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횄을 때 (잠 24:16)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그가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실패를 거듭해왔습니다.


왜 인간은 이처럼 실패하게 됩니까?

1)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입김보다 더 가볍다\'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간이야말로 흙으로 빚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넘어지기를 잘합니다.

2)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인간 속에 있는 죄성이 우리로 하여금 넘어지게 만들고 실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백하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랬습니다. 즉, 한쪽에서는 악이 한쪽에서는 선이 나를 끌어당기기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악한 환경 때문입니다.
악한 환경을 통해서 넘어지게 되고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의 교회로 성경에 나타난 여러 교회들이 다 특징이 있습니다마는 그 중에서 고린도 교회는 아주 문제가 많은 교회로 소문나있습니다. 왜 고린도 교회는 그와 같이 문제가 많았는가 하면 당시에 고린도 교회 주위 환경이 죄악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고린도교회도 큰 문제를 안고 진통했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 환경이 죄악으로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살아 보려고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쳐보지마는 지나고 보면 또 죄 가운데 빠져 허덕이던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4) 사단의 공격 때문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공격해오기 때문에 우리들이 또 넘어지고 실패할 때가 많습니다. 가롯유다가 예수그리스도를 팔게 된 동기는 마음에 욕심도 있었습니다마는 마귀가 예수 팔 생각을 가롯유다에게 집어 넣었다 그랬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대로 사단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사단의 공격에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래저래 실수하고 넘어지고 실패할 때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실패했을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 실패 없이는 성공자도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될 것은 실패는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한 경험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 사람들의 성공을 통한 영광을 생각하고 지금 실패한 모습을 대조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성공한 배후에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과 쓰라림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볼 때에 누구는 저렇게 성공하고 그의 찬란한 업적을 보면서 실패감에 사로잡히기 쉽지마는 그러나 여러분, 성공한 배후에는 반드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과 쓰라림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2. 실패했을 때에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왜 실패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공했으면 성공한데 이유가 있고 실패했으면 실패한데 이유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내가 실패했으면 실패한 이유가 반드시 거기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그 이유를 잘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실패의 이유를 분석하고 발견할 때에 그는 현재보다 더 성장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약한 자라도 강해질 수가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강해질 수 있고 실패를 통해서 성숙해질 수 있고 실패를 통해서 보다 더 깨끗하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 수가 있게 되어집니다. 실패를 통해서 더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했을 때에 자칫하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내가 하나님께 부족했던 것, 내가 하나님께 모자랐던 것, 범죄했던 것, 실수했던 것, 이것들을 내어놓고 회개하고 자복하게 될 때에 그는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3. 실패는 훈련의 한 과정입니다.
실패는 하나님의 저주나 심판이 아닙니다. 그것은 훈련의 한 과정이요, 그것은 영원한 것이고 계속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이고 순간적인 것입니다. 기간이 지나면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으켜주십니다. 그런고로 실패할 때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는 끝이 아닙니다. 실패는 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나면 반드시 우리는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모세가 대제국 애굽의 왕자로 대단한 위치와 신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람을 죽이고 광야 40년 동안의 생활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생활이었습니다. 모세는 대제국 애굽의 왕궁에서 호화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 미디안 광야 쓸쓸하고 외진 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벗삼아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모세를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곳에서 훈련을 시켜서 거칠고 과격한 모세로 하여금 땅 위에 모든 사람보다 온유와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교만한 모세로 하여금 겸손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건강을 믿고 젊음을 믿고 큰소리치던 모세로 하여금 이제는 하나님 한 분밖에 나의 의지가 없다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는 훈련을 받은 후에 이스라엘 민족을 지도하는 지도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하게 될 때에 하나의 훈련과정으로 우리를 세우시는 것이고 연단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4. 실패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왔던 사람, 한 사람도 일으켜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넘어졌던 사람, 다 일으켜 주었습니다. 38년 된 중풍병자, 인생의 실패자로서 처참하게 실로암 물가에 있었지마는 우리 주님 가셨습니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는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게 되니 남편을 다섯이나 둔 사마리아 여인, 완전한 실패자였지만 예수님 만나는 그 시간, 변하여 새로워져 사마리아 복음화에 앞장 선 복음 증인의 값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 어느 한 사람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려니와\' 그랬습니다.


어떻게 실패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까?

1.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환난, 시련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그 이유는 마지막 절망에서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몸도 병들었습니다. 사람들도 다 나를 떠났습니다. 활동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절망입니다. 몸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서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손으로 붙드십니다.
(욥5:19)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그랬습니다. 기근 때에 칼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완전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시34:24-25)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 같고 망한 것 같아도 완전히 끝난 것 같아도 완전한 실패의 자리에 있는 것 같아도 우리는 절망하고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주님이 손으로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으켜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서 머리에 가시관, 손발에 못, 옆구리에 창을 찔려 피와 땀과 진핵을 다 쏟아 생명보로 죽어주시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소유로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여러분을 반드시 일으켜 주십니다.

2. 복음증거를 위해서 일으켜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몰매를 맞고 죽음에 임박해 있었지마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서 복음증거하기 위해서 떠났다고 했습니다. 왜요? 복음증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켜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빌립보 1장을 보면 그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나가면 복음을 증거할 것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의 달려갈 길과 주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했던 사도바울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어 일으켜 주시는 이유는 바로 복음전도를 위해서 일으켜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성공의 자리로 나아가되 하나님께서 일으켜주신 다음 반드시 복음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