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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주일입니다. 가이없으신 어버이의 은혜가 새삼 그립습니다. 이제와서 효를 하고 싶어도 그 유지를 받들어 드리는 것 이외에 직접 할 수 없는 것이 없는 지금에 많은 후회가 있답니다. 진정으로 살아계신 어버이에게 할 수 있는 바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금년의 어버이주일은 진정한 효행의 길이 모든 강단에서 울려퍼져 성도들들 개인개인 그리고 가정마다 꽃피기를 바랍니다. 25주 2012. 5. 13 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 어버이 주일 성서정과 시 98; 행 10:44-48; 요일 5:1-6; 요 15:9-17 예배로 부름 Call to Worship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 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 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미 4:2) 예배 기원 Invocation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 오늘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정성껏 예배를 드립니다. 저희들이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어릴 적에는 부모의 사랑을 받게 하시고, 나 이가 들어서는 자녀를 품에 안고 기르는 부모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끝없는 희 생을 베풀어 주시는 우리 어버이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하시고, 우 리가 친히 자녀들을 돌볼 때에는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가 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주일의 찬송 Hymns 기뻐하며 경배하세 (64장)(구13장) /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90장)(구98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86장)(구86장) /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202장)(구241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357장)(구397장) / 어머니의 넓은 사랑 (579장)(구304장) 성시 교독 Responsive Readings | 시 98 인도자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회 중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인도자 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회 중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인도자 3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회 중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인도자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회 중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인도자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회 중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인도자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회 중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인도자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회 중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고백의 기도 Prayer of Confession 은혜의 주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더욱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만 하는 저희들을 불쌍 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명하셨건만 저희들은 어버이를 제대 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 생활 속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을 앞세워 부모님께 드릴 의무를 다하지 않고 ‘고르반’을 외칠 때도 많았습니다. 오, 주여, 저희들의 완악한 마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부모를 공경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며, 어버이를 기쁘시게 하며,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된 길을 걷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이 참회하는 기 도를 드립니다. 아멘. 사함의 확신 Assurance of Forgiveness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 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 니하시나니(욜 2:13) 오늘의 주제 우리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석의적 접근 시편의 말씀 시 98 금주 시편의 말씀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이다. 1~3 절은 이 땅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인해 찬양을 올려 드리며, 새로운 그 역사로 인해 그들의 가슴은 벅차오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향해, “새 노래 로 여호와께 찬송하라.”고 초대하고 있다. 그 하나님은 기이한 일을 행하신 분이 며, 능력의 팔로 구원을 베푸신 분이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명 백하게 행해진 일이다. 4-6절은 다시 1절에서 언급되었던 새 노래의 주제로 돌아 와 온 땅의 백성들과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인은 다시금 하나님의 구원이 온 세계에 알려진 사실을 강조하면 서 그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올려 드릴 것을 촉구한다. 또한 5~6절은 수금과 음 성, 나팔과 호각 소리로 찬양하라고 방법을 알려 주는데, 수금은 오늘날의 하프와 같은 악기로 대개 열 개의 줄을 가진 현악기였다. 음성이라는 뜻의 ‘콜 지메라’는 문자적으로는 ‘시편(악보)의 소리’이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악기뿐만 아니라 누구 나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의 가사로 찬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나 팔은 은이나 금속으로 만든 직선형의 악기였으며, 예배를 위한 집회의 소집이나 전쟁을 위한 군대 모집을 위하여 사용되었다. 