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제 2 강의
권호덕 교수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교육문답서를 통해 지난 시간에 배운 교회에 대한 정의를 요약할 수 있다.

제 55문: 당신은 성도들 간의 연합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답: 첫째는 모든 그리고 각각의 신자들은(主의 몸의) 지체로서 주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모든 보화와 은사에 공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각 지체가 다른 지체들의 유익과 구원을 위해 자기의 받은 은사를 기꺼이 또 기쁨으로 내어 놓아야 함을 빚진자 처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설)
위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수직적인 차원에서 우리 각 개인이 그리스도와 그의 은사에 참여하는 것인데 이것은 慰勞에 속한다. 수평적인 차원에서는 다른 성도들에게 자기가 받은 바 은사를 나누어 주며 奉仕의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즉 외부 지향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성도의 교통은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 가지는 결합을 의미한다. 여기에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한 분의 그리스도에게 공동적으로 결합되어 있습니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그리스도와 그의 보화와 은사에 참여함을 통해서, ② 성도 상호간의 결합은 어디에서 좌우됩니까? 상호간에 위의 사실을 앎을 통해서.
성도의 교통은 교회 그 자체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지체들이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와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지체들과 연합되어 있는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 분이 성육신하여 얻어 놓은 모든 것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되며 다른 지체들과 공동적인 지체로서는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구원을 얻었고 또 참된 믿음으로 한 몸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진다.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들 간의 관계는 신부와 신랑의 관계와 같다(엡 5:23).
성도란 외적인 교회의 지체가 아니고 그리스도안에서 세상과 구별되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다(골 3;12; 엡 1:1; 6:18; 빌 1:1).

I. 그리스도와 그의 보화에 참여

1.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기 때문에 그 원둥치인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나아가 아버지와도 연합된다.(엡 5:30; 요일 1:30). 이런 연합을 통해 각 지체들은 나무의 원둥치로부터 오는 진액(생명과 은사 등등)을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각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에 대해 사랑과 봉사의 의무를 가진다.
2.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으로 연합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보화와 은사에 참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인 것이다(골 2:19; 롬 8:32).
-ㄱ) 그리스도의 보화 즉 그리스도에 속한 모든 것은 동시에 그의 지체들에게도 속한다.
-그의 아버지: “(요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그의 사랑: “(요17: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17: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 (요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의 이름: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그의 공로: “(롬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그의 기업, 그의 하늘, 영광: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요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ㄴ) 그리스도의 은사: 죄사함, 칭의 영생(엡 1:3; 요 1:16).
이런 축복의 권한에 일치하여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다(고전 3:23; 딤후 2:11-120.

II. 다른 성도들과의 연합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면 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다른 지체들과도 연합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사랑의 관계는 의무이며 동시에 경고의 내용이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이후에 상호간에 불신하며 미워하는 관계로 떨어진 것이다. 신앙의 성숙도는 이웃 성도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어느만큼 잘 정립되어 있나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1. ‘각 성도’는 스스로 다른 지체들에 대해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슴을 알아야 한다(갈 3:28; 고전 12:26).
2. 우리가 ‘은사’를 받았다는 것은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수동적인 입장에 있슴을 보여준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슴을 기억하자(고전 4:7).
3. 이 은사는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러 나누어진다
-ㄱ) 물질적인 것: 롬 12:13; 사 58:7; 마 25:35-36).
-ㄴ) 영적인 것: 살전 5:11; 요일 5:16.
4.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는 자기 자신뿐만을 위해서 아니라 다른 지체들의 유익과 구원을 위해서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잘 안되기 때문에 빈부의 차가 심하고 공산당이 일어나고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남을 돕는 방법은 먼저 자기의 직책에 충실함을 통해 전체가 잘 돌아가도록 하고 그 다음 물질이 필요한 자에게 힘이 닿는 범위 내에서 돕는 것이다.
5. 이런 일은 ‘기꺼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고 바리새인들처럼 불순종의 동기에서가 아니고 사랑의 매는 줄로 함(갈 6:10).
6. 우리 인간아게는 이기주의적인 요소가 있다. 이것을 극복해야 신앙이 자라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면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II. 교회의 특성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 각자 고유의 특성을 지니도록 조치하셨다. 만일 각각 자기 특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우주적인 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개인 또는 모든 공동체가 각기 고유의 특성을 상실한다면 사회는 대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이를테면 교육부가 대학을 지나치게 간섭함. 대학이 자체 고유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교회 내에 여러 가지 시끄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따지고 보면 그런 교회가 가져야 하는 고유의 특성을 망각한데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것은 중세 교회가 원래의 교회의 기능 내지 특성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특성이 무엇이며 또 지금 우리 주위에 있는 교회들이 어떤 점에서 그 특성을 상실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처방을 해야할 것이다.
교회가 다른 종교 단체나 사회 단체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교회의 특성을 지니어야 한다. 이것은 참교회와 거짓교회를 가리는 척도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것은 자연종교의 신도들의 모임과 교회가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보여주는 표징이다.

