, 요이1:7)
설교예화자료
모형 히틀러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기에, 아돌프 히틀러를 예수의 적으로 규정하는 팸플릿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 야수, 그 예언, 그리고 히틀러」라는 제목의 팸플릿이 1941년에 출판되었습니다. 그 팸플릿에 씌여져 있는 다음과 같은 착상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히틀러 그는, 요한 계시록 16장 18절에 나타난 수수께끼에서 한자 한자 전부 씌어져 있습니다. 이 수수께끼가 모두 풀리면, 그것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게 됩니다. 우리는 단 666이라는 세 개의 숫자만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찾아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파벳들을 숫자로 환원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A'대신에 100이라는 숫자를 대치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세 아라비아 숫자 666을 대치하는 문자를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A-100 H-107 O-114 V-121 H-107
B-101 I-108 P-115 W-122 I-108
C-102 J-109 Q-116 X-123 T-119
D-103 K-110 R-117 Y-124 L-111
E-104 L-111 S-118 Z-125 E-104
F-105 M-112 T-119 +R-117
G-106 N-113 U-120
666
Hitler는 바로 666이다!"
설 교 노 트
흰 말 탄 자의 승리
계6:1-8, 19:11-14
서론
말이란 동물은 사람을 위해 많은 봉사를 하는 동물입니다. 말은 어떤 동물입니까?
(1) 달리는 말이라야 합니다.
"주마가편", "천리마" 등의 술어는 말의 신속성을 말해 줍니다.
(2) 말은 사람을 태웠을 때 제구실을 합니다.
(3) 말은 병거나 마차를 끌므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합니다.
본문에 보면 네 가지의 말이 나옵니다.
1. 흰 말 탄 자-예수님(2절)
흰 말은 개선 장군이 타는 말로서 승리의 표, 순결의 표입니다. 예수님은 승리의 대장으로 흰 말을 타셨고 활을 가지셨고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이제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흰 말의 위치에서 예수님을 등에 업고 숱한 고난과 싸워 승리해아 하겠습니다.
2. 붉은 말 탄 자-전범자(4절)
붉은 색은 피, 전쟁, 죽음 등을 상징합니다.
붉은 말 탄 자는 평화를 파괴하는 자입니다.
(1) 붉은 공산당은 평화의 파괴자입니다.
인피를 쓴 악마, 짐승 같은 공산당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떠난 마귀의 집단입니다. 그들은 붉은 색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죽이는 일을 좋아합니다.
(2) 붉은 말 탄 자는 칼을 가졌습니다.
이 칼은 죽이는 칼입니다.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리라(마26:52)",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고 하였습니다. 이 붉은 말은 교회나 가정이나 사회에 불화를 만들고 서로 죽이게 하는 악마입니다.
3. 검은 말 탄 자-기근의 흉년
한 데나리온으로 밀 한 되,보리 석 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루를 벌어 밀 한 되를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기근 속에서도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감람유는 성령을 말하고,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말합니다. 아무리 기근이 심해도 성령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보혈은 전파될 것입니다.
4. 청황색 말 탄 자-죽음과 음부
죽음과 음부,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공포 감정을 말해 줍니다. 지구상의 인구 중 1초에 15명 이상, 1일에 13만 명 이상, 1년에 5천 명만 이상이 죽어갔습니다. 언제 내 차례가 될는지 죽음의 서열은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므로 그 누구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우리 성도들은 그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약속하신소망의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붉은 말의 위협, 검은 말의 환난, 청황색 말의 공포 속에서 새해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승리의 길이 있으니 이는 흰 말 탄 자 예수님이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로 병거를 삼아 예수님을 태우고 우리 모든 성도가 합심해서 끌고 달려야 하겠습니다. 승리는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붉은 용과와 싸움
계12:1-7
서론
성경에서 욥은 사단을 ,비유하고 있습니다(계12:9). 우리나라의 국제 정세, 국내 정세 등은 금년의 불안한 요소들을 다분히 안겨줍니다. 붉은 용은 공산당에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북괴와 흡사합니다. 또는 W C.C.같은 용공 기독교단체나 혹 신앙을 파괴하는 자유주의 신학과도 비교하고 싶습니다
1. 붉은 용의 정체
그는 7머리와 10뿔이 있다고 했으니 7수는 거룩한 그리스도의 숫자요, 10수의 완전수로 능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붉은 용이 란 그리스도를 가장(선을 가장)한 큰 세력 행사를 할 것을 말합니다.
(1) 하늘의 전쟁에서 실패한 마귀(7절)
하나님과 대항하여 교만한 천사가 지상에서 쫓겨나 마귀가 되었습니다(벧후2:4).
(2) 최후 발악하는 붉은 용(12절)
자기의 때가 얼마 안 남은 것을 안 붉은 용은 최후 발악을 합니다. 이 붉은 용은
① 공산당의 탈을 쓰고 부패한 기독교를 서식처로 하고 번식하였습니다.
② 거짓 기독교의 탈을 쓰고 기독교의 근본 교리를 빼먹고 서식하며 번식해 오고 있습니다.
2. 붉은 용의 위협에서 이기는 길(11-14절)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어린 양의 피입니다(11절).
기독교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피에 있습니다. 피 없는 기독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우리의 개인 신앙도 그리스도의 피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 제자들의 경우처럼 우리의 헌신 봉사, 예배, 헌금, 찬송 모두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행해져야 합니다
(히9:22).
(2) "자기를 증거하는 말씀"입니다(11절).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의 시험을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신8:3, 6:13, 6:16).
(3)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타고 피하는 길"이 있습니다(14절).
큰 독수리의 날개는 높은 곳을 오르는 날개요, 연단시키는 날개요, 먼곳을 나르는 날개요, 힘센 날개입니다. 고로 이 날개는 하나님의 날개요, 하나님의 품입니다(출19:4).
3. 붉은 용과 싸움에서의 승리자
(1) 승리자의 면류관이 수여됩니다(딤후4:7,8, 계3:11).
이것은 전쟁의 승리자가 받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2) 승리자에게는 왕권이 주어집니다(계19:16).
이기는 자만이 지배할 수 있습니다.
결론
올해는 더욱 더 붉은 용의 위협이 우리나라와 우리 교회를 위협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붉은 용과의 싸움에서 기여코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만이 민족과 교회, 내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전도(-자)
성 경 활 용
1. 전도자가 할 일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롬10:14-15) 전파하는 이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2. 성경에 기록된 전도자
(1) 노아
(벧후2:5)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2) 요나
(욘3:2-3) 일어나 저 큰 성을 니느웨로 가서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3) 흩어진 자들
(행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
(4) 빌립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5) 사도 베드로
(행15:7)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6) 디모데
(딤후4:5)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관련원어풀이
1. tl,h,qo 코-헬레흐
전도자.
(전1:1, 12:9)
2. eujaggelisthv" 유앙겔리스테-스
전도자, 복음 전파자, 교사.
(행21:. 8, 엡4:11)
설교예화자료
그의 상처를 두려워하다
아도니람 쥬드슨(Adoniram Judson)은 명망 있는 버마의 전도자로서 길 잃은 양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배고픔과 고독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기간 중 아바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17개월 동안 말할 수 없이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를 묶었던 사슬과 강철 수갑의 자리가 흉한 상처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출감 후 이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다른 지역에 들어갈 허가를 요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던 통치자는 그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백성은 전도자 따위가 말하는 것에 현혹될 바보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너의 상처를 보고 감동을 받아 네 종교로 개종할까 두려워하노라."
알라스카 앵무새의 변화
카크로스의 유콘 지방에는 적어도 125년 된 앵무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카크로스의 앵무새는 유콘 지방에서 1898년부터 살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1918년부터의 카리부(Cari-bou) 호텔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앵무새는 술주정꾼으로 유명했습니다. 언제나 비틀거렸으며 응접실에서 졸곤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호텔에 있는 술꾼들을 보고 흉내를 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번은 한 기독교 신자가 그 호텔에 묵고 있을 때 그 자신의 기도 소리와 찬송을 듣고 그 앵무새가 신앙을 갖게 된 것입니다.
누구도 복음을 전해 받지 않고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미안 신부의 사랑
다미안 신부가 나환자 수용소 몰로카이 섬에 갔을 때의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서로간에 격렬한 싸움이 그칠 줄 몰랐고 자살하는 자도 많았었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그들을 위해 힘껏 일하려 했으나 오히려 비웃음만 샀습니다.
"흥! 하나님 사랑? 좋아하시네! 사랑이 있다면 우리를 이 모양 이 꼴로 썩어 문드러지게 내버려둬? 그따위 사랑은 당신과 같은 건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잠꼬대 같은 거야!"하고 빈정댈 뿐이었습니다. 이때 다미안 신부는 무릎을 끓고,
"오 주여 ! 나로 하여금 문둥병 환자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들의 마음을 깨우치게 하소서!"하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응답은 허락되어 다미안 신부는 손바닥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나도 당신들과 같은 문둥병 환자입니다. 비록 나의 육체는 썩어가지만 마음에는 평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아, 나를 따라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쳤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미안 신부의 진실한 사랑에 감복되어 몰로카이 소용소의 환자들은 차츰 자살자가 줄고 삭막한 투쟁의 세계는 평화의 세계로 변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참된 생명의 빛으로/ 비로소 깨어지는 찬란한 어둠,/ 조심스레 다가서던/ 남성다운 사나이 안드레의 눈빛//충격적 감동으로 하여/ 맨 먼저 주 앞에/ 혈육을 인도한/ 자랑스런 벳세다의 어부,/ 침묵 뒤 오가던 신비한 언약./ '와 보라' /‥‥// 무릎꿇는 낮아짐은/ 눈가린 육욕의 비늘 떨어내어/ 소외된 목숨 사랑케 했지// 풀잎같은 어린 영혼 하나/ 크신 님 앞에 인도하고/ 소 아시아, 헬라로 향하던/ 부르튼 그대 발길발길./ 이방의 바람은/ 뼈 속 깊이 파고 들었지
(엄창섭/ 기도 · 27)
너희를 바라보는 눈동자의 수는/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의 수의/ 바로 12분의 1이며/너희를 지키는 손의 수는/ 나를 지키는 손의 수의/ 바로 열두 배이지만/ 우리를 지탱해주는 지면과/ 우리가 지탱하는 하늘은/ 이상스럽게도 정확하게/ 같은 숫자이다. / 한 사람의 나와/ 열두 명의 적을 지탱하는/ 우직한 대지와/ 열세 명의 손이 일제히 지탱하는/멧돌과 같은 하늘 사이에서/ 조용히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와/ 기침하는 소리가 들리고/열세 명의 열기면 눈 아래서/조용하게 누구인가/ 식사하는 기척이 있다. // "하나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워진 것이다. "
(이시하라 요시로오/ 그날의 사도들)
나사렛 작은 마을만이/ 그의 영적 사명의 일터는 아니었다. /그는 땅끝에 이르기까지/그 놀라운 이름이 알려지기를/ 꿈꾸고 있었다.
(클라크/ 전투적 그리스도)
나는 온종일/그물을 던진다/ 그물은 소리도 없이/ 고요히 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물/나는 그물 속에 있다/ 그것을 끌어당길 때/어디선가/ 크나큰 손이 작용한다.
(야마무라 보쵸오/ 그물을 던지는 사람)
낚인 고기처럼 헤 입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이는 내게 손을 얹더니/ 나를 따르렴, 평생 고기나 잡을 사람아/ 나와 함께 가자./ 사람을 낚을 어부가 되려므나/ 그 사나이는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김성영/ 사랑의 그물)
하루에도 수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와 허물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네./ 한 줄기 빛도, 희망도 없이/ 끝없는 밤처럼 내세의 어둠과 함께/ 자신들의 운명대로 스러져 가네.// 오! 성령이여 당신의 사람들도 요동하나이다. / 믿음과 사랑으로 그들 마음에 세례를 베푸시고/ 그들이 가진 귀중한 것을 거룩하케 하소서./ 예수의 발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지나니/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옛날처럼,/ 다시 한 번 더 하나되게 하소서.// 기도의 용사들은 당신의 약속하신 것을 구하고/ 예수 이름의 완전한 능력을 증거하사/승리를 취하게 하소서./ 당신의 승전 대장이 당신을 인도하시나니/ 그 영화로운 싸움은 바로 이 시대에/ 꼭 승리하고야 말 것입니다. // 주의 강림이 가까웠고/ 인자가 곧 나타날 것이니/ 그의 황국이 눈앞에 있도다. / 그러나 영광의 그날은/그 나라의 복음을 우리가/땅끝까지 전할 때에야 오리니.// 오! 그의 오실 그때 우리가 서두릅시다/ 오! 결코 끝나지 않을 이 무서운/ 영혼의 허비를 이대로 끝내게 합시다. / 억만의 사람들이 여전히 잃어져 있고/ 구주의 보혈은 그 값을 치렀나니/ 오! 죽어가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하루에도 수십만의 영혼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죄와 허물 속에서/ 떠나갑니다. 무섭게 떠나갑니다. // 오, 그리스도의 증거자들이여/ 우리가 저들을 구하지 않는다면/ 두려운 심판 날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으리오.
(A.B. 심프슨/ 선교의 부르짖음)
들으라 주의 외치는 음성을/ '누가 오늘 나가 일할까?'/ 들판의 곡식은 희어지고 수확을 기다리는데/ 누가 가서 단을 거둘까?/ 그는 풍성한 보답을 약속하시네./ 크고 강하신 주인의 부르심에/ 누가 대답하여 기쁘게 말하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를 보내소서'라고.// 당신이 대양을 건너/이방인의 먼 땅에 갈 수 없다면/ 가까운 이방인을 찾아가며/ 이웃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오./ 많은 것으로 줄 수 없어도/ 적지만 모두 바친 과부와 같이 줄 수는 있다오/ 주를 위한 당신의 작은 손길은/그분의 눈에 더욱 귀한 것이라오.//당신이 천사같이 전하지 못하며/ 바울같이 가르치지 못하나/ 예수의 사랑은 말할 수 있다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가 죽었다고 말할 수 있다오./ 당신이 심판의 무서운 경고로/ 악인을 일으킬 수는 없어도/ 기다리고 계시는 구주의 품에/ 작은 아이들을 이끌 수는 있다오.// 당신이 높은 시온성의 벽에 서서/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하늘을 향한 길을 가리키며/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평안을 전할 수 있다오./ 당신의 기도와 당신의 관대함으로/ 하늘이 요구하는 것을 행할 수 있다오/ 선지자 모세의 손을 들어올리던/ 신실한 아론과 같이 될 수 있다오.//당신은 나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가르치기에 적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 양을 먹이라"고 목자 되신 우리 주께서는 말씀하셨다오/ "양들이 먹을 수 있도록 먹이를 놓으라"고/당신이 조심스런 손길로 이끌던 아이가/ 당신이 더 좋은 곳에 도착할 때에는/당신의 보석 가운데서 발견될지 모른다오.//사람의 영혼이 죽어 가고 있고/ 주께서 당신을 부르고 있을 때/ "나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네"라고/ 게을리 말하는 것을 아무도 듣게 하지 마시오./ 그가 당신에게 맡기신 일을 기쁘게 취하시오./ 그의 일이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시오./그가 부를 때 어서 대답하시오./"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를 보내소서"라고.
(다니엘 마치/ 당신의 전도)
중국에 있는 죄인과 만달라이의 이교도에게/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있네./ 하지만, 자, 우리가 멀리 떨어진 그들을 위해/ 염려하는가? 기도의 단을 쌓는가?//우리는 어두운 아프리카의 연안을 빛을 밝히려고/ 복음과 함께 갈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네,/ 그러나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이웃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말이라도 건네었는가? // 큰 길목 아래에 사는 저 농부는/ 험상궂고 무자비하게 보인다네./ 우리는 그에게 구세주에 대해 말한다거나/ "부르심"을 증명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 우리는 폭풍의 조류를 가로 지르며/ 야만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라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옆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복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네.// 우리는 남아프리카의 호텐토트 사람에게/ 우리의 놀라우신 구세주와 우리가 그토록/ 귀하게 발견한 그의 사랑을/ 말할 것이라네, 그러나 확실히 우리는/ 거리에서 만난 친구에게는 말하지 않는다네.// 오, 우리는 선교사들이 될 것이네./ 잃어버린 자들을 구하기 위해 나갈 것이라네./ 힌두교인에게 보냄을 받을 것이라네./ 일본인에게 언약의 말씀을 줄 것이라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한 마디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네.
(로디 C. 구딩/ 예루살렘에서)
내 형제여? 영혼들을 위하여 염려하는가? / 참으로 염려하는가?/ 영혼들이 죽어 간다, 죽어 간다, 죽어 간다. / 아! 곳곳마다 사라져 간다. / 지옥문은 널게 열렸구나./ 믿는 자여! 일하지 않으려나/ 주님은 그들을 위해 생명을 주었나니/ 믿는 자여 회피하려는가.// 내 형제여! 영혼들을 위하여 염려하는가? / 당신의 부요함을 내주려는가?/ 사단이 그의 눈먼 앞잡이들로/ 비밀히 사람들의 영혼을 훔치는구나./ 하나님의 모든 구애에 귀가 멀게 하는구나./ 믿는 자여, 줄 수 있는가./ 죄로 죽은 자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그들의 잠을 깨우는 말씀을 보낼 수 있는가.// 내 형제여! 영혼을 위하여 염려하는가?/ 무릎을 꿇고 뜨거운 기도로/ 시간을 보내며 염려하는가? / 눈물과 기도는 마귀의 힘을 꺾나니/ 추수하는 모든 사람의 주께서/ 그의 일꾼들을 보내시도록 기도하라./ 죄인들을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믿는 자여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 내 형제여! 영혼을 위하여 염려하는가? /주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즉시 일어나 갈 수 있을 만큼 염려하는가? / 그대는 지옥에 빠진 영혼들이/ 무섭게 환담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가?/ 그들의 두려운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는가?/ 일하라, 주라, 가라, 그들이 죽어간다. / 그들이 죽어 간다, 그들이 죽어 간다.
(그레이스 하워드/ 염려하는가?)
무리들에 의한 .의회에서는 이미/ 예수의 처형을 의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엄격한 수사망을 뚫고/ 예루살렘 근방에서 전도하던 예수는/ 그날 베다니아 마을을 출발하자/ 기드론 골짜기 너머 성전 언덕과 마주보는 동쪽 올리브산 위에/ 공공연하게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의 이 원대한 이상주의는/ ‥‥날이 갈수록 로마의 압제에 허덕이는/ 상민들의 가슴속에도 쉽게는 가 닿지 않았다/ 따라서 그가 나아가는 곳에/ 오해와 곡해가 더해질 뿐이었다// 그러한 답답스러운 전도 생활의 총괄을/ 그는 이때 눈앞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스즈끼 도로우/ 성전 청결)
여기 한 고독한 생애가 있다. // 그가 나신 곳은 이름 없는 한 두메 마을/그의 어머니는 보잘것없는 시골 여인/그는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도/ 이름 없는 비천한 목수였고/ 그 후 삼 년 동안 그는 방황하는 전도자였다. // 그에게는 한 권의 저서도 없으며/그에게는 아무런 지위도 없으며/ 그에게는 따뜻한 가정도 없으며/ 그에게는 대학의 학력도 없으며/ 그에게는 큰 도시와 견문조차 없으며/ 그의 여행은 기껏 200마일도 못 되는 거리였다. // 그에게는 세상의 위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그가 내어 놓을 수 있는 이력서는 단지 한 몸뿐.// 그 자신의 삶은 이토록 비참했던 것/ 삼 년의 전도와 사랑의 실천 뒤에도/그에게 돌아간 것은/ 오히려 무리들의 배척이었고/ 제자들의 배신과 부인이었다. / 그리고는 원수에게 넘겨져 조롱과 재판을 받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더니라.
(작자 미상/ 한 고독한 생애)
우리 발을 이끌어/사도의 대열에서/ 물러서지 않게 하시고/ 골고다의 길을/ 기쁘게 걷게 하소서
(김지향/ 능력의 말씀으로)
설 교 노 트
다 내게로 오라
마11:25-30
서론
우리 주님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 내 게로 오라"는 초청을 생각할 때 너무 놀랍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초청을 받은 성도들은 이 초청에 대해서 바로 알아 바른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의 초청은 이상한 초청입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지칠대로 지쳐서 감당할 수 없는 얽매임 속에서 고달파하는 인생들을 향하여 하는 뜨겁고, 깊고, 연민이 있는 초청입니다. 성경은 자주 그런 초청을 합니다. 사55:1에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7:37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계22:17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시50:15에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초청은 예수님만 할 수 있습니다. 피곤하고, 지치고,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진 자들을 무조건 초청해 주신 것입니다. 이런 초청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한 것입니다. 아이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계시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들려주신 것이 아니라 오늘도 주님이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라고 하였습니다. 수고는 육체적인, 외형적인 것입니다. 짐진 자란 내적인 것, 정신적인 것, 영적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안과 밖으로 모든 근심과 염려가 있는 사람들은 다 내게로 오라 하신 것입니다. 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향하여 오라 오라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신기한 초청, 특별한 초청, 이상한 초청을 받고 사는 우리는 "나는 행복한 자다"라고 믿고 살아나가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의 초청은 문제 해결의 초청입니다.
