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백과 사전 < 6 > 종교개혁 - 힘

 

 

 

설교종합자료백과

 

 

 

 

 

 

 

 

 

 

 

 

 

종교개혁

성 경 활 용

1. 아사의 종교 개혁

(1) 진정으로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였다.

(대하15:12)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열조의 하나님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

(2) 남색하는 자를 쫓아냄

(왕상15:11-12) 아사가 그 조상 다윗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남색하는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열조의 지은 모든 우상을 없이 하고

(3) 우상을 만든 태후의 위를 폐함

(왕상15:13)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4) 우상을 없앰

(대하14:5)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 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

 

2. 여호사밧의 종교 개혁 내용

(1)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없앰

(대하17:6) 저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하였더라

(2)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함

(대하19:4)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더니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순행하며 저희를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3) 남색하는 자를 쫓아냄

(왕상22:46) 저가 그 부친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 내었더라

 

3.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 내용

(1) 모든 개혁을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함

(대하31:20)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함

(대하29:5) 이제 너희는 성결케 하고 또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이 하라

(3)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게 함

(대하30:1)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

(4) 주상과 목상을 제하고 멸함

(대하31:1)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관련원어풀이

1. deisidaimoniva 데시다이모니아

신들을 경외함, 경건, 미신,사교, 종교적인 신앙.

(행25:19)

 

2. qrhskeiva 드레-스 케이아

(1) 종교적 예배.

(골2:18)

(2) 종교적 체계

(행26:5)

(3) 경건, 종교.

(약1:26, 27)

설교예화자료

54년간의 투쟁

월리엄 윌버포스(William Ailberforce)는 "한 가지 일에 충실하여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반대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항할 만큼 강하여 의지가 견고하다. "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1787년 하원에서 3세기 이상 계속되어온 노예 매매 폐지에 판한 안건을 제의하기로 처음 결심했습니다. 그는 의회에 "노예 매매의사악함이 너무도 크고 너무도 가증스럽고 너무도 회복하기 어려운 것이어서,나의 마음은 그것을 완전히 폐지하기로 정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간에 이 시간부터 나는 그것을 폐지시킬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기로 결심 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노예 소유자들은 그 폐지법에 반대하고 나섰으며, 사람들은 작고 못생기고 시력도 안좋았던 그를 조롱하기까지 했지만 계속 노력했고 그후 18년 후인 1807년에 노예 매매 금지법이 통과되었습니다. 1823년에는 노예 제도 반대협회(Anti-Sla-very Society)를 결성하여 노예 해방을 위해 그의 노력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 결과 1833년 7월에 노예 제도 폐지 법안이 노예 소유자들에게 2천만 파운드를 변상하는 조건을 붙여서 하원을 통과시켰습니다.

윌버 포스는 "하나님, 영국이 노예 제도의 폐지를 위하여 이천만 파운드를 기꺼이 내어 놓은 날을 보는 순간까지 나를 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했으며 그후 3일 뒤에 국가적 기념하에 스터민스터 성당에 묻혔습니다.

그가 아프리카 노예의 해방을 위해 인내하며 투쟁했던 기간은 장장 54년이었습니다.

 

 

개혁은 희생이 요구된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는 크든 작든 간에 어떠한 희생이라도 치루어야 합니다. 이런 희생 없이는 자신의 삶을 개선 및 잘못된 것을 변화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유명한 역사가였던 웰스라는 사람은 원래 포목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장래성이나 소망 같은 것도 없이 지내던 그에게 그의 생애를 뒤바꿔 놓을중요한 도전이 있었습니다.

어떤 날 그는 마음으로부터 "늦기 전에 어떤 희생을 치르는 한이 있더라도 그 상점에서 나와라."는 음성을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웰스는 그 소리에 지체없이 그 포목상을 뛰쳐나왔고 열심히 공부하여 유명한 역사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치루겠다는 결단력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성가대원 루터

 

마틴 루터는 좋은 음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가난한 학도들을 위해 빵 조각을 구하고자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당시의 풍속이었습니다. 아이세하에서의 일입니다.

이집 저집으로 구걸을 하다가 그는 마침내 곤란드 고다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집의 주부인 울수라는 현관에 나와서 그 고운 음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알았습니다. 부인은 루터를 안으로 안내하고 그에게 식사를 제공했습니다. 루터가 그 도시에 유하고 있는 동안 그 가정은 그에게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덕택으로 루터는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집 식구는 이 굶주리던 청소년이 장차 그렇게 위대한 종교운동의 지도자가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심령을 개혁하는 종교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있는 커다란 깡통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전에 매우 방탕했던 한 청년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청년의 주인을 불러 그의 행동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 또 그를 받아들임에 어떤 장애는 없었는가를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이런 관례적인 질문을 했을 때 비록 그 자신이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었지만 그 주인은 너무나도 감동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저 쇠사슬이 보이십니까?"

그는 방에 걸려 있는 쇠사슬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저 쇠사슬은 바로 그 녀석을 위해서 만든거랍니다. 나는 그 녀석이 일하게 하려면 일주일 내내 그 녀석을 의자에 저 쇠사슬로 묶어 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놈은 내가 데리고 있던 놈들 중 가장 고약한 놈이었지요. 아무리 벌을 줘도 그놈에겐 별로 유익한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눈에 안 보이면 도대체 안심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목사님,지금 그는 완전히 변해 버렸답니다. 정말 양같이 순해 졌어요. 이제는 내 견습공 중에 제일낫지요.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를 신뢰한답니다. 그를 우리 회사에서 받아들이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견습공들이 모두 그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어록·시·묘사

 

사회가 재건되기를 요구할 때는, 낡은 계획위에 재건하려는 기도는 소용이 없다.

(J.S. 밀/ 논설과 토론집)

 

모든 개혁은 더 무서운 개혁을 덮고 있는 가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밑에서 감히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개혁이 전진한다.

(에머슨/ 일기)

 

사회 개혁의 과업을 포기하는 것은, 자유인으로서의 자기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A. 페이튼)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이 민중을 반역하도록 자극한다.

(E. 호퍼/ 변혁의 시련)

 

어디서나 혁명은 고통스럽지만 국민의 결실있는 창안이 있다. 그들은 피를 흘리지만 빛을창조하고, 인간을 제거하나 이념을 완성한다.

(M. 곤잘레스 프라다/ 점심 시간)

 

새로운 것은 항상 위법적 신성 모독적인 감각에서 수행된다. 죽은 것은 신성하다. 새로운 것은 다르며, 사악하고, 위험하고, 혹은 파괴하는 것 같다.

(H. 밀러/공기조절 장치가 된 악몽)

 

낡은 주의나 낡은 법률은 인정하지 않고, 이 두 가지를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혁명의 특성이다.

(A. 링컨)

 

만일 조급히 굴어 빨리 바꾸려 한다면, 마치 병을 고치는 데 독약을 마시는 것 같아서, 상하는 바가 많게 된다.

(조광조/ 정암집)

 

여기/ 내가 섰나이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주여/ 도와주소서!

(마틴 루터/ 종교 재판에서의 선언)

 

모든 개혁은 한때 개인의 의견이었다. 그것이 또다시 개인의 의견이 되면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R.W. 에머슨/ 수필집)

 

개혁은 악폐의 시정이요, 혁명은 권력의 이동이다.

(E. 벌워 리튼)

 

개혁은 내부에서 와야 하며, 외부에서 와서는 안 된다.

(기번즈)

 

 

설 교 노 트

 

개혁자의 믿음

롬2:14-17

 

서론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종교를 개혁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성경을 가르치다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 크게 감동을 받고 종교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종교 개혁 주일을 맞아 개혁자의 믿음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릴 때 그 산 믿음, 힘 있는 믿음, 능동적인 믿음, 역사적인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루터의 믿음의 특성을 알아보겠습니다.

 

1. 우리의 의는 행위에서가 아니라 믿음에서라는 주장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 갈3:11에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는 합2:4의 말씀의 인용인데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받는 것이 절대로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4:3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입었는데 이는 저를 믿음으로서 이것을 인하여 의롭다 함을 입었다 했습니다. 루터는 누구보다 인생 문제, 죄 문제를 많이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도원에서 행하는 모든 고행을 다 겪었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을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이러한 고행이 헛수고임을 깨달았습니다. 한편 로마 교회는 100년 동안 지었어도 완공되지 못한 성 베드로 성당을 위하여 속죄권을 만들어 전국에 팔며 돈을 주고 천국에 가는 것처럼 선전했습니다. 이에 참을 수 없던 루터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어떤 행위도 나를 의롭게 할 수는 없고 믿는 신앙으로만 할 수 있다는 진리인 것입니다.

 

2. 성경만이 신앙의 표준이 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성직자는 곧 베드로의 후예이며 모든 의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교황의 권위를 하나님의 위치에 두었던 것입니다. 루터는 이것을 배격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신앙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최고요, 하나님이 최고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개혁자의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인 것이며, 변하지 않는 말씀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것입니다.

 

3. 개혁자의 믿음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위에 있을 수 없고 직분이 하나님의 주권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루터는 95개 항의 조항 가운데 제 5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법황은 자기의 권위 또는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집행할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징벌도 변하여 주지 못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모든 주권은 여호와에게만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위에 있을 수 없고 직분이 하나님의 주권을 대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가 하나님의 손에 있고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루터는 담대한 마음으로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나의 피난처가 되시고 나를 건져 주셔서 승리케 하신다는 신앙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종교 개혁 주일을 맞아 이 마르틴 루터의 담대한 신앙이 저와 여러분들의 것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생명을 걸고 부패된 암흑 시대를 밝히기 위해 루터가 일어났던 것처럼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 우리 생활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며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실 때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직 그 믿음으로

합2:1-8

 

서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받은 선지자요, 또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생애 중에서 몇 가지 고민스러운 일들로 인하여 안타깝게 여기다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후에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면서 사슴같이 뛰며 살게 된 축복을 누리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종교 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마르틴 루터로 하여금 종교를 개혁한 동기가 되게 한 합2:4, 롬1:17에 인용을 중심으로 몇 가지 말씀을 드릴 때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니이까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합1:2)"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기도하여도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의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출세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전적으로 연약한 사람들,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의 백성들의 억울함과 그 아픔을 보고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부르짖었는 데도 하나님은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 기에서 깊은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의 구함을 외면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익되게 하시는 일과 또 그 진리로 기뻐하실 수 있을 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니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쇠잔하리라(시37:1-2)"고 하셨습니다.

 

2. 이런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대답이 있습니다.

(1) 합1:5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랄지어다‥‥ 혹이 너희에게 고할지라도 믿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믿어야 할 사람이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범죄하기 때문에 그들을 믿어 징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렘12:13에도 "이는 여호와의 분노를 인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인들의 바로 믿지 아니하는 죄, 바로 살지 못하는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우리는 자신들을 반성하여 회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2) 때가 되면 정녕 응답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3절).

하나님은 범사에 때를 보고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도 응답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기도하다가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비유로 말씀(불의한 법관 앞에 과부)하셨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익 되도록역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였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불신의 대표인 바벨론은 망할지라도 참으로 하나님을 믿되 진실히 믿는 사람은 그 믿음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3. 그 믿음의 결과로 하박국 선지자는 확신과 기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하박국 선지자는 그 말씀을 들은 후에 크게 함을 얻고 기쁨으로 살아나간 것입니다. 본문 3:16-19에 보면 "비록 창자가 끊어질것 같은 아픔이 올지라도 떨지 않았고,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좌절이나 낙심이 있을 수 없으며 늘 기쁨과 감사뿐인 것입니다.

 

결론

오늘 종교 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셨던 이 말씀, 마틴 루터가 종교를 개혁하게 되었던 이 말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기도의 응답이 당장 안 된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 같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날이올 때에 분별해 주실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험한 세상을 이길 것이고 그 믿음으로 오늘의 불황을 극복할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마귀를 이길뿐 아니라 하박국 선지자처럼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며 진실된 마음으로 늘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종교 개혁

롬1:14-17

 

서론

1517년 10월 31일에 마틴 루터가 제의한 95개조의 공개 토론 제목은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성경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것은 혁명이 아니고 개혁인 것입니다. 이 개혁 운동은 불과 4주 만에 전 구라파를 휩쓰는불꽃이었습니다.

타락과 부조리, 성경보다는 인간이 만든 제도적인 위치가 너무나 지나쳐 비리에 쌓여져 있었던 것을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세 가지 면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1. 성경 중심

그 당시 잘못된 경향은 성경이 신앙생활에 중심이 되지 아니하고 유전의 권위가 성경과동등시 되었습니다. 종교 회의에서 채택된 성경과 동등시하는 가운데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보다는 교회의 권위를 더욱 높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반성경적 태도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이 루터, 칼빈, 쯔빙글리, 멜랑히튼으로 성경 중심의 신앙이어야 한다는 사상에서 하나가 되었던 분들입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 된다는 사상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하고 실천해야 하는 점이 성경 중심의 사상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2. 믿음 중심

로마서 1장 17절은 루터의 표어였습니다.

모든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믿음으로 성화되며 믿음으로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진행이 되고 믿음으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얻어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믿음의 출발이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님을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해 주셨고, 말씀을 주셨고, 감화 감동하는 은혜로 인하여 이루어진 믿음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 중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3. 은혜 중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이제는 다 이루었다 하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죄악의 담을 허시는 역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하여 우리를 제사장으로 임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의를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루터는 하나님의 은혜로써 그리스도 앞에 누구든지 담대히 나아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이제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아니요,은혜 아래 있는 자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찢어진 휘장 안에서 누구든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만이 신앙의 유일의 대상이며 은혜가 됨을 알고 이탈됨이 없이 말씀과 믿음과 은혜의 푯대를 중심으로 힘차게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확실한 결단

수24:14-18

 

서론

민주사회에 있어서 신앙의 자유는 명백하게 보장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유 선택이 주어진 가운데서도 전체가 만장일치로 다른 종교, 다른 신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위대한 신앙의 결단을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이 결단은 이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결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이처럼 확실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에 근거합니까?

 

1. 하나님만이 참신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위에는 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참신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기기로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만이 참신인 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게 하셨습니다(신4:35).

오늘날 우리는 종교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諸)종교들은 서로 자기에게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참된 것이 어떤 것인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 방황하게 됩니다. 우리가 섬 기는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천하의 모든 젓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시며,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과 같은 능력자가 없고 지혜로운 분이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홀로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2.하나님만이 구원자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열조를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시고, 그속박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만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우리를 죄악 멸망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케 하셨습니다. 예수님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4:12).

 

3.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어떠하다는 것을 친히 목도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을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많은 어려움과 위험들이 부딪혀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크신 능력으로 이적을 행하시면서 그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피로 값주고 사신 성도를 마귀의 시험에서, 역경 가운데서, 위험에서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택한 백성을 끝까지 돌아보십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방법을 우리는 알지 못하나 무한한 능력과 강하신 팔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결론

이념과 사상의 대립이 극심한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신차리지 아니하면 우리가 갖고 있는 참된 신앙 체계를 무너뜨리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확실히 알고 계신 분명한 신앙의 태도를 확립하는 결단이 있어야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사42:5-9

 

서론

종교 개혁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16세기는 매우 종교적인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 종교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종교였고 교리적으로 잘못된 종교입니다. 도덕적 타락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 지적해 보자면 교황들과 신부들과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돈과 여자와 권력에 탐닉하여 부당한 세금을 받아들였고 축접제도를 실시했고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실시하면서 극도로 세속화되어 가고 있었던 점입니다.

교리적 잘못을 지적한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은혜와 믿음의 복음을 왜곡하여 모든 진리와계시는 인간의 이성에 기초하고 이성에 의하여 이해될 수 있다고 하여 이성의 지위를 매우높여서 결국 구원의 방법으로 은혜와 믿음을 강조하는 대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의식, 제도인위적인 노력, 고행, 선행 등을 강조하게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윤리도덕적 타락과 교리에 대하여 루터를 비롯하여 칼빈 등 많은 개혁자들이 복음 진리를 발견하고 종교 개혁의 횃불을 들게 된 것입니다. 개혁자들이 주장한 원리는 ① 오직 성경만, ② 오직 은혜만, ③오직 믿음만, ④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⑤만민 제사장주의였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아니하십니다.

본문 8절에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였고 이사야 48장 11절에도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를 것이다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택한 자녀를 구원하시는 것이 구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어 영광을 받으시는 궁극적 인 목적이며(사42:11) 또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하신 이름이 유대민족에게 걸려 있느니만큼(하나님의 택하신민족인 고로) 이제 바벨론에서 그들을 구원하시어 그 영광을 찾으시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사48:11). 만약 택한 백성이 우상 섬기는 자들에게 멸망을 당하고 만다면 우상에게 영광이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심 이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시는 목적인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신실한 성도들은 다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리기를 원했습니다.

시편의 기자는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시고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을 돌리시기를 고백하였고(시115:1), 천국에서 24장로들도 보좌를 앉으신 이 안에 엎드려 면류관을 던지면서 오직 하나님만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였으며(계4:10-11), 베드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고치자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와서 솔로몬 행각에 모였을 때 베드로는 우리 개인의 권능과 능력으로 걷게한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백성들에게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주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행3:12-16).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도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앉은뱅이된 자를 고쳤을 때 무리들이 신들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내려왔다고 제사하려 할 때에 옷을 찢으면서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니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권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행14:8-18).

 

3. 그럼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은 무엇입니까?

(1) 매사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고(고전10:31),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했습니다(롬14:7-8).

(2) 항상 하나님을 높여야 됩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하였고(빌1:20),세례 요한은 예수님은 성해야 되겠고 자신은 쇠하여야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 즉 불신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헌금이나 봉사 생활이 믿음을 동반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형식적인 물질이나 겉모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비형식적인 믿음을 보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뜻 깊은 종교 개혁 주일, 우리는 지난 날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과연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고 살아왔는지 살펴보고 남은 생은 오직 주께만 영광 돌리는 생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벧전2:9-10

 

서론

오늘은 종교 개혁 기념 주일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만성절에 마틴 루터는 그가 시무하는 위덴베르크 성당 광고판에 95개조의 공개 토론 제목을 내걸었습니다. 그 내용이 다분히 당시 교회의 병폐를 개혁하자는 것이어서 이 일을 계기로 교회에 개혁의 불길이 불기 시작한 것이고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계속 세속화에서 개혁되어 온 것입니다.

본문은 루터가 좋아한 구절 중 한 곳입니다.

 

1.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는 평화의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평화보다는 전쟁이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말하는 평화 추구의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원수를 완전히 없애야 평화가 온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양편에게 군대를 줄이면 평화가 온다고 말합니다. 또 문화를 발전시키고 경제가 발전하면 평화가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볼 때에 사람의 방법이 다 잘못된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방법은 다릅니다.

(1) 사람을 새롭게 하심으로서입니다.

택하신 족속으로 만들어서 새롭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때에 혈통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여서 새로운 족보를 만드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왕이신 그리스도처럼 제사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지성소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왕 같은 제사장이므로 다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이후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한 나라로 만드셨습니다.

거룩한 백성이 모여서 거룩한 나라가 됩니다. 우리의 모임인 교회를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를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의 나라를 만드십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입니다. 무슨 일이나 특전에는 책임이 있습니다. 신분이 높으면 높을수록 책임이 많아집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책임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선전합니까? 내가 걸어온 경로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누가 선전할 것입니까? 이미 하나님의 백성된 사람입니다. 나의 간증으로 선전하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나의 모습, 하나님의 백성된 과정 그리고 오늘의 나의 상태를 선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선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지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된 자의 임무입니다.

 

결론

교회에 각 기관이 있고 많은 사람이 각 기관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교회의 이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둠을 밝히고, 그릇된 생각을 타파하고, 무신론적 사상을 타파하고, 인본주의를 타파하고, 하나님 중심의 바른 사랑의 사회를 심어 나아가는 것이 개혁 교회의 사명입니다.

죄

성 경 활 용

1. 죄의 정의

(1) 말씀을 거역한 것이다.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2) 미련한 자의 생각이다.

(잠24: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3) 불의이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4) 갚기를 더디하는 것이다.

(신23:2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5)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다.

(레24:15)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면 죄를 당할 것이요

(6)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한 것이다.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을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7)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

(신29:18) 너희 중에 남자와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오늘날 그 마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 염려하며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겨서

(8)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대하12:14) 르호보암이 마음을 오로지 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함으로 악을 행하였더라

(9)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호6:7)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10) 이웃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잠14:21)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11)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다.

(약4:17)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12) 불순종이다.

(롬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13) 말이 많은 것이다.

(잠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4) 불법이다.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요일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15)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는 것이다.

(롬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2. 여러 가지 죄의 모습

(1) 숨은 허물

(시19:12) 자가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전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2) 국가적인 죄

(잠14:34)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3) 개인의 죄

(수7:20)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 여차히 행하였나이다.

(4) 자기도 모르는 죄

(시19:12)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은 자 누구리요 나를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5) 드러난 죄

(딤전5: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6) 자백된 죄

(시32:5)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7) 자기만 아는 죄

(시51:3)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3. 모든 사람의 죄됨

(1)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

(롬3:19)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 모든 사람이 범죄함

(왕상8:46)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3) 의인은 하나도 없다.

(시130:3)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시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롬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4)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필요하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은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5)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4. 죄의 길은 어떠한가?

(1) 어두운 길이다.

(잠2: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2)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길이다.

(잠15:9)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3) 불선한 길이다.

(잠16:29)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불선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4) 구부러진 길이다.

(잠2:14-15)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사59: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5)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잠2:18)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6) 험한 길이다.

(잠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롬3:16-17)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7) 넓은 길이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5. 왜 죄를 범하는가?

(1) 정절을 지키지 못하여서

(신24:4) 그 여자가 이미 몸을 더럽혔은즉 그를 내어 보낸 전부가 그를 다시 아내로 취하지 말지니 이 일은 여호와 앞에 가증한 것이라

(2) 미련하기 때문에

(잠14:9)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도 정직한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3) 우상을 섬기므로

(신20: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케 할까 함이니라

(4) 하나님을 배신하여서

(삼상14:33) 무리가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 채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가로되 너희가 무신하게 행하였도다

(5) 시기함으로

(삼상19:4)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6) 악한 소득을 거둠으로

(잠10:16)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7) 눈이 높고, 교만하여,

(잠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8) 분을 냄으로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9) 사람을 외모로 취함으로

(약2:9)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 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6. 죄의 결과는 무엇인가?

(1) 심은 대로 거둔다.

(욥4:8)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잠1: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호10:13)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롬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2) 거짓말 한다.

(잠30:20) 그가 먹고 그 입을 씻음같이 말하기를 내가 악을 행치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평강이 없다.

(사57:20-21)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4) 마음에 고통이 있다.

(렘4:18)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5) 좋은 것을 막는다.

(렘5: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6) 하나님과 분리된다.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7) 영적 소경이 된다.

(요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8) 죄의 종이 된다.

(롬6:20) 너희가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7. 범죄하지 않으려면

(1) 죄를 무서워해야 한다.

(시4: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2) 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5l: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3) 주의 성신이 마음에 거해야 한다.

(시51:ll) 나를 주 앞에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4) 구원의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시51:12) 주의 구원이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5)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출20:20)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6) 이방인과 사귀지 말아야 한다.

(출23: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7) 기도해야 한다.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8) 마음에 말씀을 간직해야 한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9) 깨어 있어야 한다.

(고전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10) 피차 권면해야 한다.

(히3:13)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관련원어풀이

1. @w<a: 아-웬

(1) 텅빔, 공허, 헛되고 공허한 것.

(삼상15:13, 사41:29)

(2) 거짓, 사기, 사악, 불법.

(민23:21, 욥36:21)

(3) 불행, 역경, 재난.

(시55:4, 잠22:8)

(4) 슬픔.

(호9:4)

 

2. !v'a: 아-솸

(1) 의무를 불이행하다, 범죄하다.

(레4:13, 호13:1)

(2) 합당한 형벌을 받다, 죄를 의식하다.

(시34:22, 렘2:3)

(3) 황폐함을 당하다, 파괴하다.

(겔6:6)

 

3. !vea: 아-쉠-

(1) 범죄의, 유죄의.

(창42:21, 삼하14:13)

(2) 범죄를 위해 희생물을 가져오는.

(스10:19)

 

4. ojfeivlw 오페일로-

(1) 빚을 지다, 돈을 빚지다, 부채를 가지다.

(마18:28, 눅7:41)

(2) 빚, 빚진 것.

(마18:30)

 

5. ojfeivlhma 오페일레-마

(1) 정당하거나 법적으로 빚진 것.

(롬4:4)

(2) 죄의 빚, 범죄.

(마6:12)

설교예화자료

죄의 두려움

 

콘스탄틴 황제 때 크리소스톰은 황제의 미움을 샀습니다. 황제는 그를 대단히 증오하여 보복하려고 조신을 불러들여 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유배를, 어떤 이는 재산몰수, 어떤 이는 결박과 투옥을, 어떤 이는 사형에 처하도록 조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맨 나중에 일어난 한 조신은 조용히 말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말씀은 스스로를 기만할 뿐입니다. 만일 크리소스톰을 쫓아낸다고 해도 전 세계가 저의 집이나 마찬가지인즉 아무 효과가 없을 것이오, 그의 소유물을 몰수한다 할지라도 차라리 빈민의 물건을 몰수하는 편이 나을 것이오, 투옥한다 할지라도 그는 그 쇠사슬에 입맞추며 옥에 있는 것을 오히려 행복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특히 사형에 처하는 것은 그를 위하여 천국의 문을 열어 주는 결과가 될 것이니 그가 기뻐할 것밖에는 아무 유익함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만일 울분을 풀려고 하신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옵니다. 신이 알기로는 그는 세상에서 죄밖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죄 없는 자가 누군가

 

영국 런던에서의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연말이 다가오자 장난으로 런던 시내에 있는 저명한 인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각각 띄웠습니다.

"당신의 사생활이 모두 들통이 났습니다.

그 사진을 폭로하기 위해 신문기자들이 귀하의 집을 방문할 것이니 이 해가 가지 전에 런던을 떠나십시오."

그후 편지를 띄운 저명인사 집을 모두 찾아가 봤는데 집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마다 자기의 감추인 생활이 다 드러나면 견딜 수가 없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와서 돌로 치겠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고 말씀하시고는 허리를 굽혀서 땅 위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습니다. 틀림없이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감추인 죄악을 낱낱이 드러내었을 것입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도망치고 여자만 남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6:14)"

 

 

겨자씨의 비유

 

두 사람의 여자가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러 왔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었을 적에 남편을 바꾼 사실을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여자는 여태까지 도덕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무런 죄도 범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두 사람의 여자를 향하여 각자의 생활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한 사람의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커다란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가 큰 것을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여자는 자기에게는 이렇다할 죄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노인은 처음의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도여, 너는 당장 저쪽에 가서 커다란 돌을 하나 찾아오너라, 들 수 있겠거든그것을 들고 오는 것이 좋다‥‥그러나 너는

하고 노인은 다음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자그마한 돌을 많이 들고오는 것이 좋다. "

여자들은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노인의 분부대로 행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큰 돌을 다른 한 사람은 작은 돌을 봉지 속에 잔뜩 넣어서 들고 왔습니다.

노인은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이렇게 해 주기 바란다. 들고 왔던 돌을 다시 들고 가서 아까 있던 자리에 다시 두고 올 것이다. "

여자들은 또 노인의 분부대로 했습니다. 맨 처음 여자는 쉽사리 먼저 자리를 찾아서 돌을두고 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여자는 어디서 그 많은 작은 돌들을 다 주웠는지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었으므로 노인의 분부를 시행하지 못하고 돌봉지를 그대로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래, 그래, 그런 거야."

하고 노인은 말했습니다.

"죄라는 것도 그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니라.

너는 그것을 어디서 가져 왔는가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무거운 돌을 쉽사리 먼저자리에 그대로 도로 갖다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너는 많은 작은 돌을 어디서 주워 왔는지를 기억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죄라는 것도 꼭 그와 같은 것이니라 . 너는 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겸허하게 타인의 비방이나 자기 양심의 가책에 견디어 왔다. 그래서 너는 그 죄로부터 오로지 자유로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하고 노인은 작은 돌을 들고 온 여자를 향하여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잘것없는 죄일지는 모르겠으나 너는 그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이 죄의 나날을 보내기에 버릇이 들었다. 너는 다른 사람의 죄는 이것저것 말하면서 더욱더 깊이 자기의 죄에 빠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

 

 

입을 사용하지 않는다

 

온 세계의 동물이 뱀을 향해 말했습니다. 어느 동물이

"사자는 먹이를 쓰러뜨리고 먹는다. 늑대는 먹이를 찢어 먹는다. 그런데 뱀, 너는 먹이를통채로 삼키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뱀은,

"나는 남을 헐뜯는 자보다 아직 낫다고 생각한다. 혓바닥으로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으니 말이다. "

 

 

자신 때문에 볼 수 없는 하나님

 

「기도의 체험」이란 책을 쓴 한 주교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에게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때 주교는 "내가 보여드릴 수 있어도 당신은 그분을 뵈올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되려면 그분과 같은 사랑과 정과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 까닭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교는

"당신은 복음 성서 중에서 하나님을 가장 감동적으로 느낀 대목이 어디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네, 요한복음 1장에 있는 간음한 여인에 관한 예수님의 인간상입니다. "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교는

"좋습니다. 그러면 이 감격스런 장면 중에서 당신 자신이 누구와 같다고 스스로 생각합니까? 주님이십니까? 혹은 적어도 간음한 여인이 뉘우치고,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어주고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는 주위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간음한 여인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자기 자신의 죄를 깨닫고, 꽁무니를 뺀 노인들 중의 하나입니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늦게까지 남아 있어 돌을 던지려는 청년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까? " 하고 물었습니다.

"예, 나는 물러가지 않고 끝까지 홀로 남아서, 예수님이 용서해 주신 여인을 돌로 치려는 그런 용서할 줄 모르는 인간입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때 주교는

"당신의 그와 같은 눈에 어떻게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신 주님이 보일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 앞에 주님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신 탓이지요. 하나님이 숨으시는 것이 아니라,당신은 당신의 죄 때문에 눈이 가리워져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당신은 스스로를 숨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자신의 가면을 벗을 때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이상한 일이 하나 있다. 사람은 자기의 탓이 아닌 외부에서 일어난 죄악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크게 분개하면서도 자기의 책임하에 있는 자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나 잘못에 대하여서는 분개하지도 않고 싸우려 하지도 않는다.

(B. 파스칼)

 

사(私)는 마음을 좀먹는 도둑이요, 온갖 악의 근본이다.

(이황/ 퇴계집)

 

아무리 말을 꾸며 남을 해쳐도 죄 없는 사람은 더럽히지 못하나니, 바람 앞에서 흩어지는 티끌과 같이 재앙은 도리어 자기를 더럽힌다.

(법구경)

 

오직 인간만이 죄를 범할 능력이 있다. 죄를 범한다-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조화의 파괴를 뜻한다.

(N. 카잔차키스)

 

죄를 알지 못하는 자는 진실로 신의 사랑을 알 수 없으며, 고뇌 없는 자는 깊은 정신적 취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죄악, 고뇌는 인간의 정신적 향상의 요건이다.

(니시다 이쿠타로오/ 선의 연구)

 

사람은 저마다 자기 등에 죄악의 다발을 지고 다닌다.

(J. 플레처/ 아내를 지배하고 가져라)

 

죄에 대한 인식이 구제의 시작이다.

(에피쿠루스/ 단편집)

 

죄를 이해하는 사람은 덕과 기독교를 이해하고, 또한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한다.

(노발리스/ 단편)

 

금시 짜낸 쇠젖은 상하지 않듯, 재에 덮인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어진 죄가 당장에는 안 보이나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법구경)

 

죄를 범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확실히 끈질기게 죄를 범하는 것은 악마의 장난이다.

(초서/ 멜레비우스의 이야기)

 

사람은 자신의 허약함이나 허 영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만큼 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다.

(J. 라 브뤼예르)

 

어려서부터 범죄를 배우면, 그것은 성품의 일부가 된다.

(오비디우스/ 여걸)

 

우리가 타인에게서 죄라 부르는 것은, 우리에 대한 실험이다.

(에머슨/ 수필집)

 

모든 범죄 행위는, 그 속에 천벌과 사라지지 않는 고통의 씨를 지닌다.

(롱펠로우/ 판도라의 가면)

 

범죄의 전염은 질병의 전염과 같다.

(나폴레옹/ 나폴레옹 어록)

 

범죄 연구는 자기 자신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H. 밀러/ 공기조절 장치가 된 악몽)

 

인간은 그 존재의 모든 요소에 있어서 반드시 죄를 범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이 그 인격의 중심부에 있어서 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P. 틸리히/ 성서적 종교와 궁극적 실재의 탐구)

 

죄는 언제나 모습을 드러내고 온다. 우리 감각으로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근원 까지 이어져 있으니 잡아 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F. 카프카/ 죄 고뇌 · 희망 · 진실의 길에 대한 고찰)

 

죄악은 매일 새로운 특기를 발명하여 특허를 얻는다.

(E.P. 휘플)

 

정숙하지 않는 것은 여자의 때라 하고, 인색한 것은 시자(施者)의 때라 하고, 이 세상의 모든 악한 행실은 이승이나 또 저승의 때라 한다.

(법구경)

 

죄는 인간성의 황폐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일시적으로 우리는 죄에 의해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인간성은 황폐해지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숨겨진 죄에는 하느님이 증인으로 계신다.

(볼테르)

 

십계명을 어기고 나면 나머지 죄는 대단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마크 트웨인)

 

사람을 쉽게 믿는 것은 경박스러움의 표시이며 죄를 짓는 것은 자학행위다.

(구약성서 집회서)

 

일찍이 자기가 저지른 죄업을 이제는 선업으로 뒤엎는 사람은 흡사 구름을 뚫고 나선 달과도 같이 이 누리를 비친다.

(長老 經)

 

나의 죄 있는 몸의 억천만 개의 털구멍에/ 죄라는 죄가 가시같이 박히어도/ 그야 솜털만치도 아프지는 않으려니

(김수영/ 기도)

 

우리는 죄가 있다고밖에는 도리가 없다. 우리가 무죄라면 신은 생각할 수 없다.

(A. 머클리시/ 제이비)

 

작은 죄는 처벌당하고, 큰 죄는 승리로써 축하받는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죄는 취소될 수 없다. 용서될 뿐이다.

(I. 스트라빈스키/ 이고 스트라민스키와의 대화)

 

나는 어딘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다. / 한 송이 빨간 장미꽃인 듯 한 마리 흰 비둘기인 듯 미풍이 지나가는 오월의 아침의 이슬밭인 듯// 밝은 햇볕인 듯-내 생명이 수정알처 럼 트일/ 무슨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가만히 생각한다. / 어딘가 내 가슴속 한편에 갇혀 있는 수인(囚人)을-/ 먼 태고의 어느 매부터 낮도 밤도 없는/ 혼탁한 심장의 창살 그늘에 7인의 수면자처럼/ 지쳐쓰러져 있는 한 사람 수인을.

(김달진/ 수인)

 

나는 징역살이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범죄인을 "형이 확정된" 범죄인을 만날 수 있었다되풀이해서 말하지만, 그것은 오래 된 학교 같았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자기 자신을 범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겉보기에 그들은 무서운 잔인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허세를 부르는" 것은 좀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나 신참자들뿐이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모두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은 음울하고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자기의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단 한번도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의 범죄에 대해서는 입 밖에 소리를 내어 말할 수도 얼었다. 어쩌다 간혹 누군가가 도전하듯이 자랑스럽게자기 이야기를 떠벌리는 일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면 "수인 전부"가 모두 합세하여 그 떠버리를 짓눌러 버리곤 했다. 그런 것은 말해서는 안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솔직이 말해서,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기 마음을 정화시키고 단련시키는 그 기나긴 정신적인 고통을 자기 내부 속에서 참아 낼 수는 없었던 것 같았다.

(F.M. 도스토예프스키/ 작가 일기)

 

사람 사는 사바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내 귀 기울이고/ 시야를 빼앗긴 수인(囚人)인 나에겐/ 가슴에 솟구치는 푸른 하늘과/ 감옥의 메마른 벽돌담만이 보일 뿐

(G. 아폴리네르/ 옥중에서)

 

아아, 거룩한 아사셀의 염소여/ 그대가 지고가는 그 짐은/ 정녕 내가 져야 할 죄짐/그대 앞에 놓인 그 길은/ 정녕 내가 가야 할 죽음의 미로인데/그대 나를 지고 가누나/ 영문 밖을가누나 빈들로 나아 가누나/ 거기서 당신이 대신 죽으러/ 거기서 날 철저히 죽이러‥‥// 아사셀이여, 나의 가련한 님이여 !

(김성영/ 아사셀의 염소)

 

아아 세상이 온통 하얀데/ 우리들의 발자욱만/ 상처로 남아서/ 죄가 되는구나.

(김덕환/ 우리들의 겨울)

 

나 지금 여기/ 심장이 터지는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는 것은/ 죄로 타고난 몸뚱이라서/죽어질 수도 없는 저주입니까/ 아니면,/ 차마 버릴 수 없어 붙들고 계시는/ 당신의 성충입니까.

(오병학/ 참회송)

 

원조의 넋이 깃들었다/ 제마다 가슴은 부풀어 태연하고/ 무화과 잎새 한 잎 가릴 배 없는/ 20세기의 에덴

(조우실/ 이브의 동산)

 

외로운 죄/ 사랑한 죄/ 거짓 증언한 죄/ 생명을 소홀히 한 죄/ 상처뿐인 여자를/ 누군가 어루만지는/ 손길이 있습니까.

(왕수영/ 이 여자를)

 

너희가 모두 죄인이로되/ 고통을 모르는 자는 멀리 있고/고통을 아는 이는 내 둘레에 머무는구나

(김남조/ 가시관과 보혈)

 

스승의 가르침 중 가장 당혹하게 만드는, 또/ 신나는 가르침의 하나:// 하느님께서는 죄인들보다 죄인들과 더/ 가까우시다. //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인즉 . // 하늘에 계신 하느님 께서 각 사람을 줄로 매어/ 붙잡고 계시다. 네가 죄를 지을 때 너는 그 줄을/ 자른다.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매듭을 묶어 다시 줄을 매신다. 이렇게 해서 너를 그분께 조금 더/ 가까이 잡아당기신다. 거듭거듭 너의 죄는 그 줄을 자르게 되고, 매듭이 하나씩 늘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계속 너를 더더욱 가깝게/ 잡아당기신다.

(앤소니 드 멜로/ 죄)

 

모습이야 고웁지/ 채색 무되야 고웁지./ 세포 아리따운 미물(微物)의 균/ 곁보고 지나 면야 죄 하나도 없지.// 가라지 비유가 귀에 설익은/ 나의 안은/ 가시밭./ 헤치고 솟은 독 이.//구멍에, 목구멍에 거미줄 쳐도/ 나 홀로 키워가는/ 뿌리 없는 독버섯./ 죽음보다 가까 운 죄의 전신.

(석용원/ 毒이)

 

성령이여,/ 세찬 빗줄기처럼 내려서/ 나의 죄인을 씻어 주시고/ 늘상 죄와 함께 걸어가는/ 나의 혼을 굳세게 해주십시오.

(노영란/ 성령의 빛줄기여)

 

그때/ 십자가 지고 비틀거리며/ 그 눈물의 길을 날 위해 가시던,/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 당신의 가슴에 가죽채찍 휘감기어/ 살점이 한 점 한 점 떨어져 나갈 때/내가 마음으로 지었던 죄가 사함 받았나이다. / 당신의 머리 위에 가시관이 씌어지고/ 피와 땀이 방울방울 맺혀져 흘러내릴 때/ 내가 머리로 지은 죄가 사함받았나이다. /당신의 손바닥에 굵은 대못 박히어/ 그 부드러운 손 찢어지고 또 찢어질 때/ 내가 손으로 지은 죄가 용서받았나이다. / 당신의 양 발에 못이 박히어/ 검붉은 피 떨어져 대지를 물들일 때/ 내가 크리스찬으로/ 가서는 아니될 곳을 다님으로/ 내 발이 지은 죄를 씻음을 받았나이다. / 연하디 연한 그 허리/ 포악한 로마군병 창에 찔려/ 물과 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쏟으실 때,/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로 지은 나의 죄가/ 깨끗함을 받았나이다.

(이재천/ 쿠미오리 · 6)

 

그리고 나의 참을 길 없는 그리움은 어두운 고뇌로 변해 버렸다. /나는 죄의 늪 속에 빠져 무의미하게 멸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팀머만스/ 잃었던 아들)

 

사람들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사람에게서도/ 나는 수많은 아름다운 점을 찾아보고/사람들이 신성하다고 칭찬하는 사람에게도/ 나는 수많은 죄와 허물을 찾아본다. / 하여 나는 그 양자 사이에 선긋기를 망설이는 데,/ 하나님도 역시 선을 긋지 않으신다.

(밀러/ 사람들이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스파이 혐의를 받은/ 무고한 죄인은 당황하여/ 그 태의 하나하나가/ 사실을 고발하고/ 임석 경관들 사이에/ 그는 까무라쳐 넘어진다.

(J. 콕토/ 한잠의 넋두리)

 

나는 2천2백23번/ 죄인의 옷을 걸치고/ 가슴에 패를 차고/ 이름 높은 서대문 형무소/ 제3동 62호실/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네가 광섭이냐"고/ 혼잣말로 물어 보았다// 3년하고도 8개월/ 1천3백 여일/ 그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나는 시간을 헤이고 손꼽으면서/ 똥통과 세수대야와 걸레/ 젓가락과 양재기와 더불어/ 추기나는 어두운 방/ 널판 위에서 살아왔다.

(김광섭/ 죄)

 

뒷날에 말한다. 유다는 거꾸로 땅바닥에 떨어져/ 몸뚱이 가운데가 갈라졌고 창자가 터져 나왔다고/ 길을 잃은 것은 나 혼자더냐, 그들도 모두/ 그 사람을 버리고 도당치지 않았던가// 더구나 은돈 서른 닢은 제사장에게 돌려 주었다/ 그 돈으로 그들은 토기장이의 밭을 사지 않았는가/ 그 피의 밭에 나그네들이 장사되지 않았던가/ 나는 아버지가 그 사람에게 준 잔을 날랐을 뿐-// 때문에 그 사람을 용서해 주리라 믿지만/ 용서되어도 살아있을 수 없는 죄가 있게 마련이다.

(나카기리 마사오/ 토기장이의 밭)

 

나는 오늘 십자가를 지나, 죄로 쌓은 고층 건물이 즐비한 거리를 배회하였다.

(석용원/ 광야에서)

 

갈라진 강토에선 오늘도 피가 흐른다/ 할미꽃보다 더 짙은 피가 흐른다/ 어느 문서에 있는 죄목이기에-

(노천명/ 조국은 피를 흘린다)

 

겨울 숲을 바라보며, 벗어버린 나무들을 보며, 나는/ 이곳에서 인간이기 때문에/ 한 벌의 죄를 더 얻는다/ 한 벌의 죄를 더 겹쳐 입고/ 겨울의 들판에 선 나는/ 종일 죄, 죄, 죄하며 내리는/ 눈보라 속에 놓인다.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

(이성부/ 벼)

 

창궐하는 역병(疫病)/ 죄에서 조차/ 푸른/ 미나리 내음 난다/ 긴 봄날엔-

(허영자/ 긴 봄날)

 

모두 부역죄로 즉결처분이라는 소문에/ 이 할애비도 생목숨 잃느니

(박용두/ 할아버지 이야기)

 

내게 죄가 있다면/ 세상을 버린 죄밖에 더 있나요/날더러 미쳤다고 침 뱉고/돌 던지는 사람도 성한 사람들은 아니지요

(박용주/ 정님이)

 

내버려야 할 것은/ 우리가 진정 내버릴 것은/ 우리 가슴에 곪아버린 죄의 파편

(이승록/ 목포)

 

더러워지지 않는 죄를 타고나/ 하늘이 빈틈없이 메워진다.

(최명희/ 첫 날의 기도원)

 

눈물이며는/ 눈물에 감아 빗은 머리채며는/ 잘 비며 적시는 감송향유며는/ 아아 탕약보다졸아든 평생의 죄

(김남조/ 막달라 마리아)

 

자신의 양심이 금하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양심이 폭로하는 바를 스스로 부인하는 사람 역시 죄인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제 몸의 가장 단단한 곳에/ 피리구멍을 내고/ 가을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지은 죄 벗으려고/ 칼날되어 불렀습니다.

(허소라/ 11월의 노래)

 

거미줄로 얽힌 죄많음을/ 후련히 쏟아버린/ 따스한 눈물

(이해인/ 마리아)

 

일찍이 야훼께/ 예배드리지 못한 죄가/ 이리도 크고 무섭더란 말이냐.

(황금찬/ 깊은 강-흑인 영가)

 

주님께서 주신 사랑으로/내 이웃과/또 먼 곳의 백성을/사랑하게 하여 주시고/미워하는 일 시기하는 마음을/ 죄악으로 알고/ 버리도록 하여 주십시오.

(황금찬/ 기도)

 

전생에 지은 죄를/ 속죄하러 가야 한다.

(원용문/ 목욕탕에서)

 

원죄가 있다 했지요. 어떤 이는/ 그 죄 접시 위에 담아서 오면/ 용서의 불로 사뤄주마 했 지요.

(정동주/ 신무가-2 ·고요했던 날들)

 

어찌할꺼나 사람아. 죄라면 애오라지/ 조선 흙으로 조선의 꿈을 빚어/ 맨살로 지켜온 그 도타운 가난뿐.

(정동주/ 신무가-3 · 수난)

 

내가 그들에게 들켰다/ 자동차 수리점에서 개개비울음을 들은 죄/ 그게 죄다/ 보도블록 틈서리 속 실눈빛아/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당신 눈이 아름답다.

(장석남/ 얼굴을 닫고)

 

물기 없는 대지에, 사람이여/ 눈물 흘려라/ 너와 네 아비의 죄를 위하여

(김소엽/ 용서를 빌 때)

 

나의 별에는/피가묻어 있다//죄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하늘의 물이므로

(정호승/ 새벽 편지)

 

보라, 죄지은 날의/ 저 눈부신 하늘/ 소름돋는‥‥푸름!

(전동균/ 제의)

 

어디에 언제나/ 새 모습으로/ 새 바램으로/ 오고 계시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죄악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빈손으로 나아감은 돌아올 날을 믿기 때문입니다.

(정연덕/ 지금도 오고 계시는 당신)

 

당신네들은 우리를 생으로 인도하셨고/ 당신네들은 불쌍한 자로 죄를 짓게 하셨으며/ 그리고 슬픔 속에 내맡기셨나니/ 이 세상에서는 죄란 모두 값을 치르게 마련입니다.

(괴테/ 탄금 시인 · 1)

 

내가 던진 마음 하나 별이 되어 사라지면/ 아직도 나에게는/ 그리움의 죄는 남아 있다.

(정호승/ 당신에게)

 

너 무슨 그리움의 죄가 그리 많아서/ 원산 덕장 찬바람 속에 매달려 있었느냐

(정호승/ 북한산 명태에게)

 

모두들 외면하고/ 침 뱉고 손가락질하는/ 가난한 땅의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과 어울리며/ 뜨겁게 몸으로 사랑한 죄로/ 나 여기 섰으니

(서덕석/ 나 여기 섰으니)

 

하늘나라의 영광을 잊은 죄로 해서/ 길이 지어진 고민의 멍에로부터 백조의/ 목을 놓아라, 땅은 그 날개를 놓지 않으리라.

(말라르메/ 백조)

 

아/ 마른 죄더미 위에/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표현한 침묵

(이봉래/ 수직의 침묵)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나는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 이 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 모르고/ 식민지의 곤충들이 24시간을/ 자기의 다리처럼 걸어 다닌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

(김수영/ 현대식 교략)

 

여기 저도 모르게 저지른 악이 있고/ 남이 나로 인하여 지은 죄가 있을 겁니다.

(노천명/ 아름다운 새벽을)

 

그대들의 영혼이 바람 속을 헤매어 다닐 때면,/ 홀로, 지켜 주는 이도 없는 그대들은 누구에겐가 죄를 짓는다. 그러므로 또한 그대들 자신에게도./그리하여 이미 지은 그 죄 때문에 그대들은 천국의 문 앞에서 아무도 쳐다봐 주는 이 없이 한동안 문을 두드리고 그길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 그리고 이 역시 그러하리라, 비록 이 말이 그대들 가슴에 무겁게 드리울지라도-/ 살해당한 자, 살해당함에 책임 없지 않으며/ 도둑맞은 자, 자기의 도둑맞음에 잘못 엄지 않음을,/ 정의로운 자,사악한 자의 행위에 전혀 결백할 수 없으며/ 정직한 자, 중죄인의 행위 앞에서 완전 결백할 수 없음을./ 그렇다. 죄인이란 때로 피해자의 희생물이다. /그리하여 아직도 때로 죄인이란 죄 없는 자의 짐을 지고 가는 자인 것을/ 그대들은 결코 부정한 자와 정의로운 자를, 사악한 자와 선한 자를 가를 수는 없다.

(K. 지브란/ 예언자)

 

벌하지 마시옵소서/ 진실로 그들은 벌하지 마시옵소서/ 당신 앞에 내가 잘못한 일에 비 하면/ 그들 내 앞에서 잘못했음이 너무도 적사옵니다/ 주 그리스도 내 넋의 아버지신 이여// 어찌 온전키를 바라리까마는/ 산처럼 높아진 잘못 또 잘못이었사오매 핍박과 치욕과 좁혀진 천지가 모두 나로 인하여 죄됨인 줄 아옵나이다.

(김남조/ 죄)

 

내야/ 예쁜 죄 하나 못 지었구나/ 저승과 이승, 몇 겁 훗세상에까지/ 못다 갚을 죄업을/ 꼭 둘이서 나눌/사람 하나/작정도 했건마는// 빗물에 손을 씻는다/ 죄 하나라도 운명 없이는/ 이루지 못함을

(김남조/ 비)

 

 

설 교 노 트

 

기독교의 죄관

요3:1-12

 

서론

오늘날 기독교와 같이 죄에 대한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종교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과 사명은 인생의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고 사망에서 해방하사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요, 사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기독교의 죄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죄의 정의

성경에 죄라는 말이 734회 나옵니다. 구약에 522회, 신약에 211회 나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 동사는 "하아라아"이고, 명사는 "핫타스"라고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동사로 "할말타노"라 하고 명사로 "하말티아"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갔다는 뜻이요, 또는 단창이 목표물에서 빗나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 요리문답 제14문에 "죄는 하나님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어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죄는

(1) 하나님의 요구 의지를 만족하게 하지 못한 것이 죄요,

(2)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지 못한 것이 죄요,

(3)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불순중과 불법과 불신앙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2. 죄의 종류에 대해서

오늘 인간 사회에는 여러 가지 죄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게 구분하여 보면

(1) 법률상의 죄가 있습니다. 그 나라에서 제정해 놓은 헌법에서 빗나가는 모든 행위는 법률상으로 죄가 됩니다.

(2) 도덕상 죄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률에서 벗어난 모든 행동은 도덕상 죄가 됩니다.

(3) 양심상 죄가 있습니다. 이는 자기 양심의 율을 어기고 양심의 가책되는 모든 행위를 죄라고 합니다.

(4) 종교상의 죄가 있습니다. 이는 종교적 계율을 어기는 모든 행위는 종교상의 죄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3. 성경적 죄관

기독교의 죄관은 성경에 근거한 죄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 죄라고 하였고(요3:18),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죄라고 하였으며(삼상15:22), 불법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요3:4). 그리고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아니하는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약4:17).

 

4. 죄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

이러한 죄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인간에게 무질서와 혼돈을 가져다 줍니다.

(2) 인간들에게 불안과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3) 인간들에게 비참한 사망을 가져다 줍니다.

(4) 인간들의 타락과 부패를 가져다 줌니다.

이러한 비참한 죄가 우리 인간에게 접촉해오는 과정은 죄의 근원은 마귀이고, 죄의 방편은 뱀이고, 죄를 접촉한 이는 여자 하와라고 했습니다.

 

결론

이러한 죄문제를 해결하고 무질서에서 질서를, 불안에서 평안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패에서 부활과 영생을 이르는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1)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입니다(고전1:18).

(2) 죄를 회개하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저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을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들의 죄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재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타인에게 죄를 지었을 때

민5:5-15

 

서론

사람이 살다보면 하나님께도 죄를 짓고 사람에게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사람에게 지은 죄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에게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도 죄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재산의 피해를 준 것이나 명예를 훼손한 것, 그 외에도 많은 죄가 있을 줄로 압니다. 이 모든 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것입니다.

 

1. 죄를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일단 죄를 지으면 죄를 생각나게 하는 소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즉, 지난날의 죄악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자기가 지은 죄가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죄를 짓고도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조차도 모른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회개하는 지름길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 차니라고 할 때는 회개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2.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본문 7절에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알고 그 죄를 자복한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죄를 슬퍼하면서 공개적으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모든 죄를 틸어 놓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자백하는 그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요,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며 동정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자복은 자신의 죄에 대한 뼈저린 인식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3. 죄값을 갚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 "그 죄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 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돌려 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기 피해를 당한 자들에게 물어야 할 배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못하였음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뉘우치고 애통하는 것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요, 고치는 결단성이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말로만 회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 회개는 고치고 배상해 주고 상처를 싸매주는 것입니다.

 

결론

타인에게나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먼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리고 죄를 솔직하게 자백하고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적절한 보상을 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종기난 곳에 근이 빠지지 아니한 것처럼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죄값은 죄를 범한 자가

신24:16

 

서론

사람은 개개인이 독립된 인격체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행동의 책임도 개개인 스스로가 져야 합니다. 아버지가 죄를 지었는데 자식까지 죽임을 당하는 연대 처형은 부당한 것입니다.

성경은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음으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은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31:29-30)"고 하였습니다.

 

1. 자식의 죄는 아비가 질 수 없습니다.

본문 16절에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음을 당치 않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식이 죄를 지으면 아비가 그 자식의 죄 때문에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부자지간이라 할지라도 두 사람은 각기 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혈통은 각기 같아도 인격은 완전히 객체입니다. 그리고 행동의 책임도 각자 질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가 되었기 때문에 도의적인 책임은 있으나 형사적인 책임은 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죄는 반드시 자식이 져야합니다.

 

2. 아비의 죄는 자식이 질 수 없습니다.

본문 16절에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부자관계는 친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비가 자식을 근본적으로 바로되게 할 능력이 없고 자식이 아비를 바로되게 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기의 죄는 각자가 지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구약 시대 요아스와 아들 아마사가 왕이 되어 자기 아버지를 암살한 범인들을 처형할 때에 그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고 살려 주었습니다.

"나라가 그 손에 굳게 서매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으나 왕을 죽인 자의 자녀들을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인하여 아비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비로 인하여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사람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니라(왕하12:5-6, 신24:1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자가 조심해야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자기의 죄값은 자기가 받아야 합니다.

본문 16절에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참다운 법은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그 죄값을 자기 홀로 지도록 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개개인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4)"고 하였고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비의 죄를 담당치 않겠느뇨 하는도다 아들이 법과 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정녕 살려니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19-20)"고 하였습니다.

 

결론

사람의 인격은 객체이기 때문에 자기가 지은 죄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전가할 수 없고, 부모가 자식에게 전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자기의 죄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하려고 하였으니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죄와 벌

신25:1-3

 

서론

사람이 죄를 안지으면 좋은 줄 알면서도 어쩌다가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일이 많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음은 죄는 죄간을 반드시 요구하기 때문에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벌을 받지 아니 하려면 죄를 짓지말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서 벌받지 아니하려고 하면 그것은 언어 도단입니다.

 

1. 공정한 재판이 필요합니다.

본문 1절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재판의 부정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판에 부정이 개입된다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재판장이 잘못하면 주객이 전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되면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벌을 받지 아니하고 벌을 받지 아니해야 할 사람이 벌을 받게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사회악의 원인이며 부조리의 근절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2. 정확한 상벌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거든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적절한 벌을 정확하게 주어야 합니다.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가벼운 벌을 내린다든지 반대로 너무 무거운 벌을 가하여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공정하게 징벌함이 율법의 정신인 것입니다.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는 것이 원칙이고 잘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는 것이 원칙인 것입니다. 그리고 벌을 주되 죄질에 따라 벌을 주어야 합니다.

 

3. 과한 벌을 금해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매를 때리는 것은 죄에 대한 심판을 뜻함과 동시에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연단의 방편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고 하였습니다. 징계는 지은 죄에 대한 벌이고 회개는 촉구하는 방편이며 회개를 요구하시는 것은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은혜를 주시는 과정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태형을 가할 때 사십에 하나를 감하여 하기도 하였습니다(고후11:24).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그와 같은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법으로 정한 것 외에 가혹한 행위로 벌을 주면 이는 감정에 의하여 법이 집행되는 때문에 법의 공정성을 잃은 처사이므로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으로 정한 대로만 해야 합니다.

 

결론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은 것이 당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벌을받아도 공정한 재판 과정을 거쳐서 그 죄의 경중 여하에 따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법을 벗어난 형벌도 있을 수 없고 감형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것만큼 정확한 벌을 받는 것이 법의 정신이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내 죄과를 알자

시51:1-19

 

서론

본 시는 다윗의 회개 시입니다. 다윗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우리아를전쟁터에 내보내어 죽게 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지은 시입니다(삼하12:1-13). 후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을 가르켜 성군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그가 결코 죄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고 선지자 나단의 직언에 온전히 회개를 하였기때문입니다. 그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진액이 마르도록 통회하며 근심하며 살아갔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하나님 앞에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시49:20)"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과를 바로 알았습니다.

다윗은 살인죄와 간음죄와 위선의 죄를 바로 알았습니다.

그는 깊이 기도하는 가운데 아래와 같은 큰 진리를 깨달아 알았습니다.

 

1. 모든 죄는 하나님의 아신 바 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14절)",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다는 말은 자기의 은밀한 죄를 주께서 보시고, 듣고,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시94:9)"를 바로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서 성신을 거두고 주 앞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나를 주 앞에 쫓아내시지 마시고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1절)"

주께서 성신을 거두어 가시면 그 인생은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성경 역사에서 삼손(삿16:1-31)과 유다의 말로 (행1:18)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성신을 거두어 가신 후 빈껍데기 인생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고 이러저리 바람에 날려 다니다가 불에 태워 버림을 당하고야 말게 되는 것입니다(시1:4-6).

 

3.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 이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15-17절)"

하나님 께서는 악인의 찬송을 받지 않으시며 (15절), 악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며(16절),오직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의 제사를 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17절).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나의 죄과를 아십시다. 나의 문제점을 인정합시다. 나의 결점을 인정합시다. 나의 허물과 실수를 인정합시다. 이것이 신앙의 초보 단계입니다. 이것이 은총의 첫 단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비결입니다. 대저 나의 죄과를 아는 사람마다 여호와의 복을 받으며 성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죄의 기원과 본질

창3:1-21

 

서론

첫 사람 아담은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적극적인 시험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이자 대표자로서 범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출생하는 모든 인류에게 아담의 범죄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공평한 진노와 형벌을 받아 마땅히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1. 죄의 기원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 종하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는 마음껏 먹으라고 하시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에게 시련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담을 사랑하셔서 은혜를 내리신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보다 깊은 교제를 하여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하고 풍성한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법은 복된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아담은 능히 이 법을 지킬 만한 자유 의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과 의와 거룩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떨어지거나 상함이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선과 악을 분별하고 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는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살지게 할 만한 많은 실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결코 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간교한 사탄은 아담보다는 약한 하와를 유혹하였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에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만지지 말라", "죽을까 하노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 말을 보태기도 하고 빼기도 하였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뱀이 그 과실을 먹어도 결코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하니까 따서 먹고 아담도 먹게 하였습니다. 아담은 인류 시조로서 가장으로서의 특권을 저버리고 하와를 따라하였습니다. 결국 인류의 시조는 지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는 교만과, 감정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말을 더 좋아하고 순종보다 방종을 사랑하고, 의지적으로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2. 원죄와 본죄

원죄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하므로 범죄한 것이 그를 대표로 한 모든 인류에게 미친 죄책과 영적 오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전적으로 부패하여 영적 선이 조금도 없고, 자기 힘으로 율법을 순종하거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롬3:10-12). 본죄라는 것은 사람의 타고난 죄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즉 십계명을 범하는 죄와 마음과 행동의 모든 죄를 말합니다.

 

3. 죄의 결과로 받는 형벌

인류의 시조가 범죄하므로 현세와 내세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현세에서 여자는 해산의 수고와 남편의 지배를 받았고 남자는 식물을 얻기 위하여 수고하고, 남녀가 모두 육신이 죽는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공통적으로 받는 형벌입니다. 또 그 죄의 영향으로 각종의 병을 앓기도 하고 많은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내세에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범죄한 자들은 모두 불못에 던지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계20:12-15)."

 

결론

이처럼 우리 인간은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었지만, 우리를 그래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그의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그 보혈의 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장에 감사하며 다시는 죄의 길로 들어서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죄와 싸움에서의 승리

롬6:15-23

 

서론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죄와 가까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죄는 무엇이며,어떻게 죄에 대해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죄란 무엇입니까?

죄란 인간이 자유 의지로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근본 목적은 인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인간이 최초로 받은 유혹은 사탄의 유혹이었습니다(창3:5). 이는 인간 자신이 영광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엄청난 거짓말이었습니다. 인간은 이 유혹에 넘어가서 최초로 범죄한 것입니다. 죄의 발원 역시 사탄이 영광받는 하나님이 되려고 자기의 보좌를 하나님의 보좌보다 높이려고 시도한 데 있었습니다(사14:12-15).

(2)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죄란 그 동기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행동의 결과에서 보다 한 행동의 동기에서죄의 뿌리를 찾게 됩니다. 살인의 뿌리는 미움에 있습니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요일3:15)"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의 근본 뿌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최고의 명령(마22:34-40)에 불순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을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딤후3:2)"라고 하여 인간의 최대의 우상을 지적하였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는 수단으로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며(딤전6:10, 딤후3:4)사는 것이 죄의 뿌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죄요, 하나님을 사랑함이 없이 행하는 것이 죄입니다.

 

2. 어떻게 죄와 싸워 승리하게 됩니까?

본문에서 우리의 "죄의 종(17절)"도 될 수 있고, "순종의 종(16절)"도 될 수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1) 죄의 종은 누구입니까?

자신의 "지체를 부정과 불법(19절)"에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죄의 장인 사명을 받게 됩니다(23절). 곧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하게 됩니다. 우리는 옛 사람 곧 본능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동물같이 살려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제 죄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2) 순종의 종은 누구입니까?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은 마음으로 순종(17절)"하는 사람입니다. 본능에 따라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며,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교훈', 즉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죄가 자신을 주관치 못하도록 하는 사람입니다(롬6:11). 이런 사람은 죄를 알게 됩니다(시51:3-5, 말3:7). 또한 죄의 두려운 결과도 알게 됩니다(롬6:23). 따라서 죄를 혹시 범할 때에는 즉시 비애와 근심에 차서 회개합니다(눅22:61-62). 늘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지고(렘31:19) 죄에서 돌이킵니다(겔33:11, 행26:18-20). 이러므로 그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었습니다(롬8:1-2).

우리는 죄를 멀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생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욕망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즉시 돌이켜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더 나아가서 바로 "죄에게서 해방(22절)"되게 합니다. 그리고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어 영생을 누리게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우리가(롬6:2) 죄에서 종노릇(롬6:6)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살아야 합니다(롬6:11).

 

결론

우리는 일생 동안에서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것은 선한 싸움입니다. 이 선한 싸움에 승리한 자만이 상한 심령(시34:18, 51:17)을 경험하게 되고, 회개의 눈물을 경험하게 됩니다(시6:6). 이것이야말로 죄와 싸움에서 승리한 표식입니다.

주 인

성 경 활 용

1. 주인의 종류

(1) 믿는 상전

(딤전6:2)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2) 무자비한 주인

(삼상30:13)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3) 난폭한 주인

(출21:20) 사람이 매로 그 남종이나 여종을 쳐서 당장에 죽으면 반드시 형벌을 받으려니와

(4) 불의한 주인

(렘22:13)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찐저

 

2. 주인은 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1)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

(몬1:16)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2) 학대해서는 안 된다.

(신24: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의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 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3) 정당한 삯을 주어야 한다.

(롬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4) 하나님의 도를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한다.

(창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5) 품삯의 날을 넘기면 안 된다.

(레19:13)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약5:4) 너회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6) 공갈하지 말아야 한다.

(엡6:9)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7) 제 칠일은 쉬게 해야 한다.

(신5:14)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인즉‥‥아무 일도 하지 말고

관련원어풀이

1. @/da; 아-돈-

사령관, 상전, 주인, 주 하나님.

(창18:12, 삿19:11)

 

2. l['B' 바알

(1) 주, 주인, 소유자.

(출21:28, 삿19:22)

(2) 성주

(삿9:2, 삼하21:12)

(3) 주인.

(창14:13, 느6:12)

(4) 어떤 것의 소유자, 어떤 것을 가진 곳, 기초된 곳

(삿8:3, 삼하5:20)

 

3. despovth" 데스포테스

(1) 주, 종의 주인.

(딤전6:1, 딛2:9)

(2) 주님, 통치자.

(눅2:29, 계6:10)

 

4. kuvrio" 큐리오스

(1) 주인, 주, 소유자.

(마20:8, 엡6:5)

(2) 메시아.

(마3:3, 롬10:13)

(3) 예수님이 자신을 주라고 부르는 경우.

(마21:3, 막11:3)

 

5. pandoceuv" 판도큐-스

주막집 주인, 하숙 주인.

(눅10:35)

설교예화자료

세 경영자

 

두 사람의 공동 경영자가 있었습니다. 빈 손으로 출발하여 작은 임대빌딩을 만들고 현재는 누구나 인정하는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경험은 없었지만 대단히 근면했기 때문에 장사는 점점 번창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은 놀랍게 성장한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공동 경영자 사이에는 아무런 계약도 없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건강할 때는 상관없지만, 이세들의 대(代)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계약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계약이 끝나자 이 두 사람은 매사에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먼저 계약을 할 때에도 의견 충돌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공장의 책임자와 본사의 책임자 따위의 사소한 것까지 규정하려고 하였으므로 서로 상대가 자기보다 유리한 조건을 취하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이 시작되어서 성공하기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만큼 두 사람은 함께 나에게 의논하러 왔습니다. 이것은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틀리다는 문제가 아닌 만큼, 나로서는 간단한 결론이 힘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영업, 한 사람은 생산으로 나누어, 서로 내가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 회사는 없었을 것이라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나는 자신은 없었지만,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다투기 전까지는 비즈니스는 아주 잘되어 갔다. 이제 와서 두 사람이 반목하여 회사가 무너진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라고 말하고 이대로는 서로 순조롭게 비즈니스를 계속해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무언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탈무드를 펼쳐 보고, 다음의 간단한 말을 찾아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그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하나님에 의해서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성장함에 따라 그 아이에게는 또 한사람의 생명을 주는 자가 더해집니다. 그것은 교사입니다.

내가,

"당신 회사의 경영자는 누구인가?"라고 묻자, 두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도 경영진에 참가시키면 어떨까? 어떻든 전우주에 하나님은 참여하고 계시다. 서로 자기 쪽이 잘했다고 주장하지 말고 모든 우주의 활동은 하나님의 행위이므로, 하나님은 그 중에 넣어도 되지 않겠는가?"

그때까지는 두 사람이 대표자여서, 이 회사에서는 사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장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의 회사인 것은 물론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회사이다. 당신들은 유태인을 위해 일하고, 당신들의 회사는 나라를 위해서도

일하고 있으므로 자기의 것이라는 의식을 너무 강하게 갖지 말고, 자기들은 하나님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쪽이 사장이 된다는 것은 하찮은 일이라고 깨닫게 될 것이다. 영업 담당은 영업을 하고 공장 책임자는 공장을 맡도록 하면 된다"고 조언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이 회사는 아주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선 사업을 위해 몇 %의 돈을 쪼개고,그것이 하나의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누가 사장이라는 것은 없게 되고 수입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 집의 주인

 

한 번은 무디가 아침 일찍 개인 주택의 거실 모습을 묘사하였습니다. 그곳에 문을 열고 여러 가지 물건들을 정리하는 한 남자가 등장했습니다. 누구도 그가 하인이라는 것을 말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그는 초상화, 그림, 장식품들을 마치 처음 보는 듯이 살펴보면서 방을 돌아다녔습니다. 마침내 그는 책을 한 권 꺼내어 그것을 읽으려고 앉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손님이었습니다.

다음은 흥겹게 뛰어다니는 16살의 소년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습니다. 손님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는 서재로 돌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자세히 보고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는지 보기 위해 부엌으로 급히 갔습니다. 그리고는 나올 음식이 무엇인지 보려고 한두 개의 뚜껑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러다 거실 쪽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들리자 그는 그쪽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주인은 손님에게는 따뜻한 환영의 악수를 하였지만 이 아이에게는 그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 아이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옛날 이륜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 한 부부가 대단히 좁고 위험한 길을 마차로 가고 있었습니다. 험한 길에 들어서자 겁많은 아내가 침착하지 못하고 그만 공포에 떨면서 말고삐 하나를 꼭 움켜쥐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침착하게 다른 고삐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이때,

"안돼요!"하고 아내가 소리치며 "고삐 두 개 다 필요없어요. 나혼자 말을 몰지 못한다는 건 당신도 알잖아요." 하였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자, 그럼 여보. 빨리 당신의 마음을 결정해요. 당신이 하든가, 내가 하든가, 어차피 똑같은 말을 둘이서 몰 수는 없는 것이지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재빨리 말고삐를 모두 다 남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그들은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생에서 그리스도를 두고 구하지 않으셨다면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한 사람입니다. 참다운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뜻을 진실되게 받아들이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왕으로부터 구두 수선공에 이르기까지, 나쁜 고용인이 주인의 명예를 손상시킨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J. 게이/ 우화집)

 

모든 주인은, 고약한 족속이다

(J. 드라이든/ 수탉과 여우)

 

구르는 돌은 이끼를 모을 수 없다. 따라서 주인과 하인이 자주 바뀌는 것은 손해다.

(T. 터서/ 훌륭한 남편이 되는 500가지)

 

주인의 눈은, 그의 양손보다 더 많이 일한다

(B. 플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주인의 눈 하나가 하인의 눈 10개보다 더 많이 본다.

(G. 허버트/ 명궁)

 

주인은, 때로 장님이어야 하고, 때로 귀머거리여야 한다.

(T. 풀러/금언집)

 

해마다 봄마다 새 주인은/ 인정전 벚꽃 그늘에 잔치를 베풀고

(심훈/ 통곡 속에서)

 

가장 긴급한 물음, 삶이란 무엇인가를 물어본 사람은 그 답을 성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동참자가 되는 것이라는 대답을. 거기에 한 길이 있고 법이 있고 사명이 있다. 사명은 구원이요, 법은 정의를 행하는 것, 자비를 사랑하는 것이며 길은 "사람이 되고 거룩하게 되는" 비밀이다.

(헤셀/ 어둠 속에 갇힌 불꽃)

 

산동네의 빈집들은/ ‥‥거리에 밤이 오고/ 문명의 꽃 다투어 피면/ 주인보다 먼저/ 해 거름을 짊어지고 산동네로 돌아가/ 일당에 지친 주인들/두 손 벌려 뜨겁게 끌어안는다.

(이재무/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우리를 후원하고 빛나게 하고/ 그리고 우리의 시끄러운 세월을/ 영원한 침묵의 순간 들로 만드는 힘을 가진/우리 눈의 주인이며/ 우리 삶의 광명의 샘인/ 어둑어둑한 추억과/ 그 처음 사랑의 손길 때문이다.

(워즈워드/ 영원의 암시)

 

한 그림자는 크고 당당하며, 다른 그림자는 그 발 밑에 있다. / 그것은 노예 들릴라다. 젊고 묵직한 주인의/ 합쳐진 무릎에 그녀의 팔은 감기어 있다. / 주인의 괴력도 지금은 노예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 순한 표범처럼 다소곳이 그녀는/풀어뜨린/머리카락을 연인의 발 아래 펼치고 있다.

(비니/ 삼손의 분노)

 

애지 중지 기른 누렁소가/ 개 값보다 못하게 되어/ 소보다 주인이 먼저 목매죽는 것도/ 당신의 뜻이라면// ‥‥하나님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서덕석/ 당신의 뜻이라면)

 

선하고 선하신 위로의 손/ 영혼의 어지신 주인/ 즐거운 휴식의 장소.

(랭턴/ 황금 성가)

 

종은 그의 주인보다 낫지 아니합니다/ 주님을 미워하는 세상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존 R. 라이스/ 너의 십자가를 지라)

 

길가에 쓰러질 듯 서 있는/주막집을 찾아가 물었었네./주인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러나은혜의 산과 희망의 계곡 길을 가리켜 주었네.

(W.B. 매카페티/ 다시 시작하는 땅)

 

사랑이여,/ 오늘/ 오늘만큼은/ 수천 년에 얹혀/ 보이지도 않을 순간의 영토 속에서/ 어리나마/ 당신 닳은 사랑으로/ 흥얼거리게 하소서/ 덩실대게 하소서.

(황국명/ 아침 기도)

 

마침내 밑바닥에 닿을 무렵/ 어디서 날카로운 한 줄의 빛/ 빛이 그림자를 쏘았다/ 그림자는 죽고 나는 살아났다/ 아, 그때 내 눈을 돌려주신 그분./ 세상 어디서나 어둠과 그늘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지켜주시는 그분./ 나의 빛 나의 은혜의 주인/ 예수여.

(김지향/ 은혜의 주인)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도 제일은/ 사랑이라고// 사이사이 끼어 앉으시어/ 소근거리시는/사랑의 우리 네 식구/주인되시는 손님

(안혜초/ 주인되시는 손님)

 

엉겁결에 대답하고/ 수화기를 놓은 다음에야/ 목소리의 주인이 생각나고/ 그 얼굴이 떠올랐다.

(김광근/ 그 전화)

 

황해 끝 조그만 섬에도/ 우리들의 갈라진 땅이 뒤척이고 있었다/ 정작 주인은 제치고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거센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박몽구/ 황해 끝 일박)

 

고향벌 밤주인의 높낮은 숨결따라/논물은 논고마다 쉼없이 흘러 넘어가고// ‥‥푸른 벼 아지치며 아리광치나니.

(허흥식/ 달빛 속의 그림자)

 

안에는 새 집주인/ 새 부인, 새 빗자루!/ 대서양 해안 골동상점에서 산/ 백랍식기와 가재도구가 밤마다 빛났지.

(로우웰/ 옛날의 불꽃)

 

넘실대는 저 보리밭처럼 가슴 설레는 나이가 되면/ 먼 도시로나 떠나갈 일부터 생각지 말고/ 너는 꼭 이곳에 남아 눈물로 씨뿌린 것들을/ 기쁨으로 거두는 이 땅의 주인이 되거라/ 어금니 사려물고 주먹 움켜 잡고 네 삶을 지키거라

(도종환/ 채마밭에 서서)

 

황제께서는 참으로 중흥의 주인,/ 나라일에 진실로 애를 쓰시지만/ 동쪽 오랑캐의 반란 아니 그치니/ 이것이 나는 심히 분통스럽다.

(두보/ 북정)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 초혼)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내 것을 버려두고 남의 것을 쫓아/ 허둥대며 비틀대며 너무 멀리까지 왔다/색다른 향내에 취해 속삭임에 넋나가/ 이 길이 우리가 주인으로 사는 대신/ 머슴으로 종으로 사는 길임을 모르고/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이제는 풀잎의 이슬로 눈을 비벼들 때/ 샘물 한 바가지 퍼마시고/ 크게 소리내어 울음 울 때/ 허둥대던 발길 우리 것 찾아 돌릴 때/머슴으로 종으로 사는 길을 버리고/우리가 주인되어 사는 길 찾아들때/ 우리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이 제는 얼뜬 길잡이 밀어제키고/우리가 앞장서서 나아갈 때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설 교 노 트

 

하나님께 맡기라

벧전5:7-9

 

서론

베드로 사도는 로마 네로 황제의 핍박을 만나 고난을 당하는 신자들에 게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위로하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 일을 처리해 줄 이가 있다면 맡기고 싶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난당하는 신자들에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였습니다

 

1. 우리의 하는 일을 주께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성공의 비결입니다(잠16:3).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할 때 염려하지만, 염려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명, 나의 학업, 나의 전부를 주께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모세는민족을 해방시키는 큰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했기 때문에 큰 일을 성취한 것입니다.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에서 행사(行事)는 재산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유 재산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안전합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은행보다 안전합니다. 좀도 먹지 않고 동록도 슬지 않게 하나님은 맡아주십니다.

우리의 학업이나 고통을 하나님께 맡기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우리 길을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너희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 리 라(시37:5)"고 하였으니, 우리는 멀고 먼 길에 무겁고 괴로운 짐을 주께 맡겨야 합니다. 인생을 나그네 길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길은 고생의 길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자의 길은 천국을 향해 가는 길이므로 길은 좁고 험하기 때문에 낙심하는 이도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해서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길이어야 하고, 내 뜻대로 가는 길이 되어서는 실패입니다. 우리의 길은 험할 뿐 아니라 우리의 등에는 무거운 짐이 있습니다. 다윗은 환난이 거듭되는 중에도 고통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니 주께서 붙들어 주시는 경험을 하고 읊은 노래가 시편 55:2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짐은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 허락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3. 영혼을 아버지께로 맡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라고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셨습니다. 스데반도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예수를 본받아,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는 말씀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나의 영혼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시31:5)"라고 하였으니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겨야 합니다.

 

결론

우리 인간의 주인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염려와 근심과 길과 영혼까지도 다 아버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종이 자신을 주장하지 못하고 주인에게 속한 것과 같이 우리 성도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인 되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말1:6

 

서론

본문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을 책망하시면서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어디 있느냐,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 함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1. 아비로서 공경하였느냐고 물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인간들과의 관계를 비유하신 것이 많이 있습니다. 부자 관계, 주종 관계, 군신 관계, 사제 관계, 부부 관계, 친우 관계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아버지시요, 아스라엘은 그 자식과 같으므로 마땅히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하시고 계십니다. 아비에게 대한 자식의 도리는 공경인 것입니다. 즉, 효도하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효도하는 일은 인륜의 첫째로 꼽아 10계명 중에서 첫째로 하여 제5계명이 이를 교훈하고 있으며, 성경에는 효도자의 받을 놀라웁고 많은 축복을 약속하시고 허락하실 뿐더러, 반대로 불효자의 저주스러운 불행을 경고하였습니다. 아비가 자식에게 공경을 받지 못하면 그 얼마나 마음이 상하시겠는가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비로 공경하되 찬송과 기도로 경배드리고 감사와 순종으로 그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주인을 공경하였느냐고 하십니다.

"종은 주인을 공경하나‥‥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하십니다. 종과 주인과의 관계는 공경보다는 실제적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종이 주인을 두려워하여야 순종하기를 충성으로 할 것입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 만큼 일을 맡은 종으로서는 어디까지나 순종, 경외, 충성, 헌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유명한 달란트 비유는(마25:14-30) 이 뜻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불충성의 종이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알았다면 더욱 두려워하여야 할 터 인데, 도리어 멸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한 달란트도 몰수되었습니다. 반면에, 착한 진실한 종들에게 파격적인 축복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즉, 큰 것을 위임받았고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영광을 차지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섬겨야 하는 주인에게 충성되지 못하게 일을 대강대강한다면 그는 그 종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뿐 아니라 그 종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까지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을 잘 섬기고 공경하는 자에게는 크신 은혜가 따르고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제자가 스승을 존경해야 하며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해야 하며,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종이 주인에게 잘 하고 섬겨야 함같이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바로 공경하고 섬겨야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주일 성수

성 경 활 용

1. 주일의 일반적인 면

(1) 제 칠일이다.

(출31: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신5:14)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2) 거룩한 날이다.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3)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날이다.

(출16:29)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써 제 육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4) 하나님과 이스라엘 자손 사이의 영원한 표징이다.

(출31:13)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5) 여호와께서 주일에 쉴 것을 명하셨다.

(출23:12)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6)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막2:27)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7)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눅6:5)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2. 주일은 어떤 날인가?

(1) 하나님 여호와의 날이다.

(출20: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2) 여호와의 안식일이다.

(출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3) 여호와의 절기이다.

(레23:2)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4) 신자의 성일이다.

(출31: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3. 주일에 해야 할 일

(1) 성소에 떡을 진설해야 한다.

(레24:8) 항상 매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2) 경배해야 한다.

(겔46:3)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3) 성경을 읽어야 한다.

(행15:21)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4) 선을 행해야 한다.

(마12: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5)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

(막1:21)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6) 생명을 구해야 한다.

(막3:4) 안식 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어느 것이 옳으냐

(7) 마귀에게 매인 것을 풀어 주는 일을 해야 한다.

(눅13:16)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8) 권면해야 한다.

(행18:4)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4. 주일 성수해야 할 이유

(1) 하나님이 안식하셨으니

(창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 애굽에서 구원받았으니

(신5:15)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 일을 지키라

(3) 예수께서 지키셨으니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5. 주일 성수하는 자의 결과

(1) 복받는다.

(사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미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2) 마음을 열어 말씀을 순종하게 한다.

(행16:14)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3) 속죄 받아서 정결케 된다.

(레16:30) 이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4) 즐거움을 얻는다.

(사58: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5) 주의 성산에 이르러 기뻐한다.

(사56:7)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6. 주일을 범하지 않는 방법

(1) 6일간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출31: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2) 자신과 자녀, 종, 나그네가 지켜야

(출20: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3)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레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4) 성소를 공경해야한다.

(레26:2)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5) 준비해야 한다.

(대상9:32) 그핫 자손 중에 어떤 자는 진설하는 떡을 맡아 안식일마다 준비하였더라

관련원어풀이

1. tB;v' 솨바-트

(1) 안식일.

(출16:25, 대상9:32)

(2) 주, 한 주일.

(레23:15)

 

2. @/tB;v' 솨바-톤-

큰 안식일, 거룩한 안식일.

(출16:23, 레16:31)

 

3. savbbaton 삽바톤

안식일.

(마12:1, 눅6:7)

설교예화자료

주일 성수를 먼저한 대통령들

 

독립 전쟁 시의 조지 워싱턴,남북 전쟁 시의 링컨, 제 1차 세계 대전 시의 월슨 대통령 모두는 가능한 한 일요일에는 병사들을 고된 임무에서 쉬게 하고 대중 예배에 참석토록 하였습니다. 헤이스와 가필드는 그들의 부하들이 주일날에 쉬고 예배에 참석하는 교회로 걸어갔습니다. 그랜트 대통령은 파리를 방문하였을 때, 주일날 개최될 경마 경기의 초대를 거절했고, 맥킨리 대통령은 테네시 주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였을 때 산으로의 관광 계획을 "미안합니다. 저는 일요일에는 관광을 하지 않습니다. "란 말로 거절했습니다. 루즈벨트와 쿨리지 대통령은 주일날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는데, 특히 쿨리지는 "나는 진심으로 일요일의 가치를 인정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콜롬비아 강에서 낚시를 즐기는 트루먼 대통령도 일요일에는 낚시줄 던지기를 거절했습니다.

 

 

일요일에 발행된 수표

 

최근 알라바마 주 법정에서는 획기적인 판결이 내려져 위조범이 석방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사기를 목적으로 작성하여 유통시킨 수표의 날짜가 마침 일요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알라바마 주 법률에 의하면, 일요일에 행한 계약은 그 어떤 것도 효력을 발생하지 않게 되어 있으므로, 그 수표는 명기된 날짜로 인해 무가치한 것으로 인정되어 위조의 죄목이 성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규범을 어겨도

 

평소에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여 온 랍비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더라도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인정 깊게 대해 주어 평판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안식일인데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워 문 채 지나가는 유대인과 마주쳤습니다. 직책상 주의를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은 오늘이 안식일이라는 걸 잊으셨군요."

"아니오, 랍비님. 안식일이란 걸 잊을 리가있습니까? "

"그림, 안식일엔 금연이라는 걸 잊은 모양이군요."

"원 농담의 말씀도, 알다 뿐이겠습니까?"

"흠 그렇다면 의사의 권고로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군요."

"천만에, 그렇지 않아요. 제가 피우고 싶어서 피우는 것입니다. "

"오오, 하나님, 이스라엘의 자식들은 이와 같이 경건합니다. 안식일에 규율을 범하여 담배를 피우는 이 같은 사나이도(성서)의 가르침을 지켜서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시12:1-2)."

 

 

어록·시·묘사

 

휴식을 생각지 말라. 비록 꿈은 아름다워도 벌떡 일어나서 하늘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하 라.

(J. 키블/ 기독교인의 해:강림절 둘째 주일)

 

휴일들은 이와같아야 한다. 지나친 강조에서 풀려 나고, 세상사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 영혼이 기를 펴고 한가할 시간.

(L. 먹니스/ W.H. 오든을 위한 후기)

 

만약 일년 내내 노는 휴일이라면 늘기도 일하기나 마찬가지로 지루할 것이다.

(W. 셰익스피어/ 헨리 4세)

 

세상의 일이 바쁘나/주님의 날을 지켜서/ 마음과/ 뜻을 다하여/ 거룩히 예배 드리세

(홍안의/ 주님을 섬기며)

 

하나님, 이 맑게 갠 주일날,들에 있는 하얀 교회의 당신 앞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마음으로 은밀히 그 무지함을 고백하러 가는/ 마을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이 아침 책상에서 떠날때의/ 내게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잠/ 14편의 기도노래 · 13)

 

일요일은 주간에 녹슨 것을 깨끗이 없애준다.

(J. 애디슨)

 

내가 만약 의사라면, 자기의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어떤 환자에게나, 휴일이라는 처방을 내릴텐데.

(R. 러셀/ 행복론)

 

일요일은 주간에 지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내 주는 스폰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H.W. 비처/ 생활사상)

 

사람은 꾸준한 일을 한 뒤가 아니고서는 쉴 수 없다.

(G. 에이드/ 현대우화 40집)

 

안식일이었는데 배가 얼마나 고팠을까/ 팔레스틴 설익은 밀밭길을/ 키 큰 예수님이 가고있다/뒤에는 설익은 이삭 잘라 입 안에 털어 넣고/ 열두 제자 큰 손이 가고 있다// 얼마나배가 고팠을까 안식일이었는데/ 입맛을 다시며 잠든 어린 것/ 아빠, 저 바람이 잠잠하면 엄마가 오나요.

(김석/ 어린 딸 성경 편 채 잠들다)

 

엿새의 무거움을/ 종소리에 삭이고// 흩어진 마음 모아/ 복음에 귀를 열어// 즐거이 자세를 바뤄/ 한가로이 선 아침// 십자가 좁은 길에서/ 하나의 집념으로// 때묻은 손을 씻고/ 제단 앞에 향을 살면// 구만리 낙원의 길이/ 향연 속에 열린다.

(김상순/ 聖日)

 

한 하나님을 한 말로 찬양하자/ 주는 한 분, 그의 이름은 하나, 주께 영광을 돌리자./ 오라 친구여‥‥// 일어나 안식 일을 맞이하라 ; 그건 치유의 샘이요, 창조 때 봉헌 되었느니/노동의 끝이요, 명상의 시작이라./ 오라 친구여‥‥‥

(하이네/ 오라 친구여 신부를 맞으러)

 

오늘은 주의 날입니다/ 넓은 들에 나 홀로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아침 종소리가 울리고 나면/ 멀리 또 가까이에 고요만이 차게 됩니다// 이에 나 기도 드리며, 무릎을 꿇사옵니다/ 그리하면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있는 듯하고,/달콤한 전율과 은밀한 숨결이 스며듭니다. // 가까운 하늘이나 또 먼 하늘이나/ 맑고 장엄하여 더할 나위 없습니다/ 마치 그건 개벽을 뜻하는 듯이-/ 아아, 오늘은 주의 날입니다.

(울란트/ 목자의 주일 노래)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날 만나는 것이 큰 낙이었다고 했지.

(이성교/ 나곡 앞바다)

 

일요일이면 찬송가를 부르던/ 교회를 본다/ 한꺼번에 몇 개씩 뛰어오르던/ 계단이 있다/저 편에 소년들이 있다.

(게스트너/ 마주보기-과거의 역)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저는요!/ 하나님이시여, 저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 저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 죽은 자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을진저!그리고 저는 잠을 깼습니다, 고함을 지르듯이! // 저는 불쑥 일어났고 잠을 깼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어서서 시작되는 하루와 함께 시작합니다!/ 새벽이 되기 전에 저를 만드셨던 아버지시여,/ 저는 당신 앞에 있습니다. // 나의 심장은 자유롭고 나의 입은 순수합니다, 내 육체와 정신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습니다. / 저는 제가 하나하나 고해한 저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 결혼 반지는 내 손가락에 끼어 있고, 내 얼굴은 깨끗이 씻었습니다. / 저는 당신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 속에/ 순결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 당신께 속하지 않은 것 은 내게 주실 수 없는 당신께 무엇을 요구하겠나이까!/ 시이저의 이름이 새겨진 이 금화겠습니까,/ 제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이 말씀이겠나이까.// 그러나 저는 태양 자체를 갖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차원까지 내 팥을 벌립니다. / 저는 하늘 꼭대기에서 황금빛 점 하나를 봅니다, 당신의 승천절 날에 그러한 것처럼.// 저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거기에서 변경시킬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주님 이시여, 오직 당신 자신을 제게 주시옵소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당신께옵서 당신을 위해 잡아둔/ 제 칠일을 나머지 엿새에 포개소서./ 아, 오늘은 토요일이 아닙니다, 일요일입니다, 그리고 첫 미사의 종소리가 울릴 것입니다!// 황량하게 다시 나타난 동양의 하늘 한가운데 샛별이 홀로 빛납니다. // 수탉이 울고 마리 마들렌느(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향해 달려갑니다. // 태어나는 공기의 다이아몬드여! 현실의 하루의 태어남이여!/ 당신께서 마침내 오셨습니다, 나의 영원한 결혼날 아침에!// 시간이 없습니다, 잠시 후 해는 떠오를 것입니다. / 그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당장에 하십시다. // 성스런 그리스도 정신을 위해 명상하고 옷을 입는 장중하고 재빠른 사제처럼,/ 서둘지도 말고 미루지도 말고 우리들의 직책에 속하는 몫을 위해 무장합시다. //마치 방금 만들어진 한 사람처럼, 손도 대지 않은 아주 새로운 하나의 발명품처럼/내 안에 있는 모든 힘이 그의 대상이고 기도 전체가 하나의 행위입니다.// 삼위 일체이신 하나님이시여, 그 관계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모두가 말씀인 로고스여, 당신께서 하신 말씀을 저는 믿습니다. // 당신은 쇠못으로 고정 된 주어진 말씀입니다. / 재가 희망을 걸었던 직책을 저는 두 팔을 벌리고 행합니다!// 저는 당신의 상처 위에 놓은 손가락이며 당신의 심장 자체에 놓인 손입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인 당신이여, 당신은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막을 수 없나이다. // 그 안에서 제가 당신의 영생과 연결되고 있는 신속한 의식은 이룩될지어다. / 우리 안에 있는 나뉘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너무 짧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 사이에 이 서약을 지킵시다! 내가 방탕한 생활에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나를 고정시켜 주소서./ 저의 말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여, 내 마음과 내 원칙을 기록하고서.// 당신이 만드신 이 제 칠일에, 주님이시여, 만일 그것이 내 마음속에 있지않다면,/ 당신의 마음의 평화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뽈 끌로델/ 일요일 아침의 기도)

 

 

설 교 노 트

 

찬미와 기도와 하나님의 날

사58:13-14

 

서론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십계명의 기록이 있습니다. 그중에 제4계명은 안식일을기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7일 중에 하루는 노동을 쉬면서 하나님께예배의 날로 지키라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요구하셨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시간을 바치는 생활입니다.

 

1. 주일은 어떤 날입니까?

구약 때는 계명에 따라 한 주일의 마지막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신약 매는 토요일 안식일을 일요일에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천지창조하시고 쉬시며, 예배의 날을 안식일로 지키었으나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므로 신약 때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천지 창조보다 더 중대한 의의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는 일요일을 "주의 날", "성일(聖日)"이라고 부르면서 기쁨과 감사한 마음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주일은 안식의 날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막2:27). 인간은 한 주일에 하루를 안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은 예배의 날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입니다.

주일은 선행의 날입니다. 예수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후 비방하는 자들에게 안식일에 선행하는 것이 옳다(마12:12)고 하셨습니다.

 

2. 주일은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주일은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주일에는 하루 종일 세상 안에서 떠나 쉬며 일체의 오락에서 떠나고(사58:13-14), 팔고 사는 일이나 거래하는 일체의 일을 그만두고(느3:15-22), 예배하는 일에만 사용해야 합니다.

주일은 기쁜 날로 지켜야 합니다. 지난날에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예수의 피로 구원받고기뼈하는 날이 주일이므로 주일은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찬송하며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귀중한 날로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요, 거룩한 날이므로 귀중한 날입니다. 주일 예배는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대한 의무임을 깨닫고 주일을 귀중한 날로 지켜야 합니다.

 

3. 성수 주일하면 축복이 있습니다.

주일은 일의 휴식뿐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성별된 날이므로 찬미와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과 사귀는 축복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세 가지의 안식을 받았습니다. 첫째 안식은 밤이요, 둘째 안식은 한 번 쉬는 주일이요, 셋째 안식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는 안식입니다. 그중 제2의 안식인 주일은 죄악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받고 하늘나라로 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주일을 거룩히 지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하겠습니다.

 

 

거룩한 안식일

출16:21-30

 

서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못된 행실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와는 관계없이 갈 길을 잃으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배고프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만나를 주시는 과정에서 평일에는 하루분만 거두게 하시고 안식일을 위하여 안식 전날에는 이틀분을 거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준다고 보아야 합니다.

 

1. 여호와의 안식일입니다.

본문 25절에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정하시고 그날을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며 보통날보다도 구별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그날은 복된 날이라그날 일하지 아니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히 지키는 사람에게는 큰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입니다."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23절)"고 하였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거룩한 안식이기 때문입니다.

 

2. 안식일을 범하면 유익이 없습니다.

본문 26-27절에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제 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집을 짓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성을 지키는 자의 경성함이 허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욕심이 있고 의심이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해야 되지만 주일에는 일하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장에는 몇 푼의 돈이 들어오니까 유익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볼 때에는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말은 차원 높은 신앙을 소유할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일하지 아니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고 일하지 아니하려는 신앙이 필요함을 느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깨달은 백성들은 안식을 지켰습니다.

본문 30절에 "그러므로 제 칠일에 안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스스로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였습니다(출20:8-11). 안식일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창조하시고 쉬신 안식하신 안식일이 있고(창2:1-3) 그리고 계명으로 주시고 지키라고 하신안식일이 있으며(출20:98-11),영원히 쉬는 안식일이 있습니다(히4:9-10). 그러므로 창조를기념함으로 지켜야 할 안식일은 살아 생전에만 필요하고 구속함을 받아 죽은 후에 누리는 영원한 안식일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복받는 비결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영원한 안식일을 기다리면서 이 땅에서 계명으로 주신 안식일을 잘 지켜서 금생에서나 내세에서 영원 무궁토록 누리는 안식일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시l18:24

 

서론

"이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니 이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날은 어떤 날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았던 날이 어떤 날입니까?

본문을 통하여 그 뜻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일곱째 날을 복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말하기를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안식이라는 것은 과로하고 피곤하여 쉬는 것이 아니라 작업의 완성과 피조물에 대한 만족을 표시합니다. 또 인간들에게 안식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뜻이라고 본다면 이날은 거룩한 날이요, 축복하신 날이니 성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안식 후 첫날을 허락하셨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안식 후 첫날(마28:1, 막16:2, 눅24:1, 요20:1)"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은 사복음서 기자가 한결같이 취급하셨습니다.

예수님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실 때가 구약 율법의 마지막 안식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다른 한 안식일, 즉 주일의 첫째날을 만드셨습니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날이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하고 즐거운 안식일을 정해 주신 날입니다. 먼저의 안식일은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부터 신성함이 더럽혀졌고, 주의 날은 부활로 인하여 거룩한 날이 되었습니다. 이날은 거룩한 가장 복된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장차 임할 주의 날이 있습니다.

살전5:1-4에 보면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기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두려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재림하신 날입니다. 그날은 불신자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만 신자들은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니 모르게 임할 수가 없으므로 우리들은 깨어 있으면 그날을 알게 되어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은 세상이 끝나는 날이요, 신자와 불신자가 나뉘는 날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날은 변할 수 없으며, 또한 그날을 잘 지키고 기다리면서 사모하며살아 주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보호하실 것입니다.

 

 

안식일을 범하느냐

느13:17

 

서론

본장에서 지목된 그 당시의 종교 타락상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심하였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악한 일이라고 책망받았는데, 지금 이 시대에도 역시 성도로서 주일성수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식 일을 범한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1. 그 당시의 타락상

안식일 성수를 잊은 백성들 중에서 안식일에 술틀을 밟았는데 이것은 포도주를 짜는 노동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니 농사짓는 일을 하고 있었던 실정입니다.

그리고 포도주, 포도, 무화과 또는 물고기 등 주로 식료품을 안식일에 팔고 사고 하였습니다. 파는 자가 있으니 사는 것이고, 또 사는 자가 있으니 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매매하는 양자가 다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입니다.

 

2. 안식일은 십계명 중 제 4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출20:8, 11).

그러므로 성도들에게는 안식일을 성수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책임인 것을 재인식해야 합니다. 현대에는 안식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주일이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겉으로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심에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주의 날을 거룩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3. 어찌 이 악을 행하느냐?

보통 사람들의 생각에는 살인을 하거나 간음, 도적질 같은 일을 대단히 무서운 악으로 생각하나 안식일을 범하는 일은 예사로이 생각함이 큰 착오입니다. 사실인즉, 안식일을 범하는 죄는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산에 나무하러 가서 안식일을 범한 자를 돌로 쳐죽이라고 율법은 엄히 교훈하고 있습니다(민15:35).

언제나 악행자는 악행에 대한 보응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악을 행하고 하나님 앞에 무사히 통과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행을 깨닫고 조속히 회개하여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에서 포로로 생활하고 있는 가운데 안식을 범한 일도 무서운 죄였습니다. 그런데 자유스럽게 해방되어 귀국하여서도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그것은 더욱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주일학교

어록·시·묘사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향한/ 봉사자요, 협력자요, 동반자로/ 그들의 올바른 자람이/ 나의 영광임을 깨닫게 하소서.

(정용채/ 스승의 기도)

 

호수처럼 잔잔한 바닷물에서/ 오-어릴 때 교회 반사님의/ 문득 떠오른 성경얘기/ 교회 모퉁이서 머리 쓰다듬어 주시던/ 그 따스한 손짓같은/ 오-바람결이여.

(최일환/ 땅끝에서)

 

하루벌이 노가다판 일을 하면서도/ 주일이면 초롱초롱 빛나는 아이들 눈망울을 못잊어/ 꼬박꼬박 성경말씀 가르쳐 주시고

(서덕석/ 김 집사님)

 

나무는 푸르고/ 맑은 물 시원해/ 동산의 아침 햇빛은/ 더욱 찬란하다/ 여름철 수련회/ 우리는 즐겁다/ 지으신/ 자연 품 속에/ 마음껏 뛰논다// 흰 구름 떠돌고/ 새들은 노래해/ 풀냄새 나는 들판은/ 더욱 평화롭다/ 여름철 수련회/ 우리는 배운다/ 주님의/ 말씀 들으며/ 새롭게 익힌다// 파도는 춤추고/ 바다는 창일해/ 수평선 넘어가는 배/ 더욱 신비롭다/ 여름철 수련회/ 우리는 자란다/ 온 세상/ 두루 살피며/ 큰뜻을 다진다// 저녁 놀 불타고/ 숲속은 고요해/ 어둔 밤 하늘/ 별들은 더욱 반짝인다/ 여름철 수련회/ 우리는 이긴다/ 조용히/ 기도 드리며/ 앞날을 꿈꾼다

(홍안의/ 자연의 품으로-여름 수련회에 부쳐)

 

올해도/ 즐거운 여름철이 왔구나/ 다같이 모이자/ 성경학교 열렸다/ 예수님은/ 두메산골 나사렛에 사셨대/ 예수님은/ 순종하는 어린아이셨어요// 하늘에/ 건강한 아침 해가 떴구나/열심히 배우자/ 성경학교 열렸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대/ 예수님은/ 본을 보인 선생님이셨어요// 나무들/ 푸르게 자라나고 있구나/ 힘 있게 전하자/ 성경학교 열렸다/ 예수님은/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셨대/ 예수님은/ 온세상의 환한 빛이셨어요// 공중의/ 새들도 노래하고 있구나/ 다같이 찬양해/ 성경학교 열렸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품에 안아 주셨대/ 예수님은/ 우리들의 좋은 친구 되셔요

(홍안의/ 아이들의 친구-여름 성경학교에 부쳐)

 

햇빛 찬란한 아침 언덕에/종소리가/울려 퍼진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친구/우리 교회 학교/사랑의 동산// 별빛 고요한 저녁 교실에/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성경책은 우리들의 양식/ 우리 교회학교/ 진리의 동산// 새들 나르는 종탑 너머로/ 찬송소리/ 멀리 퍼진다/ 예배당은/ 우리들의 요람/ 우리 교회학교/ 거룩한 동산

(홍안의/ 사랑의 배움터-교회학교의 노래)

 

바람 한 골 흐르게 하시고/ 적당하게/ 저 아이들의 삶을 위하여/ 여린 잎새일망정/ 이슬같은 꽃살이 오르게 하시고// 소망의 작은 창가에/ 미소와 같은 꿈이게 하시고/ 결코 그 꿈의 실현을 위해서/용기를 잃지 않게 하십시오// ‥‥그 밝음의 부피만큼/ 소금빛 말씀을 듣게 하시고/ 기도하며/ 감사함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김용길/ 아이들을 위한 기도)

 

 

설 교 노 트

 

장성한 나무와 궁전의 다듬은 돌

시144:12-15

 

서론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대로 가장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를 무시하던 세대에서 어린이를 존중하는 세대로 전환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1. 장성한 나무

어린이를 어떻게 키워야 합니까? 어린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은 식물에 한싹이 움이 터서 자라나는 것 같은 나약한 굴레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크므로 장성한 나무가 되어 기둥감이 되고 대들보가 되는 것입니다.

식물이 자라 장성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인간의 생명과 인격과 육체가 장성해야 합니다.

나무가 자라는 데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1) 땅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영양을 흡수하는

것입니다.

(2) 태양빛을 받고 동화작용을 잘 하여야 합

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소유할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양육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이것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사시청청 메마름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또한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근원에다가 뿌리를 두고 자라나는 나무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구김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서 나라의 기둥감이 되는 것입니다.

나무는 태양 광선을 잘 받아야만 됩니다. 이 광선작용은 곧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 벗들의 사랑이 모든 것의 근원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절대적인 사랑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2. 궁전에 다듬은 돌

성경에서는 언제나 아들과 딸을 같은 위치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나무에 비유했지만 딸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습니다.

다듬은 돌과 같다는 것은 교육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교육받아야 귀하게 쓰여지는 것입니다.

질이 좋은 돌만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 사람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질이 더욱 중요합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서 받은 재질을 발굴하는 것이고 그 발굴한 것을 닦아 주는 것이 교육입니다.

요사이에 인간 개발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것이, 즉 교육인 것입니다.

선진 국가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인간 개발이 잘되어진 나라입니다. 즉, 교육이 잘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 나라의 국력이 얼마나 인간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가 거기에 좌우됩니다

그 가문의 장래는 교육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돈많은 사람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교육을 많이 받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학교에서의 교육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교육시켜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무엇으로 교육할 것입니까?

식양대로 할 것입니다. 바로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서교육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공헌을 남긴 사람들은 많은 수가 기독교 교육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선민의 자녀 교육

잠4:20-27

 

서론

교육이라는 것은 어느 민족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교육이 독특합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름대로 교육 방법이 있습니다. 그 교육을 바탕으로 사회 제도를 돈독히 해나가고 이념을 가진 나라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떤 교육을 했습니까?

 

1. 종교적인 특징

선민들이 가장 귀하게 보는 것이 교육이었습니다. 선민들이 유목의 생활을 하면서도 교육은 계속하였습니다.

그들은 종교 의식과 가정을 통해서 어린이들에게 자기 이름보다도 율법을 먼저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하나님을 먼저 찾게 교육을 시킵니다. 성도는 마지막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의 이름을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의식 속에 깊이 율법을 넣어 주는 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식사 전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고 와서 식탁에 앉는 것입니다.

그들의 교과서는 성경뿐입니다. 성경만 가르치면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의 교육법입니다.

그들이 믿기는 이 말씀대로 살면 구원도 얻고, 전쟁에서 승리도 가져올 수 있고, 부자도 되고, 지혜도 얻고, 건강과 농사도 잘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가르치고 그대로 행하게 하고 이대로 살게 합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율법에 무식하면 경건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은 무식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을 읽는 데서 글을 깨우치게 되는 방법입니다.

 

2. 가정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교육법은 철저하게 가정 교육이었습니다. 가정이 유일한 학교요, 부모는 유일한 교사입니다.

그들은 가정 교육은 선생으로부터 받는 학교 교육보다 앞선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사람 됨됨이는 가정에서 많이 좌우됨을 알게 됩니다. 가정 교육을 잘 받으면 지혜롭고 더욱 유식하고 덕스러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정 중심의 교육이었습니다.

그들의 교육 중심은

(1) 가정

(2) 회당

(3) 절기입니다.

이들은 절기를 통해서 종교적인 면과 교육적인 면을 동반하여 철저하게 조상의 유전과 언약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감사를 가르칩니다.

 

결론

이스라엘 교육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종교적인 교육이고

(2) 가정을 통한 교육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도 이스라엘의 교육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속 교육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말고 먼저는 신앙 교육을 바로 시킵시다. 학교에 맡기는 교육도 중요하나 교회 교육의 중요함도 알아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이 교육의 중심지가 되도록 합시다.

 

 

야곱의 자녀 교육

창37:1-17

 

서론

이삭과 쌍둥이로 태어난 야곱의 성격은 내성적이고 어머니의 시중을 드는 것으로 칭찬을 받았고, 거짓말쟁이에 수단 방법을 다 이용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축복을 받는 일이나 외삼촌 집에서 양을 키우는 가운데 얼룩 양을 낳게 하는 모든 수단이 남보다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좋지 못함을 아는 야곱은 자녀들에게는 바로 가르치고 훈련을 시킨 것입니다.

 

1. 정직하게 자라기를 가르쳤습니다(1-4절).

야곱의 12아들 중에 아들 요셉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잘 따랐습니다.그러므로 형들의 부정을 아버지께 알려 형들의 미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정의를 사랑했고 아버지의 뜻과 교훈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디모데 후서 1장에 보면 디모데를 향하여 거짓이 없는 디모데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목사로 흠이 없는 일생을 살아온 것입니다.

주일 학교 교육이나 가정에서의 교육 역시 정직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게 시켜야 하겠습니다.

 

2. 꿈을 키워 주었습니다(5-11절).

부모가 자식을 볼 때에 언제나 부족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심어 주고 자신이 가지는 꿈을 키워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과 목표를 정하고 전심혈을 기울이는 사람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가지는 꿈을 부모님이 힘을 주고 키워 줄 때에 자라난 나무처럼 훌륭한 인재로키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꿈이 없고 소망이 없는 백성은 망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어린 자녀에게 꿈을 심어 주지 못한다면 자녀 교육은 실패한 것입니다.

 

3. 자녀를 훈련시켰습니다(12-17절).

강한 군대는 심한 훈련에서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계의 강한 군대는 피땀을 쏟는 훈련을 받아 강한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우리들은 십자군의 정병인 것입니다.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 교회당을 훈련소로 정하고 봉사로써 땀을 쏟으며 실천할 때에 믿음의 용서가 되어 승리 생활을 하게됩니다.

훈련에는 이유가 없이 순종으로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패하면 죽는다는 신념으로 어떤 일이든지 임하면 승리할 수 있는 정병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정금도 용광로에서 연단한 후에 귀한 보배로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야곱은 요셉만을 심부름시키며 잘 키운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명령으로 도단까지 찾아가는 행동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도단까지 100리가 넘는 먼 길이었습니다.

 

결론

주일 학교에서도 야곱과 같은 교육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1) 정직한 생활을 가르쳐 부끄럽지 않게 자라게 합시다.

(2) 학생들이 꿈을 갖고 자랄 수 있도록 꿈을 심어 주고 키워 주는 힘이 될 수 있는 교사가됩시다.

(3) 우리 가정에서 또 교회에서 철저한 믿음의 훈련을 시키며 역경을 이길 수 있는 십자군의 정병으로 살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킵시다.

주 초

성 경 활 용

1. 술의 해독

(1) 공의를 굽게 함

(잠31:5)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

(2) 가난해짐

(잠23:21)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3) 지혜가 없어짐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호4:11)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4) 병이 남

(호7:5) 우리 왕의 날에 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2. 취한 자의 특성

(1) 어리석음

(전2:3)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2) 내일이 없음

(사22:13)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도다

(3) 방탕함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4) 음행을 행함

(계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3. 술 취한 자가 결국은 어떠한가?

(1) 하나님을 거역하게 됨

(호7:14)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를 인하여 모이며 나를 거역하는도다

(2) 망신 당함

(창9: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3) 강포해짐

(잠4:17)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

(4) 거만하고 떠들게 됨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5) 자녀를 바꿈

(을3:3) 내 백성을 취하고 동남으로 기생을 바꾸며 동녀로 술을 바꾸어 마셨음이라

(6) 화가 있음

(사5: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관련원어풀이

1. rm'j} 하마르

포도주

(스6:9, 단5:1)

 

2. @yIy" 야인

(1) 포도주.

(에7:8, 아2:4)

(2) 취함

(창9:24, 삼상1:14)

 

3. &s;m]m' 미므사-크

혼합된 포도주.

(잠23:30, 사65:11)

 

4. oi+no" 오이노스

(1) 포도주.

(마9:17, 요2:3)

(2) 포도원, 포도송이.

(계6:6)

(3) 독한 포도주.

(계14:1, 17:2)

설교예화자료

담배로 유혹한 마귀

 

술과 담배에 중독되었던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 술과 담배의 포로가 되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중에 "네 몸은 내가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다. 내 성전을 술독이나 담배 굴뚝으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너도 거룩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은 후 술과 담배를 끊어버리기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러나 담배는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 기도를 통해 겨우 담배를 끊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득남을 해서 기쁘다며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담배를 한 가치씩 나누어 주길래 무심코 받아 주머니속에 넣었습니다. 한참 일을 하는데 마귀가 "그 담배 냄새 한 번 맡아봐라, 냄새를 맡는 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유혹을 해서 냄새를 맡았더니 정말 향기롭고 좋았습니다. 그러니까 마귀가 다시 "그 담배에 불을 붙이지 말고 입에다 대고 한 번 알아봐라. 그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유혹을 해서 입에 대고 빨아보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는 것입니다. 주머니에 그냥 담배를 넣은 채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가 마중간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너 주머니에 담배 있지? 그 담배를 입에 대고 불붙여 한 모금만 마셔봐. 담배 한 모금만 흡연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라고 마귀가 유혹을 해 왔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간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만 흡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 담배맛이 어찌나 좋든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계속 담배를 피우게 되니, 주위가 담배 연기로 자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갑자기 손이 나타나 그를 확 밀었습니다.

그 바람에 넘어져서 담배불에 입을 데었고, 순간 담배를 버리고 방으로 들어가 "하나님, 당신의 성전을 더럽힌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라고 회개를 철저히 한 다음 다시는 흡연을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완행 자살

 

만일 자살을 시도한다면 총알, 권총, 가스, 전기 의자, 물에 빠지거나 목매달기 등이 훨씬 더 빠르지만, 서서히 죽는 데에는 궐련, 여송연, 파이프 담배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담배 연기에는 19가지 독소가 들었는데 일산화탄소, 니코틴, 석탄산, 푸르푸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담배 한 개비에는 위스키 20온스 상당의 푸르푸랄이 들어 있는데, 푸르푸랄의 유독성은 알콜의 50배나 됩니다. 이것은 온갖 장애, 각종 경련, 근육의 불규칙한 수축, 호흡기 근육의 마비 현상들을 일으킵니다.

허드슨 맥신은 "모든 호흡에 있어서 흡연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들이 마시고 자신의 남자다움을 내뿜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했는데, 마지막으로 잘 알려진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내 경우는 좀 다르지,나는 아직 피울 수가 있어. 그것이 아직 나를 상하게 하지 않았거든."

 

 

술의 기원

 

이 세상에서 최초의 인간이 포도를 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악마가 찾아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먹는 식물을 심고 있지!" 하고 말하자 악마는,

"이런 식물은 본 일이 없는데‥‥‥‥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악마에게,

"이것은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열매가 열려서 그 즙을 마시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악마는 그렇다면 자기도 꼭 한 몫 끼워 달라고 말하면서 양과 사자와 돼지와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이 네 마리를 죽이고 그 피를 비료로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주가 생겼습니다. 먼저 마시기 시작할 때에는 양처럼 순하고, 좀 마시면 사자처럼 강하게 되고, 그보다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럽게 됩니다. 너무나 지나치게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거나 노래부르거나 합니다. 이것이 악마가 인간에게 준 선물인 것입니다.

 

1년에 포항제철 2개를 먹어치우는 한국인

오래 전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 년 동안 마시는 술값이 포항제철 2개 값과맞먹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 성장에 주력하고 있으며 소비 절약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1년에 포항제철 공장 2개를 맞먹는 돈을 사람들이 술 먹는데 소비한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닙니까? 이러다가는 젊은 사람들이 술의 포로가 되어 올바른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방탈한 길로 빠져들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나의 사인(死因)은 담배

 

미국의 어떤 신문기자 마크 월러스라고 하는 분이 자기가 죽기 전에 자기 죽음에 대한 기사를 다 써놓고 죽었습니다. 그 기자는 매우 똑똑한 기자입니다. 그 제목이 무엇이냐 하면 "나의 사인은 담배다.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얘기를 샜는데 "나는 열네 살부터 담배 피우기를 시작해서 하루 두 갑씩 42년을 피웠는데 결국은 폐암이 생겨서 죽노라."고 했습니다.

 

 

만다라

 

80년대에 각광을 받기 시작한 작가를 손꼽는다면 76년도 세계문학에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사람의 아들」의 이문열 씨와 한국문학의 "신인상"을 수상한 「만다라」의 김성동 씨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기독교와 불교의 세계에서 인간의 근본 문제를 예리하게 파악하여 글을 썼기 때문에 더욱 이채롭습니다.

"만다라"란 뜻은 "법계의 온갖 덕을 갖춘 것"이라는 뜻으로 부처가 체험한 것을 그림으로 나타내어 숭배한다는 불교의 용어입니다.

이 천박한 시대의 천박한 땅에 태어나서 부당하게 배고프고 부당하게 고통받는 서러운 중생(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잠든 영혼을 각성시켜 줄 수 있는 종소리 같은 소설을 쓰고 싶어 펜을 들었다고 작가는 의욕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험과 뼈속 깊이 스며든 위선과 부조리의 체증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작가 자신의 분신격인 知山, 다른 이면의 분신 法雲을 등장시킵니다.

知山은 成佛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을 하기 위해 수양하던 중 절에 휴양온 여대생과의 우연한 만남이 그의 심중을 흔들어 놓았고 종국에는 계율(비구가 지켜야 할 250가지 율법)을 파계까지. 합니다.

그가 이제껏 10년-공을 쌓은 덕이 한 여인의 유혹 때문에 무너지는 자신을 경멸하며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불교의 구태의연한 진리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못내 자신의 문제조차 해결 못받는 수도 생활에서 뛰쳐나와 떠돌이 유랑 잡승의 길로 나섭니다.

새장 속에 새가 탈출하여 창공을 날 듯이 그는 한정된 격식으로 짜여진 불교 행위를 거부합니다. 술을 퍼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魚肉을 먹고 여자와 관계를 맺으며 염불을 외우고 목탁을 두들겨 댑니다.

 

 

알콜 중독

 

피나는 노력으로 알콜 중독에서 겨우 헤어났다가 또다시 알콜 중독이 되어 비참하게 인생을 마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가며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 1년 동안은 술 없이도 살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더운 어느 여름날, 이 사람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름다운 여자가 맥주병을 들고 컵에 거품이 넘치도록 가득 부으면서 마시라고 권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여자의 간드러진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더위에 이 맥주 한 잔을 마시면 얼마나 시원할까요." 이 사람은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술집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자기가 술집에 들어가 좋은 자리에 앉아서 맥주가 나오자 벌컥 들이키는 모습을 그려 보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창자가 녹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이 사람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가 상상한 그 술집에 가서 자기가 상상한 대로 큰 컵에 맥주를 가득 부어 벌컥벌컥 들이키고 말았습니다. 1년 동안의 노력이 그 자리에서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이 사람은 이후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처참한 알콜 중독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어록·시·묘사

 

음주는 인간을 배고프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게 한다.

(G. 월킨즈/ 강요된 결혼의 불행)

 

술망나니는 바보의 혀와 악한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T. 풀러/ 잠언집)

 

사람은 너무 많이 마실 수는 있으나, 알맞게 마실 수는 없다.

(레싱/ 시)

 

다른 사람이 내는 술은 황홀하고 미칠 듯 기쁘고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즐거운 일이다.

(H.S. 리/ 술 취한 파리에서 보내는 시)

 

술 취한 사람들의 실상을 보면 서로가 동떨어진 생각이면서 기분만은 꼭 같다.

(R. W. 에머슨)

 

가장 요망스러운 관중은 지성적 이고 교육이 있으면서 약간은 취기가 있는 사람이다.

(A. W. 바크레이)

 

값비싼 것은, 오직 첫 번째 술병뿐이다.

(프랑스 격언)

 

음주는 일시적인 자살이다. 음주가 갖다 주는 행복은 단순히 소극적인 것, 불행의 일시적인 중절(中絶)에 지나지 않는다.

(B.A. W. 러셀)

 

사람은 체면 있는 신사로서 술집에 들어갔다가 중죄인으로 술집에서 나온다.

(글롭스)

 

중국 사람은 술 안 먹은 이가 없어도 또 주정하는 것을 본 이가 없다. 만일 한 번 주정하면 여간 명예가 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주정 잘하기로는 첫째가 아라사 사람, 둘째가 일본 사람, 셋째가 조선 사람

(이광수/ 묵상록)

 

청동은 모양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술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아이스킬로스)

 

술의 힘이 우리들 몸에 배어들면 사지는 무거워지고 다리는 쇠사슬에 매인 듯 흔들거리며 혀는 굳고 지성은 함몰된다. 시각은 흐릿해지고, 그러다가 고함, 체머리, 난투가 나온다.

(루크레티우스)

 

세계 창조 이후로 폭주와 같은 폭군은 없었고, 그의 노예들만큼 가혹한 취급을 받은 사람들은 일적이 없었다.

(W.L. 개리슨/ 인생)

 

술이 들어가면 혀가 나오고, 혀가 나오면 말을 실수하고, 말을 실수하면 몸을 버린다.

(유향/ 설원)

 

두 번 아이가 되는 것은 노인만이 아니고 취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플라톤/ 법률)

 

토지를 사는 사람은 많은 돌맹이들을 산다. 고기를 사는 사람은 많은 뼈를 산다 달걀을 사는 사람은 많은 껍질을 산다. 그러나 좋은 술을 사는 사람은, 술 이외의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인류를 괴롭히는 가장 무서운 해독들의 일부는 술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병과 싸움과 소란과 게으름과 일하기 싫어하는 것과 모든 종류의 가정불화의 원인이다.

(페늘롱/ 델레마귀)

 

그대에게 술 즐기지 말기를 권하나니, 술은 미치는 약이요, 아름다운 음식이 아니다. 사람의 삼가고 온후한 성품을 바꿔, 흉악하고 난폭한 무리로 만든다.

(소학)

 

술은 입을 경쾌하게 한다. 술은 또다시 마음을 털어놓게 한다. 이리하여 술은 하나의 도덕적 성질, 즉 마음의 솔직함을 운반하는 물질이다.

(I. 칸트/ 인간학)

 

아! 네 눈에 보이는 술의 정이여,네게 만일 적당한 이름이 없다면 우리는 너를 악마라 부를 것이다.

(W. 셰익스피어)

 

병영에 이런 삐라가 붙었다. "알콜은 인간의 불을 끄고 그 동물에 불을 붙인다. " 이것을읽으면 왜 사람이 알콜을 사랑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A. 카뮈)

 

전쟁, 흉년, 전염병, 이 세 가지를 합쳐도 술이 끼치는 손해와 비교할 수 없다.

(W. E. 글래드스턴)

 

나는 내 두뇌를 술보다 좋은 면에 쓰고 살았다. 나는 내 생의 힘을 증가시키는 것만을 생각하였지 그 힘을 감퇴시키거나 마비시키거나 하는 일은 염두에도 없었다. 나의 적이되는 술 같은 것에 두뇌를 빼앗기는 일은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T. A. 에디슨)

 

아무도 자기 비밀을 주정꾼에게 맡기지 않는다. 각자는 비밀을 현자에게 맡긴다. 그러므로 현자는 주정꾼이 될 수 없다.

(레논)

 

술과 아름다운 계집은 두 개의 마(魔)의 실이다. 경험을 쌓은 새도 여기에는 잘 걸린다.

(F. 뤼케르트/ 동방의 장미)

 

술이 훌륭한 사람을 더 훌륭히 했다는 일은 없고, 한편 어리석은 사람은 술로 해서 점점어리석어질 뿐이다. 술은 구설을 많게 하고, 감정을 폭발시키고, 일을 저지르고, 변을 일으킨다. 혼자 마시는 술은 아직 괜찮다. 둘이 대작하는 술은 덜 좋다. 셋이 마주앉아 마시게 되면, 드디어 그러한 폐단이 생기려고 한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왁자하고 모여 먹는 가리라면, 뜻하지 않는 변이 생기기 쉽다. 그러기때문에 여럿이 모여 술 마시는 자리는, 간단히 예를 차리는 정도에 그칠 것이지 흥을 돋을 필요는 없다. 또 마음에 괴로움이 있어 그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일이 있는데, 이것도 나쁜 습관을 만드는 것이니 삼가는 것이 좋다. 술로 해서 사람이 그 운명을 그르치는 일을 생각해 볼 때 더욱이 그렇다.

(중국 명언)

 

어떤 일이 발생할지 결코 알 수 없는 두 때가 있다. 하나는 남자가 처음으로 술을 마실 때이고, 또 하나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실 때이다.

(O. 헨리/ 점잖은 사기꾼)

 

술주정은 지옥이 사랑하는 총아이다.

(디포우/ 진짜 영국인)

 

취태(醉態)는 파멸과 동일한 표현이다.

(피타고라스)

 

술주정은 인간의 기지와 분별력의 묘지다.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술이 들어가면 기지는 나가 버린다.

(T. 비컨/ 교리문답집)

 

술이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독약이다.

(팔만대장경)

 

주신(酒神)은 군신(軍神)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

(영국 속담)

 

술은 변절자이다. 처음에는 벗, 다음에는 적이 된다.

(영국 속담)

 

술주정은 고의적인 미친 짓에 불과하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흙탕물에서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낚았다. 술은 그들이 사용한 미끼였다.

(W. 토우던스타인/ 남자와 회상)

 

술은 범죄의 아비요, 더러운 것들의 어미다.

(R.G. 잉거솔)

 

술을 물처럼 마시는 자는 술에 값하지 않는다.

(F. 보렌슈테트)

 

술은 평화와 질서의 적이요, 인의 공포요, 귀여운 어린이의 얼굴의 구름이요, 언제나 무덤을 파는 자요, 어머니의 머리를 세게 하는 자요,슬픔으로 무덤에 가게 하는 자이다. 아내의 사랑을 실망케 하며 아이들에게서 웃음을 빼앗는다. 가정에서 음악을 없애 버리고, 가정을 슬픔으로 차게 만드는 것, 그것이 술이다.

(H. W. 그레디)

 

술 마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목이 마를 때, 그 갈증을 풀기 위함이요, 하나는 목이 마르지 않을 때, 갈증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T. L. 피코크/ 멜린코트)

 

술이 만들어 낸 우정은 술과 같이, 하룻밤 밖에 효용이 없다.

(F. 로가우)

 

입술과 술잔 사이에는 악마의 손이 넘나든다.

(J. F. 킨트)

 

건강을 위해 축배하는 것은 질병을 위해 축배하는 것이다.

(T. 데커/ 정직한 매춘부)

 

이것이 술의 큰 폐해이다. 술은 너에게 발을 거는 속임수 쓰는 레슬러이다.

(플라우투스/ 거짓말쟁이)

 

첫 맛이 빨아들이는 박쥐처럼 쿡 쏘는 것이 마취제 같았으나 마실수록 차차 단맛이 돌고나중에는 아주 맛이 좋았다.

(J.E.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술과 인간은 끊임없이 싸우고 끊임없이 화해하고 있는 사이 좋은 두 투사와 같은 느낌이든다. 진쪽이 항상 이긴 쪽을 포옹한다.

(C. P. 보들레르/ 술과 아시슈)

 

술의 양이 적으면 적을수록 머리는 말끔하고 피는 식어진다

(W. 펜/ 고독의 報酎)

 

첫째 잔은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둘째 잔은 영양이 되고, 셋째 잔은 유쾌한 기분을 준다.그러나 넷째 잔에 가서는 사람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영국 속담)

 

주정은 일시적인 자살이다.

(B.A.W. 러셀/ 행복의 정복)

 

주정쟁이는 유별나게 악한 지혜를 가졌어.

(J.E.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술은 일종의 마음의 연지이다. 우리들의 사상에 일순간 화장을 해 준다.

(H. 레니에)

 

술을 마시면 말에 날개가 돋쳐서 방약무인하게 뛰논다.

(헤로도토스)

 

폭음은 쉴 사이 없이 자기 생명을 공격한다.

(영국 속담)

 

주정꾼을 보면 절주(節酒)의 최상의 교훈이 된다.

(아나칼시스)

 

백약 중의 으뜸이라고 하나, 만병은 술로부터 일어난다.

(요시다 켄코오/ 徒然草)

 

제어하기 어려운 것을 차례대로 들면 술과 여자와 노래다.

(F. 애덤스/ 고래로부터의 세 개의 것)

 

술은 번뇌의 아버지요, 더러운 것들의 어머니다.

(팔만대장경)

 

주정꾼은 못난이의 혀와 불량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H. G. 본)

 

주석(酒席)이 길면 수명은 짧다.

(프랑스 속담)

 

담배는, 비록 건강한 자라도 병들게 할 것이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담배는 최근 5년간 나에게 오후의 낙이자 오전의 저주였다.

(C. 램/ 워즈워드에게 보낸 편지)

 

담배는 사랑의 무덤이다.

(B. 디즈레일리/ 시빌)

 

남초(南草)인 담배는 재계(齋戒)를 하지 못하게 하여 신명(神明)을 통할 수 없게 하고, 공연히 재물을 소모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는 할 일이 많은데 상하노소 없이 종일 또는 종세(終歲)토록 담배를 피우는 데만 주력하고 있으니, 만일 그 마음을 바꾸고 진리를 탐구하면 대현(大賢)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학문을 닦으면 문장이 될 수 있고, 살림을 다스리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익/ 성호사설)

 

유해한 잡초(담배)! 그것의 냄새는 여인을 괴롭히고, 사회의 으뜸가는 즐거움에 대해 매정하다. 그것의 가장 나쁜 효과는, 몇 시간 동안 있으므로 우리에게 개화되는 성을 추방하는 것이다.

(W. 쿠퍼/ 대화)

 

담배는 악마로부터 나온 더러운 잡초다. 그것은 너의 지갑을 말리고, 너의 옷을 태운다. 그리고 너의 코를 굴뚝으로 만든다.

(B. 워터하우스)

 

담배를 피우는 그 자체는 엄연한 의미에서 소모행위 이다. 배도 부르지 않고 살도 안 찌는, 연기로 사라져 버리는 그것. 그러나 담배의 묘미는 그 아무것도 가중되지 않는 연기로 사라져 버린다는 그것이 담배의 개성이라 생각한다.

(이진섭/ 끊을 수 없는 우정)

 

슬픈 일을 태우려 담배를 뻐금여 온 때문에 이젠 대만 물면 슬픈 일이 날아와 반짝인다.

(황순원/ 골동품)

 

끽연자는 현인처럼 생각하고, 사마리아인(자선가)처럼 행동한다.

(벌워 리튼/ 밤과 아침)

 

내가 싫어하는 글자로는 금연이라는 두 자다. 이 두 자를 볼 때는 무슨 송충이나 독사를보는 것같이 소름이 끼친다. 이 두 자가 멋없이 걸리기를 좋아하는 버스나 극장은 그래서 도무지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다.

(오상순/ 愛煙小敍)

 

담배를 끊는다는 것은 내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천 번이나끊었음을 알아야 한다.

(마크 트웨인)

 

담배를 끊는 사람은 영웅이 아니다. 진짜 영웅은 그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 나머지 사람들이다. 때때로 그들이 나를 슬프게 하기에는 나는 울지 않으려고 크고 두꺼운 담배를 피워 문다.

(H. 보일)

 

끽연이 통계의 선도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

(F. 크네이블)

 

더 이상 잔에 손대지 말라./가슴 속속들이 병들게 한다. / 술잔의 향기는 죽음의 천사의 입김이요/잔 속에 보이는 빛은/죽음의 천사 흉한 눈초리다. / 조심하라. 조심하라. 질병과 슬픔과 근심은/ 모두 술잔 속에 있나니.

(롱펠로우/ 성도전)

 

불행한 자일수록 담배를 더 피우고, 담배를 더 피울수록 더 불행해진다-이것은 악순환이다!

(뒤 모리에/ 페트르 이베송)

 

담배는 더러운 풀.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정상적 욕구를 하나도 만족시키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당신을 깡마르게 하고 그것은 당신을 홀쭉하게 한다. 담배는 당신의 머리에서 머리칼을 뽑아낸다. 담배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나쁜 빌어먹을 물건이다.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G. 헤밍어/ 담배)

 

이름은 실체의 그림자라, 담배도 그 성미를 따라서 여러 가지 칭호가 생겨났다. 정신을 혼취케함이 술과 같으므로 연주(煙酒)라는 별호가 생겨났고, 피로를 해제케 함이 차와 같으므로 연차(煙茶)라는 별명 이 생겨났고, 한 번 빨아 습성이 되면 잊으려고 하되 잊을 수 없으므로 상사초(相思草)라는 명칭까지 생겨낫다.

(문일평/ 호암전집)

 

담배는 완전한 쾌락의 완전한 형태이다. 그것은 맛이 기막히며 아쉬움을 남겨 준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는가?

(O.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꽃 사이에 앉아 혼자 마시자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됐다. / 달도 그림자도 술이야 못 마셔도/ 그들과 더불어 이 봄 밤 즐기리./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춤춘다. / 이리 합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진다. / 담담한 우리의우정! 다음에는 은하수 저쪽에서 만날까.

(이 백/ 월하독작)

 

울타리 너머 저쪽 집을 향하고/ 술이 있느냐고 묻는다.

(두보)

 

지난해에 마셨던 동정춘의 향내가 아직도 손에서 난다. / 금년의 동정춘은 옥빛처럼 술이아닌 것만 같네./ 병 속의 향기는 방에 가득하고 술잔의 빛은 문창에 비친다. /좋은 이름을붙이고 싶을 뿐 술의 양은 묻고 싶지 않네./ 시를 낚는 갈고리라고도 하겠고 시름을 쓸어버리는 비라고도 하겠네./ 그대여! 그 잔에 넘실넘실하게 부어 나는 친구로 마시게 해다오.

(蘇軾)

 

눈을 녹이고 구름을 헤쳐/ 유즙(乳汁)을 얻어서/ 빚어낸 진일주(眞一酒:쌀 ·보리 ·물 세 가지로 만든 술)말고도 취하게 한다/ 쌀과 보리에서는 음양을 볼 수 있고/ 그릇도 맑고우물도 맑고 안팎이 맑다. / 아침 해가 불그스레 얼굴에 비치고/ 봄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든다. / 인간의 진일인 동파노인도/ 청주종사의 이름을 얻고 싶다.

(蘇軾 /眞一酒)

 

주막집 유리 창에 빛나던 희망의 불은/ 꺼져, 영원히 죽었나니/ 달도 불빛도 없이 험한 길가는 순교자/ 어디서 재워 줄 곳 찾아내랴/ 주막집 유리창의 불빛은 악마가 모조리 끄고 없다.

(C.P. 보들레르/ 고쳐 못할 일)

 

청명절(淸明節)에 비가 오락가락하여/ 길가는 사람의 애를 태우는데/ 주막이 어디 있느냐고 목동한테 물어 봤더니/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더라.

(두목/ 청명)

 

막걸리는 위스키나 배갈처럼 독하지 않다. 투명하지도 않다. 뿌옇고 떫고 심심한 막걸리에는 한국인의 소박한 애환이, 김삿갓의 그 웃음 같은 것이 그대로 깃들여 있다. 텁텁한 막걸리의 술맛은 이 나라의 감상과 사치하지 않은 낭만이다.

(이어령)

 

둘이서 마시노라니 산에는 꽃이 피고/ 한 잔 한 잔 기울이면 끝없는 한 잔./ 취했으니 자려네. 자낸 갔다가/ 내일 아침 맘 내키면 거문고 안고 오게나.

(이 백/ 산중대작)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덧 날이 어둡고/옷자락에 수복이 쌓인 낙화여!/ 취한 걸음 시냇물의달 밟고 돌아갈 제/ 새도 사람도 없이 나 혼자로라.

(이 백/ 自遺)

 

이백은 술이 한 말이면 시가 백편/ 마시다 취하면 거리에서 잠드네.

(두보)

 

여기선 최상급주가 가장 젊다/ 지하실 한 구석에/ 술병들이 서로 기대어 잠들고 있다/ 주신제(酒神祭)알 밤에/ 사람들이 깨뜨려 주기를 기다리며

(J. 콕토/ 한밤의 넋두리)

 

위성의 주막집에서/ 한 번 크게 취해 본다. / 천수의 배나무는 눈에 싸인 듯하고/ 버들가지는 연기에 타는 듯하다. / 이별하기가 섭섭하니 술만 더 마셔지고/떠나는 길에 말채찍을 드린다. / 그대가 영상으로 떠나지만/ 거기도 달은 밝으리.

(잠삼/ 送楊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우리가 술을 마셔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 좋은 술-친구-혹은 목이 말라서--혹은 머지않아 마르지 않기 위해서/-혹은 그밖의 어떤이유로.

(H.올드리처/ 술을 마시는 다섯 가지 이유)

 

유리잔에 가득히/ 호박빛 액체를 따르라./진주같이 붉은 것 술통에서 철철철 넘쳐 흐르고/용을 삶고 봉황을 구우면 기름이 우는데/ 병풍 치고 장막 드리우니 우리들 마실자리./ 용 울음처럼 피리를 불고/ 악어 가죽북을 치자. 둥둥두둥둥./ 계집은 흰 이빨 드러내어 노래하고/ 계집은 가는 허리 하늘하늘 춤을 추라./ 봄도 어느덧 기울려 하느니/ 보라, 붉은 비처럼붉은 빗방울처럼 지는 복사꽃!/ 종일토록 마시고 마시고 취하자./ 유령에겐들 죽은 다음에야누가 술을 권하리.

(이 가/ 장진주)

 

하늘이 만일 애주(愛酒)를 안 했으면/ 하늘에 주성(酒星)이 있을 턱이 없고/땅이 만일 애주를 하지 안 했으면/ 땅에도 주천(酒泉)이 없었을 것이다. / 천지가 이미 애주를 했는데/ 술 좋아하는 것이 하늘에 부끄러움이 있겠는가./ 술기운이 맑으면 성(聖)이라고 하고 술기운이 탁하면 현(賢)이라고 하는 것이다/성현도 이미 마셨던 것/꼭 신선(神仙)만 구해야한단 말인가/ 삼배(三杯)를 드니 대도(大道)를 통하고/ 한 말을 마시니 대자연에 맞는다. / 다만 주중(酒中)의 참된 지취를 알고 싶다/ 성자(醒者)의 미담(美談)이란 아랑곳없고.

(이 백/ 대주)

 

백년 동안에 천 면은 취해야 할 것이다. / 한 잔 술이 만고의 시름을 씻나니.

(옹완/ 酒)

 

그대여 황하수가 천상(天上)으로부터 흐르는 것을 보지 뭇했는가/ 미친 듯이 바다로 흘러내려 돌아오지 못한 것을/ 또다시 거울 앞에서 백발을 보고 탄식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아침에는 파란 머리가 저녁에 벌써 눈같이 흰 것을/ 인생이 뜻을 얻었거든 모름지기 기뻐할것이다/ 술동이 놓아두고 쓸쓸하게 달을 대하지 말라/ 하늘이 이 땅 위에 탄생시켰으니/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것이고/ 천금을 다 써 버려도/ 다시 내 게 오는 것이다. / 염소고기와 쇠고기로 안주를 삼아/ 한 번 싫도록 마셔 삼백 잔을 헤아려 보자/ 잠부자(岑夫子 ; 峯參)여!단구생(丹邱生)이여!/ 술을 권하노니 사양하지 말고 내 노래 한 곡도 귀를 기울여 들어 보시라/ 금도 옥도 비단도 귀한 것이 못 된다/ 다만 길게 취하여 깨어나지 않는 것이 원(願)이다/ 옛적의 성현들도 다 흔적이 없고/ 오직 마시는 자만 이름이 남더라/ 진왕(陳王)이 평락(平樂)을 즐길 적에/ 술을 열 말로 다시 천 말로 헤아렸더란다/ 주인은 어찌 술값이 적다고하느냐?/ 즉시 많은 술을 사올테 다/ 오화마(五花馬)와 천금구(千金裵)를 깨내어/ 좋은 술로바꾸어다가/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쏟고 싶다.

(이백/ 장진주)

 

두 사람만의 상점에서 서로 만나서/ 두 사람만의 술을 우리들은 마신다/ 너는 조금 나는많이/ 늘 마시는 술을 마시면서/ 낮에 있던 이야기며/ 일의 이야기/ 남의 소문이며 내일의예정을/ 그리고 갑자기/ 어둠 속에서 입맞춤

(암전굉/ 미혼)

 

파리한 심정에 독주를 부어/ 어둑한 골목안 추녀 낮은 지붕 밑/ 고독한 영혼 다치고 말았거니

(유정/ 박인환 만가)

 

오, 술 한 모금을! 깊이 판 땅속에 오랜 세월을 두고서 늘어진 꽃과 푸른 시골과/ 춤과 프로방스의 노래, 햇빛에 탄 환락의 맛을 풍기는!/ 오, 큰잔에 치렁한 다스한 남국 진정한 불그레한, 시의 샘물을‥‥‥

(J. 키츠/ 야앵부)

 

술 빚은 흔히 있는 것, 어디 가든지 있게 마련이고/ 인생이란 칠십 살기도 힘드니 실컷 마시고 놀 것이니라.

(두보/ 곡강)

 

죄 많은 내 머리 박살을 내건/ 내 몸뚱일 두 동강이 낼지라도/ 나는 신이고, 악마고, 영성체대(領聖體臺)고 닥치는 대로 욕을 퍼부을테다.

(보들레르/ 살인자의 술)

 

세월은 가는 것인가 가는 것인가/ 가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먼 산도 세월인가/ 누워있는 나 또한 세월이란 말인가/ 한 모금 담배연기에도 부끄러운/ 나의 병도/ 차라리 세월이건만.

(고은/ 가을 병상)

 

하늘의 별들처럼 줄지은 고관/ 빛나는 술잔을 계속해서 비운다//술잔의 부딛침 소리 떠들썩한 환성/ 위풍 당당한 왕의 마음은 교만해진다// 왕의 얼굴은 더욱 빛나면서/ 잔이 더해질수록 오기가 생긴다.

(하이네/ 벨사살 왕)

 

여자보다 더 끊기 어려운 것은 술이다/ 이제 문득 다시 이몸 생각하면/ 삼동 내내 바람과함께 서적이는/ 처마끝 한 타래으 시래기 같을 뿐이다.

(강우식/ 내 마지막 겨울은)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어 슬으올 제/ 어느덧 술 다하고 임마저 가는구야/ 꽃 지고 새 우는 봄을 어이 할까 하노라.

(일지홍/ 이별)

 

필마는 사천 리를 가고/ 고인은 두세 잔 술을 권한다. / 이별의 노래 처절하여 애끓기듯/ 가는 뜻 호연하여 돌이키기 어렵네.

(이곡/ 가정집)

 

"영성이 저에게 무엇을 줄까요?"/ 알콜 중독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 "알콜성 없는 취기." 스승의 대답이었다.

(앤소니 드 멜로/ 경축)

 

이 슬픔 익으면/ 그를 먹이는/ 술이라도 되게 하옵소서/ 옥빛 우물이라도/ 되게 하옵소서

(김남조/ 사랑도 쉬게)

 

눈은 맑고 바람은 찬데/ 초수오산에는 길도 막혔겠다. / 그대여! 오늘 밤에 모름지기 취해보게/ 내일 아침이면/ 이별하게 되리니.

(가치/ 送李侍郞)

 

닭이 우느냐/ 시몬 베드로야/ 이젠 새벽이다. / 간밤에 오기로 마신 술은/ 다 깬 모양이구나// 술은 수단도/ 방법도 아니다.

(김원식/ 그날 밤에)

 

두 손가락에 끼워/ 삶과 죽음의 허무를 가르쳤다// 두 입술에 물려/ 사랑과 미움의 갈등을 배웠다.

(김용호/ 담배)

 

궐련 위에 네 계절을 굴린다.

(R. 프라드/ 자유롭게)

 

바람 뒤에 숨어서/ 한 마디 남은 말을 깨우치며/ 부드러운 마음이고자 하는/ 하오의 대폿집

(성춘복/ 일기)

 

눈보라가 치는 날은 술을 마시자/ 술을 마시되 체온을 생각해서 마시자/ 눈보라가 치는 날은 술을 마시자/ 술을 마시되 약간의 낭만을 위해서/ 눈보라치는 날은 술을 마시라/ 술을마시되 실어증을 염려해서/ 두근거리는 가슴열고 홀로라도/ 열심히 말을 하며 마시자// 눈보라가 치는 날 술이 없으면 어찌하나,/ 눈보라가 치는 날 국경이 안떠오르면 어찌하나,/ 눈보라가 치는 날 두근거리는 가슴 없으면 어찌하나,/ 신문지 위에나 헌 교과서 위에다가/ 술잔을 그리고 새끼줄이라도 칠 일이다.

(조태일/ 눈보라가 치는 날-국토 21)

 

어느 여인의 손가방 속에서/ 끄집어낸 담배 연기에 싸여/ 나비는 그날 밤 표본처럼 죽고말았다.

(이생진/ 나비가 실망한 논)

 

색은 위장 잘라내 고도/ 심술로 술 마시더니/ 남은 위장마저 썩어버렸나보다// 비위에 거슬려 그대로는 살 수 없다며 마신 술/ 술이 너를 알 리 없고/ 위장이 이 세상 알 리 없는데/ 결국 제 고집으로 가고 만 사람/ 어려서 편모슬하에/ 맨손으로 사느라고 바둥거리다/ 힘이 모자라면 마시던 술/ 술이 그를 조금만 알아줬어도/ 그렇게 해치지 안했을 것을.

(이생진/ 근조라고 쓴다)

 

언제부터 가진 버릇인지 모르는/ 나의 비방의 주벽이여// 지식도 이성도 단절된 세계의식에서/ 전쟁을 노래모양 외운다.

(김수돈/ 우수의 황제)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시절에/ 났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실/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어물어물 눈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김소월/ 담배)

 

한참 이러할 제 한 농부 색 나서며 "담배 먹세, 담배 먹세" 갈멍덕을 숙여 쓰고 두던에 나오더니 곱돌로 만든 담뱃대를 넌줏 들어 꽁무니 더듬어서 가죽 쌈지 째어 들고 담배에 새우침과 같은 침을 뱉아 엄지가락이 자빠라 지게 비빗비빗 단단히 털어넣고 짚불을 뒤져 놓고 화로에 푹 찔러 담배를 먹는데, 농사꾼이라 하는 것이 대가 빽빽하면 쥐새끼 소리가 나겠다. 양볼때 기가 오목오목 콧구멍이 발심발심하며 연기가 훌훌 나게 피워 물고 나서

니‥‥‥

(춘향전)

 

전등 하나 없는 빨간 객차 안에서는 빨간 담뱃불이 두어 군데 어중간히 매달려 있을 뿐이다.

(서기원/ 이 성숙한 밤의 포옹)

 

그대의 그림자 내리는 미소/ 하나의 표정만으로도/오늘밤의 잠은 충분하다」 값싼 알콜로야 어찌 잠재울 수 있었으랴/ 어리석음과 허망함과 세상의/ 온갖 더러움을/ 어찌 씻어낼 수 있었으랴.

(이병창/ 십자가 아래서)

 

한 병의 빨간 술, 한 필름의 노래만 있으면,/ 거기다 다만 목숨을 이을 양식만 있으면,/ 너와 함께 설령 오두막에 살지라도, 마음은 왕후의 영화보다 나은 즐거움이여!

(오마르 하이얌/ 루바이야트)

 

재 너머 성권농(成勸農) 집의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타고/ 아이야 네 권농 계시냐 정 좌수 왔다 하여라.

(정철/ 송강가사)

 

내 말고쳐 들어 너 없으면 못 살려니/머흔 일 궂은 일 너로 하여 다 잊거든/ 이제야 남 괴려 하여 옛벗 말고 어찌리.

(정철/ 송장가사)

 

사나이는 심심소일을 하고 있다/ 그 밖에 아무 일도 할 게 없는 것이다/ 다섯 병째의 비워 본 위스키 병을 정신 없이 개울 속에/‥‥/ 마치 물이 죽은 금속에 밀착하고 있듯이/ 이때껏 그녀는 그에게 밀착하고 있었다.

(R. 로얼/ 술꾼)

 

술 먹기 비록 좋을지라도 한두 잔밖에 더먹지 말며/ 색(色)하기 비록 좋을지라도 패망하게 말을지니/ 평생에 이 두 일을 삼가면 백년지구(百年之軀)를 병들음이 있으랴.

(무명씨)

 

불빛들 창으로 매색(賣色)하고/ 매독(梅毒)은/ 문전에 팔 벌리고/ 계집들 신음을 경매에 부친다!/ 사지는 / 뱅뱅 돌아/‥‥/ 양가집 부녀자는 금속성 웃음을 싫어한다오/ 자궁은 죽은 자식 품고 하품한다/ 낳지 않은 애새끼/ 넋이 되어/ ‥‥흐트러져/ 누리 안을 헤맨다!/ 구역 질하며/구석에서/음부 찢기운 채/ 성(性)은/ 말이 없다/ 우리는,

(A. 슈트람/ 색주가)

 

저 천치 같은 주정쟁이들 중/ 어느 놈이 지긋지긋한 밤과 밤에‥‥‥‥

(C.P. 보들레르/ 살인자의 술)

 

떠도는 바람들/ 내 외로운 영혼 흔들어/ 타들어 간 담뱃재 털다가/하얗게 달라 붙는 그리움의 때/ 사금파리로 살갗 그어대듯 춥기만 하다.

(정희수/ 안개 낀 아침은)

 

그러면 존재하는 나와/존재하지 않는 내가/ 니코친이 쌓인 머리를 털며/ 네 속에 파묻힐수 있어.

(박서원/ 병 · 1)

 

자, 동무야, 이 잔을 들자/ 우리의 청춘을 위하여/ 고향의 내일을 위하여/ 한 모금에 쭉- 이 잔을 내자.

(임효원/ 이 잔을 들자)

 

온갖 잡것 잡동사니 쓰레기로 엎으러져 추파를 떠는가/ 한 대접 막걸리 사발 속에 육자배기로 추락해 주정이나 퍼대는가

(김윤환/ 모를 일 · 13)

 

술찌기 먹고 입술 훔치는 소리인가/담배 연기 자욱한 찻집 수희제에는/ 삐걱삐걱 계단을내려오는 발자욱소리/ 술냄새 나고/ 한 낮에 벌써 나는/반쯤은 취해 있었다.

(이창년/ 찻집 수희제에서)

 

술을 퍼마시던/ 담배를 무섭게 피우던/ 그 손가락의 동작이/ 간지럽게 유혹을 한다// 그 유혹을 물리치기라도 하듯이/ 입춘이 지난지도 오랜데/ 아직 남아 있는 전설을 마구 밟아본다.

(장수철/ 종점 · 5)

 

어떠냐 어떻게 담배를 피워 물면/ 조금은 그래도 이럴 듯하리라.

(이원섭/ 내 이름)

 

다방의 재떨이를 유심히 보고 있으면 꽁초도 각색이다. 어떤 놈은 비스듬히 잿속에 파묻혀 드러누워 있는가 하면 어떤 놈은 노랗게담뱃진이 바깥까지 내배어서 때에 절은 옷을 입은 것처럼 지지궁상을 하고 있기도 하다 또 어떤 놈은 절반도 타지 않은 길쭉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데 키 큰 사나이처럼 싱거워 보인다. 또 어떤 놈은 침이 홈뻑 묻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가 하면, 어떤 놈은 입술 연지의 피해를 잔뜩 입고 피곤해 보이는 것도 있다. 어떤 놈은 게으르게 비스듬히 누워 있는가 하면 어떤 놈은 오똑오똑 일어나 앉아서 신경질적인 것도 있다.

(조경희/ 재떨이)

 

누구넨가 생량하고 얼큰히 술 취한 부친이/ 세상 모든 잠에 취했을 때/ 고사상 돼지머리에 꽂힌 지전을/ 주섬주섬 챙겨 넣고 밤차를 탔더란다.

(박용주/늙은 목수의 소원)

 

아버지는 술병으로 어머니는 홧병으로/ 돌아가셨다고도 하고

(박용주/ 정님이)

 

다른 한 사람은 입에다 파이프를 물고/ 연기를 뿜어 내며 그것을 보고 있는데/마치 이 세상에 자기 이상으로/ 행복스러운 것은 없다는 듯이

(레나우/ 세 사람의 짚시)

 

의신(醫神)의 문하생들은/ 짐에게 금주를 진언하고 있으나/ 그러나 나는 마시리라 화주를/종묘사직의 안녕을 위해서// 자 부어라 화주를 한 잔 더!/ 마치 진짜 감로주와도 같도다!

(하이네/ 중국의 황제)

 

아쉬운 담배 연기를 뿜으며/ 그대 떠나온 가향(家鄕)을 생각하는가.

(유치환/小憩)

 

간밤에 마신 술이 위를 할킨다고/ 배를 움켜쥐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느냐고/ 수면제처럼 술을 마시는 이씨

(최일성/ 현장 · 3)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초당(草堂)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하옴세/ 백년덧 시름없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일노당)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참이라 깨달을 건 이것뿐이라/ 나는 왜 입에 잔을 들면서/ 그대를 바라보고 한숨 짓는가.

(W.B. 예이츠/ 술노래)

 

목마른 슬픔을 술 속에 잠글 때/ 축배와 건배가 자유롭게 돌아갈 때/ 깊은 물 속에서 마음대로 마시는 고기도 그와 같은 자유는 알지 못하리.

(러브레이리/ 감옥에서 엘시어에게)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 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이유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조병화/ 주점)

 

탁주 석 잔에 호기가 나니/ 시 한 수 읊으며 축융의 높은 봉우리를 뛰어넘을 만하다.

(주희/ 醉下祝融峯)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김용호/ 주막에서)

 

사람보다는 술이 좋더라/ 몸이 불타 이글거리면/ 내 위에 잘난 놈이 없어 좋더라/ 비분(悲憤)보다/ 차라리 술에는 위엄이 있어/ 쥐새끼 놈들은 호령호령해 본다.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거인이 된 것처럼 자랑스럽구나.

(정훈/ 醉夜)

 

대수풀 외로운 달 흔적 없이 비치는데 초당에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백 잔쯤 마시고는 실커장 취한 뒤에 큰소리로 노래불러 근심 시름 씻었노라. 이 어찌 통쾌치 않을소냐.

(정약용)

 

내일 아침에 금준의 친구를 맞고자 금배(金杯)를 번쩍번쩍하게 씻어 둔다.

(백거이)

 

젊어서도 생계를 근심하지 않거늘 하물며 늙어서 누가 술값을 아끼랴.

(백거이)

 

꽃 피면 달 생각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나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翫月長醉)하리오.

(이정보)

 

여보게, 나는 이제/ 이 호박(琥珀) 빛 액체가 주는 마술을 빌어/나의 새끼손톱으로/요놈의지구덩이를 튀겨 버리려네.

(김동명/ 술노래)

 

골이나 먹고 청춘을 이야기하고/‥‥/.떠나가기 전에 산에 가기 전에 다시 반 되만 더 먹고 속이 색이니 또다시 반 되만 더 먹고 또 먹고

(전영경/ 畵素描)

 

가을 바람과 아침 볕에 마침 맞게 익은 향기로운 포도를 따서 술을 빚었습니다/ 그 술 괴는 향기는 가을 하늘을 물들입니다/ 님이여, 그 술을 연잎잔에 가득히 부어서 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님이여, 떨리는 손을 거쳐서 타오르는 입술을 축이셔요.

(한용운/ 포도주)

 

당신께서는 저녁의 푸른 어스름 속에서/ 자주 똑같은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 마치 누군가가 술집의 싸움 속에서/ 제 심장 밑에 핀란드 나이프를 내리 꽃은 것 같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다만 괴로운 환상일 뿐입니다. / 저는 그렇게 지독한 대주가는 아닙니다. / 당신을 뵙지 않고 죽어버릴 만큼의

(키세닌/ 어머니에게 부치는 편지)

 

술 냄새 담배 냄새 물걸린 옷/ 이 옷도 그대의 입혀 주심

(김소월/ 옷)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을 잊어버린 옛시절에/ 났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에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 앞에 스러지는 검은 연기,/ 다만 타 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어./ 나의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김소월/ 담배)

 

나그네 주인이여/ 평안하신고/ 밑에 앉힌 술단지/ 그럴 법허이/ 한 잔 가득 부어서/ 이리보내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저 달 마시자/ 오늘 해도 저물고/ 갈 길은 머네/ 꿈 같은 나그네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이거 어인 일/ 한 잔 한 잔 또 한잔/ 끝도 없거니/심산유곡 옥천(玉泉) 샘에/ 홈을 대었나!/ 지하 천척(地下千尺) 수맥에/ 줄기를 쳤나/ 바다는말릴망정/ 이 술단지사/ 꿈 같은나그네길/ 멀기도 허이

(오상순)

 

초나라 사람이 한강수를 길어다가/의성주(宜城酒)를 빚어 넣었다. / 봄바람과 함께 그 술이 익으니/ 한강물처럼 맑고나.

(양연수/ 宜城乃釀酒詩)

 

금준에 가득한 술을 슬커장 거우르고/ 취한 후 긴 노래에 즐거움이 그지 없다/ 어즈버/ 석양이 진(盡)타 마라 달이 조차 오노매라.

(정두경)

 

꽃 피자 술이 익고 달 밝자 벗이 왔네/ 이같이 좋은 매를 어이 그저 보낼소냐/ 하물며 사미구(四美具)하니 장야취(長夜醉)를 하리라.

(무명씨)

 

부생(浮生)이 꿈이거늘 공명(功名)이 아랑 곳가/ 현우귀천(賢愚貴賤)도 죽은 후면 다 한가지라/ 아마도 살아 한 잔 술이 즐거운가 하노라.

(김천택)

 

술은 언제 나고 시름은 언제 난지/ 술 나고 시름 난지 시름 난 후 술이 난지/ 아마도 술이 난 후에 시름 난가 하노라.

(무명씨)

 

술아 너는 어이 흰 낯을 붉히느니/ 흰 낯 붉히느니 백발을 검기려문/ 아마도 백발 검은 약은 못 얻을까 하노라

(무명씨)

 

날마다 술을 금하려 하지만/ 오늘도 금하지 못했다. / 금하는 것이 마음에 섭섭한 줄만 알고/ 내몸에 좋은 것은 믿어지지 않네./ 이제 비로소 금한 것이 좋은 줄을 알고/오늘 아침에 용감하게 끊었네./ 이제부터 영원히 마시지 아니하니/부상(扶桑)의 그 먼지도 떨어진다. / 내 몸에 좋아서 그러는 것이지/ 제사에도 술을 금해서 되겠는가.

(도잠/ 止酒)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김광섭/ 시인)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고/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양명문/ 명태)

 

내 이름은 파이프라고 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연기 속에/ 검은 의상의 여인 너를 보았다// 너 일찍이/ 나의 불길에 진소됐기에/ 그처럼/ 검은 요정으로 환한 채/ 나의 연기 속을헤매는거냐.// ‥‥그러기에/ 밤마다/ 어느 속도 위반의 홀에서/ 어느 열두 짝 병풍 둘러선 방안에서/ 어느 주정꾼들의 구토소리 요란한 주막에서/ 네가 부질없이 부르는 엘레지는 장송가였더냐.// ‥‥그러나 언젠가/ 어느 망하게 깊은 골짜기에/ 너의 혼과 나의 혼의 대화에서/ 너와 나와의 사랑은 다시금 싹 틀 때/우리는 서로 속삭일 것이다/ '우리는 파이프의 계절과 같은 사랑은 아예/그만둡시다'/ 라고

(김종문/ 파이프)

 

제 맛도 모르면서/ 밤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신동문/ 내 노동으로)

 

그것의 이미지는/ 거품이라는 의미이다/ 방울방울 떠오르는/ 영롱한 파도 속에/목마른 투신을/ 나는 그 눈망울과 함께/ 감행한다/ 그것의 세계는/ 온통 나의 신혼(身魂)을/ 목욕시키고, 그 구름 빛의/눈망울을 사랑하게 한다/ 풋풋한 계절의 과실처럼/ 영글은 나신(裡身) 속을 파고 들며/손바닥에 지구를 놓고/ 공치기를 하면‥‥/ 풍덩 풍덩/ 나는 거품의 의미 속에서/ 끝없는 항해를 한다/ 거품의 해일을 빨아대며/ 끝없는 여름의 뱃길을 간다.

(남승만/ 맥주)

 

이 곪아 터지지도 못하는 아픔/ 맥주잔에 넘치는 비애의 거픔을 마시고/더럽게 더럽게 웃는 밤이여/ 나를 짓밟아다오 제발.

(이가림/ 오랑케꽃)

 

술에 절반/ 무등차에 절반/ 취하여 달을 안고,/ 돌아가는 가을 저녁-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김현승/ 가을 저녁)

 

늘 취해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이것만이 문제다. 어깨를 억눌러 당신을 땅으로 궁글리게 하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상 취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 그러나 무엇에?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다만 취하기만 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풀위에서나, 당신 방의 음침한 고독 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취기가 이미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 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몇시냐고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주겠지./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구박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취하라. 노상 취해있으라! 술에건, 시

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보들레르/ 취하라)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 술을 빚어/ 깊은 지하실에 묻을 시간이 오면/ 나는 저녁 종소리와 같이 호올로 물러가

(김현승/ 가을의 시)

 

 

설 교 노 트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렘35:6

 

서론

본문의 내용은 레갑 족속들이 지켜 오는 그들의 조상 요나답의 유훈 중에 그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신 교훈입니다. 그 뜻 깊은 교훈의 내용을 몇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향락주의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찐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력한 그들은 화 있을찐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유쾌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당한 즐거움은 곧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유쾌감에 도취되어 본연의 깨끗한 마음에서 이탈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 육체와 정신이 아울러 흥분되어 연락에 빠지게 되니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요즈음의 시대는 술만이 아닙니다. 담배나 마약 같은 것으로 향락을 누리고자 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고 깨끗한 즐거움이 아니라 마취되어 광란적인 쾌락을 누리려고 하는 것은 범죄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정신을 혼미케 하는 까닭입니다.

잠23:29-35에 보면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줄에 잠긴 자에게 있는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닥가운데 누운 자 같은 것이며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은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술을 계속해서 마시면 모든 신경이 마비되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도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교훈하신 것입니다.

 

3. 술은 실패와 범죄케 합니다.

노아가 홍수에서 구원을 받은 후에 포도원을 하였습니다. 거기서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창9:21) 추태를 드러내었습니다. 그리고는 취중에 아들을 저주한 것입니다. 노아는 의인이라고 하였으나 그가 술을 마시고 나서는 자기 아들을 향해 저주를 한 것입니다. 이처럼 술은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소등성에서 탈출하는데는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알 산 굴 속에서 술에 취하여 자신이 낳은 딸들과 동침하여 딸들로 잉태케 하는 불륜의 씨를 낳았습니다(창19:30-38).

이처럼 술은 사람으로 하여금 실수하게 하고, 실패하게 하고, 범죄케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결론

술에 취한 자는 결국 나라까지 멸망시킨다는 경계이니(전10:16) 술은 마지시 말라는 교훈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주시는 동일한 교훈인 것입니다.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

렘51:7

 

서론

여기 "잔"이란 술을 담는 용기입니다. 술은 취하게 하는 일이 그 주 임무입니다.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취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술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술을 계속해서 마시면 취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란 뜻은 무엇입니까?

 

1. 금잔의 뜻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귿으로 만든 술잔입니다.

벨사살 왕은 귀인 일천 명을 초대하여 큰 잔치를 할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금·은 기명으로 술을 마셨습니다(단5:1-4).물론 그 그릇은 술잔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쓰던 성기(聖器)들인데 벨사살이 이를 모독하여 일부러 술잔으로 악용하였으니 무서운 범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개된 "금잔"은 바벨론의 화려함과 사치성을 나타낸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매우 화려하고 사치스러웠으며 향락을 즐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술을 마시는 데에 있어서도 금으로 만든 잔을 사용하여 자기 나라의 부유함을 자랑하고자 한 것입니다.

 

2. 술은 취하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술의 특성은 알콜의 작용으로 마신 자의 심신을 마취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므로 술을 마시게 되면 반드시 취하게 됩니다. 즉, 취하려고 술을 마신다고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술 취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잠23:21), 마침내 술이 뱀같이 물고, 독사같이 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잠23:32).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너무 간절하게 기도하다가 엘리 제사장에게 술 취한 여자로 오해를 받은 일이 있으며(삼상1:12-18), 오순절에 성령강림 운동이 전개되었을 때에도 120명 교인이 성령을 충만히 받고 방언을 말할 때에 어떤 이들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던 일이 있습니다(행2:12-13). 취한다고 함은 결국 자기 정신이 바로 유지되지 못하는 미치광이의 증상으로 나타난다고 보겠습니다.

 

3. 온 세계로 취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음식물은 상대자나 동석자에게 권하는 일이 없지 않으나, 대개 당사자의 의견을 참작하여 한 번 권하는 정도이지만,술을 권하는 정도가 아니고 강제로 권면하고, 간교하게 유도하며, 같이 마시고 같이 취하도록 작용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즉, 마취성의 연쇄작용입니다.

때문에 한 사람의 취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파급되어 곧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결론

여기서 영적으로 해석하면, 모든 나라를 압제하여 비틀거리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 파급효과로 인해 모든 나라에게 진노를 나타내십니다.

죽 음

성 경 활 용

1. 성경에 기록된 죽음의 여러 가지 표현

(1) 조상에게로 돌아간다.

(창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2) 잠들었다.

(요11:ll)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3) 다시 볼 수 없다.

(욥20:7) 자기의 똥처럼 영운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4) 기운이 진하다.

(창25:8)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애1:19)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

(5) 무서움의 왕에게 잡혀갔다

(욥18:14)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 무서움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6) 혼이 떠난다.

(행5:10)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7) 땅의 티끌 가운데 잔다.

(단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8) 없어지는 안개다.

(약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9) 혼은 위로 올라간다.

(전3:21)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10) 몸을 떠난다.

(고후5:8)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11) 땅에 있는 우리 장막이 무너진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12) 장막 줄이 뽑힌다.

(욥4:21) 장막 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 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13) 열조와 합께 잔다.

(신31: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14) 장막을 벗었다.

(벧후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영혼을 도로 찾으신다.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16)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간다.

(욥16: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2, 죽음에 대한 일반적 성격

(1) 적신으로 들어간다.

(욥1:21)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고 돌아 가올지라

(2) 필연적이다.

(삼하14:14)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히9:27)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3) 죽음의 때를 알 수 없다.

(창27:2) 이삭이 가로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노니

(창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4) 죄의 결과이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5) 두려운 것이다.

(삼하22:5-6)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3. 왜 죽는가?

(1) 향년이 되어서

(창23:1) 사라가 일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2) 병들어서

(눅7:2)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3) 굶주려서

(눅15:17)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4) 때가 되어서

(전3:3)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5) 재앙으로

(출11:5)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4. 육적 죽음의 결과

(1) 사망의 회중에 거한다.

(잠21:16) 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

(2) 소멸된다.

(욥14:14)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3) 아무것도 모른다.

(전9:5)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됨이라

(4) 열조에 게로 돌아간다.

(시49: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5) 악인은 죽을 때에 소망이 끊어진다.

(잠11:7)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tWm 무-트

(1) 죽다.

(신13:10, 욥1:19)

(2) 망하다, 파괴하다.

(호13:1, 암2:2)

(3) 죽는, 죽으려는.

(창20:3)

 

2. tw<m; 마-웨트

(1) 죽음.

(시l3:4)

(2) 죽을 죄.

(삼상20:31, 왕상2:26)

(3) 죽은 자의 장소, 거처, 지옥.

(욥28:22)

(4) 치명적인 병, 역병, 해독.

(욥27:15, 렘15:2)

 

3. hl;ben] 네벨-라-

(1) 시체, 사람의 시체.

(신21:23)

(2) 동물의 시체.

(레5:2, 7:24)

 

4. ajpovllumi 아폴루미

(1) 파멸시키다, 파괴하다.

(막1:24, 롬14:15)

(2) 죽이다, 사형에 처하다.

(마2:13, 막3:6)

(3) 잃다, 상실하다.

(마10:39, 요12:25)

(4) 파멸하다, 죽다.

(마8:25, 행5:37)

(5) 사라지다, 파멸되다.

(마9:17, 히1:11)

(6) 잃다, 상실되다, 방황하다.

(마10:6, 눅21:18)

설교예화자료

낙엽

 

날리는 낙엽은 우리 인간들에게 귀한 생의 교훈을 주며 최후에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남깁니다. 낙엽은 황금빛의 단풍으로 변해 떨어 질 때가 가장 아름답고 그 빛나는 영광을 조물주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보배로운 산 교훈입니까? 그러므로 동양의 지혜를 다 모아 놓았다고 하는「채근담」이란 책에 "사람을 볼 때는 그 후반 생을 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란 그 최후를 바로 마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옛 글에도 '인지장사 기언야선(人之將死 其言也善)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에 가까이 이를수록 그 마음과 말이 착해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기 얼마 전 말하길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인생의 마침입니까? 스데반은 순교 직전에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로 변하였고 그의 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그리스도를 보았으며자기를 돌로 치는 이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장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입니까? 떨어지는 단풍의 미와 영광 그대로입니다.

 

 

마지막 면회

 

미국의 유명한 목사 필립 브룩스가 중병에 걸려 모든 문병객의 면회를 일체 사절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명한 법률가이며 반기독교인인 잉거솔(Robert Green Ingersoll)이 면회를 신청하자 유독 그에게만은 면회를 허락하였습니다.

잉거솔 씨는 기분이 좋아서 병실로 들어가 "만나게 해 주서서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임종이 가까운 브룩스 목사는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특별히 만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파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가 있지만 당신과는 이제 헤어지면 영원히 만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주 안에서의 죽음

 

어떤 사람이 신령한 교부 신학자를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죽으려면 어떻게하면 됩니까? "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원수 같이 미운 사람들이 있었지? "

"예"

"그 사람들 중에 죽은 사람도 있나?"

"있습니다. "

"그러면 내일 그 사람의 무덤에 찾아가 그 무덤 앞에서 실컷 욕하고 발길질도 하고 오게 ."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아뭏든 시키는 대로 하게."

그래서 그는 죽는 법을 알기 위해 교부가 시키는 대로 원수 같은 사람의 무덤을 찾아가서, "나쁜 놈, 고약한 놈"하며 온갖 욕을 다 퍼붓고 무덤에 발길질도 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교부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시킨 대로 다 했습니다. 이젠 가르쳐 주십시오."

"아니, 아직 한 가지 더 남은 것이 있네.

자네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 중에도 죽은 사람이 있지?

"예, 있습니다. "

"그러면 내일 그 사람 무덤에 찾아가서 온갖 칭찬과 사람의 말을 하고 오게."

이번에도 그는 교부의 말대로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의 무덤에 찾아가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과 사랑의 말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음날 다시 교부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다 했습니다. 이젠 죽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다 가르쳤으니 돌아가게."

"아니, 다 가르치다니요? 저는 이틀 동안 선생님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데,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여보게, 자네가 원수 무덤에 가서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하니 원수가 뭐라고 말하던가?"

"아무 대답도 없었습니다. "

"그러면 사랑하던 사람의 무덤에 가서 사랑과 칭찬의 말을 하니 그 죽은 사람이 좋아하던가?""아니,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

"원래 죽은 사람은 대답할 수가 없는 것이야. 죽은 사람은 원수가 오른 뺨을 치고 겉옷을 벗겨가고 오리를 끌고 가도 불평이 없는 법이야. 또 사람들이 칭찬을 하고 높여주어도 그것에 기뻐하거나 보답할 수가 없어.

원수가 욕을 하든, 사랑하든 사람이 칭찬을 하든,그런 것에 좌우되지 않고 주님만 따라갈때, 주님 안에서 죽은 사람이 되는 거야."

 

 

쓸모있는 삶

 

'암'의 선고를 받고 죽음을 눈앞에 둔 한 젊은이가 자기의 생명을 쓸모있게 바치는 길을 찾았으니‥‥‥

후랭크가 13살 될 때까지 그는 아주 다루기 힘든 개구쟁이였습니다. 마음씨는 아주 착하였으나 좀 난폭한 편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장난과 실수를 통해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였던 리곤 박사가 후랭크를 바로잡아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리곤 박사는 후랭크에게 인생을 좀더 진지하게 대하라고 가르쳤고, 청소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기가 보람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이라고 인식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자기의 적성에 맞아야 하지만 세상에 도움을 주는, 그래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이어야 한다고 설득시키기도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냥 단순한 생활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랭크는 나이가 들면서 무엇인가 보람된 일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에게는 어려움이 들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른편 옆구리에 계속적인 통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처음에 맹장염, 혹은 충수염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그를 종합진단해 본 결과 후랭크는 암에 걸려 있었습니다. 기껏해야 앞으로 두 달밖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통고가 전해 졌습니다.

리곤 박사가 병원으로 후랭크를 방문했을 때, 후랭크는 리곤 박사를 보고 물었습니다. "박사님께선 우리가 쓸모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지요? 그런데 저는 앞으로 두 달밖에는 더 살 수가 없어요. 이 두 달 동안에 어떻게 쓸모있는 삶을 살 수가 있지요?"

심리학자는 머리를 가로 흔들면서

"후랭크야, 나도 모르겠구나."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후랭크가 다시 말했습니다.

"박사님, 언젠가 도박이 나쁜 짓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나 한 번만 눈감아 주세요. 나는 내가 죽기 전에 쓸모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도박을 해보고 싶어요."

리곤 박사는 웃으면서 돈을 걸자고 말하며 돈을 책상 위에 놓았습니다. 다음날 그가 병원에 다시 왔을 때, 후랭크는 웃고 있었습니다.

"박사님, 제가 이겼어요, 제가 오늘 아침에 의사하고 상의했고 또 부모님과도 이야기했어요. 무엇일 것 같아요? 저는 장례식을 안해도 돼요!"

리곤 박사는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의사들의 진단이 잘못으로 판명이 된 것일까? 후랭크가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박사님, 제가 죽는 건 틀림 없어요. 그러나 부모님의 허락으로 내 신체를 연구용으로 병원에 바치기로 했어요. 아마도 의사들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저는 쓸모있는 삶을 살 것이 아니겠어요?"

 

 

하나님이 맡긴 보석

 

메이어라고 하는 랍비가 안식일에 예배당에서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에 그의 두 아이가 자택에서 죽었습니다. 아내는 두 아이의 시체를 이층으로 옮겨, 흰 천으로 덮어주었습니다. 랍비가 돌아오자 아내는,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잘 보관해 달라고 말하며, 아주 비싼 보석을 맡기고 갔습니다. 그 주인이 갑자기 맡긴 보석을 돌려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 저는 어찌 하면 좋을까요? "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그것을 주인에게 곧 돌려주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실은 지금 막 하나님이 두 개의 귀중한 보석을 하늘로 가지고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알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배

 

화물을 만재한 두 척의 배가 항구에 떠 있습니다. 한 척은 출항하려고 하고 있으며 한 척은 막 입항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배가 떠나갈 때에는 성대하게 전송하는데, 들어올 때에는 별로 환영하지 않습니다.탈무드에 의하면 이것이 대단히 어리석은 습관입니다. 떠나가는 배의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폭풍을 만나 배가 가라앉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왜성대하게 전송하는 것일까. 긴 항해를 끝내고 배가 무사히 돌아왔을 때야말로 커다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 가지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모두가 축복합니다. 이것은 아이가 마치 인생이라는 바다에 배를 띄운 것과 같은 것으로서, 그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릅니다. 병으로 죽을지도 모를 것이며, 그 아기가 무서운 살인범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이 영원히 잠에 들어갔을 때, 그가 인생에게 무엇을 해 왔는가를 모든 사람이 알고 있으므로, 이때야말로 사람들은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의 죽음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죽기 전에 "나는 두 해 전, 후오리이오에 있을 때 하나님의 계시로 나의 죽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내 죄를 완전히 용서해 주시고 천국의 축복 속에 내가 들어갈 것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너무도 기뻐 노래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하루빨리 이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하고 술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임종 시기가 되자 그는 희열에 넘치는 표정으로 말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원하옵건대 내 영혼을 이 세상에서 풀어 주시고 내가 당신의 이름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그리고 주에서 저에게 후하게 베풀어 주시고 의인들이 나를 감싸주게 하소서,"하고 말하면서 조용히 선종하였습니다.

그는 주님의 손에 끌리어 평생을 산 가난한 자의 친구였습니다.

 

 

잊어버린 다섯 번째 상처

 

프레드릭 폭스 박사는 뱀에게 물린 상처를 치료하는 분야에 평생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도의 캘커타에서 크라이트라고하는 종류의 치명적인 독사를 갖고 실험을 하다가 뱀에게 물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영국령인 인도에서는 이 크라이트 종류의 뱀들로 인해 매년 3만 5천여 명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폭스 박사는 그날 그의 치료법의 진가를 시험해 보기 위해 크라이트가 자신의 팔에 다섯 군데의 상처를 내도록 만들고 자신감에 넘친 미소를 지으며 한곳 한곳 상처를 치료해 나갔으나, 다섯 번째 상처에 주의를 게을리함으로써 독의 기운이 전신으로 퍼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재빨리 그의 치료법을 사용했으나 이미 때를 놓친 후였기에 그는 크라이트에게 물려죽은 수천 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불신자의 임종

 

철저한 불신자요, 무신론자였던 영국의 토마스 스코트는 최후의 순간에 "나의 운명은 너무 비참하다, 전능한 조물주의 심판에 빠져 들어가야 하는 이 두려움을 어이할꼬?"라고 탄식하는 말을 남기고 영원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랑스의 계몽학자이며 무신론자인 볼테르는 죽음과 입맞추는 임종의 순간에 그의 곁에서 시중들던 주치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모두 버림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6개월만 생명을 연장시켜준다면, 나는 내게 있어서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되는 것 중의 반을 드리겠소. 나는 이제 그 두렵고 떨리는 지옥으로 가게 되었소. 당신도 가게 될른지 모르오, 오! 그리스도여 나를 도와주소서."

"아,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고 있는 저 세상이 무섭다. 저 세상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마지막의 어둠 속으로 그냥 덥석 뛰어들어가는 것만 같다. "

불신자 네프리치는 임종시에 "영원히 지옥에서, 영원한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기보다는 오히려 백만 년 뜨거운 난로 위에 누어 몸을 지지며 태우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나는 돈을 위해서 부정과 부도덕을 택했는데, 이제 그 짐이 나를 끝도 없고 소망도 없는 지옥으로 밀어 누르고 있다. "라고 한탄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사람의 죽음은, 죽는 사람 자신보다는 생존자(遺族)의 문제이다.

(T. 만/ 魔의 山)

 

죽음을 찾지 말라.죽음이 당신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완성으로 만드는 길을 찾으라.

(D. 함마슬드/ 목표 수립)

 

인간은 죽음을 숙고하는 유일한 동물이며, 또한 자기 종말의 어떤 의심의 표시를 보여주는 유일한 동물이다.

(W.E. 호킹/ 인간경험에서의 불멸성의 의미)

 

죽는 모습은 죽는 것 자체보다 더 슬프다.

(마르티알리스/ 경구집)

 

죽어야 한다는 걱정의 깊은 곳에는 영원히 잊혀지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P. 틸리히/ 영원한 현재)

 

그러나 단두대에 높이 서든 싸움터의 앞장에 서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인류를 위해 죽는 곳이다.

(M. 배리/ 죽는 장소)

 

새는 죽음을 당하면 그 소리 슬프고, 사람은 죽음을 당하면 어진 말을 남긴다.

(증자)

 

하늘 아래 가장 훌륭한 광경은, 인간이 얼마나 용감하게 죽을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R. 뷰캐넌/ 오우머토)

 

죽음은 선에도 악에도 평등한 운명이요, 공동의 휴식처다.

(스펜서/ 요정여왕)

 

훌륭한 죽음은 전생애의 명예가 된다.

(페트라르카/ 임종의 로라에게)

 

이 모든 영혼의 소란과 투쟁의 횡포는, 약간의 흙을 뿌림으로써 평정되고 잠잠해 질 것이다.

