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생활이 주는 유익
1. 천국적인 공동체
수도회는 가장 천국적인 형제회가 되고 가장 천국적인 가족이 될 수 있어요. 혈육 간의 애정과 친구 간의 애정으로 똘똘 뭉쳐진 곳이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순수한 영적 사랑으로 영적인 가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질서 있는 공동생활을 하고요. 그것이 사실은 수도회의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수도회 안에서 천국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수도회가 가장 빠른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가정 천국’을 많이 부르짖는데 혈육 간의 애정이라든가, 남녀 간의 애정이라든가, 이런 방해하는 세력이 막강해서 어려운 점이 있어요. 그러나 수도회는 그런 것이 강하게 지배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천국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적인 가정을 이루는데 가장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이 너무 심해지면 육적 사랑으로 타락하기 쉬운 것 같아요. 수도원 안에서도 그렇지요. 소화 테레사 성녀가 언니들과 함께 가르멜 수도원에서 생활하면서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순수한 영적사랑을 하려고 애태우는 모습을 많이 볼 수가 있겠더군요. 순간순간 혈육간의 애정에 휩쓸릴 때마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수도적인 생활을 철저히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잘 기록되어 있어요.
2. 공동생활 속에서 작은 덕을 닦아라
우리는 가운데 있는 것을 더 중요시해야 됩니다. 수도생활이 곧 수덕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덕을 닦는다는 것이지요. 수도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수덕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가까운 데서부터 철저히 살고자 노력해야 되거든요. 다시 말해서 회칙을 철두철미하게 준행하고 성무일과표를 철저하게 실천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항상 거울이 되어서 자기반성을 하고 철저하게 회개생활을 하는 것이 수도자들이 걸어가야 할 기본원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생활 구석구석을 좀 더 세밀하게 조명을 해주시거든요. 예를 들어 프란치스꼬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어느 날 수녀 한분이 프란치스꼬 성인이 가만히 앉아서 명사하고 계신 방으로 문을 확 열고 들어와서 털썩 주저 않더니 “사부님, 어떻게 하면 수도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수도생활이 너무너무 안 되기 때문에 답답하기 한이 없어요.”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프란치스꼬 사부님께서 조용히 눈을 뜨시면서 하는 말씀이 수도생활을 잘 하려면 방금 이 방에 들어올 때 문을 확 열고 닫았던 행실을 고쳐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분에게 여러 가지 수도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수도생활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저도 사람들과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대화를 할 때 항상 느껴지는 바가 있어요. 저는 조금 거리가 멀게 느겨지는 사람에게는 쉽게 이야기를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근래에 와서는 수도회원이라든가, 연구회원이라든가, 좀 더 열심히 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그동안 참고 얘기하지 않은 부분을 이제는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조금씩 새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언어생활을 통해서 겸손의 열매를 얼마든지 맺을 수 있는데, 그런 것에 별로 마음들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죄성이 어떻고, 교만성이 어떻고, 포악성이 어떻고, 이런 것만 머릿속에 넣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실제 생활 속에 어떻게 적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언어생활에 늘 존댓말을 많이 사용하면서 덕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자기는 항상 말석에 놓고 늘 상대방을 상석으로 높여주는 생활을 하고자 한다면 겸손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나는 입술이 뻣뻣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갈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라고 하셨지요. 이런 말만 겸손의 열매를 맺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순간순간 생활 가운데 존댓말을 열심히 사용함으로써 겸손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윗사람과 아랫사람, 선배와 후배, 연령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직책이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을 잘 구별해서 언어생활을 하면 겸손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비록 아랫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높여 주려고 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고 존댓말을 필요적절하게 사용한다면 겸손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까도 어떤 분이 “목사님, 질문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이 질문이라는 단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질문할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우리 생활 가운데 너무 많아요. “말 좀 물어보겠습니다.” 이런식의 표현이 많다는 거예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뭔가 부탁을 할 경우에는 “죄송합니다만 지금 말씀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여쭤볼 것이 있는데 괜찮겠습니까?”라고 해야 됩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덕을 지키고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언어생활에서도 덕을 닦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대화하는 가운데 그런 것들이 많이 느껴져요. ‘그래도 수도자들이라면 이런 점을 좀 더 많이 생각하고 덕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저와 관계가 되는 것 같아서, 마치 저 자신을 높여 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이야기를 잘 못하게 되지요. 그렇게 작은 것부터 고치려고 노력해야만 전체적인 빛의 질서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3. 공동생활이 주는 유익
조금 아까 수련장님이 “여러분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따라오게 되었다”고 했지요. 거기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면 상부상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말씀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수도생활에 대해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사명감을 불태우면서 앞장서 나가시는 분들을 보며 마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질 수 있었다. 그래서 큰 유익이 되었다는 말씀인 것 같아요. 또 약해져가는 분들, 침체된 분들, 비틀비틀하는 분들을 보면서 ‘저런 분들은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사랑을 실천하고 동정하고 위로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수련장님 자신도 영적으로 유익함이 많았다는 말씀인 것 같네요.
