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노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2.13.16절)
율법이 선하지만 우리 육체와 바로 닿으면 정죄와 사망이 발생합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도저히 율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율법에 의해 죄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율법 보다 최상위의 법인 사랑을 이루어 율법의 요구를 감당하는 것이 바로 새 언약이며 복음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고 말씀하십니다(요1:17) 그런데 복음을 듣고 있지만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도무지 믿음이 체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십 년을 지나도 그 자리를 뱅뱅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화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며 믿음의 화합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지 않는 한 어떤 말씀도 자신의 것으로 적용되어 삶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려면 반드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육체)를 살아 있는 말씀에 의해 분별이 되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영원히 육이며 영으로 난 것만 영입니다(요3:6) 또한 어떠한 인간의 혈과 육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닿을 수 없습니다(고전15:50) 히브리인들은 율법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인간을 통째로 하나님께 냅다 맡깁니다. 대단한 엉터리 믿음입니다. 그나마 철학은 영혼과 육신을 갈라놓습니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의 죽음을 두고 영혼이 떠났다는 말을 합니다. 성경은 영혼만 달랑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엔 반드시 영혼이 입는 옷이 있습니다(고후5:1) 이건 자동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곧 참 예배를 드리려면 반드시 말씀 앞에 벌거벗고 영과 혼과 육(살전5:23)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분별이 없으면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았다고 계산하라(롬6:11)고 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육체의 외모는 셈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자신만 계산하라고 하면 알아듣질 못합니다. 외모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요6:63)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이 구분됨을 진술하고(롬8:6) 그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상태이고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다고 말씀합니다(롬8:9-10)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두 존재로 분리시킬 수 있으면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공급이 되어 그 몸도 살아납니다(롬8:11) 영이 먼저 구원을 받고 몸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해 집니다(살전5:23) 이것이 바로 행함의 야고보서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비밀문서인 히브리서 뒤에 붙은 이윱니다. 어떤 시인이 믿음은 생각의 대상(隊商)이 다다를 수 없는 오아시스라고 말을 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듣고, 그 안에서 자신을 말씀의 수술대에 올리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이 보일 겁니다. 거기서 몸이 서서히 달라지는 신앙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노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2.13.16절)
율법이 선하지만 우리 육체와 바로 닿으면 정죄와 사망이 발생합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도저히 율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율법에 의해 죄인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 율법 보다 최상위의 법인 사랑을 이루어 율법의 요구를 감당하는 것이 바로 새 언약이며 복음입니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다고 말씀하십니다(요1:17) 그런데 복음을 듣고 있지만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도무지 믿음이 체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십 년을 지나도 그 자리를 뱅뱅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의 화합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며 믿음의 화합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지 않는 한 어떤 말씀도 자신의 것으로 적용되어 삶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려면 반드시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육체)를 살아 있는 말씀에 의해 분별이 되어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영원히 육이며 영으로 난 것만 영입니다(요3:6) 또한 어떠한 인간의 혈과 육이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닿을 수 없습니다(고전15:50) 히브리인들은 율법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인간을 통째로 하나님께 냅다 맡깁니다. 대단한 엉터리 믿음입니다. 그나마 철학은 영혼과 육신을 갈라놓습니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람의 죽음을 두고 영혼이 떠났다는 말을 합니다. 성경은 영혼만 달랑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죽음 이후엔 반드시 영혼이 입는 옷이 있습니다(고후5:1) 이건 자동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곧 참 예배를 드리려면 반드시 말씀 앞에 벌거벗고 영과 혼과 육(살전5:23)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런 분별이 없으면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살았다고 계산하라(롬6:11)고 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육체의 외모는 셈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은 자신만 계산하라고 하면 알아듣질 못합니다. 외모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닙니다(요6:63)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이 구분됨을 진술하고(롬8:6) 그 영의 생각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상태이고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다고 말씀합니다(롬8:9-10) 이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두 존재로 분리시킬 수 있으면 그리스도의 영과 생명이 공급이 되어 그 몸도 살아납니다(롬8:11) 영이 먼저 구원을 받고 몸이 뒤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영과 혼과 육이 온전해 집니다(살전5:23) 이것이 바로 행함의 야고보서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비밀문서인 히브리서 뒤에 붙은 이윱니다. 어떤 시인이 믿음은 생각의 대상(隊商)이 다다를 수 없는 오아시스라고 말을 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분히 듣고, 그 안에서 자신을 말씀의 수술대에 올리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이 보일 겁니다. 거기서 몸이 서서히 달라지는 신앙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