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접에서 나타남까지

영접에서 나타남까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2,14,16,18절)


예수그리스도를 생각할 때에 언제나 말씀(호 로고스 요1:1))이신 그 원형의 이름의 의식하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소개 받을 때에 어디 출신인가 따지면서 왜 예수그리스도의 출신과 원형의 이름에는 왜 무관심한지... 따라서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말은 예수를 끌어안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 그의 이름 안에서 믿는 것(believed in his name)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복음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상태의 믿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가는 자격을 얻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1:13) 곧 거듭난 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분이 하신 일과 그 분을 같이 받아들여 믿게 됩니다.


이 문제에 얽매어 제자리에서 뱅뱅 돌면 고생 길게 하는 신앙의 코스로 돌입하게 됩니다. 얼른 말씀(호 로고스)이신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계시며 그 독생(the One and Only)하신 아들이 영혼에 비치는 빛 곧 영광임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자신 안에 영적인 에너지가 꿈틀대고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존귀해지는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당연히 말씀을 듣는 가운데 발생하는 믿음에 의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로 향한 은혜와 진리의 사닥다리가 자신 안에 설치가 됩니다. 주께서 아버지께로 내려 오셔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다음 하늘로 올라가신 은혜, 진리의 영을 보내주셔서 그 길을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께 나아가는 진리가 충만해 집니다.


당연히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항상 하늘로 향한 길이 심령에 열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물론 육신이 있고 세상에 살고 있는 터라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성령의 역사가 발진할 상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비밀스런 통로를 통해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됩니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이루어지는 거지요(요15:5) 받는 은혜 위에 은혜가 계속 쌓여져 가는 거지요.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건축해 가는 겁니다. 그 다음엔 이젠 안에서 비친 영광이 밖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신앙의 최고봉이지요.


모든 종교의 핵심 인물의 그림을 보면 얼굴 뒤에 후광을 삽입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영성은 이 후광이 그림이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는 겁니다. 그 얼굴에서 그 모습에서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 모습을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보여 주셨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지금 우리 안에 나타내십니다(요14:21, 고후4:6) 주께서 아버지의 품속에 거하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영광을 보고 그 은혜와 진리 가운데 아버지께 나아가는 일을 반복하면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품속에 있는 아들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으로 성경을 번역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지 못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