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남은 빚

그리스도 안에서 남은 빚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2-14절)

 

 

 

 

 

이전에 두 분에게 각기 다른 처방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먼저의 경우는 오래 전에 기도원에서 한 젊은이를 보았습니다. 며칠 기도원에서 빈둥빈둥하는 것을 보고 ‘당신 왜 여기 와 있소?’ 하니 어떤 권사가 기도를 해 줬는데 자신이 주의 종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해 주더랍니다. 그래서 ‘당신 부인은 뭐합니까?’ 물으니 미장원을 운영한답니다. 그래서 제가 고함을 꽥 지르면서 당장 산에서 내려가서 열심히 일을 하라고 말을 했습니다. 엘리사는 밭을 갈다가, 아모스는 뽕을 따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노라고 말하곤 당신이 진정 하나님이 부르시는 주의 종이라면 당신의 일을 하는 중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것이라고 일갈을 했습니다.

 

 

 

 

 

다른 한 경우는 후배 목사가 원전도 익히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도 상당한데 교인의 수가 늘지 않는다고 푸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일 년만 실컷 놀아’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정반대의 제안이지요. 한 쪽은 분명히 노동을 해야 할 육체의 의무가 있는 사람이 불한당 노릇을 하면서 기도원에서 빌빌대는 걸 보고 당연한 육체의 노동을 권했고, 다른 한 쪽은 지금 자신이 고난 가운데 있는 것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마에 주름을 잔뜩 그리고 낑낑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인 육체의 의무에 사로잡혀 있는 겁니다.

 

 

 

 

 

아마 지금도 십자가 마을인가 어디서 자기들이 십자가를 진다고 끙끙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육체로는 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창3:19) 여자는 해산의 수고를 하면서 남편을 원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것(창3:16)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할지라도 그 의무를 죽을 때까지 벗을 수 없습니다. 남자의 노동, 여자의 해산의 수고와 남편을 사모하는 것은 의무만이 아니라 죄 지은 육체의 축복입니다. 그것 없으면 이 세상이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표적이나 이적 기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마땅히 육체의 의무로 일을 해야 할 것은 쭈그리고 앉아 기도하고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빚이 하나도 없는 육체로는 자신이 고난을 받고, 자신이 마땅히 행할 일을 해야 한다고 설쳐댑니다.

 

 

 

 

 

마땅히 자신이 할 일은 기도로 카드놀이의 좋은 패를 기다리듯 하고 마땅히 기도해야 할 일은 스스로 행하려고 낑낑대는 어리석은 신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남은 빚은 결코 육체에게 있지 않습니다. 진리 안에 의와 자유와 생명을 얻은 것은 영이기 때문에 자신을 십자가에 처리하신 대속의 은총을 따라 영으로 육신을 다스리고 그 영을 좇는 빚이 남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질긴 법 정신과 의무에 대한 노예근성이 아주 오래갑니다. 영을 좇아 행해야 한다 해도 ‘그래도 그렇지’ 하고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는 우리를 봅니다.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은 우리에게 남은 빚은 육체에게가 아니라 영에게 입니다. 그렇지만 밥벌이는 여전히 육체에 대한 빚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