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적인 그리스도인 (창 22:1-19)
지금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부흥운동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심령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한국교회는 많은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교회는 경건의 능력을 상실했기에 불신자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의 조상으로서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본이 되는 아브라함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속에 1907년도의 평양에 일어났던 대부흥운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았습니다. 약속의 아들로 주신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충분히 불평할 수 있었지만, 조금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때로는 말씀을 거부하거나 귀 기울이지 않기도 합니다.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듣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축복과 저주,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을 때는 은혜로 받아들여야 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누가 어떤 말씀을 전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때로 거부감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기를 간절한 사모함이 있다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며, 우리의 가는 길에 등대가 되어줍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고, 죄에서 떠나게 하며, 결단하게 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고, 세상, 마귀, 죄악, 자신과 싸워 승리하게 합니다.
2. 마음속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예배하기 전에 하나님께 나와서 회개하고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깨끗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될 때 말씀이 내게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됩니다.
3.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겸손하게 받아야 합니다. 고넬료는 지배국의 장교였음에도 피지배국의 어부출신인 베드로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구원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구시대와 신시대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에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계속 섬겼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갈대아 사람들에게 침략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고 바벨론의 포로로 잡혔습니다.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을 하셨지만 구체적인 날짜와 시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전에 시간을 두고 아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지체하는 시간은 마귀의 시간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봉사하고 충성하고 드리기로 약속했으면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약속에는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십일조, 주일성수는 철저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인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제물로 바치면서 부인인 사라와 의논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만약 의논하게 되면 사라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삭을 바치기가 어려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아 땅까지 사흘 길을 갔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라는 것이 분명하면 인간과 의논하거나 타협하지 말고 그대로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면 이의 없이 반드시 그대로 따라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과 더불어 마지막 길을 걸었습니다. 번제할 양에 대한 아들의 물음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고 말할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는 자기의 종들을 산 밑에다 두고 아들과 단둘만 올라갑니다. 긴박한 순간에 종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데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G12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물론 여기에 장애물이 있을 수 있지만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열방 구원의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추호도 이의가 없었습니다. 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아들을 묶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묶인 아들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겠지만, 아브라함은 추호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칼을 들어 찌르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멈추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데는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요, 빛과 소금의 구실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 자신은 변화되고, 이 어두운 사회가 밝아지게 되고, 소망이 없는 한국교회에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게 되고, 이 민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완전히 바쳤습니다. 부흥의 불길은 자기의 수고와 노력, 재물, 생명까지 바치는 사람의 심령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드리기에 인색하거나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뿌려야 거두는 것처럼 하나님께 바쳐야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바치면 백배로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주를 위해서 바치는데 아끼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시간을 들이고 수고와 노력을 들이고, 교회를 위해서 물질을 아낌없이 바치는 사람이 바로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고, 주님은 그렇게 하는 분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침 수풀에 뿔이 걸린 수양을 발견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서는 아낌없이 바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해 놓고 주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아브라함처럼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수양을 준비해 주셨고, 친히 나타나 주셔서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제2의 아브라함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실천하여, 여러분의 심령 속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을 여러분들도 만나시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여러분들도 모두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