예수님의 초청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여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영국의 성경 해석가인 메튜 헨리(Matthew He-nry) 선생은 이 휴식에 대해서 참 좋은 휴식, 신앙적인 휴식, 양심적인 휴식이라고 했습니다. 참 좋은 휴식이라 함은 조건이 따르지 않음이며, 신앙적인 휴식이라 함은 신앙적인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며, 양심적인 휴식이라 함은 모든 죄가 용서를 받고 해결함을 받는 거룩한 초청이기 때문에 이 초청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초청이요, 예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초청 이요, 하나님의 특별하신 축복을 받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초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두 가지의 문제는 언제나 있습니다.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 다시 말하면 마음의 것과 육체의 것인 것입니다. 그 종류를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주님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신다 하셨습니다. 오라 했으니 책임을 져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이 나를 세웠으니 주님이 해결해 주십시오. 주님이 누구를 불러 세웠으니 주님이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 떼를 쓰며 기도를 드릴 때가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무슨 체면이 있겠습니까? 책임지지 못할 것,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으셔서 불러 주신 줄 믿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쉬게 하여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식주 문제가 있습니까? 광야에서 만나를 주셔서 해결했습니다. 메추라기도 먹였습니다. 육체 문제, 질병 문제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까지는 하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맡깁시다.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 버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죽은 자도 살려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죄의 문제는 사람은 해결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문제도 하나님이 불러 주셨으니까 책임져 주시고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주시는 주님, 그리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주님,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오늘 느껴지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연기하지 맙시다. 지체하지 맙시다. 특별하신축복을 받은 저와 여러분,주님이 메어 주신 멍에를 메고 이 유예받은 한 해 동안에 많은 결실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밤이 오기 전에
요9:1-12
서론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가르치시며 전하시기도 하셨는데 이 날도 길 가실 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그 소경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질문하자 누구의 죄 때문도 아리고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1. 인생은 길 가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인생은 바로 길가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여러 가지 형편에 처할 수도 있고 또 그러한사람들을 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한 불쌍한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영혼이 병들어 저주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중에 소망의 빛을 찾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은 자식들에게 베풀어 주신 축복을 감사하면서 그들에게 구원의 빛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을 힘써 행해야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날 때 예수님께서 소경을 고쳐 주신 것처럼 우리들도 복음으로 그들에게 치료의 광선을 전달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62. 기회를 선용하는 것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서양격언에 "기회는 붙잡아 놓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전도할 수 있는 기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따로 있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막10:46의 바디매오도 기도를 잘 붙잡아 눈을 뜨게 되었으며 요한복음 4장에도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도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상히 여겼으나 예수님께서는 이 일이 곧 내가 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물길러 나온 여인에게는 그것이 기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전도하셨고 동리에 들어가 선지자를 만났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선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인생에게는 밤이 온다는 것입니다.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밤은 특정적인 사람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빈부귀천과 미추를 가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밤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가 낮이면 병들 때는 밤입니다. 생활의 여유 있을 때, 형통할 때가 낮이면 곤고한 날, 고난의 바람이 불 때는 밤입니다. 오늘 건강하다고 오늘 형통하다고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축복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주시고 지식 주셨을 때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봉사 한 번 더, 심방 더, 주의 일을 더욱 열심히 할 때가 을 것입니다. 세상 생계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면서 영적자녀를 키우는 선한 봉사에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건강 주셨을 때 주의 일을 합시다. 밤이 오기 전에 교회를 위하여 힘껏 봉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길 가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만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읍시다. 밤이 오기 전에 힘껏 봉사하고 힘껏 봉헌하여 하늘에 상을 준비하며 우리가자손이 복을 받되 넉넉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집을 채우라
눅14:15-24
서론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열고 손님을 초청하였는데 한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밭을 샀기에, 소를 샀기에, 장가들어서 등등 을 수없는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 주인은 노하여 길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소경들을 데려오라고 하였으나 그래도 자리가 비어서 길과 산울가로 가서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1. 채워야 하는 이유
그 이유는 잔치가 배설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세상은 위험의 세상이며, 슬픔의 도가니 같아서 모든 사람들은 다 불안과 공포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안과 괴로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기뻐하는 곳, 치료받는 곳, 만족과 감사가 있는 곳이며, 영생의 복을 주시는 곳이기 때문에 이 집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불평 불만자들이 감사하는 곳이며, 교만하던 자들이 겸손하여지고, 멸망받을 자들이 영생을 얻는 곳이며, 불효하던 사람이 효자가'되고, 깡패가 변하여 착한 사람이 되는 곳입니다. 이 교회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교정되지 아니하며 채울 수도 없는,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곳이 곧 교회인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영생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곧 신비입니다. 이런 교회, 이런 제단을 만들어 놓고 이곳을 가리켜 잔치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슬프던 사람이 들어와서 기쁨을 얻고, 절망에 울던 사람이 소망을 얻고, 병들었던 사람이 찾아와 치료함을 받는 곳입니다. 특별히 기적으로 이룩한 이 교회, 이 제단을 세워 놓았기에 하나님이 채우라는 것입니다.
2. 초청의 대상
(1) 먼저 가까운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란 가정식구 친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먼 곳부터가 아니라 가까운 곳부터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도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고 하였습니다(행1:8).
(2) 거리와 골목(도시)
거리에 가서 가난한 자와 병신과 소경, 저는 자들을 청하라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가 많이있습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은 무시를 당합니다. 힘이 없어 무시를 당합니다. 이런 사람을 청하라 하셨으며 신령적 가난한 자도 청하라 하였습니다. 또 병신(불완전한 사람), 소경(빛을 잃어버린 사람), 절름발이(기형적인 인생의 삶을 사는 사람)를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3) 그 밖의 길과 산들(농촌)
우리들이 데려와야 할 사람은 어디든지 있다는 것이며 누구든지 데려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도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3. 초청의 방법
(1) 종을 보냅시다(17절).
먼저 주인의 보내심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신앙생활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도록 보내시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영을 받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2) 빨리 가라고 하였습니다(21절).
여유가 없는 긴급성을 말합니다. 지체할 수 없는 전도의 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이 언제 부름을 받을지 알 수 없으며 기회도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주님의 일은 보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생명이 보류되지 않으며 호흡이 보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3) 강권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강제로 억지로 끌라는 것이 아니고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설득시켜 돌아올 수 있게 감화를 주라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문제와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이 변화하여 감화를 주어야 됩니다. 정성어린 기도, 정성어린 봉사로 자신의 생활도 이웃과의 사이도 변화하여야 합니다.
결론
구원과 기쁨이 넘치는 곳.
영혼들이 쉼을 얻고 하나님을 섬기는 곳, 근심 걱정 다 버리고 모든 짐 풀게 되는 잔칫집과 같은 이곳을 빨리 가서 강권하여 가까운 사람부터 전도하여 날마다 구원의 무리가 더하게 하여 이 집을 채웁시다. 좋은 약이 있으며 생명의 양식이 있고 생수가 넘치는 이곳을 채워 하나님의 명령에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드리며 천하보다 귀한 전도의 열매를 맺어 상급받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앞에 나오는 성도
벧전2:1-10
서론
세상에는 건강한 것 같으나 병든 사람이 많고 또 약한 것 같으나 건강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육체는 살아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 영혼이 죽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의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를 따라 살았으며 모든 일은 타락한 육체의 욕심을 좇아 지내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불러 거듭나게 하사 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도 구원얻은 성도들은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면서 항상 예수 앞에 나아와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아온다"는 말은 계속적인 행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날마다 그 앞에 나아와야 된다는 뜻입니다.
1. 우리가 만나야 할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생애였습니다. 이사야 53장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야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께는 버림받으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은 다 예수님을 버렸고 십자가에 못박았으나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리사 참된 승리를 얻게 하셨습니다.
(2) 보배로운 산 돌이십니다.
왜 예수님은 산 돌이십니까? 예수님은 교회의 기초석이시기 때문이며(고전3:11), 모퉁이 돌이요, 머릿돌이시요(마21:42), 생수의 반석이시며(고전10:4), 부딪히는 돌로서 원수를 이기시고(벧전2:8), 심판하시는 돌이요(단2 . 34),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히13:8)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패잔병들은 인생들에게도 같은 승리의 축복을 주시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산 돌이라고 하였습니다.
2. 이런 예수님께 나오는 성도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1) 우리도 산 돌이 되게 하십니다.
전에는 죄와 허물로 죽었지만 성령으로 새로운 생명을 주어 다시 살게 하시고 험악한 세상을 이기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신학자 그래다너스(Greydanus)는 예수님은 자신이 살았으니 우리를 살릴 수 있고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이 있으니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자신이 승리 하셨으니 우리도 승리케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요16:32에 "세상에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였고, 요14:19에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산 돌이신 예수님께서 힘을 주실 때 안으로는 자신을 이기고 세상으로는 환경을 이기고 영계로는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 신령한 집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의 일원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교회는 사회적인 단체가 아니며 육신적인 모임이 아니라 신령한 집입니다. 영혼과 영혼이 모여서 서로 사랑하며 아껴주고 붙들어주며 교제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성도는 외롭지 않습니다.
(3) 신령한 제사를 드릴 제사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1:12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또 유업을 약속으로 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요15:16에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제사장들이 되어 그 봉사가 기억하신 바 되며 우리들의 기도가 응답되는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
니 다.
(4)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죄의 용서와 천국에서의 영생을 보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롬4:7-8). 마태복음 25장에는 두 가지의 사람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마25:12)"고 하시는 부끄러움을 당하는 사람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네 주인의 즐거움을 참여할지어다(마25:21-23)"라고 칭찬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현세에서도 영접해 주신다는 이 약속을 항상 누리면서 담대히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 죄를 위하여 보혈을 홀려 주셨고 우리를 그 나라에 영접해 주시기 위하여 구원해주신 이 산 돌이신 예수님 앞에 나을 수 있는 축복을 받는 여러분은 남은 여생 동안 사명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저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9절)"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감사만하는 잠잠한 종교가 아니라 나가서 선전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선전해야 합니다. 용서와 영광스러운 승리를 자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힘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막1:38
서론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보좌에 앉으시고 네 영물과 24장로와 천군 천사들에게 영원토록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신데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1. 유대인의 왕노릇 하려고 오신 것입니까?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줄 알고 경배하려고 왔고(마2:2), 헤롯 왕도 유대인의 새 황으로 오신 줄 알고 성장하기 전에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마2:16).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국의 새 왕으로 오신 줄 알고 그를 따라다니다가 그 좌우편에 앉아서 세상의 권세를 누리려는 것 때문에 제자들간에도 시비가 붙었던 것입니다(마20:20-24). 벳세대 광야에서 떡 먹고 배부른 군중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모시려고 하였습니다(요6:14-15).
사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 되려고 오신 것이 아닙니다.
2.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신 것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도를 전파하려고 오셨습니다(막1'38).
(2) 죄인들을 회개시키려고 오셨습니다(마9:13).
(3) 불을 땅에 던지려고 오셨습니다(눅12:49).
(4) 화평이 아니요 분쟁케 하려고 오셨습니다(눅12:51).
(5)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눅19:10).
(6) 양으로 풍성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요10:10).
(7) 희생하시려고 오셨습니다(요12:27).
(8) 진리를 증거하려고 오셨습니다(요18:37).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종합하여 보면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이 분명합니다.
3. 가까운 마을로 가서 전도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전하시는 일을 시작하시자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32-34절). 오히려 새벽 미명에 예수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제자들이 곧 따라와서 모든 사람들이 주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복음 전도가 그의 사명이었고 여러 곳에 다니시며 여러 사람에게 전도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쫓아내셨으니 이를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선명하시고 분명하십니다. 우리는 뜻을 받들어 우리도 다니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전도하며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전 쟁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전쟁의 일반적인 면
(1) 전쟁의 약탈품
(창34:28)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 하나님의 심판임
(레26:25) 내 가 칼을 너희에 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
(3) 전쟁에 임하면 제사장이 백성에게 고함
(신20: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거든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4)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가 예언됨
(시46:9)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5) 전쟁에는 계략을 세워야 함
(수8:5)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6) 전쟁에 패배할 때 혹사됨
(삼하12:31) 그 가운데 백성들을 끌어내 어 톱질과 써레질과 도끼질과 벽돌구이를 하게 하니라
2. 전쟁의 종류
(1) 민족과 민족간의 전쟁
(삼하3:6)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있는 동안에 아브넬이 사울의 집에서 점점 권세를 잡으니라
(2) 미가엘과 용의 전쟁
(계12: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3)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
(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3.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1) 탐욕으로
(대상18:10) 이는 하닷에셀이 이왕에 도우로 더불어 여러 번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파하였음이라 하로람이 금과 은과 놋의 여러 가지 그릇을 가져온지라
(2)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으므로
(대하16:9)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 하매
(3) 하나님께서 시험하시므로
(삿3:1)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4) 우상을 섬기므로
(삿5: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5)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므로
(시55:21)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6) 죄값으로
(사42:25)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사방으로 불붙듯하나
(7) 종말이 가까와서
(단9:26)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8) 선지자가 타락하므로
(미3:5)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9)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인하여
(계11:7) 무저갱으로부터 을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3.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1) 주께서 능력으로 띠를 띠우셔야 한다.
(삼하22:40) 이는 주께서 나로 전쟁케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사오며 (시18:39) 참조
(2)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가져야 한다.
(삼상17:45)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3) 모략을 베풀어야 한다.
(잠20:18)무릇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모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4) 하나님께서 싸워 주셔야 한다.
(출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5) 믿음이 있어야 한다.
(히11: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6)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야 한다.
(삼상14:23)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므로 전쟁이 벧아웬을 지나니라
관련원어풀이
1. !j'l; 라-함
(1) 먹다, 탐식하다, 소모하다.
(시141:4, 잠23:1)
(2) 싸우다, 전쟁을 일으키다, 전투하다.
(시35:1, 56:2)
(3) 대항해 싸우다, 포위하다.
(왕하16:5, 사7:1)
2. hm;j;l]mi 미르하-마
(1) 싸움, 전투.
(출13:17, 욥39:25)
(2) 승리, 전쟁의 행운.
(전9:11)
3. ab;x; 차-바
(1) 나가다, 발행하다, 전투하다.
(민31:7, 사29:7)
(2) 봉사를 위해 모이다, 수행하다.
(민4:23, 삼상2:22)
(3) 나가게 하다, 소집하다.
(왕하25:19, 렘52:25)
(4) 군대, 군세.
(민31:27, 삼하8:16)
(5) 싸움, 전투.
(욥7:1, 단10:1)
4. br;q] 케라-브
전쟁, 싸움.
(욥38:23, 시55:19)
5. hr;G; 까-라-
(1) 선동하다. 다툼에 열을 올리다, 혼란을 야기시키다.
(잠15:18, 29:22)
(2) 성이 나다, 화내다.
(잠28:4, 단11:10)
(3) 전쟁을 일으키다. 다투다.
(신2:5, 왕하14:10)
6. povlemo" 폴레모스
(1) 전쟁.
(마24:6, 히11:34)
(2) 싸움, 전투.
(고전14:8, 계9:7)
(3) 논쟁, 말다툼
(약4:1)
설교예화자료
가장 희생이 큰 전쟁
인간 생명의 소중함의 견지에서 볼 때 가장 값비싼 희생을 치른 전쟁은 단연 제 2차 세계대전입니다(1939∼ 1945).
그 당시 사망자 수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과 일반 국민들까지 포함하면 5천4백8십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소련인은 2천5백만 명 이 사망했고, 중공인은 78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받은 나라는 폴란드로써, 그 나라 인구 2천7백만7천 명 중 22.2%에 해당하는 6백2만8천 명이 사망했습니다.
전쟁의 참화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히로시마(Hiro-shima)는 경적이 울리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깨어 났습니다. 그 순간, 9천미터 상공으로부터 폭탄- '얼간이 소년'이라는 별명의 -이 B-29 '에놀라 게이(Enola Gay)기'로부터 떨어져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43초 후에 자줏빛 섬광이 그 도시를 멍하게 만들었습니다. 150미터 넓이의 포탄이 중심을 휘말아 삼켜 버리고, 섭씨 9천 도의 열 폭풍이 초속 4킬로미터의 속도로 도시 전체를 몰아쳤으며 T.N.T.2만 톤이 동시에 폭발하는 것과 맞먹는 폭발에서 방출된 충격 진동파가 잇따랐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원자 버섯 구름'이 이미 폐허화되어버린 도시 위 수마일 상공으로부터 치솟았습니다. 불꽃은 도시 전체를 삼켜 버렸고, 바람이 맹위를 떨쳤으며, 소위 '회색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생존자들은 곧 추위로 떨기 시작했습니다.
희생자들의 수는 히로시마에서는 백만 명 내지 2백만의 사망자가 생겨났고, 나가사키에서는 30만 내지 70만 명의 사망자가 생겼다고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30년 이후에, 여전히 방사선 오염의 희생자들은 일년에 3천 명의 비율로 해마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사자와 멧돼지
몹시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숲속에 사는 동물들은 더위에 지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견디다 못한 사자가 작은 샘터를 찾아갔습니다.
"아이구, 어서 시원한 물을 마셔야지." 하며 사자가 샘물을 마시려고 할 때 조금 먼저 온 멧돼지가 나서며,
"비켜! 순서를 지키라고.내가 먼저 왔으니 나부터 마셔야 해."
"뭐라구? 건방진 녀석. 까불지 말고 저리비켜."
이렇게 하여 사자와 멧돼지는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며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둘 다 지쳐 잠시 싸움을 중단하고 숨을 돌리는 사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왜 싸움을 멈추지? 계속 싸워야 끝장이나지!"
하고 그들의 싸움을 부추기며 속으로 그들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눈치챈 사자와 멧돼지는,
"싸우다 죽어 독수리의 먹이가 되느니,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쪽이 좋겠군," 하고 나란히 샘물을 마시고 함께 숲속으로 돌아갔습니다.
자루
쇠가 만들어졌을 때 온 세계의 나무들이 떨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무를 향해서, "걱정하지 말라! 쇠는 네가 자루를 제공해 주지 않는 한 너를 상처 입히지는 못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록·시·묘사
군대란 사람을 잡는 흉기요, 전쟁은 덕을 거슬리는 것이며, 장수는 죽음을 내리는 관리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하는 것이다.
(위료자)
전쟁은 "신의 행위(불가항력)"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인간이 만든 제도에 꼭해서, 인간이 사회를 구성한 방법 때문에 일어난다. 인간이 만든 것은,인간이 변화시킬 수 있다.
(F. M. 빈슨)
전쟁은 죽음의 향연이다.
(G. 허버트/ 명궁)
황금과 부는 전쟁의 으뜸가는 원인이다.
(타키투스/ 역사)
전쟁은 본능이 아니라 창안이다.
(J.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모든 전쟁은 그 자체의 변명이다. 그것이 전쟁이 이념으로 둘러싸이는 이유요, 전쟁이 모두 십자군이라는 이유이다.
(K. 샤퍼로/ 부르조아 시인)
전쟁은 그 이전의 부패의 산물이며, 새로운 부패의 생산자이다.
(L. 멈포드/ 처세론)
전쟁의 의미는 호화가 튀는 일선의 고지보다도 황폐해진 어린이 놀이터에서 더 실감될 수 있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전쟁을 거부하기 위해서는 그 전쟁에 대비하는 또 하나의 전쟁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아이러니가 우리의 현실이다.
(이어령/ 통금시대의 문학)
전쟁은 군주들의 장사이다.
(J. 드라이든/ 아더 왕의 죽음)
전쟁이란 공개적인 것이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은밀한 행동이요 , 문명사회의 규범에 대한 범죄적 위반행위이다.
(R. 로젠블랫)
전쟁의 진정한 목표는 살인이며, 그것도 대규모의 살인이다. 적의 시체더미가 목표인 것이다.
(E. 카네티/ 말의 양심)
가장 어려운 전쟁은 사물에 관한 전쟁이 아니라, 입심 좋은 이상가가 사물에 관해서 지껄인 허황한 소리에 관한 전쟁, 다시 말하면 종교전쟁이야.
(A.L. 헉슬리/ 천재와 여신)
전쟁은 가장 승산 있다 해도 국가적 불행이다.
(H.V. 몰트케/ 서한)
전쟁이란 것은 가장 비천하고 죄과가 많은 무리들이 권력과 명예를 서로 빼앗는 상태를 말한다.
(L.A. 톨스토이/ 독서의 수레바퀴)
전쟁과 내란이 일어나는 원인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첫째 명분의 싸움, 둘째 이권의 쟁탈, 셋째 악정의 누적에서 오는 싸움, 넷째 내란이 유발한 싸움, 다섯째 기근이 가져온 전쟁이다.
(오 자)
전쟁이 빚어 낸 비극 중에서도 호소할 길 없는 가장 큰 비극은 죽음으로 해서, 혹은 납치로 해서 사랑하고 의지하던 이를 잃은 그 슬픔이다.
(김소운/ 특급품)
늙은이들이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싸워야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다.
(H. 후버)
사람들이 전쟁을 좋아하도록 이끄는 것은 잔인성뿐만 아니다. 그것은 흥분이다.
(H. W. 비처/ 플리머드 강단에서의 금언집)
전쟁 때문에 회생되는 버터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의 마가린임이 판명된다.
(J. 토빈)
전쟁은 전부 훔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볼테르)
맹자와 송경은 똑같이 전쟁이라는 것은 토지를 강탈하고 아까운 생령(生靈)들을 도살시키며 도의에 어긋나는 짓을 저지른다는 이유 때문에 전쟁을 철저히 반대하였다.