1. 단일성

교회의 단일성은 원래 모든 교회들이 장소를 달리하고 있지만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시공간상으로 제한을 받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서로 다른 공간에서 또는 서로 다른 시간에서 그 곳에서 이루어진 공동체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도의 삶을 살지만 한 교회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역적인 제한을 克服하기 위하여 교회에는 정치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Heinrich Heppe는 교회의 단일성을 “교회가 모든 성도들의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에게 의존하고 있음, 교회가 종류에 있어서 단일하며, 본질적으로 영적인 공동체로서 인간의 제한적인 성격의 간섭을 받지 않는데” 있음에서 본다(657).
-Heidegger(Med. XXVI,9):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며, 우주적이다. 세상나라와 같지 않고 영적으로 그리고 우주적인 방법으로 하나이며 수적으로 하나이며 단 하나라는 의미에서 하나이다”.
-Rissen(XVI,7): 그는 교회의 단일성을 여서 가지로 말한다. “교회는 비록 외적으로 장소와 시간 그리고 儀式과 세대에 있어서 다양하나 ⑴ 몸의 단일성(Unitate corpus): 교회는 비록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실제 살아 있는 지체들은 다른 장소, 다른 시대에 있으나 한 몸이다. ⑵ 머리의 단일성(Unitate capitis):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⑶ 성령의 단일성(Unitate Spiritus): ‘(엡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고전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⑷ 믿음의 단일성(Unitate fidei): ‘(엡4: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이 믿음으로 우리는 복음속에 계시된 구원의 가르침을 위할 수 있다. ⑸ 사랑의 단일성(Unitate caritatis):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들은 사랑으로 서로 묶어져 있다. ⑹ 소망의 단일성(Unitate sei): (엡4:4)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그런데 매우 놀라운 것은 지상의 모든 성도들이 한 하나님, 한 예수 그리스도, 한 성령을 믿고 또 한 세례를 받으나 교파적으로 교단적으로 많이 분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같이 교파 또는 교단이 서로 다를지라도 본질적인 면에서 모든 교회는 하나라는 사실(una Sancta ecclesia)이 교회의 단일성을 말한다.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처음으로 분렬된 것은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 서방교회는 로마 카톨릭교회를 이루어 중세 1000년을 지났다. 그런데 종교개혁운동과 더불어 개신교는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루터파, 칼빈파, 쯔빙글리파, 재세례파). 특히 한국교회는 선교 100주년이 지난 지금 수 백 개로 나누어졌다. 이렇게 교회가 많이 분렬되어도 그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기 때문에 단일성을 유지한다는 말이다.
-카톨릭교회의 주장: 카톨릭 교회는 교황을 중심으로 형성된 성직자와 평신도 계급제도와 관계하여 즉 외적으로 단일적인 정치조직과 관계하여 단일성을 주장한다.
-개신교의 주장: 내적이고 영적인 단일성을 주장한다.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모든 성도들 사이의 신비한 연합을 중심으로 교회의 단일성을 본다.
-과제: 한국 교회는 서로 다른 교파간에 단일성을 인정하는가?

2. 사도성

L. Berkhof나 O. weber는 교회의 이런 특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G. Ebeling은 이 특성을 그의 교의학에서 언급했다. 이 특성 역시 교회의 단일성과 연관되어 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의 근원 즉 사도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 따른다. 정경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정리한 것이다. 사도성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 증인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고 교회의 삶의 근거이다. 교단이나 교파가 다를지라도 그들의 가르침의 근원이 동일한 경우 성도의 교통이 가능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특성은 시간적인 차원에서 교회가 한 뿌리에 근거함을 보여준다.
-기독교 복음은 인격을 통해 전달된다. 예수 그리스도 - 사도들 - 속사도들 -변증가들 - 교부들 ---- 교회의 사도성은 이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시대의 가르침이 다양하나 변할 수 없는 생명의 흐름은 흘러내리는 것이다. 모든 사역자들은 항상 이 시각에서 반성을 해야 한다.

