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마 22:1-14)

 성경 중에는 잔치하는 내용이 세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에 아하수로왕 때에, 또 신약에 내려오게 되면 예수님께서 가나안 잔치에 참여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벨사살 왕 때에 잔치를 하다가 그만 그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하나님께 제사하는 예물, 그 거룩한 성전 기명을 가지고 술 마시면서 잔치를 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내용이 나오게 됩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이와 같이 잔치하는 모습들이 기록되어 있지마는 오늘 본문은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임금이 되셔서 잔치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잔치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바로 교회를 통해서 잔치를 벌여 많은 죽은 영혼들을 하나님께 인도한 모습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1)첫 번째 청함을 받은 자들(3절)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들었습니다. 어떤 임금이 아들 혼인잔치를 열게 됩니다. 소와 살찐 짐승들을 잡아서 잔치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들을 보내서 초청을 합니다. 그런데 이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에 오기를 싫어합니다.

2) 두 번째 청함을 받은 자들(5-6절)
다른 종들을 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가고 한 사람은 사업차 가게 됩니다. 역시 거절을 합니다. 그리고 그 남은 사람들은 초청하러 온 종들을 때리고 핍박하고 죽여버립니다. 그래서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군사들을 보내서 자기 종들을 죽은 그 악인들을 모두 멸하고 그들이 사는 집들을 불태워버렸습니다.

3) 세 번째 청함을 받은 자들(9절)
또 다시 음식을 차려놓고 종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 저 사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괜찮아. 만나는대로 사람들을 데려와서 잔치자리를 다 채워라. 가난한 자도 좋고 소경도 좋고 절뚝발이도 좋다. 악한 자도 좋고 선한 자도 좋다. 누구든지 다 데려와라.\" 그래서 종들이 나가서 사람들을 다 데려와서 그 잔치자리가 가득 메워지게 되었습니다.

4) 예복을 입지 않은 자(12절)
그런데 임금이 이렇게 자세히 보니 그 잔치자리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 앉아있었습니다. \"너는 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왔냐?\" 물었더니 아무 말도 안합니다. 종들에게 명령하기를 \"이 사람을 당장 수족을 묶어 저 어두움 가운데 던져놓아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겠다.\" 그랬습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우리에게 매우 깊은 의미를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임금이 아들 혼인잔치를 했다고 하는 그것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바로 영원한 천국에서 죄인과 더불어 영원한 기쁨을 누리며 혼인잔치할 것을 가르치고 오늘날 이 교회가 또한 천국이라고 하는 것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잔치를 배설해 놓고 우리를 초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1) 천국을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비유했습니다.
잔치를 배설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오늘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천국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잔치를 배설해 놓은 것과 같습니다. 이 교회에 주인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임금이 잔치를 배설해 놓고 종들을 보냈는데 초대받은 사람이 거절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바로 임금은 하나님을 가르치고 그 아들은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거기에 초대받고 오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나 또는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그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우리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많은 복음 전파자들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불러 구원의 반열에 참석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았음을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2)교회 예배를 잔치에 비유했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천국입니다. 교회는 잔치를 배설한 잔치집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잔치분위기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왜요? 잔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잔치에는 주인공이 있고 주인공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잔치의 특징은 그 잔치집에 기쁨이 있습니다. 잔치집은 기쁘고 즐거워야 됩니다.

①예배에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예배가 기쁘고 즐거워야 되는가 하면 하나님께 감히나올 수 없지마는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사역을 통해서 갈보리 구속의 사역을 통해서 죄인인 우리들이 감히 하나님께 나아와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예배할 수 있는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이것이야말로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드리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감사가 있어야 됩니다. 기쁨과 감사가 바로 우리 예배의 시작이 되어야 되고 동기가 되어야 되고 이 예배에 흐름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②예배를 통해 위로를 받습니다.
예배는 딱딱해서는 안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배는 잔치 분위기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 험한 세상에서 찢기고 상하고 피곤해 지고 캄캄하고 답답한 심령들 가지고 교회에 나왔으면 교회에서 세상에서 주지 못하는 그런 참 평강을 얻고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얻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평강이 우리에게 충만해야 되겠습니다. 왜요? 교회는 잔치집이기 때문입니다.