썬다싱에게 있었던 일화 - 눈길에서
이와 같이 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업고 가는 사랑을 실천하노라면 서로 간에 유익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얘기를 아까 하신 것 같아요.
4. 공중도덕을 잘 지키자
서로서로 공중도덕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하시고요. 상대방이 상처받아서 ‘떠나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 갖지 않도록 해야지요. 공중도덕 같은 것을 무시하면 안 되지요. 각자 ‘이 전화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아껴서 쓰자.’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 전화를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따져가면서 인색하게 하면 안 되고요. 잘못 얘기해서 상처받고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공중도덕이 잘 지켜지도록 서로 애를 써야 합니다. 수련원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모이는 곳이잖아요. 전화나 여러 가지 시설물을 관리하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손님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차라리 “전화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옵소서.” 이런 방향으로 기도를 한다든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봐야지요. 너무 알뜰하게 하다가 사람들을 시험들게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5. 수도회에 찾아오는 손님
어느 정도 조절을 해야 합니다. 지나칠 경우에는 새로운 법도를 만든다든가, 규칙을 세워서 수도생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지요. 같이 의논해서 정돈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융통성도 필요하고요. C전도사님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함께 사는 수도자들이 그런 것 때문에 벅찬 문제가 된다면 조절을 해야지요. 작은 것은 말고요.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으면 규칙을 세워요. 수도자들이 영적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교회나 학교에 미리 얘기해서 이해를 시켜드리고, 앞으로 이렇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요. 아무 때나 쉽게 가기만 하면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 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수도원이 될 경우는 그런 것도 다 정리가 되어야 하거든요. 침묵하는 시간도 필요하겠지요.
기도시간에 손님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일까요? 살짝 일어나서 말씀을 드려요. “지금 이러이러한 시간이니까 조금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기도하고 있는 방 말고 다른 방으로 안내해서 기다리시도록 해야지요.
어떤 분은 교회 성도님에게 수도원에 놀러오라고 해요.
수도원은 수도하는 집이잖아요. 거기는 성무일과가 있어서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생활해야 되는데 놀러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식사 때가 지났는데 ...
식사시간이 아닌 때는 묻지 말아야지요. 수도자들이 먹을 것만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안 됩니다. 식사하는 시간에 오신 손님이라면 식사하셨느냐고 물어보고 같이 할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이 지났다면 묻지 마세요.
방문하신 분도 식사시간이 지났으면 다음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에서 인내의 열매를 맺고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아무 때나 먹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무언가 비참하게 보이고 배고프게 보이는 분이라면 알아봐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도울 수 있겠지요. 그러지 않은 분한테 “식사하셨어요? 지금 식사시간이 서너 시간 지났는데 그 때 식사하셨어요?” 자꾸 캐물어서 해주려는 것은 좋은 수도생활이 아닙니다. 식사시간에만 도와드리세요. 거기에 맞춰서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수도규칙을 무너지게 하면서까지 도와드리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 살벌한 수도회처럼 느껴져요.
살벌한 수도회요? 그것도 어느 정도지요. 오시는 분들에게 무조건 음식을 대접해요? 식당처럼 생각하면 이상하지요.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수도사들이 사는 집인데요. 그럼 손님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할 수 있으면 그런 분들을 위한 방을 따로 만들면 좋아요. 방문하는 분들을 위한 방이 따로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여기는 아직 수도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니까 너무 자유롭게 하면 서로 어려운 거예요. 그렇다고 그런 것을 깨끗하게 없애버려도 안 되고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네요. 수도생활은 우리의 가장 큰 원수 즉 정욕과 잘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네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말씀을 생활 전체에 잘 적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계속적으로요.