호각은 구약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악기 중의 하나로 대체로 짐승의 뿔로 만들었으며, 맑으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 는 악기이다. 7~9절에서는 바다와 그 충만 것들, 세계와 그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 찬양의 자리로 초대하면서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노래한다. 그는 의로 세 계를 판단하시고,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사도행전의 말씀 행 10:44-48 금주 사도행전의 본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강권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고넬 료의 집에 나아간 베드로를 통해 함께 모인 사람들 가운데 성령님이 강림하신 사 건을 기록한 말씀이다. 이것은 유대의 지경을 넘어서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증거되 기 시작하였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놀라운 은혜 로 덮고 계신다.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강림한 성령님의 역사가 그곳 이방인 신자들에게도 동일 하게 나타난다. 아마도 베드로가 한참 설교를 계속하고 있을 때에 성령님께서 모 든 사람에게 임한 것으로 보인다. 독특한 것은 설교를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 이 임했다는 사실이며(44절), 무엇보다 여기에서는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님의 강 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관습과 전통에 얽매여 이방인 선교에 대해 마 음을 열지 못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로 하여금 확실하게 마음을 열게 한 계기 가 된다. 그들은 방언을 말하였고, 하나님을 높이며 경배를 올려 드리고 있다. 들음 이라는 표현이 미완료형으로 사용됨으로 그들이 계속해서 듣게 되었음을 강조한 다. 함께 왔던 유대인 신자들의 생각이 바뀌고 그들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신 념이 바뀌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베드로는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구약의 할례를 통해서가 아니라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되는 초석을 놓게 된다. 물론 여기에서 베드로가 직접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라, 욥바에서부터 베드로를 수행하여 온 사람들(23절)이 베풀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방인들 의 성령 받는 사건을 통해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확실하게 나타났 고, 이제 이후로 초대교회는 이방인 전도에 전력하게 되는 이정표가 된다. 여기에 서 수일을 더 유하기를 청한 것은 단순히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강청하고 있는 내 용을 넘어서, 이제 그들은 함께 교제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복음서의 말씀 요 15:9-17 금주 복음서의 본문은 제자들을 예수님의 친구로 소개하시며, 그들이 그러한 친밀감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친구가 된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요, 택함을 받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이제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그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 사랑은 13절에서 목숨을 버리는 사랑으로 표현되고 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16 절은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한다. 이제 놀라운 사랑을 받은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해야 할 사명이 부여 된다. 주님은 하늘 아버지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다 알려 주셨으며(15절), 제자들은 세 상으로 하여금 그 사랑을 알게 할 책무를 가진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으며, 그 사랑을 세상 가운데 보여주도록 부름 받은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의 친구가 갖추어야 할 유일한 자격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접적으로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요, 고난과 핍박 가운데에서 믿음을 지켜가고 있는 요한 공동체에게 주신 말씀이었다. 또한 오늘 세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십자 가의 복음을 전하여야 할 증인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설교를 위한 조명 사도행전의 말씀(행 10:44-48)으로 설교 작성: 대지 설교 제목 : 우리가 온전히 순복할 때 서론 김기만 시인은 “남겨진 마음 한자리”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어둠으로 채워지는 마음/ 조금은 비워 두고 살아야겠네/ 하늘 같은 사람 만나면/ 좋아할 수 있는 마음 한자리// 만남은 끝이 없는 것/ 좋은 사람과/ 좋은 계절과/ 좋은 하늘 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것// 조금은 남겨 두고 살아야겠네/ 아름다운 사람을 알게 되면/ 사랑할 수 있는 만큼의 자리/ 조금은 남겨 두고 살아야겠네.” 남겨진 마음 한자리 만들면서 살겠다는 시인의 고백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렇게 살아 가는 자리에는 아름다운 만남이 세워진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좋은 세상과의 만남은 얼마든지 있다고, 그래서 ‘사랑할 수 있는 만큼의 자리’를 만들며 살 때, 세 상은 살 만한 곳이 된다고 외치는 시인의 외침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사람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살기 쉽고, 그 생각으로 똬리를 만들어 머리에 이 고 살아간다. 그것이 전통이 되고, 때로는 편견이 되고, 아집이 되기도 한다. 그리 고 그것으로 무기로 삼고 방호벽을 만들면서 인생길을 걸어간다. 그것은 다른 사 람을 짓누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것이 가시가 되어 사람을 찌르기도 한다. 