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만 전파 된다면

그리스도만 전파 된다면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를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도한 기뻐하리라”(빌1:18절)

 

 

한 교민신문의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아침마다 보내는 글이 신문에 이름도 없이 출처도 없이 실려 있어서 ‘이 글이 여태 실리고 있네요’하니 남자 직원이 대답하기를 ‘예 매일 이메일이 와서 아주 많이 쌓여져 있습니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거 내 글인데 알아요?’고 말하지 ‘예? 목사님의 글이라고요 전 몰랐습니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는 누구의 글인지 모르고 2년이나 신문에 제 글을 게재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가 ‘그럼 이름을 밝힐까요?’ 묻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요 지금까지 하든대로 하세요. 내 이름을 밝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 곧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더 중요해요’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다보니 그를 악평하기 위해 그의 글을 회람하는 패거리들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런 방법으로도 그리스도만 전파 된다면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상관없다 그리스도만 증거가 된다면 난 좋아 아주 좋아’하고 태연자약합니다. 오래 전에 어떤 카페가 제 글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포스팅을 해 놓고 여러 사람이 찧고 빻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그 말씀을 깨닫고 옹호하는 분이 있음을 봤습니다. 그 때에 그 한 두 사람으로 인해 기뻐하고 침묵하고 있는 다수가 그 글을 보고 그리스도를 안다면 저는 말할 수 없이 기뻐 하리라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선교지에 나와 있으면 말씀을 주고받고 서로 위로를 받는 일이 드뭅니다. 그게 참 아쉽고 그립습니다.

 

 

그런 중에 카페에서나 메일로 제 글을 읽고 심중에 정통으로 깨달은 바를 표현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매 저는 속눈물을 흘리며 기뻐합니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시느라고 주제와 벗어나는 분들도 있지만 제대로 꿰뚫어 진리의 지식을 공감하는 분들을 저는 값비싼 보석을 발견한 것 보다 더 존귀하게 여깁니다. 당연히 댓글을 위한 댓글은 달지 않으렵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을 움직여 줄 때 몇 자를 적어 서로의 깨달음을 북돋는 것이라 최선이라고 여깁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 살든지 죽든지 내 몸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든 감수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는 것일진대....

 

 

이와 같은 서원은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반드시 완성하실 겁니다(빌1:6) 우리 안에서 기쁘신 뜻을 따라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 갈 겁니다(빌2:12-13) 어렸을 때는 제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주의 손에 다루심을 받은 지금 제 몸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와 거룩과 영광의 과정을 따라 빛과 생명과 사랑의 성분이 조금이라도 나타난다면 최고의 기쁨으로 살아야지요. 또한 비록 미련한 글이지만 오직 그리스도만 증거가 된다면 제 자신은 이름이야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당연히 기쁨을 받아들이고 나의 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일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