6. 일을 서로 분담함
공동생활을 하면서 이것저것 당번을 정해서 진행하는데 어떤 분을 잘 안 하려고 해요. 당번이 되어도 하지 않아요.
전부가 안 하려고 하는 것은 안 되지요. 여기서도 빼고 저기서도 빼고, 이런 사람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공동체니까요. 그러나 일을 너무 억지로 시켜도 안 돼요. 몇 가지 정도는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고요. 싫어도 좋아도 잘 해도 못 해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좀 정해져야 될 것 같네요.
계속적으로 벅차게 하면 어려워요. 그러나 조금씩은 있어서 본인이 그런 것을 가지고 훈련을 받게 해줘야 합니다. 그게 훈련이거든요. 훈련이라는 것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거예요. 너무 자유롭게 자기 성격대로, 자기 재능대로 하도록 버려두면 안 되거든요. 공동생활은 마치 오늘날 외골수로 잘 하는 사람들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너무 벅차게도 하지 말고, 어느 정도 의무감이나 책임감을 갖고 하도록 해야 합니다. 고민하면서라도 해야지요. 그게 수도생활입니다. 벅차게 너무 많이 맡겨서 자주 돌아오는 일을 피하고요. 어느 정도는 맡은 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방면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가 있어요. 단 번에는 안 돼요. 사람은 숙달이 되어야 하니까요. 아예 빼주지는 말고요. 그렇게 하면 조금씩이라도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거든요.
차례가 정해져 한 번씩 돌아올 때, 그 기간 동안 준비하기 굉장히 어려워하는 분을 살짝 도와줄 수 있잖아요. 이를테면 수련장님이 “이번에는 제가 대신해서 도와드릴 테니까 다음에는 해보도록 노력하세요.”라고 하는 거예요. 사랑실천을 하면서 기간을 많이 드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라도 빠지지 않고 의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수련장님이나 임원들이 책임지고 도와야 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해서 수련장님이나 임원들의 사랑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급한 문제가 생겨서 자기가 책임을 맡았는데 도저히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수련장님이나 임원들이 해야지요. 아니면 다른 회원들 중에라도 자원해서 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면 대신하고요. 그럴 때도 “다음에는 꼭 하세요”라고 해서 본인이 의무감과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공동체가 튼튼해질 수 있습니다.
수도원 관리는 어떻게 해요? 관리는 다 같이 의논하면서 해야 되는 것이지만 관리장한테 책임이 큰 것이지요. 청소를 담당한 분이 특별한 사정이 생겼다든가 몸이 아프다든가 하면 메워야 되고, 빨래 같은 것도 담당한 분이 사정이 생겨서 못하게 된다면 책임감을 갖고 누구한테 부탁을 해서라도 완성시키려고 해야겠지요.
7. 먼저 자신을 고쳐라
우리의 부족함을 누가 얘기하거나 소문 가운데 들려오거나 지적받는 일이 있으면 용감하게 빨리 고치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고치면 자신에게 유익이 많을 것이고, 고치지 않으면 손해를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알았어요. 다음부터 고치도록 노력할게요.”라고 하세요.
“사람들이 나를 무시한다. 나는 고독하다. 나는 일이 없다. 어디서 불러주지도 않는다.” 저는 그런 것을 한 묶음으로 손해 본다고 표현을 하거든요. 그러니까 손해 보지 마시고,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하나 고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지금 고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도 종종하시라고 그러노라면 더 잘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B목사님도 그렇게 하는데 나만 가지고 그럽니까?”라고 하세요.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지 말고 내가 고쳐야 할 것을 먼저 고치라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되고요. 부득이해서 시간이 좀 오래 걸릴 때도 있겠지요. 우리의 부족함은 단번에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여러 가지 복잡한 일로 인해 강의 준비가 잘되지 않아 강의 시간이 넘쳤다거나 주제와 내용이 맞지 않을 때 손해 안 보는 비결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음부터는 준비를 잘해야 됩니다.
