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복음의 능력을 믿고 사는가?

과연 복음의 능력을 믿고 사는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절)

내가 과연 믿음으로 사는가? 당연히 하나님을 믿고 살지요. 권선징악의 하나님, 사필귀정의 하나님,죽은 다음에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양심과 직관이 의식하고 삽니다. 문제는 복음의 능력을 일으킬 비밀의 키를 켜고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만약 복음이 말잔치뿐이라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집어 던져 버리고 말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남과 다른 선행이나 남보다 나은 우월한 지위와 더 가진 것으로 인해 자랑을 삼을 뿐 복음의 능력이 실제로 나타는 걸 보지 못합니다. 심지어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를 찬송하는 현장에서 조차 멀뚱한 얼굴, 확신이 없는 표정과 몸짓, 참 뵈기 싫습니다.

적어도 복음을 안다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확신에 찬 옹골찬 고백과 담대한 선포, 하나님께 대해서는 진리의 성령 안에서 뜨겁게 사랑한다고 고함칠 수 있는 배짱, 이웃을 향해서는 깨끗하고 거짓 없는 마음에 용서와 자비를 가진 가슴으로 생명의 기운이 뿜어 나오는 언어와 행동... 이런 정도는 되어야 ‘믿음에 의해 살아진다. 복음에 의해 나타나는 의에 의해 살아진다. 복음의 능력에 의해 살아진다.’ 하는 소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모든 이들을 다 가짜로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실 틀린 것과 모자라는 것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모자라는 사람들의 믿음이 틀린 사람들과 함께 도매금으로 매도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저는 복음의 능력을 모르면서 아는 척 한다거나 신앙의 기준을 지저분하게 갖는 것이나 믿음의 가치를 저질스럽게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그냥 꿀밤을 한 대씩 먹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곤 합니다. 아니 발로 엉덩이를 차 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합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이 죽을 맛이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시간과 본인의 시간이 맞닿은 사람 외엔 전도를 하질 않지만 복음의 가치와 그 능력에 대해서는 추호도 삭감할 수 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복음의 가치의 존귀함을 잘 알기에 아무나에게 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농후합니다.

그래서 전 간혹 하나님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역사적인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망발(?)을 하고 다닙니다. 그렇지만... 제가 항상 복음의 능력을 일으켜 그 의에 의한 믿음에 의해 사느냐 하면 그게 바로 저의 치명적인 문제점입니다. 참으로 한심하고 한심한 사람입니다. 또 전 절간 같은 곳에서 묵상만 온 종일하고 있을 수 없이 날마다 뛰고 뛰는 몸이라 이 믿음을 잊어버리고 허둥댈 때가 너무 많습니다. 다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만은 믿음에 사로잡혀 있어 행복합니다. 이 땅을 하직하기 전에 아주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소망만으로, 오직 사랑만으로 교제를 가질 수 있는 달콤한 날이 오리라 기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