(베르질리우스/ 농경시)

 

잘 보내진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여진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비망록)

 

좋다. 나는 힘껏 버티지만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G. 워싱턴)

 

인생은 영원하며 사랑은 죽지 않는다. 죽음은 지평선일 뿐, 지평선은 우리의 시야의 한계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R.W. 레이몬드/ 바람직한 기도)

 

삶에 대한 두려움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덜 비천하다.

(영/ 야상)

 

죽음은 연금의 다음 단계이다. 즉 지불 없는 영원한 은퇴이다.

(J. 지루도/ 마술에 걸린 사람들)

 

죽은 자의 생애는 산 자의 기억 속에 자리잡는다.

(키케로/ 필립피크 변호)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는 명랑해지는 일이 흔했다. 임종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 이전의 섬광이라고 한다.

(W.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훌륭히 죽는 것은 덕성의 으뜸이다.

(시모니데스/ 비명)

 

옛날에는 오로지 사는 가운데 오로지 죽더니, 지금은 오로지 죽는 가운데 오로지 사는구나.

(지눌/ 진각국사어륵)

 

우리는 우리의 생명에서 단 한 페이지도 찢을 수 없지만, 책 전체는 불 속에 내던질 수 있다.

(G. 상드/ 모프라)

 

죽음이란 없다 그와같이 보이는 것은 변화이다. 죽음이 입김이라는 이 생명은, 생명 극락의 외각지대에 불과하며, 우리가 그 입구를 사망이라 부를 따름이다.

(롱펠로우/ 체념)

 

태어난 자들에게 죽음은 확실하고, 죽은 자들에게 출생은 확실하니, 그러므로 필연적인 것에 대하여 그대는 슬퍼하지 말라.

(바가바드 기타)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삶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신심(信心)이다.

(B. 디즈레일리/ 엔디미언)

 

죽음, 그것은 인생의 종자요, 친구며, 우리를 피안에서 차안으로 안전하게 건네주는 안내자이다.

(F. E. 코우트스/ 잠)

 

출생의 끝은 사망이고, 사망의 끝은 출생이다. 이것은 정해진다!

(E. 아놀드/ 천국의 노래)

 

죽음은 한 순간이며, 삶은 많은 순간이다.

(T. 월리엄스/ 우유열차는 여기에 서지 않는다)

 

죽음이란, 친절한 자연의 후퇴 신호이다.

(S. 존슨/ 인간 소원의 부상함)

 

일생의 죽음은 비극이요, 일백만의 죽음은 통계이다.

(J. 스탈린)

 

우리는 단지 소작인에 불과하다. 조만간에 대지주는 계약기간이 만기되었음을 통보할 것이다.

(J. 제퍼슨/ 비문)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죽음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

(C. 프로우먼)

 

무덤은 영원의 문지방에 지나지 않는다.

(사우디/ 오를레안 처녀의 공상)

 

만물이 서로 다른 것은 삶이요, 서로 같은 것은 죽음이다. 살아서는 현명하고 어리석은 것과 귀하고 천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서로 다른 점이요, 죽어서는 썩어서 냄새나며 소멸되어버리니 이것이 서로 같은 점이다.

(양주/ 열자)

 

죽음이란, 인간이 하나님에게로 가려면 밟지 않으면 안 될 길에 불과하다.

(T. 파넬/ 죽음에 대한 야경시)

 

훌륭히 죽을 수도 있기 위해, 훌륭히 살기를 배우라. 살고 죽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다

(J. 데넘 경/ 편견에 대하여)

 

죽는 자는 모든 빚을 갚는다.

(W.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죽음은 삶의 시작. 그것은 낡고 침체되고 피곤한 일에 대한 종말. 그것은 거짓말쟁이 악당들을 떠나 신과 여신들의 나라로 향하는 것.

(보몬트와 플레처/ 1인 4역)

 

죽음은 우리에게서 달아나는 생명의 측면이다.

(R.M. 릴케/ W.V. 훌레비치에게의 서한)

 

죽음은 죽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J. 페인/ 키릴)

 

생(生)은 과오일 뿐 사(死)가 지식이다.

(J.C.F.V. 실러/ 카산드라)

 

사망은 인생 물결의 첨단이다. 출생도 그렇다. 사명과 출생은 같은 것이다.

(A.H. 실베르/ 불멸의 위대한 사상)

 

죽음은 우리들 모두가 갚아야 하는 빚이다.

(에우리피데스/ 알케스티스)

 

사람들은 당신의 죽음에 의해서만, 당신의 논증과 당신의 성실성, 당신의 노력의 진지성을 확신한다.

(A. 카뮈/ 전락)

 

완전하게 죽기 위해서, 사람은 잊을 뿐 아니라 잊혀져야 한다. 잊혀지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S. 버틀러/ 비망록)

 

죽음을 피하기보다 죄를 삼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수치스러운 죽음이 두렵다.

(메난드로스/ 단편집)

 

죽는 것은 어느 누가 상상한 것과도 다르며, 그보다 더한 행운이다.

(W. 휘트먼/ 풀잎)

 

나의 모든 과업을 끝마쳤을 때는 죽음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입니다.

(E.W. 월콕스/ 여행)

 

나는 나의 집을 떠나듯이 일생을 하직하는 것이 아니라, 여인숙을 떠나듯이 일생을 하직한다.

(키케로/ 노년론)

 

죽음이여! 그대는 행복한 사람들에겐 무섭지만, 불행한 자들은 그대를 즐겨 동경한다. 오, 그대는 진실한 위안자요, 곁에 친구를 못가진 모든 자의 친구로다.

(사우디/ 쟌다르크)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삶을 시작조차 못하는 사람이 많다.

(H. 밴 다이크/ 방법상의 충고)

 

죽음의 긴 잠은 마음의 상처를 아물려주고, 인생의 짧은 잠은 육체의 상처를 아물려준다.

(장 파울/ 헤스페루스)

 

자살은 살인의 최악의 형태이다. 자살은 참회의 기회를 남겨 놓지 않기 때문이다.

(C. 콜린즈/ 경구집)

 

자살의 기도는, 범죄적 무례이다.

(A. 체이스/ 전망)

 

아무도 일 년을 더 못 살 만큼 늙지는 않았으며, 아무도 오늘 죽을 수 없을 만큼 젊지도않았다.

(F.D. 로하스/ 천국)

 

우리들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신은, 우리가 그의 명령 없이 이 세상을 포기하는 것을 금한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자살이라는 생각은 커다란 위안이다. 이로써 사람은 수많은 괴로운 밤을 성공적으로 지낸다.

(F.W. 니체/ 선악의 초월)

 

신이 사랑하는 자가 일찍 죽는다.

(메난드로스/ 디스 익사파톤)

 

우리의 혈통과 지위의 영광은/그림자이지 물질이 아니다. / 운명을 막아낼 갑옷은 없다. /죽음은 그 차가운 손길을 왕에게 뻗친다. / 홀(笏)과 왕관은/ 굴러 떨어져야 한다. / 그리고흙 속에 묻히면/ 굽은 낫과 삽을 가진 가난한 자와 같아져야 한다.

(J. 셜리/ 아작스와 율리시즈의 논쟁)

 

외롭고 고요하며 엄숙한 장면,/ 그곳에 군주도, 영웅도, 농부도, 은자도/ 흙 속에 함께 섞여 누워 있다. / 그곳에서 노예는 일손을 멈추고 쉰다. / 그곳에서 오만불손한 자는 권력을 포기하고/ 그곳에서 구두쇠는 감춘 돈을 뿌린다. / 그곳에서 인간의 우매가 잠잔다.

(J. 다이어/ 로마의 폐허)

 

암흑 속에서 영원한 잠을 자며 누워 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여행‥‥‥

(S. 츠바이크/ 모르는 여인의 편지)

 

항상 이 우주는 바늘귀처럼 보이노니/ 겨우 지닌 목숨 실낱보다 더 가늘고/ 태양도 너의앞에는 빛을 아주 잃는다// 오오 이 세상은 괴로움도 그만이다/ 가장 사랑하는 그 육신을 벗어나서/ 외로운 너의 영혼은 그 어데로 가랴느뇨.

(이병기/ 가람 문선)

 

죽은 사람은 새 벽에 나고/ 산 사람은 새벽에 죽는다// 죽음도 삶도 옆에 있는 것이지만/가서 만날 것이 죽음일 뿐이다// 사람은 그 죽음을 품에 안고 참으며/ 닭의 알처럼 삶을 낳는다/ 그러니 죽음이 있어도/ 인간은 영원히 있는 것이다.

(김광섭/ 인간은 영원히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종점으로 밀려간다. 모든 것은 늦거나 빠르거나 운명의 항아리 속에 뒤섞여서, 제비로 뽑혀 나와 영원한 멸망 속에 황천의 배에 실리는 것이다.

(호리티우스/ 카르미나)

 

그것은 탄탈로스의 바윗돌처럼 항상 우리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

(M.T. 키케로/ 선악의 한계)

 

바깥 사람의 어림 눈으호 보건대,/ 무덤이란 여섯 자 깊이에/ 석 자 넓이밖에 안 되리라/그러나 저 신비로운 잠을 위해/ 싸늘한 흙속에 굳이 갇혀 있을 때,/ 그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누가 알며/ 그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누가 아는가.

(J. R. 모런드/ 무덤)

 

죽음의 쓴 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이해인/ 기도)

 

죽음은 갈 것이다. 바람도 나무도 잠든/ 한밤에/ 죽음이 가고 있는 경건한 발소리를/ 너는들을 것이다. // 죽음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 가을 어느 날/ 네가 걷고 있는 잎 진 가로수 곁을/ 돌아오는 죽음의/ 풋풋하고 의젓한 무명의 그 얼굴,/ 죽음은 너를 향하여/ 미지의제 손을 흔들 것이다. // 죽음은/ 네 속에서 다시/ 숨쉬며 자라 갈 것이다.

(김춘수/ 죽음)

 

순수한 너의 맘에/ 가장 사랑스런 인간의 이야기를 기록할지언정/ 때묻고 피묻어 얼룩진/죽음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을지니

(강대식/ 백지)

 

뒹구는 마른 잎에 유서나 쓸까.// 5월의 죽음처럼 앓아 누운 대지,/ 노래도, 몸짓도, 가슴도, 언어마저 꽁꽁/ 얼어 붙은 이 산하

(김덕환/ 우리들의 겨울)

 

밤과 낮의 어느 시간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있는 법/ 영혼이 살기 위하여/ 나는 죽어야함을

(박이도/ 높은 곳, 먼 곳에)

 

죽음의 사자가 단숨에 날개를 펼쳐 지나며/ 적들의 얼굴을 입 김으로 불었노라./ 그리하여 잠자는 자의 눈은/ 고통으로 밀봉되었으며/ 그들의 가슴은 다만 신음 끝에/ 영원히 잠재워졌노라!

(바이런/ 산헤립의 파멸)

 

죽음은 없습니다. / 죽음처럼 보이는 것은 다만 일시적인 것입니다. / 운명의 숨결인 이 생명은/ 다만 천국 가까이에 있으며/ 그 운반자를 우리가 죽음이라 할 뿐입니다.

(롱펠로우/ 인종)

 

사람들이 비록 너를 무섭게 강하다고 하지만/ 사실 너는 그렇지 못하므로/ 또한 네가 멸망한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에게/ 그것은 결코 죽음이 아니니/ 가련한 죽음아, 자만하지 말라./ 다만 네 모습인 안식과 잠에서,/ 그리고 너로부터/ 많은 기쁨이 풍족하게 흐르니/네가물러가고 곧 우리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그들의 뼈와 영혼을 거두어 가시노라.// 너는 운명과 기회와 왕들과 그리고/ 절망하는 인간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독약과 전쟁과 그리고 질병과 함께 거하니라.//마약과 마력이 또한 우리를/ 잠자게 할 수는 있으나/ 네 손보다는 더욱나으리라.// 그런데 네가 뽐내는 것이 무엇이냐? //한 번의 짧은 잠이 지나고/ 우리가 영원히 깨어나면/ 더 이상 죽음이 없을지니/ 죽음아, 너는 죽으리라.

(존던/ 죽음아, 자만하지 말라!)

 

죽음이 다가오는 것은 그처럼 두려워한다는 것은/ 바로 생전의 사악한 생활의 증거요.

(W. 셰익스피어/ 헨리 6세 2부)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던 임이 오다 반가움이 이러하랴/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하노라.

(윤선도/ 孤山遺槁:山中新曲)

 

죽음은 지나가는 모든 산들 바람을 타고 와/ 모든 꽃 속에 숨는다. / 각 계절은 각기 병을 갖고 있고,/ 매시간마다 위험이 있다.

(R. 히버/ 장례식에서)

 

죽음은 여러 가지의 말로 얘기한다. / 죽음은 기쁨의 소리를 가졌다. / 죽음은 하늘치 청춘이다. / 죽음은 나뭇가지의 불꽃이다. / 죽음은 쓸쓸한 여름이다. / 죽음은 한 개의 일이다.

(中桐雅夫 / 시)

 

슬픔의 고장을 떠나,/ 엄숙한 어느 피안에서,/ 친애하는 벗들이 다시 한 번 만나리라 함은/예로부터 믿음이다.

(J. G. 로커트)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 포악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 속에서 참는 것이 더 고상한가?/ 아니면 고난의 바다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어 반대함으로써 이를 근절시키는 것이? 죽는 것은, 잠자는 것/ 그뿐이다. 만일 잠잠으로써 우리의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수천 가지 피치 못할 충격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열렬히/ 원할 극치.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들면 아마 꿈꾸겠지, 아, 이게 곤란해.

(W. 셰익스피어/ 햄릿)

 

오오, 자신감 넘치는 거만한 죽음은/ 흉한 언덕 위에서 조소하며 주님을 기다린다. / 하지만 주님은 느릿한 걸음으로 지옥에 내려가/ 그 헛된 것, 육체와 관을 깨뜨렸다.

(미젤리/ 골고다)

 

죽음의 순간을/ 수집하는 자는/ 바구니를 들지 않는다. / 단 하나의/ 심장을 채우면/ 되는 것이다.

(L.N. 팩스/ 엘리)

 

스승이 죽으리라는 것이 분명해지자, 제자들은/ 풀이 죽었다. // 스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너희들은 죽음이 삶에 사랑스러움을 부여한다는 것을 모르느냐?"// "싫습니다. 우리는 선생님께서 절대로 돌아가시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 "무엇이든 참으로 살아있는 것은 죽어야 한다. / 꽃들을 보아라. 플라스틱 꽃만이 죽는 법이 없다. "

(앤소니 드 멜로/ 흐름)

 

돌아보니 서산에 해지려는데 북소리 등등 내 목숨 재촉하네./ 황천 가는 길엔 술집도 없다는데./오늘밤은 뉘 집에서 쉬어서 가리.

(성삼문)

당신의 무덤가에 패랭이꽃 두고 오면/ 당신은 구름으로 시루봉 넘어 날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 앞에 소지 한 장 올리고 오면/ 당신은 초저녁 별을 들고 내 뒤를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가에 노래 한 줄 남기고 오면/ 당신은 풀벌레 울음으로 문간까지 따라오고/ 당신의 무덤 위에 눈물 한 올 던지고 오면/ 당신은 빗줄기 되어 속살에 젖어 오네.

(도종환/ 당신의 무덤가에)

 

빛과 같이 있으면/ 영원히 살 것이요./ 어두움은 죽음이니/ 그것을 멀리하여라.// '잠에서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리라,'

(황금찬/ 빛의 사랑들-에베소 5장 14절)

 

당신 눈 속에 여명의 빛이/ 숨결마다에 불멸의 강인함이/ 여름 하늘의 화려함./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서/죽음을 이기심으로 주신 것입니다.

(화이트/ 이제 승리와 영광뿐인 당신)

 

인간들이 집어넣은 얼어붙은 틈새로부터/ 태양이 비치는 겸손한 대지에/ 나, 그대를 내려놓으리/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대지 위에 나는 장들지니/ 그대와 나는 같은 베개를 베고/ 누워야만 하리// 잠든 아기를 위한 자상한 어머니와도 같이/ 태양이 비치는 대지에, 나 그대를 잠재우리,/ 고통스런 아기와도 같은 그대 육체를 안을 때/ 대지는 부드러운 요람의 구실을 하리.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죽음의 소네트)

 

그대가 먼저 가셔야 한다면/ 내가 남으렵니다. / 한 가지 그대가 해 주실 것이 있으니/ 죽음의 길을 천천히 걸으시사/ 곧 내가 그대를 따르게 하십시오./ 같은 길을 걷도록 그대의 발자국을 남겨 주십시오,/ 그 외로운 길을 얼마간 걸어가면/ 내가 부르는 그대의 이름을 들을 것입니다.

(알버트 로우스웰/ 먼저 가셔야 한다면)

 

죽음과 같은 것은 없다. / 자연 속에는 죽는것이 없다. /부패의 슬픈 찌꺼기에서/ 생명의형태가 솟아난다.

(C. 머카이/ 죽음과 같은 것은 없다)

 

죽음은 위대하다. / 우리는 웃고 있는/ 그의 입이다. / 우리가 생명의 복판에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우리의 한복판에서/ 감히 울기를 한다.

(R.M. 릴케/ 에필로그)

 

그럼 이제 눈 깜박할 사이./ 사람들은 언제나 내 줄을/끓어 버리곤 한다. / 이번엔 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미 나의 오장(五賜)에는/ 영원이 다소 것들어 있다. // 사람들은 내게 숟갈을 내밀고 있다. / 그 생명의 숟갈을./ 아니다. 나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 내 할 일은 내게 맡겨나 다오.// 나는 안다. 인생이란 마련된 것 착한 것이라./ 그리고 세계는 가득히 차 있는 도가니./ 하지만 내 핏속까지 찾아들진 않는다. / 머리에 올라올 뿐이다. // 그것은 딴 사람들을 길러 주지만, 나는 병들게 한다. / 사람들이 거부함을 이해해 다오./ 적어도 천년 동안은/ 내겐 이제 휴양이 필요한 것을.

(R.M. 릴케/ 자살자의 노래)

 

요양소에서는 환자가 의사와 간호원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면서 앞을 다투어 죽어 간다. 그리고 어떤 환자나 요양소가 규정한 방법으로 죽는다. 그것이 환영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집에서 죽는 자는 상류사회의 장엄한 죽음을 택하는 것은 물론, 말하자면 그와때를 같이하여 호화로운 장례식이 시작되고, 여러 가지 놀라운 관습이 뒤따른다. 그 집 문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서서 지칠 때까지 구경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의 죽음은 의식적인 것을 모두 생략한 평범한 죽음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기 분수에 맞는 죽음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으로 불평은 없다. 약간 커서 헐렁헐렁해도 지장은 없다. 그 정도는 인간 편에서 약간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나 옹색한 죽음으로 가슴의 단추가 채워지지 않거나 숨이 막히거나 하면 이것은 물론 좋지 않다.

(R.M. 릴케/ 말테의 수기)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기는‥‥/ 다만 우리의 빈약한 보호를/ 더이상 필요치 아니하며/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그 학교로 갔을 뿐입니다. // 매일매일 우리는 그 광명의 세상에서/ 그가 행하고 있는 것을 생각합시다. / 해가 바뀔 때마다/ 그의 부드러운 발길이 가는 곳에서/ 보다 순결하게자란 그를 봅시다. // 그리하여 우리가 그와함께 걷고/ 자연이 부여한 깨어지지 않는/ 결속을 유지합시다. / 비록 말은 없어도/ 그러한 우리의 염원이/ 주님의 세계에 있는/ 그에게 도달할 것입니다.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 죽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어지면 어드러로 보내는고/ 저승 이승같이 님한테 보내는가/ 진실로 그러곳 할작시면 이제 죽어 가리라.

(무명씨)

 

"이 여자가 하는 대로 투어라./내 장례를 위하여 이 여자는 향유를 붓고 있다-/ 가난한 사랑은 언제나 있으나/ 나는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없다. "/ 오오 그것이 나를 두둔하는 말씀인 줄만 여겼다/ 그렇듯 피투성이가 된 "죽음"에 관하여/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주께서 우리와 함께 오래 계시지는 않는다고 하셨는데도-/ 나는 그때 단지들의 백합처럼 기쁨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나가세 기요코/ 밤은 이제 새려한다- 매장과 부활)

 

나에게 생명을 주든지 죽음을 주든지 당신의 뜻대로만 하셔요./ 나는 곧 당신이어요.

(한용운/ 당신이 아니더면)

 

온갖 것은 이제 뒤덮이고 퇴색하려 합니다. / 안개 긴 나날이 불안과 근심을 깨어 줍니다./ 폭풍이 불어제친 밤이 지나면 아침엔 울음 소리가 납니다. / 이별이 울고 세상은 죽음에 가득 차 있습니다/그대여 죽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고/ 그대 몸을 맡기시라/ 죽을 수 있음을 성스러운 지혜입니다. / 죽음에 준비하시라---아껴 감으로써/ 그대는 보다 높은 생명에 들어서리니.

(H. 헤세/ 11월)

 

어차피 몸도 괴로워졌다/ 바삐 관에 못을 다져라// 아모려나 한 줌 흙이 되는구나.

(김영랑/ 한 줌 흙)

 

살아서 먹던 술을 죽은 후에 내 알더냐/ 팔진미(八珍味) 천일주(千日酒)를 가득 벌여 놓았은들/ 공산(空山)에 긴 잠 든 후는 다 허사인가 하노라.

(오준)

 

그러므로 내가 침묵의 강 위로/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네./죽음, 그대의 재촉하는 노를내가 알고 있으니/ 당신, 생명 주시는 분이여,/ 나를 데려가소서./ 강을 건너서 기슭에까지/ 나의 주님이 먼저 가신 그곳까지‥‥‥

(루시 라이콤/ 강을 건너서)

 

죽음이 아니랍니다. / 다만 어둠의 저편,/ 충만한 광명 속에서의 탄생이지오./ 안개와 구름과 폭풍우를 영원히 없게 하는/ 모든 것이 조용하고 밝은 곳이지오.// 잠자는 것도 아니랍니다. / 하늘나라의 청명한 날에/ 즐거이 깨어나는 기쁨이지오.// 정지된 것도, 움직임이 없는 것도 아니랍니다. / 천국 길을 걷기 위해/ 지상의 험한 곳을 벗어날 것이지오.// 침묵이 아니랍니다. / 다만 달콤하고 새로운 하늘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지상의 소음을 떠난 것이지오./ 외로움이 아니랍니다. / 하지만 옷의 무리 가운데/ 정답게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지오.// 그러나 잊지는 마세요./ 잠시 떠난 사랑스런 이들의/ 정다운 추억을 간직하세요./ 그리고 환희와 기쁨으로 다시 만남을/ 밝은 희망 속에 기다리세요.// 오, 아니랍니다. 죽음이 아니랍니다. / 다만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 모든 고통의 끝남이지오./ 예수께서 영원히 살도록 나를 부르실 때/내가 죽었다고는 하지 마세요.

(마리온 네더톤/ 위안)

 

나는 한 마리 독수리로부터/ 깃털 하나가 떨어져 날리면서/그날이 왔도다. / 밤의 날개에 어둠이 떨어 지도다. // 빛 줄기와 안개 사이로 어렴풋이/ 마을의 불빛이 보이네./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내 영혼을 엄습해 오네.//고통과 같지 않을지라도/ 안개와 비가 서로 닮았듯이/ 비애를 닮은 슬픔과 영원이 여기 있어라.// 내게로 와 주십시오./ 그리고 아름다운 시를 읽어 주십시오./ 이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을 달래 주시고/ 오늘의 괴로움을 몰아내는/ 분명하면서도 가슴 저미는 시구를.// 그 노래는 근심으로 끊일 날이 없는 나날을/잠재우는 힘을 주며/ 기도 위에 오는 축복처럼 들려오네.// 그런즉 소중히 간직한 책에서/ 당신이 선택한 시를 읽어 주시오./ 그리고 그대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그 시의 음율에 얹어 주구려.// 그러면 이 밤은 음악으로 가득 찰 것이며/ 삶 속에 나타나는 뭇 근심들은/ 아랍인들처럼 낡은 텐트를 접고/ 조용히 사라질 것이니.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 그날이 왔도다)

 

우리들의 가장 고상한 통나무집과 가장 위엄 있는 방도,/다만 우리 무덤의 옥외변소에 지나지 않는다. / 시가지. 네가 그렇게 크고 장엄해도,/ 무덤의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

(S. 버틀러/ 인간의 연약과 비참)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스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박목월/ 하관)

 

죽음은,/ 나그네가 그 한계를 넘어서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이다.

(W. 셰익스피어/ 햄릿)

 

오, 벗들이여! 이제/ 구름 한점 없는 날이 기다리고 있소./ 나를 따르라 부르심같이/ 그대들의 발걸음 따라 나를 부르나니/ 이제 그대들의 갑옷은 벗을 수 있고/ 그대들의 지상의 경주는 끝났네.

(화니 J. 크로스비/ 천국의 불빛)

 

잎들은 떨어질 때가 있고,/ 꽃들은 북풍에 시들 때가 있으며/ 별들은 질 때가 있다 -/ 그러나 사철, 오 죽음! 너에겐 사철이 너의 것이구나.

(F.D. 헤먼즈/ 죽음의 시간)

 

걷던 걸음 멈추고 서서도 얼컥 생각키는 것 죽음이로다/ 그 죽음이사 서른 살 적에 벌써 다 잊어버리고 살아왔는데/ 웬 노릇인지 요즘 자판 그 죽음 바로 닥쳐온 듯만 싶어져/ 항용 주춤 서서 행길을 호기로이 달리는 행상을 보랐고 있느니

(김영랑/ 망각)

 

내 죽을 때, 내 사랑하는 이여,/ 나를 위해 슬픈 노래는 부르지 말라./ 내 머리맡에 장미도,/ 그늘지는 삼나무도 심지 말라./ 내 위에 소낙비와 이슬방울로 축축한 푸른 잔디를 심어 달라./ 그대가 원하면 기억하고,/ 그대가 원하면 잊으라.

(C. 로제티/ 頌歌)

 

나뭇잎은 떨어지는 때가 있으며/ 꽃들은 북풍의 입김에 시드는 때가 있으며/ 별들은 지는 때가 있습니다. / 그러나 모든 것,/ 당신깨서는 당신의 모든 계절을 다스리시니, 오, 죽음이여!/ 한낮은 인간의 근심의 시간이며/ 저녁은 화롯가의 오손도손/ 반가운 해후의 시간이며/ 밤은 기도의 소리, 잠속의 꿈을 위함이니/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전능하신 당신을 위함입니다. // 연회는 끝이 있답니다. / 환희와 노래, 포도주의 열기 어린 시간/ 이제 슬픔으로 걷잡을 수 없는 날이 옵니다. / 부드러운 눈물의 시간./그러나 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 // 젊음과 만발한 장미꽃이/ 시들기에는 너무 영화로운 듯이 보이 겠지요./ 그리고 당신에게 미소짓겠지오‥‥/그러나 당신은 그것들을 빼앗기 위해/그 꽃이 만발하기를 기다리는 분은 아닙니다. // 나뭇잎은 떨어지는 때가 있으며/ 꽃들은 북풍의 입김에 시드는 때가 있으며/ 별들은 지는 때가 있습니다. / 그러나 모든 것,/ 당신께서는 당신의 모든 계절을 다스리시니, 오, 죽음이여!// 언제 달이 기우는지 우리는 압니다. / 멀리서 온 여름 새가 언제 바다를 건너는지/ 가을의 색조가 언제 곡식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지 압니다. / 그러나 누가 우리에게/ 언제 당신을 찾으라고 가르쳐 줄까요?// 봄날의 첫 실바람이 불어와/ 제비꽃이 핀 곳을 속삭여주는 때일까요? / 길에 핀 장미꽃이 그 빛을 바랠 때인가요? / 우리에겐 한 계절만이 있을 뿐/ 모든 것은 우리의 죽음을 위한 것입니다. // 당신은 파도가 거품을 이는 곳에 계십니다. / 당신은 허공속으로/음악이 녹아드는 곳에 계십니다. / 당신은 평화로운 우리 집에서/ 우리를 감싸고 계십니다. /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부를 때/ 당신은 그곳에 계십니다. // 당신은 친구가 친구를 만나는 곳에 계십니다. / 당신은 느릅나무 아래서 쉬시며/적이 적을 만나고 팔이 하늘을 찢어대고/검이 왕자의 투구를 내려치는 곳에 계십니다. // 나뭇잎은 떨어지는 때가 있으며/ 꽃들은 북풍의 입김에/ 시드는 때가 있으며/ 별들은 지는 때가 있습니다. / 그러나 모든 것,/ 당신께서는 당신의 모든 계절을 다스리시니, 오 죽음이여!

(펠리시아 헤만스/ 죽음의 시간)

 

안녕, 땅의 축복이여 안녕!/ 이 세상은 확실치 않은 것 . / 삶의 욕망에 찬 기쁨들은 좋지만/ 죽음은 그것들을 하찮은 것에 불과하게 하느니/ 아무도 그의 투장을 피할 수 없네 ; / 나는 병들고, 죽어야 하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토마스 내쉬/ 역병이 창궐하는 때에, 1593)

 

나는 당신을 찾지 않았고, 나는 당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목마르게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차거운 죽음의 물결이 나를 들러쌉니다/ 괴로운 죽음의 물결이 나를 놀라게 합니다.

(C. 로제티/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비록 내가 죽을지가도, 나는 다시 삽니다. 죽음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바랍니다/ 숨이 끊어지는 것은 그다지도 유일한 일,/ 나는 죽습니다, 죽음을 욕망하면서까지./ 아직 내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죽음과죽어 가는 삶의 어여쁜 싸움이,/ 당신이 감미롭게 나를 죽이실 때/ 스스로를 느끼지 못하면서,/ 나는 당신 속에 삽니다.

(리처드 크래쇼우/ 노래)

 

쓰라림은 감미로움으로 변했나이다/ 죽음의 문을 통하여 나의 백성이/ 크나큰 의혹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소서.

(본회퍼/ 약속의 성취)

 

나 죽음을 구하지만 그것을 얻음은 모태에서며,/ 나 생명을 구하지만 그것은 그림자임을아느니」 나 대지를 밤고 있어도 그것이 바로 내 무덤이라./ 나 지금 죽으려 하지만 지금 막 태어났을 따름,/내 잔을 가득히 채우지만 내 잔은 비었느니,/하여 지금 나 태어났어도 내 생명 지금 사라진다

(티치번/ 내 젊음의 날은)

 

십자가를 내 몸의 보호로 삼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의 방패로 삼아/ 그 은총이 위로가되게 하소서./ 이 육신의 몸이 죽음의 자리에 이를 때/ 바라옵기는 나의 영혼이/ 거듭나는 영광을 베풀어 주소서.

(토디/ 비탄의 성모)

 

밤마다/하느님의 산에 올라가/바위를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 두 주먹이 피투성이가 된다. // 모세는 믿고 있다. / 그 바위가 갈라지며/ 거기서 불길이 치솟아야 한다고// ‥‥ 드디어 아침이다. / 해야 솟아라./ 꿈틀거리는사막에 피를 토하면서/ 머리가 터진 채 쓰러진 모세 위로.

(문익환/ 모세의 죽음)

 

가인이여, 너로 해서 우리들은/ 고문의 괴로움을 겪어야 하노니/ "어찌하여?"/ 왜 너는 그 사랑의 종말에/네 동생의 어린 생명을 앗았던가.

(작스/ 가인이여)

 

그때 느꼈던 그 기쁨의 날이/ 얼마나 헛되고 짧았었던가./ 그날은 재빠르게 지나가 버리고/ 뒤이어 죽음의 사자가 이르렀구나./ 기쁨의 웃음이 채 사라지기 전에/크나큰 슬픔이 밀어닥쳤나니,/ 그대가 간 죽음의 나라를 찾아/ 죽음을 이끌고 나 또한 가랴?

(아바엘라르두스/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하는 다윗의 노래)

 

하나님, 부모를 위해 아직 어린 이 아이를 지켜 주십시오./당신이 한 줄기 풀을 바람에서 지켜 주시듯이 말입니다. / 어머니는 울고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하나의 의무처럼/ 지금 당장 이 아이를 죽지 않게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으로서는 괜찮은 일이실 것입니다. / 만일 당신이 이 아이를 살게 그대로 두신다면/ 내년의 화려한 축제 때 이 아이는 장미 꽃송이를 뿌리러 갈 것입니다. / 당신은 아주 친절하신 분입니다. 하나님, 그러하니/ 이 장미색 양볼에 창백한 죽음을 놓는 것은 당신이 아닙니다

(잠/ 14편의 기도노래-3 ·아이가 죽지않기 위한 기도)

 

왜 죽음은 디모클레스의 칼처럼 공중에 떠서/ 계속 자연을 절단하여 괴롭히고 있는지

(비니/ 올리브산 · 2)

 

내가 바라기는 나 또한 너와 같이/ 죽음의 때가 내게 다가올 때/ 희망이 내 마음속에 꽃피어/ 세상을 하직하면서도 하늘을 우러르기를 원하노라.

(브라이언트/ 보라빛 용담꽃)

 

그의 죽음은 영광이고/ 그의 죽음은 만인의 생명이며/ 그의 죽음은 신앙의 사표임을 잊지 말아라.

(박이도/ 이 수난을)

 

소녀여, 왜 나를 따라오는가/ 성스러운 곳 문 앞에 내가 다다랐을 때?/ 내 결심은 비틀거리고 들어감은 죽음 같다. / 돌아서서 네 얼굴을 들여다볼 때에.

(다이먼트/ 서른 두 살의 성 어거스틴)

 

당신은 죽음을 만드셨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말씀은/ 당신이 만드신 두 골 위에 있나이다. // 당신은 우리들을 흙 속에 버리지는 않으시리니/ 우리는 사람을 지으신 그 까닭을 모르나이다. / 그는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라 생각하나이다. / 그런데 당신이 그를 만드신 것은 정당하십니다.

(테니슨/ 인 메모리엄)

 

입가 흐뭇스레 진 엷은 웃음은,/ 삶과 죽음가에 살짝 걸린,/ 실오라기 외나무다리

(천상병/ 미소)

 

어디서나/ 우리의 희망은/ 아름다운 죽음으로 변시해 갔다.

(홍윤숙/ 희망)

 

타다 남은 마음의 공터에/ 불을 붙이면/ 죽음의 냄새는 심장 가까이 와서/ 새의 깃소리같이 파닥거린다.

(김규동/ 한 시대)

 

표백된 수도관의 물소리처럼/ 은밀한 지성을 키워 가는/ 죽음의 축제를 향하여 삐걱이는 잡음을 견디면 된다.

(김규동/ 어떤 낙화)

 

아, 나는 그윽한 그 향기를 입술에 물고/ 천고(千古) 뒤까지 날아야 하네/ 커다란 죽음이 님과 나를 덮을지라도/ 아, 나는 날아가 그것을 전해야 하네.

(김종해/ 새)

 

한라산/사제비동산 가는 길가에/넋이 나간 고사목(枯死木)/ 죽어서도 미래를 사는 고집

(이생진/ 한라산 고사목)

 

죽음보다/ 사람을/ 더욱 오래 살게 하는/ 묘약은 없노라.

(임춘남/ 성경)

 

울고 있는 것은/ 무덤 앞에 앉아 있는 유족이 아니고/ 산이었다// ‥‥결국 머무는 곳은/ 바람이 멎고/시간도 정지되는/ 안개의 언덕.// 그 피안을 모두들 걸어가고/ 다시 걸어오지 않는다// 의식과 체험이/ 해체되는 세계/ 환상이 작용할 뿐/ 그것이 전부.

(황금찬/ 무덤)

 

오랜 병 앓아 누워/ 창 밖의 찬 비 소리 혼자 듣나니‥‥/ 죽을 때 미리 안다 무엇이 대단한가/ 선 죽음 앉은 죽음 그 무슨 자량이랴/그런 이 한데 모아 먼 섬으로 보내자

(김달진/ 앓아 누워)

 

더러는 앉고/ 더러는 서서/흔들리는 전동차 한가운데/ 오늘밤 하늘로 떠난다는 막차 한 가운데/ 더러는 붙잡고/ 더러는 기댄 체/ 썩을 묘비들이/ 흔들려/ 주름살과/ 늘어진 눈길/ 흐린 눈빛/ 막힌 콧구멍을 새긴 채/ 한평생이 흔들려/ 밑바닥으로 밑바닥으로/ 떠내려가면서/ 점점점 멀어지고 있어/ 숨죽인 곡성도 멀어지고 있어/오늘밤 요단강 건너가/묘비를 눕히고/ 또 잠든 사람들이/ 이승을 다시 떠나며/ 막무가내 흔들려// 그 발 아래 향 피우고/ 묵념! 해야지

(김혜순/ 묘비명)

 

그러다가 어머닌 이렇게 말한다. / 이봐, 이젠 끝장이야/ 우리가 다 죽음의 손 안에 들었을 걸/그의 슬픔을 뿌리치듯/이렇게 말을 했다.

(디말란타/ 비탄에 젖어)

 

새는/ 맞아/ 치명상을 입어도/ 힘껏 난다/ 그리고 날면서/죽는다/ 죽어서 비로소 땅에 떨어진다// 새는 달아나려고 계속 난 것일까/ 달아나려고 난다면/ 죽어서/ 비로소 달아날 수 있다.

(다까하시 기꾸하루/ 새)

 

이제까지 무수한 화살이 날았지만/아직도 새는 죽은 일이 없다/주검의 껍데기를 허리에 차고, 포수들은/ 무료히 저녁이면 돌아온다.

(박남수/ 새)

 

하지만 나로서야 어찌 당신이/ 싸늘하게 되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죽음의 특권이/그 서릿발의 권리가 내게 없기에

(디킨슨/ 당신과 함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느낌도 생각도 없이 핑계도. 없이/ 죽음으로써 다시 삶을 껴안는/ 곧게 떨어지는 행위만 있을 뿐인 것을

(정대구/ 폭포 앞에서)

 

기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사형을 언도받은 것이어서/ 다만 그 집행이 지금껏 연기되고/ 있을 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형수에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랴.

(윤희선/ 무의식 속의 절망)

 

배신과 반역의 무리/ 죽음의 회색바람을 일으켜도/ 꼭 오셔야 했던/ 큰 발걸음/ 그 약속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정연덕/ 지금도 오고 계시는 당신)

 

나는 다 탔습니다// 그러나 기름이 남았습니다// 억울합니다.

(김대규/ 유서)

 

나는/ 숙제를 못해간 소학생처럼/ 마음속에, 언제나/죽음이라는 숙제를 안고 산다.

(김대규/ 미결)

 

그대 지닌 아름다움은 가시지 않는다. /죽음도 그대 앞에 굴복하고 말지니/ 불멸의 노래 속에 때와 함께 살리라.

(W. 셰익스피어/ 소네트 · 18)

 

나는 아직 고통과/죽음의 신비를 알지 못하나//내 그대 별 하나의 나그네 되어/그대 하늘로 돌아가리라.

(정호승/ 별 하나의 나그네 되어)

 

파도는 우리들을 죽이지 못한다/ 주검이 없는 곳엔/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다.

(황금찬/ 파도를 헤치고)

 

살아서 못 가졌던 한 평의 땅을/ 나는 죽어서 비로소 내 것으로 가질지니/ 인간의 뼈와 살도 다 삭고 나면/ 흙과 대지의 이름으로 날 불러다오.

(박정만/ 정읍별사 · 3)

 

살아야 한다/또다시 살아서 죽어야 한다/‥‥개처럼 끌려간 시위대들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 바다/ ‥‥용서할 수 없는 밤은/ 또다시 깊어/ 죽어서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죽어도 살아서 죽어야 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갈매기들이/ 삼각파도를 입고 물고 사라진/ 바다.

(정호승/ 삶)

 

너는 죽어서도 죽은 자의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너는 죽어서도 죽은 자의 웃음을 웃을 수 없다/ 너는 죽어서도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너와/ 남북한 집집마다 고개 숙여야 하노니/ 하느님은 우리보다 자비로우시도다/ 죽음은 우리보다 평화로우시도다.

(정호승/ 히로히토에게)

 

새 한 마리가 마른 울음을 남기고 지나가는 벌판에서 깊은 가슴끼리 만나 흔들어 보는 죽음의 풀잎 위에 천근의 무게로 졸음이 쏟아져 내린다.

(서덕석/ 가뭄)

 

어느 날엔가/ 죽음이 나에게 찾아올 때/ 생명은/ 떨어지는 잎새 아니라/ 열매일세/ 그것은/ 아름다운 낙조처럼/ 잠드는 것/ 두려워서 떨거나/ 도망칠 일 아닐세// 어느 날엔가/ 죽음이 나에게 가까울 때/ 생명은/ 날아가는 초개 아니라/ 이삭일세/ 그것은/ 부드러운 요람에서/ 꿈꾸는 것/ 외로워서 울거나/ 슬퍼할 일 아닐세/ 어느 날엔가/ 죽음이 나에게 손짓할 때/ 생명은/ 꺾여지는 가지 아니라/ 뿌리일세/ 그것은 평화롭게 주의 품에 안기는 것/ 헛되다고 하거나/ 절망할 일 아닐세// 어느 날엔가/ 죽음은 나에게 한 번 오네/ 일생은/ 고난에 찬 멍에 아니라/ 은사일세/ 죽음은/ 영광스런 천국으로/ 향하는 것/ 구속하신 주 은혜/ 영원토록 기리세.

(홍안의/ 한 번 오는 죽음)

 

죽음이여, 일찍이 너는 기괴한 싫어하는- 뼈였다/ 보다 슬픈 신음소리를 내는/ 죽음을 안은 병자의 적막히 가는 앞./ 너의 입이 열렸다고 해서/ 너는 노래 부르지도 못했다.

(죠지 허버트/ 죽음)

 

개구리가 살해되었다/ 어린이들이 둘러서서 손을 들었다/ 모두 함께/ 예쁜/ 피투성이가 된 손을 들었다.

(하기와라 사꾸따로오/ 개구리의 죽음)

 

그리고 민중의 죽음은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마치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되었고/ 마치 대지에 쓰여졌던 것은 저 돌멩이들과 같았고/물이 물 위에 떨어져 내린 것과 흡사한 것이었다.

(네루다/ 학살)

 

죽음은 허무와 만능이 하나입니다/ 죽음의 사랑은 무한인 동시에 무궁입니다/ 죽음의 앞에는 군함과 포대가 티끌이 됩니다/ 죽음의 앞에는 강자와 약자가 벗이 됩니다.

(한용운/ 오셔요)

 

주사 바늘에 꽂혀/ 파닥이는 검은 사지(四指)// 살아날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거듭하던 죽음.

(박정희/ 술레의 편지)

 

자신의 전체를 죽음의 청산에 장사지내고, 흐르는 빛으로 밤을 두 조각에 베이는 반딧불이 어디 있어요./ 아아, 님이여! 정에 순사(殉死)하려는 나의 님이여 ! 걸음을 돌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나는 싫어요.// 그 나라에는 허공이 없습니다/ 그 나라에는 그림자 없는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 그 나라에는 우주 만상의 모든 생명의 쇳대를 가지고 척도를 초월한 삼엄한 궤율로 진행하는 위대한 시간이 정지되었습니다. / 아아, 님이여! 죽음을 방향(芳香)이라고 하는 나의 님이여! 걸음을 들리셔요, 거기를 가지 마셔요.

(한용운/ 가지 마셔요)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한용운/ 나의 길)

 

아니다, 아니다. '참'보다도 참인 님의 사랑엔 죽음보다도 이별이 훨씬 위대하다/ 죽음이 한 방울의 찬 이슬이라면 이별은 일천 줄기의 꽃비다. / 죽음이 밝은 별이라면 이별은 거룩한 태양이다.

(한용운/ 이별)

 

완전한 죽음이란 걸 생각했다/ 감각이 미치는 최고의 오르가즘/어느 날 약속처럼 맞아들여야 할/ 그 결정의 순간이 현란하게 굽이치는/ 구름 끝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권일송/ 남지나해상에서)

 

뺏고 빼앗기는 마음의 줄 다리기/ 실상 사람의 말씀은/ 죽음 속에서 돌아눕는/조용한 풀잎의 새벽

(권일송/ 풀잎)

 

별빛 아름다운 넓은 하늘 아래/무덤 파고 거기에 나를 눕혀 다오/ 즐겁게 살았고 또 즐겁게 죽으니/즐거이 또한 이 몸 눕노라.// 묘비에 새길 시구는 이렇게 써 다오/ 오래 바라던 곳에 그는 누워 있으니/ 바다에 갔던 뱃사람 집으로 돌아오다/ 산으로 갔던 사냥꾼 집으로 돌아오다.

(스티븐슨/ 진혼곡)

 

그는 가고 없다 마지막 날에/ 눈길을 내고 그는 가고 없다// 앉은뱅이꽃 하나 눈길 밖으로/ 마른 대궁을 쳐들고 울고 있고/ 또 누구의 꽃상여 하나 울고 지나간다// 이 강산 천지의 눈길을 따라/ 누가 내 가슴의 무덤을 안고 가나// 꽃상여가 지나간 눈길 위에/ 오 늘따라 바람의 냄새는 차다

(정호승/ 눈길)

 

그러자 알미트라가 소리쳐 말했다. 저희는 이제 죽음에 대하여 묻고 싶습니다. /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 그대들은 죽음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는구나./ 허나 그대들 삶의 중심에서 죽음을 찾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낮에는 눈멀어 밤만이 보이는 올빼미는 결코 빛의 신비를 벗길 수 없는 것을./ 그대들 진실로 죽음의 혼(塊)을 보고자 한다면 그대들의 가슴을 넓게 삶의 몸을 향하여 열라./ 삶과 죽음은 한 몸, 강과 바다가 한 몸이듯이./ 희망과 욕망의 저 깊은 곳에서 그대들은 말없이 미지의 나라를 깨닫는다. / 그리하여 눈(雲) 속에서도 꿈꾸는 씨앗들처럼 그대들의 가슴은 봄을 꿈꾼다. / 꿈을 믿으라, 꿈속에야말로 영원에의 문은 숨겨져 있으니./ 그대들의 죽음에는 공포란, 왕의 손길이 내려져 영광스럽게도 왕 앞에 서게 된 양치기의 전율에 불과한 것./ 떨리면서도 양치 기는 실은 기쁘지 않겠는가, 왕의 주목을 받게 됨이?/ 그러나 또, 그러므로 더욱 자기가 떠는 것에 신경 쓰이지 않겠는가?// 죽는다는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다만 바람 속에 벌거숭이로 서서 태양 속으로 녹아 가는 것이 아니라면?/숨이 그친다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다만 한 숨결이 끊이지 않는 자기의 조수(潮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높이 오르고 퍼져서, 어떤 번민도 없는 신을 찾는 것이 아니 라면? //그대들은 오직 침묵의 강물을 마실 때에야 진실로 노래하게 되리라./ 또 그대들은 산정(山頂)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오르기 시작하게 되리라./ 그리하여 대지가 그대들의 사지(四肢)를 요구하게 될 때, 그때에야 그대들은 진실로 춤추게 될 것을.

(K. 지브란/ 예언자)

 

하나 쓴웃음 치는 마음/ 삶과 죽음이 세상 모든 것이/ 길이 못 풀 수수께끼 어니/ 내 생의 비밀인들 어이하오.

(노천명/ 구름같이)

 

흰 솜으로 만든 겉옷을 입고/ 죽음 자신이/ 제사장,/ 피어 오르는 향연 속에/ 자신의 손톱을 깎고 있다‥‥/ 죽음의 발 아래 그 머리들은 잘라낸 과일처럼 뒹군다/ 죽음의 추락 언저리에/ 연못처럼 많은, 그 절단된 회원들./ 쪼개져 마르고 있는 나무처럼/ 보좌역들의 잘라낸 관절은/높다랗게 쌓인다/죽음은 수행원들의 피로 무릎을 씻고/ 죽음의 겉옷은 보좌역들의 창자로 목욕한다‥‥‥

(크리스토퍼 오키그보/ 거리 · 2)

 

아,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꽃들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 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물에 젖은 라일락의 향기

(김현승/ 파도)

 

아름답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논개)

 

아무도 말하지 않거니,/ 죽음보다도 강한 자의 죽음을 말하지 않거니

(박두진/ 봉황무)

 

천지를 메운 죽음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바보가 되었다.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설 교 노 트

 

의로운 자의 죽음에 대한 묘사

시23:3

 

서론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으며 그러한 자의 죽음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죽음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다윗은 그의 죄를 회개했으며 하나님은 그를 용납하셨으며 그래서 다윗은 그의 죽음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1. 다윗은 죽음을 그림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과거 생명의 주께서 사망의 쏘는 것과 공포를 제거하시기 이전의 상태는 어떠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사망이 그때 있었던 그것의 단순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미 그때에 사망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그 당시 미신이 널리 유포되어 있던 정황에 다윗이 이와 같이 진보적이고 독특하게 표현을 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해서 살았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사망의 티끌', '사망의 공포', '죽음의 문'이라고 표현했지만 다윗은 그것을 단지 그림자로 보았습니다. 그림자는 그것을 만드는 빛이 있는 곳에 나타나며 주님은 다윗의 빛이시기 때문에 다윗은 죽음을 단지 그림자로만 보았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시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그림자밖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두려워할 세상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림자는 공허하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2. 다윗은 죽음을 골짜기로 표현했습니다.

'골짜기'는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이 아닙니다. 강풍이 몰아치는 산의 정상부가 아닙니다. 거품을 내며 강하게 몰아치는 바다가 아닙니다. 골짜기는 고요하고 조용하고 엄숙한 곳입니다. 그곳은 거룩한 삶의 환락산 기슭에 있는 평화로운 골짜기입니다. 쁄라(사62:4)의 높은 곳을 하나님과 함께 매일 그리고 점진적으로 거니는 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과 거룩한 모습으로 거닐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윗이 여기에 표현하지 않는 말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어두운 골짜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말한 골짜기는 가장 부유하고 가장 원숙한 약속으로 가득 찬 골짜기이지 어두운 골짜기가 아닙니다.

 

3. 다윗은 죽음을 일시적으로 거니는 곳으로 묘사했습니다.

다윗은 이 사망의 그늘과 골짜기를 단순히 '통과해 지나가는 곳'으로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잠잔다고 하는 것은 다윗의 신조가 아닙니다. 그는 이 그늘진 조용한 골짜기를 걸으면서 살아 있었고 살아 있으면서 걸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차디찬 음침한 무덤 속에 들어 갈지라도 우리의 영혼은 육신을 묻은 그곳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아니 육신도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다시금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역경 중에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 이것은 모든 소유의 총체요 영광입니다. "위대한 목자장"께서는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때, 우리와 함께 걸으십니다. 위대한 목자장께서는 음침한 골짜기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주십니다.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와 함께한다는 것은 위로와 기쁨으로 수없이 우리를 고무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육체 가운데 살아 있을 때, 그 하나님을 신뢰하십니다.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여러분이 육신의 죽음을 당하였을 때에도 지키시고 위로해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나의 떠날 기약

딤후4:6

 

서론

한 구약의 성도가 밤낮 극심한 고통 가운데 괴로움을 겪다가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가시리이다. "라고 절규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때 죽음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그것은 육신이 심각한 병에 걸려 있을 때입니다.

바울도 역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본문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죄수가 되어 사형 선고를 받아 조만간 죽을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1. 바울이 죽음에 관해 말하는 태도

(1) 떠남

성경은 죽음을 신자에게 관련시켜 표현할 때 독특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아버지에게로 불러 모은다"라든가 "예수 안에 잠잔다"고 하든가 "이루었다"는 등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불신자들의 죽음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모든 신실한 신자들을 위해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딤후1:10). 신자들은 사망의 법에서 면제받았을 뿐 아니라(히9:27), 누군가가 말한 대로 사망은 신자들에게 그 이름 자체에 있어서 합당한 용어가 아니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 성경은 한 가지 아름다운 감수성 있는 표현을 합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으로 "내가 집으로 떠날 때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2) 죽음의 절박성

그때는 죽음이 가까이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무덤에서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죽음의 날과는 거리가 멀 때가 있습니다. 노인들은 연수의 과다함 때문에 비틀거리면서 그 몸을 지팡이에 의지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가 갈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한 친구가 심각한 병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슬픔을 못이겨 하면서 "그는 아침까지 살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도 곧 따라갈 것이라고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베드로를 앞질러 무덤까지 달려왔지만 베드로는 무덤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2. 바울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던 점

그는 분명히 자신의 떠날 날을 준비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날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숭고한 정신에 대해서는 딤후4:6-8을 읽어 보십시오.

(1) 여기서 그는 의식적으로 준비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사역은 끝이 났고 그의 개인적 구원은 예수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주의 종으로서 결산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명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마6:33 참조). 이러한 생명은 집주인이 올 때까지 위탁된 것을 간수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돈으로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마25:14).

(2) 바울의 언급은 축복된 기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조금도 섭섭하게 여기거나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사모하고 기대함으로 맞이합니다. 그의 떠남은 곧 그의 주인에게 가는 것이며 의의 면류관을 받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순교의 공포를 참아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떠나는 날은 낙원으로 승천하는 날이며 거기서 그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완연한 영광으로 덧입힘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고요함과 냉정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기뻐 즐거워함으로 기대하게 합니다.

 

결론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망은 마지막 여행하는 순간에 감미로운 위로를 줄 것이며 마음에 기쁨을 더해 줄 것입니다.

 

 

죽음의 근접

삼상20:3

 

서론

모든 인생들은 생애 가운데 어떤 중요한 사건들을 체험한 일이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죽이고 그의 왕위를 계속 지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을 그의 친구 요나단에게 자신의 처지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1. 실제적 사건에 대한 실제적인 언어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죽음의 경계선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진리를 아름답고 역동적인 상상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연한 풀잎, 새싹, 활짝 핀 꽃, 부는 바람, 언제나 날아다니는 그림자는 인생이 짧고 불확실하다는 점과 죽음의 확실성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적인 기관들도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말해 줍니다. 심장의 고동도 메시지들이며 혈액의 맥박도 죽음에 대해 알려 주며 조용한 숨소리도 생명의 마지막을 예고해 줍니다.

현재 모든 곳에서 작용하고 있는 파괴적인 수단들도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해 줍니다. 우리가 평안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은 너무나 쉽사리 우리를 멸망시키는 도구로 전락됩니다. 향기로운 공기는 파괴적인 태풍으로 돌변합니다. 시원한 빗방울과 은빛 실개천은 무서운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며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는 불은 잔인한 화염으로 일변하기도 합니다.

말씀, 우리의 육체적인 기관, 그리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에게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이다"라는 말을 결코 잊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2. 죽음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직 한 번밖에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을 세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는데, 육체적인 죽음, 영원한 죽음, 구제 불능의 악인의 상태입니다. 본문은 첫 번째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멸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의식 있는 존재의 종식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물질의 없어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형된다는 것은 멸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이성은 영혼의 동질적인 존재로써 영혼과 의식의 불멸절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생명이라 불리는현상의 종식을 불러일으키며, 그 결과 일어나는 상태는 죽음이라 부른다. " 그것은 보다 평이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란 육체가 삶을 종식시킬 때, 그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상태"입니다. 영혼은 육체를 세내어 잠시 거주합니다. 시체는 빈방을 말합니다.

 

3. 죽음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질들은 뒤에 남습니다. 이러한 분리로 인해 우리에게 전개될 상태는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았던 생활에 좌우됩니다. 자기 도취적이고 관능적인 쾌락을 탐닉하던 죄의 생활은 죽음 이후 즐거움의 근원에서 끊어지게 하고 영혼을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덕목에서 모본으로 예시된 바 깨끗하고 상냥한 삶,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조명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삶,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삶,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가장자리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삶이며 영광세계의 밝은 빛 아래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이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날에 이르는 출입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죽음은

창23:1-13

 

서론

사라는 아브라함과 오랫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하다가 그의 남편인 아브라함을 남겨놓고 자신만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슬퍼하며 죽은 아내를 장사지냈습니다. 이것은 인간은 언젠가는 한 번은 죽는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1. 육의 생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사라가 일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고 언제인가는 죽어서 세상을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사랑스러워도 결국은 죽기 마련이고 헤어지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죽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히9:27).

 

2. 육체는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려 줍니다.

본문 4-6절에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영과 육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육체는 땅으로 들어가고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과 육이 공존할 때 삶이라고 하는 것이요, 영육이 분리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육체를 땅에 두지 않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에녹과 엘리야뿐인 줄 압니다. 그 외에는 모두가 영과 육이 분리되어서 육은 땅에 영은 하늘로 간 것입니다.

 

3. 이별의 슬픔을 알려 줍니다.

본문 2절에 "사라가 가나안 땅 혜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은 사람들을 슬프게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을 더 하지 못하게 합니다. 혈육간의 정도 끊어 버리고 세상의 모든 희망도 끊어 버립니다. 그러나 죽음은 생각하는 것만큼 슬프지만은 않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욥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뵙고 싶다고 하였으며 바울 사도도 몸 밖에서 주를 뵙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죽음은 영원한 삶이 시작되기 때문이고 영원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조금도 슬퍼할 일이 아닌 줄 압니다.

 

결론

인간의 죽음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고 막벨라 굴, 즉 가족 묘지를 구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결국이 다 이와 같이 됨을 알고 이것에 유심해야 합니다.

 

 

인생의 종말

살전4:13-18

 

서론

본문에는 바울의 종말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종말관은 인생들의 미래 필연적인 세 가지 사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인생의 죽음 문제요, 둘째는 인생의 부활 문제요,셋째는 인생의 영생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 가지 중대한 문제를 기독인의 입장에서 올바르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이 세 가지 문제 중에서 인생의 사망론에 대해서만 간단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1) 물리적인 차원에서 죽음은 인생이 항거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황금이나 과학이나 무력 적으로도 항거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2) 지성적인 차원에서 죽음은 인생이 도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모든 슬기와 지식과 기능을 총동원할지라도 도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3) 윤리적인 차원에서 대신 보내거나 연기하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이 제아무리 착하고 의롭다고 해도, 죽음과 협상해서 연기하거나 대신 보내지 못하는 길이 죽음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류 통계학자들은 이 지구라는 공간상에 출생하였다가 죽어간 사람이 무려 940억이나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죽음의 의미를 과학자들은 인간의 체내에 있는 세포활동의 정지 상태로 보았고, 철학자들은 인생의 영과 육의 분리 상태로 보았고, 종교인들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가는 상태로 보아왔습니다.

그 다음 죽음에 대한 기독인의 의미를 생자해 보려고 합니다.

① 인생의 죽음을 죄 값으로 보고 있습니다. 롬6:23에 "죄값은 사망이요", 겔18:4에 "범죄한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② 인생의 죽음은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을 떠난 범죄한 인생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죽음을 육신과 영혼의 분리 상태로 보고 있습니다. 이 결과로, 인생은 비참과 절망과 허무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2. 죽음의 실제론에 대해서

(1) 먼저 불신자의 입장에서 본 인생의 죽음문제입니다.

① 죽음이란 슬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눈물이 있고 통곡이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우셨다고 하였습니다(요11:35).

② 죽음이란 두려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죽음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여 부모의 시체 있는 방에 있기를 꺼려합니다.

죽음이란 흉하고 불길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볼수록 흉한 것이 죽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체 앞에 향불을 피워놓고 꽃을 꽂아놓는 것은 죽음의 흉한 것을 승화시켜 보려고 하는 심산이라고 합니다.

(2) 다음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본 인생의 죽음 문제입니다.

죽음은 인생의 진정한 안식으로 보았습니다. 여기 바울은 죽음에 대해서 잠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은 피곤한 심신의 휴식이요, 진정한 안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② 죽음은 낙원으로의 이민이라고 하였습니다(눅23:43). 예수님은 죽음에 직면한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③ 죽음은 주님 품에서의 영생으로 보고 있습니다(살전4:17).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인생의 죽음 문제를 일대 수술을 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죄와 사망과 지옥의 영역으로 구출하사, 치와 생명과 천국의 영역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믿음으로 승리하십시다.

 

 

모세의 죽음

신34:1-12

 

서론

모세는 120년을 살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80세에 부름받아 40년간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가나안에 들어 가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육신을 가진 자는 누구나 죽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이름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본문 5-6절에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오직 이름만 남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죽음도 시신만 남기고 죽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떤 이름을 남기고 죽어야 하겠습니까? 후대에 부끄럽지 아니한 이름을 남기고 죽어야 할 것입니다.

 

2. 건강하게 살다 죽었습니다.

본문 7절에 "모세의 죽을 때 나이 120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한평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도 행복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면서 80년은 준비를 하고 40년은 병들지 아니하고 건강한 몸으로 평생토록 주의 일만 하다가 하나님을 부르심을 받았으니 행복한 죽음이라 과 말입니다. 우리들도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3. 후계자를 세우고 죽었습니다.

본문 9절에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음으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죽으면서 자기가 하던 일을 후계자에게 인계하고 죽는다는 것 보통 중요하지 아니합니다. 후손없이 죽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모세는 다행히 여호수아가 있어 그에게 안수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에 마음놓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었습니다.

 

결론

모세는 세상에서 120년을 사는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일하다가 몸이 강건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유명한 이름을 남겨 놓고 천국에 가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들도 그와 같이 멋진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죽을 준비가 되었나

딤후4:6

 

서론

바울은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운 줄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죽음이 멀리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삶에 도약하는 반면에 죽음에도 자신있게 도전해야 하는 각오가 있어야 정상적인 그리스도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삶에는 원대한 포부와 계획이 있듯이 죽음의 준비 앞에도 영적인 소망과 창조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떠날 준비에 대해서 몇 가지만 알아보겠습니다.

 

1. 우리가 세상에 올 때 적신으로 온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적신으로 왔다가 맨주먹으로 간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의 고달픈 인생의 삶을 잊고, 피나는 연단을 잊어버리고 기름진 현실의 축복을 만족으로 삼아 오늘의 평안을 과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많습니다. 참으로 어리석다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2.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부귀, 권세, 명예도 등을 돌린 인생은 끝을 맺고, 단 수의 한 벌, 관 한 개, 내가 차지할 땅 몇 평이면 육신의 소유는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얼어붙은 마음을 깨달아 성령의 도가니에서 점화된 불길을 받아 마음을 녹히여 뜨거운 믿음을 가져가는 준비가 중요합니다.

 

3. 천국은 우리의 영원한 집입니다.

이 세상의 영광은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 세계는 영원한 곳이며 변함이 없습니다. 세상의 것은 변질과 부패의 농도가 뒤 따르지만 영혼의 집은 소망과 영생을 줍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니 죽는 것도 유익 함이라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고 했습니다. 저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시고 지금도 우리의 영혼을 염려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론

인생 삶의 준비에도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본향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요, 우리의 년수를 주님께 맡기며 꼭 가져야 할 믿음과 위에 것만 바라보는 생활과 꼭 동행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영혼의 줄기가 자라나는 멋진 준비의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

마26:45-56

 

서론

오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악과 죽음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신학자들은 이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이는 보통 사람의 죽음이 아니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죽음인 동시에 전인류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죄악을 정복한 죽음이라고도 하고 또는 사망의 권세를 정복하고 마귀를 승리한 죽음이라고도 합니다. 그런고로 우리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 죽음의 성격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 본문에는 예수님 죽음의 성격을 두가지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영적인 죽음이요, 다음은 육적인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1) 영적 죽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영적 죽음이란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께부터 버림당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 버림당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의 영역에서 떠나 진노와 저주의 영역으로 전락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의 영역에서 떠나 사망의 영역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2) 육적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영적인 죽음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완전한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님의 지으신 목적

(1) 하나님의 언약을 인간 역사에 성취시키기 위해서 죽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독생자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도록 약속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시키셨습니다. 그래서 마26:39에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에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였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죽으신 죽음이라는 말입니다.

(2)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신 죽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눅23:34에 "예수에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롬4:25에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죽음은 이단자들의 말과 같이 이스라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실패하여 죽은 죽음이나 또한 마귀와 싸우다가 실패하여 죽은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언약을 성취시키시고 모든 죄악들의 죄와 사망을 대속하여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입니다.

 

3. 예수님이 죽으신 결과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1)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고 하였습니다(마27:51).

이 휘장은 일반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처 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제사장이 피를 가지고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뵙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히9:3). 그리고 이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를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히10:17-20). 이는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해서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생명의 길이 열려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고 하였습니다(마27:51).

이 사건은 마11:17에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슬픈 소리를 내어도 울지 아니하는 감동과 반응이 없는 무감각해진 인생들의 마음을 감동하고 바위같이 굳은 죄악의 장벽을 부서 버리고 낡고 굳어진 인간 세계를 변화시키고 혁신케 하신 뜻이라"고 합니다.

(3) 무덤이 열리고 자선 성인들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마27:52).

이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대로 요11:25에 "예수님은 생명과 부활의 근원이 되심을 입증하신 사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 으로 인해서 생명의 운동이 일어나고 생명의 새 세계가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신 결과는! 하나님과 원수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낡은 인간들을 변하여 새롭게 하셨고,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전개하여 놓으셨습니다.

 

결론

우리들도 십자가를 바로 지는 때에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고 새롭게 살아가고 생명의 세계로 전진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의 죽으신 사건은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준 비

성 경 활 용

1. 성도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1) 제사

(삿13: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시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리나 내가 너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2) 말씀 가르치는 일

(스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3) 예수의 재림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 여행용 양식

(출12:39)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남으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 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5) 제물

(삿6: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6) 하나님의 처소

(행7:46) 다윗의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

(7) 진설 하는 떡

(대상9:32) 그핫 자손 중에 어떤 자는 진설하고 떡을 맡아 안식일마다 준비하였더라

(8) 그리스도의 장사(葬事)

(막14: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유월절

(눅22:13)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10) 헌금

(고후9:5)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11) 구제하는 것

(딤전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2) 죽음

(딤후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13) 선한 일

(딛3:1)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2. 하나님께서 준비하시는 일

(1) 희생 제물

(습1:7) 이는 여호와는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가 희생을 준비하고 그 청할자를 구별하였음이니라

(2) 주의 은택

(시68:10) 하나님 이 여 가난한 자를 위하여 주의 은택을 준비하셨나이다

(3) 박 넝쿨

(욘4: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4) 광야의 식탁

(시78:19)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5) 동풍

(욘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6) 은혜의 초청

(눅14:17)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7) 벌레

(욘4:7) 하나님의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관련원어풀이

1. @WK 쿤-

(1) 준비되다, 마련되다.

(겔28:13)

(2) 두다, 세우다, 설립하다, 강하게 하다.

(삼하7:12, 욥29:7)

(3) 돌리다, 향하다, 두다, 목적하다.

(대하27:6, 시7:14)

(4) 준비하다, 마련하다.

(창43:16, 욥15:35)

(5) 기초되다.

(삿16:26)

(6) 준비되다.

(출19:11, 잠19:29)

(7) 세워지다, 확립되다.

(민21:27, 잠24:3)

(8) 자신을 준비하다.

(시59:5)

 

2. hn:m; 마-나-

(1) 분배하다, 할당하다.

(사65:12)

(2) 준비하다.

(왕상20:25)

(3) 수를 세다.

(대상21:1, 27:24)

(4) 지정하다, 임명하다.

(시61:8, 욘2:1)

(5) 세어지다, 계수되다.

(창13:16, 사53:12)

 

3. hc;[; 아-사-

(1) 만들다, 일해서 생산하다, 하나님이 제조하다, 창조하다.

(창1:7, 시96:5)

(2) 준비하다.

(창18:7, 삿13:15)

(3) 제물을 만들거나 준비하다, 드리다.

(출29:36, 레9:7)

 

(4) 만들어지다, 창조되다.

(시139:15)

 

4. eujrivskw 휴리스코-

(1) 발견하다, 얻다, 만나다.

(마7:14, 요10:9)

(2) 알다, 찾아내다, 발견하다, 이해하다.

(눅19:48, 계3:2)

(3) 얻다.

(마10:39, 히4:16)

 

5. kosmevw 코스메오-

(1) 정돈하다, 배열하다, 장식하다, 꾸미다, 미화하다.

(마12:44, 계21:19)

(2) 준비하다, 예비하다, 정돈하다.

(마25:7)

 

6. parivsthmi 파리스테-미

(1) 자신에 맡기다, 마련하다.

(마26:53, 롬6:13)

(2) 나타나다, 재현하다, 드러내 보이다.

(눅2:22, 행1:3)

(3) 만들다, 되게 하다.

(엡5:27, 골1:22)

(4) 앞에 데려오다, 내세우다, 앞으로 끌어내다.

(고전8:8, 고후4:14)

(5) 증명하다, 시위하다.

(행24:13)

(6) 도움이 되다, 조력하다.

(롬16:2, 딤후4:17)

 

7. prokatartivzw 프로카타르티조-

준비케 하다, 미리 완전히 준비하게 하다.

(고후9:5)

설교예화자료

뉴튼의 준비

 

뉴튼은 평범 속에서 진리를 발견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와 같이 보지 못한 것일까요. 뉴튼은 말했습니다.

"나는 늘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고.

그리스도인은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의 뜻을, 일꾼이 주인의 뜻을,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가 없다면 책망받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게으름뱅이 개구리

 

매우 사이가 좋은 개구리 두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큰 길가의 물웅덩이에 살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좀 떨어진 연못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연못에 사는 개구리가 물웅덩이에 사는 개구리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우리 연못에 와서 같이 살자. 그곳은 여기보다 넓고 안전하니 마음놓고 잠을 잘 수도 있어 ."

"고마워, 하지만 생각해 볼께."

물웅덩이에 사는 개구리가 대답했습니다.

"언제라도 좋으니 망설이지 말고 와. 기다릴께."

친구 개구리는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몹시 게으른 물웅덩이의 개구리는 연못까지 가는 것조차 귀찮아서 그냥 그곳에 머무르기로 하였습니다.

며칠 후 친구 개구리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곳은 사람과 수레가 많이 다녀서 너무 불안해. 그러니 나와 함께 가자."

"글쎄, 사는 곳을 옮기는게 귀찮아서 말이야."

물웅덩이의 개구리가 또 망설이며 투덜대자 연못에 사는 개구리는 이번에도 그냥 혼자 돌아가면서,

"언제라도 오면 환영할께."

하며 간곡히 말했습니다.

다시 며칠이 지났습니다.

연못의 개구리는 친구가 걱정이 되어 다시 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물웅덩이에 도착해서 보니 텅 비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딜 갔을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찾고 있을 때, 그 옆을 지나가던 개구리가 말했습니다.

"그 응덩이에 살던 개구리는 얼마 전에 지나가던 수레에 깔려 죽었다네."

친구 개구리는 눈물을 흘리며 연못으로 돌아왔습니다.

 

 

개미와 베짱이

 

무더운 여름날이었습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땅이 온통 불바다처럼 뜨겁게 달구어진 뙤약볕 속에서도 개미들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였습니다.

"얘들아, 그렇게 더운 날 땀흘리며 고생하지만 말고 우리와 함께 노래하며 놀자."

나무 위에 모여 앉은 베짱이들은 신나게 춤을 추며 노래했습니다.

"안돼, 지금 일을 해야만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지!"

개미들은 여전히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하하하, 벌써부터 겨울을 걱정하다니! 겨울은 아직 멀었단 말야. 그러지 말고 이 시원한 나무 위로 올라오렴."

"무슨 소리야, 지금 일을 하지 않으면 겨울엔 양식도 구할 수 없고 꼼짝없이 굶어 죽고 말 텐데 !"

개미들은 베짱이의 말을 들은 체도 않고 계속 일만 하였습니다.

"미련한 개미들!"

베짱이는 개미를 비웃으며 신나게 놀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몹시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여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먹을 것을 많이 모아 둔 개미들은 따뜻한 집 안에서 편안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베짱이들은 견디다 못해 개미를 찾아갔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누가 찾아왔을까?"

개미들이 문을 여니 문 밖에는 베짱이들이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개미님, 먹을 것을 좀 주세요."

그것을 본 개미들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가지고 나오며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뭐했어요? 놀지만 말고 미리 겨울 양식을 준비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 아니겠어요!"

베짱이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도 못하였습니다.

 

 

만찬회

 

왕이 하인을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나 언제 만찬회가 열리는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중 현명한 하인은,

'왕의 일이니까 언제라도 만찬회는 열릴 것이다. 나는 그 만찬회를 위해 준비를 해두자.'는 생각에 만찬회가 언제 열려도 참석할 수 있도록 왕궁의 정문 앞에 가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하인은, 만찬회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테니 열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여 아무런 준비도하지 않았습니다.

만찬회가 열렸을 때, 현명한 하인은 곧 정문을 지나서 만찬회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어리석은 하인은 만찬회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하나님이 부르시게 될 지 전혀 모릅니다.

창조주로부터 만찬회에 초대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 있도록 노력합시다.

 

 

죽음의 준비

 

옛날 어느 왕실에 멍청한 광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이 그 광대에게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있다가 자네보다 더 멍청한 사람이 있거든 전해 주게." 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몇 해 후, 바로 그 임금이 병상에 누운 채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모든 신하와 가족을 불러들이고는

"나는 이제 여러분을 떠나게 되었소. 너무도 긴 여행이라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오. 해서 그저 인사하려고 오라 한 것이오."하고 말을 끝냈습니다.

이때 광대가 불쑥 나타나

"폐하, 한 가지 여쭐 말씀이 있사온데요." 하고는 "폐하께서 다른 나라 귀족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실 때는 꼭꼭 전령관을 보내시어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곧 출발하시려는 긴 여행을 두고 폐하께서는 무슨 준비를 하셨는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왕은,

"아차 이걸 어쩌나, 아무런 준비를 안했는데." 라고 말하자 광대는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팡이를 받으십시오. 나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을 이제 발견하였으니까요."

 

 

나귀로 기른 말

 

곧 전쟁이 일어나리란 소문이 돌자 병사들은 말을 잘 훈련시키면서 영양가 많은 음식들로 말을 키웠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말은 병사가 훈련시킨 대로 힘차게 전쟁터를 달렸고 잘먹인 까닭인지 다른 말들에 비해 지치지도 않아 병사가 싸우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쟁은 병사의 편이 이겼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자 병사는 말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수레도 끌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별일이 없을 때에는 밭갈이까지 시키면서 먹이로는 마른 풀만 주었습니다.

말은 점점 마르고 약해져 전쟁터에 나갈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병사는 다시 말을 끌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말은 비틀거리기만 하였고 잘 달리지도 못했습니다.

"이놈의 말이 잠이 덜 깼나?"

병사는 채찍으로 세게 말을 마구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말은 아무리 때려도 여전히 비틀거리며 느릿느릿 걸을 뿐이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적군들이 잽싸게 달려와 창과 칼로 병사를 찔렀습니다.

"아, 이놈의 말 때문에 내가 죽는구나!"

병사는 말을 원망했습니다.

그러자 말은,

"그런 소리 마시오. 당신은 그 동안 나를 말로 대우하지 않고 나귀처럼 길렀단 말이오. 그런데 이제 갑자기 나를 말로 쓰려고 하니 내가 갈피를 잡을 수 있겠소?"

하며 힘 없이 대꾸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전쟁의 준비를 하는 것만이 평화의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통탄할 사실이다.

(J. F. 케네디)

 

시작하기 전에 신중히 준비하라.

(키케로/ 의무론)

 

내일의 결핍에 대비하여 오늘 준비하는 것이 알뜰한 것이다.

(아이소푸스/ 개미와 여치)

 

날씨가 좋을 때 톤을 고쳐라.

(영국 속담)

 

서두르라.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리지 말라. 오늘 준비가 되지 못한 자는 내일은 더욱 그 러할 것이다.

(오비디우스/ 사랑의 치료)

 

희망을 가지고, 보다 나은 때를 위해 힘을 길러 두라.

(베르질리우스/ 아에네이스)

 

우리가 앞질러 대비하는 것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B. 디즈레일리/ 헨리에타 성당)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일어나면, 비록 백 배의 힘을 소비할지라도 그 일에 이익이 없을 것이니, 이것은 미리 준비하지 않은 과실이다.

(박제가/ 북학의)

 

자기를 위해선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라! 구하지 말아라, 마음을 동(動)하지 말아라, 원망을 말아라. 인간의 미래도, 그대의 운명도, 그대에게 있어서는 항상 미지의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모든 사태에 대한 각오만은 확고히 가지고,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한다. 그리고 앞일은 오직 신의 마음에 맡기는 것이다.

(L.N.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진실로 우리는 시기로 보든지 의리로 보든지 아니 싸우지 못할 때라고 단정하시오. 그 러나 함부로 나갈까, 준비를 완성한 후에 나갈까, 혹 말하기를 혁명사업은 타산적으로 할 수 없나니, 준비를 기다릴 수 없다 하오. 그러나 준비는 필요하오. 물론 나의 준비라 함은 결코 적의 역량에 비할 만한 준비를 청함이 아니나, 그래도 절대로 준비는 필요하오.

(안창호/ 육대사업)

 

사람이 먼 앞일까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으리라.

(공자/ 논어)

 

일년을 위한 대비책으로 곡식을 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십년을 위한 대비책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며, 평생을 위한 대비책으로는 인간을 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관자)

 

 

장차 날려는 자는 날개를 감추고 장차 할퀴려는 자는 손톱을 오므린다.

(유향/ 설원)

 

말 태우고 버선 깁는다. <* 준비가 늦었음을 가리키는 말>

(한국 속담)

 

한가한 때에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않으면 다음날 바쁜 일에 그 덕을 받아·누릴 수 있으며, 고요한 때에 공적(空寂)에 떨어지지 않으면 활동할 적에 그 덕을 받아 누릴 수 있으며,어두운 가운데 속이고 숨기는 일이 없으면 밝은 곳에 그 덕을 받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채근담)

 

시집도 아니 가서 포대가 장만한다. <*준비가 너무 빠르다는 뜻>

(한국 속담)

 

준비가 되어 있으면 환난이 없다.

(좌씨전)

 

오랫동안 땅 위에 엎드려 있던 새가 한 번 날면 높이 난다. 사람도 이와 같이 힘을 기르는기간이 길면 길수록 한 번 일어서면 힘차게 활약하게 된다. 먼저 핀 꽃은 먼저 진다 남보다 먼저 공을 세우려고 조급히 서둘 것이 아니다. 생명이 긴 일은 그만큼 준비도 길어야 한다. 쉬워 보이는 일도 해 보면 어렵다. 못할 것 같은 일도 시작해 놓으면 넘어가진다. 쉽다고 얕볼 것이 아니고, 어렵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것이 아니다. 쉬운 일도 신중히 하고 곤란한 일도 겁내지 말고 해 보아야 한다.

(채근담)

 

자기가 맡은 업무의 필요 이상의 지식을 준비하는 자는, 장래에 있어서 승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자이다.

(G. 그린)

 

나는 6명의 정직한 머슴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무엇과 왜와 언제와 어떻게와 어디서와 누구이다.

(R. 키플링/ 하인)

 

석 자 베를 짜도 베틀 벌이기는 일반. <*어떤 일을 많이 하거나 적게 하거나 준비와 격식을 차리기는 마찬가지라는 뜻>

(한국 속담)

 

파랄 때 따지 않으면 익은 것을 먹지 못한다.

(J. 뷰에투유/ 딸)

 

솥 씻어 놓고 기다리기.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뜻>

(한국 속담)

 

미리 아는 것은 미리 준비한 것이다.

(M.J. 브루투스)

 

쾌청한 날에 소나기를 예상하지 못하는 것은 누구나가 범하는 잘못이다.

(N. 마키아벨리/ 군주론)

 

다가오는 위험을 단순히 걱정만 하고 있음은 많은 사람을 최대의 위험 상태로 몰아넣는다.

(루카누스/ 시민전쟁)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옛말이 있다. 한 마리의 제비로서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제비가 봄이 되어야만 오는 것도 사실이다. 제비뿐 아니라 모든 땅이나 초목이 그저 기다리기만 하고 봄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봄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L. N. 톨스토이)

 

자벌레의 꾸부림은 펴기 위해서이다.

(역경)

 

나간다 나간다 하기를 십 년을 하지 아니 하였느냐. 그러하건마는 십 년 후의 오늘날 까지도 나갈 힘이 없지 아니하냐. 나갈 준비하기를 십 년을 하였던들 지금은 나갈 힘이 생겼으리라. 지금부터 나갈 준비를 아니하고 여전히 나간다 하기만 하면 금후 십 년에도 여전히 나갈 힘이 없으리라! 그러므로 지금은 나갈 때가 아니요 나갈 준비를 할 때다.

(안창호)

 

개 장수도 올가미가 있어야 한다. < *무엇을 하든지 거기에 필요한 준비와 도구가 있어야 한다는 뜻>

(한국 속담)

 

경계는 경비이며, 준비되었다는 것은 반승리이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슬기로운 다섯 처녀의/ 기름을 준비케 하여/ 깨어 있는 눈으로/ 당신을 영접케 하소서

(정용채/ 빛을 향하여)

 

나는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죽음은 마치 한 벌의 옷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찾다찾다 못찾았던 넓이가 있고/ 나에게 어울리고 낙낙하고/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있는 옷처럼

(네루다/ 죽음)

 

당신은 나의 죽음 속으로 오셔요. 죽음은 당신을 위하여의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을 좇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은 나의 죽음의 뒤에 서십시오.

(한용운/ 오셔요)

 

"성탄 준비 끝"/ 높이 쌓인 선물 더미를 마지막 손질하며/ 그녀는 휴! 하고 한숨쉬며 말했다. / 그리고는 잠시 편히 앉아 책을 뒤적인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세미한 음성이 어디선가 꿈결처럼 속삭여 왔다. / "성탄 준비 끝이라고? 무슨 말이뇨? / 지난 주일엔 거리에서 친구를 모른채 하구선/ 그래도 성탄 준비 끝이란 말이지?"// "성탄 준비 끝이오?"/ 마음에 원한을 품은 채로?/ 아아, 하나님께 고백함이 나으리라./ 이기적이고 자만심 가득 찬 마음 속에/ 아기 예수가 오셔서 어떻게 거하실 수 있을까? // "성탄 준비 끝? "/ 바로 오늘 한 걸인이 찾아왔을 때/ 너는 관심의 미소조차 나누지 않고/ 그를 쫓아 버렸지?/ 그 작은 아이는 네게 물었지./ 그것 좀 나눠 주시겠어요?// "성탄 준비 끝?"/사실너는 일을 열심히 했지./ 그러나 네가 하고 싶은 일만 했구나./ "성탄 준비 끝"/ 너의 생각이너무 좁구나./ 너는 어찌하여 사람과 봉사로써/ 마음의 성탄 준비를 하지 못하느냐?//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 "그렇습니다. 정작 준비해야 할/ 성탄 준비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 오, 아버지시여, 용서하소서./ 당신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 장식을 달고 집을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성탄 준비를 하겠습니다. "// 그렇다. 선물을 주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것보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깨끗이 정돈된 마음이라네./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실천이라네./ 고통과 죄악으로부터 해방된 마음‥‥/ 주님처럼 그늘진 곳의 이웃을 찾아 발걸음‥‥/ 성탄 준비‥‥/ 주님의 사랑의 준비‥‥‥

(엘리스 H. 모르텐스/ 성탄 준비 끝)

 

 

설 교 노 트

 

주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4:4-13

 

서론

사람은 모든 면에 있어서 준비가 없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해라" 여러 번 경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짓고 난 후에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외쳤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1.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기 때문에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됩니다.

인간은 어디가 낙원이며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까? 인생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낙원이요,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참 만족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고, 기도하다가 만나고, 성령과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야 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만남으로 새로운 인생을 찾아 하루를 예수 믿어도 복받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2. 인생은 다가올 심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바람을 창조하며"라고 하였는데, 여기 바람은 심판의 바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6절에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대앞에 설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야 됩니다.

(1) 자신을 살피고 예비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서서 심판을 받기 전에 먼저 내가 나 자신을 스스로 살피면서 심판을 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입니다.

칼빈 선생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자신을 판단하고 죄를 참으로 슬퍼하고 정죄함이 없이는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가 없고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다. "고 말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우리는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 예비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불결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주여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하고 입술이 부정한 죄를 통회 자복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3. 예수 구속의 신앙으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신인간에 화목의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는 신앙을 가지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목한 자가 되지 않고는 주님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의롭지 못하고 옳은 것은 없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 되시고 나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신 사실을 믿을 때 공로로 주 앞에 설 수 있는 것을 여러분은 의심없이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이요, 가장 큰 은혜인데 우리가 어찌 주시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나의 잘못을 회개 청산하고 나의 신앙생활을 매일, 매시 점검해 보면서 준비를 잘했다가 세상에서 성공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심판대앞에서 바로 설 수 있는 영원한 성공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마24:40-51

 

서론

일찍이 아모스 선지자가 외치기를 아모스 4장 12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긴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고 외쳤습니다.

이 말씀은 언젠가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는 말씀이요, 또한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생활을 하라는 명령이요, 경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주님을 만나야 할려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니 주님 만나는 준비는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을 깨달아 준비하고 예비하는 지혜가 오늘 이 시간에 생길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우리는 자연인 그대로 주님을 만나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경은 가르치기를 우리는 다 죄중에 잉태하여 죄악 가운데 태어나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죄가 없으시며 흠이 없이 높고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우리 인생은 모두가 다 죄인이라고 행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이 모두가 죄된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악한 자연인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영접하리라"고 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께서 거룩한 성도가 있을 곳을 예비하셨는데, 우리는 거룩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 우리가 타인에게 끼친 영향에 대하여도 하나님 앞에 설 때가 옵니다.

실로 우리 성도들 한 분 한 분이 남에게 끼친 영향력은 굉장히 큰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베드로가 오순절에 능력받고 성령충만할 때는 병든 자들이 안수기도를 일일이 다 받지 못하여 베드로가 지나는 그림자만이라도 스쳐 지나가기를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때에 베드로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으면 그가 지나가는 그림자만이라도 스쳐 가기를 원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이렇게 미루어 볼 때 오늘날 모든 성도들은 좋든 나쁘든 하나의 그림자를 만들면서 산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든지 좋은 영향을 끼치든 둘 중에 하나의 그림자를 남긴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기도의 발자국, 감사의 발자국,충성 봉사의 발자국, 말씀대로 사는 발자국을 만들어서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고 살지언정 본이 되지 않는 불미스러운 그림자를 남기므로 자녀에게나 교회 역사에 결점의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 추호도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3. 우리는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죽음 앞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살아봐도 이제부터 50년 내지 100년이면 다 죽어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아니면 주님이 재림해서라도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눈감을 때 자신있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느냐가 문제입니다.

아무리 경건하게 산다 하면서도 부지부식 간에 지은 죄를 뒤로 미루지 마시고 회개 생활을 잘하시고 형제와 막힌 것이 있거나 주의 종과 걸리는 것이 있으면 화해하면서 언제 주님을 만날지 라도 부끄럼없이 설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예비하고 살아야 하겠는데 무엇보다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준비하고 있다가 자연인 그대로 주를 만나는 자가 되지 말고 변화된 신분으로 주를 만나게 되고, 심는 대로 거두는 추수의 법칙대로 우리는 성령으로만 심어서 성령으로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축복 준비

창27:1-29

 

서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40세에 리브가를 취하여(창25:20) 아내를 삼고 쌍동이(창25:24)를 낳았습니다. 장자는 이름은 에서라 하고, 차자의 이름은 야곱(창25:25-26)이라고 하였습니다. 성 경상에는 장자가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신21:17, 창25:31, 33, 27:36).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강물이 장자 에서에게로 흐르지 아니하고 차자 야곱에게로 흘러내려갔습니다. 그 이유는 형 에서는 인본주의자로서 장자의 명분을 경솔히 여겼습니다(창25:32, 35). 그러나 동생 야곱은 그 인간다움에는 비록 형보다 못하였지만 그는 신본주의자였습니다(창25:31). 즉,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셔야 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적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그는 영적 ·물적 축복을 겸하여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였는가를 생각하는 중에 주께서 우리들에게 은혜 내려주시기를 소망하였습니다.

 

1.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준비하였습니다.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창27:4)"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가로되 내게로 가져 오라 내 아들의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27:25상)"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별미를 대접한 후에 복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별미를 먼저 대접한 후에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가죽 옷을 준비하였습니다.

"또 염소 새끼의 가죽으로 그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꾸미고(창27:16)"라고 하였습니다.

그 손이 형 에서의 손과 목으로는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도 인간 본성으로 복을 받을 수가 없고, 오직 어린 양(요1:29)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죽 털옷(창3:21, 롬13:14, 갈3:27)을 입고서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순종을 준비하였습니다.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창27:19)"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야 합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많은 사람들이 복은 원하면서 복받을 준비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들이복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들께서도 먼저 별미와 가죽 옷과 순종을 준비하십시오.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복을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입니다(시23:5, 눅6:38). 믿으십시오. 그리고 실행에 옮겨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인의 준비

마25:1-13

 

서론

본문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에 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을 영접하여 기쁨과 영광을 누렸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문 밖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 신자들은 세 가지를 준비해야 하는데, 나의 죽음에 대해서 항상 준비하라고 했고, 장차 다가올 환난에 준비하라고 했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1. 준비하는 일

"준비란 우리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갖추어 놓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문제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말씀드리면

(1) 외부적인 위험을 미리 방비해 나아가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2) 내외적으로 발생되는 비상사태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키워 나아가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3) 모든 것을 미리 저장하여 물심 양면으로 여유있게 하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신앙인으로서 준비한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① 영적인 각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② 힘써 기도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생활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능력을 공급받는 행위인 동시에, 외부적인 위험을 방비하고, 영적 힘을 키워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적응해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하였습니다.

③ 주의 일에 충성하는 일이 신앙인의 준비행위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에 충성하는 것은 장차 주님 앞에 서는 때에 부끄럽지 아니한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경성하여 기도하면서 주의 일에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준비하는 사람

환난과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여 영적인 신앙의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1)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서적인 참 지혜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잠1:7, 마7:24).

(2) 근면하여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준비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으로 준비를 노력해야 된다는 말입니다(롬12:11, 고전15:58).

(3) 검소하여 절제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할지라도 사치하고 낭비를 하게 되면 다시 '제로'가 되어 집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성도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3. 준비해야 될 이유

우리 신앙인들이 준비해야 될 내용이 무엇이며 나아가서는 준비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준비해야 될 내용은 한마디로 등에 기름을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1) 성령의 은사를 축적하라는 뜻입니다.

(2) 신앙을 축적하여 견고히 하라는 뜻입니다.

(3) 경건한 능력을 축적하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쭉정이 신자가 되지 말고 알맹이 신자가 되고 잎만 무성한 신자가 되지 말고 내용과 실속을 갖춘 신자가 되자는 말입니다. 왜 이러한 준비를 갖춘 신자가 되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이 시대가 역사의 종말기를 맞이하여

① 장차 대 환난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환난을 이겨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③ 우리 자신들의 구원 완성을 위해서 준비하여 실력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이와 같이 준비하는 신자들은,

(1) 자기를 반성하여 회개합니다.

(2) 힘써 기도하면서 은혜 생활을 합니다.

(3)주님이 맡겨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한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창22:14

 

서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칠 때 하나님께서 미리 한 숫양을 준비하셨다가 제물로 드리도록 하신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때에 따라 그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해 두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아들을 준비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이 미 축복하셨습니다(12:2-3). 그리고 그 후손이 하늘의 뭇별같이 번성할 것도 예언하셨습니다(15:5). 또 나이가 많아 100세가 되었고, 그 아내는 90이 되어 경수가 다 끊어져서 생산의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부부에게 아들을 낳아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벌써 그들을 위하여 아들 이삭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가 보내 주십니다. 특히 아브라함 가정에 아들을 준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놓으셨다가 채워주십니다. 이렇게 추리 하나님은 완벽한 하나님이십니다.

 

2. 숫양을 준비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삭을 하나님께서 다시 자신에게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 산으로 제사하러 올라가는 아들 이삭은 번제할 나무를 지고 올라가나 제물이 안보여서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아브라함은 황급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말하였으니 이것은 아무리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하였다고 하여도 매우 어려운 말이었으나 과연 그 말대로 하나님께서 숫양을 준비하였다가 이삭을 대신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성도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놔두지 않으십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어렵게 시험을 주셔도 결코 그대로 시행하시지 않으시고 피할 길을 주시며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3. 축복을 준비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나를 가르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에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축복을 준비하셨다가 때가 이르면 그 축복을 허락하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다만 우리가 그 축복을 받을 자격을 갖추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준비를 하지 아니하셔도 즉흥적으로 무슨 일이나 하실 수 있으시지만 매사가 하나님의 예정 중에 이루신다는 것을 가르치시는 훌륭한 교훈이십니다.

 

 

박 넝쿨을 준비하심

욘4:6-8

 

서론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될 일을 다 아시기 때문에 필요하신 것을 미리 예비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때가 이르면 준비하셨던 것을 내놓으셔서 행사하시고 교훈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세 가지 준비한 일을 계속적으로 제시하시고 소개하여 교훈하셨는데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1. 박 넝쿨을 준비하셨습니다.

"박 넝쿨"은 히브리 원어로 "카카욘"이니 근동지방의 특수 식물입니다. 그 길이가 열자 높이로 자라며, 심으면 금방 자라나서 수일 내에 큰 잎들을 내는고로 작은 나무와 같아서 사람들에게 그늘을 주어 더위를 피하게 하는데 적합한 식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훈계하시기 위하여 일단 박 넝쿨을 준비하셨다가 하룻밤 사이에 자라게 하여 요나의 더위를 막아 시원하게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2.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본서에서만 보더라도 요나의 도망용 배를 준비하시고 요나를 제비에 뽑히도록 준비하시고, 큰 물고기까지 예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벌레를 준비하셨습니다. 벌레를 준비하셨다가 박 넝쿨을 씹게 하사 하룻밤 사이에 시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게는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작게는 벌레와 개미, 곤충들까지도 만드시고 작동케 하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벌레 하나가 박 넝쿨을 씹는 것은 보통 평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벌레를 통하여 위대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이것도 미리 준비하셨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3.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습니다.

해가 뜰 때에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다고 하였는데, 우리들이 생각하기는 바람은 기상따라 무의미하게 불어 오고가는 줄 알기 쉬우나, 이것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가 나타나게 하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라고 하였고,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라고 하였으며, "큰 폭풍(12절)" 등 모두를 하나님이 준비하신 바이니 이곳에서 뜨거운 동풍도 그가 준비하셨다가 필요할 때 적절하게 쓰시려고 요나의 머리 위에 불게 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서 박 넝쿨과 벌레와 뜨거운 동풍을 연속적으로 준비하셨다가 제공하시며 실물을 통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비록 불순 종하는 요나였지만 그를 징계하신 것이 아니라 준비하셔서 그로 하여금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중 생

성 경 활 용

1. 왜 중생이 필요한가?

(1) 중생해야만 하나님의 백성의 될 수 있기 때문에

(요3:3) 예수님에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2) 인간의 상태가 죄로 인하여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엡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렸도다

 

2. 중생에 필요한 것

(1) 성령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딛3: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2) 하나님의 말씀

(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3. 중생의 여러 표현

(1) 일치한 마음

(겔11:19)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2) 새 생명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3) 새로운 피조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4) 마음의 할례

(신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5) 하나님의 씨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속에 거함이요

(6) 거듭남

(벧전1:3)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7) 이름이 하늘에 기록됨

(눅10:20)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서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4. 중생의 결과

(1) 영적으로 성장함

(벧전2: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 의를 행함

(요일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3) 신령한 것을 분변함

(고전12:12-16) 참조

(4) 주님의 형상을 닮아 감

(고후3:)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5) 신령한 열매를 맺음

(요15:1-8) 참조

(6) 세상을 이김

(요일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관련원어풀이

1. ajnagennavw 아나겐나오

다시 산출하다, 태어나다, 새로 낳다.

 

2. a[nwqen 아노-덴

위로부터(오는) 다시, 새롭게, 거듭해서.

(요3:3, 벧전1:3, 23)

설교예화자료

천국에 갈 수 있는 자

 

매우 열심히 교회 일을 하는 한 여인이 교역자 모임에서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평범한 몇몇 진리를 말한 무디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디를 만나자, 화가 난 여인은

"어린이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고 모든 생활을 교회 일에 바치고 선한 일만 행한, 교육받은 내가 죄인들과 같이 천당에 가야한단말입니까? "라고 반박했습니다.

"아니오."

무디 씨는 엄숙히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셨소. 얼마나 좋은 생각을 하느냐 또는 얼마나 교육을많이 받았느냐 또는 선한 일에 열심이냐에 관계없이 거듭난 사람이면 누구나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

 

 

자존심을 회복한 의사

 

어떤 의사가 있는데, 그는 높은 지식과 겸손하고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오진을 해서 더 살 수 있는 사람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입는 그는 날마다 울고 탄식하며, "나는 의사로서 실패자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학대하여 완전히 자존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생활로 일을 돌보지 않아 마침내 병원문을 닫아 버리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끝내는 병이 들어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병원에서도 대화하기를 거절하였고, 심지어는 가족들과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목사님이 그를 찾아가 전도하고 이같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당신은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해주셨지요? 그러면 수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 오진한 것은 한 부분에서 실패한 것이지, 당신 자신이 실패자는 아닙니다. 당신은 훌륭한 의사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용서를 받아 당신 자신을 멸시하지 말고 훌륭한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가지고 일어나십시오. 결코 낙심하지 마십시오."

목사님은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기도가 끝난 다음 그가

"목사님 정말 저는 실패자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훌륭한 의사입니다. "라고 격려해 주었습니

다.

그때로부터 그는 다시 웃으면서 대화를 시작했으며, 자존심을 회복하고 병원문을 열어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그 후에 그 목사님 이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그는 목사님의 손을 꼭잡고,

"목사님, 목사님은 나의 재생의 은인입니다. 나는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한 부분에서 실패했을 뿐이지 내 자신이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삶

 

미국에 살고 있는 카놀산도스 씨는 60세 때 수백만 달러의 빛을 지고 파산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인하여 그는 병원에 입원했으나 잠도 이루지 못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새벽에 '너는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라는 찬송가가 바람 소리에 끊어질 듯 말 듯 하면서 들려 왔습니다. 그는 찬송가가 들려 오는 곳을 향하여 몽유병자처럼 걸어갔습니다.

찬송가는 조그마한 교회에서 흘러 나왔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한 늙은 부인이 강당밑에 엎드려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부인이 부르는 찬송가는 마치 천사가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통곡하면서 회개를 하고 자기의 인생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평온해졌으며, 주님과 동행하게 된 그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파산을 하기 전에는 사장이었지만 넝마주이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주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갖자 성령의 인도로 그 일을 해 낼 수 있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통닭구이 장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지금은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수십억 달러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부주교조차도

 

전에 영국군의 군목장교였던 존 테일러 스미드 주교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대성당에서 강론을 했습니다.

"거들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는 말했습니다.

"친애하는 여러분, 새로 태어나는 것은 어떠한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지만 교회의 회원 의식이 곧 새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

왼쪽에 부주교가 그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면서 주교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서 나의 친구처럼 부주교가 되었겠지만 다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거듭난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

며칠 후 그는 부주교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존경하는 주교님 당신이 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나는30년 이상 성직자로 있었지만 결코 크리스찬들이 말하는 기쁨에 대하여 알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예배만을 드렸습니다. 나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당신은 부주교는 되었지만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고 말했을 때, 그 순간에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나는 중생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

그는 계속해서 자신은 가련하고 비천한 사람이고, 밤에는 잠을 이를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주교가 자기와 이야기할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대화를 하고 싶다고 간청했습니다.

"물론 나는 시간을 낼 수 있었습니다. " 스미드 주교가 말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우리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부주교는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고 잃어버져진 죄인임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자신의 구세주로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 그 시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어록·시·묘사

 

성령의 역사로/ 담을 싼/ 원수의 담이 무너지게 하시고/ 영과 혼이 새롭게 거듭남을/ 만민이 보게 하소서.

(김지향/ 능력의 말씀으로)

 

불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어/ 새롭게 새롭게 쓰임받게 하소서./ 이 젊음 곤고한 날에 이르기 전에.// ‥‥진실로 거듭나야 하리라/ 님께서 이 땅 생명으로 있으시기에/ 감격스럽고도 벅찬 백주년의 아침에/ 우리는 베옷은 찢고 재를 쓰는 심정으로/ 참회의 눈물로 이 날을 기념하고/ 중생의 체험으로 새날을 맞아야 하리라.

(김성영/ 이 아침에 거듭나게 하소서)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기적입니다. / 남루한 육질의 장막을 벗고/ 방금 돋아 나는 투명한 발아/ 초록의 강가에 빛나는/ 정녕 눈물겨운 기적입니다. (홍문표/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거울이 있기 먼저/ 물은 거울이었다/ 그 거울엔 꽃의 피어남과/ 별의 빛남으로부터/ 갖가지 소리의 파장이 보이고/ 바람의 향방과/ 거듭남을 일깨운다.

(최은하/ 한 방울의 물은)

 

성령의 역사로/ 담을 싼/ 원수의 담이 무너지게 하시고/ 영과 혼이 새롭게 거듭남을/ 만민이 보게 하소서.

(김지향/ 능력의 말씀으로)

 

 

설 교 노 트

 

토기장이와 진흙

렘18:1-2

 

서론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별한 심부름을 위하여 선지자를 보내기를 좋아하시며 그 선지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메시지를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명하십니다. 여기 토기장이와 진흙에 관한 논의는 매우 교훈적인 이야기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1. 중생하지 못한 자는 못 쓰게 된 진흙덩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본래 올바르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따 지식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의와 참된 거룩함에 있어서도 하나님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전에 가졌던 권위를 곧 잃고 타락하였으며 그 타락으로 말미암아 신의 형상 또한 손상되었습니다.

자연적인 것들에 관한 측면에서 우리의 이해력은 분명히 회 미해지고 무식하게 됩니다. 사람은 오직 지금의 지식만을 갖게 될 뿐이고, 그가 획득할 수 있는 지식 또한 육신이 약해짐에 따라 함께 약해지게 됩니다. 그의 이해력은 영적인 일에 대해서도 희미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써도 희미해지게 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타락 이전에 사람은 그의 창조주의 뜻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의지도 못했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최소한 불연합 상태도 존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빛이 어둠과 반대되고 하늘이 지옥과 반대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됩니다.

 

2. 중생하지 못한 자들의 거듭남에 대한 필요성

(1) 사람의 현재 상태에 관한 사실

지금까지 중생하지 못한 사람의 현재 상태에 대해 의도적으로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에게 제시되는 교리들이 모두 진리임을 담대하게 밝히는 바이며 당신은 사람이 거듭나야 할 필요성에 대해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천국의 소망

① 천국의 두 가지 개념:우리의 이해력이 부족하여 성경은 천국을 이 세상의 현상과 인간적인 상상에 따라 천국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결국 더 이상 고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하나의 장소일 뿐만 아니라 국가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미리 적절한 마음의 자세를 정해 두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결코 천국에서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② 도덕적 변화에 대한 필요성:우리는 거룩하신 분과 함께하는 자가 될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이 타락한 진흙덩이, 즉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반드시 보편적인 도덕적 변화를 체험해야 합니다. 옛 것을 모두 내버려야만 하며 모든 일이 새롭게 되어야만 합니다.

 

3. 중생하지 못한 자들의 거듭나는 방식

거룩한 토기장이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며 삼위 하나님의 제3위입니다. 또한 사람을 거듭나게 해 주시는 거룩한 분이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의 영혼의 혼란을 무마해 주십니다.

기적 중의 기적인 거듭남은 하나님에게 영혼이 돌아서는 것으로써 그는 영원히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됩니다. 진실로 믿는 자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결론

생을 살았으며 불명예스럽고 저주받은 죽음을 당하였으며,부활하사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의 모든 교훈과 섭리와 모든 신적인 계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정을 알려줍니다.

(1) 우리의 타락된 모습이며,

(2) 그가 우리를 변화시켜 환전하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중생과 구원

요3:1-15

 

서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중생이란 무엇입니까? 요3:1-14까지 기록되어 있는 "중생"이란 말에 대하여 우리말 성경 개역판에서는 "거듭난다"는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생"이라는 헬라어 뜻은 "꼭대기에서 난다", "위에서부터 난다, 다시 난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위에서 난다는 뜻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이 체험이 신자들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이 같은 중생은 곧 신분의 변화와 생활관의 변화가 따릅니다. 더 분명히 생각해야 하는 것은 소속이 달라진 것입니다.

 

1. 중생의 방법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거듭나는데 있어 필수적인 조건은 물과 성령인 것입니다. 디도서 3장 5절에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생의 씻음"이란 말을 외적인 것과 내면적인 내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로써 씻음은 세례를 뜻하게 될 것입니다. 세례는 유형적인 외적 표식으로써 죄인된 과거의 나를 그리스도와 함께 매장(롬6:4)하는 예식인 것입니다. 이 예식을 통하여 새롭게 하시는성령의 역사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또한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란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하시고,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하시며, 우리들을 재창조하시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중생의 체험과 확증은 성령의 변화하게 하는 내적인 역사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며, 동시에 외적으로 자기 스스로가 죄인인 것과 교회 회중에 속함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이 같은 변화의 모습이 곧 중생의 과정입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이 단계에 이르려면 회개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리고 세례를 받게 되면 이 모든 과정이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분명히 고백하고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자신이 중생된 자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2. 중생의 결과

(1) 자신의 소속 확인이 분명하게 됩니다.

이제는 사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 속한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엄청난신분의 변화인 것입니다.

(2) 자기 확신이 생겨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3) 자신의 생활에 변화가 옵니다.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를 지키려는 노력이 따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이 죄를 떠나서 변화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변화를 체험과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생활로 승화됩니다.

 

결론

이 같은 새로운 차원에로의 비약의 단계가 곧 위로부터 하나님께로 나는 중생인 것입니다. 이 중생의 체험이 있어야 자기 변화도 가능하며, 구원에 이르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난 자

갈6:6-10

 

서론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안다는 사실과, 지식으로 아는 것으로는 구원과 천국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든 바리새인이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늘로부터 나야 합니다. 억지로 경배하는 것을 하나님은 아주 싫어하십니다. 우리들은 너무 쉽게, 안일하게 스스로를 성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나지 않으면 혹 기독교 신자일 수는 있어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습니다.

 

1. 중생이란 무엇입니까?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낡은 건물을 수선하는 것이 아니라 기초부터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위로부터 거듭나야 합니다. 영적인 생명으로 하나님과 하늘나라와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분적인 것이 아닌, 즉 개조가 아닌 전인격적인 변화, 영적 변화입니다. 수양이나 교육, 여건이나 환경, 이성이나 과학으로 이를 수는 없습니다.

중생은 영적 변화이기 때문에 영으로 태어나야 합니다. 중생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절대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2. 어떻게 중생할 수 있나?

(1)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 속한 역사입니다.

(2) 하나님께로 납니다(요1:13).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납니다(롬10:17). 생명으로 거듭납니다(요3:5).

(3)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의 심령,마음속의 심층 부분을 찔러 쪼갭니다. 말씀만이 인간을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변화(내적변화)로 지금까지 죽었던 내가 말씀으로 살아났습니다.

(4)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 말씀이 역사됩니다. 말씀이 증거되는 곳에 성령께서 감화를 주십니다.

 

3. 중생의 필요성

(1) 중생하지 않고서는 신앙적인 것(예배, 기도, 전도)과는 무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중생을 해야 성경 말씀과 신앙적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을 단지 종교 지도자, 정치적 메시아, 도덕적 스승, 의식주의 해결자, 인류 4대 성인 중 한 사람, 병을 고친 의사 정도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4) 중생하면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이 내 안에 함께거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풍성한 삶을 누립니다.

 

결론

성도가 중생한 후에는 변화된 삶을 삽니다.

즉, 인격과 생활 속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자기는 사라지고 위에 것을 찾으며, 성화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중생자의 생활

요3:1-21

 

서론

기독교의 교리 중의 근본 교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지는 신의와 속사람이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도입니다.

신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되는 역사이며, 중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타락된 인간성을 새롭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중생의 본질은 마치 태아가 모태에 있을 때에는 눈이 있으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나 듣지 못하다가 출생하여 사물을 보고 모든 소리를 듣게 되는 것처럼, 사람이 중생하기 전에 육신의 사람으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나, 중생한 후에는 그 심령 속에 성신의 능력 있는 역사를 감각하기고 하고, 사람의 지각에 뛰어나는 평안을 알게 되며, 선악에 대한 예민한 판단력도 가지게 됩니다.

 

1. 중생의 필요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깊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 지도층에 있는 저명 인사로서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워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는 중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예서 거듭난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셨으나 니고데모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의 거듭난 사람이란 공간적으로 위에서 나고 시간적으로 새롭게 난 사람을 말합니다.

즉, 보통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난 자연인이, 성령으로 새로 난 사람을 말합니다. 니고데모는 부자이고, 관원으로 계급도 높고, 선생으로서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조건을 갖춘 사람인데, 애수님께서는 그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니고데모의 육적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그의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죄간은 사망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2. 중생의 방도

신자는 누구나 두 번 나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는데 이것을 초생이라고 한다면, 영적으로 새롭게 나는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니고데모는 초생의 이치는 알았으나 영으로 다시 나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세상 지식으로 가득한 자였지만 영적 진리에 대해서는 무식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중생은 어떻게 됩니까? 중생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되어집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중생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죄인들이 마음에 새롭게 역사하시는 작용을 주시면 죄인은 새로워지기 마련입니다.

중생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이지 인간의 수양이나 교양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중생한 자의 생활

중생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변합니까? 중생한 자의 생활은 그의 신앙 자세에서 분명히 나타납니다. 이것은 마치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니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통해 바람의 실존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중생하면 우리의 지식과 감정,의지에 변화가 옵니다. 먼저 입술이 새로워집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중생한 사람은 추하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완악하고 조급했던 우리들의 심령이 은유하고 겸손해집니다.

 

결론

중생한 자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 그의 생활 전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모두 중생하여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증 거

성 경 활 용

1. 무엇이 증거가 되는가?

(1) 증인

(요8: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거가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히11:5)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3) 말

(삼하1:16)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거하는 내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는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4) 표적과 기사

(행14:3)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2. 영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1) 하나님 아버지

(요5:37)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2) 성령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3) 복음

(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4) 하나님의 율법

(신31: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3.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누가 하였나?

(1) 세례 요한

(요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2) 하나님

(요8: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느니라

(3) 그리스도 자신의 역사

(요5:36)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4) 선지자

(행10:43)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4. 성도는 무엇을 증거해야 하는가?

(1) 예수의 부활하심

(행1:22) 우리로 더불어 애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2) 진리

(요삼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3) 그리스도가 재판장 되심

(행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실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4) 구원

(히2:3)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5)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행20:24)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6) 하나님 나라

(행28:23)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7) 주의 의

(시35:28)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5. 성도의 증거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1) 주 안에서 증거해야 한다.

(엡4:17) 내가 이 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2) 부득불 증거해야 한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3) 속히 증거해야한다.

(말3:5)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4)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증거하라.

(행20:24)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짓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5)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라.

(계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t/a 오-트

(1) 표적, 표시.

(창1:14, 출12:13)

(2) 군기.

(민2:2)

(3) 미래의 어떤 것의 표, 징조, 표적,

(사8:18)

(4) 표, 증명, 논거.

(신4:34, 욥21:29)

 

2. @/Ra; 아-론-

(1) 법궤, 큰 상자.

(왕하12:10-11)

(2) 증거궤, 언약궤.

(출25:22, 신31:9)

 

3. dW[ 우-드

(1) 증언하다, 권고하다.

(애2:13)

(2) 증인으로 취하다, ∼을 증인으로 부르다.

(신4:26, 사8:2)

(3) 입증하며, 증명하다.

(왕상21:10, 암3:13)

(4) 선포되다, 보여지다.

(출21:29)

(5) 회복하다, 굳게 하다.

(시146:9, 147:6)

(6) 바르게 세우다.

(시2O:9)

 

4. d[e 에-드.

(1) 증인.

(잠19:5, 9)

(2) 증거, 증명한 것.

(출20:16, 신5:17)

(3) 왕, 지도자, 지휘관.

(사55:4)

 

5. hd:[e 에-다

(1) 증명한 것.

(창31:52)

(2) 증거.

(창21:30)

(3) 교훈, 격언.

(시l19:22, 34)

 

6. ejndeivknumai 엔데이크누마이

(1) 나타내다, 보여주다.

(롬9:17, 히6:10)

(2) 외적 증거를 제시하다.

(롬2:15)

 

7. ejpideivknumi 에피데이크누미

(1) 나타내다, 모이다, 지적해 내다.

(마22:19, 행9:39)

(2) 입증하다, 나타내 보이다, 알게 하다.

(행18:28, 히6:17)

설교예화자료

믿음표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교우가 한번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새 예루살렘 성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높은 시온산 꼭대기에 새 예루살렘성을 잘 지었는데 금강석과 홍보석과 녹보석과 가지 각색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성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새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왔구나."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올라가 보니 큰 문이 있는데 계시록에 기록한 대로 큰 진주 하나로된 문이었습니다.

"야, 내가 새 예루살렘 성에 왔구나." 생각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두리리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베드로가 척 내다봅니다.

"저는 아무 교회에서 온 아무개올시다. " 그러니 베드로가 묻습니다.

"이 성에 들어오려면 믿음표가 있어야 하는데, 믿음표를 가지고 왔느냐?"

"네, 가져왔습니다. " 하며 안주머니를 만져 보니 믿음표가 없어졌단 말입니다. 옆주머니를 보니 거기도 없단 말입니다. 아무리 뒤져도 믿음표는 없었습니다.

"있는 줄 알았는데 없어졌습니다. "

그러자 장사꾼이었던 이 분은 사정을 해보았습니다.

"나에게 믿음표가 없지만 아무 교회에 십년 이상을 다니고 했는데 좀 들어갈 수 없겠습니까? "

"그것은 안 되네. 아무리 오래 다녀야 쓸데 있나? 믿음표가 있어야지."

"그런게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그 교회에서 장로 일을 십여 년이나 봤습니다. 그래도 좀 들어갈 수 없습니까? "

"아니,장로 십여 년이나 믿음 업이 했으면 말생꾸러기였겠구만, 그게 무슨 쓸 데가 있어."

하고는 문을 닫고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성질이 급한 분입니다. 문을 꽝 닫는 소리에 깨 보니 꿈이더랍니다. 그것이 꿈이었기에 다행이지 꿈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습니까?

 

 

어록·시·묘사

 

한 사람의 목격은 열 사람의 증언보다도 가치가 있다.

(M. J. 브루투스)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양심처럼 무서운 증언자도 없으며 두려운 고발자도 없다.

(폴리비오스/ 역사)

 

필연성에 의해 태어나고 과학에 의해 정당화된 나는 모든 실험적 증거의 한계를 넘어선다.

(J. 틴들/ 과학단편)

 

밀크 속에서 송어를 발견할 때처럼 어떤 우연한 증거는 매우 강력하다.

(H.D. 소로/ 일기)

 

목격자들이란 바보야. 그 친구를 늘어선 혐의자들 앞에 세워 놓으면 이놈도 비슷하고 저놈도 그럴싸하다면서 종을 못 잡고는 엉터리 증언을 하지.

(J.E. 스타인벡/ 불만의 겨울)

 

입증이 너무 많은 것은 아무것도 입증하지 않은 것이다.

(T. 풀러/ 격언집)

 

도둑을 뒤로 잡지 앞으로 잡나. < *도둑은 범행을 한 뒤의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잡아야지 의심만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는 말>

(한국 속담)

 

증거는 풍문보다 낫다. < *명확한 증거 없이 풍문만으로 혐의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

(영국 속담)

 

말할 것이 없기 때문에 사실의 증거를 말로 표시할 수 없는 사람은 복이 있다.

(G. 앨리엇/ 테오프라스투스 서치의 인상)

 

꼭 같은 명백한 행위에 대해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의 증언이나, 공개 법정에서의 고백에 의하지 않고는 누구에게도 반역죄를 선고해서는 안 된다.

(영국헌법 제3조 3항)

 

나는 조롱도 논쟁도 하지 않는다. / 단지 증언하고 기다릴 뿐이다.

(W. 휘트먼/ 풀잎)

 

 

설 교 노 트

 

증거하는 삶

히11:1-7

 

서론

우리 성도들에게 항상 있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 소망,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무엇을 증거해야 합니까?

본문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창조된 때가 있었고 아울러 그 끝날도 있다는 것이요, 이 세상을 만드신 이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권능의 말씀으로 만드셨다는 사실입니다.

"증거"란 한마디로 말해서 "확실하게 의심없이 나타내는 것"인데 이 하나님을 바라던 대로 실상으로 모시며 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볼 수 있도록 하여 주자는 말씀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은 확실한 것, 기초적인 것으로서 아직 가지지 못했던 것들이 실제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알고 있던 것이 실제에 나타나고 누리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타내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계심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증거하는 삶을 산 자들의 본보기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아벨의 역사입니다.

4절에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었으니‥‥‥‥ 예배 생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야 합니다. 공연히 습관적인 예배 생활이 되지 말고, 형식적인 예배 생활이 되지 말고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받아 자신이 은혜를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증거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의 축복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5절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역경 중에도 감사하고 시험 중에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3) 순종함으로 가정을 구원하여야 할 것입니다.

창6:3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나타나 앞으로 120년 후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시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믿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믿는다해도 좀더 후에 하면서 연기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6:22에 있는 대로 노아는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준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무서운 홍수 심판에서 면제되고 8식구가 다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정 구원을 이루는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우리는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증거합시다. 세상의 종말이 있음을 증거합시다.

아벨처럼 예배 생활에 복을 받읍시다.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축복을 받읍시다.

노아와 같이 순종하여 인가 귀도하고 민족 구원의 큰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봉사하여 많은 복을 받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증거하라

잠14:25

 

서론

본문은 영혼을 구원받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증거하는일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에 대하여 증거함으로써 죽을 영혼을 구원 얻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일이 그것이었고, 사도들의 일 또한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일이었고,예수님 자신의 일이었습니다.

 

1. 누가 증거할 것입니까?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명백합니다. 즉, 누구든지 예수를 알고 있는 사람 전체가 다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아는 그때부터 우리에게는 예수를 타인에게 알려주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를 증거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2. 무엇에 관하여 증거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증거해야 할 내용은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예수와 그의 죽음, 그의 부활,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 등이요, 어떤 사람들의 교리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3. 언제, 어디서 증거해야 합니까?

어디서든지 기회만 있으면 증거해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그는 회당에서, 시장 마당에서, 이 집 저 집을 다니면서, 야외에서, 강가에서, 감방 안에서, 배 안에서, 천막 안에서 증거하고,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종교인이나 재판관, 관리들과 왕에게, 즉 어디서든지 증거하였습니다.

우리가 증거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를 말한다면, 우리들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들의 모임에서 등 어디서든지 할 수 있습니다.

 

4. 효과적인 증거의 조건을 무엇입니까?

(1) 증거하는 배후에 진실한 생활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의 사업상 정직하지못한 것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운동을 위해서 입을 다물고,그리스도에 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2) 그리스도와 그 진리를 효과 있게 증거하는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와 그 진리를 가능한 한도 내에서 광범위하고도 가장 명백하게 갖도록 공부해야 합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것같이 말입니다.

(3) 효과 있게 증거하는 데 있어서 최상의 조건은 성령을 받는 일입니다. 성경의 증거는 가장 능력 있는 증거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극히 적은 능력밖에 효과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모두 진실한 증인은 영혼을 구한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증거하도록 합시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행4:16

 

서론

였습니다. 그리고 협박하였으나 사도들이 담대하게 증거를 대며 달변을 하는 데는 도리가 없어 결국 처형을 할 수도 업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석방할 수도 없는 곤란한 지경애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들은 "이 사람들을어떻게 할꼬"하는 비명에 가까운 탄식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1. 교권이냐? 영권이냐?

사도들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 주자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여 사도들의 전하는 말을 듣기위해 모였습니다.

교권주의자들은 사도들을 체포하여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고심문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고쳐 준 것이 무슨 이상한 권세를 가지고행한 것인 줄로 착각하고 이러한 미련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권세가 있다면 다만 성령의 권능이요,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친 것 뿐입니다.

본래 학문이 없는 무식한 범인으로만 알았다가 기탄없이 도도하게 대응변을 토하는 베드로의 변론에 의기가 꺾인 교권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해져서 서로 의논하였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권세를 선용하지 못하면 창피를 당하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니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선민인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교만으로 인하여 주님의 일을 하는 사도들을 체포하고도 그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교권주의자들의 모습이 우습기조차 합니다.

 

2. 궁지에 몰린 핍박자들의 비명

베드로 일행이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사실을 아는 저들, 또 병나은 사람이 눈앞에 동석하고 있는 이 엄연한 사실을 보게 되니 저들로서는 힐난할 말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궁지에 몰리게 된 그들은 할 수 없이 사도들을 공회에서 잠시 내보내고 사사로운 비밀 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비명에 가까운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라고 하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한 셈입니다. 석방하자니 위세당당하게 체포했던 교권의 위신이 안서고, 공갈하자니 먹혀 들어가지 않고, 계속 심판하자니 너무나 사도들의 산 증인이 동석하고 있었습니다. 또 많은 군중들이 그 표적과 설교에 감동을 받아 믿는 자가 날마다 부지기수로 생겨지니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라는 비명적인 탄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도들을 그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결론

핍박자들의 양심이 아직 살아 있는 증거는 유명한 표적이 나타난 것을 우리도 부인할 수없다고 한 사실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엄연한 사실을 인위적으로 말살하거나 교권으로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 것은 영권의 작용이며 성령의 권능이 역사하는 까닭입니다. 예수를 증거하는데 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 식

성 경 활 용

1. 지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1) 죄의 지식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2) 기능적인 지식

(출36:1)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은 여호와의 무릇 명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3) 학문적인 지식

(요7: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 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4) 자연적인 지식

(마24: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5) 미리 아는 지식

(삼상22:22) 그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비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6) 구전의 지식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7) 여호와를 아는 지식

(수24:3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자신도 모르는 지식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9) 영적인 지식

(고전2:14)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0) 계시의 지식

(눅10:22)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 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2. 지식은 우리에게 무슨 가치를 주는가?

(1) 평안을 보증함

(사33:6) 너의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2) 힘을 더함

(잠94: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3) 구원에 이르게 함

(잠11:9)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영혼을 즐겁게 함

(잠2: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5) 정금보다 나음

(잠8: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6) 멸망에서 보존함을 받음

(사5:13) 나의 백성이 무지함을 인하여 사로잡힐 것이요 그 귀한 자는 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며

 

3. 지식의 근원은 누구신가?

(1) 성경이다.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2) 하나님이시다.

(시94:10) 열방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하지 아니하시랴

(시119:66) 내가 주의 계명을 믿었사오니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3) 여호와의 규례와 법도다.

(신4:5-6)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규례와 법도를 너희에게 가르쳤나니 이는 너희로 들어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그대로 행하게 하려 함인즉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4)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요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4. 하나님의 지식의 성질

(1)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시다.

(삼상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2)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신다.

(대상28:9) 여호와께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롬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5. 성도는 언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지켜야 하는가?

(1) 각자의 이름에서

(요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2) 참된 사랑에서

(고전8:3)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3) 고난의 때

(나1: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 들을 아시느니라

(4) 모든 일에서

(요1: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5) 친밀한 사귐에서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6. 사람의 무지함의 성격

(1)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다.

(전11: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2) 생의 짧음을 모른다.

(욥8: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지식이 망매하니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시73:22)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3) 자연과 은총이 신비로 가득함을 알지 못한다.

(요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랑은 다 이러하니라

(4) 다가오는 불행을 예측할 수 없다.

(전9:2) 의 인과 악인이며 선하고 깨끗한 자와 깨끗지 않은 자며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를 드리지 아니하는 자의 결국이 일반이니

(5)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

(전8: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7. 지식에 대해 성도가 취할 태도

(1)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여야 한다.

(약3: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2) 지식을 더해 가야 한다.

(벧후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3) 지식으로 교만해서는 안 된다.

(고전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4)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벧후3:17)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5) 지식에 풍성해야 한다.

(빌1:9)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6) 그리스도와 그의 은혜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야 한다.

(벧후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관련원어풀이

1. @yBi 빈-

(1) 분별하다, 인식하다.

(욥9:11, 느13:7)

(2) 마음을 돌리다, 주의를 기울이다.

(신32:29, 시73:17)

(3) 깨달아 알다, 이해하다.

(욥18:2, 호4:14)

(4) 주의를 두다, 관찰하다.

(대하26:5, 사57:1)

 

2. hn;yBi 비-나-

(1) 이해, 깨달음.

(사33:19, 단8:15)

(2) 지식, 분별, 통찰.

(잠4:1, 욥28:12)

 

3. [d'y: 야-다

(1) 알다, 인식한다, ∼을 알아채고 있다.

(창19:33, 사6:9)

(2) 알게 되다, 발견하다.

(창9:24, 느13:10)

(3) 알다, ~에 대한 지식을 가지다.

(창43:22, 전4:17)

(4) 지식이 있다, 현명하다.

(욥31:2, 사44:9)

 

4. jq'l, 레카흐

(1) 마음을 사로잡는 술책.

(잠7:21)

(2) 교리, 지식.

(잠1:5, 사29:24)

(3) 가르침, 연설.

(욥11:4, 신32:2)

 

5. gnw'si" 그노-시스

(1) 지식.

(눅1:77, 고후2:14)

(2) 지식, 앎, 이해.

(엡3:19)

(3) 기독교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롬15 ; 14, 고전1:5)

(4) 깊고 완전한 지식.

(고전12:8, 고후6:6)

(5) 도덕적 지식.

(벧후1:5)

(6) 구원에 대한 지식.

(눅11:52)

설교예화자료

다양한 책들의 영향

 

벤자민 프랭클린(Benjanin Flanklin)은 코튼마더(Cotton Mather)의 「좋은 행위에 대해서」라는 책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러셀 경을 살해한 범인은 어떤사악한 책을 읽고 살해를 하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성 존 안젤리(John Angeli) 제임스라는, 영국에서는 그보다 선한 사람이 없다고 전해질 정도로 선한 인물도, 소년 시절에 15분 동안 사악한 책들을 읽고 얻은 악영향을 이기기가 아주 힘들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지 않고 내가 대학 시절에 발생했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는 다정하고 고상하며 관대한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는 성직을 공부하였으나 그의 가방 속엔 좋지 알은 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그 책을 나에게 주며 읽어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읽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 책을 본 것에 대해 매우 놀랐으며 그에게 책을 돌려주며 말하였습니다.

"이 책은 버리는 것이 좋아."

그러나 그는 그 책을 계속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종교를 신화라 하며 포기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양서는 도움을 주지만 오히려 좋지 못한 내용의 책을 읽을 경우에는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양서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재물

 

어떤 배 위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선객들은 모두 큰 부자들이였습니다. 그중에 랍비가 한 사람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랍비가,

"내가 제일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은 내 재산을 여러분에게 보여줄 수가 없다. "고 말했습니다. 마침 그때 해적이 배를 습격했습니다. 부자들은 금은, 보석 등 자기들의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해적이 사라진 뒤, 간신히 배는 어떤 알지 못하는 항구에 닿았습니다. 랍비는 곧 학식과 교양이 높다는 것이 항구 사람들에게 인정되어, 학교에서 학생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이 랍비는 배에서 함께 여행했던 지난날의 부자들과 만났으나 모두 비참하게 가난뱅이로 영락(零落)하여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확실히 당신의 말이 옳았소. 교양이 있는 자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것과 같소."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항상 뻬앗기는 일 없이 가지고 다닐 수 있으므로,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우물에 빠진 천문학자

 

아름다운 밤하늘에 무수히 반짝이는 별들을 연구하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하늘을 보며 별들의 거리와 밝기,그리고 어디에서 어디로 옮겨가는지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날마다 열심히 별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별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날도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며 밤길을 걷고 있었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우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앗, 살려주세요."

천문학자는 있는 힘을 다하여 소리쳤습니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달려와 천문학자를 구해주었습니다.

앞만 잘 보고 걷는다면 아무리 어린애라 해도 빠지지 않을 그런 우물이었으므로 구해준 사람은 기가 막혔습니다.

"아니, 다 큰 어른이 어쩌다가 이런 곳에 빠졌소? "

"나는 천문학자요. 별을 연구하느라 하늘만 보고 걷다가 그만‥‥‥‥

천문학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구해 준 사람은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밤길을 걸으면서 하늘만 보고 걷는 사람이 어디 있소?"

 

 

어미 게와 새끼 게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어미 게가 새끼 게를 데리고 개펄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얘야, 날씨가 참 좋구나. 오늘은 이 엄마와 걸음 연습을 하자."

어미 게는 새끼 게에게 걷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자, 나를 따라서 이렇게 이렇게 걸어 보렴."

새끼 게는 어미 게가 하는 대로 조금씩 옆으로 걸었습니다.

그것을 보자 어미 게가 말했습니다.

"자, 엄마를 잘 보렴, 이렇게 걷는 거야. 그렇게 옆으로 걷는 게 아니라구."

어미 게는 자기도 옆으로 걷는다는 것을 모르고 새끼 게를 나무랐습니다.

"얘야, 왜 자꾸만 옆으로 걷니? 그럼 못쓴다니까! 자, 엄마처럼 이렇게 이렇게 걸어

보렴."

어미 게는 몹시 안타깝다는 듯 새끼 게에게 다시 걸어 보라고 말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옆으로만 걷던 새끼 게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엄맛! 전 엄마의 걸음을 보고 그대로 흉내내었을 뿐이예요."

 

 

그렇게도 몹시 원하십니까

 

한 젊은이가 어느 날 소크라테스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저는 지혜와 학식을 얻으려 1,500마일을 왔습니다. 저는 학식을 원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오시오."

그는 젊은이를 해변가로 데려갔습니다. 그들은 물이 허리에 찰 때까지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를 잡더니 그의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는 버둥거렸으나 소크라테스는 그대로 붙들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젊은이가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을 때 비로소 소크라테스는 그를 해변가로 데려다 눕히고는 시장의 광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젊은이는 정신을 차린 뒤 소크라테스에게 돌아와 이와 같은 행동의 이유를 알고자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물속에 있을 때,당신이 가장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소? "

"저는 공기를 제일 원했습니다. "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공기를 원했던 만큼 지식과 예지를 몹시 원한다면, 그것을 당신에게 가르쳐 달라고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겠지요."

 

 

독서의 집념

 

세조 때 부사 김수은은 남에게서 서적을 빌려오면 한 장씩 뜯어서 소매 속에 넣고 다니면서 외우다가 막힌 곳이 있으면 꺼내보고, 보지 않고서도 외울 만하면 아무데나 버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김수은이 영상(領相 . 영의정의 딴 이름)인 신숙주의 접에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신숙주에게는 진귀한 고서가 한 권 있었는데 그가 애지중지하는 책이었습니다. 김수은이 그 책을 보고 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신숙주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빌려주었는데, 김수은은 몇 달이 되어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신숙주가 수은의 집을 방문했는데, 수은의 방 벽에는 자기가 빌려준 책으로 벽이 발라져 있었으며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게 되어 있었습니다. 신숙주는 깜짝 놀라 물으니 김수은은 태평하게 대당하였습니다.

"누워서 읽자니 이게 더 편할 것 같아서 그랬소이다. "

 

 

성실과 유식

 

어떤 무식한 미국의 영감이 음식점을 개업하였습니다. 그는 무식하기 때문에 오로지 성실과 정직으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업은 날로 번창하였고 지점을 여러곳에 세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영감에게는 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영감은 "나는 배우지 못한 무식꾼임에도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허나 이제는 더 이상 번창할 수 없으니 아들을 공부시켜 사업을 계승하게 해야지!"

드디어 아들은 대망의 대학을 나와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며칠 동안 방에 틀어박혀 계산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그동안 제가 사업의 실태를 파악하고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사업은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경제학을 전공한 자식이 어련할까 하는 마음에서

"그래?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정리하고 내실을 기해야만 합니다. "라고 아들이 말하였습니다. 영감은 이 말에 감탄하면서도 주눅이 들어

"뭐가 안 된다는 것일까? 지금까지 잘했는데‥‥‥‥라고 의심하면서,

"얘, 이제는 너에게 모두 맡긴 사업이 아니냐? 네 맘대로 하려므나, 그러나 지금은 그냥 두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였습니다. 이때 아들은

"내 참, 아버지께서 무얼 안다고 그러세요." 라고 아버지를 무시하는 말투로 지껄이고는 자기의 고집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실을 기하여 사업을 번창해지기는커녕, 사업의 기반마저 흔들리다가는 마침내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유식은 아버지가 무식한 대로 성실과 열심, 그리고 신념으로 이룩한 필생의 사업을 망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이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지식이란 그 수확이 줄어들지 않는 유일한 생산 수단이다.

(J.M. 클라크/ 현대산업에서의 경상비)

 

사람들이 자기 지식과 기능을 더해 가는 단계는 또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단계이다.

(M. 러너)

 

하찮게 생각될지 모르나, 지식이라는 열쇠는 양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즉 많은 사람들에게 힘의 문을 잠글 수 있는 동시에 열 수 있다는 사실은 위대한 발견이었다.

(J. R. 르우얼/ 나의 서재에서)

 

목재는 마를 때까지, 지식은 숙달이 될 때까지 제멋대로 써서는 안 된다.

(O.W. 홈스/ 아침 식탁의 교수)

 

우리는 지식으로 살지, 시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B. 그라시안/ 세속적 지혜의 기술)

 

그의 영혼을 지식과 연결하는 자, 하늘나라로 가는 열쇠를 훔친다.

(N.P. 월스/ 티베트 벤 코라트의 학자)

 

지식은 늘 확대를 원한다. 즉 불과 같다. 불은 처음에는 외적 원인에 의하여 타지만, 나중에는 혼자 연소한다.

(S. 존슨)

 

지식에는 한계가 없다. 다만 각인의 능력에 제한이 있을 뿐이다.

(젬호드)

 

아는 법이 모진 바람벽 뚫고 나온 중방 밑 귀뚜라미이라. <*세상 일을 모르는 것 없이 알고 있는 사람을 뜻함>

(한국 속담)

 

지식은 영혼의 행동이다.

(B. 존슨/ 탐구)

 

당신이 행해서 얻은 지식 이외에는, 당신이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는 적절하게 말할 수 없다.

(T. 칼라일)

 

지식은 사랑의 어버이요, 지혜는 사랑 그 자체이다.

(J.C. 해어와 A.W. 해어/ 진리의 추론)

 

지성인은 남과의 타협을 싫어하고 모든 것을 자기 눈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철저한 자유인이다. 역사상 진정한 지성인이 대개 그 시대의 이단자로 박해를 받는 까닭은 그들이 그 시대의 통속 관례와 현존 질서를 반항했기 때문이다.

(이창배/ 내 눈으로 보며 살자)

 

예전에는 사용가치였던 지식이 이제 교환 가치가 되었다. 지식의 유용성이 지식에서 일종의 "상품"을 만들고 있는데 그것은 놋은 안목을 지닌 몇몇 애호가들이 요구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요구하는 상품으로서의 지식이었다.

(P. 발레리/ 유럽 정신의 위기)

 

지식의 나무 열매는 가지가지이다. 그 열매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는 실로 굳셀 것임에 틀림없다.

(M. 코울리지/ 수집된 잎)

 

사람은 모든 지식을 사용하기 쉽도록 두뇌라는 작은 다락방에 보관해야 한다. 그 나머지는 도서관이라는 헛간에 처넣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필요하면 꺼낼 수 있다.

(A.C. 도일 경/ 셜록 호움즈의 모험)

 

지식을 연장으로 사용할 일이지, 지식을 떠받들어 올려 숭배하는 식으로 배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손우성/ 지식과 효율)

 

천사는 신과 같은 힘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다 법을 깨뜨려 떨어지고, 인간은 신과 같은 지식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다 법을 깨뜨려 떨어졌다.

(F. 베이컨/ 학문의 진보)

 

사회 기구에 있어서의 지식인의 위치는 최후 단계에 있는 생산인이다.

(손우성/ 현대 지식인의 과제)

 

무지는 신의 저주를 받을 만한 것이요, 지식은 우리를 천국으로 날아가게 하는 날개이다.

(W. 셰익스피어/ 헨리 6세 2부)

 

인간의 지성은 감정이란 불을 사용하여 그 욕망의 목표달성을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들 을 녹일 수 있도록 인내와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고 바삐 움직여야 한다.

(R. 타고르)

 

사고와 지식은 항상 함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식은 죽은 것으로 불모인 채 사멸한다.

(A. 훔볼트/ 어느 여자 친구의 편지)

 

천박하고 틀린 지식은 신으로부터 멀리 있고, 심원하고 진실한 지식은 신에게 가깝다.

(L. 파스퇴르)

 

펜을 가지고 쓴 것은 도끼로 망쳐지지 않는다.

(러시아 속담)

 

지식은 반드시 언제나 결점을 씻어 주는 물일 수는 없다.

(러시아 속담)

 

조직적인 지식의 도움이 없으면 타고난 재능은 무력하다. 직관은 많은 것을 하지만, 모든 것을 하지는 않는다. 천재가 과학과 결혼해서 비로소 최고의 성과를 낳을 수 있다.

(E. 스펜서/ 교육론)

 

모든 것을 조금씩 다 안다는 것은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다.

(C. 디킨즈/ 보즈의 스케치)

 

정의를 떠난 지식은 지식이라기보다는 교활이라고 일컫는 편이 낫다.

(플라톤)

 

지식은, 대상과 지성의 일치이다.

(아베르뢰스/ 부정의 부정)

 

진정한 지식은 겸손하며 세심하다. 뻔뻔하고 주제넘은 것은 무식한 것이다.

(J. 글랜빌/ 과학적 회의)

 

모르는 것이 복이 되는 경우에는, 아는 것은 어리석다.

 

(T. 그레이/ 이튼 대학을 위한 송시)

 

지식은 창조자의 지혜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지식 없는 집중은 빛 없는 불과 같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지식은 기억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사상의 노력에 의해서 획득되었을 때에만 지식일 수 있다.

(L.N. 톨스토이/ 독서의 수레바퀴)

 

지식은 자유의 원천으로서, 지식처럼 인간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없다.

(I.S. 투르게네프)

 

지식은 정신의 음식물이다.

(소크라테스)

 

지식인?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부인하지 말 것. 지식인-이중 인격자. 이건 내 마음에 든다. 나는 두 인물을 겸하는 것을 흡족히 생각한다. "만약 이 것이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면?" 실제적인 질문이다.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지성을 경멸한다. " 함은 실제로는 "나는 나의 회의를 참을 수가 없다. " 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편을 택한다.

(A. 카뮈/ 비망록)

 

자각에의 첫 단계는 자기 부인이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과정을 밟지 않고서는,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

(J.C. 해어와 A.W. 해어/ 진리의 추론)

 

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다.

(레싱/현자의 나탄)

 

지식에 대한 욕구는, 재물에 대한 갈망과 마찬가지로, 이를 획득하면 할수록 증대한다.

(L. 스턴/ 트리스트램 샌디)

 

지식에의 투자가 이윤이 가장 높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참된 지식에 덧붙인 것은 그 하나하나가 인간의 능력에 보탬이 된다.

(H. 맨/ 교육강좌)

 

적게 아는 사람들은,보통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아는 사람들은 말을 적게 한다.

(J. 루소/ 에밀)

 

지식은 고생함으로써 시작되고, 인생은 죽음으로써 완성된다.

(E.B. 브라우닝/ 시인의 통찰력)

 

불이 빛의 비롯인 것과 같이, 늘 사랑이 지식의 비롯이다.

(T. 칼라일/ 괴테의 죽음)

 

지식은 한 걸음씩 발전하지 도약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머콜리/ 수필과 자전)

 

모든 본질적인 지식은, 존재와 관련이 있거나 혹은 존재와 본질적인 관련이 있는 지식만을 말한다.

(S. 키르케고르/ 종결적, 비학문적 후서)

 

모든 지식은 의혹에서 시작되며 신앙에서 끝난다.

(M. E. 에센 바흐)

 

우리의 지식이 증가할수록, 우리의 무지가 더욱더 밝혀진다.

(J. F. 케네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

(공자/ 논어)

 

경제학자들이 정의하는 "자본"속에 "지식"이 포함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러나 오늘날이 있어서는 지식만이 참된 자본인 것이다.

(P.F. 드러커/ 변모하는 산업사회)

 

지식이 지식이기 위해서는 진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P.F. 드러커/ 창조하는 경영자)

 

가장 많이는 모르나, 최선을 아는 것이 지력의 최상이다.

(워드/ 모어 전)

 

인간의 지식은 물과 같아서, 어떤 것을 위로부터 내려오며, 또 어떤 것은 아래로부터 솟아난다. 전자는 자연의 빛에 의해서 불어 넣어지며, 후자는 신의 계시에 의해서 고취된다.

(베이컨/ 학문의 진보)

 

지식은 부의 영구한 샘(泉)이다.

(사디)

 

정확한 지식만이 참다운 지식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 것과 같다.

(S.W.베이커)

 

완전하지 않은 지식은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다.

(S. 존슨)

 

모든 것을 아는 것이 사람을 관대하게 만든다.

(스탈 부인/ 코린)

 

미지의 영역(지식 · 학문 따위의)은 동쪽이나 서쪽, 북쪽이나 남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실과 직면하는 모든 곳에 있다.

(H.D. 도로우/ 콩코드와 메리맥 강에서의 1주일)

 

우리 지식이란 기껏 무엇인가? 내일의 날씨가 어떨지도 모르지 않는가.

(B. 아우에르바하/ 고결에 관하여)

 

청년기에는 사람아 알고 있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배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충분히 아는 것이다.

(H.B. 애덤즈/ 헨리 애덤즈의 교육)

 

지식은 신앙을 좇지 않으면 안 된다. 지식은 신앙을 빠져 나오거나 더욱이 그것을 찢거나해서는 안 된다.

(A. 콩트)

 

지식은 그만큼 많이 배웠다는 자랑이요, 지혜는 더 이상 모른다는 겸양이다.

(W. 쿠퍼/ 과업)

 

인간이 자기의 존재를 우주적인 존재 중에서 파악하는 경우, 궁극의 지식은 신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궁극적인 지식은 이미 보통 사색을 통해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든 체험으로 말미암은 것을 의미한다.

(A. 슈바이처)

 

지식은 산 사이를 뜸고 나가는 길과 같은 것이지 그 산마루를 넘어서 지나가는 길은 아니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지식은 동정이요, 자비요, 친절이며, 무지만이 지옥의 제조자이다.

(워트슨/ 잉글랜드를 아일랜드로)

 

지식이 과분하면 사람은 늙지만 돈이 과분하면 사람은 젊어진다.

(유대 속담)

 

존재양식에 있어서 최적의 지식은 "더 깊이 아는 것"이다. 그러나 소요양식에 있어서는 "더 많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지식은 도그마의 성질을 띠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알고 싶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돈을 하(下), 힘을 중(中), 지식을 상(上)으로 삼을 것.

(플라톤)

 

아름다움은 신이 준 것이지만, 지식은 시장에서 구입된다.

(A.H. 클러프/ 토버 나 부올리치의 보티 섬)

 

우리의 발전이란 야채의 새싹처럼 펼쳐져 나가는 것이다. 최초엔 육감이었던 것이 의견으로 변하고 지식으로 굳혀진다.

(R.W. 에머슨/ 수필집)

 

내가 오늘 얻는 지식의 가치는 내가 오늘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기술에 정비례한다. 내 일 내가 좀더 알게 되면 그 지식을 상기하여 좀더 슬기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크 반 도렌/ 자유교육)

 

지식인은 무지한 자를 지배할 권리, 즉 우자를 가르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에머슨/ 대표적 인물)

 

앎은 빌어오는 것이어서 앵무새나 마찬가지로, 인간은 지식을 쑤셔 넣어 기억을 가득 채우고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 노릇을 한다.

(B.S. 라즈니시/마음으로 가는 길)

 

우리의 머리 속에 들어온 지식들은 거의 전부가 우리가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우리 중심으로 해석하고 적당히 얼버무려 버린 기만의 지식인 것이다.

(이창배/ 내 눈으로 보며 살자)

 

세상이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은 지식인들 몸에 밴 악덕이다.

(E. 카네티/ 말의 양심)

 

지식으로 살아가는 인생은 상해와 범죄를 저지르는 인생이 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

(S. 스미드/ 지식의 즐거움)

 

양심이 없는 지식은 인간의 혼을 멸망케 한다.

(F. 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지식은 바오밥나무다. 누구도 양팔을 벌려 그것을 잴 수는 없다.

(수단 속담)

 

식자의 추측은 무식한 자의 확신보다 훨씬 확실하다.

(아라비아 속담)

 

남을 깎고 저미는 지식을 갖기보다는 차라리 무식한 편이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유주현/ 무등산 가는 길)

 

인간의 지성은 바른 인식을 위한 것이면서도 자기 오만의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성은 그 발전의 궁극에서 꺾이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지닙니다.

(지명관/ 비극)

 

되글을 가지고 말글로 써 먹는다. <*글을 조금 배워 가지고 가장 효과적으로 써 먹는다는 뜻>

(한국 속담)

 

새로운 지식만큼 매혹적인 것은 없다.

(P.M. 레이덤/ 작품선집)

 

진정한 지식은 다만 경험이 있을 뿐이다.

(J.W. 괴테)

 

도대체 사람은 거의 모르는 경우에만 알고 있다. 지식과 더불어 의심은 늘어갈 뿐이다.

(J.W. 괴테)

 

지성은 적어도 동물원의 공작새 같은 완상물(琓賞物)은 아니다. 만인이 소유해야만 되는 것이며, 개개인의 생활을 비쳐주는 등촉이다. 지성은 생산적민 것도 아니며 행동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어떤 생산과 방향을 알려 주는 힘이다.

(이어령/ 제5계절의 인간들)

 

사람은 모두 선천적으로 지식을 갈망한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나의 지식은 나의 아가미에 걸려 있는 낚시 바늘같이 발작적인 욕정 속에 나를 잡아당기는구나

(D.H. 로렌스/ 날개 돋친 뱀)

 

지성이여. 믿을 수밖에 없었던 레이더./ 정말은 처음부터 날름거리는 본능의 혀의 충실한 앞잽이.

(성찬경/ 화형둔주곡)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아들/ 주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이/ 지식의 초석임을 깨닫는 아들/ 그런 아들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맥아더/ 아버지의 기도)

 

그것은 우리 모두의 죄이다. / 우리 모두 무엇인가 허기져서/ 허탈해진 상태./ 지식이 오히려/ 쑥이 된 상태.

(박성룡/ 현상곡예)

 

독선적 지식인이란, 소시지를 보고 피카소를 연상하는 인간이다.

(A.P. 허버트 경/ 독선적 지식인)

 

본질적으로 나타난 그의 지성은 산골짜기의 청수와도 같아서 차고 다소 거칠지만, 생기고 그지없이 밝았습니다.

(R.M. 드가르/ 아프리카의 비화)

 

지식은 바로 거기에 있고, 단편, 파편 같은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있고, 이따금 번적 빛나기도 하고 안 나기도 하고 휙 돌아서기도 하고 폭풍에 윙크를 보내기도 하고, 나를 속여먹으려고 공모를 하고 있지.

(S. 베케트/ 부정의 장)

 

다만 믿음만이 있을 뿐 알 수는 없나이다/ 지식이란 눈에 보이는 것에 속할 따름이오나/그 지식 또한 당신에 게로부터 온 것이니,/ 어둠의 섬광, 빛을 길러 주소서.//좀더 지식이 자라나게 하여 주소서/ 그보다 존경의 생각을 마음속에 더 품게 하소서./ 그리하여 마음과 존경이 조화되어서,/ 예나 다름없이 하나의 음악이 되게 하소서.

(테니슨/ 인 메모리임)

 

하느님은 당신의 가슴4,-에 지식과 아름다움으로 타오르는 불꽃을 심어주셨다. 그 불꽃을 꺼뜨려 재로 만드는 것이 죄악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주는 나의 조력자시니/ 내가 두려움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조용히 시험장에/ 들게 하시며/ 나의 머리를 총명하게 만드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지식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픽톤 부인/ 한 학생의 시험에 대한 묵상)

 

육체의 운동은 강제되었을 때도 육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지만, 강제에 의하여 얻어진 지식은 정신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

(플라톤/ 국가론)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타고르/ 동방의 등불)

 

 

설 교 노 트

 

지식과 지혜

잠9:9-12

 

서론

지금 이 세상에는 엄청난 지식이 쌓여가고 있으나 지혜는 점점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지식은 놀라움게도 하나님을 인류들에게서 점점 멀리 메어놓고 있습니다.

 

1. 교육열과 쌓여지는 지식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듭니다.

세계에 관한 지식이 세계의 창조주를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세계의 문제 해결에 세계의 주인을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근본 원인입니다.

오늘날 공부하는 목적은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삶의 수탈, 생각과 판단의 기준 제공, 도덕적이며 사회적인 책임, 삶의 올바른 철학습득 중에서 주로 삶의 수단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도덕적이며 사회적인 책임과 삶의 올바른 철학 습득은 거의 무관심합니다. 지식이 환멸을 가져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기독인 자녀들에게 가르칠 기본적 지식이 있습니다. 첫째가 유일신, 둘째가 구속주로서의 예수, 셋째가 인간의 죄성, 넷째가 진리 판단과 행동 원칙으로서의 성경입니다.

이 기본적 지식을 국민학교 때에 꼭 깨닫게 가르쳐야 합니다.

 

2. 배우는 자들의 세 가지 문제점들

(1) 지능과 성격과의 분리입니다.

과학적 사고와 도덕적 행동의 분리입니다. 아무리 지능이 높더라도 도덕적 성격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지식이 악을 만드는데 이용될 소지가 많습니다. 핵을 마음 비뚤어진 천재에게 맡겨보십시오. 그 결과는 인류의 파괴입니다.

(2) 삶의 중심을 돈과 명예와 쾌락에 두는 것입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 예컨대 사랑, 우정, 기사도 정신, 희생, 신뢰 등등은 무시하고 실험으로 증명되고 당장 눈으로 보이는 재미에 마음을 뺏기니 삶의 중심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3) 개인적 신앙 차원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외적 문제는 개인들의 내적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한 개인이 깊은 속의 신앙이 있을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세상사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습니다. 거꾸로 하나님 신앙이없을 때 세계사를 크게 그르치고 있습니다.

 

3. 기독인 자녀들에게 지혜를 심어야 합니다.

요즈음 학교는 온통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입시 위주 교육은 어린이들을 비인격화시키고있습니다. 그리고 명예 추구, 물질 추구의 사회분위기는 어린 마음들에게서 고상한 생의 이상을 빼앗고 있습니다. 지식은 늘어가나 지혜는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가정과 교회는 기독교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어줘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가치들을 알려줘야 합니다. 인간이 칭찬하는 결과가 아니고, 하나님이 칭찬해 주는 삶의 결실을 맺도록 개인신앙 체험을 깊게 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혜를 얻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참교육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는데 있습니다. 지식은 지혜의 지도를 받을 때 올바로 쓰여집니다.

 

 

너는 알라

욥11:6

 

서론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는 격으로 누구나 자기가 잘 아는 듯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는 듯 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에 소발은 용을 공격하며 "너는알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알라고 하는 것입니까?

 

1. 욥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헬라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선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대로 욥기 1장 1절에 "그 사람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으로 떠난 자라"고 하였으니 그만한 사람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욥이 수난당하고 있는 이유를 바로 알지 못하여 자신의 무죄성만 주장하고 하나님의 처사에 항의하듯이 질문하는 그의 태도를 친구들이 볼 때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인 소발이"너는 알라"고 경책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모르면 무조건 자기가 다 아는 것과 같이 나서서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그 자신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공의를 알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무지 때문에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을 모릅니다. 욥이 그렇게 신앙이 좋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수난이 너무 뜻밖에 심각하고 또 그럴만한 이유가 없다고 보니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고 하나님의 하신 처사에 무슨 잘못이 있지 않느냐? 고 반박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욥은 인간이 잘못은 있을 수 있어도 하나님께는 절대로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에 그의 전지성을 안다면 어찌 감히 하나님께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그의 공의로운 처사를 똑바로 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의를 우리 편에 서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벌이 경함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고 하셨으니 죄에 합당한 공정한 벌을 내려도 범죄자로서는 할 말이 없는데 범한 죄보다 벌하심이 경하다고 하였으니 이것도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심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시벌(施罰)의 정도를 미처 알지 못하고 오히려 과중한 것처럼 여기고 있으니 그 진상을 바로 알라고 충고하였습니다. 과중시하면 원망이 생기고 경한 것을 알면 감사가 생길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자는 그 앞에잠잠하여 겸손할 것이요, 오직 순종으로 그를 기뻐할 따름입니다.

지 옥

성 경 활 용

1. 지옥에 대한 증거는 누가 하였는가?

(1) 예수님께서 증거하셨다.

(마5:22)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 사도들이 증거하셨다.

(약3:6)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3) 구약에서 증거하고 있다.

(잠15:24) 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 되느니라

(시30:3)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2. 지옥과 하나님과의 관계

(1) 예수께서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계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2) 하나님께서 지옥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삼상2:6) 여호와는 죽이 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3) 지옥을 드러내신다.

(욥26:6)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3. 지옥에 대한 표현

(1) 불못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 만족이 없는 곳

(잠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3) 음부

(민16:33)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4) 성 밖

(계22:15) 개들과 술객들과 행 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5) 죽음

(시141: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음부 문에 흩어졌도다

(6) 지옥

(마10:28)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4. 지옥에서 할 수 없는 일

(1) 주께 사례할 수 없다.

(사38:18)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의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2) 감사할 수 없다.

(시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3) 인간이 구원할 수 없다.

(시89:48)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음부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4) 돌아올 수 없다.

(창2: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 라

(5) 다시 올라올 수 없다.

(욥7:9)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 같이 음부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

 

5. 누가 지옥에 가는가?

(1) 우상 숭배자를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

(계19:20)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서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 회개하지 않는 자

(마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3) 악인

(시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4)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5)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계21:8)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6) 음녀를 따르는 자

(잠7:27)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7) 악독한 자

(시55:15)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여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8)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

(잠2:17-18)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을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관련원어풀이

1. gevenna 게엔나

힌놈의 골짜기, 지옥, 지하 세계에서의 형벌 장소.

(마5:22, 10:28)

 

2. tartarovw 타르타로오

가두어 넣다.

(벧후2:4)

설교예화자료

사탄의 교회

 

회는 제단 위에 나체의 여인을 놓고 미사를 올리는 사람들을 묘사한 "사탄들"이라는 영화를 관심있는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교회의 교인들은 증오와 절망을 나타냈고 그 교회의 지도자인 앤들 라 베이(An-ton La Vey) 씨는

"당신들의 절망적인 생각이 기쁨으로 되소서! 사탄 만세!"라고 신도들을 향해 외치면서 축원하였습니다.

하체가 없는 사람이 관 뚜껑을 채찍질하니 뚜껑이 열리면서 나체 소녀가 나왔고 대신 그사람이 들어가자 뚜껑이 덮어집니다. 요즈음 그곳에는 신도들이 조금씩 모여 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 교회의 회원 가입은 사람의 두개골로 바닥이 장식되고 촛불이 밝혀진 곳에서 흑색천을 두른 7명의 사람에게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현재 이 교회에는 7천 명의 회원이 있는데 흉악한 우두머리 목사 라 베이는 그의 종교는 방종과 이기주의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지옥을 표현할 방법은 없다

 

지옥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것도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고 살아있는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지옥에 대해 실제로는 알지 못합니다. 심한 정신병자조차 그 공포를 맛보지 못했으며 망상에 빠져있는 어떤 사람도 그렇게 무서운 곳은 생각할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이 열병에 걸려 극심한 악몽을 꾸더라도 가장 온화한 지옥만큼이나 겁이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피가 튀고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어떤 살인 장면도 지옥의 경계선조차 건드릴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의 격변밖에는 주지 못합니다. 가장 재질있는 작가가 그의 재주를 다해서 포효하는 동굴과 꺼지지 않는 불꽃을 묘사한다고 하여도 그는 지옥의 제일 가장자리조차도 환상에서나마도 건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지옥은 원래 사탄과 그의 사자들을 위해있는 것이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한 죄인이 천국에서 즐거움을 갖는다는 데에는 약간의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그는 구원되고 구제된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천국에서 즐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무저갱

 

많은 사람들이 "무저갱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해 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뉴스위크」 잡지에서 은하수 저편에 무저갱이 있다고 크게 보도된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으로 하늘을 조사한 결과, 은하수 한 가운데서 검은 구멍을 발견했는데, 태양보다 수십 배나 큰 별도 그 근처에만 가면 '휙'하고 흔적도 없이 빨려들어가 사라져버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끝없는 구렁텅이인 무저갱을 이제야 발견하고서 야단법석을 떨고 있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마귀와 그 사자들을 잡아넣기 위한 무저갱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나와 네가 가장 격렬하게 대립적으로 맞선 각축과 투쟁의 마당,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이기영/ 마사반약바라밀)

 

결론 없는 인생은 지옥이다.

(최인훈/ 가면고)

 

지옥에는 문이 셋 있다. 육욕, 분노, 탐욕.

(바가바드기타)

 

사람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곳이야말로 모두 지옥일 것이다. 만일 네가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너는 지옥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인으로서 인생은 영원한 지옥이 되어 버렸다. 낙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써,

(H.V. 밀러/ 암살자의 시)

 

지옥은 단 혼자인 것, 그 안에 있는 기타의 인물들은 다만 그림자일 뿐, 도망쳐 빠져 나을곳도 없지. 우리는 언제나 혼자일 뿐.

(T.S. 엘리엇/ 칵테일 파티)

 

지옥에 이르는 가장 안전한 길은 점차적인 길-즉, 도표도 없고, 이정표도 없고, 갑작스런 모퉁이도 없는, 발 밑이 부드러운 완만한 경사의 길이다.

(C.S. 루이스/ 螺狀文學)

 

불의의 일시적 쾌락과 뼈가 녹는 지옥의 고통, 후회와 원망과 질투와 허욕과, 거기서오는 실망과 불안, 이러한 감정으로 지글지글하는 생활이 지옥생활이 아니면 무엇이랴. 아무리 앞을 내다보아도 희망의 빛은 하나도 없었다.

(이광수/ 그 여자의 일생)

 

지옥과 법원은 언제나 열려 있다.

(T. 풀러/ 금언집)

 

지옥이란 소리 없는 구덩이에 불과하며, 한가닥의 위로의 빛도 스며들지 않는 곳이다.

(R. 헤리크/ 지옥)

 

부덕한 자는 자기 자신의 지옥이다.

(영국 속담)

 

사탄이 부러워서 한숨지으며 하는 말이 기독교인들은 지옥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단 말이다.

(A. 클레임보그/ 부러워하는 사탄)

 

지옥은, "그 밖에 달리 할 방도가 없었다"던 사람들의 심장에서 깎아 낸 커다란 화강암 석재로 포장되어 있다. .

(H. 브라운)

 

지옥이란 사람이 어리석을 때입니다. 지옥이란 사람이 노예일 때입니다. 지옥이란 자유가 없고 정의가 지켜지지 않을 때입니다. 사람이 평등하지 못할 때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그리고 악마란 우리에게서 정의를‥‥‥평등을‥‥‥민권을 빼앗아 가는 사람입니다. 악마는 우리에게서 인간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아 가는 사람입니다. 악마가 어떠한 사람인지 더 설명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말콤 엑스)

 

지옥이란, 하나님의 분노-즉,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이다.

(P.J. 베일리/ 축제)

 

지옥은 위대한 학자들의 두개골로 포장되어 있다.

(G. 퍼민/ 진실한 기독교인)

 

지옥으로 통하는 길은 걷기가 쉽다.

(아브데라의 비온)

 

지옥은 명예, 의무, 정의 그 밖에 무서운 덕의 고향인 것이다. 지상의 나쁜 일은 모두 이러한 이름 아래 범해진다.

(G. B. 쇼/ 인간과 초인)

 

지옥은 호기심이 강한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A.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지옥은 배은 망덕배로 가득 차 있다.

(T. 풀러/ 금언집)

 

지옥이란, 부인! 그것은 벌써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G. 베르나노스/ 시골 사제의 일기)

 

자기는 지옥에 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지옥을 들먹인다.

(H. L. 윌슨)

 

지옥은 죽은 뒤보다 생존 중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스페인 속담)

 

지옥이 없다면 많은 선량한 설교자는 허구를 바탕으로 돈을 손에 넣는다.

(산디)

 

책망하라! 너희를 지켜 주는 성경이 있으니/ 열정과 눈물로써 잃은 자를 구하기 위해 찬짖으라./또한 죄와 지옥의 편에 섬을 부끄러워하라./ 어떤 대가에도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고자 꾸짖으라.

(존 R. 라이스/ 너의 십자가를 지라)

 

지옥은 이미 해이해진 지가 아주 오래이다. 칼나무(불교의 칼나무 지옥에는 칼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한다)는 번쩍이던 빛을 잃었고, 끓어오르던 기름의 가장자리 쪽은 이미 끓어오르지 않게 되었고,큰불이 모인 곳에는 어떤 때엔 다만 푸른 연기만이 피어오르고 있고, 먼 곳에는 아직도 만다라꽃이 싹 터 자라고 있지마는 꽃은 매우 가늘고 작아서 가련할 정도로 희멀겋다. -그건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땅 위는 일찍이 크게 연소되어 자연히 그의 비옥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노신/ 잃어버린 훌륭한 지옥)

 

하늘과 땅이 벌꿀 빛이 되었을 때가 바로 마귀가 하나님과 싸워 이겨서 모든 것을 주재하는 큰 권위를 장악하고 있는 시기다. 그는 천국을 받아들이고 인간 세계를 받아들이고 또 지옥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는 친히 지옥에 군림하여 중앙에 앉아 온몸에서 빛을 발함으로써 모든 귀신의 무리들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노신/ 잃어버린 훌륭한 지옥)

 

재사(才士)는 그 방 자함으로/ 죽음의 쓴 맛을 보네/ 지옥의 사형집행인은/ 어떤 말도 듣지 않으니/ 무슨 헛된 예술이 대답할 수 있으랴/ 나는 병들고, 죽어야 하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토마스 내쉬/ 역병이 창귈하는 때에, 1593)

 

전통이란 까마득한 오랜 시간에 자개 물린/ 가지가지 다채로운 예지의 무늬들도,/ 타는 혀로 물든 여기 지옥의 계절에선/ 눈물의 아침 이슬 하나만 같지 못할 때,/ 무기보다 강한/ 하나의 미소에서 신의 의지를 구하고

(김현승/ 갈구라)

 

우주를 통치하는 주 예수여 지키소서/ 지옥의 지배에서 우리 보호하소서/ 지옥에 떨어질 우리를 건져내 소사/ 사람들아 더 이상 비웃지 말고/ 우리 죄사함을 하나님께 빌어다오.

(비용/ 묘비명)

 

한걸음 한걸음 날로 지옥을 내려가는 우리/ 악취 풍기는 어둠을 해쳐 두려움도 없이

(C. P. 보들레르)

 

나는 슬픔의 도시에의 입구다. / 나는 영원한고뇌에의 입구다. / 나는 멸망의 백성에의 입구다. / 너희들 여기 들어오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리라.

(A. 단테/ 신곡-지옥편)

 

저주받은 자들을 모두 징벌하여/ 거센 지옥불에 던지신 뒤에/ 축복으로서 나를 불러 주소서.

(첼라노/ 심판의 날)

 

영겁의 불덩이는 형벌을 갑절 더하고자/ 줄장 내려오고 그로 해 모래가 타오르는데/ 흡사 부싯돌 아래의 화심(火心)이나 다름없더라.

(단테/ 신곡-지옥편)

 

밖에서 열어 주어야만 나갈 수가 있다/ 누가 죽어 넘어져도 소용없다// 온갖 것은 해 주기만 바라야 하는 곳/ 하나에서 열까지 정말 하나에서 열까지/ 후유-/ 여기가 지옥이로구나.

(노천명/ 지옥)

 

나는 보았다 끝없는 고통과 슬픔이 있는 지옥의 열린 나락을:/ 그걸 느낀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그것-/오, 나는 절망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허먼 멜빌/ 모비 딕)

 

죽음의 다른 왕국으로 똑바른 눈으로/ 건너갔던 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한다 만일 기억이나 한다면-지옥에 떨어진/ 격렬한 영혼들로서가 아니라, 다만/ 텅빈 인간들/ 박제 인간들로서.

(엘리어트/ 텅 빈 인간)

 

 

설 교 노 트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함

계9:5-6

 

서론

본문에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함과 같더라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 나팔 재앙은 세상의 빛을 어둡게 만드는 마귀 사자의 운동의 출현입니다. 그때에 택함 받지 못한 외식하는 신자들이 많이 배교할 것이며 죽기를 구하여도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는 최극악의 형벌과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1. 최악의 고통이 죽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극악스러운 고통을 죽음이라고 하면서 '죽을 지경이다' 혹은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 '죽는 것만도 못하다'는 말들을 잘 사용합니다.

과연 인간에게 있어서 최악의 고통은 죽음입니다. 죽음 이상의 고통은 있을 수 없습니다.죽으면 고통도 잊어버리기 때문에 극도의 고통자는 죽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사실 죽음이 고통을 끝내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곳이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2. 죽음도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한다는 이 재앙은 바로 지옥 형벌의 모형입니다. 지옥형벌은 죽음보다도 무서운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조용히 끝나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옥에 빠진 영들은 벌레도 죽지 않는 불구덩이에서 고통을 영원토록 당합니다. 지옥 형벌은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 끝에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것인데 곧 이단과 배교의 결과로 받는 불가형언의 영적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따르는 자들로 하여금 그 마귀의 손에서 재앙을 받게 하십니다. 그런고로 마귀를 위하는 자는 마귀로 말미암아 복을 받지 못하고 화를 받는다는 교훈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사단이 사람을 해치는 경우도 하나님의 제재 아래 있는 것을 뜻합니다(욥2:6). 이는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고 괴롭게 하기 위한 환난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괴로운 일이 죽음이라고 하는데 그 죽음조차도 귀하여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피하여 달아난다면 그 얼마나 괴로움이 극심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요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고 간증하였습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계2l:8

 

서론

지옥이란 우리 사람들이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은 지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고,무서운 곳으로 여겨서 지옥에 안가려면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옥이라는 말은 성경에 여러 번 나타나 있습니다(마5:22, 29, 30, 눅12:5, 막9:47,약3:6). 그곳은 특히 불로써 멸망받을 죄인들을 괴롭게 하는 곳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1. 꺼지지 않는 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하였고, 요한계시록 20장 10절에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계시록 20장 14절에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이 곧 불못이라"고 하였고, 20장 10절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고 하였습니다.

노아 때는 홍수로 심판하고 말세는 불로 심판하실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불이기 때문에 불의 특색인 뜨거움이 계속되고 극도의 고통이 있으리니 결국 지옥이란 말할 수 없는 고생이 연속되는 곳입니다.

 

2. 캄캄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8장 12절에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2장 13절에도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5장 30절에도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몫으라 거기서 슬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였으니 한결같이 바깥 어두운 곳이라고 한 것은 흑암의 혼돈된 세계입니다.

지옥에 불이 붙는다고 하지만 불의 특색인 광명이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캄캄한 어두움이 있어서 불안과 공포가 더욱 심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을 믿기 때문에 결코 지옥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다가 배반하여 다른 신을 따른다면 그들의 결국도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3. 벌레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지옥에 갈 자를 설명하여 말하기를 마가복음 9장 43절에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간다"고 하였고, 45절과 47절에는 "지옥에 던지운다"라고 한 후 결론적으로 48-49절에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 함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벌레도 죽지 않는다는 뜻은 연약한 곤충이 생존하기에 가능한 안전한 곳이라는 뜻이 아니고, 가장 미약한 곤충도 죽지 않고 계속 괴로움을 당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불로써 소금치듯 하는 일이 그 얼마나 무서운 괴로움을 주는 곳입니까?

 

결론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첫째 사망을 당하고 최후 심판 끝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지우는 것이 둘쩨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도 역시 지옥행입니다.

지 혜

성 경 활 용

1. 지혜의 근원은 어디인가?

(1) 하나님이다.

(욥12:13)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2) 예수이다.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3) 성령이다.

(고전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4) 주의 계명이다.

(시119:98)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5) 하나님의 율법이다.

(신4:6)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2. 하늘의 지혜는 무엇인가?

(1) 주를 경외하는 것이다.

(욥28:28) 사람에게 이르시기를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2) 은혜를 베푸는 일이다.

(잠13:15)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궤사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3) 성결한 것이다.

(약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4)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1:24)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3. 지혜의 특징은 무엇인가?

(1) 의인의 길을 지킨다.

(잠2:20)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2) 생명이 길어진다.

(잠9:11)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

(3) 재물을 얻는다.

(겔28: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4) 깨닫게 된다.

(단12:10)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5) 바른 길로 인도한다.

(잠23:19)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6) 보호하고 지켜준다.

(잠4:6)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7) 생명을 보존한다.

(전7:12)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8) 성읍을 건진다.

(전9:15)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4. 세상 지혜의 성격

(1)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2) 번뇌가 많다.

(전1:18)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3)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다.

(고전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4) 패망케 한다.

(전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5) 사사로운 것이다.

(잘23:4) 부자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6)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한다.

(전8:1)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5. 지혜가 왜 필요한가?

(1) 성공하기에 유익하므로

(전10:10)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 오직 지혜는 성공하기에 유익하니라

(2) 이웃을 멸시하지 않으려고

(잠11:12) 지혜없는 자는 그 이웃을 멸시하나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3) 은혜를 나누려고

(전10:12)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4)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

(잠19:8)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6. 지혜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므로

(사5: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 찐저

(2) 방탕한 것을 따르므로

(잠12:11)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3) 뇌물로 인해서

(신16:19)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4) 무식하므로

(욥34: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 말이 지혜없다 하리라

(5) 미혹을 받으므로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

 

7. 지혜로운 자는 어떤 생활을 하는가?

(1) 지식을 간직함

(잠10:14)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2) 은혜로움

(전10:12)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3) 마음을 초상집에 둠

(전7:4) 지혜자의 마음을 초상집에 있으되

(4) 능력이 있게 함

(전7: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5) 교훈을 더함

(잠9:9)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6) 영광을 기업으로 받음

(잠3: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7) 지식을 구함

(잠18: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yBi 빈-

(1) 분별하다, 인식하다.

(욥9:11, 느13:7)

(2) 이해하다, 깨닫다.

(삼상3:8, 사6:9)

(3) 깨달아 알다, 이해하다.

(욥18:2, 호4:14)

(4) 지혜롭다, 한명하다.

(창41:33, 잠10:13)

(5) 이해하다.

(왕상3:ll, 시32:9)

(6) 알게 하다, 가르치다.

(욥6:24, 느8:8)

 

2. ['De 데-아

사람이 아는 것, 지식, 견해.

(욥32:6)

 

3. swfronevw 소-프로네오-

(1) 제 정신을 가지다.

(고후5:13)

(2) 침착하게 자신을 생각하다.

(롬21:3)

(3) 자신의 정열을 억제하다, 냉정하게 외다.

(딛2:6, 벧전4:7)

설교예화자료

소년의 슬기

 

후한의 진식은 현지사로서 신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흉년이 든 어느해 밤 책을 읽을때, 대들보 밑에 웅크리고 있는 어떤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때 진식은 도둑같이 생각되어 아이와 손자를 불러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불선(不善)한 자도 원래부터 악인인 것이 아니라, 버릇이 어느새 성품이 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 양상의 군자도 그런 것이란다. "

이때 도둑은 스스로 용서를 빌며 제발 벌을 내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주 두 필을 주어 보냈습니다. 여기서 양상(梁上) 군자란 도둑을 의미합니다.

옛날 중국의 어느 비단 가게에 도둑이 들어온 집안 사람들을 꽁꽁 묶은 다음, 빈방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이가 가장 어린 일곱 살 되는 점원 아이를 시켜 창고 열쇠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이 소년은 비록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용기와 슬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는 굽신거리며 열쇠꾸러미를 가져와서

"아저씨 이 창고에는 금과 비단이 가득있어요."

하고 창고문을 활짝 열어 주었습니다. 도둑들이 창고 속의 비단에 눈이 휘둥그래져 쏜살같이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이때를 놓칠세라 소년은 급히 창고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궈버렸습니다. 도둑들은 소리지르며 법썩을 떨었습니다.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나이 어린 소년의 재치는 도둑들을 모두 잡은 것이었습니다.

 

 

아기 양과 피리

 

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대 짓궂은 아기 양 한 마리가 양치기가 물을 마시러 간 틈을 타 양들의 무리 속에서 살짝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양치기의 피리를 발견한 아기 양은 그것을 입에 물고 돌아다녔습니다.

"야, 신난다. 역시 자유란 좋은 거야!"

아기 양은 친구들로부터 점점 멀리 떨어졌습니다.

언덕을 하나 넘고 잠시 쉬고 있는데, 숲속에서 갑자기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꼼짝없이 늑대에게 잡아먹히게 되어 울상이 된 아기 양의 머리에 문득 좋은 뫼가 떠올랐습니다.

아기 양은 늑대 앞에 무릎을 꿇고,

"늑대님, 저를 잡아먹으실 거지요? 죽기 전에 소원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

하며 울먹였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그래, 네 소원이란게 뭐냐? "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피리 소리나 한 번 들어보고 싶어요."

"그야 뭐 어렵지 않지."

아기 양의 피리를 건네 받은 늑대는 피리를 크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피리 소리는 언덕을 넘어 양치기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양치기는 없어진 자기의 피리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도둑이 나타난 줄 알고 사냥개를 데리고 피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양치기와 사냥개가 컹컹 짖으며 달려오자 피리를 불던 늑대는 그만 기겁을 하고 숲속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현명한 어부

 

조그만 배를 타고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어부는 바다 한가운데 에 이르자 그물을 활짝 펴서 던졌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그물을 잡아당겼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고기가 안 잡히는 걸까? "

몇 번을 허탕을 치자 이번에는 배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물을 던졌습니다.

이번에는 그물이 왜 묵직했습니다.

"옳지 이제야 고기가 잡히기 시작하는구나."

어부는 힘껏 그물을 잡아 올렸습니다.

그물이 배 위로 올라오자 햇빛에 반짝이는 고기 비늘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물에 걸려 잡힌 고기는 모두가 작은 멸치였습니다. 멸치들은 다 끌어올리자 한 마리의 멸치가 어부를 보고 말했습니다. "우리를 잡아 무엇에 쓰겠습니까? 그러니 일단 우리를 놓아 주셨다가 나중에 크게 자라면 그때 다시 잡으세요. 그게 당신에게도 이익일테니까요."

그러자 어부가 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너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너희들을 놓아 주었다가 이 크고 넓은 바다에서 어떻게 다시 잡아들일 수 있겠니? 비록 작은 것이지만 난 내 손에 있는 것을 버릴 생각은 없다. "

어부는 그물에 걸린 멸치를 모조리 잡아 거두었습니다.

 

 

어떤 유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던 한 현명한 유태인이 아들을 예루살렘의 학교에 보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이에 부친은 병이 들어, 도저히 아들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유서를 썼습니다. 그는 전재산을 한 사람의 노예에게 물려주기로 할 것, 다만 그 중에서 아들이 바라는 것 하나만을 아들에게 주도록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부친은 마침내 죽고 노예는 자기의 행운을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날 듯이 뛰어가서 아들에게 부친이 죽었다는 것을 알리고 유서를 보였습니다.

아들은 매우 놀라며 슬퍼 했습니다. 초상이 끝나자 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곰곰히생각했습니다. 그는 랍비의 집으로 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어째서 아버지는 내게 재산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나는 아버지를 화나게 하는 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요."라고 불평을 토했습니다. 랍비는,

"천만에, 당신의 아버님은 매우 현명하고, 또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셨소. 이 유서를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지 않소!"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노예에게 전재산을 주고 아들에게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다니, 애정의 흔적도 없고 어리석은 짓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라고 밉살스럽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랍비는,

"당신도 아버님과 똑같이 현명하게 자기의 머리를 써야 해요. 아버님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당신에게 훌륭한 유산을 남긴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자, 당신이라면, 이 유서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가, 랍비는 아들에게 향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부친은 먼저 자기가 죽었을 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노예가 재산을 갖고 도망치거나 재산을 써 버리거나, 자기가 죽은 일조차 아들에게 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전재산을 노예에게 주었습니다. " 재산을 전부 주면 노예는 기뻐서 서둘러 아들을 만나러 갈 것이며, 재산을 소중하게 간수해 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젊은이는 역시 지혜가 모자라는구나? 너의 아버님은 하나만 너에게 주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너는 노예를 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젊은이는 그제서야 겨우 깨닫고는 랍비가 말하는 대로 행하고는 뒤에 노예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입버릇처럼 (나이 많은 사람의 지혜에는 따르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박쥐와 족제비

 

어느 어두운 밤 동굴 안을 서성이던 박쥐가 족제비에게 붙잡혔습니다.

"살려주세요. 족제비님."

그러나 평소에도 워낙 새들을 싫어한 족제비는 박쥐의 애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흥, 어림없는 소리 하지도 마. 난 너따위 새들은 보기도 싫어!"

족제비는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기세였습니다.

그러자 박쥐는 다급하게,

"아니예요 족제비님. 저는 쥐란 말예요.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긴 해도 사실 전 쥐란 말예요."

하며 자신의 몸을 보이며 한 바퀴 빙 돌았습니다.

그러자 박쥐의 쥐처럼 생긴 모습을 확인한 족제비는 박쥐를 놓아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깊은 밤 땅에서 장난을 치며 놀던 박쥐가 이번에는 또 다른 족제비에게 붙잡혔습니다. "아니, 이거 꼭 쥐처럼 생겼잖아? 에이, 나는 이 세상에서 쥐가 제일 싫어."

족제비는 박쥐를 물어뜯으려고 하였습니다.

"족제비님, 저는 쥐가 아니어요. 그러니 살려주세요."

박쥐가 애원을 했습니다.

"뭐라고? 거짓말까지 하는구나."

족제비는 더욱 흥분하여 화를 버럭 내었습니다.

"족제비님, 제 날개를 보세요. 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란 말예요. 날을 수 있는 쥐도 있나요? "

박쥐는 날개를 펴면서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렇군!"

족제비는 박쥐를 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박쥐를 놓아주었습니다.