(장기균/ 중국철학사)
자기 자신이 안전지대에 놓일 수만 있다면 전쟁을 사양하지 않는 경향은 전쟁영화를 하고 있는 극장 앞에 사람이 들끓는 현상을 보면 알 일이다.
(이병주/ 역설, 나의 반전 선언)
전쟁이 사악으로 간주되는 한 전쟁은 언제나 그 매력을 가질 것이다. 전쟁이 저속하게 보여질 때 인기는 사라질 것이다.
(O. 와일드/ 예술가로서의 비평가)
전쟁은 동물이 함에 적합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동물이고 인간처럼 전쟁을 하는 것은 없다.
(T. 모어)
국가는 군대를 억지로 살인자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므로, 억지로 전쟁을 구하지 않으면안 된다.
(T. 모어/ 유토피아)
많은 싸움이 지나 쌍방이 모두 피곤하여 이윽고 평화가 왔다. 한데 국민은 무얼 얻었는가? 세금, 과부, 의족(義足), 그리고 빛.
(T. 모어)
전쟁의 활력은 돈뿐이다.
(F. 비용)
전쟁은 그 진행상 어떠한 인간의 지혜도 그 종국을 짐작할 수 없는, 예기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을 수반한다. 단 하나의 확실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세금이 올라가는 것이다.
(T. 페인/ 루비콘 강의 전망)
전쟁은 파괴의 과학이다.
(C. G. 애버트)
남자들은, 전쟁이 그들을 중요하게 보이도록 해 주기 때문에 전쟁을 좋아한다. 여자들이 남자들을 비웃다가 멈추는 것도 똑같은 일이다.
(J. 파울즈/ 마기 族)
인류는 전쟁에 종지부를 찍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에게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J. F. 케네디)
우리는 전쟁의 무기가 우리를 파멸시키기 전에 이 무기들을 폐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J. F. 케네디)
전쟁은 이미 합리적인 수단이라고 호소할 만한 것을 갖지 못한다. 무조건의 승리를 가져올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분쟁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는 없다.
(J. F. 케네디)
겪어보지 않은 자에게는, 전쟁은 즐겁다.
(에라스무스/ 금언집)
전쟁을 재미있어 하는 것은 무경험자뿐이다.
(핀다로스/ 노래와 춤)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살아 남은 자들의 자부이며, 죽은 자들의 묘비명일 수 있다.
(W.S. 처칠)
인류가 인류의 은혜 자들보다도 파괴자들에게 대해서 변치 않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한,전쟁은 결국 야심의 가장 큰 추구가 될 것이다.
(E.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전쟁의 하루는 악마에게 추수하는 하루이다.
(W. 후크/ 설교)
어디서 전쟁을 할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전쟁에 이길까 생각하라. 전쟁이란 이기면 자연히 멀리 물러가며 지면 문전에 찾아오는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전쟁은 모든 악의 어머니이다.
(H.F. 스테귀/ 현대 휴머니스트의 고백)
전쟁의 본질은 포학이다.
(A. 피셔)
전쟁은 인류를 괴롭히는 최대의 질병이다.
(M. 루터)
어떤 명분이 있어도 전쟁은 졸렬한 수단이란 평을 면할 길이 없다.
(이병주/ 연설, 나의 반전 선언)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말로 전쟁을 무너뜨리는 편이 명예스럽다.
(A. 아우구스티누스/ 다리우스에게 보낸 편지)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큰 도덕은 전쟁을 거부하는 용기다.
(A. 할러)
전쟁은 심심할 때에 하는 가장 좋은 요법이다.
(알랭/ 행복어록)
전쟁의 원인은 명예와 권태 가운데 있다.
(알랭/ 종교어록)
옛적엔 모국을 위해서 죽는 것은 마음 편하고 그럴 듯한 것이라고 씌어졌으나, 근대 전쟁에서는 전사가 마음 편하고 그럴 듯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러분은 개처럼 죽을 것이다.
(E. 헤밍웨이/ 와야 할 전쟁에의 각서)
관리를 잘못한 국가의 최초의 만병약은 통화의 인플레이며, 두 번째는 전쟁이다. 양자가 다 일시적 번영을 안겨 주고, 또한 영구적인 파멸을 안겨 준다. 그리고 양자 다 정치적 ·경제적 기회주의자의 피난소다.
(E. 헤밍웨이/ 와야 할 전쟁에의 각서)
대한 동포로서 적의 관리된 자를 퇴직할 것도 다 평화적 전쟁이오. 일반 국민으로 하여금 적에게 납세를 거절하고 대한민국 정부에 납세케 할 것, 일본의 기장(旗章)을 사용치 않고 대한민국의 기장을 사용할 것, 가급적 일화를 배척할 것, 일본 관청에 송사, 기타의 교섭을 단절할 것-이런 것도 다 평화적 전쟁이오. 이것도 힘 있는 전쟁이 아닙니까.
(안창호/ 육대사업)
전쟁은 도덕적인 유희는 아니다. 우리들은 천연두, 말라리아, 황열병을 근절시켰다. 이러한 것을 근절시키는 정도의 민첩함, 잔인함을 가지고 전쟁을 뿌리 뽑지 않으면 전쟁은 우리들의 문명의 전조직을 파괴할 것이다.
(L. 호그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파괴의 가능성은 놀랄만큼 증대하였고, 전쟁으로 인하여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범위는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정도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전쟁의 위협은 하나의 악몽처럼 되었고, 그 악몽은 실제로 모든 사람들의 생활을 그늘지게 하여 커다란 공포와 무력감을 증대시켜 왔다.
(E.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전쟁에 의해서 가져 오게 된 것은, 또 전쟁에 의해서 가져 가게 될 것이다.
(J. 주베르/ 팡세)
국가가 있는 곳에 전쟁은 안 그친다.
(E. 버크)
어떠한 전쟁도 이미 승리자에게 전리품을 갖다 주는 일은 없다.
(R.A. 이든)
전쟁이란 국가에서 국가에로의 재산의 이동이다.
(L. 샘슨/ 신인도주의)
여름내 품고 다닌 그 슬픔/ 멜빵 그리고 거친 천조각/수류탄, 삽 또는 철모,/ 흠이 파진 칼/ 말없는 등의 피를 찾는// 슬퍼하는 살찐 까마귀 일곱/빨간 소나무 가지에서 떨어지네 일곱의 꽃들은 또/ 탱크 지나간 자취 위에
(H. 벤더/ 젊은 병사)
전쟁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참으로 시시하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그저 소문처럼 왔다. 한 달 후 전쟁은 처음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불쑥 다가섰다. 수평선 저편으로부터 시커먼 강철의 새들이 항구의 하늘 위를 덮쳐 들면서 땅 위에 있는 사람들과 건물을 공격하였다.
(최인훈/ 회색인)
오 바르바라/ 전쟁은 정말 더러운 것/ 이 피비린내 나는 포화의/ 빗발 아래/ 지금 너는 어떻게 됐니.
(J. 프레베르/ 바르바라)
이기고 짐은 병가(兵家)로서 꼭 기약하기 어려운 것/ 부끄러움을 쌓아두고 부끄러움을 참아야 그것이 사나이라/ 강동(江東)의 젊음이들 재준(才俊)한 사람 많으니/ 세력을 회복하여 다시 석권할는지도 알 수 없으리.
(두목/ 烏江亭)
추억의 땅 그리스여/ 전화(戰火)의 자욱에/높이 솟은 고지보(高地堡)가 아직도 몇 개나 남아 있었다. / 함포사격을 맞아 망가진 항만이여.
(A. 파론키/ 주말)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나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너는 더욱 자라고/ 우리들이 서울에 남은 집에 돌아갈 적에/ 너는 네가 어데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그런 계집애.//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데 있느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박인환/ 어린 딸에게)
전쟁은 구라파에 난 부스럼 자국.
(M. 루카이서/ 천공무근)
청춘도 전쟁도/ 너무나 스피드하게 달려가버리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뇌수는 쇼크와 인상으로/ 혼돈해지고 말았다.
(삼정후다바코/ 포에지)
전사들은 푸른 목장 위에 모였었다. / 모두가 무장하고/ 그 전쟁에 익은 얼굴은/ 가을의 나뭇잎처럼 온갖 색으로 얼룩져 있었다.
(C.P. 보들레르/ 평화의 파이프)
갑자기 모두들, 저들의 무기를 땅에 팽개치고/ 저들의 잔인하고 으스대는 이마 위에 빛나고 있던 전쟁의 빛을 시냇물에 씻는다.
(C.P. 보들레르/ 평화의 파이프)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어디에 있는가? 믿어야 할 뉴스와 읽어야 할 포스터 외에 어디에서 이 시간의 징조를 발견할 것인가? 전쟁은 새파란 바다 위에 퍼진 푸른 하늘에도, 매미의 울음소리에도, 초원의 느릅나무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알제" 거리의 빛의 발랄한 약동도 전쟁은 아닌 것이다.
(A. 카뮈)
씩씩한 네 필 말 헌칠한 키에/ 덩지가 큼직한 게 믿음직하이/ 험윤의 무리들을 무찌르고서/ 크나큰 공을 세워 바치리이다. / 위엄 갖춰 부하 이끌고서/ 싸움터에서 군무 받들고/싸움터에서 군무 받들어/ 이 나라 평안케 하리라.
(시 경)
양군이 어울려 싸우면/ 먼지가 하늘을 가린다. /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수없는 변화가 생긴다. /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눈코 뜰 새 없다. / 호령도 통하지 않고/ 고함도 들리지 않는다. / 털끝만큼만 틀려도/ 천 리의 차이가 난다.
(정도전/ 삼봉집)
궁지에 빠진 짐승 험한 속으로 달아나니/우리 군사 덮치자 좌우로 무너졌네./ 죽이고 사로잡고 달아나고 숨고 하여/죽은 놈은 가루되고 산 놈은 혼 날렸오./ 하루 아침 다 못가서 활짝 열려 청명하이,/ 개가 부르고 돌아오니 동쪽 백성 편안하도다.
(정도전/ 삼봉집)
쓰러지는 적, 비명을 지르는 적‥‥‥‥ 그러나 수를 자랑하는 적은 손해를 무릅쓰고 물밀리 듯 달려들었다. 들어 닿는 적을 거꾸러뜨린다. 그러면 적은 또 달려든다.
(안수길/ 갱생기)
오늘에는 이미/ 소설로 읽는 전쟁에 관해서도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 / 만족스러운 것, 즐거운 것,/ 강한 것, 야만스러운 것들 모두에게 있어서는/ 가인도 아벨도 죽음도 고뇌도 없다. / 그들은 전쟁을 위대한 때라고 예찬한다.
(헤세/ 아벨의 죽음)
그대는 슬픔의 시공을 초월하여 있으나/ 처절한 비참속에 더욱 처절하게 있어/6 · 25 전쟁이나/ 죽창, 도끼, 학살, 참상의 끝./ 세상이 그대를 버릴지라도/ 그대는 어쩔 수 없다 버리지 못하고
(김정환/ 서시)
옷처럼 검은 점,흰 것은 뼛가루, 거기에 아 단사(丹沙) 같이 붉은 빛/ 홍건히 흐른 피, 옛날의 피가 이 것은 쇳조각에 그려 놓은 꽃? / 깃도 전죽(箭竹)도 세월에 삼키우고 오직 남은 살촉이여, 늑대의 이빨 같은./ 말을 몰아 가노라면 싸움터에 비는 내리고/ 역을 끼고 동으로 벗어나니 잡초의 돌밭./바람 일고 해는 져 별도 드문데 검은 깃발이뇨, 먹구름 하늘을덮네./ 여기저기 백골들 울음 슬프니/구르는 것 깨어진 사기 조각에 양이라도 구워 놓고 달래어 볼까./ 벌레도 기러기도 소리 죽이고 갈대 이파리도 붉게 타는 이 한밤./ 회오리바람 도깨비불 나를 휘모네./ 울면서 주운 살촉 옛날의 살촉/ 부러진 이 끝으로 어느 병사가 그 누구의 가슴을 찔렀으리라./ 성(城)에 오니, 말 타고 지나던 젊은이는/ 광우리하고라도 바꾸어 버리라고. <*진(棄)의 장군 백기가 조군(趙軍) 40만을 묻어 죽인 싸움터인 장평을 지나면서 쓴 시>
(이하/ 長平請頭歌)
우리를 둘러싸게 될 세상의 것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 우리들의 아이들을 품에서 불러내는/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길버트 헬덴/ 그 새로운 날)
큰힘을 가진 주권국이 있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다.
(A. 아인슈타인)
신념과 재산을 지켜 준다는/ 십자군과 그리스도의 전사들이/ 주의 이름으로 범한/ 삼천 년의 학살로 붉게 물들어.
(개스코인/ 이 사람을 보라)
신경의 전쟁/ 지구의/ 계급의/ 종족의/ 폐허의/ 강철의/ 노예의/ 모표의/ 바람의/ 바람의/ 바람의 전쟁/ 공기 흔적의, 해원의, 허위의 전쟁/ 국경의, 참혹의, 참혼은 뒤 엉켜/ 우리를 휩싼다.
(미쇼/ 나사로여, 너는 자고 있는가)
참된 사람을 세계에 뿌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바라건대 그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보다 좋은 세계를 이루는 전쟁은 사랑을 위한 전쟁이며/ 사랑을 위한 봉사라는 사실을/ 내가 결코 잊는 일이 없게 하소서.
(쿠오스트/ 세계에 스며드는 사랑)
나라는 전쟁에 패하여/ 국왕도 황태자도 쓰러졌나니/ 적군은 승리에 도취했으나/ 우리 대장은 행방도 몰라라/ 백성들의 희망은 끊어지고/ 슬픔만이 나라를 덮고 있어라.
(아바엘라르두스/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하는 다윗의 노래)
길손은 동작동을 맴돌며/ 6월의 냄새를 맡는다// 참외, 수박, 토마토, 열무에서/ 푸성귀 냄새보다 더 짙은/ 포연의 냄새를 맡는다.
(고진숙/ 동작동을 지나며)
저 짙은 녹음 한귀퉁이에/ 상흔이 아직 박혀있는 것일까// 6월이 을 때마다/ 슬픈 소리가 흔들려온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어도/ 아픔은 생생만한 역사여// 오, 주여/ 비상(悲傷)의 연주를 멈춰 주소서
(장수철/ 6월의 기도)
탄탄탄/ 탕탕탕/ 타다단 타다단/ 꿍꽝꿍꽝/무수한 소리가 물리친/ 또 한 마을을 돌아/ 까마귀는 남은/ 지대를 간다.
(민재식/ 속죄양II)
살구꽃처럼/ 살구꽃처럼/ 전광 뉴스대에 하늘거리는/ 전쟁은 살구꽃처럼 만발했소/‥‥ // 청제비처럼 날아오는 총알에/ 맞받이로 정중선을 얻어맞고/ 살구꽃처럼 불을 토하며/ 살구꽃처럼 떨어져가는/ 융커기(機)
(김종한/ 살구꽃처럼)
요행히도/ 전쟁에서 살아 남았을 전/ 우리는 어쩌다 애꾸눈이 아니면 절름발이었고
(김광림/ 상심하는 접목)
참 그래, 이상야릇도 해, 전쟁은!/ 당신이 어떤 술집이 있는 곳에서/ 만났더라면 한 잔 내거나 혹은 10원은 도와줄/ 사람을‥‥
(T. 하리/ 그가 죽인 사람)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하는 화약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강물은 발길을 끊어버리고
(정한모/ 나비의 여행-아가의 방 · 5)
풍신수길을 아시지요. 강호시대 왜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그를 잊지 않으셨지요? / 임진, 정묘 7년 동안 조선 짓밟아/ 조선의 피와 살로 왜국을 중흥시킨/ '문록 경장의 역(文祿慶長의 役)' 주도한 풍신수길의/다완(茶碗) 전쟁, 도자기전쟁 정체를 아시지요?// 조선 얼로 왜국의 기틀을 잡고/ 조선 피로 왜국의 전통을 닦고/조선 살로 왜국의 생존을 지탱한/ 풍신수길의 조선침략 전술을 아시지요?
(정동주/ 신무가-4 · 이국 하늘 아래서)
그렇게 안타깝던 전쟁도/ 지나고 보면 일진(一陣)의 풍우보다 가볍다// 불타버린 초가집과/ 주저맞은 오막살이-// 이 붕괴와 회진의 마을을/ 내 오늘 초연히 지나가노니// 하늘이 은혜하여 와전(瓦全)을 이룬 자는/오직 낡은 장독이 있을 뿐// 아 나의 목숨도 이렇게 질그릇처럼/ 오늘도 날아 있음을 다시금 깨우쳐 준다. // 흩어진 마을 사람들 하나 둘 돌아와/빈터에 서서 먼 산을 보는데// 하늘이사 푸르기도 하다/ 도이원 가을 볕에// 애처로운 코스모스가/ 피어서 칩다.
(조지훈/ 도이원에서)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혈의 전쟁에서/무너져 내린 가슴을 안고/ 신발에는 자부심 가득한 채‥‥/ 영혼의 진정한 대 학살에서/"사랑받고 또 홀로 버림받는 것은/ 어떤 희생이 따르는가? "/ 우리가 물었을 때.
(렌리 퍼터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청천의 벽력만 없다면/ 하필 탄환 재며/ 피비린내 피울 거냐/ 달 속에 계수나무 비치는 우물에선 아내가 물을 긷는/ 못 잊을 촌락을 뒤에 두고/ 전장으로 달림은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연고로/ 유식한 사람들 하나같이 전쟁을 미워하는 세대에/ 누구는 싸움이 좋은 건가/ 꽃 같은 청춘들을 누구는 싸움터로 보내고 싶은 거냐/ 기름진 강토는 전신 만창이 되고/어진 백성 짐승 모양 사뭇 잡아죽이는 마당/ 조국은 피를 흘리는데/우리 싸우지 않고 어찌하랴.
(노천명/ 조국은 피를 흘린다)
전화(戰火)에 그을은/ 때 늦은 피난 길 괴 나리 봇짐 끝에서도/ 한들한들거리던 소망의 꽃이여
(임춘남/ 부활꽃)
비무장지대 청정리 없어진 길에/ 엎어져 녹스는 철모.// 그 구멍 사이로 피어난 민들레꽃,/5월 헛살에 웃고 있다. //6 · 25 때,/ 그 철모에 포화가 작렬하던 순간/ 마지막 스쳐본 산하.
(이상면/ 민들레)
너의 이름은/가장 겸손한 최후의 수습자-/ 무화나무의 그늘로 즐기던 상하의 계곡과/ 그 경쾌한 회랑도로에서/ 너의 이름은 지금 그들의 술과 그들의 전쟁이란/ 흉작의 몇몇 이삭들을 줍고 있을 뿐.
(김현승/ 인간은 고독하다)
논두렁은 구부러졌어도/ 마음만은 바르게 먹으며/ 살라던 사람들/ 그런 마을에서도/ 살륙이 기어들어/ 목을 조르던 50년대// ‥‥그 산에서 형도 아우도/ 그 형의 친구도 그 친구의 아우도/ 칡덩굴 속에 줄줄이 묶여서/ 총알이 벌집 쑤시듯 쑤셔놓은 여름 밤/ 무서운 50년대
(이생진/ 아들 삼형제)
나리 양반들은 말한다 평화와 전쟁은/ 뿌리부터 다른 것이었다고/ 그러나 놈들의 평화와 놈들의 전쟁은/ 쉽게 말해서 바람과 폭풍이다// 전쟁은 놈들의 평화에서 탄생하고 자란다/ 아기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는 것처럼/ 그 아기는/ 어머니의 비참을 이어받고 있다/놈들의 전쟁은 살해하는 것이다/ 놈들의 평화가 못보고 놓쳐버렸던 것을.// ‥‥전쟁이 시작되면 여러 가지 것이 커진다/ 유산자의 재산과/ 무산자의 비참이// 지도자의 말과/지도당한 자의 침묵이// ‥‥벽에는 분필로 씌어져 있었다/ "당신이다. 전쟁을 바란 놈은."/그것을 썼던 사람은/ 이미 살아 있지 않다// 상층 사람들은 말한다/ 길은 영광에로 이른다고/ 하층 사람들은 말한다/ 길은 무덤에도 이른다고.// 다가오는 전쟁은/ 최초의 것은 아니다 그전에/ 몇 번의 전쟁이 있었다/ 전 번의 전쟁이 끝났을 때/승자와 패자가 있었다/ 패전한 나라에서는 하층 사람들이/ 굶주렸다 승전한 나라에서는/ 굶주렸다 역시 하층 사람들이.
(브레히트/ 독일 전쟁 안내)
우리가 유월 햇살 같은/ 소떼며 그 새끼들 놓아/ 흰 염소며 그 새끼들도 놓아/ 뿔 싸움 신나하며 마을로 왔을 때/ 동네 사람들 구장 댁에 모여/ 난리가 터져 '어찌 살꼬' / '어떻게 살꼬' 야단이었습니다/ 날마다 풍문은 국방군 후퇴뿐/ 사촌형과 몇몇 청년들은 행방불명/ 형은 온몸에 화상입어 후송됐다는/ 풍문에 마을은 울음숲이었습니다.