작년에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도가니”라는 영화는 광주의 한 장애인 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 씨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가슴을 아프게 했던 몇 년 전의 사건을 그리고 있는 영화에는 교회의 장로, 변호사, 판사, 검사, 교육계 인사 등이 어울려 총체적인 어두움의 도가니를 만들고 있었다. ‘총 체적 비리의 도가니’가 되어 있는 그 교육의 현장은 오늘 이 땅을 덮고 있는 어둠 을 고발하고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감독의 의도로 보이지만 영화 곳곳에는 십자 가의 모습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었다. 십자가를 걸어 놓고 불의를 행하고, 자기 의 욕심을 채워가는 타락한 군상들이 만들어 가는 죄악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 지고 있었다. 십자가는 벽에 장식용으로 걸어 놓을 때는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주 님이 지셨던 십자가는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요, 생명을 가져오는 상징인데 왜 이 렇게 되었는가?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아 집과 주장, 편견과 욕망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외치고 있었다. 목에 걸고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벽에 걸어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 고귀 한 사랑의 명령 앞에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을 때,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고 주 님을 따르는 삶이 구체적으로 실현 될 때 하나님의 세계는 펼쳐진다는 사실을 외 치고 있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유대교의 엄격한 전통과 종교적 규칙 때문에 결코 유대인의 벽을 넘지 못하였던 초대교회가 어떻게 그 장벽을 뛰어넘어 이방 세계를 향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놀라운 구원 의 능력을 경험하고 부활의 감격을 맛보았던 초대교회는 그 은혜가 유대인들을 위 해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경은 그들의 생각 보다 훨씬 넓고 광대한 것이었다. 그러한 그들을 깨우치시기 위해 고넬료에게 말 씀을 보여주시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심으로 그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신다. 오늘 말씀은 자신의 생각과 신념, 종교적 습관과 전통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 에 이끌려 갔던 베드로와 그 일행들을 통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 여준다. 그것은 오늘도 마음의 문을 열고 남겨진 마음의 자리를 만들면서 걸어가 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약속되어 있는지를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1. 주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간 곳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찾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고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의 지도자이자 이제 공인이 된 베드로는 종교적 전통을 떠나 아무렇게나 처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망설이는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 면서 주님은 계속 도전하시고, 베드로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나아간다. 베드로는 그곳에 가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 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35절).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은 불가한 일이었으며, 자신의 생각에도 그렇게 한 적이 없었기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지만 베드로는 말씀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걸어가는 성령의 사람 이었다. 그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간 그곳에서 사도들에게 강림하신 것 처럼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님이 강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씀에 순 종하여 나아간 곳에는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2.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맡길 때 성령님이 역사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고넬료의 집에 가는 것은 베드로에게도 염려가 되는 부분이었다. 환상을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했지만, 그가 바로 즉각적으로 순종하지 못한 것은 그에게 염려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 즉각 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는데 비난의 화살로 그에게 다가온다(11:2-3). 지금까지 지 켜왔던 종교 전통이 있었고 신념이 있었지만 그는 그것도 내려놓는다. 내려놓음 으로 예견되는 비난과 곤란함이 있었지만 그것은 주님께 맡기고 있다. 잠언 16:3 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고 말씀하신다. 맡기는 차원은 문제뿐만 아니라, 그 결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맡기는 것은 믿음을 갖게 하고 소망을 통한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온전히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아가는 곳에서 성령님은 역사하셨 다. 잘 맡기는 것도 은사이다. 결국 믿음은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는 모 든 것을 맡기게 만든다. 하나님은 오늘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글래디스 아일월드는 1902년 영국의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14세 때부터 어느 부잣집의 가정부로 일하면서 밥을 얻어먹고 잠자리를 공급받 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하녀로 불리는 가정부일은 너무 많았고 임금도 적었다. 단조로운 생활 가운데 유일한 소일거리는 공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20세가 되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주님을 영접한 후에 공상 아닌 공상을 하게 되었 다. 