 

 

세 가지 현명한 행동

 

예루살렘의 한 주민이 여행 도중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은 살아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여관 주인을 불러,

"나는 이제 죽게 되는데 내가 죽은 것을 알고 예루살렘에서 누군가가 찾아오면 내 소유물을 물려주기 바랍니다. 그러나 단 세 가지 착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내 소유물을 결코 물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여행길에 나서기 전, 내 아들에게 만약 내가 여행중에 죽게 되어 내 유산물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착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사나이는 죽고, 유태의 장례식에 알맞게 매장되었습니다. 동시에 동네 사람들에게도 이 남자의 죽음이 알려졌고, 예루살렘에 전갈이 보내어졌습니다. 아들이 예루살렘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부친이 죽은 도시의 성문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그는 부친이 죽은 여관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아버지가 자기가 죽은 여관을 아들에게 가르쳐 주지 말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아들은 자신이 그 집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때마침 땔나무 장수가 땔나무를 많이 지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를 불러 세워 예루살렘에서 온 나그네가 죽은 여관에 그 땔나무를 갖고 가도록 이르고 땔나무 장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여관집 주인은,

"나는 땔나무를 사려고 한 일이 없다. "고 말했습니다. 땔나무 장수는,

"아니 지금 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이 땔나무를 사서 이 집에 갖다주라고 말했습니다. "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착한 행동이었습니다. 여관집 주인은 기뻐하며 그를 맞아들여 저녁 식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식탁에서는 다섯 마리의 비둘기와 한 마리의 닭이 요리로써 나왔습니다. 그 이외에 집주인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과 두 딸의 일곱 명이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집주인이 "청컨대 음식을 모두에게 좀 나눠주십시오."라고 말하자 그는

"아닙니다. 당신이 주인이므로 당신이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러나 주인은,

"당신이 손님이니 당신이 좋으시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음식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한 마리의 비둘기는 두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또 한 마리의 비둘기를 두 딸에게 주고, 또 한 마리의 비둘기를 두 부부에게 주고서 그는 두 마리의 비둘기를 자신을 위해 남겼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두 번째 착한 행동이었습니다. 집주인은 이 것을 보고 퍽 곤란해 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아들은 닭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머리를 주인 부부에게 주었습니다. 두 아들에게는 다리를 주었습니다. 두 딸에게는 날개를 주고 나머지 몸통은 자신이 먹었습니다. 이것은 세 번째 영리한 행동이었습니다.

집주인은 마침내 화를 내기 시작하여,

"당신네 나라에서는 이렇게 합니까? 당

신이 비둘기를 나누어 줄 때 나는 아직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닭을 나누는 것을 보고 있으니 이제 잠자코 있을 수가 없소! 도대체 이것이 무슨 짓이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젊은 사나이는,

"나는 음식은 나누는 일을 맡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간청하시므로 나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신과 부인과 비둘기로 셋, 두 아들과 비둘기로 셋, 딸 둘과 비둘기로 셋, 거기에 두 마리의 비둘기와 나와 셋이 됩니다. 이것은 매우 공평합니다. 또 당신은 첫째의 가장이므로 닭의 머리를 드렸습니다. 당신의 아들 둘은 이 집의 기둥이므로 두 개의 다리를 주었습니다. 딸들에게 날개를 준 것은, 이제라도 날개가 자라서 다른 집에 시집을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배를 타고 여기에 와서 다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몸통 부분을 얻었던 것입니다. 빨리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조조의 지혜

 

옛날 조조가 승상을 할 때, 그의 집 앞뜰에 열매를 잘 맺는 비파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조조는 이 나무를 너무도 좋아해서 누구도 비파를 따지 못하게 단속을 하곤 하였습니다.

한 번은 부하 한 사람이 조조가 없는 틈에 비파 두 개를 따먹었습니다. 나중에 조조가 돌아와 비파나무를 살펴보더니, 의심스런 부하 몇 명을 불러 일을 시키는 체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일부러

"잊은 것이 있군, 이 비파나무가 방해가 되니까 이 나무를 베어 버려라."고 조조가 말하였습니다. 이때 이를 훔쳐먹은 부하가

"그렇게 맛있는 비파를 베요?"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결국 조조는 비파를 홈쳐먹은 도둑을 잡았습니다.

 

말하기에 달렸다

 

한 장사꾼이 도시에 왔습니다. 며칠 후에 바겐세일이 있는 것을 알고는 그는 물건 사는 것을 며칠 미루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현금을 갖고 왔으므로 그것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용한 장소에 가서 그는 지닌 돈을 모두 파 묻었습니다. 이튿날 그곳에 돌아오자 돈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는 여러모로 생각해 보았지만 자기가 파 묻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돈이 없어진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한 채의 집이 있고 그 집 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마도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그가 돈을 파 묻고 있는 것을 구멍으로 보고, 나중에 파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집에 가서 거기에 살고 있는 늙은 영감과 만났습니다.

"당신은 도시에 살고 있으므로 머리가 대단히 좋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지혜를 빌릴 일이 있습니다. 실은 나는 이 도시에 물건을 장만하려 지갑을 두 개 갖고 왔습니다. 하나는 오백 개의 은화가 들어 있고 또 하나에는 팔백 개의 은화가 들어 있습니다. 나는 작은 쪽의 지갑을 비밀히 어떤 곳에 파 묻었습니다. 이제부터 큰 쪽도 파 묻는 것이 좋은가요?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은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사나이는,

"만약 내가 당신이라면 나는 아무도 신용하지 않겠습니다. 앞의 작은 지갑을 파 묻은 장소에 큰 지갑도 파묻겠습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욕심쟁이 영감은 장사꾼이 집에서 나가자 자기가 훔쳐 온 지갑을 전에 묻었던 곳에 갖다놓았습니다. 장사들은 그것을 숨어 보고 있다가 파내어 무사히 지갑을 되찾았습니다.

 

 

어록·시·묘사

 

어리석은 짓을 삼가는 것이 지혜의 입문이다.

(호라티우스/ 서간집)

 

결코 후회하지 말며, 남을 비난하지 말라. 이것이 지혜의 첫걸음이다.

(D. 디드로/ 명상록)

 

지혜의 물로 씻으면, 마음은 정결해진다.

(文殊文經)

 

지혜를 씀이 넓지 못한 자는 공을 이를 수 없다.

(여불위/ 여씨춘추)

 

현실에 꿈과 유머를 가한 것이 지혜다.

(임어당)

 

하늘이 무엇인지를 알고, 사람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최상의 지혜에 이른 것이다. 하늘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하늘의 뜻을 따르며 살고, 사람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지혜로써 모르는 지혜를 발전시킨다.

(장자)

 

지혜는 가치 있는 일이요, 가치로운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사의 지적 행동이다.

(S. 후크)

 

지혜는 최선의 방법으로 최선의 결과를 추구함을 의미한다.

(F. 허처슨/ 미와 덕리 관한 우리 관념의 근원탐구)

 

지혜와 지식과는 다르나 지혜는 대경대체(大經大體) 즉 요령을 아는 걸 이름이고, 지식은 학술부문 즉 학술을 아는 걸 이름이라면, 지식은 인공적으로도 될 수 있으나 지혜는 인공적이기보다도 천품이었다. 이리하여 자고로 성인 웅걸은 지혜가 많았고 현인 학자에는 지식이 많았다.

(이병기/ 오공삼십)

 

지혜는 십분의 구만 사용하라. 십분의 일은 아들이나 손자에게 주라.

(중국 속담)

 

큰길 가에 버려진 쓰레기 무더기에서도 연꽃의 향기는 생겨나서 길 가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이 쓰레기처럼 눈먼 중생 가운데서 바로 깨우친 사람은 지혜에 의해서 찬란하게 빛난다.

(화엄경)

 

지혜는 우리와 암흑 사이를 막는 유일한 담벽이다.

(M. 밴 도른/ 지혜)

 

남이 나를 알아 주지 않는 것을 근심치 말고 내가 남의 재능을 알아 줄 만한 슬기 없음을 근심하라.

(논어)

 

부(富)는 그쪽에서 찾아오는 일이 있지만 지혜는 이쪽에서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된다.

(E. 영/ 야상시)

 

지혜 있는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 있는 사람은 즐거이 살고 어진 사람은 수한다.

(논어)

 

하느님께서 벌을 내리실 때는 우선 그 사람의 지혜부터 빼앗는다.

(F.M. 도스토예프스키/ 백치)

 

가난이 범죄의 어머니라면 지혜의 결여는 그 아버지이다.

(J. 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지혜는 화복의 문이다.

(회남자)

 

지혜로운 자는 귀가 길고 혀가 짧다.

(영국 속담)

 

지혜 있는 사람은 욕심을 버리어 한 가지 물건도 가지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깨끗이하여 모든 번뇌를 지혜로 돌이킨다.

(법구경)

 

큰 지혜는 관대하고, 작은 지혜는 다투기를 즐긴다.

(장자)

 

사람이 만일 자기를 사랑하거든 모름지기 삼가 자기를 보호하라. 지혜 있는 사람은 하루세 때 가운데 적어도 한 번만은 자기를 살핀다.

(법구경)

 

가장 지혜로운 자와 가장 어리석은 자는 변하지 않는다.

(논어)

 

생각이 온전하면 지혜가 생기고 생각이 흩어지면 지혜를 잃나니, 이 두 갈래 길을 밝게 알아서 지혜를 따르면 도를 이룬다.

(법구경)

 

성인은 인위적인 지혜를 넓히지 않고 천리의 지혜를 넓힌다. 천리의 지혜를 넓히면 덕이 생기고 인위적인 지혜를 넓히면 도둑이 생긴다.

(장자)

 

밝고 지혜 있는 이가 아니면 곧은 말을 오게 하지 못하고, 성덕(聖德)이 아니면 자기의 잘 못된 행동을 찾아내지 못한다. 곧은 말을 오게 하면 그 지혜가 더욱 커지고 잘못을 찾아내게 되면 그 덕이 더욱 빛난다.

(권발)

 

일찍이 들으니 인(仁)에 뜻 두고서 악한 것이 없는 것은 마음이요, 그 선한 줄을 알며는 반드시 좋아하는 것은 지혜이니,대개 마음의 처한 것이 비록 바르나 지혜의 미치는 바가 넓지 못하면 선을 악으로 여기고 좋아할 것을 미워하여 그 본심을 잃는 예가 많다.

(노수진/ 소제집)

 

청년기는 지혜를 연마하는 시기요, 노년기는 지혜를 실천하는 시기이다.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환상)

 

양식은 사회와 어울리도록, 지혜는 하느님의 뜻에 맞도록 노력한다.

(J. 주베르/ 팡세)

 

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이다.

(B. 스피노자/ 에티카)

 

남의 의중(意中)을 헤아리면서 자기의 의중을 남에게 알리지 않는 것은, 지혜가 뛰어나다는 표시이다.

(사브레 부인/ 격언집)

 

무모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특징이다.

(H.D. 도로우/ 월든 숲속의 생활)

 

큰 지혜는 앎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으며, 큰 광명은 비춤도 없고 비추지 못하는 것도 없다.

(지눌)

 

부(富)가 있어도 행복해지지 않은 것처럼 학문이 있어도 지혜는 얻지 못한다.

(슈발리에 드 부플레/ 성찰과 단편)

 

약이 만들어질 때에 독이 들어가는 것처럼, 덕이 이루어질 때는 거기 부덕이 들어간다. 지혜란 덕과 부덕과를 잘 조화하고 그것으로써 인생의 불행에 대해서 쓸모 있게 한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지혜는 형태가 필요치 않다. 지혜의 미는 불꽃의 미처럼 다양해야 한다. 지혜는 항상 자기 왕좌에 누워 있다고 해서 움직임이 없는 여신은 아니다.

(M. 마테를링크/ 지혜와 운명)

 

나는 지혜를 화폐로 주조하고 싶다. 즉 지혜를 주조해서, 외기 쉽고, 전하기 쉬운 잠언과 격언과 속담으로 하고 싶다.

(J. 주베르/ 팡세)

 

지혜는, 그 물품이 진짜이기만 하면, 결코 비싸지 않다.

(H. 그릴리)

 

지혜를 낳는 것은 백발이 아니다.

(메난드로스/ 단편집)

 

처음으로 감당 못할 일을 크게 한 입에 물었을 때 지혜의 이빨은 돋아나기 시작한다.

(허브 켄)

 

지식은 와도 지혜는 지체한다.

(A. 테니슨/ 록슬리 홀)

 

모든 인간의 지혜는 기다림과 희망이란 두 가지 말로 요약된다.

(A. 뒤마/ 몽테크리스토 백작)

 

지혜를 갖는 것은 최대의 덕이다. 지혜란, 사물의 본성에 따라서 이해하고, 진실을 말하고, 그리고는 행하는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지혜는 곤란으로부터 온다.

(아이스킬로스/ 단편)

 

지혜에 밝은 자는, 한 번 비추어 보면 마치 그 폐와 간까지 들여다보는 듯하다.

(이 이/ 율곡집)

 

내 현명해지기를 원할 때/ 하늘의 화려함을 바라지 않노라/ 내 홀로 고요히 생각에 잠길 때/ 하늘의 넓음도 쓸데없노라/ 팔랑이는 잎사귀 하나에/ 모든 지혜는 것들어 있도다/ 쓰러지기 쉬운 나의 마음은/ 유전의 운명을 거기서 보노라.

(톰슨/ 팔랑이는 잎사귀)

 

지식은 전달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될 수 없다. 사람은 지혜를 찾을 수 있고, 실천할 수 있고, 그것에 의해 강화될 수 있고, 지혜를 통해 경이를 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고 가르칠 수는 없다.

(H. 헤세/ 싯다르타)

 

눈이 침침한 지혜는 밤샘 공부에서 나오진 않는다.

(W.B. 예이츠/ 학교의 아이들 가운데)

 

나이가 아니라 역량으로 지혜는 획득된다.

(T. M. 플라우투스/ 삼문극)

 

지혜의 9할은, 알맞은 때에 현명해지는 것이다.

(T. 루즈벨트)

 

지혜는 운명의 정복자이다.

(유베날리스/ 풍자시집)

 

가장 아름다운 지혜는 지나치게 영리함이 없는 데 있다.

(안겔루스 실레지우스)

 

타인의 지혜로선 멀리까지 갈 수 없다.

(리투아니아 속담)

 

님의 눈물은 한없이 지혜로운 샘물/ 내 영혼에게 그 깊고 높은 비밀을 들려주셔요.

(배경란/ 하나님은 우시나요?)

 

혼자서 큰 밤을 건넙니다/내 지팡이는 사막에 던져두어도/ 향기로운 상록수, 거대한 지혜의 기둥나무/ 형 형한 눈빛 대낮처럼 밝혀/ 나를 붙드시네/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려고

(이향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지혜, 혹은 발언할 힘이 없는 지혜는 무익하다.

(M.T. 키케로/ 의무론)

 

지혜란, 구해야 할 것 및 피해야 할 것에 대한 지식이다.

(M.T. 키케로/ 의무론)

 

슬기는 변함없는 복이지만, 교육은 때때로 저주가 된다.

(J.A 세드/ 지혜)

 

지혜가 없는 곳엔 행복이 없다. 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지혜는 없다. 뽐내는 말은 반드시 처벌을 받으며,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은 노경에 이르러서, 현명해지는 것을 배운다.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1온스의 타고난 지혜가, 1파운드의 목사 설교의 가치가 있다.

(A. 마벌/ 가톨릭교의 성장)

 

학문은 외워서 깨칠 수 있으되, 지혜는 그럴 수 없다.

(L. 스턴/ 트리스트램 샌디)

 

현자의 혀(말)는 그의 마음 뒤에 숨는다.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금언집)

 

늘 불안하고 바람 많은 바다에서/ 종이배가 눈물로 사공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대양에 가볍게 뜨는 지혜가 있기 때문.

(강대식/ 종이배)

 

백조가 나귀보고 한다는 말이/ 슬기가 있거들랑 당신도 한번/ 멋들어지게 죽어 보시렴.

(J. 콕토/ 불쌍한 장)

 

지혜의 나무 열매는 모두 썩어지고/ 나는 지금도 굶주리고 있다.

(Y. 골/ 토지 없는 장의 신분증명서)

 

스승은 학식과 지혜의 옹호자였다. // 그는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 "학식은 책을 읽거나강의를 들음으로써/ 얻어진다. "// "그러면 지혜는요?"// "너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된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을 덧붙였다. /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날의 순간마다/ 그 책의 새 판이 나오니까!"

(앤소니 드 멜로/ 깨달음)

 

조용히!/ 위대한 것에 대하여/ 나는 위대한 것을 믿는 것이다!/ 사람은 침묵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위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 훌륭히 말하라, 나의 황홀한 지혜여!

(F.W. 니체/ 명성과 영원)

 

찬송받으실 거룩한 하나님/ 영광스러운 삼위 일체 하나님,/ 지혜와 사랑과 능력이시여/충만한 자긍심으로/ 굽이 치는 대 양의 조류처럼 끝없는 분이시여/ 온 세상에 널리,/ 빛이있게 하소서.

(J. 마리오트/ 빛을 발하게 하소서)

 

가장 드높은 지혜의/ 가장 숭고한 야심은/그대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대의 이름을 발음시키는 일이다.

(뮈세/ 신을 향한 희망)

 

너는 사십 년이나 나를 감추어 주었다// ‥‥그 서러운 잔치에/ 나는 물러서는/ 그것이 지혜임을/ 그것이 더러운 지혜였음을/ 너는 사십 년이나/ 감추어 주었다// 오늘도/ 너는 나를 감추고/ 나는 나를 속였다.

(박의상/ 너 -5 · 옷)

 

갈대가 날리는 노래다/ 별과 별에 가 닿아라/ 지혜는 가라앉아 뿌리 밑에 침묵하고,/ 언어는 이슬방울,/ 사상은 계절풍,/ 믿음은 업고(業苦)/ 사랑은 피흘림.

(박두진/ 갈대)

 

지혜로운 사람과 바보의 차이는 거미줄보다도 얇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꽃잎을 먹고 자란/ 사슴은 아니어도/ 태양을 한아름씩 안고/ 순연한 바람의 몸짓으로/자라는 나무의 슬기를 익혀보라.

(박근영/ 5월의 기도)

 

주는 나의 생명/ 하늘을 바라보는 눈을 주시고/눈에 지혜를 주십시오/그것이 이 해의 소망이고저/ 원하고 있을 뿐/ 이루어지게 하시고/ 이루게 하소서/ 주여!

(황금찬/ 영혼은 잠들지 않고)

 

가장 연약함이 가장 강할 수도 있다는/ 대 자연의 섭리를 배우게 하시고/지혜의 힘으로 하여/ 저 아이들의 가슴에/ 대망의 깃발이 흔들리게 하십시오.

(김용길/ 아이들을 위한 기도)

 

지혜 있는 자의 눈망울로/ 아침마다 새로 피는/ 꽃이 있어/ 태양은 새롭게 떠오른다.

(이탄/꽃은, 깊은 밤 홀로)

 

바다는 커다란 힘/ 부딪히는 거품이 찬연하다가/ 되돌아 역류하면 깊은 고요/ 아, 엄숙한 리듬// 바다는 끝없는 사색/ 지평선 멀리 변하는 흰구름의 모양/ 순간마다 율동하는 지혜 같기도/ 파도를 온몸에 안을 수 있다면

(박태진/ 파도 소리를 들으려)

 

지금 주 앞에 있나이다/ 저는 작고 연약합니다/ 주님의 힘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로 하여금 아름다움 속을/ 거닐게 하시고 내 눈이 언제나/ 붉은 자주빛 낙조를 보게 하소서./ 내손이 주님께서 만드신 사물을/ 귀히 여기게 하시고, 귀를 예민케 하사/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저를 자유롭게 하사/ 주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다 알게 하시고, 나뭇잎과 바위속에/ 주님이 감추어 두신 교훈을 깨닫게 하소서

(톰 W. 클라우드/ 힘을 바라는 기도)

 

돌 밭을 솟구치는 지혜의 샘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들꽃이여// 몰아치는 바람에 수 없이 쓰러졌다/ 한 번 더 일어선 그늘 아래서

(함혜련/ 아침 · 13)

 

이어 소살(簫殺)스러운 풍경이어/ 지혜의 눈물을 내가 얻을 때!/ 이제금 알기는 알았건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한갓 아름다운 눈얼림의 / 그림자뿐인 줄을.

(김소월/ 희망)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책을 덮게 한/ 최후의 지혜여/ 인간은 고독하다!

(김현승/ 인간은 고독하다)

 

 

설 교 노 트

 

지혜롭게 처신하라

창32:1-12

 

서론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따라 그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부모 형제가 있는 곳으로 힘차게 가고 있는데,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천사의 무리들) 나타나 그의 가는 길을 보호하여 주는 데도 야곱은 자기 형이 사백 인의 사람을 대동하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형을 두려워하고

인간이 취할 태도를 모두 갖춤으로써 그는 형과 별 충돌없이 상봉하게 되었습니다.

 

1. 야곱은 형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결코 믿음이 없는 불신앙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신앙적인 면에서는 경쟁하여 이겼지만 도덕적인 면에서는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의 이름을 빙자하여 (이를 도용) 축복을 가로챘으니 형에게 잘못한 것은 두말할 필요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형 에서를 주라고 부를 정도로 겸손함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효자요, 형제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형의 은혜를 입어야 산다는 것을 알고 취한 태도인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2.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내가 근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의 마음속에는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야곱토 사람이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도 도와주시고 현재도 도와주시며 앞으로도 도와주실 것을 믿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바가 있어서 말하기를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니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10절). 야곱은 자기의 수단과 방법이 최고가 아님을 알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3. 지혜롭게 처신했습니다.

본문 6-9절에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한편으로는 자신도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만 하면 광신자가 되기 쉽고 기도하지 아니하고 자기 노력으로만 하려고 하면 불신자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말하기를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지혜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

야곱은 에서를 만나서 하는 말이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

님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창33:8-13). 이 얼마나 지혜롭게 그리고 신앙적으로 처신한 일입니까? 우리들도 믿음 안에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할 것입니다.

 

 

구속 사역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엡3:10

 

서론

하나님은 구속 사역에 감추어 두었던 자신의 지혜의 비밀을 성도들이 깨닫도록 권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통하여 훌륭한 계획과 영광된 목적을 달성하십니다. 실로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합니다.

 

1. 구속의 과정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1) 구세주를 보내신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가 적합한 분이라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절대적으로 구세주는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하며, 또한 죄인들을대속할 수 있는 죄 없는 거룩한 분이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사역에 나타난 지혜

우선 구세주로서 그리스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들의 대표자, 보증인 그리고 죄인들의 대속자로서의 위치입니다. 죄인들의 대속자가 되심은 모든 죄가 그리스도에게 전가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의 다음 단계는 구세주의 성육신에 관한 결단에서 나타납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무거운 죄짐을 맡아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히 순종하여 죄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삶의 환경적인 면과 사명에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을 입어야 했고 비천해야만 했습니다. 끝없는 시련 중에도 하나님의 법에 완전히 순종해야 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싸워서 승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5) 그리스도의 죽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그리스도가 살아 있는 신이면서도 인생의 밑바닥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낮아져야 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무한한 권세와 영광을 지닌 분이 가장 비천한 인간이 되어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가장 비참한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2. 구속 사역의 완성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

(1) 불의한 죄인을 의롭고 죄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죄 있는 자를 깨끗하게 하시고 불의한 자를 의롭게 하시려고 구속 사역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이러한 은총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받은 모욕을 존귀케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천대를 받음으로 성도가 입은 은혜들이 겉으로 보기에 소망없고 낙망된 것 같으나 여기에 하나님의 감추어진 놀라운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으로 자신을 꾸미지 아니하셨고 오히려 그 영광을 버리셨습니다(빌2:6-8).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수치를 당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귀하게 되는 지혜를 사용하셨습니다.

(3) 하나님은 죄와 고통을 은총의 기회로 삼으십니다.

이전에 성도들이 죄와 고통 가운데 신음하다가 이제는 거기서 벗어나 변화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들이 귀한 하나님의 은총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 그 외에 구속 사역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

(1) 육에 속한 사람들은 무지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놀라운 계획과 목표를 이 세상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인간들을 구속함에 있어 변함없는 당신의 지혜를 세상에 알리시려고 이 땅에 복음을 두루 퍼지게 하셨습니다.

(2) 복음의 진리

복음에는 성도들을 명백히 구별짓는 속성이 있으며, 또한 복음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하심을 분명히 증거합니다. 그분의 지혜는 인간의 것처럼 사사롭지 않고 영광으로 충만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3)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거역하는 것은 중대한 죄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구속 사역을 멸시하거나 거역한다면 진실로 중대한 죄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악은 구속 사역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하나님의 방법을 인간의 것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방패와 보호자가 되어 주시며 굳건한 반석과 높은 망대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지혜로운 처신

잠22:22-23:26

 

서론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솔로몬을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잠언은 지혜의 왕 솔로몬이 기록한 것입니다.

본문은 지혜로운 자가 피해야 할 일과 받아들여야 할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지혜로운 자가 피해 야 할 것(22:22-23:11)

(1) 인간을 억압하는 일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일은 그를 지으신 창조주를 멸시하는 악한 행동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들입니다. 그러한 인간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보수하십니다.

(2) 노와 울분을 품는 것과 그런 자와 사귀는 일

분노는 뼈를 썩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울분은 잔인한 행동을 유발시킵니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분을 품지 않으며 분을 품는 사람은 아무래도 실수를 저지르기 쉽습니다. 또 그러한 사람은 적을 만들게 됩니다. 또한 그런 분노와 울분의 사람은 친구에게도 깊은 상처를 주기가 쉽습니다. 무엇보다도 분노와 격정은 타오르는 불과 같아서 쉽사리 전염이 됩니다.

(3) 보증을 서는 일

이 말은 친구나 이웃간의 의리를 포기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이 말은 자기 자신의 재산과 가정을 지키는 태도를 견지할 것을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줏대 없고 마음이 약해서 감당 못할 일을 책임지고 그 책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자가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가 하면 남의 재산의 귀한 것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합 니다.

(4) 탐욕부리는 일

지혜로운 자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자기의 위치를 잘 알고 처신합니다. 탐욕은 자기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심입니다. 잠언서 기자는 먹는 것도 탐욕을 부리지 말고(23:1-3), 부자가 되기 위해서 재물에도 탐욕을 부리지 말고(23:4-5), 더욱이 아무 데나덤벙대고 끼어들지 말고(23:6-8), 타인의 소유를 부러워하지 말라(23:10)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2. 지혜로운 자가 받아들일 것(23:12-26)

(1) 부모의 도리(12-16절)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상급이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도리를 잘 감당하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언서 기자는 부모의 도리를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① 자녀를 잘 훈계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훈계는 적절한 것이어야 합니다(13절).

② 자식을 징계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채찍이 필요합니다. "매를 아껴서 자식을 망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잘못을 교정해 줄 정도로 영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

(2) 하나님께 대한 경외(17-18절)

지혜로운 자는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않으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를 배울 것입니다. 17절의 잠언 기자의 표현을 살펴봅시다.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였는데, 여기 "항상"이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는 "날마다"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변함없이"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힘쓴다는 뜻입니다.

 

결론

지혜로운 자가 받아들일 처신을 살펴봅시다.

술취하는 자를 사귀지 말고(20-21절), 부모에게 순종하고 경외하며(22절), 진리를 소중하게 간직할 줄 알고(23절), 도덕적인 순결을 지키도록 음녀를 피할 것(27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분명히 자기를 지킬 줄 아는 사람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요, 자기 자신의 마음입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도(正道)를 걷는 것을 의미합니다(26절).

 

 

때를 아는 지혜

눅22:31-38

 

서론

에베소서 5장 15절에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으며, 때가 악하므로 세월을 아끼며 지혜있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면서 사는 우리들의 삶일진대 진정 때를 아는 지혜가 강하게 임하여서 말씀대로 지혜롭게 예비하면서 살다가 주님 언제 오실지라도 자신있게 성공자로서 주님을 맞이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봉독한 누가복음 22장 35-36절에 보면 "저희 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은 자는 겉옷으로 팔아 살지어다"라고 말씀하신 제자들과의 일문 일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찌하여 어느 때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그냥 가라고 하시고 어느 때는 또 전부 준비하라는 것입니까? 이것이 오늘 말씀 증거의 요지가 되겠습니다.

"때가 되었다는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신앙생활도 옛날 방식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때를 알고 준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1. 마귀 사단의 역사가 강한 때인고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1절에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단이 밀 까부르듯이 까불려고 청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들에게 적이 있는데 성도의 적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사단마귀가 성도의 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마귀 적에게 지면 영생을 얻지 뭇하고 지옥가는 것이요, 이기면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니 우리는 원수 마귀가 아무리 밀 까불듯 할지라도 꼭 이겨야만 살게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에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보면 "근심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2. 믿음이 떨어지기 좋은 때이므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는 믿음이 좋은 사람도 믿음이 떨어지기 좋은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여! 우리는 세상 것 다 잃고 빼앗겨도 믿음만은 빼앗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배앗기면 우리는 거지되고 죽는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잃어버리면 건강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도에게는 믿음이 떨어지면 평안도 잃어버립니다.

여러분이여! 세상 것은 설사 잃어버려도 살지만 우리는 믿음을 잃어버리면 죽는 줄을 알아 모일 때마다 열도 높은 사모열을 가지고 간구하므로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믿음을 굳게 잡고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예수 부인하기 쉬운 예인고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장담하기를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주를 따르며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다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베드로야 네가 오늘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이여! 이제는 세상이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도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상습적으로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먼저 성령의 권능을 받아 어디를 가나 정정 당당하게 예수 믿는 냄새를 풍기며 복음의 나팔을 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주님께서는 왜 이제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1) 마귀 역사가 강한 때인고로 준비하라

(2) 믿음이 떨어지기 좋은 때인고로 준비하라

(3) 예수 부인하기 좋은 때인고로 준비하라고말씀하셨습니다.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3:18

 

서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복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그 얻는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라고하였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지혜가 복된 이유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우리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가치 판단으로 볼 때, 은이나 정금이나 진주처럼 귀중한 보배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물질계에서는 최고 보배가 바로 이것들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만사 해결인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지혜는 금이나 은이나 보석보다 더 귀하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을 귀히 여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얻도록 노력하여 참된 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2, 지혜의 복의 내용

"그 우편 손에는 장수(長壽)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라고 하였은즉, 인간세상에서 부귀 · 장수 이상의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수"는 현세에서 보다 생명이 길 것을 말해 주면서 역시 영원한 생명을 생각케 합니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내세의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하면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마16:26). "부귀"란 말은,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부귀는 내세의 축복을 말합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소유하는 부귀를 주셨던 것이나(창1:28-31) 그것을 누리지 못함은 진정으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3. 즐거움과 평강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매사에 실패가 없고 성공할 수 있으니 즐거움이요, 남에게도 유익을 배푸는 덕스러운 일이니 기쁨입니다. 곧, 나와 너의 유익과 혜택은 즐거움이 넘칩니다. 따라서 평강이 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신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이 아니하며(요14:27),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하실지어다(살후3:16)" 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 지혜를 가리켜 "생명나무"라고 하였습니다. 생명나무는 영생의 근원을 비유합니다(창3:22-24).

 

결론

천하를 얻었어도 지혜를 얻지 못하였다면 그것이 오히려 내게 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지혜를 얻은 자는 복되다고 하였으니 우리 성도들은 참 지혜를 구하여 얻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직 분

성 경 활 용

1. 직분의 종류는 어떤 것이 있나?

(1) 제사장의 직무가 있다.

(민3:7) 그들이 회막 앞에서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2) 사도의 직무가 있다.

(행1:17)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3) 제사장 밑에서 일하는 직무가 있다.

(대하23:18)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의 직원을 세워 제사장 레위 사람의 수하에 맡기니

(4) 전도의 직무가 있다.

(딤후4:5)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2. 그리스도가 주신 직분에는 무엇이 있나?

(1) 성령의 직분이 있다.

(고후3:8)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후3:17-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2) 순전한 복음을 전하는 직분이 있다.

(고후2:17)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3)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는 직분이 있다.

(고후2: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4) 영광의 직분이 있다.

(고후3:10-11)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있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3. 직분을 받은 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1) 주에서 맡긴 줄 알아야 한다.

(딤전1:12)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2) 주 안에서 받은 것을 이루어야 한다.

(골4:17)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이루라고 하라

(3) 영광스럽게 여겨야 한다.

(고후3:7-9)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롬11:13)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4. 직분을 잘 감당한 자의 결과는 어떠한가?

(1)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게 된다.

(히8:6)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2) 아름다운 지위와 담력을 얻게 된다.

(딤전3:13)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tr,m,v]mi 미쉬 메레트

(1) 보관, 감사, 보호.

(왕하11:5-6)

(2) 보호되는 곳, 감시자.

(사21:8, 느7:3)

(3) 지킴, 간직.

(출12:6,, 16:32)

(4) 준수, 직능이나 기능의 수행.

(민3:31, 4:27)

 

2. hd:bo[} 아보-다-

(1) 수고, 일, 노동.

(출1:14, 레25:39)

(2) 일, 직무, 사업.

(민4:47,사28:21)

(3) 농촌의 일, 농업.

(대상27:26, 느10:38)

(4) 도구, 용구.

(민3:26, 31:36)

 

3. hD;quP] 페쿠다-

(1) 소집, 점호, 열거.

(대상23:ll)

(2) 돌봄, 감독.

(욥10:12)

(3) 관리, 보호.

(왕하11:18, 대하23:18)

(4) 직분, 위탁, 감시.

(민4:16, 시109:8)

 

4. ejpiskophv 에피스코페

(1) 찾아옴, 방문.

(눅19:44, 벧전2:12)

(2) 천벌, 재앙.

(벧전2:12)

(3) 직분, 책임, 지위.

(행1:20, 딤전3:1)

 

5. oijkonomiva 오이코노미아

(1) 청지기의 직분, 관리.

(눅16:2-3)

(2) 정연한 계획, 설계.

(엡1:10)

설교예화자료

공로자

 

어떤 임금님이 병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희귀한 병으로 "암사자의 젖을 먹으면 좋다. "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하여 암사자의 젖을 구해올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어떤 머리 좋은 사나이가 사자가 살고있는 동굴 가까이에 가서 새끼 사자를 한 마리씩 사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10일 째에는 암사자와 그는 퍽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약으로 쓸 젖을 짜낼 수가 있었습니다.

궁전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그는 자기 몸의 여러 부분이 서로 싸움을 하는 백일몽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몸 안에서 어디가 가장 중요한가를 서로 언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리는 만약 다리가 없었더라면 사자가 있는 곳에 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눈은 보이지 않았더라면 이 장소에 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장은 또한 자기가 있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여기까지 올 힘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돌연히 혀가 주장했습니다.

"말할 수 없었더라면, 너희들은 아무 소용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 몸의 각 부분은 일제히

"뼈도 없고, 전혀 값어치도 없는 조그만 몸의 일부분인 주제에 건방진 말을 하지 말라!"고 하여 혀를 침묵시켰습니다.

그런데 궁중에 사나이가 도착했을 때, 혀는, "누가 제일 중요한가 알려주고야 말 테야." 하고 말했습니다. 임금님이 사나이에게,

"이 젖은 무슨 젖인가?"라고 묻자 사나이는 갑자기,

"개의 젖입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앞서 일제히 책망하던 몸의 모든 부분은 혀가 얼마나강력한 것인가를 알게 되어 모두 사과했습니다. 혀는 그것을 듣고,

"아닙니다. 제가 말을 잘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암사자의 젖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부분일수록 자제심을 잃어버린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당나귀와 강아지

 

어떤 농부가 당나귀와 강아지를 길렀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언제나 강아지만을 귀여워하여 당나귀는 속이 상했습니다.

주인이 외출했다 돌아오면 강아지가 재빨리 달려가 꼬리를 치며 반기면 주인은 강아지를쓰다듬어 주며 맛있는 먹이를 주었습니다.

하루는 강아지가 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재롱을 떠는 것을 보며 당나귀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도 강아지처럼 저렇게 꼬리를 흔들며 머리를 비벼봐야지. 그럼 나에게도 맛있는 먹이를 주며 쓰다듬어 주겠지?"

흐뭇해진 당나귀는 며칠 후 주인이 외출하고 돌아오자 강아지보다 먼저 나가 꼬리를 흔들며 주인의 팔에 얼굴을 비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주인이 뒷걸음질을 치며 외쳤습니다.

"아니, 이 당나귀가 미쳤나!"

그때 당나귀가 꼬리를 너무 세게 흔들어 주인의 뺨을 아프게 때리고 말았습니다.

"이 괘씸한 녀석!"

화가 잔뜩 난 주인은 당나귀를 마구 차면서 마굿간에 가두고 음식도 주지 않았습니다.

 

 

지도자

 

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뱀의 꼬리는 항상 머리 뒤에 달라붙어 따라다니게 마련이었습니다. 어느 날, 마침내 꼬리가 불만을 폭발시키며 머리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어째서 나는 언제나 당신 뒤에 맹목적으로 달라붙어 다니며, 당신 쪽이 언제나 내 대신의견을 말하고 가는 방향을 정하는가? 이것은 정말 불공평하다. 나는 뱀의 일부인데도 언제나 노예처럼 달라붙어 따라다니 기만 하니 말도 되지 않는다. " 머리가 대꾸했습니다.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너에게는 앞을 볼 눈도 없고, 위험을 알아차릴 귀도 없으며,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지 않은가. 나는 절대 내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야! 너를 진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나 너를 인도하고 있는 것이야!" 꼬리는 큰 소리로 비웃으며,

"그런 말은 이제 싫증이 났다. 어떤 독재자나 어떤 압정자라도, 모두 따르는 자를 위하여 하고 있다는 말을 구실로 제마음대로 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머리는,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네가 내 역할을 해봐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꼬리는 좋아하며, 이번에는 그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내 도랑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머리가 여러모로 고생한 끝에, 간신히 도랑에서 빠져 나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윽고 조금 나아가서 꼬리는 가시투성이인 관목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꼬리는 애를 쓰면 애를 쓸수록 가시덤불 속에 더욱 더 끼어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간신히 머리의 도움을 받고 상처를 입으면서 가시덤불 속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꼬리가 다시 앞장 서서 나아가서 이번에는 불이 타고 있는 불길 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점점 몸이 뜨거워지고, 별안간 주위가 캄캄해지자 뱀은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절박해진 머리가 필사적으로 구해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몸은 불타고 머리도 함께 죽어 버렸습니다. 이 머리는 결국 맹목적인 꼬리에 의해서 죽은 것입니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는 언제나 머리를 선택하여야 하며 이 꼬리와 같은 자는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작은 일에 충성을

 

W.B. 릴리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거리를 거닐던 어떤 사나이의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나이는 자라드라는 유명한 사업가의 사무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일자리가 있느냐고 묻자, 지라드 거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저 밖에다 벽돌을 쌓아 놓은 것이 보이죠? 저것들을 옮겨서 정원 반대쪽에 쌓아 올리십시오."

저녁 때쯤, 그는 일이 끝났다고 보고하였고 일삯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뭔가 일거리가 있겠냐고 묻자, 지라드 씨는,

"내일 와서 벽돌들을 처음 있었던 곳으로 옮겨 놓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일찌감치 와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벽돌을 날랐습니다. 일 주일도 넘게 지라드의 지시를 따라 믿을 만하다는 것이 확실한 때까지 벽돌을 옮기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 후에 그는 시내에 가서 대량의 설탕에 입찰하라는 새롭고도 큰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전혀 낯선 사람의 입찰 실력에 놀랐습니다. 가격이 낙찰되자, 경매인은 누가 대금을 지불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지라드 씨요." 하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의 대리인입니다. "

그는 하찮은 일에 충성을 함으로써 그 직분을 얻었던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직무를 논하지 말라.

(논어)

 

너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라. 그리고 휴식은 하늘에 남겨 두라.

(P. 코르네유)

 

직무라는 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힘을 어떻게 하든 발휘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또 직무는 그 인간이 당면하고 있는 업무에 모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성과를 올릴 수 있도록 상당한 폭이 있도록 해야 한다.

(P.F. 드러커/ 경영자의 조건)

 

우리는 애국자, 군인, 신사의 용어로써 매우 포괄적인 말인 명예롭고 의의 있고 중대한 우리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R.E. 라스페/ 문하우젠 남작의 여행)

 

직무가 모든 기능을 요구할 때 유혹의 얼굴을 물리치는 것은 사람들이 배우기에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교훈이다.

(G.F. 아서턴/ 정복자)

 

어떠한 개인적인 생각이 공적 직무 수행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U.S. 그랜트)

 

모교회를 떠난 장로들은 길 잃은 양도 아닌데, 유리방황해야 합니까./ 설 곳이 없어서, 일할 자리가 없어서 입니까./ 직분을 맡아 양무리의 가난한 돈을 긁어 쥐고 부도를 내고 달아난/ 장로님, 집사님들 어쩌자는 겁니까.

(고진숙/ 주님의 우심)

 

믿음의 분수를/ 지켜 행하라/ 명철한 사람이 될 것이요/ 지체의 직분이 서로 다르나/ 주안에 한 몸이 될 것일세

(고진숙/ 성도의 생활)

 

주 예수/ 주신 직분/ 참 귀한 것이라/ 나 받은 달란트로/ 열심을 다하여/ 거룩한 주의 나라/ 그 의를 구하면/ 주께서/ 예비하신/ 상급을 받으리// 주 예수 주신 직분/ 참 좋은 것이라/ 마음과 뜻과 정성/ 목숨을 다하고/ 주께서 가신 그 길/ 그 뒤를 따르면/ 생명의 면류관이/ 네 것이 되리라// 주 예수/ 주신 직분/ 참 복된 것이라/ 믿음과 사랑으로/ 충성을 다하고/주님의 영광 위해/ 그 뜻을 이루면/ 영원한 하늘나라/ 네 것이 되리라.

(홍안의/ 일꾼의 노래-교회에 바치는 글)

 

 

설 교 노 트

 

제사장의 직분

출28:1-5

 

서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로부터 직접 제사를 받지 아니하시고 제사장을 통해서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즉, 중보자를 세워서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신약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셨고 그가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제사를 드려서 이제 해마다 제사드릴 필요가 없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라도 제사장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딤전2:5, 벧전2:9).

 

1. 하나님 섬기는 직분입니다.

본문 1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 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아론의 아들들로서 대제사장 아론을 돕기 위하여 일반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기 위하여 모세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직분을 잘못 감당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고 말았습니다(레10:1-2). 하나님 섬기는 직분은 잘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였습니다(행23:1).

 

2. 성령의 인도를 받는 직분입니다.

본문 3절에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 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영은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복장을 만드는 일은 성령의 인도로 지어졌기 때문에 신령한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려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롬12:1-2). 성령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거룩한 생활을 하는 직분입니다.

본문 4절에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의복도 생활도 보통 사람들보다는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죽는 일까지도 생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을 입어야 죄를 지어서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의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구별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결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비결은 죄를 회개하는 데 있습니다(행2:28).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고후7:1).

 

결론

제사장 직분은 귀한 직분입니다. 그 고귀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겨야 하며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칭찬과 더불어 상급을 받게 됩니다.

 

 

직분과 사명 및 분깃

민18:1-8

 

서론

17장에서 아론의 제사장직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후에 그의 직분과 그 직분의 사명이 무엇이며 직 분자들의 분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자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시고 그 일로 인하여 아론을 존귀케 하시며 백성들이 감히 아론의 제사장 권위를 침해하지 못하게 하시고 동시에 아론과 그 외의 직 분자들로 하나님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교만하거나 방종하지 못하도록 직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1. 직분은 선물입니다.

본문 7절에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직분을 돈주고 사는 것도 아니고 힘으로 빼앗는 것도 아니며 덕과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나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은 자들은 교만해서도 안되고 군림해서도 안되며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올은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 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은 자들은 그 직분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2. 직분은 섬기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너와 네 아들들은 단과 장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은 군림하는 직분이 아니요, 섬기는 봉사직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죽고 난 후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백성들은 모세에게 순종한 것같이 순종하겠다고 하였으며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수1:16-18). 솔로몬이 죽고 난 후에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에 노인들은 왕에게 요구하기를 왕이 백성들의 종이 되어 주면 백성들은 영영이 왕의 종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왕상12:6-7).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하는 주의 일꾼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겨야 합니다.

 

3. 분진은 거제물입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거제물 곧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한 모든 예물을 너로 주관하게 하고 네가 기름 부음을 받았음을 인하여 그것을 너와 네 아들들에게 영영한 양식으로 주노라"고 하였습니다. 거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진 예물로써 하나님께 주시는 양식인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에서 분깃이 되어 주시고 기업이 되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20절).

 

결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들은 그 직분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겸손하게 주의 일을 해야 하며 그 직분은 섬기는 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분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먹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구별된 제사장

민3:1-13

 

서론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 가운데서 특별하게 구별하여 제사장을 만드시고 그로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삼아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일을 하도록 구별하였습니다.

 

1. 기름을 부어 구별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그들은 기름을 발리우고 거룩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름부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외적인 행위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특별한 사명을 받는 이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레위인은 내 것이라(12절)"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에는 기름부음을 받고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 왕, 제사장, 선지자였습니다. 이들만 각기 자기가 맡은 사명에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2. 제사장 직분을 행하도록 구별되었습니다.

본문 3-4절에 "기름을 발리우고 거죽히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제사장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을 세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0절)"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직은 아무나 하는 직업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자만 할 수 있는 주의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별된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 처음 난 자를 대신케 구별되었습니다.

본문 11-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가라사대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선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직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쓰임받는 자들인데 처음 난 것은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를 대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출애굽할 당시에 애굽의 장자는 죽었지만 이스라엘의 장자는 살려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구별된 것입니다.

 

결론

제사장, 즉 오늘의 주의 종들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특별이 구별되게 부르심 받는 몸들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모든 성도들도 주의 종들의 장자를 대신하여 세움받는 사실을 알고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레위인은 내 것이라

민3:12, 45

 

서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들로 다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민족입니다. 그중에서도 레위인들은 성막을 모시는 신령한 일을 하였고 또 그중에서 특별한 사람들이 제사장직을 맡았습니다.

 

1.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이미 계셨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그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며 통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천상 천하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보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천하의 모든 민족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만물 만민이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2. 특히 레위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만민이 하나님의 것인 중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으로 선택하였고, 또 그중에서도 레위인을 거룩하게 성별하여 친히 하나님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을 대신하였고 장자에 대한 여호와의 특별 소유권은 처음부터 주장되었습니다(출34:19).

특히 애굽에서 장자와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재앙으로 진멸하실쌔 이스라엘의 장자들은 특별히 면사(免死)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장자들을 살려주신 역사적 사실이 하나님의 이스라엘 장자 소유권의 근거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것들이 된 이유

어찌하여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성직자로 선임되게 되었습니까? 역사적 유래는 출애굽기 32장 25절 이하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때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계명을 받는 어간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케 한 일에 대하여 격분한 모세가 진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하며 레위인들의 모임으로 그들을 무장시켜 이스라엘 중에서 범죄한 그 형제를‥‥ 그 친구를‥‥ 그 이웃을 도륙하라고 명령함으로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 죽였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고 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결론

하나님의 것이 된 레위인은 하나님의 일만 딸아 봉사하는 신령한 직 분자들이 되었고 그들의 생활비는 다른 11개 지파에서 십일조를 내서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니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엡4:12

 

서론

"그리스도의 몸"은 곧 교회를 가르킴이니 교회를 세우려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목적이요, 또 성도들이 각기 직분을 맡아 해야 할 사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직분을 맡기셨습니까?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1. "성도를 온전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들을 온전케하려는 목적입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교인들이 생기기 때문에 그들을 수시로 교양하여 한 사람의 성도로서 온전케 해야 할 책임이 먼저 믿고 직분을 맡은 선배 신자들에게 있습니다. 또 오래 믿었다 할지라도 지식 수준이 균일하지 않고 신앙생활에 대한 성의와 태도에 따라서 많은 차이점들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각기 그들대로 적당한 교양과 훈도로써 온전한 교인으로 양성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직분들에게 있는데 그 직분 맡은 자 자신이 온전하지 못한 신앙을 소유했다면 되겠습니까? 또 성도와 성도간에 조화를 잘시켜야 교회 전체적인 온전이 이뤄집니다.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명예직이나 권리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봉사직들입니다. 그런고로 자기가 맡은 바 책임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교회 봉사가 되느냐를 생각하여 각자가 맡은분야의 책임량을 잘 감당하여 봉사하면 교회는 잘됩니다. 누구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함도 아니고, 어느 누구(사람)를 위함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과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는 일뿐이니 사심없이 봉사하는 중에 하나님의 일은 성취되어 갑니다. 봉사에 대하여 서로 하고자 하는 욕심과 경쟁은 희망적입니다. 이런 직분들이 많은 교회는 부흥되고 발전할 것이고 서로 남에게 전가시키고 핑게하면 쇠퇴합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함이라"고 하였

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로서(엡1:23, 2:21-22) 거기에는 지체의 여러 직책이 있지만 그 몸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지체이든 무슨 직분이든 몸을 위하여 하노라면 그 몸을 쓸 수가 있습니다. 모든 지체가 자기 기능을 잘 발휘하면 결국 몸은 활발스럽게 살아서 활동하게 되나니 자연히 생동하는 교회요, 성장할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결론

직분을 맡은 자들이 자기의 책임을 선하고 성실하게 잘 감당하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살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니 매우 기쁜 일입니다.

직 업

 

#성경활용

 

1. 직업의 종류

(1) 의사

(창50:2-3)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일이 걸렸으니

(2) 건축자

(창11:3-4)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왕상5:18)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

(3) 농사하는 자

(창4:2)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4) 대장장이

(창4:22) 동철도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5) 보석 세공인

(출28:11) 보석을 새기는 자가 인에 새김같이

(6) 조각가

(출31:5) 나무를 새겨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고

(7) 목자

(창13:7)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8) 간수

(행16:23-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9) 목수

(막6:3)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10) 파수꾼

(삼하18: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음질하는지라 문지기에게 외척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음질한다 하니

(11) 배 만드는 자

(왕상9:26) 솔로몬 왕이 에돔땅 홍해 물가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12) 어부

(마4:18)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13) 무당

(출22:18)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14) 산파

(창35: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로 득남하느니라 하매

(15) 변사

(행24:1) 대제사장 아나니 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16) 장의사

(겔39:15)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17) 이발사

(겔5:1) 너는 날카로운 칼을 취하여 삭도를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나누었다가

(18) 창녀

(신22:21) 그가 그 아비 집에서 창기의 행동을 하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행하였음이라

(19) 세탁자

(왕하18:17) 저희가 올라가서 윗못 수도 곁 곧 세탁자의 밭에 있는 큰 길에 이르러 서니라

(20) 토기장이

(렘18: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21) 사공

(겔27:8-9) 바다의 모든 배와 그 사공들은 네 가운데서 무역하였도다

 

 

 

(22) 법률사

(단3:2-3) 이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23) 사냥꾼

(창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24) 장막 만드는 자

(행18:3)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25) 동산지기

(요20:15)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2. 직업있는 성도가 취할 태도

(1) 충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

(고전4:2)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히3:5)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창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2) 공정하게 일을 해야 함

(잠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레19:35-36)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신25:15) 오직 십분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십분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3)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함

(잠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을 얻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hd:bo[} 아보-다-

(1) 수고, 일, 노동.

(출1:14)

(2) 일, 직무 사업.

(민4:47, 사28:21)

(3) 농촌의 일.

(대상27:26)

(4) 봉사.

(창30:26, 대상26:30)

 

2. pra'xi" 프라키스

(1) 활동, 동작, 작용, 기능,

(마16:27, 롬12:4)

(2) 행함, 행위, 활동.

(행19:18)

설교예화자료

일자리가 훌륭하지 않다

 

스탠다드 석유 회사는 인도네시아에 회사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간부들은인도네시아 지사 경영을 위한 지배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의 적임자로 한 선교사를 그 자리에 채용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들의 제의는 연봉 삼만 불이라는 큰 액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는 거절했습니다. 회사는 그의 근무를 원했으므로 그에게 더 높은 연봉을 제의했습니다. 여전히 그는 거절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이 말했습니다

"원하는 연봉을 말해 보시오. 만일 우리가 제의한 봉급이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지불하겠소."

그가 대답했습니다.

"봉급은 충분하오. 그러나 일자리가 훌륭하지 않습니다!"

 

 

어록·시·묘사

 

뱃 사람의 이야기는 폭풍의 이야기이고, 농부의 이야기는 자기의 황소에 관한 것이며, 병정은 자기의 상처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목동은 자기의 양떼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S.A. 프로페르티우스/ 만가)

 

우리는 나쁜 구두를 신은 남자를 보면, 그가 제화공일 것이라고, 의심치 않고 말한다.

(몽테뉴/ 수상록)

 

직장은 제 2생명이라고 한다. 그렇게 귀중한 것이 직장이라면, 우리 모두 직장에 충실하여야 한다. 직장에 충실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지킨다고 해서 족한 것이 아니다. 부과된 일을 잘 수행할 뿐만이 아니고 직장의 변천에 상응하고, 그 직장의 발전에 대비해서 경험을 살리고 지식화를 탐구하여야 한다. 그 직장에 충실한 사람이라면 그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구하게 된다.

(정범석/ 스스로 배우는 사람)

 

진지한 직업이란, 결정과 관련된 노동이다.

(G.W.F. 헤겔/ 역사철학)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다고 하겠느냐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할까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한다. 병을 고치려는 무당과 관 만드는 목수와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직업을 택하는 데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 公孫丑章句上)

 

아들에게 업(業)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도적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영국 속담)

 

진정한 직업적 만족은 그 직업을 통해서 얻어지는 어떤 물질적 보상보다도, 사회적 인정보다도, 그 직업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우리는 때때로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같다.

(정원식/ 교육하는 보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직업에 좌우된다.

(M.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직업을 전전하면 하나도 성공 못한다.

(플라톤/ 국가)

 

아무리 하찮은 직업이라도 그 주인을 먹여주지 않는 직업은 없다.

(프랑스 속담)

 

천한 직업은 없다. 천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프랑스 속담)

 

직업에는 사람이 흔히 생각하듯 귀천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귀천이 분명히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직업을 천한 직업이라 하고 어떠한 직업을 귀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천한 직업이란 바람직하지 못한 직업이며, 귀한 직업이란 바람직한 직업을 말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직업이란 무엇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사회에 보다 유익한 직업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으 로서의 자기에게 바람직한 직업이다.

(송건호/ 직업의 귀천)

 

선행, 그것은 충실한 직업 중의 하나이다.

(H.D. 도로우/ 월든 숲속의 생활)

 

 

종종 너의 진지한 생업에 즐거움을 혼합하라.

(B. D. 조운즈/ 린네전)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천직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보몬트와 플레처/ 사랑의 치료)

 

구체적인 직업 선택은 개인의 능력, 흥미, 성격, 처지, 기회 등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가장 바람직한 직업은 자기의 성장과 직접 관련되고 타인의 성장에도 직접 관계하고 있는 직업이다.

(차기벽/ 학문과 직업)

 

우리들의 직업의 태반은 연극이다. 그 맡은 배역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이나 모양을 취하고, 새로운 존재로 변질하는 자도 있다.

(M. E, 몽테뉴/ 수상록)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의 선택이다. 그런데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우연이다.

(B. 파스칼/ 팡세)

 

어떤 종류의 직업, 이를테면 과학 연구 따위에 있어서는 그다지 수입이 없는 사람도 이 성공감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직업에 있어서는 수입이 성공의 척도가 되고 있다.

(B.A.W. 러셀/ 행복의 정복)

 

모든 전문직은, 속인들을 속이려는 음모이다.

(G.B. 쇼/ 의사의 딜레머)

 

흔히 직업이라는 개념에는 생활방편적인 일종의 사무적인 일면이 깃들여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을 교육한다는 교사생활 속에서는 그와 같은 안이한 한 가닥의 의미조차 용납되지 않는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교사라는 직분뿐만 아닐 것이다. 세상의 아무리 하잘것없는 듯한 직업일지라도 그것이 직업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라면, 또한 우리가 그것에 충실하려면 일용 생활의 방편적인 것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 나름의 전부를 요구하게 된다.

(박목월/ 내가 걷는 하나의 길)

 

모든 것이 다 직업화(돈을 바라고 한다는 의미)할 수 있어도 문학은 직업화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직(神職)이나 승려가 직업화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이다.

(이광수/ 문학평론)

 

두려워 말라. 자기 직업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취업을 못할 때가 없다.

(T. 제퍼슨/ 문서집)

 

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의 인간이 된다.

(나폴레옹 1세/ 잠언과 사상)

 

상놈의 발 덕, 양반의 글 덕. <*양반은 학식이 있으므로 그 덕으로 살아가고, 상놈은 학식이 없으므로 발로 걷고 노동을 하여 살아간다는 뜻>

(한국 속담)

 

메고 나면 상두꾼, 들고 나면 초롱꾼. <*어떠한 천한 일을 하여도 조금도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뜻>

(한국 속담)

 

능참봉을 하니까 거동이 한 달에 스물 아홉 번이라. < *모처럼 직업을 하나 잡으니까, 생 기는 것은 별로 없고 바쁘기만 하다는 말>

(한국 속담)

 

직업이 요구하는 필요성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부유하게 만든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인간이 자기 직업에 행복을 얻으려면 다음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 즉,고는 고 일을 좋아해야 한다. 그 일을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 그 일이 성공하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J. 러스킨)

 

직업에 관해서 평을 하자면, 군인은 너무나 인기가 많고, 목사는 너무나 게을러지고, 의사는 너무 욕심을 취하게 되고, 법률가는 너무나도 강력하게 되기 쉽다

(P. 콜토나/ 라콘)

 

카토는 세상은 여러 가지 물감의 가격뿐만이 아니라 직업의 가격도 결정한다고 말하고, 염색공들이 사람들의 원하는 것을 좇아 옷감에 물을 들이듯이 청년들은 우리가 어떤 것을 칭찬하는가에 의하여 직업을 선택한다고 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직업은 자연의 의사이며,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다.

(M. 끌라우디우스)

 

약장수는, 시인, 산책자, 농부와는 다른 눈으로 약초를 본다.

(그란빌/ 독선의 허영)

 

결국 직업 윤리는 양심 문제다. 양심이 있으면 직장에서 금욕적 자세를 갖고 일하게 된다.

(김성식/ 소명감과 직업 윤리)

 

현대인의 최대 결점은, 자기의 직업에 대하여 애착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직업을 혐오할 일로 생각하며, 저주할 고역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직업은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생활의 목적이다. 일한다는 것이 인생의 가치이며, 인생의 환희이며, 인생의 행복인 것이다.

(F.A.R. 로댕)

 

내가 내 직업에 대해 더 자신을 갖고 있다면 나는 자랑스럽게 "여기서 말을 갈고 있음"이라고 간판을 달텐데. 말을 긁는 직업, 어휘를 닦는 직업----힘들지만 유용한 직업이다.

(에드몽 질리아르/ 붉은 사각형)

 

"직업은 변경이 최대의 휴식이다"라고 최대의 정치가 한 사람이 말했다.

(A.C. 도일/ 네 개의 죄)

 

성공을 원하거든 자기 직업을 정확히 정하고 그것을 어디까지나 추구해야 한다.

(B. 프랭클린)

 

일정한 생업이 없는 사람은 따라서 일정한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정도전/ 삼봉집)

 

도둑은 경우에 따라선 대담무방한 군대가 안 된다고 할 수 없고, 군인들은 언제 용감한 도둑이 안 된다고 할 수 없다. 그만큼 이 두개의 직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T. 모어/ 유토피아)

 

그러나 일편 생각해 볼 때 직업이란 사람의 성격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화섭/ 인간 풀)

 

여러 기술을 평범하게 익히는 것보다 한 가지 기술에 뛰어나는 편이 낫다.

(小플리니우스/ 서한)

 

본업에 정성을 기울일 때 손이 더럽혀지지 않는다.

(이탈리아 속담)

 

직업은 그 사람의 성품을 채색한다.

(S. 존슨)

 

나태와 무식은, 이 세상에서 바보를 망치는데 가장 좋은 것들이다.

(D. 크리소스톰/ 제10논설집)

 

오,/ 이 목이 타는 한발은 심심하다/ 기왕 터져서 타버린 배도 배이려니와/ 그 위에 지나가는 살도 살이려니와/ 실직한 정신은 더욱 할 일 없고/ 할 일이 없는 나의 손은 심심하다.

(홍완기/ 旱魃)

 

자가 전세 셋방으로 나누고/ 피아노 승용차로 나누고/ 아버지의 직업으로 나누어서/ 우리들의 이마에/ 화려한 배경과 좋은 환경과/ 문제가장의 스티커를 척척 붙여주지만

(박용주/ 가정환경 조사서)

 

구파발로 가는 전철을 기다리며/ 호주머니 속의 인식표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보았어/ 제각기 지하로 지하로만 가는/ 저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윤성근/ 길 · 3)

 

무식은 휴식이 아니며, 아주 한가한 마음은, 괴로워하는 마음이다.

(W. 쿠퍼/ 은퇴)

 

 

설 교 노 트

 

문지기의 반차

대상26:1

 

서론

직업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수많은 직업들이 있고 그 나름대로 독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문지기의 반차가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인의 성직 중에는 문지기 또는 곳간을 맡은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혼히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을 지키는 것도 역시 대단히 귀한 일입니다.

 

1. 지키는 일의 중요성

무슨 일에 관련되었든지 "지킨다(守)"는 원리는 다 같이 중요합니다. 지키는 일이 다양하니 그 종류를 보면, 나라를 지키고, 성을 지키고, 문을 지키고, 곳간을 지키고, 보화를 지키는 일이 있으니 이런 것은 수직(守直)이라고 하겠으며, 유월절을 지키고, 안식일을 지키고, 명절을 지키고 등은 수종(守從)하는 일이며, 마음을 지키고 영혼을 지키고, 생각을 지키고 등등은 수호(守護)의 뜻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여하튼 지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2. 문지기의 중요성

일반적으로 문지기는 그 집이나 궁궐 또는 성전 문을 지키는 일인데 대체로 들고 나는 사람을 점검하여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문지기는 예루살렘 성전물을 주로 지키는 자들을 말했으나 문지기 중에는법궤를 지키는 특별한 문지기도 있었습니다. (대상15:23-24). 성전 입구도 지켰고(왕하22:4), 때로는 여자들도 문을 지켰습니다(삼하4:6, 요18:16-17).

보통 문지기는 그렇게 높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요, 보통 상대적으로 비천한 임무라고 하겠으나 시편 기자는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라고 하며 주의 궁중 생활의 한 날이 다른 곳의 천 날보다 낫다고 하여 그 귀함을 나타냅니다.

 

3. 마음의 문을 더욱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물질로 된 어떤 거간(居間)의 문을 지키는 일도 귀중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더욱 귀중합니다.

내 마음속을 침투하려는 마귀의 세력을 막기 위하여 항상 문을 닫고 열지 아니해야 하며또 반대로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들어오시려고 문을 두드릴 때에는 빨리 열고 기쁨으로 영접해야 합니다(계3:20). 특히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손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손임을 기억하고 빨리 열고 영접하여 모시고 같이 영생하여야 하겠습니다.

 

결론

문지기라고 하면 아무 보잘것없는 직업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문이 어디냐에따라서 또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되신 성전을 지키는 자는 오히려 거룩하고 귀한 직업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진 리

성 경 활 용

1. 성령의 진리의 특징

(1) 믿는 자의 마음에 거하심

(요14:17)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 보혜사이심이다.

(요14:16)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3) 예수를 증거하심

(요일4:6)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아니 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4) 아버지께로부터 오심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2. 하나님의 진리의 특징

(1) 영원히 진실하심을 지키신다.

(시146:6) 여호와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2) 진실이 많으시다.

(출34: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다

(3) 속성 중의 하나이다.

(사65:16)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신32:4)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4) 말씀이 곧 진리이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5) 참된 심판을 하신다.

(계16:7)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6)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

(고후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7) 진리대로 판단하신다.

(롬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8) 죄악을 속하셨다.

(잠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3. 그리스도의 진리의 특징

(1) 예수님 안에 있다.

(요18:37)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중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2) 진리가 충만하셨다.

(요1:14)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해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예수께로 말미암은 것이다.

(요1:17)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4. 성경의 진리의 특징

(1) 진리를 확실히 알게 한다.

(잠22:21) 너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2) 믿는 자를 살게 한다.

(약1:18)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3) 진리로 거룩하게 하신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5. 진리에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1) 진리를 아는데 이르러야 한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2) 힘써 구해야 한다.

(전12:10)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3) 진리와 함께 기뻐해야 한다.

(고전13: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4) 회개해야 한다.

(딤후2:25)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5)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요일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6. 진리의 근원이 누구이신가?

(1) 예수님이시다.

(엡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2) 하나님 여호와이시다.

(시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요17:17, 19)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4) 성령이시다.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7. 진리에 대해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

(1) 행하여야 한다.

(시 26:3)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2) 주를 바라야 한다.

(시25:5)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3) 영원히 보호해야 한다.

(시61:7)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시고 저를 보호하소서

(4) 진리를 생각해야 한다.

(벧후1:12)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8. 진리에 대한 교훈

(1)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

(딤후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2) 순종하라.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3)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엡4:25)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4) 믿고 받으라.

(딤전4:3)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5) 진리 안에서 행하라.

(요삼3-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9. 진리를 행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 하나님에로 나가게 된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2) 사랑하게 된다.

(고후11:10-11)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 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3) 구원을 얻는다.

(살후2:13)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4) 영혼이 깨끗케 된다.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5)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딤후2:25-26)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너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게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 잡힌 바 되어 그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관련원어풀이

1. @mea; 아-멘-

(1) 견고한, 굳건한, 신실한.

(사65:16)

(2) 참으로, 진실로, 아멘!.

(렘28:6)

 

2. hn:Wma? 에무-나-

결실, 안전, 충성, 정직, 성실한

(잠12:17)

 

3. tm,a, 에메트

(1) 견고, 확고, 영구.

(사39:8, 수2:12)

(2) 신실, 믿음.

(시25:10)

(3) 결백, 정직.

(출18:21)

(4) 진실, 진리.

(창42:16)

 

4. ajlhvqeia 알레-데이아

(1) 진리, 진실, 참된 것.

(요8:.45)

(2) 하나님과 인간의 의무 사이에 관련되어 참된 것.

(요18:38 갈2:5)

설교예화자료

포도밭의 보물

 

세 아들을 둔 부지런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몹시 게을렀습니다.

게으른 아들들을 걱정하며 농부는 포도밭을 매면서 긴 한숨을 쉬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 포도밭은 누가 맬 것인가? 아마 잡초만 무성해지겠지."

그런데 어느 날 농부는 큰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기 전에 아들들에게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셋을 부른 후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는 못 살 것 같다. 그러니 내 말을 잘 듣거라. 내가 죽거든 저 포도밭을 잘 일구도록 해라.

그 속에 귀한 보물을 묻어 두었단다. "

그 후 농부는 곧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세 아들은 부지런히 포도밭을 일됐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잡초며 돌멩이를 모두 골라 내면서 피땀흘려 밭을 일궈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아들들은 몹시 실망이 컸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없잖아!"

"그럼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신 걸까? "

그러는 사이 여름이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농부의 포도밭에는 다른 해보다 유난히 굵고 먹음직스런 포도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아들들이 포도밭을 정성껏 일구었기 때문입니다.

아들들은 기쁜 얼굴로 포도를 거두면서 그제서야 비로소 포도밭에 숨겨 둔 아버지의 보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거위와 백조

 

어떤 마을에 거위 한 마리와 백조 한 마리를 기르는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는, 거위는 조금 자라고 살이 찌면 잡아먹을 계획이었고, 백조는 그냥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기 위해서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날 수 있을까?"

주인이 자기를 기르고 있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거위는 날마다 이런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거위의 몸은 하루하루 통통하게 살이 붙기만 하였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주인에게 잡혀먹힐 생각을 하니 거위는 눈앞이 아찔하여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고민 고민 하던 중 편안히 잠들어 있는 백조를 보다 문득 좋은 뫼가 생각났습니다.

"옳지,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그날부터 거위는 걱정없이 푹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주인은 통통하게 살이 진 거위를 보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호호, 거위가 알맞게 살이 붙었군. 그럼 내일 아침에는 맛있는 거위 요리를 먹어 볼까?"

하고 말했습니다. 주인의 말을 들은 거위는 그날 밤 백조가 잠들기를 기다렸습니다.

걱정 근심없는 백조가 깊은 잠이 빠지자 거위는 살짝 백조와 자리를 바꿨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르는 주인은 거위의 자리에 잠들어 있는 백조를 끌어내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백조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슬프게 울었습니다.

"아니, 이건 백조잖아?"

하면서 주인은 백조를 넣어두고 거위를 꺼내 죽였습니다.

 

 

하얀 까마귀

 

들에 살고 있는 까마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나뭇가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주인이 뿌려주는 맛있는 모이를 먹고 있는 비둘기들이 보였습니다.

까마귀는 부러운 눈으로 비둘기를 보며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날마다 먹 이 때문에 걱정을 하고 이곳 저곳을 헤매며 다니는데 비둘기들은 편안히앉아서 주인이 주는 모이를 받아먹으니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까마귀는 문득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옳지, 내가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비둘기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내 몸에 밀가루를 묻히면 되었을걸."

까마귀는 급히 어떤 농부의 집 부엌으로 날아가 몸에 온통 흰 밀가루를 묻혔습니다. 그리고 하얗게 된 몸으로 비둘기들이 모여 모이를 먹고 있는 마당으로 날아갔습다.

아무도 그 까마귀를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롭게 비둘기들과 어울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먹이 때문에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되었고 날마다 이렇게 편히 살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분이 좋은 까마귀는 그만 저도 모르게 '까옥 까옥'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앗, 이 녀석은 까마귀였구나." 비둘기들은 깜짝 놀라며 한꺼번에 달려들어 까마귀를 마구 쪼아댔습니다.

몸에 온통 상처를 입고 도망친 까마귀는 다시 자기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까마귀는 외면을 당했습니다.

"아니, 이건 뭐야? 털빛은 하얗지만 비둘기도 아닌 것 같고‥‥‥‥

"틀림없이 우릴 헤치려는 녀석이겠지 뭐!"

"에이, 저리 비켜!"

까마귀는 울면서 사정했으나 친구들은 아무도 하얀 까마귀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살리는 길

 

"꼭 기억하시오. 졸지 말아야만 당신의 목숨을 건집니다. "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난 안내원은 스위스 제일봉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에 왔을 매, 한 청년에게 다시 한 번 이렇게 당부하는 말을 되풀이 하였습니다.

"눈은 깊지만 당신은 틀림 없이 산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도 험합니다마는 빨간 화살표만 따르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습니다. 피곤하여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더라도 계속하여 걸으십시오."

"염려마십시오. 지금까지 나는 많은 등산을 하였습니다. 이 산도 정복하고 나도 안전할 것입니다. "

하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 청년은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이 예상하였던 것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어두움이 내리고 찬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을 지내야 할 주막은 아직도 댓 마일 밖에 있었습니다. 별안간 그는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잃었습니다. 그의 근육은 아프고 졸리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비록 자기를 이기노라고 영웅적 노력을 하여 보았으나 별수없이 잠이 들고 말 것처럼 보였습니다. 주저앉지 않기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여러 가지로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앞의 큰 바위를 발견하였을 때 5분 간만앉아 쉬어 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바위를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그러나 별안간 눈으로 덮인 어떤 물체에 걸리어 넘어졌습니다. 그것이 짐승인 줄 안 그는 길 밖으로 그것을 치워 버리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물체는 짐승이 아니라 자기 나이 또래의 청년이었습니다. 그 산길에서 잠이 든 채로 의식을 잃은 것이었습니다.

몸이 아직 더운 것을 발견한 그 청년은 큰 바위 밑 바람막이로 그 쓰러진 청년을 끌어다손과 발을 주물렀습니다. 나무꾼들이 하던 것을 본 대로 인공 호흡도 시켰습니다. 얼굴에 생기가 돌아올 때까지 그 청년은 눈 위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곤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날 때까지 두 시간을 꼬박 일한 후 그를 도와 산 위의 주막까지 인도하였습니다.

그 주막에 이르러 차 한 잔을 마시면서 그제야 그 청년은,자기 역시 그 큰 바위 옆에 앉아 쉬려 하였던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피곤과 졸음은 그가 딴 청년을 발견하여 살리려고 일하였을 때 사라졌던 것입니다.

남을 구하려는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건진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여러 가지 진리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즉, 남을 살리는 것이 곧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진리입니다.

 

 

어록·시·묘사

 

진리는 횃불과 같아, 그것은 흔들수록 더욱더 빛난다.

(W. 해밀턴/ 철학에 관한 토론)

 

이단으로 시작해서 송신으로 끝내는 것이 새로운 진리의 관례적 운명이다.

(T.H. 헉슬리/ 종의 기원시대의 도래)

 

가장 깊은 진리는 오직 가장 깊은 사랑에 의해서만 생 긴다.

(H. 하이네/ 영국단장)

 

진리는 신과 흡사하다. 진리는 직접 그 모 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우리는 그 계시로부터 진리를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J.W. 괴테)

 

진리를 모르고 사는 이의 백 년은 진리를 깨닫고 사는 이의 하루만 못하다.

(법구경)

 

사람이 진리를 깨침은, 물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달은 젖지 않고, 물은 깨어지지 않는다.

(도오겐)

 

진리는 절개를 굽힐 줄 모르는 인사를 폭력으로부터 멀리하여, 그리고 그 고독 속에서 위로한다.

(F. 라블레)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흙보다도 겸허를 더 요구해야 한다.

(M. K. 간디)

 

진리란 말은 "Amoth"라고 하는데, 이 히브리어의 알파벳의 첫 글자, 중간 글자, 마지막 글자가 모두 이 아모스라는 낱말 속에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다시 해석해서 말하면 진리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윤영춘/ 행복은 너의 것)

 

영원한 진리들은, 모든 새로운 사회 상황에서 싱싱한 의미를 갖지 않으면, 진리도 아니고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F.D. 루즈벨트)

 

우리들은 진리의 길은 좁고 곧다는 것을 알았다. 박애의 길도 역시 같은 것이다. 이 좁은 길을 걷는 데는 칼날 위를 걸어가듯이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 줄타는 사람은 굳게 매어져 있는 밧줄 위에서 전능력을 집중하여 춤춘다. 진리와 박애의 가는 줄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보다 큰 주의가 필요하며, 티끌만한 부주의가 있어도 떨어지고 만다. 다만 부단한 정진에 의해서만이 박애를 자신속에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박애를 실천하는데는 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M. K. 간디)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즉, 천연과 인간과 성서.

(우치무라 칸조오)

 

우리가 꼽을 수 있는 유리한 진리는, 우리 경험상 항상 변하는 진리이다.

(P. 바이스/ 마라트 사데)

 

진리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는 데서 항상 인생은 시작되는 것이다. 진리에 대한 탐구가 중단되면 인생도 거기서 끊어지고 만다.

(J. 러스킨)

 

진리는 정의의 시녀요, 자유는 그 자식이고, 평화는 그 반려다. 안전은 그 걸음으로 걷고, 승리는 그 행렬을 따라간다. 진리는 복음의 찬란한 발산이요, 하나님의 속성이다.

(S. 스미드)

 

평상시의 마음이 곧 도(道)요 진리다. 진리를 특별한 곳에서 찾지 말자 매일매일의 평범한 생활 속에서 우리는 진리를 찾아야 한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진리에의 사랑만이 우리들을 결코 배신하지 않는 유일의 사랑이다.

(R. 롤랑/ 사랑과 죽음의 장난)

 

진리는 흔히 빛을 빼앗기기는 해도 결코 꺼지지는 않는다.

(리비우스/ 사서)

 

진리는 학설도 지식도 아니며, 도(道)이며 생명이다.

(C. 힐티)

 

진리는 가장 진실한 시가(詩歌)다.

(A. 카울리/ 데비데이즈)

 

진리는 안개를 흩어버리지 않고도, 그것을 뚫고 반짝이는 횃불이다.

(C.A. 엘베시위스/ 정신)

 

진리는 그것이 논의되는 순간 교의(敎義)로 변해 버린다.

(G.K. 체스터튼/ 이단자)

 

진리의 정신과 자유의 정신,그들은 사회의 기둥이다.

(H. 입센/ 사회의 기둥)

 

플라톤은 나의 친구이지만 진리가 나에게는 더 친하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진리는 영원히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견해는, 보는 사람의 기분과 기질과 성향을 통해 걸러진 진리이다.

(W. 필립스/ 우상)

 

진리는 존재하는 것의 정상(頂上)이며, 정의는 진리의 사건에의 적용이다.

(에머슨/ 수필집)

 

인생의 진리는 우리에게는 발견되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어떤 너그러운 감화력이 영혼 위에 내려와 감동을 일으키는데, 마음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지만, 그 감동을 사고로 바꾼다.

(G. 기싱/헨리 레이크로프트의 개인 연구물)

 

바보와 미친 자에게는 진리를 평범하게 말하라.

(R. 버튼/ 우울의 해부)

 

진리는 철학의 대상이지만, 항상 철학자들만의 대상은 아니다.

(L.P. 스미드/ 영국 격언집)

 

진리는 충분히 익었을 때에만 따야 하는 열매다.

(볼테르)

 

진리는 신의 말이요, 의무는 신의 법이다.

(뉴턴/ 나의 신관)

 

진리를 찾는 자가 횃불을 밝힌다.

(R.G. 잉거솔/ 진리)

 

진리는, 지구의 황금 같은 허리띠이다.

(W. 쿠퍼/ 자비)

 

어떠한 사람도, 즐겨 진리로부터 멀리 가있게 되는 자는 없다.

(플라톤)

 

자기 편에 진리를 갖고 싶어하는 것과 성실하게 진리의 편에 있고자 하는 것은 서로 별개이다.

(R. 훼이틀리/ 진리의 사랑에 대하여)

 

 

인간이 알아야만 할 진리란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진리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대개의 사람은 진리를 자기측에만 있다고 여긴다. 자기와 다른 의견은 틀린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안개 속에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다.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도, 또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도, 좌위의 사람들도 모두가 안개 속에 싸여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니까 자기의 주위만이 보일 뿐이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안개 속에 싸여 있는 것인데 자신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B. 프랭클린/ 자서전)

 

진리는 강경하다. 거품처럼 손을 댔다고 터지지 않는다. 아니, 온종일 축구공처럼 차고 다녀도 저녁에 보면 아직도 둥글고 탄탄하다.

(홈스/ 아침 식탁의 교수)

 

생사는 천명이요, 주야의 순환은 천리이다. 이 천명과 천리는 사람의 힘으로 관여할 수 없는 것으로 만물에 통하는 진리이다.

(장자)

 

간계는 의상을 걸쳐야 하지만, 진리는 발가벗은 채 그대로를 사랑한다.

(T. 풀러/ 잠언집)

 

진리라는 것은 그대도 알다시피 세상을 간소화하는 것이지 혼돈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진리라는 것은 보편적인 것을 뽑아 내는 언어이다. 뉴턴은 퀴즈 모양으로 오랫동안 숨어 있던 법칙을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창조적 실험을 행한 것이다. 그는 풀밭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해가 떠오르는 것을 동시에 표시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를 창정(創定)한 것이다. 증명되는 그것이 진리가 아니고 간단하게 만드는 그것이 진리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그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그것이 사람의 진리이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진리는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절약하지 않겠는가.

(마크 트웨인/ 얼간이 윌슨의 캘린더)

 

진리는 보석이며, 페인트칠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밝은 빛을 받고 돋보이게 세탁은 해도 된다.

(G. 산타야나/ 이성의 생활)

 

항상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해서 도달한 것만이 진리이다.

(안수길/ 제3인간형)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되 달은 손가락에 있지 않고, 말로써 진리를 말하되 진리는 말에있지 않다.

(지눌)

 

모든 참된 행복은 진리와 더불어 있고, 모든 참된 기쁨도 진리와 더불어 있다. 진리가 떠나는 날, 행복도 기쁨도 함께 우리 옆을 떠난다.

(J. 바타)

 

진리에는 말이나 형상이 없지만, 말이나 형상을 떠날 수도 없다. 말이나 형상을 떠나면 의혹에 빠지고, 맡이나 형상에 집착하면 그 참모습을 모른다.

(대각국사)

 

완성은 자주 우리들로부터 도망치는데 반해, 진리의 추구는 행복의 추구에서와 같이, 그 자체가 만족을 주는 것이다.

(R. 호프시타터/ 미국인 생활에서의 지성주의)

 

진리를 가르치고 설명하는 말은, 자기 내 부의 자아를 부정하는 인간의 입에서 나올 경우에만 확고 부동한 것이다.

(탈무드)

 

새로운 경우들은 새로운 임무들을 가르친다. 시간은 옛 선(善)을 낯설게 만든다. 진리와 병행하려는 사람은, 언제나 위로 향하고 앞을 향해야 한다.

(J.R. 로우얼/ 현재의 위기)

 

진리는 신앙과 지식의 상쇄에서 비롯한다.

(F. 헤벨/ 일기)

 

깨어나는 진리는/ 결코 사라지지 아니하며‥‥/ 그 진리는 무관심도 격한 행동도/ 인간, 소년도 그리고/ 기쁨에 반목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 없어라!

(워즈워드/ 영원의 암시)

 

우리는 이성에 의해서 뿐 아니라 심성에 의해서 진리를 인식한다.

(B. 파스칼/ 명상록)

 

진리는 경험이어서, 가르칠 수가 없다. 그것은 지식이 아니고, 존재함이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진리에의 입구는 단순한 것 다음에 있다.

(G.C. 리히텐베르크/ 물리학적인 대상에 관한 각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 의욕은, 가령 도중에 헤매는 일이 있을지라도 놀라운 공적이라 할 수 있다.

(G.C. 리히텐베르크/ 충언과 잠언)

 

진리는 고대든 근대든 사회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가 진리에 경의를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베카난다/ 칼마요가)

 

생생한 진리는 인간 사색에 있어서 산출된 것뿐이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나는 진리를 어떤 손 안에서 발견해도 환영하고 애무한다. 즐거이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M. E. 몽테뉴)

 

진리는 흔히 위험을 동반한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史書)

 

진리를 등불로 하고, 진리를 의지할 곳으로 하라. 다른 것을 의지 삼지 말라.

(석가모니)

 

진리가 찔러서 허위가 고약을 바른다.

(이탈리아 속담)

 

 

진리와 사랑의 성령이여/ 생명을 주시는 거룩한 성령이여/ 당신의 날개를 부지런히 펴서/ 수면 위를 다니시며/ 은혜의 등불을 가져오사/땅의 가장 어두운 곳에/빛이 있게 하소서.

(J. 마리오트/ 빛을 발하게 하소서)

 

오 주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당신은/ 빛과 지혜로 충만하시나이다/ 우리의 심령을/ 당신의 성령으로 채워 주시고/ 숭배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의 말씀을 받을 수 있는/은총을 구하오니/그것 없이는/ 당신의 진리를 깨우칠 자가/ 아무도 없음이니이다.

(캘빈/ 성서 주일)

 

스승은 비유와 이야기를 통해서 가르쳤고/ 제자들은 즐겁게 들었다-그들은 이따금/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뭔가 좀더 깊이있는/ 말씀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 스승은 확고 부동했다. 제자들이 온갖 반박을 해도/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 "인간과 진리 사이의 가장 가까운 지름길은/ 이야기라는 것을 언젠가는 알아 들어야 한다. " // 또 한 번은 말하기를:/ "이야기를 업신 여기지 말아라./ 잃어버린 금은 한 푼짜리 촛불로 찾게 된다 ; /가장 깊은 진리는 단순한 이야기로 찾게 된다. "

(앤소니 드 멜로/ 이야기)

 

어느 것은 셀로판으로 싸고/ 어느 것은 금박으로 물들였다. / 진리는 그를 아끼고 사랑 하고 가꾸는 이만이/ 아는 것이다.

(김현승/ 책)

 

그는 왕국을 세우지 않으셨다. 그러나/ 젊은날부터 왕이셨던 그는 지금도 다스리시느니/진리의 왕국이라 불리는 그 세계를.

(린제이/ 사람으로서의 그리스도)

 

진리의 밤이 우리들의 말을 단절한다.

(R. 도말/ 만가)

 

시방 진리의 냇물이 흐른다/ 꿈의 충적층(沖積層) 위로!

(S. 판트/눈부신 은빛)

 

오, 신 중의 신이시여/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이시오매/ 나는 진리와 함께 머물겠나이다. /나는 어떠한 부정에도 굴하지 않겠나이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나이다. / 어떠한 폭력에도 호소하지 않겠나이다. / 모든 사람을 오직 호의로써 대하게 하옵소서.

(간디/ 결단의 기도)

 

또한 겸손한 마음을 내려 주시사/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하며/ 참된 지혜는 개방된 마음이며/ 참된 힘은 온유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옵소서.

(맥아더/ 아버지의 기도)

 

그때 진리와 정의는 무지개에 싸여/ 인간에게로 회복되어 내려올 것이며

(밀턴/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에 · 15)

 

진리란 인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의지와 목적이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진리는 노력 위에 있고/ 헛되지 않은 이치는/ 진리 안에 살아 있다.

(황금찬/ 하늘 악기)

 

예수를 보고 싶다. 그로 하여금 사람 안에 오게 하여/ 말씀하시려는 진리의 말씀을 지금 말하게 하라./ 이윽고 은혜 가득 찬 메시지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고동하는 것을 느끼는 날이 올 것이다.

(서코우/ 예수를 보고 싶다)

 

그늘,/ 밝음에 너는 옷을 입혔구나/ 우리도 일일이 형상을 들어/ 때로는 진리를 이야기한다.

(김현승/ 오월의 그늘)

 

당신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며/ 인종으로써 이 세상에 구원을 성취한/그분의 관은 멋지다. 그 무엇보다 멋지다/ 당신은 놀라운 진리를 믿고 계신 것이다.

(스마트/ 다윗에게 부치는 노래)

 

그리스도 안에서 신의 '예'는/ 최후의 진리. // 신 안에서 '아니오'가 '예' 속에서 해소되어 있다.

(황심원/ 아직 아니다)

 

꽃은 떨어지고/ 강물은 흐르는데,/ 쓸쓸한 비탈 길에 구겨진 들풀들은/ 지조로 굳어진 바위와 이웃하여/ 가지에 겨운 진리를 안았는데/ 나무는/ 나무마다 반역에 뜨거워/ 그렇게도 수다한 언약을 범하면서/ 텅 빈 몸뚱이만 굽이칩니다.

(심일섭/ 裸木)

 

나는 진리를 알았을 때/ 그것이 친구라고 믿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고 느꼈을 때/ 나는 이미 역겨웠다// 그러나 진리는 영원하다/ 그러므로 진리를 모르고 지낸 자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모른다.

(뮈세/ 슬픔)

 

진리의 영원함을/ 저 아이들의 가슴에/타는 촛불이 되게 하시고

(황금찬/ 아이들을 위한 기도)

 

그러나 보라,/ 여인은 하루 사이에 변하고야마니/ 영원한 진리는,/ "여인이여, 그대의 맹세는 모래 위에 찍어 놓은 것"/ 이 한 마디뿐.

(바이런/ 여인에게)

 

오늘은 주말의 푸른 바다 수도보다 높은산들 또는 먼 나라의 도타운 미풍을 바라보며/ 매일같이 매일같이 자못 파손된/ 진리의 모습을 고르다!

(김현승/ 주말동경)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공허를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김현승/ 가을의 시)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 이것이 인간 세상에서 인간이 알고있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다.

(키츠/ 그리스 옛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설 교 노 트

 

진리가 무엇인가

요8:1-11

 

서론

진리 되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던 빌라도만큼이나 인간은 진리에 대해서 무지하고 어두운 존재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율법과 사랑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케 하는 것입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재판하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인간의 본질적 문제였습니다. 진리가 아니면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공통 질문이었습니다. 공의대로 심판하면 사랑은 무기력하고 사랑을 강조하면 공의가 무너지는 두 가지 상반된 질문 앞에서 때로는 예수께서 잠잠하셨던 것처럼 참 진리가 보이지 않고 해답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대답인 것입니다.

 

2. 정죄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질문이 자신들에게는 의기양양한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죄를 범한 여인에게는 생사가 걸려있는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영생의 진리는 결코 말장난이나 철학적 공상일 수 없습니다.

참 진리는 생명을 살리는데 무기력한 율법의 정죄가 아니라 죽을 자를 살리는 생명이요, 구원인 것입니다. 이 생명은 자신을 회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구원입니다. 진정한 진리는 법조문을 다른 이를 정죄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헌신함으로 생명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희생인 것입니다.

 

3. 죄를 바로 알게 하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진리란 자신을 먼저 보게 하며 자신의 죄를 먼저 보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은 여인처럼 들추어진 죄,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밝혀진 죄는 용서와 사죄의 은총을 받지만 바리새인들처럼 숨겨둔 죄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밝혀질 때에는 심판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해결받지 못한 죄는 자신을 멸망시킬 것이며, 언제나 남아 있어서 참된 자유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 앞에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깨닫고 주의 자비하심을 기다리는 자가 참으로 지혜로운 자요, 참된 구원과 자유를 얻는 자임을 생생하게 증거하신 것입니다.

 

결론

진리는 율법과 사랑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케 하는 것이며, 정죄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그리고 죄를 바로 알게 하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 일의 유익과 중요성

히5:12

 

서론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깨닫고 성장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신앙문제에 관한 영적 지식과 체험적 사실이 결핍되어 있다고 책망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되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풍성해져야 합니다. 그들은 젖을 먹는 어린아이의 상태를 벗어난 단단한 식물을 소화시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1. 진리를 아는 데 필요한 조건

(1) 두 부류의 지식

① 육적인 지식:이 지식은 성령과 전혀 관계없는 사물에 대한 이성적인 지식을 말합니 다.

② 영적인 지식:이 지식은 사물에 대한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심령의 깊은 관심을 말합니다. 이것은 주로 마음의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2) 두 부류의 지식이 필요한 면

① 각 지식이 갖는 중요성:진리에 대한 영적인 지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육적인 지식도 더불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육적인 지식이 없이 영적인 지식을 갖는다는 것은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을 아는 데 있어서의 각 지식의 중요성: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하기를 어느 중요한 한 가지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그 지식을 깨닫는 데 필요한 또 다른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적 지식도 배가시켜야 합니다.

 

2. 진리에 관한 지적 성장의 중요성

(1) 진리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데 있어서 효과적인 역할을 감당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수단으로써 효율적인 것은 진리에 관한 지식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믿음을 지닐 수 없으며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2) 지식은 이교(異敎)에 대한 분별력을 키워줍니다.

성도로서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면 무지하고 야만스러운 이교도들과 똑같게 됩니다. 이교도들은 한결같이 진리에 관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그 지식이 없기때문에 영적 무지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3) 진리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인간이 갖고 있는 이성의 기능도 헛된 것입니다.

이성의 역할은 사물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와 지식을 터득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관한 지식이 없다면 이성이 갖는 기능이나 역할을 한낱 쓸모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육적인 지식만 있고 진리에 관한 지식이 없다면 우리 이성의 기능은 헛된 것이며 우리는 총명한 두뇌를 가진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 외에 다른 목적으로 우리의 육적인 지식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4) 진리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알려진 것들 중에 진리처럼 가치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깨달으면 하늘나라를 소유한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진리의 대상은 영원 무궁하신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진리는 무한한 가치가 있습니다. 즉, 진리는 하나님과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영적인 세계를 가르쳐 주는 성령의 역사에 대해 계시해 주고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진리에 관한 지식을 갖게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보람된 삶을 살게 되며 진정한 행복을 맛볼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욱 많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라

잠23:23

 

서론

"진리가 무엇이냐? "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는 관정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를 연구한 사람은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답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말씀으로(요14:6) 예수님 자신이 직접 선포하셨습니다.

 

1. 진리를 사기에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이상 예수님의 말씀 외에도 하나님이 진리시요(시31:5), 성령님이 진리시요(요14:17),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요17:17). 그런고로 이 귀중한 진리는 반드시 사야 하나니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던 장자가 마침 좋은 진주를 만나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는 것과 같습니다(마13:45-46). 진리를 사기 위하여 다른 귀중한 것을 다 팔아 오로지 진리를 사는데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 내가 살 수 있습니다.

 

2. 사 놓은 진리를 잘 확보하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는 귀한 진주(보화)와 같아서 사서 내 것을 후에는 잘 보관해서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수해야 할 것이요, 도적을 맞지 않도록 늘 조심하여 보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고 하여 확보하라고 지시하신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소유한 보배인 진리를 빼앗으려고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여 침투해 옵니다. 마귀는 진리가 탐나서 얻으려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소유한 것을 시기 질투하여 이를 빼앗아 파괴시키어 보화가 보화노릇을 못하게 하려는 악심에서 나옵니다.

 

3. 진리를 다시 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진리를 팔아서는 안 되고 죽는 한이 있어도 진리를 버려서도 안 됩니다. 다른 재산을 다 팔아 산 보배요, 다시 다른 무엇으로든지 바꿀 수 없는 최상 최고의 것을 이미 소유했으니 다른 무엇을 또 얻으려고 이 진리를 팔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자본으로 하여 진리의 종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되, 진리의 증언자가 되어야 하며, 진리를 자랑하는 나팔수가 되어야 하며 진리를 나타나 보여주는 전시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불충분한 종처럼, 진리를 사장(死藏)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진리를 활용하고 선용하고 진리를 효과있게 나타내야할 것입니다.

 

결론

진리의 사람이 된 우리 성도들은 진리를 사서 간직하며, 효과있게 선용하여 진리가 되게 합시다.

진 실

성 경 활 용

1. 어디서 진실해야 하는가?

(1) 생활에서

(고후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2) 하나님의 말씀에서

(벧전2: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3) 예배에서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4) 성도의 사랑에서

(고후8:8)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다

관련원어풀이

1. @m'a; 아-만

(1) 손으로 양육하다, 아이를 나르다.

(민11:12, 애4:5)

(2) 견고하다, 굳건하다.

(시l2:2, 31:24)

(3) 신실하다, 믿을만하다, 확실하다.

(민12:7, 사49:7)

(4) 확실하다, 틀림없다.

(35:9, 시l9:8)

 

2. !n;m]a; 아-므남-

참으로, 진실로.

(욥9:2, 사37:18)

 

3. tm,a, 에메트

(1) 견고, 확고, 영구.

(사39:8, 수2:12)

(2) 신실, 믿음, 신임.

(시25:10, 사59:14)

(3) 결백, 정직, 온유, 공평.

(출18:21, 시19:20)

(4) 진실, 진리.

(창42:16, 잠22:21)

 

4. rr'B; 바-라르

(1) 분리시키다, 쪼개다.

(겔20:38)

(2) 고르다.

(대상9:22, 느5:18)

(3) 순수하게, 참으로.

(욥33:3, 시19:9)

(4) 자신을 정결케 하다, 새롭게 하다.

(단12:10)

 

5. aJplovth" 하플로테-스

(1) 단순, 소박, 진지, 성실.

(고후11:3, 골3:22)

(2) 너그러움, 관용, 관대.

(롬12:8, 고후8:2)

설교예화자료

각본을 초월한 사랑

 

12월 호 「가이드 포스트」라는 잡지 속에 다음과 같은 실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느 작은 동리였습니다. 벌써 옛날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날 밤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워리는 9살, 실은 4학년이어야 했는데 2학년이었습니다. 지적 능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2학년 꼬마 친구들의 사랑을 받는 워리이기도 했습니다. 키가 커서 게임할 때마다 이기므로, 꼬마들은 워리를 항시 빼놓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웃음과 도움으로 꼬마들을 쫓아다녔습니다.

그해도 성탄절이 가까워지자, 워리는 퉁소를 든 목동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워리에게 더 중요한 역을 맡겼습니다. 여관집 주인역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워리가 요셉과 마리아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면 연극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탄절날이 오고, 교회에는 수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드디어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여관집 문을 힘 있게 두드렸습니다.

"워리 !"

여관집 주인이 나왔습니다.

"무엇을 원하시오."

"머무를 방을 구합니다. "

"없소. 여관은 모두 찼소. 딴 곳을 찾아보오."

"주인! 우리는 멀리서 왔습니다. 아내는 출산할 날이 찼고! 쉬어야 할 곳이 필요합니다"

이때였습니다. 워리는 마리아를 오래 쳐다보았습니다. 말도 없이 오래 쳐다보았습니다.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 주던 선생님은 큰 야단이 났습니다. 대사를 잊은 줄 알고 자꾸 읽어 주었습니다.

마리아를 쳐다보던 워리-각본대로 "안돼요. 가버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듯이 뒤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각본에 워리는 안방에 들어가야 했으나 워리는 문간에 서서, 걱정과 눈물로 마리아와 요셉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워리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물론 그것은 각본에도 성경에도 없는 소리였습니다.

"요셉, 마리아 !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돌아와요."

얼굴에 미소를 활짝 띤 여관집 주인, 워리 !

"내 안방을 써요. 내 방에서 쉬란 말이오."

어떤 이는 연극을 망쳤다고 하지만 이 장면을 지켜본 수많은 관중들은 가장 뜻깊은 크리스마스 연극을 보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서 배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사물을바라보는 순진성과 진실성은 특별히 오늘의 우리 세계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각본과 스케줄에 얽매어 사는 현대 인들이·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요구에 얼마나 잘 순종하고있는지?

 

 

진실한 기도

 

아르스의 주임 신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르스 마을에 가난한 농부가 살았는데 그는 마을로 가는 길이나 일을 하고 돌아올 때는언제나 성당에 들렀습니다. 그 농부는 문간에 괭이와 짐 묶음을 내려 놓고 감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몇 시간씩이나 기도를 드리곤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임 신부는 이러한 그의 모습을 몇 번이나 목격 했으며 그때마다 농부가 감실을 주시하고 입을 다문 채, 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매우 궁금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신부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매 일 성당에 와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는데 도대체 하나님께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

농부는 신부의 물음에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무엇을 바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을 바라볼 따름이며 하나님도 나를 바라만 보십니다. "

 

 

만종

 

여러분은 밀레의 유명한 그림 '만종'을 모두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들에서 머리를 숙인 채 기도하는 농부와 그의 아내를 그린 것입니다. 멀리 교회의 첨탑이 보입니다. 만종이 울리는 것을 듣는 이러한 순간은 생에 있어 가장 진실된 순간일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예술가가 원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여기 그림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밀레는 프랑스 노르망디의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우연히 그가 가족 성경에서 본 장면들을 스케치하였습니다. 이 스케치를 본 한 예술가는 어린 쟝이 미술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회에서는 그를 파리에 보내기 위하여 장학금을 주었으나 철저한 기독교인 인 장은 사악한 예술이라고 말하며 파리의 미술을 혐오하였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낮에는 들에서 일하며 밤에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27세가 되자 그는 80-90점에 달하는 아름다운 소재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느 날 그는 소망을 말했습니다. "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는 작업을 착수하였습니다. 그림이 완성 되었을 때, 그는 친구에게 그림을 보여주며 제목을 붙여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만종이라네. 나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네."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밀레는 행복하였습니다. 그는 그림에 새로운 위엄을 첨가한 것입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헌신 위에 새로운 매력을 덧붙인 것입니다.

 

 

진실과 거짓

 

다수의 사람들은 내게 와서 서러 가지 문제들을 결정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 수는 백만여 통이나 이르는데 단 한 가지도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단 공통되고 있는 것은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거짓말을 하는 것을 모르고 말하는 것인가,그것을 어떻게 하여 가려내면 좋은가 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거짓이라는 것을 가려내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탈무드에 서는 이 두 가지를 가려내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솔로몬 왕은 매우 현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여자가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며 솔로몬 왕에게 재판을 받으러 왔습니다.

솔로몬 왕은 여러 가지로 사실을 조사한 결과, 자기도 어느 쪽의 아이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유태인의 경우 소유물이 어느 쪽에 속하는가 알 수 없을 때에는,공평하게 둘로 나누는 것이 통상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이 아이를 칼로 두 도막으로 자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한쪽 어머니는 갑자기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그렇게 하려거든 그 아이를 저쪽 여자에게 넘겨주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솔로몬 왕든 "너야말로 진짜 어머니다!"라고 하며 아이를 넘겨주었습니다.

부부에게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둘 다 사내 아이였는데, 한쪽 아이는 여자가 딴 남자와의불륜 관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가 어떤 사람에게 두 아이 중 하나는 아버지가 다른 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어느 쪽이 자기 아이인지 가려낼 수 없었습니다.

그후 남편이 중대한 병에 걸렀습니다. 그는 죽음을 예측하고 유서를 남겨 자기의 피를 받은 아들 쪽에 전재산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죽자 그 유서를 랍비에게 가져 가서, 랍비가 죽은 아버지의 피를 이은 아이를 가려내어야만 했습니다. 랍비는 두 아들들을 불러 부친의 무덤에 가서 무덤을 모욕하기 위해, 힘껏 막대기로 무덤을 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한쪽 아들은,

"나는 도저히 부친의 무덤을 모욕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며 울었습니다. 랍비는 드디어 그 무덤을 치지 못했던 쪽이 진짜 아들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록·시·묘사

 

진실은 진실 자체의 특별한 시간을 갖지 않는다. 진실의 시간(진실을 말해야 하는 시간)은 지금이다-항상.

(A. 슈바이처/ 나의 생활과 사상에서)

 

하나의 참(眞)은 아흔 아홉의 거짓을 이기게 되어 있으며 참을 위해 사는 사람은 반드시어떤 사명감 밑에 살게 되는 것이다.

(김형석/ 제2의 선택)

 

선이 없는 진실은 겨울과 같은 것이다. 그때는 모든 지표는 얼고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 선에서 생긴 진실은, 봄 꽃이나 여름의 공기 같은 것이다. 거기서는 꽃이 피고 생장한다.

(E. 스베덴보리)

 

종교에 있어서는 신성한 것만이 진실이다. 철학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만이 신성이다.

(L.A. 포이에르바흐/ 종교의 본질)

 

진실의 가장 큰 벗은 세월이고, 가장 큰 적은 편견이며, 변함없는 친구는 겸손이다.

(C. C. 콜튼/ 라콘)

 

나쁜 의도로 말해진 진실은, 당신이 고안해 낼 수 있는 모든 거짓말들을 능가한다.

(W. 블레이크/ 手書詩集)

 

진정한 영광은 뿌리를 깊이 박고 자기를 널리 편다. 그러나 모든 허위는 덧없는 꽃처럼 이내 땅에 떨어지니, 가짜란 영속할 수 없다.

(키케로/ 의무론)

 

거짓말은 쉽게 할 수 있으나 진실은 말하기 어렵다. 진실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김성식/ 비극이 없는 비극)

 

성실이 어떻게 우정의 조건이 될 수 있는가? 어떤 값을 치러 얻는 진실의 맛은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 정열이다.

(A. 카뮈/ 전락)

 

인간은 진실에 대해서 얼음같이 차지만, 허위에 대해서는 불처럼 뜨거워진다.

(J. 라 퐁텐)

 

진실의 길이란 한 가닥의 밧줄이다. 그 밧줄은 공중에 쳐 놓은 것이 아니라 땅 바로 위에 쳐 놓은 것이다. 타고 건너기 위한 줄이라기보다 아무래도 걸려서 넘어지라는 줄인 것 같다.

(카프카/ 죄 ·고뇌 · 희망 · 진실의 길에 대한 고찰)

 

남에게 거짓되지 않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너의 자신에 대해서도 진실하라.

(F. 베이컨/ 수필집)

 

진실과 자유는, 결과에 따라서는 항상 정직한 사람들의 주 무기가 될 것이다.

(스탈 부인)

 

진실을 말해서 악마를 모욕하라.

(H. 래티머/ 설교집)

 

등불 밑에서의 진실이 반드시 태양 빛 아래에서도 진실은 아니다.

(주베르/ 명상록)

 

어떻게 말할까 미심쩍을 땐 진실을 말하라.

(마크 트웨인/ 얼간이 윌슨의 캘린더)

 

진실은 모든 사람의 외침 이지만, 몇 사람의 농담에 불과하다.

(G. 버클리 주교)

 

순수한 진실은 군중에게 이해될 수 없고, 전염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아미엘/ 일기)

 

어떤 사람들에게는 순수한 진실이 독이 된다.

(A. 모르와/ 아리엘)

 

진실은 햇빛과 같이 외부 접촉으로 더러워지지 않는다.

(밀턴/ 이혼의 원리와 징벌)

 

깨어 있는 진실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

(워즈워드/ 불면성의 告知)

 

가장 긴 칼과, 가장 강인한 허파와, 가장 많은 소리는, 진리의 거짓 척도이다.

(B. 휘치커트/ 설교집)

 

진실을 위해서 죽어야 할 때에, 안전하게 있는 것은 인간의 파멸이다.

(R. 바인즈)

 

진실은 깊은 바다이다. 그리고 그것의 바닥을 찾아낼 만큼 깊숙히 감히 걸어 들어가는 자는 거의 없다.

(파쿼/ 복스의 계략)

 

진실은 이해될 수 있도록 말할 수는 없으며, 또 믿어지도록 말할 수도 없다.

(W. 블레이크/ 지옥의 격언)

 

진실은 일반적으로 중상 모략에 대한 가장 훌륭한 변호이다.

(A. 링컨)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두 사람이 필요하다. 한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듣는 사람이다.

(H.D. 도로우/ 콩코드와 매리맥 강에서의 한 주일 ; 수요일)

 

진실만큼 강력한 것도 없고,또 때로는 그렇게 생소한 것도 없다.

(D. 웹스터)

 

글자로 쓰는 진실이 아닌 정신 속에 진실이 참된 진실성이다.

(R.L. 스티븐슨/ 교제의 진실)

 

진실은 죽어가는 사람의 입술 위에 앉는다.

(M. 아놀드/ 소라브와 루스팀)

 

진실은 웅변과 덕성의 비결이며 도덕적 권위의 기초이다. 그것은 예술과 인생의 가장 높은 정상이다.

(아미엘/ 일기)

 

허위를 쓰러뜨리는 데는 진실을 확립하는 것만큼이나 시간과 수고가 든다.

(P.M. 래덤/ 작품선집)

 

진실성은 도의의 핵심이다.

(T.H. 헉슬리/ 실제적 관념적 대학)

 

침묵을 당하는 모든 진실은 독이 된다.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은 노예와 수령의 종교이다. 진실은 자유인의 신이다.

(M. 고리키/ 빈민굴)

 

진실은 기름이 물에 뜨듯이 거짓말 위에 떠오른다.

(스토라파롤/ 익살맞은 밤)

 

진실성은 말 속에 있지 않고, 진실을 전달하려는 의도에 있다.

(S.T. 코울리지/ 전기문학)

 

바보들에게, 진실은 쓰고 비위에 거슬리지만 거짓은 달콤하고 유쾌하다.

(성 크리소스톰/ 금언집)

 

오랜 신앙이 사방에 그들의 촛불을 밝혀도 건장한 진실이 나타나 그것들을 꺼버린다.

(L.W. 리즈/ 진리)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진실에 대한 공포이다.

(아미엘/ 일기)

 

반쪽의 진실은 허위보다도 무섭다.

(포이히타스레벤/ 경구집)

 

진실은 시간처럼 인간의 교제에서 생기고 인간의 교제에 좌우되는 관념이다.

(I. 디너슨/ 일곱 가지 공포소설)

 

진실이 장화를 신고 있는 동안 거짓말은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

(C.H. 스퍼전/ 진실과 허위)

 

진실에 대항하는 거짓은 힘이 없다.

(J. 리드게이트/ 테베스 이야기)

 

진실이 남아 있는 한가면은 찢겨 벗어진다.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

 

어린애들과 바보는 진실을 말한다.

(J. 릴리/ 헨디미언)

 

진실에 항복하는 것이 옳다.

(호라티우스/ 풍자시집)

 

진실은 시간의 자녀이다.

(J. 포드/ 실연)

 

진실은 그 속에서 미(美)가 종종 싹틀 수 있는 강력한 퇴비이다

(C. 몰리/ 인워드 호)

 

우리는 진실의 영상을 지각하고 거짓말만을 소유한다.

(파스칼/ 명상록)

 

지금 하나의 진실을 읽기 위하여 우리들의 눈앞에 커다란 책은 펴져 있다/허나 어떠한 진실을 고하기 위해 끝없는 하늘의 푸름 속에서 수없는 참새들은 날개치는 것일까.

(능삼수삼/ 쏟아지는 낙엽에게)

 

진실은/ 진실은/ 지금 잠자는 곰팡이뿐이다/ 지금 잠자는 곰팡이뿐이다.

(박용래)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창가에 무성한 벽오동 한 그루/ 비 개인 여름이면/ 더더욱 왕성한 도약/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진실입니다.

(홍문표/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골고다에서 진 바람은/ 아무런 기적도 나타내지 않았지만/ 진실은/ 찢기고 바래인 누더기임을/ 피 흘려 쓰러지며/ 무력해서 강한것임을/ 일러 주었다.

(김광림/ 사랑)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버리고

(김남조/ 겨울 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김남조/ 생명)

 

가을과 바다, 백조와 바위, 모든 것은/ 다른 영상을 위한 다른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백조 또는 나의 진실에 부딪쳐서 바수어진 바위/ 나는 자기의 물의 진실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것을 말한다.

(J.G. 프레이저/ 悲歌)

 

진실을 은폐하는 일보다/ 더 큰 죄를 짓지않게 하소서

(정호승/ 새벽편지)

 

이웃 수도원에서 수도자들 사이에 말다툼이/ 생기자 스승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스승이/ 어떤 무리에건 책임지고 사랑과 화목을 가져다 줄/수 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 이번에 스승은 그 실력을 보여주었다:"어느 때고 여러분이 누구하고 있거나 또는 누구를/ 생각할 때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 나는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람도 죽어가고/ 있다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여러분이 말하고 있는/ 그 말의 진실을 체험해 보십시오./ 여러분 각자가 이를 실친할 것을 동의한다면, 쓸쓸한 관계가/ 사그라지고 서로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 "// 그 말을 하고서 그는 사라졌다.

(앤소니 드 멜로/ 계시)

 

주의 상처가 말하는 쓰라린 진실을 숨기게하는/ 전통과 점잖은 베일을 찢어발겨 망각에 묻어두자.

(개스코인/ 이 사람을 보라)

 

하늘에 불타는 별빛보다 더 진실한 것/그이의 사랑에 넘친 눈이라 믿었더니만/ 돋은 별 찬란히 계속 빛나고 있는 데/ 내 유성 사라져 간 곳이 없습니다.

(그레이브스/ 유성)

 

겨울이 되면 나무의 액이 뿌리를 찾아/ 땅밑에 내려감같이/ 인간 세상의 겨울을 맞은 나는/ 진실의 사랑이며 영원의 뿌리이신/ 당신 밖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지금 떠나는 것입니다// 당신도, 당신의 가르치심도/ 진실된 영혼이 지닌 사랑의 마음을/ 조종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단/ 그리스도 찬가)

 

사랑해야 할 것은/우리가 진정 사랑할 것은/ 우리 심장에 새겨둔 진실의 검.

(이승록/ 목포)

 

세상을 진실하게 살고 싶다/ 참으로 진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독하고 슬픈 일이지만/때묻지 아니한 보석처럼 세상을 살고 싶다/ 구름이 뒤덮이고 안개가 덮혀도/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

(정일홍/ 진실하게 살고 싶다)

 

정성을 다하여 노래를 부르자/ 마음을 모두 묶어 기도드리며/ 진실을 풀어 주님께 드리라.

(황금찬/ 예배를 위하여)

 

가질 수 있을 만큼/ 사랑을 주시고/ 진실위에/ 저 아이들의 흘린 눈물만큼/ 깨달음이 있게 하십시오.

(김용길/ 아이들을 위한 기도)

 

진실을 향한 우리들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 그의 손목에 놓인 못은/ 더 깊이 박혀 들어가고/ 마침내 우리가 침묵할 때/ 그는 조용히 죽어가지 않았던가.

(서덕석/ 소리가 이긴지라)

 

거짓말은 하는 사람은 추켜 올려 진답니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호위를 필요 한답니다 그러나 그전 호위는/ 어디에도 없답니다.

(브레히트/ 그런데 당신의 나라에서는?)

 

진실은 마음 어느 구석/ 사람 나름이라는 인정의 길을/ 엎치락 뒤치락하기야/ 산다는 의미의 착각을/ 저녁 놀라운 아쉬워한 적도

(박태진/ 하 세월)

 

영혼으로/ 움직이는 손/ 말보다 완전하게/ 그는 듣는다/ 말로는 한 번도 되지 않고/ 진실/무얼 말하는지/그는 안다.

(신달자/ 기도)

 

순백 모노크롬으로 눈은/우리들이 그리고 지우며 덧칠하기도 한/ 형형색색의 진실과 거짓, 아픔과 소망을/ 마침내 하나로 이루려하는가.

(이수익/ 폭설)

 

잠깐 손 멈추고/ 하늘 보면/ 진실은 어둠 속에 묻혀 가고/ 언어는 늘 우리 안에 무성코나

(정희수/ 황혼에 서서)

 

 

설 교 노 트

 

빛의 열매

엡5:8-9

 

서론

여호와는 빛이시요, 우리들은 빛의 자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흑암에 사는 백성들이 이 큰빛을 보았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도 빛이 비추었습니다. 빛에는 놀라운 생명력이 있으며, 이 생명의 빛이 비치는 곳에는 어둠이 물러갑니다.

빛은 어느 곳이든지 똥고 들어갑니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빛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1. 모든 착함

착한 사람은 남에게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만일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서도 철면피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빛의 자녀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게 했다면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아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은 남을 유익하게 합니다. 타인을 짓밟고 돈을 번다든지 타인의 생명을 아무렇게나 취급하면서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자는 점점 커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착한 종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의로움

한없이 착하기만 하고 의롭지 못하면 연약해집니다. 또한 착함이 없는 의로움은 진정한 의로움이 아닙니다. 악을 벌할 때는 의로움으로 해야 합니다.

의롭지 못한 자가 지도자가 되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부정, 부패, 부조리를 의롭게 다스려야 합니다. 의로운 성도가 있는 곳에는 불의가 머물 수 없습니다. 물리치고 뽑아내지 않으면 내 자신이 부패하고 맙니다.

주님은 기쁘시게 하는 의를 행하는 자를 선대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의를 행하되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진실함

진실치 못한 착함이나 의로움은 허풍일 뿐입니다. 거짓일 뿐입니다. 진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성도,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가짜입니다.진실이 곧 생명 입니다. 진실이 곧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진실한 학생, 성도, 진실한 교회, 진실한 지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진실하게 살 때에 참 평안이 옵니다. 모든 사람이 진실하게 살지 못하므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의 모든 착함과 의로움,그리고 진실함 등 빛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진실이 있는지 보라

창42:16

 

서론

일찍이 요셉이 바로의 꿈에 의하여 해몽하기를 천하가 크게 칠 년 동안 흉년이 들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 말대로 온 애굽 땅과 가나안 지방까지 흉년이 있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이 곡식을 구하려고 애굽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바로 이 형들에 의하여 애굽의 종으로 팔리게 되었으나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1. 진실한 역사를 고백하는 요셉의 형들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 와서 공교롭게도 이전에 자기들의 아우가 꿈꾸었던 내용과 같이 아우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이 자신의 형임을 한눈에 알아보았으나 그들이 진실성을 타진하기 위하여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고 위협하였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의 역사를 소개하며 진실을 고백하였습니다.

요셉은 "너희 말째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고 하여 그들이 진실한가를 알아보겠다고 하였습니다.

 

2. 진실로 회개하는 요셉의 형들

요셉은 형들을 삼 일간 가두었다가 일방으로 관후책을 쓰면서 한 사람만 대표로 인질로 옥에 갇히게 하고 나머지는 돌아가서 굶주린 가족들을 구하고 말째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면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음으로 그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라고 말하며 형제간의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자책을 느끼며 진실한 회개를 하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목도하는 당사자인 요셉도 내심으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3. 진실이 효과를 본 요셉의 형들

요셉의 형들은 과거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우 요셉을 시기하여 질투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과거의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진실한 회개로 신앙을 나타내므로 요셉은 오히려 크게 기뻐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곧 이 진실한 회개였습니다. 물론 범죄하지 않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범죄하였어도 잘못을 깨달았을 때는 남의 핑계나 원망을 하지 말고 스스로 진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와 사람에게 인정받는 길입니다.

 

결론

요셉은 형들에게 진실이 있는가 보리라고 하더니 과연 이 일이 적중되었습니다.

형들에게서 진실을 발견하게 될 때, 형들을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형들은 진실함을 인정받아서 요셉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l17:2

 

서론

본문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 중에서 그 크신 인자와 그 영원하신 진실이신데 특히 진실하심이 영원하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진실하다는 말의 뜻

헬라 원어의 뜻을 풀어보면 "순수한, 섞이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대한 바른 태도를 정의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여러 종류가 혼합되는 것을 경건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여 금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22장 9-11절에서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다른 나라 신들과 구별하듯 열국에서 스스로를 구별하였습니다.

이런 구별은 예수님의 산상 교훈에서도 잘 나타나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마6:24).

특히 신약에서의 "진실"은 단지 여러 덕 중의 한 가지가 아니라 모든 뜻을 포용하는 태도입니다.

빌립보서 1장 9-11절에 보면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사랑, 지식, 총명, 선, 의 등이 진실하여 허물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였으니 모든 덕을 감싸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이 좋아도 무례하게 행치 아니하는 진실이 필요한 것입니다.

 

2. 진실은 영원합니다.

진실의 특성은 변치 않은 일입니다. 이랬다저랬다 하여 가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는 일입니다(시15:. 4).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나리라"고 한 말씀(고후1:20)이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멘"이란 말이 "진실로 그러합니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멘이시요(사65:16),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창조의 근본"이라고 하셨습니다(계3:14). 그러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하신 신이신고로 변함이 없으시고 변치 않으시니 영원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고로 그 진실하신 여호와를 영원토록 찬양하며 그 공로를 칭송해야할 것입니다.

 

결론

진실하심이 영원하심을 믿는다면 우리의 신앙도 역시 진실하여서 변치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받아 누리게 됩니다.

징 계

성 경 활 용

1.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징계하시나?

(1) 자기 뜻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히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2) 근실히 해야 한다.

(잠13:24)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3) 죽일 마음을 가져선 안된다.

(잠19:18)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2.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징계하시나?

(1) 말씀으로 하신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호7:12) 내가 나의 그물을 그 위에 쳐서 공중의 새처럼 떨어뜨리고 전에 그 공회에들려준 대로 저희를 징계하리라

(2) 엄하게 하신다.

(잠15:10)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3) 병상의 고통을 주신다.

(욥33:19)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4) 판단받게 하신다.

(고전11: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3. 여호와께서는 어떤 자를 징계하시는가?

(1) 악한 자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2) 아들

(히12:7)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3) 미련한 자

(창16:22)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4) 사랑하는 자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잠3:12)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4. 징계의 대상은 누구인가?

(1) 거역하는 자를 징계하신다.

(딤후2: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2) 자식을 징계하신다.

(잠13:24)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그 자식을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5. 하나님은 어떤 때, 왜 징계를 하시는가?

(1) 인간이 말씀을 버릴 때 하신다.

(시89:30-32) 만일 그 자손이 내 법을 버리며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

(2)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하신다.

(삼하7:14)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막대기와 일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3) 인간이 육체를 위해 심을 매 징계하신다.

(갈6:7-8)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은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4) 인간이 하나님을 화나게 할 때 징계하신다.

(시6:1)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노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시38:1)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6. 징계는 어떤 효력이 있는가?

(1) 생명길로 행하게 한다.

(잠10: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 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2)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들이 되게 한다.

(히12: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3) 복 되게 하신다.

(욥5:17-19)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4) 온전하게 하신다.

(딤후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관련원어풀이

1. rs'y: 야-사르

(1) 징벌하다, 구타나 채찍으로 고치다.

(레26:18, 시6:2)

(2) 말로 고치다, 권고 하다, 격려하다.

(욥4:3)

 

2. rs;Wm 무-사-르

(1) 고침, 교정, 징벌.

(잠22:15)

(2) 권고, 모범.

(시5O:17)

(3) 가르침, 지식, 교리.

(잠1:2, 4:13)

 

3. snE 네-스

(1) 위로 올려진 것, 멀리서 보이는 표식.

(사5:26, 렘4:6)

(2) 표식.

(민26:10)

 

4. jk'y: 야-카흐

(1) 나타내다, 입증하다, 보여주다.

(욥13:15)

(2) 비난하다, 견책하다, 유죄로 선고하다.

(창21:25)

(3) 형벌에 의해 교정하다, 벌하다.

(욥5:17)

(4) 판단하다, 결정하다, 조정하다.

(창24:14)

(5) 주장하다, 간원하다.

(욥13:3)

 

5. hj;ke/T 토-카하트

(1) 논쟁, 힐문, 시비.

(욥13:6, 시38:15)

(2) 비난, 조소.

(잠1:23)

(3) 견책, 교정.

(시39:12)

 

6. paideuvw 파이듀오-

(1) 아이를 훈육하다, 훈련하다.

(행22:3)

(2) 가르침을 받다. 배우다.

(딤전1:20)

(3) 배우게 하다.

(딛2:12)

(4) 채찍으로 벌하다, 채찍질하다

(눅23:16, 히12:7)

 

7. paideiva 파이데이아

(1) 교훈, 훈련, 훈육.

(엡6:4)

(2) 교육, 단련.

(딤후3:16)

(3) 교정, 정벌.

(히12:5)

 

8. paideuthv" 파이듀테-스

훈련자, 교사.

(롬2:20)

설교예화자료

자신을 때린 어머니

 

중국인 선교사인 를랑 왕(Leland Wang)이 그리스도의 대속하심을 생생히 말해 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일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그가 심술을 부렸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는 회초리를 손에 들고, 벌을 주려고 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아났고, 어머니가 그를 잡지 못하자 어머니에게 약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그 작고 약삭빠른 아들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가만히 서서 말했습니다.

"잘못하고도 어머니에게 기꺼이 벌을 받지 않으려는 아들을 키웠다니 몹시 나 자신이 부끄럽구나. 나 자신을 벌해야만 하겠다. "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의 맨팔뚝을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를랑의 마음은 너무도 아팠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겨서, 어머니를 때리지 말고 자기를 벌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벌은 이제 더 이상 필요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 사건의 추억이 그로 하여금, 우리를 대신하여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이해하게 한다고 를랑 씨가 말했습니다.

 

 

심술궂은 나귀

 

몹시 심술궂은 나귀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심술이 심한지 산으로 가려고 하면 물쪽으로 가고, 앞으로 끌면 뒤로 물러서는 아주 못된 나귀였습니다.

한 번씩 일을 시키려면 너무도 꾀를 부리고 말을 안 들어 때려도 보고 살살 토닥거려도 보고 별것을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귀의 주인은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당장 마귀를 버리거나 죽일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나귀 등에 짐을 싣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 언덕길을 오를 때였습니다. 나귀는 또 장난을 하고 싶어 술취한 사람처럼비틀거렸습니다. 금방이라도 언덕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아 주인은 나귀 등을 살살 어루만지며,

"나귀야, 제발 얌전히 좀 걸어라. 잘못하면 크게 다친다. "

하고 달랬으나 나귀는 주인의 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흔들거리며 걸었습니다.

흔들흔들 언덕을 올라 낭떠러지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나귀는 더욱 장난이 심해졌습니다. 금방이라도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듯해서 놀란 주인은 얼른 나귀의 몸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귀는 여전히 몸을 흔들며 주인을 낭떠러지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었습니다.

"좋다. 이 못된 나귀야, 떨어져 죽든 말든 어디 네 맘대로 해라."

화가 난 주인은 마침내 나귀를 끌고 가던 끈을 놓고 말았습니다.

 

 

어록·시·묘사

 

나는 내 죄를 모른다. 내 안에 있는 그 무지한 힘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나는 한 번도 몰랐다. 그 힘이 나가는 길에서 파괴한 것. 그것에 나 자신이 짓눌려 내려서 놀라지 않았는가?

(F. 모리아크/ 테레즈 데케이루)

 

죄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형벌도 엄하다.

(볼테르)

 

사람은 죄 의식으로 말미암아 범행을 멀리하게 된다.

(S. 프로이트)

 

인간은 죄에 의해서 벌을 받는다. 죄 때문은 아니다.

(A. 하버드)

 

죄는 죄지은 자를 못살게 할 것이며, 그가 죄를 짓는 한 영구히 그러하다.

(M.M. 에디/ 과학과 건강)

 

죄는 죽음을 가져 온다. 그러나 죄가 소멸하면 죽음도 사라진다.

(M.M. 에디/ 과학과 건강)

 

공허도 아니요, 바다도 아니다. 깊은 산 바위 틈에 들어 숨어도, 일찍 내가 지은 악업의 재앙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피할 곳 없나니.

(법구경 악행품)

 

금시 짜낸 쇠젖은 상하지 않듯, 재어 덮인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어진 죄가 당장에는 안 보이나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법구경 우암품)

 

"간(肝)이 병들면 눈이 볼 수 없고 신(腎)이 병들면 귀가 듣지 못하나니" 병은 사람이 못 보는 곳에 일어나되 반드시 사람이 없는 곳에 나타나는지라. 그러므로 사람이 밝히 보는 곳에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사람이 안 보는 곳에서 죄를 짓지 말라.

(채근담)

 

죄는 지을 수 없는 상처다.

(장자)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런고로 범죄한 자가 영원히 멸망한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지식이다.

(김교신/ 농담무용)

 

도둑질하는 사람은 생쥐의 발소리에도 깜짝 놀란다.

(영국 속담)

 

죄를 미워하고, 죄인 때문에는 슬퍼하라,

(영국 속담)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유태인 격언)

 

실제적으로 가능하다면 사회에서 방치하고 모든 사람이 철저하게 무시해 버리는 것 이상으로 가혹한 처벌은 없다.

(W. 제임스/ 심리학의 원칙)

 

이 형벌이란 반드시 형벌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덕화(德化)로 가르쳐도 변할 줄 모르거나 좋은 길로 인도해도 따를 줄 모르거나 의리를 상하게 하고 풍속을 더럽히는 사람에게는 부득이 형벌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 가지 형벌을 마련하는 데는 반드시 천륜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일단 형벌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는 아무리 가벼운 죄라도 이것을 놓아주는 법이 없는 것이다.

(공자가어)

 

만약 형벌을 부끄럽게 안다면, 형벌을 받지않는 것이 좋다는 결론이 된다.

(O.F.0.W. 와일드/ 옥중기)

 

형(刑)은 형이 없기를 바란다. 형벌의 이상이다. 형을 과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세상의 범죄가 전혀 자취를 감추고, 형을 과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이루려고 하는 데 있다. 장난삼아 중형을 과하고 만족하는 따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상서 우서편)

 

열쇠를 훔친 자는 벌받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 < *소악당은 사형수가 되고, 나 라를 훔친 대악당은 제후가 된다는 말>

(장자)

 

형벌은 난리를 다스리는 약이요, 덕스러운 가르침은 평화를 일으키는 쌀과 살코기다.

(후한서)

 

지친 말은 매를 맞아도 겁을 내지 않듯이 곤궁한 백성은 형벌을 겁내지 않는다.

(환관/ 남철론)

 

형틀이란 무서울 만큼 진실한 것이다.

(O. F.0. W. 와일드/ 옥중기)

 

그대들 중 누군가가 정의의 이름으로 벌을 내리려고 하면,그리하여 악의 나무에 도끼를 대려 한다면 그로 하여금 그 나무의 뿌리를 살펴보게 하라.

(K. 지브란/ 예언자)

 

형벌의 목적은 악을 예방하는 데 있다. 형벌로 선을 행하게 할 수는 없다.

(H. 만)

 

카인의 겨레여, 너의 형벌이/ 결단코 끝나는 날이 있으랴?

(C.P. 보들레르/ 아벨과 카인)

 

불빛들 창으로 매색(賣色)하고/ 매독(梅毒)은/ 문전에 팔 벌리고/ 계집들 신음을 경매에 부친다!/사지는/ 뱅뱅 돌아/‥‥/ 양가집 부녀자는 금속성 웃음을 싫어한다오/ 자궁은 죽은자식 품고 하품한다/낳지 않은 애새끼/넋이되어/ ‥‥흐트러져/ 누리 안을 헤맨다!/ 구역질하며/ 구석에서/ 음부를 찢기운 채/ 성(性)은/ 말이 없다/ 우리는.

(A. 슈트람/ 색주가)

 

민생의 착한 행실 효우목인 임휼(孝友睦 任恤)인데/ 육행(六行)의 불능자(不能者)를 팔형(八刑)으로 다스리니/이 곳의 순박(淳朴)한 백성 가르칠까 하노라.

(조항/ 삼죽사류)

 

천지는 입 덧이 나 후덥지근하고 태장(笞杖)끝 피멍진 천첩 춘향의 전신만신 캄캄한 살우에도 별 생기는 아픔을‥‥‥‥

(박재삼/ 춘향이 마음 秒)

 

나는 상처이며, 동시에 칼이다. / 손바닥이며, 동시에 맞고 있는 뺨이다. / 사지(四肢)이며동시에 고문차(拷問車)/ 사형수이며 동시에 형리이다. 나는 내 마음의 흡혈귀다.

(C. P. 보들레르/ 나와 나 자신을 벌하는 것)

 

 

설 교 노 트

 

참 아들은 징계받는다

히12:8

 

서론

징계는 필요하기 때문에 허락된 것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아야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가 참으로 좋은 줄 알아서 그대로 순종할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왜 참 아들은 징계를 받습니까?

 

1.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표입니다.

징계의 필요성을 잘 알았으면 이것을 잘 참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표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던 다윗도 그의 실수와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많은 징계의 채찍을 맞았으나 그때마다 깨닫고 회개하고 새로워짐으로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2. 징계를 참으면 큰 유익이 있습니다.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함에 참예케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아버지의 징계도 감수해야 하거든 하물며 영의 아버지의 징계는 참아야 하며 복종하면 큰 유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복종이라는 것은 그것이 음은 것에 대하여 복종하는 것일수록 행복과 생명과 영광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도 복받는 길인데 하물며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복종하여 유익이 없겠습니까? 반드시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니 그저 하나님께 복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3. 징계는 나중에 평강의 열매가 있습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싫어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징계의 씨를 심으면 열매가 맺힙니다. 징계를 당할 때 당시의 아픔만 생각하지 말고 그 뒤에 평강의 열매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아무리 평안하고 좋다고 하여도 그것 때문에 미래가 좋지 못하다면 그것을 아낌없이 내던질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의 좋은 것을 바라고 현재의 어려운 징계의 괴로움을 참아야 합니다.

 

결론

우리가 징계를 당할 때 괴로운 것부터 생각하지 말고 참 아들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된 것임을 믿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징계의 은혜

히12:5-13

 

서론

기독자의 신념에 동요를 일으킨 사람들으니 신앙을 복들아 주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격려하기 위하여 히브리서를 쓴 것입니다. 본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으나 오리겐의 말과 같이 정확한 것은 하나님만이 아시고 다만 바울의 저작설이 강하게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사랑해 주시는 동시에 때로는 징계도 하십니다. 사랑이 은혜인 것처럼 징계도 은혜입니다. 성경에는 징계(허물을 뉘우치게 경계하고 나무람)와 징벌(뒷일을 경계하는 뜻으로 벌을 줌)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징계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설교함으로 주님의 축복을 받고자 합니다.

 

1. 사랑의 표현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심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 이니라 하였으니(5-6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시다면 결코 징계하시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2. 부성애의 표현입니다.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6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7-9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적자와 같이 대우하시기 때문에 부성애의 표현이 곧 징계인 것입니다.

 

3. 축복의 표현입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11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축복 이전에 징계를 주시고 또 징계를 통하여 영광의 축복을 선물로 내려주십니다.

징계가 오면 은혜도 오는 것입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오듯이 징계는 광명한 축복의 서곡입니다. 연마와 훈련이기도 한 징계를 은혜로 받는 이에게는 영광의 축복도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가 크면 영광과 축복도 코고, 징계가 작으면 영광과 축복도 작고, 징계가 없으면 영광과 축복도 없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연약하고 또 무지하기 때문에 실수와 허물이 얼을 수 얼고 따라서 징계도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징계는 분명히 은혜입니다. 징계 중에 감사합시다.

 

 

징계에서의 승리

히12:3-13

 

서론

타락한 인간은 교만과 독선과 아집으로 하나님의 간섭을 싫어합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애정의 간섭을 싫어하듯이 인간은 독자적으로 살아보려고 합니다. 이때 인간의 불순종을 치료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하시게 됩니다.

 

1. 징계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인간성 전체가 죄로 오염되고, 인격 전체가 파괴된 우리는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더욱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회초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벼운 징계에도 깨달음이 없을 때에는 아픔과 슬픔을 주는 무거운 징계가 주어집니다.

악인은 '목이 곧고 마음이 강퍅한' 존재라서 어떠한 징계에도 바로 왕과 같이 전혀 깨달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곤고한 날에 그 원인을 깊이 사색함으로써 슬픔과 아픔의 징계를 회개의 기회로 삼습니다. 이런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입니다(히12:7-8).

그리고 12-13절에서 징계는 영적 성숙을 요구하는 고된 영적 훈련임을 밝힙니다. 하나님, 진리, 영원에 대하여 병들어 성숙하지 못하는 피곤한 손, 연약한 무릎, 저는 다리를 훈련, 연단시켜 일어나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은혜로운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치 못하고 영적 불구자 구실하는 것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언제나 젖만 먹고, 싸고 기는 아이 노릇만 한다면 무관심하게 보고 있을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징계는 하나님의 애정의 발로이며, 사랑의 구체적 간섭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 왜 하나님은 징계를 하셔야만 합니까?

6-8절에서 사랑하시는 "참아들"이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밝혀 말씀하십니다. 훌륭한 부모는 자녀에게 채찍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는 그 자녀를 참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관심과 간섭 그리고 꾸지람이 없다면 참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일 것입니다(잠3:11-12).

죄로 파괴되고 부패하여 오염된 사랑을 가진 인간에게도 이 같은 사랑의 간섭이 있는데 하물며 사랑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3. 징계를 어떻게 이기게 됩니까?

5절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채찍 앞에서 심상한 태도나 정계나 정당화하려고 생각지 맙시다. 오히려 머리를 숙이고 원인을 사색하며 잘못을 돌이켜 회개와 화복의 기회를 주신 자애로운 아버지께 감사를 올립시다. 이것은 징계를 이기는 비결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징계하심에 너무나 실망하여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징계의 채찍만 바라보지 말고 사랑이 간섭을 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봅시다.

 

결론

우리는 실패하고, 좌절하고, 가난에 몸부림치고, 질병을 앓고, 슬픈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가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에게 깨달음이 필요하고, 성장이 요구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같은 자세는 우리가 당한 징계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

욥5:17

 

서론

욥은 여러 가지 재앙으로 인하여 어려움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욥의 친구인 엘리바스는 계속 주장하기를 "복이 있나니 그런즉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고 하였습니다.

 

1.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알라고 하였습니다.

잠3:ll-12에는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고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응용하여 히브리 기자는 "징계는 참 아들이 받는 것이니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아(히12:5-8)"라고 단언하였습니다.

육체의 아비도 자식을 징계할 때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의 징계를 감수해야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2. 징계받는 자는 깨달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난을 유익한 것으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자라면 징계를 받을 때 깨달아야 합니다.

징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신앙 인격이 더욱 빛나게 됩니다. 이는 징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복종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자신을 반성하게 되고 자신의 죄를 미워하게 되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그 병을 고치기 위하여 쓴 약도 주고, 아픈 수술도 단행하고, 어떤 때는 신체의 일부를 절단 제거하기도 합니다. 이는 환자를 괴롭게 함이 목적이 아니고 잠시는 아프고 괴로워도 육체의 질병과 잘못을 완전하게 고쳐주는 과정일 뿐입니다.

 

3. 징계를 참으면 큰 복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잘 참는 자에게는 위로와 상급을 주시기 때문에 결국은 큰 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섭리와 깊은 뜻을 개닫고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도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고 치셨으나 싸매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징계를 하셔도 감수하고 축복을 더디하셔도기다릴 것이니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근실히 징계함

잠13-24

 

서론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하는 격이 되나니 자식을 사랑하는 자라면 근실히 징계하느니라"고 하였으니, 초달과 징계가 참 자녀 교육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필요불가결이 요소가 된다는 것입니다.

 

1. 조상들의 엄준한 훈육방법

옛날에는 자녀 교육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 가정에 있어서나 사회에서 형사상의 법률에 있어서까지 거칠은 방법을 쓰고 가혹한 제도로 일관해 왔던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무도하기까지 한 것이 많았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부모의 권위를 지나치게 행사함으로 인하여 자비스러움이 결여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사회는 무자비한 형벌 제도로 인하여 정화되기는 고사하고 냉혹하여졌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가장 옳은 방식이었는가는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2. 매를 치는 것이 잔인한 것이 아닙니다.

자식이 잘못하였을 때 그 부모는 자식의 잔등에 매를 들어 때립니다. 그런데 매를 맞는 잔등보다 매를 들고 때리는 부모의 마음이 더욱 많이 아픈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인데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이런 징계는 채찍을 맞음으로 당하는 고통을 가장 유익한 일입니다. 가장 큰 형벌은 범죄자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형벌이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 아니요, 사랑하는 방편입니다.

 

3. 징계의 초달은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저급하고 잔인한 동물이라도 고통스러운 훈련과정을 거치면 결국 사람의 조종에 순종하는 원리는, 사자나 곰이나 독사들도 잘 길들이면 개나 송아지같이, 모양 유순한 동물들로 만들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저하시키는 범죄들은 예리한 고통을 가함으로 가장 잘 응징이 됩니다. 보다 더 영적인 죄에 대하여 그 죄의 수치와 악을 잘 드러냄으로 근본적인 회개의 치유가 있어진다는 것입니다. 착한 마음씨를 가진 아버지가 그 사랑하는 아들을 징벌함으로 자신도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희생의 고통이요, 사랑의 결론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아버지는 자녀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따금 그는 매를 아기지 않습니다. 전능자에게는 이기성도 우유부단도 없이 죄인을 바로 잡기 위하여 징계의 채찍을 드는 것입니다.

찬 송

성 경 활 용

1. 찬송의 목적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이다.

(단4:37)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

(2)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다.

(대하23:18) 여호와의 전에서 모세의 율법을 기록한 대로 여호와에 번제를 부르고 노래하게 하였던 자더라

(3) 하나님의 이름을 송축하기 위함이다.

(시96:2)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4) 찬송으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마26: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행3:8)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5) 찬송으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행16:25)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렘20: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2. 찬송은 어떻게 드려야 하나?

(1) 성가대를 조직하여 드린다.

(대하8:14) 제사장들의 반차를 정하여 섬기게 하고 레위 사람에게도 그 직분을 맡아 매일에 합의한 대로 찬송하며

(2) 악기로 드린다.

(대상23:5) 사천은 문지기요 사천은 다윗의 찬송하기 위하여 지은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하는 자라

 

3. 찬송은 왜 해야 하나?

(1) 하나님의 요구이기 때문에

(빌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 영혼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렘20:13)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3) 여호와의 진실함이 영원함으로

(시 117: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시63: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5)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시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원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6) 우리가 살아 있으므로

(시38:19)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시115:17)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7) 우리가 보고 들었으므로

(눅2:20) 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8) 주의 이름이 있으므로

(시48:10)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끝까지 미쳤으며

(9) 주의 법을 앎으로

(시147:20) 아무 나라에게도 이 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4. 찬송받을 대상은?

(1) 하나님의 이름이시다.

(대상29:13)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시99: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2) 하나님의 능력이시다.

(시21:13)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3) 하나님의 행사이시다.

(시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요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5. 참 찬송이란?

(1) 주께 로부터 온 것이다.

(시22:25)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하는 것이다.

(시7:17) 내가 여호와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3)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이다.

(시33:2-3)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4) 주의 이름을 전파하는 것이다.

(시22: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5) 여호와께 드리는 찬송이어야 한다.

(레19:24) 제 사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6. 왜 여호와를 찬송해야 하는가?

(1) 우리의 힘이 되시기 때문이다.

(출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2) 그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시135:3)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

(3) 찬송할 위엄이 있기 때문이다.

(출15:11) 주와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이니까

 

7. 찬송하는 사람의 결과는 어떠한가?

(1)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시40:3)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맡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2) 두려움이 없어진다.

(시56:4)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할쩌라 태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3) 마음이 영원히 살게 된다.

(시22:26)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관련원어풀이

1. &r,B, 바-라크

(1) 무릎을 꿇다.

(대하6:13, 시95:6)

(2) 하나님께 빌다,찬양하다,축하하다,숭배하다.

(대상29:20, 단6:11)

(3) 축복을 받다, 찬양을 받다.

(욥1:21)

(4) 축복받다.

(신33:13)

 

2. hL;hiT] 테힐라-

(1) 찬송, 찬양.

(시22:2, 48:ll)

(2) 찬양받을 사람, 칭송받을 자.

(신26:19, 사42:8)

 

3. rm'z: 자마르

(1) 노래부르다, 잘라 버리다.

(삿5:3, 시9:12)

(2) 악기를 연주하다.

(시33:2, 71:22)

 

4. eujlogiva 율로기아

(1) 찬양, 칭찬, 찬미.

(계15:12, 7:12)

(2) 축도, 축복하는 일.

(히12:17, 약3:10)

(3) 봉헌, 축도.

(고전10:16)

 

5. u{mno" 훔노스

하나님을 찬미하는 노래, 성가.

(엡5:19, 골3:16)

 

6. yalmov" 팔모스

찬양의 노래, 구약의 시편.

(눅20:42, 골3:16)

설교예화자료

운명의 잠수함에 찬송가와 안정제

 

영국 출판 협회는 신기한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한 영국 잠수함이 해저에서 꼼짝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틀 후 그 잠수함이 물 위로 떠오르리라는 희망은 좌절되었습니다. 지휘 장교의 명령에 따라 선원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우리와 함에 하소서! 빨리 떨어지는 저녁에 어둠이 깊어질 때 - 주님, 우리를 지켜주소서! 다른 구원자가 실패하고 위안이 사라질 때- 도움없는 사람을 도와주소서. 오! 우리를 지켜 주소서!"

장교가 사병들에게 우리들은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 위의 탐사자들이 잠수함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외부 도움의 희망은 없었습니다. 안정제가 그들의 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하여 사병들에게 나누어졌습니다. 한 사병이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약효가 퍼져 기절하면서 우연히 그는 엔진이 있는 쪽으로 넘어졌습니다. 그 결과 잠수함이 물위로 떠올랐고 안전하게 항구로 갔습니다.

 

 

소년의 노랫소리

 

시인 브라우닝이 쓴 시 한 수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시의 제목은 "소년의 천사"입니다.

얘기의 주인공은 가난한 상점에서 점원 노릇을 하는 작은 소년 데오크리트였습니다.

온종일 일하면서도 그 소년은 조금도 피곤해 하지 않았습니다. 일하면서 그는 노래를 불렀으며, 그의 노래는 자신의 마음에만 기쁨이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그의 노래를 기뻐하셨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노래하며 일하고 있는 곳에 한 수도사가 지나갔습니다. 기쁨에 찬 소년의 노래를 듣자 수도사가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네 노래는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나님이 네 찬양의 노래를 들으실거다. 그러나 네가 로마의 교황이 되어,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부활절날 노래를 불렀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소리를 들은 데오크리트는 흥분한 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죽기 전 성베드로 성당에서 하나님께 찬양하게 해 주십시오."

시(詩) 중에 얘기는 계속됩니다. 이 간구의 기도를 들은 이는 천사 가브리엘이었습니다. 천사는 내려가 이 소년을 로마로 인도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의 노랫소리가 상점에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겼으며 누구보다도 하나님 자신이 소년의 노래를 아쉬워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일하면서 부르는 데오크리트의 찬양의 노래는 어찌 되었는고?"

이 말씀을 듣자 천사 가브리엘은 곧장 지상으로 내려와 자신이 데오크리트 같은 소년이 되어 상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소년이 하던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으나, 소년의 흉내는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한 소년의 노랫소리는 듣고 있으나, 그 소리에는 데오크리트의 노래처럼 어찌 경외심과 간절함이 없는고?"

이 말씀 앞에 가브리엘은 천사의 휘장을 버리고 로마로 달려갔습니다. 성베드로 성당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려고 하는 소년 데오크리트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잘못 판단했소! 당신은 여기서 장차 훌륭한 법왕이 될 수도 있겠으나 당신의 옛집에서 노래 부르는 일은 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소. 하나님이 만족해 하시지 않았소! 하나님은 당신의 작은 찬양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돌아와 다시 가난한 상점의 소년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주시오."

데오크리트는 그토록 바라던 성베드로 성당에서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가난한 집으로 돌아와 노래를 불렀을 때, 그 노래를 듣는 수많은 생명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데오크리트의 노래를 듣고 또다시 기뻐하셨습니다.

이름없는 곳에서 이름없는 사람이 부르는 찬양의 노래, 지극히 작은 자가 지극히 적은 사람에게 베푸는 지극히 작은 사랑의 봉사,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버림받은 지역에서 드리는 버림받은 자의 기도 등등, 이런 것들이 세상 사람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에게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비바람이 칠 때와

 

마리안느 파닝햄(Marianne Famingham)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찬송가는 웨일즈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풍이 휘몰아치는 저녁에 교회에서 나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멀리 바다로부터 큰 선박이 풍파에 밀려 떴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면서 암초가 많은 연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바라보기는 하지만 구출할 능력이 없는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 배가 암석에 부딪혀 동강이 나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배의 절반은 순식간에 물속 깊이 사라졌고 오직 하나의 형체가 부러진 돛대를 붙잡고 육지 쪽으로 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목사님께 확성기를 통해서 그를 위해 어떤 말을 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목사는 잠시 생각합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들리나요?"라고 외쳤습니다. "네, 네, 알았어요."

조금 후에 사람들은 찬송가 '비바람이 칠 때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 주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라는 노랫가사를 마지막으로 그 조그만 형체는 험한 바닷물 속으로 침몰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진지한 마음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그 사람은 주님과 함께하기 위하여 찬송을 부르며 떠나갔다고.

 

 

내 너를 위하여

 

프란시스 리들리 하버갈(Frances Ridley Havergal) 여사는 그녀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유학생으로 있었을 때 유명한 시들을 많이 지었습니다. 독일에서 머무르던 나날 중, 그녀는 그 유명한 스턴버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 그림 위에는 "내가 널 위해 이 모든 것을 했건만 넌 무엇을 했느냐?"라는 제목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 말에 감동된 후에 그녀가 지은 것이 그 유명한 '내 너를 위하여'인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그녀가 그 시를 완성했을 때 그 시가 마음에 안들어 불에 태우려고 하였는데,그때 통풍 장치의 바람이 그 종이 쪽지를 난로 바깥으로 날려보냈습니다. 혹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 여사는 조금 그을린 종이를 접어서 그녀의 아버지께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 시에 맞는 곡을 작곡하여 출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부르는 '내 너를 위하여'의 곡은 수년 후 P.P 블리스라는 D.L. 무디의 동료였던 사람이 지은 곡입니다. 그가 지은 곡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바로 그 위대한 "내 너를 위해 몸을 주건만 나에게 무엇을 주느냐"라는 가사의 찬송곡인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밤에는 낮을 찬양하라. 그리고 생의 최후엔 인생을 찬양하라.

(G. 허버트/ 명궁)

 

무가치한 것에 대한 찬양은, 마치 당연한 상벌의 약탈처럼, 독한 마음으로 느껴진다.

(S.T. 코울리지/ 전기문학)

 

울지 못해 부르는 노래‥‥‥

(이범선/ 묘상)

 

하늘로 돌아가는 천사는/ 계속해서 환희의 찬가를 부르며/ 여러 겹의 구름을 지나/ 멀어져 갔다/ 충실한 목자들은/ 거룩한 노래 소리가 천상으로 고요히 올라가는 것을/ 들리지 않게 될 때까지 듣고 있었다.

(만조니/ 성탄)

 

수줍은 밤을 기나긴 빛으로 단장했던/ 원과 같은 빛의 무리인 투구를 쓴 천군과/ 칼을 든 천사들이/ 마침내 그들의 시계(視界)를 둘러쓰고/ 날개 펼쳐 찬란한 대열을 짓고 나타나/ 웅장한 합창에 맞추어 절묘한 곡조로/ 새로 탄생한 하늘의 상속자를 노래한다

(밀턴/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에)

 

거룩한 성가의 눈부심 위에/ 나의 이마를 받칠 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에/ 나는 침묵을 지키겠습니다.

(J. 카수/ 독방에서 쓰여진 33의 소네트)

 

국화 속에 묻힌/ 한 오막살이 지붕 위에/ 실솔이가 올라가서/ 노래를 부른다. / 창구를 밝히며/ 성화(星火)를 나르는 밤/ 연인을 가꾸는 하나의 처녀/ 비바람이 부딪쳐도/ 부딪쳐도/ 합장한 손끝은 놓치지 말라. 태양이 촉화(濁火)처럼/ 춤을 춘다.

(오시영/ 성가)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성으로 들어오실 때/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호산나를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었다. // 기다림으로 사무치는/손, 손들처럼/ 종려나무 가지는/ 복되구나/ 참으로 복되구나.// 나귀가 되고 싶다. / 그날의 나귀가 되어/ 귀하신 손님 태우고/ 걸어 보고 싶구나.// 복된 나귀여./ 너 무슨 은총으로/ 흔드는 종려나무 가지 사이로/ 금가루 같은 말을 밟으며/ 걸어갔는가/ 복된 나귀여.// 호산나, 호산나,/ 종려나무 가지에/ 열려오는/ 축복의 말씀/ 그날의 종려나무 가지는 복되구나.// 나는 지금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귀도 될 수 없고/ 종려나무 가지도 못되는/ 가슴을 열고/ 주님 오시는 길에/ 호산나, 호산나를 불러야 한다.

(황금찬/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주님!/ 좌골보다 다리에 살이 더 많은 나는/ 천부적으로 높이 뛰는 재주를/ 받았나 봅니다.// 물론, 이 재주부림은 종종/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지오/ '남을 놀라게 만드는 존재'로 나는 불청객이 되곤 합니다. / 신경 날카로운 이웃들에겐/ 얼마나 참기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주님!/ 당신을 찬미하기 위해서 나는/ 저 높은 곳을 향해/ 이렇게 훌쩍훌쩍 뛰는 겁니다. / 아멘.

(드루트마르 크레머/ 메뚜기의 기도)

 

그러면 주여, 나는 다시 대답하여/ 이렇게 당신을 향해 노래하리까!/ 처음은 이슬이요, 나머지는 광야니 이다. / 우리의 짧은 하루는‥‥‥

(김현승/ 사랑을 말함)

 

오래인 나날을 두고 마침내/ 눈시울에 젖어드는 별들의 신비로운/ 가슴의 사연을 헤치는 밤이면/ 벽 뒤에 한밤내 울던 문들의/ 영가가 고요한 하늘에 은하처럼 흐른다. // ‥‥ 여기 언젠가는 밝아 올 아침 햇살에/ 보라빛으로 감도는 문들의 영가

(김경수/ 문들의 영가)

 

당신을 왕으로 모시기 위한 대관식은/ 무리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며/ 하늘의 천군과 천사의 합창대가/승리의 개가로 시작됩니다.

(화이트/ 이제는 승리와 영광뿐인 당신)

 

아침 이슬이 내리고 있다. / 종려는 아직 푸를 것인가/ 어서 싱싱한 가지를 장식하여/ 주님을 맞으러 나가자!/ 주님은 우리집의 방안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 이미 남녀 성도들은/ 찬미를 부르며 나가고 있다!// 나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 숨이 찹니다. / 십자가 깃발이 휘날린다 하더라도/ 나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 공기는 그렇듯 매맑습니까? /오오 예수여 나는 응석받이/ 당신께서는 내 거실에도 곰팡이 긴/ 동물에도 계시는지요!// ‥‥성모의 자격으로/ 나는 당신의 발을/ 청초한 백합화로 싸고/ 진심으로 경배하고 싶은 것입니다. / 그리하여 사랑의 꽃잎으로/ 당신을 꾸민 뒤/당신의 머리에/ 청초한 장미화관을 바치오리다. // 그러고 나서 방바닥 가득히/ 종려나무 가지를 깔고‥‥/ 이 한 해 동안 남 모르게 괴로움을 참아 온/ 내 번민을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 비록 당신의 발 아래 엎드려도/ 짜증을 부릴 수야 있겠습니까./ 그저 당신의 생각에 따를 뿐입니다. // 어떠하든지 나의 죄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는/ 당신의 사랑의 힘을/ 어찌 내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당신을 잊지는 않겠습니다. / 당신이 다시금 떠나신다 해도/ 때로 앞에 나타나시 겠지요/ 그렇게 생각할 때는기뻐집니다.

(휼스호프/ 종려주일에)

 

천국의 왕이 나셨음을/ 노래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이 또 달리 있으랴/ 어서 소리 높여 노래하여라.// "주께서 햇빛과 단비로/ 병든 대지에 꽃을 피게 하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도다. "// 이제 캄캄하고 그 침침한 밤이 지나고/우리에게 영광의 한낮을 주셨으니/ 추운 섣달이 화사한 오월이라고/ 누가 물을라치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주께서 햇빛과 단비로/ 병든 대지에 꽃을 피게 하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도다. "// 온 세상을 사랑하시는 주가 오셨으니/ 어디에 그분을 모셔 들일 것인가/ 아무리 멋지게 단장한 집이라 해도/우리 마음보다 더 고귀한 곳은 없어라.// "주께서 햇빛과 단비로/ 병든 대지에 꽃을 피게 하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도다. "// 가시나무와 담쟁이 덩굴로 화환을 만들어/ 그분에게 바치련다. / 그분은 우리의 왕/ 우리의 주시니 높이 찬양하리로다.

(헤릭/ 가장 아름다운 음악)

 

한 발 한 발 성산을 향해/ 우리는 가야 한다네./ 한 방을 한 방울,/ 쉴 새 없는 생명의 샘이/ 우리 안에서 흐르고 있네./ 천사들은 빛나는 면류관으로 노래하는데/ 우리도 그 노래를 배울 수 있을까?

(루시 라아콤/ 강을 건너서)

 

시냇물의 음악은 모든 대화를 침묵시킨다.

(H.W. 롱펠로우/ 캐버너)

 

이렇게 멋진 음악은/ 예전에는 결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태초 때 아침의 아들들이 불렀었다. / 위대한 창조주께서/ 성좌들을 고정시키고/ 멋지게 조화된 세계를 돌쩌귀에 매달고/ 깊고 어두운 기초를 던져서/ 굽이치는 물결로 물길을 이루도록 명하는 동안에.// 너희 수정 같은 천체들아 울려 퍼져라./ 우리 감각을 감동시킬 만한 힘이 있다면/우리 인간의 귀를 축복하여라./ 그리고 너의 은빛종을/ 노래의 계절에 울리게 하고/ 하늘의 그윽한 오르간의 저음도 울리게 하여/ 너의 아홉 겹 조화로 천사들의 화음에 맞추어 성대한 연주를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라.

(밀턴/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에)

 

나는 머지않아 사랑의 나라에/ 음악을 들을 겁니다. / 노래하는 강물이 흐르는 곳‥‥/ 구원의 성가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면/ 구원의 놀라움이 일어납니다.

(폴 허친스/ 사랑의 나라)

 

그 속의 모든 것이 밝은/ 아름다운 낙원!/ 하이만 옷을 입은 아름다운 천사들!/ 지칠 줄 모르는 아름다운 노래들!/ 모든 합창 맞춰 주는 아름다운 하아프!

(조지 길/ 아름다운 시온)

 

여기 언젠가는 밝아 올 아침 햇살에/ 보랏빛으로 감도는 문들의 영가.

(김경수/ 문들의 영가)

 

시몽 나도 함께 가리라, 해거름 때의 소리는/ 어린이들의 찬송가 소리처럼 우아하고 부드럽다.

(구르몽/ 성당)

 

빨래 헹구듯/ 마음 밭 다시 갈 수 있는/ 한 목소리 아가(雅歌)라// ·.멈추지 못할/ 님의 길 골고다라/ 찬미로 나섰다/ 야위도록 그 길을 간다.

(류성윤/ 수용가 65)

 

그리고 쓰지 않는 나의 시는./신께 펴뵈일, 나의 음악.

(박목월/ 비의)

 

아/ 내 작은 입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을/ 노래의 샘을 파리라/ 빛나고 거룩한 그분의 영광을/ 사랑과 자비를 찬미하고 빛내려고/ 나는 오늘 온 영의 힘을 부어/ 노래의 강을 빚는다.

(김지향/ 내 작은 입으로)

 

땅바닥도 쪼개질 듯한 칠월의/ 초록으로 빛나는 플라타너스 잎사귀 그늘에 가려/ 모습을 보이지 않는 매미가 당신의 전능하심을 찬양하며/ 계속해서 울고 있습니다.

(잠/ 14편의 기도 노래 · 5)

 

천사의 옷은 눈부시어/ 보이지 않고/ 나의 찬미는/ 아름다워/ 들리지 않네/ 아 이 짧고도 긴 순간.

(박이도/ 깨어 있을 때)

 

서툰 기도로 섬기던/ 내 입술.// 봇물 터지듯,/ 동리 물난리/ 한 소절 앞서가는/ 박수소리// 찬송은/ 입술의 열매.// 심봉사 눈뜨듯/ 지금은 말씀 들리게!// 내 치사하게 좁은/ 마음 앞뜰에/ 노래에 놀란/ 작은 꽃 있게!// 이슬받고 나와 앉은/ 약한 겹채송화.// 죽음이 한발짝 다가서도/ 내일이 두렵지 않은/ 이치(理致)의 노래 가르치소서.// 열매를 씹는 입술엔/ 뽀오얗게 피어나는/ 신나는 곡조

(정벽봉/ 찬미는)

 

어느새 휘파람 속에서 굴러 나오는/ 오- 주님 찬양의 노래/ 봄날 새처럼 즐겁기만 하다.

(최일환/ 겨울 어느 한낮)

 

있으라 하신 자리에 있사옵니다/ 깨어 일어나 기도하는 새벽부터/ 감사 찬송으로 끝맺는 밤중까지/ 때로는 고달프고 때로는 서러우나/ 오실 날짜 그 순간 기다리면서/ 휘날리는 흙먼지 속에서도 있사옵니다.

(허형만/ 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조국의 산악은 연연/ 북으로 남으로 저렇게 서로 정다이 오고 가는데//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너와는/ 착한 조국에 금 긋고, 호식에 잠들은 그러한 자들에/ 마음에도 없는 찬양의 손짓을/ 언제까지나 높이 추켜 주어야 하는가

(한무학/ 조국은 너의 것이 아니다)

 

햇빛은 아름다웁고, 달빛은 더 아름다워라./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있나니/ 예수는 더 밝게 빛나시네. 예수는 비할 데 없이 순하게 빛나시네./ 천상의 모든 천사들이/ 아무리 찬미해 도 다함 없는 주님이라네!

(작자 미상/ 가장 깨끗한 주 예수)

 

내 가슴을 아프게 하고 머리를 희게 하는/ 온갖 슬픔을 주님은 아시겠지요/ 그의 보좌는영원한 평온과/ 힘차고 즐거운 찬미로 가득차고/ 조그마한 다툼도 없는데/ 주께서 내 연약한 삶을 돌아보아 주실는지‥‥‥

(휴 밀러/ 주께서 돌보시니)

 

사월에 내리는 사나운 소나기도/ 올새의 노래를 막지 못하는데/ 우리도 슬픔에서 일어서서/ 주님 찬양을 계속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래퍼/ 이젠 걱정 없는 날)

 

황금도 없고 몰약도 없고/ 향기로운 유향도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회개할 때/ 마음의선물이 있습니다/ 천사의 성가대로부터/ 땅 위에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습니다/그러나 온 땅에는 구원된 자의/ 찬양과 기도가 있습니다.

(베티 스코트 스탬/ 크리스마스)

 

성전 안에 감추인/티 없는 그릇처럼/ 성가대가 연주하는/ 악기가 되었으면/ 비파줄이 끊어지고/ 제금들이 깨어져서/ 아름다운/ 찬송되면/ 나 바랄 것이 더 없으리

(홍안의/ 흠 없는 제물)

 

찬송받으실 거룩한 하나님/ 영광스러운 삼위일체 하나님,/ 지혜와 사랑과 능력이시여/ 충만한 자긍심으로/ 굽이치는 대양의 조류처럼 끝없는 분이시여/ 온 세상에 널리,/ 빛이 있게 하소서.

(J. 마리오트/ 빛을 발하게 하소서)

 

색들은 착하게 우지짖고/ 꽃들은 향기를 토하며/ 그 가운데서 나는 주님처럼 아름다운/ 이 계절을 찬미합니다.

(김성영/ 봄의 노래)

 

저 골짜기에서 들리는/ 찬송소리 좋으니/ 청아한 음악/ 흥겨운 가락이 나를 이끄네/ 그 노래 산울림 되어/ 내 귀를 스칠 때/ 불현듯/ 천국의 기쁠/ 새로 맛보네// 저 물구비에서 들리는/ 찬송소리 좋으니/ 조화된 음악/ 깨끗한 가락이 나를 멈추네/ 그 노래 강물이 되어/내 맘을 적실 때/홀연히/ 천국의 동산/ 내가 거니네// 저 성도의 무리 부르는/ 찬송 소리 좋으니/ 고상한 음악/ 거룩한 가락이 나를 붙드네/ 그 노래 항연이 되어/ 내 영혼 감쌀 때/ 놀라운/ 천국의 잔치/ 미리 즐기네

(홍안의/ 저 좋은 찬송소리-순담 골짜기에서)

 

바다는 끝없이 일렁이고 있다. 동해는 푸른 빛깔로 남해는 초록 빛깔로 서해는 잿빛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바닷가에 산호초는 흔들리고 있다. 갈치는 갈치대로 고래는 고래대로 새우는 새우대로 저마다 등을 굽혀 꼬리를 흔들며 조개는 아가미를 벌려 껌벅껌벅 하나님을 찬양한다. //산천에 초목은 가만히 있는가? 아니다 자세히 보라 저마다 저들 특유의 몸짓을 흔들어 가며 빛깔을 발해 가며 노래하고 있다. 춤추고 있다. 장미는 장미대로 아카시아는 아카시아대로 방긋이 기차게 벌어진 그 입술꽃잎 다하여 저마다의 최대 향기 몸짓 미소를 띄우며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를 찬양한다. // 보라. 말못하는 짐승도 저마다의 몸짓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오고 있다. 헌데 유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만이 창조주에 대한 찬양이 없고 감사가 없고 그런 모습이 아닌가. 난 지금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 내가 선 그 자리를 한 번 점검해 보자. 잃어버린 둘째 아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대상으로 기록되어진 말씀만은 아니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 오늘 내 모습은 얼마나 성령충만한 모습인가? 죄로 인해 찬양을 잃어버린 기쁨을 잃어버린 그야말로 맛 잃은 소금이 되어있진 않는지?// 일어서라. 빛을 발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나의 생활,나의 말,나의 생각,나의 노래, 나의 삶 전체를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 나를 구원하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이동녘/ 시편 구십칠편 칠절팔절 묵상)

 

한가로운 시간에 감사드립니다. / 순환하는 계절의 한 마디를 종소리로 마감하고/ 우리의삶 속에 찬송은 울려퍼집니다. / 감사하는 우리 영혼의 새벽이 밝아/ 천국문 열리길 기다립니다.

(로즈 도페/ 감사할 때의 찬송)

 

기력이 하루하루 쇠하여 가고/소망도 점점 사라져 가며,/ 두 발은 힘을 잃어 떨립니다. /무거운 짐으로 어깨는 굽어 가고/ 용기도 이제 그 모습을 감춥니다. / 의지는 약하고 밤은불편함을 주고/ 낮은 너무 짧고 바쁘오니/ 이런 근심과 피곤함 속에서 어떻게 감사해야 하나요? // 하지만 여 전히 기력은 남아 있고/ 소망은 용기와 함께 생활 속에 함께하며,/ 아직도 두 다리는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있습니다. / 어깨는 여전히 무거운 짐을 나르고/ 내 육체와 의지가 감당할 수 없을 때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도와줍니다/ 낮이나 밤이나 주님 빛을 주시고/ 고통을 이겨 가는 은혜를 주시니/ 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 육체와 정신이 필요한 모든 것/ 매일 매일 채워 주심을 감사드리며/ 그 세심한 생명의 말씀에 감사합니다. / "주님 안에 살아가는 자가 진정 사는 것이라"/ 이 땅의 삶이 화려하든 소박하든/ 낮이나 밤이나 빛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그것이 주님 가신 길 따라가는 길이오니

(엘리자베트 콘디트/ 감사드릴 수밖에)

 

그는 목사가 말할 때는 귀기울여 들었고/ 기도할 때에는 머리를 숙였네./ 헌금 그릇이 지나갈 때에/ 그는 기쁘게 제 몫을 냈다네.// 그러나 늘 찬송 부를 때가 되면/ 그는 입을 꽉 다물었네./ 힘찬 찬송이/ 약해지고 무기력하게 가라앉을 때까지.//노래를 부르지 못하기 때문만이 아니라네./ 그와 연합한 다른 사람들도 역시/ 적은 소수의 사람들이 부르는 찬양을/ 공허한 침묵으로 조롱했네.// 주여, 용서하소서./ 모든 죄와 허물 위 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귀하게 들어올리는 찬송/ 그 찬송의 영광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용서하소서.

(R.K. 웰즈/ 주를 찬양하라)

 

기쁨의 종 울리자. 내 죄사함받았네./ 잔을 넘치게 하자. 축복이 넘쳐흐른다!/ 예수께 찬양 노래 부르자/ 내 풍요함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승하도다.

(존 R. 라이스/ 기쁨의 종을 울리자)

 

나는 당신의 말씀이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없습니다. / 그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 밑에 깔린 길인 나는 그만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 주여, 나는 당신의 시편의 말씀들이 비칠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없습니다. / 거울이/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그대로 반사하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드럽게 들려오는 메아리가 될 수 없습니다. / 메아리는 단지 작은 일부만을 돌려주나 모든 말은 길게 이어져 있고/ 노래부를 때처럼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소서. 내가 당신의 노래를 부를 때/ 당신의 말씀은 바로 나 자신이 되고, 나는 힘찬 목소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내 음성은 나의 일부이오나 나의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이니/주여, 나의 영광은 잊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만이 빛나게 하소서.

(작자 미상/ 어느 성가대원의 기도)

 

우리를 사랑하사 모든 죄의 더러움에서/ 우리를 씻으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그리tm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을 삼아/ 나라들을 다스리게 하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한 번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에/ 영광과 경배와 찬미와 감사를 돌리라.

(호레이셔스 보나르/ 하나님께 영광 !)

 

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다 찬양하고/ 권능의 궁창/ 거기서도/ 주를 높이라/ 나팔을 불고 비파를 뜯어 찬양해/ 목소리 높여 우리 주를 찬양하여라//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다 찬양하고/능하신 업적 바라보고/주를 높이라/ 수금을 타고 소고를 쳐서 찬양해/ 어깨춤 추어 우리 주를/ 찬양하여라//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다 찬양하고/ 지으신 만물 가운데서/ 주를 높이라/ 퉁소를 불고 제금을 울려 찬양해/ 손뼉을 쳐서 우리 주를/ 찬양하여라

(홍안의/ 주를 찬양하라-시편 150:1-6)

 

우리가 그의 모든 사랑을 이야기할 때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넘쳐 흐릅니다. / 우리 밑에는 아직 잴 수 없는 깊음이 있고/ 측량할 수·없는 높음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인간의 입으로는 그의 놀라운 보호를 결코 다 말할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오직 찬양하며 놀랄 뿐입니다. / 영원히 그의 이름을 찬송할 뿐입니다.

(마가레트 E. 바버/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우리가/ 예수님 발 밑에 꿇어 절할 때/ 우리 구주, 주와 왕이신 그리스도께/ 찬양의 노래를 영원히 노래할 것이라네.

(루비 매켄지/ 우리와 함께 하소서)

 

 

설 교 노 트

 

하나님을 찬송하라

삼하22:1-8

 

서론

찬송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은 늘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서 귀한 영혼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윗은 무엇을 찬송하였습니까?

 

1. 반석과 요새가 되시며 건지시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의 체험에서 느낀 바대로 하나님에 관한 성호를 "반석", "요새", "건지시는 자" 등으로 불렀습니다.

다윗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의지할 수 있는 구원자이심을 믿었습니다.

"반석"은 낭떠러지의 바위로써 적으로부터 숨겨 주는 곳이며, "요새"는 공격과 포위를 막아 보호해 주는 곳으로써 적이 침범하기 어려운 곳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3절에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이시요 나의 구원자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표현들이 바로 모든 위험들 속에서도 피할 의지가 되고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다윗의 노래인 것입니다.

 

2. 환난 중에 구원하신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3-4절)

다윗은 모든 환난에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찬송할 뿐 아니라 원수와 흉악으로부터 구원하심을 찬송하였습니다.

특히 다윗은 3절에서 "구원하셨도다"라고 과거형으로 표현하였고, 4절에서는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구원해 주심을 신뢰하고, 현재에도 구원을 바라고, 미래에도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환난을 당할 때에는 급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이 많으나, 막상 환난의 풍파가 잠잠해지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할 찬송을 잊어버리는 자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하는 자는 그 고난을 피하기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즐거움이 왔을 때에도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고 감사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약5:13).

 

3.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7절).

고통 중에는 부르짖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셨습니다(요11:14). 하나님께서는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8절에 의하면, 다윗은 어릴때부터 음악적인 자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

 

결론

영적으로 어지러운 이 시대에 우리는 반석되시고 요새 되신 하나님께 찬송하며, 환난중에 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 노래로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구원의 노래

출15:1-8

 

서론

본문의 노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모세의 인도를 받아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면서 부른 찬송입니다. 이 노래는 무수한 무리들이 따라 부른 영원한 노래입니다.

이 무리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를 제의한 60만 명입니다. 실로 큰 무리가 대합창단이 되어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였습니다 그 대합창단이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반복하여 부를 적에는 그 장엄함이야말로 전무후무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이 노래는 어떤 노래였습니까?

 

1. 구원의 노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너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기쁨과 감사를 노래했습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은 삶의 기쁨이란 찾을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의 생활이었습니다.

노여움과 두려움과 저주 속에서 탄식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노예 생활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으니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게 된 것입니다. 창으로 구원받은 기쁨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 생명의 노래를, 영원한 삶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구원받은 기쁨을 하나님께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2. 놀라운 확신에 찬 노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육지같이 갈라지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포로 생활을 청산할 때, 열 가지의 재앙으로 애굽인들이 항복하고 그들을내보낸 것을 확실히 보고 체험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확신에 찬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전혀 의심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3. 소망에 찬 노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복지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절망의 나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믿게 되었습니다. 절망의 백성들이 소망을 가지는 것은 영원한 꿈의 실현입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소망의 가나안을 바라보는 신앙인의 눈에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열의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행진은 꿈의 행진이며 소망의 행진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소망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의 꿈이며 축복입니다.

 

결론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스라엘이 우렁차게 불렀던 구원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감격의 노래를 부릅시다. 영원한 축복 속에서 승리의 노래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영원까지 찬송할지어다

시4l:13

 

서론

제 1권의 마지막 장이요, 마지막 절인 본문은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아멘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원까지 찬송해야 합니다

 

1. 찬송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하였으니 과연 옳은 찬송의 대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 특히 선민으로 뽑으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민중들이 찬송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오로지 피조물을 통하여 찬송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만인간 중에서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 영원부터 찬송하였습니다.

창세기 1-2장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 자신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심은 있으나, 만물이나 사람이 창조의 기쁨과 그 공로를 찬송하는 순서가 있음직한데 생략되어 있습니다.

욥38:1-6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에게 말씀하신 중에 창조의 장면이 나오고 그 결론적인 말씀이 "그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새벽 별은 다 피조된 천사들을 뜻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이미 지음을 받았고 만물과 인간 창조의 역사를 찬송하였으니 영원부터 찬송한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자존하시니 영원부터 찬송함이 마땅합니다.

 

3. 영원까지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인간들의 훌륭한 역사는 일시적으로 찬송을 받으나 영원까지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런 자격자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영원까지 찬송해야 합니다.

그의 존재하심이 영원하시고 그의 영광과 권능이 불변하시니 영원까지 찬송을 받으셔야 하십니다.

지상에서 만물과 인간들이 찬송하다가 이후에 천국에 가서도 네 영물과 이십 사 장로와 천군 천사들과 함께 여호와를 찬송할 것입니다.

 

결론

여호와를 찬송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없으며 자연히 지옥에서 고생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함

대상16:4

 

서론

법궤를 다윗 성 장막에 모신 다윗이 레위인을 세워 법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그 뜻을 한 번 살펴봅시다.

 

1. 칭송하였습니다.

"칭송"이라고 하면 과거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를 생각할 때,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 선택되었고 사울 왕의 사위까지 되는 영광을 누렸으나 왕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가는 곳마다 원수가 나타나고 만나는 사람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항상 같이 하심을 의심없이 믿었으니 하나님을 칭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과거에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감사하였습니다.

과거 베푸신 축복을 고맙게 여겨 현재 보답하는 생활이 곧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보답되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려고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셔온 일이나, 장막을 치고 모신 일이나, 제사를 정성껏 드린 일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을 축복하는 일이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들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백성들에게 그 뜻을 널리 선포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인 앞에 감사를 나타내고 공개하여 하나님께 보답하는 생활입니다.

 

3. 찬양하였습니다.

찬양한 내용은 실로 거창합니다. 아삽을 두목으로 한 찬양대의 구성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마라못 등등이 앞장서서 비파와 수금을 타고 제금을 힘 있게 치고, 나팔을 불면서 힘껏 찬양하였습니다. 찬양하는 내용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아뢴 것이며, 그 성호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의 능력을 구할 것이요, 그 얼굴을 항상 구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판단이 온 땅에 있다고 하였으며, 그의 언약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이며 영원한 언약입니다.

 

결론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명예를 찬양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라고 감사를 결론지었습니다.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함

시104:33

 

서론

"나의 평생에 여호와께 노래하며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고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시인은 여호와를 노래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이요, 사명으로 여깁니다.

 

1. 매일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평생과 영원도 하루의 연장으로 됩니다.

(1) 매일 일곱 번씩 찬양합니다(시119:164).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함"이라고 하는데, 이는 완전한 찬송의 생활을 뜻합니다.

(2) 날마다 송축합니다(시96:2). 날마다는 매일의 연속이요, 반복이니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계속적인 찬양의 생활을 뜻합니다.

(3) 새벽, 아침, 저녁에 찬양합니다. 시편 42편 8절에 참고하면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2. 평생토록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1) 평생토록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시63:4).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찬송하며 주의 일을 해야 합니다.

(2) 생전에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시146: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이 땅에 있을 때 찬송합시다.

(3) 생존한 동안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시104:33). "나의 생존한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호흡이 끊어진 자는 찬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종신토록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시38:20).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3. 영원토록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1) 자손 대대에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45편 4절에 "대대로 종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조상 전래의 신앙을 자자손손 대대토록 계승하며 찬송하는 생활은 하나님의 축복인 결실입니다.

(2) 영원토록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89편 52절에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3)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하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06편 48절에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의 붙드신 바 되었으며내 어미 배에서 주의 취하여 내신 바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시71:6)"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우리의 가장 귀한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 녀

성 경 활 용

1. 창녀의 특징

(1) 행객을 부른다.

(잠9:14-15) 자기 집 문에 앉으며 성읍 높은 곳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자기 길을 바로 가는 행객을 불러 이르되

(2) 재물을 허비하게 된다.

(잠29:3) 창기를 사귀는 자는 재물을 없이 하느니라

(3) 거리에서 서성거린다.

(잠7:12) 어떤 때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모퉁이모퉁이에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4) 몸을 단장한다.

(겔23:40)사람을 원방에 불러오게 하고 그들이 오매 그들을 위하여 목욕하며 눈썹을 그리며 스스로 단장하고

관련원어풀이

1. hn:z: 자-나

(1) 간음하다.

(창38:24, 삿19:2)

(2) 창녀, 매춘부.

(창38:15, 수2:1)

(3) 간음을 행하다.

(겔16:34)

(4) 유혹하다, 간음을 행케 하다.

(출34:16, 레19:29)

 

2. t/nzO 조-노-트

창기.

(왕상22:38)

 

3. povrnh 포르네

(1) 매춘부, 창부, 음부.

(마12:31, 고전6:15)

(2) 우상 숭배.

(계17:1, 19:2)

설교예화자료

가난이 만든 창녀

 

몇 해 전에 신문에서 비참한 모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 시골에서 15세된 딸을 데리고 생활고에 시달린 나머지 서울에 올라온 모녀는 각각 다른 집에 식모로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딸이 몸이 약하여 병이 들어서 주인의 집에서 쫓겨나 식모살이하는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그후 어머니 역시 병든 딸 때문에 주인의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이 모녀는 길거리에서 헤매이다가 겨우 병이 나은 딸을 데리고 살 길을 마련하던 중 미군이 많은 곳으로 옮겨가 딸을 미군이 자는 방으로 들여 보내고 어머니는 망을 보다가 경찰에 붙들려 왔습니다. 말하자면 딸은 창녀, 어머니는 팸프 노릇을 한 꼴이 되어 경찰에 잡혀와 얼굴을 감싸고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며 속아 주는 사랑

 

가가와 도요히로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가 젊은 시절에 빈민굴에서 전도하는 것을 본 친구의 눈에는 그가 허송 세월을 하고 있는 것 같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도박꾼, 싸움해서 살인한 사람, 전과자, 창녀에 게 전도하여 모아놓고 예배를 드리는데 모두들 찬송을 부를 줄 모르므로 자기 혼자 찬송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도박꾼이자 깡패인데 술 먹고 토해놓고, 창녀들은 앉아서 히죽히죽 웃고 있습니다. 또 뒤에서는 남자들이 와서 예배 드리는 중에 창녀를 끌어내면 창녀는 일어나 나갑니다. 그런가 하면 돈을 내라고 사람들이 가가와의 따귀를 때립니다. 그러면 돈을 주었습니다. 친구는 화가 났습니다.