(김 석/ 다시 유월에)
침략 전쟁의 진행과정으로부터/ 전인류의 민족들을 온전히 걷도록 하라/ 마치 그 길이 항상 거기에 있는 것처럼-/그것이 주의 없이 인도되어져 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그대신 우리의 동료들과 사랑을 함께 하자/ 그 사랑이 우리의 긴 밤의 어두운 터널을 떠나지 않는 한/ -평화의 빛쪽으로 달콤한 행복이 있을 것이다.
(월리엄 E. 모리스/ 평화에의 기원)
그날, 조국의 하늘과 땅은/ 님이 흘리신 핏빛이었습니다/ 꿈인 듯 역사가 거스르고/강물도 역류하던 그날,/ 님조차 침묵하셨더이까./ 한풀씩 평화를 키워 올리듯/ 가녀린 나래 질하던 들새들도/ 어슴프레 즈믄 밤에도/살아 있음을 성실히 노래하던/ 들쥐들의 야행조차 얼어붙어 버렸던/ 아아!// 민족의 깊고도 깊은 상처의 계절이여./ 늘 내 곁에 가까이 계시던 님이/ 그 계절엔 어느 먼 나라로/ 쉬 돌아올 수 없는 순례를 떠나셨나요./ 한 피붙이, 한 땅붙이인데도/ 이 민족 향한 그 얼마만한 교훈이 계셔/ 내 형제들이 밤새 야수로 변해/다 함께 가꾸어 온 겨레의 뜨락을/ 그 꽃과 작은 열매들의 웃음까지도/ 무참히 범해야 했습니까‥‥// 지워 버리고 싶은 악몽의 추억/ 서른 세 해 세월은 흘렀어도/ 박제로 남았어야 할 추억이/ 장년이 되도록 끔찍스러이 자라나/ 유월의 상처는 여전히 깊나이다. // 하오나 당신, 우리의 님은/ 어느 시인의 일찍 온 통찰의 노래처럼/ 돌부리 가시밭에 채인 발길이/ 꽃잎에 스치어 아물어 가듯/ 님의 따스한 사랑의 입김 부으신다면/이 깊은 상처 위에 자란 나무는/ 이제쯤 새살이 돋듯/ 새생명의 열매를 사모할 것이니이다. / 유월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시는/대한민국의 영원한 님이시여 !
(김성영/ 유월의 상처)
나는 하얀 무명옷을 입고 잠자리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전쟁은 닥쳤다/ 그리고 나는 무명옷을 입고 잠자리라/ 소년들은 전진하게 하라/ 크플리와 그의 부족은 전진해야 한다/ 백인의 대포가 울리게 하라/우리는 전진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무명옷을 입고 잠자리라.// 우리가 떠날 때 대지는 진동할 것이다,/ 전쟁은 바로 우리의 오두막까지 덮쳤다/ 겁쟁이들은 물러나서/ 여자들과 함께 집에서 살아야 한다,// 우리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동안/ 우리 마누라를 집적거린 자들은/ 우리가 돌아오자마자 그들의 호리병박을 잃게 되리라.// 바로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뱀이 어린아이를 물었다고/ 전에 들은 적이 있는 그곳/ 전쟁은 우리에게 닥쳤다/ 바로 우리의 오두막 안에까지,/ 그리고 사람의 아들들은 맞서 싸우라/ 백인의 대포가 깡깡 터지게 하라/ 그 연기가 우리를 뒤덮게 하라/우리는 그들과 싸우다 죽으리라.//우리는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다/ 그 어떤 다른 곳에서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의 총도 우리와 함께 죽으리라/ 우리의 예리한 칼도 우리와 함께/ 우리는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다.
(코피 아우너/ 전쟁의 노래)
설 교 노 트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사2:4
서론
웃시야 왕 시대에 새로운 전쟁 무기가 발명된 것 같습니다(대하26:11-15). 이사야는 이것을 보고 그것에 반대되는 좋은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것을 다 원한다면 전쟁이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쟁을 연습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1. 전쟁 공포심에서 해방됩니다.
기독교는 인류의 정치 상황을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전쟁의 공포를 감소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호간의 관계를 증진시키고 유용한 기술을 향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강대국가들이 말로는 군비 축소를 부르짖으나 실지로는 매일처럼 핵무기 발명에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니 전쟁 공포로 삶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이 공포심에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전쟁을 겪었기에 이 전쟁에 대해서 많은 공포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공포심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2. 전쟁 무기가 생산 도구로 전환됩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것은 매우 시적인 표현입니다. 칼은 전쟁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보습은 농사지을 때 사용하는 도구의 대표입니다. 그러므로 전쟁무기가 생산 도구로 전환된다는 말입니다.
창을 쳐서 낫을 만든다는 것도 꼭 같은 원리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 무기를 만들었다가 무용지물이 되어서 폐기하여 고물상에 보낸 일이 없이 언젠가 한 번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강대국들이 만들어 놓은 산적된 핵무기들이 그야말로 칼과 창을 쳐서 보습과 낫을 만들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전쟁 연습이 멀어집니다.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에너지를 평화 추구에 바치고 전쟁 준비를 위해서 쓸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군인 계층은 거의 쓸모없는 계층이 되어 버리고, 군사 시설은 모조리 황무케 하며, 그 막대한 군비는 평화건설과 인류복지 사회건설에 기여하며, 그 무서운 전쟁 연습이 산업 기술 연마로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원칙들,가령 평화나 형제애, 봉사 활동, 복지사회건설 등에 치중하고 다른 사람을 보다 더 낫게 여기기를 노력하면 위대한 원칙에 승리가 획득될 것입니다.
결론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만이 이를 수 있는 것으로 무서운 전쟁, 살육과 파괴와 비극이 뒤따르는 전쟁을 다시는 연습하는 일이 없이 평화와 이상적인 나라가 건설될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수6:20-21, 7:25-26
서론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대망의 가나안 땅을 허락받아 입주는 하였으나, 대적이 남아 있어 그들을 정복해야만이 가나안 땅이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가나안 정복의 과정을 살펴보면서 승패의 관건이 어디 있는지 그 비결을 찾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여리고성은 무너졌으나‥‥‥
여리고성은 크고 강하여 작고 약한 이스라엘로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 살아계신 하나님이 그 왕과 용사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실 때, 열세한 이스라엘이 창과 칼을 쓰지 아니하고서도 장쾌하게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렇게 하고, 제 칠일에는그 성을 아침 일찍부터 돌아 일곱 번을 돌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 앞에서 양각 나팔을 불며 백성들은 일제히 큰 소리로 외칠 때, 여리고성은 무너져 내렸고 적군은 스스로 혼비백산이 돼서 저희끼리 치고 받고 자중지란이 나서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승리가 우리의 손에 있지 않고, 창과 칼이 승리의 비결이 아니요, 만군의 여호와의 손이 함께해야 되며 인간이 순종할 때에만, 순종의 영역에서만 승리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릴 때에도 물맷돌 하나로 보기좋게 쓰러뜨렸고(삼상 17장) 기드온의 300명 용사로 미디안의 수십만 군대를 정복한 사실은 오직 여호와의 능하신 손길이 있음을 보여줍니다(사사기 7장). 승리의 요소는
(1) 제사장은 선두 전진
(2) 언약궤를 중심한 생활
(3) 백성들의 순종에 있었던 것입니다.
2. 아이 성에서는 패전했습니다.
큰 성 여리고는 함락되었으나 그 다음 작은 성 아이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만하여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 이길 줄로 착각해 백성들이 다 올라갈 필요도 없이 우리 중에 2-3천 명만 올라가도 넉넉하리라고 자기들의 힘을 의존했으며, 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뒤에서 외투와 금과 은을 땅에 묻어 계명을 어기고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살던 아간 같은 사람이 생겨서, 마침내 이기리라고 믿었던 이스라엘은 역습을 당하여 물과 같이 녹아서 쫓겨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승패는 여호와의 손에 있는 것이요, 사람의 손에 있지 아니하며, 회중 가운데 이탈하여 범죄하는 사람이 있을 때 비참한 실패를 하고야 마는 것입니다.
마침내 제비를 뽑아 아간을 처치하여 돌로 쳐 죽인 다음에야 승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결론
믿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전쟁에 임할 때는 승리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불순종할 때 그 결과는 패배인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가나안 정복을 위하여 불신앙적이며 인간적인 죄악의 요소를 과감히 제거해야 하겠습니다.
전쟁에 두려워 말라
신20:1-9
서론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과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전쟁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말고 염려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수가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신앙의 유무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의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신앙으로 정예화된 군대라면 그 수가 중요하지 않다고 돕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전쟁이라고 한다면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오직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지만 기꺼이 바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 께서 반드시 도와주심으로 그 전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광신자들처럼 무모한 모험을 하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1. 여호와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네가 나가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민중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사41:10).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118:6-7)"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침략을 해올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을 몰살시킨 사실이 있습니다(왕하19:35).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승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대대로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전쟁이라면 회개하기 전에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을 통해서 싸우게 하시고 또 도와주셔서 이기게하십니다.
3. 겁내는 자는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5-8절에 "유사들은 백성으로 고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과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고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병역면제의 특혜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병역면제의 특혜라고 보기보다는 불신앙적으로 전쟁에 나아가려고 하는 자들은 필요 없는 군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불신앙인)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8절)"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삼백 용사를 통하여 큰 승리를 가져오는 것과 같은 원리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의 국민들이 병역의 의무를 약혼했다고 집을 지었다고 농사 지어놓고 먹어보지 못하였다고 군대 못가겠다고 한다면 현실에는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군에 가서 군복무를 마치라는 것입니다.
결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전쟁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는 육적인 전쟁은 물론 영적 전쟁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갈5:16-26, 엡6:10-17, 딤후4:7-8).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여호와께서 싸워주심도 믿으며 겁내지 말고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 승전의 비결
삼상17:45-47
서론
오늘의 성경 본문은 성경에 나타난 전쟁 중 가장 극적 인 승리를 소개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승전의 비결을 생각하며 참혹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싸운 것입니다(17:26, 36, 45).
사실 모든 전쟁은 다 악하고 추한 것입니다. 전쟁은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약4:1).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나 나라와 나라 사이의 싸움도 인간의 정욕과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국가간의 싸움은 죄에 대한 참혹한 심판이며, 동시에 모든 비극의 총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간의 싸움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며, 그러기에 피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러나 결코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는 악한 대적과의 싸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을 치며(출17:14)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셨습니다(벧전5:8-9). 자식으로서 부모를 욕하는 자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모독하는 자를 결코 피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본래 전쟁에 참전할 수 없는 홍안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전선에 있는 세 분의 형님을 위문하게 되었습니다(삼상17:17-18). 바로 이퍼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하는 골리앗 장사를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를 멸하기 위해 이 싸움에 뛰어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무장하여 싸운 것입니다(36-37절).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객관적으로 절대대적이 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윗은 소년 목동이었습니다.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33절)로서, 보기드은 장사요, 거인이었습니다(키는 2m 8cm). 거기에 중무장을 한 군인입니다 그의 갑옷은 거의 60kg이었으며, 창은 베틀채와 같았습니다.
46일간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협함으로 왕도, 백성도 두려워했습니다. 심지어 그 목소리만 들어도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싸우기 전에 이미 패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을 위로했습니다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이토록 담대하게 한 것일까요?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레26:7,신28:7),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체험했으며(36-37절) 또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의 손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46-47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실 때 대적이 얼음을 알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롬8:31).
3.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 싸운 것입니다 (45절).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45절). 이것은 그가 머리로만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의 온 생명까지 다 바치며 신뢰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사울 왕이 내린 갑옷과 칼을 버려두고(38-39절) 목동으로서의 지극히 평범한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무서운 장사를 이길만한-무장이 아니었어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 능치 못함이 없는 줄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전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사실 신령한 의미에서 이 돌은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반석이요(고전10:4), 산 돌이시며(벧전2:4), 대적하며 거스리는 모든 것을 파괴하시고 정복하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는 죄를 정복했습니다. 원수, 마귀,사탄을 정복하였습니다. 질병을 정복했습니다. 가난을 정복했습니다. 모든 분쟁을 다 정복하였습니다.
결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무장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우고 나아갈 때에 죄악도, 죽음도, 가난도, 질병도 정복하여 이기는 승리자가 되어질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으로 전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쟁이 그침
수11:23
서론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심에 떨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더 심한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전쟁의 공포심에서 해방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전쟁에서 해방되려면 전쟁이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여호수아가 주도한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이 이제 그치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전쟁의 비극을 아는 전쟁이 끝나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말이 14장 15절에도 반복되었습니다.
1. 가나안 전쟁 종결 선언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 이전에 벌써 요단강 동편에서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격퇴시키는 전쟁을 위시하여 여리고를 이적적으로 함락시키고 아이성을 공략한 사실을 위시하여 가나안 땅을 점령한 역사기가 바로 여호수아서입니다.
가나안은 어떤 땅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를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본토 족속을 완전히 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완전히 멸하지는 못하였으나 일단 점령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를 줍니다. 항상 우리가 들어오던 말이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를 누리게 되고,새 시대,새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다윗이 블레셋 용사인 골리앗을 쳐죽일 때에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삼상17:47)"고 하였습니다. 과연 인류 역사의 대소사를 주관하시되 특히 전쟁을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어떻게 주관하셨습니까?
(1) 전쟁을 명하셨습니다(출17:16).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대적을 용감하게 물리치기 위하여 전쟁을 명령하십니다.
(2) 전쟁의 기술을 교도하십니다(삼하22:35).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활을 당기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전술을 연마시키십니다.
(3) 전쟁을 승리케 하십니다(민21: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부르시매 그들과 그 성읍을 다멸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원수들을 치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십니다.
(4) 전쟁을 그치게 하십니다(시46:9).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휴전 명령을 절대적이라고 감히 거역할 자가 없습니다.
(5) 전쟁하는 자를 해산시키십니다(시68:30).
"저가 전쟁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벨탑을 쌓던 조상들을 흩어지게 하심과 같이 전쟁자들을 모두 흩어지게 하십니다.
결론
하나님이 인정하는 정의와 평화를 위한 전쟁은 불가피 하겠으나 전쟁 그 자체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은 결코 아니므로 빨리 끝을 내야 합니다.
절 제
성 경 활 용
1. 절제해야 할 것
(1) 정욕
(고전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2) 여자들의 언행
(딤전3:11)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3) 지식
(벧후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4) 늙은 남자들의 언행
(딛2: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 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2. 왜 절제해야 하는가?
(1) 이기기를 다투기 때문에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 금지할 법이 없기 때문에
(갈5: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은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3) 감독이기에
(딤전3:2)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3. 어떻게 절제할 수 있는가?
(1)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기 원하여서
(고전9:25) 이 기 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 인내함으로
(벧후1:6)지식에 절제를,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관련원어풀이
1. ajkravth" 아크라테-스
무력한, 자제력이 없는, 무절제한.
(딤후3:3)
2. ejgkravteia 엥크라테이아
자제, 극기, 절제.
(행14:25, 갈5:23)
3. nhfavleo" 네-팔리오스
술 취하지 않은, 절제있는, 술을 금하는.
(딤전3:2, 딛2:2)
설교예화자료
흰 말과 검은 말
플라톤이라고 하는 철학자는 인간 생활이란 "검은 말과 흰 말, 두 말이 끄는 한 수레와 같다. "고 얘기했습니다. 흰 말은 이성을 의미했고 검은 말은 욕망이나 본능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레가 넘어지지 않고 바로 가려고 하면 흐ㅢㄴ 말이 수레를 어거해서 나가게 해야지 검은 말에게 맡기면 수레가 아주 외딴 데로 떨어져서 부서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절제를 의미합니다.
어록·시·묘사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는 자는 자유로울 수 없다.
(피타고라스)
스스로의 힘을 갖는 자가 가장 센 힘을 갖는다.
(L.A. 세네카/ 서간집)
실로 금욕의 실천을 위해서는 무절제가 필요하고, 화재를 잡기 위해서는 불의 사용이 필요하다.
(테르툴리아누스)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정도가 있다. 정도를 넘으면 인간을 노하게 하고, 추행이라 불리어져 제군은 복수당하게 된다.
(C.A. 생트뵈브/ 나의 독)
절제는 즐거움을 늘이고, 쾌락을 한층 크게 한다
(데모크리토스/ 단편)
부절제가 쾌락에는 독이다. 절제는 쾌락의 화가 아니고 그 약이다.
(M.E. 몽테뉴/ 수상록)
제 마음을 다스리는 사람은 성을 탈취하는 것보다 낫다.
(구약성서 잠언 16장 32절)
극기가 가장 위대한 승리이다.
(플라톤/ 법률)
가장 아름다운 승리는 자신의 심정을 극복하는 일이다.
(J. 라 퐁텐/ 보의 님프에의 비가)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통솔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한 몸을 통솔하지 못하고 어떻게 남을 통솔할 것인가. 노여움, 그 밖의 격렬한 폭발적인 감정 따위는 모두 자기를 통솔하지 못한 증거이다. 사람은 남한테 저항하기보다 먼저 나 자신에게 저항해야 한다. 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남에게 이기는 길이다.
(C. 힐티)
전쟁에 있어서 한 사람이 천 사람을 이기는 일도 있다. 그러나 자기에게 이기는 자야말로 가장 위대 한 승리자다.
(P.J. 네루/ 인도의 발견)
무엇보다도 즐겨 노는 오락의 자리를 절제하라! 향락을 절제하면 그만큼 당신은 풍부해질 것이다.
(I. 칸트)
절제를 당신의 벗으로 하라.그러면 당신의 얼굴에 건강은 빛날 것이다.
(도스리)
절제는 모든 미덕의 진주 고리를 꿰뚫고 흐르는 명주실이다.
(J. 홀)
자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십시오. 욕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습니다.
(신약성서 고린도전서 7장 9절)
자제심이 없는 인간은 무지한 동물과 다름이 없다. 가장 귀중한 일에 마음을 쏟지 못하고온갖 수단을 쾌락에 써버리는 자가 어찌 훌륭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그러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쾌락을 구하면서 그 쾌락조차 넉넉히 얻지를 못한다.
(소크라테스)
여러분이 정결하게 되고 싶으면 여러분은 절제를 해야 한다. 정결이 무엇이냐? 사람은 자기가 정 결한지를 어떻게 알 것이냐?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는 모른다. 우리는 들은 소문을 그대로 지껄인다. 노력에서는 지혜와 순결이 오며 태만에서는 무지와 육욕이 온다.
(H.D. 소로/ 월드)
젊었을 때 너무 방종하면 마음의 윤기가 없어지고, 또 너무 절제하면 머리의 융통성이 없어 잘 돌아가지 않게 된다.
(C.A. 생트뵈브/ 나의 독)
자제는 신들이 내려 준 최고의 고귀한 선물이다.
(에우리피데스/ 메데아)
나는 극기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극기란 나의 정신적 실존의 무한한 방사(放射)가 우연적인 지점에 작용하려는 것이다. 나는 내 주위에다 그러한 동그라미를 그리기보다는 차라리 거대한 관념군(觀念群)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낫겠다. 그리고 이 주시(注視)가 거꾸로 나에게 조는 강화(强化)만을 받으려고 생각한다.
(F. 카프카/ 죄 ·고뇌 · 희망 · 진실의 길에 대한 고찰)
극기라는 것은 자기의 의욕을 극복한다는 말이다. 무적의 대용은 타인을 극복함에 있지 아니하고 자기를 극복함에 있으니 삼군(三軍)을 호령하고 만기(萬騎)를 질타(叱咤)하는 명장도 내지의 방촌(方寸)을 절제하기 어렵고 분마(奔馬)를 입지(立止)하고 노호(怒虎)를 격퇴하는 역사(力士)도 자기의 심랑의마(心狼意馬)를 조복(調伏)하기 어려운 것이다. 동서고금에 일시의 분(憤)을 참지 못하여 백 년의 대계를 그르친 자가 어찌 한(限)이 있으며 편각(片刻)의 욕(慾)을 참지 못하여 일생의 오점(汚點)을 끼친 자 어찌 수(數)가 있으리요. 그것은 극기력의 부족으로 나타나는 인생의 불행이다. 그와 반대로 일시의 분을 참아서 대사를 성공하는 수도 적지 아니한 것이요, 편각의 욕을 참아서 일생의 영예가 되는 일도 또한 많은 것이다.
(한용운/ 님께서 침묵하지 아니하시면)
절제는 만족의 어머니이다.
(W. 고텔)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싸움이며 자기 자신에게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승리이다.
(F. 로가우/ 독일 격언시)
자제는 금으로 된 말의 굴레다.
(R. 버턴/ 우울의 해부학)
덕에서 요구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일이다.
(I. 칸트/ 인륜의 형이상학)
자기 자신의 주인 노릇을 하는 인간은 쾌락을 발견할 수 있는 만큼 쉽게 비애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O.F.0.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너무 작아/ 손에 쥘 수도 없는 연필 한 개가/누군가 쓰다 남은 이 초라한 토막이/왜 이리정다울까// 욕심 없으면/ 바보되는 이 세상에/몽땅 주기만 하고/ 아프게 잘려 왔구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깨끗한 소멸을/ 그 소박한 순명을/ 본받고 싶다// 헤픈 말을 버리고/진실만 표현하며/ 너처럼 묵묵히 살고 싶다/묵묵히 아프고 싶다.
(이해인/ 몽당연필)
설 교 노 트
우리 입술은 우리 것
시12:4
서론
사람의 육체에는 여러 지체가 있습니다. 그 지체들은 서로 상호 협조하여야 합니다.