K목사님은 자신이 손해 본 것만 가지고 “나는 떠나다, 나는 수도회에서 필요 없다.” 이런 얘기를 자꾸 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마시고 그때그때 손해를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세요. 그렇게 고쳐진 사실이 드러나서 사람들로부터 평가받게 되면 그때는 설교라든가 기도회라든가, 여러 가지 일할 것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했어요. 어느 다른 교단, 다른 교회,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만 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얘기를 하셔도 실제로 떠나시는 것도 아니거든요.
K목사님이 한 시간 설교하셔야 될 것을 두 시간 세 시간 한다든가 주제에 맞지 않는 내용을 한다든가, 무슨 얘기하는지도 잘 모르게 한다든가, 어제까지 이렇게 증거 했다가 계시 받아서 싹 바꿨다든가, 이런 식의 설교가 되면 상당히 손해를 많이 보시게 될 것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굉장히 큰 문제거든요. 그런 것은 고치셔야 된다고 했더니 “그렇습니까?‘라고 하세요.
어떻게 보면 그런 얘기를 듣고도 잘 견디는 편이에요. 저하고 대화할 때도 적잖게 듣게 되거든요. 하나하나 짚어드리면서 빨리 고치면 좋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나름대로 조심을 하지요. 과거와는 많이 달아졌어요. 공동생활을 할 때 그런 분은 어려워요. 타고난 성품이랄까 생활하시는 인격이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요.
8. 적절한 대화의 필요성
아주 작은 일에서 자아가 쉽게 드러나요. ‘아니, 설거지라도 좀 하지. 매일 밥만 먹고 그냥 들어 가냐?’ 그런 것도 얘기해줘도 되나요?
그거야 공적인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때그때 감정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참고참고 참다가 적당한 기회에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제 심정을 얘기해도 되겠느냐고 하면서 꺼낼 수 있어요. 그런 것을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두면 정리가 안 되잖아요. 적절한 때 대화를 해야 돼요. 공동생활은 규칙이 있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앞으로 어떤 일의 당번이 되면 충실하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해야지요. 아무리 하라고 해도 너무나도 회피하면 아주 곤란하거든요. 그렇다고 열 명이면 열 명, 모두가 다 같이 하기도 곤란하고요. 그러니까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또 각자가 맡은 책임을 끝까지 충실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9. 수도가족에게 참된 사랑을 실천하자
순간순간 하나님께 붙어 있으려고 애를 쓰는데 잘 되지 않아요.
늘 붙어 있는 생활이요? 하나님께 순간순간 버림받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말 한 마디, 행동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애태우는 노력이 필요하지요.
수도회에 들어왔지만 생활비도 있어야 하고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잖아요. 돈이 필요하면 벌어야지요?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않으려고 해야지요. 아르바이트나 그밖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대단히 값진 생활입니다. 많은 욕심을 갖지 마시고요. 처음에는 돈을 조금 벌려고 했다가 점점 욕심이 생기면 큰 돈을 벌려고 하거든요. 그런 욕심이 꽉 차 있는 불쌍한 분들이 있어요.
가톨릭은 대부분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면 노동도 함께 하고 모든 생활을 함께 하지요. 그렇게 해서 사실은 노후대책까지 다 되는 것이지요. 몸이 아프면 서로 돌봐주고요.
지난번 K전도사님 교통사고로 돈을 벌 수 없게 되었을 때
강도 만난 이웃처럼 생각하고 다른 회원들이 노동해서 돌보라고 주신 회원이라는 마음이 있어야 되는데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여기 은총의 집인가요? 거기도 B전도사님이 아파서 아무 일도 못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그분도 강도 만난 이웃처럼 생각하면서 모두 다 돌봐드릴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그분이 부족한 면이 있다 할지라도 잘 돌봐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생활을 해나가는 것이 수도원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수도원도 세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지요. 그곳에서 사랑과 겸손과 온유를 실천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수도회에 입회한 분은 괜찮지만 혼자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 분들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영성생활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적당한 아르바이트를 한다든가, 직장생활을 한다든가, 물질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봉사를 한다든가, 그렇게 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되겠지요.
