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16-17 보혜사 성령이 함께 하시면
주님의 영성교회 <성령 강림 주일> 설교: 권다니엘 목사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레 목사님께서 어느 날 깊은 명상을 하며 주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 중에 천국 문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웨슬레는 천국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 천국문을 지키고있던 천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하나 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러운 감리교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천국에 얼마나 들어왔는지 궁금합니다.”
천사가 하는 말, “감리교인은 없다”
웨슬레는 깜짝 놀랐다. “아 그렇다면 나의 신앙이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러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영광스러운 5대 교리를 강조하는 칼빈의 장로교인은 몇 명이나 천국에 와 있나요?”
“장로교인도 없다”
웨슬레는 더 놀랐다. 아무래도 종교개혁운동이 대단한 실수를 한 모양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면 천주교인은 얼마나 들어왔습니까?”
“천주교인도 없다”
“그러면 도데체 누가 천국에 들어오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구주로 영접한 사람,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들어오지요, 감리교인이냐 장로교인이냐 교파가 문제가 아니죠. 누구든 예수 믿으면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이렇게 대답해 주어서 웨슬레가 깨달은 바가 많았다고 합니다.
믿음 생활 하면서 교리를 아는 것도 필요하고 성경을 아는 지식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성령충만 하여야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성령을 아는 지식이 없이는 영의 사람이 될 수 없다.
한국 교회에 가장 왜곡되어 있는 부분이 바로 성령론이다.
성령은 어떤 에너지나 힘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시다.
즉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삼위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시다.
그러니까 우리가 한님께 기도하고 그 분과 교제하듯이 성령과 교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지성을 가지고 계셔서 가르치기도 하시고(요 14:26)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간에게 지시하기도 하시며(행 13:2, 의지),
때로는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 속에서 슬퍼하기도(엡 4:30, 감정) 하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롬 8장)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사물을 말하듯 성령, 성령 하는 것보다 ‘성령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한번 따라서 하자, 성령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다.
성령님의 이름을 ‘보혜사’라고 부르셨다. 보혜사가 무엇인가?
보혜사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라고 한다.
파라클레토스는 돕는 자(helper), 위로자, 중보자, 변호자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이 어디에 계시나? 16절 보면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하셨다.
우리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영으로 임재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성령님은 우리 속에 오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1. 성령님은 생명을 주십니다 (생명의 영)
성령님은 살리는 영이시다. 성령님은 우리가 영생을 받도록 도우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도 생명의 성령님의 역사입니다(롬 8:1).
“누구든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사단은 죽이고 파괴하는 자로서 사망과 분열과 증오를 가져다 주지만
하지만 생명의 성령님이 임하시는 곳에는 생명과 부활의 역사가 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가운데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들을 보았다
해골들과 흉측한 모양의 하얀 뼈들과 말라 비틀어진 뼈들이 골짜기 저체에 가득하였다.
거기에 생명은 전혀 었었다. 죽음의 냄세만 자욱하다., 아무런 희망도 아름다움도 없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묻는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에스겔은 확신이 없이 대답한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리 너희가 살리라”
그러자 뼈와 뼈들이 들어맞아서 서로 연결되고, 그 위에 힘줄이 오르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혀 사람 모양이 되었다. 하지만 거기에 생기는 없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대언하여 외친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그러자 생기가 불어와 그 속에 들어가고 그 뼈들이 살아서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다.
이 환상은 성령의 생기를 통하여 메마른 심령을 살리고 죽은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성령의 생기가 임할 때 영적으로 마비되고 죽은 자들이 소생한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올 때 영적 부흥이 일어난다. 영적 침체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성령님에 대한 성경의 모든 비유가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성령의 불, 뜨거운 생명 에너지이다.
성령의 생기, 생명이 바람이다.
성령의 생수, 다 ‘생’자가 붙어 있다. 살리신다, 소생시키신다.
