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원리를 단순화 시켜라

신앙의 원리를 단순화 시켜라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아나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면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6-8절)

 

 

신앙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이 많다고 여길수록 율법 아래에 있든지 아직 어려서 유명한 후견인 아래에서 사람의 종노릇하든지 둘 중에 하나일겁니다. 유치원생에게는 선생님이 가르쳐 줄 것이 많습니다.일일이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초등학교 어린 아이에겐 도덕을 가르쳐 행동을 일일이 바로잡습니다. 그러나 중등교육에서부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하며 국민윤리를 가르칩니다. 시시콜콜 조목조목 가르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십일조헌금, 주일성수, 새벽기도, 전도, 셀이나 순이나 구역모임, 성경공부모임, 수요기도회, 금요철야, 선교, 봉사, 기관모임 등등... 대충 맞습니까? 오래 되어서 잊은 것이 많네요.

 

 

이런 것을 가지고 몇 점짜리 신앙이라고 채점하는 교회는 되도록 빨리 문을 닫아야 합니다. 목사는 성경 속으로 푹 빠지는 구도자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할 수 있으면 빨리 직업전선으로 나서야 합니다. 왜요? 그건 결코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의 지체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 아래에 머물고 있는 종들입니다. 끊임없이 법을 만듭니다. 10계명이 613가지로 그 다음엔 수 천, 수 만의 행동강령으로 나눠집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아래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신앙이 성숙해 가면서 하나님과의 계명이 단순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 이웃을 사랑 곧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법(single commandment)에 귀결이 됩니다.

 

 

선지서는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를 지나 그와 같은 하늘적인 구원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야 이루어진다는 예언입니다. 율법 아래에서는 당연히 양이나 소나 다른 제물로 제사를 드립니다. 그림자로 교육할 수밖에 없는 소경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법 정신 아래에서 노예근성으로 하늘을 쳐다보기 때문에 일일이 상세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도덕시간처럼 말입니다. 신앙의 유년기에는 저등한 것들로 씨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압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법이 아니라 신앙의 원리입니다. 공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에 의한 자기 심판입니다.

 

 

자신을 예수의 죽음에 넘겨주는 것은 죄인인 자신의 심판을 수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 다음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 곧 생명 주심과 교제하게 하심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게 바로 그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인자 안에 거하는 겁니다. 여러 조항의 말씀이 단순화 된 거지요. 십일조 주일성수 새벽기도 봉사 선교 등등이 하나님 사랑 안에 다 포함이 되고 맙니다. 이런 것 가지고 성경적이냐 아니냐 하며 싸우는 사람들은 도토리 키 재는 중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주제를 파악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분을 공손히 모시고 동행하며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