오늘은 그 여러 지체 중에서도 입술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그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보이나 이 입술에는 용도와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내 입술은 내 것인가?
불신자들은 교만하고 거짓되어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가지고 되는 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입술은 우리의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가 누구냐?"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입 가지고서 내 마음대로 거짓말도 하고, 아첨하는 말도 하고, 남을 욕하고, 저주하고, 비난하고, 평론하고, 자행자지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인생의 육체를 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입술이라고 마음대로 사용해서는안 되고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2. 입술의 사명
대개 다른 지체(예:눈, 코, 귀 등‥‥)는 두 개로서 한 가지 일을 합니다. 눈은 보는 일을, 코는 냄새를 맡고, 귀는 말을 듣는 일을 합니다. 다 두 개로 한 가지 일만 하는데 입술은 하나인데 먹고(食), 말하는(言) 두 가지 일을 합니다. 그러니 비례식으로 보자면 다른 지체와는 4. 1의 비례가 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극히 절제하라는 뜻으로 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은 잘 조절만 하면 괜찮으나 입술로 하는 일인식사와 언어는 과잉하면 오히려 손해가 납니다. 대개 소화 계통의 질병은 음식을 많이 먹어서 탈이 나고, 말은 많이 하는 데서 오히려 실수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입술은 단단히 절제하지 않으면 그 사명 이행에 있어서 잘못되기 쉽습니다.
3. 입술의 열매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우리의 것이라고 하여 내 마음대로 되는 대로 먹고 말하며 살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입술의 열매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목적대로 살지 못하면 그 자체는 존재가치가 없어져 파기해 버려야 할 것이 됩니다. 무가치한 것은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의 입술이 아무리 내 것이라고 하여도 내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 입술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절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남은 조각을 거둠
눅9:17
서론
벳새다 광야에서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5,000명의 대중에서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이신 일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최대의 표적입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숫자가 5,000명이니 사실은 만 여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차고도 넘침있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축복의 선물이니 버리지 말고 거두어야 합니다.
비록 한 어린아이가 낸 보리떡과 생선일지라도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라고 하신 것을 보니 하나님께 간구하여 축복의 선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축복의 선물을 조각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거두라는 교훈입니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린아이가 내어놓은 떡과 생선도 본래 그 아이의 가정에 이미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인 것입니다. 모든 만물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시요, 우리들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모든 재물은 우리에게 일시 맡겨주신 것으로 알 때 만물이 다 하나님의 축복임을 감사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이 비로 하찮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에서 주신 것임을 생각하고 기쁘게 사용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2. 풍요할 때 절제하고 절약하라는 교훈입니다.
이 표적은 유한을 무한므로 바꾸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보이는 동시에 그 풍요 중에서도 조각을 버리지 않는 검약성을 배우게 됩니다. 물질을 너무 우상시 하여도 안되고, 반대로 경시하고 낭비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오히려 풍요할 때 절약할 줄 알고 절제해야 합니다. 옛날 애굽의 총리 대신 요셉이 7년간 풍년들 때 시책을 썼기 때문에 7년간 흉년에도 무난히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셨으니 더욱 감사하게 생각하여 잘 절제하면서 사용하면 그 많은 것 하나 하나를 다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결단코 많다고 남용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이 너무나 물질의 풍요함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풍요로울 때 절제하여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3. 제자들의 책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13절)"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적은 떡이 생겼을 때도 무리가 떼를 지어 오십 명씩 알도록 하는 것도 제자들이 하게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떡과 고기를 제자들이 무리 앞에 분배해 주어서 무리가 다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으니 아마도 열두 제자가 한 바구니씩 거두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행하실 때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명령하여 하도록 하시고 그들이 할 수 없는 일만 주님이 담당하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적으나 많으나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인 줄로 알고 감사하고 귀중하게 여겨야 하며 쓰는 일에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절약하고 절제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정 신
성 경 활 용
1. 정신의 여러 표현
(1)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함
(삿15: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2) 정신이 현황해짐
(왕상10:5) 그 상의 식물과 그 신복들의 좌석과 그 신하들의 시립한 것과 그들의 공복과 술관원들과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정신 현황하여
(3) 정신이 쇠약해짐
(사19:3)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도모는 그의 파하신 바가 되리니
(4) 산란해짐
(신28:55)오직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마음으로 떨고 눈으로 쇠하고 정신으로 산란케 하시리니
(5) 정신을 차림
(삼상30:12) 그가 낮 사흘 밤 사흘을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라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6) 정신을 잃음
(수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수5:1)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신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끊었더라
(7) 정신을 진정함
(대상22:19) 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을 진정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고
(8) 정신이 온전하여짐
(막5: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관련원어풀이
1. vp,n< 네페쉬
(1) 숨.
(욥41:13)
(2) 영혼, 생명.
(창35:18, 왕상17:21)
(3) 정신, 마음.
(창34:3, 미7:1)
(4) 감정이나 행동의 방식.
(욥6:11, 잠28:25)
(5) 의지나 의도.
(창23:8, 대상28:9)
(6) 이해와 사고의 기능.
(시139:14, 잠19:2)
2. j'Wr 루-아흐
(1) 냄새를 맡다.
(창8:21, 27:27)
(2) 느끼다.
(삿16:9)
(3) 예지하다, 예감하다.
(욥39:25)
(4)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시11:3)
(5) 영, 숨.
(욥7:7, 시33:6)
(6) 숨, 호흡.
(욥4:9, 시18:16)
(7) 대기, 미풍.
(욥41:8, 렘2:24)
3. swfrosuvnh 소-프로수배-
(1) 마음의 건전함, 온건함, 합리성.
(행26:25)
(2) 절제, 정절, 선한 판단.
(딤전2:9)
4. parafronevw 파라프로네오-
정신이 나가다, 깨닫지 못하다.
(고후11:23)
설교예화자료
긍지
세계적 대수학자로 지칭을 받는 일본의 기꾸찌 다이로꾸 박사가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에서 수학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대학에서는 당시 그가 유일한 동양인이었으나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수천 명의 영국 학생을 누르고 항상 수석을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와 수석을 다투면서도 아깝게도 늘 2등을 한 부라운이라는 동급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이렇게 타국 학생에게 해마다 수석을 뺏긴다는 것은 곧 우리 대영국의 수치다. '하고 가일층 열심을 내어 어떻게 하든지 기꾸찌를 앞지르고 수석이 되려고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기꾸찌가 우연한 일로 병에 걸려 입원하여 장기 결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영국 학생들은 기뻐하였습니다. 곧 부라운을 붙들고,
"부라운 군! 기꾸찌란 놈 지금 병으로 필기하지 못하니 이번이야말로 수석을 할 수 있을꺼야! 우리도 그녀석에게 노우트를 빌려주지 않을테니까. 이 기회에 크게 마력을 내라구."
이렇게 제각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라운은 정색을 하면서,
"조용하지 못해! 자네들은 그러고도 영국 학생인가? 사람의 병을 기회로 하여 수석을 차지하라니 그런 비열한 말이 어디 있어? 나는 불초하지만 영국인의 긍지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수석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단 말이야!"
야단을 치면서 그 자리를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라운이 화를 낸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기꾸찌가 병들자 매우 근심하여 때때로 위문을 가면서 결석 당일부터 그날그날의 노우트를 깨끗하게 별지에 베껴 기꾸찌의 병상에 보내주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기꾸찌의 병이 회복되어 학기말 시험을 보았을 때 여전히 수석을 차지한 것을 보고 사정을 모르는 케임브릿지 대학의 모든 학생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따라서 부라운은 여전히 2등에 머물지 않을 수 없었으니 기꾸찌가 다시 수석이 된 것을 보고,
'이로써 나는 영국인의 긍지를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라고 하면서 홀로 기뻐하였습니다.
기꾸찌가 후일에 명성을 세계 학계에 날리게 된 후에도 이 일을 잊지 못하고 말하기를, "나의 학창 시절에 유익했던 친구는 열 손가락에 꼽을만치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그 때의 부라운 군의 고결한 영국 기질만치 나를 크게 감동시킨 일은 없다. "하고 두고두고 많은 사람에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세계는 정신병동
정신질환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뉴욕의 한 과학자는 전 세계 인류의 약 30퍼센트가 어떠한 형태로든 정신질환에 걸려 있는 환자라고 UN위원회에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도시의 하나인 뉴욕에서 7년간 조사한 결과 약 80퍼센트의 사람이 정신질환에 걸려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법과 질서
영국의 처칠 수상이 어느 날 국회에 나가 연설을 하게 되어 있었는데 다른 일로 늦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운전기사에게 신호를 무시해도 좋으니 속력을 내라고 명령했습니다. 곧 교통순경이 달려와 차를 세웠습니다.
"수상 각하의 차요. 국회에 가는 길인데 시간이 늦어서 그러는 거요."라고 기사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교통순경은 뒷자리의 처칠을 힐끗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상 각하를 발긴 닮았는데 처칠같은 분의 차가 교통위반을 할 리가 없소, 당신은 교통위반에다 거짓말까지 하는군요. 면허증을 내놓으시오!"
처칠은 그의 엄격한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경사 총감을 불러 교통 순경을 일계급 특진시켜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경사 총감은
"경찰조직법에 그런 규정이 없어서 특진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라고 딱 잘라서 거절을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칠은
"오늘은 경찰한테 두 번씩이나 당하는군." 하면서도 만족스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록·시·묘사
본다는 것은 보는 사람 속에 있고,사고는 사고하는 사람 속에 있으며, 또 생명은 정신속에 있으므로 행복 역시 정신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고 하니, 행복이란 것도 어떤 종류의 생명이니까.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인간의 타고난 바탕은, 당해보지 않은 위급한 일 속에서도 정신이 있는가로서 시험된다.
(로우얼/ 내 서재에서:링컨)
나는 행위를 칭찬하지 않는다. 내가 칭찬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행위는 정신의 겉옷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는 인간 정신의 낡은 탈의장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낡은 옷에 대한 애착은 있다.
(H. 하이네/機智 英智·情熱)
정신에게는 어떤 문제에 전념하도록 제어하고 강제하는 일거리를 주지 않으므로 이런저런 공상의 막연한 들판에서 흐리멍텅히 헤매게 된다
(M. E. 몽테뉴/ 수상록)
우리는 정신이 병든 신체와도 같이 치유되며 의약으로 회복이 가능함을 본다.
(루크레 티우스)
나에게 있어서는 정신의 왕국만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친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교권적 왕국 중에서 제일 위를 차지합니다.
(L. 베토벤)
정신이 눈을 지배하면, 눈은 잘못된 길을 가지 않는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잠언집)
정신이 없는 신체는 시장에 있는 조상과 같다.
(에우리피 데스/ 엘렉트라)
정신병은 절대적 자기 도취의 상태로서,외부 현실과의 모든 관련을 끊어 버리고 자기 자신을 현실로 대체시키는 상태이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많은 중증 신경병 환자들은 자신의 강박관념이나 히스테리 발작이 비정상적인 어떤 환경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믿고 있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정신이 강력하고, 독창적일수록 더욱더 고독의 종교에로 기울 것이다.
(A. 헉슬리/ 정신 연구집)
정신분석의 절차는 본질적으로 어떤 인간으로 하여금 본래의 자아를 폭로씨키도록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다.
(E. 프롬/ 자유에서의 도피)
인생의 생명 되는 정신이 이것이니, 정신이라 함은 공성(孔聖)의 가르친 바 양성(良性)이요, 기독(基督)의 논한 바 영혼이라. 정신이라야 능히 호흡의 생명과 시청(視聽)의 이목과 활동의 수족을 사용하나니, 이목이 아무리 청명하고 수족이 아무리 민활할지라도 정신이 없은즉 이목수족은 사토후목(死土朽木)과 동귀(同歸)하여 주인이 없는 공옥(空屋)과 같으리로다.
(이상재/ 청년이여)
문맹인 사람은 영양실조 상태의 정신 소유자다.
(요한 바오로 2세)
바라는 일은 거의 없고, 두려운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은 비참한 정신상태이다.
(F. 베이컨/ 수필집)
정신으로 창조된 것은 물질보다 한결 생명적이다.
(C.P. 보들레르/ 내밀의 일기)
정신은 육체에게 주는 것만큼 육체로부터 받는다.
(W. 휘트먼/ 풀잎)
대개 정신적 영양물은 육체의 그것과 같아서 섭취할 것의 겨우 50분의 1쯤의 부분만이 동화(同化)되고 나머지는 증발, 호흡, 그 밖의 작용에 의하여 없어지고 만다.
(A. 쇼펜하워)
전능한 신은 정신을 자유롭게 창조했다. 그는 정신으로 하여금 그 어떠한 억제도 받아들이지 않게 만듦으로써 정신이 항상 자유라는 신의 지상의 의지를 명백히 표현했던 것이다.
(T. 제퍼슨)
정신은 모든 일의 탁월한 지렛대이다.
(D. 웹스터)
동요하지 않는 정신은 역경의 가장 좋은 양념이다.
(플라우투스/ 밧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얻고 싶어하는 것은 재물과 명예와 그리고 즐거움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우리의 정신이 참되게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늘 방해하고 있다. 재물과 명예와 즐거움을 앞세우고 간다면 우리는 참된 정신 활동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B. 스피노자)
정신력이란 운동이지 휴식이 아니다.
(포우프/ 인간에 관한 수필)
정신의 가장 높은 완성도는 타인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정신은 언제나 우주의 지배자이다.
(플라톤/ 대화편)
우리의 가슴이 사랑을 진리로 인정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의 정신은 지성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R. 타고르)
정신이 만족하는 것은 그것이 위축해 있거나 피로해 있거나 한 징조다. 고귀한 정신은 자기의 뒤에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자기의 능력 이상을 바라고 나아간다.
(M. E. 몽테뉴/ 수상록)
물질이나 기술의 높이에 비해 단지 정신의 높이는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아주 서서히 발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 적을 뿐인 것이다.
(이어령/ 떠도는 자의 우편번호)
난초를 짝하면 향기로워지고 썩은 생선을 짝하면 냄새가 난다. 혼은 그 짝하는 것 따라 자란다.
(함석헌/ 아름다움에 대하여)
행복이란 마음대로 구하지 못하나니 스스로 즐거운 정신을 길러 복을 부르는 바탕을 삼을따름이요, 재앙 또한 마음대로 피하지 못하나니 남을 해하는 마음을 없이 함으로써 재앙을 멀리하는 방도로 삼을 따름이니라.
(채근담)
인생은 사랑이며, 생명은 정신이다.
(J.W. 괴테)
정신은 혼의 공기다.
(J. 주베천/ 팡세)
정신을 늦추는 것은 정신을 잃는 것이다.
(A. 겔리우스/ 앗티카의 밤)
내가 후세를 위하여 기술하려고 하는 것은 한 개인의 행동이 아니고 그 시대의 사람들의정신이다.
(볼테르/ 루이 14세의 세기)
인간적인 정신은 우리의 기본적인 자원입니다.
(J. F. 케네디)
사회에는 칼과 정신이란 두 개의 힘밖에 없다. 결국은 항상 칼은 정신에 의해서 패배당한다.
(나폴레옹 1세)
정신의 개선을 추구하는 자는 정신에 도움을 줌으로써 세상에 도움을 준다.
(C. 스웨인/ 고결이란 무엇인가)
곳곳마다 물결로 초록색을 이룬 사막의 토지,/ 굽이치는 대해의 혼란스러운 소용돌이뿐‥‥/ 거센 입김이 방랑의 여러 영역을 흔들고 있나니/ 하지만 정신은 이 방대한 곳 어디에도 없다.
(네르발/ 올리브나무 아래의 그리스도)
예수의 생각하는 바는 그러나 다른 데 있었다/그는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곧/천상과 지상의 중개자임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한 정신적인 이상 사회를/ 지상에 이루려 하고 있다
(스즈키 도오루/ 성전 청결)
그러는 동안에 모름지기 당신은 방황하는 나로/ 제 정신이 들게 하는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휼스호프/ 예수님은 우셨다)
웃어다오. 웃어다오. 안간힘을 다하여 어루만져도/ 나목(裸木)의 슬픈 얼굴뿐,/ 허구헌날 우리들의 정신세계는 피를 흘린다.
(김덕환/ 우리들의 겨울)
제 속에 자비심이 없는 사람은 공변된 정신을 가질 수 없으니./ 꽃들이 없는 하늘은 없으니.
(크리스토퍼 스마트/ 꽃들은 크나큰 은총)
상관 말라! 하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인간의 착한 정신이 모든 증오와 공포를/ 물리칠 날이 오고 있음을 믿으련다.
(락스테르나크/ 노벨상)
거센 정신이여, 너는 어디서나 움직인다/파괴자며 보존자여, 들어라, 오 들어라!
(셸리/ 서풍의 노래)
한 세상을 밝혀 가듯/ 정신의 안팎을 맴돌다가/ 꿈속이 얼마큼 무서운가도/ 더불며 알 터이지만
(성춘복/ 관계)
모든 메시지와/ 정신의 위기를 알리는 말들은/ 경직된 이기심처럼/ 우리의 탄탄대로를 밝혀주리라.
(김규동/ 어떤 낙화)
나는 웃어 주리라 고상한 정신계의 심판자인 양/ 거만을 떨고 있는 해박한 지식의 원숭이들을
(하이네/ 크리스찬 5에게 보내는 벽화풍의 소네트 · 2)
나의 부친은 풍류를 모르는 벽창호로서/ 정신이 말짱한 위선자였다.
(하이네/ 중국의 황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채어/ 정신의 촛불을 깜박거린다.
(이지엽/ 오봉을 바라보며)
당신은 미래입니다/ 영원의 황야 위에 비치는 위대한 새벽빛입니다/ 때의 어두움을 여는 닭소리이십니다/ 맑은 이슬, 아침 미사, 아가씨」 모르는 사람, 어머니, 그리고 죽음입니다// 당신은 여러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정신입니다.
(릴케/ 당신은 미래입니다)
흙담 아래로/ 황혼이 깔리는데/ 조무래기들은/ 소꿉놀이에 정신을 잃는다.
(김순천/ 향수)
폭포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든다/ 벼랑 끝에서 떨어지는 폭포/ 정신의 맨 마지막 별이 보인다.
(정대구/ 폭포 앞에서)
드디어 어머니는 자신의 슬픔인/ 그 모진 무덤에서 꿈틀대고/ 우린 아무 말도 없이/ 어머니의 정신차리기만 기다릴 뿐.
(디말란타/ 비탄에 젖어)
그런데 우리들의 정신은 서서히/ 잃어버린 국토의 모양을 닮아/ 조성되어 왔다.
(N. 그리그/ 북빙해의 섬)
그리고는 힘찬 향기를 감돌려/ 그의 마음을 스리슬슬 녹이곤/ 지친 정신 깨끗이 고쳐주지요.
(C.P. 보들레르/ 파이프)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
(이 상/ 날개)
설 교 노 트
죄인들의 해방한 자긍심
시36:2
서론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던 사람들과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두렵고 놀라운 일들을 읽고 들었던 사람들이 죄악을 멀리하지 않고 생활하는 모습에 대해 시편기자는 "저들은 스스로 자긍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1. 자긍심을 갖고 이유
(1) 내세가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천국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수많은 얘기를 듣지만 실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옥이나 악형, 저주받는 영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자금하기를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라고 말합니다.
(2) 죽음이 자신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이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아직도 구원받을 기회가 많이 주어져 있다고 우쭐댑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훗날 다시 구하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윤리 도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도덕적이며 바른 인생을 살기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누구도 미혹시키지 않고 살았으므로 스스로 의롭고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술과 부정, 사악한 .말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은 결코 자신들을 지옥의 음부에 던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신앙적인 환경에 의지하여 구원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주변에 복음이 권능적으로 전파되어 있고,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구원받기가 용이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모태 신앙에 대해 자긍하며 하나님을 대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너무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구원의 문제를 훗날로 미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일하고 제멋대로 생활을 영위해가다가 한참 후에 자기의 노력으로 구원받으려 합니다. 그래서 현재의 영적 문제를 소홀히 하며 죄된 생활을 계속하면서 언젠가 죄된 생활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찾으면 구원을 받을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2. 그들은 죄의 형벌이 급습할 때까지도 자긍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1) 그들 자신의 자긍심에 눈이 멀었습니다.
대부분의 죄인들은 형벌에 처할 때까지 이런저런 모양으로 자만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자긍심은 사단의 미끼가 되어 그들의 영혼을 함정에 빠뜨립니다. 또한 그 자긍심은 자신이 처한 위험을 깨닫지 못하게 하며 그 상태에 안주하게 합니다.
(2) 죄인들은 죽음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래 살 것처럼 자만하는 사람들은 죽음 직전까지도 그런 생각을 고수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들이닥칩니다. 생(生)과 사(死) 사이는 너무 가까운 것인데도 사람들은 죽음이 아직도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진정 죽음이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고 것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3) 죄인들은 거짓된 것에 의존합니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의로움을 믿고 살며, 살아 숨쉬는 한 그런 삶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음이 닥쳐와 자신의 모든 소망이 산산조각이 나기 전에는 자신의 의로움에 대한 자부심을 고수하려 합니다. 결국 자신이 진정으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서 죽음이 급습할 때까지 그 결정을 미루기만 합니다.
