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영접에서 의인의 삶까지

신랑 영접에서 의인의 삶까지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1,14,31,45,46절)


만약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천국하면 죽어서 간다는 개념을 깨뜨리세요. 그리스도 안에 내가 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면 그 자체가 이미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자신이 땅에 속해 있으면 아득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기도할 것이고, 반면에 자신이 하늘에 속한 자이면 ‘하늘들 가운데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기도하게 될 겁입니다. 복음은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깨달아지는 겁니다. 따라서 성령의 지혜가 아니면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알아듣질 못합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영접한 처녀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습니다.


신앙은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모셔드리는 믿음에 의해 출발이 됩니다. 심령천국(마5:3)이 신앙의 첫 단추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분을 모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더디 깨달아져도 꾸역꾸역 듣고 또 듣습니다. 드디어 그리스도를 수용하고 신랑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서부터 몸 성전, 천국, 참 예배, 그 이름 안에서 기도, 계속되는 생명의 공급으로 인해 영광과 존귀한 가치가 충만해 집니다. 바로 달란트가 됩니다. 우리 안에 신랑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내게 현찰과 같은 보물이 된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묻어둘 수 없지요. 절대로요. 남의 돈이 아니라 바로 내 돈인데 이건 주님의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묻어 두겠어요?


그리스도의 영접 곧 기름부음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그 기름부음이신 그리스도가 보물이 되지 않지요. 따라서 기독교가 대용품을 두고 하나님과 거래는 잘 하는데 그 존재를 두고 장사하는 것은 꽝입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팔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 하나님의 소망과 영광의 가치, 그 능력을 도무지 가만히 둘 수가 없어요. 누가 시키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를 팔려고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남깁니다. 그 남기는 방법이 바로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이 없는 자들은 달란트가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여! 주여! 할 뿐 아니라 주의 것이라고만 여기고 장사를 하지 못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건 제 정신으로 사는 모든 인간의 공통점입니다. 싹수가 있는 사람에게 할 뿐, 가능이 없는 사람 도저히 되갚을 능력이 없으면 피합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만 나타난다면 집도 팔고, 온몸을 다해 충성하리라 다짐에 다짐을 하고 잔뜩 벼르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름부음 곧 그리스도를 맞이한 슬기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그 기름부음이 달란트가 되고, 그 달란트로 인해 의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갇힌 사람들을 섬깁니다. 주는 자가 복이 있고, 아니 복이 있으니 주게 되고,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쓰는 것만큼 버는 것 곧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며 그게 바로 영원히 남는 장사입니다. 의인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