건강할 때는 괜찮지만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어쨌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건강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늘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각자가 성경말씀을 따라서 예수님 중심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 꽉 붙들고 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10. 솜씨가 좋은분, 솜씨가 나쁜 분
공동생활을 하면 당번을 정해서 일을 해야지요?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각자 하고요. 또 당번이 정해지면 최선을 다하고요. 책임 맡은 일은 성실히 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만일 자기가 맡은 일을 그 주간에 특별한 사정이 생겨서 못한다면 다른 분하고 교대해서 한다든가, 얼마든지 운영의 모를 살릴 수가 있잖아요. 이번 주간에 할 수 없다면 누구하고 바꿔야지요. 다음에는 내가 하겠다고 하고, 그 주간에는 부탁을 드리고요. 이렇게 덕을 세우면서, 서로 편리를 봐주면서 융통성을 가지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주방일은 잘 못하는데요. 빨래도 못하고요.
그러다가 솜씨가 좋은 분, 솜씨가 나쁜 분이 드러나서 기왕이면 빨래 같은 것도 솜씨 좋은 분이 빨기를 바란다든가,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겠네요. 겨울 같은 때는 “C목사님이 빨래를 잘 하시니까 그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벗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기 때문에 솜씨가 필요하지 않아요.
빨래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주방일도 그래요. 솜씨 좋은 분이 있고,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안 되는 분이 있어요. 사실 그럴 때 수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극복해 가면서 먹기 싫은 음식도 먹어야 합니다. 맘에 들지 않는 음식이나 빨래가 있더라도 덕을 세워야 합니다. 해놓으신 것을 보니까 사용하기에 좋지 않게 되어 있어도 말없이 조용한 틈을 타서 스스로 하는 거예요.
공동생활을 하면 이것저것 대화를 하면서 정돈해야 될 것들이 많이 있어요.
여기서 다 털어 놓으세요. 그래야 상대방이 알 것 알고 정리할 것은 정리하지요. 그러니까 청소당번, 주방당번, 빨래당번 전부 정해져야 되겠군요.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어서 지키지 못하면 각자 하도록 해야 합니다. 억지로 지시하고 그럴 필요가 없어요. 자구 큰소리 내지 마시고요. 몇 번 종을 울렸는데도 안 드신다. 그러면 그냥 넘어가요. 나중에 스스로 알아서 드시도록 하면 되잖아요. 본인은 깔끔하게 일을 잘 하는데 다른 분은 솜씨가 시원치 않아요. 그러면 그분이 당번일 때 살짝 도와주는 거예요. 원망불평하면서 봉사하지 마시고, 하기 싫으면 살짝 그만두시고요. 그렇게 해서라도 잘 되게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당번은 책임감을 가지고 하도록 해야지요. 당번이 솜씨가 부족하니까 “내가 도와 줘야겠다”라고 하면서 시간이 있을 경우 찾아가서 돕는다면 상을 많이 받겠지요. 사랑실천을 하는 것이니까요. 그러면 서로 아끼고 상부상조하는 마음들이 풍성해져요. 필요하면 간증도 하세요. 하늘나라가 그런 곳이잖아요.
바쁘면 다른 것은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하루에 두 차례 아침저녁 예배만은 꼭 함께 모여서 드리라는 뜻인가요?
의무적으로 모여 하는 시간과 개인별로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모여서 한다면 더 괜찮고요. 그런 여러 가지 규칙을 어느 정도 갖춰야 되겠네요.
11. 수련자들과 수도자들의 공동생활
수도자들과 수련자들이 함께 생활하니까 어려움이 많아요. 수도자들이 모범적인 수도생활을 하지 못하니까 자꾸 시험에 들어요.
그것은 수도자들에게 책임이 있는 거예요. 생활 가운데 배울 점이 없는 것에 대해서요. 서로가 그런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마음을 순간순간 가져야 됩니다. 수도자들이 책임감을 갖고 빛 가운데서 철저히 살아야 합니다. 수도원에 들어간 수련자들은 수도자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밤낮으로 볼 수 있으니까 좋은 점이 많다고 봐야 되겠지요.