해외 선교사가 되어서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녀는 선교사가 되기에는 자질이 많이 부족했다. 공부에 재능이 없어서 책으로 공 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중국 내지선교회에 지원했으나 탈락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 선교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기차표를 사고 중국으로 갔다. 그녀를 환영하는 곳은 없었고, 유일한 일은 노새몰이꾼을 위 한 여인숙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고된 일과 적은 보상,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을 점 점 더 잘해 갔다. 노새몰이꾼들과 접하면서 중국어를 배웠고, 중일 전쟁이 벌어지 자 그녀는 입양한 100여 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산을 넘고 황하를 건너 태국 국경 으로 넘어가 피하기도 했다. 20년 만에 영국에 돌아와 간증을 하게 되고 그의 사 역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그녀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여섯 개 의 행복의 여인숙”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영화 시사회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까지 초청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택한 사람은 누구인지 모 르겠습니다. 그는 아마 남자, 훌륭한 남자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교육도 많 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죽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소명을 거절했는지……. 하나님께서는 저 아래를 내려다보시다 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글래디스 아일월드를 찾으셨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3. 주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때 우리의 지경이 넓어진다고 말씀하신다. 그동안 구원의 은혜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주신 것이었으며, 성령님의 은사도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허락하시는 특별한 은혜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는 이방인은 그 은혜의 수혜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 다. 귀한 진주는 결코 돼지 목에 걸어서는 안 된다는 편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때 복음은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역사하였 을 때 그 복음의 영역이 예루살렘과 유대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제 사마리아 땅과 이방 땅으로 힘차게 펼쳐갈 것이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 신앙의 지경뿐 만 아니라 인생의 지경까지 넓어진다. 비워 있어야 채우신다. 내려놓아야 역사하신다. 맡길 때 일하신다. 하나님께 모 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신다. 노자의 “도덕경”은 그 사실을 알려 준 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통에 연결되어 있어도 비어 있어야 수레가 된다. 찰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창과 문을 내어 방을 만들 어도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다. 그런 고로 사물의 존재는 비어 있음으로 쓸모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려놓는 것을 두려워하고, 비우는 것을 힘들어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 어렵다. 많이 비워져 있는 그릇이 큰 그릇이고, 많이 비워 있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비운 만큼 채울 수 있고, 많이 나눌 수 있다.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비어 있는 가난한 마음속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신다. 결론 조신형 목사의 목회 일기에 “멋쟁이 하나님”이라는 글이 있다. “신학교에 입학 한 후에 1년이 지나고 교육전도사로 처음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양복이 한 벌도 없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 전도사로 면접을 보아야 하 는데 양복이 없습니다. 보내 주시든지 살 수 있는 돈을 보내 주시든지 하여 주옵 소서!’ 그러나 결국 양복도 물질도 보내 주지 않아서 면접을 보지 못하였다. 좌절 하여서 하나님께 푸념하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고 학교에 싸간 도시락도 엎 고 정말 비참했다. 친구 전도사가 요번에 면접을 보는데 교회 집사님이 양복을 사 주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라고 침을 발라가며 간증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너무 화가 나서 ‘하나님 이게 뭡니까? 왜 이렇게 차별대 우하십니까?’ 그런데 며칠 후에 매형이 잠시 와 보라고 했다. 누이는 집에 없었고 매형만 있 었다. 양복을 보여주면서 오십만 원 주고 양복을 샀는데 자꾸 처남만 생각나더라 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양복은 아무리 봐도 하나님이 처남 주라고 그러는 것 같 다고 하면서 양복을 주었다. 양복을 받아들고 집에 오는데 하나님 앞에 원망한 것 이 후회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훗날 면접 보러 간 교회에 담임목사님 딸과 결혼 도 하게 되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먼저 양복을 주셨더라면 첫 번째 교회에 가게 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사랑스러운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뒤돌아보니 모 두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믿음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모든 시작과 끝을 맡기는 것이다. 내 염려뿐만 아니라 결과까지 맡기는 것이다. 맡길 때 하나님은 일하시고 역사하신다. 초대교회가 그런 은사를 가지고 있었을 때, 복음의 영향력은 이방인 에게까지 펼쳐지게 된다. 오늘 우리의 지경이 넓어지기 위해 내 생각과 아집을 내 려놓고 온전히 맡길 수 있을 때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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