3. 거룩성

교회의 이런 속성은 두 가지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1) 교회는 그 신분상 거룩하다.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회가 ....”이라는 형용사가 두 번이나 나온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거룩한 무리)의 교통(sanctam eccleiam ......... communionem Sanctorum).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데 역사적으로 해석할 수 없으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나름대로 해석을 시도했다.
개혁파 정통신학자인 Heinrich Heppe에 의하면, 교회는 왜 거룩하다고 말할까? 이미 완전히 무흠하고 거룩해졌기 때문일까? 교회의 현실을 바라볼 때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교회는 생명의 믿음의 지식 안에 터를 잡고 있고 그 지체들(선택자, 부르심을 받은자)도 교회와 같이 그러하다. 이런 자들은 죽을 죄 가운데 빠질 수 없고 거룩하게 만드는 진리의 터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는 은혜를 통해 보존하는 지식과 생명을 지니는 동안은 교회에 부여된 그리스도의 義를 완전히 상실할 수 없다. 그리고 복음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부인할 수 없으며 불순종으로 하나님에 대항하여 끈질기게 범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은혜와 거룩케 하는 지식을 본질적으로 소유하게 된다. 우리는 교회의 거룩성을 이런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도 있다.(英662). 다른 개혁파 정통신학자들의 말을 살펴보자.
-Wendel(Coll. p.313): “교회의 거룩성은 한편으로는 믿음을 통해 얻어진 그리스도의 거룩성과 義에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의 새롭게 함과 거룩케 함에 있다”.
-Heidegger(Med. XXVI,10): “교회는 이 땅에서 젙투하는 교회로 있는 동안 마음속의 모든 무지와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 무오하지 않지만, αναμαρτητος하지는 않지만, 상속받은 거룩성으로 인해 거룩하다”.
-동방교회: 동방교회에는 사도신경이 없다. 이들에 의하면 교회란 거룩한 것, 하나님에게 속한 것에 참여하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것이다. 마치 모세 오경에 무엇이든지 성막에 속한 것이 데면 거룩해 지는 것과 같은 의미로 가룩하다는 말이다.
-서방교회: 서방교회는 이것을 교회가 성도들과 가지는 교제로 봄. 종교개혁시대는 이전에 내려오던 전승과 관계를 가지면서 이것을 ‘성도들의 회중’(Congregatio Sanctorum)으로 해석했다: 즉 교회의 지체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무리들이다. 따라서 교회도 거룩하고 그 지체들도 거룩하다고 주장함.
교회가 거룩한 것은 그 자신이 가지고 온 것, 그 자신의 존재 자체, 또는 그 자신의 행위를 통해 거룩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거룩한 것은 그가 받은 내용 때문이다. 들려진 말씀(요 15:3; 엡 5:26). 세례(엡 5:26), 성찬(고전 11:27이하), 성령의 승낙,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승인(고전 1:30). 요컨대 지상교회가 거룩한 것은 교회 자체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속했다는 사실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즉 교회의 지체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자들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2) 교회는 계속 거룩해져야 한다.
그러면 교회가 이미 거룩하다고 하니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하게 되지는 않는단 말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계속 교회를 거룩하게 만드신다. 거룩하게 만드시는데 필요한 수단이 바로 ‘들려지는 말씀(요 15:3; 엡 5:26), 세례(엡 5:26), 성만찬(고전 11:27이하), 성령의 허락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택(고전 1:30)’.
① 들려지는 말씀:
(요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요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② 세례(엡 5:26)
③ 성만찬(고전 11:27)
말씀과 성례에는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임한다.

