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제목:십자가의 예수를 바라보자(히12:2)

오늘은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이고 다음 주일은 종려주일이자 고난주간입니다. 이제 사순절 막바지에 들어섰으니까, 조금 더 기도하고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면서 경건생활에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항상 십자가를 바라보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1)우리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요3:14-15)“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민21장)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할 때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셨는데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고 기도하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장대에 놋뱀을 만들어 세워놓고 누구든지 그 놋뱀을 쳐다보는 자마다 살게 했던 것입니다.

첫째/모세를 향한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라고 했습니다(출16:7-9민16:9-11).왜냐,모세는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의 지도자로 택한 종이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를 원망하면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의 권위를 떨어뜨려서 백성들을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종에 대한 원망과 불평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지도자를 원망하는 것은 그 공동체 전체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놋뱀 사건은 하나님의 종을 원망 불평하던 백성들에게 불뱀이 나타나서 물어죽게 한 것처럼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이 신앙생활 하다가 주의 종들을 향하여 원망 불평하면 불뱀에 물린 것만큼의 고통이 따른 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원망과 불평으로 불뱀을 불러들여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고전10:10약5:9).

둘째/병원이나,의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심벌마크를 보면 지팡이에 뱀이 꼬여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리스신화에서 의학을 상징하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날개달린 부분은 이카루스, 라틴어로는 아이스쿨라피우스(Aesculapius)라고 의학의 신을 말합니다.그러나 그것은 그리스 신화라기보다는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장대의 놋뱀을 연상하는 의미가 더 큽니다.

(요3:16절 말씀처럼)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메달리실텐데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죄에서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예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의미 없이 바라보지 마시고“저 십자가 때문에 내가 구원받았다~”내 죄가 못 박혔고, 내 질고와 저주와 불행까지도 다 못 박혀서 없어졌다는 것을 믿고 생각하고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73%가 기독교인 호주(가톨릭 27.3%,성공회 23.9%,개신교 22.8%)한 병원 내 예배당에 성경책과 십자가를 떼어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타 종교인들에게도 예배당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자는 뜻”이라고는 했지만“서구의 교회들이 얼마나 속화되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유사한 일들이 독일과 영국 미국의 많은 교회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들에서도 열린 예배,교회를 개방한다하여 예배당에서 십자가를 없애버리고,성경책 없는 예배당이 늘어가고 있습니다.우리가 프록젝트를 사용하여 성경을 보여 주고 있지만 여러분, 성경을 꼭 가지고 다니시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에는 국기와 헌법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기독교에는 십자가와 성경책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배우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가 무덤에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영생 얻을 것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십자가와 성경을 삶의 푯대로 삼고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에 반지는 철로 만들어서 약혼의 정표로 신랑이 신부에게 주면 신부는 이를 왼손에 착용하는 것이 통례였다고 합니다. 루치우스 안네우스 세네카(BC.90-AD.65년)나 플리니우스 체칠리우스 2세(AD.27-29년)의 기록에 의하면 약혼한 신부는 어떤 장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랑에 대한 신뢰의 증표로서 반지를 끼었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부가 신랑에게 귀속되었다는 의미가 더 강했습니다.

히브리와 이집트 등의 셈족 문화권에서의 반지는 부와 권위의 상징이었고 특히 왕들에게는 인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노예들은 귀고리,목걸이,팔찌같은 것으로 노예표시를 삼았습니다.그러니까 반지,귀고리,팔찌,목거리...이런 장신구들은 지금은 멋으로 하고 다니지만 원래는“노예표시”였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반지나 목걸이를 할 때마다“나는 당신의 여자요~”이런 표신 줄 아세요.

십자가도 그렇습니다. 당시 십자가는 가장 끔찍한 사형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증표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노예표시, 사형수의 상징이던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하고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 믿는 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십자가를 볼 때 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온전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입니다.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믿음을 가장 온전하게 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해 지고 믿음이 온전해집니다.예수님을 생각하고 십자가를 생각하면 그릇된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전 문화부 장관)“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발간했습니다.미국에서 변호사로 있는 딸이 암과 실명 직전의 시력장애로 고생하고 있을 때, 딸을 문병 갔다가 하와이의 작은 교회에서“하나님,사랑하는 딸을 고쳐주신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자녀로 살겠다”고 간구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절한 기도를 응답하여 딸 이민아 변호사가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지난 2007년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받은지 3주 후 그의 손자(미국의 명문 대학 버클리 대학을 졸업한 수재 중에 수재)가 25세의 나이에 갑자기 죽었을 때 아버지와 딸은 절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사55:8)“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의 길과 다름이니라. 너는 그래도 나를 믿겠느냐” 말씀을 묵상하면서 슬픔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어령 교수와 그의 딸 이민아 변호사는 말씀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는 슬퍼하는 딸에게 시 한 편을 보내줬습니다.“얼마나 큰 슬픔이었기에/너 지금 저 많은 빗방울이 되어 저리도 구슬피 내리는가...너 지금 그 많은 비가 되어/오늘 내 문지방을 적시는구나”

깊은 슬픔 속에서도 이어령 교수는 믿음을 지켰습니다.그는 말하기를“지성에서 영성의 세계로 들어오면서 그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그 자체였다. 절망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영성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영성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자기 파괴)라는 극적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사도 바울도(고후10:5말씀에서)“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 복종이 온전히 될 때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영성을 얻기 위하여 자기 지성과 이론을 파괴하는 아픔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더하기 표시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살면 분명히 내 인생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삶의 지혜도 거기서 나오고, 삶의 능력도 거기서 나옵니다. (히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