수도자들이 잘 살면 좋은데 빛을 보이지 못하니까 수련자들과 분리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분리시키려고 하면 망하는 거예요. 스스로 조심하면서 모범적인 행실을 보이려고 할 때 비로소 꾸준히 수도생활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봉려고 하면 수도회 자체가 망하는 거예요. 마귀의 품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마귀의 품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피하면 안 되고, 모범적으로 생활하면서 고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것을 고쳐야 될까, 어떻게 하면 더 유익이 될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고치면서 노력할 때 비로소 공동체가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고 분리시키려 하고 따로 어떻게 하려고 하면, 그분들도 수련이 잘 안 될 뿐만 아니라 수도회 자체가 융합이 안 됩니다. 부족한 부분은 재빨리 고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수도생활이거든요. 부족한 행실을 보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손해나게 했다면 책임을 느끼고 철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저희는 분리를 시켜야 될 것 같아요. 서로 고치는데 열심을 내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요.
완전히 분리시켜서 하는 것은 어렵잖아요? 물론 숙소하든가, 여러 가지 조건이 충분하다면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공동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지요?
네. 계속 공동생활을 함께 할 수 있다면 매우 유익합니다. 겸손하게 훈련받는데 중점을 둬야지 교만한 마음이나 교만한 행실을 가지고 있으면 어렵습니다. 윗사람도 있고 아랫사람도 있어야만 서로 조심하게 되거든요. 다 평등하면 덕이라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그런 상하관계, 선후배관게, 연령의 차이 등이 있음으로써 서로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서 덕을 배워야 올바른 수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등하다, 자유다, 이러면서 가볍게 여기면 진짜 형편없는 수도회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위계질서 같은 것을 잘 지키는 것이 수련 아니에요?
어떤 부분적인 면은 있을 수 있겠지요. 윗사람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자신을 내세우면 좋은 것이 아니잖아요. 서로서로 겸손하고 온유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조심조심해야 되고요. 아랫사람한테 무시하는 말이나 명령조의 말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해야 합니다. 윗사람은 윗사람답게 덕을 갖춰야 되고요. 아랫사람은 아랫사람답게 덕을 배워야만 합니다.
수도회의 회원이니까 하나하나 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작은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하나 훈련을 받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빛과 덕을 갖춘 수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12. 약속
공동생활을 하니까 어디를 간다든가, 언제 온다든가 이런 것을 알려줘야 하잖아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안 오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어떤 분이 수도회 정기모임을 할 때까지 돌아온다고 약속을 하고 어디를 갔어요.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요. 그러면 감정이 생기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게 되지요.
약속을 정확히 지켜주지 않으면 마귀 역사가 많이 일어나요. 출입이 분명해야 됩니다. 서로 노력해야지요. 그게 수도생활 이니까요.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을 때는 전화로라도 “특별한 사정이 생겨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까지 가야 될 텐데 이러이러한 형편 때문에 갑자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떡하면 좋지요?”라고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내가 이런 상황이니까 그리 아시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지요?” 상대방의 자유의지나 인격을 존중하면서 부탁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시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못 가니까 그렇게 아시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이런 일이 갑자기 생겼는데 어떻게 할까요? 여기는 제가 없어서는 안 되거든요. 수도회 모임에 꼭 가야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대방의 반응이 없잖아요. 그래도 “무조건 내려오시오.”라고 하면 약속한 시간에는 가셔야 됩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야합니다. 그런 겸손한 말들이 있어야 해요. 겸손 앞에서는 대부분 잘 대해주거든요. 그런데 딱딱하게 얘기한다든가, 딱 부러지는 얘기, 주장하는 얘기, 명령조의 말들, 반말까지 섞어서 하면 더 어렵지요. 존댓말을 많이 써서 덕의 열매를 맺어야 주변사람들한테 사랑도 많이 받고 존경도 많이 받게 됩니다.
자신을 너무 심하게 낮추는 표현도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겸손도 너무 심하면 오히려 가치가 떨어져요.
모여야 할 곳에 안 오면 그런 분으로 말미암아 꼭 문제가 생겨요. 나중에 딴 소리를 하시거든요.
나중에 보면 알지 못하기 때문에 탈선을 해요. 그래서 마치 미꾸라지처럼 전체를 흐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어요.
저희 수도회는 방을 제비뽑아서 2년에 한 번씩 바꾸고 있잖아요. 그럴때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좋지 않는 환경을 가진 방이 정해질지라도 감사함으로 아멘하고 받아야지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해야 됩니다. 건강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지하에 있는 방은 안 되겠다고 생각되는 분은 지상에 적당한 방을 먼저 정해드리고, 나머지 방을 가지고 제비뽑기하면 되잖아요. 다들 양해해 주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