4. 카톨릭성

카톨릭이란 헬라어 ‘카타 + 홀로스’(καθ’ ολως, 전체의)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카톨릭성은 우주성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안 된다. 교회의 우주성은 교회의 단일성과 맞물려 있다. 단일성은 모든 교회가 장소는 달리하나 동일하다는 것에 강조점을 두는 반면에 카톨릭성은 모든 교회가 장소는 서로 달리하지만 모든 교회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임을 강조한다. 즉 교회가 우주적이라는 말은 장소와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그것에 제한 받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는 교회는 전 세계에 유일한 하나의 교회라는 성질을 지닌다는 말이다.
-Rissen (XVU,8): “교회는 우주적이다. ⑴ 장소의 차원에서 어떤 지역, 도시, 장소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⑵ 인격의 차원에서 교회는 나이 기타 어떤 조건에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행10: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⑶ 시간적 차원에서, 교회는 세상의 모든 연령의 사람들을 구별없이 다 포괄하기 때문이다. ‘(요일1: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요일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⑷ 지체차원에서, 지금까지 존재해 왔고 앞으로 존재할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순수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인 한 모두 한 교회에 속한다.
-Heidegger(Mend. XXVI,II): 교회는 우주적 또는 보편적이다. 이 단어는 여러지역에 잠입해 있는 이단의 비밀집단으로부터 교회를 구별시키기 위해 사요오디었다.
카톨릭이라는 말은 여러 교부들 특히 이레니우스가 이단에 대항하여 싸울 때 그 당시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이 싸움에 참여해야 된다고 말할 때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다. 교회사에서는 카톨릭 교회를 둘로 나누어 생각한다. 하나는 舊 카톨릭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 카톨릭이다. 전자는 로마 카톨릭이 생기기 이전에 말하자면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뭉친 고대 교회 시대의 지상의 모든 교회를 가리키고 후자는 교황을 중심으로 지상의 여러 교회가 연합된 것을 말한다. 카톨릭이라는 용어는 원래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로마 카톨릭 교회의 대명사로 사용되어 개신교는 주춤하며 사용한다.
교회 연합(에큐메니쉐) 운동의 출발점은 교회의 카톨릭성에 있다. 종교개혁 시대 교회 연합 운동의 대표되는 신학자는 스트라스부르크의 Butzer(Buccer)와 스위스의 Bullinger였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카톨릭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 연합을 시도했으나 성찬식에 대한 다른 견해 때문에 결국 일치하지 못했다.
-과제: 현대 교회연합 운동을 비판하라
-교회의 카톨릭성은 결국 ① 신구 교회 사이에 예전부터 이어 받은 전승을 통해 생겨난 경계를 넘어서 (die Gesamtheit der unversalen Kirche im Glauben und im Handeln) ② 민족적이고 사회적인 경계를 넘어서(die Universalitaet als Internationalitaet der Kirche) 하나로 되려는 특성이다. 첫번째 경우 로마 카톨릭교회와 루터교 사이에 어려움이 있고 후자의 경우 로마 카톨릭교회에는 어려움이 없다. 현대 에큐메니쉐 운동은 이 두 가지를 다 극복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나라의 교회 연합운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비판해 보자.
-하나인 교회를 보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교회는 분렬되나?
-교회분렬이 가져다 준 손해와 유익은 무엇인가?
-현재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을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까?
-종교 다원주의 운동이 팽배하는 우리 시대에 에큐메니칼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과연 다른종교들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할까?

5. 영원성

하인리히 헤페는 자기의 저서 ‘개혁파 교의학’에서 교회의 특성 가운데 이 것을 첨가했다. 교회는 영원하다는 말이다. 엡 1장에 의하면 하나님은 만세 전에 예정한 것으로 영원히 남을 기관인 교회를 계획하셨다. 따라서 교회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즉 교회의 존재는 우발적으로 생긴 우연에 위에 근거하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의 경륜과 성령의 활동 위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가시적 교회의 특정한 한 부분이 사라져 없어져도 선택자와 부르심을 받은 자의 집합체는 항상 땅위에 보존된다.
-Heidegger(Med XXVI, II): “그리스도의 교회는, 엄밀한 의미에서,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한다. 교회는 우발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변하는 뜻인 첫 원인에 근거하며 뚤째 원인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령이 말씀을 통해 효과적으로 만든 둘째 원인에 근거한다.”
-거짓 교회와 참 교회와의 비교: 칼빈의 기독교 강요 제 4권 2장을 참고할 것.
1) 근본적인 구별: 참교회는 말씀 선포와 성례 집례을 바르게 수행한다. 교회의 기초는 예언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이나 거짓 교회는 거짓에 기초하고 있다.
-현대 교회 가운데 거짓에 기초하고 있는 실례를 들어보자
2) 로마 교회는 미신에 빠져 쓸데 없는 교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마지 않으면 이단시해 버린다.
-현대 교회의 이런 예를 들어보자
3) 거짓 교회는 저존심이 강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실례
4)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단의 교회는 예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5) 이단과 분리주의자
6) 참교회는 그리스도를 모라로 모신다.
7) 부패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실상과 현대 개신교 교회의 실상을 비교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