③예배에 교제가 있습니다.
교회 나와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 말씀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즐거움을 얻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또 우리의 기도가 응답됨으로 인하여 거기에서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④예배는 삶의 원동력입니다.
교회 나와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어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교회 나와서 기쁨을 소유하지 못하고 은혜 받지 못하고 능력 받지 못하고 돌아간다면 그는 가장 불쌍한 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살아있는 예배, 생명이 약동하는 예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은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예배, 그런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심령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절망가운데 소망을 얻는 삶의 기쁨이 넘치는 예배가 되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종들을 보내시는 사랑입니다.

1)생명을 주고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 종들을 보내십니다.
종들을 보내서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초청했는데 그만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사람들을 초청하게 되면 그 초청한 사람들에게 초청장을 보내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이 그 혼인 예식에 참석할 때에 예복을 하나씩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예복은 가운 같은 그런 것들입니다. 온 몸에 두른다든지 하는 간단한 것들인데 그 예복을 입고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보고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예복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게 바로 의의 옷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오는 자마다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되는 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2)초청을 거부해도 계속 종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선지자들을 많이 보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거절했습니다.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나중에는 예수님을 보냈지마는 그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이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복음의 사역자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게 됩니다. 오늘날 누구를 보내는가 하면 바로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복음의 사역자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3)지금도 초청하고 계십니다.
종들이 임금의 말에 절대 순종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음증거를 위하여 보낼 때 절대순종 할 의무와 사명이 있습니다. 오늘 누가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세가지 중요한 사명을 찾게 됩니다.

①강권하여 데려와야 합니다.
(눅 14:23)에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인이 종에게 명령합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팔을 비튼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 말을 안들으면 팔을 비틀어서라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니, 팔을 비틀면 팔이 상하게 되고 나중에는 병원에 가야 되는데 그런 실례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파을 비틀어서 데려오라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간절히 요구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②많은 사람을 전도해야 합니다.
첫째는 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같이 내가 몇 시에서 몇 시까지
30분 혹은 1시간 전도하는 시간으로 할애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③사랑으로 데려와야 합니다.
복음 증거를 위해서 그 속에 사랑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전도하라고 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속에 불붙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지금 아무 것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지옥 불을 향하여 달려가는 우리 민족들, 사랑하는 내 가족들, 이웃들, 동족들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려고 하는 뜨거운 마음을 갖도록 우리 속에 사랑이 붙붙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롬9:1) 이하를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랬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내 종족, 친척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 원한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왜요? 그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청함을 거절한 자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1. 핑계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바쁩니다. 피곤합니다. 성경은 핑계대지 말라고 했습니다.

2. 세상 일을 영적인 일보다 앞세웠습니다.
\'나는 밭에 가봐야 해.\'\'나는 사업을 해야 돼.\'\'나는 장가들었어.\' 전부 세상 것 중심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닙니다. 하나님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나는 그저 세상 일에 몰두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중심의 사고방식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핑계대지 말고 힘써 행하라.\" 그랬습니다. 힘써야 됩니다. 우리는 말씀 준수에 말씀 순종에 힘쓰는 것이 아니라 돈 벌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해서 힘씁니다. 내 자녀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힘씁니다. 요즘 보면 놀기 위해서 참 힘 많이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는 힘쓰지 않습니다. 아무리 엄한 명령이라고 말씀을 해도 아무리 유언의 말씀이라고 명령을 해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에 대해서는 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래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 착한 종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신실한 종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주여! 내가 가겠나이다. 천국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잔치집입니다. 이곳에서 모여서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리고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