찬양,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생수 부으소서, 내 잔을 채워주소서”
“성령의 불로 성령의 불로 채우소서, 임하소서. 에수님 목마릅니다.
오셔서 기름 부으소서 주님을 사모합니다. 오셔서 채워주소서 성령의 불로 -- ”
성령님은 살리는 영이시다. 이 세상은 죽이는 문화가 가득하다.
텔레비전을 틀면 죽는 소식과 죽이는 소식이 가득하다.
이라크에서 몇 명이 죽었고, 파키스탄 지진으로 얼마가 죽었고, 교통사고 나서 몇 명이 죽고 다쳤고.
전쟁과 지진과 해일로 수만 수십만명의 사람이 단숨에 죽어나가고
교통사고와 온갖 재해로 죽고 다치고, 사람들끼리 서로의 생명력을 빼앗아가며 소모전을 벌리고 있다.
죽음의 소문이 가득하고 죽임의 문화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여야 한다.
2. 성령님은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리의 영)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따라 살도록 도우신다.
(14:26).
성령님의 조명이 없이는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말씀을 실천할 수 없다.
성경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죄를 발견하게 하시고 말씀을 붙들게 하신다.
그러므로 내 귀로 내 판단력으로 똑똑한 내 머리로 말씀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성령께서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위해 기도하여야 한다.
“성령이 우리의 스승이 될 때까지 우리는 모두 어리석고 무지하다” 존 칼빈
목동 한 사랑교회 정봉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목회를 하시다가 메마르고 컬컬해지면 만사를 제쳐두고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신다고 한다.
한번은 기도원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데
성경의 말씀이 환하게 이해가 되며 그 뜻이 들어오는데
마치 글자 한자 한자가 톡톡 튀어서 자신의 가슴으로 영혼으로 머리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읽을 때 성령께서 빛을 비추시고
깨달게 하셔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해 달라고 먼저 기도하여 말씀의 진리를 풍성히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란다.
3. 성령님은 사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선교의 영).
세상에 목적 없이 사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다. 무엇해야 하는지, 왜 하는지,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왜 아침마다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성령충만할 때 삶의 궁극적인 사명을 발견한다.
2004년도 연말에 신문에 크게 난 일이다.
신촌에 명문대를 다니는 한 학생이 4학년때 아이스크림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벌었다.
얼마나 장사가 잘 되는지 이게 전국적으로 나가서 체인망을 형성하고
그때 밴처붐이 일어나서 대학생들이 막 이 사업에 뛰어들어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키며
때돈을 버는데 몇 년 만에 몇 백억을 벌어들인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큰 돈을 벌 수 있나요?
수백개 점포에서 매일 수십 만원씩 그래서 하루에 수 천 만원씩 순수익이 들어오는 거예요.
최고로 좋은 집, 외제차 구하고, 세계의 최고의 것이라는 것 다 가졌어요.
젊은 나이에 모든 것 다 가지니까 최고의 것 다 누려봐도 허무하니까 카지노에 빠졌어요.
도박으로 땡기고 땡기고 배팅 하면서 돈이 다 빠져나갔어요.
2002년 2년이 안되어 얼마가 날아 갔는가 놀라지 마세요. 현금 80억이 다 나갔어요.
빈털터리가 되었어요, 그렇지만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100억대 사기를 하다가 걸려서 구속되었어요.
그래서 감옥까지 가게 되었어요.
우리 나라 도박인구가 300만명이래요. 도박중독자만 9.3%
캐나다는 2.6%, 호주는 2.1인데 우리 나라는 국민의 10%가 도박에 빠져 있다고 해요.
왜, 삶의 목적과 자신의 궁극적 사명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던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을 때 그들은 사명을 발견하였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행 1:8).
성령이 임하면 사명 감당할 능력을 받게 된다. 우리가 주님 일 하면서 지치는 경우는
성령의 능력으로 섬기지 않고 나의 에너지와 힘을 짜내어서 하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이 입을 열어 설교할 때 수천명이 회개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위해 능욕받는 것을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완전히 변했다.
