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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본문 1절은 먼저 앞장 끝에 계속하여 “상전들”이 노예들을 취급하는데 관한 도덕적 책임(의와 공평)을 진술합니다.

 

다음은 교회가 이행(履行)할 책임에 관한 말씀의 일부로 기도하도록 권면합니다(2-6).

 

1. 본문 1절은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입니다.

 

1) 본문 1절 상반은 “상전들아 의와” 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 의로운가’ 를 먼저 말합니다.

 

이 말은 에베소서에서 바울 사도가 가르쳤던 겸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상전들은 마치 높은 자리에 오른 것처럼 종들의 처지를 멸시하고 자기들은 법에 매이지 않은 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적절한 위치에 머물도록 해줍니다.

 

종들이나 상전이나 다 똑같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예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공평을 베풀라고 말합니다.

 

2) 본문 1절 하반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달리 해석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ἰσότητα(이소테타)를 에베소서 6장 8절의 τὰ ἀυτά(타 아우타)의 경우와 같이 비슷한 권리, 혹은 분배를 받을 권리를 의미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으로 우리는 의심치 않습니다.

 

종들도 모든 전유물을 가질 비슷한 권리가 주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전들은 지나치게 종들을 부려서 자기들에게 매이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본문 2절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입니다.

 

1) 본문 2절 상반은 “기도를 항상 힘쓰고” 입니다.

 

바울은 일반적인 권면으로 돌이키기에 여기에서 정확한 순서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 사도는 기도부터 시작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처음부터 이처럼 생각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기도 속에서 두 가지의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힘쓸 것, 둘째는 깨어 있는 것, 혹은 가장 성실하게 열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항상’ 이라는 말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인내할 것을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냉담하거나 관심이 없이 ‘바라보는 것’ 을 반대합니다.

 

2) 본문 2절 하반은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입니다.

 

우리는 지금 필요를 주께 구하되 이미 받은 은총들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수다쟁이처럼 떠벌이면서 졸라대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즉각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불평을 늘어놓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든지 간에 만족하게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감사를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바울이 빌립보서 4장 6절에서도 말한 바 있습니다.

 

 

3. 본문 3절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입니다.

 

1) 본문 3절 상반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의 없이 이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 부족을 알고 있었기에 교인들의 기도로 도움받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그들의 기도가 유익을 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형제들의 도고(禱告)를 필요로 했다면 누가 감히 그것을 경시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우리들이 피차 사랑함으로 우리 가운데서 사랑을 행하라고 이 방법을 주신 것은 공연히 주신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들 피차간에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우리편에서 기꺼이 형제들의 기도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황주의자들은 유치하게도 이 구절에서부터 죽은 자들을 위한 우리의 기도가 간청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이 죽은 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바울은 주의 명령에 따라 친교를 갖고 있었던 형제들에게 직접 기도를 요청합니다.

 

이 구절이 죽은 자들에 관해서 말한 것이 아닌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에서 떠나 바울에게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기 도움을 요청한 바울에게서 현저한 겸손의 증거를 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특별히 위험에 눌려 있을 때, 복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인내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도 말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자기로 말미암아 교회들이 서 있기를 바라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사도 바울의 놀라운 열심을 생각해 봅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았고, 교회로 하여금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사람의 위험에서 건짐을 받도록 기도하기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고백하는 일에 있어서 정복을 당하지 않고, 겁을 내지 않으며, 오직 인내하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참으로 사도 바울은 두려움 없이 자기 생명을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전파에 매이도록 만들었습니다.

 

2) 3절 하반은 “하나님이 전도할 문(말씀의 문-칼빈)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입니다.

 

이 구절은 단순히 바울이 에베소서에서(6:19) ‘입을 벌려’라고 한 말이나 그리스도께서 “구재(口才)와 지혜”(눅21:15) 라고 한 말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그 의미나 형식에서까지 다른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확신 있게 말하는 것이 빗장이 걸려 있고 잠겨진 물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쉽지 않다는 사실을 훌륭한 비유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실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는 말씀이 그것입니다(마10:20).

 

그러므로 첫째 사도 바울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자기의 혀를 움직여 주시지 아니하시면 바른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함으로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더욱 더 기도할 것을 고취시킵니다.

 

둘째로 바울은 복음을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부름으로서 이 일의 존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중대한 일을 조심 없이 아무렇게나 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역시 자기의 위험을 말합니다.

 

 

4. 본문 4절은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서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입니다.

 

이 구절은 이 일이 평범한 일이 아님을 암시하여 그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6:20)에서 ἰνα παρῥησιάσωμαι(히나 파레시아소마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자신을 위해서 바라고 있는 것은 마치 복음의 권위와도 같이 두려움이 없는 확신을 갖는 것임이 드러납니다.

 

더우기 바울은 여기서 오직 자기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은혜만을 바라고 있으므로 우리들도 이와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대적들의 맹렬함에 물러서지 말고 죽기까지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의 능력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께 확신의 영이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주실 것을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