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시13:2절)
어린 신앙일 때는 자신의 문제가 다 외부에 있는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야말로 ‘땟찌 신앙’입니다. 할아버지가 손자들이 문턱에 걸려 넘어질 때에 문턱을 손으로 치며 ‘땟찌’ 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걸려 넘어진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신앙의 불행이 교회를 잘못 만났거나 목사가 나빠서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부류들입니다. 만약 현실교회를 비방만 하고 대안을 내 놓지 못한다면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일 겁니다. 한 때는 교회가 그렇게 좋다고 목사가 그토록 존경스럽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땟찌’하면 안 되지요. 그건 무책임한 처사이며 비겁한 일입니다.
만약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신의 위치와 소속 그리고 자격을 획득하는 은혜를 입었으면 다 하나의 지나치는 과정으로 보고 다 용납해야 합니다. 이빨을 부드득 갈고 있으면 바깥 어둠에서 이를 가는 부류들과 같아집니다. 한두 번 ‘몹쓸 것들’하고 나무라고 말 일이지 함께 물고 뜯으면 똑 같아집니다. 구원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면 우리의 원수 또한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사람은 월하의 공동묘지처럼 조용할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번민입니다.(레슬링 wrestle) 승리와 패배가 뚜렷합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고 생명과 사망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두고 순간순간 맞붙는 씨름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선악의 이중인격이라면 구원받은 사람은 생명과 사망의 이중인격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이 나타나기를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이름을 호소합니다(롬10:13) 하나님이 얼굴을 가린 듯 하는 먹먹한 순간을 맞기도 합니다(시13:1) 길과 진리와 생명(요14:6)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가는 신작로가 아닌 것처럼 희미하기도 합니다(시13:3) 원수가 깔깔대며 웃고 조롱하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리고 조급하고 충동을 받아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볼 때도 있습니다(시13:4)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외모에 대한 염려뿐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원수가 나를 이길까 봐 속이 상합니다.
아담 안에 잘 못 태어난 우리의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죄와 사망이었습니다(롬7장) 이 문제 때문에 바울도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롬7:24) 부르짖었습니다.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에 의해 그 정죄에서 풀렸고 자유를 얻었습니다(롬8:1-2) 그러나 마귀의 수하에 오랫동안 훈련된 나의 자아와 욕심은 여전히 육체를 따라 행동하고 맙니다. 아주 미운 원수입니다. 나로 사망의 잠을 자게하고 흔들리게 합니다. 구원이 내 안에 있으면 원수 또한 내 안에 있을 터 때론 원수가 승리하는 것을 망연히 바라봅니다. 약이 오릅니다. 칡과 등나무가 엉켜있듯 갈등입니다. 그래서 번민과 근심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끌어안고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는 딴 길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