"저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가서 도박을 할텐데 너는 위선이다. 네가 알고 주느냐."고 가가와에게 따졌습니다. 그때 가가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같이 한다. "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이를 키울 때 넘어지면 일으켜주듯이, 의사가 병자에게 주사를 놓고 또 놓듯이 넘어지면 일으켜 춰야 합니다. 다 알고 마지막까지 믿어 주고 참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고 그는 말했습니다. 사랑은 이렇게 마지막까지 참는 것이고 속아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 성도를 거룩의 길로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창녀와 교회

 

십 수년 전 동두천 근방의 기지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화창한 봄 주일 아침, 그곳 교회의 주일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찬송과 기도에 이어 목사의 설교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교회문 밖에서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안내를 맡고 있던 성도와 기지촌의 한 양공주 사이에 벌어진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술 취한 양공주가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그 안내인이 그녀를 막은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작은 소리로 시작된 말다툼이 점점 커지더니 그 여자가

"나같이 죄 많은 여자를 예수 못 믿게 하면 누가 예수를 믿느냐? 이 위선자들아!" 하면서 울부짖는 소리에 예배는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일 아침 종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고향을 문득 생각했고 고향에서의 교회생활을 생각해 내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 그래서 그녀는 한 잔 두 잔 술을 마셨는데 취하기는커녕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교회로 달려갔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배당 문턱에서 술 취한 양공주를 교회 안에 들여놓을 수 없다고 판단한 안내인의 완강한 만류에 의해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되었던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창녀는 바다와 같다. 주어지는 것은 모조리 게걸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불려 가지는 않는다.

(T. M. 플라우투스)

 

수치스러운 것은 창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창녀 집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다.

(알리스티포스)

 

창녀가 감동하여 마음씨 부드러워지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선물에 의해서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이리의 온순함, 말의 건강, 소년의 사랑, 창녀의 맹세를 믿는 녀석은 미친놈이다.

(W. 셰익스피어/ 리어 왕)

 

화장을 지워도 창녀는 창녀인 것이다.

(서기원/ 이 성숙한 밤의 포옹)

 

여러 가지 매음은 모두 여자가 하지만, 매매는 쌍방적 이다. 음(淫)을 사는 남자가 없으면 음을 파는 창부는 있을 수 없을 터이다.

(노신/ 남강북조집)

 

아직 회오(侮悟)할 줄 아는 청년은/ 얼굴 묻고 창부의 유방 위에/눈 오는 고향 산 꿈이나 꾸라.

(유정/ 이방인)

 

비벼대는 살갗마다/ 돈 냄새가 나는/ 당신의 터럭은/ 조폐공사 마당// 새까만 밤이 데굴데굴 굴르는/ 당신의 아랫배는/ 노랗게/ 성난 종기

(이규호/ 창녀)

 

행복은 들뜬 창부다. 한군데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H. 하이네/ 설화시)

 

향기 짙은 젖가슴을/ 총알로 구멍 내고/ 암흑의 지도 고절(孤絶)된 치마 끝을/ 피와 눈물과/ 최후의 생명으로 이끌며/ 오 그대 미래의 창부여/ 너의 목표는 나의 무덤인가.

(박인환/ 미래의 창부)

 

희망이란 무엇인가 -창녀다. 누구에게나 아양 떨고, 모든 것을 바치게 하고, 내가 많은 밀물-네 청춘을 잃었을 때 너를 버리는 것이다.

(S. 샨도르프/ 희망)

 

손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들을 안달 나게 했다. 그들은 거울 앞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모여 앉아서 야생동물 같은 표정을 띠고 있는이민(移民)의 모습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M.A. 아스투리아스/ 대통령 각하)

 

색(色) 바랜 팔의자에 앉은 늙은 창부들/창백한 얼굴,그린 눈썹에 타고난 어리광/ 아양떨며 그 여윈 양쪽 귀로부터/ 보석과 귀금속 짤랑거리는 소리 떨어뜨린다.

(C.P. 보들레르/ 놀음)

 

너희 향락의 지독한 불임증이/너희 목마름을 더하고 너희 살갗을 굳게 하여/ 음욕에 성나 날뛰는 바람이/ 너희 살을 낡은 깃발인양 삐걱이게 한다.

(C.P. 보들레르/ 저주받은 여인들)

 

눈에는 바로 도취하는 의상들을/ 이빨과 손톱물들인 여인들을/배암이 쓰다듬는 재주 기막힌 요술쟁이들을.

(C.P. 보들레르/ 여행)

 

"어서 오세요"/ "노다들 가세요"/ 안타깝게 기다리는 꽃들이 골목마다 난만(爛漫)하여 처음 보는 사내를 제 서방처럼 업고 간다/ 붉은 입술로 제마다 조랑조랑 꽃값을 치는데 상호(商號)에도 낯선 것이 한창이듯/ "숏타임은 3백 환"/ "올나이트는 천 이백 환"/ 비린 외어(外語)가 어색지 않다.

(이동주/ 꽃)

 

나는 창녀에게서 그 어떤 인간미 있는 분위기가 값싼 감상을 보급받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어떤 기구한 경로를 방아 쌀 한 가마 남짓한 무게의 고깃덩이를 방매하기에 이르렀는지 그녀의 신세타령 같은 짓은 더더구나 원치 않는다.

(서기원/ 이 성숙한 밤의 포옹)

 

성문 밖으로 어둠의 광야로 빈들로/ 아사셀을 위하여/ 날 대신 쫓겨나는 그대여/ 님을 버려두고 음녀와 짝하여/ 죽어야 하는 날 대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그대

(김성영/ 아사셀의 염소)

 

 

설 교 노 트

 

창기의 번 돈은 가져오지 말라

신23:18

 

서론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17:18).

창기의 번 돈을 가져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그렇습니까?

 

1. 창기나 미동(美童)의 제도는 잘못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 창기나 미동의 제도를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제도는 본래 가나안 민족들의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당 부근에는 창기의 거처가 부설되어 있었습니다. 즉, 음행은 그들의 우상 숭배의 제사의 한 순서였습니다.

가나안뿐 아니라 고대 역사가 오랜 이방 국가들의 신전에는 대개 여제사장(제관)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참배자들에게 매음하는 일이 유행하고 미동들이 여신도들과 통간하는 일은 공개된 사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의 아데미 전각 같은 곳입니다.

이런 악한 제도가 이스라엘에서 용납된다면 여호와 신앙이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므로 절대로 엄금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많은 창기들이 있고 미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를 좀먹는 것이기 때문에 단연코 멸절시켜야 합니다.

 

2. 창기의 번 돈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은 제물과 같습니다. 제물은 어디까지나 깨끗해야 합니다. 잠21:27에는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라고 하였으며 같은 잠15:8에는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창기의 번 돈이나 개 같은 자(남창)의 소득은 아무 서원에도 가져오지 말라고 거절하셨습니다.

혹시라도 부정하게 얻은 것이 있으면 여기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하여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근절해야 할 것입니다.

부정한 수입의 물질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바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얻었느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늑탈한 물건이 번제단에 오르는 것을 가증히 여기실 뿐만 아니라 부정한 것도 역시 미워하십니다.

 

결론

우리 주위에 혹시 창기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옴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른 자세로 살도록 도와주고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창 조

성 경 활 용

1. 왜 창조하셨는가?

(1) 그리스도를 위하여

(골1:16)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2) 하나님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43:7)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은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3)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시148:5)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2. 어떻게 창조하셨는가?

(1) 주의 성령을 보내시어

(시104:3)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2)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히1:2)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으로

(시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히11:3)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으신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3. 창조에 관한 일반적 사실

(1)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헛되이 창조치 않으셨다.

(사45:18)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4. 무엇을 창조하셨는가?

(1) 만물을 창조하셨다.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엡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5. 창조 때에 나타난 일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신성이 나타남

(롬1:20)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2)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3)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남

(시106: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나이다

(4)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전이 나타남

(계4:11)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관련원어풀이

1. ar:B: 바-라-

(1) 자르다, 새기다, 잘라 만들다, 창조하다, 산출하다, 조성하다.

(창1:1,사43:1)

(2) 창조되다.

(창2:4,5:2)

(3) 형상을 만들다, 본을 뜨다.

(겔21:24)

 

2. hc;[; 아-사-

(1) 만들다, 일해서 생산하다, 제조하다, 조립하다.

(창8:6,신4:16)

(2) 하나님이 제조하다, 창조하다.

(창1:7, 시96:5)

(3) 만들다, 산출하다.

(욥15:27, 사7:22)

(4) 만들어지다.

(창29:26, 레7:24)

(5) 만들어지다, 창조되다.

(시139:15)

 

3. katabolhv 카타볼레

(1) 시작, 시초.

(마13:15, 25:34)

(2) 씨를 뿌림, 잉태.

(히11:11)

 

4. ktivzw 크티조-

(1) 창조하다, 짜 맞추다, 있게 하다.

(막13:19, 계4:11)

(2) 영적으로 창조하다, 체계를 세우다.

(엡2:10, 15)

 

5. ktivsi" 크티시스

(1) 세움, 창조함, 창조된 것, 피조물.

(롬8:39, 히4:13)

(2) 창조된 것의 총체, 세계.

(막10:6, 계3:14)

설교예화자료

모래알 가시

 

너무나 다 잘 아는 이야기지마는 진주가 어떻게 되는지 아시지요? 진주도 별것이 아닙니다. 진주 속에는 모래알이 있다고 합니다. 겉만 그렇게 아름답지 속에는 모래가 있다고 합니다. 진주패라고 하는 조개 속에 어떻게 모래알이 들어갑니까? 지금은 인공적으로 넣어준다고 합니다. 그 보드라운 조갯살에 그 깔깔한 모래알이 들어갔으니까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러니까 이 조개가 깔깔한 것을 이기기 위해서 생명의 즙을 내서 그 모래알을 싸주고 또 싸주고 또 싸주고‥‥‥ 여러 해 싸주면 점점 큽니다. 그것이 진주라고 하는 겁니다.

시와 같이 깔깔하고 아픈 것을 던져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싸고 또 싸서 우리의 영혼이 진주와 같이 아름다운 영혼을 만들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시는 줄 생각합니다.

 

 

남긴 것

 

구약 성서에는 인류 최초의 여성은 아담의 갈비뼈를 한 개 취해서 만들어졌다고 씌여 있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어떤 랍비의 집을 방문하여,

"신은 도둑이다. 어째서 남자가 잠들어 있을 때, 남자의 허락도 얻지 않고 갈비뼈를 훔쳐갔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랍비의 딸이 곁에서 대화에 끼어 들었습니다.

"황제의 부하를 한 사람 빌려 주십시오. 조금 곤란한 문제가 생겨서, 그것을 조사시키는 데 쓰고 싶습니다. " 황제는,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도대체 그 문제란 무엇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딸은,

"어저께 밤, 도둑이 집에 들어와서 금고를 훔쳐갔습니다. 그 대신에 도둑은 금그릇을 두고 갔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했는지 조사해보고 싶어서 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황제는,

"그것 참 부럽구나. 그런 도둑이라면, 내게도 들어왔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랍비의 딸은,

"그럴 겁니다. 그것은 결국 아담의 몸에 일어난 것과 똑같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갈비뼈를 하나 훔쳐 갔지만, 이 세상에 여자를 남긴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물건

 

마리 샤갈은 "내가 그림을 마칠 때"라는 서두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마지막 테스트로 하나님이 만드신 물건(암석, 꽃, 나무의 가지 흑은 내 손)을 바라봅니다. 나의 그림이 우리 인간이 만들수 없는 물건과 잘 어울리면 제대로 된 그림이고, 둘 사이에 부조화가 있으면 그것은 좋지않은 작품입니다. 이 것은 나 스스로가 깨달은 것입니다. " 그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단지 최근 10년 동안에."

 

 

어록·시·묘사

 

창조주는 그가 지은 만물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R. 타고르)

 

창조행위 그 자체가 진리의 실현이다.

(R. 타고르)

 

사람이 고적할 때, 창작을 한다. 공약을 느낄 때, 창작은 없다. 그에게 사랑하는 것은 이미아무것도 없다. 창작은 여하튼 사랑에 근거한다. 창작에는 사회성이 있다.

(노신/ 이기집)

 

남성은 작품을 창조한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을 창조한다.

(R. 롤랑/ 장 크리스토프)

 

태양이 없을 때,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R. 롤랑/ 광장의 시)

 

예수를 보고 싶다. 그러나 그 혼자만이 아니고/ 창조주의 손에 있던 당시의 우리네 모습과/ 또한 인자의 아름다움 가운데서/ 보좌에 앉으시는 사람이신 예수의 모습을 보고 싶다.

(서코우/ 예수를 보고 싶다)

 

인간의 역사는 그 근본에 있어서 창조의 역사이다.

(H. G. 웰스)

 

인생이 아무리 복잡하든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J. C. 페니)

 

오직 성신만이 진흙 위에 불며 "사람"을 창조하시는 것이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창작의 본질과 그 깊이와 영원성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게 된 사람 중에서 내가 들 수 있는 두 개의 이름은 위대한 시인 야콥센과, 현존하고 있는 모든 예술가 중에서 어거스트 로댕이다.

(R. M. 릴케)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창조했다. 예술을, 또한 종교를. 이것은 세계의 핵심을 이룬다.‥‥창조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것에 행복이 있다. 이 "자연"의 빛을 보라‥‥생 명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축제이며 또한 무한이다.

(F.A. R. 로댕)

 

예술에 있어서 사람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자기 기질에 따라서 자연을 통역할 뿐이다.

(F.A.R. 로댕)

 

교육은 신사를 창조하고, 독서는 좋은 친구를 창조하며, 완성은 완벽한 인간을 창조한다.

(J. 로크)

 

신은 하늘과 땅 및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했다.

(R. 데카르트/ 성찰)

 

미래의 인간을 위해 일하는 것을 단념하라! 힘들여 하는 일은 일체 그만두고 창조하라. 창조는 유희이며, 유희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H.V. 밀러)

 

빨리 창조한다고 하는 것은 생생하게 창조하기 위한 커다란 비결인 것이다.

(G. 바슐라르/ 꿈꿀 권리)

 

한 시대의 믿음의 회의론자는 다음 시대의 신의 후광을 얻는 성인이 된다. 낡은 것을 파괴하는 자는 새로운 것의 창조자이다.

(R.G. 잉거솔/ 위대한 회의론자들)

 

우리는 지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고, 지상에서 떠날 때 빈손으로 간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남겨 놓고 가야 한다.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손톱자국이라도 남겨 놓고 가야 한다. 발톱자국이라도 내고 가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무엇인가 보람있는 것을 지상에 남겨 놓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창조라고 한다. 자아 실현이라고 칭찬한다. 자기 표현이라고 일컫는다. 인생은 창조의 일터요, 자아 실현의 노력이요, 자기 표현의 무대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무에서 유를 만드는 행위를 창조라고 하고 유에서 유를 만드는 행위를 제작이라고 한다.창조는 영원자인 신의 일이요, 제작은 유한자(有限者)인 인간의 일이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인간은 의욕하는 것, 그리고 창조하는 것에 의해서만이 행복하다.

(알랭)

 

창조는 어렵고 모방은 쉽다.

(C. 콜럼버스)

 

선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누구나가 모르고 있다. 창조자를 빼어 놓고서는! 창조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목표를 창조하고 대지에 그 의미와 그 미래를 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비로소 어떤 것이 선이며 어떤 것이 악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F.W.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이성과 창조력이 부여되어 있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늘리기 위하여서 이다. 그러나 인간은 오늘날까지 파괴할 뿐 창조를 한 일이 없다.

(A.P. 체호프/ 바냐 아저씨)

 

삶은 창조이다. 새로 나는 아이는 인생에 무슨 새것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봄철에 묵은 뿌리에서 돋는 움도 다 창조다. 묵은 것은 죽고 새 것은 나는 것으로 해서 우주는 늘 새로운 것이다. 그것이 목적론으로 보다 높은 것에의 진화인지 아닌지는 별문제로 하고 삶이 항상 우주를 새롭게 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광수/ 묵상록)

 

이 세계를 비추는 별들을 신은 창조하였다/ 반짝이는 빛을, 짙은 나무 그늘을/ 골짜기를,풀밭을, 숲을, 언덕을 창조했나니

(스마트/ 다윗에게 부치는 노래)

 

흙을 빚어 육체를 만들고/ 웃음을 부어 목숨을 일으킨/ 나의 하나님은/ 착한 아버지.

(김경수/ 나의 천국은 미소)

 

창조의 기분! 그것은 장난의 기분이다. 장난이란 고역감 없는 고역, 즉 기쁨의 노역(勞役)을 일컬음이다. 만인의 노역이 다 장난이 되는 날,그날이 곧 천국이 임하는 날이다.

(이광수/ 나의 최근 심경)

 

인간은 창조행위를 통해서 피조물로서의 자신을 초월하고 자기 존재의 피동성과 우연성에서 목적성과 자유의 영역으로 자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그 밖에 다른 은혜는 아무런 하염도/ 당신은 우릴 위하여 아직 창조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들의 사랑조차 가변의 저를 가리켜 아침에 맺혔다 스러지는 이슬을 보라 하시리이다.

(김현승/ 사랑을 말함)

 

너는 나의 맏딸, 창조물./오, 아름다운 밤이여

(페기/ 밤의 찬가)

 

능멸당한 기억을 태우고 짓밟힌 세월/ 피절은 역사 안으로 삭여/ 새로운 창조의 힘살 마련하는 능력을.

(정동주/ 신무가-1 · 서곡)

 

즐거운 노래의 선율/ 꽃의 향기 바람결에 날리고/ 예술의 영감/ 창조의 위대함/ 땅 위의보물은 모두 내 것이라네 나는 얼마나 부자인가!

(엔데만/ 오, 나는 부자라네!)

 

오오, 주의 아들이여/ 영원한 것을 스스로 창조하시는 이여/ "주여 우리와 함께 시작하소서"하고/ 여러 세기 동안 과연 몇 명이나 말을 했을까/ 그것은 오로지 주님만이 행하신 일/ 광대한 지고천(至高天)도 그 속에 주를 감쌀 수는 없나니/ 그것은 주님의 한 마디 말씀으로 창조되었더니라.// 드높으신 당신께서 진흙으로/ 인간을 지으시려 하셨던가

(만조니/ 성탄)

 

오, 가엾은 철새여/ 태초에 그대는/ 철새로 지음받았구나.

(유선곤/ 편지)

 

저들은 모두 당신의 창조적 능력에 동참하여 '땅에 충만하여 이를 정복하라'하신 명령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차드 M. 맥키온/ 일터에서 드리는 기도)

 

헌데를 긁는 욥/ 거기에 인간의 명예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학이 아니다/ 몸부림도 아니다/ 사탄의 손자국으로 생긴/ 더러운 피고름을/ 거룩하게 흘리는/ 하나의 창조다-.

(오병수/ 고와 · 3)

 

정의는 내 존귀하신 창조주를 움직이어‥‥/ 하나님의 힘, 그 극한 지혜와/본연의 사랑이나를 만들었느니라// 틀 앞에 창조된 것이란 영원한 것밖에/ 또 없어 나는 영원까지 남아 있으리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 온갖 희망을 버리라.

(단테/ 신곡)

 

그러니까 그건 천지창조였어/ 이브가 놓쳐버린 사과,/ 지상으로 떨어진 순간이었어

(박서원/ 단 한 번 마주친 눈길)

 

그대의 가슴이 찢어질듯 아픈 줄이야 말 아니한들 누가 모르랴/ 그러나 그 아픔은 묵은 설음이/ 엉기어 붙은 영혼의 동통이 아니요/ 입술을 깨물며 새로운 우리의 봄을 빚어 내려는 창조의 고통이다.

(심훈/ 봄의 서곡)

 

내 정든 고향의 언덕엔/ 두 갈래 길이 있다네/‥‥// ‥‥오, 초록, 우주의 생명/ 행복의 창조자!

(임효원/ 언덕 길)

 

태초에 하느님이 검은 알을/개뜨리시니라/ 천지개벽/ 파도쳐 오는 번갯불, 빛의 눈부심/ 폭포처럼 어둠이 갈라지는 소리/ 혼돈과 공허를 싸고 있던/ 흑암의 껍질이 깨어지면서/너는 깊은 잠에서 깨었느니라./ 검은 알이 빛을낳고 너를 낳고/ 그리하여 모두 낳고/ 하나님도 낳고/ 그 빛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임문혁/ 창세기 1 · 검은 알의 노래)

 

오 최초로 창조되었던 빛, 그리고 그대 위대한 말씀,/ 빛이 있으라, 그러자 온 세상에 빛이 있었다 ; /어찌하여 내가 이처럼 당신의 최초의 명령을 빼앗겼습니까?/ 태양은 내겐 캄캄하고/ 달처럼 조용하다.

(밀튼/ 샘슨의 눈멈)

 

나는 나의 그림자가 나의 몸을 떠날 때까지 님을 위하여 진주눈물을 흘리겠습니다/ ‥‥나의 눈물은 백천(百千) 줄기라도 방울방울이 창조입니다.

(한용운/ 눈물)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에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존재여/‥‥/ ‥‥별들이 그 창을 내던지고/ 눈물로 하늘을 적셨을 때/ 신은 자신이 창조한 것을 보고 미소지었던가?/ 어린 양을 창조한 신이 너를 만드셨는가?

(블레이크/ 호랑이)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도 지난날에 따뜻했고/ 느낌 또한 네 마음처럼 부드러웠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조차도 나를 진정케 못하고/ 한숨짓기 위해서만 창조된 가련한 사나이다.

(바이런/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러나 거대한 윤전기의 속도는,/ 이윽고 역사의 수레바퀴와 같이/ 이 모든 티끌과 손실과 파면들을 모아/ 또다시 명일의 시간을 창조하여 가기에 바쁘다.

(김현승/ 석간을 사서 들다)

 

우리의 모든 아름다움은/너의 지붕 아래서 산다//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주고/ 창조된 것들은 모두 네가 와서 문을 열어 준다/ 어둠이 와서 이미 낡은 우리의 그림자를 거두어들이면/ 너는 아침마다 명일에서 빼어 내어/ 새 것으로 바꾸어 준다.

(김현승/ 빛)

 

너의 생명이 창조되어 전에/하나님을 위한 첫 번째 날이 있었건만/ 하나님은 너로부터 두 번째 자리를 받으셨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못하셨노라/ 하나님께 너의 시간을 바치라 그리고/ 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 너희 삶에서 시작되는 영원을 보라.

(호우튼/ 하나님께 나의 처음을)

 

위대한 창조주, 그는 나의 하나님./ 말씀하심으로, 세상을 있게 하시는 분이라네/ 아직도 다 세지 못할 만큼 수많은 변들/ 아직도 깊이를 다 알 수 없을 만큼 끝없는 바다들/ 거대한 산맥, 힘차게 달리는 강물도 있게 하시는/ 그는 나의 하나님//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 그는/ 아직 자비의 부드러운 손으로/ 진주빛 달빛과 극히 작은 것들을 지어내셨고/ 눈송이들도 아주 섬세한 모양으로 지으신/ 그는 나의 하나님.// 위대한 창조주,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시라네./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나를 인도하시고 안위하신다네/ 세 명의 신들이 아니요, 한 분 삼위일체이니,/ 그는 나의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는 나의 하나님.

(막신 스티븐슨/ 그는 나의 하나님)

 

빛과 어둠의 천체들은 모두 당신의 것/ 사람과 짐승의 목숨을 지으시고/ 죽음도 지으신 당신, 아 당신은 그 발로/ 손수 지으신 백골을 밟고 서 계십니다// 당신은 우리를 흙속에 버려두시지는 않겠지요/ 그 연유를 알 수 없으나 당신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결코 죽으시려고 태어난 것은 아닐지니/ 그러므로 사람을 지으신 당신은 옳소이다// 당신은 인성과 신성을 가지셨으니/ 당신은 가장 높고 거룩한 사람이시나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의 것, 그 연유는 모르나/ 그 의지는 당신의 뜻을 위한 우리의 것입니다.

(테니슨/ 하나님의 능하신 아들)

 

빛과 어둠의 이 세상이 당신께 속하오며/ 사람과 만물의 생명을 당신이 주셨으며/ 죽음까지 당신이 지배하시니, 오, 주여 ! / 당신의 발이 모두 피조물 위에 계시나이다// 당신은 우리를 죽음 속에 두려고 아니 하시나이다/ 당신은 사람을 만드셨으나,/ 사람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며/사람은 자신이 죽지 아니하리라 생각하나이다/그러나 당신이 사람을 만드셨으며/ 당신은 진실로 의로우시나이다.

(테니슨/ 강하신 하나님의 아들)

 

빛과 그늘의 저 천체들은/모두 당신의 것./ 당신은 사람과 짐승의 생명을 지으셨나이다. /당신은 죽음을 만드셨나이다.

(테니슨/ 인 메모리엄)

 

창조는 당신 사랑의 영원한 실상/ 창조질서의 막은 오르고/ 창조 중 가장 위대한 사건은/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심/ 이것은 유한한 존재의 영원한 축복/ 인간은 창조질서를 지키는 책임적 존재/ 인간은 당신만을 순종해야 하는 윤리적 존재/ 당신의 도구로서의 존재/ 당신의 작품/ 빛을 만드시니 인간을 위함이요/ 바다와 육지, 각종 식물과 채소를 만드시니/ 인간을 위함이요/ 해와 달과 별/ 물고기와 날짐승과 온갖 육지의 짐승을 만드시니/ 또한 인간을 위함이라/ 에덴동산은 인간의 안식처/ 인간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풍성하니/ 곧 물과 식량과 다스릴 동식물과 날짐승/ 그리고 혼자 있음이 좋지 못하니/ 이웃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 감으로/ 완성된 인간의 모습/ 새 창조를 위한 휴식도 마련하시고/ 당신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세상/ 이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축복하시니/ 곧 영생의 자리/ 창조는 인간을 위한 당신의 크신 일

(최호림/ 창세기 · 별장)

 

모든 것들이 빛나고 아름다워라./ 크고 작은 모든 피조물들이-모든 것들이 지혜롭고 놀라워라./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들이--// 작은 꽃이 하나하나 피어나고/ 작은 새들이 하나하나 노래하네.//꽃들의 선명한 색깔들을 그가 지으셨고/ 새들의 작은 날개들도 그가 지으셨다네.// 자줏빛 머리를 한 산,/ 그 옆으로 달리는 강,/ 석양,/ 하늘을 밝게 걷어올리는 아침.// 차가운 겨울바람,/ 상쾌한 여름의 태양/ 정원에는 잘 익은 과일들,/ 이 모든 것 하나하나를 다 하나님이 지으셨다네.//초록의 숲속에는 키 큰 나무들,/ 우리가 놀 수 있는 풀밭들,/ 우리가 날마다 모으는/ 물가의 골풀들도-//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우리에게 주셨다네./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들을 참 잘 만드신 그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할 수 있는 입술도 그가 주셨다네.

(세실 프란시스 알렉산더/ 모든 것들이 빛나고 아름다워라)

 

 

설 교 노 트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심

창1:26-31

 

서론

인간에게는 삼대 욕망이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그에 필요한 모든 것을 먼저 만드시고 그리고 인간을 만드셔서 그것들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고 그를 성기라고 그렇게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를 믿고 구속받은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3:10)"고 하였습니다. 이는 타락한 인간이 구속함을 받아 처음 지음받은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입니다.

 

2.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면서 서로 위로하고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천국에 여자가 없다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여자를 주심에 너무 감사해서 한 말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본문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들이 먹고 마시며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즉, 먹고 마시는 것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인간 행복을 위하여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으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는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그것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인간을 지으시되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시고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며 복을 주셔서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 사람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특이하게 지으심

창2:7-17

 

서론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중에 사람은 무엇보다도 특이하게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14)"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특이하게 지으셨는지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1.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의 육체를 지으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동일한 부분이 있다면 육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는 눈으로 보이는 실체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육체가 창조 당시는 죽는 존재로 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범죄하여 육체는 죽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신령한 육체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생기로 지으셨습니다.

본문 7절에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육이 땅에 속한 것이라면 영은 하나님께 속하여 영원히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전3:11).그리하여 하나님을 찾아 섬기는 종교성을 인간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짐승은 영혼이 없고 육만이 본능대로 살다가 결국은 죽음으로서 모든 것을 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고 죽게 되면 육체는 땅으로 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하기를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전12:5)"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특수하게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3. 영원히 죽지 않게 지어졌습니다.

본문 17절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먹지 아니하면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먹고 말았으니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그대로 두시지 아니하시고 독생성자를 보내사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회복하는 길은 생명되는 예수를 믿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않고 살도록 특수하게 지어진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사람만은 짐승들보다 특수하게 지으셨음을 깨닫고 창조주를 기억하고(전21:1) 그를 섬기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천 국

성 경 활 용

1. 천국은 어떻게 임하나?

(1) 눈에 보이지 않게 임한다.

(눅17:20)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 권능으로 임한다.

(막9:1)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2. 천국은 어떤 곳인가?

(1) 영광에 이르게 하는 곳

(살전2:12)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2) 능력에 있는 곳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3) 영원한 나라

(벧후1:ll)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시145:13)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4) 우리 속에 있는 곳

(눅17:21)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5)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6) 사랑의 아들의 나라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3. 성경에 나타난 천국의 다른 이름들

(1) 영원한 나라

(벧후1:ll)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너희에게 넉넉히 주시리라

(2) 하나님의 나라

(눅21:31)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 낙원

(고후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눅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 천국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5) 하나님의 집

(히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6) 새 하늘과 새 땅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벧후3:7, 13)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7) 안식

(히4:8)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8) 영적 세계

(요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4. 천국은 어떤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가?

(1) 회개한 사람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2)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마7:21)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3) 심령이 가난한 사람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5)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

(마18:3)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6) 거듭난 사람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7) 가난한 사람

(마19:23-24)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5. 천국이 임하는 시기

(1) 아무도 모르는 때에

(마24:36)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 하늘로부터 예수께서 나타나실 때에

(살후1:7) 환난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3) 환난 후에

(마24:29-30)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관련원어풀이

1. basileiva 바실레이아

(1) 왕권, 왕정, 통치, 규율.

(눅1:33, 히1:8)

(2) 하나님께 속한 왕권과 위엄.

(계12:10)

(3) 왕국, 영토.

(마12:25, 눅11:17)

(4) 하늘의 왕국,

(마11:12, 약2:5)

설교예화자료

전쟁 중에도 천국이

 

1918년 봄, 탄환이 비오듯 쏟아져 모든 것이 포화의 먼지 속에 뒤덮여 있었습니다. 독일군은 전진을 계속하였고 영국군은 겨우 진지를 방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많은 부상병들이 양군이 대치한 중간 지점의 무인지대에 사흘이나 내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감히 부상병들을 구할 염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종군신부가 수통을 가지고 과감히 무인지대에 잠입해 갔습니다. 20명의 부상병들은 은폐물을 이용해 숨어 있었습니다. 종군신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물을 먹이는 일이었으나, 20명에게 나누어 먹이기에는 수통의 물이 너무 적었습니다.

신부는 먼저 한 사람에게 수통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머지 사람도 똑같이 기갈에 허덕이고 있었으므로 물을 조금만 마셨습니다. 다음, 다음 사람도 서로를 위해 조금씩 마셨습니다. 신부는 마지막 세 사람이 남게 되자 수통의 물을 흔들어 보고는 다시 옆사람에게 돌려 마시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물을 가장 많이 마신 사람은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처럼 이웃을 사랑한 좋은 본보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이제 막 천국에 도착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이토록 영광스러운 곳에 오게 된 것을 느낄 수 있게 지옥을 한 번 보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지옥에서 각종의 맛있는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끝이 안 보일 정도의 긴 식탁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식탁 주위의 모든 사람은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오직 4피트짜리 젓가락을 가지고 음식을 집어먹어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 길어서 사람들은 음식을 집어 입으로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굶어죽는 것입니다. "

그들이 다시 천국으로 돌아왔을 때,그 사람은 똑같은 식탁에 똑같은 음식이 차려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식탁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잘먹고 행복했습니다. 그는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무엇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역시 4피트의 젓가락으로 먹습니다. "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지옥의 사람들은 왜 다 굶주리고 천국의 사람들은 편안하게 배불리 먹습니까? " 베드로는 대답했습니다.

"천국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먹이니까요."

 

 

천국 가정

 

어느 가난한 신자 가정에 마음씨 고운 며느리가 들어와 살았습니다. 때는 겨울이었는데도 시아버지의 입음새가 너무나 허술하였습니다. 며느리는 늘 마음을 아파하다가 어느날 자기의 귀한 머리를 잘라 시아버지의 옷을 사드렸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시아버지는 새 옷을 갈아입은 바로 그날, 헐벗은 채 벌벌 떨면서 밥을 구걸하러 온 거지를 보고 너무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기의 옷을 벗어서 물래 입혀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며느리는 조금도 시아버지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머리를 잘라 사드린 옷을 그렇게 주는 것을 보고 시아버지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오히려 며느리는 억지로 눈물을 감추어 가며,

"아버님, 기왕이면 조반 식사까지 대접해서 보내실 것을 그러셨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며느리나 시아버지는 그 헐벗은 거지를 그리스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의 생활화된 가정은 가난한 것이 오히려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축복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천국은 영원한 기쁨의 보고이다.

(W. 셰익스피어/ 헨리 6세 2부)

 

모든 곳은 천국에서 똑같은 거리에 있다.

(R. 버튼/ 우울의 해부)

 

천당이란 안락의 이상향이라,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가슴이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 천당이 아닌가.

(나도향/ 유희)

 

천국에서의 즐거움은 행복한 것, 지옥에서의 괴로움은 행복했던 것.

(D. 잔데르스/ 잠언집)

 

신의 나라는 눈으로 볼 것이 아니고, 또 말할 것도 아니다. 신의 나라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신의 나라는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

(L.N. 톨스토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만일에 오늘날의 세상에 타인들의 불행을 소망하느니보다 스스로의 행복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몇 해 안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천국으로 될 것이다.

(B.A.W. 러셀)

 

사랑과 지식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한에서는 천국에 로의 길이었다.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죄 없이 탄생하는 저 드문 영혼을 제외하면 그 천당에 들어갈 수 있기 전에 우리가 통과해야 하는 암흑의 동굴이 있다.

(B.A.W. 러셀)

 

하늘은 그 은총을 흥정에 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드라이든/ 애스트러 레덕스)

 

신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묻지 말라. 신은 가장 어려운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S. 레크/ 다듬지 않은 생각들)

 

나는 천국이 어떻고 지옥이 어떻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양쪽에 다 내 친구가 있거든요.

(마크 트웨인)

 

속세엔 천사가 극히 적고, 하늘엔 넘친다.

(S.T. 코울리지/ 젊은 여인에게)

 

지상에 신의 나라를 신현하는 것-이것이 인류 최초의 목적이며 희망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이 천국 가깝게 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않고 우리들 마음속 에 신의 나라를 세움이 아니라, 땅 위에 종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I. 칸트)

 

눈이 말라 있는 사람은 천국으로 가지 못 한다.

(T. 애덤스/ 설교집)

 

땅은 물러가고 하늘이 열리도다. 나는 그 문을 통과하고 있다. 나를 다시 부르진 말라 이것이 죽음이라면 달콤하다. 드와이트! 아이린(그의 죽은 손자)들의 얼굴이 보이는구나 !<*미국의 저명한 이 복음 전도사는 죽음의 잠자리에서 듣는 이 없는 일장의 전도 연설을 했다. >

(D. L. 무디)

 

누구도 작정을 했대서 천당에 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D.L. 무디/ 천당)

 

지상에서는 무죄라고 간주하는 자에게도 천국에는 많은 죄가 기록된다.

(쿠퍼/ 과업)

 

여보세요 중앙 전화국이요! 천당을 대주세요. 우리 엄마가 거기 계시거든요.

(C.K. 해리스/ 여보셔요 중앙 전화국! 천당을 대주셔요)

 

천국에서 살았던 일순간은, 죽음으로써 보상해도 비싼 것이 아니다.

(실러/ 돈 카를로스)

 

그는 갑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손엔 성서를 들고 있었다. "두려워 말라! 천당이 가까웠다. " 그는 외쳤다. "바다라도, 육지라도 다를 게 없어!"

(H.W. 롱펠로우/ 험프리 길버트 경)

 

하느님에게 여쭈어 보지도 않았고 천당을 방문한 일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도를 본것처럼 그 자리를 확신한다.

(E. 디킨슨/ 시집)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느님 원컨대 당신의 천당처럼 크지 않아도 제가 들어갈 만큼의 천당을 주시옵소서.

(E. 디킨슨/ 시집)

 

지상의 천당을 얻지 못한 자는 위로 가더라도 찾지 못한다.

(E. 디킨슨/ 시집)

 

예수만 믿으면 천당 가나, 제 마음이 고와야 천당 가지. < * 양심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할 터 인데 그렇지 못한 종교인을 비평하는 말>

(한국 격언)

 

비단옷을 입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누더기를 걸치고 천국에 가는 편이 낫다.

(영국 격언)

 

천국에 이르는 길은 어디에서나 여정도 거리도 같다.

(T. 모어 경/ 유토피아)

 

하늘은, 바라보기에 너무 가까운 위치에 있지 않은 자들에게만 그 모습을 언뜻 드러낸다.

(R. 프로스트/ 순간적인 모습)

 

천국에 오르는 사다리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아리스카레)

 

지옥에 있는 자는 천국이 어떤지를 모른다.

(영국 격언)

 

바보의 천국은, 현명한 사람의 지옥이다.

(T. 풀러/ 성지)

 

바보들의 천국도, 그곳에서 살 수 있는 한은 그리 기분 나쁜 거주지는 아니다.

(머천트/ 잉지 사제의 기지와 지혜)

 

천당의 고마움을 잘알기 위해 사람은 15분간 지옥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

(윌 칼레턴/ 잘생긴 남자와 함께 가버리다)

 

방울모자는 우리의 인생, 우리가 값을 치른다. 환상도 우리는 돈으로 산다. 온갖 마음의 노력을 다하면서, 오직 천당만이 거저다. 하느님만이 구하는 자에게 찾아오신 다. <*방울모자는 옛날 궁중의 어릿광대가 쓴 것>

(J.R. 로얼/ 라운필 경의 환상)

 

천당은 얼마나 넓은가? 놀라워라, 그것은 어떠한 공간도 있는 그대로 맞아 들어간다.‥‥그건 그리 넓어서 진실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고, 그건 그리 좁아서 너밖엔 더 자리가 없다.

(J.R. 모얼란드/ 천당은 얼마나 넓은가)

 

천당 ·지옥이 설사 없다고 쳐도 사람들은 그런 말을 듣고서 천당을 생각해서 선을 좇고지옥을 싫어해서 악을 버리게 되는 것이니, 이 천당·지옥설이 인민을 교회함에 있어 그 이익이 막대한 것이다. 뿐만 아니고 과연 천당 ·지옥이 존재하면 선자(善者)는 반드시 천당에 오르게 되고 악자(惡者)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이런 것을 듣고 선자는 더욱 선에 힘써서 천당의 낙을 마땅히 누리려고 하고 악자는 스스로 악을 그쳐서 지옥에 들어감을 면하려고 한다.

(기화/ 현정론)

 

천국은 우리 머리 위뿐 아니라, 발 밑에도 있다.

(H.D. 도루우/월든 숲속의 생활)

 

천국은/ 어디에나 힘이 넘쳐 있다/ 표리(表裏)가 없으며/그런데도 여러 가지 모양이 다/ 생명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자기만 정지되어 썩는 일이 없다/ 천국의 한 시간은/ 인간계의 일생보다 더 아름답고 더 보람차다/거기에는 천사가 거닐고 있다/ 인간계에서와 같은 의심이 없기 때문에/ 조그만치도 힘에 낭비가 없다/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힘차기만 하다.

(야기 쥬우기치/ 천국)

 

어느 곳에/ 천국이라는 곳이 있었단대/ 거기에는 눈부신 곳이 있었단대//‥‥// 거기에는/ 아주 아름다운 꽃밭이 있었단대//‥‥// 거기에는/ 하느님이라고 하시는 사람이/ 살고 있었단대

(점천신부/ 천국의 이야기)

 

하나님, 내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약속한 천국 때문이 아닙니다/‥‥// ‥‥아,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당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이 우러난 이상/ 천국의 약속이 없다 해도 내 마음은 변치 않습니다.

(작자 미상/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천당? 사시 꽃이 피어? 참 식물원에는 겨울에도 꽃이 피어라. 천당까지 안 가도. 혼백이 죽질 않고 천당엘? 흥 이야기는 좋다. 내 말을 잘 들어라.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은 혼백이 죽느리라, 몸집은 그냥 남아 있고- 몸집이 죽는 게 아니라 혼백이 죽어, 혼백이 천당엘 가? 바보의 소리라, 바보의 소리라, 하하.

(김동인/ 명문)

 

천당은 있다. 그러나 무료입장이다. 그리고 지옥은 없다.

(이범선/ 천당에 간 사나이)

 

나의 천국은 미소/ 흩어진 꽃그늘이 우거지고/ 주황및 노을이 내 가슴을 물들이는/ 당신의 미소는 나의 천국.

(김경수/ 나의 천국은 미소)

 

죄 없이 받는 극형이라는 과정에/그는 내기를 하려 하였다/ 지상에서의 하늘나라를/ 밝히 보이는 것, 부동의 것으로 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날은/ 오늘이나 내일의 일일

것이다.

(스즈키 도오루/ 성전 청결)

 

아무리 희망이 희박하고 아무리 멀어도/ 그 별을 향해 가는 것이/ 나의 삶의 보람인 것이다/ 정의를 위하여 싸우고/ 성공과 실패 따위는 따지지 않고 쉬는 일 없이/ 천국이 이 지상에 이루어지기 위하여/ 비록 지옥이라 하더라도 뛰어 들자.

(다리온/ 불가능한 꿈)

 

그리하여 당신의 엄하신/낙원에 들어가는/ 마음의 힘을/ 아, 이 몸에도 주옵소서.

(바라틴스키/ 기도)

 

하늘에 세워진 아름다운 시온!/ 내가,사랑하는 아름다운 도시!/ 진주및 영롱한 아름다운 성문!/ 하나님의 광명, 아름다운 성전!// 영원히 서 있는 아름다운 나무들!/ 언제나 열려있는 아름다운 열매들!/ 굽이쳐 흐르는 아름다운 강!/ 마르지 않는 아름다운 샘!// 태양이 없어도 아름다운 광명!/ 언제나 영원한 아름다운 날들!/ 전해지지 않는 우주 위의 세상!/찬란한 금빛의 아름다운 거리들!//‥‥/ 모든 이의 머리 위에/ 아름다운 면류관들!/ 승리자가 보이는 종려나무의 잎사귀!/ 속죄자가 입는 아름다운 의복!/ 그곳에 들어간 아름다운 모든 이들!// 하나님과 예수님을 위한/ 아름다운 보좌!/ 하나님의 오른팔 옆의/ 아름다운 자리들!/ 아름다운 안식처,/ 모든 방황이 끝났노라!/ 넘치는 평화의 아름다운 집이여!

(조지 길/ 아름다운 시온)

 

나는 별들이 빛을 밝히며 운행하는/ 저편 위의 끝없는 궁창을 응시합니다. / 그리고 그들의 밤의 행진을 바라보면서/ 그 여행은 언제나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 인생의 많지 않은 시간들은/ 천천히 흘러가고/ 슬픔의 우울한 색조로 그늘을 드리웁니다. / 오! 주님의 영접이 약속되어 있나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오! 푸르게 별처럼 반짝이는 저편 위는/ 얼마나 좁은 길입니까?// 엘리야의 여행처럼 빠르고 빛나게/ 일찍부터 면류관을 향하여/부드럽게 위로 들어올려집니다. / 눈부신 광채의 천국 수레를 타고/ 죽음도 맛보지 않고 무덤도 없이// 오! 즐거움이여! 기쁨이여!/우리가 죽음 없이 갈 수 있나니!/ 아픔도, 슬픔도, 공포도, 그리고 울음도 없이/ 예수께서 그의 자녀들을 영접하실 때/ 영광속으로 주님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올라갑니다.

(댄슨 스미스/ 예수님이 그의 자녀를 맞이할 때)

 

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곳이 가까이 있는지,/내가 수정의 바다를 얻기 전에/ 많은 폭풍이 나의 외침을 삼킬 것인지 말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나는 내 인도자가 가까이 있는 것을 알며/ 오직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내가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때때로/ 황금빛 서쪽에서 태양이/집의 대문처럼 보일 때까지 비치고/ 나는 내가 나의 안식처에 가까움을 압니다. /그러나 아직도 길이 먼지 혹은 가까운지/내 인도자만이 아십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있을 안식처/ 마침내 그 항구에 닿을 것을 압니다. /그곳에서 삶의 폭풍이/더이상 괴롭히지 않으며/ 그리고 그곳 수정의 바다에는/ 이 땅의 여행을 마친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사 K. 러셀/ 집으로 가는 길)

 

나 비록 어린아이였지만 잘 기억합니다. / 내 어리석음과 게으름으로/ 어머니는 얼마나 슬퍼하셨는지/ 이제 천국으로 가버리신 지금/ 나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을 그리워합니다. / 오 주여! 어머니께 내가 그곳으로 가리라고 전해 주소서.// 내가 방황하곤 했었지만/ 어머니는 항상 친절하고 상냥하셨습니다. / 내가 거칠고 버릇없었을 때도/ 그렇게 참으시고 부드럽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 내 어린 날의 슬픔과 시련도/ 어머니께서는 기꺼이 함께하시곤 했지오./오,주여! 어머니께 내가 그곳으로 가리라고 전해 주소서.//주께서 어머니를 천국으로 데려가시기 전,/ 어머니는 내게 천국에서 다시 만나려면/열심히 주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나는 어머니께 약속했습니다. / 천국을 위해 준비하겠노라고/ 오, 주여! 어머니께 내가 그곳으로 가리라고 전해 주소서.//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내가 그곳으로 가리라고 전해 주소서./ 축복의 주여!/ 이 소식을 어머니께서 아시도록‥‥/ 그리고 그곳에서 천국의 행복을 어머니와 함께하리라고 전해 주소서./ 주여! 내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내가 그곳으로 가리라고/ 전해 주소서.

(C.M. 필모어/ 어머니께 내가 간다고 전해 주소서)

 

그곳에는 어둠이 없어라!/ 성도들은 주님을 기쁨으로 정도다!/ 주를 뵈옵는 성도의 시야를 가리는 구름도 없도다!/ 가장 축복받은 그곳에 넘치는 축복,/ 그 성스러운 환희를 방해하는/ 시끄러움도 없도다!// 그곳에는 짐이 없도다!/ 침략하는 사악한 왕들도 없도다!/ 부질없는 전쟁은 지났고 영원히 멈추었어라./ 그 문안에서는 아무런 유혹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아니하도다. / 그 어떤 적들도 그 완전한 평화를/ 깨려고 숨어 있지 아니 하도다. // 그곳에는 슬픔이 없도다!/ 비탄도 눈물도 없도다!/ 눈물은 씻기었으며 모두 밝은 얼굴들이어라./행복과 성스러운 속에서/ 음악과 노래가/ 그 향기로운 안식처의/ 곳곳을 가득 채우도다.

(J. 댄슨 스미스/ 어둠이 없는 곳)

 

우리의 태어남은 다만 꿈이요 잊혀지는 것이라./ 우리와 함께 소생하는/ 우리 생명의 별, 영혼은/ 다른 먼먼 곳에서 찾아오네,/완전한 망각 속이 아니며,/ 완전히 노출되지 아니한 채로,/ 그러나 영광의 구름을 끌며/ 우리는 우리의 집, 하나님으로부터 왔네./ 천국은 우리의 요람으로부터/ 우리 주위에 놓여 있도다!

(워즈워드/ 영원의 암시)

 

님이여, 당신은 백 번이나 단련한 금(金)결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산호가 되도록 천국의 사랑을 받으소서/ 님이여, 사랑이여, 아침 볕의 첫걸음이여!

(한용운/ 찬송)

 

그대들은 인내로써 믿음을 지켰으니/생명의 면류관을 얻노라.// 그대들은 순결한 흰옷을 입기 위해/ 그대들의 갑옷을 벗었나니/그대들은 예수와 함께/수정 같은 강물이 반짝이는 곳을 걷노라./ 우리는 세상에 함께 일하였고/ 우리는 나란히 서서 일했으나/ 내 앞서 조금 먼저/ 그대들은 넘실대는 파도를 넘었노라.// 사랑스러운 그대들 얼굴 위에/근심의 흔적 다시 없으리니/ 모든 한숨은 그토록 아름다운 궁전의 문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노라./ 나 그대들은 다시 볼 것이며/ 나 그대들을 다시 알 것이며/ 나 그대들을 사랑의 노래를 들을 것이며/ 하늘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우리 모두 할렐루야를 노래하리라.// 그대들은 부르노라, 부드럽게 부르노라./ 달콤하게 나를 오라 부르노라./ 그 그림자들 사이로/ 천국의 축복의 불빛을/ 내가 찾고 있노라.

(화니 J. 크로스비/ 천국의 불빛)

 

굴뚝이기에 연기가 나고/ 돌바위 아니기에 좀이 들어라/ 젊으나 젊으신 청하늘인 그대요,/ '착한 일 하신 분네는 천당가옵시리라.'

(김소월/ 아내 몸)

 

나는 머지않아 사랑의 나라에/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 반짝이는 강물이 흐르는곳‥‥/하늘나라 아버지가 마련하신/ 사랑의 낙원/천상의 꽃들이 만발한 사랑의 나라.//‥‥/ 나는머지않아 사랑의 나라로/ 살러 갈 겁니다. / 평온한 강물이 흐르는 곳‥‥/ 그 강가, 나의 안식처는/ 그 어떤 폭풍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 내 원수의 훼방도 강탈도 없는 곳.// 나는 머지않아 사랑의 나라에서/ 나의 주님을 만날 겁니다. / 그 영원한 평화가 넘쳐흐르는 곳에서/그의 사랑스런 얼굴은 뵐 것이며/못자국으로 상처난 그의 손을 만질 겁니다. / 잠깐의 만남으로도 불안하던 나의 영혼은/ 쉬게 될 것입니다.

(폴 허친스/ 사랑의 나라)

 

이 땅에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소식// 나는 잠 깨어 일어나/ 사랑하는 벗에게 어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가야겠네.

(배경란/ 기쁜 소식)

 

내 일 다시, 우리 만나세,/ 영원한 하늘나라, 주님 앞에서‥‥/라고.

(박화목/ 학이 된 그)

 

슬픔 탄식 하나 없는/ 빛나는 궁전에/ 거할 곳 많으니/ 손 잡아, 천국의 백성되라는/ 나직한 울림.

(엄창섭/ 기도 26)

 

언제나 내 곁에 계신 그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신다네/ 때로 꾸짖으시나 그는 여전히 사랑하시고 용서하신다네/ 내 마음속에 구주와 함께 있는 영원한 평안은/ 내가 장차 살 천국에서도 영원하다네.

(라이스/ 잃은 양)

 

한때 나는 잃어버려졌었으나 구주의 십자가가/ 절망을 몰아내는 횃불처럼 모습을 드러냈네/ 거기서 나에게 유리하도록 죽으신 예수를 보았네/ 그가 죄사함과 그토록 아름다운 천국을 허락하셨네,

(라이스/ 할렐루야! 구원 받았네)

 

당신이 그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받으면/거기서 그를 직접 대면하여 만나리니,/ 모든 기쁨과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하늘 본향을 얻게 되리니.

(루비 매캔지/ 우리와 함께 하소서!)

 

눈벌에 새 발자국이 점자로 널려 있다/ 아침신문 대신에 그것들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나도 손자국을 냈다 그녀가 말했다/ 간밤 나를채어 지상에서 천국놀이하겠다던 점자군요.

(강우식/ 설종집)

 

천국이었던 안도마골은/ 이제는 지옥/ 지옥에서도 삶은 있어

(배인환/ 맹꽁이)

 

볼 수 없는 세계/ 우리는 당신을 본다/ 말릴수 없는 세계/ 우리는 당신을 만진다.

(프랑시스 톰슨/ 하늘의 나라)

 

그렇다 콩깍지가 터지는 그 순간부터/ 봉봉과자는 만인을 위한 것이다/ 천국 따위는 천사나/ 참새에게나 맡겨두자// 죽은 후에 우리들에게 날개가 돋는다면/ 그때 가서 그들을 방문하자/ 그리고 천국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은/ 그들과 함께 천상의 케이크와 과자를 먹자.

(하이네/ 독일 겨울 이야기 · 1)

 

그들 전지전능한 신들은/ 우리에게 천국을 강요하고/ 고문과 권총으로/ 신앙심을 매수하기도 하고 피를 태우기도 했다/ 자기들의 비겁함을 감추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 낸 이잔인무도한 신들은/ 그리고 그곳 장군에게도 모든 것이 똑같았다/ 지상은 온통 천국에 이르는/ 천국의 상품으로 악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네루다/ 동방의 종교)

 

한 손에는 황금의 칼을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꽃을 꺾던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한용운/ 고적한 밤)

 

지난날 때 가는 줄 모르고/ 내 즐겨 찾아 노닐던 곳/ 지금은 사라지고,/ 너를 나의 천국이 되게 하여 주던/내 그리운 메어리의 미소/ 이젠 간 곳이 없네.

(바이런/ 단장)

 

하느님은 시 인을 이 땅 위에 보내셨네./ 슬픈 노래와 기쁜 노래를 부르도록,/ 시인은 우리 인간의 심금을 어루만져서,/ 우리를 다시 천국으로 불러들일 임무를 띠고 있네.

(롱펠로우/ 시인)

 

섰다// 입을 다물었다// 사라졌다// 빈 하늘만이/ 나의 천국으로 거기 남아 있다.

(김현승/ 완전 겨울)

 

두려워 말라, 새벽은 가장 짚은 어둠을 깨뜨리고/천국은 풍요로운 당신 생명의 일부가 되리니

(생스터/ 오늘밤 그리스도에서 여기 계시다면)

 

그를 천당으로 보내야 한다/ 살아 생전/ 진실로 남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두 귀에 대해 경탄하며/ 하늘 아래/ 누구도 겁내지 않는 안간힘에/ 손뼉 쳐 주며/ 이보다 더한 상이/ 어디 있겠나/ 그를 천당으로 보내자/ 그가 못을 데를 와/ 불편해서/ 정 말 불편해서/ 어찌할 바 모르는 것이/ 그의 천당이기를 기도하면 이루어질까/ 이루어지는 기도문이 될까?

(정두리/ 기도문)

 

하늘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 길은 그리스도요, 그는 유일한 문이시라./ 그가 자기 백성을 하늘로 이끄시나니/ 우리에게 오라 명하시며 몇 번이고 우리를 부르신다네./ 오! 그가 나를 사랑하시니 나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차도다. / 예수는 오늘날 얼마나 귀한분이신가!/ 나는 내가 그의 것임을 알고 그는 나를 붙드신다네./ 늘 사랑하셨고 늘 지키셨으며, 늘 구원하셨다네.

(존 R. 라이스/ 기쁨의 종을 울리자!)

 

 

설 교 노 트

 

기독교의 천국관

계21:1-8

 

서론

우리 기독교는 인생에게 내세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천국에 대해서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천국을 부인하는 불신앙인이 있고,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반신반의하는 자가 있고,천국이 확실히 있다고 믿는 신자가 있습니다.

 

1. 천국의 본질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그 영역 속에 있는 천국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구원의 은총과 축복이 실시되는 세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우리들의 마음이나 가정이나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원리도 찾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천국은 하늘에 있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나라를 신천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이란 공간적인 차원에서 어떠한 세계인가에 대해서 밝혀 보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천국의 본질이나 개념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심령 천국이나 가정 천국이나 교회 천국이나 지상 천국에만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하늘에 영원무궁한 세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구원관은 영혼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육신까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올라가서 영생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하늘나라는 물질적인 세계로써 신성하고, 장엄하고, 영화롭고 빛나는 세계라고 하였습니다.

 

2. 천국의 생활 양상

구원받은 성도들의 천국에서의 생활 양상은 한마디로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 좋은 생활은,

(1) 하나님과 동거하는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하나님과 동거 생활은 하나님의 사람과 보호하심과 축복 속에서 생활하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2) 인생의 고통과 비애와 사망이 다시없는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며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없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천국의 영생하는 세계인 등시에 죽음이 없는 세계라고 했습니다. 애통이나 애곡이 없는 세계라고 했습니다. 아픔이 없는 세계인 동시에 생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병고와 심신의 상처나 아픔이 없는 참된 안식과 평강과 행복을 누리는 생활이라는 말입니다.

 

결론

우리 기독 신자들은 이 천국의 백성이요, 후사인 동시에 주인공들입니다. 우리 기독신자들은 이 천국을 기업으로 약속 받았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천국 백성으로 긍지를 가지고 생활합시다.

끝으로 이 천국에 가는 비결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믿지 않는 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해야하겠습니다.

 

 

영원한 집

고후5:1-10

 

서론

사도 바울은 성도에게 두 가지 집이 있다고 하였는데, 하나는 땅 위의 장막집이 있는가 하면, 하늘에 하나님에서 지어 주신 영원한 집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집은 아주 견고하고 가치 있는 영구적인 집입니다.

성도의 영원한 집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늘에 있는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1) 이는 성도의 영원한 집이 어느 곳에 있는지 그 위치에 관해서 지적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영원한 집은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저 하늘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하늘은 시간적으로 영원한 세계요, 공간적으로 무궁한 세계로 이념적으로 신성하고 장엄하고 영화롭다는 말입니다.

(2) 영원한 집이 있다는 말은 성도의 영원한 삶의 근거지가 있다는 말입니다.

집이라는 개념은,

① 심신이 피곤할 때 쉬는 안식처라는 뜻이고

② 비바람치는 환난시에 심신의 피난처와 보호처라는 뜻이고

③ 의식 생활의 공급처와 보금자리라는 뜻입니다.

(3) 영원한 집은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창조자 혹은 건축자에 대하여 밝히신 말씀입니다.

여기 하나님이 지으셨다는 말씀은,

①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② 하나님의 지혜와 기술로 건축하시고

③ 하나님의 재료로 완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열두 가지 보석과 진주로 지으신 집이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집을 기업으로 받은 성도의 자세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기업으로 받은 성도의 자세는,

(1) 간절히 사모하는 자세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모하는 말씀은 그 집의 가치를 인정하고 귀중히 여기고 애모하고 속히 소유하기를 희망하는 뜻입니다. 우리의 성도의 신앙자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 천국의 가치를 인정하고 애모하며 소유하고자 하는 희망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2) 항상 담대한 자세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세상에 사는 자세가 그 어떠한 환경 속에서라도 위축되거나 두려워하거나 좌절되지 아니하고 힘 있고 활발하게 사는 늠름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생활의 자세라고 하였습니다.

(3) 주님만 기쁘시게 살기를 힘쓰는 자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기쁘시게 살아야 할 이유는 이 집은 첫째, 주님이 마련하여 주신 집이요 둘째, 주님의 공로로 사는 집이요 셋째, 주님과 영원히 동거하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이 기쁘시게 하는 그 비결은,

① 죄를 회개함이요

② 말씀을 순종함이요

③ 주님을 의지하고 믿는 일입니다.

나아가서는 헌신, 봉사, 충성하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 영원한 집인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바로해야 하겠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

민33:50-56

 

서론

천국은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천국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면 죄악을 도말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1.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본문 52절에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상을 없이 하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출20:4-5).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요,그분만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기 때문입니다(삼상2:6-10).

 

2.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해야 합니다.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십니다. 심지어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십니다(삼상15:22-23). 그래서 천국 갈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3. 죄악을 멀리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언제나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악인의 꾀를 쫓지 않는다(시1:1-3)"라고 하였습니다. 천국갈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었다면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범치 아니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죄악을 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시민권

빌3:17-22

 

서론

우리의 영원한 나라는 천국입니다. 우리가 한 나라에 속해 살면 그 나라의 시민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에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그 나라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기독 신자들의 입장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1. 천국 시민권의 성격

이 천국의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에서 영주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는 것입니다.그리고 천국의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됩니다. 또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됩니다.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시민은 천지의 주재가 되시는 우리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2. 천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천국의 시민권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천국의 시민권을 어떠한 사람이 받을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많은 사람 가운데서 하나님이 천국의 시민으로 선택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선택이란 세 가지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지는 의미가 있습니다(사43:1).

② 하나님의 성별의 의미가 있습니다(레11:44).

③ 하나님의 보호의 의미가 있습니다(사43:2).

이 선택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독자적 행사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야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마11:28).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디에서 불러내시느냐면,

사탄의 세계에서 불러내시고

죄악의 세계에서 불러내시고

사망의 세계에서 우리들을 불러내어 천국의 시민권을 부여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히12:14-15).

(3)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사람이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요1:12).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는 사람이라야 천국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예수님으로 영접하여 믿느냐면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둘째는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셋째는 심판주로 받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천국 시민권을 소유한 사람의 생활 양상

(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주님의 약속 성취인 동시에 우리들의 구원의 완성이요, 천국의 영광을 누리는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재림을 대망하는 사람은 세상 일보다 천국의 일을 더욱 존중히 여기게 됩니다(빌3:8).

(2)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여 봉사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하여 주님에게 붙잡혀 내 자신의 일보다 주님만 기쁘시고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빌3:12).

(3)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변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나의 사상도 인격도 생활도 사역도 모두 주님을 본받아 변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빌3:21).

 

결론

우리는 천국 시민의 자격이 있습니까? 한번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구비하여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천국

눅9:28-36

 

서론

변화산의 사건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사건 중에 가장 신비에 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가신 의도는 첫째, 주님 자신을 위한 것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둘째, 땅에 남아 있을 제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스승의 죽음을 예고받고서 우울한 제자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의 모습을 직접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보여주신 천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1. 황홀한 모습입니다.

변화산에 있는 시간이 밤이라고 한다면 깊은 산속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운 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변화되는 산은 조금도 어두움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예수님의 빛은 주님뿐 아니라 옆에 있던 모세나 엘리야도 빛 속에서 영광 중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승리한 모든 이 땅의 성도들이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대화하는 모습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곤해서 잠든 제자들이 깨어 보니 그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고 말씀 중에 "함께"란 전치사는 같이 동행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로써 성부와 성자와의 영원한 대화성을 말해 주는 단어입니다.

이 땅에서는 10년의 나이 차이가 나면 말이 안 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변화산의 장면에서의,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의 대화는 거의 2000년대를 연결시키는 막힘이 없는 대화입니다. 천국의 영원한 세계에서만 가능합니다.

변화산의 대화는 시대를 초월했을 뿐 아니라 직책을 초월하고 각 개인의 상황을 초월한 너와 나의 대화였습니다. 오늘의 교회도 이 천국의 대화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고립과 소외가 곧 죄이기 때문입니다.

 

3. 시간을 초월한 영원성입니다.

예수님 때로부터 모세의 시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은 2천 년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모든 사람이 현존재로서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곳입니다. 높은 자도 없고 낮은 자도 없이 자기가 만나보고 사권을 가지고 싶어하는 모든 신앙의 선배들을 마음의 부담없이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영원한 곳이라고 할 때, 그곳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성격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믿음을 통하여 사랑을 실현할 때 이 공동체 곧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사랑의 왕국이요, 이 나라가 영원한 것은 사랑의 질서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만이 영원히 주님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이러한 천국의 모습을 보았던 베드로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여기 있는 것이 참으로 좋습니다. 여기서 삽시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것은 천국은 사람의언어나 어떤 표현으로도 다 그려낼 수 없다는 말인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잡아둘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으로 참예하는 것이지 잡아두는 곳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그곳을 잡아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예하기 위하여 더욱 충성할 뿐이었습니다. 이 변화산의 기억은 앞으로 사도들이 주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는데 커다란 밑받침이 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천 사

성 경 활 용

1. 천사의 특징

(1)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골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시148:5)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2) 영적 존재이다.

(히1:14) 모든 천사들이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3) 불완전하다.

(욥4:18)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4) 죽지 아니한다.

(눅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의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5)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존재이다.

(딤전5: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6) 하나님이 권능을 주신 존재이다.

(행5: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살후1:7)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7) 영광스럽다.

(마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2. 성경에 나타난 천사의 다른 이름들

(1) 천군

(시103:21)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 하나님의 사자

(창32:1) 야곱이 그 길을 진행하더니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3) 하나님의 군대

(창32: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4) 미가엘

(유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5) 가브리엘

(단8:16)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단9:21)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6) 하나님의 아들

(욥38:7) 그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 하였었느니라

(7)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엡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3. 천사의 직분

(1)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에게 전달함

(갈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푼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 하나님을 모시며 순종함

(시103:20-21)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3) 예수님과 함께 오심

(살후1:7)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4) 보호하고 인도함

(시91:ll-12)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5) 갈 길을 예비하고 인도함

(출23:20) 사자를 네 앞에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출32: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6) 교회를 수호함

(계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7) 위태할 때 보호함

(시34: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관련원어풀이

1. &a;l]m' 마르아-크

(1) 보냄을 받은 자, 전달자.

(삼상16:19, 욥1:14)

(2) 하나님의 전달자, 천사.

(창16:7, 민22:22)

(3) 선지자, 예언자.

(학1:13, 말3:1)

(4) 제사장.

(전5:5, 말2:7)

(5) 이스라엘.

(사42:19)

 

2. a[ggelo" 앙겔로스

(1) 사신, 사자, 사절, 사람이 보낸 자.

(눅9:52)

(2) 하나님이 보낸 자.

(막1:2)

(3) 천사.

(마2:13)

설교예화자료

셜록 홈스의 천국 여행

 

홈스가 천국에 갔더니 천사가 모두 와서 반겨 맞아 주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홈스를 악의 반대자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홈스여, 실토하지만 지금 천국에는 다소 신비스러운 일이 있네. 자네 같으면 그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일세. 사실은 아담과 이브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단 말이야. 그들을 본 자가 벌써 오래되었어. 만약 자네가 그 둘을 찾아낼 수 있다면‥‥‥‥

홈스는 천사들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천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천사들은 자기네가 아담과 이브라는 것을 자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천사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사인 공세까지 받아야만 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둘은 이름을 바꾸고 이렇게 몇 백 년을 지내 왔는데, 드디어 이 명탐정에게 발각되었군요." 하나님께서는 깜짝 놀라서 홈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어떻게 자네는 그것을 알았는고?" 그랬더니 새로 천사가 된 셜록 홈스는 날개 밑에서 마도로스 파이프를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그거야 쉽지요. 이 두 천사만이 배꼽이 없기 때문입니다. "

 

 

어록·시·묘사

 

천사의 말을 하면, 천사의 날개 소리가 너에게 들릴 것이다.

(영국 격언)

 

천사는 제비처럼 계절이 온다고 날아가 버리지는 않는다.

(C. V. 게오르규/ 대학살자)

 

천사는 체중이 지극히 가벼운 존재다. 그들의 가벼운 지상에서의 이탈을 의미한다.

(C.V. 게오르규/25시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천사들은 신을 절대로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닌다. 그들의 맨발은 해방, 탈속, 모든 관계에서의 해탈, 군더더기 없는 순수를 의미한다.

(C.V. 게오르규/ 25시에서 영원의 시간으로)

 

천사란 본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동료들에 대한 사랑과 자기 자신 안의 자유 의지, 이 세 가지를 가진 존재이다. 그런데 이 천사가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하여 사랑을 잃어버리게 된 때 악마가 되었다. 악마란 곧 사랑을 잃어버린 천사라는 의미다. 천사라는 말도악마라는 말도 다 상징적인 말이지만, 사랑이 없는 힘, 그것이 곧 악마라는 의미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오분간의 사색)

 

한 개의 원이/굴러간다/천사의 버린 지환(指環)이다/ 그 안팎으로 감기는 별빛과/꽃 잎들‥‥‥

(문덕수/ 원에 관한 소묘)

 

꿈속에 헛된 거리/그리고 이 거짓 나팔은/ 하늘에서 천사가 저질러 놓은 거짓말.

(J. 콕토/ 천사의 잔등)

 

새로 소학교에 입학한 소녀같이/ 때묻지 않고 점 하나 없는/깨끗하고 향그러운 너 이 땅의 천사.

(강대식/ 백지)

 

지구의 주의를 천천히 날고 있던 천사는/ 깜짝 놀라더니/ 갑자기 빠르게 날개 쳤다. //‥‥ // 저 뜻밖에 불길한 빛/ 천사를 속여먹은/ 배신.// 천사는 자기의 과신(過信)에 상처 입고/부산스레 날개 치며/눈물 머금고/하늘 멀리 가 버렸다. //천사의 날개에서 떨어진 한 잎의 깃털은 새까만 하늘에 남겨진 채/ 지구를 떠나서 헤맨다.

(조견신언/ 한 알의 건포도)

 

그들에겐 모두 피곤한 입이 있다/ 그리고 가없는 밝은 영혼이/ 그런데 동경은 (흡사 죄를 향한 것인 양)/ 흔히 그들이 꿈을 뚫고 지나간다.

(R.M. 릴케/ 천사)

 

하늘 끝에서 독수리처럼 한 격노(激怒)의 천사 달려와/ 신앙 없는 자의 머리를 불끈 움켜쥐고서/ 뒤흔들며 하는 말 "너 율법을 알아야 해!/ (알겠지 나 널 지키는 천사이기에) 그러길 바라노라!"

(C.P 보들레르/ 반역자)

 

사랑과 젊음의 봄을 만끽하여라/ 나머지는 마음씨 착한 천사에게 맡겨라/ 세월은 곧 진실을 너희에게 전하리니/ 지난해의 둥지에 새가 없다고!

(H.W. 롱펠로우/ 언제나 오월은 아니다!)

 

아가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천사이기도 합니다.

(황금찬/ 아가의 웃음)

 

어릴 때는 귀로 듣고/ 커서는 책으로도 읽은/ 천사,/ 그네는 끝내 제 살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김춘수/ 처용단장 제3부-메아리 · 12)

 

한없는 축복과 보호로써/ 천사장 가브리엘 이 잠시도 눈 팔지 않고/ 충실하게 당신을 보호하던 그때/ 거룩한 천사가 성모와 당신에게 하셨던 바와 같이/ 나를 지키소서,

(발터/ 길 떠나기 전의 기도)

 

천사에게 선택된 사람들은/ 즉시 가난한 보금자리를 찾았다/ 천사가 가르쳐 준 대로/ 강보에 싸여 있었고, 요람 속의 성자/하늘의 왕이 우는 것을 보았다.

(만조니/ 성탄)

 

나는 웃고 나는 우나니, 당신은 흡사/ 승리를 차지한 청백의 천사/ 악과의 투쟁으로 소리치는 출전 나팔 소리와도 같나이다/ 그 나팔은 자랑스러운 가운데 내게 용기를 줍니다.

(베를렌/ 예지 · 6)

 

그토록 거대한 수도원의 정숙함 속에/ 그리고 은둔 속에서/수호 천사의 인도를 받으며/유혹에서 멀리,/그리고 죄악의 오염에서 멀리,/ 우리가 죽었다고 하는 소녀는 살고 있습니다.

(롱펠로우/ 인종)

 

주위에 영광을 찬미하는 천사들이 거하는 저택에서/ 나 그들을 만난 후/ 나는 천사들을 더없이 사랑하리라./ 그리고 먼저 놀라지 않도록/ 인간의 눈을 갖도록 하소서.

(루시 라아콤/ 강을 건너서)

 

천사들은 옛날 그대로 제자리에 있나니/ 다만 돌을 굴리고 날개를 쳐라!/ 그렇다, 찬란한 광채를 잃어버린 것은/ 바로 그대들의 외면한 시선 때문이리라.

(프란시스 톰슨/ 하나님의 나라)

 

내가 이 불완전한 지구에서 끊임없는 신음 소리에 붙들려 발자취를 남긴 것은/내 대신 두 천사에게 뒤를 부탁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 천사란 미소지으면 천국으로 향하는/ 행복스러운 확신과 자신감 넘치는 희망입니다/ 인류는 이 두 천사의 발자취에 입맞출 것입니다.

(비니/ 올리브 산)

 

사랑의 주님,/ 당신은 나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시어,/ 나의 자녀들이 내게서 멀리 떠나/사랑으로 묶은 줄이 끊어지려 할 때/ 나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실 수 있을런지오? // 아버지 당신에겐 천군 천사들이 있습니다. / 그중 얼마만을 보내시어/ 내가 나의 어린 것들을 당신께/ 맡길 때, 그 어린 것들을 인도해 주실런지오?// 아버지, 감사합니다. 진실로 감사합니다. / 내 기쁜 마음을 찬송합니다. / 나는 지금 확실히 들었습니다. / 천사들이 날개 치며 내려오는 소리를!

(베티 베너/ 확신의 기도)

 

천사들은 옛 곳을 지킨다/돌이 되게 하라. 그리고 나르기 시작한다/ 이것이 당신이요 만군의 천사 속에서 죄로 쫓겨난/ 그렇게도 많은 눈부심을 잃은 얼굴이요,

(프랑시스 톰슨/ 하늘의 나라)

 

희미한 졸음이 활발한 님의 발자취 소리에 놀라 깨어 무서운 눈썹을 이기지 못하면서 창을 열고 내다보았습니다/ ‥‥감정과 이지가 마주치는 찰나에 인면의 악마와 수심(獸心)의 천사가 보이려다 사라집니다.

(한용운/?)

 

신선한 천사 같은 음색의 부드럽고 낭랑한 목소리/ 신중한 미소가 그녀에게 대답했지

(베를렌느/ 네버모어)

 

나의 하나님, 나는 이 숲을 거닐고/ 당신의 영이 잎을 혼들 때/ 나는 보았지오. 자란 나무 그늘에서/ 사람과 얘기하는 천사를,

(보온/ 종교)

 

오오 보라, 흰 구름은 다시금/ 잊혀진 아름다운 노래의/ 희미한 멜로디처럼/ 푸른 하늘 저쪽으로 흘러간다// ‥‥나는 태양과 바다와 바람같이/ 하얀 것, 정처없는 것을 좋아하나니/ 그것들은 고향 떠난 나그네의/ 자매이며 천사이기 때문이다.

(헤세/ 흰 구름)

 

내 운명은 부드러운 그대 기도에 호위되어/ 나의 천사 잠들면 그 기도 내 위에 밤을 새우나니/상냥하고도 정성된 그대 음성 들으면/ 심장은 삶을 위해 운명과도 싸움을 하리.// 그대에게 애원하는 소리 하늘에 나고/ 그대 꺾으실 꽃들이 동산에 있지 않느뇨? / 선녀의 자매여 그대 영혼 나의 영혼을 위해/불빛의 반영이요, 노래의 반향이 오니!//상냥한 그대의 까만 눈 나를 바라보고/ 그대의 긴 옷깃 내 곁을 스칠 때/ 나는 거룩한 자리옷을 만지는 듯/ 토비와 같이 말하리 "천사는 내 맘에 있다"고

(빅톨 위고/ 다시 또 그대에게)

 

예수님!/ 당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나이다!/ 천사들이 찬양하고, 끝없이 영광 발하시는/ 당신을 부끄러워하다니!

(조셉 그리그/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다니)

 

나는 오늘 천사의 일을 하였네!/ 바로 그러한 자랑거리가 나에게 일어났네!/ 참으로 천사의 일이라네! 당신이 그것을 의심치 않도록/ 네게 나는 그 사실에 대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이야기하려네/ 처음으로 나는 요리를 했네/ 파이를 굽고 과일 스튜를 하고 밥을 지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참 즐거웠네/ 하나님께서 한때 그의 천사를/ 도보 여행자로 보내어 케이크을 만들게 하셨는데/오늘은 나를 영예롭게 하여/ 그 일을 내게 맡기셨으니 당신이 아는 대로라네./ 그때 내가 그곳을 정돈하면서/ 문고리마다 반짝거리게 닦았고/모든 일덩이마다/ 내 가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내가 천사의 일을 한다는 생각이 있었네.

(작자 미상/ 모성애-그 양면)

 

 

설 교 노 트

 

성경이 언급한 천사

골2:16-19

 

서론

성경은 천사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66권 중 34권에 걸쳐 275회나 천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천사에 대해 넓은 고찰을 함으로써 천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1. 천사의 기원

천사는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입니다. 언제 창조되었는지 성경에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욥38:4-7에 나오는 "새벽 별"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면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지음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사는 가장 완전하고 지혜롭고 아름답게 창조되었습니다(겔28:15).

우리는 천사라고 하면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신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천사의 존재

천사는 영적 인 존재로서 육신은 없으나 인격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계시를 알 수 있는 지식이 있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감정도 있고, 자기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의지도 있습니다. 천사는 남녀 성을 초월하나 남성 대명사로 표현됩니다. 그 수가 대단히 많으며 새로 탄생되거나 죽지 않습니다. 지혜도 있고 능력도 있고 시공을 초월하여 활동하나, 그의 신분은 성도보다 낮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이나 천사는 하나님의 사환에 불과합니다.

 

3. 천사들의 사역

천사는 선한 천사와 악한 천사가 있는데 선한 천사는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 찬양하나 악한 천사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선한 천사들은 구원받은 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며 신자들을 돌봅니다. 또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합니다. 하나님의 대적들을 심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한 천사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또 택함받은 자라도 미혹하려고 하고 악한 방법으로 죄인들에게 범죄하도록 미혹합니다.

 

결론

천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써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들은 다만 봉사할 수 있을 뿐이며 그 봉사는 항상 그리스도께 종속적인 것이고 동시에 그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신자는 그들보다 지위가 높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천사는 신자의 친구로서 그들을 지키며 모든 면에서 그들을 섬깁니다. 따라서 천사는 숭배의 대상이 못됩니다.

 

 

천사의 경고

계18:1-6

 

서론

하나님은 시대를 따라 전인류를 향하여 경고하시되 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경고한 성서적 기사가 많이 있습니다.

경고의 방편을 보면 하나님이 직접 경고하신 방법이 있고, 또는 천사를 통해서 경고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냐 자연계를 통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여기에서는 천사의 경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바벨론 몰락의 경고

본문 2절에 "바벨론 성이 무너지리라"고 경고하였는데, 이 경고는 천사의 경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정치적인 바벨론은,

(1)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한 국가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한 국가입니다.

(3)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한 국가입니다.

이러한 나라는 고금을 막론하고 몰락하리라는 경고입니다. 종교적인 바벨론은 소급하여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에 근거를 두고 타락한 종교적인 집단을 가리키는데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한 종교적인 집단이요, 둘째는 바른 신앙 노선에서 이탈한 종교적인 집단이요, 셋째는 하나님의 방법과 영광을 포기하고 인간의 방법과 영광을 위주로 하는 타락한 종교적인 집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몰락의 원인을 정치면에서 살펴보면

첫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한 죄악과

둘째, 권력에 의한 교만한 죄악과 셋째, 물질적 치부로 인한 사치와 향락과 음행한 죄라고 하였습니다. 종교면에서는 첫째, 악마의 소굴이 되고 둘째, 더러운 영의 집합체요 셋째, 가증한 죄의 집단이라고 하였으니 한마디로 악령 마귀가 지배하는 그의 영역 안에 있는 인간 영혼들의 집단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 백성들에게 탈출 경고

본문 4절에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말라"고 하셨습니다. 선민이 탈출하여야 한 이유와 그 방법에 대해서 밝히려고 합니다.

(1) 바벨론에서 탈출해야 될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① 저들의 죄악에 동참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선민의 순결을 보존하기 위해서 입니다(고후6:17).

② 바벨론이 받을 재앙을 받지 않기 위해서 나와야 합니다. 이는 선민들의 참된 안식과 생명 보존을 위해서입니다.

선민들의 구원 완성을 위해서 나와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원이고 명령인 동시에 선민들의 소원이고 욕망이기도 합니다.

(2) 바벨론에서 나오는 방법이 무엇인가?

여기 "나온다"는 헬라어 원문은 "에셀다테" 입니다. 그 내용은 첫째, "유혹을 끊어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의 약점을 노리는 마귀의 유혹을 끊어 버린다는 말입니다(벧전5:8). 둘째, 성별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심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유혹을 이기고, 성별하게 살면서 충성하려고 하면 괴로움이 많습니다. 이 고난을 극복하는 생활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로 나와야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시은소로 나와야 영생의 축복을 누립니다.

기독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언제나 바벨론같은 세속적인 영역에서 나오는 생활입니다.

이 생활이 신앙 향상의 길이요, 성별의 길이요, 헌신 봉사의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천사들

벧후2:4

 

서론

천사라고 하면 하나님이 부리는 사자(使者)들입니다. 그러므로 귀중한 영물입니다.

그러나 범죄라고 하면 하나님을 반역하는 불순종의 처사이므로 천사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천사들이 범죄하였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천사도 범죄할 수 있습니까?

천사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거룩한 영물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께 봉사하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아 일하였습니다.

그러한 천사가 어떻게 범죄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중에서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닌 모든 피조물은 범죄의 가능성이 있으며 또 실지로 천사까지도 범죄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니 결국 천사는 범죄하고 타락하여 사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2. 천사도 범죄하였습니다.

천사의 범죄설은 본문이 유력한 증거요,또 유다서 1장 6절에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이 자세히 설명하여 줍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월권 행위요, 처소를 떠났으니 직무 이탈인 것입니다. 그 결과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자유를 구속하였으며 흑암의 세계에 유폐시켰으니 벌써 벌을 받고 있는 신세입니다.

즉, 범죄한 천사는 사단이 되어 악행을 거듭하고 있으나 자기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적극적인 제재와 구속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범죄하고 타락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성도들도 범죄하고 타락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용서하지 아니하십니다.

사람들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애석히 여기시고 공출히 여기사 구약 시대에 벌써 구원의 약속을 하시고 마지막에는 단 하나뿐인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기에 대속하시므로 구원의 길이 열려서 다시 살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타락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니 구원의 방도와 길이 도무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과 천사의 다른 처리방안이십니다.

그만큼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우대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천사는 하나님 앞에 부리는 사환이요, 인간은 그의 자녀이니 실인즉 천사보다 훌륭한 존재입니다.

천사도 범죄하여 용서를 받지 못하였는데 용서함받은 우리 인간들은 다시 범죄하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천사 가브리엘

눅1:19

 

서론

세례 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는 천사장 가브리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거룩하신 섭리와 예정하신 뜻을 종종 그의 사자들을 통하여 서 인간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만을 옳게 전달해야 하는 종들입니다.

 

1. 가브리엘의 위치

하나님을 모시는 천사의 수는 부지기수입니다.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계5:11)"고 하였습니다. 또 그 천사들의 세계도 하나의 조직 세계이니 급수가 있습니다. 구약 외경 에녹서에 의하면, 일곱 천사장을 말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네 천사장을 말하면 가브리엘, 미가엘, 라파엘, 우리엘 등인데, 그중에서 또 대표적인 천사가 가브리엘인 듯합니다. 에녹서에 의하면, 가브리엘은 형벌을 내리는 일도 하였고(10:9), 낙원과 뱀, 그룹을 지키는 임무가 있었으며(20:7), 모든 권세를 감독해 사람들을 중재하는 임무를 가졌습니다(40:6, 9).

 

2. 가브리엘의 활동

구약 시대의 가브리엘의 활동은 다니엘서에 두 번 나타났는데, 8:16에 보면,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치기를 가브리엘아 이 이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시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계시의 내용을 다니엘에게 설명하여 주라는 뜻입니다.

또 9:21절에 보면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하였는데, 이는 다니엘의 기도의응답으로 하나님께서 가브리엘을 특별 파송하면서 응답의 내용을 교시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의 뜻을 전달하는 심부름꾼입니다.

그의 신약 시대 활동도 역시 두 가지인데,

(1) 눅1:19에 천사가 이르기를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너에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고 하였으니, 제사장 사가랴에게 보내사 세례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였습니다.

(2) 눅1:26에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가서 처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 전달하였습니다. 사가랴나 마리아늘 심히 놀랐으나 순종하였고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3. 하나님 앞에 섰는 천사입니다.

천사의 지위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시립하고 대기하였다가 명령이 내리면 즉각적으로 시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유다서 1장 6절에는 천사의 타락을 말하였는데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천사의 타락이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은 것이니 하나님 앞에 시립하고 섰는 천사라야 정당한 천사입니다.

 

결론

천사장이라 하여도 하나님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결코 천사가 우리 예배의 대상자가 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영물인 천사도 하나님 앞에 시립하고 순종하였거든 하물며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철 학

성 경 활 용

1. 철학이란?

(1) 지혜를 알고자 했다.

(전1:17)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2) 쟁론했다.

(행17:18)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 때

(3) 새로운 것을 알고자 힘썼다.

(행17:19-20)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 철학적 입장에서 본 하나님의 뜻

(1)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심

(욥5:13)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사특한 자의 계교를 패하게 하시므로

(2)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게 하심

(욥5:16) 그러므로 가난한 자가 소망이 있고 불의가 스스로 입을 막느니라

(3) 환난에서 구원하심

(욥5:19-20)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4)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임

(욥9: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나아가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5) 주의 날이 인생의 날과 같지 않게 하심

(욥10:5)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6)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

(욥33:12) 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7) 하나님을 거역하면 형통하지 못함

(욥9:4) 하나님은 마음이 지혜로우시며 힘이 강하시니 스스로 강퍅히 하여 그를 거역하고 형통한 자가 누구이랴

(8) 하나님 앞에 인생은 의롭지 않게 하심

(욥9:2) 내가 진실로 그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라

 

3. 철학의 좋은 점은?

(1) 하나님 일의 신비를 드러낸다.

(잠25:2)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관련원어풀이

1. filovsofo" 필로소포스

철학자, 만물의 근원과 최고 선을 추구하거나 논의하는 사람.

(행17:18)

 

2. filosofiva 필로소피아

철학.

(골2:8)

설교예화자료

학자와 왕

 

풍채도 좋지 못했지만 유명한 프로테스탄트의 학자인 데이트리히가 어느 날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배알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데이트리히는 페단치즈에서 단지 책과 연구만으로써 살아온 학자이니만큼 실생활에는 아주 서툴렀습니다. 그는 대왕에게 말하였습니다.

"살아계신 신이여, 위대하신 대왕 프리드리히 폐하여!" 그랬더니 대왕은 곧이어 대답하였습니다.

"아주 바보인 작은 데이트리히여!" 이래서 배알은 끝났습니다.

 

 

철학자 디오게네스

 

기원 전 400년경 그리스의 코린트라는 마을에 디오게네스라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옷 한 벌, 주머니 하나,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늘 빈 술통 속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사색만 하고 살았습니다. 그 무렵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는 연합군을 이끌고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온 나라가 페르시아 원정 출발을 경축하기 위해 들떠 있는데 디오게네스의 모습이 안 보이자 알렉산더 대왕이 손수 그를 찾아 코린트 마을에 왔습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한 게 없는가? "라는 물음에,

"아무것도 필요없습니다. . 나는 지금 햇볕을 쬐고 있으니 나의 태양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에 감격한 대왕은,

"내가 만약 알렉산더가 아니면 디오게네스이기를 원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합니다.

 

 

철학가와 종교가

 

볼테르에제는 형이 있었는데, 그들 두 형제는 아주 대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형이 전혀 인간미가 없는 열광적인 종교 사상가였던 반면에, 아우인 볼테르는 철저한 자유 사상가였던 것입니다. 이 두 이질적인 아들을 둔 그의 아버지는 어느 날, 친구를 보며 한탄하기를

"나에게 자식이라고는 둘뿐인데 모두 미친 놈이란 말이야. 한 놈은 산문적으로 미친 놈이고, 또 한 놈은 운문적으로 미친 놈이란 말일세."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

 

다윈은 피글호라는 배를 타고 남아메리카 남단 티에라 데골페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남극과 가까운 곳이라 기후가 퍽 추워서 그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 모닥불을 쪼이면서도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 토인들은 "불에 가까이 하면 타 죽는다. "고 하면서 불을 피할 뿐만 아니라,벌거숭이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다윈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아무래도 알 수 없어. 이것은 진화론만 가지고는 도저히설명할 수 없단 말이야."

 

 

철학적 지식의 한계

 

한 소경은 태양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리쟁반을 두드리면서 그에게 "아, 태양말인가. 그것은 둥근 것이지! 이 구리쟁반과 같단 말이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아, 그런 것이었구만. 알 만하네!"하고 소경은 말했습니다.

며칠이 지난 소경은 다른 사람이 종을 치는 것을 듣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이 태양이 아니오? " 곁에 있던 사람이

"아니오. 태양은 빛을 내오! 마치 촛불과 같단 말이오."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초를 주면서 만져보게 하였습니다. 소경은 크게 깨달은 듯이

"아! 원래 이런 것이었구만! 이젠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완전히 알 만하오!"라고 말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 소경은 퉁소를 만지다가 그것이 태양인 줄 여기고 또

"이것이 태양이 아니오? "라고 물었습니다.

이와 같이 소경은 태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결국 똑똑히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탐구하는 철학적 지식도 이와 같습니다.

 

 

헛된 지혜

 

세 사람의 사냥꾼이 산 중턱에서 짐승을 쫓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이상한 소리가 남으로 바라보니 산불이 나서 맹렬한 기세로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냥꾼들은 당황했습니다.

한 사람은 나무에 잘 오르므로 가장 튼튼하고 높은 나무를 골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불길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으므로 이 사람은 불행하게도 생명을 잃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뛰는 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불이 오는 방향과는 반대로 힘차게 달렸습니다. 불은 쉬지 않고 뒤를 따랐습니다. 마침내 그는 지쳐서 뛰는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불은 가까이 타들었고 불길이 그 사람을 삼켜 버렸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나무에 오를 재주도, 뛰는 재주도 없었습니다. 자기의 두 친구가 황급히 자기 주위를 떠난 다음 살아날 방도를 구했습니다. 그는 성냥을 꺼내어 맞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불탄 자리 안에 피신했습니다. 잠시 후에 산불이 다가왔지만 불탄 자리는 피하고 지나갔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간을 너무 믿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지혜를 하나님께서는 헛것으로 안다고 하셨습니다.

 

 

어록·시·묘사

 

철학상의 원리는 우리들의 맥박 위에서 실증되기 전에는 원리가 아니다. 우리는 훌륭한 것들을 읽어도 그 저자와 똑같은 단계를 지나기 전에는 그것을 충분히 느끼지 않는다.

(J. 키츠)

 

스토아 철학은 목표를 향하여 직선 길을 걷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알기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다. 그것은 비록 불만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진리라고 인정하는 것에는 전심을 경주한다. 생명을 내거는 진지함으로 진리에 몸을 바친다. 그것은 성실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고, 자신을 집중시키고 내면화하게시리 인간에게 권고하며, 책임감을 일깨워 준다.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스토아 철학을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인간은 세계와 정신적으로 관계하며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스토아 철학의 근본 사상을 나는 진리라고 생각했다. 스토아 철학은 본질에 있어서 신비주의에 이르는 자연철학이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앞으로 을 세계 철학은 유럽적인 사상과 비유럽적인 사상을 비교하여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상과 비근본적인 사상을 비교하여 논쟁하는 데 있을 것이다.

(A. 슈바이처/ 나의 생애와 사상)

 

당초 철학의 가치라는 것은 종말에 있어서는 그것이 생생한 실용철학으로 변할 것인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이것에 대해 철학은 알지 못하였다.

(A. 슈바이처)

 

철학의 궁극적인 임무는 일반적인 이성의 지도자, 관찰자가 되는 것이다.

(A. 슈바이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알쏭달쏭한 해답.

(H.B. 애덤스/ 철학을 정의하면서)

 

경이는 철학자의 느낌이며, 철학은 경이에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

 

현대 세계에는 두 가지 철학이 있다. 하나는 루소에서 유래한 것인데, 훈련을 불필요한 것으로 옆으로 쓸어 버린다. 다른 하나는 전체주의에서 충분한 표현을 찾는 것인데, 훈련을 생각하기를 본질적으로 외계로부터 부과되는 것으로 본다.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진정한 철학에 의해서만 국가도 개인도 정의에 도달할 수 있다. 진정한 철인이 통치권을쥐거나 또는 통치자가 신의 은혜로 진정한 철인이 되지 않는 한 악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플라톤)

 

어느 세기의 철학은 다음 세기와 상식이 된다.

(H. 비처)

 

철학은 사상의 현미경이다.

(V. 위고/ 레 미제라블)

 

모든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脚註)라고 말해 오고 있다.

(L. 트릴링/ 관습과 도덕, 그리고 소설)

 

나는 실험 과학자로서 철학 체계를 피하고 있다. 그러나 이 때문으로 해서 저 철학적 정신까지도 배척할 수는 없다. 이 철학적 정신은 어떠한 곳에도 존재하면서 여하한 체계에도 소속됨이 없이, 다만 모든 과학뿐 아니라 일체의 인지(人智)를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C. 베르나르/ 실험의학 연구서설)

 

철학은 종교나 지적 흥미 이상의 무엇을 줄 수 없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네. 살아가는 신념을 주는 것은 경험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네. 그것은 전에는 .의심했거나 믿었던 윤리적 가치를 갑자기 깨달은 것이나 혹은 천천히 깨달은 것이네. 그리고 이 인식은 대체로 사람이 좋다 혹은 나쁘다고 깨닫는 사물을 포함한 형세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같네.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철학은 인간 정신이 통과한 갖가지 상태에 대하여 학자를 가르치기에 적합한 정신적 기념물로써만 흥미롭다.

(A. 프랑스/ 에피퀴르의 정원)

 

철학이 인간의 인식을 위하여 귀중한 것이기는 하나 인간 아닌 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주지 못할 것이다.

(A. 프랑스/ 에피퀴르의 정원)

 

성실한 브루투스여, 그대는 온건한 철학의 고요한 빛 속에서 범죄와 반란과 기만과 시저를 방관할 수 있다.

(J. 에디슨/ 카토)

 

철학은 현존재의 해석학에서 출발하는 보편적인 현상학적 존재론이다.

(M.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철학은 분별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J. 셀든/ 다화)

 

위대한 철학은 흠 없는 철학이 아니라, 두려움 없는 철학이다.

(C. 페기/ 베르그송과 베르그송주의 철학 주해)

 

철학은 역경에서의 달콤한 우유이다.

(W.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철학은 모든 학예의 모체이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철학이란 경주에서 이기려는 자는 가장 느리게 뛸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골인점에 도착하는 사람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철학은 야회복을 입은 상식이다.

(O.S. 브래스턴/ 철학)

 

철학자가 우리에게 야심을 경멸하라고 말하는 바로 그 책에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새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전을 멸시하고 있는 바로 그 페이지에 스스로의 선전을 한다.

(키케로/ 아르키아 포에타 변호)

 

모든 선한 도덕철학도 종교의 시녀에 불과하다.

(F. 베이컨/ 학문의 진보)

 

실상 철학은 우리들의 정신을 밝혀줬다기보다 그것을 혼돈케 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로서의 철학은 어떤 대상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 우리들이 어떤 대상을 서술하거나 혹은 우리들이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릴 때 사용하는 여러가지 개념들 자체와 그 개념들간의 뒤얽힌 관계를 풀어 주고 그것을 분명히 이해코자 하는 학문이다. 이런 철학은 우리들의 정신 계를 혼란으로부터 구해 준다.

(박이문/ 대학 · 문학 · 철학)

 

철학적 문제와 해답은 지각을 통해서 경험적으로 발견된 것도 아니며, 따라서 경험적으로 풀릴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경험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개념적인 것이다‥‥바꿔 말하자면 철학적 앎은 구체적 대상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대상에 대한 관념에 관한 앎이다.

(박히문/ 투명성의 갈구와 추구)

 

형이상학이란, 우리가 본능대로 믿으면 나쁘다는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F. H. 브래들리/외모와 실질)

 

당당한 능력의 철학자는 헛되게 사색하지 는다. 그의 가장 추상적인 개념조차도, 어느 정도는,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 알려진 혹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로 조건지워져 있다.

(A.N. 화이트헤드/A.N. 화이트헤드의 대화)

 

철학은 언제나 시인 쪽을 향하면서, 행복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불변하는 경향을 감각과 정신에 대하여 분명한 것과 일치한다고 보면서 사색한다. 행복을 희구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경향은 건전한 철학의 유일한 특징을 이루기 때문이다.

(W. 휘트먼/ 풀잎)

 

죽음의 고찰에 스스로를 바치는 철학은 가짜 철학이다. 진짜의 철학은 생활의 지혜이며, 학에는 죽음이 없다.

(P. 레벤)

 

철학자가 되는 것은 단순히 미묘한 사상을 갖는다든가, 흑은 학파를 창시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명령에 따라 살듯 지혜를 사랑하며, 즉 소박하고 독립적이며 아량 있고 신뢰감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H.D. 도로우/ 숲속의 생활)

 

철학은 철학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보다는 철학의 문제를 공식화함으로써 더욱 특색 있게 된다.

(S. 랭어/ 새로운 관건 속의 철학)

 

결국, 형이상학은 확실하지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 믿는 기술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논리학은 확신을 그르치는 기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J.W. 크러치/ 현대기질)

 

철학은 최상의 음악이다.

(플라톤/ 포에도스)

 

어느 중대한 의미에 있어서 모든 철학은 그리스 철학이다.

(B.A.W. 러셀/ 서양의 지혜)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도 우주철학으로서는똑같이 소박한 인간중심주의의 출현에 불과하다. 위대한 세계는 자연의 철학이 가르치는 것같이 선이나 악이 아니며, 또한 우리에게 화복을 가져다 주는 것에 관심을 나타내지도 않는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인간 중심"의 철학은 모두 자기를 과대시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며, 이것을 교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간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B.A.W. 러셀/ 나의 신념)

 

나는 인류가 철학에서 종교에 이르는 대로가 없다는 것을 너무 굳게 납득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네.왜냐하면 하나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공평무사함을 파괴하지만 않는다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네.

(B.A.W. 러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

 

"철학 공부를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는 말을 하는 사람이 가끔 있다. 이러한 넌센스를 들으면 짜증스럽다. 그 표현에선 "철학이 어떤 학문"이라고 일컬어져 있기 때문이다. 뿐더러 철학을 의학이나 그러한 것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인간의 역사에, 행복한 철학자의 기록은 없다.

(멘컨/ 편견)

 

철학이 실존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신이 진리를 발견하도록 해 주는 것이 아니라(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당신에게 한정에 대한 핑계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T. E. 흄/ 사색록)

 

철학할 때는 옛 카오스로 내려가서 편안한 기분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L. 비프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일을 하다가 "이 정도로 끝내자"고 하게되는 것은 인간의 육체적인 요구에서다. 우리는 철학을 할 때 항상 이러한 욕구와 싸우면서 계속 생각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철학이란 정말로 힘이 든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철학을 할 때에는 줄곧 방법을 바꾸는 것이 나로서는 중요하다. 너무 오래 한 발로만 서있으면 몸이 굳어진다. 장시간 산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잠시 뒷걸음으로 가기도 한다. 피로를 회복하고 다른 근육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철학은 등산과 흡사하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철학은-건축처럼 다층의 것이지만-본래의 인간 자체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자신에 대한 이해이다.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사물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소크라테스는 악의 실천자이며,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 그리고 그는 국가의 신들을 믿지않으며, 자기류의 새로운 신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그의 죄명이다.

(플라톤/ 대화편)

 

정신에 참된 약이 철학이다.

(키케로/ 투스쿨라나루스 논총)

 

철학은 묵인이다. 그리고 묵인에서 관용까지는 한 걸음이다.

(A.W. 피니어로우/ 탱커리 씨 제2부인)

 

생활철학은 우주철학의 일부분으로서, 통상적인 생활인과 전문적인 철학자와의 세계관 사이에 현저한 구별이 있을 것은 물론이다. 많은 문제에 대하여 그 특유한 견해를 갖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김진섭/ 생활인의 철학)

 

철학자에게 철학이 필요한 것과 같이 속인에게도 철학은 필요하다. 왜 그러냐 하면 한 가지 물건을 사는 데에 그 사람이 취미가 나타나는 것같이 친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세계관, 즉 철학은 게재되어야 할 것이요,자기의 직업을 결정하는 경우에도 그 근복적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의 인생관이 아니어서는 아니 되겠기 때문이다.

(김진섭/ 생활인의 철학)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양자가 서로 조화되어 혼연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철학자의 임무인 것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명료성은 철학자들의 성실성의 표시이다.

(보브나르그/ 명상 잡기)

 

정말로 중요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은 살아야 할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한탄할 것,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대답하는 것이다.

(A. 카뮈/ 시지푸스의 신화)

 

철학이 주려고 시도하는 첫 번째 것은, 모든 사람과의 상호이해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철학은 플라톤을 일찍이 고상한 사람으로 알지 않았다. 철학이 그를 고결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철학은 과거와 미래의 악덕을 쉽게 정복한다. 그러나 현재의 악덕은 철학을 정복한다.

(라 로시푸코/ 금언집)

 

철학자의 전생애는,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

(플라톤/ 대화편)

 

철학은 경이에서 시작한다. 종말에 철학사상이 최선을 다했을 때도 경이는 남는다.

(A.N. 화이트헤드/ 사고의 양식)

 

한 종류의 미신을 다른 하나의 미신과 대립시켜서 그들을 싸우도록 해 놓고, 그들이 논쟁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우리들 자신은, 비록 불분명하지만 조용한 철학의 영역으로 행복하게 도피한다.

(D. 흄/ 종교의 자연사)

 

진정한 웅변은 웅변을 유의하지 않으며, 진정한 도덕은 도덕을 유의하지 않는다‥‥ 철학을 유의하지 않는 것이 진실로 철학하는 것이다.

(B. 파스칼/ 명상록)

 

모든 사람이 다 반드시 소위 철학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철학하는 소질조차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최재희/ 철학적 인간학의 방향)

 

철학은 생활 속에 있다. 그러므로 철학이 없이 산다는 것은 자기를 잃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생을 묻는 사람은 세계를 묻게 되며, 거기에서 해답을 얻는 사람은 삶의 목적을 찾게 된다.

(김형석/ 오늘을 사는 지혜)

 

철학은 죽음에 대한 연습이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철학은 내적 대화다. 내가 내 마음속에서 나하고 소리 없는 대화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 헤겔의 책을 뒤지지 않아도 좋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인간의 가장 원칙적인 관계는 남녀와 그 자식들 사이의 관계 이며, 어떤 생활철학도 이 기본적인 관계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철학으로서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철학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가정의 즐거움)

 

철학을 비웃는 것이 진정 철학하는 것이다.

(B. 파스칼/ 명상록)

 

윤리적 형이상학은, 아무리 위장하든, 기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소망에 법적 힘을 부여하려는 시도이다.

(B. 러셀/ 신비주의와 논리학)

 

철학자들은 달에서 산다.

(J. 포드/ 연인의 우울증)

 

철학이란, 우주의 본질에 관해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설명이다.

(에머슨/ 대표적 인물)

 

종교에 있어서는 신성한 것만이 진실이다. 철학에 있어서는 진실한 것만이 신성하다.

(L.A. 포이에르바흐/ 종교의 본질)

 

진실로 철학은 모든 학문의 귀착점인 것이다.

(유진오/ 법과 힘)

 

사람이란 대개 병이 있음을 알고서 의사를 찾아 약을 구하게 되며 마음속 깊이 아픔을 느껴야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고하게 되는 것처럼, 춘추전국 시대의 뜻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무너지는 세상으로만 보였고, 이것을 가만히 보고 앉아 있을 수만 없어 모두 일어나 힘써 생각하고 문제를 철저히 검토하여 하나의 해결 방법을 찾아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연구하는 이른바 철학(그 한 시대에 머물러 내려오는 철학의 전적을 가리킴)이라고 하는 것 곧 이러한 방법과 관계가 있는 토론을 기록한 것이다.

(장기균/ 중국철학사)

 

"철학"이라고 하면 그것은 서양 사람들이 쓰는 명사로서, 일종의 사변적 이고 명리적인 학문을 가리키는 것이다.

(장기균/ 중국철학사)

 

철학은,어떤 유(類)의 사람들이 대중을 바보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도 치장하는 낡은 유행이다.

(L. 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모든 덕성을 익히는 데는 알맞는 훈련이 있다. 판단 보류를 배우는 데 가장 좋은 훈련은철학이다.

(B. 러셀/ 인기 없는 수필집)

 

철학은 순개관적인 샬임과학과는 달라서 다분히 주관적 정의적 색채를 띠지 아니치 못할 운명에 있다. 철학은 '내가 생각하여서' 얻을 것이요, 결코 '책에서 배워서' 얻을 종류의 것은 아니다.

(이광수/ 학창독어)

 

아직도 사상가들이 저술하고 토론하는 제반사는 플라톤에게서 나온다. 그는 우리의 독창력에 커다란 지장을 주고 있다‥‥플라톤이 철학이요, 철학이 플라톤이라는 것은 인류의 영광인 동시에 수치니, 색슨족도 로마인도 그의 범주에 아무런 견해를 보태는 데 유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머슨/ 대표적 인물)

 

철학은,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이 거대한 책, 즉 우주에 씌어져 있다.

(G. 갈릴레인)

 

철학이 그 회색을 회색으로 그리면 인생의 모습은 늙어 빠져 버린다. 회색으로서 회색으로 그려진다면 인생의 모습은 젊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식될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저녁놀이 스며들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날아간다.

(G.W.F. 헤겔/ 법철학)

 

그렇다. 철학에는 도시 "위험"이 없는 것이다. 다만 이따금씩 야수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실은 영양 부족의 몇몇 짐승만을 보여주는 서커스가 있을 뿐이다.

(G. 폴리처)

 

대체로 철학이란 것은 상식을 알기 어려운 말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J.W. 괴테/ 격언과 반성)

 

철학의 가치는 철학자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인간이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그 철학도 진실하다.

(A. 카뮈/ 수첩)

 

시는 진실의 전체를 포함하고, 철학은 그 부분을 표현한다.

(R. 브라운/ 의사의 종교)

 

가능한 것만을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철학에 지나지 않는다.

(R. 브라운/ 의사의 종교)

 

철학의 본질은 진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철학이란 도중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의 질문은, 그 회답보다도 더욱 중요하며, 또한 모든 회답은 새로운 질문이 된다.

(K. 야스퍼스)

 

시란 성숙한 자연이며, 철학이란 성숙한 이성이다.

(J.W. 괴테/ 격언과 반성)

 

동양철학은 존재의 철학이 아니요, 생성변화의 철학이다. 그러므로 동양철학은 관념세계에서 구성된 것이 아니요, 물리학적 세계 또는 생물학적 세계 위에서 구성된 철학이다.

(김경탁/ 흐르는 존재)

 

나는 철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좌절된 사람들의 변덕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V.F. 니진스키/ 니진스키 일기)

 

아는 것이 없다는 겸손한 고백은 철학이 성숙한 마지막의 깨우침이다.

(R. 히치콕/ 영원의 속죄)

 

철학이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 즉 보이체크에게 작용할 때는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보이체크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자들의 경우에는 그것을 조소합니다.

(E. 카네티/ 말의 양심)

 

철학에는 첫 걸음은, 경신하지 않는 것이다.

(D. 디드로/ 마지막 대화)

 

 

철학의 겉핥기는 사람의 정신을 무신론으로 이끌어 가지만 철학의 심오한 곳에 다다르면 다시 종교로 데려간다.

(F. 베이컨/ 수상록)

 

여론이 세계의 여왕이라면 철학은 이 여왕을 지배한다.

(볼테르/ 달랑베르에게 보낸 편지)

 

사람이 위대한 철학자일수록, 그는 보통 사람들의 어리석은 질문에 대답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H. 센키에비치/ 쿠오바디스)

 

철학은 모든 것에 관해서 성실한 체 얘기를 하고, 배움이 얕은 사람들의 칭찬을 널리 하는 수단을 준다.

(R. 데카르트/ 방법서설)

 

정신은 죽지 않고/ 철인인 체하면서/ 여세(餘世)를 즐기고자 노력하면서/ 나는 나이 먹어 간다.

(R. 크노/ 늙는다)

 

담화는 그리 풍부치 못하였습니다. / 철학은 그의 특기가 아니었습니다. / 철학에는 쩔쩔맸습니다.

(G. 벤)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신에게 얻으려 한들 그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철학하고 있는 듯이 보여서는 안 된다. 실제로 철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필요한 것은 건강한 듯이 보이는 외관이 아니라 건강 자체이기 때문이다. 공허한 것은 인간의 고뇌를 치료할 수 없는 철학자의 말이다. 마치 육체에서 병을 쫓아낼 수 없는 의학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정신의 고뇌를 찾아낼 수 없는 철학은 아무런 유익함이 없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진수(眞髓)는 가능한 한에 있어서 외부의 사물로 하여 침해를 받음이 없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에 그친다.

(에픽테토스)

 

욕망의 현존은, 신의 현존처럼 철학자를 무시한다. 철학자의 복수는 응징하는 것이다.

(R. 샤르/ 히프노스의 각성)

 

사전을 문법 서라고 부를 수 없듯이, 많은 것을 기억한다고 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J.H. 뉴먼/ 교양과 관련된 지식)

 

유다교는 성서와의 만남이다. 유다교의 철학은 성서의 사상과의 만남이 아닐 수 없다.

(헤셀/ 어둠 속에 갇힌 불꽃)

 

꿰매지 않아도/ 줄줄이 얽히는 사슬/ 철학책과/ 창세의 비밀과/ 멧돼지 할퀸 자욱과/ 버티며/ 일으켜 세우며/세월을 비켜 잠잔다.

(황순구/ 여백)

 

우주와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대철학은 눈물의 삼매에 입정(入定)되었습니다.

(한용운/ 고대)

 

어느 날 문득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안 그득히 서린 철학을/꽃은 알고 있다.

(이우석/ 꽃을 위한 시초)

 

우리들 몸에 살이 있고 뼈가 있고 피가 있고/ 우리들 머리에 철학이 있고 수학이 있고/ 우주가 있고/ 있을 것 다 있어도/ 아버지 보는 눈 없으면/ 가장 귀한 눈 하나 없는 것./ 거리를 두고 존재하는 삶의 깃털/ 아버지의 음성으로 정을 가꾸며 지식을 더한다.

(이탄/ 우리들의 아버지)

 

무의식적인 것에서 의식적인 것으로/ 거기서 되돌아와 많은 세로(細路)를 지나/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던 것으로/ 거기로부터 무자비하게 뿌리쳐서/ 회의(懷疑)로, 철학으로 발길을 옮겨/ 비유의 제일단계에/우리들은 말한다. //그러고서 열심히 관찰을 통해/ 다양한 명철한 거울에 의하여/ 세계 경멸의 찬 심연(深淵)이 동결한 정신 착란의/냉혹한 철(鐵)의 폭력 속으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 그러나 그것은 현명하게도 우리들을 데리고 나온다. / 인식의 사잇길을 지나/ 자멸의 달고 쓴 만년의 행복으로.

(H. 헤세/ 철학)

 

님만 님이 아니라 기를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한용운/ 군말)

 

그대는 왔다 레반에서 곧장 내가 있는 곳으로/ 양치기여 그대는 몸에 지니고 왔다/ 천진난만한 주름살과 고풍스런 스콜라철학을/ 핀 루이스의 향기와 오렌지꽃을.

(네루다/ 스페인 형상에서 살해된 미켈 에르난데스)

 

울지 못하는 지혜로부터, 웃지 못하는 철학으로부터 그리고 어린이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자존심으로부터 도망쳐라.

(K. 지브란/사람의 아들 예수)

 

인간이 자연의 산물을 먹고 소화불량으로 고통받을 때 철학은 그 첫모습을 드러냈다.

(K. 지고란/ 사람의 아들 예수)

 

철학의 역할은 두 지점간의 지름길에 있다.

(K. 지브란/사람의 아들 예수)

 

이러한 밤에는 철학이란 굳은 빵 조각-/ 종로와 명동은 시가를 피우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귀를 기울인다!

(김현승/ 밤 안개 속에서)

 

 

설 교 노 트

 

나는 어떤 존재인가

욥7:17-21

 

서론

동방의 의인이요, 부자였던 욥은 순식간에 많은 재난을 만났습니다. 그 많던 재물은 다 없어졌고, 자녀들이 떼죽음을 당하였으며, 욥의 몸에는 원인 모를 악창이 나서 흐르는 진물을 처리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침내 그의 아내는 용을 저주했습니다(욥2:37). 그를 사랑하던 친구들도 욥을 혐오했습니다. 그의 하인들도 용을 떠났습니다 그를 알던 동포들은 욥을 혐오하고, 동리의 아이들까지도 그를 조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욥은 그가 만난 이러한 극한 상황을 가리켜 전쟁이요, 노역하는 품꾼이요, 자유가 없는 종이라고 진술했습니다(욥7:1). 그는 고통의 밤이 두렵다고 했습니다(욥7:4), 그의 살에는구더기와 흙조각이 의복처럼 입혀졌다고 하였습니다(욥7:5).

그의 생명은 곧 운명 직전에 있는 한 호흡같다고 했습니다(욥7:7). 그의 마음은 아프고그의 영혼은 괴롭다고 하였습니다(욥7:ll). 그래서 그는 속히 숨이 멎어 버리고, 앙상궂게 남은 데보다 죽는 것이 좋다고까지 항변을 토하고 있습니다(욥7:15). "주여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입니다"라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어떤 존재로 취급하고 있는가를 또 알았습니다.

 

1. 주께서 크게 여기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7장 17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실존은 실로 아픔과 절망의 고통으로 충만했습니다. 그 이상 더 비참해질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이르고 말았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를 "크게 여 기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크게 "여기신다"함은 인격, 품위, 명예, 지위 등에 있어서 영광스러운 존재로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나를 존귀히 여기고, 영광스럽게 여기며, 창대케 하신다는 말입니다. 결코 인간 스스로가 자기를 위대하게 존귀로운 존재로 만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크게 여기시는 한도 안에서 나(인생)는 존귀한 존재로 된단 말입니다. 결코 나의 나된 존재적 가치는 양이나, 소나, 나귀나, 자식이나, 아내나, 친구 등에 의해서 크게 여겨짐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 크게 여김을 받을 존재란 말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께서 나를 귀히 여기지 않을 땐 실로 그 존재적 목적이나, 가치나, 의의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나의 나된 존재적 가치는 오직 하나님 자신의 평가에 있다는 뜻입니다.

 

2.주의 마음에 두시는 존재입니다.

욥기 7장 17절에서 또 말하기를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새로 직역하면 "·.·또 당신의 마음을 두시는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이 나(인생)의 나된 존재 속에 머문다는 말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을 베푼다"는 뜻이 됩니다. 참으로 기막힌 말입니다. 하나님이 용에게 관심을 놓지 않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다 놓치고, 모든 것에 거절을 당하고 자포자기 상태의 절망 속에서 뒹굴고 있는 용에게 하나님 자신의 마음을 두고 계신다고 하였습니다.

 

3. 주께서 아침마다 권징하는 존재입니다.

욥기 7장 18절에 "·..아침마다 권징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아침마다"라 함은 때를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 주기적인 시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권징하신다"는 말은 방문한다, 참관하다, 간섭하다, 혼내주다, 따지다, 계산하다, 찾아가다, 심문하다 등의 뜻입니다. 주께서 나를 잊지 않고, 나에게 사랑의 연민을 가지고, 내 인생 여정을 깨우치고, 파헤치며, 인도하시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잘못 생각할 때 마음에 빛을 주시고, 범죄했을 때 혼을 내어주시고, 회개하도록 나의 나된 인생을 권고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나는 어떤 존재인가?

아침마다, 분초마다 절대하신 주님의 간섭과 통치와 보호를 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결코 나의 나된 존재는 내 마음대로 나를 주장할 수 있는 자율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은 나를 크게 여 기십니다. 우주보다 더 크게 여 기십니다. 주님은 나를 당신의 마음 속에 두십니다. 주님은 나를 아침마다 권징하십니다. 주님은 나를 분초마다 시험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 세상 환난의 잿구더기에 앉아 있을지라도 주님만을 의지하고, 바라고 축복의 끝을 감사하고 살아야 합니다.

청 결

성 경 활 용

1. 청결에 대한 표현

(1) 깨끗함

(딛1:15) 개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2) 청결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2. 청결케 하는 것

(1) 성령

(사4:4)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2) 변론

(사1:25)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3) 기도

(시51: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하소서

(4) 양심

(딤후1:3)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5) 순종

(벧전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케 하여

(6) 행위

(벧전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 영적으로 청결한 대상

(1) 마음

(약4:8)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2) 성도들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3) 몸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관련원어풀이

1. rhef; 타-헤-르

(1) 비취다, 밝다, 깨끗하다, 정결케 되다.

(왕하5:12, 14)

(2) 정결케 하다, 깨끗케 하다.

(대하29:15, 말3:3)

(3) 정결함을 선포하다.

(레13:6, 시5l:4)

(4) 자신을 정결케 하다.

(창35:2, 느12:30)

 

2. r/hf; 타-호-르

(1) 깨끗한.

(슥3:5)

(2) 순수한, 합금이 아닌

(출25:11, 28:36)

(3) 정결한, 신선한.

(창7:2, 레13:17)

(4) 순전한, 온전한.

(시12:7, 욥14:4)

 

3. rr'B; 바-라르

(1) 분리시키다, 쪼개다.

(겔20:38)

(2) 고르다, 선택하다, 순수한, 선택한, 순결한.

(대상9:22, 느5:18)

(3) 정결케 하다, 순수하다, 정결하다.

(습3:9)

(4) 깨끗케 하다, 닦다, 갈다.

(렘4:ll, 51:11)

 

4. aJgiavzw 아기아조

(1) 거룩케 하다, 깨끗이 하다.

(마6:9, 벧전3:15)

(2) 정결케 하다, 외부적으로 깨끗케 하다.

(히9:13)

(3) 속죄에 의해 깨끗케 하다.

(고전6:11, 엡5:26)

 

5. aJgnov" 아그노스

(1) 거룩한, 성스러운, 순수한, 순결한.

(고후11:2, 딛2:5)

(2) 깨끗한, 흠 없는.

(빌4:8, 벧전3:2)

설교예화자료

더럽혀지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산족제비는 황적 갈색인 자신의 털이 더럽혀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동물의 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족제비의 성격을 이용해 사냥꾼들이 족제비 사냥을 하는데, 산족제비가 사는 집을 찾아내고 그 집과 주위를 더럽게 해 놓고는 산족제비를 만났을 때 사냥개를 앞세워 추적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이 동물은 자기의 집으로 도망을 가는데 거의 집에 다다라서 자기의 집이 더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산족제비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사냥개가 오고 있는 방향으로 돌아섭니다. 자신의 털이 더렵혀지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려는 것입니다.

 

 

화니 크로스비

 

찬송시를 8천여 편이나 지은 것으로 잘 알려진 화니 크로스비(Fanny Crosby)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장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께서 시력을 주신다 해도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영혼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기 위해 거절하겠다고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불행을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믿으며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성결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외모보다는 마음

 

두 사람의 나그네가 다가올 때 한 티베트의 라마승이 설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환경 때문에 외모가 단정치 못했습니다. 나그네들은 중이 자기네 말을 못 알아듣는 줄 알고 그 늙은 중을 경멸적으로 비판했습니다. 그는 설교를 끝마치고 그들에게 돌아서면서,

"그러나 내 마음은 청결하오."하고 말했습니다.

 

 

가난하지만 깨끗하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위나라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학덕이 높았으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전자방(田子方)이라는 사람이 여우 겨드랑 밑의 흰 털로 만든 가장 좋은 옷을 선사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자사가 그런 선물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전자방은 심부름꾼에게 "전자방은 사람에게 무엇을 빌려 주면 잊는 버릇이 있고, 사람에게 물건을 주면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라는 말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자사는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쪽은 남아돌아 가는데 당신은 가지고 있지 않으니 유무상통하자는 것뿐입니다. "하고 애원하듯이 말했으나 자사는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쓸데없이 사람에게 물건을 줄 바에는 도랑 속에 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저는 확실히 가난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내 몸으로 도랑을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

 

 

양심의 청결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원폭기의 항법사 폴 버그만은 목매어 자살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 원폭 투하를 한 죄의식때문에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강한 죄의식 때문에 사람을 10만 명 이상 살상했다는 양심의 소리에 심적 갈등을 겪고 정신 이상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같은 원폭기의 기장 데이비스 장군도 한동안 알콜중독과 정신불안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폭격수 폴레비도 머리가 돌아 뉴욕주 북부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회오의 나날을 보내다가 퇴원 후 알콜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원폭투하의 적부를 결정한 이더리 대위도 정신이상에 걸려 노리개 권총을 들고 식품 가게에 들어가 식료품은 건드리지 않고 사람을 위협하고서는 우는 모습이 보도되곤 하였습니다.

원폭 투하의 승무원들을 두고 한편에서는 2차대전을 종결시킨 영웅으로 떠받들고, 한편에서는 사상 최대의 인간 파괴자로 저주받는 틈바귀에서 그들은 정신이 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핵무기가 있다는 사실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둔 양심의 쇠퇴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고 토인비는 말하였습니다.

명령에 의해 직무를 수행했다 하더라도 양심의 소리에 가책이 됐던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는 생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청결은 큰 미덕이다.

(C.B. 페어뱅크스/ 나의 미지의 벗)

 

신체의 청결은 신에 대한 당연한 존경심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생각되어 왔다.

(F. 베이컨/ 학문의 진보)

 

각자가 자기의 문 앞을 청소하라./ 그러면 시가의 어느 구역도 청결하다. / 각자 자기의 과제를 다하여라./ 그러면 시의회는 무사하다

(J. W. 괴테)

 

청결은 진실로 성스러움에 가깝다.

(J. 웨즐리)

 

몸을 깨끗이 하면 마음도 깨끗해진다.

(탈무드)

 

가난한 집도 깨끗이 청소하고 가난한 집 여자라도 깨끗이 머리를 벗으면 비록 경색이 미려하지 못할지라도 기품이 절로 풍아(風雅)하리로다. 선비가 한때 궁수(窮愁)와 요락(蓼落)을 당한들 어찌 문득 스스로를 버릴 수 있겠느냐.

(채근담)

 

청결하게 하는 것도 신앙의 일부다.

(이슬람 격언)

 

인간은 그 본성에서 청결하고 성미한 동물이다.

(L. A. 세네카)

 

문 앞의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 애국심의 초보다.

(F.W. 니체)

 

이렇듯이 탁류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을 건져 주십시오.//그리고 우리에게 통일과 화목을 주십시오./ 주여!/ 이 소녀에게 청결과 신앙을 주십시오.

(황금찬/ 소녀의 기도)

 

자비를/ 베푸는 사람,/ 하늘의 의인되고/ 마음이/ 깨끗한 자는/ 주 얼굴 뵈오리라

(홍안의/ 복 있는 사람)

 

더러운 세상에/ 깨끗하게 살자/ 나 한 사람/ 바르게 살다보면/우리는/그만큼 더러움을 씻나니/ 청결한 세상을/ 만들 수가 있으리.

(홍안의/ 밀알 하나가-입석캠프장에서)

 

 

설 교 노 트

 

성도의 자본

딤후1:3-6

 

서론

우리 성도들에게는 신앙의 자본이 있습니다.

본문은 디모데의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잠시 디모데의 신앙을 중심하여 신앙인의 자본이 무엇인지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1. 청결한 양심입니다.

본문 3절에 밝히기를 신앙인의 양심이라고 해서 모두 다 청결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단쇠의 화인맞은 양심(딤전4:2)"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죄를 범해도 부끄러워하거나 가책을 받지 아니하는 뻔뻔한 양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더러운 양심(딛1:5)"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청결한 양심(딤후1:3)"이 있는데, 이는 죄악에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양심으로서 이러한 양심이 기능을 바로 발휘한다고 하였습니다.

 

2. 제2의 자본은 눈물의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송장이요, 해골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우리 신앙생활의 자본이기에 앞서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해야 될 세 가지 이유를 밝히셨는데

(1) 시험에 들지 아니하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마귀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2) 육신이 연약한고로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육신은 연약한 관계로 늘 넘어지기 쉽고 실패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3) 십자가를 바로 지고 주님을 따라가기 위

해서 깨어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여 능력받지 못하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하지마는 본문에 있는 대로 눈물의 기도가 있고 눈물 없는 메마른 기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디모데의 기도는 눈물의 기도요, 간절한 기도요, 생명적인 기도입니다.

이 눈물의 기도 내용은

① 자기 죄에 대하여 회개 자복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②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눈물의 기도라고 합니다.

③ 자기 사명에 대한 애타는 눈물의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3. 제3의 자본은 성령의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차이는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습니다. 롬3:9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행2:1-4에 보면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1) 약한 사람들이 강해졌습니다.

(2) 비겁한 사람들이 담대해졌습니다.

(3) 세속적인 사람들이 사람으로 변화되어 복음을 힘 있게 증거하였습니다. 이 성령의 능력이 우리 신앙들의 자본이 되어

① 시험과 환난을 승리하게 합니다.

② 이 세상 죄악과 마귀의 권세를 정복하게 합니다.

복음을 힘차게 전하여 교회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캅니다.

우리 신앙인의 자본은 감정이나 열심히나 인간주의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청결한 신앙 양심을 소유하고, 기도해야 하며,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손이 깨끗한 자

욥17:9

 

서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고 본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육체의 한 지체인 손의 청결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의 성결을 뜻합니다.

손이 깨끗한 자란 무엇입니까?

 

1. 손이 더러운 자가 있습니다.

이사야서 59장 3절에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웠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말함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범죄한손이 더러워진다는 뜻입니다.

시편 기자도 말하기를 "저의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시26:10)"라고 하여 악행자의 추한 손을 가리켜 말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사형언도를 내리고 자기는 무죄하다고 하면서 그 손을 씻었다고 하였습니다(마27:24). 그러나 아무리 빌라도가 깨끗한 물에 그 손을 여러 번 씻었다고 하여도 그 더러운 손이 깨끗해질 수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2. 손을 청결히 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그 거룩한 곳에 설 자는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정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시24:3-4).

야고보 사도도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약4:8)"고 지목하였는데 그 손은 범죄한 손이니 깨끗이 회개하라는 권면입니다.

손은 사람이 행동을 하는 대표적인 지체입니다. 그런데 손이 더럽다고 하는 것은 그의 범죄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손을 씻는 풍속이 있어서 주로 음식먹기 전에 씻는데 이것은 위생적인 면보다도 종교적인 의의가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손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데 대한 비난으로 예수님을 반박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청결한 삶을 살고, 주님 앞에 바로 서야 하겠습니다.

 

3. 점점 힘을 얻게 됩니다.

참된 의인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손이 깨끗한 자입니다.

욥이 당하던 재난과 같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도리어 신앙의 길을 힘있게 간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 힘쓰는 자는 점점 힘을 얻는 법입니다.

손이 깨끗한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걸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참된 의인은 좌우로 탈선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의 바른 길을 굳세게 행진해 나갑니다. 그래서 그의 의를 지탱해 나갈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감에 따라서 그의 선과 의는 더욱 더 굳어져서 확고 부동해질 것입니다.

 

결론

손이 깨끗한 자는 마음도 깨끗합니다. 마음이 깨끗하면 그 생활이 더욱 깨끗해지리니 복된 생활이 될 것입니다.

청 년

성 경 활 용

1. 청년의 특징

(1) 힘이 있다.

(잠20:29)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2) 장성한다.

(시144:12)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3) 허랑방탕하게 되기도 한다.

(눅15:13) 그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4) 음녀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잠7:13)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2. 청년에게 꼭 있어야 할 것

(1) 주의 말씀

(시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2) 지식과 근신

(잠1: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 니

(3) 새 힘

(사40:30-31)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4) 지혜

(잠1:20)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5) 여호와를 의뢰함

(잠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마음을 지키는 것

(잠4:23)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7)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

(전12:1)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3. 청년이 피해야 할 것

(1)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

(잠2:12-15)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2) 궤휼과 사곡

(잠4:24)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3) 우편이나 좌편으로 치우치는 것

(잠4:27)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4) 유혹의 발을 금하는 것

(잠1:15)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5) 게으른 자와 마음

(잠13: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6) 포도주와 독주

(잠20:1)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7) 탐식하는 것

(잠23:20) 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8)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

(잠23:21)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헤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9) 청년의 정욕

(딤후2: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10)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

(딤후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11)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

(딛2: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관련원어풀이

1. v/na> 에노-쉬

(1) 사람.

(시55:14, 욥7:17)

(2) 군중, 백성.

(사8:1)

(3) 악인.

(시66:12)

 

2. t/rIjuB] 베후-로-트

젊은이.

(전11:9, 12:1)

 

3. r['n" 나-아르

(1) 소년.

(출2:6, 삿13:5)

(2) 20세 정도된 청년

(창34:19)

(3) 소녀.

(창24:14)

 

4. !l,[, 에렘

젊은이, 청년.

(삼상17:56)

 

5. tWrl]y" 야르두-트

(1) 청년, 청춘.

(전11:9, 10)

(2) 젊은이.

(시110:3)

 

6. neaniva" 네아니아스

(1) 젊은 사람, 청년.

(행20:9)

(2) 일생의 최고 활동기에 있는 사람.

(행7:58)

 

7. neanivsko" 네아니스코스

젊은 사람, 청년.

(마19:20)

설교예화자료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

 

종교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신자의 대부분이 이 소년 시대와 청년 시대에 입신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신앙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역사를 보아도 요셉은 일찍이 하나님께 몸을 바친 사람입니다. 사무엘도 역시 그렇습니다. 다윗 역시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역시 그렇습니다. 이사야나 모든 선지자들이 대부분 소년 시대와 청년 시대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그 몸과 마음을 바친 사람들입니다.

 

 

암살자가 된 청년

 

오래 전에 한 젊은이가 그의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버지, 나를 도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오늘밤 저는 자살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돈만 세고 있던 아버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는 것을 알고 몹시 놀랐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성병에 걸린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즉시 자신의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진료소에 보냈습니다. 1년이 되어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고 치료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청년은 한 처녀와 결혼해서 곧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기를 낳을 때 그 아이의 엄마는죽었습니다. 슬픔으로 가득 찬 젊은 아버지는 아기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그는 권총을 집어 밖으로 나가 자살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성장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미국 대통령 윌리암 맥킨리와 악수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뉴욕 버펄로시민의 행렬 속에 서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사람들과 악수하고 있을 때 총을 쏘아 대통령을 암살했습니다. 그는 얼마 후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습니다. 자식을 낳는 것만으로 부모의 책임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어록·시·묘사

 

사람이 노령에 들면 많은 일을 배울 수 있다고 한 솔론의 말은 일종의 망상이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많이 달릴 수 없는 것과 같이 많이 배울 수도 없는 것이다. 청춘이란 과격한 노역에 적절한 시기이다.

(플라톤)

 

청춘은 아름답고, 노년은 마음이 좋다.

(M.E. 에센바흐/ 잠언집)

 

청춘은 하여간 자기에게 모반하고 싶어하는 것, 옆에 유혹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W. 셰익스피어/ 햄릿)

 

젊었을 때 우리는 배우고, 나이 먹어 우리들은 이해한다.

(N. E. 에센 바흐)

 

청년에게 결점이 있다고 해도,그것은 얼마 안가서 없어질 것이다.

(J. R. 로얼)

 

청년은 노인을 바보라고 생각하지만, 노인도 청년을 바보라고 생각한다.

(G. 채프먼/ 모든 바보)

 

젊었을 때 너무 방종하면 마음의 윤기가 없어지고, 또 너무 절제하면 머리의 융통성이 없이 잘 돌아가지 않게 된다.

(C.A. 생트뵈브/ 나의 독)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모든 증오의 감정을 멀리하고 있으면 젊음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있게 된다. 아름다운 부인들도 거의가 우선 얼굴로부터 나이를 먹는 법이다.

(스탕달/ 적과 흑)

 

사실, 이 젊음을 보존해 낼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아는 한, 나무와 진실 이외에는.

(O.W. 홈스/ 디콘의 업적)

 

청년들은 판단하는 것보다 발명하는 것, 의논하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 정해진 일보다 새로운 기획에 적합하다.

(F. 베이컨/ 수필집)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저돌과 무례를 천진난만으로 알고 있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술꾼들은 자기로서는 절주(節酒)하고 있다고 생각하듯이, 청년들은 자기 스스로를 영리하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P.D.S. 체스터필드/ 편지)

 

청년기에 있어서는 하루하루는 짧고, 한 해 한해는 길다. 노년기에 있어서는 한 해 한 해가 짧고 하루하루가 길다.

(K.A. 페딘)

 

청춘은 끊임없는 취기이다. 몸 가뜬하게 타오르는 열기, 이성의 광기이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청년이여, 청년이여, 항상 정의와 더불어 있어라. 만약 정의의 관념이 그대 속에서 희박하게 되면, 그대는 모든 위험에 빠지게 되리라.

(E. 졸라)

 

청춘의 실책은 장년의 승리나 노년의 성공보다 믿음직한 것이다.

(B. 디즈레일리)

 

청춘은 인생에 달 한 번밖에는 오지 않는다.

(H. W. 롱펠로우)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배치했을 것이다.

(A. 프랑스)

 

청춘은 이유도 없이 웃는 법이다. 그것이 청춘의 가장 중요한 매력의 하나인 것이다.

(O.F.O.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청춘은 소유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다.

(O.F.O.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시간이 이다지도 빨리 흐르는 것은 우리가 시간에 이정표를 만들어 놓지 않기 때문이다.중천의 달과 지평선의 달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청춘은 충만하기 때문에 그토록 길고 짧은 것이다. 가령 시계판 위의 바늘이 5분간 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 없는 것만큼 사물은 지리하고 짜증스런 것이다.

(A. 카뮈/ 비망록)

 

청춘이란 것은 기묘한 것이다. 외부는 빨갛게 반짝이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J.P. 사르트르/ 자유에의 길)

 

젊은이는 항상 미래를 내다보고, 노인은 미래가 없기 때문에 항상 과거를 되돌아보게 마련이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깨끗한 행실을 닦지 못하고 젊어서 재물도 쌓지 못하면, 고기 없는 빈 못을 속절없이 지키는 늙은 따오기처컴 쓸쓸히 죽는다.

(법구경)

 

젊음의 특징은 아마도 손쉬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 천부의 자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젊음이란 무엇보다 먼저 거의 낭비에 가까울 정도로 성급한 삶에의 충동이다.

(A. 카뮈/ 알제의 여름)

 

청춘은 유열(倫悅)을 구하고, 유열은 사랑을 구한다.

(M. 에이겐상드)

 

혼이 들어 있는 청춘은 그렇게 쉽게 멸망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H. 카로사/ 지도와 신도)

 

청춘은 결코 안전한 주(株)를 사서는 안된다.

(J. 콕토/ 수탉과 아루루캉)

 

잃어버린 청춘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옛날의 모양이 남아 있지 않은 정원의 고목 속에서 최후의 우뢰의 큰소리를 들을 따름이다.

(F. 모리아크/ 예수의 생애)

 

어느 시대 어떤 사회를 막론하고 젊은이란 어른들에게 있어 좀 불안하고 위태스러운 존재로 보이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이미 실사회의 신산(辛酸)을 맛보면서 위태스러운 중추로서 현실적 책임이나 역할을 맡고 있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아직도 현실의 복합성에 대한 체험이 없고 또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위치에 있는 젊은이들의 꿈이나 이상이 한낱 환상으로 보이고 또 그들의 행동이 무모하고 불안해 보이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구상/ 신구세대에게 보내는 충언)

 

젊음은 자라나는 것의 싱싱한 아름다움이요, 뻗어가는 것의 단순하면서 강인한 아름다움이며, 잡것이 곁들이지 않는 정결하고 신선한 아름다움이다. 젊음이 뿜어 올리는 그 순수하고 순결하고 싱싱한 아름다움으로 젊음은 스스로를 신록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박목월/ 신록송)

 

젊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름다운 꿈이요, 높푸른 이상이요, 뜨거운 정열이요, 강인한 투지의 응결체다.

(김우종/ 아픔과 젊은 시절)

 

젊은 사람이여! 자기 자신을 무력하다고 생각하여 실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우선 자기가 무력하다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누구 하나 무력하지는 않은 것입니다.

(P.S. 벅/ 서간)

 

젊은이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흔히 고생을 하면서 먼 거리를 여행한다. 그들의 목적이 그들이 생각하는 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닌가는 여기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충분한 진지성, 준비, 혹은 집중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여튼 이 젊은이들은 과감히 "존재할"뿐 그들이 보상으로 무엇을 얻느냐, 무엇을 보존하느냐에 관심을 갖지-않는다. 그들은 또 흔히 철학적으로 순진하기는 하지만 구세대보다 훨씬 더 성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시장에서 값나가는 "상품"이 되기 위해서 항상 자신의 자아를 갈고 닦지는 않는다. 그들은 알면서 모르면서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며 그들의 이미지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대다수처럼 진실을 억누르는 데 그들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 ‥‥그들이 아직 자신이나 측은 생활 영위의 지침이 될 목표를 찾아내지 못했다 해도 그들은 소유와 소비 대신 스스로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만호 장안의 별처럼 깔린 등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사방에 유리창을 활짝 열어 젖혔건만 건장한 청년들의 코와 몸에서 풍기는 훈김이 우거진 콩밭 속에 들어간 것만큼이나 후꾼후꾼 끼친다.

(심훈/ 상록수)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정 철/ 송강가사)

 

내 젊음의 날은 차디찬 고뇌의 덩어리일 따름./ 내 기쁨의 향연은 괴로움의 향연일 따름./ 내 거둬들이는 곡식은 독초가 무성한 밭에서일 뿐/ 이리하여 내 행하는 모든 선한 사업은,/ 헛되고 헛된 수확의 희망일 따름이려니,/ 내 생명 사라질지라도 나 아직 볕을 보지 못했고,/ 내 아직 살아 있을지라도 내생명 지금 사라진다.

(C. 티치번/ 내 젊음의 날은)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주야(晝夜)에 긏지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하리라.

(이황/ 도산십이곡)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라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열음에 싸인 만물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따뜻한 봄바람이다. 풀밭에 속잎나고, 가지에 싹이 트고 꽃 피고 새 우는 봄날의 천지는 얼마나 기쁘며 얼마나 아름다우라? 이것을 얼음 속에서 불러내는 것이 따뜻한 봄바람이다. 인생에 따뜻한 봄바람을 불어 보내는 것은 청춘의 끊는 피다. 청춘의 피가 뜨거운지라, 인간의 동산에는 사랑의 풀이 돋고, 이상의 꽃이 피고, 희망의 놀이 뜨고 열락(悅樂)의 새가 운다.

(민태원/ 청춘예찬)

 

청춘의 꽃은 어른의 과실/ 청춘의 입김은 향기보다 달고/ 청춘의 희망은 인류의 생기/ 청춘의 환락은 신의 사랑을 묘사한다.

(실드)

 

숱한 남성을 짝사랑한 후에/ 가을 수풀 되어버린 내 머리채/ 흙먼지 날리는 사막 같은 가슴// 그 어디에서/ 그대는 발견되었는가.// 내 미처/ 보아도 보지 못하던 눈/ 들어도 듣지 못하던 내 귀/ 그 누가 열어 주어// 아아/ 한스러운 이 몰골/ 그대 어찌/ 이제사/ 내 앞에 뵈었는가// 청년 그리스도/ 나의 사랑이여.

(류안진/ 청년 그리스도께)

 

 

설 교 노 트

 

청년의 삶

창4:1-15

 

서론

우리 청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이 과연 하나님 보기에 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조차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 가인과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가인과 그 제물은 하나님께 열납치 않으신 것은 물론이고 그의 인격조차 먼저 열납치 않으셨습니다.

가인은 "선을 행치 않는 자(4:7-8)"였고, "악한 자(요일3:12)"였습니다. 동생을 죽였기 때문에 악한 자, 살인자가 되었지만 좀더 정확한 의미는 악한 자였기에 살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가인의 삶이 형편없이 부도덕하였기에 그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참석하여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헌금도 드리지만, 삶의 회개가 없이는 아무리 종교적 모습으로 찬송하고 기도하고 예물을 드릴지라도 바리새인의 기도처럼(눅18:9-14) 하나님께서는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신다(잠15:8)"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삶의 결정입니다. 엿새 동안 실컷 죄짓고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회개하는 것보다 한 주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그 삶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 아버지여! 이 사람을 드립니다. "할 때, 이 삶이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요, 예물인 것입니다. 예배의 실패자였던 가인은 생활의 실패자인, 곧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2. 아벨과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벨의 경우 그의 제물은 물론 그의 인격, 곧 아벨 자신이 하나님께 먼저 열납이 되었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그의 제물에 있어서 양의 첫 새끼를 바치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섬기는 정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인격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 열납되었기에 그의 제물도 열납된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예배자의 표상이며 바른 인격자의 모델이 되어 왔습니다 그는 바른 예배를 드리는 성공자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리고 또한 예배자로서의 개인의 삶을 살아가지만 삶이 없는 예배, 예배 없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예배가 이분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삶의 전체가 예배를 드리며 삶의 구체적인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되심을 인정하여야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 청년들은 어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결코 가인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아벨과 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눅7:11-16

 

서론

예수님께서 나인 성을 지나가시다가 어느 과부의 독자가 죽은 것을 보시고 이미 생명이 끊어진 청년의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청년은 즉시 죽음 가운데서 일어났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본 수많은 무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어떠한 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

 

1. 속 사람의 새로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청년은 젊음과 생기가 있는 시기이며 꿈과 희망과 미래가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꿈과 희망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항상 청년의 젊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고후4:16에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다"라고 한 바울의 말과 같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 사람을 형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속 사람이 강건해져야 합니다. 육신의 젊음이란 안개와 같아서 신속하게 지나가 버리지만 속 사람은 점점 더 새로워질 수가 있으며 강건하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마음의 젊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은 인격의 좌소요,하나님의 뜻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젊어 지려면 깨끗한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는 자는 젊어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침투해 오는 악하고 더러운 어두움의 권세들을 다 내어 놓고 성경에서 말씀하신 의로운 마음(벧후2:8), 널은 마음(왕상4:29), 온유한 마음(고전4:21)을 간직하여 젊고 강건한 마음을 항상 잃지 않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우리는 생활 속에서 젊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이는 젊은데 생활 속의 사고방식이 늙고 맥이 다 빠져버려 의욕도, 기대도, 전진도 없는무능한 인생으로 열매 없이 사는 자가 있는가 하면, 모세같이 늙고 백발이 되어도 줄기찬 신앙 속에 넘치는 소망을 가지고 뜨겁고 위대하게 살아가는 자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영원한 소망이 되실 뿐 아니라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우리는 죽음의 거리 나인 성에 나타나신 주님께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청년아 일어나라"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속 사람의 새로움과 마음의 젊음과 생활 속에서 젊음을 가져야 합니다.

 

 

청년들의 문제

마19:16-22

 

서론

청년은 한 나라의 희망이요, 보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기독 청년들은 교회의 희망인 동시에 보배라고 하겠습니다.

청년 때는 모든 것을 창조해 나가는 시기이므로 높은 이상을 가지고 모든 일에 열정적이며,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합니다.

본문 16절에도 유대 청년 한 사람이 주님께 나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1. 청년의 신분과 자세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청년의 신분과 자세는 어떠합니까? 그는 부자 청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의 율법을 전공한 법관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교를 신봉하는 종교인이요, 도덕 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돈도 많고, 지식도 많고, 권력도 있는 청년이었지마는 해결 못할 인생의 중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주님을 찾아온 청년의 자세는 그 태도가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지극히 겸손하였습니다. 매우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와 자세와 문의를 해 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자세입니다.

 

2. 주님을 찾아온 동기와 목적

청년은 자신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온 동기는, 유대의 가장 착한 선생으로 알고 찾아왔습니다. 참된 진리와 도덕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구원과 영생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찾아왔던 근본 목적을 고찰해 보면, 그는 누구보다 착한 인간이 되어 보자는 목적에서 입니다. 인생이 영생을 얻는 비결을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을 발견하여 자기완성을 위해서라고 주님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이 청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인류의 중대 문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 해결자는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3. 청년의 문제 해결 방법

주님은 이 청년에게 문제 해결의 방법을 세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포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인간의 가치관에 의해서 귀중하다고 생각하여 모아 놓았던 모든 재물을 다 팔아버리라는 말입니다. 이는 주님 앞에서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 되리라는 말입니다. 이는 모든 소유를 다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나는 아무것도 없는 자가 되어 살라는 말입니다.

(2) 가난한 사람을 봉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살지 말고, 남을 위해서 살 아가라는 말입니다. 더욱 주님을 믿는 소자들에게 구제하라는 말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주님의 일에 헌신하라는 말입니다. 이 길이 착한 인간이 되는 길이요, 영생을 얻는 길이요, 나 자신을 완성해 가는 길이라고 밝혀 지시하여 주셨습니다.

 

결론

그는 근심하면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1) 신앙의 용기와 결단성의 결핍이요

(2) 진정한 가치관을 바로 정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요

(3) 이 세상 재물에 노예가 되어서, 마침내 하늘의 보화를 포기하고, 그만 이 세상 것을 택하므로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청년의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청년의 생명은 용기와 결단성이요, 바른 가치관을 추구하여 취사선택을 바로 해야 될 줄 압니다. 이 세상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택하여 따르는 길이 참 영생의 길입니다.

 

 

젊은 자의 영화

잠20:29

 

서론

나약한 청년은 보기에도 참으로 딱합니다. 그러나 건장한 청년은 영화롭게 보이는데, 그 요소는 그의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젊은이의 자랑은 그 힘이요, 그것을 볼 때 누구나 다 경탄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1. 젊은이들의 힘

(1) 신체적인 육체의 힘

잘 발달된 육체미는 남자다움의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지만 그것대로의 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끓는 피, 뛰는 심장, 반짝이는 눈동자, 어느 것 하나 힘차지 않은 것이 있습니까? 이것은 육체적 힘의 늠름함이며 아름다움의 극치입니다.

(2) 지성적인 총명과 지혜의 힘

이것은 지식, 정신적인 원기와 통찰력, 사고력, 민첩함과 재능, 상상력, 의지력의 소유 등을 말합니다. 참으로 믿음직한 것입니다

(3) 도덕적이며 영적인 힘

우리 주위의 악한 세력을 물리치고 주저함이 없이 불의의 이득이나 거룩하진 못한 향락에의 유혹을 제쳐놓으며, 고상한 기풍과 인격으로 승리하고 전진하는 그 힘은 찬탄을 받습니다.

 

2. 청년을 위한 특별한 유혹

강자가 받는 유혹은 약자를 업신여기고 얕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 라 죄가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강한 자들도 본래는 약한 자들이었으며, 또한약한 자가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청년들은 힘이 겸손성을 갖추었을 때에 아름다운 것이 되지만, 교만하고 거만할 때는 매우 악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청년들의 힘은 미덥지 못한 것입니다. 어딘가 불안정하고 위태스럽기만 합니다.

이러한 것은 특별한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청년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말고, 그 힘으로 인하여 유혹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3. 절대적인 의미가 따릅니다.

인간의 힘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것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깨닫는 것이며, 경건하고 종교적인 행동에 먼저 착수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힘을 주셨다"고 하여 모든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긍정해야 할 것입니다.

강자의 힘뿐만 아니라 약한 자의 힘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다 하나님께 빚진 자들입니다. 더구나 청년들의 그 생기와 발랄한 힘과정열과 미모를 갖춘 향기나는 그 힘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이제 젊은이들은 그 힘을 가지고 "우리가 주님께 무엇을 드리오리까? 이 힘을 드리오리 이다"라고 하며 분연히 나서야 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청년

엡5:15-17

 

서론

다니엘서 12장 4절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석이 더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말세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지식의 홍수 속에 오늘을 사는 신앙의 젊은이의 삶에 우선 원칙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을 보면 지혜로운 젊은이의 삶과 방향이 어떠한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지금은 때가 악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낭비되기 쉬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의 때는 더욱 소중합니다. 주어진 시간의 길이는 동일하나 사용 용도에 따라 절약되고 가치가 있게 됩니다.

세월을 아끼는 방법으로는 부지런히 일하며(잠6:6-8), 주의 영광 중에 일하며(고전10:31), 심판의 때를 의식하며 일하는(마24:44) 것입니다.

세월을 아긴 자들은 많이 거두는 축복(시126:5), 칭찬듣는 축복(마25:21), 많이 맡게 되는 축복(마24:46)을 받게 됩니다.

 

2.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마7:24).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음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말세에 온전한 복음을 받는 비결, 곧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가감하려는 이 현실의 지식 풍조, 성경의 내용을 왜곡시키는 오늘의 신학사조, 현실에 맞추기 힘든 성경의 교훈 요구들-노아를 비롯한 신앙 인물들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변함이 없고 진리는 항상 동일합니다. 말씀을 마음대로 믿고 행하면 구원의 상급이 주어지고 새로운 질서와 조화속에 지혜로운 삶이 이루어집니다.

 

3. 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마25:1).

(1) 예비하는 사람은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계2:21), 축복의 기회(마14:13), 은혜받을 기회(고후6:1)를 주시면서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2) 예비하는 사람은 자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살전5:6).

신앙의 젊은이는 기도로 사명으로 사랑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3) 예비하는 사람은 항상 말씀의 등불(벧후1:19), 성령의 등불(마25:1), 행함의 등불(마5:15-16)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결론

신앙의 청년들은 지혜로운 젊은이로서 세월을 아끼고, 주의 말씀대로 행하고 등불을 예비하여 민족의 장래를 밝혀야 하겠습니다.

추도 예배

어록·시·묘사

 

장례의 절차와 모지의 선택과 장렬의 의식은 고인에게 무슨 부조가 되기보다도 차라리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안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나의 장례식은 평범하게 치르되 결코 허식은 삼가라. 허식에 돈을 쓰는 대신 내가 지금200달러를 줄테니 이 돈을 보태서 내 자식이 선정한 이 고을의 불쌍한 과부나 고아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하여라.

(J. 제이)

 

장례식 때 조상객들에 의하여 영구의 위에 흘려지는 성수(聖水)는 누구든 뿌릴 수 있는 "눈물의 선물"이다.

(S. 말라르메)

 

장례식의 장려함은 살아 있는 사람의 허영때문이지, 죽은 사람의 영예 때문은 아니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옛날의 하후씨는 동쪽 뜰에 빈소를 마련했고, 은나라 사람은 기둥 사이에 빈소를 마련했으며, 또 주나라 사람은 서쪽 뜰에 빈소를 마련했었다. 이 빈소라는 것은 죽은 사람을 손님과 같이 대접한다는 의미에서다.

(공자가어)

 

남자가 일생에 여자로부터 기쁨을 얻을 때가 두 번 있다. 하루는 그녀와 결혼하는 날, 다른 한 날은 그녀의 장례식에 서는 날.

(히포낙스)

 

공경으로 하는 것이 제일이요, 슬픔으로 하는 것이 그 다음이요, 울다가 지쳐서 파리하고 병이 나는 것이 제일 못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도대체 얼굴빛은 자기의 정에 맞게 가져야 하며, 슬퍼하는 것은 자기가 입는 복(服)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이다.

(공자가어)

 

죽음은 절대적이다. 예외가 없으며 중간도 없다.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가며 나의 존재성이 스스로를 상실하는 절대적인 허무에의 길이다. 이보다 더 근본적이며 운명적인 문제는 없다.

(김형석/ 죽음에 관하여)

 

죽음이란 어느 죽음이든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깊은 상념 속에 몰아세워 놓고 침잠된 음울이 가슴을 저리도록 숙연하게 만들어 준다.

(박현서/ 비석을 세운 자리)

 

참말로 죽음이라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삶보다 더 확실한 사실입니다.

(지명관/ 죽음)

죽음은 부동(不動)이다.

(김남조/삶과 죽음 안의 정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죽는다 하며,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산다 하는가. 죽어도 죽지 아니함이 있고 살아도 살지 아니함이 있다. 그릇 살면 죽음만 같지 못함이 있고, 잘 죽으면 도리어 영생한다. 살고 죽는 것이 다 나에게 있나니 모름지기 죽고 삶을 힘써 알지어다. <*묘소 경내에 새겨진 이준열사의 죽음>

(장이욱/ 무엇인가 들려 오고 있다)

 

관을 덮고서 일이 정해진다. "죽어서 비로소 그 인물의 업적이 결정된다. "와 "죽으면 만사가 끝이므로 생전에 부지런히 일하라."의 두 개의 의미가 있다.

(두보/ 贈蘇隱詩)

 

죽음은 제 직분을 다한 자에게 오는 해임 사령이요 안식의 은전(恩典)인 동시에 우주의 침체를 쇄신하는 대 이동이다. 죽음이 없었던들 새 창조는 묵은 그늘에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할 것이다. 창조된 새 생명이 혼자서 살 만한 때에 묵은 생명이 비켜나는 것은 인생과 우주를 항상 청산케 하는 소이이다. 죽음은 오물의 연소다.

(이광수/ 묵상록)

 

모든 아이들이 그 미사에 참석할 것이다. 검은 옷을 입고 슬픈 얼굴을 하고 원장은 검은금실을 늘인 법의를 입고 나올 것지며, 제단과 내 관 주위에는 길고 노란 초들을 켜 놓을 것이다. 느린 걸음으로 예배 실에서 나와 보리수들이 선 큰길 저편에 있는 수도원의 공동묘지에 매장할 것이다.

(J.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죽으면 하잘것없는 한 줌의 흙밖에 더 되어지는 것이 없을 것 같던 적막하던 마음은 저런 꽃을 피워 내는 거름이 되는 것이 아닐까하니 장차 자기의 죽음도 사람의 마음속에 정서를 자아내게 하는 그런 보람이 되는 것이라면 생각과 같은 그런 적막한 죽음은 아닐것 같다. 이렇게 되는 것이 죽음의 원칙일까? 원칙이라면 자기는 농사꾼이니까 아마 곡식을 키우는 거름이 될 것만 같다. 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원하고 싶은 일이랴.

(계용묵/ 묘예)

 

사람들이 가옥이라는 쓸데없는 재산을 미래에 대비한 축적 금으로 간직해 보았자 결국 거기서 얻는 이득이란 주로 자기가 죽은 다음의 장례식 비용으로 치르는 이득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같이 여겨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장례식을 자기가 치를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 점은 문명인과 미개인과의 중요한 차이점이 된다.

(H. D. 소로/ 월든)

 

죽은 후의 것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화장(火葬)도 좋고 수장(水葬)도 좋고, 땅속에는 묻혀도 좋고, 땅 위에 버려져도 좋고, 새끼로 묶여 시궁창 속에 매달려도 좋고, 비단옷에 휘감겨 돌관 속에 놓여져도 좋다.

(양주)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주여,/ 나의 머리 위으로 산까마귀 울음을/ 호올로 날려 주소서.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주여,/ 저 부리 고운 새 새끼들과/ 창공에 성실하던 그의 어미 그의 잎사귀들도/가랑잎이 되게 하소서.//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주여,/ 나의 육체는 이미 저 물었나이다!/사라지는 먼 뎃 종소리를 듣게 하소서./ 마지막 남은 빛을 공중에 흩으시고/ 어둠 속에 나의 귀를 눈 뜨게 하소서,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주여,/ 빛을 주고 밤이 가까웠나이다!/ 당신께서 내게 남기신이 모진 두 팔의 형상을 벌려/ 나의 간곡한 포옹을/두루 찾게 하소서,/두루 찾게 하소서.

(김현승/ 내 마음은 마른 나뭇가지)

 

이런 것을 살펴볼 것 같으면 화장의 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러움을 버려서 깨끗함에 나아가게 하고, 신(神)을 맑게 해 승천하게해서 극락 왕생의 길로 천도함은 인간 세상사에서 가장 큰 규범이 된다.

(기화/ 현정론)

 

그것은 추수한 뒤의 밭, 검은 비가 내린다. / 그것은 갈색의 숲, 오직 한 고루가 서 있다./그것은 불어 예는 바람, 사람 없는 집을 맴돈다. / 이 저녁 시각의 슬픔.// 마을 입구를 지나서/ 부모 잃은 귀여운 소녀는 지금 이삭을 줄고 있다. /호동그런 금빛 양눈을 어스름 속에굴리면서/ 그 몸은 하늘 신랑의 영이 품어주기를 기다린다. // 집으로 가는 길에서/ 목자들은 아름다운 육체가/ 가시떨기 속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G. 트라클/ 깊은 늪에서)

 

예수께서 죽었다!/ 그때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 그와 더불어 망하고 말았다. /희망은 무덤 속에서 그의 옆에 누웠고/사랑은 해골처럼 싸느다랗게 되었다. / 아름다운 것들모두가 그의 죽음과 더불어 죽었다. // 예수께서 부활하셨다!/그때 희망이, 생명이, 빛이/그와 더불어 살아났다. / 사람들은 말하였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바로 죽음이/ 어젯밤에 죽었느니라"고./ 이리하여 기쁨과 진리와 온갖 덕들이/ 그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 살아났다.

(작자 미상/ 희망)

 

다시 살아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다시 살아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행여 살아날 수 없는 시체를/ 행여 또 한번 태운다는 것이다// 영혼이 있으면 영혼도 죽어라/ 삶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이더냐// 망각의 연기가 북망을 가리웠네/ 허허한 시공 위에 무엇이 남는고-// 살아나기를 오히려 두려워하는 사람들/ 몇몇이 나란히 의좋게 누웠다.

(이설주/ 화장장에서)

 

 

설 교 노 트

 

주인을 위하여 깨어 있자

눅12:37

 

서론

본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는 여기서 제자들에게 그의 오심을 예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주님과 종들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이시며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는 모두 다 주님의 종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섬길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행위에 따라 그에게 상응하는 문책을 받게 됩니다.

 

2. 종들로부터 떠나가신 주님

그는 높은 데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적인 몸으로는 안 계셨지만 영으로는 함께하셨습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에서는 현재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지만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는 그의 종들을 불러모아 그 동안의 일들을 조사해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기 위해 오실 것입니다. 그가 오시는 날은 심판의 날이 될 것이며 가장 엄밀히 판단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모든 심령의 은밀한 것이 드러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거나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그가 오시는 때의 불확실성

그때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잠자고 있을 밤일 것입니다. 그때는 이경(the second wa-tch)이나 삼경(the third watch)쯤이 될 것입니다.

(1) 우리가 죽음에 이를 때 그가 오신다는 것은 가장 확실합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인지 또 어떤 장소인지 어떤 방법으로인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2) 이것은 그가 오시는 때의 불확실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가 오시는 때가 언제인지를 생각지 않는 대다수 사람들의 안전에도 관계됩니다. 그때가 오면 대다수 사람들은 크게 두려워할 것입니다.

 

4. 깨어 있는 종들이 받는 복

(1) 종들은 여기에서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위하여 깨어 있음으로 이미 복을 받았고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2) 종들은 주님이 오실 때에 칭찬의 말씀을 들음으로 축복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였습니다.

(3) 종들은 안식에 들어가기 때문에 복 있는 자들입니다. "안식이 있으리니‥‥‥‥라고 하 였습니다.

(4) 종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냄으로 복 있는 자들입니다. "내가 있는 곳에 나의 종들도 함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5) 종들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기 때문에 복있는 자들입니다. "복받은 자들이여 나이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고 하였습니다.

(6) 종들은 영원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하기 때문에 복받은 자들입니다. "앉아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7) 종들은 지고한 영광의 면류관을 받기 때문에 복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주님은 "그들을 섬 기실(수종하리라:개역성경)"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결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의 종은 그가 언제 오실지 그때를 알지 못한다 해도 항상 준비하고 기다리는 법입니다. "보소서 이제 바칠 준비가 되었나이다"

 

 

햇빛과 그늘

요16:16

 

서론

어둡고 우중충한 구름이 우리 위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은 괴롭고 답답합니다.우리의 생애 태양은 검푸른 제방 저쪽에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단 한줄기의 광선도 볼 수 없습니다. 심령의 노래도 사라졌습니다. 거문고는 괴로움의 개울 버들가지 위에다 걸쳐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정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어둠을 벗어나 빛 가운데로 인도해 줄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거친 세파를 가로질러 오시면서 "정강이 있을지어 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1. 서서히 드리워지는 그림자

본문은 그리스도에서 얼마 안 있으면 십자가에 못박히실 바로 직전에 슬퍼하는 무리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문 앞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합니다. 이 두 가지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엄청난 시험을 위해 충분한 준비를 갖추셨지만 그의 제자들은 슬퍼하였습니다. 죽음과 무덤은 언제나 엄숙한 소리를 동반하는 말들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어떠한 아름다움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늘의 한계

주님께서는 잠시 동안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그들은 더욱 풍성한 생명으로 싹트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슬픔, 원한, 통분은 분명히 우리의 삶 가운데 그늘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1) 이것들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위 가운데는 결단코 불필요한 것이 없으십니다.

이러한 증거로 하나님은 당신을 구속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은사로 주셨습니다. 만일 세상이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그 방법으로 행하셨을 것입니다.

(2) 그늘은 단지 '잠시 동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날에 임할 예루살렘 멸망과 환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 수를 감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박해를 감내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내하는 때를 제안하실 것입니다(고후4:17). 주님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3. 그늘에 앉은 제자들

여기의 말씀은 그들이 당분간 그를 보지 못하리라는 데 강조점이 있는 것처럼, 또한 그들이 그를 보리라는 데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 동안 육신을 입은 그리스도를 보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그때 "모든 눈이 그를 직고하리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가 부활하셨을 때 그를 보고 심히 기뻐하였습니다.

 

결론

축복이 인간에게 배가 되기 위해서는 축복을 통과하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요12:24,16:7). 이와 같이 가장 지고한 축복이 제자들에게 임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는 잃음으로써 얻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부요를 더하시기 위해 세상의 부와 친구를 빼앗아 가실 때가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옮겨 가심으로 여러분과 나에게 은사를 더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위로

고후1:3-9

 

서론

괴로운 인생길을 가는 자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위로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나 교우들의 위로가 없지 아니하나 그것은 영구불변의 참된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슬픔당한 자와 환난당한 자의 위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서만 얻게 됩니다.

3절 하반절에 있는 위로란 말은 위로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요, 4절에 위로란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가지고 그 위로로써 환난당한 사람을 위로하라는 말씀입니다. 5절에는 위로가 마음에 충만하고 다시 넘쳐 나가서 위로를 하는 사람이나 위로를 받는 사람이나 다 위로의 역사를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고인의 유족들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고 고인의 유족들에게 위로가 넘치는 시간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1. 슬픔당한 자는 위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환난과 슬픔많은 인간에게는 위로가 필요한데, 위로의 근원은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리고 위로의 길은 예수뿐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였으니 슬퍼하는 자가 위로를 받게 됩니다. 이 말씀은 죄를 회개하고 애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위로하신다는 것입니다.

 

2. 슬픔당한 자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위로하여 주십니까?

위로라는 말의 뜻은 어루만져 주신다는 뜻이요, 아픔이나 고통을 없애 주신다는 뜻이며, 안전하고 평안하게 하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은 환난과 슬픔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루만져 주시는 손길을 체험할 수 있고 슬픔을 당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안전하고 평안하게 하여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슬픔당한 자를 위로할 때에 지팡이와 막대 기를 가지고 안위하십니다(시23:4하). 목자가 양을 칠 때에 양이 곁길로 가면 지팡이와 막대기로 건져내는 것입니다. 양이 불순종할 때에는 막대기로 양을 때리는 것이요, 사나운 사자나 맹수가 침범하면 막대 기로 쫓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슬픔당한 자들을 위로하십니다.

 

3. 하나님께 위로받은 자가 위로받을 ,자를 위로할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롬1:12에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로써 로마 신자들을 위로하고 로마 신자들도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바울을 위로하는 것이 서로 위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약한 자요, 슬픔에 잠긴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서로 위로하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선생은 제자를, 형은 동생을, 목사는 교인들을, 교인은 목사를 위로하는 것이 서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슬픔당한 이들을 우리는 다 위로합시다.

 

결론

고인은 세상을 떠나가셨으나 형제 자매가 서로 자주 찾아다니며 살 때 피차 안위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는 그렇지 못하였을지라도 이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위로중에서 서로 위로하면서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추수(-절)

성 경 활 용

1. 추수의 일반적인 면

(1) 기쁨으로 즐김

(사16:10)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2) 열매가 익으면 낫으로 추수함

(막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3) 곡식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미4:12) 여호와께서 곡식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4) 일꾼이 있어야 함

(마9:38)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2. 추수를 하지 못하는 이유

(1) 하나님의 뜻이다.

(창45: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2) 하나님의 징계이다.

(사23:3) 시휼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물로 수운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었도다

 

3. 추수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출22:29) 너의 추수한 것과 너의 짜낸 즙을 드리기에 더디게 말지며 너의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2)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사62:9) 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3) 양식을 모은다.

(잠6: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니라

(4) 부지런해야 한다.

(잠10:5)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라

관련원어풀이

1. ryxiq; 카-치-르

(1) 추수, 수확.

(창8:22, 30:14)

(2) 추수된 곡식.

(레19:9, 23:22)

(3) 추수꾼.

(사17:5)

(4) 가지.

(욥14:9, 시80:12)

 

2. ha;WbT] 테부-아-

(1) 산출, 소산물.

(신14:18, 사30:23)

(2) 수입, 수익.

(욥31:12, 전5:9)

(3) 소득, 얻음.

(잠18:20, 렘2:3)

 

3. &r'D; 다-라크

(1) 발로 밟다, 짓밟다.

(욥24:ll)

(2) 들어가다, 지나가다.

(신11:24,수1:3)

(3) 타작마당을 밟다, 짓밟고 가다.

(욥28:8, 렘9:2)

 

4. qerivzw 데리조-

(1) 추수하다, 거두어들이다.

(마6:26, 요4:36)

(2) 수고의 보상을 거두다.

(요4:37, 고전9:11)

(3) 파괴하다, 잘라버리다.

(계l4:15, 16)

 

5. qerismov" 데리스모스

(1) 추수.

(마13:30, 요4:35)

(2) 추수될 곡식.

(마9:37, 요4:35)

 

6. qeristhv" 데리스테-스

거두는 자, 추수꾼.

(마13:30, 39)

설교예화자료

고구마가 열매 맺으려면

 

인도의 농가에 고구마를 모종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제일 품질 좋은 씨 고구마를 광주리에 담아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이 씨 고구마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땅속에 묻었습니다. 로마가 이 모습을 보고는 아까운 듯이 물었습니다.

"아빠, 왜 고구마를 묻어요? 먹을 수 있는 것들인데,"

"얘야, 이 고구마는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것이지. 그러나 이것을 땅속에 묻어 썩게 하지않으면 다음해에 고구마를 수확할 수 없는 거야, 6개월만 지나면 이 고구마에서 뿌리가 나와 탐스러운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리게 된단다. "하고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록·시·묘사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 < *추수기에는 대단히 바빠서 어린아이까지도 일한다는 뜻>

(한국 속담)

 

가을판에는 대부인 마님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 < *추수기에는 귀하신 마님께서도 나와 일한다는 뜻>

(한국 속담)

 

가을 마당에 빗자루 몽당이 들고 춤을 추어도 농사 밑이 어둑하다. <*추수를 하여 갚을 것 줄 것 다 주고 갚아도 남은 것이 있다는 말>

(한국 속담)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슬한 봉우리/ 휘날리는 깃발/ 가을 하늘에 덩그렇게 빛나는 결실/ 바로 추수꾼의 얼굴입니다.

(흥문표/ 내가 당신의 자녀가 되는 것은)

빽빽이 심는 자는 수확이 적고 성기게 심는 자는 수확이 많다.

(프랑스 속담)

 

아득하게 뻗어난 저 큰 밭에서/ 해마다 수없이 추수하였네/ 먹고 남는 묵은 곡식 가지고/ 우리의 농부들을 먹였었다네/ 예로부터 풍년은 계속되었고/ 지금 또 남쪽 밭을 돌보러가네/ 김 매기 북 돋우기 한창이려니/ 기장과피 이삭은 잘도 자라네/ 풍성하게 추수를 거두어들여/ 준수한 인사들을 대접하리라.

(시경)

 

내 젊음의 날은 차디찬 고뇌의 덩어리일 따름/ 내 기쁨의 향연은 괴로움의 향연일 따름./ 내 거둬들이는 곡식은 독초가 무성한 밭에서일 뿐/ 이리하여 내 행하는 모든 선한 사업을/ 헛되고 헛된 수확의 희망일 따름이려니/내 생명 사라질지라도 나 아직 볕을 보지 못했고/내 아직 살아 있을지라도 내 생명 지금 사라진다.

(터치번/ 내 젊은 날은)

 

어야도 홍아/ 홍해야 더럼마/ 때려 보자 때려 보자// 어느 것이 동산이냐/ 요것이 동산이여// 요 동산을 때리자/ 때렴시민 굴축난다// 한 착 가달 땅에 붙이고/ 한 착 무럽 올라가네// 한두 번을 때렴시민/ 도깨 끝에 불이 난다.

(제주지방 타작요)

 

우리가 다시 살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때/ 우리 모두 하나님의 밭 속에 뿌려집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수확 때, 천사장의 바람이/ 부채처럼 불어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낼 것입니다.

(롱펠로우/ 하나님의 땅)

 

공작 비늘보다도 고아운/ 수확의 이삭을 가을 노을에 말렸어라.

(고은/ 신성 노동절)

 

가을이여/ 돌아온 딸들과 그네의 자식들의/ 축제일 같음이니/ 신을 지난 봄철부터/ 이들을 위해/ 짙은 단맛의 과물을 영글려 오셨니라.

(김남조/ 가을에 ·2)

 

가을은 마차를 타고 달아나는 신부/ 그는 온갖 화려한 것을 다 거두어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하늘은 더 아름다워 보이고/ 대기는 한층 밝아 보입니다.

(노천명/ 만추)

 

지금은 당신께서 거두는/수확의 계절/ 여문 열매는 여문 열매대로/쭉정이는 쭉정이대로 // 공의로운 손길로 거두시는 날/잠시 잠시만/ 그늘 속에 묻혔던 끝물 열매가/ 어여삐 무르 익기까지만/ 사랑의 손길로 기다려 주소서.

(임성숙/ 가을의 기도)

 

거두고 갈부릴 건/ 무엇이나 때가 있다/ 지난 가을 신의 계시/ 다독거려 묻은 자리/넉넉한 백설로 덮어/ 깊은 잠을 재웠네.

(강호연/ 겨울에서 봄까지)

 

이 세상에 오면 황금의 이삭은/ 구릉을 물들이고, 밭에서 춤춘다. / 풍성한 저 세상이 자랑스러운 듯/ 자기의 대를 덮는다. / 미소 띤 곡식은 다시 대지를/ 그의 것으로 만들리

(포프/ 부의 가치)

 

남루한 옷을 걸친 한 노인이/ 밤 이슬 젖은 땅에/ 미래의 수확을 한줌 가득 뿌리는 것을/ 마음 흐뭇하게 쳐다봅니다.

(위고/ 씨뿌리는 계절)

농부가 밭을 갈고 있다/ 그러나 누구인가/ 수확을 걷어가는 자는

(브레히트/ 독일전쟁 안내)

 

한숨의 봄바람과 눈물의 수정은 떠난 님을 기루어하는 정(情)의 추수입니다.

(한용운/ 생의 예술)

 

여름 내내 소금 땀 흘려/ 이제사 거둠이 쭉정이뿐/ 색은 열매 하나 남기지 못할지라도/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 하나님 당신은 골백번 옳도소이다. // 평년작을 웃도는 수확을 바라보면서도/ 한숨으로 지새우는 농부의 아픔까지/ 당신의 뜻이라면, // 애지 중지 기른 누렁소가/ 개 값보다 못하게 되어/ 소보다 주인이 먼저 목매 죽는 것도/ 당신의 뜻이라면//땀흘리지 않은 사람이/더 많은 것을 차지함이/진정 당신의 뜻이라면,// 하나님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다만 우리가 서로 얼싸안고/ 웃으며 하나가 되어/ 당신이 주신 선물을 나누어 가질 때/ 오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의 백성들입니다.

(서덕석/ 당신의 뜻이라면)

 

어느 산자락을 타고 내려왔을까/ 양짓말 논바닥에 무더기 무더기로/쌓아둔 벼 낟가리 사이를 헤집고/ 장가 갈 나이 이미 지난/ 아들놈 한숨을 슬쩍 건드리고/ 동구 밖으로 빠져나가는 저 바람은// 제 친구들은 모두를 대처로 나가/ 녹물 섞인 수돗물 맛에 것들고/멋부리기 잘하는 인형 같은 마누랄 꿰차고/으스대며 명절에 다녀 가지만/ 자기는 결코 그럴 수 없노라고/ 고개를 흔드는 아들 놈인데/ 이 가을 다가도록 여전히/ 저렇게 외톨이로 썩어야 하나.// 장가 밑천이 라고 애지중지 길러 온/ 누렁소 두 마리 중 한 마리는/개값이 된 뒤 추렴해서 잡아먹고/ 남은 놈도 정 떨어져 놓으니/ 살도 빠져 말라가는데/ 비료값, 농약값, 기계값, 품값, 씨앗값은/ 우라지게 빚내어 쏟아 부었어도/ 수매 나락값은쇠문도 오르지 않고.// 내사 육십평생 땅 파 먹고 살았어도/ 가을걷이가 요사이처럼/ 울화통이 터질 때는 없었제,/씩씩거리며 낫질을 하다가/ 논둑에 퍼질러 앉아/ 무심한 듯 때묻은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쳐내는/ 아들놈 속까지는 무심치 않으리

(서덕석/ 가을걷이 타령)

 

평범한 수확의 가을/ 겨울은 백합처럼 향기를 풍기고 온다/ 죽은 사람들은 싸늘한 흙속에 묻히고/ 우리의 가족은 세 사람.

(박인환/ 세 사람의 가족)

 

서리가마귀 높이 날아 산국화 더욱 곱고/노란 은행잎이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나와 함께 고 샛빨간 능금을 또옥 똑 따지 않으렵니까?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오오,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수확이여,/ 너를 위하여 흘릴 우리들의 피는/ 아직도 동서남북에 넉넉히 출렁이고 있다.

(김현승/ 신성과 자유를)

 

우리들의 일그러지고 비뚤어진/ 감수성은 이제서야 눈물을 흘리리라/ 그리하여 수확의 축제를/ 기원하리라.

(스바스 무코파다이/ 붉은 장미를 위해서)

 

빈손으로 태어났다가/ 빈주먹으로 불리어 돌아가는/ 저희 임을 깨닫게 하시고/ 나의 주위모두가/ 헤아릴 수 없는 은혜임을/ 언제나 알아차리게 하소서.// 저희는 저마다의 욕심 때문에/ 가까운 이웃이나 먼 누구에게/ 그리고 드높은 뜻을 두고/ 깊디 깊은 고마움을 모릅니다. / 제 분수에 맞지 않은 욕망의/ 눈을 멀게하실 순 없습니까./ 받을 때만 좋아라 하는/손목을 자르게 하실 순 없습니까./ 뉘보다 먼저 제 가난만을 탓하는/ 머리를 배어 버릴 순없습니까./ 제 잇속을 따져서는/ 남들에게 고마움과 은혜를 모른다고/ 불을 토하는 혀를 저며 낼 순 없습니까.//이 세상무엇 한가지/ 내 소유라고 꼭 내세워/ 어떻게 가려낼 게 없으면서도/ 매년 거듭 돌아와 맞는 오늘이지만/그 언제 한 차례일망정 저희/누군가를 아낌없이 도와주고/ 정작 기쁨에 넘친 적이 있었습니까.// 한 해를 거두어 살아오며/ 그리고 오늘까지 지내온 날들이/ 이웃과 위로부터의 더함없는 총애임을/ 언제나 뜨거운 눈물로 감사하게 하소서./ 저마다 드높은 찬양이게 하소서.

(최은하/ 한 해를 거두어 살아오며 -추수 감사절에)

 

우리가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고/ 밭이랑에 물을 주지 않았다면/ 풍성한 알곡들을 거두리라/ 바랄 수 없으리라// 우리의 이렇들 신비로운 세계를/ 아무 대가 없이 얻을 수는 없나니,/ 삶의 밭은 가시 밭이든 혹은 꽃밭이든/ 우리가 뿌리는 대로 거둘 것이니라.

(요한 W. 괴테/ 뿌리는 자와 같이)

 

내 형제여! 영혼을 위하여 염려하는가? 무릎을 꿇고 뜨거운 기도로/ 시간을 보내며 염려하는가?/ 눈물과 기도는 마귀의 힘을 꺾나니/ 추수하는 모든 사람의 주께서/ 그의 일꾼들을 보내시도록 기도하라/ 죄 인들을 위하여, 죄인들을 위하여/ 믿는 자여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그레이스 하워드/ 염려하는가?)

 

오늘도 저물었습니다. / 밭에는 씨를 뿌렸고/ 논의 물코도 막았습니다/을 농사도 당신이 거두어주소서.// 저는 믿습니다. / 해마다 당신은 거두어주셨지오./ 당신이 원하시는 그때에,/ 아내와 자식 며느리와 손자들/ 논밭의 곡식들// 땅을 파는 이 손은 기억하고 있지오./ 마른 논바닥 같은 이 손/ 당신이 꼭 쥐어 주는 이 손// 사람들은 두런거립니다. / 땀에 찌든 이 몸뚱이 보고/ 개 냄새가 난다고,/ 허리 굽은 이 몸뚱이 보고/ 무덤 냄새가 난다고/ 그래요, 그래요/ 그래도 저는 일을 하지오./ 밤낮없이 일을 하지오./당신이 여기 계시기에/ 당신이 그걸 원하시기에// 이제 이 몸도/ 당신이 거두어주소서.

