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해진 기독교

불쌍해진 기독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절)

 

 

 

 

 

이와 같은 사자성어들이 있습니다. 마이동풍(馬耳東風), 우이독경(牛耳讀經), 풍전등화(風前燈火), 우왕좌왕(右往左往), 유야무야(有耶無耶), 용두사미(龍頭蛇尾), 조령모개(朝令暮改), 일구이언(一口二言), 당동벌이(黨同伐異), 안하무인(眼下無人) 어떤 유머 코너에 이 사자성어들을 한 사자성어로 바꾸어 보세요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거기서 답은 ‘국회의원(國會議員)’이었습니다. 저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다른 사자성어를 대겠습니다. 바로 ‘현대교회(現代敎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소도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사1:3) 마지막에 나타날 라오디게아교회와 같고 음녀, 바벨론으로 진행되어 가는 교회의 모습, 된다고는 하는데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무지 말의 열매가 없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합니다. 진리냐 생명이냐 분별력은 없고 내 편이냐 니 편이냐 하는 문제만 따집니다. 사람의 기능이나 소유 곧 사물만 보일뿐 사람은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왜 일까요? 세상이 물밀듯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과학에 의한 서구의 물질문명과 그들의 철학인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교육, 철저한 인본주의입니다. 거기다가 계시가 없는 자들의 강론 등이 합쳐져서 아주 불성 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이 세상의 삶뿐입니다. 십자가를 건너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고 또는 너무 어렵고 단단해서 듣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계속 물을 탑니다.

 

 

 

 

 

일종의 우민정책입니다. 전하지 않으니 듣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 계시가 없어 십자가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엔 감감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삶으로 끝나고 죽고 난 다음에 천국이 없으면 얼마나 불쌍하겠는가 이런 정도로 빠져 나갑니다. 고전15장은 흡사 큰 복음의 창고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어마어마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예수의 부활과 장차 우리의 부활에 대한 내용만 이야기 합니다. 쉽게 말하면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를 믿어 장차 그와 같은 부활에 참예하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역사적인 부활 사건과 장차 오실 재림과 내세 천국에 대한 말씀이라면 이렇게 구구절절 기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안에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사심, 아담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이 언제냐? 만일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 일뿐, 만약 아담 안에서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세례는 왜 받느냐?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얻지 못한다면 바울이 어찌 날마다 죽는 것이 자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땅에 속한 형체를 타고 났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의 형체도 가졌다,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생명을 주는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고전15:45) 이와 같은 명제를 풀지 못하고 열심을 낸들 위의 사자성어들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근래에 들어 기독교입네 하는 분들이 유독 누추하고 시시하게 느껴집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하는 모습이 불쌍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