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터치하라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나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도 없고 도리어 더 중하였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막5:25-28절)
열두 해를 꼬박 하열을 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혈루가 뚝 그쳤습니다. 죽어가는 병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먼저 주님의 자비로우심입니다. 피를 쏟아내는 것은 율법에 의한 부정함의 대명사입니다. 격리 수용되어야 하고 돌아다니다 잡히면 경을 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자신의 옷자락까지 만질 때까지 일체 언급을 하지 않으시다가 일단 혈루근원이 끊겨 온전해 진 순간 ‘누구지?’(막5:30)하고 물으십니다. 새파랗게 질려 이실직고하는 그 여인에게 ‘딸아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셨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5:34)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그 다음엔 이 여인은 많은 의원들에게 시달림을 받고 가진 것을 다 써 버린 백수였습니다. 오래 전 교회를 맡았을 때에 우리 교회는 하다하다 안 되는 분들만 모여들었습니다. 소문난 교회라는 곳에서 다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는 3차 병원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에 한 선배 목사가 ‘그러면 짜 먹을 게 없어’고 말을 해서 어리벙벙해 한 적이 있습니다. 어쩜 이와 같은 여인은 지금의 어느 교회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낫고 나서 감사헌금 한 푼 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도 돌팔이들의 별별 처방을 받아 들고 기상천외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착취(?)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없을까요?
또 한 가지 이 여인은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제대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를 움직여 그 허우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터치했습니다. 그 즉시 나았습니다. 이 사건 뒤에 한 회당장의 열 두 살 난 딸이 죽었는데 주님이 가셔서 손을 잡고 ‘달리다굼’하시니 이 소녀가 일어나서 걷는 사건이 나옵니다(막5:35-43) 주님이 바로 구원이시며 생명 자체이시고,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말씀(요1:1)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분이 말씀하시며 손을 대시든 우리의 믿음으로 그 분을 터치하든 닿기만 하면 구원이요 바로 치료가 일어납니다.
또 지금 예수님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어 예수님께 손을 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선생님 누구 손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고자 하는 갈망이 없는 사람들이 주님과 비비적거리는 상황에서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쩜 지금 ‘나 예수 믿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셔’말은 하지만 그 영혼의 주림과 사모함이 없이 주님을 에워싸고 있는 무리들과 같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여인은예수를 육신의 손으로 터치했지만 이젠 영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영이 성령과 함께 구원을 받고 치료를 받기 위해 터치합니다. 이 여인의 갈망과 열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