(김형경/ 한 늙은 농부의 기도)

 

저것을 보게나, 저 들에 오직 혼자서/홀로 곡식 거두며 홀로 노래 부르는/ 저 외로운 하일랜드의 산골 아가씨./ 걸음을 멈추거나, 조용히 지나가게나./ 오로지 홀로 베어서는 다발 묶으며/ 구슬픈 가락으로 노래하는 아가씨./오 들어 보게나, 깊고 깊은 골짜기는/ 그 노랫소리로 넘쳐흐른다. // 아라비아 사막의 그늘진 쉼터에서/ 지친 나그네 무리를 위로하는/ 나이팅게일의 멋진 목소리로도/ 이 고운 노래를 따르지 못하리./ 머나먼 곳 헤브리디즈 섬에서/ 바다에 둘린 적막을 깨뜨리는/봄철에 우는 뻐꾹새의 구슬픈 소리도/ 이처럼 가슴죄게 하지는 못하리.// 이 노래의 사연을 말해줄 이 있을까? / 애끓는 가락이 넘쳐흐름으로 미루어/ 지난날의 불행한 슬픈 이야기던가? / 까마득한 옛날의 싸움 이야기련가? / 아니면 오늘날의 사연이 깃들인/ 좀더 소박한 노래이련가?/ 지금까지 있었고, 또한 앞으로도 있을/ 슬픔이며 여정이며 괴로움의 노래일까? // 담긴 사연이야 어떻든 아가씨는 내내/ 끝이 없을 듯 오래오래 노래를 불렀지./나는 아가씨가 일하며 노래부르며/ 허리 굽혀 낫질하는 것을 보면서,/ 꼼짝 않고 서서 조용히 귀 기울였지./ 내가 산언덕에 올라섰을 때/이미 들리지 않은 지 오랜 뒤에도/그 노래는 마음에 계속 울렸지.

(워즈워드/ 추수하는 아가씨)

 

무덥던 여름날의 비도 그치고/ 하늘은 더없이 높푸르며/ 소슬바람 불어와 가슴에 안기는/ 오 주여,/ 진실로 은혜 넘치는 가을입니다. // 지난 여름 물동이를 쏟아내듯/ 그렇게 선한 땀을 흘린 보람이/ 들판마다 가정마다 직장마다/ 알알이 영글어 가고,/ 풀들도 나무들도 이제는 겸손을 배워/ 그윽히 고개 숙이고 묵상하는 계절입니다. // 진실로 우리가 제때 씨 뿌릴지라도/ 그리고 열심히 물을 주고 가꿀지라도/ 그것을 자라게 하여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주여! 당신이옵니다. / 당신의 자비와 사랑의 왼손/ 당신의 능력과 주권의 오른손이십니다. // 주여!/ 이 풍성한 은혜의 계절에/ 나 무엇을 주께 드려 감사하리 이까./ 나 무엇을 주께 바쳐 찬송하리이까./ 진실로 이 넘치는 은총 앞에/ 나의 적은 예물도 부끄러운 것./ 나의 적은 찬미도 부끄러운 것./ 이러이 만물이 그대로/ 당신께 드리는 예물이 되고/이러이 만물이 그대로/ 당신께 드리는 찬미이오니.// 주여/ 이 계절을 그대로 열 납하소서./ 이 계절의 결실을 그대로 흠향하소서./ 이 은혜 풍성한 계절의 바구니에 담긴 나를/그대로 당신이 취하소서.

(김성영/ 가을의 노래)

 

황금빛으로 활활 타오르는/ 저 가을의 은혜로운 들녘 따라/ 즐겁고 홍조 띤 얼굴을 하고서/ 은혜의 주님 찬양합니다. / 저 넉넉한 축복 주님 쌓아 주시고/ 저 끝없는 사랑 세상에 주심이여!// 감사할 줄 아는 자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축복 받았으니/ 그의 곳간 열매로 가득 차고/생명 없던 우리들의 황무지/주님의 햇빛과 단비로/ 알알이 열매 되었습니다. // 때로는 성난 구름 무리들이/ 근심과 계절로 흔들기도 했지만/ 그림자 걷힌 후 주님 영광 비취나니/ 그 고난도 이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 미소짓는 어린아이처럼 고요히/ 지난날의 발자욱소리 들으며/ 당신의 넘치는 사랑에/ 감사기도 드립니다.

(L. B. 홀/ 추수 감사 기도)

 

감사드리세./ 향기로운 소망 피어나고/ 슬픔이 사라짐을/ 진리의 노래 울려 퍼지고/ 생명의 말씀 들림을/ 매일의 일용할 양식/ 넉넉하게 채워 주심을.//당신을 따라가는 충성된/ 인생의 머나먼 여정을./수고스런 믿음의 싸움에서/승리하게 하심을./ 믿음으로 계획하고/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음을.// 감사드리세./ 영원한 삶을 약속하신/ 진리되신 주님께/ 문을 열어 주시는/ 은혜로운 자비를./ 끝없이 비춰 주시는/ 주님의 생명빛을.// 감사드리세./ 내 영혼아 감사드리세,/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여./ 주께 감사드리세./ 삶과 죽음 무엇이든/ 당신의 뜻이오니.

(갤로타 페리/ 감사드리세)

 

추수 때가 되어 추수할 곡식은 많으나/ 일꾼들이 없는데 밤은 가까워 오네/ 주께서 당신을 부르고 계시도다/ 당신을 부르시어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려 하신다/ 그것이 마땅한 당신의 사명이기에.

(루시 메이어/ 너를 부르신다)

 

어디선가 다가오는 당신의 손길이/ 저 들판에 충만참을 감사합니다. / 저 들녘에 올리브나무 울창함과/ 주님 돌아가신 갈보리 언덕을 감사합니다. // 생명의 물이 언제나 흐르는/ 그 맑은 샘에 감사드립니다. /그 샘은 메마른 땅에 뿌려진 씨앗을/ 아름답게 싹트게 하는 은혜로운 샘입니다. //‥‥/ 주님은 나에게 길을 주셔서/ 그 길로 그를 따라가게 합니다. / 그 길은 구원되는 자유의 길./ 의로운 신앙의 길.// 나에게 주신 그 많은 선물/ 주여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주신 그 은혜를/ 감사로 다시 돌려드리나이다.

(알버트 머레이/ 감사)

 

눈도 녹고 대지가 부풀어 오르는 이른 봄,/씨 뿌리며 벌써 추수 감사를 생각합니다. /자연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싹트는 들판에서 기쁨으로 넘칠 때/ 추수 감사절에 가득찬 곡간들과/ 곡식과 과일의 풍성한 수확을 꿈꿉니다. //곡식이 자람에 벌써 추수 감사를 생각합니다. / 지금은 꽃이 피고 포도가 영글고/ 과일이 익어 가고 곡식의 향기가 알알이 맺히며/ 결실의 꿈이 그 숭고함을 더해 가는데/ 올해도 종려나무의 튼튼한 가지가 새롭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감사를 위해 일찌감치 비워 두겠습니다. // 당신의 사랑 거두면서 추수 감사의 마음을 갖습니다. /추수한 곡식 쌓여가는 즐거운 시간 속에 하늘은 엷은 구름으로 가두리를 붙이고/홍조 띤 단풍에 서리가 입맞추면/ 곡간은 수확의 기쁨으로 가득 차/귀중한 감사의 날은 다가옵니다. // 눈부신 농담(濃淡)으로 타오르는/ 가을의 은혜로운 들녘을 따라 누군가 행복한 표정으로 오고 있네./그녀의 목소리 주의 이름 찬양하고/ 끝없는 사랑으로 세상을 지키는 주를 위해/ 감사의 제단을 쌓으려 하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사람들,/주님의 선물에 감사하는 그들의 성스러운 영혼./ 주님 고들의 곡간을 황금빛 곡식으로 채우시고/ 죽어 있던 그들의 황량한 들판을/ 주의 햇빛 주의 향기로운 단비로/풍성한 열매로 채우시옵소서.// 검은 얼굴로 나타난 성난 먹구름/ 노도와 같이 비바람 몰아쳐도, 이 또한 주님의 은혜로운 선물/ 어둠이 걷히면 주님의 영광 나타나고 어린 아이의 미소처럼 고요하게 다가오는/ 미래의 발소리 들을 수 있다네.// 즐거우나 괴로우나 살거나 죽거나,/ 빈곤과 절망을 만나도 주님을 찾으리니./ 변함없이 그의 사랑은 살아 있고/ 한없는 자비의 물결 여전히 흐른다네./ 오! 성도들이여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우리의 삶을 주님 찬양으로 채우세!

(홀/ 추수 감사)

 

우리가 이토록 빨리 지나간 한 해 동안의/ 복을 세어 보려고 할 때마다,/ 위에 있는 천사들과 하나가 되어/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사랑의/ 놀라운 일들을 살펴볼 때마다,/다시 한 번 우리의 기쁜 감사를/ 하늘 아버지의 보좌 앞에 올려드리세.// 올해도 추수 감사절 날/ 우리가 난롯가에 모여 있을 때/ 우리의 모든 인생 노정에 붙어 온/복을 세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네./ 충만한 은혜, 도우심과 치유하심,/ 우리의 기도에 자주 응답하심을 세기도 그러하다네./ 우리의 모든 복 중 최고로 소중한 복은 그리스도 그 자신이시라네.// 그가 자유롭고 관대한 손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를 축복하셨네./ 우리의 온 땅에 넘치는 자유와/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평안과 풍요를 주셨다네./ 비록 우리의 죄와 어리석은 행위들이/ 종종 그의 얼굴 앞에서 그를 성나게 할지라도/ 자비는 아직도 그의 심판을 미루게 하며/우리의 은혜의 날을 길게 한다네.//우리는 받은 축복을 세기 좋아하면서도/ 한편은 지나간 한 해를 인해 감사하기도 한다네./ 믿음은 보다 넓은 시야를 깨끗게 하며/ 소망은 한층 더 멀리까지 바라보게 한다네./ 우리를 둘러싼 그런 모든 조짐들은/ 일제히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네./ "지상 최후, 최고의 추수 감사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데리러 부지런히 오실 것이 라!"

(A.B. 심프슨/ 감사)

 

 

설 교 노 트

 

곡물을 거둘 때

레23:9-22

 

서론

농부가 곡식을 심어서 때가 되면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농부들은 거두는 소망 속에서 봄에 밭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거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곡물을 거두는 시기는 보리를 거두는 시기입니다. 곡물을 거두어 첫 이삭 한 단은 하나님께 바치고 그리고 거둘 때는 다 거두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조금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1. 조금 남겨 두라 하십니다.

본문 22절에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사람을 통해서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수확의 기쁨을 독차지하지 말고 가난하여 웃음을 잃은 가난한 자들과 같이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들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면입니다.

 

2.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라 하십니다.

본문 10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들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져간다고 해서 제사장이 먹는 것이 아니고 이는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처음 익은 곡식단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고 하였으니 첫 이삭을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성도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께 드리라 하십니다.

본문 11-12절에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 되고 흠없는 숫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곡식을 주셔서 굶주리지 아니하고 먹을 수 있게 하신 은혜의 보답인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물의 양도 함께 바쳐 졌습니다. 이와 같은 법은 우리의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농사짓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여호와께 첫 열매를 드릴 수 없었으나 가나안에 들어와서부터 농사를 짓게 되었고 곡식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처음의 것으로 감사를 드리고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구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법입니다.

 

 

성숙한 감사

합3:16-19

 

서론

개인의 삶이나 가정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감사해야 할 일보다는 원망스러운 일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애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을 향하여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 생활을 통하여 우리들의 흩어진 마음을 새롭게 해 보려고 합니다.

 

1. 하박국 선지자는 환난 중에 감사했습니다.

앗수르와 애굽을 점령한 바벨론이 이제 멀지 않아서 유다를 침공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박국 선지자는 말하기를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내 뼈에 백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16절)"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유다보다 훨씬 막강했던 이웃의 앗수르와 애굽나라도 정복당하여 멸망하였는데, 외적으로 보면 도저히 이 사태를 수습할 길이 없어 가슴을 치며 티끌과 재를 뒤집어 쓰고 통곡을 해야 당연하건만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던 것입니다. 참으로 환난 중에서 드리는 값진 감사였습니다.

 

2. 하박국 선지자는 실패 중에서 감사했습니다.

본문 17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여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고 그 당시의 생활을 소개한 것으로 볼 때 도저히 감사할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열매와 짐승들은 하박국 선지자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과 마실 것과, 하나님께 드릴 제물이 없는 철저한 실패 가운데서도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연고인지는 모르지만 정치, 경제, 종교적인 면에서의 안전과 풍부와 예배 행위까지 말살당한 그 상황 가운데서 감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없을지라도"의 신앙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3.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외부적인 환경으로 볼 때에는 도저히 감사할 조건이 없지만 그가 크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8절에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선언합니다. 현실을 바라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캄캄하지만 구원의 하나님께서 그 언젠가는 구원해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회복해 주실 것을 믿기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의 감사는 하나님께 향한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감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기도 하고 될 듯한 일들이 큰 실패의 늪에 빠지고 말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자녀된 자들을 지극히 사람하고 계심에 대해서 확신하는 믿음을 소유하기만 하면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성숙한 감사의 생활을 영유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36:1-26

 

서론

오늘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라 하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는 중에 은혜받고자 합니다. 은혜를 받은 인생으로써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은 당연한 도리요, 인생의 본문이요, 성도의 드릴 산 제사요, 신앙의 동기요, 믿음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없는 모든 종교 행위는 생명이 없는 가식 행위라고 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출발하고 감사로 지속되고 감사로 끝을 맺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요, 생명 있는 신앙생활이라 하겠숨니다(고전15:10).

감사 생활이란 과거 주신 은혜를 깨닫는 생활이요, 현재 생활에 대하여 자족하는 생활이요, 장래에 더 큰 은해와 축복을 받는 생활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1.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빛을 지으시고 해와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한신 엄숙하고도 분명한 선언입니다.

창조는 우주 창조와 만물 창조, 인생 창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인생을맨 나중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창조한 모든 것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감사할 것뿐입니다.

 

2.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신 것은 전인류에게 주시는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신 것은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은해와 특별 은혜를 경하여 받았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노예 생활에서 해방받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고 유월절을 대대로 지켜왔습니다. 유대 인들은 3대 명절을 지켰습니다.

(1) 유월절은 과거 죄악에서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은혜를 기념하여,

(2) 오순절은 성령 강림으로 현재 생활에서 구원받는 은혜를 기념하여,

(3) 장막절은 장차 천국에 들어갈 구원의 은혜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나같은 죄인을 살리신 구원의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식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25절에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하셨습니다. 추수 감사절은 일년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한 후 식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날입니다. 농사뿐 아니라 각종 사업에 축복하셔서 일년 동안 물질적으로 의식주에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금년에도 식구들을 건강하게 하시고 풍년을 주시고, 사업에 번창을 주시고,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향기로운 제사인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고 들에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식물을 주시는 고마우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것은 큰 은혜를 받는 비결입니다.

 

결론

오늘 우리들은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와 감사의 산 제물을 드리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시116:12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한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내게 남겨 주신 모든 은혜를 헤아려 기억하고 합당한 감사를 드림으로 우리 마음도 기쁘고 하나님의 마음도 기쁘시게 하여 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3:12-17

 

서론

옛날부터 이 가을철에 추수를 감사하여 드리는 제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하여 내려왔던 것입니다. 유대 나라의 초막절이나 우리나라의 추석같은 절기가 그와 같은 뜻을 가진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지키는 추수 감사절의 유래를 더듬어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360년 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 대륙으로 건너갔던 청교도들의 감사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영국 국교의 탄압에서 벗어나 신앙의 자유를 찾고자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5월의 꽃이라는 작은 목선을 타고 파란만장한 대서양을 횡단하여 1620년 11월 21일 북미대륙의 일각인 프리마우스에 상륙한 후 혹심한 추위와 싸우며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농사를 지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들인 다음 그곳 토인들과 함께 연 3일을 감사 예배와 잔치를 베풀게 되었던 것이 감사절의 시작입니다.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열 문둥이 가운데 감사한 자는 사마리아 사람뿐입니다. 10대 1의 감사였습니다. 고로 바울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까?

 

1. 감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니까 사람으로 살면서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1:3)"라고 했습니다. 소도 임자를 압니다. 나귀는 그 임자의 구유를 압니다.

그런데 이사야 시대에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임자되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짐승가운데 개 같은 짐승은 영리해서 주인을 알 뿐더러 주인의 은혜를 알고 주인을 위해서 생명까지 바치는 충성된 개가 있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이처럼 동물도 주인에게 감사할 줄 아는데 하물며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2. 감사는 인격과 수양의 척도가 됩니다.

덕일 뿐더러 모든 덕의 어머니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한 마음 자체가 최고의 덕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다른 방법에도 덕을 쌓을 수 있는 귀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배은 망덕하는 이는 여러 가지 다른 죄를 지을 뿐 아니라 추악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신앙의 척도입니다. 참 신앙의 사람들은 평안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때에도 감사를 드렸고, 순경에서만 감사 드린 것이 아니라 역경에서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살 때에만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3. 감사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의 조건은 꼭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참된 신앙입니다. 이것을 조금 더 알기 쉽게 말하면 세 가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1) 이와 같은 감사 생활은 온전히 중생하여 새 마음과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어 새 마음을 가지기 전에는 이런 감사의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확실하게 믿는 신앙입니다.

롬8:28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을 확실히 믿는 신앙입니다.

(3) 내세와 영생에 대한 확실입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죽을지라도 내 생명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분명히 믿은 신앙입니다. 이 신앙이 없이 어떻게 죽을 때에 감사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신앙이 있는 이에게는 언제든지 감사한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감사 주일을 지키는 오늘 하루만 감사한 생활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 내내, 매일매일 감사의 생활을 합시다.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뜨거워질 때, 뜨거운 마음으로 힘껏 드립시다. 최선을 다하여 힘껏 준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시l18:21-26

 

서론

참된 신앙에는 반드시 감사의 생활이 따릅니다. 감사의 생활은 하나님께서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주께 늘 감사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정강의 은혜를 받습니다.

늘 감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평강을 얻게 됩니다(골3:15). 평강이란 인간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참으로 소망스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상태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구체성을 동반한 복지상태 전부를 포함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은 마음의 평화 그리고 그 속에서 오는 기쁨과 건강을 모두 의미합니다. 이 평강은 그리스도 안에서 늘 감사 생활을 하는 자에게 옵니다. 믿음이 없이는 이런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평강의 은혜를 주십니다.

 

2. 건강의 은혜를 받습니다.

시103:3-5에 감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 주시며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귀한 것은 건강입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다 누려도 병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현대 의학은 모든 병이 마음에서 온다고 합니다.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근심 걱정으로 기쁨이 없고 늘 초조하고 우울한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이 찾아옵니다. 병든 마음, 병든 정신은 육신을 약하게 만듭니다. 잠15:13에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반드시 건강해집니다. 그러나 항상 불평하면 몸이 쇠약해지고 가정 이 불행해지고 살 맛이 나지 않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주안에서 항상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3.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을 공경하면 창고가 넘치도록 물질의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잠언3:9-10). 물질이 없으면 당장 생활의 위협을 당합니다. 교회도 물질이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와서 첫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 예물을 드렸더니 오늘의 이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감사는 신앙생활의 표준입니다. 주께서는,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과 물질을 한데 묶어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주께 충성할 뿐입니다.

 

결론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오직 감사할 것뿐입니다.

 

 

추수 감사절

시65:11

 

서론

추수 감사절은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 우리의 모든 영광의 근원과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지켜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추수 감사절을 맞아 이 땅에 내려 주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려야 합니다.

 

1. 일 년 동안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냄

(1) 계절의 주기적인 순환

일 년 중의 여름과 겨울은 모두 하나님께서 인간의 유익을 위해 만드신 것입니다. 계절의순환은 대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약속으로서 한 해를 아름답게 영광스럽게 장식하는 것이며, 여름과 겨울, 씨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가 순환하는 것은 은혜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무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굳게 서도록 해 줍니다.

(2) 땅의 열매와 소산

해마다 열리는 땅의 열매와 소산들, 예컨대 가축이 먹을 풀이며 사람이 먹을 채소 등은 우리가 사는 땅을 이용 가치가 풍부한 곳으로 만들어 줍니다. 추수는 해마다 그 해에 있어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며, 이 악하고 배은 망덕한 세상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결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뿐만 아니라 장식과 즐거움을 위한 온갖 유쾌한 것들도 채워 주시는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인간의 책임

(1) 하나님을 찬양함

우리는 감사를 드리며 겸허한 마음으로 그의 무한한 지혜와 권능과 자비를 인정하는 가운데 우리에게 씌워진 면류관과 한 해 동안 받은 축복들을 그 발 앞에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족들과 친지들이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건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우리와 우리 땅에 향하신 그의 선하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우리에게는 추수감사절이 되고, 우리가 찬송하는 삶을 살게 해야 합니다(시119:164, 119:164). 하나님께 그토록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더욱 영화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서로에게 선을 해함

은혜를 베풀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밝히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심에 따라 살면서, 기회가 있을 적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선한 청지기가 된 자들로서 세상 재물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해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온갖 능력을 가지고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3) 다음 해에 대한 기대를 가짐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심으로 을 한 해를 아름답게 해 주셨다면, 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자세를 계속 지니는 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정녕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것들은 우리의 기쁨뿐만이 아니라 찬양의 대상이 됩니다(시75:1).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오늘 우리가 감사드리는 온갖 놀라운 일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리라는 소망을 갖게 해 준다는 면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결론

바라건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내려서, 우리가 말로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온갖 좋은 것과 온전한 은사들을 주시는 그분께 복종하는 삶을 통하여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믿음과 감사

눅12:13-21

 

서론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기쁜 일을 당하여 감사하지만 불만이 더 많은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추수 감사절을 당하면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려고 애쓰게 됩니다.

참다운 감사는 어떤 감사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겸손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가을에는 풍성한 결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풍성한 오곡백과를 거두어들여 놓고 기뻐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나오는 한 부자도, 풍성한 소출을 거두어 더 크게 지은 곡간에 그득 쌓으며 기쁨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즐거워 하는 그를 칭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20절)"하고 부르셨습니다.

풍성한 소출이 자기의 힘으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부자였기에 이제는, "평안히 쉬자"고 말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이 부자를 보고 하나님께서는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때를 따라 내리는 비와 햇빛이 없었던들 어찌 풍성한 소출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만한 사람은 결코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감사는 겸손에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2.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추수 감사절은 역사적으로 구약 시대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밀을 추수하고 지키는 장막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대적 의미의 추수 감사절은 미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모진 고생 끝에 1623년 훌륭한 첫 수확을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와 축제를 가졌는데, 이것이 그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와는 다르게 그들은 그 풍성한 소출이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을 알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참다운 감사는 하나님을 모든 일의 섭리자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것입니다.

 

3. 범사에 드리는 감사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또한 그 하나님의 자신을 늘 사랑하시고 인도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롬8:28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항상 선한 결과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감사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 감사일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일에만 감사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감사가 아닌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이처럼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범사에 감사하게 하며 하나님은 이런 감사를 원하십니다.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걸어온 날들을 돌아보며 겸손한 마음과 믿음으로 범사를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는 신앙인의 열매

살전5:16-22

 

서론

기독교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무슨 일에든지 관계없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의 최고의 기쁨이 추수이듯이 기독교인의 최고의 빛은 감사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1.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우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은혜를 베풂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다시 베풀어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생활로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말로는 감사를 잘하는데 행동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말로는 용서를 빌고 사죄하지만 생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몸으로 믿음을 행하는 사람은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열매인 감사를 생활을 통해서 나타내 기를 부탁드립니다.

기쁜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기쁨이 충만한 모습으로 감사하는 것이 참된 감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무엇을 감사하나?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10에서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의 신앙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감사하는 바울의 겸손한 고백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2)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죄의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주께서 자기 피로써 대신 구원 하셨으니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3) 환경과 때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께서 그 능력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어려운 환경과 이기기 힘든 조건을 극복해 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의 결과

(1) 믿음의 좋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신앙이 좋고 나쁨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감사가 있고 없음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감사가 충만한 데서 믿음의 열매는 잘 맺힐 수 있습니다.

감사가 충만한 사람에 게는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고 한 사도 바울의 부탁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2) 감사는 영육을 강건케 해 줍니다.

감사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우리를 강하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합니다. 반면 불평과 시기,혈기, 질투, 오해는 질병을 유발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에 있어서 평화를 잃어버리고, 혈기가 가득 찬 사람은 고혈압에 걸리기 쉽고, 오해와 질투심은 마음의 병을 유발시킵니다.

또한 감사는 헝클어진 것까지도 순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사랑과 이해와 고마움을 알 수 있습니다. 감사 속에서 성장하는 여러분에게 사랑과 소망과 믿음이 풍성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는 물질만 많이 드린다고 해서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 생명이 있는 감사,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감사가 참된 감사입니다.

감사의 신앙을 가지신 모든 성도 여러분에게 감사와 일생동안 끊이지 않는 감사의 폭발적인 힘이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축 복

성 경 활 용

1. 축복의 의미

(1) 하나님께서 주신다.

(창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2)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복을 빌어 주는 것이다.

(창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2. 축복 주시는 분

(1) 하나님

(히6:14)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2) 예수님

(롬15: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 성도는 누구를 축복해야 하는가?

(1) 부모

(잠30:11)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2) 핍박하는 자

(롬12:14)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3) 이웃

(잠27:14) 이른 아침에 큰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

(4) 후욕하는 자

(고전4:12) 친히 손으로 일을 하고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5) 저주하는 자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4. 성도가 받는 축복

(1) 주의 보호를 받는다.

(시5:11)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하리이다

(2) 원수들에게서 구원함을 받는다.

(시17:7) 주께 피하는 자를 그 일어나 치는 자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3)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시31:19)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4) 평강이 있다.

(사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5)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시56:ll)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6)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

(시37:5)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 영적인 축복의 약속

(1)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고 함

(겔11:19)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2) 영적 안식을 주신다고 함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 영원한 이름을 주심

(사56:5)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4) 성령을 주심

(눅11:13)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5) 생명의 면류관을 주심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6) 영생을 주심

(요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6. 그리스도 안의 축복

(1) 정죄에서 해방된다.

(롬8: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진리를 말한다.

(롬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3) 자유가 있다.

(갈2: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4)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

(엡2:13)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5) 지혜가 있다.

(고전4:10)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6) 능력이 있다.

(엡1:20) 그 능력인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7) 구원이 있다.

(딤후2:10)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관련원어풀이

1. &r'B; 바-라크

(1) 무릎을 꿇다.

(대하6:13, 시95:6)

(2) 축복을 빌다, 축복하다, 예배 드리다.

(창28:6, 수24:10)

(3) 자신을 축복하다.

(창12:3, 18:18)

(4) 찬양하다, 축하하다, 축복하다.

(대상29:20, 단6:ll)

(5) 축복을 받다, 찬양을 받다.

(욥1:21)

 

2. hk;r;B] 베라-카-

(1) 축복, 축도.

(창27:12)

(2) 매우 행복된 사람.

(창12:2, 시21:7)

(3) 선물, 은사.

(창33:11, 왕하5:15)

 

3. eujlogiva 율로기아

(1) 찬양, 칭찬, 찬미.

(계5:12, 7:12)

(2) 축복하는 일, 축도.

(히12:17, 약3:10)

(3) 봉헌, 봉축.

(고전10:16)

(4) 축복, 관대, 이익.

(롬15:29, 히6:7)

 

4. eujlogevw 율로게오-

(1) 축복하다, 복을 빌다.

(마21:9, 요12:13)

(2)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다, ~에 성별된 축복을 선포하다.

(마26:26, 눅6:16)

(3) ∼번영케 하다, ~에 축복을 주다.

(행3:26, 엡11:3)

설교예화자료

성공 배후에 있는 비밀

 

캐롤 버네트! 이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TV쇼의 주인공입니다. 한 주에 2,500만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 아가씨를 성공시킨 배후의 일화를 버네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어느 날 무대 생활을 동경하는 꿈 많은 소녀에게 어떤 낯선 사람이

"당신에게 돈을 빌려 주겠소. 그러나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으나 그의 태도는 너무나 진지하여 나를 어리둥절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세 가지 조건을 다시 말할 때 나는 다시 놀랐습니다. '첫째 조건은 성공하면 이자 없이 5년 동안에 갚을 것, 다음은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 것, 끝으로 만일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 때 이와 같은 친절을 베풀것'이라는 세 가지였습니다. 원하면 친구와 함께 와도 좋다는 얘기를 듣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그 낯선 사람에게 돈을 빌려 꿈에 그리던 뉴욕 무대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약속대로 5년 안에 돈을 갚을 수 있었습니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냈으나 그에게서는 한 번의 답장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나는 최근에 발간된 살아 있는 성경책을 들여다보다가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는 마태복음 6장에 내 눈이 머물렀고 그때에야 나는 그 낯선 사람, 아니 은밀한 친구를 생각해 냈습니다. 몰래 주라는 정신적 원리, 원금보다 더 큰 이익 배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그 은밀한 친구는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후로 나는 그 사람에게 다시 연락하지 않았고 그의 약속을 자랑스럽게 지켜 왔습니다. 물론 그 세 번째 약속은, 그것은 내 비밀입니다.

 

 

성공의 비결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 아직 창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조그마한 은행에 어떤 처녀가 찾아왔습니다.

"글쎄요. 모처럼 오셨는데 미안합니다. 마침 자리가 없으니 다음에 다시 한 번 찾아 주십시오." 처녀는 젊은 은행장에서 보기좋게 취직 거절을 당하자 빨개진 얼굴을 안 보이려고 고개를 푹 숙이고 나오다가 마침 마루 바닥에 핀 한 개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 핀을 주워서 그의 옷자락으로 닦아서 탁자 위에 얹어놓고 나오려 하였습니다.

"예, 아가씨 잠깐만 기다리시오." 은행장이 다급하게 일어서면서 그 처녀를 불렀습니다.

그 처녀는 의아스러운 얼굴을 지으면서 몸을 돌려 은행장에게로 향해 섰습니다.

"방금 당신을 채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생각한 바가 있어서 채용하기로 했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도록 하시오."라고 말하면서 젊은 은행장은 만족해 하는 얼굴을 지었습니다. 이때 처녀는,

"방금 채용하지 않으신다더니‥‥‥‥하며 빨개졌던 얼굴을 선뜻 들면서 싱긋이 웃었습니다.

"허어 방금 주운 그 핀을 아껴주시듯이 우리 은행일을 해 주신다면 내 월급을 나누어 드리더라도 채용하겠다는 것입니다. " 하자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처녀의 얼굴은 또 한 번 빨개졌습니다.

그후 몇 해의 세월이 흘러 그 처녀는 은행장의 부인이 되었고 그 조그마한 은행은 큰 은행이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바닥 교회

 

지금은 독립된 인도네시아라고 하는 나라가 있지마는, 그 인도네시아란 나라에 가면 '바닥 교회(Batak Church)'라고(그 이름이 좀 별나지마는) 모두 인도네시아 사람으로 조직된,어느 다른 선교부의 도움을 별로 안 받는 독립 된 큰 교파가 하나 있습니다. 아마 세례 교인 수 약 50만 되는 큰 교파입니다. 그런데 이 교파는 유럽에서 온 어떤 한 사람이 처음에복음을 전파해서 세웠다고 합니다. 유럽 북부에 있는 어떤 청년이 소년 시절에 다리에 중병이 걸렸습니다.

그때 의사들은 아이의 생명을 구하려고 하면 이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겠다고 결론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부모도 깊이 생각하고 이 아이도 깊이 생각하여 이 두 다리를 자를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 하고 많이 생각하는 가운데 이 아이가 "아, 어머니,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고칠 수 없는 병도 다 고쳐 주셨는데 내 다리도 예수님의 능력이면 고칠 수 있지 않겠어요? 아, 나는 어떻게 내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습니까? 나는 그저 예수님께 다리를 자르지 않게 해 달라고 모든 것을 맡기고 간절하게 기도하겠습니다. "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와 그 아이가 함께 간절히 그 다리가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다리가 나았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도 복음을 알지 못하는 나라, 복음을 듣지 못한 나라, 다른 사람이 가 보지 못한 지방, 이런 곳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겠습니다. " 이렇게 작정을 하고 오래 전에 인도네시아에 혈혈단신으로 나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해서 그런 큰 교회가 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건강에 감격한 심정 가운데서 일생을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친 그 심령을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당신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그는 대단히 긴 여행을 하고 있었으므로 지쳐 버렸고, 굶주려서 목이 바싹 말랐습니다. 사막을 오랫동안 걸은 끝에 간신히 나무가 서 있는 곳에 다달았습니다.

나무 그늘에서 쉬며, 열린 과일로 굶주림을 채우고 옆에 있는 물을 마시고는 안도의 숨을내쉬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이 나무에 매우 감사하여

"나무여! 정말 고맙다. 나는 네게 어떻게 답례를 하면 좋을까. 너의 과일이 달게 되도록 빌려고 해도 너의 과일은 이미 충분하게 달콤하다. 상쾌한 나무 그늘이 있도록 빌려고 해도 너는 이미 그것을 갖고 있다. 너를 다시 더 자라게 하기 위해 충분한 물이 있도록 빌려해도 물은 이미 충분히 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바랄 수 있는 것은 네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많은 나무가 되어서 너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나무로 자라도록 바랄 수밖에 없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헤어지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랄 때, 그 사람이 더욱 현명하게 되도록 바랐더라도 이미 현명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착한 사람이 되라고 바랐더라도 이미 충분히 착한 사람이었을 메는 당신은 '당신의 아이들이 당신처럼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바라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주 예수를 바라보자

 

덴마크의 허닝에서 피터 목사님의 놀라운 간증을 들었습니다. 전 세계에 불황이 닥치자 덴마크에도 불황이 다가왔습니다. 이 때문에 피터 목사님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한 성도도 크게 건축업을 하다가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루는 5만 크로네(약 천만 원)를 갖고 와서

"목사님! 제가 여태까지 주님 중심으로 사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파산이 이르고 말았습니다. 지금 제게 있는 재산이라고는 이 5만 크로네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랍니다. 그동안 인간의 수단과 지혜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없어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이러니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더랍니다.

그래서 피터 목사님이 5만 크로네를 놓고 "당신이 하나님께 물질을 심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말한 다음 기도를 해 주었는데 3개월 후 이분에게 기적이일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분이 정부에서 주도하는 5백만 크로네 상당의 공사에 입찰했는데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낙찰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계속 쏟아져, 환난에서 안정을 얻어 파산했던 사업을 다시 일으키고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하는 귀한 성도가 되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경쟁자를 위한 축복

 

실라스는 조그만 도시에서 식료품 상회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접은 그의 할아버지가 처음 차려 놓았고 그의 아버지를 거쳐 지금은 그가 3대째 운영하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실라스의 식료품점이 신용이 있고 또 저울도 정직하게 달아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손이 사람 몸의 일부이듯이 그의 상점은 그 마을 공동 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일부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가게였기 때문에 장사도 잘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먼 지방으로부터 낯선 이방인이 찾아들면 서부터 사태는 달라져 버렸습니다. 그 낯선 사람은 실라스가 경영하는 그 오래된 식료품 상점을 매수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식료품 상회 영업 면허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라스로서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비록 값을 두 배로 올려준다고 해도 팔 생각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의 식료품 상점은 다만 가게일 뿐만 아니라, 그에겐 유물이요, 유산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그 낯선 사람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그럼, 미안합니다. 그러나 당신 가게 건너편에 있는 빈집을 사서 그것을 깨끗이 꾸미고 페인트 칠을 하고 거기에 아주 훌륭한 상품들만 가득 사다 놓고 당신 가게를 눌러 버리겠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값을 내리지 않는다면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될거요." 하고 지껄였습니다.

실제로 그 이방인은 실라스의 가게 건너편의 집을 비싼 값에 사서.새로 단장하고 깨끗한상점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보게 되자 실라스의 마음은 아파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낙심되긴 했으나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그는 그의 가게 창문에 "75년의 전통이 있는 여러분의 상점"이라고 새로운 광고의 표지를 달았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비록 아직 가게문을 연 것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의 눈을 끌 만한 표지를 크게 써붙였습니다.

"내주에 개점-낡은 상점과는 다름"

그 가게가 개점하기 전날, 실라스는 그의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서 앞으로 자기의 상점이 점차로 망하게 될 것과 자기의 비참해질 상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와 경쟁을 선언한 그 이방인에 대해 마음속으로 마음껏 저주를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실라스의 아내가 다가와서 조용히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길 건너편 그 새 가게가 불타버렸으면 좋겠지요? "

"물론! 왜 안 그렇겠소!"

실라스는 저주하는 듯한 음성으로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아니, 그럼 어떻게 생각해야 된단 말이오."

"아예 생각하지를 마세요."

"생각을 하지 말라고? "

"녜, 오히려 기도하세요."

"아니, 그럼 저절로 불타 버리라고 기도하란 말이오? "

"당신은 스스로 훌륭한 기독교인 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아주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더욱 그런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할거예요.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좀 생각해 보세요. 그 새 상점이 성공하도록 기도하여야 될 거예요. 그 가게에 축복이 있도록 기도하세요,"

"아니, 여보! 당신 미쳤소?"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그 아내는 아내대로 건전한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새로운 가게의 문이 열리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 가게 문 앞에 몰려들었고 문 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실라스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그 가게 앞에 선 채로 손을 높이 들고 큰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이 새로운 상점에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이 가게의 상품이 이 마을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게 하시고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들을 통해 충분히 발전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놀랍게도 그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와 그를 껴안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새 가게에 처음으로 들어선 것도 실라스였습니다.

그 두 가게가 서로 값을 깎아내리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 두 가게 사이에는 한 번도싸움이 없었습니다. 두 가게 모두 장사가 잘 되어 갔습니다. 그 마을도 점점 발전해 갔습니다. 물론 실라스도 점점 번영해 갔습니다.

 

 

스승의 지우개

 

어느 젊은 화가가 매우 훌륭한 작품, 심지어 그의 스승도 결점을 찾아낼 수 없는 아주 정교한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그 화가는 자신의 작품을 끊임없이 감사하며 그것에 도취했고, 그가 그린 그 그림보다 더 잘 그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즐거이 그의 그림을 다시 감상하려고 했을 때 그는 그의 스승인 그의작품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분노로 눈물을 흘리며 그의 스승에게 뛰어가 그 무자비한 행동에 대한 까닭을 물었습니다.

스승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자네의 장래를 위해 그렇게 했다네. 확실히 그 그림은 훌륭했어. 하지만 동시에 자네에겐 파멸을 의미해."

"왜 그렇습니까? "하고 걸은 화가는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여, 자네는 이젠 예술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자네 자신만을 사랑하고있네. 진정 그 그림은 완전한 것처럼 보일 뿐 완전하진 않아. 그것은 단순한 습작일 뿐이네.연필을 잡고 그릴 그림을 구상하게. 그리고 그 희생물을 아쉬워하지 말게."

그 젊은 화가는 연필을 잡고 그의 걸작 '이피게니아의 희생'을 그려 냈습니다. 그의 이름은 티만테스였습니다.

 

 

어록·시·묘사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무덤을 하나님의 땅이라 한/ 그 옛날 색슨족의 표현을 나는 좋아합니다. /그것은 벽 속에갇힌/ 모든 무덤을 신성하게 하며/ 잠자는 분진(粉塵) 위로 축복을 불어 줍니다. // 하나님의 땅! 그 축복된 이름은/가슴속에 간직해본 생명의 씨,/아! 더 이상 그들의 것이 아닌 생명의/씨를 뿌리고 무덤 속에 누운 자에게/ 위안과 소망을 나누어 줍니다.

(롱펠로우/ 하나님의 땅)

 

축복으로써 오늘도 길을 나서/ 어느 땅으로 향하든지 간에 주 하나님/당신의 비호아래 여행할 수 있게 하소서.

(발터/ 길 떠나기 전의 기도)

 

온 천지가 축복으로/ 가득 쌓였습니다/ 천사들도 많이 내려왔습니다.

(이성교/ 영혼의 하얀 눈)

 

신비가 축복 속에 감싸여 있고/ 예지도 그 힘을 감추고 있다/ 망양의 심연을

(스마트/ 다윗에게 부치는 노래)

 

그러나 인종합시다!/ 이토록 아픈 고통은/ 땅으로부터 오지 아니하며,/ 때로는 하늘의 축복이/ 이토록 어두운 가면을 쓰기로 합니다.

(롱펠로우/ 인종)

 

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 포근한 집"이 있습니다!/내가 내 인도자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3곳에는 낯선 이가 없습니다. / 나 그분의 축복의 포옹을 느낍니다. / 그리고 어느때보다도 더욱 충만하게/ 그분의 지극히 높은 사랑과 은총을 압니다.

(로사 K. 러셀/ 집으로 가는 길)

 

예수님께서 걸으시던/ 저 나사렛의 땅/ 그 축복의 흙을/ 이 지역의 풍토가/ 닮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황금찬/ 기도)

 

자장가 바람결에 은은히 울리고/ 따사한 햇살 내리 비치네./ 보리 이삭 무겁게 몸을 숙이고/ 덤불엔 익어 어우러진 딸기/ 온 들판은 축복으로 넘실대는데/ 무엇을 생각하는가, 젊은 아내여

(슈토름/ 7월)

 

오, 기쁨! 우리의 잔불 더미 속에 있는 기쁨,/그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로다. / 그러나 자연은 보여주고 있네./ 그토록 덧없음이 무엇인지!/우리의 지난 세월에 대한 생각은/ 영원한 축복을 가져오지만/ 그러나 진정 축복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희락과 자유, 어린 시절의 단순한 교훈이니/ 일할 때나 쉴 때나 가슴에는 새로운 희망이 자라나네.

(워즈워드/ 영원의 암시)

 

마음을 열자/ 오월처럼 늘 푸른 가슴으로/ 하늘을 향하고/ 우리들 노래에서/ 마음에 들어와 자라고 있는/ 축복의 소리를/ 모두 다 알게 모두 다 알게/ 닦고 또 닦자.

(류순화/ 예배당에서)

 

푸른 꿈 하나 둘/ 새기며 나을 때// 그 마음 위로/ 펼쳐진 숲속에// 축복인 양 하이만/꽃잎이 흩날렸다.

(안광성/ 아카시아)

 

차라리/ 새벽의 울리는 은은한/ 축도

(황금찬/ 새벽에)

 

축복하소서./ 뿌리가 없고 끝없이 방황하며,/ 편히 쉴 가정이 없는 자들을‥‥/ 따뜻한 사 랑의 분위기와/사랑으로 돌봐주는 이를/ 갖지 못할 그들을‥‥‥‥

(베티 W. 스토펠/ 외로운 이들을 위한 기도)

 

우리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짐을 가볍게 해 줍니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근심을 물리쳐 줍니다/ 가장 축복받는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며/ 사랑은 우리에게 이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줍니다.

(애니 스미스/ 혼란의 시대에)

 

오늘 이 불타는 이 몸을 또/ 이렇게 이 세상 이 모든 일들이 다/ 이렇게 전능하신 당신의뜻대로 다 이루어지게 됨을/ 주여 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뜻대로 사랑되고 축복이 되어/ 오 주여 제 이 한 몸 제 이 모든 고통들이// 다 우리 자비로우신 우리 주님의 계약된 축복이었음을/ 다 주여 제 이 모든 고통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축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척하며 괴로워하였던 저를 주여 알고 계셨더군요/귀엽게 생각하실 줄을, 용서하여 주실 줄도 이미 다 알고 있었지요만

(박남철/ 감사기도)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 드리면/ 다정한 친구처럼 당신께서 축복하시며/ 나를 반겨 주시네.

(조윤호/ 조용한 기도)

 

그는 숨겨 진 슬픔을 아시네./ 우리의 고독을 그는 느끼시네./ 그는 우리에게 달콤한 위안을 주셨네./ 순종 이후에 오는 기쁨/ 우리를 축복하시고 책임지시네./ 주님은 우리를 아시네.

(작자 미상/ 예수님은 아신다네)

 

온전한 위로와 달콤하고 축복된 안식처의/ 모든 문을 열기 위해/ 그분이 열쇠를 가지고 계시니/ 다만 그대에게 가장 좋은 것을 보실 때,/ 비로소 그것을 너에게 주시리니‥‥‥

(작자 미상/ 그가 열쇠를 가지고 계시네)

 

그분 부르기를 두려워 마십시오./ 오, 번민하는 영혼이여!/ 당신의 슬픈 외침 이/ 당신을 그의 가슴으로 이끈답니다. / 시시때때로 그대가 찾는 그곳에 계시며/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안나 쉽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다채로운 사물들을 지닌/ 빛이 이제 나에게는/ 얼마나 빈약하고 치졸하게 생각되며,/작별이/ 얼마나 즐겁고 축복을 주는 것으로 느껴지는가.

(노발리스/ 밤의 찬가)

 

피로 멍든 땅,/ 상처 깊은 가슴들에/ 사랑과 눈물과 스미는 햇빛으로 덮은/ 너의 하얀 축복의 손이 걷히는 날// 우리들의 산하여/ 더 푸르고 더욱 요원하라!

(김현승/ 신설)

 

막 피어나는/ 장미및 등불을 밝혀 두며는/저들을 위해 자비스런 축도/ 우리에겐 소리없는/ 갈채도 되리니

(김남조/ 장미를 피우듯)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김남조/ 너를 위하여)

 

비록 "이것이 진리"일지라도/ 너와 나를 위한 축복된 기다림이 있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러나 내가 잊지 아니할지니"/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 주의 마음속에 거하는 일이!

(댄슨 스미스/ 잊지 아니하시나니)

 

주여! 당신만이 당신의 자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입니다/ 그 외 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당신으로부터 축복의 강물이 흐릅니다/ 당신안에 축복받은 자가 살며/ 생명의 샘, 완전한 은총, 우리의 근원, 우리의 세계 그리고/ 우리의 거할 곳이 바로 당신 품입니다.

(잔 마리 귀용/ 당신의 생명으로 내가 살기에)

 

그러므로 너는 먼저 주님을 구하라/ 그리하면 응답받으리/또한 그분이 네 위대한 후원자이심을 발견할지니/ 그분의 축복 없는 하루도,/ 한 시간도, 잠시의 생각도 있을 수 없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라

(호우튼/ 하나님께 나의 처음을)

 

축복의 그리스도는 조그마한/ 너의 방에 계신다. / 아니, 그리스도는 네 가슴속에 계시네.

(생스터/ 오늘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면)

 

쇠하지 않을 것을 아는 그 기쁨으로/사라져 버릴 수 없는 그 부요함으로/ 영원한 날을 밝혀 줄 그 빛으로/ 이제 그가 그대들을 축복하실 것이라네./ "·..그대들을 지키리니."// 모든 것을 덮는 그의 날개 그림자로,/ 악한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그 강한 사람으로/ 영광에 이르도록 안전케 하는 확실한 능력으로,/그는 이제 그대들을 지키실 것이라네.

(조지 핸더슨/ "주께서 그대들을 축복하시고·..")

 

순간순간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그가 주시는 많은 축복이 함께 하기를/ 이기심과 유혹과 죄악을 이길 수 있는/ 그런 승리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마블 E. 팔머/ 행복한 새해를)

 

고난의 왕 주 예수여/ 내 영혼이 당신을 경배합니다. / 영원한 축볶은 내게/ 사랑의 보상이라는 것을 가르치소서./ 당신 안에 내가 숨나니,/ 잡아 주소서./ 고통이 당신의 온전하신 뜻을 이를 때까지.

(마가레트 크락슨/ 고난의 왕 예수)

 

지난날의 악을 철회하시는 것은 아니나 가장 복된 것으로 변하게 하셨도다!//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러셨듯이 나에게도 복을 주실까? / 그렇게도 악하고 그렇게도 부끄러워하던 것들을 받으실까?/그것을 축복의 보석 같은 것으로 변하게 하실까?

(댄슨 스미스/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오, 아름다운 시의 언어로/ 내 슬픈 영혼에 사랑의 속삭임을 주신 주님,/ 당신은 진실로 나의 과거와 현재를/ 당신의 축복의 미래를 이끄시어/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버튼 매카페티/ 새 삶이 시작되는 곳으로)

 

나무에 여윈 잎처럼/ 말라질까 했는데/내 눈물 돌보신 주/ 날 축복해 주셨도다/ 향기가 서린 단 열매/ 맛본 일이 없어도/ 이제는/내 안에서 녹나니/ 그 은혜 넘치네.

(홍안의/ 은혜의 빛)

 

하나님 주시는 복/ 정금보다 귀하고/ 내리시는 그 축복은/ 천하보다 더하다

(홍안의/ 복의 근원)

 

난롯가에나 연회에 빠진 사랑하는 자들이 있다네./사라져 버린 얼굴들이 있고/ 이제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이 있다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서/영원히 지나간 것을 안다네./ 오, 우리 아버지여, 당신께 우리가 감사함은/ 아직 남아 있는 축복을 인함입니다. // 감사하세, 오 감사하세./ 그들의 사랑이 땅에 있는 우리를 기쁘게 하였기에,/ 그들이 우리와 동행하면서/ 모든 미소와 눈물을 나누었기에 감사하세./ 지난날 우리에게 가져다 준 그 기쁨을/ 결코 사라지게 할 수 없나니/ 아름답고 은혜로운 기억들도/사랑스러워져 간다네./ 믿음은 우리로 참게 하나니/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게 하기 때문이요,/ 겨울이 지나면 봄이 와서 땅이 다시/푸르러짐을 알게 하기 때문이네./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멀리 떠나/ 기쁜 만남을 갖게 되리라는 소망이/ 우리로 우리 아버지, 당신께 감사하게 하나니/아직 남아 있는 축복을 인함입니다.

(애니 존슨 플린트/ 남아 있는 축복)

 

 

설 교 노 트

 

복 있는 사람

시1:1-6

 

서론

본문은 의인과 악인의 생활과 그 결과를 대조시키면서 듣고 읽고 깨닫는 자로 하여금 참 복된 삶을 살도록 교훈하시는 말씀입니다.

과연 어떤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악인과 함께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복되다고 하고 권세자나 학식자나 장수하는 자들을 가리켜서 유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세상적인 것이요, 안개와 같은 짧은 인생을 잠시 즐기게 하는 것은 될지 모르나 참 영원한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했고,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에서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은 악인, 죄인, 오만한 자와 같이 도덕이 해이하고 인격이 견실치 못하여 하나님의 뜻을 맞추어 드리지 못하고 탈선하여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들과 멀리하고 죄를 피하여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이란 하나님의 교훈을 의미하는데, 이를 즐거워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속 깊이 사랑한다는 것이니 사랑하기 때문에 지킬 뿐만 아니라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글자대로 밤이나 낮이나 조용히 생각한다는 뜻이며 송이 꿀보다 더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해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악인, 죄인, 오만하는 자들과 같이 보이는 세상에 두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사는 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3. 복 있는 사람의 결과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 즉 복 있는 사람의 결과는 마치 시냇가에심은 나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나무는 수분이 없으면 말라 죽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뿌리도 깊게 내릴 수 있고 항상 흐르는 물이 있어 양식이 풍부하며 시들지 않습니다. 때를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는 참 복 있는 사람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말고 항상 시냇가의 나무처럼 시들지 않는 축복을 받아 금생과 내생에 형통되어지는 길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에서가 받은 복

창36:1-8

 

서론

에서는 이삭의 첫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려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서도 이삭의 아들이므로 결혼하여 자녀들과 많은 물질을 받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받은 복은 야곱이 받은 복과는 전연 다른 성질의 것입니다.

에서는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1. 결혼의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2-3절에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아다와 오홀리바마와 바스맛을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3명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중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 하라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히13:4, 잠15:18-19)"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본다면 에서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2. 자녀의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4-5절에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알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고 하였습니다.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여 눈물로 호소하여 아들을 낳았고, 사울의 딸 미갈은 가족에게 축복하려고 하는 다윗의 비위를 상하게 한 일로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삼하6:20-23).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시127:3-5)"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에서는 자식을 얻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3. 물질의 복을 받았습니다.

븐문 6-7절에 "에서가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의 우거한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인하여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물질적인 복을 받아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은 선인과 악인을 가리지 아니하시고 풍족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즉, 선한 사람에게만 햇빛과 비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신다 말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복은 이 땅의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지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것을 후회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히12:16-17).

 

결론

에서는 육신적인 축복은 받았지만 신령한 영의 축복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떠한 축복을 먼저 받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성도들은 다른 무엇보다도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축복하라

민6:22-27

 

서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축복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축복해야 합니까?

 

1. 복을 주시기를 축복해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멜기세덱 제사장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습니다. 주의 종된 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은 성도들이 영육간에 잘되기를 축복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2. 은혜 주시기를 축복해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죄로 인하여 죽어 마땅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베풀어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즉, 아무런 대가없이 받는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잘되어구속받은 성도들에게 육신도 잘되도록 물질 및 건강 그 외 에 좋은 것을 주시라는 것입니다

(요일3:2),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람은 잠시라도 살 수 없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일반적인 것이 있고 특별 은혜가 있습니다. 일반 은혜는 악인이나 의인이나 차별하지 아니하고 비와 햇빛, 공기를 주시고, 특별 은혜는 구속함을 받아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은 모든 은혜를 주시라고 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3. 펑강 주시기를 축복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시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라는 것입니다. 평강하기를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평강 속에는 안전, 행복, 건강, 번창, 평안 및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기쁨과 생의 환희가 샘솟듯이 솟아나는 것을 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바닥을 칠 것이며(사55:12)"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세우셔서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게 하시고 주의 종의 축복을 들으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언제나 축복해야 합니다.

 

 

예언을 겸한 축복

창49:1-2

 

서론

야곱은 죽음을 앞에 놓고 아들들을 불러 모아 예언을 겸한 축복을 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다윗은 죽음 직전에 솔로몬을 불러 놓고 하는 말이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의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42:1-4)"고 하였습니다.

 

1. 자식들의 후일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본문 1절에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평생을 살고 죽음을 잘 맞이한다는 것은 대단한 복입니다. 야곱이 죽음을 앞에 놓고 자식들의 장래에 대하여 예언적인 축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스데반은 죽을 때까지 복음을 전하고 원수를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윗은 아들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신앙생활 잘하라는 유언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는 다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 것입니다.

 

2. 모여서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들을 불러모아 놓고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야곱의 아들들도 아버지의 복된 마지막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며 유언 한마디도 듣지 못한 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특히 야곱은 자식들의 장래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언을 하는 데 자식들이 듣지 못한다면 이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식들 하나 하나에게 일일이 예언을 하였습니다.

 

3.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본문 28절에 "이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불량대로 축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즉, 받을 수 있는 그릇대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받을 만한 일을 해야 합니다. 구원은 행위와 관계가 없지만 복은 행위와 절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이 행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복받을 짓을 하고 사람들 앞에서도 축복받을 만한 짓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저주받을 짓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축복하는 곳에

 

복이 있다

레9:22-24

 

서론

아론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로서 자신을 위하여 먼저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며 백성에게 축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이방인과 달라 축복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백성을 위하여 백성은 제사장과 왕을 위하여 서로 축복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 것은 축복과 복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축복은 인간이 하고 복은 하나님깨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창14:19).

 

1. 제사장직은 축복하는 직입니다.

본문 22절에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오니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에게 축복하는 사명을 주었습니다(신10:8). 아론은 축복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론과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로 향하여 드사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3-26)"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들뿐만 아니고 모든 성도들은 서로가 축복해야 합니다(롬12:14). 그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2. 축복하는 곳에 영광이 임합니다.

본문 23절에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라고 하였습니다. 축복하는 곳에 평화가 있고 축복하는 곳에 사랑이 있으며 축복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아론이 백성들을 축복할 때에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하였습니다.

 

3. 축복하는 곳에 복이 임합니다.

본문 24절에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파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론의 축복이 하늘에 상달이 되어서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불로 응답을 받게 되니 백성들은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우리들도 서로 축복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축복의 내용은 내세적이고 영적이며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도 있는 것입니다.

 

결론

축복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6:27)"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축복한 결과는 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잘못된 축복관

창27:1-4

 

서론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행치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까지라도 물질적인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물질이면 무엇이나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겠다는 조건으로 별미를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1. 이삭이 잘못한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물질 가지고 좌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별미를 먹고 축복하겠다고 한 것은 잘못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팥죽에 팔아먹은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복을 받을 수 없는 상태인데도 별미만 가지고 오면 축복하겠다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2. 에서가 잘못하였습니다.

에서는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께 가지고 가서 잡숫고 축복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권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였습니다.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의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솔히 여김이었더라(창25:31-34)"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받을 짓은 하나도 하지 아니하고 물질만 드리면 복받는 줄로 아는 것이 잘못이 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성도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잘못하고 있는 것이 유감입니다.

 

3. 야곱이 잘못하였습니다.

창27:18-23절에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른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청컨대 일어나 앉아서 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의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잘못하였습니다. 아버지를 속이 지 아니하고도 축복을 받을 수 있는데 아버지를 속이는 불효를 했으니 크게 잘못한 것입니다. 사람의 정한 목적이 아무리 선하다고 할지라도 방법이 나쁘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로 되어 있는 사람들은 편법을 사용할 필요성이 없고 정직하게만 생활하면 틀림없이 받는 젓입니다. 분명한 것은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고 복은 순종으로만 받으며 상급은 충성으로 받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의 성도들도 잘못된 축복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물질로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축복의 문

레3:7-13

 

서론

여기 본문 8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시고, 빌라델비아 교회를 찾아오셔서 열어 주신 축복의 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아시아 지방에 세워진 7교회 형편과 내용이 상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은 첫째, 주님께서 지상 교회를 세밀히 관찰하시고 간섭하신다는 사실이요 둘째, 주님께서 각 교회의 장점과 약점을 바르게 지적하여 주신 사실이요 셋째, 주님께서 각 교회를 향하여 칭찬도 하시고 책망도 하신 사실입니다 7교회 중에 칭찬받은 교회는 두 교회뿐이고, 다섯교회가 책망을 받은 사실은 더욱 주목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축복의 문이란 어떤 문입니까?

 

1. 사랑의 문입니다.

본문 9절에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줄 알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임하는 곳에 인간의 불안과 슬픔이 사라지고 하늘의 위로와 희락이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임하는 곳에 인간의 분쟁과 절망이 사라지고 생명의 자유와 활력소가 충만해집니다.

 

2. 보호의 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은 교회입니다.

주님께서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깨어서 보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눈동자처럼 보호하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신속하게, 계속적으로, 완전무결하게 보호하여 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호하여 주시는 그 결과는 인생이 추구하는 참된 안식과 행복이 있어서 언제나 성장하고 번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승리의 문입니다.

본문 9절과 12절에 "사탄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인생의 전쟁터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주님이 함께하시는 개인이나 교회는 언제나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 기독 신자와 교회의 적은 이단이요, 죄악이요,사탄의 권세입니다. 승리의 의미는 세 가지인데

(1) 적을 물리치고 영토를 보호하는 것이고

(2) 적을 정복하고 영토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고

(3) 적을 파멸하고 영토를 확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승리자에게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되고 참된 평강을 소유하게 되고 참된 행복과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결론

빌라델비아 교회가 칭찬을 받고 이와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그 원인과 비결을 정리해 보면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 교회입니다. 이 세상 돈이나 명예나 부귀보다 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2) 주님의 말씀을 바로 지킨 교회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 순종하고 실천한 말씀을 파수한 교회입니다.

출 생

성 경 활 용

1. 일반적인 출생

(1) 낙태되는 경우도 있다.

(욥3:16) 부지중에 낙태한 아이 같아서 세상에 있지 않았겠고

(2) 사람은 죄악 중에 출생한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증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3) 출생할 때부터 소경도 있었다

(요9: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4) 잉태의 고통이 있다.

(창3:16)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2. 출생의 두 종류

(1) 자연적인 출생이 있다.

(전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중생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dl'y: 얄-라드

(1) 아버지로서 낳다.

(창4:18, 10:8)

(2) 태어나다.

(창4:18, 대상3:5)

(3) 여자로 하여금 임신케 하다.

(사66:9)

(4) 창조하다.

(신32:18, 렘2:27)

(5) 자신이 태어난 것을 선언하다,출생 신고를 하다, 등록하다.

(민1:18)

 

2. dyliy: 옐리-드

(1) 태어난.

(창14:14, 레22:11)

(2) 아들, 자손,

(민13:22, 삼하21:16)

 

3. td,l,/m 몰-레데트

(1) 혈연, 일가.

(창12:1, 렘22:10)

(2) 출생의 환경.

(겔16:3)

(3) 후손, 태어난 자.

(레18:9)

 

4. lWj 훌-

(1) 열매를 맺다, 잉태하다.

(사54:1)

(2) 강하다, 견고하다.

(욥20:21, 시10:5)

(3) 태어나다.

(사66:8)

(4) 맺다, 창조하다, 조성하다.

(신32:18, 시29:9)

설교예화자료

작은 참새

 

나는 새 중에서도 보잘것없는 작은 참새입니다. 나의 생은 보잘것없지만 하나님은 나를 돌보십니다. 그는 나에게 깃털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

붉은 점 같은 것은 없습니다.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울에 나를 따뜻하게 해 주며 비를 막아 줍니다.

만일, 금빛이나 자주빛으로 되었다면 자만심만 강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헛간이나 창고도 없습니다. 씨를 뿌리거나 거두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참새로서의 몫을 주셨지만, 그것이 지켜야만 할 어떤 씨앗은 아닙니다. 만일 내가 먹을 것이 모자란다면, 조금씩 쪼아 먹으면 됩니다.

그것으로 나를 유지하기는 충분합니다. 삶이 고기보다는 풍요한 것이니까요. 많을 참새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온 세상에 걸쳐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하나님만은 그들 중 한 마리가 땅에 떨어졌음을 아십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그는 기억하고 계시며,또 아무리 약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피조물의 생명을 그가 항상 지키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성한 숲 사이로 날아다닙니다. 많은 가지들 위에 빛을 비춥니다. 나는 어떤 도표나컴퍼스도 없습니다. 하지만 길을 잃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어록·시·묘사

 

비참하게 태어나는 것보다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스킬로스)

 

사람은 죽을 매까지 완전히 태어난 것은 아니다.

(B. 프랭클린/ 서한집)

 

 

태어난 자에게 죽음은 반드시 온다. 죽는 자는 또 반드시 태어난다. 피할 수 없음을 탓하지 말라.

(B. 기타)

 

어째서 우리는 사람의 탄생을 기뻐하고 사람의 죽음을 슬퍼할까? 그것은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이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얼간이 윌슨의 캘린더)

 

태어난 것은 확실히 우리들의 결말이다. 죽는다는 것은 문제 밖이다. 산다는 것이 우리들의 기쁨이며 법칙인 것이다.

(W. 사로만/ 너의 인생 한복판에)

 

어린애와 별의 탄생에는 괴로움이 수반되는 법이다.

(O.F.O.W. 와일드/ 옥중기)

 

좋은 출생이란 무엇인가. 덕이 갖추어진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L. A. 세네카)

 

우리들의 최초의 시간이 동시에 그 생명을 깎기 시작하였다.

(L.A. 세네카/ 노한 헤라클레스)

 

태어나면서 우리는 죽는다. 종말은 근원의 결과이다.

(M. 마닐리우스/ 점성가)

 

왜 나는 세익스피어의 탄생일을 축하해야 하나요? 나는 자기의 생일도 축하하지 않는데요.

(G.S. 쇼)

 

모든 이가 그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을 때, 천부의 문은 그의 뒤에서 닫힌다.

(R.W. 에머슨/ 삶의 행상)

 

나의 탄생은 내 수많은 불행 중에 최초의 것이었다.

(J. J. 루소)

 

사람은 두 번 탄생하는 것이다. 하나는 세상에 태어날 때의 탄생, 또 하나는 생활에 들어가는 탄생인 것이다.

(J.J. 루소/ 에밀)

 

산다는 것은 천천히 태어난다는 것이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모든 인간이 태어난 것은 쾌락의 덕분이다.

(볼테르)

 

우리의 탄생이 우리에게 모든 사물의 탄생을 가져온 것처럼, 우리의 죽음은 모든 사물의죽음을 가져올 것이다.

(M.E. 몽테뉴/ 수상록)

 

우리들은 너무 늦게 태어났다. 세계는 늙어버렸다.

(G. 에겐바흐)

 

그대들이 이 세상에 나은 첫날은,그대들을 삶과 아울러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M.E. 몽테뉴/ 수상록)

 

인간의 탄생은 자신의 의사가 아니니까 신의 뜻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신이 한 인간을 탄생시켜 놓고 그 인생을 전연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의 횡포다. 따라서 모든 인간과 인생에는 신의 뜻이 개재해 띤다고 보는 게 옳다.

(유주현/ 신의 뜻)

 

인간은 이 세상에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너의 신체적 자아의 탄생이요,또 한번은 너의 정신적 자아의 탄생이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옆/ 방에서/ 출생하려는/ 당신은 누군가/ 내 방까지 요란하게/ 자궁을 벌리고서 저기/ 굴뚝새 뼈처럼 얇은 벽 넘어/ 암흑이 정령(精靈)하고 관계한 아들을/ 낳고 있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시간의 연소(燃燒)와 그 회전과 또한/ 남자 가슴 자국과는 무관한/ 탄생의 피어린 방안에/ 호올로 어둠 외에는/세례로써 축복을/ 하는 이 없는/ 너 거친/ 아이‥‥‥

(D. 토머스/ 환상과 기도)

 

신의 탄생으로/ 누구나의 탄생은 신성하게 된다. 탄생은/ 모두 크리스마스 때에 있는 것이니/ 모두가 축복을 받는 것이다.

(A.B. 리들러/크리스마스와 누구나의 탄생)

 

클로로포름과 피의 냄새, 부르짖음과 신음의 소리, 그런 것으로 가득 차 있었지요, 가난한 사람이 겪지 않으면 안 되는 굴욕, 정신적 육체적 모욕을 나는 거기서 톡톡히 겪었답니다‥‥‥ 젊은 의사들의 이유는 미소와 더불어 무력한 여인들의 이불을 제치고, 잘못된 과학의 방법으로 마구 만져 오는 추잡함과 간호원들의 염치 없는 탐욕도 겪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 * 위의 산실은 무료 시립 병원의 산실이다>

(S. 츠바이크/ 모르는 여인의 편지)

 

고통이 있어야 탄생을 볼 수 있다.

(D. 슈워츠/ 결론)

 

너의 어머니 집에는 눈이 와서 쌓이고 있었단다. / 너의 어머니는 상기 너를 알지 못하고있었단다. / 상기 네가 어떠한 눈초리로/ 어머니를 쳐다보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단다. // 너의 어머니는 낮에 가끔 근심스러이 다니었고/ 마치 너 때문에 고통을 받을 것 같아서/ 연약한 두 손을, 그러나/ 너를 보호하며 너의 싹 위에 얹고 있었단다. // 폭풍 치는 아침이 태양을 내놓듯이 어머니는 너를 어둠에서 내어 놓았단다. / 너는 지상에 자취를 가지지 않았었으나/이제는 벌써 어디서나 볼 수 있구나.

(H. 카로사/ 어린이에게)

 

귀아(鬼兒)가 태어났다. 첫 울음 소리를 들었느냐// 귀아가 태어났다. 하나에서 열까지 투정을 하는 양 첫 울음 소리를.

(금자광청/ 귀아탄생)

 

우리의 출생자여/ 우리는 너에게 평생 동안의 사랑과 수고를 맹세한다.

(R. 키플링/ 푸크 언덕의 요정)

 

무릇 천지는 정말로 일적이 나를 겨냥하여 나를 낳은 적이 없으며, 낳은 것이 우연하여 내가 된 것이어늘, 나 또한 자연에 맡길 따름이다. 하늘과 땅이 생명을 낳고, 그 생명 가운데 마침 내가 있으며, 하늘과 땅이 일찍이 나란 것을 내지 않았거늘, 나 또한 물 가듯, 구름 걷히듯, 바람 달리듯, 번개 치듯 어디론가 가도록 내버려둘 따름이다.

(김성한/ 서상기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진통이듯/ 이 중력을 벗어나야만 우주는 너의 것이다. / 처음 아버지 손에 이끌리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떼던 아가의 걸음이/ 마침내 대지를 자유로이 달리듯

(김윤성/ 탄생)

 

우리 어머니 날 배기 전에 유산을 했대요. 사 개월 만이었었다는데, 유산 후 두 달 만에 나를 뱄다잖아요. 계산해 보세요. 언니가 될지 오빠가 될지 모르는 아기가 유산 않구 그대로 났더라면 난 이 세상 구경 못하는 게 아녜요.

(안수길/ 제삼 인간형)

 

선한 자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들,/ 다시 탄생한 아름다운 정원을 누릴 것이다. / 지상에서 피지 않았던 꽃들이,/ 그 향기로 어우러진 화려한 낙원에‥‥‥

(롱펠로우/ 하나님의 땅)

 

한 사람의 인생 이 평가되는 건/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보다는/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로/ 그가 무엇을 얻었는가보다는/ 그가 무엇을 주었는가로./ 그의 출생이 문제되지 않으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가늠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니라.

(작자 미상/ 사람은 어떻게 평가되는가)

 

침대와 의자와 방바닥에 앉아서까지 나는 무시무시한 고통 속에서 어린애를 끄집어내려고 모든 힘을 다했었다. 스페인, 고문, 종교재판, "낳을 때 여자는 아프다(구약성서)‥‥‥‥기타 여러 말이 생각났으나 어떤 말도 이 아픔에 비길 때는 비교가 안 되는 창백한 느낌이었다. 나는 아픔이 괴로운 나머지 죽음을 마음속에서 원하기까지 했었다‥‥그러면서도 이 아픔은 멎지 않는 성질의 것, 필연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의식했다.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알 수 없고, 또한 아무도/ 거짓말 않고는 부정할 수 없었던 그대여/내게 답하라,나를 출생하게 하고/ 내일은 죽게 하는 그대여!

(뮈세/ 신을 향한 희망)

 

그런데 이제 성자가 탄생하였고/자비로써 우리에게 그분이 주어졌다. / 성자의 눈썹이 움직일 때마다/ 헛된 것들은 두려워 떤다.

(만조니/ 탄생)

 

 

설 교 노 트

 

여인에게서 난 사람

욥14:1

 

서론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의 이 말은 인간의 생래적인 연약한 기원을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는 여자는 연약한 그릇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3:7). 모든 사람은 다 여자에게서 출생합니다. 그런 경로를 거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1. 첫 여인은 남자에게서 났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순서를 보면 흙으로 육체를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그리고 그 사람인 아담에게서 갈빗대 하나를취하여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창2:21-22). 그가 여인의 시초입니다.

처음 사람은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시고 또 그의 지체인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만들어서 인류의 시조 부부인 아담과 하와가 되었습니다.

 

2. 모든 사람은 여인에게서 났습니다.

인류의 기원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인간의 생리적인 원리를 따라 잉태된 모든 사람들이 여인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 책망을 들을 때에도 "여자의 후손(창3:15)"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잉태하는 고통을 통하여 자식을 해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는 거룩하신 성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방법도 여인인 마리아의 육체를 빌어서 육신으로 탄생 하셨으니 모든 인생은 다 여인에게서 났다고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여인에게서 출생하였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나 생각하는 것은 다 틀립니다. 그리고 똑같이 생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3. 여인에게서 난 사람의 뜻

여인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연약한 여인에게서 난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 "라는 반문이 생깁니다.

연약하다는 사실과 아울러 구약 시대의 여인관은 더욱 불결한 편에 속한 자로 취급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깨끗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여인이라고 하면 으레 연약하고 불결한 뜻으로 불리 우는데 더구나 그에게서 난 자식이라면 더욱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제 욥 자신이 이렇게 연약한 여인에게서 났으니 사는 날이 괴로움이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이 세상에 여인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누구나 다 여인의 후손이니 연약하고 불결한 존재일 수밖에 업습니다.

이는 또한 아담의 죄로부터 출생한 원죄를 가진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호9:16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먼저 버리고 떠난 까닭에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며,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고 하는 무서운 선고를 하셨습니다.

 

1.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맨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6-28)"고 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기본적인 축복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이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릴 대상자가 되었으며 그 받는 비결과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입니다.

 

2.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심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자식을 얻기 위하여 기도하였더니 축복으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중에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2:5-7)"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인생의 빈부귀천과 생사화복을 마음대로 주관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산케도 하시고 못하게도 하십니다.

그런고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공경해야 합니다.

 

3. 태의 열매를 치시는 하나님

다윗이 범죄하여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죄악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아이를 치시매 심히 앓다가 죽었습니다(삼하12:15-18). 다윗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아이가 죽은 후에는 단념하였습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치셨으니 할 수 없다는 뜻이요, 생명이란 한 번 끊어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여기 본문에서도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치시되 나무의 뿌리가 말라 과실을 맺지 못함 같이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고 하시면 죽이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아무리 인간의 방법으로 아이를 가지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결코 출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의 생명과 죽음이 모두 다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태의 열매를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태의 열매 주시기를 간원해야 하겠습니다.

충 성

성 경 활 용

1. 충성의 대상

(1) 하나님

(민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2) 직무

(왕하12:5) 그 은을 받아 일꾼에게 주는 사람들과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성실히 일을 하였음이라

 

2, 성도가 충성해야 하는 이유

(1) 아브라함도 충성하였기 때문에

(느9:8)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2) 예수님이 충성하셨기 때문에

(히3: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3) 바울 사도가 충성하였기 때문에

(고전7:25)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4) 장래 말할 것을 증거하려고

(히3:5)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5) 각각 맡은 일이 있으니

(마25:21)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3. 충성한 자의 상급

(1) 다른 사람을 지도한다.

(딤후2:2)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2) 많은 것을 맡긴다.

(마25:21)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3)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

(계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4)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한다.

(눅19:17)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관련원어풀이

1. @m'a; 아-만

(1) 손으로 양육하다, 아이를 나르다.

(민11:12, 애4:5)

(2) 신실한 사람들.

(시l2:2, 31:24)

(3) 기초하다, 견고하다, 안정되다.

(삼상2:35, 사7:9)

(4) 신실하다, 믿을 만하다, 확실하다.

(민12:7,사8:2)

 

2. @Wmae 에-문-

진실한, 충성, 믿음성.

(잠13:17,20:6)

 

3. tm,a, 에메트

확실, 안전, 진실, 믿음, 진리.

(대하32:1, 느7:2)

 

4. pivsti" 피스티스

(1) 믿음, 신뢰, 신실성, 신빙성.

(마23:23, 딤후4:7)

(2) 신임, 신앙, 확신.

(막11:22, 히6:1)

 

5. pistov" 피스토스

믿을 만한, 충성스러운, 신뢰할 만한.

(마25:21, 골4:7)

 

6. ajlhqinov" 알레-디노스

(1) 참된, 신임할 만한.

(계6:10)

(2) 진리와 일치하는.

(요4:37, 계19:9)

(3) 순수한, 사실의, 실제의.

(요15:1, 요일5:20)

설교예화자료

5달러짜리의 충성

자기의 일생에 대한 경험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사람의 책을 보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너히 다음에는 무슨 일을 하든지 1달러짜리, 2달러짜리 일하지 말고, 5달러 받을 수 있도록 일하여라."

여주인이 그 소년에게 한 이 말이 항상 마음에 기억이 되어, 그 소년은 언제든지 자기 맡은 일은 내가 1달러, 2달러, 5달러짜리로 일할 수 있는데, 언제든지 나는 5달러짜리로 일을 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두말할 것 없이 후에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안에서 성직을, 국가에는 국가의 모든 책임을, 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책임을 다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우리를 신임하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수 있기에 맡깁니다. 충성되이 하겠기에 맡깁니다.

요컨대 우리가 이것을 맡아서 1달러짜리만큼 감당할 수도 있고, 2달러짜리만큼 감당할 수도 있고, 5달러짜리만큼 감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임을 배신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원숭이의 충성

 

아일랜드에 있는 피츠제럴드가 "문장"에는 아기를 나르고 있는 비비라는 원숭이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 아래에는 "그의 친절함을 잊지 못하며"라고 라틴어로 된 제명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문장에 그와 같은 그림과 계명이 새겨지게 되었는가? 여기에는 대단히 재미있는 사연이 전해 내려옵니다.

오래 전에 한 가족이 전쟁 때문에 피난을 가게 되자 모든 집안일을 한두 명의 늙은 하인들과 하녀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적이 그 집 안에 쳐들어오자 모든 사람들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너무 급히 도망치는 바람에 하인들은 그 집의 상속자인 아기를 깜박 잊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때 아기가 아직 집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애완용 원숭이 비비가 요람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아기를 입에 물더니, 사람들이 그를 볼 수 있도록 지붕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아기를 문 비비가 지붕 위에 있는 것을 본 하인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버렸습니다. 그러나 비비는 아기를 땅에까지 안전하게 옮겨 왔습니다.

그 아기의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의 상속자를 구해 준 것이 말 못하는 동물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비비라는 원숭이에게 무한한 은혜를 입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문의 문장 중앙에 그 원숭이를 새기라고 명하였습니다. 또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문구를 그 아래 새겨 넣으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친절함을 잊지 못하며 ."

 

 

카네기의 후계자

 

카네기가 후계자를 지명할 때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는 브레인으로서 기업을 키워온 명석하고 탁월한 중역 중에서 후계자를 뽑지 않고 쉬브라고 하는 무명의 인물을 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쉬브는 학력이라고 해야 국졸 정도이며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카네기가 그를 택한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충성스런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쉬브는 카네기의 회사에 입사할 매 청소부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원만 쓰는 것이 아니라 공장 전체를 구석구석까지 쓸었습니다. 평상시의 이러한 근무태도를 보고 간부들은 그를 정식 사원으로 채용해 주었고, 직원이 되어서도 남달리 충성하므로 그는 사무직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물샐틈없는 충직함이 인정되어 일약 사장의 비서실에 근무하였습니다.

그후 카네기가 있는 곳에는 언제 어디서든지 그가 있었으며, 그의 손에는 늘 메모지와 펜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카네기가 공장의 확장과 생산과정에 대한 연구를 하느라고 밤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돌아가려고 밖에 나와보니 그때까지 쉬브 씨는 카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네기는 놀라며

"쉬브!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쉬브는 조용히 웃으면서

"사장님에서 저를 언제 부르실지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올 수 있겠습니까? "라고 당연한 듯 대답하였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성실

 

추위가 지독한 어느 겨울 새로운 개찰원이 교외선 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지식한 이 친구는 출찰구에 서서 승객마다 표를 일일히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선임자는 승객 중에 정기 승차권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대부분 낯익혀 알기에 표를 보지도 않고 그냥 내보내곤 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서도 이 새로운 친구는 모두 표를 보여줄 것을 고집하였습니다.

그러나 승객 중에 한 사람이

"당신 요새 손님들한테 인기가 도무지 없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개찰원은 역장실 쪽을 가리키면서

"나에게는 상관이 없는 말씀이요, 내가 인기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저 기 앉아 있는사람이오." 그리고 이어서 "나에게는 그의 칭찬밖에는 소용이 없다는 말이오."라고 말하였습니다.

 

 

도르가 회

 

"아벨아,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라고 주께서 물었습니다.

"그저 조그마한 양새끼 한 마리 가져왔습니다. 이걸 제물로 받아 주십시오."라고 아벨이 말했습니다.

그후 그 번제의 향기는 온 하늘을 뒤덮어 끊임없이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의 제물이 되어 오고 있습니다.

"모세야!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라고 하나님께서 물었습니다.

"하나님, 양치는 지팡이랍니다. "라고 대답하자

"그걸 들어 날 위해 사용하려므나."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그것을 사용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마리아야,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라고 주께서 묻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옥합 한 단지 뿐입니다. 이 걸로 예수님을 씻겨드리겠어요."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향기가 방을 진동했고,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은 그의 향이 배어 들어갑니다.

"여인이여, 가난 중에 손에는 무얼 들고 있소? "라고 주께서 묻자

"주님, 단돈 두 렙돈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이오니, 당신의 보물궤에 넣어 주소서."라고대답하면서 그는 그것을 헌금궤 함에 넣었습니다. 그후로 많은 이의 모범이 되었고 그녀의마음씨를 찬양했습니다.

"도르가, 네 손에 든 것이 무엇인지? "라고 주께서 묻자

"주님 바늘 한 개뿐입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그걸 들어 날 위해 사용해 다오."

그녀는 그대로 따라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욥바의 가난한 사람들이 몸을 따뜻하게 할 수있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사랑에 찬 생활은 오늘날 "도르가 회"라는 여성단체의 시작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충성의 대가

 

옛날 순 임금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신하들에게 구럭(망태)에다 물을 길어 부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모든 신하들은 쑤근쑤근 임금님을 비난하면서 물을 길어 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한 신하는 임금님의 명령을 어찌 거역하리요 하면서 하루 종일 물을 길으니 우물이 다 줄어 없어졌습니다. 이때 신하가 물이 두레박에 떠지지 않자 우물을 내려다보았더니 우물 밑에 누런 황금덩이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올리어 임금님께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임금님은 기뻐하면서

"이것은 순종하는 자가 얻을 상금이니 그대가 가져가라."고 상금으로 주셨습니다.

 

10년을 기다린 개

하지라는 일본의 개는 아침마다 기차역까지 주인과 함께 갔다가 저녁이면 그를 맞으러 다시 역에 마중을 나가곤 했습니다. 1925년 어느 날 밤, 그 사람은 다른 도시에서 죽게 되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개는 그전 겨우 몇 개월 동안만 그의 주인과 만났었는데도 그때로부터 10년이 넘도록 매일 밤마다 역까지 나갔다가는 한 시간쯤 기다린 후 슬픈 걸음으로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하찌의 충실함이 전국에 알려지자, 정부에서는 하찌가 그토록 끈질기게 기다리던 곳에 개의 동상을 세우고 작은 조상(彫像)을 만들어서 일본 내의 모든 학교에 보냈습니다.

 

 

어록·시·묘사

 

비록 모진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굳센 풀은 되지 못할지언정,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송백이 되리라.

(길재/ 야은집)

 

개나 말도 그 주인을 그리워하거늘, 어찌 사람의 신하된 자 그 임금을 잊을 수 있으랴.

(길재/ 야은집)

 

충성이 없어졌다면, 그것은 임금의 마음에서 찾아내야 한다.

(프랑스와 2세)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고 충성된 말은 귀에 거슬려도 행함에 이롭다.

(사마천/ 사기)

 

충(忠)이란 제가 할 수 있는 바를 다하는 것을 이름이요, 성(誠)이란 있는 힘을 다해서

일한다는 뜻이다.

(조지훈/ 청년의 내일을 위하여)

 

사심 없는 애국 충정이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마음으로부터 협력을 얻을 수만 있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유달영/ 새 역사의 방향감각)

 

저는 우리 민족의 죄인이올시다. 이 민족이 저를 이렇게 위해 주는데 저는 민족을 위하여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올시다.

(안창호)

 

충성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가장 성스런 선이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나는 나라에 바칠 이 몸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이 유감일 따름이다. <*독립전쟁시 뉴욕에서 그가 스파이로 영국군에게 교수형을 당하기 직전에 한 말이다>

(N. 헤일)

 

충성심을 품지 않고 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R.W. 에머슨/ 영국 국민성)

 

이익보다 강한 것이 있다. 그것은 충성심이다.

(가스통 드 레피스/ 자유사상)

 

이 충성이라는 것, 내 생각엔 신하의 코에 낀 고리이다. 그것으로 코는 똑바로 방향을 잡아주어 성별된 향기를 맡는다.

(A.G. 비어스/ 악마의 사전)

 

많은 자유국가가 자유를 상실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날이 올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 나라가 나의 자랑스러운 훈장(勳章)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제일 마지막으로 도망을 쳐서가 아니라 결코 도망을 치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A. 링컨)

 

진리의 신에 대한 충성은 다른 모든 충성을 능가한다.

(M. K. 간디)

 

우리는 우리의 시체로 성벽을 삼아서 우리의 독립을 지키고, 우리의 시체로 발등상(발판)을 삼아서 우리의 자손을 높이고, 우리의 시체로 거름을 삼아서 우리의 문화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여야 한다.

(김구/ 백범 일지)

 

진실로 충신은 임금을 덕으로 사랑하고 임금을 예법으로 공경하는 것이요, 비위 맞추고 순응하는 것이 도리어 애경(愛敬)에 해가 되는까닭입니다.

(이 이/ 율곡집)

 

영국이 앞으로 어떻게 되든, 그의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나의 조국이다.

(C. 처칠/ 고별)

 

우애와 같이, 충성도 위(胃)에 의해서 좌우 될 때가 가끔 있다.

(S. 츠바이크/ 마리 앙투아네트)

 

충신이 간신한테 몰려서 죽는 다는 것은 전제군주시대의 공식이다.

(이광수/ 단종애사)

 

충신과 역적이 서로 딴 시대에 나는 것이아 니요, 바로 같은 시대에 있는 것이다.

(이은상/ 隨時隨想)

 

또 충신이 되기로는 오직 나라뿐이며 집은 잊으면서 공사만 생각하고 사사로 움을 잊는다. 임금이 근심되는 일에는 자기 몸을 욕볼 각오가 서 있고, 임금이 욕볼 때에는 자기는 죽기로 결심해서 분연히 몸을 돌보지 않으며, 오직 정의에만 따라가는 것이다.

(이곡/ 가정집)

 

조정에 곧 신하가 있으면 적국이 두려워하고, 선비들이 동일한 말만 하고 이론이 없으면식자(識者)들이 근심한다는 것인데, 만약 이 몇 사람이 아니었으면 전하의 첫 정사의 대체(大體)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장차 선왕께서 수십 년을 두고 이룩한 업적을 나타낼 수가 없었을 것이옵니다.

(신숙주/ 보한제집)

 

장검을 때어 들고 백두산에 올라 보니 일엽 제잠(岑)이 호월(湖月)에 잠겨세라 언제나남북풍진(南北風塵)을 헤쳐볼까 하노라.

(남이/ 청구영언)

 

옛 사람이 충(忠)자를 해석하기를, "몸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몸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다한다는 것은 사생과 위난(危難)에 반드시 신하의 도리를 극진하게 하여, 힘이 닿고 몸이 할 수 있는 데 까지만을 다하는 것이고, 반드시 어려움을 참으면서 죽음에 나가고 구차하게 난을 피하리라는 것은 아니니, 다만 그 형세를 보아서 할 뿐이다. 그러나 그 일이 성공하고 못하는 것은 운명이므로 할 수 있는 일은 마땅히 그 힘을 다할 것이며, 행할 수 있는 뜻은 정성을 다할 것이나, 그 충성을 하기 위하여 신하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여 그 직분을 다할 뿐이다 용봉(龍逢)과 비간(比干)이 걸(桀), 주(紂)에게 죽은 것도 직분이며, 제갈 양(諸葛亮), 악 비(岳飛), 문천상(文千祥)이 촉(蜀), 송(宋)에서 충절을 다한 것도 또한 직분이다. 어찌 별다른 것이 있겠는가.

(김시습/ 매월당집)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순신)

 

법정은 그 죄수를 각본대로/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에다 넘겼다. / 죄수가 연행되어 가버린 뒤/ 가야바는 행복스러운 웃음을 웃고 있었다. / 이 노련한 정치가는/ 점수를 두 개 따게 된 것이다. / 하나는 로마 황제에 대한 공손한 충성의 증거요.

(사와무라 미츠히로/ 재판)

 

물나라 가을 깊어 기러기 울며 날새/ 나라 생각 잠이 안 와 애태우는 이 한밤에/새벽달 창에 스미어 활과 칼을 비추네.

(이순신/ 난중일기)

 

듣건대 옷깃을 떨쳐야 옷이 바르고, 벼리를 들어야 그물이 펴진다 하니 내가 그 벼리와 옷깃이 될 것이다.

(김유신/ 삼국사기)

 

임(단종)은 어디로 가셨는가/ 구름도 애달이 영월(寧越)서 이네/ 적막한 산속 십월 달밤에/"하늘도 무심타" 통곡하노라.

(양령대군)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거칠 것이 없세라.

(김종서/ 청구영언)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를 비삼아 떼어다가 임 계신 구중심처에 뿌려 본들 어떠리.

(이항복/ 청구영언)

 

내 마음 베어내어 저 달을 만들고저/ 구만리 장천에 번듯이 걸려 있어/고운 님 계신 곳에가 비취어나 보리라.

(정 철/ 송강가사)

 

죽음은 물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애석히 여기지 말지어다/ 분명히 세상의 군자에게 알리노니/ 내 이제 충신의 본보기가 되련다네

(굴원/ 회사 · 5)

 

세 번씩이나 찾은 것은 천하를 위해서요/두 황제를 섬길 노신(老臣)의 충성스런 마음이라/ 군사를 출동시켜 이기지 못하고 먼저 죽으니/ 영웅으로 하여금 눈물이 옷깃을 적시게 한다.

(두보/ 촉상)

 

녹초 청강상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하여 우는 뜻은/ 석양이 재너머가매 임자 그려 우노라.

(서익/ 청구영언)

 

충신의 옛 자취를 돌머리에 끼쳤은 저/상설(霜雲)이 엄(嚴)할수록 붉은 피 어제런 듯/ 아무도 긍만고 정충대절(亘萬古 貞忠大節)은 포은공(圃隱公)을 뵈왓노라.

(안민영/ 金玉叢部)

 

충신의 하올 일을 비간에게 물어보니/ 비간이 대답하되 일편심을 아끼지 말라/우리는 마음을 뵈었으니 끼친 한이 없어라.

(김수장)

 

가슴을 열어란./ 마음을 열어라./ 수없는 호국의 영령들이여/ 나 그대의 가슴속으로/나 그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리라/ 들어가리라/ 들어가리라.

(고진숙/ 동작동을 지나며)

 

옛날 중국 왕이 충신 개 자추 불태우고/ 한식날 하루라도 찬 밥으로 참회하듯

(김석/ 요셉의 해몽법 · 6)

 

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나/ 네 속에/살아 있는 믿음이 있는가/ 주 너를 세우시니/어서 주께 나오라/ 너 충성하라/ 왕으로 오시는 주께

(홍안의/ 참 이스라엘 사람)

 

근심에 잡힌 이마 주름살/ 나라 이룩하면 절로 풀렸으련만// 채찍에 맞은 상채기 남기도전에/ 청제비처럼 너는 그만 울며 갔고나

(윤영춘/ 조충혼-옥사한 조카(東柱) 혼 앞에서)

 

먹줄로 선명히 줄 그은,/ 옛날의 설계는 변경치 못하고/충정이 깊고 성질이 바른 것,/대인이 기리는 거라네.

(굴원/ 회사 · 2)

 

우리들 읍장 및 의원들은/ 읍을 대표하여/ 다음과 같은 포고를/ 충직한 읍민 제위에게 발한다// ‥‥가두에서 불평을 하는 자는/ 즉각 총살형에 처하고/ 불만의 태도를 보이는 자도/ 마찬가지로 엄벌에 처한다// 충성스럽고 현명한 조치에 따라/공손하게 국가를 보호하는/ 당국을 신뢰하고/ 읍민 제위는 항시 묵묵히 따르기를.

(하이네/ 공포시대의 추억)

 

내 가난하고 떨리는 영혼이/ 사랑과 충절 속에 가까이 가는 그곳/ 거기 성스러운 땅위에/ 이따금 조용히 눈물을 뿌린다// 올리버나무 머리 위로/저녁 별빛이 낮게 걸릴 때면/충절 속에 숲을 따라 걸으며/ 내 영혼이 축복받았음을 느낀다.

(존 더글러스/ 겟세마네)

 

부름받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충성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받으시는 열매라.

(홍안의/ 성도의 열매)

 

메마른/ 등걸과 같은 이를/ 주님의 부르심 감사하네/ 이 세상 살 동안/ 늘 충성하면서/주의 일 다하기 소원일세// 양치는/ 동산이 기름지나/ 몫 그늘 아래는 뱀이 있네/ 위험이 많아도/ 늘 충성하면서/ 주의 일 다하기 소원일세//가시에/찔린 발 절룩이며/ 잃은 양 한 마리 찾아가네/ 심령이 상해도/ 늘 충성하면서/ 주의 일 다하기 소원일세// 목자의/쉬일 곳 없는 이 땅/ 수고의 날들도 지나가네/환난이 있으나/ 늘 충성하면서/ 주의 일 다하기 소원일세

(홍안의/ 주의 부르심)

 

 

설 교 노 트

 

죽도록 충성하라

계2:8-11

 

서론

예수님께서는 아시아 7교회에 나타나, 교회 형편을 살피시고 어떤 교회는 칭찬하시고 어떤 교회는 책망을 하셨습니다. 여기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받았으나 그외 다섯 교회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시면서 최후로 권면하시고 요청하신 것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오직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4:2). 충성이란 본래 아랫사람이 웃사람에 대해서 가지는 마음과 행동 자세에 있어서 가장 고상하고 엄숙한 도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죽도록 충성을 해야 할 이유는 첫째,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독생자의 피로 구속하여 살려 주셨기 때문이요 둘째는,우리를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천국의 기업을 소유하게 하셨기 때문이요 셋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의 본분이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1. 충성의 개념

충성의 의미는 세 가지로 밝힐 수 있습니다.

(1) 진리를 파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따라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자기 직책에 전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책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3)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만 사랑하는 일편단심을 의미하며, 어떤 고난 중에서도 주님만 존경하는 순교적인 신앙을 의미합니다.

 

2. 충성의 방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을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한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주님께 향한 우리의 삶이 충성되어야 하고, 다음은 주님께서 맡겨 주신 우리의 사명에 대하여 충성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대하여 몇 가지 의미를 밝히고 지나가려고 합니다.

(1) 사역적인 면에서 충성의 방법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자기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슨 일에나 목숨을 바쳐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큼직한 일에는 충성하지마는 작은 일에는 충성치 아니하는 사람도 있으나 진정한 충성은 큰일이나 작은 일에나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2) 시간적인 측면에서 충성의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여기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은 시간적으로 우리가 살다가 죽는 날까지 충성하라는 의미도 있거니와 일을 하다가 죽어야 할 때는 그 일로 인해서 죽어야 된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3) 환경적인 측면에서 충성의 방법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는 인심도 변하고 세상도 변해 가는 변화 무방한 환경에서 무슨 일을 만나도 충성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론

우리가 충성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요청이요, 성도의 의무요, 장차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충성

삼상31:1-6

 

서론

사울 왕은 숙적인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세 아들과 함께 비극적인 참패를 당하고 전사하였습니다. 이때에 모든 신하들과 장군들이 사울을 버리고 떠나갔으나 한 무명 병사는 사울을 떠나지 아니하고 사울 곁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신도 같이 따라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무명 병사를 통하여 "진정한 충성"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가장 비천한 지위에서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사람이란 이 세상 높은 지위나 큰 일에 대하여 충성하기 쉬우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적은 일에 충성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 무명의 병사는 가장 미천한 자리, 적은 일에 충성하다가 죽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충성에 대한 지위적인 시금석이라고 합니다.

진정한 충성은 비록 큼직하고 영광스러운 일을 하지 못하고 지극히 천하고 적은 일에라도 주님의 사업이라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적은 일에 충성하는 자는 큰일에도 충성하고, 적은 일에 불의한 자는 큰일에도 불의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비록 낮은 자리에서도 충성을 하고 적은 일에도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 충성하였습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평안하고 행복한 환경에서는 충성하기가 쉬우나 환난과 불행한 상황 아래서는 충성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무명의 병사는 가장 불리한 역경에서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사울 왕이 승리하고 영광을 누릴 때에는 요압을 위시하여 많은 신하들과 장군들이 충성을 하였으나 사울 왕이 몰락하는 불리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다 피신하고 무명의 병사만이 남아 사울 왕을 호위하면서 함께 싸우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유익이 있고 칭찬과 영광을 누릴 때에는 충성하지만 내가 불리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을 때에는 충성하지 않습니다.

여기 무명의 병사는 시기상 악조건에서도 충성을 했고, 장소나 대상이 불리한 가운데서도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3. 최후 죽기까지 충성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대신들과 장군들이 모두 사울을 버리고 물러갔으나 여기 무명의 병사는 사울과 함께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누가 보아 주지도 아니하고 알아주지도 아니하고 칭찬해 주는 자 없어도 끝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충성에 대한 시기적 시금석이라고도 합니다. 처음에는 충성하다가 나중에는 불충성하고, 젊어서는 충성하다가 늙어서는 불충성하고, 처녀나 총각 때에는 충성을 하다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나서는 불충성하는 사람들도 없지 아니합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높은 자리를 탐내어 충성하다가 배신자가 되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결론

진정한 충성이란 낮은 자리에서도 충성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충성하고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4

 

서론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어떤 괴로움과 난관과 낙심할 만한 때라도 결단코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영적으로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부탁한 말씀은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1. 바울에게는 기쁨이 없었습니까?

바울은 비록 로마 옥중에 감금되어 있는 신세이지만 기뻐하였습니다. 몸은 비록 부자유하나 심령은 절대 자유를 누렸습니다. 손발은 쇠사슬에 묶여 있으나 그의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의 줄에 매여 있어서 기쁨을 누리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더욱 충만케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신이 할 일보다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이 일을 부탁하였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바울의 기쁨이 충만하여지겠습니까?

 

2.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이 모이며 또한 그 성격과 마음씨, 교육 수준, 신앙 정도가 각양 각색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의 맡은 바 책임을 돌아보고 완수하면 교회는 잘될 것이며 또 책임완수를 하려면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자기 일을 돌아보려면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며(약4:6)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겸손을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3.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런고로 강한 자도 있고 약한 자도 있으며 믿음이 충실한 자도 있고 부실한 자도 있습니다.

서로 협력하고 조화를 이룩하면 합동하여 큰 힘이 나타나지만, 아무리 한 개인이 잘하여도 전체가 다 잘하지 못하면 결국은 불구자적 절름발이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디까지나 화목함과 사랑으로 서로 협력해야 하는데 협력의 첫 조건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돌아보아 도와주는 것입니다. 앞에 선 자가 뒤진 자를 이끄는 것입니다.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체적인 강한 힘이 균형있게 유지되고 큰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결론

바울은 자신의 영달이나 유익을 위하여 자기의 기쁨을 충만케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각각 자기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을 잘 돌보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교회의 일은 그리스도의 충성된 제자들로 감당되는데 이는 아무도 강요하거나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라

고전4:1-5

 

서론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에게 요청되는 것은 주인에게 대한 충성이라고 바울은 강조했습니다.

충성이란 믿을 수 있는 것을 뜻하는 말이며 진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나 자신과 내 것만을 위한 충성보다 남과 남의 것을 더 소중히 여길줄 아는 충성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살전5:24, 고전1:9), 예수도 충성했으니(히2:17, 3:2), 그의 종에게도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충성이란 어떤 것입니까?

 

1. 작은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큰일은 잘하려고 하면서 작은 일은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큰일에 진실할 수는 없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나 감옥살이할 때에도 충성했습니다. 다윗도 목자로 있을 때나, 나라를 다스릴 때에도 충성스럽게 하였습니다.

 

2. 남이 보지 않는 데 잘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주인이 감독할 때 잘하다가 주인이 보지 않는다고 하여 잘하지 않으면 충성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귀에는 들리기 위한 기도보다 은밀한 기도가 참 기도이며, 거리에서 나팔부는 구제보다 오른손이 주는 것을 왼손이 모르는 구제가 참 구제라고 하는 것도 사람이 보지 않는 데서 잘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3. 삯을 생각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의 포도원 비유에서 아침에 온 일꾼이나 오후에 들어온 일꾼이나 나중에 들어온 일꾼이나 다같이 한 데나라온을 받았습니다. 일꾼들 중에는 삯을 위한 일꾼도 있고 일을 위한 일꾼도 있습니다.

삯은 주인이 상당히 줄 줄 믿고 주인을 위해, 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들에서 40년간 장인의 양떼를 쳤으니 삯도 없이 충성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된 종이 되었습니다(히3:5). 그리스도인은 삯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일꾼이 되어야 주인이 오실 때 받을 것입니다.

 

4. 끝까지 잘하는 것이 총성입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일할 수 있으나 꾸준히 끝까지 일하기 어렵습니다.

충성된 일꾼이란 끝까지 잘하는 일꾼입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청지기로 늙어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일했고, 안나는과부되어 84년이 되기까지 예수 만나기를 기다렸으니 끝까지 충성스럽게 봉사한 일꾼입니다.

우리들의 결점은 시작은 잘하고도 중도에 낙심하여 끝을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혜있는 진실한 청지지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12:42)"라고 하셨으니, 괴로우나 즐거우나 맡은 일을 잘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결론

예수는 지혜있는 진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하셨으니 진실이란 신실이요, 충성입니다.

맡은 일에 마음을 두고 맡은 일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다 바쳐서 일해야 합니다.

친 구

성 경 활 용

1. 친구의 특징

(1) 희생한다.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2) 사랑한다.

(삼상20: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3) 위로한다.

(욥2:11)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2. 어떤 친구를 사귈까?

(1) 하나님

(대하20:7)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이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2)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

(잠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3) 예수

(마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3. 친구에게 할 일

(1) 간청을 들어준다

(눅11:5)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2) 불쌍히 여겨야 한다.

(욥19: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

(3) 버리지 말아야 한다.

(잠27: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4) 사랑이 끊이지 않게 한다.

(잠17:17)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5)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욥42:10)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6) 충성된 권고를 해야 한다.

(잠27: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4. 애수는 어떤 친구인가?

(1) 불변의 친구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2)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친구다.

(요15:7)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3) 목숨을 대신하신 친구이다.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5.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주의할 점

(1) 원수되었던 자가 친구되는 것을

(눅23:12)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2) 의지하는 것을

(미7:5)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3) 매매하는 것을

(욥6:27) 너희는 고아를 제비뽑으며 너희 벗을 매매할 자로구나

(4) 벗이 박해함을

(눅21: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

관련원어풀이

1. #WLa' 알루-프

(1) 친숙한, 절친한, 친구

(잠16:28, 17:9)

(2) 고상한, 유순한, 길들은.

(렘11:19)

(3) 가족이나 족속의 우두머리.

(창36:15, 렘13:21)

 

2. h[;r; 라-아-

(1)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

(잠13:20, 28:7)

(2) 친구가 되다, 자신을 결합시키다.

(삿14:20)

(3) 방목하다, 먹이다.

(시78:72)

 

3. ['re 레-아

(1) 동무, 친구, 동반자.

(욥2:11, 잠25:17)

(2) 사랑하는 자, 애인.

(렘3:1, 아5:16)

(3) 어떤 다른 사람

(창11:3, 사34:14)

(4) 생각, 의지.

(시139:2)

 

4. ['reme 메-레-아

친구, 동반자.

(창26:26, 잠19:7)

 

5. d/s 소-드

(1) 함께 앉음, 모임.

(렘6:11, 15:17)

(2) 숙의, 회의, 숙고.

(잠15:22)

(3) 친밀한 대화, 친숙.

(욥19:19, 시55:IS)

 

6. [d'y: 야-다

(1) 알다, 인식하다, ∼을 알아채고 있다.

(창19:33, 사6:9)

(2) 알다, ∼에 친숙해지다, 통달하다.

(신9:24, 민14:31)

(3) 지식이 있다, 현명하다.

(욥31:2, 사44:9)

(4) 알져진, 친근한.

(시31:12, 사12:5)

 

7. eJtai'ro" 헤타이로스

동무, 친구, 동료.

(마11:16, 20:13)

 

8. fivlo" 필로스

(1) 친근하게.

(행19:31)

(2) 친구

(눅7:6, 행27:3)

(3) 친구, 동무.

(요15:15)

(4) 가까운 친구.

(행10:24)

설교예화자료

팬터마임

 

로마의 황제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랍비와 친교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두 사람이 똑같은 생일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국 정부의 관계가 과히 좋지 않았을 때에도 두 사람은 항상 친한 관계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황제가 랍비와 친구인 것은 양국 정부의 관계도 있고해서 과히 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황제가 랍비에게 무엇을 물으려 할 때에는,사자를 보내어 간접적으로 그것을 듣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어느 날 황제는 랍비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나는 두 가지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 첫 번째는 내가 죽으면 아들을 황제로 삼고 싶다.두 번째는 이스라엘에 있는 타이 베리아스라는 도시를 관세자유도시로 하고 싶다. 나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밖에 이를 수가 없지만, 양쪽을 한꺼번에 이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라고 물었습니다.

양국 관계가 대단히 험악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의 질문에 랍비가 대답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국민들에게 대단히 큰 악영향이 끼칠 것이 명백했습니다. 따라서 랍비는 그 질문에 대해서 대답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황제가 돌아온 사자에게,

"메시지를 전했을 때 랍비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자는,

"랍비는 아들을 목말 태워서, 비둘기를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아들은 그 비둘기를 하늘에 날려 주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황제에게는 랍비가 말하려는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왕위를 아들에 게 물려주고, 그 다음에 아들이 관세를 자유로하면 됩니다. "

다음에 또 황제로부터 질문이 내려졌습니다.

"나의 신하들이 내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랍비는 역시 똑같은 팬터마임으로, 뜰의 밭으로 나가서 야채를 하나 뽑아 왔습니다. 몇 분 뒤 다시 밭에 돌아가 또 하나 야채를 뽑았습니다. 조금 지나자 다시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랍비의 메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번에 당신의 적을 멸망시키지 마십시오. 몇 번으로 나눠서 하나하나 부셔 버리십시오." 인간의 의사는 말이나 문장에 의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돌고래와 사자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산책을 나온 사자가 바닷가를 거니는데 바닷속에서 한줄기의 물이 높이 솟았다가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저것이 바로 돌고래가 뿜어 올리는 물줄기구나!"

사자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높은 바위 위에 올라가 소리 쳤습니다.

"안녕 하시오. 돌고래님? "

그러자 깜짝 놀란 돌고래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내밀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시오? "

"나는 육지에 사는 사자요. 동물들의 왕이라고도 하지요."

"아, 그렇군요."

"난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은데 당신은 어떠오? "

동물의 왕인 사자가 친구되기를 청하자 돌고래도 기뻐하며 찬성하였습니다.

"반갑습니다. 뜻밖에 이런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되다니!"

"원 별 말씀을 이제부터 서로 돕는 좋은 친구가 됩시다. "

이렇게 하여 사자와 돌고래는 친구가 되기로 굳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바닷가에 나온 사자가 힘센 황소를 만나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자는 바다를 향하여,

"여보게, 돌고래! 나를 좀 도와주게."

하고 도움을 청했지만 돌고래는 그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만 뿜어댈 뿐 육지로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힘센 황소와 오랫동안 싸워 지칠 대로 지친 사자는 그만 그 자리에 푹 쓰러지며 바다의 돌고래를 향해 말했습니다.

"여보게,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살기로 한 우리들의 약속을 자낸 벌써 잊었단 말인가? "

그러나 돌고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습니다.

"잊은 게 아니라네. 하지만 난 바다를 떠나면 살 수 없으니 어떻게 자네를 도울 수 있겠는가!"

 

 

당나귀와 농부

 

한 농부가 당나귀 한 마리를 더 사기 위해 시장에 갔습니다.

당나귀를 고른 후 농부는 상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이 당나귀를 집에 데려가서 부지런한지 게으른지 알아본 후에 게으른 녀석이면 바꿔가도 되겠소?"

"그렇게 하시지요."

상인의 허락을 받은 농부는 당나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자기의 당나귀들이 있는 외양간에 넣었습니다.

그러자 새로 온 당나귀는 이리저리 당나귀들 사이를 거닐다가 그중에서 제일 게으른 당나귀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잠시 후 두 당나귀는 친해져서 사이 좋게 먹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그 당나귀를 다시 상인에게 데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이 당나귀는 게을러서 내게 별 도움이 없겠으니 다른 당나귀를 좀 보여주시오."

그러자 당나귀 주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습니다.

"아니, 당신은 이 당나귀의 어디를 보고 게으른지 부지런한지를 안단 말이오?"

농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 난 그 당나귀를 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당나귀의 친구를 보고 알았지요."

 

 

두 친구

 

나이가 들어 머리카락이 반쯤 희어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두 명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 남자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였고 또 다른 하나는 아주 젊은 여자였습니다.

나이가 젊은 여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와 사귀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 남자를 만날 때마다 흰 머리카락을 뽑았고, 나이 많은 여자는 반대로 젊은 남자와 사귀는 것이 부끄러워 만날 때마다 남자의 검은 머리카락을 뽑았습니다.

이쪽 저쪽에서 머리카락을 뽑힌 그 남자는 오래지 않아 결국 대머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탈리아 데이몬과 그의 친구

 

데이몬의 친구 피지어스가 시시리 폭군에 체포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피지어스는 죽기 전에 노모를 한 번 보고 싶다고 울면서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청을 들어줄 리가 없었습니다. 이때 데이몬이 나서서 "임금님, 제가 피지어스 대신 갇혀 있을테니 그를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만약 피지어스가 약속한 날 돌아오지 않으면, 저를 대신 죽여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한참 생각해 보다가,

"정말 흥미 있는 일이로군. 정이나 그렇다면 네 말대로 보내 주되 안 돌아 올 경우 너를대신 죽이겠노라."고 하면서 피지어스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되어도 피지어스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때 폭군은,

"보라 데이몬! 오긴 어느 놈이 죽으러 온단 말이냐? 하는 수 없다. 너를 죽일 수밖에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데이몬은 퍼지어스가 자기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무슨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형장에 끌려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막 사형을 집 행하려는 순간, 피지어스가 숨이 턱까지 닿아 달려왔습니다. 도중에 배가 파선을 당하여서, 간신히 살아오는 길이라고 이야기하며 얼마나 기다렸느냐고 사과하면서, 서로 끌어안았습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폭군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너희 두 사람의 우정은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자, 용서해 줄테니 앞으로도 그 우정은 영원히 변치말기 바라노라."라고 말하고는 그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요15:12)"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 일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우정

 

어느 시골에 마리오와 안셀모라는 두 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오는 부자요, 귀족의 자식이었지만, 안셀모는 그 반대였습니다. 허나 두 사람의 인생의 목표는 같았습니다. 그래서 둘은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마리오는 대설교가가 되었고 안셀모는 청소하는 시종으로 살았습니다.

어느 날 마리오가 첫 설교를 하게 되어,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명상에 잠겨 복도를 거닐고 있을 때 안센모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오가 그에게 가까이 가자 안셀모는 벌떡 일어서더니

"마리오! 나는 지금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계속 기도해 줄께."하며 마리오의 손을 잡고 격려하였습니다. 다음날 마리오가 떨리는 마음으로 설교단에 섰을 때 구석에 쪼그리고 기도하는 안셀모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떨리던 가슴이 멈추었고, 처음 설교자 답지않게 힘이 있었으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리오가 유명해지면 해질수록 안셀모의 기도는 더 많고 열심이었습니다. 드리어 마리오는 성 베드로 성전에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평생에 한번 찾아오기도 힘든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 중에 안셀모의 기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리오는 설교를 시작하였으나 힘이 없었습니다. 안셀모의 기도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오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만사를 제쳐 놓고 안셀모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안셀모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마리오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설교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습니다.

 

 

황새와 학

 

새 잡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학을 잡기 위해서 학이 자주오는 곳에 그물을 치고 학이 날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여러 마리의 학이 날아와 그물에 걸렸습니다.

청년은 그물에 걸린 학을 가지러 그물 가까이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여러 마리의 학과 함께 황새 한 마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나는 학이 아니예요. 그러니 나를 놓아주세요"

황새가 울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해치는 뱀이나 여러 가지 나쁜 벌레들을 잡아먹는 좋은 새란 말이예요. 그러니 놓아 주세요."

황새는 계속 눈물로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황새의 말을 들은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비록 인간에게 해로운 벌레들을 잡아먹는 좋은 새라 해도 네가 나쁜 새들과 어울려 이곳으로 왔으니 나는 너를 놓아줄 수 없어."

 

 

어록·시·묘사

 

친구란 무엇인가? 내가 말하노니 그것은 그 사람과 너 자신이 같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F. 클레인/ 우정의 정의)

 

가장 충실한 친구는 자기가 모르는 일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L.C.A. 뮈세/ 칼모지누)

 

우리들이 벗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들의 행동에 대한 찬의가 아니고 이해이다.

(H. 하이네)

 

신앙을 같이하는 속에서 생기는 우정, 이념을 같이하는 곳에서 생기는 우정, 학문의 연구를 같이하는 생활 속에서 생기는 우정, 즉 가치를 같이하는 우정을 때로 혈육의 정보다 더 뜨겁고 짙은 경우를 얼마든지 본다.

(송건호/ 우정에 대하여)

 

무지개처럼 영롱한 소녀 시절의 우정, 그것은 여성들의 보석이 아닐 수 없다.

(신지식/ 여자의 우정)

 

우정은 어쩌면 술과도 같은 작용을 하는지도 모른다. 자기와의 만남은 긴장을 풀어 주고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장왕록/ 우정과 시금석)

 

무엇인가 슬픈 일이 있을 때, 따뜻한 자리에 눕는 것도 좋은 일이다‥‥그러나 그것보다더 좋은 자리, 거룩한 향기가 가득히 떠도는 자리가 있다. 그것은 상냥하면서도 깊고 측량할 수 없는 우리들의 우정인 것이다.

(M. 프루스트/ 즐거움과 나날)

 

개인적 생활이나 국가적 시책, 그리고 국제적 관계에 안전을 보장하려면 각 분야에서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친구를 가져야만 한다. 친구가 많을수록 안전도는 더욱 튼튼하여진다.

(백낙준/ 以友保安)

 

적어도 강한 우정은 어떤 불신과 저항에서 비롯되는 것이 자연인 것이다.

(알랭/ 정신과 정열에 관한 81장)

 

홍안서생(紅顔書生)으로 이런 단안을 내리는 것은 외람한 일이나, 동무란 한낱 괴로운 존재요, 우정이란 진정코 위태로운 잔에 떠놓은 물이다. 이 말을 반대할 자 누구라. 그러나 지기(知己) 하나 얻기 힘든다 하거늘 알뜰한 동무 하나 잃어버린다는 것이 살을 베어내는 아픔이다.

(윤동주/ 달을 쓰다)

 

꽃을 즐기려면 반드시 도량이 넓은 벗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청루(靑樓)로 가기(歌妓)를 보러 가는 데에는 호탕한 친구를 얻지 않으면 아니 된다. 높은 산에 오르는 데에는 로맨틱한 벗을 얻지 않으면 아니 된다. 뱃놀이에는 기우광활(氣宇廣關)한 벗이 없어서는 안 된다. 달을 대하는 때에는 냉철한 철학을 가진 벗을 얻지 않으면 아니 된다. 주석(酒席)에는 풍미(風味)와 매력이 있는 벗이 따르지 않으면 아니 된다.

(임어당/ 차와 교우에 관하여)

 

벗을 선택하되 반드시 배움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며 방정하고 엄숙하고 곧고 밝은 사람을 취하여, 함께 있으면서 규계(規戒)를 허심(虐心)으로 받아들여 나의 결함을 다스리고, 만일 게을러서 장난을 좋아하고 유연하고 망령되어 정직하지 못한 자라면 사귀지 말아야 한다.

(이 이/ 율곡집)

 

벗을 위하여 괴로움을 겪는 것은 우정을 두텁게 한다

(영국 속담)

 

독학만 하고 친구가 없으면 고루하여 견문이 없다.

(학기)

 

선비에게 충고해 주는 벗이 있으면 영예의 이름을 보장할 수 있다.

(예기)

 

군자는 우선 그 벗을 택한 후에 사귄다. 소인은 우선 사귀고 난 후에 벗을 택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실수함이 적고, 소인은 유한(遺恨)이 많다.

(문중자)

 

내가 듣기론 친하다는 것은 그 친한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고, 옛 친구라는 것은 그 옛일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자가어)

 

그러므로 벗 사귐엔 서로 그 마음을 알아주는 것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고, 기쁨엔 서로 그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지극한 것이 없는 거야.

(박지원/ 마장전)

 

친구의 실책에는 눈을 감으라. 악덕에는 눈을 감지 말라.

(영국 속담)

 

친구란 내 시간을 훔쳐 가는 사람이다.

(F. 베이컨/ 학문의 진보)

 

남녀간의 사랑은 아침 그림자와 같아서 점점 작아지지만 노인의 마음에 깃든 우정은 저녁 나전의 그림자와 같이 인생의 태양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커져 간다.

(J. 베벨/ 데모크리토스)

 

참된 벗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완전히 참혹한고독이다. 벗이 없으면 이 세계는 황야에 지나지 않는다.

(F. 베이컨)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를 갖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 마음을 먹는 귀신이다.

(F. 베이컨/ 수필집)

 

친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면 모든 사람이 친구가 된다.

(이창배/ 만남의 지혜)

 

친구란 사회적 지위나 경제생활이 서로 비슷해야지, 상하 차이가 심하면 도저히 따뜻한 우정을 느끼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송건호/ 우정에 대하여)

 

벗의 대접을 받을 때에는 천천히 가고 벗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는 재빨리 가라.

(H. D. 소로)

 

남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러나 아무런 질투도 없이 너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만이 참된 벗이다.

(P.J.L. 하이제/ 잠언의 서)

 

여자가 남자의 벗이 되는 순서는 정해져 있다. 우선 처음이 친구, 다음이 연인, 최후에 겨우 그냥 벗이 된다는 것이다.

(A.P. 체호프/ 바냐 아저씨)

 

행복한 결혼에 있어서는 연애의 위에 언젠가는 아름다운 우정이 접목됩니다. 이 우정은 마음과 육체와 두뇌에 동시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일층 견고한 것입니다.

(A. 모루아/ 행복한 결혼)

 

친구는 너의 신용의 정도를 알게 하는 자(尺)이다.

(블레싱턴 백작 부인/ 변덕스러운 사색과 반성)

 

노년은 남녀간의 우정에는 가장 적합한 시기이다. 그 까닭은, 그들은 그때에는 남자고, 여자인 것이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A. 모루아/ 결혼 ·우정 · 행복)

 

결혼이란 제도의 도움으로 연애가 뿌리 깊게 계속됨이 건전한 것과 같이 자라나는 우정도 일종의 구속을 받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A. 모루아)

 

연애라는 것은, 진폭이 크고 정열의 파도에 좌우된다. 우정은, 고요하고 안정된 흐름에 이르른다

(A. 모루아/ 행복한 결혼)

 

생애에 친구가 하나면 그것으로 족하다. 둘이면 과하고, 셋은 불가능하다.

(H.B. 애덤스/ 헨리 애덤스의 교육)

 

남녀의 우정은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젊은이끼리에서는 연애가 되고 노인끼리에서는 사랑의 추억이 된다면 말입니다.

(I.A.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네가 누구하고 사귀고 있는가를 말하라. 그러면 네가 어떠한 사람인가를 말해 주마.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친구는 세 번 축복을 받는다. 그들은 나를 찾아 주고, 그와 함께 있어 주고, 그리고 얼마 있다 돌아가 준다.

(R.R. 카크/ 세 번의 축복)

 

좋은 친구와의 사권에서는 대화에서 배우고 침묵으로 맺어진다.

(J.W. 괴테/ 잠언과 성찰)

 

친구없이 사는 것은 증인 없이 죽는 것이다.

(G. 허버트/ 지혜의 투망)

 

세 가지 충실한 친구가 있다. 조강지처, 함께 늙은 개, 그리고 현금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아버지는 보배이고, 형제는 위로가 된다. 친구는 그 양쪽이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많은 친구와 몇 사람의 심복의 친구를 가지라.

(듀아나/ 아폴로니오스)

 

순경(順境)일 때는 친구가 많고, 역경일 때는 20분의 1도 안 된다.

(A.R. 로얼/ 격언)

 

인생의 행로를 왜 먼 곳까지 이르고 보니, 이전에는 우연한 길동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생각해 보니 실은 성실한 맹우(盟友)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H. 카로사/ 지도의 신도)

 

벗을 만들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우정을 배양하여야 하며 힘써 오래 돌보아주는,이를테면 우정에 물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J. 주베르)

 

친구가 애꾸이면 나는 그 옆 얼굴을 본다.

(J. 주베르/ 팡세)

 

친구에게 불신감을 품는 것은 친구에게 속는 것보다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시종 변치 않는 벗이란 것은 온갖 재산 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이지만 사람들이 가장 등한히 하는 재산이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마음에 박힌 가시를 빼 주는 사람은 친구의 손밖에 없다.

(C.A. 엘베시우스/ 잠언과 수상)

 

너의 친구를 그늘에서는 훈계하고, 남 앞에서는 칭찬하라.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친구로서의 사귐을 깨는 사람은 참된 친구가 아니다.

(히에론 1세)

 

너에게는 세 종류의 친구가 있다. 즉, 너를 사랑하는 친구,너에게 관심이 없는 친구,너를 미워하는 친구다.

(S.R.N. 샹포르/ 격언과 반성)

 

한 사람의 친구도 만족시키지 못한 사람은 인생에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H.D. 소로/ 일기)

 

누구에게나 벗이 되려고 하는 자는 아무의 벗도 되지 못한다.

(C. 프페퍼)

 

친구로는 재주 있는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을, 마음씨 착한 사람을, 아주 친절한 사람을, 관대하고 바로 찬성해 주는 사람을 마음으로부터 고를 것이다

(A. 쇼펜하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불성실한 벗을 가질 바에야 차라리 적을 가지는 편이 낫다.

(W. 셰익스피어)

 

너의 친구들을 오래 사귀어 나가는 최상의 방법은, 무슨 일이나 결코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고, 돈을 빌지 않는 것이다.

(C. 코크)

 

친구를 사귀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가 그 사람의 친구가 되는 데 있다.

(R. W. 에머슨)

 

결혼한 자는 누구나 자기의 친구와 절교한다.

(A.F. 프레보/낙천가용 소사전)

 

사람은 한 사람의 친구를 못 찾았기 때문에 몇 사람의 친구로서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A. 보나르/ 우정론)

 

모든 것을 잊고 도취하는 것이 애인이지만, 모든 것을 알고 기뻐하는 것이 친구이다.

(A. 보나르/ 우정론)

 

우정은 순간이 피우는 꽃이며 시간이 맺게하는 일이다.

(A.F.F. 코체부/ 영국의 인도인)

 

우정이란 꽃은 가냘프기 때문에 불신이란 벌레가 파먹기 쉽다.

(F. E. 가이벨)

 

우리들은 연애를 꿈꾸는 일은 있어.도 우정을 꿈꾸는 일은 없다. 꿈꾸는 것은 육체이기 때문이다.

(A. 보나르)

 

연애에서는 우리는 세상을 버리고, 우정에서는 세상을 내려다본다.

(A. 보나르/ 우정론)

 

친구가 없는 것은 혼이 없는 몸과 같다.

(영국 속담)

 

벗의 손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잃은 것이 아니다.

(영국 속담)

 

우정은 인생의 소중한 가치의 하나이다. 정다운 친구와 마주앉아서 허물없이 대화를 즐기는 시간은 인생의 즐거운 시간이다. 진정한 친구란 그리 흔한 게 아니다. 인생의 지기(知己)는 참으로 드물다.

(안병욱/ 행복의 미학)

 

우정은 부부 사이에 있어서의 애정과 흡사하다. 피차의 결점에 대한 티 판보다는 이해에,이해보다는 내용에, 내용보다는 사랑에 입각해 있을 때에 건전하고, 그 사랑은 맹목이라는 바탕에서도 존립한다.

(박두진/ 우정)

 

친구들에게 아첨하지 말라.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성품은 진실을 만나 주눅 들지 않는 정 직성이다. 허영을 조장하는 사귐은 우정을 파괴한다.

(W.E. 채닝/ 노트북)

 

친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음식과 같은 친구로, 매일 빠져서는 안 된다. 둘째는 약과 같은 친구로, 이따금 있어야만 한다. 셋째는 병과 같은 친구로서, 이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태 격언)

 

오래 된 친구를 새 친구로 바꾸는 것은, 열매를 팔아 꽃을 사는 것 같은 것이다.

(F. 로가우/ 격언시집)

 

자유가 없는 곳에 우정이 있을 수 없다. 우정은 자유로운 공기를 사랑하여 높고 좁은 장소에 갇히기를 싫어한다.

(W. 펜/ 고독의 열매)

 

너와 나 사이의 우정을 나는 고리로 서로 굳게 매여 있는 쇠사슬에 비교하지 않으렵니다. 고리는 녹이 슬고 쇠사슬은 넘어지는 나무에 끊어질 수도 있어서입니다.

(W. 펜/ 인디언과의 협정)

 

벗을 선택하는 데 퍽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에는 전염병과도 같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처음에는 상대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므로 다 같은 인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병독이 완전히 내 돔에 옮았을 경우가 흔히 있다.

(M. 고리키)

 

신의 적이 되는 사람은 참다운 벗이 되기가 힘들다.

(V, 영)

 

어떤 벗이 참다운 벗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면 진지한 원조와 막대한 희생을 필요로하는 경우가 제일 좋지만 그 다음으로 좋은 기회는 방금 닥친 불행을 벗에게 알리는 순간이다.

(A. 쇼펜하워)

 

친구로서 아무 역할도 못하는 남자는 언제 적이 되어 그대에게 해를 끼칠는지 모른다.

(E. 르하레르트/ 우화와 이야기)

 

사람을 씀에는 마땅히 각박하지 말 것이니, 각박하면 공효(功效)를 생각하는 자 떠나리라. 벗을 사귐에는 마땅히 넘치지 말 것이니, 넘치면 아첨을 일삼는 자도 찾아오리라.

(채근담)

 

친구의 고난을 동정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친구의 성공을 찬양하려면 남다른 성품이 있어야 한다.

(O.F.O.W. 와일드/ 사회주의하에 있어서의 인간의 혼)

 

친구란 멜론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맛있는 것을 찾기 위해 백 개나 먹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P. 메리메)

 

우정이 연애로 변할 때는, 두 내(川)가 합치는 것과 같이 혼합되며, 유명한 편이 다른 편의 이름을 흡수한다.

(스퀴데리)

 

사실 잃어버린 동료를 대신할 만한 것은 절대로 아무것도 없다. 오랜 벗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통된 그 많은 추억, 함께 당한 그 많은 괴로운 시간, 그 많은 불화, 화해, 마음의 격동이라는 보물만큼 값어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우정들을 다시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참나무를 심었다가 오래지 않아 그 그늘 밑에 쉬기를 바란다는 것이 헛된 일이다

(A.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우정은 고요한 말과 같이, 태양이 나타나기 전에 하늘에서 빛난다. 그러나 연정의 빛을 받으면 바로 색이 바래고 만다.

(O. 루나르 후작/ 메디치가의 사람)

 

우정이란, 대등한 인간 동지 사이의 이해를 떠난 거래이다. 연애란, 폭군과 노예 사이의 천한 거래이다.

(O. 골드스미스/ 훌륭한 인간)

 

참된 우정은 뒤에서 보나 앞에서 보나 같은 것이다. 앞에서 보면 장미, 뒤에서 보면 가시,그런 것이 아니다.

(F. 뤼케르트/ 브라만의 지혜)

 

우정과 연애는 인생의 행복을 낳는다. 꼭, 두 개의 입술이 마음을 아주 즐겁게 하는 키스를 만들어 내듯이.

(F. 헤벨/ 시집)

 

벗이란 동거하지 않는 아내요, 동기(同氣)아닌 아우이다.

(박지원/ 예덕선생전)

 

"친구에 대한 현대 인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것은 서로를 이용하는 두 개의 추상적인 내용, 또는 두 개의 생명을 가진 기계의 관계이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은 이용 가치가 없으나 훗날 이용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어떤 우정을 가지고 대한다. 그래서 만인은 만인의 상품인 것이다. 오늘날 인간관계에서는 사랑이나 증오가 그리 뚜렷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피상적인 우정, 그리고 피상적인 공정은 있지만, 그 껍질 뒤에는 거리감과 무관심이 도사리고있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도움이 되는 벗이 셋, 해로운 벗이 셋 있다. 정직한 벗, 성실한 벗, 박학한 벗은 도움이 되며, 편벽한 벗, 굽실거리기 잘하는 벗, 빈말 잘하는 벗은 해로우니 라.

(논어/ 계씨편)

 

우정은 인생의 술이다.

(V. 영/ 밤의 명상)

 

한편에서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우면 우정은 파괴된다.

(크니케)

 

훌륭한 사람은 설사 의견을 달리할 경우가 있어도 결코 그로 말미암아 우정을 해치는 일이 없다.

(V. 몬티)

 

개인적인 애착심이 없이는, 또 참다운 마음으로부터의 공감 없이는 어떠한 우정도 존재치 않는다

(J. 엥겔/ 왕후의 거울)

 

불행한 때 맺어진 우정은 행복한 때 맺어진 우정보다도 길게 계속된다.

(다퍼)

 

가장 강한 우정은 유사로부터 생기고 가장 격한 연정은 배반에서 생긴다.

(크란쥬 부인)

 

어떤 목적을 위해서 시작된 우정은 그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 끝난다

(칼스)

 

우정과 연애의 사이에는 큰 차가 있는 것이다. 전자는 밝은 신전이고, 후자는 영원히 베일로 싸인 신비인 것이다.

(E. 하르트만/ 무의식의 철학)

 

단 한 사람의 고귀한 친구조차도 갖지 못한 사람은 사는 값어치가 없는 사람이다.

(데모크리토스)

 

우정이 개인적인 호의나 매력의 기반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집이나 아파트가 다른 사람의 집과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소외된 인간관계의 또 하나의 단면이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참다운 우정은 애정과 마찬가지로 극히 드물다. 만약 일생 동안 변치 않는 우정이 있다면그것은 요행이라 하겠다.

(H. B. 샤르도네)

 

생활이 순조로울 때는 많은 벗이 모여들지만, 천기(天機)에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생활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모두 떠나 버린다

(P. N. 오비디우스/ 사랑의 기술)

 

나쁜 친구는 좋은 풍속을 해친다

(메난드로스/ 일행시집)

 

비탄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을 때 친구가 건네주는 말처럼 기쁜 것은 없다. 그 목소리처럼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없다.

(메난드로스)

 

네가 아무리 용감할지라도 온화한 사람을 친구 중에 두어야 한다.

(석가모니)

 

궁핍한 벗에 벗다운 사람은 친구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옛벗을 버리지 말라. 새로운 벗은 옛벗을 당할 수 없느니라. 새로운 벗은 새 술과 같은 것,오래되면 기쁨으로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아포크리파)

 

가장 귀중한 재산은 사려가 깊고 헌신적인 친구이다.

(다리우스 왕)

 

일심동체의 친구는 천 사람의 친척보다 낫다.

(에우리피데스/ 오레스테스)

 

번영은 거의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

(L.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친구가 많다는 것은 친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에우데모스 윤리학)

 

나는 삶을 같이하는 친구가 없는 한, 어떠한 즐거움도 가질 수 없다고 결심했다.

(테렌티우스)

 

여럿의 시시한 벗을 가지느니보다는 한 사람의 훌륭한 벗을 가지는 편이 훨씬 낫다.

(아나카르시스)

 

나에게 양식이 있는 한, 좋은 친구에 비길 것은 아무도 없다.

(호라티우스/ 풍자시)

 

충실한 벗은 인생의 의약이다.

(아포크리파)

 

친구는 또 하나의 나다.

(M.T. 키케로/ 우정에 관하여)

 

친구란 당신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말한다.

(E. 하버드)

 

가짜 돈에 속은 것은 불행이지만, 불행은 견딜 수 있고 가짜는 간파할 수도 있다. 그러나거짓 친구가 되면 그것을 깨닫기가 몹시 어렵다.

(테오그리스/ 금언집)

 

친구라는 명칭은 흔하지만 성실한 우정은 드물다.

(파이드루스/ 우화)

 

친구다운 친구란 가장 중요한 문제점들에 대해서까지도 의견 일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오직 불일치만이 그런 문제점들에 대해서 지나친 날카로움과 불행한 결과를 막을 수있게 된다.

(M.K. 간디/ 영 인디아)

 

수많은 연인의 정을 모아도/내 가슴에 타는 우정의 불에는 미치지 못한다. // 항상 이 가슴에 꺼지는 일 없이/내 혈맥은 따뜻한 때에 물결친다.

(G.G. 바이런/ 그리운 메리안에게)

 

손을 젖히면 구름 일고 손을 엎치면 비내리니 우글거리는 경박한 무리 어찌 구태여 헤리오. 그대는 관중포숙(管仲鮑淑)의 가난할 때 사귐을 보지 못했나. 이 도리를 지금 사람은 버리기를 흙같이 하누나.

(두보/ 빈교행)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윤선도/ 오우가)

 

어화 벗님네들이여/ 이내 말씀 들어보소/ 혼자 있기 정노하여/ 문 밖에 잠깐 나아가/ 사면을 살펴보니/ 상종할 이 누구든고/ 행화촌에 가는 사람/ 오라기는 하건마는/ 이 사람을 상종하면/ 흉험지주 되오리라/ 청루에 노는 소년들/ 함께 가자 하건마는/ 이 소년들 상종하면/ 방탕하기 쉬우리라/ 장기 바둑 두는 사람/ 한가한 듯 하건마는/ 허송세월 맹랑하다/ 그도 상종 못하리라// 다시금 살펴보아도/ 상종할 이 전혀 없네/ 세월광풍 좋은 때에/ 삼척단금 옆에 끼고/ 벌목시를 외우면서/ 어진 벗을 찾아가니/ 형가소리 나는 곳에/눅칠관동 모두 있어/ 읍향하고 맞아들여/ 은근히 하는 말이/ 심덕으로 사귄 벗은/ 절절시시 일을 삼아/ 모진 행실 경계하며/ 선한 일로 인도하고/ 아첨하고 교만하면/ 할 것부터 멀리하고/ 세상에 좋은 벗은/ 의벗밖에 다시 없네//재물로 사귄 벗은/ 빈하면 절교되고/ 권세로 사귄 벗은 미약하면 배반하되/ 의의 친구 사귄 후론 가도록 친밀하여/옳은 도리 점점 알고/ 어진 이름 돌아오니/ 세상에 좋은 벗은/ 의 벗밖에 다시 없네.

(박천지방 민요)

 

벗을 사귀오되 처음에 삼가하여/ 날도곤 나은 이로 가리어 사귀어라/종시(終始)히 신의를 지키어 구이경지(久而敬之)하여라.

(김상용)

 

벗 따라 벗 따라 가니 익은 벗에 선 벗 있다/ 이 벗 저 벗 하니 어느 벗이 벗 아니리/ 내 좋고 맛 좋은 벗은 내 벗인가 하노라.

(이정보)

 

비겁과 이기심을 만들어 내고/ 용서 못할 적을 벗으로 삼게 하고/ 주의 상처가 말하는 쓰라린 진실을 숨기게 하는/ 전통과 점잖은 베일을 찢어발겨 망각에 묻어 두자.

(개스코인/ 이 사람을 보라)

 

욕심을 털어 버리고/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일 할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벗고 눈에 젖은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포근한 12월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는 심사로/ 네 자리를 덮히며 살거라.

(박재삼/ 12월에)

 

크나큰 바다의 새, 신천옹을 잡으나/ 깊은 바다에 미끄러져 가는 배를 뒤쫓는/ 이 새는 나그네의 한가로운 벗이라.

(보들레르/ 신천옹)

 

멀리 신라에서 온 토기에/ 탱자가 셋 담겨 있다/ ‥‥탱자는 영겁 위에 피어 오른 순간이다/ 신라와 현대의 우정은 황홀하다/ 토기와 탱자의 밀어는 신비롭다/삶과 죽음의 비밀이 풀릴 듯 풀릴 듯/ 점점 심각해진다.

(성찬경/ 신라토기에 담긴 탱자)

 

거문고 줄 꽃아 놓고 홀연히 잠을 든 제/ 시문(柴門) 견폐성(犬吠聲)에 반가운 벗 오는고야/ 아이야 점심(點心)도 하려니와 탁주 먼저 내어라.

(김창업)

 

새 달은 밝다마는 옛 벗은 어디 간고/ 저도 달 보고 나같이 생각는가/ 달 보고 벗 생각하니 그를 설워하노라.

(강복중)

 

나의 삶도 빛으로 넘실거릴 적에는/ 세상의 벗들로 가득했었으나/ 이제 내 둘레에 안개가득 드리우니/ 모두 사라지고 자취조차 없구나.

(헤세/ 안개 속)

 

온다/ 좋은 벗 모여 오니 밤새도록 놀리로다/ 아이야 빚은 술 걸러스라 무궁무진 취하리라.

(정수경)

 

남으로 삼긴 중에 벗같이 유신하랴/ 나의 왼 일을 다 이르러 하노매라/ 이 몸이 벗님곳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까.

(정철)

 

1./ ‥‥새는 그 다리 위를 날아간다/우정과 결심, 그리고 용기 그런 양 나래 저으며‥//

2.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언덕에서 언덕으로 가기에는/수많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지만,//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

(천상병/ 미소)

 

흰 구름만 아득하여 오가는 사람 끊어지고/다만 잣나무 위에서 돌아온 봄 볼 뿐인데/ 어느새 다시 즐거운 마음의 벗을 만났거니/ 이야기 끝에 터지는 웃음을 깨닫지 못하겠네.

(기화/ 滴虛和尙語綠)

 

좋은 벗이 이웃에 함께 살아서/ 골목이 이리저리 연접했다오./ 찬이슬에 젖으면서/ 등불 밝혀 밤에 모이네./ 마주앉아 기문을 감상하다가/ 이차의 극을 보면 말을 잊는다. / 날로 달로 언제나 이와 같으리./ 이 즐거움을 잊지 말자 맹세를 했네.

(정도전/ 삼봉집)

 

태양이여!/나의 유일한 벗/그대만이 나를 버리지 않는도다/불개처럼/하얀 침상을 핥고 있는 그대.

(히메네스/ 병의 회복기)

 

친구가 남이건만 어이 그리 유정(有情)한고/ 만나면 정담(情談)이요 못 만나면 그리도다/ 아마도 유정무정(有情無情)키는 사귈 탓인가.

(심두영)

 

커다란 수도원이 수도복처럼/ 죽은 것 같은 삶을 싸고 있는 고요한 땅으로./나는 그곳에서 순례자의 벗이 되고 싶습니다. /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 속에서/ 어떤 유혹이 있을지라도 다시는 떨어짐 이 없이/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길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늙은 장님 뒤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릴케/ 나로 당신의 광야 파수꾼이)

 

사랑하는 이여!/ 입은 옷으로 마음을 나타내듯/ 당신 앞에서 나의 비탄을 나타낼 수 없나이다. / 당신은 감당할 수 없는 행복으로/ 당신의 벗을 지켜 주시니.

(화이트/ 이제는 승리와 영광뿐인 당신)

 

손 한번 번복하면/ 구름이 되고/ 또 한번 번복하면/ 비가 된다/ 분분하고 경박한 것들/일러 무엇하리/ 그.대여!/ 관중(管仲)과 포숙(鮑淑)의 빈시(貧時)의 사귐을 보지 않았는가‥‥‥

(두보/ 빈교행)

 

동무여,/봄의 서곡을 아뢰라,/심금엔 먼지 앉고 줄은 낡았으나마/ 그 줄이 가닥가닥 끊어지도록/ 새 봄의 해조를 뜯으라!

(심훈/ 봄의 서곡)

 

배회하는 새들이/ 희미한 창문을 두드린다/ 친구들의 넋이 돌아와 바라보며/ 불안하게 나를 부른다.

(카르두치/ 눈 내림)

 

나물밥을 먹으니 창자를 고생시킨다/ 억지로 노래를 불러 보지만 결코 기쁜 소리가 아니다/ 문 밖에 나오니 거침새가 많고나/ 누가 천지가 넓다고 했느냐?/ 거침새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장안대로에 있다/ 소인들의 심사가 험하여 평지가 태산보다 더 험하다/ 거울은 깨져도 빛을 상하지 아니하고/ 난초는 죽어도 향기를 그치지 아니한다/ 비로소 군자의 마음이 사귈수록 더욱 돈독해지는 것을 알았다.

(맹교/ 가난한 벗 최순량에게)

 

한 사람의 벗을!/ 오 주여!/ 또 한 사람의 벗을!/ 수많은 벗을 가지는 자는/ 한 사람의 벗도 가지지 못할지니.

(J.W.L. 글라임/ 시집)

 

저 풀을 제거하지 말아라/ 그대로 두어 나쁠 것 있느냐/ 세상은 참으로 더럽다/ 풀보다도 더 약하고 엉클러졌다/ 그대여!/ 장안의 벼슬아치를/ 보지도 못했느냐/ 왕성할 적엔/찾는 사람 삼대 같더니/ 낙척된 후에는 문 앞에 한 사람도 없더라/ 그대여!/ 또 만리강변에/벗 없이 쓸쓸해함을/보지도 못했느냐/오직 방초(芳草)만이/ 수레바퀴를 따르다/ 옛 살던 집 찾아오니/ 문 앞에 풀만이 다정하구나/ 진실로 풀은/ 주인을 저버리지 않았다/주인은 풀에 대하여/어떻게 해야 할까?/ 저 풀을 제거하지 말아라/그대로 두어 나쁠 것 있느냐/ 세상은 참으로 더럽다/ 풀보다 더 약하고 엉클어졌다.

(양차공/ 勿去草行)

 

호수물도 옆에서 춤을 추지만/ 반짝이는 물결보다 더욱 흥겹던 수선화/ 이렇듯 즐거운 벗과 어울릴 때/즐겁지 않은 시인이 있을까.

(워즈워드/ 수선화)

 

검은 창에 인화된/ 회고 마른 얼굴 거기에/어른거렸을 다니엘의 세 친구/그들이 동에서 솟는 해처럼/ 그 얼굴을 다가섰을 때 그는 눈알에서/ 금강석 같은 말을 뽑는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이승록/ 임종)

 

그렇게 진실한 사랑을 가진 어머니는 결코 없었네./ 그토록 신실함이 증명된 친구도 형제도 결코 없었네./ 그렇게 넉넉하게 준비하는 아버지도 결코 없었네./ 구주께서는 당신의 모든 상상을 초월하실 것이라네.// 지구를 만드사 그것을 하늘에 두신 이는/ 이제, 통회하는 자를 들으시며, 그 울부짖음에/ 주의하시리로다. / 우리 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이는/ 우리가 자비를 구할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리로다. // 세상이 슬픔을 가져올 때도 그는 여전히 곁에 계실/ 것이라네./ 세월은 원수가 되지 않네./ 병도 슬픈 눈물을 가져오지 못하네./ 친구들이 나를 버리고, 사랑하는 자들은 나를 떠날 것이나/ 그는 보다 강한 자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부족한 것을/ 채우시리로다. // 사랑하시며 지키시며 모든 날들을 행복케 하시는 주./ 그가 눈물골짜기 같은 이곳에 천국을 세우신다네./그는 나를 위하여 오실 것이요 그 하늘을 여실 것이니/ 우리가 결코 죽지 않을 곳에서 성도들과 함께 영원하리라

(존 R. 라이스/ 가장 진실한 친구)

 

인내보다/ 사람을/ 더욱 깊이 있게 하는/친구는 없노라.

(임춘남/ 성경)

 

멀리 지나간 옛날은/ 먼저 간 친구의 망령과도 같다.

(셸리/ 지나간 옛날)

 

한 잔의 커피와/ 한 줌의 상념과/ 길 가르는 바람과 나는 벗하고 살았네// ‥‥분노에 떨기 시작한 커피는 쓰고/ 벗하여 살던 바람의 회리는 매몰찼네.

(김영옥/ 방황)

 

그대가/ 파도의 고뇌로/ 달려왔을 때,/ 나는/ 모래 언덕이 되어/ 거기 있었다. // 응어리지고 부서지는/삶의 상채기들,/모래 기슭의 부드러움/ 와 닿으면/ 그대는/ 하이만 꽃 되어, 새 되어/ 솟아 오르고/ 돌아가는/ 그대 뒷모습/꿈마저 푸르게 스며 있다. // 나 언제든/ 파도의 고뇌로/ 달려갈 때에」 그대 거기/ 모래 언덕 되어/ 있어 줌으로/ 저 파도의 오고감/ 바다 항상 있음처럼/ 내일, 또/ 내일로 이어질/ 우리들/ 삶의 풍경.

(허영자/ 친구)

 

소등의 꽃들과는 어깨동무할 수 없어/ 더러는 찬비와 안개와도 만나지만/ 까마귀의 노래에는 귀를 열지 않는다.

(권숙월/ 해바라기)

 

벗이여/ 오늘은/ 버드나무를 심어다오/ 빈 속 수금을 걸어 둘/ 그 강가의/ 버드나무를

(박종구/ 일기)

 

어둠을 사르는 새 벽이 거나/ 세상의 슬픔들을/ 온통 기들이게 하시고/ 당신 사역의 저만큼에서/ 우리도 가난한 이웃들의/ 아픔을 사랑하며/ 외로움의 벗이고자/ 언덕 위에 불을 켜는/ 작은 정성이고자 합니다.

(홍문표/ 당신 곁에서)

 

나 죽거든,사랑하는 친구여/내 무덤 위에 버드나무를 심어다오.

(뮈쎄/ 비가)

 

우정이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진실한 목소리가 있다고 믿고 싶다/ 우정은 심장 위에 우연하게 뿌리를 내린/ 진정한 보석이기때문에// 그렇게 순수한 감정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일까?/ 찬란하게 빛나는 잎사귀의 근원은 어떤 것일까? / 한 순간, 영혼 깊숙한 곳에서/ 이 뿌리는 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믿고 싶다 그리고 안 믿는다 할지라도 믿으리라/ 내 손에 닿기도 하고 닿지 않기도 하는 한 줄기 빛이라는 것을/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광채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 손에 닿는 또 닿지 않음에 따라/ 내 욕망의 불꽃은 끊임없이 불타오르리라/ 하나의 별을 쫓기 위한 내 욕망의 불꽃은.

(알마 바스꼰세야스/ 신기루)

 

부족함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라/ 어려움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라/ 자기 소유만 갖고 사는 법을 배워라/ 친구를 부러워하지 말라.

(존 투로저/ 부족함 속에서 사는 법을 배워라)

 

하늘을 향하여 화살 하나를 쏘았다/ 어디인지는 몰라도 화살은 땅에 떨어졌다/ 너무 빨리 날아서/ 날아가는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노래 하나를 불렀다/ 어디인지도 몰라도 노래는 땅에 떨어졌다‥‥//그후 오랜 뒤에 참나무 속에서/ 부러지지 않는 화살을 찾았다/ 그리고 그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 가슴속에서 찾았다.

(H.W 롱펠로우/ 화살과 노래)

 

흔히 뱃사공들은 장난삼아서/ 크나큰 바다의 새, 신천옹을 잡으나/ 깊은 바다에 미끄러져가는 배를 뒤쫓는/ 이 새는 나그네의 한가로운 벗이라.

(보들레르/ 신천옹)

 

벗을 잃고 견디지 못하는 가열은 잔나비는 정(情)의 삼림에서 저의 숨에 질식되었습니다.

(한용운/ 고대)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이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을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무덤위에 피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서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타골의 시 'GARDENISTO'를 읽고)

 

그 친구/늙어서도 어릴 때 그 마음/커서도 소꿉장난 그때 그 마음/ 산언덕에 소 몇 마리기르며/ 꾀꼬리 소리 들으면 내 생각난다고/ 나 커서 시 쓰겠다고 한 적 없고/ 서울 가 더많은 시 쓰겠다고 한 적 없지만/ 우이동 비탈길에서 새소리 들으면/ 그 친구 생각난다/ 흙에 심은 흰 밑동 같은 생각난다/홀에 심은 흰 밑등 같은 사람/ 그을은 얼굴에 굵은 마음 살(肉)/ 도로구획정리에 밀려난 조상의 묘지를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깨끗한 흙 속에 손을 디미는/ 그 친구 생각난다.

(이생진/ 고향 친구)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친구가 적다. 당신이 가난하거든 부의 잣대로 사람을 가늠하는 친구를 멀리하라.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가도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한하운/ 전라도 길-소록도 가는 길)

 

보라및/ 애정을 날리며/ 경사진 가로에서/또다시/ 태양에 젖어 돌아오는 벗들을 본다.

(김경린/ 국제 열차는 타자기처럼)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신동문/ 내 노동으로)

 

그 옛날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그토록 노래 잘하고 말 잘하며/ 언어와 행동이 그토록 유쾌하던/ 우아하고 상냥한 친구들,/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몇몇은 죽어 차디차게 굳어버렸으니/ 그들에게서 남은 것 이제는 아무것도 없어라/ 천국의 안식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그리고 살아 남아 있는 자에게는 신의 가호가 있기를!

(비용/ 회한)

 

오직 한 송이 피어 남아 있는/ 늦게 핀 여름의 장미여./ 아름다운 벗들은 모두 다 빛바래어 떨어지고 이제는 없다.

(무어/ 늦게 핀 여름의 장미)

 

하늘은 방랑하는 네 벗이 되었으련만/너의 하늘에서의 속력을 이겨내는 것이/ 결코 공상만이 아닌 그때 같기만 하면

(셸리/ 서풍의 노래 · 4)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보라/ 너를 사랑하는자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으면/사나이는 슬픔을 지니 게 마련이다. //사나이는그때 알게 마련이니/ 친구들에게 성실함은 없고/ 약간의 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말은 헛되다는 사실을.

(제임스 조이스/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보라)

 

내 마음을 실은 나무껍질처럼/ 옛 친구여, 내게 얽히어 있다/ 여기서 새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고/ 네 가지를 에워싸게 하자./ 고목이여! 계속 용감하게 폭풍과 맞서라.

(모리스/ 나무꾼이여, 나무를 베지 말라)

 

남자든 여자든 사람들의 기품 있는 행위를/진심으로 사랑하여, 기품 있게 보답하기 위해/함부로 칭찬할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내 벗이 되고, 자네 벗이 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게!

(에머슨/ 자제심)

 

어디서 만나 뵈었던가요/ 어디서 어디서 만나 뵈었던가요/ 죽음과 사이가 좋은 벗들/나의 오랜 벗들이.

(다무라 류우이찌/ 다시 만나면)

 

잊어버립시다. 꽃이 지듯이/ 한 번 금빛으로 탔던 불이 꺼져 버리듯이/ 언제까지나 잊어버립시다. / 세월은 친절한 친구/ 언젠가는 우리들을 늙게 해 줍니다.

(티이스데일/ 잊어버립시다)

 

친구도 없이 쑥쑥 뻗어 흑갈색 나부끼나니/그 거친 불굴의 힘찬 모습에 나 자신을 생각한다/ 친구나 연인도 없이 흑갈색 잎을 나부끼는 일을/ 나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몇 개 잎이 달린 가지를 꺾어 주위에 이끼를 얽히게 하고는/ 집에 가져다 방 안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두었다/ 그 가지를 본다 해서 나는 친구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 이 가지가 이상한 기념이 되어 가지를 보면 언제나 우정을 생각케 한다.

(휘트먼/ 나는 루이지아나에서 떡갈나무가 무성함을 보나니)

 

친구들이 나의 멋을 사서,/ 항아리를 들고 함께 찾아온다//풀을 깔고 솔 밑에 앉으니/ 두어 잔에 벌써 또 취한다.

(도연명/ 음주 · 6)

 

옛 친구가 잊혀지랴/ 생각나지 않고?/ 옛 친구가 잊혀지랴/ 생각나지 않고?// 먼 옛날을 위하여 그대/우리 우정의 술잔을 들자/ 먼 옛날을 위하여.// 우리는 둘이서 언덕을 달렸고/ 실국화를 땄었다. / 그러나 그후 오랫동안/ 고단한 나그네 길 헤매었다. // 우린 시냇물 속에서 놀았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러나 그후 오랫동안/ 둘 사이엔 큰 바다가 가로놓였다. // 여기에 내 손이 있다. 친구여/ 그대 의 손을 다오./ 그리하여 우리 정답게 술을 들자/ 먼 옛날을 위하여// 그대는 그대의 큰 잔을 들고/ 나는 나의 큰 잔을 들련다. / 우리 우정의 잔을 들자/ 먼 옛날을 위하여.

(버언즈/ 먼 옛날)

 

말도 안 나오고/ 눈감아 버리고 싶은 날이 있소/ 꿈 대신 무서운 심판이 얼른거리는데/좋은 말해 줄 친구도 안 보이고!

(노천명/ 나에게 레몬을)

 

벗이여 나에게 슬픔은 없다. 너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적이 되더라도/ 벗이여 내 마음은 충족한 것이다/ 너만 나의 벗이라면// 벗의 충고를 듣지 않고 나는 자신을 사랑에 내던졌다/내가 자신에게 한 일을 다른 누가 하랴.

(훼즐리/ 벗이여 나에게 슬픔은 없다)

 

가물에 들끊는 서을 거리에/정다운 벗들이 떠드는 술자리에/ 애닯다/ 네 의자가 하나 비어 있구나/ 월미도 가까운 선술집이나/ 미국가면 하숙한다던 뉴욕 하렘에 가면/ 너를 만날까/ 있더라도 "김형 있소"하고/ 손창문 마구열고 들어서지 않을까./ 네가 놀러 가자던 계동집 처마 끝에/ 여름달이 자위를 넘고/ 바람이 찬 툇마루에서/ 나 혼자/ 부질없는 생각에 담배를 피고 있다.

(김광균/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구나)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그림자 같은 벗 하나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쓸데없는 괴로움으로만 보냈었겠습니까!// 오늘은 또다시, 당신의 가슴속, 속 모를 곳을/ 울면서 나는 휘저어 버리고 떠납니다 그려// 허수한 맘, 둘 곳 없는 심사에 쓰라린 가슴은/ 그것이 사랑, 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김소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벗은 설음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로운 파를/ 고초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김소월/ 님과 벗)

 

삼각에 메워/ 거미줄 감아들고 청령을 쫓던,/늘 함께 이 동위에 이 풀숲에서/ 놀던 그 동무들은 어데로 갔노!// 어린 적 내 놀이터 이 동마루는/ 지금 내 흩어진 벗 생각의 나라.//먼 바다 바라보며 우둑히 서서/나 지금 청령따라 왜 가지 않노.

(김소월/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 통으로)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김소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모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아무리 먼 곳에 갈 때라도/ 내 눈꺼풀 속에서 불타고 있다/ 내 친구들의/ 깨끗하게 정리된 정원에 잇대어 있는 라키시미의 발자취.

(스바스 무코파다이/ 아무리 먼 곳에 갈 때라도)

 

하지만 지금 동맥은 빳빳이 굳어 가고 있다/그리고 차디찬 수의가 내려오고/ 더욱이 조용한 친구 고독은/죽음이 문 앞에 와 있다고 한다.

(렌리 피터스/ 불은 사그라졌다)

 

기린 모양의 긴 모가지에/ 멋있게 빛을 걸고서 있는 친구/ 가로등의 불빛으로/ 눈이 어리었을까.// 엇갈리어 지나가다/ 얼굴 반쯤 그만 봐버린 사람아/ 요샌 참 너무 많이/ 네 생각이 난다// 사락사락 사락눈이/한 줌 뿌리면 솜털 같은 실비가/ 비단결 물보라로 적시는 첫봄인데/ 너도 빗물 같은 정을/ 양손으로 받아 주렴// 비는/ 뿌린 후에 거두지 않음이니/ 나도 스스로운 사랑을 주고/ 달라진 않으리라/ 아무것도// 무상으로 주는/ 정의 자욱마다엔 무슨 꽃이 피는가/ 이름 없는 벗이여.

(김남조/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

 

벗이여/ 오늘 밤 성당 돌층계서/ 환한 네 얼굴 보여주지 않으련/ 기도하러 가는 마음의/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너 함께/ 내가 있었으면 한다// 세상에 나서 아직 기도를 올린 적 없다는/ 너의 오히려 나를 울린/ 우애의 그늘에서/ 네가 부끄러워/ 지금은/ 천주이신 아기께서 잠드신 시간/ 정결하고 광휘로운 이 시공 속에/ 우리의 마음을 새겨/ 종이나 빚었으면//속에서 넘쳐나는/ 정밀한 강물 모양/ 외로움이 일 적에 울어 주는 종/보고짐이 일 적에도/ 울어 주는 종// 벗이여/ 촛불을 켜들고/ 유리창 비쳐보는 꽃가게 같은 너여.

(김남조/ 메리 크리스마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린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하고는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다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것 다 뿌리치고 돌아 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라/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웃고 지나 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로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 보나/ 내 몫에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그렇구나/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일하여 시름없고 단잠 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잡고/ 한 바다 물을 따라 나명 들명 살까이나/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아침은 오고 또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깨끗이도 깨끗이

(이은상/ 가고파-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나의 사랑하는 자여, 나와 함께 길을 가세!/해뜨는 날이나/ 비바람 부는 날일지라도 함께가세./ 혼자보다는 두 사람이 더 빨리 가나니/우리 함께 걸어 보세./ 나의 사랑하는 자여,나와 함께 길을 가세./ 검은 구름이 몰려 있는곳에서도/ 그대와 함께 짐을 나누리니/우리와 함께 지고 가세, 나의 귀여운 자여.// 황금빛 사랑의 끈으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어떠한 오르막길을 오를지라도/ 함께 가세, 함께.

(존 옥센함/ 합께 가세)

 

내가 당신께 기도하나 아직 내 마음속 수천 가지 소원은/ 꺼내 놓고 있지 않나이다. / 기도하는 사람이 오직 당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라도 당신에 대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많은 말로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는 우리의/ 사랑을 듣습니다. / 나의 입술은 잠잠할지라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리니/ 그가 위에서 귀기울여 들으시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말하지 않는 것도 이해하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 사랑은 곧 기도이기에‥‥ 당신께 드리는 나의 기도는/영원히 당신에게로 향하는 것이리니/ 그 기도는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습니다. / 모든 것이 전에 있었던 것과 한가지입니다. / 그러므로 당신께 드리는 기도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나는지/ 말할 수 없나이다.

(마리 딕션 테이어/ 당신께 드리는 기도)

 

당신의 형제인 그를 그대는 높여 준 일이/있습니까? / 그가 겪고 있는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어 본 일이/ 있습니까? / 풀이 죽어 창백한 그에게 그대는 미소를 지어 본 일이 있습니까? / 미소는 그가 당한 일을 노력하여 나아가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 언덕에서 넘어진 그에게 당신은 손을 내밀어 준 적이 있었습니까?/ 생각건대 세상은 그를 냉대하였을 것입니다. / 그에게 한 마디 말이라도 건네주었습니까?/ 그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까?/ 아니면 그로 하여금 자기 짐을 계속지고 가게/ 하였습니까?/ 왜 입술을 떨고있는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대는 물어/ 본 일이 있었습니까?/ 왜 거의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그토록 뜨거운 눈물을 떨구냐고/ 물어 본 일이 있었습니까?/ 위급한 때에 그대는 그의 형제가 되어 주었습니까? / 필요한 시간이 되면 그를 도와줄 용의가 있었습니까? / 혹 내버려두지는 않았습니까? // 싸움에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아십니까?/ 모든 것을 바로 제때에 바르게 해 주는 도움은 언제 주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손을 잡아 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온갖 일에 대해 한 사람을 바로 세우기 위해 또 한 사람이 대신/ 짐을 지고 있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습니까?

(F.S. 가웰/ 그대는?)

 

그렇게 진실한 사랑을 가진 어머니는 결코 없었네./ 그토록 신실함이 증명된 친구도 형제도 결코 없었네./ 그렇게 넉넉하게 준비하는 아버지도 결코 없었네./ 구주께서도 당신의 모든 상상을 초월하실 것이라네.// 지구를 만드사 그것을 하늘에 두신 이는/ 이제, 통회하는 자를 들으시며, 그 울부짖음에/ 주의하시리로다. / 우리 약함을 아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이는/ 우리가 자비를 구할 때, 우리안에 들어오시리로다. // 세상이 슬픔을 가져올 때도 그는 여전히 길에 계실/ 것이라네./ 세월은 원수가 되지 않네./ 병도 슬픈 눈물을 가져오지 못하네./ 친구들이 나를 버리고 사랑하는 자들은 나를 떠날 것이나/ 그는 보다 강한 자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을 위해 부족한 것을/ 채우시리로다. // 사랑하시며 지키시며 모든 날들을 행복케 하시는 주./ 그가 눈물골짜기 같은 이곳에 천국을 세우신다네./ 그는 나를 위하여 오실 것이요. 그 하늘을 여실것이니/ 우리가 결코 죽지 않을 곳에서 성도들과 함께 영원하리라.

(존 R 라이스/ 가장 진실한 친구)

 

오, 그대여! 슬퍼 말아요./ 이제 슬퍼 말고 기도합시다. / 그대여!/ 낮보다 밤이 많지는 않다오./ 사랑하는 이여! 지금은 비가 내리고/시간의 바퀴는 무겁게 돌고 있지만/ 그대여! 생각해 보면/ 먹구름 어두운 날이/ 맑은 날보다 많은 것 아니랍니다. // 친구여! 어언 우리도 늙어‥‥/ 우리의 머리카락은 희어져 눈빛이지만/ 그대여 생각해 보면/ 마음은 언제나 청춘임을 발견할 것이오./사랑하는 이여! 우리들에게도 젊은 날의 희망과/ 장미의 아름다운 꿈이 있었지요./ 그대여! 이제 길고 어두운 밤,/ 눈 내리는 세월이 오고 있다네.//그러나 친구여! 하나님께서는/ 낮과 마찬가지로 밤을 주시기도 하는 것을,/ 어디이건 그분이 이끄시는 길이면/ 우리가 순종해야함을 알고 있겠지./아,그대여! 그렇게 침침한 죽음의 밤/ 밤의 하나님,/ 생명으로부터 훌륭한 반려자를/ 인도해 내는 문은/ 그분께로 인도하는 문임을 잊지 맙시다.

(렘브란트 피얼/ 믿음과 소망)

 

고난받으시고, 피흘리시고, 홀로 죽으신 그는/ 당신과 나를 위해 홀로, 홀로 그리하셨도다. / 위에 계신 하나님께 버림받은/ 그런 사랑이 부끄럽다고 거절할 수 있었을까?//그의 희생을 내가 받아들여/ 그를 이제부터 영원까지 섬기리니/ 나를 용서하고, 깨끗게하며, 자유케 할 수 있는 친구는 단지/ 그뿐이기 때문이네.

(루비 매캔지/ 우리와 함께 하소서!)

 

내게 시간이 있으니/ 내 사랑하는 벗으로 하여금/ 이 고달프고 부질없는 나날들을/ 청산하도록 도우려네./ 벗의 발길을 기쁨으로 인도하고/ 넷의 가슴에 찬송과 용기를 주려네./ 내게 시간이 있는 동안에// ‥‥지금이 바로 그 시간이어라./ 오, 벗이여, 주저하지 말라./현재의 삶에 안주하여/ 세상의 인정을 받으려는 자리로부터/ 지금 곧 일어서라./내일이면 늦으리라./ 미래에는 어쩌면 당신이 필요없을지 모르나니/ 지금 이 시간을 놓치지 마시오

(미리암 브라운/ 지금의 시간)

 

그대들의 친구란 그대들의 궁핍을 충족시켜주는 존재이다. / 사랑으로 씨를 뿌려 감사로써 수확하는 그대들의 들./ 또한 그대들의 식탁이며 아늑한 집이다. / 그대들은 굶주린 채 그에게로 와서 평화를 찾는다. // 그대들의 친구가 속마음을 얘기할 때 그들은 자기만의 생각으로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렇지"라는 말을 억누르지도 말라./ 그가 말없을 때라도 그대들의 가슴은 그의 소리를 듣도록 하라./ 말없이, 우정 속에서는 모든 생각, 모든 욕망, 모든 기대가 갈채받지 않아도 기쁨으로 태어나고 나누어지는 것./ 그대들 친구와 헤어질 때에는 슬퍼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 친구에게서 가장 사랑하는 점, 그것은 그가 없을 때 더욱 선명히 드러날 것이기에. 마치 산을 오르는 이에게 산은 벌판에서 더욱 선명히 보이듯이./그리고 우정에 결코 영혼의 심화(深化) 외에 어떤 목적도 두지 말라./ 왜냐하면 자기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 외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찾는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기에. 다만 던져진 그물에 불과할 뿐, 오직 무익한 것만이 걸려드는 그물.// 그러므로 그대들 친구를 위하여선 최선을 다하라./ 그가 그대들의 마음의 조수의 썰물 때를 안다면 밀물 때도 알게 하라./ 다만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찾는 친구, 그런 친구란 무슨 소용이 있는가? / 언제나 시간을 살리기 위하여 친구를 찾아라./ 그대들의 요구를 만족시킴은 곧 그의 요구도 만족시키는 것, 결코 그대들의 공허를 채우는 것은 아니기에./ 그리하여 부드러운 우정 속에 웃음이 깃들이게 하고 기쁨을 나누라./ 하찮은 이슬방울 속에서도 마음은 아침을 찾아내고, 다시 불타오르기에.

(K. 지브란/ 예언자)

 

 

설 교 노 트

 

그리스도의 친구

요15:13-19

 

서론

성경은 예수님과 우리 신자들과의 관계를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임금이 되시고, 우리들은 그의 백성이라 하였고, 예수님은 주인이 되시고, 우리들은 그의 종이 되고, 예수님은 스승이 되시고, 우리들은 그의 제자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매우 뜻 깊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는 동등한 위치에서 사귀여지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운명을 같이하는 벗이라고 하였습니다.

 

1. 친구의 개념

사람은 누구에게나 친구가 있습니다. 「동몽선습」이라는 책을 보면 친구 중에는 나를 유익하게 하는 세 친구와 손해보게 하는 세 친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를 유익하게 하는 친구는 마음이 정직하고, 신용이 있고, 그 무엇을 배울 수 있는 친구라고 했고, 손해케 하는 친구는 나약하며, 편벽되고, 속이는 친구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친구를 삼가 사귀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친구에 대해서 우리나라 말 큰사전을 살펴보면, "오래 두고 가잡게 사귀는 벗"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시간적으로 오랫동안 사귀는 벗, 인격적으로 아주 가깝게 사귀는 벗, 환경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세상이 다 나를 버리고 물러가도 그대 나를 반겨 찾아주는 벗이 참 친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서러워하고, 어려움당하여 환난에 빠졌을 때, 나를 가까이 찾아와서 위로하고 도와주시는 친구이십니다.

 

2. 친구의 유형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 가다가 보면 별의별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됩니다. 예를 들면좋은 친구들도 사귀게 되지마는 좋지 않은 친구들도 사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 지내는 동안 여러가지 유형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즉 자기 병이 낫기를 바라고 나오는 자들도 있었고, 그저 호기심에 의해서 나오는 자들도 있었으며, 진정으로 주님을 아끼고 사랑하며 기도하던 자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도 역시 여러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사람과 사귀어야 하는지 생각하기 전에 내가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친구되는 비결

잠18:24에 "많은 친구를 얻는 것은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고 하셨으니, 진정한 친구는 형제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1) 선택을 바로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친구 선택은 참으로 귀중한 일입니다. 요15:16에 "예수님은 우리를 선택하여 친구를 삼으셨다"고 하였습니다.

(2) 서로 사랑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15:13에 "서로 사랑하는 친구는 목숨까지라도 친구를 위해서 드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3) 약속을 지켜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15:14에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친구는 서로의 약속을 지키게 됩니다.

 

결론

우리들의 참 친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1) 우리가 예수를 택하기 전에 예수님이 우리를 택하셨고

(2) 우리가 먼저 사랑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3) 우리가 약속을 지키기 전 주님이 먼저 약속따라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 친구들은 우리를 버려도 주님은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는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하나님의 우정

욥29:4

 

서론

본문을 보면 "그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 위에 있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정"이라는 말에는 "비밀"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우정이라는 것은 사귀는 친구끼리만 아는 비밀을 간직합니다.

하나님의 친구는 누구였습니까?

 

1.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

야고보서 2장 23절에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으면 그의 친구라고까지 하셨겠습니까?

역대하 20장 7절에도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라고 하였으며, 또 이사야 41장 8절에도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한 말씀들이 입증하듯이 과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었으니 하나님의 모든 비밀을 그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친구 모세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회막에서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엄위하시고 가까이 하기 힘든 거룩하신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또 반면에 인자하시고 사랑이 극진하셔서 그 사랑하는 자들을 특별히 대하실 때에는 이렇게 친구를 대면한 듯한 부드러운 분위기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모세에게 다 일러주셔서 출애굽의 대사업을 시키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도록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합니다.

 

3. 예수님의 친구

요한복음 15장 15절에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우리들은 예수님의 종이라는 위치도 감당하기 힘든 자들입니다.그런데 송구하게도 주님께서 우리를 자진하여 친구라고 불러 주셨으니 우리는 그저 감사할따름입니다.

혹시 우리가 예수님을 친구로 하려고 하여도 주님이 거절하시면 안 될 터인데 주님께서 먼저 자진하여 우리를 친구로 삼으셨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결론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우정으로 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같이 못난 자들을 친구로 삼으시고 자기 목숨을 버리시므로 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된 영광을 깊이 감사해야 하며 그 은혜를 가슴판에 새기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칭 의

성 경 활 용

1. 성도의 칭의

(1) 하나님

(롬3:26)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2) 성령

(고전6:11)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3) 믿음

(행13:39)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4) 그리스도의 부활

(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5) 은혜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2. 칭의의 방법

(1) 하나님을 의롭다고 한다.

(눅7:29)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2) 모든 죄에서 깨끗해진다.

(고전4: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3) 모세의 율법에서 해방받는 것이다.

(행13:39)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관련원어풀이

1. qd'x; 차-디크

(1) 바르다, 의롭다.

(시l9:10, 51:6)

(2) 진리나 옳은 것을 말한다.

(욥33:12)

(3) 의롭다, 올바르다.

(욥15:24, 시143:2)

 

2. !ymiT; 타-밈-

(1) 완성된, 완료된.

(욥36:4, 시19:8)

(2) 온건한, 건전한.

(출12:5, 레1:3)

(3) 올바른, 책망할 데가 없는.

(신18:3, 시15:2)

 

3. dikaiovw 디카이오오-

(1) 의롭고 올바르게 만들거나 여기다.

(시122:13)

(2) 의롭다는 선언을 받다, 의롭게 취급되다, 가치 있게 여기다.

(눅10:29, 고전4:4)

(3) 의롭게 판단하다, 의로움을 선포하다.

(마12:37, 롬3:26)

설교예화자료

남을 위한 죽음

 

미국에 예수 가르시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멕시칸 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철도 소방관으로 마금석 회사에서 일하였습니다. 그가 승진이 된 어느 날 사무실에서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한 소방관이 달려와 다이너마이트를 실은 열차가 선로 위에서 불타고 있다고 전갈을 했습니다. 이때 가르시아는 뛰어가 불타고 있는 그 열차 위에 올라가 열차를 즉시 움직이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차가 마을을 빠져 나가게 하기 위해서 전속력으로 달렸습니다.

드디어 기차가 마을을 막 빠져 나갔을 때 불타고 있던 열차가 폭발했습니다. 그는 폭발하는 열차 안에서 죽었습니다.

예수 가르시아는 현재 나코자리의 영웅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멕시코의 시 일부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백성의 마음은 의 있는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백성의 마음을 얻는 사람은 곧 천하를 얻는사람이다. 백성의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하고 백성을 위하여 백 몸이 당할 수 없이 큰 것이라 하더라도 뛰어나가 맡으라. 그것이 의인지라. 하늘과 백성이 네 편이 되어 반드시 그 큰괴로움을 이기게 하리라. 다행히 이긴 때에 백성의 마음이 네게 돌아올 것이요,불행하여 몸이 죽을 때에 너는 만세 백성이 사모하는 의인이 되리라.

(이광수/ 마의태자)

 

의란 인간의 의를 하나님의 의로 삼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인간의 의로 삼은 것이어야 한다.

(강원룡/ 무관심의 세대)

 

인간이 죽은 후에도 길동무가 되는 것은 의라는 친구밖에 없다. 어떠한 정(情)도 육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니까.

(마누 법전)

 

의를 사랑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있어 부정을 말없이 견디는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정의는 지불 능력이 없는 자를 관대하게 봐 주는 것으로써 끝난다-정의의 이 자기지양, 그것이 어떤 미명으로 불리어지고 있는가를 알고 있는가-말하는 바 은혜,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장 강력한 특권이다.

(F.W. 니체/ 도덕의 계보)

 

인간은 부정하나 하느님은 정의로우시어, 결국은 정의가 승리를 거둔다.

(H.W. 롱펠로우/ 에반젤린)

 

내가 좋다 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고 의(義) 아니면 좇지 말라/ 우리는 천성을 지키며 삼긴 대로 하리라.

(변계량)

 

하나님은 우리들 자신의 의와 지혜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들과 관계없는 의와 지혜에 의해, 즉 우리들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요 우리들 자신 속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닌, 어떤 다른 곳에서부터 나오게 되는 하나의 의에 의해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신다.‥‥다시 말해서 의는 오로지 외부에서 오는 것이며, 그리고 이는 우리들 자신과는 전적으로 관계가 없다.

(M. 루터/ 로마서 주석)

 

커티스 판사가 쓴 재판 장면의 드라마에서 원고인 조각가가 분개하여 재판관에게 대드는 대목이 있다. "여긴 정의를 다루는 법정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 재판관의 답이었다. "여긴 법을 다루는 법정입니다. 정의란 진리나 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입니다. 당신이 끌과 망치로 미를 이룩하려는 것처럼 우리는 법률을 도구로 해서 정의를 이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J.C. 휴스/ 즉석적인 웅변)

 

태양, 그것보다 정의쪽이 더욱 좋다/ 정의쪽이 더욱 좋다고//그것은 변하여 갈 것이다.태양은/ 그것은 이내 변하려고 하고 있다//정의의 눈부심은 더욱 갈해질 것이다/ 너희 것보다도 더욱 강하게.

(E. 길르빌/ 사형집행)

 

주여, 나는 약하여 잠시 동안이라도/ 당신이 없이는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포옹은 부드럽고/ 당신의 지탱함은 확실하며/당신의 오른손은 힘을 가지고 계십니다. / 그 힘은 나를 채워 주십니다. // 주여, 나는 약하고 하찮은 것이지만/ 당신에게는 넘치는 힘이있는 것을 압니다. / 당신의 다함 없는 보물은/계속 내 깊은 속의 크나큰 요구를 충족시키 고도 남습니다. / 당신의 은혜는 나를 채워주십니다. // 일찍이 내 혼에는 대해와 같이 끝없는/ 넓고 파도치는 심연이 있었습니다. /내 혼은 그 파도를 잠자게 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신의 큰 사랑이 그 심연을 채워 주십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나의 주 나의 하나님/ 당신께서는 나를 채워주십니다.

(G. 맥도널드/ 그리스도에서 채워 주신다)

 

밭은/ 씨앗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 그렇듯 이/ 빛을 싫어하지 않는/ 우리는/ 주님의 은총을 갈구합니다. / 죄 많은 세상/ 방황하는 마음을/ 눈물로 속죄하오니/ 사랑으로 다스려주시고/ 꾸짖어 매질해 주셔서/ 소망과 믿음이/ 샘물처럼 솟게 하시고/ 거치른 이 벌판/우리의 마음 밭에도/ 훈훈한 입김을 뿌리셔서/ 알알이 묻어 둔 씨앗에도/ 꽃비를 내려 주시사/마른 나무에 눈이 트듯/ 참한 목숨으로/이 봄이 태어나게 하소서.

(이기반/ 봄)

 

두곤의 목숨이/ 가볍다 하련만은‥‥‥

(고두동/ 의암)

 

마을 사람들아 음은 일 하자스라/사람이 되어나서 옳치곳 못하면/ 마소를 갓고깔 씌워 밥먹이나 다르랴.

(정철/ 송강가사)

 

누구를 기다리나 눈먼 거지 바디매오/ 어둠이 드리운 여리고 성문 가에/ 무리들이 몰려온다, 그 떠드는 소리-/ "나사렛의 예수다!"/ 폐부를 찌르는 듯 크나큰 외침 소리,/"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를 따르는 무리 그 수를 더하고/ 제각기 꾸짖는다, "조용해, 바디매오."/ 그러나 그 소리에 아랑곳없이/ 거지의 외침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이윽고 사람들, "안심하고 일어서게,/ 예수께서 그대를 부르신다" 전한다. //무리들 고요히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스도는/ "그대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소경은 대답한다,"보는 것입니다,/ 주여, 감긴 내 눈을 뜨게 해주오."/ 예수는 대답한다. "안심하고 가라,/그대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느니라."// 눈이 있으면서도 어둠과 비참 속에 앉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자여,/ 이 힘찬 세 마디 말씀을 기억하여라,/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 기소서."/ "안심하라, 일어나라."/ "안심하고 가라, 그대의 믿음이 너를 구원했느니라."

(H.W. 롱펠로우/ 소경 바디매오)

 

 

설 교 노 트

 

칭의

롬5:1-21

 

서론

칭의는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과 의롭게 되는 것은 의롭게 되어 죄를 범하지 않게 된 후에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은 후 하나님의 영의 인도에 의하여 점점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 죄 아래 있는 인간이 어떻게 의인의 칭호를 받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1절)"고 하였습니다.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태도가 신앙, 신뢰, 순종, 귀의(歸依)와 같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만으로 다른 아무런 공로나 행위도 요구하시지 않고 과거에 깊었던 우리 죄에 대하여 묻지 않고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친자식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함은 율법의 행위 그 자체는 가치 없고,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하여 의롭게 된다는 이유로, 그러한 것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죄인은 항상 하나님에 대하여 불화와 적대의 상태에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죄사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두려움 없이 설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사이에평화의 관계가 이루어진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새롭게 한 결과 마음속에 주관적인 평화를 가져옵니다. 이는 모두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의한 것이며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지금도 살아계신 그를 통해서만 우리가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9절)"라고 하였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그 죄의 심판이끝날 때까지 영원히 쉬지 않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분노를 풀기 위하여서 필요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의롭게 하는 원인이며 이로써 이미 의롭게 된 이상 살아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에 우리 위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보호하여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원까지 미치십니다(8:34).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 안에서 절대로 안전하며 편안합니다.

 

3.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로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하나님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15절)"고 하였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성령으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재능이나 능력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12:6, 고전12:4,31) 여기서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어지는 죄사함, 영생 등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한 죄를 사하는 선물은 전인류 위에 넘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것은 믿음으로 인한 것이고, 예수의 피로 인한 것이며, 은혜의 선물인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차별 없는 칭의

롬3:19-28

 

서론

루터는 그 당시의 종교가 너무나 부패함을 개탄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에 이신칭의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며 교황의 조서나 예문보다 성경이 먼저요, 모든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고 사제나 교황이 중보가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면 차별 없는 칭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칭의란 무엇을 말합니까?