결론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죄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면 그것은 거듭나지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자긍심을 버리고 사단의 유혹에서 벗어나 마음과 힘을 다해 영원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훌륭한 지도자의 정신
민16:1-14
서론
고라당은 모세와 아론을 타도하기 위하여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땅이 갈라짐으로 그들이 그곳에 빠져죽었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250명이나 불타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모세는 그들에게 도전을 받으면서도 대항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고 대항하는 그들을 끝까지 설득시켰습니다. 그리하여 훌륭한 지도자상을 보여주어 많은 지도자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1. 자기에게 반항할 때 엎드렸습니다.
본문 4절에 "모세가 듣고 엎드렸다가"라고 하였습니다. 고라 자손이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지도자 모세는 같이 대항하지 아니하고 엎드려서 하나님께 문제 해결을 호소합니다. 모세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함께 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만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이고 기도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며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큰 일을 당했을 때에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여 온유한 심정으로 상대를 대할 때에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 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지도자 바울 사도는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은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2:24-26)"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본문 5-7절에 "고라와 그 모든 무리에게 말하여 가로되 아침에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자가 누구인지 보이시고 그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시게 하시되 곧 그가 택하신 자를 자기에게 가까이 나아오게 하시리니 이렇게 하라 너 고라와 너의 모든 무리는 향로를 취하고 내일 여호와 앞에서 그 향로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두라 그 때에 여호와의 택하신 자는 거룩하게 되리라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너무 분수에 지나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고라당들이 제사장직을 하고 싶어서 아론과 모세에게 대적하는데 그렇다면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는지 아닌지 여부를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와 같은 지혜로운 방법을 택하게 된 것은 기도 도중에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하지 않았겠습니까? 절대로 상대에게 기분 나쁜 소리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의 현명한 판단을 받자는 것입니다.
3. 인내력을 가지고 설득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8-11절에 "모세가 또 고라에게 이르되 너희 레위 자손들아 들으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 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 하나님이 너와 네 모든 형제 레위 자손으로 너희와 함께 가까이 오게 하신 것이 작은 일이 아니어늘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리는도다 아론은 어떠한 사람이 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라당들을 설득시키는 것입니다. 고라당들이 이스라엘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서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되었고 하나님 성막에서 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회중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닌데 왜 제사장직까지 탐내느냐는 것입니다.
결론
지도자의 자리는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지키기 힘든 자리입니다. 그런데 고라당 무리와 같은 자들이 있으면 어려운 자리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보통 사람들과 다른 면이 있는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12:3)"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도자는 훌륭한 면이 있어야 합니다.
정 직
성 경 활 용
1. 하나님의 정직
(1) 말씀이 정직하다.
(시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2) 정직하신 하나님이시다.
(신32:4)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3) 여호와의 도가 정직하다.
(호14:9)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이라야 그 도에 행하리라
(4) 주의 판단은 정직하다.
(시119: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사11: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5) 하나님의 교훈은 정직하다.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2. 정직한 자의 성격
(1) 기뻐한다.
(시107:42)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은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2) 여호와를 경외한다.
(잠14: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
(3) 악을 떠난다.
(잠16:17)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4)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시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5) 사람을 구원한다.
(잠12:6) 악인의 말은 사람을 엿보아 피를 흘리자 하는 것이어니와 정직한 자의 입은 사람을 구원하느니라
(6) 행위를 삼가한다.
(잠21:29)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
3. 왜 정직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서 정직하시기 때문에
(사26:7)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2)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기 때문에
(대상29:17)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3)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기 때문에
(전7:29)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4. 정직한 자의 결국은 어떠한가?
(1) 구원을 받는다.
(시7:10)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2) 장막이 흥한다.
(잠14:11) 악한 자의 집은 망하겠고 정직한 자의 장막은 흥하리라
(3) 후손에게 복이 있다.
(시112:2)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4)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된다.
(시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다
(5) 주와 함께 거하게 된다.
(시140:13) 진실로 의인이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정직한 자가 주의 앞에 거하리이다
(6) 기도 응답을 받는다.
(잠15:8)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7)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있다.
(잠3:32) 패역한 자는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거니와 정직한 자에게는 그의 교통하심이 있으며
관련원어풀이
1. rv'y: 야-솨르
(1) 똑바르다.
(삼상6:12)
(2) 바르다, 의롭다. 평온하다.
(합2:4)
(3) 옳게 여기다, 입증하다.
(시l19:128)
(4) 똑바르게 만들다, 평탄케 하다.
(시5:9, 사45:2)
2. rv,y 야-쉐르
(1) 똑바름, 곧음.
(잠2:13, 4:11)
(2) 의로움, 고결, 순결.
(신9:5, 시25:21)
3. r/vymi 미-소-르
(1) 평탄한 곳, 올바름.
(대하26:10, 슥4:7)
(2) 평탄한 곳, 안전한 곳.
(시26:12, 27:11)
(3) 의로움.
(시67:5, 사11:4)
4. !ymiT; 타-밈-
(1) 완성된, 완료된.
(욥36:4, 시19:8)
(2) 온건한, 건전한.
(출12:5, 레1:3)
(3) 온건한, 올바른, 책망할 데가 없
(신18:13, 시15:2)
5. @WK 쿤-
(1) 기초를 두다, 설립하다.
(시107:36, 잠3:19)
(2) 바르다, 적합하다.
(출8:22, 시5:10)
(3) 참되다, 진지하다.
(시78:37)
(4) 견고하다, 불변하다.
(창41:32, 시51:12)
(5) 확고하다.
(시57:8)
6. j'kon: 나-코-아흐
(1) 곧은, 똑바른.
(사57:2)
(2) 올바른, 의로운, 공정한.
(잠8:9, 암3:10)
설교예화자료
정직이 성공의 지름길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씨는 상점 운영에 대단한 혁신을 가져 온 사람입니다. 상점에서 원하는 물건을 사서 집에 가져갔다가, 당신이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든가 다른식구가 좋아하지 않으면, 혹은 다른 이유로라도 그 물건을 원치 않게 된다면 다시 상점으로 가지고 가서 싸우거나 귀찮게 묻거나 하지 않고 간단히 돈으로 되돌려받을 수 있다는 방식입니다. 마침내 상점거래에 정직성이 정착되었습니다. 물건마다에 보이지 않는 잉크로 "제가 제 값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면 돌려주십시오."라고 써 있다면 누구인들 정직하게 사고 팔지 않겠는가!
존 워너메이커 씨의 방식에는 약간의 손해와 소란도 있었습니다. 어떤 부인들은 드레스를 사서 파티에 입고 갔다가는 다음날 되돌려주었습니다. 탁자를 사가서 쓰다가는 중국 자기와 유리 그릇으로 바꾸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 상점엔 늘 사람들이 붐비어 점점 켜져갔습니다. 그래서 워너메이커 씨가 죽었을 때 그의 재산은 4천만 달러가 달했던 것입니다.
정직이 최고의 상술인 셈입니다.
당나귀와 다이아몬드
어떤 유태인 여성이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갔습니다. 돌아와서 물건를 펴 보자,상자 속에서 자기가 사지 않은 물건이 나왔습니다. 그것은 보석 반지로써 대단히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양복과 외투를 사 왔을 뿐이었습니다.
아들과 둘이서 살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그리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어린 아들에게 그것을 이야기하고, 두 사람이 랍비에게 의논하러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탈무드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랍비가 나뭇꾼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산에서 시내로 언제나 나무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복 시간을 될 수 있는 한 단축하여 탈무드의 공부에 열중하겠다고 생각하여 당나귀를 사기로 했습니다.
시내의 아랍인 으로부터 당나귀를 샀습니다. 랍비는 당나귀를 샀으므로 더 빠르게 마을과시내 사이를 왕복할 수 있게 된 것을 기뻐하며, 냇물에서 당나귀를 씻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당나귀의 목에서 다이아몬드가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랍비는 가난한 나뭇꾼의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랍비는 곧 시내로 돌아가 아랍인 상인에게 다이아몬드를 되돌려주라고 제자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당신이 산 당나귀가 아닙니까? "라고 하자 랍비는,
"나는 당나귀를 산 적은 있지만 다이아몬드를 산 적은 없다. 나는 내가 산 것만을 갖는 것이 정당하지 않느냐? " 라고 말하며, 그는 아랍인에게 다이아몬드를 되돌려주었습니다. 아랍인은 반대로,
"당신은 이 당나귀를 샀고, 다이아몬드는 그것에 붙어 있던 것이므로, 되돌려줄 필요가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랍비는, "유태의 전통으로 산 물건 이외는 우리들이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이것을 당신에게돌려드립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랍인 상인은,
"당신들의 신은 훌륭한 신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그녀는,그러면 즉시 되돌려주러 가겠지만, 무어라고 말하며 돌려줄 것인가를 내게 의논했습니다 나는 "그 반지는 백화점 것인지 판매원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만약 왜 되돌려는가 물으면, 내가 유태인이기 때문이라고만 대답하시오. 동시에 되돌릴 때에는 반드시 아들을 데리고 가십시오. 아들은 자기 어머니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생 동안 잊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승진에서 해고까지
어떤 은행에 네 명의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 하나가 고용된 신탁부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은행에서 나이 든 사원을 승진시켜 새로운 직책을 주고 네 젊은이 중 하나를 또 승진시켜 신탁부를 맡기기로 겯정하였습니다. 각자의 장점을 검토한 후에 넷 중 하나를 선택하여 새 직위를 주고 결국 봉급도 인상하기로 하여 그날 오후 4시에 본인에게 통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바로 그 젊은이가 정오에 식사하러 식당에 나갔는데 그 사람 뒤에 몇 사람 건너 이사 중 한 사람이 줄을 서게 됐습니다. 이사는 그 젊은이가 작은 버터 조각이 붙은 음식을 고르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버터는 접시 위에 살짝 떨구고 음식을 그 위에 덮어 계산원이 보지 못하게 하여 계산원을 속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그 젊은이에게 승진을 통보해주기 위해 이사들이 모였으나 바로 식당에서 속였다는 이유로 오히려 그를 해고해 버렸습니다. 이사들은 정직하지 못하고 도둑질하는 자를 신탁부서의 장으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정직의 보상
어떤 마을에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착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매일 나무를 해서 생계를 꾸려 갔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온 나라 백성들에게 꽃씨를 나누어 주면서 잘 키워 생일날 꽃을 바치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임금님으로부터 하사받은 꽃씨를 뿌리고 정성스럽게 물도 주었으나, 소년이 가지고 온 꽃씨는 이상하게도 싹이 틀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웃집 꽃씨에서는 모두 싹이 나서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임금님의 생일이 돌아왔습니다. 장미, 국화, 백합 등등 저마다 꽃을 들고 와 궁궐은 꽃의축제를 이루었습니다. 대신들과 백성들은 즐거워하면서 서로 자신의 꽃을 돋보이게 하려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기뻐해야 할 임금은 화가 난 얼굴이었습니다. 임금은 제각기 들고 온 꽃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때 빈 화병 하나만을 덩그렇게 놓고 서 있는 한 소년을 보았습니다. 임금은 그 소년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킬킬거리며 웃었습니다. 임금이 물었습니다.
"네가 가져온 꽃은 어디에 있느냐? "
"임금님, 제가 받은 꽃씨는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
소년은 송구스러워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소년을 두 팔로 덥석 안아 높이들었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거기 모인 백성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 아이만이 짐의 뜻을 이행했소. 내가 나누어준 씨는 꽃씨가 아니라 쇠 가루였소. 쇠가 어찌 꽃을 피우겠소. 이 소년만이 정직하오. 이 나라에 이러한 소년이 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 흡족하게 하오. 여러분들은 부정직을 뉘우치고 이 소년을 본받으시오."
이때 모든 이들은 모두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들은 싹이 나지 않으니까 다른 씨를 뿌려 꽃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임금은 그 소년의 귀여움과 정직의 보상으로 공부를 시켜 큰 인물이 되게 하였습니다.
역사의 붓
중국의 진나라 때 영공 왕은 방탕하고 나라일에는 게을렀습니다. 해서 간신들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나 충신들의 충고는 들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래도 충신 조둔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간하였습니다. 노한 임금이 그를 해치려하자 조둔은 멀리 도망하였습니다.
이를 본 신하들은 어느 날 방탕한 임금이 술을 마시며 연회를 열고 있는데 몰래 군사를 일으켜 반역에 성공했습니다. 그후 조둔은 조정으로 와 성공(成公)을 새 임금으로 모셨습니다. 그러나 조들은 전 임금이 피살되었다는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해서 역사를 기록하는 동호를 찾아가서 지난 일의 기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조둔이 도원에서 그 임금 영공을 죽였다. "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이때 조둔이
"이것은 잘못된 기록이요. 왜 나에게 허물을 뒤집어 씌우는거요."라고 항의하자 동호는 대답하기를 "그대는 승상의 몸으로 이 나라 안에 틀림없이 그 사실이 있었고, 다음에 임금을 죽인 자를 알고도 벌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변명할 수가 있소"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둔들은 그 기록을 정정해 주도록 애원하였습니다. 그러자 역사가는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 나의 임무며, 임금도 감히 이 붓엔 간섭하지 못하오." 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자를 수는 있어도 이 기록은 다시 고치지 못한다고 언성을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승상 조둔은 "슬프도다. 정승의 전리가 한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붓만 못하다니." 하며 탄식하였습니다. 그후에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보통 사관은 사실만을 기록하고, 훌륭한 사관은 그 붓으로 부정을 죽이도다. 내 머리를 끊을 수 있어도 내 어찌 붓으로 그대에게 아첨하리. 세상에 두려운 것은 신비와 흑백인가 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정직한 사람은 모욕을 주는 결과가 되더라도 진실을 말하며, 잘난 체하는 자는 모욕을 주기 위해서 진실을 말한다.
(W. 헤즐리트/ 성격론)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속임을 당하지도 말 것. 정직한 것은 괜찮겠지만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마음가짐을 정직하게 하여 자신을 기만한 것이 없으면, 그것이 비록 하늘이라고 할지라도 나에게 위험을 주지 못하는 것인데 내 어찌 무서워한단 말인가.
(이규보/ 외부)
인간의 천성은 원래 정직한 것이다. 정직하지 않고도 생존한 이는 요행 형벌을 면한 것뿐이다.
(논 어)
정직함은 선행은 아니지만, 최악이 결여되어 있는 증거다.
(L.N. 톨스토이/ 독서의 수레바퀴)
지식 없이 정직한 자는 박약하여 소용이 되지 않고, 정직하지 않고 지식이 있는 자는 위험하여 조심하여야 한다.
(S. 존슨)
정직한 인간은 신이 창조한 가장 기품이 높은 작품이다.
(A. 포프)
신은 정직한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영국 속담)
하루만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일 주일 동안 행복하고 싶거든 결혼을 해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게 지내려면 새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여라.
(영국 속담)
정직하게 하자. 이 일 속에 웅변과 덕행과의 비결이 있고, 이 일 속에 도덕적인 영향력이있다.
(H.F. 아미엘/ 일기)
정직은, 자기 연민 없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드물다. 초원의 사람처럼 넓고 순수한 친절이드문 것처럼.
(S.V. 베넷/ 존 브라운의 시체)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독창적이라 할 수 있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많은 사람보다 정직한 몇 사람이 더 낫다.
(O. 크롬웰/ W. 스프링 경에게의 서한)
정직한 노동자는 즐거운 얼굴을 지닌다.
(T. 데커/ 참을성 많은 그리셀)
정직을 잃은 자는, 더 잃을 것이란 없다.
(J. 릴리/ 유퓨즈)
정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완전한 인간이다.
(J. 플레처/ 정직한 사람의 재산)
오오 기괴한 이 세상 조심들 하시오 이 세상 사람들은 조심들 할지어다! 솔직하고 정직하다는 것은 안전한 것이 못 된다.
(W. 셰익스피어/ 오델로)
정직한 것만큼 풍부한 유산은 없다.
(W. 셰익스피어/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정직한 사람은, 참된 종교와 같이 이해력에 호소하며, 혹은 겸손히 양심의 내적 증거를 신뢰한다. 협작꾼은 논쟁 대신에 폭력을 사용하며 설득할 수 없을 때에는 침묵을 강요하고, 자기의 성격을 칼에 의하여 과시한다.
(주니우스/ 주니우스 서간집)
정직함은 가장 좋은 정책이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오래가는 행복은 정직한 것 속에서만이 발견할 수 있다.
(G. C. 리히 텐베르크)
벗들이여, 우리가 자신에 게 정 직하면, 우리는 서로서로 정직하리라.
(G. 먹도늘드/ 로시 후작)
너의 정직은 종교나 정책에 기초해서는 안된다. 너의 종교와 정책이 정직에 기초해야 한다. 너의 정직은 마치 태양이 위치하듯 텅빈 하늘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 낮과 밤을 지배하는 창공의 빛처럼 균형 잡혀.
(J. 러스킨/ 시간과 세월)
사실을 솔직하게 표명한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절망도, 과거에 대한 고발도 아니다.
(J. F. 케네디)
정직한 길을 걸어가는 데에는, 너무 늦다는 법이 없다.
(세네카/ 아가멤논)
정직을 실천하지 않고 과시하는 것은, 술책이다.
(P. 해네이/ 시집)
지나친 정직이 사람을 해친 적은 없다.
(J. 클라크/ 격언집)
정직은 사회 생활에 있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률이다.
(윤태림/ 사명의식과 철학의 선행요건)
정직한 사람의 말은, 그의 수표나 마찬가지이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내 생각에 가장 선망스러운 평인 "정직한 사람"이란 말을 듣기 위하여 나는 항상 확고한 미덕을 갖추고 있으려고 합니다.
(G. 워싱턴/ 도덕적인 격언)
정직한 마음의 단 하나의 약점은,쉽게 믿는 것이다.
(P. 시드니 경/ 아케디아)
부정 부패를 일삼는 자가 없을 때는 정직한 자라도 칭찬을 받을 가치가 없다.
(키케로/ 베레스 탄핵)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회고 속 검을손 너뿐인가 하노라.
(이 직)
정직한 미움을 말하되/ 거짓된 분노를 말하지 않게 하소서/참된 분노를 말하되/헛된 인내를 말하지 않게 하소서/ 솔직한 항거를 말하되/ 비굴한 복종을 말하지 않게 하소서
(박두진/ 기원)
울다가 지쳐서 포기한다는 한숨까지도/ 기막힌 웃음으로 끝을 내니,/ 하기야 울음이 가장 정직한 웃음이지만
(이생진/ 밤의 일기)
이 시대의 어떤 광택나는 구호보다도/ 더 정직하고 절제된/ 메시지를 보내는/ 겨울의 한치 낮은 성명(聲明)
(이광석/ 환절기)
나 하나님께 기도하나이다/ 이 집과/ 그리고 지금 이후로/ 이 집안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훌륭한 축복들이 머물게 하소서./ 삼가 비옵기는, 정직하고 현명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이집 지붕 밑에서/ 통치하지 말게 하소서.
(존 아담스/ 통치자를 위한 기도)
그리하여 정직한 봉사와 물자의 생산으로/ 사회는 번영할 수 있사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일터로 만드셨고/ 인류를 위한 시험장소로/ 만드셨으니/ ‥‥자기 몫의 사명을 완수토록 하옵소서
(리차드 M. 맥키온/ 일터에서 드리는 기도)
설 교 노 트
회계하지 아니하였다
왕하12:15
서론
우리 성도들이 돈을 가지고 정직하지 못하고 속이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처사입니다.
은이나 금 같은 재물을 취급할 때 특히 돈거래를 할 때 서로 믿고 할 수 있으나 분명 하게 하기 위하여 회계 사무를 철저히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여기 회계를 초월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회계 사무의 원리
돈이나 그 밖의 귀한 것들이 거래될 때에 회계하는 일은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며, 사실 그 속에는 믿지 못할 일들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믿으려는 조건으로 회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계하는 일 자체는 매우 지혜롭고 현명한 일이요, 결단코 나쁘거나 악한 일은아닙니다.
회계를 하는 것 자체도 서로 정직함으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교회에서의 회계
어떤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끼리 무슨 회계가 필요하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 믿고 지나면 된다고 하거나, 더구나 교회에서 회계 사무를 꼬박꼬박 보는 것은 신령하지 못하며 믿음으로 처리하면 은혜스럽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처사가 은혜스러운 것이며 서로 믿으며 끝까지 문제거리가 되지 않을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물질에 의해서 가장 많은 유혹을 받게 되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믿는 사람끼리일수록 서로 믿어웁게 일을 처리해야 하며 공연히 마귀로 하여금 틈타는 기회를 만들어 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회계하지 아니한 사실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실은 요아스 왕 때에 하나님의 전을 거룩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드리는 은을 가지고 사용하도록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한 궤를 가져다가 놓았으니 오늘의 헌금함입니다. 그 뚜껑에 구멍을 뚫어 여호와의 전 문 어귀 우편에, 곧 단 옆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계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일을 하였음으로 회계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얼마나 믿음직하고 흐뭇한 느낌을 안겨주는 아름다운 사실입니까?
참으로 오늘날도 이러한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물질에 대해 깨끗하고 정직하게 행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되겠습니까?