성령 충만 하면 비전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비전)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 2:17)
너무나 많은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다. 여러분의 아이들은 어떤가?
꿈을 발견하고 성령 받아 비전과 환상을 품어야 할 아이들이
목표는 오직 하나이다. 게임 등급 올리는 것, 아이템 구하는 것, 사이버 공간에서 잔인하게 죽이고 부수는 것을 즐기는 사이버 게임이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버렸다. 게임 중독이란 것도 있대요,
며칠 밤낮 PC방에 처박혀 세수도 안하고 이빨도 안 닦고 게임만 한 대요.
그것 멈추면 손이 떨리고, 불안하고 견딜 수가 없대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사명을 발견해야 해요.
제가 여기 미국에 와서 보니까 부모들의 사명은 오직 하나 아이들 공부시키는 것 같애요,
제가 잘 못 보았나요? 공부도 잘해야 좋은 것이고, 좋은 대학도 보내어야 하고, 인생을 개척할 능력도 키워야 하죠. 돈도 많이 벌어야 하구요.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정리가 되어 있나요?
그 목적과 인생의 소명을 여러분의 자녀에게 가르치고 있나요?
존 웨슬레가 그리스도인의 물질관, 소유관에 대해서 남긴 유명한 말을 소개해드린다.
첫째로, 벌수 있는대로 벌어라. 일하고 사업하고 -- 최선을 다해서 많이 벌어라.
둘째로, 모을 수 있는대로 모아라. 소비 중심이 아니라 저축을 강조했어요.
낭비하지 말고 검소한 삶을 살며 잘 모아라.
셋째가 중요해요. 줄 수 있는대로 주어라. 베품을 말한다, 나누어 주어라ㅡ,
자기를 위해 쓰지 말고 남을 위해 하나님 나라 사업 위해 아낌없이 드려라, 나누어 주어라,
뭐하러 돈 벌어야 하는가? 남 주기 위해서 돈 보는 것이다. 따라서 하세요, 돈 벌어서 남 주자.
뭐하러 공부시키냐? 공부해서 남 주냐는 말이 있다. 그렇게 공부해서 남 주어야 한다.
따라서 하자. 공부해서 남 주자,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취임사를 하셨다. 그 내용이 뭔고 하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자유와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 주는 천국 사역을 하시는 것이다.
18세기에 대각성 운동을 주도했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친구 데비빗 브레이너드는
인디언을 위해 전도하고 사역하였다. 백인들이 인디언 멸절 정책을 쓰며 죽이고 추방하는 그 때에 인디언들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사명을 발견했다. 그 분의 아름다운 기도가 남아있다.
“오 주님, 제가 주님을 섬기는데 타오르는 불꽃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주여 제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어 주소사, 세상 끝까지 보내어 주소서,
저를 세상의 안일이라고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잘라내주소서,
만일 죽음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라면 자에게 죽음으로 보내어 주소서”
저와 여러분들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충만할 때 주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을 줄로 믿는다.
저와 여러분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우신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성령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게 된다.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생각하고 성령으로 말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을 구하며 사모해야 한다.
디 엘 무디는 어느 날 뉴욕 거리를 걷다가 성령충만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간증하였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령으로 채워주시기를 항상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 그 날, 애써 그 일을 형언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신성한 경험이라서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신비한 체험을 한 다음 14년간 말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제게 계시하셨다는 것과
제가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다시 설교하러 갔습니다. 설교는 과거의 것과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색다른 진리를 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이 회개했습니다.”
성령충만을 구하며 기도하고 기도하기 바란다,
성령과 함께 말씀과 함께 전진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을 인정하며 환영하며 모셔 들이십시오. 성령충만을 구하며 기도하십시오.
성령 안에서 모든 말과 행동을 하며 성령의 사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