사람들은 흔히 이 의롭게 되는 길이 우리들의 생활과 관계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으며 이 축복이 점진적으로 우리들에게 이루어지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청의가 도덕적인 변화가 아니고 우리 인간들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법정적인 선언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절)"고 확실히 선언하셨습니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사요, 베푸시는 축복이요, 법정적인 선언이기에 그 아무도 정죄하거나 취소할 수가 없고 차별이 없는 것입니다. 롬8:33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2. 칭의의 본질과 요소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의롭게 되면 신분의 변화가 생깁니다. 다시 말하면 마귀의 자식들이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고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기의 아들로 미리 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칭의된 자에게는 하나님의 보장이 있습니다. 엡2:19에 "이제 우리들은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하셨습니다. 칭의는 단 1회요, 결코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모든 생애는 내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장해 주서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그의 손바닥에 새겨 놓으셨다(사49:1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것을 누가 지우며 그 권능의 손에 붙잡힌 우리를 빼앗거나 해할 자가 없는 줄을 확실히 깨닫고 담대히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

 

3. 칭의받는 자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의로워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의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1) 성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죄를 짓지 아니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범죄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알지 못해서, 약하여 범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날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빌2:12).

(2)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자를 사랑하느니라(요일5:1)"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고 하였습니다.

(3)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2)"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시며 보살펴주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어떠한 시험도, 환난도, 참고 견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똑같은 의의 옷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기업을 보증받는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담대히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 내 공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보시고 베푸신 크신 긍휼을 받았으므로 성결하게 살고 서로 사랑하면서 그날까지 지켜 주시고 승리케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힘 있게 살아나가시기 바랍니다.

쾌 락

성 경 활 용

1. 쾌락의 일반적 성격

(1) 헛된 것이다.

(전2:1)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2) 영적으로 죽었다.

(딤전5:6)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3) 늙으면 낙이 없다.

(창18: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네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4) 결실하지 못한다.

(눅8:14)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5) 종노릇하게 된다.

(딛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2. 영적인 쾌락

(1) 하나님께 있다.

(시16:11)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2) 그리스도를 위한 핍박을 기뻐한다.

(고후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제하노니

관련원어풀이

1. !ygWn[}T' hBe 바트 타아누-님

쾌락하게.

(아7:6)

 

2. filhvdono" 필레-도노스

쾌락을 사랑하는, 향략적인.

(딤후3:4)

 

3. hJdonhv 헤도네

(1) 기쁨, 쾌락.

(벧후2:13)

(2) 향락, 육적인 쾌락.

(눅8:14, 딛3:3)

(3) 격정, 정욕, 욕망.

(약4:1)

설교예화자료

꽃에 묻혀 죽은 원로의원들

 

원로원의 권력을 시기하는 로마의 황제인 헬리오가발루스는 큰 축제에 전체 원로의원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들이 술에 취하여 정신을 잃었을 때, 헬리오가발루스는 연회장을 떠났습니다. 출입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고 큰 잔치는 계속되었습니다. 황제는 천정에 있는 유리문으로 그들에게 소리치며 싱싱한 월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화환과 꽃들이 그들에게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싱싱한 월계수를 동경하면서 아주 만족하게 되었습니다. 원로의원들이 "됐어, 이젠 됐어!"라고 소리쳤으나 꽃들은 계속해서 뿌려졌습니다. 그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들은 문쪽으로 서둘러 갔습니다. 그러나 움직일 수 없었고, 빠져 나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참혹한 소동은 모든 사람이 묻힐 때까지 계속되었고 살인적인 많은 꽃더미 속에서 모두 질식해 죽고 말았습니다.

 

 

고목나무에 갇힌 여우

 

배가 고픈 여우가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먹을 게 있나 해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데 큰 고목나무 밑쯤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나왔습니다.

재빨리 그곳으로 가보니 커다란 고목나무 밑에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그 속에는 농부가 점심으로 가지고 온 빵과 고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여우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며 구멍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구멍은 매우 좁았지만 배가 홀쪽해진 여우는 간신히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아이구, 맛있어라. 냠냠!"

누가 올까 무서워 정신없이 먹은 여우는 불룩해진 배를 만지며 만족한 웃음을 웃었습니다.

"다 먹었으니 어서 빨리 도망가야지."

그러나 어찌나 많이 먹었던지 배가 너무 불룩해져 도저히 그 구멍을 빠져나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쩜 좋아, 이거 큰일 났네. 이러다가 농부에게 들키면 난 꼼짝없이 죽게 되는데‥‥‥‥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이 없자 여우는 그만 겁에 질려 울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여우가 물었습니다.

"넌 왜 그 속에서 울고 있니?"

엉엉 울던 여우는 눈물을 닦으며 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지나가던 여우는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으며,

"하하하, 우스워 라! 울지 말고 네가 그 속에 들어가기 전처럼 배가 홀쪽해지도록 기다리렴, 그러면 다시 나을 수 있을테니까."

하고 잔뜩 약을 올리며 지나갔습니다.

 

 

모랄 스토리

 

어떤 배가 항해를 계속하고 있을 때, 배가 항로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바다는 다시 고요해지고, 아름다운 만(灣)에 있는 섬 곁에 닿아 있었습니다. 배는 그곳에 닻을 내리고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그 섬에는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맛있게 보이는 과일이 열린 나무들이 있어서, 시원한 나무 그늘을 만들어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고 있었습니다. 배의 손님들은 다섯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첫째 그룹은, 자기들이 섬에 상륙해 있을 동안에 적당한 바람이 불어 배가 떠나가 버릴지도 모르므로, 아무리 이 섬이 아름다워도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지에 빨리가고 싶어서 전연 상륙하지 않고 배에 남았습니다. 둘째 그룹은, 서둘러 섬에 상륙하여 향기로운 꽃향기를 맡고 푸른 나무 그늘 아래서 맛있는 과일을 따먹고는 원기를 회복하자 곧 배로 돌아왔습니다. 셋째 그룹은, 상륙했으나 섬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에 때 마침 좋은 바람이 일어났을 때 배가 출항해 버리리라 생각하고는 당황하여 달려 돌아왔기 때문에 소지품을 잃어버리거나 자기들이 애써 차지하고 있던 배 안의 좋은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넷째 그룹은, 바람이 일어나서 선원들이 닻을 올린 것을 보았는데도 아직 닻이 올려지지 않았으니 선장이 자기들을 남기고 출항할 리는 없으리라는 갖가지 이유를 붙여서 오래도록 그 섬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배가 항구를 떠나려는 것을 보고는 당황하여 헤엄쳐서 배의 옆구리에 기어올라왔기 때문에 바위나 배의 주위에서 상처를 입어, 그 상처는 항해가 끝날 때까지 낫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째의 그룹은, 너무 많이 먹고 또 아름다운 섬에 도취되어 배가 출항할 때 울리는 종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숲속에 있던 맹수에게 잡아먹히거나 독이 든 과일 따위를 먹고 병이 들어 모조리 전멸해버렸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느 그룹에 속했을까요.

잠깐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배는 인생에 있어서 선행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섬은 쾌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룹은 인생에서 쾌락을 조금도 맛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그룹은 조금은 쾌락에 잠겼지만, 자신이 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무는 잊지 않았습니다. 가장 현명한 그룹입니다.

셋째 그룹은 쾌락에 지나치게 잠기지 않고 돌아왔지만, 역시 좀 고생을 했고,

넷째 그룹은 돌아왔지만 돌아오는 것이 늦었기 때문에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상처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빠지기 쉬운 것은 다섯 번째 그룹입니다. 일생을 허영때문에 살거나, 장래의 일을 잊어버리거나, 달콤한 과일 속에 독이 들어 있는 것도 모르고 먹거나 합니다.

 

 

어록·시·묘사

 

쾌락은 육체적인 것이요, 관능적인 것이요, 일시적인 것으로 그것은 한 번 충족되면 곧 시들해지며 물리고 만다. 그래서 육체적 쾌락을 행복감으로 알거나 더구나 삶의 보람으로 알고 좇다가는 허망밖에 남지 않음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는 바다.

(구상/ 삶의 보람이라는 것)

 

한 시간의 쾌락을 위하여 하루를 수고하며 하루의 영광을 찾아서 일 년을 애쓰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모든 환난과 수고는 마침내 죽음으로 끝나고‥‥‥‥

(김형석/ 오늘을 사는 지혜)

 

적당한 쾌락은 정신의 긴장을 풀리게 하고 진정시킨다.

(세네카/ 분노)

 

가장 짧은 쾌락이 가장 달콤하다.

(파쿼/ 쌍둥이 적대자들)

 

쾌락은 일시적이고, 명예는 불멸이다.

(페리안데르)

 

우정보다 기품 있는 쾌락은 인생에 없다.

(S. 존슨)

 

고통에 두 가지가 있는 것처럼 쾌락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육체적 쾌락이고, 다른 하나는 예상의 쾌락이다.

(C.A. 엘베시우스/ 인간론)

 

대개 쾌락은 고통의 반이나 되는 인상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J. 벤담/ 입법론)

 

쾌락은 죄다. 그리고 때때로 죄는 쾌락이다.

(바이런/ 돈 주앙)

 

환락은 생명을 연장하고 건강의 원인이 된다.

(N. 유들/ 랠프 로이즈터 도이즈터)

 

쾌락은 다른 사람과 같이 나눌 때 더 큰 기쁨을 준다. 그것을 혼자서 맛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D. 크리소스톰/ 왕권에 관한 제3논의)

 

쾌락을 놓아 두는 것에 있지 않고, 쾌락에 이기고 지지 않는 것이 최상이다.

(아리스티푸스)

 

쾌락을 탐함으로써 자신을 벌하지 말라. 식도락으로 자신의 감각을 포만케 하지 말라.

(T. 브라운 경/ 기독교 도덕론)

 

모든 쾌락에는 적절한 정도가 있다. 적절하게 그치면, 도리어 향기와 맛을 보태게 된다.

(T. 고티에)

 

쾌락은 펼쳐진 양귀비 같아서 꽃을 쥐면 핀 꽃은 시든다. 또 쾌락은 강에 떨어지는 눈과같아서 한순간 희지만 그 다음엔 영원히 녹아버린다.

(E. 번스)

 

쾌락을 즐기는 사람이 되려면 보기 드문 자질이 필요하다.

(A. 카뮈/ 알제의 여름)

 

쾌락으로부터 슬픔이 일며 쾌락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쾌락의 탈을 벗은 인간은 이미 슬픔도 공포도 없노라.

(팔만대장경)

 

유익한 즐거움이 셋 있고 해로운 즐거움이 셋 있느니라. 풍악에 맞추기를 즐거워하고, 남의 좋은 점만 하기를 즐거워하고, 현명한 벗 많이 갖기를 즐거워함은 유익하며, 교만하게 굴기를 즐거워하고, 방탕하게 노는 것을 즐거워하고, 놀이하는 것을 즐거워함은 해로우니라.

(공자/ 논어)

 

남에게서 받은 쾌락이란 것은, 약속한 만큼의 것을 결코 지불한 일이 없는 것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의 쾌락은 반드시 약속한 것 이상의 것을 지불한다. <*자발적으로 애쓰는 것은 쾌락이다>

(알랭 어록)

 

쾌락은, 무한과 한 몸이 되는 경지에의 신비로운 길의 하나이다.

(A. L. 헉슬리)

 

너무 지나친 쾌락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다. 너무 많은 협화음들은 음악에서 지루한 감을 준다. 너무 많은 이익은 우리들의 신경을 건드린다. 우리는 우리의 빚을 갚고도 남을 자금을 갖기를 원한다

(파스칼/ 명상록)

 

환락에는 감추어 두어야 할 정도라는 것이 있다. 이 정도를 넘으면 남을 성나게 하며, 추행이라고 불리어 군중의 복수를 받을 것이다.

(G. 상드/ 부흐우리의 독)

 

쾌락은 쾌락이 없는 것같이 보이는 곳에 가장 많다.

(J.P. 블랑샤르)

 

지적 쾌락의 추구에는 미덕이 존재하고 육체적 쾌락의 추구에는 악덕이 존재한다.

(G. E. 스미스)

 

나는 맛의 쾌락, 성의 쾌락, 소리의 쾌락 및 아름다운 모양의 쾌락을 제쳐놓고 선인들을 생각할 수 없다.

(에피쿠루스)

 

쾌락의 달콤함은 불과 몇 분밖에 계속되지 않지만, 우정 이 베푸는 행복, 한평생을 통해서마음의 양식이 된다.

(G.A. 뷔르거/ 골곤데의 왕비)

 

쾌락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 그 자체 속에서 쾌락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나의 행복에의 비밀이다.

(A. 지드)

 

우리들에겐 길가의 밭에서 훔쳐 먹는 사과처럼 새콤하여 좀더 단맛이 있었으면 싶었던 조그만 쾌락들도 있었다.

(A. 지드/ 지상의 양식)

 

공포 섞인 쾌락은 사랑을 도취시킨다.

(A. 프랑스/ 에피퀴르의 정원)

 

인간의 마음의 주(主)가 되는 동인(動因)또는 활동 원리라는 것은 쾌락이라는 것이다. 이 쾌락의 감각을 우리들의 사유와 감정의 양쪽으로부터 떼어 버린다면 수동도 능동도 욕망도 의욕도 모조리 불가능해질 것이다.

(T.E. 흄/ 인간본성론)

 

쾌락은 이따금 오는 방문객이지만, 고통은 잔인하게 우리에게 매달린다.

(J. 키츠/ 엔디미언)

 

쾌락은 진리의 발견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탐구 속에 존재한다.

(L.N.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쾌락은 일종의 죄요, 때로는 죄가 일종의 쾌락이다.

(바이런/ 돈 주앙)

 

인간들이 술을 마시며 화환과 향기와 여자를 요구하는 동안에, 노령은 모르는 사이에 기어든다.

(유베날리스/ 풍자시집)

 

현대와 같이 옹색하고 저속한 시대에서는 그 쾌락에 있어서 야비하게도 육체적이고,그 목적에 있어서 비열하게도 범속한 시대에서는 이것이야말로 아마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만족한 기쁨일 것이다.

(O.F.O.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쾌락이란 자연의 음미이고 그 승인의 표정이다. 우리가 행복할 때는 항상 선량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선량하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으니까.

(O.F.O.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쾌락은 모든 이성적 피조물(인간)의 대상이요, 본분이며, 목표이다.

(볼테르)

 

쾌락의 추구자는 쾌락의 발견자가 아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무관심하다.

(W. 샤프)

 

쾌락은 금방 지나치게 강렬해진다. 그러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쾌락은 뼈저린 고통이 된다. 나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말하자면 전신마비 증세를 일으킨다.

(H. 미쇼/요동하는 밤)

 

유능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고통 많은 생애를 보내며, 무능하고 고약한 사람이 유흥과 오락에 날을 보내는 실례가 세상에는 적지 않다. 이것을 보면 세상에서의 쾌락의 가치를 알 수 있다.

(G.W.F.헤겔)

 

진실은 언제나 씁쓸하지만, 쾌락은 악행을 수반한다.

(성 제롬/ 서간집)

 

행복은 덕의 보수는 아니다. 도리어 그 자신이 덕인 것이다. 또 우리들은 쾌락을 억제하고 있으므로 행복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즐거워함으로써 쾌락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B. 스피노자/ 윤리학)

 

쾌락 자체는 악하지 않고 선하다. 반대로 고통 자체는 악이다.

(B. 스괴노자/ 윤리학)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은 창부나 할 것이지 인간다운 사람의 짓은 아니다.

(아낙시 만드로스)

 

쾌락주의자에 게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을 충족시킬 권리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따라서 삶의 목표인 "쾌락"을 실현할 근거도 되고 있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육체적인 쾌락은 자극이 강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쾌락을 즐길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의해서 향유된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쾌락은 그것을 얻기 위하여 남이 바라는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까워하지 않는 통화이다.

(B. 파스칼/ 팡세)

 

현재 맛보고 있는 쾌락을 거짓으로 느끼고, 아직 맛보지 않은 쾌락의 공허함을 모르기때문에 마음의 동요가 생긴다.

(B. 파스칼/ 팡세)

 

인생에 순수하고 지속적인 쾌락은 단 세 가지로서 모두 무생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책과 그림과 자연의 얼굴이다.

(해즐리트/ 미술 비평)

 

우리는 현재의 쾌락이(복지와 기쁨 같은 능동적 감정과 대조되는 수동적 감정으로서) 인간존재의 문제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대의 사회적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쾌락적 충동의 만족이 인구의 소수에게만이 아니라 과반수 이상에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 실험의 해답은 이미 부정으로 나와 버렸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막간(휴식시간)을 즐기는 이외에는 생과 사를 치료하는 방법이 없다.

(G. 산타야나/ 영국에서의 독백)

 

환락은 망상 위에 세워지지만, 행복은 반드시 진리 위에 세워진다.

(S. 보부아르)

 

쾌락에 대한 감각은 불쾌에 대한 정신적 최소량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E. 케스트너/ 파비안)

 

쾌락은 일종의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맛보기 위해서는 필수품인 안도가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스탕달/ 변애론)

 

부자가 가지는 쾌락은 가난한 자의 눈물에 의해서 얻어진다.

(T. 풀러/ 격언집)

 

쾌락이란 자유의 노래, 그러나 그것이 자유는 아니노라. 쾌락이 란 그대들의 욕망이 꽃핀 것, 그러나 그것이 열매는 아니노라.

(K. 지브란/ 예언자)

 

세상의 쾌락은 오래지 않고 바른 법은 듣기 어려우니, 어찌 어물어물 인생을 헛되이 보내랴.

(지눌)

 

쾌락에 대항하는 것은 현자의 역할이요, 쾌락의 노예가 되는 것은 우자의 역할이다.

(에픽테투스/ 단편집)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쾌락을 구하면서 그 쾌락조차 넉넉히 얻지를 못한다.

(소크라테스)

 

쾌락에는 악의 덫이 있다.

(플라톤)

 

쾌락에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랑은 포만된다.

(M. V. 마르티알리스)

 

세상에 전하는 네 가지 쾌한 시는, 큰 가뭄에 단비를 만나는 것, 타향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 동방(洞房)에 화촉을 밝히는 밤, 금방(金榜)에 이름이 걸릴 때이다. 그러나 가뭄 끝에 비록 비를 만났다 할지라도 비 뒤에 또 가물고, 타향에서 친구를 만나더라도 다시 또 작별을 한다. 동방의 화촉이 어찌 생이별 안할 것을 보증하며, 금방에 걸린 이름이 어찌 우환의 시작이 아닌 것을 알겠는가. 이것이 마음에 틀리는 것이 많고 마음에 쾌한 것이 적은 것이니 탄식할 뿐이다.

(이규보/ 백운소설)

 

말하는 쾌락은 숨쉬는 행동과 함께 일어나는 여자들의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이다.

(A.R. 르 사지/ 질 블라스)

 

쾌락과 사랑은 위대한 행동의 날개이다.

(괴테/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

 

쾌락이란 다만 고통을 싸고 있는 막에 지니지 않는다.

(셸던/ 쾌락)

 

쾌락은 늪과 같다. 멈추어 서지 말고 그 위를 가볍게 달려가야 한다.

(B. L. B. 퐁트델)

 

쾌락 그 자체는 죄악이 아니다.

(S. 존슨, 보즈웰/존슨전)

 

쾌락은, 그것을 찾는 곳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

(S. 존슨)

 

쾌락은 악에 대한 최대의 동기다.

(플라톤, 플루타르크/ 영웅전)

 

행복은 영원히 빛나는 다이아몬드, 쾌락은 한 방울의 물.

(C. 부플레)

 

뱃사공이 암초를 피하는 것처럼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는 육체적 쾌락을 멀리한다.

(나폴레옹 1세)

 

육욕의 늪에서 들고 나오는 것은 진주가 아니라 자갈이다

(H. 발자크/ 잠언과 수상)

 

마시고 춤추고 운고 거짓말하자. 밤새도록 비틀거리며 즐기자. 내일이면 우리 죽을지도 모르니!(그러나 아아 누가 정말 죽었던가)

(D. 파커/ 우상 숭배의 결점)

 

쾌락을 경멸하라. 고통으로 얻은 쾌락은 해로우니라.

(호라티우스/ 서간집)

 

쾌락을 좇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일조차도 잊어버린다.

(M. T 키케로)

 

쾌락은 육체의 어느 한 점의 행복에 불과하다. 참된 행복, 유일한 행복, 완전한 행복은 인 전체의 평온 속에 있는 것이다.

(J. 주베르/ 팡세)

 

모든 일에 있어 최대의 쾌락 뒤엔 싫증이 온다.

(키케로/ 웅변술)

 

사람은 생과 쾌락 중 그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국 속담)

 

모든 쾌락을 얻기 위하여서는 고난이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고난이 많으면 많을수록 쾌락도 또한 크다. 그리고 허위의 쾌락과 진정한 쾌락과의 차이는,

후자가 대금 선불임에 대하여 전자가 대금 후불임에 있다. 시시한 쾌락만큼 인간을 작게하는 것은 없다.

(J. 주베르/ 팡세)

 

쾌락을 좇는 자는 선을 자기의 관능에 둔다.

(M.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변화하면서 반복되는 쾌락만큼 즐거운 쾌락은 없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기쁨이 미루어지는 것은 즐거운 고통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즐거움의 극치는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이다.

(J. 라 브뤼예르/ 사람은 가지가지)

 

쾌락을 주는 자는 고난에서 구원해 주는 자만큼이나 자비롭다.

(G. 무어/ 인상과 의견)

 

우리들은 우리들의 이와 손톱으로 인생의 쾌락을 붙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나이는 우리들로부터 쾌락을 하나하나 앗아가버린다.

(M. E. 몽테뉴)

 

쾌락과 행동은 시간을 짧게 느낀다.

(W. 셰익스피어/ 오셀로)

 

후회 없는 쾌락은 없다.

(J. 레이/ 영국 격언집)

 

쾌락을 사랑하는 자는 쾌락으로 멸망함이 틀림없다

(C. 말로/ 파우스투스 박사의 비극)

 

쾌락을 버려라. 신을 사랑하라. 이것이 실로 무한의 진리로서, 이 마음으로 일하고, 처신하는 사람은 안심입명의 땅에 설 수 있다.

(T. 칼라일)

 

쾌락은 행복하게 사는 시초요, 끝이다.

(에피쿠로스)

 

인생의 쾌락이라고 하는 것은 뜻하지 않게 내려 덮여 오는 재난에 의해서 도리어 얻어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고난에 의해서도 얻어지는 것이다. 마시고 먹는 쾌락은 먼저 그것에 앞선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짠것을 먹지만 이것은 짠것으로 말미암아 괴로운 열이 나기때문에 마시고 이 열을 식히면서 쾌락을 얻기 위해서이다. 또 새색시들은 약혼을 한 후 곧 신랑한테로 가지 않도록 정해져 있는데, 이것은 신랑이 만약에 신부를 약혼 즉시로 맞이한다면 신랑에게는 그녀를 그리워하는 시기가 없게 되므로 혹시나 남편이 된 후에 그가 그녀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의구심에서 온 관습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쾌락은 이슬 방울처럼 덧없이, 웃는 동안 없어진다.

(R. 타고르/ 정원사)

 

쾌락이란 미덕의 좀더 즐겁게 표현된 이름에 불과하다.

(영/ 야상)

 

쾌락의 샘의 복판에 쓴 것이 솟아 나와 꽃밭 속에서도 목을 죈다. < *우리가 갖는 쾌락이나 재물들은 고통과 불편이 다소 섞여 있다는 뜻>

(루크레티우스)

 

레크리에이션(기분전환)으로서는, 쾌락이 일보다 훨씬 달콤하다.

(R.D. 히치코크/ 영원한 보상)

 

가볍고 조촐한, 그 조상(彫像) 같은 종아리에/나는 미친 사내처럼 몸이 오그라져/태풍 품은 납빛 하늘 같은 그 눈에서/ 마음 녹이는 달콤한 맛, 목숨 젓는 쾌락을 마시고 있었다.

(C.P. 보들레르/ 지나치는 여인에게)

 

큰 시계가 회전할 때마다/ 낮 사이 해는 넓힌다/내 쾌락의 엷은 자락을, 얽어 짠 빛의 얼룩 무늬를

(P. 엘뤼아르/ 달과 해 사이에서)

 

내 마음이 뒤 따라다니는 꿈으로 피곤해져/ 현실로 돌아와 배부름을 얻으려 하자/ 자아가 의지하려 하는 헛된 쾌락 속에서/ 나는 심한 혐오를 느끼며 죽을 것만 같다.

(뮈세/ 신을 향한 희망)

 

잠시뿐인 쾌락에 마음을 두지 말고, 정의를 힘써 행할지며/ 가능성 안에서 동요하지 말고, 현실적인 것을 대담하게 붙잡을지라.

(본회퍼/ 놀라운 변화)

 

속이는 죄와 빨리 달마나는 쾌락과 모두 실패하는 계획들‥‥/ 이토록 아픈 마음에 위로와 쉼과 평안은 어디에 있는가? / 예수께서 지체하지 않고 아낌없는 자비를 베푸시나니/ 회개하는 그가 바로 영생을 얻는다네.

(라이스/ 와서 마셔라)

 

땅 위의 쾌락은/음성을 갖지 않고/불안한 사람을/ 쉽사리 발광시킨다.

(D. 뢰스케/ 불의 형상)

 

그이는 꿀벌이 되어 버려 가지고/ 나의 꽃 꿀에 취해 버려서/ 꽁지의 침이 빠지도록 아직도 인간으로 돌아오질 않아요.

(등원정/ 그 한 마디가)

 

풀어뜨린 머리카락을 연인의 발 아래 펼치고 있다. / 큰 눈은 입 벌린 복숭아처럼 엷게 벌어졌고/ 그 눈매가 말하는 쾌락에 불타고 있다. / 그리고 반짝반짝 움직이기 쉬운 빛을 던지고 있다. //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고 상대로 사랑하게 한다고 한다. / 한 주인이 있어 그녀로 두렵게 한다. / 그것이 그녀가 즐기는 쾌락이다. / 남자는 거칠고 쾌락을 주는 방법을 모르며 오직 빼앗을 따름

(비니/ 삼손의 분노)

 

모든 쾌락의 옥수(獄囚)가 되어 버린 정신/모든 욕망의 포도가 되어 버린 의지는/보다 고상한 희열,초자연적 열망의 씨를 받아 심을 수 없다.

(토마스 머튼/ 명상의 씨)

 

세속의 인정과 행사를 향수하는/ 나의 심령에/ 우당탕 큰소리를 울리면서/ 내려주십시요.// 나는 지극히 약간 인간입니다/ 인간 세상을 쾌락하는/ 약하디 약한 인간입니다.

(노영란/ 성령의 빛줄기여)

 

1. 감사해서 흘리는 이 뜨거운 눈물 속에/내 전우주가 있습니다/ 내 전 생명인 있습니다/ 내 지극하고 상쾌한 쾌락이 있습니다/ 진정 이런 눈물은/ 내 목숨의 정수입니다.

(노영란/ 감사의 눈물)

 

예쁜 꽃을 따 모으기에/ 마음이 오로지 빠진 사람은/ 몸은 어느새 늙고 마나니/ 그 욕심 아직도 채우기 전에.

(법구경/ 화향품)

 

만인을 위해서 이 하계에서는/충분한 빵이 만들어질 것이다/ 장미도 미르테도 아름다움도 쾌락도/ 그리고 봉봉과자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처녀에 우로파는 결혼할 것이다/ 아름다운 자유의 수호신과/ 그들은 누워 서로 껴안고/ 첫 키스의 쾌락을 맛볼 것이다.

(하이네/ 독일 겨울 이야기 · 1)

 

나는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실컷 우는 것입니다.

(한용운/ 쾌락)

 

가을 홍수는 작은 시내의 쌓인 낙엽을 휩쓸어 가듯이 당신은 나의 환락의 마음을 빼앗아 갔습니다. 나에게 남은 마음은 고통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가기 전에는 나의 고통의 마음을 빼앗아 간 까닭입니다/ 만일 당신이 환락의 마음과 고통의 마음을 동시에 빼앗아간다 하면 나에게는 아무 마음도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별과 진주를 따서 게다가 마음을 넣어 다시 당신의 님을 만든다면 그때에는 환락의 마음을 넣어 주셔요/ 부득이 고통의 마음도 넣어야 하겠거든 당신의 고통을 빼어다가 넣어 주서요

(한용운/ 쾌락)

 

고통 속에서 쾌락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더러움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K. 지브란/ 사람의 아들 예수)

 

우리는 아버지의 제단을 떠나 돈과 쾌락과 권세의/ 거짓 신들을 섬겨왔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소서

(콘라드 힐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벗이 삶을 세상의 쾌락으로만 채우려는/ 어리석음을 깨닫도록 하려네/ 내게 시간이 있는 동안에

(미리암 브라운/ 지금의 시간)

 

나는 젊음을 낭비했노라/ 나의 향락만을 위하여/ 언젠가는 내가 뿌린 곳에서/ 언젠가는 내가 뿌린 곳에서/ 쭉정이를 거두리란 것을 망각한 채로// 일생 중 영혼이 가장 맑고 예리한 때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나/ 내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나/ 나는 순간 순간을 탕진했노라.// 이제 젊음은 사라지고 혼자 남아/ 향락에 대한 비애만을 거둬들이노라/ 내가 스스로 증명해 보이려 했던 것은/ 하나의 공허한 물거품이었어라.

(A. 제퍼리/ 지혜)

 

세상의 향락에는 쓸 시간이 많아도/ 주를 위해서는 쓸 시간이 없는가/ 세상의 부질없는 일에는 시간을 쏟아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는/ 쏟을 시간이 없는가/ 그들에게 생명의 기쁨을 전할/ 중요한 시간은 흘려 버리는가/구원해 주시오 구원해 주시오!/ 저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는가.

(루시 메이어/ 너를 부르신다)

 

쾌락이란 자유의 노래,/ 허나 그것이 바로 자유는 아닌 것./ 쾌락이란 그대들 욕망의 개화,/ 허나 그것이 열매는 아니다. / 쾌락은 정상을 향하여 소리치는 심연,/ 허나 그것이 심연은 아니며 정상도 아니다. / 그것은 날개 달린 새가 우리에 갇혀 있는 것,/ 허나 사방은 둘러싸여져 있지 않다. / 그렇다, 실로 쾌락이란 자유의 노래이다. / 그러므로 내 기꺼이 그대 들로 하여금 가슴 가득히 그것을 노래하게 하리라. 하지만 노래하느라 그대들 기운을 잃게 하지는 않으리.//그대들 젊은이 중 어떤 이는 마치 쾌락만이 전부인 것처럼 얻으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심판받고 비난을 받는다. / 허나 나는 결코 그들을 심판하지도 견책하지도 않으리라. 나는 그들에게 쾌락을 구하게 하리라./ 왜냐하면 그들이 찾게 될 땐, 결코 쾌락 그것만을 찾게 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쾌락의 자매는 일곱, 그중 가장 어린 형제도 쾌락보다 아름다움을./그대들은 듣지 못했는가, 뿌리를 캐다 땅속에서 보물을 찾은 이의 얘기를?/또한 그대들 노인들 중의 어떤 이는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처럼 후회로써 쾌락을 추억한다. / 하지만 후회란 마음의 벌이 아니라 다만 마음을 흐리게 하는 것./ 여름날의 수확과도 같이 그들은 감사로써 쾌락을 추억해야 하리라./ 허나 만일 후회가 그들을 위로한다면 그들로 하여금 위로받게 하라.//또한 그대들 중엔 쾌락을 찾기에 젊지 않으나 또 회상할 만큼 늙지는 않은 이들도 있다. / 그들은 탐구하는 것이, 회상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 일체의 쾌락을 피한다. /혹 영혼을 돌보지 않게 되거나 죄를 짓지 않도록./ 하지만 이 도피 속에도 쾌락은 있는 것./ 그리하여, 비록 떨리는 손으로 뿌리를 캘지라도 역시 보물은 찾게 마련이다. /그러니 내게 말해다오, 영혼을 어기려 하는 자 누구인가./ 나이팅게일이 밤의 정적을 거역하는가, 혹은 개똥벌레가 감히 별을?/ 또 그대들의 불꽃, 혹은 그대들의 연기가 바람을 괴롭힐 것인가?/ 생각해 보라, 그대들 영혼이 막대기 따위로 휘저을 수 있는 고요한 연못인가?// 때로 그대들은 스스로 쾌락을 거부하면서도 그대들 존재 내부의 깊은 곳에 욕망을 감춰둔다. / 누가 아는가, 오늘은 없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실은 내일을 기다리고 있음을?/ 그대들의 육체조차 제 물려받은 바와 당연한 요구를 알고 있으니, 결코 속지는 않으리라./하므로 그대들의 육체는 그대들 영혼의 하프,/그로부터 달콤한 음악을 울리게 하는 것, 또는 혼란한 음악을 울리게 하는 것은 그대들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이제 그대들은 가슴속에서 이렇게 묻는구나. "어떻게 저희가 쾌락 속에서 어느 것이 선이며, 어느 것이 선이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까? "/ 그대들의 숲, 그대들의 정원으로 가 보라, 그러면 거기 그대들은 꽃으로부터 꿀을 모으는 벌의 쾌락을 알게 될 것이다. / 허나 벌에게 꿀을 바치는 것, 그것 또한 꽃의 쾌락임도 알게 될 것이다. / 왜? 벌에게 꽃은 생명의 샘,/ 또한 꽃에게 벌은 사랑의 사자(使者)이므로./ 하여 벌과 꽃 그들에겐 쾌락의 줌과 받음이, 필요하며 또 황홀한 기쁨인 것을.// 올펄레즈의 사람들이여, 부디 꽃과 벌처럼 즐거움기를.

(K. 지브란/ 예언자)

 

거리는 팅 비어 아무도 없도다/ 지난밤의 쾌락에 모두 잠들었도다.

(작자 미상/ 온 세상 잠들었을 때)

 

 

설 교 노 트

 

육신을 즐겁게 할까

전2:3

 

서론

솔로몬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자신이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자기의 육체를 즐겁게 할까, 어떤 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노력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육체의 쾌락이나 지혜로 자신의 절제를 이루어 보려고 노력하였지만, 그것은 결코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육신을 즐겁게 하려 합니까?

 

1. 쾌락을 즐기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먼저 남자를 창조하시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그를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시면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창2:18). 즉, 저들이 쾌락을 즐기며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할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네가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삼아 쾌락을 즐겼다고 하였습니다(창6:1-2).

어쩌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쾌락을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 술로 즐거워 하려고 합니다.

같은 처지라면 슬프게 사는 것보다 즐겁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고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요, 상정이니 그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죄악시할 것은 없습니다. 정당한 즐거움은 오히려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술을 마시고 육체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니 이것은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성경 잠언에서 보면, 술의 해독을 여러 곳에서 역설하였으며, 더구나 술을 먹고 즐긴다는 것은 자연히 그 다음에 남녀의 음란이 뒤따릅니다. 사람들은 음란한 행위로 육체의 쾌락을 마음껏 누리려고 하는데, 거기에는 반드시 술을 마시고 마취가 되어 미치광이가 됨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술은 곧 마물(魔物)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대단히 혼탁한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술로써 육신의 쾌락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시대 일수록 마음을 가다듬어 경건한 생활을 힘써야 하겠습니다.

 

3. 심령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합해져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즐거움을 찾음도 당연하지만, 영혼의 즐거움이 더욱 귀중한 일입니다. 이 일은 술이나 세상 물질, 육체의 소욕으로 될 수 없고,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그 영혼이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더구나 성도들은 육의 생활을 버리고 영혼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옛 사람을벗어 버리고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누구나 즐겁고 기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즐거움이 아니면 오히려 그 즐거움이 죄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헛된 노래

암6:5

 

서론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거짓된 안전감은 개인적 안일주의에까지 빠져서 선지자가 경고하는 소리를 하나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탈선된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데, 그중에도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 헛된 노래를 지절거린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참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헛된 일을 행하여 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헛된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헛된 수고를 한다고 하였고(전2:11), 헛된 자만으로 미혹한다고 하였으며(렘23:32), 헛된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였고(마5:33), 헛된 경배를 한다고 했습니다(마15:9). 그리고 헛된 영광을 구한다고 하였고(갈5:26), 헛된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딤후2:16). 그리고 본문에 나온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 것입니다.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는 일이 얼마나 미련한 일입니까? 지절거린다는 말은 내용도 알아듣지 못하게 떠들고 중얼거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참된 노래, 곧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성도의 입에서 세상의 속된 노랫가락이나 유행가만을 즐겨 부르는 것은 합당치 못하나니, 한 샘(泉)에서 쓰고 단물이 나올 수 없음같이, 성도의 입에서 찬송과 헛된 노래가 같이 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였습니다.

여기에 "다윗처럼"이라고 관사를 붙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하여 필요한 악기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조되어 사용한 악기들은 나팔, 비파, 수금, 제금, 퉁소, 소고 등이 있었으며, 모두 찬양과 예배에 응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 민족의 죄 때문에 당할 신벌(神罰)이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였으니, 그것은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향략과 심신의 연락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경주할 뿐이요, 세상 것만 생각하고 외모적인 것만 생각했습니다. 범죄한 인간들이 그 근본문제 해결을 힘쓰지 않고, 즉 회개할 줄 모르고 뻔뻔스럽게 안일 방종만 한다면, 찾아드는 신벌을 어떻게 피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생활을 선용하면, 하나님께 유익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들 자신에게도 유익과 혜택이 임하나, 반대로 나만의 육체를 위하면 결국 나에게도 손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결론

헛된 노래는 일시적으로 육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을 혼미케 하여 파멸로 이끌게 됨을 기억하고 우리 성도들은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는 찬양만을 해야 하겠습니다.

타 락

성 경 활 용

1. 타락의 원인

(1) 뱀의 꾀임으로

(딤전2:14)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죄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2) 사람의 계획하는 바가 악해서

(창8:21)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3) 아담의 원죄로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 타락의 결과

(1) 마음이 부패되고 거짓되었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2) 사단의 지배를 받는다.

(요8:34)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사59:2)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4) 약속의 언약에 대하여 외인이다.

(엡2:12)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5)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남이다.

(엡4:18)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 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6)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관련원어풀이

1. hb;Wvm] 메슈-바-

외면, 탈당.

(잠1:32, 호ll:7)

 

2. bbe/v 쇼-베-브

반역, 배반.

(렘31:22, 49:4)

 

3. [l;xe 첼라

떨어짐, 넘어짐.

(렘20:10)

 

4. parapivptw 파라피프토-

잘못을 저지르다, 배신하다, 배교하다.

(히6:6)

설교예화자료

허영의 도시에서 박해받은 이유

 

존 번연(John Bunyan)은 그의 책 가운데 나오는 「허영의 도시」에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은 이유를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째, 순례자들은 그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게 되었으며, 몇몇 사람들은 순례자들이 바보라고‥‥혹은 미쳤다거나‥‥ 외국 사람들 같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아무도 순례자들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가나안의 말을 하였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었던 시장 사람들에게 순례자들은 원시인과 다를 바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 순례자들은 시장에서 팔리는 모든 물건들을 몹시 경시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물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대신 "우리들의 거래는 하늘나라에서 한다. "며 위를 쳐다보았던 것입니다.

 

 

소년의 가엾은 성장과 타락

 

최근 내 책상으로 배달된 교회 회보에 현대의 우화 하나가 실려 있었습니다.

"언젠가 한 작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애가 태어난 지 삼 주일이 되었을 때,부모는 아이를 보모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두 살이 됐을 때 부모는 아이를 카우보이처럼 입히고 총을 주었습니다. 세 살이 되어 아이가 혀짧은 소리로 맥주 광고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아유, 깜찍해라!'하고 칭찬했습니다. 여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아이를 주일 학교에 넣었습니다. 여덟 살 때, 부모는 그에게 BB총을 사 주고 참새를 잡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혼자서 자동차 유리를 쏘는 법을 배웠습니다.

열 살 때, 그는 약방 신문 판매대에서 만화책을 보며 오후를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없었고 아버지는 바빴습니다. 열세 살때, 그는 부모님에게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늦게까지 밖에 나가서 놀 수 있다고 얘기했으며, 자기도 그렇게 하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는 편이 훨씬 쉽고 편하니까요. 열네 살 때, 부모는 그에게 2톤짜리 끔찍한 자동차를 주고 겨우겨우 면허증을 따내서 그가 몰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열다섯 살 때,하루는 경찰이 밤에 그의 집에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댁의 아드님을 데리고 있습니다. 아드님은 검거되었습니다. ' 그러자 그 아버지가 소리 쳤습니다.

'내 아들은 그럴 리가 없소!'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

 

 

어록·시·묘사

 

공중의 마음을 타락시키는 자는 그 죄가 공금을 횡령하는 거나 다름없다. < *뉴멕시코주 알버카크의 연설에서>

(A. E. 스티븐슨)

 

타락자는 우선 자신의 인격의 토대를 부순다. 정치적으로 선과 덕을 버리며 마지막에는 완전 파멸인 불신앙의 길을 더듬게 된다.

(T. 티하메르/ 순결)

 

우리들은 기호나 일련번호나 컴퓨터에 걸기 위해 뚫리는 카드의 구멍으로 타락했다.

(A. J. 토인비)

 

바닷가에 있는 조개를 주워 귀에 대보면 파도 소리나 그 조개가 살고 있던 넓고 넓은 바다의 고동이 들리는 것같이 느껴진다. 이와 같이 타락하면 청년의 마음에도 때로는 소년 시절의 이상(理想)의 메아리가 이 조개의 파도 소리처럼 울려 올 때가 있을 것이다.

(T. 티하메르/ 순결)

 

위에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타락의 정도가 크다

(영국 속담)

 

나쁜 생활은 일종의 죽음이다.

(영국 속담)

 

사랑보다도 허영심 쪽이 보다 많이 여자를 타락시킨다.

(데판 부인/ 서간집)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타락 이상의 타락은 없다.

(F. 모리아크/ 테레즈 데케이루)

 

타락의 원인은 너희가 보듯이 우주의 모든 것의 무게에 눌린 자의 저주받을 거만이다.

(A. 단테/ 신곡)

 

지혜와 학식을 증대시키려는 욕망이야말로 인간 타락의 첫걸음이었다. 이 길 때문에 인간은 영원의 가책으로 떨어졌다.

(M. E. 몽테뉴/ 수상록)

 

사람들은 누구나가 극히 자연스럽게 타락되어 있었으므로, 합리적인 계급 제도가 성립되는 것보다 세상 전체가 저하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C. P. 보들레르)

 

만물이 창조하는 신의 손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은 선하지만, 인간의 손에 넘어오면 모든것이 타락한다.

(J.J. 루소/ 에밀)

 

이쪽으로 저쪽으로 던져지면서/ 그들은 쾌락과 타락에서 흔들리고 있는 그네 사이의 레스라아다.

(H.E. 홀투젠/ 시간과 죽음에 관한 여덟 개의 바리아숑)

 

아직도/ 눈가루가 질펀한/ 미나리 밭에//‥‥얼음장 밑에서는/ 타락을 재촉하는/ 봄물의 뒤착임.

(장호/ 예감)

 

큰 타락으로 내 영광은 상실되었나이다!/ 나는 산 위를 참새처럼 방황합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가혹함에 내 혼은 당황하고/ 물 없는 사막처럼 당신 앞에 있나이다.

(라마르틴/ 사울의 노래)

 

다만 이 백성이 은혜의 광복 아래/ 사십 년을 보내는 동안,/ 타락과 배덕의 이만에서 백일몽을 꾸고 있습니다.

(고진숙/ 엘리야여 엘리야여)

 

하나의 슬픔이 태어나기 위해선/ 적어도 1 억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의 슬픔이 타락키 위해선/ 타락하여 달찍한 설탕물이 되기 위해선/ 얼마나 또 시간이 필요할까.

(신동집/ 하나의 슬픔)

 

성스러운 골고다의 주시여/ 여기 당신께 드릴 간청 하나 있으니/ 패배하여 타락한 죄인에 게/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듣게 하시고/ 죄악의 압박 속에 더럽고 추악한 자들과/ 슬픔과 고민 속에서 지치고 허약한 자들에게/ 당신의 죄사함을 조금이나마 보게하여/사랑으로 당신 앞에 엎드려 울게 하소서.

(오스왈드 스미스/오, 주의 사랑)

 

그리고 하염없는 희망들이/ 회색의 옷을 입고,/ 일몰 이후의 저녁 안개처럼/ 다가온다/ 다채로운 향략과 함께/ 세계는 저 멀리 놓여 있다.

(노발리스/ 밤의 찬가)

 

때때로 나도 지주이기도 했던 곳/ 때도 아직 덜 되어 타락한 내 넋에서/ 그렇게도 빨리 행복한 평온함이 날아가 버리고/ 어린애답지 않은 욕구와 불안의/ 괴로운 불길이 빨리도 심장을 불살랐던 곳.

(네끄라소프/ 고향)

 

 

설 교 노 트

 

모세의 기도

출32:1-14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을 받았고 그리고 때를 따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알지 못하고 모세가 산에 간 사이에 금과 은을 모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그것이 자기들을 인도해 낸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때 모세는 백성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기의 희생을 각오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1. 타락한 백성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본문 1-8절에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아론이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이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입니다. 인생은 원래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아니하고 보이는 것은 믿으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섬기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영적인 것이 아니고 육적인 것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겼으니 얼마나 큰 죄를 지었습니까? 하나님의 노여우심을 사도고 남음이 있었습니다.

 

2. 진노받는 백성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본문 9-10절에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을 잘 듣지 아니하는 소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제 크게 진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타락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지만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형식적이 아니라 적극적인 기도였습니다. 모세는 먼저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30-32)"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적극적으로 기도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켜서 백성들을 살려달라는데 뜻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

모세는 자기의 부귀 영화를 위하여 기도하지 아니하고 오직 범죄하고 벌받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기도는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게 하였습니다. 남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자기에게도 유익한 것입니다(욥42:10).

 

 

심각한 대화

마24:1-14

 

서론

마24:1-2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관점이 예수님과 제자 사이에 다름을 여실히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 이면과 장래성에 관해서 관찰하셨고, 제자들은 그 표면과 현실에 관해서 관찰하였습니다.

성경상 성전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물질적인 건물 성전이고, 다음은 영적인 심령 성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대화의 초점은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문제입니다. 그 원인은 무엇입니까?

 

1. 물질주의에 의하여 속화되고 타락한 데 있습니다.

성경상 어떠한 성전이든지 종교적인 본성을 상실하고 성전의 신성성을 속화시키거나 파괴하였을 때는 멸망을 받게 됩니다. 오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나 신앙생활이 물질주의 영향을 받거나 금력에 의해서 좌우되면서 교회의 신성을 속화시키거나 파괴하게 되면 멸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교회나 우리 신앙생활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보존되고 발전해 나아가야 합니다.

 

2. 명예주의에 의해서 속화되고 타락한 데 있습니다.

여기 에돔사람 헤롯 왕이 유대인들의 환심과 인기를 사기 위해서 정치적인 수단과 명예욕에 의해서 건축되었던 이 성전은 외식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명예주의로 인해서 더욱 속화되고 타락했으며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교회나 우리 신앙생활도 이러한 정치적인 수단이나 세속적인 명예주의나 인기주의에 의해서 속화되고 좌우되게 되면 멸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나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하여 신앙 중심에서 보존되고 발전되어 나아가야 합니다.

 

3. 교권주의에 의해서 속화되고 타락한 데 있습니다.

교권주의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교회 지도자들이 인본적인 권력이나 권위를 배경하여 자신들의 사리 사욕과 이권을 위해서 교회나 노회나 총회를 이끌어 보려는 야비한 행동 양식이라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바리새주의요, 중세기의 교황을 중심한 교권주의요, 우리나라 일제 말엽의 일본 기독교단이요, 해방후 기독교 연맹단체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교권주의를 삼가 배척하고 순수한 복음주의 신앙에 입각하여 순교적인 신앙으로 십자가의 피를 힘차게 주장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이 심각한 말세에 직면한 우리들은

(1) 하나님의 말씀과

(2) 성령의 능력과

(3) 보혈의 은혜로 승리해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도 영적인 감람산상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과의 깊은 대화를 해야되겠습니다.

 

 

영육의 타락의 결과

민25:1-13

 

서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발락과 발람의 저주로부터 지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적으로 타락하고 교리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은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영육간에 죄를 지으면 그 결과는 망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1. 성적으로 육이 타락합니다.

언제나 일시적인 성적 쾌락은 육적으로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압인들은 종교적인 수단으로 국난을 해결하려고 갖은 애를 쓰다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육적으로 타락시켜서 국악을 꾀하고 있는데,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24,O00명 이상이 염병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발락이 볼 매 얼마나 만족하게 여겼겠습니까? 그 이유는 자기들 군사를 투입하지 아니하여도 자체 내에서 스스로 자멸을 하니 말입니다. 도덕적 타락은 육의 타락을 초래하여 정신적으로 적을 이길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육적인 죄를 지으면 영적으로도 죄를 짓게 마련입니다.

 

2. 우상 숭배는 영적으로 타락합니다.

본문 2절에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란과 우상 숭배의 죄악으로 깊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육적으로는 성적 쾌락으로 인하여 완전히 타락하게 만들고 영적으로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하여 백성은 이래 저래 망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말하기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라(약4:4)"고 하였습니다. 결국 우상 숭배는 영적 타락을 가져옴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짝한 사람을 죄없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야 합니다.

 

3. 영육간의 타락은 사형에 해당합니다.

본문 3절에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삯을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롬6:23, 창2:17). 그러므로 최를 지으면 예외 없이 죽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말은 육신만 말하지 아니하고 영혼까지 포함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서 처형하실 때 일반 백성들과 지도자급의 처형 방법을 달리하였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염병으로 죽게 하시고 지도자급들은 공중 앞에서 공개 처형하셨습니다. 이는 지도자급들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실증하여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쾌락을 위해 영원히 망하는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결론

죄를 지을 때는 재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영육간에 멸망하는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용서받을 죄가 있는가 하면 용서받지 못할 죄도 있다고 하였습니다(요일5:16-17). 용서받을 죄를 지으면 이방에서 징계를 받아 회개하게 되고(고전11:31-32, 계13:19, 히12:7-8), 그러나 영혼이 구원받을 수 없는 자들이 죄를 지으면 이 땅에서는 육체적으로 징계를 받지 아니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롬1:24, 28-32).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멀리하는 온전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탄 식

성 경 활 용

1. 성경에서 묘사된 탄식

(1) 마음속에 깊이 탄식한다.

(막8:12) 예수께서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2) 먹기 전에 탄식한다.

(욥3:24) 나는 먹기 전에 탄식이 나며 나의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것 같구나

(3) 밤마다 눈물로 요를 적신다.

(시6: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4)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한다.

(겔21:6)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2. 탄식하게 되는 이유

(1) 양식이 얼어서

(애1:11)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2) 성령이 우리 연약함으로

(롬8:26)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3) 고역으로 인하여

(출2:23)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4) 근심으로 인하여

(시55:17)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5) 갇힘으로

(시102: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이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6) 죽음으로

(겔라:17)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7) 악인이 권세를 잡으므로

(잠29:2)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

(8) 꼴이 없으므로

(욜1:18) 생축이 탄식하고 소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3. 탄식의 종류

(1) 그리스도의 탄식

(막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2) 성령의 탄식

(롬8:26)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3) 성도의 탄식

(롬 8: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는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4. 탄식의 절과

(1) 기력이 약해지고 뼈가 쇠한다.

(시31:10)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2) 이마에 표를 받는다.

(겔9:4)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3)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시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정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4)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사35:10)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관련원어풀이

1. hn:a; 아-나-

신음하다, 괴로워하다, 한숨짓다.

(사3:26, 19:8)

 

2. hj;;n:a} 아나-하-

신음, 한숨, 흐느낌.

(시31:11, 사21:2)

 

3. qn"a: 아-나크

(1) 질식시키다, 약화시키다.

(렘51:52, 겔26:15)

(2) 슬퍼하다.

(겔24:17)

 

4. hq;n:a} 아나-카

비명, 신음.

(시79:11,말2:13)

 

5. dQn 누-드

(1) 움직이다, 요동하다.

(왕상14:15)

(2) 동정하다, 측은히 여기다, 위로하다.

(욥2:1, 사51:19)

(3) 슬퍼하다, 애도하다.

(렘22:10)

(4) 방황케 하다, 추방하다.

(왕하21:8, 시36:12)

(5) 슬퍼하다.

(렘31:18)

 

6. [r' 라

(1) 악한, 나쁜,

(창6:5, 삼상25:3)

(2) 모습이 악한, 볼품없는

(창41:3)

(3) 불운한, 불행한.

(사3:11, 렘7:6)

(4) 슬픈, 애처로운.

(창40:7, 잠25:20)

(5) 사악, 나쁜.

(창2:9, 잠28:5)

(6) 악의, 악함.

(창6:5)

 

7. stenavzw 스테나조

신음하다, 한숨짓다. 탄식하다.

(막7:34, 약5:9)

 

8. stenagmov" 스테나그모스

신음, 슬픔이나 고뇌의 한숨.

(행7:34, 롬8:26)

설교예화자료

영웅에 대한 베토벤의 실망

 

베토벤은 비인의 대사 베르나르도 장군에게서 나폴레옹에 대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베토벤은 그를 영웅으로 존경하면서 곡을 하나 지어 바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804년의 봄에 드디어 "영웅 교향곡"이 완성되었습니다. 베토벤은 기쁜 마음으로 곡 표지에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바침"이라고 써서 나폴레옹에게 보낼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의 귀에 상상도 못할 말이 들려왔습니다. 나폴레웅이 황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때 베토벤은 아주 낙담했습니다. 국민을 위해 싸운 영웅이 백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황제가 되었다는 배신의 행위가 베토벤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 자도 속된 인간이었군! 사기꾼이야, 파렴치한 사기꾼이야."하며 베토벤은 집에 놓아 둔 악보를 집어들고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게 바침"이란 표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이윽고 분노가 좀 가라앉자 베토벤은 슬픈 마음으로 "영웅 교향곡"이라 제목을 쓰고 그 아래에 어떤 위인의 영을 추도하며 이것을 "로프코비쯔 공에게 바침"이라고 다시 쓰고 그 속의 내용도 고쳤습니다.

 

 

우물에 빠진 염소

 

신나게 들판을 뛰어다니던 여우가 그만 실수하여 우물 속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어푸 어푸! 어쩌면 좋지?"

기어오르려고 발버둥쳤지만 자꾸만 아래로 다시 떨어지고 하였습니다.

"야단이네, 어쩜 좋지?"

여우는 울상이 되어 멍하니 위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햇볕이 쨍쨍 쪼이고 날이 몹시 더웠으므로 목이 마른 염소 한 마리가 우물을 발견하고 달려왔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자기가 우물에 빠졌다는 것을 염소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날이 어찌나 더운지 아예 이 우물 속에 들어와 물을 마시고 있다네, 물만이 기가 막히니 자네도 들어와서 실컷 마시게."

순진한 염소는 아무 의심도 없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습니다.

목이 몹시 말랐던 터라 염소는 정신없이 물을 마셨습니다.

"물맛 참 좋군!"

배가 부르도록 물을 마시고 난 염소는 그제서야 우물 밖으로 나갈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어떻게 나가야 하죠?"

그러자 여우는 걱정할 것 없다는 투로 설명했습니다.

"자네가 앞다리로 벽을 짚고 서 있으면 내가 자네 어깨를 밟고 먼저 올라가서 자네를 끌어내 주겠네."

"그것 참 좋은 방법이군요."

염소는 여우의 재치에 감탄하며 여우가 시키는 대로 앞다리를 올려 우물 벽을 짚었습니다.

여우는 염소의 등과 어깨를 발고 우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 이제 나를 끌어내 주시오"

염소가 우물 밖을 올려다보며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하하하, 이 바보 같은 염소야, 올라올 생각도 않고 그냥 무턱대고 우물 속으로 뛰어들다니! 그 속에서 맛있는 물이나 먹으며 잘 살아라!"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꽃다발 취소

 

24년 동안 덴마크 코펜하겐의 헬가 스쿨럼은 남편 오토에게 그들의 결혼 기념일에 자신에게 꽃다발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녀의 남편은 24년 동안 그녀에게 한 번도 꽃다발을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친 스쿨럼 부인은, 이번에는 자신쪽에서 남편에게

"급사해라!"는 덴마크어로 쓴 꽃다발을 보내도록 꽃장수에게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배달되기 전에 오토가 나를 위해 화려한 꽃다발을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주문한 꽃다발을 간신히 취소시키느라고 애를 먹었지요." 스쿨럼 부인의 말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천년 후에도 인간은, "아아, 인생은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하고 계속해 한탄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과 꼭 같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싫어할 것임에 틀림이 없다.

(A.P. 체호프/ 삼자매)

 

탄식은 마음의 자연스러운 말이다.

(T. 샤드웰)

 

곪아 터진 상처에서 냄새가 납니다. / 모두 나의 어리석었던 탓입니다. / 더 떨어질 수 없이 몰락한 이 몸,/ 날이면 날마다 슬픔에 잠겨지냅니다. / 몸 위에 성한 데라고는 한 군데도없고/ 속에서는 불이 납니다. / 맞고 짓밟혀서 실성한 이 몸,/ 가슴이 미어지도록 울부짖습니다. / 나의 주여, 이 가슴을 다 열어 보입니다. / 이 몸의 소원을 숨김없이 아룁니다. / 심장은 뛰고, 기운은 없어지고/ 이 몸의 안중마저 흐려집니다.

(구약성서 시편 38:5-10)

 

어느 틈에 가 버린 지난날의 즐거움을/ 너는 어이 머리숙여 탄식하느냐?

(W.S. 랜더/ 어이 탄식하느냐)

 

나의 요나단이여, 그대 위하여/ 깊이깊이 탄식해 마지 않노니/ 나의 기쁨이 다할 날 있을지라도/ 이 눈물이 마르는 날 없으리.

(아바엘라르 두스/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하는 다윗의 노래)

 

한숨은 바람이 되고 눈물은 세우(細雨)되어/ 님자는 창 밖에 불거니 뿌리거니/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무명씨)

 

밤낮으로 탄식만 한다고 우리 봄은 저절로 굴러들지 않으리니-/ 그대와 나, 개미떼처럼/한데 뭉쳐 꾸준하게 부지런하게/ 땀을 흘리며 폐허를 지키고/ 또 굽히지 말고 싸우며 나가자/ 우리의 역사는 눈물에 미끄러져/ 뒷걸음치지 않으리니-

(심훈/ 봄의 서곡)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기르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한탄과 더불어/ 잃어버린 행복을 슬퍼한다.

(괴테/ 첫사랑)

 

전에는 빈가지를 보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빈가지에 열린 별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 전에는 바람 소리에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겨운 음악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김상길/ 이제 이 자리에서)

 

이 이별 설워라고 망설이며/ 무심히 고개들어 앞길을 바라보니/ 우수수 가을 바람도 탄식 탄식하더라.

(영수각 서씨/ 哀別)

 

새는 세계를 계속 도망친다/ 두려움에 떨면서 날고 소리는 높으며/ 끝없는 슬픔을 탄식한다/아름다운 아벨과 그 죽음의 괴로움을/어두운 가인과 그 마음의 고뇌를/ 자기 자신의 젊은 나날을 탄식한다// ‥‥탄식하는 새가 날아가 버리자/ 그들은 그것을 비관론자라 또는 염세주의자라고 부르면서/ 자기는 강하여 지는 일이 없다고 느껴/ 새를 향해 돌을 던진다/새가 침묵하여 사라질 때까지./또 새의 슬픈 자리가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 소리가 들리지않게 하기 위해 음악을 연구하고 있다// 입 부리에 약간의 핏자국을 묻힌 새는/ 도시에서 마을로 계속해서 날고 있다/ 아벨을 추모하는 탄식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헤세/ 아벨의 죽음)

 

병들어 누운 몸에 가난은 웬일인가/ 백 년을 못사는 몸 그 아니 가련한가/ 날마다 같은 시름에 눈물겨워 하노라.

(계생/ 자탄)

 

아아 혜호한 원상(沅湘)의 물 갈라져 흘러서 물소리 처량타./ 긴 나그네 길은 어둡고 외롭고, 멀어서 끝이 없어라./ 노랫소리 그침없이, 슬픔과 탄식을 울먹거려도,/ 세상은 나를 버려 모르는 채,/ 이 심정 말하고자 하나 말할 길이 없구나./ 충성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진실한 성품을 가져도,/ 나의 옳고 그름을 바루는 이 없고

(굴원)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곳으로/ 온나절 울고 간 머언 뜸북이는/ 누구의 재촉입니까/ 누구의 탄식입니까// 여기/ 하늘빛을 우러러, 지금도/ 가슴 펄럭이는 나무가 서 있습니다.

(심일섭/ 나목)

 

하나님,오늘도 또한 나는 나의 마음이 당신을 향할 때에/ 아직도 솔직하지 못함을 탄식하고 있습니다. / 하여 설교단 대신 이들 솔직한 말을/ 당신에게 바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잠/ 14편의 기도 노래 · 12)

 

하나님이 최초로 만드신 빛이 내겐 꺼지고,/ 내 비탄을 좀 덜어 주었을/온갖 여러 기쁨의대상물은 무효로 되었다/ 최하의 인간이나 벌레보다/ 이젠 더 못해, 최하의 것들도 나보다는 낫다.

(밀튼/ 샘슨의 눈멈)

 

앗시리아의 미망인들은/ 비탄으로 통곡하였으며/ 그 우상들은 바알의 사원에서 부숴졌으니/ 그리하여 칼로써 교만하던 이방의 군대들은/ 주님의 시야에서 눈처럼 녹아 버렸노라.

(로드 바이런/ 산헤립의 파멸)

 

성모는 십자가 곁에서 슬픔으로 눈물 흘리며/ 깊은 비탄에 잠겨 있나니/ 아들이 십가가에 달린 동안 계속 그래라./ 한숨쉬며 비통함이 심하여/ 탄식하는 그의 마음은/ 칼로 찔리는 듯 아프시 어 라// 오오, 축복받은 독생자의 성모는/ 지금 크나큰 슬픔으로 해서/가슴 막히는 듯한 괴로움을 당하시네./ 이 세상에 그 이름도 드높은/ 아들의 처형을 지켜볼 때에/ 그 얼마나 가슴 아파 탄식하면서/비탄에 잠겨 몸을 떨며 휘청거리셨으랴.

(토디/ 비탄의 성모)

 

나의 탄식의 밤의 탑도 죽음의 번개를 상안(象眼)하는 선풍에 짓눌리고/불타고 있던 치부에도 전갈이 마른 모래에 뒹굴고 있다.

(이찌마루 아키라/ 밤의 노래)

 

당신은 변신하는 모습이시니/ 언제나 고독하게 운명 속에서 솟아나/ 환호하는 일 없고 탄식되는 일 없이/원시의 숲 그대로 이름조차 없이 계신 모습입니다.

(릴케/ 당신은 미래이시니)

 

나의 탄식이 것들어 있는 계곡이여/ 나의 눈물이 헤프게 번지는 강이여/ 들짐승이여, 유랑의 새여, 초록 강변/ 양편을 보며 헤엄치는 물고기들이여.

(페트라르카/ 소네트)

 

시청의 시계탑에서/ 시각과 거리가 먼/ 세상의 탄식인 양/그 목쉰 소리 공간 속에 녹아버린다.

(카르두치/ 눈 내림)

 

일 년의 저울추는/ 햇빛에서/ 그늘로/ 잔에서/ 잔의 탄식으로/조금씩 기울어져 간다.

(김현승/ 가을이 아직은 오지 않지만)

 

탄식의 눈물이 차가워 떨며/ 끌고 가는 발의 쇠덩어리를 거슬려/ 마리아는 머리숙이고 무덤에 접근한다

(나가세 기요코/ 밤은 이제 새려 한다)

 

참혹한 유성의 꿈으로 부서진 목숨들이/이슬이 되어 내리노니/ 기다리거라/ 슬프게 쓰러진 그대의 노을을 두고/ 만물의 탄식을 귓전에 두고/ 눈꺼풀에 잠그고/ 나도 이 뜬 세상 그대처럼 떠서/ 피를 흘릴 때까지.

(이병찬/ 갈보리의 노래)

 

실로 그대는 나의 불의를 지고/나의 비탄과 눈물을 이고/ 구역질나는 정욕의 똥을 쓰고/ 베르디의 처절한 음률처럼/ 서럽게 서럽게 가야만 했어라.

(김성영/ 아사셀의 염소)

 

한 마디의 탄식하는 말조차도/ 그대의 입술에서 흘러 나오지는 않으리./ 그러나 온화한 입가에 숨겨진 그대의 마음은/ 그 창백한 손이 모조리 말해 주고 있다.

(슈토름/ 여자의 손)

 

로테 한 사람에게 가슴을 태웠던/ 베르테르처럼은 이제 탄식하지 말아라/종을 어떻게 울릴 것인가 그것을 그대는/ 민중에게 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이네/ 경향)

 

장안 봄 저무는데,/ 시끌시끌 마차가 지나간다/ 모란이 필 때라면서,/ 서로들 꽃을 사간다// 정해진 값 따로 없고/꽃의 수에 따라 다르다/ 불붙는 빨간 꽃송이들,/ 자잘한 하얀 꽃다발들// ‥‥집 집마다 유행을 이루고/ 사람마다 마냥 열중한다/ 어떤 시골 노인이/ 꽃가게에 와 보더니,// 고개 숙여 장탄식한다/ 이 탄식은 아무도 모르리/ 한 떨기 고운 꽃은,/ 열 가구 몫의 세금.

(백거이/ 매화)

 

산의 열매는 대개 하찮은 것이지만/ 다닥다닥 상수리가 많이도 열렸다/ 단사처럼 빨간 놈도 있고/ 옻칠처럼 까만 놈도 있고// 그것은 비와 이슬이 스며들어/달게도 익었고,/쓰게도 익었다/ 멀리 복사꽃 피는 고장을 생각하니/ 더욱 한탄스럽다, 서투른 처세가.

(두보/ 북정)

 

내가 어린이였고,/ 들고 날 곳을 몰랐을 때에,/ 나의 방황하던 시선은/ 태양을 향했었다. / 마치 저 하늘에,/ 나의 탄식을 들어줄 귀가 있고/ 압박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 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다는 듯이.

(괴테/ 프로메테우스)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점을 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김소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지쳐버린 마음이여, 지 쳐버린 시간에/ 오라, 옳고 그름의 그물 벗어 버리고/ 마음이여, 다시 웃으라, 회색 황혼 속에서,/ 마음이여, 다시 탄식하라, 아침 이슬 속에서.

(예이츠/ 황혼과 새벽빛 속으로)

 

당신은 변신하는 모습이십니다/ 언제나 고독하게 운명 속에서 솟아나/ 환호되는 일도 없이, 탄식되는 일도 없이/ 원시의 숲 그대로 이름조차 없이 계신 모습입니다.

(릴케/ 당신은 미래이십니다)

 

설움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라/ 침묵의 하루 해만 또 저물었네// 탄식의 바닷가의/ 모래밭이니/ 꼭 같은 열두 시만 늘 저무누나.

(김소월/ 고독)

 

머슴은 내가 지나치게 슬피 탄식한다는 눈치구나/ 역시 인생에는 이별이 있는 법이라 함을 안다만,/ 다만 세월이 너무나도 빠르게 흐르는구나!

(소식/ 자유와 작별하며)

 

수많은 탄식/ 시간은 흘러서/ 아픔을 넘고/ 녹색 언덕의 푸름을 넘고/ 지금은 잠시/ 그대의 맑은 눈동자를 더듬네/ 떨어진 어진 눈물방울/ 무엇으로 담아 둘 것인가/ 눈물을 간직하려는/ 사랑의 원색

(노마 히로시/ 그대의 눈물)

 

보라/ 비탄에 잠겨 침묵하고 있는 내 사랑이/바다에서 산에 이르기까지/몸을 숙이고/기름진 대지를 굽어보고 있는 것을.

(스바스 무코파다이/ 붉은 장미를 위해서)

 

내가 느끼거나 또는 하는 것이/ 나를 하나님과 화평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나의 모든 기도, 나의 탄식, 나의 눈물로도/ 내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할 수 없다네.

(호레이셔스 보나르/ 구원)

 

그토록 기다려도 아직 응답이 없어/ "어쩔 수 없구나"하며 탄식하는 기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서서히 밝히시리니/ 그분은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네

(작자 미상/ 그가 열쇠를 가지고 계시네)

 

시대를 위하여 누가 나설꼬 하시는/ 님의 탄식, 님의 음성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이 땅에 아직 청년이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나를 쓰소서.

(김성영/ 이 아침에 거듭나게 하소서)

 

하나님을 믿으십시오/높이 계셔서 다스리시며/ 당신의 슬픔을 담당하시며/ 탄원자의 한숨을 들으시는/ 당신의 유일한 피난처,/ 그의 팔에 안기어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안나 쉽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근심과 절망의 그곳 마게도니 아!/ 온통 비탄에 싸여 근심으로 짐 지고 있으니‥‥/ 하나님의 사자 바울은/ 외롭고 쓸쓸하였으며/ 다른 자를 위로하는 이 사도는/ 자신을 위해서는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었네.

(폴 허친스/ 사랑의 손길)

 

내 마음의 두려움과/내일의 근심과 고통,/ 슬픔과 눈물이 있지만/ 오늘 내가 당신 손안에/ 거하도록 도우소서// ‥‥잠잠하고 신뢰하라./ 내일의 눈물도 모두 하나님께서/ 닦아주실 것이다/오, 탄식하는 영혼이여/ 주께서 오늘 네게 오시리라!

(마르다 니콜슨/그의 돌보심 안에서 쉬어라)

 

 

설 교 노 트

 

눈물 양식

시80:4-7

 

서론

사람들은 슬플 때는 눈물을 흘립니다.

이 시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을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스라엘의 멸망을 애도하는 아삽의 시입니다.

리처드슨의 대하소설 「파멜라」에서 눈물맛이 시큼하면 사랑의 눈물이요, 짭잘하면 슬픔의 눈물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오늘은 옛 신앙인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눈물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 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성을 앗수르 왕의 손으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왕하 20:5 6)"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눈물을 통하여 자기의 죽을 생명도 구원을 받고 나라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눈물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기중기요, 지렛대입니다.

 

2. 눈물은 죄에서 용서를 받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라고 하였습니다.

통회하는 눈물은 죄와 허물을 씻어내립니다. 눈물이 많으면 죄가 많이 싯기울 것이요, 눈물이 적으면 적게 씻기울 것이요, 눈물이 없으면(회개가 없으면) 죄의 씻음이 없을 것입니다.

 

3. 눈물은 복을 받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있습니다.

(1) 마음속 깊이 보이지 않는 죄

(2) 사회의 밑바닥을 흐르는 걷잡을 수 없는 죄의 힘

(3) 자연계를 지배하는 모순과 혼란, 이것이 기독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는 기독자 안에 성령이 거하기 때문이며 성령도 이에 따라 괴로워하며 이러한 고통에 관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육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와 하나님 사이의 간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는 이 고통도 결국 그들에게 선을 가져오게 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자에게 있는 탄식이 그들에게 특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론

탄식하는 인간은 그들 스스로는 하나님께 올 수도 없고 구원에 이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와 같이 성령도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27)"고 하였습니다.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애1:12-16

 

서론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당하자 예레미야 선지자는 눈물로 외쳤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치며 길거리로 나갔습니다.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이 민족의 환난이 너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외쳤습니다.

 

1. 먼저 나를 위해 울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사회성을 갖습니다. 나의 범죄는 또 다른 사람의 범죄를 낳게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도록 나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민족의 패망을 보고서 그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울었던 것은 의미가 있는 행동입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향하여 골고다로 향하는 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집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나 자신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내 상한 심령이 고침받기 위해서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는데, 그것은 바로 내 죄를 씻어주시 기 위함이었습니다(히5:7).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가 진홍 같더라도 주홍같더라도 눈처럼 양털처럼 희게 하리라(사1:18)"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애2:19)"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위해서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2. 교회를 위하여 울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후 성전을 재건하면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범죄한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면서 통곡하였습니다(스3:12).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받을 것임이요(마5: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 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라고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둘 것이며,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시 126:5 -6).

 

결론

저희를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다(5절)는 말은 기도 중에 눈물이 흘러내려서 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의 눈물이 땅바닥에 떨어질 때 죄악 벗은 영혼은 하늘에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도 눈물의 양복으로 살아가십시다. 눈물의 양식은 영혼을 배불리며,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세 가지 탄식

롬8:18-27

 

서론

본문에는 세 가지 탄식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피조물의 탄식, 둘째는 기독자의 탄식, 셋째는 성령의 탄식이 곧 그것입니다. 탄식이라고 번역하기보다도 '신음' 이라고 번역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음이란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발로입니다.

이 신음을 천지만유가 발하고, 그리스도인이 발하고, 성령도 역시 발한다고 합니다.

세 가지 탄식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피조물의 탄식이 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22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천연의 미(美)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미는 겨우 그 표현에 그치고 일보 그 이면에들어설 때는 천연은 미가 아니라 추(醜)이며, 조화가 아니라 혼란이며, 평화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귀를 대지에 대고 들으면 천연의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아프다. 나는 괴롭다. 인자야 어서 구원받아 당신과 함께 나를 구원하소서. 나는 패괴의 노예됨을 견딜 수 없으며, 당신과 함에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들어가기를 원하나이다. ' 라고 합니다. 자연은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아 그와 함께 결박되어 해방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2. 기독자의 탄식이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23절)"라고 하였습니다.

기독자의 고민은 마음에 이미 성령의 처음 열매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몸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령과 육과의 싸움이 그칠 줄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 독자라고 결코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마음속에 견디지 못할 비탄을 품고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가 이르면 그들은 아들된 신분이 실현되고, 몸은 새 영체로 부활되고 또는 성화되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탄식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절)"고 하였습니다. 기독자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탄식(신음)이 곧 그들의 죄악 때문에 멸망할 것을 생각하시며 우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를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게 하기 위해서 울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본질적인 사명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교회의 영적 권세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를 생각하면서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3. 나라를 위해 울라고 하였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은 자신을 잃어버린 백성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로 타국에 있을 때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수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느1:3-5). 지극한 애국심이었습니다. 결국 느헤미야의 호국 기도는 응답되어 예루살렘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면서 그는, "다시는 수치를 받지 말라(느2:17)"고 외쳤습니다.

 

결론

예레미야는 민족의 패망 앞에서 백성을 향하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느냐고 부르짖었습니다.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교회와 민족의 살 길을 위해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백성을 회개케 하는 길에서 떠나지 말고 끝까지 주어진 사명을 다합시다.

태 도

성 경 활 용

1. 그리스도에 대한 신자들의 태도

(1) 믿고 시인함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2) 그의 계명을 지킴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3) 그에게 기도함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 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4) 본을 받음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 세상에 대한 신자의 태도

(1) 본받지 않음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2) 미련을 두지 않음

(고전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3) 사랑하지 않음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4) 벗이 되지 않음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5) 얽매이지 않음

(딤후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6) 오염되지 않음

(유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려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3. 죄인들에 대한 신자의 태도

(1)구원하려 함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2) 위하여 기도함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3) 위하여 증거함

(행17:9-31) 참조

(4) 꾸짖음

(딛1:13)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제희를 엄히 꾸짖으라

(5) 권면함

(고후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관련원어풀이

1. tWmD] 데무-트

(1) 유사, 닮음, 형상.

(대하4:3, 사40:18)

(2) 모형, 모범.

(왕하16:10)

(3) 용모, 자태, 외모.

(겔1:5, 16)

 

2. ha,r]m' 마르에

(1) 자태, 외양, 국면.

(창41:21, 아2:14)

(2) 환상, 광경.

(출3:3, 겔8:4)

 

3. ra'To 토-아르

(1) 형상, 자태, 모습.

(삼상28:14, 애4:8)

(2) 형태의 사람.

(삼상16:18)

 

4. morfhv 모르페

형태, 모양.

(막16:12, 빌2:6)

 

5. o{rasi" 호라시스

(1) 봄, 시작, 눈, 외관, 자태, 모양.

(계4:3)

(2) 환상.

(행2:17, 계9:17)

 

6. ach'ma 스케-마

몸가짐, 습관, 태도, 행실, 외모.

(빌2:7)

설교예화자료

종교 개혁 시기의 두 마틴

 

종교 개혁 초기에 바슬의 마틴은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공개적인 고백을 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는 양피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 자비하신 그리스도여, 나는 오직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룩하신 예수여, 나는 나를 위한 당신의 고난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을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이렇게 말한 후 그의 방 벽에서 돌 하나를 빼내어 그 글을 거기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1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에 마틴 루터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주님은 사랑들 앞에서 나를 고백하도록 하셨습니다. 나는 왕들 앞에서 나를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 이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는 세상이 알고 있고, 오늘날 이것으로 루터의 기억이 존경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슬의 마틴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본보기인가 구세주인가

 

막 예배가 끝났을 때, 한 신사가 스턴스 박사(Dr. D.M. Sterns)에게 다가와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설교방식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길 잃은 사람들을 위해 죽어간 예수에 대한 이야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요.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는 예수 대신에 좀더 현대적인 의미의 예수를 설교하세요. 이를테면 교사로서 혹은 본보기로서의 예수 말예요."

"그렇다면 내가 아주 위대한 본보기로서의 예수를 설교한다면 그를 따르실 용의가 있으십니까? "라고 스턴스 박사가 묻자, 그 신사는

"물론, 기꺼이 그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요? 자, 그러면 첫 발자국을 살펴봅시다. '누가 죄인이 아닌지오? ' 우리는 베드로전서 2:22을 읽었고, 당신은 이를 따를 수 있나요? "라고 스턴스 박사는 물었습니다. 신사는 당황해 하는 눈치였습니다.

"아니요, 저는 죄를 범합니다. 그것은 인정해야죠."

"자, 그렇다면 당신이 첫째로 따라야 할 예수의 모습은 본보기로서가 아니라 구세주로서의 모습이군요." 스턴스 박사는 말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우리가 어떤 사실에 부딪치면, 그 사실이 아무리 곤란하고 얼핏 보기에는 절망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보다는 우리의 태도가 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어떤 사건은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때문에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패배당하는 수가 있다. 그 사실은 실제적으로 실천에 옮겨 보기도 전에 심리적으로 그 사실에 억눌리고 마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이 있고 낙관적인 사고 방법은 그 사실을 부드럽게 하거나 혹은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N.V. 필)

 

자연스럽다는 것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지만, 그처럼 화가 나는 몸부림은 없다.

(O.F.O.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소리의 상태나, 눈짓이나, 모습 속에도 취사선택한 말에 뒤지지 않는 웅변이 있다.

(F. 라 로슈푸코/ 도덕적 반성)

 

행실이 바른 사람은 친구와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폴리비오스)

 

품행이 단정하고 성실한 것은 금은보다도 소중한 재산이다.

(S. 스마일스)

 

사람에게 일을 시킨다는 것은 항상 그 사람을 육성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육성 방법 여하에 따라서 그 사람이- 인간으로서나 자원으로서도-생산적이 되느냐 못 되느냐가 결정지어진다. 그것은 인간을 육성하려면 위에 있는 경영자가 고결한 품성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P.F. 드리커/ 현대의 경영)

 

꽃에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품격이란 것이 있다. 그러나 향기가 신선하지 못하듯 사람도 그 마음이 맑지 못하면 자신의 품격을 보전하기 어렵다. 색은 백합꽃은 잡초보다 오히려 그 냄새가 고약하다.

(W. 셰익스피어)

 

품격 형성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도덕적 훈련과 수련이다.

(S. 스마일스)

 

결단은 인간의 힘, 용기, 지혜는 아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출발이다.

(S.A. 키르케고르/ 인생행로의 제단계)

일단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그것에 마음쓰지 않았다.

(H.S. 투르먼)

 

눈앞에 중대한 문제를 놓고 그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강한 사람의 독특한 우수성이다. 약자는 항상 스스로 선택치 않은 양자택일의 결정에 강제당한다.

(D. 본훼퍼/ 옥중서간)

 

병아리가 부화되기까지는 병아리를 세지말라.

(마이소푸소)

 

많은 말을 들을수록 더 약해진다.

(B. 디즈레일리)

 

인생이란 과연 비참한 것인가? 지나치게 작은 것은 바로 그대의 재주이며 뒤죽박죽이 되어 있는 것은 오히려 그대의 비전이 아닌가? 그대는 성장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 우리는 우리의 운명의 틀을 선택하도록 허용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틀 안에 집어넣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모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용기의 정도에 따라 그 사실을 경험할 것이다. 희생하려고 하는 사람은 그의 마음의 순결의 정도에 따라 희생하게 될 것이다.

(다그 함마슬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행하고 있는 자이다.

(O. W. 호움즈)

 

여러 가지 경고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해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점점 쇠약해지고 마침내 파멸될 것이다.

(A. 맥클라렌)

 

이 품격은/ 서른세 살난 내 머리칼을 벗는/ 빗 같은 것이다/때때로 한 올씩 빠져 버리는 기회처럼/ 이 품격은 더러더러 황금단추를 열었다/ 단춧구멍이 마냥 실려 가고/ 내 사랑의 광기 같은 것/ 다 실려 가고/ 그런 다음에 오는 저/ 휑뎅그렁한 달구지의/ 무게 같은 것이다/ 달구지를 끄는 암소의 비비적이는 사타구니 같은 것이다/ 내 살이 온 날의 또/ 살아 갈 날의

(이규호/ 나의 시)

 

비노디니의 정렬적인 거만한 태도는 요술쟁이의 요술로 수건을 씌운 뱀처럼 갑자기 가라앉았다.

(R. 타고르/ 비노디니)

 

"마리아야/ 마리아야/ 너는 내 말을 믿느냐? "// "주여 그러하외다/ 이 눈앞에 계시니/ 믿삽나이다/ 살아서도 영원 죽지 아니하는 것/ 나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주여 내동생 마리아에게/ 나를 도우라 하소서"//"마르다야/ 마르다야/ 마르다야/ 오늘, 네 수고가 큰 것을/ 내가 아나니‥‥/ 너는 다시 더 딴 것을 탐하지 말라./ 이것이 네게는 가장 족하리로다. "

(임인수/ 마리아와 마르다)

 

새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마음은 늘 소유하면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시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먹고 마시고 잠자는 것을 계속 다음날로 미루다가 굶어 죽는 것과 같다.

(틸로트슨)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강도가 출몰한다고 하는/ 인기척 없는 음산한 곳이다. // 한 사제가 이 길을 내려왔을 때 옷을 빼앗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으나/ 머리를 저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나는 지금 피곤에 지쳐 있다/오늘의 임무는 다한 것이다/ 모르는 사람과 관계하고 싶지 않다// 레위 사람도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도 그 순간 외면하고/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지나가 버렸다/ 나는 바쁘다/ 해거름도 아까웠고 배도 고프다/그 누군가 이 사람을 돌보겠지// 다음으로 지나가게 된 것은/ 나그네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다가가서 곧 기름과 포도주를 꺼내어/헝겊을 찢어 상처를 치료한 뒤/ 자기 나귀에 태우고 여관에 데려갔다/ 그리고 날이 샐 때까지 간호하였다/ 다음날 그는 여관집 주인에게 / 치료한 비용의 은화를 주면서 말하였다/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 율법학자를 바라보았다. / 예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데즈까 하사꼬/ 손을 내민 사람)

 

 

설 교 노 트

 

은혜받은 자의 태도

벧후2:20-22

 

서론

우리 기독교를 은혜의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원천이시고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은 우리 인생의 큰 문제입니다. 받는 것은 우리 인생의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 은혜받은 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1. 이 세상의 속된 것과 더러운 것을 피해야 합니다.

본문 20절에 "만일 저희가 우리 주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1) "세상 더러움"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면,

이는 물질 세상이 더럽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일에 물질 세상을 더럽게 생각케 되면은,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위배되고 물질 개악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 "세상 더러움을 피하라"는 말씀은 타락한 인간의 정신과 도덕상의 더러움을 피해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러한 죄악을 피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2) 세상 더러움을 피하여 살아야 할 이유를 살펴보면,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세상 더러움을 피하여 살지 아니하면 후환이 더욱 심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은혜를 받았으면 세상 더러움을 피해서 살아야 합니다.

(3) 세상 더러움을 피하여 사는 비결에 대하여 살펴보면,

여기 사도 베드로는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여 깨어 기도하면서 주님의 말씀따라 나 자신을 쳐서 이기고 십자가를 바로 지고 살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이 길만이 세상을 피해서 바로 사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2. 거룩한 말씀과 명령을 따라 살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1절에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1)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지 말라는 우리가 의의 도를 알기 전에는 마귀의 명령과 나의 정욕의 지시를 따라 살아왔으나, 이제 예수 안에서 은혜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2) 거룩한 명령대로 살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3) 거룩한 말씀과 명령대로 살아야 할 이유는 마7:21절에 밝힌 바와 같이, 나의 구원과 천국의 기업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3. 자신의 순결과 정조를 파수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2절에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1) 은혜받은 사람이 자신의 순결과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롬8:1).

(2) 순결과 정조를 파수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요청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 구실을 해야 되겠기 때문입니다(벧전1:15).

(3) 자신의 순결과 신앙 정조를 파수해 나아가는 비결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든든히 붙잡고, 그 피의 공로를 힘입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보혈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결론

은혜를 받은 성도는

(1) 세상 더러움을 피해 살아야 하고,

(2) 자신의 순결과 신앙 정조를 파수해야 하고,

(3)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하는 태도

창18:22-23

 

서론

기도는 인간의 불만이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며 하 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방편입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자신과 정욕을 위하여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과 타인의 유익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태도입니다.

본문 25절에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 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 물어 보는 기도의 태도이지 자기의 생각대로 해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차원 높은 기도는 응답을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상달을 목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같은 기도의 태도가 좋은 것입니다.

 

2. 타인을 위하는 태도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성 중에서 의인 50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45인으로부터 시작하여 10인까지 내려갑니다. 아브라함은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욥은 벗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자신도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욥42:10) 사무엘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삼상12:23)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타인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는 위대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태도였습니다.

본문 33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고집만 세우고 계속 농성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리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마음을 순전히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결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기도를 드렸고 자기보다는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태도로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범죄한 자의 태도

창3:1-17

 

서론

사람은 누구나 죄를 범하면 정상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태도를 보이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 예로 아담을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피합니다.

본문 8절에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이 아니고 점점 더 멀리 떠나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멀리하시지 않고 더욱 가까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아담의 경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담뿐만 아니라 죄지은 사람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대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을 피하지 말고 주 앞에 나와야 합니다.

 

2. 핑계합니다.

본문 12-13절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실과를 내게 줌으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못된 태도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자신이 부족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죄를 지었다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용서받는 지름길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에 누구 때문이라고 핑계하지 아니하고 나 때문이라고 솔직히 시인하였습니다(욘1:12). 죄는 자기가 범하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죄 범한 사람으로서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속담에 방귀 뀌고 성낸다는 말은 모든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자를 꼬집는 말입니다.

 

3. 두려워합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벗었음으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벌만 주시는 분으로만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만 하고 벌을 받게 될 때는 달게 받지 아니하려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죄삯은 언제나 사망이고 많은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인데 징계를 달게 받으려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항의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벌을 받을 때 그는 달게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항의하면서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에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낮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여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4:13-14)"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죄인으로서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결론

죄를 범하면 하나님을 피하고 경계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함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범죄한 자의 올바른 태도가 될 것입니다.

투 기

성 경 활 용

1. 투기가 일어나는 원인

(1) 헛된 영광을 구하여

(갈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거니라

(2) 육에 속해서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3) 교만하여서

(딤전6:4)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4) 아내가 간음함으로

(잠6:34)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5) 자식을 낳지 못하여

(창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 형을 투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2. 하나님께서 투기하시는 이유

(1) 자기를 거스리므로

(나1:2) 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2) 범죄고 인하여

(겔23:25)진가 너를 향하여 투기를 발하리니 그들이 분노로 네게 행하여 네 코와 귀를 깎아 버리고

 

3. 투기의 성질

(1) 음부같이 잔혹함

(아8:6)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나니

(2) 그 앞에 서지 못함

(잠27:4)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4. 투기를 없애는 법

(1) 사랑이 있어야 한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2) 성령으로 살아야 한다.

(갈5:25-26)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지 말지니라

관련원어풀이

1. an:q; 카-나

(1) 질투하다, 시기하다.

(창30:1, 민5:14)

(2) 시기하다.

(창37:11, 시37:1)

(3) 시기로 불태우다.

(민25:11)

(4) 시기나게 하다.

(신32:16, 시78:58)

 

2. ha;n]qi 키누아-

(1) 시기, 질투.

(잠6:34, 겔8:3)

(2) 시기.

(욥5:2, 전4:4)

(3) 열렬한 시기.

(황하10:16, 사9:6)

(4) 열심, 분노.

(신29:19, 시79:5)

 

3. zhlovw 젤-로오-

(1) 열심으로 불타다, 추구하다, 진지하게 노력하다.

(고전14:1, 14)

(2) 시기나 질투로 가득 차다.

(행7:9, 약4:2)

 

4. fqovno" 프데노스

시기, 질투.

(롬1:29, 약4:5)

 

5. fqonevw 프도네오-

시기하다, 질투하다.

(갈5:26)

설교예화자료

왕비의 질투

 

춘추시대 위 왕이 초 왕의 환심을 사고자 미인 한 사람을 선사했습니다. 초 왕은 몹시 기뻐하며 일시도 그녀가 곁을 떠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안 초 왕의 부인 정씨는 새로 얻은 미인을 초 왕 이상으로 사랑하여 금지옥엽같이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초 왕은 정실 왕비가 질투할까 하여 기색을 살피었으나, 새로온 미인을 아끼고 살피는 것이 자기보다 더한지라 마음속 깊이 왕비 정씨를 어질게 여겨 마음놓고 그 미인과 더불어 조석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정거는 더욱 친절을 베풀어 미인의 화장이나 궁중 생활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정씨는 왕이 자기를 질투 않는 사람으로 믿는 것을 보고, 어느 날 미인더러 말하기를

"왕께서 너를 무척 사람하지만, 다만 너의 코가 맘에 들지 않으신다고 하시니, 왕을 뵈오러 갈 때는 반드시 네 코를 가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후 미인은 정씨의 말대로 왕 앞에 나아가면 으레 손으로 코를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히 생각한 왕은 어느 날 정씨에게 물었습니다.

"미인이 내 앞에 오면 늘 코를 가리니 무슨 까닭이오? "

이때 정씨는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오라 대왕의 몸 냄새가 싫어서 그런답니다. "

이 말을 들은 왕은 몹시 화가 나서 미인을 잡아들여 코를 깎아 내쫓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에 대한 설명

 

압둘라 3세가 지배할 당시, 바그다드에는 큰 가뭄이 있었습니다. 이슬람교의 학자들은 신도들에게 신념에 찬 기도가 비를 내려 줄 것이라는 교령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가뭄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자 유대교인들이 그들의 기도를 돕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양쪽의 기도는 다 허사였습니다. 기근이 그들의 눈 앞에 닥치자, 그들은 그들이 업신여기던 기독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이에 기독교 신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자, 억수 같은 비가 퍼붓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너무 오랫동안 가뭄이 계속되어 불안해했던 비밀회의의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가뭄의 중지에 분개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우리 예언자의 하나님께서는 달콤한 향기를 내는 맛과도 같은 충성의 기도를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는 즐거움을 오래도록 맛보기 위해 우리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지오. 그러나 저 기독교 이단자들의 기도는 그에겐 너무나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그들의 그 지긋지긋한 재촉을 한시라도 빨리 면하기 위해 그들의 기도를 금시 수락한 것이지오."

 

 

설 교 노 트

 

질투하는 하나님

수24:19

 

서론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1. 질투의 의의

질투라는 뜻은 "시새우고 미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 이외의 인물을 사랑하고 있을 때에 일으키는 대인감정의 일종입니다.

질투는 "열심", "시기"로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질투라고 하면 보통 여자들의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도 질투하시는 분이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한 성경 내용은 의인신적 표현으로써 이해해야 할 말들입니다. 즉,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아내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계약관계가 인간관계이고 영속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 관계에서 오고 있습니다(렘2:2, 겔6:8-10). 이 양자의 계약관계를 파괴하는 제3자의 개입에 대하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으로써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제 3자는 우상입니다.

출20:4-5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3. 질투하는 하나님

이는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는 열심 또는 순수성을 나타낸 표현입니다. 즉, 진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영광과 피조물(계약을 맺은 백성들‥‥)에 대한 주권을 절대 고수하시고 계신데, 피조물이 다른 거짓된 신들에게 주는 것을 극히 미워하신다는것입니다.

이사야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는데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2:8)"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지정의의 하나님이신고로 감정을 소유하십니다. 그러므로 극진한 그의 사랑에 끼어드는 그 어떠한 방해물도 질투를 나타내십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는 완전한 표현이십니다.

평 등

성 경 활 용

1. 피조물에게 평등한 것

(1) 죄성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2) 심판

(시9:8)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단을 행하시리로다

(3) 피조물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저

 

2. 구원의 평등성

(1)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영생을 얻는다.

(요3:16)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자유인의 분별이 없다.

(골3:11) 헬라인과 유대 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관련원어풀이

1. dj;;a, 에하-드

하나, 같은 것.

(출12:49, 레24:22, 민9:14, 겔45:11)

 

2. sumpolivth" 숨폴리테-스

동료 시민, 타인과 더불어 같은 시민권을 가진 사람.

(엡2:19)

 

3. trovpo" 트로포스

한 방법, 태도, 동일함, 평등.

(행15:11)

 

4. ijsovtimo" 이소티모스

동등한 가치를 가진, 같이 높임을 받는.

(요5:18, 빌2:6, 벧후1:1)

설교예화자료

맥주

 

탈무드의 가르침으로는, 하인 또는 노예도 주인도 똑같은 것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인이 안락 의자에 앉으면, 하인에게도 똑같은 안락 의자를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훌륭한 사람이라 해서, 높은 데에 앉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갔을 때, 전선의 부대장에게 초대되어 식사를 함께 한 일이 있었습니다. 사병이 맥주를 날라왔습니다. 그러자 사령관이, "사병들도 마시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오늘은 맥주가 남은 것이 적어서, 여기에 낸 것 뿐입니다. "라고 사병이 답하자,

"그렇다면 오늘은 마시지 않기로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우리들은 차별에 대해서 눈이 멀어서는 안되겠습니다-오히려, 공동의 이익과,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향하여 우리의 주의를 돌려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제 우리들이 차별을 종식시킬 수 없다 해도, 적어도 우리들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 위험한 상태일 수 없는 세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J.F. 케네디)

 

비록 보잘것없을지라도, 너의 인생을 사랑하라 너는 아마도 어느 정도 유쾌하고, 스릴 있으며, 영광스러운 시간을 구빈원에서라도 누릴 수 있을는지 모른다. 석양은, 부자의 거처에서 처럼, 양로원의 창으로부터도 눈부시게 반사된다.

(H. D. 도로우)

 

현대 대량생산이 상품의 규격화를 요구하는 것과 같이, 사회발전은 인간의 규격화를 요구하며, 이 규격화를 평등이라고 부른다

(E. 프롬/ 사랑의 기술)

 

민주주의와 자유는 모든 인간이 그 가운데 신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신성한 진리에 근거하고 있다‥‥그것은 평등이며, 유일한 만인의 평등이다.

(R.W. 에머슨/ 일기)

 

비록 나는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 "고 위에서 말했으나 내가 모든 종류의 "평등"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연령이나 덕성은 인간에게 정당한 우월성을 부여할 수도 있으며, 역할이나 공적의 탁월함은 어떤 사람을 보통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이 모든 것은 모든 인간이 권한이나 지배의 면에 있어서 서로 평등하다는 것과 일치된다‥‥모든 인간에게는 그 어떠한 타인의 의지나 권위에도 종속됨이 없이 그의 생득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평등한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J. 로크/ 시민정부에 관한 에세이)

 

평등은 사랑의 가장 굳은 끈이다.

(G.E. 레싱/ 민나 폰 바룬헬름)

 

사람은 교회에 평등하고, 국가에 평등하므로, 모든 타인에 평등하다.

(에머슨/ 수필집)

 

평등은 빈부 귀천을 가리지 않는 양식이다.

(아함경)

 

불생 불멸의 법이 평등이다.

(방등경)

 

꿈이 평등하므로 도(道)도 평등하다.

(방등경)

 

왕과 제후와 장군과 제상이 어찌 따로 씨가 있으랴?

(진승/ 십팔사략)

 

평등의 결점은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손윗 사람에게만 바란다는 것이다.

(H.『 베크/ 문학적 논평)

 

정의로운 것을 평등이라 부른다. 그러나 평등한 것이 정의는 아니다.

(R.W 에머슨/ 수필집)

 

전부가 같은 평등에 복종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각자는 자기의 생각에 따른다고 믿는다. 마치 근대의 대량생산이 상품의 표준화를 요구하듯이, 사회제도는 인간의 표준화를 요구한다. 이 표준화가 평등이라고 불린다.

(E. 프롬/ 사랑의 기술)

 

권리의 평등이라는 것은 갖가지 형태에서의 어느 한쪽의 특권, 다른 한쪽의 차별이 배제되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만일 몇몇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자유와 평등이 주로 민주주의에서 발견되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정부에 최대한으로 참여할 때 가장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인간은 원래 불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러기때문에 그들을 평등하게 다루려고 해도 그것은 무익 하다.

(S. 프로이트/ 대문제에 관한 소연구)

 

우인(友人)들끼리는 완전한 평등 속에서 산다. 이 평등은 우선 첫째로, 그들이 서로 만났을 때에 사회상의 모든 상위를 잊는다는 사실로부터 생긴다.

(A. 보나르/ 우정론)

 

그 어떠한 사람도 타인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할 생득적인 권리는 없다.

(T. 제퍼슨)

 

누구나 평등하게 법률에 의하여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법이 인위적 차별을 가하여‥‥칭호, 급여금, 그리고 예외적인 특권을 부여하여,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고, 세력 있는 자를 더욱 권력 있게 만들면, 스스로 혜택을 확보할 시간도 없고 수단도 없는 사회의 비천한 구성원들-농부, 직공, 그리고 노동자들은-그들의 정부의 불공정함을 항의할 권리가 있다.

(A. 잭슨)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들은 그 창조주에 의해서 빼앗아서는 안 될 고유의 권리가 주어져 있다.

(T. 제퍼슨/ 미국독립선언)

 

평등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플루타르쿠스/ 영웅전)

 

평등은 모든 선의 근원이며, 극도의 불평등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M. F. M. I. 로베스피에르)

 

인간은 결코 불평 없이 재산이나 권리를 분배할 수는 없습니다.

(F.M.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모든 인간의 평등한 권리는 공기를 호흡하는 평등한 권리나 마찬가지로 명백한 것이다.

(H. 조지)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평등하다. 우리들이 오늘날에 볼 수 있는 불평등은 민법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T. 홉스/ 정부와 사회에 관한 철학적 원리)

 

평등이란, 학의 다리를 잘라 오리 다리에 잇거나, 산을 헐어 골짜기를 메워야만 평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백운화상)

 

사회에서의 평등은, 영국 귀족 같은 불평등이든, 가정에 있는 노예 같은 불평등이든, 불평등을 때려 부순다.

(A. 링컨)

 

여러분은 모두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이 세계에서의 모든 노동의 폐기요, 작업의 전적인 조락이다. 왜냐하면 그가 더 많은 것을 가지게 될 때에는 그 게으름쟁이는 평등을 가장하여 아무런 권리도 없으면서 제멋대로 그가 좋아하는 것을 가져갈 것이다. 그때에는 도대체 누가 더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 이것은 공화국의 번영을 파괴하는 나태를 조장할 뿐 공화국을 유지하는 노동의 개선은 아니다. 만약 이와 같은 평등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지금 막 떠나온 상태보다 더 좋은 상태에 도달하려는 당신의 희망을 빼앗아 버릴 것이다.

(J. 체크/ 폭동의 해악)

 

신의 앞에서는 우리들은 똑같이 현명하기도 하고 똑같이 어리석기도 하다.

(A. 아인슈타인/ 우주의 종교)

 

평등은 말로만 존재할 뿐이다.

(에우리피데스/ 페니키아의 여자)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타고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받았으며, 그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것을 자명의 진리로 확신한다.

(T. 제퍼슨/ 독립선언서)

 

모든 점에서 인간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민주주의는 생겨난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문화인이 평등의 진정한 사도이다.

(M. 아놀드/ 문화와 무질서)

 

나 자신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교묘한 술책이나 간계에 의한 평등보다는 시간, 관습, 재산의 상속, 축적, 교환 및 증식과 같은 물건의 자연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이 공정과 정당한 정책의 기반이 되는 진정한 평등에 더욱 가깝다는 점이다.

(E. 버크)

 

황제의 영혼도 구두장이의 영혼도 같은 주형(鑄型)에 부어 만들어진 것이다.

(M. E. 몽테뉴/ 수상록)

 

평등은 공정의 제 1의 요소이다.

(M.E. 몽테뉴/ 수상록)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평등하게 성장하지는 못한다.

(C.S.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더 의심치 않을 때까지 여러분의 가슴속에서자유의 등불이 타오르기를 바라며 나는 여러분을 떠난다.

(링컨)

 

모든 인간이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또 어떠한 때에도 자유스럽고 또 평등하다는 교의(敎義)는 전연 근거 없는 픽션이다.

(T.H. 헉슬리/ 인간 생래의 불평등에 대하여)

 

민주주의적 제도는 그들이 결코 완전히 충족시켜줄 수 없는 평등에 대한 정열을 일깨워 육성한다. 이 완전한 평등은 그들이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의 손으로부터 빠져나가 버린다‥‥그들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 무엇이거나 간에 그것은 욕망에 장애가 되므로 그것이 아무리 합법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눈에 불쾌하게 보이지 않는 우월성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A.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우리들은 죽음의 순간에 있어서는 모두 평등하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평등은 인도(人道)의 신성한 법칙이다.

(J. C. F. 실러)

 

미국은 평등과 자유 두 명사를 위하여 두 차례의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손문)

 

자연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기능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은 가끔 다른 사람들보다 육체적으로 강건하고 정신적으로는 민첩할 수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인간과 인간과의 차이란 별것이 아니며, 다른 사람이 자기와 똑같이 요구하지 않는 이익을 자기 자신을 위해 요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그리고 정신의 기능에 있어서는‥‥육체의 강건성에 있어서 보다 더 큰 평등성을 나는 인간 가운데서 발견한다.

(T. 홉스/ 리바이어선)

 

평등이란 자기와 같이 남에게도 같은 기회와 권리를 부여하는 일이다.

(W. 휘트먼/ 감상)

 

천지가 만물을 양육함은 평등하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잘난 체 해도 안 되며, 남보다 낮은 데 있다고 해서 못난 체 해도 안된다.

(장자)

 

사람은 다 똑같다. 뼈와 살과 음식으로 만들어졌다. 오직 음식만이 다르다.

(G.L. 치니/ 국민)

 

사람은 아무에게도 인간적으로 열등하지 않으며 누구도 인간적으로 우월하지 못하다. 모든 사람은 너의 변신이다. 남이 지은 죄는 바로 너의 죄이기도 하며, 사람의 무죄가 너하고 무관한 것도 아니다.

(W. 사로만/ 인생에 가장 즐거울 때)

 

평등은 물질적 자산의 한 조각 한 조각의 양적 균등을 의미해서는 안 되며 소득이 각각 다른 그룹에게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창조할 정도로 분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평등이 되어야 한다.

(E. 프롬/ 소유냐 삶이냐)

 

어떡하겠다는 한마디 없이 제놈들만 빠져나간/ 속수무책인 읍내에 인공사람들이 들어와/ 평등한 사회 만든다고 글 가르치라는 데/ 맘 약한 할애비야 배길 재간이 있어야지.

(박용주/ 할아버지 이야기)

 

산뜻하고 청결한 집이라든가/ 보장된 노동의 평등이라든가/ 자식들을 위한 평화라든가 사랑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바로 거기에 인간의 투쟁이 쟁취한 성과가 있다는 것은/그들 단순한 것들이야말로/ 우리들의 희망을 형성해 주고 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겠는가

(네루다/ 율리우스 후치크와의 대화)

 

대한민국은 자유의 나라니까/ 대한민국은 평등의 나라니까/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한 땅에 살 수야 있겠지요/ 돈 벌러 서울로/ 죽지 못해 서울로/ 서울로 가는 호남선은 그래서/ 늘 비 내리는 호남선이었나요

(박용주/ 서울)

 

우리 설 곳,/ 우리 찾을 곳 아무데도 없었는데/ 비로소 넓은 들에 이르러 바라보면 보이누나/ ‥‥이슬 안개받아 먹고도 배고프지 않는/ 평등의 튼튼한 가슴팍이 보이누나/ ‥‥ 우리 모두 차지할 하늘이 공짜로 보이누나

(이성부/ 평야)

 

이제 더는 하지 않겠다/ 불손한 평등관의 망상에 빠져/우리들 곰이 너희들 인간 족속들에게/ 퍼붓는 불평불만은

(하이네/ 아타 트롤 · 5)

 

헌법에는 신이 창조한 일체의 것은/ 완전 평등이라고 되어 있다/종파의 차별이나/ 가격과 체취의 차별 따위는 없는 것이다// 엄격한 평등만이 있을 뿐이다!

(하이네/ 아타 트롤 · 6)

 

 

설 교 노 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1-19

 

서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 지방을 지나가시다가 열 문둥이를 고쳐 주셨으나 그중 한 사람만 그 은혜를 감사하러 왔을 때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는 말씀입니다.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12절)"라는 말씀과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l8절)"라는 말씀 가운데 모든 인간은 다 동일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10:12)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인임에도차별이 없을 뿐 아니라 고난 중에 처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같다는 것입니다. 여기 열 문둥이 중 아홉은 유대인이요, 한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어느 한 사람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붙드심 없이 살아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인생들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보살핌과 구원하심이요구되는 존재인 것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2. 배은 자에게는 축복이 없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잊어버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그 큰신 공로, 성령님이 주시는 역사 앞에 늘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심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선한 봉사를 하게 하심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즉 믿음 생활을 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도 감사할 줄 모르는 9명의 문둥이처럼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신 축복,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은혜를 잊어버린다면 주님은 슬퍼하실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감사하면서 살아나가는 보람있고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믿음의 감사는 구원의 약속을 받습니다.

10명이 나왔으나 9명은 배은망덕하고 떠나가 버렸지만 이방인 한 사람이 그 앞에 와서 엎드려 사례를 했더니 "일어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17-19). 참 믿음을 가지고서야 어찌 그 모든 은혜를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7)",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20)",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50:23)"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감사는 곧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요, 더 많은 것을 심을 수 있도록 종자를 공급해 주시는 축복의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연보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후서 9장 10절에서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다 하나님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님께 감사하되 온 정성으로 감사하고 좋은 이웃, 좋은 나라 주심에 감사하며 구원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자간 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리며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처럼 칭찬받고 생각밖의 뛰어난 축복으로 약속을 누리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 안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평안의 종류

(1) 개인의 평안

(눅8: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2) 거짓 평안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3) 영적 평안

(롬5: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4) 가정의 평안

(고전7:15)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2. 하나님의 평안

(1) 평강을 나타내신다.

(렘33:6)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2) 화평을 베푸신다.

(욥25:2) 하나님을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3) 성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빌4: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3. 평안을 주시는 방법

(1) 재앙을 없애서

(왕상5: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2) 대적을 이기게 하시어

(신12:10) 여호와께서 너희로 너희 사방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로 평안히 거하게 하실 때에

(3)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어

(눅1: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4. 평안의 근원

(1) 하나님

(빌4: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2) 성령

(엡4:3) 평안의 때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3) 의

(사32:17)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4) 주의 법

(시119: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5) 영의 생각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6) 화평한 자

(시37:37)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7) 모사

(잠11:14)도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8) 복음

(엡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5. 평안함의 묘사

(1) 평안한 심령

(시131:2)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2) 평안한 땅

(사14:7) 이제는 온 땅이 평안하고 정온하니 무리가 소리질러 노래하는도다

(3) 평안한 성

(왕하11:20) 온 국민이 즐거워하고 성중이 평온하더라

(4) 평안한 나라

(대하14:5) 유다 모든 성음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 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

 

6. 평안이 없는 이유

(1) 천국을 소유하지 못해서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2) 악인이므로

(사57:21)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3) 불신에서

(신23:6) 너희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

(4)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마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7. 평안을 가지는 방법

!I. 하나님께서 주심

(1) 고민을 해결해 주신다.

(창41:16)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2) 구원하셔서

(눅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II. 사람 편에서 얻는 방법

(1) 정직하게 행하여

(사57:2)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2) 타인의 보증되기를 싫어해야

(잠11:15)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3) 모사가 많아야

(잠11:14) 도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려니와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4) 하나님을 믿어야

(롬15: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8. 평안한 자의 생활

(1) 환난을 당할 때 안심한다.

(요16:33)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2) 마음에 근심이 없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관련원어풀이

1. jf'B, 베타흐

(1) 확신, 신임, 대담하게, 확신있게,

(창34:25)

(2) 안전.

(사32:17)

(3) 두려움 없이, 안전하게.

(삼상12:11, 신33:12)

(4) 확실하게.

(미2:8)

 

2. [v'y< 웨솨

(1) 구출, 도움, 구원.

(시12:6, 합3:13)

(2) 안전, 부귀.

(욥5:4, 사61:10)

 

3. caivrw 카이로-

(1) 기뻐하다, 기쁘다.

(마5:12, 눅15:32)

(2) 인사의 형식으로 쓰임.

(마26:49, 요19:3)

 

4. ajspavzomai 아스파조마이

(1) 인사하다, 잘 되기를 빌다.

(마10:12, 행21:19)

(2) 좋아하다, 즐기다, 안부를 전하다, 문안하다.

(롬16:3, 히13:24)

(3) 환호성을 올리다.

(막15:18)

(4) 안부 전하다, 문안드리다.

(행25:13)

 

5. eijrhneuvw 에이레-뉴-오-

평화롭게 만들다, 평화스럽다, 평화를 유지하다.

(막9:50, 고후13:11)

설교예화자료

두 가지 짐의 비유

 

한 폴란드의 군주가 사냥하다가 그의 일행을 끊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며칠 후 시장에서 짐꾼이 되어 버린 그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불과 몇 페니를 위하여 짐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처음에는 그 짐꾼이 정말로 그들의 군주인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귀한 분이 그런 천한 일을 해서 자신을 그렇게 비천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주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자

"내가 던져 버린 내 지위의 짐은 내가 나르는 짐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내가 있었던 세계의 짐에 비유하면 단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기서 나흘 밤을 지내는 동안 전보다 더 많이 잠을 잤습니다. 나는 비로소 진정한 삶을 시작했으며 내 자신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도 나는 잘 있는데 궁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

이 군주를 계승한 다른 폴란드의 왕은 사람들이 그의 손에 지휘봉을 쥐어 주자 "나는 차라리 노를 저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중국 내지의 선교사인 허드슨 테일러 박사는 믿음으로 중국 내지로 들어갔습니다. 점점 일이 많아지면서 사람과 돈이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테일러 박사는 무거운 정신적인 부담으로 인해 밤잠을 못 자면 서까지 고민하다가 마침내는 신경쇠약에 결릴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요한복음 15장에 있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구절이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태양빛이 비치는 것처럼 그의 마음은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것은 나무이므로 가지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주시옵소서."

테일러 박사는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시인하고 회개하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는 그 이후부터는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고 성공적인 내지 선교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들이고 하나님을 의지한 이상 우리의 생활 속에 다가오는 문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하겠습니다.

 

 

부부싸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곳에는 군목(軍牧)으로서 랍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학교를 갓나온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나는 장로와 같은 입장이어서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내게로 의견을 물으러 오거나 전화를 걸어옵니다.

어느 날 젊은 랍비가 한 사람 지방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마침 그때 한 쌍의 부부가 문제를 갖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에게 또 한 사람의 랍비와 함께 들어도 좋은가 묻고는 승락을 얻었습니다. 부부간의 문제를 들을 때에는, 두 사람을 함께 동석시킨 채 들으면서로 다투기만 하므로, 두 사람을 나누어 따로따로 들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나누어서 들으면 결국 서로 배우자를 귀중히 여기고 상대방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이야기를 듣고, 동정심으로써 부딛치면, 대개의 부부간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이때에는 나는 먼저 남편측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말한 것에 모두 찬성하여 계속 수긍하면서 그의 주장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나는 그녀의 주장을 듣고 그녀가 말하는 것도 인내심 깊게 들으며 모두 수긍하며 당신의 주장을 정말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사람이 나간 뒤, 나는 그 랍비에게, "당신이라면 어떻게 결정하겠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랍비는 "나는 전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전부 남편에게 수긍하고, 이번에는 아내가 들어오자 아내의 이야기에 하나하나 수긍하며 전혀 다른 주장을 말했는데도 어째서 두 사람의 주장이 다 옳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주장이 가장 옳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결정을 보고서 독자들은 어떻게 느낄 것인가? 나는 생각하기를 여러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각기 다른 의견을 가지고 왔을 경우, 당신이 옳다든가 틀렸다든가 단정지어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쓸데없는 많은 마찰을 일게 할 뿐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양자의 열전 상태를 냉각시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자의 주장을 인정해 줌으로써 서로가 냉정해져서 서서히 화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먼저 어떤 의견이라도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링컨의 평정

 

국가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습니다. 리 장군과 그의 군대가 게티스버그를 포위하기 위해 밀어닥치고 있었으며, 남북 전쟁의 운명적이고도 결정적인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찢겨진 국가의 슬픔과 무거운 짐은 백악관의 점유자인 아브라함 링컨에게 크나큰 대가를 강요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게티스버그의 결정적인 전투의 전야에 그는 침착했고 자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의 평온은 그의 장교들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었습니다.

"국가가 운명적인 위험과 어둠에 놓여 있는 이 시간, 어떻게 그처럼 침착하실 수 있는지오?" 장교들이 물었을 때, 링컨은

"난 지난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냈소. 그분은 내게 우리의 대의가 승리를 거두리라는 것과 국가가 보전될 것이라는 확신을 안겨주었다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록·시·묘사

 

행복한 생활은 마음이 평안해야 한다.

(M.T. 키케로/ 신적 자연)

 

참다운 마음의 평화는 최악의 사태를 감수하는 데서 얻어지며 이는 또 심리학적으로 에네르기의 해방을 의미한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평안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짓는 것입니다. 만들지 않고는 없습니다.

(함석헌/ 아이 레노포이오이)

 

평정심을 갖는건 용이한 일이 아니더라도 연습을 하고 항상 마음에 둔다면 오랜 시일속에서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윤태림/ 평정심)

 

평온무사한 극락왕생이 아니라 씩씩하게 불행에 맞부딪쳐 최후를 마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회(本懷)다.

(미상)

 

성냄을 버려라. 거만을 버려라. 모든 애욕과 탐심을 버려라. 정신에도 물질에도 집착하지않으면 고요하고 편안해 괴로움이 없다.

(법구경/ 분노품)

 

고요한 곳에서 고요함을 지키는 것은 참다운 고요함이 아니다. 소란한 가운데 고요함을 지켜야만 마음의 참 경지를 얻으리라.

(채근담)

 

정의의 최대의 열매는 마음의 평정이다.

(에피쿠로스)

 

대양의 평정은 수면에 주름을 잡을 수 있는 가장 경미한 연풍(軟風)도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아무런 심령을 정온(靜穩)하고 평화롭다고 확언할 수 있다.

(M. T. 키케로)

 

마음을 평온하게 가지려면 불쾌한 기억을 머리 속에 불러들이지 말 것이다. 시궁창을 피해 가듯 불쾌한 기억은 피해야 한다. 사람은 현재가 불행한 것이 아니라 불쾌하고 슬픈 기억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그러한 기억에서 떠난다면 오늘 이 하루는 그런대로 즐거운 것이다.

(A. 아우구스티누스)

 

신이여 나에게 평정을 주소서/ 바꾸어 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갈아 볼 수 있는 것을/변화 있는 것을 변화시킬 용기를/그리고 더하여 이 둘을 분간하는/ 지혜를 주소서.

(J. 나이버)

 

슬픔 뒤에 주어지는 평안이 있다. / 우리 희망이 실현된 때문이 아니라/도리어 희망을 단념했기 때문에 오는 평안이다. / 내일을 우러러 바라는 젓이 아니라/ 지금 폭풍이 고요해진 것을 조용히 바라보는 평안이다. // 기쁨이 넘치기 때문이 아니요/ 사랑을 확보하고 있는 행복 때문도 아니며/ 단지 우리 마음이 실수하지 않는 힘을 지니고/ 괴로움을 이겨 나가는 것을 배우면서/ 싸움에 이김으로 해서 생기는 평안이다. // 평안은 남모르게 희생을 바치는 곳에 있다. / 자기 의지와 격정에서 해방되고/ 억압된 생 가운데 있게 마련이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있던 그런 평안이 아니라/ 겟세마네에서 승리를 차지한 평안이다.

(제시 로즈 게이츠/ 그리스도의 평안)

 

아버지, 신비로운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우리 영혼은 당신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옵니다/ 우리는 힘이 없사오니 하늘로부터 확신과/ 그리고 힘과 평안함을 강명 깊게 보여주소서. // 주여, 우리는 계속 회의와 슬픔 속에 헤매었으나/ 당신은 한 걸음씩 앞으로 전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미지의 내 일을 항상 믿고 있사오니/ 그날이 이를 때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 마음에 있는 거룩한 평화를 누리고/ 고통이 그 뜻을 이루는 듯하여 우리가 절망할 때/ 그 고뇌보다 더 강한 마음속 평화를 일깨워/ 우리로 평온을 누리 게 하소서.// 아버지여, 지금 사랑하는 당신 앞에 무릎 꿇고/ 우리 영혼은 당신의 뜨거운 사랑을 느낍니다/ 우리도 이 시간 굳세계 하시어 하늘로부터 확신과/ 그리고 힘과 평안함을 감명 깊게 보여주소서

(존슨/ 힘을 달라고 비는 기도)

 

날이 샌 뒤의 광명을 예고하며/ 이 한밤 우리를 지켜 주소서./주님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고요한 밤을 지내게 하소서.

(작자 미상/ 밤의 노래)

 

평정과 안온한 기쁨에 잠기는 우울과/ 더할 나위 없는 정열의 한없는 격정 사이/ 혼수와 경련 사이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없는지,

(네르발/ 올리브 나무 아래의 그리스도)

 

추위에 언 수많은 여인들이 발을 끌면서/ 그대가 지닌 향연의 평안을 찾아간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모든 장미에게/ 눈짓을 하고 있다.

(릴케/ 시 8편)

 

오 하나님, 나로 하여금 별을 따러 가게 하여 주십시오./그렇게 하면 병든 내 마음이 평안을 찾게 될 것입니다.

(잠/ 14편의 기도 노래-2)

 

고요한 시간에/ 마음의 밑부리부터가/ 흔들려 온다// 무상도 우리를 울리지만/ 안온도 이렇듯 역겨운 것인가?

(구상/ 강-4)

 

하늘의 신비 눈빛에 담아/ 세세한 울림으로도/ 뇌성과 광풍,/ 뜨거운 격랑 멎게 하여/물 위에 평온 주신이여

(엄창섭/ 기도 · 28)

 

주여, 고요와 평온과 평화가/ 당신을 위해 저를 준비케 하소서./ 주여 제가 당신의 경청을구할 때/ 저의 마음이 평안케 하소서.

(반디 무어/ 기도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

 

죄와 허물을 벗기는 어둠을 타고 돌아선 그 끝에/ 빛을 만나는 소리 부딪히는 바다건너/ 파도여 비린내 뜨는 꿈자리 덮으며/그대를 평안으로 결박하고자 오는/ 섭리의 끈을 보아라.

(배명식/ 경포대에서 · 2)

 

펼쳐든 성경은/ 한 줄 한 줄 평안을 안겨주고/ 나는 폭풍우에 아랑곳 않는다/ 떨던 집들도 고요 속에 잠들다.

(이영옥/ 홀로 된 밤)

 

산까마귀/ 길 울음을 남기고/ 해진 지평선을 넘어간다. // 사방은 고요하다/ 오늘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나의 넋이여,/ 그 나라의 무덤은/ 평안한가

(김현승/ 마지막 지상에서)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평온한 날은/ 평온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게 하십시오.

(박목월/ 평온한 날의 기도)

 

사나이의 손은 더듬게 되나니/ 그녀의 부드럽고 포근한 가슴을/ 이리하여 슬픔에 잠겼던 사나이도/ 마음의 평안을 얻게 마련이다.

(조이스/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보라)

 

 

설 교 노 트

 

성도에게 주는 그리스도의 평안

요14:27

 

서론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내일이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들에게 하신 애정 어린 말씀입니다. 이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는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축복의 언약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자신의 뜻과 의지로 어떤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기보다는 성도들이 진정 소유할 만하고 즐거워할 것들을 새 언약에 의해 이루고자 하십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자신의 기업을 넘겨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녀들에 대해 성경에서는 바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히2:13)"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자신의 뜻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새 언약의 축복을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방법으로 전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제자들간에 맺어진 언약은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그 효력이 발생하게 됩니다.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효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히9:17).

 

2.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축복의 의미

(1) 참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태어나실 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천사들은 찬송하였습니다. 그 평화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평안,즉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평안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누릴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죄를 속량해 주시고 평안을 주실 수 있습니다.

(2)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평안을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의 평안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안식할 처소도 없이 조롱과 학대를 받으면서도 아버지 안에 거함으로 진정한 평안을 누렸습니다. 우리 또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고난이 엄습할 때에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진실한 성도가 되어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누리는 그리스도의 평안

고난 가운데서도 사역을 마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심으로, 천국에서 복되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 게 되셨습니다. 그가 죽으실 때 바로 그런 평안을 제자들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이 세상에서 불완전한 평안을 누리고 있으나 이후에는 그리스도처럼 완전하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모든 사람들이 안식을 얻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그들이 찾아 헤매는 세상적인 것으로는 결코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수고는 헛될 뿐이며 이내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안을 주시려고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진실로 따를 때에 우리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평안을 주셨느니라

대하14:7

 

서론

약탈과 살상, 파괴와 침략 등 무서운 전쟁이 계속되는 역사 속에서 "평안"이라는 말은 참으로 기쁘고 복스러운 말입니다.

본장에서 "평안"이라는 말이 무려 5차례나 연속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평안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평안은 귀중한 보배입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니 보배 이상의 참 보배입니다. 이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주셨나이다(7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곧 나의 평안을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2. 평안은 우리가 얻습니다.

평안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요, 그것을 받아 얻는 자는 우리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은혜와 축복, 곧 평안은 믿는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곧 받고 얻는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오직 얻어지지 않았거나 미완성 사이라도 미래사를 현재로 앞당기는 사실이므로 이미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주시는 평안이라도 믿는자만이 받을 수 있고 얻어서 누릴 수 있습니다.

 

3. 평안의 때와 곳

(1) 평안의 때

"그 시대에 그 땅이 10년을 평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평안의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장장 10년입니다. 우리 속담에 "십 년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평안을 누립니다.

(2) 평안의 곳

"그 땅이 10년을 평안하니라", "그 땅이 평안하여‥‥‥‥라고 하여 그 땅이 평안하였다고 하는 뜻은 전국적인 평안을 뜻합니다. 일부적이거나 국부적이 아니라, 전국의 국민이 모두 다 평안하였다는 말이니 참으로 감사한 평안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늘 평안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평안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 평안을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겔13:10

 

서론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기를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 없고 책임질 수 없는 예언을 하면 결국은 잘못된 것이므로 죄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1. 평강은 만인의 갈망입니다.

평강은 빈부 귀천,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만인이 한결같이 원하고 바라는 소원입니다.

평강은 부귀 영화보다도 더 귀하니 아무리 가난해도 돈받고 평강을 팔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인색한 구두쇠라도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인색을 부리지 않을 것이니 돈보다도 더 귀한 것이 평강입니다.

개인의 평강과 가정의 평강, 더 나아가서는 민족의 평강까지도 다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의 인사말은 "샬롬"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평강을 빌어 주고 원한다는 뜻입니다.

 

2. 거짓 평강의 헛된 약속

거짓 예언자들은 평강을 줄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거짓말로 "평강이 있다"고 하며 백성들을 속여서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백성이 심판의 위협을 믿지 않고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결국 심판을 받아서 평강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죄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드러운 말로 아첨하였습니다. 이것은 죄악을 얕잡아 보고 깜짝 놀란 양심을 달래어 잠재우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자기 만족의 평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추정적인 평강이므로 거짓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설마 그렇게 멸망시키시랴."하고 막연하게 추정하여 평강을 선포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속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스스로 평안하다고 속지 말고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여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리스도만이 참 평강이십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있으나 그것은 아첨하는 말과 기분 좋은 확신으로는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전일에 근심과 걱정에 싸여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셨고, 27절에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물러가고 불안과 공포가 없는 진정한 평강의 세계에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모신 가정에 화목이 있고, 예수님을 믿는 민족에게는 평화가 있습니다.

 

결론

평강을 줄 자격도 없는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말로 속이는 평강에 미혹되지 말고, 평강의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립시다.

평 화

성 경 활 용

1. 평화를 가져오는 근원

(1) 복음을 전하므로

(사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2) 명령이므로

(름12:18) 할 수 있거든 너 회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3) 하나님의 평화의 언약을 주셨으므로

(민25: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2. 평화로워지는 방법

(1) 때가 되어야

(전3: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 라

(2) 하나님께서 주시므로

(레26: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3) 기뻐하심을 입어야

(눅2:14)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4) 주님의 희생으로

(사53:5)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3. 평화와 성도와의 관계

(1) 평화의 의논자가 되어야 한다.

(슥6:13)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2) 평화를 선언해야 한다.

(신20:10) 네가 어떤 성음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3) 평화의 말을 해야 한다.

(신2:26) 내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르기를

(4) 모든 민족과 평화가 있어야 한다.

(왕상4:24)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 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관련원어풀이

1. !l'v; 솰-람

(1) 건전하다, 건강하다, 안전하다.

(욥9:4, 22:21)

(2) 완성되다, 끝내다.

(왕상7:51, 사60:20)

(3) 화평을 가지다, 교제를 가지다.

(시41:10)

(4) 완성하다. 끝내다.

(왕상:25)

(5) 화평을 도모하다, 화목하다.

(수10:1, 왕상22:45)

 

2. !/lv; 솰-롬

(1) 전부의, 온전한, 건강한, 건전한.

(삼상25:6, 사26:3)

(2) 안전한, 평온한.

(욥21:9)

(3) 온전, 안전, 건전, 건강.

(신29:18, 삼상16:4)

 

3. hw:l]ev' 솰르와-

(1) 번영, 안락, 평온.

(시122:7, 잠17:1)

(2) 부주의, 불경건.

(잠1:32)

 

4. eijrhvnh 에이레-네

(1) 평화, 화평, 국가적인 평온 상태.

(행9:31, 12:20)

(2) 개인들 사이의 화평, 조화, 일치.

(마10:34, 엡2:17)

 

5. eijrhneuvw 에이레뉴-오-

평화스럽다, 평화를 유지하다, 화해하다, 일치시키다.

(막9:50, 고후13:11)

설교예화자료

죽음 앞에서의 평화

 

스위스의 한 순교자는 복음 때문에 화형을 당하였습니다 사형 집행 시간이 되어 순교자는 장작더미 위에 맨발로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안한 자태였으며 미소조차 머금고 있었습니다. 이제 막 장작더미에 불을 질러 화형을 집행하려는 순간 순교자는 형리를 가까이 와달라고 불렀습니다. 집행관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왜 그런가? 마지막 유언이라도 있는가? " 집행관이 거만하게 물었습니다.

"아니오, 유언은 없습니다. 이 순간은 제가 기다리던 순간이었소. 부족한 죄인이지만 그리스도 앞으로 가는 순간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으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오."라고 순교자가 말했습니다.

이때 말을 듣고 있던 집행관이 대노하여 소리 질렀습니다.

"너는 분명히 죽음이 두려운거야." 이때 순교자는 조용히

"나으리, 죄송하지만 나으리 손을 저의 심장에 대보십시오. 저에게 죽음이 무서운 것이라면 저의 심장은 심하게 뛸 것입니다. 저의 심장이 평상시보다 빠르게 뛴다면 믿음을 갖지 않아도, 하나님을 부인하여도 좋습니다. " 하였습니다.

집행관은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해 가며 떨리는 손을 순교자의 가슴에 대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순교자의 가슴은 화형 전의 것이 아니라 평온히 자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집행관은 신비로움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죽음 앞에서 평온할 수 있는 그 비범한 힘, 그 용기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일곱 번째의 사람

 

어떤 랍비가 "내일 아침 6명의 사람이 모여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이 되자 7명의 사람이 모였는데, 그중 한 사람은 초대도 하지 않은 사나이였습니다. 랍비는 7명째의 사나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올 필요가 없는 사람이 있으니, 당장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로 누가 생각해도 불렀어야 할 사람이 일어서서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했습니까?

"만일 부름을 받지 않았거나 어떤 잘못으로 나온 사람이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이나가 버린 것입니다.

 

 

왕의 선정

 

옛날 로마를 창건한 로무르스가 물러나고 후계자가 없자 공론이 많았습니다. 국민들은 여러 가지 의논한 끝에 누마라는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몇몇 대표가 찾아가 이 나라를 위해 왕이 되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용한 시골 생활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살던 그는 좀처럼 승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하고 씩씩한 나라 로마에서 나를 왕으로 받들겠다니 고맙기 한이 없습니다마는, 나로서는 지금 나의 생활을 바꾸는 것이 매우 싫습니다. 그리고 나는 로마의 많은 일을 감당하기는 어렵고 더구나 로마는 많은 나라를 정복해서 강해졌기 때문에 그만큼 로마는 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전쟁을 잘하는 장군으로 하여금 왕위를 지키게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

이 말을 들은 대표들은 더욱 누마를 왕으로 모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누마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전쟁을 즐겨하는 기풍을 고치고 평화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여러 새로운 정책을 세워 그 집행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제일 먼저 호위병을 해산했습니다.

충성스런 국민을 의심하고 싶지 않고, 또 충성스럽지 않는 국민이라면 굳이 그가 다스리고 싶지 않기에 해산했습니다.

그 외에도 전쟁으로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을 교육함으로 정의를 높이고, 선정을 베풀음으로써 국민들 사이에 평화를 사랑하는 기풍을 조성하고 정착시켰습니다.

 

 

어록·시·묘사

 

평화는 전쟁보다 좋다. 그것은, 평시에는 자식들이 아버지들을 매장하지만, 전시에는 아버지들이 자식들을 매장하기 때문이다.

(F. 베이컨/ 격언집)

 

평화란 탐욕에 대항하는 힘의 잠재적인 암묵리의 도덕적 승리다.

(P. 발레리/ 구라파의 성쇠에 관한 각서)

 

평화란 그 과정이 창조와 사랑의 행위들로 이루어진 전쟁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평화란 소위 말하는 전쟁이라는 것보다 더 복합체적이고 더 난삽한 것이다. 마치 생이 죽음보다 더 심오하고 더 어두운 것처럼. 그런데 생명의 잉태와 그 기원이 이미 태어나 세상에 적응하고 있는 존재보다 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것과 같이, 평화의 기원과 시작은 평화로운 상태보다는 좀더 불분명하다.

(P. 발레리/ 유럽정신의 위기)

 

손에 곤봉을 쥐고 있는 평화가. 전쟁이다.

(포르투갈 격언)

 

평화는 일종의 포화 상태다. 포화 상태가 오래 계속됨에 따라 우리는 그 포화에 일종의 권태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정비석/ 고원)

 

평화는 않은 척사가 한군데에 집중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도덕적 행위의 소산이며, 복음의 메시지에 의거한 윤리원칙의 소산이며, 복음에 의하여 강화된 소산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평화는 항상 체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지향한 실습이 행해져야만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마음이 평화로우면 어느 마을에 가서도 축제처럼 즐거운 일들을 발견한다.

(인도 속담)

 

으뜸가는 근본적 자연 법칙은 평화를 추구하고 따르는 것이다.

(T. 호브즈/ 공룡)

 

어느 곳에서든 평화가 깨졌을 때, 모든 곳의 모든 나라의 평화는 위험하다.

(F.D. 루즈벨트/ 노변 한화)

 

평화란 것은 인간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평화라 불려지고 있는 것은 전쟁에 끝난 직후, 또는 아직 전쟁이 시작 안된 때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노신/ 일분)

 

정의와 명예가 있는 평화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유익한 재산이지만, 불명예와 수치스러운 비겁이 있는 평화는 가장 불명예스럽고 해로운 것이다.

(폴리비우스/ 사서)

 

불리한 평화도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 낫다.

(에라스무스/ 대화집)

 

평화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산상의 수훈이 축복을 준 것은 평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였다. 내가 말하고 있는 세대는 많은 전쟁 도발자를 목격해 왔었다. 역사에 있어서의 우리들의 위대한 역할은 평화를 창조하는 일이다. 그 역할을 인수하자.

(J. F. 케네디)

 

평화는 우리의 참된 목표이다. 평화 앞에서는 다른 모든 노력은 그 광택을 잃는다.

(J. F. 케네디)

 

평화는 모든 정의보다 더욱 중요하다. 평화는 정의를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으며, 정의가 평화를 위하여 만들어진다.

(M. 루터/ 결혼론)

 

힘의 균형이 아니라 힘의 공유, 조직적인 경쟁이 아니라, 조직적인 공동의 평화가 있어야 한다

(W. 윌슨)

 

평화는 세상의 모든 축복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이다.

(S.T. 콜리지)

 

인간이 세계 평화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인간 기록 중 혁명적인 역전일 것이다.

(G. C. 마셜)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구한다. 평화, 이것이야말로 이 지상에 있어서 행복에 가까워지는 최대의 지름길이며, 그것은 누구나 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C. 힐티/ 신서간)

 

평화-두 개의 전쟁의 시기 사이에 개재하는, 서로 속이는 시기.

(A.G. 비어스/ 악마의 사전)

 

평화는 예술의 보모이다.

(W. 셰익스피어)

 

평화를 보지하는 최선책은 전쟁 발발 당사자가 자기를 교수형에 어울리는 자라고 느끼는 일이다.

(T. 칼라일)

 

광폭한 독수리가 평화로운 비둘기를 낳지 못한다.

(호라티우스/ 송시집)

 

전쟁은 도둑을 만들고 평화는 그 도둑을 교수형에 처한다.

(G. 허버트/ 명궁)

 

평화는 막연한 탐욕에 대항하는, 덕성적, 무언적, 지속적인 잠재 능력의 승리이다.

(P. 발레리/ 오늘날 세계의 반성)

 

평화는 나를 키워 주는 유모이다.

(헤시오도스/ 일과 나날)

 

평화를 이룩하였으면 그 이자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O. 크롬웰)

 

평화는 힘으로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이해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을 뿐이다.

(A. 아인슈타인/ 평화주의론)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A. J. 뮤츠)

 

야망이 끝나는 바로 그곳에서 평화는 시작된다.

(E. 영/ 야상)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그것은 덕성이며, 마음의 한 상태 이며, 박애의 경향이며, 신념이며, 정의이다.

(스피노자/ 신학-정치학론집)

 

승리의 신은 한쪽에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평화의 신은 양편에 승리를 준다.

(에머슨/ 일기)

 

평화는 이상이다. 평화는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복잡한 것, 불안정한 것,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다.

(H. 헤세)

 

 

무장하지 않은 평화는 약하다.

(G. 허버트/ 명궁)

 

평화는 세상을 치료하고 향상시키는 세력이다.

(W. 윌슨)

 

평화에는 두 가지의 힘이 있다. 그것은, 정의와 예절이다.

(J. W. 괴테)

 

노래의 날개 위에 우리 올라 타고/ 함께 갑시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간지스 강 그 기슭 푸른 풀밭에/ 우리 둘이 갈만한 곳이 있다오.//‥‥장총장총 뛰어나와 귀를 종긋거리는/ 귀여운 사슴의 평화로운 모습이 있고/ 해맑은 시냇물의 하느작이는 소리/ 멀리멀리 아스라이울려 퍼지는 곳.

(하이네/ 노래의 날개 위에)

 

박애와 대동은 빛나고/ 평화와 공생은 강하다/ 세계는 본래 한집안/ 자기와 사물을 이루네/ 문명은 손을 잡고 나가야 하고/ 포악한 정치는 재빨리 망하는 것/ 공존은 사직을 일으키고/ 하늘의 도(道)로 사람에게 번창함을 주도다. / 시인은 나라를 가장 사랑하고/ 공리와 평화를 드날린다. / 세계는 시에 의존하여 떨쳐지고/ 시가 흥성하는 나라는 건장하리라.

(손정지/ 세계 평화 시장)

 

저 짚은 녹음 한귀퉁이에/ 상혼이 아직도 박혀 있는 것일까// 6월이 올 때마다/ 슬픈 소리가 흔들려온다. //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어도/ 아픔은 생생만한 역사여// 오, 주여/비상(悲傷)의 연주를 멈춰주소서.//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제동을 꼭 걸어주소서.// 그 참혹한 현장을 모르는/ 세대들의 맑은 가슴 마다에

(장수철/ 6월의 기도)

 

나는 어떠한 무기도 가져오지 않은 오직 시적인 말만 가져온/ 한 사람의 시인이며 꿈을 꾸는 몽상가이네/ 나의 사고들과 관념은 시냇물과 같이 흘러나오나,/ 빛나는 검보다 더욱 우세하네.// 나는 세계 속의 시인들간의 진정한/ 형제애를 꿈꾸고 있네/ 그리고 세상에 널리 퍼진 미덕을 향한 시인들의 꿈들 속에서/나는 펄럭이는 평화의 깃발을 본다네.// 나는 꿈꾸는 작가들이 말한 것을 믿는다네./ "글의 힘이 칼의 힘보다 더 우세하다. "라는/그렇게 밤이고 낮이고 나는 시적인 말을 통해/ 인류에의 평화를 위해 꿈꾸고 기도하네.// 나는 무릎 꿇어 인류를 위한/ 평화를 꿈꾸는 거룩한 인간들의 꿈을 꿈꾼다네/ 나는 인간들에의 호의와 지구상의 평화에 대한/베들레헴의 그 꿈을 꿈꾸고 있네.

(이시도로 디노/ 평화를 향한 나의 꿈들)

 

국민이 그저 육체적으로만 동포애를 갖을 때는/ 보증된 통일관념은 전혀 있을 수 없고/ 그저 연방국이란 것 때문에/ 실질적인 국제적인 평화는 익살극에 불과합니다.

(K. 치다난다/ 국제연합을 위한 시멘트 반죽)

 

아가는 평화의 동산/ 지줄대는 기쁨의 시내입니다.

(김남조/ 아가에게)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서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됨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

(성 프란체스코/ 평화의 기도)

 

평화, 평화!/ 그는 죽지 않았다. / 자는 것도 아니다-/ 그는 인생의 꿈에서 깨어났다.

(P.B. 셀리/ 아도나이스)

 

오늘 나는/ 그 화안한 언저리를 걷다가/ 발에 채인 돌과/ 하얀 휴지 조각들이 소곤거리며/ 치렁치렁 땋아 내리는 평화,/ 이슬에 젖어 빛나는 사람들을 떼로 보았다.

(이우석/ 아침에)

 

평화로 머리가 가득 찬 인간은 희망의 관을 쓴다.

(P. 엘뤼아르/ 평화의 얼굴)

 

평화의 건축은/ 전 세계 위에 기초를 둔다.

(P. 엘뤼아르/ 평화의 얼굴)

 

평화, 완전한 평화 -세상은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러나 평화에 근거한 진리와 정의는/ 인류의 심장이 가출에서 헐떡일 때까지,/ 밤낮으로 쉼없이 부정과 싸워야만 한다./ 산 위에서부터 골짜기와 개천 아래까지/우리는 끊임없이 자유의 여신을 쫓아가야 한다. / 형제 같은 사랑, 동정과 우정으로/ 생이 가득찰 때까지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입술에서 한마디의 불친절한 말도 허락하지 않고./단지 호의, 아름다움, 진리, 정의 친절한 말들만이 쓰이도록 한다. / 왜냐하면 우주의 평화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 / 세계의 형제관계와 평화는/ 모든 사람이 서로서로를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할 때만 올 것이므로.

(베씨 토비아스 터어너/ 세계 평화를 위한 소네트)

 

그렇게 오래도록 미지근했던 겨울날의 사랑이여/ 당신은 내가 성숙했다는 것을/ 아무런 놀라움도 없이/ 평화의 중앙로에 평온이 있음을 생각해 주었네.

(제니비브 알 델레스키/ 겨울날의 사랑)

 

밤은 바닥까지 쏟아져 내리고 강가의/ 모래는 별인 듯 바짝인다. / 다리 밑과 내 가슴속엔 소의 울음.// 그 영원한 소리, 강가에 누워/ 찬란한 평화 속에 나는 강의 우주와/하나가 되어 물길을 뒤쫓는다.

(호르헤 끄레스뽀 또/ 강의 명상)

 

전투준비가 한창인/ 야전군 진지.// ‥‥신록의 산야엔/ 언제 깨질지 모르는/ 두려운 평화가 있다.

(이상면/ 신록)

 

너는 죽어서도 대한해협을 헤엄쳐 건너와/남북한 집집마다 고개 숙여야 하노니/ 하나님은 우리보다 자비로우시 다/ 죽음은 우리보다 평화로우시도다.

(정호승/ 히로히토에게)

 

거기에 무슨 원한이 있으며/ 누가 원수가 되랴/ 그저 사랑하고 존경하며/ 서로를 위하여 사는 평화의 삶이어라.// 주님이, 마음에 임하시면/ 그런 생을 보낼 수 있겠지/ 총칼을 녹여/ 농사의 기구를 만들고/ 독사가 아기를 지켜 준다는 그런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주님이, 마음에 임하시면.

(황금찬/ 말씀대로)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에서 방울져 내려온다.

(W.B. 예이츠/ 이니스프리 호도)

 

때는 봄/ 날의 아침/ 아침은 일곱 시/ 산허리에/ 이슬은 방울방울/ 종달새는 공중을 날고/ 달팽이는 나뭇가지에/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니/ 온 세상이 태평.

(R. 브라우닝/ 피파의 노래)

 

하지만 그는 그녀의 두려움을 중단시켜 주기 위하여/ 온순한 시선의 평화를 보내시니/ 올리브 색깔 황록색으로 단장한 그녀는/ 운행하는 천체에서 살며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의 재빠른 전령은 산비둘기의 날개로/ 요염한 구름과 헤어져/ 도금양나무의 막대기를 크게 휘두르면서/ 모든 바다와 땅에 만국의 평화를 선사한다.

(밀턴/ 그리스도 탄생의 아침에)

 

우주의 위대한 통치자는 잎 하나의 흔들림에도/ 무감각하지 않고, 귀먹지도 아니하며,/ 슬픔으로 일그러지고 구부러진 국민으로 귀기울인다면,/ 이제 희망의 힘줄은 다시 이어지고/ 용기의 망또는 새로운 모양으로 잘라져/반듯한 직선을 이루도록 꾸불꾸불한 실로 꼼꼼히 꿰매어지고/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찬란한 무지개빛 색조로/ 평화의 옷을 재창조하게 될 것이다. //신이 우리의 세상을 축복해주시고, 희망과 충성이 지속되어,/ 사랑의 등불이 모든 사유와 행동을 밝혀 준다면,/ 그 누구도 편견과 책망, 편협이 동포의 웃음을/가리울 정도로, 그렇게 증오와 폭력 또는 탐욕을/마음에 품지 않을 것이며, 평화의 요셉망루를/ 수선할 하나의 실을 먼저 그의 손에 쥐게 될 것이다.

(프로나 레인/ 평화의 패턴)

 

평화, 너 낯선 산비둘기여, 너 언제나 그 놀라기 잘하는 날개 접어/ 이 이상 더 내 주위를 방황 말고, 내 나무 그늘에 쉬려는가?/평화여, 언제 나는 평화로 우려나?/ 나는 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위선자가 되지는 않으련다. 어느 때든지 네가 오기를 기다리마.//그러나 겉치레한 평화는 어리석은 것. 어느 평화가/ 전쟁을 경고, 전쟁을 굴복시키고, 전쟁의 끝장을 가져오려 나?// 오오, 내 주는 정녕 평화를 빼앗는 대신 얼마간 보류하는 것-훗날에 평화를 자랑하기 위해/ 주는 심한 인내를 점지하신다. 그리하여 평화가 여기/자리잡을 때, 주는 일거리를 가지고 온다. / 소근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는 내려와 앉아 생각에 잠긴다.

(홉킨즈/ 평화)

 

자비와 동정과 평화와 사랑에게/ 우리들 모두 슬플 때면 기도하고,/ 이와 같은 즐거운 덕에는/ 우리들 모두 감사를 돌려라.// 자비와 동정과 평화와 사랑은/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또한 자비와 동정과 평화와 사랑은/ 하나님이 돌보는 아들인 인간이라.//자비는 사람의 마음/ 동정은 사람의 얼굴/사랑은 거룩한 사람의 모습/ 평화는 사람의 옷과 같다.

(블레이크/ 하나님의 모습)

 

사랑, 은총의 딸이여, 그대의 뒤에/ 어떤 덕이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으랴,/너와 더불어 '친절'이 있을 때/그 뒤를 웃음진 '인내'가 따르나니/ 그 귀여운 자매인/ '평화'와 떨어지는 일 없도다.

(라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리며)

 

목마를 때 사람들 모두 찾는 평화의 샘이신 주님,/ 잠시 비참한 내 투쟁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사 / 내 행할 바 가르쳐, 주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피로 얼룩진 곳에 무릎꿇고 엎디게 하소서.

(베를렌/ 예지 -4)

 

하나님, 생각에 잠길 때 나는 당신에게 도달합니다. / 그렇게 되면 평화, 평화가 소생합 니다/ 조용한 숲속 깊은 곳을 흐르는 시내 옆에서/ 나는 온화하게 명상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잠/ 14편의 기도 노래-10)

 

텅 빈 칼집의/ 평화 거꾸로 솟구치는/ 불안 비 속을 날아다니는/ 눈감은 물고기떼 혼절한/ 기억의 발바닥에 닿는 모래땅

(이상희/ 북)

 

사랑의 종이 울리거든/ 축복의 기도를 울려라/ 네 집과 이웃과/ 겨레와 인류를 위해/ 눈 앞에 평화의 세계/ 꽃 피듯이 열리리라.

(이은상/ 사랑의 종)

 

내 마음 안에도 계시다/ 거울을 보듯 마음 속을 보면/ 하늘이 내려앉은 마음 언덕에/ 예수님은 구원의 기도를 드리고/ 이 민족의 평화를/ 잃어져가는 사람을 위하여 빌고 계시다/ 거친 내 마음 들판에 서 계신/ 나의 예수를 보고 있다.

(황금찬/ 나의 예수)

 

그런 산 같은 믿음을 갖고저/마음 한자리에 놓고/ 나라의 살림과 평화/ 빛나는 자유/ 휘날리도록 기원하고/우리의 주권으로 평화의 통일을/ 이룩하도록 기도하리다.

(황금찬/ 새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어머니의 가슴에서/ 하늘에 오르는 소망의 무지개// 아아 곱기도 하여라/ 노랑은 평화라지/ 초록은 희망이라지.

(박용주/ 무지개)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사랑과 평화를 즐기던/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선정(禪定)께 든 강에서/ 나도 안으로 환해지며/ 화평을 얻는다.

(구상/ 강 · 3)

 

다시 오늘 별들은 고운 눈으로 반가운 표정을 빛내면서 머리를 조아 다투어 인사합니다/ 풀 사이 의 벌레들은 이상한 노래로 백주의 모든 생명의 전쟁을 쉬게 하는 평화의 밤을 공양합니다.

(한용운/ 고대)

 

솟아나는 고운 피 흘리며/지쳐 쓰러진 그 돌밭길/ 평화의 맑은 종 울려/ 눈부신 사랑의 꽃 피어난다.

(엄창섭/ 부활송 1)

 

동방의 박사들은/ 꼬리별을 따라오고/ 나무의 새들, 방울을 흔들며/ 평화의 노래를 불렀느니.// ‥‥마음의 창에 불을 밝히라/ 그리하여 우리들의 예수를 영접하라/자유이며,사랑이고, 평화의 빛,/ 영원한 구세주를 맞으라.

(황금찬/ 마음에 불을 밝혀)

 

주여,/ 받으신 수욕을 평화로 바꾸신/ 님의 그 마음 나래를/ 저들에게/ 고이고이 펴 주소서.

(오병학/ 기원)

 

아, 주님이 은밀히 주시는/사랑과 평화에/ 눈물젖은 내 가슴이 고요히 입맞추는 순간이라고!/ 그것은 놀라운 기적이라고도

(배경란/ 입맞춤)

 

안스러이 지켜보는/ 내 마음속도 모르고/놈들은 오늘도/ 가장 확실한 평화를 예비한다

(서덕석/ 새장 앞에서)

 

그래, 나는/ 어른보다는 어린이를 좋아하고/ 털북숭이 강아지를 귀여워하는/ 평화주의자다. / 늙은 가수의/ 흘러간 노래에 눈물 쏟는/ 가슴이 여린 인간이다, 나는.

(신규호/ 항변)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도종환/ 아홉 가지 기도)

 

영세 중립 100년의 스위스는/ 평화의 나라‥‥/ 제네바는 자주자주/ 남의 평화 때문에 시끌시끌 더운 거리/ 150미터 레만 호 분수는 그래서/ 페스탈로찌 사랑의 말씀으로/ 장 자크루소 평등의 말씀으로/ 더운 하늘 적시는 이슬비/ 이슬비로 휘날린다.

(조남두/ 제네바의 이슬비)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고 당신이 말하신/평화의 약속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소서/ 새로운 믿음과 새로운 힘과 새로운 용기도/ 우리를 채우사 평화를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콘라드 힐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사랑의 주님, 당신의 나라가 세세토록 확장되어/ 모든 세계로 하여금/ 영원한 평화의 아침을 보게 하소서.

(글레디즈 알렌 커밍즈/ 우리 주님께 기쁨을)

 

주여, 제가 당신께 아뢰기 전에/ 제 마음을 고요 속에 잔잔케 하소서./ 주여, 제 마음이 당신의 임재 속에서/ 포근해 지고 제게 평화가 깃들게 하소서.

(반디 무어/ 기도하기 전에 드리는 기도)

 

피비린내나는 극이/ 막을 올리고/ 평화를 외쳤던 친구의 무덤을/ 군화가 짓밟으며 간다.

(브레히트/ 평화를 위한 한 전사의 죽음에 부쳐)

 

시끄러운 일이 사방에서 극성떨며 나를 가둬버릴 때엔,/ 말 없는 주여,/ 님의 평화와 휴식을 가지고 내게로 오십시오.

(타고르/ 기탄잘리)

 

그리하여 제가 비었을 때 주님이 채워 주신 것과,/ 슬픔으로 병들었을 때/ 주님이 고쳐 주신 것과,/ 세상일로 눈멀었을 때 주님이 오셔서 보여주신 것과,/ 평화를 얻는 유일한 길이 주님을 아는 것이라는 것을/ 사랑하는 주여,/ 은 세상이 알게 하소서.

(테리 턱커 프랜시스/ 믿음으로 드리는 기원)

 

그리고 가을이 오면/ 땅에 평화로이 떨어지는/ 꽃잎 피게 하셔요.

(린다 에간/ 여름의 기도)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을/ 돌보아 주시고 축복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그들을 모든 죄악에서/ 지켜 주시고/ 평화로이 잠들게 하옵소서.

(슈바이처/ 6월의 기도)

 

어린 물고기와 방게가/ 정다운 이웃이 되어/ 평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눈망울에 머물었던/ 티 없는 자유와 평화/ 어느 누가 다시 돌려주시겠습니까.

(임춘남/ 소금 만들던 곳)

 

주님의 창고, 모든 풍요 중에서/ 제게 더 이상 아무것도 주지 않으실지라도/ 주여, 이것만은 제게 주소서.//조용한 마음, 만족, 평화/ 사랑하는 가슴, 순종, 정결,/ 주여! 이것만은 제게 주소서.

(조 B. 라이스/ 주여! 이것을 주소서)

 

하나님 약속은 인생의 경주에서 겪는/ 시험들을 제해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분의 충만하신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 시험들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것이라.// 노동 대신 안식이 아니라/ 노동 속에서의 안식이며/ 혼란 대신 평온이 아니라/ 고통이 가라앉은 뒤의 찾아드는 평온이어라.// 어둠대신 광명이 아니며/슬픔 대신 기쁨이 아니며/ 다만 한밤중의 밝음이며/ 비애 속에서의 구원이어라.// 잃음 대신 얻음이 아니며/ 고통대신 편함이 아니며/ 다만 고통 속에서의 위안이며/ 잃음으로써 얻어지는 생명이어라.//약함 대신 강함이 아니며/ 눈물 대신 미소가 아니며/ 싸움 대신 평화가 아니며/ 두려움대신 노래가 아니며// 다만 연약함을 힘으로 채우시며/ 눈물이 변하여 소망되게 하시며/싸움 중에 평화를 주시며/ 그리고 찬미로써 두려움을 물리치게 하시는 것이어라.

(노만 F. 도우티/ 이 모든 것 속에서)

 

평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화를 주십시오./ 우린 멸망이 무섭기에 전쟁이 없길 기원합니다. / 하지만 이렇게 기원해도 평화는 오지 않으니/ 인간의 본성은 너무도 나쁜가 봅니다./ 우리들 자신과 갖고 있는 것에 대해 걱정하며 살도록/ 아마 그렇게 운명지어진 모양입니다. / 우린 언제나 싸우려 하고/ 이유는 언제나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오./ 아마 전쟁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겁니다. / 오직 유일한 평화는 마음의 평화이지오./ 변하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 주님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유일하신 분입니다.

(엘렌 스미스 모어록/ 평화)

 

전장에서 꽃다이 산화한/ 이름 없는 용사있음으로 하여/ 싸움은 비로소 승리로 끝이나고,/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 헌신한/ 이름없는 지사 있음으로 하여/ 인류는 지금까지 이어 왔어라./ 아아, 한 생명의 무릇 인간으로 서기까지엔/ 이름 없는 교사의 땀이 감초인 것이러라.// 오오, 하물며/ 야훼의 영광을 위한 생명의 깃발 아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모인 우리들/ 세상의 이름 없는 용사만 못할 수 있으랴./ 세상의 이름 없는 지사만 못할 수 있으랴./ 세상의 이름 없는 교사만 못할 수 있으랴.//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 중에서도/ 당신의 나라에 가장 합당한/ 아름다운 어린 생명 맡기신 주님,/ 님께서 내게 이 일 맡겨 주셨으니/ 실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생명을 증거하는 무명의 교사로서/ 사랑을 가르치는 무명의 교사로서/ 이 생명을 부르시는 그날까지/ 말 없이 충성하리이다. / 숨어서 기도하리이다. 엎드려 헌신하리이다. / 오오, 이 엄청난 사명 주신 주님이시여!

(김성령/ 무명의 교사)

 

평화, 너 낯선 산비둘기여, 너 언제나 그 놀라기 잘하는 날개 접어/ 이 이상 더 내 주 위를 방황 말고, 내 나무 그늘에 쉬려는가?/ 평화여, 언제나 너는 평화로우려나? 나는 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위선자가 되지는 않으련다. / 어느 때든지 네가 오기를 기다리마./ 그러나 겉치레한 평화는 어리석은 것. 어느 순수한 평화가/ 전쟁을 경고하고, 전쟁을 굴복시키고, 전쟁의 끝장을 가져오려 나?/ 오오, 내 주는 정녕 평화를 빼앗는 대신/ 얼마간 보류하는 것-훗날 평화를 자랑하기 위해/ 일단 자연 속으로부터 나왔을 바에는 결코 다시는/ 자기의 형체를 어떤 물질로부터든 취하지 않고/ 단련한 황금과 황금 도금으로/ 그리스의 금 세공장이가 만든 모습을 따르리라./ 졸음겨운 제왕을 깨우기 위해서/ 또는 황금 가지에 놓여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일들을/ 비잔티움의 귀족과 숙녀들에게 노래해주기 위해서.

(홉킨즈/ 평화)

 

날마다 찾아드는 황혼에 평화 있어라/ 다리 위에 평화 있어라 술에 평화 있어라/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평화 있어라/ 그리고 나의 가슴에 올라와서/ 흙냄새와 사랑으로 가득찬 옛 노래를/ 펼쳐주는 언어에 평화 있어라/빵냄새로 눈을 뜬/아침의 도시에 평화 있어라/많은 강을 끌어들인/ 미시시피강 위에 평화 있어라/ 내 아우의 내의에 평화 있어라/ 바람이 쓰고간 것 같은 책에 평화 있어라/ 키에프의 대 콜로호즈에 평화 있어라/ 사방팔방에 쓰러져 있는 사자들의 재 위에 평화 있어라/브룩클린의 검은 조교(弔橋) 위에 평화 있어라/ 햇살처럼 집에서 집으로 도는/ 우편배달 위에 평화 있어라/ 메꽃과 같은 발레의 무대에서/ 소리치고 있는 안무가 위에 평화 있어라/ 로사리오에 대해서만 쓰고 싶은/ 나의 오른손에 평화 있어라/ 주석처럼 숨어 있는/볼리비아인에게 평화 있어라/ 그대가 시집갈 수 있게끔 평화 있어라/ 비오비오의 모든 제재소에 평화 있어라/ 스페인 게릴라의/ 파괴된 심장에 평화 있어라/ 비둘기를 수놓은 방석이/ 가장 그리운/ 와이오밍의 조그만한 박물관에 평화 있어라/ 빵집과 그 사랑에 평화 있어라/밀가루 위에 평화 있어라/ 이윽고 싹을 내미는 보리에 평화 있어라/ 숲속을 찾는 여인들 위에 평화 있어라/ 모든 대지와 물 위에 평화 있어라.

(네루다/ 평화 있어라)

 

밤에 항상 헤어지고/ 낮에 망연히 책임을 배워// 우리가 젊었던 날에는/ 높은 길이 보였다// 이제 쉽게 단념한 이에게/ 오는 평화로움// 경사의 목./ 측면으로 보이는 손목./ ·오는 평화로움.

(마종기/ 연가)

 

거기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리 우는 곳으로 방울져 내리 거든,/ 한밤중 온통 반짝이고, 한낮은 자주 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 새 날개소리 가득한 그곳.

(예이츠/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

 

누군가 그의 마음을 정할 때,/ 그가 찾아야 할 인생의 최고 가치를/ 크리스찬의 사랑과 평화와 안식 속에서/ 이웃을 도움으로써 찾으리라 마음먹을 때,/ 그는 찾으리라 달콤한 기쁨의 극치를./ 결코 놓치려 하지 않을 그곳에 깃드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할 데 없는 성자의 길/ 하나님을 섬기며 그 길을 걸으리라.

(아이젠하워/ 누군가 마음을 정할 때)

 

 

설 교 노 트

 

화평케 하는 자

마5:8

 

서론

본문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산상에서 교훈하신 팔 복 가운데서 일곱 번째의 축복입니다. 이 산상 보훈을 주목해 보면 인생에게는 복이 필요함을 전제하고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자세와 자격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면 분쟁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면 분쟁케 하는 자는 마귀의 아들이 된다는 결론입니다. 현하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세계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 되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1. "화평케 하는 자"의 의미

화평케 하는 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먼저 화평이란 뜻에서부터 밝히려고 합니다.

(1) 화평이란 뜻

성경 구약에 26번, 신약 17번, 도합 43번 나옵니다.

그 의미는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나 그 공통된 의미는 화목, 평화라고 하였습니다.

(2) 화평의 대상

누구와 화평해야 합니까? 먼저 하나님과 화평하고 다음엔 믿는 형제들과 화평하고, 그리고 나서 모든 사람과도 화평하라고 했습니다.

(3) 화평케 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란, 말 그대로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화평의 창조자라는 말입니다. 그 화평케 하는 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화평케 하는 방법

(1) 자기 마음속에 화평을 소유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서 근심과 불안의 요소를 제거하고 하나님께로부터 화평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2) 우리의 환경에서 불화의 요소를 제거해야 됩니다.

이 불화와 분쟁의 요소는 모든 미움과 교만과 시기와 탐심 등입니다. 이러한 마귀의 씨앗을 제거하고 화평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3)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화평의 상징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수된 담을 헐고 화평을 이룩해 놓았습니다. 우리도 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① 고난을 참는 것입니다.

② 남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내가 양보하는 아량입니다. 한마디로 내가 희생을 하는 길입니다.

 

3. 화평케 한 자의 결과(축복)

한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말은

(1)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아들로서의 모든 기업을 누리게 됩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고 환희가 있고 영광이 있습니다.

(2)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습니다.

이는 모든 환경을 안전하게 빛나게 창조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아니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3) 만사가 형통합니다.

우리나라 말에도 "가화 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화평케 하는 자는 만사 형통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결론

우리 기독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화평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귀의 잡초인 불화와 분쟁의 요소를 제거하고 사랑과 평화의 씨를 심어 잘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도 평화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화평주의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평화주의자가 되어 보다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이 길이 우리 국가 민족이 사는 통일의 첩경이며 전 세계 인류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끌림

사11:6

 

서론

"어린아이에게 끌리며·.."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나 어린아이에게 끌립니까? 이리와 표범과, 어린 사자와 같은 악하고 사나운 짐승들을 철모르는 듯한 어린아이가 끌고 가게 되는 광경은 참말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으로 악인이 그와 같이 변한다는 사실은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1. 흉악한 자가 아버지께로

이 세상에는 낭비벽이 심하고 불신실하며 거짓되고 포악한 불신 부모가 많습니다.

그들은 모든 종교적 특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다른 길, 즉 넓은 길을 택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가는 어린 자녀들이 그런 불신자인 부모를 인도하여 가정으로 돌아오게 하며, 생활의 절제를 하도록 하며, 교회에까지 인도하여 신실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봉사하게 만듭니다.

흉악하고 방탕하던 자가 자신을 바로 깨닫고 찾게 되자 스스로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2. 메시아 왕국은 어린이 정신입니다.

제자들이 그 나라에서 누가 큰 자가 될 것인가를 다투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른인 그들이 완전히 변해서 그들의 영혼이 어린아이와 같지 못했을 때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왕국에 소개한 것은 어린이정신입니다.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도 없고, 복잡하고 가치 없는 믿음과 평강은 배제되었으며,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의심없는 정신만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어린이라는 것은, 구태이 입증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들은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거나 하찮은 존재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는 존재로 생각하고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도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3. 메시아왕국에서 받을 상

어린아이들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은혜를 계속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유순하고 진실하며 순종할 때에는 기쁘기 한량없으나 그들이 배반할 때에는 심히 괴롭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아이는 우리를 기독교의 유익한 들판으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나라에서 각기 받을 만한 상을 받도록 하였습니다. 어진아이와 같이 사심이 없이 사는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큰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칭찬과 영광을 미리 누린 자는 하나님 나라의 상이 이미 빼앗겼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여기 어린아이는 하나님께 이끌리고 또 어린아이는 많은 사람을 이끌기를 원하니 이는 평화를 이루는 것이요, 천국의 모형입니다.

 

 

하나님의 펑화

엡2:13-18

 

서론

세계의 인사말 가운데 '평화'를 내용으로 하는 인사말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히브리인들의 "샬롬"이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말입니다.

인사말에 평화의 내용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인간들이 평화를 잃어버리고 평화를 갈망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확실히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들은 평화를 잃고 살아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평화를 잃었고, 이웃과의 평화를 잃었고, 만물과 평화를 잃었으며, 하나님과 평화를 잃었습니다.

 

1. 평화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

인간은 잃어버린 평화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많은 정복자들은 무력으로 평화를 이룩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림으로 더욱 원성만 사게 되었고, 전쟁은 전쟁을 부르는 악순환만 불러 일으켰습니다.

플라톤은 지혜 ·용기 · 절제의 덕을 잘 지키면 평화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죽고, 현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무신론 실존주의자 까뮈는 인간이 서로 성실하게 산다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양보가 없는 성실은 더욱 이기의 벽만 두텁게 할 뿐입니다.

불교의 교주 석가는 모든 마음의 욕심을 버리면 평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 것인가,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알지 못하고서 한 말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17:9)"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참된 평화가 이룩될 수 없습니다. 설령 인간의 힘으로 평화가 오더라도 그 평화는 잠깐이요, 지속될 수 없으며 가식된 평화입니다.

그러면 진정한 평화를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2. 참된 평화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옵니다.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룩할 수 있는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롬5:1, 엡2:13-14).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보혈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원수된 장벽을 헐어 버리고 평화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죄를 보시면 진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짊어지시고 의로운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엡2:14-15)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야말로 진정한 평화입니다.

 

결론

예수님의 평화를 받아들일 때 내 자신과 평화가 이루어집니다(요14:27). 그리고 이웃과의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만물과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평화를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피

성 경 활 용

1. 피의 종류

(1) 의인의 피

(마23:35)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2) 성도들과 예수 증인들의 피

(계17:6)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3) 십자가의 피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 암아 자기와 화평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4) 백발의 피

(왕상2:9) 저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5) 언약의 피

(출24:8)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6) 무죄한 피

(신21:8)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7) 여호와 종들의 피

(왕하9:7)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

(8) 그리스도의 피

(고전10:16)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9) 하나님의 피

(행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 그리스도의 피의 성격

(1) 화평을 이룬다.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2) 교회를 사셨다.

(행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3) 거룩하게 하신다.

(히13:12)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4) 언약의 피다.

(마26:28)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맡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는 피 곧 언약의 피니라

 

3. 예수님의 피와 성도와의 관계

(1) 옷을 씻어 희게 할 것

(계7:14)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회개하였느니라

(2) 마셔야 한다.

(요6:53)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4.피의 상징적 표현

(1) 생명의 피

(시72:14)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 저희 피가 그 목전에 귀하리로다

(2) 파괴의 피

(겔35:6)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3) 보응의 피

(사49:26) 내가 너를 학대하는 자로 자기의 고기를 먹게 하며 새 술에 취함같이 자기의 피에 취하게 하리니

(4) 승리의 피

(시58:10) 의인은 악인의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관련원어풀이

1. !D; 담-

(1) 피.

(신19:10, 시106:38)

(2) 피흘림, 살인, 학살.

(창37:26, 레17:4)

(3) 포도주의 피, 즙.

(창49:11, 신32:14)

(4) 흘리는 피.

(사9:4)

 

2. [v'r; 라-솨

(1) 불의하다, 사악하다.

(왕상8:47, 전7:17)

(2) 범죄나 불의를 선포하다, 정죄하다.

(출22:8, 신25:1)

(3) 불의하게 행동하다.

(대하20:35, 욥9:24)

 

3. aiJma 하이마

(1) 피, 혈액.

(막5:25, 행15:20)

(2) 생명의 첫 기원인 피.

(요1:13)

(3) 제사에 섞는 피.

(눅13:1)

(4) 희생 제물의 피.

(히9:7, 12)

(5) 그리스도의 피.

(고전10:16, 요일1:7)

설교예화자료

천국에서의 약속

 

빅토리아 여왕은 종종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갔습니다. 한 번은 주 예수 안에서행복하게 지내는 소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왕이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자, "폐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가난한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여왕은,

"그렇지만 나는 당신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 주고 싶군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은 모두 가졌습니다. 그러나 만약 폐하께서 저에게 한 가지를 약속해 주신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오." 여왕이 대답했습니다.

"오, 폐하, 당신이 나와 천국에서 만날 것을 약속해 주십시오." 부드럽고 단호하게 여왕이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

 

 

살과 피의 대가

 

어느 날, 한 아들이 부모의 간섭도 귀찮고 짐스러워 독립된 생활을 하고자, 그동안 쓴 돈과 모은 돈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자라온 동안 부모에게 진 빚을 다 갚으려고 돈으로 계산해 보니 대략 이천여 만원 정도 추산되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간에 진 빚을 다 계산해 드리면 자식된 도리는 다한 것이니, 더이상 부모님께 속하여 간섭받지 않고, 해방된 자유로운 몸이 되겠지.'하고 그 아들이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튿날 즉시 부모님께 2천만원을 내놓고 자기 뜻을 밝혔습니다.

"이제 이것으로 부모 자식간의 도리는 계산이 끝났으니, 저는 자유로운 몸입니다. "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넋을 잃고 통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똑바로 서서

"이 돈 다 가지고 썩 물러가거라."하고 소리쳤습니다. 아들은

"왜 그냥 나갑니까? 아무리 부자간이라도 셈은 셈인데 계산을 다 끝내고 미련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가야지오?"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더욱 화를 내면서

"그래 좋다, 그러면 네가 내게 진 빚을 돈이나 물질로 계산될 수 있단 말이냐? 만일 너를 돈이나 물질로 보고 길렀다면, 너를 낳지 않고 차라리 네 양육비를 은행에 예금하였으면 더 효용성도 있고 속도 썩지 않았을 것이다. 너 같은 자식놈 때문에 무자식 상팔자라는 소리를 하는 거야. 진정 나는 너를 나의 살과 피로 키운 것이니라. 네 정말 진 빚을 계산하고 떠나려거든, 너도 나와 같이 너의 살과 피를 나에 대한 사랑으로 청산해야 할 것 아니냐?" 하고 꾸짖었습니다. 아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것도 있었나? 살과 피의 사랑, 돈으로 계산이 안 되는 그런 것도 요즈음 세상에 있을까? 아니, 그런 것들이 밥먹여 줄 수 있는 세상이란 말인가? 단돈 몇 문짜리 인간! 계산이 다 되었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 무엇이 남아 있단 말인가? '

 

 

바로 그때에, 유월절의 피를

 

랍비들은 다음과 같은 전설을 알고 있습니다. 유월절 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떤 유대인 가정 가운데에는,그의 아버지에게 문인방에 피가 뿌려져 있는지를 자꾸 물어보는 병중에 있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하인이 그것을 잘 해 두었다고 계속 말해 주는 아버지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아버지에게 자신을 위해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하여 딸의 청대로 아버지는 문 밖에 나와 문 인방을 살펴보았으나 피가 뿌려져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서둘러 우슬초 가지와 대야를 가져다가 바로 문인방에 피를 뿌렸습니다. 그때, 어떤 그림자가 그 위로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보라! 죽음의 천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록·시·묘사

 

피에 대한 목마름의 본질-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에 있어서의 삶의 도취이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동물처럼 되어 이성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짐으로써 삶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피"는 삶의 본질이 된다.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고 강하고 독특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준다.

(E. 프롬/ 인간의 마음)

 

피라는 것은 가장 극적인 빛깔과 구성 요소를 가진 것이 사실이다.

(B. 맬러머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테르툴리아누스)

 

피를 흘려 생물을 죽이지 않을지라도 자연은 인류 보존을 위하여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

(L.A. 세네카)

 

두견이 목에 피 내어 먹듯. <*울고는 피를 토하는 두견새의 목에서 피를 내어 먹듯 한다함은, 남에게 억울한 일, 못할 일을 하여 재물을 뺏음을 이름>

(한국 속담)

 

굴복하는 입술에 번쩍이는 피.

(P. 발레리/ 해변의 묘지)

 

이 곤란한 전쟁을 이겨내는 것 외에 나의 할 일은 없다. 나도 수상으로서 영국의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하여 싸운다. 육지로 바다로 하늘로 전력을 다하여 싸우고 싸워 이기는 것이다. 전쟁이 아무리 심해지고 아무리 괴롭더라도, 아무리 길게 끌더라도 히틀러를 타도하고 영국을 지켜 보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정의와 자유도 지킬 수 있다. 승리를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리라. 내가 국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뿐이다.

(W. L.S. 처칠)

 

영원히 항거하는 괴로움이/ 침침한 어둠 속에 사로잡혔으되/ 나는 후회하지 않노라, 그러나 이 이상/아담의 피 가져 있기를 원치 않노라.

(R.A. 슈뢰더/ 생명의 한가위)

 

붉은 이빨이 그분의 얼굴을 찢었다/ 하느님의 피가 흐른다.

(I. 로젠버그/ 전쟁의 소식을 듣고)

 

피와 살이 지성보다도 더욱 슬기롭다는 신념, 이것이 나의 크나큰 종교입니다. 학식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입니까? 정신이나 도덕이나 또는 그 외의 모든 것의 간섭을 물리치고서 직접적으로 피의 욕구에 응하는 것만이 나의 소원입니다.

(D. H. 로렌스)

 

사람의 피부 두께는 대략 반 푼도 못 될 것이며, 새빨간 뜨거운 피는 그 후면을 따라서 겹겹으로 빽빽하게, 담벽 위에 기어가는 느티나무 벌레보다도 더욱 빽빽하게 혈관 속을 분류하면서 따스한 열을 발산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각 이 따스한 열에 서로가 유혹되고 선동되고 이끌리어서 열심히 기대고 입 맞추고 끌어안음으로써 생명이 깊이 취하는 큰 환희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노신/ 복수)

 

첫사랑의 행복을 누리고/ 따스한 젊은 피, 승천에 앞선 잠과도 같이/여자의/흰 목덜미 수술도로 내리치고/ 식은 피로 주홍치마 오려내어/ 허리 밑에 서려도 자기만 했다.

(G. 벤/ 흑인신부)

 

우리들 자신의 피에서 생겨 나온 것밖에는 아무런 영혼도 아무런 불꽃도 우리를 승화시킬 수는 없다.

(H. 카로사/ 정열)

 

그리스도의 피가 어디로 영원히 흘러가는가를 보라/ 그의 한 방울의 피는, 아니 단지 반 방울이라도/ 나의 영혼을 구제하리라, 아 나의 그리스도여.

(C. 말로/ 파우스트 박사)

 

피는 그의 심장에서/ 버려진 땅속 깊이 스며/ 한 송이 고운 꽃대에 타올라.

(이우석/ 참 귀여운 아기가)

 

그 순간 입술 사이로 검붉은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눈은 저주와 항거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민은 묵묵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왼쪽 귀 밑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은 핏물에 젖어 얼룩지고 목줄기에도 핏덩어리가 엉켜 있었다.

(오상원/ 모반)

 

정녕 어두움 뒤에라야만 빛은 오는 것일까./빛이 빛으로 이어지는 섭리는 없는 것일까.//이미 우리 입을 봉하여/ 아기 예수 나심을 말하지 못하게 하셨으매// 이제 우리 눈을 가리워/ 죄 없는 아기들의 죽음을 보지 않게 하소서.// 어머니의 품에 안긴 죄 없는 아기가/ 왜 폭군의 칼질에 피 흘려야만 하는가.// 다른 생명들은 모두 피 흘리고 있는데/ 왜 "아기"만은 현장에서 도피해야 했는가.// 정녕 겨울이 지나야만 봄이 오는 것일까./봄이 봄으로 이어지는 섭리는 없는 것일까.

(김희보/ 아기 학살)

 

가락 맞춰 흐느껴 우는 샘물처럼/ 내 피 굽이쳐 흐르는 듯 여겨지는 적 있나니/‥‥/ 경기장에런듯 도시를 가로지나 피는/ 흘러가나니, 포도(鋪道)를 작은 섬으로 바꾸며/ 온갖 생물의 목마름 적셔 주며/ 가는 곳마다 자연을 붉게 물들이면서.

(C.P. 보들레르/ 피의 샘물)

 

쨍쨍한 햇빛에 눈을 다시 떴을 때/ 내 곁에는 피를 잔뜩 저장했으리라 여겨지던/ 그 억센 마네킨 대신/ 해골쪽들이 어수선하게 떨고 있어.

(C.P. 보드레르/ 흡혈귀의 변신)

 

엘리‥‥ 엘리‥‥ 엘리‥‥ 엘리‥‥ 스스로의 목숨을 스스로 매어달아, 어떻게 당신은죽을 수가 있었는가? 신이여! 어떻게 당신은 인간일 수 있었는가? 인간이여! 어떻게 당신은 신일 수가 있었는가? 아! ‥‥방울방울 떨구어지는 핏방울은 찾는데, 바람도 죽고 없고 마리아는 우는데, 마리아는 우는데, 인자여! 인자여! 마지막 쏟아지는 폭포 같은 빗줄기를 어떻게 당신은 주체할 수 있었는가? //무엇이 여기서는 일어나야 하는가? 갈보리의 하늘은 여전하구나. 하늘도 해도 있고 여전하구나.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지고 오른 나무틀엔 피와 땀의 기름, 번들거려 하늘 아래 고웁기도 하구나. 내가 쓰는 면류관 가시관 위에, 아으, 무지개처럼 이제야 둘려 피는 원광을 보라! 진달래를 이기듯, 네 군대의 못자국은 네 군데의 꽃익임. 솟쳐 나는 고운 피여! 먼, 먼. 은하에도 한 줄기의 피의 강은 서는데, 떨궈지는 방울마다 타는 목마름, 타는 목마름. 아으,죽음 소리,어둠 소리‥‥ 한낮의 갈보리는 캄캄해져 오는데, 땅들은 갈라지고 무덤들은 트는데, 엘리‥‥ 엘리‥‥ 엘리‥‥ 엘리‥‥ 아으, 사랑하게 하라. 사랑하게 하라. 이제야 다시 한 번 사랑하게 하라. 죽음을, 원수를, 어둠을, 밤을, 이제야 다시 한 번 껴안게 하라. 쏟아지는 먹비 대신 찬란한 빛발, 하늘 함빡 빛발들이 쏟아져 오면, 가슴마다 새로 발해 빛이 솟으면, 사랑이어! 꽃 빛깔 꽃 빛발에 쓰러지게 하라. 파다아하게 서로 안고 쓰러지게 하라. 파다아하게 서로 안고 일어나게 하라.

(박두진/ 갈보리의 노래)

 

순교자와 죄인들이 탄식하며 슬퍼하는 소리는/ 의심할 나위 없이 그 마음을 취하게하는 교향악/ 왜냐하면, 이 즐거움이 희생의 피를 요구한다 하여도/ 하늘은 아직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들레르/ 베드로의 부인)

 

동굴에서 울리는 예찬의 외침은 멋지다/ 온 세계 사람들의 아멘 소리는 멋지다/ 순교자가 흘린 피는 멋지다.

(스마트/ 다윗에게 부치는 노래)

 

요새 내 기도는‥‥ 쪼개면 붉은 피로 터지는/ 수박 속살 같다/ 기도란, 참으로 오랜 연륜속에/ 번득이는 칼일러라./피에 젖은 시간에 옮겨/ 바람에 맞세우면/ 아람드리 느티나무가 된다.