결론
회계 사무는 철저하게 정확하고 정직하게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모든 회계 사무가 이루어진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인간의 심성 그대로라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심성이 그리스도의 심성으로 닮아짐으로만이 회계하지 아니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정 치
성 경 활 용
1. 여러 가지 통치
(1) 인간의 통치
(창36:31)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는 왕이 이러하니라
(2) 하나님의 통치
(출15:18)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3) 그리스도의 통치
(계11:15)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룻 하시리로다 하니
(4) 성도의 통치
(고전4:8) 우리가 너 회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를 원하노라
(5) 은혜의 통치
(롬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6) 사특한 자의 통치
(욥34:30) 이는 사특한 자로 권세를 잡아 백성을 함해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7) 죄의 지배
(롬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2. 그리스도와 통치
(1) 그 통치의 예언-의로 통치
(사32:1) 보라 장차 한 왕이 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2) 통치의 특징-공평과 정의
(렘23:5-6) 참조
(3) 통치와 포고-천사
(눅1:31-33)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영원히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4) 통치의 거절
(눅19:14)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 하였더라
(5) 통치의 완성
(롬15:10-12) 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6) 통치의 영원성
(눅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 자연을 다스림
(1) 해와 달을 다스림
(창1: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방을 주관하게 하시며
(2) 바다를 다스림
(시89:9) 주께서 바다의 흉용함을 다스리시며 그 파도가 일어날 때에 평정케 하시나이다
(3) 인간에게 다스리는 사명을 줌
(창1:26, 28) 참조
4. 사람을 다스림
(1) 남자가 여자를 다스림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2) 왕이 백성을 다스림
(삼상8:5-6) 참조
(3) 부지런한 자가 사람을 다스림
(잠12:2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
(4) 부자가 가난한 자를 다스림
(잠22: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5) 방백이 백성을 다스림
(단6:1)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6) 사사가 백성을 다스림
(삿12:11)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굴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7) 제사장들이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림
(렘5: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5. 하나님의 다스림
(1) 하나님의 다스림은 영원함
(출15:18)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2) 하나님의 다스림은 의로우심
(삿5:11)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의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3) 하나님이 만유를 다스리심
(시103: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다스리심
(삿8:23)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5) 모든 이방 국가를 다스리심
(대하20:6) ‥‥모든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6. 신자가 다스려야 할 것
(1) 죄를 다스려야 함 ·
(창4:7) ‥‥죄의 소원은 네 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2) 자기의 마음을 다스려야 함
(잠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함
(딤전5:14)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4) 움직이는 모든 생물
(창1:28) 참조
7. 교회를 다스림
(1) 다스리는 은사
(롬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2) 장로들이 다스림
(딤전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3) 감독이 다스림
(딤전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4) 집사의 자격
(딤전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관련원어풀이
1. lv;m; 마-솰
(1) 비슷하게 하다, 동화시키다, 비유를 내다.
(겔24:3)
(2) 다스리다, 지배하다, 통치권을 가지다.
(창3:16, 사40:10)
2. hl;v;m]m, 메므솰-라-
(1) 다스림, 통치.
(창1:16, 시136:8)
(2) 재판, 사법권.
(왕하20:13)
(3) 왕, 제후, 장관
(대하32:9)
3. &l'm; 말-라크
(1) 통치하다, 왕이 되다.
(왕상6:1)
(2) 왕이 되다.
(삼하15:10)
(3) 의논하다. 결정하다.
(느5:7)
4. basileuvw 바실류오
(1) 왕노릇하다, 다스리다.
(마2:22, 딤전6:15)
(2) 왕이 되다, 왕권을 얻다.
(고전4:8, 계19:6)
설교예화자료
정치가의 자격
어느 날 신문 기자가 윈스턴 처칠에게 물었습니다.
"대판히 죄송합니다만 독자를 위해서 고견을 듣고 싶은데, 어떠한 청년이든 정치가가 되기 위한 바람직한 자격은 무엇일까요?"
처칠은 잠시 후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내일, 내주, 내월 그리고 내년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언할 수 있는 재능이오."
여기서 말을 끊은 그는 다시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후일에 그 예언이 맞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재능을 소유하고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정치의 성패는 사람에 달려 있나니 사람을 취함은 몸으로써 할 것이요, 몸을 닦음은 도로써 할 것이요,도를 닦음은 인(仁)으로써 할 것이다. 인(仁)은 "인(人)"이니 친족을 친애함이 크고, 의(義)란 "의(宜)"이니 어진 이를 높임이 크다. 친족에 대한 친애의 강쇄(降殺)와 어진 이에 대한 높임의 등차(等差)가 예의 발생 근거다.
(중 용)
계강자가 공자에 게 정사를 물어봤다. 공자께서 대답하길 "정(政)은 정(正)이라. 그대가 솔선 몸을 바르게 가지면 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아니 하리오."
(논 어)
무릇 정치행위란 어떠한 경우에든 결국 그 사람의 인격의 반영 이외의 딴 것일 수는 없다. 나쁜 사람은 나쁜 정치를,좋은 사람은 좋은 정치를 하기 마련이다. 우매한 인간에게서 현명한 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인과법리에 어긋나는 턱없는 욕심일 뿐이다.
(김동명/ 장관론)
현대의 정치는 그 밑바닥을 볼 때 인간의 투쟁이 아니라 힘의 투쟁이다.
(H. 애덤스/ 헨리 애덤스의 교육학)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은 정치교육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다.
(H. 애덤스/ 헨리 애덤스의 교육학)
정치를 직업으로 가지면서 정직할 수는 없다.
(L. M. 하워)
정치의 목적은 선을 행하기는 쉽고 악을 행하기는 어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있다.
(W. E. 글래드스턴)
정치와 인간의 운명은 이상도 없고 위대함도 없는 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자기 자신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만사가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내부에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문제이다.
(A. 카뮈/ 비망록)
대체 천하 일이란 비유하지만 양쪽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줄이 끊어지면 짧은 쪽이 먼저 넘어지는 것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처음에 두 편은 힘이 비슷했기 때문에 역리와 순리만 있고 옳고 그른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차지함에 있어서, 분명히성패가 밝혀진 뒤는 역리라든지 순리란 말도 도리어 등불 뒤에서 하는 귀엣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지원/ 열하일기)
판단력을 혼란케 하고 비판의 척도를 마비시키는 정치는 국민의 생활, 국민의 도의는 커녕 국민일반의 상식조차 저하시키는 죄를 범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마해송/ 상식문제)
정치를 하는 도리는 백성의 마음을 순히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김정국/ 사제집)
이성을 잃은 정치, 궤도를 떠난 정치, 거꾸로 가는지 곤두박질을 하는지 알 길조차 없는 해괴한 정치, 이러한 정치가 있다면 세상에 이보다 더 두렵고 원수스럽고 기막힌 경우도 있을까?
(김동명/ 장관론)
신은 듣자오니 정치를 하는 도리는 총명을 넓힘보다 먼저 할 것이 없습니다.
(권 발)
오늘날 정치를 하는 것은 이미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은 아니다. 불학무식(不學無識)한 깡패들에게나 알맞는 직업이 정치다.
(아리스토파네스)
덕으로써 다스림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별들이 한결같이 공수(拱手)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라.
(논 어)
정치는 군민 혹은 다수자를 알고 또한 인도하는 기술이다.
(A. 주베르/ 팡세)
정치의 참목적은 자유의 실현에 있다.
(B. 스피노자)
정치 행동은 하나의 사회를 도와주고 될 수 있는 한, 행복한 미래를 낳게 할 산파이어야 한다. 정치의 역할은 모자(母子)를 구출하는 것이다.
(A. 모루아)
정치란, 그것이 형태는 어떠하든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협동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대하면서 추진하는 행동이다. 이해의 합치 또는 불합치에서 기초되어 있는 연대관계는 투쟁이나 적대 행위의 관계와 똑같이 인간이 인간에 대한 전체적인 태도를 규정하는 것이다.
(J.P. 사르트르/ 스탈린의 망령)
정치란 공적인 기회에 윤리적 이성을 적용하는 것이다.
(R. W. 분젠)
좋은 정치라는 것은 부정이 쉽게 행해질 수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민중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를 국가 전체처럼 소중히 돌보는 정치를 목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달영/ 농민은 민들레꽃이다)
정치와 통치는 타협의 기술이요, 한 가지 관심사를 다른 관심사와 저울질하는 기술이다.
(W.A. 헨리 3세)
임금은 천지가 만물 낳는 그 마음을 마음 삼아 백성에게 차마 못할 것은 하지 않는 정치를 행하여, 천하 사경(天下四境)의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여 우러러보기를 자기들의 부모처럼 한다면, 편안하고 부유하고 존영(尊榮)한 즐거움을 길이 누릴 것이며, 위태하고 망하고 무너질 근심이 없을 것이니, 위(位)를 인(仁)으로 지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정도전/ 삼봉집)
강토가 아무리 널다 하더라도 한집안처럼 보여야 하고, 만인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갓난아이처럼 사랑해야 한다.
(정도전/ 삼봉집)
친할 자를 친히 하고 어진 자를 높여줌은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법입니다
(권 근/ 양촌집)
정치라는 것은 설득과 인내로써 적을 삶아서 내 사람을 만드는 데 있는 것이지 불평을 말하는 국민을 적으로 몰아치면 그것은 정치(政治)가 아니고 정치(征治)요, 그 결과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김성식/ 정치인들, 역사의식 가져야)
정치계의 정화란 무지개빛 꿈이다. 통치는 힘이 있어야 한다‥‥십계명과 황금률은 정치싸움에 설 땅이 없다‥‥자신의 도덕관념으로 말미암아 전투에 패배한 지휘관은 역사의 조소를 받게 된다.
(J. J. 인갈리스)
한 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인 것이다.
(유태 속담)
정치에서는 인간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가장 무거운 병은 머리에서부터 발생한다.
(小플리니우스/ 서한집)
천하에 정도가 서 있으면 예악(禮樂)과 정벌(征伐)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정도가 서 있지 않으면 예악과 정벌은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십 대를 계속하기가 드물며, 대부(大父)로부터 나오면 오 대 계속되기가 드물며, 배신(陪臣)이 국정을 집행하게 되면 삼 대 계속되기 드물다. 천하에 정도가 서 있으면 정가 대부에 있을 리 없고, 천하에 정사가 있으면 서민이 정치를 논하지 아니 한다.
(논 어)
공화정치는 사치로 끝나고, 군주정치는 빈곤으로 끝난다.
(C.S.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정치, 즉 수단으로써의 권력과 강제력에 관계하는 인간은, 악마의 힘과 계약을 맺는 것이다.
(M. 베버/ 직업으로써의 정치)
사람은 정치에 관련을 갖지 않으려 해도 허사다. 정치쪽에서 관련해 온다.
(C. F. 몽탈랑베르)
물이 흐르면 곧 고기가 숨 가라지고, 정치가 가혹하면 곧 백성이 들뜬다.
(유안/ 회남자)
정치, 그것은 인간의 본능까지도 바꾸어버리는 현대의 신이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부유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백성을다스리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그와 반면에 운명에 시달려 피폐(疲弊)한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정치에 있어서는 현명한 정의의 사람이 절대적인 권력과 좋은 운을 가졌을 때가 아니면 진실로 위대하고 고귀한 업적을 세우지 못한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정치는 불을 대하듯이 할 일이다. 화상을입지 않기 위해서는 가까이 가선 안 되고, 동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멀리 가선 안된다.
(안티스테네스)
백인이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것은 자치정부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통치하며 또 남을 통치할 때는 독재입니다‥‥누구도 상대방의 동의없이 남을 통치할 만큼 훌륭하지는 못합니다.
(A. 링컨)
과오를 개혁하려는 자에게 순교의 횃불을 들어주는 점에서 정치는 종교와 같다.
(T. 제퍼슨/ 문서집)
진실로 제 몸을 바르게 하면 정사를 베풂이 무엇이 어려우며 제 몸을 바르게 못 하면 인민을 어찌 바르게 하리요.
(논 어)
어떤 특정 민족에게 있어서 정치란 개인이 생계를 꾸려 나가는 일과 똑같은 것이다. 그것은 애국심에 대한 그 민족의 사업적 소질이 발휘되는 마당이다. 사업에 항상 반대가 따르는 것처럼 정치도 잘 싸우는 민족주의의 자기 이익에 관심을 두어 왔다. 무기를 만들어내고, 거짓 서류를 날조하는 일이 그 주요 활동이었다. 군비 경쟁의 부담을 빠른 속도로 증가해 가고 있으며, 그 끝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세계 평화에의 전망을 보이지 않는다.
(M. K. 간디)
정치적 자유도 우리의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면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 못한다.
(R. 타고르)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백성들이 먹고 사는 데 어렵지 않고 죽음에 임하여도 아무런 유감이 없게 해 준다면, 이것이 곧 왕도를 실천하는 시작인 것이다.
(맹 자)
선정(善政)은 백성의 재물을 얻고 선교(善)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
(맹 자)
걸주(傑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인민을 잃은 까닭이다. 그 인민을 잃은 것은 그 민심을잃은 까닭이다. 천하를 얻는 데 방법이 있다. 그 인민을 얻으면 곧 천하를 얻을 수 있다. 그 인민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다. 그 민심을 얻으려면 곧 인민을 얻을 수 있다. 그 민심을 얻는 데 방법이 있다. 인민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모아다 주고 인민이 싫어하는 것을 베풀지 않도록 할 뿐이다.
(맹 자)
정치가를 만드는 것은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그들의 성격이다.
(볼테르)
정치는 물리(物理)보다 더 어렵다.
(A. 아인슈타인)
정치란 정열과 관찰력을 함께 가지고 굳은 판자에 힘들여 구멍을 조금씩 들어 가는 작업이다. 이 세상이 자기가 제공하려고 하는 것에 비하여 엄청나게 천하고 바보같아 보여도 "그래도 또" 하고 소리치고 결코 좌절되지 않는 자, 오직 그런 자만이 정치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M. 베버)
임금을 섬기오되 정(正)한 길로 인도하여/ 국궁진췌(鞠躬盡)하여 죽은 후에 말아스라/ 가다가 불합(不合)곳 하면 물러간들 어떠리.
(김상용/ 仙源續)
주여, 두렵습니다. 나는 기도합니다/ 나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어/ 참된 사랑을 세계에 뿌릴 수 있게 하여 주소서/나와 당신 자녀와의 사랑의 행위는 하찮아도/그것이 그룹과 사회에, 경제와 정치에, 법률과 계약 및 규칙에/ 조금씩 스며들 수 있게 하소서.
(쿠오스트/ 세계에 스며드는 사랑)
인간의 예지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존귀성이란 무엇인가? / 윤리는 무엇이며 질서는 무엇이며/ 문화는, 정치는, 국가는 다 무엇인가? / -참 고운 깃발들이다/ -그 깃발들은 누가 들며 누굴 위해 있는 것인가?
(김수영/ 네게 묻는다)
정치란 승부를 정하는 것이 아니고 진실한 일이다.
(W. L.S. 처칠)
정치라는 것은 전쟁 못지않게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것이며, 똑같이 위험하기도 한 것입니다. 전쟁에는 단 한 번 죽으면 되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희생당해야 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W. L.S. 처칠)
섭공이 정사를 물었다. 공자 가로되, "가까운 자가 기뻐하고 먼 데 있는 자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
(논 어)
백성들이 고생에 지쳐 있나니/ 바라건대 조금이라도 쉬게 하시라/ 나라 안의 백성을 사랑하여/ 백성들의 근심 씻어 주었으면/ 거짓말로 속이는 사람 용서치 말고/ 못된 무리를 삼가 물리치며 약탈하고 포악스런 짓하는 사람 막아/그대 아직 젊은 몸일지라도/정치를 그르치지 말아 줬으면.
(시 경)
설 교 노 트
백성에게 이익을 도모함
에10:3
서론
정치를 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다스리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모르드개는 선정을 하였습니다. 모르드개의 선정은 자신의 영달과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에게 이익을 도모하였습니다. 과연 선정가의 결국은 이와 같이 축복될 것입니다.
1. 왕에게 이익된 정치가 있습니다.
봉건 시대에 있어서 왕이라고 하면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그야말로 백성들의 재산은 물론 그 생명까지도 마음대로 주장하였으니 곧 생살지권을 장악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죄한 백성들의 생명을 함부로 희생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나 왕 자신이 나쁜 사람일 경우에 그 나라 백성은 억울하게 희생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왕의 마음대로하는 정치, 기분 나는 대로 해치우는 정치, 자기만을 위하는 정치는 바른 정치가가 못됩니다.
2. 신하들에게 이익된 정치가 있습니다.
정치라고 하면 왕보다는 왕을 보필하는 신하들, 다시 말하면 실제 정치를 담당한 책임자들입니다.
저들이 왕을 충성으로 모실 때에는 왕으로 하여금 선정할 수 있도록 바른 조언을 하며 보좌해야 하고, 비록 악한 왕 밑에 있다고 할지라도 충신들은 이런 왕을 더구나 잘 모셔야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는 정치하는 신하들이 미련한 왕이나 악한 왕을 배경으로 비뚤어진 정치를하므로 자신의 개인 영달이나 정치를 사리사욕이나 꾀한다면 이것은 옳은 정치가 아닙니다. 무턱대고 왕의 마음에 들기만 하고 그의 기분만 맞추는 일이 신하의 도리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옛날 충신들은 목숨을 걸고 왕을 간하다가 억울하게 죽는 재상이나 신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후대에 와서 제대로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3. 백성에게 이익된 정치라고 합니다.
정치는 왕에게만 이익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요, 정치 담당자인 신하들의 이익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백성들에게 이익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는 특권층의 몇 사람만 이익되고 많은 백성들이 손해를 본다면 그것은 잘못된 정치인 것입니다. 아무리 특권층이라도 소수가 회생하고 수고하면 많은 백성들이 다 이익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정치요, 결국 백성이 이익한 것은 왕의 이익이 되고 신하들의 이적도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모르드개는 진정한 정치가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정치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 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성령에 감동된 정치인
창41:25-49
서론
요셉은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에 꿈을 꾸기를 자기가 형제들보다 잘된다고 하였는데 그때부터 계속하여 내리막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질 급한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저주하며 타락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잘된다고 하였는데 점점 더 잘못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원망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때가 되니 그를 높여 주시는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특히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에 감동된 자가 정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1. 성령에 감동되면 장래를 내다봅니다.
본문 25-36절에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바로가 꿈을 꾼 것은 애굽에 장차 일어날일들에 대하여 알려주신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의 내용이 7년 풍년과 7년 흉년들 것을 알려 주셨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에 감동된 정치 지도자는 먼 앞날을 내다보는 것입니다. 코 앞만 보지 아니하고 먼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있습니다.
2. 지혜롭게 행합니다.
본문 37-45절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요셉의 일을 좋게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신하들에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 하고 요셉에게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바로 왕보다 높지는 못하지만 바로 왕 다음 가는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세를 남용하지도 않고 군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은 결코 미련하지 아니하고 무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지혜를 구했습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말하기를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3:17)"라고 하였습니다.
3. 검소한 생활을 합니다.
본문 47-49절에 "일곱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7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축하되 각 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 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령에 감동된 정치인은 사치나 낭비를 모르고 근검 절약합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장래를 위하여 저축할 줄 압니다. 세속적인 정치인들은 사리 사욕에 눈이 어두워서 치부하려고 급급한 나머지 백성들의 장래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에 흥청망청 써 버리고 낭비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정치인들 중에 가난하여 전세방에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사무엘 제사장은 물질에 청렴 결백하였습니다. 특히 요셉은 그 많은 곡식을 어떻게 썩지 않게 보관을 했는지 그 지혜를 감탄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하간 사치와 낭비는 망국적인 풍조입니다.
결론
정치인들이나 교계 지도자들도 성령 충만하여 일대 변화가 일어나서 국가 장래를 내다보고 지혜롭게 행하고 근검 절약하여 백성들의 장래를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고 타인의 유익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제 도
성 경 활 용
1. 종교 제도
(1) 교회 행정 제도
(행6:3-4)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2) 연보 제도
(고전16:1-2)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직무 수행을 위한 제도
(대하8:14) 솔로몬이 또 그 부친 다윗의 정규를 좇아 제사장들의 반차를 정하여 섬기게 하고
2. 정치 제도
(1) 왕이 다스리는 제도
(삼상8:9)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알게 하라
(2)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
(벧전2:13)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관련원어풀이
1. fP;v]mi 미쉬파-트
(1) 심판.
(레19:15, 신1:17)
(2) 법적인 소송.
(민27:5, 욥13:18)
(3) 심판자의 선고.
(왕상3:28, 시17:2)
(4) 옳음, 공의, 공평한 것, 정당한 것, 합법적인 것.
(신16:19, 잠16:11)
(5) 법률, 법칙.
(출21:1, 레18:4)
(6) 특권, 권리.
(신18:3, 삼상8:9)
(7) 태도, 습관.
(왕하11:14, 17:33)
2. dikaivwma 디카이오-마
(1) 법으로 규정되거나 세워진 것, 법령.
(눅1:6, 히9:1)
(2) 사법적인 결정, 판결, 선고.
(롬5:16, 계15:4)
(3) 의로운 행동, 행위.
(롬5:18, 계19:8)
3. ktivsi" 크티시스
(1) 세움, 창조함, 창조된 것, 피조물.
(롬1:25, 히4:13)
(2) 창조된 것의 총체, 세계
(막10:6, 계3:14)
(3) 권위, 제도, 법령.
