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9절)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세상의 종교는 부엌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중세 암흑기가 어쩜 세상의 마지막 때인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가 봅니다. 몸에 좋다는 것은 뭐든지 먹어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배가 곧 신이라고 지적한 바울의 직언을 떠 올립니다. 저의 동기 목사가 110kg의 거구였는데 이 친구는 먹는 얘기를 빼면 별로 할 게 없어요. 하다하다 7일 금식한 다음에 쌀 한 되로 밥을 해서 혼자 다 먹었노라 자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당뇨병에 결려 홀쭉해 진 모습을 한 번 봤습니다. 며칠 전에 수리가오 시에 두 목사를 데리고 갔는데 한 사람은 당뇨 증세가 있어 탄산음료까지 절제하는 편인데 다른 한 사람은 그 배가 임신부 같습니다.
저녁에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가 하는 말인즉 배는 부른데 허기를 느낀답니다. 어이가 없어 그럼 뭐 좀 사와 하니 후다닥 나가서 간식을 사다 먹고 난 다음에 잠에 빠졌습니다. 첫날부터 텔레비전을 보려고 해서 전기 플러그를 뽑아 버렸습니다. 나와 함께 활동하는 동안에는 일체 TV를 보지 말고 묵상에 묵상을 거듭하라고 단단히 일렀으니 3일 동안 그 둘은 텔레비전의 배가 엄청 고팠을 겁니다. 배는 부른데 시장기를 느낀다? 이게 바로 배에게 속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분명히 배는 부른데 허전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심령의 공허감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돈이 없으면 배가 더 고프다는 말이 있잖아요?
영이 텅텅 비었으니... 어쩌겠어요. 먹어서 배라도 채워야지요. 배꼽시계란 말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는 순간에 모든 신체적인 기능이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나 옛날의 우리 조상들은 배가 비어 신체적인 기능이 저하 되면 배를 속였습니다. 아주 간단한 간식을 먹어 배를 달랬습니다. 심지어 냉수 한 사발로 배를 속이고 콩밭 한 이랑을 더 매었노라 하는 옛날 우리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듣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주 강한 체력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성인병 같은 것은 근처에 오지 못합니다. 학은 60퍼센트를 먹고 돼지는 80퍼센트를 먹는데 사람은 150퍼센트를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도 돼지도 배를 다스리는데 사람은 배가 시키는 대로 먹습니다.
식욕은 성욕과 소유욕 그리고 사랑 밭고 싶어 하는 욕구와 함께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그래서 육체대로 살고 세상의 입맛대로 십자가 건너편에서 십자가의 원수 노릇하며 살면 반드시 그 배의 욕구를 따라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배는 배고팠던 기억 때문에 또 고플까봐 꾸역꾸역 저장을 합니다. 따라서 탐식은 자신의 배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누가 탐식을 하는 사람의 영혼은 짐승에 가깝다고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의 건너편에서 땅의 생각만 잔뜩 가진 사람들에게 성경이 맹수들이라고 한 말씀이 너무 지나칠까요?(고전15:32)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가 없어도 수행의 기본은 소식(小食)이라고 말하는 승려들의 말도 한 번 들어보세요. 음식 중에 사찰음식이 최고라는 말도 음미해 보세요. 공복 때에 일어나는 강력한 신체의 저항력으로 인해 1일 1식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한 번 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