(고진숙/ 내 기도는)

 

당신의 구멍난 손/ 선혈은 무늬져 흐르다가 엉켰어도/ 하얗기만 한 손길로 들어 보이시는// ‥‥나를 부르시는/ 타오르다가 마지막 가물거리는/ 등불의 몸짓으로 날 부르시는/피 머금으신 손짓.

(최은하/ 통로에의 기원)

 

저는 지금 가야 해요/ 빈혈이거든요/ 몹시 어지럽거든요/ 바람이 이런 식으로 불 때/ 참을 수 없거든요/ 누군가의 피가/부르거든요/ 어느새 이빨이/ 미녀의 목에 꽂혀 있거든요/ 혼혈의 뜨거운 방전/ 입술이 불붙거든요

(이상희/ 드라큐라)

 

새벽 대중 목욕탕에서/ 코피를 쏟다가/ -모로 누워 볼까/ ‥‥아무도 깔아주지 않던 내생의/ 주단을 스스로 펴고/ 흠뻑 젖으면서/ 오, 빈혈만 아니라면.

(이상희/ 쉬고 있는 권투사)

 

당신의 어디를/ 열어 주세요/ 탯줄을 움켜쥐고/ 동그랗게 몸을 감아/ 발가락을 빨면서/피 속에 양수 속에/ 질펀히 잠길래요

(이상희/ 열어 주세요 묻어 주세요)

 

활을 들고 헤메인 나날들,/ 빛발 가르며 나아간 화살은 숲그늘에 묻히고/ 눈물처럼 쓸쓸히 진 천둥과 바람은/ 심장으로 흘러 스미어/온몸의 피 불처럼 환히 타오르게 하더니.

(전동균/ 과녁)

 

웃어다오. 웃어다오. 안간힘을 다하여 어루만져도/ 나목(裸木)의 슬픈 얼굴뿐,/ 허구헌 날 우리들의 정신세계는 피를 흘린다/ 피를 흘린다.

(김덕환/ 우리들의 겨울 · 3)

 

바람의 자식들 줄줄이/ 엎드려 통곡한다// 피를 쏟으란 말야 피/ 살림 뜯어내고.

(장종권/ 아카시아)

 

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피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벼)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조태일/ 국토서시)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 밖에는-

(허영자/ 감)

 

형틀에 꽃 이기듯 못박는 소리는/ 갈잎 밟으며 바람 속 떨며 온다/ 날 푸른 창에 찢긴 상처에서/ 한 줄기 피의 샘 솟아나는데.

(엄창섭/ 부활송 · 1)

 

모이면 함성이나 화염이 되고/ 흩어지면 속삭이는 기도나 불씨가 되는/사랑은 이 시대,/ 우리에게 제단을 적시는 피.

(김상길/ 다시 보았을 때)

 

짓밟힐수록 뿌리는 질겨져/ 마침내 때가 차면/ 피 흘려 피 흘리며 땅껍질 뚫고/ 내닫는 침묵의 합창.

(석용원/ 잔디)

 

뛰어가다/ 넘어져서/ 정갱이 피 흘리면/차라리 몸 바친/ 산 기도.// 피 흘리게 하소서.

(정벽봉/ 기도)

 

가슴에 백히는 수없는 상처/ 이것은 너무 심한 장난같다// 사람은 평생을 두고/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다 가는 것인가 부다// 흘린 피는 갈꽃으로 피고/ 핀 갈꽃 바람에 울다 그나마 지고 나면/조용히 남는 보라빛 허공.

(황금찬/ 문)

 

외로울 때는/ 눈을 감는다/ 바람에 뻐걱이는/ 사립을 닫듯‥‥// ‥‥하지만, 내연(內燃)의 피/ 독이 되어 거꾸러질 전/ 뜨겠다, 죽어도 감지 못할/ 새파란 눈을!

(민영/ 단장)

 

돌아가야 한다/ 해마다 나고 죽은 풀잎들이/잔잔하게 깔아놓은 낱낱의 말을 들으러/ 피가 도는 짐승이듯/ 눈물 글썽이며 나를 맞아 줄/ 산이며 들이며 옛날의 초가집이며/ ‥‥지금은 떨어져 땅에 묻히었으나.

(이근배/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콩 볶듯 튀던 총알/ 몰려 닫던 그/ 함성도 -// 피 뿌려/ 쓰러진 넋,/ 구천 돌아/ 여직 운다.

(정소파/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내 손바닥엔/ 아직까지 못자국이 없네// 우리들의 발바닥엔/ 이제껏 못자국이 없네// 가시에 찔려/ 미간으로 흐르는 피/ 그런 피를 흘려본 일이 있는가.

(황금찬/ 고통)

 

아아, 나를 사로잡는 불길한 악몽은/ 끊임없이 분노하고 발광하고 질투한다/ 이리의 행렬처럼 갈수록 수가 늘면서/ 피로 물들인 내 운명에 매 달리느니.

(베를렌/ 어느 여인에게)

 

이 절절한 영혼의 기도가/ 입술로 아첨하는/가증스러운 주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통곡이게 하시고/ 돌벽에 머리 쪘어/ 솟아나는 고운 피 모아 드리는/노사제의 눈부신 신앙이게 하소서.

(엄창섭/ 기도 · 26)

 

님이 창에 찔림은/ 우리의 허물탓이오./고통의 십자가 지심은/ 나의 죄 인함이다/채찍에 살갗 찢겨 흐르는/ 붉은 피의 강.

(엄창섭/ 부활송 · 2)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 너희에게 남겨 줄 것이라고는/ 빈 몸뚱아리밖에 없으니/ 가까이오라/‥‥/ 검고 딱딱한 빵을 씹으며/ 대지의 젖 같은 붉은 포도주를 마셔라/ 이것이 내 찢겨진 살이며/ 콸콸 흘러 샘솟는 내 피다//이것을 먹고 마심으로/나를 너희 속에 머물러 있게 하고/ 너희도 내 속에서 새 살로 움트고/뜨겁디 뜨거운 피가 돌아/ 한 몸이 되거라.

(서덕석/ 성만찬 풍경)

 

우리를 위하여/ 살아 있는 떡이 되어 주소서/ 뚝뚝 흘리는 뜨거운 피로/ 혓바닥을 축여주소서.// 그리 하오면, 그렇게 해 주시오면/죽어가던 우리가/ 남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펄펄 되살아 나오리다/ 얼씨구/ 힘내서 한세상 살아가오리다.

(서덕석/ 성찬기도)

 

임자 없는/ 핏빛/ 시로 맺힌다.

(박영남/ 10월 나무)

 

까맣게 인간의 뼈를 바술 수 있는/ 뜨거운 혼들의 업은/ 뒹굴며 피눈물로 덧칠하고 지혜에 깎이어/ 다만, 한줄의 전선이 되어.

(여영미/ 전선)

 

진달래꽃은 붉지만 물이요/ 네 얼굴은 창백하지만 피다/ 피를 또는 눈은 눈물도 피란다/ 내 뼈 마디마디에 엉긴 피/ 피는 혈관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되는 것/ 누구의 잘못으로 터져 나왔든 나와서는 안 된다.

(이생진/ 소감을 말하라 한다)

 

구름은 큰 가시에 찔리고서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지난 여름 뜨거운 고압선에 걸려/ 목이 잘리고서도/ 피 한 방을 흘리지 않았다// 구름이 피를 보이지 않는 것은/ 구름엔 피가 없어서인가/ 아픔을 참느라 피도 구름되었기 때문인가// 슬퍼도 소리치지 않고/ 기뻐도 수선떨지 않고/ 구름은 끝까지/ 생사 구별하지 않고/ 구름은 끝까지/ 유무 구애받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인가/ 구름에 피가 없음은/ 피도 구름 되어 날아갔기 때문인가.

(이생진/ 구름의 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배반당하고/ 다시 한 번 못박혀/ 높다란 첨탑 위에서/ 붉은 피 흘리는 불쌍한 사람아.

(서덕석/ 십자가에 매달린 채 잊혀진 예수 아래서)

 

그놈의/ 민주주의인가 뭔가가/ 피를 먹고 사는 괴물이라면/ 차라리/ 내가 대신 죽어 줄 것을‥‥/‥‥// ‥‥말 좀 해 보아라/ 내 새끼야,/ 억울하거든/ 피 눈물이라도 흘려 보아라/ 피눈물 다 말랐거든/ 마른 눈꺼풀이라도/ 깜박여 보아라.

(서덕석/ 말 좀 해 보아라 내 새끼야)

 

핏빛 포도주잔 속에도/ 쭈그리고 들어 앉는 하늘이여.

(박현서/ 낙동강 · 37)

 

어쩌나, 나도 모르는 한 순간/ 미움의 화살 또 한 번/ 쏘아 놓고선/ 나 먼저 방울방울 피흘리며/ 아파하고 있습니다.

(안혜초/ 쓰지 않은 일기에서)

 

내 몸에는/ 일천 개의/ 아픈 형광의 불빛/ 피 흘리며 화살/ 꽂히어,/ 다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이향아/ 다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오동꽃이 피고/ 음력 4월/ 양력 5월./ 꽃빛깔 바래는 오정 복판/ 뿌옇게 손 흔들며/부서지는 시간./ 피가 조여드는/ 아까운 시간.

(이향아/ 오동꽃)

 

귀뚜라미 소리가/ 투명한 가을 밤을 깎고 있다// ‥‥핏자국에 얼룩진 내 이름 석 자도/바람에 조금씩 깎이고 있다.

(최규철/ 까만 문패)

 

내가 왔다‥‥/ 억울하게 죽어/ 피를 토하며 맞아 죽어/ 아직도/ 눈감지 못한 넋아.//‥‥

그래, 보거라/ 네가 흘린 핏방울이/ 한반도 곳곳으로 튀어/ 피울음 같은 철쭉이랑/ 창백한 찔레꽃으로 피어나/ 한곳으로 몰려가는/ 함성이 되는 것을.

(서덕석/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넋아)

 

허공을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단 한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고은/ 화살)

 

이제 새벽은/ 흰 옷을 입고 어둠을 양손으로 밀어내는/ 수줍은 몸짓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새벽의 옷깃에는/ 핏덩이가 엉겨 있을 것이다‥‥// ‥‥깊은 욕망이 짧은 아픔을 짓누르듯이/ 고통의 생애가 죽음을 거부하듯 이/ 이제 새벽은 그렇게 매일매일/ 힘들이며 올 것이다/ 그것은 이별의 새벽이 아니다/ 아픔의 기쁨 곁, 아니면 기쁨의 아픔 곁/ 영원토록 우리 곁에 머물러 있을 탄생의 피비린 눈부심이다/ 우리가 일어서야 할 피비림/우리가 이룩해야 할 눈부심.

(김정환/ 새벽)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이다/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김남주/ 자유)

 

내 살과 피는 한데 모여/ 집을 이루고/ 집 속에 내 마음이 들어가 산다//내 살과 피가/ 하나하나 흩어져/ 우주의 먼지 속으로 떠날 때/ 내 집은 부서지고// 내 마음도 멀리/ 형형한 불꽃이 되어 떠난다/ 우주는 나/ 내 속에 우주가 있어/ 볼수록 안보이는 내 피와 살.

(김규화/ 나의 몸)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 거짓이라면/ ‥‥아! 이 눈물이 거짓이라면/ 밤마다 젖은 손수건/ 지금도 선연한 피절은 손수건 하나/ 장롱 속에서 꺼내 보이겠습니다.

(김희수/ 그리움에서)

 

기분도 쾌적한 다도회에서 지위가 확고부동한 귀부인들이여/ 가난한 사람들의 피로 녹이 슬고 더럽혀지고 때가 묻은 접시가 있다/ 당신들 앞에는 매일 아침 매주 영원히/ 아르메리아의/ 피묻은 접시가 있다.

(네루다/ 아르메리아)

 

피를 아는가/ 수천 번 흘리고도/ 또 한번 흘려야 할 피/흘려서는 절대로 안 될 피/ 피의 나라여!

(김희수/ 피에 대하여)

 

그리고 거리는 온통 어린아이들의 피로 넘쳐 흘렀다/아이들의 피처럼 천진난만하게‥‥// ‥‥와서 보라 거리의 피를/ 와서 보라/ 거리에 흐르는 피를

(네루다/ 그 이유를 말해 주라)

 

나는 만났다 조국의 모든 벽 위에서/ 눈과 그 수정 곁에서/파란 강물의 저편에서/초석 밑에서 보리이삭 밑에서/ 나의 민중이 흘린 피를/ 그리고 핏방울은 모두 불처럼 타올랐다.

(네루다/ 라쁠라사의 사자들)

 

그러나 그때 피는 숨겨져 있었다/ (뿌리의 배후에서 흔적없이 씻어 버리고 피는 흐르지 않았다고 선전되었다/ 그것은 그처럼 먼 과거의 일이었다)/ 남부의 비가 대지에서 피를 씻어 내리고/ (그것은 그처럼 먼 과거의 일이었다)/ 초원의 초석이 피를 삼켜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민중의 죽음은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범죄는 라쁠라사의 한복판에서 저질러졌다/ 민중의 맑고 깨끗한 피를 무성한 숲도 숨기지 못했다/ 초원의 모래도 빨아들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이 범죄를 숨기지 못했다.

(네루다/ 학살)

 

길 잃은 어린 양 위해 비탈오르다/ 가시에 물린 살결마다에/ 솟아나는 고운 피/ 그건 한송이 눈부신 장미꽃이어요/ 님이 까마귀인 나를 보고/ 하이만 비둘기 되라시면/ 선혈 쏟을지라도/ 까만 깃 모다 뽑아버릴거예요

(엄창섭/ 기도 · 4)

 

당신이 살라시면 삽니다/ 피 흘리고/ 넘어져/ 머리가 깨어지고/ 가슴에 멍이 들었어도// ‥‥당신이 살라시면 삽니다/ 피투성이 되어/ 당신 앞에/ 하염없이 아픔을 호소하면서/ 내이제까지 왔다가 또 가는 길에/ 피투성이라도 살라시니 삽니다.

(이연자/ 피투성이라도)

 

허기사 봄도 오면 무엇하리/ 나귀새끼 한 마리에 몸을 싣고/ 그대는 가서 서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그리운 고향 봄이 피어오른 산천 뒤로 두고/ 진달래 꽃같은 붉은 피 흘린다니

(고운기/ 예수가 우리 마을을 떠나던 날)

 

솔로몬의 영화는 어디 갔으며/ 바벨탑의 그림자는 어디 있는가.// 진실로/ 패역한 세대를 아파하는/ 한 방울의 피눈물일지라도/ 바람에 날리는/ 겨일 수는 없나니‥‥‥

(김원태/ 바람 속에서)

 

그분의 피가 나에게 흘러/ 피로써 다시 태어나 있음을 발견한다/ 아/ 내 작은 입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을/ 노래의 샘을 파리라.

(김지향/ 내 작은 입으로)

 

공중에 떠가는 달과도 같이/ 아름다움의 잔인한 종족으로 자라기는 했지만/ 그녀는 걸어가다 얼굴 붉히고/ 내 가는 길을 막고 섰다/ 드디어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몸은/ 살과 피의 심장을 지니고 있다고.

(예이츠/ 첫사랑)

 

이 달엔/ 먼 수평선이/ 높은 하늘로 서서히 바꾸이고,/ 뜨거운 햇빛과 꽃들의 피와 살은/단단한 열매 속에 고요히 스며들 것이다.

(김현승/ 가을이 오는 달)

 

주님 머리를 숙인 것은 날 위해서였습니다/십자가 위에서, 아낌없이/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귀한 보혈을 흘리셨습니다/주께서 죽으심은 날 위함입니다.

(댄슨 스미스/ 그는 날 위해 죽으셨다네)

 

대답을 하고 나면/ 내 몸의 파란 피는 다 뽑히고/ 썰물이 버리고 간 뻘밭에/ 혼자 나뒹굴며 노래함이여,/ 살아 있는 미안함이여,/ 그래도 살아 있는/ 부끄러움이여.

(이향아/ 오늘 아침에는)

 

 

설 교 노 트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

사53:1-11

 

서론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버림받는 자리에서 구원을 주시는 보배로운피입니다. 예수님의 피흘린 구속의 역사를 믿을 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보혈을 믿는 자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십니까?

 

1. 속죄를 주십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말미암아 구속 즉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죄함을 받은 것은 오직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2. 화평을 이루어 주십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을 읽어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은 하늘과 온 땅 위에 화평을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로말미암아 원수되었던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되는 역사가 성취되었습니다.

 

3. 우리를 의롭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이제 우리가 그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의 인이 없는 세상에서 주님의 보혈을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4. 죄에서 해방을 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의 보혈은 죄의 속박과 핍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다시는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도록 당신의 피로 노예의 사슬을 풀어 주셨습니다.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사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이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진 것이기에 우리 주님이 흘리신 보혈을 믿는 우리들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큰 복된 것입니다.

 

결론

주님은 우리를 돕는 자입니다. 우리들에게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하나님 아버지는 지금도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견고한 사랑의 터전 위에우리는 굳게 서서 무엇을 하든지 세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보혈의 능력

히9:11-22

 

서론

본문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의 총괄적인 중요성을 한곳에 집약시켜 놓은 귀한 말씀입니다. 인간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무죄한 짐승이 수없이 희생되어 인간의 속죄 문제를 해결해 주던 역사가 속죄 문제를 해결해 주던 역사가 끝나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 구속의 완성으로 주님의 흘리신 보혈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1.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죽은 행실이라고 하는 것은 영생을 주지 못하는 모든 죄악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죄는 육신만 저주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저주까지 동반합니다. 죽은 행실의 결과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영원한 죽음의 행위에서 영원한 삶의 행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묻은 죄악을 정결케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 증거로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1) 요일1:7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2) 딛3:5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그의긍휼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습니다.

(3) 롬5:9에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셨습니다.

 

2.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살아계셔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실생활을 가지지 않으면 참 섬김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그 의식이 간접적인 섬김이었고 간접제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전에는 참 생명의 소유와 새로운 운명의 창조와 참된 소망의 기쁨을 갖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가리워졌던 휘장이 찢어졌고 나누었던 장소가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1) 엡2:13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고 하셨습니다.

(2) 골1:20에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3.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받게 하셨습니다.

롬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만물 소유자의 진정한 축복을 누리지 못한 채 땅위에 살아가나 주님과 함께 영원한 기업의 나라를 바라보고 약속을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1) 그 피를 믿는 우리의 죄를 기억도 아니하십니다(렘31:34).

(2) 우리의 죄를 도말하십니다(사44:22).

(3) 우리의 죄를 깊은 바다 속에 던지십니다(미7:19).

(4) 우리의 죄를 찾을지 라도 발견되지 않도록 처분하십니다(렘50:20).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그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부족함 없이 성취시켜 주셨습니다.

그런고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결론

이 위대한 능력이 우리 인생들을

(1)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하사 자유케 하셨습니다.

(2)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하사 생명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3) 지옥의 권세에서 해방하사 천국의 기업을 누리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위대한 보혈의 능력을 영원히 찬송하십시다.

 

 

피값을 찾으리라

겔3:20

 

서론

하나님께서 본장 중에서 예언자에게 전도의 책임성을 강조하였습니다. 특별히 누구에게든지 누락하지 말고 전부에게 골고루 복음을 전하라고 강조하면서 전도자는 전도함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 피값은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류의 조상에게를 선악과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불순종하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창2:17), 에스겔 3장 18절에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고 예언되었고,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라고 하였으니 범죄한 인간은 반드시 죄의 값을 치러야 합니다. 즉, 피의 값은 있게 마련입니다.

 

2. 범죄자가 악한 길을 떠나지 않으면 그 죄악 중에서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모든 인간들은 범죄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 결과는 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긍휼히 보시고 종종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권면하시며 책망하십니다.

본장에서도 에스겔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17절)"고 하셨습니다. 악인들이 몰라서 범죄하고 몰라서 회개하지 못하였다고 할까봐서 권면하셨는 데도 듣지 않고 회개치 않으면 그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피값은 반드시 치루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 몰라서 그랬다고 핑계 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보내셔서 그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깨닫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 자는 자기의 피값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3. 전도자가 전하지 않아서 악인이 망할 때는

전도자의 손에서 그 피값을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에스겔이 예언하지 않고 침묵함으로 인하여 악인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여 결국 멸망하게 되면, 그 책임은 악인 자신보다는 전하지 않은 전도자에게 더 많다는 것을 역설하면서 반드시 예언자는 예언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물론, 악인은 자신의 죄값으로 멸망을 받음은 공의로운 결론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서도 그 뜻을 가르치지 않고 전달하지 않으면 그 피값을 선지자에게서 받아낼 것이라고 하셨으니 피값은 치르게 마련입니다.

 

결론

악인은 말씀을 받든 안 받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고, 회개하면 살 것이요, 전도자는 반드시 말씀을 전달하여야 그 책임의 피값을 물지 않게 되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피가 너를 따르리라

겔35:6

 

서론

본문에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매우 심오하고 두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삶을 두고 맹세하신 말씀입니다.

맹세의 원리는 자기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두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통 맹세할 때는 하늘을 맹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3-15)"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서는 자기의 "삶"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삶은 그 자체가 영원이요, 불변이요, 존재의 실체이십니다. 사람도 자기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상당히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두고 맹세하셨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2. 피가 따르는 진리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듭 두 번씩이나 강조하신 데에는 오묘하신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70인 번역에는 "진리로 네가 피에게까지 범죄하였나니 그러므로 피가 너를 따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그 성격이 잔인합니다. 그 조상 에서가 사냥하는 일을 즐겼던 까닭인 듯합니다. 그리고 야성적인 성품에 아라비아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생활하다 보니까 상대방을 공격하여 살해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민족의 죄악을 벌하시되 비례식으로 하십니다.

"내가 너를 피를 만나게 한즉‥‥‥‥이라고 하신 뜻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피를 만나게 하신다는 계획적인 의미가 있고,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하신 뜻은 피를 환영하니 자연히 만나고 당하리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결론

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피를 아끼지 않는 에돔인들에게 피가 따르리라는 것은 그들 자신이 곧 피를 흘릴 것이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남의 피를 흘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피를 흘리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핑 계

성 경 활 용

1. 핑계의 동기

(1) 두려워서

(렘1:6)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2) 귀찮음

(출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2. 핑계한 것들

(1) 죄

(요15: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2) 구원

(롬1:20)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3) 하나님의 소명

(출4:10)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출4:1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관련원어풀이

1. ajnapolovghto" 아나폴로게-토스

(1) 변호나 변명 없이.

(롬1:20)

(2) 핑계할 수 없는.

(롬2:1)

 

2. provasi" 프로파시스

(1) 실제적 동기, 이유, 정당한 핑계나 변명

(요15:22)

(2) 거짓으로 진술된 동기, 구실, 위선.

(마23:14, 빌1:18)

설교예화자료

'스콸라스'의 구조

 

잠수함 스콸라스와 그 승무원들이 해저 240피트에 달하는 아틀란틱 해의 밑바닥에서 어떠한 도움의 손길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상태로 갇혀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위치가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연기를 피워 올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잠수함 스컬핀은 그들을 찾지 못했습니다. 10톤의 잠수기가 몇 번씩이나 내려가서 스콸라스호의 승무원들 중 살아 있는 33명의 승무원들을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33명 중의 어느 한 사람도 그들의 구조자들에게 "나는 그것들을 다시 생각할 것입니다. "라든가 "나는 더 안전한 시기를 위하여 기다리겠습니다. " 혹은 "현재 나는 좋은 상태입니다. ", "포기할 것이 아직 있습니다. " 또는 "나는 내일까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에게 죽음으로부터의 탈출이 주는 의미는 즉시로, 고맙게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여우와 포도

 

먹이를 찾아 헤매던 여우가 마침내 잘 익은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포도 덩굴을 발견했습니다.

"참 먹음직스럽다!"

여우는 군침을 삼키며 포도 덩굴로 다가갔지만 포도 송이는 너무 높이 달여 있었기 때문에 여우의 손에 닿지 않았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포도 송이는 여우를 더욱 유혹하였지만 아무리 발돋움하여 손을 높이 쳐들어도 어림도 없었습니다.

"힘껏 뛰어 보자."

여우는 힘껏 뛰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높이 뛰었지만 손가락이 포도 송이에 닿았을 뿐 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여우는 있는 힘을 다해 또다시 뛰어올랐지만 포도는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여우는 몇 번이고 다시 뛰어오르며 시도해 보았지만 한 알의 포도도 따지 못하였습니다.

배고픈 여우는 마침내 지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여우는 화를 벌컥 내면서,

"칫, 저렇게 맛없게 생긴 포도는 그냥 줘도 안 먹어!"

하고는 포도 덩굴 아래를 떠났습니다.

 

 

반(反) 유태인

 

역대의 로마 황제 중에 헤도리우스라는, 유태인을 가장 싫어하던 황제가 있었습니다. 헤도리우스의 앞을 어떤 유태인이 지나갔습니다. 그는,

"황제님, 안녕하십니까? "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황제가,

"너는 도대체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유태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당장 저 놈의 목을 잘라 사형에 처하라."고 명했습니다.

이튿날 유태인이 또 황제 곁을 걷고 있었으나, 이번은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로마의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은 죄로 저놈의 목을 잘라라!"고 병정에게 명했습니다. 그러자 황제의 둘레에 있던 대신들이,

"폐하, 폐하는 폐하에게 인사한 사람도 죽이고, 이번에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였는데, 도대체 어찌된 까닭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내가 한 일은 양쪽 다 옳은 것이다. 너희들에게는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유태인의 취급 방법을 알고 있다. "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유태인이 무엇을 하더라도, 반유태인이었던 헤도리우스 왕은 유태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죽여 버렸다고 하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어록·시·묘사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 <*잘되는 일은 자기의 공으로 돌리고 못되는 일은 남의 잘못으로 돌림을 이르는 말>

(한국 속담)

 

약간의 부정확성이 때로는 많은 변명을 덜어준다.

(사키(먼로우)/ 네모난 달걀)

 

선무당이 마당 기울다 한다. 선무당이 장구 탓한다. < *할 줄 모르는 사람일수록 핑계가 많다는 뜻>

(한국 속담)

 

기소되기 이전에는 결코 사죄하는 변명을 하지 말라.

(영국의 찰즈 1세/ 웬트워드 경에의 서한)

 

때때로 남을 위한 변명은 해도 좋지만,그러나 결코 자신을 위한 변명은 하지 말라.

(푸블릴리우수 시루스/ 금언집)

 

나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인간은 핑계다. 핑계가 인간 의식의 생리다.

(장용학/ 비인탄생)

 

사람들은 일이 잘못될 때 해와 달과 별에게 그 책임을 지운다. 모든 악한과 배신자들, 주정꾼과 죄인들에 대한 책임은 필연적으로 하늘이 져야 할 것같이 생각하면서.

(W. 셰익스피어/ 리어왕)

 

개를 잡으려 할 때는 사원(寺院)의 벽을 더럽혔다고 힐책을 한다.

(터키 속담)

 

핑계 핑계 도라지 캐러 간다. <*적당한 핑계를 붙여 놀러 간다는 뜻>

(한국 속담)

 

핑계는 쓰자고 들면 결코 부족하지 않다.

(C. 골도니/ 허풍선이)

 

타조는 날아야 할 때는 "나는 낙타다"라고 하고, 짐을 져야 할 때는 "나는 새다"라고 한다. <*터키에서는 타조를 새 낙타라고 한다>

(터키 속담)

 

변명은 보호받는 거짓말이다.

(J. 스위프트/ 多題多想)

 

막간 어미 애 핑계. <*자기가 하기 싫은 일에 여러 가지로 구실을 붙이는 것을 이르는 말>

(한국 속담)

 

인간에게서 세 가지 악조건을 제거한다면 누구나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세 가지란 핑계, 모략, 폭력인 것이다.

(이어령)

 

변명은 힐책보다 더 좋지 않다.

(몽테뉴/ 수상록)

 

법당이 기올어져 경을 읽을 수가 없다.

(일본 속담)

 

춤추기 싫은 사람은 땅이 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속담)

 

아무러나 핑계를 대고 잠자자./ 이를테면 꿈에 도둑질한다든지/그리고 우리 오점형으로 서자./ 밀회꾼들을 놀래 주게.

(J. 콕토/ 잠든 소녀)

 

준 것은 적고/ 받은 것은 많았다/ 세상이여// 감사하는 마음보다/ 원망하는 마음만 컸다/ 세상이여// 모든 잘못은/ 네 탓이라 핑계했다/ 세상이여

(허영자/ 빚진 세상)

 

 

설 교 노 트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

출32:35

 

서론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주야를 하나님과 영교의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산 밑에 있는 군중들은 모세를 찾다가 실망하여 모세 대신 인도자를 요구한 것이 아론을 통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금송아지 우상이 애굽 땅에서 자신들을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못하고 정계를 댑니다. 아담도 선악과를 먹은 것이 하와 때문이라고 하였고, 하와는 뱀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한 핑계를 대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금을 빼어 내라고 하였습니다.

산에서 여호와존서 모세에게 "너는 내려가라"고 하신 명령을 따라 모세가 급히 하산하였습니다. 내려와서 보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추며 아우성을 치고 있어서 모세는 크게 노하여 손에 들고 있던 증거판을 던져서 깨뜨리는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론을 불러다가 힐책하였습니다. 아론은 구차히 변명하는 말이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 왔나이다"라고 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론이 명령한 데서부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2. "내가 불에 던졌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3절 이하에 보면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왔습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책임 추궁을 당하게되니 "내가 불에 던졌더니 송아지가 나왔나이다"라고 변명하며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고 불이 송아지를 만든 범인이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인간의 손으로 부어서 각도로 새긴 장본인이 아론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격적 작용은 제쳐놓고서 자연적인 현상으로 된것처럼 말하는 것은 비겁한 책임회피이며 죄악된 거짓말인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자신이 지은 죄를 남에게 전가하거나 핑계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가 용감한 신앙인입니다.

 

3.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송아지가 자동적으로 나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금을 모아서 불에 던졌기 때문에 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금으로 만든 송아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였으니 가증하기 한이 없고 자신의 죄를 회피하는 태도는 지도자답지 못한 행위입니다.

아론은 마땅히 "오 하나님이여 나 때문이로소이다 내가 저 질렀습니다. 그 책임이 내게 있습니다. 마땅히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라고 울며 회개했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핑계만 거듭하였습니다.

 

결론

우리 속담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 말이 있습니다. 지도자는 실수가 없도록 지혜롭게 봉사해야 합니다. 설령 잘못하였어도 이리저리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책임지고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성 경 활 용

1. 성경에서의 하나님 이름

(1) 구속자

(시78:35)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2) 하늘에 계신 주

(시123:1)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3) 기도를 들으시는 주

(시65: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4) 셈의 하나님

(창9: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5) 소망이 되신 여호와

(렘50:7) 그들은 여호와 곧 의로운 처소시며 그 열조의 소망이신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인즉 우리는 무죄하다 하였느니라

(6) 여호와 하나님

(창2: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7)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행15:8)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 회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8)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

(롬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9)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

(딛1:2)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10) 크신 하나님

(시95:3)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 위에 크신 왕이시로다

(11) 화평의 하나님

(고전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12) 우리 조상의 하나님

(행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13) 질투의 하나님

(출34:14)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14) 하나님 아버지

(살후1: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5)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

(사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 모든 육체의 하나님

(렘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2.하나님의 속성

(1) 거룩하시다.

(시22:3) 이스라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2) 전능하시다.

(욥42:2) 주께소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사랑이시다.

(삼하12:24)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4) 영원하시다.

(시93: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5) 편벽됨이 없으시다.

(대하19:7)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편벽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으심도 없으시니라

(6) 유일하시다.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시니

(7) 영이시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8) 진실하시다.

(출34: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9) 지혜로우시다.

(욥12:13)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10)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시다.

(시86:15)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

 

3. 하나님의 섭리

(1)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보호하신다.

(시45:20)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2) 주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다.

(시145:17)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행사에 은혜로우시다

(3)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신다.

(시145:16)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

 

4. 하나님의 영원성

(1) 언제나 계신다.

(계11:17)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2) 지존하시다.

(시92: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3) 영원무궁하시다.

(출15:18)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4) 영원까지 찬송을 받으신다.

(시41:13)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송할지로다

(5) 영생하신다.

(창21: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5.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1) 마음과 뜻을 감찰하신다.

(시7:9) 악인의 악을 끊고 의인을 세우소서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2) 심판하신다.

(욥9:15) 내가 의로울지라도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하였을 뿐이며

(3) 모든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셨다.

(벧전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에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4) 행위대로 보응하신다.

(렘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5) 판단하신다.

(요:50)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6. 하나님께서 건지시는 곳

(1) 모든 죄과에서

(시39:8)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2) 올무와 극한 염병에서

(시91:3)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3) 대적에게서

(시136:24)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4) 고통에서

(시107:6)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5) 쫓는 자에게서

(시7:1)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6) 음부에서

(시86:13)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음부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7) 사망에서

(시33:19)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8) 학대하는 모든 손에서

(삿6: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9) 악한 세대에서

(갈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7. 누구에게 능력주시는가?

(1) 전도자에게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2) 여호와를 모시는 자에게

(시118: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3) 기도하는 자에게

(대상16:11)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8.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

(1)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잠6: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

(2) 마음이 패려한 자

(잠11:20)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3) 선과 악을 반대로 판단하는 자

(잠17:15)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4)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

(시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5) 속이는 저울

(잠11: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6) 악한 죄

(잠15:16)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7) 거짓 맹세를 좋아하는 자

(슥8:17)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8) 마음이 교만한 자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9. 하나님의 약속하신 일

(1) 유업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제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2) 계명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 복음

(롬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4) 성도

(갈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5) 영생

(딛1:2)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관련원어풀이

1. laE 엘-

(1) 권세, 강력한 자.

(사9:5, 겔31:11)

(2) 세력, 능력.

(신 28:32, 잠3:27)

(3) 하나님

(창33:20. 시18:3)

 

2. @yhla> 엘로-힘

(1) 신들, 신성한 것들.

(창35:2, 출12:12)

(2) 하나의 신.

(왕하19:4, 시7:10)

(3) 오직 한 분이시고 참되신 하나님,

(신4:35, 왕상18:21)

 

3. !s,q, 케셈

(1) 예언, 조짐.

(삼상15:23, 겔13:6)

(2) 신탁.

(잠16:10)

 

4. qeov" 데오스

신, 하나님, 신성

(행7:43, 살후2:4)

설교예화자료

재판장의 사랑과 공의

 

미국의 어느 즉결 재판소의 재판장 앞에 한 청년이 끌려 왔습니다. 재판장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 청년은 바로 자기의 아들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를 낸 아들이 온 것입니다.

재판관인 아버지는 자기 아들이 앞에 서자 준엄한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물었습니다.

"자네의 이름이 무엇인가? "

아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듯 말하는 아버지가 너무나 야속하게 생각이 되어,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의 이름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단호하게,

"이 사람아! 나는 재판관으로서 물으니 자네는 묻은 말에만 대답하라. 자네의 이름이 무엇인가?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서야 이 아들은 순순히 자기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자네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인가?"

재판관이 다시 아들에게 묻자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은 아버지가 아시지 않습니까?"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내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그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재판장인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사건 경위를 다 듣고 난 다음, 가장 공정한 벌금으로 판정을 내렸습니다. 이렇게판정을 내리고 난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내려와

"이놈아, 네가 어찌하다가 사고를 내었느냐?"면서 등을 어루만져 위로하고, 자기의 지갑을 열어 벌금을 대신 지불해 주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할 때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아까 법정에선 저의 이름과 아버지 자신의 성함을 잘 아시면서 왜 물으셨습니까?"

"얘야! 그 법정에 있을 땐 나는 너의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재판장이었고 너는 죄수로서 거기에 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연히 법적으로 너의 이름을 묻고 아버지의 이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판결을 하고 난 다음에는 아버지로서 너를 위로해주고 대신해서 벌금을 물어주지 않았느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분실한 물건

 

어떤 랍비가 로마에 갔습니다. 거리에 포고가 내려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황제의 왕비가 아주 비싼 장식물을 분실했다. 30일 이내에 그것을 발견한 자에게는 막대한 상을 주겠으나, 만약 30일 이후 그것을 갖고 있는 자가 발견되면 사형에 처한다. " 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랍비는 장식물을 우연히 발견하여, 30일째에 그것을 갖고 왕궁에 가서 왕비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왕비가 랍비를 향하여

"당신은 30일 전에 포고가 내렸을 때 여기에 있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비는,

"30일이 지나서 그것을 가지고 오면 당신은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 압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역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렇다면 어째서 30일째까지 이것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만약 당신이 어제 이것을 되돌렸다면, 아주 큰 상을 받았을텐데, 당신은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30일 이내에 누군가가 이것을 되돌렸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두려워하든가, 당신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여 되돌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제까지 기다려서 되돌려 왔던 것은, 나는 결코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지 않으며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왕비는 새삼스럽게,

"그와 같은 훌륭한 하나님을 가진 당신에게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도

 

어떤 배에 여러 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폭풍우가 불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나라의 제 나름대로 믿은 신을 향하여 제각기의 방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도 폭풍우는 점점 더 거세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유태인을 향해서,

"당신들은 어째서 기도하지 않는가? "라고 말하자 유태인도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폭풍우는 즉시 조용해졌습니다. 배가 항구에 들어가자 사람들은,

"우리들이 정성들여 기도했을 때는 우리 의사(意思)를 들어주지 않고 당신이 기도하자 어째서 폭풍우가 조용해 졌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유태인은,

"나도 잘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은 제각기 나라에서 믿는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바빌로니아 인은 바빌로니아의 신에게 자기 나라에서 믿는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어느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신은 전우주를 지배하는 널고 큰 신이기 때문에, 바다에서 기도한 내 소원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신(神)

 

로마인이 어떤 랍비한테 와서, "당신들은 하나님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신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보시오."라고 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 주면 그도 신을 믿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랍비는 물론 그 로마인의 심술궂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랍비는 로마인을 데리고 나가 태양을 가리키면서,

"저 태양을 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인은 처음에 잠간 태양을 힐끗 보고는,

"그런 엉터리 같은 말을 하지 마시오. 태양을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당신은 신이 창조하신 많은 것 중의 하나인 태양조차 바로 볼 수가 없으면서, 어찌 위대한 신을 볼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전능자에 대한 도전

 

번창하는 아름다운 도시, 이태리의 메시나는 1908년 12월 28일 이른 아침에 일어난 지진으로 순식간에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 지진으로 7만5천 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기록에는 "메시나와 그 주위의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어 버린 그 끔찍한 지진이 일어나기 단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주민들은 말할 수 없이 사악하고 불신앙적인 상태에서 살고 있었고 모든 종교적인 교리를 무시한 채 생활하였습니다. 메시나에서 발간되는 「일틀리포노」라는 잡지의 크리스마스 논고에는 전능하신 자에게 도전하는 글이 실렸는데, 그로부터 3일 만에 하나님은 이 엄청난 지진을 통해서 그의 존재하심을 입증하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록·시·묘사

 

하나님은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경험이다. 신격에 관해서 공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생각컨대 신이란, 힘으로서, 생명으로서, 진서로서, 미로서, 사상으로서, 양심으로서, 사랑으로서 스스로를 표명하는 우주의 배후와 내부에 있는 창조력이다.

(뉴톤/ 신에 대한 나의 생각)

 

하나님은 사물도 아니요, 어디엔가 숨어있는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은 그대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꽃피는 상태이다.

(B.S. 라즈니시/ 마음으로 가는 길)

 

인간은 자연의 기적이요, 신은 인간에게 유일한 기적이다.

(J. 잉겔로우/ 심판일의 이야기)

 

신은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찾아온다.

(영국 속담)

 

나의 주변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여 죽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모든 그러한 변화의 밑바닥에는 변함이 없고, 모든 것을 잡아 두고 창조하며 그것을 없었다가 다시 창조하는 살아 있는 힘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한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힘과 정신이 즉 신(神)이다‥‥나는 죽음 가운데서도 삶이 끈덕지게 이어져 나가고 있고, 허위 가운데에 진리가 존재하며, 어둠 속에 광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이란 삶이요, 진리요, 광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최고의 선(善)인 것이다

(M. K. 간디)

 

땅과 바다, 하늘의 대기와 고결한 마음속 이외에 신의 거처가 있는가? 왜 하나님을 더 먼곳에서 찾는가?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이든 신이요,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 신이 있다.

(루카누스/ 시민전쟁)

 

당신은 곧 우리의 필요입니다.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주시고 더 주시기 위하여 당신은 만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K. 지브란/ 하나님)

 

삼각형이 신(神)을 갖는다면, 그 신은 3모서리를 가질 것이다.

(몽케스키외 남작/ 페르시아인의 편지)

 

하나님이란 영혼의 밑바닥에 심어진 내쉴 수 없는 한숨이다.

(장 파울/ 리히터)

 

신은 생각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위대하다.

(성 안셀름/ 프로슬로기온)

 

하나님은 대충 우리에게 목표를 잡아 주시고 우리가 원하는 바 의지에 따라서 그것을 세밀히 다듬어 주신다.

(L. L. 레빈슨)

 

신학자들은 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길을 정당화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길은 인간적인 의미로는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A.L. 헉슬리/ 어머니)

 

사랑이 하나님의 본질이요, 권능은 그의 속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권능보다 더 위대하다.

(R. 가네트/ 밤나무 회초리)

 

나는 목적론이 신학이며, 또 신은 무엇 "때문에"가 아니라 무엇을 "하기 위하여" 있다고 말하고 싶다.

(M.D. 우나무노/ 산 마누엘 부에노)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영원한 소유자다. 시인타라파의 말대로 인간은 줄에 묶인 채 풀을 뜯고 있는 염속와 같고 하나님은 그 줄을 잡고 있는 주인과 같다.

(C.V. 게오르규/ 마호메트의 생애)

 

평화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있다.

(G. 허버트/ 명궁)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 어느 한편만이 하나님을 닮은 것은 아니다.

(C.K.D. 패트모어/ 가정의 천사)

 

인간이 제안하고 하나님이 조처하신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사람은 하나님 곁에서 멀리 떠났을 때 불안하다. 하나님은 품 안에서만이 자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니까.

(A. 지드)

 

사람들의 마음에서 버려진 사람을 때로는 하나님의 따스함이 맞아들인다.

(J. R. 로얼/ 외로운 사람들)

 

암흑은 강하다. 죄악 또한 그렇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연히, 영원토록 이겨내신다.

(J. R. 로얼/ 프란카 별장)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찾아오지만, 우리가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오지 않는다.

(J. 루/ 교구 목사의 명상록)

 

하나님의 힘만이 괴로움의 무거운 짐을 견디게 하고 우리를 굳건히 서게 할 것이다.

(J. 칼뱅)

 

무릇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 속에 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 이해되지 않는다.

(B. 스피노자/ 에티카)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머리에 거(居)하신다.

(일본 속담)

 

하나님을 계산에 넣을 줄 모르는 사람은 헤아릴 줄을 모른다.

(이탈리아 속담)

 

최상의 설교자는 마음이요, 최상의 스승은 시간이고, 최상의 책은 세계이며, 최상의 친구는 하나님이다.

(이집트 속담)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은 석양처럼 모든 집에 찾아든다.

(마다가스카르 속담)

 

우주가 처음으로 생겼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그후 비웃는 몸짓으로, 인간은 하나님을 멸망시켰다.

(M. 베더/ 경고)

 

신은 시인이고, 인간은 배우에 불과하다.

(H.D. 발자크/ 기독교인의 소크라테스)

 

하나님이란, 단추를 누르기만 하면 물건을 가져다 주는 우주의 사동이 아니다.

(H.E. 포스디크/ 기도)

 

불행할 매 하나님의 도움으로 위로를 받는 사람들보다 행복할 때에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나는 한층 더 존경한다.

(L. A. 포에르바흐)

 

하나님에게 대한 진정한 사랑은 그의 신성함을 기뻐함으로써 시작되어야지, 다른 속성을 기뻐함으로써, 출발하면 안 된다. 신성함이 없으면 다른 어느 속성도 진정으로 사랑스럽지는 않기 때문이다.

(J. 에드워즈/ 종교적 열정에 관한 논문)

 

누구이든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떨어져도 그 왼손에 받아진다.

(E. 마컴/ 하느님의 전략)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 만물을 만지시는 일없이 만물을 창조하셨다. 거룩하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부정하고 혼잡스러운 물질을 만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데아라 부르는 형태없는 힘을 사용하여 만물을 지으시고 각기 적당한 형태를 갖게 하셨다.

(필로)

 

하나님과 재물 양쪽 섬기기 시작한 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L. P. 스미드/ 추상)

 

신을 잃지 않는 자는 모든 것을 잃지 않는다.

(영국 속담)

 

신은 두 손으로 때리지 않는다. < *한편으로는 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는 뜻>

(영국 속담)

 

신은 사람이 말을 하기 전에 그 사람의 실제의 능력을 듣는다.

(스윈번/ 캘리돈에 있는 아틀란터스)

 

신자는 누구나 신의 기적이다.

(베일리/ 축제)

 

하나님만이 하나님에 대하여 잘 말씀하신다.

(B. 파스칼)

 

하나님의 인식으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기까지는 그 얼마나 먼 것인가.

(B. 파스칼)

 

그리스도밖에는 하나님을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용서와 은총을 받지 못하며 아버지께 오지 못한다.

(M. 루터)

 

선과 사랑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으려고 갈망하다가 죄를 범한 인간이나 천사는 일찍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범하지 않을 것이다.

(베이컨/ 학문의 진보)

 

신이 최고자라는 것을 믿지 않는 자는 바보이든가,아니면 인생의 경험이 없는 자이다.

(C. 스타티우스/ 유고집)

 

지상엔 싸움, 사람에겐 악의다. 당신네들은 하나님을 화석이 되게 해 버렸다.

(R. 비스트/ 형사)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일진대 인간은 하나님과 똑같이, 영원한 하나이며, 진리이며, 불멸의 존재이며, 나아가서는 하나님 그대로인 것이다.

(피히테)

 

진실로 착하고 행복스런 존재는 하나님에게만 속하며 현명한 인간은 하나님의 그림자이며 닮음에 지나지 않는다.

(에피쿠로스)

 

그리하여 무로부터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모든 것에 존재를 부여하신 신의 손에 의하여,작은 시초로부터 커다란 것들이 창조되었다. 또한, 하나의 작은 촛불이 천 개의 초를 불붙일수 있듯이, 여기 불붙은 초가, 많은 것을 비추이고 있으며, 정말로 우리나라 전체를 비추이고 있다.

(W. 브래드포드/ 플리머드 식민론)

 

하나님의 빛을 보기 위하여 너희들의 조그마한 촛불을 꺼라.

(T. 풀러/ 격언집)

 

하나님만이 영원히 우리의 관심을 모은다. 다른 것들은 우리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고 계셔서 우리는 설명할 수도 논파할 수도 없다.

(J. 뉴턴/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

 

신은, 모든 굶주린 입을 보살핀다.

(R. 브라우닝/ 페리시타의 환상)

 

그렇게 되어 우리는 암흑 속에 앉아 있었다. 제각기 기도에 정신이 없었다. 우린 끝장이야! 계단을 요동치듯 내려오면서 선장이 외쳤다. 그러나 그의 얼음과 같은 손을 붙잡고 선장의 딸은 속삭였다. 바다엔 하나님이 안 계신가요. 육지와 마찬가지가 아닌가요?

(J.T. 필즈/폭풍의 발라드)

 

바르게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에 거한다. 바르게 살 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A. 아우구스티누스)

 

신은 죽음을 만들지 아니하였다. 또 산 자의 파멸을 즐기지도 않는다.

(경외경/ 솔로몬의 지혜)

 

하나님은 부르는 소리보다 흐느낌을 먼저 들으신다.

(A. 아우구스티누스/ 설교집)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훌륭한 주인을 가지고 있다.

(토르리지 아노/ 피앗자 대학)

 

식인종의 신은 식인종이고, 십자군의 신은 십자군이며, 상인의 신은 상인이리라.

(에머슨/ 처세론)

 

하나님은 무가치하다는 견해를 가지는 것보다는 하나님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편이 낫다. 후자는 불신이고, 전자는 모독이기 때문이다.

(F. 베이컨/ 수필집)

 

하나님의 즐거워 하는 곳에 너의 두려움을 적어 놓고, 하나님 이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을너는 눈물로써 들으라.

(R. 헤리크/ 신의 희열, 인간의 슬픔)

 

나는 밝은 길을 혼자서 가는 것보다 어둠속을 하나님과 함께 걷겠다.

(M. G. 브레이나드)

 

부자는 호주머니 속에 신을 챙기려고 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마음속에 신을 챙기려고 한다.

(유태 속담)

 

하나님은 스스로 나오는 이, 스스로 폭발하는 이, 그러기 위해 스스로 맞서고 뻗대고 겨루어 대는 이다. 스스로 노여워하는 이다. 영원의 미완성이다.

(함석헌/ 저항의 철학)

 

모든 사람은 자기만을 위하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한다.

(J. 헤이우드/ 격언집)

 

신은 악한 자를 처벌하고 착한 자를 고쳐 준다는 이중의 목적으로 여기에 그의 채찍을 가지고 있다.

(R. 헤르크/ 회초리)

 

신은 흔히 조그만 집에서 큰 몫을 한다.

(G. 허버트/ 명궁)

 

내가 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바보들은 자연이라 부른다.

(R. 브라우닝/ 반지와 책)

 

신과 함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다수파 편에있다.

(J. 녹스/ 스위스 제네바의 혁명 기념관 비명)

 

플라톤은, 신과 세계에 대하여 지나치게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것은 좀 불경스런 악덕이라고 주장한다.

(몽테뉴/ 수상록)

 

작은 잎의 하나하나에도 신은 명백히 머문다.

(영국 속담)

 

하나님은 무게를 달아 분노를 주며, 무게를 달지 않고 자비를 베푼다.

(G. 허버트/ 명궁)

 

신은, 참된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 올리겠다고 맹세하였다.

(J. 키블/ 후커의 무덤 앞에서)

 

신 자신은 악인들에게 선을 주선해 줄 수 없다.

(에머슨/ 시와 창작)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으나 심술궂지는 않다.

(A. 아인슈타인)

 

하나님의 최선의 특질은 관용이지, 분노가 아니다.

(B. 테일러/ 하산 벤 칼레드의 유혹)

 

신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R. 풀러)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R.W. 에머슨/ 일기)

 

신을 판결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자비의 무한한 대양에 있는 물방울이다.

(H.K. 간디/ 평화시와 전시에서의 비폭력)

 

신의 목적을 찾아내기 란 인간의 마음으로는 불가능하다.

(핀다로스/ 유고집)

 

하나님은 그의 자식들을 언제나 시련장에 넣으므로, 틀림없이 그들과 더불어 시련장에 있을 것이다.

(C.H. 스퍼전/ 시험의 특권)

 

자비의 필요를 느낄 때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는다는 것은 대단히 편리하지만,하나님의 무한한 재판도 명심하라.

(B.R. 해이든/ 茶話)

 

신은 질병 옆에 치료법을 마련해 주듯, 실망 옆에 자기동정을 마련해 주셨다.

(A. 카뮈)

 

하나님이 다스리시니 모든 것이 순조로워라.

(0. W. 홈즈)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P.J. 베일리/ 축제)

 

하나님은 주말마다 우리들 때문에 계산하시지는 않는다.

(J.W. 괴테/ 잠언과 성찰)

 

우리는 악마까지도 자기 내부에 품고 있는 하나님을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적인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앞에 눈을 감을 필요가 없는 하나님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H. 헤세/ 데미안)

 

하나의 신을-살아 있는 하나의 신을 우리에게 주소서,/ 잠자는 넋을 깨워 줄 신을,/그 맥박이 우리 가슴속에서 울리며/ 더러워진 피를 깨끗이 하여 줄 신을.

(C.G. 로젠버그/ 날개 달린 뿔)

 

큰 것들은 작은 것들로 만들어 졌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 또, 작은 것들은 점점 작아져서마침내는/ 그것들의 뒤에 신이 있음을 발견한다.

(R. 브라우닝/ 진흙 씨)

 

신-영원한 부정과 부재의 괴물.

(P. 에마뉘엘/ 성 금요일의 랩소디)

 

빛과 생명의 아버지, 너희, 지선(至善)의 신이여./ 바라건대 나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 달라. 직접 가르쳐 달라./ 어리석은 것, 공허한 것,/ 나쁜 것, 모든 못된 일에서 나를 건져 달라.

(J. 톰슨/ 시계)

 

거룩한 신은 곳곳에 있습니다/ 빛 속에도 암흑 속에도/ 모든 것 속에 신은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 키스 속에도.

(H. 하이네/ 十八十色)

 

죽음이 좋다면은 어이/ 신들은 죽지 않았을까요/ 삶이 나쁘다면은 어이/ 신들은 오래 살까요/사랑이 무상하다면 어이/신들은 그대로 사랑을 할까요/ 사랑을 모두 하면은/사람들 사랑은 제쳐놓고 무엇을 하나요.

(사포)

 

신들은 나의 어둠 속에 모습을 이루고는 또다시 해체(解體)한다.

(K. 레인/ 무녀)

 

내 속에는 신이 없다고/ 그것은 아마 참말일 것이다/ 나에겐 신을 둘 장소가 없다/ 나는사원이 아니고/ 내 자신이 신이기 때문에

(촌야사랑/ 무신론)

 

하루의 일 년의 전쟁의 처참한 추억은/검은 신이여/ 그것은 당신의 주제일 것입니다.

(박인환/ 검은 신이여)

 

어떻게 우리는 그분이 살아계신 하느님,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요, 그분의 관심이 인간 영혼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아는가? ‥‥ 하나됨은 규범이요, 기준이며 목적이다‥‥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만이 각 사람에게 좋다.

(헤셀/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나의 연두색 하나님,/ 탄생의 조건을 땅에 내려놓지 마시고/ 죽음의 조건을 하늘에 올려놓지 마십시오.//‥‥/타인을 죄인처럼 갈라놓는/ 눈먼 개인이 되지 마십시오./ 어느 개인의 하늘이 되지 마십시오,/ 나의 연두색

하나님.

(김동원/ 연두색 하느님)

 

사람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시간속에서 사람은 매 순간이 창조의 행위이며,하나의 시작이고, 궁극적인 실현에 이르는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것임을 깨닫는다. 시간은 공간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현존이고, 우리가 모든 존재들의 하나됨을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시간 안에서이다.

(헤셀/ 어둠 속에 갇힌 불꽃)

 

하나님의 실존-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창조를 신의 의도적인 행위라고 이해한다면, 창조는 앞으로 있게 될 것들에 대한 관심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 대한 자꾸 바뀌는 관심의 탓을 돌림에 있어, 우리는 육체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격도, 감정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태도까지도 모두 하나님 탓으로 돌린다‥‥창조는 한 번 있었던 행위가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이다‥‥우주의 하나님은 인간의 삶을 관심하는 영이시다.

(헤셀/ 어둠 속에 갇힌 불꽃)

 

나의 하나님은 모든 능력이요/ 그는 언제나 나를 지킨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요왕이시다. 그는 나에게 부요함과 모든 것을 주신다. // 나의 하나님은 나의 무언(silent)의 동반자요 진실로/그의 사랑으로, 그는 크신 열심으로 나의 생을 주장하신다. // 나의 하나님은 날마다 나의 풍족한 삶이 되시고/ 나의 길을 밝히는 사랑과 환상을 채우셨다. // 나의 하나님은 완전한 사랑이시요/ 나는 참으로 그를 경외한다. // 내가 처음 왕국을 구하고 그리고 질못했을 때/ 나의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은 다 주신다. // 나의 하나님은 나의 순간의 완성이시다. / 선택을 위해 나를 항상 멈추게 하신다. // 나의 하나님은 나의 무한한 표현이요/ 나는 결코 낙망치 않으며 기쁨의 말들을 사용한다. //나의 하나님은 나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시고/ 그래서 나는 그가 나와 함께 함을 안다. // 나의 하나님은 나의 기업이 되시고/ 그것은 넘치는 돌보심으로 불어나 나에게 돌아온다.

(루린 토우어/ 나의 하나님)

 

한배검께서는 우리의 등걸에 가장 비롯하고 거룩하시고 높으시고 크시어 다시 우러르고 끝없고 가없는 등걸이시다. 고루 잘해 먼저부터 우리 등걸들께서 한배검을 가장 높이시고 사랑하시고 믿어 오며 우리로부터 고루 잘해 그지없는 뒤에도 우리 자손들이 한배검을 가장 높이고 사랑하고 믿을지니라. 이를 테면 우리 등걸이든지 우리든지 이승에 생겨나올 적에 반드시 삼신께서 만들어 낳으셨다 하니 삼신이 곧 한배 검이시라. 한배검께서 하늘에 계실 적에는 환인(桓因)이시었고, 하늘과 땅 사이에 계실 적에는 환웅(桓熊)이시었고, 이승에 내리었을 적에는 단군이시었다. 이러하므로 삼신이라 이름이다.

(이병기/ 일기)

 

하나님은 힘이실 뿐만 아니라 관심이시다. 하나님은, "그분에게 우리가 쓸모 있는" 분이시다, 종교적인 깨달음을 통하여 우리는 초월해 계신 하나님이 "그분에게 우리의 양심이 열려 있는" 분이심을 알게 된다.

(헤셀/ 어둠 속에 갇힌 불꽃)

 

하나님, 망각의 짐을 지고 여명에 동결되고/미래에 사용될 사면 위에 심어진 정말 하나님이 있다.

(J.S. 오디배르티/ 유산)

 

하나님이 그 슬기로운 손끝으로 내 밤들의 밑창에다/ 끊임없는 온갖 모양의 악몽을 그려낸다.

(C.P. 보들레르/ 심연)

 

사랑이란 이런 것, 네 마음 무디어지기 전에/하나님의 영광으로 네 법열(法悅)을 불붙일지니

(C.P. 보들레르/ 반역자)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말라. 어떤 일에도 겁먹지 말라. 모든 일에도 겁먹지 말라. 모든 일은 과거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치 않는다.

(H.W. 롱펠로우/ 사탄 테레사의 장서표)

 

신이여/ 한 줄기 미풍을 보내어/ 저주스런 이 숨결을 걷우어 가라.

(강통원/ 무적)

 

자기보다도/ 바보가 있다고 생각한다면/바보 같은 생각이다/ 자기가 하지 못하는 일을/ 남보고 하라고 하는 것도/ 바보가 하는 짓이다/ 세상에는 바보같이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좋았더라.

(김건일/ 바보론)

 

어떤 길을 걸어도 좋다는/ 내 하나님‥‥//뽀쪽탑이 눈 아래로 보이는/ 언덕의 허리께쯤/ 눈인사 다음 손 붙들음과/ 두려움 없는 입맞춤으로/ 나의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다.

(성춘복/ 사랑법 -아침의 역사)

 

신은 무한히 넘치어/내 작은 눈에는 들일 수 없고//나는 너무 작아서/신의 눈에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김현승/ 고독의 끝)

 

너의 여린 힘은/ 전능한 힘을 끌어당기도다/ 네 자신 가치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네 자랑이어라/ 작으면서도 더함없이 안전한다 할지라/ 모든 하늘을 움직이는 신비가/ 네게 있나니, 하나님의 형상이라.

(톰슨/ 팔랑이는 잎사귀)

 

밤이면 밤마다 낮이면 낮마다 나는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했더니라」 여러 해 동안 나는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했더니라·./ 그러나 그 뒤쫓는 걸음 서둘지 않고/그 걸음걸이 흐트러지지 않으며/침착하면서 빠르게, 위엄 있고, 박력 있게 발자욱 소리 들린다-아니, 발자욱보다/ 애절한 그 목소리 들린다-/ "나를 속이는 너를 모두가 속인다. "

(톰슨/ 하늘의 사냥개)

 

발만이 어제의 나를 버리고/ 오늘 새로운 나를/ 여기 눈부시게 세우네// ‥‥오직 새롭게 다가오는/불가사의한 상황 속으로/주저 없이 나를 밀고 간다// 존재의 순간순간을/ 나를 눈뜨며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한다// 항시 마음을 뛰어넘어 살기에/ 나를 썩 두지 않네// 마음은 유다다/ 그러나 발은 하나님이다.

(이성선/ 발)

 

비 내리는 나뭇잎의 창가에 기대어/ 울고 있는 하늘 우러러 물어 보았지오.// "하나님은 우시나요? 님의 눈물은/대지에겐 자양분과 기쁨을 주지만"// 나뭇잎과 내 마음은 함께 울고 있어요.

(배경란/ 하나님은 우시나요?)

 

말(馬)이 인간을 사랑할 수 없듯이/ 인간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 그러나/ 마부가 착하고 겸손한 말을 지극히 사랑하듯이/오 하나님은 온순하고 사랑스런 인간을 어여삐 보시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말의 슬픈 눈동자에/ 그리움이 어려 있다// 하나님을 그윽히 우르러보는/ 내 슬픈 눈동자처럼.

(배경란/ 그리움)

 

바라볼 옷자락도 없는 시대에/ 이미 안 보이는 야훼의 옷자락을/ 생각하는 우리들// ‥‥ 카타콤도 아닌 지하실방에서/ 카타콤이 없어도 되는 시대에/ 야훼를 부르는 야훼만 부르는/ 우리는 무엇일까/ 보다 자유로움 속에서/보다 자유케 하는 자를/ 기다림은 애타게 기다림은/ 참말참말 무엇일까

(김지향/ 무엇일까)

 

하나님/ 새싹들 잘 자라게/ 맑은 날씨 주세요// 비바람 치는 날/ 갑자기 숨지는 새싹/가슴 찢기는 슬픔입니다// 그 새파란 젊음/그 새파란 삶이/ 너무 아깝습니다/ 하나님/어쩌면 좋아요.

(오동춘/ 해처럼 밝게 밝게)

 

스스로 당신 안에 있어 스스로 당신을 알고/당신한테 알림받고 당신을 아시며/ 사랑하고웃으시는 늘 영원한 빛이시오.

(단테/ 신곡)

 

나는/ 우주의 못 하나에 걸려 넘어졌다//그것은/ 하나님이 깎아버린 손톱이었다.

(김대규/ 우주의 못)

 

편지지 위에/ 꼬부랑글씨/ 점점 누워 버리는/ 하나님‥‥‥‥

(이영옥/ 기도)

 

하나님은 빛이시오/ 영원으로부터 다만 가까이하기 어려운 빛밖에는/ 살지 않으시니, 창조 이전에 있는 그대는 빛나는/본질의 빛나는 유출에 살고 있도다.

(밀턴/ 실락원)

 

나의 지배자/ 하나님이여, 숨결과 빵의 소여자, 세계의 창조주,바다의 지배자/산 자와 죽은 자의 주여/ 당신은 나의 뼈와 핏줄을 묶고, 살을 동여매어/ 그러하신 후에 이 무서움으로 당신의 일을 망치려고 합니다/ 당신은 새로 나를 만지려고 합니까? / 나는 다시 당신의 손가락을 느끼고, 당신을 봅니다.

(홉킨즈/ 도이칠란드호의 난파)

 

따라서 너 자신을 알라. 하나님의 수수께끼를 푼다고 고심하지 말라/ 인간의 옳은 연구제목은 인간이다.

(포프/ 인간론)

 

나의 하나님, 나는 이 숲을 거닐고/당신의 영이 잎을 흔들 때/ 나는 보았지오. 자란 나무그늘에서/ 사람과 얘기하는 천사를.

(보온/ 종교)

 

아침을 맞는 시선/ 어디서 속삭여오는 신의 목소리

(박이도/ 금빛, 은빛의 가을 소묘)

 

숲은 신의 몸짓으로 일어서며

(박이도/ 숲이 어느 날)

 

나를 구원하기 위해 그는 빨리 날아 왔다/ 물개가 광선을 타고 오듯이/ 두려우나 쏟아지는 빛처럼 밝았다/ 내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얼굴은

(허먼 멜빌/ 모비딕에서 뽑은 노래)

 

-해질 무렵/ 신을 회태한 바람이 불고

(김경수/ 비)

 

이제는 차라리 핏방울이 되어/흘러내리는 신의 얼굴

(김경수/ 창세기)

 

저 찬란한 태양이 풀잎에 이슬이 궁그듯/ 궁그는 신의 발자욱을 보아라/ 이슬 방울처럼 내 가슴에 맺히는/ 신의 발자욱을 보아라.

(김경수/ 신의 발자욱)

 

누 횐 구름 또한/ 아쉽도록 타오르시는/당신은 누구십니까?

(조남기/ 당신은 누구십니까)

 

내가 숲이기 이전/숲을 먼저 동경한 하나님/ 가장 낮게 내려앉은 나를/ 가장 꼭대기 소나무 위에서/ 손짓하시고/ 소나무는 나를 위해 울고/ 바람이 멎는 기도원

(최명희/ 첫날의 기도원)

 

아이들 돌팔매도/ 미치지 못하는/ 빠알간 홍시,// 하나님/ 하나님/ 난 까치밥이어요

(류순화/ 까치밥)

 

바람이 빗질한/ 맑은 서쪽 뜰// 속결 고운 모과나무/ 아득한 가지// 하나님 당신은/ 시리디 시린/ 담황색 향기로 계시옵거니

(김필곤/ 가을의 기원)

 

너의 생명이 창조되기 전에/하나님을 위한 첫 번째 날이 있었건만/ 하나님은 너로부터 두 번째 자리를 받으셨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못하셨노라./ 하나님께 너의 시간을 바치라. 그리고/감추어진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 너희 삶에서 시작되는 영원을 보라.// 하나님을 위한 최초의 시간들/ 그날들이 헛되지 않을지니/모든 짐을 쳐주실 주님의 권능으로/ 임재하심을 기다린다면/그분의 거룩하신 뜻이 함께하여/ 모든 짐진 자들을 도우시리라.// 먼저 하나님을 생각하라/주께서 사고(思考)의 능력을 주시리니/ 겸허함과 회개함이/ 네가 배울 것이니라/ 삶과 죽음, 모든 것에서/ 주께서는 너를 생각하시오며/ 너의 다함 없는 사랑을 원하시노라.// 그러므로 너는 먼저 주님을 구하라./ 그리하면 응답받으리./ 또한 그분이 네 위대한 후원자이심을 발견할지니/ 그분의 축복 없는 하루도,/ 한 시간도, 잠시의 생각도 있을 수 없는 것./ 그리스도와 함께 살며/그리스도와 함께 죽으라.

(월 H. 호튼/ 하나님께 나의 처음을)

 

위대한 창조주, 그는 나의 하나님/ 말씀하심으로, 세상을 있게 하시는 분이라네./ 아직도 다 세지 못할 만큼 수많은 별들/ 아직도 깊이를 다 알 수 없을 만큼 끝없는 바다들./거대한 산맥 힘차게 달리는 강물도 있게 하시는/ 그는 나의 하나님/ 위대한 능력의 하나님 그는/ 아직 자비의 부드러운 손으로/ 진주빛 달빛과 극히 작은 것들을 지어내셨고/ 눈송이들도 아주 섬세한 모양으로 지으신/ 그는 나의 하나님.// 위대하신 창조주,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그리스도는 나의 구주시라네./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나를 인도하시고 안위하신다네./ 세 명의 신들이 아니요, 한 분 삼위 일체이니,/ 그는 나의 하나님./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는 나의 하나님.

(막신 스티븐스/ 그는 나의 하나님)

 

신이시여/ 얼굴을 이리 돌리옵소서/ 당신 앞에 벌받던 여름은 가고/ 기도와 염원으로 내 마음 농익는/ 지금은 가을

(김남조/ 가을의 기도)

 

이 귀한 양식을 위하여/ 농부는 일 년 동안/ 땀과 정성으로 일하고/ 그 뒤에서 역사하신 하나님!

(허영자/ 가을의 묵도)

 

그 산에서 준비하심/ 나는 이제 믿노라/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늘 찬송하겠네

(홍안의/ 여호와 이레)

 

모처럼 하나님이/ 출석을 부르시는/ 오늘 아침에는/ 살고 싶어라.// 죽을 힘을 다해/ 느닷없이 살고 싶은/ 지금은 그저 그렇게 그렇지만/ 진딧물도 초록빛 분살이 오른,/ 한여름./ 천 날 만 날 별스럽지 않아/ 차라리 고마워라.// 하나님은 드디어/ 내 이름을 부르시고/ 예, 예/ 예,

(이향아/ 오늘 아침에는)

 

살아계신/ 하나님/ 믿는 자를 돌보사/ 새 은혜/ 베푸시고/ 그 사랑 보이시니/ 성도들/기뻐하고/ 드높이 찬송하세/ 성도들/ 기뻐하고 드높이 찬송하세/ 성도들 기뻐하고 드높이 찬송하세// 도우시는/ 하나님/ 믿는 자를 살피사/새 축복/내리시고/그 능력 보이시니/성도들/ 감사하고/ 더 크게 찬송하세/ 성도들 감사하고 더 크게 찬송하세//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자를 도우사/ 새 일을/ 행하시고/ 그 이적 보이시니/ 성도들/ 증거하고/ 다함께 찬송하세/ 성도들 증거하고 다함께 찬송하세

(홍안의/ 믿는 자의 하나님)

 

지금도/ 나는 듣네/ 그 옛날의 기이한 일들을/ 바닷물이 갈라져서/ 널고 곧은 길이 되고/ 구름기둥 불기등이/ 이스라엘을 인도했네/ 이런 일 뉘 하셨나/ 구원의 주/ 하나님//지금도 나는 보네/ 그 광야의 신기한 비밀을/웅덩이의 쓰디쓴 물/ 맛이 좋은 단물되고/ 반석에서 생수터져/ 이스라엘이 마셨다네/ 이런 일 뉘 하셨나/ 출애굽의/ 하나님// 지금도/ 나는 믿네/ 주 행하신 놀라운 이적을/ 하늘에서 내린 만나/ 주린 백성 양식되고/ 메추라기 몰아주어/ 이스라엘을 배불렸네/ 이런 일 뉘 하셨나/ 이스라엘/ 하나님

(홍안의/ 이스라엘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성산에 서 있네./내 영혼의 햇빛과 함께/ 나는 저 계곡 밑의 바람소리를 듣고 있네./ 천둥의 울부짖음에 귀기울이네.// 그러나 내가 이 영광스러운 하늘 아래/ 나의하나님과 함께 조용히 있으니/ 내가 섰는 높이까지는,/ 폭풍도 구름도 오르지 못하네.// 오! 이것이 생명!/ 오! 이것이 기쁨!/ 나의 하나님, 당신을 이렇게 발견하며,/ 당신의 얼굴을 보고 당신의 음성을 들으며/ 당신의 사랑을 알게 되나니.

(호레셔스 보나르/ 하나님을 발견하라)

 

야훼님,/ 산더미같은 눈물 티슈 앞에서/우리는 다시 생각해 봅니다.

(고정희/ 눈물 티슈)

 

 

설 교 노 트

 

하나님은 누구 편이신가

시l18:1-7

 

서론

사람마다 전능자가 자기편이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마귀의 편이면서도 모르고 지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와 사망의 마귀편이 되어서는 안되고 오직 성공과 축복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쥐고 계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의 편이 되십니까?

 

1. 하나님의 이름을 항상 앞세우는 자의 편이십니다.

어린 목동 다윗이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넘어뜨릴 때에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앞세웠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앞세우는 자에게는 실패와 절망이 없고 성공과 승리뿐입니다.

그런데 흔히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과 공덕만을 앞세우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십니다. 진정한 크리스찬은 자신의 모습을 주님의 십자가 뒤에 감추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을 앞세우며 나아가야 만군의 여호와께서 반드시 함께하여 주십니다.

 

2.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자의 편이십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의 시편 기자는 고통 중에 간절히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장 7절에 보면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므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내실 계획을 세우셨다"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7장 8절에 보면 사나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치러 올 때 사무엘이 젖먹는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면서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블레셋 군대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의 편이십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의 편이십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그 인자하심을 노래한다고 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두려워하며 섬기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구원하시고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기 때문에 사랑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하고 두려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자의 편이십니다.

 

4. 하나님께 감사의 생활을 하는 자의 편이십니다.

본문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2장 7절에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자식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감사의 생활이 넘치는 자의 편이십니다.

우리는 여호와께 마음으로 감사하고, 몸으로써 감사하며 물질로써 감사함은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감사해도 부족한 것뿐입니다.

 

결론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 이름을 찬양하는 데에 조금도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일에 게을러서도 안 됩니다. 경외하며 섬기는 일에는 감사 생활을 하는 일에도 남에게 뒤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이후부터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됨으로써 여호와께서 항상 우리의 편이 되시도록 노력합시다!

 

 

소망의 하나님

롬15:12-13

 

서론

소망이라는 말은 고대하고 기대한다는 뜻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무한한 능력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사람은 작은 꿈이라도 있어서 그 꿈을 가꾸어 갈 때 삶의 보람을 갖게 됩니다. 꿈은 삶의 힘이며, 생기입니다. 건강하기를 원하나 병이 들고 약할 때가 있으며, 부요하게 되기를 원하나 가난하게 되고 비천하게 될 때가 있으며,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원하나 다툼과 불화가 일 때가 있고, 항상 성공하기를 간절히 원하나 실패만 거듭되고 낙심과 실망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참의로 우리의 꿈이 이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허물어지고 실망 가운데 처할 때 사도 바울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꿈이요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그의 깊은 신앙과 체험에서 말씀했습니다. 죄의 깊은 고뇌 속에서, 실패의 아픔 속에서, 눈병과 투병하는 고통 속에서 그리고 환난과 궁핍과 핍박받는 고독한 전도의 길에서 항상 소망이 되어 주셨던 하나님에 대한 산 체험 속에 그 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까?

 

1. 없는 데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땅이 흑암 중에 있을 때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고, 땅이 혼돈한 중에 있을 때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가 정돈된 질서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소망을 만족하게 채워 주실 수 있는,모든 것을 영육간에 풍성히 가지고 계시는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신 하나님이십니다

 

2.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우리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약하기때문에,부족하기 때문에 주님의 관심이 더욱 커집니다. 주님이 더욱 우리를 돕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약하고 무능하고 천한 것, 보잘 것 없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지혜 있는 자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증거로 보여주셨습니다. 구약의 사사기를 보면 12사사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당시의 사사는 왕권과 제사장의 권한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위대한 지도자를 세우실 때에 어떤 지도자로 세우셨습니까? 그 표준 중의 하나는 약한 자를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3.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것은 죽어도 영혼을 살 수 있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1절 말씀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하신 이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주님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우리를 살려 주십니다. 죽음은 인간의 절망입니다. 아무 육체라도 이 죽음에 항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대로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라고 우리도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음은 우리에게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한 관문에 불과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 가운데 누구인가 낙심하고 실망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지금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소망이심을 확인하세요. 그 믿음이 당신에게 능력을 주시며, 이러한 당신의 다리에 새 힘을 주시며, 오늘의 실망을 소망으로 바꾸어 놓고 축복이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우리 편이시라

시34:15-17

 

서론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어느 집단이나 어느 단체에 소속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하디 약하고 철없는 어린아이일지라도 힘있는 아버지가 곁에 있어서 응원해 주고 자기편이 되어 준다면 그 아이는 누구에게나 뒤지지 아니하고 사기 왕성하여 뛰놀 수가 있는 것처럼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풍랑조차 복종하는 능력자가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편이 되어 주시고, 이날, 이 민족의 편이 되어 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다면 얼마나 만족하고 행복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이런 여호와의 능력과 축복이 여러분의 현재와 미래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시편 34편 15절을 보았더니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는 어떤 자의 편이 되어 주십니까?

 

1. 의인의 편이십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으나, 여기에 말하는 의인이란 곧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살려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재산을 버리고 명예와 직장에서 박탈함과 소외를 당하면서도의롭게 살며,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자에게 여호와는 함께 하시고 그런 자의 편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되어 지면 교회 부흥은 물론이요, 물질의 축복과 건강의 축복과 만사형통의 축복은 자동적으로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여호와는 기도하는 자의 편이시라 했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땅에서 자기의 무능과 불가능을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땅에서 실현되기를 위하여 부르짖고 간구하는 자의 편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며 하나님을 움직이는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구하는 성도의 편이 되어 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자의 자손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기도는 기적의 산출처입니다.

 

결론

여호와께서 나의 편이 되어 주시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힘 있게 보아고 잘될 것 같은 일일지라도 불의한 것이나 불의한 재물, 불의한 친구, 불의한 방법 등 이런 것에서는 과감하게 손을 끊어 버리고 좀더 의롭게, 좀더 거룩하고, 좀더 깨끗하게 살도록 힘쓰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우리에게 향하시고 우리의 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무슨 일에나 기도하며 시작하고, 기도하면서 진행하고, 기도하면서 마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시136:1-9

 

서론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영원을 사모하는 종교성이 있어서 본능으로 하나님의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천지만물의 질서와 조화를 보아서도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성경은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명칭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칭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붙이신 것입니다. 이 명칭에서 하나님의 다면적인 존재성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심을 나타날 때 "엘"과 "엘로힘","엘욘", "아도나이"를 씁니다. 엘과 엘로힘은 강하고 능력 있는 분으로 마땅히 경외의 대상임을 지적해 주고 엘욘은 숭고한 분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며, 아도나이는 항상 모든 인간의 소유주와 지배자인 "주"를 뜻합니다.

또 자기 백성의 위안과 축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강조할 때는 "엘샤다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나 가장 존엄한 명칭은 "여호와"입니다(출3:14). 이것은 스스로 계신 분, 영원 자존자, 언약의 신, 신실하신 분, 사랑의 관계를 맺어 주시는 분을 표명합니다. 신약의 명칭은 구약의 명칭들을 헬라어로 표시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파테르(Pater)" 곧 "아버지"라는 명칭은 신약에서 새로 소개된 것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말해 줍니다.

 

2. 하나님 속성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알려진 하나님의 성품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속성과 하나님과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자존성, 불변성, 무한성, 유일성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불변성은 하나님의 본질에 있어서 늙거나 쇠하지 않으며 그의 약속이나 권능에 변화가 없습니다. 결과에, 사랑과 긍휼에, 공의에 대해서 변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미지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시공을 초월한 영원함, 어디서나 계시는 무변하심과 만능의 권한을 행하시는 절대적으로 완전하심을 나타냅니다.

유일성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다른 영물들 곧 하나님이 지으신 천사들이나 물질에서 구별된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속성인데 거룩하심, 공의로우심, 인자하심은 피조물과 구별되시고, 도덕적으로 악에서 떠나 완전하신 분임을 나타냅니다. 공의로우심은 악을 행치 않으시고 악을 벌하시는 분으로, 인자하심은 비참과 고통 속에 있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으로, 약속은 반드시 성취하시는 분으로, 사랑은 저주받은 세상과 인간들에게 은총을 내리셔서 자연의 혜택도 주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분임을 잘 나타냅니다.

 

결론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하나님과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질 수 있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속성은 유한하고 변화가 많지만 하나님의 속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받아 하나님을 바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선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약1:17

 

서론

본문은 몇 가지 은혜와 의무가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지시하는 대로 자신의 시험과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으며 영광스러운 대가를 보장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창조주가 아니십니다. 오직 모든 선의 창조주이십니다.

 

1.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

(1)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빛을 만드신 조물주이십니다.

해와 하늘에 떠있는 별들의 빛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창1:3)"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해를 만드신 조물주이십니다.

(2) 하나님은 빛으로 비유됩니다.

해는 흔히 그 사이에 끼어든 땅과 구름으로 인해, 즉 일출이나 여러 가지 상이한 외형이나 일몰에 따라 우리에게 다르게 보일지라도 그 본질과 영향력에 있어서는 항상 똑같은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변함이 없으시므로 우리의 변화나 어두운 그림자는 하나님께 속한 변덕이나 어두움에서 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난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각양의 좋은 의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는 빛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성의 빛을 주십니다. 즉,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십니다(욥32:8)" 하나님께서는 또 배움의 빛을 주십니다. 자연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정부의 법령에 있어서, 시행한 모든 개혁에 있어서의 솔로몬의 지혜는 하나님에서 주신 것입니다. 거룩한 계시의 빛은 훨씬 더 위에서 내려옵니다. 믿음과 순결과 모든 종류의 위로의 빛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 이외에는 우리는 어떤 좋은 것도 가지지 못합니다.

(2) 사람들이 인정해야 하는 감사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있어 모든 능력과 온전함을 이루시는 창조주이시며 이런 능력과 온전함으로 얻게 되는 모든 혜택을 주시는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은 거듭남과 그 결과의 근원입니다.

(1) 거듭남의 근원

이것은 자기의 기술이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며, 우리 안에 미리 예정하신 또는 우리가 행한 선한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한 의지와 은혜에서 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2) 거듭남의 목적과 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듭나는 은혜를 주시는 목적과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첫 열매로 하나님의 몫이요, 보배요, 그의 귀중한 재산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바쳐진 첫 열매로써 주님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의 열매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조물 중의 첫 열매이십니다.

 

결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선의 아버지시며 그 근원이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실수하지 않도록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탈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생각으로 길을 잃고 방황해서는 안 되며 진리의 표준에서 벗어나서도 안 됩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은 모두 주 예수로부터 그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받은 것입니다. 예수안에 있는 진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악의 조물주도 후원자도 되실 수 없으며 다만 모든 선의 근원이며 원천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른 삶

사55:6-13

 

서론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서 한평생 바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조물주 하나님의 엄숙한 요청이고, 인생의 본분이요, 의무이기 때문이며, 인생에서는 장차 심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바른 삶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인생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성경적인 바른 삶에 대하여 잠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조물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이사야 55장 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바른 삶이란 살아계신 조물주 하나님을 먼저 찾아만나서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예를 들면, 땅에서 뿌리뽑힌 나무가 다시 땅에 심어지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시편 기자는 시1:3에 "복이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7:16-20에 나무를 중심하여 세 가지 중대한 교훈을 하였습니다.

(1)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은 착한 사람은 착한 생활을 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지 아니하고 마귀와 관계를 맺는 사람은 악한 생활을 한다는 말입니다.

(2) 그 맺은 열매를 보아서 그 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 사람의 생활이 바르면 바른 사람인 것을 알 수 있고, 그 사람의 생활이 불의하면불의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3)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이 바르고, 참되게 살면 영원히 존재할 가치가 있지마는 바르지 못하고 악한 인생은, 심판을 받아 멸망하리라는 심각한 교훈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바른 사람이 되어 바로 살려고 하면, 먼저 조물주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하고 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 비결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조물주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에서 떠나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사55:7에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는 불순종이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법도를 거역하는 불법이라고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는 불의라고 하였습니다.

(4)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죄의 성격은, 고착성과 유전성과 독성이 있어,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무서운 죄를 범하게 되는 동기는, 인생의 교만과 욕심과 향락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러한 범죄의 요인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결론

이와 같이 인생이 바로 사는 길은 성경에 밝힌 대로

(1)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2)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살아야 하고

(3)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버리고, 깨끗하게 사는 길이 바른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선민을 도우시는 하나님

시121:1-8

 

서론

우리들이 이 시편 121편에 함축되어 있는 사상과 교훈을 고찰해 보면 이 세상 많은 시험과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를 받고 감사하는 심정으로 부른 신앙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의 중심사상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누구나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 불행하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부족한 인간들의 도우심도 행, 불행을 좌우하고 생사문제가 결정된다면 우리 하나님 도와주신다면 이상에 더 큰 축복이 얼을 것입니다.

 

1.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여기의 시인은 깊은 골짜기에서 눈을 들고 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를 찬송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없는 중에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신성하신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본성적으로 착하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때에 사람은 선해지고 의로워지고 거룩해질 수 있거니와 자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3)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사랑의 본체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랑을 우리에게 실현하였으니 바로 독생자를주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우리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선민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겠으나 본시에 고백한 내용 세 가지를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우리를 실족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신다고 하였습니다(시121:3).

이 말씀이 지니고 있는 뜻은

① 진리의 궤도에서 탈선되지 아니하고

② 신앙의 정로에서 이탈되지 아니하고

③ 구원의 노선에서 낙오되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2) 우리를 상하지 아니하도록 도와주신다고 하였습니다(시121:6).

이 말씀이 지니고 있는 뜻은

① 우리에게 유익하도록(롬8:28),

우리를 안전하도록(시94:17),

③ 우리를 행복하도록 도와주신 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3) 우리에게 환난을 면케 하도록 도와주신다고 하였습니다(시121:7).

이 말씀이 지니고 있는 뜻은

① 우리들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② 신체적인 평강과

③ 생활상 안전지대를 확보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계3:10).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총이 우리들의 삶의 전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론

이제 결론적으로 도와주시는 내용과 방법은,

(1)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도와주십니다.

(2) 우리 우편에서 그늘이 되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3) 시간적으로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출입을 지켜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해야 합니다.

 

 

네게 요구하시는 것

신10:12-20

 

서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다 요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법을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중에 몇 가지만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그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즉, 신전의식 생활을 좋아하십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만 한다면 죄를 안 지을 수도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에 사람만 보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두렵게 생각하고 죄를 범하지 않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습니다(요14:15).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뜻에서 그의 계명을 지키면 무척이나 좋아하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을 섬기면 먹는 양식과 마시는 물에 복을 내리고 몸의 병까지 고쳐 주신다고 하였습니다(출23:25-26).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실천하면 약속하신 많은 것으로 주십니다(롬8:32).

 

3. 행복을 위하여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는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계명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지키기를 요구하시는 것은 결코 성도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고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큰 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십계명을 지킬 때 결코 손해가지 아니하며 다 지키면 큰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주시려고 계명을 지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도 인간들에게 손해 끼치는 것이 없습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여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의 명령에 순종하면하나님께서는 나아가도 복을 주시고, 들어와도 복을 주시며, 떡반죽에 이르기까지 꾸워주고 살지언정 꾸어 먹지는 아니하게 하시며,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찾아 만나자

대하15:1-8

 

서론

우리 인생들이 성공하여 행복하게 잘살 수 있는 비결은 우리들의 생사 화복을 지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여호와를 찾아 만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암시해 주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바로 찾아 섬기지 못하는 증거요, 저들의 마음과 실제 생활로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나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고로 여기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여호와를 찾아 만나라"는 외침은 매우 그 의미가 심장하다고 생각합니다.

 

1. 여호와를 찾아 만날 가능성

여기 선지자들이 "여호와를 찾아 만나라"고 하신 외침은 여호와를 찾아 만날 수 있기에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렘3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으리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찾으면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니체의 말과 같이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관념의 신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사역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현하 기독 신자들 가운데도 신관과 신앙관이 잘못되어 가지고 하나님이 살아계겨서 우리들의 생사 회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지 아니하고 죽은 하나님으로 알고, 또한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믿지 아니하고 관념적인 하나님으로 알고, 지금도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지 아니하고 우상적인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말입니다.

 

2. 여호와를 찾아 만날 이유

본문에는 하나님을 찾아 만날 세 가지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1) 환난 만난 사람이 평안을 회복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하나님을 찾아 만나면 환난을 만나 마음의 근심과 걱정이 있는 사람이 위로와 평안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2) 연약한 인생들이 힘을 얻어 강해진다고 하였습니다.

수1:5에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만나는 성도는 능력을 받아 강하고 담대해져서 적에게 승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3) 불행한 사람이 행복하여지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하나님을 찾아 만나면 상급이 있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 이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환난에서 구원받아 평안을 회복하였고, 연약한 자들의 힘을 얻어 강하고 담대하여졌고, 불행이 변하여 행복과 영광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 만나야 되겠습니다.

 

3. 여호와를 찾아 만나는 비결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찾으면 만날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 비결을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1)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비결이요,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 문제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2) 모든 죄를 회개하면서 찾으라고 하였습니다(사59:1).

하나님과 가로막힌 담을 헐고 기도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버려야 됩니다.

(3) 전적으로 순종하고 의지하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모든 슬기, 기능, 방법을 버리고 전적으로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 만나서 참된 평안과 신령한 능력과 행복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행 복

성 경 활 용

1. 악인의 행복

(1) 헛된 행복이다.

(전7:6)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솔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2) 성도는 악인의 행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시37: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3) 잠깐이다.

(욥20:5) 악인의 이기는 자랑도 잠시요 사곡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2. 의인의 행복

(1)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이다.

(시144: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2) 주 안에서 동거하는 자들이다.

(시133:1)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관련원어풀이

1. rv,a, 아쉬레-

행복.

(시l:1, 2:12)

 

2. b/f 토-브

(1) 좋다, 선하다.

(신5:30, 민11:18)

(2) 아름답다. 즐겁다.

(민24:5, 아4:10)

(3) 유쾌하다, 행복하다.

(삼상25:36, 에1:10)

(4) 부유한, 번성하는, 행복한.

(시112:5, 전5:4)

(5) 유쾌한, 즐거운.

(왕상8:66, 에8:17)

 

3. makarismov" 마카리스모스

(1) 행복되다고 부름, 복되다고 말함, 축복, 축하.

(롬4:6, 9)

(2) 자축.

(갈4:15)

설교예화자료

거지의 세 가지 즐거움

 

어떤 부잣집 노인이 말을 타고 행차하다가 앞길에서 거지와 칼이 보이는 사람이 기뻐 춤을 추는 것을 보고서는, 돈이 많아도 춤출 일이 없는데, 거지는 도대체 무엇이 기뻐서 저렇게 즐겁게 춤을 추는가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 거지는 대답하기를,

"나는 기뻐서 춤추는 이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를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사람으로 지어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기쁘지 않을 수 없고 둘째, 나는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불구자이나 세상에는 나보다 더 불구자가 많고 셋째, 세상에서는 날 부러워 할 사람이 없을 것이나 나는 죽으면 하나님 품안에 있을 것을 생각해서 기뻐 춤을 춥니다." 하였습니다.

 

 

워너메이커는 행복하게 바빴다

 

"어떻게 지내십니까?"하고 오크홀(OakHall)의 60주년을 존워너메이커(John Wana-Maker)에게 축하하러 온 한 늙은 친구가 물었습니다. "행복하게 바쁩니다. "라는 것이 대답이었습니다. 얼마나 성공하였든 간에 한 사업을 60년간 계속했다는 것은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워너메이커는 23세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진 업체로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83세에도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면서 여전히 사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식으로 해 나갔을까요? 그것이 그 오랜 친구가 알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워너메이커가 말하였습니다,

"단 두 마디로 나는 당신의 첫 질문에 대답하겠소. 많은 사람이 바빠야하기 때문에 바쁩니다. 나는 내 스스로 원하여 바쁩니다. 그러므로 나는 행복하게 바쁩니다. "

 

 

들당나귀와 집당나귀

 

들당나귀가 어느 집 앞에 지나는데 마침 우리 속에서 집 당나귀가 먹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맛있겠구나. 어디서 났니?"

배가 몹시 고픈 들당나귀는 부러운 눈길로 물었습니다.

"응, 주인님이 주신 거야, 날마다 이렇게 푸짐히 주시는걸."

집당나귀는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햇볕이 따뜻한 우리 안에서 편안하게 좋은 먹이를 먹고 있는 집 당나귀를 보자 들당나귀는 몹시 부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부럽구나. 날마다 그렇게 푸짐한 먹이를 먹을 수 있다니!"

들당나귀는 군침을 삼키며 집장나귀의 우리를 떠났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들당나귀가 언덕 위의 나무 밑에서 쉬고 있을 때 무거운 짐을 등에 잔뜩싣고 집 당나귀가 지나갔습니다. 집당나귀는 등에 진 짐이 너무 무거운지 휘청거리며 겨우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옆에 따라가던 주인이 채찍으로 세게 내리쳤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고 빨리 가!"

그것을 본 들당나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어휴, 저렇게 고생을 시키다니! 맛있는 먹이를 풍족히 준다고 부러워할 게 아니었군!"

 

 

가정은 행복의 원천

 

옛날에 자기 작품에 항상 만족을 느끼지 못한 화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찾아 그리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도 자기가 찾고자 하는 아름다운 것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결혼식을 끝마치고 나오는 신부를 붙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 "고 물었습니다. 신부는 주저함 없이,

"사랑이오."하고 대답했습니다.

화가는 실망했습니다. 그후 군인을 만났습니다. 그 군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군인은 평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실망했습니다. 그후 어느 성직자에게 또 물었습니다. 성직자는 믿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화가는 사랑 평화, 믿음을 어떻게 그릴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아름다운 것을 찾고자 하는 희망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반기는 부인에게서 신부의 사랑을 찾았으며, 가정의 따스함에서 평화를 찾았고 아빠를 기다리던 어린이들의 순수함 속에서 믿음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화가는 자기 자신의 가정에서 이제까지 찾아 헤맨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은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록·시·묘사

 

곧은 선비는 행복을 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하늘은 그 마음 없는 곳을 향하여 그 문을 열어 주고, 음흉한 사람은 재앙을 피하려고만 애쓰기 때문에 하늘은 그 애쓰는 마음에 재앙을 내려 그 넋을 빼앗는다.

(채근담)

 

행복이란 마음대로 구하지 못하나니, 스스로 즐거운 정신을 길러 복을 부르는 바탕을 삼을 따름이요, 재앙이란 마음대로 피하지 못하나니 남을 해하는 마음을 없이 함으로써 재앙을 멀리하는 방도로 삼을 따름이다.

(채근담)

 

행복은 작은 새와 같이 붙들어 두는 것이 좋다- 될 수 있는 한 살짝, 그리고 부드럽게. 작은 새는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끼기만 하면 기꺼이 그대의 손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F. 헤벨)

 

행복은 인간 누구나가 타고난 권리이고, 그것을 빼앗긴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을 괴팍스럽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드는 법이다.

(B.A.W. 러셀/ 행복의 정복)

 

행복을 추구하고 있기만 하면 너는 행복해지지 않는다. 가령 가장 사랑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H. 헤세/ 황야의 이리)

 

사람은 남의 불행을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세네카/ 루킬리우스에의 서한집)

 

국민의 행복에 대해 가장 염려를 했던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들을 아주 불행하게 만들었다.

(A. 프랑스/ 실베트르 보나르의 죄)

 

손이 미치지 못하는 행복은 모두가 꿈에 지나지 않는다.

(스랄리/ 해학풍의 소네트집)

 

행복이란 자기의 영혼을 훌륭하다고 느끼는데 있다. 이 이외에는 소위 행복이란 것은 없다. 그러므로 행복은 비탄이나 회한 가운데에도 존재할 수 있다. 쾌락은 육체의 어떠한 점의 행복에 지나지 않는다. 참다운 행복, 유일한 행복, 온전한 행복은 마음 전체의 영혼 가운데 존재한다.

(J. 주베르/ 팡세)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래 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었던 문을 보지 못한다.

(H. 켈러/ 빼앗긴 우리들)

 

모두가 행복할 때까지는 아무도 완전히 행복할 수 없다.

(H. 스펜서/ 사회학원리)

 

불안을 자아내는 행복조차 있다.

(T. 후드/ 우울에의 송시)

 

행복하게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욕망을 줄이거나 소유물을 늘이거나 하는 것이다. 어느 편이든 좋다.

(B. 프랭클린)

 

어리석은 사람은 행복을 멀리에서 찾는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의 발 밑에서 행복을 키운다.

(J. 오펜하이머/ 현인)

 

행복이란 과잉과 부족 중간에 있는 조그마한 역(驛)이다.

(C. 폴록/ 마니페니 씨)

 

행복엔 돈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거짓된 행복에 우린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는가.

(H. 벌루/ 설교집 원고)

 

가장 행복하였던 사람은 조용한 가슴을 안고 일상의 여느 햇빛을 즐겁게 여기며 나머지는 하나님에게 맡긴 사람이다.

(J. V. 체니/ 가장 행복한 사람)

 

행복은 자신의 가정에 있다. 타인의 뜰에서 찾을 것은 아니다.

(영국 속담)

 

행복은 우자(愚者)의 후견인이다.

(덴마크 속담)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것에는 언제나 납득하지 아니한다.

(M. E. 에센바흐/ 잠언집)

 

안일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을 차지할 수 없다.

(M. E. 에센바흐)

 

불행과 행복은 자기가 구하지 않는 데도 찾아오는 일은 없느니라.

(맹자)

 

모든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세워진다.

(I. 투르게네프/ 그 전날 밤에)

 

참다운 행복, 그것은 우리들이 어떻게 끝을 맺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시작하느냐하는 문제이다. 또 우리들이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느냐의 문제이다.

(R.L. B. 스티븐슨)

 

화장이 여자의 가식인 것처럼 행복은 여자의 시정(詩情)이다.

(H. 발자크/ 고리오 영감)

 

나날의 행복은 정밀한 저울로 달아 볼 것이 못된다. 보통의 저울로 달아보면 부정확하기는 하지만 만족스럽기는 할 것이다.

(J.W. 괴테/ 잠언과 성찰)

 

어떻게 행복을 얻을 것이며, 어떻게 유지하고,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이것이 대개의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 그들이 참아가는 모든 일에 대한 그치지 않는 마음속의 동기이다.

(W. 제임스/ 종교적인 경험의 다양성)

 

행복은, 항상 그대가 손에 잡고 있는 동안에는 작게 보이지만, 놓쳐보라. 그러면 곧 그것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가 알 것이다.

(M. 고리키/ 지코프 일가)

 

행복은 산울림과 같다. 당신에게 대답은 하면서 찾아오지는 않는다.

(칼멘 실봐/ 어느 여왕의 명상록)

 

행복은 애타심에서 태어나고 불행은 자기 본위에서 태어난다.

(석가모니)

 

사람이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결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F. 라 로시푸코/ 잠언집)

 

행복이 유일한 선이요, 이성의 유일한 횃불이고, 정의가 유일한 숭배이며, 박애가 유일한 종교이고, 사랑이 유일한 성직자이다.

(R. G. 잉거솔/ 에벤 잉거솔에게 바치는 찬사)

 

행복이 올 때는 우연히 찾아온다. 행복은 추구의 대상으로 노력할 때는 들판의 거위를 쫓는 격이 되어 잡히지가 않는다.

(N. 호손/ 일기)

 

행복이란 습관이 된다. 그 습관을 키워라.

(E. 허버트/ 경구)

 

행복이란 본질적으로 "도(道)"나 "진리"에 속한 것이 아니다. 무아경(無我境)의 법열(法悅)같이 고상한 것이 아니요, 어디까지나 유아본위(惟我本位)인 속세적인 이익이 근본인 것이다. 그것은 행복의 근본이 되는 "복"의 개념이 원래 그런 것이다.

(김동리/ 행복론)

 

무엇이 행복을 갖다 주는지 찾을 길이 없다. 제물도 가난도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였다.

(K. 하버드/ 에이브 마틴의 방송)

 

삼십이 넘어서도 어린애들의 만화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결혼한 지 십 년 후에도 여전히 행복을 꿈꾸는 그런 사람은 드물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어느 곳에 돈이 떨어져 있다면 길이 멀어도 주우러 가면서, 제 발밑에 있는 일거리는 발길로 차 버리고 지나치는 사람이 있다. 눈을 뜨라! 행복의 열쇠는 어디에나 떨어져 있다.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네가 노상에서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 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A. 지드/ 지상의 양식)

 

가장 큰 행복이란, 사랑하고 그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A. 지드/ 일기)

 

나는 미래에 대해서, 행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구하였으며, 이미 행복과 덕을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다.

(A. 지드/ 좁은 문)

 

이승의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대견스러운 행복에 대해서는 언제나 구토제를 대한 듯한 반응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C.P 보들레르/ 인공의 천국)

 

그러므로 인생을 짧게 보는 사람에게는 행복은 허무하고 불행은 오래 가지만, 반대로 위대한 희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행복은 오래가고 불행은 짧다. 따라서 행복을 얻는 유일한 비결은 오로지 행복만을 인생의 최종 목적으로 삼지 말고 행복 이외의 보다 숭고한 사명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된다. 그러면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행복은 저절로 싹틀 것이다.

(김정진/ 인생의 행복)

 

행복은 대개의 경우, 쾌락이 아니며 대체로 승리인 것이다.

(R. W. 에머슨)

 

이 세계에서 행복 이상의 어떤 것을 구하는 사람은, 행복을 소유하지 못했다고 해서 불평해서는 안 된다.

(R. W. 에머슨)

 

이성의 덕분으로 물건을 탐내지도 않고 꺼리지도 않는 그러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돌이나 목축도 겁이나 슬픔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 해서 행복에 대한 감정이없는 그들을 행복하다고는 누구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한 생활이란 바르고 확실한 판단에 의한 안정, 그리고 변하지 않는 생활을 가리키는 말이다.

(L.A. 세네카/ 행복한 생활)

 

인간들이 행복한 것은 몸이나 돈에 의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올바름과 지혜의 많음에 의한다.

(데모크리토스)

 

전능자(神)는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

(A. 링컨)

 

행복은 슬픔이나 비애의 반대어로 정의할 수 있으며, 실로 대부분의 사람은 행복을 슬픔이나 비애가 없는 심적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이제 행복은 보다 새롭고 보다 나은 상품의 소비와 음악 영화 · 잡담 · 성(性), 술과 담배 등을 즐기는 것과 같은 뜻이 되었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가장 큰 행복은 한 해의 마지막에서, 지난 해의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L.N. 톨스토이/ 독서의 수레바퀴)

 

행복은 사람을 이기주의자로 만든다.

(L. N. 톨스토이)

 

인간만이 자신의 행복을 창조한다.

(A. P. 체호프)

 

행복이란 불행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웃이 만족하고 있는모습처럼 우리 눈에 이상하게 비치는 것은 없다.

(P. 매킨리/ 마음의 영역)

 

인간의 지복(至福)은 어쩌다 있을까 말까하는 큰 행운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어나는 조그만한 기쁜 일로 얻어진다.

(B. 프랭클린/ 자서전)

 

행복은 보상에 있지 않다. 노력하는 힘 속에서 찾아진다.

(J. T. 트로브릿지/ 50세)

 

행복할 수 있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과,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아라비아 속담)

 

행복이란 대개 사람에게 불림을 받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며, 멀리하면 멀리할수록 더욱 찾아 드는 것이다.

(K. W. 훔볼트)

 

남자의 행복은 "내가 하고 싶다. "이고, 여자의 행복은 "그가 하고 싶어한다. "이다.

(F.W.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행복은 가슴의 굶주림 속에서 태어나 자란 처녀다.

(K. 지브란/ 눈물과 미소)

 

훈장에 양편이 있음은 위안이다. 세상에는 많은 악과 불행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보다더 맡은 선과 행복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T. 제퍼슨/ 문집)

 

인간의 최대의 행복은 날마다 덕에 대해서 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혼이 없는 생활은 인간에 값하는 생활이 아니다.

(소크라테스)

 

우리의 행복은 조금은 위로받은 불행에 지나지 않는다.

(J. F. 듀시스)

 

잘 지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이루게 하는 것처럼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행복을 자기 자신 이외의 것에서 발견하려고 바라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다‥‥현재의 생활 또는 미래의 생활 그 어느 것에 있어서나, 자기 자신 이외의 것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사람은 그릇된 사람이다. 불행을 겁낼 때 당신은 이미 불행하다. 불행을 가져야 할 자는 영구히 불행을 겁내고 있는 자뿐이다. 나는 생각한다. "잘되겠다고 노력하는 그 이상으로 잘사는 방법은 없으며, 그리고 실제로 잘되어간다고 느끼는 그 이상으로 큰 만족은 없다. "라고. 이것은 내가 오늘까지 살아오며 경험하고 있는 행복이며 그리고 그것이 행복인 것은 내 양심이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행복이란, 혹자에겐 왕성한 원기이고, 혹자에겐 단순한 침체상태이다.

(A. 로우얼/ 행복)

 

행복을 자기 집에서 찾기는 어렵지만 그것을 다른 곳에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S.R.N. 샹포르/ 성격과 일화)

 

평범한 행복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호라티우스/ 서정시집)

 

행복은 바로 삶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지금 발견하는 자에게만 존재하는 것이다.

(박목월/ 행복의 얼굴)

 

행복의 크나큰 장해는 너무 크게 행복을 기대하는 데에 있다.

(B.L.B. 퐁트넬/ 행복론)

 

쾌락은 몽상으로 얻을 수 있지만 행복은 현실에 뿌리 박는다.

(S.R.N. 샹포르/ 성찰 잠언 · 일화)

 

내게 행복이란 바람이나 향기로써 "코가 아는 세계"이며, 소리로써 "내 귀가 아는 세계"이며, 광명으로 "눈이 아는 세계"이며, 촉감으로써 "전신이 아는 세계"이며, 붓으로써 "시가 아는 세계"이다. 그 밖에 내가 행복이라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삭아진 것이나 굳어 버린 "행복" 그것이 아닌 것이다. 나는 삶을 무슨 목적으로 굳어 버린 벽돌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시각각으로 출렁거리는 감정과 함께 있는 것이며, 행복도 이 출렁거리는 것 안에 어리는, 그야말로 하나의 빛나는 무지개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시를 쓰는 사실 안에서도 시를 쓰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며, 시를 못 써서 괴로울 때도 시를 못 쓰는 괴로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박목월/ 행복의 얼굴)

 

우리들의 시야, 활동 범위, 접촉 범위가 좁을수록 우리들의 행복은 크다. 그것들이 넓을수록 우리의 고뇌와 불안을 느끼는 것이 크다. 그것은 그것들과 함께 걱정, 원망, 공포가 증대하고 확대되기 때문이다.

(A. 쇼펜하워/ 행복을 위한 금언)

 

행복이란, 교묘히 속여 지는 상태의 끊임없는 소유이다.

(J. 스위프트/ 통 이야기)

 

이길 가망이 없는 싸움은 걸지만 않으면 걱정은 없다. 세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 굉장한 세력이 있는 사람, 또는 명망이 높은 사람을 볼 때 자기 상상으로 그들이 행복하다고 생각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모든 참다운 행복은 우리의 힘이 닿는 데 있으므로 질투나 선망은 의미 없는 일이다.

(C. 힐티)

 

행복이란 말에는 무언지 우울한 가락이 있다. 그것을 입에 담을 때 이미 그것은 도망해 버리고 있다.

(C. 힐티)

 

인간의 행복이란 물 위에 등등 떠있는 물풀같이 허황한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난의 바다를 지나 그 바다 속 깊숙이 잠겨 있는 진주와 같은 것이더라고 그녀는 말했다. 인간은 진주와 같은 행복을 따기 위해서 깊은 슬픔의 바다 속에 갖은 고난을 헤치면서 잠겨 들어가야 한다.

(장덕조/ 누가 죄인이냐)

 

행복은 전인성을 위하여 스스로 노예됨을 깨닫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열매다.

(조지훈/ 영원과 고독을 위한 단상)

 

모든 사람은 행복을 찾아 배회한다. 그러나 우리는 왕왕 우리가 찾아 놓은 행복에게서 얼마나 많은 배신을 당해 왔던가. 인간은 행복을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길고 먼 여로에서 더듬고 찾고 하며.

(모윤숙/ 행복의 얼굴)

 

행복과 불행은 같은 지붕 밑에 살고 있으며, 번영의 바로 옆방에 파멸이 살고 있고, 성공의 옆방에 실패가 살고 있다.

(안병욱/ 사색의 노트)

 

참된 행복 앞에서는 부(富)도 연기만큼의 가치밖에 없다.

(소코클레스/ 안티고네)

 

부자는 선량할 수가 없다. 선량하지 못하면 행복하다고 할 수 없다.

(플라톤/ 법률)

 

혼자 행복을 누린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사실이 아니라 미안하고 죄송하게 여겨야할 일입니다.

(지명관/ 고난)

 

행복은 세계의 떨리는 가락의 한 순간이며, 삶의 흔들이가 오락가락하는 양극의 하나다. 이 흔들이를 그쳐 버리려면 부수어 없애는 수밖에 없다.

(R. 롤랑/ 장 크리스토프)

 

남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자기의 행복을 구한다면, 원망이 몸으로 돌아와 재앙에 빠지게 된다.

(법구경)

 

재산을 만드는 일 없이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행복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서행복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G. B. 쇼)

 

내 행복 그것은 우리의 행복이다. / 나의 태양 그것은 우리의 태양이다. / 우리는 생명을나누어 갖는다.

(P. 엘뤼아르/ 평화의 얼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했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아, 내가 만일 까치라면/ 내가 진정 까치라면/ 견우직녀 단란히 살아갈 집에/ 주춧돌로 굳어서 행복할 것을‥‥‥

(박화/ 내가 만일 까치라면)

 

사람은 행복을 찾기 시작하면 행복을 얻지 못하는 운명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이것에는 이상스러움도 없다. 행복이란, 저 쇼윈도 속의 물품과 같이 갖고 싶은 것을 골라서 돈을 치르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랭/ 행복어록)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I. 칸트/ 인생을 말한다)

 

나의 의견으로는 행, 불행은 생물학적 현상이며, 행복한 사람이란 최소의 힘을 들여 최대의 긴장을 풀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마르티네스 데 캄포스)

 

행복은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되고 불행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 속담)

 

행복은 자주(自主) 자족(自足) 속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에우데모스 윤리학)

 

인간은 신의 생활에 참여 함으로써만 참되게 행복해 진다.

(A.M.S. 보이티우스/ 철학의 위안)

 

미래의 행복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늘 허락된 행복을 오늘 한껏 누리는 것이다

(C.W. 엘리엇/ 행복한 인생)

 

행복이란 것은 비애의 강물 바닥에 가라앉아서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파리 같은 것이 아닐까.

(태재치/ 사양)

 

행복하리로다. / 홀로 있으면서도/ 오늘을 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면/ 내일은 최악의 것일지라도 그것이 무엇이랴/ 오늘 이토록 충실한 삶을 내가 누렸나니.

(호라티우스)

 

어제는 꿈에 지나지 않고/ 내일은 환상일 뿐/ 그러나 충실하게 지낸 오늘은 어제를 행복한 꿈이게 하고/ 내일은 희망이 넘친 환상이게 한다. / 그대여 보라, 오늘을 인식하라!/하여, 여명에의 인사를 하라.

(카리다사/ 여명에의 인사)

 

그리하여 일몰의 시각에 실종된 우리들의 행복은 돌아오는 것이다. 비에 젖은 들개처럼 온종일 쓰레기통을 쑤시다가 뱃가죽을 늘어뜨리고 어둠을 질질 끌면서, 그리고 눈꼽이 낀 눈을 껌벅거리면서 털 빠진 붉은 잔등이에 희미한 별빛을 받으면서 우리 곁으로 그것은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억지로 찢어붙인 네 잎사귀 클로버처럼 들킬까 조바심을 내는 모조의 그 클로버처럼 ‥‥아니 그렇지않으면 백치와 같은 표정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쪼그리고 있는 무명의 그 시골 기독교인처럼-고개를 끄덕 이면서 햇볕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싱그러운 미소를 짓는 그 시골의 기독교인처럼‥‥‥‥ 그런 꼴을 하고 행복은 우리들 곁으로 온다. 어느 일몰의 시각에‥‥‥

(이어령/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이 시집을 끝까지 다 읽어 주신 분에게는/사례로 이천 원을 드리겠음/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저의 시를 읽어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증말/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윤동재/ 시집)

 

오늘도 비를 맞으며 걷는 일보다/ 바람에 뒤집히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끝내는 바람에 뒤집히다 못해/ 빗길에 버려지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비 오는 날마다/ 나는 하늘의 작은가슴이므로/ 그대 가슴에 연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으므로// 오늘도 바람에 뒤집히는 일보다/ 빗길에 버려지는 일이 더 행복합니다.

(정호승/ 비닐 우산)

 

너는 무덤에서도 살아서 죽어야 한다. / 한반도에 내뱉은 너의 가래침이/아직도 마르지 않았음을 나는 아노니/ 너는 죽어도 죽은 자의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너는 죽어서도 죽은 자의 웃음을 웃을 수 없다.

(정호승/ 히로히토에게)

 

아아 너무나도 행복겨운 나뭇가지들이여!/ 잎은 지는 일 없고, 봄에 작별을 고하는 일도 없다. / 또한 행복겨운 연주자여, 피곤한 줄도 모르고/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영원히 연주할지니/ 더욱 행복스러운 사랑이여!/ 너무나 행복겨운 사랑이여!/ 언제나 따스하고 영원히 즐거워라.

(키츠/ 그리스 옛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하건만,/ 아, 남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네/ 산 너머 저쪽 하늘 저 멀리/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칼 붓세/ 저 산 너머)

 

기억하라 함께 지낸 행복스런 나날을/ 그때 태양은 훨씬 더 뜨거웠고/ 인생은 훨씬 더 아름답기 그지 없었지/ ‥‥나는 그 나날들을 잊을 수 없어/ 마른 잎을 갈퀴로 긁어 모으고 있다.

(프레베르/ 고엽)

 

흰머리카락 오리오리에/ 탁아소 할머니 젊음을 되찾아오는가/ 저녁에는 웃음핀 집집마다에/ 달덩이 되여 가라고 아기들을 바래주며/ 그 마음 요람인 할머니의 행복이여!

(허흥식/ 행복)

 

사랑이 사랑다운 사랑이라면/흥정이 오고가서 어찌 되나요/ 젊으나 늙으나 오직 한 마음/ 행복의 금자탑을 쌓아보세요.

(이상각/ 사랑)

 

땅에는 땀을 주고/ 햇님에겐 웃음을 주고/ 인간에겐 인정을 주면서/ 사랑과 행복을 빚는처녀

(이상각/ 고향처녀 머리를 감네)

 

해가-/ 잠자려고/ 미역 감을 때// 황혼은 -/ 낯 붉히며/ 깃을 폅니다// ‥‥끓는 사랑/ 피는 행복/ 말없이 묵새기는 세월의 흐름

(김철/ 황혼이 설레일 때)

 

저 산너머 멀리 헤매어 가면/ 행복이 산다고들 말하기에/ 아 남들과 얼려 찾아갔다간/울면서 되돌아왔네/ 저 산너머 멀리 저 멀리에는/ 행복이 산다고들 말하건만‥‥‥

(K. 부세/ 저 산너머)

 

리처드 코리가 마을에 나타날 때마다/ 길가의 우리들은 그를 쳐다보았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그는 신사였다/ 얼굴은 말쑥하고 제왕처럼 멋있었다/ 게다가 그는 부자였다 정말 임금님보다는 더/ 그리고 그는 모든 점이 세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이처럼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게 했다/우리는 우리 일을 계속하여 광명을 기다리고/ 고기도 못 먹고 빵을 저주했다/ 그런데 리처드 코리는 어떤 조용한 여름날 밤/ 집에 돌아가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E.A. 로빈슨/ 리처드 코리)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잊어야만 하겠지오./ 인간이란 하찮은 것이요, 세상 역시 너무나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연인들이 팔을 끼고 정답게 잘 때에도/ 너를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것입니다.

(잠/ 14편의 기도 노래 10)

 

누구나 빙산의 일각엔/ 행복의 색깔로 장식하고 있지만/숨어 있는 빙산의 큰 덩어리인 무의식의/ 가슴엔 하늘만한 동공이/ 늘 뚫려 있어/ 메울 길 없는 동공이 있어.

(윤희선/ 무의식 속의 절망)

 

아마 한 어린이가 자란 뒤엔/ 덧없이 경이롭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겠지

(밀로 D. 파섹/ 고독한 굴뚝)

 

그리고 난 이 낙엽들을 밟으며/ 나는 큰 소리로 행복하게 노래 불렀네/ 그런 가을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가 걸었던 기쁨을 위해.

(몰리 스틸웰/ 낙엽을 밟으며)

 

종달새처럼 분방하게, 아침, 하늘에 날아 오르는 자는 행복하여라‥‥ 이 세상의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피어나는 꽃과 소리 없는 것들의 밀어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자는 행복하여라.

(C.P. 보들레르/ 엘레바시옹)

 

행복은 길이에서 부족한 점은 높이에서 보충한다.

(R.L. 프로스트/ 로버스 프로스트)

 

신록의 그들에 앉아/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인간들아/ 잠시 신록의 그늘에 앉아/ 푸른 하늘을 보아라.

(박종해/ 행복 II)

 

청춘의 날의 푸른 지평선 황금및 찬연한 인생의 균형, 행복, 아아, 하나님 그것은 어디에 있나이까?

(E.M. 레마르크/ 개선문)

 

그대 사랑스러운 거처라면/ 온갖 위험을 모두 피하여/ 알맞게 낮은 곳/ 반석 위에다/ 견고하게 집을 세우라/ 그런 뒤 풍랑에 깨어진 조작들이 바다를 어지럽혀도/ 너는 든든한 성 벽으로 막아서/ 마음 편히 행복하리라/그때 너는 성난 하늘도 웃어 주며/ 평온한 나날을 즐기리라.

(A.M.S. 보티우스/ 철학의 위안)

 

그대가 먼저 가셔야 한다면/ 내가 남아 홀로 그 길을 걷겠습니다. /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알았던 행복의 날들과 함께/추억의 낙원에서 살겠습니다. /봄의 라일락이 시들고 나면/빨간 장미를 기다리겠습니다. / 이른 가을에는 갈색 잎들의 노래 속에서/ 그대의 희미한 모습을 그리겠습니다.

(알버트 로우스웰/ 먼저 가셔야 한다면)

 

케이블 카를 타고/ 눈덮인 내장산의 무릎에 앉았다가/ 넓은 가슴팍을 기어올라/ 드디어는튼튼하고 우뚝한/ 어깨 위에 걸터앉아 무등을 타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한때는 싱그런 초록의 의상을 입고/ 한때는 진홍으로 불타오르다가/ 이제 모든 것은 훌훌 다 털어버리고/ 몸도 마음도 정갈하게 하이야니 표백한/저 엄숙한 산의 얼굴을 보아라//삶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환락은 잠시 뿐이로다/ 이승의 산 마루턱에 서서/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박종해/ 행복 · 1)

 

로마로 가는 비행기, 방죽으로 가는 비행기/ 비행기가 폭음을 쏟아 놓고 하늘에 뜨고/ 땅에 내리고 분주하기만 한데/ 하이얀 차돌로 깎은 달걀모양/ 그 돌덩이를 사들고 행운을 빈다/ 여행도 무사하고/ 앞으로의 삶도 행복하라고

(성기조/ 바레인 공항에서)

 

아내와 나는 가운데!/ 아이들 둘러 세우고 환하게 환하게 웃으러/ 행복사진관 가는게 아니다/ 꿈꾸러 가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당하는 세상이어서/ 당하지 않도록!/ 사진을 자꾸자꾸 찍어두는게 상책이다/ 일은 뒷전이다 그게 일이다/ 그런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이다/ 환상을 죽이고 극사실!/ 그래, 극사실이란 말이 좋다/ 누군지 말 잘했다/ 극사실만 살아 남는다/ 그러나 찍혀진 극사실이란 하나도 없다/ 살아 남은 극사실이란 하나도 없다/ 무너지거라! 무너지거라!/ 그러면 또다시 행복사진관에 당도하리니/ 그리운 행복사진관에 당도하리니.

(정진규/ 행복사진관)

 

온갖 어둠 몰아내고/ 처음인 듯 새롭게/ 창은/ 부활하는 아침// 갑자기 꽃밭이 되어/ 나를 데리러 오면/ 나는 작아서 행복한/ 여왕이 된다.

(이해인/ 나의 창은)

 

행복하였노라/ 내일은 모르면서도/ 옷을 입고/ 행동하는 사람아

(황금찬/ 신앙)

 

이미 하루를 마감하고 또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의 귀가/ 그저 어깨를 내려뜨리는 피로조차/ 감미로운 것 같다/ 밤이면 별빛을 볼 수 있는/ 난 행복하다// 한 편의 시를 쓸 것 같다.

(이충이/ 밤 길)

 

그대로 타오르며/ 희망인 채/ 하늘에 감사하고/ 눈발 바라보면서/ 서로 외기 쉬운 숫자/세어보면// 우리가 그린 행복의/ 초상화

(박경석/ 우리가 그린 초상화)

 

문득 창을 열면/ 된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아는 이 하나 없다//별 없는 겨울숲을/ 혼자서 가니/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이해인/ 겨울 길을 간다)

 

가지마다 신록의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종달새 시내를 따르는 즐거운 봄날에 어찌하여 너희는 벌써 기쁨의 노래를 잊어버렸는가? / 천진한 너희의 행복마저/ 참아 어떤 사람이 빼앗아 가던가?

(심훈/ 통곡 속에서)

 

당신께서 가신 뒤/ 이제까지의 세월보다도/아니/ 그보다도 더 몇 곱을/ 기다려야 한다 해도/ 나는 결코/ 지치지 않으렵니다/ 내 소견에 속아 사는 것보다도/ 당신의 사랑에 속아 죽는 것이/내게 훨씬 더한 행복이 되겠기에/오히려/ 당신의 사랑에/ 속기를 원합니다.

(오병학/ 님께 드리는 시)

 

온 백성이/ 자유와 행복을 잃고/ 슬픔에 잠길 때/ 빛으로 오신 주님!

(정용채/ 크리스마스)

 

아기가 병이 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병이 듭니다. / 장미꽃도 나비도 그리고 새도/아기가 건강하면/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일시에 건강해집니다. / 아가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오는/ 천사이기도 합니다.

(황금찬/ 아가의 웃음)

 

풀과 같은 행복을 위하여/ 한 생애를 다하지 말자/ 꽃과 같은 영광을 위하여/ 허무하게 삶을 다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늘의 영광과/또 거기에 행복이 있다. /그 영원한것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이다.

(황금찬/ 말씀을 따라)

 

당신이 아베 마리아를 부르면/ 눈꽃 같은 나비 한 마리 날아와/ 성모의 가슴에 머무르고/ 아기는 잠의 바다에서 행복을 만지고 있었더니라.

(황금찬/ 슬픈 노래-마리안 앤더슨)

 

기쁨은 긴 고통 끝에 오는 순간의 것이라서/ 더 기쁘고 귀한 게 아니었든가요/ 아홉 번 고통 끝에 한 번의 기쁨/ 행복이 아니었든가요

(박용주/ 어머니)

 

이제 외로워하지도 마세요/ 고단한 밤 길에서도 동행이 되드릴께요/ 기쁜 날은 저를 잊으셔도 좋아요/ 기뻐하는 당신이 제게는 행복인걸요// 당신의 그림자로 사는 것이 내게는 기쁨인걸요.

(박용주/ 그림자)

 

오늘도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고/ 돌아서면/ 또 쓰러져 있는 나/ 그래도 나는/ 일으켜세울/ 세월이 남아 있어/ 아직도 행복하다.

(이생진/ 너와집)

 

사랑할 때는 비오는 날도 정겨워하고서/ 헤어져선 쓸쓸한 날이 되는 것도 알 수 없어요/ 예전엔 기쁘고 행복한 것이/ 이제와 슬픈 것은 무엇인가요// 하늘과 바람과 별에 사랑 하나 더해서/ 더 푸르고 감미롭고 빛나는 행복이었는데/ 그 사랑 잃어서 지금 그렇게 슬픈가요.

(박용주/ 선혜 누나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는 행복입니다. //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여 나를 미워한다면 나의 행복은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나를 미워하는 원한의 두만강이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한용운/ 행복)

 

참으로 선하고 완전히 신성한 모든게/ 진리와 평화와 사랑으로/ 그분의 지고한 왕좌 둘레를 영원히 비춰/ 행복을 낳는 그 모습만을 보여주리.

(존 밀톤/ 시간에 대하여)

 

양지바른 창가에 앉아/ 인간도 한 포기의/화초로 화하는/ 이 구김살 없이 행복한 시간

(박목월/ 평온한 날의 기도)

 

참답게 싸운다는 것이/ 참답게 산다는 것이기 때문/ 희망을 가진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앞길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일 때도/우리들은 암흑과 싸우거늘/ 빛이 보이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새벽을 믿는 싸움은 얼마나 행복하랴

(도종환/ 암병동)

 

좀 외롭긴 해도 구속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냐/ 피어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너는/ 시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내 말과 통한다.

(이생진/ 한라산에 피는 꽃)

 

한뼘쯤 되는 하늘을/ 포르르 날아도 보고/ 잊어 먹은 노래를/ 어슬프게 흉내내며/ 먹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자그마한/ 행복에 취하여 살지만.

(서덕석/ 새장 앞에서)

 

당신께 비오니,/ 인류의 행복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제게 주시고/ 간구하오니, 저를 가르쳐/ 세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작자 미상/ 저는 어린아이입니다)

 

주님,/ 행복을 쫓아/ 온 세계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행복을 붙잡을 수 없었습니다/ 행복은 언제나 내가 있지 않은/ 다른 어떤 곳에/ 저 산 너머에나/ 길모퉁이를 돌아서나,/ 혹은 내일에 있곤 합니다//주님, 때로 나는/ 너무 열심히 행복을 찾아다니다/ 당신에게서 멀어지곤 합니다/오히려 조용히 있으면서/ 이웃과 만나기 위해 마음을 쓰고,/ 서로의 멍에를 나누어 메며,/ 말씀 속에 내 자신을 몰입하면,/ 나는 기쁨으로 넘치게 됩니다. / 그때 행복이 나를 찾아냅니다.

(말다 마이스터 킬리/ 숨바꼭질)

 

초원의 창가/꿈길 너머 오늘의 떨림/다시 가다듬는 설레임에/ 아름다운 삶을 적셔 주는/그리움아/ 골고다의 힘든/ 고빗길에도/ 마냥 마음 비우는 사랑으로/ 꽃 피우는 찬연함/ 그 보람으로 행복일레라.

(리정룡/ 하늘 땅 사랑아)

 

사랑의 주님, 우리를 가르쳐/ 모든 인간이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음을 깨닫게 하소서/우리를 가르쳐/ 인간의 궁극적 행복은/ 모든 인류가 함께/ 공존하기 위한,/ 그리고 함께 나누기 위한/ 지혜와 이해력을 추구하는/우리의 관심과 소원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하여주소서.

(마리안 앤더슨/ 이해를 위한 기도)

 

머리 위론 네 마리의 갓 태어난/ 행복한 어린 새들이/ 고개를 치켜 들고 나무 둥우리에 앉아/ 사랑하는 어미새가/ 먹이를 갖다 주길/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당신을 기대며/우러르듯이

(작자 미상/ 5월의 기도)

 

저희들로 하여금 당신을 섬기는 일에/ 싫증내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께서 당신을 섬 기는 자의/ 행복을 바라시듯 저희들로 하여금/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기쁨을/ 얻도록 하시고

(요한 웨슬레/ 8월의 기도)

 

만약 당신이 그 희망에 닿고 싶다면/ 나에게 그 손을 빌려 주시오!/ 우리들의 희망은 새로운 중국의 논밭 속에서도 발견될 것이다/그리하여 벼이삭이 이빨을 드러내고 웃을 때/진실이 아니겠는가 대지가 행복하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겠는가.

(네루다/ 율리우스 후치크와의 대화)

 

그리고 일하고 싶어하고/ 행복하고자 하는/ 아침의 얼굴들로/ 아침의 마음들로,/ 우리들을 모이게 하소서.

(R.R. 스티븐슨/ 10월의 기도)

 

물론 나는 알고 있다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산다 그의 목소리는/ 귀에 거슬리지 않고 그의 얼굴은 깨끗하다// 정원의 나무가 기형적인 것은/ 토양이 나쁘다는 것을말해 준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무를 비난한다 불구자라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브레히트/ 서정시가 어울리지 않는 시대)

 

생각한다는 것이 생명이요/ 힘이요 또 호흡이며/ 생각지 않는 것이/ 죽음이라 할진대/ 살아 있든지 / 죽든지 간에/ 나는 행복한 나비다.

(블레이크/ 작은 나비)

 

그리고는 가볍게 바람처럼 쇠바퀴의/ 드높은 노래는 흘러간다/ 철길 금속의 풍경 속을 김쏘며 지나/ 그는 거친 행복의 새 시대에 뛰어든다

(스펜더/ 급행 열차)

 

지금도 나는 네 소리를 들을 수 있구나/들판에 누워 귀를 기울이면/ 어느덧 꿈 많고 행복스러웠던 소년 시절이/ 나에게 다시금 되돌아온다/ 오오 행복스러운 새여!

(워즈워드/ 뻐꾸기에게)

 

바다의 밭에서 채소를 농사짓느니/ 너와 함께라면 나는/ 그 얼마나 행복스러우랴! 연어가 끄는 수레에 타고/ 사랑하는 이여 네가 농사지은 것을.

(알베르티/ 바다의 밭)

 

아아, 그 거울을 들여다보라/‥‥/ 사람에게 축복은 줄 수 없어도/ 살고 있다는 것은 역시 행복하다.

(오든/ 어느 날 저녁 외출하여)

 

내 행복 또한 한때는/사랑의 날개에 비쳐지고 아름다운 구름은/ 영광과 환희를 잉태하고 있었으나// 아아 이 기쁨도 즐거움도 괴로움으로 바뀌어/ 내 희망인 아름다운 꽃은/ 꽃잎조차 흩어져 바람 속에 펄럭인다.

(에스프론새타/ 첫송이 장미)

 

먼 나라는 작아지면서/ 그와 함께 평화로이 사는 것이/ 일생 최고의 행복처럼 여겨졌다.

(뵈른손/ 나는 생각하기를)

 

어느 어두운 밤에/사랑에 들떠 열이 올라/(오 그지없이 행복한 맹세여!)/ 아무도 몰래 나왔노라/ 고요한 나의 집을.

(성 요한/ 영혼의 어두운 밤)

 

저녁 산들바람 조용히/ 행복지니고 손짓한다/누가 빼앗아 갈까 두려워 품어서 간직하라.// 사슬에 목 매인 듯/ 마음의 빛을 잃고 괴로워/ 행복은 다가옴을 느끼고 보아도/ 잡을 듯 못 잡은 그대로인가.

(게오르게/ 저녁 산들바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노천명/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나는 가리라 머나먼 곳에 짚시처럼/ 자연속으로/ 여인과 함께인 듯 행복에 겨워

(랭보/ 감각)

 

주여, 그이에게 평화의 기쁨이 있게 하라./ 주여, 그이에게 하루하루를 번거롭게 말라!/ 덕성 위에 행복의 비밀을 찾는/정성스런 그의 맘을 축복하라.

(빅톨 위고/ 다시 또 그대에게)

 

잘 있거라 슈종, 나의 사랑아!/ 행복은 네 집에 길이 남기고/ 추억만을 가지고 나는 떠난다/ 저 멀리 바삐바삐/ 네 생각 품고.

(알프레드 드 뮈세/ 잘 있거라, 슈종)

 

사과의 반쪽은 너요 반쪽은 나/ 우리들의 밤 우리들의 집 우리들의 가정은 하나/ 행복은하나의 잔디 내가 발은 곳에서 끝난다/ 고독 그것은 네가 떠난 길에서 온다.

(오크타이 리파트/ 아내에게)

 

산산조각났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성급한 행복은// 하지만 어떻게든 부드러움은 살아 남는다.

(데니스 브루터스/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 남는다)

 

날이 새면 부엌엔 밥김이 어리고/화롯가엔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할머니는 잔소리를 해도 좋을게다// 새벽녘 개 짖는 소리는/ 인가의 정경을 실어다 준다/ 감방 안에서 생각하는 바같은/ 하나 같이 행복스럽기만 하다.

(노천명/ 개 짖는 소리)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내게 행복이 온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내게 불행이 와도/나는 또 그에게 감사한다.// 한 번은 밖에서 오고/ 한 번은 안에서 오는 행복이다!// 우리의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고/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 // 내가 행복할 때/ 나는 오늘의 햇빛을 따스히 사랑하고,/ 내가 불행할 때/ 나는 내일의 별들을사랑한다. // 내 생명의 숨결은/ 밖에서도 들이쉬고/ 안에서도 내어쉬게 되어 있다. // 이와 같이 내 생명의 바다는/ 밀물이 되기도 하고/ 썰물이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출렁/ 출렁거린다!

(김현승/ 행복의 얼굴)

 

저녁의 소나기는 씌어졌다. / 정원에 의하여. 결론은 이렇다. / 행복은 우리들을 만나게 할것이다. / 구름 떼 같은 그런 괴로움에.// 틀림없이 폭풍 같은 행복은/ 악천후를 씻어버린 여기저기 한길의/ 얼굴을 맞대고 있는/ 양지꽃의 환희 같은 그런 것이다. // 거기서는 세계가 갇혀 있다. 카인처럼./ 거기서는 변경의 따스함에 의하여/ 스탬프가 찍히고 잊혀지고 헐뜯기고 있다. / 그리고 나뭇잎에 의하여 천둥은 비웃음을 받고 있다. // 그리고 하늘의 높이에 의하여, 물방울은 딸꾹질에 의하여./ 또 명료함에 의하여, 하물며/ 조그만 숲이 무수함에 있어서라./ 여러 개의 체가 전면적인 하나의 체로 합류된 것이다. // 일단의 잎 위./ 용해된 꽃봉오리의 대양./ 상공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휘몰아치는 숭배의 밑바닥// 덤불의 더미는 짜내어지지 않고 있다. / 호색적인 솔잣새도 새장에 온통/ 인동덩굴이 별을 흩뿌리듯/ 그처럼 열정적으로 모이를 튀기지는 않는다.

(파스테르나크/ 행복)

 

이곳에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면/내 기도는 오래지 않아/ 행복의 찬송을 터뜨려 울리고/ 그리하여 내게 기쁨과 환희가 넘치리라.

(마가레트 생스터/ 오늘밤 그리스도께서 여기 계시다면)

 

꽃이 핀 숲속으로 갔나니/ 다른 사람과 함께 간 것이 아니라,/ 여러 시간 혼자서 거기 있었다. /그렇듯 행복했던 일이 있었으랴/꽃이 핀 숲속에서.

(스티븐즈/ 꽃이 핀 숲)

 

 

설 교 노 트

 

너는 행복자로다

신33:26-29

 

서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며 대적과 싸워 주시며 그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하시니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이나 많고 건강하며 평안하면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행복은 그와는 좀 다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1.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는"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은 영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은 것도 구원입니다. 하나님으로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으니 어찌 행복자라고 아니 하겠습니까. 이는 분명한 행복자인 것입니다.

 

2. 도우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6절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도움을 받는 것도 행복인데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더욱 행복하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함께하여 도와주시겠다고 말입니다(사41:10).

 

3. 하나님께서 처소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27절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처소가 안전하면 항상 마음이 기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집 한 칸도 없는 나사로도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한 처소가 있음을 깨닫고 현실에서 불평 없이 살았고 나중에는 행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결론

사람의 행복은 돈이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영원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 함께하시지 아니하느냐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줄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얻었고 그의 도우심을 받고 영원한 처소가 되어 주시니 행복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는 행복자로다

신33:24-29

 

서론

모세는 일생을 하나님께 헌신한 종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묻힐 비스가 산에 오르기 전에 성령에 감동되어 그의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모세의 고백이며, 모세의 바램이며,동시에 모세의 유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의미에서 행복자라고 한 것입니까?

 

1. 하나님의 능력을 부어 주시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신명기 33장 25절에 보면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능력이 있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날 그날의 축복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모세가 확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인간의 유한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도 죽음이 임박해 오고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 오는 동안에 하루도 빠짐없이 그날 그날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해 보면서 비록 모세는 떠나가지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하나님의 능력이 변함없이 언제나 함께하실 사실을 모세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들은 행복하십니다. " "너는 행복자로다. "고 말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26절을 보면 "여수룬아 하나님 같은 자가 없도다"고 했습니다.

여기 "여수룬"이란 말은 계약이란 말이고, 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여수룬이라 함은 하나님과 약속을 맺고 의로운 백성,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과 은총을 통해서 의롭게 된 하나님의 백성 즉 "여수룬아 너는 알아라 하나님 같은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또 환경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의 처소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둘러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은 사람, 그들에게는 아버지의 힘 있고, 영광스러운 팔이 나를 받쳐주며, 나를 지탱하며, 나를 붙들어 주며, 나를 인도하며, 나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3. 하나님의 구원하심 때문입니다.

29절을 보면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구원받았다는 이 사실로 인해서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십니까? 내가 무엇을 주고 이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과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의 권력을 구원과 바꾸시겠습니까? 세상의 부요함과 여러분의 구원을 바꾸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즐길 수 있는 쾌락과 구원을 바꾸시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는 줄로 압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하나님의 구원을 얻었다는 이 사실 때문에 너는 감사하라"고 모세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로 죄와 지옥과 영벌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결론

위에서 도와주시고, 아래서 도와주시고, 앞에서 도와주시고,나를 완전히 둘러싸 주시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으면서 '나는 행복자로다. ' 깨닫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구원을 인하여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껏 우리는 때때로 불행을 느끼면서 살았을지라도 오늘 이 시간 후부터는 "나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고 행복자로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헌 금

성 경 활 용

1. 헌금하는 자의 고찰

(1)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후9:12)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위하여 넘쳤느니라

(2) 주의 일에 더욱 힘쓴다.

(고전15:5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3) 헌신한다.

(고후8: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2. 헌금하는 방법

(1) 마음에 정한 대로

(고후9:7) 다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2) 가난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함

(고후8:2)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매주일 첫날에 이익을 저축하여

(고전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4)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 8: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5) 약속하고 준비하였다가

(고후9:5)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후하게

(고후9:13) 저희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3. 헌금을 사용할 곳

(1) 성도 중 가난한 자들에게

(갈2:10)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행하노라

(롬15:26)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 성도를 위해

(고전16:1) 성도를 위하여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4. 헌금하는 자의 결과

(1)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고후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2) 부족함이 없다.

(고후8:15)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3)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니라

관련원어풀이

1. aJdrovth" 하드로테-스

풍부함, 성숙함.

(고후8:20)

 

2. aJplovth" 하플로테-스

(1) 단순, 소박, 성실, 올바름.

(고후10:3, 골3:22)

(2) 너그러움, 관용, 관대.

(롬12:8, 고후8:2)

 

3. eujlogiva 율로기아

(1) 찬양, 칭찬, 찬미.

(계5:12, 7:12)

(2) 아름다운 말, 세련된 언어.

(롬16:18)

(3) 봉헌, 봉축.

(고전10:16)

 

4. logeiva 로게이아

모음, 수집.

(고전16:1, 2)

설교예화자료

과일 장수의 헌금

 

예수님께서 부자의 연보보다 가난한 과부의 엽전을 보시고 감탄하시며 그 과부를 격려했던 일이 있습니다. 여기 가난한 과부의 아름다운 신앙이 있습니다.

충남 서산군 태안읍 태안 교회 김정준 집사는 16년간 과일 장사하면서 푼푼히 모은 돈을 하나님께 헌금을 했습니다.

지금부터 6년 전 일입니다. 교회서는 8년 전인 1971년에 성전을 짓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에 교역자 사택을 지어야 하는 일에 교역자와 교우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는 중에 김정준 집사의 헌금으로 교역 사택 건축비 100만원 중 70%인 70만원을 과부가 헌금한 것입니다.

김 집사는 16세 된 아들 하나를 기르면서 시장에서 과일 장사를 하고 삽니다.

- 크리스찬신문 1973. 11. 30.

 

 

어느 농장

 

자선행위에 의해서 돈을 어딘가에 기부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기의 돈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다릅니다. 실제로는 돈을 주게 되면 그만큼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자선사업에 돈을 쓰면 쓸수록, 돈은 다시 여러분 쪽으로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는, 나는 다음과 같은 탈무드의 이야기를 인용하겠습니다.

어느 곳에 큰 농장이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예루살렘 근처에서 가장 자선심이 많은 농부라고 말해지고 있었습니다.

해마다 랍비들이 그의 집을 방문하면, 그는 랍비에게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는 큰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데, 어느 해 폭풍우로 과수원이 전멸하고, 전염병이 퍼졌기 때문에, 그가 키우고 있던 양이나 소나 말도 모두 죽었습니다. 이것을 본 채권자들은 그에게로 쇄도해서 재산을 전부 차압해 그에게는 조그만 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시고, 하나님이 다시 거둬 가신 것이니, 할 수 없지 않은가? "하고 태연 자약했습니다.

그 해에도 언제나 마찬가지로 랍비가 찾아왔습니다. 랍비들은 전엔 그렇게 많이 있었는데, 이렇게 몰락해 버렸다고 동정했습니다.농장주의 아내는 남편에게,

"우리들은 언제나 랍비들에게 학교를 세우거나, 예배소를 유지하거나, 가난한 사람이나, 노인들을 위해서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아무것도 드리지 못한다면 대단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랍비들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아 있는 작은 땅의 반을 팔아서, 그것을 랍비들에게 헌금하고, 그 대신 남은 반의 땅으로 더욱 부지런히 일해서 몰락해 버린 재산을 메우려 생각했습니다. 랍비들은 뜻밖의 헌금을 얻고 매우 놀랐습니다. 반만 남아 있던 땅을 일구고 있자, 농사에 사용하고 있던 소가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흙탕에 빠져 있던 소를 끌어 내다보니, 소의 발 밑에서 보물이 나왔습니다. 그 보물을 내다 팔았더니 그들은 다시 옛날대로 농장을 경영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듬해 다시 랍비들이 돌아왔습니다. 랍비는 아직도 그 농부가 가난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조그만 옛날의 땅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웃 사람들이,

"아니 그는 이제 여기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저쪽의 큰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했으므로, 랍비들이 그곳을 찾아가자, 농장주는 일 년 동안에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하고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면, 그것이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과부의 헌금

 

옛날 어떤 임금이 훌륭한 교회를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후세 사람들에게 생색을 내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래서 교회 건물 설계까지 전부 자기가 하고 필요한 비용도 모두 혼자서 댔습니다. 백성들이 돈을 내려해도 임금은 "이 것은 나 혼자 짓는 것이니까 아무도 돈을 내면 안 된다. "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몇해 만에 굉장히 크고 훌륭한 교회가 완성되었습니다. 웅장하고, 아름답고 어디를 보나 지금까지의 어느 교회보다 훌륭해 보여 임금은 아주 흡족해 했습니다. 그날 밤 교회의 한 방에서 자고 있던 그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한 신사가 내려와 임금의 이름을 새긴 대리석 패를 치우고 누군지 모를 딴 사람의 이름을 적은 패를 걸었습니다. '참 이상하다‥‥‥ 고 생각하는 임금에게 이러한 꿈은 사흘 밤이나 계속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 패의 이름을 기억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하인을 불러서 이러이러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교회 언덕 아래에 사는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임금님은 그 과부를 불러서,

"당신은 이 교회를 짓는 데 나보다 더 귀한 것을 바친 모양이던데‥‥‥‥ 도대체 무엇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황송한 말씀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므로 이 교회 건축을 위하여 무엇이고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도 없거니와 임금님 명령도 있고 해서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마차에 교회를 짓기 위한 재목을 싣고 가던 말이 배가 고파 하길래 짚 한단을 준 일이 있습니다. " 하고 엎드려 말을 했습니다. 임금은,

"알았소, 당신은 정성껏 교회를 위하여 짚 한 단을 바쳤구려! 이것이 내가 내 명예를 위하여 수많은 재물을 드린 것보다 더 귀한 것이오."하며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하나님은 많고 적은 것보다 항상 정성을 보고 계십니다.

 

 

찰리 페이지의 좋은 출발

 

청년 찰리 페이지가 파산하여 직장도 잃고 무일푼의 상태로 떨어져 버린 어느 날, 그는 구세군의 행렬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모금을 위한 탬버린 행렬이 그 앞을 지나갈 때, 그는 모금함을 든 소녀에게 자신은 무엇인가 기부를 하고 싶지만 먹을 것도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에게 1달러를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걸 가지시고 10센트를 헌금으로 내세요. 이후로 당신이 얻는 것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세요. 이것을 당신 일생 동안 계속하면 다시는 무일푼이 되지 않을 거예요."

그후 그는 정말 그렇게 행했습니다. 일자리를 얻은 후 봉급을 타면 그중 10분의 1을 규칙적으로 헌금했고, 훗날에 백만 장자가 되었어도 10분의 1 이상을 헌금했으며, 그 외에도 그는 병원도 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주님의 일을 실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어록·시·묘사

 

그 얼마나 크리스찬처럼 교황은 웃음짓는가/ "나는 이렇게 했니라"고 로만 사람에게 시침떼며!/ 그런 이야기는 결코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 "나는 두 독일인에게 한 황제 자리를 주었나니/ 독일 나라에 혼란과 황폐를 부르기 위함이다. / 그 사이에 우리는 궤짝을 가득 채우자./ 그들의 재산을 모두 연보궤에 흡수하자./ 그들 독일의 돈은 우리 이탈리아에 오게 마련이다/ 신부 여러분, 닭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실지니/ 독일의 속인들은 굶어서 말라깽이가 되게 하라"

(발터/ 로마의 연보궤)

 

죄와 울음의 여자/ 일곱 귀신이 몸 속에 살아 일곱 가지 귀신굿을 하던 여자/ 모두 잠들면/ 이럴 수가 차마 없을/ 적막한 여자//일곱 번의 일곱 갑절/ 남자를 사랑해, 끝내 한 사람의 영혼과도 못 만난 여자/ 어둡고 더 추워서/ 누구와도/ 다르던 여자// 눈물이며는/눈물에 감아 벗은 머리채며는/ 잘 비벼 적시는/ 감송 향유(甘松香油)며는/ 아마 탕약보다 졸아든 평생의 죄/ 모든 참회며는// 주님의 밭에/ 간절히 한 번만 닿아 보게/ 허락하시올지// 신을 사랑한/ 세상 사람의/ 여자 마음아 여자 마음아/ 천만 줄기의 냇물의 지하수와 더 깊은 데에까지/ 끓는 단맛의 피로 흘러 흘러서/진홍의 폭죽/천하 삼월의 꽃나무로/처염히 솟아난다.

(김남조/ 막달라 마리아)

 

 

설 교 노 트

 

믿음과 헌신의 표현

눅21:1-4

 

서론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이 없으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맡겨 주신 것이므로 우리는 청지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성으로 하나님의 물질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것을 헌금이라고 합니다.

헌금할 때는 인색한 마음으로만 마지못해 바쳐서는 안 됩니다. 기쁜 마음과 즐거운 마음과 감사한 마음으로 바쳐야 합니다.

 

1. 헌금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헌금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두 렙돈을 헌금궤에 넣는 것을 보신 예수님이 이 가난한 과부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한 것은 구차한 중에서도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헌금이란 믿음이 있는 자가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입니다. 헌금은 헌신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헌금은 교회를 통하여 이러한 의무를 다하기 위한 실천 행위의 하나입니다.

헌금만이 헌신의 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헌금은 헌신을 나타내는 데 매우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구약 시대 우양의 제물 대신 돈을 바치듯이 이 몸을 바치는 표로 헌금을 합니다.

헌금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물질로 표현한 것이 헌금입니다. 헌금을 아까워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2. 헌금의 바른 자세는 무엇입니까?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도와 드리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은 더 큰 축복을 받기 위한 투자가 아닙니다. 받을 생각으로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장사꾼으로 취급하는 불경이 되기 쉽습니다.

헌금은 출세를 위한 투자가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했으니 장로가 되어야 하고, 교회의 권리를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은 세상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존경을 받고 있다면 그럴 만한 신앙과 덕망이 있기 때문이지 헌금을 많이 바쳤기 때문이 아닌 것입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것을 그에 게 도로 돌려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큰 선심이나 쓴 것처럼 뽐낼 것도 아니며 형제를 향해 우쭐할 것도 아닙니다.

헌금의 바른 자세는 '나는 내가 드릴 만큼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하는 겸비한 자세이어야

합니다. 내 것 중에서 얼마를 주께 드릴까 할 것이 아니라 주의 것 중에서 나와 내 가정을위해 얼마를 쓸 것인가를 묻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3. 헌금은 바르게 관리해야 합니다.

헌금을 교회에 드리는 돈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가 자기를 위해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가 자기를 인정해 주면 헌금을 많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적게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헌금은 교역자에게 드리는 것도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관리도 바로 하여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드린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지혜 있고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택하십니다. 헌금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쓰도록 깊은 기도와 성실한 마음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민7:1-11

 

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도 지어서 하나님께 드리고 각종 성막에 필요한 기구를 만들어서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아무렇게나 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이 드리는 예물만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물을 드려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구별해서 드려야 합니다.

본문 1절에 "그것에 기름을 발라 거룩히 구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려야 합니다. 여기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성령으로 구별된 것을 말하는데,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무엇도 거룩하게 구별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나 성령으로 구별하여 받으시고 또한 쓰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께 드려질 때 기쁨이 있고 인색함이 없는 것입니다.

 

2. 구별된 성물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 1절에 "또 그 모든 기구와 단과 그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라 거죽히 구별한 날에"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서 하나님께서 제사드릴 때에 쓰여지는 성물도 구별해서 드려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은 세상적인 일에 사용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사용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용되어지는 모든 성물은 드릴 때도 구별해야 하지만 사용할 때에도 거룩하게 구별되게 사용이 되어져야 하고 거룩하게 취급해야 합니다.

 

3. 구별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족장들이 단의 봉헌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그 예물을 단 앞에 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드리는 각종 예물은 깨끗하게 구별하여 드려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적으로 하나님께 헌납이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성령께서 역사해야 깨끗하게 정성껏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건축된 성전과 그 외에 모든 예물과 몸도 그렇지만 성도들의 일상생활도 구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무엇이 되었든지 구별해서 깨끗하게 드려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앞으로 무엇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할 때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

민8:14-19

 

서론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처음의 것을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에 애굽의 초태생은 모조리 죽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태생은 죽이지 아니하고 구별하여 살려 놓으시고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에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내게 속하였음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람을 비롯하여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의 것은 오직 죄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받은 것 중 처음의 것을 요구하심도 당연하고 처음의 것을 드림도 당연한 것입니다.

 

2. 애굽에서 살려서 구별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17절에 "내가 애굽 땅에서 그 모든 처음 난 자를 치던 날에 내가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구속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실 때에 애굽의 초태생은 모조리 죽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초태생은 그대로 살려 주시고 그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즉, 옛날 옛적에 죽어 없어질 것을 살려 주셨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선서 내게 주시고 처음의 것을 원하심도 당연히 드려야 하겠지만 구속하셔서 살려 주시고 산 자 속에서 처음 것을 원하시는 것을 어찌 아니 드릴 수 있습니까? 드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3.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드림이 마땅한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이스라엘 자손 중에 처음 난 것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내게 속하였음은내가 애굽 땅에서 그 모든 처음 난 자를 치던 날에 내가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것 중에 사람은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고 짐승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사용하며 곡식이나 은 ·금 ·보화는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쓰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고 받아서 하나님 사업에 귀하에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의 것을 드림이 마땅한 것입니다.

 

결론

레위인은 이스라엘의 처음 것을 대신한다고 하셨는데 이들을 받아서 하나님의 회막에서 봉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외의 것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하나님께서 받아서 하나님의 사업에 귀하게 쓰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봉헌 생활을 통해 받는 복

출20:22-24

 

서론

하나님에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께 봉헌 생활을 하면 많은 복을 주십니다.

 

1.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침으로써 큰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제일 귀한 것은 독자 이삭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부부는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고령에 이삭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마도 자기 모든 재산보다도 그 아들을 더 귀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기쁨으로 바쳤습니다. 그는 바치되 믿음으로 바쳤고(히11:17, 또 죽은 아들을 부활시켜 주실 줄 확신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들을 봉헌한 아브라함이 무슨 복을 받았습니까?

(1)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와 함께하여 주셨고,

(2) 그에게 부요한 생활을 하게 하셨고,

(3) 그의 육적 자손은 현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서부터 후손을 번성케 하여 한 국가를 이룩하게 하셨고, 그들에게서 만민을 구원하실 매시아를 탄생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영적 자손은 그리스도를 믿는 지구상의 신자들입니다(롬4:16, 갈3:7). 오늘 우리들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녀들입니다.

 

2. 십일조를 봉헌함으로 복을 받습니다(말3:10).

십일조란 수입에 대한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인데, 곡식이나 나무의 과일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레27:30-32)과, 그 밖의 수입의 십분의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의무 중에 하나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무적으로 이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를 헌납하는 생활을 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창14:30, 28:22, 민18:21, 마23:23).

십일조 생활은 복을 받는 첩경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바치면 반드시 하늘문이 열릴 것이요, 복을 넘치도록 내려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믿고 실천하여, 주시는 복으로 부요하고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께 바침으로 복을 받습니다(잠3:9-10).

연보는 은혜받은 성도들이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고후9:12), 각자가 미리 준비하였다가 매 주일 예배시에 드리는 예물입니다(고전16:2). 연보는 억지로 하거나 인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함과 기쁜 마음으로 바쳐야 하나님의 향기로운 애물이 되는 것입니다(고후9:7). 연보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선 마땅히 받으실 분이지만, 받으신 후에 그냥 계시지 않고 바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연보하는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닙니다(고전15:58). 연보하기를 자원하고 기뻐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고후9:7).

 

결론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는 이 원리는 헌금하는 일에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헌금하는 일을 힘쓰고 자진하여 기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면에 넉넉하게 하여 주십니다.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

민28:1-8

 

서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드릴 제물에 대해서 말씀을 하였습니다. 드리되 아무렇게나 드리면 안되고 삼가 조심하여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 하나님의 것인 줄 알고 드려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나의 예물 나의 식물되는 화제 나의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있는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부터받은 것입니다. 하나라도 받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고전4:7). 그래서 하나님께 드릴 때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고후9:5-8). 누구나 자기의 것을 인심이나 쓰는 것처럼 드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릴 때는 하나님의 것을 받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림 이 마땅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드리는 것이 삼가 드리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본문 3절에 "또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여호와께 드릴 화제는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와 헌물은 하나님만이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배의 대상자를 하나님으로 정하고 그 분에게만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삼가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제물인 것입니다.

 

3.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3-4절에 "일 년되고 흠 없는 숫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로 드리되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해질 때에 드릴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를 위하여 드려지는 흠 없는 어린 양을 말하는 것인데,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드리는 순서도 한 어린 양은 아침에 한 어린 양은 저녁에 매일 두 번씩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녁에 지은 죄를 위하여 아침에 드리고 아침에 지은 죄를 위하여 저녁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죄 없는 자기 몸을 제물로 드렸습니다(히9:11-1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롬12:1). 이것이 주 앞에 삼가 조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고자 하시고(사43:7-21), 죄로 인하여 죽은 영혼을 살려 놓으시고 또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고자 하십니다(엡1:6-1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든지 삼가하여 드려야 할 것입니다.

 

 

힘을 다하여 예배함

대상29:2

 

서론

다윗이 비록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직접하도록 허락되지는 못하였어도 그 아들 솔로몬에게 허락되었고 다원은 이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은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예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1.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그 힘이란 재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재산의 범위를 최대 한도로 확대하여 힘껏 많이 드렸으니 곧 기구를 만들 금 · 은 · 놋 · 철 · 나무며 또 마노와 박을 보석과 꾸밀 보석과 채석과 다른 보석들과 화반석 등 매우 많은 것을 예비하였습니다. 힘껏하였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이요, 더할 나위 없이 한 것입니다.

 

2. 전을 사모하여 드렸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전을 사모한다"는 것은 물질로 구성된 건물인 성전을 사모함은 결국 그 성전에 임재하실 여호와를 사모하여 모신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그가 쓴 시편에서도 보면 시편 27편 4절에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성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헌금할 때에는 주의 전을 사모하므로 드려야 합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드리거나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드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3. 성심으로 드려 기뻐하였습니다.

9절에 보면 "백성들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회중들은 다윗의 요청에 순응하여 많은 물자를 성전 건축을 위하여 바쳤습니다.물론 다윗이 모범을 보여주어 백성들이 감동해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많은 허물을 하면서 기뻐한 것은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고후9:7). 이 부분 말씀 중에서도 "즐거이"드린다는 말이 두 번 나오고, "기제하였으니"란 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란 말도 나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이라도 부득이 하여 내거나 인색한 마음으로 드리거나 여타 그릇된 입장에서 바치면 아무 축복이 없습니다.

 

결론

하나님께는 마음과 힘과 뜻과 성품을 다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치고 드려야 기쁨으로 받으시고 축복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억지로 하거나 부담으로 알고 하면 신앙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헌 신

성 경 활 용

1. 헌신한 자들

(1) 한나가 사물엘을 바침

(삼상1:11)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2) 아마시야가 자기 자신을 바침

(대하17:16)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니 저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

(3) 다윗이 세 용사가 길어 온 물을 바침

(삼하23: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길어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리며

관련원어풀이

1. !r'j; 하-람

(1) 바치다, 헌신하다.

(레27:28, 29)

(2) 근절시키다, 완전히 파괴하다.

(신2:34, 렘50:21)

 

2. br'q; 카-라브

(1) 가까이 가다.

(출22:7, 수7:14)

(2) 접근케 하다.

(사41:21, 호7:6)

(3) 허락하다, 받아들이다.

(시65:5)

(4) 가져오다, 드리다.

(신1:17, 삿3:18)

 

3. divdwmi 디도-미

(1) 수여하다, 선물로 주다.

(마4:9, 행24:26)

(2) 위임하다, 위탁하다.

(마25:15, 막12:9)

(3) 희생하다, 바치다.

(마20:28, 막10:45)

 

4. televw 텔레오-

(1) 마치다, 끝나다.

(마11:1, 딤후4:7)

(2) 성취하다, 수행하다, 완성하다.

(롬2:27, 갈5:16)

(3) 지불하다, 완납하다.

(마17:24, 롬13:6)

 

5. ajpodivdwmi 아포디도-미

(1) 내어 주다.

(마27:58)

(2) 이익을 위해 자기의 것을 내어 놓다, 팔다.

(행5:8, 히12:16)

(3) 반환하다, 돌려주다, 회복시키다.

(눅4:20)

설교예화자료

마술의 사과

 

임금님이 외동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 딸이 우연히 무서운 병에 걸려 죽을 지경에 되었습니다. 의사는 묘약을 먹이지 않는 한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자기 딸의 병을 낫게 하는 자에게 딸을 주어, 다음 왕으로 삼겠다고 포고를 내렸습니다.

그런데 아주 먼 변경 지방에 세 사람의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망원경으로 그 포고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동정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셋이서 공주의 병을 낫게 해 주자고 의논했습니다. 한 사람은 마술의 용단을 갖고 있었고 또 한 사람은 마술의 사과를 갖고 있었습니다. 마술의 사과를 먹으면 무슨 병이라도 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은 마술의 융단을 타고 왕궁으로 가서 공주에게 사과를 먹이자 공주의 병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모두들 대단히 기뻐하며, 임금님은 큰 잔치를 베풀어서 새로운 왕자를 발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맨 위의 형은,

"나의 망원경이 없었더라면 우리들은 공주가 아픈 사실도 모르지 않았겠느냐!"고 주장했고, 두 번째는,

"마술 융단이 없었더라면 도저히 이렇게 먼 곳까지 올 수가 없다. "고 말하였고, 세 번째는,

"만약 사과가 없었더라면 병은 낫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왕이라면, 세 사람 중 누구에게 공주를 시집보낼 것입니까?

답은 "사과를 가진 사나이"인 것입니다. 융단을 갖고 있는 사나이는 아직 융단을 그냥 가지고 있으며, 망원경을 갖고 있던 사나이도 아직 망원경을 갖고 있습니다. 단지 사과를 갖고 있던 사나이는 사과를 주어 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공주를 위해 주어 버렸습니다.

탈무드는 "무엇인가를 해 줄 때에는, 모든 것을 그것에 거는 것이 가장 귀중하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와 우유

 

창고 안에 우유가 있었습니다. 뱀이 그 우유속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농촌에서는 뱀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뱀은 독뱀이었기 때문에, 우유 속에 독이 녹기시작했습니다. 개만이 그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가족이 창고에서 우유를 꺼내려고 할 때 개가 맹렬히 짓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개가 왜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우유를 마시려고 하자 개가 뛰어들어 우유를 쏟게 하고, 그것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개는 곧 죽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가족들은 우유 속에 독이 들어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개는 당시의 랍비에 의해서 대단한 경의가 표시되어졌습니다.

 

 

어느 해안의 난파선

 

아프리카의 어느 해안,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던 어느 날 밤에 배 한 척이 조난을 당했습니다. 마을의 어부들은 난파선의 승무원들을 구조하기 위해 어선을 동원해서 밤새 바다 위를 헤맸습니다. 더 이상 사람을 태울 수 없게 되었을 떼, 그들은 난파선의 한쪽 구석에 한 사람의 승무원이 쓰러져 살려 달라고 외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배에 더 태울 수는 없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의 안전을 위해 그냥 해안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해안에 도착하자 모두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그 배에 남아 있는 한 사람의 생존자를 살리기 위해 다시 그 난파선까지 다녀올 새로운 지원자를 찾았습니다 폭풍은 계속 세차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한 사람의 승무원을 위해 바다로 나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젊은 청년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말리며 뒤로 물러서라고 그에게 간청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이미 바다에서 죽은 바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아들에게, 그의 형도 지난 해 고기잡이하러 원양어선에 올랐다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사실을 상기 시켰으며, 만약 너마저 바다에 나가 죽고 만다면 난 혼자 남게 된다고 애원하며 육지에 남아 있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청년은 마지막 한 사람의 생존자를 살리기 위한 구조작업에 나설 것을 고집했고 결국은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바다를 향해 나갔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바닷가에 선 채로 여러 시간 애타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마침내 구조선이 마지막 생존자를 태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그 젊은 청년의 발 밑에 거의 실신한 채 누워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리고 그의 발밑에 누워 있던 그 생존자는 죽어 버린 것으로만 믿었던 그의 큰아들인 것을 알았을 때는 그 기쁨이 이떠했겠습니까?

젊은 청년은 알지 못하는 생존자를 구하러 나섰다가 결국 자기 형을 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가정의 평화

 

메이어라는 랍비는 매우 설교를 잘하는 랍비로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매주 금요일 밤에 예배소에서 설교를 했는데 몇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곳에 그의 설교를 들으러 왔습니다. 그중에 그의 설교를 대단히 좋아하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보통 유태인 여자들은 금요일 저녁에는 이브날의 안식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요리를 만들거나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도, 이 여성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것이었습니다.

랍비는 긴 시간 동안 설교를 했고, 그녀는 그의 설교를 만족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 내일이 안식일의 이브날인데도 아직 요리도 하지 않고 무얼하러 다니느냐고 화를 내었습니다.

"당신 대체 어디 갔다 왔어!"라고 그는 윽박질렀습니다. 그녀는,

"나는 예배소에서 랍비 메이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네가 랍비의 얼굴에 침을 뱉고 돌아올 때까지는 집에 들여놓지 않겠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없이 친구와 함께 따로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메이어는 이말을 듣고, 자기의 이야기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한 가정의 평화를 파괴해 버린 것을 깨닫고 그녀를 초대하여 자기 눈이 쑤신다고 그는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침으로 씻어야 좋을 것같군. 그렇게 하면 약이 될테니까, 당신이 좀 해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눈을 향해 침을 뱉았습니다. 제자들이,

"당신은 대단히 덕망 높은 랍비인데, 왜 여자가 얼굴에 침을 뱉게 내버려 두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대답하여,

"가정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헌신의 대가

 

스페인 국경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한 마을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 마을의 하숙집과 여관 등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개가 다 독일 경찰로부터 피해 불란서로 도망하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피난민들 중에 네 살쯤 되었을까 말까 하는 어린 딸을 안고 있는 한 젊은 여인이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피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이 여인의 유일한 소망도 국경을 무사히넘어서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배를 타고 안전하게 미국으로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게슈타포의 추적을 받아 붙잡히게 된다면 수용소에 끌려가게 될 것이며 필경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미 이 마을까지 수백 마일을 걸어왔기때문에 그 여인과 그 아이는 거의 기진맥진,자유를 눈앞에 두고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스페인 국경의 경비대원들은 퍽 까다로웠습니다. 그들은 피난민들을 통과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피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선다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비밀경찰들이 곧 나타나 하숙집이나 여관에 머물고 있는 낯선이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소문까지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 젊은 여인은 두려움 가운데서 딸을 가슴에 힘껏 안으며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사히 국경을 넘어 자유를 맛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우연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하간 그 다음날 이 여인의 방에 특별한 사명을 띠고 온 한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지하조직으로부터 파견된 안내원입니다. 내 임무는 오늘 밤 피난민의 일부를 이끌고 산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길도 험하거니와 아주 힘들고 위험한 작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

그날 밤, 온 마을이 잠들어 적막에 빠져들어갔을 때, 그 여인과 딸은 안내원이 미리 지시해 준 산중턱까지 기어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어린아이가 먼저 지쳐버렸으므로 여인이 그 아이를 업고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 여인은 거기에 미리 와서 대기중에 있던 몇 사람의 피난민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산을 넘어 평화와 자유를 찾아나선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도자는 그 피난민들을 향해, 이 작전이 매우 힘들고 위험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자기의 지시대로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이 모녀를 환영했고, 자기들이 어린아이를 업겠다고 자원해 나섰습니다. 그들은 곧 정상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들이 점점 정상에 가까워갈수록 힘에 겨워 기진맥진, 거의 한 발자욱도 더 옳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그중 제일 나이 먹고 약한 남자 어른 한 사람이 땅 위에 주저앉아 "더이상 갈 수가 없어요.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당신네들이나 가도록 하시오."하고는 숨을 헐떡거리며 누워 버렸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소!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도와야만 합니다. 당신한테 남아 있는 힘은 우리 모두의 것이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약간의 힘을 가지고라도 당신이 죽어버릴 때까지는 여인의 아이를 업어 나르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오!"

일행 중 나이 먹은 세 사람의 남자가 한 사람씩 차례로 피난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지도자는 남은 힘을 모아서 어린아이를 업어 날라야 된다고 명령을 내리곤 했습니다. 여명이 밝아올 때쯤, 그들은 드디어 정상을 넘어 국경을 지나 다른 나라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 서로를 부축해 주던 일행은 모두가 다 무사했습니다. 여인의 딸을 업어 나르던 세 사람의 남자들은 새로운 힘, 새로운 생명을 찾았고, 결국 새로운 자유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손

 

한 마을에 두 소년이 살았습니다. 그림을 즐기는 같은 재간을 가졌기 때문에 서로의 나이는 서너 살 달랐지만 늘 좋은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두 소년은 이런 의논을 했습니다. 즉, 도시로 나아가 둘이서 힘을 모아 그림 공부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두 소년은 드디어 도시로 나아갔습니다. 둘이 다 함께 공부하면 밥을 먹을 수 없으므로 나이 많은 소년이, 자기가 일을 할테니 어린 소년이 먼저 공부를 하고 공부가 끝나면 서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먼저 공부하기로 된 소년은 열심히 공부하여 몇 년 후에는 그림을 팔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대단히 기쁜 마음으로 처음으로 그림을 판 돈을 들고 다른 소년이 일을 하고 있는 식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은 창 밖에서 식당을 들여다보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콘크리트 바닥에 자기의 친구가 꿇어앉아 빗자루를 옆에 놀고 기도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심한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뼈가 굳어져서 이제는 그림을 공부해도 훌륭한 화가는 될 수 없습니다. 그 대신 제 친구는 더욱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창 밖에서 소년은 기도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곧 종이를 꺼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그렸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봉사한 그 거룩한 손, 비록 거칠지만 친구를 위하여 희생된 그 손을 그려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

 

어느 마을에 모녀만 살고 있는 한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얼굴이 너무 흉칙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얼굴 모양이 그러했기에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어머니 마음이 상할까 하여 어머니 얼굴이 왜 그러냐고 묻지도 못한 채 우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딸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게 된 후에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열등감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용기를 내어 어머니께 어머니의 얼굴에 관한 사연을 여쭈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딸의 손을 다정스럽게 잡고 그 경위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네가 두 살 때 기어다니며 재롱을 피울 때의 일이란다. 내가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위해 불을 지피고 있을 때, 네가 방안에서 어찌나 울어대든지 불을 때다 말고 방에 들어와 너에게 젖을 주고 있었단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궁이에 쓸어 넣은 검불에서 나무더미로 불이 옮겨 붙게 되어 온 집안이 불길에 쌓이게 되었단다. 그때 당황하여 너를 잊고 불을 끄다 네 생각이 나 방에 뛰어들어가 보니,방안에도 이미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황하여 너를 이불에 싸가지고 나오다가 그만 화상으로 내 얼굴이 이렇게 되었단다. "

어머니의 이 말에 딸은 와락 달려들어 어머니 품에 안겨 흐느끼며, 이제까지 어머니의 얼굴 때문에 부끄럽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을 뉘우치며, 어머니께 용서를 청하고 그후부터는 자랑삼아 어머니의 큰 사랑을 친구들에게 전했습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베토벤(Beethoven)의 "월광 소나타"를 듣고 감동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달밤의 말할 수 없는 장관을 소리로 바꾼 가장 훌륭한 해석의 하나입니다. 이 아름다운 음악은 작곡자가 그 자신과 그의 재능의 일부를 한 눈먼 소녀에게 바치려고 쓴 것이었습니다. 이 소녀는 달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습니다. 눈이 멀어서 그녀는 나무와 관목과 풀잎 위의 은색 광채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은하수 세계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려 깊고 헌신적인 베토벤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말로서가 아니라 소리로, 그녀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그녀에게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로 세계는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는 헌신적인 친절한 행동에 그의 재능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자기 희생은, 부끄럼 없이 다른 사람도 희생하도록 할 수 있다.

(B. 쇼/ 혁명가들을 위한 금언)

 

헌신은 복종의 어머니이다.

(S. 대니얼/ 남북전쟁사)

 

연애하는 여자는 항상 변화를 찾아서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 남자의 곁에서 영원한 여성의 심볼인 것처럼 운명과는 하등의 관련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 굳은 마음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연애하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그 애인보다 한층 더 우위에 있는 것이다. 마치운명보다 생활이 위대한 것처럼. 그 여자의 고요한 헌신은 무한히 깊다. 거기에 그 여자의 행복이 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사랑의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라는 것은 이러한 아름다운 헌신을 될 수 있는 한 작게 한정하려고 하는 세상 사람들의 정신의 가난함이었다.

(R.M. 릴케/ 말테의 수기)

 

꽃은 봉오리로 바쳐져도 헛된 희생은 아니다.

(I. 워츠/ 고대 종교)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

(벌워 리튼/ 신 타이먼)

 

양초는 남을 밝게 해 주며, 자신을 소비한다.

(H.G. 보운/ 격언 편람)

 

여자가 사랑이라는 말 밑에서 이해하는 것은 완전한 헌신, 육체와 영혼의 전혀 고려도 보류도 없이 하는 헌신이다.

(F. W. 니체)

 

사람은 누구나 헌신적 생활을 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 헌신은 이기적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헌신이어야 한다.

(송건호/ 아첨의 철학)

 

어떤 종류의 희생 없이, 어떤 실제적인 것이 얻어진 적이 있는가?

(A. 헬프스/ 충고하는 친구)

 

창조의 목적은 헌신에 있나니/ 명성도 아니요 성공도 아니다.

(파스테르나크/ 무엇이 소중한가)

 

나는 회상에 잠기리라 헌물을 바친 손 위를/ 축복하고 세례를 베푼 손 위를.

(구르몽/ 성당)

 

신선한 천사 같은 음색의 부드럽고 낭랑한 목소리/ 신중한 미소가 그녀에게 대답했지/오, 나는 헌신적으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췄네.

(베를렌/ 네버모어)

 

님이 내게 가르치신 사랑법으로/ 아 님을 위해 노래할 수 있으리까.// 다만 노래를 대신하는 침묵이며/ 다만 고백을 대신하는 눈물이며/ 다만 헌신을 대신하는 향유이오

니‥‥‥

(김성영/ 미리암의 노래)

 

헌신하는 성도들의/ 열심 있는 활동은/ 추수하는 그 나라에/ 쌓여지는 열매라

(홍안의/ 성도의 열매)

 

"지극히 작은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라"/죄로 물든 세상을 불쌍히 보시고/ 우리의 슬픔 민망히 여기사/ 우리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신/하늘 영광의 우리 주 예수님/ 오, 그 놀라운 사랑이여!/ 멸망하고 있도다. 멸망하고 있도다!/ 세상 어두운 길에서/ 어두운 심령들이 무거운 짐 지고 쓰러지고 있구나./ 주에서 간절히 부르시는데/ 저들을 주께 인도하는 자 없고/ 죄악과 절망의 심연에서/ 저들을 건져내는 자 없구나.// "지극히 작은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라"/주님은 우리처럼 육신의 옷을 입으시고/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셔서/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상처 입은 심령을 치료하러 오셨네./ 죽어 가고 있도다, 죽어 가고 있도다!/ 추수 때가 되어 추수할 곡식은 많으나/ 일꾼들이 없는데 밤은 가까워 오네./ 주께서 당신을 부르고 계시도다. / 당신을 부르시어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려 하신다. / 그것이 마땅한 당신의 사명이기에.// 세상의 향락에는 쓸 시간이 많아도/주를 위해서는 쓸 시간이 없는가./ 세상의 부질없는 일에는 시간을 쏟아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는/ 쏟을 시간이 없는가./ 그들에게 생명의 기쁨을 전할/ 중요한 시간은 흘려 버리는가./ 구원해 주시오. 구원해주시오!/ 저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않는가.// "우리에게 주님을 증거하십시오./ 그분이 누군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의 짐은 무거워 견딜 수 없으며/ 우리의 눈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호소하는 저들을 외면하고 있는가.// "지극히 작은 소자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라"/ 나는 진정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은 접어둔 채/ 내 영혼 편히 살 수 있을까?/ 빠지고 있구나, 빠지고 있구나!/ 주님은 애타게 우리의 헌신을 바라시는데/ 주여! 용서하소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기회를 주소서./ 우리의 세상을 향한 마음들을 끊어주시고/ 당신이 주신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면서/ 사명을 다하도록 주여, 도우소서.

(루시 R. 메이어/ 너를 부르신다)

 

죽음의 나무 그늘/ 죄악의 그늘에서 불어오는/ 책망의 바람 소리 들리지 않는가?//그래서 지난 시절 되돌아봄에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자/ 그가 비록 나약하고 악했다하더라도/ 약간은 고귀한 이유에서/ 이웃을 찬미하고 도와주었다면/ 버림받은 자들을 감싸주며/ 죄악의 구렁텅이에 한줄기 빛을 비추었다면/ 빈곤한 때에 신념과 집이 없어 고통받는 자/ 그들을 도와주고 또 하려 했다면/그는 헛되이 산 것은 아니며/그를 찬양하는 이들 속에 살아 움직일 것이다. /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이 전의 소망 속에 이젠 다시 할 수 없는/ 그가 한 봉사의 일들을 알게 될 것이다.

(존 휘티어/ 봉사자의 영광)

 

소녀는 노래했다 사랑과 사랑의 고뇌를/ 헌신과 그리고 재회를/ 모든 고통이 없어지는/ 저 높은 천상의 세계에서.

(하이네/ 독일 겨울 이야기 · 1)

 

희생이라니? / 그것은 내게 과분한 말입니다. /당신을 따르려고/기꺼이 내 십자가를 질 뿐입니다. / 당신이 하늘의 상급을 베풀어 주신다면/ 나의 상급이 작을지라도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죽음의 자리에까지/ 주여, 내가 순종하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이 미치는/ 저 광활한 모든 벌판에까지./ 모든 것을 버리라니? / 주여,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내 어찌 버릴 수 있겠습니까?/ 나의 생명은 당신의 것입니다. / 주여, 나의 삶을 내 마음대로 계획하고 / 내 뜻대로 살도록 버려두지 마소서./ 주여, 당신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나니‥‥/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 당신은 숭고하십니다. /내 주여, 당신의 위대하심을 알고부터/ 내가 얻은 것을 계산해 보지만/ 아직도 버려야 할 것이 더 많습니다. / 내게 영원을 가르치소서/ 당신과 함께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엘리자베트 하워드 앨리오트/ 희생)

 

나 무엇을 주님께 드리오리/ 내 영혼과 육신 구석구석 서려 있는/ 슬픔과 외로움뿐인 것 을// 당신께선 날마다 먹이시고 입히시건만/ 끝없는 사랑과 은혜로 채우시고 채워 주시건만/ 늘 아쉬운 목마름과 허전함뿐인 것을// 나 때때로 애통하며 흘리는 눈물/내 부끄러운 모든 것/ 연약하고 허물 많은 모든 것/ 당신께 드릴 건 이런 것뿐인 것을//구원의 내 주여/ 긍휼히 보시고 내 허물 받으시오면/ 지난 어제 그리고 오늘// 또 내일과 모레 이렇게 남은 세월/ 다하고 당신 품에 가기까지/ 내 삶의 모든 것 당신의 뜻대로 하시어요/ 감히 당신의 신부로/당신의 그림자로 있게 하시어요//내 슬픔과 외로움 허약과 허물조차/ 기쁨과 감사되어/ 당신의 열매 되게 하시어요// 내 절망과 애통이/ 소망과 찬송되어/ 당신께 영광되게 하시어요

(임성숙/ 헌신)

 

 

설 교 노 트

 

헌신의 원리

시l16:12-19

 

서론

신학자 칼빈은 본 시편은 다윗이 기록하였으며 그것은 감사의 노래라고 하면서 이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중심하여 "헌신의 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1. 헌신은 하나님은 은혜를 보답하는 행위입니다.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기독 신자의 헌신은 하나님의 은총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바로 알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의 범주에서 살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란 원수는 갚아도 신세는 못갚는다는 말이 있고, 원한은 마음속에 새 기지마는, 은혜는 물 위에 치부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도 많지는 아니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갚아 보려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보답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에 깊이 헌신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의 처지를 바로 아는 사람이요, 겸손한 사람이요,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2. 헌신은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 신자의 헌신의 원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진 서원을 갚는 행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 서원의 의미

서원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은혜를 받은 자의 마음의 결심이요, 다음은 약속과 맹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서원의 성격

우리 기독 신자들의 서원은 성경을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나 자신이 하나님께만 은밀하게 다짐한 은밀한 서원이 있는가 하면, 다음은 하나님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다짐한 공개적인 공적, 서원이 있다고 봅니다. 이는 학습과 세례와, 임명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서원을 하게 됩니다.

(3) 서원의 종류

지금 우리 기독 신자의 서원은 미래적인 서원이 있고, 과거적인 서원도 있습니다.

① 미래적인 서원이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시면 헌신하겠다는 야곱과 한나와 같은 서원이고.

② 과거적인 서원이란, 기도 응답과 사업 성취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미 나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셨으니 헌신하겠다는 서원이 있습니다.

이 서원을 그대로 이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하게 됩니다.

 

결론

이와 같이 헌신의 원리는,

(1)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보답하는 행위이며,

(2) 하나님께 서원한 서원을 갚는 행위입니다.