(벧전2:13)
설교예화자료
하늘 지붕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유태의 풍습으로는 삼나무 묘목을 심습니다. 그리고 계집 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 묘목을 심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소나무 가지와 삼나무 가지로 하늘지붕을 만들어 두 사람을 휘덮습니다. 누구라도 신부가 하늘 지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어도, 거기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말해선 안 됩니다.
발가숭이
어떤 사나이가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나이는 병이 들었습니다. 의사에게 보이자 "이것은 당신의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병이 든 것이니 그 여성과 성적인 교섭을 가지면, 틀림없이 낫는다.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나이는 랍비에게로 가서 의사가 그렇게 말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의논했습니다. 랍비는 절대 그와 같이 야다(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약 그 여자가 그의 병을 낫게하기 위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서므로써,자신의 울적함을 풀 수가 있어 병이 나아진 다면 좋을 것이 아닌가라고 하자, 랍비는 그것도 역시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와 그녀를 울타리 너머로 만나보게 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하면 어떤가라고 묻자, 랍비는 그것도 또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탈무드 중에서는 이 여성이 결혼했었는지 독신자였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사자나 다른 사람들 모두가 랍비에게 어째서 당신은 모든 일에 강력하게 반대만 하는가라고 말하자, "인간은 정숙해야 하며 만약 사람이 서로 깊이 좋아한다고 해서, 이내 성교섭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사회의 규율은 지켜지지 않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고 팔기
탈무드 시대로부터 계량을 감독하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토지의 크기를재는 로프도 다른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로프가 늘고 줄기 때문입니다. 또 액체를 담은 경우 특히 그 항아리 밑바닥에 전에 들었던 것이 굳어서 남아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항아리 바닥을 언제나 깨끗이하도록 엄하게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물건마다 다르겠지만 하루 내지 일주일 동안 사람들에게 보여서 의견을 듣는 권리가 사는 사람에게 주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전혀 알지 못하는 물건을 샀을 경우 산 사람은 그것을 당장 옳게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의 시대에는 한 가지로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느 자동차는 얼마라는 것이 대충 정해져 있지만, 옛날에는 파는 사람이 마음대로 값을 정했습니다. 만약 상식적인 값보다도 육분의 일 이상 플러스된 값으로 사게 될 경우, 예를 들면 보통 육백 원으로 팔고 있는 것을 팔백 원으로 사게 된 경우, 이 매매는 무효가 된다는 것이 탈무드의 통례입니다.
사는 사람쪽에 있었습니다.
파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별로 살 의사도 없는 데도 상담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 만약 딴사람이 이미 사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물건은 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부패한 제도
히피족 두 명이 거리를 거널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이 그의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난 지금 가서 실업 수당 수표를 받아 오겠어. 그리고 대학에 들러서 학교 당국이 내게 연방정부교육기부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아볼거야. 그런 다음에 식량 전표를 받아올테니 그 동안에 너는 무료진료소에 가서 건강 진단을 하고 와. 건강센터에 가서 내가 맞춰 놓은 새 안경도 좀 가져오고, 그리고 후생성에 들러서 우리들이 지금 더욱 많은 구호를 받아야 될 지경에 빠졌다고 신고해라. 그런 후에 부패한 제도에 항의하는 대중 시위가 있을 연방정부 빌딩 앞에서 5시에 만나자."
어록·시·묘사
악독한 제도는 죄인을 공포에 몰아넣거나 일시적 굴복을 시키는 외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그러나 똑같은 죄인에게 사랑으로 대해 준다면, 그 죄인은 무언의 감동을 받아서 착한 성품의 인간으로 변화되어질 수 있다.
(네드먼/ 뉴욕 교도소장)
사람을 위해서 제도가 있는 것이지 제도 자체에 절대적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최재희/ 교수생활의 반성)
권력자 -즉, 부(富)한 자와 굴종자 - 즉, 가난한 자가 서로 갈려 있는 사회에서 옳은 제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 상)
제도가 혼란할 때에는 루터같이 큰집 재산을 빼앗아서 딴살림을 차리기에 성공하기도 한다.
(손우성/ 지성의 오만)
제도라는 것은 역사의 오랜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굳어진 것도 있고, 새로운 변혁을 통하여 갑작스레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그 모두가 그 사회 사람들의 최상의 지혜로써 이루어진 것인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성실히 지켜야 할 규범인 것이다.
(이연기/ 생활 · 제도 · 교육)
위대한 정치가는, "이 국민은 무기력하다. 제도 때문에 힘이 쏠려 있다. "고 생각하지 않고, "이 국민은 잠자고 있다. 눈을 뜨게 해주자. 제도는 인간이 만든다. 필요하다면 내가 개정하자."고 생각한다.
(A. 모루아/ 생의 기술)
그러나 요지부동인 것으로 생각되던 이 제도가 사실에 있어서는 가장 연약한 것이었다. 그 제도를 영원히 파괴시키기 위하여는, 그것을 한 세기 동안만 철폐하면 그만이었다. 어쩌면 하루만 가지고도 되었을지 모른다. 계급이 다 뒤죽박죽이 되기만 하고,속죄하는 백성이 흩어지기만 하면, 무슨 힘으로 그에게 다시 멍에를 매워 놓을 수가 있겠는가? 제도는 죽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묵은 세계가 무너졌다.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필요하다고 믿는 체하였고, 그것은 기정 사실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재건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인류를 그 무서운 위험을 무릅쓰려고 마음먹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큰 위험일테니까.
(G. 베르나노스/ 시골 사제의 일기)
1. 나는 벌거숭이다/ 옷 같은 것은 나에게 쓸데없다/ 나는 벌거숭이다/ 제도 인습은 고인(古人)의 옷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시비도 모르고, 선악도 모른다//
2. 나는 벌거숭이다. 그러나 나는/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단정히 옷을 입은/ 제도와 인습에 추파를 보내어 악수하는/색은 내가 물씬물씬 나는 구도덕에 코를 박은/ 본능의 폭풍 앞에 힘 없이 항복한 어린 풀이다.
(김형원/ 벌거숭이의 노래)
설 교 노 트
성막을 앙장으로 덮어라
출26:1-14
서론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어 염소털로 앙장을 만들어 덮으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포목으로 된 앙장도 있습니다. 그 앙장으로 성막을 덮는 것은 성막에 비가 새서는 안 될 것을 말하고 성막의 미를 손상시켜서는 안 될 것이므로 앙장으로 곱게 덮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1. 법궤 둘 거처를 만들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막은 거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은 한 곳에 정착하는 안정된 생활이 아니었고 이동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궤를 모실 천막이 필요하였습니다.
2. 앙장으로 덮어야 합니다.
본문 3-7절에 "그 앙장 다섯 폭을 서로 연하며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하고 그 앙장의 연락할 말폭 가에 청색 고를 만들며 다른 연락할 말폭가에도 그와 같이 하고 앙장 말폭 가에 고 오십을 달며 다른 앙장 말폭가에도고 오십을 달고 그 고들을 서로 대하게 하고 금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앙장을 연합하여 한 성막을 이를지며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소털로 만들되 열 한폭을 만들지며"라고 하였습니다. 앙장이란 말은 덮는 휘장을 말합니다. 이것으로 성막의 천장을 덮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3. 성막은 외부보다 내부를 단장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붉은 물들인 숫양의 가죽으로 막을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의 외부보다 내부 치장을 아름답게 꾸미도록 하였습니다. 성소는 네 개의 막으로 덮여 있습니다. 가는 베실로 짠 고운 것과 염소털과 순양의 가죽 및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사람이나 성전을 외모보다 중심을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삼상16:7). 교회의 생명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예수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을 마련할 때는 외모보다 속 단장을 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어 하나님 께 영광을 돌려보내고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며 자신과 후손에게 복된 결과가 나타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열납하시도록 드리라
레1:1-9
서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크게 다섯 가지, 즉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제사가 되었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1.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3절에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람하시도록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흠없는 것은 신체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 온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흠과 티가 없으신 제물로 드렸습니다(벧전1:19)만 그 외에 인간들은 누구도 흠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서 깨끗한 제물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롬12:1).
2. 안수해서 드려야 합니다.
본문 4절에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은 제물의 머리에 자기의 손을 얹고 안수를 해야 합니다. 이는 자기의 모든 것, 즉 생명과 예 및 모든 것을 드린다는 뜻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실제 자기가 제물된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고 자신이 죽어야 마땅함을 깨닫고 자신이 죽는다는 심정으로 하는 것이며 그 일을 통하여 자기는 용서를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희생양이 되셨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안수하는 것은 내 모든 허물을 양으로 전가시킨다는 것입니다(출29:1). 그래서 안수하는 자는 그 제물과 하나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3. 태워서 드려야 합니다.
본문 7-8절에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은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고기 태우는 냄새가 향기롭다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 태우는 냄새 자체가 향기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제사드리는 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했다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것 뿐입니다. 번제 자체가 불로 태우는 제사입니다. 즉,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번제로 통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고 평화로운 안식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열납되는 제사는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하고 안수하여 드려야 하며 태워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서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조 상
성 경 활 용
1. 조상들이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1) 믿음을 갖게 한다.
(사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2) 집과 재산을 상속해 준다.
(장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3) 택함을 받게 한다.
(행13:17)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4) 기도를 쌓아둔다.
(사38:5)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5) 자리를 물려 준다.
(눅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2. 조상에 대한 후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1) 조상적 부터 섬기던 하나님을 섬겨야 함
(딤후1:3)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 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행24:14)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성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2) 조상으로 인하여 복 받음을 알아야 함
(눅1: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3)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야 함
(히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4) 조상들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해야 함
(단11:24) 그가 평안한 때에 그 도의 가장 기름진 곳에 들어와서 그 열조와 열조의 조상이 행하지 못하던 것을 행할 것이요
(5) 유업을 지켜야 함
(왕상21:4) 이스라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6)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전해야 함
(행13:32)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라
3. 이스라엘 조상의 범죄상
(1) 후손들이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였음
(렘14:20)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2) 성령을 거스렸음
(행7:51)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3) 자기를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연약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김
(신29:25-26) 그 무리가 자기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4) 선지자를 핍박하였음
(눅11:47)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행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관련원어풀이
1. ba;' 아-브
(1) 아버지, 조상, 선조.
(창28:13, 왕상5:11)
(2) 기초자, 첫 조상.
(창10:21, 수24:3)
(3) 창시자, 제조자.
(욥38:28, 사63:16)
(4) 양육자.
(욥29:16)
(5) 주인.
(삿17:10)
(6) 왕의 아버지.
(창45:8)
(7) 부양자.
(시68:6)
(8) 선생.
(삼상10:12)
2. pathvr 파테-르
(1) 아버지, 조상, 선조
(마2:22, 행7:14)
(2) 양친, 부모.
(히11:23)
(3) 시대에 앞선 사람, 선임자, 연장자.
(요일2:13)
(4) 선생, 교사.
(마23:9)
3. provgono" 프로고노스
앞서 태어난, 보다 나이 많은, 부모, 선조, 조상.
(딤전5:4, 딤후1:3)
어록·시·묘사
조상들 중에 노예가 없었던 군주는 없고, 조상들 중에 군주가 없었던 노예는 없다.
(H. 켈러/ 자전)
나쁜 씨에서는 나쁜 열매가 나온다.
(J.C.F. 실러/ 메시나의 신부)
조상의 영광은 말하자면 자손의 등불이다.
(실루스티우스/ 유구르타)
선조를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은 자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E. 버크/ 프랑스 혁명의 영향)
할아버지 물러가시오/아버지 어머니 물러가시오/ 선조들도 물러가시오/‥‥/ 일은 끝났습니다/ 이젠 어린이를 위해/ 구경거리가 시작됩니다.
(J. 프레베르/ 핵의 시대)
박 아무개씨의 조상은 본시 닭이여,/ 경주 땅 계림서 박만한 알에서 깨어난/ 혁거세가 조상이여/ 계림의 닭은 새벽을 울어
(김대구/이 시대의 야곱)
이 거룩한 강은 숲과 골짜기를 흘러서/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동굴에 이르러/ 생명없는 대양으로 소란하게 가라앉았다/ 그 떠들썩한 소리 속에 쿠빌라이 칸은/ 전쟁을 예언하는 조상의 목소리를 들었다.
(코울리지/ 쿠빌라이 칸)
열매는/ 꽃이었던,// 너와 네 조상들의 빛깔을 두르고// 내가 12월의 빈 들에 가늘게 서면
(김현승/ 겨울 까마귀)
신주(神主) 밑구멍을 들먹인다. <*조상들까지 들추어내어 떠든다는 뜻>
(한국 속담)
죽어서 가버린 자에게는 눈물이 아니라 추억으로 경의를 표하라.
(성 크리소스톰/ 비평집)
난세는 모든 것을 참혹하게 한다. 조부모보다 못한 양친의 시대가 양친보다 못한 우리들은 낳고, 얼마 안 있어 우리들은 우리들보다 더 형편이 없는 애들을 낳는다.
(호라티우스/ 송시)
조부가 몰두한 꿈/ 조모의 정 열/ 고조부의 순종/ 고조모의 용기를/ 그러나 너의 부모 우리들처럼/ 아기야 너 자신이 마침내/ 이 조직된 서클 속에/ 들어갈 것이다-누가 아느냐?
(A. 괴스/ 쇠사슬)
조상 숭배자들이란 대개 그들이 칭송하는 조상들의 좋은 면을 빠뜨리고 있다.
(J.E.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꾸어 온 조상은 자기네 자손부터 돕는다. <*조상이 훌륭했던 것처럼 하기 위하여 실제로 없던 이름난 사람을 갖다가 자기네 조상처럼 꾸미어도 그것은 아무 쓸데없는 일이라는 뜻>
(한국 속담)
조상을 잊음은 원류가 없는 시냇물이고, 뿌리가 없는 나무이다.
(중국 속담)
너의 위대한 조상을 본받아 행동하라. 그리고 그들의 덕성과 비교하여 네가 그들의 자손임을 증명하라.
(드라이든/ 배드의 아내)
저명한 선조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인간은 감자와 같은 것이다. 그 인간이 가진 유일의 좋은 부분은 땅속에 있다.
(오바베리)
나는 나의 할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나는 그의 손자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아는 데 더 큰 관심이 있다.
(A. 링컨)
선조의 자랑은, 거리가 멀수록 강해진다.
(M. 커티스)
지금까지도 그대는/ 석기 시대, 투석기로 싸우던 시대처럼/ 미개한 모습이다,/ 현대인이여./ 악의의 날개를 펴고, 죽음의 해시계를 품고/그대는 비행기 속에 있었다. / ‥‥그대는 네 뛰어난 과학으로/ 살륙을 멋대로 자행하였다. / 그대는 끊임 없이 죽이고 있다. / 그대의 조상들이 죽여온 것처럼/ 그대를 처음 본 동물들이 죽인 것처럼,/ 오오, 피여/ 형이 동생에게/ "들로 가자"고 말한 그날처럼/ 이 피는 울부짖는다. / ‥‥오오, 자손들이여/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피의 구름을/ 또한 그대의 조상들의 일을/깨끗이 잊을지어다,/그들의 무덤은 재속에 묻혀 있다/바람이 일어나며,/ 검은 새떼가 그들의 혼을 뒤덮듯 날고 있다.
(콰지모도/ 현대인)
오오 환희여 미역국이여 미역국에 뜬 기름이여 구슬픈 조상이여/ 가뭄의 백성이여 퇴계든 정 다산이든 수염난 영감이면/ 복덕방 사기꾼도 도적놈 지주라도 좋으니 제발 순조로워라.
(김수영/ 미역국)
사천 땅에 살던 존재(導階)는 상야가마에서 조국에 두고온 부모님 얼굴을 빚었고/ 그의 8대 후손들은 고전가마의/조상이 되어 조국 하늘을 빚었지요.// 일본 도자기의 창조자로 아리디야끼 조상이 된 이삼평은 충청도 사투리로, 다까도리야끼의 원조 팔산 씨는 제 고향 경상북도 고령의 눈물과 가락으로, 가라쓰야끼의 시조 종전과 그의 아내 백파선, 일본 관요(官窯)의 스승 김해와 신무신, 신규석 형제는 각각/경상도 김해와 고령, 전라도 남원의/ 절박한 인심과 강물소리 별빛을 모아/ 서러운 걸음걸음마다 그릇을 빚었고/ 변방중은 일본민요(民窯)의 시작인 용문사요의 원조가 되어 왜국 땅에 조선을 심었지요// 일본에서 처음 백토(白土)를 발견한 박평의는/ 나에시로카와의 원조가 되어/ 고향 남원의 전설과 풍물을 빚었지요.
(정동주/ 신무가-4 · 이국의 하늘 아래서)
나는 로마 숭배자도 아니고/ 슬라브주의자도 아냐/ 나는 나의 선조들처럼/ 독일의 당나귀로서/ 용감하고 충직하고 슬기롭단 말이야// ‥‥선조들은 죽은 것이 아냐! 무덤에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의 허물뿐이야 그들은/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만족해 하고 계시는 거야// ‥‥나는 당나귀다 그러므로 충실하게 나는 옛 조상들처럼 지키리라/ 옛스런 당나귀의 우둔함과/ 당나귀다운 혼을. <*당나귀당은 국수주의적인 독일 민족주의를 상징함>
(하이네/ 당나귀 선거)
두겁 조상. <*선조 중에서 가장 현달한 사람이란 뜻>
(한국 속담)
부끄럽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우리네 조상들은/ 한 오백 년 굶주려도/ 길다란 귀를 갖고/ 모로 꺾인 다리로 뛰면서/ 풀만 뜯어먹고 살았거니/ 마지막 뼈 묻을 땅/ 한 조각만 바라보며/ 허어이 허어이 살았거니/ 80년대 정신나간 잡식동물들아/ 들쳐먹고, 후려먹고/투기해 먹고‥‥‥
(서덕석/ 초식동물)
설 교 노 트
족보를 자랑하지 말라
창38:12-30
서론
성경을 읽다 보면 얼굴이 붉어질 때가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부모 자식 지간에 동침하여 자식을 낳는다든가 남매간에 죄를 짓는 일, 심지어는 자부와 동침하여 자녀를 낳는 일 등인데 이와 같은 내용을 왜 성경에 기록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확한 것을 기록함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조상으로 인하여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1. 유다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 12-26절을 통하여 보면 유다는 자부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를 통해서 구세주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족보를 따지고 보면 유대인들이 족보를 자랑할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근본이 깨끗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오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부끄러워하면서 겸손하게 처신해야 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유다는 이와 같이 흠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고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49:10)"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2. 베레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 27-30절에 "임신하여보니 쌍태라‥‥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하나는 베레스라 부르고 하나는 세라라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베레스는 시아버지와 자부 사이에서 태어난 불륜의 씨앗입니다. 그렇다면 베레스는 아무것도 자랑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려 놓고 있습니다(마1:3).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개같이 취급하면서 큰 소리칠 처지가 못된다는 것입니다. 겸손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3. 족보에 대한 변론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딛3:9절에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고 하였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리는 것이라(딤전1:4)"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십자가를 자랑하면서 살아갈 것 뿐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아브라함도 실수가 있는 사람이고, 이삭도 실수가 있는 사람이며, 야곱도 유다도 모두 다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족보를 자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자랑해야 합니다.
기브온의 조상
대상8:29
서론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하였으니‥‥‥‥라고 한 본문과 9장 35절에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은 기브온에 거하였으니‥‥‥‥라고 한 말씀이 똑같이 중복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1. 기브온의 위치
기브온은 어디입니까? 기브온의 베냐민 지파의 성읍으로 "기브아 언덕"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으며 현재의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쫌 떨어져 있는 엘 집(el-Jib)이라는 마을과 같은 곳입니다.
기브온의 이름이 처음 소개된 것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벌할 때에 여리고와 아이성의 함락 소식을 들은 기브온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을 때입니다.
그들은 지혜를 짜서 먼 곳에서 은 사람들이라고 속여 조약을 맺고 나중에 그 사실이 드러났으나 맹세를 존중하는 여호수아의 관용을 받아서 물 긷고 나무패는 잡역을 하기로 하고 생존권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2. 기브온의 조상 여이엘
여이엘의 이름 뜻은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심"이라고 합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름이지만 성경상에 여러 명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 르무벤인의 두령(대상5:7)
(2) 레위인 문지기(대상15:18)
(3) 게르손의 자손(대하29:13)
(4) 레위인의 두령(대하39:5)
(5) 이방인을 취한 자(스16:43)
(6) 다윗의 용사(대상11:44)
(7) 웃시야 치세의 서기(대하26:11)
(8) 기브온의 아버지(대상8:29)
(9) 기브온의 조상(대상9:35)
그런데 이 기브온의 조상은 기브온에 거하였으며 그 후손들은 그 형제와 더불어 서로 대하여 예루살렘에 거하였습니다.
3. 여이엘은 사을 왕의 조상
여이엘의 아내는 마아가며 그들의 장자는 압돈이요, 그 다음은 술, 기스, 바알, 넬 등이며,넬은 기스를 낳았고, 기스는 사울을 낳았고, 사울은 요나단을 낳았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국가의 초대 왕이었던 사람입니다.
사울의 고향은 기브아인데 이는 기브온과 같은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삼상10:26, 11:4). 그리고 이곳은 유다인의 성소인 회막이 있는데,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대하1:3).
결론
기브온에는 지혜 있는 자들이 살았습니다. 나중에 그곳 거민들 중에서 사울이 왕이 되었으니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는 섭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