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느냐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그 자민을:개역성경) 순산하였도다”(사66:8절)
거듭남과 영접이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건이긴 하지만 거듭남이나 영접 자체만을 강조하는 것은 난봉꾼이나 난쟁이 신자를 만들 소지가 다분합니다.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구원의 서정을 보면 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수양, 성화, 성도의 견인, 영화로 진행이 됩니다. 거듭남이 있어야 마음을 돌이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거룩함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결과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음을 믿는 겁니다(요3:36) 우리는 언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고 성령의 인침을 받고(엡1:13)나면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있어 영생을 가졌음이 믿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며(롬10:17) 그 말씀을 들으면 믿어지는 말씀입니다(롬10:8) 그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영접)이 바로 거듭난 결과이기도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한 사람씩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룩하신 그의 업적과 그 존재에 대한 말씀을 듣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거듭남만 반복해서 만지작거린다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그리스도를 잡아 당겨 가슴에 품어서 영생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무척 어린표현입니다. 따라서 어느 누가 ‘나 오늘 거듭 났어’ 한다거나 ‘나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어’ 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부각시키는 일은 매우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입니다.
예수는 한 개체의 존재이지만 그리스도는 그 안에 하나님 안에서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성도들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리스도로 다시 사신 이 사건으로 한 나라가 탄생했고, 한 민족이 거듭났습니다. 이를 두고 개역성경은 시온이 자민(子民 her children)을 순산하였다고 표현했습니다. 개정성경은 그 아들을 순산했다고 고쳐 그 뜻이 많이 훼손이 되어 걱정이 많습니다만 이 자민이라는 말은 참 대단한 해석입니다. 한 나라, 한 민족, 아들들을 단 한 순간에 순산할 수 있음은 바로 하나님의 신기한 역사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의 대속의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아담 안에 있던 자들 중에서 그리스도 안에 예정이 된 자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왔습니다. 이를 두고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 말씀하십니다(요1:13) 거듭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독생하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습니다(요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가까워 입에 있고 마음에 있어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게 됩니다(롬10:8-10)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실,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있는 사실이 그대로 믿어집니다. 이 사실 보다 거듭남이나 영접을 더 확실하게 설명할만한 어휘는 없습니다. 따라서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한 대속의 은총 안에 포함된 과정이며 영접은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자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구주가 되심이 믿어지는 것이기에 둘 다 그 자체를 이슈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