이 헌신은 하나님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명까지도,아낌없이 바쳐 드리는 행위입니다.

 

 

헌신자의 축복

왕상17:8-16

 

서론

으니 첫째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의 죄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제단을 헐어 버리고 바알 신당을 세운 죄이고, 전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살해하면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등용한 죄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범죄한 집과 이스라엘 나라에는 3년 반이나 비가 내리지 아니하고 심한 흉년으로 인하여 온 국민들이 약식과 식수가 끊어져 기안 선상에서 아사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릿시내에 피신하여 지내던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렙다 과부를 찾아가 양식을 구하고 피신처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때 두 모자가 한때 먹을 양식밖에는 없는지라 이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기로 결심하였던 과부는 그것으로 엘리야를 대접하여 가루통에 가루와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바로 헌신 봉사하면 외상 없이 축복받는 깊은 역사적인 진리와 교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헌신의 의미

헌신이란 과거 죄와 사망의 영역에서 예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이 그 은총에 감격하여 몸과 마음과 생명까지라도 주님께 바치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 바치는 헌신적인 생활 자세를 세 가지로 분석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의 몸과 지체를 주님께 바쳐서 의의 병기로 등용하는 것입니다(롬6:13).

(2)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물로 산 제사를 드리는 행위라고 하였습니다(롬12:1).

(3) 우리의 삶을 주를 위해 살다가 죽는 행위가 진정한 헌신이라고 하였습니다(롬14:8).

 

2. 헌신의 비결

헌신이란 자의에 의해서 기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고로 주님이 나를 필요로 하며 부르시는데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고 응답하고 내 모든 것을 주님에게 내어 맡기는 것이 진정한 헌신입니다. 이와 같이 헌신할 수 있는 그 비결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나의 생사화복은 하나님만이 주장하시는 줄로 인식하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사와 화복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장하시는 줄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몸도 마음도 생명도 드리는 일에 인색하지 아니합니다.

(2) 나를 구속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는 보답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간 성도들과 같이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고 묻는 이러한 성도는 나 자신의 몸과 시간과 물질을 인색함 없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나의 소유의 가치관을 바로 인식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몸, 건강, 물질을 어디에다가 사용해야 가치 있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는 길은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임을 바로 인식한 사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결론

헌신한 사람이 받는 축복의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여기 사렙다의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한 결과

(1) 가난한 삶이 부요한 삶으로 전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2) 죽음의 자리에서 구원의 영역으로 전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3) 비천과 무명의 사람이 존귀와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남은 가루와 기름도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십시다.

 

 

헌신자에게 필요한 것

왕상19:19-21

 

서론

교회에는 각양의 직분이 있는데, 목사나 장로직을 위시해서 권사, 집사, 구역장, 권찰, 성가대, 교사 등 직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성직임에는 틀림이 없지마는 권리직이나 명예직이 아니라 봉사직이요, 섬기는 직분이요, 헌신의 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헌신자에게 필요한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에 은혜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과연 헌신자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요?

 

1. 헌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천국갈 수가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하기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또 온전케 되기 위해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리라"고 했습니다.

 

2. 성령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가 있습니까?

성령받는 비결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고,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가 성령을 받으며, 기도에 힘쓰는 자가 성령받으며, 회개하는 자, 말씀을 귀담아 들을 때 성령을 받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고, 순종하고 주의 종이 안수할 때와 주님이 필요로 하시면 성령을 주시며, 마지막으로 찬송을 부를 때 성령을 받습니다.

이렇게 헌신자는 성령을 받아야 하고, 열거된 성령받는 비결을 여러분은 모두 실천하셔서 몽땅 성령 충만히 받아서 헌신자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엘리사와 같은 헌신자가 필요합니다.

헌신자로서는 엘리사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했는데 엘리사의 그 무엇이 헌신자에게 필요한 것이 되는 것입니까?

먼저 엘리사는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엘리사가 선지자로 나서기 전에 소 12겨리를 몰고 밭을 갈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한 겨리가 2마리로 멍에를 씌워 쟁기질을 하는 것인데, 12겨리라면 24마리 소로 밭을 갈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걸 보면 엘리사의 집은 어느 만큼 부잣집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잣집 아들이 얼마든지 하인들에게 밭가는 일을 시켜놓고 구경만해도 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손수 소를 몰고 밭을 갈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 다음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을 받은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벗어 준다는 것은 자기 직분을 그 사람에게 넘겨준다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불말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데 엘리사가 소리 높여 부르짖다 보니 하늘에서 엘리야의 겉옷인 털옷이 팔락팔락 내려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엘리사가 그 겉옷을 받아서 역사했던 것입니다.

 

결론

엘리사는 일편단심으로 주만 따라가며 헌신하는 자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엘리사는 소와 쟁기도, 가정도, 고향도 다 버리고, 일편단심 엘리야를 따르는 일만을 했고, 갑절의 성령받는 일에도 열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갑절의 성령을 받아 갑절로 헌신하는 헌신자가 되었습니다.

헌신자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엘리사와 같은 헌신자를 필요로 합니다.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엡5:1-2

 

서론

우리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는 근거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먼저 우리의 처지를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이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13:1). 그리고 목숨까지 버려서 사랑하셨습니다(요10:11).

그런데 그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어찌 사랑 가운데서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본받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며 그리스도는 성도의 본이 되신 까닭입니다. 그리고 본받을 내용은 곧 그의 사랑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요일4:7).

 

2.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성도의 본이 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설명입니다. 특히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그 사랑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빛을 짊어진 우리가 어찌 그를 모르는 척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죽도록 충성해야 하겠고(계2:10), 피흘리기까지 그의 복음을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히12:4).

또 같은 성도를 위하여서도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을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위하여 죽기까지 일하면 순직이라고 하겠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죽기까지 하면 이는 순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구속 사업을 완성하였으니 우리는 그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까지 각오해야 합니다.

 

3.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에 향기로운 제물이란 구약에서의 화제를 말하며 그것은 자의의 제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스스로 그 몸을 바쳐서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레2:9, 고후2:14-16).

하나님께서 받으신 제물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훌륭한 제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시기까지 그 마음의 아픔을 우리가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

우리는 반드시 사랑 가운데서 행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라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심같이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협 력

성 경 활 용

1. 협력의 조건

(1) 하나님께 복종함

(시119: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주의 법도를 지키는 자의 동무라

(2) 덕을 세움

(롬14:19)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 협력의 필요성

(1) 일을 완성함

(느4: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2) 합심 기도의 성취

(마18:19)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3. 협력의 종류

(1) 인간과 인간의 협력

(출17:12)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 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2)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관련원어풀이

1. aunaqlevw 수나들레오-

(1) ∼와 굳게 협동하다.

(빌4:3)

(2) 노력케 하다, 함께 투쟁하다.

(빌1:7)

설교예화자료

짐마차에 실린 것

 

어떤 목사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마차를 끌고 있었고, 그 마차는 포장이 덮혀 있는 마차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그러나 천천히 그 마차를 끌었는데, 도로의 어느 지점에 오자, 진흙이 더욱 깊어져서 끌기가 매우 힘들었고 한 번에 겨우 몇 인치 움직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히 모든 성도들이 짐마차를 밀고 있으리라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있는 힘을 다해 짐마차를 잡아당겼지만 더욱 더 힘만 들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기진맥진해진 그는 문제의 근원을 살피려고 뒤쪽으로 갔습니다. 그때 목사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교인들이 마차를 밀기는 커녕 오히려 마차 안에 앉아 있었고, 도리어 목사를 향해 짐마차를 빨리 끌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꿈이었을까요?

 

 

영혼과 육체

 

왕은 오차라고 하는 매우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과일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두 사람의 파수꾼을 고용했습니다. 한 사람은 소경이었고, 또 한 사람은 절름발이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흉계를 꾸미기 시작하여, 함께 어울려 과일을 따먹자고 의논했습니다. 소경이 절름발이를 목마를 태우고 절름발이는 방향을 가리켜서, 실컷 맛있는 과일을 훔쳐먹었습니다. 왕은 대단히 노하여 두 사람을 힐문하자, 소경은 나는 앞을 보지 못하니 따먹을 수 없다고 말하고, 절름발이는 저렇게 높은 곳에 내가 어떻게 올라갈 수가 있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왕은 그것도 옳은 말이라고 말했지만, 두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두 사람의 힘은 하나보다도 훨씬 위대한 것입니다.

육체만으로의 인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영혼만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양쪽을 합하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감사

 

이 세상에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이 빵을 먹으려 했다면 얼마만큼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요? 먼저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그것을 가꾸고 걷어들이고, 갈아서 가루를 만들어, 반죽하거나 굽거나 하여 15단계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지금은 돈만 내면 빵집에서 빵을 살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혼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15단계 작업을, 많은 사람이 나누어 하고 있으므로, 빵을 먹을 때에는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제일 처음에 단 한사람의 인간이 자기 몸을 가릴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단히 많은 손을거쳐야 했습니다. 양을 사로잡아 크게 키워서 털을 깎고 옷을 짜서 기워서 입기까지는 상당한 노고가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돈만 내면 양복점에서 좋아하는 옷을 사 입을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혼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작업을 많은 사람들이 해 주므로 옷을 입을 때에는 많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봉사도 협력해야

 

하나님께서 사람들은 다 각각 지도 다르고 얼굴도 다르게 이렇게 낸 것은 의의가 있습니다. 다르다고 싸우라고 낸 것이 아닙니다. 다른 가운데서 피차의 장점을 살려서 협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봉사하고 이 사회에 봉사하라고 이와 같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봉사 생활을 하려고 하면 이 협조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책을 보니 페르시아라는 나라에는 이상한 새가 있어서 이 새는 낱개가 하나씩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혼자서는 날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수놈의 바른편에는 갈구리 같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암놈은 왼편에 고리 같은 것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수놈과 암놈이 짝지어 함에 날 때는 썩 잘 날아갑니다. 세상에 혼자하지 못할 일이 많습니다. 아무리 위대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혼자서만은 할 수 없습니다. 독불장군이 란 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협조해야 봉사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싸움쟁이 형제들

 

아들 셋을 둔 농부가 있었습니다. 농부는 아들들에게 항상 사이 좋게 지내라고 타일렀지만 아들들은 유난히 사이가 좋지 않아 하루도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너 정말 이렇게 형의 말을 안 들을테냐?"

"싫어,왜 내가 형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해."

"이게 정말 끝까지‥‥‥‥

마침내 아들들은 땅바닥을 뒹굴며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밭에서 돌아오던 농부가 아들들의 싸움을 보고,

"그래 어쩌자고 너희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싸우느냐? " 하며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큰 재산을 물려줘도 저 녀석들이 저렇게 싸움질만 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

이렇게 생각한 농부는 아들들을 방으로 불러들인 후 긴 나뭇가지 한 묶음을 가져왔습니다.

농부는 먼저 첫째 아들에게 일렀습니다.

"그 나뭇가지 열 개를 한꺼번에 분질러 보아라."

첫째 아들은 있는 힘을 다해 나뭇가지 열 개를 한꺼번에 분지르려고 했으나 나뭇가지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부러지지 않습니다. "

큰 아들이 못하자 농부는 둘째 아들과 막내 아들에게도 시켜보았습니다. 두 아들 역시 그것을 부러뜨리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것을 하나씩 따로 분질러 보아라."

농부가 말했습니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뭇가지 하나씩을 분질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 는 아주 손쉽게 부러졌습니다.

그것을 본 농부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얘들아, 알겠느냐? 세상 일이란 그런 것이다. 너희 삼형제가 힘을 합치면 아무도 너희들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운다면 하나의 나뭇가지와 같이 쉽게 부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힘을 합쳐 우애 있게 살아가도록 해라."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들은 그 동안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서로 도우며 사이좋게 살았습니다.

 

 

말과 당나귀

 

한 주인 밑에서 자라는 말과 당나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말과 당나귀의 등에 각각 많은 짐을 싣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걷다가 밤이 깊어서야 주막에 들러 잠시 쉬고, 또 다음날 새벽이면 길을 떠나는 힘든 나날이 며칠씩 계속되자 몸이 약한 당나귀는 몹시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여보게, 좀 도와주게. 이대로 가다가는 난 곧 죽고 말겠네. 그러니 내 짐을 조금만 가WU가 주게 ."

당나귀는 숨을 헐떡이며 말에게 애원했습니다. 그러자 말은 몹시 화를 내며 단번에 거절하였습니다.

"안돼,나도 지금 무거워 죽을 지경인데 네 짐을 더 가지라고? "

말의 냉정한 태도에 당나귀는 더 이상 부탁하지 못하고 얼마를 더 가다가 그만 쓰러져 죽었습니다.

"에이, 아직 갈 길이 먼데‥‥‥‥

주인은 결국 당나귀의 등에 실었던 짐과 죽은 당나귀까지 말의 등에 실었습니다.

그래서 말은 더욱 무거운 짐을 지고 걷게 되었습니다. 울상이 된 말은 숨을 몰아쉬면서,

'당나귀가 부탁했을 때 조금만 도와줬어도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텐데‥‥‥‥ 하고 후회했습니다.

 

 

어록·시·묘사

 

최고, 최선의 능률의 형태는 자유민의 자발적인 협동이다.

(W. 윌슨)

 

협동이 언젠가는 임금제도를 대치하리라는 나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협동의 근본을 가르쳐 줄 것이다.

(T.V. 파우덜리/ 자서전)

 

인생의 법칙은 욕심의 경쟁이 아니라 만인의 선에 기여하는 개인의 선인 협동이다.

(P.J. 네루/ 신조)

 

또 하나 형제 되는 여러분이 주의할 것은 여러분이 나뉘면 개인이 되어 주권을 상실하고 합하면 국민이 되어 주권을 향유하는 것이외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합하면 명령을 발하는 자가 되고 나누이면 명령에 복종하는 자가 되는 것이오.

(안창호/ 육대사업)

 

협동은 하나의 이상이지 단순한 제도가 아니므로 엄청나게 많은 응용방식들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우리를 결코 무조건적인 동맹으로 이끌어 가지 않는다. 각 단계마다에서 그것은 우리의 정신과 연합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협동은 단순히 빵 문제 해결 방식일 뿐만 아니라 풍요의 여신 그 자체이며, 그 속에서는 모든 종류의 빵 문제가 다 하나의 본질적인 윤리문제로 귀착되리라고 생각한다.

(M.K. 간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씻고, 두 손으로 얼굴을 씻는다.

(J. 플로리오/ 첫 결실)

 

두 사람의 개성의 조우는 두 가지 화학물질의 접촉과 같다. 반응이 있으면 둘 다 변화한다.

(C.G. 융/ 영혼을 탐구하는 현대 인간)

 

협조한다는 것은 가장 낮은 의미에 있어서나 가장 높은 의미에 있어서나 생계를 같이한다는 것을 뜻한다.

(H.D. 소로/ 월든)

 

외손뼉이 못 울고 한 다리가 가지 못한다. < *서로 협력해야 할 것은 혼자 못함을 이름>

(한국 속담)

 

봉충다리의 울력 걸음. < *좀 부족한 사람도 공동으로 일을 하는 데는 덩달아 따라할 수있게 됨을 이름>

(한국 속담)

 

상호부조는 자연의 법칙으로서 생물 진화의 중대한 요소이다.

(P.A. 크로포트킨/ 상호부조론)

 

우리는 다리 ·손 ·눈꺼풀 그리고 아래위 턱처럼 협동하기 위해 태어났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음이 화합하면 부처도 곤다. < *서로 도우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를 수 있음을 이름>

(한국 속담)

 

세 사람이 모이면 미혹되지 않는다.

(한비자)

 

협력 않으면 인공이 죽이고/ 협력하면 부역죄로 죽고/ 죽기야 매일반/ 하루라도 더 살겠다는 맘으로 나간거지// ‥‥경찰이 들어와 인공 때 뭐 했느냐고/ 꼬치꼬치 묻고 협력자라가둬두니/ 이미 죽은 목숨인데/읍내 들어온 국군 중에 제자가 있어서/ 어지어찌 곡절 끝에풀려 나와/ 복직도 해서 다시 교단에 서긴했다만/ 평생을 무거운 점지고 산 셈이지.

(박용주/ 할아버지 이야기)

 

오직 사랑으로/ 아이들을 향한/ 봉사자요, 협력자요, 동반자로/ 그들의 올바른 자람이/나의 영광임을 깨닫게 하소서.

(정용채/ 스승의 기도)

 

 

설 교 노 트

 

성도의 생활

행2:43-47

 

서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많은 박해하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항상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주께 돌리며 성도 서로간의 교제를 돈독히 하므로 덕을 세우고 봉사와 구제를 더욱 활기차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생활을 하고 사랑하는 생활을 해야하겠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1.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는 믿음의 형제들을 서로 사랑함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그 교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합니다. 물건들을 서로 나누어 씁니다. 재산이 많은 성도는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성도에게 나누어줍니다. 인색하거나 탐내는 일이 없이 모두 물건들을 서로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가짐으로 화목 단결하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의 교제는 이해 관계를 초월한 사랑의 교제였습니다. 물질을 초월했고 권세도 초월했습니다. 미움과 다툼이 없는 사랑과 감사의 교제였습니다. 이 교제는 성도 서로간의 믿음이 자라게 했으며, 그 무서운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을 증거하게 하였습니다.

 

2. 그 떡과 잔을 나누는 교제

예수님과 제자들은 종종 사랑의 떡을 나누었습니다. 떡을 떼면서 이야기도 나누며 거룩한 뜻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도 예수님의 뜻에 따라 떡을 나누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애를 돈독히 하였습니다. 이런 교제의 만찬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나누었습니다.

 

3. 모이기를 힘씀

초대 교인들은 열심히 모였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또한 가정에서 사랑의 떡을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자주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또 동일한 신앙 고백을 하고, 성도간에 덕을 세워 피차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우애하며, 위하여 기도하며, 봉사와 신앙활동을 격려하였습니다. 또 밖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찬송을 받을 만한 선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결론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한 몸의 지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돌보며 서로 나누는 선한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모여서 철저히 주님의 말씀 중심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교통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주의 선한 지체로서 교통하고 봉사함으로 주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겠습니다.

혼 인

성 경 활 용

1. 혼인날의 기쁨

(1) 노래하는 날이다.

(시78:63)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2) 기쁜 날이다.

(아3:ll) 혼일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3) 잔치가 있다.

(마25:10)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2. 혼인의 가치

(1) 창조의 본뜻이다.

(창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 죄가 아니다.

(고전7:36)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3) 귀히 여겨야 한다.

(히13:4)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3. 혼인식 참예자의 자격

(1) 합당한 자

(마22:8)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2) 청함을 입은 자

(계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관련원어풀이

1. @t'j; 하-탄

(1) 딸을 시집보내다, 장인.

(출18:1, 삿19:4)

(2) 결혼하다.

(창34:8, 수23:12)

 

2. gamevw 가메오-

(1) 결혼하다, 아내를 취하다.

(마5:32, 눅14:20)

(2) 결혼하다, 남편을 취하다.

(막10:12, 딤전5:11)

설교예화자료

장수의 비결은 혼인

 

보험 통계에 의하면,25세에서 34세 된 기혼 남자의 경우 사망률은 1,000명당 1.5명이었으나 미혼 남자의 경우는 두 배나 더 높아 1,000명당 3.5명이었습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격차는 더욱 커집니다. 35세에서 만세의 경우 기혼 남자의 사망률은 1,000명당 3.1명인데 비해, 미혼 남자는 8.3명입니다.

모든 여자에 있어서도 독신녀의 사망률이 결혼을 한 여자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다음의 격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죽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게 낫다. "

 

 

끊어진 은빛실

 

댕크스 가족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가족은 오래된 "Silver Threads amomg the Gold"라는 노래를 세계에 히트시킨 가족입니다.

1874년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댕크스 부부는 서로에게 무척이나 헌신적이었으며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무척이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인생의 황혼에 대하여,그들이 함께 늙어가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즐거운 기대의 분위기에서 그 노래가 탄생하였는데, 이 노래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댕크스 씨는 이것을 그의 아내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부부에게 불화가 찾아 들었고 그토록 행복한 가정이 파탄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결국엔 부부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댕크스 씨는 1903년에 자신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은 채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노래의 오래된 카피 사본 위에는 이런 말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혼자서 늙어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결혼 반지

 

뉴욕 시의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하철 중간 칸에 키가 크고 깡마른 수염난 사나이가 엄숙하게 그리고 똑바로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어린 소녀가 회색빛 스커트에 진한 녹색 자켓을 입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 소녀도 정숙하게 그리고 예의 바르게 똑바로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그렇게 앉아 있도록 잘 훈련이나 된 것처럼‥‥‥

머리는 곧바로 들고 전혀 꿈지럭거리지도 않고, 몸을 꼬지도 않고 밭을 구르지도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으며, 아무것도, 어느 누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습니다.

옆 자리의 키가 크고 깡마른 텁석부리 사나이는 점잖게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입은 굳게 닫혀 있었고, 시선은 한곳에만 굳어져 있었습니다.

이 남자와 그 소녀는 한눈에 닮았고 그래서 누구나 아빠와 딸인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정거장에서 또 다른 아빠와 딸이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아빠의 손에도 역시 신문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타고 있던 부녀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두 아빠와 두 딸이 앉아 있었으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빠가 입은 웃도리 팔목엔 헝겊을 대고 기운 곳이 있었고, 그 딸도 청색 스웨터를 깨끗이 빨아 입기는 했으나 색깔이 바랠 정도로 새것은 못 되었습니다.

브롱스로 가는 이 급행 지하철 안에서 청색 스웨터 입은 딸아이는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고 하더니 지루해졌는지 갑자기 손을 뻗쳐 신문을 읽고 있는 아빠의 손을 잡더니 네 번째 손가락을 부벼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즉각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 요술에나 걸린 듯이 아빠는 딸이 자기의 넷째 손가락을 부벼대는 순간, 읽던 신문을 주머니에 접어 넣고는 딸을 향해 돌아앉아 얼른 엄지손가락을 폈습니다. 딸아이는 그것을 잡으려고 했으나 아빠는 얼른 손가락을 손바닥 안으로 감추었습니다. 딸아이가 손가락을 잡으려는 순간마다 아빠의 엄지손가락은 번개처럼 손바닥 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것은 그들 부녀에게 있어서 일종의 게임이었고 장난이었으나 다른 승객들의 관심에는 개의치도 않고 말 한마디 없이 계속된 이 게임은 한 정거장을 지나자마자 끝나 버렸습니다.

드디어 그 딸아이는 아빠의 엄지손가락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딸이 손가락을 붙잡는데 성공한 순간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아빠는 딸에게 키스했고 얼른 주머니로부터 초콜릿을 꺼내주었습니다.

그 사나이는 곁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멋쩍은 듯이 웃으며 게임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내 결혼 반지는 우리의 신호입니다. 만약 그애가 혼자 쓸쓸할 때면 그 반지를 부며댑니다. 그때마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즉시 내가 하던 일을 집어치우고 딸아이와 함께 간단한 게임을 합니다. "

맞은편에 녹색 자켓을 입고 앉아 있던 어린 소녀가 이 게임을 보고 또 설명을 다 들었습니다. 그 다음 정거장에서 그 남루한 복장의 부녀가 내리는 것을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이 소녀는 한동안 마음속에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수줍은 듯이 아빠의 왼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습니다. 거기에도 결혼 반지가 넷째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습니다. 조용히 그 소녀는 아빠의 반지를 부벼대기시작했습니다. 눈을 들어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

그 순간 아빠의 반응은 "그런 짓은 제발 좀 하지마! 숙녀처럼 행동해야 된다고 얼마나 타일렀니? "였습니다.

나는 그 키 크고 깡마른 텁석부리 사나이가 이 이야기를 읽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어린 딸이 마음속으로 원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종탑 위의 약혼녀

 

16세기 영국에서 올리버 크롬웰이란 청년이 범죄하여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정해 놓고 종소리가 울리면 사형을 집행토록 되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났어도 종소리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한 병사가 종탑 위에 올라가 보니 웬 여자가 종의 추에 매달려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죄인의 약혼녀였는데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죽기를 무릅쓰고 종소리가 나지않게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일이 알려지자 정상을 참작하여 감형이 되고 두 사람은 나중에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결혼의 형벌

 

유명한 영국의 법학자 러셀 경에게 어떤 이가 이중 결혼에 대하여 합당한 형벌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경은 한마디로 말했습니다.

"그것은 장인이 두 사람 되는 것이지." 장인은 시어머니 못지않는 귀찮은 존재인 모양입니다.

 

 

꿈의 보금자리

 

동부 자바 토인의 청년은 가슴에 봄이 찾아들고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나도 결코 마음에든 처녀에게 곧바로 청혼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너무나 간단하고 산문적입니다. 시정(詩情)이 풍부한 자바 청년들은 장차 사랑의 보금자리로 쓸 벽을 통처럼 만들어 어깨에 메고 마음에 있는 처녀의 집 문 앞에다 두고 옵니다. 처녀에게는 확실한 대답을 결정하는 데 24시간의 시간을 줍니다. 결혼할 의사가 있으면 갖다 놓은 벽에다 두 개의 구멍을 뚫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꿈의 보금자리"의 창이 됩니다. 그러나 청년이 이튿날 그 집으로 가서 벽에 구멍이 없으면 처녀가 뜻이 없는 줄 알고 집으로 가져갑니다. 다시 좋은 기회를 기다리기 위해서입니다.

 

 

호색적인 욕구로 물든 결혼

 

간디는 13세 때 결혼했습니다. 이에 앞서 그는 세 번 약혼을 했었는데, 약혼한 소녀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의 10세 된 아내는 이웃에서 골랐고, 그의 형, 그리고 사촌과 합동결혼식을 올려서 결혼했습니다. 힌두족에게 있어서는 결혼이란 복잡한 행사이기 때문에 세 쌍의 신랑 신부가 한꺼번에 결혼하는 것이 더욱 비용이 덜 들고 편리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관해 간디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내가 장차 나를 어려서 결혼시켰다고 해서 아버지를 비난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못했습니다. 그날에 있던 일은 모두가 옳고 타당하며 기분이 좋은 듯했습니다. 나 자신이 결혼하기를 열망하기도 했습니다. "

그는 흥분하고 겁을 집어먹은 두 아이가 서로 만난 광경에 관해서는 말하기를 꺼리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남편으로서의 권력 행사를 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 카스투르바이는 무식한 여자였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글을 가르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호색적인 사랑으로 시간이 없어서‥‥‥‥"

그 결과 카스투르바이는 그로부터 50년 후에 겨우 글을 읽고 쓸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이 호색적인 욕구로물들어 있지 않았던들 그녀는 오늘날 유식한 부인이 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 그녀의 성격을 고쳐 놓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대원군의 유머

 

대원군은 풍류와 농담을 잘해서 가끔 소인배와 썩고 궁한 선비를 골려 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 문안 온 선비에게 친절히,

"처자가 있는가?"하고 물으니,

선비는 아무 집에 장가들었습니다 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유식한 체, "황문(黃門)에 취처

(娶妻)하였습니다. " 하였습니다. 대원군은 특유한 풍자로,

"황문이라니, 똥구멍에 장가를 갔단 말인가?"

시골 선비는 얼굴이 붉어지며 말이 없었습니다.

 

 

융단 한 장에 깨진 결혼

 

남편은 작곡을 하고 아내는 노래를 불러 무대에서 인기를 끈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노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그 인기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극장까지도 가지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어느날 아내가 극장에 깔 융단을 한 장 사들였는데, 남편이 계산서를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남편의 생각으로는 너무 비싼 융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융단 값 하나 때문에 그후 일생을 통하여 말도 않고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융단 한 장에 대해서 너무도 큰 희생을 지불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즐거울 수 있는 긴 시간의 영화를 융단 한 장의 계산서와 바꾸었던 것입니다.

 

 

금슬상화(琴瑟相和)

 

것이 금슬을 고(鼓)하는 것과 같다. "고 나와 있습니다. 부부간에 의가 좋은 것을 금슬상화라고 말합니다. 금(琴)은 거문고, 슬(瑟)은 커다란 거문고로써 현(絃)의 수가 많은데, 이 대소 거문고를 탈라치면 소리가 잘 조화되어 하나의 음악적인 세계를 형성합니다. 흡사 그와 같은 부부를 가리켜 "금슬이 좋다. "고 말합니다.

 

 

베커 목사의 결심

 

베커라는 목사의 결혼 경험담입니다.

그 목사님은 어느 날 자신은 자신과 신앙의 빛깔이 같아야만 결혼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작정한 그 다음날 식사를 했는데, 어떤 여자가 걸어오더니 목사님과 같은 테이블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습니다. 평상시 성격상으로 처음 보는 여자와는 교제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그날은 이야기가 잘 풀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성과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다가 결혼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커 목사가 나와 신앙이 같지 않은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 여성이 자기도 어제 자신과 신앙의 빛깔이 같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을 작정을 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적으로 같이 기도하고 공부하며 서로 도와주며 교제할 수 있는 신앙인끼리 한 결혼은 행복의 기초가 됩니다.

 

 

약혼기간 동안 나막신을 판다

 

어느 목사님의 유럽 여행담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네덜란드에 갔을 때 마캔 아일랜드라는 섬에 구경을 갔다고 합니다. 이 섬은 그 역사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오는 곳이라 했습니다. 이들 관광객을 위해서 고대가옥을 짓고 그 안에서는 섬사람들이 옛날 고대 의상을 입고 옛날 풍습대로 살면서 고대의 생활 풍속을 고증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 중의 하나는 어떤 젊은 두 남녀가 약혼을 했을 때 남자는 자기의 상대 여자를 위해 그 약혼녀가 신을 나막신을 스스로 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나막신을 파는 데는 적어도 석 달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힘들여 자기 약혼녀의 나막신을 파는 동안 남자의 마음이 변하면 파혼을 하게 되고 변치않는 경우에는 석 달 뒤에는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쉽게 결혼하고 서로의 문제들을 이기지 못하고 쉽게 이혼해 버리는 요즘의 세태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지혜 있는 결혼 풍습입니다.

 

 

결혼하는 여자의 두 어머니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을 당부하는 일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옛날의 시집살이는 매웠다고 합니다.

으레 시어머니는 두렵고 싫어지는 모습으로, 친정어머니는 자상하고 그리운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한 어머니가 시어머니도 되고 친정어머니도 되는 일이 흔하지 않겠습니까?

똑같은 사람인데 시어머니가 될 때는 차게 보이고 친정어머니가 될 때는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율법의 눈으로 바라보며 판단하고 허물을 들추어냅니다. 능력을 평가하고 무자비하게 정죄하며 또한 심할 때는 내어쫓아 버립니다.

친정어머니는 딸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허물을 덮어줍니다. 못난 그대로 사랑하며 상처를 싸매어 줍니다. 그것이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가진 눈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으로 손을 펴기를 바랍니다.

 

 

어록·시·묘사

 

결혼이란, 독립은 동등하고, 의존은 상호적이고, 의무는 상반되는 남녀간의 관계이다.

(L. K. 안스파허)

 

결혼은 상반의 협력관계이다. 그러한 상황하에서는 불가피하게 구심력과 원심력이 항상 작용하고 있게 마련이다. 결혼의 성공의 척도는 구심력이 어느 만큼 지배적인가에 달려있다.

(J. M. 울시)

 

행복한 결혼이 되려면 남편은 귀머거리, 아내는 장님이어야 한다.

(R. 태버너/ 지혜의 정원)

 

결혼을 신성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이며, 진정한 결혼이란 사랑으로 신성해진 결혼뿐이다.

(L.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가능한 한 빨리 결혼하는 것은 여자의 비즈니스, 가능한 한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는 것은 남자의 비즈니스이다.

(G. B. 쇼)

 

행복한 결혼을 했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질문서에 회답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결혼 생활이 실제로 행복한 사람의 숫자보다 항상 많이 나온다.

(E. 프롬/ 건전한 사회)

 

우리는 3주간 자신들을 공부하고, 3개월간 서로 사랑하고, 3년간을 싸우고, 30년간 서로 관대히 봐준다. 그러면 자녀들이 다시 시작한다.

(H. 테인/ 토마 그랭고르지의 지혜와 의견)

 

신랑을 매혹하는 것은 미가 아니라 고상함이다.

(에우리피데스/ 안드로마케)

 

결혼이란, 사람들이 사랑에 어떤 종교적 표현을 부여하는 것, 사랑을 종교적 의무로 높이는 것 외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S.A. 키르케고르/ 인생행로의 제단계)

 

사랑 없는 결혼이 있는 곳에는, 결혼 없는 사랑이 있으리라.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어느 남자이든 자기 분에 넘치는 결혼은 자신의 자유를 파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P. 매신저/ 처녀 순교자)

 

한 쌍의 결혼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는 빛의 합은 계산을 불허한다. 그것은 전영원을 통하여서만 갚아질 수 있는 무한의 빛이다.

(J.W.V. 괴테/ 친화력)

 

결혼은 열병과는 반대로 신열로 시작하여 오한으로 끝난다.

(G.C. 리히텐베르크/ 잠언)

 

결혼도 일반의 약속과 같이, 성을 달리하는 두 사람이 "나와 당신 사이에서만 자식을 얻읍시다. "라고 하는 계약이다. 이 계약을 어기는 것은 기만이며, 배신이며, 죄악이다.

(L. N. 톨스토이)

 

결혼이라는 것을 해서는 안 돼. 남자는 지쳐서 결혼하고 여자는 호기심에서 하는데, 양편이 다 실망해.

(O.F.O.W.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훌륭한 결혼이란, 서로가 각각 상대방을 자기의 고독에 대한 보호자로 임명하는 그런 결혼이다.

(R.M. 릴케/ 서간집)

 

여자는 결혼함으로써 세계의 작은 일부분을 자기의 영지로 분배받는다. 법률의 보장이 그녀를 남자들의 행패로부터 보장해 준다. 그러나 그 대신, 그녀는 남편의 신하가 되는 것이다.

(S. 보부아르/ 제 2의 성)

 

결혼은 개인을 고독으로부터 구하며, 그들에게 가정과 자식들을 주어서 공간 속에 안정시킨다. 생존의 결정적인 목적 수행이다.

(S. 보부아르/ 제 2의 성)

 

이 세상의 아무것도 홀로가 아니다. 모든 것은 신의 법칙에 의하여 하나의 영혼으로 만나고 섞인다.

(P.B. 셸리/ 사랑의 철학)

 

정숙한 여자가 남편을 고를 때는 자기 눈이 아니라 이성과 의논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연애가 수반되지 않은 결혼은, 결혼이 수반되지 않은 연애보다도 부도덕하다.

(J. 게이)

 

결혼 이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이후에는 반쯤 닫으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이혼은 간음의 선서다.

(J.F. 기샤르/ 금언집)

 

결혼에 한해서 말인데, 만약 육교(肉交)에 대한 욕망이 외모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어린애를 낳아서 어질게 기르려고 하는 애정에 의해 유발되었다면, 그러한 경우에는 이성과 일치한 결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경우에 부부의 애정이 외면뿐만 아니라 정신의 자유를 그 원인으로 하고 있었다면 더욱 좋은 일이라 하겠다

(B. 스피노자/ 윤리학)

 

결혼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되는 긴긴 대화다. 고답(高踏)할 것도 없고 심오할 것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

(피천득/ 시집가는 친구의 딸에게)

 

결혼은 애정의 구속이 아니라 애정의 보장이고,평범의 연속이 아니라 깊은 안정과 조화속에서 이루어지는 무한한 변화, 청신하고 생명적인 애정의 창조 형태일 수 있다.

(박두진/ 행복의 조건)

 

결혼 생활에서 행복을 지나치게 기대함으로써 자신을 속이지 말라. 나이팅게일은 봄의 몇 달 동안에만 지저귀고, 알을 깔 때는 대개 조용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여라.

(T. 풀러/ 신성국과 이교국)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고 이제 참다운 결혼을 하려거든 모든 과대 망상적인 결혼생활의 기대를 보류하여야 한다‥‥결코 결혼에서는 행복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덤덤하게 그저 같이 생의 험한 길을 여행하다보면 행복이란 문패도 없이 곁들여서 오는 것으로서, 자기 자신은 인식 못하나 제삼자가 가만히 귀엣말로, "당신은 행복하오."라고 귀경을 해주는 정도의 것이다.

(김은우/ 행복의 문패를 단다)

 

결혼은 자손만대의 시작이다.

(예기)

 

아, 결혼이란 평생의 기적이요, 나날이 새로워지는 자생의 경이다.

(C. 킹즐리/ 성자의 비극)

 

불행한 결혼의 대부분은, 당사자의 한 사람이 연민의 기분에서 결혼할 마음이 생겨서 한 결혼이다.

(H.M. 몽테를랑/ 여성에의 연민)

 

결혼은 하늘에서 성립되고 땅에서 완성된다.

(J. 릴리/ 어머니 봄비)

 

매우 성실한 가장들이 있다. 결혼은 그들의 교습장이다.

(우나무노/ 두 어머니)

 

결혼 생활이 평화로우면 이 세상의 낙원이요, 싸움이 잦으면 평생의 연옥이다.

(미상/ 우아가)

 

결혼이란 상대를 이해하는 극한점이다.

(팔만대장경)

 

결혼이란 구차스런 사치다.

(팔만대장경)

 

이상적인 결혼은 눈먼 여자와 귀머거리의 결혼이다.

(팔만대장경)

 

혼인은 만복의 근원이요, 생민(生民)의 비롯이다.

(자사)

 

혼인을 부귀에 치중하면 장차 가정의 화근이 되는 것이다.

(사마온공)

 

똑같은 영혼의 높이에 서 있는 사람들의 결혼은 실현성이 희박하며, 관념적인 여자와 관능적인 남자의 결혼은 파괴적인 결혼이고, 일방이나 쌍방의 부정과 동시에 관용으로 이어져 나가고 있는 결혼은 가장 흔하다.

(L. 린저/ 생의 한가운데서)

 

결혼은 적절한 치료가 된다. 결혼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따라서 사람은 결혼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

(B. 프랭클린)

 

사회의 첫 굴레는 결혼이다.

(키케로/ 의무론)

 

서둘러 결혼하면, 한가할 때 후회할지 모른다.

(W. 콘그리브/ 노총각)

 

인간의 생애의 신성한 학원은 행복한 아내와의 성스런 결혼 생활이다.

(F. 퀼즈/ 에스터 여왕의 일생)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결혼 생활을 지속시킨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금언집)

 

사랑은 때로 결혼의 열매이다.

(몰리에르/ 스가나렐)

 

결혼 생활은 모든 문화의 시작이며 정상이다. 그것은 난폭한 자를 온화하게 하고, 교양이높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온정을 증명하는 최상의 기회이다.

(J.W. 괴테/ 친화력)

 

결혼 생활은 참다운 뜻에서 연애의 시작이다.

(J.W. 괴테)

 

결혼 생활-그 험한 해원(海原)을 넘어가는 나침반은 아직 발견되어 있지 않다.

(H. 하이네)

 

꿈속에 있는 것이 연인들이고 꿈에서 깨어난 것이 부부이다.

(A. 포프)

 

결혼하는 것이 좋은가 하지 않는 것이 좋은가. 그 어느 쪽이든 너희는 후회할 것이다.

(소크라테스)

 

개남땅 강뚜꺼비/ 부눔땅 월례한테/ 장가간다 하옵시고/ 쪽닥이가 벱시들고/ 쫑지콜랑 홀제끼고/ 제비눈을 벱시들고/ 곰배판랑 뽕스리고/ 짱체다리 후리치고/ 가가호호 댕기면서/ 자랑한다 하였도다/ 원례가 하는 말이/ 깨어진 툭사리는/ 태를 매어 쓰것마는/사발같은 내 팔자야/ 아이고 아이고/ 어이할꼬

(경남지방 민요)

 

결혼은 새장과 같은 것이다. 밖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그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속에 있는 새들은 쓸데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애쓴다.

(M. E. 몽테뉴)

 

좋은 결혼이 극히 적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M. E. 몽테뉴)

 

결혼은 사랑의 시를 산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A. 부자르/ 고찰)

 

결혼 생활에서는 돈보다는 만족감이 첫째다

(J. B. P. 몰리에르)

 

결혼을 연애의 무덤이라 하나 사랑을 창조하는 첫걸음에 불과하다.

(나도향/ 내가 믿는 문구 몇 개)

 

결혼은 디저트보다 수프 쪽이 더 맛있는 정식이다.

(오마리)

 

그러자 알미트라는 또다시 물었다. 그러면 스승이여,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해 말했다. /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며, 또 영원히 함께 있으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생애를 흩어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있으리라./ 아, 그대들은 함께 있으리라, 신의 말없는 기억 속에서까지도./ 허나 그대들의 공존(共存)에는 거리를 두라, 천공(天空)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도록.//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달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는 말라./ 서로 저희의 항을 주되, 어느 한 편 항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 함께 서 있으라,/ 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멀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K. 지브란/ 예언자)

 

문 밖에서 퉁소, 피리, 징 등의 소리가 나기에 급히 나가 보니,신행 가는 행차다. 채색 그림 그린 사등롱(紗燈籠)이 여섯 쌍, 푸른 일산(日傘)이 한 쌍, 붉은 일산이 한 쌍이요, 퉁소 한 쌍,초금 한 쌍, 날나리 두 쌍, 진경 한 쌍이 있고, 가운데 푸른 가마 한 채를 교군 넷이 메고 간다. 사면에 유리를 끼워서 창을 내었고, 네모에는 색실을 드리워서 술을 달았다. 가마 한 허리에 통나무를 받쳐서 푸른 밧줄로 가로 묶고, 그 통나무 앞뒤로 다시 짧은 막대를 가로지르며 얽어매어서 그 양쪽 머리를 네 사람이 메었는데, 여덟 발자국이 꼭꼭 발맞추어 한줄로 가므로, 흔들리거나 출렁거리거나 하지 않고 그저 허공에 떠서 가는 폭이다. 그 법이 아주 묘하다.

(박지원/ 열하일기)

 

어둠은 혼인 기분으로 엄숙하고 장중하였다/ 천사가 은밀하게 춤추고 있는 것인가?/제비 같은 어떤 푸른 물체가 이따금씩/ 어두운 밤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위고/ 잠자는 보아스)

 

결혼은 그것이 최대 유혹과 최대 기회의 결합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

(G.S. 쇼/ 인간과 초인간)

 

결혼은 3할은 사랑이고, 7할은 죄의 용서이다.

(L. 미첼/뉴욕의 구상)

 

결혼의 성공은 적당한 짝을 찾기에 있는 것보다도 적당한 짝이 되는 데 있다.

(텐드우드)

 

동래땅의 원의 아들/ 밀양땅에 장가 오니/ 겉 대문에 용 그리고/ 안 대문에 범 그리고 오죽 댄가 자지 댄가/ 그 꽃에라 써린나무/ 동내 어룬 모다 놓고 열두 폭 채일 치고/금천주를 부어들고/ 은상반에 받쳐놓고/ 조그마는 첨사삐서/각반 보소/그날 왔던 새 서방님/ 실끝 같은 이내 목숨/ 떨어질까 염려하소/ 너거집에 천석하면/ 천석보고 내가 왔나/ 봉숭화꽃 같은 주절 보고 내가 왔나.

(하동지방 민요)

 

금슬은 구구 비둘기‥‥// 열두 병풍/ 첩첩 산곡인데/ 칠보 황홀히 오롯한 나의 방석// 오오 어느 나라 공주오이 까? / 다소곳 내 앞에 받들었소이다. 어른일사 원삼을 입혔는데/ 수실 단 부적 향낭이 애릿해라.// 황촉 갈고 갈아 첫닭이 우는데/ 깨알 같은 정화(精話)가 스스로워// 눈을 당기면 고즈넉히 끌려다 혀 끝에 떨어지는 이름/ 사르르 휘감기는 비단이라./ 내사 스사로 의(義) 장검을 찬 왕자// 어느새 누님 같은 아내여./쇠갈쿠리 손을 잡고 세월이 원통해 눈을 감으면// 그대 다시 살포시 찾아오는 아직 신부고녀//금슬은 구구 비둘기,

(이동주/ 혼야)

 

제가 크리스마스 때 당신을 기억해도 좋아요?/ 봄을 웅장하게 만드는 초록의 경작된 들판과는 어울리지 않는 비둘기빛 하얀 눈발이 날릴 때 말이여요./아니면 여름의 태양이 높고 강렬할 때 일까요:/ 아마 가을에는 똥금으로 꾸며진 주홍빛 울타리 위에/ 늦은 장미들이 만발할 때 일꺼여요./ 제단에 신부와 신랑이 무릎을 꿇었을 때/ 거거서 서로는 행복과 슬픔을 통해 어떤 운명이 닥쳐오더라도/사랑으로 영원히 가까이하고:/ 항상 이 반지로 굳어진 결합을 축복하는 의지와 힘을 구하겠다고/ 약속했지오.// 나의 마음은 값진 보석처럼 당신을 지닐 것입니다. / 영원히 당신을 기억하기 위해서-나의 사랑.

(엘레노어 오토/ 결혼 서약)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장가를 들 때는 어찌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여쭈어야지./ 부모에게 이미 아뢴 다음 얻은 처/ 어찌하여 멋대로 버려 두는가,

(시경)

 

결혼은 촛불꽃 앞에서 맹세한 평생 고락/시집이 무어/ 설워 눈물을 흘리는다. / 아내는 그 지아비를 따라가야 하나니.

(고양촌녀/ 시집가는 딸에게)

 

신부가 시집을 때 시누이는 겨우 상을 붙들만했다. 내가 쫓겨나는 오늘엔 시누인 벌써 나만큼 자랐네. 머리를 돌려 시누이에게 말한다. 부디 오라 같은 사람에겐 시집가지 말라고.

(고락부)

 

시집온 지 사흘 만에 부엌에 들어가 손 씻고 음식을 장만한다. 시어머니 식성을 모르는 신부는 먼저 시누이를 시켜 맛을 보이네,

(왕건/ 新嫁詩)

 

처녀에 우로파는 결혼할 것이다/ 자유로운 자유의 수호신과/그들은 누워 서로 껴안고/ 첫 키스의 쾌락을 맛볼 것이다// 거기에서는 신부의 축복 따위 없어도/ 결혼의 적합성에 문제가 없을 것이니/ 신랑 신부에게 그리고/ 그들 미래의 자식들에게 축하있을진저!// 결혼의 축가 그것이 나의 노래다/더 좋은 노래 새로운 노래다/ 내 마음에 떠오른다/ 지고의 신성한 별이

(하이네/ 독일 겨울이야기 · 1)

 

아 조국이여 언제/푸른 바다의 눈과 눈모자를 쓴 그대와/ 혼례식을 올릴 수 있을까.

(네루다/ 아 언제 아 언제 언제)

 

나와 나의 청순한 아내/ 여름날 순백한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유행품으로 화려한/ 상품의 쇼윈도를 바라보며 걸었다.

(박인환/ 세 사람의 가족)

 

누구의 마음 위해/ 신부 같은 얼굴인가// 곱게만 익어 가는 / 혼야 같은 이야긴데

(김해성/ 과실 밭)

 

오 새벽 빛보다 한결 좋은 밤이여/ 사랑하는 이들을 서로 보이게 하고/ 기쁨의 결혼으로어우르게 하는/ 오 그렇게 좋은 밤이여!

(성 요한/ 영혼의 어두운 밤)

 

언제나 그대에게-내 거문고는 무엇을 노래하려는가?/ 사랑의 성가와 결혼의 성가를!

(빅톨 위고/ 다시 또 그대에게)

 

금남로를 뒤덮은 최루가스에/ 공연히 눈물이 나서 자꾸만 손수건을 꺼내고/ 독재타도 민주쟁취의 함성이 거리를 흔드는 날/ 새로 출발하는 이모의 결혼식이 있었지오/축복받지 못한 결혼이라/슬픈 이모에게/ 최루가스는 맘 놓고 울으라는 배려였지오// 알리설리 키워 금옥같이 고이 길러/꽃으로 키워온 막내 딸을/ 운동권 신랑에게 막무가네 빼앗긴/ 할머니는 자리에 눕고/ 아무도 와보지 않은 쓸쓸한 결혼을/ 자욱한 최루가스 속에서 마치니//가난은 힘들지 않지만/ 헤어지는 것은 고통이라고/ 울며불며 애원하여 시집가는 날/모두 다 돌아앉은 친정쪽을 바라보며/ 혼자서 떠나던 날/ 외로운 세상을 눈물로 새기셨지오//딸이 무슨 소용있어/ 어려운 공부시켜 제 앞가림 해놓으니/ 훌쩍 떠나 출가외인인걸/ 두번이나 징역살고/ 무슨 재주있어 각시먹여 살리나/ 제놈이 설친다고 하루아침 세상 바뀔까// 머리질끈 동여매고 이불쓰고 누워서/한정없이 탓하는 할머니 앞에/두 손 모아 인사올리고 떠나시던 날/ 잘 살아라 말씀대신/다시는 내 집 앞에 얼씬 말라는/ 매정한 말씀에 울며불며 가셨지오// 사랑이 무엇인지/사랑이 뛰어넘을 수 있는 장벽이/ 무엇무엇 인지는 모르지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는 그 한 가지로/ 의지삼고 버티어 행복해지세요/ 그래서 오늘 결혼을/ 아름답게 지켜가세요

(박용주/ 이모의 결혼식)

 

하늘거리는 흰 너울 쓰고/ 수줍은 발걸음 내딛는 오늘은 기쁜 날// 설레임으로 시작될 새로운 출발은/ 화려한 장미꽃으로 살아가소서/ 석류처럼 선명한 빛깔로/ 치자향같이 향기롭게/ 늘 기쁨으로 사소서// 흑/ 슬픈 날이 있거든/ 작고 가냘픈 안개꽃도 만나 보소서/아득한 그리움처럼 슬픔처럼/ 애달프게 피어란 작은 꽃망울을 보며/ 눈물은 가슴에만 고이게 하소서// 살아가는 많은 날들 중에 하루쯤은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그리워하며 사소서/ 새벽안개도 만나보고/추녀 끝에 시름으로 떨어지는 벗소리도 들어보고/ 가끔은 밤하늘의 별빛도 헤아리며 살아가소서// 그리고 박꽃같이 소박하게/ 헌솜같이 포근하고 정겹게 살아가소서// 부끄러움으로 두 뺨을 물들이고/살포시 고개 숙인 아름다운 신부여/ 떨리는 발걸음 사뿐히 걸으소서// 오늘같이 기쁜 날에는/ 활짝 핀 모란처럼/ 화사하게 웃으소서

(박용주/ 오늘같이 기쁜 날)

 

보아라/ 나무들은 이별의 준비로/ 더욱 사랑하고만 있어/ 한 나무 안에서/ 잎들과 가지들이/ 혼인하고 있어/ 언제나 생각에 잠긴걸 보고/ 이들이 사랑하는 줄/ 나는 알았지.

(김남조/ 나무들 · 4)

 

사랑의 노래에 노래되고 있는 것같이, 하나님, 어느 날엔가 나도/약혼한 소녀를 여름날 숲의 은빛으로 빛나는 이끼 위의/ 새하얀 결혼식에 인도할 수 있게 될는지오? / 아이들은 아주 커다란 꽃다발 아래서 휘청거리며/ 예복을 입은 할아버지들 뒤를 졸졸 따라가겠지 오./모두의 이마는 긴장되어 있어도 더할 나위없는 온화함이 주위에 감돌고/ 나이든 부인들은 자기도 모르게/ 긴 금목걸이를 장식하고 있을 것입니다. / 그리고 우거진 느릅나무 그늘에서는 이 축복받은 날을 축하하여/ 십자매가 마음의 감동을 그대로 아름답게 계속해서 노래할 것입니다. / 나는 시인이 아니라 소박한 나무 조각가의 심경으로 살겠습니다. / 나는 향내 나는 연분홍색 너도밤나무로 조각하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아내는 왕벌이 욍욍거리며 날아오는 창가에 앉아/ 나팔꽃의 푸른 반사를 받으면서/ 고요히 고요히 뜨개질을 하게 될 것입니다. / 지금의 나는 글을 쓴다고 하는 귀찮은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 하지만 결혼한다면, 하나님이여 나의 생활 전부를 당신에게 바치겠습니다.

(잠/ 14편의 기도 노래-14. 마지막 소원을 위한 기도)

 

 

설 교 노 트

 

깨끗한 결혼

레21:10-15

 

서론

결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복 중에서 구속받은 것 외에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셔서 결혼하게 하시고 새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결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제사장들은 더욱 깨끗한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깨끗한 남녀로 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그녀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보통제사장들보다 깨끗한 결혼을 해야 된다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즉, 기생, 과부, 이혼녀,부정한 여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뿐만 아니고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신성하기 때문에 정결한 사람들끼리 만나야 합니다. 여기서 영적으로 교훈을 얻어 대제사장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본다면 그의 신부된 오늘의 성도들은

더욱 깨끗하게 처신하여 마지막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이 땅에서나 내세에서 육적 결혼과 신령한 결혼은 육의 정조를 지켜야 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2. 흠 없는 자와 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과부나 이혼된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라고 하였습니다. 처녀는 남자와 성적 관계로부터 엄격하게 분리된 순결한 여자를 말합니다. 당시의 대제사장의 결혼은 반드시 순결한 처녀야만 되었습니다. 이는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려면 순결한 신부격인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고후11:2, 엡5:27). 오늘의 성도들의 결혼도 흠 없는 깨끗한 결혼이 되어야 하나님의 복을 더욱 많이 받는 것입니다.

 

3. 거룩한 후손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15절에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지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요구를 거역하고 자기 고집대로 더러운 결혼을 하면 그 후손의 피까지 더럽히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그 뿐만은 아니고 대제사장직까지도 후손을 얻기 위해서는 깨끗한 결혼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기적이고 편협함으로 결혼을 한다거나 방탕하여 불륜의 씨를 남긴다면 그 후손은 거룩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입니다. 그러므로 깨끗한 결혼을 하여 깨끗한 후손을 얻어 자손 만대에 이르기까지 행복한 생활이 계속되어야 하겠습니다.

 

 

결혼의 중요성

창24:1-14

 

서론

자녀의 결혼은 부로의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그 이유는 결혼을 잘못하면 가정이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부부는 가정 구성의 기본 요소이고, 가정 축복의 근원이며, 가정 화목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중요한 것입니다.

 

1. 결혼은 서로의 만남입니다.

본문 3-4절에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은 이성간의 만남과 동시에 남남이 만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난다고 해도 매우 어려운 것이며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번 잘못 만나면 일생을 두고 후회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합은 아내를 잘 얻지 못하여 가문의 멸망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잘 해야 하기 때문에 결혼할 때에 피차가 잘 알아보고 해야 합니다.

 

2. 일생을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은 또 하고 또 하는 것이 아니고 한 번하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결혼은 아이들의 장난이 아닌 것입니다. 고래서 일생을 같이해야 할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신앙관도 같아야 하고 성격도 맞아야 하며 여러모로 비슷해야 합니다. 특히 신앙관이 같지 아니하면 이는 비극의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아합 왕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결국은 가정 전체가 망하고 마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믿는 성도들은불신자와 결혼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는 법입니다. 그래서 우선 결혼 조건으로 물질, 학력, 직업이 중요하지 아니하고 신앙이 더 중요하며 그 외에 다른 조건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족속의 딸을 택하지 말고 하나님 섬기는 같은 동족을 택하라고 하였습니다.

 

3. 결혼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12-14절에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결혼은 기도를 많이 하고 해야 합니다. 보통 사업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엘리에셀은 주인의 아들의 결혼을 위해서도 맏은 기도를 하고 이삭의 신부감을 골랐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사람을 맞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이삭의 아내될 신부감을 찾아냈습니다.

 

결론

결혼은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을 죄우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해서도 안 될 것이며 삼가 조심하여 신중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만복의 근원

마19:4-6, 창2:21-24

 

서론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홀로 있어 돕는 배필이 없이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선하지 못함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셔서 여자를 만드시고 이 여자를 아담의 배필로 주셨습니다. 결혼은 인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남 일녀를 창조하시고 부부로 짝지어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던 것입니다.

 

1. 결혼의 신성과 축복

창1:27-28에 "하나님의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 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만물의 영장권을 주신 말씀인 것입니다.

말2:15에 "여호와 하나님은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하여 하나만 지으셨다"고 말씀하셨고, 요2:1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 가셔서 신성한 결혼에 축복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시조 아담도 배우자가 필요하였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존재자로 육체와 영적 생활에 가깝게 돕는 조력자가 없이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시조 아담의 배우자가 없을 때에 생활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선치 못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창2:18).

 

2. 결혼자들에게 대한 권면(엡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에 구주시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1)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이유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골3:18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복종해야 합니까?

① 주께 하듯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

엡5:22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②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할 것

엡5:24에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범사에 현처 사라와 같이 복종할 것

벧전3:6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노니라"고 하였습니다.

(2)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이유

①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데는 자기 몸과 같이 아내를 사랑할 것

엡5:28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②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함과 같이 사랑할 것

엡5:25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욥8:5-8에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결혼 생활을 하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생활을 하므로 많은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가정 행복의 비결

시127:1-5, 엡5:22-32

 

서론

가정의 행복이란 가정에 대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마음에 만족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성립하는 데 관하여 몇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하나님 제일주의의 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가정을 찾으셔서 건강, 장수, 부귀, 자손 등 모든 복을 주실 것을 시편 본문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 1-2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하였고,3절에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라고 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정들이 받을 복을 보여줍니다.

 

2. 아내와 남편이 각자의 책임을 다함에 있습니다.

(1)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할 것

엡5:22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엡5:24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만고의 현처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과 같이 남편에게 복종하면 아브라함의 가정과 같이 복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2)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돌아보고 사랑할 것

엡5:28에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니라"고 하였고, 엡5:25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아내를사랑하는 것이 식어질 때에는 가정과 본인들이 불행해 집니다. 그러므로 흑발이 백발될 때까지 계속해야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3. 신뢰와 용서가 있어야 됩니다.

결혼이 참되고 영원한 행복이 되려면 남편과 아내는 서로 문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서로 신뢰함으로 인생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 생활에 없지 못할 것은 용서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사랑의 보자기라고 하면 용서는 허물을 씻어주는 물입니다. 사람의 옷이 더러울 때에 물로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과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결점과 허물과 혹은 죄는 용서하는 물로 씻어서 없이 함으로 화평한 가정 곧 행복된 가정을 만들도록 남편과 아내는 다같이 노력해야 합니다.

 

결론

부부 생활에서 이기주의는 금물입니다. 사랑은 주며 고생하며 인내하는 생활입니다. 행복은 서로 상대방의 행복을 구할 때에야 얻어지게 되고 자기만 위주할 때에는 얻어지지 않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반쪽이 아니라 전부요, 남편도 아내의 반쪽이 아니라 전부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남자와 여성의 이성지결합(二姓之結合)으로여만 완성이 됩니다. 따라서 아내가 남편을 닮는 것이 아내가 할 일도 아니요, 남자가 못되었다고 열등감을 가져도 아니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상호 다른 존재입니다.

그러나 완전하고 만족하고 원만한 삶은 상호 다른 이자응합(異者融合)을 통해서만 얻어집니다. 그리고 가정 행복은 항구적 사랑과 인내로 얻게 됩니다.

 

 

모범적 약혼자

창2:18-25, 마1:18-20

 

서론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시고 배필로 정하신 목적이 있는데, 인간은 본래 혼자서 살도록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 적당히 도와줄 자 없이는 사람은 혼자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남자의 배필, 여자는 다만 생식만의 목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고 남자를 돕기 위해서, 즉 남성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지으신 것입니다.

 

1. 약혼자의 선택은 하나님

갈1:15에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라고 하신 말씀은 이 약혼은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중에 하나님의 섭리로 모태로부터 배우자로 정하셨다가 때와 경륜이 차매 하나님에서 부르셔서 약혼하게 하시는 결과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약혼 약속의 근본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으로 약속은 그 본질상 약속이 있은 다음에는 한편이나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폐하거나 더하거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약혼의 목적은 봉사에 있음

약혼의 목적은 결혼하여 서로 도울 목적입니다. 창2:18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약혼식 혹은 정혼식은 남편과 아내가 되는 곧 남자 외짝과 여자 외짝이 서로 짝 곧 배필을맺기로 언약하는 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은 본래 혼자 살도록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가 둘 다 도와줄 자 없이 완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약혼으로 이루어지는 친근

마19:5에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1)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은 친근의 오묘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효부가 불여악처라는 말은 부부일신이 가깝다는 뜻입니다.

(2)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뜻은 사랑의 극치라는 뜻입니다.

(3)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은 희락의 극치입니다. 부부 사랑에 일어나는 즐거움은 바위틈에서 솟는 샘물과 같습니다. 퍼내면 퍼낼수록 솟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도 이 즐거움의 샘을 막을 수 얼습니다. 죽음 외에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신자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말씀하기를 너희의 즐거움을 빼앗을 사람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요16:22). 부부간의 기쁨도 빼앗을 자자 없는 것입니다.

 

결론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이요, 어진 남편은 부인의 면류관이 됩니다. 그러므로 양부현처가 모인 가정은 유복한 가정 입니다. 현처양부는 모양에 있지 않고 그 신앙과 덕행에 있는 것입니다. 약혼할 자들을 외모에 속지 말고 무형의 신덕을 조건부로 할 것입니다(엡5

:24-25).

화 목

성 경 활 용

1. 누구와 화목해야 하나?

(1) 하나님과

(고후5:20)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 성도간에

(살전5: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3) 형제와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4) 원수와

(시120:6)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와 함께 오래 거하였도다

 

2. 화목해야 할 이유

(1) 주와 동행하니

(고후5:1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자기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 예수님이 화평하시니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3) 직책을 주셨으니

(고후5:18) 저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3. 어떻게 화목할 수 있나?

(1) 온유함으로

(시37:ll)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2) 십자가의 피로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3) 말씀으로

(시85:8)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대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4) 소금을 두고

(막9:50)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관련원어풀이

1. hw:l]ev' 솰르와-

(1) 번영, 안락, 평온.

(시122:7, 잠17:1)

(2) 부주의, 불경건.

(잠1:32)

 

2. @k's; 사-칸

(1) 교제하다, 친숙해지다.

(왕상1:2, 사22:15)

(2) 친절을 베풀다.

(욥15:3, 22:2)

(3) 익숙해지다.

(민22:30)

 

3. eijrhvnh 에이레-네

(1) 평화, 화평, 국가적인 평온.

(행9:31, 12:20)

(2) 개인들 사이에 화평, 조화, 일치.

(마10:34, 롬14:17)

(3) 항상 만족된 상태.

(롬1:7, 빌4:7)

설교예화자료

가정 화목

 

어느 동네에 두 집이 이웃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었고, 한 집은 젊은 부부만 사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가족을 이룬 가정은 항상 화목하여 웃음꽃이 피었는데, 부부만 사는 가정은 항상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두 부부는 이웃집의 화목한 모습을 보고 크나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둘만 사는 데도 매일 싸워야 하고 이웃집은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 데도 저토록 화목한 것일까? 그래서 젊은 부부는 어느날 술 한 병을 사들고 이웃집을 찾아갔습니다.술을 나누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댁의 가정은 대가족이신데도 웃음이 떠날 줄 모르고 우리는 둘이 사는 데도 매일 싸움만하는데, 선생님 댁이 그렇게 화목하게 지내시는 비결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이웃집 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아, 네! 그것은 당신네 두 분은 모두 훌륭하시고 우리 가족은 모두 바보들이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들은 젊은 부부는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 그러자 주인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내가 출근하다가 물을 엎질렀습니다. 그때 나는 내 아내에게 내 부주의로 물을 엎질러 미안하다고 하며 용서를 청했지오. 그랬더니 내 아내는 '아니오' 하면서 생각이 모자라 물그릇을 그곳에 놓아두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며 오히려 나에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저의 어머니께서 '아니다,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그것을 보고도 그대로 두었으니 내가 잘못이다. ' 하셨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바보가 되려고 하니 싸움을 할 수가 없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후 그 젊은 부부는 이웃집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화목하게 살았습니다.

 

 

낚시질에서 밀려난 노동 쟁의

 

이 이야기는 "낚시 바늘에 의해 타협전 노동쟁의"라고 제목을 붙일 수도 있습니다. 뉴저지의 브릿지튼에서 뉴저지 통조림 제조회사의 공장 앞에 피켓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의 회계원인 허버트 스몰리(Herbert Smalley)가 정문 밖으로 나와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들 무슨 소용 있겠소? 집에 가서 낚시 도구나 챙겨 가지고 함께 낚시질이나 갑시다. "

낚시 이야기가 나오자 피켓을 든 몇몇 사람이 그에게 씽긋 웃어 보이고, 스무 명이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낚시 도구를 가져왔고, 회계원은 그의 큰 모터 보트에 그들을 태우고 낚시질을 하러 갔습니다. 그때 큰 물고기들이 물렸고 그것으로 싸움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 했습니다. 낚시질이 잘 되자 사람들의 마음이 즐거워졌습니다. 그들은 150여 마리의 민어와 잔챙이 등 갖가지 물고기들을 낚았습니다. 그들은 낚시질을 하며 물고기 얘기를 하고, 물고기 얘기 중에 그들은 파업의 어려운 문제들을 타협하였습니다.

그후 기슭에 돌아와, 낚시질하던 파업노동자들은 낚싯대와 릴을 밀쳐놓고 고기를 재면서 다른 파업 노동자들에게 그들이 타협한 교섭 조건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음날 사람들은 일하러 나갔습니다.

 

 

사이좋은 형제

 

옛날에 사이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은 길을 가다가 풀섶에 금반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하여 두 형제는 금반지를 주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둘은 각각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반지가 말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들이는 서로 양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형은 동생에게 가져가라고 하고 동생은 형님 것이니 형님이 가져가셔야 한다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다가 들이는 한 가지 해결책을 찾아냈는데, 그것은 금반지를 처음 주웠던 그 자리에 다시 갖다 놓는 것이었습니다. 둘은 그 옛날 반지가 놓여 있던 그 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엔 또 한개의 금반지가 거짓말처럼 떨어져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화목한 형제에게 내린 신의 선물이었습니다.

 

 

설 교 노 트

 

화목제 예물

레3:1-17

 

서론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화목제를 드리는데, 화목제는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함을 받은 자가 너무나도 기뻐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죄사함받은 것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감사의 표시는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빈부귀천 차별 없이 할 수 있습니다.

 

1. 소를 드릴 수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알 것은 제물이 수컷이나 암컷을 구별하지 아니하고 드리되 단 그 예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아서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 기름과 콩팥과 여러가지 내장을 불사르라 하였습니다. 화목제는 피흘리는 희생 제사이고 감사와 찬송의 제사이며 제물은 신성한 것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평안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특색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제는 제물에 관심을 두는 것보다는 하나님께로 기울어 져야 합니다. 그래서 소를 드리되 수컷이나 암컷이나 따지지 않고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본문 6-11절에 "만일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화목제의 희생이 양이면"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치 면으로 보아서는 양이 소보다는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의 양이 많고 적음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좋고 나쁜 것을 따지지 않고, 드리는 자의 신앙과 경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기자는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네게 무엇이 유익하는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 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밤을 뿐 아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사1:11-13)"고 하였습니다. 양이라도 안수하고 잡아 그 피를 뿌리고 불사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하는 심정으로 화목제, 즉 감사제를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3. 염소를 드릴 수 있습니다.

본문 12-17절에 "만일 예물이 염소이면"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치 면으로 본다면 염소는 양보다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차별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무조건 그것을 끌어다가 여호와 앞에서 잡아 피를 뿌리고 모든 것을 불사르라고 하였습니다. 제물을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드리는 과정이 주께서 요구하시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흠 없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제물 위에 안수하고 잡아서 피를 여호와께 드리고 모든 것을 불사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려면 자원해서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대로 드리면 됩니다.

 

결론

화목제는 감사제입니다. 구원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뜻에서 평생토록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욥22:21

 

서론

본문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복을 받아 누리기를 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서는 축복을 받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과 화목하여야 평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상태는 어떠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화목한 사이였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맨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특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기 때문에 최고의 걸작품이요, 사람을 일컬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범죄하기 전에 하나님과 사귀며 살던 에덴동산의 생활 모습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각종 실과나무들이며, 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사면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사람에게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흐뭇하고 정겨운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범죄하기 전의 인간은 이처럼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2. 범죄 후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담 부부는 아무런 죄도 없는 상태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의 꾀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에덴에서 추방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하나님이 계신 에덴동산에 범죄한 인간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사야서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범죄 결과로 생긴 죄악의 담이 결국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격리시켜서 원수가 되게 만든 것입니다.

 

3.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인간이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회복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0-11절에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셨으니 그 예수를 구속주로 믿는 믿음이 곧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시므로 범죄하기 전의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다시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죄 없다 하심을 입어서 하나님과 화친하게 되었습니다.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힘

창33:3

 

서론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여서 장자의 명분과 축복권을 가로챈 야곱은 형의 보복이 무서워서 외삼촌 라반의 집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은 얍복강가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고 특히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전진하여 귀향하다가 마주오고 있는 형 에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두 형제의 만남이 어떠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아주 낮아진 야곱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자기 형 에서가400인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아내와 자녀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정도의 순서대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포심을 물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남자답게 앞장서서 에서의 긍휼을 청하였습니다.

야곱이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어 형에게 절한 것은 아주 겸손한 자세로써 형 에서의 존위를 인정한 것입니다.

야곱이 과거를 회상하여 형의 축복을 가로챈 일이나, 그로 인한 형의 분노를 연상하고 다시 만나는 자리에서 최대의 겸손을 표시하여 최고의 존경으로 형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과연 아주 낮은 곳까지 내려간 야곱의 모습입니다.

 

2. 감격적인 형제의 상봉

형 에서는 야곱에 대해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감정을 가지고아우 야곱을 대할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의 사자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철저한 사과에 대하여 오히려 옛 감정은 사라지고 혈육에 대한 정이 용솟음쳤습니다. 그래서 달려와 야곱을 맞아서 부등켜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더불어 입맞추고 피차 울었으니 참으로 감격적인 형제의 상봉인 것입니다.

아무리 형제 사이에 피차 이해 관계가 얽혀있다고 하여도 결국 핏줄은 변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한 아비의 자식이요, 형제였습니다. 야곱과 에서 사이에 20년간 맺혔던 원망이나 감정이 일시에 녹아지고 형제의 우애를 회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최대한의 보상을 한 야곱

형제간에 인사가 교환된 다음 에서는 "그 모 떼가 무슨 까닭이냐"고 물었습니다. 야곱은 많은 양 무리를 선물로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 물음에 대하여 야곱은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하나이다"라고 하였고, 에서는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고 사양하였습니다. 이에 야곱은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뵌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으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라‥‥ 청컨대 내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강권하여 형 에서로 하여금 받게 하였습니다.

 

결론

많은 허물이 있는 야곱이었지만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바랄 때 축복을 받은 것과 같이 매사에 신앙을 위주로 하면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형통케 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더불어 화목한 생활을 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회 개

성 경 활 용

1. 회개의 문자적 의의

(1) 스스로 뉘우침

(마27:3)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2) 돌이키는 것

(행3:19)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2. 회개로 인도하는 것

(1) 하나님의 인자

(롬2:4)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2)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벧후3:9)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3. 회개에 대한 성도의 자세

(1) 자기의 소위를 살펴야 한다.

(학1: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2) 깨달아야 한다.

(신32:29)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3)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해야 한다.

(시34: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4)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해야 한다.

(렘7: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5)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

(호6:1)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6)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막1:15)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7) 죄사함을 얻어야 한다.

(행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8)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해야 한다.

(암4:12)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9)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한다.

(욜 1:14)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4. 회개의 결과

(1) 하늘에서 듣고 땅을 고쳐 주신다.

(대하7:14)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2) 구원받는다.

(사59:20)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3) 마음과 영이 새롭게 된다.

(겔18:31)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4) 생명을 얻는다.

(행11:18)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5. 회개케 하시는 분

(1) 하나님

(딤후2:25)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 그리스도

(행5: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높이셨느니라

관련원어풀이

1. bWv 슈-브

(1) 뒤돌아보다, 돌아서다.

(창37:29, 겔35:7)

(2) 돌이키다, 회복되다.

(신28:31, 삼상7:14)

(3) 돌아서다, 전환하다.

(사49:5, 렘50:19)

(4) 전환시키다, 돌이키다.

(겔14'6, 18:30)

(5) 되돌리다.

(출10:8)

(6) 회복되다.

(창42:28)

 

2. metavnoia 메타노이아

(1) 사상이나 감정의 형태의 변화, 회개.

(마3:8, 행20:21)

(2) 실제적인 개조, 변형.

(눅15:7)

(3) 행한 것에 대한 회개.

(히12:17)

설교예화자료

참다운 이득

 

몇 사람의 랍비가 악인의 무리와 마주쳤습니다. 이 악인들은 사람들을 뼈 속까지 갉아먹을 것 같은 인간들이었습니다.

그만큼 교활하고, 그만큼 잔인한 인간들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한 사람의 랍비는 이러한 인간들은 물에 빠져서 모두 죽어 버렸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랍비 중에서 가장 위대한 랍비는,

"아니야, 유태인으로서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오. 아무리 이 인간들이 죽어 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러한 일을 기도해서는 안 되오.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악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바라야하오."

악인을 벌하는 것은 이쪽에 있어서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을 회개시키지 않는 한 손해가 될 뿐입니다

 

 

성화 '세상의 빛'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문"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예술가 홀맨 헌터라고 하는 분이 성경 말씀을 기초로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성화에 보면 예수님께서 굳게 닫힌 문 밖에서 한편에는 등불을 들고 한편 손으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의 문 밖에서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으로 표현되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를 기억하시겠지오. 목자가 양을 찾습니다. 여인이 잃은 돈을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떤 때는 양심을 통하여 어떤 때는 이성을 통하여서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 슬픔, 기쁨 등, 때로는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인간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의 바깥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문 밖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열어야 하며 다른 이가 열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마음 문의 주인은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주님이 문 두드리시는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어서 주님께서 마음속에 들어오시어 자신과 같이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나 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멸망의 책임도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진젠돌프의 회심

 

진젠돌프가 젊었을 때, 어떤 박물관에 들어가서 여러 미술품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한편에 가보니까 그때의 유명한 화가 스턴벅(Sternburg)이라고 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습을 그린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그림을 유심히 볼 때에 은혜를 받아서 주님께서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그처럼 고생을 당했다고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혈을 흘리셨다고 하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서, 그 그림 앞에 조용히 섰는 동안에 주님께서 은연한 가운데 "나는 너를 위해서 내 몸을 주었건마는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느냐? "하는 음성이 그 심령 속에 들렸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자기의 몸을 바치고 자기의 가진 것 전부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 감격과 그 감사한 마음 가운데서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찾길 더 원하신다

 

어느 일요일 저녁 무디(D.L. Moody)는 시카고에 있는 콜롬비아 박람회장 근처의 한 커다란 서커스 천막 안에서 "인자가 길 잃은 사랑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찾아올 것이다. "라는 제목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한 경관이 군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던 어린아이를 기차역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무디 선생은 아이를 팔에 안은 후 길 잃은 아이를 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는 아들이 발견되어지는 것보다 발견하기를 더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해 동안 그분은 죄인인 우리들을 따라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를 따라 다니고 계십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얼굴이 창백해진 한 남자가 길을 헤치며 역으로 들어섰습니다. 소년은 그를 보자 달려가 그의 넓은 가슴에 안겼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우렁찬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디 선생이 소리쳤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이 오늘 그분께 달려가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를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

 

 

통회의 눈물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도록 하였습니다. 맨 처음 천사는 금덩어리를 찾다가 "아니야. 아니야, 이런 건 우리 하나님께서도 충분히 가지고 있어!"하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한 아름의 다이아몬드를 움켜쥐었으나 한 번 보고는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후 천사는 하나님께 바치는 귀중한 물건을 찾아 다니느니라고 세상을 두루 살폈지만 안타깝게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죄인의 부르짖음이 들렸습니다. 발끝을 들어올리고 살그머니 어떤 사람이 꿇어앉아 있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죄로부터 구해주시고 사랑해 주신 하나님께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옳지! 이제야 찾았구나!" 천사는 금으로 만든 성작에다 눈물 방울을 담아 하늘로 가지고 왔습니다. 천사는 이 땅에서 귀한 보석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사형수를 회개시킨 눈

 

100여년 전 불란서 교도소 사목을 담당하고 있던 한 젊은 보좌신부는 한 사형수를 회개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형수는 찾아갈 때마다 외면하고 면회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냐는 이왕 악인이니 악인으로 죽는 것이 당연하다. "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래도 보좌신부는 성체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난 후 교도소를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또 찾아갔습니다. 역시 사형수는 면회를 거절했습니다. 이때 보좌신부는 본당신부가 자기의 뒤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큰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왜 아무 대답이 없습니까? 한 어린 양의 영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가 죄 중에그냥 죽도록 버려둘 작정이십니까? " 보좌신부는 성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였습니다. 이때 보좌신부는 문득 자기 눈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그 사형수가 회개한다면 제 눈이 안보여도 좋습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구해주시기만 한다면, 저는 그가 평생 지은 죄를 제가 보속하는 의미에서 장님이 되겠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교도소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신부님, 그 사형수가 신부님을 뵙자고 합니다. " 그 소리를 들은 보좌신부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보좌신부는 눈이 안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비틀거리는 보좌신부의 팔을 본당신부와 교도관이 부축하여 교도소까지 갔습니다. 사형수는 눈먼 젊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통회하였습니다.

 

 

어록·시·묘사

 

자신을 하늘에 고백하라. 지난 일을 회개하라. 닥쳐올 것을 피하라.

(W. 셰익스피어/ 햄릿)

 

회개는 언제나 뒤떨어져 온다.

(C. 로빈슨/ 한 줌의 환희)

 

회오(悔崙)와 바른 행실은 하느님의 노여움에서 몸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

(탈무드)

 

회개의 순간은 인지의 순간일 뿐 아니라 사람이 그의 과거를 변혁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0. F.0. W. 와일드/ 옥중기)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 사람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

(A. F. 프레보)

 

범죄에 대해서 회오하지 않는 인간은 완전히 구원받지 못한다.

(E.G.E.L.B. 리턴/ 리온스의 부인)

 

사람은 자기가 잘못이었다고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오늘의 자기는 언제나 자기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A. 포우프/ 다제다상)

 

만성적인 후회는 정신적으로 가장 해롭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회개하라. 그리고 고칠 수 있는 일이면 고치고 다음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라. 잘못한 일에 언제까지 후회만 하고 있지 말라.쓰레기 속에 뒹굴어서 사람이 깨끗해질 수 없는 노릇이다.

(A.L. 헉슬리/ 멋진 신세계)

 

과오의 고백은 무죄 다음 가는 일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잠언집)

 

마음속으로 후회를 해도 하나님의 용서를 얻지 못할 죄가 이 세상에 있지 않으며, 또 있을 리가 없다.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버림받은 사람이 그만큼 큰 죄를 범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F. M. 도스토예프스키)

 

참회는 새로운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L. 비트겐슈타인/ 반철학적 단장)

 

이승에서 뉘우치고 저승에서 뉘우치면, 악을 행한 사람은 두 곳에서 뉘우친다. "나는 악을 행했다"는 생각에 번민하고, 죄를 받아 더욱 크게 괴로워한다.

(법구경)

 

고백된 과오는 그 사람의 새로운 미덕이 된다.

(J.S. 노울즈/ 사랑의 추적)

 

고백한 죄의 반은 용서받은 것이다. <*참회하면 그만큼 양심의 가책이 준다는 뜻>

(영국 속담)

 

자백하라, 그리고 교수형에 처해져라.

(영국 속담)

 

참회하는 자에게, 그 전의 죄과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지 말라.

(탈무드)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남들과 자기 자신에게 감추는 사람들이다. 자기들의 잘못을 완전히 깨닫고 그것들을 고백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진실한 사람이다.

(F. 라 로시푸코/ 격언집)

 

내 영혼의 값으로 성찬을 받노라. 나는 성령을 두고 가르쳤고 설교해 왔도다. 이에 거역하는 일이 없었고,또 이에 내 의견을 완강히 내세운 일도 없었느니라.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려 하고 있는 지금일지라도 성 로마 교회의 심판을 받겠노라-최후의 성찬을 받고.

(T. 아퀴나스)

 

털어놓는 고백은 영혼에 좋다.

(H.G. 본/ 격언 수첩)

 

고백이 과오를 치료하는 약이 되소서.

(키케로/ 옥타비우스에게)

 

죄를 짓고 개심하는 자는 신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과실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과실을 회개하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말라.

(J. J. 루소)

 

내 옛 군복대로 죽게 하소서. 신이여, 나를 영원히 용서하시고 나를 어느 다른 곳에 있게하소서. <*독립전쟁시의 용사였던 그는 도중에 돈을 받고 영국군에게 정보를 팔아 조국을 배신했다. 그는 영국에서 숨을 거두면서 자기의 넋을 미국에도 속하지 않고 영국에도 속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A. 베네딕트)

 

고백은 회개의 첫 단계다.

(E. 게이튼/ 돈 키호테의 즐거운 주석)

 

너희가 죽기 전에 참회하라.

(J. C.F. 실러/ 영지의 책)

 

어느 때,나는 농사꾼의 초가집 작은 창을 들여다본 일이 있었다. 그때 마침, 한 윤락녀가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뼈저린 회한의 눈물과 신성한 기도는 문학보다도 훨씬 강하게 나를 움직였다.

(L. N. 톨스토이)

 

다른 사람에게 참회해 버리면 당자는 자기의 죄를 잊지만, 대개의 상대되는 사람은 그것을 안 잊는다.

(F.W.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세상을 뒤덮는 공로도 "뽑낼 긍(矜)"자 하나를 못 당하고, 하늘에 가득 찬 허물도 "뉘우칠 회(悔)"자 하나를 못 당한다.

(채근담)

 

착한 사람의 마음은 속죄의 여지가 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나의 가장 심각한 참회는 어린 자식이 앓는 것을 볼 때에 온다.

(이광수/ 병창어)

 

언제나 참회하는 사람은 이중적인 자아를 갖고 있는 법이다. 살인을 참회하는 자는 벌써살인하던 그때의 그 사람은 아니다. 참회는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한숨이며 눈물이다.

(미상)

 

후회는 자기 자신에게 내린 판결이다.

(메난드로스/ 단편)

 

그리스도 교인이란 토요일에 한 일을 주일에 회개하고 월요일에 되풀이하는 사람.

(T.R. 이바라/ 그리스도 교인)

 

후회, 그것은 잠에서 깨어난 기억.

(E.E. 디킨슨/ 시집)

 

후회란 죄악에 대한 자책 이상의 것이라야 한다. 후회는 천당과 어울리는 성격의 변화를이해한다.

(L. 월리스/ 벤허)

 

우리 질식시킬 수 있으랴. 이 오래 묻은 뉘우침을/ 살아서 움직이고 굼틀거리며/ 송장에 구더기,/ 떡갈나무에 쐐기처럼/ 우리를 먹이 삼아 살찌는 뉘우침을/ 우리 질식시킬 수 있으랴. 이 악착스런 뉘우침을,

(C.P. 보들레르/ 고쳐 못할 일)

 

신부는 나이 어려 슬픔을 아직 몰라/ 봄날에 단장하고 다락에 올랐더니/ 길가에 수양버들휘늘어져서/ 가슴이 썰렁해 후회하기를/ 공연히 벼슬 찾아 임을 가게 하였구나.

(왕창령/ 규원)

 

삶과 삶으로 말미암은 뉘우침과/ 또한 죽음을 생각하기 시작한 사나이는// 반듯이 누운 채 눈을 감아 본다// 이 한밤에/ 함박눈은 풀풀 나려 쌓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도시의 다른 모든 지붕 위에도/ 뉘우침의 함박눈은 --// 그렇다 동정 "마리아"여/ 이 가슴 하나를위해서가 아니라// 저 모든 지붕과 그 밑에 놓인 삶들도 위하여/ 그대 주에게 전구하라.

(이한직/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회개의 세례를 받기 위해 모여든/ 무리들로 떠들썩한/ 요단강 기슭에서/ 탄생의 밤에 들리던 천사의 노래 소리가/ 어슴푸레한 기억의 벽에/ 먼 파도 소리 같은 메아리를 울리고 있다.

(가가와 히로코/ 성령이 비둘기처럼)

 

아무런 뉘우침 없이 쳐다보는 맑은 눈‥‥‥‥

(구자운/ 묵시)

 

깊은 잠을 한잠 자고 깨면 슬쩍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비수와 같은 회한. 낮에도 분주한시간이 지나고 혼자 있을 시간이면 이 무서운 회오는 김한주 씨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날카로운 발톱처럼 신경의 가닥가닥에서 살아난다.

(김말봉/ 생명)

 

우리의 죄는 악착같으나 뉘우침은 무르다/ 우리는 참회의 값을 후히 받아/ 값싼 눈물에 모든 때가 가시기나 한 듯/ 껑충거리며 진창길로 되돌아온다.

(C.P. 보들레르/ 독자에게)

 

회개, 그래. 부득이한 경우라면 속죄. 난 그런 것에 나를 맡겼었어.

(S. 베케트/ 희극)

 

죄 많은 세상/ 방황하는 마음을/ 눈물로 속죄하오니/ 사랑으로 다스려 주시고/ 꾸짖어 매질해 주셔서/ 소망과 믿음이/ 샘물처럼 솟게 하시고/ 거치른 이 벌판/ 우리의 마음 밭에도/ 훈훈한 입김을 뿌리셔서/ 알알이 묻어 둔 씨앗에도/ 꽃비를 내려 주시사/ 마른 나무에 눈이 트듯/ 참한 목숨으로/ 이 봄이 태어나게 하소서.

(이기반/ 봄)

 

내게 가까이 오라, 거기에 부어라,/ 숨김없는 솔직한 겸비의 마음을/ 긍지도 버리고 장식도 버리고서 내게 모든 것을 고하여라/그리하여 회개의 아름다운 꽃다발을 내게 바치라.

(베를렌/ 예지 · 7)

 

회개하는 눈물은 고귀하다/ 또한 진심으로 내쉬는 한숨은/ 하나님의 마음에 들기 때문에 고귀하다.

(스마트/ 다윗에게 부치는 노래)

 

밤만이 듣는 어둠의 참회/ 너무나 큰 괴롬이기에 나의 기도는/ 차라리 말을 잃는다/ 눈물로 터지려는 꽃망울의 밤/ 하늘가에‥‥‥

(김경수/ 문들의 영가)

 

복잡한 절차 없는/ 심판대에 올라선다//스스로 참아가는/ 사각의 화탕지옥// 참회의 눈물 방울이/ 온몸으로 솟구치네.

(원용문/ 목욕탕에 · 1)

 

혼자서 띄우던/몇 마디 뉘우침/마음의 빈자리/ 헛 바람으로 불리어도/ 내 안에 살아나는/ 그대, 풀꽃으로 다시 핀다.

(정희수/ 안개 낀 아침은)

 

이마에 깊이 파인 주름살 고랑으로/ 흘러내린 땀과 피의 짠맛을 아는/ 인간을 사랑하고,/ 잘못과 실수의 연발이라도/ 회개하며 사는 착한 서민을/ 끔찍이 좋아한다// ‥‥나를 무너뜨려 올려 놓는/ 늙은 복음 가수의/ 찬송가 한 소절만도 못한/ 어깨 떡 벌어진 사나운 사나이들아/ 망나니 세력들아./내 눈에서 눈물 한 방울도/ 짜내지 못하는 너희들은/ 무어냐, 무어란 말이냐.

(신규호/ 항변)

 

뉘우치는 일은/ 선한 행위요/ 후회는 약한 사람들의/ 신음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어긋남의 윤리를/ 탓하지 말라./ 어쩌면 그것이/ 우리들의/ 생활인 것을,

(황금찬/ 종이 우는데)

 

그는 눈을 빼앗기고/ 진종일 나귀가 되어 연자매를 돌리며/ 자기를 잊었던 한 순간을/ 뉘우쳐 본다/ 응당 받아야 할 벌이었다/ 자기를 버린 자의 최후를 보는 것이다/ 차라리 죽었어야 할 것을/ 살아서 괴로움이 죽기보다 더 크구나// ‥‥뉘우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내게 힘이 한 번 더 내린다면/자기를 잊었던 그 순간을 보복하리라.

(황금찬/ 삼손의 노래)

 

오늘밤/ 닭이 벌써 세 번을 울었는데/ 내게는 아직도 뉘우침이 없는 것이 슬프다.

(황금찬/ 새벽에)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侮)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김광균/ 설야)

 

젖은 빨래에/ 돌멩이가 부딪듯/ 먼 뉘우침으로/ 빈 가슴은 펄렁인다.

(장호/ 예감)

 

하나님/ 우리 어른들/ 오늘 흐름 바로 보며/ 회개하며 기도하도록/ 사랑해 주소서/ 이끌어주소서.

(오동춘/ 해처럼 밝게 밝게)

 

모두가 세상을 아는 심약한 풀이 기에/ 깊게 뉘우치는 빛으로 흔들려/ 지난 세월에 찌들은 얼굴을/ 바람이 씻고 간다

(장문환/ 풀을 보는 마음)

 

I(이), 주홍색, 토해낸 피, 회개의 도취련가,/ 아니면 분노 속의 아름다운 입술의 웃음이런가.

(랭보/ 모음)

 

크리스마스 축하가 모두 끝났을 때/ 나는 내가 쓴 것들을 계산해 보았네./ 엄청난 금액이었다오./ 나는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네./멀리 떨어진 어머니가/ "우리 죄를 씻어 버리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의 탄생이/ 얼마나 지났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그 아침에 들리는 것 같았네.

(프레드 D. 자비스/ 멀리서 들리는 음성)

 

빗줄처럼 꼬아온 너의 한 생이/ 물새 우는 강천에서 종지부를 찍을 제/ 칼날처럼 네 성미에 모를 죽이며/ 지금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참회냐 고백이냐 말 없는 긍지냐/ 주름많은 얼굴에 보조개를 팔제/ 사색의 냉각점에 불을 지피며/ 아, 석양이 물결 위에 낙조를 끓인다.

(김철/ 생을 바칠 때)

 

주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우리의 증오와 거짓됨과 잘못들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실런지요!/ 자비로우신 하나님 우리를 함께 인도하소서.

(앤드류스/ 신이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어디에 언제나/ 새 모습으로/ 새 바램으로/오고 계시는/ 당신을 생각합니다. // 죄악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빈손으로 나아감은 돌아올 날을 믿기 때문입니다.

(정연덕/ 지금도 오고 계시는 당신)

 

그러면 그대들, 정의롭게 재판하려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정직하나 정신적으로는 도둑인 자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또 육체적으로는 살인자이나 정신적으로는 그 자신이 살해당한 자에게 그대들은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가?/ 또 그대들은 어떻게 고발할 것인가/ 겉으로는 사기꾼이며 박해자이지만,/ 그 역시 박해받고 폭행당한자를?/그리고 뉘우침이 이미 저지른 죄보다 더 큰 자들을 그대들은 어떻게 벌하려 하는가?/정의란,그대들이 기꺼이 봉사하는 그 법에 의해 집행되는 정의란 바로 뉘우침이 아니겠는가? / 하지만 물론 그대들은 죄 없는 이에게 뉘우침을 지을 수도 없고, 또한 죄인의 가슴으로부터 뉘우침을 빼앗을 수도 없으리라./ 요청하지 않아도 뉘우침이란 한밤 중에 찾아와 사람들을 깨우고 스스로를 응시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그대들 정의를 깨닫고자 하는 자여, 이 모든 행위를 충만한 빛 속으로 살펴보지 않는 한 어떻게 깨달으려는가?

(K. 지브란/ 예언자)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역사의 첫 이슬이 내리던 날부터/ 가슴을 쥐어뜯어야 하는/ 회개해야 할 과제가 있었기에/ 오랜 세월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정일홍/ 진실하게 살고 싶다)

 

깊숙히/ 스며 있고/ 오랫동안 묻혀 있던/ 나의 죄/ 나의 허물/ 내 주께 아뢰리라/ 어설픈뉘우침이/ 어찌 나를 구원하랴 참되게 돌이키는 마음/ 새롭게 하옵소서

(홍안의/ 은혜로 붙드심)

 

모든 참회며는/ 주님의 발에/ 간절히 한 번만 닿아 보게/ 허락하시올지.

(김남조/ 막달라 마리아)

 

말하라. 너희들이/ 독사의 새끼가 아니라고 말하라/ 이미 저 높은 하늘이 열리고/ 내가 먼저 내 눈물로/ 내 몸을 씻나니/ 말하라. 너희들이 결코/ 검불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라./ 가죽옷 맨발로 바위 틈을/ 헤매며/ 회개하라. 세상 끝이/ 가까웠으니,/ 너희들이 스스로/ 죄악의 씨앗이라고/ 소리치며 말하라./ 깊은 물 산골짜기 거친 벌판에/ 오오, 비로소 그분이 오시는/ 아침 길을 위하여/ 산 자는 산 자와 함께 몸을 씻고,/ 죽은 자는 죽은 자와 함께/ 넋을 씻으며,/ 노래하라.// 떠나라. 이미 도끼날이/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어둠은 어둠과 어울려/ 허공을 덮고/ 눈물은 눈물과 어울려/ 예루살렘을 적시리라./ 차라리 가시나무 뙤약볕/ 돌 틈에서/ 한 뿌리 엉겅퀴로/ 말라 죽을망정/ 이제 떠나라/ 하늘의 진노가 임박하였으니

(양성우/ 요한의 노래)

 

당신을 팔아 넘기고 난 후/ 입가에 번지던 야릇한 웃음도/ 가슴에 차오르던 표독한 쾌감도/ 전신에 뻗치던 유쾌한 분노도/ 그리고/그 다른 고든 것도 다 지나가고/ 나 지금 여기/ 생(生)도 사(死)도 아닌 외곽에/ 붉은 죄덩어리로만/ 남아 있습니다. //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소서)/ 자학의 신음 소리로만 들리던/당신의 저 가냘픈 음성이/ 이제야// 내 고통스런 가슴에/ 천둥이 되어 울립니다/ 그것이 정녕/ 나를 위한 당신의 기도였다면/ 주여/이제라도 당신의 피에/ 내 몸을 적실 수 있잖으리이까

(오병학/ 참회송)

 

주여/ 당신께서 잡히시던 밤에/ 나 그때/거기 있었더이다/ 법정에서 당신의 머리에/가시관을 눌러 씌운 후/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치던 자도/ 바로 나였더이다. // 주여 당신께서 나무형틀에 달리셨을 때/ 나 그때/거기 있었더이다. / 고통으로 일그러진/ 당신의 얼굴을 노려 보면서/ 나는 머리를 흔들며/ 소리쳤더이다. / (남은 그만두고 너나 구원해라)//나 지금 여기,/ 심장이 터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죄로 타고 난 몸뚱이라서/ 죽어질 수도 없는 저주입니까/ 아니면/ 차마 버릴 수 없어 붙들고 계시는/ 당신의 성총입니까// 그날, 님께서 대신 언덕을 오르시던 날/ 그 아픔의 나무십자가 지시던 날,/해골의 곳 저편에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 나는 죽을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라고// 아니 그것을 깨달은 것은/ 먼 후일이었습니다. // 님은 내가 죽어야 할 기회를 빼앗던 것이라고,/ 그렇게 궤변을 늘어놓을 정도로/ 자조적인 인생인 내가/ 죄를 더 이상 먹고 마시며/ 함부로 던져진 채 살 자격을 빼앗으시고/ 바로 살다가 바로 죽을 자격을 주신/ 님의 참사랑 깨달은 것은/ 진정 먼 후일이었습니다. // 바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못나게 죽을 수야 없는 것이기에/ 님은 나의 십자가를 가로채셨더이다. / 오 님이시어, 무서운 님이시어!// 바로 죽을 기회를 주시고는/ 지금도 바로 살지 못하는/ 이몸을 오래 참으시는/ 오 님이시여, 두려우신 님이시여 !

(김성영/ 바라바의 고백)

 

아무 절망감 없이 나 당신께 갑니다. / 아무것도 의심치 않고 나 당신께 의지합니다./ 죄악이 나를 들러싸지만/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기에/ 감히 탄원하며 기도합니다. // 아! 내 죄악이 주홍빛과 같습니다. /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죄,/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 죄,/ 끝없는 지은 죄뿐입니다. //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당신은/ 신실하고 의로우십니다. / 미천한 자가 부를 때 당신은/사랑으로 대하시며 친절을 베푸십니다. / 주여! 보혈의 피를,/ 하나님의 어린 양의 피를,/내 영혼 위에 부으소서. // 이제 내 영혼이/ 평화와 광명으로 충만하니/ 보이지 아니하시나/ 사랑이신 당신과 함께 걷겠습니다. / 나의 하나님, 당신께 기대어/ 인생길을 가니 평화만이 가득합니다.

(호레이셔스 보나르/ 고백과 평화)

 

나 오늘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 나 위해 주님이 갈보리에서 못박히셨는 데/ 내가 그를 또다시 박을 수는 없건만!//나는 그분 편에 서지 못했습니다. / 죄인들이 주님의 이름을 조롱하고 저주했을 때/ 내 수치스러움이 그들에게 알려질가 두려워/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 오늘 나는 영혼을 잃은 자에게/ 사랑하는 나의 주님에 대해/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 내가 그들에게 조롱당할까 두려워함이며/ 내 자손심을 지키기 위해섭니다. // 내가 죄악의 꾐에 빠질 때에도/무감각하게 휩쓸려 버렸습니다. / 그리고 주님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도/ 나는 주님을 부끄럽게 여겨 묵살해 버렸습니다. //나는 오래 전 나를 위해 못박히신/ 주님의 손에 또 하나의 못을 박았습니다. / 그분이 나를 위해 갈보리에서 못박히 셨으므로/ 내가 다시는 그를 못박을 수 없는데 말입니다!

(에블린 타일러/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구세주의 긍휼은 허공에 메아리 되고/ "모든 것이 나의 것이며 당신 것은 없노라" 자만하여 외쳤을 때,/ 아! 그것은 시공(時空)에 존재할 수도 없는/ 처참한 부끄러움과 슬픔이어라.// 그러나 그분은 나를 찾았네./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기도하셨네./ 그때 탐욕으로 가득 찬 내 가슴은 희미하게 말했네,/ "얼마큼은 내 것이며, 조금은 당신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그분의 부드러운 자비로움과/ 도와주심과 병고쳐 주심, 그리고 충만과 자유,/ 달콤하며 강하심, 그리고 아! 그토록 오래 참으심이 나를 낮추어 주셨으니 나는 가만히 속삭였네./ "조금은 내 것이며 많은 것이 당신 것입니다!"// 지고의 천상보다 더 높으시고/가장 깊은 바다보다 더욱 깊으신/ 주여! 당신의 사랑이 이제 승리 하셨으니/나의 고백을 들으소서./ "그 무엇도 나의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주님 것이옵나이다!"

(데오도르 모노드/ 나? 그리스도?)

 

내 영혼 당신 앞에서/ 무릎꿇고 엎디어 있습니다. / 내 영혼이 생명의 근원이신 당신께로/ 날아갑니다. / 나의 욕망은 슬퍼하며/ 제 굴레를 보나이다. / 오, 주여! 당신의 임재로써/ 나를 자유롭게 하소서.// 예수여, 당신의 온화하신 겸손을 채울 수 있는/ 저의 빈 마음과 의지를 주소서./ 당신의 힘으로 나의 본성이 더 이상은/ 꿈틀대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 속에서만 내 자아의 소욕이/ 사라질 것입니다.

(존 웨슬리/ 당신의 뜻으로)

 

나는 아버지와 집을 떠나/ 저 먼 나라를 정신없이 방황하였다네/그 어두움의 생활이 거친 만큼 나의 날들은 욕망으로 가득하였네./ 굶주림이 찾아왔을 때에야 나는 내 방탕한 생활을 그쳤다네.// 죄는 나를 그렇게 교묘히 유혹하고, 또 그렇게 많은 약속을/ 하였다네./ 그러나 믿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은 얼마나 거짓된가!/ 죄는 결코 축복하지도 않고 보상해주지도 않는다네./ 그 길은 결국에는 비통만이 기다리고 있다네.//나의 거친 친구들은 술잔에 깊이 빠져 있고/돈을 마음대로 흘리고 다니니 나는 견딜 수가 없었네./ 모든 것을 다 써 버리고, 더이상 지불할 것이 없게 되었을 때/ 내가 방탕하던 날들의 그 친구들은 다 가버렸다네.//돼지 우리에 왔을 때에는,내가 살았던 삶과 같은 것들이/ 드문드문 널려 있는 작은 덩어리들로 연명할 수밖에 없었네/ 나에게 먹을 것을 주려는 사람도 돌보아준 사람도 없었네./ 바로 그때, 나는 절망 가운데서 회개하였다네./ 죄의 우리에서 벗어나 내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용서를 빌며 돌아가리라.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나는 울부짖었나네./그가 와서 나를 맞으시고 그의 팔로 나를 안으셨네./ 흰 옷을 내게 입혀 주셨네, 나는 오늘밤 아무 염려없는 집에 있다네.

(존 R. 라이스/ 집으로 돌아온 탕자)

 

가을이 되어 내가 팔을 벌려/ 나의 지난 날을 기도로 뉘우치면/ 나무들도 저들의 빈손과 팔을 벌려/ 치운 바람만 찬 서리를 받는다, 받는다.

(김현승/ 나무)

 

바람들 이젠 종소리에도 깨일 수 없는/악의 꽃 속에 묻힌 밤/ 여기 저도 모르게 저지른 악이 있고/남이 나로 인하여 지은 죄가 있을 겁니다// 성모 마리아여/ 임종 모양 무거운 이 밤을 물리쳐 주소서/ 그리고 아름다운 새벽을// 저마다 내가 죄인이노라 무릎들을--/ 저마다 참회의 눈물 뺨을 적실-/ 아름다운 새벽을 가져다 주소서.

(노천명/ 아름다운 새벽을)

 

 

설 교 노 트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욘3:8

 

서론

요나의 전도를 듣고 니느웨 성민들이 먼저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전해 들은 니느웨 왕이 대신들과 더불어 조서를 내려 회개하며, 각기 약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는 회개를 언급할 때 단계적으로 보아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회개의 순서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깨닫는 단계입니다.

회개는 순서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으나 크게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중 첫째단계는 지은 죄를 깨닫는 순서입니다.

자기가 행한 일이 나쁜 일이라든가 잘못된 일인 줄 깨닫지 못하면 결코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의 대표적인 비유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가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재산의 반을 받아가지고 허랑 방탕하여 다 허비한 후 자신은 굶주려 죽게 될 사실과 아버지 집의 부요함을 깨닫고 자신이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하기 힘들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면 곧 회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뉘우치는 단계입니다.

지각적으로 깨달을 뿐 아니라, 그 잘못을 뉘우치는 일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뉘우친다는 말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용어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 고치는 일입니다.

뉘우침이 없이는 근본적으로 고쳐질 수 없기 때문에 뉘우침이 가장 필요한 과정입니다. 저들이 금식을 한 일이나 베옷을 입은 일이나,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는 일들이 애통하는 모습들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가 위로함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애통해 할 때 사유의 위로를 주실 것입니다.

 

3. 강포에서 떠나는 단계입니다.

깨닫고 뉘우치는 일은 정신적으로 마음의 일이요, 강포에서 떠나는 일은 행동으로 나타내 보일 일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회개를 말로만 하고 그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백성들은 실제 행동으로 옮겼으니, 이것이 왕과 대신 이하 모든 국민들과 육축까지 실천에 옳긴 회개 운동입니다.

하나님이 즉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를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고 믿으면서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것이 곧 신앙의 실천입니다. "혹시"라는 말로 의혹을 전제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확신 없는 믿음의 소치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일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본래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 가운데도 아직 회개하지 못한 자가 있다면 빨리 회개하여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회심

행3:19

 

서론

베드로는 그의 청중들을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로 고소하였습니다. 이 고소는 그들 양심에 깊이 찔린 바 되었고, 이 신실한 충고자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그들의 바른 모습을 일깨워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는 그들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습니다.

 

1. 회심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회심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동시에 그들을 잘 살펴보면 진짜 회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자들이 수없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한 종교에서 다른 종교로 옮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한 교회나 교파에서 다른 것으로 옮긴 것이 회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이것은 단지 어느 한 신념에서 다른 한 신념으로 회심한 것일 뿐입니다.

(2) 교리적 태도의 변화입니다.

우리는 일련의 원리들이나 교리에서 다른 것들로 회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적 또는 영적인 회심, 즉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회심이 아닙니다.

(3) 단지 개선입니다.

자신의 태도나 행동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회심하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선은 개혁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던 태도에서 도덕성을 존중하는 태도로까지 바뀔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욕설을 퍼붓거나 극장에 가거나 카드놀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회심한 자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2. 회심의 필요성

(1) 회심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 필요합니다.

당신은 회개하고 회심해야만 한다는 이 말을 용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하려 않고서는 당신은 영혼의 참 평안을 찾을 수 없으며, 그렇게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회심은 영원한 행복을 위해 필요합니다.

당신은 회심하지 않고서는 이후에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려면 반드시 회심해야 합니다. 회심하지 않는 자는 그렇게 할 수도 얼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 할지라도하늘나라를 즐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3) 회심은 정죄로부터 구원되기 위해 필요합니다.

한 가지 언급할 것은, 당신은 회심하거나 아니면 저주받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6)"고 주님께서는 보다 알기 쉽게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젊은이여, 자신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이 회개하고 회심할 수 있도록 도우시기를 기원합니다. 중년의 독자여, 당신이 회개하고 회심하기를 !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독자여, 주님께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회심토록 하시어 자신의 죄가 제거되었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이 말씀을 전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회심케만 하신다면 나는 언제 죽어도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루어 주시는 일에 복 주사, 당신이 꽃피워 그에게 열매 맺기를 기원합니다.

 

 

회개하라

계13:19

 

서론

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를 제외한 다섯 교회는 한결같이 책망을 받았고 또 회개하라고 권면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서는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열심이 없이는 바른 회개를 이를 수 업기 때문에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도 신앙생활을 미지근하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들을 향해서도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1. 회개의 어의(語義)

회개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나캄" 혹은 "슙"이라고 합니다. 나캄은 "슬퍼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은 "돌아옴"을 뜻합니다.

이 두 가지 말은 회개의 양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과를 원통히 여기며 슬퍼하는 동시에 그 죄된 자리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향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회개한다고 하면서 슬퍼하면, 애통만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 절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된 자리에서라도 뉘우치고 돌아와서 바로 서기를 원하시며 또 반드시 용서와 사죄와 구원이 뒤따릅니다.

그런 까닭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회개는 큰 축복이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일수록 더욱 진실한 회개를 하도록 권면합니다.

 

2. 회개의 의의

회개라는 말은 단순한 도덕적 개혁이나 생활상 변동을 가리키지 않고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옴을 중요시합니다.

불신자들 중에서 자기의 범과를 철저히 회개하여 애통하며 결심하고 다시는 예전의 악행을 안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바른 회개가 못되는 것입니다.

주며 사과하여 그 사람에게는 용서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부도덕한 모든 행동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이며 결국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죄함과 원상복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열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미온적인 것은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상태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회개에 있어서도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는 말은 철두 철미하게 회개하라, 적극적으로 근본적으로 회개하라, 회개하라, 완전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새벽 닭 소리를 듣자

마26:69-75

 

서론

예수께서 구속 사업을 성취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려고 저들에게 붙잡혀 가실 때에 멀찍이 따라가던 수제자 베드로는 한 계집종의 추궁을 받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새벽 닭 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죄책감을 느끼며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베드로는 용서함을 받고 새 출발을 하여 능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일생에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 준 닭울음 소리의 영적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때를 알리는 소리입니다.

"꼬끼요·.·"하고 들려오는 새벽 닭 소리는 날이 밝아 온다는 신호요, 곤한 잠에서 깨어나 새 날을 맞아 일할 준비하라는 기상 나팔 소리입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새벽이 가까워지듯이 지금은 시대적으로 죄악의 밤이 깊을 대로 깊어져 예수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영적 새벽 닭소리가 세계 도처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는 교회, 조는 교인이 되지 말고 신앙의 잠에서 깨어 일어나 기도와헌신으로 무장하고 있다가 마지막 날 주님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

 

2. 광명을 부르는 소리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물질 문명은 고도로 발달되어 사람이 달나라 별나라를 왕래한다고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현대인은 영계의 어두운 밤을 방황하고 있습니다. 광명의 태양되신 예수님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새벽 닭 소리를 듣고 영계의 밤에서 광명의 예수님을 다시 모시게 된 것처럼 여러분도 항상 광명의 태양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주의 말씀을 기억하는 소리입니다.

새벽 닭 울음 소리에 주의 말씀이 기억나서 베드로가 회개하였듯이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우리를 경성케 하는 새벽 닭 울음 소리가 수없이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내 멋대로 살다가 낭패와 실망당할 때, 믿음을 떠난 생활을 하다 패배와 절망 속에 눈물흘릴 때에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새벽 닭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이때에 지체하지 말고 돌이켜 말씀에 굳게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회개를 재촉하는 소리입니다.

새벽 닭 소리에 베드로는 회개했습니다. 그리하여 죄사함받고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엎드려 열심히 기도하다가 능력 충만함을 받아 그토록 나약하던 과거의 베드로는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리고 하루에도 3천명, 5천명씩 회개시키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시편 7편 12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회개치 않는 자를 보시고 칼을 갈고 계시며 활을 당기어 쏠 준비를 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결론

베드로를 회개케 한 새벽 닭 소리는 베드로의 나약한 인생을 위대한 인생으로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능력 충만해진 베드로 사도는 새벽 닭이 울 적마다 주님을 부인했던 과거를 돌이켜보며 겸손히 무릎 꿇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믿음이 나약했던 지난날을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충만 받으셔서 20세기의베드로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회개하여야 할 인간

마3:1-10

 

서론

우리 인간들은 참으로 많은 죄를 지었고, 지금도 죄를 범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죄를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죄와 밀접한 생활을 하는 인간이기에 특히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의인은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그 후손은 다 죄인이 되었습니다. 아담과 같이 범죄한 사실이 없는그 자손들도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범죄하여 죄인이 되었으므로 죄인의 신분에서 태어난 자녀는 다 죄인이기 때문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성품이 다 부패하여 인간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였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인간의 전적 타락'이라고 하였습니다.

 

2.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 죄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백 번 잘 순종하였으되 한 번만 순종하지 않아도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2) 죄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함을 어기는 것입니다.

어긴다는 것은 잘 지키노라고 하였지만 잘못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인간이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법은 무엇입니까?

① 하나님의 법은 인간 양심에 새겨져 있습니다(롬1:20).

② 하나님의 법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시119:51). 그러므로 양심을 어기거나 성경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죄가 됩니다.

(3)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됩니다(약4:17).

우리에게는 알고도 행하지 않는 죄가 많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간 레위인과 제사장은 알고도 행하지 않은 죄인입니다.

 

3. 회개란 무엇입니까?

타락된 인간이 구원받으려면 먼저 자기 죄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란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고, 죄에 대하여 그 생각과 행동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말은 구약에서는 "허덕이다", "신음하다" 등의 뜻이 있고, 신약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회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자기의 죄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모르면서 회개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며 회개가 되지 못합니다(시38:18, 눅18:13).

(2)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회개는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여야 합니다(눅18:13).

(3) 자기 죄를 원통히 여겨야 합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심각한 슬픔과 수치와 혐오의 감정이 잘 나타나야 합니다(욜2:12-13).

(4)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포도원 비유에 둘째 아들이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마21:30)"라고 하였으니, 여기에 "뉘우침"이란 마음과 사상과 행동과 생활의 태도를 바꾸었다는 말입니다.

(5)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비유에 탕자가 이에 스스로 돌이켜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눅15:17)고 결심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6)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증명이 됩니다. 단순히 악을 기피하고 혐오할 뿐 아니라 순종하여 선을 실행해야 됩니다.

 

결론

우리가 비록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 죄인이 되었지만, 이 세상에서 아무 죄도 범하지 않고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겸손히 주님 앞에 회개하여 주님의 자녀로써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회개의 복

렘3:19-25

 

서론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입은 우리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되었고 이 세상에 와서 갈 길을 바로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셔서 거듭나게 하시므로 산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십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열매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1. 회심이란 무엇입니까?

회심이란 말은 "전환한다", "개심한다", "회개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난날의 잘못된 삶을 아파하며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한다"는 말은 보통으로 그저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심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회개에는 세 가지 요건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즉, 지적으로 바로 깨닫고 정적으로 아파하며, 의지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것을 바로 깨달아 알고 진정으로 뉘우침과 아픔을 느끼고 새로운 결정을 내려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돌아온다"는 말들로도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어떤 길을 가다가 깨닫고 난 후에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다는 뜻입니다. 회개란, 회심이란 아파하는 마음의 상태와 돌아서는 생활의 상태를 모두 합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2. 회심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1) 하나님께서 시켜주셔야 합니다.

회개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달려 있는 줄 알지만 성경은 회개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로 말미암아 영만이 어둡기 때문에 성령의 조명 없이는 과거의 죄를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중생은 일반적 사역이지만 회심은 인간의 협력적 복종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실 때에 지체하지 말고 들이켜야 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아파하고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시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돌아오는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

(1) 회개는 곧 복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우리의 구원이 되었다면 회개 없이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행5:31에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이 곧 복음인데,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으니 복음과 회개는 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였습니다(눅13:3).

회개는 구원의 놀라운 길로 인도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 없이는 구원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항상 회개를 강조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첫 음성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하였으며 예수님도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마4:17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사죄의 축복을 받습니다.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도말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심령에는 용서라는 은사가 올 수 없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와 용서받고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이미 그 빛을 받고 하나님께 돌아왔으며 늘 살펴가면서 성령님이 조명하시는 대로 죄를 깨닫고 아파하고 뉘우쳐서 하나님께로 날마다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효 도

성 경 활 용

1. 성경에 나타난 효도한 자들

(1) 요셉

(창47:12)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식물을 주어 공궤하였더라

(2) 다윗

(상상22:3)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기를 청하나이다

(3) 솔로몬

(왕상2:19) 황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배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관련원어풀이

1. cavria 카리스

은혜나 봉사에 대한 감사.

(롬6:17, 고후9:15)

설교예화자료

지옥과 천국

 

어떤 사나이가 부친에게 닭을 잡아먹게 했습니다. 부친은,

"이 닭은 어디서 구했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많이 잡수세요!"라고 말했으므로,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사람의 사나이는 물레방앗간에서 밀가루를 갈고 있을 때, 국왕이 포고를 내려 온 나라의 방아꾼을 모은다고 하므로, 부친을 자기 대신 물레방앗간을 돌보게 하고 자기가 성으로 갔습니다.

이 두 아들 중 어느 쪽이 천국에 가고 어느 쪽이 지옥에 떨어진다고 생각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 번째 사나이는, 왕이 끌어 모은 노동자를 사하여 때리거나 좋은 음식을 주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대신해서 갔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갈 수 있었지만, 부친에게 닭을 먹게 한 사나이는 부친의 질문에 충분히 대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진심으로써 대하는 것이 아니면 부친을 일하게 하는 쪽이 더 낫습니다.

 

 

어머니

 

어떤 랍비가 모친과 단 둘이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돌멩이가 많은 울퉁불퉁한 길이 어서 퍽 걷기 힘들었습니다. 랍비는 어머니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자기의 손을 모친의 발 밑에 넣었습니다.

탈무드 중에는 양친이 등장하면 언제나 부친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에 모친만이 나오는 단 한 편의 이야기입니다. 모친도 부친과 마찬가지로 귀중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일 겁니다. 그러나 부모가 두 사람 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면, 물은 부친에게 가져갑니다. 왜냐하면 모친도 부친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므로 모친에게 가져가도 다시 부친에게 건네주게 되기 때문입니다.

 

 

효성스런 기도

 

영국 어느 도시에 아주 가난한 어머니와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불쌍하게도 소녀의 어머니가 병이 들었습니다. 소녀는 밤잠을 자지 않고 간호해 드렸습니다.

소녀는 장미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께 장미꽃을 사다 드리려고 있는 돈을 모두 털어가지고 시내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느 꽃가게에도 장미꽃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녀는 커다란 뜰이 있는 데까지 왔습니다. 그곳은 임금님의 대궐 뜰이었습니다. 소녀가 마당을 둘러보고 있는데, 궁궐의 정원사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자

"아저씨! 저 장미꽃 한 송이만 주세요. 네?" 소녀가 이렇게 졸라했습니다. 꽃밭지기는

"뭐? 꽃을 달라구? 어림도 없는 소리, 여긴 임금님의 꽃밭이야."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자꾸 졸라댔습니다.

"아저씨, 제발 한송이만 주세요.우리 어머니가 앓고 계셔서 그래요. 네? 아저씨."

그러나 정원사는 시끄럽다고 소리쳤습니다. 바로 그때 임금님이 산책하시면서 이유를 묻자 정원사는 소녀가 장미꽃 한 송이를 달란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임금님은 제일 고운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꽂을 받아든 소녀는

"고맙습니다. 간이 얼마입니까? "하며 돈을 꺼내려 하자, 임금님은 웃으시며

"이건 아무리 값을 많이 낸 데도 팔 수 없는 것이지만 네게 거져 주는 것이니 가져다 어머님 드려라."하고 말씀하였습니다.

 

 

효도

 

어떤 비유태인이 고대 이스라엘의 디마라는 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6천 개의 금화에 해당되는 한 개의 다이아몬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랍비가 사원의 침전(寢殿)의 장식에 쓰고 싶다고 6천 개의 금화를 갖고 그의 집으로 사러 갔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를 넣은 금고 열쇠를 그 부친이 베개 밑에 넣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사나이는 "아버지를 깨게 할 수 없으니 다이아몬드는 팔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만큼 굉장한 돈벌이가 되는 데도 잠들고 있는 어버이를 깨우지 않는 것은 대단한 효자 아들이라고 랍비는 감탄하여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진정한 효성

 

한 청년이 효자라는 칭송이 자자하여 근무하는 회사에까지 알려졌습니다. 동료들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퇴근 후에 그 집을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대문을 발길로 차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엄마, 나 왔어."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때 청년의 어머니로 보이는 노인이 "오냐, 왔니? "하며 매우 반가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마루에 털썩 주저 앉더니 "엄마, 내 구두 좀 벗겨 주고 발 좀 싯어."하는 것이었습니다. 노모는 두말 않고 물을 떠다 발을 씻겼습니다.

친구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이때 그 아들은 "엄마, 나 피곤해. 어깨 좀 주물러 줘."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같이 아들은 하고 엄마는 또 그렇게 대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야,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식아, 너 같은 녀석이 무슨 효자야?"하면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여보게들,자네들이 그렇게 분개할 줄 알았네. 그러나 여보게들, 나도 가슴이 무척이나 아프다네. 네 나이대로 대한다면 아마도 어머니는 육신적으로 좀 편하실지 모르나 어머니는 낙이 엄으시다네, 우리 어머님의 낙은 시중드는 것이라네. 어머님이 아직도 건강하신 것은 그 시중 때문이며, 나는 눈물을 머금고 이 즐거움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네,"라고 말했습니다.

 

 

어록·시·묘사

 

효자의 지고(至高)는 어버이를 존경하는 것 이상으로 큰 것이 없다.

(맹자)

 

경(敬)으로써 효도하기는 쉽고, 사랑으로써 효도하기는 어렵다. 사랑으로써 효도하기는 쉬워도, 부모를 잊기는 어렵다. 부모를 잊기는 쉬워도 부모 때문에 나를 잊기는 어렵다.

(장자)

 

아버지 살아계실 때 그 뜻을 보고, 아버지 돌아가심에 그 행하심을 보게 되나니, 돌아가신 지 삼 년 동안 아버지의 도(道)를 고치지 않아야 비로소 효도라 이를 수 있으리라.

(공자)

 

부모는 다만 두 분뿐인데 그 섬김에 있어서 늘 형제가 서로 미루고, 아이를 기름에는 비록 열이 된다 해도 혼자 맡는다. 아이가 배 부르고 따뜻한가를 늘 부모는 묻지만, 애당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자식에게 뺏겼는데‥‥‥

(명심보감)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기를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키 어렵다.

(독일 속담)

 

네 자식들이 해 주길 바라는 것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동하라.

(이소크라테스/ 데모니쿠스에게)

 

길은 가까운 데 있거늘 사람들은 먼 데서 찾는도다. 일은 쉬운 데 있거늘 사람들은 어려운데서 찾는도다. 사람들은 부모를 부모로 섬기고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온 천하가 화평해지거늘.

(맹자)

 

선비의 온갖 행위 중에 효제가 근본이고, 삼천 가지 죄목 중에 불효가 가장 크다.

(이이/ 율곡집)

 

사회 안정의 기초가 일가의 평화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학사상은 이것을 역설하는 나머지에 효를 너무 과중하게 본 결과로 국가나 사회를 집보다 경시하는 폐해가 있다.

(한상윤/ 조선유학의 조선사상사에 급한 영향)

 

집안에 화목하면 가난해도 좋거니와, 의롭지 않으면 부인들 무엇하랴. 오로지 한 자식의 효도만 있다면, 자손이 많아서 무엇하랴.

(명심보감)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실용경구집)

 

효 사상은 부모가 자식의 생명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이 생명을 보존하고 키워 주는 것 또한 어버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

(오천석/ 효의 이해)

 

세욕에서 말하는 불효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사지를 게을리 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않음이 그 첫째 불효요, 노름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를 돌보지 않음이 그 둘째 불효요,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만을 사랑하여 부모를 돌보지 않음이 셋째 불효요, 귀와 눈의 욕구를 채우느라고 부모를 욕되게 함이 그 넷째 불효요, 용맹을 좋아하여 싸우고 화내어 부모를 불안케 함이 그 다섯째 불효니라.

(맹자)

 

성인의 도는 인(仁)에 근본하였고, 인을 하는 데는 반드시 효도에서 비롯하나니, 효도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요, 만 가지 교화(敎化)의 근원입니다.

(권발)

 

효와 자의 도리는 모든 선의 으뜸으로, 하늘의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은혜가 지극히 깊고, 그 윤리가 지극히 무겁고,그 정이 가장 간절한 것입니다.

(이황/ 퇴계집)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또한 내게 효도하나나, 자신이 이미 효도하지 않으면 자식이 어찌 효도하랴.

(명심보감)

 

제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감히 남을 미워하지 못하고, 제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을 업신여기지 못하나니,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제 부모에게 다하고 보면 덕스러운 가르침이 백성들에게까지 미쳐서 천하가 본받게 될 것이니, 이것은 대개 천자로서의 효도이다.

(효경)

 

선인의 지위에 오르고, 선인의 예를 그대로 행하고 선인의 음악을 그대로 연주하며, 선인이 존경하던 분을 공경하고, 선인이 가까이하던 이를 아끼며, 돌아갔을 때 섬기기를 살아계실 때처럼 하고, 망인 섬기기를 살아계신 것처럼 하는 것이 효도의 극치니라.

(중용)

 

우리 부모들은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꾸며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 드려야 한다.

(A. 생텍쥐페리)

 

다섯 가지 형벌의 죄목이 삼천에 이르되 불효보다 더 큰 죄는 없다.

(효경)

 

효자는 귀한 보옥을 손에 잡을 듯하며, 물이 가득찬 그릇을 받든 듯하여, 마음과 행동이 한결같아, 감당하지 못할 듯이 공경하고, 잃을까 두려워하듯이 받든다.

(예기)

 

효자의 어버이 섬김은, 기거하심에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함엔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신 때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신 때엔 슬픔을 다하고, 제사지냄엔 엄숙을 다한다.

(명심보감)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 *자식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게 된다는 뜻>

(한국 속담)

 

신에게 영광을, 부모에게 존경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솔론)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

(한영/ 한시외전)

 

효도는 모든 행실의 근원이며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다. 하늘이 펴낸 오륜에서 부자(父子)가 첫 번째에 있는 것은 떳떳한 천성이 양지에서 출발하여 스스로 마지 못함이 있음이니, 성인(聖人)이 사람의 본래부터 소유하고 있는 것에 인하여 그 어버이를 친히 하는 도에 나아가서 그 애(愛)와 경(敬)의 실속을 기르므로 그 교(敎)가 되고 학(學)이 됨이 이것으로부터 미루어간 것에 불과하다.

(김인후/ 하서집)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에게 미움을 받지 아니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업신 여김을 받지 않는다.

(소학)

 

오래 두고서 할 수 없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일이다. 그러기에 효자는 날이 감을 아낀다.

(소학)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남에게 오만하지 않다.

(효경)

 

그 사람됨이 부모께 효도하고 어른께 공손하면서 상사에게 반항하는 자는 드물다.

(논어)

 

공경하는 마음으로써 효도하기는 쉬워도 사랑하는 마음로써 효도하기는 어렵다.

(장자)

 

아버지가 돌아감에 아버지 책을 차마 읽지 못함은 그 손때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며, 어머니가 돌아감에 그 그릇을 차마 쓰지 못함은 그 입기운이 아직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기)

 

신체 발부를 부모로부터 받아, 이를 조금도 훼손하지 않음은 효의 근본이다.

(효경)

 

사람의 몸뚱이와 머리터럭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다. 감히 이것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효도의 시작이며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이름을 뒷세상에 드날려서 부모를 빛나게 하는 것은 효도의 마침이니라.

(효경)

 

자식된 도리로서 외출할 때는 반드시 고하여야 하며, 돌아와서 도 반드시 뵙고, 노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떳떳함이 있어야 하며, 익히는 것이 있으며 반드시 끝을 마치어야 하며, 부모가 살아계실 때는 언제나 자기 스스로를 늙었다 하지 아니한다.

(소학)

 

"어버이에 대한 공경"은 세 가지의 가장 존경받는 의로움의 율법 중에서 으뜸가는 성문율이다.

(아에스킬루스/ 탄원하는 여인들)

 

처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긴다면, 그 효도야말로 곡진하게 될 것이다.

(명심보감)

 

요즈음은 부모에게 물질로써 봉양함을 효도라 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집에 두고 먹이지않는가. 공경하는 마음이 여기에 따르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구별하랴.

(논어)

 

큰 자비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고, 큰 효도는 존경하지 않는 것이 없다.

(대각국사)

 

어린이들의 공경심이 모든 선행의 기초이다.

(키케로/ 크노에오 플란키오 변호)

 

가령 어떤 사람이 왼 어깨에 아버지를 업고,/ 오른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서 수미산을 백번 천 번 돌아서 가죽이 터져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 골수가 드러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은 수가 없느니라.

(父母恩重經)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묻는다. "선생님은 어찌하여 정사에 참여하지 아니 하나이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경서(經書)에 이르기를 오직 효도하며 형제와 우애함이 즉 정사를 시(施)함이라 하니 이 또한 위정이요, 어찌 참정만을 위정이라 하리오."

(논어)

 

부모의 나이는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오래 사신 것을 기뻐하고 또 한편으로는 연세 많은 것을 걱정해야 한다.

(논어)

 

당신의 시어머니가 살아 있는 한, 평화에 대한 모든 희망을 포기하라.

(유베날리스/ 풍자시집)

 

부친이 생존할 때에는 그 뜻을 살피고 부친이 세상을 떠나면 그 행적을 살펴, 부친이 해 오던 방법을 삼 년 동안 고치지 않는다면 효자라 할 수 있다.

(논어)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기운을 낮추고 웃는 낯으로 말을 부드럽게 하여 간(諫)하라. 만일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거든 공경과 효도를 일으켜, 기뻐하시거든 다시 간하라.

(소학)

 

효자는 은비(隱秘)한 일에 따르지 아니하며,위태로운 일에 오르지 아니하여 부모에게 욕되게 함을 두려워하니라.

(예기)

 

효자로서의 깊은 사랑이 있는 자는 반드시 얼굴에 화기가 어려 있고, 화기가 어려있는 자는 반드시 즐거워 하는 빛이 있으며, 즐거워하는 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순한 모습이 나타난다.

(예기)

 

어떤 사람은 수레를 끌고 장사를 하여 부모를 섬길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갑작스런 부모의 사망으로 부모에 대한 보은(報恩)의 기회를 잃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여기에 나타난다. 그것은 부모에 대한 보은의 감정이 흔히는 부모가 사망한 이후에야 고개를 든다는 사실이다.

(강유위)

 

고 작은 산데들기도/ 훨훨 날아 닿는데/ 이내 마음 시름에 겨워/가신 어버일 생각했네, / 날이 밝도록 잠 못 자고/부모님을 생각했네.

(시경)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길랑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정철/ 송강가사)

 

어버이 자식 사이 하늘 삼긴 지친(至親)이라/부모 곧 아니면 이 몸이 있을소냐/오조(烏鳥) 도 반포(反哺)를 하니 부모 효도하여라.

(김상용)

 

인간 백세 중에 질병이 다 있으니/부모를 섬긴들 몇 해를 섬길런고/ 아마도 못다할 성효를 일찍 베풀어 보리라.

(박인노/ 노계집)

 

병의 술이 떨어짐은/ 술통의 수치라네./ 궁하고 외롭게 살아가느니/ 일찍 죽어 버린 편이 보다 나으리./아버지 안 계시니 누구를 믿고/ 어머니 안 계시니 무얼 기대리./ 나가면 가슴을 채우는 근심/ 들어와도 마음 붙일 곳이란 없네.

(시경)

 

뫼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윤선도/ 고산유고)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두 분 곧 아니시면 이몸이 살았을까/ 하늘같은 은덕을 어디다가 감사오리.

(정 철/ 송강가사-훈민가)

 

나아가서는 임금을 섬기고 들어와서는 어버이를 섬기는 데 천성에 근본하고 몸으로 실행해서 천지간에 설 수 있는 것은 충효이다. 이것에 어두우면 새나 짐승과 같다. 무릇 충효라는 것은 인의(仁義)의 일이니 일은 두 가지나 이치는 한가지이다. 비록 처한 바 사세가 같지 아니하고, 늦게나 급히 해야 될 것이 같지 아니하나, 그 본말은 대개 질서가 정열하여 어지러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곡/ 가정집)

 

촌놈이 촌놈답게 살아야 제/ 간살거리고 요시랑대는 백여시짓은/ 비유틀려 못하겠고/지 묵을 밥이사 태어날 때 타고 나오는 법이고/ 큰 인물이사 하늘이 맹글고/ 세 살 버릇 여든가서/ 어릴 때 싹수 없는 놈 앞길이 뻔할틴디/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산 찾아 벌초하면/ 그게 곧 산 공분디/ 지들이 알아서 뽄 보것제.

(박용주/ 시골 아이들)

 

생평(生平)에 원하느니 다만 충효뿐이로다/ 이 두 일 말면 금수(禽獸)나 다르리야/ 마음에 하고자 하여 십재황황(十載遑遑)하노라.

(권호문/ 송암집)

 

 

설 교 노 트

 

기독인의 효도관

잠4:1-9

 

서론

우리 기독인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의 규범인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준엄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은 우리 사람의 가장 중요한 윤리라고 전제하고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큰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엡6:1-3). 첫째,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둘째, 땅 위에서 성공하여 번성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이 세상에서 건강하여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에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에게는 사형을 집행한 역사적인 실례도 있습니다(신21:18-21).

 

1. 부모를 공경해야 될 이유

우리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를 해야 할 이유가 너무나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마는 성경에 근거해서 세 가지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였습니다.

출20:12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가 준 땅에서 네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 바울 선생은 엡6:2에 "네 아버지와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하나님과 부모를 거역하는 죄가 됩니다.

(2) 우리 인간의 올바른 도리라고 하였습니다.

엡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 것이 옳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부모를 공경하는 윤리는 우리 인생들의 가장 올바른 도리요, 의무라는 말입니다.

(3) 하나님께서 축복을 받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엡6:3에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땅 위에서 큰 축복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축복의 내용은 세 가지인데,

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과 영광을 받게 됩니다.

② 만사에 형통하여 물심 양면으로 번성을 하게 됩니다.

③ 심신의 건강과 평안과 행복 속에서 장수하게 됩니다.

 

2. 기독 신자의 부모 공경의 방식

여기 우리 기독 신자들의 부모 공경의 방식에 대하여 알아보면 "주 안에서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주 안에서 부모를 공부하라"는 말씀은 주경학적인 측면에서

(1) 주 안에서 중심으로 부모를 존경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범주에서 어떤 의식이나 형식이며, 또는 마지 못한 책임감이나 의무감에서 초월하여 부모님을 중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2) 주 안에서 부모님의 노고를 깊이 인식하고 치하해야 된다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들의 자녀들에 대한 노고야말로 우리들의 말이나 감정으로 다 이해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3) 주 안에서는 부모의 은혜에 대하여 깊이 감사하라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는 보통 고백하기를 저 하늘보다 높고 저 바다보다 깊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서 믿음으로 부모를 중심으로 존경하고 노고를 깊이 인식하여 그 은혜를 감사하는 자녀들은 결과적으로,

① 부모님들을 항상 기쁘고 만족하게 하여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②부모님의 심신을 위로하며 평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③ 부모님을 물심 양면으로 정성을 다해서 봉양한다고 하였습니다.

 

결론

우리가 이와 같이 효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모님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생명의 원천이요, 사랑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룻의 효도

룻1:15-18

 

서론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의 유대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과 그 아내 나오미는 두 아들 말론과 기푠을 데리고 이방땅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나그네 생활 10년에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잃어버리고 두 며느리와 고독하게 남아 있다가 고향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크게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갈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자부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도록 권하였습니다. 큰 며느리 오르바는 말씀대로 돌아갔으나 작은 며느리 룻은 울면서 어머니를 떠나지 아니할 뿐 아니라 비장한 각오와 지극한 효성을 나타내어 크게 축복을 받으므로 효의 본이 되었습니다.

룻의 효도는 어떤 효도였습니까?

 

1. 환경을 초월한 효도였습니다.

"어머님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님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지금 이들의 처지는 막막합니다. 흔히 우리들은 조건적인 효도를 하려고 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형편이 되면 효도하고 어려우면 그만두는 일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부모님이 내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를 따지려고 하는 잘못도 있습니다. 얼마나 못난 생각인지 모릅니다. 참된 효도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어머님께서 가시는 곳, 어머니께서 유하시는 곳, 어디든지 따라가서 모시겠다는 룻의 효성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2. 혈연관계의 효성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33편 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라고 하였습니다.

형제가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고 화목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룻은 어머니의 백성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다는 것입니다. 서로 알아주고 화목함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3. 신앙적 효성의 고백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본래 모압 여인이요, 이방 사람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신도 많고 우상이 꽉 차 있어서 전통적으로 또 습관적으로 받들던 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버리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은 훌륭한 신앙적 고백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그의 자녀들이 공부 잘하는 것, 출세하는 것, 성공하고 잘사는 것을 물론 좋아하시지만 그러나 성도의 가정에서는 그 자녀들이 믿음으로 살고 신앙생활을 잘할 때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적인 불효자가 이 땅에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늙으신 부모님들의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는 불효자가 많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부모님들에게 신앙적으로 효성을 드려 기뻐하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룻과 같이 환경을 초월한 효도, 형제간에 이해와 협조와 화목으로 효도, 신앙적으로 바른 효도,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한 효도로써 부모님께 의논해 드리고 정성껏 대접하여 기쁘게 해드려야 하겠습니다. 계명에 약속된 대로 잘되고 오래 사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유다의 효성

창44:18-34

 

서론

요셉은 형제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하여 계속 시험을 합니다. 그리하여 베냐민을 억류할 계획을 세웠는데, 유다가 어린 동생과 아버지와 연결시켜서 간청하기를 자기가 담보로 잡혀 회생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자고 할 때도 죽이지 말고 애굽의 상인들에게 팔자고 하여 요셉의 생명을 구한 사람입니다.

 

1. 과거에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기억했습니다.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종으로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고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일을 말하는데 먼젓번에 양식을 사러 왔을 때, 네 아비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고 물으실 때 숨김없이 알려드렸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를데리고 오라고 해서 아버지께서 크게 근심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동생을 이곳에 두고 간다면 어떻게 아버지 얼굴을 바라보겠으며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2. 아버지 생명을 생각했습니다.

본문 30-31절에 "아비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비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하지 아니하면 아비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비의 흰머리로 슬퍼 음부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유다는 생명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리하여 요셉의 생명도 살렸고 아버지 생명도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베냐민이 돌아가지 아니하면 아버지가 죽을 가능성이 있어서 그냥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유다의 효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는 복을 받고 그 계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습니다.

 

3.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32-33절에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 보내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효성이 지극히 큼으로 형제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라고 하였습니다. 유다는 아버지를 위하여 동생을 돌려보내도록 자신이 희생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요셉은 마음에 감동을 받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효자가 하는 일은 잘되게 하십니다(엡6:1-3).

 

결론

유다는 위로 하나님을 성기고 아래로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좋은 사람입니다. 특히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여 효를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효행

창50:1-21

 

서론

하나님의 계명(십계명)가운데 인류에 관한 첫 계명(엡6:2)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 신5:16)"고 하는 계명입니다.

여기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키베드(Ki-bed)"의 원 뜻은 무겁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내장 중 간장이 제일 무거운데 히브리 말로 "카베드(Kabed)"라고 합니다. 즉, 부모를 간장처럼 귀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또 헬라어는 "티마(Tima)"인데 원 뜻은 "보배"라는 말입니다. 즉, 부모를 보배와 같이 귀중히 여기리라는 뜻입니다.

효는 백행지본(百行之本)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도를 잘하는 사람은 사회 각계에서 모든 이에게 잘 하는 법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는, 효부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요셉을 표준 삼아서 요셉의 효행을 생각하는 중에 주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내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1. 아버지를 자랑하였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며(창47:7)"라코 하였습니다.

이때 요셉은 당시 세계의 대제국인 애굽 나라의 총리 대신이었고, 그의 아버지 야곱은 한낱 가축 기르는 농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볼품없는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를 요셉은 애굽의 궁중으로 모셔들이고 바로 황 앞에 자기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자랑하였습니다.

 

2. 아버지의 별세를 슬퍼하였습니다.

요셉은 그 아버지 야곱이 별세하자 아비 얼굴에 구부려 울며 입맞추고 칠 일 동안 애곡하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별세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마땅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슬피 울며 애통해 하였습니다.

 

3. 자기의 물질을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수종 의사에게 명하여 향 재료로 아비의 몸에 넣게 하매 의사가 이스라엘에게 그대로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 재료를 넣는 데는 이 날 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창50:2-3)"고 하였습니다.

40일 동안 시체에 향 재료를 넣었다니 막대한 금액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많은 물질을 아버지를 위하여 조금도 아끼지 아니 했습니다.

 

4.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서 둔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창50:5)"라고 하였습니다.

순종은 부모 공경의 으뜸이 되는 것입니다(삼상15:22).

 

5. 아버지의 아들인 형제와 화목으로 지냈습니다.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21)"고 하였습니다.

부모의 기쁨은 자기의 자녀들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화목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요삼1:3-4).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은 모든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시133:13).

 

결론

우리도 주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효도는 돈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를 주님은 기뻐하시고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패역한 자식

신21:18-21

 

서론

하나님께서는 제일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고, 제오계명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천륜을 다하는 것이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인륜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천륜과 인륜의 도리를 완벽하게 행하는 종교입니다.

패역한 자식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1. 부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본문 18절에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 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이라고 하였습니다. 패역한 자식의 특징은 부모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말을 듣지 아니한다는 것은 부모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불신앙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제사보다 더욱 좋아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의 제오계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이것은 불신앙인이요, 불효자입니다.

 

2. 방탕하여 술에 취합니다.

본문 20절에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약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자라왔으니 행실인들 온전하겠습니까. 어른도 아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불량한 자식이지오. 도덕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못된 짓은 다하고 다닙니다. 거기다가 술까지 마시니 그 행실이 온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 술을 마시면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도 제정신을 잃고 실수를 하는데 평소에 불량하던 사람이 술을 마시면 이는 상대할 수 없이 고약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사형에 해당합니다

본문 21절에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내가 너희 중에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패역한 자식은 그 가정 뿐만의 문제가 아니요, 사회 전체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못된 자식은 가정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체를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돌로 그를 쳐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가정으로부터 사회 전체의 악을 제거하는 것이 됩니다. 불효자는 어디에도 발 붙일 곳이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결론

가정에서 패역한 자식이 생기는 자체가 불행한 비극의 원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그와같은 지식을 낳은 것은 부모의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판단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 이유는 아담의 가정에도 하나님께 속한 자식이 있었고 마귀에게 속한 자식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있었으며 이삭의 가정에도 두 계통의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기도할 뿐이고 자식들은 효도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관심

에4:10-17

 

서론

우리는 보통 개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성도는 별로 없습니다.

본문을 보면 유다 백성은 하만의 모함으로 대량학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왕으로부터 조서를 받아 남녀노소를 다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라고 역졸들에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 위험을 막기 위해서 모르드개가 유다인 중에서 황후가 된 에스더와 협상하고 있는 내용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동족을 위해 죽을 결심을 하고 왕 앞에 나가서 자기의 민족을 구해낸 것입니다.

 

1. 기독교인들의 국가에 대한 사명은 무엇입니까?

14절 하반절에서,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의 소속된 공동체를 떠나서 혼자 잘 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멸망받아도 나 한 사람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생각은, 남도 나 자신도 멸망케 하는 개인주의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의 삶의 목적은 내 자신만을 위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이웃과 국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기독교인의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2. 모든 문제는 기도만이 최선의 해결 방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16절 하반절에,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에스더의 신앙 인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는 밤낮 삼 일 동안 시녀와 함께 금식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에스더는 기도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인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동족들에게도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합심기도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16절).

다니엘 2장 17절 말씀을 보면, 다니엘은 어려운 문제를 앞에 높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케 하는 열쇠입니다. 에스더가 3일 금식 기도 후에 왕 앞에 담대히 나아가 섰을 때 왕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5장 3절에 보면, "왕이 이르되 황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기도의 능력은 큰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의 진로 문제, 장래 문제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또한 나라를 위해서도 보다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후 계 자

성 경 활 용

1. 후계자가 받는 것

(1) 땅

(창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 주사 너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너의 우거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게

(레20:24) 내가 전에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다

(2) 열방

(시2: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3) 집과 재물

(잠19:14)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4) 하나님 나라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약2:5)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5)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구원의 언약

(히11: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6) 생명의 은혜

(벧전3:7)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7) 복

(벧전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2. 유업의 가치

(1) 아름다운 것

(전7:11)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2) 썩지 아니하는 것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색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3. 유업을 주시는 법

(1) 약속대로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2)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두었다가

(갈4:1-2)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4. 후계자가 될 수 없는 자

(1) 불의한 자

(고전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2) 투기하고 술 취하고 방탕한 자

(갈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하는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3) 혈과 육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 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4) 계집종의 아들

(갈4: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좆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5.후계자가 될 수 있는 자

(1) 아들

(창24:36) 나의 주인의 부인 사라가 노년에 나의 주인에게 아들을 낳으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 아들에게 주었나이다

(갈4: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2)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

(신15: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3) 슬기로운 종

(잠17:2) 슬기로운 종은 주인의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겠고 또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으로 나눠 얻으리라

(4) 모든 인류

(전2:18-19)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5) 형

(눅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6) 그리스도께 속한 자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7)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약2:5)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 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관련원어풀이

1. lj'n: 나-할

(1) 어떤 것을 소유물로 받다, 소유하다.

(출34:9)

(2) 상속으로 물려받다, 기업을 잇다.

(삿11:2, 시119:11)

(3) 소유케 하다, 분배하다.

(민34:17)

 

2. hl;j}n" 나할라-

(1) 소유로 취함, 점령, 소유.

(민18:21, 수13:23)

(2) 여호와의 특별한 소유물, 즉 이스라엘.

(신4:20)

(3) 여호와에 의해 주어진 소유물, 여호와의 선물.

(시127:3)

(4) 상속, 기업.

(왕상21:3, 4)

 

3. vr'y: 야-라쉬

(1) 잡다, 소유하다, 점령하다.

(왕상21:16)

(2) 가지다, 소유하다.

(레25:46, 신19:14)

(3) 상속을 받다, 물려받다.

(창21:10, 민27:11)

(4) 상속자.

(렘49:1)

 

4. klhronovmo" 클레로노모스

(1) 상속자, 후사.

(마21:38, 갈4:1)

(2) 아들의 권리에 의해 할당된 소유를 받는 사람.

(롬4:13, 갈3:29)

 

5. klhronomiva 클레로노미아

(1) 상속, 전승, 유산.

(마21:38, 막12:7)

(2) 소유, 분깃, 재산.

(행7:5)

(3) 분배, 특권에 참예.

(행20:32, 엡1:14)

(4) 구원.

(갈3:18)

 

6. klhronomevw 클레로노메오-

(1) 얻다, 획득하다, 소유하다.

(마5:5, 19:29)

(2) 상속하다.

(갈4:30)

 

7. sugklhronovmo" 숭클레로노모스

(1) 함께 상속하는.

(엡3:6, 히11:9)

(2)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는 자

(롬8:17)

설교예화자료

스승과 제자

 

신자인 스승과 제자가 한적한 길을 나란히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나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네."

제자는 스승의 말이 매우 못마땅해서 언성을 높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말씀은 진실치 못합니다. 세상에는 악한이 얼마나 많은데 어찌 그런 것들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악한 이야 많이 있지. 그러나 내가 받은 은혜만큼, 그들이 받았다면 그들은 나보다 몇 배나 더 큰 열성으로 주님을 섬겼을 거야."

제자는 스승의 겸손과 생각의 깊음에 놀라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지식보다 사업가정신을 물려줬어야

 

무식한 영감님 한분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음식집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성실하게 일한 결과 사업이 번창해서 여러 곳에 지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영감님은 생각하기를 나같은 무식한 사람이 사업을 해도 그렇게 잘 되는데 공부를 많이 한 내 아들이 맡아 하면 사업이 얼마나 잘 될 것인가?

그는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는 것을 기다려 사업을 인계하였습니다. 아들은 밤새도록 주판을 놓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요새 불경기가 심한데 재고품을 많이 쌓아 놓으면 안 됩니다. 아버지, 저 지점을 닫아야만 합니다. "

아들은 주판만 놓고 안된다고 합니다. 안된다고 하는 말만 들으니까 아버지의 생각에 혼돈이 왔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대해서 무어라고 하면 "경제학을 모르셔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오랜 마음의 고통을 겪다가 아버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들은 사업을 망쳐 놓았습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안 된다고 보는 이유가 있을 수 있고, 된다고 하는 사람은 된다고 보는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깨달아야 할 것은 사업의 성패가 사업의 환경적 여건에 달려 있기 이전에, 사업가의 정신적 자세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자연이 위대한 인물을 제거할 때 사람들은 그의 후계자를 위한 지평선을 탐색한다.

(R.W. 에머슨/ 대표적 인물론)

 

 

설 교 노 트

 

왕자가 즉위해야 함

대하23:3

 

서론

제사장 여호야다가 국민들에게 권장한 것은 여호와의 뜻의 전달입니다. 이미 여호와께서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왕자가 즉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적 책임자는 왕입니다. 그러나 왕이 되고 안 되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나 뜻대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원리대로 진행되어야 당연한 것입니다.

왕이 죽으면 그의 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특수한 경우에는 그러지 못한 때도 있고, 또 이를 변경시켜야 피차 유익한 상황도 있을 것입니다.

아하시야 왕이 죽었으면 그의 왕자 요아스가 즉위해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겼습니다.

 

2. 왕자들을 죽이고 오후가 왕위를 찬탈하였습니다.

아하시야 왕의 모후는 여호람 왕의 왕비로 이스라엘 나라 아합 왕의 딸 아달랴였습니다. 아달랴는 고의 아들이 죽자 자신이 왕권에 대한 욕망으로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고 왕자들은 물론 아하시야 왕을 계승할 만한 혈족들까지도 진멸하고 자신이 왕위를 찬탈하였습니다.

아무리 왕위가 탐이 나고 욕심이 생긴다고 하여도 친손자들(왕자들)을 죽이고 왕권을 스스로 빼앗아서 영화를 누리겠다고 하였으니 일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참다운 일입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과연 악한 왕의 대표격인 아합의 딸이요, 천추의 요녀격인 이세벨의 핏줄을 이어받은 여자다웁게 행하였습니다.

 

3. 왕자는 생존해 있었습니다.

모후의 손자 친살(親殺)의 참화 속에서도 여호사브앗(여호람 왕의 딸)이 왕자 요아스를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한고로 아달랴가 저를 죽이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사브앗은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기 때문에 남편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전 어느 모퉁이 방에서 6년간 숨어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6년 후 때가 이르러 여호야다 제사장이 혁명을 일으키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언약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해야 할 것이다"하여 봉기하였으니 왕자가 생존해 있으므로 다른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결론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롬13:1). 그러므로 사람의 욕심대로 되지도 않고, 사람이 피하려고 하여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처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후계자인 왕자가 즉위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신34:1-12

 

서론

본장을 모세의 저작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의 학자는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써서 첨부하였다고 봅니다.

본문은 모세가 자신의 후계자를 확정하는 것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1. 가나안을 바라보는 모세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라고 하였습니다.

느보산과 비스가 산은 다른 산이 아니라 같은 산의 두 이름인데, 특히 비스가산은 그중에 주상봉을 이름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대로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으니 이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실감하게 하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주로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청년인 여호수아가 적임일 것이므로 모세는 그의 역할이 완수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좋다고 할지라도 실제 천국만은 못할 것이니 천국 직행의 모세로서는 아무 미련이 없었을 것입니다.

 

2. 모세의 죽음과 후계자 확정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는데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그의 나이 120세였으나 그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여 후계자로 확정케 하였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게 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그를 순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 모세의 인물

지금 이후로는 이스라엘 가운데 모세같이 위대한 선지자가 없으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하나님의 친구와 같이 비밀이 없이 지내온 까닭입니다.

또 이 사실은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기 때문에 더욱 분명한 사실입니다. 애굽땅 에서와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서 이루어진 모든 이적과 기사와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대략 행정에 관여하였고 하나님과의 신령한 관계는 제사장 엘르아살이 맡아서 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자신이 모세의 후계자라고 하여 만사에 자기가 나서서 하지 않고 신령한 일은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맡겼으니 참으로 잘한 것입니다.

 

결론

과연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낸 영웅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충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계자를 잘 세웠습니다.

 

 

다윗 왕의 후계자 선포

왕상1:32-53

 

서론

사무엘 상 ·하서는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역사가 주로 기록되었고 본서는 솔로몬 왕과 그 후대 제왕들의 기록이므로 책명이 열왕기입니다.

본장은 다윗 왕이 후계자로 솔로몬을 지적하여 선포함으로 아도니야의 야망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1. 노쇠해진 다윗

이때 다윗의 나이는 아마도 70세가 되었을 것이니 왕위에 오를 때가 30세요, 40년간 왕위에 있던 까닭입니다(삼하5:4-5).

다윗이 노쇠하였기에 체온이 약화되어 아리따운 젊은 처녀를 데려다 봉양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젊은 여자로 더불어 향락케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왕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노쇠 치료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밧세바의 간곡한 요청

다윗의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는 자기 위로 세 형이 다 죽자 자신이 왕이 될 야심을 품고거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절박한 사정을 탐지한 나단 선지자는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를 충동하여 둘이서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이 음모를 왕에게 고하는 동시에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대한 약속을 급속히 실현할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습니다.

이때에 다윗은 노쇠하여 아도니야의 하는 일을 한 번도 책망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후계자는 솔로몬이 나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대상22:9-10)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의 후계자로 솔로몬이 왕될 것을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였고, 밧세바는 만세수를 축원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하며 사례하였습니다.

 

3. 솔로몬의 즉위

다윗 왕의 결심이 선포되자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는 왕명을 따라 다윗성의 아래쪽에 위치한 기드온 골짜기에 있는 샘인 기혼에 가서 사독의 집례로 기름부음의 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이에 백성들이 나팔을 불면서 "솔로몬 왕 만세"를 불러 땅이 진동할 지경이었습니다.

또 다윗의 신하들이 축하하기를 다윗 왕보다 더 번창하기를 축원하였고 다윗은 여호와를 찬송하며 기뻐하였습니다.

아도니야와 그 일파는 이 소식을 듣고 낭패를 자인하고 한 가지로 도망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론

아도니야는 제단의 활을 잡고 죽음을 면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즉위한 솔로몬은 선행할 것을 조건으로 관대한 처분을 내려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는 왕자의 도를 백성에게 보인 종은 일입니다.

왕권이라는 것은 개인의 욕망이나 의사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입니다(롬13:1).

훈 계

성 경 활 용

1. 훈계의 의도

(1) 지식을 얻게 하려고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2) 궁핍과 수욕에서 벗어나려고

(잠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3) 생명길로 행하게 하기 위하여

(잠10: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4) 정직하고 지혜롭게 하려고

(잠1: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2. 훈계하는 자

(1) 하나님

(시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2) 아비들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3. 훈계를 받는 자의 자세

(1)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잠23:12)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2) 명철 얻기에 주의해야 한다.

(잠4:1)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3) 훈계를 지켜야 한다.

(잠13:18)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지키는 자는 존영을 얻느니라

 

4. 훈계하는 방법

(1) 권고하여

(잠19:20)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 주목하여

(시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3) 주의 교양과 훈계로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4) 책망하여

(잠6:23)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5) 이단에 속한 자에게 한두 번

(딛3: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6) 채찍으로

(잠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5. 성도가 받아야 할 훈계

(1) 지혜의 훈계

(잠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2) 만물을 통한 훈계

(잠24:32)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3) 말씀의 훈계

(시16: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4) 선조의 모든 훈계

(램35:18)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관련원어풀이

1. rs;Wm 무-사-르

(1) 부모가 어린이를 고침, 하나님이 사람을 고침, 교정, 징벌.

(잠22:15,호5:2)

(2) 권고, 단련, 모범.

(시50:17, 잠1:8)

(3) 가르침, 지식, 교리.

(잠1:2, 4:13)

 

2. hw:x]mi 미츠와-

명령, 교훈, 훈계.

(신6:1, 왕하18:36)

 

3. nouqesiva 뉴데시아

권고, 훈계.

(고전10:11, 엡6:4)

설교예화자료

중상 모략

 

아주 친근한 사이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중 한 사람이 자기 친구의 얘기를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그대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전하였습니다. 소문은 전해질수록 커져 아무리 친한 친구이지만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대단히 불쾌하였습니다. 결국 친한 사이인 이 친구는 우정을 끊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명예 훼손을 입은 친구가 고민 끝에 심한 병에 걸렸습니다. 곧 죽어가자 이때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 친구가 찾아와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죽어가는 친구는 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을 꺼냈습니다.

"그 대신 날 위해 뭘 좀 해 주게나, 여기 내 새털 베개를 가져다가 정원에 뿌려 주게."

이상한 부탁이지만 죽어가는 친구의 소원이라서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사실대로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죽어가는 친구는,

"자, 이제 그걸 다 주어다 주게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는가?"라고 친구가 말하자,

"바로 그걸세. 자네가 나에 대해 나쁜 소리를 퍼뜨리고 다닌 걸 나로서는 솔직히 말해 용서할 수 있네. 그러나 용서하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내가 입은 상처와 악영향은 되살릴 수 없네. 일단 나쁜 말은 입 밖에 나오면 책임질 수 없는 것일세."라고 죽어가는 친구가 말했습니다.

 

 

용기와 관찰

 

교수가 학생들에게 실험에 있어서는 용기와 관찰이 긴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서,

"학생 여러분! 이 컵에는 오줌이 있어요. 나는 제군들이 얼마나 용기가 있는지 보겠어요. 우선 내가 이 컵에 손가락을 담갔다가 핥을 테니 제군들도 따라하기 바라겠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대로 하자, 학생들도 어찌 할 수 없이 이마를 찌푸리며 따라했습니다. 모든 학생이 하고나자 교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용기는 백 퍼센트였으나 관찰은 제로였어요. 나는 손가락을 담그기는 했으나 핥은 건 다른 손가락이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오. 그 컵의 물은 물감을 탄 식수였으니까 말입니다. "

 

 

모기와 거미와 미치광이

 

다윗 왕은 평소부터 거미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집을 짓는 더러운 동물이며, 아무 소용도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전쟁에서 그는 적에서 포위되어 달아날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궁여지책으로써 그는 어떤 동굴에 숨어들었습니다. 이 동굴의 입구에는 마침 한 마리의 거미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뒤쫓아 온 적의 병정은 일단 동굴 앞에 멈춰 섰으나, 거미줄이 쳐 있는 것을 보고 모두 돌아가 버렸습니다. 또 어떤 때, 다윗 왕은 적의 장군의 침실에 숨어 들어가 칼을 훔쳐 이튿날 아침에, "나는 당신의 칼을 빼앗을 정도이니 죽이는 일을 간단히 할 수 있었습니다. "고 은혜를 베푸는 듯이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침실에 숨어 들어가기는 했으나 칼은 장군의 다리 밑에 들어가 있어 아무리 해도 빼앗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윗 왕은 마침내 단념하고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습니다. 한 마리의 모기가 날아 와서, 장군의 다리에 앉았습니다. 장군은 무의식중에 다리를 움직였습니다. 그 순간 다윗 왕은 칼을 훔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또 어떤 때 다윗 왕이 적에게 포위된 위기일발의 찰나, 그는 별안간 미치광이 흉내를 내었습니다. 병정들은 설마 이 미치광이가 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무엇이건 세상에서는 필요 없는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록·시·묘사

 

훌륭한 충고보다 값진 선물은 없다.

(에라스무스/ 대화집)

 

자기 자신의 훈계에 따르는 자는 훌륭한 목사이다.

(W.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많은 사람이 훈계를 받지만, 그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것은 현명한 자뿐이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좋은 충고는 값을 초월한다.

(W. G. 패넘)

 

훈계는 남이 모르게, 칭찬은 여러 사람 앞에서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격언집)

 

 

남을 보람 있게 훈계하고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려고 할 때는 그가 사물의 어느 방면에서 보고 있는가를 관찰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물은 보통 그 방면에서는 진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진실한 점을 그에게 시인하여 주고 그 대신 그의 잘못된 다른 방면을 가리켜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모든 방면으로 보지 않았을 뿐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란 모든 것을 보지 않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화를 내지 않지만 과오를 범했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B. 파스칼/ 팡세)

 

꿀을 상처에 바르면 아프고 쑤시듯이 진실에서 우러나온 건전한 충고는 부드럽게 위로하지 아니한다면 불행한 사람들을 분개시킨다. 단것은 입에 맞고 거슬리지 않으므로 달갑다고 시인은 말하지만, 백성에 대한 충고는 그와 같이해야 한다. 염증이 생긴 눈이 어두운 것은 좋아하고 강한 빛을 싫어하듯이 불행을 당한 도시는 그것이 가장 필요한 때에도, 또는 자칫하면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하기 쉬운 때에도 솔직한 충고를 듣는 고통을 참는 힘이 없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노인의 훈계는 겨울 햇빛과 같아서 과열하지 않고 비쳐 준다.

(L. C. 보브나르그/ 성찰과 잠언)

 

바로 간하고 허물을 바로잡는 것은 괴로운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달가운 일이며, 등창을 빨아 주고, 치질을 할아 주며, 아첨하여 뜻을 받들어 모시는 것은 편안한 듯하면서도 끝내는 위태로운 것이다.

(김시습/ 매월당집)

 

훈계만큼 기분 좋게 사람들이 주는 것은 없다.

(F. 라 로슈푸코/ 잠언과 고찰)

 

나는 30년 전부터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일은 남을 책망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왜그러냐하면 나 자신의 모든 결점을 고치기에도 충분한 노력을 다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워너메커)

 

사람들은 좋은 의견은 말하지만 훌륭한 행동은 보여주지 않는다.

(B.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나는 평생 동안 어떠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때마다 그 문제에 가장 해박한 사람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분의 자문을 구했습니다. 얻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자문을 얻은 후에는 거기에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L. B. 존슨)

 

임금은 섬기는 데 있어 간언(諫言)이 잦으면 욕을 보게 되고 친구와 사귀는데 충고가 잦으면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논어)

 

매를 맞지 않는 자는 잘 자라지 않는다.

(메난드로스)

 

훌륭한 말(馬)이 되게 하는 것은 고삐와 박차다.

(T. 풀러)

 

사람들은 조언을 부탁하면서 동의를 바라고 있다.

(미상)

 

결국 조언이란 무의미한 것. 사람에게 조언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만이 조언할 수 있지만 그도 지금은 지쳤다.

(최인훈/ 광장)

 

하나님은 악한 자를 체벌하고 선한 자를 위로하려는 이중의 목적으로 그의 채찍을 가지고 있다.

(R. 헤리크)

 

매를 아끼면 아이를 잃는다.

(S. 버틀러)

 

책망이 칭찬보다 더 안전하다.

(R.W. 에머슨/ 수필집)

 

만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를 비난할 때에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에 자신을 믿을 수 있고/그들의 의심까지 너그러이 생각할 수 있다면/만일 기다릴 수가 있고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남에게 속임을 받고도 속임으로 상대하지 않고 미움을 받아도 같이 미워하지 않고/ 그러고도 착한 체하지 않고 지혜로운 양 말하지 않는다면// ‥‥이 땅은 내 것이요,그 안의 모든 것도 네 것이로다/ 그리고 그보다도 너는 인간이 되리라. 내 아들아.

(J.R. 키플링/ 만일)

 

축복으로써 오늘도 길을 나서/ 어느 땅으로 향하든지 간에 주 하나님/ 당신의 비호 아래여행할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여,당신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시사/ 성모의 영예를 위해 보호하소서./ 신으로서는 오래고 사람으로서는 새로운 당신이/ 나귀와 소를 앞에 두고서 겸손히/구유 속에 누워 계시어/한없는 축복과 보호로써/ 천사장 가브리엘이 잠시도 눈팔지 않고/ 충실하게 당신을 보호하던 그때/ 거룩한 천사가 성모와 당신에게 하셨던 바와 같이/ 나를 지키소서, 당신의 한없이 깨끗한 훈계가/내 위에 새로 임하소서.

(발터/ 길 떠나기 전의 기도)

 

내 가슴을 때려 주소서, 삼위 일체의 신이여, 당신은 여지껏 노크하고 숨쉬고 빛나고 고치려고만 했을 뿐입니다. / 내가 일어나 설 수 있도록, 나를 밀치고 깨뜨리고/ 불고, 태우고, 나를 새롭히도록 기 울이소서./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갈 포위된 거리,/ 당신을 받아들이려 애쓰나 오,아무 소용이 없나이다. /내속에 있는 당신의 총독과 이성이 나를 지켜야하는 데도/오히려 포로가 되어 약해지고 참되지 못하나이다. / 나는 몹시도 당신을 사랑하고 또한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당신의 원수와 결혼하게 결정되어 있사옵니다. / 나를 이혼시켜 주소서, 그 매듭을 다시 풀어 주고 찍어 주소서./ 당신에게로 나를 데려가 나를 가두소서,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가두지 않으시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며/ 결코 정숙할 수도 없사옵니다, 당신이 나를 겁탈하지 않으신다면.

(J. 단/ 내 가슴을 때려 주소서)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사랑이/팔이 되고 손바닥이 되고 눈짓이 되었다. / 소리가되고 증거가 되고 사권이 되었다. //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말씀이/ 들과 산을 걸었다, 가난한 호반의 거리와 마을들/ 회당과 집들, 문과 문을 다니셨다. //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역사가/ 병든 자 눈먼 자 억눌린 사람들 위에 이루어졌다. / 죄인보다 더 죄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셨다.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용서가/사함받는 분의 이름과 복음을 말씀하셨다. / 기도와 마음 아파하심이 드러났다. //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빛이/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용서하기 위해서만 오셨다. / 살이 되고 교훈이 되어 사랑하기 위해서만 오셨다. // 여태 이 세상에서 본 적 없는 가르침이/ 표적을 버리고 희생물이 되셨다. /교훈의 때 계시의 때가 차서 희생물이 되셨다.

(다까오 기꾸오/ 설교를 가르치신 예수)

 

 

설 교 노 트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

잠1:8-9

 

서론

우리 인간들은 자기에게 이로운 충고를 해주는 사람을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듣기에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권면의 말씀을 하실 때 자녀된 자들은 그것을 잔소리로 듣고 그냥 지나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됨을 말씀하십니다.

 

1.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라.

5계명은 약속하기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고 하였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땅에서 형통하지 못하고 불행하게 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자인 우리는 불신자처럼 되지 말고 노인과 선배와 부모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

그럼 본문에 말한 아비의 훈계는 무엇이며, 어미의 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두 가지는 믿는 가정의 부모가 신앙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장면을 말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교훈이 부모의 교훈을 통해서 사랑과 권위로 하나님의 백성을 찾아온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서 부모의 위치를 하나님이 대리한다고 말씀합니다(신6:7, 11:19). 자녀 된 자는 아비의 훈계를 들어야 하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아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은 아버지요, 할아버지 되신 아브라함의 말을 잘 들음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도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음으로 처음은 고통도 많았지만, 마침내는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어 모든 사람을 굶주림에서 구원하였습니다.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의 말을 잘 들음으로 자기 동족을 신앙으로 애굽에서 구출하는 대영도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도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않고 잘 믿음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들이야말로 그 "어미의 아름다운 관이요", "그들의 목의 금사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님들의 자랑과 영광이요, 자식들의 출세가 된다는 말입니다.

 

3. 자녀의 신앙심도 부모로부터

자녀의 신앙심도 부모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의 믿음은 어머니 요게벳으로 말미암아왔고,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의 기도로 말미암아 되어졌고, 신앙의 효부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로 말미암아 감화를 받았기 때문에 그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부모 없는 자녀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 오른 것도 아니고,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말미암아 세상에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다 함께 주 안에서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부모에겐 아름다운 자랑의 면류관이 되고 우리는 금사슬을 목에 거는 축복의 자녀가 됩시다.

 

 

무화과로 보이셨는데

렘24:1

 

서론

무화과는 유대 나라의 세 가지 대표적 식물 중의 하나로 그 세 가지 식물은 포도나무, 감람나무, 무화과나무입니다.

성경에는 이 무화과나무가 60여 회나 기록되어 있어서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나무입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아주 특이한 교훈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무화과의 의의

무화과는 꽃이 없어서 무화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꽃이 숨겨져 있는 식물이라 은화식물이라고 합니다.

잎사귀는 손바닥 모양의 커다란 것으로 아담과 이브의 치마로 이용되었고(창3:7), 나다나엘에게는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이 되었습니다(요1:48, 50).

그 열매는 주로 식용으로 날로 먹거나 말려서 먹었으며 그 맛은 달고 맛있는 것입니다(삿9:10-11). 그리고 약용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왕하20:7, 사38:21).

영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상징하여 계시에 응용되거나 교훈에 이용되었습니다.

 

2. 무화과나무의 비유

예수님의 교훈 중에 특히 말세와 재림에 관련된 교훈이 많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32-33)"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독립이 곧 재림의 징조의 하나인 것을 말씀해 줍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신 대로(마23:37-39)예루살렘 성이 주후 70년에 멸망하여 그 민족이 세계에 흩어져서 사는 동안 100년,200년,500년, 1000년, 2,000년이 가깝도록 아무런 기미도 없다가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1945) 후에야 활기있게 이 사실이 응하여 짐으로 지금 정치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고(1948) 재건되니 이것도 재림이 임박한 경고입니다.

 

3.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상경 도중에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없으매 저주를 받아 말라져 죽은 사실이 나타났습니다(마21:18-22).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도 잎사귀만 무성한 위선적인 유대인들을 경고하신 교훈이시며, 눅13:6-9에서는 3년간 결실하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찍어 버릴 입장에서 1년 조건부의 연장을 받아 간신히 죽지 않고 보존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이스라엘인들이 택한 백성의 책임을 못함으로 받은 책망들입니다.

 

결론

아무리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생활을 하거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신 무화과를 잘 보고 그 숨은 진리를 바로 깨달아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어리석도다

갈3:1

 

서론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셔서 만물의 영장을 삼으시고 여러 가지 특징을 부여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이성을 허락한 것은 사리를 옳게 판단하고 지혜롭게 살라고 하신 조치이십니다. 그러므로 잠언 1장 7절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는 데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가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갈라디아 사람들이 왜 어리석습니까?

그들은 일찍이 바울을 통하여 복음의 진리를 잘 배우고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눈앞에 밝히 보이는데, 이 복음을 바로 받아 믿었다면 어찌하여 미혹을 받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이 제아무리 감언이설(甘言利說)로 꾀인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지조가 굳건히 서지 못하면 고개 위의 풀과 같이 바람부는 대로 흔들거리고, 물 위에 뜬 부평초처럼 물결치는 대로 밀려다니기 쉽습니다.

갈라디아인들이 그런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사람에게 의심이 생기는 것은 이미 들은 말을한 사람 자체를 의심하는 까닭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아담, 하와는 나중에 마귀가 죽지 아니한다는 말을 더욱 신임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타락하였습니다. 참된 전도자 바울의 말을 일단 듣고 믿었다가 이단자들이 꾀이는 말에 미혹되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2. 십자가를 재인식해야 합니다.

바울이라는 일개 전도자는 사람이므로 부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실한 것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 복음의 내용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사업입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바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믿고 시작한 사실을 왜 스스로 부인하고 이제는 육체로 마치려고 하느냐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소하고 강경한 뜻으로 책망하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요, 예수님을 믿은 일은 최고의 지혜입니다.

이미 얻은 축복을 스스로 빼앗기거나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면하고 십자가를 재인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힘

성 경 활 용

1. 하나님의 힘에 대한 묘사

(1) 산을 세우신다.

(시65:6)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2) 멸하신다

(슥12:9)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열국을 그날에 내가 멸하기를 힘쓰리라

(3) 판단하신다.

(시54: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판단하소서

(4) 주의 말씀

(행19:20)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2. 힘쓸 수 있는 방법

(1) 지식이 있어서

(잠24:5)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2) 성령을 받아야 한다.

(골1:29)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3)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느8:10)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4) 여호와께서 주셔야

(시18: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3. 성도가 힘써야 할 일

(1)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고후5:9)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2) 믿음의 덕을 공급하기 위해

(벧후1:5)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3) 손 대접하는 일에

(롬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4) 이웃의 구제에

(잠3:27)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5) 주의 일에

(고전15:58)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6) 봉사에

(벧전4:11)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7) 여호와께 부르짖는 일에

(욘3:8)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8)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9)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행24:16)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0) 연보에

(고후 8: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11) 화해하는 것에

(눅12:58) 네가 너를 고수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4. 힘쓰는 성도의 결과

(1) 힘 없는 자에게 도움을 준다.

(욥26:2)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

(2) 사랑이 생긴다.

(행2:42)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3)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

(시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4) 영화가 됨

(잠20:29)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

 

5. 힘을 얻는 방법

(1) 깨끗함으로

(욥17:9)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2) 여호와를 앙망한다.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3) 지혜로

(전7: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4) 하나님과 가까이 함으로

(사41:1)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여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관련원어풀이

1. laE 엘-

(1) 권세, 강력한 자.

(사9:5, 겔31:11)

(2) 세력, 능력.

(신28:32, 잠3:27)

(3) 하나님.

(창33:20, 시18:3)

 

2. ijscuv" 이스쿠스

(1) 힘, 능력, 강력.

(엡1:19, 계18:2)

(2) 기능, 능력.

(막12:30, 눅10:27)

설교예화자료

병든 사자

 

아무 짐승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으면서 숲속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던 사자가 늙고 병이 들였습니다.

사자는 힘을 잃고 풀밭에 쓰러져 끙끙 앓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본 소는 두 뿔로 힘껏 사자를 들이받았습니다.

"꼴 좋다, 너도 한 번 내 뿔맛을 봐라."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하며 당나귀도 힘껏 뒷발로 걷어찼습니다.

"흥, 이놈의 사자야 네가 이렇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

멧돼지도 달려들어 병든 사자를 힘껏 들이받으며 소리 쳤습니다.

숲속의 모든 동물들이 번갈아 가며 한 번씩 사자를 할퀴고 때리고 하였습니다.

"아이구! 이따위 아첨쟁이들한테 이렇게 당하다니, 아이구 원통해라."

늙고 병들어 힘이 없는 사자는 평소 괴롭히던 작은 동물들로부터 호되게 맞아 결국 숨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설 교 노 트

 

새 힘을 받자

사40:27-31

 

서론

이제 봉독한 말씀을 보면 모두가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도 힘을 주시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힘이 없으면 살지 못하고 죽고 말 것입니다.

성경 본문에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해진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피곤하고 곤비한 세상이 되었는데, 심지어는 소년마저 피곤해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육체적인 피곤이 올 뿐만 아니라 생활의 피곤과 정신적인 피곤이 오게 되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적인 피곤조차 한꺼번에 겹쳐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을 가만히 보면 온통 피곤한 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피곤과 곤비로 말미암아 오는 결과는 사람들로 하여금 형무소를 가게 합니다. 정말로 사람에게 말못할 사정들이 겹치고 겹치게 되면 피곤해져서 참지를 못하고 마구 찌르고, 훔치고, 죽이는 끔찍한 일들을 순간적으로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10대 소년 범죄를 다루는 소년원에도 범죄율이 날로 증가되어 어디다가 수용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제 소년들이 다 피곤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피곤하고 곤비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이 무서운 피곤을 이기려고 하면 별수 없이 위로부터 주시는 새 힘을 받아야만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2. 피곤을 이기는 새 힘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자시요, 인간처럼 피곤하거나 곤비치 아니하십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주시는 새 힘을 받아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듯이 피곤과 곤비는 물러가 버리고, 자빠지고 넘어지던 실패는 사라져 버리고, 천국까지 힘 있게 올라갈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독수리라는 날짐승은 본래 그 새끼를 많이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독수리는 새끼를 깔 때에 폭신한 독수리 등지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지마는 그러다가 새끼 독수리에게 날개가 돋아나고 제 힘으로 날을 때가 되어지면 어미는 새끼의 등지를 헐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먹이도 물어다 주지 않으니 새끼는 배가 고파집니다. 편안치도 않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어미 독수리는 그 새끼를 등에다 업고 높고 높은 공중에서 날아가서 냅다 새끼를 등에서 집어던져 버립니다. 그러다가 다시 땅에서 떨어질 때가 되면 또 반복합니다. 그렇게 반복하는 사이에 새끼 독수리는 날개가 힘을 얻어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완전한 신앙의 사람이 되도록 단련시키시고 힘을 주십니다.

 

결론

아무쪼록 아무리 오늘 세상이 소년도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곤비하며 넘어지고 자라지는 세상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여호와를 의지하고 앙망하므로 말미암아 새 힘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병원이 미어지고, 형무소가 차고 넘칠지라도 독수리의 날개처럼 피곤치 않는 새 힘을 받아 올라가고 승리하고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께서 인도하시니 매사에 만사 형통하시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디서 힘을 얻을 것인가

사40:27-31

 

서론

사람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구원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꾼들에게 힘을 주시며 일하도록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힘을 기르고 모으고 강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보존하는 사람이 큰일을 합니다.

 

1. 힘 중에는 지력이 있습니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강합니다. 교사는 무엇보다도 많이 알고 정확히 알고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해야 합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지식 중에 최고의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자식임을 깨닫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합니다.

 

2. 덕의 힘이 있습니다.

비록 몸의 힘이 약하고 아는 힘이 약해도 덕의 힘이 강한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재덕이 건전하여야 합니다. 이는 사람이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죄악들은 덕의 부족에서 오는 죄악들입니다. 많이 알지 못해서가 아니고 몸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도덕의 힘이 부족해서입니다. 모든 덕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3. 가장 중요한 힘은 영적 힘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허락하시는 힘입니다. 이 힘으로써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이 힘을 가질 때에 하나님 앞에 나오고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과 사귀고 땅에서도 하늘이 이치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알고 죄 용서받는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힘을 주십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바 은혜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믿는 것입니다. 나의 힘의 무능력을 깨닫는 사람이 비로소 앙망합니다. 하나님의 힘의 능력을 알고 믿는 사람이 앙망합니다. 사람에게서 실망한 사람이 여호와를 앙망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아서 약해지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결론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으면 독수리의 날개처럼 올라감 같아서 향상하는 자가 됩니다. 죄와 어둠으로 침류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로 올라갑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니 경주에서 승리자가 됩니다. 일하고도 힘이 남아돕니다. 그리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합니다. 전진의 힘을 얻습니다. 결국에는 천국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꾸준히 전진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일은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교회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가치 있고 중요한 일입니다.

 

 

성을 강으로 끌어들이다

삼하17:13

 

서론

후새가 압살롬에게 모략을 제의하기를 "만일 다윗이 어느 성에 들었으면 온 이스라엘이 줄을 가져다가 그 성을 강으로 끌어들여서 그곳에 작은 돌도 보이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과장된 말인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1. 이 말의 중심 뜻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에게 반역을 하여서 아버지를 쫓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들 압살롬을 피해서 피난갔습니다.

만일 피해 다니는 다윗이 어느 성에 들어가서 숨어 있을 경우에는 그 많은 이스라엘 대중이 밧줄로 그 성 안의 모든 시설들을 강으로 끌어내리자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보통 성은 높은 데 있으니 그 아래 있는 골짜기로 끌어내리자는 뜻입니다.

이것은 물론 과장된 말입니다. 그러나 전 이스라엘의 힘을 모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힘으로도 하나의 도성 같은 것쯤은 돌 하나도 남기지 않을 만큼 용이하게 함락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2. 인격으로는 이를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전국민이 거족적으로 합심하여 힘을 쓴다고 할지라도 고정되어 자리잡고 있는 한도성을 줄로 매어 이리저리 끌어당겨 옮겨놓을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입니다.

사람의 힘이 아무리 강하여도 높은 산을 낮게 할 수도 없고, 흘러내려 오는 강물을 멈출 수도 없고, 좁은 땅을 넓게 만들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의 힘이나 숫자의 위력을 의지하려는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과장된 제안은 한낱 허망스러운 꿈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지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연계를 마음대로 좌우하십니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여 바다 가운데를 육지같이 만드사 많은 무리를 건너게 하셨고(출14:21-25),요단강 물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무사히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수3:7-13).

기브온의 태양을 머무르게 하시며(수3:12-13),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10도를 물러가게 하시는 분이(왕하20:8-11)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서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그 일에 협력하시느냐를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힘만을 의지하면 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